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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 . . . 530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부모 = 아버지 [[박정희]], 어머니 [[육수]]
         |웹사이트 =
         |죄값 = 2심 징역 25년·벌금 200억 원, 검찰 단독 항소·고로 고심 진행중(최순실 및 블랙리스트 관련)<br>----<br>1심 징역 6년, 검찰 단독 항소로 항소심 진행중. (국고손실 유죄. 뇌물수수 무죄.)<br>----<br>징역 2년 확정<ref>https://news.joins.com/article/23164465</ref>(공직선거법 위반,공천개입)
         |현황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구속장에 따라 2019년 4월까지 미결수용자 신분으로 수감 후 고심이 완료되지 않아 공천개입 실형 2년 집행 중<ref>http://www.nocutnews.co.kr/news/5073073</ref>
         '''박근혜'''(朴槿惠<ref>{{헌정회|2530}}</ref>, [[1952년]] [[2월 2일]] ~ )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다.<ref group="주">192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탄핵된 [[이승만]] 대통령까지 포함할 경우 역사 두 번째로 탄핵된 대통령이다.</ref>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의 차녀<ref group="주">박정희의 전처소생 [[박재옥]]이 있으므로 박근혜는 차녀가 된다.</ref>이자 [[육수]]의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나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청와대]]에서 자랐다. 1970년에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에 졸업했고,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1974년 [[육수 저격 사건|모친 사후]] 귀국하여 1979년 [[10.26 사건]] 이전까지 사실 대통령 배우자 직무를 대행하였다. 아버지가 서거한 후에는 청와대에서 나와 [[육재단]]과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2011년 12월부터는 [[새누리당]] 비대책위원장을 지내며 당 혁신 작업을 지휘하였고 2012년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새누리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어 2012년 12월 19일 실시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제18대 대선]]에서 득표율 51.6%로 48.0%를 득표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당선,<ref>[18대 대통령 박근혜] 박근혜 득표율 51.6%, 조선일보 2012.12.21</ref>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1987년 [[대한민국 헌법]] 개정 이후 최초 과반 득표 대통령, 최초 이공계 출신 대통령, 최초 독신 대통령, 최초 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743473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신기록들] 아시아투데이 (2012년 12월 20일)</ref>
         재임 직후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라는 위기를 맞으며 국정을 본 박근혜는 임기 중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국가적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창조경제]]를 위시한 추진한 정책 다수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더러, 미숙한 국정운과 불통 논란 등으로 숱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민간인의 국정 개입 사실이 낱낱이 폭로되면서 2016년 12월 3일 [[대한민국 국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이 발의<ref name="impeachment" />되어 12월 9일 대한민국 헌정사 두 번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주재·허남설|제목=[속보]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찬성 234·반대 56·무효 7·기권 2|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091610001|뉴스=[[경향신문]]|날짜=2016.12.09 16:10:00}}</ref>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 헌정 사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ref>{{웹 인용|url=https://www.ccourt.go.kr/cckhome/kor/event/adjuList.do|제목=선고목록 및 결정문 - 헌법재판소|확인날짜=2018-12-1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6&aid=0010429073|제목=[]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7-03-10}}</ref> 탄핵 후에는 곧바로 3월 21일 검찰에 소환되어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ref>{{뉴스 인용 |title=[박근혜 검찰 출석] 최순실 ‘곰탕’·이재용 ‘자장면’…박근혜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 |url=http://news.donga.com/3/all/20170321/83428508/2 |work=동아일보 |date=2017-03-21 |accessdate=2017-05-18}}</ref> 3월 31일에는 [[구속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세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title='최순실 국정농단 공범' 박근혜 구속…"혐의소명·증거인멸"(종합)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30/0200000000AKR20170330171251004.HTML |work=연합뉴스 |date=2017-03-31}}</ref> 구속된 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2017년 10월 16일 6개월인 1심 구속기간이 만료되었으나 검사가 앞선 구속장에 적시하지 않은 뇌물 공소사실에 대하여 다시 구속장이 발부되어 구속기간이 최대 6개월 연장되었다. 이에 대하여 박 전 대통령 측은 반발하였고 모든 변호인단이 사임하였다.<ref>[http://biz.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710171022138598395_1
         박근혜는 대기업 관련 범죄·[[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혐의 18개 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국정원]] 특활비 · 공천개입 등 혐의 3개에 대해 각각 재판을 받고 있다. 전자는 2심, 후자는 1심 판결이 나온 태이다. 2018년 4월 6일 18개 혐의에 대한 1심에서는 혐의 16개에서 일부유죄 및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으며,<ref name=":0" /> 2018년 8월 24일 2심에서 징역 25년 및 벌금 200억 원으로 형량이 늘어났다.<ref name=":2" /> 2018년 7월 20일 혐의 3개에 대한 1심에서는 2개가 인정되어 징역 8년 및 추징금 33억 원을 선고받은 태이다.<ref name=":1">{{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20/0200000000AKR20180720096900004.HTML|제목=박근혜 '국정원 특활비·공천개입' 1심 징역 8년…33억 추징(2보)|성=송진원|이름=|날짜=2018-07-20|뉴스=연합뉴스|출판사=|언어=ko-KR}}</ref> 2개 재판을 합치면 혐의가 총 21개, 형벌은 총 33년형과 벌금 200억 원과 추징금 33억 원이다.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에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에서 전시(戰時)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의 부인 [[육수]]의 딸로 태어났다. 현재 이에는 돈부리집이 있는 가가 위치해 있다.<ref name="kys">[[강용석의 고소한 19]] 1화</ref> 어머니 [[육수]]에게는 첫 소생이었으나 아버지 박정희는 이혼 경력과 전처소생의 장녀 [[박재옥]]이 있었으므로 박정희에게는 차녀가 된다. 형제로는 이복언니 박재옥이 있고 동복동생인 여동생 [[박근령]]과 남동생 [[박지만]]이 있다.
         아버지 [[박정희]]는 [[1917년]] [[경북도]] [[선산군]] 구미면 모리(현재의 경북도 [[구미시]] 모동)에서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백남의]]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공립보통학교(현재의 [[구미초등학교]]), 대구사범학교(현재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서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재의 [[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하여 재직 중이였다.
         어머니 [[육수]]는 [[충청북도]] [[옥천군]]의 대지주인 [[육종관]]과 부인 [[이경령]]의 차녀로 태어나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재의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현재의 [[옥천여자중학교]])에서 가정과 교사로 1년 반 동안 봉직한 경력이 있었다. 외조부 육종관은 딸이 과거 혼인 경력이 의심스럽고 가난한 군인에 불과한 박정희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박정희와의 결혼 결심을 굳힌 육수가 어머니 이경령, 동생 [[육예수]]와 함께 박정희가 있는 [[대구]]로 가서 결혼식을 강행하였다.
         박정희는 소령이던 1949년, [[여순 사건]]에 따른 숙군 여파로 육군 [[특무대]](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의 가혹한 고문끝에 [[남조선로동당]] 가입 혐의로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파면되어 육군 정보국에서 직제에도 없는 문관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가까스로 복직하고 대구사범학교 후배이자 부하 장교인 송재천(육수의 이재종오빠)의 소개로 만난 육수와의 재혼에 따른 안정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박근혜가 태어난 무렵이다. 한국 전쟁이 휴전에 들어가자 군인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1961년 5월 15일 오후 10시 경, 거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던 육군 제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에게 부인 육수가 "근혜 숙제 좀 봐주세요."라며 가족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면담을 에둘러 요구하였다. 이에 박 소장은 잠시 방에 들러 숙제를 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생 박근혜와 곁에서 잠든 장모 [[이경령]]과 3녀 근, 장남 지만을 훑어본 뒤에 집을 나선다. 이 때 "무슨 숙제입니까?"라는 거사 동지 [[장태화]]의 물음에 박정희는 "어, 뭐 그림 그리는 거야!"라고 답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아버지의 기척은 알았으나 자신이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후술하였다.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 행사에서 어머니 육수가 재일 한국인 [[문세광]]의 [[육수 저격 사건|저격으로 살해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 육수 사후 아버지 박정희는 재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대통령 배우자]] 역할을 대행하여야 하였다. [[1975년]]부터 박정희가 추진한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최태민]]이 그의 새마을 사업에 참여한 것이 후일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박근혜는 의전의 [[대한민국 대통령의 배우자|대통령 배우자]] 권한대행으로서 아버지 [[박정희]]의 공식 행사와 해외 순방 등을 수행하였고 [[육수 저격 사건]] 이듬해에 만들어진 [[육수여사추모기념사업회]] 이사가 되었다.
         이때 [[전두환]]에게서 아버지 박정희가 남긴 통치 자금 6억 원을 수령하였는데 이 사실은 박근혜의 정계 입문 이후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980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1982년]] [[육재단]] 이사장, [[1994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82년]] 박근혜는 [[육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최태민도 육재단에 합류하였다. 이후 박근혜와 최태민은 함께 [[1989년]] 육수를 추모하는 단체인 [[근화봉사단]]을 조직하였고, 박정희와 육수를 추모하는 월간 신문인 [[근화보]]도 발행하였다. 1년 뒤인 [[1990년]] [[9월]] 근화보는 1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였고, 박근혜와 여동생인 [[박근]]과의 육재단 운권 다툼이 시작되었다. 박정희, 육수 숭모회는 다툼의 원인은 최태민이 박근혜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육재단의 운을 전횡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육재단의 간부는 [[1987년]] [[9월 2일]] 어린이회관 노조원들이 외부세력 물러가라며 1주일 동안 농성하였던 것은 최태민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특별한 직책도 없으면서 육재단 운을 좌우해온 최태민을 싫어하면서도 박근혜와 막역한 관계 때문에 어느 누구도 기를 펴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박근혜는 [[1990년]] [[11월]] 육재단 이사장 퇴진 기자 회견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 장면 . . . . 496회 일치
         {{다른 뜻|장면 (드라마)|일제 강점기의 인물|[[화]]나 [[연극]] 등의 한 정경}}
         |웹사이트= [http://unsuk.kyunghee.ac.kr/ 운석 장면 박사 기념관]
         초명은 '''장지태'''(張志兑), 아호(雅號)는 운석(雲石), 세례명은 요한(Johan), 문명은 '''John Myeon Jang'''·존 면(John Myeon), 일본식 이름은 '''다마오카 쓰토무'''(玉岡 勉).
         [[종로구|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는 [[천주교]] 선교 사목 활동과 언론 활동, [[용산]][[신학교소|신학교]], [[동성업고등학교]], 계성[[국민학교]], 혜화[[유치원]]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광복 이후 정계에 투신하여 1946년 [[민주의원]] 의원,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 [[1948년]]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의원<ref>1949년 2월에 주미국 대한민국 대사로 부임하였고, 1949년 3월에는 종로구 을 선거구에 대한 보궐선거가 치러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1949년 2월 경에 사임한 것으로 추정된다.</ref> 에 당선되었으며, 1948년 12월 7일부터 12월 12일까지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에서 열리는 제3차 [[UN 총회]]에 한국대표단 수석대표로 파견되어 국제사회에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냈다.
         [[1966년]] [[6월 4일]]에 자신의 거주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간장염]]과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인하여 향년 68세로 급서한 장면은 청렴하고 깨끗한 정치가라는 평가가 자자했다 그의 본관은 [[인동 장씨|인동]](仁同)으로 [[아명|초명(初名)]]은 '''장지태'''('''張志兑'''), [[호 (이름)|호]]는 운석(雲石)이다. 종교는 천주교로서 세례명은 ‘[[요한]]’(John)이며, 따라서 장 요한으로도 불리고, 장면 스스로도 [[문]]명은 '''존 면'''(John Myeon)이라 했다. 일제 강점기의 [[창씨개명]]은 ‘다마오카 쓰토무’({{lang|ja|玉岡 勉|}})이다. [[한성부]] 출신으로 그가 성장한 정치적 고향은 [[인천광역시|인천]]이었다.
         죽정 장잠은 [[조광조]]의 문하생으로 [[기묘사화]] 이후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고, 장잠의 손자인 장사진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공을 세웠다. 본래 장면의 선조는 [[경북도]] [[인동]](仁同)에 살았으나, 장면의 8대조 [[장익붕]](張翼鵬)이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성천군]](成川郡)으로 이주해 왔다. 그리고 장면의 고조부 [[장인각]](張仁珏)의 대에 [[평안남도]] [[중화군]]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아버지 장기빈은 16세에 평안남도를 떠나 [[인천]]으로 이주했고, [[대한제국]]의 세무 관료로서 [[탁지부]]에서 근무하다가 [[인천세관]]으로 발령받았다. 아버지 [[장기빈]]은 뒤에 천주교 신자인 [[장수 황씨]] [[황성집]](黃聖集)의 둘째 딸 [[황루시아]]와 결혼하였는데, 아버지 [[장기빈]]과 어머니 [[황루시아]] 모두 독실한 [[천주교]]인으로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천주교 신자였다.
         태어나기 전 어머니 황루시아는 성전으로 가기 전 진흙에서 섬광이 뻗어나오는 것을 보고 그 속에서 금가락지 5개를 얻는 꿈을 꾸었다 하고, 아버지 [[장기빈]]은 뒤뜰 아래 롱한 깃털을 가진 특이한 동물을 품에 안는 꿈을 꾸었다 한다. 그의 외숙모는 밭 한가운데로 별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한다. 모태신앙인이었던 그는 [[1899년]] [[9월 12일]] 부모를 따라 [[경성부]] [[명동성당|종현본당]]으로 가서 종현본당 주임신부 빅토르 신부에게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 뒤로 그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천주교 교리에 위배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한다. 그는 나중에 총리가 되고서도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도 하는 등 복종이 몸에 밴 인물이었다.<ref name="hanjong44"/>
         [[1906년]] [[8월 4일]] 장면은 [[천주교 인천교구|인천성당]] 부설인 사립 박문학교(현재 [[박문초등학교]])에 입학, 한학(漢學)과 [[수학]] 등을 수학하였다. 9세 때에 그는 부모님 몰래 [[투]]를 잘랐다.<ref name="회고록34">장면, 《한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 (가톨릭출판사, 1999 증보판) 34페이지</ref>
         [[단발령]]에 반대하여 '오두가단 차발불가단'이라 하면서까지 머리깎기를 거절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품게 된 그는 인천 시내로 나가 최초로 설립된 근대식 이발소를 구경했다. [[인천]]에 처음으로 이발소가 생겨 머리를 자른다기에, 그는 부모의 승낙 없이 혼자 가서 머리를 싹 잘라 버렸다. 자른 머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그는 어머니에게 호되게 혼이 나기도<ref name="회고록34"/> 했다. [[단발령]]이 내려진 뒤에도 몰락 양반가문이었던 그의 집안에서는 투를 틀고 한복을 고집하였던 것이다. 유년기의 장면은 유순한 성격으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운동 다는 독서와 사색을 즐겼다.
         [[1910년]] 인천성당 부설 박문학교 보통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박문학교 고등과에 진급하였다. [[1912년]] 동 박문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다.<ref name="MBC">{{웹 인용|url=http://www.imbc.com/broad/radio/fm/50years/story/story_62/1568240_21997.html|제목=MBC - 장면 프로필|출판사=MBC|확인날짜=2009-01-22}}</ref> 학창 시절 내내 공부와 신앙활동에만 전념하였다. [[1912년]] 3월 인천 공립 심소학교에 6학년으로 편입하여 심소학교 6년과정을 마쳤다. [[1913년]] 4월 인천 공립 심소학교 고등과로 진학하여 [[1914년]] 3월에는 1년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후 같은해 4월에는 [[수원고등농림학교|농림학교]]로 진학하였다.<ref name="MBC" />
         그가 [[수원고등농림학교|농림학교]]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당시 15세였던 그를 받아주는 고등교육기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ref name="이용원">이용원 《제2공화국과 장면》(범우사, 2007)</ref>{{Rp|69}} 수원농림학교는 뒷날 [[서울대학교]] 농과 대학의 전신으로 관비 학교였으므로, 매월 5원씩 급여(훈련수당)로 지급되었으며, 그는 기숙사에 3원 50전을 내고 1원 50전씩을 용돈으로<ref name="회고록34"/> 사용하였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장면은 [[서울특별시|경성]]의 모던 보이들이 즐기던 [[술]]과 [[담배]]를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또한 동급생과 또래 청년들이 기방(妓房)에 출입할 때도 그는 기방에 출입하지 않고, 여가시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회]]에 나가 신앙과 기도, 독서, [[어]]공부 등으로 소일했다.
         학창시절 장면은 위권 성적을 유지하였다. [[1916년]] 6월에 고등학교 2학년 1학기에 재학 중 집안의 소개로 [[김옥윤]](金玉允)과 만나 결혼하였다. 처가는 이름도 있고 재력도 있는 집안이었다.<ref name="이용원"/>{{Rp|69}} 김집(金商集)의 딸 김옥윤은 당시 16세로, 중림동 성당 부설 가명학교(加明學敎)를 졸업했으며, 처가 역시 모태 [[천주교]] 신앙인 가문이었다.
         [[1917년]] 3월, 장면은 [[수원고등농림학교|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ref name="jangssi"/> 그러나 ‘금테 모자를 쓰고, 칼을 차’고 활동하는 관리가 되기 싫었던 그는<ref name="이용원"/>{{Rp|70}}<ref name="회고록1"/>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1917년]] 9월 [[경성부|경성]] [[황성기독교청년회|중앙크리스트교 청년학관]](현 서울 YMCA) 어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황성기독교청년회|중앙크리스트교 청년학관]] 재학 중 그해 4월 서울 [[용산구|용산]]에 있는 용산천주교신학교(龍山天主敎神學敎)의 강사로도 활동하였다.<ref name="unsuk">[http://unsuk.kyunghee.ac.kr/jangmyun_2004/c_1.htm 운석장면기념회]{{깨진 링크|url=http://unsuk.kyunghee.ac.kr/jangmyun_2004/c_1.htm }}</ref> [[1918년]] [[4월]] 그는 용산의 예수 성심신학교(聖心神學敎) 강사가 되었는데, 이 신학교에서 장면에게 [[신학]]과 어를 배운 세 살 아래 학생이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주교]](主敎)인 [[노기남]](盧基南)이었다. 신학교 강사가 되면서 기독교 청년학관은 야간반으로 전반, 낮에는 강사로, 밤에는 학생으로 생활하였다.
         [[1920년]] 3월 경성 중앙기독교 청년회관(YMCA) 어학과를 졸업하고 장면은 미국 유학을 추진하였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 천주교회를 설립하고 전교활동을 하던 메리놀 선교회에 그의 딱한 처지가 알려져 메리놀 선교회의 후원하에 그의 동생 [[장발 (화가)|장발]]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같은해 1920년 10월 장면은 [[한국 천주교 청년회]] 대표자격으로 미국으로 유학, 6개월간 [[메리놀 신학원]] 에서 어실력을 다듬었다. 이 곳에는 [[한국]]에서 [[천주교]] 전교 활동을 벌였던 [[패트릭 번]](한국명 방일은) 등이 강사로 있었고, 패트릭 번 신부는 어담당 교사였다. [[1921년]] [[1월 4일]] [[메리놀 선교회]]에서 운하는 대학교 진학 예비과정(비정규 고등학교 과정)인 [[버나드 고등학교]](Bernard High School)에 입학하였다. [[1921년]] [[9월]] [[미국]] [[뉴욕]]의 [[맨하턴가톨릭대학]] [[문학]]과(英文學科)로 진학, [[문학]]외에 부전공으로 [[교육학]](敎育學)을 전공하였다.
         집안으로부터 조금씩 도움을 받기는 하였지만 학비와 밥값을 벌어들이기 위하여 방학 기간과 여가를 이용하여 막노동과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용돈을 조달하였으며<ref name="회고록036">장면, 《한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 (가톨릭출판사, 1999 증보판) 36페이지</ref>, 또 비용을 절약하기 위하여 자취생활을 하였다.<ref name="회고록036"/> 2학년 재학 중 발병하여 [[병원]]에 입원하여 1년 간 휴학하기도 했으며 이후 다시 복학하여 학업을 마쳤다. [[1925년]] [[6월]] [[맨하턴가톨릭대학교]] 문학과를 졸업하였다.<ref name="MBC" /> 졸업 직후 국내에 [[가톨릭]] 선교 사목에 뜻을 둔 그는 귀국을 결심한다.
         그해 [[6월 30일]] [[이탈리아]]에 도착, [[7월 5일]]에 [[로마]] [[바티칸 시티]]에서 열린 ‘한국인 79위 순교자’ 시복식에 한국인 신자 대표로 참석하고, [[7월 6일]] 당시 [[교황]]이었던 [[교황 비오 11세]]를 알현한 후 [[지중해]]와 [[인도양]]을 거쳐 40일의 항해를 마치고<ref name="회고록036"/> [[8월 29일]] 귀국하였다. 그는 귀국 후 평안남도 소재 메리놀센터 하우스의 어학교수로 부임하였고<ref name="unsuk"/> , [[1927년]]부터는 메리놀신학원 당시 은사였던 패트릭 번 신부가 있던 [[평양성당]]에 근무하며 [[천주교 평양교구]]에서 활동하였다. [[1928년]] 평양 천주교회청년회 회장에 선출되었고, [[1928년]] 12월 미국 [[맨하탄 대학교]]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ref name="unsuk"/> [[1929년]] 10월 평양 시내 서포역전 평양천주교구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였으며, 11월 ·한 천주교회 용어 사전인 ‘The Summary of Religious Terms’를 탈고, 출간하였다.
         [[1930년]] [[8월 21일]] 소책자 《구도자의 길》을 출간하였고 이듬해 [[1931년]] [[3월 18일]] 천주교 평양대교구 사무직을 사퇴하고 경성부로 내려왔다. [[4월 1일]] 천주교 교인들의 추천으로 [[동성업고등학교]] 교사로 초빙되었다. 1931년부터 동성업학교의 교사로 부임해 [[1936년]]에 교장이 되어 해방 때까지 근무하였다.<ref>[[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60년편 1권》(인물과사사, 2004) 79쪽.</ref> [[9월 15일]] 천주교 한국교구설정 백주년 기념 《조선천주공교회 약사》 를 출간하였다. 1931년 동성업학교 교사로 서무주임(행정실장)을 겸하였다.
         장면은 값비싼 [[한 사전]]과 [[어 사전]]을 구입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한 사전]]의 필사본을 인쇄하여 [[천주교회]]에 비치하여, [[평양부]]와 [[경성]]에 보급하였다. 어사전과 한사전을 구하고 싶어도 값이 비싸서 구하기 어려웠던 고학생들은 성당에 찾아와 그가 인쇄한 한사전과 어사전을 가져갔다.
         [[1936년]] [[11월]] 동성업학교 [[박준호]](朴準鎬) 교장이 별세하자 동성고 서무주임으로 있던 장면은 [[11월 19일]] 천주교재단의 추천으로 동성업학교 교장에 천거되어 취임하였다.<ref name="unsuk"/> 동성업학교 교장에 취임하자 그는 [[조선총독부]]가 감시를 위해 파견한 [[일본인]] 교사 사이고를 축출했다. [[1937년]] [[4월 1일]] 경성 혜화유치원 원장이 되었고 38년 학사 시찰차 출국, 3주간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왔으며<ref name="unsuk"/> [[1938년]] 친일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간사에 선출되었다.<ref name="협조1"/>
         [[1938년]] [[10월 20일]]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산하의 비 시 국민생활개선위원회 제1부 위원 44명 중 1인으로 선임되어 명동천주교회를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 가입시켰고 같은 해 [[5월 14일]]에는 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 경성교구연맹의 간사로 참여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085916 <`친일인사' 포함여부 놓고 격론벌인 인물들>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ref>[http://www.koreakjh.com/kjhphp/board.php?board=kkkgoods3&command=body&no=108 민족정기구현회 -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봇이 붙인 제목 -->]</ref> 그러나 이때의 칼럼 기고 등은 그가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했다기 보다는 천주교 교단을 살리기 위한 소극적인 부일에 불과했다는 반론도 있다.<ref>김수환의 회고</ref> 당시의 이런 활동은 그가 [[대한민국 국무총리|제7대 국무총리]]로 임명될 무렵 과거전력논란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 허정숙 . . . . 352회 일치
         {{다른 사람|허정숙 (시민운동가)||대한민국의 시민운동가이자 담가로 의료소비자시민연대에서 활동한 사람}}
         |직업 = 사가, 독립운동가, 페미니스트, 철학자, 언론인, 정치인
         |자녀 = 아들 임표, 아들 송길한, 아들 신한, 아들 허OO(이름 미), 아들 허OO(이름 미)
         |친척 = 삼촌 허훈, 언니 허정희, 이복 여동생 [[허근욱]], [[허선욱 (하프 주자)|허선욱]], 이복 제부 박노문, 이복 조카 박일규, 이복 남동생 허욱, 허욱, 허성욱, 허기욱, 사촌 동생 허철, 외할아버지 정종언
         |웹사이트 =
         광복 후 [[서울]]로 귀국했다가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38도선]] 이북으로 월북, 남북을 오가며 활동하던 중 [[1948년]] [[4월]]의 [[남북 협]]에 북측의 여성계 대표로 참여한 뒤 [[북조선]]에 정착했다. 그해 [[9월]] [[최고인민회의]] 1기 대의원이 되고, 38선 이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 단독 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내각 [[문화선전]]과 [[보건성]] 부, [[1949년]] [[보건부|보건]], [[1959년]] [[법무부|사법]]과 최고재판소 판사 등을 역임하였다. [[연안파]] 숙청 때는 전 남편인 [[최창익]]을 비판하여 숙청을 면하였다. [[1965년]] 정계에 복귀,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재판소|최고재판소 소장]]에 복직하였다. [[1972년]]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 되고 그해 [[최고인민회의]] 제5기 대의원에 선출된 뒤, 제6,7,8기 [[최고인민회의|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연임, 재선되었다.
         허정숙은 [[1902년]] [[7월 16일]] 독립운동가 겸 [[변호사]] [[허헌]](許憲)과 그의 부인인 [[경주 정씨]] [[정보]](鄭寶榮, 다른 이름은 정긍자(鄭兢子))의 둘째 딸로 [[경성부]] [[종로구|종로방]] [[관철동]]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정자(貞子), 호는 수가이이다. 일찍이 요절한 언니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생년은 불분명하여 [[1902년]]생 설, [[1903년]]생 설, [[1906년]]생 설, [[1908년]]생 설 등이 있다. 허정숙의 출생지는 [[경성부]]였으나, 본적지이자 아버지 [[허헌]]의 고향은 [[함경북도]] [[명천군]] 하우면 하평리이었다. 따라서 [[명천군]] 출신으로도 본다. 그가 태어날 때 위로는 언니 허정희(許貞姬)가 있었다.
         허정숙은 자신의 어머니 정보을 통해 '여성의 삶'을 처음 발견했다.<ref name="hanis0">[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100032/2002/01/005100032200201281825008.html 금욕·순정…전통적 여성성 반기] 한겨레신문 2002.01.28</ref> 아버지 허헌은 늦게까지 공부하였고, 남편과 가족의 뒷바라지를 하던 어머니 [[정보]]을 통해 여성의 삶에 대해 회의하였다. 모든 것을 가족에게 투자하고 '자신의 욕망을 근원적으로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우직하게 헌신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허정숙은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ref name="hanis0"/> 훗날 그는 과연 [[가족]]과 [[가정]]이 인간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고 회고하였다.
         아버지 [[허헌]]은 계속 학업에 계속 종사하여 [[경성]]으로 올라갔고, 가정의 생계는 어머니인 정보이 꾸려나갔다. 언니 허정희는 일찍 요절하여 사실 허정숙이 장녀가 되었다. 그 후 아버지 [[허헌]]은 [[경성]]에서 [[유덕희]](柳德禧)와 재혼하고, 30년 연하의 이복 동생들인 [[허근욱]]과 [[허선욱]], [[허종욱]], 허욱, 허선욱, 허기욱 등이 태어난다. 이복 여동생 [[허근욱]]은 소설가 겸 작가이고, [[허선욱]]은 음악가이며, 이복 남동생인 [[허종욱]]은 [[북조선]]의 외교관이다.<ref>한때 한국에서는 그의 아들과 이름이 비슷했던 허종욱이 그의 아들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ref>
         아버지 허헌이 18세 때 허정자가 출생하였지만 당시 [[허헌]]은 학업을 계속하느라 늘 집을 비우고 딸을 둔 어머니의 고민 속에 그도 일찍이 봉건적 가족 구조의 폐단을 보고 자랐다고 한다.<ref name="shinyoung132">신숙, 〈일제시기 여성운동가의 삶과 그 특성 연구:조신성과 허정숙을 중심으로〉역사학회, 《역사학보 150호 (1996년 6월호)》 (역사학회, 1996) 132페이지</ref>
         어려서 허정숙은 [[기독교]] 교회에 다녔다. 아버지 [[허헌]]은 [[1910년]] [[원산]]에서 기독교를 전도하는 [[이동휘]]를 만나 [[기독교]]인이 된 후 향리와 [[한성]]에 [[교회]]를 세우고 청년교육에 전념하면서 당시 항일 운동가를 도왔다고 하니 허정숙의 어린 시절에 기독교 향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ref name="shinyoung132"/> 그러나 후에 [[사회주의]] 사과 [[페미니즘]] 사을 접하면서 기독교를 버렸고, 오히려 [[기독교]]는 [[자본주의]]의 첨병으로서 인간을 지배자의 노예로, 여성을 남성의 노예로 만드는 사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착한 사람, 선량한 사람이 되자면서 평일에는 속된 인간으로 변모하는 사람들의 태도 역시 허정숙으로 하여금 종교에 대한 환멸감을 갖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1913년]] [[경성부]] [[배화학당]]에 입학하였다. 선대의 부로 아쉬울 것 없는 유복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배화학당]] 시절에 그는 글과 시를 잘 지어서 백일장 등에 나가서 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의 그는 시를 읽기를 즐겨하였다. 배화학당 시절 그는 [[차미리사]]의 향을 받아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1917년]] [[배화학당]]을 졸업하고 [[평양고등여학교]]에 편입, [[1918년]] [[평양고등여학교]]를 졸업하였다.
         후일 딸의 이같은 자유로운 감성을 간파한 아버지의 권고로 [[일본]] 고베(神戶)의 신학교인 [[간사이 학원]]으로 유학하게 된다.<ref name="shinyoung132"/>
         [[1918년]] [[이화학당]]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며 [[미국]] 유학을 목표로 YMCA [[기독교청년회]]에도 다니며 [[어]]를 배웠다. [[1919년]]초, [[이화학당]] 전문부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 [[도쿄]]에 체류하며 [[간사이 학원]](關西學院)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낮선 환경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그의 성격, 문화의 차이 등은 그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었고, 그는 [[일본]] 생활을 쉽게 적응하지 못하였다.
         그는 장성하면서 부친과 신뢰하는 사이가 되어, 아버지 허헌과는 부녀관계인 동시에 정치적, 사적 동지 관계로 때로는 사적 충돌도 있었다고 한다.<ref name="shinyoung133"/>
         그의 집에 드나들던 [[사회주의]] 운동가들과 독립운동가들에게 많은 향을 받으며 유년기를 보낸 허정숙은 일찍부터 여성문제에 대한 글을 쓰고 [[경성여자청년동맹]]을 결성하면서 여성 해방 운동을 시작했다.<ref name="pyung01">[http://kdlpnews.org/reader/view_pastarticles.asp?id=200109141000000030 <nowiki>[</nowiki>한국의 여성운동가들-4<nowiki>]</nowiki> 허정숙 "계급해방"과 "여성해방" 사이에서]</ref>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신식교육'을 받으며 자유로운 감성으로 성장한 허정숙은 금욕, 순종 따위의 전통적 여성의 미덕들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었다.<ref name="hanis0"/> 그는 [[유교]] 사은 여성과 인간을 억압하는 사이며, [[유교]]가 말하는 도덕과 예의는 인간의 권리와 본능을 존중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사이라고 비판했다.
         [[1919년]] 아버지 [[허헌]]의 뜻에 의해 [[일본]]으로 유학하여 [[간사이 학원]]에 입학하였다. 간사이학원의 기숙사는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곳이었다.<ref name="shinyoung133">신숙, 〈일제시기 여성운동가의 삶과 그 특성 연구:조신성과 허정숙을 중심으로〉역사학회, 《역사학보 150호 (1996년 6월호)》 (역사학회, 1996) 133페이지</ref> 그는 기숙사의 엄격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기숙사 생활 외에도 그는 끝내 학교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1919년]] [[3월]], [[3·1 운동]] 직후 귀국하였다. [[경성]]에서 그는 [[3·1 운동]] 이후 계속 이어지던 만세 대열에 참여하였지만 만세 운동은 곧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검속을 피해 은신하였다. 그는 [[일본]] 유학생활 중 습득한 [[사회주의]] 사을 연구, 공부한 뒤 귀국 후에는 [[사회주의]]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한다.
         그러나 [[간사이 학원]]의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1920년]] 여름 방학 때 [[간사이 학원]]을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허헌]]의 뜻에 의해 다시 [[일본]]으로 보내져, [[고베 신학교]]로 진학하였으나 역시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한다. 그의 회에 의하면 '수녀원 같은 생활을 견디지 못해 중도에 뛰쳐나온' 것이었다. 그 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26년]] [[간사이 학원]]을 수료하였다.
  • 허목 . . . . 349회 일치
         |설명= 허목 초 (보물 제1509호)
         |직업= 문신, 사가, 작가, 시인, 학자, 정치가
         |배우자= 본실 [[전주 이씨]] 부인 <br /> 첩 이름 미
         |웹사이트=
         '''허목'''(許穆, [[1596년]] [[1월 10일]](음력 [[1595년]] [[12월 11일]]<ref>이익, 《성호전집》 권58, 미수 허 선생 신도비명</ref>) ~ [[1682년]] [[6월 2일]]([[음력 4월 27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및 유학자, [[역사가]]이자 교육자, 정치인이며, 화가, 작가, 서예가, 사가이다. 본관은 [[양천 허씨|양천]](陽川)으로, 자(字)는 문보(文甫)·문부(文父)·화보(和甫)<ref>[http://people.aks.ac.kr/front/dirservice/dirFrameSet.jsp?pUrl=/front/dirservice/ppl/viewDocumentPpl.jsp?pLevel2Name=&pLevel3Name=&pAgeCode=&pAgeName=&pGanadaFrom=&pRecordID=PPL_6JOb_A1595_1_0014464&pPplCount=&pOrderByType=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ref>, 호(號)는 미수(眉叟), 태령노인(台領老人),대령노인(臺領老人), 석호장인(石戶丈人)이다. 별호는 미로(眉老), 희화(熙和), 공암지세(孔巖之世), 승명(承明)이고 별호로는 동교노인(東膠老人), 구주노인(九疇老人), 동서노인(東序老人), 이서포옹(二書圃翁),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과거 시험|과거]]에 급제하지 않고도 정승 반열에 올라 [[의정부]][[우의정]]겸 경연사에 이르렀다. 당색은 [[남인]]으로, [[남인]] 중진이며, 청남의 수였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에 올랐으며 [[조선 효종|효종]] 사후 제1차 [[예송 논쟁]] 당시 [[조선 효종|효종]]은 장남의 예로서 3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고, 제2차 [[예송 논쟁]] 당시 [[인선왕후]]의 1년복이 채택되자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이조]][[참판]](吏曹參判)에 발탁된 뒤 [[1675년]]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 겸 [[성균관]]제주(成均館祭酒), [[의정부]][[좌참찬]], [[이조판서]](吏曹判書)를 거쳐 특별 승진하여 그해 의정부우의정(議政府右議政) 겸 경연사, [[사복시]]제조를 지냈다.
         예송논쟁 기간 중 [[송시열]]의 사형을 주장하였고, [[송시열]]에 대한 온건 처벌론을 주장하는 [[탁남]]의 [[허적]], [[권대운]] 등과 갈등하였다. 그뒤 [[북인]] [[윤휴]]를 포섭하여 [[청남]]을 이끌었다. 지패법, 체찰사부 설치 등을 반대하였고, [[1678년]] 판중추부사에 이르렀으나 [[허견의 옥사]]의 파편을 맞고 파면된다. [[남인]]의 강경파 인사이자 [[윤선도]], [[윤증]]과 함께 [[남인]]의 저격수로 유명하였으며, 동시대의 정치가 우암 [[송시열]], [[송준길]] 등의 주요 정적(政敵)이자, [[예송논쟁]] 당시 남인의 논객이었다.
         [[이황]]과 [[조식 (1501년)|조식]]의 제자인 한강 [[정구 (1543년)|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정구 (1543년)|정구]] 사후 그의 수제자인 모계 [[문위 (조선)|문위]](文緯)와 여헌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정구]]에게 수학하였으나, [[박지화]]의 제자였던 부친 [[허교]]와 외조부인 [[임제]]의 향으로 천문, 지리, 도가 등에도 능통하였다 한다. 글씨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조예가 깊어 자신의 독특한 필체인 미수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남인]]에서도 [[청남]]에 속하며, 고결한 인품 덕분에 남인이 실각한 뒤에도 88세까지 천수를 누렸다.<ref>윤홍식·오병문, 2006, 조선선비들에게 배우는 마음 챙김의 지혜, 봉황동래.</ref> [[서예]]의 대가였으며 [[전서체]]에 능했다. 사후 [[1689년]] 복관되고 왕명으로 저서가 간행되었으며, [[1692년]] [[증직|증]] [[의정부]][[의정]]에 [[증직]]되었다.
         미수 허목은 [[1595년]](선조 28년) 또는 [[1593년]](선조 26년) [[12월 11일]] [[한성부]] 창선방(彰善坊)에서 [[포천]][[현감]](抱川縣監)으로 사후 [[증직|증]] [[의정부]][[의정]](贈領議政)에 [[추증]]된 [[허교]](許喬)와 [[정랑]](正郞)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딸 임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증조는 동애 [[허자]](東厓 許磁)로 [[훈구파]]의 일원이었고 증조모 전주이씨는 왕족으로 [[조선 태종|태종]]의 장남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증손녀였다. 할아버지는 퇴계(退溪)가 그 학문과 덕망을 기린 송호처사(松湖處士) 허강(許橿)이고, 할머니 진주강씨는 문량공 [[강희맹]](文良公 姜希孟)의 5대손이며, 사용(司勇) 강복(姜復)의 따님이다. 또한 할머니 진주강씨는 한훤당 [[김굉필]]의 문인이자 정암 [[조광조]]의 동문인 모재 [[김안국]](慕齋金安國)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허목에게는 또 30년 이 나이차이가 나는 서제(庶弟)가 몇명 더 있었는데, 아버지의 첩에게서는 [[허달]](許達)과 또다른 서모에게서는 [[허순]](許順)이라는 이복 동생들이 태어났다. 이복 동생 허순(許順)은 [[조선 현종|현종]] 때인 [[1672년]] [[무과]]에 급제하였다.<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exm/exmView.aks?exmId=EXM_MU_6JOb_1672_009959&isEQ=true&kristalSearchArea=B 허순-무과 합격 기록]</ref>
         아버지 [[허교]](許喬)는 화담 [[서경덕]]의 제자인 [[박지화]]의 문인이었고, 외할아버지인 [[임제]] 역시 도학과 경학에 관심이 많았다. 허목은 [[유교]]를 신봉하는 [[성리학]]자였지만 아버지 허교와 외할아버지 [[임제]], 아버지 허교의 스승인 [[박지화]]와 [[서경덕]]의 향을 받아, 도학과 노장 사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유교, 성리학 외에도 사물의 현에 대한 정답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10대 초반의 나이에 당대에 [[의정]]을 지낸 [[북인]](北人) 아계 [[이산해]](李山海)의 문하에도 출입했다. 그러나 [[이산해]]가 [[인목대비]] 폐모론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므로 [[인조반정]] 이후 연좌되지는 않았다. 그는 [[시흥군]] 광명에 은퇴해 있던 [[남인]] 재 오리 [[이원익]](李元翼)의 문하에도 출입하여 수학하였다. 그뒤 그가 21세 되던 해에 총산(鄭怱) 정언옹선생의 문하생이 되어 예기(禮記) 단궁(檀弓)편을 배웠다. 이 시절부터 이미 허목의 예론의 조예를 갖추게 되었고 23세에 부친의 임지인 거창으로 가서 모계(茅溪) 문위(文緯)를 찾아 뵙고 그의 학당에 출입하며 배우게 되었다. 스승 모계 문위는 [[이황]]과 [[조식]]의 학통을 계승한 [[한강 정구]]의 제자였다.
         (종전 내용(아래 서술된 내용)과 관련하여 내용이 논리적이지 않은 점들이 있어 내용을 바로 잡고자 합니다. 첫째, 미수 공은 서울 창선방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현감 이었고, 할아버니는 송호 강으로 역대사감 30권을 편찬하였고, 증조 할아버지는 좌찬성 이었습니다. 좌찬성은 의정부의 종1품 관직으로서 정 2품인 6조 판서보다도 높은 벼슬입니다. 미수 공의 가계 자체가 청렴 결백한 가계이기에 부유한 가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집안이 가난하고 한미한 집안이 아니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더우기, 앞에서도 논의된 바와 같이 증조모가 왕족이고, 어머니 또한 그 유명한 백호 임제의 따님입니다. 또한, 선대에도 벼슬하신 분들이 많고, 명문벌족의 자손이기에, 많은 선비들이 집안에 왕래를 하고 이에, 미수 공은 그 인연들로 인해 유명한 분들로 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유명한 가계에서 왜 혼처를 찾지 못하겠습니까? 이에 "집안이 가난하고 한미하여 혼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합당치 않습니다.) 두번째로, 오리 이원익 대감이 나이든 손녀 사위감을 찾고자 분주했던 것은 아닙니다. 손자도 아닌 손녀의 혼처를 왜 할아버지가 적극 찾아야 되겠습니까? 할아버지 보다는 부모가 딸의 혼처에 대해 더 관심이 많겠지요. 손주(아들)이라고 하면, 가계도 이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하여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적극적으로 혼처를 알아 보았을 것입니다. 또한, 오리 이원익은 예전부터 허목의 조부 증조부와도 잘 아는 사이 입니다. (조선왕조실록). 퇴청길에 아이의 됨됨이가 범치 않아 이름과 가계를 물어보니, 본인이 잘 아는 집안의 아이였고, 이에 손녀 사위로 삼아야 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손녀와 허목 모두 나이가 어리기에 미리 혼담이야기를 하여 훗날 혼사를 하리고 약조를 해 두었던 것입니다. 오리 이원익 정승의 아들과 며느리가 좀 더 넉넉한 집안으로 딸을 시집 보내고 싶었기에 처음에 반대했던 것은 전해 오는 내용이 같습니다. 즉 오리 이원익 대감이 청백리 입니다.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지만 집안 살림이 아주 넉넉치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조선 시대의 유명한 청백리가, 황희 정승과 오리 이원익 정승이지요. 따라서 오리 대감의 아들 내외는 명문벌족 집안이나 역시 청렴하고 강직한 허목 집안 보다는 좀 더 부유한 다른 집안으로 딸을 출가시키기 원해서 처음에 반대를 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문장 "[이원익]에게는 결혼을 해야 할..." 중 4번째 줄에는 오리 정승이 허목을 본인의 부인에게 "시골의 가난한 선비의 자식이라오"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서울 창선방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동학재임 시절 유생 중 한 사람인 박지계가 임금에게 아첨하여 예를 문란시켰다고 박지계를 유생명부에서 제명을 시키는 바람에 임금님으로 부터 화를 사기도 하였습니다. 동학재임 시절이 32세이니, 19세때 혼인을 하여 32세때에도 한양(서울)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아버님이 현감으로 여러 고을을 사셨기에 이 곳 저 곳 방문을 한 적은 있지만, 두번째 단락에서 이야기 하는 "시골의 가난한 선비의 자식이라오"는 합당치 않다는 것을 이야기 드립니다. 세번째로, 세번째 단락 둘째 줄에 묘사하고 있는 "... 처, 장인인 이의전 내외, 처숙모 등은 그가 가난한 집안 사람이고, 별다른 재주가 없는 점을 들어 딸이 고생할 것이라며 반대..."에서 허목은 어려서 부터 많은 재주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손에 글월 문자가 있었고, 글씨, 그림등 모든 방면에 아주 능한 것으로 다른 문헌들에 묘사되고 있습니다. 옛날 명문벌족 출신의 선비에게 무슨 재주가 필요합니까? 학문에 전념하고, 다른 사람을 포용할줄 알고, 어려운 사람들을 이해할 줄 알면 그 것이 최고 입니다. 즉 허목이 장사를 할 것도 아니고, 의술을 익힐 것도 아닌데 "재주가 없어 딸이 고생할 것 같아 반대를 했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 다는 것이지요." 이런 연유들로 인해 내용을 바로 잡고자 하여 간략히 편집을 한 것입니다. 새 내용은, 미수공이 종손댁으로 미수공의 혼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요약한 것입니다. 미수 허목과 과련하여 바로 잡고자 하는 내용들은 시간이 나는대로 계속 편집을 하겠습니다. (끝)
         관을 볼 줄 알았던 [[이원익]]은 허목의 사람됨됨이를 한눈에 알아보고 손녀사위감으로 정했다고 한다. 처조모가 되는 [[이원익]]의 처, 장인인 이의전 내외, 처숙모 등은 그가 가난한 집안 사람이고 별다른 재주가 없는 점을 들어 딸이 고생할 것이라며 반대했었는데 이원익이 그를 알아보고 손녀사위로 결정하여 성사되었다는 것이다. [[이원익]]은 손녀사위감인 그의 관을 보고 후일 재이 될 재목이라고 평하였다. 당시 다른 사람들은 [[이원익]]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 하인이 신랑이 있는 방으로 음식을 가지고 들어가자 신랑은 벌떡 일어나더니 밥을 두 손으로 받기에 하도 이하여 하인이 “어찌하여 을 직접 받으십니까?”라며 그 연유를 물었다. 신랑은 “여보게 음식은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거늘 어찌 앉아서 받을 수 있단 말인가”하고 대답하였다. 하인은 그렇겠다고 고개를 끄떡였다. 신랑은 바로 허목이었다.<ref name="kwang"/>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신랑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이원익]] 정승만은 그렇지 않았다.하루는 [[이원익]]이 허목을 불러 여행을 하면서 학문을 닦으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래서 허목은 여행을 떠났다. 약 석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오리 정승은 “잘 다녀왔느냐? 그래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났느냐?”고 물었다. 허목은 “예, 장여헌 선생이라는 훌륭한 선비를 만나 학문을 배우고 책을 얻어 왔습니다.” 하자 오리 정승은 매우 만족해했다. 마침내 허목은 정승이 본대로 우의정이란 높은 벼슬까지 오르게 되었다.<ref name="kwang"/>는 것이다.
         [[1617년]](광해군 9년) [[거창군|거창]][[현감]]에 임명된 아버지 허교의 임지를 따라 [[거창군|거창]](居昌)으로 따라가 삼종형인 관설 [[허후]](觀雪 許厚)와 함께 유학자 모계 [[문위]](茅溪 文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뒤 모계 [[문위]]의 추천으로 다시 삼종형 관설 [[허후]]와 함께 [[경북도]] [[성주]](星州)로 [[정구 (1543년)|한강 정구]](鄭逑)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고 오랫 동안 학문을 연마했다. [[한강 정구]]는 [[이황|퇴계 이황]]과 [[조식 (1501년)|남명 조식]]의 문하에 모두 출입하면서 수학하며 학문 연마에 정진하였고, [[남인]]계 예학과 왕사부동례(왕과 사대부의 예는 같을수 없다.)설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한강 정구]]는 심학(心學) 예학(禮學)에 정통하였으며 문학, 의학, 서예, [[풍수지리]], 점술, 지지(地誌) 등 실로 다방면에 걸쳐 박학다식한데다 매우 실용적이었다. [[주자]]에 정통하면서도 [[주자학]]만을 강요하지는 않는 독특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강 정구]]의 가르침은 허목에게 깊은 향을 끼쳐 학문적 경지를 넓고 깊게 천착시켜 주었고 현실에 밀착할 수 있는 실학으로 접목케 하였다.<ref>그가 성리학자이면서도 유교 사만이 진리를 보는 거울은 아니라고 한 것 역시 한강과 화담 [[서경덕]] 등의 향을 받은 결과였다.</ref>
         또한 [[정구]]의 수제자인 또다른 [[남]]의 대학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등의 문하에도 출입하여 수학, 담론하며 학식을 넓혔다. 또한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광해군]]의 [[임해군]] 사형과 연이어 [[창대군]]을 사사하고 [[인목대비]] 폐모론이 나오자 그는 유생의 신분으로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후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모 등에 반발하여 관직에 나가지 않고 스승 [[정구 (1543년)|정구]]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예학 등을 수학하며 학문을 연마하다가, [[정구 (1543년)|정구]] 사후 [[인조반정]] 이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1620년]](광해군 13년) 스승 [[한강 정구]]가 타계하자 복을 입고 애사(哀詞)를 지어 바쳤다. 수 많은 [[정구 (1543년)|정구]]의 문도 가운데 허목은 가장 연소하였으나 뒷날 퇴계 이황, 남명 조식, 한강 정구의 학통을 근기지방으로 가져와 근기학파(近畿學派)를 형성시킴으로써 [[이황]]의 다른 제자들인 서애(西厓) [[유성룡]], 소고 [[박승임]]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의 문인과 후계자들이 남학파를, [[조식]]의 다른 제자들인 [[김우옹]] 등이 경좌도 학파를 이룬데 비해, [[경기도]] 지역에 [[이황]]과 [[조식]]의 학통을 전수하여 근기학파를 형성했다. 근기학파에서 남인계[[실학]]이 분파되었으며, [[이황]]과 [[조식]]의 학통을 모두 계승하였기에 다소 [[이황]]의 이기이원론이나 [[조식]]의 실용사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후 그는 관직에 욕심부리지 않고, 50여 세가 되도록 세에 알려지지 않고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 등에 진력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341회 일치
         ||"거지임"이라고 쓰여있는 듯한 누추한 모습의 건물입니다. 관광객이나 류층 시민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외딴 곳에 짓도록 합시다.
         ||음침하고 누추하며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는 건물입니다. 청소년 범죄자 양성의 완벽한 온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공동주택에 거주한다고 딱히 행복해하는 시민들도 없고 관광객들의 항의도 빗발치지만, 그래도 판잣집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 운 모드
          * 통 유지: 주거 환경 유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 온도 조절기 - $1,000, 2MW 소모. 실내에 온도 조절기를 설치하여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합니다. 주거 환경이 15 승합니다.
         월등한 수용량 덕분에 자주 짓게 되는 건물. 지을 때 마다 높이와 색이 바뀐다. 양산형 아파트 단지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동주택을 몇번씩 클릭하게 될거다.
          * 운 모드
          * 통 유지: 주거 환경 유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공동주택을 대폭 개선한 주거지로서, $1,000의 추가 비용으로 주거 환경을 향시켜주지만 입주할 수 있는 세대는 줄어듭니다. 시민들을 이곳에 거주하도록 하는건 현명한 방침이지요. 아파트는 주변의 미관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관광지 근처에 건설하셔도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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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 유지: 주거 환경 유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 온도 조절기 - $1,000, 2MW 소모. 실내에 온도 조절기를 설치하여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합니다. 주거 환경이 15 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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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 유지: 주거 환경 유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돼지 우리와 먼지 구덩이, 그리고 집 사이의 차이가 모호해질 때가 종종 있곤 합니다. 보수 공사를 하지 않으면 그 차이는 더 좁아지기만 할 뿐이죠. 서민 아파트는 저 세 개의 생활을 모두 수용할 수 있으며 보통 또 그렇기도 합니다.
         서민 아파트의 주거 환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할 것이며, 보수 공사를 해야 주거 수준이 초기 태로 복구될 것입니다.||
          * 운 모드
          * 통 유지: 주거 환경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감소하겠지만, 기술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건물 그 자체는 멀쩡할 거라고 합니다.
          * 운 모드
         ||이 장엄한 성당은 특별히 트로피코의 신부들과 주교들에겐 결혼을 허락하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부유한 자든 가난한 자든 동등하게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이정재(영화배우) . . . . 298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FFFFFF ''' 이정재의 주요 수 이력 ''' }}} }}}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266><#002266> {{{+1 {{{#white '''역대'''}}} [[청룡|[[파일:bluedragonfilmawards_logo.png|width=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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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C4C4C>'''{{{#FFFFFF 본관}}}'''||[[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전주 이씨 [[효령대군]] 20세손, 시조 43세손 宰자 항렬이다. 동일 항렬 유명인으로는 [[이휘재|이재]], [[이혁재]], [[이학재]] 등이 있으며, [[이경규]]와 [[써니(소녀시대)|이순규]]는 손자, 손녀 뻘이 된다.] ||
         ||<:><#4C4C4C>'''{{{#FFFFFF 취미}}}'''||[[골프]], 화 감 ||
         ||<:><#4C4C4C>'''{{{#FFFFFF 학력}}}'''||[[군산초등학교]][br][[군산중학교(전북)|군산중학교]][br][[군산고등학교]][br][[동국대학교]] 연극화과 학사[br][[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 석사 ||
         1973년 3월 15일에 태어나 [[군산초등학교]], [[군산중학교(전북)|군산중학교]], [[군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뒤늦게 [[동국대학교]] [[연극화과]]에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졸업 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에 입학하여 2008년 석사를 수료하였다. 석사논문명은 '화 태풍의 강세종 역할에 대한 연기 접근방법 연구'이며 RISS에도 등록되어 있다.[[http://www.riss.kr/link?id=T11361644|논문사이트]]
         1999년 제19회 한국화평론가협회 남우주연, 1999년 [[청룡]] 남우주연, 2006년 제29회 황금촬 연기대, 2013년 제34회 청룡 남우조연, 2014년 제5회 올해의 남우조연 등 다수의 화제에서 수하였으며,[* 자세한 것은 수 경력 항목 참고.] 2007년 3월 [[국가정보원]] 명예요원,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홍보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장동건]]과 더불어 유이하게 '''청룡에서 신인, 조연, 주연을 모두 석권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 전에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던 청춘스타였지만,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여주인공 [[고현정]]에게 일방적인 순애를 바치는 [[보디가드]] '백재희'역을 맡아 과묵함과 깊은 눈빛 연기를 보여줘 폭풍 스타가 되었다. 사실 당시의 이정재는 경력이 있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연기력이 [[시망]]인지라 그냥 말을 안 시켰던 것인데, 이게 의외로 대박이 났다. 뒤에서 묵묵히 여주인공을 지켜주는 모습이 더 멋졌던 것. 주인공인 [[최민수]]나 [[박원]]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고[* [[힐링캠프]]에서 언급하길 당시 극성 팬들은 집까지 찾아오고 사인회를 하면 그 일대가 완전히 마비되었다고 한다.] 전국 검도장이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보고 온 남자들로 미어터질 정도로...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지키다 목숨까지 바친다는 설정 때문에 한동안 여성들의 이형 1위가 되었고 방이 끝난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도 각종 매체에서의 보디가드 역은 백재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이후1994년 12월 23일에 [[입대]]하여 52사단에서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96년 6월에 제대했으며, 개그맨 [[유재석]]과 군대 동기다. 유재석이 업어키웠다는 말이 있으며 힐링캠프에서 본인이 직접 인증했다.[[https://youtu.be/W31NK0EW17s|#]] 입대 이후에는 군대에서도 여러 국방홍보화의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이외에도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에서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며, 거의 [[대한민국]] 최초로 남자의 '[[몸짱]]'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그의 반신 근육질 몸매가 드러난 화 포스터가 길거리에 붙어있던게 젊은 여성 팬들에 의해 감/보관용으로 뜯겨나가 품귀 현을 빚기도 했다고 한다. 《[[하녀]]》에서도 재현되는 그 근육.
         도회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초중고 학력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강남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실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양친은 모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외가쪽은 지방에서 양조장 몇 개를 경했고 친가쪽은 [[의사]] 집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국민학교]] 재학 이후로는 유복했던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의사셨던 조부가 연달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것이 집안의 뿌리를 흔드는 원인이었다는 듯. 가압류를 당하기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식구가 함께 생활했고 때로는 가족이 서로 흩어져 살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 당히 왜소해서 "소소"라는 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soso--
         게다가 [[힐링캠프]]에서 처음 밝힌 사실인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이 있다. 이제까지 많은 매체에서 '외아들'이나 '무녀독남' 등으로 설명되고는 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형이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데뷔 후 처음 밝힌 어려운 가정사에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청자들도 많이들 놀랐는데, 담담하게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것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는 평. 이외에도 [[IMF]]가 닥쳤을 때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을 대신 짊어지게 되고 투자했던 [[부동산]]에서 아파트 중도금을 미납하게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차비가 없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힐링캠프]]에서 [[강우석]] 감독에게 화 세 작품에 출연하는 개런티를 미리 받았던 덕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 찍은 화가 《이재수의 난》, 《순애보》, 《선물》이다.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던 듯.
         하지만 본인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2008년에 아레나와 한 인터뷰를 보면 “세 살면서 그 정도로 안 힘들어본 사람 정말 아무도 없다. 그런데 유독 자기만 힘들었던 것처럼 과거를 끄집어내 말하면서 동정표를 유도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진 않는다.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스토리는 있고 그 강도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 아니겠나." 이제까지 친형에 대해서 함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아무튼, 고생한 것에 비하면 참으로 평온하고 맑은 소년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데뷔 초에는 하용수의 친척으로 알려져 [[금수저]] 논란이 있었다. 디자이너 출신인 하용수는 톱 모델을 거느린 모델 기획사를 운해 연예계 마당발로 통했는데, 이정재도 [[http://www.donga.com/docs/magazine/woman_donga/9611/leejung.htm|그가 발굴한 스타]]이다. 이 기사에선 친척뻘이라 했지만 당시 청소년들은 하용수의 조카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정재가 방위 판정을 받았을 때 [[평발]]이란 약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촌 빽을 썼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에선 이정재의 어려운 가정사가 전혀 나오지 않았기에 빚어진 오해인 듯.
         대신에 아트스쿨 같은 직업학교에서 인테리어와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도 연기 외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라고 한다. 직접 설계도를 그리기도 한다고.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압구정동 카페에서 서빙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때 매니저의 눈에 들어서 모델로 발탁된다. 그리고 모델료가 알바비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바로 알바를 그만두고 모델업계에 몸을 담게 된다.[* 절친 [[정우성]]과 연예계 입문 테크가 같다.] 그리고 그 후 93년에 출연한 롯데 [[크런키]] 초콜릿 광고가 대박을 쳤다. 90년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4MKFjzJ2Q|나만의음악]]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 재희 역으로 발탁된 것도 이 초콜릿 광고 덕분이라고. 사실 같은 해에 롯데 초콜릿 다른 제품인 [[가나초콜릿]] 광고도 찍었지만 크런키 쪽이 더 인에 강하게 남은편. [[https://www.youtube.com/watch?v=trE8bqdhYfA|가나 초콜릿 광고]]
         이러면서 《젊은 남자》에도 캐스팅이 되고 《[[느낌]]》에도 캐스팅이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작품은 역시 90년대 국민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당시 [[최민수]]보다 오히려 더 인기를 모으면서 백재희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편지가 SBS에 쇄도하는 등 대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으로 1995년에 SBS 신인을 수했다 (재미있는 것은 [[정우성]]과 공동수). 그러나 《모래시계》를 다 찍고 난 후 20대 초반에 찾아온 쏟아지는 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군입대를 해버린다. 방위로 갔다고 비판받았으나 [[평발]]이라 방위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이 [[유재석]]과 군 동기다.[*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한 이른바 '마지막 방위' 세대다. 같은 날 방위병으로 입대한 다른 동기로 좌회전의 리더였던 [[김진(배우)|김진]](복무를 마친 후 연기자로 전향), [[투투(가수)|투투]]의 멤버였던 유현재 등이 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유재석이 자신을 업어 키웠다고... 당시 유재석은 [[압구정]], 이정재는 [[논현동]]에 살았는데 둘이 [[카풀]]을 했다. 그런데 이정재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차를 끌고 나오지 못하는 날이면, 기다리던 유재석이 자신의 차를 가지고 논현동까지 가서 이정재를 데리고 출근을 했다고.
         배우이길 떠나 자신이 화를 찍어보려고도 해보고 나름 화와 연기에 대한 열정은 당히 진지하다고 평가받고 있긴 하지만, 그의 연기력에 대해선 다소 평이 엇갈린다. 몇몇 화에선 굉장한 열연을 해보이긴 하지만 일적인 연기를 맡기면 어색한 티가 많이 난다는 편. 그러나 그의 연기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는 데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다. 본인이 스스로 연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래의 다른 연기자들([[장동건]], [[정우성]])에 비해 다양한 역을 소화하기에 보다 적합한 비주얼이고 그래서 하나의 색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색의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데뷔 이후에도 하나의 이미지에 고정되지 않고 야망을 가진 청춘, 고뇌하는 형사, 야비한 도둑, 성적 판타지가 있는 동사무소 직원, 언더커버 경찰, 속물 주인집 남자, 두 얼굴의 독립군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왔다. 그 자신도 '캐릭터 수집'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여러가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다고 한다. 이런 점이 메리트라면 메리트. 사실 《[[하녀]]》 이전에는 조금 주춤한 것 아니냐는 평이 대세였으나 그 이후로는 오히려 더 다양해진 화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분출하는 연기보다는 안으로 흡수하는 연기를 더 잘 한다.
  • 김보름 . . . . 269회 일치
         | 웹사이트 =
         | 종합 입 = [[파일:Gold medal with cup.svg|15p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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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 ==
         *2016-2017시즌 대한빙경기연맹 최우수선수<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417_0014836624&cID=10501&pID=10500|제목=김보름·이정수·차준환, 2016~2017 빙연맹 최우수선수|성=NEWSIS|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2017 MBN 여성스포츠대 2월 최우수선수<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ookilbo.com/v/3da45d241be44fc2905381405aa37dfc|제목='삿포로 웅' 김보름-최다빈, MBN 여성스포츠대 2월 MVP|뉴스=한국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31}}</ref>
         *2017 MBN 여성스포츠대 우수<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204353?cloc=rss%7Cnews%7Ctotal_list|제목=우수하는 김보름|날짜=2017-12-14|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5}}</ref>
         보름달이 뜬 날 태어나서 이름이 '보름'이 되었다고 한다.<ref name=":1">{{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10117.010260730400001|제목=혜성처럼 등장한 유망주 정화여고 김보름|성=남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03}}</ref>
         {{인용 자|"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스케이트장에 놀러갔었는데, 그 때 친구 타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시작하게 됐어요"<ref name=":8">{{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SKATER-STORY-%EA%B9%80%EB%B3%B4%EB%A6%84-%ED%8E%B8-%EC%87%BC%ED%8A%B8%ED%8A%B8%EB%9E%99-%EC%A1%B0%EC%97%B0%EC%97%90%EC%84%9C-%EC%8A%A4%ED%94%BC%EB%93%9C-%EC%A3%BC%EC%97%B0%EC%9C%BC%EB%A1%9C%E2%91%A0|제목=[SKATER STORY] 김보름 편 쇼트트랙 조연에서 스피드 주연으로①|날짜=2012-12-21|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2}}</ref>}}
         {{인용 자|"또래 선수들이 전국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고 할때 나는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다."<ref name=":23">{{뉴스 인용|url=http://www.hankookilbo.com/v/c55b872eb5d90e27a6b3a6760753f452|제목=[인터뷰] 김보름 스토리 '쇼트트랙→포기→스피드스케이팅→金?'|뉴스=한국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인용 자|"스케이트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다. 운동을 하면서 아쉬운 부분들도 많지만, 그 아쉬움은 좋은 성적이 나오면 다 잊을 수 있었다. 이젠 이런 생활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로 우리와 다 똑같다. 다들 일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지 않나."<ref>{{뉴스 인용|url=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cat=view&art_id=201705160900003&sec_id=530101|제목=[창간특집] 김보름 “내 머리속엔 온통 평창올림픽…설렘보다 긴장감 더 크죠”|날짜=2017-05-16|언어=ko|확인날짜=2017-05-16}}</ref>}}
         2003년 8월 2일 대구실내빙장에서 열린 제7회 대구시장기빙대회 여초등 5-6학년부 1000m에서 [[대구문성초등학교|문성초등]]의 김보름은 1위로 결승라인을 통과했다.<ref>{{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030804.00000009.000180|제목=계성초등 종합 우승, 대구시장기 빙대회|성=남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03}}</ref>
         2007년 1월 4일 춘천의암실내빙장에서 열린 제22회 회장배 전국남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중학부 1500m 준결승 2조에서 김보름(성화중 2학년)은 2분27초20으로 5위에 그쳐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01&detailClassCd=04&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3000m 준결승 2조에서는 김보름이 5분38초25로 6위에 그쳐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01&detailClassCd=05&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07년 2월 22일 고양어울림누리에서 열린 제8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1500m 준결승 3조에서 김보름은 3분05초02로 5위에 그쳐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88&detailClassCd=04&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3일 열린 3000m 준결승 1조에서는 김보름이 경기중 포기를 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88&detailClassCd=05&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4일 열린 2000m계주에서는 김보름, 신아름, 김보라, 박연정으로 구성된 대구선발이 3분04초88로 동메달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88&detailClassCd=07&rhCd=9&page=17&gameDate=&baseClassName=2000M%EA%B3%84%EC%A3%BC&rhName=%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T&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08년 2월 19일 탄천종합운동장빙장에서 열린 제89회 전국동계체육대회 1500m에서 김보름(성화중 3학년)은 2분38초35로 동메달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02G089&detailClassCd=04&rhCd=9&page=17&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5분34초04로 6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02G089&detailClassCd=05&rhCd=9&page=17&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09년 2월 10일 탄천종합운동장빙장에서 열린 제9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1500m에서 김보름(정화여고 1학년)은 2분35초64로 5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0902&detailClassCd=04&rhCd=9&page=16&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A%B2%B0%EC%8A%B9&kindCd=08&kindNm=%EC%97%AC%EC%9E%90%EA%B3%A0%EB%93%B1%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11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6분19초03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0902&detailClassCd=05&rhCd=9&page=16&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A%B2%B0%EC%8A%B9&kindCd=08&kindNm=%EC%97%AC%EC%9E%90%EA%B3%A0%EB%93%B1%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0년 2월 2일 탄천종합운동장빙장에서 열린 제91회 전국동계체육대회 1500m 준결승에서 김보름(정화여고 2학년)은 실격을 당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1001&detailClassCd=04&rhCd=5&page=16&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8&kindNm=%EC%97%AC%EC%9E%90%EA%B3%A0%EB%93%B1%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3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6분00초10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1001&detailClassCd=05&rhCd=9&page=16&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A%B2%B0%EC%8A%B9&kindCd=08&kindNm=%EC%97%AC%EC%9E%90%EA%B3%A0%EB%93%B1%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한 김보름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90223.html|제목=[테마 인터뷰] '노란 머리' 김보름 "머리 색 같은 메달 따고 싶어요"|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활약했던 게 향이 가장 컸죠. 하지만 2010년도 전부터 스피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ref name=":8" /> "스피드 스케이팅의 혼자만의 싸움이 매력적이라 전향 결심했습니다."<ref name=":25">{{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106689|제목='얼짱 스피드 스케이터' 김보름의 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해서 전향을 했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쇼트트랙 할 때 그렇게 잘 탔던 선수도 아니었고 성적도 계속 안나왔고 대학에 가서 진로 결정을 확실히 해야 하던 시기여서 전향을 하게 됐어요.<ref>{{웹 인용|url=http://atmz.co.kr/?p=4474|제목=The Women Athlete {{!}} 김보름, 거침없이 멈춤없이 {{!}} athlete|성=athlete|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아무래도 시작이 늦다 보니 의욕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벅차더라고요. 결국엔 쇼트트랙에 흥미를 잃었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운동을 그만 두게 됏죠. 다시 쇼트트랙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2009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15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죠. 쇼트트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64&aid=0000005293|제목=[매거진S] 김보름, 주저앉는 것이 꼭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전향에 대해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요. 누군가 '그냥 쇼트트랙 타'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다들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그저그런 선수로 남으면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되는 거잖아요. 뭔가 오기, 목표가 생겼어요."<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0349.html|제목=[스피드 인터뷰]금빛 질주 꿈꾸는 여제, 김보름의 반전 드라마|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쇼트트랙에 늦게 입문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엄청나게 늦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3/0200000000AKR20170103089600007.HTML|제목=<평창유망주> ④ 쇼트트랙 꼴찌소녀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노린다|성=김경윤|날짜=2017-01-04|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종목을 전환해 성공했다. 더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87690|제목=[빙속] 이승훈-김보름이 가져온 매스스타트 붐 업…"긍정적 효과"|날짜=2017-01-17|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실패했던 기간으로 보였던 쇼트트랙 경험이 훗날 주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를 위한 김보름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쇼트트랙 경험이 매스스타트에 많은 도움을 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35300007.HTML|제목=이승훈·김보름 이구동성 "쇼트트랙이 매스스타트 선전 비결"|성=이호|날짜=2016-11-21|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0년 12월 20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5회 전국남녀 종합빙선수권대회 3000m에서 박도(17-덕정고)이 4분21초18의 기록으로 1위에 올랐고 김보름(17)이 4분22초30을 기록 뒤를 이어 위 2명에게 주어지는 2012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동계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tnsport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3|제목=[빙] 이승훈, 빙선수권대회 5000m 우승...아시안게임 출전권 획득 - STN|언어=ko|확인날짜=2017-03-05}}</ref>
         2011년 1월 14일 막을 내린 2011 전국남녀 주니어빙선수권대회 1500m와 3000m에서 김보름은 각각 2분3초93과 4분21초30의 대회신기록을 찍으며 1위를 차지했고, 최종순위에서도 167.430포인트로 대회기록을 갈아치우며 정을 밟았다.<ref name=":1" />
  • 양준혁 . . . . 266회 일치
         |문 표기 = Yang Joon-Hyuk
         |등번호 = 10 (구 결번)
         |사진 사이즈 = 270
         |획득 타이틀 = 신인왕 (93) <br /> 타율 1위 (93, 96, 98, 01) <br /> 최다 안타 1위 (96, 98) <br /> 출루율 1위 (93, 98, 06) <br /> 장타율 1위 (93, 96) <br /> 타점 1위 (94) <br /> 골든글러브 (96, 97, 98, 01, 03, 04, 06, 07) <br /> 조아제약 프로야구대 조아바이톤 (10)
         * [[무 피닉스 (야구)|무 피닉스]] (1992년)
         [[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2년]] [[삼성 라이온즈]]가 [[김태한]]을 1차 지명하면서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게 되었지만 입단을 거부하고 [[무 피닉스 (야구)|무]]에 입대하였다. 병역 결정을 위한 신체검사 당시 근 예비역으로 판정을 받으면서 1년 간의 현역 생활 이후 방위병으로 전환해 복무를 마치게 되었다. 방위 복무 전환 이후 [[1993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 이 시기부터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데뷔 첫 해에 타율 0.341로 [[한국 프로 야구 수위 타자|타격왕]]에 오르고, [[이종범]]과의 경쟁 끝에 신인왕에도 올랐으며, [[KBO 리그]] 사 신인으로서 타격왕을 차지한 유일한 선수이다. 그해 130안타를 시작으로 [[2008년]]까지 16년 연속 100안타 기록을 달성했고, [[1996년]](151안타)과 [[1998년]](156안타)에는 최다 안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2005년]], [[2008년]], [[2010년]]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두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해“배트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ref>2001년, 양준혁이 9년 연속 3할을 치자 팬들과 여러 야구 선수들 사이에 불리게 되었다. 이것이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도 양준혁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장효조]]도 배트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이라는 소리를 들었었다.</ref>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ref name="obbest">[[일간 스포츠]] - 2010년 4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72186 "OB의 재구성 - 삼성 역대 최고 타선"]</ref><ref>1994년 양준혁의 타율은 2할 9푼 9리 7모로, 모 단위를 사사오입하여 3할로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3할 타율을 넘지 못하였다.</ref>
         [[2005년 한국프로야구|2005년]] [[6월 25일]], 13시즌 만에 1772개의 안타를 쳐서 [[장종훈]]의 [[한국 프로 야구 안타 관련 기록|개인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특유의 만세 타법으로 [[장종훈]]에 이어 ‘기록의 사나이’란 명성을 쌓아갔다. 이어 [[2007년]] [[6월 9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KBO 리그]] 사 최초로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 지금까지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골든 글러브]]를 모두 8차례 수했다. [[KBO 올스타전|프로 야구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 [[1993년]]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데 이어 [[1998년]]과 [[2001년]]에도 타이틀을 거머쥐는 등 최다 수을 했다. [[2008년 한국프로야구|2008시즌]]에는 1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부진을 보이며 처음으로 시즌 도중 2군으로 내려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0039 삼성 양준혁 "세월은 오래된 라이벌일 뿐"] 《박동희 칼럼》, 2008년 5월 26일</ref> 2002년, 2005년, 2008년, 2010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 3할대 타율을 기록하고, 15시즌 동안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 내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한때 [[임창용]]을 대로 한 트레이드로 [[삼성 라이온즈]]를 떠나 [[1999년]]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와 [[2000년]] ~ [[2001년]] [[LG 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2001 시즌이 끝난 뒤 FA를 선언하여 친정 팀에 복귀해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2008년 한국 프로 야구 포스트시즌|2008년 준 플레이오프 때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을 기록하였다.<ref name="rem">[[2008년 한국 프로 야구 포스트시즌]] 기록 참조</ref> [[2009년]] [[5월 9일]]에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기존 [[장종훈]]이 가지고 있던 [[KBO 리그 개인 통산 최다 홈런]](340개)을 경신했다.
         그는 야구 선수 시절 최고의 순간으로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승엽]], [[마해]]의 [[백투백 홈런]]으로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을 확정지었던 순간을 꼽았다. 양준혁으로선 아마추어 시절부터 통틀어 소속 팀이 우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뿐더러 삼성으로서도 [[1985년 한국프로야구|1985년 전·후기 시즌 통합 우승]]을 한 것 외에 단기전 [[한국시리즈]]를 통해 우승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의미 있고, 더 많은 감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당시 [[김응용]] 감독의 도움으로 FA를 통해 극적으로 친정 팀에 돌아온 첫 해이기도 했거니와 팀내 선배로서 힘겹게 후배 선수들을 이끌며 일궈 낸 값진 우승이었기에 그 보람이 더 컸다고 한다.<ref name="obbest" /><ref name="ya" /><ref name="kbsn" />
         {{뉴스 인용|제목 = 양준혁, 올 시즌 끝난 뒤 은퇴 선언|url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124756|출판사 = OSEN|저자 = 손찬익|날짜 = 2010-07-26|확인날짜 = 2010-07-26}}</ref> 2010년 [[9월 19일]]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은퇴식 및 은퇴 경기를 치렀으며, 이날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마지막 [[송은범]]과 대결에서 내야 땅볼에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 양준혁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등번호 10번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2번째 [[구 결번]]이 되었으며, [[KBO 리그]] 9번째 구 결번이 되었다.
         당초 [[2011년]] [[2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미국 메이저 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을 계획이였으나 [[남대학교|남대학교 대학원]] 진학과 [[임용수]] 캐스터와의 친분으로 [[SBS]]와 계약하였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SBS]]와 [[SBS ESPN]]에서, [[2014년]]부터 [[MBC]]와 [[MBC Sports+]]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소속사는 [[JH 스포테인먼트]]이다.
         양준혁은 [[양일환]]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 코치가 그의 사촌형이고 삼촌 또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투수]] 출신이었다. 어린 시절 사촌 형과 삼촌이 야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그는 [[야구]]에 흥미를 느껴 자신도 야구를 하겠다고 부모에게 말했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이유로 부모는 처음에 양준혁이 야구를 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양준혁의 야구에 대한 열정이 강해, 결국 가족들에게 허락을 받고 [[대구남도초등학교|남도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했다.<ref>스포츠 춘추 - 2010년 6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429 "굿바이, 장충 리틀 야구장"]</ref> 처음에는 [[투수]]였던 양준혁은 왼손잡이에 공도 빠른 편이었으나 투수를 하면 팔이 아파서 싫어했다. 경운중학교를 거친 그는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때 [[타자]]로 전향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미 학교의 4번 타자를 맡았으며, 당시에는 몸이 마르고 힘이 없어 홈런이 많지는 않았으나 지금과 달리 도루를 잘 하는 편이었고 타율도 높았다.<ref name="시작">{{뉴스 인용
         === [[남대학교]] 시절 ===
         양준혁은 [[1988년]] 당시 만 19세로 프로 데뷔가 가능한 나이였으나 스스로 [[남대학교]] 경제학과의 입학의 길을 택했다. 그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당시 [[박길 (야구인)|박길]]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그에게 대학 진학을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대구광역시 소재 대학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었지만 [[삼성 라이온즈|삼성]]에서의 데뷔를 위해 [[남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선수 시절 동안 오늘날 프로에서의 활약만큼이나 많은 기록과 수 경력을 쌓았다. [[1988년]]에 있었던 대학 선수권 대회에서 5할을 훨씬 넘은 5할 4푼 5리의 타율을 기록해 대학 선수권 타격을 받았고,<ref name="아마">{{웹 인용 |url=http://www.samsunglions.com/M_Player/player_profile_batter.asp?pcode=93410&position=외야수 |제목=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양준혁 |확인날짜=2009년 2월 12일 }}</ref> 이후 [[1989년]]에는 대학 추계 리그에서 도루 또한 수했다.<ref name="ㄹ">{{웹 인용 |url=http://www.yangjunhyuk.com/html/profile/profile_02.html |제목=아마경력/수 |확인날짜= |확인날짜=2009년 2월 1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106053555/http://www.yangjunhyuk.com/html/profile/profile_02.html |보존날짜=2009-01-06 |깨진링크=예 }}</ref>
         1988년과 1989년, 아마추어 야구에서 실력을 인정받게 된 양준혁은 생애 처음으로 국가 대표로 발탁되어 제2회 [[한·미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ref name="ㄹ"/> 또한 [[푸에르토리코]]에서 개최되는 제 9회 [[대륙간컵 (야구)|대륙간컵]]에도 국가대표로 출전했다.<ref name="ㄹ"/> 두 번의 국가대표팀 활동에서 그는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아쉽게도 팀은 우승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89년]] [[중화민국|대만]]에서 열린 제2회 [[IBA회장배 대회]]에 다시 국가 대표로 출전하여 우리나라가 우승하면서, 국가대표에 발탁된 이래 처음으로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ref name="ㄹ"/>[[1990년]]에는 전국대학 춘계리그에 출전하여 추계 리그에 이어 다시 한 번 도루을 수하였고,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 경기 대회]]에도 국가 대표로 출전했다.<ref name="ㄹ"/>
         [[1992년]] [[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각 팀들의 지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그는 신인이었지만 이미 국가 대표 클린업 트리오 중 한 명이었을 정도로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모든 구단이 탐내는 선수였다. 물론 그는 삼성 이외의 팀에는 입단할 생각이 없던 터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타력에 비해 투수력이 약했던 삼성은 당시 '만딩고' [[김엽 (야구인)|김엽]] 외에는 믿을 만한 투수가 없었으며, 이 때문에 140 km 대의 빠른 구속을 가진 좌완 신인 [[김태한]]도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러나 연고 구단이 1차 지명할 수 있는 선수는 딱 한 명이라는 것이 문제였는데, 이에 삼성이 묘수를 냈다. 삼성은 1991년 말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먼저 김태한을 연고 지명 케이스인 1차 지명으로 확보한 뒤 이듬해 드래프트에서는 양준혁을 1차 지명해 사자 유니폼을 입혔던 것이다. 이것은 2차 지명의 시효가 1년이라는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것으로, [[1991년]] 당시 삼성은 일단 김태한을 1차 지명한 뒤 양준혁과는 모종의 합의 하에 무 입대를 선언하게 한 것이었다.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이 양준혁을 2차 지명했으나 이미 그의 무 입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삼성은 방위 복무로 전환하게 되어 1993년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 다시 나온 양준혁을 1차 지명하여 거둬들였다. 이 때문에 몇몇 구단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이후 KBO는 2차 지명의 효력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다.<ref name="ㄹ"/><ref name="김태한">{{웹 인용 |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0&page=1&type=2&values=%B1%E8%C5%C2%C7%D1 |제목=야구는 인연을 낳고 - 양준혁과 김태한 |출판사=스포츠서울 |날짜=2000-02-10 |확인날짜=2009-11-29 }}{{깨진 링크|url=http://www.yangjunhyuk.com/html/news/news_read.php?pos=0&page=1&type=2&values=%B1%E8%C5%C2%C7%D1 }}</ref><ref name="ㄱㄱㄱㄱㄱㄱㄱ">{{뉴스 인용
         한편 [[1991년]] [[11월]] [[199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2년 신인 드래프트]]가 있기 전, 양준혁은 제25회 대통령기에 출전해 타점을 받았고, 또한 제 41회 백호기에 출전하여 도루을 차지해 대학 시절 도루을 3번이나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 무 시절 ===
         삼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무 피닉스 (야구)|무 피닉스]]에 입대한 그는 병역 결정을 위한 신체 검사 당시 근 예비역으로 판정을 받아 1년간 현역병 생활을 한 후 방위병으로 전환해 복무하였다. 무 시절 대통령배 추계 실업리그에 나가 홈런왕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 외에 여러 대구에 출전하여 좋은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ref name="ㄹ"/> 그리고 그는 그 전까지는 몸이 말랐으나 무 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프로 첫 해까지 82kg로 몸무게가 불어났다.<ref name="시작"/> 제대 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지명권이 1년이었기 때문에 자동 말소되었고, 약속대로 1차 지명을 다시 받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게 되었다.<ref name="ㄱㄱㄱㄱㄱㄱㄱ"/>
         [[무 피닉스 (야구)|무 피닉스]]의 [[박치왕]] 감독은 양준혁과 무 동기이다.
  • 봉준호 . . . . 264회 일치
         {{화인 정보
         | 사진설명 = 2013년 프랑스 도빌화제에서의 봉준호
         | 직업 = 화감독, 각본가, 화제작자
         | 웹사이트 =
         | 수 =
         '''봉준호'''([[1969년]] [[9월 14일]] ~ )는 [[대한민국]]의 [[화 감독|화감독]], [[화 각본|각본가]]이다.<ref>[http://www.cine21.com/do/person/detailView?person_id=3778 씨네21 프로필]</ref><ref>[http://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9479 네이버화 프로필]</ref>
         1993년 6mm 단편 화 《백색인》을 연출하여 화계에 데뷔했으며, 2번째 단편《지리멸렬》은 큰 화제가 되었다. [[배두나]]가 출연하였던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 (화)|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했으나 이후 [[송강호]]와 김경이 출연한 《[[살인의 추억]]》을 개봉하였는데 크게 흥행하였고, 작품성과 업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6년 7월에 3번째 장편 화 《[[괴물 (2006년 화)|괴물]]》을 개봉했다. 2008년 그는 [[미셸 공드리]], [[레오 카락스]] 감독과 함께 [[도쿄도|도쿄]]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화 《[[도쿄!]]》에 참여하였다. 3편의 화 중 "흔들리는 도쿄"에서 [[카가와 테루유키]], [[아오이 유우]]와 호흡을 맞췄다. 이 화를 통해 멜로적 감수성 또한 인정 받았다.
         2009년 5월 4번째 장편 《[[마더 (2009년 화)|마더]]》를 개봉했다. 살인 사건에 연루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이야기이며, [[김혜자]]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일적이고 평범한 장소를 배경으로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장면을 포착하고, 화 속 주인공들의 난감한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도록 유도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황에 서늘한 풍자를 심어 놓는 특유의 화 감각을 가지고 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5071055411120 봉준호 감독 '무(無)평에 처받은 적 있다'], 마이 데일리, 2008년 5월</ref>
         [[파일:Bong Joon-Ho at 2010 Independent Spirit Awards.jpg|섬네일|[[독립화 정신]] 시식장에서 (2010년 3월).]]
         화 《[[마더 (2009년 화)|마더]]》가 한국 화 최초로 [[미국]] 비평가 협회에서 받은 외국어 만 무려 7개로 보스톤평론가협회, 남동부비평가협회, 샌프란시스코 화비평가협회 등에서 수했다. 뿐만 아니라, 여주인공인 [[김혜자]]는 헐리우드 톱배우들을 제치고 LA 평론가협회 여우주연을 수하며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2011년 미국 최고 독립화제인 [[선댄스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 봉준호의 외조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소설가]] [[박태원 (1909년)|박태원]]으로서, [[한국전쟁]] 당시 장녀를 데리고 [[월북]]했고, 봉준호의 어머니를 포함한 그 외 2남 2녀는 서울에서 자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2&aid=0001951696 '천변풍경'의 구보 박태원, 청계천변서 다시 만나다] 프레시안. 2009년 06월 15일</ref> 2006년 6월 제14차 금강산 [[이산가족 봉]]에서 이들 모녀가 재회화여 화제가 되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1988703 호랑이가 고양이 낳으랴..3대 이은 예술명문가] 스타뉴스. 2009년 06월 30일</ref>
         == 화에 반복 출연한 배우 ==
         ! 배우 !! [[플란다스의 개 (화)|플란다스의 개]] !! [[살인의 추억]] !! [[괴물 (2006년 화)|괴물]] !! [[마더 (2009년 화)|마더]] !! [[설국열차]] !! [[옥자]]
         ===장편 화===
         ! rowspan="2" style="width:200px;"|
         | style="text-align:left;"| [[플란다스의 개 (화)|플란다스의 개]]
         | style="text-align:left;"| [[괴물 (2006년 화)|괴물]]
         | style="text-align:left;"| [[마더 (2009년 화)|마더]]
         | style="text-align:left;"| [[해무 (화)|해무]]
         | style="text-align:left;"| 패러사이트 (Parasite)
  • 김민희(1982) . . . . 257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FFFFFF ''' 김민희의 주요 수 이력 ''' }}} }}}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C0000><#0C0000><-5><:> {{{#E5D85C ''' 역대 [[베를린 국제 화제|{{{#E5D85C 베를린 국제 화제}}}]]''' }}} ||
         ||<#0C0000><-5><:> {{{#E5D85C '''은곰 : 여우주연'''}}}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002266><#002266><-5><:> {{{+1 '''{{{#white '''역대'''}}} [[청룡|[[파일:bluedragonfilmawards_logo.png|width=120]]]]'''}}} ||
         ||<#002266><-5><:> {{{#white '''여우주연'''}}} ||
         ||<:>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br]([[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1 → }}} ||<:> '''김민희[br]([[아가씨(화)|아가씨]])'''||<:> {{{+1 → }}} ||<:> [[나문희]][br]([[아이 캔 스피크]])||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table width=100%><#c0c000> {{{+1 '''[[백예술대|[[파일:백예술대_로고.png|width=100]]]] 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 ||
         ||<#0f0f3e><:>'''{{{#white 학력}}}'''||<(><#ffffff> 무주초등학교 [br] 무주중학교 [br] 무주고등학교(졸업) [br] [[단국대학교]] [[연극화과]] (중퇴) ||
         2016년, 화 《아가씨》 제작보고회에서 김민희
         >'''ㅡ 화 <[[아가씨(화)|아가씨]]>'''
         '''뛰어난 스타성과 나날이 발전하는 연기력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려는 찰나, [[간통|돌이킬 수 없는 행동]]으로 국내에서 여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실추된 인물'''[* 해외는 제외. 문화의 특성 해외 언론에서는 김민희의 간통 사실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적인 까지 안겨주었다.]
         패션잡지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를 했고, 큼한 얼굴과 큰 키에 극도로 마른 몸매를 가진 옷 잘 입는 소녀는 당시 패션잡지 주 고객층인 10대 소녀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다. 비슷한 시기 활동하던 [[김효진(배우)|김효진]], 양민아(현 [[신민아]]) 등의 사이에서도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이 셋은 [[한솔엠닷컴]] CF로 스타덤에 오른 데뷔 동기와도 같다.]
         특히 [[김효진(배우)|김효진]], [[원빈]]과 함께 출연했던 [[한솔엠닷컴]]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주제의 광고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아래 동) 이어 [[차태현]], [[신민아]]와 출연한 CF에서는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등의 명대사를 만들었는데 사실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공전절후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 유행어는 당시에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으며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편이다.[[https://youtu.be/0GsJpuPUEVo|1편]][[https://youtu.be/Ax8EIOyGF34|2편]][[https://youtu.be/ZVxij2AQel0|3편]][[https://youtu.be/Hh74Xv_kq80|4편]]
         이런 향으로 온갖 욕을 다 먹는 연예인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김민희는 한국 연예계의 역사에서 몇 가지 이정표가 된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당시는 여러 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이 진행되던 과도기였다. 시기([[세기말]]), 세대([[N세대]]), 문화 형태([[아이돌]], [[인터넷]]의 등장) 등이 교체되어 가던 시기에 70년대생들이 주로 활약하던 [[90년대]] 문화가 지나가고 현재와 같은 아이돌 생산/소비 시스템 하에서 등장한 거의 최초의 아이돌 스타라는 점이 그것이다.[* 위에 언급된 많은 모델 및 배우들도 크게는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다시 말하면 세기말과 [[N세대]](1980년대생)를 징하는 인물[* 또 다른 한명을 더 뽑자면, 그 유명한 TTL 소녀 [[임은경]]이 있다.]이자 현재 개념의 아이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가요계를 포함한 대중문화계 전체에서는 이른바 [[1세대 아이돌]]이라 불리는 가수들에 의해 이미 96년에 아이돌 문화가 시작된 태였다. 실제로 한국에서 아이돌 문화를 주도한 것은 가요계였지만, 당시 이들은 70년대생과 80년대생이 혼재된 형태였으며 시기적으로도 엄연한 1990년대라 이후 등장한 (비가요계의) 아이돌과 세부적으로는 개념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팬층도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배우나 모델들처럼 10~20대를 대로 어필을 하던 아이돌로 봐도 부족하지 않았다.
         당시 김민희를 향한 소녀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큼한 외모와는 별개로, 무심해보이는 시크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한 김민희는 큰 인기를 모으며 다수의 작품에 출연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인기는 실력이라기보다 운으로 뜬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인터뷰의 말실수라던지 을 초월하는 [[발연기|연기력]]으로 인해 차츰 활동이 주춤해지는 듯 했다.[* [[MBC]]에서 《[[네 멋대로 해라(드라마)|네 멋대로 해라]]》를 방할 당시 [[SBS]]에서는 김민희, [[고수(배우)|고수]] 주연의 [[순수의 시대]]가 방 중이었다. 전자의 드라마가 주연배우들의 호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때 후자의 드라마는 김민희 등 주연 배우들의 안습한 연기력으로 --사실 거의 김민희--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이후 [[2008년]] 화 《[[뜨거운 것이 좋아]]》로 2008년 제44회 [[백예술대]] 여우주연을 수했다.
         그 뒤로 [[2012년]] 《[[화차(화)|화차]]》, [[2013년]] 《연애의 온도》, [[2014년]] 《[[우는 남자]]》, [[2015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6년]] 《[[아가씨(화)|아가씨]]》 등을 통해 좋은 연기[* 데뷔 때와 비교하면 연기가 어마어마하게 자연스러워지고 섬세한 표현력이 증가하였다.][* 《서프라이즈》와 《[[아가씨(화)|아가씨]]》의 편집 감독이 같은 사람인데, "그 때의 김민희와 지금의 김민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며 극찬했다.]를 선보이며 다수의 화제에서 수하고 흥행에 있어서도 안정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평가를 새롭게 듣게 되었다.
         2016년 화 《[[아가씨(화)|아가씨]]》를 통해 화감독들이 선정하는 제16회 디렉터스컷 여자연기을 수하여 감독들로부터 연기력을 인정 받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2016년 11월 25일 모든 한국 화인들의 로망인 제37회 [[청룡]] 여우주연을 수했다. 참고로 같은회차 청룡의 남우주연은 배우 [[이병헌]]이 수했다. 비록 남녀주연을 받은 두 배우가 사생활 논란이 있었지만 연기력으로는 충분히 받을만 했다는 평가다.
  • 배영수 . . . . 25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top1=한화 이글스/선수목록, top2=야구 관련 인물(KBO))]
         ||||<#000000><:> {{{#ffffff 배수(裵英洙 / Young-soo Bae)}}} ||
         ||||<tablealign=center><#000000><:> {{{#ffffff 수 기록}}} ||
         ||<:> [[정회열]](1999) ||<:> → ||<:> '''배수(2000~2014)''' ||<:> → ||<:> [[타일러 클로이드]](2015) ||
         ||<:> [[앤드류 앨버스]](2014) ||<:> → ||<:> '''배수(2015~ 2016)''' ||<:> → ||<:> [[김진]](2017~ ) ||
         ||<:> [[최윤석]](2016) ||<:> →||<:> '''배수(2017~ )''' ||<:> → ||<:> [[현역]] ||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절의 {{{#blue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6/2010042601473.html|입김]]이 있었다고 한다.] 또 한때는 "'''초'''절정'''미'''소년'''배'''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 이거 때문에 배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수의 포크는 반(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구,[* 왠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시에도 애칭으로 배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 말 그대로 '''敗'''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선동열|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었'''다. 성적과 컨디션에 관없이 '''[[참교육|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2014년 12월 3일 2명의 선발 용병과 [[윤성환]], [[장원삼]]이 선발로 4명의 선발이 확정 된 삼성에게 5선발 자리는 선발 유망주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고,[* 배수의 성적 자체가 선발 확정시켜 줄 정도로 좋은 편이 아니었고, 장원삼과 윤성환 둘 다 나이 30을 훌쩍 넘겨 언제 노쇠화가 와도 이하지 않을 나이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5선발 육성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선발을 육성하지 못한 것의 부작용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주전 투수들이 이탈하자 바로 나타났다.] 지속적으로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고 싶었던 배수는 삼성에서 한화로 FA 이적하게 된다.
         배수가 토미존 서저리를 받기 전까지의 플레이 스타일은 140km/h 중 후반 최고 155km/h 를 기록하는 강력한 속구,[* 특히 속구는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테일링이 걸렸을 정도다. 예를 들어 진통제를 맞고 등판했던 06년도 한국시리즈에서도 패스트볼 테일링이 걸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균속도 130km/h 중후반의 슬라이더130km/h 후반에서 140km/h 정도의 평속이 나오는 스플리터 [* 잡는걸 보면 스플리터가 맞다. 배수 본인도 스플리터를 던진다고 한다.] 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구스타일로 [[존 스몰츠]] 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으로 평가되었다. 이닝 소화 면에서도 2004년 한국시리즈 10이닝 노히트노런을 비롯해 2005년도 최다이닝 4위, 2006년 팔꿈치 부에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등의 연투능력이 있는 투수로서 강점을 보였다. 투구폼도 구속을 짜내기 위한 힘을 모으는 과정이 보이는[* 던지기 전에 힘을 모으기 위해 잠시 멈췄다가 투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터프로 대방을 압도하는 투수로 kbo 최정급의 강속구 투수였다.
         하지만 팔꿈치 부을 입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난후 구속이 10km/h 가까이 줄어들었고[* 대략적으로 배수 전성기의 평균구속이 145km/h 정도에서 형성되었고 최고구속도 155km/h 임을 감안할 때 2017년 패스트볼 평균속도 137km/h 최고구속 145km/h 에서 형성된다고 할때 시즌중 평균구속은 약 8km/h 최고구속은 10km/h 정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 구위도 감소하면서 더이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서 2008~2011 시즌을 말아먹고 말았다.[* 이는 플레이스타일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데 [[팀 린스컴]] 의 경우에도 보듯이 갑작스러운 구속과 구위 저하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플레이스타일이 먹히지 않았을 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을 적용시키는데 린스컴이나 배수 모두 제구력 보다는 구위와 구속으로 승부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둘다 급작스러운 구속 저하로 인해 타자들의 배트를 유도시키지 못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던지는 공이 맞아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시즌을 말아먹게 된 것 .] [* 이와 같은 현을 겪은 선수는 kbo에도 있다 바로 [[정민철]] 그도 배수나 린스컴과 비슷하게 구위와 구속으로 대를 압박하는 선수였지만 데드암 증세 이후 자신의 스터프로는 대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구력형 피쳐로 변신 2007년 2점때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다음시즌에 다시 망했지만--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한 2012년 부터는 리그예전처럼 리그에서 탑급 선발은 아니지만 최소한 리그에서 3~5 선발까지는 가능할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을 보자면 예전보다 구속이 떨어진데 기인하여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로 40% 초중반의 비율로 패스트볼을 던지고 그 이외에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2:2 비율로 던지고 나머지 커브나 체인지업등을 던지는 스타일로 전성기 투구스타일에서 패스트볼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변화구가 채우고 보여주거나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커브와 체인지업등 기타 구종이 들어왔다고 보면 될 듯 하다.[* 부 이후로 싱커(혹은 투심)과 서클 체인지업이 추가되었으며 커브도 구사비율이 조금 늘었다, 2011 시즌에는 커터 추가도 시도했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167949|#]] 이외에도 2008년 포스트시즌 때는 너클커브를 던졌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1997488|#]] 2013년 8월경에는 너클볼까지 선보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6&aid=0000011149|#]]] 그에 맞춰 투구폼도 변화하여 조금 더 구위와 제구를 잡기 위해서 박수를 치는듯한 투구폼[* 정우람의 투구폼을 생각하면 될듯.]으로 예전의 투구폼보다 조금더 투구폼이 빨라졌으며 간결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비슷하게 투구폼을 고친 사례를 보면 [[잭 그레인키]] 가 있다.] 하지만 과거 스터프에 의존하던 선수였던 만큼 제구파 투수로 플레이스타일이 변경되었어도 과거 플레이스타일에 향이 있는지 경기당 기복이 심해졌다 잘 던지는 날에는 호투,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엄청나게 털리는 경향이 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 다만 제구력만큼은 2005년 이후로 줄곧 리그 위권이었다. 시즌 볼넷이 40개를 넘은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 배수가 컨디션 기복이 있는 것이 이에 대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공격적인 스트라이크존 공략으로 볼넷도 적게 내주지만 그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간 공이 정타를 많이 맞으면서 털리기 쉽다는 것.]
         '''원할 것만 같았던 {{{#0a6eff '''푸른 피의 에이스'''}}}'''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으며[* 애초에 당시 대구고의 에이스였던 [[장준관]]이 1999년 대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서며 이미 1차지명은 장준관으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준관이 계속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했던데다 지명을 앞두고 계약금을 올리고자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삼성에선 배수로 선회했다. --그리고 장준관은 [[LG 트윈스|모 팀]]으로 드래프트 지명이 되는데...--] 1999년 11월, 팀 고졸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이었던 2억 5천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이 금액은 1년 후 대구고 [[이정호]]가 삼성에 입단하며 '''5억 3000만원'''이라는 계약금에 입단하며 경신된다.]
         --분명 위기황을 맞이한건데 다들 표정이 좋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눈꼴사나웠던 이치로를 저격했기 때문이지.--
         배수의 최대 전성기 시절. 당시 최대 150km/h대 중반의 광속구와 140km/h를 넘나드는 슬라이더 두 구질만으로 리그를 평정했다.무엇보다 경기내내 평균 140키로후반대의 공을 꾸준히 던졌는데, 이는 당시 다른 선발들중 구속하나론 비교할만한 대가 없었으며 최근 리그 수준을봐도 평균구속 최위권에 랭크될만한 구속과 강인함을 지녔었다.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한 그는, 입단 첫 해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6점대를 기록하지만, 이듬해인 2001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임창용]]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13승을 거두고, 삼성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었던 2002년에는 소모포어 징크스가 심하게 보이며 주춤했으나, 2003년 13승, 2004년 17승, 2005년 11승을 올리며 3년 연속 10승 이을 거두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기록했던 3년 연속 2점대 평균자책점을 찍기도 했다. 2006년 시즌엔 8승 9패로 비록 10승을 달성하진 못했다 하더라도, 팔꿈치 부을 가진 태로 평균자책점 2.92(...).[* 2007년 [[윤석민(투수)|윤석민]], 2008~2009년 [[봉중근]], 2012년 [[류현진]], 2015~2016년 [[메릴 켈리]]의 [[윤석민|원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팀 타선 지원을 받지 못했다. (2006년 득점지원율 0.97) 무려 1점도 되지 않는다!][* 뻥뻥 터지던 삼성의 타선은 이하게도 배수가 등판하던 날엔 버로우탔다. 문제는 현재까지도 그런다는 거. 그러나 2013년 드디어 타선지원을 받게 되는데 이번에는 평균자책점이...] 심지어 후술한 것 처럼 2006년에는 정규시즌 내내 팔꿈치 통증을 달고 뛴 선수의 기록이 저 정도라니... 아니, 이게 사람인가?
         2004년 35경기 동안 4완투(2완봉) 하면서 17승 2패 평균자책점 2.61로 다승과 승률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선발 투수로는 1990년 [[선동열]] 이후 14년 만에 정규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전체 투수로는 선동열 이후 배수가 받기 전까지 1996년 [[구대성]]이 구원 투수로 정규리그 MVP에 오른적 있다.][* 이후로 2008년까지 매년 투수가 MVP를 수하게 된다. 순서대로 [[손민한]](롯데)-[[류현진]](한화)-[[다니엘 리오스]](두산)-[[김광현]](SK)] 특히 [[2004년 한국시리즈#s-3.4|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으나, 팀 타선 또한 한점도 못내는 바람에 0대0 황에서 연장 11회초 [[권오준]]에게 마운드를 넘겨주며 해당 경기의 개인 노히트 노런 기록은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가서 시간 제한[* 2004년 당시에는 경기 시작 후 4시간을 넘기면 새 이닝을 시작할 수 없고 바로 무승부로 처리되는 ~~병맛같은~~ 규정이 있었다. 결국 [[2004년 한국시리즈]]는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무려 '''9차전'''까지 가는 등 역대 한국시리즈 중 제일 길게 간 시리즈였고, 무승부가 제일 많은 시리즈가 되었다. 결국 이러한 단점으로 인해 경기 후 4시간을 넘기면 무승부로 처리되는 규정은 2004년 한 해에만 시행되고 사라졌다.]에 걸려 0:0 무승부로 끝났는데, 경기 중 권오준이 안타를 맞아 팀 노히트 노런도 달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안습]].
         배수는 2006년 결국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선동열|선뚱]]은 그런 그를 위해 등판을 늦추거나 하다가 시즌 말미에는 불펜진에 합류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한 배수(이긴경기 모두 등판)였으나, 경기 후에는 팔꿈치가 안 펴지고 경기에 나서기 전에 '''진통제'''[* 흔히 대포주사라고 알려진 '''데포메드롤'''. 이 주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박철순]]도 맞은 적이 있다.][* 그런데 대포주사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약쟁이들이 즐겨찾는 계열은 아니나 소염효과가 강력해서 치료목적으로 자주 이용되던 약물이다. 하지만 염증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면서 가라앉는게 아니라 부이 그대로 남은채로 염증만 가라앉기 때문에 선수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 때문에 현재는 금지되어있다.]'''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그의 팔꿈치는 심각한 황이었다. 실제로 이미 시즌 말미인 9월부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1414827|팔꿈치 통증이 심각해]]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 조차 불분명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팔꿈치와 삼성의 통합우승을 맞바꾼 셈... 이 때 당시의 희생으로 구 까방권을 획득해 이후 몇 년씩 부진해도 대다수의 삼팬들은 그를 욕하지 않았다. --물론 2009시즌 부진 때 멋도모르는 뉴비들은 패왕이라고 씹어댔다.--
         결국 한국시리즈 후에 [[http://foto.sportschosun.com/news/ntype2_o.htm?ut=1&name=/news/sports/200611/20061106/6bf76105.htm|토미존 수술]]을 받게 된다. 그러나 보통 선수들이 팔꿈치 인대가 늘어나거나 일부 손황에서 수술을 받는데에 비해, 배수의 팔꿈치는 '''아예 끊어진 태'''로 조브 클리닉 '''역대 최악의 태'''였다고.
         수술 소식을 들은 [[박찬호]]는 배수에게 "(재활기간)2년 생각해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게다가 배수는 선천적으로 간수치가 높아 예정보다 2달 가량 늦게 [[http://foto.sportschosun.com/news/ntype2_o.htm?ut=1&name=/news/sports/200701/20070129/71912005.htm|수술]]했다. ~~하지만 [[선동열|당시 감독]]은 박찬호의 말을 무시하고 말았는데...~~
         수술 후 2007 시즌은 재활로 보냈는데, 회복이 빠른데다 팔꿈치 통증이 없어 당초 예보다 빠른 2008 시즌 전에 복귀했다. 평균구속은 130대 후반으로 떨어지고,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하게 되었지만 9승 8패 평균자책 4.55로 부당했던 선수의 복귀 시즌 치고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시즌 막판 두 번의 선발등판에서 연이어 시속 140km 초반까지 구속을 끌어올리며 좋은 모습으로 시즌을 마무리 했기 때문에 내년 시즌을 더욱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 박주영 . . . . 252회 일치
         [[분류:박주]][[분류:동구(대구) 출신 인물]]
         [include(틀:위 문서, top1=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FFFFFF '''박주의 역임 직책'''}}}}}} ||
         ||<width=30%><:> [[박지성]][br](2008~2011) ||<width=5%><:> {{{+1 ▶ }}} ||<width=30%><bgcolor=#000000><:> {{{#FFFFFF '''{{{+1 박주}}}[br](2011~2012)''' }}} ||<width=5%><:> {{{+1 ▶ }}} ||<width=30%><:> [[곽태휘]][br](2012~2013) ||
         ||||<:><#000000> '''{{{#a38848 박주 [br] (朴主永 / Park Ju Young / Park Chu Young)}}}'''||
         고등학교 때인 2001년 [[포항 스틸러스]]의 후원으로 1년간 브라질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가 되었다. 2005년 후원해준 [[포항 스틸러스]]가 아닌 [[FC 서울]]에 입단해 놀라운 득점력으로 그 해 올해의 선수, 신인, 인기 등을 휩쓸었다. 2008년 9월 프랑스의 [[AS 모나코]]로 이적한 박주은 첫 경기에서 1득점을 기록하는 등 매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면서 10월에 팀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다.
         박주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으며, 2008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수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카디프 대첩|동메달 결정전]]에서 그 유명한 '''[[박주/국가대표 경력#s-3.2|박시탈]]'''을 선보이기도 했다.
         == 세 ==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32경기에 출장, 18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을 보였으며 그 해 프로축구 올해의 선수, 신인, 인기, 득점왕 등을 휩쓸었다. 특히 프로축구 최초의 만장일치 신인을 이끌었던 점과 당시 사기캐릭으로 불리던 고려대 선배 이천수와 MVP 경쟁을 했다는 점은 K리그 역사 최고의 루키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6년에는 33경기 10골로 부진했으나 2007년에는 잦은 부으로 출장 경기 수가 줄었음에도 15경기 5골의 성적을 냈다. 2008년 9월 프랑스의 AS모나코FC로 이적한 박주은 첫 경기에서 1득점과 1어시스트를 하는 등 매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핵심선수로 부각되어 이적한 바로 다음 달인 10월에 팀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09시즌 35경기 출장 5골, 2009-10시즌 22경기 9골 등의 활약을 보였다. 그리고 2010-11 시즌은 강등권 팀에서 12골을 넣으며 공격 전체적인 면에서 팀을 이끌었으나, 모나코는 강등되었다. 동시에 여러 명문 팀들과 이적설이 돌았으나, 결국 아스날을 선택했다.
         청소년대표로 일찍부터 국가대표로 뛰던 박주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임에도 득점을 올렸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 2007년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8년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 등에서는 활발한 경기를 펼쳐 2008년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득점왕을 수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참가하여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 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에서 한국 축구 역사 첫 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 이후, 떨어진 폼을 전성기 시절만큼 끌어올리지 못했고 끝내 [[슈틸리케호]] [[신태용호]] 모두 승선에 실패하면서 사실 대표팀 은퇴나 다름 없다.
         또한 2018년 FC 서울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는 와중에 경기를 뛰지 않으면서, 팀 성적 부진의 원흉으로 지목되며 부설 불화설 태업설 등 온갖 [[루머]]가 나돌았다. 하지만 본인이 [[SNS]]를 통해 부설을 일축했고, [[이을용]] 감독이 '''주전 경쟁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완전히 밀렸'''음을 밝혔다.
         == [[박주/클럽 경력|클럽 경력]] ==
         항목이 길어져 분리하였다. [[박주/클럽 경력]] 참고.
         == [[박주/국가대표 경력|국가대표 경력]] ==
         항목이 너무 길어져 분리하였다. [[박주/국가대표 경력]] 참고.
         ||<:><-11><#CB2C2C> '''{{{#FFFFFF 박주 국가 대표팀 득점기록}}}'''||
         ||<:>'''일시'''||<:>'''장소'''||<:>'''대팀'''||<:>'''경기결과'''||<:>'''대회명'''||
         ||<:> 2010년 5월 24일||<:> [[사이타마]]||[[파일:일본 국기.png|width=30]] [[일본]]||<:> 2–0||<:> 친선경기||
  • 이창동 . . . . 251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br/>(現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 직업 = [[화감독]], [[각본가]], [[화제작자]], [[소설가]], [[교수]], [[교사]], [[전 문화관광부장관]]
         | 웹사이트 =
         | 수 = [[베네치아국제화제]] 감독(2002년)<br />[[칸국제화제]] 각본(2010년) 등
         '''이창동'''([[1954년]] [[4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 겸 [[화감독]]이다.<ref>[[네이버]] 인물 정보 -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9D%B4%EC%B0%BD%EB%8F%99&os=158601 이창동]</ref><ref>MDL http://www.mydvdlist.co.kr/mdlkth/movie/name.asp?peoplecode=51334</ref>
         데뷔작 《[[초록물고기|초록 물고기]]》부터 시작해 《[[박하사탕]]》, 《[[오아시스 (화)|오아시스]]》, 《[[밀양 (화)|밀양]]》, 《[[시 (화)|시]]》 등 많은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아 각국의 화제에서 을 휩쓸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경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신일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하다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중편 소설〈전리(戰利)〉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1993년 화《[[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화계에 뛰어들었다. 화계로 들어선 이후에는 소설보다 화에 주력하게 되었다. [[1997년]] 이스트 필름의 창립 작품이기도 한 [[한석규]] 주연의 화 《[[초록물고기|초록 물고기]]》를 통해 [[화 감독|감독]]으로 데뷔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년 뒤 내놓은 화 《[[박하사탕]]》은 1999년 [[부산 국제 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설경구]]란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켰다. 2002년 설경구, [[문소리]]와 다시 호흡을 맞춘 화 《[[오아시스 (화)|오아시스]]》로 [[베네치아 화제]]에서 감독을 수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오아시스’ 이창동―감독·문소리―신인 등 5관왕…베니스 화제 쾌거|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18051|출판사=국민일보|저자=이광형 기자|날짜=2002-09-09}}</ref>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화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09년 열린 [[칸 화제]]에서 [[중화민국|타이완]]의 화 배우 [[수치 (배우)|수치]](서기)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창동 감독 장편 부문 심사위원 위촉… “칸에서 나의 국적은 화”|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514004092&subctg1=15&subctg2=00|출판사=[[세계일보]]|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09-05-14}}</ref> 2010년에 열린 50회 칸 화제에서는 화 《[[시 (화)|시]]》로 각본을 수했다.
         == 화 감독 작품 ==
         * 《[[박하사탕 (화)|박하사탕]]》 (2000년) 각본, 감독
         * 《[[오아시스 (화)|오아시스]]》 (2002년) 각본, 감독
         * 《[[밀양 (화)|밀양]]》 (2007년) 각본, 감독, 제작
         * 《[[시 (화)|시]]》 (2010년) 각본, 감독
         * 《[[버닝 (화)|버닝]]》 (2018년) 각본, 감독
         == 그외 화 활동 ==
         * 《한국 화의 르네스》(2005년) 출연
         * 《[[여행자 (2009년 화)|여행자]]》(2009년) 제작
         * 《[[슈퍼스타 (2012년 화)|슈퍼스타]]》(2012년) 출연
         * 제64회 [[칸 화제]] 비평가주간 심사위원장([[2011년]])
         * 제62회 칸 화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장([[2009년]])
  • 이경영(1960) . . . . 243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출연금지 연예인]]
         {{{#FFFFFF ''' 이경의 주요 수 이력 ''' }}} }}} ||||
         ||<table width=100%><-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 {{{+1 '''[[백예술대|[[파일:백예술대_로고.png|width=100]]]] 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 ||
         || [[유인촌]][br](1992) || → ||<#FFFFA1> '''이경[br](1993)''' || → || [[안성기]][br](1994) ||
         || [[김갑수]][br](1995) || → ||<#FFFFA1> '''이경[br](1996)''' || → || [[한석규]][br](1997) ||
         || '''이름''' ||<(> 이경(李璟榮) ||
         || '''학력''' ||<(> [[충주고등학교]][br][[충남대학교]] 경학과 중퇴[br][[한양대학교]] 연극화과 학사 ||
         '''한국 화계 최고의 조연 중 한명이자 [[성범죄자|미성년자 성매매 범죄자]]'''.
         대한민국 국적의 배우. [[1960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충남대학교]] 경학과 중퇴, [[한양대학교]] 연극화과 졸업.[* 데뷔 이후 줄곧 '충남대 의대 중퇴'의 학력으로 알려져 있어서 나름 고학력 엘리트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다 [[신정아]]의 [[학력위조]] 사건 후에 의대가 아닌 대 중퇴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본인은 데뷔 당시 인터뷰에서 '꿈이 의사였다'고 한 것이 '의대 출신'으로 기사화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해명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화계에서 [[박중훈]], [[안성기]], [[최민수]]와 함께 [[충무로(은어)|충무로]] 4대 배우라 불리며 잘 나가던 배우였다. 특유의 '[[젠틀맨]] 이미지' 를 통해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멋진 남자[* 물론 살짝 악역 느낌이 나거나 남녀 주인공 사이를 갈라놓는 삼각관계 축 역할도 했었지만, 주로 젠틀한 이미지가 강했다.] 역할을 많이 맡아서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스타로 남성미가 강한 최민수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네 배우들 중에서 코믹은 박중훈, 터프는 최민수가 맡고 있었고, 친숙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쪽 이미지는 안성기였다. 이경은 멜로분야에서 세부적으로 다양한 성격을 모두 구별하며 미세한 감정선을 강조하는 연기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사실 점잖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30대 애정 드라마 전문 주인공 느낌. (2018년 현재와 비교하자면 [[류진(배우)|류진]]이나 [[주욱]]정도의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천하의 이경이 나중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 조, 단역으로 간다 해도, 지금처럼 악역, 그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는 악독한 역할 전문 배우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는 도 못했다.] 그러나 지나친 [[다작]]으로 가치가 훼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경은 선한 쪽, 악한 쪽, 19금(?) 쪽, 소프트한 쪽 등 모든 종류의 애정 연기를 다 잘 소화한 배우라 그가 다작을 했다고 폄하될 이유는 없다. 게다가 개그 캐릭터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코믹한 화에도 간간히 출연했다. 다만, 멜로나 로맨스, 즉 애정 연기 쪽을 잘했던 만큼 다른 장르는 저 셋에 비하면 약했던 면이 있었다. 그가 주연한 코미디 화들도 흥행이 그저 그랬었다. 아무튼 21세기에도 젊은 주연을 원하는 다른 장르에 비해, 나이 있는 배우가 주연을 하는 멜로는 수요가 나름 많이 있었던 만큼 후술될 사건만 없었다면, 오히려 저 셋보다 주연으로 더 오래갔을지도 모르는 탁월한 연기력의 소유자였다. 그야말로 인기나 대중호감도도 갖추고 있던 연기파 배우.
         사실 이 시기에는 이 배우 저 배우 돌려쓰기 현이 심하여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관객들이 외면할 정도로 충무로 배우 연령폭이 얇았다. 이경 본인도 "그나마 [[안성기]]나 [[박중훈]]은 충무로나 언론에서 보호해주는 패턴이 강했다면 나는 그저 잡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며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가치관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지만, 안성기나 박중훈이 어느 정도 자기 이미지와 고유의 연기색을 바탕으로 그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게 코믹연기나 진지한 연기를 구축했다면, 이경은 (최소한 화작품 기준으로는) 자기만의 연기톤을 고집하려 들지 않고 당시 기준에서 극도로 19금적인 코믹연기도 하고 완벽하게 정석적으로 진지한 연기도 소화하는 등 팔색조처럼 넓은 연기폭을 시도했다. --물론 화 자체가 실험적이거나 파격적인 사례가 많아서 흥행은 거의 망하곤 했다 [[안습]]-- 1994년에 [[문성근]]과 같이 출연했던 '세 밖으로'라는 화는 주인공들이 탈옥수라는 설정답게 쌍욕이 들어간 대사가 화 내내 나오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 화였다. (그전까지는 불량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화라 할 지라도 욕설의 정도가 심한 대사들이 주연들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일부 중요한 폭력적인 장면 한둘에서 나오는 정도) 그런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연기변신에 대해 그렇게 힘든 요구를 항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력 부분에서 점수를 깎이지 않고 합격점을 항 받아왔다는 데서 이경의 그 뛰어난 연기력에 대한 가치가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같은 장르를 연기하는 [[한석규]]가 충무로에 입성한 이후부터 하락세가 시작되더니 1996년에 본인이 감독으로 데뷔하여[* 원래는 심승보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려 했으나 사정으로 이경에게 넘어갔다. 여주인공 교체 등 다사다난에 시달렸고 흥행성적도 안습이었다.] 제작한 《귀천도》가 실패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래도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까지는 40대의 나이에도 주요시간대 드라마의 멜로 주인공을 잘 소화하며 멜로 전문 = 이경이라는 공식을 어느 정도 유지할 만큼 잘 나갔었고, 당시 드라마 좋아하던 세대인 30~40대 여성시청자 팬들도 굉장히 많았다.
         90년대 후반 이경이 잘나갔다는 증거로, 당시 잘 나가던 아나운서 [[유정현(방송인)|유정현]][* 후에 프리랜서 생활 후 국회의원도 했었다.]과 모델출신 유명방송인 [[이소라(모델)|이소라]]가 연예정보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를 진행하던 당시 레전드로 남았던 유명한 방송사고 2개가 있다. 바로 '야이 X박 쉐끼야 잔소리하지 말고 돈 되는 거 있으면 다 내놔!'[* 당시 절친이던 이경과 [[김민종]]이 [[강도]] 역할로 [[박찬욱]] 감독의 화 《[[삼인조]]》에 출연하여 화를 홍보하기 위해 나왔을 때 유정현이 자꾸 김민종에게 화 속 거친 연기를 한번 해 달라고 하자 김민종이 실제 쌍욕이 들어간 강도 역할 대사를 질러버려 화제가 되었던 방송사고.]와 '연기리(?)에 방되고 있는 주말드라마 '[[사랑해 사랑해]]'의 후속작인 로맨스.'[* 당시 이경과 이애가 출연하던 SBS 드라마 《로맨스》를 홍보하기 위해 방송에 나왔다가 유정현이 드라마 소개하는 멘트를 '연기리에 방'으로 하는 바람에 이소라가 웃음이 터져 멈추지 못했던 방송사고였다.] '''모두 이경이 주연을 한 화와 드라마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출연'''했을 때 벌어졌던 사건이다.
         이때 이경은 당대 최고 젠틀맨 이미지를 가진 스타답게 연륜있는 유머로 넘겼었다. 첫 번째 사건 때는 유정현은 당황한 감정에 --시킨다고 욕을 하냐-- 살짝 화가 겹쳐 나있어 말을 잇지 못했고, 이소라도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김민종 본인도 자꾸 시키니까 욱하는 마음에 실제 대사를 질렀다가 "시키시니까 했는데요.. 아 [[방송사고]]다, 어떡하지.."이러면서 제대로 수습을 못 했는데, 이경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웃으며 "제가 앞으로 김민종 씨 언어순화 교육까지 책임지며 살겠습니다."라며 적절하게 마무리시키고 넘어갔었다.
         두 번째 사건 때는 소개하는 말을 했던 유정현은 당황했고, 이소라는 웃느라 아예 정신을 못 차렸으며, 이애는 조금 웃기만 하며 가만히 있었는데, 이경도 당황은 했으나 더 이 멘트가 안 나오면 더 큰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여 미소와 함께 차분하게 "아 예, 연기리에 방되고 있는 《로맨스》에 출연하고 있는 이경입니다"라고 인사하며 유머로 받아쳐 넘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소라의 웃음터진 게 이미 너무 심해서, 이경의 자연스러운 --아재-- 유머에 계속 터져 버려 한동안 방송사고가 지속되었다. 이 두 개가 1997 ~ 98년, 1년 사이에 터진 일인데, 홍보를 해야 하는 이경 본인의 입장에서는 단기간 연속으로 발생된 방송사고로 출연작에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기면 위험하기에 당혹스럽고 누가 봐도 화가 날 만한 황[* 드라마, 화 외의 방송출연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닌데 이 정도 황까지 온다면 어떤 주연급 배우도 심하게 빡칠 만한 황이다.]이었다. 그러나 이런 황에서도 이렇게 혼자 의연하게 대처했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져서 "역시 젠틀맨 이경"이라는 식으로 평판이 더 좋아졌었다.
         2001년에 [[이요원]]과 같이 출연한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아가씨와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는 유부남 역을 맡아서 화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나 싶었으나[* 이 작품은 2001년 12월 열린 제 14회 한국방송작가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삼각관계라는 구태의연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번 드라마 작가(집필자 이금림 작가가 SBS [[은실이]]로 12회(99년 12월 개최) 드라마 부문 수)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고 결국 제 14회 한국방송작가 드라마 부문 수작은 KBS 1TV 대하사극 [[태조 왕건]]으로 낙착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에서 철원성주 역으로 나온 [[송창]]은 이경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물의(둘 다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를 일으켜서 KBS 출연금지 명단에 올라 있으며 이경이 출연한 드라마인 <푸른 안개> <은실이>는 이경 문제(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탓인지 3사에서 틀지 못한다.]...
         2002년에 [[원조교제]] 혐의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미성년자 L양과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것이 드러났으며 첫 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태에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무죄, 두번째와 세번째 성관계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했으므로 원조교제 혐의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게 되었다.
         한편 형사재판이 종결된 후, L양과 그 부모는 이경대로 정신적 손해에 대해 배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2004년 5월 L양 측이 승소했다.
         이에 대해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유죄판결 받았던 부분은 숨겼고]] [[언론플레이|단순히 무죄판결'''만'''을 받은 듯이 말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적잖은 기사에는 잘못된 정보(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가 실려 있는 황이다.
  • 문근영 . . . . 232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일본)]
         {{{#FFFFFF ''' 문근의 주요 신인 이력 ''' }}} }}}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5><tablebordercolor=#b2a529><#FFFFFF><:> {{{+1 [[후지TV|[[파일:SBS로고.png|width=60]]]] ''' [[SBS 연기대|{{{#B2A529 연기대}}}]] ''' {{{#B2A529 ''' 대 ''' }}}}}} ||
         ||<width=25%><:>[[후카다쿄코]]/[[김남주]][br](2007)||<:>{{{+1 →}}}||<width=25%><#ffffa1><:>'''문근[br](2010)'''||<:>{{{+1 →}}}||<width=25%><:>[[후카다쿄코]][b](2009)||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c0c000> {{{+1 '''[[백예술대|[[파일:백예술대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 ||
         || [[윤은혜]][br](2008) || → ||<#FFFFA1> '''문근[br](2009)''' || → || [[김남주]][br](2010) ||
         ||<#f08080><:> {{{#ffffff '''이름'''}}} ||<(><#ffe4e1> 문근(文瑾瑩)[* 오랜 기간 동안 그녀의 한자 이름이 文根英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http://news.chinatimes.com/2009Cti/Channel/Showbiz/showbiz-news-cnt/0,5020,110511+112010072600035,00.html|2010년 대만의 일간지 中國時報 보도]]에서 그녀의 정확한 한자이름은 文瑾瑩인 것으로 밝혀졌다.] ||
         ||<#f08080><:> {{{#ffffff '''데뷔'''}}} ||<(><#ffe4e1> [[1999년]] [[화]] '얏타맨' ||
         [[1999년]] 대역배우로 처음 연기에 발을 디뎠고[* 첫 출연은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박재홍(야구)|박재홍]]의 첫사랑 역할이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2&aid=0000012966|관련 기사]].], 1999년작 [[어린이 드라마]]《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에서 깍쟁이 소녀로 등장한 것이 본격적인 출연이다. 그 외에도 몇 편의 단역을 맡았으나, 본격 출세작은 [[2000년]] [[가을]]에 방된 [[가을동화]]에서 [[송혜교]]의 [[아역]]. 성인 역할로 바뀐 [[송혜교]]보다도 역에 훨씬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5년]]작 화 댄서의 순정에서는 순수한 연변 처녀의 역을 맡아서 춤 솜씨, 연변사투리 실력와 함께 120%의 존재감을 선보였다. ~~대신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로 당시 극강의 댄서로서 군림하던 [[박건형]]의 존재감은 이 화에서 문근의 아우라에 묻히고 말았다~~ 화 속 여주인공의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한 '반딧불이...' 운운하는 대사의 경우 다른 여배우가 이런 대사를 했으면 관객들의 손발이 오그라들었을텐데, 문근이 그런 대사를 하니까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나왔다. 진부한 스토리의 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문근이 연기한 여주인공 캐릭터의 애잔함이 화를 완전히 살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흥행성적은 220만 관객으로 중박 정도였지만, 화가 중독성이 있어서 문근 팬과 당수 남성 관객들에게는 거의 컬트 수준의 사랑을 받았다.[* 어느 30대 유부남은 이 화 한번 보고 너무 좋아서 아내 눈총 받아가며 무려 1달 동안 매일 저녁 이 화 비디오를 보고 잠이 들었다 한다.]
         이후 학업에 전념하면서 3년간 문근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말았다.
         [[2008년]]에 복귀해 방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여자]] 기믹의 신윤복 역을 훌륭히 소화해내며 연기력을 검증받았다. 다만 얼굴을 [[남자]]에 대입해도 '''전혀 이하지 않다'''는 사실에 쇼크를 먹은 팬들이 있으며[* 화 [[미인도]]에서 [[신윤복]] 역을 맡은 [[김규리(1979년 10월)|김규리]](개명전:김민선)도 [[남장]]을 했다지만 본판은 여자라는 티가 났다.], [[박신양]]의 강렬한 엘보우에 가격당해 코뼈가 나가기도 했다(…). 현재는 완치되었다. 덕분에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219371|21세기를 이끌 미래인재]]에 선정되기도 했을 정도. 참고로 같이 선정된 사람 중 한 명이 동향인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KIA 타이거즈]] 투수 [[한기주]]였다.(...)
         [[SBS 연기대]]에서 [[신윤복]] 역으로 정향 역을 맡았던 [[문채원]]과 함께 베스트 커플을 수했고, 연기대까지 수했다. 통 연기대은 관례 시청률이 높은 자사 드라마의 주연 내지는 자사 드라마에 출연해 주길 바라는 거물급 배우에게 수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히 파격적인 수이었다. [[박신양]]의 [[김홍도]]가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완전히 사라진 태에서 드라마를 혼자 이끈 문근의 공을 감안해도 10%대의 드라마 주연에게 연기 대을 수여하는 일은 파격적이었다. 이로써 문근은 만 21세에 연기대을 수, 방송 3사 통틀어 2번째로 어린 나이에 연기대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참고로 역대 최연소 연기대자는 1998년 [[미스터Q(드라마)|미스터Q]]의 [[김희선]](당시 만 21세). SBS 연기대은 그 해 12월 31일에 진행되고, 생일이 12월과 가까울수록 어린 나이가 되므로, 만 21세 때 대을 수한 두 사람 중 생일이 6월인 김희선이 역대 최연소 수자다.] 이날 대을 수한 문근은 수소감 내내 몸을 바들바들 떨정도로 기쁨보다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며 대을 버거워하기도 했다. 백예술대에서 드라마부문 여자 최우수(방송)을 수하기도 했다.
         그리고 [[엠파스]]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 [[바니걸]] 컨셉을 잡은 것이 당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문근 자신은 그전부터 아역 이미지를 벗고 싶어했기 때문에 이런 컨셉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문근 팬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문근을 여전히 아역 이미지로 기억하던 황인지라, 대부분 문근과 [[싱크로]]가 너무 맞지 않는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2010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로 악역인 듯 악역 아닌 악역 같은 주인공을 연기하여 이미지 체인지.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신데렐라의 언니의 시각에서 보는 색다른 시도의 드라마이다. 송은조를 연기했다. ~~나중에 구은조로 개명한다~~ 제대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은조가 엄마를 따라 대성도가로 이사하면서, 새 아버지와 새 여동생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대성도가 알바생 기훈([[천정명]])과 그리는 로맨스가 팽팽하고 애절하다. 명대사 또는 명장면으로 기훈의 '은조야!' 은조의 '은조야ㅠ은조야ㅠ'오열씬, 은조의 '아..아버..아..아빠.. 아빠ㅜ 아빠ㅠㅠㅠㅠ'오열씬 등이 있다. 어째 같은 아역 출신 연기자인 [[강혜정]]과는 대조적으로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 같은 해 연극 클로저에서도 위험한 분위기의 [[팜므파탈]]로 등장했는데, 여기서 '''[[담배]]피우는 연기 모습이 엄청나게 익숙해보여''' 문근이 진짜 흡연 이력이 있느냐를 놓고 격론을 낳기도 했다. 다만 흡연 여부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적은 없다. 설령 사실이라 한들 성인의 흡연이 뭐가 문제랴마는...[* 사실 여배우들의 흡연은 꽤 많은 편이다. 故 [[최진실]]도 소문으로 흡연자라는 설이 꽤 돌았는데 결국 [[조성민]]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임신]] 중 흡연이 확인되어 진실로 밝혀졌다(…).]. 게다가 사실 이미 [[2008년]]에도 담배를 피우는 컨셉 화보를 찍어 의혹이 커졌었는데, 비흡연자 중에서도 흡연 묘사 자체를 모방효과로 인해 달갑잖게 취급하는 혐연자들이 있는 것과 대조되는 것을 보면, 문근이 비록 흡연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흡연행위 자체를 그렇게 싫어하거나 반감을 갖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물론 [[국민 여동생]] 이미지가 아직 가시지 않은 팬들 입장에서는 흡연 연출 자체만으로도 [[충공깽]].
         사실 이런 것은 한 가지 이미지로 유명해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 현이다. 한 가지 이미지로 고정이 된다면 단기적으로는 강한 임팩트로 유명해지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연기자로써의 스펙트럼이 무척 좁아지므로 연기자로써의 배역 욕심을 떠나서, 일이 끊어지는 불사가 생기기 마련이다[* [[마크 해밀]]은 [[루크 스카이워커]]로 유명해진 바람에 다른 배역이 안 들어왔고, [[해리 포터]]로 굳어진 [[대니얼 래드클리프]] 역시 이러한 전철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일라이저 우드]] 역시 [[프로도 배긴스]]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씬 시티]]를 통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장동건]] 또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 그저 잘생기기만 한 배우에서 탈피했고 이에 자극받은 [[정우성]] 역시 [[똥개]]를 통해 청춘의 아이콘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노력했었다.].
         [[2010년]] 연극 《클로저》 첫 무대 당시 너무 떨려, 대사 한 줄을 통으로 날려 버린 전적이 있다. 대 남배우가 매우 난감해 했다고. 역할이 스트립 댄서인만큼 노출이나 스킨십이 당했는데, 이 때문인지 같은 연극을 십수 번 본 일부 팬들은 매우 횡재했다고 한다. ~~티켓값 지못미~~
         2012년 들어서는 광동제약 '''[[비타500]]'''광고, 부산국제화제, 예능 [[런닝맨]] 등에서 심하게 후덕해진 모습을 보여줘 팬들의 마음에 [[충공깽]]을 안겨주고 있다.
         [[2012년]]에 SBS주말극 [[청담동 앨리스]]로 다시 메인 스트림에 복귀하였다. 이 작품은 부자와 사귀어 신분 승이라는 통속적인 트렌디 드라마. 인지도를 고려했을 때 주말극으로 복귀한 것은 놀라운 시도. 보통은 평일 미니시리즈나 여하튼 평일 드라마로 나와야 맞다. 역할이 패션 [[디자이너]]인만큼 팬들의 기대가 컸다.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 [[신데렐라 언니]]에서 톰보이... 우리 근이 예쁜 옷좀 입혀주세요~~ 그러나 예비 패션 디자이너라기엔 너무나 안목 없는(...) 패션과 헤어스타일로 까였다. 드라마 쓸 줄 모르는 신인 작가들의 발질로 명장면, 명대사 하나 없는 드라마로 남고 말았다. ~~그래도 박시후가 맡은 차승조의 '한마디만 더하면 죽여버릴거야'[* 참고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 한세경에게 내뱉는 대사다...], 한세경의 '내 죄에요' 등이 있다.~~
         [[2013년]]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로 오랜만에 [[사극]]에 출연했다. 또 [[남장여자]] 역이라 [[바람의 화원]]을 다시 보는걸로 착각할 정도. 그래도 남장은 초반에 잠깐(...) 나오고 다시 여자로 돌아간다. 본인이 후에 인터뷰에서 "남장여자 씬은 순전히 드라마 재미를 위해 추가로 들어간 씬이고, 원래는 계획에 없던 씬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얼굴은 다시 갸름해졌다~~ ~~초반에 갸름했다가 뒤로 갈수록 체력이 딸리고 부을 입어 제대로 부었다(...)~~ [[청담동 앨리스]] 때도 그랬지만 [[불의 여신 정이]]를 찍으면서 작품 때문에 제대로 까였다. 팬사이트에서도 옹호해주는 팬이 없을 정도... 전작 [[무사 백동수]]를 은하계 너머로 보내버린 전적이 있는 작가가 화근이었다. 거의 만화 화 대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유치하고 간단한 대사와 황 설정으로 보는 내내 몰입을 방해했다. 그나마 [[전광렬]]의 연기가 혹평을 피하고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줬으나 다른 누구도 작가의 발대본 앞에 살아남지 못했다(...)
  • 영천시 . . . . 224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천(永川)은 이 문서로 연결됩니다. 천(榮川), rd1=주시)]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북도)]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
         [include(틀:천시의 읍면동)]
         [include(틀:경북도 천시장)]
         ||<-3><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4C0B5F><bgcolor=#4C0B5F><:> {{{+2 {{{#FFFFFF '''천시'''}}}}}} [br] {{{#FFFFFF '''永川市 / Yeongcheon C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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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bgcolor=#FFFFFF>[include(틀:지도, 장소=천시,너비=100%)]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D8CEF6><bgcolor=#D8CEF6><table width=95%><:> [[파일:천 은해사.jpg|width=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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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color=#D8CEF6> {{{#3104B4 '''▲ 천 포도'''}}} ||
         ||<bgcolor=#D8CEF6> {{{#3104B4 '''천시 홍보'''}}} ||
         [[경북도]] 남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10만명을 간신히 넘기는 인구가 거주 중이다. 인구 변동폭이 워낙 작아서 2013년 8월 '''100,999명'''으로 인구가 10만 명대로 하락한 이후 4년 가까이 10만 명선에서 정체되어있다[* 그런데 2017년부터 '''서서히 아주 조금씩 인구가 늘고 있다!!'''] 행정구역면적은 920.29㎢ 에 1개 읍(금호읍), 10개 면(청통, 신녕, 화산, 화북, 화남, 자양, 임고, 고경, 북안, 대창), 행정동 5개 동(동부, 중앙, 서부, 완산, 남부), 법정동 30개 동(망정, 야사, 도남, 도동, 조교, 녹전, 오수, 조교, 대전, 매산, 신기, 문내, 문외, 언하, 괴연, 채신, 성내, 화룡, 오미, 과전, 창구, 봉동, 완산[*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완산구]] 완산동과는 전혀 관없다.], 금노, 본촌, 서산, 쌍계, 범어, 작산, 교촌)이 있다. [[대구광역시]]와 접한 도시인 만큼 대구 생활권에 대체로 속하고, 다만 [[포항시]]와 접하는 고경면은 포항 생활권에 좀 더 가깝다...고 하지만 실은 둘 다 차타고 넉넉잡아 1시간 정도의 거리라(...) 그냥 독자 생활권이라고 보면 편하다. 굳이 대도시에 볼 일이 있을 때 그쪽으로 간다는 것.
         시화는 장미, 시조는 비둘기, 시목은 은행나무이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으로 '''Star''' '''YeongCheon'''을 내세우고 있다. 천에 보현산천문대가 있기 때문이다.--육군3사관학교에서 양성해냈던 장성급 장교의 계급장에 있는 별이 아니다-- 그리고 S-sound, T-Technology, A-art, R-river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인구밀도는 1㎢당 117명, 가구원은 1가구당 2.4명 사업체수 7,354 , 수도 1인당 417톤, 출생/사망 1일당 2.1명/2.7명, 혼인/이혼 1일 1.6쌍/0.6쌍 전입/전출 1일 45명/43명, 시직원 시민 114명당 1명, 1일 전력사용 2,808Mwh, 교원 학생15명당 1명, 화재 1일당 0.5건 지방세 1명당 771.826원, 교통사고발생 1일 2건, 의료인 시민 163명당 1명, 자동차 시민 2.5명당 1대이다.(2008년 통계- 최신자료로 갱신 바람)
  • 강원도 . . . . 21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지리 관련 정보, top2=대한민국/지명)]
         ||<|3><bgcolor=#00529B> {{{#FFFFFF '''징'''}}} ||<bgcolor=#00529B> {{{#FFFFFF '''도화'''}}} || [[철쭉]] ||
         강원도의 [[마스코트]]인 반비는 [[반달가슴곰]]이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강원도로 넘어가다 보면 곰 석이 선 것을 볼 수 있다.[* 미시령요금소 표지판 옆에도 붙어 있다.]
         한반도 중동부에 있는 [[도(행정구역)|도]]. [[경기도]], [[충청북도]], [[경북도]]와 맞닿는다. [[휴전선]] 이북 지역을 제외한 실질 행정구역은 7시 11군으로 총 18개 시군으로 이루어진다. 2018년 6월 기준 인구는 약 154만 5천여 명이다(외국인 제외).
         실질적으론 휴전선 이남만 관리하고 있지만 법률으론 휴전선 이북에도 강원도의 행정구역이 설정되어 있다.[* 알다시피 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한반도 북부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경기도]]와 더불어 남북으로 분단된 도 2개 중 하나다.[* 서해 5도가 과거 황해도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인천광역시 소속이라 [[황해도]]는 사실 북한 땅이다. 때문에 황해도는 분단된 도로 보지 않는다.] 참고로 [[북한]]의 행정구역으로는 [[강원도(북한)|강원도]]가 유일하게 분단된 도다. 북한은 휴전선 이북의 경기도 지역을 [[황해북도]]나 강원도로 흡수해 버려서 북한의 행정구역 휴전선 이북 지역에는 경기도에 속하는 지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백두대간]]([[태백산맥]])이 도의 동쪽을 남북으로 살짝 기울어져 지나가며, 이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 중 하나인 [[대관령]]을 기준으로 동쪽을 [[동]], 서쪽을 [[서]]라고 일컫는다. 고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태백이 동 지방에 해당되며, 철원, 화천, 양구, 인제, 춘천, 홍천, 횡성, 원주, 평창, 월, 정선이 서 지방에 해당한다.[* 단 문화, 풍속 등을 주제로 삼을 경우에는 평창, 정선, 월 등은 동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에 철원은 지형적인 향으로 다른 서 지역과 생활권이 갈라져 있다.(실질 생활권은 경기도 동북권)] 두 지방은 서로 기후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예컨대 강릉은 찜통인데 춘천은 비가 온다든가, 같은 도일지라도 TV나 신문 등의 일기예보에서 반드시 동과 서를 나누어 다룬다. 사실 [[푄 현]] 때문에 어느 방향에서 바람이 불든 기후가 반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바람이 아니라 다른 요소가 지배적일 때는 비슷할 수도 있지만. 동지방은 해양성 기후가 매우 강하지만, 서지방은 사실 내륙성 기후가 나타난다.
         원삼국시대에는 [[동예]], [[말갈]]의 토였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신라]] 의 토였다. [[통일신라]] 때는 [[9주 5소경]] 중 서는 [[삭주]], 동은 [[명주]]였다. 명주의 중심도시는 [[강릉시]]로 본래 고대부터 [[동]]지역의 거점 중 하나였고, [[원주시]]와 [[춘천시]]는 [[서]]지역의 거점 중 하나였다. [[통일신라]] 당시 [[9주 5소경]] 중 강원도는 [[명주]]에 속했는데 당시 명주 자체가 강릉을 부르는 지명이었다.[* 1995년 [[도농통합시]] 이전에 명주군이 있었는데, 원래 명주자체가 강릉과 하나였던 셈이다.] 이는 춘천도 마찬가지인데 춘천은 [[삭주]]에 속했으며 이는 춘천을 부르는 지명이었다. 당연히 명주의 주(州) 치소(도청)는 강릉에 있었고, 삭주의 주 치소는 춘천에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원주의 경우는 북원경으로 불렸고 이는 현재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5소경 중 하나였다. 다만 이때의 5소경 역시 9주에 속했던지라 북원경 역시 삭주에 속했다.
         [[고려시대]] 초기 [[10도]]에선 삭방도(朔方道)로 동과 서지역이 모두 포함된 적이 있었으나, [[현종(고려)|현종]] 때 [[5도 양계]]에서 다시 동은 [[동계]] 서는 [[교주도]]로 분리되었다. 동계의 병마사 치소는 당시 안변도호부[* 현재 강원도(북한) [[안변]]군]에 있었으며 교주도의 안찰사 치소는 교주[* 현재 강원도(북한) [[회양]]군]에 있었다. 그러나 강릉과 춘천 모두 서와 동지역의 거점의 지위를 계속이어가, 강릉의 경우엔 동계의 치소로 옮겨지고 고려 말기엔 '''강릉도'''로 개편되었다. 춘천의 경우에도 교주도의 치소로 옮겨졌고, 교주도를 당시 춘천의 지명이었던 춘주에서 딴 '''춘주도'''라고도 불렀다. 사실 교주도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던 기간이 아주 길지는 않았고 그 명칭은 춘주도, 동주도, 회양도 등으로 계속 바뀌었는데 한국사 교과서의 지도 등에는 대표적으로 교주도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원주의 경우는 동계도 교주도도 아닌 [[충주]]와 [[충청도|양광도]]에 속했다.
         [[고려]] 말에는 동과 서지역이 교주강릉도로 합쳐졌고, 지금의 [[함경남도]] 일부분에 해당하는 동북면도 포함되었다. [[조선시대]]부터는 [[충청도]]에 있던 원주, [[평창]] 등이 포함되었으며, 서지역의 치소를 춘천에서 원주로 옮기고 도명을 강릉의 '''강''', 원주의 '''원'''에서 따 [[8도]]제 중 하나인 강원도로 바꾸었다. 허나 [[태백산맥|지리적 이유]] 로 인해 강원도 내에서 명목 좌우도제로 서는 강원우도, 동은 강원좌도로 나뉘었다.[* 현 강릉에 병무청이라든지, 경찰청 등 도청이 위치한 춘천 못지 않게 강릉이 동 지역의 거점을 계속담당했다. 지금도 서 지역과 동 지역의 시스템을 이원화하는게 효율적인데, 교통이 극악이었던 조선 시대는 당연했을 것이다. 통일신라와 고려 대부분 시기, [[23부제]]를 고려하면 서와 동지역을 조선시대에 합쳐선 안 되었다는 중론이 나온다.] 이때부터 강원도의 관찰사 감이 원주로 옮겨졌다. 그러나 1895년 전국 행정구역을 [[23부제]] 337군으로 정비할 때 강원도를 폐하고 2부(춘천부, 강릉부)로 개편되면서 원주는 충주부에 속해있는 군이 되었고, 1896년 다시 23부를 폐지하고 전국을 13도로 분할했을 때 감이 있던 원주를 제치고 다시 춘천에 감를 두게 되었다.
         [[도청(행정)|도청]]이 춘천으로 다시 오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춘천이 구한말에는 서 지역 중 가장 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발생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대한제국)|고종]]은 국가 변란 등 유사시에 대비한 피난처를 물색하였다. 이에 여러 지역이 최적지로 오르내렸는데, 그 중에서 춘천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고 이에 따라 수도 한양의 동쪽 봉의산 자락에 위치한 춘천유수부 관아에 춘천이궁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춘천이궁은 1888년(고종 25) 초대 춘천유수 김기석이 공사를 시작하여 1890년(고종 27) 2대 춘천유수 민두호가 완공하였다. 완공 후 고종이 실제로 이곳에 행차한 적은 없었지만, 이궁이 춘천에 위치함으로써 원주에 있던 강원감이 폐쇄되고 1896년에 춘천이 강원도의 수부(首府)가 되어 오늘날과 같이 강원도청 소재지가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 이 표에서 사용된 그래프는 1500만 명이 한인 100분율 자료입니다. (네이버 백분율 계산기를 이용했습니다.)
         2016년 기준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곳은 '''양양군(25.6%)'''이었으며, 월군(24.7%), 횡성군(24.6%), 고성군(23.7%)이 뒤를 이었다.
         ※참고 : 총인구 중에서 65세 이 인구가 7% 이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이면 고령사회, 20% 이이면 초고령사회다.
         관내에 [[철도]]는 [[중앙선]], [[태백선]], [[동선]], [[경춘선]], [[경원선]], [[경강선]], [[동해선]]이 있다. 이중 경춘선은 [[ITX]], 경강선은 [[KTX]]가 운행되는 노선이다.
         [[고속도로]]는 [[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동해고속도로]], [[서울양양고속도로]], [[광주원주고속도로]] 등이 있다.
          * [[38번 국도]] : [[월군]]-[[동해시]]
          * [[59번 국도]] : [[월군]]-[[양양군]]
         1960년대 이후 [[석탄]], [[철광석]], [[텅스텐]] 등의 주요 생산지로서 [[북한]]과 분리된 태인 한반도에서 [[자원]] 공급처로서 기능했다. 때문에 급증하는 [[광물]] 수요로 인해 [[광부]]들이 인기를 끌어 서울 사람들보다 고소득을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택도 없지만 당시엔 전국 규모의 [[요정]](料亭)들이 성업하고, 한때 개도 입에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호황을 누렸으나, 1990년대를 전후하여 잇따른 [[자원]] 수입과 [[중국]]과의 [[수교]]로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시행되어 20여년의 화(榮華)는 사그러지게 된다. 현재 [[월군]] 동읍을 비롯 [[정선군]] 고한읍, [[태백시]] 철암동 같은 지역은 과거의 화는 사라지고 문자 그대로 철저히 [[망했어요|망했다]]. 지역경제가 안사니 인구가 다 떠나버려 10분의 1이으로 인구가 급감했고 폐광을 제대로 막지않아 주변 [[환경]]도 [[현실은 시궁창|시궁창]]이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고자 2006년 폐광촌 발전을 위해서 한국에서 유일하게 합법으로 내국인이 들어갈 수 있는 [[카지노]] 시설인 '''[[강원랜드]]'''를 강원도 [[정선군]] [[사북역|사북읍]]에 만들었다. [[애초에]] 강원랜드는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적 고려로 인해 생긴 것이기 때문에 관계자들도 성공할지 반신반의였는데, 생각 외로 [[대박]]이 나서 지역경제에 꽤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과장 좀 보태면 강원랜드가 있는 [[정선군]] 뿐만 아니라 그 [[태백시|주변]] [[월군|시]][[평창군|군]]에도 당히 큰 향력을 미친다고. 물론 강원랜드 지분의 51%는 강원도, 나머지 49%는 민간자본[* 민간자본이라니 일견 굉장히 사악해보이는 용어지만, 49%의 지분이 주식시장에 장되있을 뿐이고 장을 통해서 자본 증대를 하였기에, 단순히 지역 경제만이 아닌 주주의 이익 역시 보장해야 한다. 한국은 이렇게 공을 담당하면서도 주식시장에 장되어 주주 이익을 극대화해야한다는 모순에 휩싸인 주식들이 여럿 있긴 한데, 이를 해결할려면 당장 모든 공기업 주식을 정부가 사들여 공화하거나, 아예 민화를 하거나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한국 정치인중에 이 문제를 주장할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고 무작정 공기업에 대한 가치만이 널리 퍼진채 민 자본은 무슨 사악한 단어처럼 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경제에 미치는 향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있긴 하다. 하여튼 그럼에도 지역 주민들이 당히 좋아하는 시설이라(...) 도박중독에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부작용도 생기고 때때로 [[너 고소|소송도 걸리고]] 사업의 특성 그리 순탄치는 못한 길을 걷고 있으나 한동안 폐업은 안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역경제가 여전히 다른 도와 비교하면 순탄치는 않은 황이다. 지역인구도 많지는 않다. [[충청북도]]랑 인구 하위권에서 투톱을 이루고 있는데[* 196-80년대 탄광산업 호황기에도 강원도는 인구가 별로 증가되지 못했는데 이는 탄광촌이나 주요 도시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산골지역에서 이촌향도가 빈번하게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탄광으로 먹고살았던 지역은 1980년대까지도 어느 정도의 인구증가가 이루어졌지만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이후로는 인구가 매년 급감하고 있다(...)] [[광역시]] 배출 또한 못하고 있다.[* 여담으로 강원도와 충청북도는 대전, 광주와 인구가 비슷하다.(…) --게다가 이 동네들을 연고로 했던 [[지방은행]]들이 모두 [[조흥은행]]에 넘어가 버렸다는 것은 덤--] 다만 세부적으로는 두 지역 사이에 차이점이 보이는데, 강원도는 도청소재지인 [[춘천시]](약 28만), 인구 최대 도시인 [[원주시]](약 34만), 동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강릉시]](약 21만), 이 세 도시에 고루 사는 경향이 보이는 반면, 충청북도는 통합 [[청주시]]에 도 인구 절반이 넘는 84만이 [[몰빵]]되어 있다.[* 물론 이런 몰빵 성향은 청주시에 충북도청이 있어 다소 집중발전을 시킨 면도 있고, 청주 자체가 주로 인구가 늘어나던 [[경부고속도로|경부라인]]에 가까웠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2014년 청원군과 통합하면서 인구가 또 확 늘었다.] 강원도의 삼대장(?)격인 원주시, 춘천시, 강릉시의 인구를 합치면 약 80만 명으로 통합 청주시 인구와 비슷한 규모라는 점이 꽤나 재미있다.
  • 상디 . . . . 215회 일치
          * 위 항목 : [[원피스(만화)/등장인물]]
         || [[롤로노아 조로]] || [[나미(원피스)|나미]] || [[우솝]] || '''디''' || [[토니토니 쵸파]] || [[니코 로빈]] || [[프랑키]] || [[브룩(원피스)|브룩]] ||
         || 싫어하는 음식 ||<:> 곤약(양이 없어서) ||
         || 현금 ||<:> 7700만 베리 → 1억 7700만 베리[* 생포한정]||
         || 한국판[* 한국판에서는 무려 세 명의 성우가 맡았는데, 각 성우의 해석이 조금씩 달라 어느 쪽이 낫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대체적으로 김일의 해석이 더 디테일하고 맛깔난다는 의견이 많다. 그래서 쓰레기 퀄리티로 욕먹는 ~~대~~원피스 Original에서 유일하게 건질 만한 게 김일의 디라는 말까지 나왔다. ~~여기에 11기에서 [[브룩(원피스)|브룩]]에 [[이인성(성우)|이인성]]이 캐스팅되면서 건질 게 더 늘었다~~ 다만 투니판을 맡은 박성태 버전도 꽤 괜찮은 연기로 호평이 많다. 양석정 버전은 특유의 음색 탓인지 셋 중 가장 평이 좋지 않다.] || [[이유리(성우)|이유리]](대원방송), [[김은]](투니버스), [이현주(성우)|이현주](KBS) || [김일(성우)|김일](KBS, 대원방송), [[양석정]](KBS)[* 성우 교체에 얽힌 이야기가 참 복잡한데 2006년경 터진 [[흑역사가 된 것들/성우#s-1.1|KBS 성우 스캔들]]로 인해 김일을 포함한 3명의 성우가 6개월에서 1년의 자격 정지를 당해 양석정으로 교체되었고 투니버스에서 방될 때쯤에는 김일의 자격 정지는 풀렸지만 성우 본인이 투니버스 출연을 거부하고 있어서 결국 박성태에게 넘어갔다.], [[박성태]](투니버스) ||
         [[밀짚모자 일당]]의 [[요리사]] 겸 전투원. ~~그리고 일당 내 변태1~~ ~~[듀발|성형외과 의사].~~ 일명 '''검은 다리 디'''. 여자들한테~~만~~ 굉장히 매너가 좋고 여자를 굉장히 밝히는 색골이면서 실력 좋은 요리사. 디가 오기 전까지의 밀짚모자 일당의 식생활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루피는 출항하자마자 식량과 식수를 동내고 버섯을 뜯어먹으며 살았고 조로는 루피보다는 나았지만 결국 계획성 없는 것은 똑같기에 식량이 금방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그래서 바다 괴수의 고기를 먹고 살았다고 한다(…)~~괴수 없으면 아사~~. 우솝은 자그마한 낚시는 곧잘 하곤 했으며 나미는 그럭저럭 요리를 잘 했지만 '''유료''' 였다(…).]전투력이 위권이기 때문에 [[몽키 D. 루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일당 3대 주력 전투원. 그의 애칭은 검은 다리로 명성이 나 있다.
         요리 실력이 매우 뛰어나며 어떠한 황에서도 맛, 양, 시각 모두 만족시키는 멋진 음식을 만들고, 처음 접하는 생소한 재료도 금방 파악해 뛰어난 요리로 승화시키며, 이 와중에도 쓸데없이 재료를 낭비하거나 그냥 버리는 일이 없다. 칼질 솜씨 또한 수준급. 디의 요리를 먹고 만족하지 않은 사람은 작중에선 한 명도 없으며, 디 또한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디의 요리 실력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싸움이 한바탕 끝나면 꼭 연회를 즐기는 루피 해적단의 특성 수 십,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먹어야 할 요리를 거의 단신으로 문제없이 만들어 내면서도 요리의 퀄리티가 조금도 떨어져 보이지 않는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역시 원피스 세계의 초인~~[* 이게 정말로 대단한것이 도우미없이 혼자서 100인분이 넘는 음식을 만드는 묘사가 있었는데 당시 몸태는 '''늑골골절에 타박에 실컷 두들겨맞아 죽을정도로 싸우고 나서 말이다!!!''' 물론 바로 하는것이 아니라 좀 회복하고 나서 하지만 그래도 너무 조금 쉰다.주 역할의 노동력에 대해선 [[요리사]]항목을 참조.]
         늘 검은 수트를 입고 있고 전투에서는 오로지 다리를 이용한 공격을 한다. 이는 전투에서 요리사의 도구인 손이나 식칼을 쓰지 않으려는 신념의 발로로, 은인이자 스승인 붉은 발 [[wiki:"제프(원피스)" 제프]]에게 배운 것이다. 다만 '[[매드매드 완제|라면 면발을 갑옷으로 입은 대]]'처럼 대방이 식재료로 간주되는 경우라면 드물게 식칼 솜씨를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완제가 입었던 라면 면발 갑옷 한정으로, 갑옷을 해체한 뒤에는 식칼을 집어넣고 완제 본인은 원래대로 발차기만으로 대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게 보이겠다'''는 이유로 무리해서 담배를 피우다 결국 골초가 됐는데도 미각이 전혀 둔해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그렇게 담배를 피워대면 손에 담배 냄새가 흥건히 묻어서 요리에도 냄새가 베일 텐데도 그런 묘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위의 프로필에서 쵸파가 디에게 느껴진느 향기는 담배와 해산물 냄새라고 되어있는데, 수트에는 담배 냄새가 베어있어도 요리전 손의 위생 관리에는 철저한 모양] 또한 담배는 해레스토랑에서 일을 했고 항 항해생활을 해야되사 시중에서 구입하기 보단 직접 제작하는듯 하다.[* 클리크와의 전투후 루피를 간호하느라 디의 방이 나왔는데 담배를 직접 제작한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샤키]처럼 담배를 피는 또 다른 캐릭터들의 담배와 비교해봐도 형태가 좀 다르다. 일반 담배와 달리 만드는 담배 특유의 약간 찌그러진 모양이 묘하게 리얼하다.] 더불어 수의 달인으로서 [[어인]]과 맞붙을 수 있을 정도의 폐활량까지 갖추고 있으니 필시 원피스의 담배 자체가 현실의 담배와 다른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디의 과거회에서 담배를 처음 피우는 디를 보고 제프가 "관둬. 담배 같을걸 피우면 혀가 돌아버린다."라고 한마디 하는 장면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게...거참. ~~아니면 디의 미각과 폐활량이 패기를 쓸 줄 알거나~~]
         사내놈들은 돌 보듯 하지만 여자에게는 태도가 180도로 돌변한다. 1부 당시에도 미녀 앞에선 그야말로 [[뿅가죽네]] 모드로 돌변해서 헤롱헤롱거리고, 2부에서는 이게 더욱 심해져서 접촉이나 포옹이라도 했다가는 코피를 미친듯이 쏟아낸다.[* 거주 주민들은 둘쨰치고 '''토착 생물들까지 전부 [[오카마]]인 섬'''에서 '''[[wiki:"국방부 퀘스트" 2년 동안]] 지냈으니''' 그럴 만도...--불쌍한 디를 애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의없게 변태짓이나 추파를 부리는 건 아니고, 오버액션은 심하게 들어가지만 기본적으로 예의는 지키면서 외모/연령 불문하고 극진하게 '모신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제프에게 받은 세뇌급 교육의 향일 가능성이 크다. 호칭에서도 여성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게, 연하인 나미에겐 나미누님[* 애니메이션에서는 나미씨().], 연인 로빈에겐 로빈양[* 원판에선 로빈쨩. 친숙한 사이에 부르는 호칭], 이라고 부른다.[* 연하인 [[네펠타리 비비]](16세)에게는 '~누님'이나 '~씨'가 아니라 '~양(쨩)' 이라는 호칭을 쓰는 걸 보면 뭔가 미묘할 수도 있으나, 이는 잠시 밀짚모자 일당의 배에 체류중이라 낮설 수 있는 비비를 배려함과 동시에 왕족 신분이라 공주님이라는 존칭에 익숙해져 있을 비비를 배려한 부분이라 볼 수 있다. ~~OH 젠틀맨 OH~~] 그래서인지 디를 부담스러워하긴 해도 직접적으로 싫다고 한 여성은 아직까지는 거의 없다.
         다만 이 때문에 '''적이라도 여자라면 절대 손을 못댄다.''' 물론 황에 따라서는 직접 치지 않고 제압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대방이 예쁘든 추하든 일단 여자라면 절대 발로 차지 못하고, 하다 못해 죽도록 공격당하면서도 반격을 못 한다. 여자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디의 원칙인데, 이 원칙은 디가 어쩔 수 없는 황에서 스스로 깨트리려 해도 절대 깨질 수가 없다.[* 이런 디지만 [네펠타리 비비]의 적이었던 미스 올 선데이(니코 로빈)이 처음 등장하자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다!'''(13권 114화) 그 이후에 로빈 능력으로 갑판에 쓰러진 다음 "자세히 보니 예쁜 누님이잖아!"라고 한 걸 보면 단순히 비비가 당황해하고 있으니 앞뒤 안 재고 들이댄 것 같다. 애초에 디는 위스키 피크 편 내내 자느라 무슨 황인지도 모르는 태였고, 결정적으로 총을 쏜건 아니니 설정파괴는 아니다. Cp9 칼리파에게도 위협정도는 했었다.] 거의 로봇의 기본 3원칙 수준으로 각인되어버린 수준. 이 때문에 나미로 분장한 [[봉쿠레]]와의 결투와 [[CP9]]의 여성 멤버인 [wiki:"칼리파(원피스)" 칼리파]와의 결투에서는 당히 고전했다. 칼리파의 경우는 신체능력만으로는 디가 훨씬 위라서 거꾸로 제압당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디가 제압만 했지 마무리는 안 했기 때문에 디가 당한 것이다.[* 만약 디가 칼리파를 진심으로 대했다면 1분도 안되서 '''"이겼다! 열쇠 확보 끝!"'''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빙판에서는 구슬의 시련 담당인 사토리를 여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여자를 패버리는 디가 나와버렸다(...)] 이런 점을 반했는지 GBA로 나온 원피스 일곱섬의 대보물이라는 게임에서는 디가 여성형 적한테 접근하면 '''공격을 못하는 태이'''에 걸린다.[* 게임에 의외로 여성형 적이 많은 편이고, 애로사항이 피는 시점은 일행하고 따로 나눠져서 [[알비다]]를 대해야하는데 같이오는 동료가 [[우솝]], [[wiki:"나미(원피스)" 나미]]라서 실질적으로 디가 딜러로서 봉인된다.] 또 [[원피스 해적무쌍 시리즈]]에서는 여성 적을 때릴 수는 있는데 가하는 데미지가 1로 고정된다!(...) 키즈나 어택으로는 데미지가 들어가지만 정말 못할 짓인게 사실인 만큼, 디를 골라서 여성 적이 나오는 스테이지를 하려고 하면 '''경고 메세지가 출력된다.'''
         더불어 여자라면 할머니건 추녀건 간에 그래도 여자라면서 인정해준다. [[Dr. 쿠레하]]에게 던져진 쿠로마리모의 털뭉치를 막으면서 "헤이헤이, 이봐 뽀글머리. 숙녀분한테 이런 쓰레기를 던지면 쓰나? 매너교육을 다시 받아야겠는데?" 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쿠레하가 씩 웃으면서 "얘가 제법 뭘 좀 아네" 란 말도 해줬다. 실제로 디가 여자를 못 때리는 것을 한심하다거나 호색한도 정도껏 하라는 식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성별이 여자라면 로라같은 애들도(심지어 하마 태인데도) 못 때린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독자들에게도 진짜 기사도라고 어느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 ~~물론 안 때리면서 보이는 태도에 있어서는 꽤나 차이가 있다.~~
         [[롤로노아 조로]]와는 극인 성격이라서 둘이 놔두면 의견 불일치로 티격태격하는 게 다반사.[* 게다가 이 두 사람, 스릴러 바크 편에서 밝혀진 바로는 '''혼 레벨에서부터 궁합이 안 맞는다.''' 스릴러 바크에서 모리아의 공격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빼앗겨 그 그림자를 혼으로 삼은 좀비가 각각 만들어졌는데, 좀비에게 원래 그림자 주인의 기억 따윈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것이나 다름없는 조로 좀비와 디 좀비는 협동이고 자시고 서로를 박살내려 들었다.] 조로에게 [[마리모]]라는 엄청나게 어울리는 별명을 선사해줬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선인장]] 머리, 또는 [[잔디]] 머리라고 부른다. 가끔 [[미역]] 머리라고 부를때도 있다.(...)] 다만 조로는 디에게 [[다트]]판 눈썹이라고…. 여하튼 서로 치고 박고 하는 콤비지만, 중요한 황에서는 마음이 맞는 멋진 콤비이기도 하다.[* 데비 백 파이트전에서도 그렇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배 문제로 루피와 갈등을 일으키고 이탈한 우솝을 확실한 사죄를 듣고 다시 동료로 맞아들여아 한다고 조로의 어필에 유일하게 동조한 것도 디였다. 그리고 스릴러 바크편에서 루피를 없애려던 [[바솔로뮤 쿠마]] 앞에서 '''둘 모두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려고 했다!''']
         노스 블루 출신인 돈키호테 로시난테가 디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다. 작중에서 해 레스토랑 동료들이 '붉은 눈을 한 사나이가 왔었다. 와인을 들고' 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로시난테는 붉은 눈에 와인을 들고 다닌다. 또한 로시난테는 천룡인으로 현금이 1억 7700만베리가 된 디가 생포 한정인 이유도 설명이 된다는 설이다. 동료 요리사에게 [[오올 블루]]의 전설을 듣고 [[위대한 항로]]에서 오올 블루를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10살 무렵, 여객선이 붉은 다리 [[제프(원피스)|제프]]가 이끄는 해적단의 습격을 받았을 때 바다에 빠졌으나 제프가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일단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때 풍랑으로 제프의 배도, 디가 있던 여객선도 침몰하고 외딴 바위섬에 표류했는데, 겨우 건진 몇 일 분의 식량을 디에게 전부 내주고 제프 본인은 '''자신의 다리를 먹어가며'''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후에 식량이 모두 떨어진 디가 제프의 식량을 빼앗으려 덤벼들었다가 사실을 알게되고 둘이 나란히 굶어 죽을 뻔한 태로 빗물만 마셔 수 십 일을 버티다가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서 간신히 구조.[* 애니메이션에서는 물에 빠진 디를 구하려다 다리를 잃었다는 내용으로 변경. 애니메이션은 전 연령층이 다 보기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먹는다는 내용이 수위가 너무 높아 수정되었다.]그런데 이 동안 무려 25일간은 한 끼를 먹었다고 쳐도 나머지 '''55일간'''을 굶었는데 '333 법칙'을 따르면 비가 3일에 한 번씩 오고 3주에 한 끼씩 먹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든 인간의 생활은 아니다. 하여튼 이 때의 경험으로 디는 굶주린 인간을 그냥 두고 보지 못 하는 성향도 생겼으며, 동시에 음식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분노하며 철저하게 응징하는 성향도 생겼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모노스케가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며 요리를 내팽개치려 했다가 디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여자가 음식을 함부로 다루면 어떻게 대하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 ~~때리진 못할 테고 그냥 죽일 듯한 기세로 화내지않을까~~
         이후 제프를 따라가 함께 해 레스토랑 [[발라티에]]를 열고 요리사가 되어 부주방장까지 되었다. 그러다 [wiki:"몽키 D. 루피" 루피]와 만나고, 클리크 해적단을 대로 공투해서 승리한다. 그 뒤 루피의 동료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고, 오올 블루를 찾고 싶은 마음에 따라가고 싶긴 한데 제프 때문에 미적거리다가 제프 본인과 여타 동료 요리사들의 배려로[* 디의 요리를 모욕해서 어그로를 끌어서 빡친 디가 스스로 나가도록 하는 것. 물론 디는 처음엔 낚였지만 곧 알아채버렸다. 만화판에서는 수프를 바닥에 뿌려버렸는데 애니에서는 맛 없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변경.] 루피를 따라나서서 [[밀짚모자 일당|밀짚모자 해적단]]의 일원이 되었다.[* 이때 제프와 레스토랑 동료들과 헤어지는 씬이 정말 명장면이다.]
         흔히 2차 창작에서는 [[벽안]]으로 자주 묘사되지만 공식 설정 으로는 그냥 까만 콩눈. 그런데 애니판에서 등장한 디의 눈이 벽안이다! 정확히는 디 in 나미의 눈이 갈색에서 벽안으로 바뀌었는데 눈동자가 워낙 작은 [[삼백안]]이라서 벽안이 검은 콩눈으로 보였던 것이다.
         원작에서의 이름은 '산지'이지만 여러가지를 고려했을 때 실제 의도한 이름은 디가 맞다.[* 아마도 프랑스식 발음인 '디'에 일본어로 3,2를 읽는 방식인 산,지를 혼합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어]]판에서는 Sandy라고 쓴다. 발음도 디(혹은 뒤). 게다가 이미지 국가도 프랑스니... 애니 일본판을 봐도 '산지'와 '디'의 중간 발음으로 들린다.[* 일본어 외래어 표기시 ㄷ음은 ㅈ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예: 라디오->라지오]
         ~~한국팬덤 한정으로 얘도 [[D(원피스)|D의 일족]]이란 우스갯소리도 있다. D.?~~
  • 정형돈 . . . . 205회 일치
         | 활동역 = [[사회자|MC]], [[희극 배우|희극인]]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
         | 웹사이트 = [https://www.fncent.com/JHD/b/introduce/10713 FNC 엔터테인먼트 정형돈]<br>[http://cafe.daum.net/kehaha 정형돈 공식 팬 카페]
         정형돈은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였고 한때 [[경북도]] [[김천시|김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하기 이전에 [[경북도]] [[김천시]]으로 옮겨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다.<ref>{{뉴스 인용|제목='불안장애' 정형돈은 누구? '웃기지 않은 개그맨'에서 '예능계 4대천왕' 섭렵|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2&aid=0000550194|출판사=부산일보|저자=김혁 기자|날짜=2015-11-12}}</ref> 고교 시절 '금강 소리 하나'라는 교내 연극부에서 학년 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94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예총]] 산하 6개 지부가 주관한 제8회 '부산 청소년 예술제'에 참가하여 '청소년 연극축전' 부문에서 '연기'을 수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부산시 고등학교 대표로 서울에서 개최된 '동랑 청소년 연극제'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삼성전자]]에 입사하여 2001년까지 생산직으로 근무하였으며, 퇴사 후 곧바로 서울 [[대학로 (서울)|대학로]]의 개그맨 [[박준형 (희극인)|박준형]]과 [[정종철]]로 대변되는 '갈갈이 패밀리' 극단에 입단하여 예비 개그맨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키워나가던 중, 2002년 실시한 제17회 [[KBS]] '신인 개그맨 선발대회'에 응시하여 동으로 입, KBS 1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였다. 동기는 [[김병만]], [[김다래 (희극인)|김다래]], [[권진]], [[이정수 (희극인)|이정수]], [[김민정 (희극인)|김민정]], [[이경우]] 등이 있다.
         [[2009년]] [[9월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SBS TV|SBS]] 미스터리 특공대에서 만난 [[작가|방송작가]] [[한유라]]와 결혼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정형돈-한유라, 동료 연예인 축복 속 웨딩마치(종합)|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42470|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이미 기자|날짜=2009-09-13}}</ref>
         [[2012년]] [[12월 11일]] 오전 6시11분, 13분에 태어난 두 딸(유주, 유하)의 아버지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단독] 정형돈, 쌍둥이 아빠 되다.. 딸부자 등극|url=http://cast.wowtv.co.kr/20121211/A201212110127.html|출판사=|저자=한국경제TV 기자|날짜=2011-12-11|확인날짜=2012-12-1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1214052956/http://cast.wowtv.co.kr/20121211/A201212110127.html|보존날짜=2012-12-14|깨진링크=예}}</ref> [[2016년]] [[10월 5일]], [[주간 아이돌]]로 전격 복귀하였으며, [[신현준 (1968년)|신현준]]과 한중 합작 화 시나리오 공동 집필을 시작으로 작가로서의 데뷔를 알렸다.
         === 종 또는 출연을 중단한 프로그램 ===
         * [[KBS]] 《[[개그콘서트]] - 도레미 트리오Ⅰ·Ⅱ, 봉숭아 학당(갤러리정 / 원한 친구 / 셜록홈돈), 유치개그, 걸인의 추억, 전위예술, 보디가드, 어머니의 이름으로, 예술의 전당, 어우야, 꽃보다 아름다워, 달력개그 등》
         * [[KBS N 라이프|KBS KOREA]] 《한반도 유머총집합 - 무성화, 개그로 보는 단편 문학선, 무제, 처세술 시리즈, 추억의 화 Best5》
         * [[KBS]] 《[[플러스]]》
         *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원정대》
         *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좋은몸 나쁜몸 이한몸 (몸몸몸)》
         * [[올리브 네트워크|O'liveTV]] 《[[쉘라쉘라 어로 쿠킹]]》
         * [[TV조선]] 《[[웅삼국지]]》
         * [[KBS]] 《연예대 (12월 27일) : 수자》
         * [[KBS]] 《연예대 (12월 25일) : 수자》
         * [[MBC]] 《방송연예대 (12월 29일) : 시자 및 수자》
         * [[MBC]] 《방송연예대 (12월 29일) : 후보자》
         * [[MBC]] 《환의 짝꿍 27회 (11월 25일) : 게스트》
  • 진영(B1A4) . . . . 204회 일치
          * 위 문서: [[B1A4]], [[작곡가]], [[작사가]], [[배우/한국]]
         {{{+1 {{{#000 '''진/JIN-YOUNG'''}}}}}}}}} ||
         || '''본명''' ||<(> 정진(鄭振永) ||
         || '''신체''' ||<(> 178cm, 63kg, [[A형]], 발 사이즈 255mm, 악력 54.6kg ||
         || '''학력''' ||<(> [[충주미덕중학교|미덕중학교]][br][[충주중산고등학교|중산외국어고등학교]][* 현 중산고등학교][br][[청주대학교]] 화학과 ||
         || '''별명''' ||<(> 할배, 지뇽, 치히뇽, 정긍정, 진토벤[* 정규 1집 활동부터 소소하게 불리던 별명인데 그 당시는 반어적인 뉘앙스였으나, 현재는 '''단독 작곡 넘버링 최위'''라는 타이틀과 걸그룹에게 준 노래가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문맥 그대로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갓진''', 긍정보이, 정다정[* [[https://www.youtube.com/watch?v=qWvgZ19OLT4]]], 블리형아 ~~똥타임~~ ||
         || '''특징''' ||<(> 여우눈매[* 눈이 굉장히 예쁜 편. 속눈썹도 여자 못지 않고 쌍꺼풀도 ~~여우같이~~ 져있어서 여장할 때 특히나 예쁜 편. 진가가 발휘된게 2기 팬미팅 백설공주 여장했을 때.], 심히 할배스러움[* 하체가 부실할 뿐더러(하체가 부실하다기 보다는 체가 많이 근육진 편), '치킨에 설중매'라는 발언도 한적 있으니...], 길치[* 본인도 여러번 언급한 가장 심한 콤플렉스라고...[[B1A4의 어느 멋진 날]]에서는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면서도 길을 잃은 적이 있다.] ||
         [[B1A4]]의 리더이자 맏형 2인방 중 한 명. [[신우(B1A4)|신우]]쪽이 생일이 빠른데도 불구하고 리더로 선정되어 몇몇 팬들에게 의아함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투표를 통해 뽑았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리더 후보 2명(신우와 진) 중 본인이 뽑힌 것.
         B1A4의 보컬 라인 중 한 명이며, 네 명 모두 '보컬'로 소개되어 있기는 하지만 진의 비중과 역량은 리드 보컬이다.[* 그러나 곡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는 곡의 후렴을 산들과 함께 맡기도 한다. 보컬 안에서 포지션이 특별히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디렉팅 할때마다 다르게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의 역량을 발휘하는 듯.]
         [[충청북도]] [[충주시]] 출신이며, 잘생김의 여부를 떠나서 일단 느낌 있는 얼굴이기 때문에 시내에서도 '연예인 감'으로 불렸다는 듯. 실제로도 연예인이 꿈이었기 때문에 연기 학원도 다녔단다. 이를 증명하듯이, 발굴된 외모인 [[공찬]]보다 스펙이 화려하다. [[Mnet]] 꽃미남 아롱사태 사전투표 1위 경력이 있다던지, 오디션을 볼 때 왕의 남자 '공길' 역을 했다. 그 외 [[위기탈출 넘버원]], 엑스트라 출연, 뮤직 비디오 출연 등 다양한 경력을 보유. 최근에 KBS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윤성 역할을 맡아 신인을 받고 단편드라마 ‘우리가 계절이라면’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매우 잘생긴 얼굴이다. 근데 정정하자면 잘생기기 보다는 남자치고 예쁘게 생겨서 '''잘생쁘다고''' 할 수 있다. '''잘생쁨의 진리 = 정진'''
         또, 요즘 아이돌로는 드물게, '''단독 작사,작곡은 물론이고 편곡, 백그라운드 보컬, 보컬 가이딩까지 가능'''한 청년으로서, [[B1A4]]의 음악성 측면에 당히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진이 음악을 꾸준히 내고 있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표절 시비 등의 논란이 없는 것을 고려해보자. 특히 공동 작곡의 경우 아티스트는 몇 소절 작곡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작곡인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편곡 역시 작곡과는 다른 센스가 필요하다. 2018년 2월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기준 '''단독 작곡 1위''' 아이돌 작곡가이며, 본인 자작곡의 81% 가 단독작곡이다. 그의 곡이라면 작사, 작곡, 편곡 그 어느 곳에서도 이름이 빠지지 않는것이 대부분. 정규 3집 수록곡 '멜랑꼴리'에서는 단독 작곡에 이어 단독 편곡까지 성공했다. 또한 미니 7집 타이틀 “Rollin’”도 단독 작편곡을 해냈다.[* 대중음악에서의 편곡작업이 단순히 멜로디를 짜는 작곡보다도 더 많은 센스를 요구하는 점을 감안해보자. 이전까지 다른 작곡가와 함께 둘~넷이서 편곡작업을 진행한 점으로도 놀라운데 이 작업을 혼자서도 해냈다는것은 좋게 봐줄만 하다.]
         2014년 1월 개봉한 화 [[수한 그녀]]에 주인공 오말순의 손자 '''반지하'''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작품성이 훌륭한 화의 주조연급을 맡있음에도 꽤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16년 10월 종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드라마)|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도 '김윤성'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켰으며, [[KBS 연기대]]에서 신인까지 수해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매우 날씬한 몸을 가지고 있는데, [[http://img3.doosanmagazine.gscdn.com/article_image/img_2/2014/09/01220201000006409_1.jpg|의외로 체가 장난 아니다.]]~~
         소고기, 곱창[* 참고로 곱창 vs 소고기를 했을 땐 곱창을 택했다.], 막창, 꼼장어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몇몇 인터뷰에서 KBS 별관 앞에 내장탕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고 추천한 적이 있다. 곱창은 '좋아하는 음식'에 관한 토크가 나오면 무조건 1순위로 튀어나오는 음식으로, 매우 아주 좋아하는 듯 싶다.~~오죽하면 매니저가 진이가 곱창 먹으러 가자 할때 그만두고 싶다 했을까~~매니저한테 곱창 먹으러 가잔 소리만 일주일에 다섯번 정도 한다고 한다 . Link8 계정으로 첫 Vlive 촬을 한 이후에도 곱창을 먹으러 갔다고 한다.~~변함없는 곱창 사랑~~
         참고로, 태몽은 진의 어머니께서 매화꽃이 쫙 펼치진 멋진 풍경의 길을 걷고 계셨는데, 옆에는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고 있었고, 앞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큰 나무가 그 바위를 뚫고 솟아올라 있었다고 한다. [* 2012년 당시의 생일 인터뷰 참조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920184&ctg=|#]] ]
         2018년 7월에는 [[W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종료되어 신생 기획사 [[링크에잇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이후 [[광주 비엔날레]]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개막식에 참석했는데, 행사 당일 부인 [[김정숙]] 여사가 비를 맞는 것을 보고 자신도 입고 있던 우비를 벗~~고 뿌듯해하~~는 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진의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의 말에 의하면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숙제나 시키는 일은 착실히 잘해오는 학생이었다고. 특히 예체능 준비생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수업시간에 해당 수업 책을 펴고 절대 자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연습생으로 바빴을 당시 어선생님의 말씀으론, 자기가 나중에 해외에 나간 스타가 되었을때 팬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안 되니 어만큼은 놓지 않고 공부했다고 한다.
         문으로 작성된 트윗글이나 헬로베이비에서 원어민의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 모습을 보면 어를 어느 정도는 하는 듯. 듣기로는 어와 국어 부분에선 전교 2등을 했다고. 그러나 진은 중국어 전공이었다. 이후 [[구르미 그린 달빛(드라마)|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중국어로 사신을 협박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중국어를 전공한 몇몇 네티즌에 따르면 이 때의 성조와 발음이 정말 완벽했다고.
         또한 예전에 빨간 노스페이스 패딩입은 고등학교 졸사 덕분에 얻은 별명이 일진.[* 팬 또는 멤버들과 대화할때 가끔씩 까칠한 척을 하거나 은근히 무서운 척을 하는 덕에 아직까지도 간간히 성행중인 별명이다. 물론 당연히 실제 성격과 정반대의 뉘앙스. 오해는 금물이다.] 정작 본인은 연예인 지망생이기 때문에 논란이 될만한 짓은 일절 안 했다고 한다. 욕도 안 하고 밤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지도 않았다고. 자기관리를 열심히 한 모양이다.
  • 김재규 . . . . 199회 일치
          * 위 문서: [[대한민국 국군/인물]], [[불교/인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북도]] [[구미시|선산군]] ||
         ||<:> '''학력''' ||<:> [[경북대학교|경북도중등교원양성소]] [br] [[육군사관학교]] 2기 [br] [[육군대학]] [br] [[한양대학교]] [[대학원]]||
         ||<:> '''수''' || ~~[[대한민국 훈장|충무무공훈장]]~~[* 삭선이 그어진 것은 서훈이 취소되었기 때문. [[2006년]] [[3월 21일]] 정부는 서훈을 취소할 수 있게 개정된 훈법 규정에 따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자 및 기업인 174명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으며, 10·26사태의 주범인 김재규 또한 그 대에 포함되어 8개 훈·포장을 박탈당하였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38076|기사]] ] [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천수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삼일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국선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광복장~~[br]~~[[대한민국 훈장|보국훈장]] 통일장~~[br]~~[[대한민국 훈장|청조근정훈장]]~~[br][[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 아지즈 훈장[* 당시 건설부장관으로서 몸소 중동에 방문해 (한국 기업을 통한) 중동 개발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공을 인정받아 획득했다.] ||
         김재규(金載圭, [[1926년]] [[3월 6일]] ~ [[1980년]] [[5월 24일]])는 [[대한민국]]의 [[군인]]·[[정치가]]이다. 호는 덕산(德山)이고, 본관은 [[김녕 김씨]]. [[경북도]] [[구미시]] 출신. [[유신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재임했으며, [[10.26 사건]] 당시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하고, 사건 다음날 새벽 [[육군본부]]에서 검거되어 이후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언도받아 교수형에 처해졌다. 김재규의 육성이나 말투를 들어보고 싶으면 [[http://www.youtube.com/watch?v=5YItsPrAcq8|본 육성녹음을 참고]]. 이것은 1979년 12월 8일의 보통군법회의 최후진술 녹음 중 하나다.
         고향은 경북 선산군이다. 현대의 행정구역은 경북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 이문리에는 김재규의 생가가 아직도 남아 있다. 김재규의 아버지는 정미소를 운했다. 당시 정미소를 운한다는 건 지역 사회에서 당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김재규도 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1943년 안동공립농림학교[* 해방 후 안동농림고등학교, 현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한 후, 그 해, 대구농업전문학교 중등교원양성소[* 이 당시에는 2년제 전문학교였다. 해방 후 대구농과대학을 거쳐 1951년 대구사범학교 등과 통합하여 경북대학교로 개교한다.]에 입학하여 1945년 수료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중등교원의 수가 부족한데 반해, 조선 내에는 고등사범학교가 없었다. 문과의 경우 [[경성제국대학]] 졸업자 등으로 수요를 채울 수 있었지만, 이공계 쪽의 교사가 부족하여 일제는 각종 전문학교에 2년제 '교원양성소' 과정을 도입하여 교사인력을 충원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조선인이 징집 대이 되었을 때 [[일본군 해군]]의 [[카미카제]] 양성을 위한 예과 후보생으로 차출되었으며 카미카제의 생존률이 0%라는것을 감안해보았을때 만약 일본이 빨리 몰락하지 않았다면 김재규는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해방 후 김천중학교[* 現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46년 [[육군사관학교|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하여 1946년 12월 졸업하였는데, 졸업당시성적은 196명 중 14등으로 우수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중대장 대리로 복무 중에 군경체육대회 때 [[미 육군]]과 충돌을 일으킨 죄로 면관당한 후 잠시 낙향하여 김천중학교와 대륜중학교[* 現 [[대륜중학교]]&[[대륜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 후 복직되어 22연대 정보주임으로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 때의 공을 인정받아 3사단 22 연대 제 2 대대장으로 부임하는데, 공교롭게도 부임일에 6.25 사변이 발발한다. 김재규는 2대대를 지휘하며 의정부·대구·덕 지구의 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 혈전을 벌였고, 6.25의 전투 중 치열하기로 손꼽혔던 황간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국군과 연합군의 북진에 선봉에 서서 함경남도의 땅까지 밟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악화되어 남으로 후퇴하게 되고 이후 여수 제 2 보충연대장으로 부임한다.[* 참고로 박정희는 6.25때 후방에서 보급병과 장교로 근무하느라 전공은 커녕 북한군과 마주친 적조차 없다.] 1970년에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57년에 [[육군대학]] 부총장을 지낸 후 방첩부대장, 육군보안사령관, [[제3군단]]장을 역임한 후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박정희]]와는 [[육군사관학교|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 동기생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고향이 같고(경북 구미) 군에 몸담기 전에 교사를 지낸 경력이 같았다. 이후 1954년 9월경 김재규가 5사단 36연대장으로 근무할 때 박정희가 사단장으로 부임하여 관이 되면서 재회하게 된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우려해서 [[육군참모총장]],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에는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만 앉혔고, 정말 유능하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육군 장군은 [[사단장]], [[군단장]] 수준에서 전역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김종오]], [[박병권]], [[민기식]], [[김용배]], [[김계원]], [[이세호]], [[임충식]] 등은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들이 아니다. 다만, 12.12 군사반란 때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노재현]]이 보여준 추태가 워낙 커서 앞의 인물들까지 도매금으로 같이 까이는 경우가 많다.] 김재규도 이런 케이스로, 월남전의 웅인 [[채명신]] 장군 또한 [[대장(계급)|대장]]을 못 달고 중장에서 전역해야 했다. 이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중앙정보부]] 차장, 건설부 장관을 거쳐 1976년 12월에 제8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77년 박정희에게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했다. 이때 김재규는 “긴급조치 9호는 효력을 다했으니 더 강력한 긴급조치 10호가 필요합니다.” 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07473&viewType=pc|긴급조치 10호를 건의했다가 반려당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에는 노동및 종교의 추가탄압이 들어가있어 과격하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현재까지도 그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만 김재규는 훗날 법정에서 그 건에 대해 말하길 박정희의 눈을 속이고 긴급조치 9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해명했다.[* [[파일:walderppk-20161228-150640-001.jpg|width=600]][[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8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2327&publishType=00010|출처]] ] 김재규는 또한 당시 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서 [[김대중]]이 김삼측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서 김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책임을 진다는 구실로 중정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사의를 표했으나 거절당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017191&viewType=pc|출처]] 이는 그가 권력욕에 취해 [[10.26 사태]]를 일으켰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거로 쓰인다.] 당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정국을 순리대로 풀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한 것. (물론 결과적으로는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박정희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 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 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 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 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위의 항소이유보충서에서 나왔듯이, 청와대 내에서 실세 권력이 높았던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 방법이 없어서 김재규에게 직접 하소연했다는 내용을 생각해보자. 당시 [[박근혜]]는 단순한 [[공주]]가 아닌 육수의 분신이었고, [[육수 저격 사건|저격 사건]]으로 죽은 부인의 딸이란 동정표까지 더해져, 당시 노인들은 박근혜만 보면 '''"[[공주]]님 오셨다"'''며 큰 절을 올리며 눈물 흘릴 정도였다.[[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1042107005|#]] 더욱이 마음에 안드는 경찰청장이나 도지사를 호출하여 호통칠 정도로 국정을 농단하는 최태민에게 분노한,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최태민]]과 박근혜를 떼어놓으라고 직언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재규의 직언을 듣기는 커녕 박근혜를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직에 올리고 최태민을 명예총재직에 올리는 조치로 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때 느꼈던 절망감이 [[10.26 사건]]의 동기가 되었다고 김재규는 증언하였다.
         거기다가 김재규의 말이 아예 사실이라면, 박정희는 김재규를 불러 최태민을 대질시켜놓고 친국을 벌였다는 말이 된다. 당시 김재규는 독재정권의 중앙정보부장으로 의전 부총리였다. 대통령의 왼팔이 '''일개 사이비 종교인을 고자질하는 황이 되었으니''' 엄청나게 체면을 구긴 일이다. 2017년 기준으로 보자면 [[검찰총장]]이 사이비 교주 하나 기소했다고 대통령에게 친국을 당하는 것보다 더 심한 꼴이다. 거기다가 김재규가 최태민이 저지른 온갖 부정의 입증을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오히려 최태민(정확히는 박근혜)을 신뢰하는 꼴을 보였다. 이는 김재규 입장에서 자신이 끝까지 모신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부장인 자신보다 어디서 굴러와 애를 홀린 사이비 종교인을 더 신뢰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니 있던 충성심도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즉, [[10.26 사태]]를 결심한 동기 중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 - [[박근혜]]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도 이를 바로잡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겼다. 김재규는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가 지속될 경우 벌어질 잠재적 위험성을 알고 이를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남기며 최후의 순간까지 경고 했지만, 그의 우려와 경고는 37년 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한민국 헌정 사 최악의 정치 스캔들이 터지면서 결국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0월 26일날 최씨 일가도 같이 쏴버렸어야 했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5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5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https://youtu.be/BSqOsrVdY3Y?t=12m31s|당시 실제 육성]]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인맥]]의 향력이 더 컸다. [[박정희]]와 고향 후배이며 육사 동기라는 2중의 인맥인 김재규는 그야말로 심복이었다. 하지만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을 [[발터 PPK]] [[권총]]으로 저격하여 [[암살]]했다.[* 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박정희 암살에 성공한 총기는 [[M36 치프 스페셜]]이다.] 이것이 이른바 [[10.26 사건]]이다.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이 경호원들과 함께 현장에 동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저격할 줄 생각 못한 경호팀은 무력했고 그들 모두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제압당한다. 경호실 요원 중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이 당시 경호계장이던 [[박범]]이고, 그는 나중에 [[김삼]] 정부에서, 민간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통령 경호실장을 맡게 된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경호원들을 다 죽이고 [[확인사살]]까지 했으나 박범은 기적적으로 총알이 치명적 부위를 피해간 데다 부입고 쓰러지면서 머리를 찧어 기절해 죽은 것처럼 보였고, 식사하던 경호원들을 중정 요원들이 습격하는 과정에서 경호원들과 같이 식사하던 중정 직원들[* 포섭해 두지 않아 내막을 몰랐던 이들]인 운전수와 [[요리사]]가 자신들의 총에 다치는 바람에 확인사살에 소극적이어서 죽음을 면했다.
          * ① 대통령의 그늘 밑에서만 권력을 휘두를 뿐 대통령 사망 후에는 특별한 권한이 없는 중앙정보부장으로서는 비계엄 황에서 특권을 휘두르는 군부의 협조가 절실하므로 이를 얻기 위해 육군본부로 갔을 거라는 설. 특히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는 김재규와 원만한 관계였으므로, 그에게 자신의 [[박정희]] 저격을 알리고도 그의 협조를 받아낼 수 있으리라 오판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부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강력히 지지하는 세력이었고 박정희 암살자에게 협조하여 그의 정권 획득을 도울 장성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김재규는 당시 군에 자기 인맥이라고 볼 수 있는 장군을 거의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 희빈 장씨 . . . . 195회 일치
         '''희빈 장씨'''(禧嬪 張氏, [[1659년]]<ref>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9월 28일(임자) 2번째 기사</ref> [[11월 3일]] ([[음력 9월 19일]])<ref>승정원일기 숙종 15년~19년</ref> ~ [[1701년]] [[11월 7일]] ([[음력 10월 8일]])), '''장희빈'''(張禧嬪) 또는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嬪 張氏)는 조선의 제19대 왕 [[조선 숙종|숙종]]의 [[빈 (지위)|빈(嬪)]]으로, 제20대 왕 [[조선 경종|경종]](景宗)의 어머니이다. [[조선 숙종|숙종]] 임금보다는 2년 연이다. 본명은 '''장옥정'''(張玉貞)<ref>[http://yoksa.aks.ac.kr/jsp/aa/ImageView.jsp?aa10up=kh2_je_a_vsu_30613_000&aa10no=kh2_je_a_vsu_30613_001&aa15no=&aa20no=&pageno=&imgnum=JE_A_30613_001_000042&imgsize= 《단암만록》]/[[민진원]] 著</ref>, 본관은 [[인동 장씨|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역관]] 출신인 [[장형 (조선)|장형]](張炯)이며, 어머니는 [[장형 (조선)|장형]]의 계실인 윤씨이다. 역관(驛官) [[장현 (조선)|장현]](張炫)의 [[종질녀]]이다. [[조선 왕조]] 역사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이다.
         산림숭용과 국혼물실을 당의 제1강령으로 추구했던 [[서인]], 특히 [[인현왕후]] 민씨의 배경 세력이었던 노론의 강력한 적으로 규정되었다. [[1701년]](숙종 36년) [[숙빈 최씨]]의 발고로 [[인현왕후]]의 죽음을 기원하는 저주굿을 한 혐의를 받고 [[조선 숙종|숙종]]에게 자진을 명받았다. 인현왕후전이나 수문록 등의 소설 야사에서는 사약을 마시고 사사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숙종실록 등 정사기록은 주례의 규정에 따라 사사할 수 없음을 언급하고 목을 메어 자결하였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그녀의 아들인 [[조선 경종|경종]]이 사망하고 [[숙빈 최씨]]의 아들인 [[조선 조|조]]가 즉위하자 [[인현왕후]]의 오빠 [[민진원]]을 위시한 [[노론]] [[인현왕후|인현왕후]]의 폐위와 죽음의 범인이자 3대 환국([[기사환국]], [[갑술환국]], [[신임사화]])의 원흉으로 정의하여 비난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집필되어 민간으로 보급된 [[인현왕후전]], 수문록 등의 언문 소설과 야사집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사 서적과 드라마 등에 중요 사료로 활용되었다.
         희빈 장씨는 [[사역원]] 봉사(종8품)를 지냈던 [[장형 (조선)|장형]](張烱)<ref group="주">장형(張烱)의 형(烱)은 경으로도 읽을 수 있다.</ref>(1623~1669)과 그의 후처인 [[파평 윤씨]](1626~1698)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동기로는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전처였던 [[제주 고씨]](?~1645)의 소생인 이복 오빠 장희식(1640~?)과 윤씨 소생의 동복 언니<ref group="주">[[장희재 (조선)|장희재]]의 누나이다. 따라서 1650년 이전 생임을 알 수 있다.</ref> 한 명, 동복 오빠인 [[장희재 (조선)|장희재]](1651<ref group="주">《승정원일기》 숙종 27년(1701년) 11월 2일 기록에 장희재의 나이가 당 51세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651년 생임을 알 수 있다.</ref>~1701)가 있다. 최근까지 그녀의 생년에 대해 흔히 미이거나 [[조선 숙종|숙종]]의 2세 연하, 혹은 5살 연 등으로 기록되기도 하는데 《숙종실록》에 수록된 국청죄인 자근례의 공초 내용 중에 희빈 장씨가 기해생(1659년 생)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인용문|오례가 신사를 행할 때에 숙정 등 여러 사람들이 또 같이 참석하여 축원하기를, ‘기해생(己亥生)【장씨(張氏)가 기해년에 났다.】을 몰래 도와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중략) 지난해 6월에 오례가 숙정에게 ‘10월에 마땅히 뇌동(雷動)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원컨대 사(賞賜)를 받게 해 주소서.’라고 하니, 숙정이 ‘만약 그와 같이 된다면 마땅히 중한 을 받을 것이니, 반드시 세자와 기해생을 몰래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9월 28일(임자) 2번째기사}}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은 [[사역원]] 봉사를 재직하였지만 일찍 은퇴하고 집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음률을 즐기다가 장씨가 막 11세가 된 1669년 1월 12일에 사망했다. 그녀보다 19세 연인 이복 오빠 장희식은 18세의 나이로 1657년 식년시 역과에 장원을 하여 사역원 직장(종7품)이 되었지만 곧 사망하였다. 장희식의 아내 이씨는 절충장군 이천연의 딸이다. 할아버지 장응인은 《통문관지》에 행적이 기록된 [[조선 선조|선조]] 때의 명역관으로, 생전 최고 관직이 정3품 [[첨지중추부사]](무관직)에 이르렀고, 전쟁 중에 무관으로 참전한 바 있으며 시재(詩才)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선(善)을 가훈으로 삼아 이 단어를 쓴 종이를 항 품에 넣고 다녔다고 전한다. 할머니 남포 박씨는 산학 별제 박심의 딸이다. 외할아버지 윤성립(尹誠立, 1689년 정경으로 추증)은 일본어 전공의 사역원 첨정(종4품)<ref group="주">사역원 역관의 품작은 정3품 정(正) 1명으로 시작하여 아래로는 종3품 부정(副正) 1명, 종4품 첨정(僉正) 1명으로 내려간다.</ref> 이었으며, 1653년에도 생존했던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남아있다.
         외할머니 변씨는 조선 최고의 갑부 역관으로 유명했던 [[변승업]]의 당고모로, [[변승업]]의 아버지이자 소설 《허생전》에 변부자로 등장했던 변응성의 사촌누이(백부의 딸)이다. 외삼촌 윤정석은 조선의 부를 장악했던 [[육의전]]의 면포 인이었다.<ref>《조선왕조실록》숙종 21권,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9일(갑진) 4번째기사</ref><ref group="주">윤정석의 본래 출신이 기록된 《숙종실록》에는 "시인(市人)으로 면포(綿布)를 파는 자"로 기록하고 있다. 17세기 조선의 한성에서 면포를 팔 수 있는 건 오직 [[육의전]] 인 뿐이다.</ref>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공초되었을 때의 기록에 따르면 1680년 장씨가 출궁되어 은평구 친정에서 머물 당시에 담 하나를 두고 이웃에 살았던 만큼 누이인 윤씨와 관계가 매우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언니는 관감 관원인 김지중에게 출가하여 1691년 당시 관직이 종7품 직장이었다. 오빠 장희재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희빈 장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후궁이 되기 7년 전인 경신년(1680년)에 키가 크고 외모와 무술이 뛰어난 명문가의 자제만으로 구성된 [[내금위]]에 재직<ref>《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22일(을해) 3번째기사</ref> 하였으며 1683년에는 좌포청 부장으로 있었다.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사촌형인 [[장현 (조선)|장현]]은 [[조선 효종|효종]] 8년에 이미 정2품 자헌대부를 제수받고 숙종 1년에는 이미 종1품 숭록대부에 올라 공을 세워도 더이 품계가 올라갈 수 없어<ref group="주">생전에 정1품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건 [[문관]]에게 한정된다. 《동의보감》의 저자이기도 한 명의관 [[허준]]은 [[광해군]]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제수받았다가 문관의 반발에 의해 취소되었고, 사후에야 비로소 추증됐다.</ref> 자식과 조카가 대신 승봉되어야 했던 거물 역관으로 재산은 국중거부의 명성을 얻을 정도였으며, [[장현 (조선)|장현]] 형제의 자식들은 무관 및 역관, 혹은 의관으로 고위직에 있었다. 그녀의 일족이 비록 문신 사대부 가문은 아니었지만 조선에서 손 꼽히는 대부호였으며 사회적 위치 또한 결코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희빈 장씨가 아비의 사후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당백부 [[장현 (조선)|장현]]이 [[경신환국]]에 휘말린 후 가세가 기울자 서인들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남인들의 입궁 제의를 받아 궁녀로 입궐하였다고 주장하여 현재까지 정설로 알려졌지만, [[경신환국]] 당시 그의 나이가 이미 22세였기에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ref group="주"> 궁녀의 통 입궁 연령은 4세부터 16세이며, 조선시대 여성들의 법적 혼인 연령은 14세~20세이다. 부모가 50세를 넘긴 경우엔 관아의 특별 허가를 받고 12세 이의 자녀를 혼인시킬 수 있는데 16세기 이후엔 수 차례에 거듭된 외란으로 남성의 숫자가 급감하였고 처녀를 차출하여 청으로 진하거나 궁녀로 뽑는 분위기로 인해 법금을 어기고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ref> 이러한 주장의 근원은 희빈 장씨가 [[경신환국]] 당시 정계에서 밀려난 [[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궐하였다는 [[인현왕후]]의 주장으로 불거진 것인데, [[경신환국]]과 같은 해 말에 장씨가 강제 출궁이 되었다가 7년 후인 [[1686년]]에 다시 입궁했던 만큼 이미 궁녀인 신분으로 출궁을 당한 후에 [[남인]]과 연계하여 돌아왔다는 것이 오역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조선 효종|효종]] 때 이미 막대한 부를 쌓은 [[장현 (조선)|장현]]도 딸을 궁녀로 입궁시켰으며, [[조선 현종|현종]] 5년에 대왕대비전의 궁녀로 뽑혔다가 이미 사주가 오간 대가 있으니 정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출궁된 역관 최우의 딸의 전례<ref>현종실록 5년(1664 갑진 / 청 강희(康熙) 3년) 12월 30일(정해) 2번째기사</ref> 도 있는 만큼 희빈 장씨의 가세가 빈궁하여 궁녀가 되었다는 가설은 억측에 불과하다.
         같은 해, 숙종의 어머니였던 대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에 의해 강제로 출궁되었다. 숙종실록이나 인현왕후전 등에는 숙종을 모시기에 장씨의 출신이 천하고 성품이 극악한 이유로 쫓아낸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경신환국]] 당시 [[장현 (조선)|장현]] 일가가 [[복평군]] 형제와 절친한 사이이니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 몰락시킨 장본인이 바로 [[명성왕후]] 김씨의 사촌 오라비 [[김석주]]였던 것으로 비추어 장씨의 보복을 견제한 탓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녀가 출궁된 직후인 [[1681년]] 1월 3일에 계비 간택령이 내려졌고, 3월에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대비 김씨]]와 [[송시열]]의 추천으로 민씨([[인현왕후]])가 간택되어 [[1681년]] 5월 14일 [[조선 숙종|숙종]]과 민씨가 가례를 올렸는데 본래 [[명성왕후|대비 김씨]]의 친정 가문과 원한이 있던 [[송시열]]과 [[민유중]]<ref group="주">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 [[김우명]]은 당파로선 엄연한 서인이었지만 [[조선 현종|현종]]의 척신으로서 예송논쟁 당시 [[송시열]]과 [[송준길]]을 비판하고 [[남인]]의 손을 들어주어 [[서인]]의 공적이 되었다. [[민유중]]은 과거 [[김우명]]의 형인 [[김좌명]]과 심하게 다투어 벼슬을 버리고 지방에 은거하였던 경력이 있다.</ref> 의 혈육인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계비가 된 것은 [[경신환국]] 당시 [[서인]]과 손을 잡았던 명성왕후의 정치적 계약임을 짐작할 수 있는 만큼 [[인경왕후]]의 죽음 직후 계비로 내정된 민씨를 위해 장씨를 [[조선 숙종|숙종]]의 곁에서 치운 것일 가능성도 존재한다.<ref group="주">본래 정처의 3년이 마치기 전에 재혼하는 것은 경국대전과 의례의 조항으로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이는 왕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선 숙종|숙종]]이 [[인경왕후]] 김씨의 사후 3년은 고사하고 불과 반 년도 되지 않아 [[인현왕후]] 민씨와 재혼을 한 것은 조선 왕실 역사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있어야 할 [[인현왕후]] 민씨와의 재혼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던 서인은 [[인현왕후]] 민씨의 사후 3년이 마쳐지기 전에 [[조선 숙종|숙종]]이 계비 간택령을 내리라는 명을 내리자 반대를 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37권, 28년(1702 임오 / 청 강희(康熙) 41년) 8월 27일(병오) 2번째기사</ref>
         라는 [[사간원]] 헌납 [[윤빈]]의 비판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683년에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직위가 포도부장이었던 기록이 존재하며<ref>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ref> 장씨의 동복 언니는 [[관감]] 직장이었던 김지중에게 출가한 태였는데 1701년 [[김지중]]의 증언으로 미루어 김지중이 처가에 왕래하며 장희재와 밀접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는 만큼 생계가 어렵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장씨의 외삼촌 윤정석은 면포를 팔던 시전인이었는데, 면포(무명)가 국법 [[육의전]]만이 매매가 가능한 독점 품이었던만큼 윤정석이 일개 장삿꾼이 아닌 [[육의전]] 인이었음을 뜻하며 이는 윤정석이 당한 재력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윤정석은 장희재의 집과 담을 하나 두고 살았을 만큼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1683년]] 10월, [[조선 숙종|숙종]]이 두질(豆疾: 두창, 마마, [[천연두]])을 앓았다.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 [[명성왕후|왕대비(王大妃)]] 김씨는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함께 [[조선 숙종|숙종]]의 쾌차를 기원하기 위해 무당의 권고대로 절식을 하고 매일 속옷 차림으로 냉수욕을 하며 치성을 올리다가 감질(感疾: 감기)에 걸렸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와병 중이라 쉬쉬하며 치유치 않다가 점점 위중해졌고, [[조선 숙종|숙종]]이 온전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12월 5일에 [[열병]]으로 사망하였다.<ref group="주">이 사실을 발고한 [[박세채]]의 소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명성왕후|대행왕대비(사망한 왕과 왕후에겐 대행을 붙인다)]] 김씨가 무속을 싫어하였다며 강력히 부정했다. 『숙종실록 9년(1683 계해 / 청 강희(康熙) 22년) 12월 15일(임자) 2번째기사』 하지만 다음해 2월 박세채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이 증명되어 무녀 막례가 유배되었다. 『숙종 15권, 10년(1684 갑자 / 청 강희(康熙) 23년) 2월 21일(정사) 3번째기사』 실제로 [[명성왕후 김씨]]는 전속 무당을 두었을 만큼 무속을 신봉했고, [[조선 숙종|숙종]]도 무속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었다.</ref>
         [[1685년]] 대비 김씨의 3년이 마쳐지자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는 [[조선 숙종|숙종]] 부부에게 과거 대비 김씨가 출궁시켰던 그녀의 궁녀 장씨를 재입궐시킬 것을 권고하였다고 하기도 하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조선 숙종|숙종]]을 안타깝게 여긴 [[인현왕후]]가 숙종에게 간해 그녀의 재입궁을 주선했다고도 한다. 어쨌던 대비 김씨의 3년이 [[1685년]] 12월 5일에 마쳐졌고, [[1686년]] 2월 27일에 후궁 간택령이 있었던만큼 장씨의 재입궁이 이 기간 사이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궁으로 돌아온 장씨를 향한 숙종의 총애가 지극하자 [[서인]]과 [[인현왕후]] 민씨의 반발이 격렬했다. [[인현왕후]]는 장씨를 견제하기 위해 서인과 합세해 1686년 3월, 서인 수 [[김수항]]의 종손녀인 [[빈 김씨]]를 간택후궁으로 입궐시켰다. 숙종 12년인 1686년 2월 27일 기사에 [[인현왕후]]가 여러차례 간택후궁을 들일 것을 종용했다는 기록이 있어 장씨가 재입궁 한 것을 [[인현왕후]]가 후회하였거나 애초 원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앞서 1683년에는 [[인현왕후]]의 큰아버지인 좌의정 [[민정중]]이 장씨의 오라비 [[장희재 (조선)|장희재]]가 [[정명공주]]의 생일잔치에서 노래를 부른 첩 안숙정<ref group="주">안숙정은 숭선군저의 가비(歌婢)로서 노래 실력이 장안 최고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서인 수이자 [[송시열]]의 최측근인 [[김수항]], [[김수흥]]의 종손녀 김씨가 간택되어 3월 28일에 숙의로 봉해졌고 노비 150명이 하사되었다. 5월 27일에는 소의로 진봉되었으며 얼마 뒤에는 종1품 귀인으로 봉해졌는데 회임은 고사하고 [[조선 숙종|숙종]]의 사랑도 받지 못한 김씨에게 이러한 특별진봉이 거듭된 것은 서인 수의 종손녀라는 신분과 장씨를 향한 [[서인]]과 [[인현왕후]]의 견제를 의식한 [[조선 숙종|숙종]]의 방어책이었다.<ref group="주">김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총애를 받지 못한 것은 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에 언급되어 있다.</ref>
         김씨의 간택을 전후로 [[서인]]은 천재지변의 원인으로 장씨를 지목<ref group="주">[[인현왕후]]의 가례일에는 지진이 있었으며 [[인현왕후]]가 복위하자 초여름에 서리와 눈이 내린 것, 장씨에게 자진의 명이 내린 후부터 여러 달 심각한 천재지변이 계속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ref> 하거나 제왕은 여색을 멀리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장씨를 궁 밖으로 쫓아낼 것을 수차례 종용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김창협]]은 "후궁으로서 가까이 사랑할 사람이 간혹 있을 수도 있겠으나 진실로 관어(貫魚: 궁인들의 순서)를 순서대로 할 수 있게 하여 종사(螽斯)의 경사가 있게 하고 미색(美色)에 마음이 현혹될 근심과 치우치게 사랑에 빠져 은총을 열어 준다는 비난을 없게 한다. (중략)"<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9월 13일(갑오) 1번째 기사</ref> 는 내용의 소를 올렸는데, 이는 장씨의 미색에 현혹되지 말고 궁인의 지위 순서로 성총을 내려 후사를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서 승은궁녀인 장씨보다 정궁인 [[인현왕후]]와 당시 유일하게 후궁의 지위를 갖고 있던 [[빈 김씨|숙의 김씨]]([[김창협]]의 5촌 당질녀이다)에게 사랑을 주어 그들에게서 후사를 보아야 비난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ref group="주">1689년 2월에 [[김창협]]의 아비 [[김수항]]이 [[송시열]]의 소를 막지 못했다는 죄로 삭탈관직이 된 것에 대해 사관은 [[김창협]]이 장씨를 지목하여 간한 이 발언으로 [[조선 숙종|숙종]]의 노여움을 얻어 보복받은 것이라고 기록했다.</ref>
         숙종은 [[인현왕후]]와 [[빈 김씨|김씨]]에게서 장씨를 떨어뜨리기 위해 중궁전과 후궁의 처소가 있는 [[창덕궁]]이 아닌 [[창경궁]]에 비밀리에 인부를 불러 장씨의 처소를 새로 건축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숙종이 직접 장씨를 종4품 숙원으로 봉해 정식 후궁으로 만듦<ref group="주">승은궁녀에게 첩지를 내리는 것은 내명부 수장인 중전의 고유권한이었다.</ref> 으로서 인현왕후의 처지를 위해 장씨의 출궁을 종용하던 서인은 더이 숙종에게 장씨를 출궁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장씨를 숙원으로 봉하며 하사하기로 한 노비 100명과 전답은 흉년을 이유로 무기한 연기하도록 하였다.<ref group="주">[[조선 숙종|숙종]]이 [[장희재 (조선)|장희재]]에게 최초로 관직을 내린 것은 원자 명호를 취소할 것을 주장한 [[송시열]]의 소로 인해 [[남인]]이 정계로 돌아온 후이며, 승진이 아닌 부서 이동에 불과했던 것으로 미루어 장씨가 후궁이 되고도 친정이 혜택을 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숙종 15년 2월 11일 (기유) 원본333책/탈초본17책 (5/26)』</ref>
         [[인현왕후]]는 직접적으로 숙종에게 숙원 장씨를 쫓아낼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는데, 숙종에게 [[명성왕후]] 김씨가 꿈에서 계시를 내리길 장씨가 원한을 품고 환생한 짐승의 화신이며 불순한 무리(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궁했으니 쫓아내야 한다고 발언했던 기록이 숙종실록에 실려 있다.<ref>숙종실록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2일(정유) 2번째기사</ref> 또한, '장씨 팔자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노고하셔도 공이 없을 것이다'는 주장도 했는데 이는 모두 훗날 [[인현왕후]] 민씨가 폐서인이 되어 폐출되는 이유가 된다. [[조선 숙종|숙종]]은 원자([[조선 경종|경종]])가 탄생하자 [[인현왕후]]가 매우 노여워했으며, 급작스레 주가(主家: 공주의 처소. [[홍치]]의 어미 [[숙안공주]] 혹은 [[명안공주]] 등을 의미한다)와 더욱 친밀해지고 [[1688년]] 2월, '[[조사석]]이 장씨 친정의 청촉으로 신에 제배되었다'는 소문을 유포했던 것이 발각되어 유적에서 삭제되고 위리안치된 [[홍치]]의 방면을 종용했던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ref group="주">[[1688년]] 4월에 발발한 [[기사환국]]의 여파로 [[노론]] 과격파였던 [[김만중]]이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문되었는데 소문의 근원지가 [[조선 숙종|숙종]]의 고모인 [[숙안공주]] 들에게서라는 자복이 있자 [[홍치]]에게 교형이 내려졌다. [[갑술환국]]으로 [[홍치]]은 다시 복관되었지만 [[조선 숙종|숙종]]은 '매우 가까운 친척이고 높은 연세인 공주가 집에 있으니, 내가 차라리 떳떳하지 않은 데에 빠지겠다. 특별히 복관(復官)하라'하며 불쾌함을 드러냈으며, 1702년 [[홍치]]의 아들이 [[홍치]]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격쟁하자 '[[홍치]]의 지은 죄는 만번 통분할 일인데 아들이 감히 격고하였다'며 분노를 터트렸고 곧 '지은 죄가 낭자한데도 관작이 그대로인 탓이다'하여 복관한 관작을 다시 거두었다.</ref>
         [[1688년]] 소의(昭儀 ; 내명부 정2품)로 승격한 장씨는<ref group="주">승정원일기 기록 1688년 3월까지 장씨의 품작은 숙원이었다. 시기 숙원 장씨가 소의로 진봉된 것은 회임을 한 이유임을 알 수 있다.</ref> 같은 해 10월 28일, 드디어 왕실이 그토록 고대하던 [[조선 숙종|숙종]]의 장남‘균’(昀)<ref group="주">실록에선 윤으로 읽기도 하고, 균으로 읽기도 한다. 균이라 번역된 기록에도 한자는 윤(昀)으로 쓰여있다. 숙종의 세 아들(昀, 昑, 昍)은 모두 '日'자를 부수로 썼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 왕들의 이름은 현재의 독음과 다르게 읽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고종 대에 편찬된 《열성어휘(列聖御諱)》에 경종의 휘는 "균'으로 읽는다[音勻]"고 명시되어 있다.</ref> 을 낳았고 이 왕자가 후에 조선 왕조 제20대 왕 [[조선 경종|경종]](景宗)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서인의 반응은 싸늘하여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의 (喪) 중임을 앞세워 숙종의 득남에 축하연은커녕 하례인사조차 드리지 않았다. 또한, 다음 달인 11월 12일에는 숙종에게서 입궁하여 장씨의 산후조리를 도우라는 어명을 받고 입궁하는 장씨의 생모 윤씨를 지평 [[이익수]]가 명을 내려 사헌부 관원들이 그녀를 가마에서 강제로 끌어내리고 그녀의 하인들을 눈 앞에서 매를 때리고 체포하였다.
         덮개가 달린 가마인 옥교를 탈 수 있는 부녀자는 3품 이인 동반(문관) 당관의 어미와 처, 딸과 며느리로 국법이 정해져있는데 당하관에 불과한 천한 역관<ref group="주">문관은 역관을 천인으로 분류하기도 했는데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수치스럽다하여 청국행(淸國行)을 기피한 문관을 대행(代行)해온 역관들의 직위와 부귀가 종내에는 문관을 넘어서기에 이르자 역관을 양민으로 분류되는 사노공 중 최하층인 인으로 분류하여 역(譯商)으로 하칭하기도 하였다.</ref> 의 아내인 윤씨가 옥교를 탄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는 이유때문이었다.
  • 송병구 . . . . 187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포항시]]
         | 웹사이트 =
         {{메달 경기|[[월드 사이버 게임즈|월드 사이버 게임즈 (WCG)]]}}
         2004년 삼성전자 칸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고, 첫 진출한 CYON 2004 챌린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스타리그#EVER 2005 스타리그|EVER 스타리그 2005]] 4번 시드를 따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주목받았던 신예 프로토스 [[오종]](당시 [[화승 OZ]]), [[박지호]](당시 [[MBC게임 히어로]])가 각각 우승, 4강 진출로 이름을 알리는 동안, 송병구는 EVER 스타리그 2005에서 1승 2패, [[스타리그#2005 So1 스타리그|So1 스타리그]]에선 전패로 탈락하는 등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또한 삼성전자 칸 소속의 많은 선수들이 개인리그에 진출했던 2006 시즌 중후반에도 유독 송병구는 하부리그의 벽을 넘지 못하였다.
         송병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었다. 첫 시즌부터 양대리그 4강에 동시에 올라 [[스타리그#2007 다음 스타리그|Daum 스타리그]] 3위, [[MBC게임 스타리그#곰TV MSL 시즌2|곰TV MSL 시즌2]] 준우승이란 호성적을 냈으며,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프로리그]]에서도 높은 승률로 삼성전자 칸의 광안리 우승을 이끌었다. 송병구는 2007년에 올해의 프로토스에 최다승까지 받으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007년 당시 송병구는 대테란전 승률 70%에 달할 정도였으며 Daum 스타리그 2007 3,4위전에서 이호를 3:0으로 셧아웃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리그 2연속 준우승이라는 흔치 않은 기록과 MSL에서도 1회 준우승을 기록하여 콩라인에 소속되었다. 2007년 10월엔 [[김택용]](당시 [[MBC게임 히어로]], 은퇴)을 제치고 [[KeSPA]] 랭킹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이후 [[스타리그#EVER 스타리그 2007|EVER 스타리그 2007]], [[스타리그#박카스 스타리그 2008|박카스 스타리그 2008]]까지 연이어 결승에 올랐으나 [[이제동]] , [[이호 (1992년)|이호]]에게 각각 1:3, 0:3으로 패퇴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더구나 이벤트전이었던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결승에서도 이호에게 석패하는 등 해묵은 '준우승 징크스'를 깨지 못하면서 번번이 결승전의 패자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송병구는 여전히 테란전에서만큼은 최강의 모습을 보여주어 당시 송병구를 대로 대전적에서 앞서는 테란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이호에게 결승전에서 패배까지 전까지도 대전적은 송병구가 앞서 있었다.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 16강에서 3승으로 가볍게 8강 티켓을 따낸 송병구는 8강에서 김택용, 4강에서 도재욱을 꺾으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이는 프로토스 최초 스타리그 4회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이다. 송병구는 도재욱, 김택용을 꺾으면서 최고조에 달한 기량을 선보였고 당시 결승대는 김준을 3:1로 꺾고 결승에 진출하여 로열 로더를 노리는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 (당시 [[SK텔레콤 T1]], 현 데드픽셀즈)이었다. 2008년 11월 1일, [[스타리그#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인크루트 스타리그]] 결승에서 정명훈을 3:2로 꺾고 우승함으로써 2년 가까이 따라붙었던 만년 준우승의 꼬리표를 떼어냈다. 이는 스타리그 최다 진출만에 우승이자, (9회 진출만의 우승이며, 종전까지의 기록은 7회 진출만에 Daum 스타리그에서 우승한 [[김준 (프로게이머)|김준]]) [[삼성전자 칸]] 선수 최초의 개인리그 우승이었다. 한편 이 경기들에서 송병구는 2경기, 5경기서 물량의 힘을 선보이며 승리를 성취했다. 이때 당시 송병구는 8강부터 결승까지 skt에 소속된 선수들을 꺾으며 skt 킬러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차기 스타리그인 바투 스타리그 8강에서 이제동에게 2:1 역전패를 당하며 우승자 징크스만은 깨지 못했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결승전에서는 박찬수를 꺾고 팀의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 2007]] 그랜드 파이널 8강에선 진수를 꺾고 결승에선 마재윤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던 중국의 [[샤쥔춘]]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으며, WCG 2008 그랜드 파이널에서도 2회 연속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도 건재를 알리며 삼성전자 칸의 2연속 광안리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WCG 2009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부분 WCG를 최초로 3회연속 진출에 성공한 후 이제동과의 결승에서 안타깝게 패배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IEF2008에서 결승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준우승을 기록하였으며 IEF2009에서는 결승에 올라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대회에서 '송순신'등으로 불리며 대활약을 벌였다.
         이 두 선수가 만난 다전제는 [[곰TV MSL 시즌2]] 결승, [[EVER 스타리그 2007]] 4강,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8강, IEF 2008 결승, [[WCG]] 2009 한국 대표 선발전 결승, IEF 2010 결승, IEF 2011 결승으로, [[EVER 스타리그 2007]] 4강, [[WCG]] 2009 한국 대표 선발전, 피디팝 MSL 16강을 제외한 모든 다전제는 최종전까지 이뤄졌다. 두 선수의 대전적은 19:17로 송병구가 우위이다.
         이하게도 프로리그나 개인리그(결승전 제외)에서는 송병구가 많이 이겼으나, 개인리그 결승전에서는 송병구가 김택용을 다전제전에서 이기지 못해 우승을 하지 못했다.
         [[BATOO 스타리그 08-09]]에서 8강에 진출한 송병구는 이제동에게 1:2 역전패를 당하며 탈락하였다. 반면 로스트사가 MSL에서는 4강까지 올랐으나 허무에게 0:3으로 탈락하였다. 이런 부진은 1년 내내 지속되었다. 박카스 스타리그 2009 16강에서 1승 2패로 탈락하였으며 EVER 스타리그 2009에서도 8강에서 이한에게 1:2로 탈락하며 부진을 거듭하였다. 하지만 2009 WCG에서 결승에 올라 3연속 결승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며 WCG 명예의 전당을 노렸으나 이제동에게 1:2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곧이어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16강에서 탈락하며 이 부진은 2010년까지 계속되는 듯 싶었다.
         대한항공 스타리그 Season 2 2010에서 16강 2승 1패 8강 2:0으로 4강에 진출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송병구는 비록 이제동에게 탈락했으나 2:3으로 선전을 펼쳤다.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서는 제 2의 전성기라 불릴 정도의 기량을 맞이하며 단숨에 결승까지 진출하였고 스타리그 테란전 10연승이라는 기록도 작성하였으며 10-11시즌에서는 2라운드부터 회복세를 보여 3라운드 위너스리그에서 첫 역올킬을 달성하였다. 피디팝 MSL에서는 8강까지 진출하며 전성기 시절을 연케 하는 기량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피디팝 MSL 8강에서 김명운에게 0:3 셧아웃을 당하며 탈락하였고 박카스 스타리그 결승에서도 정명훈에게 0:3으로 패배하며 여전히 큰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를 보여주며 부진에 빠지고 말았다.
         10-11시즌 1라운드에서 송병구는 승보다 패가 많을 정도로 부진에 빠졌다. 당시 송병구는 조금씩 하락세를 타는 추세였으나 2라운드가 시작되면서 송병구는 회복세를 보였다. 승수를 차츰차츰 쌓아나갔고 팀의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굳혀 나갔다. 2라운드와 비슷한 시기 개인리그에서도 송병구는 승세를 타는 분위기였다. 3라운드 위너스리그서는 10-11시즌 MBC게임과의 경기에서 첫 역올킬을 달성하였고 본인의 첫 공식전 올킬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보다 조금 전에는 화승OZ와의 경기에서 팀의 에이스 이제동을 꺾으며 3킬을 달성하며 프로리그 8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4라운드에 접어들면서 다시 패가 많아지게 되었다. 근근히 승리를 쌓는 송병구였지만 마침내 시즌 막판에 접어들면서 연패를 겪었고 택리쌍에 비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0-11시즌에서 40승을 기록하며 본인의 첫 프로리그 40승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MBC 게임]]의 프로그램인 [[유저의 취향]]에 2011년 8월부터 추석특집까지 출연하였다. MBC 게임의 중계진인 [[박현 (1981년)|박현]], [[유대현]]과 함께 진행을 맡았으며, 멋진 스타 실력과, 재미있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예능왕 송병구답다.' 라고 평가 받고 있다.
         2012년 SK플래닛이 주최하는 프로리그에서 통합 26승 11패로 전체 다승 3위, 프로토스중 1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고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큰 기여를 해내며 여전히 정급 선수라는걸 증명했다.
         하지만 자유의 날개로 전환한 옥션 스타리그에서는 14연속 연속 진출 대기록 달성에 실패함으로써 그 기록을 이호에게 넘겨줘야 했다.
         스타2의 전환은 이제까지의 스타판도를 완전히 뒤엎는 격변의 시작이였고 택뱅리쌍, 정명훈, 허무라는 정권의 선수들이 조연들과의 세대교체를 하게 되는 신호탄이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프로리그에서 13연패까지 하는 등 송병구는 그야말로 최악의 태였다. 이런 좋지 않은 황에서 송병구는 2014 GSL 예선전을 뚫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본선조 배치에는 이신형, 김준호, 주성욱 등 강력한 대들이 다소 포진되어 있었으나, 김준호를 2:1로 제압한 뒤 승자전에 진출하였고, 승자전에서는 주성욱의 한 수위 실력에 2:0으로 패하여 최종전으로 떨어졌다. 최종전에서 이신형을 이기고 올라온 김준호와 다시 맞붙었으나, 아쉽게 2:1로 패배하여 GSL 진출에는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프로리그에서의 부진을 씻어내고, 맹활약을 보여준 송병구에게는 아직 더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 2014년의 시작이었다.
         이후 프로리그 1라운드 포스트시즌에서는 [[원이삭]]을 대로 승리하기도 했으며 2라운드에서 김준호와 이호를 꺾는 등 2014년 2월 프로리그 3연승을 기록,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2014년 첫 GSL 예선전도 통과하며, 송병구의 2014년은 난관없이 잘 풀려가고 있다. 특히 5월에 들어 ESTV CUP 에서 우승을 하였으며 프로리그 3라운드 SK텔레콤과의 경기에서 2승을 거두며 3라운드 SK텔레콤의 전승을 막았다.
         ====[[이호 (1992년)|이호]]====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186회 일치
         하지만 암살단이나 템플러보다 큰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의 종말이었다. 2012년 12월 21일 세은 태양풍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모든것은 데스몬드 마일즈에게 달렸다. 암살단의 후예였던 그는 앱스테르고에 의해 납치되었었다. 이후 그는 조들의 기억을 체험하는 기계인 애니머스를 통해 조들의 지혜와 기술을 배웠다.
         조들에게 전해진 예언에 따라 데스몬드 마일즈와 그의 암살단 동료들은 한 유적을 찾아간다. 에덴의 조각을 만들어낸 초고대 문명 "먼저 온 자들"의 유적이었다.
         암살단이 전에 얻었던 에덴의 조각으로 유적 문을 열고 들어간 데스몬드 일행. 유적 중간은 정체모를 무언가에 의해 막혀있었다. 데스몬드는 열쇠를 찾으라는 유노[* 먼저 온 자들 중 하나]의 환청과 혼입 효과[* 애니머스의 부작용으로 조의 기억이 사용자의 기억에 섞이는 현.]를 겪고 쓰러진다.
         데스몬드가 눈을 떴을 때에는 애니머스에 들어있었다. 동료들이 쓰러진 데스몬드를 애니머스에 집어넣은 것. 데스몬드는 열쇠를 찾기위해 조의 기억을 탐색한다.
         데스몬드를 조의 기억과 동기화 시키기 위한 과정.
         1754년, 데스몬드 마일즈의 조인 헤이덤 켄웨이는 코벤트 가든 왕립 극장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관인 레지널드 버치의 명령을 받은 헤이덤은 오페라를 보고있던 남자를 암살하고 그의 목에 걸려있던 유물을 가지고 극장에서 빠져나간다.
         항해 둘째 날, 바람을 쐬기 위해 갑판으로 나온 헤이덤은 선원들과 시비가 붙는다. 선원들과 싸우던 헤이덤은 그 광경을 프로비던스호의 선장에게 들키게 된다. 선장은 헤이덤을 디스한 후 선장실로 끌고간다. 둘 밖에 없는 선장실에서, 선장은 함 반란이 일어날 것 같으니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헤이덤은 선장의 부탁을 수락하고는 "다시 한번 나를 모욕했다가는 망설임 없이 목을 잘라버릴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선장실을 나간다.
         항해 28일 째 밤, 선장은 헤이덤에게 선 반란이 머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선원들에게 캐묻고 다니던 헤이덤은 제임스라는 선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항해 33일 째 날. 의문의 선박이 프로비던스를 쫓아온다. 프로비던스가 맞서 싸우는 동안, 프로비던스의 선장은 헤이덤이 아무 도움도 못될 것이라 판단해 헤이덤을 선실 밑으로 내려보낸다. 선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건 루이스 밀즈. 밀즈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항복을 제안한다. 헤이덤은 명예는 지켜주겠다는 밀즈의 말에 차라리 검을 달라고 대꾸, 밀즈에게서 검을 넘겨받고 결투를 벌여 승리한다. 이후 헤이덤은 다시 갑판으로 올라와 의문의 선박이 노리는건 자신임을 밝힌 후, 선장을 암살검으로 협박해 폭풍 속으로 프로비던스를 몰게 한다. 폭풍 속에서 헤이덤은 돛를 고정시키고, 돛을 펴는 일을 돕는다. 그러던 중 제임스가 돛대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그를 돕기도 한다. 제임스를 돕고 난 후, 헤이덤은 쫓아오던 선박의 돛대가 폭풍에 부러져 더이 쫓아오지 못하는걸 확인한다.
         그린 드래곤 여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말다툼을 벌이던 여관 아저씨와 여관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맞이해 준다. 헤이덤은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력자인 윌리엄 존슨 경에게 협조를 부탁하지만 존슨 경은 자료를 도둑맞아 도움을 줄 수 없는 황. 존슨의 경호원인 토머스 히키가 조사 중이지만 헤이덤은 직접 나서기로 한다.
         헤이덤과 찰스 리는 존슨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한 용병단 소굴앞에서 히키와 조우한다. 히키는 용병단이 자료를 훔쳐갔다는건 확인했지만 도적단 소굴로 들어가지는 못하는 황. 이에 헤이덤은 자신이 후방에서 습격하는 동시에 찰스 리와 히키가 정면에서 공격하는 작전을 짠다. 이 작전에 큰 피해를 입은 용병단은 성채 안으로 도망쳐 문을 걸어잠그지만 헤이덤의 화약통 쏘기에 몰살. 헤이덤은 자료가 든 자를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 용병 10명 이을 총기로 살해.
          * 히키나 리의 체력을 50% 이으로 유지.
         존슨의 계산과 지도가 잘 안 맞아떨어진다. 모호크의 도움을 받을까도 했는데 걔네들에게 해준것도 없는데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는 황. 이때 히키가 방법을 생각해낸다. 노예으로부터 원주민을 구출하면 도움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것. 벤자민 처치라는 사람이 노예이 어디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찰스 리의 주장에 따라 헤이덤과 찰스 리는 처치의 집을 찾아간다.
         처치의 집을 찾아간 두 사람. 처치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장판이 된 집과 핏자국만이 있었을 뿐. 헤이덤은 집 구석에 걸려있던 처치의 초화를 잘라내 몽타주를 만들고는 처치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찰스 리가 초화 쪼가리를 가지고 삽질하고 있을 때 높은 곳에 올라가야 뭔가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헤이덤. 헤이덤은 뉴 사우스 웨일스 예배당(New South Wales Meeting House)에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예배당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도청한다.
         도청을 통해 처치가 물가에 갇혀 있다는걸 알아낸 헤이덤은 찰스 리를 데리고 물가로 간다. 이때 찰스 리가 당히 약하니 조심할 것. 들키면 앗 하는 사이에 죽어버린다. 헤이덤과 찰스 리는 부둣가 창고에 들어간다. 그 순간 그들이 목격한건 보호비를 내라는 사일러스 대처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손 없고 혀 없는 고자가 될 위기에 처한 벤자민 처치였다. 헤이덤과 찰스 리는 사일러스 대처의 부하들을 죽이고 처치를 풀어준다.
         다시 그린 드래곤 여관으로 온 일행. 존슨에게서 이야기를 전해들은 처치는 자신을 감금했던 사일러스 대처가 노예이라는걸 밝힌다. 하지만 대처는 사우스게이트 요새를 관리하는 국군 지휘관이며, 최소 1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 헤이덤은 사우스게이트 요새로 진입할 방법을 찾는 동시에 자신의 조력자가 될지도 모르는 존 핏케언을 찾으려고 한다.
         핏케언이 있는 군사 기지에 도착한 헤이덤과 찰스 리. 핏케언의 관인 에드워드 브래독 장군은 핏케언을 넘기기를 거부한다. 헤이덤은 한때 자신의 동료였던 브래독을 안타까워 한다.
          * 순찰대의 의심을 15초 이 받지 않음
  • 몽키 D. 루피 . . . . 185회 일치
         || [[롤로노아 조로]] || [[나미(원피스)|나미]] || [[우솝]] || [[디]] || [[토니토니 쵸파]] || [[니코 로빈]] || [[프랑키]] || [[브룩(원피스)|브룩]] ||
         ||<:>현금||<:>3000만 베리[* 아론 전 이후] → 1억 베리[* 알라바스타 이후] → 3억 베리[* 에니에스 로비 이후] → 4억 베리[* 정결전 이후] → 5억 베리[* 드레스로자 이후]||
         '''~~초반엔 천재속성도 있었지만..~~뇌는 슬라임 급이지만 개념은 작중 최고인 자기 해적단 최고의 근육머리 바보(...)겸 개그캐''' 이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다, 특히 머리 쓰는 일을 잘 못한다. 독불장군 기질이 심해서, 다른 사람을 강제로 끌어가는 경우도 많다.정신력과 의지력은 초인적인 수준이며(쉽게 말하자면 그냥 멘탈이 강하다) 동료애도 강하다. 다른 사람의 동료애에도 공감하고(그래서 아론의 동료를 방패로 썼나?) 최선을 다해 도우려 하며, 반대로 동료를 속이는 것을 혐오한다. 동료들이 루피를 따르는 이유 또한 루피가 매사에 솔직하고, [니코 로빈|동료의 ][바로크 워크스|과거가 어떠하든] [프랑키|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동료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프랑키|조선공]이나 [니코 로빈|고고학자]는 첫 만남 당시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일단 동료로 받아들이고 난 뒤로는 그런 과거는 일절 따지지 않고 대우해준다.--좋게 말하면 쿨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거지만 루피 성격으로 봐선 멍청한 게 더 잘 어울린다.--물론 이건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샹크스와 빨간 머리 해적단의 향을 받은 건지 수직적인 관계보다 허물없이 대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작중 최고 개념인이지만 평시에 했던 기행들 때문에 이런 점이 많이 묻히기도 하는 약간 안습한 인물이기도 하다. 불의를 보면, 묵인하지 않고 앞뒤 가릴 것 없이 행동에 나서는데, 작가는 이를 보고 현실 속 가 국적을 '''[[브라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때때로 굉장히 무모하게 보일 때가 많고, 동료들의 조언이 브레이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키자루]]는 "무모함밖에 없는 쓰레기"라고 매도하기도 했고, [[주인공 보정]]이 없었으면 해적단 전원이 저세으로 갔을 일도 수두룩하다.
         기본적으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활기가 심하게 넘치는 편이다 보니 언제 어디서나 역동적으로 행동하는 편. 우솝이 말하기를 "루피는 한 자리에 5분 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라고.(...) 그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가만히 있기보단 우선 행동부터 벌이고 보는 편이기에 만일 세세한 작전이 필요할 때는 일단 동료들이 그걸 붙들어 막아세우고 그 사이에 작전을 설명하곤 한다. '''그래봤자 루피는 대부분 말 안 듣고 그냥 돌진해 버리지만.'''
         동료나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무모함의 이유 중 하나다. [[세계정부(원피스)|도저히]] [[임펠 다운|승산이]] [[정결전|없는 황]]이라도 동료가 위험하면 싸움을 건다. 어느 때나 동료의 강함을 믿는 것은 루피가 가진 리더십의 원천이지만, 오히려 일당 전체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샤본디 제도에서 천룡인만 때리지 않았어도 밀짚모자 일행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밀짚모자 해적단 선원 대부분이 평범하고 식적인 대응을 하는 해적단이었으면, 처음부터 입단할 일이 없었다. 실제로 정작 당사자인 선원들은 하찌가 총에 맞아서 천룡인을 때린 황에 대해서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조로는 천룡인을 베려고 검을 뽑았다가 루피가 선수를 치자 검을 다시 집어넣기도 [* 선장의 행동이라고 무조건 허용한다는 말은 아니다! 정말 무모하게 행동할 때는 선원들도 저지한다.][* 즉 루피가 무모하고 정신나간 성격인 것은 맞지만 어차피 여기에 들어온 인간들이 죄다 비슷한 인간들이다.(…) 나미, 조로, 디, 우솝 등은 자신들이 루피보다 식적인 인간이라 여기며 실제로도 루피보다'''는''' 식적인 인간이지만 주변 평가는 '''다 똑같은 미친 것들'''(…)]
         신나게 즐기며 노래하고, 동료를 아끼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해적이라 생각한다. 제일 처음 본 해적이 [[빨간 머리 해적단]]이었기 때문인 듯. 웅이 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해적은 고기를 가지고 잔치를 벌이지만, 웅은 고기를 나눠줘야 하니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징베: 네가 먹을 고기는 내가 줄테니 일단 말을 들어!-- 이런 면모 탓에 해적기만 내리고 다녀도 인생이 편해지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세계관 [[위대한 항로]]의 끝까지 가보려는 것 자체가 중죄다. 더군더러 해적기를 내리든 말든 몇몇 행동은 알아서 했을테니[* 특히 로빈을 구출하기 위해 에니에스 로비를 박살낸거나 천룡인을 패 버린것.] 별 관은 없을듯.~~지금까지 해먹은 게 몇 년인데~~
         앞서 말한 그 특유의 무모함 때문에 위기를 많이 겪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의외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감으로 움직이는 타입이지만, '''루피의 감은 그만큼 잘 맞는다'''. 분명히 루피가 무모해서 온갖 사선을 넘으면서도 밀짚모자 해적단이 모두 살아남은 것은 루피의 감도 한 몫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패기 설정이 두드러진 때부터 어찌하다보니 우연히 연결된 떡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mr.3 전때 같은 것만 봐도 작가가 구정도는 하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독자들도 있다.]
         초반에는 생각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알라비스타나 [[위대한 항로]] 사건을 겪고, 다소 성장한 듯. 황을 내던지는 듯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고, 감으로 판단해서 안 될 것 같으면 주저없이 그만둔다. 정결전 당시 위급한 황에서도 미호크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샤본디 제도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전원에게 도망치라 명령했다. 굉장히 무모했던 [[골 D. 로저]]나 [[포트거스 D. 에이스|로저의 아들]]('''스포일러''')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요하자면,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고 있는 듯 보이지만 [[볼사리노|아무리 똥줄을 타고 역량을 한계까지 뽑아내도 도무지 못 이기겠다 싶은 황]]이 닥치면 그 황을 감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즉시 도망치거나 심지어는 '''동료들과 흩어져서 도망칠 줄도 안다'''[* 앞서 말한 골드 로저나, 로저의 아들의 경우. 자기만 남고 동료들을 보내는 경우라면 몰라도 뿔뿔히 흩어져서 생존률을 나눠가지자는 식의 냉정한 선택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가프의 로저에 대한 평가나 그 아들의 행적에서 미루어 생각해보면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 수준.]는 것이다. 신중성은 결여되어 있지만 의외로 물러설 때를 알 정도의 황판단능력과 융통성은 있다.
         물론 '''일반적인 루피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냉철한 구석도 있다는 뜻이지, 루피라는 인물 자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캐릭터다. 물러설 때를 알기는 하지만 당장 동료나 친구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에니에스 로비|]][[정결전|황]]이면 몇번 죽어도 이하지 않을 황에서도 달려든다.
         별명 '밀짚모자 루피'는 항 밀짚모자를 쓰고 다녀서 붙었다. 샹크스가 선물한 이 밀짚모자는 루피의 보물 1호. [[버기(원피스)|버기]]가 모자를 망가뜨렸을 때 크게 분노했으며, 전투 후 의식을 잃었다 깨어날 때마다 모자부터 찾는다. 또한 에이스에게서 받은 비블 카드를 밀짚모자에 붙이면서, '여기라면 안심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론 파크를 공격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나미(원피스)|나미]]에게 밀짚모자를 씌워준 뒤 아론 파크로 가는 장면이 있다. 또한 드럼 섬에서는 [[디]]와 함께 나미를 데리고 의사를 찾기 위해 드럼 록키를 올라가던 중, 라판이 일으킨 눈사태에 의해 디가 눈 속에 파묻히자 나미에게 잠시 밀짚모자를 맡기고 디를 찾기 위해 눈으로 뛰어든다. SBS에서 나온 말에 의하면 밀짚모자는 루피의 보물이므로, 이걸 남에게 맡긴다는 건 '''너는 내 동료이며,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루피가 처음으로 동료에게 밀짚모자를 씌어준 것도 나미가 처음이다. 아론 파크편에서 나미가 더 서글프게 눈물을 흘렀던 것은 그런 루피의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
         정 결전 후 레일리와의 수행을 시작할 때는 안전한 장소에 밀짚모자를 걸어둔 뒤 수행에 임한다. '해적 밀짚모자 루피는 휴업'이라는 의미.
         한편, [[실버즈 레일리]]의 회 장면에서 [[골 D. 로저]]와의 첫 만남이 나오는데, 당시 로저는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또, 샹크스가 루피에게 모자를 맡길 때 '이 모자는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내 보물이다.'라고 말하였다. 게다가 레일리가 루피를 보며 '그 모자에 어울릴 만한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으므로, '''[[http://mypi.ruliweb.daum.net/mypi.htm?id=ky352729&num=12504&cut=1 루피의 밀짚모자는 본래 로저의 것이었다]]'''는 얘기가 된다.~~모자 하나를 몇십년동안 쓰고있는거냐~~~~최강 내구도 밀짚모자~~
         해적사냥꾼 [[롤로노아 조로]]와 함께 밀짚모자 해적단을 결성하였으며 처음에는 단 둘뿐이었다. 루피가 계속되는 동료를 찾다가, 소규모 ~~[[어선]]~~해적단이란 소리를 들을 쪽수는 채웠다. 그런데 멤버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철철 넘치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며[* [[러시아식 유머|순록을 닮은]] [[토니토니 쵸파|너구리]](절대 오타가 아니다.), [[프랑키|로봇]]도 있는데 왜 또 [[브룩(원피스)|해골]]까지 동료에 추가하려 드냐고 디한테 한 소리 들은바 있다.] 특히 [[위대한 항로]] 진입 이후에 들어온 동료는 전부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 조로, 나미, 우솝, 디는 '''일단은''' 멀쩡하게 생긴 인간이지만 쵸파는 순록 + 악마의 열매 능력자, 프랑키는 사이보그, 브룩도 해골 - 악마의 열매 능력자다. 그나마 외모로는 멀쩡하게 생긴 인간인 로빈도 악마의 열매 능력자. 사실 나머지 멤버도 조로, 디는 초인급 싸움을 보여주고 나미는 위대한 항로에서 관측할 수 없는 사이클론을 감으로 예측하며 우솝은 사법의 탑 꼭대기에서 저 멀리 떨어진 다리에 있는 해군들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등 나머지 네명도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가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고, 일단 루피부터가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타입인 만큼 안 친한 멤버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 중에서도 해적단 내에서는 [[우솝]]과 가장 친한 편이다. 우솝이 좀 심한 겁쟁이에 평범한 인체스펙과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루피는 무모한 성격과 악마의 열매로 인한 특이체질과 엄청난 힘 정도만 차이가 날 뿐, 기본적인 정신세계와 개그코드는 그야말로 [[소울메이트]]급으로 죽이 잘맞는다. [[남자의 로망]]을 동경하는 것도 그렇고, 둘다 [[빨간 머리 해적단]]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알다시피 [[샹크스(원피스)|샹크스]]는 루피의 '''인생 나침반''' 같은 존재이고, 동료인 [[야솝]]은 우솝의 '''아버지'''이다.] 그와 연령까지 똑같다. 이래저래 닮은 구석이 참 많은 콤비. 그래서인지 우솝이 루피의 바보짓에 태클을 많이 거는 만큼 루피의 장난에 가장 많이 받아주고 같이 행동하는 것도 우솝이다. 해적단에 별일 없으면 항 루피 옆에는 우솝이 붙어 있다. [[토니토니 쵸파|쵸파]]가 합류한 이후로는 이 셋이 늘 붙어다닌다. 일명 '''막내라인.''' 그렇기에 이 둘이 다투는 모습은 [[워터 세븐]]에서 [[고잉 메리호]]를 놓고 싸운 것이 유일했을 정도로, 이 때문에 당시에는 가장 친했던 멤버와의 처절한 결투를 비극적으로 그려내었다. 물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프랑키|새로운 동료]]와 [[사우전드 써니 호|새로운 배]]가 생겼고, 배에 대한 트러블로 잠시 해적단을 이탈했던 우솝도 다시 돌아왔지만. 추가로 우솝이 루피에게 해적단에 멋대로 나간 점을 사과하고, 자신을 다시 넣어달라고 울고불고 하는 장면과 마찬가지로 그런 우솝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눈물콧물범벅이 된 루피의 모습은 참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우솝의 재합류 이후로는 역시나 쵸파랑 항 셋이서 붙어다닌다.
         조로 왈, '''"큰일났다! 저녀석은 [[바보]]라서 최면이 보통 사람보다 강하게 걸려!"''' 이 모양이라서 정신계 공격인 캡틴 [[크로]]전에서 [[쟝고(원피스)|쟝고]]의 세뇌부터 시작해서, [[바로크 워크스]]전에서는 [[미스 골든 위크]]의 색깔 조종, 그리고 [[스릴러 바크]]전에서는 [[페로나]]의 [[홀로홀로 열매]], [[브룩(원피스)|브룩]]의 노래 공격 등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극장판중 하나에서는 짐승들을 자극하는 음악소리에 자신이 반응하고 으르렁 대기도 했다.다만, 생각이 하나로 좁혀질 때는 통하지 않는 모양. 원래 브록의 노래 소리만 들어도 향을 받는데 스트롱 월드에서는 시키를 쓰러뜨린다는 일념으로 좁혀진 루피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엄청난 정신력을 가진 다이아몬드급 멘탈의 소유자로, 어린 시절에 해적에게 납치당해 피곤죽이 되도록 얻어터지고도 끝까지 ~~자기를 처리하려 한~~ 사보와 에이스의 행방을 털어놓지 않았으며, 스릴러 바크 편에서는 어지간한 인간은 2~3개 이 넣으면 의식이 못 버틴다는 그림자들을 100개나 넣고도 거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스토리를 맞추기 위한 사기급 주인공보정 능력~~ 정결전 편 임펠 다운 탈출한 뒤에 벌어진 싸움도 이미 몸이 망가진 태에서 정신력으로 버텨낸 것.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꼴을 당했는 데도 이런 낙천바보로 성장한 것 자체가 멘탈갑이다. 루피가 정신적 충격으로 [[멘탈붕괴]]를 일으킨 것은 에이스가 죽었을 때 뿐이며, 정확히는 에이스의 죽음을 기폭제로 그간 중첩되어 있던 막대한 정신적[* [[샤본디 제도]]에서 동료들이 [[바솔로뮤 쿠마|쿠마]]에 의해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다는 책임감과 [[임펠 다운]]에서 탈출하기 위해 봉쿠레를 희생시킨것] , 신체적[* [[샤본디 제도]], [[임펠 다운]], [[마린 포드]]에서 받은 신체적 부담감] 부담이 터진 것이다.
  • 영주시 . . . . 172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북도)]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
         [include(틀:주시의 읍면동)]
         ||<-3><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04B486><bgcolor=#04B486><:> {{{+2 {{{#FFFFFF '''주시'''}}}}}} [br] {{{#FFFFFF 榮州市 / Yeongju C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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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color=#21610B> {{{#FFFFFF △ 철쭉이 만개한 소백산 (주시 풍기읍 죽령로1720번길 76 (수철리 산 86-1))}}} ||
         ||<bgcolor=#21610B> {{{#FFFFFF △ 주에 있는 희방계곡의 희방폭포의 모습 (주시 풍기읍 죽령로))}}}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21610B><bgcolor=#CEF6E3><table width=95%><:> [[파일:주 선비촌.jpg|width=95%]] ||
         ||<bgcolor=#21610B> {{{#FFFFFF △ 선비촌 (주시 순흥면 소백로 2796)}}} ||
         [[경북도]] 북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인구는 2016년에 들어 10만 9천여 명으로 계속 인구가 줄고 있다.[* 1995년경에는 인구가 약 15만명이었다. 이때부터 따져도 매년 거의 2천명 꼴로 인구가 줄어든 셈. 그런데 2018년 현재 약 16만인 안동시 인구도 그 당시에는 거의 20만명에 달했다. ~~그때가 좋았지~~] 시의 동부에 [[봉화군]], 남부에 [[안동시]], 서부에 [[예천군]]이 있으며 북부는 죽령을 경계로 [[충청북도]] [[단양군]], 마구령을 경계로 [[강원도]] [[월군]]과 맞닿아 있다.[* 월군으로는 육로로 직결이 안 되어있어서 단양군 춘면을 통과해야 한다.]
         [[경북도]] 북부 지역의 [[철도]]교통 중심지로서 시내에 있는 [[주역]]에서 [[중앙선]], [[동선]], [[경북선]]이 교차한다. [[철도청]] 시절에는 전국에 5개밖에 없었던 지방철도청이 자리잡기도 했다.(2013년 현재는 코레일 경북본부) 과거 철도로 번성한 도시였지만, 오히려 지금은 노후되고 도심을 이리저리 관통하며 찢어놓는 철도가 도시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여론도 높아진 태다.
         ||<tablealign=center><-10> '''주시 행정구역 변천사''' ||
         || 천군[br](榮川郡, 1895)[br]풍기군[br](豊基郡, 1895)[br]순흥군[br](順興郡, 1895) || → || 주군 [br] (榮州郡, 1914) || → || 주시 [br](1980) [br] 풍군 [br](榮豊郡, 1980) || → || '''주시''' [br] (1995) ||
  • 수애 . . . . 170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화에서는 2004년 화 《[[가족 (2004년 화)|가족]]》으로 스크린에 데뷔하였고, 2008년 화 《[[님은 먼 곳에 (화)|님은 먼 곳에]]》에서 [[베트남 전쟁]]에 파병 간 남편([[엄태웅]] 분)을 찾으러 간 순이 역을 연기하여 대종, , 부일, 황금촬 여우주연을, 2010년 작품 [[심야의 FM]]으로 청룡, 대한민국대학화제 여우주연을 수했다.
         2005년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 [[북한이탈주민|탈북자]] 출신의 통역관을 연기하였고, 2016년 화 《[[국가대표 2]]》에서도 [[북한이탈주민|탈북자]] 출신의 [[아이스하키]] 선수를 연기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11&aid=0000462127 '국가대표2' 수애 "동생 役 박소담, 저와 닮은 것 같아요"] 조이뉴스24. 2016년 07월 27일</ref>
         | 화 [[가족 (2004년 화)|가족]]에서 배우 [[주현]]과 함께 출연
         === 화 ===
         | 《[[가족 (2004년 화)|가족]]》
         | 《[[님은 먼 곳에 (화)|님은 먼 곳에]]》
         | 민자([[명성황후]])
         | 고선
         | 《[[감기 (화)|감기]]》
         |《[[류사회 (2018년 화)|류사회]]》
         == 수 및 후보 ==
         ! 시
         | [[MBC 연기대]]
         | 여자 신인
         | 제25회 [[청룡]]
         | 신인여우
         | rowspan="8" | 《[[가족 (2004년 화)|가족]]》
         | 제3회 [[대한민국 화대]]
  • 홍상수 . . . . 165회 일치
         {{화인 정보
         | 이름 = 홍
         | 사진설명 = [[파리 시|파리]]에서 《밤과 낮》을 촬 중인 홍수<br /> ([[2007년]])
         | 직업 = [[화감독]], [[각본가]]
         | 수 =
         | 웹사이트 =
         '''홍수'''(洪常秀, HONG Sang-soo, [[1961년]]<ref name="kmdb" /> ~ )는 [[대한민국]]의 [[화 감독]]이다. 2010년 [[칸 화제]]에서 《[[하하하]]》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을 수했다.<ref>{{뉴스 인용 | 제목 = 화 [하하하], 칸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 | url = http://www.newsculture.tv/sub_read.html?uid=16895 | 출판사 = 뉴스컬처 | 날짜 = 2010-05-24}}</ref>
         * [[중앙대학교]] 연극화과 (중퇴)
         [[중앙대학교]] 연극화과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예술공예대학|캘리포니아예술공예대학]](California College of Art and Crafts)에서 학부 과정을 마쳤으며, [[시카고 예술학교|시카고예술대학교]](The 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연출한 단편 실험화로 《개미 보는 여인》이 있다<ref name='kmdb' />. 에릭 로메르, 로베르 브레송, 오즈 야스지로, [[세잔|폴 세잔]] 등의 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화학과 교수를 지냈으며<ref name='kmdb' />, 현재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 화전공 교수이다.<ref>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19001002&article_id=63886</ref>
         2016년 화배우 [[김민희 (1982년)|김민희]]와 불륜 스캔들이 터졌으며, 열애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 2002년 - 《[[생활의 발견 (화)|생활의 발견]]》
         * 2009년 - 《[[첩첩산중]]》 (제10회 [[전주국제화제]] 작)
         * 2010년 - 《[[옥희의 화]]》
         * 2017년 - 《[[그 후 (화)|그 후]]》
         * 1997년~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화과 교수
         * 1998년 제14회 산타바바라 화제 심사위원장
         * 2008년~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 화학과 교수
         * 2009년 제62회 [[로카르노 국제 화제]] 심사위원
         == 수 ==
  • 김갑수(배우) . . . . 162회 일치
         {{{#FFFFFF '''김갑수의 주요 수 이력 ''' }}} }}} ||||
         ||<-5><table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EDD200><#EDD200> {{{+1 '''{{{#white 역대}}}''' [[대종|[[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width=120]]]]}}} ||
         ||<#EDD200><-5><:> {{{#white '''남우주연'''}}} ||
         ||<:> [[안성기]], [[박중훈]][br]([[투캅스#s-2|투캅스]]) ||<:> {{{+1 → }}} ||<:> '''김갑수[br]([[태백산맥(화)|태백산맥]])''' ||<:> {{{+1 → }}} ||<:> [[최민수]][br]([[테러리스트(화)|테러리스트]])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c0c000> {{{+1 '''[[백예술대|[[파일:백예술대_로고.png|width=100]]]] 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 ||
         || [[안성기]][br](1994) || → ||<#FFFFA1> '''김갑수[br](1995)''' || → || [[이경(1960)|이경]][br](1996) ||
         대한민국의 중견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선보였다. 그가 맡은 역할은 보잘것없고 찌질한 가장부터 근엄한 높으신 분까지 연기 스펙트럼이 넓으며 어떤 역할에도 깊이가 있다. 카리스마를 감춰야 할때는 쭉 감추다가 감정선이 커질 때 그 카리스마를 사정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배역 내내 카리스마를 유지할때도 있는 등, 현역 배우 중 연기력으로 따지자면 거의 최정급에 위치한 배우이다.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작품은 1994년에 개봉한 화 [[태백산맥(화)|태백산맥]]. [[안성기]], [[김명곤]]을 포함하여 [[신현준(배우)|신현준]], [[오정해]] 등등의 젊은 배우들이 기대 이하의 연기를 선보이며, 우익단체의 반대에 협박을 당하였다는 총체적 난국인 황에서 유일한 연기로 압도하고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화 개봉일에 관객들이 사인받으려고 저 네명의 배우에게 많이 몰렸는데, 겨우 1회 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김갑수에게 관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금홍아의 금홍아나 TV 소설 등에서 난장질 치는 아저씨 연기는 일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소령을 연기한 데미안 루이스와 너무 닮아서 윈갑스 소령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대학로 등지에서 꾸준히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로 맥도날드에 가끔 나타나서 일행들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역]]과 [[악역]][* 악역을 예로 들자면 드라마 '타짜'의 아귀, '연개소문'의 수양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국정원 국장 역을 꼽을 수 있다.]을 둘 다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비슷한 타입으로 김중은 연극에서는 경박한 연기도 했지만 TV에서는 그런게 없다!]
         TV 최초 출연작은 유인촌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장미희 TV 복귀작으로 유명한 "역사는 흐른다"였다. 장미희를 사모하고 나중에는 독립투사로 변하는 천민 석하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인을 남겼고 이후에도 특집극 찬란한 여명에서 개화승 이동인 연기, 화 금홍아. 금홍아에서 시인 [[이(작가)|이]] 연기등으로 인을 준 후 대표적인 출세작으로 2001년 방한 [[태조 왕건]]. [[궁예]]의 냉정한 책사 [[종간]] 역을 맡으며 대중에게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이후의 연기도 훌륭하나, 종간 역만큼은 김갑수가 아니고서는 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그 이전에도 연극계에서 유명세를 떨쳤으나[* '님의 침묵'이라는 연극에서 한용운 선생역을 연기함으로서, 그쪽에선 이미 유명인사였다 한다. 관객동원수는 자그마치 약 3만명. 그는 이 작품으로 백 예술대을 비롯 총 5개의 을 받았다. 그는 이 수을 계기로 화 '태백산맥'에 케스팅 되기도 했다.] 이 단 한 편의 드라마로 톱 중년 연기자로 단숨에 발돋움한 그는 그 이후로도 주로 현대극도 꽤 했지만 주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게 된다.
         여기에 또 한번의 대박을 친 것이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의 [[수양제]]. 간지가 흐를 때는 너무 간지가 흐르고 패륜적일 때는 그야말로 수양제의 패륜적인 성격을 완벽하게 잘 보여줘서 주인공 연개소문을 [[페이크 주인공]]으로 전락시켰을 정도.--덤으로 희노애락을 다 볼 수 있었다-- 이후 [[대왕 세종]]에서 [[황희]]로 출연, [[태종(조선)|태종]]으로 출연한 [[김철(배우)|김철]]과 함께 '[[궁예|보스]]와 [[종간|최측근]]' 콤비로 인연을 이어갔으며, [[추노(드라마)|추노]]에서 [[인조]]로 단 몇 장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 파트너에서도 거물급 국회의원 권희수역으로 이중인격적 연기를 잘 선보였다.
         흥행하지는 않았으나 [[무인시대]]에서는 [[최충헌]]으로 분해 난세의 간웅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실력을 인정받은 바도 있다. 특히 젊었을 적의 이을 쫓는 모습과 젊었을 적 처단하고자 했던 난신적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노년의 모습의 대비가 극명히 드러났던 마지막 화의 장면은 명장면으로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한 2004년 SBS 제작판 [[토지]]에서는 악역 조준구로 출연, 비열한 캐릭터 역할도 소화해낸 바 있다. '''즉, 사극에만 나왔다 하면 그 실력과 [[미친 존재감]]으로 주인공들을 잡아먹는 분이시라는 거.'''
         의외로 2004년에 [[웅시대]]라는 드라마에서 고 정몽헌 회장으로도 분하여 투신자살하기까지의 고뇌와 아버지 [[정주]] 회장([[최불암]] 분)이 내린 대북방사업을 완수시키기 위해 분투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직후 정몽헌 회장 1주기 추모식이었는데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을 간지나게 완벽하게 소화한 그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참석해줄 것을 청하기도 해서 실제로 추모식에 다녀오기도 했다.
         1999년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당시로선 파격적인 KBS 드라마 '슬픈 유혹'에서 주진모와 연인 사이로 나오기도 했다.[* 키스신도 있었다!] 극중 자고있는 주진모의 등(그것도 헐벗은 황)을 보고 '''무언가를 느껴야 하는''' 장면이 가장 연기하기 힘들었다 한다.~~[[감비노]]도 궁금해 하더라고 [[등짝을 보자]]~~ 무릎팍 도사와의 대화중, '쌍화점에서 주진모와 조인성이 동성간의 사랑을 연기했는데 봤느냐?'라는 질문에 '''[[오유가또|진모가 또]]?'''라는 발언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2003년]]에 [[장화, 홍련]]에서 [[염정아]]의 남편이자 [[임수정]], [[문근]]의 아버지 역을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7년후 [[신데렐라 언니]]에서도 문근의 아버지로 출연. 이와 비슷하게 [[2006년]]에 드라마 [[연애시대]]에 [[손예진]]의 아버지로 출연했는데 2012년 제작중인 화 [[공범(화)|공범]]에서도 손예진의 아버지로 나온다. 근데 둘 다 사이가 별로. 특히 공범에서는 손예진이 아버지를 납치범이라고 의심하는 설정.
         이하게도 출연하는 작품마다 [[사망전대|극중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단명]] [[전문]] [[배우]]라는 평을 얻고 있다. 특히 [[2010년]] 들어 출연작에서 맡은 배역들이 연이어 사망해서[* 아이리스, 거 김만덕, 제중원, 신데렐라 언니, '''즐거운 나의 집'''.] [[사망전대]]에 포함시켜야 된다는 의견이 있다.[* 연륜이 많아 비교적 비싼 준주연을 일찍 극에서 하차시킬 수록 제작비는 세이브된다는 원리도...] 이게 본인에게는 이미지가 굳어질까 해서 달갑지 않은지 아예 [[무릎팍도사]]에 한 번 나와서 '이 신세를 어떻게 하면 탈피할 수 있겠느냐'고 고민 담을 했을 정도.[* 물론 프로그램 특성 진지한 질문일 리는 없다.] 떠오르는 [[사망 플래그]]시다.
         [[SK텔레콤]]의 Hoppin[* 이후 SKT와 [[SK 플래닛]]이 분사할 때 SK 플래닛으로 넘어갔다.]이 출범할 때 광고에서 아예 이 컨셉을 써먹었다. --읔잌엌!--
         이번엔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드라마)|즐거운 나의 집]]에 출연, 출연 1분 20초[* 그것도 1회 방송의 2분 54초부터], 극 시작 3분만에 죽음을 맞이하여 6번째 사망 및 최단기간 사망 기록을 갱신하게 되었다. ㅎㄷㄷ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김갑수씨 본인은 "죽음이란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화면 에서는 금방 사라져 버리지만 중요한 역할이어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극 중 [[회]]신을 통해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나왔던 장면을 다시 트는 회 씬에 나와도 출연료는 지급된다. 심지어 [[정]] 사진으로 나와도 준다. 물론 직접 나오는 것에 비하면 일정 비율로 깎고 주지만. ~~안 찍고도 돈은 받으니 배우 입장에선 좋다고 해야 하나?~~]
         [[SBS]] [[월화 드라마]] [[귓속말(드라마)|귓속말]] 9회에서는[* [[2017년]] [[4월 24일]] 방분.] [[강유택(귓속말)|강유택]]([[김홍파]])을 청자를 내리쳐 죽이면서 본격적으로 사망 전문 배우 타이틀을 떼어냈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2017년 [[화]] [[강철비]]에서 [[정찰총국]] 국장 '리태한'역으로 나왔다가 [[KEPD 350|타우러스]] 맞고(...)[*스포일러 4발정도가 날아가고(...), GPS 신호가 끊기는 장면으로 간접적 묘사.] --또 --죽었다.
  • 김형준(배우,가수) . . . . 158회 일치
          * 위 문서: [[SS501(아이돌)]], [[Double S 301]]
         ||<#00BFFF> '''학력''' ||대구초등학교[br]대구중학교[br][[대구고등학교]][br][[경기대학교]] 다중매체 학과[br][[경희사이버대학교]] 정보통신학과||
         ||<#00BFFF> '''별명''' ||자라, 거북[* 목이 길어서 붙었다.], 김오피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성씨를 합친 별명, 데뷔 초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여 붙여졌다.], [br]인형준[* 인형+형준의 합성어. 말 그대로 인형처럼 예뻐서 붙여졌다. 비슷한 별명으로 프랑스 인형이 있다.] ,아카짱[* 아카(애기)+짱(친애를 뜻하는 일본의 경칭) 일본 활동 때 일본 현지 스텝이 붙여준 게 시초로 멤버들과 팬들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별명. 행동이나 얼굴, 성격이 애기같아서 붙였다고 한다.], 김자라[* 성+자라. 목이 길어서 자라 같다고 붙여졌다.], [br]기명준, 막내온바닥[* 막내온탑의 반대말, 동시대 아이돌들이 다 막내온탑, 실세를 맡고 있을 때 --심지어 그룹 내 동갑 멤버는 서열 1위-- 거의 혼자 막내둥이 취급을 받았다. 서열순위 꼴지. 형준에게 하극은 없다. 그저 막내일 뿐...], 깐준[* 앞머리를 깐 형준], [br]쪼꼬쭌[* 럽라디 때 베이비펌을 하고 나오자 팬들이 본인이 키우는 푸들인 쪼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쭌디제이[* 쭌+DJ. SBS 라디오 김형준의 뮤직하이에서 디제이를 맡으면서 본인이 직접 붙인 별명], [br]쭌[* 멤버들이 부르는 애칭이다.], 스에꼬[* 일본어로 막내라는 의미. 이름이 비슷한 김현중과 구분하기위해 쓰였다. 반대로 김현중은 리다], --인왕--[* 인자한왕자 줄임말로 본인은 시키면 무조건 다한다고 그래서 인왕]||
         ||<#00BFFF> '''팬사이트''' ||[[http://www.kimhyungjun.kr/|김형준의 프리티보이]]||
         >'''SS501와SS301의 막내 김형준 입니다.[* 301 유닛 활동을 하면서 아직도 막내, 원한 막내라고도 한다.]'''
         == 세 ==
          * 데뷔 초에 팬들이 생일파티를 해줬는데 펑펑 울었다. 할머니가 오셔서 달래 주셨는데 거기서 할모니라는 전설의 을 남겼다.
          * 2007년 1월 7일 [[인기가요]]에서 지파 첫 1위를 발표 하자마자 혼자 울음을 터트렸다.
          * 취미는 화감, 컴퓨터, 수하기 스키 타키이다.
          * 똑똑해 보여도 당한 [[백치미]]가 있다.
          * 야채중에 추랑 시금치를 좋아한다.
          * 연예인 중 이형을 뽑자면 [[BoA|보아]]이며 데뷔 초부터 보아를 좋아했다.
          * 가수 윤수일과 일본배우 카시와바라 타카시 대만의 배우겸 가수 오존을 닮았으며 국배우 [[데이비드 테넌트]] 닮은꼴 1위에 선정됐다.[[http://v.entertain.media.daum.net/v/20080226120910214?f=m|#]]
          * 매사에 밝고 천진난만한 성격이라 누구와도 잘 친하게 지내며 SS501 멤버들과도 같이 손잡고 화장실가고 --뽀뽀하고-- 할 정도로 친하다. 특히 박정민이랑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둘이 있으면 늘 티격태격격 하는 사이지만 한편으로 서로 챙겨주기도 해서 절친이다.
          * [[소녀시대]] [[써니(소녀시대)|써니]]의 본명인 순규라고 부른 사이로 친하다.
          * 배우 [[이현우(배우)|이현우]]랑 연예인 축구팀 FC 어벤져스 소속에서 같이 축구 하는 사이로 친한다.
         그룹에서 막내 포지션을 맡고있다. 데뷔 초 곱한 얼굴과 막내라는 이유로 --비주얼 멤버는 노래를 못한다는 인식에 따라-- 노래를 못할 꺼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많은 파트와 안정적인 라이브 덕분에 그런 말은 빠르게 사라졌다. 19살에 막내로 데뷔했지만 중학생 때 부터 장장 5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기 때문에 멤버들 중 최고참이며 노래, 춤, 랩 등 많은 포지션을 담당할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하다. 그래서 그런지 [[SS501(아이돌)|SS501]]에서 가장 많은 포지션을 담당한다. 화음, 코러스, --센터--, 랩, --기염-- 등. 노래를 잘 들어보면 본인 파트 외에도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목소리가 낮고 힘이 있어서 멤버들의 목소리가 묻히는 걸 수도 있다...-- --박정민 빼고 다들 하이톤--
         허생이 음역대가 높고 넓은 메인보컬 이라면, 김형준은 음역대는 좁지만 안정적인 보컬로 노래 전체를 받혀주는 미들톤의 리드보컬이다. 그래서 보통 아카펠라를 할때, 김형준이 먼저 음을 찾고 멤버들이 그 음에 맞춰서 자기 음을 찾는다. 비음이 꽤 있는 편이다. 톤이 중음이라 그런지 발라드랑 댄스곡 둘 다 어울린다. 다만 댄스곡은 강렬하고 시끄러운 것보단 소프트, 세미 정도가 어울린다.
         '경고'에서 허생이랑 함께 파트가 많이 배정 되었는데 1, 2절을 나누어서 불렀고 2절이 끝나고 마지막 파트를 넘어가는 부분에서 허생이 고음을 내지르면 이어서 김형준은 거기에 맞추듯 노래를 불렀다. 'Snow Prince'에서 파트가 당히 적었지만 'Fighter'때 허생이랑 함께 파트를 제일 많이 배정 받았다. 'Unlock'에서 파트가 당히 줄었지만 이 노래에서 김형준이 가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4Chance'에서 1절 첫 소절과 하이라이트 중간에서 단독파트가 단 6초밖에 없었다. 하지만 '겁쟁이'에서 하이라이트에서 혼자 불렀다. 'U R Man'에서 허생, 김형준이랑 1, 2절 파트를 나누어서 불러 파트가 많이 배정 되었다. '내 머리가 나빠서'에서 허생, 김규종이랑 배정된 파트는 비슷했다. 허생이 1절 하이라이트는 단독으로 불렀고 2절 하이라이트는 김형준이 단독으로 불렀다. 그러나 . 'Deja Vu'에서 파트는 당히 줄어 들었다. '널 부르는 노래'에서 단독으로 부르는 노래가 단 한 파트가 없고 랩만했다. 'Love Like This'에서도 적은 파트를 배정 받았고 'Love Ya'에서도 랩을 제외하고는 보컬 파트는 적었다.
  • 서유리 . . . . 158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3, top1=성우/한국, top2=대원방송 성우극회, top3=광역계)]
         ||<:><#cccccc>'''이름'''||'''서유리'''(Yuri Seo)[* 개명 전 서은.] ||
         ||<:><#cccccc>'''학력'''||[[계명대학교]] 연극화학 (중퇴) ||
         [[대한민국]]의 방송인, [[성우]], [[배우]], 스트리머, 前 코스튬 플레이어. 본명은 '서은'이었으며 2008년 8월에 '서유리'로 [[개명]]했다.
         [[2017년]] 현재 성우계, 연예계 모두에서 인지도를 쌓고 있는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성우.[* 일본 성우들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 [[성우/현황]]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 성우들은 단순히 성우가 아닌 '배우' 그리고 '연예인'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 편. 오프라인 행사에 섭외된다거나 라디오, 지파 방송에 출연하는 건 기본이고 배우로서 연기를 선보인다거나, 가수 등 음악쪽 아티스트로 데뷔하여 본인 명의로 앨범 발매, 콘서트를 여는 성우들도 많다.] 방송 활동을 통해 가장 널리 알려진 성우라고 할 수 있다.
         [[손여지]]의 뒤를 이어 [[던전 앤 파이터]]의 2대 라디오 진행자이자 과거의 3대 [[던파걸]]. 본래 [[라그나로크]] 팬사이트 [[라그나게이트]]의 음악방송으로 유명했다. 라그나게이트 내에는 '''로나교'''라는 이름의 단체까지 있었을 정도.
         던파걸 시절, 다른 던파걸은 다 본명으로 활동했지만 혼자만 '''로즈나비'''라는 닉네임을 썼다. 던파걸 출신이면서 던파라디오 진행에 여귀검사 성우까지 하게 되었기 때문에 [[던전 앤 파이터]] 내에서는 당한 입지를 가진 인물이다. 직전 던파걸이 진행 미숙 문제로 당히 일찍 바뀌었는데, 그 전부터 활동하던 로즈나비를 끌어들인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사실 던파걸들은 일반인 대이기 때문에 [[국어책 읽기]]식의 어색한 진행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서유리는 그나마 제일 나았던 던파걸에 속한다. 하지만 던파 라디오 진행이 계속되다 보니 로즈나비도 입나비나 로즈나방이라고 까였다.
         던전 앤 파이터 활동 외에도 성우 [[강수진(KBS 성우)|강수진]]과 함께 인터넷 애니라디오 [[우락부락 판타지]]의 진행도 했다.[* 여기서 게임 [[어이쿠! 왕자님 ~호감가는 모양새~]]을 만든 팀([[대인배들#s-2|대인배들]])을 불러 담소를 나눈 적이 있는데, 강수진 성우는 이 장르(...)에 큰 관심을 가져 그 자리에서 드라마 CD 제작을 제안했다. 그리고 강수진은 [[아스터 바사 에이션트]] 역을 맡게된다.] 강수진과는 1회 대구코믹월드 때 게스트와 사회자 사이로 만난 게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리니지2의 드워프걸을 하기도 하는 등 이쪽 세계에서는 발이 당히 넓은 인물. 특히 [[코믹월드]] MC는 7~8년 전부터 했지만 메이저 데뷔 이후 그만둔 태. 몇 명을 거치고 거쳐서 지금은 [[초콜릿파우더]]의 성아가 MC이다.
         '''그녀의 원한 간판기이자, 그녀를 징하는 말.'''[* 여담으로 이게 왜 흑역사인지 진짜로 이해 못 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하니(EXID)|하니]].]
         이 시절 [[짤방]]으로 [[http://i.imgur.com/FxlnXlh.gif|이름하야~ 열파참!]]이 있다. [[https://youtu.be/g7yV6byQguQ?t=55s|동.]] 다만, 본인은 싫어하므로 적어도 본인에게는 자중하도록 하자.
         현재는 [[포기하면 편해|본인도 포기하고]] [[http://blog.naver.com/aceman88?Redirect=Log&logNo=80195167090|자폭용]]으로도 쓰고 있다. [[SNL 코리아]] 미공개 에서도 이 열파참을 개그 소재로 써먹었는데, [[김구라]]가 열파참으로 로즈나비를 깠다! 게다가 자신이 진행하는 스타의 흑역사와 관련된 것을 주제로 다루는 M16에서도 열파참을 언급했다! 이젠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그리고 나이트와 엘븐나이트 소개 에서 22초쯤에서 "어느 순간 저에게 각인돼 버린 열뭐시기...."하면서 매우 빡친 모습을 보여줬다. 6분 30초에서는 "열... 열... 뭐시기 시키실까봐.... 하면서 추가로 빡친다.[[http://youtu.be/efiemKHGDqc|링크]]
         [[마이 리틀 텔레비전]] [[백종원]]의 방송에서 시식을 하던 중 열파참이 소재로 나오기도 했다. 생방송 중에 서유리가 등장하면 높은 확률로 채팅창에 열파참이 도배될 정도. 하니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열파참이 나왔다. 요즘은 마리텔 채팅창에 앵무새 드립이 맹비난 받는 황이라 자제 분위기. 마리텔에서 [[쿡방]]을 하는 진행자의 경우 식재료를 의미하는 건가 하는 식으로 되묻기도 했다([[오세득]] 편에 게스트 출연한 [[이찬오]]의 경우 열무+파김치+참치로 알아들었다). 9월 27일 MLT-12 김구라 방송에서 아예 열파참 사연을 가지고 서유리 본인을 데리고 부관참시를 시행했다. 11월 8일 MLT-15 [[이말년]] 방송에서는 서유리 초화를 그려주던 도중 채팅방이 열파참 분위기로 가자 이말년이 열 뭐시기 하시면 안됩니다! 라고 제지해놓고 정작 본인이 직접 시전하여 [[침착맨|빼씬맨]]이 괜히 빼씬맨이 아님을 보여줬다. 1월 3일 MLT-19 오세득 방송에서도 열파참이 언급되었다. 언급되자마자 '부르셨습니까?' 하고 찾아왔다. 그리고 만두 다 되면 부르겠다고 하였고 예정대로 불렀는데 비주얼이 별로라고 디스(?) 하였다.
         2015년 던전 앤 파이터가 10주년을 맞이해 "'''열'''번째 '''파'''티에 '''참'''여하세요!"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던파채널 D라는 동을 만들어 서유리의 열파참과 귀검사 공통스킬 열파참에 대한 세한 설명을 한 것은 덤. [[https://twitter.com/yuri_voice/status/619812753599954944|하지만 열파참 행사에 섭외는 없었다고 밝혔다.]]
         2016년 [[맥심(잡지)]] 어워드 시식에 참석해 베스트 커버 모델(다다익선 )을 수하고 수 소감을 말하면서 다시 열파참을 [[https://youtu.be/yuNGYPSaAHE|시전했다.]]
         2013년부터 서유리가 나레이션 성우를 하고 있는 [[청룡]]측에서 표창장을 주었는데, 여기에 '룡파참'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서유리는 이를 [[https://www.instagram.com/p/BNONI9GjTfr/?hl=ko&taken-by=yurise0|인스타그램에 인증했다.]]
         2017년 서유리가 성우로 참가한 빅스비 음성 중 [[https://www.instagram.com/p/BXzU_r_gMZO|열파참 항목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렇게 삼성 역사에 열파참이 남겨졌다~~ 녹음당시에는 다른 핸드폰을 썼지만 이후 [[갤럭시 S8]]을 구입했다. 인스타 도 본인 핸드폰을 찍은것. 결국 던전앤파이터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49096065114453&id=210636285627112|제보]]가 올라가고야 말았고 댓글은 열파참으로 도배되고 말았다. 이것만으로 끝나면 또 모르겠는데, 빅스비에 대고 '열파참 서유리' 또는 '서유리 열파참'이라 말하면 "열파참 하면 서유리, 서유리하면 열파참이죠"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이름하야 열파참"은 그냥 인터넷 검색으로 이어진다~~
         == [[고라인|원히 고통받는]] 서유리 ==
         이런 그림이 올라오는 사정을 알면서도 본인 스스로 팬아트 그리기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약쟁이]]들이 몰리면서 [[역관광/이벤트|하나같이 괴악한 팬아트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가끔 정적인 팬아트가 몇몇 올라오긴 했지만, 대부분은... [[더 이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본인은 위트섞인 반응을 보이면서 대부분 받아들이고 직접 SNS에 소개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물론 다수인만큼 이런 부류의 팬아트가 대다수 수되었다고 한다. 수이 끝난 현재도 페이스북 계정을 들어가보면 괴악한 팬아트는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http://sccdn.chosun.com/news/html/2015/11/09/2015111001000989300063231.jpg|이말년이 마리텔에서 선보인 서유리 팬아트]]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157회 일치
          >매력적인 독재자는 자신의 권력과 무자비함을 권력 유지에 쏟아붓는다. 이 인물은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매력적인 협가다. 하지만 하루하루 통치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며, 그의 권력 이면에는 부패가 들끓고 있다.
          주요 인물: 국의 [[에드워드 8세]], 페르시아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울부짖는 어릿광대는 훌륭한 연극 배우다. 민중은 그를 나라를 구하고 과거의 광을 되찾을 강력하고 능력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장과 수사의 가면 뒤에는 나약하고 허심 많은 얼간이가 숨어있을 뿐이다. 진정한 그를 아는 사람은 그를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긍정적인 효과: 평화시 호전도가 한달에 0.4씩 감소, 민주국가 대로 동맹 성공률 +15%
          >자애로운 신사는 매력적이며, 선거에서 이기는데 도가 텄지만,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끄기에는 조금 부족한 인물이다. 황이 안 좋아지면 미소를 지으며 황이 바뀌기를 기다릴 뿐이다.
          주요 인물: 국의 [[조지 6세]]
          >하찮은 비전문가는 어떤 야망이나 정치적 관심사도 없는 인물이다. 사람들이 이 인물을 쫓아내려 하지 않는 이유는 이 인물이 당히 무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이 인물보다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고집 센 고립주의자는 자신의 국가를 전쟁과 국제정치의 난장판으로부터 지키려고 한다. 이 인물이 외국과의 협조를 어떻게 여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어떤 황에서도 조국의 주권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인기있는 허수아비는 정부 체계 으로는 작은 힘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인기 때문에 그는 어떤 권력자라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 되었다.
          >권력에 굶주린 선동가는 복수심과 증오로 불타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는 민중들을 매료할 수 있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그는 세을 지배하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만드려는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
          * 긍정적인 효과: 평화시 호전도가 한달에 0.5씩 감소, 독재국가 대로 동맹 성공률 +25%
          >체념한 총통은 무정부주의와 대중 의견이 나라를 무너뜨리는걸 막기 위해 권력을 잡았다. 정치적 언쟁에 질린 이 인물은 자신이 군대를 지휘하던 것처럼 국가를 운하려 하고있다. 여전히 그는 능숙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다.
          >근엄한 제국주의자는 흔들림 없는 제국주의자다. 그에게는 매력도 천재적인 관리 능력도 없지만 단 한 가지는 가지고 있다. 자신의 국가를 좀 더 나은 태로 만드려는 광신적 열정 만은. 정치적 방법이건 군사적 방법이건, 그는 그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주요 인물: 국의 [[조지 5세]], 스페인국의 [[프란시스코 프랑코|프란시스코 프랑코 바아몬데]]
          * 긍정적인 효과: 해군 생산 비용 및 시간 -5%, 모든 병력 조직력 회복률 +10%, 지휘관 능력치 효율 +10%, 보병 사단과 기병 사단의 공격 능력 +10%, 보병 사단과 기병 사단의 방어 능력 +5%, 지군 속도 +10%, 지군 조직력 +10%
          * 부정적인 효과: 소비재 필요량 +12%, 향력 행사 성공률 -20%
          * Democratic Idealist(민주주의의 이가) - 미국의 우드로 윌슨
          * Democratic Idealist(민주주의의 이가) -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긍정적인 효과: 불만율 증가량 -5%, 공업력 +5%, 자원 생산량 +5%, 공장 생산 시간 -5%, 산업기반 생산 시간 -10%, 소비재 필요량 -5%, 향력 행사 성공률 +10%, 동맹 성공률 +10%, 협 성공률 +10%, 향력 행사 비용 -5, 동맹 제안 비용 -20, 동맹 초대 비용 -20, 동맹 참가 비용 -6, 모든 병력 조직력 회복률 +5%
          * Paranoid Megalomaniac(편집증 걸린 과대망증 환자) - 소련의 이오시프 V. 스탈린
  • 슈가(방탄소년단) . . . . 150회 일치
         ||<:><#00CED1>{{{#fff '''학력'''}}} ||<(> 태전초등학교 (졸업)[br]관음중학교 (졸업)[br][[강북고등학교]] (전학) → [[압구정고등학교]] (졸업)[br][[글로벌사이버대학교]] 방송연예학과 (재학) ||
         ||<:><#00CED1>{{{#fff '''별명'''}}} ||<(> 설탕, 민슈가[* 본명인 민윤기와 예명인 슈가를 합친 것. 자매품으로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이 있다. ~~feat. 민윤기천재짱짱맨뿡뿡아 울지마라~~], 민피디[* 슈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다.], 슙기력[* 슈가 + 무기력], 민가마니, 슙슙이, 고유슈가, 민빠답, 윤기선배, 양꼬치 듀오[* [[정국(방탄소년단)|정국]]과 함께. 둘이 양꼬치를 자주 먹으러 간다고 한다. 옥수수 국수도.], 사탕[* 중국 팬 한정. [[중국어]]로 "탕탕" 이라고 발음된다. 설탕(슈가) 또는 사탕을 뜻하는 '탕(糖, táng)' 자를 두 번 연이어 쓴 것. 한글로 독음할 경우 '당당(糖糖)'], [[Agust D]][* 솔로 활동명. 2016년 8월 동명의 이름으로 믹스테이프를 공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Agust D]] 항목 참고.],[br]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V앱 스타캐스트 참고.], 민윤지[* V앱 달려라 방탄 11화에서 여장을 했다.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같이 [[https://twitter.com/BTS_twt/status/826697453105606656|셀카]]를 찍고 SNS에 민윤지(하트)라고 올렸다.], 슙디[* 꿀FM에서 슈가슈가슙디... 라고 DJ를 맡았었다.], 송월[* 트리비아 항목 참고.], [[메타몽]], 미늉기, 민다가오지마[* [[LOVE YOURSELF 承 'Her']]의 컨셉포토 사진 때문에 생긴 별명.], 슈왜노잘[* [[LOVE YOURSELF 承 `Her`]] 앨범이 발매된 후 김대 음악평론가가 올린 트윗에서 유래된 말이다. [[https://twitter.com/toojazzy25/status/909994408468029440|슈가 왜 노래 잘하지?]]], 민덩방아[* [[RM]]이 준 의자를 받자마자 엉덩방아를 찧고 아픔을 호소했는데, 이를 [[RM]]이 민덩방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A.R.M.Y|아미들]]은 슈가 놀리려고 실시간 트렌딩에 올려놨다.--] , 민형[* 민윤기 형을 줄인 말. 데뷔 전부터 민형이라 불렸다고 한다.], 각슈가[* 각설탕(...)], 민설탕, 민달팽이[* 초등학교 때 흔하게 민 씨들은 민달팽이이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지은 별명이라 한다. [[아는 형님]]에 나왔을 때 한 별명 맞히기에서 밝혀진 사실인데, 예명인 슈가와 관련된 별명을 내면 빠르게 들킬까 봐 민달팽이를 적어서 낸 것 같다.] ||
         >'''항 최고가 되고 싶어 그래서 조급했고 늘 초조했어'''
         예명은 Sugar(설탕)가 아니라 '''SUGA'''가 맞다. 이 예명을 가지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피부가 무척 하얀 데다 웃을 때[* 웃을 때 본인 특유의 입동굴을 보인다. 이 입동굴 때문에 팬들이 팬사인회에서 아랫니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예쁘고 달콤해서 슈가라는 예명을 지었다는 것. 하지만 힙합이 너무 달콤하면 안 된다는 소리에, 'SUGAR'에서 R이 없는 그냥 'SUGA'를 선택했다 한다. 힙합 용어에서 '슈가'는 '중독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학창 시절에 농구부에서 [[슈팅 가드]]를 맡았던 것에서 모티브를 따 줄임말인 '''슈가'''를 선택했다는 것. 모 인터뷰에서는 복싱이 터프하지만 정교한 기술이 필요해 'sweet science'로 불리는 것에서 감을 얻어, 처음에는 스윗해 보이지만 음악적으로 시니컬한 면이 있어 이런 이중적인 면모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슈가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한 믹스테이프인 'Agust D' 뮤직비디오를 볼 때, 소속사에서 공식적으로 올려 준 어 자막을 틀고 보면 '성공'을 'sugar'라는 단어로 번역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난 '''성공'''과 거리가 먼 형들 사이 눈엣가시네 -> I'm a pain in yo' ass too far from the '''sugar'''. 성공을 통해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예명의 본래 뜻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반해 본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매번 예명의 뜻을 설명할 때마다 이유가 달라진다. 때문에 최근에는 뭐 이젠 그런 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요... 하고 답하기도 하였다.
         == 세 ==
         [[RM]], [[제이홉]]과 함께 [[방탄소년단]] 래퍼라인에 속해있다. 귀여워 보이는 외모와 반되는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목소리를 듣고 생각보다 낮다며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Rap|랩]]을 할 때는 평소보다 한 톤 올라간다. 음색이 날카롭고 강해서 랩을 할 때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되는 스타일. 다만 보컬이나 코러스 부분에서는 음색이 타 멤버들 사이에서 튀는 편이다. 때문에 화양연화 Epilogue의 '불타오르네'의 후렴구 "Fire~" 부분에서는 유일하게 슈가의 목소리만 찾아볼 수 없다. [* 3주년 기념 꿀FM에서 발췌.[[https://youtu.be/JcYjKdZUFJs?t=1m49s|#]] 그 사이를 못 참고 슈가 따라하는 [[오늘만 사는 사람|낼없사]] [[정국(방탄소년단)|정국]]이 압권.]
         믹스테이프의 경우 사용되는 어휘가 대체로 수위가 높은 편. 정규곡에선 자유롭지 못한 약간의 욕설, 비속어나 은어 등의 사용이 많은 편이며 일부 팬들은 이를 조각 모음하여 으로도 만들기도 한다. 다만 적절한 타이밍에서의 비속어의 사용으로 가사 전달이 훨씬 솔직하면서도 강렬하게 느껴진다.
         직설적인 가사로 인해 심의에 통과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명 '''프로 불통러'''. 특히 [[WINGS]] 앨범에 수록된 슈가의 솔로곡 First Love의 경우 [[방탄소년단]] 멤버의 솔로곡 중 유일하게 심의에 통과하지 못했다. 매 앨범마다 심의에 통과하지 못하는 곡들이 나오는데 팬들의 반응은 '''윤기가 또?''', '''역시...'''가 다반수이다. 심의에 통과하지 못해 걱정하기보단 이젠 즐기는 수준. 본인도 딱히 심의에 관해 별 관을 안 하고 자유롭게 가사를 쓰는 것 같다. 필요할 때는 서정적이고 섬세한 가사도 잘 쓰는데, 이 역시도 독특한 어투와 어휘 사용, 특유의 날카로운 래핑 등으로 인해 슈가만의 감성이 느껴진다.
         [[치아교정]] 중임에도 불구[* 교정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설측교정]]이기 때문. 간혹 직찍에서 아랫니 안쪽에 자리한 교정기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방탄소년단]] 콘텐츠 중 하나인 본보야지에서 같은 멤버인 [[뷔]]가 자일리톨을 권하자 교정 중이라 안 먹는다고 거절하기도 하였다.][* 교정은 피 땀 눈물 활동 당시 끝났다고 한다.]하고 '''당히 딕션이 좋다'''. 특히나 [[설측교정]]의 경우 이물감 때문에 발음을 할 때 거슬리며, 쉽게 발음이 새어나가 딕션이 뭉개질 수 있음에도 꽤나 정확한 딕션을 구사해낸다. 현재로썬 교정이 끝난 태. [[http://m.photoviewer.naver.com/blog?listUrl=https%3A%2F%2Fm.blog.naver.com%2FPostView.nhn%3FblogId%3Dkiss006969%26logNo%3D220888204195&imgId=1&host=https%3A%2F%2Fm.blog.naver.com%2Fphotoviewer&historyBack=true&blogId=kiss006969&logNo=220888204195#main/1|2016년 10월]] 게다가 성량도 큰 편인지라 라이브 중 음향이 좋지 않다 싶으면 더욱 소리내어 랩으로 음향을 다 씹어 먹어버리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IffCdGkGsk&feature=youtu.be|전설의 서가대 쩔어]]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39&v=UUZSgv0sqC4|171101 불타오르네]] 음향이 [[더 이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인 [[SBS 가요대전]]에서 [[https://twitter.com/nojam__nolife__/status/945253643166433282?ref_src=twcamp%5Ecopy%7Ctwsrc%5Eandroid%7Ctwgr%5Ecopy%7Ctwcon%5E7090%7Ctwterm%5E3|씩~ 웃고, 한마디 쉬고, 라이브 인증.]]
         두 번째 미니 앨범인 <[[SKOOL LUV AFFAIR]]> 때부터 본인이 프로듀싱한 곡을 꾸준히 트랙리스트에 올리고 있다. 본래 진로를 [[프로듀서]], [[작곡가]]로 잡은 적도 있었던 만큼 [[싱어송라이터]]가 많은 [[방탄소년단]] 내에서도 작사, 작곡에 많은 공을 들이는 멤버 중 하나이다.[* 3년 전 방시혁 프로듀서의 [[https://youtu.be/8XKDXHdj95s|'대방의 기썬을 제압해']]라는 홍보 으로 알려진 오디션에 참가하여 2등 수, 그 후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사실 아이돌이 되는 줄 모르고 참가했다고 한다.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아서 작곡가 등으로 활동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이 말을 들은 팬들은 우스갯소리로 사기 계약을 당했다고 말한다.] 연습생 시절 '1DAY 1VERSE'라 하여 하루에 한 곡씩을 꼬박꼬박 쓰며 실력을 쌓는 등의 작업도 했었고, 데뷔 후인 현재에도 음악 작업을 즐기고 또 열심히 한다. 1년에 한 200곡은 만드는 것 같다고.
         2016년 10월, 정규 2집 "[[WINGS]]" 전반에 걸쳐 크래딧을 올렸으며[* 다만 타이틀 곡 "피 땀 눈물"에 대해선 '너무 더럽지 않나요' 라며 은근 반대를 했었던 모양. --분비물로 이루어진 제목이라니-- 그러나 그의 예(?)과 달리 "피 땀 눈물"이 초대박을 터트리면서, 이에 대해 [[RM]]은 슈가를 "[[방탄소년단]]의 [[펠레의 저주|펠레]]"라고 평가했다(...)] 솔로곡 "First Love" 또한 수록했다. 믹스테이프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향해 달려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었으며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다.[* 해외, 그 중에서도 북미를 비롯한 서구 팬들은 '노래에 가수의 혼이 얼마나 녹아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는 편'이다. [[http://news.joins.com/article/20830100|#]] 때문에 다소 어둡고 진지하더라도 자서전적인 내용을 담아낸 슈가와 [[RM]]의 가사가 서구팬들에게 공감을 얻는다.]
         본인의 믹스테이프의 마지막 트랙인 "So Far Away"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가수 [[SURAN|수란]]의 디지털 싱글 "오늘 취하면(Feat. [[창모]])"을 작곡 및 프로듀싱하여 2017년 4월 27일 음원이 발매되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인 슬로우 래빗과 공동 작곡, 프로듀싱이다.] [[http://m.sportschosun.com/news.htm?id=201704220100204200014681&ServiceDate=20170421&f_url=#_adtep|기사]] [[방탄소년단]]과 본인이 아닌 타 아티스트의 프로듀싱에는 처음 참여한 곡으로, 슈가와 수란에게는 꽤나 의미가 큰 곡인데, 수란의 경우 언더 가수에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슈가는 발매 이후 각종 음원 사이트 순위 1-2위를 다투고 멜론 [[http://www.melon.com/chart/month/index.htm#params%5Bidx%5D=1¶ms%5BrankMonth%5D=201705¶ms%5BisFirstDate%5D=false¶ms%5BisLastDate%5D=false|5월 월간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리스너들의 예을 뛰어넘는 성적과 함께 뛰어난 곡 퀄리티로 큰 호평을 받으며 본인의 프로듀싱 역량을 인정받았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915269|#]] 멜론 [[http://www.melon.com/chart/age/index.htm?chartType=YE&chartGenre=KPOP&chartDate=2017#params%5Bidx%5D=1|2017년 연간 차트 9위]]를 달성하였다.
         '''2017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SURAN|수란]]과 함께 "오늘 취하면(Feat. [[창모]])"으로 핫트렌드 을 수하였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327739|관련 기사]]
         평소 떠오르는 생각을 즉시 메모해 두었다가 곡 작업에 반한다고 한다. [[방탄소년단]]으로서 음악 작업을 할 때는 각자 따로 작업하지만, 서로의 작업물을 한데 모아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함께 모여 의논한다고 한다. [[http://www.marieclairekorea.com/2016/08/celebrity/%EA%BF%88%EA%BE%B8%EB%8A%94-%EC%8A%88%EA%B0%80/|인터뷰]] 2018년 [[시즌 그리팅]] DVD 에서 하루에 한 곡씩은 만들어낸다고 밝혔다.[* 이는 실로 놀라운 것인데 무언가를 창작해 본 자라면 알겠지만 하루에 하나의 창작물은 커녕 일주일, 한 달에 하나를 만들기에도 빠듯하다.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부분.]
         직설적인 랩 가사와 강렬한 랩 스타일과는 반되게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의 미남이다. 그렇기에 얼굴만 보고 '얘는 당연히 보컬이겠지' 했다가 후에 래퍼임을 알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피부가 하얀데, [[방탄소년단]]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한국인 평균 피부색과 비교해 봤을 때도 매우 하얗다. 슈가의 실물을 접한 사람들 말로는 '너무 하얘서 혼자서 조명을 3개는 더 켜 놓은 것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얀 피부 덕에 화려한 색의 헤어가 잘 어울린다. 때문에 그룹 안에서 머리색이 가장 자주 바뀌는 멤버이다. --여담으로 너무 염색해서 탈모 오면 빅히트에 청구할 거라고...--[* 워낙 피부가 하얗고 깨끗한 탓에 어떤 색의 헤어든 다 소화해내서 팬들 사이에선 퍼스널 컬러 파괴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슈가의 퍼스널 컬러를 따지자면 데뷔 초의 주황, 붉은빛이 도는 브라운보다는 톤 다운된 자몽, 애쉬, 노란끼 섞인 민트, 자연 흑발 등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볼 때 가을 뮤트(소프트 or 라이트 그레이시)로 추정된다. 팬들 사이에서도 최애 머리를 고르라 하면 의견이 갈린다.]
         하얀 피부로 인해 주로 톤다운 메이크업[* 무대 위 조명이 강하기 때문에, 피부가 너무 하얗다면 화면 에서 이목구비가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톤다운 메이크업을 한다.]을 하기 때문에 간간히 실제 피부색과 차이나는 얼굴색을 발견할 수 있다. [[https://twitter.com/rolminsugaex/status/870401381546561536?ref_src=twcamp%5Ecopy%7Ctwsrc%5Eandroid%7Ctwgr%5Ecopy%7Ctwcon%5E7090%7Ctwterm%5E3|참고하자]] 뿐만 아니라 화보집에서 얼굴, 손과 차이나는 피부 색이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https://twitter.com/helloygya/status/899626631307812865|본격 피부색 #FFFFFF 확인]]
         웃을 때 입매가 시원하게 찢어지며 생기는 입동굴이 심히 귀엽다. 웃었을 때 생기는 입동굴 탓에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인 [[어피치]](특히 아기어피치)와 닮았다. [[방탄소년단]] 팬이 '우리 애기어피치 ㅠㅠ 끙끙' 하면 십중팔구 주어는 슈가다. 때문에 팬사인회에서 팬들이 아기어피치 품들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https://twitter.com/helloygya/status/914352147600261120|내가 덕질하는 게]] [[https://twitter.com/caresuga/status/834773638414864385|슈가인지]] [[https://twitter.com/suga930309com/status/914097583051517952|아기어피치인지]]
         아기어피치뿐만이 아니라 찹쌀떡스러운 얼굴에 점처럼 박힌 눈, 웃을 때 커다란 입인 캐릭터와 대체적으로 닮았다. 예를 들자면 [[지방이]], [[포켓몬스터]]의 [[우파]], [[누오]], [[메타몽]]. 이는 [[방탄소년단]] 멤버들 피셜로 증명된 것인데 2017년 슈가의 생일에 올라온 사진에 있는 멤버들이 그린 [[https://imgur.com/sMAY6qG|그림]]을 보면 지방이와 우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한참 한국에 [[포켓몬 GO]]가 유행했을 때 같은 멤버인 [[RM]]이 누오에게 온순한 슈가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https://twitter.com/BTS_twt/status/836489701561356288|#]] 또한 한때 팬들 사이에선 메타몽짤과 함께 야 호바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슈가와 싱크로율 100%인 메타몽과 말투가 잇 포인트다. [[https://twitter.com/JIMINLOVE1o13/status/905450603551137792|야]] [[https://twitter.com/URBlossomStar/status/901760359660265473|호바]]
         본인도 이들을 닮은 것을 아는지 자화으로 [[메타몽]]을 똑닮게 그리기도 했다. [[https://cdn.namuwikiusercontent.com/storage/09d0a41a7b844bb53e9ff5c73c1ea010d50bd0094511ac7d18b8a40849ad60090dad9969cf5ca85a6c0c40ec488c24de0fd64e88d25a377ffb22eda2ae516d19f4a1d6f4ff529c64baed8e882690d6c5?e=1514521060&k=Y1bdvZjOPqzI9c4s0dWotw|#]] [[라인]]과 콜라보한 캐릭터인 [[BT21]][*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직접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하였다. 각자 본인들의 모습을 반해 만든 듯하다.]의 [[https://twitter.com/BT21_/status/912503937017589760|슈키]][* 슈가를 반한 캐릭터로 어로는 SHOOKY라 표기한다. 슈키는 조그만한 쿠키 캐릭터인데, 슈키의 이름은 아마도 슈가쿠키의 줄임말일 것이라고 팬들은 추측 중.] 또한 입동굴과 그로 인해 보이는 아기 같은 이빨이 강조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멤버 [[진(방탄소년단)|진]] 다음으로 넓은 어깨로 인해, 그 사이즈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아직까지 확실한 어깨 사이즈가 공개된 적은 없다.
  • 이유리(배우) . . . . 150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FFFFFF ''' 이유리의 주요 수 이력 ''' }}} }}}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5><table bordercolor=#ff0000><table bgcolor=white><bgcolor=#FF0000><:>{{{+1 [[문화방송|[[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5px-Munhwa_Broadcasting_Company.svg.png|width=60]]]] '''[[MBC 연기대|{{{#ffffff 연기대}}}]]''' {{{#ffffff '''대'''}}}}}}||
         ||<:><bgcolor=#353535>'''{{{#white 출생}}}'''||<(> [[1980년]] [[1월 28일]] ([age(1980-01-28)]세), [[경북도]] [[김천시]] 율곡동 (혁신3로) ||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인 KBS의 학원물 [[학교 시리즈]] 《학교 4》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했으나 이 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출중한 외모와 안정된 연기력에 비해 소위 '뜨지 못하는' 연예인으로 많은 사람의 아쉬움을 샀으나 꾸준한 연기활동 끝에 2014년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을 통해 독보적인 악녀 연기를 선보이면서 대박을 쳐 주인공보다 더한 인기를 얻으며 2014년 [[MBC 연기대]]에서 대을 수하며 이후 활발한 연기 활동과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으로 커리어를 꽃 피우고 있는 '''대기만성형 배우'''. 다양한 스펙트럼과 본인만의 색깔로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 세 ==
         독립화 또는 단막극 등에서 조단역으로 연기경력을 쌓아오다가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자 많은 정급 배우들을 배출해 낸 [[2001년]] [[학교 시리즈]]의 《[[학교 4]]》에서 미대 입시생 '박서원'으로 정식 데뷔했다. 극 중 이유리는 삐죽삐죽 솟은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대변되는 반항적이고 강한 이미지와 출연자 중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펼치면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녀는 조연에서 주연급으로 발돋움 하면서 당시 23살의 나이로 청소년 연기을 수한다.
         이 후 KBS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꾸준한 연기 활동을 이어 왔다. 사실 《학교 4》 출연 배우들은 KBS와 2년 전속계약을 맺어 이유리는 이후로도 계속 출연했는데 그것이 거의 공무원 수준이었다. 또 이 시점에는 《학교 4》 출신이었던 [[공유(배우)|공유]], [[임수정]] 등이 굵직한 성공작들을 만들어 내며 주연으로 발돋움한 것에 비해 자신은 조연에 머무르는 처지라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중간에 사라지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아줌마1, 학생1, 학생2가 아닌 내 역할의 이름이 있다는 것, 단역 연기자들에겐 그 마저도 꿈이다. 내게 주어진 것만을 더 항 감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매 순간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01년 KBS 일일극 《사랑은 이런거야》에서는 [[최강희(배우)|최강희]]의 동생이자 한차례 대입 실패로 입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재수생 '오윤아'역으로 분했으며 2003년 한 해에만 KBS 드라마 《아내》에서는 '호([[김승수]])'의 연인 '김윤주'역으로, SBS 일일 드라마 《스무살》에서는 '준([[공유(배우)|공유]])'과 사랑에 빠지는 꿈많은 대학생 '한채리'역으로, KBS 드라마 《노란손수건》에서는 '나미령'역으로 MBC 국방 홍보원 공동 제작드라마인 《[[아르곤]]》에서는 특전사 중사 '강강희'역으로 총 4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이 때에 《스무살》의 주연 제의를 받으면서 《아내》에서 중도하차하게 되자 방송사에 미운털이 박혀 KBS에서 출연정지를 당했다. 설으로《스무살》은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종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후 2004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KBS 드라마 《부모님전서》에서 '안성미'역으로 분한다. 김수현 작가의 가족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복하고 바람잘날 없는 대가족의 막내딸로 현실의 문제를 대변하는 젊은이로 나왔다. 이때부터 소위 '김수현 사단'이라 불리며 김수현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된다.이 후 청춘스타에서 벗어나 한층 성숙한 이미지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폭을 넓히기도 했지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후 너무 이른 나이에 중장년층에게 어필하는 이미지가 고착된 것이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 이유리는 이에 대해 후일 "《부모님전서》 부터 같이 해서 그런지 기자 분들이 김수현 사단이라고 저를 부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제게 기회를 많이 주신 분이고 연기를 통해 배워갈 수 있게끔 해 준 연기사관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한 연기자가 한 작가로 인해 이렇게 많은 기회와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행운아 같다."며 생각을 밝혔다.
         같은 해에 공포 화 《분신사바》에서 '김인숙'역으로 출연했다. 촬 당시 특수렌즈를 끼고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 이유리에게 감독이 갯지렁이를 산낙지라고 속여 갯지렁이를 먹이고 이 사실을 뒤늦게 기사로 알게 되는 등 많은 고생을 하며 찍은 작품이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2005년 MBC 드라마 《재의 전성시대》에서 '재([[김규리]])'의 여동생이자 성공한 억대 연봉의 애널리스트 '주은재'로 분했다. 극 중 성공한 당당한 커리어우먼 역이라 매회 화려한 의과 메이크업으로 미모를 뽐냈다.
         2006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가 1987년 76%의 높은 시청률로 대히트했던 동명의 드라마를 19년만에 리메이크 한 작품인 SBS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막내딸 '박선희'역[* 87년 원작에서는 [[임예진]]이 맡았다.]으로 열연했다. 이유리에게 큰 향을 미친 작품으로 극 중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저는 선희역을 소화하기 위해 평소에도 다리를 직접 끈으로 묶어 다니면서 연습했으며 3회의 눈밭에서 다리를 절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부르짖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한 가족의 대서사시를 그린 작품이기에 극 중 이유리는 81회 동안 10대부터 60대까지 한 인물의 생을 넓게 표현했으며 몸은 불편하지만 심성은 누구보다 고운 선희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2008년 KBS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로 또 한번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의 대가족 막내딸로 출연한다. 극 중 이유리는 '한자([[김혜자]])와 '일석([[백일섭]])'의 막내딸로 대기업 홍보팀에 다니는 야무지고 심성 착한 막내딸로 부모님 속 한번 크게 썩인적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아왔으나 가난한 대학원생인줄 알았던 '정현([[기태]])'과 결혼을 결심하고 그 과정에서 정현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경제력 차이가 큰 집안간의 결혼과정에서 한 번, 결혼 후 우아한체 하나 속물적이고 이중적인 시어머니 '은아([[장미희]])'때문에 또 한번 속앓이 하는 '나미'역으로 열연했다.
         2010년 SBS 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 타이틀롤 '지순'역을 맡아 기존의 지고지순한 이미지에서 적극적으로 쾌활한 역으로 또 한번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줌마가 여러 어려움과 역경을 거쳐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고 사랑도 잡는다는 전형적인 아침 드라마 공식을 따른 드라마. 이유리는 극 중 톡톡튀고 당찬 연기로 캐릭터를 잘 소화했고 드라마는 아침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지키며 괜찮은 성적으로 마무리됐다.
         같은 해부터 활동 역을 넓혀 뮤지컬 《친정엄마》에서 [[나문희]], [[김수미]]와 같은 선배 배우들의 '딸' 역할을 맡아 2012년까지 공연을 소화하며 호평을 받았다.
         2011년 MBC 주말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란'으로 본격적으로 독보적인 악녀연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사실 깍쟁이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는 종종 맡은 적이 있어도 본격적인 악녀 연기는 2002년 《러빙유》이후 9년만이었다. 극 중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산부인과에서 부모가 뒤바뀌는 바람에 가난하기 그지 없는 집안의 둘째딸로 살아가던 중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과 운명이 뒤바뀐 '정원([[김현주]])'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정원을 향해 열등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인물로 열연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출생의 밝혀지기 전 초라한 모습과 정반대로 부잣집에 입성하면서 매 회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이유리도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 작품으로 MBC 연기대에서 우수을 수한다.
         그리고 2014년 이유리의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 의 '[[연민정]]'을 통해 악녀의 절정을 보여주며 매우 호평을 받았다. 막장드라마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김순옥]]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악에 받쳐 패륜을 일삼는 끝판왕 악녀 연민정의 삶을 워낙 뛰어난 연기를 그려내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한 시청자가 촬 중에 난입해 욕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자칫 평면적일수 있는 악녀 캐릭터에 본인만의 색깔을 덧입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메인 역할도 아닌, 주말극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돋는 연기로 극 후반부에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견인했으며 연말에 올해를 빛낸 탤런트 2위에 선정되는 예를 안았다. MBC는 연민정의 인기를 실감했는지 아시안게임 예고방송과 파라과이와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예고편에 연민정을 투입시켰으며, 이유리는 연민정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모바일게임 CF를 찍기도 했다. 연민정을 의식한 여러 아류 악녀캐릭터도 드라마에서 우후죽순 등장하기도 했다. 3년후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악녀 '양달희([[다솜]])'와 접촉사고 이후 "나 연민정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깜짝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방 후 3년이 지난 뒤에도 드라마에 까메오로 등장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킬만큼 연민정이 대히트한 캐릭터라는 방증이다.
         이 같은 연민정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은 [[MBC 연기대]] 대으로 이유리를 적극 지지했고 결국 시청자투표 약 71만표중 약 38만표를 받아 [[문화방송|MBC]]에서 '''데뷔 15년만에 [[연기대]]을 수하는 광을 누렸다.'''
         2015년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tvN 미니시리즈 《[[슈퍼대디 열]]》에서 열혈 엄마 '차미래'역을 맡았다. 오랫만에 트렌디 드라마 출연이었으며 첫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맡았다.극 중 이유리는 전작의 악녀 이미지와 거리를 두는 큼발랄한 연기를 선보였다.
  • 정찬성 . . . . 147회 일치
          * 위 문서: [[종합격투기 관련 인물]]
         ||<#000002> '''{{{#white 출생}}}''' || [[1987년]] [[3월 17일]] ([age(1987-03-17)]세), [[경북도]] [[포항시]] ||
         ||<#000002> '''{{{#white 신체}}}''' || 175cm[* ufc 버뮤데즈전프로필으로 170cm로 나왔지만 이는 표기오류다 ] / 65kg[* 평소 체중은 77kg] / '''189cm'''[* 정찬성 본인이 파이트 캐스트에서 189cm라고 밝힘. 심지어 그 맥그리거보다 2cm 길다.] ||
         ||<#000002> '''{{{#white 입 기록}}}''' || Pancrase 2007 네오 블러드 토너먼트 우승, Korea FC 토너먼트 우승 ||
         '''[[MMA]] 역사 해외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한국 선수.'''
         2007년 6월 SSF로 [[종합격투기]] 무대에 데뷔, 2007년 12월 판크라스 한국대회와 2008년 5월 횡성 한우배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전적을 쌓아갔다.[* 다만 현 시점에 와서 SSF에 대한 기록은 어딜 봐도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Q채널에서 방한 리얼격투 스트리트파이터 라는 격투기 토너먼트 프로그램에 2007년 6월경 출연한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SSF는 그 프로그램을 통칭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 당시 토너먼트 규칙은 3인 1팀으로 팀전이었는데, 정찬성 선수는 계속 이기며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결승에서 합기도 선수에게 판정패당한다.][* 참고로 정찬성 선수는 해당 토너먼트에 킥복서 베이스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대회 룰 자체가 연속니킥 금지에 링도 없어서 펀치 러쉬가 이어지질 못하는 등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당히 괴랄한 대회였다.]
         2008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DEEP에서 오미가와 미치히로를 대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오미가와는 유도가 출신으로 [[UFC]]와 [[PRIDE]]를 모두 경험했던 베테랑 파이터였으나 정찬성의 공세에 밀려 패배하고 말았다. 훗날 오미가와는 Dream 15회 대회 이후 인터뷰에서 이 경기를 회하며 '그 때는 정찬성의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붙으면 꼭 이기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정찬성 선수는 블로그에 '오미가와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 다시 붙는다면 그 때는 변명을 대지 못 하게 이기겠다.'며 재대결을 강력하게 희망했다. 이후 오미가와는 센고쿠 토너먼트에서 수많은 페더급 강자들을 쓰러뜨리고 페더급 토너먼트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TOP 10급 파이터로 부하게 된다.
         같은 해 5월에는 역시 일본의 신성인 카네하라 마사노리를 대로 8강전을 치르지만 아깝게 분패하고 말았다. 카네하라가 위를 차지하고 정찬성이 하위에서 서브미션을 시도하는 형태로 흘러갔다. 카네하라는 정찬성의 타격을 봉쇄하며 초반을 뚜렷한 우세를 보였다. 스탠딩에서는 정찬성의 우세였고 중반 이후에는 전체적으로 호각인 양이 계속되었으나 결국 카네하라의 만장일치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8월에는 토너먼트 리저브 매치에서 KOTC 챔프 출신의 맷 재거스를 만나 트라이앵글 초크로 승리한다. 1라운드부터 타격으로 재거스를 압박했고 2라운드 하위에 깔린 황에서도 오히려 펀치로 대의 안면을 공격했다. 당황하는 재거스의 왼팔에 그립을 완성시키며 승리.
         2010년 2월에는 It's Showtime에 출전하여 [[태국]]의 룸피니 챔피언인 패종슥 룩프라밧과 입식 경기를 갖게 되었다. 패종슥의 킥에 고전하는 양을 살짝 보였으나 2분 경 킥 페이크 이후 백스핀 블로로 패종슥을 실신시키며 대 이변...을 일으키는 줄 알았으나 '''백 스핀 블로가 반칙으로 인정되면서''' 반칙패를 당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 백 스핀 공격을 반칙 공격으로 하는 것으로 룰이 개정되었었는데 룰 미팅 당시 통역도 없었고 분위기도 어수선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 문제가 심각한 게 정찬성은 물론 대 선수인 패종슥도 백스핀 블로우가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패종슥도 자신이 패배한 줄 알고 있다가 경기 결과를 듣고는 어리둥절해한다. 쇼타임의 선수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비록 패배를 하긴 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찬성의 네임벨류가 올라가게 되며 이는 ZUFFA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0년 4월에는 WEC 48에서 '배드 보이'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15분간의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1라운드부터 거친 타격전이 벌어졌고 3분 30초 경과 무렵 정찬성의 레프트가 가르시아의 턱에 명중하며 끝내기 직전까지 가는 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암바를 시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2라운드에서는 초반 가르시아의 펀치가 크게 적중했으나 중반 정찬성이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시도했고 후반에는 펀치러쉬로 가르시아의 마우스피스를 날려버렸다. 가르시아는 그 황에서도 '''노가드 태로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이어진 3라운드에서 가르시아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들고 나왔으나 정찬성의 러쉬에 밀려 위험한 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맷집이 좋아 체력이 떨어져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버텨 어느 한 쪽도 쓰러지지 않은 채 승부는 판정으로 갔고 가르시아의 스플릿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판정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로도 가르시아는 남 판과의 경기에서도 논란의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정찬성 vs 가르시아 1차전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이 앞선 태에서 정찬성 vs 가르시아와 마찬가지로 가르시아의 2:1(Split)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남 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데이나 화이트]]도 어이 없는 판정이었다며, 경기 후 승자에게 지급되는 보너스 머니를 남 판에게 줬다고 한다. 이 쯤 되자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기도 했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시기 [[료토 마치다]] vs [[마우리시오 쇼군]]의 UFC 104, 프랭키 에드가 vs [[BJ 펜]] 의 UFC 112 등 판정논란으로 시끌시끌한 때였기에 더욱 그랬다. UFC 해설자인 [[조 로건]]은 심판들의 자질을 혹평하며 현재의 판정체계에 개선을 요구했고 파이트 메트릭의 분석에서도 정찬성의 압도적인 승리가 선언되었다.
         2010년 10월 WEC 51에서 조지 루프와의 대결했다. 정찬성이 미국 입장에선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전 경기가 너무나 재밌어서 단 1경기만을 치르고 이 경기부터 메인 매치에 편입되었다([[김동현]] 선수도 2전째인 UFC 88의 VS 맷 브라운 전부터 방송경기이긴 했다. 그러나 이쪽은 원래 메인 매치중 [[카로 파리시안]]의 경기가 있었으나 파리시안이 부을 당해 해당 경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다크매치였던 김동현의 경기가 메인 매치로 격된 것). 다소 끌려다는 듯한 느낌을 주던 정찬성은 2라운드 초반 과감한 공세를 펼쳤으나 루프의 원투-하이킥 콤비네이션을 정통으로 허용하며 생애 첫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제발 가드를~~
         2011년 3월 UFN 24에서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의 러버매치로 UFC 무대에 데뷔했다. 1라운드 약간 신중한 타격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그라운드에서 마운트까지 잡았으나 공이 울리며 라운드 종료. 2라운드에서도 다시 한 번 위를 잡고 엘보우와 파운딩을 날려주며 앞서 나갔고, 가르시아가 이스케잎을 시도하는 순간 백을 잡고는 트위스터를 작렬시키며 멋진 서브미션승을 거두었다. 이 트위스터는 매우 고급기술인데 MMA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정찬성은 에디 브라보의 을 보면서 익혔고 코리안 탑 팀에서 훈련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에디 브라보의 을 본 인터넷 카페에 '한 번 연습해서 써먹어봐야겠다.'고 댓글을 달았고 결국 트위스터로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간혹 '레프리 스탑이 너무 일렀다' 라며 까는 여론도 있는데 위의 짤방을 보면 알겠지만 호미닉은 다운 된 뒤 턱에 정타를 대 여섯대나 맞았다. 의식이 혼미해 가드도 제대로 올리고 있지 못하던 황. 저 때 스탑 안 걸면 '''진짜 죽는다.''' 호미닉도 인정했듯이 레프리 스탑의 타이밍은 전혀 문제가 없다. '정찬성이 잘한 게 아니라 호미닉이 바보짓을 했다' 라는 의견도 있는데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페더급 뿐만이 아니라 MMA 를 통틀어도 찾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복싱 테크닉을 바탕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호미닉이 본인의 특기를 버리고 경기 시작하자마자 붕붕훅을 날린 것은 확실히 변명할 수 없는 바보짓. 하지만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것이고, 무엇보다 그 짧은 타이밍을 잡아내는 것도 실력이다. 또 호미닉이 한 행동부터가 매너있는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호미닉은 경기가 시작하고 글러브 터치를 하자마자 공격했는데 그런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하고 확실한 반격에 성공한 것은 정찬성의 실력이다. 그리고 사실 이 경기 승리는 정찬성에게 의미가 큰데, 흔히들 말하는 인생에 한 번 올까말까하는 기회를 움켜잡은 셈이다. 그 때문인지 경기에 이긴 뒤 눈물을 흘리며 호미닉을 포옹했다.
         2012년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 이벤터]]로 비슷하게 탑 10위권의 강자인 [[더스틴 포이리에]]와 대결이 확정되었다. 이 경기는 넘버원 컨텐더 결정전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받고 있다. 대인 포이리에는 당히 위험한 대로, 89년생에 동체급 최위권의 그래플러이며 어린 나이에도 당한 발전을 보이고 있는 선수라 이 경기야 말로 정찬성의 검증 매치가 될 듯 하다. 호미닉의 경우는 거품이 있다는 평가가 있던 선수인지라.
         결국 5월 15일 UFC on FUEL TV 3의 메인이벤트에서 [[더스틴 포이리에]]를 대로 멋진 다스 초크 서브미션 승을 거두었다. 3라운드까지의 심사위원들의 스코어카드를 공개했는데 전부 정찬성의 승리였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황. 1라운드는 의외로 정찬성이 발전된 레슬링 기량과 정확한 타격을 선보이며 포이리에를 밀어붙였다. 포이리에는 얼굴에 커팅까지 나긴해도 스윕을 성공하며 선전했지만 스탠딩 태에서 정찬성과 주고받으면서 대미지를 받은 황. 그리고 이어지는 2라운드에는 무에타이 스탠스에서 '''플라잉 니킥과 트레이드마크인 넥클린치 니킥''', 그리고 어퍼컷으로 화끈하게 난타전을 벌이다가 포이리에가 더블렉을 시도하자 몽키 플립을 시전해 탑 포지션을 점유하며 암바와 트라이앵글초크를 연속적으로 시도하며 오히려 포이리에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사실 2라운드 마지막에 걸린 트라이앵글 초크로 피니시를 할 수도 있었지만, 공이 울리며 아쉽게도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2라운드 이후부터 관중들의 'Zombie!' 챈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3라운드 에서는 두 선수 모두 어느정도 지친 모습을 보였고, 포이리에가 아웃복싱으로 정찬성을 견제했지만 정타수는 정 선수가 위였다. 다소 정찬성이 많이 맞은 정도로 보인것. Fuel TV 중계진도 포이리에가 리하게 타격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때 체력이 저하되는 조짐이 보인 것. 사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어보니 2라운드인가 3라운드 중반에 무릎을 다쳐서 페이스를 조절해야 했다고 했다. 본인은 지친 기색이 별로 없었던 모양. 그리고 이어지는 4라운드에서 초반 황을 살피다가 어퍼컷과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포이리에의 턱에 적중시켜서 케이지로 몰아 붙인 뒤 이어지는 '''플라잉 니킥'''에 포이리에는 타격을 입었고, 반사적으로 정찬성에게 테이크다운을 시도했지만, 정찬성은 침착하게 포이리에에게 다스 초크 그립을 완성시키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I want Jose Aldo"라는 코멘트로 정식으로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크 호미닉전을 시작으로 2경기 연속 언더독으로 평가받으며 싸웠는데, 모두 승리로 마무리 지었으니 선수 자신에게도 감격이 클 듯. 대회가 끝나고 이 경기는 Fight of The Night과 Submission of The Night에 선정되어 보너스만 미화 10만 불을 받았다. 참고로 이 보너스는 병세로 인해 현장에 없던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직접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즉시 주라고 했다고 한다. --역시나 각별한 사장님의 코리안 좀비 사랑--
         경기 후 정찬성이 포이리에를 대로 수술을 요하는 어깨 회전근 부을 안고 싸웠던 게 뒤늦게 확인되었다. 수퍼액션 중계에서 김대환 해설위원이 미트조차 칠 수 없을 정도의 태였다고 말할 때에는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나중에 외신의 보도 등으로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자 감탄을 넘어 황당해할 정도였으며 이 소식을 전한 미국의 <어포우징 뷰스>는 정찬성을 가리켜 정말로 좀비 같은 근성을 가졌다고 놀라워했다.
         포이리에 전 이후 어깨 부의 수술 여부를 놓고 많이 고민했으나 에릭 코크와의 대결 이후에 자신에게 도전권이 돌아올 예정이라 수술을 받은 이후 내년에 타이틀 도전 계획을 세웠지만. 도전자 에릭 코크가 부으로 이탈한 자리에 [[벤슨 헨더슨]]에게 지고 페더급으로 내려온 [[프랭키 에드가]]가 [[갑툭튀]]하면서 정찬성보다 먼저 타이틀에 도전하게 되었다. 정찬성은 에드가가 내려온다 해도 자신있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전문가들의 예 정찬성에게 대체로 부정적인 황이라 정찬성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내 격투기계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정찬성이 도전 기회를 잃었지만 실보다 득이 많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깨가 성하지 않은 태에서 조제 알도와의 타이틀전을 추진했다면 그나마 없는 승산이 더욱 적어졌을 것이고, 만일 본래 계획대로 프랭키 에드가가 12월 페더급 데뷔전을 치르고 승리하게 되면 정찬성이 에드가와 타이틀 도전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여야 할 수도 있었으므로, 알도와 에드가가 먼저 맞붙기 때문에 정찬성이 타이틀전을 앞두고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이 내년 복귀시기에 맞춰 바로 타이틀전 직행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 박석민 . . . . 143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4, top1=NC 다이노스/선수단, top2=야구 관련 인물(KBO), top3=먹튀/야구, top4=돈 내놔라 먹튀야)]
         || '''학력''' || 대구율하초 - 경복중 -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 ([[대구사이버대학교]]) ||
         || '''포지션''' || [[지명타자]][* 2017년부터는 잔부과 대포진 등으로 사실 지명타자 자원으로 분류되고 있다.], [[3루수]], [[1루수]][* 2017 WBC에서 1루수를 잠시 맡았고, 삼성 시절이였던 2008~2011 시즌에도 잠깐이나마 1루수를 본적이 있다.] ||
         || '''군 복무''' || [[무 피닉스 야구단]] (2006~2007) ||
         || '''응원가''' || '''삼성 시절''': 하늘 - 웃기네[*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짱]]!'''. 전주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로티플스카이|하늘]]이 사망한 이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부터 본인의 요청으로 부활했다.][* 롯데 [[김호(1989)|김호]]와 곡이 같다만 사용한 부분이 다르다. 김호 항목 보고 가수와 곡 제목이 다른데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웃기네가 Venus를 번안한 곡이며 Bananarama 곡 역시 중간에 박석민 응원가에 해당하는 멜로디가 있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웃기네의 원작자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식 응원가가 되었다가 현재는 웃기네와 같이 쓰이고 있다. 기존 응원가가 좋다보니 처음엔 반응이 좋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때 같이 바뀌었던 이승엽 응원가는 한시즌도 채 못가고 팬들의 반발로 용도폐기되고 흑역사화가 된것만 봐도..][br][[신해철]]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워어어어어 박석민 워어어어어어 최!강!삼!성! 승리요정 박석민] [BR] '''현재''': 하늘 - 웃기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삼성때 응원가에서 삼성을 NC로 바꾼 것외에는 동일하다. 박석민 본인이 삼성 시절 응원가를 그대로 써 주기를 희망했고 삼성 구단도 흔쾌히 승낙. ~~유일하게 [[임태현|임가놈]]의 응원가를 피했다.~~ ] ||
         ||<-5> '''2012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 ||
         ||<-5> '''2014, 2015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3루수]] [[KBO 골든글러브|골든글러브]] 수자''' ||
         || [[최정]]([[SK 와이번스]]) || → || '''박석민'''([[삼성 라이온즈]]->[[NC 다이노스]][* 2015년 성적은 삼성에서 기록했지만, 골든글러브 시식 전에 NC로 FA 이적하는 바람에 공식 기록에는 NC로 되어 있다.]) || → || [[최정]]([[SK 와이번스]]) ||
         || [[김대익]](2004) || → || '''박석민(2005)''' || → || [[이여]](2006) ||
         ||<-5> '''[[NC 다이노스]] 등번호 18번'''[* 홍성용의 kt 위즈 이적 이후 [[배재환]]이 18번을 달려고 하였으나 박석민이 [[배재환]]의 동의를 얻어 18번을 달게 됨. --사실 배재환이 선동열을 닮아서 배동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서 18번을 달려고 했지만, 박석민의 입으로 실패(?)하게 된 것--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96&aid=0000363216|관련기사]]] ||
         [[NC 다이노스]]의 ~~[[개그맨]]~~ ~~[[브로콜리]]~~ [[내야수]]. 주 포지션은 3루수다. 1차 지명을 받은 연고지 출신 유망주였으며, 데뷔 초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다가 무에 입대한 후 타격 재능이 꽃피기 시작해 2000년대 후반 노쇠한 삼성 타선의 리빌딩을 이끄는 젊은 중심 타선의 한 축이 되었다. 그때부터 팬들 사이에서 [[브로콜리]] 헤어스타일, 적절한 허세,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양한 몸개그 등 확연한 캐릭터성으로 인해 [[채태인]]과 함께 삼성의 새로운 개그 아이콘으로 급부했었다.
         삼성 팬들에게 평생 삼성에서 함께할 프랜차이즈로서 사랑받았지만 2015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며 원소속팀과의 협 결렬 후, 2015년 말 총액 최대 96억에 NC로 이적했으나... '''현재는 먹튀 그 자체.''' ~~이젠 3루수 [[노진혁]]한테 줘야할듯~~
         '''광의 시절이었던 [[삼성 라이온즈]] 시절'''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찾아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식]]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백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삼성의 [[강민호]]는 실현되었다!!.]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프로 첫 홈런은 2004년 5월 20일 대 KIA전에서 [[고우석]]을 대로 기록하였다. 간간히 1군에 올라올 때마다 뜬금타를 터트리면서 타격 면에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덕분에 [[200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기도 했다. 2005년 4월 29일에는 1군에 복귀하자마자 선발 출장하여 당시 기아의 마무리였던 [[신용운]]을 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기도 했다.[* 참고로 신용운은 바로 다음 날인 4월 30일에도 심정수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음으로써 이틀 연속 패전투수가 되고 만다. 자세한 사항은 [[신용운]] 항목 참조.]
         2005년 시즌 종료 후 군복무를 위해 [[무 피닉스 야구단|무]]에 입대했으며 2007 시즌 종료 뒤 [[삼성 라이온즈]]에 복귀하였다.
         2008년 시즌 초반 [[선동열]] 감독이 구했던 [[양준혁|양]][[심정수|심]][[제이콥 크루즈|크]] 트리오가 각각 부진, 시즌 아웃, 방출로 인해 중심 타선이 무주공산이 되었으나, 그 공백을 [[최형우]], [[채태인]]과 함께 잘 메워 냄으로써 본격적인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세 명 모두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까지 거의 김인식 감독 수준으로 유망주들을 박대했던 [[선동열]] 감독이 직접 키운건 당연히 아니었고 [[김응용]] 前 감독이 진작부터 밀어주던 양아들이었다. 박석민은 물론 [[채태인]], [[최형우]]의 기용도 감독 외에 사장과 프런트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선구안과 타격 포텐이 폭발하기 시작한 시즌 그러나 아쉬운 부'''
         2009 시즌 목표치[* 한 인터뷰에서 2009시즌 목표를 0.315 홈런 32개라고 말해 한대화 코치에게 정신병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박한이에 이어 공식 정신병자 2호.]에 부으로 아쉬운 성적을 기록. 게다가 2008년 경기 도중 2루를 향해 슬라이딩을 하다 다친 왼손 중지 부으로 인해 [[유리몸]] 기질이 발동하기 시작해서 자주 2군을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6월부터 살아나면서 박석민이 홈런을 치는 경기는 이긴다는 공식 성립. 그리고 마침내 데뷔 이후 처음으로 한 시즌 20홈런을 넘겼다. 이 해 20홈런 이을 친 타자들 중 [[김현(1980)|김현]]을 제외하면 타석당 홈런 비율이 가장 높은 타자로 잔부만 조심한다면 내년부턴 40홈런도 노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이승엽 . . . . 143회 일치
         |문 표기 = Lee Seung-Yeop
         |등번호 = 36 (구 결번)
         |사진 사이즈 = 220px
         |출신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첫 출장 = [[KBO 리그|KBO]] / [[1995년]] [[4월 15일]] <br /> [[LG 트윈스|LG]]전 <br /> [[일본 야구 기구|NPB]] / [[2004년]] [[3월 27일]] <br /> [[세이부 돔]]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전
         |마지막 경기 = [[KBO 리그|KBO]] / [[2017년]] [[10월 3일]] <br />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대구]] 대 [[넥센 히어로즈|넥센]]전 <br /> [[일본 야구 기구|NPB]] / [[2011년]] [[10월 18일]] <br /> [[오사카 돔]]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전
         감독이 그의 아버지와 협했다가 불발됐고 그는 야구를 시작할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하여 그의 아버지를 설득시켜 야구를 시작했다. 투구와 타격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좌완 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재학 시절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을 수했다.<ref>[[스포츠 조선]] - 2010년 5월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16/2010051601132.html "최동원, 선동열, 이승엽, 추신수, 봉중근, 이대호, 류현진… 청룡기가 낳은 한국 야구 대들보"]</ref> [[1994년]]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그는 투타에서 고루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ref>''[[OSEN]]'' - 2007년 12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이승엽-이대호, 모교서 방망이 날세운다"]{{깨진 링크|url=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ref><ref name="homerun">스포츠 춘추 - 2010년 9월 [[박동희 (기자)|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463 "이대호로 본 ‘홈런 타자는 어떻게 탄생하나’"]</ref>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법’"]</ref>
         * [[2002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심정수]]와 홈런 경쟁을 벌여 47개를 기록해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LG 트윈스|LG]] 투수 [[이훈 (1971년생 좌완 투수)|이훈]]을 대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쳐 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는 곧 [[마해]]의 끝내기 백투백 홈런으로 이어져 소속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게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안겼다.
         * [[2003년]] [[6월 22일]] [[SK 와이번스|SK]] 투수 [[김원형]]을 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여 일본의 [[오 사다하루]](27세 3개월 11일)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알렉스 로드리게스]](27세 8개월 6일)를 제치고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 고지(26세 10개월 4일)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투수 [[이정민 (1979년)|이정민]]을 대로 56번째 홈런을 쳐내며 대한민국 프로야구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자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FA 자격을 취득한 후 [[2003년]] 12월에 계약했다. 연봉은 2억엔이었는데, 당시 팀 멤버 중 그를 제외하고 2억엔이 넘는 선수는 마무리 투수인 [[고바야시 마사히데]]밖에 없었음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이런 파격 대우 때문에 팀 내 다른 선수들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팀이 타 선수들의 대우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으로 진정됐다. 이듬해인 [[2004년]] [[3월 27일]] 개막전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의 에이스 투수였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마쓰자카]]로부터 2루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좋았던 첫 시작과 달리 시즌 후 14홈런, 2할대 타율, 50타점이라는 비교적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시범 대구에서 타율 0.100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2군으로 강등됐다. 그러나 4월 초 1군으로 복귀해 팀의 중심 타선으로 정착했다. 하지만 대팀 선발 투수가 좌완일 때 선발 타선에서 제외되는 플래툰 시스템에 의해 기용됐다. 시즌 최종 타율은 2할대 타율이었지만 홈런 수가 팀 내에서 최다인 30개(이 기록은 [[지바 롯데 마린스]]의 현 홈 구장인 [[지바 마린 스타디움|QVC 마린 필드]] 개장 이후 동양인으로서는 최초의 기록)로, 전년도에 비해 장타력 부분에서의 제 기량을 찾았고, 팀의 플레이오프 진입에도 공헌했다.
         재팬 시리즈에서 처음 맞붙은 [[센트럴 리그]] 소속의 [[한신 타이거스]] 투수들에게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는데, 1차전에서 만난 [[한신 타이거스]]의 에이스인 [[이가와 게이]]로부터 홈런을 기록했고, 2차전에서도 에구사 히로타카로부터 홈런을 기록했다. 3차전은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됐지만 4차전에서는 [[스기야마 나오히사]]로부터 선제 홈런을 쳐 내는 등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이 재팬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이마에 도시아키]]에게 밀려 제팬 시리즈 MVP 수에 실패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하라 다쓰노리]]는 그를 개막전 4번 타자로 파격 기용했는데, 이에 부응해 일본 진출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반면 그의 맹활약과는 반대로 팀은 주전 선수들의 잇따른 부진과 부자가 속출해 2005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가 기록한 [[2006년]] 성적은 타율 2위, 타점 1위(108), 홈런 1위(41개<ref>실제로 [[2006년]] 그는 155개의 공을 펜스 너머로 넘겼지만, 이 중 [[2006년]] [[6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대결에서 대 선발 투수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친 홈런이 심판이 당시 1루 주자 [[오제키 데쓰야]]가 3루를 밟지 않고 홈에 들어왔다고 판단해 단타로 처리되며 공식 기록은 41개가 됐다{{뉴스 인용|제목=<nowiki>[스포츠 10대 해프닝②]</nowiki> 이승엽, 도둑 맞은 19호 홈런|url=http://media.daum.net/breakingnews/sports/view.html?cateid=1071&newsid=20061221135010895&p=joynews2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최정희|날짜=2006-12-21|확인날짜=2008-09-22}}</ref>)를 기록해 공격 전 부문에서 리그 정급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홈런에서는 일본 진출 이후 최다 홈런을 기록했는데 6월에는 44홈런을 몰아치며 리그 홈런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8월 중순 경 발생한 무릎 부 이후 홈런 페이스가 주춤했고, 시즌 중반부터 페이스를 높여 온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 숫자에서 추월당해 결국 리그 최다 홈런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율은 [[주니치 드래곤즈]]의 후쿠도메에게 밀리고 홈런과 타점은 [[타이론 우즈]]에게 밀렸지만 시즌 내내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최위권을 유지하며 최정급의 기량을 뽐냈다.
         이듬해 [[2007년]] 1월, 모친 소식을 일본에서 전해 들었고 왼쪽 엄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는 부 등 시즌 내내 고전했다. 외다리 타법을<ref name="sword"/> 고쳐보기도 했지만 성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7월 중에는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와의 첫 대구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시즌 후반에는 승부에 결정적 기여를 한 홈런을 여러 개 쳐 내며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홈런을 한 개도 치지 못하는 등 장타력이 실종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감했다.<ref name=world>{{뉴스 인용|제목=이승엽 2007년 시즌 결산, 모친 타계… 부… 악재의 연속|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출판사=세계일보|저자=강구열|날짜=2007-10-22|확인날짜=2008-06-01}}{{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 }}</ref> 종합적으로 2007 시즌에는 타율 0.274, 30홈런, 74타점을 기록하였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후 받은 손가락 수술로 인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으로 강등됐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11 "한·일 전문가가 꼽는 이승엽의 문제"]</ref> 그러던 중 8월에 있었던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4강전인 일본전에서 투런 홈런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투런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였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79 "한-일 기자 대담 “9회초 대타 김현수가 의미하는 것”"]</ref><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80 "일본에서 본 호시노 JAPAN의 침몰"]</ref> 그러나 그 해 45대구에 출장해 2할대 타율, 7할 5푼 5리의 OPS를 보였으며, 8홈런 27타점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2008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드러냈다. 그 해 일본 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여기에서 7대구 동안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이나 당하는 등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기도 했다.
         방출 후 [[2010년]] [[12월 2일]] 1년간 1억 5,000만엔에 옵션이 포함된 연봉을 계약했다. 이 때 투수 [[박찬호]]와 같은 팀이 됐다. 이로써 [[2005년]] 이후 6년만에 다시 [[퍼시픽 리그]]로 돌아와 등번호도 3번으로 정해졌다. 그는 연봉을 대폭 낮추는 등의 백의종군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전 반발력이 적은 공인구로 교체해 찾아온 극심한 투고타저의 향을 받아 2할대 타율로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팀의 꼴찌가 확정된 후반기 들어 맹활약하며 시즌 총 15홈런을 쳐 퍼시픽 리그 홈런 순위 8위에 오르는 기대 이의 모습도 보여줬으나 타율은 리그 전체 최하위였다. 규정 타석 미달로 인해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2011년]] [[10월 21일]] 기자 회견을 열어 8년 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구 귀국했다.<ref>{{뉴스 인용|제목='국내 복귀' 이승엽, 日서 기자회견 '굿바이, 오릭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79943.htm|출판사=스포츠서울|날짜=2011-10-21|확인날짜=2012-11-2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7070317/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79943.htm#|보존날짜=2013-10-07|깨진링크=예}}</ref> 이후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218871 이승엽, 와이프에게 어쩔 수 없는 경도 남자인가 보다] - 스포츠조선</ref> [[2011년]] [[12월 5일]] 연봉 8억원, 플러스 옵션 3억원에 계약을 체결하며 복귀했다.
         [[2012년]]에는 3할대 타율, 21홈런, 85타점을 기록해 여전히 강타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그는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 1홈런, 7타점을 기록해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홈런 타이기록을 수립했고 6차전에서 결정타였던 싹쓸이 3루타를 기록하며 데뷔 후 첫 번째이자 최고령 [[한국시리즈]] MVP를 수했다. 대적으로 1루수로 출장한 대구가 적어 처음으로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 ROTTA . . . . 142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사진가, top2=감독)]
         ||<bgcolor=#DDDDDD> {{{#000000 '''웹사이트'''}}} || [[https://www.facebook.com/azobirotta|[[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height=20]]]] [[https://instagram.com/_rotta_/|[[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height=20]]]] ||
         > '''서태지, 설리[* 로타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고, 함께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설리와 함께 작업한 화보가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하기도 햐고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래의 사건/사고 항목 참고.] 화보를 비롯한 유명 뮤지션의 공연 사진과 광고, 패션 화보 등 다양한 역에서 활동 중인 요즘 가장 핫한 포토그래퍼''' - 그의 미소녀 사진집, <Girls>의 소개글
         대한민국의 포토그래퍼, 디렉터 '뜨거운 사이다'에서 밝힌 출생지는 경북도 포항이다.
         활동명인, ''''로타''''가 ''''로'''리타'와 '오'''타'''쿠'의 줄임말 혹은 '''로'''리'''타'''의 줄임말이라고 작가가 인터뷰하는 유튜브 캡쳐화면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지만 해당 동에서 그 장면은 삭제된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본인이 말장난으로 한 얘기였다고 밝혔다.] 공식적으로는 작가가 예전에 캐릭터 디자인을 하던 도중에 만든 로보트 캐릭터의 이름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516070118451456|'ROTTA!']]에서 따왔다고 한다.[* 슈퍼컴퓨터 'THE GOD'에 대항하기위해 백신연구소에서 만든 버그 퇴치용 백신 로보트이다]
         색감에 대한 감은 화 '[[러브레터#s-2]]'와 '[[하나와 앨리스]]'의 감독인, [[이와이 슌지]]의 색감에서 향을 많이 받았으며,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완벽하게 짜여 있는, 의미 부여가 되어있는 배경들에서 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특유의 '뿌연' 보정, 소녀를 떠올리게 하는 의(교복, 밝은 색감의 티셔츠, 반바지 등), 은근히 몸매가 부각되는 모델들의 자세, 약간 풀린 듯한 모델들의 표정과 연하면서도 발그레한 화장 등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로타의 작품 스타일이다. 물론 모든 작품이 다 저 조건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며 그가 인물 사진만 찍는 것도 아니다. 사진의 모델들은 성인이지만, 술한 로타 특유의 작품 스타일로 인해 [[소아성애]], [[로리]] 컨셉 논란이 일어나곤 하며 팬과 안티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모델을 대로 한 [[성범죄]] 논란이 일어났다. 다만 여초 커뮤니티 등지에서 비판 여론이 굉장히 심하게 형성되어 있던지라, 물타기에 의한 무고의 희생자일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옹호 측 주장은,''' 그의 작품은 18세 이의 [[성인]]물에 들어가기에는 어려운 섹슈얼리티를 구현했다. 물론 그 연출이 미소녀라고는 하지만, "대중이 용납할 수 있는 범위의 경계를 정확히 설정하고 넘어서는 안되는 선은 지키고 있다"는 것이며, 로타의 대다수 작품이 [[소아성애]]를 띄고 있다고 주장하기에는 비약이 지나치다. 또한 작가 본인이 미성년 모델을 섹슈얼리티 화보에 쓰는 경우는 없었다. 그외 6살도 채 안 되는 여아의 다리 사진만 편집해 인터넷에 퍼뜨리는 행위 등은 로타에 대한 악의적 짜깁기와 명예훼손이며, 이런 여론에 힘입어 과한 왜곡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리고, 설령 페도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더라도 불법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그냥 소녀풍이 나는 사진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 어째서 대대적으로 욕먹어야 하는 거냐! 는 의견도 있다.
         '''비판 측 주장은,''' 그의 작품에서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여성 모델들의 화보이며, 로타의 전시회 이름이나 화보집 이름에서 보이듯 '미소녀'라는 미성년을 섹슈얼리티로 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중들이 용납하기 힘들 정도로 '''선을 넘었다.''' 또한 술된 화보 스타일 때문에 남초에서도 몇몇 사람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을 섹시하게 묘사한다"는 반응이 있었으며, 그의 예명도 의혹을 키운 원인이 되었다. 즉, 짐작하자면 창작자 로타 본인에게 의도가 아주 없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또한, 창작자의 개성 및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컨셉인 여성을 미성년으로 연출하는 듯한 스타일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특유의 작품 스타일로 인해, 팬과 안티의 대립이 극명하다.''' 예외는 있으나, 남초 사이트에서는 우호적 입장이, 여초 사이트에서는 비판적 입장이 매우 많다. 그러나 커뮤니티 반응치고는 의외로 로타를 팔로우한 사람들을 보면 성비가 비슷하다. 즉, 남성들 중에서도 그 작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여성측 지지자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팔로워들을 무조건 로타의 지지자들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팔로워를 하는 이유 중에는 그 사람을 싫어하거나, 그냥 유명해서 팔로우하는 이유도 있기 때문.
          * 2016년 7월, [[워마드]] 측에서 작가가 여성 모델들에게 돈을 받거나, 또는 돈을 주고 사진 촬을 한다고 주장하는 루머를 퍼뜨렸으나,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https://www.instagram.com/p/BIXlRMxhmRE/|#]] 또한 로타와 함께 일하는 여성 모델들을 흉자[* 흉내 자지의 줄임말.]라고 표현하는 등 관련 인물이라면 예외없이 비하하고 있다.
          * [[워마드]] 등의 커뮤니티에서는 [[설리(배우)|설리]]와 종종 엮으며 비판을 넘어선 인신공격을 가하기도 하는데, 2016년 8월 14일에도 설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로타와 함께 일한 을 올렸다.[* 설리는 예전에도 로타와 협업한 자신의 화보를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이 있다. 그 때도 설리는 여성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비난을 받았었다.] [[https://www.instagram.com/p/BJFpR32DnU2/?taken-by=jelly_jilli|#]] 그러자 설리와 로타를 옹호하는 쪽, 비판하는 쪽으로 댓글은 난장판.[* 반면 해외 팬들은 그저 설리 예쁘다는 댓글로 가득 채우고 있다.] 설리 또한 로타와 자신이 논란이 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최근 7월 인터뷰에서 엿볼 수 있다. '''"내 자신을 지킬 만큼의 판단력이 있으며, 남들 눈치 보고 내 생각을 바꾸지는 않는다."'''[[http://img1.daumcdn.net/thumb/R1920x0/?fname=http%3A%2F%2Fcfile23.uf.tistory.com%2Fimage%2F2525B5465768C98011A5BA|#]]고. 바꿔 말하면 로타의 논란에 관해서도 커뮤니티 특정 반응이 아닌, 설리 본인 스스로의 판단을 믿는다는 것으로 보이며 결국 로타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보인다.--[[워마드 호주국자 아동 성범죄 사건|이후 자신들이 폐도짓을 한건 안 자랑]]--
          * 여성 래퍼 [[타이미]]가 로타를 팔로우한 사실이 알려지며 [[쭉빵카페]] 등에서 논란이 되었다. 타이미는 '로타와 관련된 논란은 이미 알고 있으며, 소아성애는 지지하지 않으나 로타의 다른 사진들이 감을 주기 때문에 팔로우한 것'이라 대답하였다.[* 애초에 로타의 논란에 대해 모르는 연예인, 모델은 거의 없다. 워낙 인터넷에서 자주 다뤄진 문제이기도 하고.] 논란이 커지며 몇몇 팬들은 탈덕하겠다고 거세게 비판했으나, 이후에도 로타 팔로우를 유지하며 본인 주장을 관철했다.
          * 아이돌 [[구하라]]가 설리와 함께 촬한 사진이 논란이 되었다. 두 사람이 하의 실종 패션이였고 티셔츠를 같이 입었는데, 티셔츠의 문구가 '존슨즈 베이비 오일'이였기 때문. 구하라는 해명하지 않았고, 설리가 대신 SNS로 "오해들 그만하고 잘자"라고 말했다.
          * 2017년 3월, [[모델]]이자 [[디자이너]]인 여성에게 로타와 관련된 논란 및 여성 품화 등의 비난이 가해졌다. 요지는, "섹시한 여성 옷, 사진들로 인해 여성의 가치가 저하된다",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자극해서 불쾌하다"는 것. 이에 당사자는 장문의 글을 게시하여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5&no=2397151|#]]
          *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70803222847370|"설리가 먼저 연락"..'뜨거운사이다' 로타 작가의 해명]] 논란이 됐던 설리와 찍은 화보에 관해 그는 "금전적 대가 없이 설리와 한 개인적인 작업이었다. 논란은 예 못했다. 설리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SNS에 연락처가 공개돼 있어서 설리의 연락이 장난인 줄 알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같이 사진 작업하고 싶다더라. 콘셉트 미팅을 하러 오겠다고 했다. 설리 혼자 등장했다. 미소녀 콘셉트가 좋아서 찍어보고 싶다 했다. 현장에서 함께 의하며 이뤄진 결과물이었다. 스타일링도 본인이 직접했다. 출판을 만들고 싶을 정도로 서로 만족도가 좋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그는 설리와 구하라의 우정 사진 역시 본인 작품이며 그쪽에서 먼저 제안을 했다고 알렸다.
         방송에 따르면 로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은 5년 전인 대학생 시절 모델 활동 중 로타에게 먼저 연락을 받아 사진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여성은 "촬이 시작되자 로타는 노골적으로 [[성추행]]을 시작했다"며 "갑자기 자기 [[손가락]]을 물어보지 않겠느냐고 촬 도중에 여성한테 한 번은 그걸 시켜본다고 말하며 계속 어루만지고 그랬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거부했지만 심한 신체 접촉이 이어졌고, 결국 여성은 촬장을 급하게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로타는 해명 문자를 보내왔다고. 로타가 보낸 메시지에는 ''''네가 너무 예뻐서, 참을 수가 없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고 함께 보낸 사진은 여성과 당초 약속했던 어깨 위가 아닌 전신 노출 사진이었다고 했다. 인터뷰한 여성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내 사진을 갖고 있기에 두려워 촬 요구에 두 번 더 응하고 모델 일을 그만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로타는 "촬 중 모델의 동의를 구했었고 당시에 아무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서 해당 여성의 주장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2018년 3월 4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에서 로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추가로 등장하였다. [[미성년자]]였던 16세 당시 촬 도중 로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B씨도 '뉴스데스크'와 인터뷰를 했다. B씨는 "이렇게 어린 모델은 처음 만난다며 다른 모델들도 이런 식으로 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 영덕군 . . . . 141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동, rd1=덕동)]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북도)]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
         [include(틀:덕군의 읍면)]
         ||||<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21439c><bgcolor=#04B4AE><:> {{{+2 {{{#FFFFFF '''덕군'''}}}}}} [br] {{{#FFFFFF '''盈德郡 / Yeongdeok County'''}}} ||
         ||||<bgcolor=#FFFFFF> [[파일:덕군 로고.jpg|width=300]] ||
         ||||<:> [include(틀:지도, 장소=덕군,너비=100%)] ||
         ||<bgcolor=#21439c> {{{#FFFFFF '''광역시도'''}}} ||<bgcolor=#CEECF5> [[경북도]] ||
         ||<bgcolor=#F781F3> {{{#FFFFFF '''국회의원'''}}} ||<bgcolor=#F8E0F7> [[양군·덕군·봉화군·울진군]]:[br][[강석호]]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3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bgcolor=#F781F3> {{{#FFFFFF '''링크'''}}} ||<bgcolor=#F8E0F7> [[http://www.yd.go.kr/|홈페이지]][[https://www.facebook.com/love4ydpage/|[[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페이스북]][br][[https://twitter.com/love4yd|[[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트위터]][[http://blog.naver.com/ydcounty|[[파일:네이버블로그.png|width=15]]덕군 공식 블로그]][br][[http://band.us/@yeongdeokgun|[[파일:BANDico 6.x.png|width=15]]네이버 밴드]]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CEF6F5><bgcolor=#CEF6F5><table width=80%><:> [[파일:덕 강구항.jpg|width=80%]]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CEF6F5><bgcolor=#CEF6F5><table width=80%><:> [[파일:덕 장사해수욕장.jpg|width=80%]]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CEF6F5><bgcolor=#CEF6F5><table width=80%><:> [[파일:덕대게 요리.jpg|width=80%]] ||
         ||<bgcolor=#CEF6F5> {{{#045FB4 ▲ '''덕대게 요리'''}}} ||
         [[경북도]] 동북 해안에 있는 군. 인구 약 3만 8천 명.
         ||<-10> '''덕군 행정구역 변천사''' ||
         || 덕군 [br](盈德郡, 1895) [br] 해군 [br](寧海郡, 1895) ||<|2> → || '''덕군 [br](1914)''' [br] ||
         조선시대 때만 해도 덕은 덕군의 남쪽 지역이었고, 북쪽은 '''해(寧海)'''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서로 다른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때인 1914년 덕과 해를 합쳐서 현재의 덕군이 되었고, 지역의 중심이 덕읍 쪽으로 옮겨가면서 대적으로 북쪽 해 지역의 발전이 더디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해면이 덕군 북부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 징 ==
         [[파일:덕군.jpg]]
  • 권혁 . . . . 140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top1=한화 이글스/선수 목록, top2=야구 관련 인물(KBO))]
         || [[윤근]](2012~2014) || → || '''권혁(2015~ )''' || → || 현역 ||
         삼성의 쌍권총, 그리고 2015 시즌 한화의 불꽃남자. 몇 년간 삼성의 철벽 불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부 등으로 실력이 하락해 이제 잊혀가는 선수가 되는 듯 했으나, 한화로의 이적 후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주목받던 시절은 있었지만,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 했던 선수에서 2015 시즌의 [[투혼|긍정적]]으로도 [[살려조|부정적]]으로도 주인공이 된 선수.
         수창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나, 성광중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키가 '''160cm'''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결국 야구를 그만두게 되고 경공업고등학고로 진학하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키가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하여 키가 30cm 이 자라게 되었고''', 당시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야구부]]의 [[오대석]] 감독의 눈에 띄어, 고등학교 2학년부터 야구를 '''다시''' 시작할 만큼 남들에 비해선 출발이 늦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037776|#]]
         '''[[선동열|삼성 팬덤의 주적]]이 만들어낸 최악의 희생양 [[권오준|4]][[배수|인]][[양준혁|방]]중 하나'''
         2002년 연고구단 삼성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 초부터 ~~덩치좋은 좌완파이어볼러 덕후 [[김응용|코감독]]의 눈에 들어~~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몇 차례 기회를 갖다가 9월 6일 수원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5⅓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따냈는데,[* 프로 입단 후 첫 승은 2003년 8월 16일 불펜으로 등판해 거두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도 수원 현대전이었다.] 대 선발투수는 '''선발 2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정민태]]였다.[* 우연의 일치로 정민태와 권혁은 12년 뒤인 2015년부터 한화에서 선수-코치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37경기 81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성 불펜의 한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해 9월 18일 두산전에서 156km/h의 구속을 찍으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05년 시즌은 등판하지 못했다. 2006년 후반 1군에 복귀한 뒤로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는데,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중심을 두는 [[선동열]] 감독의 방침에 따라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2007년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2008년까지 보통 삼성의 승리의 공식은, 어떻게든 선발 투수로 5회까지 리드를 잡는다 -> 권혁 1이닝 -> [[정현욱]] 2이닝 -> [[오승환]] 세이브,[* 황에 따라 [[정현욱]]과 권혁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JKO펀치라 부르기도.]
         2009년의 심각한 혹사의 여파로 2010 시즌에는 속구 구속이 140km/h대를 못 찍을때가 많아졌다. 반면 구속이 줄면서 2009년까지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컨트롤이 당히 개선되어, 예전만큼 끔찍한 강속구를 뿌려대지는 않지만 정교한 제구를 통한 코너웍을 이용해 타자를 처리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주게 되었다. 오히려 안정감만큼은 지난 시즌 이이라는 평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2010년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팀이 스코어 5:6으로 이기던 9회 초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사 1, 2루, 2S1B 황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혼자 실수로 투수판을 밟은 태에서 공을 떨어뜨리면서 보크를 범하여 아이작 궈낵 경[*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패러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65&page=3&bbs=|#]] [[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54&page=3&bbs=|#]] 보크를 저질러 1사 2, 3루가 되자마자 [[안지만]]으로 교체되었고, 안지만이 3번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유격수 플라이, 4번타자 [[양의지]]를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시키고 경기를 끝냈으니 망정이지, 기껏 이겨논 경기 말아먹을 뻔했다. 이날 권혁은 0.1이닝 12투구수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지만, 보크를 기점으로 (본인 왈)멘탈에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어 이후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플레이오프 2차전 : 4타자 대하여 0.1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2볼넷 1희비 1실점(1자책) '''ERA 27.00'''.
         플레이오프 3차전 : 1타자 대하여 스트레이트 볼넷 1실점(1자책) [[한기주|'''ERA 99.99''']].
         플레이오프 4, 5차전 : 등판 못함.[* 등판을 하지 못한 거 자체가 치명적이었다. 팀이 3, 4차전 모두 7명의 투수를 쏟아부었기에 4, 5차전에서 투수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던 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권혁은 중심 불펜 역할을 예정중이었으므로 더욱 타격이 컸다.]
         한국시리즈 1차전 : 1타자 대하여 스트레이트볼넷 1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99.99, 패전'''[* [[오승환]]이 [[김재현]]에게 [[분식회계(야구)|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결승점을 득점한 주자를 내보낸 권혁이 패전투수가 되었다.].
         좌완 중계로서 권혁의 역할은 삼성내에서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146015=|선감독 왈 '유일무이']]라고 불리운 그는,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 시리즈 2차전, 팀이 스코어 1:3으로 지던 8회초에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7번타자인 [[박정권]]을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 [[박경완]]을 대로 홈런을 맞았다. 이 피홈런 때문에 또 다시 멘탈이 붕괴했는지, 다음 타자인 [[나주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고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권혁의 한계라고 보기엔 2010시즌 자체의 그의 성적은 그렇지 않았기에 삼성 선수단과 삼성팬들로서는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이날 권혁은 ⅓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1볼넷 1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4로 패했다.
         결국 권혁은 10월 1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등판하지 못했고, 팀이 시리즈 전적 3패로 몰린 10월 1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 팀이 스코어 4:1로 지던 8회초 2사 1, 2루 황에서 6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첫 타자이자 8번타자인 [[박정권]]을 대로 내리 3볼을 던지고 투구폼이 평소보다 매우 불안하다는 평을 받으며 1타자밖에 대하지 못했다. 권혁은 이날 ⅓이닝 5투구수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2로 패했다.
         한 마디로 한 것도 없이 망쳐만 놓고 아무것도 못했다. 기록의 평가로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지경.
         그 이후로 자신감을 급격히 실, 2011년 시즌을 2군에서 시작했다. 아무래도 2010년 포스트시즌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떨쳐버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오죽했으면 충격으로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체중이 6kg나 빠졌을 정도였다.
         8월 2일 넥센전까지 38경기 11홀드 1블론 ERA 2.70 WHIP 1.33 30이닝 23피안타(1피홈런) 18사사구 15K를 기록 중이다. 뭐 충분히 뛰어난 성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름값과 1억 9천만 원이라는 연봉을 생각하면 기대에 많이 못미친다. 보면 알겠지만, 경기당 1이닝이 안되는 수치로서 이는 당초 기대되던 강력한 셋업맨이 아니라 LOOGY, 즉 [[원 포인트 릴리프]]다.[* 물론 예전과 달리 선발 투수들의 소화 이닝이 6이닝 이까지 올라갔으며 8회에는 [[안지만|힙합전사]]가, 9회에는 [[오승환|인간투석기]]가 풀가동 중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6~7회의 아웃카운트 4~6개를 [[정현욱]], [[권오준]]과 나눠 소화하게 되기 때문에 납득하지 못할 변화도 아니다. [[권오준]]만 해도 경기당 1이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LOOGY들에게 가장 금물이라 할 수 있는 '''볼질'''이 심해졌다. 작년만 해도 73K/19BB였고 통산 K/BB도 2를 넘는데 올해는 어째... 물론 [[삼성 라이온즈]]나 국내 야구판에 권혁만한 레프티 릴리버가 있어도 얼마나 더 있겠냐마는, 이전에 비해 좀 안습인건 사실이다.
         특이한 건, 좌우 대 전적이 괴랄하게 밸런스가 안 맞았다. 좌타자 대 14피안타(2루타 1개. BAA .241) 5K/11BB, 우타자 대 9피안타(2루타 3개, 홈런 1개. BAA .191) 10K/6BB 1HBP(…). 이건 '''LOOGY가 LOOGY가 아니다.''' 아무래도 좌타 대로는 그라운드 볼을 유도하여 맞춰잡는 전략인 듯한데, 그게 잘 안 되는 듯했다.
         그러나 8월 6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로나쌩이던 [[정인욱]]이 초반 제구 실패로 무너진 후 팀이 스코어 1:6로 뒤진 황에 패전처리로 등판하였으나, 실책과 본인의 여전한 제구난으로 인해 오히려 5실점하여 팀이 4:11로 대패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이 경기를 보면서, 많은 삼성팬들은 '삼성 핵심 불펜 중의 핵심이었던 권혁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는지, 그것도 '''패전처리에서도'''…'라는 반응을 보이며 많이 씁쓸해했다. 분명 삼성의 특급좌완계투였던 그의 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을 황이 아닐 수 없으며, 그야말로 처절하게 몰락한 거와 다름이 없었다. 당시 삼성의 쓸만한 좌완계투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2011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위해서는 그의 부활이 정말로 절실했다.
  • 손담비 . . . . 138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포항시]] 죽도동 (죽도시장2길)
         | 학력 = 포항일만회센타
         | 웹사이트 = [http://www.keyeast.co.kr/index/artist/profile.asp?art_idx=57 키이스트 손담비]<br>{{트위터|dambi925}}<br>{{페이스북|sondambi}}<br>{{인스타그램|xodambi}}
         * 포항일만회센타
         소속사에 들어가서는 트레이닝을 받았고 2002년에는 MBC의 시트콤 《[[논스톱3]]》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준표도 담비도 출발은 단역 아이돌 스타 무명 시절 살펴보니 |url = 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출판사 = 스포츠서울 |저자 = 나지연 |날짜 = 2009-05-03 |확인날짜 = 2009-09-02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91011100530/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보존날짜 = 2009-10-11 |깨진링크 = 예 }}</ref> 이처럼 원래 손담비는 가수보다 배우가 꿈이었으며 기획사에 들어간 계기도 사실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ref name="news">{{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인터뷰③)|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유현진, 정유진|날짜=2009-04-17}}</ref> 2004년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크럼핑을 배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내 이름은 손담비, '몸치'였던 나의 이야기 들어볼래?"|url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DCD=A606&newsid=02086086583165328&OutLnkChk=Yl |출판사 =이데일리|저자 =박미애|날짜 = 2007-06-25|확인날짜 = 2009-09-02}}</ref> 크럼핑을 배울 당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국의 안무가 브라이언 프리드먼과 크럼핑 댄스의 창시자 릴C 등 유명인사들에게 배웠다.<ref>{{뉴스 인용|제목=미쓰에이 연습생 시절 보다 더 파워풀한 '손담비 연습생 시절' |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출판사=ENS|저자=뉴스팀|날짜=2010-12-31|확인날짜=2010-12-31}}{{깨진 링크|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 }}</ref> 당시 릴C는 손담비에게 "너는 예쁘니까 그냥 연기나 해라"라고 할만큼 재능이 부족했지만, 오랜 연습끝에 춤을 잘 출 수 있게 되었다.<ref name="10아시아"/> 같은 해 2005년에는 CJ 뮤직이 글로벌 프로젝트로 에스블러쉬라는 그룹을 결성해 초창기 멤버로 발탁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 |제목 =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 |url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 =머니투데이|저자 =김원겸|날짜 = 2007-05-06 |확인날짜 = 2014-05-15}}</ref> 2007년 5월에는 [[가희]]와 함께 에스블러쉬 멤버로서 〈It's My Life〉를 발매했고, 미국 [[빌보드]] 핫 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 2위까지 진입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7-05-06|확인날짜=}}</ref> 하지만 팀 내부 사정으로 솔로로 전향하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
         이후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한국 데뷔를 준비했는데, 데뷔 전 바람의 〈사랑하다〉, [[메이비 (가수)|메이비]]의 〈다소〉와 같은 뮤직비디오와 [[삼성전자]], [[SK 텔레콤]]과 같은 대기업 광고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담비가 온다1]MSN 재팬이 주목한 거물 신인|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300&g_serial=260493|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7-05-04|확인날짜=2014-05-15}}</ref><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데뷔전부터 잇달아 대기업 모델 '톱스타 예약'|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507444112344&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5-05|확인날짜=2014-05-15}}</ref> 또한 비보이 대회 'R16 코리아 스파클링 서울'에 출전했다.<ref name="seg1"/> 그리고 2007년 6월 14일, 손담비는 데뷔 싱글 〈[[Cry Eye]]〉를 발매했다. 〈Cry Eye〉는 손담비의 뛰어난 춤실력을 보여주는데는 충분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Cry Eye〉의 안무 중 [[크럼핑]]이라는 장르를 안무로 삼아 이 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렸다.<ref name="seg1">{{뉴스 인용| url =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제목 = '여자비' 손담비, 댄스로 뜨고 가창력까지 장착| 날짜 = 2007-07-08| 저자 = 한준호 기자| 확인날짜 = 2007-08-07| 뉴스 = 세계일보|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930152416/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7091012000004#| 보존날짜 = 2007-09-30| 깨진링크 = 예}}</ref> 또한 크럼핑은 고난이도 댄스로 꼽혀 아시아에서도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한 뒤, 미국으로 떠나 L.A 밀레니엄 스쿨에서 발레, 재즈, 크럼핑 댄스 등을 배우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등 연습에 매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 여름 컴백 환. 내 인생 최대의 도전”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51917202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현우, 정유진|날짜=2008-05-20}}</ref>
         2008년 2월 29일 게임 [[프리스톤테일2]]의 주제가 "Change the World"를 불렀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36656 네이버 뮤직 - Change The World (프리스톤테일 2) O.S.T] 《[[네이버]]》</ref> 같은 해 4월 29일 손담비는 첫 미니 앨범 ''[[Mini Album Vol.1]]''을 발매하며 컴백 했다. 앨범의 타이틀 곡 "Bad Boy"로, 전 에스블러쉬 멤버로 함께 활동했던 [[가희]]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이 때 손담비는 주로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활동했다. "Bad Boy"는 발표한지 2주만에 음원 사이트 1위를 차지했고, 지파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할때마다 검색어 순위는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모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배드 보이', 29일 미니앨범 공개 후 '대박 조짐'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27079|출판사=조이뉴스24|저자=박재덕|날짜=2008년 4월 20일|확인날짜=2011-02-06}}</ref>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에는 조회수가 20만 건이 넘었고, 무대에서 입고나온 코르셋 스타일의 파격적인 의도 많은 관심을 받아 홈페이지가 폭주하기까지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코르셋패션 "열기"...홈페이지 또 "혼수태" |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63|출판사= 깜뉴스|저자=신명희 기자|날짜=2008년 5월 25일|확인날짜=}}</ref>
         5달 후인 2008년 9월 17일 두 번째 미니 앨범 ''[[Mini Album Vol.2]]''의 타이틀곡 〈미쳤어〉의 티저 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개하였는데, 티저 은 공개후 각종 동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받으며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미쳤어' 티저 에 팬들의 반응 뜨겁네~ |url=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gid=main&bid=news&pid=111539|출판사=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연예|저자=스포츠연예팀|날짜=2008-09-19|확인날짜=}}</ref> 이어 18일에는 음반을 발매하였다. 타이틀곡인 〈미쳤어〉 열풍이 한국에 불었는데, 특히 처음 후렴구부분의 의자춤이 인기를 끌었다. 각종 연예인들은 의자춤 패러디를 했는데, 재일 먼저 배우 [[허이재]]가 패러디를 했고,<ref>{{뉴스 인용|제목= 허이재, 손담비 ‘미쳤어’ 의자춤 깜짝공개 눈길 확~|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0191843251001 |출판사= 뉴스엔 연예|저자=이현우|날짜=2008-10-20|확인날짜=}}</ref> 계속해서 김효진, 신봉선, 양정아, 현, 노홍철 등이 예능에서 따라했으며, 《[[내 사랑 금지옥엽]]》의 유인, 《[[수한 삼형제]]》의 오지은 등 드라마에서도 패러디를 했다. 또한 일반인들도 UCC를 통해 많은 패러디 동을 올렸다. 너도나도 다 따라한탓에 급기야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미쳤어〉 금지령까지 내려졌다.<ref>{{뉴스 인용|제목= 방송가, 손담비 '미쳤어' 이제 그만! |url=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80986|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박재덕 기자|날짜=2008년 12월 22일}}</ref> 2008년 11월 17일에는 [[마이티 마우스 (음악 그룹)|마이티 마우스]]의 싱글 〈[[Family (Special Edition)|패밀리]]〉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이티마우스, 이번에는 손담비‥'패밀리'|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2372273|출판사=네이버|저자=유우|날짜=2008-11-11|확인날짜=2012-05-20}}</ref> 가수 활동 이외에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우리결혼했어요]]》에 [[마르코 (배우)|마르코]]와 함께 가 부부로 나와 [[MBC 방송연예대]] 특별/베스트커플했다.<ref name="2008MBC"/> 또한 각종 CF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는데, 1년만에 몸값이 3배가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몸값, 1년만에 3배 이 높아져 '미쳤어' |url= 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0966034|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날짜=2008-11-12|확인날짜=}}</ref>
         EP 활동의 끝난 뒤인 2009년, 첫 정규 음반 ''[[Type-B]]''의 발매로 컴백을 준비했다. 음반 발매와 음원 공개에 앞서 총 3차에 걸친 티저를 선공개하였는데, 2009년 3월 19일 타이틀곡인 〈토요일밤에〉 1차 티저를 공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티저, 팬들 반응 뜨거워|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62026|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19 |확인날짜=2010-12-29}}</ref> 이어 20일에는 롤러스케이트 장으로 꾸며진 곳에서 1980년대 디스코풍의 2차 티저를 공개하였는데, 마지막에 '토요일 밤에'라는 문구가 등장에 더욱 궁굼증을 자아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2차 티저 공개 이번엔 '롤러걸'|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844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0 |확인날짜=2010-12-29}}</ref> 23일에는 백발의 손담비가 등장, 마지막 3차 티저를 공개하여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백발' 손담비, '토요일 밤에' 3차 티저 공개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3406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3 |확인날짜=2010-12-29}}</ref> 다음날인 24일 타이틀곡 〈토요일밤에〉 음원이 공개된 후, 폭발적인 승세로 바로 음원사이트 10위 권에 진입하며 또 다른 손담비 열풍을 예고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토요일밤에' 컴백, 그녀의 '인기몰이' 이미 예견된 수순|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410074|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6|확인날짜=2010-12-29}}</ref> 〈토요일밤에〉는 80년대 디스코 복고풍으로 후렴구부분의 '하늘 찌르기춤'으로 인기를 얻었다.<ref name="하늘찌르기춤">{{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의자춤 이어 하늘찌르기춤 신드롬 일으킨다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503220831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 기자|날짜=2009-05-04}}</ref> 26일에는 첫 정규 음반 ''[[Type-B]]''가 발매되었다. 한편, 〈토요일 밤에〉가 발표된 뒤,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있던 손담비는 2009년 4월 10일, [[KBS]]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하였고 《[[엠 카운트다운]]》,《[[인기가요]]》 등에서도 1위를 해 그 인기를 실감케하였다. 또한 CF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하여 광고 섭외순위가 0순위라는 말까지 떠돌았고,<ref>{{뉴스 인용|제목=이승기, 손담비…광고모델 섭외 0순위 드러내|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출판사=OBS 연예뉴스|저자=김광선 에디터|날짜=2009-10-2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 }}</ref> 연말에는 MTN 2009 방송광고 페스티벌에서 여자 CF 모델을 수하기도 하였으며, 〈토요일밤에〉로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 에서 수을 하였다. 정규 앨범 활동이 끝나자 손담비는 [[2009년]] 7월부터 방된 SBS 월화 드라마 《[[드림 (드라마)|드림]]》에서 박소연이라는 여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업적으로 큰 실패를 거두었고, 연기력 논란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SBS 연기대]]에서 뉴 스타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드림' 시청률 울 손담비, 뉴스타에 웃었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01130622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소희 기자|날짜=2010-01-21 |확인날짜=}}</ref>
         손담비는 2010년 5월 컴백을 앞두고 준비해왔지만, 같은 소속사 그룹인 [[애프터스쿨]]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활동이 미뤄졌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컴백 연기..애프터스쿨 때문?|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42809051209710|출판사=아시아 경제|저자=조범자 기자|날짜=2010-04-28|확인날짜=}}</ref> 한달 뒤인 2010년 6월 25일 손담비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섹시디바' 손담비, 1년 3개월만의 컴백…움직임 포착!|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81096|출판사=오토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10-06-25|확인날짜=}}</ref> 7월 2일에는 음반의 수록곡 중 하나인 "Can't u see"를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그림자댄스'로 서버다운까지? '히트예감'|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news_view&idx=39797|출판사=서울신문NTN|저자=오경 인턴기자|날짜=2010-07-0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ntn.seoul.co.kr/main.php?cmd=news%2Fnews_view&idx=39797 }}</ref> 음반 발매 하루 전 날에는 전곡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ref>{{뉴스 인용|제목=허무한 손담비, 컴백 하루전 음원유출|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00708004612&subctg1=10&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10-07-09|확인날짜=2010-12-06}}</ref> 그리고 2010년 7월 8일 ''The Queen''을 발매했다. 이후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음악중심]]》, 《[[인기가요]]》에서 "Can't u see"와 "queen"을 선보이며 컴백 무대를 펼쳤다. 한편, 7월 결산 차트에서 손담비는 "Can't U See"와 "queen"이 20위권에 들면서 7월 위 20위권 차트에서 유일하게 2곡 이을 진입시킨 가수가 됐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7월 음원 톱20 멀티히트 가수 '유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80215133583882&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관명 기자|날짜=2010-08-02|확인날짜=}}</ref> 이렇게 초반에는 좋은 출발을 했지만, 얼마 안 되어 "queen"의 MR을 제거한 이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가창력 논란이 일어났다.<ref name="아츠">{{뉴스 인용|제목='표절논란' 손담비 '퀸(Queen)' MR제거, 무엇이 문제일까?|url=http://www.artsnews.co.kr/news/89424|출판사=아츠뉴스|저자=박진 기자|날짜=2010-07-12}}</ref> 또한 "queen"의 뮤직비디오 일부분이 미국 드라마 《엘리스》의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는 표절논란을 빚어 소속사는 논란이 된 장면들을 모두 삭제키로 결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뮤비 표절 논란 일부 장면 삭제|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출판사=투데이코리아|저자=김민철 기자|날짜=2010-07-12}}{{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279 }}</ref> 2010년 8월, 손담비는 타이틀곡 활동을 마무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퀸’ 활동 끝 ‘잠시만 안녕’ 모두다 이뤄졌나?|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82018352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8-20}}</ref> 이후 후속곡인 "[[dB Rider]]"로 9월부터 10월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크게 히트치지는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이더 변신’ 손담비, 파워풀한 섹시美 돋보인 후속곡 첫 무대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9171909341131&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강선애 기자|날짜=2010-09-17|확인날짜=2010-10-12}}</ref>
         한편, 손담비가 무대에서 특유의 표정을 지어 '업신담비'로 불리며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업신 표정 화제 "니가?" … 본인도 쿨하게 인증|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7743|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인터넷뉴스팀|날짜=2010-10-16|확인날짜=2010-12-22}}</ref> 2010년 10월부터는 M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여우의 집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방된지 2개월만에 폐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여우의 집사 폐지…불과 2개월만, 잘나가던 뉴스후 폐지하더니|url =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출판사 = 프라임 경제|날짜 = 2010-12-17|확인날짜 = 2010-12-29|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729055321/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보존날짜 = 2014-07-29|깨진링크 = 예}}</ref> 한편 손담비는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미쳤어〉와 《드림》의 인기로 '2010 [V] CHINESE TOP 연도 시식 콘서트'에서 아시아 최고 아티스트을 수했다.<ref name="대만">{{뉴스 인용|제목=‘섹시 퀸’ 손담비, 대만진출 나선다|url=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출판사=donga.com|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11-01-17|확인날짜=2011-01-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728204248/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보존날짜=2014-07-28|깨진링크=예}}</ref> EP 음반 ''The Queen''역시 대만에서 음반 차트 등 각종 차트 정을 차지했다.<ref name="대만"/> 한편, 2011년 1월에 제20회 서울가요대에서 본을 수하며 3년연속 본을 수받았다.<ref name="20회 서가대">{{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 3년 연속 본|url=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47|출판사=뉴스웨이|저자=최가람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1}}</ref> 이어 아시아모델시식에서도 BBF 인기가수을 수했다.<ref name="BBF">{{뉴스 인용|제목=권우ㆍ소녀시대ㆍ옌청쉬, '아시아 스타'|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4878908|출판사=네이버뉴스|저자=연합뉴스 임은진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2}}</ref> 2011년 5월부터는 피겨스케이팅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출연했고, TOP4에 진출했다.<ref>[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l_freetype.jsp?vVodId=V0000349432&vProgId=1000708&vMenuId=1014807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출연진 및 MC 소개] 《[[SBS]]》. 2011-05-21 확인.</ref> 2011년 11월부터는 MBC의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가수 유채 역으로 출연했고, 미디엄 템포 장르의 드라마 OST "Everything"을 불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빛과 그림자’ OST 참여 ‘호소력 짙은 목소리 뽐내’|url=http://artsnews.mk.co.kr/news/188777|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세|날짜=2012-01-04|확인날짜=2012-01-05}}</ref> 《빛과 그림자》는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했고, 손담비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발연기'한다던 손담비, 어느덧 '배우'가 됐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오경|날짜=2012-06-12|확인날짜=2012-06-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616025258/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보존날짜=2012-06-16|깨진링크=예}}</ref> 2011년 12월 1일에는 [[애프터스쿨]]과 함께 해피 플레디스 2012 시리즈인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를 발매했고, 수익금 일부를 [[유니세프]]의 "아우인형" 프로젝트에 기부했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04689 네이버 뮤직 -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 《네이버》. 2012-01-05 확인.</ref> 2012년 8월, 《빛과 그림자》가 종되었고, 손담비는 가수로서 컴백을 준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런던올림픽과 한판|url=http://sports.donga.com/3/all/20120612/46956635/3|출판사=[[스포츠동아]]|저자=김원겸|날짜=2012-06-13|확인날짜=2012-06-18}}</ref>
         == 음악 및 향 ==
         손담비는 싱글 "[[Cry Eye]]"로 데뷔했을 당시 안무중 [[크럼핑]]이라는 고난도 댄스를 이용해 아시아의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 받았고, 이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리기도 했다.<ref name="seg1"/> 마돈나의 안무를 담당했던 미스 프리시는 손담비의 춤을 보고 "흑인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운 느낌과 동작을 잘 표현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해도 손색없는 실력이다"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돈나 안무가 손담비 춤 '극찬'|url=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810204|출판사=노컷뉴스|저자=이지현|날짜=2008-04-24|확인날짜=2012-05-12}}</ref> 그러나, 손담비는 데뷔 때부터 가창력에 대한 지적을 자주 받아왔다. 특히 2010년 "queen"의 MR 제거 으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ref name="아츠"/> 《[[티브이데일리]]》의 유진모는 "손담비의 가창력은 형편 없다. 온통 이펙터로 치장한 보컬은 도대체 사람이 부르는지 기계로 만든건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토요일밤에〉에는 가창력 때문에 키를 내려 노래의 맛이 더 떨어졌다. 아이비의 폭발력마저도 없다"고 말했고, 이어 "아이비와 손담비의 음악성을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다"라고 평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효리 손담비 아이비 서인 '섹시 여가수' 성적표|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유진모|날짜=2010-06-28|확인날짜=2012-05-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517152125/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보존날짜=2014-05-17|깨진링크=예}}</ref>
         또한 데뷔 초부터 [[문지은]], [[선하]], 제이제이와 함께 "포스트 이효리"라는 호칭을 얻으며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선하·제이제이..'제2의 효리' 경쟁 뜨겁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80129090514652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8-01-29|확인날짜=2010-11-05}}</ref> 하지만 2008년 말 〈미쳤어〉로 히트를 치며 앞에 세 여가수중 유일하게 인기를 얻은 가수가 되었다. 특히 〈미쳤어〉의 안무인 의자 춤은 손담비를 스타로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줬다.<ref>{{뉴스 인용|제목='스타탄생' 손담비의 전략은 바로 이것!|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10523482489834&nvr=y|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환횽희 연애패트롤|날짜=2009-01-21|확인날짜=2010-11-05}}</ref> 연이어 2008년 정규 1집 타이틀곡 〈토요일 밤에〉 역시 크게 히트하며 국내 최고의 여자 가수로 자리매김했다.<ref name="Mini 2"/> 이때부터 본격적인 포스트 이효리로 불리기 시작했고, [[이효리]] 역시 "손담비, 서인, 아이비 까지는 기사에서 자신과 붙여 놔도 괜찮다"며 인터뷰중 손담비의 존재감을 인정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효리 대항마` 손담비-서인은 언제컴백?|url=http://star.mk.co.kr/new/view.php?mc=ST&year=2010&no=190546|출판사=스타투데이|저자=이현우 기자|날짜=2010-04-14|확인날짜=2010-11-07}}</ref> 하지만 손담비는 이효리와 라이벌 구도에 대해 "라이벌로 생각해 본 적 없다. 이효리의 내공을 따라갈 수 없다"라며 말하기도 했다.<ref name=Bi2>{{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와 라이벌? 내공 따라갈 수 없어”|url=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362|출판사=리뷰스타|저자=홍샘 기자|날짜=2010-09-05|확인날짜=2010-10-12}}{{깨진 링크|url=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362 }}</ref>
         손담비는 연습생 시절, 비의 어록들을 연습실에 붙여놓고 활동했다고 한다. 또한 "퍼포먼스 할 때 동작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어떤 걸 표현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과감한 몸짓,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표정 등 많은 부분에서 닮고 싶다"고 말하며 [[비욘세 놀스]]를 존경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비 어록, 연습실에 붙여놨다"|출판사=조이뉴스24|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268832|저자=박재덕|날짜=2007-06-27 |확인날짜=2011-02-01}}</ref> 또한 손담비는 "배우의 색깔과 가수의 색깔이 공존하는 분이다. 배우로서도 훌륭하고 가수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스타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며 [[엄정화]]를 롤모델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출판사=뉴스엔|날짜= 2009-04-17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ref> 이 외에 [[김완선]]과 [[마돈나]]에게 향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집에서 혼자 춤춰요”(인터뷰①)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636281002|출판사=뉴스엔|저자=윤현진|날짜=2009-04-17|확인날짜=2011-08-13}}</ref><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새 앨범 컨셉트는 '김완선+마돈나'|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676958.htm?imgPath=entertain/broad/2009/0325/|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저자=김호|날짜=2009-03-25|확인날짜=2011-08-13}}{{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676958.htm?imgPath=entertain%2Fbroad%2F2009%2F0325%2F }}</ref>
         {{참고|손담비의 수 및 후보 목록}}
         손담비는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면서 많은 을 받았다. [[서울가요대]]에서는 2009년,<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 ‘미쳤어’ 열풍 과시|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2121717531002|출판사=뉴스엔|저자=지형준|날짜=2009-02-12|확인날짜=2014-05-15}}</ref> 2010년,<ref>{{뉴스 인용|제목=아이돌, 그들을 위한 잔치! 서울가요대 이변은 없었다(종합)|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203202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날짜=2010-02-03|확인날짜=2014-05-15}}</ref> 2011년에 이은 3년 연속으로 본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3년 연속 본… “내겐 너무 특별한 ”|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98214|출판사=뉴스엔|저자=양나래|날짜=2011-01-20|확인날짜=2014-05-1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517130014/http://sstv.hankyung.com/?c=news&m=v&nid=98214#|보존날짜=2014-05-17|깨진링크=예}}</ref> 2009년에는 제24회 [[골든디스크]]에서 디지털음원부문 본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골든디스크 본’ 손담비 “이렇게 큰 무대에서 큰 을 받다니…”|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0912102051543&mode=sub_view|출판사=한경닷컴 bnt뉴스|저자=박주|날짜=2009-12-10|확인날짜=2014-05-15}}</ref> 2009 [[SBS 연기대]]에서는 《[[드림 (드라마)|드림]]》으로 뉴스타을 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김범-이민정 등 12명, SBS 연기대 뉴스타|url=http://osen.mt.co.kr/article/G0912310257|출판사=OSEN|저자=봉준|날짜=2009-12-31|확인날짜=2014-05-15}}</ref> 2012년에는 《빛과 그림자》로 [[MBC 연기대]] 특별기획 우수,<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MBC 연기대 ‘우수’ 수, “숟가락 얹은 것 뿐”|url=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6379|출판사=뉴데일리|저자=신성아|날짜=2012-12-31|확인날짜=2014-05-15}}</ref> [[대한민국 문화연예대]] 신인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대한민국문화연예대 신인...인증샷 공개|url=http://osen.mt.co.kr/article/G1109511163|출판사=OSEN|저자=정유진|날짜=2012-12-06|확인날짜=2014-05-15}}</ref> 배우, 가수 이외에도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2008 [[MBC 방송연예대]]에서 특별 베스트 브랜드을 받았다.<ref name="2008MBC">{{웹 인용|url=http://www.imbc.com/broad/tv/ent/event/2008entertain/awards/|제목=2008 MBC 방송연예대자 목록|출판사=[[MBC]]|웹사이트=[[MBC 방송연예대]]|확인날짜=2011-02-16}}</ref>
         2009년 데뷔한 [[NS윤지]]는 비슷한 장르와 외모때문에 제2의 손담비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NS윤지는 직접 "더 많이 노력해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나 연기력 등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고,<ref>{{뉴스 인용|제목=NS윤지 "제2의 손담비? 다양한 모습 보여드릴게요"(인터뷰)|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9579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박재덕|날짜=2010-06-02|확인날짜=2011-08-13}}</ref> 프로듀싱을 맡은 [[용감한 형제]]는 "프로듀서로서 제2의 손담비, 차세대 섹시디바로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든 가수이다"라고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용감한형제, ‘제2의 손담비’로 NS윤지 찜!|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01020181020513&ts=163735|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심재걸|날짜=2010-10-20|확인날짜=2011-08-1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808194946/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01020181020513&ts=163735#|보존날짜=2014-08-08|깨진링크=예}}</ref> 같은 플레디스 소속이었던 [[헬로비너스]]는 "저희 롤 모델은 손담비 선배님이에요. 일본 등 해외 활동도 하고 계시고,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와 퍼포먼스가 정말 멋지세요. 선배님들의 장점만을 모아 저희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라며 롤모델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헬로비너스 “머리가 불에 타도 족발이 먼저!”…신개념 ‘털털 아이돌’ 등장|url=http://news.donga.com/3/all/20120615/47030992/2|출판사=[[동아닷컴]]|저자=박욱, 오세훈|날짜=2012-06-15|확인날짜=2012-06-15}}</ref>
         | 유채
  • 울진군 . . . . 138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북도)]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04B431> {{{#FFFFFF '''광역시도'''}}} ||<bgcolor=#CEF6CE> [[경북도]] ||
         ||<-2><bgcolor=#08088A> {{{#FFFFFF '''국회의원'''}}} ||<bgcolor=#CEE3F6> [[양군·덕군·봉화군·울진군]]:[br][[강석호]]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3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1A4E5><bgcolor=#F0F8FF><table width=90%><:> [[파일:불사 가을 풍경.jpg|width=95%]] ||
         ||<bgcolor=#F0F8FF> ▲ 불사 가을 풍경 (금강송면 불계곡로 48) ||
         [[경북도]] 북동부에 있는 [[군(행정구역)|군]]이다. 인구 5만여 명. [[대게]]와 [[온천]](백암, 덕구), 불계곡, 불사 성류굴, [[원자력 발전소]]([[한울 원자력 발전소|한울]]) 등으로 유명하다.
         과거 '''[[강원도]] 관할이었다가'''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2670#0000|1963년 1월 1일 경북도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었다]. 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의 <울산바위> 편을 보면 [[울산]]에 있던 [[크고 아름다운]] 바위가 뒤늦게 [[금강산]]을 향해 가다가 강원도로 넘어가자 [[장승]]이 '어서오세요 여기는 강원도입니다'하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덕에서 울진으로 넘어가는 장면일 듯.
         [[신라]] 시대에는 [[명주]], [[고려]] 시대에는 동계, [[조선]]~[[대한민국]] 시대(1962년)까지 1000년이 넘도록 강원도 관할이었고, 현재 [[경도]](경북도) 관할로는 2014년 현재 겨우 50여 년이 되었다. 경도 다른 지역보다 강원도 정서가 좀 더 강한 것은 당연하다. [[애초에]] 도급 행정구역의 경계지역은 완전히 그 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것도 강원도같이 도내에서도 지역차가 확고한 지역이라면.
         || [[강원도]][br]울진군[br]江原道[br]蔚珍郡 ||<|2> 강원도[br]울진군[br]江原道[br]蔚珍郡 ||<|2> '''[[경북도]][br]울진군[br]慶尙北道[br]蔚珍郡''' ||
         || 1. 서면(西面)[br]2. 원북면(遠北面)[br]3. 근북면(近北面)[br]4. 군면(上郡面)[br]5. 하군면(下郡面)[br]6. 근남면(近南面)[br]7. 원남면(遠南面) || 1. 원북면(遠北面)[br]2. 근북면(近北面)[br]3. 원서면(遠西面)[br]4. 근서면(近西面)[br]5. 북하리면(北下里面)[br]6. 리면(上里面)[br]7. 남하리면(南下里面)[br]8. 남면(南面) ||
         || 1. 서면(西面)[br]2. 북면(北面)[* 옛 울진군 원북면][br]3. 삼화면(三和面)[* 옛 울진군 근북면 + 군면 + 하군면][br]4. 근남면(近南面)[br]5. 원남면(遠南面)[br]6. 평해면(平海面)[* 옛 평해군 원북면 + 근북면][br]7. 온정면(溫井面)[* 옛 평해군 원서면 + 근서면][br]8. 월송면(月松面)[* 옛 평해군 리면 + 북하리면 + 남하리면 + 남면] ||
         외딴 [[섬]]이나 [[반도]] 지형이 아니면서도 [[철도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과 [[고속도로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 구]](정확히는 금강송면 서부지역에 200m가량 동선철도가 지나긴 한다. 하지만, 정차역은 없다.) 에 모두 이름을 올린 얼마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과거에는 [[승부역]]이 울진군에 속해 있었다. [[양원역(동선)|양원역]]이 군 경계에서 가깝기는 하나, 교통 오지의 역이므로 그 마을에서만 이용하는 실정, 그나마 울진군 이용객이 있는 역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에 있는 [[분천역]]이기는 하다. [[분천역]] 서쪽으로는 [[동선]]보다 [[36번 국도]]가 좀더 나은 관계로 울진군의 철도 이용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예전에는 [[고속도로]]가 없고 군을 관통하는 [[7번 국도]]의 확장공사가 더뎌 교통이 당히 나빴다. 특히 [[삼척시]]와 울진군 사이의 [[7번 국도]] 구간은 과거 [[동고속도로]] 확장 이전의 [[대관령]] 고개 수준의 구불구불함을 자랑하여 인근 [[덕군]], [[삼척시]]까지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었다.
         2010년 12월 말 [[7번 국도]]의 확장 공사가 끝나면서 [[삼척시]]와 덕읍까지 4차선 직선도로가 완공되었다. 삼척부터 포항까지 4차선 국도이다. 이로 인해 동해안에 대한 접근성이 당히 좋아졌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울진종합버스터미널|울진]]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소요시간도 4시간이면 도착한다. 요건 [[7번 국도]]를 경유하는 [[강원여객]] 차량에만 해당된다. [[경북코치서비스]]와 [[경기고속]] 차량은 경유지도 더 많은데다 불계곡으로 지나가서 속까지 울렁거린다. 버스 타다 토하기 싫으면 [[강원여객]]이 오는 시간으로 타도록 하자. 소요시간도 좀더 빠르고 울진군 주민들도 [[강원여객]]/[[강원흥업]]을 훨씬 선호한다.
         의외로 거리는 서울-주-봉화-울진이 서울-동해-삼척-울진보다 짧다. 전자는 300km, 후자는 340km. 하지만 [[36번 국도]]의 태는 굉장히 나쁘다. 반면 [[7번 국도]]는 거의 준 고속도로급이기 때문에 [[강릉시]]에서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으며 예전에 3시간 가까이 걸리던 [[포항시]]도 역시 버스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무정차에 한해서지만....완행노선은 여전히 3시간 정도 걸린다
         현재 [[삼척시]]와 [[포항시]]를 연결하는 [[철도]] [[동해선]]이 공사 중에 있다. 2020년 예정대로 완공되면 지금보다 교통편은 훨씬 나아질 듯 하다. [[분천역]]과 [[울진역]]을 잇는 [[울진-분천선]]도 장기계획으로 추진 중이며 개통시 봉화-춘양-분천-울진-평해-덕으로 직결 운행하기 위해 울진역은 읍내보다 조금 남쪽에 건설한다.
         그러나 울진은 항공교통의 요충지 중 하나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및 [[유럽]]/[[중국]]에서 우리나라 공을 관통하여 [[일본]]으로 가는 대부분의 비행기들은 울진 공을 거쳐서 대한민국을 떠난다. 일부 예외가 있는데 이 경우는 강릉 공을 통해 대한민국을 떠난다.
         [[교통카드]]는 [[경북도]]의 동해안권인 [[포항시]]에서 쓰는 [[T-Money|티머니]]를 공용한다. 인근 [[봉화군]]과 [[덕군]]도 사용 예정.
         울진의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원자력발전소이다.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한울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워낙에 교통이 불편한데다 그나마 근처에 대도시(울산,부산,광주)가 있는 다른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근처에 도시다운 도시도 없다. 인구 15만 이 도시를 기준으로 삼으면 강릉이 북쪽으로 110km, 안동이 남서쪽으로 117km, 포항이 남쪽으로 120km 떨어져 있다. 대신 근처에 큰 도시가 없다는 건 만약 방사능이 유출될 시에 위험지역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니 국가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좋은 거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근무 지원자가 적어서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10년 이 한울원전에서 계속 근무할 것을 전제로 하는 특별채용도 실시하고 있다.
  • 영양군 . . . . 134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북도)]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
         [include(틀:양군의 읍면)]
         ||||<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FA5858><bgcolor=#FA5858><:> {{{+2 {{{#FFFFFF '''양군'''}}}}}} [br] {{{#FFFFFF '''Yeongyang County / 英陽郡'''}}} ||
         ||<bgcolor=#FA5858> {{{#FFFFFF '''광역시도'''}}} ||<bgcolor=#F8E0E6> [[경북도]] ||
         ||<bgcolor=#FA5858> {{{#FFFFFF '''국회의원'''}}} ||<bgcolor=#F8E0E6> [[양군·덕군·봉화군·울진군]]:[br][[강석호]]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3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bgcolor=#FA5858> {{{#FFFFFF '''링크'''}}} ||<bgcolor=#F8E0E6> [[http://www.yyg.go.kr/|양군 공식 홈페이지]]
         [[https://www.facebook.com/yeongyanggun|[[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양군 공식 페이스북]]
         [[https://twitter.com/HOTyyg|[[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양군 공식 트위터]] ||
         || [[파일:attachment/양군/양군의-위치.jpg|width=300]] ||
         ||<tablebordercolor=#F8E0E6><bgcolor=#F8E0E6> [[파일:attachment/양군/양읍-전경.jpg|width=350]] || [[파일:external/www.sanggul.com/20101219_96309074.jpg|width=350]] ||
         ||<rowbgcolor=#F8E0E6> {{{#FA58AC '''▲ 양읍 전경'''}}} || ▲ {{{#FA58AC '''양군청사 ([[경북도]] 양군 양읍 군청길 37)'''}}} ||
         ||<tablebordercolor=#F8E0E6><bgcolor=#F8E0E6> [[파일:일월산 일출.jpg|width=350]] || [[파일:계폭포.jpg|width=350]] ||
         ||<rowbgcolor=#F8E0E6> {{{#FA58AC '''▲ 일월산 일출'''}}} || {{{#FA58AC '''▲ 계폭포'''}}} ||
         --양만점-- --현실은...--
         [[경북도]] 동북부에 있는 군. 면적은 815.14㎢ , 서쪽은 [[안동시]], 북쪽은 [[봉화군]], 남쪽은 [[청송군]], 동쪽은 [[덕|덕군]], [[울진군]]과 접하고 있으며 인구는 2018년 2월 기준 약 1만 7천 명. 양군보다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는 [[경북도]] [[울릉군]]뿐이다. 그나마도 울릉군은 자그마한 섬이라는 특수성이 있으니, 이 양군이 (섬을 빼고) [[육지#s-2|육지]] 중엔 사실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셈이며, 이는 [[팔라우]] 전체 인구와 거의 비슷하다. 아울러 인구 밀도 21명/㎢로 전국에서 [[강원도]] [[인제군]]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낮은 시군이다. 참고로 인제군의 인구밀도는 20명/㎢. 그러나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인제군에서 군 복무를 하는 대다수 군인들을 감안하면, 실제 인구밀도는 오히려 양군이 인제군보다 더 낮을 수도 있다.
         전국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을 이르는 말인 [[BYC|B'''{{{#red Y}}}'''C]]([[봉화군]], 양군, [[청송군]])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특히 낙후되었다.
         ||<-10> '''양군 행정구역 변천사''' ||
         || 양군 [br](英陽郡, 1895) [br] 진보군 북면 / 동면[br](眞寶郡, 1895) ||<|2> → || '''양군 [br](1914)''' ||
         신라 때 고은(古隱)이라 불렀으며, 고구려 장수왕 때 잠깐 고구려 땅이 되었다가 신라에게 돌아왔고 이후 양(英陽)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1179년 양현이 신설되었는데, 1413년 해부에 편속되었다 다시 1683년 현이 되었고 1895년 군으로 승격되었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133회 일치
         계속 히그마에게 끌려서 근해로 간 다음 히그마가 바다에 던진 탓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했으나, 샹크스가 나타나 건져준다. 하지만 이 때 갑자기 나타난 후샤마을 근해의 주인--[[해신류 떡밥|해신류 후샤 D. 뉴에이지]]--에게 샹크스가 팔을 잃자, 크게 심한다. 샹크스가 떠나기 전에 그의 [[밀짚모자]]를 받아서 자기 보물로 삼는다.
         버기탄을 앞세워 마을을 약탈하는 [[버기(원피스)|버기]]를 쓰러뜨리고 [[나미(원피스)|나미]]를 동료로 삼는다. [[우솝]]의 고향 마을에서 캡틴 크로의 음모를 저지하고 우솝을 동료로 삼는다. 해 레스토랑 발라티에에서는 [[돈 크리크]]를 물리치고 요리사 [[디]]를 동료로 삼는다.
         현금 사냥꾼들의 마을이었던 위스키 피크에서 Mr.5를 식후 운동삼아 때려눕힌다. [[알라바스타 왕국]]의 왕녀 [[네펠타리 비비]]를 동료로 삼고 [[바로크 워크스]]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알라바스타 왕국으로 향한다. 도중에 [[드럼섬]]에 들러서 [[와포루]]를 물리치고 인간 순록 의사(…) [[토니토니 쵸파]]를 동료로 삼는다.
         루피는 이에 특례로서 후한 대접과 함께 샤본디 제도까지 갈 배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 파티에서 섬의 여자들 사이에 "남자는 피부를 잡아 당기면 늘어난다."라는 이식이 자리잡게 된다.(...)--특정 부위는 늘어날 지도...?--[* SBS에 의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잔치 직후 신문에서 자기 형인 [[포트거스 D. 에이스]]를 처형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도우려고 행콕에게 [[임펠 다운]]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여기까지는 그냥 괜찮았는데...정말 허리케인 같은 사랑의 열병으로 [[보아 행콕]]에게 플래그를 꽂았다.
         친구를 감싸는 모습에 감동한 오카마 왕 [[엠폴리오 이반코프]]는 빠른 치료를 원하는 루피에게 '10년 분의 수명을 깎아' 자기치유력을 급격히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시술한다. 본래 사형 시간을 넘겨서야 회복될 몸이었지만, 봉쿠레의 응원과 근성으로 20시간만에 회복에 성공하고 LEVEL 6로 향하지만 에이스는 이미 사형장으로 이송된 태였다. 여기서 임펠 다운을 벗어나기 위해 크로커다일과 [[징베]]를 파티에 합류시킨다.
         LEVEL 3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한냐발]]을 때려 눕히지만 끝까지 버티고 계속 일어나는 한냐발에게 발이 묶인다. 그러다 [[마샬 D. 티치|검은 수염]]의 뒷치기에 한냐발이 당해 쓰러지게 되고, 루피는 자신이 [[자야]]에서 만난 남자가 바로 검은 수염이란 것을 알게 된다. 분노한 루피는 검은 수염에게 싸움을 걸지만 [[징베]]의 설득으로 일시 휴전 태에 들어간다. 임펠 다운을 벗어나기 직전, 마젤란에게 쫓겨 수세에 몰리고 Mr.2 봉쿠레의 희생으로 정의의 문을 넘어 임펠 다운을 탈출한다.
         === [[정결전]] ===
         다시 행콕에게 구원받은 뒤, 앞을 막아서려던 [[코비(원피스)|코비]]를 한 방에 제압하고 전진하는데, 에이스의 처형이 시작되었다. 이 때 루피는 다급하게 "그만 둬!"라고 소리쳤고, 이 때 ''''패왕색의 패기'를 사용'''했다. 이걸 본 많은 해군과 해적들이 경악했고, 패왕색의 패기를 가진 자, 즉 언젠가 세계를 위협할 인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으로 인해 해군은 루피를 최우선 제거대으로 지목한다.
         집요하게 추적하는 아카이누의 공격에 징베도 루피도 부을 입었을 때, 전장에 [[트라팔가 로]]가 등장해 자신에게 맡기라고 하고 [[버기(원피스)|버기]]가 둘을 공중에서 로의 잠수함 방향으로 던져 준다. 이 때 밀짚모자를 전장에 떨어트리고 가는데, [[샹크스(원피스)|샹크스]]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등장한다. 샹크스는 바닥에 떨어진 밀짚모자를 주웠으나, "지금 만나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버기를 통해 [[트라팔가 로]]에게 넘겨주었다.
         약 2주일 뒤, 로의 치료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의식도 돌아왔지만 몸은 아직도 만신창이 태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아끼던 형의 죽음을 보면서 처음으로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은 탓인지 에이스를 잃은 충격을 받아들이기가 벅찬 듯 수시로 병을 뛰쳐나가 에이스가 죽은 순간의 기억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여인섬의 숲 속에서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징베가 뒤따라와 루피를 제압하고, 에이스는 죽었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루피는 이미 자신도 안다고 말하면서 흐느낀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모인 거대한 전쟁 속에 단지 위대한 항로의 반을 돈 해적들 중 [[루키]] 취급을 받는 정도에 불과한 루피가, (원군은 있었지만) 동료는 아무도 없이[* 사실 루피가 동료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런 경우는 동료들과 일정 거리 내에서 흩어져서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동료들과 어떠한 협력도 이룰 수 없는 황에서 홀몸으로 싸운 것은 정결전이 처음이었다.] 단신으로 뛰어 든 그야말로 태풍 속에 개미 한 마리와도 같은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남자인 흰 수염과 그의 해적단 2번 대대장인 [[포트거스 D. 에이스]]가 죽은 이 전투에서, 그것도 해군 3대장과 한 번씩은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고 살아남았으니, 루피의 천운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참전 당시부터 루피는 임펠 다운의 연이은 싸움에 의한 데미지와 피로, 결정적으로 마젤란의 독에 죽다 살아나 며칠간의 회복기가 필요한 것을 이반코프의 텐션 호르몬으로 간신히 버티는. 즉 쓰러져야 정인 몸을 반 근성으로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봉에 서서 대장들과 겨루고 에이스 구출까지 하는 활약을 했으니 사실 '개미'로 치부될 전력은 아니었다. 또한, 스모커와 같은 자연계 능력자가 아닌 한, 루피가 그렇게 적에게 밀린 적은 없고 네임드가 나서지 않는 한 꽤 날뛴 편이다. 그런 황에서는 기어도 거의 쓰지 않았다. 적어도 당시의 루피는 거인족 중장인 호리모 중장을 기어3로 한방에 쓰러뜨렸기에 패기는 못썼지만 적어도 거인족 중장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거인족 중장들 치고 좋은 꼴 본 놈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이 전투가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비밀로 해야 했던 루피의 혈통까지 알려졌기에 차후 루피의 행보는 이전과는 다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침을 뱉은 에이스에게 화를 내긴 커녕, 오히려 '''"우리 친구하자!"'''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에이스는 친구하자며 따라다니는 루피가 귀찮은지 나무를 굴려버리고 다리를 끊기까지 했었다. 그 날 루피가 사라진 줄 알았으나 루피는 어릴 적에 훈련 받은 덕분인지 살아서 왔다. 단 처 투성이었다.
         그리고 거의 하루종일 폴쉐미에게 처참하게 가시가 달린 글러브로 개패듯이 얻어 터지게 된다. 그러나 그 황에서도 에이스와 사보에 대한 얘기는 절대로 꺼내지 않았고, 결국 에이스와 사보가 직접 구하러 와서 폴쉐미를 관광태우고(…) 서로 친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가족에게 돌아가서 행복하게 지낼 줄 알았던 사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되고 에이스에게 다른 사람을 잃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겠다고 다짐한다. 그 뒤로 에이스와 자라 17세에 1권의 처음 모험의 시작처럼 바다를 나서는 것으로 회은 끝난다.
         정결전이 끝나고 정신을 차렸을 때, 자기보다 강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심지어는 뭐가 해적왕이냐고 스스로를 부정했다.''' 사실 에이스랑 동료들을 못 지키고, 봉쿠레를 자신 때문에 또 한 번 희생시켰다. 심지어 에이스는 마린포드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친할아버지인 가프에게 주먹을 날렸다. 루피로서는 너무나 괴로운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고, 언제나 자신만만한 루피가 정말 처절하게 절망했다. 이런 사실은 샤본디에서 동료를 모두 잃은 일이 첫 번째 좌절이다. 다만 샤본디에서 동료들과 흩어지고, 잠시도 못 쉬고 정결전까지 겪었다. 결국 좌절을 곱씹을 겨를도 없지만, 이때는 모두가 살아남았으니까 본인이 겪는 부담은 전혀 다르다. 심지어는 에이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끔 하고 몸을 해치는 일을 말리려는 징베와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사실 징베 입장에서도 어지간히 속이 할 만한 황이다. 흰수염 본인과 에이스 외에도 흰수염 해적단의 수많은 해적들이 루피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정작 그 본인은 처가 벌어지는데도 날뛰어 대서 혼자 개죽음을 겪으려 하는 황이니 징베까지 덩달아 격동해서 루피를 죽이려고 까지 했었다.] 불안정한 태였다. 징베가 '''"잃은 것만 보지말고 남아 있는 것도 봐라! 너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있지 않느냐!"'''고 일갈하자 울며 날뛰던 루피도 '''[[밀짚모자 일당|사랑스런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어렵사리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자기 해적단'을 남아있는 것 한 가지로 세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 한 명을 떠올릴 때마다 손가락을 일일히 하나씩 꼽아가며 세고는 남아 있는 것이 잔뜩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모습이 참으로 루피다운 모습.
         이후 동료를 찾으려 섬을 떠날 때, [[실버즈 레일리]]를 만난다. 레일리는 지금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변한다고 충고하고, 루피에게 무슨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은 '마린 포드'를 '또 다시' 습격하는 것으로 해군과 초신성은 이를 마린 포드에 있는 '옥스벨'[* 이 종은 옛날에 이름을 날렸던 군함 옥스로이드 호에 달려있던 신성한 종이며 그 시대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징물이다.] 이라는 종으로 '신시대의 16타종'[* 해군 관습으로 옛날 이름을 날렸던 군함 옥스로이드 호에 달려있던 신성한 종인 옥스벨로 한 해의 끝과 시작에 한 해의 감사에 종을 8번을 울리고, 새로운 해를 맞아 종을 8번을 울린다. 합쳐서 16번을 울리는 관습으로 시대의 끝과 시작의 선언을 알리는 선언식이다.]을 행해 울렸다는 것과 꽃다발을 던지며 묵도를 한 행동으로 미루어 이번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의형제인 에이스를 개인적으로 애도했다. 그리고 흰 수염이 죽어서 구시대는 끝나고,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의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의지 표시인 것으로 추측한다.[* 물론 [[해적왕]]이 목표라서 본래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루피답지 않은 사건을 일으켜 위화감을 느낀 동료들에게 뭔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면 묵도하는 루피의 오른쪽 팔에 3D2Y 문신(혹은 그림)이 있는데 3D에 X자가 그려져 있다. 사실 그 내용은 3 Day(X) 2 Year로 샤본디 제도에서 배의 코팅을 맡기고 3일 뒤에 만나자고 한 것을, 2년 뒤에 만나자고 정정하는 것으로 신문을 본 동료들이 루피가 보낸 메시지를 알아채는 모습이 나온다. 여담으로 S에 X자를 치고 AS(X)CE라고 적혀있는 에이스 문신과 위치가 같고 모양새가 흡사하다. 덕분에 에이스를 애도하는 장식처럼 보인다. 3D2Y라는 단어를 괜히 감추려는 레일리의 지혜로 보인다. 그 후 행보는 2년 간 각자 수련한다고 추측된다(현 전개로는 신세계는 완전한 지옥으로 나오며, 또한 지금 동료들은 각자 누구나 한명씩은 스승, 혹은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과 함께 있으므로 가능성이 꽤 높다.).
         그리고 마린 포드에서 일을 마치고 쿠쟈 해적단 배를 타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아직 처가 남았는지, 누워있다. 행콕이 명령한 것 때문에/ 루피가 얌전히 있도록 쿠쟈해적단 여인들이 누워있는 루피를 뻔히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실버즈 레일리와 같이 동물 하나하나가 굉장히 강한 섬[* 이 당시의 루피보다 더욱 강한 생물들이 어림잡아 500구 이이나 살고 있는 섬.]에서 2년간 수행에 들어가기로 하고 그 섬에 가장 안전한 곳에 동료들의 비브르 카드를 꽂아 놓은 밀짚모자를 걸어놓으면서 수행에 들어간다. 여담으로 극장판 10기 특전인 0권에서 "이번 모험이 루피의 17세 마지막 모험이다."라는 발언도 있었고 4주 휴재를 선언하면서 2년후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2년 후의 루피는 가슴에 X자 흉터가[* 이는 정결전에서 해군 대장 사카즈키가 입힌 처.출처는 SBS.]생기고 민소매에서 긴소매의 의로 갈아입고 허리에 노란 천을 두르는 변화가 생겼지만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는다. 다만, 2년 전부터 자신이 수련하던 섬의 모든 생물들을 모두 힘으로 굴복시켜 보스로 대접받은 덕분인지 행동과 말투가 좀 더 자신있게 변했다.
         일단 현재 현금은 4억 베리가 된 황으로[* 여기서 의문스러운 점은 에니에스 로비를 함락시키고 2억이나 올랐는데 그 후에 [[칠무해]][겟코 모리아]를 쓰러뜨리고 천룡인을 때리더니 [[임펠 다운]]의 첫 침입자가 되어 사 최악의 탈옥사건을 일으켰으며 에이스의 수갑까지 푸는 업적을 세우고도 1억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모커(원피스)|스모커]]가 했던 말처럼 현금 기준이 정말 애매한 것 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2년동안 비밀리에 수련하면서 아무런 활약이 없었던 루피가 위험도로 매기는 현금이 갑자기 오를 리가 없다. 이제 다시 동료들과 합류해 활동 개시하면서 세계 정부(해군)와 신나게 치고 박는 황이 전개될 테니 고로 현금의 수직승은 지금부터 시작인 셈이다.][* 628화에서 징베의 말에 따르면 3억을 넘어가면 현금이 쉽게 오르지 않는다고 하니 단번에 1억이 오른 것만해도 대단한 일인 모습이다.], 여전히 바보라서 쵸파처럼 '''가짜 조로와 가짜 디를 진짜 조로와 진짜 디로 착각'''한다. 그래도 쵸파와는 달리 둘에게 변장한 게 아니냐고 묻기는 한다. 그러다가 그 가짜들의 안내에 또 다시 가짜 루피를 만나는데…
         [[어인섬]]으로 향하면서 만난 [[크라켄(원피스)|크라켄]]과 전투를 벌이는데, 기어 3(서드)를 사용하여 단 한방에 산보다 더 큰 크라켄을 해치웠다![* 그것도 '''바닷속이라 평시 때보다 힘이 당히 반감된''' 황에서 말이다. [[흠좀무]] 이로써 4억의 위을 제대로 세웠다. 먼저 신세계로 간 라이벌들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을 듯. 참고로 이때 기어 3(서드)를 사용했는 데도 불구하고 그 몸이 작아져버리는 부작용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얼마 후에는 그 크라켄을 길들여 버렸다!
  • 유승민(정치인) . . . . 132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3, top1=정치인/목록, top2=불교/인물, top3=대구광역시/인물)]
         ||<width=30%><:>제17대[br][[박창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직 실]||<width=5%><:>{{{+1 →}}}||<width=30%><bgcolor=#FFFFA0><:>'''제17~20대[br]유승민'''||<width=5%><:>{{{+1 →}}}||<width=30%><:>''[[유]]''||
         ||<width=30%><:>권한대행[br][[주호]]||<width=5%><:>→||<width=30%><:>'''제3대[br]유승민'''||<width=5%><:>→||<width=30%><:>''신설합당''[br][* [[바른미래당]]]||
         || '''출생일''' ||<white><(> [[1958년]] [[1월 7일]] (만 [age(1958-01-07)]세)[* [[권오을]], [[정병국]]과 친구 사이이다.] ||
         [[국회운위원회]] 위원장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과 이념, 철학을 얘기하잖아요. 나는 보수다. 대북문제에 대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보수가 있어야 됩니다. 또 저처럼 진보개혁적인 사람도 있어야 되고. 그렇게 해서 서로 호경쟁하면서 발전해야죠. 그런데 유승민 대표는 그러한 면에서 저는 보수를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정치인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1958년 [[경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유수호(정치인)|유수호]]와 어머니 강옥성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 [[유시민]]이 나온 중학교다. 즉 유승민이 유시민의 중학교 2년 선배. 심지어 대학도 서울대 경제학과로 과까지 같은 직속 선후배다. 얼핏 학연과 지연(대구)으로 얽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무관하고 정치인생이 정반대. 또한 유시민의 유는 柳라 혈연은 확실히 없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0년 2월에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있다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입으로 [[한나라당]]의 정책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정치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초선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20대 총선]]까지 내리 4선에 성공했다. 20대 국회 기준으로 지역구는 [[대구광역시|대구]] [[동구(대구)|동구]](을)이다.
         그러나 2011년부터 2012년 초까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을 겪으면서 차차 사이가 멀어졌고, 이때부터 소위 "탈박"이라는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된다. 저 당시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중 대표적인 예로, 박근혜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려고 하자 유승민이 "새누리당은 당명으로 쓰기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종교적인]] [[세교|색채]]가 너무 짙은 이름이다"라는 이유로 정면으로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580346&news_area=020&news_divide=&news_local=20&effect=4|반대했던 일]]이 있다. 그 뒤로는 소위 탈박 내지 [[비박#s-4|비박계]] 인사로 분류되었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그때의 불씨가 화약고나 다름없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문제를 놓고 대폭발하여, 자신이 [[친박|친박계]]와 [[비박#s-4|비박계]] 간 대립의 정점에 올라서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범[[여권]] 진의 [[열쇠]].
         > '''세 모든 일은 정치가 다뤄야 할 일이고, 정치인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현안이고 아니고 그런 거 없다. 편안하게 물어봐 달라.''' 정치부 3년 하는 동안, 이런 말을 한 정치인은 유승민 말고는 한 명도 없었다. - [[프레시안]] 소속 최하얀 기자 -
         유승민 의원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주제이건 질문을 하더라도 기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답변을 전달한다고 한다. 또한 기자들의 피드백은 물론이고, 어떤 주제이건 전문가다운 답변을 내놓음과 동시에 보좌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끝까지 기자들을 응대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황에서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다시 기자들에게 내용을 되물으며 내용을 놓치지 않는다.
         1999년부터 시된 '백봉신사'은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정치부(국회출입기자)들 사이의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그해의 가장 모범적인 국회의원을 뽑는 이다. 정직성, 사회·국민에 대한 헌신, 정치적 리더십, 의회민주주의 실천, 소통능력 등이 평가 대이며, 사실 기자들 사이의 국회의원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이다. 유승민 의원은 이전에도 수차례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5년과 2016년은 각각 대을 수하였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시기념사에서 '''"유승민 의원은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선정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15년 정의화 국회의장, 2016년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백봉신사을 수여받는 유승민'''
         2017년 대선 1차 토론회가 열리는 SBS 프리즘타워 앞에서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언론노조 조합원과 마주쳤는데, 간단한 인사만 하고 입장하는 몇몇 후보와는 달리 '''언론사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많다'''며 사뭇 진지하게 대화하는 유승민이 포착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아래의 동에서 마이크를 든 연사 역시 2012년 유승민의 언론사 파업 지지를 언급하며 꼭 부탁드린다고 연설 중이다,
         >임위 체제로 가니까, 모든 의원 분을 뵙기는 어려워요. 저희 임위에서 보자면, 유승민 의원이라고 저희 위원회 위원장님이신데요. 사실 국방위 특성자체가 여야가 구분을 많이 짓지 않거든요. 사안 자체가 특별한 법률이 아닌 이은 일반적으로 국가적 아젠다니까요. 그런 데다 유승민 위원장님이 여야 안배라든가 효율적 운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세요.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인품이 좋으신 게 느껴지세요. 그리고 가장 좋은 건, [[간식]]을 잘 챙겨주세요.
         유승민은 [[경제학]] 박사 출신의 경제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제18~19대 국회에서 8년 연속으로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특히 19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방위원장으로도 재직했다. 당시 경선 대였던 황진하 의원(육군 중장출신)과 맞붙을 당시 '''"병장이 장군을 이겼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국방위원회]]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위원회 같지만, 19대 국회에서 국방위원회 활동을 했던 김광진 의원에 따르면, 첫 번째로 지역구 예산을 챙겨주기 어려우며, 두 번째로 완전하지 못한 민군통제원칙에 인한 제약, 마지막으로 피감기관이 적고 언론 노출이 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비인기 위원회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후반기에는 국회 정보위원도 겸임하였고 외교통위원회에서도 활동하였다. 경제학자 출신답게 2013년에는 새누리당 사회적경제특위 위원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경제, 국방, 외교통의 삼박자를 고루 거친 탓에 각 분야에서 웬만한 전문가급 식견을 가졌다고 평가받고, 그 때문인지 국방정책 관련으로도 주목할 만한 주장을 간간이 내놓기도 한다. 그리고 모 신문사에서 매년 평가하는 '국감 스코어보드'에서 유승민 의원은 항위권에 등재되어 유승민 의원의 국방관련 식견이 당히 탄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 ▲ 유승민의 브랜드 "청와대 얼라[* [[경도 사투리]]로 '아기', '아이' 등을 뜻함. 참고로 이 '청와대 얼라들' 은 그 악명 높은 [[문고리 3인방]]을 뜻한다.]들" 발언 . ||
         국방위원장을 지낸 후 국회 운위원장으로 옮기기 전 잠시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청와대 얼라들' 발언으로 외교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질타하였다. 또한 "'왜 사드를 배치하는데 [[중국]]이 난리냐"'며 사드의 국내도입에대해 강경한 찬성 입장을 보였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한미 전작권 재협을 대선공약 파기라고 인정하며 "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 사건으로 [[친박]] 세력들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약 9개월 남짓한 외교통일위원회 활동이였지만 유승민 의원은 NGO 국감모니터단 선정 우수국감의원, 그리고 경실련에서 선정한 외통위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울릉군 . . . . 13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북도)]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
         ||<bgcolor=#01A9DB> {{{#FFFFFF '''광역시도'''}}} ||<bgcolor=#CEECF5> [[경북도]] ||
         [[경북도]]의 군.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기초자치단체]]이자 경북 유일의 섬으로만 이뤄진 지자체다. 심지어 멀리 [[동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위치으로는 오히려 강원도에 가까워 보이지만, 직선거리로 제일 가까운 곳은 경북도 [[울진군]] 죽변이다(130.3km). 다만 울진은 1962년에 [[경북도]]로 이관되기 전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고 울릉도 자체도 1906년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다. 그러다가 1906년 13도 분도 후에 뜬금없이 '''[[경남도]]'''로 이관되었다가 1914년에서야 경북도로 이관되었다.
         사실 [[울릉도]]가 울릉군의 본토라 볼 수 있다. 면적은 72.87㎢. 육지에서 130km 떨어져 있다. 중심지는 울릉읍이며 관광객으로 항 붐빈다. 오징어, 호박엿, 울릉약소(울릉한우고기) 등이 유명하다. 독도도 울릉읍에 속해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엉뚱하게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와 묶여있다. 그런데 정작 포항에서 울릉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포항 구항은 북구에 있다.--신나는 [[월경지]]-- 이는 포항 남구보다 포항 북구 인구가 미묘하게(2~3만 명 정도) 많아서 그렇게 묶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비례를 생각하면 경북도의 농촌 선거구에 옮기는게 맞겠지만, 선거운동하기가 힘들어지는 문제가 있다. 배편이 있는 울진군에 엮으면 될 것 같지만 양군·덕군·봉화군·울진군 선거구만으로도 벅차다. 네 군 모두 벽지 중의 벽지긴 한데 울진은 그나마 낫다. 다시 [[강원도]]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이후로 행정구역 옮기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쉽진 않다. 행정적으로 경북도에 속한 이후로 말투도 경북도 사투리가 발달했다. 거기다 원래 울릉도에 살던 강원도 사람들은 대다수 이미 사망하였거나 외지로 떠났고 현재 울릉군 주민들은 경북 출신들이 대다수. 경계가 애매한 지역들은 양쪽 사이에서 소속감이 애매한 사례가 비일비재한데, 면적도 좁은데다 고립된 섬이라는 특수성까지 감안하면 대적으로 경북쪽 정서로 비슷해진 느낌이다.
         포항시-일군 통합 전에는 일군과 같은 선거구에 소속하였다. 꽤 오랫동안 이득 의원이 의원직을 6번이나 했다가 불출마했는데, 후임 김형태 의원은 성추행 논란을 일으키며 그 당에서 쫓겨나더니 결국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실했다. 물론 재선 결과 [[새누리당]] 박명재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이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박명재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 후보[* 당시 [[민중연합당]] 후보가 출마했다.]와 무소속 후보는 '''울릉도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새누리당 텃밭이라 하지만 다른 후보들의 무관심으로 박명재[* 행정고시를 합격한 관료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기에 행정자치부 장관을 하다가 2013년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출마하였다.] 의원이 여유있게 몰표를 가져갔다.
         [[신라]] [[지증왕]] 때인 512년 [[이사부]] 장군이 '''입에서 연기나는 목각 [[사자]]'''을 섬에 풀어 놓겠다는 [[야바위]]를 시전하여 울릉도에 있는 [[우산국]](于山國)을 정벌했다는 사실은 유명. 이후 신라에게 꾸준히 조공을 바쳤고, [[후삼국시대]]인 930년 완전히 한반도에 귀속되어 이 때부터 공고히 한국령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1454년 강원도 울진현에 편입되어 1900년 울릉군이 설치되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러일전쟁]] 때는 울릉도 역사 드물게 주변국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함대는 울릉도를 병참기지로 활용하여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파하였다. 물론 대한제국 정부의 승인 따윈 없고, 일본이 자의적으로 울릉도를 사용했다. 그리고 근해에 침몰한 러시아 제국 해군의 [[방호순양함]]인 [[드미트리 돈스코이함]]은 군자금으로 실린 막대한 금괴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765525|관련기사]]
         역사적으로 줄곧 그래왔듯이 한국 본토에서 어떤 급변황이 터지더라도 일단 멀찍이서 지켜볼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다만 러시아나 일본과 시비가 붙는다면 가장 위험해지는 위치이다. 실제로 과거 일본이 독도뿐 아니라 울릉도도 자국땅으로 삼으려 하기도 했고...자세한 것은 [[울릉군/역사]]를 참조.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순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남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태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태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울릉군 육지 치안은 울릉경찰서가 관장하고 있으며 소방서는 없지만 포항 남구를 관할하는 포항남부소방서[* 포항시청에서 관할하는 게 아니고 경북도청의 경북소방본부에서 예산이 내려오는 형태이다.] 휘하의 울릉119안전센터가 사실 울릉도 소방을 책임지고 있다. 보건소의 경우 울릉보건의료원이 관장한다.
         [[울릉군]] 울릉읍에서 제일 큰 마을은 인구 약 5천명의 저동리이며 도동리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도동의 인구는 약 2천 명으로서 [[포항시]]와 묵호항에서 오는 [[선박|배]]가 정박하는 곳이다. 그래서 관광객을 대로 한 숙박업이나 음식점은 대부분 도동에 자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저동리는 도동에서 약간 떨어진 마을로서 주로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다. 강릉과 후포에서 출항하는 배는 이쪽에 정박하며, 포항에서 출항하는 배의 일부도 저동항에 정박한다. 이쪽은 보통 울릉도민들이 사는 마을로서 옆에 항구가 있으며 주민을 대로 한 점과 편의시설들이 있다.
         그밖에 사동이나 남양, 현포, 태하, 천부 등의 조그만 마을들이 있다. 사동은 신항만이 들어선다고. 사동 옆에 울릉도민들의 숙원이라고 하는 [[울릉공항]] 건설이 계획되어 있다. 대부분이 가파른 산인 울릉도에는 1,500m 이의 활주로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없지만 바다에 두꺼운 [[방파제]]를 만들어 이 곳을 활주로로 쓰자는 안이다. 울릉도에 공항이 생기면 [[서울특별시]]나 [[광주광역시]], [[부산광역시]] 같이 먼 거리에 사는 관광객들이 1시간 만에 울릉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긴 하다. 현재는 버스+배로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7시간 가량 걸린다. 허나, 깊은 동해 위에 활주로를 세운다는 건 돈이 많이 들고 날씨가 변덕스러운 울릉도에서 기항이 가능한 일수가 적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있다.
         앞으로 울릉도에는 소방서가 신설[* [[http://biz.heraldcorp.com/village/view.php?ud=201608182228226328368_10|2020년까지 울릉소방서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인구가 적다보니 정치적 파워도 그만큼 떨어지므로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1년에 울릉경찰서장이 경정에서 총경(4급 당)으로 격되었고, 동해해양경비안전서 울릉해양경비안전센터장도 경감(6급 갑 당)이 맡고 있기 때문에 기관장 회의라도 하려면 울릉안전센터장이 지방소방경(6급 갑 당) 정도로 계급~~짬밥~~이 밀리는 느낌도 있다.]되고, 공항이 개설되고 일주도로까지 완공되면 독도 수호, 안전, 교통 흐름 모두 다 개선될 것으로 예측된다.
         군 부대도 주둔 중인데, 1982년 도서 방어 임무가 [[대한민국 육군]]에서 [[대한민국 해군]]으로 이관되면서 해군 [[제1함대사령부]] 예하의 [[레이더 사이트|전탐감시부대]]인 [[제118조기경보전대]]가 들어와 있다. 이 부대에는 [[제1해병사단]]에서 전속된 해병대원들도 같이 근무한다. 시 주둔하진 않으나, 독도나 울릉도 유사시 1함대와 1사단에서 함정 및 해병대 전력을 지원받을 수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조.
         울릉도에서 [[근예비역]]으로 선발되면 100% 해군 소속이 되며, [[예비군 관리대대|예비군 관리대]]에 배속된다. 예비군 관리대대장은 해병소령이다.
         그 외 [[대한민국 공군]]의 319 관제대대와 [[777사령부|보안 소속을 밝힐 수 없는 부대]] 등이 있다. 실제로 북면 북동쪽에 SEC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군은 아니지만, 경찰의 [[전투경찰]] 부대인 [[울릉경비대]]도 118전대와 함께 주둔하고 있다. 이들은 울릉경찰서가 아닌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며, 이 부대 소속 직원과 [[의무경찰]]들이 교대해가며 [[독도경비대]]에 투입된다. 현재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경비함을 위한 항만 시설이 건설 중이며, 완료시 해경 중형함정 1척+소형 경비정 몇척이 교대로 시 입항해 있게 된다.
         2017년 8월 20일, 해병대가 최초로 중대급 병력 전개 훈련을 한 것이 확인되었다. 중후반부에 초등학교가 나오고 운동장에 군용차량들이 정차된 것으로 보아 그곳을 주둔지로 사용할 계획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TEggXx89JQ4|#]] 그리고 8월 22일 국방TV 보도에 따르면 당초 언론보도에 알려진 중대급이 아니라 대대급의 해병대 병력이 울릉도에 배치된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0xtG0uFhE|#]]
  • 정재학 (1856년) . . . . 131회 일치
         |사망지 = {{국기|일제강점기}} [[경북도]] [[대구]] [[남일동]]
         |주요경력 = [[대구은행]]장 <br> [[경합동은행]]장
         '''정재학''' (鄭在學, 1858~1940)은 [[대한민국]] [[금융업계]]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민족자본은행]]의 [[개척자]]이자 일제 강점기 한국은행산업의 대부다 .<ref name="ReferenceA">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7</ref><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조선 말기부터 일제 치하에서는 [[은행]] 경진들이 [[관료]]나 [[왕실]] 지방 토호 가운데에서 배출됐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맨주먹으로 일군 자금으로 55세 무렵 [[은행장]]에 오른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ref name="ReferenceB">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3</ref><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 (창조사, 1970) p667~670</ref>
         그는 일제 치하에서 갖은 방해와 공작을 딛고 1913년 [[대구은행]](1928년 이후 경합동은행)을 설립하여 1940년 타계할 때까지 최대주주로서 [[은행장]] 자리를 지켰다.<ref name="ReferenceB"/><ref>경향신문 1981년 6월 15일 9면 일제하 금융인</ref>
         27년 간 이어진 그의 은행경 노하우는 아들과 손자에게 넘겨졌다. 숱한 합병 과정을 거치면서 [[민족계은행]] 자본의 총집결지였던 [[조흥은행]]에서 같은 가문의 한국인 행장을 두 명이나 배출했다. 5대 [[정종원]] 행장과 해방 후 첫 한국인 행장에 오른 2대 [[정운용]] 행장이 각각 그의 3남이고 장손이다. [[정재학]]이 [[대구은행]]과 [[경합동은행]]에 투입한 민족자본은 정씨 가문 지분으로 속되면서 고스란히 [[조흥은행]]에 남겨졌다.<ref name="ReferenceC"><<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83~87</ref><ref><<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412~431쪽 역대임원</ref><ref>서광운, << 한국금융백년>> (창조사, 1970) p.684 조흥은행 계보도</ref>
         또한 그의 민족계 은행 경 노하우는 그의 혈맥을 통해 전해지면서 1950년 중반 [[조흥은행]]은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한다. [[대한민국]] [[증권거래소]]가 개장된 1956년 [[조흥은행]]은 국내 기업 중 최초의 [[장사]]로 등극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4월 10일 9면</ref><ref>서울경제 온라인판 2006년 3월1일 16:55 입력 조흥은 '최초 은행 1호 장사' 숱한 기록 http://economy.hankooki.com/lpage/economy/200603/e2006033116560370100.htm</ref><ref>한겨레 1992년 2월 28일 19면 장사 12개로 증권시장 첫발</ref>
         국내 경제학계의 원로였던 [[고승제]]박사<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03779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명사전 고승제(高承濟)]</ref> 는 1991년 펴낸 저서에서 "정재학의 그림자는 조흥은행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아직도 살아있다. 그의 3남 정종원은 1974년 11월 [[조흥은행]] 무 [[취체역]](무이사), 1952년에는 전무 취체역 (전무이사)을 거쳐 1956년부터 1961년 4월30일까지 그 자리에 머물렀다. [[정재학]]의 그림자가 [[조흥은행]]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흥미로운 지표로 볼 수 있다" " 정재학의 후손 20여명이 아직 조흥은행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 한국에서 처음으로 지방은행 창설했던 정재학의 후손답게 그들의 삶을 위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큰 잘못이 없겠다" 고 적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69</ref>
         [[정재학]]은 1858년 경북 경제권의 중심지인 [[대구]]에서 연일(일) 정씨 정석은과 손남산 사이의 1남 3녀 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외가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소년 시절에는 잠시 방황을 하기도 했으나 20세에 접어들면서 열심히 노력하여 번듯한 인생을 일구겠노라 굳게 다짐한다. 그는 금전 대부업자였던 부자 밑에 들어간 뒤 어렵게 번 품삯을 한 푼 두 푼 모아갔다.
         [[정재학]]은 [[낙동강]] 뱃길을 이용한 [[어염무역]]에 진출한다. 1886년 여름 콜레라가 전국을 휩쓸었는데 이 괴질에 소금물이 좋다는 소문이 확 퍼졌다. 소금은 불티나게 팔렸고 값도 폭등했다. 정재학은 이를 바탕으로 대구 3대 부호로 급부하며 1892년 대구 중심가인 남일동에 99칸 기와집을 세웠다. 1921년 간행 된 '대구일반'에는 그의 재산규모에 대해 "100만 원 이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미 8000~3000석 규모의 연 수입을 거두고 있다. 하녀하남은 각각 30~40명에서 50~60명에 이른다."고 기술하고 있다.<ref name="ReferenceB"/><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1</ref>
         [[정재학]]은 1905년 [[군수]]자리에 오른다. 고급관료와 친분을 맺어 순흥군수에 이어 개령군수를 맡게 됐다. 전임 군수와 달리 세금도 낮춰주고 밥 굶는 이들이 없게했다. 장사꾼들에게는 밑천도 대줬다. 그는 군수 직책에 있으면서 은행업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1906 년 8월 [[대구공은행]]이 설립 될 당시 이병학, 이종면 등의 부호들과 힘을 합쳐 대주주로 등극하면서 감사역도 맡았다.<ref name="ReferenceA"/><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10일 7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 -12</ref>
         1907년 일본인들이 장악한 구한말 중앙은행은 신 통화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민간은행에 제시한다. 일반서민들은 신 통화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에 파격적인 특혜를 줬다. [[대구공은행]]에 대해 20만원(현 240억 원)을 2년 거치 무이자 무담보로 빌려주겠다고 제시했다. 2년 동안 요즘 돈 240억 원을 이자 없이 쓸 수 있었다.
         [[정재학]]과 은행 주요 주주들은 이 돈을 투자하여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아울러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해외 품들이 일본인들의 손을 거쳐 대량으로 유입되고 대구에도 연초 공장 등이 들어섰다. 아울러 미곡 무역, 운수업 등이 번창하면서 대출 수요도 늘어났다. 정재학도 이 무렵 자신의 자본으로 독자적인 은행을 만들 준비에 나섰다 .
         정재학은 26살 연하인 사카모토 순지(板本俊資 1884~?) 란 일본인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사카모토는 20살이던 1904년 일본에서 부산으로 건너와 점 점원으로 일하다 대구에서 잡화을 차렸다. 사업이 번창해 대구역 앞에서 창고사업도 병행했다 . 이 때 [[경농공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서 정재학과 안면을 트게 됐다. 정재학은 일본 젊은이로부터 일본에서 번창하고 있는 [[자본주의]]경제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됐다. 나아가 사카모토는 후일 [[대구은행]] 발기인으로 참여하게 된다.
         1913년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그 해 5월 창립총회에서 은행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대구은행]] 행장 직을 수행하면서도 지분참여 등을 통해 [[경농공은행]], [[경일은행]] 등의 경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
         하지만 [[대구은행]] 경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방은행들의 경 황이 나빠지면서 총독부는 은행 간 합병으로 체질 개선을 요구했다. [[대구은행]]과 [[경남은행]]이 1927년 [[경합동은행]]으로 통합됐다.
         경합동은행에서도 정재학의 경권 장악력이 다시금 발휘되면서 [[경남은행]] 출신 인사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졌다. 1939년 그는 맏손자 [[정운용]]을 이사 겸 부장으로 발탁하여 경 수업을 받게 했다.<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5</ref><ref name="ReferenceB"/>
         국내 경제학계의 원로로 꼽히는 [[고승제]] 박사는 "한일합방 이후 수많은 민족자본은행이 설립됐지만 정재학처럼 30년 가까이 시종 은행경의 실권을 장악한 사례는 찾아볼 수가 없다"며 "그는 [[대구은행]]의 자본금을 7년 만에 4배나 증액하는 등 경자로서의 총력을 다 바쳤다"고 밝혔다. 아울러 "다른 부호들이 한 우물을 파지 않고 다방면으로 사업을 넓혀가는 데 비해 정재학은 오로지 [[대구은행]]에만 전심전력을 다했다"고 강조했다.<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4~215</ref><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ref><ref name="ReferenceB"/>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순]]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물러나던 중 반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br> [[김진만]]의 손자 [[김일식]]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순]]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친척관계인 [[정운일]] ( 鄭雲馹 )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언도고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북도 임고문과 반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백과사전 정운일 편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는 [[1966년]] 경향신문이 제정한 제1회 '국민의 주는 희망의 ' 대자로 선정됐다. 내무부장관 국회사무총장 등 각계에서 격려 축전을 보냈다.<ref>경향신문 1966년 9월 28일 3면</ref><ref>경향신문 1967년 8월 17일 8면</ref> 정인택은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선소감에 자신이 정재학의 증손자라고 적고 있다.<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10일 7면</ref>
         그는 일본인들의 경권찬탈 시도가 이어지자 경찰 출신의 일본인 지배인을 선임하는 등 경권 방어전략으로 맞섰다. 또한 총독부와 일제강점기 중앙 은행이었던 조선은행이 자신을 행장 자리에서 줄기차게 몰아내려 했지만 그들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했다. 주주총회에서 한국인 주주들이 정재학 행장에게 표를 몰아줬기 때문이다,<ref>경향신문 1981년 6월 15일 9면 경제인록 = 금융계 일제하의 금융인</ref><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17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7편</ref> 31년간 민간은행장 자리를 유지한 사례는 전 세계 어디 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제 치하에 설립된 수많은 [[민족계은행]]이 있었지만 일제의 강제합병 과정에서 사라져갔지만 정재학 행장은 생의 마감 직전까지 저항했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창조사, 1970) P.674 "조흥은행 되기까지"</ref>
  • 박신양 . . . . 130회 일치
         {{화인 정보
         |웹사이트 = {{트위터|PARKSHINYANG}}
         1986년 연극배우 첫 데뷔한 그는 연극화학과에 입학했으며 동기로는 현 [[iHQ|싸이더스]]의 대표인 [[정훈탁]], 연기자 [[최준용 (배우)|최준용]], 화감독 [[양윤호]] 등이 있다. 동국대 학사 학위 이후에는 [[러시아]]로 건너가 슈킨 연극대학교와 셰프킨 연극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92년]]에 단편 화 출연을 하며 본격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러시아에서 돌아와 [[1996년]]에 화 《[[유리 (1996년 화)|유리]]》로 화배우 정식 데뷔했다. 현 소속사는 시너지인터내셔널이며 설립자이자 이사로 재직 중이다. 하지만 원인 모를 까닭으로 인하여 최근 몇년간 연예 분야를 떠났다가 최근 "TvN 배우학교"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복귀하였다.
         === 화 ===
         * 《[[유리 (1996년 화)|유리]]》 ([[1996년|1996]])
         * 《[[편지 (1997년 화)|편지]]》 ([[1997년|1997]])
         * 《[[약속 (화)|약속]]》 ([[1998년|1998]])
         * 《[[킬리만자로 (화)|킬리만자로]]》 ([[2000년|2000]])
         == 수 및 후보 ==
         ! 시
         | 제17회 [[청룡]]
         | 신인남우
         | [[유리 (1996년 화)|유리]]
         | 제11회 기독교대
         | 문화인대
         | 제33회 [[백예술대]]
         | 화부문 남자 신인연기
         | rowspan="2"| [[유리 (1996년 화)|유리]]
         | 제35회 [[대종]]
         | 신인남우
  • 이선희 . . . . 129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www.leesunhee.com/ leesunhee.com]
         [[1964년]]<ref>[https://www.leesunhee.com/sunny/contents/contents.do?cmnx=16 데이터 관련 리스트]</ref> [[대구광역시]] 에서 [[울산광역시]] 출생의 [[불교]] [[승려]]였던 아버지와 [[부산광역시]] 출생의 [[불교]] 신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대전광역시]] 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후 [[광주광역시]] 와 [[인천광역시]]에서 각기각기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녀는 [[1969년]] 이후 [[서울특별시]]에서 줄곧 자랐다.
         그녀는 대학 시절이던 1984년 제5회 [[강변가요제]]에서 같은 학과 선배 임성균과 "4막 5장"이란 팀으로 출전하여 《J에게》를 불렀다. 애초에 2학년 때 노래가 하고 싶어 작곡가 [[장욱조]]의 음악 사무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어떤 무명 작곡가([[이세건]])가 말하기를 "아직도 내가 만든 노래를 아무도 아니 불러 준다."며 [[악보]] 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그 악보 뭉치를 주우면서 차라리 마음대로 불러도 되는지 물어 보아 결국 허락을 받았고, 그 더미 속에 있던 노래가 바로 <J에게>였다. 3년이 지난 이후 1984년, 이 노래로 참가를 하여 MBC 강변가요제 대까지 수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으며 데뷔하였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바지만 고수하는 옷차림의 보이쉬한 매력으로 ‘언니 부대’가 만들어졌으며, 특히 동그란 [[안경]]과 커트 [[머리]] 등이 여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며 소위 '이선희 신드롬'을 일으켰다.
         아직 정규 앨범 한 장 없이 오직 <J에게>란 곡 하나만으로도 11월 25일부터 [[KBS]]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여 골든컵을 차지하였고, 1984년 KBS 방송 가요대 신인, 1984 [[MBC]] 10대가수가요제 최고 인기가요, 신인, 10대 가수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등 데뷔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85년 11월 2집 《[[갈바람]]》이 발매되면서 <갈바람>, <괜찮아>, <연인의 눈물>, <가난한 연인을 위하여>,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 등의 곡이 인기를 모았다. TV가이드, 뮤직박스 1위로 선정되고 [[일간스포츠]] 골든 디스크, KBS 방송 가요대, MBC 10대 가수을 수했다.
         1986년 3집 앨범 《[[알고 싶어요]]》가 발매되었다. 1987년, 대표곡 <알고 싶어요>가 KBS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를 하며 골든컵을 두 번째로 차지하고 한 달 방송 횟수 107회, MBC 라디오 음악차트에서 15주 1위 기록을 만들어 냈다. 그 외 <>, <어둠은 걷히고>, <청아한 사랑> 등이 히트했다. 또한 학생가장돕기를 위한 전국 투어를 계속 진행했다.
         1988년 4집 《[[사랑이 지는 이자리|사랑이 지는 이 자리]]》에서 <나 항 그대를>로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를 해 3번째 골든컵을 수했다. 또한 70년대 신중현과 뮤직파워(26인조 악단)의 <아름다운 강산>을 리메이크해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안녕>, <길을 떠나자> 등도 히트하였다. 만화 주제가 <[[달려라 하니]]>를 부르기도 하였다.
         1989년 5집 《[[한바탕 웃음으로]]》에서는 <나의 거리>가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로 4번째 골든컵을 수하였고, <한바탕 웃음으로>는 1990년에 3주연속 1위를 차지하며 1989년, 1990년 한 앨범으로 2년 연속 골든디스크을 차지했다. 그 외 <겨울애>,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 등의 노래가 히트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90년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을 발매하며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그리운 나라>, <왜 나만> 등이 히트했다. 5집《한바탕 웃음으로》의 수록곡 <한바탕 웃음으로>가 골든디스크 5회 연속 수,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으로는 KBS 방송가요대 6년 연속 수, MBC 10대 가수 6년 연속 수을 했다. 전성기 시절 이선희는 발매되는 앨범마다 대표곡 뿐만 아니라 앨범의 모든 노래가 히트하는 쾌거를 안았다.
         1991년 [[서울시의회]] 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제3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음악적으로는 1990년대로 접어 들면서 고비가 왔다. 7집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대가 떠나신 후에> 등이 인기를 끌긴 했지만 이전만큼은 아니었고 업적으로도 제일 저조한 성적을 얻었다. 1992년 변화된 가요계 황에 대응하여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룬 8집 《조각배》를 발표하였다. 타이틀곡 <조각배>와 <초원>, <작은 연가>, <성주풀이>, <한네의 이별> 등을 이선희만의 느낌으로 소화한 실험적인 앨범으로서 색다른 변화에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한때 1995년 12월 6일에서 1996년 2월 17일까지 [[새정치국민회의]]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직위에 보임되어 잠시 활약하였으며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 탈당 직후 1996년 3월 21일에서 1996년 6월 1일까지 [[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통합민주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직위에 보임되어 활약하였고 [[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통합민주당]] 탈당 직후 1996년 10월 발표한 10집 《First Love》(대표곡 <라일락이 질 때>)는 모든 노래의 작사, 작곡에 직접 참여하였다. <회색 도시>는 락의 느낌으로, <성안의 아이>는 몽환적인 느낌으로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아카라카치>는 삶에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응원 구호를 접목시키며 가창력까지 돋보이게 해 응원가로도 쓰인다. 이 앨범 이후로 이선희는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도 보여 주기 시작했다.
         1998년 11집 《Dream Of Ruby》(대표곡 <낯선 바닷가에서>) [[뮤직 비디오]] 촬 중 부을 당하기도 했지만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만든 <너에게 가면>으로 엄청난 고음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2000년 5월 31일에서 2000년 10월 31일까지 [[새천년민주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직위를 잠시 지낸 그녀는 [[새천년민주당]] 탈당을 한 이듬해 2001년 3월, [[유석]], [[박진]], [[김종서 (1965년)|김종서]] 등 젊은 세대들의 대표 아티스트들이 도운 12집 《[[My Life + Best]]》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며 MBC 10대가수을 다시 한번 수했다. <이별소곡>은 조용한 느낌을, <이 노래를 빌려서>는 슬픈 감정을, <살아가다 보면>은 삶에 격려와 희망을 주며 인기를 끌었다. 2002년에는 [[화]] 《[[가문의 광 (화)|가문의 광]]》에 1988년에 발매했었던 <나항 그대를>이 삽입되어 후세대 사람들에게도 각인되었다.
         이후 앨범 활동은 4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 사이 [[이승기]]라는 가수를 발굴해냈다. 직접 가수 제의를 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 가수로 데뷔시키고 행사를 같이 다니고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하기도 했다. 이승기는 가수는 물론이고 예능인으로도 《[[1박 2일]]》, 《[[강심장]]》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배우로서 《[[소문난 칠공주]]》, 《[[찬란한 유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에 출연하였다.
         2005년 이선희가 모두 작사, 작곡한 13집 《사춘기》를 발매하였다. 대표곡 <인연>은 천만 관객을 달성한 화 《[[왕의 남자]]》의 OST로 삽입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장미>와 <왜?> 등은 이선희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어 전문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2018년 4월 1일 평양 대동강지구 [[동평양대극장]]에서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봄이 온다》 무대에 올랐다. 부른곡은<J에게, 알고 싶어요, 아름다운 강산> 3일 평양 류경정주체육관에서 남북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를 선보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조용필·이선희 등 4월 평양 공연 |url=http://www.yonhapmidas.com/article/180403173727_417430 |날짜=2018-04-03 |확인날짜=2018-08-10 |뉴스=연합마이더스}}</ref>
         * 2002년 화 《몽중인》
         * 2005년 화 《[[왕의 남자]]》
         * 2009년 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 1988년 《[[ (음반)|]]》
  • 이미연 (배우) . . . . 127회 일치
         {{화인 정보
         | 학력 = [[동국대학교]] 연극화학과 [[학사]] 졸업
         | 수 =
         | 웹사이트 =
         * [[동국대학교]] 연극화학과 (졸업)
         이미연은 1971년 9월 23일 [[대구광역시]]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동국대학교]] 연극화과를 졸업하였다. 그녀의 대학 동기로는 배우 [[고현정]], [[김정난]] 등이 있다.
         그녀는 1988년 드라마 《[[사랑의 기쁨]]》으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하며 연기자로 데뷔하였고 이후 가족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2기》에서 청순하고 소박한 여학생의 이미지를 연기해 대중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로 어필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화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90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히트작에 연이어 출연하며 1980년대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끌었다. 1991년 드라마 《[[하늬바람]]》으로 첫 성인 연기를 선보였다.
         1995년에는 배우 [[김승우]]와 결혼했지만, 2000년 5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김승우-이미연 이혼 속사정은…|url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출판사 = 한국일보|날짜 = 2007-10-11|확인날짜 = 2013-10-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501104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보존날짜 = 2013-10-05|깨진링크 = 예}}</ref> 이미연은 1990년대 중후반에는 화 《[[넘버 3]]》, 《[[모텔 선인장]]》, 《[[여고괴담]]》, 《[[내 마음의 풍금]]》 등의 화에만 주로 출연하다 1999년 단만극 《[[TV화 러브스토리]]》로 3년여만에 드라마에 컴백했고, 이후 2001년 인기리에 방되었던 드라마 《[[명성황후 (드라마)|명성황후]]》에서 젊은 명성황후 역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을 남겼으며,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또한 당시 소속사였던 [[김광수 (1961년)|김광수]] 대표의 프로젝트로 《이미연의 연가》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해 166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제목= PR비 파문 등 여파 가요계 ‘불황의 늪’…2002 한국 음반시장 결산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31324 |출판사= 국민일보|날짜= 2002-12-24 }}</ref>
         2000년에는 화 《[[물고기자리 (화)|물고기자리]]》로 [[청룡]] 여우주연을 수했고, 2002년 화 《[[중독 (2002년 화)|중독]]》으로 [[대종 화제]] 여우주연을 수했다. 2007년 드라마 《[[사랑에 미치다]]》로 6년여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했지만 흥행에 참패했고, 2010년 드라마 《[[거 김만덕]]》 역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 후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인터뷰식으로 최근 모습의 성덕선을 연기함과 동시에 호평이 많았다.
         === 화 ===
         || 단편
         || [[회사원 (화)|회사원]]
         || [[어깨너머의 연인 (화)|어깨너머의 연인]]
         || [[태풍 (화)|태풍]]
         || [[중독 (2002년 화)|중독]]
         || 이신
         || [[물고기자리 (화)|물고기자리]]
         || 허은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화)|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선 역
  • 이민호(1987) . . . . 127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878787> '''{{{#EEE156 출생}}}''' || [[1987년]] [[6월 22일]], [[경북도]] [[포항시]] 우현동 (소티재로) ||
         ||<#878787> '''{{{#EEE156 학력}}}''' || 포항신중학교 (졸업) ||
         ||<#878787> '''{{{#EEE156 링크}}}''' || [[http://leeminho.kr/|공식사이트]] [[https://m.facebook.com/OfficialLeeMinho|페이스북]] [[https://instagram.com/actorleeminho/|인스타그램]] ||
         반짝스타가 아니고 아역부터 올라온 연기자다. [[박보]]과 함께한 EBS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 [[문채원]]과 호흡한 SBS '달려라 고등어',[* 여담이지만, [[박보]], [[문채원]]과는 여러 편 같이 한 바 있다. 박보과는 '비밀의 교정', '달려라 고등어', 화 '울학교 이티'에서 같이 나왔으며, 문채원은 여기서 '비밀의 교정'을 뺀 나머지 두 작품에 같이 나왔다.] [[박민]]과 함께하는 [[아이 엠 샘(드라마)]] 등등으로 드라마 주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사랑찬가]]'나 '[[논스톱]]', '[[반올림(드라마)|반올림]]' 같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단막극 '나도 잘 모르지만'에서 주연을 맡거나 화는 '울학교 이티'와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도 출연했다.[* 중견기업으로 위장한 조폭 두목인 [[정재]]이 키우던 건달 ~~유스~~ 유망주 중 하나였는데 건달짓에 회의를 느낀 이민호를 오른팔 [[김남길]]을 시켜 살해하고 거기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담으로 꽃보다남자 에서 이민호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김현중(SS501)|김현중]]은 이민호를 '''아 그 화에서 나오자마자 칼맞고 죽은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던 중 KBS의 [[꽃보다 남자(KBS)|꽃보다 남자의 한국판]]에서 주인공 구준표역할에 발탁. 특유의 소라빵 머리와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며 시청률 대박을 치게되어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약 떠오르는 청춘스타 대열에 합류한다. 이때의 인기는 당해서 대부분의 예능, 코미디 프로에서 특유의 소라빵머리를 하고 나오는 캐릭터들이 한명씩은 꼭 있었다. 아시아 3국의 꽃보다남자 캐스팅중에서 일본인들이 꼽은 원작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 드라마로 이민호는 5년간의 무명 세월을 마감하고 톱스타가 된다. 그야말로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이다.
         그렇게 대박을 치고 얼마간의 휴식기를 가지다가 2010년에 3월 31일 MBC에서 방한 '''개인의 취향'''에서 '''게이는 아닌데 게이로 오해받고 마침 게이로 오해한 여자의 집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당히 중요한 집이라 어쩔수 없이 게이취급 받으면서 그 집에 들어가게 되는 남자(...)'''역을 맡아서 [[손예진]]과 좋은 호흡을 보였다.
         특히 [[필리핀]]에서 이민호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어마어마한 스타라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팬미팅할 때 [[비욘세]]나 [[머라이어 캐리]]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몰려든다고 할 정도.[* [[필리핀]]에서 디바형 [[미국]] 가수의 인기는 어마어마하다. 유튜브만 검색 해 봐도 남녀노소 디바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 수두룩하다. 즉 이민호의 인기가 정말로 어마어마하다는 소리.]
         그 후 [[송지나]] 작가의 [[신의(드라마)|신의]]에 출연하여 깊은 눈빛과 절도 있는 액션 연기로 신의있는 젊은 [[최]]의 모습을 표현해 2012 SBS 연기대 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 10대 스타 등을 수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이민호가 맡은 [[최]] 캐릭터만 남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점점 캐릭터와 밀착되는 모습을 보였고 [[송지나]] 작가도 이민호는 [[최]] 그 자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http://view.heraldcorp.com/view.php?ud=20121021000320|기사]].]
         2013년에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김은숙]]의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속자들|속자들]]에서 주인공 [[김탄]]역을 맡아 최고 시청률 25.6%를 찍으며 연말 수목극 1위를 유지하며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기존의 까칠한 [[김은숙]]표 로코 남주들과 달리 다정하며 직진하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담담하게 연기해 냈다.[*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96854|연애의 발견 정현정 작가는 트위터를 통해 이민호의 연기를 칭찬했다]].] 2013 SBS 연기대에서 중편드라마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 베스트드레서, 10대 스타, 시청자 인기, 베스트커플의 다섯 개 부문에서 수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속자들|속자들]]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아 이민호를 일약 최고의 한류스타로 도약시켰다. 2014년 1월 외국인은 출연이 힘들다는 [[중국]] CCTV의 춘완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하여 이민호가 출연한 순간 최고시청률을 기록하였고 7억명의 시청자들이 보았다고 한다.
         2015년 초에 개봉한 [[강남1970]]의 [[김종대#s-2]] 역할로 화 첫 주연작품을 찍었다. 이민호의 새로운 연기 변신에 호평을 받았고 눈빛 연기, 액션 연기 쪽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청불임에도 불구하고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총 관객수 220만 명으로 막을 내리는 걸로 스크린 데뷔식을 치렀다. [[강남1970]]으로 2015년 52회 [[대종화제]] 남자신인, 19회 부천판타스틱화제 프로듀서초이스을 수하였다.
         2016년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허준재, 김담령 1인2역을 연기하였고 로맨틱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를 넘나들며 섬세하며 차별화된 연기로 역시 이민호라는 찬사를 받았고 대만, 중국 등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었고 한국 화 및 드라마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이트인 HanCinema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 1위에 선정됐다.
         어권 최대 한류 포털 사이트 숨피닷컴이 진행하는 제12회 숨피어워즈에서 올해의 배우 1위, ’푸른 바다의 전설‘이 올해의 드라마로 선정된데 이어 베스트 커플, 3관왕을 석권했다. 필리핀 스트리밍 플랫폼 아이플릭스가 진행한 ‘Best Actor of 2016’ 투표에서는 41.75%의 지지를 얻어 1위에 선정됐다. [[전지현]]과 호흡을 맞춘 [[푸른 바다의 전설]]은 2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우주소녀]]의 [[성소]]가 [[아는 형님]]에서 [[김수로(배우)|김수로]]에게 이민호와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실제로 [[성소]]는 이민호의 팬이며, [[인생술집]]에 출연했을 때 이형도 이민호라고 밝힐 정도여서 이민호 닮은꼴에 대해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정일우]]와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정일우는 거침없이하이킥에 캐스팅되고 이민호는 다른데로 캐스팅된 것이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83784|#]] 둘이 바다로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정일우]]는 재활 치료를 연기하면서 어떻게든 하이킥에 출연했지만 이민호는 혼수 태까지 가서 7개월 간 입원했을 정도로 크게 다친 바람에 오른쪽 허벅지와 무릎에 철심을 박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거기다가 이 사건의 계기로 하이킥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 출연이 무산되었다. 이 사고로 둘 다 [[병역판정검사|신검]]에서 공익 판정을 받았고, 실제로 둘 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에서 사격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수전증이 있다. 이 또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를 찍을 때 또 한 번 교통사고를 당했다. [[강남1970]] 촬 당시 한쪽 다리만으로 발차기 액션 씬을 찍었다고 밝힌 바 있다.
         === 화 ===
         || [[울학교 이티]] || 오훈 ||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9dec><#009dec> '''{{{#white 방 연도}}}''' ||<#009dec> '''{{{#white 방송사}}}''' ||<#009dec> '''{{{#white 제목}}}''' ||<#009dec> '''{{{#white 배역}}}''' ||<#009dec> '''{{{#white 비고}}}''' ||
         || 2012년 || [[신의(드라마)|신의]] || [[최(신의)|최]] || ||
         || 2013년 ||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속자들|속자들]] || [[김탄]] || ||
  • 김태희 . . . . 126회 일치
         | 수 = [[김태희의 수 및 후보 목록|수 목록]]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taehee35/}}
         '''김태희'''(金泰希<ref>{{뉴스 인용|저자1=장주|제목=[인터뷰①] ‘그랑프리’ 김태희, “서른은 나를 당당해지게 했다”|url=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2315791|날짜=2010-09-03|확인날짜=2018-07-05|뉴스=매일경제}}</ref>, [[1980년]] [[3월 29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2000년 "화이트"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서 2001년 화 《[[선물 (화)|선물]]》에 [[이애]]의 아역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입문하였고, 2002년 독립 화 《[[신도시인]]》에 출연했다. 이후 시트콤 《[[해변으로가요]]》(2004), 《[[스크린 (드라마)|스크린]]》, 《[[천국의나무]]》(2006)와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했다. 2003년에는 《[[천국의 계단]]》에서 악역 한유리 역할로 얼굴을 알리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이 드라마로 [[SBS 연기대]]에서 뉴스타을 수했다. 2004년에는 드라마 《[[작은아씨들]]》과 《[[목련꽃아래서]]》에 출연했다. 하지만 이후 화 《[[중천 (화)|중천]]》(2006), 《[[싸움 (화)|싸움]]》(2007)에 출연했으나,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2009년에는 시청률 30%대를 기록한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최승희 역할을 연기해 [[KBS 연기대]]에서 우수연기을 수하였다. 이후 드라마 《[[마이프린세스]]》(2011), 《[[나와 스타의 99일]]》(2012),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에서 주연으로 출연했고, 2015년 드라마 《[[용팔이 (드라마)|용팔이]]》로 [[SBS 연기대]] 최우수연기을 수했다.
         김태희는 이후 [[대구 도시철도|도시철도]]에서 광고대행사 [[디자이너]]를 우연히 만나 2000년 "화이트" 광고를 찍으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ref name="네이버">{{웹 인용|url= http://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31893|제목=네이버 화 김태희|웹사이트=[[네이버]]| 확인날짜=2011-01-20}}</ref><ref name="일요시사">{{웹 인용|url=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5954|제목=<이색설문> 연예인 별별랭킹 베스트|웹사이트=일요시사|저자=최현경|날짜=2013-11-12|확인날짜=2014-02-2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28224215/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5954#|보존날짜=2014-02-28|깨진링크=예}}</ref> 광고 촬 이후 여러 곳에서 모델 제의가 들어왔고 그녀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더 화제가 되었다.<ref name="MBC">{{에피소드 인용|제목=[MBC 스페셜] 태희의 재발견|url=http://www.imbc.com/broad/tv/culture/mbcspecial/commingsoon/1792451_27375.html|네트워크=[[MBC]]|날짜=2011년 4월 1일|회=516}}</ref> 2001년 화 《[[선물 (화)|선물]]》에서 중등 정연 역을 맡으며 스크린에 첫 데뷔했다.<ref name="네이버"/> 당시 [[화 감독]] [[오기환]]은 잡지 표지모델로 섰던 김태희를 보고 테스트도 안 해도되니 그냥 데려 오라고 말했다.<ref name="MBC"/> 이후 대학생활의 숙원이었던 어학연수를 가기 전 홍두현 감독의 독립화 《[[신도시인]]》 출연을 제안받아 출연했고 2002년 개봉했다.<ref name="씨네21"/> 같은 해 경험삼아 [[SBS 시트콤]] 《[[레츠고 (시트콤)|레츠고]]》에 출연했으나, 2개월만에 종되고 배우의 길에 대한 고민을 했다.<ref name="MBC"/>
         그러던 중 2003년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SBS 드라마]] 《[[스크린 (드라마)|스크린]]》에 출연했는데, 연기력으로 좋지 않은 평을 받았다.<ref name="MBC"/> 같은 해 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에 수진 역할로 출연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14&aid=0000092055|제목=권선징악 주제 현대판 흥부놀부전, SBS새 일일 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웹사이트=[[파이낸셜뉴스]]|저자=정명진|날짜=2003-10-23 |확인날짜=2014-02-25}}</ref> 이후 출연한 [[SBS 수목미니시리즈|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처음으로 악역인 한유리 역할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평균 시청률 38.4%, 최고 시청률 43.5%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고,<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11031246131001|제목=‘천국의계단’ 권우 “아베마리아 음악 나오면 달려야 할 것 같다”|뉴스=뉴스엔|저자=박주|날짜=2010-11-03 |확인날짜=2014-02-25}}</ref> 김태희 역시 이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ref name="MBC"/> 그 해 [[SBS 연기대]]에서 뉴스타을 수했다.<ref name="SBS연기대">{{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7311|제목=이병헌, SBS '연기대'|출판사=뉴시스|저자=민성진|날짜=2004-01-01 |확인날짜=2014-02-25}}</ref> 하지만 일부는 정형화된 연기 스타일도 소화하지 못했다며 연기력 비판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드디어 연기인생 한판승 거두나?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1141557551110&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배국남|날짜=2011-01-14 |확인날짜=2012-03-08}}</ref>
         김태희는 2004년, [[KBS 2TV|KBS2]] 《[[구미호 외전]]》에 이어 [[SBS 월화드라마|SBS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에서 하버드 의대생 이수인 역할로 출연했다.<ref name="김태은">{{뉴스 인용 |제목=작품속 김태희, 이렇게 바뀌었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61711531396823&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태은|날짜=2007-06-19|확인날짜=2014-03-05}}</ref> 그녀는 이 두 작품으로 [[KBS 연기대]]에서 신인연기,<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04931 |제목=김태희-이완 남매, 최초로 신인연기 동시수 |날짜= 2004-12-31 |출판사= 스타뉴스 |확인날짜= 2010-10-02 }}</ref> [[SBS 연기대]]에서 10대스타과 네티즌최고인기을 수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5&aid=0001978489 |제목=김태희의 하루’ 네티즌들 관심 가득 “뭘해도 예뻐요” |날짜= 2008-06-20 |출판사= 한국경제 |확인날짜= 2010-10-02 }}</ref>
         이 드라마를 통해 자리를 확고히 한 김태희는, 2006년 제작비 130억,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올로케이션으로 촬화 《[[중천 (화)|중천]]》에서 [[정우성]]과 함께 공연하며 소화 역할로 첫 장편 화에서 주연을 맡았다.<ref name="김태은"/> 이 화로 [[백예술대]],<ref>최지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30&aid=0000001410 '국내' '이 을 <하얀거탑> 폐인 분들께 바칩니다'] 매거진t 2007년 10월 4일</ref> [[대종화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43&aid=0000063392 ‘가족의 탄생’최우수작품·시나리오…대종 이변] 국민일보 2007년 6월 9일</ref> 그녀는 [[청룡]]에서 인기스타을 수했다.<ref>{{웹 인용|url=http://www.blueaward.co.kr/bbs/board.php?bo_table=awards_news&sca=28|제목=제28회 청룡|출판사=청룡|확인날짜=2014-02-27}}</ref> 하지만 연기력에서 “대사 소화가 부족하고 표정연기가 풍부하지 못했다”, “평면적 연기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ref name="김태은"/> 《[[중천]]》은 관객수 150만 명을 기록하면서 흥행에도 실패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중천' 참패, CJ 주가 폭락|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0319790|출판사=뉴시스|저자=김용호|날짜=2007-02-19|확인날짜=2014-03-05}}</ref> 2007년에는 화 《[[싸움 (화)|싸움]]》의 윤진아 역할을 연기했다. 연기파 배우 [[설경구]]와 공연하며 연기력에 있어서는 이전 작품보다 확실히 좋아졌다는 평을 받았으나,<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기력과의 싸움에서 '웃다'|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1100&g_serial=299002|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정명화|날짜=2007-12-05|확인날짜=2014-03-05}}</ref> 3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ref>{{뉴스 인용 |제목=톱스타 마케팅, 더 이 안 통한다!|url=http://osen.mt.co.kr/article/G1010070161|출판사=OSEN|저자=이명주|날짜=2010-10-07|확인날짜=2014-03-05}}</ref>
         김태희는 2008년 3월 19일 방된 [[KBS 1TV|KBS]] 《[[수요기획]]》의 이라크전 5주년 특집으로 만들어진 돌아갈수 없는 땅, 바그다드 편 내레이션을 맡았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목소리만으로' 안방극장 찾는다|url=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3/h2008031720511791970.htm|출판사=한국일보|저자=이현아|날짜=2008-03-17|확인날짜=2014-03-0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404032016/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3/h2008031720511791970.htm#|보존날짜=2008-04-04|깨진링크=예}}</ref>
         김태희는 2009년 4년 만에 첩보액션 드라마 《[[아이리스 (드라마)|아이리스]]》의 여주인공 최승희 역할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아이리스`, 가장 진지하게 준비한 작품"|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273866|출판사=MK 뉴스|저자=진향희|날짜=2009-05-12|확인날짜=2014-03-05}}</ref>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39.9%, 평균 시청률 30%대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아이리스’ 실체 추적하는 감성적 액션 주목하세요…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이리스2’ 제작발표회|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627557&cp=nv|출판사=국민일보|저자=진정희|날짜=2012-11-14|확인날짜=2014-03-05}}</ref> 연기력에 있어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일부에서는 첩보원 역할에 걸맞지 않다는 평도 있었다.<ref>{{뉴스 인용 |제목='멍때리는' 김태희? 연기논란 재점화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102914300874627&type=1&outlink=1 |출판사=머니투데이 |날짜=2009-10-29 |확인날짜=2010-01-02}}</ref> 그 해 [[KBS 연기대]]에서 처음으로 연기력으로 우수연기을 받았는데,<ref>[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20883 김태희, '아이리스'로 연기력 논란 극복하고 도 받고 눈물 '펑펑']{{깨진 링크|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20883 }} 리뷰스타 2010년 1월 1일</ref> 이에 대해 “우수연기은 인기로 받은 인기이 아닌 연기자로 인정받은 최초의 이었다. 연기로 인정 못 받고 있다고 그간 생각했다. 항 마음의 무거운 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저자1=김지연|제목=김태희 "연기력 논란, 항 마음의 무거운 짐"|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91500362265489&type=1&outlink=1|날짜=2010-09-15|확인날짜=2015-12-14|뉴스=머니투데이}}</ref> 2010년 1월 김태희는 소속사를 [[나무엑터스]]에서 자신의 형부가 설립한 루아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1인 기획사 대열 합류… 전 소속사와 협업관계 유지 |url=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05720 |출판사=[[일간스포츠]] |날짜=2010-01-11 |확인날짜=2010-01-11}}</ref> 9월 16일에는 화 《[[그랑프리 (화)|그랑프리]]》에서 서주희 역할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추석화열전⑥]'그랑프리' 김태희, 연기논란 잠재우고 흥행퀸 '찜'|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91608154987413|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조범자 |날짜=2010-09-16|확인날짜=2015-07-17}}</ref> 김태희의 연기력은 이전보다 나아졌다며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으나, 16만 명의 관객수를 끝으로 업적 실패를 거뒀다.<ref>{{뉴스 인용|제목=[울림과스밈] ‘그랑프리 실패’ 김태희에게는 ‘약'|url=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442216.html|출판사=한겨레|저자=김진철|날짜=2010-10-05|확인날짜=2015-07-17}}</ref> 11월 22일에는 몇몇 내용을 편집해 만든 《[[아이리스: 더 무비]]》가 개봉했다.<ref>{{웹 인용|제목=씨네21 - 아이리스 더 무비|url=http://www.cine21.com/do/zlgam/detail/main?prodSeq=1623|출판사=[[씨네21]]|날짜=2010|확인날짜=2012-02-29|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24525/http://www.cine21.com/do/zlgam/detail/main?prodSeq=1623#|보존날짜=2016-03-04|깨진링크=예}}</ref> 12월 13일에는 《[[아이리스]]》의 스핀오프작 《[[아테나: 전쟁의 여신]]》 1회에 회신으로 특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짧아서 아쉬워"..이병헌·김태희 `아테나` 깜짝 등장|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138166593198520&DCD=A10102|출판사=[[이데일리]] |날짜=2010-12-14|확인날짜=2012-02-29}}</ref>
         김태희는 2011년 1월부터 방된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 출연했다. 드라마는 평균 15%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저자=이수아|제목='마이 프린세스', 종…여심 흔든 달콤한 '황실로맨스'|url=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11/02/25/65491.html|출판사=프런티어타임스|날짜=2011-02-25 |확인날짜=2012-02-29}}</ref> 김태희는 [[송승헌]]과 함께 공연해 대학생 이설 역할을 맡아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했고, 이미지의 변화와 이전보다 향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김민호|제목=김태희 푼수연기 호평 "이제야 딱 맞는 캐릭터!"|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출판사=투데이코리아|날짜=2011-01-06|확인날짜=2011-01-06}}{{깨진 링크|url=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48 }}</ref> 4월 1일에는 《[[MBC 다큐스페셜]]》에서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 [[MBC 스페셜 방 목록#2011년|태희의 재발견]]이 방되었고, 방송에서 김태희의 일, 연기력 논란, 학창 시절 등에 대해서 다뤘다.<ref name="미디어스">{{뉴스 인용|저자=곽아|제목=MBC스페셜 '태희의 재발견'…"황당·실망"|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60|출판사=미디어스|날짜=2011-04-03|확인날짜=2014-04-07}}</ref> 시청률은 지난 편에 비해 2배 가량 승한 9.3%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저자=문완식|제목=궁금했던 김태희..'태희의 재발견' 시청률 9.3%|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4020912530683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1-04-02 |확인날짜=2014-04-07}}</ref> 하지만 일부에서는 “뭘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김태희 홍보프로”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ref name="미디어스"/> 이에 대해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MBC스페셜]]이 김태희도 다룰 수 있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다루는 방식”이라고 말했다.<ref name="미디어스"/> 《[[마이 프린세스]]》가 종되고 나서 김태희는 [[일본]] 기획사 [[스위트 파워]]와 계약을 맺고 [[일본]] 진출을 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진출…"일본서 적극적으로 활동 펼칠 것"|url=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출판사=SSTV|저자=신은|날짜=2011-03-03|확인날짜=2014-04-0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408214713/http://sstv.hankyung.com/?c=news&m=v&nid=101064#|보존날짜=2014-04-08|깨진링크=예}}</ref> 이후 [[일본]] [[후지TV]]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에 여주인공 한유나 역할로 출연해 일본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공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일본 드라마 주연…니시지마 히데토시와 호흡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19575|출판사=아시투데이|저자=정희|날짜=2011-08-25 |확인날짜=2011-09-10}}</ref> 첫 [[일본]]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9.3%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끝냈고, 많은 CF 촬도 진행 할 예정이였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 日 드라마 성공 데뷔 후 해외 CF 러브콜 쇄도|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출판사=일간스포츠|저자=김인구|날짜=2012-02-21|확인날짜=2012-02-25}}{{깨진 링크|url=http://isplus.joinsmsn.com/article/882/7420882.html?cloc= }}</ref> 그러나 2005년 이완과 함께 스위스에서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인 것을 빌미로 각종 CF 방 계획이 취소되었고, 드라마 촬 중단까지 요구되었다.<ref name="광주일보">{{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日 CF행사 취소..독도발언 때문|url=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29898239461109010|출판사=[[광주일보]]|날짜=2012-02-22 |확인날짜=2012-02-25}}</ref>
         2013년 4월부터 6월까지 방된 SBS 퓨전사극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김태희는 '9대 [[장희빈]]'으로 캐스팅 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장옥정]] 역할을 연기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혹평으로 이어진 계속되는 시청률 하락과 함께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 [[한국사|역사]] 왜곡 등으로 문제를 지적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장옥정' 독기만 품은 김태희, '착한' 장희빈은 어디갔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39334|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최두선 |날짜 = 2013-05-28 |확인날짜 =2017-09-09 }}</ref><ref>{{뉴스 인용 |제목 =김태희 "연기력 혹평에 자존심 처··독하게 해보겠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007259|출판사 =아시아경제 |저자 =최준용 |날짜 = 2017-05-24 |확인날짜 =2017-09-09 }}</ref><ref>{{뉴스 인용 |제목 =종 '장옥정',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잃었나 |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027910 |출판사 =오마이뉴스 |자지 =김성규 |날짜=2013-06-26 |확인날짜 =2017-09-09 }}</ref>
         2014년 5월 29일, 김태희는 중국 사극 드라마 《[[서성왕희지]]》 제작발표회에 참석하며 중국 데뷔를 알렸다. 그녀는 극중 왕희지의 아내 씨루이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중국 드라마 출연..'서성왕희지' 제작발표회 참석|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453046606094168&DCD=A10102|출판사=이데일리|저자=고규대|날짜=2014-05-30|확인날짜=2015-08-05}}</ref> 김태희는 자신의 역할 씨루이에 대해 "뻔한 여성이 아닌, 순수하고 정의로운 캐릭터"였기 때문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中드라마 '서성 왕희지', 유학 동경해 선택한 작품"[TD포토]|url=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26553404869440017|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고규대|날짜=2015-03-17|확인날짜=2015-08-05}}</ref> 이듬해 2015년에는 한국 브라운관으로 복귀해, [[SBS TV|SBS]] 드라마 《[[용팔이 (드라마)|용팔이]]》에 한여진 역할로 출연했다. 김태희에게는 2년만에 안방극장으로 복귀작으로 최고 시청률 20.4%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에 큰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최우수연기, [[SBS 연기대]] 미니시리즈부문 최우수연기을 수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SAF 연기대] 김태희, 최우수연기 "'용팔이' 덕에 행복한 한 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16&aid=0000174514|출판사 =SBS funE |저자 =김재윤|날짜 = 2016-01-01|확인날짜 =2017-09-09}}</ref>
         김태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자연미인으로도 꼽힌다.<ref>{{뉴스 인용 |제목=한국 최고미녀 왜 김태희인가|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101131845363&sec_id=540101&pt=nv|저자=윤대헌|출판사=스포츠 칸 |날짜=2011-01-13 |확인날짜=2011-01-20}}</ref> [[중국]]에서 뽑은 [[한국]] [[여배우]] 순위 1위에도 뽑혔다.<ref>{{뉴스 인용 |제목=중국인, 김태희가 최고…송혜교 이다해 순|url=http://morningnews.co.kr/article.php?aid=129319437931191006|출판사=모닝뉴스 |날짜=2010-12-24 |확인날짜=2011-01-20}}</ref> 또, [[전지현]]·[[송혜교]]·[[손예진]]·[[한가인]]·[[이나]]·[[한지민]]·[[한예슬]] 등과 200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미인]]으로 불린다.
         김태희는 작품 출연보다는 CF에서 주로 활동하는 [[연기자]]이다.<ref name="dd">{{뉴스 인용 |제목=CF톱스타들 왜 연기력 논란 거세나?|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2111723061110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08-02-11 |확인날짜=2008-03-31}}</ref> 김태희는 광고 1년 전속 계약을 할 경우 평균 10억대를 받아 업계에서 특A급 연예인으로 분류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기록으로 돌아보다...최장수 모델, 최고 몸값 CF스타는?|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220166586345288&DCD=A10102|출판사=이데일리|저자=양승준 |날짜=2008-03-20 |확인날짜=2012-03-08}}</ref> 출연하는 화나 드라마마다 연기력 논란이 항 따라다니는 편이였지만, 현재는 어느정도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다.<ref name="dd"/>
         김태희는 사생활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남자 연예인들과 [[스캔들]]이 난 적은 거의 없고,<ref>{{뉴스 인용 |제목=장동건·김태희, 스타들이 이형으로 꼽는 이유?|url=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419696|출판사=[[SBS 뉴스]]|날짜=2008-05-22|확인날짜=2013-09-12}}</ref> 지금까지 연애 경험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애경험 고백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104030858401119|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이은지|날짜=2011-04-03|확인날짜=2013-09-12}}</ref> 2003년 인터뷰에서 [[천주교]] 신자여서 보수적이라며 [[혼전 성관계]]와 [[낙태]]는 절대 안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가 생각하는 ‘낙태’와 ‘혼전순결’은…|url=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3371|출판사= 뉴데일리|날짜=2012-12-28|확인날짜=2013-09-12}}</ref>
         == 수 및 후보 목록 ==
         {{본문|[[김태희의 수 및 후보 목록]]}}
         {{둘러보기 자 묶음
         |title = 김태희의 수 목록
         {{SBS 연기대 여자 최우수연기}}
  • . . . . 126회 일치
         ||<:><#00CED1>{{{#fff '''학력'''}}} ||<(> 비산4동유치원 (졸업)[br]창남초등학교 (졸업)[br]거창중학교 (졸업)[br][[대구제일고등학교]] (전학) → [[한국예술고등학교]] (졸업)[* 1학년 때 대구제일고등학교에서 전학을 왔고 [[http://www.koreaartschool.co.kr/bbs/board.php?bo_table=star_board|한국예고]] 음악과를 졸업했다. [[장문복]]과 대구제일고등학교 동기로 이때부터 알고 지냈다.][br][[글로벌사이버대학교]] 방송연예학과 (재학) ||
         ||<:><#00CED1>{{{#fff '''별명'''}}} ||<(>'''태태'''[* 데뷔 전부터 학창 시절 친구들이 뷔를 부르던 별명이다. 나무위키에서 이 별명으로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김스치면인연[* [[김(성씨)|김]] + 스치면 [[인연]]. [[화양연화 pt.1]] 수록곡 'Converse High'에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라는 가사가 있다. 넘치는 친화력으로 스치기만 해도 친해진다고 해서 붙은 별명.], CGV[* CG + V. [[얼굴]]이 너무 잘생긴 나머지 [[CG]]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 --[[CGV|이 화관]] 광고 아닙니다.--], 부인[* 중국 [[A.R.M.Y|팬]] 한정. '태태'를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타이 타이(tai tai)'가 되는데, [[중국어]]로 '부인'이라는 뜻의 '太太(tài tài)'와 [[동음이의어]]다(...)], 싸이퍼 덕후, 초코찐빵[* 구릿빛 피부와 웃을 때 모찌같은 얼굴때문에 붙은 별명.], MC 자두[* 동그란 두과 웃을 때 뽈록 나오는 광대와 날렵하고 짧은 하관과 얼굴형 때문에 [[자두]]라고 불리고 있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7LEJKiSv1ZA|페스타]]에서 쩌이퍼를 탄생시켰기 때문에 붙은 별명.], 뷔주얼, 아기 물만두, 등깐남[* [[2016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등을 까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남자 주황머리 걔[* [[SKOOL LUV AFFAIR|남자]] 활동 당시 잘생긴 얼굴과 끼의 콜라보로 무대를 휘어잡아 "주황머리 걔 누구냐?"는 질문들이 각종 포털 사이트를 휩쓸었다. 심지어 [[네이버]]에 [[방탄소년단]]을 치면 자연스럽게 주황머리 걔가 떴다. 방탄 주황머리 걔의 원조. 이 주황머리 걔가 방탄소년단이 본격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첫 발이었다.], 체 보수남, 신라 중딩[* 첫 연기활동을 시작한 [[화랑(드라마)|화랑]]에서 [[화랑(드라마)/등장인물#s-2.3|맡은 역할]]의 나이가 16살, 현재로 치면 중학교 3학년이다.], 뷔밀병기[* 데뷔전, 어린 나이 + 비주얼과 목소리가 좋아 다른 연예 기획사에서 채갈까 싶어 데뷔 바로 전까지 로그 공개를 안하다 마지막에 공개해서 뷔밀병기.], 뷔앱[* [[V LIVE|모 라이브 앱]]과 이름이 같아서(...) 컴백쇼에서 [[브이앱]]을 소개할 때 뷔앱이라고 소개했다.], 아기 사자[* 예전엔 뷔의 데뷔 초 모습이 아기 사자를 닮아서 지어졌지만 요새는 귀여운 모습이 보이면 쓰는 듯.], 뷔글[* 뷔 + [[비글]]. 시끄러워서(...)], 태브이[* 태형 + [[이브이]]], 구찌 뮤즈[* 팬들이 조공해준 선물들 중 [[구찌]]가 굉장히 많은데 그게 또 찰떡처럼 어울려서 붙은 별명. [[화양연화 Young Forever]], [[WINGS]]의 컨셉포토 의도 [[구찌]]다. 심지어 이런 합성사진도 있다. [[https://twitter.com/be_llo_/status/839104774867845120|링크]] 해외팬들은 구찌 보이라고 한다.], 구체관절인형[* 얼굴형과 하관, 이목구비가 주는 느낌이 [[구체관절인형]]과 같아서 붙은 별명.], 거창 왕자, 곰돌이[* 어릴 적 아버님께서 부르신 별명이라는 팬사인회 후기가 알려진 후 팬들이 부르기 시작했다. 같은 별명은 가진 사람은 [[레드벨벳]]의 [[슬기(레드벨벳)|슬기]] 등이 있다.], the one on the left[* [[빌보드]] 마젠타 카펫에서 왼쪽에 귀엽고 잘생긴 사람이 누구냐는 반응이 많았다.], [[르네스]] 보이, 세일미[* 세계 일위 미남. [[화양연화 Young Forever#s-2|Save ME]]의 가사와 결합되어 생긴 별명이다.], 제뷔[* [[제비]] + 뷔. [[흥부전]]에서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오기 때문이다(...) 연예계에서 특히 친한 [[박(성씨)|'박' 씨]] 연예인들이 많아 생긴 별명이다.([[박서준]], [[박형식]], [[박보검]], [[박지훈(Wanna One)|박지훈]], [[지민(방탄소년단)|박지민]] 등) 자매품으로 '박씨 컬렉터'가 있다.] ||
         ||<:><#00CED1>{{{#fff '''취미'''}}} ||<(> 사진 찍기, 예술 작품 감 ||
         예명은 어 알파벳 '''[[V]]'''로 공식 설정에 따르면 '브이'가 아니라 '''뷔'''라고 발음한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방탄소년단의 비입니다"--[* '브'와 '비'의 중간 발음인데, '뷔'는 아니고 '븨'에 가까운 희한한 발음. 그냥 '비'라고 발음하는 것 같다.]
         == 세 ==
         || 2017년 1월 14일 [[골든디스크 시식]] ||
         노래를 부를 때의 목소리가 크게 둘로 나뉜다. <남자>나 <Danger>, <쩔어>, <흥탄소년단>처럼 목을 [[그로울링|긁어서 소리]]내는 경우, 또는 <RUN>, <EPILOGUE: YOUNG FOREVER>, <SOMEONE LIKE YOU>[[https://youtu.be/56jN9-cMEBU|#]]처럼 목을 긁지 않고 소리내는 경우. 특히 <EPILOGUE: YOUNG FOREVER>에서 뷔 특유의 음색과 성량이 돋보인다. 2015년을 기점으로 방탄소년단의 타이틀 곡과 수록곡에 보컬 위주의 곡들이 많아지고 있다. [[DNA(노래)|DNA]] 때는 도입부를 맡아 곡의 몰입도를 올려 아마 때 전 세계에 방탄소년단을 알린 도입부 요정이기도 하다.
         2014년 7월 24일부터 2014년 9월 14일까지 [[엠넷]]에서 방된 아메리칸 허슬 라이프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다른 멤버들과 함께 강제 [[힙합]] 유학을 [[LA]]로 간 적이 있는데, 당시 씨스터 액트2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아이리스 스티븐슨 보컬 선생님으로 만났는데 뷔의 허스키 중저음은 사람들에게 힐링과 안정을 주는 음색이라며 언젠간 사람들 가슴에 큰 울림을 줄 음색이라며 꾸준히 잘 가꾸고 간직하라며 극찬을 하기도 했다.
         [[싱어송라이터]]가 많은 방탄소년단답게 이쪽도 곡에 참여하는 멤버 중 하나로, "[[화양연화 pt.1]]"의 3번 트랙인 '''잡아줘(Hold Me Tight)''' 제작에 참여했다. 후렴구 멜로디는 본인이 썼으며 작사도 했다. 인터뷰에서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본인이 제작한 곡임에도 파트가 가장 적다며 한탄. 한번은 본인 생일에 [[Adele]]의 노래 'Someone like you'를 [[http://btsblog.ibighit.com/273|커버]]해 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직접 촬한 [[http://youtu.be/56jN9-cMEBU|뮤직비디오]]도 있다.
         최근에 [[하트시그널2]]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며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음원 사이트에 어느 날 달에게, 너보다 환하진 않지만, 뷔, 심지어는 nessi를 검색하며 새벽에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만들어놓았지만 네시는 무료 음원이었다. [[SoundCloud]] 방탄소년단 공식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soundcloud.com/bangtan/4oclockrmv|#]]
         얼굴 특징으로는 얼굴이 동그란 편이나 하관 쪽으로 갈수록 갸름해지면서 턱이 당히 짧고 뾰족하다. 이 때문에 [[자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며 작은 얼굴 안에 눈코입이 꽉 차게 담겨있다. 이목구비가 당히 또렷한 편. 무쌍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눈이 엄청 큰 데다 사방으로 시원하게 트여있다. [[속눈썹]]은 길고 숱이 매우 많다. 특히 언더속눈썹이 길어서 팬들이 그린 팬아트들을 보면 언더속눈썹이 길다는 것이 특징이다.
         체형은 전반적으로 길고 늘씬한 편. 키도 적당히 큰 178cm. [[https://www.youtube.com/watch?v=c2RzFqINL9Y|모 예능]]에서 정국이 안고 림보할 멤버 3명을 골랐을 때 뷔도 꼽힌 것을 보면 가벼운 멤버에 속하는 듯. 데뷔 초에는 멤버 중 체격이 왜소한 편에 속했으나[* 당시 별명이 아기[[고라니]].] 꾸준한 [[헬스]]의 향과 골격의 적당한 성장으로 지금은 탄탄하게 마른 슬렌더 체형이다.
         [[미국]] [[화]] [[블로거]][* 연예 기사에서는 사이트로 소개되는데 전문 사이트가 아니라 엄연히 말해서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710727|포커 선수가]] [[http://www.newsinside.kr/news/articleView.html?idxno=373555|운하는]] 개인 [[블로그]]다.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100명도 안 되고 올라오는 글도 연말에 올해 외모 순위하고 분기별로 올라오는 현재 화 순위가 거의 전부다. 애초에 [[북미]]나 [[유럽]] 시장에서 외모 순위 같은 건 화지가 아니라 패션지나 남성잡지에서 많이 나오는 소재이며, 여자 순위는 [[맥심]]이나 FHM, [[에스콰이어]] 등에서 남자 순위는 코스모폴리탄이나 [[글래머]] 등의 잡지매체를 자주 인용한다.] .TC캔들러(TC Candler)에서 2017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얼굴 100인(The 100 Most Handsome Faces of 2017)'[* 사실 이 표현만 봐도 현지인 대의 일반적인 외모 순위와 달리 [[대한민국|한국]]이나 [[아시아]] 쪽에 맞춰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보통 외국에서는 미남미녀 순위를 선정할 때 handsome이라는 표현보다는 sexiest라는 표현을 쓴다. 참고로 여자 1위는 [[필리핀]] 여배우 'Liza Soberano'.]에 1위로 뷔를 선정하기도 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994215|#]]
         무대 위에서의 제스처의 존재감이 크다. ~~시강~~ 예능에서 손가락 지목으로 팀 내 최고의 끼쟁이를 고르라는 질문]에 멤버 모두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뷔를 골랐을 정도로 방탄소년단의 끼쟁이 중 하나. 큰 제스처보다는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제스처가 인적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nVWKHor7K5s|#]] (음량이 크니 줄이고 보는 걸 추천)
         방탄소년단의 공식적인 댄스라인은 제이홉, 지민, 정국이지만 2018년 5월 6일 뷔의 컴백 트레일러 이 공개되면서 방탄소년단의 안무가 손성득은 자신의 [[https://www.instagram.com/p/BiceFnUF3me/|인스타그램]]에 뷔를 공식적으로 댄스라인으로 인정했다. 2018년 5월 18일에 [[V LIVE]]를 통해 [[LA]]에서 진행된 BTS Comeback Preview show <방탄늬우스 in LA>에서도 이 내용을 뷔의 뉴스로 다루며 언급했다.
         평소 신이 나거나 흥분했을 땐 조사를 빼먹거나 단어 몇 개를 건너뛴다거나 거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수준. 특히 '이제', '약간' 등의 부사를 자주 사용하며 한 에서는 1분 동안 말하면서 '이제'라는 단어를 13번이나 사용한 적도 있다. [[https://youtu.be/Lw1Qt2n-JH0|관련 ]] [[A.R.M.Y|팬들]]은 이를 두고 [[https://youtu.be/LkVTBHovVJU|태태어]]라고 부르며, 대표적인 태태어 어록으로는 '건강 맨날 하고' '그거를 제가 눈을 봐써여 한 번' 등이 있다. 이처럼 각종 SNS 과 예능에서 태태어가 발동될 때마다 주변 멤버들이 더 바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RM]][* 본인 피셜 뷔를 책임지고 있는 멤버.]나 [[슈가(방탄소년단)|슈가]][* 뷔가 '이 귀를 들은 멤버들 미안해' 라고 말했던 것을 슈가가 '이 멘트 들은 귀 미안해'로 해석해준 적이 있다.]가 깔끔하게 태태어 해석을 하는 동안 빵 터져서 웃고 있는 [[지민(방탄소년단)|지민]]과 [[정국(방탄소년단)|정국]]의 모습이 포착된다.
         대표적인 태태어 중 앞서 언급된 "건강 맨날 하고"[[https://youtu.be/eU-ShDVx9oA|#]] 같은 경우는 뷔가 2014년도에 한 말이지만 멤버들에게도 당한 임팩트가 있었는지, 2016년 [[멜론 뮤직 어워드|MAMA]] BEHIND 에서 뷔가 소감을 얘기하다 "맨날..." 하고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하자 멤버들이 나서서 '건강 맨날 하고." "그래요 우리 건강 맨날 합시다." "행복 맨날 하고 사랑 맨날 합시다." 등으로 자연스럽게 받아쳐주는 등 훈훈한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했으며, '그거를 제가 눈을 봐써여 한번'은 심각한 수준의 태태어에 쓰러져서 웃던 같은 멤버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한번 눈을 봤어요? 좋았겠네~ 예쁜 눈이었겠네." 하고 센스있게 받아쳐주는 모습을 보여 여러모로 레전드 어록이 되기도 했다. 다만, 생소한 사투리나 명칭이 태태어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모음집 중 취소선을 친 것이 그런 사례. --최근에는 종종 다른 멤버들도 태태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 저희 세에서는 (저희 세대 때는)
          * 잠시만 세계가 돈다 진짜 (세이 도는 것 같은 느낌이다)
          * --심청환드세요. (청심환드세요)--[* 네이버 브이앱을 통해 방송된 김태형의 고민 담소에서 나온 말인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44405&cid=51000&categoryId=51000|심청환]]이라는 한약이 실제로 있다. 효능도 비슷하다. 결론은 태태어가 아님.]
  • 소진(걸스데이) . . . . 125회 일치
         ||<bgcolor=#A9A9F5> '''본명''' ||박소진 (朴素珍) / Park So Jin[* 원래 본명은 박미였는데 초등학생 때 개명]||
         ||<bgcolor=#A9A9F5> '''학력''' ||이현초등학교[br] 서진중학교[* 99년에 입학했을 당시의 교명은 '대구서부여자중학교'였다. 4년 뒤인 2003년에 남녀공학으로 전환되면서 이름도 서진중학교로 변경됐다가, 학생 수 감소로 2018년 3월에 서부중학교와 통합하여 서대구중학교로 또 변경됐다.] [br] [[경덕여자고등학교]][br] [[남대학교]] [[기계공학부]] (휴학) ||
         '''[[장나라]], [[박보]], [[한승연]], [[박산다라]]와 함께 [[한국 아이돌]]계의 [[동안]] 끝판왕 중 한 명.'''
         [[신인걸그룹]] [[유스걸데이]]의 원년 멤버이자 리더. 그리고 우리의 속에나 있던 '''공대 여신님이다.'''[* 소진이 속했던 [[남대학교]] 기계공학과 05학번에는 남학생 300명에 여학생은 '''단 8명'''만 있었다고. 그것도 당시 기준 역대 최고로 많이 입학한 거라고 한다.] [[남대학교]] 스쿨밴드 '에코스'의 보컬 출신이다.
         자기소개 멘트는 "안녕하세요? 걸스데이의 아가아가 아가공주 소진이에요"(?!)이다. [[2014년]] [[1월 22일]] 팬미팅에서 본인이 직접 바른 철자를 알려줬다. 정확히는 '''아가겅쥬'''이다. 하지만 본인도 오그라드는지 다 하고 나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관객들에게 사과한다. 이 멘트의 초기 버전 비슷한 것이 [[2010년]] [[12월 14일]] [[박경림]]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등장한다. 실제로 들어본 가장 닭살스러운 멘트를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소진은 '''"우리 아가공주님 맘마는 먹었어요?"'''라는 멘트를 현실에서 들어본 적이 [[http://www.youtube.com/watch?v=qPMgrebV3Kk#t=74|있다고 한다.]] 뭔가 개인적인 역사가 스며 있는 자기소개인 듯하다. 어쨌거나 풀버전을 들어보자. 2011년 2월 26일 김희철의 스트리트 감정 주말 정산에서 남자친구에게 듣고 싶은 호칭으로 "아가공주"를 언급해서 김희철과 민아를 경악케 했다. 30대가 된 현재는 쓰지 않고 있는 별명.
         이현초등학교 시절에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지역 콩쿠르에서 입도 했고 학원을 6년 정도 다녔지만, 서진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집안이 어려워져서 이후로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2011년]] [[11월 19일]]에 출연한 [[주간 아이돌]]에서 소진은 자신이 학창시절에 잘하면 전교 2등이나 4등, 못해도 전교 45등 안에는 들어갔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때 이과생이었다.
         경덕여자고등학교 3학년 때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경북대학교]]에 수시모집 최종 합격을 했지만, 3학년 2학기 때 사기 기획사에 속는 바람에 [[서울특별시|서울]]에서 계속 연습생 생활만 하다가 6개월만 허비했다고 한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남대학교]]로 진학한 후 스쿨 밴드에서 '''무대의 맛'''을 깨달은 소진은 휴학 후 다시 경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이어가던 중, 아는 녹음기사분의 소개로 [[걸스데이]]의 멤버가 되었다.
         정확한 일자를 알기는 어려우나 데뷔 전, 공대여신으로 날리던 시절의 어느 공연 . 아마추어 시절이라 뭔가 살짝 어설픈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순수한 독학으로 이만큼 불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단 한번 보고 들어가자.
         나이로 보나 음악 경력으로 보나 팀 내에서 당연히 큰언니라서 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나마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지해]]조차도 소진에게는 깍듯하게 대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천진난만한 구석도 많다고 한다. 6~8살 차이가 나는 다른 멤버들과 죽이 잘 맞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2012년]] [[11월 19일]]에 방된 [[비틀즈 코드]]에 걸스데이가 출연했을 때, 이 부분과 관련하여 MC들에게 어린 척한다고 맹공을 받기도 했다.
         '''아가공주'''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나이에 비해 당한 [[동안]]이다.'''[* 20대 국회 최연소 의원이라는 정치인 [[김수민(정치인)|김수민]]이 그녀와 동갑이며, 심지어 김수민은 박소진보다 생일이 훨씬 늦다(...)] 특유의 웃음기 많은 밝은 성격과 어우러져서 가끔은 다른 멤버들보다 더 어려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인은 이 별명을 점점 힘들어하는 듯. [[2012년]] [[4월 18일]] 열린 <Oh! My God> 컴백 쇼케이스에선 "제가 27인데 이렇게 귀엽게 할 수 있는데"라며 자신감을 보였던 그녀지만, 팀의 컨셉이 바뀐 <기대해>부터는 남이 시키지 않으면 굳이 이 별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동생들이 자꾸 시킨다.~~ [[2013년]] [[6월 27일]] '와이드 오픈 스튜디오'에서 오랜만에 이 별명을 이용한 자기소개 멘트 "아가아가 아가공주 소진이에요"를 시전하기도 했으나 결국 [[2014년]] [[1월 3일]] <Something> 컴백 쇼케이스에서 그간의 고충을 실토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2014년]] [[1월 9일]]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여전히 포기를 모르는 멤버들에 의해 아가공주 멘트를 간만에 선보였다.
         3번째 싱글 타이틀 곡 <반짝반짝> 활동 당시 금발로 염색한 소진의 비주얼이 빛을 발했었다. 그 덕에 디시인사이드 걸스데이 갤러리를 비롯한 걸스데이 팬덤에서 소진의 인기 지분이 급격히 늘어났다.
         [[리아나]]의 <Umbrella>를 부르는 [[http://www.youtube.com/watch?v=wgTREjnzJhA|]]을 보면 소진의 가창력이 수준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폭발적인 성량과 시원한 고음이 특징인 민아와는 다르게 음색이나 창법이 댄스 음악보다는 발라드나 R&B, 소울에 특화된 소위 맛깔나게 노래를 부르는 스타일.
         2012년 11월 19일 [[비틀즈 코드]] 2에 출연해서 부른 [[2NE1]]의 <Lonely> 라이브. 보면 느끼겠지만 노래를 당히 '''복잡하게''' 부른다. 원곡과 차별화 정도가 아닌 본인만의 감각으로 생각지 못한 데서 애드리브나 기교를 넣거나 음정을 변화시키는 등 테크닉이나 감각적 기량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 원곡이 댄스 음악같이 간편한 구조도 아닌 어쿠스틱 성향이 짙은 R&B성 발라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본인만의 감각으로 소화하는 인물은 현 걸그룹 보컬들 중에서도 정말 몇 없다.
         하지만 고음이 가창력의 척도는 아니며 무엇보다도 본인만의 색깔을 확고하게 지닌 보컬이라는 점에서 그 실력이 평가절하되지는 않는다. [[민아(걸스데이)|민아]]만큼 확 띄진 않지만 고음이나 성량이 약하다고 볼 수도 없는 편. <기대해> 클라이맥스 하이노트에서 고음 애드리브를 무난하게 소화했으며 <여자대통령>때 후렴부 고음 부분은 거의 다 소진이 맡았었다. 다만 저음에 비해 고음에서의 해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편. 평소 목소리를 들어보면 의외로 그렇게까지 진성 허스키 톤은 아닌데 아무래도 타고난 피치나 하드웨어가 저음역대에 어느정도 쏠려있는 듯 하다.[* 재밌는 점은 이런 점까지 [[민아(걸스데이)|민아]]와 반대라는 것이다. 민아의 경우 평소 목소리는 당히 허스키한 편인데 오히려 피치가 고음역대에 쏠려있어서 저음에 비해 고음의 해력이 더 좋은 케이스]
         유스걸데이라는 팀이 가진 4인 4색 보컬체제에서 민아와 함께 팀의 실력 카테고리를 양분하는 요인이 두 메인보컬의 보컬 성향이 반대라는 점에서 확실히 뛰어난 보컬 재원인 것은 사실인 듯하다. 다만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민아와 소진이 완벽하게 조화로운 듀엣을 보여준다고 하기는 힘들기도 하는데 보컬 특성에 맞게 정리된 자신들의 노래에서는 괜찮지만 타 가수의 노래를 듀엣으로 부를 경우, 가끔 심각하게 망가질 때가 있'''었'''다. 듀엣의 경우 솔로보다 조화로움을 우선시해야 실력발휘가 되는 법인데 한쪽은 파워와 고음, 한쪽은 기교와 저음에 특화되있는 체제다 보니 아예 각잡고 연습에 몰두하지 않는 이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긴 힘든게 당연하다.
         2014년 7월 27일 [[케이윌]]의 스트리트에 [[http://www.youtube.com/watch?v=sotTyN7H9H0|출연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목소리의 키가 조금 낮은 편이라고 한다. 실제로 후술되어 있는 소진의 솔로곡들이나 <잘해줘봐야>의 단독파트를 들어보면 낮게 깔리는 중저음 부분에 특화된 목소리라는 느낌도 든다. 몇몇 곡들에서는 진성으로 때려대는 [[벨팅|벨터]]같은 면모도 보이는 것을 보면 소진에게 가장 편안한 역은 걸스데이의 주된 디스코그래피와는 조금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이단옆차기]]와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 소진의 가창력에 대한 지적이 가끔씩 나오는데, [[남기]]과 작업하던 시절에는 나오지 않았던 얘기들이다. 이건 사실, 이단옆차기가 걸스데이에게 주는 노래들이 기본적으로 키가 높은데서 시작해 높은데서 끝나는, 음역대가 넓다기보다 그냥 하염없이 높은데서 노는 곡들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기본 키를 높이는 식의 편곡은 팀의 [[민아(걸스데이)|메인보컬]]의 목소리 특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선택한 전략으로 보인다. 있을 수 있는 선택이지만 덕분에 고생문이 훤히 열린 건 소진. 자신의 음역대와 관없는 역에서 갖은 테크닉을 동원해 노래를 소화하고 있다. <[[https://youtu.be/1mb6It4pUYI|여자 대통령]]>처럼 자신의 보컬 특색에 맞게 어레인지된 곡도 아니고, 민아 같은 성량괴수에게 맞춰진 노래를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소진이 가진 보컬 역량을 재평가하게 만드는 부분. 어떻게 보면 이단옆차기와의 성공적인 협업에 있어 숨은 공로자는 소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2015년 1월 30일, 출연 중인 "[[떴다! 패밀리]]"의 OST <[[http://youtu.be/aQxFSv0j5vg|아찔아찔]]>이 공개됐다. 소진의 발성을 들어보면 소리를 안으로 삼켜 얇게 내는 경우와, 목에 힘 꽉주고 굵직하게 밀어내는 경우로 나뉘는데 금번의 곡은 전자. 술한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와 함께 소진의 이런 목소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좋은 선물이겠다. 가수 본인의 [[http://youtu.be/i4326SP9LY8|곡 소개]]를 들어보자.
         작사와 작곡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관련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미니앨범 <Everyday 2>에 수록된 <텔레파시>는 소진이 처음 작사, 작곡을 전담한 곡으로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인 <Oh! My God>보다 전반적인 평이 더 좋은 편. 타이틀 곡보다 걸스데이라는 그룹의 개성을 더 잘 살린 곡인데다가 후렴구의 중독성도 더 높다는 평이 많아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걸스데이는 전문 작곡가의 곡 받지 말고 소진에게 작곡을 맡기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이다.
         2011년 11월 19일에 출연한 [[주간 아이돌]]의 코너 '다시 쓰는 프로필'에서 자신의 취미를 "추화 그리기"라고 밝히고 방송 녹화 중에 진짜로 MC인 [[정형돈]]과 [[데프콘(가수)|데프콘]]의 추화를 그렸는데, 결과물이 심히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형돈이와 대준이]]라고 그린 게 마치 [[크툴루 신화|어느 꿈도 희망도 없는 신화]]에서 [[아자토스|내내 잠만 주무시는 어느 분]] 존안을 닮았다. 정형돈은 그림을 제작진에게 건네며 정신감정을 의뢰하기도...
  • 신화용 . . . . 12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990000> {{{#ffffff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3> DF [br] [[김식(축구)|김식]]
         ||||||<tablealign=center><:><-12><#ee1111> '''{{{#ffffff 2015 K리그 대 특별 }}}''' ||
         K리그 베스트 일레븐 GK에 선정된 2009 시즌부터 2017 시즌까지 반박의 여지가 없는 K리그 최고의 골리 중 한 명이었으나 여러 가지 불운으로 인해 시식과 국가대표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골키퍼이기도 하다.[* 2015년에 '''특별'''을 받기는 했지만 공로에 가까운 여론 무마용 이다.]
         포항제철동초등학교 4학년때 단거리 육선수에서 축구로 전향하여 포철중-포철공고까지 유스 테크트리를 탔으나 골키퍼였음에도 작은 키와 실력 성장 정체가 문제가 되어 프로입단에 실패하게 된다.[* 졸업 당시 179cm였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포항 원 클럽 맨이었던 최국 감독이 청주대로 신화용을 부르게 되고 신화용은 청주대로 가게 된다. 하지만 당시 청주대 축구부는 프로 입단,대학 입학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이나 가는 곳이었고 선수들의 의욕도 없었다. 게다가 1학년때 허리 디스크 부을 당하면서 축구를 그만둘뻔 하기까지 했다.[* 이때 디스크 부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게 된다.] 신화용이 2학년이 되자 청주대 감독이 유인권 감독으로 바뀌었고 유인권 감독의 지도하에 성장했다. 이때 포항의 백업 골키퍼였던 조준호가 이적하면서 팀에 키퍼가 부족해지자 포항은 신화용에게 입단 제의를 했고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김지혁이 무 입대를 하고 주에서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구제명 황까지 가게된 현재 부동의 주전 골키퍼. 다만, 2010 시즌에는 실점이 꽤 많은 편이고 팀 성적도 좋지않아 여전히 좋은 평가를 못받았다. [* 실제로 2009 플레이오프 성남전에서는 몰리나에게 통한의 프리킥골을 내주며 팀이 결승 진출 실패.]~~[[호세 마누엘 레이나|레이나]]?~~
         더욱이 [[황재원]]은 이적했고, 시즌 초 수비의 한 축이었던 ~~[[김정겸]]~~은 안 좋은 일로 퇴출 당했고(...) 2012 시즌엔 가끔 정줄놓아도 그나마 수비를 해주던 김형일마저 군입대 해버렸고 대체자로 들어온 김원일, 조란은 또 호흡이 안맞고(.....) 이래저래 신화용만 죽어나고 있다. 그나마 김원일-김광석 조합이 자리 잡은 이후에는 수비가 한결 편해졌다. 어디까지나 대적으로(...)
         2012 시즌에 온 김형일도 무에 입대했고, '''또다시 리셋이 되버린 포항 수비진의 문제를 혼자서 다 막고 있다.''' ~~수비 가장 김형일이 떠나고 이젠 골키퍼가 가장~~ 이후 시즌 중반에 들어가자 포항 수비진들이 안정이 되면서 다소 부담은 줄어든 태. 11시즌 까지는 신화용 혼자서 막다가 팀은 지고 본인도 털리고 경우가 많았으나, 수비진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 가끔씩 찾아오는 위기에서 결정적인 선방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 경우가 많아지며 빛을 발하고 있다. 시즌 중반에는 김다솔의 로테이션 기용으로 벤치를 지키는 일이 있긴 했지만 결국 주전을 지켜내며 주전 골리로써의 위치를 굳혔다.
         2012 시즌 이후 FA로 풀리면서 소속팀인 포항과 연봉계약에 난항을 겪었으나 결국 ACL 선수등록 전날에 협을 완료. 시즌 시작 후 타 팀 팬들에게도 '''아니 저렇게 잘하는 골키퍼 왜 국대 안 뽑음요?''' 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리고 이어진 활약으로 2013 K리그 3라운드 수원과의 경기에서 선방쇼를 보여준 끝에 3라운드 MVP로 뽑혔다. 수 소감 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2012 시즌 후 FA로 풀리는 과정에서 포항과 있었던 연봉 협[* 이 때 [[황진성]]과 더불어 연봉협에 제일 난항을 겪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ACL 선수등록 하루 전에 협을 마무리하며 아슬아슬하게 팀에 남게 되었다.]의 뒷 이야기도 풀어놨는데 포항의 모기업인 포스코가 경악화로 신화용에 걸맞는 연봉을 못 주는 황에서 일본 클럽이 2배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했지만, 포항 유스 출신으로서 포항과 포항팬들에 대한 애정과 [[황선홍]]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남는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포스코 경진들 보고 있나?~~ ~~경화 되면 두고봅시다.~~ 이때 인터뷰에서 한 정확한 발언은 "감독님이 첫 번째 이유다. 전지훈련 도중 떠난다는 말을 못하겠더라. 감독님과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니다. 그리고 나를 믿어준 동료들도 있었다. 고향이고 팬들도 마음에 걸렸다. 남아야할 이유가 더 많았다. 떠날 이유는 돈 뿐이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24687&date=20130319&page=2|보러가기]]
         그 공을 인정받아 포스코가 경화가 되지 않은 황에서 포항의 FA 선수들 중 먼저 재계약을 하였다. 구단은 2년 계약을 제시했지만 신화용 본인의 요청으로 계약 기간은 1년, 연봉은 비공개로 합의했지만 당히 올랐을 것으로 추정되며 결정적으로 연맹 정책때문에 14 시즌 중에 다 공개가 되기 때문에 비공개의 의미가 없다.
         2014 시즌에도 맹활약 중인데, 2014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부리람 원정에서는 신화용 답지 않은 실수로 1골을 내줬으나 팀이 승리하여 겨우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시즌 초반 [[황지수]]의 부 결장으로 매 경기 실점을 내주고 있는 포항 수비진의 삽질을 혼자서 다 커버하는 등 이러한 활약 속에 5라운드 [[무]]와의 경기에서는 미친 선방쇼로 4:2의 스코어와 관없이 이 날 MOM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FC 서울]]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FA 컵]]에서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로 패배하면서 리그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와중 11월, 울산전에서 '''발목이 돌아가는 부'''을 당했다. 이로 인해 [[김다솔]], [[김진]] 등 백업 키퍼들이 그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으나 그 누구도 신화용의 자리를 제대로 메꾸지 못 했다. 이에 팀은 리그 4위까지 떨어져 아챔 출전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다시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자 포항 팬들은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 신화용의 거취에 촉각을 기울이게 됐다.
         사실 후반기의 포항 경기는 '''어떻게든 득점->신화용 선방쇼''' 구도라서 2015년 FA로 다시 풀리는 신화용이 포항을 떠날까봐 팬들은 걱정했다. 하지만 황선홍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이미 [[김태수(축구선수)|김태수]]와 함께 재계약이 완료된 태라고 한다.[* 신화용 본인도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연봉협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홀가분하게 출발하고싶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FA로 풀린 것을 보면 아직 세부사항을 조율중인 것으로 보이지만, 서브 키퍼인 김다솔이 '''"신화용의 재계약이 확실해지면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다."''' 계약조건으로 [[대전 시티즌]] 이적을 확정하면서 사실 신화용도 포항과 제계약 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재계약 완료기사가 떴다!!!''' 포항팬들은 신규입들보다 더 반가워 하고 있다. 기존 선수들 중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인지라 2014 시즌에 신화용이 결장한 경기 승률이 바닥이라는 것이 모든걸 이야기 해주고 있다.
         2015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에서는 '''울산과의 경기에서 인생 최악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수비수와의 호흡 미스를 보이며[* 기존의 주전 수비인 [[김원일]]과 [[김광석(축구선수)|김광석]]이 죄다 부으로 아웃되고 [[김준수(축구선수)|김준수]]와 [[배슬기(축구선수)|배슬기]]가 --왠 가수들이 센터백 서냐 생각할 수 있는데 축구선수다-- 그 자리를 맡게 되었는데, 첫번째 골은 수비진들과의 호흡 문제, 두번째 골은 [[마스다 치카시|마스다]]의 멋진 중거리 슈팅이라 넘어갈 수 있다 쳐도, 3,4번째 골은 완벽한 신화용의 실수였다.] 한 골을 내주고, 김신욱의 중거리슛을 잡았다 놓쳐서 자책골과 다름없는 골을 내주며 2:4 대패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김승규와의 맞대결에서 완패를 당했다. 그런데 이 경기가 더욱 뼈아픈 이유가 있었으니 후술 참조.
         이후에도 꾸준히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며 포항의 수문장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으나, 김태수, 황지수의 노쇠화와 김광석의 초반 부. 김원일의 삽질(...)로 15시즌 포항 수비진 자체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지라 신화용으로서도 '''답이 없는''' 황이다 보니 경기당 실점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김광석의 복귀 이후 김원일도 어느 정도 정신줄을 잡으면서(...) 수비가 안정화 되면서 자연스레 클린시트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시즌 클린시트 1위(17경기), 전경기(38경기) 출장, 실점률 2위 0.84에 후반기에는 포항을 사실 먹여살리는 활약을 했음에도 실점률 0.97인 [[권순태]]가 우승팀 GK라는 이유로 베스트11 GK에 선정되었고, 13시즌에 이어 또다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더욱 15시즌은 논란이 커지는 것이 13시즌에는 '''신화용이 우승팀 골키퍼였음에도''' 스탯이 더 좋은 김승규가 베스트11에 뽑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K리그 수식이 명확한 기준없이 시즌마다 오락가락 한다는 사실만 다시 보여주었기 때문.[* 특히 15시즌은 논란이 컸던 것이, 득점4위인 이동국이 우승팀 레전드라는 이유로 시즌 MVP를 받았고. ~~13시즌 이명주는??~~, 득점1위 김신욱은 이동국을 베스트11에 넣느라 아에 베스트 11에도 못 들었다. 그리고 신인들 중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와 활약을 보여준 황의조 대신 우승팀 버프를 받은 이재성에게 플레이어이 주어지는 등 전북팬을 제외한 모든 국축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나마 특별 부문에서 전경기 풀타임 출장의 공로를 인정받아 FC서울의 오스마르와 같이 수하며 아쉬움을 달래었다.
         15시즌이 끝나고 다른 한국 골키퍼들이 연달아 J리그로 떠나자, 해마다 포항 팬들에게 주목 받던 '''신화용의 거취문제가 어느 때 보다 관심이 높아졌다.''' 게다가 전남 드래곤즈와 [[김병지]]의 결별, 성남 FC의 [[박준혁(축구선수)|박준혁]]의 현역 입대, 부산 아이파크의 강등으로 클래식 팀들의 구애를 받게 된 [[이범]]까지 골키퍼 연쇄이동이 점쳐지는 가운데 '''언급된 모든 키퍼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신화용이 재정감축위기에 빠진 포항을 떠날까 포항팬들이 걱정했으나...
         '''[[김승대]]가 [[연변 FC]]로 20억에 팔리면서''' 여기서 생긴 돈으로 결국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 핵심 3인방은 다시 잡는데 성공했다. 매시즌 1~2월까지 거취문제로 포항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에 비하면 12월 중순이 지나가기도 전에 재계약 기사가 떴고, 덤으로 배슬기, 김원일, 김광석 센터백 3인방도 그대로 포항에 남으면서 적어도 16시즌 수비만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2년 계약이라 최소 2017년까지 포항에 잔류하게 되었다. 신화용 본인말로는 비싼 연봉을 부른 팀이 있었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51224152139569|###]] ~~포항밖에 모르는 바보~~[* 다만 포항에서도 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 15시즌이 끝나고 공개된 연봉공개에서 신화용은 국내선수 중 4위. 6억 3천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키퍼 포지션에서 신화용보다 연봉이 높은 선수는 수원에서 7억 넘게 받은 정성룡 뿐이며 선수단 연봉 총액이 70억 내외인 포항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포항 프런트도 긴축재정으로 구단 예산이 줄어드는 황에서도 신화용 만큼은 반드시 잡고 간다는 반증인셈.][* 다만, 기본급은 정성룡보다 한참 낮은것이 맞다. 연맹에서 발표하는 연봉공개 내역은 기타 수당을 다 합친 금액을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15시즌 전경기 출장+17경기 클린시트 보너스를 합친 신화용의 연봉은 이러저러해서 시즌을 절반가량 날려먹은 정성룡과 비슷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 스틸오션/사령관 . . . . 124회 일치
         사령관은 퀘스트 보으로 받거나 퀘스트를 깨면 주는 메리트로 부스터를 돌려 얻을 수 있다.
         사령관들은 능력을 다섯개 가지고 있는데 한번에 전부 해금되는게 아니라 사령관을 배치한 태로 전투를 벌여 레벨업을 시켜줘야 조금씩 해금된다. 이 레벨업으로 등급을 올릴 수도 있다.
          국의 제독.
          * 태풍(Typhoon) - 액티브. 3CP 소모. 8초간 함선의 최대 속도 4노트 승.
          * 대양요새(Oceanic Fortress) - 적 항공기에게 공격 당할 시 25% 확률로 손된 모든 모듈을 수리.
          * 고속강습(Hi-Speed Assault) - 액티브. 3CP 소모. 15초간 함선의 최대 속도 3노트 승.
          * Z대형(Z Formation) - 선회중 적에게 맞았을 경우 60% 확률로 15초간 포탑 회전 속도 5% 승. 조타 능력 10% 승.
          * 동력계 수리 강화 II(Enhanced Power Repair II) - 엔진과 키의 수리 속도 5% 승.
          * 엔진 강화 I(Enhanced Engine I) - 최대 속도 1노트 승.
          * 동력계 방어 II(Enhanced Power Defense II) - 엔진과 키의 내구력 4% 승. 조타 능력 3% 감소.
          * 은밀한 순항(Stealth Cruiser) - 액티브. 2CP 소모. 30초간 위장 10% 승. 교신 범위 10% 감소. 쿨타임 90초.
          * 심해 거주자(Deep Sea Dweller) - 잠수함에 배치했을 때에만 발생. 방뢰 장갑 5% 승.
          * 태풍(Typhoon) - 액티브. 3CP 소모. 8초간 함선의 최대 속도 4노트 승.
          * 동력계 방어 I(Enhanced Power Defense I) - 엔진과 키의 내구력 3% 승. 조타 능력 3% 감소.
          * 빠른 장전(Quick Reload) - 액티브. 3CP 소모. 15초간 주포 장전 속도 15% 승.
          * 집중(Concentration) - 적함이 함포에 맞으면 60% 확률로 발동. 30초간 조타가 주포 정확도에 주는 향을 15% 감소.
          * 빠른 장전(Quick Reload) - 액티브. 3CP 소모. 15초간 주포 장전 속도 15% 승.
          * 엔진 강화 I(Enhanced Engine I) - 최대 속도 1노트 승.
          * 크루프의 기술력(Krupp Craft) - 순양함이나 전함에 배치했을 때만 발생. 조타가 주포 정확도에 주는 향 5% 감소. 정확도 5% 증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장교. 통 파괴 임무를 수행했다.
  • 신민아 . . . . 121회 일치
         * 위 문서 : [[배우/한국]]
         본명은 양민아. 중학교 2학년이던 1998년 10월 패션잡지[* 90년대 후반 당시에는 각종 패션잡지가 창간되고 '패션잡지 전성시대'였고, 10대 여자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달별로 패션잡지를 사서 학교에서 돌려보는 일이 유행했다. [[배두나]], [[김민희]], [[김효진]] 등 잡지 모델들의 인기도 당했으며, cf모델등을 거쳐 연예계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잡지 부록 경쟁도 한창 치열하여 다이어리, 화장품, 가방등 다양한 부록이 선보였다.] '키키'(현재는 폐간)의 전속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의례 들어가기 마련인, '친구'가 '장난삼아' 써준 응모원서를 냈고, 대회에서 춤도 추고 표정연기도 하는 끼많은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숫기없이 꾸벅 이름만 간신히 말하고 들어갔는데도(심사위원들이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건지) 대으로 뽑혔다. 워낙 나이가 어려(당시 15세) 대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를 낳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스포트 리플레이를 시작으로 예스비, dop, tea, 017등 각종 화보와 지면광고를 찍는 등, 김효진, 김민희와 더불어 대표적인 틴에이져 잡지모델로 활발히 활동했다. 키키 전속이 끝난 뒤에는 당시 유행했던 거의 모든 잡지(쎄씨, 신디더퍼키, 유행통신, 피가로 등)에 인기있는 모델로 얼굴을 도배했고, 촉촉한 초코칩, 네스카페, 코오롱 샴푸, 위스퍼, 매직 스테이션 등 tv광고도 수없이 많이 찍을 정도로 잘 나가는 유망주였다. 대중에게는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 이 '당부' 뮤직비디오는 1999년에는 [[엠넷]]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음악대]]에서 당시의 대세였던 [[아이돌]]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쳐버리고 대을 받았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다.] 로 "저 처자는 누구냐"는 반응을 끌어내며 얼굴을 널리 알렸고, 가요프로그램에서 순위를 알려주는 VJ로 출연하는 등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하게 되었다.
         버거 소녀로 유명한 배우 [[양미라]]와 이름이 비슷해, 신민아로 활등명을 개명했다.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에서 [[이병헌]]의 여동생으로 첫 연기를 시작한 이래, 화 [[화산고]]를 찍는 등 고교시절까지도 유망주로 잘 나갔으나 성인이 된 이후로도 부정확한 발음과 국어책 읽는 연기로 드라마와 화 모두 흥행에는 계속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모델 출신 다운 늘씬한 몸매와 감각적인 패션센스, 볼륨있는 몸매와는 반된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모로 꾸준히 광고에 등장하다가 2008~2009년에는 드디어 포텐이 터져 cf퀸으로 떠올랐다. 2015~2017년의 [[AOA]] [[설현]] 정도 입지라고 생각하면 될 듯. 진로의 소주 J광고부터 [[포텐]]이 만개하여 주점 앞에 광고를 위해 세워둔 등신대 입간판이 사라지는 등의 해프닝이 처음으로 보도되었다. 귀여운 외모에 늘씬하고 굴곡있는 몸매로 베이글녀로 유명세를 탔으며 특히 골반과 힙라인, 뒤태가 주목받았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0/19/story_n_8328676.html|출처]] 약 7년간 10억원 가량의 기부를 해왔고 그 기부 소식이 기사를 타자마자 부산 지역의 미혼모들을 위해 기부한 사실 또한 단체의 대표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이 아닌 부산지역에 기부를 한 이유는 부산 지역이 다소 소외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페북에 올린 한 번의 절박한 글에 지원을 해줬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신민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대표 또한 소규모 비리 단체에게는 큰 도움이었다고 밝혔다.
         한 때 CF쪽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유독 [[화]]와는 인연이 없는지,--드라마라고 아닌건 아닌데..-- 아니면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이 낮은건지 출연한 작품 중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말아먹었다'''. 그 덕분에 ''''한국 화사 최고의 [[핵잠수함]]'''', ''''[[충무로]]의 흥행 [[부도]] [[수표]]''''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데[* 의외로 이름난 드라마작가나 유명 [[화 감독]]들과 작품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CF나 화에 캐스팅되고 있어서 '[[스폰서]]가 빵빵하다', '[[언론플레이]]에 능하다'라는 의견도 다수 가지고 있다. 화나 드라마 공히 '히트작이 없음'에도, 'CF에 있어서는 가히 도배'를 하고 있는건 미스테리다. 흥행 관련해서는 비슷한 내용이 [[봉태규]] 항목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2010년대 들어서는 남배우로 봉태규보다 ~~새로 떠오르는 국밥배우~~ ~~흥행전선 먹구름~~[[김강우]]와 더 많이 비교되는 것 같다. 다만 김강우의 경우 2017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살아난다는 차이점이 있다.
         아래 항목에서 볼 수 있는 절친들인 [[공효진]]과 [[임수정]]은 패셔니스타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력 또한 선보이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아무래도 연기력 및 연기의 폭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듯 보인다. 더구나 두 절친 못지않게 드라마나 화 출연도 많았음에도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건 확실히 아쉬운 부분. 물론 신민아 뿐 아니라 화 쪽에서 이렇다할 대표작이 없는 [[김태희]]나, [[엽기적인 그녀]] 이후 [[도둑들]]이 성공하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연기에서 좋지 못한 평을 들었던 [[전지현]]도 CF만 찍는다고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었었다.
         지금까지 화를 말아먹은 개수를 생각하면 [[김태희]], [[고소]] 라인을 그대로 따라갈 듯. 다만 둘에게는 그나마 화, 드라마에서 대표작이 하나 씩은 있으니.... 더구나 이쪽은 내세울 흥행작조차 없다. 거기에 연기력까지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으니.. 그나마 그 CF 시장 마저 [[이민정]], [[수지(miss A)|수지]] 등 다른 여성 스타들이 야금야금 갉아들어오기 시작했다.
         [[2010년]] 인기 드라마 중 하나였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여주인공 역으로 겨우 체면치레는 했다. 주목할 점은 대역이 바로 [[이승기]]라는 점.~~마이더스의 손과 마이너스의 손의 대결~~ 시청률은 [[KBS|옆동네]] [[제빵왕 김탁구]]가 너무 [[넘사벽]]이라 ~~역시 막장은 못 이긴다~~ 별 재미를 못봤지만 김탁구 끝나자마자 시청률이 뛰어 최종회에서 19.9%의 시청률을 보여줌으로서 잠수함 타이틀에서 벗어날 계기가 되었다. 다만 제빵왕 김탁구는 KBS 내부에서도 쉬어가는 작품이었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압승을 SBS 내부에서 기대했던 만큼 방전의 기대감에 비해서는 형편없이 추락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처음에는 [[발연기|연기를 못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조정석과 합을 맞춘 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흥행에 성공하자 연기력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많이 사라졌다. 확실히 자연스러운 멜로 연기에 능숙한 편. MBC 수목 드라마 [[아랑 사또전]]에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호평받았다. 또한 비교적 최근작인 [오마이 비너스], [내일 그대와]에서는 그나마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연기력은 선보여 주었다. 근데 폭망했다. 부족한 작품성 때문인 듯...--못 해도 망 잘해도 망-- 국내에서는 비록 망했을지라도 해외에서는 [오마이비너스],[내여자친구는구미호]의 팬층이 당히 두터웠다. 특히 내여자친구는 구미호는 중국에서도 1등을 차지했을 정도...
         그러나... 연기력이 서서히 나아지고는 있으나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똑같이 잡지모델로 출발하여,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역시 발연기로 까였던 김민희와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김민희는(불륜으로 유명세를 치룬 것과는 별개로) 절차부심한 끝에 발연기의 오명에서 벗어나 승승장구하여 끝내는 세계 유수의 화제에서 여우주연까지 받은데 반해 신민아는 여전히 연기력에서는 인정을 받았다고 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표정연기의 문제이기보다는 발성과 발음의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 2009년, 지금은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로 유명해진 [[제이미 도넌]]과 함께 [[캘빈 클라인]]화보를 찍은 적 있다. [[http://205.oeker.net/bbs/board.php?bo_table=Hollywood&wr_id=4550826&sca=%EC%82%AC%EC%A7%84&sfl=wr_3&stx=&sop=and&page=3|#]] 촬 당시, 사고로 조명이 넘어져서 신민아의 머리와 어깨에 당한 충격이 가해졌지만, 툴툴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며 주위를 배려하는 인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https://youtu.be/1uapjf3vvOA?t=18m21s|#]]
          * 13년 조선족 감독인 [[장률]]의 신작 [[경주(화)|경주]]에 캐스팅 되었다. 이미 [[엄태웅]]과 [[윤진서]] 뿐만이 아니라 비전문배우에게도 명연기를 끌어낸 감독인지라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었는데, 2014년 인디 화급으로 소규모 개봉을 해서 흥행에는 재미를 못 봤지만 연기는 호평을 들었다.
          * 2014년 10월에 개봉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비수기임에도 비슷한 시기에 대형 경쟁작이 적어서 그런지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흥행을 하고 있기에 '''드디어''' 잠수함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다. 사실 신민아의 화계 데뷔 이후 첫 흥행작이라고 할 수 있다. 최종 214만 명 달성.
          * 신민아의 연관 검색어 중 가장 꾸준한 것은 네일과 피어싱. 손톱 관리를 당히 깔끔하게 잘하는 편으로 별다른 장식이나 패턴 같은 것 없이 단색으로 깔끔하게 바르는 편인데, 그날 입은 옷과 컬러를 잘 맞추는 편이라 인기가 꽤 높다. 피어싱도 다른 여배우나 아이돌, 가수들처럼 신민아존이라고 통칭되기도 한다. --안 아플까--
          *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인터뷰에 최근 읽은 책이나 재미있게 본 책들을 말하기도 한다. 팬들 중 관심이 생긴다면 인터뷰를 잘 찾아볼 것. 음악도 당히 좋아해서 수집량도 꽤 된다고. 제 3세계로 분류되는 음악이나 샹송을 좋아해서 해외로 나갈때마다 사서 모으는 편이고 같은 앨범을 여러번 산 경험도 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도 있다.
         === 화 ===
         ||2014||[[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나의 사랑 나의 신부]]||주연||미 役||임찬||214만명||~~최초의~~성공||
         ||2014||[[경주(화)|경주]]||주연||공윤희 役||장률||6만 명||실패||
         ||2013||더엑스 ||주연||미아 役||[[김지운]]|| ||단편화||
         ||2009||키친||주연||안모래 役||홍지||14만 명||실패||
  • 우현(배우) . . . . 118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include(틀:관련 문서, top1=경북도/인물)]
         || '''출생''' ||<(> [[1964년]] (만 53세) 용띠 [[경북도]] [[김천시]] 봉산면 ||
         [[1964년]]생으로 대표 [[노안]]배우다.[* 이 노안 얼굴 덕분에 "사람들이 내 아내를 딸로, 아들을 손자로 본다"고 자주 언급한다.]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로는 [[안내]][* 과 동기인 데다가 30년지기 절친한 친구이다. 그야말로 평생가는 친구. 다만 유난히 둘 사이가 튀었는지, 안내의 아버지는 둘이 [[동성애]]를 한 줄 알고 헤어지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우현의 말로는 함께 젊을 적부터 학생운동도 하고 어울리고 했으나, 안내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같이 어울리는 친구 중에 튀기에 좀 '그랬다고'(?) 한다.]과 [[이대연]]이 있고, 다른 동갑 연예인은 [[한석규]]와 [[이선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노안 문제는 한국을 벗어나면 더욱 심각해지는데, 왜냐하면 이 분이 '''[[키아누 리브스]]'''와 동갑이라는 점이다!! ~~뭐?~~ 키아누 리브스가 미치도록 동안인 것도 맞다. 저 둘을 누가 동갑내기 친구라 믿겠는가?] 닮은 꼴로 [[골룸]], [[요다]][* 실제로 <유자식 팔자>에서 우현의 얼굴에 요다 CG를 붙인 적이 있다.], 통아저씨 [[이양승]], 전 국회의원 [[조순형]]이 거론된다.
         == 세 ==
         사진 왼쪽에 [[태극기]]를 들고있는 사람이 우현이다.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현재의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 여담으로 가운데에 [[이한열]] 열사의 정 사진을 들고 있는 청년이 정치인 [[우호]]이다. 우호 의원 회고에 따르면 저 당시 [[4.13 호헌조치]]로 투쟁 분위기가 무르익자 집행부가 단식이냐 삭발이냐 선택하기로 했는데, 우현은 머리를 밀고, 본인은 단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우호 의원이 우현의 머리칼을 직접 밀어줬다고. 참고로 우측에 안경을 쓴 채로 고개를 숙인 사람이 [[안내]]으로 오인받고 있는데, 안내이 아니다.[* 우호의원의 말에 의하면 안내은 당시 집행부가 아니라 지하에서 암약하던 실행부였다고 한다.]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 를 졸업했다. 이로 인하여 2016년 우현이 1:100에 출연할 때 100인 중에 김천대화오일뱅크주유소 학생들이 초청되었고, 그 중 한 학생은 우승까지 했다! 재학 중 학생운동을, 그것도 운동 최전선에서 움직이던 간부일 정도로 열성적으로 행했다. 그래서 옥살이만 2번을 해서 소집제외되어 군[[면제]].[[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2078/read?articleId=20656465&nil_id=14&objCate1=497&bbsId=G005&t__nil_ruliweb=best&itemId=143&t__nil_ruliweb=best&nil_id=14|#]] 학번 [[6월 항쟁]]의 선봉에 섰는데,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된 [[이한열]] 열사 최루탄 사망사건 항의 집회에서 최선봉에 섰기 때문에 [[타임지|미국 시사잡지]]의 1면 메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회장이 이미 그전에 잡혀간 뒤라 지휘할 사람이 필요하여, 다른 간부였던 우현이 선두에서 지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1987년]] [[6월 항쟁]]에 최선봉에 섰던 우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화 [[1987(화)|1987]]에서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 역할로 등장했다.
         물론 논란이 될 사항은 아니다. 민주화 운동가였던 故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도 [[1987(화)|1987]]에서 [[전두환]]의 심복이자 [[안기부]]의 수장이었던 [[장세동]] 역으로 출연했는데(...) 정작 문성근 씨는 진보 성향인데다 과거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또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시민단체|시민운동단체]]를 조직하는데 앞장서서 진보시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고, 현재도 [[진보]] 진에서 여러 활동을 하지만 화, 드라마 등 작품에서는 반대 성향의 역할을 맡아왔다([[군부]] 정권 시절의 친 정부 성향 경찰 간부나 [[정보기관]] 수장, 부패한 정치인, 언론인 등등). 본인 스스로도 [[한밤의 TV연예]] 인터뷰에서 “그 화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라고 밝혔다.
         [[연세대]] [[국문과]] 81학번으로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우호]] 의원과도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학번으론 후배고, 우 의원이 회장일 때 사회부장이었으니, 보통 유대감이 아니다. 이 문단의 맨 윗 사진에서 [[이한열]] 열사의 정을 들고 우현과 같이 선두에 선 학생이 바로 우호. 이 인연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안내]]과 함께 서울 서대문 갑에 출마한 [[우호]]의 지원유세에 동참하였다. [[https://youtu.be/J1fYjwd4dqw|유세 ]]
         90년대 신촌에서 '지리산'이라는 주점을 운하였다. 앞서 언급된 [[타임지]]의 사진이 떡 하니 걸려 있던 술집. 당시 병맥주 전국 최저가로 알려져 있을 만큼 저렴한 술값의 주점이라 학생들, 특히 동문인 [[연세대학교]]의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찾던 술집이었고, 사장인 우현을 비롯해 절친인 [[안내]]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처음에는 운동가요만 틀어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하자고 전략을 바꾸었고, 안주값을 천 원씩 받고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였다. 한 번은 겨울에 1주일 동안 집에도 안 가고 손님들과 같이 놀면서, 큰 점퍼에 받은 술값들을 쑤셔넣으며, 문닫을 때가 되면 그냥 술집에서 바로 자고 일어나 다시 장사하고 하면서 생활을 해봤다. 1주일 뒤에 주머니나 바지속(?) 등 곳곳을 뒤져서 돈을 꺼내자, 500만 원이 넘게 돈이 나왔다고 한다. 참고로 배우 안내도 자극을 받아 주점을 운했다. 2003년까지 운하다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1988년 연극 제작자로 첫 데뷔 후 제작과 기획에만 참여했지만, 정작 본인이 연기를 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 [[신학과]] 동기이자 학생운동을 함께 한 절친 배우 [[안내]]과의 인연으로, 연극 <라이어>로 데뷔했다. 이때가 34세로, 배우치곤 당히 늦은 나이다.
         그러다가 2003년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단역으로 화에 데뷔하였고, 같은 해 [[황산벌(화)|황산벌]]에도 출연한다. 2004년 [[시실리 2km]]의 해주로 강한 인을 남기며, 일반인뿐만 아니라 화계의 관심도 받게 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ChRUT0rck9A|니가 94야 그럼?]] 흥행한 화가 아니었음에도 '제일 늙은 막내 조폭'이라는 역할 설정의 매력으로 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도 그 장면이 나오는 등, 출연자 중 우현만큼은 대중에게 얼굴을 꽤 알린다.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드라마에도 데뷔하였으며, 그 뒤로 감초 역할로 활약했다. 특유의 [[노안]]과 작은 키 덕에 전형적인 동네 촌놈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최근에는 연기변신을 시도하면서 악역으로도 연기폭을 넓혔다. 특히 [[뿌리깊은 나무(드라마)]]에서 [[이방지(뿌리깊은 나무)|이방지]] 역을 맡아 강채윤의 스승이자 노회한 무공의 고수 역할로 젊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에서 젊은 [[이방지(육룡이 나르샤)|이방지]] 역을 맡은 [[변요한]]과 비교하면 외모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
         시트콤을 하면 노총각 역을 맡는다. 거기다가 특유의 노안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10살 넘는 역할을 맡는다. 40대 시절에도 60살 이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에서 현재 [[성노을]] 역을 맡았는데 매우 충격적이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물론 외모가 다소 비슷하고 노을이의 말투나 행동을 연구했는지 유사하게 연기해서 호평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제작진들이 너무 무리수를 뒀다", "다 된 밥에 재(우현) 뿌리기냐", "너무 어색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이런 이유로 우현의 연기 인생에 있어서 화 '니 말을 믿으라는 거야' 라는 작품에서 성인용품 인형을 사용하는 장면 이후로 최대 [[흑역사]]로 남을 것 같다. 후에 라디오 스타에 출연할 당시에도 이 부분을 언급하였다.
         [[마스터 - 국수의 신]]에서 고대천의 라이벌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맡았던 배역이 삭제된 것인지 중도하차하였다. 대신 다른 드라마에 캐스팅이 되었는데, 그게 바로 [[미녀 공심이]].[* 그것도 여주인공의 아버지 역이며, 미녀인 아내와 큰 딸이 있다. 진정한 승리자.] 하지만 예보다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으로 드라마가 대박을 쳤다.
         그 후, [[또 오해]] 15~18화까지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화 [[1987(화)|1987]]에서는 전술한 대로 강민창 치안본부장 역을 맡았다. 화의 소재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치안본부장이었던 그 사람이다. 우현 본인이 1987년 당시 학생운동을 했었으니 아이러니한 일. 본인은 배역보다는 화 출연에 의의를 둔다고. ~~[[안내]]이 안 나온 게 한이다.~~
         본인의 말에 의하자면, 본래 카메라 울렁증이 심해 예능을 꺼렸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예능 출연을 봤을 때에는 말빨이 당하며 끼가 있다.
         친구인 [[안내]]과만 몇 번 출연하다가 [[JTBC]] [[유자식 팔자]]에서 가족과 함께 출연한 계기로 본격적으로 예능에 진출했다. 본래 예능 울렁증이 있다 보니 우현보다는 가족들의 활약이 대단했었고 빵빵 터졌지만, 어느 정도 예능을 하다보니 본인도 평타를 치기 시작했다. 또한 극초반에 드라마 촬 일정 때문에 아내와 외아들만 출연하다가, 잠깐 하차했다가 다시 매주 고정출연 중이다. 그 후 장모님이 타계 후 잠깐 쉰 적이 있지만, 그 후에도 프로가 종할 때까지 꾸준히 참여하였다.
  • 강영식 . . . . 117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2><#E1B81E> {{{#000000 강식(姜永植 / Young-Sik Kang)}}} ||
         || '''학력''' || 칠성초-경복중-[[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
         || || → || '''강식(2000)''' || → || [[박충식]] (2002~2003) ||
         || [[신동주(야구)|신동주]](1994~2000) || → || '''강식(2001)''' || → || [[임창용]](2002~2006) ||
         || 이동은(1999~2001) || → || '''강식(2002~2006)''' || → || 김형근(2007~2008) ||
         || [[신명철]](2004~2006) || → || '''강식(2007~2017)''' || → || 현역 ||
         '''랜디 식'''
         매년 욕은 대차게 먹으나, 꾸준한 경기 출장과 시즌 종료 시 귀신같이 평균 정도의 스탯이 되어 있다(…). [[패스트볼]]-[[슬라이더]]만 구사하는 투 피치 투수로 좌완으로서 143~150km/h의 [[패스트볼]]과 130km/h대 중반의 [[슬라이더]]를 보유하였다. 굳은 듯한 폼에서 나오는 각도는 리그 최고 수준. 단 긁혔을 때'''만'''. 아주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좌완 계투가 전통적으로 약한 롯데이기에 오랜 기간동안 팀의 필승조에 속했다. 강식이 롯데에서 보낸 10년간 불펜에서 수많은 투수들이 등장했다 사라져 갔고 개중에는 강식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둔 투수도 여럿 있었지만, 1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등판한 선수는 강식 뿐이었다.
         140km/h 중반대의 빠른 공을 던진다는 강점을 갖고 있지만, 제구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주무기는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인 사실 투피치 투수. 커브나 체인지업도 장착했지만 그다지 위력적이지는 못하다. 그래서인지 좌완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좌타자한테 약점'''을 보였다. 덕분에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위장좌완'''이라고까지 불렸다(…).
         그래서 그런지 [[선발 투수]]나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나왔을 때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탈삼진 능력은 뛰어나지만 가끔씩 몰리는 공에 장타를 크게 맞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서두에 술되어 있듯이 새가슴으로 유명한데, 이는 불펜 투수로서는 결정적인 약점이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비교적 제구 잘 되는 날의 비율이 높으며 구위도 언터처블한 모습을 보이지만 잔부이 잦고 체력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지 이후 귀신같이 피홈런이 증가. 설명서가 필요한 불펜 투수의 전형적인 사례. 그래서 [[양승호]] 감독 체제에서 아주 잘 써먹은 반면, [[김시진]] 체제에서는 한 달만 잘 하다가 나머지 달에는 원 포인트로 기용되어 많이 말아드셨다. [[제리 로이스터]] 前 감독 때는 2008시즌 언터처블이었으나 불펜 붕괴로 이후 시즌에는 다소 불가피하게 혹사당한 감이 있다.
         다른 팀 팬들이 그렇듯이 롯팬들 사이에서도 선수 개개인의 버릇이라던가 하는 일종의 징크스(?)들이 여럿 회자되지만 강식에게는 개중에서도 각별히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바로 마운드에 올라와서 타자에게 던지는 초구의 로케이션이 어디로 가서 찍히는지를 확인하면 그 날의 컨디션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구가 우타자의 발등을 노리는 매처럼 날아들어 볼이 된다면(...) 불식, 초구가 인하이든 아웃로든 일단 스트존 안에만 꽂히면 랜디식 단순하지만 의외로 당히 정확한 확인법이었는데, 2014년 스캠 인터뷰 기사에서 선수 본인에 의해 '''정말로 그렇다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96&article_id=0000173596|확인된 바 있다.]]
         거의 190cm에 육박하는 장신에 140km/h대 중후반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던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그는 ~~덩치 큰 [[왼손잡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김응용 감독은 왼손잡이, 그 중에서도 곰처럼 덩치큰 왼손잡이 선수를 매우 선호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우승을 그렇게 많이 해봤어도 그 라인업에서 투타 막론하고 좌완이라곤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꾸준히 활용할 수 있었던 선수가 [[김정수(1962)|김정수]] 말고는 가물가물할 정도니... ] [[해태 타이거즈]]의 감독 [[김응용]]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직접 거둬서 [[햄]] 구워서 [[밥]]을 해 먹일 정도로''' 애정을 보였으며, 김응용 감독이 2001년 삼성 감독으로 가자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던 [[신동주(야구)|신동주]]를 보내면서까지 그를 삼성으로 데려올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김응용]] 감독이 이 정도로 대놓고 애정을 보여준 선수는 거의 없다. 후에 강식도 롯데로 트레이드될 때 눈물로 [[김응용]]에게 작별인사를 고했고, 여전히 꼬박꼬박 연락을 드린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의 생활이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mbsIdx=733693&cpage=&mbsW=&select=&opt=&keyword=|방송 캡쳐]]로 떠도는데, 옆에서 같이 밥 먹던 어린 선수는 당시 전도유망했던 투수 '''[[채태인]]'''이다. ~~역시 좌완성애자 코감독!~~]
         결국 [[권혁]]에게 밀려 2006년 11월 21일 2루수 [[신명철]]을 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됐다.
         투수 오타쿠 [[선동열]]이 버릴[* 강식은 훗날 [[선동열]] 감독이 자신에게 '사람이 해선 안 될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식은 적어도 '''[[선동열]]이 있는 삼성'''에겐 미련이 없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선동열]]과 강식 둘 다 서로 딱히 같이 동업할 이유도, 동기도 없었던 것이다.] 정도라는 삼성 팬들의 말이 있을 정도로 불안한 투구를 보였다. 어느 날인가도 ~~평소처럼~~ 마운드에서 부진한 뒤 라커룸에서 개털렸다고 한다. 강식은 이날 털리면서 "아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가보다"하는 자괴감이 들어 남들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딱한 처지를 보고 코치들이 트레이드를 권유했고, 마침 좌완 [[중간계투]]가 없는 롯데와 짝이 맞으면서 트레이드 되었다. [[신명철]] 역시 롯데에서는 [[박정태]]의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공갈스윙만 하고 궤도에 못 오르는 2루수였기에 [[트레이드]] 시점부터 ~~둘 중 하나만 터져도 되니까~~ 윈윈으로 평가받은 특이한 사례다. 결론적으로 신명철은 [[박종호]]의 노쇠화로 인해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2009년 [[20-20 클럽]]도 가입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강식도 롯데 불펜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니 나름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인 셈. 롯데에서는 [[강병철의 양아들]] 시리즈에 들면서 매우 자주 등판했다. 사실 당시 롯데에 쓸만한 좌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여담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첫 KS 우승이자, 드라마틱했던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의 승리 투수가 바로 강식이다. 삼성에서 나름 의미있는 기록을 남긴 투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삼성 소속이던 2005년 제1회 코나미컵에서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지바 롯데]]를 대로 구원등판 3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아 "국제용 투수 강식" 이라는 칭호를 들은바 있다. 하지만 2006년 제2회 대회에서는 좋지 못했다.
         2008시즌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로이스터 매직]]인지 아로요 투수코치의 [[아로요 매직]]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항 랜디식 모드로 변신... 항간에는 강식의 메뉴얼이 어로 되어있어서 외국인만이 사용 가능하다는 루머도 있다. 시즌전에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뛴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모양.
         원래 고질적인 새가슴이 문제였지만 아로요 투수코치의 꾸준한 신뢰를 받아서 지금은 큰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믿으며 등판에 나선다고 한다. 인터넷에 퍼진 자기별명인 랜디 식도 알고 있으며 당히 마음에 드는 모양.
         하여간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롯데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랜디식을 찬양하였다. 그 당시 팬 사이에서는 롯데의 차기 [[마무리 투수]]로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괴망측한 '우타자 더 잘잡는 좌완'[* [[KIA 타이거즈]]의 [[박경태(야구)|박경태]]도 이런 성향을 가진 좌완투수다.] 이라는 딱지는 떼지 못했다. 수치를 보면 좌타자에게 약한 것도 아니지만...
  • 고아성 . . . . 117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http://www.artistcompany.co.kr/portfolio-item/ko-a-sung/ 아티스트컴퍼니 고아성]<br>{{싸이월드|54726000}}
         '''고아성'''(高我星<ref>{{뉴스 인용|저자=김지윤|제목=고아성 “화 ‘여행자’ 찍으면서 다리가 굵어졌어요~” (인터뷰 ②)|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0211709321003|날짜=2009-10-22|확인날짜=2016-01-09|뉴스=뉴스엔}}</ref>, [[1992년]] [[8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고아성은 6살 때인 1997년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외환카드 광고 아역 모델로 연예계 데뷔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자체발광' 고아성 "은호원으로 희로애락 다 펼쳐…시즌2 희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26821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이정현|날짜 = 2017-05-16|확인날짜 =2017-09-07}}</ref> 이후 그는 2004년 어린이 드라마 《[[울라불라 블루짱]]》의 타이틀롤을 맡아 배우로서 정식 데뷔했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화 《[[괴물 (2006년 화)|괴물]]》에서 박강두([[송강호]])의 딸 역을 연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의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아 대한민국화연기대 스타, [[청룡]] 신인여우, [[디렉터스 컷 시식]] 올해의 신인연기자을 수하였다.
         2015년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한 고아성은 성인 연기자로 변신에 성공했고, [[백예술대]] TV부문 여자 신인연기 등을 수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7년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으로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고아성 “부당한 경험 있어...은호원에게 감정이입했죠” |url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70522010007552|출판사 =브릿지경제 |저자 =조은별|날짜 = 2017-05-24|확인날짜 =2017-09-07}}</ref>
         | 윤나
         === 화 ===
         | [[괴물 (2006년 화)|괴물]]
         | 제59회 [[칸국제화제]] 감독주간 초청작
         | [[여행자 (2009년 화)|여행자]]
         | 한국-프랑스 합작 화<br />제62회 [[칸국제화제]] 특별 초청작
         | 한국-일본 합작
         | 식스틴<ref>{{웹 인용|제목=2010 미쟝센 단편 화제 국내초청부문 - 식스틴|url=http://www.msff.or.kr/2015/history/history_view1.asp?b_id=188&page=1|확인날짜=2016-01-09}}{{깨진 링크|url=http://www.msff.or.kr/2015/history/history_view1.asp?b_id=188&page=1 }}</ref>
         | [[미쟝센 단편 화제]]
         | [[듀엣 (화)|듀엣]]
         | 이
         | [[뷰티 인사이드]]
         | [[오피스 (화)|오피스]]
         | 제68회 [[칸국제화제]] 심야 초청작
         | [[홍수]]
  • 유지태 . . . . 117회 일치
         {{화인 정보
         |직업 = [[배우]], [[화 감독]], [[화 각본|각본가]],<br />[[연극|연극 제작자]], [[모델 (직업)|모델]]
         |웹사이트 =
         |수 =
         '''유지태'''([[1976년]] [[4월 13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 [[화 감독]]·[[화 각본|각본가]], [[연극]] 감독·연출·제작자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인 그는 1998년 화《[[바이 준]]》으로 데뷔하였다. 1999년작 《[[주유소 습격사건]]》, 2000년작 《[[동감]]》을 통해서 주목 받기 시작했고, [[허진호]] 감독의 2001년작 《[[봄날은 간다]]》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2003년작 《[[올드보이]]》에서 악역을 맡아 열연하였다.<ref name="goldfish">MBC TV《[[황금어장]]》내의 〈무릎 팍 도사〉. [http://www.imbc.com/broad/tv/ent/goldfish/vod/?kind=image&progCode=1000794100219100000&pagesize=5&pagenum=1&cornerFlag=0&ContentTypeID=1&ProgramGroupID=0 2010년 11월 13일 수요일 방송].</ref>
         2003년 [[단편 화]]《자전거 소년》를 통해 [[화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딛었고 그해 부산아시아 단편화제에서 관객을 받음으로써 화 감독으로 재능을 발휘했다. 2005년《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년《나도 모르게》, 2009년《초대》의 단편 화를 발표했고, 네 번째 단편 화《초대》는 2009년 7월, 제5회 인디판다 국제 단편 화제와 제8회 제주 화제에 초청을 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유지태, 네 번째 작품 제주화제 출품|성=|이름=스포츠월드 황인성 기자|날짜=2009-08-19|출판사=세계일보|확인날짜=2010-04-17}}</ref><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07300038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감독 유지태, 인디판다 국제단편화제 4연속 초대|성=|이름=OSEN 조경이 기자|날짜=2009-07-30|출판사=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확인날짜=2010-04-17}}</ref>
         2013년 장편《마이 라띠마》를 연출·제작했으며 15회 도빌 아시아 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을 수하고 더불어《마이 라띠마》여주인공은 그해 청룡화제 신인 여우을 수하였다.
         *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연극화과 학사
         * [[중앙대학교]] 첨단대학원 예술학전공 석사
         === 화 ===
         * [[2018년]] 《[[돈 (2018년 화)|돈]]》 - 번호표 역
         * [[2016년]] 《[[스플릿 (2016년 화)|스플릿]]》 - 윤철종 역
         * [[2009년]] 《[[초대 (화)|초대]]》 - 남자 역
         * [[2008년]] 《[[순정만화 (화)|순정만화]]》 - 김연우 역
         * [[2007년]] 《[[황진이 (2007년 화)|황진이]]》 - 놈이 역
         * [[2006년]] 《[[야수 (화)|야수]]》 - 오진우 역
         * [[2003년]] 《[[거울 속으로]]》 - 우민 역
         * [[2001년]] 《[[봄날은 간다 (화)|봄날은 간다]]》 - 이우 역
         * [[2000년]] 《[[가위 (화)|가위]]》 - 현준 역
  • 전태일 . . . . 117회 일치
         |그림설명=청계천8가에 있는 전태일 흉
         |출생지=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남산동 (대구)|남산동]]<br>(현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남산동 (대구)|남산동]])
         |부모= 전수, [[이소선]]
         |웹사이트=[http://www.chuntaeil.org/ (재) 전태일재단]
         전태일은 [[1948년]] [[9월 28일]] [[대구]] 남산동의 가난한 노동자인 전수와 그의 부인 [[이소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때 그의 아버지 전수는 가내수공업도 했으나 거듭 실패했다.<ref name="ganaess">[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419.html 전태일의 시간·공간·생각] 한겨레 21 2010.11.05 제834호</ref> 그러다 재봉사였던 아버지 전수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서울]]로 올라와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1954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남대문초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였다.
         그의 가족은 처음에 [[서울역]] 근처 [[염천교]] 밑에서 노숙했다.<ref name="ganaess"/> 한때 그의 어머니는 만리동 일대를 다니며 동냥했다.<ref name="ganaess"/> 그러나 봉제 일을 하던 아버지가 취직하여 월세방을 마련하면서 월세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1960년]] 다시 대구로 내려갔다. 이후 그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삼발이를 만들어서 파는 각종 행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1963년]] [[3월]] 대구 청옥 고등공민학교에 입학했지만<ref>1971년 문교부 시책으로 중학교, 고등학교가 분리되기 전까지 한국의 학교들은 중고등학교가 함께 운되었다.</ref>, 가정 사정으로 1학년 재학 중 그해 [[12월]] 자퇴하였다. 1963년 겨울 그의 아버지 전수는 아들에게 자퇴를 강요하였다.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전적으로 [[재봉]]일만 돌보라고 강요했다.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것에 좌절하여 한때 가출, 집을 뛰쳐나갔다가 3일만에 귀가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 공부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를 발길질로 차고 구타하여 강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1968년]]에 우연히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인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ref>[[위기철 (작가)|위기철]]이 쓴 전태일 위인전(산하)에 의하면, [[노동운동]]을 했었던 부친의 향으로 읽게 되었다고 한다.</ref> 그 뒤 해설서를 구입해 그 내용을 공부하면서 법에 규정되어 있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의로운 분노를 느끼고, [[1969년]] [[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ref>바보회라는 이름은 전태일의 노동자로서의 반성이 담긴 이름이다.노동자도 인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투쟁을 하기보다는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노동환경에 순응한 바보라는 뜻이 담긴 것이다.</ref> 를 창립하여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현재 근로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기 시작하고 설문을 통해 현재의 근로실태를 조사하였다.
         그는 재단회사 시다들과 인근 공장 노동자들의 생활을 듣고 집에 와서 말하는 일이 잦아지다가 나중에는 노동 운동에 본격 투신하게 되었다. 어머니 이소선은 처음에는 그를 말렸지만, [[1969년]] [[6월]] 아버지 전수가 [[고혈압]]으로 사망하면서 아들이 하는 일을 막지 말라고 하여 이때부터는 말리지 않게 되었다.
         그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친구들을 규합하는 어려움, 주변의 냉소와 비야냥거림, 노동청과 근로감독관, 언론들의 기만극, 생계를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 속에 서있었다.<ref>《녹색평론 78호 (2004년 9, 10월호)》 (녹색평론, 2004) 59페이지</ref> 일부 미싱사와 봉제 노동자들은 그가 죽은 뒤에도 "자기 하나 죽는다고 뭐가 해결되느냐<ref name="ganaess"/>"라고 비판하였다. 이 당시에 어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현실의 조롱과 냉소가 너무나도 잔혹하고 괴로웠다" 라고 썼다.<ref>조래, 《전태일평전》 (돌베개, 2001) 183페이지</ref>
         그는 밤이 새도록 [[근로기준법]] 조문을 찾아 암기하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불이익에 저항하였다. 그는 [[동대문구청]]을 찾아가 열악한 환경에 대해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근로기준법]]의 감독권 행사를 요청하기 위해 시청 근로감독관실을 찾아갔지만, 근로감독관은 평화 시장의 참혹한 얘기에 관심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노동청]]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ref name="chungg">한국정치연구회 정치사분과, 《한국 현대사 이야기 주머니, 2권》 (녹두, 1993) 265페이지</ref> 가뜩이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던 전태일에게 그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노동이나 근로 기준법조차 사업주들의 편이라는 현실은 그를 한동안 허탈 태로 몰아 넣었다.<ref name="chungg"/> 그는 청계천 일대의 노동 실태를 직접 조사, 설문하여 이를 토대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노동청]]에 냈으나 돌아온 답변은 경멸과 비웃음 뿐이었다. 처음에 약간 말투가 어눌했던 그는 부랑자로 몰리거나, [[노동청]] 공무원들에게 조롱의 대이 되기도 했다. 그의 노동자 권리 청원은 언론들도 외면했고, [[경향신문]] 등에만 간략하게 보도되었다.
         {{인용문2|1970년 여름 무렵, "아마도 한두 달 동안" 전태일은 김씨의 외삼촌이 운하는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그가 노동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주 나중에 들었다. 재단사 전태일은 키가 작았다. 얼굴도 작았다. "땅땅했다"라고 김씨는 회고했다. "뭐랄까, 아주… 아주 자그마했어.<ref name="ganaess"/>"|[[1970년]] [[8월]]~[[9월]] 무렵 전태일이 근무하던 미싱회사 사장 외조카의 증언}}
         {{인용문2|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br><br>...(이하 중략)...<br><br>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br><br>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br><br>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br>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br>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br>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하십시오.<br><br>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ref>권태억, 《근현대 한국 탐사》 (역사비평사, 2007) 398~400페이지</ref>}}
         [[1970년]] [[9월]] 전태일은 [[한미사]]의 재단사가 되었다가, 같은 [[9월]] [[왕성사]]의 재단사가 되었다. 재봉사보다 지위가 높은 재단사로 일하며 이전의 바보회를 발전시킨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임되었다. 그 뒤 다시 노동실태 조사 설문지를 돌려 126장의 설문지와 90명의 서명을 받아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피복제품 종업원 [[노동권|근로조건]]개선 진정서'라는 이름으로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한다. 이 내용이 [[경향신문]]에 실려 주목을 받자, 전태일 등 삼동회 회원들은 본격적으로 임금, 노동 시간, 노동환경의 개선과 [[노동 조합]] 결성 등을 위해 사업주 대표들과 협의를 벌였으나, 일을 무마하려는 [[정부]]의 약속 위반으로 인해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으며, [[자본가]]들도 삼동회는 [[사회주의]] 조직이라고 헐뜯음으로써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다. 그해 [[10월]]부터 그는 [[노동권|근로조건]]개선 시위를 주관하였다.
         그는 언론사들을 찾아다니면서도 노동자들의 참을 전달했다. [[1970년]] [[10월 7일]] 마침내 시내 각 석간신문에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의 참에 관한 보도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이에 따라 전태일은 삼동회 회원들을 이끌고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이라고 고발하는 뜻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결의하고, [[플래카드]] 등을 준비해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경찰의 방해로 플래카드를 빼앗기고 시위가 무산된 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화시장 골목 근처에 있다가 오후 1시 30분경, 시장 골목에서 몸에 [[석유]]와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를 켠 뒤, 평화시장 앞길로 뛰쳐나왔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시장 앞길을 뛰어다녔다. 이때 전태일의 친구였던 이름 미의 남자가 그에게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조래]]는 [[1983년]]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며 이 남성의 이름을 김개남이라는 가명을 붙였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김개남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 민종덕이라는 설도 있다. 그에 의하면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가명인 전태일의 벗의 이름 '김개남(가명)'은 민종덕의 창작물이라고 본다. 그는 전태일을 자신의 고향, 고부에서 출정한 동학 전봉준에 비견하였고 비슷한 위용을 떨쳤던 김개남을 전태일 친구의 가명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7042 전태일·조래와 함께한 휴가] 오마이뉴스 2007.08.08</ref>'는 것이다.
         불길은 순식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갔다. 그는 몇 마디 구호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ref name="chock283">조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3페이지</ref> 전태일은 3분 가량 방치되었으며, 이때 누군가가 [[근로기준법]]을 불타고 있는 전태일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전태일의 몸에 불이 붙은 태에서 방치당하고 있었다. [[조래]]에 의하면 "쓰러진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은 약 3분 가량 타고 있었는데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당황하여 아무도 불을 끌 엄두를 못 내었다.<ref name="chock283"/>" 한다. 그는 온 몸에 불이 붙은채 평화시장 앞을 달리는 와중에도 끝까지 "[[대한민국 정부|정부]]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쓰러졌다. 시간이 흐른 뒤 "한 친구가 뛰어와서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재킷|잠바]]를 벗어서 불길을 덮었다.<ref name="chock283"/>" 한다.
         [[파일:이소선 2.jpg|섬네일|전태일의 장례식에서 정을 안은 이소선]]
         쓰러진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이 소식을 듣고 병원에 온 어머니 이소선에게 전태일은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ref>〈이소선:아, 우리들의 어머니!〉, 《이야기 여성사 1》 163~4p, 여성신문사, 2000</ref> 쓰러졌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응급치료를 받은 전태일은 온몸이 굳어서 펴지지가 않았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추워서 떨고 있는 아들에게 앞치마를 벗어 덮어주고 의사에게 갔다. 1만 5천 원짜리 주사 두 대면 우선 화기는 가시게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훗날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갚을 터이니 그 주사를 맞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의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러면 근로감독관에게 가서 보증을 받아오라고 했다.<ref name="chock289">조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이때 평화시장 담당 [[서울시청]] 근로감독관 한 사람이 전태일을 따라 병원에까지 와 있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내가 무엇 때문에 보증을 서요?"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 정인숙 (1945년) . . . . 117회 일치
         '''정인숙'''(鄭仁淑, [[1945년]] [[2월 13일]] ~ [[1970년]] [[3월 17일]])은 [[대한민국]]의 모델, 배우이다.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당시 화제 인물로, 서울 시내 고급 요정에서 활동하던 접대부였다.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 [[정일권]]의 내연녀로 [[정인숙 살해 사건]]의 피해자였다. 살해 당시 그의 친정 오빠이자 운전수인 [[정종욱]]을 유력용의자로 지목했으나, 유력 용의자는 다른 인물로 밝혀졌으나 배후는 미궁이다. 본명은 '''정금지'''(鄭金枝)이고, 다른 별명은 '''정혜미'''이며,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출신이다.
         모델, 배우 지망생이었으나 고급 요정의 종업원이 되어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당시의 정계 거물들을 대했던 그녀는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 [[정일권]]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이것이 불문에 붙여졌다. 이는 당시 유행가인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을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으로 개조되어 확산되었다.<ref>사랑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ref> 아들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느니, 정 전 총리라느니, 이후락 전 중정부장이라느니 하는 소문들도 무성<ref name="ilyo01">[http://www.ilyo.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889 <nowiki>[</nowiki>미스터리 추적<nowiki>]</nowiki> 정인숙과 그아들, 진실은 이것] 일요신문 2007년 04월 08일자</ref> 하기도 했다.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고에 의해 살해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cnbnews.com/category/read_org.html?bcode=72829&mcode= 믿을 수 있는 인터넷 언론 CNBNEWS<!-- 봇이 붙인 제목 -->]</ref><ref name=autogenerated3>[http://media.daum.net/digital/it/view.html?cateid=1077&newsid=20070314114210288&p=hankooki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정인숙은 현장에서 총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생존해 있었다. 정종욱은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었다.
         가정 환경이 넉넉했던 정인숙은 개인교사를 둘만큼 유복하게 자랐다. 예쁘고 천성이 명랑했던 그녀는 붙임성이 좋아 남녀 친구가 많았고, 학업은 중간 정도였지만 [[어]] 실력은 빼어났다고 한다.<ref name="hp103">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사, 2002) 103페이지</ref>
         가세가 기울면서 그는 방황하였고 [[대구]] [[신명고등학교|신명여고]]에 재학 중에 정인숙의 학교성적은 중위권 이하로 추락하였다. 그러나 어실력만은 뛰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어회화를 잘했는데, 정인숙이 어를 잘 했던 것은 오빠들의 도움이 컸다. 당시 일본에서 전기 부속품을 하거나 무역회사 등을 하던 오빠들은 모두 [[어]]에 능통했다. 정인숙은 결혼하여 분가한 오빠들의 집에 종종 출입했고, 이런 오빠들 밑에서 어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1962년]] 신명여고 졸업 후 [[1964년]] [[이화여자대학교]] 문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이후 [[명지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학교에는 가는둥 마는둥 하다가 중퇴하였다. 뛰어난 미모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려고 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ref name="han01">[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807/h2008070802511484800.htm <nowiki>[</nowiki>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nowiki>]</nowiki> <16>정인숙 사건과 나] 한국일보 2008년 07월 08일자</ref> 아버지의 실직과 대학 낙방은 그의 방황을 부추겼다. 화배우가 되고 싶은 꿈에 화감독을 만났으나 1년만에 헤어지고, 임신한 아이는 낙태하였다. 이후 요정에 들어가 요정업에 종사하게 된다.
         대학을 중퇴한 후 일정한 직업이 없던 그는 '나 정도의 얼굴이면 화배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했고, [[서울]] [[충무로]] 화가를 전전하였다. 또한 문학공부를 하고자 했던 정인숙은 자신에게 문학을 가르쳐줄 마땅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1963년]] 정인숙은 시나리오 작가인 장사공을 만나 1년 정도 교제를 했다.<ref name="hp103"/> 이 때 정인숙과 장사공은 동거를 했다는 의혹<ref>여무, '추적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 (동아일보사, 1983) 168쪽</ref> 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장사공은 [[KBS]] 방송국에 《태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하고 있었고, 정인숙은 곧잘 친구들에게“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라며 자랑했다. 또한 “장씨와 약혼한 사이며 곧 화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정인숙은 장사공의 소개로 S화사와 접촉이 되어 2,3편의 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촌과 수유리 등을 전전하며 하숙생활을 하던 정인숙과 장사공의 동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타고난 기질과 장사공의 사업실패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장사공은 정인숙을 구타했고, 정인숙은 [[대구]]의 집으로 도망오기도 했다. 장사공을 사위로 여기던 정도환 내외와 두 오빠는 그때마다 아이가 철이 없으니 인내하고 데리고 살라고 거듭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했던 장사공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는 1년 만에 파탄으로 끝났다.
         이때 임신 수 개월이었던 그녀는 [[서울특별시]] 내의 한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낙태하였다. 학창시절 이후 사귀던 남자들 중 정인숙은 작가 장사공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하는데, 실제로 장사공을 향한 정인숙의 마음은 당히 컸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사공은 후일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은 잘못이 전혀 없는 것처럼 진술하기도 했다. [[1970년]] 초 피살되기 한 달 전 그녀는 자신의 한 친구에게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사공이 제일 잊혀 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인숙은 장사공과의 동거 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비밀요정을 경하던 마담 김씨를 만난다. 그리고 김마담의 소개로 패션모델로 몇 차례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인숙은 김마담이 경하는 서울 한남동 고급 요정에 접대부로 나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접대부 생활을 하게 된다. 그 뒤 유명한 요정 선운각으로 옮겼다. 타고난 미모와 어실력으로 얼마 뒤 선운각의 인기 있는 1급 접대부가 되었다.
         그 뒤 그는 다른 요정에도 출입하는 등 여러 요정에 출입하였다. 그러나 주 무대는 처음 들어갔던 곳이고, 마담 김씨가 경해 오던 한남동의 고급 요정이다. 정인숙은 2류급 여배우와 가수들을 잘 불러내는 것으로 소문난 S마담 집 등에 단골로 불려 다녔다. 그러나 비밀요정 접대부로 나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콧대가 높았다. 인기를 끌면서 그는 반드시 그 날 참석자들을 알아보고 웬만한 이름이 아니면 응하지 않기도 했다. 한 회고에 의하면 당시 불려가는 여배우와 가수를 포함한 접대부 중 그의 미모가 1위였다 한다.
         미스 코리아나 화배우의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요정에서 그녀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선운각, 옥류장 등 서울의 일류 요정들은 정인숙을 데려가기 위해 앞을 다투었다고 한다.<ref name="han01"/> [[선운각]] 등 최고급 요정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며 고위층 인사와 교분을 쌓았다. 이때부터 정인숙은 저명인사들의 노리갯감으로 전락, 밤의 꽃으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인숙은 비밀요정을 주 무대로 정부의 A급 고관대작들만 대했다고 한다. 평소 그는 주위에 “내 말 한마디면 안 되는 일 없다”며 자신이 정치권 고위인사와 ‘깊은 관계’라고 털어놓기도 했다.<ref name="ilsa01"/> 이같은 그의 명성 때문에 ‘정인숙 피살 사건’은 제3공화국 최대 ‘섹스 스캔들’로 비화됐다.<ref name="ilsa01"/>
         한동안 선운각의 얼굴마담으로 주가를 높이던 정인숙은 [[1968년]] [[6월]] 아들 성일을 낳았다. 그리고 이 해에 그녀는 해외로 나가기 위해 갑자기 수속을 밟았다.<ref name="hp104">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사, 2002) 104페이지</ref> 사후 시신 해부에서도 드러났듯이 그녀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유흥업소에서는 보통 접대부가 아이를 낳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정인숙은 아기를 낳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유력 인사였고,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그녀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신원조회는 당시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이던 [[김형욱]]의 비서<ref name="hp104"/> 실장인 [[문학림]]이 맡았고, 고위층만이 가질 수 있었던 회수여권은 정일권의 비서관 [[신성재]]가 주선하였다.<ref name="hp105">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사, 2002) 105페이지</ref> 여권 발급 날짜는 [[1968년]] [[12월 30일]]이고, 이후 정인숙은 [[1969년]] [[3월]] 큰오빠를 만난다는 명분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10월]]에는 [[워싱턴 D.C.]] 한인회장 [[노진환]]의 안내로 미국에서 3개월 동안 머물다가 [[1970년]] 1월 21일 귀국했다.<ref name="hp105"/>
         {{인용문|정인숙이 아이를 낳은 뒤 자꾸만 고위층(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것처럼 행세했다. 정 여인은 어쩌면 박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청와대를 귀찮게 하자 경호실장 [[박종규]]가 골치가 아파졌다. 여권을 만들어 미국으로 내보냈으나 자꾸만 귀국하겠다고 해서 일본에도 머물게 했다. 그때 [[일본]]에서 박종규 실장과 가장 친한 사람이 정건 씨였다. 마치이로 통하는 이 교포 사업가는 도쿄에서 손꼽히는 '암흑가의 신사'이기도 했다. 바로 이 정건 씨에게 정인숙 모자를 돌보아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건은 그 대가로 거액의 사업자금을 [[도쿄]]의 [[외환은행]]에서 빌려 쓸 수 있도록 실력자인 박종규 실장에게 부탁했다.<ref name="hp104"/><ref>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216쪽</ref>}}
         출국을 한 정인숙은 무료한 이국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갑갑해 한다.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던 정인숙은 정일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한다. 국내로 들어온 정인숙은 홀로 호텔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지로 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쓰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잠자리도 같이 하는 등 난잡한 생활을 한다. 이 때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 쓰는 사람들을 대했고, 재일교포와 사업가 등 유력 인사들이 그녀를 거쳐 갔다. [[1969년]] [[10월 10일]] [[국무총리]] [[정일권]]의 주선으로 그녀는 아기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석 달 동안 있다가 되돌아 왔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주변에게“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말했다. 한때는“이젠 미국 안 갈래”라고 하기도 했다. 사건 당일인 [[3월 17일]] 낮, 자동차 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 6기통짜리를 흥정을 했다.
         내가 카운터에 앉자 그 여인은 나한테 술을 한잔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이런 경우 술을 권하는 사람은 대체로 남자 쪽이 아닌가? 나는 솔직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쑥스러웠다. 내 느낌으로는 그녀에게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인데다가 우울한 분위기였다. 더욱 더 나를 묘하게 만든 일은 그녀가 밴드에게 연주해 달라고 주문한 노래 때문이었다. 그 노래는 ‘릴리스 미(Release Me)’였다. 이것은 국의 엥겔버트 험퍼딩크라는 가수가 부른 곡이고 그 당시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하고 있었다. “나를 좀 놔 주세요. 떠나갈 수 있게 놔 주세요. 난 더 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나한테는 새로운 사람이 생겼답니다. 당신의 입술은 차갑지만 그이의 입술은 따뜻합니다.” 이런 가사 내용이다.<ref name="han01"/>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가장한 사고에 의해 살해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cnbnews.com/category/read_org.html?bcode=72829&mcode= 믿을 수 있는 인터넷 언론 CNBNEWS<!-- 봇이 붙인 제목 -->]</ref><ref name=autogenerated3>[http://media.daum.net/digital/it/view.html?cateid=1077&newsid=20070314114210288&p=hankooki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정인숙은 현장에서 총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차를 운전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생존해 있었다. 정종욱은 택시 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여 구조되었다.
         정인숙 사건은 당시 지도층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인숙의 빨간 가방 안에는 그녀가 생전에 알고 지내던 사회 저명인사 26명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결국 이 사건은 고위층의 부도덕한 타락을 세 밖으로 노출시켰다. 그렇지만 이 사건의 전모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온갖 추측만이 난무하고 있다.
         1주일 후에 나온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오빠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종욱은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정인숙의 문란한 행실을 지적했으나, 정인숙이 말을 믿지 않고 자신에게 심한 폭언을 가하자 가문의 명예를 위해 누이동생을 암살하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것이다.<ref>1970년 3월~: 여무, 〈추적 정인숙 미스테리〉《신동아》(1983.9.) 166~167쪽</ref> 그러나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정부 고위층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였다. [[정인숙 살해 사건]] 이후 의혹이 거세지자 박정희 대통령은 관련자를 색출하였으나, 정일권 총리의 해임 선에서 사건을 종결시켰다.
         정종욱은 사건 직후 "당시 셋째, 넷째 가라면 분해할 정도의 권력을 휘둘렀던 P씨"를 불러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ref>여무, <추적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 (동아일보사, 1983) 164페이지</ref> 그러나 그의 요청은 거절당했다. 수감과 출소 이후에도 정종욱은 억울함을 하소연하였고, 정일권과 여러 번 만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 한명회 . . . . 117회 일치
         |필명=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狎鷗)·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 별명은 장량, 칠삭동이, 작위는 당군, 당부원군, 시호는 충성(忠成)
         |직업= 문신, 군인, 사가, 작가, 시인, 정치인
         |배우자= [[신애라]] (정종화의 딸), 첩 전주 이씨(선천공조의 딸), 첩 연일 정씨(정종성의 서녀), 첩 이름 미
         |친척= [[한질]](할아버지), [[한확]](친족), [[소혜왕후]](친족), [[조선 세조|세조]](사돈), [[조선 예종|예종]](사위), [[조선 성종|성종]](사위)
         |웹사이트=
         '''한명회'''(韓明澮, [[1415년]] [[11월 26일]] ([[음력 10월 25일]]) ~ [[1487년]] [[11월 28일]] ([[음력 11월 14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척이다. 1475년에서 1476년까지 1년간 조선국 급 국 지위를 지낸 그의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 자(字)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별칭은 칠삭동이<ref>7개월만에 출생하여 생애 초기에 칠삭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ref>,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일찍이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온 [[개국공신]] [[한질]](韓尙質)의 손자이자 [[증직|증]] [[의정부]][[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의 아들이고, 이조참판과 직제학을 지낸 [[여주 이씨]] [[이척]]의 외손자이자 [[대제학]] 이행의 증외손이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300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환(韓尙桓), 류태재(柳泰齋)의 문인이다. [[한성부]] 출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 때문에 과거에 번번이 실패해 38세가 되던 [[1452년]]에야 겨우 [[문음]]으로 [[경덕궁]]직이 되었다.<ref name="park115">박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115페이지</ref> [[1456년]] [[사육신]] 등의 [[단종 복위 운동]]을 사전에 적발하여 좌절시키고, 사육신과 관련자들의 처벌에 가담하였다. [[조선 세조|세조]]의 최측근이자 책사로, 세조로부터 나의 [[장량]]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선 세조|수양대군]]의 책사로 [[계유정난]]을 주도하여 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功臣)이 되고, [[조선 세조|수양대군]]을 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기여하여 동덕[[좌익공신]](同德左翼功臣)이 되었다.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여진족]]의 토벌과 북방의 수비를 견고하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1466년]]~[[1467년]], [[1469년]] 두 번 [[의정부]][[의정]]을 역임했으며 [[1457년]] 당군(上黨君)에 봉군되고 [[1461년]] 진봉하여 당부원군이 되었다. 만년에는 권신이자 외척으로서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명나라]]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한 일로 삭탈당하였다. 그러나 후일 [[종묘]] 세조실에 배향됨으로써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압구정 한명회는 [[1415년]](태종 15년) [[음력 10월 25일]] [[한성부]]에서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한질]](韓尙質)의 손자이며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사후에 [[증직]]으로 [[의정부]][[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와 이초참판 겸 [[예문관]] 직제학 [[이척]](李逖)의 딸인 증 정경부인 [[여주 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모친 여주이씨 부인이 수태된 지 7개월만에 태어났다 하여 칠삭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태어날 때 배에는 태성과 두성 모양([[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한질]]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흥]]이라는 [[국호]]와 [[조선]]이란 국호 중 국호를 낙점받아왔다. [[한질]]은 처음 [[경주 이씨]] [[문하시중]]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성림]](李成林)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딸만 1명 두고 요절하였으므로, 청풍송씨(淸風宋氏) 송신의의 딸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이 곧 한명회의 아버지 [[한기]]이다.
         그가 태어날 당시 몸이 빈약하여 일찍 죽으리라 생각하고 방치하였으나 어느 늙은 여종이 그를 거두어 양육하였다. 그러나 종조부 [[한덕]]은 그의 관을 보고 '이 아이는 기우(器宇)가 예사롭지 않으니 필경에는 우리 가문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그는 [[고려]] 때 시중(侍中)을 지낸 한강(韓康)의 후손으로 [[조선 세조|세조]]의 사돈이었던 [[한확]]과는 9촌숙질간이다. [[한확]]은 한악(韓渥)의 넷째 아들 한방신의 증손이었고, 한명회는 [[한악]]의 둘째 아들 한공의의 4대손이었다.<ref>광윤-강-악-방신-녕-정-확, 광윤-강-사기-악-공의-수-질-기-명회</ref> 그가 태어난지 얼마 뒤 동생 [[한명진]]이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10개월도 안되어 태어나 병으로 위기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몸 전체가 완전치 못하고 병약하여 온 집안이 거두려 하지 않으니 한 늙은 여종이 그를 거두어 솜털 속에 싸서 정성껏 보살폈는데, 점점 자라서 몇 달 만에 웃고 안아 볼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또한 그가 태어날 때 배 위에 검은색 별 모양 점이 있었다고 한다.<ref name="hwan1">[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42700&cloc=rss%7Cnews%7Csociety 한명회, 황보인 사위 될 뻔했다?] 중앙일보 2009년 6월 10일자 </ref> 이후 그의 몸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는 소문의 근원이 된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 명진과 함께 고아가 된다. [[한학]]을 수학하였지만, 불행한 가계와 빈한함, 작은 체구로 주변의 멸시와 놀림을 받으며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한명회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고 민첩하였는데, 그의 종조 할아버지 [[한덕 (조선)|한덕]](韓尙德)은 그를 가리켜 집안의 천리마가 될 것이라 예견하였다.
         그는 종조 할아버지들인 [[한경]](韓尙敬)과 [[한덕 (조선)|한덕]]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종조 할아버지 한환(韓尙桓)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뒤에 [[자망산]]을 찾아가 [[류태재]](柳泰齋)의 문하생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친구 [[권람]] 등을 만나 사귀었는데, [[강원도]] 자망산의 유학자 [[류태재]]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 등을 만나 사귀게 된다. 이후 그는 [[권람]], [[서거정]] 등과 함께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웅지를 품게 된다.
         재 [[황보인]]이 한명회를 보고는 큰 인물이 될것을 예견하고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그는 거절하였다.<ref name="hwan1"/> 이에 종조부인 [[참판]] [[한덕]]이 "그([[황보인]])는 권력을 쥐고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니 만약 혼례를 받아들인다면 부귀하게 될 것"이라며 수락할 것을 권고했으나 한명회는 "처가의 권세에 힘입어 부귀 화를 바라보겠습니까. 이는 저의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라며 거절하였다.<ref name="hwan1"/>
         [[개성]]에 유람차 놀러 갔을 때 [[통사]](靈通寺)의 한 노승이 그를 보고 " 그대의 두에 광채가 있으니 필연코 귀할 징조라" 하였다. 당시 그는 이 노승의 예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 두 종조부가 별세하자 [[중추원|중추원사]](中樞院使) [[민대생]](閔大生)이 그를 거두어 사위로 삼았다. 부인 황려부부인에게서는 1남 4녀가 태어났는데, 이 중 셋째 딸이 [[조선 예종|예종]]비 [[장순왕후]]와 넷째 딸이 [[조선 성종|성종]]비 [[공혜왕후]]이다.
         과거로는 도저히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친구 [[권람]]으로 하여금 [[수양대군]]을 찾아가 거사를 논의케 했고, 다시 [[권람]]에 의해 천거되어 [[수양대군]]의 책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ref name="park115">박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8) 115페이지</ref>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여 [[김종서]](金宗瑞), [[황보 인]] 등 대신이 집권하자, 친구인 교리(校理) [[권람]](權擥)의 주선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과 자주 만나며 집권 계획을 역설, 무사 [[홍달손]](洪達孫) 등 추천하여 그의 심복을 삼게 하였다.
         {{인용문2|[[쿠데타|화란]]을 평정함에는 세을 구제하고 난(亂)을 다스리는 것은 강력한 [[군주]](君主)가 아니면 할 수 없네. [[수양대군]](首陽大君)께서는 활달하기가 [[한 고조]](漢高祖)와 같고 무(英武)하기가 [[당 태종]](唐太宗)과 같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천명(天命)이 그 분에게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지금 자네는 그 분의 필연(筆硯)을 모시고 있으면서 어찌 조용히 건의하여 일찍 결단하게 하지 않는가?}}
         {{인용문2|제 친구인 한생(韓生, 한명회)은 뜻이 웅대하여 간국(幹局)이 있고, 둘도 없는 [[국사]](國士)로 적합한 인물이며, 지금의 [[관중 (춘추)|관중]](管仲), [[악의]](樂毅), [[사마중달]], [[제갈공명]]과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께서 [[춘추 시대]] [[오나라]]의 계찰(季札)의 절개와 지조를 지키시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큰 뜻을 품고 이 세을 평치(平治)하시겠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권람의 진언}}
         [[권람]]의 진언을 받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그를 불러들였고, 한명회는 강력한 왕권을 주장하였다. 한명회의 진언을 들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어찌 진즉 만나지 못했을까? 지금 주께서는 비록 유충(幼沖)하지만 곁에서 잘 보필하면 수성(守成)은 할 수는 있는데, 대신들이 간교하여 [[안평 대군]] 이용(李瑢)에게 포섭되어 선조(先朝)의 충자(冲子)를 부탁하신 뜻을 저버리니 조종(祖宗)의 선령(先靈)이 장차 어디에 의탁하시겠는가?'하고,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자, 한명회는 이에 감격하여 [[쿠데타|반정]](反正)의 책략을 남김없이 말하였다.
         그 뒤 [[군기시]] [[판관]](軍器寺判官), [[의금부]][[도사]]를 거쳐, [[조선 세조|수양대군]]이 [[의정부사]]가 되면서 [[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으로 발탁되었다가 [[1454년]](단종 2년) [[승정원]][[동부승지]](同副承旨)로 승진한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116회 일치
         코너와 랜스는 보스턴에서 만나 랜스가 운하던 목공소로 찾아간다. 하지만 목공소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3주 전에 도제인 패트릭이 목공소를 팔아치워버린 것. 랜스는 패트릭을 찾아가 따지지만 패트릭은 안 돌아올줄 알아서 도구도 가게도 다 팔아치웠는데 어쩌겠느냐, 라는 반응. 랜스는 목공이 생명선인 도구를 팔리가 없다며 패트릭이 어디다가 꿍쳐뒀을 거라고 추측한다.
         둘은 패트릭을 미행한다. 랜스의 예대로 패트릭은 도구를 꿍쳐두고 이번 달 내에 뉴욕으로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코너는 오하라가 어딘가로 간 사이에 도구를 가져간다.
         코너는 한 여성이 팔에 부을 입고 쓰러져있는걸 발견한다. 밀렵꾼들에게 숲에서 떠나라고 했다가 총에 맞은 것. 그녀를 대번포트 저택으로 부축하는 동안, 코너는 그녀의 이름이 미리엄이라는 것과 그녀가 집 없이 생활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코너가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킬레스가 미리엄의 응급 처치를 끝낸 직후였다. 미리엄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는 코너. 미리엄은 사냥감이 넘쳐나는 대본포트 지에 사냥 허가를 받으러 왔다가 밀렵꾼들을 만난 것이었다. 코너는 자연의 풍요는 주고 받을 수 없는거지만 다른 사람과 거래할 수 있다면 환한다고 대답한다.
         미리암이 하얀색 쿠거를 발견했다. 미리암은 하얀 쿠거를 사냥하고 싶어하지만, 그 쿠거도 여간 동물은 아니라 미리암의 덫에서 두 번이나 벗어난 황. 코너는 미리엄의 사냥을 돕기로 한다.
         하얀 쿠거를 뒤쫓은 코너와 미리암은 언덕 밑에 있던 노리스에게 쿠거가 어디 갔는지를 묻는다. 하얀 쿠거는 노리스가 똥 누는 사이 노리스의 광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미리암은 한 사람이 광산 안으로 들어가 쿠거를 끌어내고, 다른 하나가 쿠거를 쏘는 계획을 짜낸다. 코너는 광산 안으로 들어가 쿠거를 유인하고, 미리암이 쿠거를 쏘아 쓰러뜨린다.
         워렌이 보스턴에 수확품을 팔러 나간 사이 프루던스가 코너를 부른다. 풀어놓은 가축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임신한 몸이기에 코너에게 부탁하려던 것이었다.
         사금을 채취하던 노리스가 코너를 부른다. 노리스는 미리암과 아는 사이냐며 그녀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미리암이 어떤 선물을 좋아할지는 코너도 모르는 황. 둘은 프루던스에게 가서 물어보기로 한다.
          * 이 임무 이후 특수 철괴 2개가 보으로 주어진다.
         노리스가 다시 코너를 만났을 때, 노리스는 미리암에게 줄 선물을 잘못 골랐다고 한다. 그냥 버려버렸다고. 노리스는 미리암이 꽃을 좋아하지 않을거라는걸 알고 있었다는 반응. 코너는 미리암이 뭘 주면 좋아할지 알아내겠다고 한다. 노리스는 그런 코너에게 들키면 미리암이 수하게 생각할테니 들키지 말라고 한다.
          * 이 임무 이후 특수 철괴 2개가 보으로 주어진다.
         코너가 노리스와 만났을 때, 노리스는 짐을 싸고 있었다. 노리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합금으로 된 칼을 미리암에게 선물하고 싶어했고, 합금의 재료인 철을 얻으러 가려는 것. 노리스가 철을 얻으려는 광산은 국 소유의 광산이었기에 노리스는 코너에게 망보기를 부탁한다.
         노리스가 철을 얻기 위해 광산 안에 폭약을 설치하고 터뜨리자 국군들이 노리스와 코너를 잡아 족치기 위해 몰려온다. 둘은 국군들을 막아내며 세번의 폭파 끝에 필요한 철을 모은다.
          * 이 임무 이후 특수 철괴 3개가 보으로 주어진다.
         보스턴에 도착한 코너는 라일 화이트 박사를 찾지만 화이트 박사는 모두에게 "사신 의사", "살인자"라며 비난받는 사람이었다. 코너는 라일을 린치하려던 사람들을 때려눕히고 화이트 박사에게 말을 건다. 화이트 박사는 자신이 국군에게 "백색 사신"이라고 모략하는 사람이라 말하지만 프루던스가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녀를 돕기로 한다.
         라일은 자신이 대번포트 농지 밖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이유를 알아냈다. 국군이 치료하지 말라고 요구했음에도 애국자들 단원을 치료했다가 국군의 모략에 시달리게 된 것이었다. 코너는 라일이 떠나지 않도록 해결 방법을 찾아본다.
         해전이 벌어진 이후 부입은 선원들을 치료하던 라일은 자기 혼자서는 시간 안에 치료할 수 없겠다며 도움을 청한다. 코너는 적합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며 다이애나를 데려온다. 전에 다이애나가 사람들을 보살피는 걸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녀가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 라일 또한 그녀가 치료에 소질이 있다며 반가워한다.
         라일은 자신과 다이애나가 다리 다친 선원을 보는 동안 코너가 다른 부병들을 손보도록 한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라일은 코너와 다이애나를 칭찬하며 다이애나가 매우 인깊었다고 말한다. 다이애나에게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라일은 다이애나에게 자신의 조수가 될 것을 제안한다. 다이애나는 캐서린이 아이를 돌바 줄 수 있을 거라며 승낙한다.
         존스타운을 지나던 코너는 국군이 한 남자를 붙잡고 그를 탈병이라며 목매다려는걸 목격한다. 코너는 이 현장에 난입, 국군 병사들을 해치운다. 마지막으로 남자를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던 병사까지 처리한 후, 코너는 남자의 묶인 손을 풀어주며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
         데이비드 월스톤, 일명 빅 데이브는 싸움에 동의 하지도 않고, 아메리카를 사랑하기에 국군에서 탈했다. 그랬다가 국군에게 붙잡혀 본보기로 교수형 당할 뻔한 것. 빅 데이브가 대장장이인것을 알게 된 코너는 은혜를 갚고싶어하는 그를 대번포트 농지에 정착하게 한다.
  • 창원시 . . . . 11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남도)]
         [include(틀:경남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00BFFF> {{{#FFFFFF '''창원시청 소재지'''}}} || [[경남도]] [[창원시|의창구]] [[중앙대로(창원)|중앙대로]] 151[br](舊 용호동 1번지) ||
         ||<-2><bgcolor=#00BFFF> {{{#FFFFFF '''광역시도'''}}} || [[경남도]] ||
         {{{#FFFFFF '''민주'''}}}}}}]] ③ 김진 ||
         {{{#FFFFFF '''민주'''}}}}}}]] ⑪ 이욱 ||
         {{{#FFFFFF '''민주'''}}}}}}]] ⑫ 심동 ||
         || [[창원시 마산합포구|마산합포]]: [[이주(1951)|이주]]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5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계획도시임을 알 수 있는 바둑판 모양의 주택가 '''설경'''.[* 창원지역은 '''정말로 눈이 안 오는 지역이다.''' 창원뿐만 아니라 [[부울경]] 쪽에는 거의 눈이 안 온다. 몇 년에 한 번씩 눈이 나풀거리기라도 하면 SNS에 마구 올라오며, 적설량이 3cm를 넘어가면 마산합포구 일대의 산복도로는 교통지옥이 되어버린다. 제설차 따위는 당연히 본 적도 없고, 사람들이 눈길운전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도 모른다. 체인이라는 것도 자동차 처음 살 때 끼워주지 않으면 구비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리고 눈이 1cm라도 쌓이면 무조건 휴교이다. 학교가 산이면 산일수록 휴교 확률이 높아지고 시험날이라도 선생님부터 등교가 불가능 수준이라 시험을 뒤로 미뤄버리거나 12시 등교해 시험을 치는 경우도 있다. 2018년 8월 기준으로, 눈이 많이 내려 하루 이 쌓여있던 날은 2015년 2월 이후로 없다(...)]
         창원시청 전경. 통합 전 창원시청을 그대로 임시 사용하고 있다. 주소는 [[경남도]] [[창원시|의창구]] [[중앙대로(창원)|중앙대로]] 151(舊 용호동 1번지).
         [[마스코트]] '피우미'. 통합 전 창원시의 캐릭터인 '창이와 원이'도 자전거 보관함 등에 간간히 쓰이고 있다. 심지어 마산, 진해 지역 자전거 보관함에는 현 창원시 로고에 창이와 원이가 쓰이고 있다! 통합 전 로고나 마스코트의 색을 통해 유추해보자면 파란색이 구 마산, 녹색이 구 창원, 주황색이 구 진해를 뜻한다.
         슬로건 '사람 중심 새로운 창원'. 통합 전 창원시 슬로건인 '시티 창원'과 '환경수도 창원'도 쓰이고 있다.
         [[경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인구는 약 106만명. 공업을 기반으로 한 '''계획도시이자 명실부한 경남의 중심지'''로 [[경남도청]] 소재지다. 과거 [[부산광역시|부산]]에 있던 경남도청이 1983년 창원으로 이전되었다.[* 여담으로 도청 이전 당시 진주와 옛 마산이 유치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진주는 부산으로 이전하기 이전에 원래 경남도청이 있었던 곳이라는 점을 내세웠고, 마산은 당시 경남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전국적으로도 대도시 축에 ~~잠깐~~ 들었다는 점에서 도청 소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장소로 확정되었는데, 옛 창원시 권역은 마산시 창원출장소가 1980년 시로 승격된 같은 생활권인지라 사실 마산으로 이전한 것에 가깝긴 했다. 비슷한 예론 [[광주광역시]]에 있던 전라남도청이 사실 [[목포시]] 생활권인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 [[수원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되면서 '하'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 전반적인 인구는 2010년대 들어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110만을 돌파했지만,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인구 감소가 꽤나 심각하게 진행 중에 있다.[* 우선 조선과 기계, 자동차 등의 창원시 경제를 지탱하는 중후장대 산업 성장세가 규모 면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외곽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집값이 비싼 창원을 떠나 시계 밖의 장유, 진 등의 신도시로의 접근성이 향되어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또한 마산합포구 지역은 면지구뿐만 아니라 옛 시가지의 노후화 때문에 인구유출이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며, 그나마 월마을에 형성된 학군이나 현동지구 등의 신규 아파트 택지공급이 감소세를 덜어주는 정도다.]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은 인센티브를 거론하며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을 유도하였으며, 당연히 그전부터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많은 소위 마창진([[마산]], [[창원시/통합 이전|창원]], [[진해]])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에 자극받은 3개 시는 지난한 정치적 협 및 행정적 조율을 거쳐 드디어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게 되었으며,[* "경남도의 창원시, 마산시 및 진해시를 각각 폐지한다."(경남도 창원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경남도에 창원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같은 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폐지되는 창원시 일원, 마산시 일원 및 진해시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창원시 설치)]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수립 이후 첫 번째 사례가 되겠다. 이 과정에서 [[함안군]]도 포함될 뻔했으나 제외되었다.[* 마산과 함안이 밀었던 모델은 함안+마산+창원 이였고 창원이 밀었던 모델이 마산 + 창원+ 진해 였다. 마산은 이 3도시가 통합되면 마산은 발전동력이 다해 쇠퇴하던 도시가 다시 도시중심부가 되어 새로운 발전동력을 얻을수 있었고 함안은 새로이 공장이 들어서는 발전가능성이 높은 도시였으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탓에 과감한 투자를 할수 없으므로 많은 재정을 유치할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창원시는 아직도 북면의 개발등 개발지역이 남아있고 함안과의 연동으로는 별 메리트를 찾을수 없었던 터라 함안과 마산을 제외하고 신항이 들어서던 진해와 합쳐서 항만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는게 낫다고 판단하고 도시통합을 추진했다.]
         통합시 출범 당시 명칭으로 '마창진'이니 '진창마'니 '창마진', ‘가야’, ‘산해원’, ‘경남’ 등 여러 안이 나왔는데, 결국에는 그냥 '창원'이 되었다. 통합시청사 역시 기존 창원시청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새 시청사 소재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미루고 있어 결정이 안 나고 있다. 한때 창원 39사단 부지로 결정되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로 유포해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시청소재지를 놓고 대립이 일어난 끝에 창원시 의회에서 '''그냥 원태로 되돌아가자'''라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355831|결의안을 통과시켜서]] 파문이 일었다. 2011년 11월 4일 창원시 의회 임시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돼버린 것. 결의안을 제시한 의원은, "지역 이기주의가 극심한 몇몇 의원 때문에 통합의 정신이 흔들린다"라고 했다.
         물론 통합 창원시청은 이제 와서 다시 마산, 진해가 분리되는건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통과시킨 결의안이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하자'''라는 것.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한 뒤에 창원 마산 진해의 통합을 원태로 되돌리자라는 거라 [[모순|앞뒤가 안맞는다]]는 비난이 나왔다.
         19대 총선 때는 시청사 소재지를 두고 후보들 간에 치열한 대립각을 세웠다. 옛 창원 지역에서는 현 청사 리모델링을, 옛 마산 지역에서는 마산으로의 이전을 주장하고, 옛 진해 지역의 야권, 무소속 후보들은 진해 분리독립을 주장했다. 선거 결과를 보면, 진해구에서 막판에 간신히 야권 단일화를 이루었음에도 꽤 큰 차이로 여당 후보에게 패한 것을 볼 때, 다시 나누어지는 파국으로 치달을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통합의 후유증이 당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마산 지역에서는 시 명칭, 청사 소재지, 야구장 등 어느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고조되어 분리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마산합포구 국회의원이 국회에 마산 분리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다시 논의할 가망도 없어 사실 무산된 태.[[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547176&ctg=1213|#]]
         반면 뚜렷한 지역성과는 반대로,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식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창원시내버스협의회|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절[*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기하자.]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다.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남동(창원 성산)|남동]]의 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남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 현 창원시 의창구]와 회원현[* 현 마산시 회원구]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왜정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한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 마재윤 . . . . 110회 일치
         3 해처리 운용을 기반으로 한 '운형 저그'의 완성을 이끌어냈으며, 단순히 전성기 기량과 커리어를 바탕으로만 본다면 '최고의 저그'로 평가받을 수 있으나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하여 이 평가는 적절치 않게 되었다.
         2010년 6월에 공판이 진행 되었고, [[KeSPA]]로부터 구제명되었으며,<ref name="제명">{{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6070267|제목=승부조작 전·현직 프로게이머 11명, 전원 구제명|날짜=2010-06-07|저자=교용준 기자|출판사=오센}}</ref> 2010년 10월 22일 최종적으로 징역 1년, 집행 유예 2년, 사회 봉사 120시간이 선고되었다.<ref name="징역">{{뉴스 인용|url=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110028&db=issue&cate=&page=1&field=&kwrd=|제목= 속보 - 원모씨 징역 2년-추징금 300만, 마모씨 징역 1년 6개월 구형|날짜=2010-08-20|저자=심현 기자|출판사=포모스}}</ref> 현재는 [[아프리카TV]] BJ로 활동하고있다.
         == 저그 운의 시초 ==
         당시 저그는 2해처리 빌드로 테란,프로토스와 경쟁을 했었다. 당시 공격형 저그 [[박성준]] 과 운형 저그 [[박태민]] 두 부류가 있었다.
         저그의 강력한 포스를 보였던 [[홍진호]]가 공격형 저그의 시초였고 이후 그 공격을 방어로 한 이후 운을 보이던 저그가 [[조용호]]였다.
         그래서 저그는 거의 지옥 같은 생활을 했지만 마재윤의 등장으로 그것을 바꿔 버린다. 당시 2005년 때 3해처리 운의 기초를 보여주며 마재윤이 등장하였다.
         한때 저그전 최강이였던 [[최연성]] [[이윤열]] 을 이기며 파란을 일으켰고 마재윤의 3해처리 운은 모든 저그들에게 새로운 빌드였고 4가스를 주면 저그를 잡지 못한다 라는
         == 최고의 승세 ==
         또한 WEF 2005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그당시 최고의게이머 [[최연성]] 까지 이기며 승세를 달렸다.
         마재윤은 의심할 바 없는 당대 최강의 선수였던 [[최연성]]에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9503&c_no=2&control=view '최연성 킬러는 나!' GO 마재윤V, 2회 연속 결승 진출!] [[파이터포럼]], 2006년 1월 5일. 마재윤은 최연성과의 대전적에서 8승 3패로 크게 앞서고 있다.)</ref> 당대 최강자임을 과시하였다.
         한편, MSL에서의 눈부신 활약과 달리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예선 탈락도 여러차례 하는 등<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12276&c_no=1&control=view 안원 듀얼토너먼트 본선 진출 등 오전 1조 종료] [[파이터포럼]], 2006년 6월 28일. 온게임넷 예선에서 안원에게 패배한 모습)</ref> 부진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5번째 MSL 결승전을 앞두고 벌어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 결승에서 [[이윤열]](현 [[위메이드 폭스]])을 3:1로 꺾고 로열로더로써 우승하였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16484&c_no=1&control=view CJ 마재윤V, 3대1로 이윤열 꺾고 현역 최고 선수 등극!] [[파이터포럼]], 2007년 2월 24일)</ref> 당시 [[엄재경]] 해설위원의 '사람이 신을 어떻게 이깁니까!' 발언과 인적인 퀸 사용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그만큼 당시 마재윤의 실력과 기세는 모든 이들을 압살하는 수준이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의 우승 일주일 후인 2007년 3월 3일 마재윤은 5회 연속 진출한 MSL 결승에서 당시는 신예였던 김택용(당시 [[MBC게임 히어로]], 현 [[SK 텔레콤 T1]])과 맞붙게 된다. 마재윤의 2006 시즌 프로토스전 성적은 21승 3패, 승률 87.5%에 달했던 것은 물론, 대부분의 전문가와 시청자들은 마재윤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703030023 [[OSEN]], 2007년 3월 3일]</ref><ref>[http://www.pgr21.com/zboard4/zboard.php?id=humor&no=46911 이러한 평가에 대한 팬들의 반응의 예]</ref>.
         그러나 결승전 당일, 김택용은 모든 이의 예을 뒤엎고 마재윤을 3:0으로 제압하며 김택용 기준으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였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control=view&board=news_esports&c_no=2&b_no=16530 파이터포럼, 2007년 3월 2일]</ref> 김택용은 3세트 모두 커세어와 다크 템플러를 주축으로 한 견제 플레이에 주력하였고,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완벽한 운으로 마재윤을 무너뜨렸다. 이는 훗날 '3.3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충격적인 결과였고, 이후 마재윤은 정의 자리에서 급격히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2007년 3월 17일 신한은행 마스터즈에서 테란 한동욱을 3:1로 꺾고 결승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나, 결승에서 지난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에서 자신에게 패해 준우승을 했던 이윤열에게 1:3로 패배하였다. 또한 3월 31일 제5회 슈퍼파이트에서 김택용에게 패했고, 대전적에서 완벽한 우세를 보이던 최연성에게 패하는 등 엄청난 추락을 겪었다.
         === 2008년 반기 ===
         마재윤의 기량 난조는 2008년 반기까지 이어졌다. 양대 리그 조기 탈락에 이어 오프라인 예선까지 추락하는 것은 물론, 프로리그 08시즌에서도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면서 가끔씩 팀플에서만 활약하는데 그쳤다. 결국 2008년 6월, CJ 엔투스는 특단의 조치로 마재윤에게 2군 강등을 통보했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26292&c_no=5&control=view [[파이터포럼]], 2007년 7월 7일]</ref> 이후 3주간 2군 숙소에서 훈련을 소화한 마재윤은 그 성과와 태도가 인정되어 2008년 7월 21일부로 1군에 전격 복귀하였다.<ref>[http://gmnews.afreeca.com:8109/app/index.php?board=news_esports&b_no=26545&c_no=5&control=view [[파이터포럼]], 2007년 7월 21일]</ref>
         이후에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 이어 [[BATOO 스타리그 08~09]]에서도 예선전에서 떨어졌고,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는 [[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신예 [[임원기]]를 잡고 복귀했지만, 32강 최종전에서 이윤열에게 또다시 패배하면서 16강 진출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이후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다시 32강에 진출, 사 유례없는 MSL 11연속 진출을 달성했다<ref>[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90893&db=news [[포모스]], 2008년 12월 18일]</ref>(KPGA시절까지 포함하면 이윤열, 조용호등이 있으나 순수 MSL만 따질 경우 마재윤이 최초이다). 2008년 10월 11일에 펼쳐진 블리즈컨 2008에서는 [[박지수]]와 [[허무]]를 잡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고, 12일에 치러진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만나 2:0으로 승리를 거두고 블리즈컨 2연속 제패에 성공했다.
         === 2008년 하반기 ~ 2009년 반기까지의 재기 ===
         그러나 위너스리그가 시작되면서 마재윤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재윤은 스파키즈전 1:1 태에서 차봉으로 나와 [[문성진]], [[신문]],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를 연달아 물리치고 3킬을 기록하였고, 이스트로전에서는 1:2 황에서 중견으로 출전해 [[박우]], [[신호]], [[신대근]]을 잡아내며 또다시 3킬을 기록, 마삼킬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 2010년 5월 구 제명, 이후 근황 ===
  • 우규민 . . . . 110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4,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top2=삼성 라이온즈/선수단, top3=먹튀/야구, top4=돈 내놔라 먹튀야)]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74CA1><bgcolor=#074CA1> '''{{{#FFF 우규민의 수 이력 / 역대 등번호}}}''' ||
         || [[최경환(야구)|최경환]](2000~2001) || → || '''우규민(2003)''' || → || [[안준]](2004~2006) ||
         || '''출신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그동안 서울 태생으로 알려졌지만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264938&memberNo=7809682|덕아웃 인터뷰에서 대구 태생이라고 밝혔다.]] 탄생 당시 단양 우씨의 집성촌이었으며(출생 당시엔 [[서구(대구)|서구]]/[[남구(대구)|남구]]) 너무 어렸을 때 서울로 이사 가서 대구에 살았을 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경도 사투리 쓰는 사람과 있을 때는 가끔 경도 사투리를 쓴다고 한다.] ||
         '''LG 프랜차이즈 역사 [[정삼흠]], [[김용수]], [[봉중근]]에 이어 4번째로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한 ACE'''
         서울 성동초등학교,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등학교]] 시절 [[내야수]] [[지석훈]]의 2003년 졸업 동기생이며, 2003년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당히 높은 기대를 받고 입단했다. 2군 퓨쳐스 리그로 활약했다가 2004년부터 1군에 올라와 [[중간계투]]로 활약했으나 [[진필중]]과 [[경헌호]]가 2004년과 2005년에 마무리로 심하게 부진했기 때문에 2006년부터는 주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75⅔이닝 동안 3승 4패 7홀드 17세이브 ERA 1.55라는 수준급 성적을 거두면서 차기 마무리로 낙점되었다.
         2007년에도 7월 10일 전까지는 1승 0패 24세이브 ERA 1.20, WHIP는 1도 되지 않는 호성적으로 [[오승환]]과 세이브왕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8월 2일 [[채태인]]이 대타로 나와 ~~방망이가 나가다가 띵 하고 맞아서~~프로 첫 홈런을 때려낸 후부터는 어째 [[블론세이브]]의 왕이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816 대첩]]. 이후부터 부으로 인한 [[스프링캠프]] 불참의 여파가 나타나 방화 비율이 높아지다가 결국 13블론세이브를 달성, 1시즌 최대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이 시즌 30개의 세이브로 오승환의 뒤를 이어 세이브 2위에 올랐는데, 13블론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지라 방화범 이미지가 확립되었다. ERA도 2.65로 크게 승했다.
         참고로 이 30세이브 기록은 2003년 [[이훈(좌완투수)|이훈]] 이후 최초로 LG에서 나온 30세이브대의 기록이다. 이후 2007년 [[봉중근]]도 부진해서 차라리 봉중근을 마무리로 쓰고 우규민을 셋업으로 쓰자는 계획이 나왔으나 무산되었다. 이 계획은 2012년에 이뤄졌다.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 등판하여 2삼진을 잡아내고 깔끔한 세이브를 하며 2007년의 모습을 보여주려나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4월 15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9회말 [[LG 트윈스|LG]]가 4:3으로 이기고 있는 황에 포수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과 함께 등판하여 9회말 2아웃에 [[정근우]]에게 동점타를 허용하고 만다. 시즌 첫 [[블론세이브|블론]]. [[정근우]]에게 맞은 공은 바깥쪽 어중간한 높이의 밋밋한 직구였다. 특히 이 블론세이브는 [[봉중근]]이 득녀한 날에 선발로 등판하여 8이닝 3실점 8삼진 호투를 한 뒤 저지른 블론세이브라 더욱 뼈아프다.[* 훗날 우규민이 삼성으로 이적하자 [[쥐갤]]에선 [[봉중근]]의 사진을 올려놓고 '규민아 어디가..?'하는 제목으로 글을 쓴 뒤 '니 자식 태어나는 날 내가 똑같이 지X하려고 했단 말이야...'라고 쓴 글도 올라왔다(...) --물론 [[임정우|현 시점 마무리]]는 [[봉중근]]이 아니다--]
         2009 시즌 초반에 잠시동안 [[김정민(야구)|김정민]]포수와 배터리를 이룰 땐 5⅔이닝 동안 삼진 5개, 피안타 2개, '''볼넷 0개''', '''[[평균자책점]] 0.00'''의 엄청난 성적을 냈으나, [[512 대첩|5월 12일]][[무박 2일 경기|과 13일 사이에 벌어진]] [[SK 와이번스|SK]]와의 잠실 경기에서, 12회초에 올라왔을 때, 주심 '''전일수'''의 대활약(?)으로 처절하게 망가졌다. 지못미.
         이후 완전 무너진 그는 [[블론세이브]]를 거듭하게 되고, 결국 시즌 중반 [[이재(야구선수)|이재]]으로 마무리 자체가 사실 넘어갔다. 2군도 한 번 갔다 왔으나... 또 한 번의 '''[[방화|파이어]]'''로 LG팬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찰 야구단|경찰청]]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후 최우수 신인선수 시식에서 투수을 탔다.
         [[2011년]] 시즌을 마치고 [[경찰 야구단|경찰청]]에서 제대한 후 [[넥센 히어로즈|넥센]]으로 [[트레이드]]된 [[심수창]]의 등번호였던 남은 67번을 달 것으로 예되었지만, ~~형은 갔어, 더는 없어! 하지만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 [[2011년]]에 입단한 [[임찬규]]의 1번을 [[http://osen.mt.co.kr/article/G1109319942|다시 달기로 했다.]] 대신 [[임찬규]]는 팀을 떠난 [[이택근]]의 배번인 29번으로 바꿨다.[* 그리고 임찬규는 우규민이 삼성으로 떠난 2017년 부터 다시 1번을 달고있다.]
         군 제대 후 [[임찬규|찬규]]와 함께 2011 프로야구 MVP 시식장으로 들어서는 모습. ~~왠지 행복해 보인다~~
         2012년 시즌 전 ~~[[박현준]]~~, [[유원]], [[김태군]] 등과 함께 팀 내 체력 테스트에 탈락하며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해 우려를 샀다.
         6월 16일 군산 [[월명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원래 선발로 예정되었던 [[벤자민 주키치]]가 갑자기 배탈과 구토 증을 보이자 임시 [[선발 투수|선발]]로 긴급 투입되어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 등판했다. 7이닝 동안 96투구수 4피안타 1사구(死球) 3탈삼진 1실점 비자책점으로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5:1로 승리하여 데뷔 후 10년 만에 첫 선발승을 거두었다. ~~선발 체질~~
         6월 22일 [[잠실 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등판, 5⅓이닝 96투구수 7피안타 1사사구 3탈삼진을 기록하였다. 팀이 스코어 2:3으로 앞서던 6회초 2사 1, 2루 황에서 마운드에서 내려갔으나 다음 투수인 [[이동현]]이 대타 [[홍성흔]]을 2루수 플라이로 잡아 우규민의 실점과 자책점은 2점에 그쳤고 우규민은 승리 투수의 요건을 갖췄으나, 팀이 스코어 3:5로 앞선 9회초에 올라온 마무리 [[봉중근]]이 2사 1루 황에서 [[강민호]]에게 동점 투런포를 맞는 바람에 승리가 날아갔고 ~~본격 역지사지~~ 팀도 연장 12회의 접전 끝에 6:5로 역전패를 당했다. 하지만 투구 내용이 나쁘지 않아서 앞으로 고정선발이 될 확률이 높았다.
         2012년에 58경기 92⅔이닝 4승 4패 1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3.30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던 한편, 이 해에 43경기 이 등판한 투수들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등유규민에서 [[노예(야구)|노예]]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특별히 구질이 개발되거나 구속이 올라간 건 아니라는 점에서 [[경찰 야구단|경찰청]] 복무를 통해 멘탈이 당히 단단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군대 다녀와서 실력이 늘어난 케이스라고 봐도 무방할 듯.[* 그러나 백도어, 프론트 슬라이더의 예리함이나, 본인의 투구 폼 조절 같은(황에 따라 언더에서 사이드를 넘나드는 점) 완급 조절 등을 봤을 때 군대에서 뭔가 단단히 깨우친 건 분명하다.]
         '''LG의 사이드암 에이스로 등극하다'''
  • 최준석 . . . . 110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대구칠성초 - 포항제철중 - [[포항제철고]] - 사이버대[* 당시 세민디지털대.] ||
         ||<#ffffff><tablewidth=100%><-5><:> '''{{{#000000 최준석의 수 및 역임 주장 경력 }}}''' ||
         ||||||<#000000><:> {{{#ffffff 수 기록}}} ||
         ||<-5><#151B54><:>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width=150]] [br] '''[[한국프로야구/2010년|{{{#ffffff 2010년}}}]] [[KBO 리그|{{{#ffffff 한국프로야구}}}]] [[1루수|{{{#ffffff 1루수}}}]] [[KBO 골든글러브|{{{#B8860B 골든글러브}}}]] [[KBO 리그 골든글러브 역대 수자|{{{#ffffff 수자}}}]]''' ||
         대단히 몸집이 크고 느린 선수.[* 사직구장 펜스 직격타에도 2루에 못갈 정도다.] [[KBO]] 프로필 187cm/130kg 라고 나와있지만, 최소 150kg~~[[김정은]]~~은 넘었다는게 중론이다. [[이대호]]와 옆에 있으면 이대호가 날씬해보일 정도. 이대호가 더 키가 크긴 하지만(194cm) 비슷한 키에 이대호가 125kg라는걸 생각하면 190cm 가까운 장신에 비대한 체격을 가진 최준석은 일반 체중계로 잴수있는 체중(150kg)은 훨씬 넘었을 확률이 높다. 야구선수 특성 기본적인 체중만 해도 100kg에 가까울 테니...[* 삐쩍 마른 [[조승수(야구선수)|조승수]]조차 키가 192cm이다 보니 몸무게가 85kg이나 나간다. 최준석과 비슷한 신장에 같은 [[1루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박병호]], [[오재일]], [[채태인]]등도 100kg 전후의 거구. 최준석과 비슷한 체형의 선수로 2017년 kt에 입단한 1루수 한기원이 있다. (지금은 살을 뺀 태) 프로필 으로는 182cm/130kg이지만 실제로는 141kg라는게 기사에 나온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뛰어난 장타력에도 불구하고 2차 9라운드에 지명되었다.(주말리그와 전국 대회 성적 편차가 큰 것도 있었지만.)]
         이 때는 신인이라 2002년부터 2004년까지 12경기에 포수로 출장했다. 그리고 절친 [[이대호]]와 그의 형 이차호와 같이 동래 모처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더블사이즈 [[침대]] 하나에 [[이대호]]와 같이 누워서 잤다(…).~~ 침대가 뭔 죄래? 침대: 아니 이 녀석들이?~~
         믿기 힘들겠지만, 입단 당시엔 100m를 12초에 끊는 호타준족형의 포수였다고 한다. 2017년 지금은 50m 12초도 힘들다고 한다. 그러다 위에서 언급한 [[이대호]]와 같이 살던 시기에 거의 매일 [[야식]]을 같이 먹으며 살이 쪄서 주루 능력은 많이 줄게 되었다. 2005년엔 그 당시 주전 [[최기문]]의 병풍사건 연루와 부 등으로 출전 기회가 늘었지만, 포수가 아니라 [[지명타자]]로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이 해 [[526 대첩]]의 웅으로, 9회초 11:11 동점 황에서 [[신윤호]]에게 결승 2점 [[홈런]]을 뽑아낸 적이 있다. 최종적으로는 8홈런 42타점으로 거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기존 1루수 [[장원진]]의 노쇠화가 보이는 황에서 1루수 및 지명타자로 본격적으로 기회를 받기 시작했다. [[고민]]에 밀려 1루에서 자주 출전하던 [[안경현]]과 나누어 출전했으며[* 다만 이때까지는 1루수보다는 지명타자로 더 많이 출전했다.], 2006년에는 이적 이후 .264 .343 .404의 슬래시 라인과 10개의 홈런으로 가능성을 보여줬고, 2007년에는 .244의 낮은 타율을 기록했지만 121경기에서 1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장타툴 하나는 확실함을 보녀줬다.
         그러나 2008년에는 주전 1루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225 .318. 361의 슬래시라인에 홈런도 67경기 6홈런에 그치며 대타요원으로 밀려났다. 이 해 두산 1루자리는 팀 타선의 최대 구멍이나 다름 없었던 황이었는데[* [[장원진]]은 노쇠화로 이미 지난시즌부터 밀려나 2008년에는 1군 출전 자체가 없었고, [[안경현]] 역시 나이를 감안했을때 노쇠화는 필연적이었다. 결국 최준석이 활약해주고 백업을 [[정원석]]이 맡아줘야 하는 황이었는데, 최준석이 삽을 들어버렸다...], 최준석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봐도 될 황.
         당히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팀의 고정 1루수와 클린업 트리오로 자리잡았다.
         2010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KBO 골든글러브]]를 수했다. 수 소감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 광을 돌린다."''' 라고 감동스러운 코멘트를 남겼다.
         2012년 4월 8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손승락]]을 대로 결승 3루타를 기록, 김진욱 감독에게 첫 승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김진욱(야구)|김진욱]] 감독의 신임을 받았는데도 삽을 계속 푸면서 두산팬들의 욕을 들어 먹었고, 결국 2012년에는 기대와는 달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였다. [[김동주(타자)|김동주]]가 부으로 골골대면서 중심 타선이 빈약해졌고 [[김현수(1988)|김현수]]가 어떻게든 분투했지만 3할 언저리를 왔다갔다하며 역시 부진했던 탓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는 출장하지 못했으나 10월 11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3차전 스코어 1:0으로 팀이 앞선 1회초 2사 1루 첫 타석에서 [[롯데 자이언츠|롯데]]의 [[선발 투수]] [[라이언 사도스키|사도스키]]를 대로 투런 홈런을 쳐내며 팀의 스코어 7:2 승리에 공헌했다.
         군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아래에서도 언급할 무릎 수술 문제로 면제를 받았다. 문제는 수비위치인데, 1루에 붙박이로 들어가려고 해도 [[김진욱(야구)|수비 잘하는 선수를 좋아하는 감독 특성]] [[오재원]]이나 김현수에게 밀리며, 지명타자 자리에는 [[홍성흔]]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지라 쉽지 않다.
         부이 예외로 빨리 회복되었는지 시즌 초부터 1군에서 출장하기 시작했다. 4월엔 조금 부진했지만 5월 들어 방망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FA를 앞둔 황이라 그런지 3할대의 타율에 홈런도 쳐주며 쏠쏠히 활약하고 있지만, 좌투 선발 대가 아닌한 거의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 태라면 [[FA 제도|FA]] 선언 후 타팀으로 떠나지 않을까 팬들은 우려하고 있다.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최준석/2013 포스트시즌)]
         '''2013 시즌 두산 가을야구의 웅'''
         시즌 종료 후 [[FA 제도|FA]]를 선언했으며 11월 16일까지의 두산과의 우선 협에 실패하여 [[손시헌]],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과 함께 시장에 나왔다.나중에 롯데NC의 무트레이드로 NC로 이적됬다.
         많은 두산 팬들이 최준석의 이적을 아쉬워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워했다. [[손시헌]],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은 [[NC 다이노스]]로 이적해버리는 바람에 규정선수를 얻을 수 없었던 것에 비해 최준석은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 덕분에 보선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 박신혜 . . . . 108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박신혜의 수 및 후보 목록|수 목록]]
         | 웹사이트 = [http://www.saltent.co.kr/artist/park-shin-hye/ 솔트엔터테인먼트 박신혜]<br>{{인스타그램|ssinz7}}
         2003년 [[이승환]]의 '꽃' 뮤직 비디오를 통해 데뷔하였고, 같은 해 방 된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을 연기했다. 드라마 《[[천국의 나무]]》, 《[[미남이시네요]]》, 《[[이웃집 꽃미남]]》, 《[[속자들]]》, 《[[피노키오 (드라마)|피노키오]]》, 《[[닥터스 (드라마)|닥터스]]》와 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7번방의 선물]]》, 《[[의원]]》 , 《[[침묵]]》, 《[[형]]》 등에 출연하였다.
         * [[중앙대학교]] 연극화학부 연극전공 학사
         [[중앙대학교]] 수시 2학년 1학기 모집에서 미디어공연대학 연극화학부 연극(연기) 전공에 응시하여 합격해 2008년 입학했다.<ref>{{뉴스 인용|제목=고아라·박신혜 중앙대 연극화학부 수시합격 |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9&aid=0000198659|출판사=노컷뉴스 |저자=이지현|날짜= 2007-10-31|확인날짜=2016-02-15}}</ref> 2016년 2월 15일, 8년만에 예술대학 학위를 수여 받고 졸업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8년만에 대학 졸업, 졸업장 들고 '함박 웃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8&aid=0003630219|출판사 =스타뉴스 |저자 =문지|날짜 =2016-02-15|확인날짜=2016-02-15}}</ref><ref>{{웹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6021514330231788&type=1&outlink=1|title=박신혜·유리·수, 중앙대 연극과 졸업..캠퍼스와 작별(종합)|publisher=StarNews|accessdate=2016-02-15}}</ref><ref>{{웹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6021514524686335&type=1&outlink=1|title=박신혜, 8년 만에 중앙대 졸업..캠퍼스 밝히는 미소|publisher=StarNews|accessdate=2016-02-15}}</ref>
         박신혜는 2001년, [[이승환]]의 7집 앨범 타이틀곡 〈사랑하나요〉 뮤직 비디오로 출연하며 데뷔하였다. 이후 2003년에도 이승환의 〈꽃〉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박신혜는 당초 배우지망생이 아닌 가수를 꿈꾸는 연습생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오디션을 본 2003년 12월 첫 방 된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인 한정서 역을 맡아 브라운관에 데뷔하였다.<ref>{{웹 인용|url=http://globerove.com/south-korea/tree-of-heaven-korean-drama/3740|title=Tree of Heaven Korean Drama|publisher=GlobalRove|accessdate=2014-09-0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15531/http://globerove.com/south-korea/tree-of-heaven-korean-drama/3740|보존날짜=2014-09-08|깨진링크=예}}</ref><ref name="hancinema1">{{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tree-of-heaven--a-new-tryout-for-a-resurgence-of-korean-wave-5387.html|title='Tree of Heaven': a new tryout for a resurgence of Korean Wave|publisher=The Korea Herald via Hancinema|accessdate=2013-10-08}}</ref><ref name="hancinema2">{{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park-sin-hye-invited-to-photo-exhibition-for-korean-top-stars-6302.html|title=Park Shin-hye Invited to Photo Exhibition for Korean Top Stars|publisher=KBS Global via Hancinema|accessdate=2013-10-08}}</ref> 이 작품에서 그녀는 14살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어린 소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싱그럽고 풋풋한 첫사랑 감정을 첫 연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출중한 연기를 선보이며, 안방극장의 뜨거운 사랑과 지지를 받았고 그 당시 이례적으로 아역들의 분량이 1회 늘어나기도 했다. [[SBS 연기대]] 아역을 수하였다. 당시 연출을 맡은 이장수 감독은 박신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인용문2|“(박신혜씨 연기를) 정말 잘해요. 연기한 걸 직접 한 번 봐야하는데…우리나라 배우들이 자질이 정말 뛰어나다는 걸 신혜를 보면 느낄 수 있어요. 비록 신인이지만 잘 할 것으로 봐요”|MBN스타 2016년 7월 8일자 기사<ref name="mbn">{{뉴스 인용 |제목 =[M+TV피플] 박신혜, 꾸미지 않아 더 아름다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0989093|출판사 =MBN스타 |저자 =금빛나 |날짜 = 2016-07-08 |확인날짜 =2016-07-10 }}</ref> 중}}
         박신혜는 이후 단막극 《[[드라마시티]] - 첫차를 기다리며》(2004),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 베리 메리 크리스마스》(2004), 《새 아빠는 스물 아홉》(2005)와 《한뼘 드라마》(2004), 《베스트극장 - 어느 멋진 날》(2005), 《드라마시티 - 키다리 아저씨》(2005)와 시트콤 《[[혼자가 아니야]]》(2004-05),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연기력을 다져나갔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퓨전 사극 드라마 《[[비천무]]》에 캐스팅 되어 중국 로케 촬하였다. 그리고 2006년 2월, 첫 방한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서 여주인공 하나 역에 캐스팅 되었고, ‘천국의 계단’에서 그녀를 발탁했던 이장수 감독은 여주인공으로 고등학생이었던 박신혜를 또다시 발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인터뷰> 드라마 '천국의 나무' 여주인공 박신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19715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정열 |날짜 = 2006-01-16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4월, 화 《[[도마뱀 (화)|도마뱀]]》으로 첫 스크린 데뷔를 하였다. 이듬해, 2007년 황인뢰 감독은 드라마 《[[비천무]]》의 제작 현장에서 눈여겨본 박신혜에게 드라마 《[[궁S]]》의 귀족 소녀 신세령 역으로 캐스팅했으나 이 드라마는 전작과 달리 진부한 내용과 설정으로 흥행에는 크게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잘 자라줘서 고마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02569|출판사 =텐아시아 |저자 =최지은 |날짜 = 2009-10-28 |확인날짜 =2015-04-18 }}</ref> 같은 해 5월 개봉 된 호러 화 《[[전설의 고향 (2007년 화)|전설의 고향]]》과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에 출연했다. 7월부터 방 된 드라마 《[[깍두기 (MBC)|깍두기]]》에서는 절에서 자란 여주인공 장사야 역을 맡아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등 파격 변신을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문희' 후속 드라마 '깍두기' 주인공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0081490|출판사 =OSEN |저자 =김지연 |날짜 = 2007-07-19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예능 프로그램 《[[환의 짝꿍]]》의 진행을 맡아 [[MBC 방송연예대]] 쇼버라이어티부문 여자신인을 수했다.
         === 2009-2015: ''미남이시네요''와 ''속자들'', 한류 스타로 발돋음 ===
         박신혜는 2009년, 드라마 《[[미남이시네요]]》로 이후 1년 반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 극중 속세와 차단된 수녀원을 나와 쌍둥이 오빠 고미남을 대신해 비밀과 가십, 계산과 계약으로 움직이는 연예계에서 살아 나가는 고미녀 역을 연기하며 배우 인생 전환점을 맞이했고, 일본 및 중화권에서도 인지도를 높히며 한류 퀸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51058 |title=‘미남이시네요’가 ‘아이리스’에 기죽지 않는 이유 |출판사=일간스포츠 |저자= 정지원|날짜=2009-10-30 |확인날짜=2016-12-29}}</ref><ref>{{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jang-geun-seok-you-re-beautiful-beats-winter-sonata-33223.html |title=Jang Geun-seok "You're Beautiful" beats "Winter Sonata" @ HanCinema :: The Korean Movie and Drama Database |publisher=Hancinema.net |date=2011-09-14 |accessdate=2016-12-29}}</ref> 나중에 박신혜는 인터뷰에서 “성인이 돼 처음 한 작품으로, 아역이 아닌 ‘박신혜’라는 한 여배우의 시작을 알리게 해준 작품”이라고 ‘미남이시네요’에 대해 말했다.<ref name="mbn" /> 이듬 해, 2010년 박신혜는 로맨틱 코미디 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연애 조작 요원 오민 역을 맡아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과 공연하며 화는 260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대만 드라마 《선풍관가 旋風管家》에서 샤오즈 역을 맡아 출연하였고, 2011년 방되었다.
         박신혜는 2011년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에서 가야금을 전공하는 큼한 여대생 이규원 역을 연기해, [[정용화]]와 다시 공연했다. 예술대학을 배경으로 풋풋한 청춘의 사랑과 우정을 그려내겠다는 취지로 시작 됐지만 연이은 시청률 부진으로 15회로 조기 종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시청률 부진 속 <넌 내게 반했어>, 15회로 종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198457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미나 |날짜 = 201-08-09 |확인날짜 =2013-09-01 }}</ref><ref>https://www.soompi.com/2010/09/01/george-hu-is-park-shin-hyes-combat-butler/</ref> 이듬 해, 2012년에는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걱정마세요 귀신입니다》에서 본인이 귀신이란 걸 자주 망각하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생기 넘치는 귀신 연화 역을 연기해 호평을 받아 [[KBS 연기대]] 단막극 여자연기을 수했다. 박신혜는 2013년 초 개봉 되어 역대 여덟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화 《[[7번방의 선물]]》에 성인 예승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english.yonhapnews.co.kr/culturesports/2013/03/15/27/0701000000AEN20130315007900315F.HTML|work=[[연합뉴스]]|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nwww.koreaherald.com/view.php?ud=20130315000902|work=The Korea Herald|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last=Ji|first=Yong-jin|title=MIRACLE IN CELL NO. 7 Passes MASQUERADE to Become 3rd Most Successful Korean Film|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2324|work=Korean Film Council|accessdate=2013-03-20|date=19 March 2013}}</ref> 같은 해 1월 첫방 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에서 사람 만나길 두려워 하는 히키코모리 고독미 역을 연기했고, 제 나이와 성격에 어울리는 밝고 씩씩한 여대생의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f name="mbn" /><ref>{{웹 인용|url=http://www.soompi.com/2012/10/31/park-shin-hye-and-yoon-shi-yoon-to-star-in-new-drama-flower-boy-next-door/|title=Park Shin Hye and Yoon Shi Yoon to Star in New Drama "Flower Boy Next Door"|date=June 26, 2012|accessdate=February 7, 2012|publisher=soompi}}</ref> 박신혜는 코오롱스포츠 4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 된 '웨이 투 네이처 필름 프로젝트 단편 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에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가위바위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02356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선필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이후, 2013년 10월부터 방 된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 《[[속자들]]》에서 가난하지만 당당한 여고생 차은 역을 맡아 성인 연기자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kdramastars.com/articles/13557/20131228/2013-kdramas-that-got-the-best-ratings.htm |title=2013 Kdramas That Got The Best Ratings : Drama Stories |publisher=KDramaStars |date= |accessdate=2016-12-29}}</ref> 이 작품을 통해 국내를 넘어 아시아권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면서 여배우 최초로 ‘Dream of Angel’라는 타이틀의 아시아투어를 하는 등 부동의 인기를 누리는 한류스타로서 입지를 다졌다.<ref>{{뉴스 인용|title=Park Shin Hye First Female Actress to Tour Asia|url=http://www.kdramastars.com/articles/8567/20130315/park-shin-hye-first-female-actress-tour-asia.htm|accessdate=31 January 2014|newspaper=kdramastars|date=15 March 2013}}</ref> [[SBS 연기대]] 중편드라마부문 여자우수연기, 베스트 커플, 10대스타 3관왕을 수했다.
         박신혜는 2014년 11월부터 방 된 드라마 《[[피노키오 (드라마)|피노키오]]》에 캐스팅 되어 《[[천국의 나무]]》 PD였던 조수원 감독과 9년만에 재회하게 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피노키오' 박신혜 "작품 기다리는 배우, 취준생의 심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404814|출판사 =엑스포츠뉴스 |저자 =김승현 |날짜 = 2014-11-06 |확인날짜 =2014-11-10 }}</ref> 이 작품은 방송국 사회부 기자들의 삶과 24시간을 함께 하며 전쟁같이 보내는 이들이 설레는 관계로 발전해가는 풋풋한 청춘을 그린 드라마로 박신혜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가의 증후군인 '피노키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최인하 역을 연기하였고, 실제 사회부 기자들의 실이나 문화를 현실적으로 잘 반해 호평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40904000373|title=Park Shin-hye confirmed to star in ‘Pinocchio’|publisher=The Korea Herald|accessdate=2014-09-08}}</ref><ref>{{웹 인용|title=Cultural Exports to Surpass 1 Trillion Won This Year|url=http://www.businesskorea.co.kr/english/news/lifestyle/8231-culture-trade-balance-cultural-exports-surpass-1-trillion-won-year|work=Business Korea|accessdate=2015-10-24|date=2014-12-26}}</ref><ref>{{웹 인용|title=‘Pinocchio’ sells distribution rights to China for record price|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411241750324868840_2|work=Kpop Herald|accessdate=2015-10-24|date=2014-11-24}}</ref> 박신혜는 [[SBS 연기대]] 중편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과 베스트 커플, 10대스타 3관왕을 수했다. 또한 제51회 [[백예술대]]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인기을 수하는 대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5년 연속 인기…대세 여배우 입증 [51th 백]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612085|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이은지 |날짜 = 2015-05-26 |확인날짜 =2017-09-20 }}</ref> 같은 해 12월, 개봉 된 사극 화 《[[의원]]》에 왕비 역을 연기하였다.
         2016년 6월, 첫 방 된 메디컬 드라마 《[[닥터스 (드라마)|닥터스]]》에 캐스팅 된 박신혜는 학창시절 무기력한 반항아에서 사랑이 충만한 국일병원 신경외과 펠로우 의사로 성장하는 유혜정 역을 맡아<ref>{{뉴스 인용|제목=박신혜·김래원, '닥터스' 본방사수 독려 "오늘 첫방 아시죠?"|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6210100156110010947&servicedate=20160620|출판사=스포츠조선|저자=정유나|날짜=2016-06-20|확인날짜=2016-06-20}}</ref> 한층 더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21.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따뜻한 감성 드라마로 호평를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이게 바로 인간 승리…'공부의 신' 됐다 (종합)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2374|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김수현 |날짜 = 2016-06-21 |확인날짜 =2016-06-21 }}</ref> 연출을 맡은 오충환 감독은 제작발표회 당시 박신혜에 대해 “촬장 공식 명칭이 ‘우리 신혜’다. 오전, 오후로 미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처음으로 내가 열심히 해서 배우를 잘 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도 좋고 인성도 좋다”고 말했다.<ref name="mbn" /> 박신혜는 연말 [[SBS 연기대]] 장르&판타지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 10대스타 3관왕을 수했우며, 제53회 [[백예술대]]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을 통해 박신혜는 20대 여배우 중 가장 주목 받는 한류 스타이자 대표하는 ‘흥행배우’로 성장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종기획②] '3연속 흥행퀸' 박신혜, 믿고 보는 20대 女배우 우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807409|출판사 = 마이데일리|저자 =최지예 |날짜 = 2016-08-24 |확인날짜 =2016-09-01 }}</ref><ref>{{뉴스 인용 |제목 =[SS이슈]'닥터스' 박신혜,안방 흥행여왕+20대 CF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9345|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조현정 |날짜 = 2016-07-12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11월 개봉 된 코미디 화 《[[형 (2016년 화)|형]]》에서 국가대표급 오지랖 유도코치 이수현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만났다하면 케미퀸…이번엔 조정석x도경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23745|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6-11-08 |확인날짜 =2016-11-10 }}</ref>
         박신혜는 2017년, [[정지우 (화 감독)|정지우]] 감독의 화 《[[침묵 (2017년 화)|침묵]]》에서 변호사 최희정 역을 연기했다. 화는 약혼녀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이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쫓는 남자 ‘임태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ref>{{뉴스 인용 |제목 =최민식x박신혜x류준열 '침묵' 11월 개봉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88848|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7-09-20 |확인날짜 =2017-09-20 }}</ref> 2017년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박신혜는 2017년 6월부터는 지난 2013년 첫 투어 이후 4년만에 2017 아시아투어의 첫 스타트 무대를 홍콩에서 성황리에 마쳤으며, 이번 아시아투어는 올 해로 네 번째로 투어 수익금 전액은 기아대책에 기부되었다. 이외에도 대만, 필리핀, 일본, 싱가포르, 태국에서도 열릴 예정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아시아투어 첫 무대 성료…"MC 없이 단독진행"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105412|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정유나 |날짜 = 2017-06-12 |확인날짜 =2017-09-12 }}</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한류여제’ 파워 과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76478|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이정연 |날짜 = 2017-07-04 |확인날짜 =2017-09-12 }}</ref>
         박신혜의 가족은 5대째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주최하는 해비타트 집 짓기 봉사에도 자주 참석해왔고,<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5대째 기독교’… 부모도 교회서 만나 결혼 |url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92772/20160801/%EB%8B%A5%ED%84%B0%EC%8A%A4-%EB%B0%95%EC%8B%A0%ED%98%9C-%EC%99%B8%EB%AA%A8%EB%A7%8C%ED%81%BC-%ED%9B%88%ED%9B%88%ED%95%9C-%EB%B4%89%EC%82%AC%ED%99%9C%EB%8F%99-%ED%99%94%EC%A0%9C.htm|출판사 = |저자 = |날짜 = 2016-08-01 |확인날짜 =2013-09-01 }}</ref> 성인이 된 후에는 생일이 돌아오면 가족과 함께 '밥퍼' 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최일도 목사 “조용한 하늘나라의 심부름꾼” |url =http://www.christiantoday.co.kr/articles/292011/20160704/%EB%8B%A5%ED%84%B0%EC%8A%A4-%EB%B0%95%EC%8B%A0%ED%98%9C%E2%80%A6-%EC%B5%9C%EC%9D%BC%EB%8F%84-%EB%AA%A9%EC%82%AC-%EC%A1%B0%EC%9A%A9%ED%95%9C-%ED%95%98%EB%8A%98%EB%82%98%EB%9D%BC%EC%9D%98-%EC%8B%AC%EB%B6%80%EB%A6%84%EA%BE%BC.htm|출판사 =크리스천투데이 |저자 =김진 |날짜 = 2016-07-04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 수익금을 현지 NGO나 사회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2007년, 박신혜는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의 순수제작비를 제외한 작가, 연출자, 연기자들의 원고료와 연출료 및 출연료 전액 등의 수익금을 NGO 단체를 기부하는 것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원고료-출연료 기부...첫 도네이션 극 방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0632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진도 |날짜 = 2007-05-14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2년에는 한국 공식팬클럽 ‘별빛천사’와 함께 한 한국 팬미팅 티켓 판매금 전액을 팬들과 대표적인 [[NGO]] 단체 ‘기아대책’에 기부하며, 박신혜가 봉사를 다녀온 아프리카 가나의 별빛 천사 마을을 위해 후원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노래선물, ‘팬 위한 노래’ 직접 작사한 곡 ‘최초 공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2231659|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김숙희 |날짜 = 2012-02-20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7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후지TV 방송을 기념해 [[정용화]]와 함께 7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팬미팅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팬미팅 수익의 일부를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동일본대지진의 지원금으로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수익금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36717|출판사 =스포츠조선|저자 =김표향 |날짜 = 2012-07-17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3년 일본 팬미팅 후에는 기아대책 일본지부에, 필리핀 팬미팅의 수익금도 현지에 되돌려 한류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中 반려동물 성금 기부… 경시풍조에 경종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56438|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이현아 |날짜 = 2015-04-05 |확인날짜 =2015-04-07 }}</ref> 같은 해 1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제작발표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쌀 화환을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같은 해 2월, 한국 팬미팅 수익 전액과 일본 팬미팅 수익 일부를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4월에는, 서울 등포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에서 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박신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 팬클럽과 공식 팬클럽 회원들은 쌀 화환 520kg과 공식 팬클럽은 '별빛천사는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은 쌀 화환을 보내고, 이날 받은 쌀 화환 520kg은 박신혜가 지정하는 기부처로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쌀 화환 520kg 어려운 이웃에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30294|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6월 24일, 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대사와 해설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시·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화를 감할 수 있게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고, 박신혜는 화의 앞부분에 내레이터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박신혜, 시청각 장애인 위해 재능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48112|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김미리 |날짜 = 2013-06-24 |확인날짜 =2013-09-01}}</ref>
         박신혜는 또한 2011년부터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결연아동 아반네를 결연후원 해오고 있으며 팬들과 해외 빈곤국에 센터 세우는 일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팬과 함께 봉사활동 나선 별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196660|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김원겸 |날짜 = 2014-04-08 |확인날짜 =2014-04-09}}</ref> 국내외 팬들과 전 세계 빈곤국가 아이들의 교육적, 정서적 지원을 위한 ‘별빛천사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1호 센터로 서부 아프리카 가나 ‘신혜센터(Shin Hye Center)’가 2013년 11월 완공되어 5백여 명의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기아대책 홍보대사 박신혜, ‘러브백’ 특별행사 참여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5291628173210|출판사 =뉴스엔 |저자 =김찬미 |날짜 = 2014-05-29 |확인날짜 =2014-05-30}}</ref> 2014년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5,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189349|출판사 =매일경제 |저자 =이슈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stoo.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42515493577725|출판사 =스포츠투데이 |저자 =김은애 |날짜 = 2014-04-25 |확인날짜 =2014-04-26 }}</ref> 또한 자신의 SNS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노란리본 사진으로 변경, 노란리본 캠페인에도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기부 이어 노란리본 캠페인 동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242446|출판사 =스포츠경향 |저자 =온라인뉴스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 }}</ref> 2015년, 박신혜는 ‘2015 Dream of Angel’ 타이틀로 아시아투어에 나섰고, 해 팬미팅 수익을 [[NGO]] 단체 ’기아대책’의 별빛천사마을 만들기와 중국의 유기동물 보호단체 ‘타소원’에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해 팬미팅 수익금 전액 기부.."한류스타 이례적 행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217288|출판사 =이데일리 |저자 =강민정 |날짜 = 2015-03-30 |확인날짜 =2013-09-01 }}</ref> 4월, 박신혜는 큰 피해를 입은 [[네팔]] 국민들을 위해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를 통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네팔 지진 희생자 위해 3천만원 후원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54697|출판사 =OSEN |저자 =정유진 |날짜 = 2015-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7월, 박신혜는 아프리카 가나의 신혜센터에 이어 필리핀 마닐라에 신혜센터의 건립을 진행했다. 이에 박신혜와 소속사 솔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센터건립에 앞서 필리핀 쌈빨록 지역의 아이들과 1:1 결연을 맺었고, 지난 3월 박신혜는 필리핀의 결연아동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아동결연센터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센터 건립에 앞서 건축기념식을 가졌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89585|제목=박신혜가 또… 필리핀에 아동복지시설 ‘신혜센터’ 건립|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홍세|날짜 = 2016-07-22|확인날짜=2016-12-09}}</ref>
         2016년 12월, 박신혜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대구 서문시장 화재피해 이웃돕기를 위해 5천만 원을 기부한데 이어<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aid=0000931937&oid=213&lightVersion=off|제목=박신혜 측 "서문시장 5천만 원 기부, 소속사도 몰랐다" [공식입장]|출판사 =TV리포트|저자=박설이|날짜 = 2016-12-29|확인날짜=2016-12-09}}</ref> 밥공동체복지재단를 통해서도 5,000만 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26953|제목=박신혜 또다시 선행…연탄은행에 5000만 원 기부 [공식]|출판사 =스포츠동아|저자=홍세|날짜 = 2016-12-14|확인날짜=2017-01-01}}</ref>
         == 수 및 후보 목록 ==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107회 일치
          * 공업력이 80 이일 경우 자금 3,000
          독재국가 전용 디시전. 랜덤한 장군 한 뭉탱이의 모가지를 날린다. 지 유닛의 사기가 3% 증가하지만 불만도도 함께 오른다.
          자금과 보급품을 소모해 워게임을 벌인다. 랜덤한 장군 몇몇의 레벨이 승한다.
          * 공업력이 80 이일 경우 자금 500
          시장 경제를 채택할 시 가끔씩 나오는 "뱅크 런" 이벤트의 해결책. 국가 자금을 부어 공업력 효율을 3% 증가시키고 불만도를 3% 낮춘다. 뱅크런 이벤트의 효과가 공업력 효율 -3%, 불만도 +3%라는걸 보면 사실 "뱅크 런"으로 인한 손실을 메꾸는 디시전.
          * 공업력이 80 이일 경우 자금 500
          * 공업력이 80 이일 경우 자금 500
          대규모 공세를 준비한다. 보급품 10,000을 소모해 모든 지 유닛의 전투 능력을 30일간 향시킨다.
          세계 각국에게 독일은 평화를 바란다고 선전한다. 호전도가 1감소하는 동시에 프랑스, 국, 소련, 폴란드, 이탈리아, 일본, 헝가리,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 불가리아와의 관계도가 5-10 오른다.
          독일의 성장을 방해하는 나약한 국제연맹에서 탈퇴한다. 자금 100을 소모해 불만도를 2% 감소시킨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국, 폴란드, 덴마크,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와의 관계도가 50 감소한다.
          오스트리아 내 나치 당원들이 쿠데타를 벌이게 한다. 자금 100을 소모해 불만도를 2% 감소시킨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국, 폴란드, 덴마크,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와의 관계도가 20 감소한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도는 10 증가한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프랑스의 통치를 받게된 자르 지역을 국민투표를 통해 다시 독일의 일부로 만든다. 프랑스로부터 자르브뤼켄을 할양받는 동시에 불만도가 5% 감소하며 공업 효율이 10% 승한다.
          베르사유 조약을 무시하고 라인란트에 군부대를 주둔시킨다. 불만도가 2% 감소하며 자금이 500 증가한다. 동시에 외교 슬라이더도 강경파로 1 이동한다. 호전도가 10 오르며 프랑스, 국, 벨기에, 네덜란드와의 관계도가 5-15 하락한다. 평화시 공업력이 10% 증가하지만, 국과 프랑스 역시 "전쟁 준비" 이벤트로 평화시 공업력 패널티가 10% 감소한다. 이벤트로 벨기에가 연합국에서 탈퇴한다.
          1925년 맺어졌던 로카르노 조약을 파기한다. 불만도가 0.5% 감소하며 메츠, 콜마르, 스트라스부르, 룩셈부르크, 오이펜을 토 분쟁 지역으로 만든다. 호전도가 1 오르며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와의 관계도가 -5 하락한다.
          일본과 이탈리아에게 5년간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호간 정보 교류 및 지원을 제안한다. 당연히 소련과의 관계도가 떨어지며, 정치 슬라이더가 닫힌 사회로 한 칸, 간섭주의로 한 칸 이동한다. 일본의 만주국 승인 및 중국 내 독일 고문관 철수 요구를 들어주면 일본은 자동적으로 반 코민테른 조약에 가입한다.
          스페인 내전에서 스페인국을 지원하는 디시전. 병력과 물자를 지원하는 선택지와 엄청난 양의 병력과 물자를 지원하고 스페인국 군사통제권도 가져오는 선택지가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스페인국, 이탈리아와의 관계도가 승하며 국, 프랑스, 스페인 공화국, 소련과의 관계도가 하락한다. 또한 호전도도 올라간다. 스페인 내전이 끝나면 지원군 귀환 이벤트와 함께 몇몇 공군 교리의 청사진을 획득한다.
          * "이탈리아가 강철의 조약에 서명하다" 이벤트 발생. 이후 오스트리아와 관계도 200이거나 오스트리아와 동맹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는 디시전. 오스트리아 국토를 획득하고, 300명의 인력과 지휘관을 습득하고 불만도도 10 내려가지만 호전도가 10 오르며 국,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 헝가리와의 관계도가 하락한다. 또한 정치 슬라이더가 강경파로 한 칸 이동한다. 국과 프랑스의 평화시 공업력 패널티가 "전쟁 준비" 이벤트로 10% 감소한다.
          뮌헨 조약을 통해 주데텐란트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주데텐란트 지역을 토 분쟁 지역으로 만드는 동시에 체코슬로바키아에게 해당 지역의 할양을 요구한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승인 여부에 관 없이 국,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관계도가 10-20 하락하며 독일의 호전도가 1 증가한다. 정치 슬라이더가 간섭주의로 3칸, 강경파로 1칸 이동한다. 국과 프랑스의 평화시 공업력 패널티가 "전쟁 준비" 이벤트로 10% 감소한다. 이를 체코슬로바키아가 받아들였을 시, 히틀러의 연설과 네빌 체임벌린의 연설이 재생된다.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하기 위해 압력을 넣는 디시전. 어그로를 덜 끄는 선택지로 슬로바키아를 독립시키고 체코를 잡아먹는 선택지가 있고, 어그로를 더 끄는 선택지로 체코슬로바키아를 헝가리랑 나눠먹고 헝가리를 주축군에 끌어들이는 선택지가 있다. 국과 프랑스의 평화시 공업력 패널티가 "전쟁 준비" 이벤트로 10% 감소한다.
  • 이상화 (시인) . . . . 105회 일치
          | 이름 = 이
          | 출생지 = {{국기|대한제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부]]
          | 사망지 = {{국기|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에서 위암으로 사망
          | 필명 = 호(號)는 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백아(白啞)
          | 소속 = 前 [[대륜고등학교|경북도 대구 교남고보]] 교사
          | 친척 = 이일우(백부) <br /> [[이정 (1897년)|이정]](형) <br /> 한문이(형수) <br /> [[권기옥]](형수) <br /> [[이백 (사학자)|이백]](아우) <br /> [[이오]](아우) <br /> [[박창암]](조카사위) <br /> [[이열희 (1924년)|이열희]](5촌 조카) <br /> [[최남선]](사돈) <br /> [[박중양]](사돈)
          | 웹사이트 = [http://www.sanghwa.or.kr/ 이화 기념사업회]
         '''이화'''(李相和, [[1901년]] [[4월 5일]] ~ [[1943년]] [[4월 25일]])는 [[일제 강점기]]의 [[시인]], 작가, 독립운동가, [[문학]][[평론가]], [[번역]][[문학가]]이며, 교육자, 권투 선수이기도 하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고, 호는 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이화는 [[1901년]](광무 4년) [[4월 5일]]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의 양옥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시우(李時雨)이며, 어머니는 김신자(金愼子)로 [[김해 김씨]]이다. 4형제 중 둘째이다. 형 이정은 독립 운동가이며, 셋째 아우 [[이백 (사학자)|이백]]은 한국최초의 IOC위원이자 한국 사회학계의 선구자이고 넷째 아우 이오는 정통 수렵가이자 [[바둑]] 유단자이다. 그의 집안은 [[대구]]의 명문가로 대 부잣집이었으나 아버지 이시우는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李一雨)의 자손들은 [[대구광역시|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하였다.
         할아버지 이동진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대구광역시|대구]]에 신식 학교인 우현서루를 열어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쳤고, 남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교사를 초빙, 수학, 역사, 국어, 어, 일본어 등 신식 학문을 가르쳤다. 할아버지 이동진의 뒤를 이어 큰아버지 이일우가 우현학교의 일을 맡아보았다.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했는데, [[2000년]]대 초반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학 학장 3명, 교수 10명, 의사 30명, 장군 2명, 언론·출판분야 11명을 배출하였다.<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또한 사촌 [[이악]]은 작가이자 그의 친구인 육당 [[최남선]]과 사돈이 되었고, 다른 자손들 중에는 '박작대기' [[박중양]] 집안과도 인척관계를 형성하였다.<ref name="daemyonh"/>
         열아홉 되던 [[1919년]] 대구에서 [[백기만]] 등 친구들과 함께 [[3·1 만세 운동]] 거사를 모의하다, 밀정의 추적으로 주요 인물들이 잡혀가자 [[경성부]]로 올라와 [[박태원 (1909년)|박태원]]의 하숙으로 피신, 한동안 은신하였다. [[1921년]]에 [[현진건]]의 소개로 월단 [[박종화]](朴鍾和)와 만나 〈백조〉 동인에 참여했고, [[박종화]]의 소개로 홍사용(洪思容), [[나도향]], [[나혜석]], 박희(朴英熙), [[이광수]], [[최남선]] 등 문인들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이 중 육당 [[최남선]]은 그의 큰집과 사돈간이 되면서, 그에게도 사돈이 된다. 훗날 그의 사촌 이악의 딸이 [[최남선]]의 며느리가 되었다.<ref name="daemyonh"/>
         사촌 매형인 윤홍열은 후일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위원과 [[대구시보사]] 사장을 역임했는데, 사촌 매부 윤홍열의 소개로 바로 [[충청남도]] 공주 규수인 서순애 여사를 화와 중매시켰다.<ref name="daemyonh"/> 몇 차례 연락이 오고가다가 [[1919년]] [[12월]] [[충청남도]] [[공주시|공주군]] 출신과 결혼하였다. 부인 서온순은 독립운동과 유학 등 경제적으로 불우한 환경에도 남편의 탓이나 원망을 하지 않았다 하며, 남편 사후에도 서온순은 재혼하지 않고 홀로 자녀를 키웠으며 [[1980년]]대에 사망하여 그의 묘소 근처에 안장되었다. [[1922년]] 이화는 《[[백조 (잡지)|백조]]》1~2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해 프랑스에 유학할 기회를 얻으려고 일본으로 갸루 짱 예쁘다 같이놀래 예쁜니가 좋아좋아
         [[1933년]] 교남학교(지금의 [[대륜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담당 과목은 조선어와 어, 작문이었다. 이듬해 교남학교 교사직을 사직했다. [[1934년]]에는 [[조선일보|조선일보사]] [[경북도]]총국을 경하였으나 이재와 술에 눈이 어두워서 결국 1년 만에 실패하고 다시 [[교남학교]]의 어, 작문담당 교사로 복직하였다.
         [[1937년]] [[3월]] [[만주]]에 있던 큰형 [[이정]]을 만나러 중국에 3개월간 다녀왔다. 그가 형을 만난 사실이 확인되면서 일본관헌에게 구금되었으나 특별한 혐의점이 없어 그해 [[11월]] 말경 가석방되었다. 다시 [[대구]]로 내려와 [[대륜고등학교|교남학교]]에 조선어, 어, 작문담당 교사로 복직하여 [[교가]]를 작사했다. 또한 교남학교 권투부를 창설하여 지도하기도 했다. 그는 약소 민족은 주먹이라도 잘 써야 된다며 학교 체육대회 종목에도 권투를 넣었는데, 교남학교 권투부 출신들은, 졸업후 훗날 [[대구 권투 클럽]]을 결성하였다.
         1940년 대구부 계산 2동에 집을 마련하였다. 그가 새로 마련한 집 바로 앞에는 김광제와 함께 [[국채보운동]]을 발의했던 [[서돈]] 고택이 있다.<ref name="gotack01">[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62516 헐릴 위기에서 우뚝선 이화 고택] 오마이뉴스 2008.08.13</ref> [[1940년]]말 [[대륜중학교|교남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대구부 계산2동 84번지의 집에서 주로 생활하며 독서와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그해부터 [[춘향전]]을 [[어]]로 번역하고, 이어 한국 [[국문학사]]와 [[프랑스|불란서]][[시]]정석 등을 [[한글]]로 번역을 시도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만다.
         [[1943년]] 초 갑자기 쓰러졌다가 그해 [[3월]]에 병원에서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4월 25일]] 오전 8시 45분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자택에서 [[위암]]과 [[폐결핵]]과 [[장결핵]]의 합병증으로 인해 43세의 젊은 나이로 숨졌는데 이화의 오랜 친구인 소설가 [[현진건]]도 같은 날 [[경성부]]에서 [[폐결핵]]과 [[장결핵]]의 [[합병증]]으로 숨을 거두었다.
         [[1948년]] [[3월 14일]] [[김소운]]이 발의하고 이윤수, [[구 (시인)|구]] 등이 참여하고 죽순시인구락부가 협찬하여 시인을 기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시비를 [[달성공원]]에 털었다
         이화의 고택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에 있으며, 맞은편에 서돈의 고택도 함께 위치해 있다. [[1999년]] 도시개발로 한때 헐릴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1999년]]부터 고택을 보존하자는 시민운동이 벌어졌고 [[2008년]] [[8월 13일]] 결실을 맺어 이화 고택 개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ref name="gotack01"/> 이화 시인의 고택은 [[2008년]] [[8월 12일]] 새롭게 단장되어 일반인들에게 문을 열었다. 도시개발로 헐릴 위기까지 맞았던 이화 고택이 시민들의 모금활동과 100만 서명운동 등으로 보존, 공개되었다.<ref name="gotack01"/><ref>{{뉴스 인용 |제목=[동호동락] 시인 이화 고택 근대골목 자전거 투어, 역사`문화예술 공부 기회|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6560&yy=2013|출판사=매일신문|저자=윤혜정|날짜=2013-11-14|확인날짜=}}</ref>
         [[2009년]] 초부터 [[대경대학교]] 뮤지컬학과 학생들은 이화의 일대기를 뮤지컬로 제작하였다. 대본을 맡은 학생 허윤선은 이화의 둘째 아들인 이충희를 수소문해 이화 시인의 삶에 대해 묻고 극을 구성했다.<ref name="mkros">[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609348 <nowiki>[</nowiki>민족시인 이화 일대기 창작뮤지컬로 그린다<nowiki>]</nowiki>] 매일경제 2009.11.25</ref> 이들은 지난 6개월간 시인의 삶을 기록한 책자를 참고하면서 대구시 중구 계산동 소재 이화 고택을 수십차례 방문해 당시 분위기를 몸에 익혔다. 대경대 뮤지컬과 1학년 학생 30여명은 1920년대 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저항시인으로 뜻을 굽히지 않은 이화 시인의 삶과 비극적 역사황을 담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만들었다.<ref name="mkros"/>
         [[2009년]] [[11월 30일]]과 [[12월]]에는 그의 일대기를 다룬 창작뮤지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공연되었다.<ref name="pahjeon">[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142989 민족시인 이화 일대기 창작뮤지컬 공연] 경북매일신문 2009.11.26</ref>
  • 현진건 . . . . 105회 일치
         | 출생지 = {{국기|대한제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군]]<br />(現 {{국기|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 학력 = [[대륜고등학교|경북도 대구노동학교 보통부]] 졸업 <br/> 경성 보성고등보통학교 전퇴 <br/> 일본 도쿄 세이소쿠 어학교 중퇴 <br/> [[후장 대학|중국 하이 후장 대학교]] 독일어전문부 중퇴
         | 친척 = 재종조부 현학표(玄學杓)<ref>현학표는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할아버지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현학표의 조카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재종조부가 된다.</ref> <br /> 6촌 형 현홍건(玄鴻健) <br /> 6촌 형 현석건(玄奭健) <br /> 6촌 형 [[현정건]](玄鼎健)<ref>이들은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형제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6촌 형이 된다.</ref> <br /> 6촌 누나 [[현송자]](玄松子)<ref>[[현운]](현진건의 5촌 숙부)과 그의 2번째 아내 [[배정자]] 사이에서 출생한 딸이다.</ref> <br />6촌 자형 [[이철 (1903년)|이철]](李哲)<ref>[[현송자]]의 2번째 남편이다.</ref> <br /> 6촌 아우 현성건(玄盛健) <ref>현성건 또한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이복 동생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6촌 아우가 된다.</ref> <br /> 5촌 숙부 현철운(玄轍運) <br /> 5촌 숙부 [[현운]](玄暎運)<br /> 5촌 숙부 현양운(玄暘運) <br /> 5촌 숙부 현붕운(玄鵬運)<ref>이들은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숙부에 해당하지만, 이들의 조카 현진건이 이들의 사촌 형제인 5촌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5촌 당숙이 된다.</ref> <br /> 5촌 숙부 [[현철 (1891년)|현철]](玄哲)<ref>본명은 현희운(玄僖運).</ref> <br /> 5촌 숙모 [[배정자]](裵貞子)<ref>[[현운]]의 2번째 아내이다.</ref> <br /> 장인 이길우(李吉雨) <br /> 사돈 [[박종화]](朴鍾和)<br />사돈 [[윤치호]](尹致昊)<ref>친형이자 호적 6촌 형인 현정건의 처당숙</ref><br />사돈 [[윤치]](尹致瑛)<ref>삼촌이자 호적 5촌 숙부인 현운의 사위 윤치오의 동생</ref><br />사돈 [[윤보선]](尹潽善)
         | 훈 = [[2005년]] [[8월 15일]]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현진건은 [[광무 (연호)|광무]](光武) 4년([[1900년]]) 8월 9일(양력 [[9월 2일]]) [[대구광역시|대구부]](大邱府)에서 현경운과 어머니 완산 이씨(完山 李氏) 정효(貞孝)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당시 대구군 2정목(町目),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속칭 '뽕나무골'이라 불리던 마을이었다. 어머니는 [[융희]](隆熙) 4년([[1910년]]) 6월 13일에 일찍 세을 떠났다. 그의 위로는 홍건(鴻健), 석건(奭健), [[현정건|정건]](鼎健)의 세 형이 있었는데, 맏형 홍건은 대한 제국의 육군 참령과 외국어학교(外國語學校) 부교관(副敎官)을 지냈고 칭경시예식사무위원(稱慶時禮式事務委員)을 잠시 맡기도 했다. 석건은 일본 [[메이지 대학]](明治大學)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근무했으며, 정건은 훗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나섰다.
         현진건의 집안인 연주 현씨는 [[역관]](譯官) 등의 [[잡과]](雜科) 출신을 많이 배출한 [[중인]](中人) 집안에 해당한다. 현진건의 6대조로 왜역(倭譯) 즉 [[일본어]] 통역관이었던 태형(泰衡)부터 한역(漢譯) 즉 [[중국어]] 통역관이었던 5대조 복(商福), 몽역(蒙譯) 즉 [[몽골어]] 통역관이었던 시석(時錫)에 이르기까지 모두 역관으로서 활약하였으며(각자의 처가도 또한 역관 집안이었다) 증조부 경민(敬敏)도 왜역으로 [[동래]](東萊)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현진건의 숙부인 현양운이 조민회의 후임으로 주왜공사(住倭公使)가 된 사실을 기록하면서, 운의 가계를 그의 할아버지(즉 현진건의 증조할아버지)가 왜역으로 오랫동안 동래에 머무르다가 현지 기생과의 사이에서 현양운의 아버지를 얻었고, 현양운 자신도 그 아버지가 첩에게서 본 자식이었다고 적고 있다.<ref>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 양진오, 2008, p.26</ref>
         현진건의 할아버지 학표(學杓)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내장원경(內藏院卿)직을 지냈고, 다시 경운(炅運)·철운(轍運)·운(映運)·양운(暘運)·붕운(鵬運)의 다섯 아들을 두었다. 그 중 경운이 바로 현진건의 아버지이며, 봉호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까지 올라 [[의정부]] [[외부]]의 [[통신원]] 국장과 [[전화국|전보사장]]을 지냈다. 그의 집안은 계몽사가이자 독립운동가였으나 후에 [[친일파]]로 변절하게 되는 [[윤치호]],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내무장관, [[서울특별시장|서울시장]]을 지낸 [[윤치]], 4대 대통령 [[윤보선]] 집안과 이중으로 혼반관계를 형성하였다.
         국권 피탈 뒤인 [[1915년]], 16세의 나이로 당시 경주 향리의 부호인 [[진사]] 이길우(李吉宇)의 딸 순득(順得)과 혼인하여 [[대구부]] 수정(竪町) 255번지(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 있던 처가에서 신혼생활을 하였다. 그 해 [[11월]]에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2학년 재학 중인 이듬해 [[7월]]에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세이소쿠 어학교]](正則英語學敎)에 입학하였다.
         [[1917년]] 다시 귀국하였는데, 이때 대구에서 [[백기만]](白基萬) · [[이화 (시인)|이화]](李相和) 등과 습작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이것이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문학'이었다(다만 본격적인 동인지는 아니고 작문지 정도의 수준이었다고<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4월에 현진건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5년제 세이조 중학교(成城中學校)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 3월에 다시 귀국하였는데<ref>일본 학자 시라카와 유타카에 의해 세이조 중학교 3학년 성적대장 일람표에서 현진건의 이름이 확인되어, 그가 1917년 4월부터 1918년 3월까지 실제 이 학교에 재적했음을 고증할 수 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얼마간 대구에 머물다가 집안 몰래 형 정건이 있던 [[중화민국|중국]] [[하이]](上海)로 건너 가서 [[후장 대학]](扈江大學) 독일어 전문부에 입학한다. 조선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여파가 하이에까지 커져 하이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수립되던 해인 [[1919년]] 다시 귀국하여, 당시 육군 공병 관을 지낸 당숙 현보운(玄普運)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서울로 경, 지금의 종로구 관훈동 52번지에서 살았는데, 현보운은 1919년 음력 9월 10일에 사망하고 그가 호주가 되었다. 12월에 첫딸 경숙(慶淑)이 태어났으나 이듬해에 죽고 만다.
         처음 「희생화」를 발표하던 때부터 현진건은 이미 '빙허'라는 아호를 스스로 지어 쓰고 있었는데, 대체로 그가 혼인을 올리던 1915년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1916년 사이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자신은 회고하고 있다. 다소 허무주의적 표현이 없지 않지만 '허공(虛空)에 의지한다'는 이 말이 자신의 심경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었고, 고대 중국 [[북송|송]](宋)의 문인 [[소식 (북송)|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의 구절 가운데 "넓기도 하구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서(浩浩乎! 憑虛御風而)..."란 구절에서 느낀 바가 있어 그대로 '빙허'를 자신의 아호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ref>「雅號의 由來(2)」 1930년 5월 1일자 『삼천리』제6호.</ref> [[1920년]] 11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1년]] 1월에 현진건은 다시 『개벽』에 단편소설 「빈처」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문단의 호평을 받아<ref>이때의 문인들의 평가는 성해(星海)의 「憑虛君의 『貧妻』와 牧星君의 『그날밤』을 읽은 印像」(1921년 05월 01일자 『개벽』제11호), 박종화의 「文壇의 一年을 追憶하야 現狀과 作品을 槪評하노라」(1923년 1월 1일자 『개벽』제31호)에 나타나 있다.</ref> 11월에는 다시 『개벽』에 단편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하였고, [[1922년]] [[1월]]부터 [[4월]]까지 『개벽』에 중편소설 「타락자」를 발표하였다. 작품 [[술 권하는 사회]]에서 그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나약한 지식인을 풍자하였다.
         이 전해부터 [[휘문고등학교]] 출신의 젊은 문인인 [[박종화]](朴鍾和) · [[나도향|나빈]](羅彬) · [[홍사용]](洪思容) · 이화 · 박희(朴英熙) 등과 함께 잡지 『백조(白潮)』의 동인이 되어, 『개벽』과 『백조』 두 잡지 사이를 오가며 『백조』 1호지에 수필 「춘류(迎春柳)」, 2호지에 단편소설 「유린」을 발표하고, 또 기행문 「몽롱한 기억」을 기고하면서, 7월에 『개벽』에 다시 번안소설 「고향」(치리코프 원작)과 「가을의 하룻밤」(고르키 원작)을 각각 발표하였다.
         [[1922년]] 9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ref>1년에 걸치는 「조선일보」 근무에 대해서 현진건은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초기 「조선일보」가 보여준 노골적인 친일신문 표방 태도, 친일 색채가 농후한 발행 주체들이나 수시로 뒤바뀌는 발행인으로 인해 현진건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곤란했던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당시 「조선일보」의 친일 분위기에 대해 현진건의 문우였던 박종화는 "월남 이재 선생 사장과 신석우 부사장, 민세 안재홍 편집국장 등이 취임하기 전의 초기 「조선일보」에는 양심있는 사람으로는 오래 거접(居接)할 것이 아니었다"(박종화, 「빙허 현진건 군(君)」, 『신천지』 1954.10. p.139~140)고 하였으며, 자전적 성격을 띠고 있는 현진건의 「지새는 안개」에는 「조선일보」를 빗대어 아예 "썩은내, 더러운내, 곰팡내, 음탕한내가 감도는 분위기", "도야지(돼지) 우리"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35~13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최남선]](崔南善)이 만든 동명사(東明社)에 들어간다. 그 다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창간 당시부터 민족적 색채가 농후했고, 역사지향적 성격을 추구하며 「조선통속역사강화」(최남선 저) · 「조선과거의 혁명운동」(문일평 저) 등 유독 국학(國學) 관련 논문이 자주 연재되었던 「동명」에서의 경험은 훗날 「고도순례 경주」, 「단군성적 순례」 등의 민족의식이 농후한 작품을 쓰는데 큰 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리고 11월 13일에 그의 첫 창작집 『타락자』가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발간된다.
         [[1923년]] 2월부터 10월까지 현진건은 『개벽』에 중편 「지새는 안개」를 발표하고, 9월에는 그의 동인지 『백조』에 단편 「할머니의 죽음」을 발표하였다. 「지새는 안개」는 당시의 문인 [[염섭]](廉想攝)이 "살아있는 춘화도"라 평하고 있을 정도로 정밀하고 세련된 묘사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최남선이 주재한 동인지 『동명(東明)』의 편집동인으로 참여하여, 번안소설 「나들이」를 기고하는 한편으로 1924년 3월 31일에 창간된 「시대일보」(동명사의 후신)에 입사하였다(이때 그의 부인은 병치레로 대구의 친정으로 가 있었고 현진건만 홀로 서울에 남아 있었다<ref>「文壇風聞」 1923년 1월 1일자 『개벽』 제31호.</ref>). [[1924년]] 1월에는 단편 「까막잡기」를 『개벽』 , 2월에 「그립은 흘긴 눈」을 잡지 『폐허이후』에서 발표하고, 이어 다시 6월에 단편 「[[운수 좋은 날]]」을 『개벽』에 발표한다. 또한 4월 2일부터 5일까지 「시대일보」 지면에 소설 「발(簾)」을 연재했다.
         [[1925년]] 1월, 현진건은 『개벽』에 단편 「불」을 발표하였다. 이때 그는 「시대일보」의 사회부장이 되었으나 「시대일보」가 폐간되면서 동아일보사로 전직하여야 했다. 3월 1일자 『개벽』 제57호에는 이때의 현진건의 근황에 대해 "근래에 빙허(憑虛) 군은 신문사 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더 많은 독서와 연구에 노력하겠다 한다. 늘 군은 조선의 평론계가 아무 보잘 것 없는 것을 매우 분개해서 앞으로는 논문도 쓰실 작정이라고. 고마운 일이며 즐거운 일이며 마음히 든든해지는 일이다."라고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다.<ref>「文壇雜談」 1925년 3월 1일자 『개벽』제57호.</ref> 그리고 박문서관에서 그의 중편 「지새는 안개」가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2월에 단편 「[[B사감과 러브레터]]」를 『조선문단』에 발표하고<ref>현진건이 『조선문단』에 작품을 싣기 시작한 것은 『개벽』이 점점 '계급주의 문학'을 외치는 [[카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부터였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4월과 5월에는 수필 「목도리의 복면」과 「설 때의 유쾌와 낳을 때의 고통」을 각각 기고하였다. 7월에는 「조선문단과 나」라는 기고에서 작가는 삼삼오오 짝을 짓고 당을 나누어 서로 갈라서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작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개체라는 "일인일당(一人一黨)주의'라는 용어를 써가며, 계급주의 문학을 옹호하는 카프의 주장에 맞서 내용적 가치와 계급적 가치란 별개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조선문단』에서 만든 조선문단합평회의 정기회원으로서, 10월에는 『조선문단』 신추문예(新秋文藝)에 응모한 작품들의 심사를 맡아 처음으로 평론을 싣기도 했다.
         [[1926년]] 1월에 현진건은 『개벽』에 평론 「조선혼(朝鮮魂)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기고하였다. 이 평론은 오늘날 현진건이 가진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는다.<ref>현진건이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실을 무렵에 기자로서 재직하고 있던 「동아일보」에 현진건이 「시대일보」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최남선이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있었던 점을 지적하고, 최남선이 당시 주창한 '조선주의'가 현진건의 '조선혼' 주창에 가장 직접적인 향을 주었을 거라고 보기도 한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2월에는 『조선문단』에 수필 「무명 웅」을 기고하고, 11월에는 『개벽』에 단편 「사립정신병원장」을 기고하였다. 또한 이 해 3월에 단편집 『조선의 얼골』이 출판사 글벗집에서 간행되었다.
         [[1927년]] 1월부터 3월까지 『조선문단』에 중편 「해 뜨는 지평선」을 기고하였다. 같은 해 1월 2일자 「동아일보」는 현진건을 "산뜻한 표현의 미를 가진 단편작가"로, "표현에 노력을 빼앗긴 반면에 그 내용적 가치가 너무도 희박하다"고 하면서도 단편집 『조선의 얼굴』에서 보여준 그의 새로운 모습을 향한 노력을 높이 사면서, "그의 자연주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으며 그의 제재 방면도 분명히 향토로, 민중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끝맺고 있다. [[1928년]]에는 드디어 「동아일보」 입사 3년만에 사회부장이 되었다(~1936년). 사회부장 시절의 현진건에 대해 당시 "대장을 놓고 제목을 붙이는데, 편집 칠팔명이 모여선 중에 붉은 잉크를 붓에 덤뻑 찍기만 하면 민각을 누연치 않고 진주 같은 제목명을 이곳저곳에 낙필 성장으로 비치듯 떨어져서, 선후배들로 하여금 그 귀재에 혀를 둘러 감탄케 할 지경"이라는 명성이 나돌았다고 한다.<ref>방인근도 그의 제목 붙이는 '민활하고도 묘미있게 붙이는 재주'에 대해서 칭찬하고 있다.(「빙허회고기」, 『현대문학』 1962년 11월호.) 제목을 붙이는 것뿐 아니라 휘하의 기자들이 취재한 기사를 지면에 적절히 배치하여,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취할 기사는 신속하게 취하는 언론계의 명인같은 존재였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4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러나 이 해 1월, 하이에서 한인청년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형 현정건이 체포되어 본국으로 이송되어 복역하였다.<ref>"원래 불면증이 있는 까닭에 어떤 때에는 무리하게 오전 삼시까지도 독서를 한다"(현진건, 「각 방면 명사의 일일생활」, 『별건곤』 17호, 1928. 12.)는 현진건 자신의 말에서 이때의 현진건의 심리적으로 불안한 생활을 찾아볼 수 있다.</ref>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해 1등을 차지한 조선인 선수 [[손기정]](孫基禎)의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채 신문에 실은 사건으로([[일장기 말소 사건]]) 현진건은 기소되어 1년간 복역해야 했으며, 이듬해 출옥하면서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관훈동에서 서대문구 부암동 325-5번지로 이사하여<ref>당시 부암동은 서울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5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그곳에서 땅을 빌려 양계 사업을 시작한 한편, [[1938년]] 7월 20일부터 다시 「동아일보」지면에 장편역사소설 「무탑(無影塔)」을 연재한다.(~ 1939년 2월 7일) [[1939년]] [[7월]]에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복직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5일부터 「동아일보」에 역사소설 「흑치지(黑齒常之)」 연재를 시작하는데, 이 와중에 문예지 「문장」과 가진 인터뷰에서<ref>「침묵의 거장 현진건 씨의 문학종횡담」, 『문장』 1939년 11월. p.116~120.</ref> 현진건은 당시의 소설들에 대해서 "(자신이 처음 글을 쓰던 때에 비해) 문장이라든가 소설 만드는 기술은 가히 괄목할 만큼 진보.... 그러나 구의 도약이 드뭅니다"라며 "동경(東京) 문단의 말기적인 신변잡기 같은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하고, 또한 현재가 여러 면에서 세계적인 문학의 빈곤시대가 아닌가 싶다며 "문은 실 기(氣)이며 기가 없으면 아무리 진주같다 해도 곧 사회"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12월에는 같은 잡지에 또 한 번 「역사소설의 제(諸)문제」라는 글을 기고하여 역사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인용문|나는 역사소설이 작품으로 나타나기까지 작자의 태도를 대별하여 두 가지 경로를 밟는다고 생각합니다.<br />그 하나는 작자가 허심탄회로 역사를 탐독완미하다가 우연히 심금을 울리는 사실을 발견하고 작품을 빚어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자체가 주제를 제공하고 작자의 감회를 자아내는 것이니 순수한 역사소설이 대개는 이 경로를 밟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예하면 스코트의 제(諸) 작품 아나톨 프랑스의 「신들은 주린다」라든가 우리 문단에도 춘원의 「단종애사」, 허의 「황진이」 같은 작품이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br />또 하나는 작자가 주제는 벌써 작정이 되었으나 현대에 취재하기도 거북한 점이 있다든지 또는 현대로는 그 주제를 살려낼 진실성을 다칠 염려가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그 주제에 적당한 사실을 찾아 대어 얽어놓은 경우입니다. 쉔키비치의 「쿠오 바디스」,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춘원의 「이차돈의 사(死)」 같은 작품은 다 이런 경로를 밟은 작품이라고 봅니다.<br /> 제1의 경우라고 해서 대작(大作) 신품(神品)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제2의 경우에야말로 웅편(雄編) 걸저(傑著)가 더 많지 않은가 합니다. 그가 작품마다 그 구별이 뚜렷한 것이니 아니오 서로 혼합되고 착종하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요.}}
         {{인용문|사실을 위한 소설이 아니오 소설을 위한 사실인 이 그 창작가는 제2의 경우를 더욱 중시하여야 될 줄 믿습니다. 이미 주제를 작정한 다음에 그 소재를 취하는데 현재와 과거를 가릴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작품에는 현재라고 더 현실적이오 과거라고 비현실적이란 관념은 도무지 성립이 되지 않는 줄 압니다. 더구나 제2의 경우에는 그 과거가 현재에 가지지 못한, 구하지 못한 진실성을 띄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라고 믿습니다. 현재의 사실에서 취재한 것보담 더 맥이 뛰고 피가 흐르는 현실감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비현실적이라는 등 도피적이라는 둥 하는 비난의 화살은 저절로 그 과녁을 잃을 것입니다.<ref>「역사소설문제」, 『문장』 1939년 12월. p.126~129.</ref>}}
  • 은지원 . . . . 104회 일치
         ||<#000000> '''{{{#FFFFFF 이름}}}''' ||<(> 은지원(殷志源)[* 문이름은 Matthew] ||
         ||<#000000> '''{{{#FFFFFF 별명}}}''' ||<(> G, '''G1'''[* 실제로 자신의 모든 솔로 앨범표지에 Eun G1이라는 예명을 쓴다. --무한도전에서는 [[김재덕]]에게 [[장수원|장로봇]]이 형은 덕2로 하자...--], =G1, '''은초딩''', '''은각하'''[* 데뷔 초에 멤버들끼리 놀리듯이 붙여졌다. 그러나 시작과 달리 외모와 분위기 탓에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여담으로 [[은초딩]]과 [[은각하]]를 쳐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절대자, 은간지,[br]은까리, 은리더[* 방송 자막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은대장, 은리다,[br] 지니어스원, 은둘리, 여의도돌싱[* 신서유기 시즌1에서 이승기가 붙여준 별명. 바리에이션으로 여의도 이혼남이 있다.], [[외계인]][*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외계인에게 관심을 너무 가진 것이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다. 공주편에서 은지원이 공과학 이야기 중 외계인 이야기를 하는데 "형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없다고 생각해? 사람 몸속에 아무 흔적없이 마이크로 칩을 넣는데?"라고 발언 한 것. 이후 은지원이 강호동의 엉덩이를 나무로 때리고 이후 [[박찬호]]가 은지원보고 외계인 아니냐며 의심을 한 것이다. 이후 팜스테이 편에 등장하는 일심동체 게임에서 김C가 외계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뭐냐는 문제에서 은지원을 적은 것. 이후 전국일주에서 UFO 관련해서도 빨리 사진 지우라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br]거칠이, 극한직업 젝키리더(...)[* 옛날부터 멤버들과 예능 나오면 마음 졸이며 수습하고 관리하기 바빴다. 최근 나온 방송들을 보면 멤버들이 산만한 편...],[br]젝키 유일 일반인[* 밖에선 미친자, 도른자, 돌아이, 외계인 취급받지만 젝키에선 가장 평범한 일반인 포지션이다. 그 정도로 동생들--특히 이재진--이 남다르다(...).], 섭섭이(...)[* [[1박 2일]]에서 얻게 됐다. 후에 --[[MC몽]]--이 섭섭이 라인에 합류하면서 은지원은 일섭이, --MC몽--은 이섭이로 불리게 됐다.], 미친者(...)[* 신서유기에서 얻게된 별명이다.], 구美[* [[안재현|이 사람]]이 합류하자마자 그에 못지않은 미친者의 면모를 보여서 신美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은지원은 기존의 미친者를 뜻해서 옛날을 뜻하는 한자 舊(옛 구)를 넣은 셈.], 찌오니[* 본인의 이름을 모에화하여 팬들이 부르는 별명, 본인도 이렇게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은먹금[* 본인의 칭찬이 나오면 황급히 화제를 전환하거나 아예 외면해서 붙은 별명. 방송생활 20여 년간 본인 칭찬을 한 적이 한 손에 꼽는다(...).], 은요물[* 촉이 좋아서 미션의 흐름을 한번에 이해하고 진행해나가 신서유기 제작진들이 붙여준 별명], 은왜은[* 연예인 중에서 유일한 [[은(성씨)|은씨]]와 흔하지만 세련된 '지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팬들이 은지원은 이름도 잘생겼다며 '은지원은 왜 이름도 은지원인가'를 줄여서 만든 별명.] ||
         ||<#000000> '''{{{#FFFFFF SNS}}}''' ||<(> [[https://www.instagram.com/1_kyne_g1/|인스타그램]][* 비공개 태다. --사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 사건 때문에...]]--] ||
         ||<-5><tablebordercolor=#d4f4fa><#D4F4FA><table width=100%><:> {{{+1 '' [[KBS 연예대|{{{#00001E 연예대}}} ''' {{{#00001E ''' 대 ''' }}} }}} ||
         '''[[젝스키스]]의 원한 카리스마 리더이자 아이돌계 카리스마 이미지의 표본'''
         '''[[동안]]으로 유명한 연예인이자, 가수(힙합), 예능 두가지 역에서 활약을 돋보인 연예인'''
         대표적인 장기 현역 남자 아이돌[* 최연장자는 [[god]]의 [[박준형(god)|박준형]]이고, 여자 아이돌 최고참은 [[S.E.S.]]의 [[바다(가수)|바다]]이다.][* 활동 기간보다 해체 이후 재결합 이전까지의 공백기가 압도적으로 길었던 젝스키스를 장수 그룹이라 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은지원 개인의 개별 연예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이 수식어가 붙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니라 할 수 있다.]이자 1세대 보이그룹 출신들 가운데, 남녀노소 불문하고 국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인물. 1997년 초에 데뷔했던 전설의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로, 맏형이자 리더를 맡고 있으며 그룹 내에서도 향력과 비중이 높아 팀의 중심적인 멤버이다. 포지션은 [[Rap|랩]](메인래퍼)과 서브보컬을 맡고 있으며 노래/춤[* 고난이도 안무를 보여주진 않지만 춤선이 당히 이쁘며 스타일리쉬한 춤실력을 갖고 있다.]/랩 삼박자가 평균 이으로 밸런스가 좋고, 멤버들중 가장 먼저 자작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무대에선 후렴구나 킬링파트 독창을 잘 소화하기에 젝스키스의 남성적인 이미지 구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세대 그룹 멤버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비주얼과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로 팀 내 인기 역시 수위를 다투었다.[* 팬들 사이에서 은지원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로는 '''까리함'''과 '''양아미(양아치+美)'''가 있다.] 리더 포지션 & 높은 인지도 & 걸출한 실력 그 이으로 [[강성훈]]과 더불어 젝스키스의 핵심과도 같은 멤버. 해체 후에도 꾸준한 방송과 음반 활동으로 젝스키스를 회자시키며, 세월이 지나 재결합 후의 활동에도 멤버들과 팬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멤버이다. 그리고 젝스키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초딩의 이미지로 유명하다. 덕분에 1세대 아이돌 내에서도 '''정급의 대중성과 인지도의 소유자'''로 현재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젝스키스 전성기 시절에도 은초딩의 모습은 있었지만, 신비주의 때문에 말도 제대로 안 시키니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해체 후 1박 2일 등의 예능을 통해 은초딩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젝키 해체 후에는 은각하의 모습이 드러날 일이 없었지만 젝키 재결합 후 예능에서 은초딩보다 진중한 모습을 보이며 여전한 은각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본질은 어디 안 가는지(...) 조금만 방심해도 섭섭한 바보 어벤저스로 전락하곤 한다.]
         젝스키스 1집에만 해도 랩만 했으나 2집부터 보컬도 맡게 되면서 노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힙합으로 전향한 이후 노래를 안 한지 꽤 됐지만 기본적으로 음색이 [[비성]]이 섞인 [[미성]]이다. 1세대 아이돌의 비보컬 멤버가 대개 그렇듯 진지하게 가창력을 논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중에서는 중고음이 가능하고[* 조금 무리하면 2옥 솔 정도는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음감이 있어 라이브에서도 음을 제대로 찍어부를 정도로 중간 이은 하기때문에 당히 괜찮은 편. 현대적인 관점에서 메인보컬을 받쳐주는 서브보컬의 역할을 당시에 당히 충실히 해냈다.[* 이런 서브보컬 라인이 강해야 메인보컬을 적재적소에 꽂아넣는 프로듀싱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물론 1세대 아이돌 당시에는 그런 거 없고 후렴과 어려운 파트는 메인보컬이 몽땅 하고 그나마 몇 없는 쉬운 파트를 나머지 멤버들이 나눠가지는 식이었다. 은지원, [[이효리]], [[손호]] 정도가 그나마 괜찮은 서브보컬이었다.] 그 예로 3집 활동 후속곡인 '무모한 사랑'에서는 은지원의 파트가 과장해서 노래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 많다. 보통 젝키에서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르는 강성훈이 이 노래에서는 후렴구만 부르는 반면, 은지원은 이 노래에서 서브보컬, 랩, 리드보컬까지 웬만한 파트는 거의 다 맡는다. 심지어 고음으로 지르는 부분도 있다.--느낄 수 있어써!!!!-- 또한 4집 후속곡 예감에서도 초반부 파트를 통으로 끌고 간다.
         지금이야 예능에서의 모습으로 초딩 소리를 듣지만 젝키 시절에는 과묵한 이미지와 까리한(...) 외모로 '''은각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리더였다.[* [[H.O.T.]]의 리더 [[문희준]]이나, [[신화(아이돌)|신화]]의 리더 [[에릭(신화)|에릭]]과는 달리 그룹에 동갑이 없었다. (이들보다 1살 위인 [[NRG(아이돌)|NRG]]의 리더 [[이성진(NRG)|이성진]]도 같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이 --연습할 때 한정으로--다들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이 까다로웠다고 언급했다. --김재덕에 의하면, 은지원이 너무 독재자여서 이재진이 반항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게 받은 대접이 대접이라 그런지 "은지원이 아니었다면 3년도 가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애초에 독재자 발언은 예능에서 장난스레 발언한 것이다-- 은각하 자체가 데뷔 당시 멤버들을 갈구던 황에서 놀리듯이 붙은 별명이다. 당장 [[토토가2 - 젝스키스]] 편이나 예전 예능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은지원은 동생들에게 갈굼당하기 일쑤다. --마이웨이 까칠이 이재진과 은지원 전용 어그로 고지용, 프로일침러 장수원, 방관하는 강성훈과 김재덕.-- --(극한직업 젝키 리더)-- --젝키 내에서는 은지원이 가장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본인 말로는 자신은 카리스마 있었던 적은 없었고, 말이 없었던 이유는 MC들이 질문한 내용이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그렇게 보였다고...
         실제로 보면 무표정한 얼굴에 눈매가 정말 매섭고 ~~다크서클도 진해서~~ 다가가기 힘든 인이다. --죽여달라거나 덮쳐보자는 식의--센 문구 투성이였던 당시 팬들의 응원 현수막에는 정말 이례적으로 매우 공손하게 '은지원! 쳐다봐도 되나요?'라는 문구가 있었을 정도였고, 젝키 멤버들이 밴에서 내릴 때 은지원만은 팬들이 알아서 길을 터줄(...) 정도로 포스 있었다. 현장을 따라다니던 팬들이 은지원의 말은 알아서 꼬박꼬박 잘 들을 정도였다. --날이 어두워지니 집에 가라고 하면 순순히 갔다고 한다-- 본인도 이를 알고 있어서 팬들에게 자기를 무서워하지 말라는 장난 섞인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이미지가 고민이었는지, 자신이 재밌는 사람이 아니지만 웃음을 주어 친근해지고 싶다는 내용이 포함된 수필 같은 것이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예능에서 은초딩이 되었다--
         젝키 멤버 중 [[강성훈]]과 함께 유학파 출신으로 데뷔 당시 소속사가 "미국 본토"에서 [[힙합]]을 배워 온 친구라고 소개했는데 유학 다녀온 곳은 [[하와이]](...).[* 물론 하와이도 엄연히 '''미국의 한 주'''인 만큼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거짓말까지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인식에서 미국 본토라고 보기에는 좀...] 본인 말로는 하와이 가서 얻어온 건 매튜라는 어 이름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돌 현역 시절에는 랩 파트를 즉석으로 어로 개사하여 소화하는 등의 센스를 보여준 적이 있다.
         등장 이후 H.O.T.의 라이벌다운 화려한 흥행을 기록하였으나, 2000년 5월에 젝스키스가 해체되면서 모든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그 와중에 은지원은 홀로 꾸준히 준비하여 2000년 10월에 솔로로 데뷔하게 된다.[* 이 후에 이재진과 강성훈도 솔로로 활동했고, 김재덕과 장수원은 [[제이워크]]로 그룹 활동을 하게 된다.] 솔로로 전향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힙합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당시에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이 강해 힙합 리스너들에게 많이 공격받았다. 그 향인지 당시의 노래 중에도 자학 가사가 많다. 하지만 그 당시 '''[[문희준|넘사벽급의 광역 도발러]]'''가 있었으니 저 분에 비하면야 악플로 입은 피해는 미미한 수준. 게다가 은지원은 [[무브먼트(크루)|무브먼트]] 크루 소속이다 보니 무브먼트 빠들에게 옹호를 받은 편이다.[* 무브먼트 크루가 가지고 있는 한국 힙합계의 입지와 인기를 생각해보면, 무시할 수 없는 옹호를 받았다.] 또 음악성에 있어서도 드렁큰타이거의 마이너 카피 정도라는 평을 받긴 했지만, 심한 비판을 받은 것은 없다. --애초에 은지원은 타이거JK에게 랩을 배웠다.-- 아군 하나 없이 악플에 시달려야 했던 문희준과는 비교도 안 된다(...). 본인도 이에 대해서는 방송을 통해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물론 본인도 솔로 데뷔 때만 해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태에서 작업했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던 모양인지, 솔로 1집 자켓을 보면 그간의 마음고생을 반하듯 얼굴살이 확 빠져있다. 힙합을 하는 반면 작사를 직접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힙합플레이야|힙플]]에서 종종 까이는 듯. 은지원은 젝스키스로 활동 당시에도 자작곡은 젝키 멤버 중 제일 먼저 만들었음에도 가사는 직접 쓰지 않고 곡만 썼는데, 이에 대해 솔로 5집 활동 시절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언급하기를, "대강 본인이 가사를 쓰고나면 더 잘 쓰는 사람에게 맡겨 가사를 다듬는데, 100% 자신의 손을 거친 작업물이 아니면 크레딧에는 도와준 사람의 이름으로만 올린다"고 하니 실제로 작사 비중은 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본인이 아니라면 절대 쓸 수 없는 가사들도 보이니.
         아이돌을 그만두고 힙합으로 전향했을 때 [[타이거 JK]]한테 배움을 받아서인지, 2003년 9월에 발매된 3집을 들어보면 [[드렁큰 타이거]]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3집 이후로는 점차 자기 색깔 찾아가는 듯. 이후 '힙합'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데 2005년 2월 4집에 들어서 자기 색깔이 두드러졌고 4집에서 국보급 플로우를 만들어낸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8톤 트럭--[* 힙합 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8톤 트럭'의 원조이다. 흔히들 다듀의 고백이 원조라고 알고 있는데, 은지원의 8톤 트럭이 고백보다 8개월 더 먼저 나왔다!]2009년 5집에서는 당시 음악적인 트렌드를 반하여 2002년 2집처럼 댄스에 가까운 힙합으로 선보였지만 이질적인 느낌이라 호불호로 갈라졌다. 대신에 당시 개그 유행어를 소재로 수록된 '''160'''이 힙합 장르를 떠나서 흥겨운 음악 덕분에 반응이 좋은 편. 2013년 11월, [[20세기 미소년]]에 타이거 JK가 "은지원의 부탁으로 출연했다"며 친분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아 친분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째서인지 "나의 은지원 오빠(형)는 이렇지 않아!"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없다. 초딩모드가 연기라서 그러기도 하지만, 이런 말 했다가는 욕먹을 테니... 그것도 그거지만 팬들의 연령도 꽤 지긋해서 그냥 허허 웃고 말기도. 몇몇 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은초딩 캐릭터는 젝키 시절부터 존재했었으며 팬들 사이에서만 아는 사실이었는데 전국민적으로 퍼진 것일 뿐'''이라 한다. 그리고 1990년대 말에 이미 이재진이 폭로한 바가 있다. 홍진경이 진행했던 퍼니퍼니쇼에 출연했을 때 멤버들이 서로 불만사항을 털어놓는 코너가 있었는 데,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은 은지원에 대한 불만사항으로 "형은 우리 중에 제일 나이가 많으면서 투정도 많고 장난도 제일 많이 치고 어리광도 심하다. 어린애 같다."라고 털어놓았었다.
         하지만 초딩 이미지와는 반대로 [[1박 2일]] 복불복 미션에서 거의 [[흑막]] 수준으로 황을 꿰뚫고 좌지우지 하는 [[천재]] [[기믹]]도 갖추고 있었다. 일명 '''지니어스 원'''.
         미션의 맹점을 정확히 파악해 [[https://youtu.be/6YqNUlMP_1M|게임의 결과를 완전히 뒤바꿔 버린 적도 있었고]][* 소원권 레이스에서 동맹 이승기를 우승 시킨 다음 자신이 소원권을 쟁취하기도 했다.], 각종 꼼수로 미션에서 낙승을 거둔 적도 있으며[* 아침 기미션에서 대팀 핸드폰 알람을 모두 조작한 뒤 낙승을 거뒀다. 알람이 오전 6시인데 오후로 바꾼다던지.] [[https://youtu.be/bsD1X-OP5bQ|완벽한 심리전으로 대팀 전원을 혼란에 빠트린 적도 있었다.]][* 무섭당 vs 바보당 레이스에서 이수근에게 거짓전화를 걸어 강호동이 이수근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속였다. 때문에 30분 넘게 [[이수근]]이 강호동을 의심하며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예능계에서 두뇌 플레이만으로 미션의 판세를 뒤흔들 수 있는 몇 안되는 캐릭터.[* 이에 견줄만한 인물로는 추격전만 하면 빛을 발하는 [[무한도전]]의 [[노홍철/무한도전|노갈량]] 정도. 그리고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서 천재 해커라 불리는 이두희가 "노홍철은 말이 많지만 게임을 잘할지 모르겠고, 은지원은 방송에서 포장된줄 알았는데 진짜 천재인거 같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준|얘]]는?~~[*스포일러? 정준은 머리보단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
         게다가 어릴 적에 외국에 가 있었기 때문인지 기초지식이나 어휘력 등이 당히 빈약하다. 토토가 이전에 '뇌가 순수한 사람'으로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도 있고, 젝스키스 멤버들이 단체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는 은지원 혼자만 '친탁', '총망라'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며 한글 맞춤법도 자주 틀리는 편. 즉, 타고난 눈치나 잔머리는 뛰어나지만 후천적인 지식이 부족한 타입.
         그랬기에 '천하장사'나 '공조7' 혹은 '인간의 조건', '옆집의 ceo'등 수많은 리얼예능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받았고, 장수하는 예능인으로 방송계에서 꾸준히 살아남았다. 해당 예능 프로그램들은 장수하지 못한 프로그램이지만, 그 안에서의 분량을 찾아보면 감초역할로 순간적인 리얼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예능센스가 다른 출연진에 비해 돋보인다. 다만 예능 프로그램이 단지 출연진 한, 두명이 웃긴다고 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작진이나 연출 방향, 편집 스타일, 프로그램 의도, 미션이나 주어진 황과 게임, 출연진간의 케미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천하장사'나 '공조7'은 출연진들이 센스가 넘쳤고, 케미도 좋았으나 다수의 시청자들이 제작진들의 프로그램 방향이나, 의도 또는 연출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받은 바 있다.] 1박 2일 이후 신서유기를 제외하고 특히 히트한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 또한 복불복 운과 같이 운이 없는 축에 속하는 편.
         또한, 제작진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공포증이나, 심리적 큰 부담이 있는 요구가 아닌 이 프로그램에 맞춰 묵묵히 그 속에서 웃음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은 예능PD들이 자주 은지원을 섭외하는 큰 요인이기도 하다. 싫은 건 하기 싫어하는 초딩같은 모습을 겉으로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가식적이지 않은 날것의 것'을 요구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에 잘 먹히기도 하며, 자신이 가능한 선에서는 긴 시간의 촬과 어려운 미션을 요구하더라도 황당해하며 묵묵하고 성실하게 따르면서도 센스있게 황을 잘 만들어 가는 것이 예능인으로서 은지원의 강점이다.
  • 정진영(배우) . . . . 103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FE2E64> {{{#ffffff '''이름'''}}} ||<(> 정진(鄭鎭泳) ||
         ||<#FE2E64> {{{#ffffff '''링크'''}}} ||<(> [[https://www.fncent.com/JJY/b/introduce/11646|공식사이트]] ||
         2011년의 정진.
         1988년, [[연극]] '대결'로 데뷔해 이후 여러 [[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약속]]에서 [[박신양]]의 행동 대장 엄기탁 역을 맡으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대학 때부터 연극반 소속으로 원래는 연출을 담당했으나,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 대타로 출연한게 계기가 되어 화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1998년 [[박신양]], [[전도연]]이 주연한 화 [[약속]]에서 박신양을 보좌하는 조폭 2인자 역할을 맡아 열연하면서 청룡 남우조연을 수하며 비로소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이 후에도 [[링]], [[비천무]], '교도소 월드컵' 등의 화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한다. 이후에도 '킬러들의 수다' , '[[달마야 놀자]]', '[[황산벌(화)|황산벌]]'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였다. 특히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 역을 맡으면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정진의 이 연기는 역대 연산군 배역 중에서도 광기와 애정 갈구가 섞인 연산군의 모습을 가장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TV보다는 주로 화 쪽 일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병훈(PD)|이병훈]] PD의 권유로 2010년에 [[문화방송|MBC]] 월화 드라마 '[[동이(드라마)|동이]]'에서 서용기 역을 맡았다. 이병훈 감독의 말에 의하면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을 생각하고 캐스팅했다고. '동이'는 이병훈 PD의 사극답게 20% 안팎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보여주며 종. 2011년 6월부터 10월까지 [[KBS 2TV]]의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의 진행을 맡기도 했지만 이쪽은 [[시청률]]이...~~[[망했어요]]~~ 2012년 3월 [[KBS 2TV]] 월화드라마 '[[사랑비(드라마)|사랑비]]'에서 서인하[* [[장근석]]이 젊은 시절의 서인하와 그의 아들 서준 역할로 나온다.]역을 맡았다. 대역은 [[이미숙]].
         2013년 2월에는 화 [[7번방의 선물]]에서 장민환~~경찰과장~~ 교도소 보안과장 역을 맡았다. 말은 특별 출연이지만 분량은 주연급(그럼에도 '7번방의 선물'을 검색하면 출연진 거의 맨 마지막 쯤에 나온다). ~~[[지못미]]~~ [[7번방의 선물]]로 [[왕의 남자]]에 이어 2번째로 천만 관객 돌파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국제시장(화)|국제시장]]에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로 나와 3번째로 천만관객을 돌파 화에 출연한 것으로 기록에 남게 되었다.
         [[이순재]], [[감우성]], [[김태희]], [[김창완]][* 단 이쪽은 원래 가수출신이다.] 등과 같이 [[서울대학교]] 출신의 연기자지만 [[학벌]]은 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재미 없는 이력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더구나 정진은 [[국어국문학과]] 출신. 다만 학력 덕분에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을 맡을 수 있었다고.[* [[그것이 알고싶다]] 책에 의하면( 전 진행자였던 [[문성근]]의 추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당히 겸손하고 예의 바른 성격으로, 촬이 시작되면 스태프들의 이름을 제일 먼저 외운다고 한다. 같이 고생해서 작품을 만드는데 [[야]]나 '이봐'라고 부르는 게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 때문. 덕분에 여자 스태프들을 대으로 비밀리에 진행한 인기투표에서 몰표를 받았다고 한다. 연기에 대한 노력도 마찬가지라 늘 촬 1시간 전에 도착해 미리 연습을 한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을 하던 도중 [[달마야 놀자]] 촬으로 삭발하는 바람에 [[가발]](...)을 쓰고 진행을 해야 했다.
         위에선 1997년작 [[초록물고기]]를 화 데뷔작으로 쓰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1991년 민중화운동 집단 '장산곶매'에서 제작한 '닫힌 교문을 열며' 주연을 맡은 게 첫 극화 작품이다. 다만 애매한 부분이 당시 [[전교조]] 교사 대량해직사태를 소재로 해서 제작한 '닫힌 교문을 열며'는 철저한 독립화로 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극장에서 되지는 못했으며 심지어 비디오 출시조차 금지되었다. 대신 전국 대학가를 돌면서 자체 하면서 당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후 연극에 전념하다가 1990년대 중반 과거 장산곶매 등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화계에 투신할때 같이 발을 들여놓게 된다.[* 장산곶매를 비롯해서 이 당시 화계에 뛰어든 운동권 출신들은 1990년대 후반 [[한국 화]]의 르네스를 주도하면서 화계의 주류로 급부했다.]
         2002년 5월 18일부터 2006년 1월 21일까지 3년 6개월동안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MC를 맡기도 하였다. 이는 [[김중]], [[문성근]]에 이어 3번째로 긴 기간이다.
         여행을 매우 좋아해서 혼자 자주 여행을 다니며, '[[님은 먼 곳에(화)|님은 먼 곳에]]' 촬 당시 혼자 [[베트남]]으로 사전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만나보면 옆집 아저씨같이(...) 좋으신 분이라고 한다. 아들이랑 사이가 좋아서 "배우 정진이 소개하는 절친 아빠 되는 방법"이란 인터뷰도 했다. 직접 읽어보면 좀 닭살돋지만, 자녀교육도 바르고 연기면 연기, 다 열심히인 듯. 게다가 [[애처가]]라고.
         연극무대에서 기본을 쌓아온 덕에 기본기는 말 할 것도 없고, 탄탄한 연기력에 극을 끌어가거나 대배우를 커버해주는 연기적인 능력이 아주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출연한 화나 드라마를 살펴보면 '정진'이라는 이름 석 자가 눈에 확 띄는 역할이 거의 없다. 그래서 화가 대박이 나든 드라마가 성공을 하든 대부분 주인공 혹은 젊은 배우에게만 공이 돌아가고 정진에게 돌아가는 공은 거의 없다시피한 게 문제.
         게다가 그 흔한 언급성 기사 하나 없다... 였는데, 2015년 MBC 월화 드라마 [[화려한 유혹]]의 [[강석현]] 역으로 꽤 큰 화제성을 몰았다. 60대 후반의 역이기에 할배(...)라고 불려야 했으나 ~~2016년 기준으로 53세이신데 억울하다~~ 서브 남주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폭풍간지~~와 수트핏~~를 보이며 '''할배파탈'''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분명히 악역 포지션이긴 한데 극 중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 라는 걸 끊임없이 보여줘서 많은 보정을 받은 것도 한 몫 하긴 하는 듯. 어쨌든 그 인기에 힘입어 배우 본인의 DC갤러리까지 생겼으니... ~~사실은 [[진 주인공]]~~ 게다가 2015 MBC 연기대에서 특별기획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을 수하기도. ~~이 쯤 되면 메인 주연들이 불쌍해진다~~
         MBC [[나는 가수다 2]]의 MC를 맡고있던 가수 [[이은미]]가 무대에 집중하기 위해서 대신 [[나는 가수다 2/방기록/슈퍼디셈버 2012 가왕전|슈퍼디셈버 2012 가왕전]]의 MC를 맡게됐다.
         [[이준익]] 감독과 칼럼니스트 [[김태훈(음악인)|김태훈]]이 밝힌 바에 의하면 당한 귀차니스트라고 한다. 화 [[평양성(화)|평양성]]에서 정진이 맡았던 배역인 김유신과 매우 흡사한 성격으로 항 '이걸 왜 하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결국 마지못해서 하기는 하는 성격이라고. --[[츤데레]]--
         여담으로 미국의 화배우 [[윌 스미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안노 히데아키]]와 쏙 빼닮았다. ~~어디가?~~
         === 화 ===
         || 1995년 || [[테러리스트(화)|테러리스트]] || 달선 || ||
  • 박정민(배우) . . . . 102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4682b4> {{{#white '''학력'''}}} ||<(> 중탑초등학교[br][[하탑중학교]][br][[공주]] [[한일고등학교]][br][[고려대학교]] 인문학부(중퇴)[* 부모님께서 연기하는 꿈을 반대하셨지만 본인은 연기를 너무나도 하고 싶어했었다, 그리고 2005년도에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자퇴 후 반수 끝으로 다음해(2006년)에 [[한예종]]에 입학하였다. 본인은 꿈을 위해서 들어간게 맞다고 보면 된다.][* 물론 [[고려대]]는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본인이 있을 곳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물론 한예종,고려대 외에도 한국외대, 서울대, 중앙대도 원서작성했으나, 한예종과 서울대는 광탈하고, 나머지는 예비가 나왔다, 하지만 고려대만 [[추가합격]]해서 꼴등으로 입학하고, 자퇴했다][* 대학 자체를 아예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br][[한국예술종합학교]] 화과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학사[* 전과했다.] ||
         ||<#4682b4> {{{#white '''데뷔'''}}} ||<(> [[2011년]] [[화]] [[파수꾼(화)|파수꾼]] ||
         ||<#4682b4> {{{#white '''외부 링크'''}}}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lists/?id=parkjungmin|[[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png|width=24]]]] ||
         대한민국의 화배우.
         == 세 ==
         이후, [[한예종]] 화과에 합격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례가 없는 화과 -> 연기과로의 전과가 성공한 것.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한예종 연기과는 그 경쟁률이 매해 을 초월하는데, 신입학보다 전과가 까다롭다고 한다. 20대가 될 때까지 거의 공부만 하던 학생이라 필모그래피가 거의 없는 황에서 연기자로의 전과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파수꾼(화)|파수꾼]], [[전설의 주먹]], [[감기(화)|감기]], [[사춘기 메들리(드라마)|사춘기 메들리]], [[너희들은 포위됐다]], [[일리있는 사랑]], [[들개]] 등에 출연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단역으로 [[성보라]]와 헤어진 남자친구 박종훈 역으로 출연했다. 10분 남짓 되는 시간의 단역이었지만, 본인이 바람을 피웠으면서 오히려 [[성보라]]에게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고 궤변을 하는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그야말로 쌍욕이 나올 정도의 엄청난 연기력과 [[미친 존재감]]을 보여줬다.
         2016년 2월 17일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화 <[[동주(화)|동주]]>에 [[강하늘]]과 함께 주연으로 참여했다. 강하늘은 [[윤동주]] 역, 박정민은 윤동주 시인의 사촌이자 독립운동가인 [[송몽규]] 역으로 분했다. 탄탄한 연기로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송몽규 열사의 재조명과 함께 그 자신도 조명받는 광을 누리게 되었다. 동주로 같이 작품을 하게 된 이준익 감독에 따르면, "저예산 화계의 [[송강호]]"라고. 그리고 이후 인터뷰에서 관련 언급을 하면 자신은 "그러지 마세요 제발"이라며 난감해한다.
         2016년 제37회 [[청룡]]에서 [[동주(화)|동주]]로 신인남우을 수하였다. 수소감으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호평을 받았다.
         > "송몽규 선생님에 비해 너무 부족해서 많이 울었다. 70년 전에 나라를 잃었다. 화를 찍으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70년 후에 이 세을 살아가야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나라가 많이 어수선한데 송몽규 선생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야겠다"
         그리고 2017년에도 춘사에서 [[동주(화)|동주]]로 남우조연을 수했다.
         그것만이 내 세에서는 서퍼트 중후군을 가진 진태역을 맡았다. 연기를 위해 장애 아동들을 찾아가 행동을 배우고, 건드려 본 적도 없다던 피아노를 배워 촬에서 완벽하게 해내는 등 열정이 돋보이며, 이 덕에 [[이병헌]]에게 찬사를 받았다. 다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동작은 실제 연기가 맞지만 연주 자체는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입힌 것이다. 화 내에서 나오는 곡들은 초보자가 몇 개월 연습한다고 칠 수 있는 곡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염력의 경우 흥행에 실패했을 뿐더러 맡은 배역 또한 혹평을 받았다.
         박정민의 글은 대체로 웃프면서 소소한 일 글속에 소신과 생각이 묻어나 호평이 자자하고 배우가 아닌 작가로서의 팬도 당히 보유하고 있다.
         === 화 ===
         ||<|3> 2018년 || [[그것만이 내 세(화)|그것만이 내 세]] || 주연 || 오진태 || 341만 명 || 성공 ||
         || [[염력(화)|염력]] || 조연 || 김정현 || 98만 명 || 실패 ||
         || [[변산(화)|변산]] || 주연 || 학수 || 49만 명 || 실패 ||
         ||<|3> 2017년 ||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 주연 || 재범 || || 독립화 ||
         || [[더 킹(화)|더 킹]] || 조연 || 허기훈 || 531만 명 || 성공 ||
  • 성재기 (활동가) . . . . 98회 일치
         |사진설명 = 성재기 선생 정 사진.jpg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br/> (現 [[대구광역시]])
         |거주지 = [[대구직할시]]<!--다른 구-->→[[대구광역시]]→[[서울특별시]] [[강남구]]→서울특별시 [[등포구]]
         |학력 = [[대륜고등학교]]<br /> [[남대학교]] 경대학 경제학과 졸업
         |웹사이트 =성재기(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 전 대표)블로그: http://blog.naver.com/ssjjgg1985 성재기(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 전 대표)트위터: https://twitter.com/sungjaegi
         '''성재기'''(成在基, [[1967년]] [[9월 11일]] ~ [[2013년]] [[7월 26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시민운동가, [[남성주의]] 운동가이며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의 창립자였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는 토마스맥플라이 부동산, 양대 나이트클럽 등을 운하였다. 1999년 12월 [[군 가산점]] 위헌 판결, 폐지를 계기로 남성의 권리를 되찾겠다며 남성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2012년 11월에 BJ로복(정지복)과 토크쇼를 시작하였다.
         성재기는 [[1967년]] [[9월 11일]] [[경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ref name="shinsa22">[http://www.ddanzi.com/ddanziNews/1351628 <nowiki>[전문공개]</nowiki> 남성연대 성재기를 만나다]</ref> 1982년 3월 대륜중을 졸업하고 [[대륜고등학교]]로 진학하였고, [[1993년]] [[2월]] [[남대학교]] 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였으나 형편이 어려워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1992년]] 회사원이 되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보험회사 업사원이 되기도 했다. 한때 개인 사업을 하기도 했다. [[2006년]] 무렵에는 대구의 양대 나이트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유흥업소를 운했다.<ref name="nombres">[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8136.html 그는 제2의 '미시마 유키오'가 되고자 했나] 한겨레신문 2013.08.02</ref>
         그러던 중에 [[2000년]]대 부터 남성 운동에 본격 참여하였다. 그가 남성운동에 투신한 것은 1999년 군 가산점 폐지 때문이었다.<ref name="mophos">[http://news1.kr/articles/1224960 성재기, 강용석 NLL 발언에 "욕 좀 하겠다"] 뉴스1 2013.07.05</ref>" 이후 그는 [[군 가산점]] 부활 운동과 군필자 보 운동을 추진하였다. [[2000년]] [[10월 26일]]부터는 [[대구광역시]] [[동구 (대구광역시)|동구]] [[효목동]]에서 창업, 투자, 부동산 담 회사인 [http://www.tommyfly.com/ 토마스 맥플라이 창업투자 컨설팅] 을 운하였다. 그러나 [[남성주의|남성 운동]]에 종사하게 되면서 [[2006년]] [[11월 30일]]부로 회사와 사무실을 매각하였다.
         [[2005년]] [[8월]] 여성 할당제가 시행되자, 여성 할당제는 [[남성 차별|남녀 역차별]]이라며 여성 할당제 폐지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5년]] [[4월 7일]]에는 [[대구광역시|대구]] 지역의 친목 소모임인 '대구인맥을 만드는 CEO파티'에 가입하여 [[2006년]] [[11월 28일]] [[서울특별시|서울]] 경 직전까지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 경난 ====
         [[2013년]] 투신 직전 그는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그는 정부에 문의해봤지만 일반 시민단체와는 달리 여성단체들처럼 [[여성가족부]]의 관할이라 했고, 그는 [[여성가족부]]의 지원은 거부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3089755 성재기 투신…여성부 한해 예산 얼마길래?] 머니투데이 2013.07.26</ref> 후원금으로만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를 운하면서 '싱글대디 반찬배달', '무료 법률지원 서비스' 등 돈 드는 사업을 이어 가다 보니 재정난에 부닥쳤다.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는 [[2011년]] [[3월]]부터 [[2013년]] [[5월]]까지 각종 행사 비용 등으로 2억 4670만 원을 썼다. 하지만 후원금 수입은 1956만 원에 불과했다.<ref name="dongki">[http://news.donga.com/3/all/20130729/56716534/1 <nowiki>[기자의 눈/조동주]</nowiki> 男權을 대변한다며 몸던진 비극] 동아일보 2013.07.29</ref>
         [[2013년]] [[7월 25일]] 그는 인터넷 트위터 등에 [[한강]]에 투신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한국]] [[남성]] [[인권]]의 현주소를 고발하며 투신하겠다<ref name="omistars">[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890118 성재기 투신 촬한 KBS "두 차례나 신고, 자살방조 아냐"] 오마이뉴스 2013.07.26</ref>"고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자살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며 [[한국]] 남성들이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국민 여러분들은 알아주십사 하는 뜻에서 [[퍼포먼스]]를 벌인다고 선언하였다. 이어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 홈페이지와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일부 지인들에게도 이를 알렸다. 일부 지인들은 말렸지만 그는 운동을 했다는 점과 사전 답사, 사설 구조대원을 준비했음을 알렸다.
         그는 투신 전까지도 [[아동 청소년법]]과 [[게임 셧다운제]] 등의 개정을 촉구했다. 그는 "지금 국회에 발의된 성판매 여성은 무죄이고 성구매 남성만 처벌하는 (성매매특별법 개정)은 절대로 반대합니다.", "[[아동청소년보호법]] 제2조 5호(아동 청소년 이용 음란물에 관한 조항)는 반드시 실제 아동, 미성년자인 경우일 때만 처벌하는 것으로 개정해야 합니다." 라며 [[성매매]] 남성만 처벌하는 [[성매매 특별법]]을 반대, [[아동청소년법]]의 개정의 구호를 외쳤다. 그는 자신은 살아돌아올 것이라며 왜 죽는다고 생각하느냐며 자신이 전투수도 배웠음을 언급하였다.
         성재기의 한강 투신 예고는 비판 여론을 몰고 왔다.<ref name="kuksone">[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572296 성재기, 투신 사흘 만에 결국 시신으로… 죽음으로 이어진 퍼포먼스] 국민일보 2013.07.29</ref> 성재기는 [[7월 25일]] "왜 투신하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차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빌려 달라고 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 달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그러나 투신 계획을 철회하지는 않았다.<ref name="kuksone"/> 그는 죽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그는 내가 죽음으로서 열악한 남자들의 권리를 되찾는다면 기꺼이 웃으면서 죽을 자신이 있다고 답했다. [[가부장제]]가 사라진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남자들에게 가부장의 역할을 강요한다며, 가령 남자들에게 무조건 군대에 가라고 강요하는 것과, 회사에서 무한한 야근과 특근, 적은 월급에도 열심히 일하라고 강요하는 것부터가 바로 남자들에 대한 [[가부장제|가부장적]] 책임감, 의무 강요라고 지적했다. 성재기는"내가 잘못되면 남성연대의 제2대 대표는 [[한승오 (1978년)|한승오]] 사무처장이 이어받을 것"이라며 극단적 황에 대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ref name="kuksone"/>
         [[2013년]] [[7월 26일]] [[서울특별시]] [[마포대교]]에서 [[투신]]하였다가 실종, 3일만인 [[7월 29일]] 오후 4시 10분께 [[서강대교]] 밤섬 인근시신으로 발견되었다.<ref name="omais">[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91063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빈소 여의도성모병원에 차려져] 오마이뉴스 2013.07.30</ref> 성재기가 [[마포대교]] 남단 140m 지점에서 뛰어내릴 때 [[한국방송공사|KBS]] 기자가 취재하고 있었다. 이 기자들이 취재하면서 투신을 만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타나기도 했다.<ref name="tutus">[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184208&cloc= "'성재기 대표 자살방조 논란' KBS, 구조 여유 없었다"]</ref> 당시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퍼진 성 대표의 투신 당시 사진엔 [[마포대교]] 난간 밖에 매달린 성 대표와 이를 카메라로 찍고 이는 남성연대 회원 2명, [[한국방송공사|KBS]] 카메라 기자가 나와있다.<ref name="jungko030726">[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184322&ctg=1200 성재기 투신 목격자, "마침 마포대교 건너다…"] 중앙일보 2013.07.26</ref> KBS 측은 '취재진은 취재보다도 인명구조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경찰과 수난구조대에 1차 구조신고를 했고, 뛰어내린 직후 수난구조대에 2차 구조신고를 했다'며 '정황 구조에 나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밝혔다.<ref name="tutus"/>
         [[2013년]] [[7월 30일]] 성재기의 [[서울특별시|서울]] [[마포구]] [[마포대교]] 아래 간이 빈소에는 1000여 명에 달하는 조문객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충격에 빠진 그의 유족이 빈소를 지키지 못해 남성연대 관계자가 주 자격으로 조문객을 맞았다.<ref name="disosp">[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229695&ctg=1200 故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오늘 발인…전국분향소 추모발길] 중앙일보 2013.08.01</ref> 부산 대전 등 전국 각지에는 20곳이 넘는 분향소가 설치돼 빈소를 직접 찾아가지 못하는 시민들이 성 대표의 죽음을 추모했다.<ref name="disosp"/> 그의 빈소에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함께 토론을 벌였던 [[민주당]] [[최민희]] 의원을 비롯해 [[미디어워치]] [[변희재]] 대표와 한국NGO신문 [[여미]] 대표 등이 다녀갔다<ref name="cheskist">[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7301437g 故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빈소, 유가족 없이 '차분'] 한국경제 2013.07.30</ref>. [[7월 29일]] 현역 정치인들중 처음으로 [[최민희]] 민주당 국회의원이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ref name="chil29">[http://www.pressbypl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402 최민희 민주당 의원 고(故) 성재기 빈소 조문] 프레스바이플 2013.07.30</ref>
         서울 등포 남성연대 사무실과 강남 사무실, 여의도 국회의사당로, 마포대교 등에서 노제를 마친 뒤 차량으로 [[동대구역]] 근처로 이동하였으며 [[경북도]]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 산 341 [[경산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 [[2013년]] [[9월 12일]]에는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달마사에서 부인 박은경 및 남성연대 직원들을 중심으로 49재를 거행하였다. [[9월 7일]] 그의 부인은 "남성연대 성재기, 그 아름다운 남자를 오래도록 기억해 주기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ref name="maill1">[http://news1.kr/articles/1312968 예고투신 성재기씨 부인 "남편에게 소중한 여자는…"] 뉴스1 2013.09.07</ref>
         * [[1993년]] [[2월]] [[남대학교]] 경대학 [[경제학]]과 졸업
         [[2000년]]대 초 그는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 [[야후코리아]] 등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에 글을 기고하며 [[여성 단체]]는 수십여개에 달하는데 왜 남성 단체는 없느냐며 남자들 스스로 자기 권리를 찾아 나서야 된다고 호소하였다. [[2002년]]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찾아가 [[대한민국 여성부|여성부]]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였다. 이후 포털과 인터넷의 논객으로 활동하며 [[여성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2004년]]부터 [[2005년]] [[1월]]에는 [[호주 제도]] 폐지에 반대하였다. 남성의 유일한 권리인 친자 확인 권한을 없애는 것은 [[남성성]]에 대한 침해라며 그는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였으나 외면당하였다. 그는 [[호주제]] 폐지에 지지를 보내던 [[한지환 (운동가)|한지환]], [[정채기 (1962년)|정채기]] 등을 비판하였다. [[2006년]] [[1월 2일]] 그는 여성부, 여성계와의 전면전, 투쟁을 선언하고 건립준비위원회 청년동맹을 조직하였다.
  • 서영희(배우) . . . . 97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F08080> '''{{{#ffffff 이름}}}''' ||<(> 서희(徐令姬) ||
         1999년에 연극 모스키토를 통해 데뷔한 이후 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기 시작했고 무도리가 첫 주연작이며 [[스승의 은혜(화)|스승의 은혜]]에서 처음으로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이 첫 주인공 배역부터가 뭔가 심치 않더니만...~~
         이전까지는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2008년 [[추격자]]의 미진 역할로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고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정점을 찍었다. 실제로 이 두 화를 통해 서희라는 배우를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정도이다. 유난히 아줌마나 수수한 이미지의 역할을 맡는 일이 많았던데다 특히 김복남으로 이 배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사실인데 실제로는 당한 미인이며 목소리도 예쁜 편이다. ~~하지만 서희가 나오는 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 특유의 비명소리나 샤우팅이 더 익숙할 것이다.~~ 또한 후덜덜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로 진정한 프로 연기자라는 정평이 나 있다.
         어째서인지 대중들에게는 '''맨날 구박받거나 누군가에게 맞거나 쫓기거나 고생하거나 죽을 위험에 처하거나 실제로 죽는 역할만 맡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http://youtu.be/2MpdByKTDuk|한밤의 TV연예]]에서는 아예 서희가 고생하는 장면들을 편집하여 보여주면서 확인 사살(...) 데뷔 초기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마파도에서 맡은 장끝순 역할을 할 때 계속 쫓기고 죽을 뻔하면서 심치 않은 조짐을 보이더니, 첫 주연작인 스승의 은혜에서 맡은 역할부터가 비범하기 짝이 없다. 얼핏 보면 평범한 여성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어릴 때부터 친구들한테 괴롭힘당하고 선생한테 온갖 학대 및 차별 대우를 받고 자란 인물이다.
         그 후 [[궁녀]]에서도 죽고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에서도 죽고 [[추격자]]에서도 죽고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도 죽으면서 [[사망전대]] 항목에 이름이 올라갔다. 선덕여왕과 추격자에서는 간신히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기나 했더니 결국 가차없이 죽임을 당하면서 사실 두 번 죽는 안습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죽은 방법도 정말 다양하다. 바다에 빠져 죽고, 목매어 죽고, 칼 맞아 죽고, 망치에 맞아 죽고, 총 맞고 목을 찔려서 죽고...
         죽지는 않더라도 온갖 안습 황을 다 겪는다. 마파도에서는 겨우 훔친 복권을 새한테(......) 뺏기질 않나. 며느리 전성시대의 이복남 역시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는 인물이며 세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는 시작부터 철없는 남편에게 대차게 맞고 뒹굴면서 싸우는 등 남편 때문에 속을 썩고 있다. 2013년 개봉 예정이었던 화 스토커에서는 남자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자신의 딸이 납치당하는 더욱 안습한 황을 겪을 예정이었다. [[Aㅏ]]... 하지만 ~~다행히도~~ 화 제작이 중단되면서 스토킹의 위험에서는 벗어났다.
         자신에 대한 오마쥬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는 '''"나도 맞는거라면 이력이 났다. 응? 치고 싶음 쳐~"'''(...)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력이 날 만도 하다.~~
         하지만 자신은 이렇게 힘든 역할을 하고 나면 오히려 뭔가 제대로 한 것 같고 더 보람이 느껴지며, 하기 어려운 배역일수록 도전하고 싶어진다고 언급했다. 다양한 캐릭터에 거침없이 도전하면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괜히 진정한 프로 연기자라고 하는게 아니다. 위에 링크된 인터뷰의 내용으로 볼 때 촬하면서 실제로 많이 다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농담삼아 '''"저는 아파트에서 사는 역할 하는게 꿈이예요!"'''라고 말하기도... ~~그리고 그 [[탐정: 더 비기닝|꿈이]] [[탐정: 리턴즈|이루어졌다]][* 단, 남편이 반[[백수]](...)]~~
         이런 배역이 주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는 본인의 의도이기도 하다. 서희는 화 [[마돈나(화)|마돈나]] 이후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696224.html|인터뷰]]에서 '''보고 난 후 찜찜함이 남는 화를 선호한다'''라고 밝히고 있고, 실제로도 독립화, 사회고발화, 대안화 등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희라는 이름 때문에 학창 시절에 '''국어책'''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작중 이름이 같은 역할을 맡은 적이 두 번이나 있다. 며느리 전성시대의 이복남과 김복남 살인사건의 김복남. 그리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하선애와 세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신선애. 특히 후자는 화 이름까지도 비슷하다. 특히 김복남 역할을 제의 받았을 때는 "어? 또 복남이네? 이게 나한테 어울리는 이름인가보다."라며 행운을 가져다주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외모 분위기가 [[우희진]]과 당히 닮았는데, 이 때문에 마파도에서 출연했을 때 우희진이 나온 것으로 착각한 관객들이 꽤 있었고, 반대로 [[남동1985]]에 나온 우희진을 서희로 착각한 관객들도 있었다. 구별 포인트는 우희진이 턱이 더 뾰족하고 키가 조금 작다.
         === 화 ===
         ||<|2> 2003년 || 질투는 나의 힘 || 안혜옥 || [* 아버지가 병에 걸렸고, 이원(박해일)에게 버림받음] ||
         || [[클래식(화)|클래식]] || 나나희 || ||
         ||<|3> 2006년 || [[스승의 은혜(화)|스승의 은혜]] || 유정원(남미자) || [*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선생에게는 학대를 당한다. 그리고...'''] ||
         ||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화)|서양골동양과자점]] || 진혁 여친 3 || ||
         || 2010년 ||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제8회 대한민국 화대 여우주연을 수했다. [[http://youtu.be/80eFc2H5bAk|관련 ]]] || 김복남 || [* '''더 이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 [[세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화)|세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신선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하선애와 이름이 같다.] || [* '''시작부터 남편에게 맞고 뒹굴며 싸운다.'''] ||
  • 아이린(레드벨벳) . . . . 97회 일치
          [*. 행정구역으로는 대구칠곡도 북구소속이지만 북구지역과 칠곡지역은 중학교 학군이 6학교군(북구(칠곡지역 제외)), 7학교군(칠곡(칠곡지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71613411729462|#]] ]||
         ||<:><#FE3E5F>'''{{{#white 학력}}}''' ||<#FFFFFF>[[대구광역시|대구]] 인지초등학교 (졸업)[br][[대구광역시|대구]] 운암중학교 (졸업)[br][[학남고등학교]] (졸업)[* [[서울특별시|서울]]로 [[전학]]을 갔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전학을 간 적도 없었고,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졸업사진도 역시 출신 학교였던 [[학남고등학교]]에서 촬했다.] ||
         ||<:><#FE3E5F>'''{{{#white 링크}}}''' ||<#FFFFFF>[[http://gall.dcinside.com/board/lists/?id=irene|아이린 갤러리[[파일:디시인사이드_로고.png|height=25]]]] ||
         웃음소리는 당히 호쾌해 ‘아하하하’ 라며 웃는다. 안 웃겨서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라고.
         [[문학소녀]]. 학창시절 수업과목 중 [[세계지리]]를 가장 좋아했고, [[물리]]를 가장 싫어했다고 한다. 취미도 [[독서]]. 그래서 [[문법]]이나 [[맞춤법]], [[띄어쓰기]] 등에 예민해 항 바르게 쓰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또한 멤버들이 문자를 보낼 때 맞춤법을 틀리면 고쳐준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전형적인 문과생--
          * 2014년 레드벨벳의 슬기, [[NCT]]의 태용, 쟈니와 오보이 화보를 촬했다.
          * 2014년 8월에 아이돌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로 데뷔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2016년 기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가수 역사 가장 늦은 시기인 24살에 데뷔했다.
         잘 울지 않는 성격이며, 눈물을 흘린다 하더라도 본인 감정을 잘 컨트롤한다. 음악방송 등에서 멤버들이 울 때 항 멤버들을 진정시켜준다. 이런 행동에서 보아, 이끌어 나가는 것 보다도 다른 멤버들과 소통을 자주하는 리더로, 실제로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다른 멤버들에게 조언을 하거나 힘내라는 투적인 말을 하는 대신 최대한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자신이 겪었던 감정을 공유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평소에 잘 나서지 않지만 멤버들이 혼란을 겪고 있거나 중구난방한 황이 되는 경우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편이다.
         마리끌레르 인터뷰에서 멤버들에 대한 존중과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아이린은 멤버들의 음색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에 벨벳 컨셉을 더 선호하는데 멤버들이 어떤 친구들인지 잘 아니까 어떤 마음이나 감성으로 불렀을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레드벨벳이라는 그룹 안에서 멤버들이 각자의 삶도 잘 살았으면 좋겠고 우리 한 명 한 명이 행복해야 더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고, 더 사랑받을 것 같다고 한다. 한마디로 항 자신보다 맴버들을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진정한 리더이다.
         다만 보컬 위주의 '''{{{#a562a2 벨벳}}}''' 컨셉의 곡에서 파트가 대적으로 적다. 아이린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본인의 파트를 자주 담당하지 못한다기보다는 다른 멤버들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미니 앨범 1집 수록곡 <Take It Slow>와 정규 1집 [[The Red]]의 수록곡 <Cool World>와 <Don't U Wait No More>에서는 개인파트를 포함한 후렴구 부분도 맡아서 다른 보컬 위주의 수록곡보다 파트가 많은 편.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이전보다 나아진 기량을 보인다.
         랩은 전형적인 SM 스타일이며 Ice Cream Cake의 공개 당시 멜론 리뷰창에 랩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Dumb Dumb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곡 제목들[* You need to 'Beat It' / That boy Michael Jackson 'Bad' / 난 너의 'Billie Jean'이 아냐 / Don't you 'Leave Me Alone' / 하지만 애매한 반응 난 원해 'Black Or White' / 포기 못 해 나의 'Man In The Mirror'. Ice Cream Cake와 Dumb Dumb의 랩은 [[XXX(가수)|XXX]]의 [[김심야]]가 작사하였다.][[https://www.youtube.com/watch?v=RrojDCT9ZIM|#]]을 활용해 인적인 랩을 보여줬다. 이후로도 레드컨셉의 곡에선 꾸준히 메인래퍼로서 랩 파트를 많이 받고 있다. 대부분의 음악방송에서도 안정적인 랩 실력을 보여주는 편이다. 최근에 컴백한 빨간 맛에서는 빠른 랩으로 다시 한번 메인래퍼의 실력을 검증하였다.
         정말 센(격한) 춤으로는 Dumb Dumb의 파워풀하고 보이그룹을 연시키는 안무가 있다. 대표적으로 160114 서가대 무대.[* 이날 댄스브레이크 직후 [[http://mblogthumb4.phinf.naver.net/20160115_223/alwaysirene_1452822805560lP6dM_PNG/20.png?type=w420|카메라에 잡힌 비율.]] ] [* 멤버들 중 댄스브레이크를 가장 잘 소화했다.]
         [[예리]]의 입으로 5인조로 개편되었을 때 인터뷰 대형과 거의 모든 무대 엔딩에서 센터를 차지하고 있다. 엔딩센터뿐만 아니라 안무가 있는 타이틀곡이나 수록곡 무대에서 센터 비중이 제일 많고 포인트 안무와 댄스브레이크를 [[슬기(레드벨벳)|슬기]]와 분담한다. [* 사실 레드벨벳은 컨셉 공식적인 센터 담당이 지정되지 않았다.] 아이돌 비주얼 센터로도 늘 위권에 꼽힌다. 특히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2017년 걸그룹 최강센터 총선거 1위'''에 등극했다. 흥미를 위한 콘텐츠이지만, 그 정도로 최근 여자아이돌계의 새로운 비주얼 멤버로 떠오르고 있다는 뜻.
         [[김신]]은 [[정오의 희망곡|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린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고 "이때가 대구를 호령하던 그때냐"고 질문하자 아이린은 수줍게 신입생 때는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배치고사를 보러 온 아이린의 옆 학교에 다니던 남학생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러왔다고 했다.
         과거 연관 검색어나 [[http://me2.do/FzfeHQ6b|인터넷 기사]]도 떴을 정도로 [[소녀시대]] [[태연]]과 닮은꼴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아이린은 인터뷰에서 '[[태연]]은 자기가 존경하는 선배님'이라며 광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멜론뮤직어워드 TOP10 수소감 중 전광판에 원샷이 잡히자 객석에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거리자 아이린이 ''응?''이라고 놀랐는데 환호성이 더 커진 것은 덤. [[https://youtu.be/t0VoN-Ho4pE|관객들의 반응에 놀라는 아이린]]
          * 성대모사로 주로 하는 것은 [[도라에몽]]의 '~~으으~~ 진구야'이다.~~그리고 부끄러워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uHDy3HCzPsM|]]
          * [[레드벨벳]]에서 제일 마른 멤버.~~몸매는 [[슬기(레드벨벳)|슬기]]~~ [* Lucky girl 무대 시작 전 뒤돌아 있을 때 무릎 뒤쪽뼈가 훤칠히 다 드러날 정도.[[https://youtu.be/3cLrvkHMUXo|]]][* 여담으로 SM이 아이린만 한 사이즈 작게 입힌다는 얘기가 있다.]
          * 닭을 전혀 못 먹는다고 한다. 어렸을 때 일주일 동안 계속 간장치킨만 먹다 질려서 토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닭과 관련된 음식을 전혀 못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린 어머니는 왜 그 때 일주일 내내 치킨만 시켜 먹었는지 기억을 못 하신다고(...). 때문에 [[주간 아이돌]]에 출연했을 당시, 랜덤플레이댄스에 실패 해 품으로 걸린 치킨과 피자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때 웬디가 아이린을 배려해 치킨을 포기했다. --착한 여자 웬디--
          * 연습생 시절, 연습이 다 끝나고 혼자 보컬룸에 남아 우연히 [[이현]]과 [[제아(브라운 아이드 걸스)|제아]]의 '하모니'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운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https://youtu.be/MdfN3a3lOk8|#]]
  • 함은정 . . . . 97회 일치
         ||<#0C8EC0><width=50> '''{{{#FFFFFF 이름}}}''' ||<(> 김윤아(咸𤨒晶, Kim Yoon -ah)[* [[https://www.facebook.com/officialtara/posts/300651626799379|페이스북]]을 살펴보면 은자는 구슬 옥변에 은혜 은자를 쓰는 걸로 나오는데 MS의 한글 입력기로는 입력이 되지 않는 듯 하다. 이는 이 한자가 [[유니코드]]의 한중일 통합 한자 역 B에 속해있기 때문.] ||
          *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따라 간 ‘무궁화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서 당시 동기였던 [[장근석]]과 나란히 입을 하며 연예계 쪽에 발을 디디게 됐다.[* 은정을 낳기 전 연예인으로 자랄 재목의 태몽을 꾸었다는 엄마가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 놓았다고 한다.]
          * 2009년 4월, 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드라마 신데렐라맨 OST <좋은 사람> 으로 데뷔했으나 묻히고 5인조에서 지애, [[양지원|지원]]을 빼고 새롭게 [[큐리]], [[전보람|보람]], [[소연(1987)|소연]]을 입하여 6인조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 [[인기가요]]에 출연한 은정이 <[[Absolute First Album|헤이헤이헤이]]> 무대를 선보이면서 입은 눈사람 의이 이슈가 되었다. 당시 MC였던 [[택연]]은 "오늘 너의 의은 벌칙인거지?"라는 일촌평을 남겼다(...). 이에 은정은 미니홈피 내 다이어리 게시판에 “벌칙으로 보실줄은 몰랐어요... 이럴 때 떠오르는 단 한분... ㅅㅈㄴ”라는 말로 화답했다. ~~혹시 [[김광수(음반기획자)|사장님]]?~~ 후에 멤버들에 의하면 은정이 그런 난해한 콘셉트를 좋아한다며 <[[Absolute First Album|스물물다섯서른다섯 ]> 당시 눈사람 의도 은정이 직접 골랐다고 한다(...).
          * 2012년 1월 25일 (24일 밤11시50분) <[[Funky Town|Lovey-Dovey]]> 안무 연습 후 귀가하던 중 눈길에 미끄러져 왼쪽 무릎 슬개골 지지대가 파열되는 부을 당해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은정이 이탈리아에서 2만 3천 유로(한화 약 3천 2백만 원)를 분실하여 이슈가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총무를 맡아 경비를 관리하고 있었던 은정은 촬하던 중 잠깐 휴식시간을 가지며 커피를 사러 갔다가 가방이 분실되는 사고를 당했다.이탈리아에 함께한 스태프에 의하면 은정이 촬이 끝나고 숙소에 도착하여 경비를 잃어버린 것을 속해하며 밤새 펑펑 울었다고. 여담으로 한달 후 같은 멤버 [[효민]]이 스태프에게 3000만원을 쐈다는 기사가 올라오면서 범인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는[[https://blog.naver.com/csw1278/40210242559|농담]]이 성행하기도 하였다.
          * 중국 방송에서 방송사고를 내버렸다(...) 인기 그룹 [[TFBOYS]]의 무대가 시작되자 은정은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모른채 '''"언니! 소연 언니! 어딨어 언니 춤춘다 춤춘다 춤춘다 춤보자 춤보자"'''라고 말해버렸고 은정의 목소리는 생방송 중에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http://www2.pullbbang.com/video.pull?vcode=l15597260|]]
          * 2011년, <[[드림 하이]]>에 [[윤백희]] 역할로 출연하였다. [[기타프로그램 갤러리]]와 [[야구 갤러리]]에서 드림하이가 가히 컬트적인 인기를 얻게 만든 주인공. 그런데 같이 나온 다른 배우들은 본인들이 부른 노래가 음원으로 하나씩 나왔는데 이쪽은 한 곡도 나오지 않았다. --[[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박진을 죽입시다 박진은 함은정 팬들의 원수]]--
          * 3월 30일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첫 녹화로 합류, <[[웃어라 동해야]]>에 김도진 역으로 출연하는 [[이장우(배우)|이장우]]와 가 커플로 오랫동안 출연했다.
          * 2011년 6월 9일에 개봉하는 김곡, 김선 감독의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라는 '''한국 최초로 [[걸그룹]]을 주제로 다룬 공포화'''의 주역을 맡게 됐다. 감독이 독립화계와 해외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다고 한다. 화 내에서는 '핑크돌스'라는 4인조 걸그룹의 리더 '은주'로 출연. 음악은 [[신사동호랭이]]가 담당했다고 한다. 포스터에서 하얀 얼굴로 피눈물을 흘리는 함은정의 모습이 여러모로 팬들을 [[충공깽]]에 몰아 넣은 모양이다.
          * 2011년 말에는 [[JTBC]]에서 방되는 <[[인수대비(드라마)|인수대비]]>에 인수대비 역으로 출연했다.
          * 2011 MBC 방송연예대식'에서 쇼/버라이어티 여자부문 신인을 받았다.
          * 2012년 8월 18일, <[[다섯 손가락]]>에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으나, [[티아라 화 트위터 사건|사건]] 이후 제작진에 의해 강제 하차 된다. 이때 함은정의 다섯 손가락 강제 하차는 사실 계약 위반에 해당하여,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서는 <다섯 손가락> 제작사인 (주)예인이앤엠 에 1억 4천만 원의 배금 소송을 청구하였고,[* 당시 [[현대 트라고|H사 트럭]](25톤 기준)1대와 맞먹는 금액.] 이와 동시에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에서는 다섯 손가락에 대한 보이콧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함은정은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은 나머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보이콧을 철회 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결국 다섯 손가락 제작사 (주)예인이앤엠은 이에 대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며 이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 2015년 4월 27일 [[MBK엔터테인먼트]]에서 자사 소속 여가수 중 한 명이 곧 발표할 솔로 신곡에 케이윌이 보컬 피처링으로 나섰다고 밝히며 소속 여가수의 눈과 손 이미지 티저를 공개하였다. 공개 후 사람들의 반응은 '딱 봐도 [[김윤아]]'(...) 4월 30일 '엘시(ELSIE)'란 이름과 은정이 아닌 다른 [[정채연|여성]]의 사진에 '2015, 0501'란 로마 숫자의 타투가 담긴 티저 이미지들을 공개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언플'(...) '연습생 끼워팔기'(...)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그리고 [[정채연|적중했다.]]~~ 5월 7일, '엘시'라는 예명으로 솔로 데뷔. 그런데 예명은 사실 마케팅용으로 만들어진 듯 하다. 방송에서는 대놓고 은정이라고 나온다.
          * 2016년, 화 <악의 꽃>에 출연 확정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1024749|되었다.]] 극 내에서 은정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여동생을 위해 엄청난 사채빚을 쓴 선 역할로,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을 이어가는 대한민국의 3포 세대 캐릭터를 연기할 예정이다.
          * 2016년 함은정이 [[MBC]] 방 예정인 사전제작 드라마 'The가디언'에 케스팅 되었다는 [[https://blog.naver.com/lslsr1357/220772121717|소식이 전해졌다.]] [[https://blog.naver.com/lslsr1357/220775801042|촬 중인 사진이나 관계자의 증언]]까지 나왔었지만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무산된 듯 하다.
          * 은정이 출연한다는 화 '악의 꽃'의 제목이 '실종2'로 변경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팬들은 그러러니 하는 반응이였지만 전작인 [[실종(한국 화)|실종]]의 잔인함과 수위를 알고 나서는 [[충공깽]]. 다행히도 시사회에서 본 관객들의 공통적인 평은 전작과 연관이 전혀 없다는 평.
          * 제 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화제]]에서 은정과 배우 서준 등이 출연한 '실종2'가 공개되었다.
          * 제 1회 신필름 예술화제 시식에서 인기을 수했다.
          * 2017년 11월 30일, [[부천국제판타스틱화제]]에서 특별 으로 소개 되었던 <실종2>가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극장에서 개봉한다.
  • 손승락 . . . . 96회 일치
         ||<:> '''출신 학교''' || 내당초-[[경중]]-[[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남대학교|남대]] ||
         || [[배힘찬]](2004) || → || '''손승락(2005~2007)''' || → || [[마일]](2007~해체) ||
         ||||<#000000><:> {{{#ffffff 수 기록}}} ||
         ||||||||||||<:> '''2014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 ||
         온몸을 던지는 다이나믹한 투구폼과 등판 시 울려퍼지는 [[퀸(밴드)|Queen]]의 명곡, [[News of the World|We will Rock you]]가 트레이드 마크. 별명이 많은 편인데 사실 좋은 쪽으로의 별명은 적다. 그나마 좋은 별명이 손승'''LOCK'''[* 스펠링이 다르다. 손승Lock이라고 한건 Lock이 '잠그다'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 We Will Rock You는 그냥 발음이 같아서(...)로 추정된다.], [[락앤락]][* 실제로 최훈은 손승락을 대체로 [[락앤락]]으로 그린다(...). 간혹 블론세이브 등 좋지 못한 경기를 펼쳤을때에는 '내용물 유출' 드립이 터지기도.]정도이며 나쁜 쪽으로는 손든락[* 2013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의 블론 세이브 때 타구가 중견수 플라이가 될 줄 알고 손을 치켜올려든 모습에서 유래.], 손트니코바[* [[김연아]]의 석연치 않은 금메달 획득 실패를 패러디해 골든글러브 수을 비꼬는 별명이다. ~~그래도 [[임태훈(야구선수)|임태운]]보다는 훨씬 낫다~~], 손퇴물[* 사실 손퇴물이라는 별명은 손승락이 10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타팀으로 트레이드 될까봐 걱정하던 혀갤러들이 팔리지 말라는 뜻에서 지어준 별명으로서 좀만 못해도 장난스럽게 던지는 별명에 가까웠는데 14시즌에 별명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래서 별명은 잘 지어야 된다. [[유한준|우타거포 분유신]]이 좋은 예.~~ 15시즌에는 더욱 더 심각한 퇴물로 거듭나고 있다. ~~평균자책점은 FA 협을 위한 눈속임일 뿐~~ ], 승락극장[* 엄밀히 말하면 이 별명은 [[타카츠 신고|이 선수]]의 별명에서 유래, 즉 깔끔한 세이브를 하지 못하고 주자를 내보낸 채로 세이브를 거둔다는 것에서 나온 비하적인 표현으로 시작된 말이다. 다만 2017년 현재는 어느 롯데 팬이 '''해피엔딩 전문 관'''이라는 배너를 들고 오면서 아예 하나의 별명으로 자리를 잡은 케이스.], SUN승NOT[* 투구폼을 바꾼 이후로 유독 일요일에 실점이 많고 블론세이브가 자주 벌어지자 붙여진 별명이다],족발극장 등이 있다. ~~[[키비]]닮았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의 활약을 모아만든 ''''No.1 손승락, 힘내라 돌멩이''''란 뮤비인데 당한 간지를 자랑한다, 직접 보자.
         제구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구위가 매우 뛰어난 스터프형 강속구 투수다. 즉 강속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넣을 줄 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공이 높게 제구돼도 워낙 구위가 좋아서 노리지 않았으면 배트가 밀려 커트되거나 혹 인필드되면 땅볼이 되는 황이 많다. 커맨드가 안정적이고 구위 빨로 babip을 낮추는 하드쓰로워 스타일. 의외로 마무리투수의 최고 덕목이라 할수있는 삼진율이 높지는 않다. 인플레이황을 많이 허용하기때문에 주자를 많이 내보낸다. 승락극장이라는 별명은 여기서 나온것. 사실 여러 구종을 구사할 수 있지만 위기황이 되면 속구+커터 위주로 볼배합이 극히 단순해진다. 심지어 지켜보는 팬들도 직직커 커커직이라면서 손승락의 단순한 볼배합을 알 정도. 우투수임에도 좌타자에게 매우 강한 면모를 보이는데, [[http://www.kbreport.com/statBuzz/detail?seq=96|2014시즌에는 좌타자대 피OPS 전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근데 중요할 때 쳐맞는다. 그해 한국시리즈 5차전이라던지..~~~~8회말에 무사만루에 올라와 무실점으로 막는 역투를 펼쳤지만 9회말 끝내기허용에 다 묻쳤다~~ ~~물론 그 황을 만든 [[강정호|놈]]보다는 덜 까인다.~~
         [[김광현]]과 함께 당히 다이나믹한 투구 폼으로도 유명하다. 정확히는 던질때 역동적인것이 아니라 던지고 난 뒤의 모션이 역동적이다. 거의 온몸을 내던지는 듯한 특유의 투구폼은 손승락의 징과도 같은데 공을 던진 이 후 몸이 붕 떴다가 다시 착지한다. 2011년 부에서 돌아온 후 더 화려해졌다. 승리를 지켜내는 마무리 투수, 에이스의 징인 등번호 1번[* 이전에는 레전드인 대도 [[전준호]]가 사용했으나 예외로 구결번되지 않아서 손승락에게 넘어왔다. 그리고 롯데로 이적해서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296617&redirect=false|등번호 1번을 달게 되었다.]]],[* 손승락과 동갑내기인 [[이우민]]이 기존에 등번호 1번을 달고 있었으나 손승락에게 넘겨주고 17번을 달게 되었다.] 화려한 점프까지 정말 멋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뛴다는 의식도 못 한다고. 또 후속 동작이 길기 때문에 수비하는 데도 향을 미친다. 당히 많은 야구 선수들이 저 폼을 따라하고 싶어하지만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77&article_id=0002906900|#]] 그런데 의외로 투수 쪽으로 오는 타구는 잘 잡는 편이다.~~고교 유격수출신~~
         14시즌부터는 부이 우려돼 점프를 잘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퇴물됐다~~ 실제로 투구폼을 바꾼 이후로 BABIP과 피안타율 피홈런율이 폭증했는데, 이에 대한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h&no=5523578|분석글]]이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그런데 15년 이후로도 가끔씩 극장을 개봉하면 저 투구폼으로 돌아간다. 일례로 2016년 롯데가 NC대로 유일하게 이긴 경기를 보면 만루를 만들고 나서부터 그런 모습이 잘 나와있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mbsIdx=665204&cpage=1&mbsW=&select=&opt=&keyword=|동으로 보자]]
         고향 팀인 [[삼성 라이온즈]]에 당히 약한 편. 삼성전에서 죽을 쑬 때마다 대구의 남자라고 까인다. ~~고향사랑~~ 게다가 히어로즈의 전신이였던 [[현대 유니콘스]]의 마무리가 '''[[조용준|누구]]'''였는지 생각하면... 손승락 필패 공식은 8승락+[[삼성 라이온즈]].[* 물론 마무리 투수가 9회 1이닝만 맡는 것과 8회부터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8승락이라는 별명은 약간 억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롯데 자이언츠 이적 이후는 불안한 롯데 불펜때문에 하도 8회에 많이 나오다 보니 8승락 = 필패 공식은 많이 적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2017년에 꾸준히 8승락을 해도 안정감 있게 막으며 8승락 = 필패 공식은 당히 지워진 편.]~~덕분에 삼성팬들은 삼승락이라고 좋아한다 카더라~~ ~~그리고 2014년 일요일이라는 조건도 추가되었다~~ 데뷔 첫 KS인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도 [[강정호]]의 실책으로 [[최형우]]에게 끝내기를 맞으며 또 고향 팀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2013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 4이닝 불꽃투, 2014년 한국시리즈 5차전 무사만루 방어 등 포스트시즌에서 인적인 장면을 많이 남겼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특별히 가을에 강한 선수는 아니다. 당장 2013 준PO에서는 1차전 손든락 시전으로 팀 창단 이래 첫 포스트시즌 경기의 세이브투수가 아니라 블론세이브 겸 승리투수(...)가 되었고 2차전에서는 송구실책까지 하면서 패배의 원흉이 될 뻔했다가 끝내기로 구사일생했던 것을 5차전에서 세탁한 것에 가깝고, 2014 KS의 경우 바로 저 무사만루 방어에서 이어지는 장면이 수많은 넥센 팬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그 최형우의 끝내기다. ~~조우 시리즈였던~~ 이듬해 준PO에서는 팀의 여느 투수들과 마찬가지로 미미한 모습만을 남겼다.~~롯데는 언제쯤 포스트시즌 갈 수 있을까~~ ~~그러나 2017시즌 포시에 진출했다~~ ~~9대0~~
         어떤 의미로 보면 나름 불운한 투수이기도 하다. 세이브왕을 따낼 정도로 수준급 마무리 투수지만, 하필이면 오승환이라는 넘사벽 철벽 마무리에 밀려 늘 비교대이 되곤 했다. 게다가 손승락 이전에 마무리였던 조용준이 짧고 굵은 임팩트를 보였기에 대적으로 손승락이 왜소해 보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직전 마무리를 맡았던 투수는 외국인[[타카츠 신고]]였는데 이쪽도 손승락처럼 삼진율이 낮고 피안타를 허용하는 극장형 마무리였다. 그러나 손승락과 차이점이라면 멘탈 하나는 튼튼했고, 뛰어난 완급조절과 제구로스스로 위기에서 벗어나 해피엔딩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넥센팬들의 평가도 박해서 후배들의 대기록이나 역투를 말아먹는다거나 걸핏하면 극장을 여는 변태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손승락이 당연히 틀어막고 지킨 승리가 더 많지만, 워낙에 한두번 크게 블론세이브하고 불지른 경기도 많아서 안좋은 쪽으로 이미지가 쉽게 굳어버렸다.
         물론 박동희 이후로는 스텟으로만으로도 준수한 마무리 투수가 애킨스, 김사율 정도밖에 없던 롯데 팬들에겐 그런거 없고 롯데 역사 최강의 마무리 투수로 칭송받는다. 이는 족발게이트로 말아먹었던 2016년 시즌에도 그래도 저정도 마무리면 롯데에선 역대급이란 평가였고 30세이브를 돌파하고 팀의 뒷문을 단단히 걸어잠구는 2017년에는 그저 갓승락..... 단 2시즌만에 롯데 역사 최고의 마무리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2018년 8월 16일을 기해 롯데 자이언츠 통산 최다 세이브 투수가 되었다.
         2001년 신인지명 때 [[현대 유니콘스]]에 2차지명 3라운드에서 지명되었으며,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졸업 후 [[남대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에는 유격수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남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성공적으로 투수로 전향[* 같은 사례로 [[정재복]], ~~[[최진호(야구선수)|최진호]](한화)~~가 있다. 반대로 동갑내기 입단 동기인 [[장민석]]은 좌완투수로 입단했다가 프로와서는 타자로 전향했다.]하여 대학 리그 최고의 강속구를 던지는 선수로 거듭났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0589|대학에 와서 변화구 등 투구 메커니즘을 습득할 수 있었다]]고. [[남대학교]]를 졸업하고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목동의 원한 수호신'''
         2005년에 입단한 신인 선수들 중 대졸 최대어로 꼽히던 선수였기 때문에, 입단 첫 해부터 팀 내에서 가장 커다란 주목을 받았었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는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솔직히 많이 민망하다...~~, 2004년 [[오주원|오재]] 이렇게 3년 연속으로 신인왕이 탄생했었다. 그러니 입단 당시 손승락에 대한 기대는 신인왕은 물론이라 믿었던 팬들이 꽤 많았다.] 그해 사 처음으로 열린 미디어데이에는 [[조용준]]과 함께 팀을 대표해서 참석했을 정도.
         입단 첫 해 2005년 시즌 3선발로 주로 등판했다. 그러나, 막 시즌에는 제대로 털렸다. 데뷔 첫 경기가 사직 롯데戰이었는데, 여기서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해 선발승을 챙겼다. 그러나, 이후 등판할 때마다 두둘겨맞는 경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신인 때 선발로 삼성戰에 만나게 되면 먼지나도록 두들겨맞기만 했다. 이 향 탓인지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바꾼 후에도 삼성戰에'''만''' 유독 취약한~~불을 지피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그 해 5승 10패 [[평균자책점]] 5점대 중반을 기록했다.
         이듬해 4선발로 등판하여 시즌 초반에는 굉장히 잘 던졌으나[* 5월까지만해도 5승 무패, 방어율 0점대였던 때도 있었을 정도였다.] 6월 접어 들면서부터 가면서 체력 저하로 난조를 종종 보였고, 팔꿈치 부까지 겹쳐 중후반부터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전천후 투수로 활동했다. 6승 5패에 [[평균자책점]] 4.17을 기록했다.
         [[경찰 야구단|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넥센 히어로즈]]에 합류하여 4년 만에 1군에 올라왔다. 2010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 [[스프링캠프]]에서 부이 재발하여 또 다시 이탈한 [[조용준]]을 대신하여 마무리 보직을 맡게 됐다.[* 결국 조용준은 시즌 후 방출되었다.] 처음에는 손승락에게 '오랜 기간 동안의 공백이 있는데 과연 잘 해줄까?' 이런 의문이 따르면서 팬들 사이에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95회 일치
          1914년 6월 27일 시작하는 시나리오. 약 한 달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주요 동맹도 동맹국, 삼국 협, 코민테른으로 다르다. 1920년이 끝나는 순간 게임도 끝나므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 할 수는 없다.
          수장은 국. 이외에 주요 회원국으로는 프랑스가 있다. 초기에는 국과 프랑스, 그리고 두 국가의 따까리들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며 미국의 참전, 국의 중남미 국가 포섭 등으로 당히 많은 회원국을 확보하게 된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원자로도 충분히 크면 생산되는 자원. 전략폭격기에 탑재해 적 프로빈스를 쑥밭으로 만드는데 쓰인다. "소형화된 원자폭탄"을 연구하면 비행폭탄과 로켓에도 탑재 가능. 핵공격을 받은 프로빈스는 건물과 자원 수급에 구적인 피해를 입으며, 해당 프로빈스에 주둔하던 병력들도 괴멸적인 타격을 받는다. 불만도는 덤. 국과 일본[* 국은 본토에 핵을 맞으면 항복하며, 일본은 본토에 두번 핵을 맞으면 항복한다.]을 제외한 메이저 국가들의 경우 수도에 핵을 맞으면 최대 두번까지 수도 이전 이벤트가 뜬다.
          국가의 혼란도. 장관을 갈아치우던가, 소비재에 필요한 공업력을 할당하지 못했다던가, 핵을 맞았다던가, 병신같은 이벤트가 떴다던가 하면 생긴다. 높으면 군대의 전투 능력, 공업력 효율 등을 다 깎아먹는다. 일정 수준 이 불만도가 생기면 자국 토에서 반란군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유닛 생산하듯이 10개씩 찍어낼 수 있다. 바다 건너 토에서 자원을 가져오고, 바다 건너에 주둔한 부대에 보급품과 석유를 전달한다. 전쟁이 시작하면 적국의 통파괴전으로 몇척씩 침몰하기 시작한다. 필요량보다 수가 적으면 보급망에 큰 차질이 생기니 주의.
          유닛 생산하듯이 10개씩 찍어낼 수 있다. 선대를 잠수함 등의 위험요소로부터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전략폭격이나 병참타격, 시설 타격, 지유닛의 전투 등으로 손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된다. 하지만 핵 맞아서 박살나는건 완전히 박살난거라 다시 지어줘야한다.
          공업력(IC) 수치를 1 올려주는 건물. 무에서 공업력을 만들어 내는건 아니고 하루에 2 에너지와 1 금속 0.5 희귀금속을 처먹는다. 못 먹으면 공업력을 제공 안하니 주의. 급한 황이 아니라면 게임 시작에는 이걸 짓는다. 33% 이의 기반시설이 지어져 있는 프로빈스에만 지을 수 있다.
          해당 프로빈스에서 벌어지는 륙전에서 방어측에게 보너스를 주는 건물. 그런데 이런거 없어도 륙전은 방어측이 우세하다.
          * Land Fort(지요새)
          해당 프로빈스에서 벌어지는 지전에서 방어측에게 보너스를 주는 건물.
          해당 지역 유닛의 이동 속도, 보급 효율, 증원 효율 등을 보정해주는 건물. 한번 건설할 때 마다 10%씩 오른다. 운송력(TC)에 향을 끼치기도 한다.
          공군 유닛이 주둔하는 곳. 공군 기지의 사이즈에 따라 보급&증원&업그레이드 효율이 높아지고, 주둔한 공군 유닛의 수에 따라 효율이 낮아진다. 공군기지가 위치한 프로빈스가 적에게 넘어가면 그곳을 거점으로 삼던 공군 유닛들은 모두 전멸 처리된다. 미리 생산하고 원하는 프로빈스에 배치할 수 있다.
          해군 유닛이 주둔하는 곳. 크기 1 짜리 해군 기지(항구)는 해군 유닛의 모항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의. 병력 수송용 정도로나 사용할 수 있다. 해군 기지의 사이즈에 따라 보급&증원&업그레이드 효율이 높아지고, 주둔한 해군 유닛의 수에 따라 효율이 낮아진다. 해군기지가 위치한 프로빈스가 적에게 넘어가면 그곳을 거점으로 삼던 해군 유닛들은 바다로 탈출, 보급 부족으로 피가 깎여가며 제일 가까운 아군 해군 기지로 이동한다. 미리 생산하고 원하는 프로빈스에 배치할 수 있다.
          * 보급 황: 당연히 보급이 안 되는 부대의 효율이 떨어진다.
          * 륙 패널티: 륙 한계 이 사단을 밀어넣으면 제한수를 초과한 사단들은 패널티를 받는다. 이 패널티가 90% 수준이기 때문에 초과된 사단들은 그냥 짐덩어리로 전락한다. 이 때문에 태평양 전쟁에서는 한개 군단이 한개 야전군을 막아내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 그 외 등등: 공수강하 패널티, 포위 보너스, 륙 패널티, 근처 해군의 포격 등등.
          좌익↔우익. 정치 체제에 향을 준다.
          자유 시장↔중앙 계획. 자유 시장에 가까울수록 유닛 업그레이드 시간과 필요 공업력이 감소하며, 소비재 생산으로 얻게 되는 자금이 증가한다. 하지만 연구진의 임금이 증가하며, 연속 생산 보너스 역시 감소한다. 이 슬라이더의 한도는 민주주의↔전제주의 슬라이더의 향을 받는다. 국가가 독재적이라면 자유시장으로 슬라이더를 당기는게 제한되고, 국가가 민주적이라면 중앙계획으로 슬라이더를 당기는게 제한된다.
          간섭주의↔고립주의. 간섭주의에 가까울수록 외교활동과 첩보활동에 소모되는 자금이 감소하고, 여러 외교적 활동이 가능해진다. 또한 첩보 효율도 증가하며, 대 국가에 선전포고를 하기 위한 명분(대국가의 호전도)의 필요성도 감소한다. 또한 선전포고로 생기는 불만도 증가율도 감소한다. 하지만 평화시 대 국가와의 우호도 회복률이 낮아진다.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95회 일치
         | 이름 = 김준 <br/> (金俊永)
         | 웹사이트 =
         '''김준'''(金俊永; [[1985년]] [[12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아이디는 '''GGPlay''' 또는 '''KT.MGW)Never'''이다.
         점잖고 넉넉한 성품과 스케일이 큰 대구 운으로 많은 게임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으며, '''대인배'''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공동 다승왕을 차지했다. ([[강민 (프로게이머)|강민]](당시 [[KTF 매직엔스]]), [[박지호]](당시 [[MBC게임 히어로|POS]]), [[박성준 (1986년)|박성준]](당시 [[MBC게임 히어로|POS]]), [[송병구]](당시 [[삼성전자 칸]]), [[오종]](당시 [[화승 OZ|Plus]]와 공동 기록 보유)
         [[2008년]] [[10월 29일]], 친정팀이었던 웅진 스타즈로 다시 이적하였다. 그 이후 프로리그에서 자주 승리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2009년부터 다시 조금씩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손목 부까지 생기며 거의 출전 기회를 실하다시피 했다.
         |제목=김준 "손목 터널 증후군 극복 못해"
         김준은 데뷔 직후 온게임넷의 2004년 1차 챌린지 리그를 통해 최초로 개인리그에 등장했고, [[김환중]](당시 [[G.O 팀|G.O]], 은퇴)에게 2:0으로 패배하였다. 세 차례의 챌린지 리그 도전 끝에 2005년 CYON [[듀얼토너먼트]]에 진출했고, 2승을 거두면서 [[EVER 스타리그 2005]]에 진출하며 최초로 메이저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김준의 스타리그 도전은 순탄치 않았다. EVER 스타리그 2005에선 [[박용욱]](당시 [[SK 텔레콤 T1]], 현 [[온게임넷]] 해설위원)과 [[전욱]](당시 [[SK 텔레콤 T1]], 현 [[위메이드 폭스]])을 꺾고 2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3자 재경기에서 전패하며 16강 탈락했다. 다음 대회인 [[So1 스타리그 2005|So1 스타리그]]에서는 당대 최강의 테란 [[최연성]](당시 [[SK 텔레콤 T1]], 현 SK 텔레콤 T1 코치)을 이겼지만 [[홍진호]](당시 [[KTF 매직엔스]],은퇴)와 [[오종]](당시 [[화승 OZ|Plus]], 현 [[화승 오즈]])에게 패배하며 역시 16강 탈락했다.
         홍진호와 펼친 최고의 저그 대 저그 경기로 많은 이들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켰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었다. 이후 3시즌에 걸쳐 사용된 반섬맵 '815' 시리즈의 데뷔 경기였던 홍진호와 김준의 대결은 장장 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종래의 뮤탈리스크 저글링 위주의 단조로운 저그전 양을 탈피한 다양한 유닛들의 각축으로 이루어졌다. 디바우러, 디파일러, 퀸, 심지어는 히드라리스크와 스탑 럴커까지 동원되는 혈투가 벌어졌고, 김준은 초반 유리한 전개를 만들었으나 홍진호의 뒷심에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이 경기는 역대 최장시간 저그 대 저그 경기이자, 역대 최고의 저그 대 저그 명승부로 기억되고 있으며, 비록 김준은 이 경기에서 지긴 했으나, 이 경기로 인해 아직 신예급이었던 김준의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두 시즌의 공백기 이후 김준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2|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로 개인리그에 복귀한다. 김준은 [[차재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현 [[CJ 엔투스]] 코치), [[박태민]](당시 [[SK 텔레콤 T1]], 현 [[온게임넷]] 해설위원), [[변형태]](당시 [[CJ 엔투스]], 현 [[공군 ACE]])와 24강 F조에 편성되어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6강에서 1년여만에 만난 오종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그 다음 대회였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도 김준은 재경기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힘겹게 16강에 진출했지만, [[이성은]](당시 [[삼성전자 칸]], 현 [[공군 ACE]])에게 2:1로 패배하며 16강 탈락했다. 훌륭한 기량을 보유하고도 번번이 16강을 넘지 못하는 김준에게 게임팬들은 '16강 저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2006년 9월 15일 변형태와 알카노이드에서 치른 일전은 많은 게임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온갖 화제를 낳았다. 이 경기에서 김준은 테란으로 트리플 커맨드를 확보한 변형태를 대로 전 맵에 걸쳐 멀티를 가져가면서 막대한 자원 수급량을 확보했고(총 8개의 멀티 보유), 처음 택한 공격이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저글링 드랍이었을 정도로 엄청난 배포를 보였다. 이후 공중유닛에 매우 강한 발키리, 골리앗 조합으로 진군하는 테란 병력을 소위 새떼라 불리는 뮤탈리스크 대부대로 무난히 격파하고, 전맵에서 뿜어져 나오는 울트라리스크로 대의 본진을 싹쓸이하면서 최고의 관광 경기를 연출했다. 이 경기가 펼쳐진 16분 동안 김준은 40000이 넘는 미네랄을 채취했을 정도로 엄청난 물량을 뽐내며 당시 최고조에 다다랐던 테란전 실력을 입증하였으며, 경기 내적인 측면에서도 대인배스러운 캐릭터를 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경기였다. 또한 훗날의 [[다음 스타리그 2007]]에서의 호적수, 이후에는 팀동료로 계속 이어진 변형태와의 인연이 시작된 경기이기도 했다.
         다시 16강 체제로 회귀한 [[다음 스타리그 2007|Daum 스타리그 2007]]에서 김준은 [[한동욱]](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은퇴), [[신희승]](당시 [[eSTRO]], 구제명), [[송병구]]([[삼성전자 칸]])와 함께 D조에 편성되었다. 줄곧 16강에 머물렀던 김준은 3승을 거두며 드디어 조 1위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많은 이들의 예을 무너뜨렸다. 김준의 8강 이후 토너먼트 대진은 최고의 테란들과 연거푸 부딪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김준은 8강에서 당시 [[마재윤]](당시 [[CJ 엔투스]], 구제명)의 몇 안 되는 대항마이자 저그전 최강자라는 평가를 받던 [[진수]](당시 [[STX SouL]], 구제명)를 2:1로 물리쳤고, 4강에서는 데뷔 직후 바로 4강에 진출하면서 최고의 실력과 기세를 뽐내던 [[이호 (1992년)|이호]](당시 [[KTF 매직엔스]], 현 [[KT 롤스터]])를 대로 3:2 역전승을 거뒀다. 결승에선 변형태와 맞붙어, 2:0 황에서 세 경기를 연이어 따내며 스타리그 도전 다섯 번만에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진수와 이호와 펼쳤던 경기들도 한 세트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 명승부였지만, 결승전에선 2:0으로 밀리고 있다가 3, 4, 5경기를 연이어 승리하면서 전용준 캐스터의 표현대로 "천재도 못하고, 본좌도 못하고, 누구도 못하고, 황제도 못했던" 리버스 스윕을 역성 종족으로 달성하며 최고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특히 파이썬에서 펼쳐진 5경기는 종료 직전까지 승패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었던 명경기로, 김준은 변형태의 바이오닉 병력에 중원을 빼앗기며 황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연이은 멀티 견제를 극적으로 막아내며 신들린 스콜지의 활용으로 사이언스 베슬을 지속적으로 줄여 주며 항전했고, 종국에는 가까스로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울트라리스크를 생산해 내는 데에 성공하며 생애 최초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경기 종료 후 김준은 "2:0으로 뒤지고 있을 때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려 승리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말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변형태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승자와 패자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스타리그의 10년 역사 속에서도 김준과 변형태의 다음 스타리그 결승전은 그 스코어로나 경기 내용으로나 그 안에 얽힌 드라마로나 역대 최고의 스타리그 결승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후 김준은 우승자 징크스에 시달리며 [[EVER 스타리그 2007]]에서 1승 2패로 16강 탈락하였고, 두 시즌의 공백과 이적 이후 진출한 [[EVER 스타리그 2008]]에서도 3패로 16강 탈락하였다. 그러나 다음 대회인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서는 2승 1패로 16강 그룹을 통과했으며, 8강에서 이호를 대로 2:1로 승리하는 당시로서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4강에 올랐다. 4강에선 신예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SK 텔레콤 T1]])의 메카닉 전략에 무너지며 1:3으로 분패했고, 같이 결승 진출이 좌절된 [[도재욱]]([[SK 텔레콤 T1]])보다 대회 승률(인크루트 스타리그 16강부터 4강까지의 승률)이 낮아 4번시드를 획득하였다.
         시드보유자로 참여한 [[바투 스타리그]]에서는 1승 2패로 16강 탈락, 차기 대회 36강 시드를 부여받았으며, 다음 대회인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는 36강 2차전에서 과거 팀동료였던 [[한봉 (프로게이머)|한봉]](당시 [[CJ 엔투스]], 현 [[SK 텔레콤 T1]])에게 2:0으로 패배하였다. 이것은 그의 마지막 스타리그 참여가 되었고 이후 김준은 은퇴를 선언하며 차기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다.
         * [[2004년]] 제5회 커리지 매치 입
         * 김준의 별명 '대인배'는 2005년 11월 12일 김준이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2라운드 승자전 대 [[김근백]](당시 [[삼성전자 칸]], 은퇴) 전에서 불리한 황에서 해처리 버그(해처리로 변태하다가 취소한 태의 저그 드론이 소실될 경우 게임 자체가 멈춰 버리는 현)가 발생하자 재경기가 가능한 황에서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것에서 유래하였다. '대인배(大人輩)'라는 용어는 당시 네티즌들의 화제가 되었던 [[김성모]]의 만화 중 등장한 '소인배'와 반대의 의미를 가진 어휘로, 본래 표준어가 아니며 '輩'라는 어미가 '소인배', '무뢰배', '폭력배' 등의 단어에서 보이듯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김준을 '대인'이라고만 칭하기도 했다.
         * [[MBC게임]]에서의 방송경기 중 컴퓨터 기술팀이 자신의 PC를 손보는 동안 김준은 경기석 뒷편에 차렷 자세로 서 있었는데, 이 모습이 찍힌 사진을 계기로 그에겐 '차렷저그'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이 사진은 각 커뮤니티의 [[짤방]]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다.
         * 과거 리그를 선도하던 저그 플레이어들의 이름을 줄여 부르는 게임팬들의 전통에 맞춰, 2006~2007 시즌 저그를 이끌었던 마재윤, 김준, [[이제동]] 세 선수를 일컬어 '마준동'이라 불렀다. 이전 세대에는 '조진락([[조용호 (프로게이머)|조용호]], [[홍진호]], [[박경락]])', '변태준([[변은종]], [[박태민 (프로게이머)|박태민]], [[박성준 (1986년)|박성준]])'이 저그 진을 대표하는 플레이어였다.
  • 전인범 . . . . 95회 일치
         전인범은 [[1958년]] [[9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전주화와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ref name="a">이혜민. 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9617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新東亞』 통권 684호, 154-163.</ref> 유년 시절의 대부분은 서울에 살았으며, 1965년 부모의 이혼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33122 [오래전 ‘이날’] 11월 20일 양파가 눈물 흘린 98 수능], 《경향신문》, 2017년 11월 20일</ref> 1969년 귀국한 뒤에도 그의 모친은 그가 어를 잊지 않도록 [[AFN Korea|AFKN]]을 주로 시청하게 했으며 저녁식사 때만큼은 어로 대화하게 했다. 그 또한 『[[:en:Reader's Digest|리더스 다이제스트]]』, 『[[:en:Newsweek|뉴스위크]]』, 『[[:en:Time (magazine)|타임]]』과 같은 시사 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으며 어릴 때부터 국제관계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미국 TV 프로그램 《[[:en:Combat!|Combat!]]》에 나오는 군인 샌더스 중사를 동경하던 그는 12살 때 외삼촌에게 “군인이 되려면 육군사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육사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 뒤 [[리라초등학교|리라국민학교]]와 [[대경중학교 (서울)|대경중학교]]를 거쳐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813572 [人脈] 경기고등학교 출신 군장성들‥ 문·무겸비 군실세… 뜨는 KY그룹], 《한국경제》, 2005년 6월 26일</ref> 육사 동기생 중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으나 어 시험은 만점을 받았던 그는 1981년 4월 3일 육군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육군|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981년 초임지인 30사단 90연대 15중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 중 1군단장 [[이기백 (1931년)|이기백]] 중장에게 발탁되어 대한민국 육군 최초로 [[중위]] 계급을 달고 3성 장군인 군단장 전속부관을 맡게 되었다. 1983년 10월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 당시 이기백 [[4성 장군|대장]]은 [[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합동참모의장]]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을 수행했으며, 전인범 중위 또한 이기백 [[장군]]의 전속부관으로서 아웅 산 묘소 참배에 동행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2/2012101200231.html "아, 가슴 아픈 이 사진... 거기에 내가 있었다"], 《조선일보》, 2012년 10월 12일</ref> 당시 폭탄 테러로 아수라장이 된 묘역에서 추가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뛰어든 그는 중을 입은 이기백 장군을 구출해내어 [[대한민국의_훈장#보국훈장|보국훈장 광복장]]을 수훈하였다. 그때 폭발로 온몸에 박힌 파편 제거수술을 받은 이기백 대장이 의식이 돌아오자 마자 “각하께선 괜찮으시냐, 지금 몇 시냐, 밥은 먹었냐”라고 묻는 모습에 관과 부하를 저렇게 챙기고 위하는 게 진짜 군인이란 것을 느끼게 되었다.<ref name="a"/>
         1986년 30사단 90연대 2대대 중대장 시절에는 육군의 우수 전투중대장에게 주는 [[강재구|재구]]을 받기도 했다. 당시 초급 지휘관으로 중대원들의 사격 훈련 중 소총 사격 점을 못 잡는 병사를 데려다가 실탄을 주고 자신은 표적지 앞에 서서 사격을 하게 해 점을 잡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ref name="c">[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42447 ‘제설작업 하고, 전역사병에게 경례’ ‘괴짜장군’의 퇴임식], 《서울신문》, 2016년 7월 29일</ref> 군사정권 시절 그가 중대장을 역임한 부대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일어나면 연세대학교를 점령하는 부대였는데, 그는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군인이 대학생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많은 갈등을 했다. 그래서 원래는 데모 때 중대장이 맨 뒤에 서서 진압을 지시하게 돼 있는데 그는 맨 앞으로 나가서 돌 맞더라도 제일 먼저 맞고 죽으려고 했다고 과거를 회고하였다.<ref name="b">[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2140702 [단독] 전인범 "내 문제, 문재인에게 부담 안 돼... 아내, 구시대 법에 걸려든 것"], 《오마이뉴스》, 2017년 2월 9일</ref> [[소령]]으로 진급한 뒤에는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정책장교 및 군사외교협력장교 보직을 받아 많은 통번역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한미연합사령관 [[:en:Robert W. RisCassi|로버트 리즈카시]] 대장으로부터 [[:en:Commendation Medal#Army|육군표창훈장]](Army Commendation Medal)을 받았다. [[중령]] 때에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 연습처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장교를 맡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합모의 연습을 기획하고 실행한 공로로 2002년 [[:en:Meritorious Service Medal (United States)|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을 받았다.
         2004년 12월에는 [[:en:Multi-National Force – Iraq|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공정한 선거업무의 주역으로 외국군(미국, 국, 호주, 루마니아)을 지휘·감독,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이 [[이라크 전쟁|이라크전]] 때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냈는데 다국적군사령부 참모 중에 한국군이 그 외에는 없어 처음에는 직속 부하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느낀 그였다. 그래서 바쁘다는 외국군 장군들 대신 브리핑을 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고자 노력해 점차 조직을 장악하였다고 밝혔다.<ref name="a"/> 그는 [[:en:United States Armed Forces|미군]]과 [[:en:British Armed Forces|국군]], [[:en:Australian Defence Force|호주군]] 장교 10여 명을 지휘해 5400개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이라크 유권자 1400만 명의 투표를 지원 및 감독하였으며, 3500t에 이르는 선거 관련 물자를 각 투표소에 공급하고 치안 유지를 지원하는 일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030323 이라크 총선지원 전인범 대령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 기여에 자부심”], 《서울신문》, 2005년 1월 31일</ref> 선거가 무사히 끝난 뒤 이라크 평화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대한민국 국군|한국 군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정부]]로부터 [[:en:Bronze Star Medal|동성훈장]](Bronze Star Medal)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046950 노 대통령 전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 《연합뉴스》, 2005년 7월 11일</ref><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50706&parent_no=7&bbs_id=BBSMSTR_000000000004 이라크 총선 성공지원 공로, 전인범 육군 대령 美 동성무공훈장 받아], 《국방일보》, 2005년 7월 6일</ref>
         2007년 7월 국제 테러단체인 [[탈레반]]에 의한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아프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카불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여 사건 발생 43일 만에 21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임무는 군사협조단 단장으로서 [[:en: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국제안보지원군사령부]]에 파견돼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외국군을 설득할 논리가 부족하니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자고 생각하였다. 우선 [[:en:Swedish Armed Forces|스웨덴군]] 소장에게 ‘사람들 살려야 한다’, ‘사무실이 필요하다’, ‘황실 출입을 허가해달라’, ‘인터넷, 유선전화, 휴대전화 쓰게 해달라’, ‘숙식 제공해달라’ 등을 부탁했다. 황실에서는 유학시절에 알고 지낸 [[:en:Bundeswehr|독일군]], 미군을 만나 사람들이 죽고 사는 문제이니 많이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ref name="a"/> 이렇게 군사협조단을 통해 수집된 인질 및 탈레반 세력의 동향 첩보 등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초자료가 됐고, 특히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한 노력은 인질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43352 <軍, 아프간 인질 석방 숨은 공로자>-1,2], 《연합뉴스》, 2007년 9월 2일</ref> 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80303&parent_no=8&bbs_id=BBSMSTR_000000000138 아프간 인질석방 공로 군인 '훈·포장' 수여], 《국방일보》, 2008년 3월 3일</ref>
         2009년 11월 [[2성 장군|소장]]으로 진급해 제27보병사단장에 임명되었다. 재임하면서 그는 전역하는 병사들을 위해 전역식을 열어주고 직접 참석해 “군 생활 하느라 고생했는데 내가 줄 건 육군 소장의 경례밖에 없다”며 전역병들에게 부동자세로 경례를 해주었고,<ref>[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95508 [김준범 ‘오늘과 내일’] 박찬주 대장 사태로 돌아본 ‘병사들을 사랑한 장군들’], 《시사위크》, 2017년 8월 14일</ref> 부대를 방문한 군수사령관 앞에서 병사들에게 보급되는 슬리퍼의 열악함을 토로하며 보급에 대한 확답을 받을 때까지 사령관 앞에서 슬리퍼를 물고 있기도 하는 등 장병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96411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끝없는 미담 “능력과 인품 두루 갖춘 진짜 장군”], 《서울신문》, 2017년 2월 7일</ref> 2011년 5월에는 한·미 연합작전 태세를 발전시킨 공과 한·미 우호관계 증진 노력을 인정받아 미국이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등급 훈장인 [[:en:Legion of Merit|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수훈하였다.<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172160 전인범 육군 27사단장 '美 공로훈장' 수], 《브레이크뉴스》, 2011년 5월 13일</ref> 그는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합동참모본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단장으로 근무 중 한미가 2007년에 합의한 전작권 전환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면서 150개에 달하는 전환 과제를 계발하고 진행을 감독하며 미측과의 긴밀한 협의를 추진, 복잡한 전환 과정을 관리하는 총 책임을 맡은 바 있다. 미국으로부터 이 훈장을 수훈한 외국인으로는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 국 국왕 [[조지 6세]], 소련군 총사령관 원수 [[게오르기 주코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 등이 있다.
         2011년 11월 18일 [[:en:United States Department of Defense|미국 국방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화 《[[:en:Spider-Man in film|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시사하는 교훈을 언급하였다. 그는 “《[[:en:Spider-Man (2002 film)|스파이더맨 1]]》은 우리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en:Uncle_Ben#.22With_great_power_comes_great_responsibility.22|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것을 가르쳐 주고 《[[:en:Spider-Man 2|스파이더맨 2]]》는 원하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음을 알려준다”며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 미국인들은 《스파이더맨 1, 2》를 평생 동안 적어도 세 번 이 보아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VrILCHQl1M Korean General tells Americans to watch Spiderman 1 & 2], 《USAG-Humphreys》, 2011년 11월 18일</ref> 같은 달 21일 사단장 임기를 마치고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으로 전했으며, 1년 5개월 뒤인 2013년 4월에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에 임명되었다.
         2013년 10월 [[3성 장군|중장]] 진급과 함께 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동년 11월에는 한미연합방위체계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 호 유대관계 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다시 한 번 수훈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605771 전인범 특전사령관, 美 최고 공로훈장 받아], 《연합뉴스》, 2013년 11월 19일</ref> 2013년 현재 그는 한미 양국으로부터 총 8개의 훈장을 받아 대한민국 현역 장성 중 최다 훈장 수자로 알려져 있다.<ref>[http://www.gunsa.kr/bbs/board.php?bo_table=B01&wr_id=151 대한민국 특전사 사령관 전인범], 《군사저널》, 2013년 12월 31일</ref>
         특전사령관 취임 후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해외 특수부대와의 교류협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476150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괴짜 사령관’과 특전사의 환골탈태], 《서울신문》, 2014년 10월 23일</ref> [[:en:Picatinny rail|피카티니 레일]]이나 광학장비와 같이 관행적으로 몰래 사용하던 사제 장비들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기존의 과도한 제재 규정들은 폐지시켰으며, 특히 헬기 사격, 천리행군 인증제 도입과 같이 과거에 하지 않던 실전적 훈련들을 대거 강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28778 [한국군 코멘터리] 불굴의 ‘지옥훈련’ 더 독해진 특전사], 《주간경향》, 2014년 12월 17일</ref> 우선 일반 병사보다 3배 정도 총을 더 쏘는 특전사 요원의 사격량을 5배로 늘렸고 전진하면서 사격할 때 탄피받이를 못 쓰게 하였다. 탄피 하나 없어지면 전 부대원이 나서서 찾아야 하는 것이 매우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대신 탄피를 주울 필요가 없도록 전진 사격 훈련시 1명이 뒤따라가게 하여 실제 몇 발을 쏘는지 세게 하였다. 또한 사령관 취임 당시 특전사에 체계적인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 없어 특전사에서 35년간 복무했고 체력 단련과 관련해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원사에게 12개 코스의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특전사 요원의 허벅지가 평균 1cm 커졌고 체력 프로그램 시행 후 6개월 뒤 미군 특전사 요원들과 경기를 해 수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을 한국 특전사 요원들이 다 이기게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10074 [Why] "특전사 허벅지 1cm 굵어졌다, 그게 내 자랑"], 《조선일보》, 2016년 9월 10일</ref> 이와 같은 훈련들은 특전사의 실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8010004329 왜 우릴 특전용사라고 부르는가?],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ref><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44947§ion=sc2 육군 특수전사령부 설한지 극복-생존훈련], 《브레이크뉴스》, 2015년 1월 9일</ref> 그리고 긴박한 전장황에서 오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한미 연합작전 수행능력 향을 위해 전군 최초로 한국군은 어로, 미군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제도를 시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500588 특전사 창설 57주년 기념식… 내년 2월 이천시대 개막], 《연합뉴스》, 2014년 4월 1일</ref> 전 사령관은 이러한 자신의 개혁적인 행보에 관해 “모든 3성 장군은 4성 장군이 되고 싶어하고 4성 장군이 되는 게 군인으로서 더 없는 광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일각에선 내가 부대 훈련을 실전적으로 바꾸고 개혁을 하면서 무리수를 두어 4성 장군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특수전사령관이고 내 임무는 4성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백전백승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특수전 부대를 만드는 게 나의 사명이다”라고 밝혔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1790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원한 특전맨이자 진정한 군인의 퇴임], 《뉴데일리》, 2016년 7월 28일</ref> 훗날 그가 사령관을 이임한 뒤 특전사에 부대장비 및 개인물자를 납품하고 연구하는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위는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군복제 규정’에 얽매여 있다.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복제 규정’보다 임무와 전술향이 더 중요하다. 사고를 유연히 하고 우수 장비라면 사제라도 활용하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술장비 및 피복의 사용과 발전을 장려했지만, 그가 교체되면서 이런 유연한 사고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의 유연한 사고는 지휘관에 따라 들쑥날쑥 하다”며 아쉬움을 소회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86112 [무기와 사회] 한국군 전투복], 《한겨레》, 2015년 8월 19일</ref> 뉴데일리 군사전문기자 태호는 “전인범 前 특수전사령관 같은 깨어 있는 특수전 지휘관들이 (특수부대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특수작전에 대한 군내외부의 중요성 인식 부족과 비대칭 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큰 군(Big Army)만 중요시 하는 풍토로 인해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현 한국군에 대해 비판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01915 [컬럼] 프로 대접을 못 받는 한국의 특수부대], 《뉴데일리》, 2016년 2월 22일</ref>
         2014년 12월에는 공무 출장 중 터키군 총사령부 재활병원을 방문, [[한국 전쟁|6·25 전쟁]] 참전용사인 알리 젱기스 투르크오울루를 위문하였다. 그는 6·25 전쟁 기간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평안북도 군우리 전투에서 터키군 1여단 소속 소대를 이끌었고, 보육원도 운하며 많은 전쟁고아를 보살폈다. 전인범 중장은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309432 특전사령관, 터키 방문 참전용사 위문], 《연합뉴스》, 2014년 12월 18일</ref>
         2015년 4월 14일 특수전사령관 임기를 마치고 제1야전군 부사령관으로 전하였다. 특전사령관 이임사에서 그는 “우리는 야수의 본능을 잃어가는 동물원의 사자가 아닌 초원을 질주하며 천하를 호령하는 용맹함을 간직한 대한민국 육군의 대표부대 특전사 검은 베레 용사들”이라며 “누구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도전하고 노력하는 정신이 바로 특전 정신이다. 우리들 특전용사에게 결코 불가능은 없다”고 강조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H7RevwSahLk 육군 특수전사령관 이·취임식 - 전인범 25대 특전사령관 이임사], 2015년 4월 14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646756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천하 호령하는 특전사 명예 지켜달라"], 《뉴시스》, 2015년 4월 16일</ref><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419010011577 특전사는 '적 도발은 곧 파멸 인식' 세계 최강 부대다], 《아시아투데이》, 2015년 4월 19일</ref>
         2015년 6월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New Westminster College)의 특별연구원(Distinguished Fellow)으로 선정되었다.<ref>[http://newwestminstercollege.ca/lieutenant-general-in-bum-chun-phd-distinguished-fellow-of-new-westminster-college Lieutenant General In-Bum Chun, BA, MS, MA, PhD, MSM, BSM, LM, NSM], 《New Westminster College》, 2015년 6월 16일</ref>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 총장 로버트 굿윈 3세는 “그는 윤리적 리더십에서 괄목한 성과를 내었고 교육훈련에 평생 동안 헌신해왔다”며 “현 세계의 국가적 안보 위협에 대한 이해는 그가 정부의 국제적, 국가적, 지역 단위 이해관계자들의 민군 호운용성과 방위협약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력을 갖추게 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리더십, 외교와 사이버 보안에 관한 연구의 설계와 전달에 있어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이다. 위원회와 나는 그가 우리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새로운 특별연구원이 된 것을 매우 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인범 중장은 특별연구원으로서 학문적 수월성의 최고위 기준에 대한 지원에 공헌해왔고,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과 연구원들의 세계적인 조직망 발전에 헌신해왔다고 알려졌다. 이 대학의 특별연구원으로는 필리핀 대통령 [[피델 라모스]], 체코 대통령 [[바츨라프 클라우스]], 캐나다 국방참모총장 대장 [[:en:Ray Henault|레이 헤노]] 등이 있으며, 특별연구원으로 선정된 인물 125명 가운데 한국인은 그가 최초이다.
         2016년 5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USSOCOM medal|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 훈장]](USSOCOM Medal)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4&bbs_id=BBSMSTR_000000000004&ntt_writ_date=20160615 “전인범 장군, 미 특수전 발전에 혁혁한 공로”], 《국방일보》, 2016년 6월 15일</ref> 미 특수전 발전에 공로가 있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이 훈장은 1994년 제정된 이후 한국군이 받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미 육군과 해군(해병대), 공군의 특수전사령부를 지휘하는 3군 통합사령부로, 전 중장은 2013년 10월부터 2015년 4월까지 한국 특전사령관 겸 연합특전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연합작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훈장을 받게 되었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훈장 수여 증서를 통해 “연합특전사령관으로서 미 최정예 특수부대와 [[:en:United States Navy SEALs|네이비 실]](SEAL), 특수전 항공자산 등 1000여 명 이의 미군을 훌륭하게 지휘했으며, 뛰어난 전문지식과 공익을 위한 헌신으로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615010007077 [단독]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국군 최초 미군 통합특전사 훈장], 《아시아투데이》, 2016년 6월 15일</ref> 더불어 전 장군의 추진력과 창의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결의와 함께 장기 비전이 대한민국 방어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 장군의 남다른 노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개인의 추진력은 대한민국과 한미연합사에 큰 기여가 됐다고 전했다.
         2016년 7월 28일 특수전사령부 연병장에서 35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는 전역식을 가졌고 같은 달 31일 전역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57227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이천 특전사서 전역], 《연합뉴스》, 2016년 7월 2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199207 [카드뉴스] "국회의원이 오든지 말든지, 병사들 고생시키지 말라"], 《조선일보》, 2016년 8월 5일</ref> 이날 전역식에는 한미연합사령관 [[:en:Vincent K. Brooks|빈센트 브룩스]] 대장, 미 8군사령관 토마스 밴달 중장, 미 2사단장 테드 마틴 소장 등 [[주한미군]] 수뇌부와 이기백, [[정호용]], [[김동진 (1938년)|김동진]], [[김태 (1949년)|김태]] 전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국방부 장관]] 등 한미 양국 군 관계자들이 참석해 전 중장의 전역을 축하했다.<ref>[http://www.huffingtonpost.kr/heebum-hong/story_b_11295018.html 어느 ‘특별한 별’ 이야기 │ 전인범 중장 전역식], 《허핑턴포스트》, 2016년 8월 2일</ref><ref name="c"/> 그는 이 자리에서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정부의 [[대한민국의_훈장#보국훈장|보국훈장 국선장]]과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정부의 공로훈장을 각각 받았으며, 특히 보국훈장 국선장은 그가 중위 시절 합참의장으로 모셨던 이기백 전 국방장관이 걸어주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435078 33년 전 목숨 건 구출… 다시 만난 장군과 중위], 《SBS》, 2016년 7월 28일</ref> 전 중장은 전역사에서 선배 장군들과 미군 장성들, 동기, 후배들을 거론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던 자신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후원을 보내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728010013908 전인범 중장 전역식 "부하 잘 보살피면 부하들이 알아서 윗사람 보살핀다"], 《아시아투데이》, 2016년 7월 28일</ref> 그는 “군인들이 진급할 때마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관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약속을 지켰다.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마지막으로 “안 되면 되게 하라 검은 베레 원하라”는 특전 정신을 외치며 전역사를 마쳤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o9JyXV5Hyo 전인범 장군 전역사 (discharge speech of LTG. INBUM CHUN)], 《YouTube》, 2016년 7월 28일</ref>
         2016년 10월부터 [[:en:Brookings Institution|브루킹스 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방문연구원, [[:en: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1년 동안 활동했다. 미국 연구기관의 연수는 연수자가 주제를 선정해 그 분야를 연구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데,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한국의 핵무장, 한미 군사동맹 강화 방안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111010007259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미국, 북핵 심각하게 평가... 미 공격 초래 황 가고 있어”], 《아시아투데이》, 2017년 1월 12일</ref> 연수 3개월 동안 프린스턴 대학교 등 학교에서 특강,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세미나 참여, 워싱턴 내의 많은 연구소와 기관 발표, 세미나, 회의에 참석해 미국의 생각을 이해하고 한국의 입장을 미국 전문가들에게 적극 설명하였다고 말했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59&bbs_id=BBSMSTR_000000000138&ntt_writ_date=20170117 ‘한국 안정·동북아 평화=美 국익’ 각인시켜야], 《국방일보》, 2017년 1월 16일</ref> 2017년 1월에는 특전사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전국적으로 2만 6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비리 사단법인 봉사단체인 특전동지회의 제2대 총재로 취임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3180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제2대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 《뉴데일리》, 2017년 1월 16일</ref> 전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대한민국 친목단체의 새로운 章을 열겠다”고 다짐하며, “현역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고, 회원을 편애하지 않는 모두의 특전동지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역설했다. 같은 달 [[북한]]의 [[김정은]] [[조선로동당|노동당]] 위원장에게 [[대륙간탄도유도탄|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등의 재고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문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ref>[https://www.nknews.org/2017/01/dear-kim-jong-un-an-open-letter-from-a-former-s-korean-lieutenant-general Dear Kim Jong Un: An open letter from a former S. Korean lieutenant general], 《NK NEWS》, 2017년 1월 23일</ref>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그는 “평화를 추구할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라면서 “가장 필수적인 첫 단계는 공공연한 위협의 회피,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 핵무기 개발부터 인권에 이르기까지 신뢰를 증진시킬 협에 참여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라고 평화 프로세스를 제안했다.<ref>[https://kr.nknews.org/%EA%B9%80%EC%A0%95%EC%9D%80-%EC%9C%84%EC%9B%90%EC%9E%A5%EB%8B%98%EA%BB%98-%EC%A0%84-%EB%8C%80%ED%95%9C%EB%AF%BC%EA%B5%AD-%EC%9C%A1%EA%B5%B0-%EC%A4%91%EC%9E%A5%EC%9D%98-%EA%B3%B5%EA%B0%9C-%ED%8E%B8/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 편지], 《NK NEWS》, 2017년 1월 25일</ref>
         이에 앞서 그는 2월 4일 문재인 후보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주제로 연 북 콘서트에 국방·안보분야 패널로 참석<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06981 문재인, 경희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북 콘서트], 《연합뉴스》, 2017년 2월 4일</ref>, 문 후보를 가리키며 “이분하고 함께하면 우리나라 안보를 든든히 하고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빨갱이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문재인 캠프 합류 선언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52238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도… 문재인 캠프 ‘전방위 수혈’], 《한겨레》, 2017년 2월 5일</ref> 3성 장군 출신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전례 없는 여론의 각광을 받자 조선일보는 “[[송무]], [[박종헌]] 등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252738 [만물] 야당으로 간 특전사령관], 《조선일보》, 2017년 2월 7일</ref> 후일 전인범 입을 기획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작품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f>박성현. 2017.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089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월간중앙』 201707호, 20-25.</ref> 당시 그를 입하고자 다가온 많은 정치계 인사들에게 그는 군 개혁에 대하여 강하게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그중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문재인 후보였기에 안보자문 합류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에서 호감형은 아니었다는 그는 문재인 캠프 내의 안보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 복무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무슨 안보자문이냐”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있다.<ref>[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2/02/2018020200018.html [컬럼] 특전사 다목적대검 사태를 바라보며... #2], 《뉴데일리》, 2018년 2월 13일</ref> 자문위원 직은 맡았으나 [[더불어민주당]]에는 입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546436 '文측' 전인범 "사드, 中 경제 압력 굴복 않아야"(종합)], 《뉴스1》, 2017년 2월 6일</ref> 이와 관련해 [[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존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한중관계를 고려해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해온 야권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4&aid=0000474843 문재인 캠프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드 해법’ 제시], 《스포츠경향》, 2017년 2월 7일</ref> 이에 문재인 전 대표도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도 “한미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186840 “中 경제적 압력 굴복 말고, 美와 사드 합의 존중해야”], 《한국일보》, 2017년 2월 6일</ref> 그의 문재인 캠프 합류에 실망한 일부 보수세력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충분히 분노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제가 이번 결심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en:Survival knife|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문재인 지지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52237 文 캠프 합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친 5000명 중 28명 이탈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5일</ref> 친정인 군을 향한 비판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 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해명했으나,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 칼 예산이 거의 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3233 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2017년 2월 7일</ref> 육군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는 뜻에서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2017년 2월 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문재인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ref name="b"/> 왜 문재인을 돕기로 마음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문재인이) 저를 한번 보자고 그래서 궁금해서 만났다. 그 전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만나보니까 좋은 분이고, 지적이더라. 공부하는 분이고. 근데 그날 제가 기분 나쁜 소리도 많이 했다. (- 안보관을 지적했나) 음…. 하여튼 그 기분 나쁜 소리를 다 받아주더라.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설득하는 건 둘째고, 일단 잘 들어줬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인범 중장의 전역식 때 전역사를 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책임자인 정호용을 고마운 선배로 언급한 것에 관해서는 “저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잘못된 부분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분이 굉장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아랫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한 거지, 5·18과 관련해 그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5·18에 대해서는 “일선 군인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호남 분하고 이야기를 하며 ‘저는 언젠가 광주 5·18묘역에 그때 죽은 군인들이 같이 묻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아무도 모르잖나. 지휘 체계가 문란했던 점이 당시 군의 잘못이지 하사들이 무슨 죄가 있나. 특전사가 살인마처럼 비춰지는 건 바뀌었으면 한다. 하여튼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감옥에도 가고 그런 것 아닌가. 정호용은 그런 책임이 있지만, 제가 이야기했던 건 그분이 인간적으로 부하를 대했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본받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같은 그의 5·18에 대한 견해에 우파 언론인임에도 5·18을 반공적 민주화 운동으로 높이 평가하는 [[조갑제]]는 “여러 번의 국가적 수사와 조사에서 광주 사태 초기엔 급 지휘부의 발포 명령 자체가 없었으며 현장 황이 워낙 급하여 자위적 차원의 대응발포로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물론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의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전인범의 발언을 옹호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5656 제목으로 드러나는 동아일보의 末期 증세], 《뉴데일리》, 2017년 2월 10일</ref>
         그러나 그의 5·18 발언을 문제 삼은 정치권에서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까지 싸잡아 공격하며 논란이 불거지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14369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징역 1년 법정구속], 《세계일보》, 2017년 2월 8일</ref>, 그는 광주 항쟁에 대한 표현의 부족으로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4649 文 입 전인범 자진사퇴 "5·18 발언 백번천번 송구… 미국 돌아가겠다"], 《중앙일보》, 2017년 2월 10일</ref> 그는 “저는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 북핵을 바라보는 엄중함과 심각함, 오랜 동안 지속돼온 혈맹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이를 통한 더욱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 발전이라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알리는 데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멀리서나마 문 전 대표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누를 끼친 데 대한 글을 올리시고 미국에서도 돕겠다고 한 것은 ‘자숙’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하며 “안보, 군사 분야에 대한 자문은 계속 하실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63546 文측, 전인범 미국行에 '선긋기'… "본인 판단"], 《뉴시스》, 2017년 2월 10일</ref>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틀 후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 공을 들여 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구의 한 축이었는데 그가 중도 하차하면서 인사가 꼬였다”고 발언함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그를 중용할 계획이었음을 나타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172701 한반도 황 긴박한데… 외교안보 라인 인선은 '설왕설래'], 《세계일보》, 2017년 5월 12일</ref>
         2017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군(LANPAC)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발전 방안에 대해 발표하였다. 전인범 중장은 이례적으로 [[예비역]] 한국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각 국의 현직 육군 최고 수뇌부가 참석하는 이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예비역으로는 유일하게 발표했는데, 현직 미군 주요 지휘관들은 물론 전직 미군 수뇌부들로부터 한·미 군사동맹과 한·미 연합전력 극대화 해법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출신으로 평가받고 있어 이 심포지엄에도 초청되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528010015215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미 군사 혈맹, 한국군 주도적 역할 중요”], 《아시아투데이》, 2017년 5월 28일</ref> 그는 발표문에서 “한미간 긴밀한 연합작전과 지휘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C⁴I)가 기반되어야 하며 양국간 언어장벽의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등 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고, “미국이 우리나라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고 우리나라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46579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美 'LANAPC'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 및 발전 방안 발표], 《뉴데일리》, 2017년 5월 26일</ref> 또한 심포지엄이 끝나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군 발표자들 대부분은 기조연설과 발표문에서 북한을 ‘부하는 적(rising adversary)’으로 지칭했다”면서 “미국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질주하는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292284 "美, 아태 지군회의서 북한을 '부하는 적' 지칭"], 《연합뉴스》, 2017년 5월 25일</ref>
         1년 간의 미국 연수 기간 동안 그는 케네소 주립 대학교, 템플 대학교, [[:en: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외교정책연구소]] 등 미국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 로펌을 찾아 한반도 갈등이 미국 국민들의 일에 미칠 파급력에 대해 강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4025928 한국전쟁 미국에도 도움안돼… 참화 막을 외교적 노력 필요],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2017년 10월 8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강연을 하기 전에 먹고 사는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그는 실용적인 문제부터 언급하는 것이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한반도 갈등이 미국에 어떤 경제적 향을 미칠지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세계를 대하는 최강대국이자 선진국이나 미국인들 또한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며, 이렇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고 애국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4025816 "북핵 위협 우려하는 미국인들, 코리아패싱 현도 심각"], 《매일경제》, 2017년 10월 8일</ref> 한 달 후인 11월 13일 [[2017년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 당시 귀순한 오청성 하사가 국군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던 것은 북한 신속대응군 추격조가 오 하사를 급히 쫓느라 호흡 조절에 실패해 급소를 가격하는 소위 ‘킬 샷(kill shot)’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2334661 <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뛰어온 北추격조 숨 헐떡여 급소 못 맞혀… 천운”], 《문화일보》, 2017년 11월 24일</ref> 전 전 사령관은 “CCTV 을 보면 전력 질주하는 오 하사를 쫓느라 AK 소총을 든 두 북한 경비병은 300m 이, 권총을 든 두 경비병 추격조는 200m 이 전력 질주했다”며 “추격조는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 구성되지만 오래 뛰다 보니 총을 쏠 때 호흡이 안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 하사가 추격조의 사격에 노출된 시간은 10초가 채 안 돼 정확한 조준 사격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 덕에 심장, 대동맥, 정동맥 등 출혈을 많이 일으키는 곳이나 신경계인 머리 척추와 같은 급소를 맞지 않아 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총탄은 몸에 박히면 여러 갈래로 쪼개지면서 간이나 비장, 폐 등 장기에 손을 주도록 설계된다”며 “그런데 오 하사와 추격조 간 거리가 살 효과가 높은 50m보다 짧아 관통한 총알이 많아서 살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탄이 몸을 관통할 경우 출혈을 빨리 멈추게 하고 패혈증만 막으면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며 급소만 피하면 총알이 몸에 박히는 것보다 관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 정웅인 . . . . 95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달서구|경북도 달서구]]<br/>(現 [[달서구|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구광역시]] [[달서구|경북도 달서구]](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출생이며 [[부산광역시|부산]]과 [[전라남도]] [[담양군|전라남도 고흥군]]과 [[담양군|전라남도 담양군]]에서 성장하였고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4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1년 후 1995년 [[화]] 《[[리허설 (화)|리허설]]》의 단역 출연을 통하여 [[화 배우|화배우]]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1996년 [[뮤지컬 배우]] 데뷔하였고 1년 후 1997년 [[서울방송|SBS 서울방송]]《천일야화》의 단역 출연으로 정식 [[배우|연기자]] 데뷔하였다.
         [[대한민국 육군]] 사병으로 복무한 그의 신장은 181cm이고 체중은 70kg이며 [[화]]감과 [[음악]]감에 취미가 있고 [[운동]]에 특기가 있다.
         정웅인은 1971년 1월 20일에 [[대구광역시]] [[달서구|경북도 달서구]]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재학 시절 우연히 연극반에 들어가 연기를 접한<ref>{{뉴스 인용
         |제목= ‘힐링캠프’ 정웅인 황금인맥 공개, “이병헌이 작품에 꽂아줬다” |url= http://news.donga.com/3/all/20140805/65596520/1 |출판사=동아일보|날짜= 2014-08-05 }}</ref> 이후 탤런트 공채시험에 줄곧 낙방을 하다 1995년 강정수 감독의 화《리허설》로 화계에 입문했고, 1996년에 드라마《천일야화》로 정식 데뷔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첫딸 공개한 정웅인 “코미디는 피같은 존재다” 연기열정 고백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07100023121001 |출판사=뉴스엔|날짜= 2008-07-10 }}</ref> 이후, 정웅인이 본격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을 받았던 작품으로 [[1998년]] 38.5%의 시청률을 기록한 《은실이》에 의리 있는 깡패 춘식 역할에 이어, [[1999년]] 53.1%의 시청률을 기록한 《국희》에서 강하고 신념있는 자본가 김훈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해 신인을 수했다.
         정웅인은 이후, [[2000년]]에는 밤11시대의 다소 늦은 방송시간대에도 불구하고 3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문화방송|MBC]] 성인 시트콤 《세 친구》에서 [[윤다훈]], [[박면]]과 함께 코믹한 캐릭터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인기절정의 순간 떠나는 '세친구'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42263 |출판사=국민일보|날짜= 2001-02-07 }}</ref> 이후 화 《반칙왕》(2000년), 《두사부일체》(2001년), 《돈 텔 파파》(2004년), 《투사부일체》, 《마법사들》(2006년), 《유감스러운 도시》(2009년) 등과 드라마 《홍국》(2001년), 《발칙한 여자들》(2005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 《선덕여왕》(2009년), 《커피하우스》(2010년), 《오작교 형제들》(2011년) 등에 사극과 여러 장르의 현대극을 넘나들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2013년]]에는 정웅인이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되며 연기 전환점이 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외에도 《기황후》와 화 《전설의 주먹》를 통해 그동안 갇혀있던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섬뜩한 악역으로 열연을 펼쳐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고,<ref>{{뉴스 인용
         |제목= 2013 KDA, 연기파 배우 정웅인의 재발견이었다 |url= 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13100219504556447&type=1&outlink=1 |출판사=스타뉴스|날짜= 2013-10-02 }}</ref><ref>{{뉴스 인용 |제목= [인터뷰] 정웅인의 재발견이라니? '항 준비되어 있는 연기자' |url= 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129465 |출판사= 티브이데일리 |날짜= 2013-08-09 }}{{깨진 링크|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129465 }}</ref> 신 스틸러의 대표적인 배우로 불리며 악역 전문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정웅인 “악역 전문배우, 내가 봐도 인 더러워”(힐링캠프)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8042317480410 |출판사=뉴스엔|날짜= 2014-08-04 }}</ref> 특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극중 정웅인의 "얘기하면 죽일 거야", "네 말을 들은 사람도 죽일 거야" "말하면 죽일 거다." 등의 대사는 인터넷과 예능 방송에서 패러디 되며 그를 떠오르게 하는 대표적인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ref>{{뉴스 인용
         그리고 2015년에는 화 《베테랑》에 출연하였다.
         |제목= 유웅인 아내 “남편 첫인? 비호감이었다… 은근슬쩍 번호 따가” |url=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arcid=0008565006&code=41181711&cp=nv |출판사=국민일보|날짜= 2014-08-05 }}</ref><ref>{{뉴스 인용
         |align="center"| 드라마 스페셜 《[[스위치 - 세을 바꿔라]]》
         |align="center"| 박태 역
         |align="center"| 월화 특별기획 《[[홍국 (드라마)|홍국]]》
         |align="center"| 김훈 역
         === 화 ===
         |align="center"| 《[[베테랑 (화)|베테랑]]》
  • 최희서 . . . . 94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http://minihp.cyworld.com/pims/main/pims_main.asp?tid=41700778 최희서 미니홈피]
         | 수 =
         *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신문방송학과, 문학과
         2017년 화 《[[박열 (화)|박열]]》에서 독립운동가 [[박열]]([[이제훈]])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를 연기하여, 각종 화제 시식에서 9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대종]] 화제에서는 최초로 신인여우과 여우주연을 동시 수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최희서, 기모노에 가려졌던 S라인..몸매 이렇게 좋았나?|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6&aid=0001324492|출판사 = 헤럴드경제 |저자 = |날짜 = 2017년 12월 6일|확인날짜 = 2017년 12월 8일}}</ref>
         === 화 ===
         * 《[[박열 (화)|박열]]》 (2017년) - 가네코 후미코 역
         * 《[[시선 사이]]》 (2016년) - 희서 역
         * 《[[동주 (화)|동주]]》 (2016년) - 쿠미 역
         == 수 및 후보 ==
         ! 시
         | 공로
         |<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06181754263&sec_id=540401 '화세' '힘짱' 5인방 소녀시대 뜬다] 경향신문 2009년 06월 18일</ref>
         | 제4회 [[들꽃]]
         | 조연
         | 《[[동주 (화)|동주]]》
         | 제37회 [[황금촬]]
         | 심사위원 특별
         | 제26회 [[부일]]
         | 신인 여자 연기
  • 김재박 . . . . 92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대구광역시/인물)]
         || '''학력''' || 대구초-경북중[* 현 경운중]-[[대광고등학교 야구부|대광고]]-[[남대학교|남대]] ||
         ~~KBO 최초의 노벨 물리학~~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김재박/선수 경력)]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김재박/지도자 경력)]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하였다. 2003년에는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이어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대만]]에게도 패함으로써 '[[삿포로 참사(야구)|삿포로 참사]]'를 겪었고[* 덕분에 아테네올림픽은 본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듬해에 야구계를 뒤흔든 큰 사건이 터졌다.], 06년에도 대만에 이어서 주로 사회인리그 출신[* 프로에 준하는 선수들이었다고 쉴드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선수단 22명 중 프로에 진출한 선수는 8명이고, 프로에서 제몫을 한건 초노 히사요시 한 명 뿐이다. 1명 빼고 전원 프로였던 한국이 10점 주고 박살날 대는 절대 아니었다.]으로 구성된 일본팀에게도 패함으로서 '[[도하 참사]]'이란 말을 들었다.
         감독 임기를 끝내고, 바로 다음 시즌인 2010 시즌부터 [[KBO]]의 경기감독관 자리에 앉았는데 팬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우천취소]] 결정에 있어서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본인이 꼴리면~~ 비가 안 와도 때려버리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해대고 있기 때문에 반발이 심하다. 오죽하면 [[고척 스카이돔]]에서 경기 열어도 관중 오기 불편하단 핑계를 대고 우천취소 때려버릴 양반이라는 말이 나올까.
         쌓이고 쌓여서 2015년 6월 5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릴 경기를 비가 그쳤음에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l&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414294&date=20150605&page=1|우천 취소를 때려버려]] 팬들의 원성을 샀고 급기야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1284855&cpage=&mbsW=search&select=sct&opt=1&keyword=%C0%E7%B9%DA|SBS 스포츠]]에서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1298498&cpage=&mbsW=&select=&opt=&keyword=|우천취소 메뉴얼]]까지 제안해가며 김재박을 깠다. 2015시즌 후반부 월요일 경기 및 더블헤더 임시 도입에 이 사람의 우천취소 남발이 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팬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경기운위원장이 되었다는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117&aid=0002721631|소식]]이 들려오면서 팬들의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 거기에 개막 3일째인 4월 3일, 한화-LG와의 경기를 비가 그쳐가고 있는데 경기장 불량으로 취소를 해버려서 일요일 낮경기를 날려버린데다가 정작 경기시작시간인 2시에는 비가 그쳐버리면서 [[http://m.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2913861|욕을 더 먹고있다]]. 결국 KBO에서 징계를 검토하겠다는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10&aid=0000318562|기사]]가 떴다.
         이후 동년 4월 16일 전국에 비가 내리자 광주구장에서 열리기로 한 ~~비오는 날 돔구장 놔두고 원정경기하는 팔자인~~넥센-기아 경기를 제외하고는, 황을 지켜보다가 30분-1시간정도 후 우천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김재박 경기감독관도 이날 삼성-두산전에 배정되었다가 45분 기다려 보고 우천취소를 선언했다. 솜방망이 처벌 문제는 둘째치고, 어느정도 경각심을 가지게 된 효과는 분명히 존재하는 듯 하다.
          *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구광역시]] 토박이이지만 딱 한 번 대구를 떠난 적이 있었다. 경운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경북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대구 지역의 고등학교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대적으로 신체가 작았던 김재박은 [[경북고등학교]] 입학에 실패하자 서울에 있는 [[대광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서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 [[대광고등학교]] 자체는 건재하지만 야구부는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LG감독 첫 해인 2007년 4월 22일 삼성전 2-3으로 뒤진 연장 12회말 2사 1루에서 [[이대형]]의 2루땅볼이 1루심의 오심으로 아웃 판정을 받자 엄청나게 분노해서 어필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며칠 내내 그 황을 가지고 불만을 표출하다가 심지어는 '''"설사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때로는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도 있지 않냐"'''[* 사실 한미일 통틀어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오면 [[http://news.donga.com/Sports/3/05/20150707/72336135/1|규정 세이프]]다. 김재박 외에도 이 규정을 모르는 관계자 및 팬이 많은 편.]는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LG가 이기고 있고 삼성이 오심으로 져도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나올지 궁금하다 이 양반아.~~ 심판 판정은 모든 팀에게 공정해야 적용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오심도 불사하라는, 야구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망언이다.
          * 삼성이 한창 FA입에 열을 올리던 시절 '''삼성처럼 돈으로 우승을 사면 누가 우승 못하나'''는 발언으로 삼성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 전과가 있다. 그리고 2016년 FA와 용병의 입으로 과감히 돈을 투자하고도 성적이 안나오는 한화 이글스를 동시에 비판하는 명언으로 남았다. ~~사실 이 발언은 [[선동열]]을 겨냥한 것에 가깝다. 2013년에 와선 재평가받고 있는 김재박의 드립이다.~~ ~~우승 못하고 [[556]]만든 [[김성근|이 사람]]은 뭐여~~ ~~자아비판에 가장 가깝다. FA 입만 없다 뿐이지 강탈급 현금 트레이드들로 모았던 막강한 초기전력을 생각하면...~~
          * [[추신수]]에 대한 검증 드립 또한 야구팬들에게 조롱의 대. 도하아시안게임 최종엔트리에서 결국 추신수를 빼버리면서 '''"추신수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는 드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추신수가 아무리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도 타국에서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에게 덕담이나 위로는 커녕(당시 추신수는 군면제를 위해 국제대회 출전이 꼭 필요한 황이었다) 저런 말로 후배 기나 꺾는다며 대차게 까였다. 그 이후 추신수가 슬럼프에 빠지자 '''"거 봐, 아직 검증이 안 됐다고 했잖아."''' 라며 '''"추신수를 왜 안뽑았냐 하는 말은 야구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 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야말로 욕을 사서 먹는게 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거기에 마지막에 '추신수 출신 고교 사람들이나 그 지역 사람들이 유독 유난을 떠는 것 같다' 라고 하며 지역감정 탓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인 말대로 검증된 선수들을 뽑아 치른 아시안게임은 대만전 뿐 아니라 아마추어로 구성된 일본전까지 패배를 당하며 [[도하 참사]]를 야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박도 존재한다. [[김인식]]감독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025078|“기술적으로 국내 프로야구 정급 타자보다 나을 게 없다”]]고 평가하며 대표팀 발탁에 반대한 만큼 [[추신수]]의 대표팀 탈락은 김재박의 독단적 판단이 아니었으며, 당시 대표팀에 최종선발된 외야수는 [[이병규]], [[이용규]], [[이진]], [[이택근]], [[박재홍(야구)|박재홍]] 총 5명으로 [[김인식]]감독의 말대로 모두 국내 프로야구 정급 외야수들로서, [[추신수]] 대신 이들이 대표팀에 선발된것이 대표팀의 전력을 약화시켜 승패에 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는것이다. 하지만 이는 타당하지 못한 반박으로서, 당시 추신수는 AAA에서 OPS .893 메이저리그에서 OPS .812를 기록했는데 이는 한국으로 온 어떤 용병타자보다 좋은 기록이었으며, 리그의 수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OPS만 비교한다 해도 이택근을 제외한 다른 국가대표 외야수들보다 OPS가 더 높았다. 명백히 급이 다른 선수를 검증이 되지 않았다며 뽑지 않은것이 맞다.
          * 또한 여러가지 대기록을 망쳐먹기로 유명하다. ~~[[강귀태|기록 브레이커]]?~~ 과거 현대시절부터 시작된 행태로, 자세한 것은 맨 아래에 있는 항목 참조. 요근래 최대의 경력이라고 하면 2009 시즌 [[롯데 자이언츠|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박용택]]의 타율 1위 수성을 위해 경쟁자였던 [[홍성흔]]을 4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는 업적을 남기셨다. 박용택이 출전하지 않은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뻔히 보이는 연속 고의사구는... 이 때문에 타팀팬뿐 아니라 '''언론사들에게도 까이는 중'''. 오죽했으면 80년대로 돌아갔다고 할까. 그 예시로 [[김덕]]을 들었을 정도.
          * 2009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 펜스거리 단축을 제안하고 구단 [[프런트]]가 이 요청을 들어주어 LG가 홈경기를 할 시에는 구장의 크기를 줄이는 [[X-존]]이 만들어졌다. 팬들 사이에서의 이름은 '''[[재박존]]''' 혹은 재박산성... 재빡존이라고도 언급한다. 근데 줄여도 웬만한 구장 사이즈 이일 정도로 잠실이 넓긴 하다.
          말이 많긴 했지만 [[홈런]]도 그럭저럭 나오고 일부 팬들은 만족한 모양이긴 한데, 여튼 2009년 시즌 결과를 놓고 보자면 재박산성이 설치된 경기에서의 LG 트윈스의 각종 공격 수치가 2배 가량 승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대팀들의 공격력은 3배 정도 승했다는 게 문제...''' 원정팀에 유리한 홈 어드밴티지였다는 비참한 결과를 낳은 희대의 쓰레기 전략으로 남고 말았다. 뭐, 거기엔 대적으로 빈약한 LG투수진이 한 몫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 자신이 공들여 키운 [[박진만]]이 [[FA 제도|FA]]때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자 그때부터 삼성을 대놓고 싫어했다. LG에 와서도 '라이벌은 삼성'이라고 말을 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주 틀린말도 아니다. 김재박의 재임기간 중 삼성도 [[선동렬]]감독이 이른바 멍게강점기라 불리는 삼성 역사 두 번째 암흑기를 열어 4,4,5[* 이 5위 때문에 삼성의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기록은 물거품이 되었다. 만일 이 때 기록이 깨지지 않았으면 2016년 삼성은 20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수근|야만없]](...)]라는 처참한 성적을 찍는 바람에 양 팀이 나란히 시궁창에 처박혔기 때문(...) 따라서 따지고보면 라이벌은 라이벌인데 '''삽질 라이벌'''(...)
          * 선수 시절인 1986년 [[KBO 골든글러브]] 시식장에서 시자인 여배우 [[이보희(배우)|이보희]]가 유격수 수자인 김재박의 이름을 김재'''전'''이리고 부른 해프닝이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JTP7yPasIpg|해당 동]]). 博을 傳으로 읽어버린 건데, 이 사건 이후 당대 최고 인기 여배우이던 이보희는 [[두뇌풀가동|무식하다는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한자는 잘못 읽을 수도 있다. 문제는 김재박 선수가 너무나, 너무나 유명한 선수였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관심이 적은 스포츠 분야라고 하나, 시사 식에 어두운 것, 게다가 자기가 나가는 행사에서 수자 이름까지 몰랐다는 건 욕 먹을 만한 일이다. 나중에 선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도록 바뀐 뒤에는 이런 일이 더 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 서울특별시/인물 . . . . 92회 일치
         * [[곽진(배우)|곽진]] - 강남구
         * [[강기(배우)|강기]] - 강남구
         * [[김서(성우)|김서]] - 강남구
         * [[김혁]] - 강동구
         * [[김배(배우)|김배]] - 동대문구
         * [[김희(1983년 8월)|김희]] - 동대문구
         * [[김웅(배우)|김웅]] - 동대문구
         * [[김필(배우)|김필]] - 마포구
         * [[김유(1986)|김유]] - 동작구
         * [[김지(1974)|김지]] - 동대문구
         * [[고욱]] - 서대문구
         * [[김동(배우)|김동]] - 성동구
         * [[김명섭]] - 등포구
         * [[김수(시인)|김수]] - 종로구
         * [[김우(배구)|김우]] - 중구(서울)
         * [[나(프리스틴)|나]] - 관악구
         * [[나(구구단)|나]] - 양천구
         * [[문준]] - 도봉구
         * [[민우혁]] - 등포구
         * [[박수(배우)|박수]] - 강남구
  • 찬미(AOA) . . . . 91회 일치
          * 위 문서: [[유젝스밴드(아이돌)]]
         ||<#00008B> '''{{{#white 출생}}}''' ||<(> [[1996년]] [[6월 19일]] ([age(1996-06-19)]세), [[경북도]] [[구미시]] ||
         ||<#00008B> '''{{{#white 학력}}}''' ||<(> 황초등학교[br]인동중학교[br][[등포고등학교|등포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 ||
         ||<#00008B> '''{{{#white 별명}}}''' ||<(> 힘찬미, [[이홍기(가수)|홍기]]찬미[* 찬미의 이형이 자신의 소속사 선배 [[이홍기(가수)|이홍기]]라는 것이 미소년 통신을 통해서 ~~폭로~~밝혀졌다. ~~잠시만? 이건 [[RPF]]를 넘어서 [[NTR]]인데?~~][* 이때문인지 이 날 방송에서 [[이홍기(가수)|이홍기]]가 언급되었다하면 찬미 얼굴에 홍조 CG를 덧붙혔다.], ~~아청법(...)~~[* 이제 찬미도 앞자리가 2로 바뀌었다.], 나무 늘보, 푸린[* 포켓몬스터의 그 분홍친구이다(!) 닮았다(!) 자세한건 후술 이모저모 참조], 티티, 막내온탑 ||
         집안 배경이 굉장히 어둡다. 찬미가 일찍 연예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도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이다. 후술하는 [[KBS 1TV]]의 휴먼다큐 '[[사미인곡]]', 그리고 MBC '위대한 유산'에 어머니와 함께 출연했을 때 방송된 내용에 의하면, 찬미가 10살 때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하고 아픔을 정리할 새도 없이 생계를 위해 [[인동]]에 미용실을 열고 찬미를 비롯한 세 딸을 키워 오셨다고 한다. 어린 찬미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집도 없는 태에서 어머니께서 월세날 되면 꼬박꼬박 월세 내고 자녀들의 학원비 등을 다 내면 어머니께서 돈을 모으지 못한다는 생각에 일찍 돈을 벌어서 어머니께 보답해 드리고 싶다는, 참으로 기특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찬미에게 '''"아직 그런 마음을 먹을 나이가 아닌데, 그런 마음을 먹게 만든 자신이 더 속하다"'''며 모녀 간에 눈물을 보이며 이야기하는 장면은 참으로 감동 그 자체,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 [[http://tvcast.naver.com/v/630637|팬들을 위해 직접 동의 링크를 남긴다.]][* 동을 보면 막내 대학도 보내 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학원을 다니며 종종 공연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인동중학교 2학년 때 농구장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담긴 을 보고 FNC에서 비공개 오디션 권유를 받아 캐스팅되어 경하게 된다.
         연습생으로 출근한 첫 날, 굉장히 신나서 연습실 문을 확 열고 들어갔는데 문고리가 부서졌다고(...)한다. 덕분에 [[민아(AOA)|권민아]]에게 첫인이 제일 안 좋았던 멤버로 꼽히기도 했다. [* 찬미 본인은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2017냔 1월에 방된 [[아는 형님]] [[아는 형님/방 목록(2017년 반기)#s-2.1|57회]]에서 민아가 말한 이유는 달랐다. 문고리를 부숴서 얄미웠던게 아니고, 연습생 시절 [[설현]]이랑 같이 밥을 먹으러 갔는데 찬미 혼자 밥을 반의 반공기만 먹고 수저를 내려놓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설현과 민아는 얼굴살이 찐 체중관리 대이었지만 찬미는 [[리즈 시절|그때 이후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금은 찬미와 민아의 처지가 바뀌었다~~]
         댄스로 입사한 멤버답게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멤버지만 여성스럽고 섹시한 춤선이 많은 AOA 안무의 특성 잘 부각될 기회가 없어 아쉬운 케이스다. 얼번이나 힙합 댄스에 더 적합한 춤 사위를 지니고 있기에 본인도 많이 아쉬워 하는 듯. 춤꾼 찬미의 모습을 아이돌 댄스 대회 D-Style에서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인 셈.
         공식 포지션은 서브래퍼지만, 메인 래퍼 [[지민(AOA)|지민]]의 파트가 많다 보니 이렇다 할 파트가 없어서 [[민아(AOA)|민아]]와 함께 포지션이 ~~애매모호~~ 왔다갔다 한다. 특히 AOA가 프로듀서를 용감한 형제로 변경한 후에는 서브래퍼인 찬미와 리드래퍼인 [[민아(AOA)|민아]]를 보컬로 활용하고있는 황.
         또한 MR 제거에서 재조명되는 멤버인데, 특히 사뿐사뿐 활동의 처음 몇 방송에서는 안정된 무대를 보여주었다. 또 [[민아(AOA)|민아]]가 불참했을 때 민아의 파트를 맡아 멋지게 소화하였다. 심쿵해 방송이나 오프때도 [[설현]]이 드라마와 화 촬으로 불참했을 때 민아와 같이 파트를 나눠불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5b6OqvsKt6w|사뿐사뿐 민아파트]][[https://www.youtube.com/watch?v=iPmPwq9g644|심쿵해 설현파트]]
         팀에서 막내지만 집에서 세 자매 중 둘째다 보니 일반적인 막내 속성과 다른, 당히 어른스러운 모습을 지닌 막내다.[* 세 번째 단락 참고] ~~사는 게 다 그렇죠. 누가 힘들어하면 "이것 또한 지나가요"라고 말하는 등등(...)~~ 기본적으로 언니들에게 기죽지 않으며[* 같은 소속사 선배인 [[CNBLUE]]의 [[이정신]]도 직접 인증했다. (...)] 할 말을 꼭 하는 당돌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속으론 여린 구석도 많은 외강내유형 타입. 그래도 나이가 나이다보니 또래다운 모습도 많이 남아있어 가끔 어른인 척하는 것을 보면 멤버들은 웃으며 매우 귀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정작 무대나 행사처럼 일반인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갑자기 집중되면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 사실은 아는 형님 AOA편에서 이민이 앉으려고 하던 찬미의 의자를 빼서 이목을 끌게 되는데,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며 언급하기도 한다.][* 위에 올렸던 위대한 유산 동 링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찬미의 어머니께서는 '딱 20살 만큼만 철들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라고 하시는 걸로 보아 어려운 환경이 찬미를 성숙시킨 듯 하다.]
         이러한 찬미의 바른 인성은 어머니의 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찬미의 어머니는 넉넉하지 않은 생활 여건에도 가출 청소년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보살펴 주어 이들이 바르게 클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들이 또 사고를 쳐서 [[경찰서 정모]]를 하면 눈물을 보였을 정도.(사미인곡에 나온다.) 이 때 만났던 아이들은 찬미의 졸업식에도 가족으로 참석하는 등, 현재까지 가족처럼 지내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aoa&no=621846&page=1&exception_mode=recommend&search_pos=-627764&s_type=search_subject_memo&s_keyword=%EC%9D%B8%EC%84%B1|찬미 어머니 인터뷰]]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aoa&no=1044327&page=1&exception_mode=recommend&search_pos=-1037783&s_type=search_subject_memo&s_keyword=%EC%B0%AC%EB%AF%B8|해당 내용 정리본]]
          * MBC <김신의 정오의 희망곡>
          * MBC [[아이돌스타 육 선수권대회/2016년|아육대]] (16.9.15.) - [[유젝스밴드(아이돌)|유젝스밴드]] 멤버들 중 찬미만 [[아이돌스타 육 선수권대회/2016년|2016 추석 아육대]]에 출전했으며, [[리듬체조]](리본)에 나섰다. 입시 [[리듬체조]] 의을 입고 홍대거리를 활보하겠다는 공략을 했으나, 10.02점으로 [[브레이브걸스]]의 [[은지(브레이브걸스)|은지]](리본)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이 날 리본 종목 참가자들은 단 한 명도 입하지 못했다.[* 아육대에서 리본 종목으로 입한 사람은 [[성소]]뿐이다.]
          * 최종 2인까지 발탁되어 [[나인뮤지스]]의 [[금조(나인뮤지스)|금조]]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화 [[외모지주의(웹툰)|외모지주의]]에 출연하게 되었다.
          * KBS2 주말 드라마 <[[아버지가 이해]]> (2017) - 까메오 출연
          * 2018년 9월 21일 오후 6시 정각 [[https://www.youtube.com/channel/UCx1xIOiM-UvlDwmXnE05C9Q|찬미찬미해 likeCHANMI]]라는 채널 오픈과 동시에 티져를 올렸다. [[샌드박스 네트워크]]소속의 채널로 샌드박스 네트워크 채널에도 티저 이 올라왔다. 그런데 을 '''구독자가 만 명 이 모일 시" 공개하겠다'''고 하여 비판 여론이 일었다. 유튜브 활동에서 직접적으로 수익으로 연계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거의 대놓고 이것이 단순한 개인취미가 아니라 수익사업이라는 것이다.
          * 가장 스마트한 멤버로 항 뽑힌다. 기본적인 두뇌 회전이 빠른 편인지 전반적으로 센스가 좋은 편인 듯. 실제로 지민과 함께 [[AOA(아이돌)|AOA]]에서 멘트 정리를 가장 잘 하는 멤버다. 초아에 따르면 어떤 박사님이 찬미는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하면 굉장히 잘할 거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 게임하거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쓰는 닉네임은 찬미 티티를 줄인 찬티. ~~그러니 발견하면 인사하자~~
          * 게임하는 것을 당히 좋아하는지 넥슨 사이트에 접속하는 모습을 마리텔에서 들켰다(...).[* 마리텔 파일럿 방송 전 초아의 테스트 방송을 다른 멤버들이 접속해 보는 장면이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90회 일치
         조금 더 과거로 가서 그날 아침. 맥스는 다수의 총과 뇌진탕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온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황이었지만 그녀는 그는 살아난다. 맥스는 손목에 꽃힌 링거를 빼내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는 "그녀는 죽었다"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맥스는 자신의 옷을 차려 입고 병원에서 도망가기로 한다.
         추락한 엘리베이터에서 기어나온 맥스는 안실에 도착한다. 안실 침대에는 윈터슨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 수술실 밖을 나가서 보이는 대기실 TV에서 드라마인 "주소지 불명"을 방 중이다. 애인을 죽인연쇄살인범인 '존 미라"를 쫓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방되는 분량에서는 정신병원에 끌려간 주인공이 의사들에게 애인을 살해한 정신병자라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
         [[맥스 페인]]에서의 사건이 끝난 후, 맥스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처벌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알프레드 우든]]은 약속대로 모든 책임을 지워주고 그를 웅으로 만들었다. 이를 버티지 못한 맥스는 마약단속국을 떠나 뉴욕 경찰청 강력반으로 돌아온다.
         맥스는 창고 1층에서 [[스쿼키 청소회사]]라는 청소회사의 청소부를 붙잡는다. 청소부는 수한 것 없냐고 물어보는 맥스에게 윗층에 총기 작업장이 있다는 말을 한다. 맥스는 청소부에게 그곳까지 안내할 것을 요구한다.
         2층으로 올라간 맥스는 한 여자가 의자에 묶인 채 청소부들에게 살해당하기 직전인 걸 목격한다. 맥스는 그녀를 구하려고 하지만, 청소부의 공격을 피한 사이 여자는 살해당한다.
         맥스는 그녀를 죽인 청소부들을 죽인 후, 왜이리 오래 걸리냐며 찾아온 청소부들까지 죽이며 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청소부들은 경찰이 지원오면서 내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도망치고 있었다.
         [[짐 브라부라]]는 맥스가 여자를 구하지 못한 것을 꾸짖는다. 여자의 이름은 애니 핀. 총기 기술자이며 총기 인이었다. 브라부라는 해당 사건에 대해 감을 못 잡겠다며 맥스가 사건을 처리하도록 한다. 그러고는 윈터슨 형사에게 세바스찬 게이트 원의원 살인사건을 맡긴다. 해당 사건은 목격자가 있었고, 몽타주도 있었다. 맥스는 용의자의 몽타주를 보고 놀란다. 몽타주에는 모나 색스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맥스는 창고에서 모나를 보았다는걸 말하지 않는다.
          * 창고 1층의 TV에서는 드라마 "딕 저스티스"가 방되고 있다. [[맥스 페인|범죄자들에게 애인을 잃고 애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형사가 범죄 세계에 맞서 싸우는 내용…….]] 음?
         보드카에 도착한 맥스. 하지만 보드카는 중무장한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고 블라드는 입구에서 포위되어 있는 황이었다. 블라드가 도움을 요청하자 맥스는 지원을 요청할 새도 없이 보드카 뒷문으로 뛰어들어간다.
         블라드가 "뉴욕 최고, 최대의 폭력배 바디카운트를 달성한 맥스 페인이 온다"며 책 밑에 숨어 도발하는 동안, 맥스는 보드카를 습격한 마피아들을 처리하며 블라드에게로 향한다.
         맥스와 블라드가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하자 마피아 언더보스인 [[비니 고그니티]]는 초조해 한다. 비니는 맥스 페인에서 맥스에게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하들에게 맥스를 포위해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부하들이 역으로 죽자 블라드를 욕하며 도망친다. 블라드는 맥스를 자신의 웅이라고 부르며, 키스라도 해줄 수 있다는 농담을 한다.
         경찰들이 보드카에 도착해 황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블라드는 비니 고그니티가 주모자일거라고 추정한다. 비니가 무기 밀매 사업을 하는데 경쟁자라고 생각한 모두를 쓸어버리기 시작했다는 것. 블라드는 자신은 행동을 고치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갔다며, 보드카는 뉴욕에서 제일 유명한 식당이 될 것이며 자기는 부유해지고 유명해질거라고 자신한다. 한편, 핀의 죽음에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맥스는 블라드가 왼손을 다친 것을 보고는 아까전 총격전에 다친건지 물어본다. 블라드는 어제 뜨거운 데이트가 있었다고 대답한다.
          * 호작용키로 카우보이 마이크를 따라오거나 머무르게 할 수 있다. 또한 마이크는 죽을 수도 있다. 죽으면 칼라니시코프와 수류탄 두 발을 드랍한다.
          * 카우보이 마이크를 만난 바로 윗 층의 TV에서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모험"을 방한다. 맥스웰의 악마라는 악당이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주적~~여자친구인 바이시클헬멧걸을 납치했고,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외우주에서 온 좀비 떼거리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
         맥스는 자고있던 소파에서 일어난다. 켜져있던 TV에서는 "주소지 불명"이 방되고 있었다. 연쇄살인마 "존 미라"로 인해 범인으로 몰린 주인공은 싸구려 호텔에 숨어있었다. 그 때,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들겼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맥스의 집 현관문을 두들겼다. "주소지 불명"에서 문 밑으로 노트가 들어오듯이, 맥스의 집 현관문 밑으로도 [[모나 색스]]의 사진이 들어왔다. 맥스는 현관문을 열고 나와 미로로 된 아파트 복도를 달리고, 끝없는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계단 끝의 문 너머에는 검시실이 있었다. 모나 색스가 나타나 비밀을 말해주겠다고 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블라디미르 렘]]이 그의 애인에게 남긴 메시지였다. 순간 사이렌이 울린다. 윈터슨과 모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맥스는 취조실에 앉아있다. 윈터슨과 브라부라가 모나의 몽타주를 보여주며 맥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털어놓으라고 요구한다. 맥스의 가족이 죽은건 맥스 탓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맥스는 전화를 받겠다며 일어난 후, 책에 놓여있던 권총을 집어든다. 그러고는 브라부라와 윈터슨을 쏴죽인다.
         청소부들은 B동 302호에서 맥스의 행태를 감시하고, 그의 전화[* 저격수를 보고나서 윈터슨에게 건 전화와 폰섹스 통화에서 모나를 찾는 전화. 폰섹스 회사의 직원인 모나를 모나 색스와 착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전부 죽이니 뭐니 말한 결과 돌아온건 미친놈 취급.]를 감청하고, 그의 집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 맥스가 그 방에 설치된 카메라로 자신의 방을 봤을 때는, 청소부들이 현관문을 열면 터지도록 폭탄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 이후 황파악 못한 청소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열려있는 계단을 따라 7층까지 올라간 맥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다. 거기서는 청소부 세명이 1층 복도에서 살던 노숙자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맥스는 청소부를 죽이고 이들을 구해준다. 하지만 노숙자는 청소부들이 나가는 문을 막았다고 말한다. 맥스가 또다른 나갈 방법이 있냐고 묻자 노숙자는 7층에서 옥으로 올라가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7층은 스위트룸이라서 암호가 걸려있지만 그건 아파트에서 일하는 청소부인 에드(Ed)가 알 거라고 하며.
  • 이승현(농구선수) . . . . 90회 일치
         ||||<:><#000000> {{{#ffffff 국군체육부대 무 농구단 No. 34}}} ||
         ||<:> '''출신지''' || [[경북도]] [[구미시]][* [[http://www.rooki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38|#]]] ||
         ||<:> '''신체사이즈''' || 197cm, 105kg[*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공식 프로필] ||
         ||||||||||||<#DDDDDD><:> '''2015~2016, 2016~2017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수비''' ||
         ||<width=125><:> [[최부경]][br]([[국군체육부대| 무]]) ||<:> → ||<width=125><:> '''이승현[br]([[국군체육부대| 무]])''' ||<:> → ||<width=125><:> 미정 ||
         ||<width=125><:>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 2013년 MVP. 2014년 대회는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FIBA 농구 월드컵]]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인천 아시안 게임]] 때문에 개최되지 않았다.][br]([[고려대학교]]) ||<:> → ||<width=125><:> '''이승현[br]([[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고양 오리온스]])''' ||<:> → ||<width=125><:> [[김시래]][br]([[국군체육부대| 무]]) ||
         ||<width=125><:>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br]([[고려대학교]]) ||<:> → ||<width=125><:> '''이승현[br]([[고려대학교]])''' ||<:> → ||<width=125><:> [[강재]][br]([[고려대학교]]) ||
         ||||||||||||<#DDDDDD><:> '''2011 [[한국대학농구리그]] 신인''' ||
         || [[박찬희(농구)|박찬희]][br]([[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 [[이재도]][br]([[부산 kt 소닉붐|부산 kt]]) || [[양희종]][br]([[안양 KGC인삼공사|안양 KGC]]) || '''이승현[br]([[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고양 오리온]])''' || [[데이비드 사이먼]][br]([[안양 KGC인삼공사|안양 KGC]]) ||
         초등학교 5학년 무렵 95Kg이나 나간 몸무게 때문에 살을 빼려고 유도를 시작했는데, 유도를 하면서 오히려 살이 더 찌는 바람에(...) 농구로 전업을 해서 농구 선수가 되었다.[* 이때 유도를 계속 하고싶었지만 농구로 전향하라는 제의를 받았고, 만약 결승에서 이기면 유도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이승현은 이 결승전에서 패배했다.] 농구를 하면서 살을 30Kg을 뺐고, 키가 크면서 중학 무대와 고교 무대 모두에서 최고급 [[파워 포워드|4번]]-[[센터(농구)|5번]]을 맡는 선수로 성장했다. 고교 최고의 센터로 불린 이승현을 두고 대학팀 간 경쟁이 붙었고, 거의 연세대로 진로가 확정이 되는 듯 싶던 이승현은 고려대학교 이민형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해 결국 고려대로 진학하게 되었고, 1학년 부터 주전 자리[* 이전에 1학년부터 [[파워 포워드]]였다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의 입학 이전인 1,2학년 시절에는 [[센터(농구)|센터]]를 맡았었고, 이종현 입학 이후 파워 포워드로 전향하게 된다. 2011~2012년 고려대의 주전 파워 포워드는 [[정희재]]였다. 이승현은 센터 시절에도 입학과 동시에 [[장재석]], 김종규를 제치고 리바운드을 수하는 등 적어도 대학농구 내에서는 수위급 [[센터(농구)|5번]]의 면모를 보였다.]를 차지하면서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고양 오리온스]]의 지명을 받았다. 팀 역사 최초의 1순위 지명이다.(신인왕과 MVP를 석권했던 김승현은 3순위로 지명) ~~[[장재석|이로써 오리온스는 1순위 --빅맨--만 2명이 되었다]]~~
         대학 말년에 장착한 3점슛이 큰 효과를 보이며 높은 성공률을 기록,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덤으로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좋은 패스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 압권은 접전황에서 결승 득점을 만들어주는 백도어 컷인 패스를 건네준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ketball&category=kbl&listType=game&date=20141023&gameId=&teamCode=&playerId=&keyword=&id=101921&page=1|바로 이 장면이다]]. 이게 신인의 플레이가 맞냐는 평가.
         한편 이승현이 프로에 와서는 대학시절의 파괴력 넘치던 인사이드 플레이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공격시 슈터가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외곽 플레이의 비중을 늘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승현은 현재 오리온스에서 공격시 외곽과 인사이드의 조합을 1:1정도로 가져가며 [[파워 포워드|4번]]보다는 3.5번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팬들이 기대했던 파괴력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팀에서 궂은일을 하고 외곽에서 필요할때 3점슛을 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플레이에 대한 팬들의 변명으로 농구에서 [[포인트 가드]] 외에는 포지션의 엄격한 구별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추일승]] 감독에 의해 그렇게 플레이하도록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다만 수비시에는 공격포제션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좀더 인사이더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특히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유도선수 출신의 위엄-- 대방의 용병을 버텨내는 수비까지도 가능한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협력수비시 포지셔닝이나 헬프타이밍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편. 다만 스피드나 높이에 대한 부분은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장점 중 타고난 체력이 꼽히기도 하는데, 대학리그를 마치고 휴식기 없이 바로 프로 데뷔 시즌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팀내 평균출장시간 1위(2014-15 시즌) 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동시에 대학 말년에 장착한 3점슛이 일취월장하여 허일(50%)에 이은 시즌 3점슛 성공률 2위(42.9%)를 기록하였다.
         2014-15 시즌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신인을 수하였다.[* 기자단 투표수 99표중 74표를 획득하였다. 참고로 2위 김준일은 25표를 받았다.]
         2015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2015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 MVP를 수하였다. 특히 결승전에서 모교 후배들을 대로 압도적인 기량차이를 보여주었다.
         '''입단 2년차에 오리온 포워드 농구의 핵심전력이자 KBL의 두목으로 거듭나다''' --2015-16 시즌 농구기자들의 연민의 대--[* 외국인 선수 수비가 되기에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출전하지 못한 1라운드를 제외하고는 전 경기에 나서서 추일승의 노예로 장신 외국인 선수들을 수비했다. 2월 22일자 바스켓카운트에서 기자들이 노가다 수당이라도 줘야 되는게 아니냐며 동정하는 모습이었고 이는 정규시즌 시식 최우수수비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외국인 선수들과 하승진을 마크하면서도 그 선수들을 끌어내느라 3점까지 던져가면서 온갖 개고생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15-16 PO MVP를 받게 된다!!]
         비시즌 국대에 다녀온 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마드 니카 바라미를 막다가 발목이 돌아가는 큰 부을 입었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잘나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골밑에서 궂은일을 해줌과 동시에 외곽포 지원까지 해주었다. 하지만 헤인즈 전력 이탈 이후 수비부담이 심해짐에 따라 스탯도 미세하게 흔들리는 모습. 특히 6라운드 시작 현재 3점슛 성공률이 시즌 25%가 채 되지 않는데, 대팀에서 무시해도 될 만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수비부담을 강조하는 옹호글 때문에 용병수비의 준말인 용수라는 멸칭도 획득(...). 그러나 출장시간 및 전체적인 성적을 보면 팀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들을 잘 해주고 있는 편이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최진수, 장재석과 함께 동부 공격의 중심인 로드 벤슨과 웬델 맥키네스의 멘탈을 뒤흔드는 압박을 선보였고, 시즌 중 매우 떨어졌던 외곽 성공률 때문에 수비를 등한시했던 동부 수비수들에게 빅엿을 날리는 3점슛을 1,2차전 합계 5개나 성공시키면서 홈 2연승의 주축으로 평가받았다. 3차전에서는 2쿼터 중반 무릎부으로 들것에 실려나가서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지만, 승부에 쐐기를 박는 4쿼터 3점슛 2방으로 동부를 스윕하고 울산행 티켓을 거머쥐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3차전 기록은 3점슛 4개 포함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득점인 20점을 득점하였다. ~~이승현 3점 갯수의 절반밖에 못 넣은 동부 선수들은 반성해야된다. 25개 던져서 2개가 뭐냐?~~
  • 흥친왕 . . . . 90회 일치
         |웹사이트 =
         '''흥친왕 이재면'''(興親王 李載冕, 완흥군(完興君), [[1845년]] [[8월 22일]]([[음력 7월 20일]]) ~ [[1912년]] [[9월 9일]])은 조선 말기의 왕족·군인·정치인이자 [[대한제국]]의 황족·군인으로, [[흥선대원군]]의 적장자(嫡長子)이자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친형이며 [[선군 이준]]의 아버지이다. 대한제국 성립 후 완흥군(完興君)에 책봉되었다가 [[1910년]] 흥친왕(興親王)으로 진봉되었다.
         [[1863년]] 음서로 사용이 되었으며 이듬해 과거에 급제하여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집권기간 중 도승지, 참의, 직제학 등을 지내고, [[1874년]] [[11월]] [[흥선대원군]]이 퇴출당하고 고종의 친정 이후에도 이조와 형조,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한때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동생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대안으로 검토되기도 했다. 관직은 [[보국숭록대부]](上輔國崇祿大夫) 궁내부 대신, 육군 부장에 이르렀다.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풍산 홍씨 홍병주(洪秉周)의 딸과 결혼하여 [[이준용]], [[이문용]] 형제와 2녀를 얻었으나 일찍 죽고 뒤에 38년 연하인 참봉 이인구(李麟九)의 딸과 재혼하였다. 그밖에 1명의 첩에게서 서녀 1명을 보았다. 남달리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그는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뜻을 거슬리지 않았다.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그런 그보다 특하고 야심만만한 손자 [[선군]] [[이준용]]을 더욱 총애한다. 그는 여러번 [[과거 시험]]을 준비하였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낙방하였다.
         그 뒤 당관으로 승진 [[1865년]](고종 2년) [[1월]] 통정대부로 승진하여 [[승정원]][[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가 부호군(副護軍)이 되었다. 1월 15일 철종의 빈전의 향관(享官)으로 추가 선출되었다. 이후 다시 [[승정원]]동부승지가 됐다가 [[4월]] [[성균관]][[대사성]], [[이조]][[참의]], [[부제학]] 등을 거쳐 이후 [[성균관]][[대사성]]·[[승정원]][[도승지]]ㆍ이조참의ㆍ호조참의ㆍ예조참의, 부제학, 직제학 등을 역임했다.
         1866년 도승지, [[1867년]]에는 직제학이 됐다가 그해 3월 가선대부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로 승진하였고, 바로 [[이조]][[참판]]이 되었다. 이후 동지경연사, 종정경에 제수되었고, 의정부 당을 역임하였다. 그 뒤 [[병조]][[판서]], 금위대장,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1873년]] 종정경(宗正卿)이 되었으나 [[1874년]] [[11월]]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에 의해 섭정직에서 강제 축출당한 뒤에도 그는 유유하고 고분고분한 성격 덕에 계속 관직에 남아 있을수 있었다. 동생이 국왕이었고 아버지는 섭정인데도 자신에게는 낮은 직위가 부여되었던 것에 불만을 품기도 했다. 이때문에 그는 한때 [[명성황후]] 측에 가담하기도 했다. 외가인 민씨 척족에게 아부한 것 역시 관직을 계속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1878년]](고종 16년) 자헌대부로 승진하여 지[[경연]]사(知經筵事)가 되었고, 종정부, 춘추관, 의금부사를 겸임하였으며, [[1879년]] [[형조]][[판서]](刑曹判書), 시강원 우부빈객(侍講院右副賓客), 시강원 좌빈객, 별입직(別入直)을 거쳐 종1품으로 특서되었다. 그해 숭정대부에 승진하여 행 병조판서가 되었고,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1880년]] [[병조]]판서, 1881년 [[1월]] 금위대장,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등을 지냈다. 이어 1월 말 판돈녕부사로 통리기무아문당, 사대교린당(事大交隣堂上)에 올라 이조판서, [[예조]]판서를 지냈다. 그해 숭록대부로 승진하였다.
         [[1881년]] [[4월]] [[시강원]] 우빈객(侍講院右賓客)이 되고 이후 [[금위대장]]과, 지훈련원사를 거쳐 같은 해 [[8월]]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해 [[10월]] [[이재선]]의 옥사가 있자 소를 올려 [[이재선]]의 적형임을 들어 스스로 죄를 청하였고, 곧 사직했다. 그 뒤 [[이재선의 옥사]] 관련자들에게 역적의 율로 다스려야 된다는 [[사헌부]]와 [[사간원]] 및 [[성균관]] 유생들의 비난을 받을 때 그는 역모 가담자의 가까운 친족이었음에도 특별히 화를 면할 수 있었다. [[1882년]] [[3월]] [[보국숭록대부]]로 승진, 행 예조판서가 되고, 호조판서를 겸하였다. 이어 훈련대장, [[선혜청]] 당, 판삼군부사를 역임했다.
         [[1882년]] [[6월]] [[임오군란]]으로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다시 섭정으로 재추대되자 일시적으로 무위대장(武衛大將)으로 사태수습에 힘썼다. [[호조]][[판서]]·[[선혜청]]당(宣惠廳堂上)·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훈련원|훈련]]대장을 겸하였다.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청나라]] 군인과 문인들의 굴욕과 모욕을 감수하면서도 그는 비밀리에 국내에 편지 서신을 보내 자신을 구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는 [[1973년]] [[10월 4일]] [[대한민국]] 월간 문학사 자료 조사연구실에서 발굴되어 세에 알려지게 되었다.<ref name="문사1">경향신문 1973년 10월 4일자 기사 7면</ref>
         편지를 쓸때 그는 순 [[한글]]체로 썼는데, 이는 한자나 어로 썼다가는 발각되었을 때 청나라의 군인들이 해석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었다.
         {{인용문|다시 뵈옵도 못하고 세이 올이지 않이하리신이 지필을 다해야 한심하오니다. 태평히지니시옵기 니니 발아옵니다. - 보정부 안치죄 이서<br />(다시 뵙도 못하고 이승에서 내 목숨이 오래지 못하겠으니 종이와 붓을 마주 대하기 한심하옵니다. 내내 태평히 지내시기를 바라옵니다. - 보정부 안치죄 이서<br /><br />1884년 음력 10월 12일 보정부에서 몰래 쓴 편지<ref name="문사1"/>}}
         [[민승호]]의 양자 [[민익]]은 [[흥선대원군]]이 민승호 일가를 폭탄테러로 죽였다고 단정하고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ref name="문사1"/> 한다. 이 소식을 접한 대원군은 바로 비밀편지를 작성하여 아들 이재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인용문|신문지의 경평이([[이세보|경평군]])는 내 편이고, 익이([[민익]])는 딴 편으로 말하고, 익이가 머리 깎았다 하면서 일번 기별하여 원수를 갚는다 하였으니 우습다. 사신<ref>청나라로 오는 진주사</ref> 을 또 보내어야 되지, 안보내면 감이 불효의 이름을 면치 못할 것이니 부디 주선하되 (올수 있으면) 너더러 들어가라<br /><br />1884년 날짜 미, 보정부에서 몰래 쓴 편지<ref name="문사1"/>}}
         {{인용문|나가고 안이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감 쳬면이 쳔하의 빗치 나기시니 부디 잘 알외어니 일신을 살려다고....<br />(나 되돌아가고 못 돌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감의 체면이 천하에 빛이 나겠으니, 부디 잘 아뢰어 내 한몸을 살려다오)<br /><br />1884년 날짜 미, 보정부에서 몰래 쓴 편지<ref name="문사1"/>}}
         [[1894년]](고종 31) [[6월]] 특별히 보국숭록대부(上輔國崇祿大夫)로 승진하여 종정경과 돈녕부사를 역임했다.
         [[1884년]] [[김옥균]], [[홍식]], [[서재필]] 등에 의해 [[갑신정변]]이 발생하자, [[개화파]]와도 인간 관계를 형성했던 그는 정변 내각의 [[의정부]][[좌찬성]](左贊成) 겸 좌우참찬이 되었다. 그러나 [[갑신정변]]은 3일만에 진압되었고, 그도 좌찬성 겸 좌우참찬에서 해임되었다. 판종정경의 직위를 받았으나 [[갑신정변]] 당시 고위직에 임명되었다는 이유로 민씨 일파의 공격을 받았으며, 정변 관련자들과 내통하였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국왕의 친형이라는 이유로 불문율에 붙여진다. 그 후 흥친왕은 7년간 [[운현궁]]에서 칩거하였다.
         [[1887년]] [[12월]] 첫 부인 풍산홍씨와 사별하였다. 처한 그는 57세에 20세인 여주이씨 이인구의 딸과 결혼하였다. 여주이씨는 그의 아들 [[이준용]]보다 13살 연하였고, 며느리인 [[광산 김씨]]보다도 5년 연하였다. 결국 [[운현궁]]의 살림은 며느리 광산 김씨의 몫이 되었다.<ref>며느리 광산 김씨 역시 아들 이준용의 재취였다.</ref>
         [[1892년]] [[봄]], [[운현궁]]에서 화약이 터지고 여러 건물에 장치된 화약이 발각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황현]]은 [[명성황후]]를 배후로 지목하였다. 황현은 운현궁의 폭탄 테러 사건을 [[명성황후]]가 대원군 일가를 폭살하기 위해 벌인 짓이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p316">오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섭 저, 2007.4, 경인문화사) 315~316쪽.</ref> 이때 [[흥선대원군]]의 사랑채와 이재면, [[이준용]] 부자의 거처에도 폭약이 장치되어 있었으나 다행히 점화되지 않은 태에서 발각되었다. 이는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의 오빠인 [[민승호]]에게 폭약을 보내 일가를 폭사시켰던 전례에 대한 정치적 보복극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ref name="p316"/>
         [[1893년]] 그는 동학 농민군이 경하여 [[경복궁]] 앞에서 복합소운동을 벌이는 기회를 이용하여 [[이준용]]을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다. [[정교]]는 1893년 [[2월 11일]]부터 [[2월 13일]]까지 3일간 박광호를 소두로 하는 약 50명의 동학교도들이 경하여 궁궐 앞에서 교조 신원을 탄원하며 연좌시위를 벌인 사건을 대원군이 시킨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때 [[정교]]는 대원군이 은밀히 동학당 수만 명을 서울로 불러 모임을 갖고 장차 불궤를 도모하여 그의 손자 이준용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하였다.<ref name="p316">오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섭 저, 2007.4, 경인문화사) 315~316쪽.</ref>
  • 배두나 . . . . 89회 일치
         {{화인 정보
         | 부모 = 아버지 배종덕, 어머니 김화
         | 학력 = [[건국대학교]] 화예술학과
         | 웹사이트 = [http://www.doona.net/ 배두나 공식 홈페이지]<br>{{페이스북|doona.bae}}
         | 수 =
         '''배두나'''(裵斗娜,<ref>{{저널 인용 |저자= 강현숙|날짜= 2010-12-08|제목= 두나 엄마 김화의 손뜨개 스토리|url= http://woman.donga.com/List/3/all/12/142673/1|저널= 여성동아|출판사= 동아닷컴|권= |호= |확인날짜= 2016-02-04|인용문= 별 ‘두’ 아리따울 ‘나’. 별같이 빛나고 아름다우라는 소망을 담아 지어준 딸아이의 이름이다.}}</ref> [[1979년]] [[10월 11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화 ===
         * 2000년 《[[플란다스의 개 (화)|플란다스의 개]]》 - 박현남 역
         * 2000년 《[[청춘 (화)|청춘]]》 - 서남옥 역
         * 2002년 《[[복수는 나의 것]]》 - 차미 역
         * 2002년 《[[굳세어라 금순아 (화)|굳세어라 금순아]]》 - 정금순 역
         * 2003년 《[[튜브 (화)|튜브]]》 - 송인경 역
         * 2005년 단편화 《티 데이트(Tea Date)》 - 선희 역
         * 2006년 《[[괴물 (2006년 화)|괴물]]》 - 박남주 역
         * 2012년 《[[코리아 (화)|코리아]]》 - 리분희 역
         * 2012년 《[[클라우드 아틀라스 (화)|클라우드 아틀라스]]》 - Sonmi-451, Tilda Ewing, 멕시칸 여성 역
         * 2014년 《[[도희야]]》 - 이남 역
         * 2016년 《[[터널 (화)|터널]]》 - 세현 역
         * 2017년 단편화 《장옥의 편지》 - 은아 역
         *2019년 단편화 《이경미 감독 신작(가제)》
  • 헌경왕후 . . . . 88회 일치
         |출생일 = 조 11년(1735) [[음력 6월 18일]]
         '''헌경왕후 홍씨'''(獻敬王后 洪氏, [[1735년]] [[8월 6일]]([[음력 6월 18일]]) ~ [[1816년]] [[1월 13일]]([[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왕세자빈, [[추존]]왕비로, [[대한제국]]의 추존황후이기도 하다. [[조선 조|조]]의 차남 [[조선 장조|장조]](莊祖, 사도세자)의 비이자, [[조선 정조|정조]]의 어머니이다. 원래 시호는 헌경혜빈(獻敬惠賓)이었으나,<ref>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1816 병자년 / 청 가경 21년) 1월 19일(기해) 1번째기사, "혜경궁 시책문"</ref> [[대한제국 고종|고종]]때 왕후로,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로, 정조가 내린 궁호인 '''혜경궁'''(惠慶宮) 또는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선조때의 문신 [[홍이]]의 7대손이다. 모계로는 [[조선 선조|선조]]의 외6대손으로, 선조의 부마 안위 [[홍주원]]과, 선조와 인목대비 소생 [[정명공주]]가 5대조부와 5대조모가 된다. 그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 [[홍현보]]는 태몽을 꾸고, 그가 태어나자 아들 내외에게 특별한 아이라고 예하였다. [[1735년]](조 11년) 한성부 반송반에서 [[홍봉한]](洪鳳漢)과 한산부부인 이씨의 둘째 딸로 태어나, [[1743년]](조 19년)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할아버지 홍현보는 예조판서까지 역임했지만 [[한중록]]에 의하면 아버지 [[홍봉한]]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낙방했고, 그의 가계는 빈한하여 언니를 시집보낼 때와 그가 출가할 때 혼수품이 넉넉하지 않았다 한다. 그가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릴 때, 얼굴도 모르고 처음 보는 친척들이 나타나서 자신의 이름을 알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바로 조의 특명으로 아버지 [[홍봉한]]은 그에게 《소학(小學)》, 《내훈(內訓)》, 《어제훈서(御製訓書)》를 가르쳤다 한다. 조 20년인 [[1744년]](조 20년) 10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되어,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낳은 아들로는 [[의소세손]]과 [[조선 정조|정조]]가 있다. 조는 첫 손자인 의소세손 이정이 태어나자 기대가 남달랐으나 의소세손은 곧 요절했다. 그러나 2년 만에 둘째 아들 세손 이산이 태어났다.
         [[1762년]](조 38년) [[5월 22일]] [[나경언]]이란 자가 사도세자의 10가지 비행을 고변하자, 조는 친히 국문을 하였다. 나경언은 액정별감 나언의 형으로 사람됨이 불량하고 남을 잘 속였다. 가산이 탕진되어 자립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세자를 제거할 계책을 내어 형조에 글을 올렸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ua_13805022_002&grp=&aid=&sid=247168&pos=0|제목=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5월 22일(을묘) 2번째 기사|확인날짜= |저자= 조실록|날짜 =|출판사=조선왕조실록|원본일자 = 1762-5-22|인용=}}</ref>
         [[1762년]](조 38년) [[7월 4일]](윤[[5월 13일]]) 부왕 조는 사도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뒤주]]에 가두는 참혹한 형벌을 내렸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ua_13805113_002&grp=&aid=&sid=247168&pos=5|제목=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윤5월 13일(을묘) 2번째 기사|확인날짜= |저자= 조실록|날짜 =|출판사=조선왕조실록|원본일자 = 1762-5-13|인용=}}</ref>
         [[1762년]](조 38년) [[7월 12일]](윤[[5월 21일]])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자는 뒤주에서 나오지 못하고 폭염 속에서 사경을 헤매었고 결국 뒤주에 갇힌 지 8일 만에 아사(餓死)하였다. 조가 세자에게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홍씨에게는 '혜빈(惠嬪)'의 호를 내렸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ua_13805121_002&grp=&aid=&sid=0&pos=0|제목=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윤5월 21일(을묘) 2번째 기사|확인날짜= |저자= 조실록|날짜 =|출판사=조선왕조실록|원본일자=1762-5-21|인용=}}</ref>
         {{출처|날짜=2010-10-31|임오화변의 원인으로 조가 노론을 견제키 위해 키운 외척계 탕평당인 홍봉한 계열과 조의 탕평에 반발하던 노론계의 대립으로 기행을 일삼던 사도세자 문제가 정치적으로 떠올랐는데 반 탕평파에서 홍봉한을 공격하기 위해 그의 약점이던 사도세자 문제를 정치 문제화 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홍봉한은 이를 덮기 위해 뇌물까지 제공하며 은폐하려 했지만 나경언의 고변까지 들어가고 더이 어쩔 수 없는 태까지 오자 조가 종사를 위해 아들을 포기했고 손자를 지키기 위해 홍봉한에게 자신의 명을 따르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당시 당한 소에서 사도세자의 비행을 은폐하는 홍봉한에 대한 공격이 나온다.
         [[1775년]](조 51년) 조가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자 홍인한은 극력 반대하였고, 이 문제로 정조의 미움을 사서 정조 즉위 후 사사된다.
         홍봉한은 [[1770년]](조 46년)경 반대파 김귀주, 정후겸의 공격으로 정계에서 원히 은퇴하고 봉조하의 직함으로 교외에 거주했으며 이후에도 이복동생이던 홍인한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형을 배신했다고 정조가 말한적이 있다. 사도세자 생전부터 있었던 정순왕후 외척가문과의 정쟁으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이후에도 김귀주 정파의 홍봉한 탄핵이 여러번 있었으며 정조 즉위초에도, 정조 사후에도 이들이 홍봉한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다. 사도세자의 추숭에 대해 당시 세손이던 정조와 사석에서 홍봉한이 나눈 이야기를 김귀주가 조에게 고자질해서 홍봉한을 역적으로 몰기도 했었다.
         [[1776년]](정조 즉위년) 조가 83세에 서거하고, 대리청정하던 세손 이산이 25세의 젊은 나이에 등극하니, 곧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장헌(莊獻)'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어머니 혜빈 홍씨 역시 '혜경궁(惠慶宮)'으로 궁호가 높아졌다. 당시 왕실에서 혜경궁 홍씨가 제일 연장자였으나, 서열 10살 아래인 [[정순왕후 (조선 조)|정순왕후]]가 대비의 위치를 차지하여 왕실 서열 제2위의 위치에 있었다.
         [[1795년]](정조 19년) 그녀가 회갑을 맞는 해에, 혜경궁 홍씨는 회고록인 《[[한중록]]》을 저술하였다. 한중록은 한번에 쓰인 게 아니라 십수년에 걸쳐 여러 번 쓰였으며 목적도, 내려준 사람도 각기 다른데 후대에 누군가가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집안의 명예회복이란 아들 정조가 죽은 후 벽파계의 공격에 의해 친동생이 사사당하고 아버지가 역적으로 다시 몰리자 그에 대해 변호한 것으로 가문의 원수였던 김귀주 계열, 벽파 계열에 대한 원한이 드러나 있으며 친동생의 죄목이나 아버지에 대한 공격등에 대해 정조 생전의 말이나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세하게 거론하며 조목조목 변론하고 있다.
         [[1854년]](철종 5년) 유정(裕靖)의 존호가 추가되었다. [[1899년]](광무 3년) [[8월 3일]]에 경연특진관 서조(徐相祖)의 소로 장헌세자를 왕으로 추존할 것을 청하여 [[조선 고종|고종]]이 승인하여 장헌세자가 장종대왕으로 [[추존]]되자, 함께 헌경왕후로 [[추존]]되었고, 대한제국 성립 이후인 [[1903년]](광무 7년) 장조가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로 격되자 그녀 역시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로 격되었다.
         《[[한중록|한중록》]]은 청과부가 된 그녀를 동정하는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편집증적인 조의 사도세자 핍박과정을 세히 적어놓은탓에 사도세자의 살인행각을 조의 탓으로 사도세자를 미화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권력의 최부에서 70년이을 직접 보고 겪은 정사에서는 볼수없는 정치사의 이면을 폭로한 정보가 하나둘이 아니며 피적으로 적혀있는 사건들의 사건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또한 조선후기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칠십년을 궁에서 살아온 경험들을 세히 기술해 그 어떤 사료보다 당대 풍속을 세히 그려볼수있게한다.
         * 5대조부 : 안위 [[홍주원]](永安尉 洪柱元, 1606~1672)
         *** 증조모 : 의정 [[이경여]](令議政 李敬輿, 1585~1657)이 손녀이며 대제학 문간공 [[이민서]](大提學 文簡公 李敏敍, 1633~1688)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
         ***** 당숙 : 증 의정 [[홍한]](贈 領議政 洪象漢, 1701~1769) - [[어유구]]의 조카사위, [[선의왕후 (조선)|선의왕후]]의 사촌제부
         ****** 6촌오빠 : 의정 [[홍낙성]](領議政 洪樂性, 1718∼1798) - [[홍현주]](정조의 부마이자 혜경궁의 손녀사위)의 조부
         **** 조부 : 예조판서 증 의정 정헌공 [[홍현보]](禮曹判書 贈 領議政 貞獻公 洪鉉輔, 1680~1740)
         ***** '''아버지''' : 풍부원군 익정공 [[홍봉한]](永豊府院君 翼靖公 洪鳳漢, 1713~1778)
  • 홍영식 . . . . 88회 일치
         '''홍식'''(洪英植, [[1856년]] [[2월 5일]]([[1855년]] [[음력 12월 29일]]) ~ [[1884년]] [[12월 7일]]([[1884년]] [[음력 10월 20일]]))은 [[조선]] 말기의 문신, 외교관, 시인이다. 구한말 [[개화파]] [[정치인]]이며 [[갑신정변]]의 주역<ref>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95776 '프라하의 연인'과 김옥균, 북촌을 걷다] - 오마이뉴스. </ref>으로, 자는 중육(仲育), 호는 금석(琴石), 본관은 [[남양 홍씨|남양]](南陽)이며, 서울 출신이다. 한국 [[우편]], [[우표]] 제도의 선각자이기도 하다.<ref name="뉴스메이커">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7600&pt=nv <nowiki>[우정이야기]</nowiki>우초(우표)를 아십니까] - 뉴스메이커 776호([[2008년]] [[5월 27일]]자) </ref><ref name="노컷">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214016 근대 우편은 언제 시작됐나 : '우편, 우표, 우체국 이야기'] - 노컷뉴스, [[2006년]] [[4월 21일]]자(김선경 기자). </ref> 개화파의 중진으로서 신설된 우정총국의 총판(總辦)이 되어 낙성식을 기회로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1872년]] 칠석제 과거에 합격하고 [[187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의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일본 군사시설에 대한 보고서 <일본육군 총제(總制)>, <일본육군 조전(操典)> 등을 고종에게 올렸다. 1883년에는 고종의 특사 [[민익]]의 부사로 미국에 다녀와 국내에 농기계를 최초로 도입시켰다. [[병조]][[참판]]을 거쳐 [[1884년]] [[3월]] [[우정국]] 총판에 임명되어 [[우정국]] 설치에 전력하다가 [[김옥균]], [[서재필]], [[박효]], [[윤치호]] 등과 함께 정변을 모의, 그해 [[10월]]의 [[갑신정변]]에 가담하였으나 3일만에 실패당하고 처형당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총리대신 [[김홍집]](金弘集)등의 소로 복권되었다가 [[김홍집]]의 실각 이후 추탈되었다. 그 뒤 [[1910년]](융희 4년) 최종적으로 복권되어 [[대광보국숭록대부]] [[규장각]] [[대제학]](奎章閣大提學)에 [[추증]]되었다.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의 문인이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홍식은 1856년 2월 5일([[1855년]] [[음력 12월 29일]]) 후에 의정을 지낸 아버지 [[홍순목]](洪淳穆)과 어머니 [[전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좌부승지였던 아버지 [[홍순목]]은 이미 사별하고 38세에 재혼한 부인 전주이씨에게서 둘째 아들로 홍식이 태어났다. 홍순목에게는 큰아들 홍만식(洪萬植)이 있었으나 홍식의 큰아버지 홍순경(洪淳敬)이 후사가 없이 죽자 [[1849년]] 홍순경의 양자로 입적되었고, [[1853년]] 부인을 잃어 재취를 하여 얻은 아들이 바로 홍식이다.<ref name="노컷" /> 어려서는 몸이 병약하여 자주 병을 앓았고, 8세에 생모 전주이씨가 사망하여 계모에게서 성장하였다.
         그가 7세의 나이에도 특하였기에 아버지 [[홍순목]]의 부임지의 이속들은 장난 삼아 '내 아들'이라고 저희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 농담을 들은 그는 분하게 여겨 통곡했다고 한다. 홍순목 현감이 '웬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끝내 농담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 한다. 아전들의 농담을 말했다가는 아전들이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했던 것이라 한다. 내 아들이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나면 큰 벌을 받게 될까봐 걱정하던 아전들은 그가 끝까지 이를 말하지 않은 것을 보고, 이후 그의 성품에 눌려 이후 농담을 삼가 했으며, 훗날까지 충심을 다하면서 그때 은혜를 갚았다 한다.
         그의 아버지 [[홍순목]]은 [[흥선대원군]]의 측근이었고 [[흥선대원군]]의 부탁을 받아 그의 아들 [[이재면]], [[이재선]], [[이명복]](훗날의 [[조선 고종|고종]]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러나 홍식은 [[박규수]]와 [[오경석]]의 문하에 가서 글을 배운다.
         [[1868년]](고종 5년) 그는 양주 조씨와 결혼하였으나 사별하고 후에 이씨와 재혼하였다. 1869년경부터 [[박규수]]의 문하생으로서 지도를 받으며 [[서재필]], [[김옥균]], [[김윤식]], [[박효]], [[서광범]], [[유길준]], [[이동인]] 등과 서로 잘 알고 지냈다. [[박규수]]의 문하에서 [[청나라]]인 위원의 《해국도지 海國圖志》, [[청나라]] 사람 서계여의 《환지략 瀛環志略》 등 중국의 개화서와 박지원의 《연암집》 등을 읽으면서 개화사을 형성해나갔다. 또한 [[오경석]]의 문하에도 출입하며 글을 배웠다. 1876년 박규수가 죽은 뒤에는 유대치로 알려진 [[유홍기]]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청소년 무렵에 신문물을 접하면서 신학문에 열중하면서 부인 양주 조씨와의 관계는 다소 멀어졌고 보수적인 부친 [[홍순목]]과는 항 반된 의견으로 대립이 잦았다 한다. 그 중간에서 형 [[홍만식]]의 중재로 평온을 유지하였다.
         [[1872년]](고종9년) [[음력 7월]] 칠석제(七夕製)에서 고종이 친히 주관하는 대과에 급제하였다. 바로 전시 응시 자격이 주어져 [[1873년]]에는 그 해의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홍순목은 아들에게 관직을 맡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판단하여 고종에게 건의하여 2년간 [[사가독서]]를 허락받았다. 이후 [[1878년]] [[4월 11일]]([[음력 3월 9일]]) 교리, [[1878년]] [[12월 22일]]([[음력 11월 29일]]) 문학, [[1880년]] [[9월 13일]]([[음력 8월 9일]]) 례, [[1880년]] [[음력 12월]] 참의로 승진했다.<ref name="노컷" /> 이후 규장각 정자·대교 등을 거쳐 [[규장각]] 직각 등을 역임하고 [[승정원]], 승지로 승진하였다.
         그는 [[민익]](閔泳翊)과도 가깝게 지냈다. [[1881년]](고종 18년)에 [[일본]]에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이 파견되자 홍식도 조사(朝士)로 선발되어 신사유람단의 일행으로 [[김옥균]], [[박정양]], [[어윤중]], 조준(趙準永) 등과 함께 배편으로 [[일본]]을 방문, 시찰하였다. 이때 [[박정양]]의 수행원으로 온 [[이재]]와도 교우하였다. 홍식은 [[일본]]의 군사 시설을 시찰하며 일본의 육군에 대한 보고서인 《일본육군총제 日本陸軍總制》, 《일본육군조전 日本陸軍操典》 등을 작성했다.
         [[파일:1883년조선주미보빙사절단01.jpg|섬네일|180px|left|[[1883년]] [[9월]] [[미국]]에 파견된 [[조선]]의 보빙사절단원(앞줄 왼쪽 첫 번째가 홍식, 앞줄 왼쪽 두 번째는 [[민익]], 뒷줄 가운데는 [[유길준]]) ]]
         한편 [[일본]]에서 [[1870년]]대부터 시행되던 [[우편]]제도를 세히 검토했을 뿐 아니라, 당시 일본인들이 부산에서 멋대로 우편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것을 항의하는 한편, 우편제도에 대한 것을 자문하여 조선이 우편제도를 시행하도록 적극 도와줄 것과, 조선에서 우편제도가 시행되면 조선의 제도에 따르겠다는 약속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냈다고 한다. 이후 [[1882년]]에는 김옥균·박효·서광범과 함께 국가의 개혁 방안을 토론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귀국 후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군무사부경리사(軍務司副經理事) 겸 총리국장으로 [[민익]]과 함께 군무사 총리국(總理局)을 관장했다. [[1882년]] [[홍문관]][[부제학]], [[규장각]]직제학, [[규장각]][[부제학]]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6월]] [[임오군란]]이 발생했을 때는 부호군으로 시위대를 설득, 군란의 수습을 맡아서 자진해산시켰다. 그해 통리교섭통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이 신설되자 홍식은 참의통리내무아문사무(參議統理內務衙門事務), 참의군국사무(參議軍國事務), 참의교섭통사무(參議交涉通商事務) 등을 거쳐 [[이조]][[참의]]가 되었다가, 종2품으로 승진하여 협판교섭통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를 지냈다.
         [[1883년]](고종 20년) [[6월]], 그 전해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조약]]에 따라 [[미국]]의 사절이 [[한성부]]를 방문하고 돌아간 뒤, 그해 [[6월]] [[미국]]의 사절에 대한 답변으로 [[조선]] 정부에서 [[미국]]에 [[보빙사]](報聘使)가 파견될 때 그는 보빙부사 겸 전권부대신에 임명되어 보빙사 겸 전권대신 [[민익]]의 부사(副使) 자격으로 [[민익]], [[서재필]] 등과 함께 미국에 파견되었다. [[6월 5일]] 보빙사(報聘使) 전권대신 민익을 수행, 전권부대신으로 출국하였다.
         보빙사는 종사관으로 서광범이, 수행원으로 유길준, 고철, 변수, 현흥택, 최경석 등이 임명되고, 그밖의 시종무관들과 수행원들 [[청나라]] 사람 오예당이 함께 출발하였다. 홍식, [[민익]]과 일행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을 경유 [[도쿄]]를 경유할 때에 일본인 오카모토(宮岡恒次郞)를 통역관으로 참여 시키고, 안내겸 비서로 미국인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 한국명 노월(魯越))을 고용하였다. 태평양을 건너 9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 륙하였다. 일행은 기차를 타고 [[시카고]]를 거쳐 [[9월 15일]] [[워싱턴 D.C]]에 도착 하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 체스터 아더(Chestter A Arthur)는 [[뉴욕]]에 체류하고 있어 민익, 홍식과 일행은 뉴욕 애비뉴 호텔로 가서 아더 미국 대통령의 접견을 받고 국서를 봉정하게 된다. 이때 이들 사신은 대통령이 있던 방 문 앞에 돗자리를 깔고 큰 절을 올려서 체스터 아더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관리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이는 곧 [[미국]]과 외신 기자들에 의해 대서특필되어 삽화로 실리게 되었다.
         미 국무성은 이들 시찰단에게 호위 장교를 배치했는데, 홍식에게는 국방성 해군정보국의 테오도어 메이슨(Theoodore A. Mason) 미 육군 대위, 해군도서관의 조지 폴크(Georg C. Foulk) 중위를 배치하여 수행과 소개를 담당하게 했다. 홍식은 미국 국방성을 시찰, 호술(護術)과 무술, 무기 등을 안내를 맡게 하였으며, 일행과 함께 도시와 공공기관을 시찰하고 [[10월 12일]] 다시 체스터 아더 미국 대통령을 만나 환담한 후 작별하고 귀국했다.
         홍식은 고철, 최경석, 외국인 로웰, 오에당(吳禮堂), 오카모토 등을 거느리고 [[10월 16일]] [[워싱턴]]을 출발하여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배편으로 [[일본]] [[도쿄]]를 거쳐 [[1883년]] [[11월 20일]] 귀국하고, [[11월 21일]] 고종에게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미국]]에서 열차와 버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미국]] [[워싱턴 D.C]]를 시찰하면서 기관차와 버스를 목격했고, 농작물을 수확 자르는 기계를 보고 그해 [[11월]]에 귀국하여 [[미국]]에서 신품종의 농작물과 농기계를 도입할 것을 조정에 주하였다. 그리고 로웰의 노고를 고종에게 보고했으며 고종은 그를 국빈으로 초대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왕실의 초대에 힘입어 로웰은 12월 20일 다시 조선을 방문하였다. 이후 개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개항 운동을 적극 주도한다.
         [[1881년]] [[신사유람단]]을 [[일본]]에 파견할 때 홍식도 이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당시 시찰 대은 병제였으나, 홍식은 [[우편]]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것은 “일본 우편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마에지마의 자서전인 《우편창업담》에 홍식이 역체국에 찾아와서 우편에 관한 일들을 질문하여 모든 서류를 증여하고 직원으로 하여금 우편실무를 설명시키고 자신도 홍씨를 만나 우편 제도를 설명하고 조선에도 빨리 우편을 개설할 것을 권고하였다고 한다.<ref name="노컷" />
         [[1883년]] [[1월 12일]]([[1882년]] [[음력 12월 4일]]) 창시된 교섭통아문에 근대식 체신기관인 우정사(郵程司)가 설치되자 홍식은 우정사 담당 협판이 되었다.<ref name="노컷" /> [[1883년]] [[음력 9월]] 보빙사의 부사로 미국에 갔을 때는 뉴욕의 우체국과 전신국을 시찰하였으며, 귀국 후 고종에게 우편 업무의 개설을 건의하였다.<ref name="노컷" /><ref name="뉴스메이커" /> 동시에 [[미국]] 체류 중 홍식에게는 특별히 [[조선 고종|고종]]의 특사 자격이 임명되었다. [[1884년]] 초에는 [[함경북도]] 병마수군절도사 겸 안무사로 임명되어 부임했다가 며칠만에 협판군국사무로 전임되어 다시 되돌아왔으며, [[병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884년]] [[4월 22일]]([[음력 3월 27일]]) 우정총국을 창설하게 되었고, 우정국총판(郵政局總辦)에 임명되었으며, [[11월 18일]]([[음력 10월 1일]]) 서울·인천 간에 근대식 우편제도의 실시를 보았다.<ref name="노컷" />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87회 일치
         본격 자기가 안싸우고 자기 동맹이랑 자기가 동군연합한 국가들만 싸우는 국가. 헝가리랑 보헤미아를 동군연합하는 미션이 있으며, 이둘은 굳이 퍼유미션을 안받아도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1500년이전에 둘다 퍼유해버릴수 있다. 이후에 부르고뉴 분할 속 이벤트등으로 세를 불릴 수도 있다. [* 단, 최신버전부터는 부르고뉴 속방식이 결혼국 70퍼, 카스티야 20퍼, 황제국 10퍼형식으로 바뀌었다. 부르고뉴가 오스트리아를 자주 라이벌지정하지 않게 바뀐지는 한참됬으니 왠만해선 결혼은 해두자. 취향에 따라선 초반에 부르고뉴랑 동맹해 프랑스를 견제하는 방식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최신버전에선 카스티야랑 사이가 좋으면 '''아예 카스티야에 합스부르크가 들어서는 이벤트도 생겼으니!''' 잘알아두도록 하자. 신대륙확장은 어차피 그럴 시간도 없고 하기도 어려우니, 프랑스나 오스만등과 치고 받고 해서 구대륙쪽으로 확장하는걸 주력으로 삼자.
         엄밀히 말해서 프로이센은 독일민족의 땅이 원래 아니었기에 신성로마제국 소속이 아니었지만, 역이 제 1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여기에 서술한다.[* 사실 본래 '독일 민족의 땅'으로 한정한다면 메클렌부르크나 포메른일대도 신성로마제국 역이 아니긴 하다. 독일 동방원정과 관련되어 복속된 경우.]
         주문화권이 프러시아 문화권이거나, [* 시작지점에서 이걸 만족하는 국가는 튜튼 기사단과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 그리고 리가 정도다.] 아니면 자신의 국가가 브란덴부르크일경우에, 쾨니히스베르그를 가지고 있고, 국교가 개신교(protestant)나 개혁교회(reformed)일경우, 프로이센을 형성할 수 있다. [* 브란덴부르크는 어차피 국가이념이 프로이센이랑 같기 때문에 취향따라 그냥 브란덴부르크로 가도 관없다 ~~대신에 프뽕을 못느낀다.~~]
         엄밀히 말하자면 튜튼기사단은 당시 신롬소속이 아니었지만, 프로이센을 형성할 수 있고 신롬내부역(노이마르크)가 있으므로 여기 기재.
         아무튼간에, 기한 국가중 하나랑만 동맹을 해둬도 리보니아기사단만 추가시키면 컨트롤에 따라 방어전이 가능하며, 두 국가이과 동맹을 할경우 오히려 폴란드를 아작내고 폴란드 삼분할을 향해 전진하는 기사단을 만날 수 있을것이다.
         ''' 평화란 전쟁사이의 휴식기일 뿐이다. -루덴도르프 '''
         위치가 위치인지라 당히 힘들다. 오스트리아는 아우구스부르크나 잘츠부르크같은 남독일지방 소국들 문제로 분쟁을 겪을 일이 많으며, 신롬내 2위국이자 바로 옆에 붙어있는 보헤미아는 바이에른을 라이벌로 지정하는 경우가 잦다. 팔츠같은 좀 만만한 국가를 패려고 들어도, 옆에 붙어있는 국가들이 거의다 신롬내 자유도시들이며, [* 자유도시 국가는 기본적으로 황제국이 보호를 해주며 방어전때 앵간하면 거의 무조건 딸려온다.] 잘츠부르크랑 아우구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진출 방향과 겹쳐서 무조건 얼마안되 싸운다고 봐도 무방하며(...) 팔츠는 오스트리아나 보헤미아와 동맹하는 경우가 잦다(...) 다행히 주변국들중 안스바흐가 그나마 만만하고 관련 미션도 있으므로, 공격해 자신의 속국(vassal)로 삼는게 좋다. 일단 위치가 위치인지라 신롬내 강국들에게 다굴맞아 쪼그라들기 쉬우므로, 동맹하기 적당한 강국부터 찾아야 된다. 가장 좋은 동맹은 헝가리, 최근 리투아니아의 개발도가 너프되 폴란드의 힘이 당히 빠져 동유럽의 강자로 떠올랐으므로 가장 좋은 동맹이다. 폴란드도 괜찮긴 한데, 이 녀석이 뭔 생각인지 브란덴부르크나 실레시아등 자기랑 맞닿아 있는 신롬국가들을 공격해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잦으므로(...)그냥 하지 말자. 어차피 이젠 헝가리나 모스크바한테 털리는 호구다. 그외에 부르고뉴는 분할 속이벤트로 저지대를 통채로 주기도 하니, 결혼정도는 해주는걸 추천한다.
         플레이어의 국가의 주문화권이 이탈리아 지방 문화권에 속해있을경우, 필요 프로빈스를 다먹었을때 이탈리아를 형성할 수 있다.[* 단, 교황령은 불가능. 실제 역사에서 이탈리아 독립운동가들이 교황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독립을 추진한 적이 있었으나, 교황청은 세속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거부하여 무산되고 사보이 왕국을 중심으로 독립을 추진한 것을 반했다고 볼 수 있을듯.] 추천되는 국가는 사보이,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바, 나폴리 정도. 본래 나폴리나 교황령등의 비 신롬소속 이탈리아 국가들은 확장하는데 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1.12패치이후 그림자 왕국(shadow kingdom)이벤트로 1490년이 지나면 이탈리아지방 국가들은 신롬에서 탈퇴하니 조금 나아졌다.
         은근히 확장하기 어려운 국가. 이탈리아지방은 신롬소속이 대부분이라 그림자왕국 이벤트 뜨기전까지는 어렵고, 그외에 발칸반도에 있는 식민지들은 플레이하다보면 알겠지만 짐짝인 경우가 당하다(...) 거기다가 오스트리아랑 헝가리가 시작지점이든 플레이하다가든간에 적어도 1550년안엔 무조건 공화국을 라이벌지정하게 되있으므로, 충돌은 필연적이다. 아, 그리스지방쪽이랑 로도스노리고 전쟁질해대는 오스만은 덤이다(...)
         우선은 그러므로 오스만과 오스트리아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동맹부터 구해두는게 가장 중요한데, 프랑스와 폴란드, 아라곤등이 여기에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다. [* 다만 최신패치부터 폴란드가 리투아니아와의 동군연합을 거절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이럴경우 헝가리마냥 초반에 사기장수가 없는 폴란드는 박살날 가능성이 높다. 혹시나 이런 경우가 생기면 재시작하자(...)] 구호기사단에 걸어둔 독립보장은 괜히 오스만과의 1대1맞다이를 강요하게 하니 관두면서 본토와 달마티아 지방을 육로로 연결하는데 주력하자. 아, 그리고 인공화정은 토가 20개이이 되면 부패도 (corruptions)가 오르기에 그거 줄인다고 수입이 줄어든다. 1.16이후로 외교력 100을 소모해서 인공화정도 정부체제를 바꿀 수 있으니, 적당히 확장해뒀다 싶으면 바꿔두자.[* 부패도 감소비용을 없앨수도 있으나, 테크비용이 늘어나기에 최종적으로 국력이 약해진다.]
         비잔티움으로 변환하는 방법도 있다. 시작지점에서 비잔티움토에 클레임조작을 하고 토를 먹은뒤 [* 아니면 속국으로 만든뒤 ~~라틴제국의 재림?~~], 주문화권을 그리스 문화권으로 바꾸고 정교회로 개종한뒤에 행정레벨 10이태에서 비잔티움 코어가 있는 지방과 아나톨리아 서부를 먹으면 된다.[* 비슷한 방법으로 그리스 형성도 가능하다. 다만, 이경우엔 개종도 필요없고 그리스지방만 먹으면 되서 훨씬 쉽다.]
         시작지점에서 아라곤에게 동군연합을 주도당하는 황으로 시작한다. 다행히 독립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카스티야와 프랑스,또는 오스트리아에게 독립지원을 요청하자. 전투는 카스티야나 프랑스군에게 맡겨두고 우선은 점령점수만 쌓아둬도 충분히 이길수 있을것이다. 독립 전쟁이 끝나면 몰타와 메시나를 먹고[* 시칠리아섬에 나폴리의 코어가 있기에 중요하다.] 샤르데냐를 부활시키자. 한편으론 제노바가 좋다고 샤르데냐를 먹을지도 모르기에 제노바에 경고를 걸거나 샤르데냐에 독립보장을 걸자.[* 아라곤과의 휴전기간이 샤르데나에 합산되어 나오기에 샤르데냐를 치려면 적어도 10년이은 기다려야 한다. 다만, 독립보장을 풀면 5년의 휴전기간이 나오는건 알아두자.] 그이후엔 아라곤과의 휴전이 끝나면 아라곤에 공세를 가해서 시칠리아섬 전체를 먹어두자.[* 카스티야를 땅을 준다는 보장으로 끌어들여도 좋다.] 이후 샤르데냐를 정복한뒤에 이탈리아 소국들을 정리해두면서 개신교 개종을 해두도록 하자. 가톨릭을 유지하는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럴경우 확장하면 할수록 교황령이 파문을 날려대면서 방해할 가능성이 매매우 크다.
         초반에 저지대 국가 셋(플랜더스, 홀란드, 브라번트)을 동군연합휘하에 두고 있다. 그리고 느베르를 속국으로 가지고 있으며, 브로타뉴랑 동맹이다. 이것때문에 전통에 외교관계+1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나마 시작지점 군주인 선량공 필리프의 능력치가 555로 [* 이게임에서 군주의 최대 능력치는 666이다. 일단 여기에 시작지점에서 가장 근접한 군주는 [[세종]]과 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 정도.] 좋다만 그다음 후계자인 샤를의 능력치가 204(...) 이것때문에 외교테크 올리기 꽤나 힘들다. 다만 그렇다고 못올리는 수준은 아니니 외교관계수에 주의하면서 적절한 동맹을 구하자. 일단 시작지점에서 좋은 동맹으로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역사적 라이벌이기에 가끔 시작지점에서 라이벌로 찍지 않는 이은 동맹하기 어렵지 않다.], 카스티야, 아라곤등이 있다. 그뒤 교황령이 제발 빨리 프로방스에 파문에 걸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자. 아비뇽때문에 백프로 이둘은 사이가 좋지 않을것이고, 교황령은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것이다. [* 파문이 걸린 국가의 땅을 먹으면 AE가 50퍼센트 더 적게 늘어난다.] 교황령이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면 바로 프로방스에 그걸 명분으로 공세를 취해서 로레인에 속하는 지방[* 메프, 로트링겐, 바]를 모두 먹어두자.[* 시작지점에서 프로방스와 프랑스가 동맹태일텐데, 어차피 프랑스 시작부터 프로방스에 왕위주장을 걸기때문에 동맹은 풀린다. 동맹 푼 틈타서 먹으면 됀다.]
         그 다음 공세는 잉글랜드령 프랑스로 정해두자. 메인 할양 이벤트로 프랑스와 싸우게 되든, 그 할양 이벤트에서 잉글랜드가 메인을 넘기든, 잉글랜드는 결국 프랑스와 싸우게 되어있는데, 그틈에 잉글랜드를 쳐서 칼레와 노르망디일대를 먹어두자.(AE가 남으면 알렝송까지 먹어도 관없다.) 이후 확장방향은 취향따라 다른데, 브르타뉴를 먹고 북프랑스쪽으로 확장하든, 북프랑스를 장악한뒤 신롬쪽 역을 먹든, 신롬 역을 치든, 그건 취향차니 마음대로 해도 관없다. 다만 위치 어디로 확장하든 신롬 소국들이 빼액대면서 반국가연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것에 주의하도록 하자.
         통칭 역설국. 제작사가 스웨덴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당히 강력하다. 국가 이념도 전투쪽에 몰려있어서 스웨덴이 모스크바를 뜷고 러시아화가 되버리는 경우도 자주 있는편. 초반에 덴마크한테 동군연합되버린 태로 시작하므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독립하는게 가장 중요한데, 스웨덴이 아무리 북유럽 삼국중 가장 강력해도 덴마크+노르웨이를 1대1로 이기기 힘들다는게 문제다(...) 그러므로 덴마크가 라이벌로 지정한 국가에게 독립지원을 받는게 가장 중요하다. 추천조합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혹은 잉글랜드+모스크바등. 폴란드의 지원을 받는것도 좋지만 마레 노스트럼(1.16)패치이후에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가 당히 뼈아파서 그냥 폴란드가 들고 있는 프로이센지방을 뺏어서 발틱노드나 장악하는게 더낫다.
         행정레벨 20이이며, 스칸디나비아반도를 통일해두었을경우[* 단, 고틀랜드도 먹어둬야한다.] 스칸디나비아를 형성할 수 있다.
         === 잉글랜드/대제국 ===
         '''하나님은 세계지도가 더 국령 색으로 칠해진 것을 원하신다. 가능하다면 나는 밤 하늘조차도 국령으로 병합하고 싶다. -세실 로즈'''
         장미전쟁이 끝나면 정부체제가 고유 정부체제인 잉글랜드 왕정(English Monachy)으로 바뀐다. 효과는 행정 22렙이후에 뜨는 입헌 군주정이랑 비슷한 편.그외에 황으론 백년전쟁도중이란걸 표현하기 위해 프랑스지방에 토를 들고 있으며, 포르투갈이랑 시작시 동맹태다. 근데 문제는 잉글랜드가 백날 힘을 써봐야 프랑스 육군을 절대 못이긴다는거(...) 플레이방식이 둘로 나뉘는데, 우선은 대륙의 모든 토를 프랑스에게 팔고(...) 조용히 식민지 개척이나 준비하는 것과 속전속결로 프랑스를 처리해서 유럽 최강으로 나아가는것.
         우선 전자야 어렵지 않다. 어찌됬든 전자의 경우도 브리튼 섬 통일은 무조건 하게 되있기에 스코틀랜드를 독립보장하는 프랑스와의 전쟁은 불가피한데(...) 그냥 해군으로 틀어막으면 된다. 시작시기든 어떤 시기든 프랑스 해군은 절대로 잉글랜드 해군을 이길 수 없다는걸 프랑스에게 기시키면서 도버 해협을 틀어막자. 단 한번이라도 프랑스 육군의 륙을 막으면 스코틀랜드는 간단하게 잉글랜드의 맛집으로 변한다. 아일랜드야 뭐 9개왕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다가 서로서로 사이도 나쁘니 각개격파시키면 되고... 그 이후에야 천천히 식민지 개척을 하면서 진행하면 된다. 식민지 개척에 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으므로 빠른속도로 북아메리카부근에 식민지를 건설하자. 굳이 구대륙으로 가면서 프랑스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다면 스웨덴 독립전쟁에 끼어들어 북유럽쪽으로 가면 된다.
  • 김태우(god) . . . . 86회 일치
         ||<#878787> '''{{{#EEE156 출생}}}''' ||<(> [[1981년]] [[5월 12일]] ([age(1981-05-12)]세), [[경북도]] [[구미시]] ||
         라기보다 아이돌답지 않은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였다.[* 특히 [[H.O.T.]], [[젝스키스]], [[신화(아이돌)|신화]]의 메인보컬들이었던 [[강타]], [[강성훈]], [[신혜성]]은 미소년들이었는데 반해 god의 메인보컬인 이쪽만 유독 튀는(...)외모를 지녔다. 또다른 유명한 [[NRG]]를 봐도 이쪽은 메인보컬이 리더이자 맏형인 [[이성진]]인데 이 쪽도 나이가 당시 아이돌 멤버들보다 조금 많을 뿐이지 충분히 잘 생긴 외모다.] 여러 가지로 1세대 아이돌 중 가장 특이한 케이스라고 볼수 있다. 보통 아이돌은 '비주얼'이 우선시되고 보컬 멤버라고 해도 키가 190이 넘어버리면 주변 멤버랑 밸런스가 안 맞아서 뽑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박진은 김태우를 메인보컬로 선택했다. 심지어 김태우를 집어넣기 전에 다른 네 멤버와 같이 연습하던 두 명의 연습생을 교체하면서까지![* 이 중의 한 명이 배우 [[김선아]]다. 초창기에는 김선아의 배우 이미지를 생각해서인지 god 멤버인 데니 안부터 부인했었으나 박준형이 1박2일에 출연해 사실임을 인증했다.]
         데뷔한 후 방송 모니터링을 했는데 본인 모습을 보자 멤버 전원 물론 본인도 충격받았다고 한다.[* 데뷔 첫 무대인 [[한밤의 TV연예]]에서의 '어머님께' 무대로 엔딩 크레딧 올라갈 시점에 나왔다.] 우는 건 물론 그 때 당시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다고(...) 당시 god를 처음 접한 시청자들의 인은 정말 노래를 잘 하나보다 싶었고, ~~나머지 멤버들도~~ 김태우가 그런 판단을 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때 충격이 컸는지 5집부터는 지금처럼 수염을 기르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그나마 나아지긴 했는데 [[노안]] 이미지가 추가되고 곰 이미지는 더 굳어져갔다.
         처음에는 '인기가수 [[박진]]'이 심심풀이로 만든 그룹인 줄 알았던 god가[* 사실 그룹 멤버 자체를 구성한 건 싸이더스였고 박진은 여기에 김태우를 추가하고 프로듀싱을 맡았던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프로듀싱의 비중이 당했던 지라...]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신화와 맞짱을 뜨는 황이 되면서, 메인보컬 김태우 역시 큰 인기를 얻게 되며 주로 '''어린이와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샀다. 물론 여성팬들의 인기는 [[손호]], [[윤계]], [[데니 안]]이 차지.그러나 god가 신인가수시절에는 박준형과 함께 인지도는 높은편이었다. 손호 윤계 데니안은 비슷비슷한 비주얼에 랩만하였지만 누가봐도 아재얼굴인 박준형과 덩치크고 뚱한 체형에 안경까지 쓴 튀는 비주얼로 인해 god내에서는 이 2명이 인지도가 높았다. god 내에서 호불호가 갈린 멤버. 외모도 별로인 데다 오버하는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인기 지분과는 다르게 김태우가 압도적으로 보컬을 책임졌기 때문에 사실 중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핑클]]의 [[옥주현]]을 떠올리면 될 듯.
         2004년 윤계이 연기자로 전업(정확히는 그만두려 했다)해서 탈퇴하고 6집, 7집을 4인 구도로 활동하다가 2005년을 마지막으로 god가 활동을 중단하면서 솔로로 나섰다. 베이스가 탄탄하다보니 솔로 활동도 잘 했고, 여러 가수의 피처링을 해주기도 했다. 사실 피처링해준 곡이 본인 곡보다 잘 나간 느낌이 좀 있다. 심지어 [[MC몽]]의 'I love U, Oh Thank U' 같은 곡은 많은 사람이 김태우의 노래로 알고 있다.[* 다만, MC몽보다 수록이 늦긴 해도 김태우의 개인 앨범 1집 '하고 싶은 말'에도 이 곡이 실려 있으니...]
         god 당시 혼자만 소속사가 달랐다. 나머지 멤버들은 [[싸이더스HQ]]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김태우만이 홀로 [[JYP]], 즉 박진과 계약한 태였던 것으로, 박진이 싸이더스에 김태우를 '임대'해 주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달리 god 해체는 [[윤계]]의 탈퇴만이 이유가 아니라, 김태우의 계약 문제로 인해 일부 멤버가 기존 회사에 남느냐 박진과 계약하느냐 하는 황에서 우왕좌왕하던 중에 발생하게 됐다. [[윤계]]의 탈퇴는 이 우왕좌왕한 계약 시기에 염증을 느낀 결과였던 것.]
         현역 입대를 선언하고 [[2007년]] [[3월 20일]] 102보충대에 입소했다. 보통 몸 좋은 연예인들이 이할 정도로(?) 보충역으로 빠지는 것과는 달리 현역을 지원했고, 심지어 그마저도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가 아닌 [[제27보병사단|27사단]](이기자부대)에서 기초훈련을 받은 후 [[대한민국 육군/수색대|수색대]]에 배치, 복무했다.
         어찌되었건 현역 복무(그것도 '''이기자부대''') + 연예병과 고사(固辭)를 한 덕에 [[까임방지권]]을 제대로 득템한 연예인. 사실 원래는 복무 중 연예병사에 지원하려 한 적이 있었으나 포기했다. 당시 연예병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일종의 면접으로 연예병사로 근무하고 있던 동료들을 만나러 갔는데, 먼저 근무하던 나이 어린 연예인 후배 선임이 군대식으로 서열을 잡는답시고 한 깐깐한 행동들로 인해 열받아서 연예병사를 고사하고 말았다고. 금방 몇몇 동료들이 진을 털어놓긴 했으나 어찌나 열을 받았는지 훗날 김태우는 군복무 중 휴가를 나갔을 때 그 후배를 만났고, 그 자리에서 '연예계 활동 중에 내 눈에 띄지 마라'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정작 이 말을 한 본인은 이후 그 행동을 되돌아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 그 후배와 또 만났는데 그 후배가 '미안해요. 그때는 부대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저희가 총대 멘 겁니다'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며 김태우는 앙금을 풀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꼰대]]질이 문제다--
         그래도 근본은 가수였던지라, 비록 연예병사는 아니었으나 2008년 31사단에서 진행하던 국군의 날 행사에서 노래는 불렀다. [[사열]]날엔 가만히 있더니, 행사 당일 "이기자! 병 김태우, 금일부로 진급했습니다! 병장 김태우입니다!"라고 자길 소개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김태우 뒤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은 [[이병]] [[성시경]]. ~~성시경도 키가 있으니 곰이 두 마리~~
         2013년 이후 세븐과 추의 사건으로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연예병사]]의 특혜 논란이 거세어지면서 [[이정(가수)|이정]], [[김흥국]], [[남진]] 같은 다른 비 연예병과 현역 복무자(그것도 해병대)들과 함께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제대로 늘어나는 호재(?)를 맞이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꼼수 안 부리고 제대로 현역 복무는 마쳤으니... --하지만 1년 뒤 그는 [[MC몽|어느 모 발치가수]]를 옹호했다가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카더라]]--[* 실제로 [[MC몽]]이 가요계에 다시 본격적으로 돌아오자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김태우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하하(가수)|하하]], [[조현]], [[백지]], [[손담비]] 등이 옹호했는데, 그 중에서 [[MC몽]]의 절친인 [[하하(가수)|하하]]가 욕을 가장 많이 먹었다면 가장 어이 없는 사람이 김태우이다. 현역으로 복무했던 사람이 병역기피자, 즉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으니...]
         한편, 이때의 인연 때문인지 [[진짜 사나이(일밤)|진짜 사나이]]가 [[제27보병사단|이기자부대]] [[대한민국 육군/수색대|수색대]]에서 촬할 당시 예비 군복을 입고 위문공연을 왔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씨스타]]'''에게 장병들의 관심이 완전히 넘어가면서 공연은 대실패(?). 김태우 본인도 "군대에 남자 가수 따위가 누가 온다고 한들 좋아하겠어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인정했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 맴버들을 비롯한 후배 수색대원들에게[* 사실 진사 전용 생활관 멤버들.] [[PX]]에서 한턱 쐈는데 마음껏 사랬더니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닥닥 긁어서 무려 19만원(!!!!)이 나오는 참사(?)가 발생 했다. 이걸 일반적인 편의점의 판매 가격으로 변환하면 대략 30만원 정도 나온 셈이다.[* PX는 [[부가가치세]], 주류세 등의 세금이 안 붙어서 저렴하다. 무엇을 사먹느냐에 다르지만 보통 둘이서 만원만 써도 배가 터지게 먹고도 남는다. 아니, 3봉지에 5000원하는 고향만두를 사면 3명이 먹어도 배부르다. 거기다가 이천원짜리 음료수로 나눠먹으면 7000원으로 3명이 만두와 음료수를 배불리 먹는 [[예수]]에 버금가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런 PX에서 19만원이면...] 자막으로 "PX를 샀냐..."라고 나올 정도다. PX 근무병 왈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당시 이병이던 김형근 군에게 군대에 대한 조언도 해준다.
         2009년 2월 25일 제대 후 그 해 9월 3일 EP 'T-Virus'를 발매하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타이틀곡은 '[[사랑비(김태우)|사랑비]]'. 곡도 세련된 멜로디와 김태우의 목소리와 창법에 잘 어울리는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가요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했고, 또 앨범 전체적으로도 [[박진]]의 느낌이 아닌 김태우 자신만의 음악 색깔을 찾은 앨범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190cm이 넘는 키로 곡과 잘 매치되지 않는 ~~군인 냄새 나는~~ 춤을 추는 바람에 '춤만 좀 빼달라'는 부탁을 많이 들었음에도 꿋꿋이 춤을 췄다. ~~god 때도 춤은 못 췄다~~[* 김태우는 춤을 못추지 않고 오히려 잘 추는 편이다. [[문희준]]도 [[20세기 미소년]] 방송분에서 김태우에게 "190 넘는 사람 중에 가장 춤을 잘 춘다"고 평가해준 바 있다.]
         실제로 2009년에 출연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가수가 스티비 원더며 세에서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세계 최고 보컬 TOP 10에 자신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 예능에서 직접 세에서 열 손가락에 든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선 그마저도 철회. [[문희준]]과 [[은지원]]이 그 발언을 가지고 놀리자, 그때는 자기가 군대에서 나온지 얼마 안돼서 군대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라는 말을 했다.
         2011년 3월 29일 정규 2집 앨범 'T-School'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메아리'. 노래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2009년에 발매했던 '사랑비'보다는 뭔가 아쉽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랑비'의 반응이 당히 좋아서 기대치가 높았던 데다 이 시기 [[8eight|이현]], [[휘성]], [[케이윌]] 등의 남자 솔로 가수들이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탓에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만 저 세 가수의 경우는 정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이들과 비교할 때 부족해 보일 뿐, 타이틀곡 자체는 음원 사이트에서 [[씨엔블루]]나 [[걸스데이]], [[포미닛]] 등 아이돌들 사이에서 위권에 랭크되기도 하는 등 꽤나 선전했다. 또 앨범의 수록곡 'Brothers&me'는 [[박진]]과 [[비(연예인)|비]]가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타이틀곡 '메아리'의 뮤직비디오에서 김태우의 1인 2역 연기를 볼 수 있다... ~~곰 두 마리가 한 집에 있어!~~
         2012년 11월에 출연한 고쇼에서 서울대학교 생명공학부에 재직 중인 연구원인 아내를 "서울대 박사"라고 지칭한 부분을 두고, 몇몇 네티즌들의 학력위조 드립이 있었으나 별다른 문제 없이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미국]]에서 대학 졸업, 이대 대학원 생명공학부에 재학하면서 서울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서울대 박사 학위가 아님에도 '서울대 박사'라고 칭한 것을 문제시한 것. 하지만 [[청춘불패]]의 흑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김태우 자체가 식이 뚜렷한 편이 아니서 생긴 불찰. 일반적인 [[학력위조]]와 달리 학력을 사칭하여 이득을 꾀한 것도 아니다보니, 딱히 큰 논란은 없었다.
         2006년 JYP를 나와 폴라리스 엔터에 소속되었으며 2011년부터 소울샵이라는 일인기획사를 설립해서 스스로 매니지먼트를 했다. 이후 소울샵 엔터테인먼트를 처가의 도움으로 확장해서 여러 가수들을 입했다. 알려진 [[가수]]들은 메건 리, [[길건]], 키스(KIXS) 등.
         그러다가 2014년 말부터 소속 가수인 메건 리와 계약 해지를 둘러싼 마찰이 일어났다. 메건 리는 미국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모색하면서 소울샵측과 계약 해지를 주장했고, 길건은 메니징 소홀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주장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김태우 처가 쪽 인물들의 경 간섭. 오히려 이들은 김태우 [[본인]]에 대해서는 불만 없다는 식으로 밝힌 것으로 봐서는 본인의 [[인성]]은 원만한 모양.
         그러다 보니 제대 당시에도 여기저기 예능 프로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얼굴도 여기저기 내밀었는데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KBS2 [[청춘불패 시즌1|청춘불패]]. 당시 잘 나가는 여자 아이돌 7명과 함께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러움의 대이었다. 공동 MC가 [[노주현]], [[남희석]]이었던 터라 사실 청일점이었는데, 금방 제대해서 군인 냄새가 풀풀 나는 거한에게 아이돌을 맡겼다는 것 자체가 너무 위험한 발이라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
         프로그램 중에서 [[소녀시대]]의 [[유리(소녀시대)|유리]], [[한선화]]와 러브라인을 만들고, 아이돌들과 스킨십을 할 수 있는 황이 만들어져(예를 들어 1:7 씨름을 했다) 전국 수 많은 아이돌 팬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대놓고 사심 방송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청춘불패 출연으로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추진력을 얻은 건지]] SBS 2011년 설 특집 프로그램이었던 <스타맞선-유쾌한 스캔들>에서는 [[아이유]]와 러브라인을 만들었다...이와 같은 일 때문에 남자들에게 ''''해방 이래 [[연정훈]] 이후 제일 나쁜 놈''''이라며 지탄의 대이 된다. 본인도 이 사실을 아는 듯, [[플러스]]에서 청춘불패 출연 이후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옛날옛적 god 시절 그 레드썬 교수의 전생 체험에서 밝혀졌던 전생이 '[[관우]]'. 다만 최근에 [[삼국지]]를 읽어서 최면이 잘못 들어갔다는 분위기이긴 했다.]
  • 이경실 . . . . 86회 일치
          * 위 문서: [[코미디언/목록]]
         {{{#FFFFFF '''이경실의 주요 수 이력 ''' }}} }}} ||||
         ||<-5><tablebordercolor=#ff2000><#FF2000><table width=100%><:><tablealign=center> {{{+1 [[문화방송|[[파일:mbc.png|width=50]]]] ''' [[MBC 방송연예대|{{{#ffffff 방송대 코미디 부문}}}]] ''' {{{#ffffff ''' 최우수 ''' }}} }}} [* [[1995년]]부터 [[2000년]]까지는 '''MBC 코미디대''', [[2001년]]부터 '''[[MBC 방송연예대]]'''으로 바뀌었다.] ||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백예술대|[[파일:백예술대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코미디연기'''}}} ||
         ||<width=25%><:> [[이자]][br](1993) ||<:> {{{+1 → }}} ||<width=25%><:><#FFFFA1> '''이경실[br](1994)''' ||<:> {{{+1 → }}} ||<width=25%><:> 서현선[br](1995) ||
         ||<#595959><:> {{{#FFFFFF ''' 학력 ''' }}} ||<(>군산여자고등학교 졸업[br][[동국대학교]] 연극화과 학사 ||
         [[문화방송|MBC]] 1기 공채 코미디언. [[1966년]] [[2월 10일]]생으로 [[전라북도]] [[군산]] 출생. 1987년 제 1회 MBC TV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을 수하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원래 코미디언이 될 생각은 없었고 배우를 지망했는데, 4학년 2학기 등록금이 필요하던 차에 열린 개그 콘테스트의 대 금이 100만원이란 얘길 듣고 응시한다. 하지만 금이 70만원인 금을 타게 되고, 불로소득세 33%를 떼고 지인들에게 수 턱을 내고나니 남는 돈이 없어서 그대로 MBC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과거 MBC의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도루묵 여사' 코너로 대인기를 끄는 등 전성기를 보내면서 '''1994 MBC 방송대 코미디부문 대'''을 수하였다. 코미디계에서 일컫기를 '''여성의 몸으로 정을 차지해본 3명'''중 하나. 1대가 [[김미화]], 2대가 이경실, 3대가 [[이자]]다. 이 시기의 광 덕에 [[응답하라 1994]]에 성동일의 첫사랑이자 당대 최고의 톱스타로 특별출연을 하기도 한다.
         [[이성미]], [[박미선]], [[조남]] 등과 가깝다. 거센 성격으로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꺼리거나 두려워한다. 무서운 [[군기반장]]으로 유명한데다 선배인 이성미조차도 예전에는 이경실을 피했다가 [[이홍렬]]의 중재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역시 군기반장인데다 선배인 [[이경규]]조차도 유독 그녀에겐 한 수 접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이경실보다 연에 [[선배]]들이다. [[박명수]] 역시 그녀를 두려워한다. 박명수는 자신보다 선배인 사람들 앞에서는 특유의 사나운 캐릭터를 못 살려서 얼어붙는다. [[http://youtu.be/GNautvauUcA?t=4m52s|요즘은 호통 컨셉 믿고 떨면서도 들이댈 때도 있다]]. 예전에 이경실에게 호되게 혼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박명수는 웬만해서는 이경실과 방송을 잘 안 하려고 한다. [[세바퀴]]에서 황극도 해봤지만, 박명수가 시작부터 굳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동갑이지만 5년 후배인 [[지석진]]도 이경실을 굉장히 어려워 한다.[* 사실 남자들은 [[군대]] 문제 때문에라도 동갑내기 여자들보다 [[기수]]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김구라]]조차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거의 최초로 기를 못 편 게스트다.[* 다만, 일생활까지 포함하면 이순재의 큰아들에게도 독설하다 맞을 뻔했다고 한다.]
         전 남편과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평소 [[의처증]]이 심했던 전 남편 손모씨에게 [[2003년]]도에 야구 방망이로 복부를 마구 난타당해 이경실은 입원했고, 결국 [[이혼]]하게 된다. 이 때 [[결혼]]을 앞두고 있던 [[후배]] [[개그우먼]]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이 병문안을 갔는데 그녀를 보며 씁쓸하게 웃으며 "너는 내 이런 모습을 보고 결혼이 하고 싶니?"라고 했다. 다행히 김지선은 --애를 쑴풍쑴풍 낳으며-- 잘 살고 있지만... 前 남편과 함께 방송과 CF에 출연하기도 했고 잉꼬부부로 알려지기도 했었던 터라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 한동안 이경실을 브라운관에서 못 본 적도 있었다. 이 당시에 모 스포츠신문 기자가 이경실에게 의사를 사칭한 다음 몰래 접근하여 인터뷰를 시도한 사실이 발각되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취재윤리를 무시한 행동에 문제의 신문사의 주주였던 모 조간신문에서 이를 비판하는 만평을 보냈을정도. 다만, 지금은 재기에 성공했고, 사업가--단란주점 사장--인 최모씨와 재혼하여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으나... 후술할 내용 중 [[JTBC]] '[[유자식 팔자]]' 등에 자녀들과 활발히 출연하고 있으며, 남편이 주말마다 점심을 해준다는 등(!) 과거의 시끄러운 사건과는 별개로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었다...
         2009년 [[MBC 방송연예대]]에서 버라이어티 부분 여자 최우수을 수했을 때 수 소감을 말하던 중 지난 시절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 줬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 문제사항이 없어보이지만 문제는 이경실 역시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등 정신이 이한 여자로 몰아간 병크를 일으켜 이경실에 대한 비판이 커지며 해당 프로(특히, 유자식 팔자)에 하차하라고 아우성거리고 있단 거다. ~~그런데도 하차를 안한다.~~[* 참고로 유자식 팔자는 이경실의 소속사에서 제작된 프로다.]
         검찰이 남편 최 모씨에게 '''신정보공개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와 동시에 도주의 우려로 인해 법정구속이 결정됐다. 하지만 이경실 남편과 검찰측 모두 지난 5일 1심 선고에 불복해서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또한 국선 변호사까지 선임하였다고 전해진다.
         과거 이경실 특유의 큰웃음소리('''하하하하하하하하!!!!''')를 듣고 어떤 아줌마가 너 웃음소리 참 경박하다고 말해서 크게 처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주된 방송 스타일은, 아무래도 방송의 관록이 관록이다 보니, 일부 출연자들의 [[무리수]], [[개드립]] 등을 잘 살리는 편이다. 흔히 말하는 버려야 하는 몹쓸 드립들도 적절하게 살려내는 편. 그냥 얼떨결에 묻힌 멘트들을 발굴해서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주요 화법은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면박이나 [[자폭]]류 [[개그]]. 다년 간의 방송 짬밥으로 웬만한 MC역할의 연예인들에게 태클 걸 수 있는 입장이다. 때문에 [[김구라]]나 [[박명수]] 등의 독설가나 버럭류 캐릭터의 [[개그맨]]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캐릭터도 갖고 있어 기센 아줌마 + 짬밥왕인 이경실에게는 확실히 쩔쩔맨다. 이들을 적당히 제지하거나 역으로 공격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 어떻게 보면 MC들을 보조하는 보조적 MC 속성. 어느 프로그램에서 나오든 입담과 타이밍 감각으로 중박 이은 치므로 고정 패널로 선호가 높은 듯. 특히 친정인 MBC에서는 [[박미선]]과 함께 공무원 급으로 자주 나온다.
         위의 편견과는 별개로 2010년 MBC 연예대에서 최종보스 부사장님(...) 의 스포일러와 그에 이은 막장 진행 때문에 최악의 시식 MC가 되었다. [[후새드]].
         [[JTBC]]의 [[유자식 팔자]]에 아들 손보승 군과 함께 고정출연하고 있으며 딸 손수아양 역시 가끔 출연하고 있다.
          * [[유자식 팔자]]
          * [[코미디 세만사]][* '열받는 사람들' 코너 출연. 처음이자 마지막 KBS 코미디 프로그램 출연작이다.]
          * 2015년 [[이브의 사랑]] - 오
  • 표창원 . . . . 86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가톨릭/인물]]
         || '''생지''' ||<(> [[경북도]] [[포항시]] ||
         || '''약력''' ||<(> [[대한민국 경찰청|경찰청]] 제도개선기획단 연구관[br][[경찰대학]] 행정학과 교수[br]한국경찰발전연구회장[br]아시아경찰학회장[br]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장[br]더불어민주당 비대책위원 ||
         정계입문 이전에 국내에서 가장 지명도 있는 프로파일러, 범죄학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오랫동안 [[경찰대학]] 교수로서 교편을 잡았다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인재입위원장의 입 제안을 받아들여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후 그 동안 갈고 닦은 지명도로 [[20대 총선]]에서 [[경기도]] [[용인시]] 정 선거구에 출마해 51.6%의 비교적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1966년 [[경북도]] [[포항시]] 동빈동에서 [[평안남도]] 출신 실향민 아버지를 둔 실향민 2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절망해 학창시절 툭하면 주먹 싸움을 벌이고 패싸움에 휘말려 양호실에 실려가고 형이랑 싸우다가 칼을 휘두르는 등 모범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는 잘해서~~응?~~중학생때 전국일제고사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고등학생때는 암기식 교육이 싫어서 습적으로 야자에서 도망갔지만 성적을 늘 위권이었다.
         이때 표창원 옆에서 바라본 당시 대한민국 경찰 수사라는 것은 엉망진창이었다.[* 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치밀한 범인의 완전범죄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범인이 피고 버린 담배부터 해서 증거가 차고 넘쳤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의 과학수사 수준이 ...(..)] 결국 사건이 미제로 남게되자 패배감을 느꼈고, 당시 대한민국에는 전문적으로 학문을 배울때가 마땅치 않아 유학을 선택했다. 이후 1993년 국비장학생으로 [[국]] 엑서터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서 경찰학을 수학해 1997년까지 사회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땄다. 범죄학이 아니다! 애초 엑서터 대학에는 경찰 및 범죄관련 석박사 과정이 없고 학사만 있다.[* 2015년 기준 [[http://www.exeter.ac.uk/undergraduate/degrees/sociology/criminologybsc/|학부과정]]은 개설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박사과정은 여전히 사회학만 [[http://www.exeter.ac.uk/postgraduate/research-degrees/sociology/mphil-phd_sociology/|개설되어 있다.]]] 다만 박사의 학위논문의 주제는 확실히 경찰과 관련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박사과정에 대한 오해를 하는데, 사실 국에서는 박사 과정은 특정 주제를 공부한다고 학위를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와 연구방법론에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교수와 학교를 찾아 연구계획서를 제출하여 몇 단계의 심사를 거쳐 학위를 최종 승인받는다. 수년간의 연구(보통 5년 가량) 끝에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면 소속 대학의 기준에 따라 학위를 수여한다.[* 예를 들어 디자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디자인 관련 책을 많이 보면 학위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현재까지 성취된 지식을 바탕으로 이제까지 기록되지 않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 기록한 뒤 평가를 통해 학위를 수여받는 것이다.]
         JTBC의 [[크라임씬2]]와 [[크라임씬3]]에서는 탐정역으로 출연했다. 프로파일러 답게 용의자들을 들었다 놨다하며 수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2의 크라임씬 PD 살인사건 1만 범인을 맞췄을뿐 PD 살인사건 2와 3 호텔 살인사건은 헛다리만 짚었다. 전문가답게 깊이 있게 생각했지만 맡은 사건이 그렇게 깊이 있는 내용이 아니여서 그런지 시원치 않았다.
         일부에선 '흉악범죄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가. 사회에게 있는가'에 대한 시각차이로 이전부터 논쟁의 중점에 있던 인물이란 말이 있는데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는데, 모든 형법이론들은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형법학자들은 전부 저것을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범죄론부터 시작해서 세세하게는 행위론, 구성요건론에서 위법성론, 책임론까지 모두 구이론인 객관주의와 신이론인 주관주의를 따라 견해가 나뉘며, 현대 형법은 이 둘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위있는 형법 저서 하나 없는 사람이 저 논쟁의 중점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학계의 관점에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할 수는 없고, 단지 그러한 논쟁을 '''일반 대중에게 던져준 사람'''으로서 논쟁의 중점에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러한 표현이 들어맞을 것이다. 실은 국내에서는 어떤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이유를 "그 범죄자 개인의 인성보다 자라온 환경, 못 가지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냉혹한 사회 탓이 적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튀는 것이다.
         정계 입문 이후 여러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민주당 변호인을 활약했다. 특히 2015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표가 [[일본]]이 숨긴 금괴 1,000톤을 갖고 있다'는 루머를 맹신했던 어느 60대 남성이 문 대표의 [[사구]] 사무실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인 사건을 두고 [[MBN]]의 [[김형오(1972)|김형오]] 앵커가 '문재인 대표에게 잘못이 있는 것 아니냐'며 [[답정너]]식으로 질문을 하자 "그럼 2006년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커터칼 피습을 당한 건 (그 피습범이 정신병자였기 때문이지) 박근혜 당시 대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인가요?"라는 반문~~이건 몰랐지?~~으로 앵커를 [[역관광]]시켜--사실 [[마마무|음오아예]]를 부르게 한 거라더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지지층에게 강한 인을 남겼다.([[http://tvcast.naver.com/v/676104|네이버]] [[http://tvpot.daum.net/v/73446472|다음]] [[http://www.gomtv.com/view.gom?contentsid=14150137|곰TV]])[* 보도 자막이 포함된 인터뷰 전체 은 [[http://www.mbn.co.kr/pages/vod/programView.mbn?bcastSeqNo=1114977|MBN 홈페이지]]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7&aid=0000871698|네이버]],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1231111239813|다음]], [[http://news.nate.com/view/20151230n53189|네이트]] 등에 올라와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대중적인 범죄학자 표창원을 1호 인재로 입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 입 초반에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1807908|#'''오세훈 전 시장'''과 대결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때 본인은 이에 대해 '''"[[오세훈]] 전 시장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붙으라고 해도 하겠다"'''며 당락에 신경쓰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였으며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1807908|#]] [[국민의당|안철수 신당]]과의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 [[종로구]]로, 표 교수는 밑에 서술되어 있듯 경기도 [[용인시 정]] 선거구에 출마하게 되면서 둘의 대결은 없던 일이 됐다.
         2016년 1월 17일, 더불어민주당이 입 인사들을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더불어 컨퍼런스 - 사람이 온다'에 출연해 '드라마를 씁시다'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https://youtu.be/TEBsRRrAQz0|강연 ]]
         2016년 1월 20일, KBS 1TV에서 방한 각 정당의 정강정책연설에 더민주 대표로 출연해 연설을 했다. [[https://youtu.be/HM2Vpul_0p8|연설 ]]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68,273표(51.4%)를 득표해, 새누리당 [[이일(정치인)|이일]]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20대 국회에서 국회 임위 중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으로 배정을 받았다. 안전행정위원회의 소관에는 경찰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경찰 및 경찰대 교수 출신이었던 표창원 의원의 활약이 크게 기대를 받는 분위기다.
         2016년 8월 3일에는 사드 배치 문제로 큰 분노가 일어난 [[경북도]] [[성주군]]을 동료 의원들과 함께 방문했다. 이날 여기서 성주군민들에게 한 연설이 인터넷 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55135.html|#]]
         2016년 12월 27에 검/경 수사권과 관련해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 내용을 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경찰비리를 제외한 직접수사권을 박탈하고 검찰의 장청구권만은 유지'''하도록 했다. 다만 아직 발의 단계이고 거쳐야 할 절차가 많으며 해당 법안은 '''누가 봐도 경찰에게만 매우 유리한 법안 내용'''이기 때문에 법안 내용이 수정되지 않는 이 해당 법안의 통과는 본 회의는 커녕 법사위 통과도 불투명한 황으로 보인다.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고 표창원 의원이 SNS에 글을 게시했을 때 일선 경찰들과 지지자들은 옹호하는 댓글을 남겼지만 해당 법안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혹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댓글을 남긴 시민들도 적지 않은 황이다.[* 실제로 검찰개혁을 주제로 하여 김경진 의원과 같이 썰전에 출연했을 때 표창원의원이 말하길 "많은 일반 시민들이 저에게 '경찰에 수사권을 줘선 안된다'라며 '경찰개혁부터 하고난 뒤에 수사권 조정이 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많이 보내줬다"라고 말했다.] [[외부자들]]에 목소리 출연을 했을 때 패널이 표 의원에게 해당 법안 통과 가능성에 물어봤을 때 표 의원은 통과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했다. 설령 통과하지 못 하더라도 "자신의 법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라고도 말했다. 2017년 9월 현재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정되었다.
         다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수사의 90%이은 경찰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으로 검사 한 명 당 하루에 11.4건의 사건을 배당받고 있는데, '''잔업해서 12시간 근무를 해도 거의 한시간에 사건 하나를 해결해야 한다(...)''' 사실 수사의 주체는 경찰이고 경찰이 수사한 그 내용을 바탕으로 검사가 장 집행시에만 지휘하는게 일반적이다. 즉 사실 이미 경찰이 수사 개시해서[* 경찰의 수사개시권은 2011년 때 법안 개정을 통해 이미 법률적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증거를 모아서, 용의자를 잡아서, 검사한테 주면 검사가 이를 확인한 뒤 "OK" 외치고 끝나는 황인데, 이것을 검사가 수사지휘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즉 경찰에게 유리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수사/기소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경찰은 수사에, 검사는 기소와 공소유지에 전념하자는 내용이다. 그리고 수사지휘권이 없어도 검찰의 기소권만으로도 얼마든지 보완수사를 요청하거나 경찰의 수사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도 일선 경찰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 청구권이 없으면 수사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점에서[* 강제수사의 핵심은 장이다. [[장주의]]참조.] 검사의 권한은 해당 개정안에서도 여전히 막강하다.[* 실제로 표 의원보좌관의 SNS를 보면 해당 개정 내용을 접한 일선 경찰들이 표 의원의 보좌관(보좌관도 경찰출신이다.)에게 연락해서 "장청구권를 왜 검찰에 남겼냐."라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8년에 있을 제7회 지방선거 때 같이 치뤄질 개헌 안을 살펴보면 검사의 독점적 장청구권 폐지에 대해 동의하는 의원들이 있으므로 경찰에게도 장청구권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개헌이 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경찰도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검사에게 장을 청구할 시 검사는 법리적인 내용만 검토하게 하거나 혹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경찰을 특별검사와 같은 지위를 부여해 이들에게 장청구권을 허용하게끔 하는 방안, 검사에 의해 장이 반려되었을 때 법원에 항고를 할 수 있는 항고권 부여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표창원 의원의 경우 발의한 법안과의 균형을 고려해 경찰의 항고권 보유에 찬성하고 있다. 이에 관해 2018년 6월 21일 KBS 라디오에 전화로 출연해 다시 한 번 본인의 주장을 내세웠다. 현재는 경할은 수사는 하지만 종결권이 없다. 이는 한 번 한 수사 결과를 검찰이 받아서 다시 검토하는 두 번 일이 되므로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피해자/피의자가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종결까지 할수 있게 될 경우에는 이를 해소할수 있으며, 문제가 없으면 바로 기소하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검찰이 재수사나 보완을 지시할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경찰 내에서 종결권이 있다면, 경찰이 껄끄러운 사건을 묻어버리면 어쩌냐" 하는 반론이 있는데, 이에 대해 표 의원은 "검찰에서 묻어버리면 이미 대민 창구인 경찰의 손을 떠난 후라 사람들이 알수 없지만, 경찰에서 그러면 사건 관련된 사람들이 언론과 온라인으로 문제 제기를 하게 되고, 수사 지휘권이 있는 검찰도 알게 되므로 경찰이 사건을 묻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하였다.
         2018년 6월 22일, [[조국]] 민정수석에 의해 검경 수사권 합의안이 발표되었다. 표 의원이 주장한 내용이 당 부분 반되었고, 검찰은 금융 비리, 정재계 사건 특검 등 일부만 직접 맡고 다른 것은 모두 경찰에 맡긴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 업무 중에서도 중하지 않은 사건, 즉 민생 관련 건은 자치경찰로 넘기게 되며, 이를 위해 현재 제주도에만 있는 자치경찰을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실시하고, 차후 확대한다고 한다.
  • 이기택 . . . . 84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고려대학교/출신 인물]]
         ||<width=30%><|2><:> '' 창당 '' ||<width=5%><|2><:> → ||<width=30%><:> 초대 [br] [[김대중]]·'''이기택''' ||<width=5%><|2><:> → ||<width=30%><|2><:> 제4대 [br] [[홍기(1918)|홍기]]·[[박일(1927)|박일]] ||
         ||<#6e7edd> '''본관''' ||<#c5cae8>천 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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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e7edd> '''학력''' ||<#c5cae8>부산중학교[br] [[부산업고등학교]][br] [[고려대학교]] [[과대학]] ||
         ||<#6e7edd> '''경력''' ||<#c5cae8><width=250>고려대 학생위원장[br] [[신민당(1967년)|신민당]] 사무총장[br] [[신민당(1967년)|신민당]] 부총재[br]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정치학 객원 연구원[br] [[신한민주당]] 부총재[br] [[통일민주당]] 정무위원[br] [[통일민주당]] 부총재[br] 국회5공 비리조사 위원장[br] [[통일민주당]] 부총재 겸 원내총무[br] [[민주당(1991년)|민주당]]공동대표겸 임고문[br]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총재[br] [[한나라당]] 임고문 겸 총재 권한대행[br]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최고위원 ||
         [[종교]]는 [[개신교]]이다. 변호사이어 강사인 [[김정기(1960)|김정기]]가 그의 손아랫동서이다.
         1937년 [[경북도]] [[포항시|일군]] 지행면(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 장기면)에서 태어났다.
         [[개성고등학교|부산업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60년 고려대 과대학 학생위원장 시절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8 고대 의거’를 주도하였다. [[4.19 혁명]]을 일으킨 여러 학생운동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때 함께 학생시위를 주도한 인물로 부산고 동기동창인 [[신우]]가 있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자형 이임용이 경하는 태광산업(현 [[태광그룹]] 산하)에 입사하여 근무하였다.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반대하며 ~~비장한 표정이 인적인~~김삼 전 대통령(가운데)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오른쪽은 [[김현(1935)|김현]] 당시 신민당 의원.
         1974년 [[김삼]]이 총재로 선출된 직후 [[신도환]] 계보에 속하면서 김삼의 당 운이 독선적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리하여 1976년 [[이철승]]이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되는 데 기여하였다. 그 해 11월 이철승에 의해 역대 최연소 제1야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나이 39세 때였다.
         그러나 1978년 신도환 계보에서 이탈하였고, 1979년 5월 [[전당대회]] 때에는 따르는 의원 1명도 없이 원외인사들로만 독자 계보를 형성하여 1차 대회에서 신도환을 뛰어넘는 92표를 획득했다. 그리고 전당대회 2차 투표를 앞둔 시점에서 사퇴하여 자신의 표들을 김삼에게 몰아 주어서 김삼이 이철승을 꺾고 신민당 총재로 선출되는 데 기여하였다.[* 이때 신민당 내에서는 중도통합론을 내걸고 사실 독재정권과 야합하던 이철승에 대한 반감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그래서 2차 투표를 앞두고 [[선명야당]]을 내걸고 박정희 정권과 정면대결을 공언하고 있던 김삼으로 반이철승 세력들이 결집한 것이다. 이기택의 후보사퇴는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도 자신의 측근들을 불러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철승을 떨어뜨리고, 김삼을 총재로 당선시키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김삼은 이들의 표를 모두 모아서 [[중앙정보부]]의 정치공작 속에서도 총재경선에서 승리하였다.]이 때 박정희 정권은 이기택이 이철승이 아닌 김삼을 지지하려 하자 자형 이임용이 운하는 태광그룹의 장부를 압수하기까지 하였다.
         이후 김삼에 의해 부총재로 임명되면서 [[김대중]]-[[김삼]]의 뒤를 잇는 차세대 기수로 인정 받았다. 당시 겨우 42세의 나이였다.
         이후 김삼, [[김대중]]과 거리를 두고 1987년 5월의 [[통일민주당]] 창당에 바로 따라가지 않다가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서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계보 중 [[평화민주당]]에 입당한 사람들이 꽤 있어서 계보가 사실 해체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부산 해운대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9년 [[서석재]]의 뒤를 이어 통일민주당 원내총무에 선출되었다. 당시 5공비리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을 때 위원장을 맡아 원만한 청문회 진행으로 국민들에게 좋은 인을 남겼다.[* [[노무현]]이 5공비리 청문회로 스타덤에 올랐을 때 조연으로 활약(?)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될 당시 김삼을 따라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장고]](長考)를 거듭하다가 결국 [[노무현]], [[김현(1935)|김현]]과 함께 잔류하여 [[민주당(1990년)|꼬마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당시 잔류파들중에 지명도나 정치경력 등 모든 면에서 넘버원이었다.] 이후 1991년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과 공동대표를 맡았다. 당시 정가에서는 "이기택이 김대중에게 시집 갔다"고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 이때의 결단으로 이기택은 김대중에 이어 야권 제2인자로 발돋움한 셈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박재동]] 화백은 '한겨레그림판'에서 '로보트 야권V'라는 제목 하에 김대중과 이기택을 각각 로보트 태권V로 형화하여 손을 잡은 모습을 그리고, 이에 놀란 김삼을 괴물로 그려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김대중과 이기택의 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준 소식이었기 때문에, '로보트 야권V'라는 만평은 대단한 칭찬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10년 전에 이미 신민당 부총재였던 사람이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 해운대구로 출마할까 말까 오랜시간 고민하다가 못 이기는 척(?) 전국구 위순번을 배정받아 당선되었다. 반면에 [[노무현]]과 [[김정길(1945)|김정길]]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부산에 출마해서 [[지역감정]]의 역풍 속에서도 처절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패배하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을 남겼다.[* 이때부터 부산에서 노무현은 4번, 김정길은 총 7번을 떨어졌으나, 김정길은 장관이 되었고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초재선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면서 죽을둥 살둥 싸우는데, 정작 격전지에 출마해서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할 당대표는 유유자적 전국구 위 순번으로 편하게 금뱃지를 달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즉 지역구 당선가능성을 보고 간을 보다가 지역감정으로 안 될 거 같으니 전국구로 도망간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실제 당대표이자 남권에서 가장 정치경력도 길고 지명도가 높은 이기택이 지역구 출마를 주저하면서 민주당의 남권 선거전략이 제대로 꼬인 건 사실이다. 결국 노무현, 김정길과 몇몇 정치지망생들이 각개전투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면서 모조리 낙선하였다. ~~뭘하던 당시 부산에서 김삼을 넘기는 힘들었겠지만...~~]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자, 김대중을 도와 목이 쉴 정도로 열심히 전국 유세를 하고 다녔다. 김대중이 패배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자리에서는 김대중 뒤에 서서 눈물을 흘렸으며, 그 후 김대중의 뒤를 이어 민주당 대표가 되었다. --드디어 야권의 제[[1인자]]로 부한 셈--
         민주당 대표가 된 후 [[국가보안법]] 폐지, 6공 비리 청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 등을 주장하며, 9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력의 부족으로 당시 대통령인 김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만 보였으며, 당내에서는 [[권노갑]] 등 [[동교동계]]와 대립을 거듭하는 등 정국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특히 1994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몰아닥치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 쪽에서 무시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이때 김대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주장했는데, 이게 실제로 성사되면서 주가를 높혔다.] 그 후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당내 리더십을 완전히 실하고 말았다.[* 동교동계는-- 사실 김대중 --이종찬 전 의원을 주장했고, 이 공천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이기택 양자간에 감정적인 골이 생겼다. 게다가 김대중이 전격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자, 모든 언론과 유권자들은 김대중만 주시했고 이기택은 순식간에 존재감을 실했다. 거기에 김대중은 다른 후보는 전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도 장경우 후보 유세장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 김승대 . . . . 82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ed0000> '''{{{#ffff00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ed0000> '''{{{#ffff00 출신학교}}}''' || 포철동초 - [[포항제철중학교|포철중]] -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포철공고]][* 2013년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포철공고]]의 마이스터고 전환으로 현재는 [[포항제철고등학교|포철고]]에서 축구팀을 운하고 있다.] - [[남대학교|남대]] ||
         ||<-5><table bordercolor=#000000><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bgcolor=#ffffff><:>[[K리그/개인#s-5|{{{#EE3224 '''플레이어'''}}}]] ||
         [[포항 스틸러스]] 소속의 축구 선수.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부수는 절묘한 침투가 장점인 선수로 '''라인 브레이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포항 출신으로 [[이동국]], [[신화용]], [[박원재]], [[우찬양]]과 함께 포철동초 - 포철중 - 포철(공)고 - 포항 스틸러스 까지 모두 거친 '''포항 역사 단 다섯 명 뿐인 [[로컬 보이]]'''다.[* 탄탄한 유스를 자랑하는 포항이지만 의외로 로컬 보이는 극소수인데 보통 초등학교에서 잘하는 선수를 포철중에서, 중학교에서 잘하는 선수를 포철고에서 중간 스카웃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김병수 1호기~ ~[[이명주]]는 대구, ~~김병수 3호기~~ [[손준호]]는 덕 출신이다.][* 이동국도 성남 가기 전까진 포항 성골이다. 김승대가 포항시 송도동의 남자라면, 이동국은 포항시 죽도동의 남자다. --죽도시장에서 짧은 다리 하나 건너면 바로 송도동-- ] 2011년 포항에 우선지명을 받아 남대에서 뛰다가 2013년에 정식계약을 맺고 포항에 입단했다.
         '''오프사이드 라인의 지배자.'''
         김승대만의 특징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는 라인 브레이커에 걸맞는 움직임과 골 감각이다.''' 이는 한국 선수로는 거의 독보적인 능력이며 과거의 한국 축구 레전드들도 쉽게 가지지 못한 강점이다.[* 80년대 이전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구성하는 전술 자체가 빈약했고 90년대 이후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기보다는 피지컬과 발기술로 찍어누르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1:1 황에서의 결정력도 좋아서 질 좋은 패스까지 배급되면 거의 골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 다만, 뒤에서 [[ 좋지 않은]] 패스가 공급되면 별다른 활약을 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김승대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해주던 [[이명주]]가 2014년 여름에 이적하자 그 뒤로 힘을 못쓴 전례가 있고 2015년에는 전반기에 부진하다가 여름에 [[신진호]]가 복귀하면서 패스의 질이 높아지자 김승대도 다시 활약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슈팅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골은 많지만 거의 모든 골이 가볍게 밀어넣은 골이고 강력한 슈팅으로 넣은 골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데뷔 시즌 한정으로, 그 이후 시즌에는 슈팅 성공률 66.6%를 전반기 넘어서까지 유지했을 정도로 일취월장해서 [[감아차기]], 툭 밀어넣기 등 다양한 슛을 구사했다. 그리고 위의 부정적인 평가는 좀 억울할 법 하기도 한 것이, 플레이 스타일 골키퍼와의 1대1 경합이 주로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루어지며, 이런 경우에는 [[손흥민|손세이셔널]]같은 강슛보다 정확하게 차 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즉, 옳은 평가가 아니라는 것. -- [[풋볼매니저|선호 플레이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침투' , '패스하듯 정확한 슛팅을 구사'가 달려있다 하더라]]--
          * 2011년 3월 12일, 남대학교 소속으로 남양주시민축구단전에서 FA컵 데뷔전을 치뤘고, FA컵 첫 도움도 기록하였다.
          * 2016년 3월 5일, 하이 선화전에서 C리그 데뷔전을 치뤘다.
         || 2010 || 남대학교 || - || - || - || - || - || - || - || - ||
         || 2011 || 남대학교 || - || - || - || 2 || - || 1 || - || - ||
         || 2012 || 남대학교 || - || - || - || - || - || - || - || - ||
         ||<#00703c> '''{{{#eee156 날짜}}}''' ||<#00703c> '''{{{#eee156 소속팀}}}''' ||<#00703c> '''{{{#eee156 대팀}}}''' ||<#00703c> '''{{{#eee156 공격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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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703c> '''{{{#eee156 2014.08.09}}}'''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주}}}''' ||<#00703c> '''{{{#eee156 2도움}}}''' [* 프로 데뷔 후 첫 멀티 도움] ||
         ||<#00703c> '''{{{#eee156 2014.10.26}}}'''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주}}}''' ||<#00703c> '''{{{#eee156 득점}}}''' ||
         ||<#00703c> '''{{{#eee156 날짜}}}''' ||<#00703c> '''{{{#eee156 소속팀}}}''' ||<#00703c> '''{{{#eee156 대팀}}}''' ||<#00703c> '''{{{#eee156 공격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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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곡군 . . . . 82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북도)]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2ECCFA> {{{#FFFFFF '''광역시도'''}}} ||<bgcolor=#CEF6EC> [[경북도]] ||
         ||<-2><bgcolor=#31B404> {{{#FFFFFF '''국회의원'''}}} ||<bgcolor=#CEF6CE> [[고령군·성주군·칠곡군]]:[br][[이완]]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재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경북도 중서부에 있는 [[군(행정구역)|군]]. 인구 약 12만 명. 군청소재지는 [[왜관]]읍이다. 인접 대도시인 [[대구광역시]]와 [[구미시]] 사이에 끼어 있어, 이들의 배후지 성격으로 칠곡군 곳곳에 [[읍(행정구역)|읍]] 규모의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읍이 3곳(왜관읍, 북삼읍, 석적읍)이나 있다. 원래는 칠곡읍도 있었는데 [[칠곡(대구)|칠곡]]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대구광역시|대구]]가 1981년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칠곡읍을 편입했다. 다만 칠곡군청은 [[일제강점기]] 이래 계속 왜관읍에 있었는데, 왜관읍이 지리적으로 1914년 인동군과 통합된 새로운 칠곡군의 중심에 위치하며 [[경부선]]이 지나가는 등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고 구 칠곡읍은 칠곡군의 동쪽 끝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칠곡군에는 칠곡(읍)이 없다.'''
         다른 지역보다 대적으로 '칠곡군'이라는 지역성이나 동질감이 옅은데다가, 인접 대도시인 [[대구광역시]]와 [[구미시]]에 여러 차례에 걸쳐 [[행정구역]]이 편입되면서 칠곡군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본 문서 전반에 걸쳐 [[행정구역 개편|통폐합]] 논의나 [[생활권]]과 [[행정구역]]의 혼란 문제가 계속 나온다. 일단 칠곡군 자체로 시 승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는 있다. 구미시와의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현재 지방자치법 으로는 중심지인 왜관읍의 인구가 시 승격 기준인 5만 명에 이르지 못해 칠곡군의 시 승격이 불가능하다. 왜관읍과 석적읍을 통합하는 편법을 쓰거나 지방자치법 자체를 개정하려는 등 갖은 수단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답보 태이다. 시 승격 추진과 하위 읍면 통폐합 움직임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3.1번과 3.2번 항목 참조. 그리고 행정구역 변화로 대구와 칠곡군간의 명칭 혼란에 대한 내용은 [[칠곡(대구)|칠곡]] 문서 참고.
         구한말 칠곡군과 인동군의 역.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이후 인동군을 병합한 칠곡군의 역.
         1950년에는 이 지역에서 [[6.25 전쟁]] 최대의 격전지 중 하나인 [[다부동 전투]]가 일어나기도 했다. 때문에 '호국의 고장'이라는 문구를 홍보에 쓰기도 하며 실제로 관련 전적지들이 군 소재지 곳곳에 당히 많은 편. 이걸 테마로 칠곡군 군청 소재지인 왜관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 부대와 같이 매년 기념 행사를 하고 있다.
         == 징 ==
         칠곡군청사. 주소는 [[경북도]] 칠곡군 왜관읍 군청1길 80(왜관리 177-1).
         --사실 같은 행정구역 경북에 속해있는 문경시보다 인구가 많은건 무슨 장난하는건지;;--
         1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왜관북부버스정류장과 왜관남부버스정류장이 있으며, 이 사이에 [[왜관역]]이 있다. 이 중 시외버스는 왜관남부버스정류장에서 주로 정차하며 주요 노선으로는 [[북부정류장|북대구]], [[구미종합버스터미널|구미]], [[김천공용버스터미널|김천]], [[주종합버스터미널|주]], 성주, [[안동터미널|안동]], [[주시외버스터미널|주]], [[예천시외버스터미널|예천]][* 용궁 경유] [[점촌시외버스터미널|문경]](점촌) 방면 등이 있다. 반면 왜관북부버스정류장은 대구에서 왜관을 거쳐 성주를 오가는 [[농어촌버스]] [[성주, 칠곡 버스 250|250번]][* 칠곡에서 가장 많이 운행하는 노선버스다. 같은 구간을 운행하는 시외버스의 완행 노선이기도 하다.]를 비롯한 당수 [[경일교통|칠곡군 농어촌버스]]의 기종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칠곡군 농어촌버스 외에는 [[구미시 시내버스]], [[김천시 시내버스]]가 왜관남부버스정류장을 기종점으로 들어온다. 단순히 노선 숫자로만 보면 칠곡군 농어촌버스가 가장 많지만, 대구를 오가는 [[성주, 칠곡 버스 250|250번]]을 제외하면 [[구미시 시내버스]]의 지분이 가장 높다. [[대구광역시]] 시내버스는 동명면, 지천면, 가산면으로 운행 중이며 [[동명교통]]의 차고지가 있는 금암리 외에는 오지노선으로 몇 회 안 된다.
         [[밀양시|철도 강세 지역이라]] [[고속버스]]는 [[그런 거 없다]]. 그래서 [[대구광역시|대구]], [[구미시|구미]], [[성주군|성주]] 등을 제외한 인근 지역 외에는 교통편이 부실해서 버스로 왜관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 심지어는 [[서울특별시]]나 인접한 [[군위군]]으로 가는 교통편마저 없다. 출퇴근 시간에는 왜관에서 [[대구광역시|대구]] [[시내]]로 갈 수 있는 [[신천대로]]가 심각하게 막히는데, 이 때 정체로 소요되는 시간이 최대 1시간이 걸릴 정도다. 출퇴근 시간대 외에 해당 루트에 소비되는 시간이 10~20분 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막히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모르는 사실인데, '''인가대수 기준으로 [[경북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코리아와이드 경북]]의 차적지는 칠곡군이다!!''' 그런데 정작 [[코리아와이드 경북]]은 가산면에만 하루 몇 번 정차하는 게 전부다. 다만, 칠곡군 가산면과 동명면을 통과하는 고속도로인 '''[[중앙고속도로]]'''가 이 회사의 메인 스테이지다.
         2011년 여름 장마때 교각이 무너져 파손된 적이 있다. 파손부위는 사진에 보이는 아파트쪽으로 들어가는 구획. 만들어진지 108년 가량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전등급 B등급으로서 복구시 파손된 부위로 할 지 아니면 새로운 구조물을 할 지 심의 후에 2011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복구 시작한 태며 2012년 기점으로 수리를 완료하였으며 아파트 단지쪽으로 칠곡보와 연결되는 통로가 생겼다. 그리고 그 옆에는 철교, 도로[* 해당 도로의 확장 실패로 인하여 교통 체증이 지속되는 걸 막기 위하여 2015년 하반기부터 관호오거리에 대해서 입체화 및 회전 교차로 작업이 진행 중인데 지하로는 가장 수요가 많은 대구~구미 도로를 일직선화 및 지하화시켜버려서 통행량을 최소화하게 한 다음 비교적 수요가 적은 방향인 삼주, 성재 아파트와 읍내, 관호리쪽 도로는 그 지하부분 바로 위에 회전 교차로로 만들어서 교통 체증을 최대한 막겠다는 시도로 보이며 이에 대해서 이쪽 지역이 선거구인 국회의원도 그렇게 주장하였다. 2016년 1월 기준으로 지하화를 위한 준비 작업 중.]그 뒷부분에는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둑인 칠곡보가 있는데 그 둑쪽으로 해서 더 가면 왜관 지구 전적지와 기념관이 있다. 참고로 다리를 지나 읍내쪽으로 들어오다보면 흰 색 탑이 있는 게 보일 텐데 그것은 UN 참전 기념비이며 이 기념비는 반대편에 있는 왜관 가선교쪽에서 보일 정도로 큰 편이다. 그 기념비 아래쪽에는 각종 기념비들이 있는 호국의 동산이 있으며 그 옆에는 소공원이 존재하고 있으나, 소공원은 2016년도까지 공원 재정비 사업으로 인하여 폐쇄된 태이나 2017년 공개되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칠곡군에서 가장 미는 케치프라이즈가 '호국의 고장'이라는 단어이고,낙동강 전투 기념일때마다 1번 도로에 축하비행과 같이 이루어지는 시가행진[* 시가행진은 보통 오전 10시 이후부터 시작하는 데 참전용사들을 시작으로 각종 군사 장비 등을 가지고 행진하는 데 당연히 이 경로(로열사거리~왜관교)에는 대대적인 차량 통제가 이루어진다.]을 실시 하기도 하며 칠곡보가 생기기 전까지는 왜관 철교쪽에서 재현행사를 하였으나, 칠곡보가 생긴 이후에는 석적읍사무소 인근 낙동강 둑 아래에서 재현행사를 실시하고 있다.참고로 해당 행사장에서는 장비 전시회도 하는 데 이곳과 하등 관없는 해병대 소속 차량들이 전시되는 건 덤이다.
         거기에다가 최근 칠곡보 인근에 있는 왜관 지구 전적지 바로 맞은 편에다가 호국 평화 기념관이라는 것이 제 3 회 낙동강 세계 평화 문화 축전이 열리는 시기인 2015년 10월 15일 개관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칠곡군측은 앞으로도 이러한 호국의 고장이라는 것을 이용한 여러가지 관광 투어 등이 이룰 것을 공언한 태이다.
         교육사정은 [[중학교]]까지는 일단 정적인데 읍내의 중학교는 모두 4곳이며 사립은 2곳, 공립은 3곳이다. 공립 중 근 최근인 2003년에 창설된 석전중학교의 경우에는 바로 근처에 [[미군]]부대 후문이 있다는 장점으로 당시 캠프 캐롤에 주둔하고 있던 [[화생방]] 대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카투사와 미군끼리 조를 이루어 학교로 와서 [[어]] 수업을 한 적도 있으며[* 이러한 것은 1기생이 입학하고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자매결연식을 맺어서 시작했었다.] 해당 학교의 [[급식]] 수준도 1기생이 졸업한 2006년 이후에는 다소 낮아졌지만 왜관읍에 위치한 다른 2곳의 중학교보다 나은 편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급식 퀄리티가 좋은 편인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도 그럴만한 게 석전 중학교에 [[매점]]이 존재하지 않는데다가 학교 근처에 제대로 먹을 만한 걸 파는 데라고는 근처 아파트 단지에 있는 슈퍼마켓밖에 없으니, 학생들이 점심시간마다 밖으로 나가는 걸 막으려면 [[급식]]이 좋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 2014년 초 후문 근처에 편의점이 하나 생기긴 했다! 10회가 졸업한 2015년 이후 급식 퀄리티가 떨어져서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학생도 적지는 않은 편이다.] 참고로 원래 석전중학교는 정문만 있어서 후문쪽 인근에 있는 정문으로만 가야 학교로 들어갈 수 있었으나 2006년 이후에는 그 반대편 지역에다가 문을 만들어두면서 학생들의 수고가 대폭 줄어들었다.
          * 순심고등학교 - 형식적으로는 순심고(남고)와 순심여고 2개로 운되고 있으며 [[남고]] 및 [[여고]]가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으나, 두 학교 모두 같은 재단 소속의 학교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한 학교로 취급하고 있다.그래서 [[도전 골든벨]] 당시에 남고&여고 합동으로 치루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여담으로 원래는 대구대교구 산하였으나 해당 학교의 운권을 넘겨받은 성 [[베네딕토회]] [[http://www.osb.or.kr/|왜관 수도원]]은 남자 중고등학교 길건너편에 있으며 해당 수도원 산하 왜관 피정의 집은 남자 중고등학교 주차장 반대편쪽으로 가다 보면 있다.
  • 현이와 덕이 . . . . 82회 일치
         |웹사이트 = http://changdeok.modoo.at/
         1975년 [[미8군부대]]에서 데뷔한 [[장현 (1955년)|장현]](1956~1990)과 [[장덕]](1961~1990)은 이듬해인 1976년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고 한국 가요계에 데뷔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 두엣 현이와 덕이 순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이들은 《선생님 안녕》, 《우리들의 고교시대》, 《내마음 나도몰라》, 《꿈초올 둘이서》등과 같은 화에도 출연하였다.(이들 남매는 10여편의 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여 하이틴스타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장덕]]은 작사,작곡 능력이 뛰어나 싱어송라이터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장덕은 1977년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을 직접 [[작사]], [[작곡]] 하여 제1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작곡가로 입하였다. 이후 3년 연속 이 대회에 입하게 된다.)
         이후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장현 또한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활동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2집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ref>{{뉴스 인용 |제목 = 남매듀엣 <현이와 덕이> 7년만에 재결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050009921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09-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6003&publishType=00020|출판사 = 매일경제|날짜 = 1985년 9월 5일}}</ref>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4집이 빅히트 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된다(님떠난 후- 골든컵 수,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된다.
         * 1990년 6월 장덕 추모 [[음반]]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발표 : [[이선희]], [[전록]], [[임종환]], [[진미령]], [[양하]], [[임지훈 (가수)|임지훈]], [[박혜성]], [[지예]], [[김범룡]], [[최성수 (가수)|최성수]] 등 11명 참여 ([[리메이크]] · 미발표 곡 수록)
         * 2012년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저서 / [[도서]]-책 <가수를 말하다 - 혼으로 노래하는 우리시대 최고의 가수 41>
         * 2014년 3월 3일 <음악여행 예스터데이 3회> : [[홍진]]- 장덕 작사/작곡 · [[진미령]] 노래 <소녀와 가로등> [[리메이크]]
         * 2014년 7월 7일 신인가수 [[김나 (가수)|김나]], [[이은하]]와 KBS 2TV 월화드라마 [[트로트의 연인]] OST 참여 : 장덕 작곡 · [[이은하]] 노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리메이크]] 수록
         * 2015년 5월 28일 <오마주 현이와 덕이 [[문화콘텐츠]] 사업 발표, 출범> ([[리메이크]] [[음원]], [[화]], [[뮤지컬]], [[출판]] 등)
         * 1976년 : 컴필레이션 - [[친구야 친구 (음반)|친구야 친구]] (3곡) - 대표곡 : 친구야 친구,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둥글둥글한 세
         | 가족 = 오빠 [[장현 (1955년)|장현]], 아버지 장규, 어머니 이숙희
         | 웹사이트 = [http://koachangdeok.ze.am/ 웹사이트], [http://koaculture.blog.me/ 블로그]
         '''장덕'''(張德, Chang Deok, [[1961년]] [[4월 21일]] ~ [[1990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그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진미령]] · [[이은하]] · 양하 · [[임병수]] · [[김범룡]] · 국보자매 등 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작사가]] ·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친오빠 [[장현]]과 함께 현이와 덕이를 결성, 만 14세의 최연소 [[싱어송라이터]]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으며, 만 15세([[고등학교]] 1학년) 때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 · [[작곡가]]로 출전하여 입하는 등 [[천재]]소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로 [[배우]]로도 활동, 10여 편의 [[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도 거듭났다. 그리고 솔로로 독립해 성인이 된 후에도 더욱 많은 연예활동을 하여 [[스타]]의 자리를 지켰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 [[작사]] · [[작곡]]의 [[작품]] 개수는 총 129개(2015년 6월 기준: 신탁자코드 W0138300)이며, 생전 남긴 창작작품은 [[록]] · [[포크]] · [[리듬 앤 블루스]](R&B) · [[컨트리]] · [[댄스]] · [[펑키]] · [[트로트]] · [[발라드]] · [[융합]](복합) 등 다양한 [[장르]]의 300여개 정도이다.<ref>이은정.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623003 요절가수 장덕·장현 남매 25주기…음원 등으로 재조명]. 연합뉴스. 2015년 5월 28일.</ref>
         장덕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였던 [[아버지]] 장규씨와 [[서양 화가]]였던 [[어머니]] 이숙희씨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충무로]]4가에서 1961년 4월 21일 태어났다.<ref>{{웹 인용|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어머니]]의 향으로 맏이 [[장현]]은 [[바이올린]]을, 둘째인 장덕은 [[피아노]]를 배우며 어린시절부터 자라났다.
         1971년 '중요한 건 마음뿐이고 필요한 건 사랑뿐'이라는 동양 사 뿐철학에 심취한 아버지를 따라 장현 · 장덕 남매는 [[도봉산]]의 사찰 비슷한 청기와집에서 1년 간 살게 된다. 그 곳은 외부와 통제된 곳이라 두 남매는 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 장덕은 5살 위인 오빠 [[장현]]에게 처음으로 기타를 배우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1973년) 장덕은 <누가 누가 잘하나> 등 동요 경연대회에 여러번 나가 1등을 수한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장덕은 오빠가 준 기타로 어설프게나마 [[작곡]]을 시작하였다. 당시 장덕은 [[기타]]를 비롯해 [[첼로]],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었고, [[그림]]과 [[글짓기]]에도 능했다고 한다.
         ==== 1974-79 : 현이와 덕이 결성, 작사·작곡가로서의 입, 10여편의 화 출연 ====
         1975년 4월 만 14세(중학교 2학년)가 된 장덕은 오빠 [[장현]]과 함께 [[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으로 [[통기타]]를 메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에서 열린 [[미8군]] 주최의 파티 무대에서 <To Be A Child Again>라는 곡으로 데뷔한다. <To Be A Child Again>는 장덕 작곡의 첫 발표곡으로 어가사는 [[미8군]] 관계자이자 [[드래곤 래츠]]를 초청한 엘 클리나드가 붙인 것이다([[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 또한 엘 클리나드가 붙였다.). 장현 · 장덕 남매는 이 공연을 통해 출연료도 제대로 받았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의 쇼 매니저로부터 [[드래곤 래츠]]의 노래와 미모에 반했다는 찬사를 들으며 엘 클리나드를 통해 출연계약까지 정식으로 요청받는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장현 · 장덕 남매는 곧바로 [[방송국]] [[PD]]들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 되었고 1개월 뒤(5월) TBC TV의 청소년과 젋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오라오라에 출연해 장덕이 [[작사]] · [[작곡]]한 <꼬마인형>, <일기장>을 부르며 최연소 남매 듀엣으로 일반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이 때부터 장덕은 [[작사]] · [[작곡]]에 능한 [[천재]][[소녀]]로 평가 받게 된다.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1976년) 장덕은 어머니에게 [[안양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처음엔 1년을 더 다녀야 된다며 말렸지만 하도 졸라대서 안양예술고등학교에 찾아갔고 다행히도 현이와 덕이로 연예계에 데뷔한 후라서 그 재능을 인정받고 입학을 허락받는다. 그 해 4월 장현 · 장덕 남매는 [[드래곤 래츠]]에서 현이와 덕이로 듀엣명을 바꾸고 <친구야 친구>,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등 3곡이 수록된 [[옴니버스]] 형식의 [[컴필레이션 음반]] 《[[친구야 친구]]》를 발표한다. 그리고 그해 11월 개봉된 [[김응천]] [[감독]], [[임예진]] · [[이덕화]] · [[전록]] [[주연]]의 [[화]] [푸른교실]에서 현이와 덕이는 오라오라에 출연해 불렀던 <꼬마인형>, <일기장>을 [[사운드트랙]]으로 싣게 된다.
         1977년 4월 고등학교 1학년의 장덕은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임원식 [[감독]]의 [[화]] <[[내 마음 나도 몰라]]>에서 [[주연]]으로 출연한다. 장덕은 몇몇 화에서 단역을 맡아 본 적은 있었지만 주연으로 출연한 것은 이 화가 처음이었다. 한달 뒤(5월) 장덕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 이사로 인해 집들이에 참석한 가수 [[송창식 (가수)|송창식]]은 장덕이 중학교 2학년(만 14세) 때 작사 · 작곡한 <[[소녀와 가로등]]> 을 [[장현]]이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자 감탄을 하며 이후 서울국제가요제에 출품할 것을 적극 권한다. 결국 [[송창식]]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장덕은 <[[소녀와 가로등]]>을 곧 데뷔하게 되는 신인가수 [[진미령]]에게 주며 [[작사]] · [[작곡가]]로서 제1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가요제]](제 2회 대회부터는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가요제]]에서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로 이름이 바뀐다.)에 출전한다. 당시 가요제 규정 작곡가도 가수가 함께 무대를 꾸며야 했기 때문에 장덕은 빵모자를 눌러 쓴 깜찍한 모습으로 나와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진풍경을 연출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입). 같은 해 7월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박태원 [[감독]]의 [[화]] <[[선생님 안녕]]>에서 [[장현]]은 [[임예진]]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이 화는 삼각관계가 얽힌 화로 비록 단역이지만 장덕 또한 [[장현]]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다. 현이와 덕이는 이 화에서 [[사운드트랙]] <정말>도 싣게 된다.
  • 홍국영 . . . . 82회 일치
         {{다른 뜻|[[홍국 (드라마)|드라마]]}}
          | 이름 = 홍국
          | 친인척 = [[홍낙순]](백부)<br/> [[경주 김씨]] 부인(백모)<br/>[[원빈 홍씨]](누이동생)<br/> [[계군|계군 이담]](양외조카)
         '''홍국'''(洪國榮, [[1748년]] ~ [[1781년]] [[4월 28일]]([[음력 4월 5일]])<ref>정조실록 11권, 정조 5년 4월 5일 세 번째 기사</ref>)은 [[조선]] 조,정조대의 [[세도]] 정치가. [[본관]]은 [[풍산 홍씨|풍산]](豊山)이며, [[자 (이름)|자]]는 덕로(德老)이다. 세손궁의 궁료(宮僚) 시절 때부터 [[조선 정조|정조]](正祖)의 총애를 얻고, 정조 즉위 후 부홍파(扶洪派)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세간에는 흔히 권력을 잡은 후 세도를 부리다가 축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축출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 풍산 홍씨들의 비조격인 홍이의 8대손, 선조의 적녀 정명공주와 안위 홍주원의 6대손으로서, 역시 안위 후손인 [[혜경궁 홍씨]]와 11촌의 동문이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그의 아버지 [[홍낙춘]]에 대해 "광증이 있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는 대개 홍낙춘이 주류에 속하지 못한 인물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조부 홍창한은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이고 백부인 [[홍낙순]]은 대과에 급제했고 숙부인 홍낙빈도 진사였으나, 홍낙춘은 원빈이 후궁이 되기 전에는 관직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홍국은 도성의 경화사족 집단의 일부로서 그의 고조 홍중해는 인현왕후의 고종사촌이었고, 당대에도 [[정순왕후 (조)|정순왕후]] 김씨<ref>홍국의 대고모가 정순왕후의 6촌 김면주의 생모(김한희 처)였다.</ref> 외 이익보, 이정보, 홍계능, 조중회, 김이도 등과도 인척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이 예쁘장했다는 기록이 많이 보이며 시문을 잘 짓고 창을 부르기 좋아하였다 한다.
         [[1772년]] 9월 정시(庭試:별시의 일종) 문과에 병과 11위<ref>15명 중에 15위였다. 출처 조선문과방목 조48년 정시</ref> 로 급제하였다. 대과에 급제하고도 6개월간 보직을 받지 못하다가 이듬해 2월부터 가주서(假注書)로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계속해서 이 해 [[4월]] [[정민시]]와 함께 한림소시에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조]]를 보좌하는 사관으로 봉직하기 시작했다. [[한중록]]에서는 그가 사관으로 봉직할 당시 [[조]]가 홍국을 "내 손자"라고 부르며 총애했다고 쓰고 있다. 이듬해인 [[1774년]] 3월에는 동궁시강원 설서(說書)로 임명된다. 세간에 홍국이 과거 급제와 동시에 설서에 임명되었다는 설이 많이 퍼져있는데<ref>박광용《조와 정조의 나라》(푸른역사, 1998)와 이덕일《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1》(고즈윈, 2008)에서는 홍국이 과거 급제한 달에 바로 세손의 시강원에 임명되었다고 적고 있다. </ref>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조선 정조|정조]]와는 동궁시강원 설서가 되면서부터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조는 이 당시 궁료들이 서연에서 아뢴 말들을 모아 《현각법어》(賢閣法語) <ref>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규6836</ref> 라는 책을 펴냈는데, 실제로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홍국의 언행이라고 한다. 《명의록》 등은 이 시기 홍국이 "세손의 오른날개(右翼)"라고 불렸다고 적고 있다.
         [[1776년]] [[3월]] 정조는 즉위하자 마자, 정적이었던 홍인한, 정후겸 일당을 숙청했다. 이어 당론서인 《명의록》을 펴내 이 조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홍보했다. 흔히 홍인한-정후겸이 정조의 즉위를 막았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으나 이는 와전된 내용이고, 이 책에서 밝힌 공식적인 죄명은 첫째 세손의 대리청정을 막은 것과 둘째 세손의 오른날개, 즉 홍국을 제거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책에서 정조는 홍국을 '의리의 주인'이라고 부르며 그가 자신의 즉위과정을 도운 1등공신(소위 동덕회원同德會員)이자 최측신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정조1년(1777년) 홍간, 홍계능 등이 모의하여 경희궁에 자객을 침투시키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들을 처분하면서 다시 공초 내용을 《속명의록》에 수록하여 편찬하였다. 속명의록의 죄인들 역시 홍국을 주된 공격대으로 삼고 있으며, 집안의 여인들까지도 홍국의 저주에 동원되었을 정도였다.
         [[1776년]] 3월 정조는 즉위 3일 만에 그를 전격적으로 [[승정원]] [[동부승지]]에 발탁했다. 이어 7월에는 승정원 최고직인 [[도승지]]로 승진시킨다. 이후 그는 정계에서 물러날 때까지 거의 줄곧 도승지직을 맡았으며(원빈 사후 약 2개월 동안 물러났던 적이 있었음) 이 당시 도승지의 별칭인 "지신사"는 곧 홍국을 가리키는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문관으로는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 예문관 직제학, 홍문관 제학, 규장각 직제학, 이조참판, [[대사헌]] 등의 역임했다.
         군문의 장임으로는 정조 즉위년 11월 수어사에 임명되었던 것을 시작으로 잠시 총융사를 거쳐 [[1777년]] 5월에는 금위대장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대개 금위대장과 훈련대장을 돌아가며 맡았다.(그러나 훈척만이 맡을 수 있는 호위대장에 임명된 적은 없다.) [[1777년]](정조1년) 7월, 전술한 [[홍간]], [[홍계능]]의 궁궐자객침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사건 연루자에 호위청의 무사가 포함되어 있었던 이유로 호위청을 축소하였는데 <ref> 이 때문에 호위청은 3청에서 1청으로, 인원은 1000명에서 350명 가량으로 축소되었다. </ref>, 대신 숙위소(宿衛所)를 창설하고 홍국을 그 대장에 임명 하였다. 정조는 숙위대장에게 특별히 대장패와 전령패를 차게 하며, 안으로 위장, 부장, 금군과 도감의 군병, 각문의 수문장ㆍ국별장과 밖으로 궁궐 담장 바깥에 삼군의 입직하는 순라까지 매일 숙위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이런 보직들은 대개 겸직이었으며 그의 대표적인 보직은 도승지와 훈련대장/숙위대장, 약원부제조였다.<ref>홍국은 (원빈 사후 2개월 가량을 제외한) 집권 기간 대부분 동안 약원부제조직을 맡았다. 이는 임금의 최측근인 그가 임금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보살핀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하루동안 임금과의 공식적인 면대를 2회 이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도 해석된다.</ref> 그외 각종 제거 역시 다수 겸직하였으며 잡류 제거직으로 인한 격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록도 종종 보인다.
         정조 초기의 가장 주요한 사업이라면 규장각 설치가 꼽히는데, 정조의 최측신이었던 홍국 역시 규장각과 관련이 깊다. 그는 제일 처음으로 규장각 직제학(直提學)에 임명된 관료였으며, 유명한 규장각 서얼 사검서관의 서용 역시 홍국의 천거와 설득으로 이뤄졌다. 다만 홍국 축출 후 규장각 내각일기에서 그에 관한 기록을 삭제하여 새로 작성하게 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 홍국이 규장각에서 실제 이행했던 사업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1778년 홍국의 누이 [[원빈 홍씨]]가 정조의 후궁이 된다. 이때 원빈 홍씨의 지위는 유례 없는 것이었다. 후일 이 모든 이례적인 처사는 모두 홍국의 세도로 인해 일어난 일이란 식으로 설명되게 된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홍국이 자교(이 경우 후궁 간택령)를 내리게 했다"라고 쓰고 있다. 《한중록》에서는 이어 원빈의 입궁에 대해, 홍국이 세도를 탐내어 제 누이를 들여보낸 것으로 자신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란 식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정조)어제인숙원빈행장》(정조가 원빈 사후 작성한 원빈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글)에서는 혜경궁 자신의 진술과는 반대로 혜경궁이 원빈에 대해 각별한 정의(情誼)를 나타냈다고 한다.<ref>[http://yoksa.aks.ac.kr/jsp/aa/HajeView.jsp?aa10up=kh2_je_a_vsu_20664_000 어제인숙원빈행장(御製仁淑元嬪行狀)]</ref> 《순조실록 혜경궁 행장(김조순 저)》에서 혜경궁은 원빈에 대한 각별한 정의를 지녔던 혐의가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 강조한 대목이 있다.<ref>[http://sillok.history.go.kr/id/kwa_11601021_002 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 1월 21일 신축 2번째기사]</ref> 홍국 일가의 인물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는 고전소설 《숙창궁입궐일기》는 원빈의 입궐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혜경궁은 효의왕후 쪽인 인을 준다.<ref>{{웹 인용|url=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1844|제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숙창궁입궐일기|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홍국의 누이 [[원빈 홍씨]](元嬪 洪氏)는 가례를 올린 지 1년이 되지 않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한중록》에는 홍국이 원빈의 죽음을 독살로 여기고 그 배후로 [[효의왕후]]를 의심하여 왕비의 나인들을 혹독하게 고문했다는 내용을 전하며 그 죄를 성토하는 대목이 있다<ref>순조실록에서 같은 건으로 탄핵당하는 대자는 [[정민시]]이다.</ref>.
         원빈 사망 당일 정조는 자신의 서제 은언군 아들 완풍군을 원빈의 수원관으로 삼았다. 후일 홍국이 이 완풍군을 "내 조카"라고 부르며 그를 통해 대계를 저지하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기록에 일관성이 없어 완전히 신뢰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 완풍군(完豊君) 준(濬)은 홍국의 몰락 후, 계군(常溪君) 담(湛)으로 개명(改名) 개봉(改封)되며 왕실 세력들의 견제를 받았으며, 결국 5년 후인 정조10년([[1786년]])에 생을 마감했다.
         [[1779년]] [[음력 9월 26일]] 홍국은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조정의 실직(實職)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담은 은퇴 소를 올렸으며, [[정조]]는 당일 이를 수락한다. 이때 정조는 불과 32세의 홍국에게 [[봉조하]] 직함을 내려주는데, 일찍이 백발의 봉조하는 있어도 흑발의 봉조하는 없었는데, 이제 있게 되었다고 하여 그는 “흑두봉조하”라고 불리게 된다. 《한중록》과 《정종대왕행장》 등 사후적인 기록에서는 공통적으로 홍국이 자진 사퇴의 형식으로 물러난 것 자체가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어 정설로 통하나, 이와 같이 사퇴시킨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정조는 홍국을 퇴진시키고 숙위소를 혁파시켰으나 동시에 그의 백부 [[홍낙순]](洪樂純)을 정승에 임명했다. 따라서 한동안 그의 세력은 조정에 계속 건재했으며 그 자신도 계속 궁중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2월에 홍국의 당여들이 서명응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다가 반대로 조정에서 축출 당한다. [[1780년]] 1월에는 홍낙순이 파직과 문외출송되고, 다음달 26일 김종수의 탄핵소가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그는 방출 처분을 받았다. 김종수의 탄핵 소를 시작으로 하여 홍국에 관한 탄핵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한중록》은 김종수의 소 역시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강원도]] [[횡성]], 그 다음에는 [[강릉]]으로 방출되었던 홍국은 결국 이듬해인 [[1781년]]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홍국의 몰락에 대해서는 각종 설만 난무할 뿐,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탄핵의 포문을 연 김종수의 소에서 언급된 공식적인 탄핵 사유는 '후궁 간택을 막았다'라는 것이었다. 또한 (원빈의 수원관)완풍군을 정조의 양자로 들여 동궁으로 삼으려 했다는 가동궁 사건설도 몇몇 군데에서 언급된다. 정조7년 문양해 반란사건 당시 '왕비의 목숨을 위협했다'라는 기록도 있고,《정종대왕묘지문》에는 홍국이 [[은전군 이찬]]([[조선 정조|정조]]의 이복 아우)을 죽게해서 몰락했다고 정조가 원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속설 중에 홍국이 완풍군을 원빈의 양자로 삼았다거나, 효의왕후 김씨의 음식에 독약을 넣었던 것이 발각되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는 19~20세기에나 등장한 야사로 짐작된다.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는 홍국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묘소가 있었다고 한다. [[1977년]] 발간된 《전국문화재총람》에는 〈강릉 전 홍국묘〉라는 제목으로 홍국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묘소가 설명되어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묘소의 넓이는 약 50평, 크기는 약 1미터 정도로 추정했으며, [[1972년]] 후손들이 발견하였으나 아무런 유물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뒤에 [[강릉 종합 운동장]]으로 개발되었으며 지금은 홍국 묘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묘소 인근에는 홍국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가옥이 전하는데, 명확하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료는 아직 없다.
         * 《[[노]]》(1978, [[TBC]], 배역: [[임동진]])
  • Victoria II . . . . 80회 일치
          1836년 1월 1일부터 시작하는 캠페인. 멕시코는 독립을 선언한 텍사스를 대로 전쟁 중이며, 오스만 제국은 사실 독립 국가였던 트리폴리를 다시 복속시키기 위해 전쟁 중이다. 아직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분할"이라고 불릴 유럽 국가들의 침략을 받지 않았으며 동아시아 역시 아편 전쟁으로 시작될 서양과의 불쾌한 접촉을 아직 겪지 않은 황이다. 또한 현재의 오리건 주, 워싱턴 주가 될 자리와 사할린, 아프리카 대다수 지역, 태평양의 많은 섬들은 아직 제대로 된 국가가 자리잡지 못한 태이다.
          1861년 7월 1일부터 시작하는 캠페인. 이탈리아는 통일을 완수하여 열강의 자리에 올라갔으며, 한때 열강이었던 스페인은 이탈리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탈락해버렸다. 아편 전쟁으로 홍콩을 강탈당한 중화제국은 천왕이 이끄는 태평천국을 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멕시코에게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강탈하고 현재의 국경선을 거의 완성했지만 독립을 선언한 아메리카 연합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은 튀니스와 트리폴리를 자국 토로 합병하고 이집트에게서 중동 지방을 빼앗았다. 프랑스 역시 알제리를 완전히 먹어치웠고. 한편 일본은 미국의 향권 내에서 근대화를 끝마쳐가는 중이다. 중앙아메리카 합중국은 분열되어 여러개의 나라가 되었으며, 페루는 에콰도르가 지배하고 있는 파스타사를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중 1~8위는 주요 열강(Great Power)으로 분류되며, 식민지를 피거나 다른 나라를 자신의 향권 내로 편입시킬 수 있는 등 사실 세계를 마음대로 쪼개먹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다른 주요 열강의 견제만 어떻게 한다면야 말이다. 만약 기존의 주요 열강이 아닌 국가가 8위권 내로 들어오면 1년간의 유예 기간 이후 제일 순위가 낮은 주요 열강을 탈락시키고 주요 열강에 올라서게 된다.
         9~16위는 2등 열강(Secondary Power)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자신의 향권을 형성하지는 못하지만 식민지를 필 수 있다.
         이외에는 그냥 "문명국"으로 표시된다. 보통 이 정도로 밀려난 문명국들은 다른 국가의 향권에 들어가 보호를 받거나 동맹으로 자신들의 적을 견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비문명국 사이에도 분류가 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다. 단지 서구화의 진척도 대충 알려줄 뿐이다. 서구화에 거의 손을 대지 않은 국가들은 원시 국가(Primitive nation)로 표시되며, 서구화를 어느정도 한 국가들은 비문명 국가(Uncivilized Nation)로 분류된다. 서구화가 막바지에 이르른 국가들은 부분적 서구화 국가(Partially Westernized Nation)로 분류된다.
         각 국가는 한개 이의 주(State)로 구성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각 주마다 "내셔널 포커스"라고 불리는 정책을 지정해 철도 건설, 특정 품의 생산, 직업, 이주, 정당 지지율 등을 장려할 수 있다. 국가가 한번에 지정할 수 있는 내셔널 포커스의 양은 해당 국가가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s-5|정치 사 연구]]를 얼마나 연구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전쟁으로 할양받을 수 있는 토의 단위는 기본적으로 주다.
          * 지형: 해당 지역을 지나는 부대의 이동 속도, 보급 한계,농업 효율 등에 향를 끼친다.
          * 생활등급: 해당 지역이 얼마나 살기 좋은가의 정도. 이 수치가 30 이이어야 살 만한 땅으로 취급된다. 살기 나쁜 곳에서는 사람들이 애를 낳아 기르려 하지 않으며, 이주해오지도 않고, 쉽게 불만을 가지게 된다.
          * 코어: 토의 소유권…비슷한 개념. 만약 다른 나라의 프로빈스에 자국의 코어가 박혀있다면 해당 프로빈스를 되찾기 위해 전쟁을 벌이거나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다른 국가의 코어가 있는 프로빈스에서 민족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다른 나라의 토로 만들거나 독립을 벌이는 일이 일어날수도 있다.
          * 보급 한도: 해당 프로빈스에서 얼마나 많은 수의 병력이 보급을 받을 수 있는가의 정도. 단위는 ~,000명이다. 만약 이 수치 이의 부대가 해당 지역에 있다면 보급 부족으로 병사들이 죽어나간다.
         프로빈스에 건물을 짓거나 있는 건물을 증축해 효율을 늘릴 수 있다. 건설이나 증축을 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기술, 적당한 자금, 마지막으로 해당 건물의 재료로 쓸 품이 필요하다. 건설이나 증축이 진행되는 중에는 해당 지역에 크레인이 등장하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 Naval Base(해군기지): 함대가 보급받고 수리받을 수 있는 건물. 높은 테크의 군함은 일정 레벨 이의 해군기지에서만 건조할 수 있다. 한 주에 하나밖에 지을 수 없다.
          * Factory(공장): 원자재를 소모해 다른 품들을 생산하는 건물. 같은 종류의 공장은 한 주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해당 지방에 기능공들이 있어야한다. 같은 종류의 공장은 한 주에 하나밖에 지을 수 없다.
         식민지를 개척하고 유지하는데는 식민력(Colonial Power)이 필요하다. 식민력은 코어가 박힌 토에 있는 해군기지와 해군 유닛에게서 얻을 수 있다.
         ==== 품 ====
         국가의 POP들이 생산하는 여러가지 품들. POP들의 욕구 충족, 군대 양성, 건물 건설, 공산품 생산, 군대 유지, 다른 나라에게 판매 등등에 쓰인다.
         모든 POP는 특정 품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 욕구를 충족해주지 못하면 해당 POP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투쟁을 벌이게 된다. 또한 품들은 건설과 군대 훈련에도 필요하다. 건물을 건설하려면 시멘트와 여러가지 재료가 있어야한다. 군대를 훈련시키려면 소화기와 같은 재료들이 있어야한다. 요구하는 품들이 없다면 건설과 훈련은 시작되지 않는다.
         품을 가져오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국 POP가 생산한 물품을 쓰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타국의 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자동적으로 전자의 방법이 시행되지만, 자국 품으로 부족하다면 후자의 방법으로 넘어간다. 사전세계적으로 부족한 품의 경우에는 이미 다른 나라들이 다 사버리므로 구하기 힘들다. 향권에 소속되어 있는 국가들은 향국 리더와의 거래를 최우선으로 한다.
         품의 목록은 [[Victoria II/품]] 문서 참조.
  • 김상조 . . . . 80회 일치
         ||<width=30%><:> 제18대 [br] [[정재찬]] ||<width=5%><:> → ||<width=30%><:> 제19대 [br] ''' 김조 ''' ||<width=5%><:> → ||<width=30%><:> '' 현직 '' ||
         || '''이름''' ||<(> 김조 (金尙祚)[*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2727049|#]]] ||
         || '''출생지''' ||<(> [[경북도]] [[구미시]] ||
         || '''약력''' ||<(> [[한성대학교]] 교수[br][[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br]재정경제원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br]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초빙연구원[br][[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br]경제개혁연대 소장[br]한국금융연구센터 소장 ||
         오랫동안 [[삼성그룹]]의 [[순환출자]]식 지배 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문제제기를 해왔던 사람이다. 이에 대한 저서도 여러 편 출간했다. 또 [[권길]] 후보의 '[[국민승리21]] 정책자문단'의 총무국장으로 있던 적이 있고, 2004년 2월에는 당시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지원으로 인해 시끄러웠던 삼성의 주주총회에 참여연대 소속으로 소액주주로 참석했는데 삼성 경호원들에게 멱살을 잡혀 퇴장당하던 이 발굴되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VH4_myrbBXg|#]]
         훗날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박수 특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장이 기각된 후에는 특검에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는 조언을 하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장 과정 등에 대해 특검에 '''족집게 강의'''를 함으로써, 제2차 구속장 발부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7/2017051702090.html|#]] 2016년 12월에 열린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당한 손해를 봤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http://v.media.daum.net/v/20170315111345502|#]]
         2010년 한국경제에 향력을 끼친 인물 3위에 꼽히기도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했다]].[* 1등은 당연히 [[이건희]]였다. 2위는 당시 기재부장관 윤중현. '없다'를 포함시키면 4위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되며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속도로 올라갔지만[* [[최순실 국정조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와 재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최순실 특검]]에게도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 대중에게 조금씩 그 이름을 인식시켰다.] 이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아주 오랫동안 재벌개혁 시민운동을 계속한 인물로 한국 재벌과 관련해서 학문적인 관심이 있어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접할 수 있었다. TV 토론에도 종종 얼굴을 비췄고 언론 기고 또한 활발했으며 독자적인 저술은 한 권밖에[* 제목은 '종횡무진 한국경제'. 책을 읽어보면 통계적 근거와 [[경제학]]적 통찰을 근거로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해 담백하게 논하는 대중 서적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진보인사라고 하면 거리를 둘 법한 주장도 많이 보인다.] 없는 듯하지만 [[알라딘]]에서 [[http://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SearchTarget=All&SearchWord=%b1%e8%bb%f3%c1%b6&x=0&y=0&|김조]]를 검색해 보면 확인할 수 있듯 한국 경제, 재벌과 관련해서 다양한 저술에 저자로 참여해왔다. 공정위 위원장으로 내정되기 이전 소장으로 적을 두고 있던 경제개혁연대에서 수많은 저작물을 쏟아낸 것은 물론이다.
         재벌에 대한 강경한 입장과 공정거래위원장이란 위치, 그리고 이름 때문에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humor&wr_id=170807|'재벌조']]라는 패러디가 나오기도 했다.
         김조 후보자의 청문회에 참여했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당에서 시킨 일이라면서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97432.html?_ns=t0|김조 후보자에 대한 사과를 표했다.]][* 그러나 이 기사 내용은 다분히 정치 공세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한다. 원래 임위장에서는 막말과 고성이 오가더라도 마칠 때에는 의례적으로 서로 악수하며 덕담을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청문회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을, 자극적인 기사로 내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6월 4일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전성인 교수가 언론과 야당의 의혹공세를 반박하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197|김조를 위한 변명]]이라는 지지글을 발표했다. 이후 전 교수의 주도로 선, 후배, 동료 경제학자 및 사회 각계 각층의 498명이 김조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7664.html|#]] [[주진형]]의 말에 의하면 하루 남짓한 기간 동안 500명 가까이 함께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전 교수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물론 공정거래위원장 자리를 놓고 이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보다못해 지지 선언까지 내는 것 자체로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6월 6일 기준, 7일로 예정되어 있는 김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이 진통을 겪는 중이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은 반대, 국민의당은 의원총회 후 당론 결정 이라고..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93128&ref=A|관련기사]] 결국 [[http://www.fnnews.com/news/201706121657206165|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되면서]] [[자유한국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6월 12일 결국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었지만, 청와대에서 임명을 진행하여 문재인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이 된다. 윤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피링에서 길어진 국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이 지체할 수 없으며, 각종 여론조사 등을 통해 이미 국민의 청문회를 통과했다는 발언을 하며, 공정거래의원장으로 임명했다. 이에 원래부터 찬성 입장이었던 정의당을 제외한 야 3당인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모두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7/06/20170613327266.html|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자유한국당은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맞서 투쟁해나가겠다"며 맹렬하게 비난하였으며, 바른정당은 "오만한 문 대통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라 비판하였다. 국민의당은 당초 김조 후보자의 임명 자체에는 반대가 없었던 터라, "국회 청문회 보고서 통과없이 임명되는 것에는 유감스럽지만, 이는 여당의 고집과 야당의 아집이 빗어낸 것이다"며 공동책임론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9334195&date=20170613&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9|대체적으로 야당에 대해 비판적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3741|문 대통령의 연설 중 조는 모습]]이나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18&aid=0003847763&date=20170612&type=1&rankingSectionId=100&rankingSeq=24|원내대표 회담에 불참]]하는 등 애초에 협치를 바라지 않는 듯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면서 애초에 협치를 바란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많다.
         그리고 첫 시작으로 공정위에서 BBQ 가격 인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된다. 이에 치킨 업계는 줄줄이 인안을 취소하거나 심지어 기존 치킨 가격을 인하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2017년 BBQ 치킨값 파동]] 참조. 김조 위원장은 공정위는 가격 조정 기관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임명 후 빨리 알기 쉬운 효과가 나타나자 국민들에게 일 잘하는 공정거래위원장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다음 타겟은 피자 헛[[http://news1.kr/articles/?3022211|#]]--
         취임 이후에 각종 대기업의 부정한 내부거래 감사와 프랜차이즈 갑질 조사와 징벌적 손해보 도입 등 정력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국민적 여론이 당히 좋은 편이다. 특히, 그가 오랜 기간 강력하게 비판해온 재벌의 재벌그룹의 [[순환출자]] 개선에 적극 힘 쓰고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 취임 1년 사이 대기업집단(자산규모 5조 원 이)의 순환출자 고리가 최근 1년 사이에 거의 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119&aid=0002254122&sid1=001|*]]
         공정위에 따르면 17년 5월 기준 31개 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규모 10조 원 이)이 보유한 93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18년 4월 확인 결과 10개로 줄어들었다. 자산규모 5조 원 이 10조 원 미만인 공시대기업집단도 17년 9월 1일 지정 당시 26개 집단이 보유한 189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18년 4월 31개로 축소됐다. 이를 종합하면 자산규모 5조 원 이의 57개 대기집집단의 순환출자 고리가 282개에서 41개로, 약 85%가 해소된 셈이다.
         해당 기간 동안 [[롯데]]가 67개, [[농협]]이 2개, [[현대백화점]]이 3개, [[대림]]이 1개 고리를 해소해 기업집단 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어버렸으며 [[풍그룹|풍]]도 6개 고리를 없앴다. [[삼성]](3개)과 [[현대중공업]](1개)도 합병, 분할 등의 사유로 신규 형성·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공정거래법 유예기간 내에 해소했다.
         공정위가 ‘칼’을 내 빼지도 않은 황에서 대기업집단이 자발적으로 기존 순환출자까지 해소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재벌들의 불합리한 소유·지배구조를 자발적으로 개선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이른바 ‘김조 효과’가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칼집만 들썩거렸을 뿐인데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바짝 엎드리고 있는 모양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4086135|*]]
         6월 20일에 있었던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지난주 검찰이 공정위 역사 유례없는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들었다. 검찰을 신뢰하지만 직원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불안감을 극복하고 새 정부가 공정위에 요구하는 소임을 수행해 낼 수 있을지 가슴이 너무나 아프고 막막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http://v.media.daum.net/v/20180625203721773?rcmd=rn|*]]
         국무총리 청문회에 이은, 사실 2번째로 청문회를 겪은 인물이기 때문에 야당의 집중공세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마치 김조가 '논란이 무척 많은'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조 임명을 강행하고 이뤄진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83%를 기록했을 정도로 국민여론은 오히려 김조 임명을 환하는 편이었다.
  • 이소선 . . . . 80회 일치
         |배우자 = 전
         |훈 =
         |웹사이트=
         '''이소선'''(李小仙, [[1929년]] [[12월 30일]] ~ [[2011년]] [[9월 3일]])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노동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이다. 1970년 11월 13일 아들인 [[전태일]]이 [[평화시장]] 노동조건 향을 위해 활동하다 분신하자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노동운동가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대해 "노동자들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4717.html 노동자의 대모 이소선씨 별세], 한겨레, 2011년 9월 3일</ref> 민주화 운동 중에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 모임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만들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소선은 1929년 12월 30일 [[경북도]] [[대구시]] [[대구광역시]] 에서 빈농인 이성조와 김분이 사이의 1남 2녀 중 막내 딸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30년에 올렸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85 이소선의 어린 시절, 그녀는 빈농의 둘째 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8), 2014.06.12</ref> 아버지는 "딸 아이를 보니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이름을 소선(小仙)이라고 지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717423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 - 이 아이 이름은 작은 선녀], 경향신문, 2009년 1월 7일</ref> 이소선이 서너살 때 아버지 이성조는 항일 농촌 운동을 하다 일제에게 발각되어 끌려갔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이소선은 아버지가 산으로 끌려가 학살되었다고 회고하였지만<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 />, 관련 기록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817524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 - 네 살 때 멈춘 ‘아버지 기억’], 경향신문, 2009년 1월 8일</ref> 아버지가 죽은 뒤 소작할 땅마저 떼이자 가족들은 감천리에서 더 이 살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가족을 대리고 나오며 집에 불을 질렀다. 이소선은 평생 아버지가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11829475&code=2101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 - 금지된 말이 된 ‘아버지], 경향신문, 2009년 1월 11일</ref> 이소선의 가족은 산 속 엿집에 머무는 등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와룡산]] 기슭의 홀어미 집에 더부살이를 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41753535&code=2100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 - 와룡산 아래 더부살이], 경향신문, 2009년 1월 14일</ref>
         어머니 김분이는 이미 열넷이었던 장녀는 친정으로 보내고 아홉살 아들과 이소선을 데리고 이웃 마을인 [[박서면]]으로 후처 살이 재가를 하였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어머니는 해어진 이후로 큰 딸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소선의 언니는 이미 시집을 갔기 때문에 어머니가 재가했다는 소문이 나면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리하였다고 한다. 이소선의 언니는 1남 3녀를 낳고 살다 1964년에 사망하였고, 이소선은 언니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언니가 있었다는 것은 전태일의 동 재막식 이후에 조카들이 찾아와 알게 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2917591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11) - 목걸이로 부활한 ‘언니’], 경향신문, 2009년 1월 29일</ref>
         새아버지는 어머니 보다 20살이 많았다. 이소선은 어머니의 재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번도 새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51815325&code=2101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6) - 오빠 살리려 개가한 어머니], 경향신문, 2009년 1월 14일</ref> 일제 말기에 오빠는 징용으로 끌려갔고 이소선은 공출을 위한 관솔가지 꺾기 등을 하며 어렵게 지냈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이소선은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허락하지 않아 다닐 수 없었다. 한글은 어머니가 재가한 집안에 시집 온 분에게 배웠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6888 밤새 구구단 외워, 고무신을 으로 받은 이소선],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9), 2014.06.12</ref> 이소선은 집안 몰래 일본이 세운 간이 학교(오늘날의 [[대구서재초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 틈에 섞여 들어가 구구단을 배웠지만 곧 들켜 매를 맞고 그만두게 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0517580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14) - 대물림 된 ‘못배운 한’], 2009년 2월 5일</ref> 헤어진 오빠와는 해방이 되어서도 다시 만나지 못했고 36년 만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2217440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9) - 일본으로 떠난 오빠], 2009년 1월 22일</ref>
         이소선은 1947년 전수와 결혼하였다. 전수의 아버지는 대구시 남산동에서 포목을 하였다. 전수는 의류 제조 공장에 다니다 [[9월 총파업]]과 [[대구 10·1 사건]]에 가담하였다. [[미군정]]과 경찰의 잔혹한 탄압으로 사건이 마무리 된 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재봉틀을 마련하여 직접 옷을 만들어 팔았다. 이소선은 중매로 결혼하였고 결혼 전에야 신랑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4180521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5) - 결혼하기 싫어 사흘 굶어], 경향신문, 2009년 2월 25일</ref> 이소선은 남편에게 그리 정이 가지 않았다. 1948년 음력 8월 24일 첫 아들 [[전태일]]을 낳았다. 전태일을 갖을 때 잉어가 구슬을 가슴에 안겨주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93 "시집가기 싫어"... 아버지 산소로 도망가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4), 2014.06.12</ref>
         전수는 여러 사업을 크게 벌리다 일이 어렵게 되자 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갔다. [[한국 전쟁]] 직전이었다. 이소선은 둘째를 임신한 태에서 [[자갈치시장]]에서 지냈다. 1950년 6월 15일 둘째 [[전태삼]]을 낳았다. 집도 없이 시장에서 지내다 전수가 포목점에 취직하여 지낼 곳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3137 자갈치시장서 둘째 낳은 소선, 고생은 계속됐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5), 2014.06.12</ref>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하면서 잠시 장사가 잘 되어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산 적도 있지만 공장을 크게 늘린 일이 잘못되어 가세가 기울었다.<ref name="경향30">[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518242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0) - 아득한 행복했던 순간], 경향신문, 2009년 3월 15일</ref> 장마철 큰 비에 창고 지붕이 무너져 재료를 모두 못쓰게 된 것이다.<ref name="오마이뉴스1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490 "말짱한 젊은 년이 뭐가 아쉬워 구걸을 다녀"],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8), 2014.06.12</ref> 전수는 점점 술에 취해 폭력적으로 변해갔고, 일이 풀리지 않아 빚을 지면 가재를 모두 팔아 정리하고 가족을 길바닥에 둔채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017511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7) - 지우고 싶은 남편의 기억], 경향신문, 2009년 3월 10일</ref> 1953년 셋째 [[전순옥]]이 태어났다.<ref name="경향30" />
         == 경 ==
         전쟁이 끝나고 남편 전수는 사업 기회를 보려 서울로 경하였고 그 사이 시아버지가 사망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218300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3) - ‘버팀목’ 시아버지 별세], 경향신문, 2009년 3월 23일</ref> 아이들을 끌고 무작정 경한 이소선은 [[염천교]] 근처에서 가족과 노숙하였다. 남편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이소선은 고등어의 배를 따는 일을 하고 얻은 품삯으로 시래기를 사서 국을 끓이고 아이들을 먹였다. 집이 없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잤고, 일을 구하지 못할 때에는 걸식을 했다.<ref name="오마이뉴스18" />
         {{인용문2| 내가 밥을 구해오면 태삼이가 이런다. 엄마, 우리 밥은 왜 색깔이 뻘겋고 까맣고 여러 색깔이냐고 물어. 이집 저집에서 얻어오니 콩밥도 있고, 보리밥도 있고 하니 울긋불긋 하지 않았겠냐. 그 말을 들으니 막 설움이 치받아 올라오는 거야. 여기 가슴에서. |이소선<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51755255&code=210000&s_code=af077#csidx9d453f1619bfab5b3362c807fe859ba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4) - 걸식·행 ‘힘겨운 서울살이’],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전수는 어렵사리 다시 자리를 잡고 술도 끊고 일을 했다. 남편이 남대문 시장에서 일하는 사이 이소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미아리 공동묘지 앞이며 도동으로 옮겨다니며 살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532 전쟁과 가난이 어린 전태일을 조숙하게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1), 2014.06.12</ref> 열심히 일을 해서 1년 만에 판잣집을 장만했고 다시 공장을 차렸다. 이 즈음 막내 [[전순덕]]이 태어났고 전태일은 초등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였다. 그러나 [[4.19 혁명]] 즈음 있었던 큰 규모의 학교 체육복 납품 과정에서 브로커가 대금을 가로채 잠적하자 집안은 다시 주저 앉았다. 전수는 도망다녔고 이소선은 신경 쇠약에 걸려 밤마다 집 밖을 헤맸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617562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5) - 소년가장 된 전태일],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서울에서 다시 이리 저리 떠도는 생활을 하던 가족은 시동생의 권유에 못이겨 대구의 시댁으로 내려갔다. 전태일은 부산까지 떠돌다 비쩍 마른 모습으로 대구에 왔다. 대구에서 다시 모인 가족은 다시 재봉일을 하며 살았고 정식으로 초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한 전태일은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전태일은 스스로 쓴 수기에서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했다. 그러나 전옥의 사업은 결국 망했고 다시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소선은 술에 취해 아이들을 때리는 전옥을 보며 절망을 느꼈다. 전옥이 집을 나가 버리자 남은 가족들은 꼼짝없이 굶게 되었다. 1964년 이소선은 일을 구하기 위해 홀로 서울로 경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520 몽땅 굶어죽을 판... 서울로 가자],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4), 2014.06.12</ref>
         이소선이 서울에 올라와 일을 알아보는 사이 대구에선 아버지의 매질에 견딜 수 없던 전태일이 동생 순덕이를 데리고 경하였다. 전태일은 순덕을 버리려고 하였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시청 미아보호소에 맡겼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0917524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1) - 태일이 막내동생과 생이별], 경향신문, 2009년 4월 9일 </ref> 그 사이 이소선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예전 서울 살 때 알았던 남산 판자촌의 지인에게 얹혀 살았다. 전태일이 그 집을 물어 물어 찾아와 이소선이 일하는 식당 앞에 나타났다. 모자는 다시 만나게 되어 끌어 안고 울었다. 식당에서 고되게 일하던 이소선은 어느날 심하게 하혈을 하였고 그 길로 식당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경향4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317503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2)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13일 </ref>
         전수는 서울 [[서울중부시장]]에서 일자리를 얻고 가족을 찾고 있었다. 이소선은 남편과 사는 것이 싫었지만 전수가 다신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남산동 50번지 무허가 판잣집을 셋방으로 얻고 다시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다. 아동보호소에서 대려온 순덕이는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 지 웃음이 싹 사라져 있었고 새벽에 홀로 깨서 머리를 빗고 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생님께 혼났다고 한다.<ref name="오마이뉴스30" /> 그러나 전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남산동 살림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66년 판자촌에 불이나 이재민이 된 것이다. 이소선은 그 때의 충격으로 눈이 멀었고 이웃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멀었던 눈은 차츰 돌아왔고 모든 식구가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927 이소선, 화재 충격으로 눈이 멀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1), 2014.7.18</ref>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친구들과 자신의 집에 모여 앉아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여러 사람이 앉아야 해서 전태일은 단속반 때문에 집을 헐었다 지을 때 마다 방을 조금씩 넓혀 지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 /> 쌍문동 판잣집은 1980년 재개발 때 철거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91847202&code=2101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8)], 2009년 4월 29일</ref> 1969년 6월 남편 전수는 지병으로 사망하였다.<ref name="연표">[http://www.chuntaeil.org/?r=home&c=1/12/18 이소선 어머니 걸어오신 길], 전태일재단</ref>
         [[파일:이소선 2.jpg|섬네일|전태일의 장례식에서 정을 안은 이소선]]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아들 [[전태일]]이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엔 쉬게 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였다.<ref>[[조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3페이지</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40 전태일 분신 순간 오갔던 긴박한 대화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 2014년 6월 12일</ref> 이소선은 구역 예배를 돌고 있다 동네 주민이 건내준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를 듣고 이 사실을 알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23 아들이 죽었는데... 버스 타고 간 이 여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 2014년 6월 12일</ref> 전태일은 메디컬 병원에서 성모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미 가망이 없었다. 전태일은 달려온 친구들과 어머니에게 자신이 못다한 일을 다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태일은 이소선에게 거듭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말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 간청하였고 큰 소리로 대답하게 하였다. 이소선은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라고 크게 대답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752042&code=210100&s_code=af077#csidxf48d2d357d2bfa4844d69c179a524c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9) - 문학 보수화, 예술적 성취 다양한 분석], 경향신문, 2009년 5월 21일</ref> 그날 오후 10시 전태일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기고 사망하였다.<ref>조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아들 전태일의 죽음 후 이소선은 아들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였다. 11월 18일 장례를 치르고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를 결성하였다. 청계피복노조는 1998년 [[서울의류노동조합]]과 합쳐져 해산할 때까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징이었다.<ref name="민족문화대백과">[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8924 청계피복노조], 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 이준(배우) . . . . 80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878787> '''{{{#EEE156 학력}}}''' ||<(> 대구동평초등학교 [br] [[대구동평중학교]] [br][[진고등학교]] [[무용]]과 (졸업) [br]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중퇴) [br] [[경희사이버대학교]] 정보통신학과 (학사) [br] [[http://mba.ssu.ac.kr|숭실대학교 경대학원]] 콘텐츠경학과 (석사과정 재학) ||
         엠블랙이 데뷔했을 때 가장 인지도가 높은 멤버였다. 예능이나 드라마에 주로 출연한다. 인지도 뿐 아니라 팬덤내에서도 코어가 가장 많다. 순수하고 감성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팬들사이에서 '창선소녀'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특이하게 다른 멤버들과 달리 예명에 성과 이름이 모두 포함되는 경우. '이'라는 성씨는 본인의 성, '준'이라는 이름의 뜻은 [[비(연예인)|비]]의 본명인 정지훈을 빨리 말하다보면 지훈>지운>쥰>준으로 발음이 되는 것에서 착안하여 [[베를린]]에서 함께 화를 촬하던 시절 비가 그를 리틀 비라고 소개하기 위해 직접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 세 ==
         빠른 88년생이지만 출생년도에 맞게 1988년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녔기 때문에 팀내 87년생 멤버인 [[승호]]와 [[지오(엠블랙)|지오]]를 형으로 부른다.[* 출생년도만 봤을때 정적으로 학교를 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준이 초등학교를 입학했던 당시에는 3월 1일을 기점으로 만6세가 되는 친구들을 함께 입학시킨 것이다. 만일 이준이 정적으로 학교를 입학했다면 만6세가 되는 1994년에 승호와 지오와 함께 초등학교를 입학했어야 맞다. 즉, 고등학교는 2003년 입학, 2006년 졸업했어야 정이다. 따라서,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시기는 1995년이었다.] 엠블랙 데뷔전에도 가발피팅, 홈쇼핑, 숙취해소음료 광고등 다양한 부분의 깨알같은 경력을 자랑한다.
         현대 무용수 출신이다. 국내 최고 예술대학인 [[진고등학교]] 무용과 출신이다. 중3이라는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당한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고등학교]] 졸업 후 [[진고등학교]] 무용과를 입학하였으나, 이 학교는 졸업전까지는 방송 및 연예활동이 금지 되기 때문에 도중에 자퇴했다.[* 장동건이 한예종에 있던 과거에는 완전불가였으나 현재 연기과는 1학년은 여전히 불가, 2학년 교내작품은 가능(화과 작품 출연 등) 3학년 교외활동도 가능하다. 무용·음악원은 여전히 금지. ·전통·미술원은 수업에 지장이 없는 한 신경쓰지 않는다.] 워낙 들어가기 힘든 것으로 잘 알려진 한예종을 자퇴했다는 사실이 잊을만하면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으며 아예 '''한예종의 위엄'''이라는 유명한 짤방 시리즈가 존재한다. 당초엔 수석입학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일반입학이었다고 정정했다. "왜 그동안 정정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내가 낸 소문도 아니고, 좋은 얘긴데 굳이 제가 나서서 정정할 필요가 있나"'''라고 했다. ~~반박할 수가 없다~~
         배우가 되기위해 오디션을 계속 보았지만 번번히 낙방. [[우린 안될꺼야 아마|난 아마 안될거야]] 태로 제이튠에 오디션을 신청했는데 통과되었다고 한다.[* 정식 데뷔는 2008년에 방송된 MBC시트콤 [[그 분이 오신다]]를 통해 단역으로 데뷔하였다.]2009년 [[닌자 어쌔신]]에서 비의 아역으로 출연하였고 최연소 헐리우드 진출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극 중 대사인 "You shouldn't do that." 을 예능에서 종종 써먹기도 한다. 닌자어쌔씬을 계기로 비와 친해져 방송에서 비의 사생활을 폭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처음에는 비의 이런 저런 모습을 알게 될 수 있어서 시청자들도 호감적인 반응이었지만 방송 분량이 잘리겠다 싶을 때 비의 이야기를 절묘히 꺼낸 것 같다는 이유로 몇몇 시청자들의 비난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싱글 1집 Oh Yeah 활동 중 노래 중에 의를 들어올리며 복근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2012년 2월 22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회심의 토크를 쏟아낸 이후 차세대 예능돌로 급푸시를 받는 중이다. [[무한도전]] [[김태호(PD)|김태호]] [[PD(방송)|PD]]가 트위터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라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우결·세바퀴등을 연출한 마건 PD 역시 트위터로 같이 프로 하나 하고싶다고 인증. [[하하(가수)|하하]]가 "이준쇼였다" 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디오스타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때 같이 나온 게스트들이 [[제국의아이들|임시완]]·[[트랙스|제이]]·[[유이(배우)|유이]]라서, 대적으로 예능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준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비중도 가장 컸다는 점도 있지만, 슈퍼주니어를 대표로 하는 예능감 좋은 아이돌의 중요요소인 '자학개그'와 '허당', '자부심' 코드를 적절히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PD들은 차세대 MC유망주로 보고 있는 듯. '훌륭한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라는 [[이승기]] 비슷한 기믹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구라를 비롯한 라스 MC들 曰, '''비주얼 되는 [[김종민]]'''. ~~1박2일 시즌2에 김종민 빼고 얘를 쓰지 그랬어.~~ 루머로 2월 22일 라디오스타 방분 출연당시에 MC들이 언급했던 '''백지돌'''특집이 실제로 녹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2012년 반기엔 MBC가 장기 파업중인 태였기에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몰랐고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무한도전]]에서는 조정 특집 당시 제 8, 9, 10의 멤버를 뽑는 자리에 박명수의 전화를 받고는 '''뭐하는건지도 모르고 그냥 무한도전이라는 말에 덥석 낚여서''' 참여하게 되었다. 제 8의 멤버로 낙점된 진운이야 그렇다고 쳐도, 다른 게스트들에 비해서는 확실한 인을 남겼다. 역시나 멀쩡해보이는 비주얼과, 완주 할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는 달리 10분도 못 버티는 조루 체력으로 선방.
         2010년 8월 29일 런닝맨에 첫 출연했다. 당시 경복궁에서 촬한 방송분에서는 그냥저냥한 무난한 활약을 보였으나, 2012년 5월 20일 박지성 특집에서는 그룹 엠블랙 멤버들과 함께 송지효를 제거하는 킬러로 파견되었다. 높은 자리에서 정탐하고 저격을 시도하는 등 그럭저럭 멋진 모습들을 보여주었으나, 런닝맨 멤버들이 반격을 해올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방심하다가 등짝을 내주며 허무하게 탈락. 이 때 내지른 '''"오와아아아아악!"''' 이란 비명소리는 건물 옥에서 내질렀으나 지에서도 똑똑히 들릴 정도로 컸다(…).
         그리고 역시 같은해 8월 26일 방분에서도 허리부으로 고생하는 [[개리(리쌍)/런닝맨|개리]] 대신에 대타로 출연했다. 2012년 들어 런닝맨 출연만 4번째. 고정으로 합류했다가 얼마 안가 하차한 리지를 제외하면 사실 가장 많이 출연한 게스트이다. 비록 승률은 4전 4패급이지만, 아이돌 치고는 예능적으로는 당한 선방인 셈.
         2012년 1월 24일 MBC 설 특집 프로그램 [[두근두근 흔들려]]에 출연해 [[애프터스쿨]] [[박수아|리지]]와 커플이 되어 고난이도의 [[에어로빅]] 체조 공연을 펼쳤다. 처음부터 리지를 파트너로 지목했고, 극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 둘이 모여 꽁기꽁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로 대방이 자기에게 실망할까봐 걱정하는 소심한 성격을 보여주었다.
         2012년 하반기, 오연서와 커플로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 중이었으나 2013년 1월 [[김태희]] 와 [[비(연예인)|비]]의 열애설이 터진지 하루만에 오연서가 [[오자룡이 간다]]의 대역인 [[이장우(배우)|이장우]]와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되어 스캔들 기사가 났다.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이준이 좋다면서 실제로는 이장우랑 사귀고 있었다는둥, 사건은 오연서를 나쁜년으로 몰아가기에 이르며, 이준은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처지에 이르렀는데... 오연서와 이장우 양측이 단순한 친구관계라면서 사건을 일축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장우 측은 가만히 있었는데 오연서 측이 사귄다고 인정해버렸다. 그러더니 "사귀는 건 아니고 좋은 감정이 있었다"라고 말을 바꾸더니 끝에 가서는 "그냥 친한 친구 사이"라고 번복. 처음과 완전 말이 바뀌어 깃털같은 태도에 빈축을 샀다.] 거세지는 여론에 팬들이 제작진에게 하차 요구를 하면서 하차수순에 놓이는가 싶었는데, 제작진이 하차는 없다고 못박았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우리 결혼했어요]] 게시판 지분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던 황.
         1월 12일 방송된 '''우결에서 오연서가 직접''' 이준에게 스캔들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를 하였다. 이부분에 대해 시청자들은 "어차피 연기면서 ㅉㅉ"라는 반응도 있지만, 오연서의 사과를 받을 때 이준의 표정이 진짜 심각해서 그런지 대체적으로 "이준 어떡하냐 진짜 불쌍하다"라는 반응. ~~그리고 이장우는 엄청 까이고 있다~~ 특히 위의 고욱과의 일까지 겹쳐서 정말 불쌍한 이미지가 돼버렸다.
         여기서 끝나면 모르겠는데 1월 23일 경, 팬카페에 '''내가 로봇도 아니고 거짓연기는 더 이 못 한다. 참을만큼 참았다'''라는 식으로 글을 올렸다가 삭제. 이에 대해서 [[우리 결혼했어요|거짓 연기]]라는 게 우결인지 관심이 쏠리는 찰나, 빠르게 소속사에서 해명을 했다. 쓴 글은 이준 본인이 썼으며, 소속사와 차후 활동에 대해서 의견조율이 잘 안되어서 쓴 것 이라고... 결국 우결에서 [[http://news.nate.com/view/20130130n26719|하차]]하여 2월 2일까지만 출연.
         2017년 2월 18일, [[소녀시대]] [[서현(소녀시대)|서현]]과 함께 [[아는 형님]] [[아는 형님/방 목록/2017년 반기#s-2.7|63회]]에 출연했다.
         [[김기덕]] 감독과 함께 강심장에 출연했을 때 감독의 오랜 팬이었으며 무명시절 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감독에게 메일을 보냈던 등의 이야기를 하였고, 김기덕 감독도 호의를 보여서 김기덕이 각본을 쓰고 제작한 신연식 감독의 [[배우는 배우다]]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사실 이준이 모두 이끌어가는 원탑 주연의 화로 기자시사회 후에도 이준의 연기에 호평이 꽤 이어졌다.
         tvN [[갑동이]]라는 드라마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류태오 역을 맡아 여기서도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주면서 소름끼치는 장면을 양산해냈다.
  • 백일섭 . . . . 79회 일치
         {{화인 정보
          | 사진설명 = 2013년 드라마 《[[더 이은 못 참아]]》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백일섭
          | 배우자 = [[채미]]
          | 학력 = [[명지대학교]] 문학과 [[학사]]
          | 웹사이트 =
          | 수 =
         [[1969년]] [[신옥]] 연출의 화 《사녀》를 시작으로 [[화배우]] 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로는 텔레비전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에 주력하고 있는데 [[1980년대]] 말부터 화제작에 뜻을 두기 위해<ref>{{뉴스 인용
         | 저자 = 양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대한민국 최초로 청와대로 초청받은 연예인 1호로 알려지기도 했다. [[문화방송]]의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백일섭이 극 중에서 취중에 독특하게 부르는 옛 노래〈홍도야 우지마라〉가 다시 인기를 끈 일이 유명하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6011010100691636&type=1 박원숙 정혜선 백일섭, 맛깔스런 연기에 "역시!"]《머니투데이 스타》</ref> 가수 [[조남]]과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 [[명지대학교]] 문학과 학사
         * [[1980년]] [[TBC]] 어린이드라마 《[[바람돌이 장실]]》
         * [[1993년]] [[MBC]] 대하드라마 《[[제3공화국 (드라마)|제3공화국]]》 ...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장기]] 역
         * [[1993년]] [[KBS2]] 미니시리즈 《[[굿모닝 동]]》 ... 주근노 역
         * [[1998년]] ~ [[2000년]] [[MBC]] 주간연속극 《[[육남매]]》 ... 함북쌀회 주인 원달 역
         * [[2006년]] [[SBS]] 금요드라마 《[[마이 러브 (드라마)|마이 러브]]》 ... 이구 역
         * [[2010년]] [[MBC]] 미니시리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드라마)|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 홍덕보 감 역
         * [[2013년]] [[JTBC]] 일일연속극 《[[더 이은 못 참아]]》 ... 황종갑 역
         === 화 ===
         * [[1969년]] 《[[백장미 (화)|백장미]]》
         * [[1970년]] 《[[태조 왕건 (화)|태조 왕건]]》
  • 정칠성 . . . . 78회 일치
         해방 후 조선부녀총동맹을 결성해 부위원장이 되고, [[조선공산당]]과 [[민족주의민주전선]]에서 활동하다 [[1948년]] [[4월]]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남북협]]에 참가한 뒤, 그해 [[8월]] 미군정의 좌익 탄압을 피해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 대회차 월북했다가 내려오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1948년]] [[8월]]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48년]] [[10월]]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 1955년 민주여맹 부위원장, 1956년 4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57년]] [[8월]] 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58년]] 국내파 [[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을 제거할 때 숙청되었다.
         |제목=<nowiki>[역사속의 남사람들 .37]</nowiki> 민족을 지켜낸 여성들(김락·남자현·정칠성)
         |출판사=남일보
         }}</ref> 정확한 생년은 전하지 않아 [[1897년]]생 설 외에도 [[1902년]]생 설, [[1905년]]생 설, [[1908년]]생 설 등이 전한다. 정확한 생일 역시 미이다.
         [[3.1 운동]]에 참여한 [[기생]]의 한사람이었으며, [[조선총독부|총독부]]의 눈을 피해 이후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여자기예학교]]를 수학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사에 동조하게 되었다.
         |제목=3·1 독립운동 뛰어든 ‘사기생’ 사회주의 운동가로 활동
         }}</ref> [[민족 대표 33인]]은 요리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였고 일부 기생들도 동참했다. 한편 이씨 성을 가진 남성과의 사이에서 일찍이 아들 이동수(李東樹)를 낳았지만 결별하고, [[고려공청회]] 책임비서인 [[신철]](辛鐵)과도 동거하기도 했다.
         곧 그는 [[3.1 운동]] 가담 혐의로 연행되었다가 특별한 혐의가 없어 석방되었다. 후일 그는 '기미년 만세운동을 계기로 "기름에 젖은 머리를 탁 비어 던지고" [[기생]]에서 주의자로 변신하게 되었다'고 회하였다.
         그는 작문에도 능하여 글과 논설을 지어 발표하였는데, 여성의 계몽, 교육의 장려, 사회 부조리의 개선, 위생 청결론 등을 주장하여 이른바 '사 기생'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당시 태화관을 출입하던 소설가 장혁주는 그의 존재를 인깊게 기억했다가 회하기도 했다. [[1920년]]에는 [[김일엽]], [[나혜석]], [[김명순 (1896년)|김명순]] 등과 함께 잡지 [[신여자]]지의 필진으로 참여하였으나 [[신여자]]지는 재정난으로 곧 폐간되었다. 이후 그는 [[조선]]의 역사 관련 서적, [[사회주의]] 사과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을 구해서 독서하였다.
         [[1922년]] [[부산]]에서 배편으로 [[일본]]에 다시 건너가, [[동경]]의 [[도쿄어강습소]]에서 어를 수강하였다. 그러나 비용 마련의 실패로 [[미국]] 유학의 꿈은 좌절되었다.
         1923년 [[물산장려운동]]에 한때 참여하였다.<ref name="dispose"/> [[1923년]] [[10월 17일]] 조수, 이춘수(李春壽) 등과 함께 [[대구]] [[명신여학교]] 강당에서 [[기독교]] 등 종교모임의 부녀단체와 여성단체를 본따 [[대구여자청년회]](大邱女子靑年會)를 창립발기하였다. 바로 [[대구여자청년회]] 통과위원에 선출되었다.
         10월 이춘수와 대구여자청년회 창립을 주도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대구여자청년회의 창립은 당시 종교단체외에 여성운동을 조직적으로 하는 단체가 없던 황에서 여성대중을 대으로 조직을 결성한 첫 시도였다.<ref name="dispose"/>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의 부녀단체를 탐방, 연구한 정칠성은 전국적인 여성 단체, 여성 청년 단체 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후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大邱女子靑年會執行委員)이 되어 [[1925년]] [[3월]]까지 대구여청에서 활동하였다.
         [[파일:Heo Jong-suk.png|썸네일|오른쪽|150px|[[허정숙]]<br />(사적 동지이자 호형호제하며 가깝게 지냈다.)]]
         [[1923년]]말부터 [[허정숙]], [[정종명]](鄭鍾鳴), 오수덕(吳壽德) 등과 함께 여자도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가부장제]]의 억압과 남성들의 억압, 제국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였다. 이어 [[허정숙]], [[정종명]] 등과 함께 여성사회운동단체를 조직하려고 여학생과 부인 중에서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이 중 신분과 배경을 보지 않고 사람을 사귀던 [[허정숙]]과는 특별히 친하게 지냈으며, 이후 정칠성은 [[허정숙]]과 함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사을 조선에 소개하는데 앞장섰다.
         정칠성은 정종명, 오수덕 등과 함께 종래의 소극적 여성운동을 극복하고자 여성해방단체조직에 착수하였다.<ref name="dispose"/> 당시 여성의 사회활동이란 생소한 것이었기에, 정칠성은 일반 부인을 대으로 직접 회원모집에 나섰다.<ref name="dispose"/> 이후 그는 각지의 순회강연과 칼럼, 기고를 통해 여성 계몽운동에 나섰고, 경성에서 다른 여성단체의 일을 보면서도 [[1925년]] [[3월]]까지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을 겸직하였다. [[1924년]] [[7월 20일]] [[조선여성동우회]] 집행위원으로, 인천노동총동맹회 무위원(仁川勞働總同盟會常務委員)에 선출, 겸임하였다. 또한 대구여자청년회 집행위원 일도 겸하였다.
         이후 [[일본]]에 건너가 체류 중, [[1925년]] [[3월]] [[도쿄]]에서 무산계급 및 여성의 해방을 목적으로 [[이현경]], [[황신덕]] 등의 유학생들과 함께 [[동경]]의 조선여성단체인 [[삼월회]](三月會)를 조직, 삼월회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3월 8일]] [[대구]]부내 노동공제회에서 [[대구여자청년회]] 주최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인데이]] 기념행사에 연사로 초빙되어 '국제부인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5년]] [[3월 22일]]에는 [[대구청년회관]]에서 경북지역 인사들이 모인 사회주의 연구 사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에 창립발기인으로 참여, 맹원으로 활동하였다. [[3월 31일]] 다시 유학차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 여자기예학교]]에 복학하였다.
         [[1925년]] [[11월]] [[일본]] 정부에서 가의 적을 대비하여 각급 중고등학교에 군사훈련 및 각종 군사교육을 실시하자, 정칠성은 군사교육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11월 7일]] [[홋카이도]]의 소준고등학교 강당에서 일본내 시민단체, 여성단체, 사회주의 운동단체 및 조선인 유학생단체, 삼월회, 일월회(남성 단체) 공동 주최로 열린 [[군사교육 반대 집회]]에 그는 [[삼월회]]의 대표 자격으로 박경희(朴慶姫)와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경찰 2백 명이 급히 투입되어 진압하자, 바로 피신하였다.
         그는 여성의 자유를 넘어서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였다. 가정과 결혼에서 독립하는 것이 바로 여성의 해방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등이 여성 해방을 외치지 못하고 여성의 자유, 남녀 평등만을 외친다는 점을 두고 당히 소극적이라며 비판했다. 단순한 자유를 넘어서 남성과 가정,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지 않는 한 여성의 권리를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1926년]] [[신철]]과 이혼하였다. 그런데 신철은 정칠성의 동지인 [[정종명]]과 동거하였다. 정칠성은 개의치 않고 신철과 예전처럼 동지적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정종명과도 예전의 사적 동지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들의 연애는 화제가 되었다.
         [[1927년]] [[4월 26일]]에 [[경성]] 중앙유치원에서 좌우합작의 여성단체인 [[근우회]](槿友會)가 창설될 때 [[유각경]], [[황신덕]], [[김선]], [[허정숙]] 등과 함께 [[근우회]]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운동의 연합체인 신간회의 자매단체로의 결연을 주선하였다. [[4월 28일]] [[근우회]]를 발족되자 [[근우회]] 회원모집부 부원이 되어 [[대구]]로 내려가 홍보, 회원을 모집하고 근우회 경북도지회 조직을 주관하였다. 정칠성은 근우회가 전국에 지회를 결성할 때 대구지회 결성의 임무를 띠고 파견되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집행위원(당시 21명)을 구성하는 데까지 활약하였다.<ref name="dispose"/>
  • 천호진 . . . . 78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내 딸 서이]]
         | 강훈 역
         | 한훈 역
         | 정석 역
         | [[김현]] 역
         | [[드라마게임]] - 나, 서른살의 일
         | 최민
         | 서울백화점 업1부 정도일 이사 역
         | [[검은 자화]]
         | [[정하]] 역
         === 화 ===
         | [[루시드 드림 (화)|루시드 드림]]
         | [[베테랑 (화)|베테랑]]
         | [[백프로 (화)|백프로]]
         | [[배꼽 (화)|배꼽]]
         | [[이웃사람 (화)|이웃사람]]
         | [[마이 웨이 (2011년 화)|마이웨이]]
         | [[비열한 거리 (2006년 화)|비열한 거리]]
  • 이열희 (1924년) . . . . 77회 일치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부]] 성내3동
          | 부모 = 이무(부)
          | 친척 = 이동진(증조할아버지) <br /> 이일우(할아버지) <br /> 이시우(작은할아버지) <br /> 이악(큰아버지) <br /> 서법경(큰어머니) <br /> 이명득(큰어머니) <br /> [[이정 (1897년)|이정]](5촌 숙부)<br /> [[한문이]](5촌 숙모) <br /> [[권기옥]](5촌 숙모) <br /> [[이화 (시인)|이화]](5촌 숙부) <br /> [[이백 (사학자)|이백]](5촌 숙부) <br /> [[이오]](5촌 숙부) <br /> 이겸희(6촌 누이동생) <br /> [[박창암]](6촌 매제) <br /> 이용희(6촌 남동생) <br /> [[박문웅 (1890년)|박문웅]](장인) <br /> [[박중양]](장조부)
          | 서훈 내역 = 대한치과의사협회 학술대
          | 기타 이력 = [[경북대학교|경북대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출신 <br /> 치과 의사 · 외과 의사 <br /> 구강성형외과 의사 <br /> 의학 교육자 및 대학 교수 <br /> [[치의학|치의학교육 저술가]] <br /> [[성형외과|구강성형외과학교육 저술]][[저술가|가]] 겸 [[수필|수필가]]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br />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 이사장 <br /> 대한치과의학협회 경북도 지회장 <br />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명예회장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치의과대학]] 학장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
         [[1977년]] [[5월]]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명예회장에 추대되었고,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 대한치과의학협회 경북도 지회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 교수, [[경북대학교]] 치과대 학장, 경북치과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인 [[이화 (시인)|이화]], 독립운동가 [[이정]], 역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백 (사학자)|이백]]의 5촌 조카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도지사를 지낸 [[박중양]]은 그의 처조부가 된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고 호는 백산(白山)이다. [[천주교]] 세명은 '''토마'''이다. [[대구광역시]] 출신.
         [[1924년]] [[12월 18일]] [[대구부]] 성내3동(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가)에서 이무의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소남 [[이일우]]는 사업가였고, 독립운동가 [[이정]],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시인 [[이화 (시인)|이화]]<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역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백 (사학자)|이백]]은 그의 아버지 이무의 사촌 형제들이었다.
         [[1954년]] [[소아과]][[의사]]이자 [[내과]][[의사]]였던 [[박부남 (1931년)|박부남]]과 결혼했는데, 그는 구한 말, 일제 강점기에 [[도지사]]를 지낸 해악 [[박중양]]의 손녀이며, 주,청도[[군수]] 등을 지낸 [[박문웅 (1890년)|박문웅]]의 차녀였다.
         [[미국]] 제25육군병원에서 [[하버드 대학]] 출신인 [[치과]]전문의 [[마틴 D. 해치]](Martin D. Hatch) 박사의 지도 하에 악안면 [[성형외과]]를 수학하였다. 이후 그는 육군 제1병원에 근무하였으며, 제1병원 재직 중 악안면성형 및 구강외과를 창설했다. 당시엔 전쟁 당시 발생한 부이나 처 등으로 턱, 안면 등에 변형이 생긴 환자들이 있었다. 그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 [[마틴 D. 해치]]는 [[한국]]을 떠나기 전 그에게 수술할 때 사용했던 소수술기구와 성형외과학서적 5권을 그에게 특별히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53년]]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4년]] 군의관으로 재직 중 최보 중령(국군제1병원 외과부장겸 수련부장), 오근 대위(국군제1병원 정형외과 과장), 허경발 대위(주한미군의무관실 연락장교) 등의 주선과 도움으로 [[미국]]으로 유학, [[한국]]의 치과 군의관 신분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의 [[성형외과]] 수련 과정을 이수하고 귀국하였다.
         경북대 재직 초기 당시 그는 "치과대 설립을 허가해 주고는 예산을 제때 배정해주지 않아 교실없이 신입생을 모집, 강의실을 구하기 위해 우왕좌왕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ref name="imails"/> [[1957년]]부터 [[대한민국 문교부|문교부]]를 대로 치과 관련 대학의 별도 단설을 주장, 설득한 끝에 [[1979년]] 경북대학교 치과 대학외 7개 대학교의 치과대학을 시범으로 설립하여 성과가 나타나자 각 대학의 치과대학 별도 설치를 허가받았다.
         [[1963년]] 치과의학회 경북도지회장에 선출되었다. [[1963년]] [[8월 1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 논문 "인태아(人胎兒) [[소화기]]계의 [[점액]]선에 대한 발생학적 급조직 화확적연구"를 제출하고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 [[3월 3일]] [[경북대]] 의대 부교수로 승진하였다. [[1967년]] [[10월]] [[대한구강악안면외과협회]] 제9차 정기총회 및 학술대회에서 부회장에 선출되어 [[1969년]] [[10월 17일]]까지 재임했다. [[치과]]전문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한 그는 경북대 의과대학에 치의학과 재설치를 꾸준히 청원하게 됐다.
         [[1972년]]부터 4년간 [[대한구강안면성형외과학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1974년]] [[3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치의학부 교수가 되고 이후 대구시 치과의사회 회원이기도 했다. [[1974년]] [[3월]] 경북대 의대 치의학과장이 되었다. 1977년 5월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명예회장에 추대되었고,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 [[대한치과의학회]] 경북도지회장 등을 역임했다.
         만년에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에 살다가 [[2012년]] [[8월 9일]] 새벽 4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의 장성 건아파트 304동 304호 자택에서 사망했다. 빈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장례식장 5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지난 11일 진행됐다. 장지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산9번지에 안장되었다.<ref name="pisots">[http://www.kda.or.kr/kda/modules/kdaNews/news/NewsView2.aspx?NewsID=75541 이열희 경북치대 명예교수 별세] 치의신보 제2058호(2012년 08월호)</ref>
         == 훈 경력 ==
         * 대한치과의사협회 학술대(1979년 11월)
         경북치대 초대 및 제2대 학장을 역임하며 경북치대 설립과 구강악안면외과학교실의 발전에 공헌하였다.<ref name="pisots"/> 치과의사들 사이에선 여전히 악안면 성형외과의 권위자로 불리고 있다<ref name="imails"/>는 평도 있다. '지방 국립대 7곳 치대 설립 '산파역<nowiki>'</nowiki>'이라는 평가도 있다.<ref name="imails"/>
         독립운동가인 [[이정]], 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백, 시인 이화는 그의 작은할아버지 이시우의 아들들이었다. 고모부 [[윤홍열]]은 [[미군정기]] 당시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또한 육군 준장 출신 민족 사학자 [[박창암]]의 처 이겸희는 그의 6촌 누이였다.
         *** 5촌 당숙: [[이정]](李相定, [[1896년]] [[6월 10일]] ~ [[1947년]] [[10월 27일]], 독립운동가. 아호(雅號)는 청남(晴南), 산은(汕隱). [[대한독립군]] [[3성 장군|중장]])
         *** 당숙모: [[한문이]](韓文伊, [[1897년]] [[5월 7일]] ~ [[1941년]], '''이정'''(李相定)의 부인.
  • 유인영 . . . . 76회 일치
         {{다른 뜻|[[유인 (가수)|가수]]}}
         {{화인 정보
         | 이름 = 유인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 봉산면 (김천시) (남대로)
         | 친척 = [[유혜 (아나운서)|유혜]](사촌 여동생)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country_min}}
         '''유인'''([[1984년]] [[1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화 ===
         | [[비처럼 음악처럼 (2012년 화)|비처럼 음악처럼]]
         | 단편화 감독, 출연
         | 단편화 감독
         | 수 맞선녀
         | 단편
         | [[베테랑 (화)|베테랑]]
         | 수의 목소리
         | [[여교사 (2017년 화)|여교사]]
         | 추혜
         | [[치즈인더트랩 (화)|치즈인더트랩]]
         | [[준]]
         * 2007년 제15회 [[춘사대화제]] 홍보대사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대번포트 농지 . . . . 75회 일치
          보스턴 중부 힐 요새 북동쪽 자-병사들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무기 칼날.
          * 국제 플린트락 권총(English Flintlock Pistol)
          트로이즈우드의 경비병이 지키는 헛간 속 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2, 랜스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부싯돌+참나무 목재.
          트로이즈우드의 군대 숙지 속 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랜스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부싯돌+단풍나무 목재.
          * 지 수송대 용량 업그레이드(Land Convoy Capacity Upgrade)
          랜스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참나무 목재+불쏘시개. 지 수송대 하나가 팔 수 있는 아이템의 양을 늘린다.
          * 지 수송대(Land Convoy)
          랜스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참나무 목재+참나무 껍질. 지 수송대 하나를 추가한다. 지 수송대는 세개까지 늘릴 수 있다.
          보스턴 남부의 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은광석.
          * 해 수송대(Naval Convoy)
          랜스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가문비나무 목재+참나무 껍질+곰 기름. 해 수송대 하나를 추가한다. 지 수송대는 세개까지 늘릴 수 있다.
          보스턴 북부 동쪽 해안 선박의 자-경비병이 지키고 있음-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부싯돌+납광석
          * 왕립해군 해근무 플린트락(Royal Navy Sea Service Flintlock)
          보스턴 중부 서쪽 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부싯돌+금광석.
          몬머스 항만관리소장 앞 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
          패카낙의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야자에서 획득 가능. 엘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밀랍.
          패카낙의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야자에서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모래.
          패카낙의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야자에서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철광석.
          패카낙의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 야자에서 획득 가능. 엘렌 레벨1 부터 제작 가능. 양모.
          존스타운 마을의 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랜스 레벨2 부터 제작 가능. 단풍나무 목재.
  • 이철희(1964) . . . . 7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정치인/목록)]
         || '''출생지''' ||<(> [[경북도]] [[일군]][* 현재는 포항시로 통합되었다.] ||
         || '''소속 위원회''' ||<(> [[국회운위원회]][br][[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
         한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적도 있고, 중앙 정계의 언저리를 있으면서 민주당 쪽 정치인들과도 두루 인연을 쌓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그리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라는 작은 정치 컨설턴트 사무소의 소장으로 여러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으나 역시 그의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높여준 건 [[JTBC]] [[썰전]]이다. 이 시기 보수 진의 패널을 맡았던 [[강용석]]과 더불어 진보 진의 패널로서 ~~열심히 MB를 까며~~ [[썰전]]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1964년, 포항에서 3남 2녀 중 [[3남|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진보 성향의 인터넷 언론인 [[프레시안]]이 운하는 시사 팟캐스트 방송 '이철희의 이쑤시개'를 진행했다. 그리고 종편인 [[채널A]]의 '아침 신문쇼 돌직구'에도 고정 출연 했었다. 2013년 10월부터 평일 오후 6시 16분부터[* 앞의 15분 동안은 6시 뉴스를 진행한다. 7시에도 뉴스가 진행되어 7시 6분에 시작한다.] 오후 8시까지 [[tbs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4년 2월 "뭐라도 합시다"와 "누가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윤여준, 이돈 공저)라는 서적도 냈다. 2015년에는 "이철희의 정치썰전: 보수와 진보를 향한 촌철살인 돌직구"와 "7인의 충고 : 이철희가 따져 본 진보 집권 전략"을 출간. 이 가운데 7인의 충고는 [[Daum]]과 [[미디어오늘]]에서 기획하여 이철희가 '논과 쟁'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것들을 모아 낸 것인데, 정작 미디어오늘에서는 중간에 수록을 하다 말았고, 인터뷰 전문은 책이나 [[http://7author.tistory.com/m/post?categoryId=847004|여기에서 볼 수 있다]].
         썰전의 고정 출연한 이후 당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썰전의 최대 수혜자라 할 만 하다. 썰전 덕분에 팬클럽(!)도 생겼다고 한다. [[김구라]]와 [[강용석]], [[이준석(정치인)|이준석]]과 '하드코어 뉴스깨기'를 맡았다. 보수 성향의 강용석, 이준석에 맞서 진보 성향의 의견을 대변한다. 사회비판적, 이지향적인 말을 많이 하는 편. 이에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강용석과 꽤 심각하게 대립할 때가 있다.
         사실 썰전을 하면서도 그 이외의 언론 인터뷰, 방송 인터뷰에서 "서로 성향이 달라 오히려 방송을 할 때의 호 대화패턴의 호흡은 맞지만, 일생활의 호흡은 맞지 않는다.", "방송을 1년 넘게 같이 했으면 친해질 만도 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와 나는 그렇지 않고, 주기적으로 사적인 만남과 친분을 가지는 사이가 아니다. 여전히 그에게 거리감이 있다.", "살아온 길,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생각이 서로 당히 다르다."고 말했었다.
         한편으로는 썰전에서 강용석이 이철희의 예보다 토론주제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온 티가 날 때 했던 적이 많아서("아니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아왔어?" 하는 식) 사적으로 사람 됨됨이가 괜찮다거나 하는 의미라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고, 방송하는 사람으로서의 성의있는 태도에 대해 인정하는 부분이었던 걸로 해석하는 게 유력하다.
         토론으로 겨루어보고 싶은 대로는 [[이혜훈]]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언급한 바 있다.
         E.E. 샤트슈나이더라는 학자를 좋아해서 그의 책과 이름을 자주 거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엘머 에릭 샤트슈나이더는 미국의 정치학자이다. 보통 샤'''츠'''슈나이더로 많이 알려져 있다. 민주정의 발전은 다양한 정당들의 공정 경쟁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정당 정치에 깊이 관심 있는 사람치고 샤트슈나이더 향 안 받은 사람은 드물다. 이철희는 샤트슈나이더의 책을 번역한 적도 있다. 참고로 샤트슈나이더는 대의제 민주정을 강력히 주장하는 입장인데, 현 새정련 주류인 친노계가 직접, 참여적 민주정 강화를 지향하는 입장임을 보면 애초에 정당 운 면에서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만 갖고 까는 건 아니지만~~][[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128769|그래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또한 학부 시절 [[최장집]] 교수에게 배운 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장집 교수 역시 저서에서나 강연에서 대의제 민주정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기 때문.
         2015년 10월 29일 썰전 방분에 의하면, 일부 네티즌들이 본인을 "[[종북|리철희]]"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북한을 싫어한다는 논리를 공공연히 드러낸 그이기에 이는 정말 개드립이며, 이는 진보를 무조건 종북으로 보는 매우 몰식한 짓인데다 설령 그가 친북인사라 할지라도 민주시민된 자로 신드립은 하지 말아야 할 도덕적인 책무가 있음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2016년 1월 7일 방송분(148회)으로 썰전에서 하차하였다. 해당 회차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입에 대해 노코멘트를 하였다.
         이철희 소장은 [[권미혁]] 여성민우회 공동대표와 같이 [[더민주]]에 입당한다고 한다. [[http://media.daum.net/politics/all/newsview?newsid=20160119204538930|관련 기사 참조]] 1월 19일 기사시점으로 다음날인, 1월 20일에 같이 입을 발표할 예정.
         그렇게 첫인이 좋지 않던 황에서 인재 입 당시 대부분의 인물들이 '당이 원하면 어디든 가겠다' 라고 하며 개인의 욕심을 보이지 않았던 반면, 이철희 전 소장의 경우에는 [[http://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1174997|'지역구 출마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13분 25초부터)라고 발언하며 낙선의 위험을 안아야 하는 지역구보다 대적으로 당선이 수월한 비례대표를 노리고 있던 것 때문에 이미 정치 세계에 대해서 알 만큼 알고 있고, 또 [[썰전]] 등을 통해 충분한 인지도와 지지를 확보한 사람이니 지역구 선거로 나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에서 당무를 맡게 된 이후의 공천 잡음과 관련되어 있지 않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입당 직후 [[https://www.viewsnnews.com/article?q=128501|문재인 의원의 부산 공천]]을 주장해서 논란을 만들기도 했고[* 대권주자 또는 당의 핵심인원으로 전국에서 선거지원 활동을 나서야 하는 인물들을 지역구 선거에 투입할 경우 지역구 선거유세에 발이 묶이기 때문에 전국지원유세에 악향을 미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 볼 수 있다.], 2월 초에는 '[[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60205100351001&mobile|막말, 운동권 공천 배제]]'를 주장하였는데 [[정청래]] 의원의 공천 배제의 가장 큰 근거가 된 게 '막말'이었으며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대거 공천 배제당하다보니 이철희 전 소장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산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년 비례대표 논란이 있는데, '더벤저스'라고 불리며 당내 활동에 적극적이던 입 인사인 [[http://m.moneyweek.co.kr/view.html?no=2016031507208018613|김빈 디자이너가 예심에서 5분 면접 후에 탈락]]당한 반면, [[http://news.donga.com/ISSUE/Vote2016/News?m=view&gid=77018257&date=20160315|더민주 당직자가 첨삭지도를 해 준 것]]과 [[http://mnews.joins.com/article/19388510|과거 국민의당 발기인]]이었던 황임에도 청년비~~리~~례대표 결선대자로 지정되어서 논란이 된 최유진 예비 후보가 이철희 전 소장의 대학원 시절 제자라고 밝혀지면서 '자기 사람 끼워넣기'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김빈 디자이너는 비례대표 심사 이전에 비례대표 예비후보로서 자신을 홍보하면서 자신의 본명인 '김현빈'이 아닌 예명 '김빈'이라는 이름을 쓴 적이 있다. 본명을 기재하지 않았다면 선거법 위반 사항이다. 이것 때문에 탈락했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비호감에 쐐기를 꽂아버리는 발언이 발생했는데, 첫 번째는 [[http://gosunggo.com/693|박선 의원과의 녹취록 논란]]이고, 두 번째는 [[유시민]] 씨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밝힌 [[http://m.hani.co.kr/arti/politics/assembly/735001.html|'특정 지인을 지역구에 꽂아주기 위해 인원을 컷오프했다. 그 배경에 박선, 이철희가 있다']] 라는 내용.[* 유시민 작가는 불만이 있으면 자신에게 소송을 걸라며 당당하게 주장을 하긴 하였으나 민주당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인지라 더민주 내부 황을 얼마나 잘 아는지 의문스럽고 또 정황 증거만 제시할 뿐 확실한 황 증거는 내놓은 게 없다. 게다가 공개적인 토론 장소에서도 '새누리당 다음으로 싫어하는 정당이 더민주'라고 할 정도인 데다, 그때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정의당과의 당 대 당 야권 연대 방침을 철회하면서 정의당으로서는 지역구에서 궤멸당할 위기에 처했던 황이기도 했다. 사적인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인 판단으로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해당 발언의 사실성을 떠나서 민주당을 떠난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친분이 있는 인사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 의원과도 친분이 있었다. 특히 소위 친노 인사들과는 당연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민주당 내 주류가 친노라는 점에서 유시민 씨가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모를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러한 장대한 논란 거리를 만들어내다보니 [[박선]], [[이종걸]] 의원과 함께 당내의 어그로 지분을 확보했다.
         3월 15일, 이러한 루머들에 대해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190562&CMPT_CD=Mnew#cb|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간단히 말한다면 자신은 공천에 향을 주지 못하며, [[박선]] 문서에 적혀 있기도 한 녹취록 건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며 그 당시 이야기한 내용은 외부 황의 심각함과 기자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고. 후에 유시민 작가도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다.
         비례 대표 당선 이후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정권교체와 더불어 세대교체, 정치교체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 이를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은 안 지사뿐"이라며 "안희정은 품이 넓고 싸가지 있는 진보"라고 말했다. 진을 넘어선 협치와 대연정을 강조하는 안 지사의 원칙에 동의한다"고 밝히며 안희정 캠프에 합류하였다.
  • 풍운 . . . . 75회 일치
         [[홍콩]]의 만화작가 [[마성]]의 만화. 마성의 전작 [[중화웅]]의 정신적 후속작 격으로서, 보경운과 섭풍('풍운'으로 요약된다.) 두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두 주인공, 보경운과 섭풍, 그리고 웅패와의 대립이 주된 줄거리. 였다가 중간에 중원 정복을 노리는 동 무사들이 끼어들면서 동과의 대결이 중심이 된다. 절무신, 천황 등을 쓰러뜨리고 동세력은 궤멸된다. 그러나 섭풍은 마도(魔刀)를 익혔다가 그만 마인(魔人)이 되어버려서 마도에 빠진 섭풍 때문에 천하가 멸망할 위기가 오고, 이를 막기 위해서 보경운이 나서게 된다. 치열한 싸움 끝에 보경운은 섭풍의 마인 태를 풀어주는데 성공하지만, 절벽에 떨어져서 실종되면서 마무리 된다.
         '''동 - 절무신 침공 편'''
         동 제일의 무사 절무신과의 대결. 절무신의 아들 절심을 가짜 황제로 둔갑시켜, 절무신은 중원의 제위를 얻으려고 한다. 보경운과 섭풍, 무명은 단지 사적인 원한이 아니라 우국충정으로 동 무사 일당과 싸우게 된다.
         '''동 - 절무신 패망 편'''
         납치된 황제를 쫓아서 절무신의 본거지인 동으로 가는 보경운과 무명 일행, 동의 지배자 '''천황'''(!)은 무명과 풍운을 이용하여 절무신을 제거하려 한다. 하지만 천황에게는 또 다른 꿍꿍이가 있었는데.
         '''동 - 천황 편'''
         천황은 패망하였지만, 섭풍은 아직 세뇌당한 태로 떠돌고 있었다. 황제는 섭풍으로부터 황제(黃帝)의 등뼈를 되찾으려 하고, 보경운은 섭풍을 정으로 되돌라려고 한다. 결국 치열한 전투 끝에 마인이 된 섭풍은 보경운에 의해서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보경운과 섭풍은 함께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보경운은 섭풍을 구출하고 자신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종되고 만다.
         보경운을 찾는 회공, 회멸 형제의 등장으로 시작. 보경운은 기억실에 빠져 있다가 복귀하며, 불사신 제석천과 천문과의 싸움이 주된 줄거리다가, 제석천이 살해당하고 단랑이 최종보스로 등극. 풍운은 단랑과의 대결 끝에 단랑을 쓰러뜨리지만, 보경운은 섭풍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얼음 속에 파묻어 버리고 냉동인간 태로 10년의 세월이 흐르게 된다.
         당초에는 흡사 '''분노조절장애'''를 연케 하는, 잔인하고 과격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나, 만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정신적으로 성장해서 침착하고 진중해진다. 다만 웬만해서는 미친듯이 날뛰지만 않게 되었을 뿐, '죽음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잔혹함이 있는 성품은 여전하다. 분노조절장애가 심했을 때는 말을 타고 가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장에 패죽이는(…) 과격함이 특징.
         보경운과 비교해서 대적으로 '평소에는' 착한 인물로 보이며, 실제로 이 만화에서 독보적인 인성갑이다. 하지만 내면에는 살육충동이 있어서 빙심결을 사용하여 억제하고 있다는 설정도 있으며 1부 막판에는 마도에 빠져서 거하게 폭주하는 등. 여러모로 복잡한 캐릭터. 선풍퇴를 통하여 경공술이 뛰어나다는 것이 부각되어 후반부에는 '바람의 신'으로 불리게 된다.
         회공이 나중에 사부의 복수를 위해서 연철수를 연마하기 위해 제석천을 찾아가 천문과 엮이게 되면서, 천문 스토리가 시작된다. 제석천의 정체를 알게 되자 대가 안됨에도 제석천과 필사적으로 대결을 벌이게 되고, 제석천을 경악하게 만들 정도의 연철수의 위력을 보여주지만, 결국 제석천에게 죽음을 맞고 만다. 회공의 죽음을 보고 보경운이 '회형제'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감명을 받을 정도로 감동적. 정말 이 만화에서 보기 드물게 순수하고 올곧은 청년이라 회공의 죽음은 감명이 깊다.
         회공의 친구. 어린 시절에는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머니에게 [[개]] 취급을 당하다가 버림 받고 [[거지]]가 되어버렸다. 동네에서도 사람들에게 인간이라기보다는 들개 취급을 받으며 살았으며, 어느날에는 개밥을 훔쳐 먹다가 부잣집 개를 물어죽이는데, 그 보이라면서 부잣집에서는 그를 [[사냥개]] 대신으로 삼아서 붙잡아 기르게 된다. 그러다가 사냥터에서 함정에 빠져서 죽을 뻔 했는데, 지나가던 회공이 구해줘서 살아나게 된다.
         초반부의 보스. 천하무림을 통일한 천하회의 회주. 배운장,선풍퇴,천권을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이 세가지를 하나로 합친 융합무공까지 사용한다.
         웅패가 풍운에게 패배하자 웅패를 배신, 천하회를 장악하고 도리어 웅패를 추적한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동 고수들에게 패배하고 천하회는 멸망한다.
         배검산장-절세호검편에 등장. 간사한 외모를 가진 검법가. 자신의 무공에 맞는 검을 찾는데 집착하고 있으며, 좋은 명검을 받는 대신에 마누라를 검마에게 넘겨줄 정도(…)로 검에 극도로 집착한다. 그 만큼 검을 보는 안목은 대단히 높다. 하는 짓을 보면 개그 캐릭터 같지만 당한 강캐였는데, 배검산장 편이 끝나고 동편 중반부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삭제당해서 검마와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무명에 필적할 정도의 고수. 현재 배검산장을 지배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손가락에서 그냥 빔을 쏘는 거지만 검기를 쏘는 거니까 검술이라고 주장하는(…) 단맥검기를 무공으로 사용한다. 배검산장 편의 최종보스로 엄청난 무공을 자랑했으나, 동편 중반부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삭제당해서 사형제인 검빈과 나란히 목이 데롱데롱 달려다니게 된다(…).
         동(일본)의 고수. 과거에 한 번 중원을 침공하려 했으나, 무명에게 막혀서 돌아갔다. 이후 끈질기게 나오는 동계 악역의 시초격. 중원 탈취를 노리고 있으며, 몸이 그야말로 무적이 되는 무공 '불멸금신'을 익히고 있다. 불멸금신의 미친 방어력과, 10대 문파 장문인의 협공을 일격에 토막내는 압도적인 무력이 특징.
         후반부 보스. 부여국의 왕. 일단 동과 비슷하게 여러모로 왜곡되기는 했으나 한국계를 모델로 하고 있어서 국내에서 인기가 높다. 무공도 뛰어나지만 지략도 인품도 뛰어나서 카리스마가 대단한 인물. 중원정복을 위해서 조이 봉인해둔 동방창룡의 무공을 얻으려고 했고, 이를 위해서 계략을 써서 무명을 제압하고, 풍운을 납치해온다. 하지만 동방창룡의 무공이라는게 후손을 낚기 위한 페이크(...)였고 허무하게 주화입마에 걸려서 죽고 만다.
         검성이라 불리는 만큼, 본래 검술 뿐만 아니라 인품으로도 존경받던 인물. 하지만 초반부터 당히 깨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냉정하게 말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일은 많이 하고 다녔지만, 실제 인성은 거의 레기(…)에 가깝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유닛 . . . . 74회 일치
          * Reserves(예비): 방어 지원과 비슷하다. 차이라면 지정 대이 인근 프로빈스 전부라는 것.
          * Strategic Redeployment(전략적 재배치): 기차를 이용한 병력수송. 잠시동안 사라졌다가 지정한 아군 프로빈스에 나타난다. 조직력이 약간 깎인다. 부대를 먼 곳에서 불러올 때 쓰인다. 전략적 재배치 도중 목적지에 갈 수 없는 황이 되면 수도로 목적지가 변경된다. 이를 이용해 먼곳에 있는 부대를 수도로 워프시킬 수 있다.
         >민병은 값싸고 빠르게 편성되는 보병 부대입니다. 훈련을 대강 받았고 장비도 형편없기에 전투에서 쓸모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지역을 통제하거나 운용 가능한 부대가 없는 황에서 최종 방어선을 짜는데는 유용합니다.
         우천 날씨, 강 지형, 도하, 륙 작전 등에 특화된 보병. 다른 사단들은 륙 작전 패널티가 최소 40% 나오는데 해병만 '''겨우''' 20%가 나온다. 특수 보병 특유의 긴 생산 시간을 가지고 있다.
         >사령부는 당신 군대의 두뇌입니다. 사령부에는 군대가 잘 돌아가도록 유지해주는 참모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근처 부대의 전투 능력을 향시키지만 자체적인 전투 능력은 열악하기에 보호하는게 권장됩니다.
         >초중포 제대는 방어 병력을 깨부수거나 적 전선에 거대한 구멍을 내는데 필요합니다. 이들은 요새화 된 적을 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장갑차는 바퀴달린 차량으로, 보통 얇은 장갑을 두르고 평균적인 화포를 장비했습니다. 이들은 당신의 부대가 소프트 타겟을 대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수송 트럭과 후방 병력 대로 효율적입니다.
         >구축전차는 일반 전차와 비슷합니다. 차이점은 회전 포탑이 없고 장갑의 대부분이 전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당신의 부대가 적 기갑 부대와 같은 하드 타겟을 대하는 능력을 늘려줍니다.
         >경전차는 당신의 부대가 적 기갑 부대와 같은 하드 타겟을 대하는 능력을 늘려줍니다. 경전차는 빠르고 회피에 능하기에 비교적 굼뜬 중전차가 파괴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기동성을 이용해 중전차 측면과 후방의 장갑이 약한 부분을 타격합니다.
         >이 전차들은 지 뿐만 아니라 물 속에서도 다닐 수 있습니다. 특히 수륙양용 작전에 좋습니다.
         대보병 공격력을 늘려주고 공방 방어력을 늘려준다. 성능은 경전차 여단보다 약간 딸리지만 도하와 륙작전의 패널티를 줄여주는 특성이 있다.
         >중전차는 당신 부대의 하드 어택과 소프트 어택에 당한 증가량을 줍니다. 적 전선을 돌파하는 순간의 중전차는 파괴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전차는 당신 부대의 이동속도를 느리게 하며 엄청난 양의 보급품과 연료를 소모합니다.
         많은 양의 대전차 공격력과 약간의 대보병 공격력을 늘려주고 공방 방어력을 늘려준다. 툴팁과 달리 이동속도에 향을 주지는 않는다. 비싸고 연료를 잔뜩 퍼먹는다.
         엄청난 양의 대전차, 대보병 공격력을 늘려주고 공방 방어력을 크게 늘려준다. 툴팁과 달리 이동속도에 향을 주지는 않는다. 비싸고 석유를 잔뜩 퍼먹는다.
         주둔한 공군 기지가 적 육군에게 점령되면 주둔하고 있던 공군 부대들은 몰살당한다. 위험한 것 같으면 미리 대피시켜두자. 공군 부대의 대다수가 생산에 무지막지한 공업력을 퍼먹으므로 실수로 날려먹었다면 정신적으로 당한 충격이 온다.
         기 태에 따라 작전 수행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 Ground Attack(지 공격): 1913년 연구인 "폭탄 투하 전술"을 연구하면 해금. 목표 지역의 적 육군 부대를 공격, 전력을 깎는다. 공격 대은 목표 지역 내 제일 적은 적군이 주둔한 프로빈스다. HOI2 바닐라 때는 이걸로 행군중인 사단을 몰살시키거나 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 Ground Support(지 지원): 1916년 연구인 "근접 항공 지원 발"을 연구하면 해금. 목표 지역의 적 육군 부대를 공격, 조직력을 깎는다. 공격 대은 목표 지역 내 제일 적은 적군이 주둔한 프로빈스다.
          * Strategic Bombardment(전략 폭격): 1917년 연구인 "전략 폭격기 발"을 연구하면 해금. 목표 지역의 적 공장을 폭격해 공업력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린다. 공격 대은 목표 지역 내 제일 적은 적군이 주둔한 프로빈스다.
          * Logical Strike(병참 타격): 1916년 연구인 "전술 폭격기 발"을 연구하면 해금. 목표 지역의 적 산업기반을 폭격해 레벨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린다. 공격 대은 목표 지역 내 제일 적은 적군이 주둔한 프로빈스다.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74회 일치
          * 위항목: [[K리그 클래식]]
         || 우승금 || 5억원 ||
         대한민국 축구리그 중 최위 리그로써 34번째 대회로 정식 명칭은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이다. 후원사는 현대오일뱅크.
         [[무 프로축구단]] - [[K리그 챌린지/2015시즌|2015시즌 K리그 챌린지]] 우승자격으로 승격
         || 6 || 2016.03.13 || 무 vs 울산 현대 || 2 : 0 ||
         || 11 || 2016.03.20 || FC 서울 vs 무 || 4 : 0 ||
         || 13 || 2016.04.02 || 수원 삼성 vs 무 || 2 : 1 ||
         || 19 || 2016.04.09 || 무 vs 수원 FC || 1 : 1 ||
         || 29 || 2016.04.13 || 제주 Utd vs 무 || 4 : 2 ||
         || 34 || 2016.04.16 || 무 vs 포항 스틸러스 || 2 : 0 ||
         || 41 || 2016.04.24 || 무 vs 전북 현대 || 2 : 2 ||
         || 47 || 2016.05.01 || 전남 드래곤즈 vs 무 || 3 : 4 ||
         || 51 || 2016.05.05 || 광주 FC vs 무 || 1 : 0 ||
         || 59 || 2016.05.15 || 무 vs 인천 Utd || 4 : 2 ||
         || 61 || 2016.05.21 || 무 vs 성남 FC || 2 : 3 ||
         || 72 || 2016.05.29 || 전북 현대 vs 무 || 3 : 2 ||
         || 73 || 2016.06.11 || 울산 현대 vs 무 || 1 : 0 ||
         || 79 || 2016.06.15 || 무 vs 제주 Utd || 4 : 0 ||
         || 89 || 2016.06.19 || 무 vs 전남 드래곤즈 || 0 : 0 ||
         || 96 || 2016.06.26 || 수원 FC vs 무 || 0 : 0 ||
  • 전여옥 . . . . 74회 일치
         |배우자 = 이
         |경력 = [[한나라당]] 대변인<br/>[[외교통일위원회|국회 외교통통일위원회]] 간사<br />[[한나라당]] 최고위원<br/>[[한나라당]] 국제위원장<br/>제2대 [[한국여자야구연맹]] 회장<br/>[[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장<br/>[[국민생각]] 대변인<br/>[[한국여자야구연맹]] 고문<br />[[서강대학교]] 겸임교수
         |지역구 = [[서울 등포구의 국회의원|서울 등포구 갑]]
         |웹사이트 = [http://www.oktalktalk.com/ 공식 사이트] <br /> [http://blog.oktalktalk.com/ 전여옥 블로그] <br /> [http://blog.naver.com/mymyday 전여옥 네이버 블로그] <br /> [https://twitter.com/okstepup 전여옥 트위터]
         [[1981년]] [[한국방송공사]]에 입사하여 [[1994년]]까지 기자로 활동했고,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일본과 마초이즘에 대한 비판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2004년]]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내며 노무현 정권 당시 정부와 여당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다. 제18대 총선거에서 한나라당 등포구 갑의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되어 제17·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2년 3월에는 당의 공천과정에 반발, 탈당한 뒤 [[국민생각]]에 입당했다.
         * 2008년 5월 ~ 2012년 5월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등포구갑 / 한나라당 → 새누리당 → 국민생각)
         1981년 [[한국방송공사]]에 입사하여 1994년까지 기자로 활동했다. 1991년 1월부터 1993년 8월까지는 도쿄특파원이었다. 특파원시대에 쓴 독설적 일본론 《[[일본은 없다]]》를 냈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은 없다]]》의 표절의혹을 제기한 원작가인 [[유재순]] [[제이피뉴스]] 발행인 등 5인에 대해서 손해배으로 5억원을 청구하였지만, 2012년 5월 18일 대법원 확정판결로 유재순씨의 레포트를 표절한 것이 인정되어 패소했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newsview?newsid=20120518060109739 '표절시비' 전여옥, 언론 대 손배訴 대법서 패소] [[뉴시스]] 2012.5.18</ref><ref>[http://media.daum.net/politics/clusterview?newsId=20120518111515384&clusterId=578748 전여옥, 표절 책으로 얼마나 벌었나 했더니…] [[한국일보]] 2012.5.18</ref> 이에 대해 전여옥은 '표절이 아닌 아이디어 인용'일 뿐이라고 변명하였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20518125412177&p=mediatoday 전여옥 “표절 아니라 아이디어 인용일 뿐”] [[미디어오늘]] 2012.5.18</ref>
         2004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2004년 5월 제17대 국회의원에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2004년 7월 제17대 [[대한민국]] 국회 통일외교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8년 3월 서울 등포갑에 출마했다. 2008년 4월 [[박근혜]]의 팬클럽인 박사모는 전여옥의 낙선운동을 했다.<ref name="인권1">[http://www.cbs.co.kr/Nocut/Show.asp?IDX=794156 노컷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4월 6일 [[박사모]]는 전여옥의 낙선을 위해 민주당 후보인 [[김주]]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언론에 발표하기도 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8040610580120426&outlink=1 박사모 "전여옥 퇴출 위해 민주당 지지" - 머니투데이:투자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2008년 5월 등포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2008년 한나라당 국제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8년 국회 연구단체 미디어정치2.0 활동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19592 55개 국회의원연구단체 명단 - 오마이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2008년 12월 국민일보 20주년에 축사를 보냈다.<ref>[http://www.kukinews.com/news2/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124081&cp=nv [쿠키뉴스]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등포 갑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통합민주당이 공직선거법 위반(허위 학력 및 경력 기재 등)으로 고발했지만 대법원의 원고패소 판결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ref>{{뉴스 인용|제목=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의원직 유지"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9&oid=122&aid=0000012905|출판사=법률신문|날짜=2008-11-14|확인날짜=2009-03-05}}</ref> 제18대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8년 5월 8일 [[한미 쇠고기 협 내용에 대한 반대 시위|촛불 시위]]에 대해 '악령이 출몰하는 사회'([[칼 세이건]]의 문구)로 비유, 시위대를 비난하는 논평을 냈다.<ref>{{뉴스 인용|제목=전여옥,'광우병 논란, 악령이 출몰하는 세'|url=http://www.freezonenews.com/news/article.html?no=26583|출판사=프리존뉴스|날짜=2008-05-08|확인날짜=2009-03-05}}</ref>
         2009년 2월 27일 [[대한민국 국회]] 본관 1층 복도에서 [[동의대학교 사건]]에 기인한 그의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 등에 관한 법률' 개정 추진으로 항의차 국회를 방문한 부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대표 이 모 할머니에게 폭행당했다.<ref name="오마이1">{{뉴스 인용|제목=전여옥, 국회서 폭행 당해 |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81383|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9-03-04|확인날짜=2009-03-06}}</ref> 당시 국회는 국회 사무총장 [[박계동]]이 국회 본청 출입제한조치를 한 시점이었다.<ref name="시사">[http://sisa-issue.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396297&g_menu=050220 전여옥 폭행 사건, '진실게임' 양] 시사이슈 2009년 03월 01일</ref> 폭행 이후 전여옥은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전여옥 의원측에서는 "집단에게 폭행당했다"고 주장했으며, 석방대책위 측에서는 "사건은 불과 20초 동안 일어났으며 집단폭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ref name="오마이1"/> 가해자 이모씨는 밀쳤지만 때리지는 않았다며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고, 민주화운동정신 계승 국민연대(국민연대)도 28일 성명서를 통해 전 의원이 사건을 왜곡하고 있다며 경찰이 확보한 CCTV 공개를 요구했다.<ref name="시사"/>
         당시 국회에 견학온 한 고등학생이 사건 장면을 핸드폰으로 촬한 동이 있다고 알려진 뒤, 동이 수사기관에 확보되어 경찰이 분석중에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검찰, '국회 폭력사건' 수사 속도전‥관련자 줄소환|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5&oid=214&aid=0000097063|출판사=MBC|날짜=2009-03-04|확인날짜=2009-03-05}}</ref> [[서울특별시|서울]] 순천향병원에서는 [[한겨레]] 등 언론사와의 기자회견에서 전여옥이 전치 8주의 해를 입었다고 밝혔다.(최초3주진단 1주일후 8주로 변경됨) <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42657.html 주치의 “전여옥 의원 8주 치료 필요…마비성 사시”- 한겨레 2009-03-06]</ref>
         또한 같은 날 민가협 등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구속이 부당하다며 제기했던 구속적부심은 기각됐다.<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084807 법원 "민가협 대표, 구속이 적법하다"- 노컷뉴스 2009-03-06]</ref> 또한 경찰은 전여옥 폭행 용의자 4명에 대해 10일까지 경찰에 출석하도록 통보했다. 앞서 5일에 용의자 중 한 명이었던 배씨(34, 여)는 혐의점을 찾지 못해 귀가 조치된 바 있었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218117 '전여옥 폭행' 용의자 재소환 통보-아시아투데이 2009-03-06]</ref> 일부 네티즌들은 전여옥 폭행사건에 대해 "'전치 8주지만 부은 경미하다'고 밝힌 의료진의 발표를 이해할 수 없다", "70대 할머니가 전치 8주의 해를 입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는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084417 "할머니가 원더우먼이냐?" vs "전의원 테러 당했다" - 노컷뉴스 2009-03-06]</ref> 석방대책위 측에서는 경찰에 국회 CCTV 화면 공개를 요구했으나, 경찰측에서는 CCTV 화면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책위 등에서는 "경찰이 객관적 증거도 내놓지 못하면서 전의원 주장만 따른다"고 비판했다.<ref name="시사"/><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02145537 "경찰, '전여옥 폭행' CCTV 왜 공개 못하나" - 프레시안 2009-03-02]</ref> 전여옥은 바로 병원으로 입원했다.
         한편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이 사건을 "국회의원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반면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이 용산참사 진조사중 폭행당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것이며, 당시 경찰들은 그가 국회의원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원일 의원은 진조사는 국회의원의 법률 직무이며, 처음부터 경찰에게 국회의원임을 밝혔다며 강하게 항의했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0306155323 "전여옥 사건은 일반인 테러…유원일 사건은 공무집행방해"? -프레시안 2009-03-06]</ref> 또 [[조중동]]이 이번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편향적인 보도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21848051&code=210111
         "김정일이 껴안아 주니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치매 든 노인처럼 얼어서 서 있다가 합의한 게 6·15 선언"이라고 비난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81695 전여옥 의원, 4년 전 '100분토론'을 잊었나요?] - 오마이뉴스</ref> "6.15 선언은 실패라고 이야기한 것은 사실이다. 전쟁이 끝난다고 했는데 핵무기가 나왔으니 실패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공항에서 열렬히 환하는 것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흥분해 자구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는 말 정도를 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ref>[http://search.ytn.co.kr/ytn_2008/view.php?s_mcd=0101&key=200602232022011596&q=%C0%FC%BF%A9%BF%C1%2C+%27DJ+%C4%A1%B8%C5%B3%EB%C0%CE%27+%B8%B7%B8%BB+%C6%C4%B9%AE 전여옥, 'DJ 치매노인' 막말 파문]</ref>
         전여옥은 2007년 자신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인 《[[일본은 없다]]》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오마이뉴스]] 기사<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92201 "감옥갈 각오로 '표절' 진 밝혀낼 것" <nowiki>[일본 현지인터뷰]</nowiki> 유재순씨가 밝힌 <일본은 없다> 표절의혹] [[오마이뉴스]] 박철현(tetsu) 2004년 6월 17일, 2010년 1월 16일 확인</ref> 와 관련하여, [[제이피뉴스]] 발행인 [[유재순]]과 기사를 작성한 오마이뉴스의 [[박철현]] 기자, 편집장 [[정운현]], 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 그리고 인터넷 정치평론 사이트인 [[서프라이즈 (웹사이트)|서프라이즈]]의 논객 [[김동렬 (논객)|김동렬]] 등 5명을 대로 낸 5억 원의 손해배 명예훼손 손배청구의 소를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인용문|전씨는 친하게 지내던 유재순씨가 일본에 대한 책을 출간하려고 초고를 작성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유씨로부터 들은 내용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인용해 《일본은 없다》의 일부분을 작성했다고 보인다. … 이 같은 결론이 유씨와 가까운 증인들의 진술에 근거하기는 하지만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넘어 유씨의 취재 자료나 초고가 남아 있지 않은 황에서 유씨 측 증거가 전씨 측 것보다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 오마이뉴스의 기사 및 칼럼은 전체적으로 진실한 사실로 볼 수 있고 공익성이 인정되므로 전씨의 손해배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전여옥은 1심에 불복하여 항소했으나, 2010년 1월 13일 다시 패소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부장판사 여훈)는 13일 전 의원이 <일본은 없다>에 표절 의혹을 제기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르포작가 [[유재순]]을 대로 낸 5억원의 손해배 청구소송에 대해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08년 4월 민주당 후보자였던 [[김주]]는 전여옥의 허위 학력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2046055 김주,'전여옥 의원의 학력,경력사항은 허위사실입니다'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ref>[http://www.kukinews.com/news2/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920872939&cp=nv 4·9 끝났지만… 고소·고발 이제부터 시작 (국민일보) (쿠키뉴스) 2008년 04.11일자]</ref>
  • 한가인 . . . . 74회 일치
         | 학력 = [[경희대학교]] 관광경학과 졸업
         | 웹사이트 =
         한가인은 2002년 [[아시아나항공]] 광고 모델로 데뷔해 드라마 《[[애정의 조건]]》, 《[[신입사원 (드라마)|신입사원]]》, 《[[나쁜 남자 (드라마)|나쁜 남자]]》, 《[[해를 품은 달 (드라마)|해를 품은 달]]》, 화 《[[말죽거리 잔혹사]]》, 《[[건축학개론]]》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였다. 2018년 4월 드라마 《[[미스트리스 (2018년 드라마)|미스트리스]]》로 지난 2012년 《[[해를 품은 달 (드라마)|해를 품은 달]]》 출연 이후 6년 만에 컴백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한가인, 6년 만에 드라마 복귀 "'미스트리스' 출연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337295|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정하은 |날짜 = 2018-01-05 |확인날짜 =2018-04-17 }}</ref>
         2013년 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VIP 시사회에서 한가인.
         * [[경희대학교]] 관광경학과 졸업
         | 주
         === 화 ===
         | 포털사이트 서비스
         | (주)배면주가
         | 동아백화점 품권
         | 품권 서비스
         | [[이나]], [[송혜교]], [[한지민]]
         | rowspan="2"| 대그룹
         == 수 및 후보 ==
         ! 시
         | rowspan="3"| [[KBS 연기대]]
         | 여자 신인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7312 '장희빈' 김혜수, KBS 연기대]</ref>
         | 여자 우수
         | rowspan="2"|<ref>{{웹 인용|url=http://www.kbs.co.kr/drama/2013award/fame/history/|제목=KBS 연기대 히스토리|출판사=[[KBS]]|확인날짜=2014-02-24}}</ref>
  • 김영인(탤런트) . . . . 73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대인배/인물]]''', [[까임방지권]], [[밈]]
         || 이름 ||<(> 김인(金永寅) ||
         || 신체 ||<(> 177cm[* 야인시대 57화 에서 보면 알겠지만 175cm인 박헌 역할을 맡은 [[임병기]]보다 조금 큰 것을 알 수 있다.] 73kg ||
         || 경력 ||<(> (사)한국화배우협회 감사[br](사)한국화인총연합회 감사[br](사)한국문화예술인단체총연합회 대의원[br]새길건설 대표이사 ||
         >'''고맙소, 고맙소, 동무들! 학생들은 조국의 미래요! 주변의 친구나 동무들을 많~이 데리고 오시오! 입장료가 없으면 말을 하시오! 누구든 도와주겠소![br]이번에 소개할 분은 여러분들께서 저엉~말로 기다리던 분들이십니다! 이 연극의 주인공, 본인 심과 무뇌봉 동무를 소개합니다!![br][[내가 고자라니|이보시오! 이보시오, 으사양반![br]뭐라고...? 전화가 없다고? 아니, 그보다도… 조금 전에 뭐라고 했나, 날 보고 성불구자가 된다고? 고자가 됐다, 그런 말인가? 고자라니! 아니, 내가 고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에잇 고자라니!! 내가, 내가 고자라니이이이이!!! 내가...! 어헣하하핳으...(안 돼... 안 돼! 내가 고자라니... 말도 안 돼! 김두한이 이 놈... 이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허헣허허허...! 말도 안 돼...!)[br]이 반동노무 새끼들... 경찰이 아니라 모두가 김두한이하고 한패들이야![br]안! 하겠소! 닷씨는 안 하겠소!!]]'''
         >주인공 못 단 배우라고 다 불행한 게 아니듯, 인생 또한 주인공이 되어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원하던 배우 일을 하다 [[심(야인시대)|한 번은 유명해졌고]] 사업을 조그맣게나마 흔들림 없이 지켜왔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부끄러울 일을 하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충분히 잘 살았다 생각합니다. 전 무대의 주역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연기 대은 이런 분들한테 줘야 한다! 단 40초의 연기로 8년 넘게 사람들한테 기억될 수 있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들 마음 속의 원한 [[심(야인시대)|심]] 동무.'''
         == 세 ==
         출연작은 2002년작 '''[[야인시대]]''', 2005년작 [[남기남]] 감독의 '바리바리 짱'과 2006년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 '자이언트'(이 [[SBS]]), [[조선왕조 오백년]], [[웅시대]](이 [[MBC]]) 등이 있으나...
         '''그 중 [[SBS]] <[[야인시대]]>의 [[심(야인시대)|심]] 역이 [[내가 고자라니|가장 유명하다.]]'''[* 여담으로 저 침대에 누운 장면만 본 사람은 [[박철]]이 연기한 게 아니냐고 착각했다고 한다. 확실히 저 장면 만큼은 확실히 많이 닮았다.]
         배우 본인은 [[내가 고자라니| 좋지 않은 배역]]이 [[디시인사이드|DC]] [[합필갤]]을 통해 유명해진 것을 전혀 몰랐다가 우연히 보험설계사를 통해(!) 알고 꽤 충격을 받은 듯. 혹시 누가 자신을 진짜 성불구자로 오인해 물어볼까 두렵다고 했다([[http://news.nate.com/view/20100326n07929|인터뷰 기사]]). 동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명예훼손 등의 법적인 저촉 사항이 되는지 법률 자문을 신청해 놓았다고 한다. 아마 본인보다는 부모님이나 아내, 외동딸이 (패드립을 당하고) 처를 입을까봐 염려하는 모양이다. 인터뷰 이후 합필갤에선 [[심(야인시대)|심]] 합성 작품 일부가 삭제되는 등 심의 합성물 관련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당한 논란 끝에 일단 고자와 관련된 합성은 자제하기로 잠정 결정되었고, 얼마 후 DC에서 주최하는 인터뷰 결과에 따른 결정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합성을 대범하게 넘어가면서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합성요소로서 생명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김인 씨 본인은 기왕에 합성을 할거면 합성을 했을 때 유쾌한 것들 위주로 또 합성을 할 때 주인공으로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 역시 "[[공산당]]을 싫어한다."라고 밝혔다. --공산주의자 한번 맡았다가 성불구자 취급 받았으니 어쩌면 싫어하는게 당연할지도--] 다만 합필갤러들은 김인씨가 충격을 받을수도 있는 [[붕탁]] 합성은 자제하기로 했다.[[https://youtu.be/N7WII_6MWts|김인 씨의 당부 ]]
         2017년 오랜만에 매체와 인터뷰를 가졌다. [[http://naver.me/FRMx9ZYc|#]] 여기서 본인의 명함을 공개했는데, 명함 뒷면에 심 출연 사진을 큼지막하게 붙여놓았다. --[[무뇌봉]] 동무도 있다--
         여담으로 야인시대를 찍은 '''2002~2003년 당시 49~51세'''였는데 심 을 보면 그렇게 나이가 들어보이질 않는다.[* 2018년 기준 67세임에도 야인시대 촬 당시보다 크게 늙지 않았다. 이는 김두한 역을 맡은 [[김철(배우)|김철]]도 마찬가지.]
         분명히 하자면, '''배우 김인 씨는 절대로 고자가 아니다. 고자는 야인시대에서 각색된 심이다.'''[* 실제 역사인물 심도 하복부에 총을 입었을 뿐 결코 고자가 되지 않았다.] 하필 남자들이 가장 수치스럽게 여기는 '고자'와 관련되어 유명해졌기 때문에, 드라마 야인시대의 실질적인 최대 피해자로 거론되곤 한다.
         허나 '내가 고자라니'처럼 일개 단역이 십수년간 인구에 회자되고, 세대 수준의 인지도[* 적어도 현 10~30대 중 심과 김인을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많을 것이다.]를 가지는 경우가 전무후무한 것도 사실이다. 야인시대 합성물도 일종의 팬 메이드 [[UCC]]인데, 김인과 같이 나와 합성되고 이 만들어지는 [[김철(배우)|김철]]을 제외하면, 한국 연예계의 톱스타들조차 김인에게 대가 안 된다. 당장 단역은 고사하고, 당신이 2002년에 브라운관에 나왔던, 더 쳐서 당시 커리어 하이를 달리던 연예인 중 몇명이나 기억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10년이나 지난 후에 [[푸른거탑]]에 섭외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자. 현 30대가 섭외에 보다 더 힘을 낼 수 있게 되는 10여년 후까지 김인이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야인시대의 최대 피해자'라는 평이 달라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2010년 5월 28일 케이블채널 [[K STAR|Y-STAR]]에서 방송된 문희준 MC인 케이블 프로그램인 디시인사이드 쇼 1회에 특별출연 하였다. 심 합성물들을 소개시켜주시면서...
         DC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본업인 배우 외에도 건설업에 종사하는 듯 하다.[* 사실 한국에서 배우로만 먹고 살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서 소위 '히트 배우' 외에는 대다수 배우들이 투잡을 뛴다. 대학로에 가 보면 생계 유지를 위하여 알바를 하는 연극배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으니... DC뉴스의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연극화,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들어야 할 인터뷰이니 꼭 읽어보자.] 현재는 [[인천]] 청라지구에서 [[부동산]]을 운한다고 한다. [[http://cafe.naver.com/kimyi7111/|부동산 카페]].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 출연 이후에 TV 드라마에서 별 다른 작품이 없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알고 보니 2005년에 방송된 [[MBC]] [[드라마]] [[웅시대]] [[https://youtu.be/6_16CaCnU_g?t=4m52s|63부]]에서 천태산(정주)과 일제시대부터 함께한 짬밥 많은 중장비 수리공 삼총사의 일원 배역으로 잠시 출연하기도 하였다.
  • 문무왕 . . . . 73회 일치
         |출생지=[[경북도]]
         |사망지= [[경북도]] [[경주시]] [[감은사]] [[대왕암]]
         {{Cquote|어느 날 김유신의 맏누이인 [[창부인|보희]](寶姬)가 서형산(西兄山)<ref group="주">지금의 [[경북도]] [[경주]]의 [[선도산 (경북)|선도산]](仙桃山)</ref> 꼭대기에 올라 앉아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온 나라 안에 흘러 펼쳐지는 꿈을 꾸었다. 그녀는 잠에서 깬 뒤에 동생인 문명왕후에세 꿈 이야기를 했다. 문명왕후는 자신이 언니의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며 비단치마를 주었다. 며칠 뒤에 김유신이 뒷날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金春秋)와 축국(蹴鞠)을 하다가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김유신은 자신의 집으로 김춘추를 데리고 와서는 주연을 베풀며 맏누이인 보희에게 옷고름을 달게 했다. 하지만 보희는 마침 일이 있어서 나오지 못하고 동생인 문명왕후가 대신 나와서 바느질을 하였다. 김춘추는 그녀의 어여쁜 모습에 반하여 곧 청혼을 하여 결혼하였고, 그녀는 곧바로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뒷날 문무왕이 되는 김법민(金法敏)이다.|《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년}}
         [[진덕여왕]] 4년([[650년]])<ref group="주">[[진덕여왕]] 4년부터 [[신라]]의 독자 연호가 아닌 [[당나라|당]]의 연호를 쓰기 시작했다.</ref>에 [[당나라|당]]에 사신으로 파견돼 [[당 고종|고종]]에게 〈[[한국의 삼국시대 시가#치당태평송|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을 바쳤다. 고종은 이를 가히 여겨 법민에게 태부경(太府卿)이라는 벼슬을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5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4년(650)</ref> [[654년]] 아버지 [[김춘추]]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뒤 [[파진찬]]으로써 [[병부령]]직에 임명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1">《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년(661)</ref> [[655년]] 태자로 봉해졌다.<ref name="삼국사기-655>《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2년(655)</ref> [[태종무열왕]] 7년([[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김유신]]과 함께 5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멸망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7년(660)</ref> 이어 [[태종무열왕]] 8년([[661년]]) 부왕이 승하하자 곧 즉위하였다.
         원년([[661년]]) [[6월]] 중(喪中)이던 문무왕에게 당은 [[고구려]]를 치는 당군과 [[웅진도독부]]에 고립된 당군에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신라]]가 [[백제]] 부흥군(復興軍)을 진압하는데 나서줄 것을 거듭 요청해왔다. 평양으로 먼저 군량을 보내면 웅진으로 통하는 물자 수송로가 끊어질 것이고, 그 수송로가 끊어지면 [[웅진도독부]]의 당군들은 [[백제]]군에게 궤멸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왕은 8월에 직접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시이곡정(始飴谷停)으로 향했다. 그 길목에 있는 [[대전 계족산성|옹산성]](甕山城)에 주둔하고 있던 백제 부흥군을 9월 25일부터 공격하기 시작해 27일에 함락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1"/> 옹산성을 함락시키고 웅현성(熊峴城)을 쌓아 [[웅진도독부]]로 통하는 군량수송로를 다시 개통시킨 뒤, 주(上州) 총관(摠管) 품일(品日)과 일모산군(一牟山郡) 태수 대당(大幢)·사시산군(沙尸山郡) 태수 철천(哲川) 등이 이끄는 군사들이 [[우술성]](雨述城)을 쳐서 또 함락시키고, [[10월 29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당의 조문 사절을 맞이했다. 한편 [[평양]]을 포위하고 있던 [[소정방]]이 보낸 함자도(含資道) 총관(摠管) 유덕민(劉德敏)<ref group="주">《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대감(大監) 문천(文泉)이라 표기됨</ref>이 와서 문무왕에게 당군에 대한 군량 지원을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1"/> 왕은 이듬해 1월 [[김유신]]으로 하여금 수레 2천여 대에 쌀 4천 섬과 조(租) 2만 2천여 섬을 싣고 [[평양]]으로 가게 하였다. 이들 군은 이듬해 2월에 무사히 군량을 전달하고 귀환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2">《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2년(662)</ref>
         2년([[662년]]) 봄 정월에 당은 문무왕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주국(上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 [[신라]]왕으로 책봉했다. 2월에는 [[탐라국]] 임금 도동음률(徒冬音律)이 항복해 와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2"/> 이때 [[신라]]에서는 [[백제]]에 주둔하고 [[고구려]]를 치는 당군의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식량을 보내고 옷을 보내고 하느라 창고에 쌓아둔 양식은 고갈되고, 농사 때를 망쳐 백성들이 풀뿌리도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었지만, 반대로 [[웅진도독부]]에 있는 당군의 군량 창고에는 쌀이 남아돌다 못해 썩어나고 있었고 [[웅진도독부]]에서는 그 뒤로도 수시로 [[신라]]에 군량을 요구하였다. 3월에 내린 대사면령은 이러한 가운데서 오는 민심이반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정된다.{{출처|날짜=2018-06-27}} 7월 왕은 왕제(王弟) [[김인문|인문]](仁門)을 사신으로 당에 보내는 한편, [[웅진도독부]]의 당군은 지라성(支羅城)과 윤성(尹城), 대산(大山)과 사정(沙井)의 [[백제]] 목책을 깨뜨리고 [[신라]]군과 합세해 진현성(眞峴城)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신라]]의 군량수송로를 열었다. 8월<ref group="주">《[[동사강목]]》에는 7월로 표기됨</ref>에는 [[김흠순|흠순]] 등 19장군을 시켜 내사지성(內斯只城)의 [[백제]] 부흥군을 깨뜨렸고, 대당(大幢) 총관(摠管) 진주(眞珠)와 남천주(南川州) 총관 진흠(眞欽)이 병을 핑계로 한가로이 지내며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죄를 물어 처형하고 그 일족까지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62"/>
         3년([[663년]]) 봄 정월에는 [[서라벌]] 근교의 [[경주 남산신성|남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지었다. 또한 [[경주 부산성|부산성]](富山城)을 쌓았다.<ref name="삼국사기-663"/> 이보다 앞서 [[백제]] 부흥군은 662년 12월에 험준한 주류성(周留城)에서 주변에 평야와 강이 많은 피성(避城)으로 수도를 옮겼는데,<ref name="일본서기-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663년 2월에 [[김흠순|흠순]]과 [[김천존|천존]]은 백제 [[거열성]]을 쳐서 빼앗고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으며, 덕안성을 쳐서 1,070명을 목베는 등 [[백제]] 부흥군을 더욱 압박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63"/> 결국 부흥군은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갔고,<ref name="일본서기-663">《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2년(663)</ref> 왕은 이미 [[백제]]를 평정하였다며 유사에 명해 큰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식을 내려 주게 한다.{{출처|날짜=2018-06-27}} 한편 여름 4월, 당은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3">《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3년(663)</ref> 6월, [[백제]] 부흥군 내의 내분으로 [[복신]]이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신라]]는 곧장 [[백제]] 부흥군을 쳐서 진압하려 했고,<ref name="일본서기-663"/> 당에서도 [[웅진도독부]]의 장군 유인궤(劉仁軌)의 요청에 따라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가 40만 군사를 보냈고, 유인궤와 별장(別將) 두(杜爽), 새로 [[백제]]왕으로 임명된 [[부여융]] 등의 수군은 덕물도(德物島)를 경유해 수로로 곧장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3"/><ref name="의자왕-662">《삼국사기》 권제28 백제본기 제6 唐 高宗 龍朔二年(662)</ref> 문무왕 역시 [[김유신]]과 [[김인문]]·[[김천존]], [[화랑]] [[죽지랑]]을 위시한 28명(또는 30명)의 장군을 데리고 당의 손인사·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월 13일]]에 두솔성(豆率城)<ref group="주">문헌에 따라 두량이성(豆良伊城)·두릉윤성(豆陵尹城)·두곶성(豆串城)·윤성(尹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ref>을 함락했다. 문무왕은 [[왜인]]들에게 훈계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ref name="김유신-중">《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김유신 중</ref> 28일에는 백강 어귀에서 당의 수군과 [[백제]]·[[왜]]의 선단이 충돌한 네 번의 싸움 모두 [[백제]]·[[왜]] 선단의 궤멸로 끝났고, [[백제]]의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 한 척에 의지해서 [[고구려]]로 망명해 버렸다([[백강구 전투]]). 요충지인 가림성을 제치고 먼저 주류성을 치기로 결정한 나·당 연합군 지휘부는 9월 7일<ref group="주">《[[자치통감]]》에는 8일로 표기됨</ref>에 마침내 주류성을 함락시켰다.<ref name="일본서기-663"/><ref name="자치통감-663">《자치통감》 권201 唐紀十七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龍朔 3년(663)</ref> [[웅진도독부]]의 당군에게 의복을 공급해주고 겨울 11월 20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문무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논공행을 행했다. 앞서 당은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도독에 임명한 뒤,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오려는 문무왕을 향해 "평정을 마친 뒤 함께 모여 맹약을 맺으라"던 고종의 칙령을 들며 두 나라 사이의 맹약을 제의했다. [[신라]]는 임존성이 함락되지도 않은 황에서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출처|날짜=2018-06-27}} 결국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신라 관직)|이찬]] [[천존]](天存)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 (당나라)|유인원]](劉仁願)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백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ref name="삼국사기-664">《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4년(664)</ref> [[백제]] 부흥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泗沘山城)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ref name="삼국사기-664"/> [[백제 부흥운동|백제 부흥]]은 사실 종말을 고한다.
         백제를 멸망시킨 문무왕이 처음으로 고구려 공략에 나선 것은 문무왕 4년([[664년]]) 가을 7월, 왕제 [[김인문]]과 [[김품일]], [[한산주]](漢山州) [[도독]](都督) [[김군관]], 수약주(首若州) 총관(摠管) [[김문]] 등에게 [[일선주|일선]](一善)·[[한산주|한산]] 두 주의 군사를 이끌고 웅진도독부 소속 당병과 함께 돌사성(突沙城)을 쳐서 멸하면서부터였다.<ref name="삼국사기-664"/>
         6년([[666년]]) 4월에는 대신 김천존의 아들인 [[나마 (관직)|나마]] 한림과 김유신의 아들인 나마 [[김삼광|삼광]](三光)을 모두 당에 들어가 숙위하게 하였으며, 고구려를 없애고자 당에 군사를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6">《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6년(666)</ref> 12월에부터 당은 [[이세적|이적]](李勣)을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摠管)으로 삼고 사열소백(司列少常伯) 안륙현(安陸縣) 사람인 학처준(郝處俊)을 부장으로 삼아 고구려와 전쟁을 벌였는데,<ref name="삼국사기-666"/> 이때 고구려는 실권자였던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죽음에 이어 그의 아들들 사이에 형제 다툼이 벌어졌고, 이는 마침내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남생]]이 아우 [[연남건|남건]]과 [[연남산|남산]]에게 쫓겨 [[국내성]] 등의 성을 거느리고 당에 항복해버리면서 고구려 지배층의 내분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ref name="고구려-666">《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5년(666)</ref> 이 와중에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정토]]가 24명의 부하와 12성 763호 3,543명을 거느리고 항복해오자, 정토와 그의 부하들에게 옷과 양식, 집을 주어 서울 및 주·부에 안주시키고, 온전한 여덟 성에는 군사를 보내 지키게 한다.<ref name="삼국사기-666"/>
         8년([[668년]]) 2월 [[이세적|이적]] 등이 이끄는 당군이 고구려의 [[부여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함락시켰다. 이에 [[연남건|남건]]이 5만의 군사로 그 땅을 수복하려 애썼지만 설하수(薛賀水)에서 3만 명이 죽는 대패를 당하고 퇴각했다.<ref name="고구려-668">《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7년(668)</ref> 3월에 신라는 북방의 요충지였던 비열홀(比列忽, 비열성)에 주를 설치하고 파진찬 용문(龍文)을 총관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8">《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8년(668)</ref> [[6월 12일]]에{{refn|group=주|문무왕이 설인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유인궤가 신라군과 함께 평양으로 간 것이 5월이라고 기록돼 있다.<ref name="삼국사기-671"/>}} 당의 우(右相)<ref group="주">정확한 관직명은 요동도안무부대사(遼東道安撫副大使) 요동행군부대총관(遼東行軍副大摠管) 겸 웅진도안무대사(熊津道安撫大使) 행군총관(行軍摠管) 우(右相) 검교태자좌중호(檢校太子左中護) 주국(上柱國) 낙성현개국남(樂城縣開國男)이다.</ref> 유인궤가 당 고종의 칙명을 받들고 신라의 숙위 사찬 김삼광과 함께 당항진(党項津)에 도착하자 왕은 [[각간]] 인문을 보내 성대한 예식으로 맞이하게 했다.<ref name="삼국사기-668"/> 이에 유인궤는 약속을 마치고 신라의 선발군을 이끌고 고구려 땅인 천강(泉岡)으로 향하고, 문무왕 역시 [[6월 21일]]에 한성주에서 후발부대를 사열했다. 이때 신라군의 주요 장수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ref name="삼국사기-668"/>
         | '''비열성주행군총관(卑列城州行軍摠管)''' || 잡찬 숭신(崇信), 대아찬 김문(金文穎), 아찬 복세(福世)
         이때 대당대총관으로 임명된 대각간 김유신은 풍병(風病) 때문에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못하고 수도 서라벌에 남았고,<ref name="김유신-하">《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 하</ref> 일찍이 백제를 치는데 선두로 나섰던 여러 장수들이 모두 지도부의 요직을 맡아 고구려 공격에 나서게 되었다. 임명된 관직으로 추정한 진격루트는 한성주(한산주)와 비열주(비열홀주) 그리고 하서주(하슬라주) 세 곳으로, 수도 서라벌에서 조직된 군사들은 닷새 후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출처|날짜=2018-06-28}} [[6월 22일]]에 유인원이 신라의 귀간(貴干) 미힐(未肹)을 보내어 고구려의 대곡성(大谷城)과 한성(漢城) 등 2군 12성이 항복해왔음을 알렸고, 신라군 장수인 인문·천존·도유 등은 일선주 등 일곱 군과 한성주의 병마를 이끌고 당의 군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6월 27일]]에는 드디어 문무왕 자신이 서라벌을 출발했고, 이틀 뒤에는 여러 도의 총관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당군 총사령관 이적을 만난 신라의 김인문은 고구려의 평양 북쪽 20리 되는 지점인 류산(嬰留山) 아래까지 진군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8"/>
         [[7월 16일]]에 한성에 도착한 왕은 여러 총관들에게 당군과 회합할 것을 명했다. 한편 비열성주행군총관 김문 등은 사천(蛇川)의 벌판에서<ref name="삼국사기-668"/> 고구려의 [[태대막리지]] 남건이 거느리고 온 군사와 충돌했는데, 함께 있던 당의 번병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와중에 김문의 신라군은 앞으로 나서서 고구려군과 맞서 크게 이겼고, 신라군이 이기는 것을 보고 난 다음에야 당병은 겨우 고구려군과 싸웠다고 한다.{{출처|날짜=2018-06-27}} 이 사천에서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대당소감(大幢小監) 본득(本得)은 훗날 문무왕에 의해 일길찬 관등과 조 1천 섬을 은으로 받았고, 전사한 한산주소감(漢山州小監) 김경(金相京)도 그와 준하는 이 내려졌다. 다만 아술(牙述)의 사찬 구율(求律)은 다리 아래로 내려가 물을 건너가서 적과 싸워 크게 이겼음에도, 군령을 받지 않고 스스로 위험한 곳에 들어갔다 하여 포에서는 제외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8"/>
         [[9월 21일]]에 신라군은 당군과 합류해 평양을 에워쌌다. 고구려의 보장왕은 먼저 [[연남산]](淵男産) 등 98명의 수령(首領)을 이끌고 백기를 들고 항복했고,<ref name="고구려-668"/> 신라군의 대당총관 김인문이 보장왕을 이적 앞에 데려가 꿇어앉히고 그 죄를 세었다.{{출처|날짜=2018-06-27}} [[남건]]은 성문을 닫고 항거하면서, 병력을 내보내 싸웠으나 모두 패하였다. [[9월 26일]] 승려 신성(信誠)이 성문을 여니 신라의 5백 기병을 필두로 한 군사들이 평양으로 들어가 평양을 함락시켰다.<ref name="고구려-668"/><ref name="삼국사기-671">《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1년(671)</ref> 이때 평양성 함락전에서의 신라군의 활약은 기록에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평양을 함락하고 한 달이 지난 뒤에 문무왕이 남한주에서 행한 논공행 과정이 남아있다. 평양성 외곽에서는 흑악령(黑嶽令) 선극(宣極)이 평양성 대문에서의 싸움에 세운 공으로 일길찬의 관등과 조(租) 1천 섬을 받았고, 군사(軍師)인 남한산(南漢山)의 북거(北渠)는 평양성 북문에서 전공을 세워 술간(述干) 관등과 벼 1천 섬, 부양(斧壤)의 구기(仇杞)는 평양 남쪽 다리 위에서 높은 공을 세워 마찬가지로 술간 관등과 벼 700섬을 받았다. 평양성 내부에서는 임시[假] 군사(軍師)인 비열홀의 세활(世活)이 평양의 소성(小城)에서 전공을 세워 고간(高干) 관등과 벼 500섬을 받았고, 서당당주(誓幢幢主) 김둔산(金遁山)은 평양 군에서의 전공이 으뜸이라 하여 사찬 관등과 조 700섬을 받았으며, 한산주 소감 박경한(朴京漢)은 평양성 안에서 고구려의 군주(軍主) [[술탈]](述脫)을 죽인 공으로 일길찬 관등과 조 1천 섬을 받았다.<ref name="삼국사기-668"/>
         평양이 함락된 뒤 이적은 보장왕과 왕자 복남(福男)·덕남(德男) 그리고 대신 등 20여만 명을 이끌고 돌아갔고,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助州)가 이적을 따라 인태·의복·수세·천광·흥원 등과 함께 당으로 들어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문무왕은 한성을 출발해 평양으로 가던 중, 힐차양(肹次壤)에 이르러 당의 여러 장수가 이미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한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8"/> 신라 측은 긴 전쟁이 끝나고 자신들에게 약속된 은택을 얻을 것이고 공을 세운 장군들도 포을 받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당나라에 들어갔지만, 당의 총사령관 이적은 “지금 신라는 아무도 공이 없다”며 싸늘한 태도를 보였고, 이적의 태도가 신라 군에 전해지면서 신라군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로서는 그들의 국가적인 힘을 기울여 당군을 도와 주변의 적들을 쓰러뜨렸는데, 막 신라에게 돌아온 보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당은 백제와 고구려에 이어 신라까지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남한주(南漢州)로 돌아온 문무왕은 [[10월 22일]]에 논공행을 벌여 서라벌에 남아있던 김유신에게 태대서발한(太大舒發翰)의 직위와 식읍 500호, 궤장을 하사하고 그의 모든 보좌관들에게도 각각 위계 한 등급씩을 올려 주었다.<ref name="김유신-하"/> 또한 인문을 대각간, 다른 이찬과 장군들을 모두 각간으로 삼고 소판 이하에게는 모두 관위 1등급씩 더해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8"/> [[10월 25일]]에 왕은 욕돌역(褥突驛)에 이르러 국원사신(國原仕臣) 용장(龍長) 대아찬에게 사적으로 대접받았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고구려 사람 7천 명을 포로로 거느리고 [[11월 5일]]에 서라벌로 들어온 왕은 다음날 문무 관료들과 함께 선조묘에 전쟁이 끝났음을 고하고, [[11월 18일]]에는 전사자들의 신분에 맞춰 부의(賻儀)를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68"/>
         9년([[669년]]) 5월 천정군(泉井郡)·비열홀군(比列忽郡)·각련군(各連郡) 세 군의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9">《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9년(669)</ref>{{refn|group=주|이 기록을 통해 이 시기에 이미 비열성(비열홀)은 다른 두 성과 함께 신라 조정의 군이 설치되어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나라는 전략요충지인 비열홀을 [[안동도호부]]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다.<ref name="이훈">이호·이훈,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2%98%EB%8B%B9%EC%A0%84%EC%9F%81&ridx=0&tot=614 나당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또한, 당은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백제 땅을 점거하고, 신라의 백성들을 웅진도독부 안으로 편입시키기도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 내부에선 “당은 [[왜국]]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군함을 수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라를 치려는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달, 급찬 기진산(祇珍山) 등을 당에 보내어 자석(紫石) 두 자를 바쳤다. 또한 각간 김흠순과 파진찬 김양도(金良圖)를 당에 보내 사죄하게 하였다.{{refn|group=주|신라가 백제의 토지와 유민(遺民)을 취(取)한 것에 대해 당의 질책이 있었으므로 이를 해명하고자 하여 이들을 보낸 것이다. 흠순은 다음해 귀국하였으나 양도는 당나라에 억류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겨울에는 당의 사신이 도착하여 신라의 쇠뇌 기술자인 사찬 구진천(仇珍川)을 당에 데려갔다.<ref name="삼국사기-669"/> 이는 당시 ‘천보노(千歩弩)’라고까지 불리며 쏘면 1천 보를 나간다는 소문이 퍼져 있던 신라의 쇠뇌 제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1년([[671년]])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침공하였다. 당의 지휘를 받던 말갈병이 설구성(舌口城)을 포위했다가 물러가는 것을 후방에서 쳐서 3백 명을 죽이고, 당군이 백제를 구원하러 올 것에 대비해 대아찬 진공(眞功) 등을 시켜 수군으로 옹포(甕浦)를 지키게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또한 6월에 장군인 화랑 죽지 등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 가림성(加林城)의 벼를 짓밟게 했으며, 당병과 석성(石城)에서 싸워 5,300명을 죽이고 백제 장군 두 명과 당의 과의(果毅) 여섯 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거두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7월에 당은 행군총관 설인귀를 신라에 파견했는데, 왕은 사신을 맞아 위로하는 대신 강가의 풀이 우거진 낮은 언덕에 군사를 숨기고 강 어귀에는 무기를 감춰둔 채, 수풀 사이를 오가며 틈을 노려 기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인귀는 26일에 당이 신라를 도와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해주었는데 신라가 그 은혜를 잊고, 고구려를 도와 당을 치고 있다며 항의하는 내용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당이 신라를 집어삼킬 수도 있음을 은근히 협박하는 내용의 편지를 적어 법사 임윤(琳潤)을 시켜 왕에게 보냈다.<ref name="삼국사기-671"/> 문무왕은 설인귀에게 신라가 선왕 때로부터 당에 협조하고 여러 번 신라의 백성이 헐벗고 굶주리는 지경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국고를 내어 번번이 당군을 지원했던 사실과 당이 처음 신라와 했던 약속들을 어기고 신라가 점령하여 지배하던 땅을 무단으로 거둬들인 일을 비난하며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날, 백제 수도였던 사비성에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하고 아찬 진왕(眞王)을 도독으로 삼았다. [[10월 6일]] 당의 조운선(漕運船) 70여 척을 공격하여 낭장(郞將) 겸이대후(鉗耳大侯)와 병사 100여 명을 사로잡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1"/>
         12년([[672년]]) 당나라는 대군을 동원해 신라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다. 이에 맞서 신라는 봄 정월에 백제 고성성(古省城)을 쳐서 이기고, 2월에는 다시 백제의 가림성 공격을 시도했다.<ref name="삼국사기-672">《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2년(672)</ref> 7월, 당나라 장수 고간(高侃)의 한병(漢兵) 1만, 말갈족 출신의 이근행이 거느린 말갈병 3만이 함께 평양에 이르러 여덟 곳에 군(軍營)을 설치하고 머물렀다.<ref name="삼국사기-672"/> 이들은 8월부터 한시성(韓始城)과 마읍성(馬邑城)을 쳐서 이기고 백수성(白水城) 5백 보 거리까지 전진해 주둔하는 등 신라 땅을 침식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72"/>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연합해 이들을 쳐서 이기고, 추격하는 당병을 석문(石門) 벌판까지 뒤쫓아가 싸웠지만, 군 내부에서의 논공행 및 전략에 대한 견해차로 분열된 사이에<ref name="김원술">《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전 부록 원술(元述)</ref> 당병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대아찬 효천(曉川), 사찬 의문(義文)·산세(山世), 아찬 능신(能申)·두선(豆善), 일길찬 안나함(安那含)·양신(良臣) 등이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72"/> 태대각간 김유신의 아들인 [[김원술|원술]]도 여기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건져 돌아왔는데, 아버지 유신은 자신의 아들을 군법으로 처형해야 한다며 왕에게 아뢰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ref name="김원술"/> 한편 각자 맡은 곳을 지키며 방어전으로 전략을 변경하자는 유신의 진언에 따라, 한산주에 둘레 4,360보 되는 주장성(晝長城)을 쌓는 등 방어진지를 구축했다.<ref name="삼국사기-672"/> 9월에는 앞서 신라 땅에 억류하고 있던 웅진도독부 소속의 백제인 관원들과 앞서의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당으로 돌려보내면서 왕이 직접 표문과 많은 물품을 바치는 등 당에 대해 유화책을 폈다.<ref name="삼국사기-672"/>
         13년([[673년]]) 2월부터 9월까지, 문무왕은 당의 침략에 대한 대응으로 서형산성(西兄山城)과 사열산성(沙熱山城)을 비롯해, 국원성(國原城)<ref group="주">옛 완장성(薍長城)</ref>, 북형산성(北兄山城), 소문성(召文城), 이산성(耳山城), 수약주(首若州)의 주양성(走壤城)<ref group="주">질암성(迭巖城)이라고도 한다.</ref>, 달함군의 주잠성(主岑城), 거열주(居烈州)의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 삽량주(歃良州)의 골쟁현성(骨爭峴城) 등 여러 성을 쌓게 하고, 대아찬(大阿飡) 철천(徹川) 등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지키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3">《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3년(673)</ref> 한편 이 사이에 국가의 원로이자 재이었던 태대각간 김유신이 죽고, 아찬 대토(大吐)가 모반하여 당에 붙으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하는 등의 사건도 일어났다.<ref name="삼국사기-673"/> 거듭되는 전쟁에서 신라는 말갈·거란의 병사까지 끌어들인 당군과 맞서 아홉 번의 전투를 통해 2천 명을 죽이고, [[임진강|호로하]](瓠瀘河)와 왕봉하(王逢河)에서도 당군을 대로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3"/> 겨울에 당병은 고구려의 우잠성(牛岑城)을 쳐서 함락시키고, 거란·말갈의 병사들은 대양성(大楊城)과 동자성(童子城)을 쳐서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73"/> 한편 신라는 주(州)와 군(郡)에 처음으로 외사정(外司正)을 두고, 백제 멸망 뒤 [[무열왕]]에 의해 폐지되었던 수병제(戍兵制)를 부활시키는 등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갔다.<ref name="삼국사기-673"/>
  • 이상백 (1904년) . . . . 72회 일치
         | 이름 = 이
         | 출생지 = {{국기나라|대한제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서문로 12번지
         | 필명 = 호(號)는 백(想白), 백무일재(百無一齋)
         | 친척 = 이동진(할아버지) <br /> 이일우(큰아버지) <br /> [[이정 (1897년)|이정]](형) <br /> 한문이(형수) <br /> [[권기옥]](형수) <br /> [[이화 (시인)|이화]](형) <br /> [[이오]](아우) <br /> [[박창암]](조카사위) <br/> [[이열희 (1924년)|이열희]](5촌 조카) <br /> [[최남선]](사돈) <br /> [[박중양]](사돈)
         '''이백'''(李相佰, [[1904년]] [[8월 6일]] ~ [[1966년]] [[4월 14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체육인, 작가, 언론인으로, 호는 백(想白), 백무일재(百無一齋)이다.
         독립운동가 [[이정]], 시인 겸 작가 [[이화 (시인)|이화]]의 동생이며, 수렵가 겸 문필가 [[이오]]의 형이고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준장 [[박창암]]의 처숙부이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며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현재의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이백은 [[1904년]](광무 7년) [[8월 6일]]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서문로]] 12번지의 양옥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시우(李時雨)이며, 어머니는 김신자(金愼子)로 [[김해 김씨]]이다. 4형제 중 셋째이다. 형 [[이정]]은 독립 운동가이며, [[이화 (시인)|이화]]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족 시인, 작가이며 넷째 아우 이오는 정통 수렵가이자 [[바둑]] 유단자이다. 그의 집안은 [[대구광역시|대구]]의 명문가로 대 부잣집이었으나 아버지 이시우는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李一雨)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하였다.
         백 형제의 할아버지 이동진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대구]]에 신식 학교인 우현서루를 열어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쳤고, 남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교사를 초빙, 수학, 역사, 국어, 어, 일본어 등 신식 학문을 가르쳤다. 할아버지 이동진의 뒤를 이어 큰아버지 이일우가 우현학교의 일을 맡아보았다.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했는데, [[2000년]]대 초반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학 학장 3명, 교수 10명, 의사 30명, 장군 2명, 언론·출판분야 11명을 배출하였다.<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또한 사촌 [[이악]]은 작가이자 그의 친구인 육당 [[최남선]]과 사돈이 되었고, 다른 자손들 중에는 '박작대기' [[박중양]] 집안과도 인척 관계를 형성하였다.<ref name="daemyonh"/>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이일우에 의해 양육되었다.
         [[1924년]] 일본의 [[일본 대학농구연맹]]을 결성하고 [[와세다 대학]] 농구팀 대표로 [[일본 대학농구연맹]]에 참여하였으며, 일본 대학농구연맹 농구부 주장으로 [[미국]]에 원정 경기에 출전하여 여러 번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밖에 축구, 야구에도 주전 선수로 실력을 보여주었다. [[1927년]]에 [[와세다 대학]] 문학부 사회철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모교인 [[와세다 대학]] 동양사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이후 [[1930년]]에 [[일본농구협회]]를 창설하여 창립회원으로 활동했으며, 그해 일본농구협회 무이사에 선임되었다. [[1931년]]에 일본체육회 무이사를, [[1935년]]에 일본체육회 전무이사를 맡았다. 그는 일찍부터 유명한 농구선수로 활약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당시의 체육계 경력이 인정되어 만년에는 체육 이론가와 행정가로서 활동하였다.
         그후 제11회 도쿄 올림픽 대회 유치위원과 준비위원으로 미국, 국, 독일, 스위스,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폴란드 등을 방문하여 대회 유치와 준비에 협조를 구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체육계의 공로자로 칭송받았다. [[1939년]]부터 [[1941년]]에는 모교인 [[와세다 대학]] 재외특별연구원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동양학을 연구했으며, [[1940년]]에는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하였으나 도쿄 올림픽 유치와 추진의 공로로 [[조선총독부]]에서 그를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1944년]]에는 [[여운형]]이 결성한 지하독립운동 단체인 [[건국동맹]]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광복 직후에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활동하였다. 건준의 해산 이후 별다른 정치적 입장표명은 하지 않았고 [[1945년]] [[9월]] [[조선 체육 동지회]]를 결성하여 회장에 취임, 본격적인 체육단체 조직 및 체육경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해 [[12월]] [[조선 체육회]] 무이사가 되었다. 그 뒤 IOC 가입을 목표로 활동하였으며, 반탁 시위에 휘말리지 않고 IOC 가입 문제를 논의하였다. [[1946년]] 초 IOC 가입 대책 위원회를 조직하고 부위원장에 위촉되었다.
         [[1946년]]에는 조선체육회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1948년]] [[10월]] 잡지 학풍(學風)이 창간되자 필진으로 참여하였다.<ref>정진숙, 《출판인 정진숙》 (을유문화사, 2007) 180페이지</ref> [[1948년]] 단독 정부 수립론과 남북협론이 대두되었을 때 그는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하였다. 대한체육회 설립 이후 [[1951년]]에는 [[대한체육회]] 부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아시아경기연맹 집행위원을 거쳐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서자들을 차별대우하는 문제인 '서얼차대(庶孽差待)의 연원에 대한 일문제'를 [[진단학회]] 학보에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 전기와 건국 초기 분야에 대한 것을 연구하였다. 그는 '삼봉인물고(三峰人物考)', 이조 태조의 사전개혁운동(私田改革運動)과 건국 후의 실적, 위화도회군고(威化島回軍考),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에 취하여', '[[고려]]말 이조초에 있어서의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운동(田制改革運動)과 그 실적' 등 고려 말, 조선 건국, 조선 전기 분야의 정치, 사회적인 현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시도하였다.
         '삼봉인물고(三峰人物考)'를 발표한 이래 그는 [[정도전]]이 역적으로 몰린 것은 [[정도전]]의 잘못도 있지만 [[정도전]]의 정적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비난, 부정적인 시각만 강조되어 왔음을 주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로 고대사와 중세사, 고사를 연구하는 타 학자들과 달리 그는 주로 조선 왕조사의 연구에 집중하여 힘썼으며 [[조선]] 건국과 조선 초기 분야의 연구에 업적을 이룩하여 [[1963년]] [[건국훈장]]과 [[문화훈장 대통령장]](大統領章)을 수여받았다.
         [[문교부]] 대학교수자격 심사위원회 위원이 되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과 [[3·1 문화]] 심의위원 회 위원 등으로도 위촉되어 활동하였다. 여행을 좋아하여 일찍부터 그는 국내 명승고적지와 세계 5대양 6대주를 수없이 돌아다닌 여행가였으며, 기행문 등을 남기기도 했다.
         만년에는 그는 국학, 동양학의 연구를 목적으로 [[서울대학교]]에 동아문화연구소를 설립, 초대 소장으로 재직하며 연구 계획을 수립하고 학술 세미나 개최를 기획, 준비하였다. 그는 장서가로, 젊은 시절부터 헌책방과 각종 서점을 돌며 평소 희귀한 한중고활자본을 비롯한 진귀한 많은 서적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만년에 자신이 수집한 책들 모두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기증하여 백문고(想白文庫)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장례식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한국사회학회, 진단학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등 5개 단체가 주관한 연합장으로 주관되어 [[경북도]] [[달성군]] 화원면(현 [[대구광역시]] 남구 화원동) 가족 묘역에 안장되었다. 묘비는 사후 1년 뒤인 [[1967년]] 그의 1주기에 세워졌는데, 묘비문은 국문학자 [[이희승]](李熙昇)이 짓고, 글씨는 이기우(李基雨)가 썼다.
         주요 저서로 《조선 문화사 연구 논고》, 《이조 건국의 연구》 등이 있다. 사후 그를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그의 이름을 딴 이백배 한-일 대학선발농구대회가 개최되고 있고, 아시안게임 최우수선수에게는 이백배(杯)가 특별 수여되고 있다.
         독립운동가인 [[이정]], 시인 [[이화 (시인)|이화]]는 그의 형이고, 치과의사 겸 성형외과 의사이며 [[경북대학교]] 치대 학장을 지낸 [[이열희 (1924년)|이열희]]는 5촌 조카였다.
  • 정용화 . . . . 72회 일치
         | 문명 =
         | 웹사이트 = [https://fncent.com/jungyonghwa/b/introduce/7670 FNC 엔터테인먼트 정용화]<br>{{인스타그램|jyheffect0622}}<br>{{트위터|JYHeffect}}
         * [[경희사이버대학교]] 중국학과 학사<ref>{{뉴스 인용|제목= 경희대 사이버 대학원 측 “정용화 관광레저항공 석사 졸업…박사과정은 경희대학원에서” |url=http://chicnews.mk.co.kr/article.php?aid=1516156769171420007
         *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관광레저항공학과 석사<ref>{{뉴스 인용|제목= 경희대 사이버 대학원 측 “정용화 관광레저항공 석사 졸업…박사과정은 경희대학원에서” |url=http://chicnews.mk.co.kr/article.php?aid=1516156769171420007
         정용화는 1989년 6월 22일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ref name="mynameis">{{뉴스 인용|제목=정용화│My name is…|url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2873|출판사 = 텐아시아|저자 = 최지은|날짜 = 2009-12-01|확인날짜 = 2014-04-05}}</ref> 제주를 다녔으며, 자신의 고향은 부산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ref name="mynameis"/> 데뷔 전 스키장 [[얼짱]]으로 인터넷 에서 유명하였다.
         * [[2010년]] [[1월 14일]] 락밴드 씨엔블루(CNBLUE)의 리더로 팀 안에서 보컬과 기타와 랩을 맡아, [[bluetory]]<ref name="album1">[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315286592871176&DCD=A10102 씨엔블루, '씨엔블루토리'서 1집 전곡 첫 라이브 연주]{{깨진 링크|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3DEA31%26newsid%3D01315286592871176%26DCD%3DA10102 }}《이데일리스타in》, 2010년 2월 16일 작성.</ref> 음반 발매와 함께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수건남 효과에 힘입어 첫 방송후 각종 차트를 올킬하였으며,<ref name="all">[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17/6857237.htm “블루돌풍” CNBLUE, 첫 방송후 각종 차트 ‘올킬’]《재경일보》2010.01.17 작성.</ref> 한국 가요계에서 신인이 데뷔 후 14일만에 1위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ref name="chleks">[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29/7708991.htm 씨엔블루, 최단기간 1위 기록 세우며 정 등극! ]《재경일보》2010.01.29 작성.</ref> 이는 지파 데뷔 최단 기간 1위 기록이었지만 위너 이후에 기록이 깨졌다.* [[2010년]] [[5월 19일]], 씨엔블루는 두 번째 미니 앨범 《[[Bluelove]]》를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todaykorea.co.kr/news/contents.php?idxno=109805|출판사 = 투데이코리아 |날짜 = [[2010년]] [[5월 19일]]}}</ref> [[5월 20일]], [[Mnet]] 《[[엠카운트다운]]》을 통해 컴백하였는데,역시 큰 인기를 얻으며 각종 음원차트에서 1위는 물론, 음악프로그램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Love’, 포털사이트 점령… ‘올킬’ 시동|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33629§ion=sc4|출판사 = 프레이크뉴스 |날짜 = [[2010년]] [[5월 19일]]}}</ref><ref>{{뉴스 인용|제목 = 씨엔블루, ‘LOVE’ M카운트다운 1위 수!
         * [[2012년]] [[1월 13일]] 《제26회 [[골든디스크]]》에서 음반부문 본, 음원부문 본, 비비드림, 아시아최고그룹을 수하며 4관왕을 달성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골든디스크 4관왕 달성하며 최다 수! 아시아 대세로 떠오르다!|url=http://www.stv.or.kr/ez/bbs.php?table=health&query=view&uid=5346&p=1|출판사 = STV24|날짜 = [[2012년]] [[1월 13일]]}}</ref>
         * [[2012년]] [[2월 4일]] 일본 간사이, [[2월 5일]] 도쿄돔 씨티홀에서 두 번째 메이저 음반 발매 기념으로 한 이벤트에 1만2000여명이 참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 앨범 발매 라이브 이벤트서 현지 팬 12,000명 동원 |url=http://wstar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1&c1=01&c2=01&c3=00&nkey=201202072211591&mode=sub_view|출판사 = 더블유스타뉴스|날짜 = [[2012년]] [[2월 7일]]}}</ref>
         * [[2012년]] [[3월 16일]] 작사 및 작곡한 <아직 사랑한다>를 선공개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자작곡 ‘아직 사랑한다’ 16일 선공개|url=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출판사= 티브이데일리|날짜= [[2012년]] [[3월 15일]]}}{{깨진 링크|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1790839288663010 }}</ref> <아직 사랑한다>는 공개하자마자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새로 나올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신곡 '아직 사랑한다', 실시간 차트 1위…기대 이 반응|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120316000850&subctg1=10&subctg2=00|출판사 = 스포츠월드|날짜 = [[2012년]] [[3월 1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아직 사랑한다’ 선공개 반응 폭발…컴백 기은 ‘쾌청’|url=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45015|출판사 = NSP통신 연예|날짜 = [[2012년]] [[3월 16일]]}}</ref>
         * [[2012년]] [[3월 26일]]에 기자 간담회 쇼케이스에서 세 번째 미니 앨범 [[EAR FUN]]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컴백 쇼케이스를 왜 아침에?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69721|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3월 23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음반 낼때 마다 부담,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203261244591132&ext=na|출판사 = 마이데일리|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음원은 발표와 동시에 1위를 기록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컴백' 씨엔블루 '헤이 유' 음원공개 직후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32608080291572&type=1&outlink=1|출판사 = 스타뉴스|날짜 = [[2012년]] [[3월 26일]]}}</ref> 앨범은 3일만에 4만장이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3일 만에 4만장 돌파…'3월 전쟁' 최후의 승자 |url= 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출판사= 스포츠서울 |날짜= [[2012년]] [[3월 29일]] }}{{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22572.htm }}</ref><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새 미니앨범 판매량 1위, 최단 시간 4만장 돌파|url=http://interview365.mk.co.kr/news/19427|출판사 = 인터뷰365|날짜 = [[2012년]] [[3월 30일]]}}</ref> 또한, 한터 주간 순위에서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EAR FUN’, 한터 주간차트 1위! '승승장구'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3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61211/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3/2012040300698.html |보존날짜= 2014-09-08 |깨진링크= 예 }}</ref> 컴백 무대를 가진 일주일 후 [[4월 5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무세운 승세로 컴백 1주만에 '엠카 1위' |url=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출판사= 엑스스포츠뉴스 |날짜= [[2012년]] [[4월 5일]] }}{{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24780 }}</ref> 《[[EAR FUN]]》의 타이틀 곡인 '''Hey you'''가 가온차트 4월 1주차에 1위를 등극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가온차트 4월1주차 1위 등극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78505|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4월 8일]]}}</ref> 그리고 [[2012년]] [[4월 10일]]에 한 달간의 짧은 활동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서 《[[EAR FUN Special Limited Edition]]》을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미국화보+DVD 수록된 'EAR FUN' 특별한정판 발매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출판사= 더스타 |날짜= [[2012년]] [[4월 6일]] |확인날짜= 2012-08-19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50925085809/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06/2012040600768.html |보존날짜= 2015-09-25 |깨진링크= 예 }}</ref>
         * 같은 소속사 가수 [[주니엘]]의 데뷔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하고 듀엣곡과 뮤직비디오 출연소식이 연이어 들리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승시켰으며, 직접 출연한 선공개곡 ‘바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의 티저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팔에 키운 완두콩, 주니엘 뮤비서 공개 |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275926599530232|출판사 = 이데일리|날짜 = [[2012년]] [[5월 18일]]}}</ref> [[2012년]] [[5월 22일]]에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와 주니엘의 듀엣곡 ‘바보’ 22일 선공개 |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120521022078&subctg1=&subctg2=|출판사 = 세계일보|날짜 = [[2012년]] [[5월 21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주니엘-정용화 듀엣곡 '바보', 실시간 차트 2위로 기분좋은 출발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87637|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5월 22일]]}}</ref>
         * [[2012년]] [[7월]]부터 [[2011년]] [[6월]]부터 [[8월]]까지 방된 [[문화방송 수목 미니시리즈|MBC 수목 미니시리즈]] 《[[넌 내게 반했어]]》가 일본 공중파 후지TV에 방을 시작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일본 인기 파워 실감- ‘넌 내게 반했어’ 일본 공중파 입성 |url=http://nanumnews.com/sub_read.html?uid=42246§ion=sc208|출판사 = 나눔뉴스|날짜 = [[2012년]] [[5월 16일]]}}</ref><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출연작 '넌 내게 반했어' 日 후지TV 진출 '경사났네' |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26944TM=news&SM=4101&idxno=587637|출판사 = TV리포트 |날짜 = [[2012년]] [[5월 16일]]}}</ref> 또한, 공중파 방 전에 [[2012년]] [[7월 16일]]에 일본에서 공식적인 팬미팅을 개최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박신혜, 日 '넌 내게 반했어' 방 앞두고 팬미팅 개최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1&idxno=595980|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6월 13일]]}}</ref><ref>{{뉴스 인용 |제목= 정용화-박신혜,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성료 |url=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7/2012071701006.html |출판사= 조선일보 |날짜= [[2012년]] [[7월 17일]] }}{{깨진 링크|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7/2012071701006.html }}</ref> 티켓이 모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박신혜, ′넌 내게 반했어′ 日팬미팅 1만석 매진 ″현지 열기 후끈″ |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67085|출판사 = 아시아투데이|날짜 = [[2012년]] [[7월 11일]]}}</ref>
         * [[2012년]] [[8월 28일]] 일본 도쿄 오다이바에서 열린 일본 후지TV 여름 야외공연 '메자마시 라이브'에 참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일본 메자마시 라이브 성황…'타임 이즈 오버' 최초 공개' |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20830.990011130485442|출판사 = 남일보|날짜 = [[2012년]] [[8월 30일]]}}</ref>
         * [[2012년]] [[8월 29일]] 일본에서 첫 번째 정규앨범인 《[[CODE NAME BLUE]]》를 발매하였고<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일본 정규 1집 ‘CODE NAME BLUE’ 29일 발매|url=http://artsnews.mk.co.kr/news/214267|출판사 = 아츠뉴스|날짜 = [[2012년]] [[8월 2일]]}}</ref> 타이틀인 "Time is over"를 작사 및 작곡하고<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정용화, 화 '어벤져스' 감 얻어 日 정규앨범 타이틀곡 제작 |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208070953443&mode=sub_view|출판사 = 한경닷컴 bnt뉴스|날짜 = [[2012년]] [[8월 7일]]}}</ref> "Intro 02" "Have a good night" "No more" "Where you are(English Ver.)"를 작사 및 작곡하였다. 이 앨범은 하루에 2만 2천여장이 나갔고 ''[[CODE NAME BLUE]]''는 오리콘 싱글 데일리 차트 1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첫 정규앨범으로 日오리콘 주간 1위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90416303911913&type=1&outlink=1|출판사 = 파인낸셜뉴스|날짜 = [[2012년]] [[9월 4일]]}}</ref>
         * [[2012년]] [[10월 2일]]부터 [[10월 21일]]까지 일본 전국 6개지역을 돌며 아레나 투어《Arena Tour 2012 Come On~》를 실시하여 10만명을 동원하였으며, 마지막은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마무리지었다.
         * [[2012년]] [[12월 5일]] 일본 음원 사이트 드완고(www.dwango.jp)에서 케이팝 OST 부분 휴대 전화 벨소리 차트에서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 OST가 2012년 연간 랭킹에서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일본 OST 벨소리차트 정 |url=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662558|출판사 = 이투데이|날짜 = [[2012년]] [[12월 5일]]}}</ref>
         * [[2012년]] [[12월 8일]]에 《제1회 K 드라마 스타 어워즈》에서 ([[문화방송|MBC]] 《[[넌 내게 반했어]]》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끈 공로를 인정받아 한류스타을 수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 '한류스타, 감사합니다'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512277|출판사 = osen|날짜 = [[2012년]] [[12월 8일]]}}</ref>
         </ref> 또한, 한국방송사 음악프로그램의 특성 밴드의 라이브는 불가능한 것으로 되었지만, 컴백무대를 시작으로 2주간 씨엔블루는 음향설비와 무대장치 설치 비용을 부담하여 밴드 올라이브를 선보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씨엔블루, 지파 컴백 무대 ‘올 라이브’ 구현 ‘기대 만발’ |url= 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30114092106167&ts=130407 |출판사= 경제투데이 |날짜= [[2013년]] [[1월 14일]] |확인날짜= 2013-04-25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91548/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30114092106167&ts=130407 |보존날짜= 2016-03-04 |깨진링크= 예 }}</ref>
         * 앨범발매로 바쁜 와중에 [[2013년]] [[1월 15일]] 말레이시아에서 진행된 제27회 골든디스크시식의 MC를 맡아 진행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정용화-니콜, 이홍기-다솜 ‘골든디스크 시식’ MC 확정|url= 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392989&cloc=|출판사= 일간스포츠|날짜= [[2013년]] [[1월 11일]]}}{{깨진 링크|url=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392989&cloc= }}</ref><ref>{{뉴스 인용|제목= 말레이시아 팬들, ‘골든 MC’ 정용화-니콜 “환의 커플” 극찬
  • 창작:티겔 왕국 . . . . 72회 일치
         위항목:[[창작:세대륙 이야기]]
         동부대룩의 중남부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 호랑이족 맹수인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남쪽엔 황소족 거수인들도 거주하고 있다. 그외에 무릉과 인접한 곳엔 맹호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일부지만 라이거일족들도 살고있다. 북쪽으론 메말사막을 기점으로 서쪽부터 해서 라이겐프름 공국, 인연합, 츄프 왕국과 접하며, [* 다만 앞에 두국가들은 일단은 티겔의 봉신이다. 사실 독자적인 외교권과 주화를 가지고 있으므로 독립국 취급이지만.] 동쪽으론 아래드 산맥을 기점으로 무릉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낭마 연합과 접하고 있다. 제국을 칭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유일황제' 샤를 7세가 이끄는 레이먼 제국군한테 박살나고 잠깐 레이먼 제국의 봉신이 되었을때 왕국으로 격하되었다. 그뒤로는 레이먼 제국한테 괜히 트집잡히기 싫어서 일부러 왕국으로 유지중.
         과거, 현재 티겔의 강역은 거의 다 숲이었으며, 거기에 스스로를 '사냥꾼'이라 부르는[* 현재도 존재하며 티겔의 토의 25%를 차지하는 미개척지에 알박으면서 살고 있다. 보통 티겔에서 용병으로 일하고 있다.] 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들 분파중 가장 세가 컸던 무리의 족장의 장남이었던 '달구'란 자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 그과정에서 자기를 막으려던 자기 무리들을 싹다 죽이고 떠났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전부 죽이지는 못했다.]북쪽으로 올라가서[* 가는 와중에 지금의 메말사막 일대에 존재했던 늑대족 마을들을 전부다 약탈해버리고 거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메말사막의 생성원인중 하나. 그것때문에 메말사막에 사는 늑대족 마적들은 호랑이족을 증오한다.] 중북부에 적당한 위치에 티겔이라는 도시를 세우고 거기서 자기가 왕노릇을 한게 시초.[* 이때부터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중북부를 통합하기전까지 유지됬던 때를 티겔왕국이라 한다.]그렇지만 그의 통치는 오래되지 못했는데 10여년뒤, 그의 막내여동생인 '달순'이 그를 죽이고 자기가 직접 왕위에 올랐기 떄문. [* 이게 또 대단한게, 잠깐 행차를 나간사이 달순이 달구의 경호원 10여명을 혼자서 죽인뒤(....)살해했다. ~~리얼 소드마스터~~] 달순의 통치하에 티겔왕국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데, 그전까진 그냥 일개도시국가수준이던 티겔왕국을 전제군주국가로 바꿔버렸다는 평을 받을정도이다. 그의 치세하에 당한 량의 농지를 얻어내 이후 티겔이 본격적으로 중북부의 패자가 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달순여왕은 한편으론 음유시인들의 이야기로도 자주나오는데, 그녀의 모험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만 십몇편은 될정도.
         티겔 왕국은 달순이 죽고난뒤 한번의 혼란기를 거치는데, 이이유는 그녀의 강력한 전제통치가 사실 그녀의 카리스마가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였기때문이다. 숲을 개간하고 숲에 살던 거인들이나 토착 하이에나족든을 격퇴하면서 형성된 군사귀족들을 자신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누르고 있던 황이었으니 그녀가 죽고난뒤엔 당연히 그것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그녀가 죽고 그녀의 세손자들인 달건, 달휴, 달준이[* 달순에게 외동아들이 한명있었긴 했지만 장성후 개척을 손수진행하다 거인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세쌍둥이들만이 계승자였다.] 각자 자기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된다면서 자기편을 선 귀족들을 이끌고 내전을 벌인것. 이를 티겔 왕위계승전쟁이라 부르는데, 달순때 당수 올려놨던 인구수를 이때 확줄어버려서 이후 50년간은 내정에 힘써아했을정도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아무래도 첫째인 달건이 여러가지면에서 유리했기에[* 단순 정통성뿐만 아니라 개인무력도 가장 강력했으며, 침입한 레잉 왕국(레이먼 제국의 전신인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전신)의 개척자들 50여명을 자기 부하 5명과 함께 격퇴한적도 있는 실력있는 전사이자 전략가였다.] 세가 가장 약했던 막내달준을 항복시키고 둘째 달휴를 공격하러 갔는데, 이때 달휴가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것.'''바로 외부세력을 끌어들인것이었다'''. 달휴는 레잉왕국의 왕의 손녀와 결혼하고 그들의 세를 끌어들였으며, 이것때문에 전선이 밀려나 패배직전에 몰린 달건은 하이엔 왕국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순식간에 대륙 중북부의 패자들이 모조리 몰린 개싸움에서 승리한건 첫째였지만, 그결과로 티겔의 거의 모든 도시는 폐허가 되버렸고, 지쳐버린 달건은 모든 통치를 그의 막내동생[* 그가 죽고난뒤엔 달건의 맏아들]에게 맏기고 궁정안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가 그나마 유일하다시피 추진한게 있는게 작위속법을 장자속제로 만든것(...)~~어지간히 한이 실렸나보다~~ 내전의 결과가 참혹했던 만큼 당사자들의 최후도 비참했는데, 첫째 달건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내전이 종결되자마자 작위속법을 바꾸고 히키코모리화, 둘째 달규는 황폐화된 국토에 충격받아 자살. 셋째 달준은 그나마 항복뒤에 정신차리고 형편에서 싸웠으며 전쟁후엔 형대신 나라를 이끌었지만 결국 과로사했다.
         == 내전 이후~티겔 멸망 ==
         이러한 성과의 결과는 (달제가 원하진 않았겠지만)티겔 왕국 멸망이후 하티겔 왕국의 형성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후 하티겔의 형성이후까지 이뤄지는 사냥꾼과 티겔 왕국의 협력에 기반을 닦아두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후 남쪽에 탐험가를 보내어 동부 대륙 남쪽에 농사짓기 좋은 평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재의 티겔 평원] 그곳에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다만, 거리가 거리다보니 대부분 일부만 겨우 도착했다.] 한편으론 동북쪽의 강자들인 하이엔 왕국과 츄프 왕국과 연합해 남진을 시도하는 레잉 왕국의 침략을 여러번 막아내면서 [* 특히, 북티겔 언덕에서 벌어진 회전에선 레잉의 왕과 태자까지 사살할 정도로 대승을 거뒀다.] 국경선에 요새를 쌓고 방어를 준비하는데 힘썼다.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남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태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태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남쪽의 개척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남쪽의 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인연합|인연합]]이다.]
         그러나 티겔 왕국은 달휴의 사후 점점 기울어져 갔는데, 우선 달휴가 죽고 그의 맏아들 '불운한' 달계가 즉위했으나, 그는 한달도 안되서 의문사하고(...) 그의 둘째 '천벌의' 달연이 왕위에 오른다.[* 호칭을 보면 알겠지만, 달계 암살의 유력 용의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왕위에 오르고 약 이틀도 안되어 그의 동생 달혜가 그를 암살하고(....) 또 왕위에 오르는데 그도 나흘이후 그의 제수의 명을 받은 암살자에게 죽을뻔 한다(...) 그에겐 다행히, 암기가 급소를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하가서 살았고, 얼마 안돼 제수는 교수형, 그리고 그의 여동생은 가택연금을 시키는걸로 마무리시킨다. 달혜는 티겔 왕국의 왕들중 최악의 왕중 하나로 평가받는데, 그전까지 충실한 우방이었던 하이엔 왕국을 괜히 외교적으로 도발해 적대관계로 가게 하고, 북쪽의 라이엘기스 대공국[* 레잉 왕국이 멸망하기전 마지막 왕의 동생(적자가 아닌 서자였다.)이 세운 국가.]에겐 지속적으로 병력을 갈리면서(...) 국력을 낭비했으며, 그나마 우방이었던 츄프왕국과는 지속적으로 국경 분쟁이 벌어지는 태인 불안한 동맹관계였다.[* 티겔 왕국이 메롱한대도 츄프왕국이 굳이 티겔과의 관계를 끊지않은 이유는 북쪽의 숙적 크누고 공국과 그들을 지원하던 하이엔왕국 때문이었다. 즉, 크누고 공국을 제압하면 얼마든지 티겔과의 관계도 끊을 수 있었다는 애기.] 이렇게 외교적으로 불한한 태에서 내정을 잘한 편도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사자족 토벌이라면서 당한 량의 세금을 걷어갔고, 이는 지속적인 반란의 원인이 되었다.[* 사서에만 기록된 반란의 횟수는 약 20여회정도이다... 사서가 훼손되어서 기록되지 못한 반란까지 포함하면 이횟수이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달계의 아들이었던[* 달계가 죽었을당시 아직 태어나지 못해 계승받지 못했다.] 달유가 귀족들에 도움을 받아 왕위를 찬탈하고 왕위에 오른다.
         달유는 티겔 왕국의 멸망을 30년은 늦춘 왕으로 평가 받는데, 하이엔왕국 계승전쟁에 개입해 적자인 선왕의 손자를 왕위에 올려서 하이엔왕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의 딸을 츄프왕에게 시집보내 동맹관계를 두텁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외교적 성과는 지속적으로 북쪽 국경을 위협하던 라이엘기스 대공국쪽으로 안심하고 전력을 집중할 수 있게하는데 도움을 줬고, 최종적으로 나트렘 평원에서 벌어진 회전에서 라이엘기스 대공과 대공의 세아들을 모두 전사시키는 대승을 거둬, 라이엘기스대공국을 멸망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얻어냈으나..... 기세를 몰아 라이엘기스로 공성을 곧장가는 도중에 병으로 달유가 급사하면서 급히 병력을 돌릴수 밖에 없었고, 이는 티겔 왕국이 마지막으로 라이엘기스대공국과 후신 레이먼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던 기회로 평가받는다.
         달유의 급사이후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달윤은 아직 어려 섭정자리를 두고 다툼이 생기게 되었는데, [* 평범한 경우라면 그의 어머니가 섭정직을 맞는게 정이었으나, 남편이 죽기전에 먼저 병사 했다.] 우선 그의 새어머니였던 '에른 베트'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파'[* 레잉을 중심으로 모인 파벌로, 사자족이 많이 모여있는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서 당수가 이미 사자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황이었다. 사자족들과의 혼혈(후대의 라이거 일족)도 당수 있음.]와 달제의 증손자이자 등퍼산맥 서쪽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었으며 달유의 정변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여쿨 공작 '달규'를 중심으로 한 '동부파'[* 단, 중심이 동부쪽 귀족들이란거지, 꼭 동부만 있던건 아니다. 실제로 라이엘기스와의 접경지대에 있었던 당수의 귀족들은 라이엘기스를 싫어하는 만큼 사자족 역시 싫어했고, 그에따라 사자족을 학살하면서 거기에 호랑이족을 이주시키는짓도 서슴치 않은경우가 많다. 이러한 귀족들은 전부 동부파에 가담했다.]로 나뉘어 당히 피튀기는 궁중 암투를 벌였다.[* 단적으로, 에른을 노린 암살사주만 해도 10여회정도 있었으며, 동부파쪽은 여쿨의 달규가 중간에 (아마도 에른이 사주한)암살자에게 암살당해 그의 아들이 우두머리를 맡기도 했다.] 이러한 궁중암투는 최종적으로 티겔의 사학자들이 '대내전'이라 부르는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여기서 최종적으로 에른의 남동생 '용담공' 에른 보우드가 동부파의 본거지였던 여쿨을 함락시키면서 끝난다. 이 내전은 지금까지의 티겔에서 벌어진 내전중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며, 왕국의 인구중 절반이 이때 희생되었다. 이때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동부파에 가담했던 북부의 호랑이족 귀족들을 다수 굴복시키면서 다시한번 세를 키울 수 있었다. 그나마 이 내전의 의의가 있다면 북서부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티겔에도 레잉의 문화가 퍼졌다는것 정도? 이후 티겔 왕국은 예전에 위세를 잃어버렸고, 하이엔 왕국과[* 그전까지 동맹관계였다만, '야심왕' 헤인켈이 동맹을 깨고 공격해 북동부쪽 땅을 당수 빼앗아간 이후엔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라이엘기스 대공국사이에 끼여 수많은 땅을 빼앗기는(...) 동네북이 되었다.
         달윤은 죽기전에 자신의 성을 레잉식인 '다르트'로 바꿨는데 그때문에 역사가들은 달윤이후의 왕들을 '다르트'왕조로 묶는다. 다만 다르트 왕조에 대한 평은 그리 좋지못한데, 레잉 왕국빠라서 아예 왕국의 주요도시중 하나였던 레잉을 라이엘기스에 공짜로(..) 넘겨주려 한 베르코 1세[* 다만, 그의 동생이 그를 막으려고 정변을 일으켜서 성공하진 못했다.], 형보단 나았다가 중론이지만 어째 하는 원정마다 싹다 말아먹은 에르두른 1세, 하루 일과가 술먹고 여자꼬시는거였던 '시인' 그레두아[* 다만, 그의 시들은 꽤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백성들 가축까지 뺏어먹으려들었던 '식탐왕' 세프등등.... 결국 온갖 암군들이 넘쳐났던 다르트 왕조덕에 티겔 왕국은 패권을 다시 되찾는데 완전히 실패하고, 이후 하이엔 왕국을 제압하고 동부대륙의 중북부패권을 완벽히 장악하려 한 '대제' 샤를 1세[* 라이엘기스 대공으로 따지면 샤를 4세]에 의해 티겔왕국은 멸망한다.
         그러나 티겔이 멸망하고 티겔이 불타갈때, 한무리의 군인들이 마지막 왕 에르두른2세의 아내였던 아르든 백작부인을 데리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우여곡절끝에 어찌저찌 티겔왕국이 남쪽에 세웠던 식민지인 '센티겔'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아르든 백작부인은 애를 베고 있었고, 당시 센티겔의 지방관이자 아르든 백작부인의 보호자였던 계형은 그 아이를 에르두른 2세의 적법한 후계자로 선언하고, 그를 티겔 왕국의 왕으로 선언하면서 섭정직을 맞는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국가를 하티겔 왕국이라 하며, 대중적으로 그냥 티겔 왕국이라 한다.
         그리고 다르트 왕조는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어진 티겔 왕국을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후신인 레이먼 제국이 가만히 내버려둘리 없었고, 결국 첫번째 왕이었던 크테이가 전선지휘중 눈먼화살에 맞아 죽고만다. 크테이가 죽고난뒤, 티겔의 왕은 계형의 아들인 계로가 맡게 되지만, 왕국은 섭정 계형을 중심으로 한 남부파와 북쪽에서 내려온 티겔 귀족들출신으로 이뤄진 북부파로 나눠지게 된다.
         처음에 이문제는 그리 크지 않았다. 북부파의 세는 미약했으며 왕국의 섭정이던 계형이 '사람을 협박하고 회유하는데 아주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문제는 다른데서 터지는데, 계형의 주도로 열린 레이먼제국과의 전쟁에서 인연합과 츄프왕국, 사냥꾼들과 연합해 구 티겔의 역을 당수 회복하는데 성공하는데,[* 이곳을 탈환지라 부른다.] 이과정에서 북부파가 가지고 있었던 지들 대부분이 전부 남부파로 간것이다. 거기다가 계형은 당히 완고하고 보수적인 인물이라서, 지를 되돌려받고 싶으면 이름을 옛방식으로 바꾸고 레잉의 풍습을 완전히 버리라는 말까지 했다는게 문제였다.
         이문제는 당장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레이먼 제국이 무력으로는 호랑이족을 복속시킬 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마지막 왕 에르두른 2세의 조카 루이를 끌어들여 '태겡 대공국'을 만들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레두아는 북부파의 군소주를 구워삶아 자신이 티겔을 공격할때 이들이 자신에게 협력한다는 다짐을 받아냈고[* 물론 보으로 옛토를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결국 츄프 왕국이 언제나처럼 남쪽의 대귀족들이 일으킨 반란에 고생해 티겔을 도와주기힘들때 공격해왔다. 레이먼으로부터 당한 량의 군자금과 용병대를 지원받은 태겡의 공세는 날카로웠고, 군소주들의 협력까지 이루어져 순식간에 탈환한 토의 3분의 2를 빼앗기기에 이른다. 그나마 섭정인 계형이 직접나서서 태겡과의 일전에서 태겡 병력의 반을 한번에 분쇄시켰기에 공세를 막아내고 탈환지 토의 반이나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태겡(그리고 그들의 주군인 레이먼 제국) 대공국과의 대립은 계속되었으며, 그들의 지원을 받은 군소주들의 반란역시 계속되었다.
         이러한 대립속에서 계형이 죽고 실권을 잡은 계로는 레이먼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5000명의 친위대들인 '흑군'[* 모두 검은 망토를 차서 이렇게 부른다.]을 창설했으며, 이들을 이끌고 레이먼 제국과 태겡대공국의 침입을 수차례 격퇴했다. 한편으로 계로는 흑군의 숫자를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으며, 이것때문에 늘어난 지출을 줄이기위해 귀족들과 지방관들의 세금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진 큰 불만이 없었으나, 센티겔을 더이 임시수도가 아닌 수도로 지정하고, 이름을 티겔로 바꾼다는 조치가 문제였다. 이는 고토의 탈환보단 남부쪽 개척에 집중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고, 결국 북부파와 남부파까지 망라한 귀족들의 연합이 태겡 대공 루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반란을 일으키며, 태겡이 이를 명분삼아 침공을 해오기까지 한다. 탈환지의 귀족중 80%가 이 반란에 따랐으며, 태겡과 귀족 연합의 병력은 3만에 이르렀다.
         한편으론 남쪽으로의 개척도 활발히 진행했는데, 이문제로 인해 사냥꾼들과 갈등이 당히 있었다. 전왕조의 일족이었던 '달'씨족은 문제없이 복속했지만, 그외에 '고'씨족과 '문'씨족은 쉽사리 복속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과 충돌직전태까지 온다. 결국 이들과 협정을 하게되고,[* 국력으론 티겔이 절대우위였으나 전선의 길이와 이들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소모될 물자가 문제였다.] 고씨일가와 문씨일가는 그들의 역에서 사냥을 자유롭게 벌이는걸 허락하는 대신, 다이잔 강 북부를(동부대륙 중남부의 최하단.) 개간하는걸 허락받는것이었다. 어차피 이들은 다이잔 강 남부가 주거점이었고, '달'일족이 약화되면서 겸사겸사 챙긴 구역이라 크게 손해보는건 없다는 생각하에 수락했다. '''그리고 남쪽에선 흉폭한 거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나가 된 거인족들은 단합하지 못하고 여러개의 씨족으로 나뉘어져 있던 사냥꾼들을 쉽게 제압했고, 졸지에 고향을 잃게 된 그 일대 사냥꾼들은 당시 대륙 서남부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던[* 남부의 최대던 문씨나 고씨족은 박살났으므로] 신씨일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편으로, 어느 야만족들이 사냥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부리고 마을을 불태운다는 소식은 모든 사냥꾼 씨족들을 자극시켰고, 이로인해 모든 사냥꾼들을 규합해 이들에게 대항하는 사냥꾼들의 '대군주' 작위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어 이어진 대군주를 정하는 회의에서 참석한 모든 씨족들이 문씨와 고씨가 몰락한 태에서 제일의 씨족이 된 신씨일족의 가문 수장 신유를 대군주로 추대하게 된다.
  • 태종무열왕 . . . . 72회 일치
         |매장지 = 경사 북쪽(《삼국사기》)
         |배우자 = [[문명왕후|문명왕후 문희]], [[창부인|창부인 보희]]
         [[661년]] 재위한지 8년만에 죽으니 나이 59세였다. 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를 지냈다. 시호는 무열(武烈)이며, 묘호(廟號)는 태종(太宗)이다.<ref name="김하">김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D%83%9C%EC%A2%85%EB%AC%B4%EC%97%B4%EC%99%95&ridx=0&tot=42 태종무열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김유신의 주도와 김춘추의 동조로 이루어진 정략적인 측면이 강했던 이 혼인을 통해, 왕위 계승에서 배제된 진지왕계와 옛 금관가야계 귀족간에 정치 · 군사적 결합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지왕계(김용춘 · 김춘추)는 김유신계의 군사적 능력을, 금관가야계([[김서현]] · 김유신)는 진지왕계의 정치적 위치를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러한 호 이익에 입각해 이루어진 정치적 결탁은 신라의 중고(中古) 왕실의 진골 귀족 내에서 하나의 신집단을 형성하게 되어 [[성골]](聖骨)계로 대표되는 기존의 구 귀족집단의 견제와 반발을 받았다. 무열왕은 부계가 진지왕의 자손이고 모계가 진평왕의 자손으로 양쪽 모두가 왕족인 성골에 속했지만, 무열왕 이후 부계만이 왕족인 진골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그를 징적인 진골 최초의 임금으로 평가한다.{{출처|날짜=2018-06-29}}
         선덕여왕 11년([[642년]]) 8월, [[백제]](百濟)의 장군 윤충(允忠)이 신라의 [[대야성]](大耶城, [[경남도]] [[합천군|합천]])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대야성의 성주였던 이찬 김품석은 김춘추의 딸 [[고타소]](古陀炤)의 남편으로 김춘추의 사위였는데, 앞서 그에게 아내를 빼앗긴 원한으로 백제군과 내통한 부하 검일(黔日)의 배반으로 궁지에 몰린 김품석은 처자를 죽인 뒤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삼국사기》는 당시 김춘추는 이찬의 관등에 올라 있었고, 대야성에서 딸과 사위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어 사람이 지나가는 것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대야성의 일을 계기로 백제를 멸망시키겠다고 다짐하였다는 것이다. 원병을 빌리기 위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갈 것을 왕에게 건의한 김춘추는 고구려의 국왕 [[보장왕]]과 실권자 [[연개소문]]을 만나 원병을 청했지만, 원병 파병 조건으로 과거 [[진흥왕]](眞興王) 때에 신라가 획득한 죽령(竹嶺) 이북 땅의 반환을 내세운 고구려에 의해 억류되었다가 김유신의 무력 시위,<ref name="선덕왕-1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선덕왕 11년(642)</ref> 그리고 고구려 대신 선도해의 도움으로 "돌아가는 대로 왕에게 아뢰어 땅을 돌려주게 하겠다"는 거짓 편지를 쓰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ref name="김유신-">《삼국사기》 권제41 열전 제1 김유신 </ref>
         고구려 뿐만 아니라 《일본서기》에는 [[고토쿠 천황]](孝德天皇) [[다이카]](大化) 3년([[647년]])에 김춘추가 왜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김춘추의 관등은 신(上臣) [[대아찬]](大阿湌)으로 표기되어 있다.<ref name="일본서기-647">《일본서기》 권25 天萬豐日天皇 孝德天皇 大化 3년(647)</ref> 한편 신라에서는 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 김유신에 의해 진압되고, 선덕여왕의 사망으로 진덕여왕이 옹립되었다. 춘추와 유신은 진덕여왕을 보위하여 정권을 완벽하게 장악하였다.<ref name="신라-647">《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1년(647)</ref>
         귀국하는 김춘추에게 당 태종은 3품 이의 관인들을 불러 송별연을 열었고, 『온탕비(溫湯碑)』 · 『진사비(晉祠碑)』의 글과 《[[진서]](晉書)》 한 질을 김춘추에게 하사하였으며 [[장안|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 밖까지 나아가 전송하였다. 앞의 서적들은 태종 자신이 직접 짓고 글씨도 쓴 것으로, 특히 《진서》는 당의 [[비서감]](秘書監)에서 맨 먼저 필사한 두 질 가운데 하나로서 태자(훗날의 [[당 고종]])와 김춘추에게 각각 내린 것이었다. 김춘추도 당으로부터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의 벼슬을 받은 아들 문왕을 숙위(宿衛)로서 당에 남겨두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김춘추는 [[서해]]에서 고구려 순라병에게 포착되어 나포될 위기에 처했으나, 함께 왔던 [[온군해]](溫君解)가 귀인의 관을 쓰고 배에 남아 고구려군의 주의를 끄는 사이 작은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f name="신라-64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ref><ref>[[최치원]], 《성주사 낭혜화 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ref>
         김춘추가 귀국한 태화 3년([[649년]])부터 신라는 관복을 당풍으로 바꾸고,<ref name="신라-649">《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3년(649)</ref> 태화 4년([[650년]]) 진덕여왕이 직접 당의 왕업을 찬미하는 「[[태평송|오언태평송]](五言太平頌)」을 지어 비단에 수를 놓아 보냈으며, 신라의 고유 연호를 폐지하고 당의 [[휘]](永徽) 연호를 쓰는 등 친당 정책을 더욱 가속화하였다.<ref name="신라-65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4년(650)</ref> 진덕여왕 5년([[651년]])에는 중국의 제도를 본뜬 정월 초하루일 백관(百官)들이 모여 행하는 하정례(賀正禮)를 처음으로 조원전(朝元殿)에서 치렀으며, [[품주]](稟主)가 [[집사부]](執事部)로 개편되어 왕정의 기밀 사무를 맡았다. 좌이방부(左理方府)가 설치되고, [[파진찬]](波珍湌) [[김인문]](金仁問)이 다시 당에 파견되어 좌령군위장군(左領軍衛將軍) 벼슬을 받고 숙위를 맡았다.<ref name="신라-65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5년(651)</ref>
         진덕여왕 8년([[654년]]) 3월에 진덕여왕이 승하하고, 진골 세력은 대등 [[알천]](閼川)에게 섭정을 청하였으나 알천은 이를 사양하고 춘추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권하였다. 춘추는 사양하다가 마침내 국인의 천거를 받아들여 임금으로 즉위하였다.<ref name="신라-654">《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1년(654)</ref> 《삼국사기》는 신라의 시조(始祖) [[박혁거세|혁거세]](赫居世)부터 진덕여왕까지의 28명의 임금을 성골, 무열왕부터 마지막 [[경순왕]](敬順王)까지를 진골이라고 하였으며, 무열왕부터 [[혜공왕]]에 이르는 8명의 임금이 재위한 시기를 중대(中代)로 분류하였다.<ref>《삼국사기》 권제12 신라본기 제12 경순왕</ref> 한편 《삼국유사》는 진덕여왕 이후 무열왕부터의 왕계를 하고(下古)로 분류하고 있다.<ref>《삼국유사》권제1 왕력(王曆)</ref>
         당에도 즉위를 알리는 사신을 파견하여, 무열왕 즉위년에 [[당 고종|고종]](高宗)으로부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 신라왕의 책봉을 받았으며,<ref name="신라-654"/> 무열왕 2년(655년)에 당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가 백제와 말갈과 더불어 군사를 연합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의 33개 성을 탈취하였음을 전하면서 구원을 요청하였고, 당은 3월, 주도독(營州都督) [[정명진]](程名振)과 좌우위중랑장(左右衛中郞將)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였다.<ref name="신라-655"/> 또한 무열왕 3년([[656년]])에는 {{출처|날짜=2018-06-30|1=신라의 개국 공신인 사로 6촌장을 왕으로 추존하였고,}} 당에서 귀국한 김인문을 [[군주]](軍主)로 삼았으며, 가을 7월에는 김문왕을 다시 당에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ref name="신라-656">《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3년(656)</ref> 귀국한 뒤 문왕은 무열왕 5년([[658년]]) 정월에 부왕으로부터 집사부의 [[중시]](中侍)로 임명되고,<ref name="신라-65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5년(658)</ref> 김인문도 무열왕 6년([[659년]]) 여름 4월에 백제를 치기 위한 원병 파병을 요청하는 사신으로서 당에 파견되는 등,<ref name="신라-659">《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6년(659)</ref> 친족 중심의 내각을 구성하여 왕권을 안정시켰다. 즉위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김유신에 대해서는 무열왕 7년([[660년]]) 정월에 [[대등]](上大等)으로 임명해<ref name="신라-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7년(660)</ref> 왕권을 보다 전제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무열왕이 즉위하기 전의 대등은 귀족들의 모임인 [[화백 회의]]의 대표자로서 왕권을 견제하는 존재이거나 왕위계승 경쟁자로서의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무열왕 이후 대등을 왕이 임명함으로써 화백 회의는 혜공왕 이전까지 왕권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출처|날짜=2018-06-30}} 이러한 왕권을 바탕으로 무열왕은 고구려 및 백제와 본격적인 전쟁에 참여하였다.
         무열왕 7년([[660년]]) 3월,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인 당은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 소정방과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유백(劉伯英) 등이 인솔한 수륙 13만 군사를 파병하였다. 원병을 요청하러 보낸 김인문은 소정방이 이끄는 신구도행군의 부대총관(副大摠管) 자격으로 귀국하였고, 무열왕에게도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이라는 지위가 더해졌다.<ref name="신라-660"/> 무열왕은 바다를 건너온 당군을 접하기 위해 [[5월 26일]], 대장군 [[김유신]]과 [[김진주 (신라)|김진주]](金眞珠){{.cw}}김천존(金天存) 등과 함께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남천정(南川停)<ref group="주">신라 10정(十停) 중 하나로, 현재 [[경기도]] [[이천시]]에 있던 부대</ref>에 이르렀고, 21일에 태자 김법민을 보내 병선(兵船) 1백 척을 거느리고 [[덕적도|덕물도]](德物島)에서 소정방을 맞아, [[7월 10일]]에 백제의 [[사비성]](泗沘城) 앞에서 합류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당군과 함께 백제를 공격할 5만 신라군의 지휘는 태자 김법민과 대장군 김유신, 장군 [[김품일|김품일]](金品日)과 [[김흠순|김흠춘]](金欽春) 등이 맡고, 왕은 금돌성(今突城)에서 머물렀다.<ref name="신라-660"/>
         [[7월 9일]]에 김유신 등이 이끄는 신라군이 [[황산벌 전투|황산벌]]에서 백제군을 격파하고, 당군도 백제군의 저지를 뚫고 [[기벌포 해전|기벌포]]로 륙하여, [[7월 13일]]에 사비성이 함락되고, [[7월 18일]]에는 웅진성으로 도망쳤던 [[의자왕]]도 항복하여 백제는 멸망하였다.<ref name="신라-660"/> 사비성을 함락했을 때 [[김법민]]은 백제의 왕자 [[부여융]](扶餘隆)을 말 앞에 꿇어 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예전에 네놈의 아비가 내 누이를 억울하게 죽여 옥중에 묻었고 그 일 때문에 내가 20년 동안 마음 아프고 골치를 앓았었는데, 오늘 너의 목숨은 내 손 안에 있구나!”라고 꾸짖었다.<ref name="신라-660"/> 의자왕의 항복 소식을 듣고 29일에 금돌성에서 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온 무열왕은 제감(弟監) 천복(天福)을 당에 보내 승리한 사실을 고하였다. 8월 2일에는 앞서 대야성이 백제에 함락될 때 신라측에서 내응했던 모척(毛尺)과 검일(黔日)을 잡아 처형하고, 주연(酒宴)을 베풀어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이때 의자왕과 그 아들 융(隆)을 마룻바닥에 앉혀 놓고 때로 의자왕에게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여러 신하들 중 목메어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ref name="신라-660"/>
         이미 의자왕이 항복한 뒤부터 백제 땅에서는 부흥군들이 일어나 신라 · 당군과 전쟁을 벌였으며, 고구려도 11월 1일에 [[칠중성]](七重城, 지금의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을 공격해 와서 군주 필부(匹夫)가 전사하기도 하였다. 백제 부흥군에 대한 공세에 나선 무열왕은 10월 9일에 태자 법민과 함께 여러 군사들을 인솔해 이례성(尒禮城)을 쳐서 18일에 함락시키고 인접한 백제의 20여 성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30일에는 사비성 남쪽 산마루에 있던 백제 부흥군을 공격해 1,500명의 목을 베었다.<ref name="신라-660"/> 11월 5일에는 계탄(雞灘)을 건너 왕흥사잠성(王興寺岑城)을 공격해 7일에 함락시키고 7백 명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리고 22일에 서라벌로 귀환해 논공행을 벌였는데, 앞서 황산벌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좌평]](佐平) 충(忠常) · (常英)에게 [[일길찬]](一吉湌) 관등을 주어 총관(總管)직을 맡기는 등 포로로 잡거나 항복해온 백제의 관료들도 처벌하지 않고 관직을 내리기도 하였다.<ref name="신라-660"/>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북하는 도중 병사하였다.
         무열왕 8년([[661년]]) 음력 6월 59세로 사망하였다. 시호(諡號)를 무열(武烈)이라 하고, 경사(永敬寺)의 북쪽에 장사를 지냈으며, 묘호(廟號)를 올려서 태종(太宗)이라고 하였다. [[당 고종]]은 무열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성문(洛城門)에서 애도식을 거행하였다.<ref name="신라-661"/>
         《삼국사기》는 태종 무열왕의 무덤이 경사(永敬寺) 북쪽에 있다고 기록하였으며, 지금의 경주시 서악동 842번지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소재한 서악리 고분군의 다섯 고분 가운데 가장 아래에 위치한 원형봉토분이 태종 무열왕의 능으로 비정되고 있다. 봉분의 면적은 14,169m<sup>2</sup>로, 신라의 왕릉 가운데 피장자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덤으로서 가치가 있으며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 사적 제20호로 지정되었고, [[1972년]]부터 [[1973년]]에 걸쳐 주변 정비가 이루어졌다.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되는 이 무덤은 다른 왕릉에 비해 봉분 장식이 소박한 편으로 무덤 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돌렸다.
         * 《삼국사기》를 비롯한 전통적인 사료의 기록 및 해석에서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의 다른 이름이 용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용춘과 용수는 서로 다른 인물이자 진지왕을 아버지로 둔 형제이며, 동생인 용춘이 천명공주와 혼인하여 춘추를 낳았으나 용춘이 먼저 사망하자 다시 용수와 재혼하여 춘추는 용수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나온다.<ref name="multiple">{{서적 인용 | 제목 = 화랑세기 | 저자 = 김대문 |역주 = 이종욱 | 출판사 = 소나무 | 발행년도 = 2005 | 관련쪽 = 225 | id = {{ISBN|89-7139-546-X}} 93910 }}</ref> 다만 『황룡사중수기』에는 용춘이 《화랑세기》의 기록과 달리 후대에도 생존해 있는 태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화랑세기》 위서론의 중요한 근거 가운데 하나이다([[화랑세기#용수 문제]] 참조).
         *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는 12대 풍월주 보리공(菩利公)의 딸 보룡(寶龍)과의 사이에서 아들 당원전군(幢元殿君)과 딸 여씨(呂氏)를 두었고, 문명왕후와의 사이에서도 선원전군(仙元殿君)이라는 아들이 더 있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무열왕은 문희와 혼인하기 이전에 이미 [[보종]]과 양명공주의 딸 [[보라궁주]](寶羅宮主) 설씨와 결혼했으며, 처음 문희는 측실로 혼인하였으나 보라궁주의 요절로 문희가 정실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문희의 언니인 보희와의 사이에도 지원(知元)이라는 왕자가 있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들 왕자의 실존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태종 무열왕에 대한 당대 신라인들의 평가는 매우 높았다. 이는 ‘태종(太宗)’이라는 묘호를 올린 것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는 신라 역사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였다.<ref group="주">그러나 고구려의 [[태조왕]]의 경우에는 묘호로 봐야 되는가, 시호로 봐야 되는가에 대한 이견이 있다. 그 밖에 태조의 묘호를 받은 [[태조 성한왕]]이나, 국조의 묘호를 받은 [[박혁거세]]도 존재한다.</ref> 이에 대해 [[당 고종]]<ref group="주">《삼국사기》에는 [[당 중종]]이라 표기됨</ref>이 “당 태종이 위징(魏徵)·이순풍(李淳風) 등을 얻어 천하를 평정하는 대업을 이루었기에 태종이라 하였지만, 너희 신라는 바다 밖에 있는 조그만 나라임에도 태종의 호를 사용하여 천자의 칭호를 참칭하니 그 뜻이 불충하므로” 이를 고칠 것을 요구하자, 신라의 [[신문왕]](神文王)은 “(당 태종처럼) 무열왕도 김유신이라는 성신(聖臣)을 얻어서 삼한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었다”며 완곡하게 거절하는 답서를 보냈다. 이 답서를 받은 고종은 그가 태자로 있을 때 하늘에서 이르기를 “33천(天)의 한 사람이 신라에 내려가 유신이 되었다.”고 한 일이 있어서 이를 기록한 바가 있는데, 이 기록을 찾아 확인해보고서는 놀랍고 두려워서, 태종의 묘호를 허락했다고 한다.<ref name="유사-기이1"/> 훗날 [[조선]](朝鮮)의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고려]](高麗)의 [[왕건|태조]](太祖) 이래 역대 군주들의 묘호를 시호로 대체하고자 하는 [[조선 성종|성종]](成宗)에게 태종 무열왕의 선례를 들며 굳이 기록된 묘호를 뺄 필요는 없음을 주장하였다.<ref>《성종실록》 성종 18년 정미(1487년) 2월 경진(10일)조</ref>
  • 예천군 . . . . 7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북도)]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005CAA> {{{#FFFFFF '''광역시도'''}}} ||<bgcolor=#FFFFFF> [[경북도]] ||
         ||<bgcolor=#5EBFED> {{{#FFFFFF '''2'''}}} ||<bgcolor=#FFFFFF> 안희 ([[무소속|{{{#808080 '''무소속'''}}}]]) ||
         ||<-2><bgcolor=#5EBFED> {{{#FFFFFF '''국회의원'''}}} [br] [[주시·문경시·예천군|{{{#FFFFFF {{{-1 (주시·문경시·예천군)}}}}}}]] ||<bgcolor=#FFFFFF> [[최교일]]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rowbgcolor=#F0F8FF> '''예천읍내 전경'''[* 모르는 사람은 안 보일테지만... 예천초등학교, 예천경찰서, 예천군청 구 청사 등의 시설들이 보인다. 왼편에 있는 산이 '흑응산'이고, 오른편의 냇물이 '한천'이다.] || '''예천군청 조감도''' (충효로 111)[* [[경북도청]]의 디자인을 따와서 비슷한 컨셉으로 [[공모전]]을 한 결과이다.] ||
         [[경북도]] 북서부에 있는 군. 인구는 5만여 명. 동쪽 [[안동시]], 북동쪽 [[주시]], 서쪽 [[문경시]],남서쪽 [[주시]], 남동쪽 [[의성군]], 북쪽 [[충청북도]] [[단양군]]이 있다.
         지형에서는 대다수 [[경북도]] 북부지역에 위치한 도시들과 같이 [[소백산맥]]이 있어서 산악지형을 띄고 있지만, 이 곳은 대적으로 평지가 많다. 인구로 보자면, 70년대 중반에는 한 때 인구가 16만 명이 넘는 [[리즈시절]]도 있었지만 성장동력 부재와 [[농업]]종사 인구 감소로 인해 80년대 말과 90년대 초까지 크게 감소했고 이후 90년대 중반부터는 6만 명에서 4만 5천여 명으로 더디지만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북도|경북도청]] 이전으로 안동, 예천 접경지역에 [[경북도청신도시]]이 조성되어 큰 성장동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드디어 13년만에 인구 50,000명을 넘기게 되었다.
         인구의 대다수가 1차 산업에 종사, 예천읍내 한정으로 업, 공무원, 교원 종사자가 있다. 그 외에 [[제16전투비행단]]의 향으로 [[군인]]도 제법 있다. 낙후한 [[군]] 지역이다 보니 업지역이 빈약하기 때문에, 당수 사람들은 문경, 안동, 주 등으로 나가서 일을 해결한다. 풍양면, 용궁면 지역은 주·문경권에 속해 있으며, 감천면 지역은 주권에 속해있다. 나머지 지역은 대체로 안동 [[생활권]]에 속한다.
         [[남아선호사]]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80년 이래 전국에서 남아 출생성비로 1위를 놓친 적이 거의 없다고(...).
          * 1923년 : 주군에서 리면과 하리면을 편입.(12면)
          * 2016년 2월 : 리면을 효자면으로, 하리면을 은풍면으로 개칭.
         ||<-102><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DDDDDD><#FFFFFF><:> [[예천군|[[파일:예천군 로고.png|width=100]]]] [br] {{{+1 ''' [[경북도|{{{#000000 경북도}}}]] [[예천군|{{{#000000 예천군}}}]] {{{#000000 인구추이}}} ''' }}} [br] {{{-3 ([[1970년]]~[[2018년]])}}} ||
         ### 이 표에서 사용된 그래프는 25만 명이 한인 100분율 자료입니다.
         예천군의 동쪽을 통과하는 [[중앙고속도로]]에 [[예천IC]]가 있다. 문경, 안동 방면으로 [[34번 국도]], 의성, 주 방면으로 [[28번 국도]], 군 북서부를 [[59번 국도]]가 지난다. 하지만 서울 방향으로 가는 경우 [[예천IC]] 보다 점촌을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함창IC]]를 이용하는것이 훨씬 빠르다. 연평균 이용량이 300대 정도로 매우 적은 교통량. 예천읍과도 당한 거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앙고속도로]]가 안동과 주를 직결하지 않고 예천으로 우회하도록 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중앙고속도로]]가 예천으로 우회한 것은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지역 출신 정치인 [[유학성]]의 입김이었다고 한다. [[예천공항]]이 생겼던 것도 [[유학성]]이 주도했다는 말이 있다.
         시외버스는 [[예천시외버스터미널]]을 통해 이용 가능하다. 기타 [[농어촌버스]]는 [[예천여객]]에서 운하고 있다. [[2012년]] [[7월 1일]] [[경북도]] 북부 지역의 군 단위 최초로 [[티머니]] [[교통카드]]를 도입하였으며, [[중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라인에 있는 모든 [[경북도]] 북부 지역의 시군과 공용한다. [[2013년]] [[3월 1일]]부터는 군계 내 [[구간요금]], [[2014년]] [[7월 1일]]부터는 군계외 구간요금을 폐지하고, 무료환승제도가 도입으며, [[2016년]] [[3월 1일]]부터는 [[안동시 시내버스]]와도 무료환승이 가능하다.
         회룡포, 삼강주막, [[용문사]], [[석송령]], 학가산 등이 있다. 석송령은 감천면 천향리에 있는 나이가 600년이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294호로 지정되었다. 나무의 나이나 웅장한 외형도 유명하지만, 일반인들에겐 일명 '부자 나무'로 더 유명하다. 1930년대에 한 주민이 이 나무를 매우 아껴서 자신의 토지(약 6600제곱미터)를 이 나무에게 속했다고. 일제 강점기 때는 사람이 아닌 사물에도 명의를 붙여서 속하는게 가능했고 이것이 현대까지 계승되어 온 것이다. 이 토지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 경작해서 그 수익으로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을 내며, 나머지는 마을의 교육 장학금으로 사용한다.
         ||5||리초등학교|| 효자면 도효자로 1558||
         ||11||풍양초등학교|| 풍양면 낙1길 50-10 ||
         ||3|| ||풍양중학교|| 풍양면 낙1길 94 ||
  • 정인욱 . . . . 7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삼성 라이온즈/선수단 명단)]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74CA1><bgcolor=#074CA1> '''{{{#FFF 정인욱의 수 이력 / 역대 등번호}}}''' ||
         || [[홍삼]] [br] ([[충암고등학교 야구부|충암고등학교]]) || → || '''정인욱 [br] (대구고등학교)''' || → || [[김용주(야구선수)|김용주]] [br]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등학교]]) ||
         || '''신체''' || 188cm[* 네이버 프로필에는 186cm라 나오는데 선수 때도 계속 자란 것을 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86kg ||
         [[삼성 라이온즈]]의 ~~[[http://gall.dcinside.com/samsunglions/8346986|정정당당하게 못 던지는]]~~ [[투수]]. 서글서글한 성격에 귀염이라 팬들뿐만 아니라 팀 내에서도 인기가 많으며 미소가 [[서민정]]을 닮았다고 팀 내에서는 [[서민정]]이라 불린다. 최근에는 [[설리(배우)|설리]]를 닮았다고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 내에서 [[설리(배우)|설리]]로 불리고 있다. ~~못하면 얄짤없이 [[에스마일린 카리대|설리대]]~~ ~~얼굴뿐만 아니라 멘탈도 설리를 닮았다고 까이는 중~~ 배우 [[김고은]]과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여배우 닮은 꼴에 대해 본인은 싫어한다고 한다. 배우 이용주와도 많이 닮은 듯.
         원래 내야수였으나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2학년 때 투수로 전향해[* 고교 시절 정인욱을 지도한 박태호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감독 말로는 '''공 빠른 거 말고는 써먹을 데가 없어서''' 투수로 전향시켰다고 한다.] 대구고의 청룡기 우승을 이끌며 청룡기 MVP도 수했다. 짧은 투수 경험에도 뛰어난 평가를 받아 1차 지명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수(타자)|이미 고교 1학년 때부터 1차 지명자로 기대됐던 내야수가 있어서...]]
         2008 제일화재 프로야구 대에서 아마야구 MVP를 수했다.
         삼성 입단 첫 해인 2009 시즌에는 허리 부으로 2군에서도 많은 경기에 못 나서고 재활에만 힘썼다.
         2010 시즌에는 2군에서 [[선발 투수]]로 9경기 등판해 4승을 올리고 5월 4일 1군에 올라왔다. 첫 데뷔전은 롯데전이었는데 2사 만루 황에서 등판, [[홍성흔]]을 대로 파울 플라이를 잡았다. 베테랑을 대로도 떨지 않고 정면 승부한 것을 [[선동열]] 감독이 좋게 봤는지 5월 14일 넥센전에서 선발로 등판하게 된다.
         2011 시즌에는 [[장원삼]]이 어깨 부으로 선발 로테이션 합류가 늦어지며 6선발 후보로 낙점되었다. 그러나 로테이션 기회가 오지 않아 계투로 등판하다 4월 16일 두산전에 시즌 첫 선발 등판한다. 결과적으로 5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가능성을 보인 등판이었다. 이후 장원삼이 선발로 합류하며 자리가 없어진 정인욱은 2군으로 내려가게 된다. 1군에서도 롱릴리프 추격조로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지만, 가능성이 많은 어린 선수이니만큼 2군에서 선발로 키우겠다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발투수인 외국인 선수 [[카도쿠라 켄]]이 부친의 건강 악화로 일본에 다녀오며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나자, 이를 메꾸기 위해 1군으로 콜업되어 5월 5일 롯데전에 선발 등판하게 된다. 이 경기에서 정인욱은 손가락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부으로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 5와 1/3 이닝 동안 1피안타 무실점으로 롯데 타선을 막으며 데뷔 첫 선발승의 감격을 누린다. 경기 직후 곧바로 2군으로 다시 내려가지만, 선발의 한 축을 담당하던 [[안지만]]이 셋업맨으로 보직을 옮기며 다시 6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 예정.
         6월 8일 롯데를 대로 선발 출전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양승호 감독이 '정인욱은 롯데 전담 투수 같다'고 할 정도로 롯데전에 출전하여 승리를 챙기고 있는 황.
         그러나 8월 6일 롯데를 대로 4이닝 6실점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대호와의 악연도 지긋지긋하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2011년 10월 29일 [[문학 야구장|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 [[윤성환]]의 뒤를 이어 팀이 4:1로 앞서던 4회말 1사 1,2루 황에서 등판하였다. [[박진만]]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고 [[정근우]]에게 볼넷을 내주어 2사 만루의 위기에 몰렸지만 [[박재#s-2|박재]]을 삼진으로 잡고 4회말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후 5회와 6회 위력적인 투구로 한 명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강한 인을 주었지만, 7회말 [[박진만]]에게 안타, [[정근우]]에게 볼넷을 허용한 후 무사 1,2루에서 [[박재#s-2|박재]]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아서 스코어 5:4를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타자인 [[최정]]에게 안타를 맞아 무사 1루 황에서 강판되었다. 다음 투수인 [[권혁]]이 폭투을 하고 [[박정권]]에게 안타를 맞고 내려가는 바람에 무사 1, 3루가 되었으나 그 다음 투수인 [[안지만]]이 환적인 투구로 7회말을 무실점으로 리드를 지켜내어 정인욱은 이날의 승리투수가 될 수 있었다. 이날 정인욱의 성적은 2⅔이닝 47투구수 3피안타 1피홈런 2볼넷 3실점 3자책점 구원승.
         그리고 밑에 보듯이 정인욱이 이후로 얻어맞고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시즌이 사실 커리어 하이 시즌이라 봐도 무방하다. 사실 데뷔 시즌에 너무 잘했기 때문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삼성 라이온즈|삼성]]이 아직도 잡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삼성의 필승의 목표 중 하나가 정인욱의 부활이다.
         시즌을 앞두고 [[차우찬]]처럼 무려 11kg을 감량하고 투구 폼을 바꿨다. [[스프링캠프]] 때는 바뀐 투구 폼에 무리가 없었으나,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후 쌀쌀한 날씨 탓에 투구 폼 적응에 실패하면서, 이 때문에 밸런스가 망가졌다. 이로 인해 2012년에는 주춤했다. 애초에는 [[배수]]와 6선발을 두고 경쟁할 예정이었으나,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즌 후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야구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출전하기도 했다. 중국전과 대만전 두 경기에 출전, 9와 2/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활약을 하며대회 [[평균자책점]] 1위 을 받았다. [* 한국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3승2패의 성적을 거두며 최종 3위를 기록했다.]
         [[11월 20일]] [[무 피닉스 야구단|무]] 입대가 최종 확정되었다.
         [[무 피닉스 야구단|무]] 첫 해부터 1선발로 등판했다. 148⅓이닝을 소화해 [[경찰 야구단|경찰청]]의 [[장원준]]에 이은 퓨처스 전체 이닝 소화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장원준]]의 경우엔 투구수가 110개를 넘게 던진다거나 시즌 후반 들어서는 계투 알바로 연투하는 등 혹사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정인욱은 시즌 초반을 제외하면 투구수가 110개를 넘은 경기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5월에는 컨디션 난조로 로테이션을 아예 거르기도 하는 등 어느 정도 관리를 받았다. 첫 해 성적은 26경기 148⅓이닝 7승 6패 [[평균자책점]] 3.40. 다소 승운이 없었는데, 정인욱 스스로가 말아먹은 경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시즌 후 허리 문제로 수술을 고민하는 황에 이르렀다. 애초에 투수 전향이 늦었고, 삼성에서도 시즌 소화 이닝을 관리받던 차에 갑자기 늘어난 이닝을 버텨 내지 못한 것. 결국 고민 끝에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한다. [[무 피닉스 야구단|무]] 복무 시절에는 어깨도 안 좋았다고 한다.
  • 안내상 . . . . 70회 일치
         {{화인 정보
         |이름 = 안내
         |형제자매 = 형 안외(安外相) <br/> 누이동생 2명
         |웹사이트 = [http://www.dmostent.com/main/ko/sub03_detail1.html?id=30&page=1&&code=bbs_artist&view_type=&keyword=&field=&xid=3 디모스트 엔터테인먼트 안내]<br>{{페이스북|308705609217329}}
         '''안내'''(安內相, [[1964년]] [[12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90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다.
         안내의 [[아버지]]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염색 공장을 하다가 [[보증]]을 잘못 서서 집이 망해 서울로 경하여 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수업도 들어가지 않고 학우들을 괴롭히는 등, 초등학교 3학년 부터는 [[담배]]를 피우고 [[도둑질]]을 했다. 이 때 안내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하여 [[개신교]] [[교회]]를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종교에 귀의한 후에 악행을 멈추었다고 회고했다<ref>[http://news.tf.co.kr/read/entertain/1569156.htm 안내 "하나님 만난 후 악행 멈췄다"] 더팩트. 2015년 08월 16일</ref><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6010103591001 안내 초딩시절 주먹질에 도둑질까지.. “난 깡패였다” 자폭] 뉴스엔. 2011년 06월 01일</ref>. 안내은 중학교 1학년 시절 키가 175cm이었고 많은 학생들에겐 두려움의 대이었다.
         출소 후에는 학생운동을 그만두고 연극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3&aid=0002067175 안내 교도소 갔었다 "1988년 폭탄투하, 신문 1면 장식"] - 스포츠서울</ref>.
         * 배우 [[설경구]]의 전처는 안내의 여동생이다. 또한 [[한양대학교]] 연극화학과 출신인 설경구의 소개를 받아 극단 한양레퍼토리에 들어갔고, [[이문식]], [[권해효]], [[유오성]] 등이 당시 연극을 함께한 동료 배우들이다.<ref>[ http://media.daum.net/entertain/star/newsview?newsid=20100625070203869 [취중토크 ②] 안내 “학생운동 올인…시위하다 수감생활도”] - 일간스포츠</ref>
         * 고교 선배로는 배우 [[최수종]] 등이 있으며 대학 동창으로는 배우 [[우현 (배우)|우현]], [[이대연]], 어 강사 [[문단열]] 등이 있다.
         === 화 ===
         * 1997년 《[[나쁜 화]]》 ... 연기자 행려 역
         * 2000년 《[[우산 (화)|우산]]》 ... 남편 역
         * 2003년 《[[대한민국 헌법 제1조 (화)|대한민국 헌법 제1조]]》 ... 도민우 역
         * 2004년 《[[아홉살 인생 (화)|아홉살 인생]]》 ... 담임 역
         * 2007년 《[[이브의 유혹]]-좋은 아내》 ... 호 역
         * 2008년 《[[숙명 (화)|숙명]]》 ... 차강섭 역
         * 2009년 《[[물 좀 주소 (화)|물 좀 주소]]》 ... 소부장 역 (특별출연)
         * 2010년 《[[시 (화)|시]]》 ... 기범 아버지 역
         * 2012년 《[[해로 (화)|해로]]》 ... (특별출연)
         * 2016년 《[[덕혜옹주 (화)|덕혜옹주]]》 ... 김황진 역
  • 이지아(배우) . . . . 70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 '''본명''' ||<(> 김지아,[* 여러 번의 개명을 거친 이름이라고 한다.] 개명 전 이름 김은[* 조부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순흥이다.][* 미국에서 Shea Lee(시아 리, 셰이 리,[* 외래어 발음규칙에 따른 정확한 발음] 세아 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
         || '''외부 링크''' ||<(> [[http://cafe.daum.net/lovedaum022|[[파일:다음카페2017_square.png|width=24]]]] [[http://cafe.naver.com/tnsly|[[파일:네이버 카페.png|width=24]]]] [[http://gall.dcinside.com/board/lists/?id=ejia&page=|[[파일:디시인사이드_로고.png|width=24]]]] ||
         [[2004년]] [[배용준]]과 함께 [[LGU+|LG텔레콤]] CF 촬으로 연예계에 들어왔으나 후속 활동이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2007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수지니 역으로 데뷔. 큰 배역임에도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때의 모습이 [[칼리(그라나도 에스파다)|칼리]]의 컨셉이 되었다.
         스캔들 5개월 후 [[2011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나도 꽃]]의 여주인공 순경 차봉선 역을 맡았다. 아래 후술된 스캔들의 여파를 고려하면 생각보다 빨리 현장에 복귀한 셈이다. 이때까지 드라마에서 이지아와 함께 출연한 배우는 배용준-김명민-김혜수-정우성으로 죄다 연기대자이고 정우성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미남 배우로 이름을 알렸었다. [* 다만 정우성과 출연할 당시엔 드라마의 메인 히로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역은 [[윤시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쟁작인 [[뿌리깊은 나무]]의 임팩트가 워낙 독보적이라서 예보다 그렇게 화제를 모으진 못했다. 배우의 연기나 드라마 자체는 그럭저럭 입소문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나 [[광의 재인]]과 [[뿌리깊은 나무]]와의 경쟁에서 시청률 참패를 당하면서 조기 종되었다.
         [[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712938|2부작 드라마 <설련화>에 출연하였다.]] SBS에서 2015년 11월 11일에 방하였다.
         연기력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데, 비판적인 의견이 당수. ~~앞뒤가 안 맞잖아~~ 특히 2009년 김혜수와 함께 출연했던 SBS 드라마 "스타일"에서는 원조 민폐녀 논란과 함께 혹독한 연기력 비판을 받았다. [* 다만 이 드라마 자체가 구닥다리 구성에 평면적 캐릭터로 이루어졌다는 한계 자체를 지목하여 이지아의 연기만을 까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전작인 [[베토벤 바이러스(드라마)|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마찬가지. 물론 함께 출연했던 [[김명민]]이 워낙 열연했고, [[장근석]]의 연기력 역시 일정 수준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 대이 [[넘사벽]]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어색한 제스쳐, 대사 처리 미흡 등으로 많이 까였다. 하지만 [[아테나:전쟁의 여신]]에서는 연기력이 쓸 만한 편, 아무래도 신인이고 경력이 적다 보니 맡는 캐릭터가 자신과 얼마나 잘 맞는가에 따라서 연기 싱크로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양.
         2011년 12월 19일 이지아의 집안이 육사업을 하던 재력가이며 '''덕망 있는 명문가'''라는 [[언플]] 기사가 떴다. [[정대철]] 당시 민주당 임 고문은 이지아의 조부가 재력은 물론 남다른 인품의 소유자였고 자손인 이지아 부친에 이어 이지아 역시 유복하고 뼈대 있는 가정환경 속에서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고 인터뷰했다.
         물론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게 이지아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친일파를 덕망 있는 가문이니 할아버지가 부자였기에 이지아도 해외에 유학가고 풍족하게 살았다는 등의 자랑 언플질을 한 것은 쉴드 불가능이라 그야말로 가루가 되듯이 까였다. ~~[[서태지|전 남편]]은 심지어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다!~~ 명문가랍시고 언플한 가문이 수탈의 주범인 친일파임이 밝혀지고 나서 비수로 돌아왔기 때문에 욕을 먹은 것으로 애초에 이지아측과 기획사가 신비주의를 타파하겠답시고 가문에 대한 정보를 밝힌다며 명문가라고 자랑하지만 않았어도 아무도 몰랐을 일을 자기들이 나서서 시원하게 까발린 셈이다. ~~사진 자작극에 이어 또다시 병크 적립~~ 이지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혼 사건이 모두 종결된 지금은 서태지와의 일보다는 이 친일 논란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이지아는 사과를 한 태이긴 하다.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란 거냐고 주장하며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또 한 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금 많이 내면 친일파는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따지면 당시 재력가는 모두 일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일 것이다.~~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만~~ 김순흥의 경우는 자발적인 기부금이었다는 것에서 친일색을 띠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고, 더해서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친미 성향, 혹은 친일에 대한 세탁 등을 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서 친일파가 아니라면, 참 서글픈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샤를 드 골]]과 프랑스의 처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팬들 중 몰식한 일부 사람들도 이런 논리를 주장하거나 이후에 육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100억 원 꿀꺽하고 1억 원 기부하면 깨끗한 거냐~~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반감을 사기도 한다.
         생각해 볼 것은 '''대한민국은 헌법 [[연좌제]]가 없는 국가다.''' 친일파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조의 친일행적을 직접적으로 옹호한적이 없거나 조이 친일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부와 권력을 부당하게 물려받고 국가에 반환하지 않은 적이 없다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공격받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덕망 있는 명문가, 남다른 인품의 소유자는 옹호 아닌가......?~~
         하지만 이지아는 [[대중문화]] 속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으로서 대중문화라는 매체를 접하고 판단하는 '''일반 대중들의 불편함과 따가운 시선''' 역시 어떻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나쁘게 봤음 나쁘게 봤지 좋게 보일 리는 만무하니~~ 이는 이지아 본인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과거사에 매우 민감한 우리나라에선 어쩔 수 없는 현으로 보인다.
         신문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93년 미국 공연에서 이지아의 언니 소개로 인해 두 사람은 처음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 후 편지를 주고 받다가 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미국으로 건너 간 서태지는 이지아와 재회하고 97년 결혼. 당시 혼인신고에서는 서태지의 본명인 정현철과, 이지아의 본명이었던 김은으로 나와 있었다. [[서태지]]와 부부로 산지가 2년 7개월, 이후 별거에 들어갔다. 2000년에 서태지 복귀 후 2006년에 이지아 측에서 홀로 이혼소장을 캘리포니아 법원에 냈다.. 그러므로 2011년에 낸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니라 위자료 청구소송.
         소송건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가 의아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55억이나 청구한다고 해서 '''전액 받아낸다는 보장도 없고''',[* 모 재벌의 황혼이혼사건에서는 1000억 청구해서 50억, 즉 5% 받았다.] 설령 다 받아낼수 있다 쳐도 이미 여배우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그녀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할까라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것. 게다가 철저하게 자신의 신을 숨겨온 그녀가 이런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신이 전혀 안 드러날 거라고 믿을 수가 있나'''라는 점도 의혹으로 제기된다.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자연히 신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광고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지아의 해명글에서 위자료 소송이 돈 때문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후 서태지가 빠른 속도로 재혼을 하면서 서태지가 재혼을 위해 먼저 이지아에게 정리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설이 신빙성있게 돌고있는 태. 이지아에게도 한국에서의 연기생활을 이어가려면 어떻게든 털어내야할 문제이기도 했고...
         비판하는 여론의 주장은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정우성을 속인 것은 심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하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 자신을 굳이 이혼녀라고 밝힐 이유는 없지만, 전 남편과의 관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시점에서 연애를 한 것은 경솔하다는 주장. 덕분에 애꿎은 정우성만 졸지에 서태지와 이지아 사이에 끼인 꼴이 되어서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난감한 황에 처한 것은 두말 할 것 없고. 또 다른 것은 서태지에게 건 거액의 소송을 이유로 남자를 등쳐먹으려는 [[악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티즌]]들의 전형적인 억측으로 인한 [[마녀사냥]]으로 볼 수 있다. 이지아는 세간에 알려지기 이전, 정우성에게 이미 밝혔으며 정우성은 이에 대해 "나도 10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해서 이지아가 굉장히 감동받았다고. 건승하시길 빈다는 말을 덧붙혔다. [[https://www.youtube.com/watch?v=Mcr9EEzgMOM|참조]] 하지만 이 의 내용은 전적으로 이지아의 의견.
         본질적으로 얻을 것이 많지않은 소송을 굳이 해서 이지아가 얻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서 출발하는 동정론도 있다. 신비주의로 일관하며 따라다니는 뒷말들에 계속 침묵으로 일관해왔는데 -일본 화류계 출신이라든가 텐프로 출신이라든가 하는 루머- 제대로 된 과거를 가졌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서태지가 직접 나와서 인정해주는 것 이외엔 없었다. 사실 '나 서태지의 전 부인이었어요' 라든가 '비공식 결혼해서 이름까지 바꿨어요' 이런 걸 말한다고 믿을 사람도 없을 뿐더러 이혼까지 한마당에 굳이 말할 이유도 없으니 본인의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황을 조성하기 위해 소송을 했다는 의견이다.
         97년 결혼 이후 "서태지의 비공식 아내"로 숨어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 동정하는 입장도 있다. 실질적으로 00년에 이미 별거(서태지측 주장)에 들어갈 만큼 결혼생활보다 소송기간이 더 길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여자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서태지의 행동이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며~~[* 하술된 기사 내용에 이 부분은 사실 거짓] 06년에 이혼 소송을 할 때까지 결혼생활의 끝마무리를 이지아 혼자 해야 했다고 [* 서태지 측에서 04년 이혼에 대한 합의, 06년 이혼 요구를 받았다며 인정한 내용이다.]하니.
         2012년 11월 29일, 12월 6일 [[무릎팍도사]]에서 (정확히는 12월 6일 방송분) 이지아의 과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해당 방송에서는 파리 여행을 갔을 당시에 과거의 대가 누구였는지 털어놓았다고 했고, 위자료 청구소송에 관해서는 해당 기사가 터지기 바로 직전에 이지아가 정우성에게 정중하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얘기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파리에서 이지아가 "과거에 긴 시간 동안 어떤 사람과 교제 한 적이 있다"고 말하자 오히려 이지아에 대한 수많은 루머들이 거짓이라는 것에 안도했고, 결혼 사실 보다 오히려 자기 때문에 더 난처한 황이 올까 걱정되어, "자신은 신경쓰지 말고 지금 처해진 황 현명하게 잘 대처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 주상욱 . . . . 68회 일치
         {{화인 정보
         | 이름 = 주
         | 웹사이트 = {{트위터|uks0718}}<br>{{인스타그램|uks0718_}}<br>{{싸이월드|23599386}}
         | 수 =
         '''주욱'''([[1978년]] [[7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98년 [[한국방송공사|KBS]]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로 텔레비전 연기자 데뷔하였다.
         주욱은 1남 2녀중 둘째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북 출신으로서 주욱이 7살때 돌아가셨고 어머님이 공직 생활을 하시며 삼남매를 키우셨다. 친구의 모델활동 현장에 우연히 놀러갔다가 에이전트로 부터 부탁을 받았던 주욱<ref>[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힐링캠프' 주욱, "배우 데뷔? 모델 여자친구가…"]{{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ref> 은 1999년 [[KBS]]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의 단역으로 데뷔한 뒤, 20대 중반까지 아역으로 활동했다. 제대 후 젠틀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역할을 도맡아 해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실장님서 반장님… 다음은 허당 공무원이죠"|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저자=신정엽|출판사=한국일보|날짜=2012-01-16|확인날짜=2013-05-1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423073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보존날짜=2013-10-04|깨진링크=예}}</ref> [[2012년 7월]] [[김준호 (희극인)|김준호]]와 함께 《[[남자의 자격]]》에 합류해 프로그램이 종될 때까지 고정 멤버로 출연했으며 이 프로그램으로 2012년 [[KBS 연예대]] 쇼오락 남자 신인을 수했다.
         * 2008년 [[KBS2]] 《[[아빠 셋 엄마 하나]]》 - 정찬
         * 2011년 [[KBS2]] 《[[가시나무새 (드라마)|가시나무새]]》 - 이조 역
         === 화 ===
         * 2006년 《[[아랑 (화)|아랑]]》 - 재혁 역
         * 2008년 《[[아내가 결혼했다 (화)|아내가 결혼했다]]》 - 한재경 역
         * 2012년 《[[90분]]》 - 희 역
         * 2013년 《[[응징자 (2013년 화)|응징자]]》 - 이준석 역
         * 2017년 [[문화방송|MBC]] 《[[세모방 : 세의 모든 방송]]》 - 고정출연
         == 수 및 후보 ==
         ! 시
         |rowspan=2|[[SBS 연기대]]
         |뉴스타
         |베스트커플 {{small|(with. [[황정음]])}}
         |제6회 아시아모델
  • 청도군 . . . . 68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북도)]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04B4AE> {{{#FFFFFF '''광역시도'''}}} ||<bgcolor=#E0F2F7> [[경북도]] ||
         ||<-2><bgcolor=#ACDB67> {{{#0B3B17 '''국회의원'''}}} [br] [[천시·청도군|{{{#0B3B17 {{{-1 (천시·청도군)}}}}}}]] ||<bgcolor=#CEF6CE> [[이만희(정치인)|이만희]]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경북도]]의 최남단에 있는 군이다. 인구는 약 4만 3천명 정도. 인접한 자치단체로는 [[경북도]] [[경산시]], [[경주시]], [[천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정확한 위치는 [[가창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남도]] [[밀양시]], [[창녕군]] 등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1405년 10도제 실시로 경도 청도군이 되었다가 태종 때 좌우도로 분할할 때 경좌도에 속하였다. 1413년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대구도호부에 속하였고 1433년 다시 밀양도호부로 환원하였다가 1458년 대구진에 속하였다. 1896년(건양 1) 13도제(道制) 실시로 청도군이 되었다.
         == 징 ==
         [[마스코트]] 카우&'''붕가'''(COW&BUNGA). --[[붕가붕가]]-- ~~[[코와붕가|카우와붕가]]~~ 농경문화의 대표적인 소를 통해 협동과 조 하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되어 있지만 그것보다는 [[소]]싸움의 고장인 청도를 징하는 캐릭터다. 카우는 암소를 뜻하지만 붕가는 왜 하필 붕가인지 알게 해주는 설명은 일체 없으며 왜 이렇게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군청 직원 중에 [[닌자 거북이]]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붕가붕가|이한 거 생각하지 말자]].~~
         남북과 동서의 교통 인프라가 크게 차이나는 기이한 곳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분지 지형이긴 하지만 동서쪽으로 지형이 남북 지형보다 험한 편이다. 남북으로는 [[경부선]], [[대구부산고속도로]], [[25번 국도]]가 [[밀양시]]ㆍ[[경산시]]로 향하지만 동서로는 [[20번 국도]]가 [[경주시]]ㆍ[[창녕군]](그것도 2차로로 좁은 데다 선형도 좋지 않다)으로 향하며 [[30번 지방도]]가 이서면에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팔조령 터널을 넘어간다.], 902번 지방도가 각북면에서 [[가창면]] 정대리[* 그것도 구배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헐티재를 넘어가야 한다.]로 향한다. [[창녕군]]으로 가려면 그나마 낫지만, [[달성군]]([[현풍면]] 방면)으로 가려면 [[창녕군]] 성산면을 거쳐 [[유가면]]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풍각면에서 20번 국도를 타고 좁고 구불구불한 비티재를 넘어 고암면 방리에서 1034번 지방도를 타고 성산면을 거쳐 등지교차로에서 5번 국도를 타고 가야 한다. 이래저래 골 때린다. 더 난감한 것은 청도에서 [[달성군]]([[현풍시외버스터미널]])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전무하다. 청도군 또한 산이 만만찮게 많은 고장이니 결과적으로 이런 식이긴 하지만 수요에서부터 벌써 넘사벽이다. 게다가 청도군은 동서로 긴 지형이고 산서(풍각, 각북, 각남)과 산동(매전, 운문, 금천)으로 나뉘는데 중심지인 청도읍과 화양읍이 산서와 한 분지에 속하고 산동과는 산이 가로막은 형세라 같은 행정구역이면서도 산동으로의 교통연결은 사실 2차선 [[20번 국도]] 뿐이다. 그마저도 선형이 좋지 않아 돌아서 가는 편. 언제부턴가 4차선+선형개선 공사중이다.
         청도로 향하는 [[고속버스]] 노선은 전무하며 [[시외버스]] 노선은 있긴 하지만 타 지방에 비하면 그야말로 안습 그 자체. [[대구부산고속도로]]가 개통되었음에도 [[철도]]가 강세인 지역이다. 그러다가 2015년 1월(!)에 드디어 [[동서울터미널|동서울]]행 시외버스가 개통되었다. 1일 3회 운행하며, 경산, 시지를 경유한다. 사실 동서울행도 경산발이 청도로 연장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보기 드문 '''[[철도]] 초강세 지역'''이다. [[경부선]] 철도가 사실 시외 교통망의 대부분을 책임지며, [[청도역]] 앞은 항 이용객으로 북적거린다. 여기에 관광객과 귀성객들이 몰린다면 좁은 역사는 그야말로 카오스가 된다. 이외에 북대구, 노포동, 마산, 수원 등 여러 교통 요충지는 '''철도가 너무 커버를 잘 해주는 나머지 없다.(...)'''
         [[청도버스]]에서 운 중인 농어촌버스인 [[청도 버스 0|0번]]이 풍각정류장에서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 신천4동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동대구터미널]]까지 1일 12회 운행하지만, 실제로는 시외버스가 절대적으로 강세다. 청도에서 시외버스로 갈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구]], 경산, 밀양, 울산, 경주, 포항 등 7개 도시밖에 없다. [[경남도]] [[창녕군]]과도 인접해 있지만, [[청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창녕군]] 방면 시외버스가 없어 풍각에서 환승해야 한다. 7개 도시를 가는 것도 경주 경유 포항행과 울산행은 1일 3회 운행이다. 앞서 나와 있듯이 애초 산동 쪽으로 도로 연결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넘어가 봤자 경주 시내까진 한참 걸리기도 하고... 청도군, 특히 청도읍과 산서 지역은 행정구역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교통, 물류, 관광 등)에 대해서는 사실 윗동네 대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눈물난다.
         경산시와 밀양시에 가려져 '청도'라고 하면 일단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당수 있으나, '''[[소싸움]]'''하면 대부분 청도 소싸움대회를 떠올릴 정도로 [[나름]]의 인지도가 있는 고장이다. 한창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인 1999년에 개최되어 매년 3월 말쯤에 이서면 서원천 옆에 가설 경기장을 지어놓고 개최되어 지금은 문화관광부가 10대 지역문화관광축제로 선정할 정도의 네임드로 성장했다.
         사실 오래된 걸로 치면 [[경남도]] [[진주시]]에서 하는 진주전국민속투우대회가 오래되긴 했지만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는 하나 정확한 시기는 불명), 청도소싸움대회가 여러가지 부대행사(로데오,콘서트,루미나리에 등)를 준비하면서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가는지라 진주시에서도 바짝 긴장한 듯.
         [[감(과일)|감]]이 가장 잘 알려진 특산물이다. 감은 지금도 교외로 나가면 집집마다 감나무 하나씩은 보일 정도로 흔하다. 그 중에서도 반시가 유명한데, 반시는 홍시의 일종으로 납작한 감을 일컫는 말이다. 특이하게 청도의 반시는 씨가 없는 감으로 유명한데 씨없는 [[수박]]처럼 품종개량에서가 아닌 자연적인 현이다. 다른 지역의 감나무를 청도에서 심으면 씨가 없어지고 청도의 감나무를 다른 지역에 심으면 그 열매에 씨가 난다.(...)
         특산물인 감으로 와인을 만드는 청도 와인터널도 가볼만하다. [[http://www.gamwine.com/company/main.php|홈피]]. 경부선 철도로 쓰던 터널을 개조한 와인 터널로 안에는 감 와인이 숙성되어 가고 있는데, 판매도 하고 시음도 가능하다. 이 감와인은 덜익은 쓴 감을 사용해 주조한 것으로, 특유의 독특한 풍미로 유명하다. 첫맛은 쓴데 입에 조금만 머금고 있으면 단맛이 돈다. 이곳에서 감으로 만든 와인과 초콜릿 등을 맛볼 수 있으며, 살 수도 있다. 과거 SBS드라마 떼루아의 촬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청도 소싸움 경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와인터널과 용암온천, 프로방스, 소싸움을 한꺼번에 즐기러 오는 경우도 많다. --이거 노리고 소싸움 경기장까지 옮긴걸테지만--
         --[[경도]]답게-- [[경도 사투리]]. 단, 지리으로는 [[경북도]]에 속해 있으나 경북의 최남단에 위치한데다 [[경남도]]와 접한 고장이라서 그런지, 경북 방언에 비교해 볼 때 억양과 강세가 그것보다 좀 더 뒤에 있는 편이다. 경남 방언의 향을 강하게 받는 경북 방언을 구사한다. 쉽게 비유해서 [[안동시]]에 사는 사람이 이 곳 청도군에 놀러왔을 때 꼭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온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카더라]] 식. 그렇다고 해서 부산/울산/경남 지역 사람들이 듣고 경남권 억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억양만 들어도 경도 사람들은 경북/경남권인 거 [[악센트]]를 들어보면 딱 알 수가 있다. 2의 E승, 2의 2승, E의 E승, E의 2승의 위엄.(...) 엄밀히는 [[대구광역시]]와 더 가까운 형태의 방언이지만, 저런 [[이유]]로 딱히 다른 경북 지역만큼 경남 방언과의 차이를 느껴 어색해하지는 않는 면이 있다. 물론 방언 특징 사람마다 편차는 큰 편.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정||<:>(1위/2위)||<:>(선거인/표수)||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정||<:>||<:>||
         || '''거소·선투표''' ||<:>21.57%||<:>{{{#C9151E 43.14%}}}||<:>21.57%||<:>7.19%||<:>3.27%||<:>{{{#808080 ▼21.57}}}||<:>||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정||<:>격차||<:>투표율||
  • 김영환(1955) . . . . 67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정치인/목록, top2=의사)]
         ||<width=30%> 초대[br][[박선숙]] ||<width=5%> → ||<width=30%> '''제2대[br]김환''' ||<width=5%> → ||<width=30%> 제3대[br][[유성엽]]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70000B><-5><bgcolor=#FFFFFF> [[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징.png|width=30px]]]] {{{#70000B '''[[대한민국|{{{#70000B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국회의원}}}]] ([[경기도|{{{#70000B 경기}}}]] [[안산시 갑|{{{#70000B 안산시 갑}}}]])'''}}} ||
         ||<width=30%> ''선거구 개편''[br][[장경우]][* [[안산시]]·[[옹진군]] 선거구의 [[제14대 국회의원]]이다.][* 의원직 사퇴.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보궐선거 미실시.] ||<width=5%> → ||<width=30%> '''제15·16대[br]김환''' ||<width=5%> → ||<width=30%> ''선거구 개편''[br][[장경수]][* [[안산시]] [[록구]] 갑 선거구의 [[제17대 국회의원]]이다.][br][[임종인]][* [[안산시]] [[록구]] 을 선거구의 [[제17대 국회의원]]이다.] ||
         ||<-5><bgcolor=#FFFFFF> [[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징.png|width=30px]]]] {{{#70000B '''[[대한민국|{{{#70000B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국회의원}}}]] ([[경기도|{{{#70000B 경기}}}]] [[안산시 록구 을|{{{#70000B 안산시 록구 을}}}]])'''}}} ||
         || 제18대[br][[홍장표(정치인)|홍장표]][* 의원직 실.] || → || '''제18·19대[br]김환''' || → || 제20대[br][[김철민(정치인)|김철민]] ||}}} ||
         || '''이름''' ||김환(金榮煥) ||
         || '''약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학기술부 장관]][br][[대한민국 국회의원]][br][[국민의당]] 사무총장[br]국민의당 최고위원[br]바른미래당 [[안산시 록구 을|안산록을]] 지역위원장 ||
         1955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총 2번의 제적을 당하고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등으로 복역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 사이에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기기술자로 일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는데 발간한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였다. 1988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치과의사]]로 개업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록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장경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에는 [[민주당(2005년)|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려고 하였으나, [[박주선]] 의원이 전략공천되면서 경선을 요구하며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07년에는 [[이인제]] 민주당 대선후보의 충청선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1월 [[민주당(2005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화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열린우리당 계열과의 반목이 심했던 터라, 합당에 반발하여, 한나라당 입당도 진지하게 검토했다고 한다.] 이후 [[민주당(2008년)|민주당]]에 복당하였다.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에 재산신고를 -8.2억으로 해서 보유재산 국회 최하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만 부채액이 많아서 -8.2억인 것이고, 이후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을 공시지가가 아닌 실거래가로 신고해서 1억원 정도로 신고했다.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를 거하게 망해서 수십억대의 부채가 추가~~][* 2008년 기준으로 최하위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로, 대선자금을 선관위에서 환급받기 이전이어서 -120억원을 신고했다. 이후 선거비용을 환급받으면서 30억대로 재산이 다시 늘어났다. 2009년에는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가 1억 438만원, 2010년에 김환 의원이 -8억원, 2011년에 자유선진당 김창수 의원이 1억 500만원을 기록하여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후 [[4대강 정비 사업]]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6년 1월 8일 탈당하고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 합류를 선언했다. 2016년 초 국민의당 인재입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총선 전 국민의당 지지율이 마구 떨어지면서 도로 민주당으로 합류하자는 의견이 거셀 때 국회의원 중 거의 홀로 국민의당을 지키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선거 이전에는 [[새누리당]] 후보인 [[홍장표(정치인)|홍장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패배할거라는 여론조사와, 김철민 후보와 홍장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는 김철민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와 3당구도로 가면 홍장표 의원이 오차범위의 한참 밖에서 안전한 당선이 가능하다는 결과치가 나왔기 때문에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후보 단일화는 무산되었고, 3파전이 되었다.
         3파전 속에서 [[홍장표(정치인)|홍장표]] 전 의원이 어부지리로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게 중론이었으나, 실제로는 김환 후보가 33.5%를 얻어 새누리당 홍장표의 32.5%보다 높게 나왔다. '''하지만 당선된 건 34%를 기록한 [[더불어민주당]]의 [[김철민(정치인)|김철민]] 전 안산시장으로, 당선인과 김환의 득표수 차이는 399표 차이(...)'''.
         2016년 5월 11일 국민의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인재입위원장 시절 입한 [[김수민(정치인)|김수민]]의 리베이트 건이 터졌다.
         20대 총선에서 낙선하여 야인이 된 현재는 본업이었던 치과의사로 복귀했다. [[http://www.trustden.com/%ED%81%B4%EB%A6%AC%EB%8B%89-%EC%86%8C%EA%B0%9C|이해박는집 홈페이지]] 다만 지역구인 록구가 아닌 단원구에 치과가 있으며, 이 치과가 2012년 선거벽보에도 개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나름 오랫동안 업했음을 알 수 있다.
         [[이재명(196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재명(1964)/논란 및 사건사고|각종 의혹들]]로 공격할 때, [[이정희|작정하고 나왔는지]] 정책 홍보와 검증보다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온갖 의혹들을 들고나와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데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자가 없는 자유토론 방식이라 중재자가 없는 점도 한 몫 했다.] 성남 FC 후원금 관련 의혹, 시민 대 고소,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 논란, 혜경궁 김씨,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 [[주진우]] 기자가 김부선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는데, 토론회 후 때마침 주진우로 추정되는 남성과 김부선의 대화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다.] 등을 주제로 네거티브를 걸었고, 이재명이 그에 대한 해명을 해도 거짓말로 단정짓고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몰아붙이며 토론회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갔다. 흡사 경찰이나 검찰이 취조하듯 몰아붙였는데, 이재명은 처음엔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계속되는 공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기도 했고, 여기 청문회장 아니라고 반박하자 김환은 진실공방이 아니라 '검증'이라고 주장했다. 후반부엔 20년 국회의원 경력 동안 이재명처럼 문제가 많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이자리에 있는것이 부끄럽다며, 왜 이런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하냐며 한탄하며 반듯하게 살아서 미안하다는 자기반성을 했다. 또한 자신은 전과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어서 한 말이 "투옥되고 노동자 생활하고.."라고 삐끗하자 이재명이 투옥이 전과아니냐고 물으니 긴급조치 운운하며 [[정신승리|전과지만 전과가 아니라며 반박했고]] [[유체이탈|이재명이 그런 전과는 자신도 있다고 반론하자 교도소의 도둑놈들도 다 이유가 있다며,]] [[내로남불|이재명이 반성을 안한다며 되려 비난했다.]] 마지막으론 이재명이 박근혜를 비판할 자격이 있냐고 하며 발언시간을 마무리했다. 모두까기로 컨셉을 잡은건지 마찬가지로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격을 하고 김환이 혜경궁 김씨를 언급할 때 같이 거들어 준 [[남경필]]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한 점을 들어 비난했고, 이런 토론 태도를 보다못한 [[정의당]] [[이홍우(1959)|이홍우]] 후보가 인신공격과 진흙탕 논쟁은 도민들이 불편해하니 자제하고 경기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토론을 할 것을 촉구하자 자기 얘기만 하라는 호통으로 막아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1pNRO-1Io|김환 후보의 토론회 주요 장면 모음]][* 경기도지사 후보로서 경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데 ~~본인은 후보가 아니라는 듯~~너나 잘하세요라며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참으로 막장스럽다(...).]
         이를 통해 존재감이 전혀 없었는데 토론회 한 번에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특히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적으로 퍼부은 덕분에 이재명에게 큰 반감을 가진 네티즌들에게 인을 남기며 인지도를 올렸다.[* 물론 정계에서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노무현 탄핵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정치인 중 하나였으며, 새민련 당시 문재인에 대한 비판을 해온 반문파로서 국민의당 탈당파의 한 축이라는 점, 탄핵정국 당시 국민의당의 촛불집회 참가에 반대한 점 등 친문 입장에서 좋게만 볼 수 없는 변수가 많아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재명을 향한 네거티브엔 동조할 지언정 실제 지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미비하다.] 물론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으로 얼룩진 토론을 한 만큼 좋은 평가만 받은건 아니다. 정책은 없고 그저 사생활에 대한 네거티브만 있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이번 토론회가 ‘이재명 청문회’로 변질되는것을 주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때문에 인지도 승말곤 딱히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의 득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미 경기도지사 선거판은 과반 이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 독주 체제에 그나마 15~20% 정도의 콘크리트 보수층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가 가지고 있는 황이라 진보, 중도, 보수 어느 계층도 흡수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소폭의 지지율 승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한자릿수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재명의 과반이 넘는 지지율과 [[https://www.google.co.kr/amp/www.topstarnews.net/news/ampArticleView.html%3fidxno=423401|남경필의 20% 콘크리트]] [[http://v.media.daum.net/v/20180607005012720?f=m|지지층은 건재하다.]] 비전과 정책없이 대를 향한 네거티브에만 집중한 전략이 인지도 승과 반이재명 성향의 친문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유효했을지언정 경기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토론회 마무리 발언으로 [[JTBC]]와 [[손석희]]사장을 자신에게 갑질을 한다고 [[http://www.edaily.co.kr/election/view.asp?newsId=01161126619214168|비판하며]], JTBC 본사 앞에서 농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는 JTBC가 6월 2일과 3일 개최할 경기지사와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내실 있는 검증을 이유로 지지율 5%이 후보에게만 토론회 참가를 제안했는데, 김환 본인의 지지율은 2.5%에 불과해 자신에게 참가 요청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바른미래당에선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신청했고, JTBC측은 이를 받아들여 지지율이 낮은 후보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했지만 이번엔 다른 후보의 캠프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자 토론회 자체가 무산되었다. 하지만 김환 본인은 1년전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의 미디어본부장을 맡았을 당시 유력후보간 양자토론을 주장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본인의 지지율이 낮은 것을 JTBC의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 [[http://v.media.daum.net/v/20180531211335605?f=m|JTBC '경기지사·서울시장 후보 토론회' 무산..배경은]]
         결국 김환은 큰 승부수를 던진 셈인데 네거티브 선거를 유발한 노회한 정치인이 되느냐? 사회 고발의 산 정치인이 되느냐? 기로에 선 셈이다. 이재명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김환이 얻을 몫과 유명세는 엄청나지만 이것이 제대로 된 증거 제시도 없이 흐지부지 되버리면 이미지에 큰 타격을 각오해야 한다.
  • 홍경인 . . . . 67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 '''학력''' ||<(> [[대구고등학교(대구)|대구고등학교]][br][[동국대학교]] 연극화학 학사 ||
         || 우리들의 일그러진 웅에서 ||
         [[대한민국]]의 [[배우]]. 1990년대 충무로 최고의 유망주에 아역배우계에서 레전드로 회자되는 배우며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자다.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강'으로 데뷔하였다. [[1992년]] 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웅]]에서 주인공 엄석대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으며[* 촬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는데 성인 배우도 소화하기 힘든 복잡한 역할인 엄석대를 겨우 중학생이었던 그가 아주 살벌하고 소름끼치게 표현해내어 당시 [[대한민국]] 화계는 천재 배우가 나왔다며 발칵 뒤집혔다. 참고로 선생님 역할로 [[신구]]와 [[최민식]]이 나온다.],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전태일]], KBS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의 정신지체아 수철 역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그야말로 연기력의 화신에 가까운 배우라는 평가를 받은 전무후무한 아역배우였다. [* 그야말로 연기 스펙트럼이 엄청났다. 독재자(엄석대 역)부터 노동운동가([[전태일]]), 그리고 정신지체아까지. 근데 이 정도의 필모그래피를 다 '''10대 때, 즉 중·고,대학생 신분으로 전부 쌓았다(...)''']
         특히 [[박광수(화 감독)|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화 역사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화에서 쓰이게 된다. 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 수자가 되었으며 1995년 '이천 춘사화제'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수. 당시 겨우 '''만 19세'''.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록은 계속 보유 중이다.
         하지만... '전태일' 이후의 그의 행보는 썩 좋지 못했다. 케이블 및 공중파 오락프로그램에 여기저기 출연하고 진행하는 등의 그의 행보로 인하여 특히 화계에서는 '''도대체 누가 배우 관리를 저렇게 하는거냐? 저런 배우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방송 여기저기 나오게 하냐?'''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개그맨들과 꽁트를 찍기도 했었고 드라마타이즈 코미디에도 참여했을 정도다. 그것도 개그를 받쳐주는 정인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바보스럽게 코믹한 쪽으로... 무려 90년대 최고 개그우먼 중 하나인 [[이자]]와도 꽁트를 했을 정도. --이자한테 홍진경이 77년생이고 자기가 76년생이라 홍진경이 누나라는 드립을 치기도...--] 그럴수 밖에 없었던게 이 당시 젊은 배우들은 극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예능프로에 자주 출연하여 인지도나 친밀감을 쌓는게 당연시였던 시절이었고, 당시 [[배용준]]이 소속되어있던 소속사로 이적하다보니 여기저기 나오는게 당연시 되었던 것.[* 역시 배우에게는 예능이 毒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홍경인과 [[배용준]]을 관리하던 사람은 바로 훗날 [[전지현]]을 대 스타로 만든 사이더스HQ의 '정훈탁' 되시겠다. 당시 정훈탁은 EBM이라는 매니지먼트사를 차렸는데, 소속 연예인은 바로 배용준, 한재석, 정찬, 차태현, 홍경인...] 더불어 화 전태일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선택했던 '피아노맨', '채널 식스나인'이라는 화에서도 연기력면에서는 호연을 보여줬으나 화 자체의 운이 없었거나 연기력이나 화제성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1996년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크게 활약을 보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철없는 캐릭터인 '날파리'[* 대부분 철없는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마지막회의 진지한 씬에서는 그의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한다.]로 유명해지는 동시에 바로 슬럼프를 겪게된다. 단신인데다가 [[동안]]인지라 개그역할을 맡아서[* 긴 바바리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길어서 코드 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어 낙엽을 쓸며 노래부르는 장면이 특히 유명하다(...)] 크게 히트했으나 그 이후로 원래의 연기력에 맞는 역할을 얻지 못하는 비운을 산다. 괴리가 너무 컸던것. 1999년에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앨범 《후애(後愛)》을 발표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사실 가창력은 꽤 좋은 편이다. 남자셋 여자셋에서도 노래를 하는 씬이 몇 번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이미지라서 묻혔다...게다가 90년대 후반에는 비주얼과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비디오형 가수들의 범람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심지어 음향장비가 좋지 못해서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발라드 가수들까지 종종 방송에서 립싱크를 시키는 시절이고, 라이브를 하는 가수를 신기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즉, 젊은 가수들의 절대다수에게 가창력보다는 외모와 춤실력이 강조되던 시절. 오죽하면 가수는 커녕 일반인치고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닌 [[최창민]]같은 가수들이 '''솔로가수'''로 나왔을까... 이 황에서 가창력만으로 승부하려면 가창력이 신승훈이나 김건모같이 본좌급으로 뛰어나거나 음악성이 윤종신처럼 탁월해야했는데, 그냥 평범하게 노래잘하고 외모는 떨어지던 홍경인이 발붙힐 자리는 없었다.]
         좋은 연기력을 가졌음에도 시트콤에서 얻은 이미지 때문에 몇 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게 된 안타까운 케이스.[* 16살 때 이미 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냥 그 나이에 맞는 연기 그런게 아니라 엄석대 역이었으니. 19살 때 [[전태일]] 역으로 분신자살까지 소화하며 명 연기를 펼치다가 남자셋 여자셋 이후로는 주연을 못하게 된다.] 그래도 군전역 후에는 드라마에 많이 출연하며 다시 재평가를 받고있다. 또한 본좌급의 연기력을 갖고도 지나치게 작은 키 때문에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하진 못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인 [[송승헌]], [[소지섭]] 등이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한 것과는 대조된다. 특히 [[소지섭]]은 아직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동갑으로 이름이 참 비슷한 [[홍경민]]과 절친이라서, 6살 연(CF 모델이기도 하다)의 미인 아내와 결혼할 때 [[홍경민]]이 축가를 불러주었다고 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vEXNxbdkG2E|#]]
         [[트위터]]를 하지만, [[2012년]] 3월 이래로 안하는 황.
         이미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도 유머러스하고, 입담도 좋은 편이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아역 특집에 나와서 [[이민우(배우)|이민우]]와 [[김정현(1976)|김정현]]을 압도하는 말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역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다가 장렬하게 자폭하는 토크가 특징. 1976년생 용띠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뱀발로 [[문희준]]이 군대 시절에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선임이 홍경인이었다고 하며 그의 갈굼에 복수하기 위해서 [[문희준]]은 그의 양말에 불개미를 넣었다고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후 연예병사들의 친목질로 각종 병크가 드러났던 걸 보면 그나마 연예인 친목질로 개판5분전이던 곳에서 나름 규율시켜서 재평가~~ ~~[[엄석대|그들]][[전사의 후예|은 날 짓밟았어 하나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 참 아이러니한 것이, 문희준이 속한 [[H.O.T.]]의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의 가사에서 저격하는 대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엄석대]]를 연기한 인물을 군대에서 만났으니...]
         ||<table align=center><rowbgcolor=#fd5a1e> {{{#white '''방 연도'''}}} || {{{#white '''방송사'''}}} || {{{#white '''제목'''}}} || {{{#white '''배역'''}}} || {{{#white '''비고'''}}} ||
         || [[2013년]] || tvN || [[환거탑]] || 형식 || ||
         || [[2010년]] || [[전우(드라마)|전우]] || 양길 || ||
         || SBS ||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 강우석 || [[박원]] 아역 ||
         === 화 ===
         ||<|2> [[2014년]] || 욕망의 독: 중독 || 준 ||
         ||<|2> 1995년 || 원한 제국 || 세자 ||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66회 일치
         NPC를 대로 벌이는 보드게임. 지도에서는 주사위로 표시된다. 죄다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게임이라 큰 고통을 안겨주는 물건들. 메인 스토리 꼭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시-발.
          로마 제국 때 부터 내려져왔다는 게임. "카우보이 체커"라고도 불린다. 양 쪽은 자신의 말을 하나씩 배치한다. 자신의 말 세개를 일렬로 놓아 배치된 대 말[* 일렬로 놓은건 안된다.]을 제거할 수 있다. 말 아홉개가 모두 배치되면 자신의 말을 빈 공간으로 움직일 수 있다. 대 말을 세개 이하로 만들거나, 대가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승리한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유래했다는 게임. 자신의 말을 대 말 쪽으로 움직여 해당 대각선줄의 대 말을 제거하는 게임.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추가로 움직일 수 있다. 대의 말을 모두 제거하면 승리한다.
          세에서 제일 오래된 게임 중 하나. 자신의 말을 대각선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대 말을 뛰어넘어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대 말을 제거한 말은 근처 말을 한번 더 뛰어넘어 제거할 수 있다는 것에 주의. 반면 대 말을 제거할 수 있는 황이 되면 그것밖에 못 한다. 대의 말을 모두 제거하면 승리한다.
         보스턴과 뉴욕 두 도시의 지하에는 프리메이슨이 파둔 땅굴이 있다. 땅굴을 탐사해 출입구를 발견하면, 지에서 해당 지역을 [[빠른이동]] 포인트로 사용할 수 있다.
         == 자 ==
         맵 곳곳에 숨겨져있는 자. 열으면 돈과 조합법을 준다. 대부분이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번거로운 자물쇠 따기를 해야하지만, 암살단 신입을 입하면 특정 지역의 열쇠를 얻을 수 있다. 몇몇 자는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으니 주의.
         자를 찾기 힘들면 잡화점에서 해당 지역의 자 지도를 구매하면 된다. 물론 여는건 네가 해야한다.
          * 500 파운드 만큼의 사냥 수확품을 점에 판매
         변경 지역에서 사냥을 해 가죽, 고기 등을 획득할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아이템을 팔아서 돈을 벌거나 조합해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토마호크나 총으로 잡으면 한 가죽이 나오니 주의. 한 가죽은 가격이 똥값인데다가 조합에도 쓸 수 없다.
         대번포트 농지를 운할 수 있다. "대번포트 농지 임무"를 수행해 농지 주민을 정착 시키거나 그들이 만드는 아이템 종류를 늘릴 수 있다.
         무역을 할 경우 일정 확률로 수송대가 공격 당한다. 육 무역이면 지도에서 수송대의 위치를 확인, 달려가서 구해줄 수 있지만 해 무역이면 구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습격당한 수송대를 구하지 못하면 해당 수송대와 무역품이 증발한다.
         가끔씩 육 수송대가 원히 공격당한채로 있는 버그가 일어난다. 해당 버그는 고칠 수 없다. 시-발.
         농지 주민의 일을 기록하는 기능. 일을 하는 농지 주민을 조준하면 기록되어진다.
         == 해 임무 ==
          * 아퀼라의 속도는 세가지로 조절할 수 있다. 정지, Half Sail, Full Sail. 정지는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태다. Half Sail은 돛을 반쯤 편 태로, 속도는 비교적 느리지만 조타에 용이하다. Full Sail은 돛을 모두 편 태로,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조타가 어렵고, 바람의 향을 많이 받는다.
          * 사슬탄(Chain Shot): 두개의 구포탄을 사슬로 묶은 포탄. 대의 돛과 돛대에 피해를 입힌다. 돛이 찢어지고 돛대가 부러진 선박은 움직일 수 없다.
          28문 이의 포를 탑재한 선박. 빠르고 다루기 쉽기에 정찰용이나 선 호위용으로 사용된다.
          대따 많은 포를 탑재한 대형 선박. 대하게되는 함선 중 제일 강하다.
          13,000 파운드. 선체의 약한 부위에 목제 버팀목을 추가로 덧대 내구성을 승시킨다.
  • 장선우 (영화감독) . . . . 66회 일치
         |직업 = [[화 감독]]
         '''장선우'''([[1952년]] [[3월 20일]] ~ )는 [[대한민국]]의 [[화 감독]]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화 작품==
         * 1988년 《[[성공시대 (화)|성공시대]]》안성기, 이혜
         * 1993년 《[[화엄경 (화)|화엄경]]》원미경, 오태경, 신현준, 이혜
         * 1996년 《[[꽃잎 (화)|꽃잎]]》이정현, 문성근
         * 1997년 《[[나쁜 화]]》권혁신, 장남경, 박경원, 이재경, 최미선
         * 2000년 《[[거짓말 (2000년 화)|거짓말]]》이현, 김태연
         * 1990년 《[[남부군 (화)|남부군]]》
         ==수==
         *<성공시대> 각본 감독/백예술대 시나리오, 시나리오(1988)
         *<우묵배미의 사랑> 각색 감독/백 작품, 신인 감독(1990)
         *<경마장 가는길> 감독/ 작품, 감독(1991)
         *<화엄경> 각색 감독/베를린화제 알프레드바우어, 대종 감독, 감독(1993)
         *<너에게 나를 보낸다> 각색 감독. 청룡화제 감독(1994)
         *<꽃잎> 각색 감독/아시아 태평양 화제 작품, 앰네스티 화제 관객, 방콕 국제화제 작품, 대종 심사위원(1996)
         *<나쁜화> 감독/부산국제화제 넷팩, 도오쿄국제화제 아시아 (1997)
         *<거짓말> 베니스국제 화제 본선 경쟁작(1999)
         *1995 BFI 기획, 세계화 100주년 기념 다큐멘타리 한국 편<한국화 씻김/Cinema On the Road> 감독
         *1997 로테르담 국제화제 장선우 특별전.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화제 장선우 주간
  • 청송군 . . . . 6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북도)]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
         ||<bgcolor=#04B486> {{{#FFFFFF '''광역시도'''}}} || [[경북도]] ||
         ||<bgcolor=#04B486> {{{#FFFFFF '''국회의원'''}}} || [[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br][[김재원(정치인)|김재원]]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3선 ([[2017년 4월 재보궐선거]]) ||
         [[경북도]] 중동부에 있는 군. 인구는 약 2만 6천여명이다. [[아오안|전국적으로 매우 낙후된 지역 가운데 하나로]], 이웃한 [[봉화군]], [[양군]]과 함께 [[BYC#s-2|BY'''{{{#red C}}}''']](...)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전국에서 공시지가가 가장 낮은 동네이기도 하다. 청송 출신 [[연예인]]인 [[심진화]]가 농반진반 국내 3대 [[오지(지리)|오지]] 중 하나라고 칭할 정도니 말 다 했다.
         전 지역이 [[산(지형)|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자연환경이 수려하다는 장점도 가지고있다. [[봉화군]]만큼은 아니지만 [[겨울]]에 꽤 추운 동네이다. [[분지]] 지형이기때문에 [[기온 역전 현]] 등을 감안하면 겨울철에 사람이 느끼는 추위는 [[서울특별시]]보다도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유명한 관광지로 [[주왕산]]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외지 사람들은 "[[청송]]"이라는 동네 이름이 나오면 맨 먼저 '''[[청송교도소]]'''와 '''청송감호소'''부터 떠올린다. 이 지역에는 [[교도소]]가 무려 네 군데나 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에 [[흉악범]]과 [[정치범]]을 [[감금]]하기 위해 이런 외진 곳에 [[교도소]]와 [[감호소]]를 왕창 지어논 것. 사실 교도소가 있는 곳은 청송읍이 아닌 [[양군]]과의 경계지역에 있는 진보면이다. 청송이란 고장의 이미지를 깎는다고 [[대한민국 법무부]]에 지속적으로 진정이 제기되었는데 결국 이름이 경북북부교도소로 바뀌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교도소가 들어서면 [[교정직 공무원]]들 및 면회객들도 오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청송군민들은 '''교도소를 추가 유치하겠다'''고 나설 정도.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725817&plink=ORI&cooper=NAVER|#]] 근데 이것을 역으로 보면 교도소 이외에는 지역경제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낙후가 심각하다는 거다.
         한때 [[호랑이]]가 21세기에도 사는 동네라 알려져 유명했다. 그 이유는 2001년 [[대구 MBC]]에서 취재한 보도기사였는데, 무인 카메라에 의문의 대형 [[고양이]]과 동물[* 몸길이 120cm에 꼬리가 [[호랑이]], [[표범]]과처럼 긴꼬리의 짐승이었다고 한다.]이 찍힌뒤로, 주변에서도 인근주민들의 호랑이 목격담을 취재하며, 호랑이가 맞다고 연일 보도를 해댔었다. 그 당시 MBC는 사활을 걸고 특별 취재팀까지 동원해서 이 사건을 계속 수사했고, 진짜 호랑이가 맞다 vs 아니다의 결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도 이후 6개월만에 [[대한민국 환경부|환경부]]에서 공식적으로 '''이건 호랑이가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청송에서 취재된 사진이 [[호랑이]]가 아니다 뿐이지 뭔가 고양이과 야생동물이란것은 확실했고[* [[담비]]라는 설도 있으나 담비치고는 꽤 큰 덩치라 의견이 분분한 태.], 아직까지도 이게 무슨 동물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고양이과 야생동물중 가장 작은 [[삵]]만 하더라도 천연기념물인 한국에선 지금의 청송이 희귀 야생동물이 사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일듯. 참고로 이 야산 인근 주민들은 아직도 호랑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1895년]]에 [[23부제]]에 의해 안동부 청송군이 되었다. 이듬해 13도제를 실시하면서 [[경북도]] 청송군이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진보군의 대부분을 합하여 8개 면으로 개편하였다. 진보군의 역 중 청송군에 편입되지 않은 곳은 [[양군]]에 편입되었다. 1979년 5월 청송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교통은 [[당진덕고속도로]], [[31번 국도]], [[34번 국도]], [[35번 국도]]가 군을 관통하지만, [[철도]][[철도가 지나지 않는 도시/대한민국|는 없다.]] 고속도로 나들목은 [[청송IC]]와 [[동청송·양IC]]가 있다. 2011년 12월 27일 35번 국도 청송과 사이의 고개인 노귀재를 관통하는 터널이 준공되어 천 방면으로 접근성이 향되었다.
         청송읍에서 이웃한 [[안동시]], [[덕군]], [[포항시]], [[의성군]]으로 이동하려면 모두 고갯길[* 심지어 [[914번 지방도]]와 [[35번 국도]]를 통해 안동으로 가려면 2번이다.]을 넘어야 한다. 유일하게 고갯길을 안 넘어도 되는 곳은 북쪽의 [[양읍]] 방면 밖에 없다.
         '''삼'''자현 '''남'''쪽의 현동면, 안덕면, 현서면의 세개 면을 묶어 삼남지역이라고도 하는데, 여기는 청송읍을 가려고해도 삼자현이라는 고개를 넘어야 하고, 포항, 안동, 의성, 천 모두 고개를 넘지 않고는 나갈 수 없다. 대신에 35번 국도 버프로 안동과 천방면으로는 각각 마사터널, 노귀재터널이 완공되어 있고, 삼자현 고개에는 터널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군청 소재지인 청송읍보다 진보면의 교통사정이 훨씬 좋다. 진보면을 관통하는 [[34번 국도]]가 청송 관내 국도 중 포장이 가장 빠른 [[1975년]]에 이루어진 곳이다. [[동서울터미널|서울]], [[부산종합버스터미널|부산]],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북부정류장|구]], [[안동터미널|안동]], [[천시외버스터미널|천]], [[덕군|덕]], [[포항시외버스터미널|포항]] 방면으로 시외버스가 운되지만, 천을 제외하면 어느방면이든 진보 쪽의 횟수가 훨씬 많다. 이는 인접한 [[덕군]], [[양군]]과 [[안동시]], [[서울특별시]] 등지를 잇는 시외버스들이 모두 진보를 경유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청송읍과 안동, 서울을 잇는 시외버스도 진보를 경유한다. 안동으로 가는 시외버스편이 그나마 배차가 많은 편이다. 동서울 및 부산에서 청송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주왕산까지도 가니 참고. 다만 진보면에서도 안동이나 덕으로 갈땐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만만치 않은 U자 코스이니 자가용은 운전에 조심할 것. 가랫재(안동 방향)와 황장재(덕 방향) 두 고갯길 모두 터널 계획이 있다. 터널이 개통 되면 기존의 시간에서 10분 정도는 가볍게 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농어촌버스]]는 [[청송버스]]에서 운행한다. 하지만 진보-청송이나 청송-주왕산 같은 몇몇노선을 제외하고는 전부 [[오지(지리)|오지]][[노선]]... 특히나 현서면, 안덕면, ~~현동면~~[* 2017년 개편으로 현동에서는 청송읍으로 가는 농어촌버스가 생겼다. 1일 2회 운행(..)]의 삼남지역에서는 농어촌버스로 청송읍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여기서 청송읍에 가려면 청송-대구 [[아성고속|시외]][[천마고속|버스]]를 타야한다. 그런데 현서면에는 [[의성여객|의성군 농어촌버스]]와 [[안동 버스 28|안동시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의성군과 안동시로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삼남지역 사람들은 청송읍보다는 천, 의성, 안동, 포항 멀리는 [[대구광역시]]로 많이 나간다.
         [[농업]]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산물로는 [[사과]]와 [[고추]]가 있다. 실제로 [[청양고추]]가 [[충청남도]] [[청양군]]이 아닌, 청송군의 '[[청]]', [[양군]]의 '[[양]]'을 따서 이름지었다는 [[가설]]이 있다. [[청양고추]] 문서 참고. 그 외에도 [[담배(식물)|담배]]와 [[파프리카]], [[야콘]]등이 있다.
         [[산(지형)|산지]]가 대부분이고 산에 청송군의 이름에도 들어가는 [[소나무]]가 당히 많아서 [[송이버섯]] 채취도 이루어진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청송 [[사과]]가 등록되어 있는데 [[경북도]]에서 사과 생산량 2위를 기록한다. 청송하면 '''사과'''가 유명하다고 인식 될만큼 사과가 유명하다. 버스 정류장 등의 시설물도 사과를 형화한 모양으로 지어졌을 정도.[* [[청도군]]에서는 감을 형화한 모양으로 지어지기도 했었다.] 수확철에 이 지역을 방문하면 인들이 도롯가나 주왕산 국립공원 등 노에 자리를 펴서 사과를 잔뜩 쌓아놓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주왕산]] [[국립공원]]''', 주산지, 송소고택, 청송문화관광재단의 청송백자 전시관과 심수관 도예전시관이 있으며, 청송문화관광재단에서 운하고 있는 민예촌에서 한옥숙박체험도 가능하다. 또한 인근의 청송 달기약수탕 부근에 장난끼공화국 달빛예술학교에서 각종 체험 및 플리마켓등을 체험 할 수 있다.또한 지역의 전통문화유물인 청송백자,소설가 김주선생의 소설 객주를 모티브로 한 객주문학관, 야송이원좌선생이 운하고 있는 군림청송야송미술관과 위장병과 관절에 좋은 약수가 나오고 있는 달기약수, 신촌약수터 등이 있다.
         산지가 많다는 점을 이용해 [[MTB]]나 산악 모터사이클 경기도 열린다. 청송 국제모터사이클 챔피언십은 개최한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홍보탓인지 아는사람이 많이 없다. 온로드 대회가 아닌 오프로드 대회로, 청송사과공원 야장 옆 공터에 트랙을 만들어 대회를 진행한다. 매년 10~11월중 하루 일정으로 진행된다. [[http://hyosang.kr/518|2015년도 대회 사진]]모터사이클은 2015년대회이후 시행돼지않고 있다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정||<:>(1위/2위)||<:>(선거인/표수)||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건물 . . . . 65회 일치
         마을 안에 지어지는 건물들. 적군의 약탈로부터 안전하다. 하지만 공성전을 벌일 때 무식하게 다 때려부수고 들어가면 손되서 수리해야한다.
         >마을은 세이 아니다.
         >위대한 사람의 힘은 큰 향력을 끼치게 되는 법이다.
          * 해당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360
          * 해당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600
          * 매 턴 해당 지방에서 업으로 얻는 마을 성장 +1
          * 해당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720
          * 매 턴 해당 지방에서 업으로 얻는 마을 성장 +2
          * 해당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1,260
          * 매 턴 해당 지방에서 업으로 얻는 마을 성장 +4
          * 해당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2,250
          * 매 턴 해당 지방에서 업으로 얻는 마을 성장 +8
         구식 지 유닛들을 모집할 수 있게하는 건물들.
         >검은 사무라이의 혼이다.
          * 해당 지방에서 사무라이 웅을 모집할 수 있게 됨.
         신식 지 유닛들을 모집할 수 있게하는 건물들.
         ==== 병(Barracks) ====
         >하나의 집. 하루 세 끼. 정규임금. 광과 명예!
         ==== 세 농장(Subsistence Farming) ====
         ==== 업 농장(Commercial Farming) ====
  • 황치열 . . . . 65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구미시]]
         | 웹사이트 = [https://www.facebook.com/HOWent7 HOW엔터테인먼트]
         * 경북 구미 지역 유명 댄스팀 스윙 출신으로 댄서로 활동하다 군복무를 대체하여 산업기능요원으로 공장에서 2년간 일을 하다가 2005년 9월 24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수의 꿈을 안고 경.
         * 2007년 그룹 [[015B]]의 객원 보컬로 활동하며 [[015B]] 비정규 앨범 《[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356883 CLUSTER Vol.1]》에서 '잠시 길을 잃다'(솔로곡), 'R We Happy'에 참여. 그 외 프리스타일, PS준, [[쥬얼리]] 앨범에도 일부 참여하고, 다수의 드라마 OST를 불러 가수로서도 활동하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함.
         * 2013년 우여곡절 끝에 전 소속사와의 계약을 8년 만에 해지하고, 2014년 '치열Ten2'라는 이름으로 싱글곡 '경도 남자'를 발매하며 특유의 위트가 담긴 뮤직비디오를 자체 제작하여 발표.
         * 2015년 4월 25일 KBS2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첫 무대로 [[서유석]]의 '구름 나그네'를 불러 416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으며 본격적으로 가수로서의 '황치열'을 알리기 시작함. 2007년 가수 '치열'로 [[윤도현]]의 [[윤도현의 러브 레터|러브레터]]를 통해 첫 무대에 선 이후 9년 만에 같은 장소인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무대에 선 것으로, '가수 황치열'의 지파 첫 선을 보이는 그의 스토리와 더불어 진한 무명의 설움을 담아 부른 노래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전하여 더욱 주목받게 됨.
         * 2015년 명실부한 대세남으로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와 남성미 넘치는 춤, 구수한 경도 억양을 담은 사투리 입담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종횡무진 출연 중이며, 2015년 9월 KBS [[위기탈출 넘버원]]의 인턴 MC로도 자리매김 함. 그 외 각종 음악 행사에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가수로써도 인지도를 높이며 활약 중임.
         * 2016년 1월 15일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첫방송에서 한국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OST로 중국에 알려진 [[이승철]]의 '그 사람'을 한국어로 부르며 8명의 가수 중 '''2위'''를 차지, 처음 가수 황치열을 선보인 이 무대를 통해 웨이보 팔러워 수가 50만에 육박. 황쯔리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중국 대륙의 가장 핫한 블루칩으로 부함.
         * 2017년 5월 14일, 5월 21일 문화 방송 [[문화방송|MBC]]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11회 ~ 112회에 '짐승남 강백호'로 참가, 1라운드부터 2라운드, 3라운드까지 [[정혜성]], [[Y2K (음악 그룹)|고재근]], [[이예준 (가수)|이예준]] 등을 대로 이김. 56대 복면가왕 선발전까지 진출하였으나 '노래 9단 흥부자댁'([[소향]])에게 석패.
         * 2014년 12월 10일 디지털 싱글 [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2294549 《치열Ten2 - 경도 남자》]
         * 2008년 7월 15일 - 싱글 《PS준 - The Romantic Story》 - 〈너 때문에〉 with PS준(가수)
         * 2015년 11월 28일 -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백지 편) - 〈부담〉 '''432점 우승'''
         * 2016년 1월 15일 -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1회 '''2위''' 《[http://www.hunantv.com/v/1/290525/c/2951305.html?from=wb?from=wb# 그 사람(那个人) 무대]》, [http://www.weibo.com/p/10151501_59988752 weibo 음원]
         * 2016년 1월 22일 -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2회 '''2위''' 합산 '''종합2위''' 《[http://www.hunantv.com/v/1/290525/c/2959899.html# 처음부터 지금까지(从开始到现在) 무대]》[http://www.weibo.com/p/10151501_60019475 weibo 음원]
         * 2016년 1월 29일 -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3회 '''3위''' 《[http://www.hunantv.com/v/1/290525/c/2967990.html# 일로유니(一路上有你) 무대]》[http://weibo.com/p/10151501_60052379/home?from=page_100406_profile&wvr=6&mod=latest#place weibo 음원]
         * 2016년 2월 5일 -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4회 '''1위''' 《[http://www.hunantv.com/v/1/290525/c/2975595.html# 뱅뱅뱅 무대]》[http://weibo.com/p/10151501_60084672?from=page_101515&mod=home_hotsong&coflag=page_home_remen weibo 음원]
         * 2016년 2월 12일 -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5회 '''6위''' 합산 '''종합3위''' 《[http://www.hunantv.com/v/1/290525/c/2978373.html# 묵(默)무대]》[http://www.weibo.com/p/10151501_60114266?from=page_101515&mod=home_hotsong&coflag=page_home_remen weibo 음원]
         * 2016년 2월 19일 -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6회 '''3위''' 《[http://www.hunantv.com/v/1/290525/c/2986878.html?start_time=1# 고해(苦海)무대]》[http://www.weibo.com/p/10151501_60145519 weibo 음원]
         * 2016년 2월 26일 -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7회 '''4위''' 《[http://www.mgtv.com/v/1/290525/c/2996071.html# 혼자만의 기나긴 시간(一个人的天荒地老)무대]》[http://weibo.com/p/10151501_60180493/home?from=page_100406_profile&wvr=6&mod=latest#place weibo 음원]
         * 2016년 3월 4일 - 중국 나는 가수다 시즌4 8회 '''1위''' 합산 '''종합1위''' 《[http://m.hunantv.com/#/play/3012299 Honey 무대]》[http://m.weibo.cn/p/index?containerid=10151501_60214919 weibo 음원]
  • 안숙선 . . . . 64회 일치
         현재 [[판소리]] [[명창]] 중 실력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명창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원한 춘향', '우리시대 최고의 소리꾼', '국악계의 [[프리마돈나]]' 등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음악인이다.
         전북 [[남원시|남원]] 출신. 9살때 이모인 강순의 주선으로 주광덕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 10대 때는 외당숙인 강도근에게서 판소리 다섯 바탕의 토막소리들을 두루 배웠다. 이후 20대에는 경하여 만정 [[김소희 (국악인)|김소희]](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사사하였으며, 31세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양암 정광수(수궁가), 춘전 성우향(심청가), 박봉술(적벽가), 운초 [[오정숙]](흥보가) 등에게 사사하였다.
         이 외에도 친이모 강순 명인에게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와 약간의 가야금 병창을 배웠고, 함동정월(최옥삼류), 원옥화(강태홍류), 김죽파(김죽파류)에게 가야금 산조를 사사했으며, 20대에 경한 이후에는 향사 [[박귀희]](박귀희류 가야금병창)에게 가야금 병창을 사사하여, [[판소리]], [[가야금 병창]], [[가야금 산조]]에서 모두 일가를 이룬 명인이 되었다.
         현재까지 안숙선의 주요 공연 이력은 판소리에 더 가깝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 이후 음악적 능력은 물론,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작품에 주역으로 섰으며, 특히 춘향역은 당대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원한 춘향'이라는 수식어를 받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창극 수궁가에서의 토끼 역 또한 작은 체구를 십분 활용한 익살스러운 연기로 인해 큰 인기를 끌었다. 또 86년, 적벽가 완창으로 다섯 바탕 소리를 완창함으로써 전통 판소리의 연창과 전승에도 많은 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타 장르의 협업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재즈 뮤지션들과 자주 협연을 펼쳤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와 독일의 재즈그룹 [[레드 선]](Red Sun)과 함께해 [[1995년]] 발표한 〈토끼 이야기〉는 한국 퓨전음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 스승격인 인당 박동진, 운초 오정숙 명창의 뒤를 이어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완창하였으며 이후 [[1988년]] 유럽 8개국 순회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카네기 홀]] 공연, [[링컨 센터]] 여름축제 공연,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초청 공연, 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초청 공연,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초청 공연, 제1회 윤이 범민족 통일 음악회 평양 모란봉극장 공연 등 프랑스, 미국, 캐나다, 독일, 스페인, 국,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체코, 중국, 일본, 몽골, 터키, 폴란드, 러시아, 홍콩, 브라질 등 세계 40여개국의 초청 공연을 통해 우리의 소리를 알리는 동시에 세계적인 명창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특히 [[1998년]]에 '천의 소리'라는 극찬과 함께 프랑스 [[:en:Ordre des Arts et des Lettres|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으며, 다음해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훈장|옥관문화훈장]]과 '올해의 국제적인 음악인'{{출처|날짜=2015-08-13}}을 수하는 예를 얻었다.
         국악전문지《소리마당》창간기념 조사 '국악계의 향력있는 인물' 1위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아시아경제신문> 창간 21주년 기념 '한국을 움직이는 파워여성 리더 21인"에 선정 되었다.
         *1994 국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완창공연
         *1999 제2회 윤이 범민족통일음악회 평양 공연.
         *1999 유럽(프랑스, 독일, 국) 3개국 완창 공연.
         *2003 국 에딘버러축제 한국인 최초 초청 공연.
         *2005 부산APEC정회의 만찬공연.
         *2007 남북정회담 문화예술부분 특별수행원/만찬공연.
         *2011 서울 G20정회의 만찬공연.
         *2012 서울 핵 안보정회의 축하공연.
         *2013 국 런던 K-뮤직 페스티벌 초청 공연.
         *프랑스, 국, 독일, 스페인, 러시아, 스웨덴, 벨기에, 폴란드, 네덜란드, 그리스, 스페인, 체코, 브라질,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중국, 몽골 등 40여개국 초청 공연.
         == 훈 ==
         * [[1986년]] 남원춘향제 전국명창대회 대통령
         * [[1987년]] 제6회 [[KBS 국악대]] 대(대부문 최초 수)
  • 권희동 . . . . 63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경주시 출신 인물]] [[분류:1990년 출생]] [[분류:개신교 신자]] [[분류:타자]] [[분류:포수]] [[분류:외야수]] [[분류:우투우타]] [[분류:무 피닉스 야구단/전역]]
         || [[이재학]](2012) || → || '''권희동(2013~2014)''' || → || [[윤대]](2015) ||
         || [[최재원(야구선수)|최재원]](2014~2015) || → || '''권희동(2016)''' || → || [[최성]](2017) ||
         || '''출신지''' || [[경북도]] [[경주시]] ||
         || '''군 복무''' || [[무 피닉스 야구단]](2015~2016) ||
         || '''등장곡''' || [[G-DRAGON]] - 삐딱하게[* 원한 건(권!) 절대 없어(희!) 결국에 넌 (동!) 변했지(권희동!) 이유도 없어(권!) 진심이 없어(희!) 사랑 같은 소리 따윈 집어 쳐(동!) 오늘밤은 삐딱하게(권희동!) ] ||
         2013 신인드래프트에서 신생 팀 [[NC 다이노스]]에 9라운드 전체 86순위로 입단하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00&article_id=0000000013|2012년 인터뷰]]][* 여기에 썰이 하나 있는데 권희동이 그날 당시 지명이 안 될 줄 알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는데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다시 잤다는(.....)썰이 있다.] NC에서 2군 시절 모교인 경남대랑 연습 경기를 하면서 [[박으뜸|찍은 선수 2명 중 하나]]이다. 사실 권희동의 경우 스카우터 사이에선 타격은 좋으나 수비력은 물음표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공포의 1할 타자, SK만 만나면 수비요정~~
         팀 내에 똑딱이 좌타자는 많고 우타거포 스타일의 타자가 [[이호준]]을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에 입단하고 나서 바로 팀의 전지훈련에 합류해서 훈련을 뛰게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거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9회말 동점 솔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고, WBC 대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도 3점 홈런을 기록하는 등 확실히 인적인 활약을 펼쳤다. 타순도 어느새 5번까지 승했다. 더불어 원래 김경문 감독은 1루수인 [[조훈]], [[조평호]]를 번갈아 쓰기 위해 둘 중 한명은 좌익수로 출장시킬 생각도 있었지만 권희동이 활약하자 좌익수를 권희동으로 박았다.
         7월 30일 [[SK 와이번스]]전에서 시즌 8호 홈런을 쳐냈다. 앞서 홈런을 친 [[이호준]]에 이은 백투백 홈런. 이어서 8월 1일에도 [[김광현]]을 대로 홈런을 쳐내면서 팀의 스윕에 기여했다. SK와의 시리즈에서 12타수 2안타를 기록했는데 그 2개가 다 홈런.
         8월 2일 현재 홈런 9개를 기록중인데 그 중 5개를 '''SK 대로 쳐냈다'''. 게다가 SK 대시에는 '''호수비도 보여 주는 등''' 벌써부터 [[박종윤|롯데에 있는 어느 골프선수]] 수준의 슼나쌩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월 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4타석 3안타 3타점을 기록하여 팀의 6-2 대승을 이끌었지만 쓰리런 홈런을 날린 [[나성범]]에게 활약이 묻히면서 ~~그 나성범조차 10승을 거둔 [[이재학]]에게 묻혔지만~~ 빛이 바랬다. 시즌 2번째 3안타 경기로 타율은 0.199 유지.
         NC가입함에 따라, 2014 시즌은 주로 백업으로 활약할 것으로 예되었다. 나성범 역시 중견수 이외 포지션의 수비는 미숙했기 때문에[* 그러나 이택근, 전준우 등 예외적인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중견수의 코너 외야수 전향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었다. 나성범도 이들처럼 외야수 전향 경력이 짧은 피지컬에 의존하는 중견수라는 점 또한 사실이긴 했지만...] 이종욱이나 김종호가 코너 외야로 갈 가능성이 높았던 황이라... 이후 언론에서 나성범이 우익수로 전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 말미암아 김종호 이종욱 나성범으로 이어지는 외야 라인에서 백업으로 뛸 가능성이 커졌다. 2014시즌에 선수 본인의 분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2014년 초반에는 백업으로 시작하게 되었으나 [[김종호(야구선수)|김종호]]의 어깨 부과 부진으로 5월달부터 좌익수 주전으로 출장하였다. 김종호가 돌아온 뒤에는 좌투수 선발 시 주전 출장중.
         5월 22일 경기 전 인터뷰에서 포수 연습을 하고 있다고 발언하였다. NC의 빈약한 포수 사정 연습시키는 것 같은데 잘 하면 올 시즌 중에 보게 될지도..?
         5월 27일 마수걸이 홈런을 때려냈다. 그리고 그 다음 타석에서도 홈런을 때려냈다. 이날 연타석 홈런 포함, 5타수 4안타 4타점 4득점으로 맹활약했다. 3루타가 없어서 [[사이클링 히트]] 못 친 것이 아쉬울 뿐.
         5월 28일 [[케일럽 클레이]]를 대로 개인 통산 2번째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eball&category=kbo&id=82948|만루홈런]]을 쳤다! 희생플라이를 노렸는데, 운 좋게 넘어갔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외에도 군 문제 또한 과제로 남았는데, 인천 아시안게임을 노리기에는 아직 보여준 게 적은데다 이재학과 나성범이 팀내에서 1차 후보로 떠올랐기 때문에 국대 승선보다는 무or경찰청 입대를 노리는 것이 수월할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6월 27일, 팀이 포수 카드를 다 대타로 소모하게 된 8회말부터 포수로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http://youtu.be/0BkuQsiNpV4| 링크]]
         8월 8일, LG 트윈스와의 2차전에서 신재웅을 대로 시즌 4호 홈런을 때려냈다. 그런데 스코어는 9:3으로 한참 뒤쳐져 있었고 엔씨 팬들도 쫄깃했던 다른 구장 경기들을 보러 간 태라 언급이 잘 없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1경기 출장 221타수 63안타 0.285 7홈런 36타점 39득점을 기록했다. 13 시즌에 비해 홈런 갯수는 줄었으나 이는 이종욱의 입으로 주전에서 백업으로 밀려나 많이 출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오히려 13 시즌에 지적받았던 선구안이나 타격 면에서는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규 시즌 종료 후 [[무 피닉스 야구단]]에 지원해 합격해 15시즌과 16시즌을 퓨쳐스리그에서 보내게 되었으며 팬들도 크게 성장하여 차기 NC 다이노스의 클린업 트리오를 맡아주길 바라는 황. 그런데 2015년 2월 24일 NC 다이노스의 연습 경기에서 권희동이 등장했다. 어찌 된 황인지는 이후 위키러의 [[수정바람]]
  • 리그컵(K리그) . . . . 63회 일치
         또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당히 저조했던 것도 문제가 되었는데, 프로축구선수권대회를 시즌중에 따로 개최하여 팬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리그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흥행은 엄청난 대참패라서 2016년에 리뉴얼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연혁에서도 이 대회는 전혀 이야기가 없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도 '''"1992년, 정규리그 이외 최초로 별도 컵대회인 아디다스 “컵” 신설"'''이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로 당시 대회는 그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대회였다.] 연맹에서 K리그의 역사를 논할 때 프로-세미프로로 합동 운했던 수퍼리그를 K리그의 일부로 보는 것과는 당히 대조적이다.[* [http://www.kleague.com/kr/sub.asp?avan=1001124800|리뉴얼 이전 자료]에는 남아있다.]
         프로축구선구권대회가 흥행참패를 겪고나서 1992년에 와서야 리그컵이 열리게 된다. 당시 후원사가 아디다스를 한국에 판매하고 있던 제우교역이었기 때문에 통칭 아디다스컵으로 불린다.[* 잉글랜드의 칼링컵과 마찬가지로 스폰서가 원하는 타이틀을 달아주는 형식이다.] 이 시기에도 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단조로운 리그의 홈 & 어웨이의 연속보다는 리그 외에 별도로 경기 수를 채울 이벤트를 기획하였고, 제우교역을 스폰서로 구해 첫 리그컵으로 볼 수 있는 "아디다스컵"이 열리게 된다.
         다만, 여기에는 제법 잡음이 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엉뚱하게도 [[아디다스]]가 해외표이기 때문에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해외업체의 이름을 단 대회를 한국에서 치뤄야 하느냐?"라는 [[신토불이]]적 마인드가 표출화 된 것.[*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6040020921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6-04&officeId=00020&pageNo=17&printNo=21844&publishType=00020|당시 기사]를 보면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기사만 보면 재정자립을 위해 해외업체와의 협력도 꼭 필요하다는 협회의 주장이 일견 타당해 보일 수는 있으나 완산 푸마의 7구단 합류 과정에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46721|외국 스폰서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참가를 못하게 된 사례를 보면 한국축구계가 왜 이렇게 이하게 굴러가는지 수긍된다.]
         = 한국 축구사에 끼친 향 =
         리그컵이 갖는 의의는 제법 큰데, 한국프로축구계에서 돌아가는 업시스템과 現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격축구를 향한 도전정신"(...)의 기반은 어느 정도 이 리그컵에 시행되었던 부분들을 다수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긍정적 향 ==
         프로축구사에서 운을 위한 타이틀 스폰서가 붙은 건 공식적으로 리그컵이 최초다. 공식적으로 최초의 리그컵으로 볼 수 있는 92' 아디다스컵은 대회 스폰서인 제우교역의 요구에 의해 붙여진 명칭이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축구에 있어 스폰서가 붙었다는 사실은 당한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스포츠사에서 해외업체의 이름을 대회명에 붙인 최초의 사례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말이 많았다.
         === 금 ===
         스폰서가 붙었기 때문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52307|한국프로축구 역사 최초로 금이 걸린 대회]가 될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리그컵은 충분히 각 팀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요건이 되었다. 당시 아디다스 제품을 수입/판매하던 제우교역이 10만달러를 스폰함으로써 최초로 금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 셈.[* 92년도 여름을 기준으로 당시 환율이 1달러당 800원 정도였으므로 총금 규모는 대략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16060|8000만원선]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금이 생겼기 때문에 팀에 대한 시뿐만 아니라 우수선수에 대한 시도 이루어졌다. 이 당시에 시하던 기준이 2016년 시점에서 바라본 K리그에 통용될 정도로 한국프로축구사에 끼친 향이 지대하다.
         K리그외에도 별도로 운되는 대회가 태어났기 때문에 팀에서는 이를 위한 별도의 스쿼드를 꾸릴 필요가 생기게 되었으며, 이는 각 구단들이 선수층을 보다 두껍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협회 입장에선 FA컵을 대체하는 대회로 여길 수 있었으며, 좋게 표현하면 구단들은 프로무대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신인들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주기도 했다.
         == 부정적인 향 ==
         첫 대회부터 10만 달러라는 거액을 유치한 것 까지는 좋은데, 일정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여 리그가 진행되고 있던 6월부터 수요일에만 경기가 열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중경기는 주말경기보다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흥행을 위해 진행한다는 취지는 처음부터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었던데다가 금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주중경기 편성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거의 모든 팀이 이 대회를 처음에 엄청 싫어했다. 그리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댓가로 리그컵에 대한 위이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구단들의 반감을 사는 요소만 한가득 얻었다.
         두번째 대회에 좀 나아졌냐면 또 그것도 아니라서... 리그가 끝난 10월에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으론 제법 널널했을텐데도 각 팀은 1주일에 2번씩 경기를 치루는 하드코어한 일정을 보낸다. 이쯤되면 운방식에 대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을 지경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K리그의 금과 위이 리그컵을 명백히 넘고나서부턴 각 구단이 2군리그와 비슷하게 취급하게 된다.
         게다가 첫 아디다스컵 이후에도 흥행이라는 이름 하나로 대회 운방식을 바꾸는데, 하나같이 팀이나 팬이나 지치게 만드는 요인밖에 안 되어 결국은 흥행은 흥행대로 날려 종국에는 "리그컵은 종이컵"이라는 조롱을 받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공격축구를 하겠다고 무승부시에 승부차기를 한다거나 서든데스제도를 도입하는 등, 골 수를 늘려보겠다고 별별 짓거리를 다 했지만, 1회차 대회부터 수비축구를 한 일화가 우승을 함으로써 지나친 실험정신은 변화를 꾀하지 않으니만 못하다는 진리를 증명하고 말았다.[* 첫 대회때 우승한 일화는 3승 4무 2패에 골득11 골실10로 공격축구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오히려 일화보다 더욱 공격적인 축구를 했던 LG가 4승 1무 3패 골득15, 골실11로 2위가 되는 웃긴 황이 연출되었다.] 이런 촌극 끝에 결국에는 승점체계가 국제경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승3무1 방식으로 감으로써 당시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흥행이라는 미명하에 한 행동이 모두가 뻘짓이 된 것.
         KFA가 구단들과의 의견조율이 실패하여 리그컵과 관련한 협조를 구하지 못했던 것도 리그컵에 크게 부정적인 향을 끼쳤다. 구단들은 10만 달러를 전액 금화를 생각하였는데, KFA는 이걸 일부만 금으로 쓰고 나머지는 KFA에서 아마추어를 지원할 자금으로 돌릴 생각을 갖고 있어서 1회 아디다스컵은 "금은 있는데 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태에서 시작"되었다. 당초에 이는 아디다스컵이 열리게 된 이유가 구단들과 제우교역측과의 논의에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650363|스폰금액은 전액 금으로 쓸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KFA가 이를 계약서를 찍을때 "협회에 일임함"으로 이야기를 바꿔버려서 협회와 구단사이에 골이 생기게 만들어버렸다. 해당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아디다스컵의 창설을 주도한 건 협회가 아니라 구단이며, 이는 구단의 수익을 위한 금배분을 협회가 개입함으로써 제대로 수틀린 것. 제우교역측은 명백히 "프로구단을 위해 사용하길 바람"인데 KFA는 프로리그를 위한 돈을 멋대로 아마추어 사업에 쓰겠다고 나섰으니 구단들이 이 대회를 심정적으로나마 보이콧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 금과 위 ==
         아디다스컵이 처음 열렸던 시점만 하더라도 K리그와 사실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많은 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와서 과거 한국프로축구와 관련된 기사를 살펴봐도 리그컵이 처음 열렸을 당시에는 정규리그보다는 아디다스컵 관련기사를 찾기가 더 쉬울 정도다. 10만달러 규모의 금은 당시 국가대표 대회로 간주할 수 있었던 대통령배 대회를 빼면 축구계 최고액이었으니 당연히 화제를 몰고 올 수 밖에 없었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던 황. 물론 이건 총 금규모고 실제로 우승팀은 3000만원, 준우승팀은 1500만원을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런 사실은 명백히 K리그와 차별할 수 있는 위을 심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K리그도 금제도를 대폭 개선하면서 이 위이 바뀌게 되었다.
         K리그가 스폰을 받기 시작한 94시즌에는 1년동안 정규리그를 마치고 우승팀에게 3000만원을 주었다. 이때는 우승금만 보면 아디다스컵과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정규리그와 리그컵간에는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하고 있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직후인 95년도에는 최대 획득가능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3981096|우승금이 1억 5천만원으로 책정]되며 리그컵과 차이가 좁혀지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지게 되었다.[* 1억5천만원을 셋으로 나눠 전기리그 우승팀, 후기리그 우승팀, 종합우승팀(통합챔피언 우승)에게 주었다. 한 팀이 전기리그 우승과 후기리그 우승을 둘 다 차지하면 1억5천을 그 팀 혼자서 갖고,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다른 팀이라면 5천만원은 준우승자에게 주는 금이 되는 셈.] 전기나 후기 중 하나만 우승해도 리그컵보다 더 큰 업적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생기면서 리그컵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된다.
  • 백진희 . . . . 63회 일치
         {{화인 정보
         | 형제자매 = [[정두 (1968년)|정두]]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jinibeak}}
         1990년 2월 8일 [[경북도]] [[김천시]] 봉산면 (김천시) (봉산로) 에서 태어났다. 2008년 독립화 《사람을 찾습니다》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고, 《[[반두비]]》로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1=윤희성|제목=백진희│My name is…|url=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3538|날짜=2013-06-18|확인날짜=2016-01-27|뉴스=텐아시아}}</ref><ref>{{뉴스 인용|저자1=최은화|제목=[쿠키人터뷰]‘어쿠스틱’ 백진희, “한국판 아만다 사이프리드? 좋죠~”|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288698003&cp=nv|날짜=2010-11-02|확인날짜=2016-01-27|뉴스=쿠키뉴스}}</ref>
         현재 배우 [[윤현민]]과 열애 중이다. 둘은 2016년 열애를 인정했으며, 현재 3년째 열애를 이어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저자=백민경|제목=“같은 카페?”...윤현민♥백진희, 여전히 달달한 일|url=http://star.mk.co.kr/new/view.php?mc=ST&year=2018&no=415946|뉴스=스타투데이|출판사= |위치= |날짜=2018-07-02|확인날짜= }}</ref>
         | 이
         === 화 ===
         | 《[[키친 (2009년 화)|키친]]》
         | 《[[어쿠스틱 (화)|어쿠스틱]]》
         | 《[[페스티발 (화)|페스티발]]》
         * 2014년 제16회 [[서울국제청소년화제]] 홍보대사
         == 수 및 후보 ==
         ! 시
         | 제46회 [[백예술대]]
         | 화부문 여자 신인연기
         | 제8회 [[맥스무비 최고의 ]]
         | 최고의 여자신인배우
         | rowspan="3"| [[페스티발 (화)|페스티발]]
         | 제48회 [[대종]]
         | 신인여우
  • 황교안 . . . . 63회 일치
         |본관 =[[창원 황씨|창원]]<ref>{{웹 인용|제목=황교안|url=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01.jsp?id=15572|웹사이트=조선일보}}</ref>
         |배우자 = 최지(윤석열부인)
         |웹사이트 =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82년 12월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시보로 시작했다. 2011년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뒤, 2011년 9월 19일부터 2013년 1월까지 [[대한민국]]의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대검찰청 공안과장과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지낸 [[공안]]검사로 활약하였으며, 공안 수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가보안법]] 해설>을 저술해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896536|제목=별명은 '미스터 국가보안법'…황교안 후보자는 누구?|성=|이름=|날짜=2015-05-26|웹사이트=|출판사=}}</ref>
         2013년 제63대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 [[이석기 사건]] 수사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법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일환으로 무변촌 지역 주민들을 위해 마을변호사 제도를 신설하였는데, 시행 초기에는 실효성이 적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시행 자체에 대하여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8/27/0200000000AKR20130827077300054.HTML?from=search 마을변호사, 취지는 좋은데 담실적은 ‘글쎄’]《연합뉴스》2013년 8월 27일 손원 기자</ref> 이후 계속 제도를 보완하여 대한민국의 전체 무변촌 1,412곳에 마을변호사 1,455명을 배치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6010002601 헌법가치 수호와 법질서 확립의 첨병에 선 황교안 장관]《아시아투데이》2015년 1월 7일</ref>
         * 1995.09 ~ 1997.02 : 창원지방검찰청 통지청 청장
         * 2015.11 : [[김삼]] 전 대통령 국가장 장의위원장
         [[1982년]] [[12월]]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시보]]가 되어 1983년 3월까지 재직했다. 1983년 [[청주지방검찰청]] 검사로 발령받았다. 1987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0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을 거쳐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4년 [[법무연수원]] 교관, 1995년 [[창원지방검찰청]] 통지청장, 1997년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99년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제5부 부장검사, 2000년 [[대검찰청]] 공안제1과장, 2002년 [[서울지방검찰청]] 공안제2부 부장검사, 2003년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등을 거쳐 2004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되고, 2005년부터 2006년까지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 차장검사로 재직하면서 [[삼성 X파일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였다. [[2005년]]에는 [[국정원·안기부 도청사건]]의 수사를 지휘하였다.
         서울지검 공안2부 부장검사에 있을 때인 2002년 한총련 대학생들이 주한 미국공회의소 점거하여 농성을 하였는데 이때 38명의 주동자들을 전원 구속수사하였다.
         한때 그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탈락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3507.html?_fr=st1 황교안의 검사장 탈락, 밉보였나 무능했나] 한겨레신문 2015년 05월 29일자</ref> 이후 [[2006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장, 2007년 [[서울고검]] 검사 등을 역임했다. [[2007년]] [[10월 21일]] 그는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자인 [[이명박]]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ref name="giriss">[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3318 황교안,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이명박 추한 모습”] 미디어오늘 2015.05.28.</ref> 당시 황교안은 <하느님 편에서 보기>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 글에서 "요즘 한나라당에서는 경선후보들 사이에 검증공방이 한창이고, 그 과정에서 소위 네거티브 전술도 종종 등장하여 사회적 비난의 대이 되고 있다"며 "유력한 경선후보 중의 한 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 경쟁은 몹시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세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느냐고 질책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썼다.<ref name="giriss"/>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김은성 (1945년)|김은성]]이 2005년 7월 국가정보원 도청 자료를 통해 폭로된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 특별수사팀의 지휘를 맡았다. '[[삼성 X파일 사건]]'은 1997년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검찰 간부들에게 '떡값'을 줄 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 등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불법 도청한 사건으로, 안기부 도청 조직 '미림' 팀장이 면직 후 X파일을 외부로 유출해 2005년 7월 언론을 통해 세에 공개됐다. 횡령과 뇌물공여 혐의를 받던 [[이건희]] 삼성 회장을 서면조사만 하고 수사를 마무리하는 등 삼성 쪽 인사 모두를 불기소 처분했다. 반면 X파일 내용을 보도한 [[이호]] <문화방송>(MBC) 기자와 녹취록 전문을 실은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삼성 X파일 사건'을 '불법 도청 사건'으로 몰고 가는 식으로 '재벌 봐주기'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92233.html 황교안 누구?…‘삼성 X파일’ 때 삼성쪽 인사 모두 불기소]《한겨레》2015년 5월 21일 김원철·정환봉 기자</ref> 2005년 국정원·안기부 도청사건 수사를 지휘했고, 같은 해 국가보안법과 사의 자유 사이의 논란이 컸던 강정구 교수 사건 때 구속수사를 추진했다. 당시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기소처리해, 그는 [[천정배]]와 갈등하였다.<ref name="rigi"/> 결국 [[김종빈]] 검찰총장이 물러나기도 했다.<ref name="rigi"/>
         2013년 9월 4일 정부를 대표하여 국회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한 황교안 장관은 이 사건 범행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위협이라 하였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90476721 이석기 체포동의안 통과 - 황교안 “이석기는 지하혁명조직 총책” … 野도 체포동의 당론 찬성]《한국경제》2013년 9월 5일</ref> 이석기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재석의원 289명 가운데 찬성 258명, 반대 14명, 기권 11명, 무효 6명 등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었고, 수원지방법원에서는 같은 달 5일 이석기에 대한 구속장을 발부하였으며 검찰은 같은 달 26일 이석기 등을 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한 후 2014년 2월 3일 결심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하였다.<ref>[http://www.ytn.co.kr/_ln/0101_201402031418170083 '압수수색부터 1심 판결까지]《YTN》2014년 2월 3일</ref> 2014년 2월 17일 수원지법은 내란음모, 선동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이석기에 대하여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하였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24490.html 이석기 내란 음모 혐의 인정돼…징역 12년]《한겨레》2014년 2월 17일 이정애 기자</ref> 이에 검찰과 피고인측은 모두 항소를 하였고 2014년 8월 11일 서울고법 재판부는 내란선동에 대하여는 유죄를 인정하였으나 내란음모는 무죄로 판단하고 이석기에 대하여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1/2014081101979.html RO 내란음모 항소심 재판부, 이석기 의원 징역 9년 선고…'내란 선동' 인정, '내란음모' 무죄]《조선일보》2014년 8월 11일 이정원 기자</ref> 역시 양측이 모두 고하여 이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는데, 2015년 1월 22일 대법원은 내란선동은 인정되나 내란음모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다수 의견에 따라 고를 기각하였고, 이석기에 대해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은 확정되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23/2015012300328.html [이석기 확정 판결] 130명 회합 목적은 폭동… RO, 의심은 들지만 내란음모는 無罪]《조선일보》2015년 1월 23일 양은경 기자</ref>
         이석기 사건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違憲)정당해산심판’ 청구에서도 황교안 장관은 정부대리인으로서 직접 변론기일에 출석하여 “통합진보당의 최고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와 강령의 구체적 내용은 현 정권을 타도하고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북한식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f>[http://news.donga.com/3/all/20140129/60468708/1 '통진당 해산심판 첫 변론“대한민국 파괴"vs"민주주의 후퇴“ 장관 - 당 대표 맞붙다]《동아일보》2014년 1월 29일 최예나 기자</ref> 황교안 장관은 2014년 11월 25일에 있었던 최종변론에도 직접 출석하여 "통진당의 강령은 주체사을 지도이념으로 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들이 실제로 추구하고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 역시 용공 정부 수립과 연방제 통일을 통한 '북한식 공산주의'를 실현하는것"이라며 정당해산을 거듭 촉구했다.<ref>[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526421&cloc=olink|article|default 황교안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 무너뜨린다]《중앙일보》2014년 11월 26일 박민제·이유정 기자</ref><ref>[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523857&cloc=olink|article|default 통진당 해산심판 최종변론 - 황교안 법무부장관]《중앙일보》2014년 11월 26일 심서현 기자</ref>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재판관 9명 중 8명 인용 의견으로 통진당 해산결정을 하였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121901070121079001 통진당, 북한식 공산주의 추종”…‘헌정 초유’ 해산 선고. 헌재, 8대1로…소속 5명 모두 의원직 박탈]《문화일보》2014년 12월 19일 김병채·김동하 기자</ref>
         청와대는 21일 오전 10시 국무총리 내정자를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10시 5분 전, 돌연 '총리 발표'를 연기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청와대 춘추관으로 급하게 뛰어와 보도를 늦춰달라고 하는 과정에서 기자들 사이에 '후보자 교체, 무기한 연기'라는 소문이 돌았다. 다시 10시 5분경, 민경욱 대변인이 춘추관을 방문하여 "10시 15분에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 후,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국무총리 후보자 내정'을 발표하였다. 이런 해프닝에 대하여, '새누리당이 ''공안 총리'' 에 대한 야당 반대를 우려하여 박근혜 대통령에게 재고하라'고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라며 당-청 갈등이 원인이라는 논란이 일었다.<ref>[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031 <공지→연기→재공지> 황교안 총리 후보자 지명 둘러싼 ‘미스터리’]《일요서울》2015년 5월 26일 박형남 기자</ref>
         황교안은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차례 징병검사를 연기하다가 1980년 징병 검사 때 ‘만성 담마진’(두드러기 질환)이란 피부병으로 징집 면제 처분을 받았다. <ref name="고발뉴스">[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3 황교안, ‘두드러기’ 병역면제…공안통 ‘Mr 국보법] 《고발뉴스》 2013년 2월 14일</ref> 황교안은 징병검사에서 면제판정을 받은 이듬해인 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점 때문에 잇단 징병검사 연기와 면제 판정 사이의 연관성을 의심받는 황에서, 황교안이 두드러기 질환 판정을 받기도 전에 징집을 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즉 황교안은 1980년 7월 10일 병원으로부터 두드러기 질환 판정을 받았는데 이미 7월 4일 병무청으로부터 징집 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다. 김광진 의원실은 인사청문회 전 "병무청과 병원측에서도 질병에 대한 정밀검사 등을 모두 받은 후 징집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 순서인데 황교안은 반대로 병징집제 판정을 받아놓고서 정밀검사를 진행하는 것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비정적인 황이라고 하였다."고 주장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6041539241&code=910402 새정치 김광진 “황교안 두드러기 판정 받기도 전에 이미 병역면제 결정 받아”] 《경향신문》 2015년 6월 5일</ref> 그리고 군 면제 판정을 받을 정도의 질병을 갖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점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받았는데, 황교안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고시공부를 하는데) 지장을 주는 그런 질환은 아니다"고 해명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3/02/13/0702000000AKR20130213208400004.HTML?template=2087 황교안, 3차례 징병검사 연기 후에 '두드러기'로 병역면제 쟁점] 《한국일보》 2013년 2월 15일</ref> 당시 군의관이었던 손광식은 "7월 4일 날 정밀검사 보낼 때는 ‘이’을 찍고, 이 두 칸은 비워 둔 채 정밀검사로 갑니다. 갔다가 정밀검사가 7월 10일 날 결과가 나오면 그다음에 여기 비워 둔, 7월 4일 자에 비워 둔 두 칸에 그 판정을 기록합니다."라고 증언하여 7월 4일 병무청 병징집면제 판정을 받은 것처럼 기재되어 있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징병검사할 때 일반 신체검사 환자가 거의 대부분이고 이 후보자처럼 면제받는 사람은 극소수라서 그런지 그런 오해를 받도록 이렇게 일반 신체검사용으로 한 라인에다가 좍 써 놨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나옵니다."라고 증언하여 위와 같은 의혹 제기는 오해에 불과하다고 증언하였다.<ref>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10-050.do</ref>
         2004년, 당시 부산지검 동부지청 차장검사이던 황교안은 기독교 신자인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가정폭력의 원인'에 대하여“사실 부산 여자들이 드센 이유도 있다. 반면 남자들은 말싸움이 안되니까 손이 먼저 올라가는 것이고…”라고 했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92233.html "부산 여자가 드세서".. 황교안, 이번엔 '여성 비하' 논란]《오마이뉴스》2015년 5월 26일 강민수 기자</ref>
         현대사나 정치 현실에 대한 황 후보자의 '인식'도 논란이 됐다. 황교안은 2009년에 쓴 집회시위법 해설서에서 4·19 혁명을 ‘혼란’으로,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한 바 있다. 2009년 용산참사를 두고는 농성자들의 불법·폭력성이 원인이었다고 서술하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2323.html 황교안, ‘대선 댓글’ 원세훈 장 청구 막고…채동욱 솎아내고…]《한겨레》2015년 5월 21일 노현웅·이승준 기자</ref>
         황교안은 16개월 동안 총 119건의 사건을 담당하여 월 평균 6건으로 일반 변호사보다 3배 이 많이 수임을 한 것이 확인되었고 일반 변호사들도 꺼리는 고소 대리 사건을 수임한 기록도 나와 전관예우 의혹도 제기되었다.<ref>[http://news.jtbc.joins.com/html/181/NB10913181.html 황교안 과거 수임 실적 봤더니…'일반 변호사의 3배']《JTBC》2015년 6월 4일 공다훈 기자</ref> 황교안은 2011년 9월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며, 2013년 1월까지 16개월 동안 월평균 1억원으로 세전을 기준으로 16억원의 급여를 받았다. 과거 황교안이 16개월 동안 재판을 수임한 건수는 단 2건이였고, 2건의 재판은 부동산업자가 투자자들을 속여 땅을 사기분양한 사건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가 있었으나<ref>[http://www.vop.co.kr/A00000599962.html 황교안 후보자, 한달에 3억원을 어떻게 벌었을까?] 《민중의소리》 2013년 2월 17일 정웅재 기자</ref>,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119건을 담당한 사실이 확인되어 위와 같은 의혹 제기는 사실과 다른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ref>http://www.sisa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025</ref>.
         또한, 변호사법 등에 따라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는 소속 지방변호사회를 거쳐 검찰이나 법원에 선임계를 제출해야 하지만 황교안은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수임한 사건이 19건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소위 '전화변론(전관 변호사들이 고액의 수임료 수수, 소득 신고 누락에 따른 탈세 등을 위해 사용하는 변칙적인 사건 수임)'을 통해 수사나 재판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14809 전화변론, 황교안 발목 잡을까] 《오마이뉴스》 2015년 6월 3일 구식 기자</ref> 황교안은 2015년 6월 8일 인사청문회에서 "선임계는 변론이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수사에 나가서 방어를 하거나 또는 법정에 나가서 관여를 하거나 그런 변론이 있을 때 내는 게 선임계입니다. 제가 변론에까지 나가지 않은 단계였"다며 변호사법은 변론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선임계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변론활동을 하지 않은 이 변호사법에 위반된 것이 아니라고 답변하였다.<ref>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ref>
         황교안이 인사청문회를 위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 중 변호사 시절 사건 수임내용 관련 자료 중 19건이 화이트칠을 해서 제출한 것을 두고 고의적인 인사청문회 방해 행위라는 논란과 함께 '전화변론' 의혹을 받았다. <ref>[http://news.jtbc.joins.com/html/180/NB10908180.html "황교안 과거 수임내역 19건 삭제" 청문회 뇌관 부]《JTBC》2015년 6월 1일 안의근 기자</ref> 위 19건은 법조윤리협의회이 법무법인 태평양에 재직중이던 황교안으로부터 담당사건 자료로 신고된 자료 중 19건을 신고 대이 아닌 자문 사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홍훈 법조윤리협회회 이사증은 2015년 6월 10일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이게 왜 이렇게 됐는가는 과거에, 전에도 국회 인사청문회에 제출할 때 자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89조의9제2항1호의 규정은 관련 시행령, 변호사법 시행령이라든지 또 변협회에서 수임사건 제출규정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변호사법 3조라든지 여러 가지 규정을 관련해서 봤을 때 이 수임사건을 뭐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 지금 말씀하신 대로 자문도 포함된다고 하는 그런 논의도 있었지만 법의 규정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밀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넓게 해석했다 자칫 잘못해서 이것이 아니다 할 때는 법조윤리위원 전체가, 위원이라든지 직원이라든지 비밀유지 의무가 있어서 형사 처벌 대이 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고 또 이 입법 취지를 저희가, 2013년도에 법을 개정할 때 충분히, 입법을 할 때 과정을 저희가 회의록을 조사해 보고 그 뒤에 우리 법조윤리협의회에서도 ‘이 법은 좀 문제다’ 작년에 세미나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했던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미 종전 인사청문회 때 이 법이 저희 법조윤리협의회에서는 정리가 됐기 때문에 이 경우는 수임 사건에 한하자…… 그리고 지금 자문 사건에 대해서는 저희 윤리협의회에 신고하는 변호사가 거의 없는 황인데 이 사건에 대해서 자문하고 수임사건하고를 같이 해서, 그렇다면 법의 해석에 따라서 수임사건만 국회에 자료 제출해 주는 것이 맞다 해 가지고 그것을 사후에, 지난번에 지금 말씀하신 대로 그날 일요일이 돼 가지고 다 비임들이라 서면으로 결의를 할 때도 그것에 대한 내용은 충분히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수임사건의 범위에 대해서. 그래서 다른 위원들도 대다수가 다 동의를 했고 그래서 국회에 그런 의견을 보냈던 겁니다."라고 증언하였다<ref>http://likms.assembly.go.kr/record/mhs-60-010.do#none</ref>.
  • 안기효 . . . . 62회 일치
         ||<#F157FF> {{{#ffffff '''관련사이트'''}}} ||<bgcolor=#ffffff> [[http://afreeca.com/aghhi| [[파일:아프리카TV 로고.png|width=18]] 아프리카TV]] [br] [[https://www.twitch.tv/aghhi| [[파일:트위치 로고.png|width=18]] 트위치 채널]] [br] [[https://www.youtube.com/channel/UCYG8tuvbQzWsDeoADyJFU8Q| [[파일:유튜브 아이콘.png|width=18]] 유튜브 채널]] [br] [[http://cafe.daum.net/NalROCK| [[파일:네이버 카페.png|width=18]] 팬카페]] ||
         2008년 곰TV 클래식 시즌2 16강 (VS[[이호]] 0:2)
         2009년 곰TV 클래식 시즌3 64강 (VS[[안원]] 0:2)
         2003년 데뷔한 올드 프로게이머로 판짜기 능력과 전략성이 탁월해 2005년경에는 [[박지호]], [[오종]], [[송병구]]와 함께 '신 4대 프로토스'의 물망에 오르내릴 정도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단점도 뚜렷했는데 매크로/마이크로 콘트롤과 멀티태스킹 능력, APM 등 게이머로서의 기본기가 전반적으로 모두 부족했다. 그와 함께 투나 - 팬택의 주축 멤버였던 [[심소명]]과도 비슷한 특성. 어쨌든 이것이 그의 성장을 가로막게 되어 결론적으로는 그를 제외한 프로토스 신예 3인이 신 3대 토스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래서 그의 전략마저 뒤떨어지기 시작한 2008년 이후로는 프로리그 16연패 등 끝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경험했다.
         특징적인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멋진 승리도 많았지만 [[OME]]급 패배도 많이 보여 준 선수다. 다전제에서 [[이호]]와 [[이제동]]을 잠재우는 위엄을 선보이다가도, [[윤종민]]에게는 패러사이트 걸린 셔틀로 계속 견제를 다니고[* 더 웃긴 점은, '''이 견제에 윤종민이 당했다'''는 거다.(...)] [[변길섭]]에게는 마린에 캐리어를 헌납했으며, 피터 네이트와의 팀리그 경기에서는 리버 한 기에게 프로브를 55기나 폭사당하는 등 아이러니컬한 모습이 특징.
         쇼맨쉽이 매우 뛰어난 선수로, 남자다운? 외모와 과격한 승리 세리머니로 인이 깊다. 날아차기, 엄지손가락으로 목긋기, 유리창 두들기기 등의 역동적인 세리머니를 보여주며 많은 환호를 받은 선수였다.
         또한 조지명식에서의 입담이 매우 좋은 선수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조지명식에서 항 기대되는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2016년 10월 철구와의 스폰빵에서 보여준 승리 세리머니는[* 그 유명한 학사경고 이다. 자세한 사항은 유튜브의 "철구 학사경고" 참조] 안기효 방송의 애청자이던 트위치 스트리머 [[스틸로]]의 향으로 옆 동네 트위치에서 대유행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원조를 따라잡지는 못했단 평을 받았다.--그 와중에 [[김도|한 명]]은 채신기술로 쓴다-- 배경음악은 [[Silver Scrapes]]다.
         그 외 대표적인 별명은 하부리그의 총사령관, 혹은 지옥의 하데스. 메이저 본선에서는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나, 하부리그인 챌린지 리그나 듀얼 토너먼트 등에서는 못이기는 대가 없기에 붙여진 별명. [[온게임넷]] 예선인 챌린지리그와 듀얼토너먼트에서 대 테란전 전적은 총합 25승 6패이며 대들의 이름만 보더라도, 각 팀 주전급 이의 테란들이다. 아래는 챌린지 및 듀얼에서 맞붙은 [[테란]] 목록.
          * [[이호]] / 스타챌린지 시드결정전 4강에서 2:1 승
          * [[염보성]] / 듀얼토너먼트에서 승. 대전적 2:1
          * [[전욱(프로게이머)|전욱]] / 듀얼토너먼트에서 승
         또한 [[이호]]를 이기고 올라간 스타챌린지 1위 결정전에서는 [[이제동]] 마저 이기고 [[스타리그]] 본선 4번 시드를 쟁취했다.[* 시드를 따낸 후 안기효는 목 긋기 세레모니를 시전한다.] 안기효는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끝날때까지, '''[[스타크래프트]] 공식전에서 [[이제동]]을 다전제(5판 3선승제)에서 이긴 유일무이한 [[프로토스]]로 남았다.'''[* 당시 [[이제동]]은 [[역대 스타리그 일람#s-23|해당 스타리그]]에서 [[로얄로더]]를 달성했던 시절이였다. [[토막]]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촉망받던 신예란 점을 생각해보면 안기효의 당시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첫 우승이 [[EVER 스타리그 2007|토스 잡고 한 우승]]이긴 했지만 사실 이때는 이제동이 잘했다기 보단 송병구가 [[옛날토스|너무 못했다]](...) 토스전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밀고가다 지는 경우가 많았고 송병구와의 결승전에서도 송병구가 우승할 것이란 예이 훨씬 많았는데, 이걸 이제동이 우승하면서 토스전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스타리그]]에서는 3패로 [[광탈]]하는 아쉬운 모습을 선사한다.
          * 피씨방의 마에스트로 [[김남기(프로게이머)|김남기]], [[주달]]
          * 16강본능 [[진수#s-1|진수]],[[염보성]]
         투신 [[박성준]]에게 천적 관계[* 사실 [[박성준]]에게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프로토스]]는 '''아무도 없다.''' [[박성준]]은 '''대 [[프로토스]]전 5전 3선승제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걸 넘어서, 5전제를 치를 때 2패째를 허용한 적도 없다.''' 전성기가 한참이나 지났다고 평가 받던 [[EVER 스타리그 2008]] 결승전에서도 당시에 잘나갔던 [[도재욱]]을 대로 3:0 떡실신을 먹였을 정도. 전무후무한 저그전 최강이라던 [[김택용]]에게도 3대3의 대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박성준을 대로 전적이 앞서는 프로토스는 비공식 포함 7승6패의 [[송병구]] '''뿐.''' 이도 호각세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공식 전적만 볼 때는 오히려 2승 5패로 송병구가 [[김준]]만큼 고배를 마신 저그가 박성준이다. 안기효가 유난히 자주 만났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즉, '''그냥 재수없는 거다.'''(...)]이며, 두 번의 16강, 두 번의 8강, 그리고 [[WCG]] 대표선발전에서 에서 고배를 마셨으며,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에서 유명한 미니맵 [[관광]]을 당한다. 실은 안기효가 첫 온겜 [[스타리그]] 데뷔전 당시 꺾었던 대가 다름아닌 전대회 우승자였던 [[박성준]]이었다. 리버+캐논으로 인한 조이기 라인으로 체면이 팍 깎인 [[박성준]]이 그 후 안기효만 보면 잡아먹으려 든다는 이야기.(...) 아무튼 안기효의 개인리그 위 라운드 진출은 번번이 [[박성준]]에게 막혔다. 전략성을 감안하면 개인리그에서도 4강 한 번쯤은 노려볼 수 있는 선수였기에 매우 아쉬운 일.
         재미있는 기록으로 방송경기 데뷔무대였던 챌린지리그 vs [[서지훈]]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었다. 이는 [[온게임넷]]의 [[스타리그]](챌린지리그, 듀얼토너먼트 포함.) 역사 최초의 무승부이기도 하다. 또 마린에게 캐리어가 잡히는 경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24강 VS [[변길섭]](맵 [[개척시대(스타크래프트)|개척시대]]), 황은 안기효가 3캐리어+적절한 양의 지병력 VS 변길섭이 골리앗 없는 메카닉에 소수 마린+SCV인 황, 러시 거리가 매우 가깝고 변길섭이 선공을 날렸다고는 하지만 병력 구성으로 보면 안기효한테 절대적으로 유리한 황이었다. 이 때문에 방심했는지 캐리어 컨트롤을 하나도 안하다가 마린의 피니시를 맞고 격추당한다.(그 전에 터렛에게 많이 맞았다.) '''더불어 그 경기 졌다.''']
         2007년 6월 26일 프로리그, 팬택vs온게임넷 스파키즈 5세트 [[팔진도(스타크래프트)|팔진도]]에서 [[이승훈(프로게이머)|이승훈]]과 맞붙었는데 초장기전 끝에 무승부가 나오는 황이 발생했다. 이 황이 답답했는지 안기효는 부스 유리벽을 쿵쿵 치는 행동을 보였는데 그 후...... [[히어로센터 유리창 파손 사건]] 참고.
         08~09년 성적은 많이 아쉽다. 같은 팀 [[이윤열]]이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에서 '''비현역''' [[강민]]과 [[박용욱]]을 대로 접전을 펼치자 [[스갤]]러들은 하나같이 '''안기효 대신 [[강민]], [[박용욱]] 데려와라!'''를 외칠 정도...
         [[이한]]의 말로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자주 해줬다고 한다.
  • 유키히라 소마 . . . . 62회 일치
          * 위 항목: [식극의 소마/등장인물]
         >'''"잡숴봐"'''[* おあがりよ. おあがり가 대보다 높은 사람이 먹을 것을 권할 때 사용하는 부드러운 말투로 '먹으렴' 정도 느낌인데 뒤에 よ가 붙으면서 약간 거친 말투가 됨.]
         >'''"변변찮았습니다(御粗末)!"'''[* おそまつ. 사전 의미는 시시하다, 변변치 않다지만 여기서는 식사 후에 "잘먹었습니다"에 해당하는 ご馳走様でした에 대한 답으로서 요리를 만든 사람이 말하는 "별말씀을요/변변치 않은 것이었습니다"에 해당하는 御粗末様でした(おそまつさまでした)에서 온 말이다.--근데 번역본은 죄다 '변변찮군!'으로 되어있다--]
         [식극의 소마]의 주인공. VOMIC판 성우는 [오노 유우키]. TVA 성우는 [마츠오카 요시츠구].[* PV에서의 하이톤 때문에 방 전부터 소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인기 성우를 주역으로 기용하려는 경향의 폐해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엄밀히 따지면 마츠오카를 비롯한 젊은 성우들이 주역으로 자주 기용되는 이유는 낮은 랭크 때문. --한마디로 저비용 고효율.--]
         붉은색 머리카락과 금색 눈동자를 지닌 소년으로 작은 대중식당인 '유키히라'을 경하며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1화에서 얼굴이 햇빛에 가려진 사진에 나왔었던 것 외에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 현재 나이는 15살으로 요리 경력은 12년. 3살 때부터 부엌칼을 잡았다고 한다.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이 일생의 목표로[* 1권 시점에서 0승 489패] 그런 소마의 꿈을 눈치챈 조이치로에 의해서[* '유키히라'를 몇년간 휴업시키고 본인은 소마와 통화했을 때 '''뉴옥 맨해튼 로열 호텔 VIP 전용 리셉션 홀'''에 가서 요리하는 중이었다. 조이치로는 예전에도 세계를 돌며 요리를 했던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번에도 다시 한 번 그럴 셈이었던 것.] 위 3%만이 들어간다는 초일류 요리학원 토오츠키에 들어가게 된다.[* 원래 소마 본인은 고등학교에 가지않고 가게에서 요리 수련을 할 생각이였다.] 이후 고등부 편입생으로 쿄쿠세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방은 303호실. 우연히도 아버지 조이치로가 썼던 방이다.]
         = 세 =
         주인공답게 천재적인 요리 솜씨의 소유자로 그 실력은 토오츠키 십걸조차 경계할 수준. 그만큼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입학식 때 단 위에서 말할 때도 "손님 앞에 서 본 적도 없는 바보들에게 질 생각은 없습니다" 라며 어그로를 광역으로 끌기도 했고, 학원 졸업생에게 진심으로 이기길 바라면서 식극을 걸기도 한다.] 또한 자신과 아버지의 식당인 '유키히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매우 깊어서 땅을 팔라는 부동산 투기꾼의 제안이나 고급 식당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십걸 제9석 에이잔 에츠야의 스카웃 제의를 콧방귀도 뀌지 않고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유키히라'를 경하며 쌓아온 실력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직접 여러 음식들을 만들어왔던 것 덕분에 고급스럽지 않은 식재료들을 이용하여서 멋진 요리를 만드는 것이 특기이며, 다급한 황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해 위기를 해쳐나가는 능력도 뛰어나다. 점심 피크 타임 등으로 몸에 익은 초고속 접대 및 요리, 멀티 태스킹 역시 장기. 합숙에선 무려 후라이팬을 8개를 한꺼번에 돌리는 묘기를 선보였다. 다만 이따금 만드는 신작요리는 [[괴식]]의 역이며 그걸 남한테 억지로 먹이려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 현재 목표는 두 가지로 하나는 물론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 또 하나는 토오츠키의 정점인 '''토오츠키 십걸 제1석'''에 올라 학생 시절의 아버지도 보지 못했던 정의 경치를 보는 것.
         주로 요리하는 건 정식집 요리이며, 다른 캐릭터들이 양식으로 승부할 때도 혼자만 정식집 요리로 승부한다. 그 이유는 아버지에게 정식집 요리만 배워서 그렇다.[* 이는 아버지인 사이바가 직접 언급했다. 실제로 소마는 작업의 속도와 정확성 등은 졸업생들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요리에 대한 지식 수준은 매우 얕다. 조식 뷔페 메뉴 대결에서 뷔페 메뉴에서 중요한 맛의 지속성과 겉보기에서 최악인 수플레 오믈렛을 선택한다거나, 113화에서 아벨이 프렌치의 기초도 모른다고 하는건 다 이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식집 요리 특성 누구든지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언급에 의하면 평범한 요리사는 뛰어난 요리사를 보고 자신의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재능있는 놈에게 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승부를 포기하고 마음에 뚜껑을 닫아버리지만, 소마는 평범한 재능이면서도 그런 뚜껑이 없다고 한다. 대방의 쩌는 타이틀/실력을 보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악착같이 달려들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대방 요리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때까지 골두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설사 그럼에도 패배하다고 분한 마음은 분한 마음이고 그것과 별개로 그런 실패/패배 조차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의 실력을 증진시킨다. 단지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어찌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걸 정말 그대로 실천한건 소마 뿐. 이런 재능은 천재인 소마의 아버지조차 없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선천적인 천재라기 보단 [[노력하는 범재]] 타입인 셈. 초반이야 그렇다치고 쟁쟁한 이벤트를 거치며 실력을 증명했는데도 소마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소마를 인정해버리고 나면 그 처럼 노력하지 못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초인적인 감각을 지닌 다른 이들(하야마, 료 등)에 비해 소마는 '나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입하기 쉬운 인물인 셈이다. 실제로 가을 요리대회 결승전에 들어서자 서서히 소마를 인정하는 학생이 나오기 시작한다.]
         결정 문구는 "御粗末! / 변변찮았습니다!" 이 말을 외치며 머리띠를 푼다. 이 외에도 요리를 만들어서 대에게 권할때는 "잡숴봐." 라고 말한다. 사실 저 괴한 요리를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억지로 먹이는 것도, 결정 문구도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이다.[* 아버지의 경우 '건멸치 딸기잼 무침'이라는 처절한 맛을 자랑하는 요리를 만든 적이 있다.]
         항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이때다 싶을때는 과감하게 질러주기도 하는 점, 무엇보다 아버지와 대결하면서 강인해진 멘탈 덕분에 요즘 소년만화 주인공답지 않게 답답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남캐임에도 불구하고 당한 인기를 자랑한다. 다른 만화 주인공들이 속터지는 행보 때문에 암유발 주인공이라 불린다면 유키히라 소마는 항암제 주인공이라 불릴 정도.
         특히 최근 연재분을 보면 나오지만, 오히려 어려운 황을 즐기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모습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저 정도 인재가 현실에 있다면 정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할 수준.
         번화가의 작은 정식점인 '유키히라'를 경하며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1화부터 아버지에게 요리대결로 489번째 패배를 맞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인은 아버지를 뛰어넘기 위해 중학교를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가게에서 연습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버지인 유키히라 조이치로에 의하여 요리학원인 토오츠키로 가게 된다.
         > "그럼─ 짤막하게 두세 마디 정도만…. 어어… 유키히라 소마라고 합니다. 이 학교에 대해선 솔직히─ '''발판으로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뜻하지 않게 편입하게 됐지만 손님 앞에 서본 적도 없는 인간들에게 질 생각은 추호도 없고요. 일단 들어온 이은 '''정점을 차지할 거니까.''' 3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시업식 날, 편입생으로서 단에 올라오게 된다. 소마는 고등부 1학년들을 대로 대형 어그로를 끌고 다시 한 번 나키리 에리나와 대면. 중등부에서 올라온 내부 진학자에 대해 자신은 12년간 주방에 살았다면서, 자신의 가게 이름을 먹칠할 수는 없으니 에리나를 대로 "맛있다"라는 말이 나오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시험이 끝나고, 쿄쿠세이 기숙사로 향하며, 기숙사 입사 테스트때해 남은 재료를 사용한 고등어 버그 정식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합격하여 소마는 303호실을 배정받는다. 이때 목욕을 하기 위해 탕으로 갔다가 메구미와 서로 알몸을 보여주었다(…). 목욕 후 [[잇시키 사토시]]와 만나며 환회에 초대받는다. 처음에는 괴짜들인 쿄쿠세이 기숙사 맴버에 당황하지만 얼마 안 가 익숙해져서는 같이 괴짜 짓을 한다(…).[* 요리를 선보인다면서 실패작 요리를 건네주었다.]
         합숙 이틀째, 시노미야의 '9가지의 채소를 이용한 테린 시험'을 치를 때 본인은 여유롭게 통과하지만, 메구미는 퇴학당한다. 시노미야는 채소를 선별하는 능력 여부를 확인하려고 일부러 질이 안좋은 야채들을 섞었는데 좋은 채소를 시험생들이 직접 집게 했기에 시험생들 사이에 몸싸움이 치열했고, 메구미는 그 사이에 끼여 제대로 된 채소를 구하지 못했던 것.
         메구미는 하기 시작한 콜리플라워의 문제를 보완하려고 와인식초로 데치는 방법을 썼는데, 재료의 한계를 보완했다는 것을 칭찬은 못할망정 '''자신의 르세트(레시피)를 망가트렸다며 주저없이 퇴학'''시켜버린 것이다. 소마는 메구미가 늦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대응했으며, 식재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시노미야의 책임이 아니냐고[* 이전 주석에서는 테스트로 보기에는 이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다. 시노미야가 작중에서 말하듯 콜리플라워는 다루기 어려운 식재료이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콜리플라워를 챙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태가 나쁜 콜리플라워만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시노미야는 당황하여 이 점을 망각한 학생들은 요리사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누군가가 꼭 떨어져야 하는 '대평가'였다면 말이 되는 테스트고, 학생들의 역량을 공평하게 실험하는 '절대평가'였다면 말이 안 되는 테스트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시험관 재량에 따라 퇴학시킬 학생의 숫자를 0부터 무진장 많이(...)까지 고를 수 있어 보이므로, 그냥 시노미야의 성격이 더러운 걸로 해석하는 게 옳다.] 반론하나 시노미야는 '''조리장은 자신이라며 소마의 의견을 묵살. 더이 대들면 조리장 권한으로 소마마저 퇴학시킬 수 있다'''고 위협한다.
         이누이는 메구미의 요리를 먹고 맛있다고 평가하고 --시노미야에게 깐족대다 맞는다-- 도지마는 '적어도 그녀는 황에 대처하려고 했잖아? 그 끈기에는 한 번 더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라 말한다.
  • 이인 . . . . 62회 일치
         |출생지= [[조선]]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군]] 동면 사일리<br />(現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사일동)
         |경력 = 前 [[광신정보산업고등학교|서울 광신업고등학교]] 재단 이사장
         |부모= 이종(부), 정복희(모)
         |친인척= 이관준(친조부), [[이시 (1882년)|이시]](숙부)
         |웹사이트=
         '''이인'''(李仁, [[1896년]] [[10월 26일]] ~ [[1979년]] [[4월 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법률가, 정치인이다. 자(字)는 자옥(子玉), 호(號)는 애산(愛山). [[일본]] 유학 후, [[1923년]] 변호사시험에 합격, 변호사를 개업하고 이후 [[일제 강점기]] 당시 [[김병로]], [[허헌]]과 함께 독립운동가 및 애국자, 사회저명인사들을 대로 무료변호를 하여 등과 함께 '''3대 민족 인권 변호사'''로서 명망을 날렸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창씨개명을 거절하였고, 해방 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에 가담하였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정부수립 이후 국회의원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49년]] 7월에 [[반민특위]] 위원장에 임명되어 반민특위를 와해, 해체시켰다.<ref>{{서적 인용
         이인은 [[1896년]] [[10월 26일]]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사일동(射一洞)에서 아버지 이종(李宗榮)과 어머니 연일 정씨 정복희(鄭福姬)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 이관준은 남의 명망가이자 [[성리학]]자였고, 삼촌 [[이시 (1882년)|이시]]은 독립운동가로 순국하였다. 아버지 이종은 [[대한제국]] 당시 애국 계몽운동단체인 [[자강회]](自彊會)와 [[대한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계몽운동가였다.
         이후 [[장택]] 등과 고학생의 조(相助)기관인 갈돕회를 조직했다. [[1925년]]에는 갈돕회의 총재를 맡고 여자고학생조회를 조직하는데 도움을 주어 고학생을 돕는 한편, [[조선어연구회]]의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위원이 되어 사전편찬사업을 적극 지원했다. [[1927년]] [[신간회]]의 창립과 더불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신간회]]의 해소론이 제기되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만의 민족단체를 조직할 것을 주장했다. [[1930년]]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들의 흥농사(興農社) 사건을 변호하다 [[재판정|법정]]에서 일본의 학정(虐政)을 비난하여 법정불온변론 혐의로 6개월 동안 [[변호사]] 자격정지 및 정직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조선물산장려회]] 회장이 되었다. 1931년에는 조선변호사협회 회장이 되었고, 1935년에는 [[이우식]](李祐植)·[[김양수]](金良洙) 등과 함께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한 비밀후원회를 조직하여 재정지원을 했다.
         이후 언론탄압반대연설회 등으로 여러 차례 유치장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조선어학회]]를 비밀리에 지원한다는 혐의로 [[곽훈]] 등과 함께 요시찰 인물이 되었고, [[1936년]]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소환하기도 했으며, [[조선총독부]]는 그의 변호사 면허를 취소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깨끗한 처신으로 흠을 잡을수 없었다.
         [[1945년]] 광복이후 [[백관수]],[[김병로]]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안재홍]]과 협을 적극적으로 벌으나, 건준위원장 [[여운형]]이 [[안재홍]]과 이인의 협결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이 창당되자 창당에 참여, 당무부장이 되었다가 10월 미군의 한반도 주둔 이후 [[미군정]] 특별범죄심사위원회 수석대법관(首席大法官) 겸 심사위원장이 되었다. 군정청 특별범죄심사회 수석대법관이 되면서 그는 [[한민당]]을 탈당하였다.
         1949년 3월 [[서울]] [[종로구]]의 국회의원인 [[장면]]이 주미대사 임명 관계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그는 보궐선거에 출마하였다. 3월의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제헌국회의원이 되었고, 6월에 법무부장관직을 사임하였다. [[1949년]] 6월 경찰의 [[반민특위]] 특경대 습격사건 이후 [[7월 7일]]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이인은 [[반민특위]] 특경대를 해산시키고 신변보호를 담당하던 경찰마저도 모두 철수시켜 '더이 반민족 행위자의 체포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ref>1949년 7월 16일자 [[조선일보]] 기사 발췌</ref> 나아가 이인은 반민특위 해체를 주요내용으로하는 반민법 개정안을 제출하였고, 그나마 기소된 [[친일파]]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시켰다.
         * [[1945년]] [[12월 1일]] 임시정부 봉식에 참석하였다. 서울그라운드에서 윤보선의 사회로 임시정부 봉식이 시작되었다. 이어 [[오세창]]의 개회사, 이인의 봉문 낭독, [[권동진]]의 만세삼창으로 이어졌다. 봉문은 [[권동진]], [[김성수 (1891년)|김성수]], 이인을 통해 [[김구]]에게 전달되었다.<ref>아 비운의 역사현장 경교장(백범사실천운동연합, 1993), 145페이지</ref>
         * [[1949년]] [[8월 16일]] [[김덕]], [[곽훈]], [[송필만]] 등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반민특위조사위원이 되었다.
         * 1963년 [[8월 1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국민의 당 창당발기인대회를 가졌을 때 참석하였다.<ref name="이1">파벌로 보는 한국야당사(이훈 지음 | 에디터 | 2006) 61페이지</ref> 이날 대회는 민정당 대표위원 김병로, 신정당 위원장 허정, 민우당 고문 이범석을 당 공동대표로, 김도연, 이응준, 이인, 안호, 전진한을 당 지도위원에 선출했다.<ref name="이1" />
         * [[1972년]] [[1월]] 고 허 유석창 장례위원회 위원장
         == 훈 ==
         * [[1963년]] 건국공로훈장(現 [[건국훈장]]) 독립장 수<ref>[http://www.koreastory.co.kr/daegustory/human/leein.htm 대구의 인물<!-- 봇이 붙인 제목 -->]</ref>
         * [[대륜고등학교|경북도 대구 경북고등실업학교]] 수료
         ** 아버지 : 이종(李宗榮)
         ** 숙부 : [[이시 (1882년)|이시]](李始榮, 본명은 중현(仲賢), 호는 우재(又齋))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62회 일치
         각 유닛들은 크게 구식 병종과 신식 병종으로 나눌 수 있다. 게임 내에서 "얘는 구식/신식 병종이다,"라고 콕 찍어서 알려주지는 않으니 감이나 게임 내 보너스 등으로 알아내야 한다. 게임 초기에는 구식 병종이 대적으로 저렴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구식 병종의 가격과 유지비가 승하고 신식 병종의 가격과 유지비가 감소한다.
         == 지 유닛 ==
          * 반자이!(Banzai!) -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무릎쏴(Kneel Fire): 토글. 첫번째 줄의 병사들이 무릎을 꿇고 사격한다. 사격 시 두번째 줄의 병사들이 사격해 화력이 승한다.
          * 제압사격(Suppression Fire): 짧은 시간 동안 재장전 기술이 승하지만 정확도가 감소한다.
          * 무릎쏴(Kneel Fire): 토글. 첫번째 줄의 병사들이 무릎을 꿇고 사격한다. 사격 시 두번째 줄의 병사들이 사격해 화력이 승한다.
          * 제압사격(Suppression Fire): 짧은 시간 동안 재장전 기술이 승하지만 정확도가 감소한다.
          * 병(Barracks) 필요
          * 무릎쏴(Kneel Fire): 토글. 첫번째 줄의 병사들이 무릎을 꿇고 사격한다. 사격 시 두번째 줄의 병사들이 사격해 화력이 승한다.
          * 제압사격(Suppression Fire): 짧은 시간 동안 재장전 기술이 승하지만 정확도가 감소한다.
          * 병(Barracks) 필요
          * 무릎쏴(Kneel Fire): 토글. 첫번째 줄의 병사들이 무릎을 꿇고 사격한다. 사격 시 두번째 줄의 병사들이 사격해 화력이 승한다.
          * 제압사격(Suppression Fire): 짧은 시간 동안 재장전 기술이 승하지만 정확도가 감소한다.
          * 반자이!(Banzai!) -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무릎쏴(Kneel Fire): 토글. 첫번째 줄의 병사들이 무릎을 꿇고 사격한다. 사격 시 두번째 줄의 병사들이 사격해 화력이 승한다.
          * 제압사격(Suppression Fire): 짧은 시간 동안 재장전 기술이 승하지만 정확도가 감소한다.
          * 무릎쏴(Kneel Fire): 토글. 첫번째 줄의 병사들이 무릎을 꿇고 사격한다. 사격 시 두번째 줄의 병사들이 사격해 화력이 승한다.
          * 제압사격(Suppression Fire): 짧은 시간 동안 재장전 기술이 승하지만 정확도가 감소한다.
          * 무릎쏴(Kneel Fire): 토글. 첫번째 줄의 병사들이 무릎을 꿇고 사격한다. 사격 시 두번째 줄의 병사들이 사격해 화력이 승한다.
          * 제압사격(Suppression Fire): 짧은 시간 동안 재장전 기술이 승하지만 정확도가 감소한다.
  • 강동우 . . . . 6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두산 베어스/선수단)]
         || '''생년월일''' || [[1975년]] [[4월 20일]] ([age(1975-04-20)]세)[* 네이버 등에는 [[4월 20일]] 출생으로 1974년생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호적 생일로 주민등록에만 이렇게 올라와 있고,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출생신고를?~~ 그래서 1974년생 [[이병규]]를 단국대 1년 선배로 취급하고 1975년생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 [[김동주(타자)|김동주]]와 친구로 지내는 듯.] ||
         || '''학력''' || 칠성초-경중-[[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단국대학교|단국대]] [* 1994학번] ||
         || '''포지션''' || [[외야수]][* 신인 시절 포지션은 중견수였으나 부 이후 우익수로 전향했다가 한화 이적 후 다시 중견수로 뛰었으며 선수 말년에는 간간히 좌익수로 나왔었다.] ||
         || '''선수시절[br]응원가''' || 입장시: [[2NE1]] - <내가 제일 잘 나가> [br] 타격시: [[정형돈]] - <이러고 있다>[*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안타를 날려주세요~][* 이전 가사는 [[이대형|'불꽃 투혼' 부분이 '1번 타자'였다]]. 강동우가 부으로 1번 타자 자리에 잘 들어서지 않게 되면서 바뀌었다. 한화 올드팬들은 '이글스의 1번 타자는 [[이우]]지!' 하면서 전 응원가를 싫어하기도 했다.] ||
         || [[김진(야구)|김진]](1995~1997) || → || '''강동우(1998~1999)''' || → || [[진갑용]](2000~2015.8.6) ||
         || [[한훈]](2008) || → || '''강동우(2009~2013)''' || → || [[한훈]](2014~2015)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 [[단국대학교|단국대]]를 졸업하고 [[199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삼성의 외야에는 [[최익성]], [[신동주(야구)|신동주]], [[양준혁]]이 주전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전년도 맹활약했던 최익성-신동주 우타 외야 라인에 부진 및 부이 닥치자 데뷔 첫 해 주전 자리를 꿰차며 맹활약했다. 그 해 신인왕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고졸로 12승을 거둔데다 우승 프리미엄까지 누린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고졸 신인 [[김수경(투수)|김수경]]에게 신인왕 자리를 내줬다. 또한 그 해 개최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에 선발되어 있었다.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 토박이인지라 프랜차이즈성도 탁월하여 향후 삼성의 주전 [[외야수]]가 될 것으로 기대받으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16일]] 벌어진 사건으로 인하여 강동우의 지독한 불운이 시작되었다.'''
         부을 당한 후 들것에 실려나가는 강동우. 부을 당한 후 그 충격 때문에 '''괴로워하는 표정'''을 주목하라.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이병규]]의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뛰어올라 잡아내는 과정에서 왼쪽 다리가 펜스 사이의 틈새에 끼면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을 주깁시다 대구구장은 우리의 원쑤]]~~ '''정강이뼈가 뒤틀리며 골절되는 중'''을 입고 바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때 [[이병규]]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도중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방송을 타면서 '후배(강동우는 [[이병규]]의 단국대 1년 후배)가 부당한 게 그렇게도 고소하냐'며 무한 까임을 당했다. [[이병규]]는 강동우가 부당한 것을 모르고 홈런성 타구가 잡힌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판단은 알아서.][* 이후 베이스볼 긱에서 [[이도형]]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이도형]]이 이 사건을 언급하였다. 강동우는 '병규형이랑 단국대 다니면서 참 친하게 지냈는데'라는 말부터 꺼냈는데 그 후엔 계속 [[이병규]]를 '''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끝에는 [[이병규]]와 오해를 풀었다는 말을 했지만 대학 1년 선배를 '''그 사람'''이라고 칭한 것 자체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17년 시점에서는 강동우가 은퇴하고 두산 코치로 합류하고 이병규도 은퇴한 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서로 웃으며 연락처도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097584|주고받는 등]] 지금은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닌 듯.] 이 부 탓에 강동우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부만 아니었다면 강동우는 트레이드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야구 선수로는 물론이고 정인으로서의 생활도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심한 부이었다.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탈락되었으며[* 어쨌거나 이 부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기는 했다.][* 대신 드림팀 막차에 승선한 [[심재학]]은 1998 시즌을 마치고 공익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군대로 끌려갈 뻔했던 황이었는데, 강동우의 대타로 합류해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2년 간의 재활이 시작된다.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을 마치고 2000년 시즌 막판에 겨우 복귀해서 다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지만, 신인 시절의 성적은 다시 나오지 않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류중일]] 코치가 선수 시절에 달던 1번을 달고 뛰며 타격에서는 나름대로 제몫을 하며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동했고, 2002년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타율 0.288, 9홈런으로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001년 데뷔하여 삼성의 붙박이 타자가 된 왕년의 좌타 [[라이벌]]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뤄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타율이 2할 중후반에 머무르는 바람에 '비운의 톱타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외야진 보강 차원에서 2006년 3월 [[두산 베어스]]의 [[강봉규]], [[김창희(야구)|김창희]]를 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 팬들은 격분하여 난리를 쳤다. 이는 훗날 [[양준혁]]의 등떠밀기식 은퇴,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는 발언 등과 함께 [[선동열]]의 삼성 프랜차이즈 내치기 사건 중 하나다.
         이미 [[삼성 라이온즈]]를 떠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삼성 팬들에게 [[강기웅]], [[박충식]]과 함께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가슴에 남는 선수다.[* 다만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때는 까였던 적도 있다.] 강동우와 관련된 신문기사의 리플을 보면 '''[[한화 이글스|한화]] 팬들보다 삼성 팬들의 응원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에는 간간히 '은퇴식만큼은 삼성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온다. 이미 [[마해]]의 사례도 있고.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기는 했지만, [[저니맨|이후 한 팀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여러 팀을 전전하게 된다.]] 2006 시즌에는 두산에서 그럭저럭 주전 경쟁을 했지만, 2007년 [[김경문]]이 직접 키운 [[외야수]]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 [[김현수(1988)|김현수]] 등등이 펄펄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 1군에서 탈락, 줄곧 2군에 머물게 된다. 결국 2007 시즌 종료 후 다시 좌완 투수 이윤학[* 2018년부터 KIA에서 뛰는 우완투수 [[이윤학]]과는 동명이인. 이쪽은 좌완투수였다.]을 대로 [[KIA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됐다.
         [[조범현]]의 양아들이라는 욕을 대차게 먹으면서도 시즌 초반 잠깐 동안은 꾸준히 기용되었지만 타율 1할대를 기록하였고, 부당한 시즌을 제외하고는 커리어 로우 기록을 남기며 줄곧 2군 신세를 졌다.(...)
         2009년 12월 의지노력을 수한 강동우.
         2008 시즌 종료 후 [[신종길]]을 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2009 시즌 붙박이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기용되면서 놀랍게도 맹활약을 펼쳤고, 1998년 이후 12년 만에 3할 타율과 준수한 출루율을 기록하였다. 또한 팀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보이서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한화가 간만에 건진 수준급 1번 타자. 농담으로 [[FA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2009 시즌 종료 후 [[FA 제도|FA]]를 선언했고, [[한화 이글스]]와 1년 총액 3억 원(계약금 1억 5천+연봉 1억 5천)의 조건으로 재계약에 합의했다. 팬들은 반짝 활약이 아니기를 바랐으나...
         한편 2009 시즌 말인 9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고민]]을 축하해 주는 장면이 사진에 찍히면서 빈축을 샀다. 게다가 끝내기 안타 직전에는 2루심의 오심이 터진 탓에 다른 한화 선수들은 분을 억누르고 있던 태였다.
         2010시즌에 문제가 참 많아졌는데 일단 [[외야수]]로서 생명인 수비범위가 무진장 좁아졌다. 게다가 백업 플레이에 소홀하고[* 2010년 9월 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김다원]]이 [[우익수]] [[이양기]]쪽으로 안타를 쳤고 [[이양기]]는 이 공을 잡으려다가 실패한 뒤 스텝이 꼬여서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이 황당한 장면에 한화팬들은 크게 당황하였다. '''그리고 [[김다원]]은 그대로 누를 돌고 돌아 홈으로.''' 이는 [[김다원]]의 '''데뷔 홈런'''이었다.(…) ~~크보 역사 데뷔 홈런이 인사이드 파크 홈런인 것은 사 최초.(……)~~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건 [[김다원]]항목 참조][* 그러나 강동우가 백업을 게을리 했다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 강동우는 분명 뛰고 있었고, [[오선진]]이 간 것은 애매한 뜬공을 잡기 위한 것이었으며 [[오선진]]이 가는 게 더 나은 위치여서 간 것이다. 강동우를 깔만한 황은 아니다. 이 모든 게 작년에 비해 턱없이 좁아진 수비범위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역시 지나친 비난이다.] 텍사스 안타성 타구를 잡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이며, 이대로라면 한화표 노장 선수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듯하다는 둥 팬들의 비난을 샀다.
         강속구 용병 투수로 화제를 모은 [[레다메스 리즈]]의 '[[천적]]' 소리를 들었다. 8일 LG전은 [[류현진]]이 무너지면서 8대4로 졌지만 4점을 [[강동우]] 혼자 다 냈다. [[레다메스 리즈]] 대로 대단히 자신감있는 스윙을 했다. 이어 4월 16일 기아전에서 결승타를 날려 팀의 7연패 사슬을 끊어냈다.
         7월 2일 [[KIA 타이거즈]]와의 3연전 두 번째 경기 3-6으로 뒤지고 있는 6회초 1사 만루 황에서 [[손민]]의 공을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역전만루홈런]]을 쳤다! 시즌 9호. 캐스터가 타이거즈 팬인 건 알지만 좀 심하게 친기아 성향으로 중계하는 와중에 패배로 기울던 분위기를 다시 되찾아온 모처럼 시원한 한 방이었다. ~~도루하기 귀찮아서 그냥 넘겨버리는 1번 타자의 위엄~~
  • 소명(가수) . . . . 61회 일치
         |배우자 = 한
         |웹사이트 = [http://cafe.daum.net/SmFanclub 소명 팬카페]
         | '''유쾌 쾌 통쾌'''
         * [[2007년]] 《유쾌 쾌 통쾌》
         == 수 ==
         * 1987년 [[KBS]] 신인무대 은
         * 1991년 제5회 [[MBC]] 신인가요제 금
         * 2003년 [[KBS]] [[전국노래자랑]] 애창가요 1위 수
         * 2003년 연예신문 성인부문 신인
         * 2004년 [[i-TV]] 성인가요 BEST30 1위 수 3회
         * 2004년 문화관광부 장관 (우수예능인)
         * 2005년 [[아이넷TV]] 성인가요 차트 50 반기 6회 1위 수
         * 2005년 12월 대한민국 연예예술
         * 2005년 대한민국 독도사랑 시민대
         * 2006년 국무총리 수 《행정자치부》
         * 2006년 모범가수 《한국연예협회》
         * 2006년 대한민국 트로트가요대 올해의 가수 《원음방송.YTN》
         * 2007년 [[아이넷]] TV 성인가요 베스트 30 1위 수
         * 2007년 대한민국 연주인이 선정한 가수
         * 2008년 [[OBS]] 경인TV 성인가요베스트 10 1위 수
  • 김강민 . . . . 60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3,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SK 와이번스/선수단, top3=먹튀/야구)]
         ||<#000000> {{{#FFFFFF 수 기록}}} ||
         빠른 발과 뛰어난 판단력, 투수 출신답게 강한 어깨와 주자를 속일 수 있는 테크닉까지 외야수로서 수비면에서 갖춰야 할 모든 걸 갖추고 있는 선수. 타 선수들이 다이빙을 해야 잡는 타구를 뛰어난 타구판단과 스타트로 서서 잡아버린다. 현역 감독들을 대으로 한 설문에서 '''한국 최고의 외야수비'''[* 외야수 중 최고 수비력를 놓고 경쟁구도를 펼쳤던 [[이우민]]과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이 타격부진이나 부 등의 이유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거나 수비력이 쇠퇴하는 반면, 김강민의 수비력은 꾸준히 좋아졌다. ~~아니 이우민은 뭐 경기를 나와야 수비력을 보지~~]로 뽑혔다. 타격에 대해서는 ~~플루크~~[* 2013,14년에 3할을 기록하며 2010년의 활약이 플루크라는 시각이 사라졌다.] 2010년 이후 2할7푼~3할대의 타격과 대충 10홈런을 넘기는 파워로 매우 준수하다. ~~이우민이 이 정도만 했어도...~~[*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갖다 맞히는 능력은 좋으나 선구안이 많이 안좋아서 기복이 심하고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낮은 편이었으나 점차 나아지는 중. 장타력은 어느 정도 한방이 있는 수준은 된다.]
         [[박재]], [[조동화]]와 함께 2006년까지는 외야에 자리가 남으면 메꿔주는 백업 멤버 수준에 가까웠지만, 부당한 [[이진]]이 풀타임 주전을 하지 못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박재홍(야구)|박재홍]]이 우익수를 더 많이 보기 시작함에 따라 주전 중견수로 발돋움하게 시작했다.
         2009년에 홈런 12개를 치며 커리어 첫 두 자리수 홈런을 기록하여 2010년 연봉도 1억 2000만원으로 인되었다. 김강민의 연봉이 1억을 돌파하면서 SK는 '''주전 야수 전원이 억대 연봉자'''에 오르게 되는 기염을 토했다. [[흠좀무]].
         다른 타격스탯도 전부분 승을 이뤄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채운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2010년]] [[12월 11일]], [[두산 베어스|두산]]의 김현수,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과 함께 2010 시즌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했다.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김강민/2011년)]
         그런데 5월 10일 [[두산 베어스|두산]]과의 [[잠실구장|잠실]] 원정경기에서 8:8 동점이던 9회 말 2아웃 1, 2루 황에서 [[임재철]]의 타구를 거의 잡았다가 놓치면서 3루타가 되어 '''[[히 드랍 더 볼]]'''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임재철의 타구가 정적이었으면 잡기조차 힘들었다는 것은 고려해야 한다. 당시 중계석에 있었던 [[XTM]] [[민훈기]] 해설위원도 '김강민이니까 저렇게 따라가서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언급했다.~~그리고 이만수는 좋아하며 달려나가다 무표정이 되었다~~
         타격은 2010년 수준으로 돌아온 태인데, 5월 중순까지 '''[[볼넷]]과 [[병살타]]가 단 한 개도 기록하지 않는''' 변태스탯을 기록했다. 5월 셋째주에 접어들어서야 볼넷과 병살이 나왔으며 덕분에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타격 순위 10위 안에 들고 있으니 [[흠좀무]].
         6월 20일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스코어 1:3으로 SK가 리드하고 있는 8회 초 2사 1, 3루 황에서 [[엄정욱]]의 직구를 [[강민호]]가 받아쳐 좌중간 깊숙히 날렸으나 귀신같이 뛰어와서 잡아내면서 실점을 면하는 수비를 보여주었다.[* 이 타구를 못 잡았으면 순식간에 동점이 되고 선발투수 김광현의 승리는 날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날도 타격은 무안타.
         6월 2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스코어 0:2로 삼성이 앞서고 있는 3회 말 2사 만루 황에서, [[조동찬]]의 뜬공을 제대로 잡지 못해[* 머리 뒤로 공이 떨어지고 말았다. 직접적인 원인은 조명탑 라이트인 듯. ~~[[정수빈#s-1|김명탑]] 등극~~] 이닝 종료 찬스를 날려먹고 3점을 허용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김강민은 멘붕하고~~[[식빵]]!~~, SK는 0:6으로 패배했다. 공교롭게도 그날부터 7월 7일 한화전까지 SK는 6연패에 빠졌다. ~~조명탑의 저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9월 18일 사직 롯데전에서 홈 쇄도 중 [[강민호]]와 충돌해 강민호가 목부을 입음으로써 롯데 파괴자로써의 칭호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로 인해 9월 19일 롯데팬들이 SK [[이만수]] 감독의 얼굴에 레이저빔을 쏘는등 양쪽 관계는 그야말로 앙숙이 되어갔다.
         팀이 시리즈 전적 2패로 지던 [[1028 대첩|2012년 10월 2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7:8로 앞선 6회 말 2사 2루 황에서, 삼성 배터리는 [[박정권]]을 거르고 김강민과의 승부를 이어갔으나 김강민은 좌측담장을 그대로 넘겨버리는 통렬한 스리런 홈런을 작렬했다. 이 홈런으로 승부는 완전히 SK쪽으로 넘어갔다. 9회 초에는 아웃 타구를 모두 김강민이 처리했다. 마지막 [[최형우]]의 타구는 날카로웠지만 김강민의 수비 범위가 더 넓었다. ~~김강민 짐승모드?~~ SK는 이날 스코어 8:12로 이겼고 김강민은 선발 중견수 겸 6번 타자로 출장하여 5타수 3안타 1홈런 4타점 1득점을 기록하여 이 날 경기의 '''MVP'''로 선정되었다.
         팬들은 2군에서 타격감을 끌어올리고 1군으로 다시 올라오길 바랬으나 [[박정권]]이 7할을 치는 2군에서도 여전히 '''사푼이'''... 거기에다 4월 17일 2군 경기에서는 수비 실책도 했다. 여러모로 본인의 입지가 위험한 황.
         후반기에 좋은 활약을 보여 주면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솩갤]]에서는 '''[[세종대왕|짐종대왕]]'''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더니 기어이 [[8월 27일]]에 0.300의 타율을 기록하고 말았다. 이쯤 되면 거의 경악할 전벽해 수준. ~~4푼이 3할로~~
         6월 4일 2점 차로 리드당한 황에서 무사 만루를 만든 대 마무리 [[이용찬]]을 대로 끝내기 3타점 2루타를 날렸다! ~~짐종대왕을 인천시장으로!~~
         6월 5일 2대2 황에서 솔로 홈런을 날려 이틀 연속으로 결승타를 기록했다.
         6월 20일 0대2로 뒤진 황에서 [[하민]]을 대로 역전 쓰리런 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팀은 [[윤길현]]이 [[서건창]]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맞으며 패배.
         그 이후 잔부으로 인해 잠깐 부진을 겪어 타율이 .295 정도까지 떨어지다가 7월 9일 현재 다시 페이스가 돌아와서 타율 .312를 마크 중.
  • 장세용 . . . . 60회 일치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15A38><-5><bgcolor=#FFFFFF><:>'''[[경북도|{{{#005BAB 경북도}}}]] [[구미시|{{{#005BAB 구미시장}}}]]'''||
         ||<bgcolor=#1870B9> '''{{{#FFFFFF 출생지}}}''' ||<(> [[경북도]]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 ||
         ||<bgcolor=#1870B9> '''{{{#FFFFFF 학력}}}''' ||<(> 대구업고등학교 {{{-1 ([[졸업]])}}}[br][[남대학교]] {{{-1 (사학 / [[학사]])}}}[br][[경북대학교]] {{{-1 (사학 / [[석사]])}}}[br][[남대학교]] {{{-1 (사학[* 서양사 프랑스사 전공] / [[박사]])}}}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사회운동가, 정치인. [[경북도]] [[구미시]]의 21대 시장이며,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인문한국 교수)를 지냈으며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과 [[대구경북]]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 성향이 강한 [[경북도]]에서도 가장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손꼽히던 [[구미시]]에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는 쾌거를 이뤄낸 인물이기도 하다.
         1953년 [[경북도]]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인동초등학교, 인동중학교, 대구업고등학교(현 [[대구원고등학교]]), [[남대학교]] [[사학과]] 학사,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남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를 졸업하였다.
         --[[인천 륙작전|구미 륙작전]]--
         술하였듯 [[구미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서, '[[개]]가 보수 정당 후보로 나온다고 해도 당선될 곳'이라는 인식이 박혀있고 실제로 [[김관용]], 전임 시장이었던 [[남유진]]이 모두 내리 3선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구미공단으로 인해 청년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세가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고 [[남유진|그 전 시장]]의 여러 구설수와, [[구미시]]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경제 문제, 즉 [[삼성]], [[LG]]공장의 이탈로 인해 지역 경제가 치명타를 맞는 동안 1,000억 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곤 하던 [[박정희]] 기념 사업을 강행한데 대한 불만이 폭증하였고, 무엇보다 [[바른미래당]] 후보(7.5% 득표)와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반발해서 뛰쳐나온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9.5% 득표)들이 '''총합 17%'''나 득표하면서 --[[홍준표|모 대표]]의 [[트롤링]]으로-- '''보수 표가 세 갈래로 분열'''되는 역대급 행운과 함께[* 단, 바른미래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득표율이 무조건 보수 성향 지지자가 던졌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진보 성향의 지지자나 부동층이라도 자유한국당이 너무 노답으로 나오지만 그렇다고 장세용 시장의 공약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불어민주당에게 표를 주기 싫어서 투표 자체를 하지 않았거나 사실 무효표로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물론 진짜로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시절부터 응원한 바른미래당 지지자들이 찍어줬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젊은 구미 시민들이 바꿔야 된다는 공감대가 함께 형성되면서 결국 민주당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당선 된 첫 번째 인물이라는 예를 안게 되었다. 실제로 장세용 시장이 당선된 직후 [[남유진]] 문서는 구미시민의 분노로 점철되어 가고 있다고(...) --돌이켜 보면 남유진이 어떻게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반 득표로 당선되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후보 출마 확정 후 구미시민들의 네트워크인 '구미텐인텐'에 출마 이유와 구하고 있는 정책 등을 올린 바 있으며 [[http://cafe.daum.net/kumi10in10/IKJI/10328|*]] 구미시장에 당선된 직후, [[박정희]] 기념관을 비롯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고는 했지만, 기념 사업 예산을 칼질할 의지가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80614001410|*]]
         하지만 ‘[[박정희]] 기념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그 자체로는 인정한다”라고 발언하고 또한 전임 시장인 [[남유진]]이 '박정희 타운'을 만드는데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붇고도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반 득표에 성공해서 당선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전임 [[구미시]] 시장인 [[남유진]] 문서에는 남유진에 대해서 대부분 구미 시민들이 악평을 하는 것으로 묘사돼 있지만 엄연히 남유진은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과반 득표로 모두 당선'''된 인물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4~6회 지선 광역비례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표가 76.5%, 48.7%, 71.5%로, 이 표가 남유진 전 시장표(75.9%, 53.1%, 52.6%)로 이어졌다.(단, 6회는 새누리당 표가 분열되었다.) 그래서 3선. 그리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50.4%로 하락했고, 2018년 지선에서는 자유한국당 41.3%로 더불어민주당 43.3%에 졌고, 이에따라 시장직도 자유한국당이 더불어민주당에 넘겨주게 되었다. 만약, 1:1로 대결하였더라면 기초의회 비례득표를 기준으로 계산하였을 때, 진보vs보수 구도에서는 48.2%vs51.8%로 보수측이 승, 반자유한국당vs자유한국당(+대한애국당) 구도였다면 57.5%vs47.5%로 반자유한국당측이 승리하였을 것이다. 바른미래당 지지층이 어느쪽을 선택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진보(더불어민주당+정의당)가 48.2%로, 보수(자유한국당+대한애국당, 42.5%)보다 좀 더 유리했을 것이다.] 여전히 구미시에서 [[박정희]]의 존재감과 위치란 [[목포시]]에서의 [[김대중]] 이의 위치이고 또한 '[[박정희]] 기념사업' 축소에 대한 보수파들의 반발도 당할 것이기 때문에 과연 '[[박정희]] 기념사업'들을 어디까지 축소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하였기 때문이고 현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헌정 사 최악의 국정농단 부패 스캔들 사태]]와 마약, 사기 등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수의 자식들이 박정희 사망 이후에 저질러온 악행으로 인해 그 신화는 치명을 입었다.[* 현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파멸해버린 황에서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박 등 한국내 보수 우익 세력들이 박근혜의 친동생들이자 나머지 박정희와 육수 부부의 자녀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을 새로운 친박 세력의 지도자로 정계로 입하거나 세우지 못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박근령과 박지만 모두 사기, 마약 등 범죄 전과를 가진 전과자의 신분에다 과거에 행실이나 성품 등 여러 부분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들로 박근혜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드러났기 때문에 친박계로서도 이들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머지 박정희-육수 일가의 다른 일가족이나 친척들은 언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거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박근령이나 박지만보다 내세우기 더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이나 신 새누리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주류 친박 단체들과 친박 성향의 극우 원외 정당들이 박지만과 박근령을 기피, 거부하며 박근혜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버린 박근혜와 70년대 총탄에 암살당한 그들의 부모인 박정희와 육수 부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 6선이나 한 지역이었지만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며 그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되어 있지만 선거 구조가 민주당계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계의 시의원이 전원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0억 넘게 들어가는 박정희 예산은 구미시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는 황이다.[* 구미시의 18년 기준 1년 예산은 1조다. 비록 1000억이 1년만에 집행된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에 수백억씩 사용되기는 했고 실제 구미시에 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 주차난 해소를 위한 공 주차장 및 화물 터미널 신설
         - 노동복지과장을 외부 노동전문가로
         ([[http://www.idaegu.com/?c=3&uid=380295|46개 시설·기관 시 예산으로 운…지방 재정 악화 요인, '''비정규직 양산''']])
         - 청소년 교육을 위한 '김유청소년센터' 건립
         - 동네 서점 경 지원으로 지식공유 공간 활성화
         - '''초중고 무 급식과 무 교복 지원'''
         시장에 당선은 성공했으나 도지사, 국회의원 2명, 시의회의장 · 부의장 · 임위원장 모두 자한당 소속으로 홀로 더민주당인 장시장으로 대립시 시정에 많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치단체장-기초의회의장 소속이 [[수성구|어디]]하고 대비된다.-- [[http://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307|야당 의원에게 포위된 장세용 구미시장 고민 깊어지나]] [[http://www.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62459|구미시의회, 8대 원구성 한국당 일당체제로 완료]]
         그나마 시의회의장 · 부의장의 지역구가 더민주 접전, 강세인 지역[* 시의회의장 선거구는 마 선거구(인동동, 진미동)로, 여기서 장세용 시장은 여기서 49.84%의 득표율을 올렸다. 부의장 선거구는 가 선거구(선주원남동, 도량동)로, 여기서는 38.96%로, 이양호 후보(39.80%)와 0.84%p로 접전을 벌였다. 광역의회 비례 득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47.47%, 39.74%로, 자유한국당과 각각 +15.25%p, -0.26%p의 격차를 보였다.]이라 이론으로는 주민소환제로 날릴 순(...)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의원직을 실하면 자유한국당이 절반, 두 명 모두 실시 자유한국당 과반이 무너진다. 게다가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혀, 이 문제로 한동안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21대 총선|2020년]]을 기대해보자--
  • 현정건 . . . . 60회 일치
          | 직책 = 前 [[대한민국 임시 정부|대한 임정]] 예하 의정원 경도 의원
          | 출생지 = [[조선]] [[경도]] [[대구광역시|대구]]
          | 사망지 = [[중화민국의 역사|중화민국]] [[장쑤 성 (중화민국)|장쑤 성]] [[하이 시|하이]] 의전병원
          | 거주지 = [[일제 강점기]] [[경성부]] <br/> [[중화민국]] [[장쑤 성]] [[하이 시|하이]]
          | 경력 = 前 고려공산당 임위원 <br/> 前 대한국민대표회의 외교분과위원 <br/> 前 한국독립당 전임위원
          | 친인척 = 현운(숙부)
         '''현정건'''(玄鼎健, [[1887년]] [[6월 29일]] ~ [[1932년]] [[12월 30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ㆍ교육자이다. 본관은 [[연주 현씨|연주]]. 독립운동가로서의 다른 이름(아호)은 '''읍민'''(揖民)이며, 소설가 [[현진건|현진건(玄鎭健)]]의 형으로 현진건의 반일사에 많은 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혼인을 통해 [[박종화]](朴鍾和) 가문, [[윤치호]](尹致昊), [[윤치]](尹致暎), [[윤보선]](尹潽善) 가문과도 겹사돈관계가 된다
         조선 [[대한제국 고종|고종(高宗)]] 24년([[1887년]])에 [[대구광역시|대구(大邱)]]에서 현경운(玄炅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10년]]에 중국으로 유학, [[하이 시|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임시의정원|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에서 이규홍(李奎洪) 등과 함께 1919년 9월 17일 경도 의원으로 보선되었다. [[1920년]]에 하이 주재 [[고려공산당|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입당하였고 [[1922년]] 10월 20일에 열린 베르프네우딘스크(Verkhneudinsk) 회의<ref group="설명">이동휘의 하이 고려공산당과 김철훈ㆍ안병찬의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의 경쟁을 완화하고 두 세력을 합치기 위해 코민테른에서 그들에게 베르프네우딘스크에서 연합대회를 갖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한인 공산주의 운동 계열의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참석하였는데, 국내에서는 정재달, [[조봉암]] 등도 여기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대회는 대표의 자격 문제가 제기되면서 파탄나고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철수, 코민테른 당국이 각파 지도자를 모스크바로 불러 조정하려 했으나 이마저 실패하자 결국 코민테른은 양파 모두 해산하고 단일당을 조선 안에 세울 것을 지시함으로써 하이파도 이르쿠츠크파도 없어지게 된다. 김학준 저 「혁명가들의 항일 회」 2005, 민음사.</ref>에 윤자(尹滋英) 등과 함께 고려공산당 하이파의 일원으로서 참가하였다. [[1923년]] 1월에 하이에서 소집된 [[국민대표회의|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서는 윤해(尹海)ㆍ신숙(申肅) 등과 더불어 창조파(創造派)에 속하여 왕삼덕(王三德) 등과 참여하였고 2월 5일에 [[여운형|여운형(呂運亨)]]과 더불어 외교분과위원으로 지명되었으나, 창조파가 임시정부를 부정하며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 건국을 결정하고 임시헌법과 국호 등을 제정하자 뜻을 바꾸어 "임시정부는 3ㆍ1운동의 결정인데 출석원(員)의 2/3나 되는 개조안을 무시하고 사신 5인이 퇴석 통고를 하고 불착한 대로 국호를 조선공화국로 정하여 새 국가를 만든 것을 성토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ref>「創造派의 회의 종료」 『동아일보(東亞日報)』 1923년 6월 25일자.</ref> 7월에는 여운형이 조직한 한국독립촉진회에도 가담하는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파간의 이견 조정에 힘쓰는 등 민족 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활동하였다. 8월에 조선의 관서([[평안도]]) 지방에서 일어난 대홍수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는 하이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의 하이교민단(上海僑民團)이 내지동포수재구제회(內地同胞水災求濟會)를 조직해 9월 26일에 수재의연금 110원을 동아일보사에 전달하기도 했는데 <ref>「同胞의 ㅁ愛! 해외각디동포의열렬한동정 가련한수재당한형뎨들에게」 『동아일보』1923년 10월 4일자 기사.</ref> 여기에 현정건의 이름이 실려 있다.
         [[1924년]] 6월, 현정건은 독립운동을 위해 하이로 망명해 오는 조선인 학생들의 중국 사회 적응과 그들의 급학교 진학을 돕기 위한 [[김규식|김규식(金奎植)]]의 제안을 받아들여, 하이에서 [[1917년]] 여운형이 세웠던 인성학교(仁成學校) 내에 개설된 조선인 학생을 위한 예비교(豫備校, 예비강습소)에서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어 과목을 맡아 가르쳤고<ref>이는 국내에도 알려져 신문에 「上海에 豫備講習」(『동아일보』 1924년 6월 6일자), 「豫備校 設立」(『시대일보』 1924년 6월 9일자) 등의 기사가 나기도 했다.</ref>, 그 뒤 하이 고등보통학교(上海高等普通學校)로 개편된 뒤에도 여운형, 김종(金鍾商) 등과 함께 전임교사로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9월에는 하이교민단에서는 실시한 의사원(議事員) 총선거에서 당선되기도 했다.<ref> 재해일본사관경찰부(在上海日本領事館警察部) 『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1946년, 동문사서점(東文社書店)</ref> 11월에는 하이에서 윤자이 조직한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 하이한인청년동맹)에 가입, 집행위원이 되었고 『횃불』, 『새길』 등의 잡지를 발간하였다.
         이때 청년동맹회의 선언 문제로 [[의열단|의열단(義烈團)]]에서 시비를 걸어와 의열단측에서 윤자을 구타하는 등 청년동맹회와 의열단과의 마찰이 있었는데, 의열단에서 먼저 자신들의 출판물 가운데 청년동맹회를 공격하는 글을 취소하고 청년동맹회에서도 성명서를 수정 발표하였고, 이때 청년동맹회 위원이던 윤자ㆍ현정건 두 사람도 청년동맹회를 핑계로 일본공산당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사사로이 쓴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일시직권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나 사실무근으로 판명되면서 이틀만에 복권되고 두 단체간의 시비도 일단락되었다고 한다.<ref>「上海淸年同盟 宣言問題 解決」, 『동아일보』1925년 1월 9일자.</ref>
         [[1925년]] 5월 9일에는 하이에 있던 [[조소앙|조소앙(趙素昻)]]ㆍ여운형ㆍ윤자ㆍ김덕(金尙德)ㆍ최창식(崔昌植)ㆍ김규면(金圭冕)ㆍ손두환(孫斗煥) 등 약 30명의 조선인 동지와 함께 서문 밖 체육장에서 배일(排日) 중국인 단체의 집합에 참가하였고 이곳에서 "중국과 한국이 합동하여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취지의 『하이주간(上海週刊)』5월 9일자 특별호에 실린 사설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ref>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에 의해 7월 1일에 일본 외무성의 외무차관에 보고되었다. 국회도서관(國會圖書館) 편찬 『한국민족운동사료(韓國民族運動史料)』(중국편), 1976년, 567~568쪽.</ref> 9월 8일에는 하이교민단의 의사원(議事員)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6년]] 10월 10일에 중국사정연구회(中國事情硏究會)를 조직하여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1월에 하이에서 의열단 창립 9주년을 맞아 재중 조선인들에게 격문을 발표하며 성대한 기념식을 가졌다. [[1927년]] 4월 10일 홍진(洪鎭)ㆍ홍남규(洪南杓) 두 사람의 명의로 발표된 전민족적독립당결성선언문(全民族的獨立黨結成宣言文)에 따라 11일에 삼일당에서 약 40명이 모여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韓國獨立黨關內促成會聯合會) 창립총회를 열고,
         등의 강령 및 명칭, 위원 기타를 결정하고 조직을 끝냈는데 이때의 집행위원으로 [[이동녕]]ㆍ조소앙 등과 함께 현정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11월에 다시 하이에서 한국독립당 관내촉성회연합회(韓國獨立黨關內促成會聯合會)를 조직할 때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ref>대한민국 국회도서관 편찬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 1976년, 618~621쪽 및 일본 외무성경찰사(外務省警察史) 지나지부(支那之部) 『조선민족운동사(朝鮮民族運動史)』≪미정고(未定稿)≫ 4, 고려서림(高麗書林), 1989, 11~22쪽.</ref>
         민족독립운동의 구심점을 하나로 집결시키려 애썼으나 [[1928년]] 봄에 하이의 프랑스 조계 패륵로(貝勒路) 항경리(恒慶里)에서 하이 주재 일본 총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조선으로 압송, 11월 9일에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변동화(邊東華)ㆍ황의춘(黃義春) 등과 함께 공판이 열렸다. 이때 변호를 맡은 것은 최창조(崔昌朝)ㆍ이희적(李熙迪)ㆍ탁창하(卓昌河) 등 신의주 변호사 세 명과 손홍팔(孫洪八)ㆍ현석건(玄奭健)<ref group="설명">현정건의 친형이다.</ref> 등 진주 변호사 두 사람이었다. 현정건은 자신은 회합에 참여한 적도 없고 관련도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으나, 12월 12일에 신의주 지방법원은 [[치안유지법]]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언도하였다. 이에 불복하였으나 [[1929년]] 1월 19일에 평양으로 압송, 6월 10일에 열린 민사 제1호 법정 복심에서 원심의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10일에 만기출옥하였으나, 옥살이의 후유증으로 얻은 [[복막염]]으로 12월 30일 의전병원에서 향년 45세로 사망하였다.
         「동아일보」 [[1933년]] 1월 1일 기사에는 1월 3일 오후 1시에 현정건의 발인이 이루어질 것이고 결식이 가회동 177번지의 자택에서, 묘소는 동소문 밖의 미아리에 마련되었다고 적고 있다. 현정건의 부인 윤덕경(尹德卿)은 남편이 죽은 뒤 이레, 달포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조금 밝은 모습을 보이는 듯 싶더니, 끝내 2월 10일에 "(남편이 없이) 아무래도 살 수가 없다", "죽은 몸이라도 형님(현정건)과 한 자리에서 썩고 싶으니 (남편 옆에) 같이 묻어달라"는 요지의 유서를 시동생 현진건에게 남기고 현정건의 전 앞에서 음독자살하였다.<ref>「玄鼎健氏未亡人 尹德卿女史殉從」 『중앙일보』 1933년 2월 12일자. 「結緣卄年에 同居는 半世」 『동아일보』 1933년 2월 12일자. 유서의 전문도 함께 실려 있다.</ref> 남편이 죽은지 41일만의 일이었다. 다른 자식은 없었다.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의 작품을 남긴 소설가 현진건의 형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부인 윤덕경과의 사이에서 자식은 없었고,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동지이자 연인으로 계옥(桂玉, 현규옥)이 있었다.
         현정건의 집안은 [[윤치호]], [[윤치]], [[윤보선]] 가문과 겹사돈 관계였다. 현정건은 [[윤치호]], [[윤치]]의 7촌 조카딸이 되는 윤덕경(尹德卿)과 결혼하였다.
         현정건의 숙부인 [[현운]]과 [[배정자]]의 둘째딸은 [[현송자]]로, [[현송자]]는 [[윤치호]]의 사촌이자 [[윤치]]의 형인 [[윤치오]]의 후처가 되었다. [[윤치오]]는 [[윤보선]]의 큰아버지가 된다.
         * 「혁명가들의 항일 회」 김학준 저, 2005년, 민음사
         * [[윤치]]
  • 박재정(배우) . . . . 59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대구광역시/인물]]
         || 학력 || [[경북고등학교]] [br]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경학 학사[* 01학번이지만 졸업은 '''[[2010년]]'''에 했다.] ||
         [[대한민국]]의 [[배우]]며 원래는 KTF 쇼 광고로 대중에게 나름 친숙해졌다.([[http://pann.nate.com/video/55488070|#1]][[http://pann.nate.com/video/55489195|#2]])[* 프로필에 나왔듯이 실제 키는 적당히 크다. CF 방 당시 잘 생긴 외모와 '''능청스런 연기'''로 꽤 기대를 받았다. 진짜로…]
         '''호세 레저'''라 불리우는 [[한국 드라마]]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 연기의 [[천재]], 혹은 연기의 [[신]]이라고 불린다. [[다크 나이트(화)|다크 나이트]]의 [[조커(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조커]] 역할을 맡았던 故 [[히스 레저]]에 버금가는 그의 절정의 연기력은 [[KBS 1TV]]에서 방했던 [[일일 드라마]] [[너는 내 운명(드라마)|너는 내 운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단 한가지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스티븐 시걸]]이 한국에 나타났다는 찬사를 듣고 있다. 한국의 스티븐 시걸이라고 불리울 날이 멀지 않았다.
         == 실 ==
         실제로는 웹에서 당히 까이는 배우. '''[[발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시걸]]처럼 배역의 폭이 좁은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는데 외모 탓인지, 아니면 원래 연기를 그렇게 못하는 것인지 표현력이 매우 부족하다.
         특히 발음 쪽이 아주 심각해서 결국 작중에서 [[분가]]를 붕가로,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잘못 발음하면서 "'''저랑 새벼씨 붕가하겠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붕가붕가]]하나보다'''" 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탄생시켰다.[* 사실 '분가' 를 '붕가' 라고 읽는 것은 표준 발음법에 따른 건 아니지만 한국어의 자음동화 현에 따른 자연스런 발음이다. 문제는 [[붕가]]라는 말이 주는 코믹함과 정확한 대사 구사력을 가져야할 연기자가 이런 발음을 했다는 것. 실제 발음이 좋은 배우 및 성우, 아나운서 등은 분가와 붕가의 발음을 변별력 있게 구사한다.] ~~이 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5년 후, 이보다 더한 [[장수원|로봇 하나]]가 나타날 줄은...~~
         ▶동을 포함한 자세한 내용은 [[너는 내 운명(드라마)#붕가붕가_하나보다|너는 내 운명]] 참고.
         비단 발음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하는 연기에서도 어색함이 넘쳐나는데 주먹에 맞고 한 템포 느리게 비실거리며 쓰러지거나([[개그 콘서트]]의 [[도움회]] 코너에서 까였다) 실수로 컵을 쓰러뜨리는 장면에서 일부러 쓰러뜨리는 티가 팍팍 나게 컵을 쓰러뜨리는 등 그 연기력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게다가 외모도 어딘가 시선이 불안전하고 전반적으로 어색해 보이는 인이라 더더욱 연기력 논란이 증폭되는 듯하다. 이는 정지화면이나 사진에서 멀쩡해보이는 걸 보면 표정 연기가 미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재정]]도 스스로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면서 [[https://www.google.co.kr/amp/news.kbs.co.kr/amp/view.do%3Fncd%3D2919210|"하하, 발연기라니요? 그런 말은 오히려 발한테 너무 미안하죠."]]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나무위키]] 성격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박재정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을 초월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더 이은 아니지만 그땐 [[발연기|발호세]]라는 별명으로까지 놀림당할 정도였다. 아쉽게도 [[너는 내 운명(드라마)|너는 내 운명]]이 종했기 때문에 지금은 볼 수 없다.
         한편으로는 [[이뭐병]]스러운 드라마 내용 때문에 그나마 있는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대본이 안 좋아서 해석과 감정이 불안할 순 있어도 기본적인 일연기에 리액션, 발음까지 어색하다는 건 연기자로서 좀 문제가 있다. 아니 크다.]([[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3974.html|관련기사1]]). 2008 [[KBS 연기대]]에서는 놀랍게도 '''남자 신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나 세간의 평가 때문인지 수은 못했다. 오죽하면 KBS가 연기대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박재정에게 신인 안 준 거라고 했을 정도.
         2009년 1월 27일 플러스에 출연했는데 [[디시인사이드]] [[HIT 갤러리]]에 올라간 발호세 동 중 일부가 그대로 재생되어 눈길을 끌었다. 본인은 발호세라고 까인 것에 대해 '''발에게 미안할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껄끄러울 만한 이야기도 언급하면서 지나간 것으로 봤을 때 본인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쳐지지 않는게 문제지...
         그 때 출연한 게 계기였는지 플러스 메인 MC가 되었다. 하지만 매주 개드립의 향연인 듯(...).[* 그나마 봐줄 만한 거는 WWF 시절 마초맨 랜디 새비지 성대모사 정도...?! 웅~ 예~!]
         2009년 7월 인기리에 방했던 [[선덕여왕(드라마)]]에 미실의 어릴 적 연인 화랑 [[사다함(선덕여왕)|사다함]]으로 캐스팅되었다고 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정작 출연 분량은 '''초단위'''이다. 그 이후엔 목소리만으로 마지막을 장식(...). 더군다나 이 편지 나레이션마저 국어책의 저주가 내린 듯. 대역으로 출연한 [[애프터스쿨]]의 [[유이(배우)|유이]]는 연기 데뷔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컷 나온 것에 비하면...[* 게다가 방 전 기사에는 서로 사랑과 이별의 연기로 호흡을 맞추었다는 둥 난리였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둘은 실제로 만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만나지도 않았던 커플은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하게 되었다!([[http://media.daum.net/entertain/view.html?cateid=1005&newsid=20090715094113895&cp=|관련기사]]) 그런데 기대치가 너무나도 낮았던 탓인지 둘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일부 계층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 커플이 투입되기 전부터 우결의 시청률은 당히 낮은 편이었므로 사실 대중적 인지도는 많이 낮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이 시기에 같이 방된 커플이 실제 커플이라 이슈가 되었던 [[김용준(가수)|김용준]] & [[황정음]] 커플과 우결 역사 레전드급인 [[가인(브라운 아이드 걸스)|가인]] & [[조권]] 커플이어서...[* 여담으로 사실 대본으로 짜고 치는 버라이어티인 우결이라서 어느 정도의 연기력이 요구되는 건지 시청자들에겐 여기서조차 어색하다고 까였다.]
         2009년 11월 27일부터 자정에 방송되는 조선추리활극 정약용의 주연으로 '''[[정약용]]''' 역을 맡아서 조금이나마 나아진 연기력을 선보였다. 2010년 5월에는 SBS 월화드라마 커피 하우스에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대사가 단 한마디도 없다'''. 디시에서는 평생에 가장 잘 맞는 역할이라며 열심히 까이는 중. 그런데 말 안하는 연기인데도 어색한 이유는 뭘까. 이후 이 캐릭의 비밀이 심각한 경도 사투리에 있음이 밝혀진다. 그런데 네이티브임에도 불구하고 사투리 연기도 어색하다.(서울말 연기보다는 조금 낫다) 이래저래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설으로 2011년 10월 26일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사고를 낸 사람은 [[음주운전]]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957115|참고자료]]
         2012년 6월 8일 방된 OCN의 드라마 <[[신의 퀴즈]]> 시즌 3에서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에 걸렸지만 감옥에 갇혀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는 황에서 분노를 키우다가 탈옥해 복수하는 범인으로 나와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며 [[https://www.youtube.com/watch?v=c1cx9Dl9MIc|발호세의 재발견]](...)을 이룩해 내었다. 단지 케이블 드라마의 범인역으로 1회성 출연이라 일일연속극 같은 곳에서 다시 보기를 바라는 팬이 많다.
  • 신혜성 . . . . 59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www.lworks.co.kr/HYESUNG/ 라이브웍스컴퍼니 신혜성]<br>{{인스타그램|shinhyesung_official/}}
         * [[백석대학교]] 문학과 (학사)
         Lyrics by 안민 Composed by 안민 Arranged by 조수<br /><br />
         Lyrics by 박채원 Composed & Arranged by 원<br /><br />
         Lyrics by 안민 Composed by 안민 Arranged by 조수<br /><br />
         Lyrics by 박채원 Composed & Arranged by 원<br /><br />
         Lyrics by 윤사라 Composed by 조수 Arranged by 조수<br /><br />
         Lyrics by 윤사라 Composed & Arranged by 윤일<br /><br />
         Lyrics & Composed by 안민 Arranged by 서재하<br /><br />
         Lyrics by 이재경 Composed & Arranged by 김석<br /><br />
         Lyrics by 윤사라 Composed by 조수 Arranged by 조수<br /><br />
         Lyrics by 윤사라 Composed & Arranged by 윤일<br /><br />
         Lyrics & Composed by 안민 Arranged by 서재하<br /><br />
         Lyrics by 이재경 Composed & Arranged by 김석<br /><br />
         09. Promise (Duet.유리자 박승화)<br />
         Lyrics by 안민 Composed & Arranged by 코난<br /><br />
         Lyrics by 윤사라 Composed & Arranged by 조수<br /><br />
         Lyrics by 안민 Composed by 조수}}
         Lyrics by 신혜성, 안민 Composed & Arranged by 안민<br /><br />
         04. 조금 더 가까이 Duet.준 (Browneyed Soul)<br />
  • 우효광 . . . . 59회 일치
          * 위 문서: [[배우/중화권]]
         ||<#b88568> {{{#FFFFFF '''신체''' }}} ||<(> 188cm, 77kg[*1 이는 프로필 몸무게이고 촬 전후 몸무게가 달라진다. [[동이몽, 너는 내 운명]] 4화에서 공개된 몸무게는 88kg 였으나 촬에 들어간 이후 8회에서는 8kg이 빠졌다. 프로필 은 185cm였으나 10회에서 실제 키는 188cm로 공개되었다] , [[O형]] ||
         ||<#b88568> {{{#FFFFFF '''소속사''' }}} ||<(> 화몽시문화공작소
         전직 수 카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의 중국 배우. [[추자현]]의 남편으로 한국에서는 '''우블리''', 중국에서는 '于可爱(위커아이)' 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어려서부터 수에 재능을 보인 우효광은 丹东市体校(단동시 체육학교)에 입학해 7세에 본격적으로 수을 시작했다. 이후 요녕성 수팀에 들어가 만14세에는 전국 챔피언이 되었다. 1995년에서 1996년까지 2년 연속 전국 청소년 수 선수권에서 우승하여 최고 신기록을 갱신했다. 1997년부터 카누 선수가 되었고 같은해 전국 위 8위를 차지 이후 8개월 동안 연습을 하여 전국 챔피언에 오른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챔피언으로 체육인에게 주는 인 '全国体育道德风尚(전국체육도덕문화)'을 5년 연속 수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로 활동하던 우효광은 [[2002년]] [[7월]], 우연하게 사촌누나의 권유로 TV 오디션 프로그램 '청춘지성[*2 청춘지성 참가로 연예계로 데뷔하게 된다. 우승품으로 심천의 아파트가 수여되었다. 배우가 되기 위한 자금 마련 및 활동비를 위해 처분했다.]'에 참가하여 우승했다. 같은해 그는 연기 오디션 우승에 이어 음악 콘테스트에도 참가하여 2002년 10월, 아시아 신인 음악 콘테스트에서 최우수 가수을 수했다. 싱가폴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유명 가수들에게 곡을 주고 O.S.T에도 참여하며 가수와 작곡가로도 활동한다. 2003년, 명문예대인 중앙 희극학원에 들어가 2004년, 드라마 주연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배우로 드라마를 해오며, 연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드라마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공복지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는 공익과 개혁을 주제로 하는 극에 자주 출연하고 있으며 아동복지에도 관심을 가지고 많은 기부 및 자원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
         || [[2013년]] || 《毛岸英》[*4 2012년 《二叔》이 시청률 1위에 오르게 되면서 2013년, 국립대극 《毛岸英》에 출연하게 된다. 모안은 모택동 아들로 타이틀롤을 맡게된다. 우효광은 정극과 시대극을 위주로 해서 젊은 세대보다는 업계나 나이든 세대가 좋아하는 배우였는데 추자현과의 공개연애 이후 관심을 모으며 지금은 실시간 검색어에 자주 오르는 핫한 배우 중 하나가 되었다.] 《我的功夫女友》 ||
         ||<|5> '''화''' || [[2007년]] [[9월 7일]] || 《意乱情迷》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B88568><rowbgcolor=#B88568> {{{#FFFFFF '''방 연도''' }}} || {{{#FFFFFF '''방송사''' }}} || {{{#FFFFFF '''제목''' }}} || {{{#FFFFFF '''중국어 제목''' }}} ||
         || [[2015년]] || 충칭위성TV || 남교기공웅전[*5 항일드라마이다. 추자현과 함께 출연, 드라마를 통해 친한 동료에서 연인이 된다 ] || 南侨机工英雄传 ||
         === 동이몽, 너는 내 운명 ===
          * [[2017년]] [[7월 10일]]부터 동이몽 시즌 2격인 [[동이몽, 너는 내 운명]]에 아내 [[추자현]]과 함께 출연하고 있다. 추자현과 함께 귀여운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며, 우블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이몽, 너는 내 운명]]이 정식으로 편성받는 데에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부의 스페셜 방송이 편성될 정도로 활약이 대단하다. 동시간대 1위를 첫방송부터 계속 수성하고 있다.
          * 그림도 잘 그리고 서예도 잘 쓴다. 아내를 위한 서프라이즈 선물로 직접 그림을 그려 선물하고 '결혼조하'[* 동이몽에서 만들어진 우블리 유행어로는 "결혼조하", "우리집 행복해", "너죽고 나죽고, 사랑해"등이 있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니쓰워쓰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를 서예로 써보이기도 했다.
          * 전직 수선수인 데다 현역 시절 국가대표로 금메달도 땄을 만큼 수 실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배우가 된 후 출연한 드라마에서는 물에 빠진 여주인공을 구하는 씬이 '''항''' 들어갔다고 한다.
          * 소마화개《索玛花开》는 소수민족인 이족 드라마로 동이몽에 출연하며 드라마 촬 모습이 방송에 나왔다. 우효광은 사천 이족마을에서 80일간 드라마를 촬하며 이족 주민들과 아이들과 친해졌고 드라마가 끝나자 눈물을 흘리며 아쉬운 이별을 나눈다. 이족 초등학교의 낡은 책과 걸을 새 것으로 교체해줬고 사랑의 도서관을 설립했으며 필요한 물품을 기증했다.
          * 드라마 촬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온 우효광을 맞이하기 위해 추자현과 우효광 부모님이 함께 요리를 하고 음식을 차리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특히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함께 요리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효광은 부모님과 아내를 포옹을 했다. 일하는 어머니에게 다정하게 말을걸고 스킨쉽하는 모습은 아내를 대할때와 똑같았다. 가족 모두 함께 요리를 해서 음식을 먹고 담소를 나누며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수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B88568><rowbgcolor=#B88568> {{{#FFFFFF '''종목'''}}} || {{{#FFFFFF '''수 내역'''}}} ||
         || 전국 청소년 수 선수권 우승자 (95, 96) ||
         ||<|6> '''배우''' || 2017-01 중국 드라마 감독 부분 "최우수 남우주연" 《二叔》 ||
  • 조긍하 . . . . 59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국기|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 직업 = [[테너]] [[성악가]], [[피아노 연주자]],<br />사진 작가, 화감독, 화평론가,<br />음악평론가, [[화 프로듀서|화 제작자]],화기획가, 화 편집감독, 화각색가,<br>화각본가, 소설가
          | 웹사이트 =
         '''조긍하'''(趙肯夏, [[1919년]] [[8월 16일]] ~ [[1982년]] [[1월 28일]])는 [[대한민국]]의 [[화 감독|화감독]]이다. 본관은 [[풍양 조씨|풍양]](豐壤)이며 [[아명|아명(兒名)]]은 '''조중하'''(趙重夏)이다.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출신으로 대구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구니타치 음악대학|도쿄 제국음악학교]] 성악학과를 졸업하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8383&mobile&categoryId=1639 조긍하 - 네이버 지식백과]</ref>. 그 후 [[테너]] [[성악가]]와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사진가|사진]] 촬과 [[화]] 분야로 전향하였다. 사진작가의 관록으로 조감독 수련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이 되었는데, [[1952년]]에 《베일부인》을 감독한 것을 시작으로 《황진이》([[1956년]]), 《곰》, 《육체의 길》([[1959년]]), 《인간만세》, 《과부》([[1960년]])등의 화를 감독하였고, 시나리오도 직접 집필해왔다. 또한, 1960년대 말에는 《해임시정부》, 《인천륙작전》 등 애국지사들의 일대기를 내용으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1300032921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1-30&officeId=00032&pageNo=12&printNo=11181&publishType=00020 故(고) 趙肯夏(조긍하)감독의 人間(인간)과 作品(작품)세계 고지식하면서도 유머풍부 - 1982년 1월 30일 경향신문]</ref>.
         [[1982년]] [[1월 28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12800209207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1-28&officeId=00020&pageNo=7&printNo=18559&publishType=00020 화감독 趙肯夏(조긍하)씨 - 1982년 1월 28일 동아일보]</ref>.
         * [[1952년]] [[화]] 《베일 부인(베일의 비밀)》으로 [[화 감독|화감독]] 데뷔.
         * [[1954년]] [[화]][[평론|평론가]] 등단.
         * [[1957년]] [[화]] 《황진이》를 [[화 감독|감독]], 이 [[화]]로 함께 [[화 각본|화 각본가]] 데뷔.
         * [[1959년]] [[화]] 《곰》을 [[화 감독|감독]], 이 [[화]]로 [[화]] 편집[[화 감독|감독]] 데뷔.
         * [[1960년]] [[화]] 《과부》를 [[화 감독|감독]], 이 [[화]]로 [[화]] 각색가 데뷔.
         * [[1961년]] [[화]] 《쟌 발쟌(Jean Valjean)》을 [[화 감독|감독]] 및 각색, 이 [[화]]로 [[화]] 기획가 데뷔.
         * [[1962년]] [[화]] 《인간만세》를 감독, 이 [[화]]로 [[화 프로듀서|화제작자]] 데뷔.
         * [[1969년]] 자신의 동명 소설을 화화한 [[화]] 《세월이 흘러가면》을 [[화 감독|감독]].
         * 1956년 《[[황진이 (1956년 화)|황진이]]》
         * 《[[곰 (화)|곰]]》
         * 1960년 《[[과부 (화)|과부]]》
         * 1969년 《[[해 임시정부 (화)|해 임시정부]]》 - [[신성일]], [[김지미]]
         [[분류:일제 강점기의 성악가]][[분류:일제 강점기의 피아노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사진가]][[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화 각본가]]
  • 하수빈 . . . . 58회 일치
         | 명 = '''Lisa Ha'''
         | 직업 = [[가수]] <br> [[작사가]] <br> [[작곡가]] <br> [[음반 프로듀서]] <br> [[건축]][[디자이너]] <br> [[경|경인]] <br>
         | 웹사이트 = [http://www.hasoobin.com/ www.hasoobin.com]
         '''하수빈'''(河琇彬, '''Lisa Ha''', [[1973년]] [[5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해외[[건축]]디자인, [[경]]인이다.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계성여자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를 나왔다. 1992년, ''Lisa in Love''( 리사 인 러브 )로 19세에 데뷔하여 청순 가련형의 대명사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La Stella Entertainment]] 대표경
         • 예민, Tommy Page, 심원, 김형석 등의 뮤지션이 참여된 하수빈의 데뷰 앨범으로, 데뷰곡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예민의 발라드곡〈더 이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스위트 팝 댄스곡〈NoNoNoNoNo〉, Tommy Page의 곡 〈I'm Falling In Love〉이다. I'm Falling In Love은 하수빈이 17세에 미국 POP Singersongwriter 토미페이지 Tommy Page로부터 아시아 스타 첫 예로 받은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Lisa:리사> 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다. 특히 발라드〈너는 나의 사랑의 이름〉은 하수빈이 17세에 만든 자작곡으로 정규앨범에 실은 첫 타이틀이다.
         1. 더 이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 유정연, 윤, 김형석, 예민 등의 뮤지션등이 참여된 Naturalism 유럽 팝 스타일의 음악들로 구성된 앨범이다. 해외 로케 뮤직비디오 및 집이 수록 되었고 대표곡은〈그대 나를 떠나가나요〉,〈처음 사랑 이야기〉,〈나〉가 있다. 앨범 대부분곡의 작사를 담당, 새로운 가요적 음악 구성요소를 취한 왈츠곡〈마지막 소녀기〉는 하수빈의 10대 소녀기를 회고하며 만든 자작곡으로, 곧 20세를 맞는 축하의미로 발표되었다.
         •'''하수빈'''의 아티스트로의 성장과 변모로 이끈 '''《The Persistence Of Memory - 추억의 속》...'''그녀의 감성 판타지, 그 혼의 음악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그간의 삶의 여정, 사랑, 평화 그리고 오랜 그리움의 정서를 미학적 음향(Cinematic Sound), 섬세한 문학적 언어와 감성적 음악으로 조각함이 무척 인적이다.
         이 앨범은 기획 단계부터 한국 미국 국 등 국내외 최고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여 완성된 수작(秀作)으로, 최근 보기 힘든 프리미엄급으로 평가 받아 원히 소장가치가 있는 또한 음악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앨범으로 알려졌다.
         애틋한 그리움과 깊은 사랑을 표현한 헌정음악으로, 물리적 거리, 시간과 공간, 삶의 방식도 뛰어 넘을 수 있는 그 음악적 환경 속에서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한 앨범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내면적 깊은 감성은 매우 회화적이다. 그 감성과 자연 생태에 근접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소리의 결을 찾고 추구했으며 회화적인 사운드로 채색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위대한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The Persistence of Memory'''와 동명 타이틀을 취한 이번 앨범은 그의 회화, 전위적 예술이 그녀의 음악에 큰 감을 주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원대한 바다... 마치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 듯 하늘, 바다, 별, 태양, 바람, 비, 구름, 중력, 꽃, 숲, 호수, 파도, 피아노... 이 모든 것을 추억이라는 모태로 형화 했으며, 자연 그 생태와 환경에 근접한 감들을 아름다운 미학적 음향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학적 고뇌에 찬 긴 휴식 이후에 만나게 된 그녀의 음악 세계는,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투 된 듯, 더 깊은 음악적 성장과 감성적 충만의 그 감동을
         * The Film 2집 《화같은 음악의 시작》 — 제작 Agency, Produce ([[2006년]])
         * 뉴에이지 시집 << La Stella... 그리움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 >> ([[2010년]]) 출시
         '''하수빈 New Age Poetry'''
         그녀의 감성적 문학 세계... 풍경화 같은 속 자연이 주는 감동과 그녀의 오랜 여정을 담고 있는
         '''뉴에이지... 혼의 이미지... 혼의 음악... 그녀만의 섬세한 감성 판타지...'''
         자아는 이미 만들어진 완성품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발견의 선택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지나온 90년대를 돌아보자면, 마치 르네스를 징하는 비너스처럼 청순가련형의 아름다움이 대중문화의 한 시기를 풍미, 많은 여성들의 하나의 징적 이데올로기로 인식하게 되었다. 대중예술 분야에서 가녀리고 아름다운 여성을 그 어느 때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했던 시기였다. 노스텔지어... 원대한 바다...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 듯 하늘, 별, 태양, 바람, 구름, 비, 중력... 우주의 경외감을 표현함으로 자연 생태에 근접한 아름다운 미를 추구했다.
         그녀의 내면적 감성은 매우 회화적이다. 마치 노르웨이 숲, 그 끝없는 광활함이나 눈이 시리도록 맑고 깨끗한 캐나다의 호수, 신비로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듯... 생명력을 품고 있는 자연의 신비스러움에서 많은 시적 감을 얻었다. 미학적 Cinematic 한 내면적 성찰을 섬세한 문학적 언어로 조각함이 무척 인적이다.
  • 한규복 (1881년) . . . . 58회 일치
         [[1899년]](광무 2년) 관비장학생으로 [[일본]] 유학, [[동경전문학교]]와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에서 수학하다가 [[1903년]] 귀국, 대한제국 관료로 임용되어 [[탁지부]] [[주사]], [[군부]]와 [[탁지부]]의 [[번역관]] 등을 거쳐 탁지부 [[서기관]], [[주임관]]을 역임했다. [[1910년]](융희 4년) [[10월 1일]] [[한일 합방]]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고등관]]에 임용되어 [[토지조사국]] 감사담당관, [[1913년]] [[진주군|진주]][[군수]], 이후 [[동래군|동래]][[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921년]] [[충청남도청]] [[참여관]], [[1924년]] [[경북도청]] [[참여관]], [[1926년]] [[충청북도]][[도지사]], [[황해도]][[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1933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참의에 임명되고 이듬해 재선된 뒤 [[중추원]] [[참의]]에 재선되었다.
         해방 후에는 정계에 참여하지 않고 [[한국곡자]]의 대표이사 등으로 활동하였고, [[1949년]] [[반민특위]]에 자수한 뒤, 조사받고 풀려났다. 이후 기업 활동과 언론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조선인 도지사 경력자 42명 가운데 배경이 되는 엘리트 출신 고위관료 8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서예]]에 능했던 그는 [[1926년]]부터 [[1930년]]의 선전(鮮展)에서 4회나 수하였다.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이고 자(字)는 덕중(德仲), 호는 온재(溫齋)이다.
         그의 집안은 당부원군 [[한명회]]의 종조부인 [[개국공신]] [[한경]]<ref>한명회의 할아버지 한질의 동생으로, 한명회를 양육하였다.</ref>의 후손으로, 유암 [[한계윤]](柳岩 韓繼胤)의 20대손이다. [[한계윤]]은 [[한명회]]와 6촌 형제간이며, 외할아버지는 [[성달생]]으로 [[성승]]과 [[성삼문]]은 각각 외삼촌과 외사촌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계는 몰락하여 하급 무관을 역임하다가 5대조부터는 증직 벼슬만이 전한다. 한규복의 할아버지 한수익(韓守益)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사후 [[호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증조부 한도흥(韓道興)은 [[호조판서]]에 추증되었고, 고조부 한윤기(韓潤琦)는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외할아버지 백우혁(白佑赫)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그는 어려서 한성에서 신학문인 [[일본어]]와 [[중국어|한어]](漢語), [[어]]를 공부하다가 [[1893년]] [[3월]] [[을미의숙]](乙未義塾) [[일본어]]학과에 입학, [[1897년]] [[3월]] 을미의숙 일어학과를 마치고 [[관립어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해 [[11월 6일]] 정3품으로 [[중추원 (대한제국)|중추원]] 2등 의관에 선출되었으나 중추원은 곧 해체되었다. [[1899년]](광무 2년) [[3월]] [[관립어학교]]를 졸업하였다.
         [[1902년]]에는 [[와세다 대학]]에 다니면서 [[일본]]의 [[유도]]도장인 [[강도관]](講道館)에 다녔다. 공승화전개(일본 工勝花雷介)의 《비록일본유도(秘錄日本柔道)》의 기사와 일본강도관에 조회한 바에 의하면 [[1902년]] 한규복 등이 [[강도관]]에 입문하여 [[유도]]를 배운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f>김정행, 《무도론》 (대한미디어, 1997) 129페이지</ref> 그는 [[1902년]] [[8월]]부터 [[유도]]를 배웠다고 한다.<ref>이학래, 《한국유도발달사》 (보경문화사, 1989) 37페이지</ref> 일본의 유도 전승에 자극받은 그는 귀국 후 [[조선]]의 [[유도]] 단체를 지원하는 한편 소를 올려 [[택견]] 관련 인물과 유파를 찾아 지원해줄 것을 정부에 주하기도 했다.
         [[1903년]] [[대한제국]]의 [[탁지부]] 주사가 되었다. [[1904년]](광무 7년) [[9월 27일]] [[대한제국 국군]] [[참모부]] [[번역관]]보(參謀部飜譯官補)가 되고 [[판임관]] 6등(判任官六等)에 임용되었다. [[1905년]](광무 8년) [[3월 21일]] [[군부]] [[번역관]](飜譯官)으로 승진, [[주임관]] 6등(奏任官六等)이 되었다. 이후 [[군부 (대한제국)|군부]], [[탁지부]] 등 여러 부처에서 번역관 벼슬 등을 지내고 [[탁지부]] 서기관과 주임관을 역임하였다. [[1905년]] [[11월 5일]] [[경기전]]을 건축하는데 참여한 공로로 6품으로 승진하였다. [[1906년]] 탁지부 번역관으로 옮겼다. 그해 [[1월 19일]] [[순릉]]비각건과 표석 수립에 감독관으로 참여한 공로로 다시 6품에서 정3품으로 [[가자]], 일약 승진하였다.
         [[1910년]] [[10월 6일]] [[한일 합병 조약]] 체결 이후 다시 조선총독부 [[고등관]] 7등에 임용,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1臨時土地調査局) 감사관(監査官)에 임명되었다. 이후 임시토지조사국 측량과장과 정리과장을 거쳐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 감사담당관이 되었다. [[1913년]] [[1월]] 총독부 군수가 되어 [[경남도]] [[진주군|진주]][[군수]] [[고등관]]6등(晉州郡守 高等官6等)이 되고, [[경남도]][[참여관]]을 겸직하였다. [[1914년]]부터 [[1915년]]까지 [[경남도지방토지조사위원회]] 조사위원을 역임했다. 그밖에 [[농업]] 단체인 [[조선농회]] 경남도지회에 의원으로 가입하였다. [[1916년]]과 [[1917년]] [[경남도지방토지조사위원회]] 조사위원에 재위촉되었다.
         [[1917년]] [[경남도지방토지조사위원회]] 조사위원이 되고, [[1917년]] 진주군수 재직 중 [[고등관]] 5등(高等官5等)으로 승진했다. [[1918년]] [[7월 1일]] [[동래군|동래]][[군수]] 고등관 5등(東萊郡守 高等官5等)으로 발령받았다. [[1921년]] [[2월 12일]]에는 [[충청남도]] 참여관(慶尙北道參與官) 고등관 4등(高等官4等)으로 승진하였다. [[7월 22일]] 다시 [[충청남도]] [[참여관]]으로 임명되었다. [[1922년]] [[5월 30일]]에는 [[만주]]로 출장갔다가 [[10월]]에는 [[동양협회]] 시찰단의 한 사람이 되어 [[일본]]을 시찰하고 [[1923년]]초 되돌아왔다. [[1923년]] [[11월]] [[충청남도]] [[참여관]]으로 재직 중 [[충청남도음악협회]]회장에 선출되었다. [[1924년]] [[2월 11일]]에 [[경북도]] 참여관으로 옮겼다. [[12월]] [[경북도]] 참여관 재직 중 [[고등관]] 3등(高等官3等)으로 승진하였다.
         [[1926년]] [[8월]]에 다시 도지사로 승진, [[8월 14일]] [[충청북도]]도지사가 되고 [[1929년]] [[4월]] [[고등관]]1등(高等官1等)으로 승급되었다. [[1929년]] [[11월 28일]] [[황해도]][[도지사]]로 부임하였다. [[1930년]] [[1월 24일]] [[황해도농민회]] 회장에 임명되었다.<ref>조선총독부 관보 1930년 01월 24일자</ref> [[1930년]] [[2월]] [[황해도]] 도지사에 재임명된 뒤 [[1933년]] [[4월 7일]]에 사직서를 내고 퇴직했으나 그해 [[6월 4일]]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칙임관]]대우 [[참의]](中樞院勅任官待遇參議)에 임명되었다. 중추원 참의로 재직하면서도 그는 수당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구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1934년]] 중추원 참의에 재선되었다. 특히 [[태평양 전쟁]] 기간 중 [[흥아보국단]], [[임전대책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 [[국민동원총진회]] 등 여러 전쟁 지원 단체에 적극 가담했다.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던 그는 [[1926년]]부터 [[1930년]]의 선전(鮮展)에서 4회 걸쳐 수하였다.
         [[1933년]] [[7월 21일]]에는 중추원 시정조사위원회 학예부장이 되었다. [[10월 21일]]에는 소작농심의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34년]]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지구위원장(京城府敎化團體聯合會 西部敎化地區委員長)이 되었다. [[1934년]] [[7월 14일]] [[금융]]단체의 연합회인 [[금융조합연합회]] 창립에 참여, 자문담역<ref>"금조연합회, 자문기관 설치", 조선중앙일보 1934년 07월 22일자 4면</ref>에 위촉되었다. [[7월 21일]] [[금융조합연합회]] [[경기도]]지역 참여에 임명되었다. [[1934년]] 여름 홍수로 [[조선]] 삼남 지방에 수해가 심해지자, 그해 [[8월 30일]] [[조선총독부]]에서 [[치소조사위원회]]를 설치할 때 그는 민간측 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제목=‘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당수
         [[지원병제]]는 [[1930년]]대 중반부터 일부 친일 유지층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제기되었다. 먼저 [[박춘금]](朴春琴)이 [[대의사]](代議士)가 된 후 일본국회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왔고, 그후 친일인사들에 의해 여러 번 건의되었다. [[1936년]] [[11월 24일]] 경성부회의원 조병(曺秉相), 중추원참의인 한규복 등이 중심이 되어 30여 명의 간담회를 열어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추진키 위해 위원 8명으로 기성회를 구성하고 [[1937년]] 발회식(發會式)을 가질 예정이었다.<ref name="jiji"/> 그러나 [[일본]] 당국은 이 문제가 [[참정권]]하고도 관계가 있다 하여 일단 중지시켰다.<ref name="jiji"/> 이후에도 그는 [[조선총독부]]에 참정권 허용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한다.
         [[1937년]] [[1월]] [[방송선전협의회]](放送宣傳協議會) 위원으로 위촉되어 수양강좌·부인강좌·식강좌의 강사로 출연하였고, [[7월]] [[중추원]] 주최 행사에 참여하였다. 동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인들의 소득을 조사할 목적으로 국민소득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 한규복은 국민소득조사위원회 경성지역 관내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8월 3일]]부터는 [[10월]]까지 총독부 학무국에서 지나사변 이후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고자 순회시국강연위원회를 조직할 때 연사가 되어 [[서울]]과 각지에 시국강연을 다녔다. [[8월 16일]]에는 [[경남도]] [[함양군]]에서 시국강연을 하였다. [[9월 10일]]에는 용인공보교 대강당에서 [[용인군]] 지역 시국강연회를 주최하였다.
         [[1938년]] [[조선간이생명보험사업 자문위원회]] 자문위원에 위촉되었다. [[1938년]] [[3월 3일]] [[성남고등보통학교]] 재단인 [[원석학원]] 재단 이사가 되었다. [[5월]] 재무간담회(財務懇談會) 회장에 선임되었다. [[5월 17일]] 체포된 법학자 [[정광현]]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여 석방시켰다.<ref name="yunchi381">윤치호, 《윤치호 일기 1916-1943》 (김태 역, 역사비평사, 2001) 381페이지</ref> [[서대문경찰서]] 서장을 만나 '나를 봐서라도 [[정광현]]에게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5월 17일]] 오전 9시 30분, 서장은 한규복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였다.<ref name="yunchi381"/>
         [[1938년]] [[8월]] 설치된 총독부내 시국대책조사위원회 위원 97명 가운데 한규복은 [[김연수 (1896년)|김연수]](金秊洙), 박철(朴榮喆), [[박중양]], [[박흥식 (1903년)|박흥식]], [[윤덕]], 이기린(李基燐), [[이승우]](李升雨), [[최린]](崔麟), [[한룡]](韓相龍), [[현준호]](玄俊鎬) 등과 함께 조선인 위원 11명 가운데 1명으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그해 [[육군특별지원병령]]이 공포, 시행되자 한규복은 윤치호, 이승우, 조병, 조성근 등과 함께 지원병제 축하회 구성을 위한 타협발기인회를 열고 실행위원진을 구성하였다. [[7월 8일]] [[국민정신총동원연맹]] 경성지회 설립에 참여하고 이사가 되었다. [[10월 7일]]에는 [[중일전쟁]] 등 부병을 위문하기 위해 [[용산육군병원]]을 방문하고 [[금일봉]]을 지급하였다.<ref>"中樞院參議 傷病兵慰問", 동아일보 1938년 10월 07일자 2면, 사회면</ref>
         [[1939년]] [[2월 2일]] [[국민정신총동원연맹]] 각 정(동)지역 연맹 애국반 창설에 참여하였으나 [[윤치호]] 등의 불참으로 [[김명준]], [[이승우]], 조병 등 참여자들 일부와 함께 조직 착수에 나섰다.
         [[1939년]] [[6월 4일]] [[중추원]] 참의로 재선되었다. [[8월 5일]]에는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주최로 전국 순회강연을 할 때, 순회강사가 되어 국민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백억 저축 생활 쇄신'이라는 주제로 전국 순회강연을 다녔다. [[9월 26일]]에는 각지의 노무자와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사회조사위원회]] 위원에 피임되었다.<ref>"勞務者와 細窮民을 來月中에 綜合調査", 동아일보 1939년 09월 26일자 2면, 사회면</ref> 그해 [[9월 30일]] [[경성]]에서 자본금 백만원을 투자하여 [[조선공회사]](朝鮮工營會社)를 창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5일]] [[조선중앙임금위원회]] 임시위원으로 선임되면서 사퇴했다. [[12월 22일]] [[세제조사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1939년]]부터 그는 [[경성부]], [[충주군]], [[함양군]], [[수원군]], [[용인군]], [[양주군]] 등을 다니며 저축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1942년]] [[징병제]] 실시가 결정되고 [[조선인]] [[참정권]] 허용 문제가 [[일본]] 의회 [[중의원]]과 [[귀족원]]에 정되자, 그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부단장 자격으로 일본 수과 참모총장에게 감사 전보문을 타전하고, 그해 [[5월 15일]] [[경성부|경성]] YMCA에서 [[이광수]](李光洙) 등 명사들을 초청해 연설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42년]] [[9월]]에는 [[조선국자주식회사]] 회장에 취임하였으나 [[1943년]] [[6월]] 사퇴하였다. [[1943년]] [[국민총력연맹]] 징병기념사업실행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에 피선되었다.
         {{인용문2|자수 편지<br /><br />천운(天運)이 순환하사 우리 [[대한민국]]이 탄생되니 산천(山川)과 초목이 다시 금빛이 나고 잃었던 자유가 우리 몸에 다시 오니 일반의 환희는 무엇으로 형용하리요. 하물며 일제시대에 허다의 압제를 견디면서 관리생활을 계속한 본인으로서는 더욱더욱 감개무량이외다. 본인은 대한제국시대에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조도전 대학早에서 정치경제과를 졸업한 고로 행정관으로 출세하여 민중지도에 노력하겠다는 이을 가지고 관계(官界)에 투신하여 도지부 서기관으로 재임한 채로 병합을 당하여 임시토지조사국 감사관에 임명되었을 때 본인은 자신처리에 대하여 재삼 고려한 결과 나의 지력과 성력의 한도대로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차라리 유리하다는 견해로 관리생활을 계속하여 [[도지사]]를 역임하고 正4位 勳3등까지 되었으니 가위 고급관리의 지위까지 점진하였다고 하겠으며 30여 년간 관리생활을 하는 중에 민중의 계발을 여하(如何)한 정도로 하였느냐 하면 구체적으로 진술할 재료는 제공치 못하나 다만 양심적으로 민중을 지도하고 또한 민중의 의지를 대표하여 항거할 점은 어디까지든지 항론도 사양치 아니 하였으며 평범한 정치로 민중에 임하고 공정렴근(公正廉謹)으로서 관계일생(官界一生)의 목표로 삼은 것은 천인(天人)이 공인(共認)하는바 옵니다. 그러하니 민중에 대하여 행복이 되고 이익이 된 점을 일일이 수거치는 못하고 다만 장구한 세월의 관리생활을 하였다는 것밖에 남지 않았으며 무엇이라고 변명하오리까. 금일에 지하여는 전일의 양심적으로 민중을 위하여 음으로 양으로 보도, 노력한 점은 무형(無形)으로 돌아가고 다만 관계생활(官界生活)을 하여 일제에 아부한 자로 추인되어 이 점이 기탄불기(慨歎不已)할 뿐더러 관리생활로 일생을 보낸 것이 참회되는 바이며 근신(勤愼)할 뿐이 옵니다. 오직 현명한 당국의 선악을 분별하사 관대한 처분만 바라옵고 감히 소회(所懷)의 일단을 진백(陳白)하나이다.<br><Br>단기 4282년 8월 12일<br />위 인 한규복<br><br>반민행위특별조사위원회 귀중|[[1949년]] [[8월 12일]] 자수 직전에 [[반민특위]]에 보낸 편지}}
         《[[친일파 군]]》에서는 한규복과 [[전라북도]][[도지사]]를 지낸 [[손목]]에 대하여는 "일본인들에게 무조건 친일 또는 아부자가 아니었다 한다"며 그러한 주장을 인정해 주었다.<ref name="parksgi87"/> 그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친일파는 아니라는 의견이 존재하여 그의 처벌에는 반대하는 여론도 나타났다.
  • 마니교 . . . . 57회 일치
         마니교의 창세신화에서는 빛과 어둠의 대결이 있어, [[혼]]은 빛의 세력이, [[물질]]은 어둠의 세력이 창조하게 되었다. 빛=혼은 물질=육체에 갇혀 있는 태이며, 인류의 육체는 어둠=악마에 의하여 창조되어 빛=혼을 가두는 존재이다.
         교리는 살생, 폭력을 금지하고, 육체와 함께 '빛'을 손시키는 자살도 금지하였다.
         빛의 요소는 물이나 흙 속에도 있기 때문에 [[목욕]]이나 [[농업]]은 금지되고, [[업]]만이 생업으로 허용되었다. 욕망을 일으키고 살생이 부가되는 술과 고기를 금지했다. 대신 멜론, 오이, 포도는 빛의 요소가 많으므로 권장되었다.
         가장 나쁜 것은 번식으로서, 번식 행위는 혼의 감옥인 육체를 재생산 하기 위하여 악마가 만든 최악의 함정으로 여겨졌다. 성욕을 끊어서 자손을 남기지 않는 것이 인류의 의무라고 보았다.
         내세에 성직자는 [[천국]]에 올라가게 되며, 일반 신도는 혼은 해방되지 않지만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고, 행실이 좋으면 선행을 쌓기 쉬운 성직자로 태어나 천국에 갈 가능성이 올라간다. 다만 행실이 나쁘면 동식물로 태어나서, 선행을 하는 것이 어려워져 윤회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악마의 꾀임에 넘어간 이교도는 [[지옥]]에 떨어진다.
         마니는 216년 4월 14일,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마르딘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티크는 파르티아의 귀족이며, 어머니 마르얌은 파르티아의 왕족 캄사라간 가문의 출신이었다. 파티크는 마니가 태어나기 직전에 에르사카이 교단에 입신하는데, 이 교단은 [[유대교]] 계통의 신흥 종교로서, 신약 성서나 정통 기독교 사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율법]]에 집중하는 금욕적인 교단이었다. 에르사카이 교단은 여성은 입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파티크는 임신한 마르얌을 버려두고 떠났다가 마니가 3,4세가 되자 아들만 데리고 교단으로 다시 돌아갔다.--뭐냐--
         마니는 어린 시절부터 교단에서 시리아 계 기독교 문헌을 많이 탐독한 것으로 추측된다. 마니가 신약 복음서를 인용한 발언을 보면 당시 시리아 교단에서 유행하던 통합 복음서 디아테사론(Diatessaron)[* 신약의 4대 공관복음서를 종합-요약한 서적. 아시리아 기독교인 타티아누스가 편집했다. 시리아에서 널리 읽혀졌으며 시리아의 일부 교회에서는 5세기에 금지될 때까지 정식 복음서로 쓰였다.]을 인용하고 있었다. 마니는 신비주의 문헌인 [[에녹서]]를 중시하였으며, 구약의 신은 악(惡)한 신이며, 신약의 신은 선(善)한 신이라는 마르키온 파의 사향을 받게 된다.
         서기 240년, 24세의 마니는 독자적인 사에 따라서 유태교 율법을 중시하는 교단에 반발하게 된다. 이 때 마니는 타움[* 천계 동반자, 쌍생아. 지의 육체에 머물러 있는 마니라는 인격과 같은 혼을 공유하는, 또 한명의 자신으로서, 일종의 천계판 도플갱어 같은 것이다.]으로부터 계시를 얻었다고 한다. 마니는 교단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하려 하지만 당연히 구타(…)를 당하게 되었고, 아버지 파티크가 보호하여 살아났지만 교단에서는 추방당한다. 마니는 교단에서 알게 된 친구 아브자크야, 시메온, 아버지 파티크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242년, 페르시아로 귀환했다. 마니 교단은 당한 규모로 성장하였는데, 여기서 아브자크야는 [[시리아]]로, 아버지 파티크는 인도로 떠나서 지부를 담당하게 된다. 페르시아는 사푸르 1세가 즉위하였으며 사푸르 1세는 조로아스터 교 이외의 교단에도 관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니는 사산 가문으로 마이선 총독 미프르 샤에게 접근하여, 빛의 천국을 환으로 보여주고 개종시켰다. 마니는 자크, --어느새 인도에서 돌아온-- 파티크, 시메온과 함께 사푸르 1세를 알현한다. 마니는 자신의 교리를 정리한 사프라간(Shabuhragan)이라는 서적을 사푸르 1세에게 바쳤는데 우주론・종말론・예언자론의 3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주요한 신격을 주르반, 아흐리만, 아후라 마즈다, 미트라 같은 이란 신화의 신들의 이름을 차용하였다. 마니는 이 책을 [[페르시아어]]로 저술하고, [[아람 문자]]를 변형한 [[마니 문자]]를 사용하였다. 마니 문자의 발명으로 이란어는 모음의 표기가 가능해지고, 이전까지 쓰였던 불편함이 혁신되어 중세 이란어 표기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파티크, 앗다, 아브자카야는 로마 토였던 시리아 지역으로 선교하게 된다. 이 무렵 제노비아 여왕의 지도 아래 [[팔미라 왕국]]이 독립하고 있었는데, 앗다는 마니가 전해준 "거대한 복음"이라는 저작을 바탕으로 하여 제노비아 여왕의 여동생에게 포교하는데 성공하였다. 아브자카야는 시리아 에데사 지역에서 포교에 성공하고, 마니는 시리아에서 기독교 사도를 이어받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앗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포교를 하며, 마니의 저작을 정리하여 기독교인을 대으로 "모디우스"라는 저서를 출판한다. 그리고 이집트에도 마니교가 퍼지게 된다. 마니는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 있던 로마 병사들에게 선교를 하였고, 이들이 귀환하면서 마니교는 로마 제국 동부로 널리 퍼져 나가게 된다. 또한 [[아라비아]]에도 마니교 선교가 행해졌다고 한다.
         마르 안모는 파르티아 귀족 출신으로서, 마니의 친척으로 파르티아의 왕족인 아르다반과 함께 중앙 아시아의 파르티아계 귀족들을 포교 대으로 삼았다. 마르 안모는 파르티아어로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동방 마니교에서는 파르티아어가 교회어가 된다. 마르 안모는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파르티아어 저작 『항담』 을 저술하고, 찬송가를 만들어서 신도들에게 노래하게 했다. 그는 중국에서 미말(未末)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중앙아시아는 마니교 최대의 근거지가 되었는데, 시리아계 캐러밴을 거쳐서 소그드 족 인이나 파르티아 귀족에게 주로 퍼지게 된다.
         좌천되었지만 마니는 선교를 멈추지 않고 바트 왕을 개종시킨다. 하지만 이것이 바흐람 1세와 킬데르의 노여움을 불러, 바트 왕은 출두명령을 받게 되고 마니는 미프르 샤에게 도망쳐서 보호를 부탁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실각한 태였다. 마니는 마니교의 세력이 강한 중앙아시아로 도주하려 하지만, 이미 출국이 금지되어 있어 감시당하는 몸이 된다. 마니는 제자 아브자크야와 함께 바흐람 1세를 찾아가서 탄원을 요구한다. 하지만 바흐람 1세는 듣지 않고, 마니에게 무허가로 궁정에 찾아온 죄, 황제의 여동생의 치료에 실패한 죄, 신흥 종교를 포교한 죄를 물어 쇠사슬로 묶어서 감금한다.
         마니의 처형에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는데, 일단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하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크다. 본래 사산 가문 부터가 조로아스터교의 신관 출신이며, 사산 왕조의 황제는 조로아스터교의 신관으로 일하고 즉위 후에도 신관을 겸임하고 있었다. 조로아스터교의 신관들 역시 사산 왕조에서 관료로 봉직하였다. 사산 왕조가 곧 조로아스터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같은 이념에서는 사푸르 1세 같은 관용 정책이 오히려 특수한 사례였던 것이다. 사산 왕조는 조로아스터교 이외의 종교를 탄압한 사례가 당히 많았다.
         또한 마니는 사산 왕조의 이전 왕조인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의 왕족 출신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이 종교를 퍼트려 방대한 조직을 만들고, 각지의 유력자를 포교하여 끌어들이는 한편, 잔존해있는 파르티아계 귀족이나 중앙아시아에도 향력을 미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을 소지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4세기 마드리드 서부의 아비라 프리시리안이 시작한 프리시리안 주의는 마니교의 마지막 불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금욕주의와 이원론을 내세우던 프리시리안은 마니교와 그노시즘에 오염된 이단으로 여겨져 386년 처형되고, 프리시리안 주의는 6세기까지 근절된다. 이단자가 된 프리시리안의 저작이 보존되지 않은 탓에 가르침은 확실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1886년 바이에른 왕국의 부르트부르크 대학 서고에서 우연히 프리시리안과 제자들의 논고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 마니교의 향을 받은 것은 아니며 우연히 독자적으로 금욕과 이원론을 내세웠을 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권력 측에 선 신관단들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제국에서 마니교는 당히 오랫동안 살아남게 된다. 마니교는 경전을 확립하고 있었으며, 질서정련한 교리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는 기도나 배화의례, 구전전승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고, 페르시아의 민족종교로서의 경향이 강한 탓에, 마니교처럼 복잡한 교리와 신화에서 지적인 측면에서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고 제국의 여러 속민들에게 어필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7세기 중반, [[이슬람교]]가 급격히 대두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한다. [[우마이야 왕조]] 시기에 이슬람교는 타 종교에 비교적 관용적이었기 때문에 마니교 역시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으로 오히려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앙 아시아에서 귀환한 마니교도와 중동 잔존 마니교도 사이에 사소한 대립이 있거나, 데인 서랄이 이라크 총독과 결탁하려 하는 등의 마찰은 있었지만. 오히려 페르시아 문화인들은 왠지 조로아스터교 보다 마니교에 기울면서 마니교의 세력이 회복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압바스 왕조의 3대 칼리프 알 마흐디가 마니교 탄압 명령을 내린다. 마니교도는 이원론, 의식적 간통, 불륜, 음주, 남색, 우숭배의 죄로 탄압당하게 된다. 연행된 사람들은 '''마니의 초화에 침을 뱉고, [[새]]를 먹도로 강요'''당하고, 하지 못하면 [[참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박해 시기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명맥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슬람 세계에서 마니는 예술가, 화가로서 여겨졌는데, 오스만 제국의 무라트 3세에게 헌된 예술가 열전 같은 예술가들의 이야기에서 마니는 빈번하게 등장하며, 티무르 제국에서 사파비 왕조까지 활동했던 화가 베흐자드는 "마니에 뒤이은 거장"으로 불리게 된다.
  • 원피스/841화 . . . . 57회 일치
          * 디는 6개월이나 감금되어 있었고 식사 때만 철가면을 벗겨주는 극악한 대우를 받는다.
          * 디가 요리를 시작한 계기는 아픈 어머니, 제르마의 왕비를 위해서였다.
          * 어머니는 디가 실패한 요리를 가져와도 언제나 기쁘게 먹어주었으며 웃어주었다.
          * 디는 감옥에서 요리를 연구하며 지내다가 형제들에게 발각되어 린치를 당한다.
          * 레이쥬는 그를 치료해주면서도 항 선을 긋는데, 디가 성에서 달아나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애걸하자 그 소원을 들어준다.
          * 그때 제르마는 이스트 블루를 침공해 전쟁 중이었는데, 디는 이틈을 타서 이스트 블루로 달아날 생각을 한다.
          * 디는 철가면을 벗길 열쇠를 찾다 저지에게 발각되는데, 오히려 저지는 "수치스러우니 절대로 내 자식이란걸 밝히지 마라"는 조건으로 내버려둔다.
          * 그 심한 말에 디는 물론 레이쥬까지 눈물을 흘리고 레이쥬는 직접 디가 탈출할 수 있게 도와주게 된다.
          * 현실로 돌아와 레이쥬는 얻어맞아 엉망이 된 디에게 다가와 "그깟 오너 무시해 버리지 왜 이런 곳으로 돌아왔냐"고 쓴소릴한다.
          * 한편 유혹의 숲에서 싸우고 있는 루피는 벌써 11시간 째 크래커를 대 중.
          * 디는 6개월이나 감금되어 있었다.
          * 디는 오직 식사할 때만 가면을 벗을 수 있는데, 그마저도 입주위만 느슨하게 하는 것이고 완전히 벗을 순 없다.
          * 디가 홀로 식사하고 있을 무렵 형제들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며 빈스모크 저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 디는 식사 하면서 처음 요리를 했던 일을 회한다.
          * 디는 서툰 솜씨지만 어머니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한다.
          * 디는 병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혼자 힘으로 어머니의 거처로 향한다. 중간에 개가 달려들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엔 도착한다.
          * 비바람을 뚫고 온 디를 발견한 하녀 에포니는 서둘러 그를 불러들이지만 도시락은 벌써 엉망. 왕비가 배탈이 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 그래도 디의 성의를 생각해서 맛을 보는데 마치 악마와 같은 맛이 난다.
          * 디의 어머니, 곧 제르마의 왕비는 디를 칭찬해주며 가져온 도시락을 기꺼이 먹는다.
          * 디는 실패한 요리라며 먹지 말라고 하지만 왕비는 아무렇지 않게 먹으며 정말로 맛있다고 칭찬해준다.
  • 이인영(정치인) . . . . 57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고려대학교/출신 인물]]
         ||<width=30%><:>제16대[br][[김기배]]||<width=5%><:>→||<width=30%><:>'''제17대[br]이인'''||<width=5%><:>→||<width=30%><:>제18대[br][[이범래]]||
         ||<:>제18대[br][[이범래]]||<:>→||<width=30%><bgcolor=#FFFFA0><:>'''제19·20대[br]이인'''||<width=5%><:>→||<width=30%><:>''현직''||
         || '''이름''' ||이인(李仁榮, Lee Inyoung) ||
         || '''공식 사이트''' ||[[http://inyoung.net/|inyoung.net]] ||
         1990년, 제1기 전대협 부의장이었던 우호 등과 앞으로 10년간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숙성기간'을 갖기로 약속하였다. "학생 운동의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후 10년이 지나자 이인과 우호 등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피 수혈론'에 따라 새천년민주당에 입됐다.
         2000년 5월 17일 [[새천년 NHK 사건]]이 터졌을 때, 새천년민주당 내 어지간한 운동권 명사들이 다 모인 술자리에 끼지 않아 칭찬을 받았다. --당연히 끼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쨌든 이로써 [[김민석(정치인)|김민석]], [[송길(정치인)|송길]], [[우호]] 등은 [[의문의 1패]].--
         2015년 7월에는 새민련 내에서 청년세대 정치인인 이동학과 공개논쟁을 벌였다. 이동학 혁신위원이 공개 편지를 통해 "선배님들을 응원할 든든한 후배 그룹 하나 키워내지 못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해왔고, 또 변해 가는데, 우리 사회의 새로운 어젠다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의 계파 전쟁이라고 하는 최악의 황을 만들어 낸 것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이인을 비판하면서, 이인에게 내년 4월 총선에서 '약세 지역'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인은 자신이 지역구를 바꾼다고 혁신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혁신위원회가 정리해고,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3권의 위기를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응수하였다. 하지만 이는 이동학 당시 혁신위원이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의도로 그랬다는 분석도 있어 별로 양가 없는 비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참고로 이때 20대 총선에서 이인이 고향인 충북 충주로 사실 '''하방'''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2016년 당시 충북 충주는 민주당에게 사지(死地)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이시종]]이 충북지사로 출마하면서 국회의원을 사퇴한 이후의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64% 이의 득표를 했던 것. [* 다만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34.4% vs [[홍준표]] 30.4%로 문재인이 약 4%차로 승리했다.] 이인이 아무리 야당 당대표 경선까지 출마한 나름 거물일지라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임선거대책본부장
         제17대 국회 민족화해와 번을 위한 남북평화통일 특별위원회 위원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현행법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이 지급되는 대 사업의 범위와 기준보조율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으나, 중앙 및 지방정부의 예산규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항인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지급 대 사업 범위와 각 사업별 국고 보조율은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임. 한편, 양로시설을 제외한 노인시설 운사업은 보조금 지급을 제외하고 있음. 그런데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노인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종교시설에 설치된 노인시설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비를 일부 지원하여 종교시설 유휴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노인복지를 증진할 필요가 있음. 주요내용 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 지급 대 사업, 지급 제외 사업, 각 사업별 기준보조율을 법률로 향규정함(안 제9조제2항?별표 1?별표 2 신설). 나. 종교시설에 설치된 노인시설 운사업을 보조금 지급 대 사업에 포함함(안 별표 1 제122호 신설)]
         - 지역문화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최근 각 종교단체는 전국적으로 산재되어 있는 종교시설을 활용하여 문화복지의 증대를 도모하는 봉사적 차원의 문화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신도들과 일반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부분적으로 충족시키고 있음. 특히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종교시설은 부족한 문화기반시설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임. 그러나, 현행법에 따른 생할문화시설의 범위에는 종교시설이 누락되어 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재정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으로, 종교시설은 유휴공간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음. 이에 생활문화시설의 범위에 종교시설을 포함하고 공공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에 기여하려는 것임(안 제2조제5호)]
         == 수 ==
         · 2003 제1회 박종철 인권
         · 2004 제3회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
         · 2007 제9회 백봉신사
         · 2013 국정감사 우수 의원
         · 2014 국정감사 우수 의원
  • 이채영(fromis_9) . . . . 57회 일치
          * 위 문서: [[아이돌학교]], [[유용근밴드리즈]]
          * 하위 문서: [[이채(유용근밴드리즈)]]
         ||||<#876CA6><:><table bordercolor=#876CA6> {{{#ffffff '''{{{+1 이채 / 李彩煐 / Lee Chaeyoung}}}'''}}} ||
         ||<bgcolor=#BBB3D8> '''{{{#white 출생지}}}''' ||<(><bgcolor=#ffffff> [[경북도]] [[포항시]] 흥해읍 ||
         ||<bgcolor=#BBB3D8> '''{{{#white 가족}}}''' ||<(><bgcolor=#ffffff> 부모님, 언니 이혜인^^(1993년생)^^, 언니 이혜지^^(1996년생)^^[* 채 왈 큰 언니랑 2살차, 작은 언니랑 7살차라고 한다. 특히 큰언니 이혜인은 종 이후 채의 일 사진을 많이 올리고, 채 팬과 소통을 자주한다. ~~챙덕은 계탔다~~] ||
         ||<bgcolor=#BBB3D8> '''{{{#white 외부링크}}}''' ||<(><bgcolor=#ffffff>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lists/?id=lcy514|이채 마이너갤러리]] ||
         >'''안녕하세요! [[유용근밴드리즈]]에서 에너자이저를 맡고 있는 이채입니다!'''
         [[이채(유용근밴드리즈)]] 문서 참고.
          * 2017년 12월 9일, 개인 V LIVE [[http://www.vlive.tv/video/51490?channelCode=D5E529|<MIND MAP> 8교시 채역]]을 진행했다.
          *2018년 1월 17일, 멤버들 중 여섯번째로 '나에게로 오는 길 #이채'이 공개되었다.
          * 2018년 2월 14일, 발렌타이 데이 기념 동 [[http://www.vlive.tv/video/59470/playlist/59488|Happy Valentine Day #채]]이 공개되었다.
          * 2018년 3월 8일, 공식 V LIVE를 통해 멤버들 중 네번째로 오디오 브이앱인 개인 힘주라 [[http://www.vlive.tv/video/62223|Tonight #채]]을 진행하였다.
         전문 래퍼가 없는 팀의 특성 fromis_9의 리드래퍼를 맡고 있기도 하다.[* 아이돌학교 데뷔멤버 선발전 <피노키오>에서 래퍼를 했기에 랩 경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팀내에서 뛰어난 예능감을 가지고 있는 멤버로 많이 거론된다. 브이앱이나 [[fromis_의 방]], 약속회 토크쇼 등에서도 소소한 부분에서 재미를 유발하는 등 프로미스의 예능 에이스라고 불릴 정도. [[아이돌학교]]에서도 방송 내내 예능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줬다. 주로 멤버들이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면 거기에 대해 성대모사를 하거나 과장을 보태어 황을 설명하는 등 멤버 각자의 개성을 이끌어내는 재능이 있다. 이때문에 거의 모든 멤버와 케미가 잘 맞는 편.
          * 초등학교 때 육을 했었다. 종목은 오래달리기. 달리기 외에도 [[축구]], [[야구]]를 좋아한다. ~~하긴 포항에서 [[삼성 라이온즈|두]] [[포항 스틸러스|팀]]이 경기를 하니~~
          * 이형은 키가 큰 사람.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 평소엔 "Zㅗ르Zㅣ마" 같은 말투로 장난스럽게 늘어질 듯 말할 때가 자주 보인다. 프로미스의 방 0회에서 나온 언니도 비슷한 말투다. 또한 공연 전에는 항 긴장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무대에 올라가면 그런 모습 없이 좋은 공연을 보여준다. 그런 걸 보면 타고난 무대 체질인듯 하다.
          * 그룹 내에서 제일 힘도 세고 덩치도 크다.[* 아이돌학교 내에서 팔씨름을 걸었을 때도 3판 다 이겼고, [[송하|하]]이 육성회원 과제로 닭싸움을 걸었는데, 하필 '''마지막 대가 이채'''이라서 패한 기록이 있다. 또한 [[fromis_의 방]] 3화에서는 사과를 '''맨 손으로 쪼갰다.'''] 근데 이런 이미지와 반대로 겁이 가장 많다.[* [[fromis_의 방]] 3화에서 공중 로프 코스에서 자신이 고소공포증이 있는걸 처음 깨닫고 코스 하나 겨우 넘어왔지만 결국 다음 코스에서 못 하겠다면서 ~~눈물 싹 빼고~~ 포기하고 말았다. 내려와서도 그 여운이 남아있는 걸 보면 고소공포증이 심한 듯.] 여기서 나온 별명이 겁'''챙'''이.
          * [[유용근밴드리즈]]의 최장신이다. 두 번째인 [[장규리]], [[백지헌]]과는 불과 1cm 차이. 때문에 이 둘이 팀의 양쪽 끝에 서는 경우가 많다.[* 5회차 약속회에서 채 왈 아버지가 정육점을 하셨는데 그때 고기를 많이 먹어서 키가 많이 큰 것 같다고 한다.]
          * [[이서연]], [[이나경 (가수)]]과 본인으로 구성된 빵빵즈와 [[송하]], [[박지원(fromis_9)|박지원]]과 본인으로 구성된 삐융즈 중 빵빵즈를 골랐다. 삐융즈는 피곤하면 못 하지만 빵빵즈는 언제나 빵빵즈라고. --송하 : 너 이제부터 내 침대에서 자지 마.--
  • 추미애 . . . . 57회 일치
         ||<#1870B9> '''{{{#FFFFFF 링크}}}''' ||<(> [[http://www.choomiae.com/|공식 사이트]], [[https://twitter.com/choomiae|트위터]] ||
         '''헌정 사 첫 [[여당|집권여당]]의 여성 당 대표'''
         '''역대 [[민주당계 정당]] 대표 중 임기를 정적으로 끝마친 첫 당 대표'''
          * 대한민국 헌정 사 최초의 여성 지역구 5선 국회의원[* 5선의 여성 국회의원은 추미애 말고도 여럿 있으나, 이는 '[[비례대표]] 의원' 시절을 포함해서 선수를 계산한 경우이고, 순수히 '지역구 의원'으로만 5선에 성공한 것은 추미애가 최초이다.]
          * 대한민국 헌정 사 최초의 여성 [[여당]] 대표[*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가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 그리고 [[새누리당]]의 [[비대책위원회#s-1|비대책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으나, 말 그대로 '비대책위원장'이었을 뿐 당 대표는 아니었다. 박근혜가 [[참여정부]] 시절 당 대표였던 때도 있었으나, 그땐 '[[여당]]' 대표가 아니라 '[[야당]]' 대표였다. (2002년 한국미래연합 대표, 2004년~2006년 한나라당 대표)]
          * [[민주당계 정당]] 역사 최초의 [[TK#s-1.1|TK]] 출신 당 대표[* 앞서 [[새천년민주당]] 시절, 경북 출신의 [[김중권]]이 당 대표를 지낸 적이 있으나,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당 대표 위에 당 총재([[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총재였다)가 있었고, 당 대표는 선출직이 아니라 총재가 임명하는 자리였다.]
          * 민주당계 정당 역사 임기를 다 채운 최초의 당 대표[* 보통 당 대표는 선거 패배 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민주당계 정당의 경우 선거 패배 사례가 많다 보니, 여지껏 임기를 다 채운 당 대표가 없었다. 추미애 이전에 민주당계 정당에서 가장 오래 당 대표를 지냈던 인물은 [[정세균]]([[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시절부터 약 2년 정도)인데, 그도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바람에 임기를 다 채우진 못했다. 추미애의 경우 당 대표 재임시절 치른 선거([[19대 대선]], [[7회 지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당 대표를 사퇴할 일도 없었고, 때문에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1958년 [[경북도]] [[달성군]](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세탁소를 운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태어났다. 대구남산초등학교, 구남여자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서 변호사는 호남 출신인데, 당시만 해도 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이 극심했던 때라 남의 집에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서 변호사는 고등학생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이에 추미애의 집안에서는 결혼을 반대하였지만, 추미애는 이를 무릅쓰고 결혼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33635|#]] 이러한 까닭에 언론에서는 추미애를 가리켜, 그리고 추미애 스스로도 '[[대구시|대구]]의 딸, [[전라도|호남]]의 며느리'라고 부른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추미애를 정계에 입한 이후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http://app.yonhapnews.co.kr/YNA/Basic/SNS/r.aspx?c=AKR20160827036600001&did=1195m|#]]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3792967|#]] 슬하에는 3명[* 1남 2녀]의 자녀가 있다.
         정계 입문 전에는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서 일했다. 판사 시절 추미애는 ‘까칠한 여성 판사’로 통했다고 한다. 당시는 [[군사정권|군부 독재 정권]] 시기였는데, 수사 당국이 공안 정국을 등에 업고 구속장을 남발할 때 ‘법적’으로 용납이 안 되면 기각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구속장이 기각됐다며 경찰서장이 한밤 중에 추미애 당시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와 “내일 다시 신청할 테니 꼭 발부해달라”며 신경질을 낸 일이 있었다. 추미애가 “장청구권자는 검사인데 서장께서 왜 직접 전화를 하는가? 판사가 한 번 결정해 외부로 나간 일은 번복할 수 없다”라고 응수했는데, 다음 날 법원장이 불러 “아버지 같은 경찰서장에게 도대체 뭐라 했길래 서장이 그리 화가 난 것이냐”라며 질책했다. 추미애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검찰 쪽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경찰서장이 찾아와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나이 어린 초임 판사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던 주위 사람들에게 추미애는 그렇게 ‘껄끄러운 여판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308&aid=0000021230|#]]
         관련하여 판사 재직 시절 이런 일도 있었다. 1985년 봄, 당시 [[전두환]] 정권은 공안 통치를 위해, 오늘날에는 명작으로 평가 받는 <[[난쏘공|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100권이 넘는 책을 불온서적이라는 딱지를 붙여가며 압수수색하였다. 전국 검찰에선 일제히 장을 청구했고, 전국 법원은 예외 없이 장을 발부했다.
         그때 춘천지방법원에서 초임 판사로 일하던 추미애에게도 장이 청구되었다. [[춘천]]의 가장 큰 서점을 대로 불온 서적을 압수수색하고자 하니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추미애는 부당한 청구라며 장을 기각하였다. 전국에서 유일한 장 기각이었다. 이후 법원장은 추미애를 호출해서 “당신, [[김대중]] 정치 운동하는 판사냐?”며 비아냥대듯 야단쳤다고 한다.
         훗날 추미애는 이 일에 대해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같은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밤을 새우며 장을 기각했다.", "당시만 해도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금기와 편견의 징이었고, 불온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저에게 ‘김대중’의 이름이 씌워졌지만 그 분과는 생면부지였다. 실제로 인연이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우연히 찾아왔다."고 회고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1722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1&aid=0002159849|#]]
         [include(틀:세 내용/문단, 문서명=추미애/정계 활동, 앵커=s-1)]
         [include(틀:세 내용/문단, 문서명=추미애/정계 활동, 앵커=s-2)]
          * [[2005년]] [[세종대학교|세종대학교 경대학원]] 최고경자과정 수료
          *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제17대 대선]] [[정동]] 후보 '공동선대위원장'
          * [[2016년]]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소녀의 눈물 운동본부 위원장
          * [[2016년]] [[제20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으나 2016년 8월 당 대표에 선출됨에 따라 임위 활동이 어려워져, 대적으로 부담이 작은 외교통일위원회로 이동(사보임)했다.] 위원
  • 권벌 . . . . 56회 일치
         '''권벌'''(權橃, [[1478년]](성종 9) [[11월 6일]] ~ [[1548년]](명종 3) [[3월 26일]])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중허(仲虛), 호(號)는 충재(冲齋) 또는 훤정(萱亭), 송정(松亭) 등이며, 작위는 길원군(吉原君)이고,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안동]] [[북후면]] 출신.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 [[김정국]](金正國) 등 기호사림파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개혁 정치에 남 사림파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으며, 명종 때는 [[이언적]] 등과 함께 소윤의 대윤 제거 시 사림을 구하려다가 실패했다. [[1545년]] [[8월]] 소윤 [[윤원형]](尹元衡)의 세력이 대윤 [[윤임]]을 제거하면서 [[유관]](柳灌), [[유인숙]](柳仁淑)과 사림을 엮어서 무고하자, 이에 반대하여 [[유인숙]], [[유관]] 등을 적극 변호하였다.
         [[1496년]](연산군 2)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연산군 때에 정시에 급제했지만 연산군의 비위를 거슬려 합격취소되었다. [[1507년]](중종 2년) [[문과]]에 급제, [[1513년]] [[사헌부]]지평 재직 중, 그 당시 신윤무(辛允武), 박문(朴永文) 등의 역모 사실을 알고도 즉시 보고하지 않은 정막개(鄭莫介)를 규탄, 당관 품계를 삭탈하게 하여 강직한 신하로 명성을 얻었다.
         [[1514년]](뭉종 9년) [[이조]][[정랑]], [[호조]][[정랑]]이 되고, [[천]][[군수]]로 부임하였다. [[1517년]] [[장령]], [[1518년]] [[승정원]][[동부승지]], [[좌승지]], [[도승지]], 겸[[경연]][[참찬관]], [[예문관]][[직제학]] 등을 거쳐, [[1519년]](중종 14년) [[예조]][[참판]]이 되었다가 외직을 자청해 [[삼척]][[부사]]로 나갔다. 그해 [[11월]] [[기묘사화]]로 삭출되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15년 간 지내다가 복직, [[부호군]], [[밀양]][[부사]],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했다. [[1537년]] [[12월]] [[한성부]][[좌윤]], [[1538년]] [[2월]] 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그해 [[10월]] [[형조]][[참판]]에 임명되고, [[1539년]](중종 34년) [[3월]] [[병조]][[참판]], [[6월]] [[한성부 판윤]] 등을 거쳐 1539년 7월 [[대명회통]]에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로 임명된 것을 바꿔달라는 종계변무 주청사(宗系辨誣 奏請使)에 임명, 동지사 [[임권]](任權) 등과 함께 연경에 갔다가 [[1540년]] [[2월]] [[명나라]]에서 귀국한 이후에는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에 임명되어 세자우빈객(世子右賓客)을 겸하여 [[세자]] [[조선 인종|인종]]을 가르쳤다.
         [[1540년]] [[병조판서]], [[한성부 판윤]], [[1541년]] [[예조판서]], [[의정부]][[좌참찬]] 등을 거쳐 [[의정부]][[우찬성]]과 판[[의금부사]]를 겸하다 [[1546년]] 어린 [[명종]]이 즉위하자 원(院相)에 임명됐다. 이때 소윤 일파가 대윤을 공격하면서 [[유관]], [[유인숙]] 등을 같이 공격하자 이들을 변호하였다. [[을사사화]] 직후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록되고 길원군(吉原君)에 봉군됐다가 [[정순붕]], [[이기]] 등의 반대로 삭훈됐다.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 유배되었는데 처음에는 [[구례]]로 [[유배]]되었다가 얼마 뒤 태천으로 바뀌었으며 다시 [[삭주]]로 이배(移配)되어, 이듬해 배소에서 죽었다. 그는 조정 내직으로 근무할 동안에는 예겸 임명과 관없이 항 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 참찬관 등에 겸임되어 왕에게 경전을 강론하기도 했다. 독서를 좋아하여 자경편 (自警篇), 근사록 (近思錄) 등을 항 품속에 지니고 다녔다. [[1567년]](명종 22) 신원(伸寃)되었고, 선조 즉위 후 직첩을 돌려받고 [[1568년]]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1588년]] [[삼계서원]](三溪書院)에 제향되고 후에 현종때 사액이 내려졌다.
         [[공신]] 책록 경력으로는 추성정난[[위사공신]](推誠協翼炳幾定難衛社功臣) 2등과 [[광국공신|광국]][[원종공신]] 1등이다. [[종계변무]]가 성공하자 [[1591년]](선조 24) 종계변무에 힘쓴 공로로 [[광국]][[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으며, [[증직|증]] [[의정부]][[의정]]에 추증되고 [[불천위]](不遷位)에 선정되었다.
         [[1478년]](성종 9) [[11월 6일]] 충재 권벌은 [[경북도]] [[안동군]] [[북후면]] 도촌리(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 도계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冲齋), 훤정(萱亭) 등이다. 복야 권수홍(權守洪)의 10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선략장군과 [[용양위]]부[[호군]]을 지낸 권곤(權琨)이고, 아버지는 [[성균관]][[생원]] [[증직|증]] [[의정부]][[좌찬성]]과 [[증직|증]] [[의정부]][[의정]] 권사빈(權士彬)이고,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주부(主簿)를 지낸 윤당(尹塘)의 딸이다. 할아버지 권곤은 생전 관직이 선략장군 부호군이었지만 여러차례 추증되어 증 [[이조]][[참판]]과 [[증직|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로 추증됐고, 아버지 권사빈은 [[성균관]] [[생원]]이었지만 여러번 거듭 추증되어 [[증직|증]]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가 다시 증 [[의정부]][[의정]]으로 가증되었다.
         그의 외가는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의 친척이었으므로 대우가 남달랐지만, 그는 오히려 더욱더 근신하고 회피하였다. 왕실과 친인척이 되는 재들과 관료들이 [[명나라]] 연경(燕京)에 사절로 갔다가 돌아올 경우에는 반드시 진귀한 물건을 가져와 사적으로 선물을 바치었지만 그만 혼자 '나는 감히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
         여종이 밥을 들고 오다가 미끄러져 그의 옷에 국물을 쏟아 더럽혔지만 그는 노여워하지도 않고, 노여운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안동부]]의 교관(敎官)이 된 어떤 고향 사람이 그를 찾아와 뵙고 가다가 관청의 [[아전]]과 시비가 붙어 구타하였는데, 안동부사(府使)가 그 말을 듣고 그 교관을 대면하여 잘못을 따지자 교관이 다급한 나머지 거짓말로 내가 구타한 것이 아니라 권 공(權令公)이 구타하였다고 했다. 안동부사가 권정승 도 사사로운 분노로 관가의 아전을 구타한단 말인가? 하며 그를 찾아와 분노의 말을 터뜨렸으나 그은 끝내 해명하지 않았다.
         [[1496년]](연산군 2년)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후 [[1504년]](연산군 10년) [[연산군]](燕山君) 때 다시 과거에 응시하여 정시(庭試)에 합격하였지만, 삭방(削榜)되었다. 정경세(鄭經世)가 쓴 그의 묘비문에 의하면 당시 그가 정시 과거의 답안지로 낸 글 가운데에 처(處)자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합격했다가 취소당했다 한다. [[연산군]]이 일찍이 [[김처선]](金處善)의 직간(直諫)하는 말에 분노하여 [[김처선]]을 죽인 뒤, 사람 이름은 물론이고 안팎의 모든 문건에서 김처선의 이름인 처(處)와 선(善) 두 글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종 반정]] 이후에도 이때 그가 파방된 것에 대한 보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1507년]](중종 2년) [[과거 제도|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때 중종에게서 으로 받은 꽃이 후대에 전하고 있다. [[승문원]](承文院)을 거쳐 [[예문관]]주서(藝文館注書)가 되고, 이후 [[예문관]][[검열]], [[홍문관]]수찬, 부교리,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했다.
         [[1508년]] [[기사관]]이 되고, [[1510년]] 경연[[검토관]]이 되었는데, 이후 조정 내직으로 근무할 동안에는 예겸 임명과 관없이 항 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 참찬관 등에 겸임되어 왕에게 경전을 강론하기도 했다. [[1513년]] [[사헌부]]지평으로 재임할 때, 휴가를 받아 고향에 내려가려다가 당시 [[신윤무]](辛允武), 박문(朴永文) 등의 흉계를 알고도 즉시 알리지 않은 정막개(鄭莫介)의 일을 알자 그의 당관계(堂上官階)를 삭탈하도록 청하였다.
         {{인용문|정막개가 이미 박문 등의 모역을 알았으면 곧바로 고발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야 고발하였으니, 처벌을 받지 않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그의 직품을 삭탈하소서.}}
         [[1512년]] [[11월]]에는 [[현덕왕후]]의 복권을 건의하였다. 이후 [[사헌부]]지평, [[성균관]]사성(司成)을 거쳐 [[1514년]] [[이조]][[정랑]]에 임명되었고, 사건으로 인해 해직되었다가 그 뒤 얼마 안 되어 [[호조]][[정랑]]이 되었으며, 얼마 뒤 외직으로 [[천]][[군수]]로 발령되었다. [[1517년]](중종 12년) [[사헌부]]장령, 그해 [[10월]]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1518년]] [[승정원]][[동부승지]], 좌승지가 되었다. 1518년 가을 좌승지로 재직 중 [[조선 중종|중종]]이 유생(儒生)을 불러 친강(親講)할 때 그는 [[조선 단종|단종]]과 [[연산군]]의 후사를 세워주고 제사지내게 할 것을 요청하였다.
         {{인용문|금일 강론에는 인(仁)에 대해 논하였는데 인은 끊어진 세대를 이어 주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노산군]](魯山君)은 선왕(先王)의 의친(懿親)이고 연산군(燕山君)은 전하의 동기(同氣)이니, 비록 연산군이 [[종묘]](宗廟)에 죄를 지었으나 또한 일시에 군림(君臨)하였습니다. 원히 세대가 끊겨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어찌 전하의 인(仁)이 손되지 않겠습니까? [[조선 세종|세종 장헌대왕]](莊憲大王)이 [[광평대군]] 여(廣平大君 璵)를 공순공 방번(恭順公芳蕃)의 후사로, [[금성대군]] 유(錦城大君 瑜)를 소도공 방석(昭悼公 芳碩)의 후사로 삼았는데, 친한 이를 자애하는 후덕(厚德)을 지금까지 칭송해 마지않으니, 이는 후세 임금의 본보기입니다.}}
         이후 [[도승지]]와 겸임 [[경연]][[참찬관]], [[예문관]][[직제학]] 등을 거쳐, [[1519년]] [[예조]][[참판]]에 임명되었다. 중종 대에 그는 조광조, [[김정국]](金正國) 등 기호사림파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는 개혁 정치에 남사림파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했다. [[조광조]], [[김안국]] 등 비롯한 사림들이 왕도정치를 극렬히 주장하자, 기호 지역 [[사림파]]와 연결되어 [[훈구파]]와 [[사림파]] 사이를 조정하려 하였다. 그는 기호지역 사림파와 훈구파 사이를 조정, 화합시키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519년 예조참판이었을 때 다시한번 [[훈구파]]와 기호[[사림파]] 사이를 조정하려 했지만 실패한다. 이후 아버지 권사빈이 나이가 연로하고, [[풍병]](風病)이 있음을 들어 외직인 [[삼척]][[부사]]를 자청하여 나갔다.
         [[1533년]](중종 33년) 복직되어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에 임명되었다. [[1533년]] [[밀양]][[부사]]로 임명되었으며, [[1537년]] [[11월]] 충무위 호군(忠武衛 上護軍), [[12월]] [[한성부]][[좌윤]]이 되었고 이듬해 [[2월]] [[경도]][[관찰사]], [[10월]]에는 [[형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540년]] [[병조판서]]에 임명되자 그는 여러번 체직을 청했지만 왕이 듣지 않았다. 곧 [[한성부 판윤]]에 임용되었으며, 1541년 [[5월]] [[예조판서]], [[11월]]에는 [[의정부]][[좌참찬]]에 임명되었다. 다시 [[예조판서]]가 되었으며, 예조판서와 좌참찬 재직 때는 지[[의금부]]사를 겸직했다. [[1542년]] [[5월]] 장령이 되었으며, 같은 해 [[가정제]]의 엽기행각에 궁비인 양금(楊金英) 등이 가정제를 시해하려 했다가 실패했다. 이때 [[조선 중종|중종]]이 봉변을 당한 [[가정제]]를 위로하겠다고 진위사(陳慰使)를 파견하려 하자, 그는 경연(經筵)에서 이를 반대하였다. 그는 오히려 중종에게 "천자가 만승(萬乘)의 지존(至尊)으로 깊은 구중 궁궐에 있는데도 뜻밖의 음모가 측근의 시어(侍御)에서 나왔으니, 잠시도 경계하지 않으면 위험한 화가 따릅니다. 원컨대 이를 거울로 삼아 항 성찰을 더하시면 좋겠습니다."고 하며 오히려 중종에게 타산지석 삼아서 항 성찰하고 깨닭으라고 권고했다. [[정경세]]에 의하면 그 말이 매우 기휘(忌諱)를 범하였으므로 동료들이 두려워해서 고개를 움츠렸을 정도였다 한다.
         [[1544년]] 정월 다시 [[의정부]][[좌참찬]]에 임명되었다. 중종이 죽자 그해 [[11월]] [[빈전도감]](殯殿都監)에 참여하였다. [[1545년]](인종 2) [[5월]] [[의정부]][[우찬성]]이 되었으며 [[우찬성]]으로 [[의금부]][[판사]]를 겸하였고,[[인종]]이 후사 없이 병으로 갑자기 죽자, [[7월]]에는 [[명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어린 왕 [[명종]]을 대신하여 [[7월]] [[원]](院相)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때 [[윤인경]] 등이 [[충순당]](忠順堂)에 입대(入對)할 적에 '[[이언적]]과 권벌 등이 [[문정왕후|대왕 대비]]([[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는 일을 막으려 한다.'는 말을 몰래 퍼뜨려 그를 모함하였다.
         {{인용문|지난날 양도왕(襄悼王, 예종)이 후사가 없이 승하하였을 때 [[월산대군]](月山大君)이 서열로 당연히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으나 정희 대비(貞熹大妃)께서 성종대왕을 세웠는데, 그때 나이 겨우 13세였으나 시종 조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지금 주은 대행 대왕(大行大王, 인종)의 아우로 이미 왕위에 올랐으니, 어찌 다른 우려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왕자군(王子君)들이 외부의 사람들과 사귀지 않고 대신(大臣)이 전권을 휘두르지 않은데, 그 누가 감히 음모(陰謀)를 꾸미겠습니까? 지금 즉위의 초기이니만큼 인심(人心)을 얻는 데 주력하여 매사를 매우 공정하게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중종대왕 초기에 대신이 선도(善導)하지 못한 바람에 노손(盧永孫)이 이과(李顆)가 모반했다고 무고하여 벼슬과 포을 받자, 그때부터 고변(告變)이 잇따랐습니다. 중종대왕이 뒤에 그 사실을 알고 그때 연좌된 사람을 모두 사면하자, 온 나라 사람이 감복하여 인심이 안정되었으니, 이는 오늘날 마땅히 경계해야 할 점입니다.}}
         어느날 그는 이것이 옳지 않다며 밤새도록 계사(啓辭)의 초안을 썼다가 집안사람과 아들 사위들이 글을 읽고는 번갈아 붙잡고 울면서 만류하였으나 문득 뿌리치고 갔다. 대궐에 이르러 [[신광한]](申光漢)을 만나 같이가다가 [[신광한]]이 그의 뜻을 알고 깜짝 놀라 만류하였지만 듣지 않고 원(院相) [[이언적]]을 만나고 다시 [[승정원]]주서(注書)를 불러 계사를 전달하려 하자 [[이언적]]이 보고 놀라며 '사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만큼 말해보았자 불측한 일만 야기할 뿐이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며 그의 계사 중 위험한 말은 모두 삭제해 버리고 보고했다. 그러자 그는 이처럼 삭제해 버렸으니, 계사를 올리지 않느니만 못하다며 탄식하였다.
  • 박진성(시인) . . . . 55회 일치
         [[2014년]] 제8회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을 수
         [[2015년]] 제7회 시작 작품을 수
          *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과 [[레진코믹스 집단 환불 및 탈퇴 사태]]에서 극단적 페미니스트적 성향을 보였던 [[이자혜]] 작가를 옹호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있었다. 하단에 서술된 성폭행 무고사건에 휩쓸린 후, 2017년 12월부터 [[웃긴대학]] 커뮤니티를 시작하였는데, 이 때 한 유저의 이자혜 작가 옹호발언에 대한 해명글을 요구하였고, 이에 답하였다.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number=728608|해명글]]을 요약하자면, (지금으로선 하기 힘들겠지만) 당시에 이자혜 작가는 명실부 '''촉망받고 있는 작가'''였으며, 본인이 알고 있었던 점과 비교해 볼 때, 이자혜 작가가 그런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는 입장. (덧붙여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수도 없을 뿐더러, 메갈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과거 쓴 트위터에 대한 답변으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할 말을 잃었을 때는 침묵하거나 사과드리는 게 맞겠지요. 죄송합니다.' 였다. 성폭행 무혐의 사건 이후에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관점이 바뀐 듯 하다. 다만, 본인도 메갈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자혜 작가가 자신을 성찰하고 잘못됨을 인지하려 한다면, 그에 대한 기회는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6년 10월 19일, 한 트위터리안이 박진성 시인이 미성년자인 자신에게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고, 이후 [[2016년 문화계 성추문 폭로 사건|여러 트위터리안들이 박 시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며칠 뒤인 2016년 10월 21일에는 여러 언론사에서 [[트위터]]에서 나온 주장들을 바탕으로 박진성 시인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자 습작생들에게 수년 간 습적으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가했다는 기사를 내 파문이 일었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69&aid=0000168790|<한국일보> 문화계 왜 이러나…이번엔 시인 습 성추행 의혹]]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1021500163|<서울신문> ‘#문단_내_성폭력’ 박진성 시인 문학지망생 습 성추행 의혹]]
         이 주장을 처음으로 기사화한 것은 [[한국일보]] 소속의 황수현 기자이며, [[http://www.hankookilbo.com/v/0564032fc2164032b7c5c3af3f668c50|이 기사]]([[https://archive.is/uTwCo|@]])를 보면 [[메갈리아]] 성향의 [[페미니스트]]로 보인다. 위의 보도 이후로는 대표적인 [[기레기]]로 평가되고 있다. 박 시인은 2017년 2월에 한국일보와 황 기자를 대로 정정보도 및 손해배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2018년 4월 27일에 말하길 26일이 1심 6차 변론 기일이었는데, 한국일보 측이 정정보도를 할 것은 확실해졌고 손해배의 규모 정도만이 남은 기일 동안 정해질 것 같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9895731627474944|#]] 그리고 7월 18일에 1심에서 승소, 한국일보와 황수현 측이 정정보도와 함께 5천만원의 배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06&aid=0000092780|#]]
         2017년 11월에 시인의 아버지가 쓴 글에 따르면, 성폭행 혐의로 보도가 난 이후 집 앞에서 피켓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고, 지인들의 연락이 모두 끊겼으며, 출판사는 책을 내주지 않는 등 결론이 나기도 전에 보도만으로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것과 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어떤 지인은 '한국일보 같은 신문사에서 성폭행을 했다고 기사를 썼으니 사실 아니겠냐'며 면전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박진성 시인의 출판을 담당했던 출판사는 사건이 나자, 무죄여부 확인 과정없이 일주일 만에 출판 계약 해지에, 출판된 시집은 출고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관련된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출고 정지 처분을 풀지 않고 있는데, 계약 해지에 대해 물었더니 "아직 시인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요구받은 적이 없다. 언제든지 연락을 주신다면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59082|해당 기사 출처]][* 이 기사에선 출판사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박 시인 아버지의 글에선 [[문학과지성사]]라고 나온다.] 2018년 3월 21일에 [[https://blog.naver.com/poetone/221233628914|문제의 출판사와는 결국 계약을 해지]]했으나, 무슨 문제가 있는지 7월에 박 시인이 밝히기를, 문제의 시집은 아직도 출고정지 태라고 한다.[* 이 사실을 처음 밝힐 때 박 시인이 여러 시집의 계약을 이행하라는 언급도 한 것과 2016년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산문집의 글은 2018년 3월 계약해지를 알린 후에 산문집 '이후의 삶'에 포함되어 출간된 걸 보면, 기존의 시집과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시집과 관련된 계약을 해지하는데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민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1115546|#]]
         3월 26일에 2016년 10월 당시 출판할 예정이었으나 취소한 글과 2016년 10월 이후에 대해 쓴 글을 엮은 [[https://www.tumblbug.com/poetone78|산문집 '이후의 삶'을 출간하기 위한 펀딩]]을 시작했는데, 4월 1일에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0338430587449344|후원금이 목표치를 초과]][* 게다가 트페미들의 조롱과 달리, 후원자들의 성비는 '''여성이 60%를 조금 넘는다고 한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487622431653888|#]] 즉 후원자들은 박진성 시인을 헐뜯는 세력과 달리 성별이라는 진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남녀 모두가 후원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했다. 4월 15일,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496403689406464|출간비를 제외한 남은 후원금은 성범죄 피해 여성들의 소송을 돕는 작업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펀딩은 5월 4일까지 진행되었고 책은 24일에 나왔다. 그리고 일반 서점에선 31일부터 판매 중이다.
         그러나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가리지 않고 많다. [[아몰랑|조리돌림해놓고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건]] 양반이고, 아직도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804441760350208|#1]][[https://archive.is/LXMJh|@1]][* 첫번째 예시에 나온 사람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리을과 시옷이라는 닉네임을 쓴 적 있고 김여선 또는 이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주점 레스토랑 Cooper Room(카퍼룸)([[https://twitter.com/Copper_Room_|#트위터 계정]][[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id=37996846|#네이버 플레이스 정보]])에서 일하는 요리사이자 시인 지망생[[https://twitter.com/satoy_0045/status/928626634474663936|#]][[https://archive.is/Nhple|@]]인데, 이 사건에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6453624502284288|박 시인에게 무고죄로 고소당한 2명 중 한 명]]([[https://archive.is/yofTZ|@]])이다. 무고죄로 기소유예를 받은 뒤에 트위터 계정을 완전히 삭제했다가 파란이 사그라들자 다시 계정을 복구하였다. 여러 문학 작품들만 인용하는 식으로 한동안 이 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가 [[탁수정]]과 박 시인 간의 설전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2월에 갑자기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었는데, 김여선의 전과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반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이었는데다 도리어 대중들이 자신의 죄를 역으로 캐묻기 시작하자 수세에 몰린 것을 직감했는지 다시 트윗들을 삭제했고, 사태가 다시 잠잠해지자 자신을 비판했던 이들을 고소할 것을 선언했다. 3월에 또 박 시인을 공격했지만 예전에 비해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며칠 후부터는 다른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듯했는데, 4월 16일에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887446482042883|'이후의 삶' 펀딩을 망치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해서 거금을 후원하겠다고 했다가 취소하려는 수작이 들켰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http://web.archive.org/web/20171127054338/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23667324225306624|@2]][* 유진목이라는 1인 제작사 목년사를 운하고 있는 작가다.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71395|#]]] 심지어 이 중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4776705218068482|송승언]]([[https://archive.is/HxWyl|@]])이라는 사람은 [[http://moonji.com/bookauth/9173/|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인데 2017년 5월 17일 이후로 주로 트위터에서 박진성 시인을 성폭력 가해자로만 단정짓고 이야기했으며, 무혐의 처분 후에도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https://twitter.com/search?f=tweets&vertical=default&q=blanknoose%20박진성&src=typd|#]][[https://archive.is/286Iy|@]] 이후 박진성 시인의 무고가 확실해지면서 자신에게도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한동안 [[https://twitter.com/blanknoose|트위터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였다가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공개로 전환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웃긴 것은 2017년 5월 24일부터 자신의 전 연인이자 후배 문학도에게 '문단창녀'라 성희롱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박진성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송승언은 이에 대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비판하거나 박진성 편을 드는 자들은 무시당해도 싸다는 정신승리로 침묵하고 있으며 박진성 시인을 모욕했다는 증거를 삭제하고 있다(증거 자체는 예전부터 삭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67579611017658372|#1]][[https://archive.is/z5QTN|@1]][[https://twitter.com/blanknoose/status/936928452875186180|#2]][[https://archive.is/IMg8R|@2]][[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899014088801386496|#3]][[https://archive.is/IdmMq|@3]]]
         참고로 [[탁수정]]은 박진성 시인 외 다른 시인들도 성범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고임이 증명된 시인들은 그녀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 중 일부에서 그녀는 [[https://twitter.com/Bookistak/status/965482632808026112|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6년에 박진성 시인을 성범죄자로 거짓 고발한 2명 중에 탁수정이 있는 걸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당시 거짓 폭로자들을 탁수정이 지지하면서 자신도 성희롱을 당했다는 식으로 말한 건 맞기 때문에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탁수정의 위치는 1차 가해자가 아니라 1.5차 가해자쯤 된다.] 이 때 그녀는 '좋은 소식'이라고 웃었는데 이 반응은 비판을 받고 있다. 박진성 시인은 이에 대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는데,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탁수정 본인이 예전에 적어놓고서는, 본인의 "무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 애초에 죄가 없었음' 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https://blog.naver.com/poetone/221212096465|참고]] 또한 박진성의 이 지적은, 탁수정의 의견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그 내용대로 박진성 시인을 그대로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해당한다. [[페미니즘은 지능의 문제|이들은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의 논리로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는데, 똑같이 무혐의 처분(증거불충분)을 받은 탁수정에게는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성별에 따른 이중잣대와 [[진논리]]로 가득 찬 사고로 인해 객관성과 합리성을 실'''한, [[아전인수]]와 [[내로남불]] 그 자체인 황.
          그 와중에도 페미니스트들과 박진성 시인을 앞장서서 비난했던 사람들은 '자살하면 죄가 없어지냐' 같은 소리를 하거나 '박진성이 자살하기 전에 여성 습작생들에게 집적거렸다', '과거에도 자살을 빌미로 여자들을 꼬시고 동정심을 유발했다(본인의 고백 내용)' 같은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2017년 12월 7일 기준으로, 트위터를 이용해 마녀사냥한 주요 오프라인 가해자들은 비판을 받아 재판에 불리해질 것 같아 비공개로 돌리거나 계정을 폭파시키기까지 했지만, 가해자들의 편을 드는 SNS에서의 옹호자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9276420290576384|#]][[http://archive.is/meecs|@]][* 이 사례는 Holden 🔻Weatherfield라는 닉네임과 psychokinesis23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페미니즘]] 계정이다. 성향은 [[메갈리아]] 옹호자이자 가해자 [[이준행]]에게 [[재기#s-6|재기]]라는 [[남성혐오]] [[고인드립]]을 들은 피해자 [[전우용]]이 [[전우용#s-4.3|고소하다 용서한 사건]]의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https://twitter.com/psychokinesis23/status/772794350883315713|#옹호증거1]][[http://archive.is/gGvKe|@1]][[https://twitter.com/histopian/status/772787036306546688|#옹호증거2]][[http://archive.is/QG3O0|@2]]). 특히 박진성의 자살시도가 성공해야 기네스북에 올라갈 거라는 조롱을 일삼은 점을 자신의 취향으로 추정되는 아이디와 연관지어 해석해보면, ''''염동력이라는 초능력이 있다면 저 시인을 자살로 몰고갈 수 있을 텐데''''라는 입장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진논리]]에 휩싸인 나머지 [[사이코패스|자기 진 일원의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소시오패스|공감을 잃은]] 최악의 사례라 할 수 있다.])은 아예 사건에 입을 다물거나 익명의 계정에 숨거나 검색을 막기 위한 부계정과 스팸계정을 아직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https://twitter.com/No_JS_OK|해당 트위터 링크]] 이들은 어쨌든 관계를 맺고, 인정한 사실을 발설하더라도 [[지랄 옆차기 하네|해당 황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따른 보호 조치라고 설명한다.]]
          * 2018년 2월 7일 [[JTBC 뉴스룸]]에서 [[탁수정]]을 인터뷰하며 [[미투 운동]]을 보도한 것([[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37&aid=0000174513|#]])을 보고 격분,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1266038443659264|그동안 거절해 왔던 무고 관련 인터뷰에 자진해서 나서겠다]]고 밝히고는 그녀를 비난했다. 그리고 탁수정이 이에 대해 반박한 것을 시작으로, 둘 사이에서 4월까지 설전이 진행되었다.[[http://kingshandle.tistory.com/488|2월 9일 시점에서 정리된 글]][* 이 글은 설전 초반의 황이 정리된 글로, 그 이후 황까지 정리된 글은 없다.] 실제로 박 시인은 2월 28일에 '''[[MBN]]과 이와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http://naver.me/FdNCVQm4|#]]
          2월 19~20일에 그는 이 황을 보면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트위터리안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고[* 대다수는 그를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린 거였지만, 비난하는 게 아닌 경우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그에게 트위터를 잠깐 쉬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멘션을 보낸 트위터리안도 있다. 당시 위에서 설명한 무혐의 처분 결정을 탁수정이 공개하고 박진성 시인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한 탓에, 트위터 내에서 이 설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 마녀사냥을 그만하라는 의미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5692582637453312|자신의 손목에 남아 있는 흉터를 공개]]하기까지 했다.[* 박진성 시인이 카톡 대화 전문 공개 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탁수정]]이 이에 대해 자살 시도까지 비꼬는 투로 그러면 병원 수증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공격하자 2월 28일엔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했다(저 공격을 하기 전에 탁수정과 탁수정을 지지하는 측이 그의 자살 시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공개하라고 해서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에 대해 더 이 공격하지 말라는 의미로 굳이 공개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최후의 카드였던 셈.). 이후 그녀는 자신은 떳떳하니까 전문 공개하려면 하라고는 했으나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 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2018년 4월 11일에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3915291196342273|다시 자해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중으로 [[리스트컷 증후군]]도 의심해볼 수 있는 황. 이 일 때문에 입원하게 된다면 자신이 진행 중인 싸움이 전부 중지되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지만, 며칠 뒤에 [[당뇨병]] 악화라는 다른 이유로 한동안 입원했었다.[* 탁수정이 또 수증을 요구할까봐 미리 공개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796927143927808|#]]]
          참고로 박 시인은 자신을 공격한 이들과 7월 현재까지 소송 중인데, 무고 피해자들을 지원하겠다는 것과 관련해 웃긴대학의 일부 회원에게 강하게 비난을 받자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건지 17일 오전에 페이스북에다 자살을 암시하는 글과 동을 올렸다. 다행히 지인이 이 게시물을 보고 신고해, 신고를 받은 경찰에 의해 병원에 가 안정제를 맞았다고 한다. 자세한 건 [[웃긴대학/사건 및 사고#s-6|한국 래디컬 페미니즘 동조자들의 박진성 시인 자살 유도 사건]] 참조.
          * 7월 19일에 자신이 그 최초 폭로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https://twitter.com/ugeWQfbFleFEVyh|'그 발언은 관심을 끌기 위해 장난삼아 한 거짓이며 죄송하다']]([[http://archive.is/hcuSe|@]])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는데, 탁수정은 최초 폭로자에게서 이 트윗이 자신이 쓴 게 아니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한 뒤 해당 트위터 계정과 박 시인을 옹호하는 어떤 계정에 등록된 전화번호 끝자리가 박 시인의 트위터 계정에 등록된 전화번호 끝자리 04와 같다는 점을 들어 두 계정이 박 시인의 다중계정일 가능성을 제기했다.[[https://twitter.com/Bookistak/status/1020219141146341377|#]] 22일에 이 의혹에 대해 [[트페미]]들이 이야기하는 걸 본 박 시인은 한 트페미에게 최초 폭로자가 04로 끝나는 휴대폰 번호까지 개통해 조작을 하는 걸 거라고 말했는데, 그 트페미는 그가 여러 계정을 운한다는 내용이 있는 트위터 신고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1020861907266228226|#]] 그러자 박 시인은 여러 계정을 운했다는 이유로 제재당한 적 없다고 말했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1020873415547224064|#]]
          * 2018년 2월에 2016년 10월 이후로 트위터 내에서 본인에 대해 조롱한 트윗을 모은 책 '혐오의 시대'(가제)라는 책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장 치욕스러운 건 활자로 책으로 남겨서 후대로 만방으로 기록해두는 것. 그러니까 네가 사라지고 없어져도 너의 더러운 말들은 원히 살도록 그렇게 원을 살아서 누군가 너를 기억할 때 너의 더러운 말들이 너의 얼굴이 되도록 해주는 것. 그게 진짜 치욕인 것."이라고도 말했다. 3월 28일엔 트위터의 조리돌림에 대해 분석한 책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는데 이 책을 말하는 듯.
         이미 무고 사건으로 뜻하지 않게 큰 홍역을 치렀으며 아직도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완전히 소강되지 않은 이 시기에 미투 운동의 취지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것은 대단한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그만큼 시인의 행보는 인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박수를 받고 있다.
         페이스북과 블로그, 자신이 활동 중인 [[웃긴대학]]에 [[고은(시인)|고En]] 시인의 성폭력에 대해 증언하며 [[최미]] 시인을 응원했다.
         >2008년 4월의 일입니다. C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고En 시인 초청 강연회에 갔었습니다. 200명 넘는 방청객들 사이에서 고En 시인은 정말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자신의 문학적 여정을 회고하고 나아가 한국문학의 위에 대해서 말하는 고En 시인은 저의 앞으로의 ‘미래’였습니다. 뒷자리에 앉았던 저는 한 마디라도 놓칠까 싶어 고개를 최대한 앞으로 숙여 시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대학생, 대학원생들, 여러 학과의 교수들, 그리고 인근 주민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 행사는 ‘공개 개방 강좌’였습니다. 시인이라는 존재가 골방에만 쳐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구나,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 부산광역시/인물 . . . . 55회 일치
         * [[김강우(1964)|김강우]] - 수
         * [[김강우(1978)|김강우]] - 수
         * [[김란(배우)|김란]] - 부산진구
         * [[김길태]] - 사
         * [[김민경(배우)|김민경]] - 도구 동삼동 (해양로) 해양특구주유소
         * [[권성주]] - 수
         * [[김진우(배우)|김진우]] - 도구
         * [[강다니엘]] - 도구
         * [[김우(스윗소로우)|김우]] - 해운대구
         * [[김재(프로게이머)|김재]] - 해운대구
         * [[마해]] - 남구(부산)
         * [[박수(정치인)|박수]] - 수
         * [[사이먼 도미닉]] - 금정구
         * [[세(크로스진)|세]] - 금정구
         * [[샤오(업텐션)|샤오]] - 사
         * [[심이]] - 사
         * [[임민]] - 강서구(부산)
         * [[우(2PM)|우]] - 동구(부산)
         * [[우지(세븐틴)|우지]] - 수
         * [[이대호]] - 수
  • 김지석(배우) . . . . 54회 일치
          * 위 문서 : [[배우/한국]]
         ||<#595959><:> {{{#FFFFFF '''출생'''}}} ||<(> [[1981년]] [[4월 21일]] ([age(1981-04-21)]세), [[경북도]] [[김천시]] 백옥동 (남대로) ||
         [[국]]에서 중고등학교(브래드필드 컬리지)를 다니다가 [[한국외대]]로 진학한 이력이 있으며 원래는 2001년 5인조 댄스그룹 리오로 데뷔했다가 리오가 묻히면서[* 참고로 이 그룹의 소속사가 여성 4인조 아이돌 그룹 [[슈가]]를 배출했고, 소녀시대 [[써니]]의 아버지가 운했던 스타월드였다.] 가수의 길은 접고 연기자로 전업해 2004년 MBC 시트콤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로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연예계 생활에 회의, 혹은 불안을 느낀 것인지 학교생활을 하면서 이중전공으로 [[독어]]/[[어]] 교사 자격을 얻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연예인 포기하고 정말 학교 선생님으로 전직할 생각이었던 모양.
         예능에서 어 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음에도 소녀시대 티파니에게 어 발음을 지적받았다는 이 여초 사이트에 돌았으나, 사실 여자친구 집안에 인사드리러 가는 컨셉의 김지석이 사위에 적합한지 외가 역할 패널들이 하나하나 트집잡는 과정의 꽁트였다. 티파니 뿐만 아니라 정형돈이 김지석보고 배를 내밀며 내가 너보다 더 몸매 좋다(...)고 놀리는데 당연히 진심이 아닌 예능 컨셉. 김지석 본인도 연출이었다고 밝혔다. 애초에 미국인이 어를 못알아들을 리 없다(...).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star&no=283285|해명글]]
         KBS 일일극 [[미우나 고우나]]의 남자 주인공 강백호 역과 [[추노(드라마)|추노]]의 [[왕손이]]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2010년~2012년 사이에 군복무를 마쳤다.
         팬들과 차려입고 데이트 컨셉으로 술을 마신다거나, 팬레터에 전화번호를 적어놓으면 맘이 내키면 한번씩 걸어본다고 한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당시 밝히기를 연예인을 가의 연애대으로 생각하는 팬들의 판타지를 채워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했듯이 형이 한 명 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김지석이 출연하는 [[문제적 남자]]에 나와서 밝혔고 그 출연료는 전부 기부했다고 한다. 옥스퍼드에 입학하기 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도 지원을 했었고 실제 입학시험에서는 1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합격을 했는데 당시에는 그걸 이해 못해서 케임브리지에 당히 서운한 감정이 있었는데 옥스퍼드에 입학해서 공부를 해보고 왜 거기서 떨어졌는지 깨달핬다고 한다.[* 그냥 수학 테크닉만 좋은 학생의 한계를 느꼈다는듯이 이야기를 했다.]
         국에서 유학하던 고교시절, 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자]]와 수한 적이 있다고 한다. 2주마다 [[국]]에서 열리는 지역 대회에서 항 옆레인에 윌리엄 왕자가 있던터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게 되었고, [[허구연의 저녁식사|식사도 했었다]]고 한다.
         ||<tablebordercolor=#009e25><rowbgcolor=#595959> {{{#white '''방 연도'''}}} || {{{#white '''방송사'''}}} || {{{#white '''제목'''}}} || {{{#white '''배역'''}}} || {{{#white '''비고'''}}} ||
         ||<|2> 2004년 ||<|2> MBC ||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 || 조미령의 남동생 || ||
         || 2011년 || 국군방송 || 행군 시즌 1 || 강대산 병 || ||
         ||<|2> 2013년 ||<|2> SBS || [[원더풀 마마]] || 고수 || ||
         ||<|2> 2016년 ||<|2> tvN || '''[[또 오해]]''' || '''이진''' || ||
         || [[혼술남녀]] || 이진 || ||
         === 화 ===
         || 당신이 잠든 사이에 || 엘리베이터남 || 특별출연 ||
         || 2009년 || [[국가대표(화)|국가대표]] || 강칠구 || ||
         || 2013년 || [[파파로티]] || 진손님 || 특별출연 ||
         == 수 내역 ==
         ||<tablebordercolor=#009e25><rowbgcolor=#595959> {{{#white '''수 연도'''}}} || {{{#white '''시식'''}}} || {{{#white '''부문'''}}} || {{{#white '''작품'''}}} ||
  • 원피스/840화 . . . . 54회 일치
          * 제르마는 클론 기술로 병사들을 양산해 품으로 팔고 있다.
          * 디는 제르마의 현실을 알고 구역질이 난다고 하는데 그때 이치디와 니디가 나타난다.
          * 디는 코제트의 일로 니디에게 덤벼드는데 니디와 이치디는 인질(제프)을 운운해서 그를 제압한다.
          * 디와 형제들은 혈통인자로 조작되어 태어난 초인들.--어쩐지 눈썹이 이하더라.-- 그러나 디만은 뭔가 잘못돼서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 저지는 디도 "제르마 부활계획"의 일부라며 형제들 이으로 노력해 결과를 보이라고 강요한다.
          * 그러나 디가 아무리 노력해도 차이는 줄어들지 않는다.
          * 레이쥬는 다른 형제와는 달리 디를 불쌍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같이 괴롭힘 당할 까봐 동참하는 시늉만 한다.
          * 저지는 디를 실패작으로 간주, 죽었다고 공표해서 사회적으로 지워버린다.
          * 디는 철가면이 씌워진 채 감금된다.
          * 디는 믿기지 않는다는 보고 있지만 욘디는 자랑스레 "각국이 두려워하는 제르마 66, 그 병사들"이라 소개한다.
          * 디는 이들이 왜 배양액에 담겨져 있는지, 왜 같은 모습인 건지, 그리고 살아있긴한 건지 묻는다.
          * 빈스모크 저지는 디 형제들이 태어나기 전엔 뛰어난 과학자였다.
          * 디는 이러한 진실을 듣고 "구역질이 난다"고 악평한 후 맥이 풀린 듯이 주저앉는다.
          * 디는 그런 말엔 신경도 쓰지 않고 코제트의 일로 분노하며 니디에게 달려든다.
          * 디는 니디가 한 짓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해주겠다며 달려드는데 이치디가 "이스트 블루에 인질(제프)가 있다는걸 이지 마라"고 참견한다.
          * 그리고 순식간에 디의 등뒤에서 나타나 목을 휘감는다.
          * 그리고 무방비한 디에게 "헨리 니들"이란 기술을 꽂아넣는다.
          * 전격이 추가된 무릎차기. 쓰러지는 디에게 전격을 감은 주먹도 날린다.
          * 니디는 "그런줄 알았으면 얼굴은 봐줬을 것"이라 조롱하고 이치디는 "중이라도 괜찮다면 네 시종으로 주겠다"고 거든다.
          * 이치디는 다시 한 번 제르마에 돌아온걸 환하며 "다시 우리 위치를 확인해야지"라고 말한다.
  • 원피스/852화 . . . . 54회 일치
          * [[빈스모크 레이쥬]]는 의무실에서 정신을 차리나 기억이 혼란한 태. [[디]]가 경비를 때려잡고 침입해 레이쥬를 확보하고 사정을 설명한다.
          * 루피는 공복인 데다 부이 낫지 않아 태가 좋지 않지만 서둘러 디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 이야기를 들은 레이쥬는 처음부터 [[샬롯 푸딩]]을 의심하고 미행했으나 설마 그런 인물일 줄은 예하지 못했다.
          * 레이쥬는 디에게 출생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데 그들의 어머니는 [[빈스모크 저지]]의 계획에 반대했고 아이들이 감정없는 병기로 태어나길 원치 않았다.
          * 어머니는 죽음을 각오하고 혈통인자를 억제하는 극약을 마시는데 다른 형제들에겐 향이 없었지만 디만은 감정을 가진 아이로 태어났다.
          * 어머니가 일찍 죽은건 그 약 탓인데 저지는 모두 디 탓이라고 뒤집어 씌웠다.
          * 레이쥬는 어머니가 바랬던 "감정"을 가진 아이인 디가 "실패작"일리 없다며 살인자 집단인 제르마를 버리고 도망치라고 말한다.
          * 사실 디에게 채워진 수갑은 레이쥬가 바꿔치기 한 것. 폭발하지 않는다.
          * 디는 함께 도망치자고하지만, 레이쥬는 자신에게 감정은 있을 지언정 아버지에게 거역할 수 없는 "공범자"라며 함께 멸망당해 마땅하다고 말한다.
          * 디가 주저하자 레이쥬는 밀집모자일행을 들며 "저렇게 멋진 녀석들은 이제 평생 다신 못 만날 거야"라고 다그친다.
          * 홀 케이크 성의 의료실에서는 의사가 [[빈스모크 레이쥬]]를 치료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개조인간이라 괴물같은 자연치유력으로 벌써 처가 아물고 있다. 의사는 안정을 취하면 내일 "다과회"에도 참석할 수 있겠다며 안심한다. 의사는 이 방은 경비에도 맡기고 자신은 4층의 또다른 의료실로 발길을 옮긴다. 경비가 혼자 남자 바깥에선 수한 그림자가 접근하는데. 얼마 후 레이쥬가 병에서 눈을 뜬다.
          그녀가 눈을 뜨자마자 발견한 것은 [[디]]. 침대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레이쥬는 성 안에서 "침입자" 때문에 난폭해진 경비를 만난 데까지는 기억이 있지만 다리의 부에 대해선 기억을 못한다. 막연히 "난동에 휘말렸다"고 생각하는데.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디가 기억은 위조된 거라며 그녀에게 일어난 "진짜 사건"을 밝힌다.
          간신히 화을 면하고 풀려난 루피와 나미. 나미는 "전에도 이런 적이 있던 것 같다"고 투덜거리고 루피는 팔을 안 끊고 끝났다고 껄껄 웃는다. 징베는 자신들이 처음 만난 것도 [[임펠다운|감옥]]이었다며 잠시 회한다. 그리고 책에서 나온 죄수들의 수를 보라며 이만큼 빅맘 [[샬롯 링링]]에겐 우수한 부하가 많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미는 징베가 이 섬에 있는 까닭을 묻는데,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태양 해적단이 빅맘 산하에 들어갔으며 지금 자신의 행동은 "모반"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성 내에는 죄수도서실의 파란이 전파되며 병력들이 몰려온다. 루피는 전투의 처가 회복되지 않은데다 공복까지 겹쳐 시들시들한데 [[샬롯 푸딩]]이 디를 속이고 있는 걸 전해줘야 한다며 억지로 일어나 죄수도서실을 박차고 나선다. 징베와 나미는 성내엔 강자가 쫙 깔렸다고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 의료실에선 디가 레이쥬에게 모든 걸 전한다. 레이쥬는 디의 말을 순순히 믿는다. 본래 그녀도 푸딩이 너무 착해서 수했기 때문에 조사를 한 것이고, 그러다 당한 것이다. 그렇지만 설마 그정도일 줄은 예하지 못한 것 같다. 디는 빅맘이 결혼하지 않고 제르마를 몰살시킬 작정이라면 처음부터 자신이 희생해 밀집모자 일행을 살리는건 택도 없는 일이었다고 자책한다. 그런데 레이쥬는 태연한 태도로 말한다.
          그녀는 이대로 모든 사실을 함구하면 빅맘이 그걸 저절로 이뤄줄 거라고 말한다. 디는 "너도 죽는데 무슨 소리냐"고 소리치는데 레이쥬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다.
          레이쥬는 디는 그냥 밀집모자 일행과 도망치라고 말한다. 디는 "발라티에" 의 제프는 어떻게 하냐고 반박하는데 어차피 여기에 있으면 다 죽을 뿐이니 그건 도망치면서 생각하라고 대답한다.
          * 레이쥬는 문득 어떤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의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와 어머니 [[빈스모크 소라]]가 크게 싸웠던 기억. 그녀가 아주 어릴 적, 아직 디와 형제들이 태어나지 않았던 시절. 어머니는 출산을 앞두고 아이들을 무감정한 전쟁기계로 만들려는 저지의 계획에 반발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분노였지만 복수와 제르마의 재건에 눈이 먼 저지에겐 들리지 않는 얘기였다. 결국 강화시술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실행됐다. 하지만 어머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혈통인자를 억제하는 극약을 마신 것이다.
          디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병은 바로 그것의 향. 어머니는 목숨을 바쳐 아들들을 구하려고 했지만 결국 디의 형제들은 저지가 바라는 감정없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디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바람이 단 한 명에겐 이루어진 것이다.
          * 디가 인간으로서 자라나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날로 쇠약해졌다. 디는 자신이 봤던 어머니의 투병이, 결국 자신 때문이었던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레이쥬는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며 어머니는 디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고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저지는 이런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죽음도 디의 탓이라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 이재학 . . . . 54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북구(대구) 출신 인물]][[분류:1990년 출생]][[분류:우완 투수]][[분류:우투우타]][[분류:사이드암 투수]]
         [include(틀:위 문서2, top1=NC 다이노스/선수단, top2=야구 관련 인물(KBO))]
         ||||<#000000><:> {{{#ffffff 수 기록(KBO 리그)}}} ||
         ||||||||||||<:> '''2013년 [[KBO 리그 신인왕 역대 수자|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
         [[NC 다이노스]]의 야구 선수이자 우완 사이드암[* 팔 높이는 스리쿼터까지 올라가지만, 공의 궤적이나 그립 등을 보았을 때 사이드암으로 분류한다. [[임창용]]이 오버핸드 투수가 아닌 것처럼. 본인 또한 사이드암 투수로 인식하고 있다.] [[투수]].[* 컨디션이나 성적이 좋을때는 쓰리쿼터까지 올라가지만 오히려 컨디션이 좋지 않을땐 사이드암까지 내려간다.]
         두산 시절에도 순박한 얼굴과 특유의 빨간 볼[* [[http://youtu.be/8iTg4pqyDDQ|XTM 담벼락토크]]에서 투구수가 많이 늘어날수록 얼굴이 빨개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온 이 2013년 시즌 8월 7일 LG전에서 9실점했을 때(...)]로 신인 중 귀요미 소리를 들었다. 빨간 볼과 여드름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의 별명은 '능금', '[[딸기]]'. NC 이적 후부터는 아예 딸기가 공식 별명이 되었고, 활약하는 날이면 Strong+Strawberry='''STRONGBERRY'''가 된다. 이 문구는 이재학의 개인 첫 완봉승 기념 티셔츠에 적혀있다. 한때 [[마산 야구장]]에 있는 다이노스 카페에서는 아예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88568|딸기주스 '''이재학''']]을 판매했을 정도.[* 2017년 현재는 그 자리엔 '더리터'로 입주 업체가 바뀌었다. 이재학을 팔지 않는 대신 [[박민우(야구선수)|민우에게 바나나]]를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2340520109998&id=241899065820824|팔고 있다.]]]
         사이드암 투수로서 140km의 패스트볼과 수준급의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구사하며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드래프트를 앞둔 2009년에는 53.1이닝 동안 67개의 탈삼진을 잡아냈고, 볼넷 허용은 단 11개에 불과했다. K/9는 무려 11.38이었으며 ERA는 1.53에 불과했다. 빼어난 성적을 기록한 이재학은 [[한국프로야구/2010년/신인드래프트|201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0순위라는 빠른 순번에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았다. 그리고 계약금 1억에 입단 도장을 찍었다.
         기대를 받고 입단을 했지만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과 팔꿈치 부까지 겹치면서 [[2012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앞두로 40인 보호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이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NC 다이노스]]의 지명을 받으며 팀을 옮기게 되었다.
         2012년 퓨처스리그 4월 경기에 3번 등판해 모두 승리를 거두고,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선배이기도 한 [[김엽]] 투수코치에게[[http://osen.mt.co.kr/article/G1109390480|커터를 전수받는 등]] 인적인 활약을 펼쳤다. 2012년 2군에서 15승 2패로 남부리그 다승왕을 수했고, 방어율 1.55, 탈삼진 100개로 남북부 통틀어서 퓨처스 리그를 씹어먹었다. 팀이 막 창단한 시기라서 투수 뎁스가 얇고 보직이 확실하지 않던 황이기에 1군에서도 같은 활약을 펼쳐준다면 선발진에 충분히 들어갈 거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이재학/2013년)]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이재학/2014년)]
         시즌 초에 부진에 부진을 거듭했다. 선발로 출전해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불펜으로 바뀌었고, 불펜에서도 [[ 좋지 않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망하고 있다. 2013년에도 잠깐 불펜으로 돌았다가 방어율 9점대를 찍은 걸 보면 불펜은 체질 안 맞는 듯.
         결국 10경기(선발 6경기) 31⅔이닝 1승 2패 1홀드 3.69를 기록하고 5월 27일 [[고양 다이노스|2군]]으로 내려갔다. 얼핏 보면 스탯이 좋아 보이지만 BABIP가 .226으로 당히 좋은 편임에도 FIP(수비무관평균자책점)은 이전 시즌보다 1.0이나 올라갔다. 쉽게 말하면 수비 등 외부요소를 제외한 순수 기량 자체가 멸망한 수준이라는 것. WAR이 0.08이다.
         8월 4일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해 1회부터 7점을 뽑아낸 타선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중간중간 뜬금없는 볼질을 제외하고는~~ 나름 무난하게 대 타선을 막아내며 6이닝 1실점(6피안타 1피홈런 2사사구) QS를 기록, 시즌 5승째를 따냈다.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이재학/2016년)]
         '''대 선발 전원 탈삼진 달성'''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무혐의일 가능성이 생겨서 8월 13일 1군에 합류했으나 10월 7일 경찰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과 동시에 구단에서 축소은폐한 정황을 포착(검찰이 직접 밝힌 사실이 아니라, 기사에서 소개한 '정통한 소식통' 이 검찰이 이재학 승부조작을 포착했다고 한다. 조금 더 기다려보도록 하자), NC 다이노스 프런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장이 발부되어 압수수색이 실시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508577|#]].
         만약 승부조작에 가담한 게 사실이면 제2의 [[박현준]]이 될지도 모를 황. 여기에 더해 예술·체육요원인 이재학이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받은 병역 특례는 34개월간 선수나 지도자 활동을 해야 유효한 황인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부터 24개월 지난 2016년 10월 시점에서 자칫 잘못하면 병역특례가 박탈되어 도로 군 복무를 해야 할 수도 있다.
         11월 7일 승부조작 수사 발표에서 이재학의 승부조작건은 무혐의로 발표가 났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는데, 바로 2011년 [[두산 베어스]] 시절에 불법스포츠 베팅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민체육진흥법에 규정된 도박 처별 규정이 신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반 형법 단순도박죄 혐의가 적용되었고, 이 법에 대한 공소시효 5년이 지나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일단 불법 스포츠도박은 KBO 조항 제명까지 가능한 황. 정확히는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은 [[진야곱]]에게 160만원을 건네 대리 베팅을 한 것. 진야곱은 이미 베팅 사실을 시인한 황이나 이재학은 단순히 돈을 빌려준 것 일뿐 도박에 쓰일 줄은 몰랐다며 이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승부조작 건은 대신 같은 팀 동료였던 [[이성민(야구선수)|사람]]이 연루되었다. 또한 [[NC 다이노스]] 프런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장 발부는 이재학이 아닌 이성민 승부조작 혐의 은폐 시도건으로 수사를 한 것이 밝혀졌다.
  • 현아 . . . . 54회 일치
         |웹사이트 =
         '''현아'''({{본명|김현아}}, 金泫雅<ref>[http://tw.weibo.com/5729740541 현아 웨이보]</ref>, [[1992년]] [[6월 6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92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재학 중 [[JYP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이 되었고 약 4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 2007년 [[원더걸스]]의 싱글 〈[[The Wonder Begins]]〉로 데뷔했다. 그러나 같은 해 건강의 문제로 인해 탈퇴를 했다.<ref name="as"/>
         이후 2009년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포미닛]]의 멤버로 합류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0년 1월에는 첫 솔로 싱글 〈[[Change (현아)|Change]]〉를 발매했고, 골반춤이라는 안무를 유행시키며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했다. 이어 2011년 7월에는 첫 번째 EP 음반 《[[Bubble Pop!]]》을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차트에서 위권을 유지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장현승]]과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해 2014년까지 활동하였다. 2012년 10월 두 번째 EP 음반 《[[MELTING]]》을 발매해 타이틀곡 〈Ice Cream〉으로 활동했고, 2014년 7월 세 번째 EP 음반 《[[A Talk]]》를 발매해 타이틀곡 〈빨개요〉로 활동했다. 2015년 8월 네 번째 EP 음반 《[[A+]]》을 발매했다. 2016년 그룹 [[포미닛]] 해체 후 8월 1일 다섯 번째 EP 음반 《[[A`wesome]]》을 발매했다. 2017년 5월 [[펜타곤 (음악 그룹)|펜타곤]] 멤버 후이, 이던과 함께 [[트리플 H (음악 그룹)|트리플 H]]로 활동 하였다. 8월 29일 여섯 번째 EP 음반 《[[Following]]》을 발매했다. 12월 4일 두 번째 싱글 앨범 《[[Lip & Hip]]》을 발매했다.
         * [[건국대학교]] 화학과 (중퇴)
         [[현아]]는 1992년 6월 6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현아]]의 아빠는 예전에 연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현아]]에게 "아빠 대신 네가 해보는게 어떻겠냐"라는 말에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일곱 살때 엑스트라로 활동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웹 인용|저자=ARENA|제목=현아의 시간 - GUILTY PLEASURE|url=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636&contents_id=65194|출판사=네이버 매거진|날짜=2014-08-01|확인날짜=2015-06-16}}</ref> 초등학교 1, 2학년때 대학로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처음 봤고, 이를 계기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 [[현아]]는 춤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도 컸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댄스 학원을 다녔다.<ref name="rta" /> 같은 시기 TV로 [[싸이]]의 〈새〉 안무인 새춤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ref>{{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현아 싸이 언급 "초등학교 3학년 때 싸이의 '새춤'보고 꿈을 키웠다"|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531.990010724435354|출판사=남일보|날짜=2013-05-31|확인날짜=2014-04-24}}</ref> [[동명여자중학교]] 시절 [[현아]]는 춤을 자신의 진로로 정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면서 갈등을 빚었다.<ref name="rta">{{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강심장' 김현아, 머리에 X만 찼냐→춤으로 세을 바꾸겠다 '춤사랑 공개'|url=http://www.tvdaily.co.kr/read.php3?aid=128268894982923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날짜=2010-08-25|확인날짜=2010-11-21}}</ref>
         이후 [[현아]]는 [[JYP 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을 통해 [[원더걸스]]의 두 번째 멤버로 합류했고 그룹에서 랩퍼를 맡았다. 2007년 2월 [[원더걸스]]의 데뷔 싱글 〈[[The Wonder Begins]]〉를 발매했고, 타이틀 곡은 〈Irony〉였다. 파워풀한 랩과 춤으로 "야생마"라는 별명도 얻었다.<ref name="as">{{뉴스 인용|저자=남안우 기자|제목=‘원더걸스’ 김현아, 건강의 이유로 팀 탈퇴|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7301751501137&ext=na|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7-30|확인날짜=2008-12-31}}</ref> 2007년 5월 24일에는 [[안소희|소희]], [[브라이언]]과 함께 《[[쇼! 음악중심]]》 MC로 발탁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소희·현아 ‘쇼!음악중심’ 새MC|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05242109433&sec_id=540101&pt=nv|출판사=스포츠경향|저자=조인|날짜=2007-05-24|확인날짜=2014-06-29}}</ref> 하지만 MC에서 하차하고 나서 7월 [[원더걸스]]의 광고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탈퇴설이 돌았다. 이에 대해 소속사측은 "멤버 교체에 대해 논의한 것은 사실이다. 건강의 이유로 문제가 있다"며 요양이라고 말했다.<ref name="세계일보">{{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멤버교체 위기 -­ 현아 이탈하나|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7/31/20070731002528.html|출판사=세계일보|저자=이혜린|날짜=2007-07-31|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건강의 이유로 원더걸스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현아, 건강 이유로 팀 탈퇴|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73016565270766&type=1&outlink=1l|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7-30|확인날짜=2014-06-29}}</ref> 실제로 [[현아]]는 [[만성장염]]을 앓고 있었고 세 번이나 탈진으로 쓰러지는 등 부모님의 반발을 샀다.<ref name="세계일보"/>
         탈퇴한 후 2008년 5월 [[현아]]는 비보이 페스티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8 광고 홍보 모델로 등장해 컴백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JYP]]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JYP, 김[[현아]] [[원더걸스]] 복귀와 타이틀곡 '봉봉' 사실무근|url=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9378|출판사=씨앤비뉴스|저자=김성호 기자|날짜=2008-05-21|확인날짜=2010-11-25}}</ref> 2008년 3월, 현아는 [[한국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컴백 준비와 함께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김현아솔로데뷔, "병원치료하며 컴백위해 맹연습중" |url=http://www.artsnews.co.kr/news/9632|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8-12-02|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2월에는 의류브랜드 [[TBJ]] 화보를 통해 원더걸스 활동 이후 처음으로 연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멤버 김현아, 화보 통해 '깜짝 컴백'|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2452|출판사=오토 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09-02-13|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3월 30일에는 [[이기광|AJ]]의 데뷔 앨범 《[[FIRST EPISODE A NEW HERO]]》의 선공개곡 〈2009〉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타이틀곡 〈댄싱슈즈〉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걸 前 멤버 현아, AJ 신곡에서 ‘원더걸스’ 외친 이유 뭘까?|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331090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날짜=2009-03-31|확인날짜=2014-06-29}}</ref><ref>{{뉴스 인용|저자=이수인 기자|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김현아', AJ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활동재개|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문화저널21|날짜=2009-03-25|확인날짜=2010-11-25}}</ref> 한편, 2008년 12월부터 걸 그룹으로 컴백한다고 밝혔으나, 멤버 수와 그룹명 등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현아 화려한 컴백 … 2009년 새롭게 변신|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867597|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8-12-19|확인날짜=2014-06-29}}</ref> 나중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때까지 현아 그룹이라고 불렸다.<ref>{{뉴스 인용|제목=퍼신인 여자 빅뱅-현아 그룹 맞대결 기대만발|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2518550855843|출판사=뉴스 한국|날짜=2009-03-25|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2009년 5월 14일 5인조 걸 그룹 [[포미닛]]으로 컴백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 멤버 김현아, ‘포미닛’으로 컴백 초읽기|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921288145&cp=nv|출판사=쿠키뉴스|날짜=2009-05-14|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6월 15일 포미닛의 데뷔 싱글 〈[[Hot Issue]]〉가 발매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그룹 ‘포미닛’, 15일 데뷔곡 ‘핫이슈’ 선공개|저자=온라인 뉴스팀|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3665§ion=sc4|출판사=브레이크 뉴스|날짜=2009-06-09|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2009년 6월 《[[엠 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 무대를 치뤄 큰 호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18일 성공적 데뷔 무대...김현아 공연 후 눈물|저자=박미애 기자|url=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24&newsid=01508806589723032&DirCode=0010204|출판사=이데일리 SPN|날짜=2009-06-18|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날마다 말그대로 핫이슈였는데, 〈Hot Issue〉는 공개당일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핫이슈’ 데뷔 당일 음원차트 1위 기염 ‘핫이슈됐다'|저자=김형우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6160952181002|출판사=뉴스엔|날짜=2009-06-16|확인날짜=2010-11-25}}</ref> 데뷔 일주일만에 광고 2건을 체결하는 파워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데뷔 1주 만에 의류-통신 광고모델|저자=박재덕 기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24598|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9-06-25|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현아의 무대 의이였던 일명 '구멍난 스타킹'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방송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재연해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지금은 레깅스 전성시대"…타이즈가 창조한 섹시열풍|저자=송은주 기자|url=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tyle/2009/0624/20090624101051100000000_7135486611.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날짜=2009-06-24|확인날짜=2010-11-25}}</ref><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2년만에 '텔미' 완벽 재연 '팬들 열광' |저자=박정민 기자|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od=1&cid=1&nid=55619|출판사=SSTV|날짜=2009-07-03|확인날짜=2010-11-26}}</ref> 이후 포미닛의 첫 EP 앨범 《[[For Muzik]]》을 발매해 타이틀 곡 〈[[Muzik]]〉은 공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뮤직뱅크' 시작으로 'Muzik' 활동 본격 시동 |저자=박미라 기자|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89|출판사=리뷰스타|날짜=2009-09-04|확인날짜=2010-11-26}}</ref> 그리고 곧 인기에 힘입어 여러 쟁쟁한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지파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인기가요' 첫 뮤티즌 송 수…끝내 눈물 |저자=박건욱 기자|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716115557586|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7|확인날짜=2010-11-26}}</ref>
         〈Muzik〉 활동이 끝나자 현아의 솔로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2009년 10월부터 2010년 6월까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청춘불패]]》 1기 멤버로 활동 했으며,<ref>{{뉴스 인용|저자=김형우 기자|제목=‘청춘불패’ 걸그룹 “새로운 모습 보여주겠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1009004439&subctg1=05&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날짜=2009-10-10}}</ref> 청춘불패 출연으로 징징현아, 막내 PD 등 별명을 얻으며 한층 인기가 높아졌다. 청춘불패 외에도 많은 예능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또한 현아는 삼성의 프로젝트 그룹 [[4Tomorrow]]의 한 맴버로 참여해 디지털 싱글 〈두근두근 Tomorrow〉를 발표하기도 했었다.<ref>{{뉴스 인용|저자=박정환 기자|제목=가인-유이-김현아-한승연, ‘4Tomorrow’ 결성-싱글 발표|url= 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9274|출판사=굿데이스포츠|날짜=2009-10-11|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피처링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나비 (1986년)|나비]]의 디지털 싱글 〈눈물도 아까워〉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뉴스 인용|출판사=세계일보|저자=추준 기자|제목=나비의 '눈물도 아까워'에 포미닛 김현아가 피처링|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090813002102&subctg1=&subctg2|날짜=2009-08-13|확인날짜=2010-11-26}}</ref> 비슷한 시기, [[용감한 형제]]의 첫 정규 앨범 《[[The Classic]]》의 수록곡인 〈Bittersweet〉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뉴스엔|저자= 박준형 기자|제목=손담비-김현아, 용감한형제 가수데뷔 돕는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8041104501001 |날짜=2009-08-0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2010년 1월 디지털 싱글 형식의 첫 솔로 앨범 〈[[Change (현아의 노래)|Change]]〉를 발매했다.<ref name="cha">{{뉴스 인용|출판사=굿데이스포츠 연예|저자= 디지털뉴스팀 박정환 기자|제목=포미닛 ‘김현아’ 솔로 앨범 ‘CHANGE’ 음원 및 티저 공개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12375|날짜=2010-01-04|확인날짜=2010-11-26}}</ref> 〈Change〉에는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용준형]]이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 name="cha"/> 무대에서 주로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쳐 나이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뽐냈다.<ref name="cha"/> 또한 노래의 안무 중 일명 '골반춤'은 유행을 시켜 많은 UCC 동들이 올라왔고, 연예인들이 따라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메디컬투데이|저자= 남연희|제목=김현아 '골반춤' 올해 첫 유행춤 등극! "한번 따라해볼까?"|url=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113319|날짜=2010-01-1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의 솔로 활동이 끝나자 포미닛은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시작했고, 대만에서 발매한 앨범 《4Minute for Muzik》은 골드 인증을 받았다.<ref name="4mir">{{뉴스 인용|출판사=서울경제|저자= 이민지 인턴 기자|제목=비스트-포미닛 '인기 돌풍' 아시아 휩쓴다|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005/e2010052411061594220.htm|날짜=2010-05-24|확인날짜=2010-11-26}}</ref> 이 외에 홍콩,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는다.<ref name="4mir"/> 2010년 5월 19일 포미닛은 한국으로 돌아와 두 번째 EP 앨범 《[[Hit Your Heart]]》를 발매하고 컴백했고, 타이틀곡 〈HUH〉로 [[엠 카운트다운]] 차트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포미닛, 신곡 'HUH'로 가요프로 첫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6172301573980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0-06-17}}</ref> 이후 포미닛은 2010년 12월 15일 일본에서 첫 정규 앨범 ''[[DIAMOND]]''를 발매했고, 같은 해 11월,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수시모집에 연예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서우, 건대 예술학부 합격! 선배는 샤이니 민호-유아인|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3/2010110300885.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0-11-03}}</ref>
         2011년 4월 5일 [[포미닛]]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4Minutes Left]]》를 발매해 타이틀 곡 〈거울아 거울아〉로 활동했다.<ref name="아시아경제"/> 또한 비슷한 시기 [[임정희]]의 〈[[Golden Lady]]〉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임정희 ‘골든 레이디’ [[포미닛]] [[김현아]] 랩 피처링 지원사격 |확인날짜=2011-07-24|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5030905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박주|날짜=2011-05-03}}</ref> 2011년 6월부터는 [[MBC]]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지만,<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6월 솔로컴백 동시 '댄싱위드더스타' 출연|확인날짜=2011-06-04|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05220943330511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박웅|날짜=2011-05-22}}</ref>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다섯 번째 탈락자로 결정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댄싱 위드 더 스타’ 탈락..심사위원 “심사할 수 없는 지경”|확인날짜=2011-07-24|url=http://n.breaknews.com/sub_read.html?uid=178679§ion=sc4|출판사=브레이크뉴스|저자=한누리|날짜=2011-07-16}}</ref> 현아는 2011년 7월 5일 첫 번째 EP 음반 《[[Bubble Pop!]]》을 발매했다. 이에 앞서 2011년 6월 30일 발라드풍의 수록곡 〈[[A Bitter Day]]〉를 공개했다.<ref name="Pop!">{{뉴스 인용|제목=김현아, 30일 발라드 ‘A Bitter day’ 선공개…‘솔로 출격’ 신호탄|확인날짜=2011-06-29|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10629111326420&ts=130703|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곽민구|날짜=2011-06-29}}</ref> 이번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인 〈Bubble Pop!〉은 [[가온 디지털 차트]] 2위까지 올랐다.<ref name="가온">{{웹 인용|url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search/list.gaon?Search_str=Bubble+Pop%21&x=43&y=19|제목 =가온 차트 > Bubble Pop! |출판사 =[[가온 차트]]|확인날짜 =2011-07-19}}</ref> 그러나, 2011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Bubble Pop!"의 안무 중 일부가 청소년들에게 선정적으로 보인다며 안무를 수정할 것을 요정했지만, 소속사측은 안무를 수정하면 무대에 오르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활동중단 '또 선정성 논란, [[김현아]]가 추면 다 야해' |확인날짜=2011-08-05|url=http://artsnews.mk.co.kr/news/163166|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하얀|날짜=2011-08-05}}</ref> "Bubble Pop!"은 평론가들로부터 혼합된 평가를 받았는데, 《이즘》에서 "캔디 팝의 요소가 잘 녹아들었음에도 제대로 방점을 찍지 못해 솜사탕같은 트랙이 되었다"고 평가했다.<ref>황선업.[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3086&bigcateidx=8&subcateidx=10&cTp=4 이즘 - Bubble pop!] 《이즘》. 2011-07 작성. 2011-12-16 확인.</ref> 국의 《팝저스티스》는 "오늘의 노래"에 선정했고,<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英 팝사이트 '오늘의 노래' 선정… "가장 섹시" 찬사 |확인날짜=2011-07-22|url=http://sports.hankooki.com/lpage/music/201107/sp2011072010252095510.ht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성한|날짜=2011-07-20}}</ref> 미국의 《스핀 매거진》은 "2011년 올해의 베스트 노래 20" 순위 중 〈Bubble Pop!〉을 9위에 선정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버블팝', 美스핀 선정 '2011 베스트송20'|확인날짜=2011-12-16|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1121209445192085&type=1&outlink=1|출판사=스타뉴스|저자=박웅|날짜=2011-12-12}}</ref> 이후 2011년 8월부터 [[도끼 (가수)|도끼]]가 피처링한 노래 "[[Just Follow]]"로 후속곡 활동을 잠깐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김현아 just follow 무대 공개, 선정성 '제로' 카리스마 '폭발' |확인날짜=2011-08-13|url=http://artsnews.mk.co.kr/news/164401|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풀잎|날짜=2011-08-13}}</ref>
         2011년 12월에 [[현아]]는 같은 소속사의 가수이자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멤버 [[장현승]]과 함께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장현승-김현아 '트러블메이커' 컴백 예고|확인날짜=2011-11-26|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13323|출판사=리뷰스타|저자=김혜정|날짜=2011-11-25}}</ref> 트러블 메이커는 12월 1일 첫 미니 앨범 《[[Trouble Maker (EP)|Trouble Maker]]》를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 〈Trouble Maker〉로 활동을 시작했다. 〈Trouble Maker〉는 좋은 반응을 얻으며 [[K-Pop 빌보드 핫 100]] 최고 2위까지 올라갔고,<ref>{{웹 인용|제목=BILLBOARD K-POP HOT100 12월 3주차|출판사=[[빌보드]]|url=http://www.billboard.co.kr/v1/chart.php?t=3&query=&pubdate=2011-12-14|확인날짜=2011-12-12}}</ref> [[가온 디지털 차트]]에서는 1위를 했다.<ref>{{웹 인용|제목= 2011년 12월 다섯째주 디지털 종합차트|출판사=가온 차트|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total/list.gaon |확인날짜=2011-12-12}}</ref> 그러나, 〈Bubble Pop!〉과 똑같이 공연 중 안무 선정성 문제가 일어나 결국 안무를 수정했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11120913181888325&type=1&outlink=1</ref> 2012년 3월 현아는 [[스파이시칼라]]와 손을잡고 현아 위드 스파이시칼라라는 브랜드를 론칭했고, 50년대 낙관주의와 60년대 레트로 빈티지 무드에서 감을 얻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자신의 이름 내건 브랜드 론칭|확인날짜=2012-03-15|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203141127323&mode=sub_view|출판사=bntnews|저자=이형준|날짜=2012-03-14}}</ref> 2012년 여름에는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 강남스타일, 유재석 노홍철 김현아 ‘3인 3색 댄스 화제|url=http://www.interview365.com/news/27962|출판사=인터뷰365|저자=장민혜|날짜=2012-07-13|확인날짜=2012-08-07}}</ref> 2012년 8월 15일에는 〈강남스타일〉을 여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김현아, '오빤딱내스타일' 뮤비공개..섹시·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8151206052595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길혜성|날짜=2012-08-15|확인날짜=2012-08-05}}</ref>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조회수 1억 건을 넘기며 [[소녀시대]]의 〈[[Gee (노래)|Gee]]〉를 제치고 〈강남스타일〉에 이어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이 본 동 한국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오빤 딱 내 스타일' 1억뷰 돌파..싸이 효과!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102111121506368&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윤성열|날짜=2012-10-21|확인날짜=2012-10-21}}</ref> 2012년 10월 21일에는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 《[[MELTING]]》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Ice Cream〉은 [[가온 디지털 차트]] 1위에 올랐고, [[코리아 K-Pop 핫 100]]에서는 최고 6위에 올랐다. 2012년 12월 29일 SBS 《[[SBS 가요대전|가요대전]]》을 앞두고 현아는 [[효린]], [[전효성]], [[니콜 (1991년)|니콜]], [[나나 (가수)|나나]]와 함께 대즐링 레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27일 [[용감한 형제]]와 똘아이박이 작곡한 〈이사람〉을 발매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효린]]·[[전효성]]·[[니콜 (1991년)|니콜]]·[[나나 (가수)|나나]], SBS '가요대전'서 대즐링 레드 결성|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12280748241118|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최두선|날짜=2012-12-28|확인날짜=2014-01-08}}</ref>
         [[현아]]는 [[원더걸스]] 시절부터 [[래퍼]]를 맡았었고, 이후 [[포미닛]]에서도 래퍼를 맡고 있다. 첫 솔로 활동 "[[Change (현아)|Change]]"에서도 보컬 보다는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쳤다. 대개 그룹 출신의 개별 활동을 하는 맴버는 보컬 출신이였지만, [[현아]]는 랩, 댄서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ref name="이즘">{{웹 인용|제목=Neo Music communication IZM |url=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1031&bigcateidx=8&subcateidx=10&mrbs=1&history=1|웹사이트=[[이즘]]|날짜=2010-10|확인날짜=2011-04-15}}</ref> 또한 래퍼로서 많은 가수들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고있다. [[이즘]]의 이종민은 "Bittersweet"와 포미닛의 ''For musik''에서 보여준 힘 있는 랩은 다른 걸 그룹에선 살펴볼 수 없는 색깔이 있었다"고 평했다.<ref name="이즘"/> 《[[뉴스토마토]]》의 정해욱은 "하이톤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력파 랩퍼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오늘 뭐해〉에선 [[전지윤]]이 이 틈을 채워준다"고 기사를 썼다.<ref>{{웹 인용|제목='컴백' 포미닛에게 필요한 건 '반전' |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52575|웹사이트=뉴스토마토|저자=정해욱|날짜=2014-03-17|확인날짜=2014-04-24}}</ref>
         또한 [[현아]]는 주로 다리 라인을 강조하기 위해 핫팬츠와 미니 스커트, 그리고 스타킹을 자주 입는데, 의이 선정적이라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 속바지 다 보이는 미니스커트 '논란'에 "더욱 노력하겠다"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8937|출판사=굿데이스포츠|저자=신섬미|날짜=2009-09-27|확인날짜=2011-04-15}}</ref>
         | 44회, 성인화 광고지
         | 《[[동이몽, 괜찮아 괜찮아]]》
         |+
         == 수 및 후보 목록 ==
         !시
         !수 부문
         |rowspan="2"|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솔로<ref>{{웹 인용|url=http://mama.mnet.com/kr/winner.asp?broady=2010|제목= 2010 MAMA 수자 및 후보자|웹사이트=[[Mnet]]|확인날짜=2011-12-09}}</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2191151|제목=슈퍼주니어 ‘MAMA’ 3관왕, “우리는 미운오리…팬들 감사하다”(종합)|출판사=[[네이버]]|날짜=2011-11-29|확인날짜=2011-11-30}}</ref>
         |style="background: #ddffdd"|수
  • 황두진 . . . . 54회 일치
         평양 출신의 아버지와 원산 출신의 어머니 사이 서울에서 태어났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kr/books?id=_EHEAwAAQBAJ&printsec=frontcover&dq=%EB%8B%B9%EC%8B%A0%EC%9D%98+%EC%84%9C%EC%9A%B8%EC%9D%80+%EC%96%B4%EB%94%94%EC%9E%85%EB%8B%88%EA%B9%8C&hl=ko&sa=X&ved=0ahUKEwjwoLqgxa_bAhWDVLwKHeIxBacQuwUIKDAA#v=onepage&q=%EB%8B%B9%EC%8B%A0%EC%9D%98%20%EC%84%9C%EC%9A%B8%EC%9D%80%20%EC%96%B4%EB%94%94%EC%9E%85%EB%8B%88%EA%B9%8C&f=false |인용=그의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고무공장을 하는 사업가였으며 해방 전에 사업을 서울로 옮겨 성북동 청암장(현재의 길사)에 살면서 일종의 사설도서관을 운했고, 해방과 전쟁으로 이북의 사업기반을 잃고 난 후에는 당시 창경원의 장서각 사서로 일했다.|제목=황두진,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p20|성=|이름=|날짜=|출판사=해냄|확인날짜=}}</ref>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김종성, 김태수 등의 사무소에서 수련하였다. 그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건축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옥을 현대건축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일련의 작업을 해오고 있기도 하다.<ref>{{웹 인용|url=https://gwangjinlib.seoul.kr/gjinfo/recommendBookDetail.do?bookIdx=2149&recommendTypeCd=general|제목=가장 도시적인 삶|저자=황두진|날짜=|웹사이트=광진정보도서관|출판사=반비}}</ref>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하여 유럽을 순회한 <메가시티 네트워크 한국현대건축전>에 참여했고 동 전시회의 전시디자인을 맡아 새로운 개념의 건축 전시를 보여준 바 있다.<ref>{{웹 인용|url=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30000000&exhId=200912140002813|제목=메가시티 네트워크ː 한국현대건축 서울|성=|이름=|날짜=|웹사이트=국립현대미술관|출판사=}}</ref>
         현대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을 모두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그가 2010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동아시아박물관 한국실을 설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마당과 툇마루, 방을 오밀조밀하게 누비는 한옥의 동선을 전시실에 적용했다"며 "한옥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그 분위기를 은은하게 살렸다"고 했다. <ref name=":0">{{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13/2012021300208.html|제목=[오늘의 세] 스웨덴 왕가의 代이은 한국사랑|저자=채민기 기자|날짜=2012년 2월 13일|뉴스=|출판사=}}</ref>
         건축가로서 개별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 거리와 소통하는 건물, 사회에 필요한 건축 등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와 관련하여 무지개떡 건축은 그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이다. 그가 현대 도시건축의 중요한 유형으로 보고 발전시켜오고 있는 개념이다. 개별 작품과 기고문을 통해 생각을 전개시킨 후 2016년 저서인 '무지개떡 건축'을 통해 정리해서 발표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085412|제목=진정한 의미의 주복합이 가장 도시적인 건축|저자=이은주 기자|날짜=2017-11-06|뉴스=중앙일보|출판사=}}</ref>
         전층이 단일용도로 되어있는 건축물을 시루떡에 비유한다면 층별로 서로 다른 기능을 갖는 건축물은 무지개떡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5층 내외로 층부에 주거가 들어가는 유형을 황두진건축에서는 특별히 무지개떡건축이라 부른다. 기본적으로 길과 면한 저층부에는 외부계단과 가가, 중간층에는 사무실이, 층부의 주거에는 옥마당 등이 들어간다. 무지개떡건축은 도시의 밀도를 충분히 유지하면서도 거리의 활력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조망 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간단하지만 탁월한 도시건축의 유형이다. 사회적으로는 주인구와 유동인구를 모두 아우르는 방식으로서 도시재생에도 유리하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rca/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홈페이지|제목=무지개떡 건축 rainbow cake architecture|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251347501&code=960205 |뉴스=경향신문|제목=무지개떡 건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저자=백승찬 기자|날짜=2015-12-25|출판사=|확인날짜=}}</ref>
         발코니, 테라스, 옥마당, 중정 등 건물의 비워져 있는 부분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곳이다. 채광과 환기,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특히 한반도의 기후조건에 적합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공성 건축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옥이다. 황두진건축은 그간의 한옥 작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다공성을 확보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 다공성의 개념은 배치와 공간에서 시작하여 입면과 단면, 그리고 세부적인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porosity/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제목=다공성 porosity|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4/2015091400130.html?Dep0=twitter&d=2015091400130 |뉴스=조선일보|제목='구멍 숭숭' 벽돌 건물 차가운 유리도시 녹이다|저자=김미리 기자|날짜=2015-09-14|출판사=|확인날짜=}}</ref>
         한 건물 안에 다양한 기하학이 공존하는 것이 중첩된 기하학의 개념이다. 이런 건축물은 사람에게 즐거운 놀라움과 지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기하학이 구조 및 재료와 결합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칸’(間)으로 대변되는 직교좌표계와 3차원 곡선으로 구성된 지붕이 공존하는 한옥이 그 대표적인 예다. 중첩된 기하학은 황두진건축의 독창적인 개념의 하나로, 근대건축의 무미건조한 자의 미학에서 벗어나 삶의 공간 속에서 풍성함과 쾌적함을 되찾을 수 있게 한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layered-geometry/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제목=중첩된 기하학 layered geometry|성=|이름=|날짜=|출판사=}}</ref><ref>{{서적 인용|url=https://jdlib.sen.go.kr/jdlib/intro/search/detail.do?vCtrl=5304391852&isbn=9791195212804&menu_idx=4|제목=「황두진-다공성 구축술 시스템」, ISBN 9791195212804 p.271|저자=황두진|날짜=2016-03-01}}</ref><ref name=":1">{{웹 인용|ur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8705&cid=58767&categoryId=58771 |제목=한국의 현대 건축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저자=구본준|날짜=2014-10-08|웹사이트=네이버 지식백과|출판사=}}</ref>
         까오 의자가 국립현대미술관과 쇳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웹 인용|url=http://www.mmca.go.kr/collections/collectionsDetail.do?menuId=2010000000&wrkMngNo=DE-05880 |웹사이트=MMCA|제목=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저자=|날짜=2006|출판사=|확인날짜=}}</ref>
         * 2015 WON & WON 63.5(서울 강남구 논현동)<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Xy-8E2bHXqQ|제목=Doojin Hwang Architectsː Won & Won 63.5 Building|저자1=정다운|저자2=김종신|날짜=|웹사이트=|출판사=}}</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18949486 |뉴스=중앙일보|제목=강남대로에 쌓은 벽돌 30만장, 유리 건물 사이에 느낌표를 찍다|저자=송정 기자|날짜=2015-10-28|출판사=|확인날짜=}}</ref>
         * 2015 한국성폭력담소(서울 합정동)
         * 2015 목경헌(서울 은평구 한옥마을)<ref>{{웹 인용|url=http://www.aurum.re.kr/Bits/BuildingDoc.aspx?num=6611#.Ww-K2e6FPct |제목=2016 대한민국 한옥공모전 한옥대|성=|이름=|날짜=|웹사이트=AURUM건축도시정책정보센터 건축자산|출판사=}}</ref>
         * 2013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천안시 서북구 직산읍)<ref name=":1" /><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As7ze583ANI|제목=Doojin Hwang Architects: the Castle of Skywalkers|저자1=정다운|저자2=김종신|날짜=|웹사이트=|출판사=}}</ref>
         * 2012 통인시장 아트게이트 (서울 종로구 통인동)<ref>{{웹 인용|url=https://www.kcdf.kr/views/cms/award/awaw/aw2012.jsp |웹사이트=kcdf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제목=2012 대한민국공공디자인대|성=|이름=|날짜=|출판사=}}</ref>
         * 2011 더웨스트빌리지 (서울 종로구 궁정동)<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21121/50993591/1 |뉴스=동아일보|제목=도시의 정답은 층층이 다양한 저층 주복합|저자=이진 기자|날짜=2012-11-21|출판사=|확인날짜=}}</ref>
         * 2010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통의동)
         * 2008 춘원당한의원 및 박물관 (서울 종로구 낙원동)<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HrAHT6ymcW8|제목=[空間사람] 춘원당 한방박물관 편 (황두진)|저자=tbs|날짜=|웹사이트=|출판사=}}</ref>
         2018 'A Retrospective on 10 Years of Practice in Eastern Context', YSoA <ref>{{웹 인용|url=https://www.architecture.yale.edu/calendar/99-a-retrospective-on-ten-years-of-practice-in-eastern-contexts|제목=A Retrospective on 10 Years of Practice in Eastern Context|성=|이름=|날짜=|웹사이트=Yale School of Architecture|출판사=|확인날짜=}}</ref>
         2017 건축 & 디자인필름 페스티벌 서울(ADFF: Seoul)<ref>{{웹 인용|url=http://library.hyundaicard.com/DL/1000000013/exhibition.hdc |웹사이트=현대카드 Design Library|제목=ADFFː Seoul 건축 & 디자인 필름 페스티벌(Architecture & Design Film Festival, ADFF)|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 의성군 . . . . 53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경북도)]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FFB6C1> {{{#FF0080 '''광역시도'''}}} ||<bgcolor=#FFFFF0> [[경북도]] ||
         ||<-2><bgcolor=#FFB6C1> {{{#FF0080 '''국회의원'''}}} ||<bgcolor=#FFFFF0> [[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br][[김재원(정치인)|김재원]]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3선 ([[2017년 4월 재보궐선거]]) ||
         ||<bgcolor=#FBEFFB> {{{#FF00BF '''▲ 의성군청사 (주소 [[경북도]] 의성군 의성읍 군청길 31''')}}} ||
         [[경북도]] 북부에 위치한 군. 2018년 6월 기준 인구는 약 5만 3천여명이다. 북쪽에 안동시, 동쪽에 청송군과 천시, 남쪽에 군위군, 서쪽에 구미시와 주시가 위치해있다. 의성군의 서쪽으로 낙동강 본류가 흐르며, 낙동강의 주요 지류 중 하나인 위천이 의성 군내를 관통하며, 경작지가 넓고 평야지대가 비교적 많다. 때문에 농업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했던 1970년대 중반에만 하더라도 인구가 20만을 넘을 정도로 제법 큰 군이었으나 이후 농촌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리즈 시절]]보다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다.
         2016년 ‘중앙 이코노미스트’가 이호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과 국내 252개 기초단체의 인구 현황(2015년)을 분석한 결과 노인 인구 100명 당 20~30대 여성 인구 17명으로 30년 뒤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19968138|# 젊은 여성 없는 의성·고흥·군위…30년 뒤 내 고향 사라진다]]. 참고로 [[고흥군]], [[군위군]]이 뒤를 이었다. 또한 2015년 인구총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기초자치단체이기도 하다. 평균연령 55.3세, 중위연령 59.2세.
         군 중심지인 의성읍이 비교적 군 동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중부의 봉양면(도리원)과 서부의 안계면이 각각의 소중심지 역할을 한다. 각각 안동/군위와 주로 가는 시외버스도 따로 운행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군위군]], [[청송군]]과 한 선거구로 의성-군위-청송 선거구를 이루고 있었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인근의 주시와 합쳐져 서울시 면적의 6.4배에 이르는 거대 선거구가 형성되었다.
         [[중앙고속도로]]와 [[중앙선]] [[철도]], [[5번 국도]]가 군의 남북을 관통한다. 천, 군위를 거쳐 예천, 주로 연결되는 [[28번 국도]]와 [[59번 국도]]도 있다. [[25번 국도]]는 단밀면을 잠깐 지나친다. [[의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안계면에서 별도로 [[동서울터미널]]행 시외버스가 있다. 다만 원주 방면에서 의성으로 갈 때는 [[의성IC]]가 아닌 [[남안동IC]]를 이용한다. [[의성IC]]가 의성군 남쪽의 봉양면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당진덕고속도로]] 주-덕 구간이 개통되면서 [[서의성IC]], [[북의성IC]]가 신설되어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이전에는 남북 교통은 괜찮았지만 동서는 산길과 좁은도로가 많아 대적으로 불편함이 컸다.]
         철도 교통은 [[안동역]] 외의 역이 모두 통과역이 된 안동과는 달리 [[의성역]]과 [[탑리역]](금성면)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다만 [[중앙선]]의 이설[* [[안동역]] ~ [[천역]] 구간은 복선노반 단선 전철로 건설한다. 단선이긴 하지만 나중에 별도의 토목공사 없이 선로만 옆에 하나 더 깔고 [[가공전차선]]도 추가로 올리면 그대로 복선이 되는 구조다.] 과정에서 [[탑리역]]은 폐역될 예정이다.
         == 징 ==
         컬링 이전에는 [[씨름]] 스타의 산실 역할을 한 곳이 의성이다. 의성초등학교-의성중학교-의성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지역 씨름의 계보가 탄탄하며 의성군청에서도 씨름단을 운하고 있다. 의성에 연고가 있는 유명 씨름인으로는 5대, 8대, 13대 [[씨름/체급|천하장사]]를 거머쥐었던 1980년대 씨름스타 [[이준희]] 대한씨름협회 경기위원장과 32대, 38대, 40대 [[씨름/체급|천하장사]] 출신이자 1990년대 씨름스타 [[이태현]] 용인대 교수 등이 있다. 이들의 출생지는 모두 의성이 아니지만 의성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씨름을 배웠다.
         스포츠와는 거리가 있는 조그마한 도시지만 국내 [[동계 올림픽]]의 인기 종목으로 급부한 '''[[컬링]]'''의 메카가 바로 의성이다. 최근엔 '''컬링 수도'''라는 호칭이 자리 잡았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10547165|#]]
         국내 최초의 [[컬링]] 전용 빙장 [[경북컬링훈련원]]이 의성읍 충효로 104에 위치해 있으며, 의성군 내의 중, 고등학교의 방과 후 활동엔 [[컬링]]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이는 의성군 출신의 체육인이자 국내 컬링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의 노력이 컸다. 전직 레슬링 선수 출신이었던 김 회장은 컬링이라면 동양 선수와 서양 선수의 체격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종목이라 생각해서 의성군에 컬링훈련원을 개설했고 실제로 그의 예은 거의 들어맞아서 한국은 단기간[* 1994년에 컬링 연맹 설립, 곧바로 세계 연맹에 가입했으며 2001년 아-태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정도면 단기간이 아니라 초단기간 급성장이라고 봐야할 지경(..)] 내에 세계 랭킹에서 경쟁하는 선수들을 배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선수들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컬링은 오랜 기간 비인기 종목이었고, 결정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해 외면 받았다. 이 시기를 거쳐간 지도자나 선수들도 하나 같이 아직 우리 컬링은 멀었다는 말을 한다. 처음으로 출전권을 따낸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던 2013년 당시에도 컬링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식사도 못할만큼 인지도나 후원이 열악했다.]
         국내 컬링계는 현재 [[경기도]]와 [[경북도]]가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경기도(의정부)는 엘리트 체육, 경북(의성)은 생활 체육 기반이라는 점도 대비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북의 실업팀은 남녀에 믹스더블까지 있는 반면, 경기도의 실업팀은 여자팀만 있지만.]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 선수들도 마땅히 연습할 시설이 없어 '''의성에서 훈련한 뒤에 의성에서 경기를 치를 정도'''였다. 2018년 [[의정부컬링훈련장]]이 완공됐고 그에 앞서 [[진천선수촌]] 컬링장도 완공됐지만[* 다만 진천은 국가대표팀의 훈련용으로 사용된다.], 이미 의성의 [[경북컬링훈련원]]은 [[카자흐스탄]]이나 [[몽골]] 등 비교적 컬링 역사가 짧은 아시아의 대표팀이 찾아와 훈련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컬링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의성에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2423&cid=51938&categoryId=54649|의성 마늘배 전국 컬링 대회]]'''를 주기적으로 열어 컬링 보급에 힘쓰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녀, 믹스더블 대표팀 모두 [[경북체육회 컬링팀]] 선수들이 선발됐고, 특히 여자팀의 선수들 중 중 네 명[* [[김은정(컬링)|김은정]], [[김미]], [[김선(컬링)|김선]], [[김경애]]]이 의성 출신의 선수들이며, 모두 같은 학교 출신[* 의성여중-의성여고]에 '''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한''' 만화 같은 이야기와 준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자세한 사항은 [[김은정(컬링)]] 항목 참조.] 이 뿐만 아니라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이었던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의 [[이슬비(컬링)|이슬비]] 선수도 의성여고 출신이다. 이로써 2회 연속 올림픽 컬링 대표선수들을 길러낸 도시가 되었다.
         || 5 || 금성여자업고등학교 || 금성면 탑운길 99 ||
         || '''후보''' ||<:><bgcolor=#1870B9>{{{#FFFFFF 문재인}}}||<:><bgcolor=#C9151E>{{{#FFFFFF '''홍준표'''}}}||<:><bgcolor=#046240>{{{#FFFFFF 안철수}}}||<:><bgcolor=#00B1EB>유승민||<:><bgcolor=#FFCC00>심정||<:>(1위/2위)||<:>(선거인/표수)||
  • 이수민(야구선수) . . . . 53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구미시]] ||
         ||<:> '''학력''' || 도산초-대서중[* 단 중학교 시절은 구미중에서 보냈으며, 원고 진학 전 대서중으로 전학갔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 참고]-[[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원고]]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신인 [[투수]]. 2009년 이후 5년만에 부활한 연고지 1차 지명의 대자이면서, 같은 년도에 [[kt wiz]]에 1차 지명된 [[박세웅(1995)|박세웅]]과 함께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이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선수다. 고교 시절 별명은 [[이계인|모팔모]].
         구미 도산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구미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2학기때 대구 [[달서구]]에 있는 대서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특이하게도 이 대서중학교는 야구부가 없는 학교다. 이는 대구에 있는 [[대구 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원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것으로, 체육특기자 여부를 떠나 모든 중학교 졸업예정자는 다른 시도의 고등학교[* 거주지 제한이 없는 일부 특목고/자사고 등은 제외.]로의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미와 대구가 가깝긴 해도 엄연히 다른 시도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기 위해서 구미중학교에서 대구시내 모 중학교로 전학을 온 이와 비슷한 사례의 어느 학생 말에 따르면 대구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체육특기자 지정을 받아 전학을 오게 되었다고 하며, 중학교 야구는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면 모든 일정이 마치게 되어 푹 쉬기 때문에 전학을 가더라도 굳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실 타 시도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부로 스카웃 된다면 이런 식으로 중3 2학기때 미리 해당 시도내의 아무 중학교로라도 전학을 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구시내 중학교 중에서도 굳이 대서중으로 전학을 온 이유는 근처에 야구부가 있는 [[대구 원고등학교 야구부|원고등학교]]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학기 잠시 거쳐간 학교이니 별 의미는 없다. 보통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는 해당 학교로 진학예정에 있는 예비 신입생들을 겨울방학때 부터 미리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 아무래도 가까운 학교가 편리해서 였을 것이다.
         원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1년에는 '타 시도 전학생 출신은 1년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 [* 동일학교급의 등록팀 수가 적은 시도로 이적하는 경우는 6개월이다. 그래서 전국체전을 제외한 정규 대회가 거의 마무리되는 9월을 전후해 선수들의 전학이 보통 이루어진다. 단 선수 수가 18명 미만인 팀으로 전학하거나, 창단 1년 이내의 신생 팀으로 전학하거나, 팀의 해체로 인해 부득이 전학한 경우에는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바로 출전이 가능하다.] 경기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량은 계속 성장하여 2012년 제25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대표팀에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합류, 미국전과 캐나다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팀 내 유일한 2승 투수로 활약하였으며, 2013년 4월 7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대구고와의 경기에서 '''9이닝동안 무려 2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었으며, 10회에도 마운드에 등장, '''총 10이닝동안 2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한국 고교야구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종전 기록은 진흥고 [[정일(야구선수)|정일]]이 2006년 4월 8일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고를 대로 13⅔이닝동안 기록한 23+2개]
         이 향 때문이었을까, 2013년에 창단한 KT 위즈의 신인 우선 지명 대자로도 잠시 거론되었으나, [[kt wiz]]가 [[개성고등학교 야구부|개성고]] [[심재민]]과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 류희운을 지명함으로서 [[삼성 라이온즈]] 및 삼성 팬들은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으며--그리고 [[한화 이글스]]와 한화 팬들은 울었다--, 경북고 박세웅과 함께 누가 삼성의 1차지명 대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1일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대자로 최종 선택되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66963|#]]. 지명 이후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2013|2013 IBAF U-18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프로필 180cm, 82kg의 투수치고는 다소 작은 체격에, 탈삼진 신기록을 세운 10이닝 완투 경기 이외에도 경기가 있을 때마다 선발 투수로 나서서 거의 모든 경기를 책임지며 2013년 5월 21일 당시 7경기에 나서서 평균 139개의 공을 던지는 등 혹사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으나, 경기를 마치고 난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지정 병원'''인 세명 병원에서 마사지 및 회복 치료를 받는 등[[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39640|#]], 원고 및 삼성에서도 관리를 해 주고 있는 점으로 볼 때, 삼성이 이수민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얼마나 큰 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일 것이며, 많은 삼성팬 역시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66981|지명 이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이수민의 각오를 보고 난 이후 많은 관심과 활약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중이다.--뭐 그래도 불안하면 우리에겐 [[삼성 트레이닝 센터]]가 있잖아?--
         대신 다른 팀의 1차지명 선수들과 달리 계약은 좀 늦어져서, 1차 지명자의 입단 협 기간인 9월을 넘겼다. 그래서 해를 넘긴 2014년 1월 8일 계약금 2억 원의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이수민의 계약이 늦어진 건 원고 감독인 [[박진(야구)|박진]]이 제자를 위한답시고 계약을 질질 끌었기 때문이었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column/newsview?newsId=20140228230025367&gid=110341|#]]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이수민 본인과 이수민의 부모님만 돈을 밝혀 계약을 질질 끌었다고 욕을 먹었다. 계약이 늦어지면서 다른 신인들과 달리 이수민은 개인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마무리 훈련은 물론이고 KBO에서 실시하는 신인선수 교육에도 불참했다.
         2014년 전지훈련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 입소했다. 2013년에 많이 던진 탓에 관리 차원에서 입소한 것이지 부으로 인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한 마디로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스프링캠프에서 훈련한 후 곧바로 실전에 많이 투입하면 그것도 혹사로 이어질 수 있어서 그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배려인 듯.
         6월 18일 [[SK 와이번스]]전에서 10회에 등판해 1점차의 황에서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볼질]]도 안 하고[* 볼넷을 1개 내줬는데, 좌투킬러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을 고의사구로 걸렀다.] 선배인 [[김헌곤]]이 파울타구를 끝까지 쫓아다가 놓치자 괜찮다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등, 신인답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0⅔이닝 동안 1피안타 1탈삼진 1볼넷을 기록한 후 [[김건한]]으로 교체됐고, 팀이 승리하면서 첫 홀드를 챙겼다.
         6월 20일 [[NC 다이노스]]전에서 3:3으로 맞선 6회말 2사 2루에서 [[김건한]]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박민우(야구선수)|박민우]]에게 볼넷을 주었으나 후속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플라이로 처리하였고 7회말 타선이 대폭발하며 대 구원 [[이민호(야구선수)|이민호]]를 박살내버리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었다. 여유 있는 점수차에서 기회를 주기 위함인지 [[류중일]] 감독은 이수민이 9회까지 경기를 책임지게 하였고 이수민은 9회 1실점하긴 했으나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며 경기를 마무리짓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날 기록은 3.1이닝 1피안타 6볼넷 1사구 1탈삼진 1실점. 볼넷이 많긴 했으나 그 유명한 [[김풍기]] 주심의 괴악한 스트라이크존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 어지간한 베테랑 투수도 멘탈이 붕괴될 만한 황에서 끝까지 자기 공을 던지며 실점을 최소화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2014 시즌 후 [[무 피닉스 야구단|무]]에 지원하였다. 구단에서 장래를 내다보고 일찌감치 군 팀에 입단시켜 군 복무를 마치게 하려는 듯. 11월 20일 최종 합격했다.
         무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투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5월 15일 2일 휴식 후 삼성전에 갑자기 선발로 나서 7이닝 135구를 소화한 뒤부터 부진에 빠졌다. 14년 말에 팔 스윙을 수정한 뒤로 제구력이 안정화되지 않았는지 볼넷이 급증한 태였는데, 이 갑작스런 선발 등판 이후 삼진이 급감하고 볼넷이 늘면서 실점 또한 많이 늘었다. 거기에 설으로 피홈런까지 늘어난 황인데, 들리는 바로는 투구폼의 교정을 진행중이라고 하니 이로 인한 과도기라고 참작할 수는 있다.
         4월 16일 삼성전에서 원래 선발로 등판이 예정된 [[노성호]]가 등판 전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는 바람에 이미 4월 14일 계투로 2이닝을 던진 이수민이 하루만 휴식하고 선발로 나온데다 16일 등판 후로 1달을 쉬면서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혹사 논란이 나왔다. 6월 중순 이후 1달을 쉬었고, 7월 중순 복귀 후 등판이 없다가 9월 1일 등판하는 등 사실 안식년을 보냈다. 9월 1일 롯데 2군과의 경기에서 사실 전역 전 마지막으로 선발 등판해 6이닝 96구 2실점 1자책 5피안타 3볼넷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2월 16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연습경기에서 6회말 2아웃 황에서 [[임대한]]을 구원해 마운드에 올랐다. 1.1이닝 1볼넷 3삼진이라는 무시무시한 삼진능력을 보여줬다. 무에서의 혹사나 구속 하락등의 불안감을 떨쳐내는 투구. 최고구속은 140km.
         2월 2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연습경기에서 선발등판하여 3이닝 3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이날 최고구속은 136km가 나왔지만 위기관리 능력을 과시하며 호투하였다. 히로시마의 1군 멤버가 대거 포함된 황의 호투라 고무적이다.
         무에서의 생활과 전역 후 부진에 관련된 글. [[http://gall.dcinside.com/samsunglions_new/562430|주소 현재 원글은 지워진 태다.]][* 다만 이 블로그 주인의 다른 글들이 [[사자 사랑방]]과의 논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적당히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 수면 위에 떠올랐다가 가라앉았었던 문제인 고교야구 혹사 문제를 수면 위에 떠오르게 했던 선수다. 2013년 동안 프로야구의 하향 평준화와 순수 신인 육성 문제가 동시에 떠오르면서 이수민의 179개 투구수는 모든 야구팬들의 분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게다가 고교를 졸업한 투수들 80%가 어깨, 팔꿈치 부을 안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까지 나오면서 이에 2014년부터 고교 야구에도 투구수 제한이 도입되었다.[* 한 경기에서 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최대 투구 수를 130개로 제한했다. 원래 130개를 초과하면 의무적으로 휴식일을 주도록 했으나 실제 경기에서는 129개쯤 되면 바로 투수 교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휴식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태.]
         [[박세웅(1995)|박세웅]]과는 구미 도산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하필 같은 년도에 두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지명 대자에 오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삼성라이온즈 역시 두 선수 중 누굴 1차지명 대자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수민을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이수민이 왼손잡이인 점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이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프로필 의 키는 180cm로 나와 있으나 지명 당시 실제 키는 177cm 정도라고 한다.]을 지닌 [[박민규(야구선수)|2009년 지명 당시 희대의 망픽 지명 선수]]의 프로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삼성 스카우트진 역시 201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수의 예과는 달리 비슷한 체격을 지녔던 [[박종윤(투수)|박종윤]]을 지명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의 향 때문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걱정하는 삼성 팬 역시 적지 않는 편이다.~~부디 장준관 거르고 [[배수]]의 결과처럼 되게 해주세요~~ 다만 단순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는 곤란한 것이,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는 고교 당시 속구가 최고구속이 140km/h를 못 넘긴 것과 달리 달리 이수민은 최고 구속 144km/h로 고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이다. 또한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가 변화구와 제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수민은 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타자를 잡는 스타일이다.
         2014년 퓨처스 올스타전 때 모습. 보다시피 당한 [[노안]]이다. 이수민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같은 노안동지(...)인 동갑 [[조우(야구선수)|조우]]. ~~정우람????~~
  • 정명훈 (지휘자) . . . . 53회 일치
         | 웹사이트 =
         [[서울]]<ref>{{뉴스 인용|제목 = 운명처럼 다가왔던 베토벤 '운명' 들고 태어난 부산방문 설레|url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30509.22023204805 |출판사 = 국제신문 |날짜 = 2013-05-08 |확인날짜 = 2013-05-09}}</ref>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으며, [[서울덕수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일찍부터 피아노 연주에 재능을 보여 [[피아노]]를 배운 지 3년만인 일곱 살 때인 [[1960년]]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해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피플Q 정명훈의삶&음악] 정명훈은 누구?|url=http://news.donga.com/3//20100120/25520037/1|출판사=동아일보|날짜=2010-01-20}}</ref> [[1961년]]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킹 군 (워싱턴주)|킹 군]] [[시애틀]]로 이주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명동]]에서 한식당을 운했던 그의 [[부모]]는 [[미국]] 워싱턴 대학가에서도 한식당을 경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에스트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663110|출판사=mk뉴스|날짜=2009-12-25}}</ref> 정명훈은 이 시절을 회하며 "부모님의 식당에서 부엌 일을 도왔고 새벽 신문 배달과 잔디 깎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신문을 돌리고서 나중에 구독료를 받으러 다니는 '수금'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北 악단장도 스트라디바리우스(바이올린 최고 명기) 쓴대요"|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3/2012041300179.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2-04-13}}</ref> 14세에 첫 개인 리사이틀을 가진 정명훈은 연주 도중 곡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반복해서 연주한 끝에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ref>유동철, 《아들아 너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라》, 북로그컴퍼니, 2009, p.94, {{ISBN|978-89-962617-3-5}}</ref> 그의 선생이었던 제이콥슨은 정명훈에게 "네가 완벽한 연주를 하는 것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감동적인 연주를 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ref>
         [[1968년]]에 [[미국]] [[뉴욕]]의 [[메네스 음악원]]에 [[입학]]해 나디아 라이젠버그와 칼 밤베르거에게 각각 [[피아노]]와 [[지휘]]를 배웠다. [[1974년]]에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피아니스트]]로 참가해 2위로 입해 화제가 되었고, [[미국]] 시민권자임에도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벌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만찬에도 초대되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제목=김문관의 클래식 산책 스승의 노래|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39830|출판사=아시아투데이|날짜=2012-05-14}}</ref> 이 만찬에서 정명훈은 콩쿨 금으로 [[러시아]]에서 산 [[캐비어]] 5 kg 중 일부를 [[선물 (물건)|선물]]로 들고 갔다. 당시 소련 정부는 국부 유출을 금지해서 받은 금을 [[모스크바]]에서 모두 써야 했다.</ref> 이듬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추가로 [[공부]]한 후 [[1978년]]에 [[졸업]]했다.
         줄리어드 재학 중이던 [[1976년]]에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프로 관현악단 지휘의 [[경험]]을 쌓았다. [[1980년]]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가 되어 임 지휘자인 줄리니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고, [[1983년]]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다. [[1984년]]에는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임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재임 기간 동안 [[윤이]]의 교향곡 제3번 세계 초연과 음반 녹음 등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를 [[지휘]]했고, 같은 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를 [[지휘]]해 오페라 지휘자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에서 [[무소륵스키]]와 [[베르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지휘]]해 절찬을 받았고, [[198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을 [[ (표창)|수]]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새로 건립한 [[오페라극장]]의 전속 오페라단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파리 국립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신축된 [[오페라극장]]의 개관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인' 을 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0년 10월]]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 제작도 시작했으며, [[조르주 비제|비제]]의 관현악 작품들을 시작으로 [[생]], [[메시앙]], [[베를리오즈]], [[앙리 뒤티외|뒤티외]] 등의 작품들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생의 '삼손과 데릴라(EMI)', 베르디의 '오텔로' 등 오페라 전곡을 [[녹음]]했다. 특히 [[메시앙]]과는 생전에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고, 녹음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4년]]에 새로 부임한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음악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이는 [[프랑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5년]] 유네스코 서울 협회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한민국의 훈장|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7년]]에는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의 전속 계약을 유지하면서 녹음 활동도 병행했다. [[1998년]]에는 [[한국]]에서 첫 직책으로 [[KBS교향악단]]의 임 지휘자를 맡기도 했지만, 악단원들과 [[갈등]]을 빚어 불과 수 개월 후 사임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듬해에는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흡수해 재구성된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으로 초청되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2012년]]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역사 첫 번째 수석 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나 [[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세계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들을 객원 [[지휘]]하고 있으며, 다수의 물과 음반들을 남기고 있다.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비설 관현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인천]]과 [[서울]]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두 누나([[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피아노 3중주단인 [[정 트리오]]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고,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 유명 성악가들의 리사이틀이나 독창곡 녹음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들들인 정선과 정민도 각각 재즈 기타리스트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9월]]에 홀로 [[북한]]으로 건너가서, 북한 국립 교향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을 [[지휘]]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정명훈, 평양에서 북한 교향악단 지휘|url = http://www.ytn.co.kr/_ln/0101_201109141856110294|출판사 = YTN |날짜 = 2011-09-04 |확인날짜 = 2013-05-10}}</ref>, [[북한]]의 음악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 합동 관현악단의 연주회 개최를 제안 하는 등, 음악면에서 남북 융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2012년 3월]]에는 [[라디오 프랑스]]의 초청으로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의 살 플레옐에서 [[은하수관현악단]]을 이끌고 자신이 [[음악 감독]]을 맡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관현악단]]과의 합동 연주회를 실현하였다.
         정명훈은 19세 때부터 누나 [[정명화]]의 시누이로 다섯 살 연의 구순열을 짝사랑했고, [[가족]]에게 숨긴 채 교제를 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받은 금 3000루블로 비행기 티켓을 사서 [[카리브 해]]로 밀월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979년]]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식에는 어머니 이원숙 여사만이 참석했으나 나중에는 [[부모]]에게도 인정받았다.<ref>황호택, 《신동아》 [[2004년 2월]]호</ref> 부인과의 사이에서 세 아들 정진, 정선, 정민을 두고 있다.
         [[북한]] [[함경남도]] [[원산]]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루시여고]], [[대한민국]] [[배화여고]],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한 후 한 때 [[동덕여고]] 교사, [[이화여대]] 가정과 강사로 일했다. [[일본]]에서 [[유학 (교육)|유학]]하다 정준채 씨를 만나 [[결혼]]. [[1962년]] [[미국]]으로 이주해 한식당을 운. [[1968년]] [[한국]]으로 돌아와 구미물산주식회사, 주식회사 원 등을 운. [[1986년]]엔 [[미국]] 밸리포지신학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 미들타운에 한인교회를 개척하였고 [[1988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미국]]에서 목사로 활동.
         == 수 경력 ==
         * 1988년 제8회 이탈리아 음악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지휘자 "Premio Abbiati"
         * 1989년 이탈리아 토스카니니 지휘자
         * 1991년 프랑스 올해의 음악, 프랑스 비평가협회 ‘올해의 아티스트’
         * 1992년 [[올리비에 메시앙|메시앙]]의 ‘튀랑갈릴라 교향곡’으로 디스크 그랑프리, 미국 엑설런스 2000
         * 1995년 프랑스 클래식 음악의 승리 중 최고의 지휘자과 최고의 음반, 프랑스 최고 오페라 연출
         * 1996년 일본 [[아사히 방송|아사히 방송사]] ABC음악재단의 96 ABC인터내셔널 음악
         * 1997년 [[호암]] 예술
         * 2003년 프랑스 클래식 음악의 승리 두 번째 수
         * 2015년 제34회 이탈리아 음악평론가협회 "Premio Franco Abbiati" 올해의 지휘자 (2014시즌) [[클라우디오 아바도|아바도]], [[리카르도 무티|무티]], [[유리 테미르카노프|테미르카노프]] 등과 더불어 1988년에 이어 역사 네 번째로 2회 수.<ref>역대 수자 - [[레너드 번스타인]], [[세르주 첼리비다케]], [[카를로스 클라이버]], [[피에르 불레즈]], [[주세페 시노폴리]], [[리카르도 샤이]], [[주빈 메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로린 마젤]], [[다니엘 바렌보임]] 등</ref>
         직책=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 임 지휘자|
         직책=[[KBS교향악단|KBS 교향악단]] 임 지휘자|
         직책=[[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 시립 교향악단]] 임 지휘자|
  • 추자현 . . . . 53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http://cafe.daum.net/choojahyun 추자현 공식 팬카페]
         | 학력 = [[단국대학교]] 연극화학 학사
         * [[단국대학교]] 연극화학 학사
         * [[2001년]] [[SBS]] 아침드라마 《[[외출 (드라마)|외출]]》 ... 김난
         * [[2004년]] [[KBS2]] 월화드라마 《[[오!필승 봉순]]》 ... 허송자 역
         * [[2019년]]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 (드라마)|아름다운 세]]》 ... 강인하 역
         === 화 ===
         * [[2006년]] 《[[사생결단]]》 ... 지
         * [[2008년]] 《[[미인도 (화)|미인도]]》 ... 설화 역
         * [[2009년]] 《[[실종 (화)|실종]]》 ... 현정 역
         * [[2011년]] 《[[환극장]]》 ... 이서현 역
         * 《대기웅전 大旗英雄傳》 (2005, [[중화인민공화국|중국]]) ... 수령광 역
         * 《남교기공웅전 南侨机工英雄传》 (2014, 중국) ... 욱란정/욱설청 역
         * 《연흑천사 恋上黑天使》 (2015, 중국) ... 예만링 역
         == 수 경력 ==
         * [[2006년]] 제43회 [[대종]] 신인여우 화 《[[사생결단]]》
         * [[2006년]] 제5회 [[대한민국 화대]] 신인여우
         * [[2006년]] 제5회 [[대한민국 화대]] 여우조연
         * [[2006년]] 제7회 [[부산화평론가협회]] 여우조연
  • 고유민 . . . . 52회 일치
          * 위 항목 : [[배구]], [[배구 관련 인물]]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지명한 [[황현주(배구)|황현주]] 전 감독은 최대한 많은 경기를 출장시켜주려고 레프트-라이트-원포인트 블로커 등으로 이러지러 포지션을 변경해가며 팀의 황에 맞추어 기용했다. 이런 방침을 따른 결과 그해 지명된 신인들 중에서는 신인왕을 탔던 도로공사의 [[고예림]] 다음으로 많은 세트를 소화했다. 시즌 중반까지 고예림의 출장보다 출장경기 수가 더 많았지만, 고예림이 시즌 후반 자리를 잡고 좋은 활약을 선보이면서 신인왕 경쟁에서 리타이어 되고 말았다.
         2차전 흥국생명전에서 정미선이 부당하고 다음날 도로공사전 준결승 경기에서 김연견이 부당하자 예하지도 못한 리베로를 보게 되었다. 이 경기는 난리도 아니였는데 리베로가 없자 2세트는 없이 치루고 3세트는 코치가 딱 5분간 리베로 강습을 한 다음에 내보냈다. '''사람들은 리시브도 안 좋은애가 얼마나 버티겠냐'''며 수비붕괴로 인한 현대건설의 패배를 예했으나 목적타 집중을 --한유미와 김주하가 같이 온몸으로 받으면서-- 어찌어찌 버텨냈고 4세트에는 리시브 정확을 6번[* 이날 총 8번의 리시브 정확판정을 받았는데 4세트에 6개를 받았다.] 얻어내기 시작하더니 5세트에서는 장기인 디그 능력을 십분 살리며 팀을 결승으로 이끈 주역중 하나가 되었다. 5세트의 퍼포먼스는 웬만한 백업 리베로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GS 칼텍스 와의 결승전에는 선발출장을 하여 --물론 후위에 [[한유미]]와 같이 있으면 안믿던 예수님 찾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긴 했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잘버텼고 3세트 듀스태에서 마지막 끝내기 오픈을 성공시키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13득점 공격점유율 35.17%, 경기 최다블로킹 (3개),디그 14번 시도 중 10번 성공, 리시브 성공률 37%를 기록하며 정미선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워내 팀의 8년만에 컵대회 우승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작년 기업은행에게 학살당한 결승전엔 최다득점자가 8점인가 그랬지...--
         이렇게 시즌이 허무하게 끝나나 했는데 플레이오프 1차전 1세트 0득점을 기록하며 극도에 부진에 빠진 황연주[* 사실 황연주 팬들 사이에서도 마지막 몇경기는 빼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올정도로 점프력이나 스윙스피드가 완연히 떨어졌었다. 코칭스태프는 그녀의 경험을 믿었으나...]를 대신해 2세트 부터 선발출장해 --리시브는 역시나 였지만-- 팀 분위기를 바꿔놓았었다. 7득점을 하며 감독이 "예치도 못하게 아주 훌륭한 활약을 했다. 몸태를 봐서 2차전에 출전시킬 것"이라고 언급할 만큼 인적이었지만 무너져가는 팀을 구할수는 없었다.
         2차전에도 1세트를 제외하고 2세트 부터 선발출장을 하여 괜찮은 리시브 성공률을 보였지만 공격에서는 --폴리 몰빵 태여서-- 큰 활약이 없었다. 다만 교체되어 나온 세트에 팀 분위기가 반전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이날 경기에서 국가대표 리베로 남지연 앞에서 까다로운 서브를 '''갑자기''' 구사해 경기를 반전시킬 뻔 했으나 팀은 3-1로 패배. --팬들은 이럴거면 스타팅으로 넣지 왜 세트 헌납질 하냐고 감독을 깠다.--
         나름대로 큰 경기에 강하고 --그렇지만 시즌에 약해서-- 신체조건 활용도가 높은 선수[* 비슷한 역할의 정미선이 십자인대 부으로 이전 퍼포먼스를 유지할지 미지수이다.]이니 만큼 서브나 리시브에서 개선이 이루어 진다면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선수활용의 숨통을 틔울만한 선수라고 평가받았다.
         시즌 대회 전 [[http://sports.donga.com/3/all/20150708/72365102/3| 프리뷰 기사]]에서 현대건설은 '부병동'이라고 일컬어지며 제 실력 발휘가 어려울 것이라 예되었다.[* 레프트 포지션만 따져도 작년 주전 레프트 [[김주하]]는 2015년 4월 발목 수술후 재활 중, 재작년 주전 레프트 정미선은 작년 컵대회 때 당한 복합십자인대 부으로 작년 시즌을 통으로 쉰 후에 재활 중, 베테랑 한유미는 컵대회 직전까지 출전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몸 태가 좋지 않았다. 고유민도 왼쪽 무릎이 좋지 않아 재활 중이었다. 라이트 포지션인 [[황연주]]도 고질적인 무릎은 물론이고 허벅지 근육 파열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세터 [[이다]]도 허리 부의 여파에서 막 벗어난 태였다.] 도로공사와의 경기 직전 라인업[* 센터: 양효진-김세 라이트: 황연주 세터: 염혜선 레프트: 고유민-정미선 리베로: 김연견.]이 발표되자 배구갤러리, 경기중계댓글 할 거 없이 '''"도대체 팀 황이 얼마나 막장이면 작년에 잘 보이지도 않던 애 둘을 스타팅으로 넣냐"'''며 비웃음과 조롱이 넘쳐났고 현대건설 팬들은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도공]]의 새 감독 [[이호(배구선수)|이호]]의 첫 승리 대가 될 생각에 답답해했다.
         도공이 생각 이으로 못하긴 했지만, 1세트부터 25-14로 도로공사를 압도했고 역전당해 끌려다니다가 역전하는 등 세트 기복이 있긴 했지만 '''이겼다'''.
         도로공사 감독 이호는 주포로 예 되었던 황연주와 양효진(김세)의 공격을 임명옥[* 전 인삼공사 주전 리베로.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과의 1:1 트레이드로 데려왔다.]을 앞세워 그런대로 방어[* 황연주-공격점유율 30.29% 성공률 27.91%, 양효진- 공격점유율 17.61% 성공률 32%]했지만 계산밖이었던 고유민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1세트에서는 블로커가 아얘 붙지 않거나 있어도 하나만 있는 태가 많았다.] 이날 공격점유율 20.42% (팀내 2위), 성공률 '''41.38%'(팀내 1위)''', 13득점(팀내 2위), 서브에이스 1개--근데 2개 날렸다--,[* 그것도 리시브의 달인이라고 평가 받는 도공 리베로 임명옥을 대로 기록하였다.] 9디그를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향을 제대로 선보였다. 황연주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고 컵대회 초반 양효진이 감을 못잡은 태에서 현대건설의 주요한 공격옵션으로 자리잡았다. 낮고 빠르게 세터가 쏘아주는 C토스를 바탕으로 힘으로 몰아붙이거나 블로커가 붙었을 경우 피해서 코트 이곳 저곳 꽂아 넣는 정확성에 다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리시브 성공률 9%는 옥의 티.
         2차전 인삼공사 전에서도 선발 출장했다. 이날도 현대건설은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컵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예하지 못했던 황연주-양효진-고유민의 삼각편대를 다시 한번 보여주면서 승리했다. --그것보다도 [[이다]]이 잠시나마 경기감각을 되찾고, [[한유미]]의 정밀서브, [[염혜선]]의 닭장거부서브가 인적인 경기였지만-- 13득점(팀내 2위, 12공격득점), 공격점유율 17.52%(팀내 3위), 공격성공률 '''50%(팀내 1위)''' 백어택(후위공격) 1[* 프로데뷔 첫 백어택], 1블로킹, 6디그, 리시브 성공률 28.57%--1차전 보다 3배 더 잘받았는데 그냥 그날그날 로또다--를 기록하면서 컵대회 아무도 예하지 않았던 현대건설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 주로 황연주와 양효진이 대 블록커를 몰고 다니면 어디선가 나타나 그 빈틈으로 공격을 성공시켜 대팀의 블록 포지션을 찢어놓거나 뒤에서 왔다갔다 하는 스크린성 플레이로 혼란을 주는 역할이 주효했다.
         준결승전 흥국생명 전에도 선발 출장했다. 1,2세트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했는데 --초반엔 잘 보이지 않다가 1세트 중반 부터-- 공격성공률 60%에 이르는 활약을 하면서 끈질기게 추격하는 흥국생명의 기를 꺾는 역할을 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때 차분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공격의 발판을 만들어 놓고 황연주와 양효진이 역전의 순간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매조지하는 패턴이 나온 경기였다. --사실 1,2세트는 정적인 경기 운이었다면 3세트는 팀컬러인 자멸 4세트는 센터로 뚜껑따는 패턴의 경기였다.-- 당연히 예선전 분석을 했을 흥국생명은 이전 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블로킹 포지션을 잡으며 꾸준하게 2인 블로킹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힘으로''' 뚫어내는 놀라운 펀치력을 보이면서 컵대회 블루칩의 역할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악몽의 3세트에서 다까먹긴 했다.-- --4세트 21-22 접전 황에서 블로킹 터치아웃 오심을 이끌어내며 뻔뻔하게 뒤돌아 서는 모습이 백미. 역시 [[양효진|올림픽 월드클래스 사기꾼]], [[염혜선|별명이 그냥 사기꾼인 선수]], [[김주하|셀카를 사기로 찍는 선수]]의 팀 답게 새로운 신예 사기꾼의 등장을 알리기도 했다.-- 공격점유율 18.24% (팀내 3위), 성공률 37.93%(팀내 2위), 14득점(팀내 3위)[* 개인 한경기 최다득점], 공격득점 11점, 서브 에이스 2개, 디그 14개, 리시브성공률 20%--오늘은 5등이네--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배구팬들은 "쟤 어디있다가 지금 나타난거냐?"고 의아해 할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결승전에서도 선발 출장하였으나 기업은행의 높은 블로킹과 까다로운 서브에 고전하며 교체되었다가 팀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던 5세트 6-7황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때 블로킹득점과 절묘한 앵글샷으로 연속 3공격득점을 하면서 10-7까지 벌려놓았으나[* 재밌는 점은 이때 기업은횅 이정철 감독은 9-7황까지는 기업은행 선수들에게 화를 내다가 10-7이 되자 잠깐 벙쩌서 선수를 가리키며 '쟤 뭐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국가대표도 아주 꿈은 아니다.-- --꿈 깨고 내년 U23 국가대표에는 나갈수 있을듯--] 이후 부진하던 [[박정아(배구선수)|박정아]]가 폭발하고 공격이 블록당했으며[* 5세트 이정철 감독은 고유민의 담당 블로커로 박정아(188cm)를 세워두는 초강수를 뒀다.], [[이정철]] 감독의 적시 비디오 판독이 나오면서 그대로 기업은행 기세에 팀이 밀리며 패배하게 되었다. 기록은 8득점, 공격점유율 14.36%, 성공율 25%, 디그 9, 블록 1, --리시브성공률 0%을 빼면 쓰나-- --그날은 꽝--.
         주전선수가 목표라고 시즌 전 인터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volleyball&ctg=news&mod=read&office_id=451&article_id=0000000573|인터뷰 기사]]]에서 밝힌 대로 기회를 얻는 데 성공하여 개막 이후 3경기 선발 출장을 하였으나 고질적인 문제인 리시브 불안으로 1, 2세트만 채우고 교체되었다. 배구 팬들 사이에서는 현대건설이 풀세트 경기를 자주하는 주요원인으로 꼽힐 정도.[* 컵대회부터 고유민의 리시브가 그런대로 되는 경기는 현대건설이 별 문제없이 이기는 패턴이지만, 되지 않을 경우 컵대회 결승전 때나 시즌 경기처럼 풀세트로 가서 패하거나 간신히 이기는 패턴이 계속되었다.]
         다만 3차전 도로공사전에서 1세트에 안정적인 리시브를 보여주면서 백어택을 성공시키는 등 코보컵 때 모습을 잠시나마 보여준 건 위안거리. -결국 정미선과 자리를 바꾸어 닭장을 달구다 2015년 12월 12일 인삼공사전은 2세트 37:37까지 간 황에서 연속 2득점으로 2세트를 끝냈다. 이날 경기에서 본인 한 경기 시즌 최다득점인 9점 기록.[* 이 기록은 2016년 2월 1일 인삼공사 전에서 11점으로 갱신했다.]
         고질적인 문제를 이겨내지 못해서 시즌 후반엔 내내 닭장에 있었고, 2016년 3월 13일 흥국생명과의 플레이 오프 2차전에서 [[한유미]]와 [[정미선(배구선수)|정미선]]이 수비라인이 동시에 붕괴되는 초유의 사태에 양철호 감독이 2세트부터 선발 출장을 시키는 강수를 뒀고 4세트엔 여지없이 붕괴되어 한유미와 교체되었지만, 그런대로 근근히 3세트까지 버텨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특]][[대전 KGC인삼공사|정]]팀들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정시의 공격을 블로킹하여 포스트 시즌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챔피언 결정전에 교체멤버로 분류되었으나 2차전에 교체출장으로 생애 첫 챔피언 결정전에 무리없이 출장했고, 3차전 마지막 세트에 출장하면서 팀의 우승에 한몫 거들었다.
         시즌 최종 기록은 150 공격 시도/50 성공으로, 공격 성공률 33.33%. 157 리시브 시도/57 성공, 9실패로 리시브 성공률 30.57%. 세트당 디그 1.01, 세트당 세트 0.09를 기록했다.비슷한 롤이었던 박슬기가 은퇴 직전 시즌인 5년차에 달성한 공격 성공률-리시브 성공률 30%를 일단 프로 3년차에 달성하긴 했다. 은근한 노력가로 첫 시즌에 비한다면 경기력 자체는 점차 개선되어[* 수준이하의 서브, 수준 이하의 리시브, 수준 이하의 공격력으로 故황현주 감독에게는 배구선수가 공을 무서워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극딜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양철호 감독이 배구선수가 볼 미팅도 제대로 못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까였다. 다행히도 3번째 시즌엔 그렇게 욕먹지는 않았다.] 컵대회 때는 날라다니다가 시즌만 되면 수비에서 무너져 내리며 지워지는 패턴을 보였다. 터질 듯하면서 안 터지고 있어서 한국인 레프트 한자리에 고통스러워 하는 현대건설 팬들의 애증의 대이 되었다.
         부으로 코보컵 및 16-17시즌 1라운드까지 오른팔 부으로 결장한다. 그런데 컵대회에서 박경현, 이예림이 터진다면 경쟁이 불가피하다.
         1월 4일 4라운드 첫 경기였던 계양체육관 흥국생명 전에서 범실을 너무 많이 해서[* 팀 범실 19개 중에 무려 '''12개'''가 모두 고유민의 범실이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위에 까지 올랐다. 그런데 양철호 감독은 한유미가 빠진 자리에 고유민을 꽤나 오랫동안 기용했다. 심지어 반등의 기회가 될 수 있는 3세트 22:22에서 지고있다가 팀의 추격조라 할 수 있는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와 [[이다]]을 다시 고유민과 [[염혜선]]으로 교체하며 결국 자멸했다.
  • 김윤환 . . . . 52회 일치
         * 위문서: [[경북대학교/출신 인물]]
         || '''출생지''' || [[경북도]] [[구미시|선산군]] [* 現 [[구미시]] 이다.] ||
         || '''지역구''' || [[경북도|경북]] [[군위군]]·[[구미시|선산군]] → [br][[경북도|경북]] [[구미]] 을 ||
         || '''학력''' || [[경북고등학교]] {{{-1 ([[졸업]])}}}[br][[경북대학교]] {{{-1 (문학 / [[학사]])}}}[br][[오하이오 주립대학교]] {{{-1 (언론학 / [[석사]])}}} ||
         || '''약력''' || [[조선일보]] 기자[br][[남일보]] 기자[br][[대구일보]] 기자[br][[문화공보부]] [[차관]][br]제13대 [[대통령비서실장]][br]제1정무장관[* 1988년, 1990년, 1994~1995년 무려 3번이나 제1정무장관직을 역임하였다.][br][[민주정의당]] 원내총무[br][[민주자유당]] 대표 ||
         1932년 [[경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 장동(현 구미시 장천면 장리)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 문학과를 졸업하고 지역 언론사인 [[남일보]]와 [[대구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 입사해 일본특파원 및 편집국장 대리를 거쳤다. 이 시절에 오랫동안 주일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일본]]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의 금권 정치, 계파-계보 정치, 막후 정치를 보고 배운다. 중간에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 [[성주군]]-[[칠곡군]]-[[구미시|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신현확]]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김창환(정치인)|김창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는 등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기사는 거의 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1978년 [[유신정우회]]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
         고등학교 동창인 노태우의 권유로[* 사석에선 [[전두환]], [[노태우]]와 서로 반말하면서 술 마시는 사이라고 한다.] [[민주정의당]] 창당 멤버로 들어갔다. 민주정의당 전국구로 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전두환]]-[[노태우]]-[[김삼]] 정권 아래 [[청와대]]와 집권당의 주요 직책을 역임하면서 정치권을 주무르는 실세 중의 실세로 군림한다.
         [[전두환]] 정권 후반기인 1985년 2월 [[노신]] 국무총리 내각이 출범할 때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입각하였다. 문화공보부 차관으로 있던 1986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국제 공보관 회의에 참석하려 갔다가 외신 기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유력하냐"라는 말에 사견임을 전제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유력하다"는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귀국길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말 그대로 조사만 받았다. 고문을 했다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고. 김윤환 본인은 기자들이 하도 귀찮게 물어서 그냥 대충 둘러댄 거라는 식의 답을 했고 당시 특별히 수한 뒷일 같은 것도 없었던지라 금방 풀려났다.] 1년 뒤의 일을 예언한 셈이니 훗날 붙게 될 '킹메이커'라는 별명이 진짜인 셈.
         1986년 8월 개각 때 [[허문도]]의 뒤를 이어 [[대통령비서실]] 정무제1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1987년 7월 [[김정렬(1917)|김정렬]] 내각이 출범하자 [[박수(정치인)|박수]]의 뒤를 이어 전두환 정권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퇴임한 뒤 민주정의당으로 복귀했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향인 경북도 [[구미시|선산군]]-[[군위군]]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여소야대의 13대 국회가 개원한 뒤 민주정의당 원내총무에 임명되었고, 평화민주당 원내총무 [[김원기(1937)|김원기]], [[통일민주당]] 원내총무 [[최형우(정치인)|최형우]], [[신민주공화당]] 원내총무 [[김용채]]와 함께 4당 체제를 이끌어가는 원내 사령탑으로 화려한 활약을 펼쳤다. [[3당 합당]] 이후에도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정무제1장관을 맡으며 정계의 중심에서 활약했고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지역구에서 4선에 성공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윤환은 당대의 '''[[킹 메이커]]'''(King Maker)로서 정치적 향력이 절정에 올랐다. [[김삼]]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던 舊민정당(군사독재정권) 출신 민정계 인사들을 설득해서 강력한 [[김삼]]의 지지세력, 일명 신민주계를 규합하여 결국 김삼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다. 당시 김윤환은 민정계 인물들에게 '국민들이 군부 출신 민정당 인물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니 일단 [[김삼]]을 세워서 정권을 이어가고, 그 다음에 우리(TK+민정계)가 주도하는 보수 정권을 창출하면 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김윤환은 [[전두환]] 밑에서는 친구인 [[노태우]]를 후계자로 옹립해 대선에서 승리했고, [[노태우]] 밑에선 [[김삼]]을 후계자로 지원해서 역시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김삼의 대통령 당선 이후 김윤환은 정치권에 몰아친 사정의 태풍을 피해 해외에서 체류하다시피 했다. TK민정계의 동료였던 [[박준규(1925)|박준규]]와 [[박철언]] 등이 대거 정계에서 축출당하는 황에서 김윤환은 대통령을 만들어낸 2인자임에도 오히려 몸을 사려야 했다. 그런 와중에 1995년 2월 [[김종필]]이 민자당을 떠나고 6월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참패하자 김삼은 김윤환을 통해 당과 범여권을 안정시킬 필요를 느낀다. 이에 김윤환은 다시 민자당 사무총장으로 복귀했고 얼마 뒤에는 민자당 대표위원에 취임하여 명실부하게 여당의 2인자가 되었다. 민자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정한 뒤에도 김윤환은 대표위원으로 유임되었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신한국당의 국회의원 당선자 139명 중 그의 계보로 꼽힌 당선자는 무려 26명으로 전체의 5분의 1에 육박했다.
         이렇게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김윤환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이내 자신이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이회창]]을 차기 대통령으로 밀면서 다시 '킹 메이커'로서의 위세를 떨쳤다. 당내 민정계와 남세력을 대거 규합해 이회창을 대선 후보로 옹립한 김윤환은 3회 연속으로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뻔했지만, 정작 이회창은 아들들의 병역 문제와 [[이인제]]의 이탈을 막지 못하면서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패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이때부터 김윤환의 정치적 생명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자신이 밀었던 이회창 총재에게조차 구시대 정치인으로 몰리면서 [[토사구팽|팽]]당해 공천을 못받고 한나라당에서 쫓겨난다.[* 이 당시 이회창의 참모가 [[윤여준]]이었는데, 그간 총선의 화두는 공천이었음을 기시키며, 김윤환을 위시한 민정계, 구시대 인물들을 쳐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이회창은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윤여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윤여준의 전략대로 중진급 현역 의원과 정계 거물 수십여명을 날리고 정치 신인들을 대거 전면에 내세운 개혁 공천은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예을 뒤엎고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후 [[조순(1928)|조순]], [[이수성(정치인)|이수성]], [[박찬종]], [[이기택]] 등 3김 정치 + 이회창에게서 팽당한 정계의 옛 거물들을 끌어모아 [[민주국민당(2000년)]]을 차렸다. 재야의 장기표나 심지어 신군부 출신 [[허화평]]도 있었다! 이렇게 거물과 명망가만으로는 당히 그럴싸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정체성이 불문명한 정당으론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결국 양당 구도에 밀려 지역구에선 [[춘천시]]의 [[한승수]] 前 경제부총리, 전국구에선 후보 1번이던 [[강숙자]] 등 총 2명 당선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본인 역시 자기 지역구인 구미시에서 한나라당 [[김성조]] 후보를 대로 10% 차의 패배를 당했다.(41.7%:32.1%)
         16대 총선 낙선 후 김윤환은 민국당의 대표를 맡아 당을 추스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이때부터 그의 몸에는 2년 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암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회창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아 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쳤다. 당시 김윤환을 만났던 [[최병렬]]의 말에 따르면 함께 [[스테이크]]를 시켜놓고는 썰어놓지도 않은 채로 한 시간이 넘도록 이회창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고 한다. 암이 자라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이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약세와 [[자유민주연합]]의 패망으로 나름대로의 입지를 살려 3당 연합(혹은 DJP 재연합)에 낄 수 있었지만, 2001년 10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로 DJP 연합이 완전히 붕괴되자 유일한 지역구 의원 [[한승수]]도 탈당해버렸다.[* 한승수는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외교통부 장관직을 유지하다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자 7월 장관을 사퇴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회창 후보의 외교담당 특별자문이 되었다.] '''이 시기 "호남이 밀어 주는 남 대통령론"으로 [[이회창]]을 패망시키는 정치공학적 구도를 구했고 [[듣보잡|이 때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낮아 가능성이 없다]]이라고 여겨졌던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노무현과 김윤환이 협력하는 일은 없었고[* YS에게 팽당한 5공, 유신 세력을 포용한 김대중과는 달리, 노무현은 3당 합당 당시부터 보여주었던 자신의 원칙대로 옛 군부 정권 시절 인사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대신 자신과 뜻을 함께했던 주변 사람들을 세웠다. 5공 시절부터 킹메이커로 이름을 날린, 그것도 TK의 좌장이나 다름없던 김윤환이 노무현과 연합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던 셈.] 김윤환 본인은 대선 직후 [[신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2114|#]]
         대화와 협력을 명분으로 실제론 막후 밀실에서 정치자금과 권력을 배경으로 야합하는 [[일본]]식 정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실제 "호남이 밀어주는 남 대통령"으로서[* 개혁 성향의 남후보를 세워서 남표를 잠식하고 수도권의 개혁 성향 야당표를 결집시켜야 한나라당의 호남 포위 구도를 깨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천하삼분지계]]가 [[제갈량]]만의 독창적 사고가 아니라 당시 주요 책사들의 공통적 인식이었던 것처럼 '호남이 밀어주는 남 대통령'도 정치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로 여겨지던 내용이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2~3%에 불과할 때도 일단 민주당 후보 경선만 통과한다면 대선 승리 가능성으론 가장 높을 것이란 평가가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 당선된 것이나, 홀로 여러 계파를 다룬 점 등 정치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 김윤환이 속해 있던 민주정의당에 맞서 싸웠던 [[김근태]]는 국회의원이 되어 김윤환을 만난 다음 "그래도 김 선배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장내에서 민주주의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를 했고, 언론계 인사들 역시 "허주는 순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물 흐르듯 한다."는 평을 아끼지 않았던 점을 보면 친화력만큼은 역대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힐 수 있을 만큼 대단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죽기 직전에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이회창이 사과의 뜻을 표했으나 공식적 화해 없이 세을 떴다.
          * [[2003년]] 그가 죽자 그의 호인 허주(虛舟), 즉 빈 배처럼 갔다고 해서 권력은 무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 사후 [[경북도]] [[구미시]] 장천면 장리의 오중고교 뒷편에 안장됐다. 오중고교는 김윤환의 아버지인 [[김동석]] 전 국회의원이 세운 학교다.[* [[대구 버스 칠곡3|칠곡3번]] [[경운대학교|경운대]]행이 장천시외버스터미널에 정차하기 전에 오중고교를 지나지만, 무정차 통과한다.(장1리에는 정차한다.) [[대구 버스 칠곡3|칠곡3번]]을 탔다면 장천터미널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
          * [[시인(문학)|시인]]으로도 활동했는데, [[경북대학교]] 정문과 학생주차장 사이에 새롭게 단장한 KNU 센트럴 파크에 그의 시비가 있다.[* [[경북대학교]]에서 잠깐 교수로 재직한 적이 있는 [[김춘수]] 시인의 유명 작품인 "꽃"도 KNU 센트럴 파크에 새겨져 있다.]
  • 영창대군 . . . . 52회 일치
         [[선조]]와 [[김희정 (1992년)]] 사이에서 태어난 [[선조]]의 적장자. '''왕실에 태어난 것이 죄였던 아이'''.
         본명은 이의(李㼁). 군호는 창대군(永昌大君).
         광해군 3년(1611 신해 / 명 만력(萬曆) 39년) 12월 26일(신묘)에 창대군(永昌大君)으로 책봉되었다. 실록에는 이 때의 나이가 6세라고 주석이 달려 있다.
         조령(鳥嶺) 길목에서 도적이 행인을 죽이고 은자(銀子) 수백 냥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수괴인 서얼(庶孽) 박응서(朴應犀) 등이 체포되었다. 박응서는 자신들이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자금을 모아 무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하려 했다고 자백하였으며, 이 사건에 연흥부원군 김제남과 창대군 이의가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다.
         결국 광해군 5년(1613 계축 / 명 만력(萬曆) 41년) 5월 4일(신유)에 창대군의 외조부인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파직, 6월 1일(무자)에 사사되었다. 창대군 역시 5월 21일(무인)에 봉작이 박탈되었고, 7월 27일에 창대군은 강화도에 위리안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흔히 창대군은 8살 나이에 유배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어 강화부사 정항이 불로 쪄서 죽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창대군의 죽음은 실록 내에서도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는 탓에 정황이 당히 불확실하다.
         크게 보자면 (1) 정항에 의한 아사설, (2) 정항에 의한 증살설, (3) 이정표에 의한 독살설이다. 세를 보면 알지만 2번과 3번은 완전히 모순인데, 인조반정 당시에는 어찌됐든 정항과 이정표가 모두 벌을 받아 파직을 당했다. 이후 이정표는 효종 때 손자 이후선이 파직되었다가 일단 무죄가 입증된다.
         >대군이 죽을 때의 나이가 9세였다. 정항이 강화 부사로 도임한 뒤에 대군에게 양식을 주지 않았고, 주는 밥에는 모래와 흙을 섞어 주어서 목에 넘어갈 수 없도록 하였다. 읍 안의 한 작은 관리로서 창 대군의 위리(圍籬)를 수직한 자가 있었는데 불쌍히 여겨 몰래 밥을 품고 가서 먹였는데 정항이 그것을 알고는 곤장을 쳐서 내쫓았다. 그러므로 대군이 이때부터 밥을 얻어 먹지 못하여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
         >강화 부사(江華府使) 정항(鄭沆)이 창대군(永昌大君) 이의(李㼁)를 살해하였다.【【정항이 고을에 도착하여 위리(圍籬) 주변에 사람을 엄중히 금하고, 음식물을 넣어주지 않았다. 침에 불을 때서 눕지 못하게 하였는데, 의가 창살을 부여잡고 서서 밤낮으로 울부짖다가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 의는 사람됨이 리하였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대비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염려하여 괴로움을 말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복을 입지도 않았다. 그의 죽음을 듣고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강화 부사 정항이 창 대군 이의를 살해하다
         >“금계군(錦溪君) 박동량(朴東亮)은 계축년에 대질 심문할 적에 말을 만든 것이 망령되이 착오되어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인용하여 흉도(兇徒)가 구실삼을 거리를 제공하였으니, 그 죄를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작을 삭탈하고 문외에 출송할 것을 명하소서. 정항(鄭沆)은 강화 부사(江華府使)로서 창 대군(永昌大君)을 핍살(逼殺)하였고, 이정표(李廷彪)는 교동 별장(喬桐別將)으로서 임해군(臨海君)을 핍살하였으므로 여정이 분노하는 것이 극에 달했습니다. 관작을 추탈하소서. 그리고 두 사람의 여러 아들들은 모두 정배함으로써 악을 징계하는 터전으로 삼으소서.”
         >하니, 이 이르기를,
         >하였다. 대체로 박동량은 훈척(勳戚)인 재신(宰臣)으로서 선묘(宣廟)가 유교(遺敎)한 뜻을 생각하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감히 말해서는 안 될 일까지 끌어들임으로써 마침내 화를 궁금에 전가시켜 공론에 죄를 얻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단지 관작을 삭탈하고 문외에 출송할 것만을 청하였으니, 사정을 따른 자취가 있음을 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 하교가 이와 같았던 것이다. 그 뒤 >>정항 등의 일에 대해서는 며칠 동안 연계(連啓)하니, 그대로 따랐다.
         >>“일에는 선후가 있고 율에는 경중이 있습니다. 지금 이이첨의 심복들을 모두 죄주지 않은 태에서 먼저 정항(鄭沆)과 이정표(李廷彪)를 죄주도록 청한 것은, 진실로 왕자 두 분의 죽음이야말로 천하에 다시 없이 원통하고 동시에 당시 핍살(逼殺)했던 흔적이 사람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 당사자가 이미 죽었다고 해서 그냥 덮어 둘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 성의 비답을 받들건대 ‘살아 있는 자는 가볍게 처리하고 죽은 자에게는 가혹하게 대한다.’는 하교가 있으셨습니다. 신들이 일을 논하면서 잘못한 죄를 면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니, 신들의 직을 파척하소서.”
         >>하니, 이 이르기를,
         >>하였다. 옥당이 처치하여 출사시킬 것을 청하니, 이 답하기를,
         >>“요즈음 대간이 논하는 것을 보면 당을 비호하는 흔적이 뚜렷하니, 내가 마음 속으로 무척이나 해괴하게 여긴다. 정항 등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해서 내가 윤허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자에게는 가볍게 처리한다.’는 분부가 어찌 유독 이이첨의 당만을 말한 것이겠는가. 오늘날의 행태로 보건대 조정에 당파가 없는 날은 오지 않을 듯싶다. 다시 이와 같은 기을 볼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창 대군 이의(李㼁)는 나이 8세 때에 간흉들의 모함을 받았는데, 광해가 강화부에 가두면서 궁녀 두 사람을 따라가게 하였다. 자전이 옷 한 벌을 만들어 보내었는데, 창 대군이 펴 볼 적에 옷에 얼룩진 데가 있었다. 이에 궁녀들에게 묻기를,
         >>하자, 창 대군이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였다. 그 뒤에 광해가 두 궁녀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의금부 도사가 위리 안치한 곳의 문에 당도하여 나오라고 재촉하자, 궁녀들이 통곡하면서 창 대군에게 하직하니, 창 대군이 단정하게 앉아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하였다. 광해가 이정표(李廷彪)를 별장(別將)으로 삼아 지키게 하면서 몰래 빨리 죽이도록 하자, 이정표가 광해의 뜻을 받들어 창 대군이 거처하는 데로 가서 방에 불을 넣지 않았다. 이에 창 대군이 늘 의롱(衣籠) 위에 앉았고, 때때로 섬돌 가에 나아가 하늘을 향하여 빌기를
  • 조진호 (축구인) . . . . 52회 일치
         |사망지=[[대한민국]] [[경남도]]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
         |클럽=[[포항 스틸러스|포항제철 아톰즈 / 포항 스틸러스]]<br />→ [[국군체육부대|무]] (군복무)<br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br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
         |감독 클럽 =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 / 제주 유나이티드]] (코치) <br /> [[제주 유나이티드 FC]] (대행) <br /> [[제주 유나이티드 FC]] (코치) <br /> [[전남 드래곤즈]] (코치) <br /> [[대전 시티즌]] (수석 코치) <br /> [[대전 시티즌]] (대행) <br /> [[대전 시티즌]] <br />[[무 축구단|무]]<br>[[부산 아이파크]]
         '''조진호'''(趙眞浩, [[1973년]] [[8월 2일]] ~ [[2017년]] [[10월 10일]])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였으며, [[대전 시티즌]], [[무]],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을 지냈다. 본관은 [[함안 조씨|함안]].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4년 아시안 게임|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본선 출전하였지만,끝내 한국은 4강에서 떨어졌고, [[1996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선임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체질개선을 선언하였고,좋은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를 추구했던 탓에 조진호의 대표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으며, [[1995년]] 다이너스컵 출전을 앞두고 [[아나톨리 비쇼베츠]]의 기용방식에 불만을 품고 올림픽대표팀 합류 거부 파문을 일으켰고, 황금기를 열지도 못한채 6개월 선수 자격정지와 함께 축구팬들의 외면을 받아고, 부으로 인해 포항에서조차도 [[고정운]],[[박태하]]등에 밀렸으며, [[2000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로 이적하였다.
         [[2001년]] [[성남 FC|성남 일화]]로 이적했지만, 2년간 27경기 2골 1어시스트에 그쳤으며,우측 무릎 전방 십자인대 부 재발로 [[2002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K리그 챌린지]]에서 시작한 2014 시즌 개막전에선 [[수원 FC]]에 대패하였으나 [[3월 30일]] [[고양 Hi FC]]전 4:1 대승을 시작으로 [[4월 27일]] [[부천 FC 1995]]전 까지 총 리그 5연승을 거두었으며, 5월 8일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6월 21일]] [[대구 FC]]전까지 총 14경기 연속 무패와 더불어 한시즌동안 11경기 연속 홈 무패를 기록하며 구단의 한시즌 홈 최다 연속무패 신기록을 세움<ref> 이 기록은 2016년 [[최문식]] 감독이 한시즌 홈 12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깨졌다.</ref>과 동시에 리그의 절대강자로 치고 올라가는 등 승세를 보이자 [[5월 8일]] 마침내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5월 11일]] [[안산 경찰청 축구단]]과의 정식감독으로서의 데뷔전에서 2:0승을 이끌었으며, 5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다.<ref> [http://osen.mt.co.kr/article/G1109868314/ 대전 돌풍 이끈 조진호, 연맹 선정 5월의 감독] </ref> 이후 시즌 종료까지 꾸준히 리그 1위 자리를 수성하며 대전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K리그 챌린지 최우수감독에 선정되었으며, 구단 역사 최초로 한시즌에 20승 이을 거둔 감독이 되었으며, 대전팬들 사이에서 '''갓진호'''라는 별명을 얻었다. <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28091/‘갓진호’, 축구특별시 부활 이끈 지휘자] </ref>
         [[K리그 클래식]]에서의 [[K리그 클래식 2015|2015 시즌]]을 앞두고 [[안규]], [[정석민]], [[임창우]] 등 주축 선수들이 다수 빠져나가는 등 악재를 겪었고 시즌 개막 후 11라운드까지 1승을 거두는데 그치자 계약조건을 토대로 사임, 사실 경질되었다.<ref> [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505/sp2015052110281493650.htm/ 대전 조진호 감독, 성적부진으로 사의 표명] </ref>
         그뒤 독일에서 지도자연수를 받은뒤, [[박항서]] 감독의 후임으로 [[무]]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ref>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343&aid=0000055866?? 주, 신임 사령탑에 조진호 전 대전 감독 선임] </ref>2016시즌 주를 최초로 리그 위 스플릿 A에 진출시켰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43&aid=0000064222/ 조진호 감독, “첫 위 스플릿 진출 선수들에게 고맙다”] </ref> 이는 [[박항서]]도 하지 못한 [[K리그 클래식]] 잔류를 위 스플릿으로 확정지은 것이다.
         [[11월 25일]]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취임하였으며, [[이정협]]을 비롯한 공격 자원을 앞세워 시즌 내내 리그 위권을 유지하였으며, [[FA컵 2016|FA컵]]에서는 [[FC 서울]]과 [[전남 드래곤즈]] 등의 강호들을 대로 승리를 거두어 4강에 진출하였지만, [[10월 8일]] 리그 1위 [[경남 FC]]전에서 패하면서 사실 리그 2위를 확정지었다.
         이틀 뒤인 [[2017년]] [[10월 10일]]에 화명동 [[부산 아이파크]] 숙소를 나서다 주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에 심적 부담이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향년 45세를 일기로 세을 떠났다. 빈소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2일 오전에 이루어졌다.<ref name="sportschosun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박찬준 | 뉴스=스포츠조선 | 제목=[속보]조진호 부산 감독, 심장마비로 사망 | url=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26/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yonhapnews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김태종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프로축구 부산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별세(종합2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01/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 그의 유해는 김해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비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의 FA컵 4강전은 조진호 감독의 사망으로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감독 대행이 지휘했지만,이미 조진호가 FA컵 4강 대진표가 나왔을 때 대비해 전술을 모두 파악해 놓은 태였으며, 이를 인수인계받은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의 전술을 파악해 전방 압박을 충실히 해서 조진호 감독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고, 승부차기 끝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명장의 마지막 경기에 피날레를 찍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이 입었던 속옷을 입고 경기를 지휘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71567 |제목="아, 감독님" 이정협의 되새김질과 이승엽 대행의 '속옷'|출판사=SPO TV |저자=조형에 |날짜=2017-10-26}}</ref>
         2017시즌 K리그 시식에서 조진호 감독에게는 특별 공로이 주어졌고, 아들 조함민 군이 대신 시식에 참여했다.
         == 수 ==
         * [[2014년]] [[K리그 감독|K리그 챌린지 최우수 감독]]
         * [[2014년]] [[K리그 챌린지]] 5월의 K리그 감독
         * [[2017년]] [[K리그]] 특별 공로
         조진호는 쉐도우 스트라이커 겸 공격형 미드필더로 많은 활동량을 주무기로 하였으며 이로 인해 '깨소금'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감독과의 불화, 부 등의 악재로 재능에 비해 선수로서 빛을 보지 못하며 '비운의 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조진호는 다른 감독들과는 다르게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무릎을 꿇고 두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등의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격하게 기쁨을 표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 시절에는 친정팀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평소와는 다르게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자제하면서 친정팀인 대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도 하였다.
         |직책 = [[무]] 감독
  • 최여진(탤런트) . . . . 52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FFB6C1> '''학력''' ||<(><#FBEFFB> [[대구고등학교]][br][[한양대학교]] 연극화학과 ||
         ||<#FFB6C1> '''소속''' ||<(><#FBEFFB> 토미회 엔터테인먼트 ||
         ||<#FFB6C1> '''외부 링크''' ||<(><#FBEFFB> [[http://www.choiyeojin.com/|공식사이트]] [[https://www.instagram.com/yjyjyjyjyj_yj/?hl=ko|[[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width=20]]]] [[http://minihp.cyworld.com/pims/main/pims_main.asp?tid=22068560|[[파일:싸이월드_로고.png|width=20]]]] ||
         비춰지는 이미지에 비해 과거사가 당히 암울한 편으로, 부모님이 [[이혼]]하고 나서 어머니 정현숙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는데 믿었던 교포에게 전 재산을 사기당해 [[트레일러]]에서 살아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연예활동으로 돈도 많이 벌어서 母 정현숙의 집도 사고, 母 정현숙은 [[재혼]]하여 행복하게 산다고 방송에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딸 최여진과는 무관하게 정현숙의 SNS 발언에 관하여 큰 논란이 발생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항목참조.
         실물이 훨씬 예쁘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최여진 실물"이 자동검색 될 정도.
         [[모델]] 출신이라 이기적인 기럭지와 강한 인의 [[마스크]], 시원하고 털털하고 유쾌한 성격이 매력인 배우. 데뷔 초기에는 다소 강한 인 때문인지 각종 악역 특화된 느낌을 주었으나, 연차가 쌓이면서 점점 호감형 캐릭터에 자주 캐스팅됐다. 주로 직선적 성격에 자존심이 강한 커리어 우먼이나 연애에 쿨한 화려한 싱글녀 이미지가 강하다. [[외과의사 봉달희]]와 [[응급남녀]]의 의사 캐릭터와 [[공항 가는 길]]의 사무장 역할이 대표 캐릭터이다.
         지파의 고정패널, [[케이블 TV]]의 진행자를 맡는 등 본업이 연기자라는걸 감안하면 꽤 다양한 예능에 출연하였다. 과거 고정패널로 활동했던 "여걸6"[* 이게 이 프로그램의 여성 출연자들의 위치가 좀 미묘했다. 일단 대우는 MC급으로 퇴사하면서 어쩔수 없이 하차해야 했던 [[강수정]]을 제외하면 본인이 하차하지 않는 한 변동이 거의 없었지만 사실 진행은 [[지석진]]이 혼자 맡았고 일반적인 당시의 짝짓기 프로그램처럼 여성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의 진행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었으며 고정 페널이라 보기에는 당시 고정 페널로 나오던 [[이승기]], [[김종민]], [[신정환]]과는 대우가 완전히 달랐다.]에서는 주로 [[신정환]]과 엮이는 구도였으나 그리 오래 출연하진 못하고 4개월 만에 개인 스케쥴 문제로 하차하고 말았다. 프로그램내 비중은 거의 공기수준으로 아무래도 다른 여성 출연자들의 [[정선희|존]][[조혜련|재]][[현|감]][[강수정|이]] 너무 크다보니 대적으로 많이 묻혔었다.[* 다만 대부분 여성 출연자들의 외모덕에 나름 비주얼 담당을 맡았었다는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여담으로 출연시 [[밸리댄스]]를 추는 특집편이 있었는데, '''[[뽕]]'''이 의 위로 밀려올라가서 검색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9년 [[백예술대]]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Mnet등에서 "패션"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고, 각종 시식의 "베스트, 워스트 드레서"에 대한 평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2013년]] [[핫식스]]의 광고 모델이 되었다. ~~망가진 모습이 재밌다.~~ ~~그리고 [[박현(캐스터)|뒤에 넋 놓은 분]]도 같이 주목을 받았다...~~
         === 화 ===
         || [[싸움의 기술]] || 애 || ||
         || 2017년 || 용순 || 어선생 || ||
         ||<tablebordercolor=#FFB6C1><rowbgcolor=#FFB6C1><table bgcolor=#FBEFFB> '''방 연도''' || '''방송사''' || '''제목''' || '''배역 이름''' || '''비고''' ||
         || 2004년 || KBS2 || [[미안하다 사랑한다]] || [[문지]] || ||
         || [[황금신부]] || 옥지 || [* 참고로 이 배역도 막장 엄마를 둔 죄로 어쩔 수 없이 악녀가 되어가는 역할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꽤나 묘한 역할이다.] ||
         || 2018년 || KBS2 || [[러블리 호러블리]] || 기은 || ||
         ||<tablebordercolor=#FFB6C1><rowbgcolor=#FFB6C1><table bgcolor=#FBEFFB> '''방 연도''' || '''방송사''' || '''제목''' || '''비고''' ||
         ||<|2> 2016년 || KBS2 || 수한 휴가 || ||
  • 궁예 . . . . 51회 일치
         '''김궁예'''(金弓裔, [[869년]] [[음력 5월 5일]] ~ [[918년]] [[7월 24일]], 재위: [[901년]] [[7월]] ~ [[918년]] [[7월 24일]]([[음력 6월 14일]]))는 [[신라]]의 왕가 서족(王家 庶族) 출신의 [[승려]]이자, [[태봉]]의 군주이다. 그는 [[신라 헌안왕]] 또는 [[경문왕]]과 후궁 사이에 태어난 유복자였다.<ref>《[[삼국사기]]》권 제50 열전 제10 궁예편. 궁예에 관하여 가장 기본적인 사료로, 여기서 인용되는 문장은 특별한 표시가 없다면 이곳에서 인용된 것이다.</ref> [[장보고]]의 외손이라는 설도 존재 한다.<ref>{{웹 인용|url=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789|제목=궁예|확인날짜=2013-09-05|웹사이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그의 본래 속세 성은 '''김'''(金)씨,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慶州), [[불교]] 승려로서의 법명은 '''선종'''(善宗)이고, 별명은 미륵(彌勒), [[일목대왕]](一目大王<ref name="cho01">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17/2008121701603_3.html</ref><ref>20세기 초의 사학자 단재 [[신채호]]가 붙인 별명이다.</ref>)이다. [[918년]] [[고려 태조|왕건]]에게 축출되었으므로 시호는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궁예는 신라 제47대 국왕 [[헌안왕]](혹은 신라 제48대 국왕 [[경문왕]])의 빈어(嬪御) 소생, 즉 서자로 기록되어 있다. 원래 이름은 '김궁예'다.<ref>신라왕의 서자이긴 하지만 정확히 어느 왕의 서자인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헌안왕]]설을 채택했고, [[전남대학교]] 정청주 교수 또한 아들이 없고 딸만 두 명이었기에 맏사위였던 응렴(경문왕)이 즉위하게 된 황에서 궁예가 태어났으며 이때 응렴의 아버지로 앞서 헌안왕의 즉위에도 힘을 보탠 바 있는 시중 계명(啓明)이 자신의 아들인 응렴을 즉위시키기 위해 헌안왕의 아들인 궁예를 제거하려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궁예와 호족 세력」 『신라말 고려초 호족 연구』, P.65~67. 1996). 한편 [[2000년~2002년]]에 방송된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경문왕의 왕자로 설정하였다.</ref>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등장하는 고경참문에 의하면 궁예는 丑년생인데 그러면 857년생, 혹은 869년생인걸 알수 있다. 궁예가 [[891년]] 절을 떠나 처음 봉기에 참여한 시기로 미루어 짐작할때 [[869년]]생, 그러니까 경문왕의 서자인 설이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음력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부터 [[무지개]]를 닮은 흰 빛이 지붕 위에 있었고 날 때부터 [[이]]가 있었다. 이를 불길하게 여긴 [[일관]](日官)이 왕에게 그를 죽일 것을 청했는데, 왕명으로 궁예를 죽이러 온 중사(中使)는 궁예를 포대기에 싸서 높은 누대에서 던졌다. 누대 아래로 떨어진 궁예를 유모가 밑에서 받아서 목숨은 구했지만, 이때 유모의 손가락이 눈을 찌르는 바람에 애꾸가 되었다. 유모는 궁예와 함께 멀리 도망가 궁예를 길렀다고 한다.
         궁예가 10여 세가 되었을 무렵, 유모는 주위와 말썽을 일으키고만 있는 궁예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리며, "너는 왕자로서 태어났고, 살해당하는 것이 안 되게 생각되어 그래서 너를 목숨을 걸고 길렀는데, 너는 매일 소동을 일으켜 나에게 걱정만 끼치고 있다. 너의 정체가 알려지면 우리는 살해당할 것이니 슬프다." 라고 했다. 궁예는 울면서 "그러면 제가 집을 나가서 더 이 어머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겠습니다..." 하고는 집을 나와서, 세달사(世達寺)에 몸을 기탁해 스스로 성명을 [[선종]](善宗)이라 했다.
         궁예의 승려 시절에 대해 《삼국사기》는 그가 "장성하자 승려의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기이 활발하며 뱃심이 있었다."고 전해, 견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궁예의 일생을 전체적으로 조작하고 왜곡했어도 그의 승려 시절의 모습과 이후 그가 출가해 혁명가로서 활동할때의 초반 행적들에 대해서만큼은 미흡하나마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려사]](高麗史)》 태조 세가에는 궁예 정권의 핵심인물로서 궁예가 축출되고 왕건이 즉위한 지 7일만에 내군장군(內軍將軍) 은부와 함께 주벌된 소판 종간이라는 인물에 대해 "젊어서 승려가 되었던 자"라고 적고 있어, 일찍부터 궁예와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종간이 궁예의 승려 시절, 즉 세달사에서 궁예를 알게 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ref>정청주, 같은 책, p.75</ref> 세달사에서 승려로 지내던 궁예가 어느 날 재(齋)에 나아가 행렬에 들었는데, [[까마귀]]가 그의 바리때에 '왕(王)' 자가 새겨진 앗대를 떨어뜨리고 간 것을 보게 되었고, 이때부터 궁예는 자신이 장차 크게 떨쳐 일어날 것이라 굳게 믿었다고 한다.<ref>궁예가 승려로서 출가한 세달사는《삼국사기》에는 흥교사(興敎寺)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의 강원도 월군 남면 흥월리 흥교동 대화산 서복에 그 절터가 남아 있다(정호, 「신라 사자산 흥녕사지 연구」 『백산학보』7, 1969, p.27). 또한 세달사는 균여의 《십구장원통기》에도 등장하며 《삼국유사》의 세규사(世逵寺)와 같은 곳으로(김현 「신라 화엄학승의 계보와 그 활동」 『신라문화』1, 1984, p.56) 정청주는 세규사의 장원이 위치해 있던 명주(溟州) 나리군(奈李郡)을 나성군(柰城郡)으로 보고, 세규사(세달사)가 위치해 있었던 [[소백산]](小白山)과 당시 나리군의 태수(이기백 「신라 정토신앙의 다른 유형들」 『신라사사연구』 1986, p.164)였던 [[김흔]](金昕) 집안([[김주원]]계 강릉 김씨)과의 연고를 들어, 지금의 월과 그 인근 지역인 [[평창]] · [[단양]] · [[제천]] 등지에 장원을 가지고 있었던 세규사에서 멀지 않은 명주 지역의 [[강릉 김씨]] 일족으로 김흔의 방계에 해당하는 후손들이 일찍부터 궁예와 연결되어 그를 비호하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까마귀가 '[[왕]]' 자가 적힌 앗대를 떨어뜨리고 갔다는 《삼국사기》의 기록도 세달사에서 그가 왕자 출신임을 알아본 [[세달사]]의 사원세력, 또는 월 일대의 호족 세력들이 궁예에게 장차 거병하여 왕이 될 것을 부추긴 한 일화로서 해석되고 있다. 이후 궁예가 명주를 자신의 세력 기반으로 삼았던 것이나, 궁예가 축출되고 명주가 한동안 왕건에게 항복하지 않고 저항했던 사실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정청주, 같은 책, p.71~74, p.78~79).</ref>
         진성여왕 5년([[891년]])부터 신라의 각지에서는 거듭되는 흉년과 가혹한 세금 징수를 견디다 못해 도망쳐 도적이 된 자들의 봉기가 잇따랐는데, 궁예도 절을 떠나서 죽주(竹州)의 적수(賊帥) [[기훤]](箕萱)을 찾아가 그의 휘하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기훤이 궁예에게 오만하고 무례한 자세로 대하자 이에 반발해, 다시 죽주를 떠나 [[북원경|북원]](北原)의 적수 [[양길]](梁吉)의 휘하에 들어갔다. 《삼국사기》는 이때 기훤의 휘하에 있던 원회(元會), 신훤(申煊)이 궁예를 따라 함께 북원으로 왔다고 적고 있다. 기훤과는 달리 양길은 궁예를 신임해 그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며 북원 동쪽 땅의 경략을 맡겼고, 궁예 자신은 [[치악산]]의 석남사(石南寺)에 머무르며 [[진성여왕]] 6년([[892년]])까지 [[주천]](酒泉) · [[월|내성]](奈城) · [[울진|어진]] 등 명주 관내의 10여 군현(《삼국사기》 신라본기. 같은 책 궁예전에는 주천과 내성, 울오, 어진의 4개 군만이 기술되어 있으며 시점도 본기와 열전에 차이가 있다)을 공략하여 모두 항복시켰으며, 진성여왕 8년([[894년]])에는 드디어 명주를 점령하였다.
         《삼국사기》 궁예전은 이때 궁예가 거느린 무리가 3,500인(신라본기에는 600인)에 이르렀으며<ref>궁예의 이 병력은 당시 실직(삼척)에 배치되어 있던 옛 신라군도 가담했을 가능성이 이기백에 의해 지적되었으며(이기백, 「고려경군고」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총』, 1956 ; 『고려병제사연구』, 1968, p.47 ; 「고려 초기 중앙군의 조직과 역할」, 『고려병제사』, 1983, p.20) 처음 명주를 출발할 때의 수가 600이고 명주에 들어가 모집하여 증가한 수가 3,500이라는 해석도 있다(박한설, 「궁예성명고 - 고구려 계승 표방과 관련하여」, 『이선근박사고희기념 한국학논총』, 1974).</ref>, 궁예는 이를 14대(隊)로 나누어 편재하고 김대(金大) · 검모(黔毛) · 흔장(昕長) · 귀평(貴平) · 장일(張一)<ref>정청주는 이들 인명을 김대검(金大黔) · 모흔장(毛昕長) · 귀평 · 장일로 떼어 읽었는데, 귀평의 경우 『흥녕사징효대사보인탑비』의 음기(陰記)에 「귀평 일길간 제주(貴平一吉干提州)」로 되어 있는 점을 들어 당시 [[제천|제주]] 지역의 호족으로, 김대검(김대)의 경우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당시 강원도 평창군의 토성(土姓)으로서 김씨가 등장하는 점을 들어 평창(당시에는 나성군의 현이었던 백오현) 출신의 호족으로 추정하고, 나아가 김대검(김대)가 몰락한 김흔계의 후손일 가능성도 제기하였다(정청주, 같은 책, p.75~76).</ref> 등을 뽑아 사(舍上), 즉 부장으로서 임명하여 지휘하였다고 적었다. 나아가 궁예는 명주에 들어간 뒤부터 장군(將軍)을 자칭하였는데, 하대 신라에서 반란의 지도자나 호족 세력이 장군을 자칭한 것은 궁예가 최초였다.<ref>궁예 외에 장군을 지칭한 것은 904년과 905년에 공주장군(公州將軍)을 칭한 홍기(弘奇)와 평양성주장군(平壤城主將軍)을 칭한 검용(黔用)을 제외하면 경명왕 2년([[918년]])까지 거의 20년이 넘도록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장군은 신라에서는 당(幢)이나 정(停) 등의 군단을 지휘하는 최고 지휘관으로서 진골 귀족이 독점했던 무관직이기에 함부로 자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궁예가 이를 자칭한 것은 그가 신라 왕족, 즉 진골 귀족 출신이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정청주, 같은 책, p.77).</ref> 궁예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고락을 함께 하며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해 신라에 등을 돌린 백성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그는 세이 끝나는 날 현신해 세을 구원한다는 미륵불이라 자처했고, 백성들은 그런 궁예를 자신들을 구원해줄 대으로 삼았지만, 궁예가 이때부터 자신을 미륵으로 여겼다는 학계 일부의 견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이때의 궁예는 아직 양길의 부하로 있었던 시절이었고, 또 명주를 장악한 후 황제나 왕도 아닌 장군만 자처하는 황에서 스스로 미륵으로 자처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황이기 때문이다.
         명주를 장악한 궁예는 진성여왕 9년([[895년]]), [[동해]]를 끼고 북서 지방으로 넘어와 저족, 성주([[화천]]), 부약(금화), 금성(금화군), [[철원]] 등 10여 군현을 점령하여 세력 기반을 다졌고, 지금의 강원도 전 지역을 장악한 궁예는 이듬해 철원을 자신의 도읍으로 삼았다.
         궁예의 세력이 급성장하자 패서(浿西), 즉 예성강 이북 지역의 호족들이 차례로 궁예에게 자진 투항하였는데, 송악(松嶽)의 해 호족이었던 [[위무대왕|왕륭]] · [[왕건]] 부자가 진성여왕 10년([[896년]])에 궁예에게 투항해 오자 궁예는 [[고려 세조|세조]]의 아들인 왕건을 철원군 태수로 임명했다. 왕륭의 제의를 받아들인 궁예는 [[효공왕]] 2년([[898년]]) 철원에서 송악으로 도읍을 옮기고, [[왕건]]을 시켜 [[양주]]와 [[청주]](淸州) 등 30여 성을 정벌하도록 하였다. 겨울 11월에 궁예는 처음으로 [[팔관회]]를 열었다.
         [[효공왕]] 3년([[899년]]) 청주 지방을 점령하여 소백산맥 이북의 한강 유역을 수중에 넣은 궁예는 송악의 성을 중수한 뒤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고, 3월에 왕건을 정기대감(精騎大監)으로 삼아 양주와 견주를 공략하게 하였다. 궁예의 세력이 강성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북원의 양길은 자신의 관할 및 한산주 지역 호족들을 끌어들여 궁예를 공격하지만 거꾸로 비뇌성 전투에서 참패하고 자신도 몰락하고 말았다.<ref name="cho01"/> 비뇌성에서 양길을 패배시킨 뒤인 효공왕 4년([[900년]]) 왕건에게 명하여 광주 · 국원경(충주) · 청주 · 당성(唐城) · 괴양(槐壤) 일대를 정벌하여<ref name="cho01"/> 광주를 우선 평정하고, 국원경과 청주 · 괴양의 적수 청길(淸吉) · 신훤(莘萱) 등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리고 효공왕 5년([[901년]]) 7월에 스스로 고려왕(후고구려왕)을 칭하였다(《삼국유사》 연표에는 고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가 당병을 청해 고구려를 멸망시켜서 [[평양]]의 옛 도읍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되었으니, 그 원수를 내가 갚겠다"고 선언한 궁예의 발언을 기록하면서, 그것을 "신라로부터 버림받은 것에 분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고, 궁예가 [[부석사]]에서 신라왕의 초화를 발견하고 그것을 칼로 쳤다는 일화도 함께 전하고 있다.
         효공왕 6년([[902년]])부터 왕건을 서해안에 파견해 당시 [[후백제]]의 해으로의 대중 교역로를 차단하게 했고, 효공왕 7년([[903년]]) 3월, 수군으로 후백제의 후방에 위치한 중요한 해 거점이었던 금성(錦城. 지금의 나주 지역)지역을 점령하면서 토를 넓혔다. 나아가 왕건은 금성 공략과 함께 양주(良州)의 호족이었던 김인훈(金忍訓)을 구하여 돌아온 공으로 궁예로부터 알찬의 관등을 받았다.
         성책 2년([[906년]]), 궁예는 왕건을 보내 견훤의 군대를 [[사벌주|주]](尙州)의 사화진(沙火鎭)에서 맞아 싸우게 했고 왕건의 군대는 견훤의 군대와 여러차례 치열하게 싸워 결국 크게 이겼다.
         한편 후백제의 견훤은 궁예 성책 5년([[909년]]) 다시 나주 지역에 대한 공략을 실시하여 지금의 산강 하에서 광 서쪽 해안인 염해현까지 진격하였다. 6월에 왕건의 수군이 광주(光州)의 진도(珍島)를 쳐서 차지하고 고이도(皐夷島)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목포에서 덕진포까지 진을 치고 있던 후백제의 수군을 화공(火攻)으로 대파했으며, 압해현의 해 호족 능창이 왕건의 수군에 붙잡혀 궁예에게 보내져 처형되었다. 성책 6년([[910년]]) 후백제의 견훤이 다시 3천명의 군사를 내어 나주를 포위 공격하자, 궁예는 포위 공격 10일 만에 수군을 내어 견훤을 쳐서 몰아내고 나주 지역을 확고하게 지배하게 되었다. 이 무렵 궁예의 판도는 남으로는 공주와 주, 동북으로는 증성(甑城), 서북으로는 지금의 황해도와 평안남도 남부까지 이르러 국세를 크게 떨쳤다.
         [[911년]](효공왕 14년) : 국호를 [[태봉]](泰封)으로,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로 개칭하고 궁궐을 증축했다. 태봉(泰封)의 뜻은 주역에서 ‘태(泰)’는 ‘천지가 어울려 만물을 낳고 하가 어울려 그 뜻이 같아진다’는 뜻이라 하고, 봉(封)은 봉토, 곧 땅이다. 결국 궁예는 철원을 기반으로 ‘원한 평화가 깃든 평등 세계’, 곧 미륵세인 대동방국의 기치를 높이 든 것이다.<ref name="cho02"/>
         수덕만세 3년([[913년]]) 왕건을 [[파진찬]] 겸 [[문하시중]]으로 임명해<ref name="pare199619">박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19페이지</ref> 수도로 불러들인지 1년만인 정개 원년([[914년]])에, 견훤이 나주를 공략해 오자 "수군의 장수가 지위가 미천해서 위엄을 널리 보일 수 없다."며 다시 왕건을 시중에서 해임하고 백선장군으로 삼아 나주로 내려 보냈다. 이는 왕건 자신 또한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지위가 시중에 이르면서 주변에는 그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생겨났고<ref name="pare199619"/> 궁예가 언젠가 자신에게 칼을 겨누게 될 것이라 생각해 위기의식을 느낀 왕건 스스로가 궁예에게 자청하여 변방으로 나갈 것을 청했던 것이다.<ref name="pare199619"/> 궁예는 그로 하여금 다시 수군을 지휘하게 했고, 왕건이 다시 수군을 맡게 되자 한때 나주 지역을 압박해 오던 후백제와 나주 지역의 해 군소 해 세력들은 다시 위축되었다. 왕건은 나주 지역을 안정시키고 돌아와 해전과 해 무역에 대한 계책들을 진언하자, 궁예는 "나의 여러 장수들 중에 누가 이 사람과 비길만 하겠는가?"며 왕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ref name="pare199619"/> 그러나 궁예는 한편으로는 왕건의 세력과 입지가 강화되자 점차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정개 2년([[915년]]), 그의 포악함을 보다 못한 왕후 강(康)씨가 자신에게 간언하자, "네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고 있지 않느냐. 나는 관심법으로 보아서 다 알고 있다."며 쇠꼬챙이를 가져다 왕후의 음부를 지져 죽이고, 자신의 두 아들마저 죽였다. 소위 '관심법'이라 칭하며 사람의 마음을 읽는 비한 재주가 있다고 스스로 떠벌이곤 해서 여러 장수와 신하들을 역모죄로 몰아 죽이는 등 가혹한 공포정치를 행했다.<ref name="pare199619"/>
         마군장군(馬軍將軍) [[환선길]]은 처음에는 왕건의 정변에 적극 가담해 큰 공을 세웠으나 이후 아내의 권고를 받고(고려사,고려사절요,동국통감에는 아내의 권고를 받고 환선길이 그의 동생과 함께 왕건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왕건의 정변 성공 이후 논공행 과정에서 소외가 되어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의 동생과 함께 왕건 즉위 직후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해 그의 동생과 함께 처형되었고, 이후 궁예 정권 말기 마군대장군(馬軍大將軍)으로써 웅주(熊州)를 쳐서 차지하고 주둔하던 [[이흔암]]은 천수 원년(918년) 6월 왕건의 즉위를 찬탈로 규정하고 정변을 일으킬 목적으로 부임지인 웅주를 무단이탈해 당시 수도인 철원으로 마음대로 돌아왔고, 이후 한찬 수의형대령(守義刑臺令)이었던 염장(閻萇) 등이 웅주를 잃은 것에 대한 처벌을 요청함과 더불어 그에게 반란을 일으킬 뜻이 있음을 탐지해 밀고했다. 이에 이흔암은 시장 바닥에 끌려나가 공개 참형을 당했고, 2개월 뒤 공주는 운주(運州) 등 10여 주현과 함께 후백제에 귀부해 버렸다. 9월에는 순군리였던 임춘길(林春吉)과 그의 일당들이 반역을 꾀하다 처형당했고 그 다음달인 10월달에는 청주의 진선과 선장 형제도 반역을 꾀하다가 처형되었다. 대부분 공주, 또는 청주 지역의 옛 백제계 지역 호족들이었다.
         《삼국사기》 및 《고려사》는 궁예를 몰아낸 세력에 의해 편찬된 텍스트, 또는 그 텍스트를 저본으로 편찬된 것이다. 특히 궁예의 최후에 대해서, 미복차림으로 도망치던 중에 해를 입어 죽었다고 되어 있으나, 민간의 전승에서는 궁예가 오히려 왕건을 대로 항전을 벌이다 죽었다고 하는 전승을 전하고 있다. 유명한 것이 [[포천]] [[산정호수]] 인근의 [[명성산]] 전설로, 왕건에게 쫓긴 궁예의 말년을 슬퍼해서 산새들이 울었다고 해서 명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명성산 주변에는 궁예가 피신해서 이름이 붙었다는 개적동굴, 궁예가 왕건의 군사가 쫓아오는 것을 살폈다는 망무봉의 지명 유래담이 내려오고 있다.<ref>유인순, 《전설에 나타난 궁예왕》, 2006</ref> 또한, 철원의 보개산성, 성동리성에는 궁예가 왕건에 맞서 항전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는데, 패주골은 궁예가 싸움에 패한 고을이라 붙은 이름이고, 궁예와 그의 군사들이 한탄하며 도망쳐서 군탄리가 되었다는 전승이 있다.
         궁예가 지은 경전을 보고 "하나같이 요사스러운 말로 교훈거리가 될 수 없다."고 혹평하여 궁예에게 살해된 [[석총]]이라는 승려와 관련해 《삼국유사》에는 《왕대종족기》를 인용해, "[[진표 (신라)|진표]]의 제자인 석충(釋忠)이 간자 108개를 태조에게 바쳤다."고 적고 있는데, 《삼국사기》의 석총과 《왕대종족기》의 석충은 동일인물로 여겨진다. 또한 궁예가 지향했던 불교와 석총의 불교가 같은 [[법종]] 계열이면서도 궁예는 [[아미타불]], [[관음보살]] 중심이었던 데 반해서 석총은 미륵보살, [[지장보살]] 중심이었던 차이점이 지적되어, 양자간에 알력은 일찍부터 있었으며 적어도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처럼 감정적으로 울컥해서 죽이지만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앞서 이야기되었듯이 근본적으로 석총의 입장에서는 불교의 종파를 떠나서 궁예가 억지스러운 불교 경전들을 짓고, 미륵으로 행세하는 식의, 정통 불교 교리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억지스러운 자기 신격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정통 불교의 승려로서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외에도 917년에 선종 계열의 승려로, 후백제 지역에서 건너와 활동했던 형미도 궁예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져, 궁예가 억지스러운 불교 경전들을 짓고, 미륵으로 행세하는 식의, 정통 불교 교리를 파괴하는 억지스러운 자기 신격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불교계가 거센 반발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유학자들의 경우도 본래 궁예의 최측근이였다가 궁예에게 죽을뻔한 왕건을 살려준후, 궁예를 등지고 왕건의 최측근이 된 유학자 최응과 궁예 정권 시절 궁예의 태자인 청광보살의 사부의 벼슬이였던 동궁기실로 있다가 궁예의 왕비 강씨와 강씨의 두 아들이 처형된 전후에 궁을 탈출해 승려가 되었다가, 역시 왕건의 집권후 돌아와 왕건의 신료가 되어 왕건에게 최초로 왕씨 성을 하사받은 왕유(본명 박유.)의 경우와 궁예가 몰락한 해인 918년 3월, 왕창근이 한 기이한 노인에게서 얻은 거울에 적힌 왕건이 궁예를 멸망시킨후 삼한을 통일하고 더 나아가 압록강까지 수복한다는 내용의 은어로 된 글들을 해석한후, 왕건과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거짓으로 꾸며서 왕건을 위기에서 구했다는 궁예의 문인들이였던 송함홍,백탁,허원 등의 경우들을 봐도, 대개의 유학자들과 유학 계열의 문인들 역시, 자신을 신으로 여기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신격화시키고 신으로서의 숭배를 강요하는 궁예의 행동들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궁예와 왕건 사이에 있었던 일화 한 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하루는 궁예가 왕건을 대궐 안으로 급히 불러들였다. 마침 처벌된 자들로부터 몰수한 물품들을 점검하고 있던 궁예는 왕건을 보자 성난 표정으로 "경이 어젯밤에 사람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데 사실인가?" 라고 물었고, 왕건은 태연하게 웃으면서 "어찌 그럴리가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이에 궁예가 다그치며 "나를 속이지 말라. 나는 능히 사람의 마음을 궤뚫어볼 수 있다. 지금 곧 정신을 집중시켜 그대의 마음을 꿰뚫어보리라." 하고는 눈을 감고 뒷짐을 지더니 한참 동안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이 때 최응이 옆에 있다가 가만히 붓을 떨어뜨리고는 그것을 줍는 척하면서 왕건에게 "스스로 자복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겁니다."라고 중얼거리고 지나갔고, 왕건은 곧 "사실은 제가 모반을 계획하였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며 거짓으로 자복하였다. 그러나 궁예는 오히려 "경은 과연 정직한 사람이다. 다시는 나를 속이지 말라"며 왕건에게 주연까지 베풀어 주고, 금은으로 장식한 말안장과 굴레와 금 한 덩이를 왕건에게 특별히 내려주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흔히 궁예의 폭정과 왕건의 기지를 보여주기 위한 기록으로 해석된다.
         === 화 ===
  • 박철우(배구) . . . . 51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구미시]] ||
         || 신체사이즈 || 신장 197cm 체중 89kg ||
         '''[[후인정]]-[[김세진]]을 잇는, [[문성민]]과 더불어 삼성-현대 라이벌관계를 징하는 현재 한국배구의 에이스급 라이트'''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서 2004년 데뷔해 2010년 삼성화재로 FA 이적을 했는데 그 배경에 전 [[부천 KEB하나은행|신세계 쿨캣]]의 [[농구]] 선수 [[신혜인]][* 이 열애설이 더 유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혜인]]의 아버지가 삼성화재의 감독인 [[신치용]]'''이기 때문이었다.(어머니는 농구선수 전미애) 그래서 그가 현대캐피탈 소속이던 시절에 많은 이들이 이들의 연인 사이를 배구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비유하기도 했으며, 배갤에서의 별명이 무려 '''사위'''(...)다. 그리고 박철우가 삼성전에서 유난히 부진한 것을 보며, 장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다고 많이들 깠었다. 박철우가 FA로 이적하면서 사위와 장인이 한 팀으로 뭉쳤다.]과 연인 관계였던 것이 드러나서 유명하다.
         이런 극단적 오버핸드 스파이크 타법때문에 약점도 있는데 토스가 낮거나 너무 빨리와서 타점에서 좌우로 흔들리면 되려 처리하기 어렵게 되는 자세문제와 함께, 극단적 오버 핸드 특성 좌우로 비틀어서 터치아웃을 노리는 손목 스킬이 떨어지기 때문에 스파이크 코스를 읽히거나 토스가 낮으면 그대로 블로킹에다 벽치기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대표적 별명인 벽철우가 이것때문에 붙은 것. 또한 스파이크 서브 올리는 토스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뻘미스나 똥볼서브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국가대표 선배인 [[김세진]]에 비하면 세세한 테크닉이 부족하고 건강문제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점이 조금 아쉽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토종 공격수중 1명이다. 특히 국내 공격수중 최고수준의 사이드블로킹 높이덕에 중요한 순간 블로킹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점은 보너스.
         [[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現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학교|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식적으로 명지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명문화되었다.[*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 해임되었다는 것.[*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 중학교 졸업 후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욱. 그러나 이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
         2008-2009 시즌에 기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폼을 잠시 잃긴 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는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소속 팀이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당시 현대캐피탈로서는 박철우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맡겨서 현대캐피탈을 '철우캐피탈'로 불리기도 했었다. 이 시즌 정규리그에서 역대 최고의 공격 성공률인 55.32%를 기록하며 공격과 함께 정규 리그 MVP를 수하였다.
         2009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열(배구)|이열]]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이례적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처를 공개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선수 구타 관행이 재조명되며 대한체육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하지만 실효성은(...)-- 그 때 배구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났고, [[이열(배구)|이열]] 코치는 '무기한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 ~~[[이열(배구)|이열]] 코치~~는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없으나 KOVO 경기 감독관으로는 활동할 수 있었는데, 징계가 슬그머니 풀려서 [[경기대학교|경기대]] 배구부 감독으로 복귀했다. 하긴 전임 [[이경석(배구)|이경석]] 감독도 비리 문제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복귀한 전례가 있었으니...
         '''2010 오프 시즌 때 FA를 선언하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삼성화재]]로 이적했다.--아버님!!!--''' 현대캐피탈은 세터 [[최태웅]]을 박철우의 보 선수로 지명했고, [[최태웅]]은 5년 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현대캐피탈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0년 12월 4일 V리그 개막전에서 친정 팀 현대캐피탈을 대로 주전으로 나왔다. 포지션은 현대에서 뛰었을 때처럼 라이트. [[가빈 슈미트|가빈]]이 레프트[* 명목 레프트일 뿐이지 실제로 레프트 공격수가 받아야 할 대부분의 리시브는 가빈의 대각에 서 있는 석진욱이나 신으뜸이 담당했다.]로 옮겼지만 정작 몰빵이 중요한 순간에 [[신치용]] 감독은 박철우를 교체시키고 가빈을 중용했다. --몰빵에서 라이트가 레프트에게 밀리다니!!-- [[안습]]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거나 정줄 놓는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서 비록 개막전 경기에서는 현대캐피탈이 완패를 당했지만, '경기 중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박철우가 정줄을 놔버려서 현대캐피탈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진 현대 팬들이 많아졌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박철우는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기흉]]을 앓아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었고, 특히 2007년에는 3번이나 기흉 수술을 받아 폐활량이 많이 떨어진다. 이를 반하는지 '''가빈 몰빵 모드'''는 2009-2010 시즌에 이어 2010-2011 시즌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군체육부대|무]],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IG]]와의 경기에서 완벽하게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무와의 경기에선 범실도 많고 가빈에 비해 안정감을 실어 주진 못했지만 어쨌든 27점이나 올려 줬다. 하지만 LIG경기에선 6득점에 그쳤고 아예 2세트에는 나오지 못했다. 더욱 안습인 것은 작전타임 때 --장인어른-- [[신치용]] 감독에게 이름도 제대로 못불리고 '야 임마!!'라고 불리며 [[유광우]]와 함께 뒤지게 까였다. 여담으로 그 황에서 [[신치용]] 감독은 세터 유광우에게 "아마추어나 하는 플레이를 하냐?" 라며 깠다.
         그런데 박철우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문제가 있으니 바로 '''군 문제'''. [[기흉]]이 [[장동건]] 때는 면제 사유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아닌지라 병역 의무를 필해야 한다. 군대 문제 때문에 늦은 나이에 입대한 후 사그라든 선수들의 예를 봤을 때[* [[손석범]]이라든가, [[윤관열]]이라든가, [[백승헌]]이라든가... 이들은 모두 공익으로 복무한 후 복귀했지만 결국 은퇴했다. ~~여기에 [[신수(배구선수)|신수]], [[김학민]], [[한선수]]도 이 리스트에~~ 다행히 [[신수(배구선수)|신수]]는 공익으로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후 예전 감각을 잃지 않았다. 덤으로 팀의 주축으로 2013-14 시즌부터 팀의 주장을 맡았다. 하지만 [[한선수]]는 [[일본]]에게 덜미를 잡혀 2015년 전역 확정.] 염려가 되는 게 사실이다. 본인이 건강 문제에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이가 태어났으니 [[한선수]]처럼 근예비역으로 빠질 확률이 높긴 하다.--
         게다가 [[가빈 슈미트]]와 레오나르도 '레오' 마르티네스로 이어지는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을 많이 내준 탓인지 공격감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정규시즌에도 박철우의 비중은 적어졌고, 설령 공격을 해도 벽치기가 잦아서 '''벽철우'''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2013 KOVO컵에서도 그 현은 여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팀 공헌도가 박철우보다 객관적으로 높은 [[여오현]]보다 많은 돈으로 FA 재계약을 했는데, 연봉이 무려 '''3억 3,000만 원'''이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FA가 된 [[여오현]]이 삼성화재로부터 2억 6천만원을 연봉으로 제시받았는데, [[여오현]]은 이를 거부하고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연봉 2억 9천만 원에 3년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여오현]]은 KOVO컵에서 여실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현대캐피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소속 팀에서의 안습한 위치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서서히 발탁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2011년 [[박기원]] 감독이 국가대표를 맡은 이후 박철우보다 더 젊고 더 유용한 [[김정환(배구)|김정환]]이 발탁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김정환은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에서 거의 노예급으로 굴리긴 하지만 아직까지 큰 부이 없다. --다만 [[V-리그]]의 대표적인 [[노안]] 선수라 얼굴이 폭삭 늙고 있어서 팬들이 안타까워한다 카더라.-- 또한 라이트 치고 서브 리시브 능력까지 출중해 당장에 리시버가 아쉬운 국가대표팀으로서는 정말 중요한 자원이다.] 현재는 아예 김정환이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윙으로 고정된 태나 다름없다. --아니 사위가 어찌 그렇게 됐는고?--
         2013-2014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을 대로 올린 점수에 비해 인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여줬다. 특히 4차전에서 1세트에 팀 동료 [[이선규]]와의 충돌을 가지고 신경질을 내던 아가메즈와 언쟁을 벌인 다음 아가메즈의 스파이크를 단독 블로킹으로 깨끗하게 막아낸 장면과, 3세트 23:22로 앞서는 황에서 아가메즈의 공격을 두 번 연속 블로킹해 내 결승점을 딴 장면은 백미.
         이렇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 우려가 많았지만, 2014년 월드리그 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주포로 자리잡게 됐다. 박철우 이외의 날개 포지션에는 [[서재덕]], [[전광인]], [[송명근]] 등 후배들이 리시브를 잘 받아 주며 박철우는 공격에 전념할 수 있게 되면서 20점대 중후반 대의 득점을 올리는 경기가 많아졌다. --몰빵으로 원히 고통받는-- [[전광인]]에 이어 147점으로 팀 내에서 2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지만, 준결승 [[일본]]전에서 패해 '''결국 군대 확정....''' 2014년 10월 23일로 입소일이 찍힌 입대 장이 아시안 게임 이후 통지됐다고 한다. 삼성화재에는 비등이 켜졌다. 그런데 행정절차 때문에 입소일이 [[2014년]] [[11월 27일]]로 연기된 태. 이유인즉슨 박철우가 오프 시즌 동안 주소지를 팀 숙소와 전용 체육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근처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주소지 변경 때문에 관할 병무청이 변경되어 박철우의 입소 날짜를 다시 세팅하게 되었으며, 일과를 마치고 팀 훈련장에서 훈련하기 위한 취지로 추측된다. 2014년 11월 20일 대전 홈 경기를 끝으로 입대했다. 이후 기초 훈련을 마치고 [[수원시|수원]] [[권선구|권선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한편 박철우가 입대한 후에도 삼성화재의 2014-2015 시즌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김명진, 황동일 등이 돌아가면서 공격 부분을 메워주고는 있다.[* 다만, 김명진은 시즌 중 부으로, 그리고 황동일은 변칙적인 더블 세터 시스템이란 옵션으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화재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OK저축은행]]에게 속절없이 시리즈 스윕 패배를 당하면서 박철우의 능력이 재평가되었다. --이제는 벽철우, 사위라고 놀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ㅠㅠ--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갈거라고 생각하냐?-- 리그 위권의 사이드 블락 능력에, 많이 죽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좋은 박철우의 공격력은 그가 사라지자 그 공백을 충분히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 송지효 . . . . 51회 일치
         |웹사이트 = [http://mymakeyou.com/?page_id=438 마이컴퍼니 송지효]<br>{{인스타그램|my_songjihyo/}}<br>{{페이스북|MYOFFICIALSONGJIHYO}}
         * 2003년 화 《[[여고괴담 3: 여우계단]]》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 방가
         === 화 ===
         | [[썸 (화)|썸]]
         | [[쌍화점 (화)|쌍화점]]
         | [[그대를 사랑합니다 (화)|그대를 사랑합니다]]
         | [[신세계 (화)|신세계]]
         | 중국
         | 중국
         | [[바람 바람 바람 (2018년 화)|바람 바람 바람]]
         | 미
         | [[이수]]
         | rowspan="2" | [[지 (가수)|지]]
         | 지, 이규훈
         * [[2016년]] [[10월 24일]] [[비정회담]] 121회 게스트
         * 파리크라 파리바게뜨
         == 수 및 후보 ==
         ! 연도 !! 시식 !! 부문 !! 작품 !! 결과
         | 2010 || 제5회 [[SBS 연예대]] || 예능 특별 || rowspan=2|[[런닝맨 (텔레비전 프로그램)|런닝맨]] || {{won}}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51회 일치
         1988년, [[소련]]의 경제적 파탄으로 냉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소련은 이에 대한 책임이 서방에 있다고 주장하며 원조를 요구하지만 협은 지연된다. 1989년 여름, 원조를 두고 벌어지던 협이 결렬된다. 소련은 국민들에게 서방의 자본주의자들은 평화 따윈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며 선전하고, 소련 병사들은 앞으로 있을 전쟁에 대해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쟁을 경험한, 전쟁이 어떤건지 아는 병사들만은 그 농담에 웃지 않았다.
         소련군과 [[미군]]이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모여들자 소련군은 장벽 너머의 미군한테 포격을 시작한다. 그뒤 얼마되지 않아 소련군이 베를린 장벽을 폭파하고 진군하기 시작한다. 올로프스키는 소련군 지휘관들에게 미 제6기갑대대의 전멸, 몰트케 다리의 확보, 6월 17일 거리의 확보라는 작전 목표를 하달한다.
         전투가 끝난 후, 소련군 전사자의 시신들을 확인하던 오를로프스키와 레베데예프에게 말라셴코가 찾아온다. 오를로프스키는 조카인 말라셴코의 활약을 칭찬하고 말라셴코는 머지않아 전 유럽의 사회주의의 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말라셴코를 부대로 돌려보낸 후, 레베데예프는 말라셴코 같은이가 더 있었더라면 전쟁이 빨리 끝날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이에 오를로프스키는 전쟁이 빨리 끝나길 빈다는 말을 남긴다.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나서 4개월 뒤. 아무런 표시가 없는 컨테이너선이 시애틀 항구에 나타난다. 신고를 받은 순찰차가 시애틀 항구에 도착하자 컨테이너선에서 소련군 Mi-24 공격헬기가 이륙, 순찰차를 공격해 쫓아낸다. 이후 소련군 부대와 장비가 시애틀에 륙하기 시작한다. 소련군 사령관은 침공부대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방송국 헬기를 내버려두었다가 보여줄만큼 보여줬다고 생각되자 ZSU-23-4 자주대공포로 방송국 헬기를 격추시킨다.
         미군 장교인 마크 배넌 대위는 소련군의 침공으로 아비규환이 된 시애틀을 험비를 몰며 질주한다. 무전기를 사용하며 험비를 운전하던 배넌은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스쿨버스를 피하려다가 험비를 전복시킨다. 배넌은 험비에서 기어나와 해당 지역의 미군을 지휘하던 파커 중위를 찾아간다. 둘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자기 부대를 찾아가려던 주방위군 병사 마이클 톰슨과 안톤 로드리게스를 즉석에서 편입시킨 배넌은 시애틀은 사실 함락되었다며 파커에게 후퇴를 명령한다.
         미군은 시애틀을 포기하고 후퇴하기 시작한다. 미군 부대가 괴멸하고 탈병이 발생하는 가운데, 파커는 시애틀 곳곳에서 포위된 주방위군 보병들을 구출하고 시애틀에서 빠져나가는 지하차도를 확보해 탈출한다.
         워싱턴 D.C.에서 잠을 자던 [[미국 대통령]][* 배경 시기를 따지자면 아버지부시.]은 모건 장군의 전화에 의해 일어난다. 소련군이 시애틀에 륙했다는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얼굴을 감싸쥐며 할 수 있는것을 묻지만 별다른 방책은 없었다. 소여 대령이 지휘하는 몇개 부대를 시애틀로 보냈다는 보고를 들은 대통령은 내각 회의를 준비한다.
         시애틀에 륙한 소련군 부대에 속해있던 올로프스키는 소련에 있는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편지에서 그는 미국인들은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감과 미국인들을 과격하게 다루는 말라셴코에 대한 걱정을 아내에게 전한다.
         소련의 선전 방송은 소련군이 미국 서해안 대부분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시애틀 외부로 빠져나가는데도 미군의 저항을 대해야만 하는 황. 소련 군인들이 미국 땅을 밟으며 느꼈던 환적인 감정은 빠르게 사라졌고, 자신들이 적지에 있다는 불안감이 그 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올로프스키의 예대로, 오리건 주방위군 소속 미군 부대가 다리를 탈환하기 위해 들이닥친다. 로마노프 중대는 요새화된 방어선과 Su-25 편대, 박격포 지원의 도움을 받아 미군의 대부대를 격퇴한다. 미군이 후퇴하기 시작하자 올로프스키는 로마노프에게 전진해 방어선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린다. 오리건 주방위군은 후퇴하고, 강가와 다리는 소련군의 차지가 된다.
         시애틀 근교 고속도로 전투 이후, 소여 대대는 남쪽으로 이동해 파인밸리라는 해안 마을에 도착한다. 원래 계획은 그곳에서 윌킨스 대령이 이끄는 오리건 주방위군 대대와 합류하는 것이었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소련군 공수부대가 파인밸리에 강하해 마을을 점거하고 있었다. 소여 대대의 장병들은 2~3일 동안 피곤한 몸을 움직여가며 전투를 벌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현재 황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중앙과 북쪽이 무너지자 파인밸리를 점거하고 있던 소련군들은 남쪽의 TV 방송국으로 후퇴하고는 자신들과 미군 사이에 포격을 가한다. 소여는 파커에게 포격을 피해 숲으로 우회해서 방송국의 소련군들을 처리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고는 소련군 보병과의 전투에서 쩔쩔매는 배넌을 "유럽 전선에 있었을 때는 좀 더 활기차지 않았나"고 하며 디스한다. 그 동안 파커는 방송국의 소련군들을 처리한다. 방송국 전투를 마지막으로 마을을 점거한 소련군 공수부대가 완전히 와해된다.
         파커의 새로운 임무는 웹이 담당하던 동남쪽 진입로를 수비하는 것이었다. 소여는 윌킨스 대대뿐만 아니라 미 해군 소속 전함인 USS 미주리도 파인밸리로 오고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피해를 감당하지 못한 배넌이 멋대로 마을 광장으로 후퇴한다. 그러자 나머지 소여 대대도 마을 광장으로 후퇴해 최종 방어선을 피게된다. 그럼에도 윌킨스 대대는 소련군 정찰대의 매복으로 인해 빠르게 접근할 수 없는 황이었다.
         >"여기는 파인밸리의 이글 6. 보게되어서 반갑다, 미주리! F6와 E5에 화력 지원이 필요하다, 이."
         톰슨 이병은 국방부에 전화를 건다. 본래 워싱턴 주방위군이었지만 시애틀 함락 당시 정규군으로 편입된 바람에 봉급 체계가 혼선되어 봉급을 받지 못한 것. 톰슨은 시카고에 있는 전처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공무원은 중대 행정병에게 451-A 서류를 받아서 제출하라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이에 톰슨은 지금 미국이 침공당했는데 무슨 서류니 법정이니 무슨 관이냐며 따지지만 미국이 침공당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결국 전화는 말싸움으로 끝나버린다.
         파인밸리 전투로 큰 피해를 입은 소련군은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 크리스마스 직전 소련군은 캐스케이드산맥으로 진군하며 짧은 소강 태는 끝나게 된다. 소련군은 캐스케이드산맥에 있는 미군 기지 포트텔러를 노리고 있었다. 포트텔러는 소련군의 핵미사일을 요격하는 [[전략방위구]], 일명 "스타워즈"를 지휘하는 사령부였다. 하지만 전략방위구은 단지 허세에 불과했다. 미군은 소련군이 포트텔러를 점령해 전략방위구의 실체를 보게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윌킨스 대대가 포트텔러에서 방어전을 준비하는 동안, 소여 대대는 소련군을 지연하는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같은 날, 레베데예프 소령은 사기 관리반에게 넘길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말라셴코 대위와 인터뷰를 한다. 미국 침공 후 몇주가 지난 시점에서의 감을 묻는 레베디예프에게 말라셴코는 광스러운 성과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스럽지만 딱 한가지가 불만스럽다고 한다. 미국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소련군에게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매복 공격을 가해 인명피해를 낸다는 것. 그는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미국인들이 더 대담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레베디예프가 생각해본 해결책은 있냐고 물어보자 그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매복을 당할 때 마다 민간인 10명을 무작위로 처형하는 것. 이에 레베디예프가 그래도 매복이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어보자 말라셴코는 다 죽여버려야 한다고 대답한다.
         선전 방송은 미국에 륙한 소련군이 북미의 서쪽 절반을 해방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소련군은 워싱턴 주의 민병대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련군은 네개 대대를 캐스케이드폴스라는 마을로 투입하였다. 그곳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소련군 지휘부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올로프스키 대령 마저도 그 무언가가 뭔지는 몰랐지만, 소련군 장병들은 그 무언가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대대들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캐스케이드폴스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올로프스키 대대는 시골에서 민병대를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날 오후 1시, 민병대가 이튼빌 근교를 지나던 말라셴코의 중대를 습격해 14명의 사망자와 9명의 부자를 낸다. 올로프스키에 이 사실을 보고하던 말라셴코는 민간인 처형을 다시 한번 제안하지만 올로프스키는 사전에 세워 둔 계획대로 민병대를 진압할 것이라면서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 이에 말라셴코가 자기 부하들이 저기 널부러져있다면서 화를 내자, 올로프스키는 자기 부하들이기도 하다면서 받아치고는 말라셴코를 쫓아내버린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레베데예프는 말라셴코의 제안이 일리는 있지 않냐고 말하지만 올로프스키는 말라셴코는 단지 복수의 대이 필요한 것 뿐이라면서 이를 부정한다.
         헬리콥터가 도착한 곳은 인근 지역 모두를 볼 수 있는 48번 고지였다. 이곳 역시 민병대가 차지하고 있었기에 로마노프가 이들을 처리해야 했다. 전투 도중 레베디예프로부터 미군 제4기갑기병연대가 접근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올로프스키는 자신들이 소규모 민병대 이의 무언가를 대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노프는 언덕을 확보해 민병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낸다.
  • 장태영(야구선수) . . . . 51회 일치
          *타짜의 등장인물은 [[장태(타짜)]]로.
         ||<#eeeeee><:> '''이름'''|| 장태(張泰英) ||
         ||<#eeeeee><:> '''출신지''' || [[경북도]] [[구미시|선산읍]] ||
         ||<#eeeeee><:> '''소속팀''' || [[무 야구단|육군 야구단]](1954년~?)||
         165cm의 단신의 몸에서 뭄어져 나오는 140km/h[* 당시에 스피드건이 존재하진 않았지만 당시 야구 원로들이 회하기로 140에 달하는 매우 빠른 공이었다고 회한다.]빠른 직구와 칼같은 제구력으로 고교야구를 주름잡았던 인물이다.
         [[김양중(야구)|김양중]]과는 세기의 라이벌이었으며 [[고교야구]]에서 뛸 당시에는 부산의 장태, 광주의 김양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맞수 대결은 어느 스포츠, 어느 선수에게도 있는 법이다. 이러한 대결의식이 스포츠에 활기를 불어 넣는 요인이다. 나와 태이는 고향과 성장배경이 달랐어도 야구라는 세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온 맞수며 둘도 없는 친구다.'''
         1929년 경북도 선산에서 장인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살이 되던 해에 부산으로 내려가 살았다. 1944년에 경남중학교에 입학해 [[유도(스포츠)|유도]]부에 입부해 유도를 배우던 그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경남중학교에 야구부가 생기자 야구부에 입부하면서 그의 야구인생이 시작되었다. 축산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경남중 야구부후원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재정적으로도 풍족한 사람이었고 이런 환경속에서 그는 야구 하나만 보고 성장할수 있었다.
         처음 포지션은 유격수로 시작했고 그의 첫 고교무대 데뷔전이었던 1946년 제1회 [[청룡기|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왼손잡이 유격수로 출전해 허종만, 정교, 조성일, 박정표, 송주창등과 함께 팀의 준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1947년, 故 고광적 당시 경남중 감독은 당시 선발이었던 장갑 대신 그를 [[투수]]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경남중등학교를 전국 최고의 팀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다.
         그의 활약으로 경남고등학교는 1947년 제2회 청룡기 부터 이듬해인 1948년 제2회 황금사자기 때까지 4개의 전국대회에서 파죽의 12연승을 기록했으며 1948년 제 4회 청룡기에서도 전주공업중, 춘천농업중, [[대구 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업중]]을 연달아 꺾으며 연승을 15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김양중이 버티고 있던 광주서중과 대결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때 김양중과의 연장 11회에 걸친 대결은 고교야구 최고의 명승부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경남중은 당대 최강의 야구팀이었고 그 누구도 우승을 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당시 결승전을 앞두고 1,311명을 대으로한 현장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9.4%가 경남중학교 우승을 점쳤고 광주서중의 우승을 점친사람은 단 8명, 0.6%의 인원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경남중은 2년간 15번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모든 트로피를 쓸어 담은 최강의 팀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장태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4회 청룡기에서도 1차전 전주공업을 대로 13:1로 6회 콜드게임승, 2차전에서 춘천중학을 대로 10:0 5회 콜드게임 승, 준결승에서 막강한 대였던 [[대구 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업중]]을 대로 2:1 승리를 거둬 들였다.
         대는 [[김양중(야구)|김양중]]이 이끄는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서중]]. 광주서중은 전라도 지역의 최고의 팀으로 불리긴했지만[* 이때 [[군산고 야구부]]는 창단되기 전이다. 군산고 야구부가 만들어 진것은 1968년이다.] 전국대회 수준에서는 미치지 못한 수준의 야구팀이었고 에이스 김양중의 분투에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중학]]과 대전사범중을 대로 힘든 승부끝에 결승전에 올라왔다. 언론들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 경남중학교의 우승을 점쳤고 경남중학교 측에서도 이 분위기에 흠뻑 취해 이미 이긴것이나 다름 없다며 전날 미리 축하연을 펼쳤다. 반면 광주서중은 이기든 지든 김양중을 믿고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결의했다.
         양팀의 선발은 모두가 예측한대로 [[장태]]과 김양중이었다. 그러나 경기내용은 '''예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
         8회말까지 장태은 광주서중의 타선을 단 1안타로 꽁꽁 묶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양중도 경남고의 타선을 철저히 틀어막으며 단 1점도 내주지 않는 투구를 선보였다. 스코어링에 0이라는 숫자가 사라진 것은 9회초,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중]]의 1번타자 허종만과 2번타자 정규가 연속안타를 기록하며 2사후 1점을 기록하면서였다.
         그리고 가진 9회말. 광주서중의 문택이 삼진으로 물러났고 김의석도 유격수 땅볼로 아웃. 그리고 타석에 이완재가 들어섰고 장태이 던진 공을 쳐냈고 그것이 내야 땅볼이 되며 경남중학교 2루수 정규의 품안에 안겼다. 모두가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정규의 송구가 1루수 뒤로 빠지며[* 이때 정규는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오버핸드로 던지지 않고 언더스로로 폼을 바꿔서 던진게 화근이었다.] 이완재는 2루까지 전력질주해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타석에 3번타자이자 에이스 [[김양중(야구)|김양중]]이 들어섰다. 풀카운트 2:2의 황에서 5번째 직구를 김양중이 그대로 받아치며 중전안타를 뽑아냈고 이완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으로 달려와 득점에 성공, 1:1 동점이 되버린다.
         그리고 대망의 11회말. 장태이 대회 첫 볼넷을 내주며 광주서중의 선두타자 김용욱을 출루시킨후 문택이 초구 번트를 댔는데 이것이 전진수비를 하던 경남중 유격수 키를 넘기는 행운의 안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1루주자였던 김용욱은 3루까지 내달렸고 경남중의 좌익수였던 이제가 이를 잡기위해 3루 송구를 했는데 이것이 '''3루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악송구'''가 되어 버린것이다.~~[[망했어요]]~~
         어이없는 실책들로 결국 장태이 이끄는 경남고는 통한의 패배를 안게 된다. 이후 장태은 1974년에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력이 우세하다는 결정적인 사실, 그 누구도 경남의 패배를 생각할 수 없었던 황에서 평범한 에러로 우리는 3연패를 저지당하고 통분한 눈물을 흘려야 했다."라며 회하기도 했다.
         ||[[박현식]](좌)과 [[장태]](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정확히 말하면 당시 서울클럽이라는 야구팀 유니폼이다. 당시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데 나라에 돈이 없다보니(...) 유니폼을 따로 제작할수가 없어서 당시 국가대표팀 선수단 유니폼을 서울클럽에서 빌려서 출전했다.] ||
         경남중 재학시절 "운동선수도 공부를 잘할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코피가 날정도로 공부도 당히 열심히 했던 그는 [[서울대학교]] 과대에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후 그는 [[육군]]에 입대해 [[무 야구단|육군 경리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고교시절 라이벌 이었던 김양중, [[박현식]]등과 함께 [[한국실업야구]] 무대를 누볐다.육군 시절에는 외야수로 출전하게 되었고 1954년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초대 멤버로 참가, 야구대표팀의 첫 국제대회 안타를 기록해 내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59|기사]]
         1957년에는 제5회 군-실업야구쟁패전[* 훗날 대학팀과 실업팀 토너먼트인 백호기의 전신인 대회.]에서 11타수 9안타, 타율 .818을 기록하며 타격왕을 수했는데 이 기록은 1993년 [[홍익대학교]]의 문희성이 대학선수권대회에서 7타수 7안타 1.000을 기록하기 전까지 단일대회 최고 타율이었다.
  • 트로피코 4 . . . . 51회 일치
         >- [[http://store.steampowered.com/app/57690/|스팀 점 페이지]]의 설명
         [[불가리아]]의 게임회사 [[https://www.haemimontgames.com/|해미몬트 게임즈]](Haemimont Games)가 제작하고 [[독일]]의 게임회사 [[http://kalypsomedia.com/|칼립소 미디어]](Kalypso Media)가 유통한 [[국가]] 경 시뮬레이션 게임. 2011년 9월 2일 출시되었다.
         시민들은 대통령 각하의 노동력이요, 대통령 각하의 표밭이다. 대통령 각하가 건물을 짓거나 품을 나를 수 없으므로 시민 없는 트로피코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 각하의 대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는 존재도 시민이므로 시민을 잘 다스리는게 중요하다.
         시민들은 업무환경이 좋은 직업을 선호한다. 업무환경이 나쁜 직업은 시민들이 기피하니 월급을 올려서 업무환경을 올리던가 그런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있을 만큼 해당 학력자가 많게 만들자. 사람이 필요 이으로 몰리는 일자리를 막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수의 시민들은 몇몇 진을 지지한다. 유아나 소년도. 3살짜리 유아가 "우리의 광스런 군대가 나라를 밝은 미래로 이끌리!"나 "난 공산당에서 출마하는 동지들을 지지할 거야"같은 생각을 하는걸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 체포 - $1,000 소모. 교도소나 지하 감옥 필요. 경찰관이 해당 시민을 토끼 몰듯 몰아서 교도소나 지하 감옥에 처박는다. 대은 5년간 수감된다. 대과 그 가족들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뇌물 - $1,000 소모. 은행 필요. 은행원이 해당 시민에게 뇌물을 먹인다. 대과 그 가족들의 존경심이 증가한다.
          * 이단 - $500 소모. 성당 필요. 성직자가 해당 시민을 이단으로 낙인찍는다. 해당 시민은 시위 참가, 진 대표자 되기, 선거 출마가 불가능해진다. 대과 그 가족들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사고사 - $3,000 소모. 비밀경찰 필요. 비밀경찰이 해당 시민을 암살한다. 사고로 위장하므로 존경심에 향이 가지 않는다.
         섬에 닥치는 재앙. 시민들을 죽이고 건물에 피해를 입힌다. 기청을 업그레이드시켜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건물의 피해는 피할 수 없다.
          땅이 흔들려 건물을 손입히고 파괴한다. 그에 따른 사망자는 덤.
         무력으로 대통령 각하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시민들. 각하를 지지하지 않는 시민 중 일부가 반란군이 된다.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일정 주기마다 튀어나와 건물을 공격한다. 보통은 목장, 광산, 공장 같은 산업 건물을 노리지만 대통령 묘 같은 체제 선전 건물도 노린다.
         반란군을 대하는데 도움이 되는 칙령이 일부 있다. 섬이 발전했을 경우에는 "사면" 칙령을 내려 반란군의 수를 줄일 수 있고, 반란군의 수가 불어나기 전에 밟아놓고 싶다면 "반란군 낚기"로 지금 당장 공격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통신 차단"으로 반란군의 행동을 봉쇄할 수도 있다.
         == [[트로피코 4/진|진]] ==
         [[트로피코 4/진]] 페이지 참고.
         >-[[http://store.steampowered.com/app/205630/|스팀 점 페이지]]의 설명.
          * 1955-1957: 콜럼비아 범죄 전쟁 - 담배의 시장가격이 25%
          * 1964-1967: 트로피코산 치즈는 수명을 늘려준다 - 염소 치즈의 시장 가격이 50%
          * 1966: "[[비틀즈|예수보다 유명해]]" - 종교인 진의 존경심이 기본값으로 돌아가게 됨
          * 1973-1975: 피노체트의 아옌데 축출 - 무기의 시장가격이 25%
  • 한교원 . . . . 5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3> MF [br] [[임협]]
         ||<:><-3> DF [br] [[김주(1988)|김주]]
         인천 입단 후 한교원은 성실한 훈련 태도로 [[허정무]]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데뷔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출전기회를 잡는 행운을 얻는다. 당시 동포지션의 경쟁선수들이 동반 부진, 부 등에 빠졌던 이유도 있어서 행운이라 한 것. 경기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출전시간을 점점 늘려나가더니 인천 공격진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부한다. [[허정무]] 감독이 사임하고 [[김봉길]]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은 후에도 신임은 여전했다. 한교원의 2011 시즌 스탯은 '''29경기 3골 2도움'''. 공격포인트가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교체출전 또는 교체아웃된 경기가 많았고 센터백으로 뛰는 등 포지션 변경이 많았음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인천구단 자체가 이해에 빈공에 시달려 한교원이 공격포인트 1위였다.
         2012 시즌에는 잠시 부으로 주전에서 밀려나며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수렁에 빠지나 싶었지만 [[그런 거 없다|그런 거 없었다.]] 금세 폼을 끌어올리며 데뷔시즌을 능가하는 '''28경기 6골 2도움'''의 스탯을 작성. 특히 홈에서 열린 [[FC 서울|서울]]과의 [[http://www.youtube.com/watch?v=8LrdLr_WxRU|빗속 혈투]]에서 멀티골을 작렬한 경기가 절정이었다. 대 수비수를 농락하고 골키퍼가 손쓸 수 없는 구석으로 슈팅을 꽂아넣는 두번째 골 장면이 백미. [[홍명보]] 감독도 한교원을 주목해서 올림픽 대표팀 소집훈련에 호출한 바 있으나 공식경기엔 나서지 못했다.
         데뷔시즌인 11시즌에는 주로 최전방에서 뛰었지만 12시즌부터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 이후 본인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점이라고 언급했던 [[근성]] 넘치는 플레이와 빠른 스피드, 의외성 넘치는 플레이로 주전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이어지는 13시즌에는 다소 투박하지만 수비수를 제껴내는 드리블과 중앙 침투로 인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인천의 돌풍에 [[이석현(축구선수)|이석현]], [[김남일]]과 함께 가장 많이 공헌한 선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좌측은 [[남준재]]와 [[이천수]]가 돌아가면서 출전했고, 최전방의 [[디오고 아코스타]]는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때때로 아쉬움을 남겨 [[설기현]]과 로테이션 체제가 나오기도 했는데, 한교원만큼은 붙박이 우측 윙어로 공격진을 이끌었다. 이 활약 덕분에 플레이어 을 받을 만한 후보로도 점쳐졌지만, 최종 수자는 [[고무열]].
         2013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2014년 1월 5일, K리그 최고의 윙덕후로 불리는 [[최강희(축구인)|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다. 군대에 입대한 서민의 뒤를 이어 7번을 달면서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한편 이와 별개로 인천 팬들은 전년도 [[정인환]]+[[정혁]]+[[이규로]] 세트 이적에 이어서 이번에는 [[김남일]]과 한교원을 동시에 전북에 넘겨 허탈한 감정을 갖기도 했다. 1년 후에는 [[문윤]]마저 전북으로 넘어갔지만, 그 뒤에는 전북으로 이적하는 인천 선수가 많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2015년에는 [[김인성]], [[박세직(축구선수)|박세직]] 등이 반대로 인천으로 넘어갔다.
         3월 8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그림같은 시저스 킥으로 팀의 선제골이자 결승골 및 전북 소속으로의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그냥 시저스 킥도 아니고, 등 뒤에서 넘어오는 공을 등진 자세임에도 다리에 정확히 맞춰 넣은 초고난이도의 골. 다만 이러한 활약을 보인 것과 다르게 시즌 전반기에는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팬들 사이에서는 여러모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선수였다. 그러나 월드컵 휴식기를 보낸 이후 폭발적인 적응력을 보여주면서 팀 전술에 녹아들었고, 활약도도 급승하였다.
         10월 18일, [[인천 유나이티드]]를 대로 또 한 번 고난이도의 골을 넣었다. [[http://naver.me/xzuWQ8B1|오른쪽에서 낮게 다가온 공을 오른발로 살짝 트래핑하고는 그대로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었다.]] 이는 한 달 전, EPL에서 엄청난 슈퍼 골을 넣은 [[그라지아노 펠레]]의 골과 비슷하게 들어갔다.
         특유의 근성 넘치는 돌파와, 돌파 이후 이어지는 위협적인 크로스가 전북의 팀 색깔과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보고있다. 또한 공격수로서 공격포인트도 착실히 올리며 닥공축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는 중. 20라운드 성남과의 대결에서는 1골 1어시로 팀의 3-0 승리를 이끌어 부으로 결장한 이동국의 빈 자리를 훌륭히 메꿨다. 11월 9일자, 리그 10골 3어시 기록 중. 본래 이동국의 백업 선수인 [[카이오]]보다 더 많이 넣었다.
         마지막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이승기(축구선수)|이승기]]의 어시스트를 받고 선제골을 집어넣으며 11골 3어시로 2014 시즌을 마쳤다. 이동국 다음으로 팀에서 가장 많이 골을 기록하며 매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을 인정받아 '''2014 K리그 베스트11 오른쪽 미드필더 부문을 수'''하였다.
         팀메이트인 발리슛의 제왕 [[이동국]]이 특훈이라도 시켜주는지 윙어인데도 불구하고 발리슛을 꽤 능숙하게 한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다이빙 헤딩슛을 보이는 등 공중볼 타이밍을 잘 잡는 편인듯 하다. 하지만 두번째 시즌에 들어서는 [[레오나르도]]보다 못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에게조차 스탯 사기꾼으로 판정받고 있는 와중에... 후술할 [[박대한]] 폭행 사건까지 터져서 징계를 받고 오래도록 징계로 그라운드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전북에서 '''[[이근호]]'''를 입하면서 입지가 크게 좁아지고 말았고, 결국 시즌 내내 리그에서 1득점에 그치고 말았다.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에서 전반 2분만에 무릎 인대부을 당한 [[히카르도 로페즈]]의 교체멤버로 들어왔고, '''[[이재성(1992)|이재성]]의 코너킥을 그대로 갈겨 선취점을 뽑아내고 이 골로 전북 현대를 10년만의 아시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간의 힘든 황을 털어내는 극적인 득점이었다.
         2016 시즌에 유종의 미를 거둔 이후 한교원은 2017년 1월부터 사회복무를 위해 6개월간 팀을 떠나 [[K3리그]] [[화성 FC]]에서 뛰게 되었다.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인 한교원은 병역법에 따라 사회복무요원으로 6개월간 일하면 병역의 의무를 마치게 된다. 6개월간 사회복무를 마친 이후, 2017년 후반기 다시 [[전북 현대]]로 복귀하게 된다. 한교원은 K3리그에서 최종 10경기 2골 3도움을 기록, 나름대로 꾸준히 몸 관리를 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리고 큰 부 문제 없이 후반기에 전북으로 복귀했다. 복귀 이후에는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되었고, 간간히 활동량을 앞세워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받거나 아예 풀백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2018 시즌에 개막전인 [[울산 현대]]전에서 [[이동국]]의 패스를 받아 쐐기골을 작렬했다. 연이어 펼쳐진 [[AFC 챔피언스리그]] [[톈진 취안젠]]전에서 1골 2어시를 기록하며 AFC선정 베스트일레븐에 올랐다. 이후 부으로 한동안 결장했는데, 부 복귀 후에는 한결 좋아진 폼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력과 별개로 스탯을 쌓는 스탯 사기꾼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지만, 어느새 전북 측면의 핵심 자원으로 평가받고 있고 공격 포인트도 꽤나 기록하고 있다. 울산의 [[김인성]]과 더불어 국가대표로 실험받아도 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그 자리의 경쟁자로는 월드컵도 경험했고 올 시즌 최고의 폼을 보여주는 인천의 [[문선민]]이 있는지라 국가대표에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공교롭게도 세 선수 모두 빠른 주력을 무기로 삼으며, 김인성과 한교원은 [[인천 유나이티드]] 출신의 선수이고 문선민은 현 인천의 선수.
         10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평가전에서 부당한 [[구자철]]대신 선발되어 파라과이와의 후반전에 투입되었다. 만회골을 넣기 위해 라인을 끌어올린 파라과이 수비진을 손흥민과 함께 수차례 침투하며 좋은 기회들을 만들고 날카로운 슛을 때렸지만, 아쉽게 골을 넣지는 못했다.
         11월 14일 [[요르단]] 원정 평가전에서 [[차두리]]의 크로스를 깔끔한 헤딩슛으로 연결해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고, 이 경기가 1-0 승리로 끝나면서 이 골이 결승골이 되었다. 이날 원톱으로 출전한 [[박주|어느 부두술사]]가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기에 공격측면에서 지리한 경기가 될 뻔했는데 한교원의 득점 덕분에 의미있는 평가전이 될 수 있었다. 이때의 활약을 인정받아 아시안컵 대표에 선발되었다.
         2015 아시안 컵 이전에는 [[이청용]], [[손흥민]], [[이근호]]의 백업 정도 위이었으나 오만 전에서 불의의 부을 당한 이청용 대신 교체 출전했고 이청용이 실금 진단을 받고 대회에서 빠지면서 주전 기회를 잡았다. 조별 예선 3차전 호주 전에서 선발 출전을 하였다. 호주의 탄탄한 수비에 이근호, [[구자철]]과의 호흡이 안 맞아 공격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으나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김창수와 함께 수비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조금 억울한 경고를 받기도 했다. 김창수가 반칙으로 호주 선수와 충돌이 있자 이를 말렸으나 그것을 호주 선수가 한교원이 자신을 때렸다고 어필한데다, 바로 이후 황에서 한교원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호주 선수의 프리킥이 한교원의 몸에 맞자 심판이 한교원이 고의적으로 프리킥을 방해했다고 판단하여 경고를 받았다. 큰 활약은 없었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선발되어 3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까지 출장했다.
         그러나 리그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14시즌만 못하던 차에 박대한을 폭행하고 퇴장당한 경기를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10&aid=0000243677&|슈틸리케가 관전했기에]]''' 여름 평가전 차출에 적신호가 커졌다. 그리고 모두의 예대로 역시 사고를 친 [[이범]]과 함께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재성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이청용이 부에서 회복한데다 이종호, 김승대 등이 동아시안컵에서 자신을 어필할 기회를 잡은지라 대표팀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슈틸리케호에서도 갑자기 흥분해서 옐로 카드를 받은 전적이 있었는데, 물론 커리어를 통틀어 보면 이런 일이 거의 없는 선수이긴 하나 슈틸리케 감독 눈 앞에서 두 번이나 저질러 버린 터라 천천히 그런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고, 사실 국가대표에까지 오르내리는 스타가 된 이후 받는 압박감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이 새롭게 필요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없다면 국대에 재승선은 어려울 것이다. ~~전북 현대에서 빨리 심리담 시켜라~~
         활동량, 체력이 당히 좋으며 발도 빠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훌륭한 윙어가 될 자질은 타고났다. 그리고 공에 대한 집착과 투지도 당하여 대에게 압박감을 주는 것은 물론, 팀의 수비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선수이다. 라인을 타고 돌파하여 밀고 올라가는 돌파 능력을 지니고 있고, 한 번 분위기를 타면 무서운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 최전방부터 센터백까지 온갖 포지션을 경험하면서 얻은 경험이 독이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가 된 듯. 아쉬운 부분은 판단력과 크로스. 그리고 유효 슈팅은 꽤 잘 만들어내지만 정작 만들어내는 기회에 비해 실제 득점으로 연결되는 수도 다소 아쉽다. 입단 당시보다도 훨씬 전북의 스쿼드가 두꺼워지면서 더는 과거처럼 전북의 핵심으로 평가받지는 못하지만, 다른 선수들과는 차별화되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지닌 선수인지라 최강희 감독의 신임을 계속 받고 있다.
  • 윤태진(아나운서) . . . . 50회 일치
          * 위 문서: [[아나운서/목록]]
         ||<#FFCC66> '''{{{#000000 별명}}}''' ||<(> 태콩[* 키가 작아서 주변의 --키 큰-- 친구들이 콩만하다는 뜻으로 붙여준 별명이다.], 나미춘[* 나 미스 춘향이야의 줄임말], 콩미춘[* 별명의 콩] , 흥미춘 [* 배성재의 텐에서 흥이 겨워서], 어깨깡패(여신) [* 배성재의 텐에서 의만 입으면 어깨가 커 보여서], 태진미디어 / 더테러라이브 / 노래방여포 [* 흥미춘의 내용을 추가해서..], 광탈[* 소사이어티 게임에서 1회만에 탈락] ||
         前 KBS N SPORTS의 [[아나운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주 중의 알럽베를 책임졌었다. [[최희]], [[정인(방송인)|정인]] 등과 함께 KBS N SPORTS의 여성 아나운서 3대장이라고 불렸다. 단아한 이미지의 [[최희]]와 모델급 몸매를 가진 [[정인(방송인)|정인]]에 비해 윤태진은 --정반대로-- 아담하고 귀여운 이미지 담당. [[정인(방송인)|정인]]과는 입사 동기이다.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껏 같이 붙어다닌다고 한다. 나이는 [[정인(방송인)|정인]]이 2살 더 많다. 의지할 수 있는 언니 같은 스타일이란다. 그런 [[정인(방송인)|정인]]을 보고 윤태진은 '대나무 숲' 이라고 한다.
         [[2010년]] [[남원춘향제#s-2.3|미스 춘향]] 선발 대회에서 선이 된 뒤 진([[효]])과 함께 [[아침마당]]에 출연했었는데 [[이금희(방송인)|이금희]] 아나운서가 '아나운서 해 볼 생각이 없냐'고 했다고. '아나운서는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단다. 계약직이긴 해도 단 5개월만에 공채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당시 부모의 경제 황이 어려워져서 무용을 포기해야 되나 하는 고민이 있던 차에 이금희에게 권유를 받으며 방송이라는 새로운 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했는데 붙으니까 좋아했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계속 무용을 할 걸하는 미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집안 경제 황의 변화가 없었다면 계속 무용을 하고 성공해서 나중에 교수까지 되는 걸 목표로 노력했을 거라고.]
         프리랜서로 퇴사한 [[최희]]를 대신해 [[2014년]] 프로야구 시즌부터 [[아이 러브 베이스볼]]의 평일 진행을 맡게 되었다. 기존에 맡았던 주말은 동기 언니 [[정인(방송인)|정인]]이 진행했다. 2015년 7월에는 드라마 [[복면검사]] 마지막회에 뉴스 앵커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2015년]] 10월 계약 기간이 만료돼 정인과 함께 퇴사했다. KBSN측은 두 아나운서가 재계약에 별 생각이 없다고 느꼈다고 말해 그녀들의 팬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윤태진은 '정규직 전환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원만하게 언급했다. 그녀들의 퇴사 후 정작 최희 아나는 재입사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윤태진은 배성재의 텐에서 '정말 대단하시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후배들도 엄청 치고 올라오는데 거길...'하며 말을 아꼈다.
         2016년부터 [[SBS 파워FM]](107.7mhz) [[배성재의 TEN]]에서 화요일 코너 아재판독기 코너를, 2018년 8월부로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다 코너를 진행 중이다. 기존 팟수들은 채팅창에 "두사람 다 잘 어울리니 결혼해도 딱이다!! 결혼해라"라고 성화였는데....친해지긴 했었던 거 같은게 2016년 11월 방송에서 나미춘이 배디에게 반말하다가 살짝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를 팟수들은 놓치지 않고 마구 놀렸었는데 언제부턴가 썸은 사라지고 이젠 비지니스만....2018년 3월 잡지 <bnt>와 찍은 화보 촬에서는 인터뷰에 배성재 얘기가 나오자 '따뜻하고 좋은 분이다. 좋은 여자 만나셨으면 좋겠다'라고 거리를 뒀다. 아무튼 나미춘, 흥미춘으로 [[배성재의 TEN]]의 아재여신 인정.
         입사 초기에 [[농구]]와 [[배구]] 현장 쪽에서 인터뷰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야구 시즌이 아닌 겨울에 주로 하는 실내 스포츠인 농구와 배구 등에서 현장 인터뷰를 자주 했다. 축구팬들은 야구로 '외도'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싶었고, [[한국방송공사|KBS]]가 워낙 야구의 비중이 높은 채널이기도 하다. [[축구]] 쪽에서는 [[유로 2012]]에서 [[정인(방송인)|정인]]과 함께 유로 여신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본인은 그저 '''유로 여자'''이고, 유로 폐인이라고(...). 서로 공부하고 같이 시험까지 보면서 열의를 불태웠다.
          * 소개팅 불패였다고 한다. 애프터 신청을 안 받은 적이 없다는 것. 정작 본인은 소개팅이 간절하지 않은 태에서 나간 적이 많아 부담스러웠다고.
          * 서빙알바하던 시절 소개팅하던 남녀 손님이 있었는데, 여자가 화장실 간 사이 남자가 계산을 하면서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미스춘향의 위엄--
          * [[유로 2012]] 중계 시 경기가 항 늦은 새벽시간에 하다 보니 중간중간 졸면서 중계했다고 한다. --그마저도 귀엽다--
          * 온라인 축구게임 [[차구차구]]의 모델로 활동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wwH6C5H4MM=0|]]
          * 윤태진 귀요미 송도 존재한다. [[http://blog.naver.com/nanginks?Redirect=Log&logNo=90172313797&jumpingVid=42CB7F5B99894FDA5B6FAF20C105C511A5F9|]]
          * 2014 시즌을 맞이하여 윤태진 송도 새로 만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5HZfz_Dfig|]]
          * [[정인(방송인)|정인]] 아나운서와 함께 자몽콜? 레몬비!!! 음료 광고도 찍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i5sp6Bz3SE|]]
          * [[주간 서형욱]]에 나왔을때 [[슴가]]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야구팬들 사이에 ''''크기보다 모양''''이라는 전설의 유행어가 탄생했다.
         >--따지고 보면 서형욱은 '가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 답변 이후 다른 모든 출연자들이 웃으면서도 당황했고, 서형욱은 '저는 글래머라고만 했지, 가슴이라고는 안 했는데요..' 라고 말했다. 이에 윤태진은 '글래머가 가슴 아닌가요? 그럼 엉덩이인가?' 라고 말하였고, 더 이 안 되겠다고 느낀 서형욱은 바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 2015년 10월 31일자로 [[정인(방송인)|정인]] 아나운서와 함께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퇴사했다. [[https://instagram.com/p/95SRuFFFty/|인스타그램]]에 밝힘.
          *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에 화요일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지만 배성재 아나운서와의 케미가 당히 좋은 편이라 틈이 조금만 나면 시청자들의 각종 드립이 올라올 정도.[* 다른 여자 게스트인 [[소혜]]도 가끔 배성재에게 드립을 날린다. 윤태진과 자기 중에 고르라는 둥, 고백은 하는 게 맞다고 하는 둥, 짝사랑 중이지 않냐는 둥.][* 윤태진 본인은 2018년 3월에 bnt와의 인터뷰에서 배성재와의 러브라인에 대한 질문에, 좋은 여자 만나길 바란다고 답했다.] 게다가 케미와는 별개로 윤태진 본인이 가진 끼가 여기서 막힘없이(...) 발산되는 경우가 매우 자주 나오는 편이라 사실 베텐의 마스코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 2016년 8월 19일, 일본에서 촬한 사진집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834816|<연애>]]를 출간하였다.
  • 이휘향 . . . . 50회 일치
         {{화인 정보
         |출생지 =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 1986년 [[MBC]] 주말연속극 《[[풀잎마다 이슬]]》 ... 백희 역
         * 1988년 [[MBC]] 주말연속극 《[[내일 잊으리]]》 ... 오세
         * 1996년 [[KBS2]] 드라마게임 《아빠와 혼》 ... 엄마 역
         * 1999년 [[KBS2]] 주말연속극 《[[유정 (드라마)|유정]]》 ... 김선
         * 2000년 [[SBS]] 일일드라마 《[[자꾸만 보고싶네]]》 ... 박자
         * 2008년 [[SBS]] 주말극장 《[[행복합니다 (드라마)|행복합니다]]》 ... 이세
         * 2014년 [[SBS]] 아침연속극 《[[나만의 당신]]》 ... 장자 역
         * 2015년 [[MBC]] 수목미니시리즈 《[[맨도롱 또똣]]》 ... 백세
         === 화 ===
         * 2007년 《[[사랑 (2007년 화)|사랑]]》 ... 우 모 역 (특별출연)
         * 2009년 《[[오감도 (화)|오감도]]》 ... 정하 모 역
         * 2014년 《[[좋은 친구들 (2014년 화)|좋은 친구들]]》 ... 현태 엄마 역
         * 1989년 남나이론([[남비비안]]) 유라인프러스브라
         == 수 및 후보 ==
         ! 시
         | 여자연기
         | [[MBC 연기대]]
         | 여자 우수연기
  • 장인한 . . . . 50회 일치
         {{화인 정보
         이후 [[화]] 및 [[텔레비전]]에도 출연하기 시작했으며, 연기를 하면서 생계를 위해 수염을 붙이는 분장사로도 활동하였다. 70년 이화 관련 경력을 쌓았다. 정지 감독의 사극인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에서는 승려 출연을 위해 삭발은 물론<ref>{{뉴스 인용
         }}</ref> 금니 태였던 치아 두 개를 제거한 적이 있다. 600편 가량의 화에 출연했으며, 장인한 본인은 연극/드라마를 합하면 800편 가량의 작품에 출연한 것으로 회고하였다<ref>《Film 2.0》, “파란만장 노익장 장인한” 2004년 11월 18일자.</ref>.
         === 화 ===
         ** 《[[춘향전 (1961년 화)|춘향전]]》
         ** 《[[연산군 (1962년 화)|연산군]]》
         ** 《[[차이나타운 (1963년 화)|차이나타운]]》
         ** 《[[단종애사 (화)|단종애사]]》
         ** 《[[대원군 (화)|대원군]]》
         ** 《[[감자 (1968년 화)|감자]]》
         ** 《[[풍운 (화)|풍운(임란야화)]]》
         ** 《[[천년호 (1969년 화)|천년호]]》: 노인 역
         ** 《[[목소리 (화)|목소리]]》
         ** 《[[황토 (화)|황토]]》
         ** 《[[원한 관계]]》
         ** 《[[신궁 (화)|신궁]]》
         ** 《[[장마 (화)|장마]]》
         ** 《[[사람의 아들 (화)|사람의 아들]]》
         ** 《[[만추 (1982년 화)|만추]]》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화)|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50회 일치
         전통적인 중세 유럽의 제국 관념에서 '동쪽의 제국'[* 서쪽은 신성로마제국]을 차지하던 비잔티움제국은 11세기부터 이어진 튀르크의 지속적 공세앞에 아나톨리아[* 지금의 소아시아반도] 내륙을 실했고, 그 이후 내륙지방을 지배해온 룸 술탄국의 멸망이후 부한 오스만의 공세에 아나톨리아 최후의 거점인 니코메디아까지 함락당하며 아나톨리아를 실하기에 이른다. 이는 중세까지 비잔티움을 지탱하던 아나톨리아의 풍부한 생산력[* 지금도 터키는 유수한 농업국이다.]과 그에 따른 인적 자원을 실하게 되었고, 반대로 오스만은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오스만은 꾸준히 확장하여 트라키아와 발칸의 패권까지 장악하기에 이른다.
         1451년 무라트 2세가 죽고 새로이 술탄으로 오른 이는 메흐메트 2세였다. 사실, 그는 1444년에 이미 즉위한바가 있으나 동쪽에서 카라만이 반란을 일으키고, 발칸에선 비잔티움의 사주를 받은 무라트의 동생 오르한이 폭동을 일으키고, 헝가리가 십자군을 선포하는 막장 황이 벌어지자 재 할랄 파샤의 주도로 무라트 2세가 복위돼 퇴위되버린(..) 굴욕을 간직한 이였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유럽군주들은 그를 애송이취급하면서 무시해버렸고, 이때문에 오스만이 실제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때도 느릿느릿 관망만 하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사실 실제론 자기들 이권다툼이나 나라 내실다지기가 더중요했던게 크다. 바로옆에서 초거대세력대로 외로운 투쟁을 하던 제국을 무시한 이탈리아 중견국들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러나 그는 로저 크롤리의 표현대로 '동방의 알렉산드로스'를 노린 이였고, 이는 말년의 나폴리 침공에서도 잘 드러나는 일면이다. 아무튼, 그의 두번째 즉위당시 아무도 그의 야망을 모르거나 무시했고, 이는 유럽군주들의 가장 큰 실수로 남는다.
         메흐메트 2세는 즉위당시엔 무라트 2세처럼 어느정도 평화를 사랑하는 군주처럼 행동했고, 이는 당시 유럽군주들의 긴장을 푸는데 어느정도 향을 준다.
         한편, 메흐메트가 그를 유럽의 기독교 군주들처럼 애송이로 생각한 카라만의 이브라힘 베이가 게르미얀,아이딘,멘테세의 지도자들과 연합해 일으킨 봉기를 진압한 뒤, 그는 예니체리의 봉급 인문제로 한차례 곤경을 겪는다. 이문제는 봉급을 인시키는대신 지휘관을 강등하는것으로 끝이 났으나... 이걸로 술탄의 지배력이 어느정도 약화된다. 이틈을 노렸던건지,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메흐메트에게 사절을 보내 이때 콘스탄티노플에서 머물고 있던 오르한의 생활비를 더욱 지급하지 않으면, 그와 그의 추종자를 다시 풀어놓겠다는 사실의 협박을 하기 이른다.
         이건 사실 술탄의 심기를 대폭 건드는 발언이었고, 여전히 재이었으며. 무라트 2세부터 지속된 평화주의의 대표적인 자였던 할랄 파샤는 이것때문에 사절 면전앞에서 폭언을 하기에 이른다.
         사실 당시 비잔티움의 궁정에는 오스만의 내부사정을 잘알고 있었던 자들이 많았고, 이들이 이러한 요구가 술탄의 화만 돋울거란걸 모르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러한 요구를 한걸까? 아마 재정의 이유일 가능성이 클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건 알 수 없다.
         사절의 요구를 들은 메흐메트는 생각해보겠다며 차갑게 대꾸한 이후, 보소포로스 해협의 가장 협소한 지역에 요새를 짓기 시작한다. 이소식을 들은 황제는 경악하면서 사절을 보내 외교적으로 해결을 하려하지만, 술탄은 그들을 쫓아내는것으로 대답을 해줬다. 황제는 그 대응으로 도시내의 튀르크인들을 투옥하는걸로 맞대응했으나, 별 소용없는 행위였고, 결국 모두 풀어주었다. 그렇게 당대에 '보코하즈 케센', 그리고 현재는 '루멜리 히사르'라고 불리는 요새가 완공되었고, 이로인해 이곳을 왕래하는 모든 함선들은 요새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이는 이곳을 통해 무역을 하는 이탈리아 업국가들에게 큰 위협을 줬는데, 단적인 예로 베네치아인 안토니오 리초가 이끄는 함선이 요새의 검문요구를 무시했다가 포격을 받고 침몰했고, 살아남은 선원과 선장모두 사형을 당했다. [* 선장은 특별히 말뚝형에 처해졌다.] 더더욱 급해진 황제는 교회통합을 요청하며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돌아온건 겨우 200명정도의 병력뿐이었다.[* 별 수 없는게, 당시 교황령의 군사력은 제국보다 별볼일 없었다.(....) 차라리 모레아 전제국이 훨씬 더 국력이 탄탄했을거다.] 하기야 소피야 성당에선 교회통합을 선언하는 미사가 열렸지만, 해당 미사는 황제와 그 일부 측근들, 일부 통합파 사제들과 교황청에서 온 주교들 일부만 왔을뿐이었다.
         오히려 국가적인 지원보단 개인적인 지원이 더 줄을 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카스티야의 귀족인 톨레도의 돈 프란시스코[* 자신을 콤네소스 황가의 자손이라 칭하며 황제를 사촌이라 칭하기도 했다. 사실 이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콤네노스가 아닌 팔레올로고스 왕조였고, 오히려 [[트레비존드 제국]]이 콤네노스 왕조의 후손이다. 팔레올로고스 왕조도 콤네노스 왕조와 인척관계이긴 하지만.]와 제노바의 군인 주스티니아니 롱고였는데, 특히 주스티니아니는 공성전전문가로 당히 이름난 군인이었기에 황제가 직접 방어를 성공해낸다면 림노스 섬의 통치권을 나눠준다고 하기도 했다.
         우선 서유럽 국가와 비잔티움 사이에 묵혀뒀던 감정이 4차 십자군때 콘스탄티노플 약탈과 라틴 제국 성립으로 폭발한게 컸다. 이 때문에 정교회를 믿는 제국민들은 서유럽의 가톨릭 교회를 매우 싫어하게 되었고, 콘스탄티노스 11세가 내세우는 동서대통합은 종교계에서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은 당시 제국에서도 종교적 보수성이 매우 강한 지역[* [[모레아 전제국]]은 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이라 반발이 더욱 컸을 것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동서대통합과 라틴 전례의 도입은 '조 대대로 지켜온' 정교회 전통을 단절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의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매우 어리석고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로 평가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가 대표적으로 이러한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의존도가 국가 이으로 높았으며, 통제력이 미약한 세속 국가보다는 종교에 대하여 애착을 강하게 가졌다. 특히 말기의 비잔티움 제국은 이미 모든 면에서 오스만 제국의 간섭을 받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며, 오스만 투르크 토 한 가운데 고립된 '콘스탄티노플'은 모든 면에서 비잔티움 황제보다 오스만 술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세속국가로서 비잔티움은 훅 불면 날아갈 정도로 약화되었고, 제국은 과거와는 달리 '교회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황에서 동서대통합이 '확실하게' 정교회 전통을 단절시키는 반면 별다른 군사적 보호는 제공하지 않고, 이슬람의 정복은 아직 술탄의 관용에 호소하여 정교회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 가망이 더 크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교황의 삼중관보다 차라리 터키인의 터번을 택하겠다."는 말은 이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헝가리는 주전파인 섭정 야노슈 후냐디의 향력이 전술한 코소보에서의 패배로 약해졌고, 왕인 라슬로 5세가 성년이 되어 후냐디의 섭정을 탐탁치 않아 했다는게 문제였다. 거기다가 당시 라슬로 5세는 신성로마제국[* 정확히는 오스트리아]에게 보헤미아와 헝가리 왕위를 위협받고 있었다.
         앙쥬 백작으로 부터 나폴리 왕국을 정복해[* 당시 아라곤 왕 알폰소 6세가 시칠리아 왕을 겸했으므로, 탈환으로 볼 수도 있다.]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아라곤 왕국은 역시 비잔티움으로부터 도움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들도 초강대국 오스만을 대로 혼자 나서려 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그들 사이에 있던 [[백년전쟁]]의 참화를 회복하느라 바빠 도저히 도와줄 태가 되지 못했고, 이베리아의 강자인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은 레콩키스타 운동을 아직도 완료하지 못한 태였다.
         그나마 강성한 정교회국가였던 모스크바 대공국은 자신들의 라이벌이었던 노보고로드 공화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과 싸우느라 바빴고, 타타르의 멍에를 벗은지 얼마안되서 제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황이 아니었다. 모스크바 대공국과 비잔티움 사이에는 아직 몽골계 칸국이 가로막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요안네스 8세때 잠시 진행된 동서교회 통합은 당한 충격이었다[* 동유럽에서 정교회와 가톨릭의 감정적 대립은 매우 심각했다. 예를 들어, 이 무렵 노보고로드는 [[한자동맹]]의 독일계 인들과 교역을 했으나, 이들이 가톨릭이라는 이유로 도시 내에 게토를 설치하고 독일계 인들을 거의 격리수용(…) 하다시피 할 정도로 일반 시민들과 철저하게 분리했다.]는게 문제였다.
         이렇게 되자 제국이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국가는 백년전쟁의 틈을 타 저지대를 차지하며 프랑스로부터 사실 독립한 부르고뉴 공국이었으나, 그곳의 지배자였던 '선량공'필리프는 아버지인 '대담공'장이 니코폴리스 십자군에 참여해서 어떤 치욕을 봤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 제국의 문제에 섣부르게 나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건 본토와 저지대의 토를 연결하는것과 라인강 인근의 아헨 등의 토를 확보하는것이었다.
         전투가 주로 이루어질거라 예됬던 곳은 육지 성벽이었는데, 왜냐하면 금각만쪽으로 진입하는건 4차십자군때 베네치아처럼 제해권을 완벽히 장악하지 않는 이은 무리였기때문이다.[* 둘레에 급류가 흘러 륙용 배를 성벽밑에 대는게 쉽지 않았고 모래톱과 암초또한 있었기 때문.] 그중에서도 리쿠스 계곡을 가로질러 뻗어있는 성벽인 메소테이키온쪽이 가장 취약한 곳이었기에, 황제와 주스티니아니 모두 튀르크 군의 공격이 여기에 집중될것이라 여겼다.
         이후 오스만 전군이 모두 모였던 4월 5일에, 황제는 그의 정예 그리스인 군대와 함께 메소테이키온 성벽에 자리잡았고, 그의 오른쪽에 카리시오스 문과 미리안드리온 성벽엔 주스티니아니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튀르크의 공격이 메소테이키온에 집중되자, 그의 병력을 이끌고 거기서 황제를 지원했다.] 그중 미리안드리온은 제노바에서 그들의 무기와 방어구를 직접 구입해 도달했던 보카아르디 삼형제가 이끌었다. 베네치아 거류민 대표 미노토와 그의 휘하 병사들은 블라케르나에 황궁 구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해자를 비우고 다시 메우는 임무를 맡았고, 역시 베네치아인인 테오도르 카리스토는 칼리가리아 문과 테오도시우스 성벽 사이 성벽 방어를 담당했다. 레오나르도 주교와 제노바에서 온 란가스코 형제는 금각만근처 해자뒤쪽에 자리잡았다. 한편으론 황제의 왼편에는 제노바병사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 옆에는 황제의 친족인 테오필로스 팔레올로고스가 그리스인 군대와 함께 페가에문을 방어하고 있었다. 황금문은 마누엘이라는 제노바인이 담당했으며, 그의 옆 바다쪽에는 황제가 가장 신뢰하던 군인인 데메트리오스 칸타쿠제노스가 자리잡았다.
         방어군의 규모는 그리스인 4000명, 그외 외국인 2~3000명정도였는데, 황제가 이걸보고 기겁하여[* 오스만제국군은 도시를 뜷기위해 10만정도의 병력을 끌고 왔다!] 외부에 공포하진 않았으나, 왠만한 사람들은 수비군이 대강 6,7000명쯤 될거라고 예했다.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49회 일치
         읍성 안에 지어지는 건물들. 적군의 약탈로부터 안전하다. 하지만 공성전을 벌일 때 무식하게 다 때려부수고 들어가면 손되서 수리해야한다.
         >위풍당당한 힘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단순한 성벽과 망루 그 이이다.
         행복도와 업에서 발생되는 수입을 늘려주는 건물들. 닌자와 게이샤를 고용할 수도 있게 해준다.
         동시에 고용 가능한 닌자의 수는 가지고 있는 잠행 계열 건물의 수와 같다. 하지만 최대 5명이라는 한선이 존재한다.
          * 이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100
          * 이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200
          * 이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350
         ==== 야지(Encampment) ====
          * 해당 지역에서 모집되는 지 병력의 모집 비용 -10%
         동시에 고용 가능한 메츠케의 수는 가지고 있는 시장 계열 건물의 수와 같다. 하지만 최대 5명이라는 한선이 존재한다.
          * 이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200
          * 매 턴 이 지방의 업으로부터 얻는 마을 성장 +5
         >인들의 수다에는 배울 점이 많은 법이다.
          * 이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500
          * 매 턴 이 지방의 업으로부터 얻는 마을 성장 +10
         ==== 인조합(Merchant Guild) ====
          * 이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1,000
          * 매 턴 이 지방의 업으로부터 얻는 마을 성장 +20
          * 이 지방의 업에서 발생되는 부 +2,000
          * 매 턴 이 지방의 업으로부터 얻는 마을 성장 +35
  • 이갑성 . . . . 48회 일치
         '''이갑성'''(李甲成, <small>일본식 이름: 이와모토 마사이치(岩本正一) </small>, [[1889년]] [[10월 23일]] ~ [[1981년]] [[3월 25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사회운동가이다.
         그의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이고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아호는 연당(硏堂).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31년]] [[신간회 사건]]으로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피해 [[하이 시|하이]]로 망명,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귀국하였다. [[1940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하다가 [[윤치호]]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났다. [[1945년]] 독립촉성국민회의 조직에 참여하여 회장이 되고 [[1947년]]에는 [[남조선 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지냈으며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50년]] [[제2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뒤 [[1952년]] [[이승만]]의 친위조직이 된 [[대한인 국민회]] 회장을 지냈고, 그해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에 입당, [[1952년]] [[10월]] [[한국 전쟁]] 중 전시내각(戰時內閣)의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임시 국무총리]](國務總理)를 역임했다. [[1953년]] 자유당의 최고위원, 정무부장을 역임하였다. 4.19 혁명 후 야인으로 생활하다 [[1963년]] [[2월]] [[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위원이 되었다. [[1965년]] [[광복회]] 회장을 지냈다.
         [[기독교]]로 개종한 일로 인해 부모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 12세 때 돈없이 걸어서 경하여 [[기독교청년회]]를 찾아갔다.
         [[경성부]]에 도착한 그는 처음에는 [[남대문교회]] [[함태]] [[전도사]]를 만나 [[함태]] [[전도사]]의 집에서 하숙하면서 [[그리스도 신문]]을 배달하였다. 그뒤 신문을 보던 한 선교사의 추천으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를 만나 [[1906년]] [[경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독립운동을 실행함에 있어 학생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경성부]]의 학생들이 시국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학교에서 향력이 있던 학생들과 자주 만나 [[손병희]] 등 민족 지도자들이 독립운동을 주도한다며 독립운동 계획을 알려 동참을 호소하는 한편, 비밀리에 [[경성부]]내 각 고등학교, 전문학교 학생들의 동정을 주시하였다. 이에 [[고종 황제]]가 갑자기 죽자 그해 [[2월]]을 만세 거사 기일로 정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날 때는 병원 제약부 담당으로 재직 중 [[민족대표 33인]]에 [[기독교]]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원로격인 33인과 학생들과의 매개 역할을 맡아 학생 시위를 조직했다. [[1919년]] [[2월 20일]] 밤 [[서울]] [[남대문로]]5가의 함태 집에서 [[함태]], [[현순]](玄楯), [[안세환]], 오근(吳尙根) 등과 만나, 3월 1일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2월 22일]] 학생들이 따로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독립선언을 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이를 중지하고 [[손병희]]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 계획에 참가할 것을 호소하여 성사시켰다. [[2월 27일]] [[박희도 (1889년)|박희도]], [[함태]](咸臺永), [[김창준]](金昌俊), [[신석구]](申錫九), [[오화]](吳華英), 이인한(李寅煥), 최성모(崔聖模), 이필주(李弼柱), 박동완(朴東完) 등과 함께 이필주의 집에 모여, [[함태]]이 [[최남선]](崔南善)이 기초한 여러 가지 문서의 초안을 [[천도교]]계 인사 [[최린]](崔隣)으로부터 받아와, 그 취지에 찬성하여 [[기독교]]측의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 날인한다.
         [[2월 28일]]에는 목사 [[김창준 (1890년)|김창준]]에게 [[함태]]이 인쇄한 독립선언서 900매 중 약 600매를 받은 뒤 이를 다시 인쇄하고, 그날 5매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설(李容卨)에게 교부하여 인쇄하게 한 뒤 학생들에게 돌리게 하였다. [[3월 1일]] 아침 일찍 이갑성은 독립선언서를 수천 장 인쇄하여 400여매를 병원 사무실에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李容祥)에게 주어, 그중 200매는 대구의 목사 [[이만집]](李萬集)에게 보내고 나머지 200매를 [[마산]]의 독립운동 동조자 임학찬(任學瓚)에게 보내도록 한다. 또한 학생 [[김병수]](金屏沫)에게는 [[전라북도]] [[옥구군]]에 있는 [[박연세]](朴淵世) 등에게 보내기 위해 200매를 주었으며, [[충청남도]] [[천안]]에서 올라온 [[임신]]에게도 일부 배포하고, [[경성부]] 강기덕(姜基德)에게 천500매를 주어 배포케 한다. [[2월 28일]] 밤 [[경성부]] 재동(齋洞)에 있는 손병희의 집에 모인 손병희 등의 민족대표들은, 당초에 독립선언 장소로 결정했던 [[파고다 공원]]에는 많은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큰 혼란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다시 그 장소를 [[인사동]](仁寺洞)의 [[태화관]](泰華館)으로 정하였다.
         [[1927년]]부터는 [[허헌]], [[김병로]], [[이인]], [[허정숙]], [[조병옥]] 등과 함께 [[신간회]](新幹會)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33년]] [[신간회 사건]]으로 체포령이 떨어지면서 [[하이]](上海)에 망명하여 [[하이 임시정부]]에 가담,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38년]] 귀국,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1940년]]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7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윤치호]]의 신원 보증으로 풀려났다.
         출옥 후 1920년대까지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 [[신간회]], [[흥업구락부]] 등에 참가하여 기독교 계통의 청년 운동을 계속하다가 [[1933년]] [[하이]]로 망명했다. 그가 이때부터 일제의 밀정으로 일했다는 증언들이 다수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친일파 세'이 싫어 고국을 떠났습니다" - <nowiki>[이메일 대담]</nowiki> 순국선열 왕산 허위선생 후손 재미동포 허도성씨
         }}</ref> 하지만 밀정 혐의의 특성 세월이 흐른 뒤 근거를 찾기 힘들었고 관련자 대부분이 사망한 태가 되어 버린데다, 더 이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의혹만 남았을 뿐 명확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저자=김
         당시 조선에는 여러 정당, 사회단체가 생겼다. 이갑성은 [[1971년]] [[12월 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방이 되니까 왜 그리 많은 정당이 생기는지 한심한 태였다. 그때가 언젠지 모르나하지 중장을 만나 등록된 정당이 몇개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74개라고 대답합디다"라는 것이다. [[한민당]]의 창립 발기인이었던 그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정부가 선후에라야 정당이 있는 법이지 독립도 정부도 아직 안섰는데 정당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1945년]] [[10월]] 우후죽순 생겨난 정당, 단체들을 하나로 모을 목적으로 정당통일기성회를 조직했고, 수십개의 단체들 중 뜻이 맞거나 성격이 비슷한 단체들은 통합되었다.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를 접하는데 참석하였다. 그뒤 [[1946년]] [[4월 18일]] [[한독당]]. [[국민당]](國民黨)과 신한민족당의 3당 통합에 참여하였으나 곧 [[한국독립당]]에서 [[안재홍]] 등이 제명되자 그도 탈당하였다. [[1946년]] [[정당통일기성회]] 위원장에 선출되었으나 갈등이 계속되면서 결국 1947년 해산하게 된다.
         이때 [[김규식]](金奎植) 등의 좌우합작에 협력하던 중 그뒤 단정 수립론과 남북협론이 나오자 [[이승만]]의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48년]] [[3월]] [[미 군정]]청 군정장관 딘 소장으로부터 [[5·10 총선거]]를 관리하기 위한 중앙선거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에 임명되었다. [[1948년]] [[5월]]에는 [[이승만]]의 친위조직화된 [[대한인국민회]] 소속으로 대구에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대한인국민회]]를 지도, 운하였다.
         [[1951년]] [[5월 16일]] [[이시]] [[부통령]]의 사퇴로, [[부산 피난지]]에서 열린 [[제2대 국회]]에서 실시한 제2대 부통령선거에서 여당격인 [[대한국민당 (1948년)|대한국민당]] 소속 [[부통령]]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했다. 재적 국회의원 210명 중 재석의원 151명에 의해 선출된 부통령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1949년)|민주국민당]] 소속 [[김성수 (1891년)|김성수]]와 경합했는데, 1차 투표와 2차 투표에서 당선표수 미달, 3차 투표에서 73표를 얻어 낙선, 78표를 얻은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 [[10월]] 이승만(李承晩)대통령으로부터 전시내각(戰時內閣)의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國務總理)에 임명되기도 했다.<ref>[https://search.i815.or.kr/Indeman/Indeman.jsp?tid=ma&c1=%ED%9B%88%EA%B2%A9 ::: 독립기념관에 오신 여러분을 환합니다. ::::<!-- 봇이 따온 제목 -->]</ref> [[11월]]에는 정식 [[국무총리]]로 국회에 인준하였으나 부결되었다.<ref>대통령비서실, 《한국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 (역사비평사, 2008) 74페이지</ref>
         [[1960년]] [[4월]] [[이승만]]이 하야하자 야인으로 물러났다가, [[윤치]], [[임신]], [[임병직]] 등과 함께 우익 단체를 지도하였다. [[1961년]]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자 혁명을 지지 하였고, [[1962년]] [[건국훈장|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1963년]] [[1월]]부터 민정 이양 시기에는 [[김종필]], [[윤일선]], [[정구]] 등이 주도한 [[민주공화당 (대한민국)|공화당]] 창당 작업에 발기위원으로 참여했다. [[1963년]] [[건국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5년]] [[1월 15일]] 한일회담 고문에 위촉되었으나 사양하였고 그해 [[광복회]] 회장에 취임, 독립유공자들의 발굴과 복지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였고, 1965년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총재에도 선출되었다. 그 해, [[황신덕]] 등이 조직한 [[삼일동지회]](三一同志會)의 고문으로도 위촉되었다.
         [[1980년]] 다시 그의 밀정설이 제기되었다. 80년 임정 국무위원 출신 [[조경한]](曺擎韓)이 [[박창암]]을 불러 이갑성이 일제의 밀정이라 주장 '내가 이걸 밝혀야 되겠는데 자네 용기 있나'라고 했고, [[박창암]]은 [[조경한]]의 부탁을 수락했다. [[박창암]]은 [[조경한]]의 진술을 토대로 월간 <자유>에 발표했고 이갑성은 병석에서 [[박창암]]을 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진행 중 소송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 소송은 취소되었다. 뒤에 [[윤치]]이 [[박창암]]을 찾아가 몇이 달라붙어도 해결못할 일을 해결했다며 치하하였다. 이갑성은 그해 [[3월 25일]]에 사망했다.
  • 이수진(치어리더) . . . . 48회 일치
          * 위 문서 : [[야구 관련 인물(KBO)]], [[치어리더]]
         ||<width=100px><:> '''출생''' ||||<width=350px> [[1992년]] [[10월 21일]] ([age(1992-10-21)]세), [[경북도]] [[구미시]] ||
         [[구미시]]에 위치한 [[현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경대학교]][* [[경북도]] [[경산시]]에 있는 2/3/4년제 전문대학.] 모델과를 졸업했으며, 여러 직업캠프 다니면서 힙합,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의 댄스 수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그 후, 모델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춤을 추고 싶던 도중 [[치어리더]] 모집글을 보고 지원하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키는 모델과 출신답게 174cm이다.
         야구장 응원 [[직캠]] 이 많이 올라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https://youtu.be/qqLCgWlgP3c|동 링크1]][[https://youtu.be/K0T3QgfeD0o|동 링크2]]
         2013년 말에, [[TBC]]에서 제작한 '공간다큐 그 안에'의 '라이온즈의 역전드라마 2013 한국시리즈''에서 잠깐 잠깐씩 출연도 하고 인터뷰도 하였다. 한국시리즈 응원이 처음이냐고 묻는 제작진의 질문에 엄청 떨린다고 대답하였으며, 이어 "기대도 많이 되고 한 마음으로 응원해서 우승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동 링크는 [[https://youtu.be/qEFx8TF21nA|여기]].
         2014년 1월 31일에 [[SBS]] 설특집 프로그램, '스타VS국민도전자, 페이스오프'에 치어리더 연합팀[* [[삼성 라이온즈]]의 이수진,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SK 와이번스]]의 오지연, [[LG 트윈스]]의 [[강윤이]].]으로 출연하여 걸그룹 [[걸스데이]]와 댄스 대결을 펼쳤다. [[걸스데이]]는 '[[엄정화]]의 초대', 치어리더 연합팀은 대편 '[[걸스데이]]의 기대해'와 '[[미쓰에이]]의 허쉬(HUSH)' 춤을 췄다.
         [[한국프로야구/2014년 포스트시즌]]을 맞아 [[XTM]]의 [[베이스볼 워너B]]에서 제작한 치어리더 배틀 에 출연했다. 동 링크는 [[https://youtu.be/30M67wdL7Fw|여기]].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를 했는데, 각 팀 치어리더들이 나와서 댄스 배틀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이수진은 넥센 치어리더 임경미와 대결을 했다. 여기서 자신의 키만큼 발차기를 하고 다리 찢기를 하는, 놀라운 유연성을 선보였다.
         2014년 11월 12일에 [[SBS]] [[한밤의 TV연예]]에서 '심장이 쿵~ 내 마음을 뺏어봐!'라는 타이틀로 인터뷰를 했으며,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애교 섞인 눈웃음과 동작을 선보였다. 또, "인기 비결이 뭐인 것 같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열심히 춤추는 것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쑥스럽다"라고 대답했다. 동 링크는 [[http://m.blog.naver.com/zero6330/220179564433|여기]].
         2015년 11월 1일에 [[MBC]] [[일밤]] - [[진짜사나이]] 시즌2 해병대 특집편에 입행사 부분에서 치어리더 4인중 한명으로 출연했다.
         2014 포스트시즌부터 적용된 [[KBO]] SAFE 캠페인 홍보 에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대표로 출연하였다.[* [[KIA 타이거즈]]의 최미진, [[SK 와이번스]]의 [[배수현]], [[한화 이글스]]의 [[금보아]], [[NC 다이노스]]의 [[김연정]], [[LG 트윈스]]의 [[강윤이]], [[넥센 히어로즈]]의 임경미,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 [[두산 베어스]]의 김다정 치어리더들과 함께 출연함.]
          *풀버전 동 링크는 [[https://youtu.be/SfEcJ3yiKjc|여기]].
          *욕설 금지편 동 링크는 [[https://youtu.be/F0YclW-O1OM|여기]].
          *응원 도구편 동 링크는 [[https://youtu.be/qvs-RbMzb6g|여기]].
          *낙 사고편 동 링크 [[https://youtu.be/FIyOa3VuTfQ|여기]].
          *파울볼 사고 예방편 동 링크 [[https://youtu.be/3MsGgEqY3Fk|여기]].
          *'''A'''ttention(주의)[* S'''A'''FE의 '''A'''이다. 참고로, '''S'''는 '''S'''ecurity(안전), '''F'''는 '''F'''resh(쾌적), '''E'''는 '''E'''mergency(응급황 대처)] 종합편 동 링크 [[https://youtu.be/dAhUCSKEqFM|여기]].
          * 9월 8일자 기사 (이수진, 레벨 온 와이어리스로 화 같은 데이트를 꿈꾸다) [[http://samsungtomorrow.com/uJMkb|기사 링크]]
         2015년 11월, 치어리더 [[서든어택]] 캐릭터로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과 함께 제작되었다. 서든어택 녹음 메이킹 을 보고싶다면 해당링크로.[[http://youtu.be/TDxONcVquSQ?list=PLXBtZZq9cODoETI8u9_12RifiK4UHRYsY| 링크]]
         춤을 한번도 배워본적이 없는 박기량, 김연정과 달리 전문적으로 댄스 교육을 받아본 치어리더라서, 확실히 여러 댄스 동작에서 정석에 가까운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러 안무들도 원본에 가깝게 소화를 잘 하는 경우가 있다. 단점이 있다면, 춤을 정석적으로 많이 배운지라 즉흥적인 프리 댄스 같은 건 잘 하지 못한다. 2014년 XTM 댄스배틀이 그녀의 프리댄스를 보여주는 부분인데, 동작이 당히 어색해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1년차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위에 서술한 것처럼 즉흥적인 프리 댄스는 당히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 보조개가 당히 매력적이다. 여담으로, 남성팬들이 사진빨이 안받는다며 아쉬워(?)한다.
  • 차승재 . . . . 48회 일치
         {{화인 정보
         | 직업 = [[화 제작자]]
         | 웹사이트 =
         | 수 = 2006년 [[백예술대]] 작품
         '''차승재'''([[1960년]] [[3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화 프로듀서|화 제작자]]이다. 2012년 현재 동국대학교 대학원 원장과, 한국화제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04년 제47회 [[대종]]화제 총괄이사
         *2005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학과 부교수
         *2007년 1월~ 한국화제작가협회 회장
         *2007년 3월~ 동국대학교 대학원 원장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 (1998년 화)|8월의 크리스마스]] -제작
         *2001년 [[봄날은 간다 (화)|봄날은 간다]] - 제작
         ==수 경력==
         *1998년 황금카메라 제작공로
         *1998년 제19회 《[[청룡]]》 작품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년 화)|8월의 크리스마스]]
         *2001년 제22회 《[[청룡]]》 작품 - [[봄날은 간다 (화)|봄날은 간다]]
         *2003년 제40회 《[[대종]]》최우수 작품 - [[살인의 추억]]
         *2003년 《[[부산화평론가협회]]》 최우수작품 - [[지구를 지켜라!]]
         *2004년 제1회 맥스무비 최고의 최고의 작품
         *2006년 제43회 《[[대종]]》최우수 작품 - [[왕의 남자]]
         [http://movie.naver.com/movie/bi/pi/filmo.nhn?code=2214&v=i 네이버화]
  • 한진희(1949) . . . . 48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FFFFFF ''' 한진희의 주요 수 이력 ''' }}} }}} ||||
         ||<-5><tablewidth=100%><#00a495><tablebordercolor=#00a495><tablealign=center> '''{{{#FFFF00 {{{+1 [[동양방송|{{{#FFFF00 TBC}}}]] [[연기대|{{{#FFFF00 연기대}}}]] 최우수 남자연기}}}}}}'''[* 당시에는 대이 따로 없었고 최우수 남자·여자연기이 최고의 이었다] ||
         ||<-5><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예술대|[[파일:백예술대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 ||
         || 수 ||2006년 제8회 KBS 바른 언어 특별[br]1979년 연극화TV예술 연기||
         [[동양방송|TBC]] 연기대을 1975년, 1976년 2회 연속 수한 1970년대 [[동양방송|TBC]]의 간판 배우이고 [[주말 드라마]] [[애정의 조건]]으로 제13회 백예술대 최우수연기(남자부문)을 수하기도 했다.
         현재는 이미지나 무거운 톤의 목소리 덕에 [[높으신 분들]](회장이나 사장) 전문 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1970~1980년대엔 잘생긴 얼굴과 큰 키 덕에 [[노주현]]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미남으로 불리며 드라마 남자 주인공역을 독차지했었다.[* 노주현이 직접 방송에서 "한진희씨, 임채무씨가 나오기 전까지 (미남 남자 주인공 역할은) 나뿐이었다. 내가 군대갔다오니까 한진희 나오고 조금 있다가 임채무 나오더라"하며 직접 한진희를 언급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노주현이 두 사람보다 형이고 선배이다.) 그러나 술된대로 둘이라고만 할 수 없는게 [[임채무]]도 70년대 후반부터 합류해서 이 두 사람의 역을 나름 가져갔다. 정 말하자면 드라마 남자 주인공으로 3대 트로이카 정도 된다.][* 1990년대부턴 [[개그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노주현과 한진희가 함께 1980년대 초에 양복 모델을 한 적도 있다. <안녕 자두야> 대한전선 사건편에서 컬러 티비로 티비를 보면 티비가 더 재밌지 않겠냐는 자두의 질문에 자두 엄마 이난향이 "그래~저번에 혜리네 집에 가서 <결혼 행진곡>을 봤는데, 한진희가 더 잘생겨보이더라ㅋ"라고 답하며 언급하기도 했다. [[http://bbs1.telzone.daum.net/gaia/do/board/photo/read?articleId=573735&bbsId=A000010|#]]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청춘의 덫]]이, 70년대 후반의 보수적인 국민정서로 인해 미완성인 태로 종되자 직후 만들어진 극장판 청춘의 덫(1979년)에서 출세를 위해 연인 윤희(유지인)를 배신하는 동우 역할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90년대 리메이크된 TV판에서 [[이종원]]이 맡았던 바로 그 캐릭터. 참고로 여주인공 윤희 캐릭터를 연기한 여배우는 [[이효춘]](TV판), [[유지인]](극장판), [[심은하]](TV 리메이크판)로 이어진다.
         [[여명의 눈동자]]의 원작자로 알려진 소설가 김성종의 [[제5열]]을 MBC에서 미니시리즈로 만들었을 때 킬러 역을 맡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는 이하. 이때만해도 [[이하]], 한진희, 노주현 같은 배우들이 드라마 속에서 멋진 주인공 역을 맡을 때였다. 이후 [[박원]], [[최재성(배우)|최재성]], [[최민수]], [[손지창]], [[이병헌]], [[배용준]], [[안재욱]] 등이 안방극장의 남자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된다.
         서민 가장 전문 배우 취급을 받는 [[장용]] 과 대비되는 점도 인적이다. 몇몇 드라마에서 [[사돈]] 역할로 많이 나오는데, 직접 대면하는 씬은 적다. 이 경우 보통 한진희의 집은 부잣집이고 장용의 집은 가난한 집. 한진희는 중간에 (출생의) 비밀 폭로나 부하의 배신, 사업 실패로 인해 충격을 받아서 심혈관계 질환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많다. 또한 혼외정사로 밖에서 애 낳아서 들여오는 아버지 역도 자주 맡는다.
         [[임성한]] 작가의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 [[왕꽃 선녀님]], [[보석비빔밥]], [[압구정 백야]] [[김순옥]]작가의 [[왔다! 장보리]], [[그래도 좋아]] [[문남]]작가의 [[조강지처 클럽]] 이것으로 [[막장 드라마]]계의 [[임성한|빅]][[김순옥|3]][[문남|에]] 작품에 모두 출연하기도 하였다. [[임성한]] 작가의 [[막장 드라마]] 중 [[왕꽃 선녀님]],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 두 개의 작품에서 모두 여주인공의 친부로 출연하였다. 그리고 해당 드라마들에서 여주인공의 친모는 모두 [[김혜선(배우)|김혜선]]이 연기하였다.
         [[김동엽(1938)|김동엽]] 감독과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방송이 끝나고 [[여의도]]의 한 포장마차에서 김동엽 감독과 합석하게 되었는데[* 당시 김동엽 감독은 여의도 근처의 술집을 자주 들락거려 일부 연예인들과 안면이 트인 사이였다고 한다. 한진희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연예계에서 주당으로 이름 날리던 한진희는 김동엽 감독에게 술내기를 제안했고, 김동엽 감독이 레몬을 주문하자 적잖이 실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동엽 감독이 즐겨 마시던 일명 '레몬소주'[* 레몬 하나를 '''맥주잔에''' 짜서 즙을 낸 후 소주랑 섞어 마셨다.]를 한번 마셔본 한진희는 "이게 술이냐 주스냐."라고 비아냥거리고 자신만만해했으나 결과는 한진희의 완패로 끝났다. 이 때문에 병원신세도 지고 거진 한달을 후유증에 시달린 한진희는 이후 "김동엽 그 괴물같은 인간이 주는 레몬소주는 절대 마시지 말아라." 라고 했다고 한다.
         [[리멤버 - 아들의 전쟁]]에서는 [[남일호]]라는 [[범죄자]] 블랙기업인을, [[문화방송|옆 동네]]의 내일도 승리에서는 천사 그 자체인 자한 아버지 [[서동천]] 회장님을 연기하는데 이중인격이 아닐까 할 정도로 완전 두 캐릭터가 성격이 반대이다. 분명 동일인물이 연기를 하는데도 소름끼칠 정도로 [[서동천|절대 선]]과 [[남일호|절대 악]]으로 분리되어 있다. [[남일호]]가 한 짓을 [[서동천]] 회장님이 알면 참 볼만해질 것이다. 또한 [[남일호]]가 한 짓을, [[금 나와라, 뚝딱!]]의 [[박순]]이나, [[왔다 장보리]]의 [[이동후]]가 봐도 볼 만해지실 것이다. 참고로 한진희보다 선배급 탤런트인 [[이정길]]도 2015년 즈음에 동시 방된 내일도 승리의 전작인 이브의 사랑에서는 [[남일호]]처럼 악하게 생긴 악덕 블랙기업인 [[구인수(이브의 사랑)|구인수]] 회장을, 9월 쯤 방된 [[내 딸 금사월]]에서는 [[서동천]] 회장처럼 인자하게 생기시고, 자하고, 도덕관이 투철하고 투명한 생각을 가진 [[신지]] 회장님을 연기한 적이 있다.
         2013년 8월 초 손자가 [[백혈병]]으로 세을 떠났는데 일단 그것을 숨기고 촬에 임하였다.
         === 화 ===
          * [[금 나와라, 뚝딱!]](MBC, 2013) - [[박순]] 역
          * [[보석비빔밥]](MBC, 2009~2010) - 궁식 역
          * [[대춘향전]]([[동양방송|TBC]], 1979) - 이몽룡 역[* 대배역인 '춘향' 역은 [[장미희]]였다.]
  • 은혼/629화 . . . . 47회 일치
          * 그러나 위기의 순간 우리의 주인공 [[사카타 긴토키]] 및 주요병력은 전시엔 도 할 수 없는 놀자판을 벌이며 곤드레 만드레 태.
          * [[이마이 노부메]]는 부으로 전선에서 빠졌으나 [[사다하루]]와 [[소요 공주]] 곁을 지키고 있다.
          * 그런데 소요의 경호원이 두고간 무전기가 갑작스레 복구되면서 어딘가와 연결되는데, 대는 해방군 본진에 억류된 [[도쿠가와 노부노부]] 일행이었다.
          * 진선조는 겐가이를 탈환하기 위해 추적을 개시하지만 책임자급의 글러먹은 태로 인해 진전이 없다.
          * 긴토키는 숙취로 빈사, [[곤도 이사오]]는 한 번 똥쟁이는 원한 똥쟁이임을 입증, [[핫토리 젠조]]는 치질을 극복하지 못하는 처절한 처지.
          * 한편 포획된 겐가이는 복구된 통신으로 해방군 총지휘관 원황자와 통신으로 대담을 가진다.
          * 겐가이가 협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원 황자는 해방군 본진을 거대한 포대로 변형시켜 지구를 흔적도 없이 지우려 한다.
          * [[히라가 겐가이]]를 포획한 [[야토]] 용병부대. 이들의 수장은 해방군 함대를 전멸시킬 장본인이 겐가이이며 그걸 복구할 수 있는 것도 겐가이 뿐이라고 판단한다. 겐가이 감은 동료들이 쓰러질 때 보고만 있더 녀석들의 이제와서 뭘 원하냐고 빈정댄다. 야토의 수장은 [[카무이(은혼)|카무이]]등과 달리 냉철하고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오우가이]]를 비롯한 지군들은 본진과 연계할 수 없는 시점에서 적을 얕봐 독단으로 움직인 우를 범했다. 이들은 "썩은 수족"이며 사전에 잘라내 마땅하다.
          수장이 지구를, 가부키쵸를 얕보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야왕 호우센]]의 최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수장은 가부키쵸 주민들을 쓰러뜨리는건 해방군을 복구한 이후의 일이라며 겐가이 감에게 나노머신 병기를 멈출 방법을 말하라고 종용한다.
          * [[히자카타 토시로]]와 [[진선조]]는 겐가이 감의 실종, 잠정적으론 적에게 납치 당한 걸로 보인다는 소식을 각지에 전한다. 히지카타는 이제 가부키쵸 병력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카타 긴토키]]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방문을 연다.
          * 마츠다이라의 바람과는 달리 소요 공주는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창밖으로 불꺼진 에도의 밤을 바라본다. 그런 그녀 옆엔 [[이마이 노부메]]가 있다. 부으로 전선에서 이탈했지만 공주의 경호역을 맡았다. 노부메는 창가를 서성이는 공주에게 잠이 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소요는 대답 대신 노부메씨도 그렇냐고 반문한다. 노부메는 부으로 발목이나 잡는 마당에 염치없이 쉴 수 없다면서 공주를 위해서 보초를 서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주가 사양하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선채로 잠들어 버려서 별 설득력이 없다.
          소요 공주는 해결사가 두고 간 보디가드, [[사다하루]]가 있어 괜찮다며 그녀에게 취침을 권한다. 그런데 문제의 보디가드가 공주의 잠자리를 척하니 차지하고 꿀잠을 때리고 있다. 노부메가 그 꼴을 보고 발끈하는가 싶더니 한술 더 떠서 사다하루의 폭신폭신 모피 위에 걸쳐서 꿈나라로 출발해 버린다. 온실 속 화초인 공주님은 이런 하드한 보케질 난무에 적응이 어렵다.
          공주의 씁쓸한 되새김. 노부메는 공주를, 그들 남매를 이런 황에 몰아넣은 것은 자신들 히토츠바시파라고 털어놓는다. [[도쿠가와 시게시게]]의 실각과 암살, 그 배후엔 견회조가 연루돼 있다. 노부메는 자신들이 한 짓이 없었더라면 시게시게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며, 자신은 그녀 앞에 있을 자격도 없는 자라고 말한다.
          * 그때 방 한 켠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들린다. 무전기였다. 공주의 경호원 것인데 겐가이포 발사 이후 고장나서 방치한 것이다. 그 고장난 무전기에 잡음이 들리더니 이윽고 뚜렷한 사람의 목소리로 변해갔다. 누군가 통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에도는 모든 기계가 정지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들리는 목소리가 귀게 익다. 공주는 직접 무전기를 집어들었다. 공주가 응답하자 무전기 너머의 대는 지금 응답한데 누구냐고 물었다.
          무전을 보낸 사람은 해방군 본진에 억류된 [[도쿠가와 노부노부]] 일행이었다. 노부노부가 직접 통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응답한 사람이 그 시게시게의 동생, 소요 공주라니. 노부노부는 낭패한 표정을 짓는다. 게다가 소요는 그 대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다.
          * 같은 시각 해방군도 통신을 복구하는데 성공했다. 분석 결과로는 나노머신 병기는 정말로 모든 기계를 파괴하는게 아니라 중추 시스템을 장악해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 따라서 장악된 시스템을 우회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서 통신을 복구할 수 있었다. 부하들이 기쁘게 이 사실을 보고하지만 원 황자는 전혀 만족한 모습이 아니다.
          버럭한 원은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노발대발한다. 여전히 지구에 접근할 수 없고 잔존한 지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황이다. 그러면서 빨리 다음 대책을 마련하라고 성화를 부린다. 시간이 갈 수록 그 안의 "빌어먹을 지구인"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커져가는 듯 하다.
          이런 절박한 황에 처했음에도 병력의 중핵이자 이 만화의 주인공은 핵 털린 북한 같은 몰골로 [[시무라 신파치]]에게 업혀서 이동 중이다. 일단 추적대에 합류하긴 했는데 하는 소리로 보면 정신이 1할도 복구가 안 된거 같다. 겐가이가 적에게 협조하는 것을 우려하는 히지카타에게 "그 아저씨는 적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사람이 아니니 입다물고 있다가 죽을 거다"는 헛소리를 한다. 결국 죽는거 아니냐고 까이니 "커뮤력이 높으니까 우주에서나 저 세에서나 잘 해나갈 거다"도 한술 더 뜬다.
          히지카타는 전시에 토할 정도로 퍼마시는 놈이 어딨냐고 깐다. 사실 긴토키도 라스트 보스 직전의 마지막 세이브 포인트라고 생각해서 푹 쉬고 풀회복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독늪에서 뒹굴거리다 태창이 녹색으로 물들어버린 판이었다.
          * 긴토키는 애초에 겐가이 감이 적에게 잡힌게 맞긴 하냐고 묻는다. 오키타가 겐가이가 길똥을 때리다 휴지가 없어서 고립되었을 때 붙잡힌거 같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현장에 대변이 발견되었지만 닦은 흔적이 없는 관계로 엉덩이에 묻힌 채로 그대로 끌려갔다는 정말로 쓸데없는 추리를 덧붙인다. 긴토키는 그딴 추리에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 거냐고 까버린다.
  • 강구열 . . . . 46회 일치
         | 좌우명 = 겸손하고 항 최선을 다하자
         | 웹사이트 =
         두 선수의 첫 인연은 곰TV [[MSL]] 시즌2 조지명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조지명식에선 [[김창희 (프로게이머)|김창희]](당시 [[온게임넷 스파키즈]] 현 구제명)와 [[박성훈 (프로게이머)|박성훈]]([[삼성전자 칸]])의 신경전이 한창이었는데, 이는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일어난 '버그 사건' 때문이었다. 시종일관 박성훈은 "벌레(버그)테란과 맞붙고 싶다" 등의 공격적인 멘트로 김창희를 자극하였다.
         그러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고 말았다. 김창희가 전대회 4강에 올랐던 [[진수]](당시 [[STX 소울]] 현 구제명)에게 "만만하다"며 도발하자, 진수가 "나와 승부하려면 강구열부터 꺾고 오라"며 응수한 것. 결국 별다른 친분도, 사연도 없던 강구열과 김창희는 진수에 의해 같은 C조에 편성되었고, 김창희는 강구열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시종 진수만 자극하기에 바빴다. 가만히 지켜보던 강구열이 "나는 버그 쓴 테란에게는 지지 않는다"며 김창희를 공격했고, 이에 김창희가 "버그가 아니라 스킬인데 자꾸 버그버그 하니까 좀 그렇다"라며, 한편으로는 "강구열 선수 물론 별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응수하면서 순식간에 두 선수 사이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또한 이 장면은 각 커뮤니티에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이같은 설전의 향으로 두 선수의 맞대결엔 뜨거운 관심이 모아졌고, 경기는 강구열의 완승으로 끝났다. C조 2경기에서 강구열이 승리한 이후, 최종진출전에서도 강구열이 김창희를 꺾으며 16강에 진출한 것이다. 결국 김창희는 진수와의 대결은 고사하고 탈락의 쓴맛만 봤고, 그의 안티팬들은 강구열에게 '세스코 테란(벌레를 박멸했다는 뜻)'이란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이후 두 선수는 한동안 어색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MBC게임의 스타 무한도전에 함께 출연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또한 MBC게임 히어로-온게임넷 스파키즈간의 이벤트전인 라이벌 배틀 브레이크에서도 둘은 줄곧 맞대결했고, 팬들 역시 이들의 경기를 '열창록'이라 칭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강구열과 김창희의 대결 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2008년 초에 열린 올스타 스킨스 매치로, 이날 경기에서 김창희는 강구열을 7:0으로 꺾으며 500만원의 금을 차지했다.
         곰TV MSL 시즌2 C조 예선에서 김창희만 두 번 꺾고 16강에 오른 강구열은 '퍼펙트 테란' [[서지훈]](CJ 엔투스)을 꺾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당초에 김창희와의 대결로 화제를 낳긴 했으나, 기량면에선 약체에 속한다고 평가받던 강구열이었기에 그 파장은 엄청났다. 8강전 대는 당시 대 테란전 최고 승률을 자랑하던 송병구([[삼성전자 칸]]). 팬들은 송병구의 절대 우세를 예측하면서도, 16강에서 일으킨 강구열의 파란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MSL에는 8강에 오른 선수들에게 그 특징을 살린 별명, 문구를 붙여주는 관행이 있다. 당시 강구열에겐 '날카로운 빌드의 귀재, BLADE TERRAN'이란 수식이 붙었는데, 이는 기본기나 운보다는 초반 빌드에 집중하는 강구열의 플레이 스타일에 착안한 것이었다. 5판 3선승제로 치러진 8강에서 강구열은 예의 그 '날카로운 빌드'를 시전했으나 송병구의 탄탄한 운에 모두 막히면서 0:3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혹시모를 이변을 기대했던 팬들은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기에 크게 실망했고, 시드를 획득한 강구열이 곰TV MSL 시즌 3 32강에서 [[손주흥]]과 [[김윤환 (1988년)|김윤환]] (KTF)에게 2연패를 당하면서 맥없이 탈락하자 "거품이다", "천운 8강이다" 등의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같은 강구열의 행보를 그대로 답습한 선수가 이후에도 계속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CJ 엔투스의 [[주현준]], [[한봉 (프로게이머)|한봉]] 등이 '시드 확보→졸전→광속 탈락'의 전례를 밟은 것. 팬들은 이들을 한데묶어 '강라인'이라 칭하기 시작했고, 이는 커뮤니티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대세'로 자리잡았다.
         본래 '강라인'이란 호칭은 실력보다 부풀려진 성적을 낸 선수들을 조롱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수장'으로 불린 강구열의 유쾌한 성격, 그리고 매체 인터뷰에서 보인 겸손한 모습에 팬들은 점차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에 힘입어 DC 인사이드엔 '강구열 갤러리(일명 날갤)'가 생기기에 이르렀고, 지금도 많은 팬들은 날갤 등을 통해 '강수장'과 활발히 교류하며 '충성'을 다하고 있다.
         * 강구열([[MBC게임 히어로]]) : 2009년 9월 은퇴. 강라인의 수장. [[곰TV MSL 시즌2]] 8강에 오르며 시드 획득. 8강에선 송병구에게 0-3으로 완패하며 탈락.차기 시즌 32강에서 손주흥과 김윤환에게 패하며 탈락. 또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오종]]과 [[한동훈 (프로게이머)|한동훈]]에게 연패하며 탈락.
         * [[주현준]]([[CJ 엔투스]]) : 2009년 6월 은퇴. [[곰TV MSL 시즌3]] 8강에 오르며 시드 획득. 8강에선 당시 신예였던 [[박성균]]([[위메이드 폭스]])에게 1-3에게 완패하며 탈락. 차기 시즌에 Face Off의 저주에 걸리면서 32강에서 신희승, 박찬수에게 패하며 탈락. [[아레나 MSL 2008]]에서도 손주흥에게 패한뒤 김윤환(STX)을 잡아냈으나 박성균에게 패하며 탈락.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16강에서 허무에게 패배하며 탈락.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1승 2패로 탈락.
         * [[신희승]]([[이스트로]]) : 2010년 6월 구제명. 신희승의 강라인 가입은 험난(?)했다. [[EVER 스타리그 2007]] 4강 2007에서 [[이제동]]([[르까프 오즈]])에게 0-3으로 완패, 3,4위전에서 김택용과의 졸전 끝에 2-3으로 패배했지만 시드가 없었다. 당시에는 스타 챌린지를 통과한 선수가 D조의 시드권을 잡았기 때문에 신희승은 시드를 잡지 못했다. (스타챌린지가 없어지면서 시드권은 박카스 이후 공동 3위에게 넘어감) [[곰TV MSL 시즌4]] 8강에서 마침내 시드를 딴 이후 [[허무]](삼성전자 칸)에게 0-3으로 완패하는 '삼고초려' 끝에 강라인의 일원이 되었다. 항간엔 "신희승의 네임밸류는 기존의 강라인과 다르다"는 반론이 일어 논쟁에 휩싸였으나, 신희승 본인이 "나는 강라인이다"고 인정하면서 '공인' 강라인이 되었다. 팬들은 전략가 이미지가 강한 그에게 '와룡희승'이란 애칭을 붙였다. 이 후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선 [[안기효]], [[김민제 (프로게이머)|김민제]]에게, 아레나 MSL에서 고인규, [[박찬수]]에게 패배하면서 탈락했고,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최종전에서 이제동에게 발목을 잡혔다. 이후 [[로스트사가 MSL 2009]]와 [[아발론 온라인 MSL 2009]]에서는 각각 16강에 진출하였다.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1승 2패로 탈락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또 차기 시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2패로 탈락했다.
         * [[손찬웅]] (현 [[화승 OZ]]) : 2011년 7월 은퇴. 손찬웅의 행보는 강라인이 되는 데 정말 완벽했다. 2007 스타챌린지 S2에서 손찬웅은 [[변길섭]]과의 최종전에서 변길섭을 꺾고 박카스 [[스타리그]]에 올라가 김동건, 박명수, 박민에게 패하며 탈락했고, 그 다음 시즌 [[에버 스타리그 2008]] R1에서 [[이제동]]과 [[한동욱]]을 떨어트리는 충격적인 대진으로 2R에 진출했다. 그 후 R2에서 [[김택용]], [[박성균]], [[박민 (1984년)|박민]]과 같은 조가 되어 김택용과 박민을 이기고 박민과 8강에 진출하며 김택용과 박성균의 진출을 기대하였던 관계자에게 충격을 주었다. 또 8강에서는 강력했던 로얄로더 후보 [[허무]]를 2:1로 역전시키며 4강에 진출하여 시드를 얻었다. 하지만 4강에서 [[프로토스]]전을 제일 잘 하기로 유명한 [[박성준 (1986년)|박성준]]에게 3:1로 패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탈락하였으며, 끝내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16강에서도 [[송병구]], [[염보성]],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에게 전패를 당하고 광속 탈락, 강라인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인크루트 스타리그 3패 탈락의 향으로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에서도 김택용, 박민에게 2패를 당하고 광속 탈락, 이 후에도 서바이버 시즌 3에서도 [[박태민]]과 STX의 저그 신예 [[조일장]]에게 연패하며 탈락, 강라인의 일원임을 입증했다. 이후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는 [[박태민]]과 [[서기수]]를 이기고 16강에 진출은 하나 [[문성진]], [[송병구]], [[정명훈 (프로게이머)|정명훈]]에게 무난한 3패로 광탈하며 강라인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차기 시즌에서는 36강에서 탈락하며 본선 진출 실패. 그 뒤로는 스타리그에도 MSL에도 복귀하질 못하였고, 계속 탈락만 하다가 2011년 7월 은퇴.
         * [[조일장]] ([[STX SouL]]) : 2012년 12월 사실 은퇴. [[바투 스타리그 08-09]]에서 4강에 오르며 충격적인 개인리그 데뷔를 하지만 시드를 확보한 다음 시즌인 [[박카스 스타리그 2009]] 16강에서 1승 2패로 16강에서 탈락, 강라인에 가입하게 됐다. 그 뒤로 [[에버 스타리그 2009]]는 36강에서 탈락,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1]]도 결과 마찬가지, 그 뒤로는 본선 진출에 실패하거나 계속 조기탈락. MSL에서도 본선 진출 실패, 혹은 조기탈락하거나 16강에만 머묾.
         * [[문성진]]([[하이트 스파키즈]]) : 2010년 6월 구제명.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에서 도재욱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충격적인 데뷔를 한 끝에 4강까지 올라가는 활약을 하면서 [[EVER 스타리그 2009]] 4번 시드를 확보하지만 3패로 16강에서 광속 탈락, 강라인에 가입하게 되었다. 차기 시즌 36강에서는 [[김구현]]에 패하며 탈락.
         * [[정종현]] ([[웅진 스타즈]]) : 2010년 10월 스타2 전향. [[하나대투증권 MSL 2010]] 16강에서 전태양을 2: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하였다. 첫경기에서 이호에게 승리하며 좋은 분위기를 탔지만 결국 3:1로 패배하였다. 그 후 [[빅파일 MSL 2010]] 32강에서 1승 2패로 탈락하며 강라인에 가입하게 되었다.
         * [[박세정]] ([[위메이드 폭스]]) : 2010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Season 1]] 16강에서 김윤환, 정명훈과의 재재경기 끝에 8강에 진출하였다. 8강에서 전대회 준우승자인 진화를 2:0으로 꺾고 4강에 진출하였지만 이호에게 3:0으로 패배하게된다. 이후에 열린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Season 2]] 16강에서 3패로 탈락, [[박카스 스타리그 2010]] 36강마저 탈락하며 강라인에 가입했다. 그 뒤로는 개인리그 본선 진출 계속 실패.
         * 그밖에 [[박카스 스타리그 2008]] 4강에서 완패한 [[박찬수]]([[KTF 매직엔스]], 현재 구제명), [[네이트 MSL 2009]] 8강에서 셧아웃당한 [[김대엽]]([[KT 롤스터]]), [[빅파일 MSL 2010]] 8강에서 [[김택용]]에 1대3으로 패해 탈락한 [[염보성]]([[제8게임단]]) 역시 강라인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네임밸류가 높다는 이유로 인해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박찬수는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우승함) 최근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박찬수에게 셧아웃당한 [[김명운]]([[웅진 스타즈]])등이 신규 멤버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8강에 진출하면서 광속 탈락을 피해가 가입 실패하고 말았다. 이중 1명은 구제명, 1명은 사실 은퇴. 또한 [[박카스 스타리그 2010]] 4강에서 [[송병구]]에 셧아웃당한 [[김현우 (프로게이머)|김현우]]([[STX 소울]])도 차기 [[진에어 스타리그 2011]] 8강에 진출해 강라인 가입에 실패했다. [[유병준 (1993년)|유병준]]([[삼성전자 칸]])도 [[ABC마트 MSL 2011]] 8강에서 [[이제동]]에게 3대1로다가 패하면서 다음 MSL에서 광탈하면 강라인이 될 뻔했으나, MSL이 없어지면서 유병준도 강라인 가입은 면했다. 유병준도 2012년 6월 은퇴. [[진에어 스타리그 2011]] 4강에서 [[허무]]에 셧아웃당한 [[어윤수]]([[SK Telecom T1]])도 강라인이 될 뻔했으나 [[티빙 스타리그 2012]] 8강에 진출하면서 강라인 가입은 면했으며, [[김정우 (프로게이머)|김정우]]도 본래 강라인이었으나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1]]에서 우승하면서 탈퇴가 확정됐고, 구제명된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도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 준우승하면서 탈퇴, 임의탈퇴한 [[한봉 (프로게이머)|한봉]]도 [[아발론 온라인 MSL 2009]]에서 준우승하면서 탈퇴, [[이한]]도 8강에 3전전승으로 진출하면서 강라인에서 탈퇴하게 되었다.
         * [[2004년]] WCG 사이버파크 3위
  • 김이브 . . . . 46회 일치
         ||<#5DADE2> {{{#fff '''종교'''}}} || [[불교]][* [[유튜브]] 중 ‘김이브님♥종교의 자유’ 6초 참고. ] ||
         [[아프리카TV]] [[BJ]]이다. 인방업계에서 돌려 언급할 때 주로 거론되는 별명은 ‘김이모’이다.[* 김이브는 '김이모'라는 별명을 당히 싫어한다. 방송 중에 이 별명을 언급하면서 "이 방송 채팅방에서 '이모' 어쩌구 하면 얄짤없이 강퇴입니다."라고 발언했다.] 또 다른 별명은 이브형이다. 이 별명은 본인도 딱히 싫어하지 않는 듯.[[https://www.youtube.com/watch?v=jDqWs9S-Scs|#]]
         2000년대 후반에는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코갤러]]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받았다. 그 당시에는 아프리카TV 보안이 허술해서 시청자 중 누군가 해킹을 해 방종이나 얼리기 등을 마음대로 조종하거나 채팅창에 플래시파일을 올리는 것이 가능했는데, 이를 이용하여 19금 움짤이나 귀신 움짤로 도배를 하거나 방송국 게시판에 링크낚시를 하는 등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한동안은 방송이 불가능했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진워렌버핏|이 인간]]의 만행은(...) [[더 이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센스있는 드립을 활용하여 거침없이 말하며, 욕도 하는 편. 채팅창에서 눈에 띄는 드립을 받아치는 것은 물론, 욕설과 노골적인 성드립에도 눈 하나 까딱 않는다.[* 이전부터 그런 사람들을 많이 겪으면서 내성이 생긴데다가, 본인 성격도 당히 직설적이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들로 김이브의 방송을 녹화한 [[유튜브]] 이 유명해진 뒤로는 여성 시청자가 굉장히 많이 늘었었다.[* 가식과 내숭이 없는 것은 물론, 묘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언변이 시청자들을 불러모으는 주 이유로 짐작된다.] 또 귀찮은 듯 하면서도 고민담을 곧잘 해주는 편이다.
         매일 오후 9시 1~2개의 이 [[유튜브]]에 업로드된다. 보통은 1~3분 내외의 짧은 하이라이트 이 올라오지만, 간혹 5분 이의 긴 도 업로드된다.
         유튜브 수익으로 매니저들의 월급이 결정된다고 한다. 사실 유튜브 수익만 해도 엄청난 수준이라 매니저들의 불만은 없을 듯.~~[[성과연봉제]]?~~ 현재 김이브 유튜브 편집을 돕고 있는 사람은 '''민수''', '''민츙청''', '''별난바''' 세 사람이며, 추가로 편집자를 더 입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014년 국내 유튜버 중 구독자 수 100위권 진입자라고 한다.[[https://youtu.be/sS4FoFgsmac?t=70|#]] 2015 국내 유튜버 반기 TOP 20, 결산 종합 7위에 이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5 국내 유튜버 먹방 최다 조회수 TOP 10 부분에 토크형 BJ임에도 2개의 을 올려놓았다.
         현재는 하이라이트 이 유튜브에 매일 오후 9시에 업데이트 되고 있다.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김이브/논란)]
          * 반려견으로 소망이라는 강아지가 있었으나 2013년 12월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그후 사랑이도 2016년 초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현재는 순덕이(수컷, [[시바견]]), 순심이(암컷, [[차우차우]])와 함께 사는 중. 원래는 몸집이 비슷했지만, 순심이가 폭풍성장하여 현재는 몸집으로는 순덕이가 순심이의 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순덕이가 주제를 모르고 순심이에게 짖어대서[* 순심이는 보통 가만히 있는데 서열이 낮아서라기보다는 그냥 귀찮은 듯(...)] 방송 진행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김이브가 장난감 등으로 다독이면서 방송을 진행하지만 호되게 야단을 치는 경우도 생기고 심하면 방에서 추방하는 경우도 있다. 생방 중에 반려견들이 보이면 '사랑이는 어디 갔냐'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질문이 나오기가 무섭게 매니저들이 질문을 한 시청자에게[* 직접 닉네임까지 언급한다.] 주의를 주며, 그럼에도 계속 물어볼 경우 아예 강퇴 처리하기도 한다. 반려견의 죽음이 주인에게 주는 충격은 대단히 크고, 이것은 김이브의 경우도 다르지 않기 때문.[* 문제는 BJ를 도발하기 위해 이 질문을 하는 악질 시청자가 존재한다는 점. 강퇴 처리라는 극약 처방을 쓰는 것도 결국 이들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정말 몰라서 물어봤다가 문도 제대로 모른 채 강퇴당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김이브가 생방 중에 잠시 짬을 내서 직접 사랑이 소식을 전하면서 관련 질문을 삼가주기를 직접 당부하기도 했다.]
          * 클럽 죽순이설에 대해 자신은 클럽 갈 시간에 하스스톤을 하므로 클럽에 갈 리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하스스톤 죽순이 설을 주장하자 사실이므로 해명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 하스스톤 이 2015년 6월 29일까지만 나왔고 2016-10-03 18:53:20 현재까지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접은 것으로 보였는데, 이후 방송에서 접었다고 말했다. 일생활에 지장이 갈정도로 할것 같아서 끊었다고 한다. 그래도 가끔씩 다른 모바일 게임을 해보는 들이 올라올 때가 있다.
          * 워낙 경력이 있는 BJ인지라 타 BJ들과도 친분이 많은 듯. 세이클럽 시절부터 함께했던 [[꽃빈]]과도 친분이 있다. [* 하지만 최근 김이브와 꽃빈을 함께 검색해보면 유튜브에 올렸던 제주도 여행 계획 들이나 서로를 언급한 들을 비공개 처리나 삭제작업을 거친것으로 보아 서로가 아직까지도 친분을 유지하는 중이라는 것은 미지수이거나 알 수 없다. 김이브도 꽃빈에 대해, 꽃빈도 김이브에 대해 직접적으로 서로 언급을 방송에서 하지 않아서 팬들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모를 수 밖에. 꽃빈도 [[김이브/논란|이 사건]]에 대해 언급을 일체 하지 않을거라고 방송에서 직접 밝혔던 바가 있다.]
          * 외모가 닮았고 방송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실은 [[윰댕]]과 동일인이 아니냐는 설도 한때 돈 적이 있을 정도.[* 목소리 톤이나 방송 스타일 면에서는 당히 차이가 나는 편이다. 윰댕의 목소리가 좀 더 나긋나긋한 편이며, 방송 스타일도 김이브에 비하면 좀 더 정적인 편.] 다만 2017년 12월쯤에 친한 줄 알았던 [[윰댕]]과 사이가 이미 멀어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밝혀진 바로는, 김이브가 의도적으로 윰댕의 화장, 의, 컨텐츠를 카피했고 견제 및 질투를 반복했다고 한다. 자세한 사정은 [[김이브/논란]] 참고.
          * [[박가린]], 사이다와는 삼총사, 자매로 불릴 만큼 절친한 사이였다. 서로의 생일에 돈다발, 돈케이크를 선물하기도. BJ박가린과 다이어트를 위해 스피닝을 시작했는데, 1번 빠지면 50만원을 내는 큰 규모의 내기를 하기도 했다. 2015년 BJ사이다와 잠깐 동거한 후 오빠 가족이 서울에 올라오면서 엄마, 오빠 가족과도 잠깐 살았다가 현재는 혼자 살고 있는 듯하다. 그들만의 사정으로 김이브와 사이다는 [[절교]]한 태였으며 박가린과는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사이다와 다시 화해한 것이 확인되었다
          * BJ엣지와도 한때 친했으나 지금은 절교했다고 한다. 김이브에 의하면 엣지가 입이 싸서 절교했다고 한다. 한때 김이브의 집에서 같이 4대 여신 방송을 함께 했던 윰댕 엣지 꽃빈 중 둘이랑 절교했다.[* 단, 꽃빈과도 친분이 유지되고 있는지는 확인 불가이다. 꽃빈과 통화는 했다지만 방송 같이 안나온지 오래라 잘 모르는 태다.]
          * 2016년 9월 08일,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열리는 [[SK 와이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야구 경기 시작 전 [[양띵]]과 함께 [[시구]], [[시타]]를 했다. 이는 [[KBO 리그|프로야구]] 역사 최초로 [[MCN]] 1인 크리에이터가 하는것이다.[[https://youtu.be/ipgtbnoyUrw|#]][[https://youtu.be/3qT33tpkxeU|##]]
          * 2018년 5월 15일, 염보성의 힐링캠프 행복전도사~행복을 찾아서에 게스트로 출연. [[철구(BJ)|철구]]의 권유로 휴방일인 화요일에 아프리카에 복귀를 선언하였다. 당분간은 아프리카와 유튜브 동시 송출을 예정이었으나 사정 아프리카 단독송출을 결정하였다.
  • 은혼/641화 . . . . 46회 일치
         [[은혼]] 641훈. '''웅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 해방군 모선 내부의 [[다카스기 신스케]], [[카와카미 반사이]], [[키지마 마타코]]는 내부에서 중추시설을 요격하려 하나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 반사이는 부을 입은 몸에도 불구하고 분전하며 신스케와 마타코를와 함께 돌격한다.
          * 그는 신스케가 웅이기 전에 그저 인간에 지나지 않지만 시대가 웅을 필요로 하는 지금, 그는 많은 이의 희생을 감수한 웅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 전투 중 저격에 당한 반사이는 자신도 헨페이타가 하듯 신스케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 결심하고 신스케를 선행시키고 자신은 척후를 맡는다.
          * 몰려드는 적들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반사이와 헨페이타. 그들은 웅을 위해 죽기 보단 친구와 살기 위해 싸운다고 다짐한다.
          헨페이타가 입안한 작전은 이랬다. 아군 함대가 적 함대의 화망을 최대한 유도하는 사이, 그들은 소형정으로 적의 모선 아메노토리후네에 접근한다. 목표는 히노카구츠치에 에너지를 공급 중인 에너지 중추 회로. 이 부분을 파괴하면 충전은 일시적으로 멈추고 내부에서 싸우는 중인 [[다카스기 신스케]] 일행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
          * 히노카구츠치의 제어 중추로 향하던 신스케 일행은 발걸음이 늦춰졌다. 교신 중이던 헨페이타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통신에서 벗어났다. 아무리 그를 불러봐도 대답은 없다. 좋지 않은 예감. 그때 그들의 앞을 기관총 사격이 막는다. 황급히 샛길로 피하는 일행. 제어 중추가 코 앞이었다. 생존자를 쥐어짠 호위병력이 복도를 빼곡히 매우고 있었다. [[키지마 마타코]]는 이쪽도 더는 한가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다. 방어가 두터울 거라 예은 했지만 저 병력들을 다 처리하려면 15분이 아니라 15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일단 제어 장치까지 도달하면 희망이 있다. 그 내부에서는 적의 공격도 기세를 죽을 것이다. 축적된 에너지를 유폭시키고 싶지 않다면.
          지금껏 신스케의 부축을 받았던 [[카와카미 반사이]]가 여기서부터는 자기 발로 걷겠다고 일어선다. 이제부터는 하나라도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그들의 승리조건이다. 그가 신스케에게 할 말은 이것 뿐이다.
          마타코가 그의 몸태를 우려하나 그는 사양한다.
          * 폭연이 길을 매우고 해방군은 거기다 소총을 연사하며 돌진한다. 소수의 적을 고립, 격멸시키고자 펼친 전술이었겠지만 적의 여력을 오판했다. 연기 속에서 걸어나온 한 남자가 묘한 기술을 쓴다. 샤미센, 어느 틈에 적진 가운데로 침투한 반사이의 샤미센 현이 그들을 휘감았다. 이제 그가 다루는 악기일 뿐이다.
          * 거침없이 나아가는 신스케와 마타코. 그리고 조금 뒤에서 그들의 뒤를 받치고 있는 반사이. 부향은 느낄 수 없었다. 반사이를 그렇게까지 만드는 건 한 가지 확신이다. 넘어설 수 있다, 빠져나갈 수 있다, 제 아무리 많은 적들이 있더라도 그대, 신스케와 함께라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반사이는 이 절망적인 황에서도 그런 환을 품게되는 자신에 놀라워했다.
          * 신스케는 웅이다. 웅이란 죄많은 생물이다. 함께하던 동료의 시체와 쓰러뜨린 적의 시체를 쌓아올려 밟고 가는 잔인한 생물이다. 그럼에도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자들. 그렇기에 그 등에 이끌린 사람들이 웅을 쫓아 앞으로 나아간다.
          >그대는 웅이 아니란 사실을.
          신스케는 웅이기 때문에 동료와 적의 시체를 밟고 가는 유형은 아니었다. 그는 그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 얼마나 슬픈지 보통보다 뼈져리게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간건 시대가 그에게 강요한 내용이었다. 반사이가 본 신스케란 인간은, 그저 한 사람의 연약한 인간. 그 이도 이하도 아니었다.
          * 기분 나쁜 총성이 울렸다. 전방을 정리하고 있던 신스케, 마타코그 후방에서 들려온 섬뜩한 소음에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그들이 뒤를 확인하기도 전에 반사이의 경고가 들렸다.
          반사이는 총을 입은 복부를 숨겼다. 적의 2파가 몰려오고 있었다. 바주카를 장비한 병력이었다. 적이 막 신스케를 노리려 할 때 반사이는 과감하게 칼을 던져 적의 병기를 유폭 시켰다. 거기서 일어난 폭발이 복도를 붕괴시켰다. 벽과 천장이 무너지면서 적 병력과 신스케가 양단됐다. 그리고 반사이는 적들과 함께 남았다.
          * 신스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현으로 칼을 회수하는 반사이의 모습. 이미 각오를 굳힌 그였다. 그의 각오란 신스케가 뒤를 돌아보지 않게 하는 것. 신스케가 한 명의 인간일 뿐이라도, 그게 그가 멈춰도 될 이유가 되진 않았다. 아직 신스케는 아직 뒤돌아 봐선 안 된다. 그저 앞만 보고 나가야 한다.
          >웅이 필요하오.
          반사이의 모습이 무너진 잔해 뒤로 사라졌다. 이제 목소리도 닿지 않았다. 반사이가 무전으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수비가 엄중하다면 차라리 적을 이쪽으로 집중시킬 테니 신스케와 마타코가 선행하라고 말한다. 물론 신스케가 납득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사이는 자신도 곧 뒤따라가겠다는 말로 그를 설득했다. 비록 복부의 총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지만.
  • 조아영(배우) . . . . 46회 일치
         ||<#FF6699> {{{#FFFFFF '''본명'''}}} ||<(> 조자 ||
         ||<#FF6699> {{{#FFFFFF '''출생'''}}} ||<(> [[1991년]] [[5월 26일]], [[경북도]] [[김천시]] 신음동 (부거리2길) ||
         ||<#FF6699> {{{#FFFFFF '''별명'''}}} ||<(> 아롱이, 조아 조아 조아, 아 어린이 ||
         본인 소개 구호는 '''달샤벳의 조아 조아 조아 조아 입니다.''' --오글거린다면 기분탓--
         == 세 ==
         맹 해보일것 같아도 의외로 다르게 말은 야무지게 잘한다. 본인 분량만큼은 말을 잘 하는편 이고 곤란한 질문이 들어와도 조곤조곤하게 잘 되받아 친다. 그래서 인지 멤버들이 꼽은 '''가장 말이 많은 멤버'''에서 압도적 으로 1위. 시크한 외모와는 다르게 수다쟁이라고한다. 덕분에 아이 연기활동 때문에 개별적으로 차량이동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 멤버들이 차가 너무 조용해서 이하게 생각했을정도...
         데뷔 전에 슈즈 모델로 1년간 활동했고 패션쇼에 선 적도 있다고 한다. 모델로도 잡지 촬을 몇 번 하였다. 그리고 데뷔 후 [[폭스바겐]] 환경 캠페인 모델로 촬하였다.
         그전까지 비슷한 정도의 파트를 받던 [[지율]]은 최근 발매한 4번째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Hit U'에서 분량이 크게 늘어났지만 아이는 여전히 안습... 오히려 예전곡들보다도 비중이 더 적어진 느낌이다...
         설으로 Hit U 노래가 약 4분정도로 긴 편이라 음악방송에서 조금 편집을 하는데 하필이면 별로 있지도 않은 아이의 파트중 한부분이 잘려나가서 그것만 보면 진짜 제대로 된 파트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자른 태에서도 개인 파트가 하나 있긴하다.하지만 그건 노래 거의 다끝날때인지라(...)] 하지만 'Mr. BangBang'에서는 파트가 갑자기 늘었다. ~~대신 지율과 가은은 파트가 줄었다...~~
         그런데 다음 앨범 '금토일'에서는 파트가 늘어났다. 무려 2절 전체를 아이 혼자서 부른다!!!~~그런데 2절이 10초정도되는 랩이라는건 넘어가자~~ 후렴구도 맡는것을 보면 어느정도 성장한 듯 ~~솔직히 말해서 아직 부족한 실력이기는 하다.~~
         개구리에다가 눈망울도 동그랗고 애교살이 크며, 무엇보다도 얼굴형이 예쁘고 작은 편이라서 큰 눈망울이 더 커보인다.
         개구리이라서 그런지 별명이 아롱이.
          * [[2013년]] [[KBS]] [[월화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에서 지라시 직원 중 홍일점인 공선혜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캐릭터가 맞는 편인지 아이돌 연기자에게 항 따라 붙는 연기력 논란은 거의 없지만 그 이전에 시청률이 [[망했어요]]라...
          * 2013년 방 예정인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숙종(조선)|숙종]]의 여동생인 [[명안공주]] 역을 맡았다. --[[김태희]], [[한승연]] 등 가뜩이나 캐스팅에 있어서 말이 많은 드라마인데 또 아이돌이 캐스팅되어 논란이 많다.-- 그러나 크게 거슬리지 않고 괜찮은 연기를 선보였으며 사극 분장을 해도 나쁘지않은 미모를 자랑했다.
          공교롭게도 위 두 작품 모두 비슷한 시기에 방되었는데, 절대 운이나 낙하산이 아니라 본인의 노력으로 당당하게 따낸 배역이라고 한다. 데뷔 이후로 꾸준히 수도 없이 오디션을 보고 떨어졌는데 본인도 비슷한 시기에 두 작품을 하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 2013년 11월, [[웹드라마]] '낯선 하루'에서 홀로 군산으로 여행을 간 당돌한 청춘의 취준생 여자주인공 '이지은'역할을 맡아 [[최우식]]과 호흡을 맞췄다. 둘의 케미가 쏠쏠한 편. 웹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퀄리티가 높았고 아이 아이돌인줄 몰랐다는 반응이 있을정도로 연기력도 꽤나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마지막회의 오열씬이 인적이다. 분량은 총 5회에 회당 15분 안팎으로 부담없이 볼 수 있다. [[http://tvcast.naver.com/someday|보러가기]]
          * 2013년 12월 18일 방된 [[MBC]] 드라마 [[미스코리아(드라마)|미스코리아]] 3화에 카메오로 출연하였다.대사는 없었지만 나이를 속이고 술집에서 일하다가 [[이미숙]]에게 걸린 [[미성년자]] 역을 맡았다. 당시 아의 실제 나이는 23세였다. 력을 자극하는 노출 연기--어깨, 종아리가 무슨 노출이야--와 입술 깨물기를 선보였다.
          * 2016년 11월, [[SBS]] 주말극 '[[우리 갑순이]]'에 중간 투입되면서 주인공 갑돌이의 직장(구청 보건위생과) 사 '김란'(김란법을 이용한 말장난) 역을 맡았다. 갑돌이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선임이다.
         || '''1''' || '''너의 의미 (Feat. 아 Of 달샤벳)''' || 저스트 || 김한 || 김창완 ||
          * [[주간 아이돌]]에서 ~~이한 개인기~~ [[스파이더맨]] 흉내와 [[새우]] 흉내를 내, 예능에서마저 구멍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 조응천 . . . . 46회 일치
         || '''약력''' ||<(> 대전지방검찰청 검사[br]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br][[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br]부산고등검찰청 검사[br]수원지방검찰청 부장검사[br][[국가정보원장]] 특별보좌관[br][[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br][[박근혜정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br]~~별주부짱 매니저~~[* 공직을 맡은 것이 아니라 취소선을 쳤지만, 이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직기강비서관에서 잘린 뒤에 그는 아내와 같이 해물전문점을 운했었기 때문이다. 즉, 당선될 당시 그는 자업자였다. 이는 그의 총선 포스터에도 당당하게 적어 놓은 약력이다.][br][[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며 전직 자업자. 그리고 '''[[문재인]]의 남자 2호'''[* 남자 1호는 [[김병기(정치인)|김병기]] 의원이라고 한다. 김병기 의원의 경우 자신이 친문 인사임을 스스럼 없이 인정하고 있지만 조응천 의원은 [[TV조선]] '박종진 라이브쇼'에 출연해 ~~물론 말로만~~ "나는 친문 인사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 [[문재인]] 대통령은 당대표 사퇴 후인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김병기와 조응천 두 사람을 본인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으며, [[박근혜정부]]에서 핍박 받은 두 후보를 반드시 당선시켜 달라고 직접 트위터에서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 다 지역구에서 당선되었으며, 훗날 요긴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김병기(정치인)|우병기]] [[조응천|좌응천]]~~ ~~최초의 셔터맨 출신 국회의원~~
         [[대경권|TK]] 출신 엘리트 검사로,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요직을 맡아 성장했고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는 등 [[대경권|TK]] 성골 엘리트급의 보수 인재 루트를 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적당히 끊고 청와대에서 나왔다면 지금쯤 구 새누리당에서 요직을 맡아 보수층의 중심에 올랐을테고, 계속 해서 청와대에서 자리를 맡았다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축출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인하여 축출돼 '''별주부짱'''이라는 이름의 [[횟집]]을 운하며 중앙 정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 제안을 받아들여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는, 드라마틱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62년 [[경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대구 성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러나 [[세계일보]]에 [[청와대]] 내외부 인사에 관한 감찰 자료가 보도되면서 이에 책임을 물어 해임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때가 2014년 4월 15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발생 하루 전이었다.[* 해임된 다음 날, 혼란스러운 본인의 황 중에 우연히 TV를 보게 되었는데, [[세월호 참사|갑자기 너무나 당황스런 화면]]이 나오고 있어서 몹시 어리둥절 했다고 한다.]
         그후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지면서 기소되었는데 그때 유출된 그 문건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했을 때부터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으로 오랫동안 보좌해왔던 [[정윤회]]가, 야인이 된 지금도 박 대통령에게서 특별히 더 신뢰받는 비서관들에게 여전히 지시를 내리며, 국정 전반에 막강한 향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 말로는 식당의 매니저, 셔터맨을 도맡았다고 한다. 실제 총선 후보 시절 직업란에 '''별주부짱 매니저'''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후에 [[기독교방송|CBS]] 변욱 기자가 김용민의 팟캐스트 관훈나이트클럽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http://www.podbbang.com/ch/9954?e=21859559|조응천 씨가 횟집 이름]]을 '''[[정윤회|정윤횟집]]'''으로 지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공개하여 화제가 되었다. --주위에서 '''"그러다 너 죽는다"'''라고 뜯어말렸다 전해진다--
         이후 [[이동형]]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전 [[새정치민주연합]] 총무본부장과 함께 출연해서 2탄(?)도 공개했는데 한 술 더 떠 [[http://www.podbbang.com/ch/4362|'''십스시''' 라고 지으려고도 했다]]고 한다. 이 이름은 [[십시|십]][[스시]]라고 하면 해물 음식점인데 [[초밥]]으로 메뉴가 한정될 것 같아서 그만 뒀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이것도 주위에서 뜯어말린 거 같은데...-- 본인이 [[청와대]]에서 당한 것이 하도 억울해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다.
         2016년 [[문재인]] 대표에 의해 [[더불어민주당/인재입|더불어민주당에 인재로 입]]되었다.
         [[문재인]] 당시 대표가 입한 마지막 외부 인사였다. 입당의 변과 십스시 에피소드를 풀어놓은 이이제이 출연분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표가 매일 같이 찾아와 간절히 부탁했고 처음에는 그다지 정치에 입문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자신이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정치 아니겠냐."'''라는 (문 전 대표의) 말을 듣자 비로소 결심이 섰다고 한다.
         이때 자리에 함께 있던 부인은, 조응천 의원이 자주 입고 다니는, 땡처리로 구입한 ~~[[김란법]]에 안 걸리는~~ 몇 천 원짜리 회색 후리스 스웨터를 '남편을 잘 부탁한다는 뜻의 징표'라며 [[문재인]] 대표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표는 그 후리스를 자주 입고 다니며 커플룩을 인증하기도.[* 해당 후리스는 [[문재인]], 조응천 지지자들에게 있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고, 심지어 같은 후리스를 사서 단체로 입고 별주부짱을 방문하여 인증샷을 남긴 사람들도 있었다.] 참고로 부인은 남편이 정계 입문한다고 하자 "미친놈", "이혼하자" 등 격한 언사를 퍼부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재인]] 당시 대표의 눈빛에 감전되더니, "쓸 만한 놈이니 잘 써달라"고 하면서 정계입문을 허락했다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입되었기 때문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급작스럽게 입된 황에서 마땅한 지역 연고도 없었기 때문에 출마 지역을 놓고 시행착오와 논란을 겪었다. [[신계륜]]이 비리로 기소된 [[서울특별시]] [[성북구 을]]이나 비례대표로 출마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결국 공천을 신청하지 않았다.
         가장 유력시 되었던 곳이 서울 [[마포구 을]] 지역으로, 이 지역은 [[김종인]] 지도부에 의해 컷오프된 [[정청래]] 전 최고위원의 지역구였다. 이곳에 '별주부짱'이 있기 때문에 지역 연고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지역구 선거에서 조 전 비서관이 노려볼 만한 유일한 지역구로 손꼽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입당 이후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전 총무본부장, [[정청래]] 전 최고위원과 몇 번 술잔을 기울이면서 친분을 쌓았던 모양인지 '나는 (동료의 지역구를 낼름 받아먹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마포을 공천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결국 마포 을 지역은 [[문재인]]의 다른 입 인사인 [[손혜원]]이 출마해 당선되었다.]
         결국 불출마 선언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지를 받아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대 후보인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는 [[남양주시]]에서 3번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던 지역 토박이였던 데다가 지역구 관리를 당히 갈고닦았던 반면, 조응천 후보는 [[남양주시]]와는 어떠한 연고도 없는 정치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으나, 최종 개표 결과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를 249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꺾고 신승했다.[* 조응천이 [[수동면]]과 [[화도읍]]에서 심장수에 밀렸지만 젊은 층 인구가 많이사는 [[호평동]]과 [[평내동]]에서 심장수를 앞섰다.] 이는 경기도 내에서는 최소표차로 당선된 것이다. 또한 정권 심판론이 좀 더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런 신승에는 [[문재인]] 전 대표의 막판 호소도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선거 전날 문 전 대표는 본인 [[SNS]]에 유난히 두 사람이 눈에 밟힌다면서 [[국가정보원]] 출신의 [[김병기(정치인)|김병기]] 후보와 함께 조응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는데, 두 사람은 모두 선거에서 간발의 차이로 당선되었다. 아마도 문 전 대표가 여론조사 황 등을 들으면서 두 사람의 당선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고 한 것 같다. [[국가정보원]] 인사처장을 지냈던 김병기 후보와 [[대한민국 검찰청|검찰]] 및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조응천 후보를 콕 집어 지지를 호소했다는 점에서, 이는 [[문재인]] 전 대표가 [[국가정보원]]과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행동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20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와 [[정보위원회|정보위]](겸)에 내정되었다. 2016년 6월 27일 법사위원회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01997|"장관님, 서초동 4대천왕 들어보셨습니까"]]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법조비리에 관한 질문과 비판으로 국회 임위원회 활동을 시작하였다.
         인터넷에서 격의 없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대한민국 검찰청]]과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근무했던 50대 아저씨가 맞나 싶을 정도. [[https://www.facebook.com/chopros|페이스북]]과 [[https://twitter.com/chopros|트위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늘의유머]]에 인증을 했는데 닉네임이 무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freeboard&no=1278460#memoWrapper75166001|뽀오통령]]이라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입당 이후 나온 출연 모습에서 [[뽀로로]]를 닮았다는 평이 꽤 올라왔고, 이게 본인에게도 마음에 들어서 정한 닉네임인 듯. 그리고 선거 유세 과정에서도 실제로 뽀로로 탈인형이 줄곧 등장했다. 그래서 나무위키에 '''뽀응천'''을 쳐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그렇다고 의정활동 안 하시고 노는 것만 제일 좋아하시면 안 됩니다--
         [[일베]] 용어를 잘 알고 있으며[* 특히 '레이디 [[가카]]'(= [[박근혜]])라고 쓰는 일은 많지만 '레카'로 줄여 쓰는 경우는 일베 외에는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용어이다.][* '내일 오전 레카가~걱정하면 좋지 '''않겠노''' '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않겠'''노'''를 쓰고 있으며 일베식 표현에 맞춰서 일부러 잘못된 [[경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다.] [[정게할배]]들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318716667084&id=100008669135751|페북으로]]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439779988311&id=100008669135751|일베 드립]]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정도다. 이후 일반인에겐 생경한 일베드립을 친 것에 대해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6488903316732&id=100008669135751|양해를 구하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이전의 정치 성향과 관없이 반정부 성향이 강해진 인터넷 여러 커뮤니티들에서 이러한 조응천의 드립은 다시금 주목받았고, [[주갤]]에서까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tock_new1&no=4508912|통쾌하고 호감간다는 말들이 나왔다.]] 애초에 더민주에서 이 사람을 입한 가장 큰 이유가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다는 이유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을 수년 전부터 접했던 사람이라는 이유인데, 공직 기밀 누설 혐의로 형사소추 당하지 않는 선에서 청와대, 검찰의 대응 플랜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분석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어서[* 특히 [[문고리 3인방]]과 [[우병우]]에 대한 반감이 글에서 드러난다. 아무래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사건 때문이다.]]] 현재 정국에서 관심도가 매우 높은 의원 중 하나.
          * [[2016년]] [[7월 1일]] 조응천 의원은 국회 임위원회 감사에서 [[MBC]] 출신의 대법원 양형위원이 성추행으로 정직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김장겸|당사자의 실명]]'''까지 거론해 가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보도 자료까지 배포해 일부 언론에서는 "양형위원이 성추행 전력이 있다"는 기사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문제의 [[MBC]] 간부는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0876|조 의원이 지목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MBC]] 보도국 부장이라고 한다.
  • 추봉 (배우) . . . . 46회 일치
         {{화인 정보
         | 직업 = [[화 배우|화배우]]
         '''추봉'''(秋峰, [[1922년]] [[3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화 배우]]이다.
         [[1922년]] [[경성부]]에서 3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편집위원회). 이승학(李升學)의 문하에서 5년간 음악을 배웠으며, 1940년부터 극단 성군(星群)에서 활동했다. 화데뷔는 1952년 손전 감독의 《공포의 밤》에 배우 양일민의 추천으로 출연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한국자료원). 이후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조,단역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1999년 제36회 대종화제에서 특별연기을 수했다(한겨레신문).
         === 화 ===
         * 1966년 《제삼부두 번지》
         * 1969년 《처》
         * 1974년 《나
         * 1974년 《눈으로 묻고 얼굴로 대답하고 마음속 가득히 사랑은 원히》
         * 1975년 《10대의 광》
         * 1977년 《광의 9회말》
         * 1978년 《록수》
         * 1980년 《병태와 자(속)》
         * 1983년 《[[들개 (1983년 화)|들개]]》
         * 1986년 《[[황진이 (1986년 화)|황진이]]》
         *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 (화)|기쁜 우리 젊은 날]]》
         * 1987년 《[[레테의 연가 (화)|레테의 연가]]》
         * 1989년 《[[개그맨 (화)|개그맨]]》
         * 1990년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0년 화)|나의 사랑 나의 신부]]》- 담배가게 주인 역
         * 1990년 《웅후레쉬》
  • 에릭 (가수) . . . . 45회 일치
         에릭(Eric Moon, 문정혁)은 대구에서 1남 2녀중 막내로 1979년 2월 16일에 태어났다. 그는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바로 몇 개월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미국에서를 졸업했다. 그는 미국에서 캐스팅되어 한국으로 귀국해 [[SM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 되었다. 그는 연습생이었을 때 [[앤디 (가수)|앤디]]와 같이 [[S.E.S.]] 1집 수록곡인 'I'm your girl' 랩 피쳐링을 하였으며, [[S.E.S.]]와 같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에릭은 [[1998년]]에 [[신화 (음악 그룹)|신화]]에서 어 랩을 담당하는 이국적인 외모 이미지로 데뷔를 하였다.
         * 2003년 [[MBC TV|MBC]] 《[[나는 달린다]]》 ... 신식 역 (조연)
         * 2006년 [[MBC]] 《[[늑대 (드라마)|늑대]]》 ... 배대철 역 (미종 작품) (주연)
         * 2016년 [[tvN]] 《[[또! 오해]]》 ... 박도경 역 (주연)
         === 화 ===
         * 2005년 《[[달콤한 인생 (2005년 화)|달콤한 인생]]》 ... 태구 역 (특별출연)
         == 수 내역 ==
         ! 수 내역
         * 2004 [[한국광고주대회]] 광고주의 밤 시식 광고주가 뽑은 좋은 모델
         * 《[[MBC 연기대]]》 남자 신인
         * 《[[MBC 연기대]]》 인기
         * 제41회 《[[백예술대]]》 TV부문 남자 신인연기
         * 제41회 《[[백예술대]]》 TV부문 인기
         * 《[[MBC 연기대]]》 남자 최우수
         * 《[[SBS 연기대]]》 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연기
         * 《[[SBS 연기대]]》 10대 스타
         * 《[[SBS 연기대]]》 살신성인
         * 《[[KBS 연기대]]》 네티즌
         * 《[[KBS 연기대]]》 베스트 커플 (with [[정유미 (1983년)|정유미]])
         * 《[[KBS 연기대]]》미니시리즈부문 남자 우수연기
  • 에스쿱스 . . . . 4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세븐틴(아이돌), top2=세븐틴(아이돌)/힙합팀)]
         ||<#f5f5f5> '''학력''' ||대구인초등학교 (졸업)[br][[인중학교]] (졸업)[br]대구대진고등학교 (전학) →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졸업) ||
         ||<#f5f5f5> '''별명''' ||쿱스[* 예명인 에스쿱스의 줄임말], 최총리[* 최승철 총괄 리더의 줄임말로 세 명의 리더를 구분하기 위해 팬들이 편의 붙인 명칭. 여담으로, 퍼포먼스팀 리더 호시는 권수장님, 보컬팀리더 우지는 이보보 라고 부른다. 자세한 내용은 [[호시(세븐틴)|호시]] ,[[우지(세븐틴)|우지]] 문서 참고.], 승행설[* '''승'''철이의 '''행'''동은 '''설'''렌다.의 줄임말. 다정한 성격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큰오빠[* 캐럿들에게 오빠같이 든든한 모습을 보일때 자주 쓰는 별명이다. 오빠들(세븐틴)중 맏형이어서 큰오빠가 되었다. 승행설보다 좀더 가족같은 느낌을 준다.] 내 맘 때리는 최승철[* 승행설과 이어지는 별명.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의 두 번째 활동곡 '만세' 가사 중 "내 맘 때리는 제스처"의 제스처 발음이 [[에스쿱스]]의 본명과 비슷한 점을 이용한 것이다.], 헐쿱스[* 헐크 + 에스쿱스를 합친 별명. 힘이 굉장히 세다.], 쿱복치[* 힘은 센데 겁이 많다.], 마카롱꿉뜨[* 데뷔 초 방송에서 마카롱을 얻기 위해 애교를 부린 것이 별명이 되었다. "에뜨쿱뜨가 마카롱이 먹고 띠퍼요."], 에스쿱스따뚜[* 걸그룹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의 곡 "오늘부터 우리는"에 나오는 가사를 인용하여 멤버들이 지어준 것.], 웃음기부천사[* [[주간아이돌]] 출연 당시 웃음 장벽이 낮은 성격으로 좋은 리액션을 보이며 얻게 된 별명], 인간만세[* 하단에 [[에스쿱스#s-2.1|비주얼]] 문단 참조.] ||
         활동명 [[에스쿱스]]는 자신의 본명인 승철과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을 뜻하는 "S(에스)", 쿠데타와 대성공을 뜻하는 "COUPS(쿱스)"를 합친 것으로, "최승철 대성공"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런 원대한 포부에 비해 이름을 만들게 된 계기는 당히 단순한데, 그저 래퍼 같은 이름이 갖고 싶어 고민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발음이 독특한 지라 이 이름을 매번 알려줘도 매번 헷갈려하는 사람이 제법 있는 편이다. [[2017년]] [[4월 6일]]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 <C-Festival>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참여한 행사에서 이 이름을 외우지 못한 진행자가 [[에스쿱스]]를 계속 "에이쿱스"로 부르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멤버들은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의 곡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u)|오늘부터 우리는]]' 가사와 [[에스쿱스]]의 발음이 흡사하다는 점을 이용해 종종 맏형을 놀려먹기도 한다. ~~에스쿱스따뚜 쿱스따두 스뚜루 좋아해요~~ ~~근데 정작 제일 신나게 춤추는 사람은 [[에스쿱스]] 본인이다.~~ 문 표기인 [[S.COUPS]]는 보통 앨범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때 사용한다.
         턱이 작지만 이목구비가 워낙 크고 특히 눈빛 강해 매우 남자다운 얼굴이다. 이 이유로 어딘지 모르게 야성적이고 도발적인 외모를 가진 탓에 첫인당히 세게 보이는 멤버이기도 한데, 이와 관련해 [[2018년]] 3월 한 방송에서 [[승관]]이 동료 가수에게 "너희 팀 리더분... 인이 강해서 조금 다가가기 어렵다."라는 말을 전해 들은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더하여 [[2017년]] [[프로듀스 101 시즌2]] 마지막 생방송에 방청을 간[* [[뉴이스트|친분있는]] [[사무엘(가수)|출연자]]들의 응원을 위해 간 것.] [[에스쿱스]]가 화면에 잡히자, 그가 이미 데뷔한 그룹의 어엿한 리더라는 걸 몰랐던 시청자들에게 "저렇게 잘생긴 연습생이 도대체 언제 탈락한 거냐.", "왜 이제서야 카메라에 잡아주느냐." 등의 반응을 이끌어 낸 일화도 유명하다.[* 심지어 해당 방송에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의 '만세'가 경연곡으로 쓰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날 [[애프터 스쿨]] 리더 출신 [[가희]]가 트레이너로, [[뉴이스트]]의 리더이자 [[프로듀스 101 시즌2]]의 모든 팀에서 리더를 맡아 "로얄 리더"라는 별명을 얻은 [[JR(뉴이스트)|JR]]이 연습생 신분으로, [[I.O.I]] 리더 출신이자 [[프리스틴]]의 리더인 [[나(프리스틴)|나]]이 관계자로, '''세븐틴의 총괄 리더인 에스쿱스는 ~~정작~~ 스탠딩석에 방청객'''으로 출연해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플레디스]] 家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진귀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당시 '만세''는 [[학원물]] 컨셉으로 방향을 잡아 기획한 곡으로 멤버 전원이 [[가쿠란]]이나 한국식 교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는데, 소년 같은 모습의 멤버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성인 남자다운 매력을 발산하며 강렬한 인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후일 프로듀서 [[BUMZU]]의 인터뷰에서 '만세''를 작업할 때 실제로 [[에스쿱스]]의 이미지를 많이 참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간 만세"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해 최저 몸무게에 도달한 [[2017년]] 11월의 어느 날, 두 번째 정규 앨범 타이틀 곡 '박수'에서 의를 탈의하고 자켓만 걸친 착장에 은발 조합으로 나타나 이것이 팬들에게 "마치 뱀파이어를 연시킨다."는 호평을 얻으며 다시 한번 외모 전성기를 맞이 한다.
         강한 첫인과는 다르게 애교도 장난도 ~~겁도~~ 많다.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한 지금까지 쭉 [[세븐틴(아이돌)|세븐틴]] 내에서 맏형과 리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 집안에서는 막내인지라 기본적으로 [[https://youtu.be/KPxlgeuYj9s|애교가 몸에 배어있는]] 타입이다. 데뷔 초 한 음악 방송에서 게임을 하다가 마카롱이 경품으로 나오자 [[https://youtu.be/JjEsQNj7XfU?t=21s|"에뜨쿱뜨가 마카롱이 머꼬 띠퍼요~"]]라고 애교를 부린 것은 현재 그의 별명이 되어있을 정도. [[세븐틴의 어느 멋진 날 : 13소년 표류기]]에서도 동네 어르신들을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며 친근감 있게 다가서거나, 데뷔 동기로 친한 사이이자 형들인 [[몬스타엑스]]에게 싹싹하게 행동하는 모습도 종종 관찰된다. 각종 방송에서 멤버들이 애교를 시키면 [[https://youtu.be/RMqHRUHSXtY|빼지 않는 편]]이지만, 수줍음이 많기 때문에 멤버들에게 리액션을 해달라고 약속을 받는 과정이 무조건 들어간다. 리액션이 없으면 [[https://youtu.be/rzK5gQ0Augk?t=1m|이렇게 된다]].
         [[2017년]] 어느 연말 시식에서는 "한 명씩 화장실에 다녀오라"는 방송 스탭의 지시에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은 두 명씩 보내 달라며 [[https://youtu.be/srTtxFzQkIg|애교와 리더십을 동시에 발휘]]한 모습이 팬들에게 목격되었다. ~~저희 13명이에오..~~
         하지만 조금만 장난을 쳐도 큰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반대로 종종 멤버들의 장난의 대이 되기도 한다. [[2017년]] [[12월 8일]] 방송된 [[V LIVE]]에선 이 날 멤버들이 하루 종일 뭔가를 시켜댔는지 매우 흥분한 [[에스쿱스]]가 등장했는데, 방송을 종료하기 직전 숟가락으로 개그를 해달라는 [[도겸(세븐틴)|도겸]]의 요청에 "제가 감명 깊게 본 이 있어요..."라고 입을 뗀 그가 [[https://youtu.be/MR7qEUx2mes?t=2m|"숟가락 살인마"]]라고 말하며 곧장 [[도겸(세븐틴)|도겸]]에게 달려 들기도 했다.
         [[파일:69deb9f7ed6619f72a4ab7c8792104d2.gif|width=100%]][br]{{{#aaa {{{-3 꽃가루가 터지면 죽는 병}}}}}}}}}작은 것에도 깜짝 놀라는 겁이 많은 성격으로, 특히 음악 방송 등에서 폭죽이나 꽃가루가 터질 때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이 종종 등장해 이 모습들이 팬들에게 일명 "자빠쿱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 이 장면들로 만들어진 GIF 이미지가 [[https://twitter.com/coups_kawaii/status/784387160258387968|"폭죽을_보면_죽는_병.gif"]]이란 제목으로 웹에 올라와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한 잡지 인터뷰에서 [[우지(세븐틴)|우지]]는 "놀랍겠지만 그 형은 무서워하는 게 많다."라고 얘기했으며 [[디노(세븐틴)|디노]]도 이와 관련해 "투명 인간이 돼서 쿱스 형을 깜짝 놀래켜 반응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펑펑 운 [[에스쿱스]]는 다음 날 부모님의 편지 VCR을 보곤 [[https://youtu.be/BXj312qeap4?t=30s|내가 이런 거에 울 거 같냐]]며 어이없어 하기도.
         술한 성격이 합쳐져 은연중에 나오는 다정한 행동들이 지켜보는 사람의 맘을 설레게 한다 하여, 팬들 사이에서 "'''승'''철이의 '''행'''동은 '''설'''렌다"를 줄여 "승행설"이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다. 일례로 [[세븐틴의 어느 멋진 날 : 13소년 표류기]]에서 추운 날씨 때문에 콧물을 흘리는 [[승관]]을 보고 "왜 이렇게 콧물을 흘리냐?"라며 맨손으로 닦아주었으며, 리패키지 앨범 발매를 기념하기 위해 진행한 [[V LIVE]]에선 멤버들과 메로나 빨리 먹기 게임을 하던 중 [[호시(세븐틴)|호시]]가 이가 시려 괴로워하자, 그의 입에 들어가 있던 (거의 반쯤은 먹은) 메로나를 빼 대신 한입에 먹어 치워 주는 모습이 방송을 탔다. 또, [[우지(세븐틴)|우지]]와 함께 웃음 장벽이 낮아 멤버들이 조금만 뭘 시도해도 잘 웃어주는 편인데 이런 점이 눈에 띄어 [[2017년]] [[6월 21일]]에 출연했던 [[주간아이돌]] 방분에선 "웃음기부천사"라는 별명을 획득하기도 했다.
         어렸을 적 장래 희망이 체육 선생님이었던 점과 더불어 그의 별명 "헐쿱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평소 운동을 즐겨해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멤버이다. 데뷔 초 안드로메다 방송에선 [[호시(세븐틴)|호시]]가 [[에스쿱스]]의 가슴을 우연히 만졌다가 [[https://youtu.be/44onAx16zIw|"어우 모래주머니 찬 줄 알았네!"]]라며 깜짝 놀라기도 했다. 때문에 데뷔 곡 '아낀다'의 브릿지 파트에서 [[도겸(세븐틴)|도겸]]을 들어올리는 역할을 [[에스쿱스]]가 하게 되었는데, 당히 다부진 체격의 [[도겸(세븐틴)|도겸]]을 크게 힘들이지 않고 [[https://www.youtube.com/watch?v=F_U7FCVd2ag|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이 대단히 인적이다.
         그런데 본인은 오랜 기간의 연습생 생활로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중학생 때 [[서울]]로 경했음에도 스스로가 [[서울]]에 완벽하게 적응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2013년]] 당시 어린 [[에스쿱스]]가 내색않고 품고 있던 심적 갈등과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일기가 아직 [[https://www.facebook.com/note.php?note_id=179522888877186|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남아있다.
         데뷔 후,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의 의견을 정리한 뒤 회사나 여러 매체에 대표가 되어 의견을 전달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며 팀과 팀 밖의 경계선에서 항 균형을 유지하는 뛰어난 통솔력으로 멤버들을 리드하고 있다. 되고 싶은 리더 으로는 친구처럼 편한, 기댈 수 있는 리더를 꼽기도 했다. 한 인터뷰에서 리더라는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멤버들이 힘이 많이 되어 주기 때문에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거나 하진 않는다."라고 말했으나 그를 연습생 시절부터 지켜봐왔던 멤버들은 정작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원우]]는 "혼자서 너무 많은 걸 짊어지고 있는 모습을 많이 봤다.", [[민규]]도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리더였으면 저렇게 잘 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하며 "단 하루만 세븐틴 멤버들 중 누군가가 될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무게감을 나눠 들고 싶다며 [[에스쿱스]]를 지목했다.
         [[세븐틴(아이돌)/힙합팀|힙합팀]] 내 네 명의 래퍼 모두 로우톤이지만 그 중에서도 [[에스쿱스]]는 파워에 가장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무대에 서면 감정을 배로 드러내 거의 토해낸다는 인을 받을 정도로 가사를 씹어가며 내뱉는 것이 특징으로, 이 파워를 이용해 오프닝부터 주목을 크게 끌기 위해 도입부나 1절의 랩 파트를 배당받는 경우가 있다. [[버논(세븐틴)|버논]]과 함께 타이틀 곡들의 시그니처 인트로를 담당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며, 대표적으로 세 번째 미니 앨범의 '붐붐'이나 두 번째 정규 앨범의 '박수'같은 강렬한 분위기의 곡들도 일례로 들 수 있다.
         수록곡 중에서는 첫 번째 미니 앨범의 [[세븐틴(아이돌)/힙합팀|힙합팀]] 유닛 곡 'Ah yeah'나 첫 번째 정규 앨범 '엄지척'에서 도입부 파트를 맡아 곡의 시작부터 분위기를 고조시켰는데, 이것은 두 곡 모두 청자를 도발하는 호전적인 가사를 가진 곡이라는 점을 반한 파트 분배로 보인다.
  • 태영호 . . . . 45회 일치
         [[북한]]의 [[외교관]]. [[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공사로 활동했으며, 2016년 8월 [[탈북]]했다. 탈출 과정에서 '태용호'라는 가명을 썼다.
         빨치산 가문에서 태어난 태호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어]]와 [[중국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진우]](1995년 2월 사망) 전인민무력부장 등 빨치산 1세대의 자녀들과 함께 공부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태호는 평양 국제관계대학(5년제)를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주로 [[덴마크]], [[스웨덴]], [[국]] 등 서유럽에서 활동하며 북한의 입장을 대표했다. 김정일의 덴마크어 전담통역 후보인 '1호 양성 통역'으로 뽑혀 덴마크에서 유학을 했으며, 1993년 부터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직을 맡았다.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대사관이 철수하자, [[스웨덴]]으로 옮겨졌으며, EU 담당 과장으로 승진했다.
         2000년 12월에 [[국]]과 북한이 수교를 맺고, 2003년 4월 국 주재 북한대사관이 정식 개설되자, 1등 서기관 신분으로 런던에 파견되었다. 현학봉 국 주재 북한 대사의 뒤를 잇는 2인자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20년간 중요 외교관으로 지내던 태호는, 2016년 갑작스럽게 탈북하게 된다. 태호는 2016년 여름 임기를 마치고 평양에 복귀할 예정이었다. 태호와 친분이 있었던 [[BBC]]의 스티브 에번스 한반도 특파원은, 개인적으로 태호와 만나면서 직전까지 탈북을 하려는 어떤 눈치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외교관으로서 태호는 런던의 극좌단체 행사에 참가하여 북한을 옹호하는 연설을 했으며, 언론이 북한에 대하여 자극적인 보도만을 일삼는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태호는 국 내의 탈북자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스티브 에번스 특파원의 발언에 따르면 태호는 국의 중산층과 같은 모습으로 편안하게 생활했다고 증언했다.
         가디언 지 보도에 따르면 태호는 공식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했으나, 사석에서는 빈궁한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의 친지들은 런던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하며, 자신이 [[풀장]]과 [[사우나]]가 딸린 궁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방 2개, 좁은 부엌이 딸린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봉급 한달 1200파운드(약 174만원) 정도로 물가가 비싼 런던이라 생활고를 겪었으며, 태호는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 혼잡통행료 걱정을 하기도 한다."고 발언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2016년 8월 17일, 갑자기 국에서 고위급 북한 외교관이 탈북했다는 소식이 퍼졌으며 곧 그가 태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가족과 함께 탈북한 태호는 한국 [[망명]]행을 택했는데, 1997년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 장승길이 망명한 이래 최고위급 외교관의 탈북이었다.
         태호의 탈북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진행되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김정은 체제 내부의 정치적 갈등,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북한의 황에 대한 좌절감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태호의 탈북 요인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그리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태 공사의 자녀 중 북한이나 국 현지에 남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8월 20일, 북한에서는 남한으로 망명한 태호 공사가 고의적비밀누설죄, 국가재산횡령범죄, 미성년성교범죄를 저질렀다고 발표하며 태호를 비난했다.[[http://www.focus.kr/view.php?key=2016082000192002762 (포커스뉴스)]]
         태호의 아버지 태병렬은 [[김일성]]과 함께 활동한 항일 빨치산 1세대로서, 빨치산 시기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했다. 1913년 생 태병렬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서 1997년에 사망했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태호는 북한에서 중시하는 [[출신성분]]이 매우 좋은 인물로서, 이 때문에 북한의 외교관은 통 3년간 근무하지만 주 북한 대사관에서 10년 동안 근무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태호의 형 태형철 역시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서,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이다.--물론 태호가 탈북한 이 형 역시...--
         태호의 부인 오혜선(50세) 역시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며,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19984년 사망)의 친척이다.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의 친인척으로 알려져 있다. 오혜선 역시 대외무역, 외자유치, 경제특구 업무를 담당하는 대외경제성에서 어 통역을 담당했으며, [[홍콩]]에서 근무하다 2년 전 [[런던]]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태호의 큰 아들은 26세로 국에 거주하며 현지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은 아들은 2016년 망명 당시 19세로, 국 가디언 지의 보도에 따르면 [[수학]]과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으며, 명문대학 임페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이름은 'Kum Tae'. 둘째 아들에게는 [[국인]] 친구들도 많아서 갑자기 페이스북에서 소식이 끊겨서 다들 걱정했는데 망명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모두 안심했다고.--너 숙청당한줄 알았어--
         태사의 둘째 아들은 [[FPS]]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팬으로, 누적시간이 368시간에 달하였다. 차남이 쓴 게임 아이디는 '북한이 최고의 코리아'(North Korea is Best Korea)[* 사실 북한을 까는 [[밈]]의 일종이다.].
         북한-중국 경계에서 업하는 북한쪽 식당의 경우 한국인을 극도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에는 중·고교 수학여행시 종종 여행경로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그리고 국정원에서 담당 선생님에게 전화가 오고 그러지만~~ 북한이 테러를 벌일 가능성이 있어 아예 수학여행도 취소될 가능성이 생겼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8631654&date=20160821&type=1&rankingSeq=1&rankingSectionId=100|네이버 뉴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45회 일치
         지전이 벌어지면 다른 요원들과 달리 장군은 호위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다. 만약 장군이 전투 중 사망하면 전투 이후 해당 호위대는 그대로 해체되며 장군 또한 사망처리되므로 주의. 해전의 경우에는 기함에 탑승해 전투를 지휘한다.
         다이묘를 제외한 장군들은 충성심이라는 수치가 있다. 충성심이 낮은 장군의 경우 대 가문에 붙거나 반란을 일으켜 독자적으로 세력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이 요원의 향력 범위 +15%
          * 기병 지휘관(Cavalry Commander) - "광으로 충분하지 않다. 광의 뒤엔 반드시 강인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해전 시 지휘력 +1
          해전 시 지휘력 +2
          해전 시 지휘력 +3
          * 완고한 무사(Die-hard Fighter) - "주저하지 않는 남자가 자신의 혼까지 이기는 법이다."
          * 야전 공격자(Field Attacker) - "전투는 흘러가는 양을 파악해 신중한 계획으로 싸우는 것이다."
          지전 공격 시 지휘력 +1
          지전 공격 시 지휘력 +2
          지전 공격 시 지휘력 +4
          지전 방어 시 지휘력 +1
          지전 방어 시 지휘력 +2
          지전 방어 시 지휘력 +4
          해안 륙 공격 시 지휘력 +2
          해전 시 지휘력 +1
          해안 륙 공격 시 지휘력 +4
          해전 시 지휘력 +2
          * 군의관 - "난 후방에서 부을 치료할 기술을 약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비겁함은 치료할 수 없다!"
  • 프로 스포츠 . . . . 45회 일치
         업적으로 운되며, 리를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 활동.
         프로 스포츠에서는 [[경기]]를 보러 오는 [[관객]]에게 징수하는 입장료 수익이나, 선수나 해당 스포츠를 주제로 한 품의 판매, [[스포츠 마케팅]] 광고 효과를 노리는 광고 스폰서 등으로 수익을 얻어, 리적으로 스포츠 단체를 운한다.
         프로 스포츠 선수는 전통적으로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주 소득을 얻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이다. 반면 아마추어 스포츠에서 선수란 [[취미]]로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과거에 아마추어 스포츠는 당히 생활에 여유가 있는 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무렵에 아마추어를 프로 스포츠와 구분한 이유는 프로선수는 돈 받고 전념하니까 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고, 아마추어와 프로가 같은 틀에서 경쟁하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당시는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프로 선수를 낮게 보았고[* 일종의 '사회적 차별'로서, '유산 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진 스포츠에서 '노동자 계급'과 같이 여겨진 프로 선수를 배제하는 움직임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올림픽에 '아마추어' 규정이 들어가게 되었다.
         [[냉전]] 시기에는 [[국가]]의 개입으로 아마추어리즘이 퇴색하게 되었는데, 공산권을 중심으로 사실 국가에서 아마추어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하면서 생계까지 책임져주면서 국위선양을 위하여 아마추어 스포츠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스포츠 선수 군단'을 육성함으로서 '프로나 다름없는 아마추어'가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 이러한 전략으로 [[동독]] 등은 많은 메달을 따냈고 [[국위선양]]을 이루었다. 그러나 공산권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이 같은 흐름은 크게 퇴색하였다.
         소련의 CSKA 모스크바는 당시 소련군이 육성하던 엘리트 스포츠의 한 단면으로 평가될 수 있었으며, 소련군 소속이지만 이는 소련의 대외적인 체육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한 장으로써 사실 세미프로 스포츠클럽으로 봐도 무방하다.
         자유주의 진에서도 이런 공산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했다. 대한민국도 한국축구사에 전설을 남긴 [[양지 축구단]]은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강력한 푸쉬를 받아 등장한 케이스였고, 이는 북한의 1966년 월드컵 8강진출에 자극받아 탄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국가의 개입에 따른 아마추어리즘이 훼손된 사례는 확실한 트렌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모습은 냉전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산물임이 확실하다.
         이후 공산권이 무너지고 스포츠 시장이 구 공산권에 뻗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스포츠 마케팅]]이 극도로 발전하며 아마추어리즘을 퇴색시켰는데, 아마추어 선수라도 기업에서 막대한 스폰싱을 받으면서 사실 '전업 아마추어 선수'로서 활약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고색창연한 아마추어리즘 보다는 '최고의 선수들의 최고의 경기'를 보는 것을 바랬고, 그것이 아마추어 대회를 유지하는 입장에서도 나았기 때문이다. 결국 1974년에 [[올림픽]]에서 아마추어 규정이 사라지면서 '아마추어'라는 틀은 무너지게 된 것이다.
         현대에는 [[스포츠 마케팅]]의 발전으로,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에도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이 경계가 당히 애매해졌다. 준프로라는 개념도 잘 살펴보면 프로선수와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 가령 [[K리그]]에 뛰는 선수들은 명백히 해당 종목에 전업함으로써 구단으로부터 급여를 받음은 물론이고 성적에 따라 연맹에서 추가적인 금을 얻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 용품 회사로부터 스폰받는 돈도 있다. 하지만 세미프로리그인 [[한국 내셔널리그]]만 봐도 이런 면에서 K리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전통적인 분류는 당히 무의미해 진 황이다.
         또한 아마추어 리그인 K3도 K리그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적어도 인기 종목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누는 경계는 사실 전통적인 방식으론 더 이 경계를 가르기가 어려워 졌다고 볼 수 있다.
         권투의 경우도 권투경기를 주관하는 주요 단체에 소속되지 않았다 뿐이지, 올림픽 권투경기를 보기 위해서 올림픽 관람료를 내야함은 물론이고 올림픽 성적에 따라 각 국가의 올림픽 관계 단체로부터 금이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개중에는 스폰서가 붙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이전과는 달리 단순히 '돈을 번다'는 것 만으로는 프로 스포츠와 아마추어 스포츠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황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각 종목과 대회를 주관하는 단체가 규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종목에 따라서 황이 당히 다르지만,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대회와 그렇지 않은 대회는 어느 정도 방향성에서 차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프로 스포츠 종사자들은 업적 이득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대회를 유치하려 한다. 그리고 이 대회에 참가 가능한 인원들을 "거르는 작업"이 필연적이다. 이렇게 거르는 행위를 통과한 인원들만 모아 대회를 열 준비를 하며, 이 대회에 참가하는 팀에 소속될 자격이 있는 "최급 선수"의 자격을 갖춘 자들을 프로라 보는게 바람직이다. 축구를 제외한 대한민국 4대구기종목은 드래프트(=최급 선수라는 판단을 협회와 구단이 동시에 판단)를 통해 이루어지고, 바둑같은 경우는 단위제(=최급 선수라는 판단을 전적으로 협회를 통해 판단)를 통해, 축구의 경우는 구단이 입과 이적이라는 행위를 통해(=최급 선수라는 판단을 법과 협회의 규정 안에서 구단이 자체적으로 판단) 프로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이런 사례를 생각해보면 종목을 불문하고 "명백히 최고의 경기를 제공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업적인 이득을 추구"하며, "최고의 수준을 경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증명된 선수와 팀"이 보여주는 스포츠가 프로스포츠로 규정할 수 있다.
         특히 미국식 프로 스포츠에서는 '신규 참가자=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을 매우 경계하여 경기 리그를 매우 독립적, 폐쇄적으로 운한다. 이것이 프로 스포츠의 본질을 보여주는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 스포츠 마케팅에서 강한 선수, 강한 팀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관객들이 강한 선수나 강한 팀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다만 반대로 강한 선수나 강한 팀이 흥행에 악향을 주는 경우도 있는데, 오히려 "누구누구만 나오면 이기니까 재미가 없다.", "어디 팀만 무조건 이기니 재미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 스포츠 시장에서는 이러한 '흥행'을 고려하여 리그에 향을 미치는 규칙을 변경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프로 종목은 흥행 때문에 규칙을 변경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같은 경기의 아마 종목과 차별성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로 복싱과 아마 복싱은 프로 단체와 아마 단체에서 스포츠의 '규칙'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공통점은 있으나 동시에 당히 다른 양을 보이는 경기가 되어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보호구로 헤드기어를 장착하는 아마 복싱은 프로복싱처럼 흥행에 도움을 주는 '화끈한 [[KO]]'를 내놓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때문에 포인트와 기술 위주의 운을 강요받게 된다. [[농구]]의 경우 [[NBA]]는 [[쿼터제]]나 [[덩크슛]] 같은 흥행 요소를 도입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프로 스포츠 대회에 참가하는 구단과 선수들은 리를 추구하지만, 정작 이를 운하는 단체들은 대개가 비리조직인 경우가 대다수다. 매년 열리는 대회중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UEFA 챔피언스 리그]]라든가 [[NFL]] [[슈퍼볼]]등은 모두 비리단체가 운한다.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같이 리단체가 운하는 대회가 최근에는 매우 드문 편.
         대회운과 일정 관리 등, 스포츠 대회를 열었을 때 수반되는 각종 어려운 부분들이 발생함으로써 리기업은 보통 여기에 별도로 운하기 위한 부서를 두는게 비용적인 면에서 불리함이 있기 때문.
  • Crusader Kings 2/특성 . . . . 44회 일치
         서로 극인 특성은 공존하지 못한다.
          * 매력적인 협가(Charismatic Negotiator)
          ''매력적인 협가는 우아한 드레스와 설득력 있는 미사여구로 고위 관리를 감동 시킬 줄 아는 훌륭한 외교관입니다.''
          ''노련한 전술가는 예술적인 전쟁 감각을 지녔으며 용감한 전사이자 신뢰할 수 있는 지휘관입니다.''
          ''놀라운 전략가는 전쟁의 모든 면을 이해하고 있는 비한 인물로 사령관 또는 장관으로써 완벽한 자질을 타고났습니다.''
          * 환의 그림자(Elusive Shadow)
         == 태 특성 ==
          * 부(Wounded)
          * 심한 부(Serverely Wounded)
         === 증 ===
         질병에 걸렸을 때 초기 증으로 붙는 특성들. 이후 어떤 질병에 걸렸는지 알게 되면 태 특성으로 대체된다.
          * 용기(Brave) 특성과
          * 정직(Honest) 특성과
          * 사교적(Gregarious) 특성과
          * 독실(Zealous) 특성과
          ''공정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결점은 봉신과 가신에게 환 받지 못합니다.''
          * 공정(Just) 특성과
          * 냉소(Cynical), 다른 신앙에 대한 공감 특성과
          * 야망(Ambitious) 특성과
          * 내성적(Shy) 특성과
  • 김혜옥 . . . . 44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컷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문득 대학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홍익대 미대에 원서를 넣었으나 떨어졌다. 그런데 당시 시험감독관으로 들어온 교수가 그림에는 소질이 없어뵈지만 연기를 하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했고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에 진로를 바꿔 서울예대 연극과 응시, 합격하였다.<ref name="월간조선">{{웹 인용|성1=서철인 |제목=중견배우 인터뷰 탤런트 김혜옥 “다들 저보고 귀엽다네요” |url=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1307100055 |웹사이트=월간조선 |날짜=2013-07 |확인날짜=2018-08-18}}</ref>
         40대 어느날부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그녀는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녀도 병명을 알지 못하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한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한의원에 찾아가 자신의 병이 가슴속 응어리진 한이 쌓여 생긴 '화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기도와 명 등을 통해 3년 만에 병을 나았다. 2004년 KBS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천방지축 철부지 할머니를 맡아 인기를 끌어 수십년 무명의 설움을 씻었다. 이후, 드라마·화에서 명품 연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f name="월간조선"/>
         * [[1988년]] [[MBC]] 미니시리즈 《[[마지막 우]]》
         * [[2000년]] [[MBC]] 주간시트콤 《[[세 친구 (시트콤)|세 친구]]》 ... 안연홍 모, 이수나가 라디오 청취하던 라디오 사극 드라마 성우(후궁전 궁 배역) 역으로 목소리 출연
         * [[2004년]] [[SBS]] 주말특별기획 《[[발리에서 생긴 일]]》 ... 주 모 역
         * [[2006년]] [[MBC]] 주말연속극 《[[진짜 진짜 좋아해 (드라마)|진짜 진짜 좋아해]]》 ... 부인 오실 역
         * [[2006년]] [[SBS]] 미니시리즈 《[[독신천하]]》 ... 은 모, 윤정심 역
         * [[2009년]] [[MBC]] 아침드라마 《[[망설이지마]]》 ... 수현 모, 차란 역
         * [[2011년]] [[KBS2]] 미니시리즈 《[[동안미녀]]》 ... 소 모 역
         * [[2012년]] [[MBC]] 미니시리즈 《[[닥터 진]]》 ... 래 모 역
         * [[2012년]] [[KBS2]] 주말연속극 《[[내 딸 서이]]》 ... 차지선 역
         * [[2013년]] [[SBS]] 드라마 스페셜 《[[내 연애의 모든 것]]》 ... 나숙 역
         * [[2017년]] [[KBS2]] 수목드라마 《[[맨홀 - 이한 나라의 필]]》 ... 윤끝순 역
         * [[2019년]] [[KBS1]] 일일연속극 《[[여름아 부탁해]]》 ... 나심 역
         === 화 ===
         * [[1992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웅]]》 ... 병태 어머니 역
         * [[2003년]] 《[[쇼쇼쇼 (화)|쇼쇼쇼]]》 ... 산해 모 역
         * [[2004년]] 《[[어린 신부]]》 ... 민 모 역
  • 송하윤 . . . . 44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CC9966> {{{#ffffff '''출생'''}}} ||<(> [[1986년]] [[12월 2일]] ([age(1986-12-02)]세), [[경남도]] [[남해군]] 칠성면 (칠성로) ||
         ||<#CC9966> {{{#ffffff '''데뷔'''}}} ||<(> [[2003년]] 드라마 '두야 학교가자' ||
         === 화 ===
         || [[2005년]] || 댄서의 순정 || 수 || ||
         || [[다세포 소녀(화)|다세포 소녀]] || [[도라지소녀]] || ||
         || [[아기와 나(한국 화)|아기와 나]] || 김별 || [* 김별 이란 예명으로 활동 당시 배역명과 예명이 동일해 화제가 되곤 했다.] ||
         || 비 || 수경 || ||
         || [[화차(화)|화차]] || 한나 ||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CC9966><#CC9966> '''{{{#white 방 연도}}}''' ||<#CC9966> '''{{{#white 방송사}}}''' ||<#CC9966> '''{{{#white 제목}}}''' ||<#CC9966> '''{{{#white 배역}}}''' ||<#CC9966> '''{{{#white 비고}}}''' ||
         || [[2003년]] || [[KBS2]] || 두야 학교가자 || || ||
         || [[2011년]] || [[KBS2]] || [[드라마 스페셜]] - 수호천사 김구 || 최나 || ||
         || [[2013년]] || [[KBS2]] || [[드라마 스페셜]] - 그렇고 그런 사이 || 박준희 || ||
         ||<|3> [[2014년]] || [[KBS2]] || [[드라마 스페셜]] - 아빠를 소개합니다 || 최희 || ||
         || [[KBS2]] || [[그래도 푸르른 날에]] || 이희 || ||
         || [[2016년]] || [[네이버TV]] || 널 만질거야 || 진희 || [[웹드라마]] ||
         ||<|2> [[2005년]] || [[가비엔제이]] || 눈사람[* 당시 대 배역이 [[류승룡]]이었다.]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CC9966><#CC9966> '''{{{#white 방 연도}}}''' ||<#CC9966> '''{{{#white 기업}}}''' ||<#CC9966> '''{{{#white 브랜드}}}''' ||<#CC9966> '''{{{#white 비고}}}''' ||
         ||<|3> [[2007년]] || [[농심그룹]] || 건면세대 치즈(with.[[서우]]) || [[https://youtu.be/-D5V76vsBzo|]] ||
         || [[롯데제과]] || [[설레임#s-2]] - '에티켓'편(with.[[박해진]]) || [[https://youtu.be/i1N7yeVCVQQ|]] ||
  • 안석환 . . . . 44회 일치
         {{화인 정보
         '''안석환'''(安奭煥, [[1959년]] [[1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본관은 [[광주 안씨|광주]].<ref>{{웹 인용 |제목=안석환 인물정보 |url=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01.jsp?id=9606 |웹사이트=조선일보}}</ref>
         * [[단국대학교]] 경학과 학사
         * 2003년 [[KBS2]] 단막극 《[[드라마시티]] - 파울루》 ... 홍사장 역
         * 2003년 [[MBC]] 수목미니시리즈 《[[좋은사람]]》 ... 구진 역
         * 2004년 [[MBC]]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웅시대 (2004년 드라마)|웅시대]]》 ... 종로경찰서 보안과 주임 곤도 [[경부보]] → [[경부]] 역
         * 2012년 [[SBS]] 특집드라마 《[[가족사진]]》 ... 한식 역
         * 2016년 [[OCN (방송)|OCN]] 주말드라마 《[[동네의 웅]]》 ... 박선후 역
         * 2018년 [[tvN]] 월화드라마 《[[백일의 낭군님]]》 ... 박선도 감 역
         === 화 ===
         * 1992년 《[[거리 (화)|거리]]》
         * 1994년 《[[구미호 (화)|구미호]]》
         * 1994년 《[[태백산맥 (화)|태백산맥]]》
         * 1995년 《[[총잡이 (화)|총잡이]]》 ... 희의 실장 역
         * 1996년 《[[꽃잎 (화)|꽃잎]]》 ... 반장 역
         * 1998년 《[[실락원 (1998년 화)|실락원]]》 ... 은교의 남편 역
         * 2000년 《[[싸이렌 (2000년 화)|싸이렌]]》 ... 양 반장 역
         * 2003년 《[[선택 (2003년 화)|선택]]》 ... 오태식 역
         * 2004년 《[[페이스 (화)|페이스]]》 ... 윤 박사 역
         * 2012년 《[[26년 (화)|26년]]》 ... 안수호 역
  • 서상일 . . . . 43회 일치
         '''서일'''(徐相日, [[1886년]] [[7월 9일]] - [[1962년]] [[4월 18일]], [[대구]] 출생)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정치가이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기간 중에는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호 동암(東菴). 본관은 [[달성 서씨|대구]].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09년 [[안희제]]·[[김동삼]]·[[윤병호]] 등과 함께 항일무장투쟁 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한때 만주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며, [[1945년]] 8·15광복 후에는 [[송진우 (정치인)|송진우]]·[[장덕수]] 등과 함께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을 창설하고, 사실 집단지도체제하의 정당의 최고위원이라 할 수있는 8총무단의 일원으로 선임되었다.
         1952년 전쟁중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동 광장에서 열린 6ᆞ25기념식장에서 당시 현역의원인 2대국회의원 김시현의 사주를 받은 전의열단원 유시태가 이승만 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당시 기념식 행사를 촬중이던 국립화제작소의 촬카메라에 김시현이 쓰고있던 중절모에서 권총을 꺼내 유시태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포착되어 두 사람은 모두 특무대에 체포되었다 배후를 수사하던 특무대는 전국회의원 서일이 당시 현역의원이던 김시현에게 거사자금으로 2백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당시 치안국장(오늘날 경찰청장) 윤우경도 사전에 암살음모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김시현을 불러다 한번 다그친 후에는 차량이 없는 그에게 경찰찌프차와 운전사까지 대여해주었던것이다 구속된 서일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1954년의 3대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수 없게 되자 자신의 선거구(대구 을구)에 조병옥을 대신 출마시켜 당선되도록 했다 이런 인연이 있음에도 후일 서일이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설득하자 조병옥은 냉정히 거절하였으며 이때문에 두 사람은 멱살잡이와 욕설까지 주고 받게 된다.그런데 이때 조병옥 장면 김준연 등 주로 보수야당 한민당 출신들이 조봉암의 민주당 합류를 반대했던 것은 이승만의 사사오입개헌 발의안에 서명까지 했던 자유당 출신 김삼도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인것을 감안하면 매우 자가당착적인 것이었다
          결국 1954년 이승만의 3선저지를 위해 결성된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였던 서일은 [[박기출]], [[장택]] 등과 함께 [[조봉암]]의 [[호헌동지회]] 참가를 반대하는 [[조병옥]], [[김준연]], [[장면]], [[박순천]] 등에게 항의하고[[호헌동지회]]를 탈퇴했다.그런데 그후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조봉암이 원래 서일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기로 했던 두 사람간의 밀약을 깨고 조봉암 자신이 대통령후보로 나서려하자 이때문에 심기가 한 서일은 조봉암과 사실 결별의 수순에 들어가 후일자신을 당 대표로 한 민주혁신당을 창당하였다
          일단 서일은 1956년 3월 31일 진보당전국추진위원대표자회의에 참석하기는 하였으나 진보당전국추진위원대표자회의에서 [[대통령]] 후보에 [[조봉암]], [[부통령]] 후보에 서일을 지명하자 한사코 이를 고사해 나중에 [[박기출]]로 바뀌었다.<ref name=autogenerated1>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157</ref> 서일은 선거대책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정부 당국에서 이 회의에 참석한 진보당추진위 대표들에게 협박·공갈·회유를 했고, 대회장에는 정치깡패 유지광이 이끄는 폭력단이 난입해 테러를 자행했다.<ref name=autogenerated1 />
         56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론에 떠밀려 제일야당 민주당과 진보당은 후보단일화협을 갖게 되었는데 협장에서 진보당 대통령후보 [[조봉암]]은 민주당 [[대통령]] [[신익희]]에게 양보의사를 밝히는대신 [[부통령]] 후보는 중요하지 않으니 민주당측이 양보해달라는 의사를 전했다.<ref name="서158">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158 페이지</ref> 일단 [[신익희]]는 이 제의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민주당 (1955년)|민주당]] 으로서는 이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왜냐하면 당시 신구파연합체였던 민주당은 당내경선에서 구파의 수 신익희와 신파의 수 장면을 나란히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던 것인데 신익희가 신파를 설득하는것도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익희ᆞ조봉암 회동이 이루어진지 6일만에 호남유세에 나섰던 신익희가 호남선 열차안에서 뇌출혈로 급사함으로써 사실 후보단일화는 엉뚱하게 조봉암으로 되어버렸지만 민주당은 당차원에서 조봉암을 밀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민주당 최고위원 김준연은 조봉암의 사적 문제점을 들어 이승만 지지를 공개선언하기까지 했다.
         이때 서일은 후보 단일화 문제를 놓고 [[조봉암]]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좋은 결론을 심사숙고하려 했다. [[조봉암]], 서일 등은 원래는 선거가 종반전에 들어갈 때 정부통령 후보를 모두 민주당측에 양보하는 것에 합의했으나 신익희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조봉암이 사실 대통령 단일후보가 되자 선거말미에 가서 부통령 후보 박기출만을 사퇴시켰던것이다. <ref name="서158"/> 대선이후 서일은 겉으로는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 결성 운동을 추진했으나 이미 대선후보 결정당시 [[조봉암]]과 감정이 했기 때문인지 [[진보당]] 결성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사실 1인정당인 민주혁신당을 창당했으나 이 당이 사실 힘을 쓰지 못하자 서일 또한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태에 처해지게 되어 정계은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1962년]]에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간장염]]으로 사망했다.
         *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1948년 5월 10일]] :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 경북도#대구부 을구 (제2선거구)|제헌 국회의원(경북 대구을)]]
         * [[장건]]
         * [[장택]]
         * [[윤선 (1896년)|윤선]]
         * [[윤치]]
         == 서일을 연기한 배우 ==
         * {{헌정회|690|서일}}
         |같은 지역구 의원 = 대구시 갑: [[서동진]]<br />대구시 병: [[임문석]]<br />대구시 정: [[조재천]]<br />대구시 무: [[조일환 (1916년)|조일환]]<br />대구시 기: [[장모]]
         [[분류:대한제국의 사회 운동가]][[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2공화국]][[분류:호헌동지회]][[분류:윤보선]][[분류:윤치호]][[분류:조봉암]][[분류:장택]][[분류:민주당 (대한민국)]][[분류:진보당 (대한민국) 정치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 서씨]][[분류:간 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은혼/602화 . . . . 43회 일치
          * 한때 자작의 라이벌이자 현 해방군 창설자인 원황자는 자작의 편을 들며 논쟁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 자작은 지구인 사절 일행을 원에게도 소개하려 하나 자작은 그 전에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를 이끌고 간다.
          * 그것은 실험물로 전락한 천도중들. 원은 자작보다 이 전쟁의 실체를 먼저 파악했으며 그럼에도 자신들의 갈 곳 없어진 증오에 눈이 멀어 전쟁을 확대하고자 한다.
          * 한편 지에서 우츠로는 천도중의 신체로 양산한 불사신 나락들을 이끌고 해방군의 거점을 무너뜨리고 있다.
          * 대는 그의 라이벌이자 이웃나라 "부레이"의 지배자인 원. 옥좌보다 전장의 초연을 사랑한다 하여 "초연의 황자"라 불리는 맹장이었다.
          * 이미 전장에서 여러번 겨뤘던 자작은 친구에게 연락하듯 원황자에게 연락한다.
          * 마침 원의 아내가 출산이 임박해 있었는데, 이런 데서 입자포나 쏴댈 바엔 부인 곁에서 라마즈 호흡법이나 도와주는게 어떠냐고 드립을 친다.
          * 혹시 국도 아버지가 되는건 두려운 거냐고 놀리는데.
          * 원은 그런 건 약해 빠진 너네 나라의 얘기라며, 자신의 나라에선 전장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남자 따윈 아내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돌려보내진다고 말한다.
          * 원은 코웃음치며 "너에게 아버지의 장례도 결혼도 방해받았지만 그 목을 아기 장난감으로 삼겠다"고 받아친다.
          * 그런데 보고를 들은 원의 표정이 심치 않다.
          * 한순간에 괴멸해 버린 군사대국 부레이. 원은 생전 처음으로 전장을 팽개치고 귀환했지만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 아내의 무덤 앞에서 그를 뒤따라온 자작과 이야기하는 원.
          * 원은 나라도 잃어버린 자신을 "초연 황자"라 불러주는 거냐고 말하는데, 자작은 훌륭한 공적을 세워서 돌아오지 않았냐고 말한다.
          * 원은 해방군의 창설하고 자작과 함께 천도중과 맞서 싸우게 된다.
          * 정체불명의 지구인들이 해방군의 지 주둔지를 공격하고 있다.
          * 현장의 해방군은 이 식 밖의 공격에 당황하며 미친게 아니냐고 말한다.
          * 해방군 수뇌는 비둘기파이자 지구인과 평화협을 주도한 자작제독에게 책임을 돌린다.
          * 그때 모습을 드러내는 원. 자작의 말을 풀이한다.
          * 자작이 말하는 함정이란 이 국면 뿐만 아니라 "전 우주가 휘말린 이 전쟁 자체가 천도중의 함정"일지 모른다는 것이고, 탓하려거든 전쟁을 시작한 원을 탓이라 하는 거라고 한다.
  • 이병욱(스트리머) . . . . 43회 일치
         ||<bgcolor=#A50000> {{{#EEE156 신체}}} || 175cm, 74kg[* 유튜브 생방송에서 언급함. 아프리카TV 방송 초창기에는 저체중일 정도로 무척 말랐었으나 2017년 중반기를 들어서면서 살이 급격하게 찌기 시작하였다. [[https://youtu.be/svyp7QMoyLk|참고]]] ||
         ||<bgcolor=#A50000> {{{#EEE156 출신 지역}}} || [[경북도]] [[구미시]] [[형곡동]] ||
         ||<bgcolor=#A50000> {{{#EEE156 학력}}} || 형곡초등학교 졸업[* 2018년 8월 30일 고향집 소개 에서 나옴.(중학교, 고등학교도 역시)][br]형남중학교 졸업[br]경북과학기술고등학교 졸업[* 모교에서 급식먹기 에서 나옴.][* 이병욱이 재학했을 때는 '아포공업고등학교'였으며 졸업한 해에 교명 변경.] [br] 구미대학교 중퇴 ||
         예전엔 마른 체격이었는데 체중이 불었는지 통통한 체격이되었다. [[2014년]]도에 [[아프리카TV]]에서 명불허전와꾸로 활동했었던 인물.[* 명불허전와꾸를 검색하면 이 문서로 넘어온다.] [[남구(범죄자)|남구]]에게 사기[* 남구에게 핸드폰 명의를 빌려줬다가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황이라고 한다]를 당한 피해자였다.
         '''[[골초|당한]] [[애연가]]'''다. 그래서인지 최근 목록에는 대부분 [[담배]] 리뷰 밖에 없다.
         남구로 인해 피해를 본 일들과 자신의 명품 옷을 헐값에 팔아넘긴 기초생활수급자인 노인에게 30만원만 받고 퉁친 일화가 있었으며 예전에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트위치로 이적한 지금은 '''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https://youtu.be/vFqkm999xzc|흡연 10년차 신담배 레종 프렌치 번 솔직리뷰]]||
         ||[[https://youtu.be/AyJ_4Mln6O4|금연하기 좋은 캘리포니아 전자담배 Juul(줄) 망고맛 액 솔직 후기]]||
         ||[[https://youtu.be/nVu2sqAwZBo|캘리포니아 전자담배 줄(Juul) 각종 액 솔직 후기]]||
         ||[[https://youtu.be/rdIKtJlzGS0|인도네시아 메론&사이다 맛 담배 던힐 파인컷 LIMITED EDITION D-MIX 솔직 후기!]]||
         ||[[https://youtu.be/1bbemT4NvI8|내가 피는 사이다&멘솔맛 담배 보헴 시가 슬림핏 브라운 솔직 후기!!]]||
         ||[[https://youtu.be/_bFotOqiXpM|신 담배 과일 빙수맛? 에쎄 체인지 빙 솔직 후기]]||
         ||[[https://youtu.be/SrNbjT_qBEQ|신 담배 블루베리 맛? 보헴 파이프 스코티 솔직 후기]]||
         ||[[https://youtu.be/5iNp24Nnthc|신 담배 [레종 프렌치 라인] 최초!! 슈퍼슬림 솔직 후기 "생각보다 괜찮은데?"]]||
         ||[[https://youtu.be/AKnGREv6mYA|신 여름 한정판 담배 [아이스 블라스트 SUMMER EDTION 17+3] 솔직 후기 "3까치만 다른맛"]]||
         ||[[https://youtu.be/-qa3B41nFaA|신 여름 한정판 담배 [보헴 쿠바나샷 써퍼 에디션] 솔직후기 "뭐 이딴걸 만들어?"]]||
         ||[[https://youtu.be/_P3vJ7TLt4A|롯데리아 신 맥앤 치즈스틱 골때리는 ASMR]]||
         '''현재 [[트위치]] 최악의 스트리머들 중에 손꼽혔던 인물 중 하나.'''[* [[유신(스트리머)|유신]]과 더불어 '''트위치에서 논란을 수차례나 저질렀다!''' 정지나 경고를 당하지 않는 것이 이할 따름.]
         그 악명높은 '''느금마엔터 민폐 [[신태일(유튜버)|4]][[김윤태|대]][[푸워|천]][[남구(범죄자)|왕]]'''에 임팩트가 가려저서 그렇지, 사실 현재 느금마엔터테인먼트에서 '''이미지가 당히 나쁜 편에 속한다.''' 트위치에서 이미지가 나쁜 쪽으로 보면 '''[[유신(스트리머)|유신]]과 투탑'''이었다.
         '''이병욱이 트위치에서 환받지 못하게 된 사건이자 사실 이미지 추락에 큰 일조를 한 사건'''
  • 주윤발 . . . . 43회 일치
         {{화인 정보
         | 직업 = [[화 배우|화배우]] <br /> [[가수]] <br /> [[화]] 각색가 <br />[[연극]][[배우]] <br />[[배우|텔레비전 연기자]]
         | 웹사이트 =
         | 수 =
         '''주윤발'''({{zh|order=t|t=周潤發|s=周润发|p=Zhōu Rùnfā|h=저우룬파}}, Cantonese Yale: Jàu Yeuhn Faat, '''Chow Yun-Fat''', '''Donald Chow''', '''Aman Chow''', [[1955년]] [[5월 18일]] ~ )은 [[홍콩]]의 [[화 배우|화배우]], [[화]] 각색가, [[음반]]을 발표하기도 한 [[가수]]이다.
         대구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대구광역시]] 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그 후 1965년(10세 시절)까지 홍콩 라마 섬 도서촌에서 성장하였다. 학력은 [[중학교]] 중퇴이다. 그는 [[홍콩 화 금장|홍콩 금화제]]의 남우주연과 [[금마장|중화민국 타이완 금마장 ]]의 남우주연을 받았다.
         10세 때였던 [[1965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홍콩 도심으로 이주하였으나,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인하여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였고 중학교를 다니던 중에는 끝내 중퇴하였다. 이렇게 초, 중, 고, 대학 등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던 중, 친구의 권유로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1972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73년]] [[화]] 《투태인(投胎人)》의 주연으로 [[화 배우|화배우]] 데뷔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74년]]부터는 [[홍콩]]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하였으며 2년 후 [[1976년]]에는 [[화]] 《지녀》(池女)의 주연을 맡았다. 그 후로도 홍콩 화와 홍콩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고, TVB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1980년]]에 출연한 《해탄》(上海灘) 등으로 입지를 다졌다. [[1988년]] [[가수]] 데뷔하였으며 [[1989년]] [[화]] 《아랑적고사》(阿郎的故事)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각색도 처음 맡아 각색가로서 데뷔하게 되었다.
         * 주윤발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그의 화의 [[보조 출연자]] 중 한 명이 [[주성치]]였다.
         === 화 ===
         * [[캐리비안의 해적: 세의 끝에서]]
         * [[웅본색]]
         * [[웅본색 2]]
         * [[웅본색 3]]
         * [[하이 (화)|하이]] - 앤소니 역
         * [[대해]]
         해탄 上海灘 (허문강許文強)
         소오강호 笑傲江湖 (호충令狐沖)
         * [[장궈룽]](장국)
         {{홍콩 화 금장 최우수 남우주연}}
         {{금마장 최우수 남우주연}}
  • 진격의 거인/97화 . . . . 43회 일치
          * 그러나 케니는 아니의 예을 뛰어넘는 강자였고 미행은 발각, 가까스로 도망칠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아니의 정신적 부담은 한계에 달한다.
          * 파르코는 가비를 재치고 갑옷을 계승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 침울해져 있는데, 우연히 일전에 도와주었던 장발의 이병사와 재회한다.
          * 그 병사는 기억 실을 핑계로 대고 수용구에 남아 있었지만, 사실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껄끄러워 그렇게 속이고 있던 것. 팔코는 그 사실을 숨겨 주기로 한다.
          * 한편 전사대 대장 [[테오 마가트]]는 타이버가 당주 [[빌리 타이버]]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고 당황한다. 마레인 웅 "헤로스" 동을 보러 왔다고 하는데.
          * 한편 [[지크 예거]]는 누군가와 은밀하게 통화를 하고 있는데, 그 내용과 대는 불명이다.
          * 파르코는 이병사와 친구가 되어 그를 "크루거"라고 부르게 된다. 크루거는 파르코에게 수용구 바깥에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달라고 하는데.
          * 오늘 임무는 진작부터 실패했던게 분명하다. 반성할 시간은 없다. 빠져나갈 방법이 필요하다. 애니가 먼저 택한 방법은 드라마였다. 그녀는 여인숙에서 태어난 소녀였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난 건 단 하룻밤 뿐.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질릴 때까지 해줬고 그래서 한 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아버지를 만났다는 걸. 그 이야기는 목 베는 케니도 감동시킬 만한 했다. 케니는 그녀에게 아버지의 허그가 필요하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틀린 모양이다. 애니는 절대로 그럴리 없다고 확신하냐고 물었다. 케니의 대답은 "할 수 있다"였다. 그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농담이었으니까. 이제 확실히 포기할 시점이다. 죽이지 않고 황을 모면하는 걸.
          * [[베르톨트 후버]]는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동료들의 평화로운 아침을 책임지는 존재였다. 공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들은 그의 특이한 잠버릇을 다소 신성하게 여겼다. 그의 하반신과 반신이 놓인 위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다. 가령 오늘처럼 거꾸로 매달린 사형수의 모습은 두 가지 해석이 대립했다. 벽에 기댄 하반신으로는 "눈", 뒷짐을 진채 등을 바닥에 댄 반신은 "밝은 하늘"이었다. 그 분야에 가장 정평난 [[라이너 브라운]]은 그것을 "우박"으로 해두자고 한 뒤 동료들을 챙겨 아침 점호를 준비했다. 익숙해진 일과였다. 그의 인솔에 따라 [[코니 스프링거]], [[마르코 보트]]가 베르톨트 앞을 떠났다. 라이너는 마지막으로 베르톨트를 깨웠다.
          * 식당에선 또다른 일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이너의 옆 테이블에서 [[엘런 예거]]와 [[아르민 알레르토]], [[미카사 아커만]]이 식사 중이었다. 엘런은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라이너가 유독 살기등등하다고 말을 걸자 맞은 편에 앉은 [[장 키르슈타인]]이 어제 훈련 탓이라고 참견했다. 입체기동장치 실습. 자기 와이어에 얽혀 죽을 뻔한 엘런. 장이 꼴사납다고 빈정거리자 엘런은 "거인한테서 도망치는 훈련을 하는게 더 꼴사납다"며 말자식이라고 받아쳤다. 장은 다시 엘런은 용감하게 돌격하자 와이어가 엉켜 죽을 거고 거인이 그걸 보고 미친 듯이 웃을 거라고 빈정거렸다. 슬슬 때가 됐다. 어김없이 멱살잡이가 이어진다. 그걸 막는 것도 라이너의 일과. 병단에 들어온 뒤 항 하는 일이다. 달라진건 없다. 저쪽,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애니가 시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것 외에는. 애니는 [[미나 캐롤라이나]]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식사에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식당의 전원이 소동을 구경하고 있는데 애니는 촛점 없는 시선을 정면에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베르톨트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 이, 얼굴을 갖다대지 말아줄래?
          * 라이너는 그 모든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러나 입체기동장치 훈련만큼 기억에 남는건 없었다. 엘런은 입체기동장치를 장비하게 된 이후에도 당기간 애를 먹었다. 착지에 실패한 엘런이 나뭇잎처럼 굴러다녔다. 뒤따라 착지하던 라이너가 그를 쫓아가 너무 무리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아무 과장도 없는 경고였다. 엘런바닥에 뒹구는 채로 라이너에게 말했다.
          * 가비를 구하고자 했던 파르코의 결심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가비는 여전히 선두였고 이대로 가면 갑옷을 계승할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파르코가 중얼거렸다. 그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큰 길 곁에 병원이 보였다. 이군인을 수용한 병원이었다. 어디든 한 군데씩, 혹은 온 몸이 망가진 엘디아인 병사들이 서성거리는 곳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가비는 뜻밖에 부름을 받았다. 우측 후방의 벤치였다. 거기서 왼발이 없는 병사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레벨리오로 귀환하던 날, 그때 그가 도와줬던 장발의 귀환병이었다. 병사는 목발을 기대뒀던 옆자리를 비워주며 앉기를 권했다.
          * 이병원에 가득한 병원. 그 벤치에 나란히 앉은 전사 후보생과 외발의 병사. 묘한 풍경이었다. 파르코는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주저하다 일단 병사의 경과가 좋아보인다고 말해봤다. 어쨌든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된 걸 테니까. 그리고 병사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내놨다.
          >여기에 심적 외의 치료로 와있다만
          그의 병명은 기억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 단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둘러대는 말이었다. 지금은 가족하고 얼굴을 마주보기 껄끄럽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파르코는 그의 잘려나간 왼발을 바라봤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병사가 병원에 이걸 말할 거냐고 묻자 파르코는 전혀 아니라고 대답했다. 다시 대화가 끊겼다.
          병사는 파르코의 처에 대해 물었다. 마레의 전사가 되기 위한 훈련에서 입은 처냐고. 파르코는 훈련에서 생긴건 맞지만 전사는 되지 못할 거라고 자학했다. 자기보다 우수한 녀석이 있어서 전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자, 이번에도 병사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했다.
          파르코에겐, 수용구 안의 엘디아인은 해본 적이 없는 발이었다. 파르코는 뭔가 깨달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가비를 구해야 하니까. 그래도 그 녀석이 전사가 되지 않았으면 하니까. 파르코는 어쩐지 그런 생각을 병사에게 거리낌 없이 털어놨다. 병사는 그 까닭을 물었지만 파르코의 태도를 보고 금방 정답을 알 수 있었다. 그 우수한 아이는 여자애라는 것. 그리고 파르코는 아마도...
          장발 사이로 드러난 얼굴. 파르코가 알리 없는 얼굴이었고 그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은 결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병사는 그 사람에게서 배운 교훈을 똑같은 방식으로 전하고 있었다.
          잠시 뒤 파르코는 그 병사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과 마주쳤다. 수용구 출입구로 이어지는 큰 길이었다. 라이너는 너무나 밝은 얼굴로 달려오는 파르코를 보고 당황했다. 파르코는 본부 쪽으로 가고 있었다. 라이너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두고 온 물건이 있어 본부로 간다고 했다. 그리곤 이러고 있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다시 밝아진 얼굴로 출입구를 향해 뛰어갔다. 편지봉투가 들려있었다. 라이너는 문을 알 수 없었다.
          * 레벨리오의 마레군 본부 앞에는 헤로스 이란 동이 있었다. 거인을 쓰러뜨린 마레인 웅의 동이다. 한 남자가 일가를 이끌고 그 동 곁을 지나왔다. 그 뒤로 본부는 습격을 당한 것처럼 술렁거렸다. 때마침 전사대 대장 [[테오 마가트]]가 복귀했다. 부관이 요인의 방문 소식을 전했다. "전추의 거인". 타이버 일가의 방문이었다.
  • 트로피코 4/칙령 . . . . 43회 일치
         === 진 대표자 매수 ===
         === 무 주거 ===
         >모든 인민에게 무 주거와 무 공산주의를 제공하자!
         모든 주거 건물의 집세를 0으로 고정한다. 공산주의자의 존경심이 승하지만 자본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트로피코의 역사를 기리는 국경일을 제정한다. 불꽃놀이는 덤.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승한다. 매년 시민 일부가 국수주의자나 충성파가 된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세금 일부를 시민들에게 환급해 시민 모두의 존경심을 3년간 승시킨다. 유효기간 내에 사용하더라도 효과과 중첩되지는 않는다.
         일일 식량 공급량을 2배로 늘린다. 시민 모두의 식품 만족도가 크게 향되지만 식품 소비량도 2배로 늘어난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 $500, 대의 수에 따라 추가적인 월간 비용 소모
         퇴직자와 학생에게 평균 임금의 2/3을 지원한다. 모든 진의 존경심을 승시킨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국제 구호 단체를 받아들인다. 구호 단체는 원조 캠프를 치고 5년간 무 의료와 무 식량을 나누어준다. 외국인 따위의 도움을 받는 것이므로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우방국의 신형 핵무기를 트로피코 해에서 실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대가로 $10,000를 받지만 환경주의자의 존경심이 원히 하락한다.
         === 사 주입 ===
         대통령 각하의 참된 사을 책으로 펴서 가르친다. 모든 무학력자의 존경심이 3년간 유지되며 최대 10명의 시민이 충성파가 된다. 지식인 진의 존경심은 3년간 하락한다.
         === 사 교육 ===
          * 운되는 공항, 외교부 장관 필요
          * 운되는 공항, 외교부 장관 필요
         교황 성하를 트로피코로 초청한다. 모든 진, 특히 종교인의 존경심이 승한다. 빗발치는 고해성사로 인해 모든 종교 건물의 서비스 질이 3년간 향된다.
         공장에 오염물질 억제장치를 설치한다. 공장 유지비가 40% 승하지만 공장으로 인한 공해가 줄어든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모든 건설 비용이 20% 승하지만 건설 비용의 10%가 스위스 계좌로 송금된다. 지식인들의 존경심이 낮아진다.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3년간 관광평가와 오락이 승한다.
  • 김지훈 (영화감독) . . . . 42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 직업 = [[화 감독]], [[화 각본|각본가]]
         | 학력 = [[한양대학교]] 연극화학과 졸업
         | 웹사이트 =
         | 수 = 제5회 [[맥스무비]] <br> 최고의 최고의 감독
         '''김지훈'''([[1971년]] [[7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화 감독]]이자 [[화 각본|각본가]]이다.
         1998년 단편화 《온실》로 제2회 [[세계 필름 페스티벌]]에 초청되었으며, 제46회 [[독립화제]]에서 우수작품을 수했다. 이후 《[[목포는 항구다]]》, 《[[화려한 휴가]]》를 제작하였다. [[5.18]]을 다룬 《[[화려한 휴가]]》는 [[전라도]] 사투리 연구에 많은 공을 들였고 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0227432 김지훈 감독 "대구출신이라 3년 간 전라도 사투리 연구"] 세계일보. 2007년 05월 17일</ref> [[2011년]] [[8월]] 개봉한 한국 최초 3D 블록버스터인 《[[7광구]]》를 제작하였다. <ref>{{뉴스 인용|제목 = 김지훈: 화정보-씨네21|url =http://www.cine21.com/Movies/Mov_Person/person_info.php?id=6724|출판사 = 씨네21|확인날짜=2011-05-19}}</ref>
         * [[한양대학교]] 연극화과
         * 《[[7광구 (화)|7광구]]》 - 연출 (2011년)
         * 《[[타워 (화)|타워]]》 - 연출 (2012년)
         * 《[[코리아 (화)|코리아]]》 - 제작 (2012년)
         == 수 ==
         * 2004년 유바리국제판타스틱화제 대
         * 2007년 제3회 프리미어 라이징 스타 어워즈 감독
         * 2007년 제1회 대한민국화연기대 감독
         * 2007년 제27회 한국화평론가협의회 최우수예술가
         * 2008년 제5회 [[맥스무비 최고의 ]] 최고의 감독 《[[화려한 휴가]]》
         * 2013년 제22회 금계백화화제 최우수외국감독
         {{맥스무비 최고의 최고의 감독}}
  • 로힝야 . . . . 42회 일치
         로힝야는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주에 80만명 가량이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방글라데시의 난민촌에는 20만명 이이 거주하고 있다. 로힝야의 언어는 방글라데시 남부지방의 [[방언]]과 유사하다. [[미안먀]]에서는 [[불교]]가 다수 [[종교]]를 차지하고 있으나, 로힝야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이들이 국 통치 이후 미얀마에 이주하게 된 방글라데시 인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을 방글라데시 불법이민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얀마 정부는 '벵갈리'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를 차별하는 배경에는 [[종교]]가 있는데, 미얀마 [[불교]] 신도들의 '반 이슬람' 감정이 강하기 때문이다.
         2012년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로힝야 문제에 대하여 해법을 제시하였는데, “유엔난민기구(UNHCR)가 운하는 난민캠프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만약에 이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로 보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으로 사실 '추방' 선언이었다. 미얀마 정부는 여성이 한 번 출산하면 아이를 3년 동안 갖지 못하며, 무슬림과 불교도의 결혼을 제한하는 법률을 발표했다. 이 법률은 로힝야를 겨냥한 것이라는 논란이 있다.
         2014년 미얀마 정부는 "라카인 행동계획"이라는 정책을 제시했는데, 로힝야 주민이 미얀마가 국으로부터 독립한 1948년 이전부터 미얀마에서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스스로를 '벵갈리'라고 등록하면 시민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힝야 가운데 당수는 1948년 이전부터 거주했음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사실 추방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로힝야는 같은 이슬람 국가이며, 소득 수준이 높은 [[말레이시아]]를 목표로 하여 [[보트피플]]이 되기도 한다. 이들은 말레이시아로 가기 위하여 [[브로커]]에게 의존하는데, 브로커는 로힝야, 말레이시아인, 타이인이 뒤섞인 다국적 인신매매 조직인 경우가 당수이다.
         유엔난민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신매매범은 로힝야나 방글라데시인을 대로 1인당 90~370달러의 적은 돈을 받고 밀입국선에 태워준 다음, 배가 타이에 륙하면 본색을 드러내서 타이-말레이시아 국경에 있는 타이 남부의 밀림 캠프에 가둬버리고, 가족에게 연락하여 몸값을 1인당 200달러까지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난민들은 몸값을 낼 때까지 밀림 캠프에 감금당하는데, 병사하거나 구타를 당해 사망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들이 기원에 대해서는 미얀마 정부 측과 로힝야 측의 주장이 다르다. 미얀마 정부 측은 [[국]]이 1824년 미얀마를 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로서 식민통치를 시작한 뒤, 똑같이 국의 식민통치 지역이었던 방글라데시에서이 이주해왔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오는 불법이민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방글라데시 사람이라는 뜻에서 '벵갈리'로 부른다.
         반면 로힝야 측에서는 자신들이 7세기 라카인주에 정착한 [[아랍]] 계통 [[무슬림]] 인들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얀마 독립전쟁에서 로힝야 족은 국에 동조하였다고 하며, 이 점도 로힝야가 박해 받는 이유가 되었다.[[http://www.sedaily.com/NewsView/1OAPA6MELX/ (참조)]]
         1982년에는 시민권법이 개정되어, 로힝야는 미얀마 국적도 박탈되었다. 1982년 시민권법은 미얀마 국민을 ‘태생시민’(Citizen), ‘제휴시민’(Associate Citizen), ‘귀화시민’(Naturalized Citizen)으로 분류하는데, 태생시민은 미얀마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종족과, 미얀마-국 1차 전쟁이 있었던 1824년 이전부터 현재의 미얀마 토에 거주했던 조을 둔 주민에게 부여된다. 미얀마 정부는 130개 이의 소수민족을 인정하고 있으나, 공식 종족으로 포함되지 않아 시민권을 얻을 수 없는 태가 되었다.
         2011년 미얀마가 [[민주화]]되기 시작하였으나, 로힝야에 대한 박해는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미얀마의 다수 종교인 불교 승려들이 로힝야에 대해서 극단주의 주장을 펼치며 배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라카인주에서 불교도인 라카인족과 로힝야족 사이에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2012년에는 라카인주에서 불교도 라카인족과 로힝야족이 충돌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로힝야 남성이 라카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 탓에 촉발되어 200명 이이 숨졌으며, 희생자는 대부분 로힝야였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보고서를 출판하여 이 사건을 비판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와 군부, 불교 승려들이 라카인족이 로힝야를 살해하도록 선동하고 방조하는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라카인 폭동 이후 로힝야족은 10만명 이이 별도의 캠프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다른 마을을 방문할 때는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라카인 주 당국은 로힝야 인구 증가를 막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2명 이 낳지 못하게 하는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2013년 3월 20일, 미얀마 중부 메이크틸라 지역에서 무슬림 금은방 주인과 불교도 손님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져서, 폭동으로 번지게 되었다. [[승려]]들이 선도하여 무기를 든 불교도들이 무슬림을 공격하였고, 무슬림을 산 채로 불길에 밀어넣기도 했다. 2007년에는 평화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한 바 있는 군경은 이번에는 사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이 반 무슬림 폭동은 사흘 동안 이어졌다.
         2016년 12월 19일, 이 문제에 대한 아웅산 수치의 주변국 외무장관과의 회담과 더불어, 미얀마 정부는 국 언론을 통하여 작전의 내용을 세하게 알리는 한편 작전 지역을 공개하고 교도통신, EPA 등 외신도 불렀다.
         하라카 알-야킨이 인터넷에 올린 동에 등장하는 지도자는, 파키스탄 카라치의 로힝야족 이주자 집단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이주한 '아타 울라'라고 분석되었다. 이 단체는 로힝야 남성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에서 활약시켜 게릴라전 경험을 쌓게 했고, 이렇게 20여명 내외의 '교관'이 2년 이 수백 명에게 무기 사용법과 사제폭탄 제조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국제위기그룹의 보고서는 로힝야 무장단체가 국제무장세력과 연관이 있으나, 미얀마 내 불교도를 공격대으로 삼는 것보다는 차별을 끝내고 시민권을 확보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종교적 주장을 펼치는 단체이고 국제 지하드 조직과 연결이 있어 언제나 목표가 바뀔 수 있으며, 미얀마 정부가 군사작전에만 치중하지 말고 로힝야의 고통을 외면하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노벨평화]] 수자이며, 사실 미얀마의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 겸 외교장관에 대해서 비판이 쏟아졌다. 2016년 무장공격과 이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보복에 대해서, 미얀마 민주화의 징이던 그녀가 군사작전이 시작되고 6주가 지나도록 언론을 피하고 "법치에 근거하여 군사작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원론적인 해명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에서 아웅산 수치는 집중 포화를 맞게 되었다. 수치는 로힝야를 '벵갈리'라고 부르며 이방인 취급을 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에 응하여 2016년 12월 19일, 아웅산 수치는 [[아세안]] 회원국 외무장관을 미얀마 양곤으로 초청하여, 미얀마군 무장세력 토벌작전과 로힝야의 황을 설명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협력을 요청했다.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어서 수치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국 외무장관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 인도네시아 레노 메르수디 외무장관 : 진솔한 의견교환이 있었다. 미얀마가 아세안 회원국에게 정기적으로 황을 알리고, 로힝야에게 인도주의적 지원도 하기로 했다.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42회 일치
         2012년 12월 21일에 일어날 세계 멸망까지 얼마 남지 않은 황. 정확히는 게임이 시작할 때 날짜가 10월 31일이다.
         과거부터 존재했던 비밀조직. 템플기사단과는 천년 전 부터 치고박는 사이였으나 지금은 템플기사단에게 확연히 밀리는 황. 그 황에서도 애니머스를 빼내거나 앱스테르고에 잡힌 피실험자를 구출하기는 했다. 세계를 멸망시킬 대규모 태양열 폭풍을 막기 위해 먼저 온 자들의 유적에 도착.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해 데스몬드 조의 기억을 탐색한다.
          일단은 이 게임의 현대 파트 주인공. 암살단인 아퀼루스, 알타이르 이븐 라 아하드, 에치오 아우디토레의 후손이다. 암살단의 후예가 그렇듯이 암살단원으로 길러졌지만, 십대 때 암살단에서 탈출했다. 그러다가 26세 때 템플기사단에 납치, 조의 기억 셔틀이 되었었다. 이후 템플기사단의 본거지인 앱스테르고에서 구출되어 암살단의 일원이 된다.
          암살단원. 데스몬드가 속한 팀에서 분석 및 연구를 맡고있다. 10대 때 앱스테르고사에 대해 조사하다가 템플기사단의 타겟이 되었고, 이후 암살단에 입되었다. 설정 애니머스 데이터베이스의 내용은 얘가 입력해주는거다. 그 외에 전 세계의 암살단원들에게 전술적 지원과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암살단원. 암살단원의 후예는 아니지만 뛰어난 기술력 때문에 암살단에 입되었다. 헤이스팅스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있다. 매우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성격.
         과거부터 존재했던 비밀조직. 암살단과는 천년 전 부터 치고박는 사이였다. 현재는 "앱스테르고 산업"이라는 대기업을 내세우고있다. 조의 기억을 체험하게 하는 기계인 애니머스를 개발, 암살단의 후예들을 납치해 기억을 탐색했다.
          러시아 암살단원 니콜라이 오렐로프의 후예. 어린 나이에 앱스테르고에게 납치되어 워렌 비딕의 연구 대이 되었었다. 비딕은 크로스에게 "암살단의 지도자인 "멘토"를 찾아 제거하라는 내용을 주입했고, 결국 크로스는 "스승"을 제거, 암살단를 거의 박살내버렸다.
          시퀀스1 부터 시퀀스3 까지의 주인공. 데스몬드 마일즈의 조. 국인 템플기사단원. 먼저 온 자들의 비밀공간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입수한 후 비밀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아메리카]]로 보내진다. 이후 아메리카 현지에서 먼저 온 자들의 유적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한다.
          시퀀스4 부터 시퀀스12 까지의 주인공. 데스몬드 마일즈의 조. 헤이덤 켄웨이와 카니에티오의 아들. 국인들에 의해 어머니인 카니에티오를 잃었다. 유노가 보여준 계시대로 아킬레스에게 가 훈련을 받고 암살단원이 된다.
         === 국인 ===
          [[런던]]의 [[인]]. 템플기사단원으로 헤이덤의 관이다. 헤이덤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켄웨이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며, 헤이덤이 어렸을 때 그의 교육을 담당했다. 유물을 입수한 헤이덤을 아메리카로 보낸다.
          국 장교. 인에게서 보호비를 뜯고, 도둑질도 좀 해보고, 훔친 물건도 팔아보고, 원주민을 붙잡아서 노예로 팔아치우기도 하는 양반. 개인적인 조수로 "절단마"[* 무언가를 자르기 좋아해서 붙은 별명. 주로 인간의 신체를 자르는걸 좋아했다.]를 데리고 있다. 보호비를 뜯어내기 위해 처치를 납치했다. 이후 모호크의 협조가 필요했던 헤이덤 일당에게 붙잡아 두었던 노예들을 모두 털리고 처치의 손에 죽는다.
          국군 장군. [[불독]]이라는 별명이 있다. 핏케언과 찰스 리의 관으로 첫 등장 당시 핏케언을 갈구고 있었다. 템플기사단원이었지만 헤이덤이 핏케언을 데려가는걸 거부, 암살검으로 위협 당하고 나서야 핏케언을 데려가게 해줬다.
          미국 독립 전쟁 당시 대륙군 지휘관이자 초대 미국 대통령. 주인공의 조력을 받아 국에 대항하는 입장이지만, DLC '워싱턴 왕의 폭정'에서는 에덴의 조각의 힘으로 원래 역사와는 달리 '왕'으로 등극해 폭정을 저지른다. 해당 DLC의 최종 보스.
          스코틀랜드 출신 인. 프랑스-인디언 전쟁에 참전했다. 브래독의 원정을 앞두고 조지 워싱턴과 대화를 나눈다.
          보스턴의 변호사. 미국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인물 중 하나다. 아킬레스와는 아는 사이인 듯. 코너에게 여론을 조작해 악명을 숨기는 방법을 알려준다.
          선대 소속 포수들. 둘은 형제 관계로 데이비드가 형이고 리처드가 동생이다. 폴크너에 의해 아퀼라의 포수로 고용된다.
          암살단 선박인 아퀼라의 선장. 아퀼라가 버려지자 술에 찌들어서 살고 있었다. 이후 아킬레스와 코너가 아퀼라를 수리하자 다시 선장으로 활동한다. 비들과는 전부터 알던 사이지만 별로 좋은 사이는 아닌 듯.
          버지니아 출신 사냥꾼 겸 측량사. 보스턴에서 국군의 악행을 보고는 애국자를 지지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전부 왕당파 지지자라고. 보스턴 남부에서 강제 징집 당한 사람들을 구조하면 입된다.
          국 군인. [[보스턴]]에 도착한 헤이덤을 항구에서 마중나왔다. 헤이덤의 계획만 믿고 군대 관인 브래독에게 소똥(아마)를 던지는 충성스러운 부하. 시퀀스3 마지막에 템플 기사단에 입단한다.
  • 원피스/844화 . . . . 42회 일치
         [[원피스]] 844화. '''루피 vs 디'''
          * 디는 폭언을 날리며 몽키 D. 루피를 공격한다.
          * 루피는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서도 물러서지도 디를 공격하지도 않는다.
          * 나미는 디를 말려보려고 하지만 루피가 이것은 결투라고 말하며 거절하고 디는 기어이 루피를 때려눕힌다.
          * 나미는 디의 따귀를 때리며 작별인사와 "쓸데없는 짓"에 대한 사과를 남긴다.
          * 루피는 동료들을 휘말리지 않게 하려는 디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 "아무리 날 때려도 아픈건 너 자신"이라 소리친다.
          * 루피는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릴 것이고 자기 요리사는 디이니 그가 만든 밥 외엔 먹을 수 없다며, 디가 없이는 해적왕도 될 수 없다고 소리친다.
          * 디는 그의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 오랜만의 재회에도 뜻밖의 폭언과 폭행으로 나오는 디. 몽키 D. 루피는 동료의 돌변에 문을 몰라한다. 하지만 디는 태연한 태도로 "날 정말로 생각한다면 왜 맞이하러 왔냐"고 폭언을 내뱉는다. 그는 세한 밀집모자 해적단 보다 빅맘 해적단이 훨씬 믿을만하고 루피가 해적왕이 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나미는 무슨 장난이냐고 말하다가 진지한 디의 표정에 말문이 막힌다. 루피는 그렇다면 "지금까지 날 속여온 거냐"고 묻는데 디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니 "체감"시켜 준다며 디아블잠브의 자세를 취한다.
          * 디는 망설임도 없이 루피를 걷어찬다. 안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루피는 멀리 날아간다. 당한 거리를 날아가다가 가까스로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 하지만 앞니가 빠졌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라 타격이 적지 않다. 디는 싸울 자세를 취하거나 돌아가라고 하지만 루피는 모두 거절한다. 그러자 디는 언제나 고집불통이었다고 다시 공격하는데 루피는 피하지도 방어하지도 않고 때리는대로 맞고만 있다.
          * 나미는 디를 설득해서 싸움을 말리려고 하지만 루피는 단호하게 막으며 이것은 결투라고 선언한다. 디는 자기 시야 밖으로 사라지라고 몇 번이나 공격을 거듭하지만 아무리 때려도 루피의 승낙을 받을 수 없다. 얻어맞기만 하는 루피를 볼 수가 없어서 나미는 이제 돌아가겠으니 그만두라고 하지만 루피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때리기만 하는 이한 결투가 계속되고 처음 발라티에에서 만났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 높이 솟아올라 내리찍는 발기술 "콩갓세". 루피의 정수리에 정확히 내리꽂힌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다시 일어섰던 루피도 정신을 잃고 무너진다. 결투는 디의 승리로 끝나고 제르마의 병사들은 그가 보여준 디아블 잠브의 불꽃과 화려한 기술, 강력함에 혀를 내두른다.
          * 나미는 어느새 디에게 다가와 돌아서는 그를 불러세운다. 그리고 디의 뺨을 때리며 작별인사를 한다. 또 "쓸데없는 짓"을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남긴다. 욘디는 나미를 매서운 여자라 부르며 눈을 떼지 못하고 빈스모크 저지는 "겨우 쓸데없는 인연을 정리했다"고 빈정거린다.
          * 디가 고양이 마차에 오르자 빈스모크 일가는 다시 홀 케이크 성을 향해 출발한다. 그때 완전히 쓰러진 것만 같았던 루피가 일어선다. 루피는 디가 했던 말은 거짓말일 뿐이라고 외치며 이딴 걸로 자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외친다.
          * 그의 말대로 디는 눈물을 삼키고 있다. 나미는 어쨌든 디는 그들을 버린 거라고 말하지만 루피는 듣지 않는다. 레이쥬는 디에게 잠시 멈출지 묻는데 디는 그냥 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올 블루"에 대해 처음으로 얘기를 나눴던 그때를 떠올리는데.
          * 루피는 계속 여기서 기다릴 것이고 디가 돌아오지 않으면 굶어죽겠다고 선언한다. 자기 배의 요리사는 디이므로 그가 해준 요리만 먹겠다고 외친다.
          * 디는 형제들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있지만 항 요리를 무시 당하고 괴롭힘 당하던 과거를 떠올린다. 지금도 형제들은 이 일을 재미있는 구경거리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
         || 반드시 돌아와 디! 네가 없으면
         베라미와 처음 만났을 때가 연되는 에피소드. 그때도 비슷하게 루피가 맞기만 했지만 이유는 전혀 달랐다. 디가 일부러 일행을 떨어뜨려 놓기 위해 마음에 없는 짓을 한다는걸 알고 묵묵히 맞기만 했던 것. 간만에 심지가 굳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바로 전 에피소드에서 희대의 바보짓을 했지만--
         게다가 우솝 때는 각자 의견이 달라서 반목했던 것인데 지금 경우는 루피가 디에게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는걸 짐작하고 있으므로 그때처럼 치고받게 되는 황이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 원피스/876화 . . . . 42회 일치
          * 사악한 푸딩은 [[디]]를 증오해 저주하고 매도하지만 선한 푸딩은 디에게 [[메가 데레]]하는 태. 어느 쪽이든 정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 시폰이 대신 "빅맘을 멈출 웨딩 케이크를 만든다"는 작전을 설명하고 과자 만들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디의 도움을 구하고자 한다. 물론 디는 수락.
          * 쇼콜라 타운으로 향하던 디, 시폰, 푸딩은 써니호 곁을 지나다 [[브룩]]과 [[쵸파]]가 빅맘 해적단의 대군을 대로 분전 중인걸 발견한다.
          * 디는 그들이 잘 버텨줄 것과 루피 일행이 제때에 도착할 걸 믿으며 자신은 빨리 쇼콜라 타운에 도달해 빅맘을 기절시킬 최고의 케이크를 만들겠다 다짐한다.
          * "제우스 브리즈 템포"가 유혹의 숲 한복판을 꿰뚫었다. 추격에 열을 올리던 빅맘 해적단이 한 순간에 증발. [[밀집모자 일당]]은 간발 차이로 폭뢰의 향권에서 벗어나 무사했다. [[몽키 D. 루피]]와 그 일행은 도망치던 것도 잊고 폭뢰가 만든 거대한 구멍을 바라봤다. 누구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술을 시전한 [[나미(원피스)|나미]] 조차 통적으로 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라고 경악에 경악을 거듭했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추격대가 전멸했을 거라는 추측을 내놨다. 그렇다면 관건은 빅맘 [[샬롯 링링]]. 그녀의 생사였다. 분명 그녀는 폭심지 한 가운데 있었다. 직격.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저 시커먼 구멍에 삼켜진 건 분명하다. 과연 그녀는 그 충격을 견뎌낸 걸까?
          * 잠깐 고개를 들었던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치 고동소리 같은 어떤 소음이 들렸다. [[징베]]에게 익숙한 소리였다. 빅맘의 발소리. 그녀가 살아있다. 거기에 뒤따르듯 웨딩 케이크를 부르짖는 목소리도 들렸다. 루피는 곧 빅맘이 땅 위로 올라올 줄 알았지만 소리는 아주 깊은 곳에 정체돼 있었다. 너무 높아서 올라오지 못하는 걸까? 징베는 그럴 가능성은 정하지도 않았다.
          다시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한 일행 위로 또 불쾌한 손님이 나타났다. 마법의 양탄자 "라비앙"을 탄 [[샬롯 푸딩]]이었다. 옆에 [[샬롯 시폰]]도 있었지만 루피의 눈에 들어온 건 푸딩이었다. 그들을 속이고 [[디]]를 죽일 뻔한 여자. 진작부터 그녀를 의심했던 페드로는 "역시 그때 묶어놨어야 했다"고 으르렁거렸다. 루피가 이제와서 싸우러 온 거냐고 날을 세우자 푸딩이 그런 용건이 아니라며 이야기부터 들어보라 말했다. 하지만 푸딩은 그 용건을 꺼낼 수가 없었다. [[디]]가 하트를 날려대며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귀여운 그대가 처입지 않아서!
          달리는 동안 자길 죽이려 한 여자라는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푸딩의 태도 비슷비슷했다. 디와 눈이 마주치자 세 개의 눈이 하트를 띄우며 혼절할 지경이었다. 그때 빅맘이 완전히 땅 위로 올아오지 않고 시폰이 옆에서 채근하지 않았더라면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을 챙긴 푸딩이 위급한 사실을 알렸다. 아주 사악한 얼굴로.
          * 역시 푸딩은 배신자일까? 시폰이 그게 아니지 않냐고 호통을 치자 이번엔 또 다시 착한 얼굴로 돌아와서 "나도 참 무슨 소리야"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시폰은 할 수 없이 직접 황을 설명했다. 빅맘은 밀집모자 일당이 웨딩 케이크를 훔쳐갔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일행을 좇을 것이다. 결국 써니호까지 가더라도 이 도주극이 끝나지 않는다는 이야기. 루피 일행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잠깐 잠잠했던 푸딩이 다시 사악한 얼굴을 내밀고 디에게 자기 쪽으로 오라고 유혹했다. 동료들이 마마에게 죽는 지옥을 맛보라면서. 시폰이 또 호통쳤다. 그러면 또 착한 얼굴로 돌아와 몸둘바를 모르는 푸딩. 재미없는 만담 같은 황이 되풀이된다. 대체 푸딩의 진짜 속내는 뭘까?
          어지간해서는 장단 맞춰주는 루피 조차 짜증이 났다. 그딴 소릴 할 거라면 빨리 사라지라고 항의하자 시폰이 다급하게 황 수습에 들어갔다. 지금은 도망치는 것 보다 빅맘을 멈추는게 먼저다. 그녀는 디에게 과자 만드는 솜씨도 뛰어나다고 들었다 말한다. 디는 어떤 요리에 관한 거든 일류라고 자신했다. 시폰이 듣고 싶은 대답이었다.
          * 옆에서 자꾸 돌변하는 푸딩만 없었으면 더 간단한 황이었다. 이번에도 사악한 쪽이 말썽이다. 결과는 시폰이 말한대로 될지 모르지만, 자신은 그녀와 다르다는 얘기였다. 밀집모자 일행을 위한게 아니었다.
          >일부러 마마를 막으러 온 게 아니니까!! 디...... 씨♡
          사악한 얼굴에 묘한 홍조를 띄운 푸딩. 이제 황이 단순해졌다. 둔감한 루피는 물론 [[캐럿(원피스)|캐럿]]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 동요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디가 시폰에게 작업장소를 물었다. 시폰은 쇼콜라 타운을 골랐다. 거기에 모든 재료가 있었다. 완성된 케이크는 배로 옮길 생각이었다. 루피 일행은 빅맘을 바다까지 유인해야 한다. 그녀가 바다 한 가운데서 고립될 수 있도록. 바다에는 빅맘 해적단의 해병력도 대기하고 있어서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그들이라면 버티리라고 시폰은 믿었다. 이걸로 작전 브리핑은 끝. 작전 개시다. 디도 라비앙으로 옮겨가려. 같이 쇼콜라 타운으로 가야하니까. 그런데 푸딩이 거기서 당황해버렸다. 손사레까지 쳐가며 거절하는 푸딩. 그때 후방에서 빅맘이 "위국"을 쓰기 위해 나폴레옹을 치켜들고 있었다. 일행은 그 공격을 피하면서 둘로 갈라졌다. 쇼콜라 타운으로 향하는 디, 시폰, 푸딩 일행과 써니호로 향하는 나머지 일행. 디와 루피는 바다 위에서 다시 만날 걸 기획하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빅맘은 그 정신에도 볼 건 제대로 봤다다. 시폰, 푸딩이 밀집모자 일행과 접촉하는 것걸 봤고, 그녀들이 있는 방향으로 위국을 날린 걸 보면 어떻게 간주했을지 뻔하다. 디가 끄트머리에 매달린 채 라비앙이 승했다. 위국의 충격파가 그 뒤를 스쳤다. 한참 멀리까지 날아간 위국이 또 유혹의 숲의 지형을 바꿨다. 시폰은 그 광경을 보며 루피 일행이 괜찮을지 걱정했다. 그리고 푸딩은 곧바로 그들이 괜찮지 않은 걸 발견했다. 진로가 틀렸다. 그녀는 라비앙에게 다시 하강하게 했다. 일행으로부터 해안까지 곧바로 날라고 지시했다.
          푸딩은 다시 일행 곁으로 가서 그 방향은 벽 방향이라고 알려줬다. 일행은 똑바로 달린다고 생각했지만 유혹의 숲이 수작을 부렸던 것이다. 푸딩은 해안 방향을 향해 날며 유혹의 숲 호미즈들을 향해 열매의 능력을 발휘했다. "메모리즈 필 플래쉬 백". 푸딩이 쓸고 지나간 나무들이 이한 행동을 시작했다. 눈 앞의 황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마치 딴 일을 하던 사람들 처럼 스스로 흩어져 버린 것이다. 각자 시장을 보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러. 푸딩은 호미즈에 깃든 "혼의 기억"을 되살렸다. 주마등처럼 기억이 되살아난 동안에는 빅맘의 지배력도 미치지 못한다. 그녀는 지금이라면 숲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고 정말로 숲이 좌우로 갈라지며 해안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디가 고맙다고 말하자 푸딩은 이제야 그가 탄 걸 깨달았는지 허둥지둥대며 츤츤거렸다.
          * 짧은 러브 코미디가 펼쳐지는 양탄자가 해안가에 이르러 승했다. 그들은 써니호를 스쳐지나갔는데 디는 거기서 [[브룩]]과 [[쵸파]]가 적과 싸우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샬롯 카타쿠리]]와 [[샬롯 페로스페로]]의 모습도.
          * 태가 회복된 "프로메테우스"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제우스"를 닥달하고 있었다. 어째서 자기들까지 말려들게 했냐고 꾸짖자 제우스는 자기 뜻이 아니었다고 시무룩해했다. 조금은 반성하는 것 같더니만 금방 "그 구름 알 맛있었다"고 군침을 흘리는 걸 보니 전혀 정신을 못차렸다. 하긴 그 주인도 웨딩 케이크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판이었다.
          * 브룩과 쵸파를 지나서 쇼콜라 타운으로 향하는 디 일행. 푸딩은 정말 괜찮은 거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다. 디는 조금 초연해진 자세로 그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강한 신뢰를 보였다. 그보다 한 시라도 빨리 쇼콜라 타운으로 가야했다. 그에겐 최고로 중요한 임무가 있었으니까.
  • 윤길현 . . . . 42회 일치
          * 위 문서: [[야구 관련 인물(KBO)]], [[롯데 자이언츠/선수단]], '''[[먹튀/야구]]''', [[금지어/야구]], '''[[돈 내놔라 먹튀야]]'''
         그러나 현재 롯데팬들에게는 [[강수]], [[임경완]]을 능가하는 '''[[방화범]] & 금지어'''[* 말이 이 정도지 강수와 임경완의 경우에는 한 때 잘했던 적이 있었고(강수의 경우에는 계투로 가서 불지르기 이전에 선발로서는 당히 괜찮았으며, 임경완은 롯데 시절 '''홀드왕''' 타이틀까지 챙긴 중~급 불펜자원이었다), 이 둘은 부산 출신 프랜차이즈인데다가 내부육성으로 나온 자원이라 그나마 애증의 대이었다. 그러나 이 분은 38억이라는 거액을 받고 FA로 이적했는데다가 계약기간 4년 중 이미 2년을 날려먹었고 무엇보다도 저들과는 다르게 야구 외에도 후술할 족발 게이트 사건으로 팬과의 마찰을 빚어 더더욱 팬들에게 이미지가 좋지 않다. 거기다 부산 출신이었으면 순혈을 강조하는 일부 --순혈충--팬들에게 약간의 쉴드라도 받았겠지만, 그것도 아니라 쉴드 여론이 전무하다.]
         우완 정통파 투수로, 구위와 제구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낸다. 날카로운 각의 슬라이더와 최고 151km까지 나오는 묵직한 구위의 직구를 가지고 있다.[* 전 SK 전력 분석팀장이었던 [[김정준]]은 그를 좋은 슬라이더 하나로 리그 최고의 불펜투수가 된 투수라고 칭했다.] 의외로 많은 경기수를 나온 불펜이기도 하다. 300경기 이 나온 몇 안되는 투수 중 한 명이고, 롯데로 떠나기 전까지 SK 와이번스의 현역 선수 중 그보다 출전경기수가 많은 선수는 [[정우람]] 한 명밖에 없었다.
         대구본리초등학교 시절 야구를 시작해 [[대구중학교|대구중]]를 거쳐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145km/h대 강속구를 주무기로 대구-경북 지역 내 최고의 투수 유망주로 떠올랐고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유력한 1차 지명 후보로 떠오르게 되지만, 3학년 때인 2001년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의 [[권혁]]이 좌완임에도 불구하고 150km/h의 강속구를 뿌려대는 등 급부하자 삼성 스카우트진은 권혁을 1차 지명하게 되고,[* 권혁은 왼손잡이인데다가 빠른 구속에 187cm이라는 큰 키로 당시 [[김응용]] 삼성 감독이 좋아하던 스타일인 '''덩치 큰 왼손잡이'''에 딱 맞는 스타일이라 지명했다는 말이 있다.] 윤길현은 당시 신생팀이었던 [[SK 와이번스]]의 2차 지명 중 신생팀 특혜로 3명을 우선지명하는 조건으로 SK의 지명을 받게 된다. 물론 이때는 에이스.
         2004년까지 유망주에 머물다가 2005년에 주전으로 발돋움, 그 이후 2009년 시즌 후 입대할 때까지 SK의 주전 불펜 투수로 뛰었다. 2006년에는 [[김원형]]의 부진, [[신승현]]의 부으로 구멍이 난 SK 선발진을 구원해 선발로 뛰어 140⅔ 이닝을 던지며 규정 이닝을 넘겼다.
         2009년 부에 시달렸지만, 후반기에는 SK가 총체적 난국인데도 19연승을 달릴 때 올라갈 때마다 승리를 따내는 승운과 저력으로[* 4점대 중반의 평균자책인데도 '''6승 무패'''다!]'''포츈길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금도 윤길현 별명의 기본형은 길자.
         2009 시즌이 끝난 후 무에 입대했으며 2011년 9월 전역해 SK 선수단에 합류했다. 당초 무에 입대했으나 [[토미 존 수술]]을 받은 뒤 무 선수단에서 제외되어 줄곧 [[국군수도병원]]에서 재활에 매달려 왔다(이후 SK의 좌완투수 [[김태훈(1990)|김태훈]]도 2012년 말 무에 입대했다가 비슷한 이유로 인해 다른 부대로 전출되는 일이 일어났다).
         7월 11일 넥센전에서 7회 1사 만루 황에 등판해서 볼넷으로 밀어내기 1점을 준 이후 교체당했다. ~~부으로 재활하다가 3년만에 등판하는 선수를 1사 만루에 올리는 [[이만수]] 감독~~ ~~비슷한 일은 [[나주환]]에게도~~
         FA 자격을 취득했으나 우선협 기간에 SK와 계약하지 못하고 [[정우람]], [[정호]], [[박재]]과 함께 결렬되었다. 다만 팬들의 분노가 정우람에게 집중되어 그닥 비난을 사지 않는 모습이다.
         11월 29일, 4년 총액 38억에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했다. 팬들의 평가는 갈리고 있다. 우선 대부분은 이전 FA까지 하도 거품이 심해서 이게 거품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라는 쪽이다. 반면 불펜 투수고, 나이가 적지는 않은 것을 감안하면 많이 받은 것이라는 평가도 존재하고, 최근 3년을 보면 어느 팀에 가도 필승조에서 활약할만한 성적을 냈지만 WHIP가 1.5까지 올라서 불안감도 적지않았다.~~그리고 이는 롯데에가서 폭팔하게 되는데~~ 알짜배기 입이라는 평가도 있다.~~공통적인 반응은 SK는 과연 얼마를 제시한것인가~~
         또 우타자 대로는 좋은 모습이지만[* 우타자 대 피안타율 0.248.] 좌타자 대일 때는 극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좌타자 대 피안타율 0.382.] 기본적으로 이번시즌 롯데 뒷문의 버팀목이었던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과 어떻게든 마무리 역할은 한 [[손승락]]도 좌병 우신에 속하지만 밥값을 한 이정민과 다르게 밥값을 하지 못한 손승락과 윤길현은 내년 시즌 좌타자 대를 대비하여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장착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 [[구승민]], [[최환]], [[이인복(야구선수)|이인복]]이 돌아오고, 여기에 [[윤성빈(야구선수)|윤성빈]]과 [[이승헌(1998)|이승헌]], [[조무근]], [[오현택]], [[고효준]]이 합류함에 따라 입지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 40인 보호명단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는 황이었는데, 결국 아무팀도 가져가지 않으면서 이번 시즌도 롯데에서 뛰게 되었다.
         '''일단은 작년까지의 [[반어법|뛰어난 피칭 덕분에]]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고관절, 어깨 부, 팬과의 마찰 등의 악조건--과 본인의 실수--들을 털어내고 부활한다면 좋겠지만...
         5월 3일 2군에서 평균자책점 10.38을 기록하고 있는 와중에 1군으로 콜업되었다. 구승민이 옆구리 부을 당하면서 대신 1군에 등록된 것이다. 그리고 5월 5일 어린이날에 친정 SK를 대로 0.2이닝 무실점의 깔끔한 투구를 보여주고 [[이명우]]에게 바통을 넘겼다.
         5월 20일 10회 초 2:2라는 중요한 황에 등판해 공 10개 중에 1개만 존에 넣고 내려갔다. 결국 그것 때문에 멸망했다. ~~연장이라고 셀프 승부치기 만들어주는 클라스~~
         6월 2일 한화전 9회 초 2:2 황에 등판해 3피안타 1실점, 팀은 그대로 패배했다.
         6월 21일 KT전 10회 말 5:3 황에 등판해 2아웃 2스트라이크에서 꺾이지 않는 존 한복판의 슬라이더를 던지며 오태곤에게 2점 홈런을 맞고 2연속 스윕의 기회를 날려버리면서 또 한 번의 방화를 저지른다.
         유난히 타팀팬들과의 사건이 많은 편으로, 덕분에 타팀팬들에게는 '''악동''', '''욕길현'''이라는 오명도 얻게 되었다. 후자는 보통 대이었던 [[이종범]]이 소속된 기아팬들이 많이 부른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야구팬들에게 족길현이라고 불리고 있고 기아팬들도 요즘에는 엔젤길현, 원준맘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일전의 경기에서 SK 선수들이 위협구나 빈볼을 맞는 등의 일이 있어서 극도로 신경이 곤두서있었다고는 하나, 언행 자체도 그렇고 대가 대선배였던 까닭에 '''그 언행 자체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 이후 [[공공의 적]]이었던 SK의 이미지와 더불어 폭풍처럼 까였고, 여론에 이기지 못해 윤길현 자신은 최경환, KIA 최고참 [[이종범]]에게 사과한 뒤 2군에 내려가고, 코치와 감독 [[김성근]]이 공개 사과를 하는 등 SK측에서는 유례없이 강도높은 조치를 취했다.
         2016년 7월 29일 수원 kt 원정 당시 연패중이던 팀 분위기를 무시하고 [[손승락]]과 새벽까지 나가 논게 같은 숙소에 자리잡은 팬이 보았고, 심지어 그 팬과 배달 음식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선수가 시킨 음식(족발세트)과 팬이 시킨 음식(통삼겹살과 냉면) 둘다 1층 로비에 있었는데 손승락과 윤길현이 팬의 음식을 자신의 것으로 잘못 알고 들고갔고, 팬이 이를 알리자 "알아서 환불하라", "바꾸려면 우리 방 쪽으로 오라"[* 그나마 알아들은게 이 정도지, 실제로는 통화를 여러 차례하며 꽤 얘기한 내용이 있었다고 하는데 술 취한 느낌의 경도 사투리로 계속 횡설수설해서 --사실 이 정도면 그냥 주정부린건데-- 대부분 못 알아들었다고 한다.]라는 적반하장식의 반응을 보였던 데다 이후 내려와서도[* 처음에는 팬과 그의 여자친구가 그 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 층은 9층이라 그 층의 카드가 있어야만 엘리베이터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건물 구조가 못 가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가란 말이야-- 그러자 호텔 직원에게 중재하여 그들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호텔 직원이 부르자 그제서야 나온 듯. 그리고 팬은 그게 손승락과 윤길현인 것도 직접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통화로는 그냥 경도 남자들이 술에 취해 좀 무례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것.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giants_new1&no=3703421&page=1&exception_mode=recommend|당시 썰]]에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어 신빙성이 매우 높은 썰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giants_new1&no=3703613&page=1&exception_mode=recommend|500원 듀오]]라고 부르며[* 팬이 시킨 음식은 4만 500원 짜리였고 자신들이 시킨 음식은 4만원 짜리였는데 자신들이 팬의 음식을 계산해서 500원 더냈다는 말을 팬에게 수차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500원 문제가 무의미한게 팬은 바뀐 음식을 건드리지 않고 돌려줬고 먼저 가져간 선수들은 이미 음식 포장을 다 뜯어놓고 나서 들고 와서 비닐 봉지 안에 음식국물(삼겹살과 함께 시킨 냉면)이 엉망으로 흘러나와 있었다고 한다. --500원어치만 흘렸나-- 실질적으로는 팬이 당연히 더 손해. ~~그리고 억대연봉 받는 분들이 치사하게 500원 가지고 뭐라 그러는 것부터가...~~] 매우 큰 실망을 하고 있다.
  • 의상 (신라) . . . . 42회 일치
         | 법명 = 의(義湘)
         | 그림설명 = 의대사
         | 제자 ={{개행 금지 시작}}[[오진 (남북국 시대)|오진]](悟眞){{.w}}[[지통]](智通){{.w}}[[표훈]](表訓){{.w}}[[진정 (승려)|진정]](眞定){{.w}}[[진장 (승려)|진장]](眞藏){{.w}}[[도융 (승려)|도융]](道融){{.w}}[[양원 (승려)|양원]](良圓){{.w}}[[원 (승려)|원]](相源){{.w}}[[능인 (승려)|능인]](能仁){{.w}}[[의적 (승려)|의적]](義寂) 등{{개행 금지 끝}}
         '''의'''(義湘, [[625년]] ~ [[702년]])은 고대 [[통일신라]]시대 중기의 왕족 출신, [[승려|고승]]이다.<ref name="글로벌-의">[[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통일신라와 발해/고대문화의 융성#의|한국사 > 고대사회의 발전 > 통일신라와 발해 > 고대문화의 융성 > 의]],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br/>[[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중세사회의 발전/귀족사회와 무인정권/귀족문화#의|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귀족사회와 무인정권 > 귀족문화 > 의]],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또한,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작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엄]](至嚴)으로부터 [[화엄종]](華嚴宗)을 수학하고 법통을 받아 중국 화엄종의 제3 세조가 되었다.
         또한,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시조이며, 속성은 김(金: 혹은 박(朴)씨라고 함)이다.<ref name="글로벌-의"/> 시호는 해동화엄시조원교국사(海東華嚴始祖圓敎國師)이다.
         그 후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의 혼란을 피하여 [[661년]]([[문무왕]] 1년)에 [[당나라]] 사신의 배편을 빌려 타고 건너가 [[중난산 산|종남산]](終南山) [[지사]](至相寺)에서 [[지엄]](至嚴: [[중국의 불교|중국]] [[화엄종]]의 시조)의 문하에 [[법장 (당나라)|현수]](賢首: 법장)와 같이 [[화엄]]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ref name="글로벌-의"/> [[법장 (당나라)|현수]]는 [[지엄]]의 뒤를 이어 중국 [[화엄종]]의 제3조가 되고, 의은 귀국 후 [[한국]] [[화엄종]]의 시조가 된다.
         [[당나라]]에 체류 중 그의 설법에 참석하던 여성 중 그를 사모하는 선묘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의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의이 신라로 귀국하던 날, 선묘의 집에 찾아갔지만, 선묘가 집을 비워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의의 귀국 소식을 접한 이 선묘는 자신이 죽어 그를 지켜주겠다며 황해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후에 의이 [[주 봉황산]]에 산사를 지을 때, 지역 주민들이 와서 집단으로 들고 일어서자 어느 날 사람 수백 명의 머리를 덮고도 남을 크기의 바위가 공중에 떠다니면서 주민들을 따라다녔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해산하였고, 의은 사찰을 준공하였다고 한다.
         의은 [[670년]]([[문무왕]] 10)에 귀국하여 [[관음굴]](觀音窟: [[낙산사]])에서 백일을 기도하고 [[676년]]에 왕의 뜻을 받아 [[태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교학]]을 강술하여 [[화엄종]]([[해동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다.<ref name="글로벌-의"/>
         [[692년]]([[효소왕]] 1)에 [[법장 (당나라)|현수]]는 [[승전]](勝詮)이 귀국할 때 그의 저술 《[[화엄경탐현기]]》와 그 비판을 구하는 서신을 의에게 보냈는데, 그 친필 서신이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ref name="글로벌-의"/> 의은 문하에게 이것을 나누어 강술하면서 전교(傳敎)에 전심하다 죽었다.<ref name="글로벌-의"/> 사망 당시 향년 78세였다.
         후일 [[고려]] [[고려 숙종|숙종]]은 해동화엄시조원교국사(海東華嚴始祖圓敎國師)라 시호하였다. 의의 문인으로 뛰어난 10대덕과 전교(傳敎)의 10대찰이 있었다.<ref name="글로벌-의"/>
         * 의의 귀국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즉 [[당나라]]는 [[삼국 통일]]을 원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여제(麗濟) 양국을 공취한 것에 노하여 신라 승 [[김흠순]](金欽純)을 잡아 가두었다.<ref name="글로벌-의"/> [[당 고종]](高宗)이 [[신라]]에 대거 출병코자 한 기미를 [[김흠순]] 등에게 들은 의은 급히 귀국하여 왕께 고하고 [[명랑]](明朗)이 [[문두루법회|밀단법]](密壇法)을 베풀어 화를 면했다고 한다.<ref name="글로벌-의"/>
         * [[범어사]]의 전설에 따르면, [[흥덕왕]] 때에 왜병이 내침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정산]](金井山)에 빌어서 미연에 방지하였다고 하나 근거 있는 것은 아니다.<ref name="글로벌-의"/>
         의은 많은 [[사찰]]을 창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중 [[주시|주]]의 [[부석사 (주시)|부석사]]가 유명하다. 토에 정통한 승려로서 [[신라]]와 [[고려]]에서는 국사로 추존되었으며<ref>일부 고려의 왕족과 귀족 중에는 고려는 도선의 풍수지리설 덕택에 건국, 후삼국을 재통일했다는 사고관이 있었다.</ref>, 민간 신앙에서도 무속의 신 중 한 사람으로 [[경북도]]의 일부 무당들로부터 숭배되었다.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는 의이 처음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분류:625년 태어남]][[분류:702년 죽음]][[분류:7세기 철학자]][[분류:입당승]][[분류:신라의 왕족]][[분류:신라의 작가]][[분류:불교 철학자]][[분류:무속의 신]][[분류:경주 김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이지혜(1980) . . . . 42회 일치
          * 위 문서: [[가수/한국]]
         || '''종교''' ||<(> [[개신교]][* 그 동안 연예계 대표 [[주당]]+센 언니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회심한 이후로는 그동안의 삶을 모두 청산했다고 한다. [[서지]]과의 불화 사건 탓에, "보살"이라는 별명이 있다.--[[나(프리스틴)|죄송하지만 기독굡니다!!!]]--] ||
         [[대한민국]]의 [[가수]]로 1998년 혼성그룹 [[S\#ARP]]으로 데뷔했으며, [[서지]]과의 불화로 그룹이 2002년에 해체한 후 가요계를 떠났다가 2004년 솔로로 전향했다. 불화와 관련된 내용은 [[S\#ARP]] [[문서]] 참고. [[https://youtu.be/ZLciKUxVTsU|이 때의 기자회견 ]]은 서지 역관광 으로 길이길이 보존되었다.
         2017년 7월 10일, 인스타를 통해 가을에 결혼 예정 소식을 알렸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75295|#]] 배우자는 3살 연의 세무사다.
         [[S\#ARP]]으로 데뷔 전 솔로로 데뷔하려고 했다가 [[이민(룰라)|이민]]의 추천으로 합류해[* 캐스팅된 일화가 독특한데, 당시 고등학생으로 여의도에서 1년간 연습생을 하던 이지혜가 데뷔가 자꾸 엎어지자 소속사에서 "[[트로트]]라도 해라"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 트로트는 하긴 싫고 갈등하다가 사무실에서 지나가던 [[이민(룰라)|이민]]에게 "오빠, 저 트로트는 하기 싫어요"라는 한 마디에 [[노래]]도 안 들어 보고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리드보컬이 되었다. 이 관계로 인해 몇 년 후 이민과 함께 출연한 [[음악의 신]]에서 당시 프로듀싱을 맡았던 이민을 [[농담]]으로 [[디스#s-3|디스]]했다.[* 물론 서로의 사이는 친남매처럼 매우 끈끈한 사이다. 일단 데뷔를 시켜준 인생의 은인이니까. [[음악의 신 2]], [[배성재의 텐]] 스페셜 DJ 때도 게스트로 나와 주는 등 불러주면 언제든 와 준다고 한다.] [[조수]]의 프로젝트 앨범에 단골로 보컬을 맡을 정도로 가창력은 아이돌 출신 치고는 훌륭한 편.[* 이지혜 [[본인]]은 [[http://m.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4672900&referer=|아이돌 출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편]].] 샵 시절 부른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은 샵이 해체한 후에도 [[겨울]]이면 생각나는 곡 10위권에 들었고, 그룹 시절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른 [[소찬휘]]의 'Tears'나 [[솔로]]로 전향한 후 [[도전 1000곡]]에서 부른 [[빅마마]]의 '체념'을 들어보면 깔끔한 편의 완창 실력을 보여줬다. 더 놀라운 건 [[씽씽캅]]의 오프닝곡도 불렀다고 한다.
         [[순정녀]], [[무한걸스]] 등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단골로 출연하는데, [[노홍철]]처럼 [[흑역사]]를 토크 소재로 승화시키는 등 [[대인배]] 기질을 제대로 발휘한다. [[절친노트]]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망쳤던 서지과 화해하는 내용을 촬하기도 했다.
         2011년 11월, 오랜만에 신곡 '로켓파워'를 발표하고 가수로 컴백했는데 컨셉을 바비인형/사이보그로 잡은 데다가 곡의 구조가 너무 기묘해서[* 박자가 빠른데 마디마디 뚝뚝 끊어진다.] 도저히 잘 부를 수 없는 곡이기 때문에 장점인 [[가창력]]이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2015년, 4년 만에 [[커피소년]]과 함께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614531|신곡]] '아니 그거 말고'를 발표했다. 이전의 곡이 이지혜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는 평. 첫방 당시 기교가 많다는 기사의 지적이 있었으나 나름대로 잘 소화해 냈다. 티저 에 서지의 모습과 목소리가 나온다(!). 컴백 전 팬 서비스로 서지 버전으로 따로 녹음을 했다는 후문. ~~그리고 [[소속사]]는 아직도 서지 버전의 풀 음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팬서비스라며?~~ [[뮤직비디오]]에서도 서지이 나오는데, 이는 두 사람이 완전히 화해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 자세한 내용은 [[S\#ARP]] 문서 참조.
         2016년 10월 16일, [[복면가왕]]에 [[억울하옵니다 미스춘향]]이라는 가명으로 나와 [[암행어사 출두요]]와 서현진, 유승우의 '사랑이 뭔데'라는 곡을 같이 부른 뒤 박기의 '마지막 사랑'을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참고로 이번 경연 1차전에선 본인 그룹의 노래인 '내 입술에 따뜻한 커피처럼'이 선곡되면서 다른 도전자들이 부르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자신에 대한 주요 이야깃거리인 샵 해체, 선빵언니, 불안장애보단 저 친구가 나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밝혔으며 대기실 인터뷰에서는 판정단들의 칭찬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이후 종종 판정단으로 참여했다.
         몸매가 당히 좋다. 물론 옛날부터 봐왔던 사람은 알겠지만 샵 시절에는 서지의 몸매가 더 좋았고, 이지혜의 몸매에 굴곡이 없어서 예전 사람들은 통나무라고 불릴 정도의 몸매 수준이었다. 현재는 갑선 때문에 더하지만, 과거에도 몸매가 마른 편이었다. 대적으로 더 통통해보이는 서지의 몸매가 더 글래머러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섹시함을 대놓고 내세우는 컨셉은 아니었기 때문에 서지은 살이 붙지 않는 이지혜에 대한 부러움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2006년 [[SBS]]의 프로그램 '김용만의 종합병원'에서 유방암 테스트를 받기 위해서 찍은 [[X레이]] 사진이 떠돌다가 의학의 힘을 빌린 몸매라고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로 인해 뜬금없이 기자회견을 가장한 비키니 사진 촬회(...)를 연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지혜 팬들의 반응은 '''"아니, 뭐하러 이렇게까지 오버할 필요가 있었냐?"'''라면서 무리수라고 했으니까 [[나름]]대로 [[흑역사]]나 다름없다. 사실은 사장이 시켜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시켰던 사장은 그 자리에 안왔다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9&aid=0000042355|참고 기사]].
         당시 비키니 촬에선 팔을 들고 찍은 사진이 당히 많은데, 본인의 말로는 수술을 하면 겨드랑이에 흉터가 남기 때문에 당시 의도적으로 팔을 들어 겨드랑이를 노출시켜서 증명하려 했다고 한다. 2012년도 손바닥tv 요가방송에서 이지혜는 민소매 요가복장으로 촬하였는데 겨드랑이 보이는 것을 당히 부끄러워해서 팔도 잘 들지 않았던것을 생각해보면 본인은 꽤나 울며 겨자먹기로 비키니 촬회를 했던 모양이다.
         한때 [[태연]]의 닮은 꼴이라고 홍보했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이때 한 [[기자(직업)|기자]]가 비평한 것이 꽤 직설적이어서 넷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른바 '''[[http://media.daum.net/entertain/star/newsview?newsid=20100119140207220|산천초목이 웃을 일이다]]'''.
  • 임경업 . . . . 42회 일치
         || 임경업의 정. 그런데 이 정도 그림 주인공의 일생처럼 [[명나라]]와 [[조선]]의 교집합을 보여준다.[* 전언에 따르면, 1640년 명나라 황제가 임경업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해서 명나라 화공이 조선에 와서 그려갔다고 한다. 당시는 '''임경업이 명나라와 짜고 가짜 전투를 했던 그 시기이다.''' 이 때 화공이 2장을 그려서 한 장은 명나라로 가져가고, 한 장은 조선에 남기고 갔다고 전한다, 현재의 그림은 임경업 사후 다시 그려진 것이다. 우측에 기재된 <충민공 임장군 유>이라는 표제도 그렇고, 그림체에 조선 후기의 특징과 명나라 화풍의 특징이 많이 묻어난다고 한다.][* 여담으로 [[흉배]]가 아주 특이하다. 이것은 [[인조]] 때에 공이 있다고 판단한 무신들에게 특별히 하사한 것으로, 본래 호랑이와 곰 등 동물을 주로 한 것과는 달리 구름과 방사형등 도적 이미지가 강하다.] ||
         1620년 소농보권관, 1622년 중추부첨지사를 거쳐 1624년 [[정충신]] 휘하에서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 1등이 되었다. 그 후 우림위장, 방답진 첨절제사 등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좌장으로 병력을 이끌고 [[강화도]]로 나갔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된 후였다.
         1630년 평양 중군으로 검산성과 용골성을 수축하는 한편 [[평안도]] [[철산군]] 가도에 주둔한 명나라 도독 유흥치의 군사를 감시, 그 준동을 막았다. 당시 황을 설명하면, 청군의 요동 공격을 막지 못하고, 조선으로 탈출한 [[모문룡]] 이래로 가도 주둔 명군은 섬에 틀어박혀 싸우라는 청군과는 제대로 교전도 안붙고 인근 조선 백성들을 약탈하며 분탕질 치기 바빴다. 반정으로 정통성이 취약했던 조선 조정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명의 도움을 받은 점 때문에 강경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반면 후금 - 청의 입장에서는 배후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 모문룡의 제거가 필요했다. 이는 2번에 걸친 호란의 한 배경이 되었고, 조선 입장에서도 자국 토에 주둔하여 패악질만 쳤지 정작 호란이 터졌을 땐 청군과는 전투 한번 벌이지 않고 틀어박혀 향력 확장만 노려 득될 것이 없었다. 모문룡의 뒤를 봐주던 환관 [[위충현]]이 제거되면서 모문룡도 [[원숭환]]에 의해 제거되지만, 모문룡이 이끌던 이른바 '모군(毛軍)'은 그대로 남아 진계성이 이어받았다가 이를 유흥치가 제거하고 수장이 되어있던 황이었다. 이 병력은 모문룡을 제거한 명, 뒷통수가 가렵던 청, 주변 고을이 약탈당하고 있던 조선 등 삼국 모두에게 껄끄럽던 황이었다.[* 유흥치는 모문룡과 똑같은 뻔뻔한 인물로, 무려 1만의 조선 양민들을 죽여서 청군의 목이라 위장하여 명나라 본국에 보내던 자들이었으며, 이들의 잔악한 조선 양민 학살을 '''보다 못한 청나라 군사들이 나서서 이들을 물리쳐 구해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1633년 청북 방어사 겸 변 부사로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수축했다. 이 시기에 명나라 장수 경중명과 공유덕 등 명나라의 장수들이 후금에 투항하려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임경업이 의주 부윤 윤진경과 함께 명나라 대도독에게 연락하여 합동 공격을 벌였다. 이 공로로 명나라로부터 총병 벼슬을 받았다. 그리고 이 사건은 임경업에게 큰 향을 주게 된다.
         1634년 의주 부윤으로 청북 방어사를 겸임할 때, 백마산성 수비에 자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조정에서 은 1000냥과 비단 100필을 지원받았다. 이를 자본으로 삼아, 중국 인과 밀무역을 하여 자본을 축적하고, 둔전을 유지하였으므로 공로를 인정받아 가선대부에 올랐다. 하지만 지나치게 이재를 축적하고 층부에 뇌물을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탄핵되어 파직당한다. 하지만 도원수 '''김자점'''의 적극적 요청으로 다시 가선대부가 되어, 다시 성곽 보수에 나선다.
         그 후 임경업은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군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청나라의 수도인 심양으로 역침공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 청 태종은 조선 침략에 정예 병력의 거의 대부분을 올인한 황이였으니 발 자체는 좋았지만 현실은 암울했다 우선 임경업의 군은 위에 언급됐듯이 고작 400명 밖에 안됐다. 고로 원래는 아마 명나라의 군대나 [[김자점]]의 북방군과 연계하여 적의 심장부를 역공을 가할 계획이었을 듯 한데, 김자점은 애초에 청나라군과 싸울 의지가 없었고 명나라는 국내 [[이자성|각종 도적들의 반란들]] 때문에 신경을 쓸 여력도 없었다[* 실제로 명나라는 병자호란 내내 조선에 아무런 지원 병력을 보내지 못했다. 원래는 강화도 방어를 도와주려고 수군이라도 조금 보내주려 했지만, 이 마저도 풍랑으로 무산됐다고 한다.]. 그래서 임경업이 평안 병사 유림과 함께 연합 전선을 펴고자 했지만 유림은 어명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는 일화도 존재한다.
         이 설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임경업의 심양 역침공 발은 큰 문제가 3가지가 있었다. 우선 유림이 이끄는 병력조차도 2,000명이었다. 합쳐봐야 2,400명, 그나마 거의 조총수로만 이루어진 병력으로 심양을 침공하는 건 큰 무리였다. 애초에 이 설에서 임경업은 본인에게 5,000명의 군사를 준다면 심양을 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이는 본인이 본래 생각하고 있던 병력의 반도 채 안되는 숫자다. 다음으로 청군은 한덩어리로 움직이는 황이 아니었다. 임경업이 인근 병력과 합류해서 북으로 진군하려면 인근의 청군과 싸워야 하는 황이었다. 청군 병력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만은 족히 나오기 때문에 설사 임경업이 만약 5,000명의 군사를 모았다고 해도 청이 군의 일부만 보내서 때려잡아도 되는 황이다. 게다가 청이 아직 명나라가 남아있는 태에서 수도를 완전 텅텅 비워놓고 갔을 리가 없으니 심양과 주변에 최소한의 예비 병력이 주둔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당시는 이미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포위된 황이었기 때문에 이것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되는 황이었다. 실제로 정작 유림은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와 함께 인조를 구원하기 위해서 남하하던 중에 [[자모산성 전투]]에서 4차례에 걸친 청군의 공세를 모조리 격퇴한 활약을 펼쳤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조가 항복했으니 원대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임경업의 심양 공격론은 2가지 중 하나로 보인다. 하나는 임경업 장군님 만만세 하면서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란 것이고,[* 백성들이야 이런걸 모르니까 "아 그때 심양을 확 쓸어버렸다면..." 이라는 생각을 했을수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임경업이 전략적 황 파악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병력 문제는 김자점의 병력이 2만이었으니 당연히 임경업이 말한 5천을 네배나 뛰어넘는다. 문제는 김자점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고 그 한시가 촉박한 시간에 김자점에게 달려가서 협조해달라고 할 타이밍이 없었을 것이다.]
         1637년 청은 '''이 때까지 가도에 머무르고 있던 모문룡의 잔당들'''들을 제거하기 위한 병력 요청을 하였고, 임경업은 여기서 수군장으로 파견되어서 적극적으로 회전을 피하는 한편으로 당시 명나라 도독 심세괴[* 앞서 언급된 유흥치를 제거하고 명나라 도독이 된 인물이다.]와 내통하여 그들의 피해를 최소로 줄이게 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청에 투항하여 청의 요동 정벌에서 앞잡이 노릇을 하였다.]. 이런 전황을 몰랐던 청은 임경업을 심양으로 불러서 포까지 내린다.
         다시 의주로 돌아온 임경업은 의주의 물자가 불안해져서 방어가 어렵자 이번에도 심양에 인들을 파견하여 밀무역을 시도하였다가 청에 발각되었고, 이를 전해들은 인조의 분노를 사서 평안도 철산으로 유배된다.
         1640년 청은 명의 금주위를 공격하려는 의도에서 다시 조선에 병력 파견을 요청하였고, 임경업을 주사장의 직위로 임명하여 파견하였다. 이에 임경업은 [[최명길(조선)|최명길]] [* 병자호란 시기 주화파로 이름 높은 그 최명길이 맞다.]과 함께 명의 수군 대도독 홍승주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후 해를 넘겨서 1643년, 임경업은 결국 '''김자점의 종'''이었던 인의 도움[* 이 시기 명이 아직 잔존해 있었으므로 임경업을 명에 보내서 끈을 대려는 의도를 가진 세력은 많았고, 심기원과 마찬가지로 역시 임경업을 한 번 도와준 적이 있어서 끈이 있던 김자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결국 임경업의 2번째 사망 플래그가 된다.]으로 배를 구하여 명나라로 건너간다. 임경업은 명에서 등주 도독 황종예 휘하의 총병 마등고 휘하의 평로 장군으로 4만의 병사를 이끌게 된다. 하지만 [[이자성]]의 난으로 북경이 함락되고, 청군이 [[오삼계]]의 요청을 받고 뒤이어 입성하면서 도독 황종예도 남경으로 이동하였고, 임경업은 마등고와 함께 석성에 재기를 노리게 된다. 하지만 남경으로 도주했던 명은 결국 남경마저 함락되면서 멸망했고, 이번에는 마등고마저 청에 투항했다. 그리고 1644년 조선 조정에서도 후원자 심기원의 옥사가 벌어지면서 임경업은 국제적 미아가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에서는 좌의정 심기원과 김자점의 정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결국 김자점이 심기원이 난을 일으키려 했다는 명목으로 심기원 일파를 모두 제거하게 된다. 이에 임경업도 심기원의 일파로 결론이 내려져서 북경에 투옥 중이던 임경업에 대한 송환 요청을 하게 된다. 이 시기 임경업의 죄목은 심기원의 반란에 연루된 것과 국가에 대한 배신죄[* 명군과의 위전은 임경업의 독자적인 의도로 광해군 시기 [[강홍립]]과는 황이 달랐고, 명나라 장수로 들어간 시기에는 철저하게 명나라 장수로 활동했다는 것 등이 주요 이유였다.]로 조사를 받았다.
         인조는 임경업을 살릴 의사가 있었지만, [[원두표]][* 형조 판서로 임경업을 압송하다가 탈출 사건을 만나서 파직되었던 인물로 이 시기에는 원당의 수가 되어 있었다.]와 '''김자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임경업이 심기원의 일파로 몰린 것은 임경업이 심기원의 도움을 받아서 압송 중 탈출하였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자신의 종 출신들로 임경업의 도해를 도왔던 김자점 역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이에 이미 친청파로 선회한 김자점은 ~~역시 간신은 눈치가 빠르다.~~, 이미 명의 멸망으로 효용 가치가 떨어졌으며 오히려 문제의 소지만 있었던 임경업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은 강력하게 임경업의 사형을 주장한다. 그리고 결국 이로 인하여 문초가 길어지는 와중에 임경업은 형국으로 장을 맞던 중 사망했다. 이에 대해서 장살(杖殺) 당했다고 하지만 사실과는 좀 다르다. 심문 당시 인조는 임경업을 죽일 의도가 없었다. 임경업이 자신은 심기원과 관련이 없다며 자기 변호를 하자, 인조는 임경업이 심기원과 연관이 있다고 해도 심기원이 먼저 일을 일으킨 뒤에 따로 포섭하려 한 정도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때문에 인조와 대신들이 임경업의 혐의에 대해 토론하는데 그 와중에 임경업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이다. 의도적인 장살보다는 단순한 옥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임경업은 “조정에서는 이미 천하의 일이 안정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나를 죽인다면 반드시 후회가 있을 것”이라고 외쳤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남명]]과 [[정성공]]만 남은 시점의 현실에서 임경업의 이 발은 정세 판단 미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었다. [[삼번의 난]]을 가정한다 한들 임경업이 살아있었다면 난 당시 나이는 아흔살(...). 실제로 [[최명길]] 등 대부분의 인물들은 명나라가 완전히 멸망하기 전까지는 명나라의 멸망보다는 [[남북조시대]]의 재현을 현실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명나라에 최명길 등이 협조를 했던 장면이나, 김자점이나 심기원 등이 임경업을 통해서 명에 줄을 대려고 했던 것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남경이 함락당한 시점까지 가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정성공이나 남명 게릴라 만으로 남북조 시대는 불가능하다. 이걸 알았기 때문에 김자점이 친청파로 돌아서고, 소중화사이 등장하는 것이다.
         민담이지만, [[청성잡기]]에 보면 임경업이 명나라로 망명하면서 기생 출신 애첩을 지인에게 맡겨두고 갔다고 한다. 나중에 [[효종(조선)|효종]]이 북벌을 하려는데 입경업 같은 인물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입경업의 애첩을 불러올려 어찌하면 임경업 같은 이를 얻겠냐고 물었는데, 이 첩은 "설사 임경업 같은 이가 있어도 전하께서는 북벌을 하지 못할 것"이라 한다. 효종이 웃으며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묻자, 임경업의 첩은 과거 [[병자호란]] 때 봉림대군이었던 효종이 능히 [[김경징]]을 베어 죽일 수 있었으나 그 간단한 일도 하지 않았거늘 하물며 북벌을 할 수 있겠냐며 이는 계집인 자신도 안다고 대답했다. 효종은 무안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봉림대군이던 효종이 김경징을 자의로 참했으면, 효종은 인조의 분노를 샀을 것이다.[* 분노는 둘째 치고 사람을 죽이고 살릴 권한은 군주에게만 있다고 했으니... 물론 김경징의 병크를 보면 봉건대군이 이적행위를 해서 참했다고 최대한 변명하면 될 가능성나마 없는건 아니지만] 인조는 김경징의 삽질이 드러난 황에서도 반정 공신 [[김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살리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 김류가 김경징이 죽어 마땅하다고 해서야 김경징이 사약먹고 죽었다. 봉림대군은 세자도 아니고 차자에 불과했기 때문에, 저 때 인조의 마음에서 엇나갔다면 조선 국왕 효종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외에도 인조에게는 인평대군과 용성대군이라는 대체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설화를 바탕으로 임경업전이 저술되었고 많은 야화가 추가되면서 비운의 명장이란 평이 많아졌지만, 동시에 모화 사에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보이며[* 실제로 임경업의 아내까지도 청나라의 옥중에서 자살할 때 "내 남편은 대명의 충신이요, 나는 그 충신의 아내다. 오랑캐의 옥중에서 욕을 보며 남편의 충절을 욕보일 수 있겠는가?" 라고 까지 했다. 청나라에 끌려갔던 삼학사 중 한 명인 홍익한도 스스로를 대명 조선국의 신하라고 자처했다. 명나라 중심의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이론적으로 조선의 관료들은 궁극적으로 명나라의 신하였던 것이다. 이를 극단주의라고 부르며 고려의 부마국 시절을 드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지적이다. 조선과 고려와 원명관계는 당히 다르다. 당장 광해군 대에도 신하들이 '중국 조정에 죄를 짓느니 차라리 성께 죄를 짓는게 낫다'라고 발언했던 것을 생각해보자. 당시에는 이것이 보편적 세계질서였다. 홍익한은 그나마 대명 조선국이었다면, 임경업은 그냥 대명이라는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 이 차이는 성리학 기준에서는 엄청난 차이다.] 자국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임경업이 한 행동은 최대한 미뤄봐도 병자호란 이후에는 명이라면 몰라도 조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임경업이 한 무수한 행동들(예를 들면 회군하는 청군을 무단 공격한 것)은 이를 빌미로 청의 재침을 부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청에 볼모로 잡혀가있었던 소현세자는 청의 재침을 막기 위해서 엄청나게 고생했다.] 전쟁에서 제대로 공을 세운 기록도 단 한번도 없는 인물[* 임경업의 전공은 2가지인데, [[이괄의 난]] 당시 정충신의 부하로 참전하여 이름만 올린 것과 앞서 기록된 '''화의를 맺고 본국으로 철수하던''' 청군 기병 300을 급습한 것 뿐이다.]이란 반된 평가가 따라 다닌다.
         [[연평도]]에서는 임경업 장군각이라는 사당이 있고 임경업을 풍어의 신으로 모셨다. 연평도 지역의 설화에 따르면 [[병자호란]] 때 임경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안목과 당섬 사이의 얕은 바다에 가시나무를 촘촘히 박아서 [[썰물]]로 물이 빠져나갈 때 나무 빗살에 걸려서 못 빠져나간 [[조기]]를 잡는 어살법을 주민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임경업 장군이 어살법으로 조기를 잡았다는 안목 어장은 오늘날 연평 면사무소가 자리한 마을의 앞 바다로, 당섬, 책섬, 작은 지리 등의 작은 섬들에 둘러싸여 호수처럼 얕고도 잔잔하다. 이곳에서는 썰물 때 [[조개]], [[게]], [[낙지]] 등을 아이들과 함께 직접 잡아보는 갯벌 체험이 가능하다. 또 마실 물이 떨어져서 병사들이 목말라 죽겠다며 고통스러워하자 바닷가 한가운데에 배를 멈추게 하고는 그 자리에서 바닷물을 떠서 마시게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물이 조금도 소금기가 없는 [[민물]]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도 섬에는 임경업 장군각에서 주민들이 출어에 앞서 풍어제를 지내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임경업전> 또는 <임장군전>이라는 제목의 [[고전소설]]이 있다. 주인공 [[최치원]]이 사실 비범한 도사로 신격화된 [[최고운전]]과는 달리, 해당 소설의 임경업은 전형적인 조선 으로 묘사된다. 최후에 김자점의 모함으로 죽는 건 역사와 동일하나, 판본에 따라 김자점이 보낸 자객에게 죽었다고 묘사되기도 하며, 김자점은 청나라로 도피하지 못하고 조선 정부에 붙잡혀 임경업을 죽게 한 대가로 참수형을 받는다.
         네이버 웹툰 [[칼부림]]에서 등장하는데 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선 굵은 무인형 용모이다.
  • 허안나 . . . . 42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s://www.instagram.com/huranna/ 허안나인스타그램]<br>[https://www.youtube.com/watch?v=r3VC9xQ1mjY 허안나유튜브]
         | 종교 = [[천주교]]([[세명]] : 안나)<ref>[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87568&path=201707 복음의 가치에 재미까지 더한 ‘남 신부가 간다’ 시즌 2 가톨릭평화방송 TV 촬 현장,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사목 소개]</ref>
         |배우자=1살 연의 남자친구(2019년 1월 결혼 예정)}}
         *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연극화과
         허안나는 [[1984년]] [[11월 15일]] 생으로,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연극화과를 졸업하였고 연극배우를 꿈꾸다 개그우먼을 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에 의해 개그우먼 시험을 봐 합격하였다.'''2005년''',연극배우로 데뷔하였고 '''2007년, MBC 16기 특채 개그우먼'''으로 들어갔다, 2008년 당시 개그콘서트 감독이었던 김석현 감독에 의해 걸투홀에서 발견돼 특채로 들어갔으나 2009년 다시 시험을 봐 '''KBS 공채 24기 개그우먼'''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나를술푸게하는세》, 《슈퍼스타 KBS》 코너를 연속으로 히트 시키며 '''KBS연예대 2010년코미디부분우수, 2014년코미디부분우수'''을 받고 2016년 이후 코미디빅리그로 이적한다.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망원동짐승녀'''라는 웹툰을 연재중이며,'''안나Tv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다.2019년 1월 일반인남자친구와 결혼을한다.
         :# 나를술푸게하는세 (2009.11.15~2010.06.06)
         :# 희극여배우들 (2012.07.15~2012.09.02) →후 김희로 교체
         * 세에나쁜개는없다 2016.09.22
         * [[SBS 파워FM]] 《[[스트리트 (라디오 프로그램)|붐의 스트리트]]》 출연 2013.05.10
         * 2015 코믹컬 드립걸즈 시즌4 레드팀 ([[김희 (희극인)|김희]],'''허안나''',[[안소미]],[[박소라 (희극인)|박소라]])
         * 2016 코믹컬 드립걸즈 시즌5 골드팀 ([[홍현희]],[[김희 (희극인)|김희]],'''허안나''',[[박은 (희극인)|박은]])
         * 2017 개그미쓰코리아 ([[김희 (희극인)|김희]],'''허안나''',[[박은 (희극인)|박은]],[[박소라 (희극인)|박소라]])
         * 2018 코믹컬 드립걸즈 시즌7 블루팀 ('''허안나''',[[성현주]],[[박은 (희극인)|박은]],신기루)
         * 2012 12월호 얼루어코리아 ([[신보라]],[[안미 (희극인)|안미]],'''허안나''',[[김미려]],[[강유미]])
         * 2015 백예술대참석
         == 수 ==
         * [[2010년]] [[KBS 연예대]] 코미디부문 여자 우수
         * [[2014년]] [[KBS 연예대]] 코미디부문 여자 우수
         * [[박은 (희극인)|박은]]
         * [[김희 (희극인)|김희]]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41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30. '''들어라 진'''
          * 첫 인턴활동을 마친 미도리야. 그러나 그때 들은 말들이 마음에 걸려서 학교 생활에 향이 올 정도다.
          * 미도리야는 [[올마이트]]를 찾아가 자세한 내막에 대해 캐묻는데 그가 밝힌 "진"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 핫사이카이의 아지트이자 자택은 당한 고가의 저택이었다. 게다가 담장이 높고 창이 작아 빌런의 아지트로서는 딱이었다. [[서 나이트아이]]는 바로 이곳을 포인트로 정해 치사키, [[오버홀]]의 동향을 감시 중이었다. 이날은 특히 오가는 사람이 적어 주시하고 있었는데 사이드킥 [[버블걸]]이 생각지도 못한 연락을 받는다.
          * 서둘로 시내로 복귀한 나이트아이는 [[토오가타 밀리오]], [[미도리야 이즈쿠]]와 합류한다. 밀리오는 예치 못한 사고였다며 사과하는데 나이트는 아이는 오히려 자신이 "먼저 보지 못한게" 문제였다며 자신의 실태였다고 말한다. 그가 적어도 모든걸 예지할 수 있는건 아닌가 보다. 어쨌든 밀리오와 미도리야가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의심을 샀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이트아이는 그들이 얽힌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한 건의 강도사고]]를 소개한다. 그런데 여기서 오버홀과 핫사이카이는 "빌런을 제압한 공로자"로 등장한다. 어떤 강도단이 트럭사고를 일으켜 민간인을 휘말려들게 했다. 그때 휘말려든게 이들. 그런데 오버홀의 "개성"으로 사자는 제로에 강도단까지 제압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이한건 강도단 쪽. 분명 엉망진창으로 당했는데 검거되고 난 뒤에는 처 하나 없이 멀끔한 모습. 오히려 지병으로 가지고 있던 충치나 류머티스 같은게 깨끗히 나아서 건강해져 버렸다. 이 모든게 오버홀이 가진 "개성"의 힘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건 알 수 없으며 사자 없이 강도단을 제압했으므로 죄를 추궁할 수도 없었다.
          강도단이 훔쳤던 돈은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경찰은 일단 사건성이 없는 걸로 보고 수사를 종결했지만 어떻게 봐도 수한 점이 많아서 나이트아이에게 의뢰, 은밀하게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 밀리오는 나이트아이에게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며 오버홀에게 딸이 있었다는 정보를 보고한다. "에리"라고 했던 소녀.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고 겁이 많고 도움을 요청하는 등 이한 점이 많았다. 미도리여는 소녀에 대해 설명하며 어떻게든 보호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나이트아이는 차갑게 잘라말한다. 그는 서두르면 망치고 어설프게 쫓가단 더욱 도망치게 만들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미도리야는 구하고 싶을 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지 않다. 오버홀에 대해서는 나이트아이도 다른 사무소와 팀을 구성하기 위해 구 중이고 대의 의도와 정보를 분석해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마음만으로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세은 쉽지 않아.
          속사포같이 설교하고 둘을 사무실로 돌려보내는 나이트아이. 버블걸만 데리고 다시금 첩보활동에 복귀한다. 쏟아지는 비와 함께 큰 응어리만 남기고 미도리야의 첫 인턴활동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 다음주 아침. A반은 주말을 보충강습으로 보내고 처투성이로 복귀한 [[바쿠고 카츠키]]와 [[토도로키 쇼토]]로 말이 많다. 임시면허 보충강습이 엄청 스파르타라 이꼴이 되었다는데. 그리고 몇몇이 보이지 않는다.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가 공결이다. 인턴활동과 관련된 모양. 그리고 [[키리시마 에지로]]도 결석이다. 그도 인턴과 관련된 걸까?
          이대로는 안 된다. 결심한 미도리야는 교무실로 찾아간다. [[올마이트]]를 찾아서. 하지만 그는 조깅을 나가서 자리에 없다. [[미드나잇]]이 알려주기론 가정방문을 마친 후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당히 꾸준히 하고 있는 모양인데.
          * 미도리야는 모든 진을 알기 위해 무작정 올마이트를 찾아 공원으로 향한다. 미드나잇의 말처럼 올마이트는 기침을 참아가며 열심히 달리고 있다. 미도리야가 무서운 기세로 뒤쫓아오는걸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하지만 곧 그의 분위기를 통해 무거운 이야기가 이어질 걸 직감하고 입을 다문다.
          * 이 이 감출 수는 없다, 올마이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진은 미도리야에게 정말로 알 필요가 없는 것이라 숨겼을 뿐이라며, 진실을 알고 후회해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미도리야는 모르는 채로 있는 것 보다 낫다며 대답을 요구한다.
          우선 올마이트는 나이트아이와 관계에 대해서 설명한다. 본래 올마이트는 사이트킥을 두지 않는 주의였다. 나이트아이는 광적인 올마이트의 팬이었고 그 열의에 꺾여서 그를 사이드킥으로 삼았다. 그렇게 지낸게 5년. 신체능력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팀의 브레인으로서 귀중한 조력자였다. 여기까지는 미도리야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6년 전, 올마이트가 불의의 부을 당한 그때 콤비를 해산했다. 가치관의 차이가 드러난 것이다.
          나이트아이는 아직 병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올마이트가 억지로 사람들을 구하러 나서자 그렇게 말했다. [[리커버리 걸]]의 병원. 올 포 원과 격전 직후였다. 그 자리엔 [[네즈]]와 리커버리 걸,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도 있었다.
          올마이트는 사람들이 구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이 가야한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나이트아이는 냉정하게 충고한다. 폐를 당한 그는 전처럼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태로 계속 히어로를 해도 보는 사람들이 괴로울 뿐이며, 전설인 채로 은퇴하는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네즈는 그의 말에 공감하며 원 포 올의 후계자는 웅고에서 찾으면 된다고 설득에 함께한다. 나이트아이는 반드시 그를 닮은, 밝고 강하며 친근감 있는 인물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 로베르 기스카르 . . . . 41회 일치
         그는 노르망디의 소귀족인 오트빌가의 탕크레드의 12아들중 6째로 그가 후처 프레센다 사이에 낳은 6아들중에서는 첫째다. 당시 할일없고 지를 속받을 가망도 없는 노르만 귀족들이 으레 그랬듯이 '용병'으로 복무하기 위해 남이탈리아로 건너갔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내에서 '용병'이란 '용병대'가 아니라 지를 봉급으로 외부의 기사들을 복무시켜 비잔티움 편제로 훈련시키는걸 말한다.] 그리고 그곳의 노르만 용병들이 그의 셋째 형인 '강철팔'기욤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킬때, 기스카르는 형을 따라 종군하면서 비잔티움에 맞써 싸운다.
         이후 기욤이 죽고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인 드로고가 형의 지를 속받을때, 기스카르는 아무 지도 받지 못했고, 이를 그의 바로 위의 형인 옹프루이가 딱하게 여겼는지 그에게 라벨로 성을 준다. 이후 그는 카푸아 공작 판돌포 4세와 연합해 살레르노 공국을 치려하지만, 공작이 약속했던 공작의 딸과의 혼인과 지 할양을 거부하자 그와의 협조를 거부하고 돌아가버린다. 이후 칼리브리아로 간 기스카르는 거기서 칼리브리아를 정복을 진행중이던 드로고에게 자기몫의 지를 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드로고는 최근에 쌓은 성채인 스크리블라성[* 현재의 스페차노 알바네세]을 그에게 준다.
         기스카르를 유명하게 만든건 1053년에 노르만족들의 확장을 교황청에서 저지하려했던 치비타테 전투에서였다. 치비타테 전투에서 기스카르가 이끄는 좌익은 전투 초반 아베르사 백작 리카르도가 이끌던 대 좌익을 성공적으로 격파했고, 옹프루이가 이끌던 중군이 교황령의 중군을 성공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자 즉각 좌익을 그곳으로 투입시켜, 전투의 승기를 잡는데 크게 공헌했다. 치비타테에서의 이러한 웅적 활약으로 인해 기스카르는 1057 4월에 옹프루이가 죽자 그의 작위였던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백작위를 속 받을 수 있었다.
         기스카르가 형에게서 작위를 속받고 제일첫번째로 한것은 정복군주로 악명높은 그치고는 살짝 의외였던건데, 전처인 알베라다와의 혼인이 근친이라는 이유로 이혼하고 살레르노 공작의 여동생인 시켈가이타와 혼인한것이다. 다만 중세 유럽은 귀천혼하면 짤없이 귀족직위가 박탈당하는 시대다 보니 혼인풀이 좁았고, 이에 어지간한 귀족들은 전부 한두다리건너 연결되는 경우가 흔했다. 즉, 그가 알베라다와 이혼한 이유는 진짜로 근친혼인걸 몰랐다(...)기보단, 시켈가이타의 몫의 지들[* 중세때는 혼인을 두가문의 혼합으로 보았기에, 사위에게도 딸의 몫이라면서 지일부를 나눠주는걸 당연시했다.]을 살레르노 공작에게서 뜯어내기 위해서로 보는게 타당하다.
         사실, 기스카르와 비잔티움은 이미 그가 남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기전에 군사동맹의 체결이 논의 된적이 있었다. 1073년에 미하일 7세는 기스카르에게 군사동맹과 함께 로베르의 딸중 가장 아름다운 딸과 황실에서 태어난 황제의 동생[* '제국의 조각'이라 불릴정도로 아름다운 자였다고 한다.]을 제안한다. 기스카르가 별다른 답을 보이지 않자 미하일은 거기서 더 강화한 제안을 하는데, 미하일의 아들 콘스탄티노스와 기스카르의 딸과의 혼인을 제안하면서 그에게 비잔티움의 훈장 44개를 가족 친지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매년 금 200파운드를 주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기스카르에게 이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가문이 비잔티움의 황후가 될 수 있으니 당한 명성을 얻을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제위계승에 끼어들 수 있는 명분도 얻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훈장을 받는건 미하일에게 뇌물을 받는 꼴이라 좀 찝찝하긴 했지만 감수못할 위험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 신부감이 젖먹이 약혼자가 결혼할 나이로 자라기전 신부수업을 받기위해 콘스탄티노플로 떠났다[* 떠난 신부감은 곧 그리스식으로 세례를 받은뒤 헬레나로 개명했고, 정교회에 소속되게 되었다.] 그러나 1078년에 니케포로스 보타네이아테스에 의해 미카일 7세가 폐위되고 그가 니케포로스 3세로 즉위하자, 헬레나가 황후가 될 일은 막혀버렸다. 퇴위된 미카일은 수도원에서 은거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 10세를 닮아 학자기질이 다분하던 그에게 있어서 그 생활은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의 며느리가 될뻔했던 기스카르의 딸에게는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을 삶이었을것이다. 이는 기스카르에게 좋은 개전 명분이 되었다. 마침 남이탈리아에 반란이 일어나 원정이 지체 되었지만, 1080년 여름에는 전쟁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사실, 당시 제국은 내우외환의 황에 빠져 아나톨리아를 잃는등 태가 그리 좋지 못했었기에, 개전이 늦어지는건 그에게 큰 황이 없었다.
         그렇게 그해 가을과 겨울동안 여름때 모집한 신병들을 훈련시키는데 매진한 기스카르는 칼리브리아나 아풀리아 일대의 그리스인들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이 미카일 7세라고 주장하던 사이비 수도사까지 끌어들였다. 그의 말을 믿는 이들은 그리 없었지만, 로베르는 좋은 이용수단이던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줬다.
         이후 기스카르는 그해 12월에 콘스탄티노플에 대사로 퐁투아즈 백작 라뒬프를 보냈는데, 표면적으로 그가 온 이유는 니케포로스 3세에게 헬레나에게 만족스러운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기위해서였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제국의 수도에 있던 노르만 용병들의 세력을 결집시켜 원정에 끌어들이는것과, 당시 내무대신이자 실세로 떠오르던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예치못하게 알렉시오스가 니케포로스로부터 제위를 찬탈해 알렉시오스 1세로 즉위해버렸고, 노르만족들을 결집시킬 역할을 했어야될 라뒬프 백작은 오히려 알렉시오스에게 감화되어서 그와 우호관계를 구축하자는 기스카르의 의도와는 정반대인 답을 해버린다(....) 라뒬프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스카르는 라뒬프를 ~~갈군~~호되게 질책한 뒤, 브란디쉬와 오트란토에 이미 모여있던 그의 원정군들을 아드리아해 너머 비잔티움령에 보내려 했다.[* 이미 아드리아해 너머에는 그의 장남 [[보에몽 1세|보에몽]]이 이끄는 선봉대가 륙해 있던 황이었다.]
         결국 1081년 5월말에 함대가 출항했다. 함대에는 1300명의 노르만 기사와 사라센, 그리스, 그외 수많은 민족의 병사들의 보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라구사의 지원군까지 합류한 군대는 해안을 따라 천천히 가서 코르푸에 닿았고, 그곳의 수비대는 즉시 투항했다. 코르푸의 함락은 기스카르에게 당히 중요했는데, 이로써 발칸 침략을 위한 교두보가 확보되고, 이탈리아의 증원군을 그곳을 통해 좀더 빨리 투입시킬 수 있었기에 그가 침략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코르푸를 얻어낸 기스카르가 발칸침략의 첫 교두보로 삼은 곳은 일리리아[* 지금의 알바니아]의 중심지이자 주요항구였던 디라키온[* 현재의 두러스]였다. 이곳을 통해 에그나티아 가도를 타고 동쪽으로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를 지나면 곧바로 콘스탄티노플로 갈 수 있기에, 이곳을 차지하는건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냈어야하는 기스카르 입장에선 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약간의 불운이 있었는데, 북쪽으로 가서 아크로케라우니아 곶을 도는 순간 갑작스러운 폭풍으로 인해 일부함선과 거기타고 있던 병력이 물고기밥이 되버리고, 간신히 그곳연해에 병력을 륙시키고 나자 노르만족들의 확장을 두고볼 수 없었던 베네치아 도제가 직접 함대를 이끌고 기스카르의 해군을 공격한것이다. 노르만 해군은 대응하려 했지만 해전경험에서 베네치아 해군에 비해 한참 밀린데다가 '그리스의 불'까지 사용하던 베네치아 해군을 이길 수는 없었고 결국 베네치아 해군은 디라키온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나 그정도로 기스카르의 열정을 꺾을수는 없었다. 해전전 미리 육군을 륙시켜뒀기에 육군은 건재했는데다가 그병력은 이미 디라키온을 포위했기 때문이다. 이에 알렉시오스는 그의 신뢰하는 부하이자 매제인 게오르기오스 팔라이올로고스를 소규모 병력과 함께 디라키온으로 보내면서 어떻게든 자신이 병력을 모집해 지원할때까지 병력을 묶어놓으라고 지시했고, 디라키온 수비군은 지원군이 온다는 소식에 더욱 격렬히 저항했다. 여름 내내 진행된 포위전은 당히 격렬했는데, 하루는 게오르기오스가 투구에 화살촉이 박힌 태로 하루종일 방어전을 진행했을 정도이다. 이윽고 그해 10월 15일에 알렉시오스가 직접 지원군을 몰고 왔고, 4일뒤 역공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회전이 시작되었고, 싸움이 시작하자마자 바랑기안 근위대로 구성된 비잔티움군의 우익이 시켈가이타가 지휘하는 노르만군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때 바랑기안들은 평소보다 유난히 광폭한 태였다고 하는데, 아마 이때 복무한 바랑기안중 대다수가 노르만 군주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했을때 잉글랜드편에서 복무한 군인이었기 때문이었던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복수에만 정신이 팔려 지나치게 앞으로 가 본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버렸고, 시켈가이타가 직접 말을 몰고 도망자들을 쫒아 이들의 사기를 회복하고, 한편으론 보에몽의 좌익이 이들을 구원하러오자 차단되어버린다. 결국 화살세례를 버티지못한 근위대는 인근의 예배당으로 피신했지만, 노르만 병사들이 불을 질러 대다수가 타죽고 말았다.
         한편 황제는 중앙에서 용감히 싸우고 있었지만, 정예병들 대다수가 만지케르트에서 궤멸되어버렸고, 중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야만인 용병들은 오합지졸인데다가 비잔티움에 대한 애국심도 없었다. 게오르기오스가 이끄는 디라키온 돌격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설으로 두클라의 왕인 콘스탄틴 보딘과 룸술탄 슐레이만이 보낸 병력이 배신하고 멋대로 돌아가버리는 사태까지 일어나 버렸다.
         결국 전투는 노르만측의 승리로 끝났으며, 황제측 지휘관으로 나선 게오르기오스의 아버지인 니케포로스 팔라이올로고스와 미하일 7세의 동생인 콘스탄티오스 두카스도 여기서 전사한다. 황제는 겨우 목숨만 건져서 이마에 처에 출혈과 통증을 참으며 오크리드의 산악지대로 도망쳤다. 그나마 황제에게 위안이었던건, 디라키온이 이듬해 2월까지 넉달을 필사적으로 버텼다는것이다. 그러나 결국 디라키온은 한 베네치아 주민이 밤중에 성문을 열어 함락된다
         디라키온 함락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꺾일줄을 몰랐다. 그의 군세는 순식간에 일리리아 전역을 장악했고, 카스토리아를 지키던 수비대는 기스카르에게 항복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아마 비잔티움의 멸망은 약 400년정도 앞당겨질 황이었지만...''' 그때 ''' 이탈리아에서 사절이 왔다. 아풀리아와 칼리브리아, 캄파니아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사절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서신을 가져왔는데, 주교서임권 문제로 그와 다투던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로마를 공성중이니 한시바삐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할 수 없이 기스카르는 병력을 나눠 보에몽에게 지휘를 맡기고, 그리스로 돌아올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그의 아버지인 탕크레드의 혼을 걸고 맹세한뒤 서둘러 아드리아해를 건넜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런 완벽한 타이밍에 신성로마제국이 교황을 공격하고, 아풀리아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기스카르를 방해한것일까?
         그러나 기스카르가 돌아가고 남은 군대를 맡게 된 보에몽은 절대 쉬운 대가 아니었다. 그의 형이자 당시 세바스토크라토르라는 관직에 있던 이사키오스가 성 소피아 성당에서 종교회의를 열고, 과거 교회의 금과 은을 녹여 전쟁포로들을 되찾아온 전통을 기시키면서 교회 재산을 모두 몰수한다고 선언해 겨우 전쟁자금을 구할 수 있었지만, 보에몽은 야니나와 아르타에서 알렉시오스에게 대승을 거두면서 그리스일대를 장악하고 테살로니카로 진군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알렉시오스는 어찌저찌 라리사에서 전세를 역전시킬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보에몽의 군대에 항복한 노르만 병사들에게 더많은 봉급을 주고 용병으로 재고용해주겠다고 보에몽의 진지에 소문을 퍼뜨리게까지 했다. 결국 연패를 거듭한 보에몽은 그리스에서 쫓겨난다.
         1084년 가을에 그는 보에몽과 로제르 보르사, 기, 이렇게 삼형제가 이끄는 병력들과 함께 150척의 새함대를 꾸리고 비잔티움을 다시 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스카르는 불운을 겪는다. 부르린토에서는 날씨때문에 두 달이나 함대의 발이 묶였고, 가까스로 코르푸 해협을 건너고 난뒤에는 함대가 베네치아 해군의 습격을 받아 두번이나 참패를 당한다. 그러나 그황에서도 기스카르는 베네치아 해군이 연락선을 그들의 본거지인 베네치아 섬에 보내자마자 남은 함대로 기습을 가해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겨울에 그들은 그 어떤 적보다 가장 무서운 적들을 만나야 했다. 바로 역병이었다.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이병에 의해 노르만군들 당수가 쓰러지고 만것이다. 그의 장남인 보에몽도 병에 걸려 바리로 이송되었을 정도였다.
  • 삼각탑 . . . . 41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중심이 되는 건물. 사실 인더스트리아 그 자체라 보면 된다.
         보통 삼각탑이라 하면 지의 3개의 탑 구조물만 지칭하나 일반 건물도 해당되듯이 삼각탑도 지하부 및 부속시설이 있다.
         === 지부 ===
         지의 3개의 탑인데 거대한 반사경을 옥에 부착한 약 15층 높이의 탑 3개와 이를 연결하는 약 12층 정도의 연결부로 구성된 한개의 거대한 구조물로 구성되어있다. 태양에너지를 받아 태양탑이 될 수 있다.
         내부시설도 충실하다. 태양에너지를 인공위성에서 수신하기 위해 거대한 반사경과 수납식 수신장치가 있다. 그리고 비용 [[원자로]]와 삼각탑 시설 전체를 관장하는 중앙제어실이 존재한다. 또한 이들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수납식 총탑이 요소에 배치되어 있으며, 일부 총탑은 [[레이저]] 발사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작업과 생활의 편의를 위해 내부에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전자동 개폐식 문등이 있고, [[전화]]도 충분히 설치되어 있으며, 3D 과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휴식시설까지 존재한다. 따라서 원로위원회와 행정국등 인더스트리아의 핵심권력계층의 사무실과 주거공간이 설치되어 있으며, 기본적으로 1급 시민이 아니면 거주는 커녕 출입도 통제된다.
         지부의 주변에는 가건물로 만들어진 공업지역과 항구 시설이 있다. 삼각탑 지부 주변에 무계획적으로 널리 퍼진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일하는 것은 주로 2급 시민이다.
         삼각탑 지하와 그 주변부에는 미로처럼 통로가 뚫려 있다. 이 시설을 지하부라고 지칭하며, 주로 빵 생산공장처럼 부차적인 공업시설과 함께 3급 시민들의 작업장 및 거주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환기 및 지작업시설로 통하는 통로 확보를 위해 삼각탑 지부 중앙에 중앙통기구가 거대한 크기로 설치되어 있으며, 유사시 장갑셔터로 차단이 가능하다.
         사실 삼각탑 지부보다 최대 10배에 가까울 정도로 넓고 복잡해서 삼각탑 지부에서 파악하지 못한 통로등이 많다. 물론 이건 지하부에 거주하는 3급 시민들도 마찬가지라서 기간트라고 불리는 우주비행기 격납고가 지하부에 매우 큰 면적을 차지하면서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다.
         최소한 지하 500m 이 내려가야 볼 수 있는 지하시설이다. 공간이 매우 넓고 크며, 각종 거주시설 및 정원, 하천, 인공태양등이 완비되어있지만 작중에서는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삼각탑 지부에서도 통제는 커녕 관측도 불가능해서 황을 파악하려면 직접 무장한 후 장비를 가지고 내려가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인적이 끊어진 태다.
         그래서 해당 지역은 조명 및 동력이 끊어진 태이며, 과거 거주민의 묘지와 말라버린 나무, 버려진 시설등으로 인해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난다.
         == 세 ==
         앞서 설명했지만 사실 인더스트리아의 모든 것이다. 인더스트리아가 본토 및 주변지역에 다수의 거점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다 자원채취를 목적으로 한 바지선이나 가건물에 불과하고, 공업시설의 대부분이 삼각탑 주변에 몰려있는데다가, 과학력이 엄청나게 요구되는 최첨단 시설은 삼각탑 지부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삼각탑이 작동을 중지하면 인더스트리아는 바로 망해버린다.
         문제는 삼각탑을 제대로 동작시키기는 커녕 유지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에너지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일단 비용 원자로를 가동시키고 있지만, 이마저도 연료 부족으로 인해 태양에너지를 빨리 손에 넣지 않으면 얼마 안가서 원자로가 정지해버릴 정도다. 일단 이런 문제로 인해 최소한의 시설을 제외한 나머지 시설은 동력을 차단한 태지만 그래봐야 [[오십보백보]]. 그래서 행정국 국장인 레프카나 원로위원회는 태양에너지의 획득을 위해 발버둥을 치게 된 것이다.
         원래 삼각탑 심층부는 최대 5만명 이이 유사시 완벽한 생활을 위할 수 있도록 설계된 [[방공호]]로서, 삼각탑 자체도 그 당시의 기술로 만들어진 곳이며 그 당시에는 삼각탑 지부가 오히려 부속시설이었다. 실제로 미래소년 코난에서 인류로 인해 지구에 위기가 닥치자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했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들의 과학력을 너무 자신했다는 점으로, 에너지 부족 문제등의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심층부는 그야말로 거주자의 묘지만 그득한 죽음의 도시로 변했으며, 일부 사람들만 살아남아서 지으로 다시 올라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심층부에서 엄청난 희생을 겪었으며, 이와 함께 인더스트리아 근처가 [[사막]]이 된 결과 살아남은 생존자의 수도 늘기는 커녕 오히려 천천히 감소해서 미래소년 코난의 시점에서는 불과 1,000명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나마 현대문명의 장비를 이해 및 사용할 수 있고, 기초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은 1급 시민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삼각탑 지부라도 제대로 관리할 인원이 크게 부족한 태였다. 게다가 과학기술등의 고급기술을 익힌 사람은 과거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기존의 과학자 외에는 전무한 실정이었고, 그나마 황이 낫다고 볼 수 있는 인더스트리아에서도 원로위원회의 위원을 제외하면 없는 실정이었다. 덕분에 행정국 국장인 레프카가 [[쿠데타]]를 일으킨 후에도 원로위원회를 그대로 놓아두었는데, 당장 이들이 없으면 삼각탑의 중요시설을 가동 및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소년 코난의 내용이 진행되면서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 레프카가 장갑셔터를 닫고 수문을 폭파해서 지하부를 수몰시킴과 동시에 자신의 반대파인 3급 시민들까지 몰살하려고 했지만, 코난 일행의 활약으로 인해 이는 저지되었으며, 오히려 지하부의 3급 시민들이 단체로 몰려와서 삼각탑 지부를 완전 장악했고, 레프카는 도주하다가 자신이 탄 플라잉 머신이 폭발하면서 사망한 것으로 보였다. 이 과정에서 삼각탑 지하부의 당부분이 수몰되어 더 이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레프카는 끈질기게 살아있었으며, 자신이 이미 알아놓은 기간트 격납고로 잠입한 후, 기간트에 이륙에 필요한 태양에너지를 넣기 위해 중앙통제실을 일시적으로 점거한 후 목적을 달성한다. 그리고 기간트의 이륙을 위해 격납고 문을 여는 과정에서 삼각탑의 주변 공업시설의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기간트가 이륙한 후 작별 선물로 레이저를 발사한 덕분에 삼각탑의 반사경중 하나가 파괴돼서 지으로 추락했다. 그 충격으로 폭발이 발생하여 주변 공업시설에 피해를 끼쳤으며, 그 외에 나머지 탑의 일부도 손을 입었다. 해당 공격으로 삼각탑의 기능은 당부분이 동작불능태가 되었지만 그나마 이 공격으로 부자만 약간 나온 정도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작품 자체가 인간의 욕망이 얽힌 과학기술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스펙에 비해서는 작품 내내 취급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 일단 레프카가 장악한 동안에는 악의 소굴 취급이나 받았으며, 아무리 코난이 주인공이라지만 일개 원시인 수준의 소년에게 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쓰러진다던지[* 사실 이건 코난이 보통 아이가 아니어서이기도 했다.], 가동식 총탑까지 갖춘 주제에 배수관을 붙잡고 올라오는 소년 하나를 못막는다던지... 나중에는 기간트의 일격에 반신불수까지 된다. 한마디로 안습인 수준이다. (물론 기간트는 더 심한 취급을 당한다.)[* 사실 코난이 대단해도 좀 대단한게 아니긴 하다. 1화에서부터 혼자 어를 잡는 등 코난의 강인함은 작품의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이러다보니 무장한 병사라도 코난에게 대가 안되기는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코난이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십다.]
  • 영국 요리 . . . . 41회 일치
         >프랑스 인은 모든 면에서 국에 지는 것을 인정할 수 없지만, 요리만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 [[샤를 드 골]]
         [[국]] 요리는 켈트족의 전통에 기반하여, 각종 [[유럽]] 요리를 섭렵하고 동시에 [[대제국]] 시기에 세계 각국의 요리의 전통을 흡수하여 만들어낸 지고의 요리이다. 국 요리는 인류사의 보물로 기록되어, 요리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일본에서 세계 X대 요리 등의 랭킹을 만들지만 국 요리는 절대로 포함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국 요리의 전통은 고대 브리튼의 켈트족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브리튼의 켈트족은 매 계절 마다 요리 축제를 벌이면서 요리 기량을 닦아서 겨루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데, 오늘날 이 요리 축제는 [[스톤헨지]]에서 벌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브리튼을 침공한 고대 로마 제국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국 요리에 대한 기록을 최초로 남겼으며, 자신이 먹어본 어떤 요리보다 맛있는 요리라고 [[갈리아 전쟁기]]에서 한껏 추켜세웠다.
         [[로마 제국]] 시기에 국 요리는 로마 각지로 수출되었는데, 브리튼 족 요리사는 로마 귀족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예였다. [[암흑 시대]]에 국 요리는 켈트 족의 전통에 게르만 족의 전통이 더해져서 더욱 성숙하였다고 여겨진다.
         노르만 족의 침략 이후 국 요리는 노르만 족의 교류를 통하여 프랑스에 전파되었다. 한 때 국의 플랜태저넷 왕조가 지배하였던 프랑스 서부 아퀴텐 지방은 국 요리가 전파되어 요리 문화가 크게 번성하였는데, 이것이 프랑스 왕실로 흘러들어가서 오늘날 [[프랑스 요리]]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중세 시절 내내 국 요리는 당대 유럽 최고의 요리로 명성을 떨쳤다.
         제국주의 시대, 대제국의 식민지는 [[인도]], [[홍콩]] 등으로 퍼져나갔다. 이를 통하여 중국 요리와 인도 요리의 비법이 국으로 전파되었다. 국인들은 요리에서는 전 세계 어떤 문화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어, 집요하게 인도 요리와 중국 요리의 장점을 국 요리에 받아들여 국 요리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켰다. 현재 [[만한전석]]은 국에만 남아 있다.
         근대에는 또한 맛 뿐만이 아니라 건강과 양에 대한 관심도 대두되어, 국 요리는 건강양식으로 개량되었다. 건강양식을 먹은 국 병사들은 높은 전투력을 발휘하여, 대제국이 군사적으로 명성을 떨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닥터 : 나는 무한한 시공간과 우주를 여행 다녀봤지만 국처럼 요리가 맛있는 곳도 없지.
         >시로 : 국 요리, 그렇게 대단했단 말인가.
         >토우마 : 인덱스 씨 좀 봐주세요. 국 요리 같은 맛을 내는 것은 무리예요.
         픽션에서도 이처럼 국 요리의 명성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국계 캐릭터=[[미식가]]라는 [[클리셰]]가 있을 정도.
         넷에서 국 요리에 대한 악평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국 요리에 대한 여러 유럽 나라들의 잘못된 험담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정작 국에서 여행한 사람들은 국 요리에 극찬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국을 여행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편견에 향을 받아 이를 반박하여, 국 요리의 평가는 넷 에서 점점 나빠지는 악순환을 보이고 있다.
         '''국 요리가 나쁘다는 것은 모두 넷의 유언비어이므로 속아서는 안된다.'''
  • 원피스/833화 . . . . 41회 일치
          * 디와 빈스모크 저지의 대결.
          * 욘기는 디에게 두들겨 맞아서 병원행. 그런데 마치 몸이 사이보그인 것처럼 망치로 두드려서 고친다?
          * 디는 어린시절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전사만을 가치로 여기는 제르마에서는 낙오자 취급을 받고 가족들 조차도 그를 학대한다.
          * 디는 다과회만 마치고 결혼 따윈 연기하고 밀집모자 해적단에 돌아가려 하지만, 저지는 억지로 결혼을 시키려 한다.
          * 저지와 디가 대결을 하는 한편 제르마 왕국의 "욘디성"에선 디에게 작살난 욘디가 치료를 받고 있다.
          * 욘디는 "예전처럼" 아버지에게 대신 말해줬을 뿐인데 이꼴로 만들었다며, 디를 "낙오자"라 욕한다.
          * 대결의 현장. 병사들은 디의 강함에 환호한다.
          * 저지는 디가 공격하자 "친아버지에게 발길질을?"이라고 하는데 디는 "부모라하는 그 발언을 조심해라"고 쏘아붙인다.
          * 저지는 디는 자기 아들이고 돌아왔다고 항변하는데 디는 부정할 뿐더러 "다과회만 끝나면 돌아가겠다"고 단언한다.
          * 저지는 가족을 버릴 셈이냐고 따지는데, 디는 "너희가 가족일리 없다"고 응수한다.
          * 그의 과거. 형제들이 디를 괴롭히고 있다. 그의 옷에는 3이란 숫자가 박혀 있다.
          * 어린 제르마1은 그가 만든 케이크를 쥐먹이라고 비하하며 놀리는데, 발끈한 디가 때리지만 쇠를 두드린 것처럼 "캉"하는 소리만 날 뿐 타격을 입지 않는다.
          * 디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돌아오는건 차가운 독설.
          * 지옥같은 나날이 떠오른 디. 저지의 창을 발로 막아낸다.
          * 디가 패기를 쓸 수 있게 된 걸 눈치채고 저지가 감탄한다.
          * 저지는 검을 뽑으라고 하지만, 디는 자기 손은 요리사의 손이므로 식재도 아닌 이 손도 칼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 레이쥬는 그 디가 이렇게 강해졌다고 감탄하고 저지는 "아직도 생쥐먹이나 만든다"고 비하한다.
          * 디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공격을 "콜리에 슛"으로 반격하는데, 저지에게 다리를 붙잡혀 던져진다.
          * 그리고 저지는 디가 모르는 과학장비를 이용해 공격하기 시작한다.
          * 신발에 장비한 기능으로 "전자 크랙" "블래스터"를 쓰며 디를 수세로 몬다.
  • 이인화 . . . . 41회 일치
         |웹사이트=
         '''이인화'''(二人化, [[1966년]] [[1월 5일]] ~ ) 또는 본명 '''류철균'''(柳哲鈞)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며,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다. 그가 집필한 작품 [[원한 제국]]은 화화되기도 하였다. 그가 [[조선 정조|정조]]에 관련된 책을 내면서 [[한국]]에서 정조에 대한 새로운 평가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게 했다는 견해도 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69486 "심환지가 정조 측근이라 독살 아니라면 박정희가 김재규 손에 죽은 것은 뭔가?"] 오마이뉴스 2009.02.18일자</ref> 필명은 [[염섭]]의 소설 [[만세전]]의 등장인물에서 따왔다.
         [[1966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1989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ref name="naver">{{웹 인용 |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D%B4%EC%9D%B8%ED%99%94&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02614 |제목=이인화 |저자= |날짜= |웹사이트=네이버 인물정보 |출판사= |확인날짜= }}</ref> 대학교 재학 도중인 [[1988년]] 《양귀자론》을 문예지 《[[문학과 사회]]》에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대학원 재학 중 [[1988년]]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으로 문예지 [[작가세계]] 문학을 수하였다.<ref>{{백과사전 인용 |저자= |ur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3796&cid=41708&categoryId=41737 |제목=이인화 |백과사전=한국현대문학사전 |쪽= |날짜= |확인날짜= |연도= |출판사= |위치= |id= |isbn= }}</ref> 이후 1993년 장편소설 《원한 제국》을 발표하였고<ref name="naver" />, 같은 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고미석 |제목=이인화 장편소설 원한 제국, 조선조 당쟁 새해석 관심 |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0200209115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9-02&officeId=00020&pageNo=15&printNo=22275&publishType=00010 |뉴스=동아일보 |출판사= |위치= |날짜=1993-09-02 |확인날짜= }}</ref> 《원한 제국》은 [[1995년]] 화화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이연재 |제목=원한 제국 화 앞둔 박종원 감독 |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11400329131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1-14&officeId=00032&pageNo=31&printNo=14972&publishType=00010 |뉴스=경향신문 |출판사= |위치= |날짜=1994-01-14 |확인날짜= }}</ref> 박사학위를 받기 전인 [[1995년]] [[이화여자대학교|이화여대]]의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로 초빙되어 부임하였고 [[200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 소설 창작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ref name="naver" />
         [[박정희]]를 소설화한 대하소설 [[인간의 길]]을 집필했고, 이외에 <초원의 향기>, <시인의 별>, <하늘꽃>, <하비로>, <지옥설계도>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추리소설 독자, 오늘의 젊은 예술가, 한중청년학술, 이문학, 21세기 문학 우수, 정보통신부 장관 표창 등을 수했다. 2003년부터 디지털 게임에 몰두하여 디지털 스토리텔링 학회를 창립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구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로 이직하여 현재 학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화, 게임 시나리오 집필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설치미술 <아슈켈론의 개>, 창작 발레 <신시21>, 오페라 <눈물 많은 초인>, 경주문화엑스포 주제 동 <천마의 꿈> <토우대장 차차>, MMORPG <길드워(Guild Wars)>, 화 <청연>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2013년 모바일 게임 <핑거스톤>을 개발했다. 2013년 1458편의 화 애니메이션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례기반추론(Case based reasoning)을 적용한 디지털 스토리텔링 저작도구 <[[스토리헬퍼]]>를 개발하여 지금까지 서비스하고 있다. 2014년 인공지능 스토리 자동생성 프로그램과 스토리 창작 지원 프로그램을 연구한 <스토리텔링 진화론>을 출간했다. 2016년 6월 2188개의 표제어를 담은 국내 최초의 <게임 사전:게임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책임집필해서 출간했다.
         [[2016년]] [[12월 31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수 특검은 [[강요죄|강요]], [[업무방해죄|업무방해]], [[공문서 위조]] 혐의로 이인화 교수를 긴급체포했다. 그가 조교에게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의 기말고사 답안지를 대리 작성하도록 강요했다는 의혹과 자신의 강의를 대리 수강하도록 했다는 의혹에 대해 특검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긴급체포의 이유를 밝혔다.<ref>{{뉴스 인용 |저자=최창종 |제목=이대 류철균 교수 긴급체포…정유라 성적 등 비리 관여 |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03437 |뉴스=KBS 뉴스 |출판사= |위치= |날짜=2016-12-31 |확인날짜= }}</ref>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이 확정되어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
         == 수 ==
         * [[2000년]] 제24회 [[이문학]]
         * [[1996년]] 제1회 한중우호교류기금회 한중청년학술
         * [[1995년]] 제3회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
         * [[1994년]] 제3회 추리소설 독자
         * [[1992년]] 제1회 작가세계문학
         * [[원한 제국]]
         * 원한 제국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류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이문학자]][[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
  • 이재황(배우) . . . . 4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 세 ==
         제대 후인 2005년엔 군 제대작이자 극중 故[[정다빈(1980)|정다빈]][* 생전 정다빈님과 친했기에 2007년에 그녀가 떠난 후 엄청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일마다 그녀의 납골당을 찾았다. 기사까지 났다.] 과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화제가 된 《그 여름의 태풍》, 그리고 버림받은 [[윤해]]을 지켜주고 복수를 도와주는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뭇 여성의 마음을 흔든 《다이아몬드의 눈물》[* 이때 故 [[김성민(1973)|김성민]]과 연인을 맺게 되고 그 친분으로 <남자의 자격>에 절친으로도 출연했었다] 로 그 해 연기대에서 뉴스타을 받았다. --데뷔 6년만에 신인이라니.--
         2012년부터는 아침드라마에 자주 출연했다[* 2012년 '너라서 좋아'를 시작으로 '내 손을 잡아', '이브의 사랑', 그리고 2018년 '역류'까지 4연타 기록중.]. 그리고 2018년 4월에 종한 드라마 《[[역류]]》에선 생애 두 번째 악역인 [[강동빈]][* 첫 악역은 2010년에 출연한 '웃어요, 엄마'의 신머루 역이다. 신머루 역할은 좀 찌질한 면이 많아서 제대로된 악역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청률은 낮지만 본 사람들은 악마라고 욕한다.] 역에 도전했다.
         === 화 ===
         || 2003년 || 우리들의 전쟁[* 첫 화이자 유일한 화 작품] || 독립운동가 || 국방홍보원 장병 양성 화/국제군사화제 우수작품 ||
         || 12월 31일 || [[SBS]] || [[SBS 연기대]] || 뉴스타자 || ||
         || 09월 08일 || [[KBS 2TV]] || [[플러스]] 시즌2 || 게스트 || 246회 ||
         || 12월 30일 || [[SBS]] || [[SBS 연예대]] || 최고MC자 || with. [[장서희]] ||
         ||<rowbgcolor=#696969> {{{#white '''방 연도'''}}} || {{{#white '''브랜드'''}}} || {{{#white '''비고'''}}} ||
         || 2001년 || 케주얼<지피지기>(with. [[김민정(1982)|김민정]]) || ||
         || 2002년 || [[빙그레 바나나맛우유]](with. [[정소(여자 배우)|정소]]) || [[http://pan.best/1kEDT9aH|]] ||
         == 수경력 ==
         ||<rowbgcolor=#696969> {{{#white '''수 연도'''}}} || {{{#white '''시식'''}}} || {{{#white '''부문'''}}} || {{{#white '''작품'''}}} ||
         || 2005년 || [[SBS 연기대]] || 뉴스타 || 그 여름의 태풍, 다이아몬드의 눈물 ||
         || 2011년 || 제3회 Asia 주얼리 어워드 || 사파이어 || ||
          * 《지금은 연애 중》에 함께 출연했던 [[권우]]가 자신이 군대를 다녀온 사이 톱스타가 되어있자 놀랐다고 한다. --인생 역전 당함--
          * 2012년엔 기자들의 실수로 과거 시트콤 출연작인 《점프》의 캡쳐사진이 [[http://sports.donga.com/3/all/20120106/43142247/2|한채의 남편으로 오인된 흑역사가 있다.]] --지못미--.
          * [[노주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오남매》,《그 여름의 태풍》],[[박정수(배우)|박정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다이아몬드의 눈물》,《내 손을 잡아》],[[양금석]][* 《오남매》,《다이아몬드의 눈물》,《이브의 사랑》],[[금보라]][* 《아내의 유혹》,《내 손을 잡아》,《이브의 사랑》] 배우들과는 각각 세 작품씩 호흡을 맞췄고, [[채림]][* 《카이스트》, 《지금은 연애중》],[[김민정(1982)|김민정]][* 《카이스트 시즌2》,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홍수현]][* 《카이스트 시즌2》,《천사의 유혹》], [[권오중]][*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녹번동 삼형제》],[[최윤(1975)|최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지금은 연애중》],[[정찬]][* 《그 여름의 태풍》,《웃어요 엄마》],[[윤해]][* 《다이아몬드의 눈물》,《너라서 좋아》],이선진[* 《다이아몬드의 눈물》,《돌아와요 순애씨》],[[김형범(배우)|김형범]][* 《다이아몬드의 눈물》,《돌아와요 순애씨》], [[정애리(배우)|정애리]][* 《아내의 유혹》,《역류》], [[오실]][* 《아내의 유혹》,《공주가 돌아왔다》], [[김용건]][* 《아내의 유혹》,《웃어요 엄마》], [[진태현]][* 《천사의 유혹》,《내 손을 잡아》], [[배그린]][* 《웃어요 엄마》,《내 손을 잡아》],[[안석환]][* 《너라서 좋아》,《내 손을 잡아》], 임도윤[* 《이브의 사랑》,《역류》]등 배우들과는 각각 두 작품씩 호흡을 맞췄다.
  • 창작:IDF . . . . 41회 일치
         한자어 번역은 "국제방위대". 냉전시기, 자유진 국가들의 군사협력 공동방위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구로서 탄생하였다.
         IDF는 수만명의 비군 병력을 갖추고 있는 모병제 군대이다. IDF 모병에 응하는 데 특별한 국적 제한은 없으며, 비가맹국 출신이라도 IDF의 모병에 참가할 수 있으며, 실제로 당수의 비가맹국 출신이 IDF에서 복무하고 있다. 다만 모병 사무소는 가맹국에만 설치되어 있다.
         IDF는 모병에 있어서 선진국의 사관학교 출신자, 군복무 경험자를 우대하며, 특히 장교급 지휘관이나 특수부대 출신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다. 그 결과, IDF의 관급 이 장교는 선진국 사관학교 출신자나 퇴역장교 출신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반면 병사들은 당수 생계를 위해서 IDF에 개인적으로 참가한 제3세계 출신이며, 선진국 출신자 역시 저소득 계층 출신이 많다.
         IDF 회원국은 자국에 "비사태"가 발생할 경우, IDF에 군사 파병을 요청할 수 있다. 파병을 요청할 수 있는 비사태는 외국의 침략, 국내의 내전, 대규모 폭동, 대규모 재난 등이다. 회원국의 요청에 따라서 IDF 이사국의 승인 결의와 함께 파병이 이루어진다.
         파견 주둔지에서 민사작전을 담당한다. 공병대와 의무대로 구성되며, 피해 복구와 재건 작업, 민간인 구호 등을 진행한다. 배급소와 진료소를 설치하고 운하여 민간인들에 대한 식량, 의료 서비스 공급 등의 업무를 한다. 파견 지역의 치안 확보와 재건에 기여하고 반군의 성장을 막는다. 각종 국제 구호 조직과 협력하고 있다. 또한 재해지에 나타나는 볼란티어(자원봉사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활동을 통제하는 임무도 맡는다.
         IDF 항공대는 IDF 군 부대의 수송 임무에 중점을 두고 있어, 수송기와 수송헬기를 주로 운용한다. 이는 가맹된 각 국에서 IDF가 굳이 공격성이 높은 항공전력을 보유해야 할 필요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 대신 수송기나 수송헬기가 다소 과도한 수준으로 보이는 '방어용' 무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당히 많다. IDF 사령부 측은 이러한 황에 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투기 구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IDF 사무국 측은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군축으로 몇몇 선진국에서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위태롭게 돌아가면서, IDF에 전투기 구매가 타진되는 경우도 있다.
         IDF 해양대는 세계 여러 해역의 치안 악화와 그에 따른 해적 대처 임무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비교적 뒤늦게 창설되었다. '해군'에 해당하지만 그 특성 해군보다는 해안경비대에 가까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보유 함정은 원양 항해 능력과 헬리콥터 운용 능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 세 내역 ===
         전차의 경우 특성 높은 기동력으로 적 기갑전력을 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평화유지 부대가 이러한 전차부대를 운용하는데 필요성이 적다는 이유로 정규군에 준하는 군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2개 정도의 여단만 보유하고 있는 태이다. 그중 1개 여단은 현재 [[IS]](이슬람 무장 단체)로 인해 바그다드에 주둔중. 1개 여단은 중앙아프리카에 있다고는 하나 정확한 위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쿠데타가 일어났을때 즉각적으로 조치하기 위해 숨겨놓는것 이라고 추정된다.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대전의 흐름 보병의 높은 기동력이 중요해지고 도시 지역과 근방을 순찰하는 일이 많은 만큼 당수의 보병전투차량을 운용중에 있다. 험비는 미군이 L-ATV 사업을 도입하면서 일부 물량을 IDF에 기증하였기 때문에 당히 많은 수가 존재하지만 L-ATV 사업 비용을 분산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IDF가 차세대 병력수송장갑차인 L-ATV를 당수 구매하기로 하였다.
         전체적으로 소총병 위주의 전투병과 위주로 되어있는데, 이는 의무병과 공병부대를 민사작전 부대에 의존하는 경향을 높이었기 때문이다. IDF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인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중동 부근은 생각보다 지형이 험하지 않기 때문에 (단, 파키스탄의 산악지역은 예외이다.) 공병을 통해 지원받는 경우가 매우 적다. 도시 내에선 자체적인 방어진을 만드는 대에도 능숙하기 때문에 이러한 보병구성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당히 적은 중화기병 수는 작전시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을 받으나, 중화기를 동원하는 작전은 보통 지역 정규군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러한 부분이 크게 지적받지는 않는다.
          *당수의 정보력을 특수작전 부대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됨.
         >기 사항은 입수된 대외비 등급의 자료에서 확보한 것 입니다. 이 단체가 국제기구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내역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르겠군요.
          *정보자산 : [[http://rigvedawiki.net/w/%ED%82%A4%ED%99%80|키홀]] ?대 이용허가, 중동 지역에 한하여 미군과 정찰자산 공유, KGB 요원 다수가 HUMIT로서 지역 황을 파악하는데 지원을 주는 중. ~~미군 장비에 소련 인력이라...~~
          *정보통제 : ?[* 대외비 자료에서는 '통신 도중' 이 부분이 심하게 손되어 어떤 정보가 쓰여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자료 목차에는 이 부분이 있는 만큼 일단 이런것도 있다는 걸 알아두는게 좋겠죠.]
         IDF는 독자적으로 군사재판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IDF 가맹 조약에 따라서 각 가맹국 내에서 IDF 병사에 대한 사법권 행사를 인정받고 있다. 민간인 대 범죄는 사안에 따라서 해당국 사법부에 인도할 수 있다. 군사재판은 불공정하지는 않으나, [[엄벌주의]] 경향이 당히 강하며, 몇십년 형 이이 되는 경우도 있다. 몇몇 가맹국에는 IDF 군사 교도소가 설치되어 있어, 유죄 판결을 받은 IDF 병사가 수감되어 있다.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병사는 불명예제대 처분을 받고 본인의 국적국으로 추방된다.
         IDF의 예산은 주로 가맹국이 내놓는 '분담금'으로 충당되며, 분담금의 규모는 각국의 GDF나 현재 경제 황에 비례하여 책정된다.
         몇몇 국가는 분담금을 기지 부지 대여, 군사 교도소 설치 대여 등의 비용으로 '쇄'하는 경우도 있다.
         IDF 군의 전력은 당히 미묘한 수준으로 '억제'되어 있다. 분명히 IDF는 훈련이 잘 된 군대이고 실전 경험이 풍부하지만, 정보자산이나 공군, 해군이 빈약하고 강대국 군대와의 '협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강대국의 협력이 없는 '독자적인 활동'은 제한되어 있다.
         파병을 요청하는 국가 측에서는, 비록 IDF 역시 강대국의 향력이 강하게 미친다고는 하나 국제기구라는 틀을 가지고 있으므로 직접적으로 외국 정부와 외국 군대의 개입을 직접 요청하는 것보다 해당국 정부에서 정치적 부담을 적게 느끼게 된다. 강대국처럼 점령을 바탕으로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IDF는 국제기구라는 특성, 자국 군대와는 달리 쿠데타를 벌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어 신뢰받는 전력으로 여겨진다. '국제기구'라는 특성 IDF가 특정 국가를 점령하고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 함인섭 . . . . 41회 일치
         |경력 = 前 [[대한민국 농림부|농림부 장관]] <br/> 前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농과학행정특임촉탁위원 <br/> 前 [[한국독립당]] 농림행정특보위원 <br/>前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br/>前 [[강원대학교]] 명예총장 <br/> 前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br/> 前 [[지대학교]] 초빙교수
         |친인척 = [[함태]](친조부) <br/> [[함병춘]](이복 숙부) <br/> [[함재봉]](사촌 남동생) <br/> [[함재학]](사촌 남동생)
         |웹사이트 =
         '''함인섭'''(咸仁燮, [[1907년]] [[5월 3일]] ~ [[1986년]] [[9월 15일]])은 [[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이며, 초대 강원대학교 학장, 제6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강릉(江陵),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그는 [[춘천농업대학]]([[강원대학교]]의 전신)의 설립에 참여, 개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춘천농업대학]] 초대 학장과 2대, 4~5대 학장, 강원대학교 농과대학원장, 강원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제3대 부통령 송암 [[함태]]의 손자이며, 26년 연하인 [[함병춘]]은 그의 배다른 이복 삼촌이었다.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촉탁직원이 되었다가 [[연희전문학교]]의 [[교수]], [[황주군|황주]][[춘광원예학교]]와 [[자동농업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46년]] [[춘천공립농업중학교]]의 [[교장]]이 되었다가 이후 주로 [[강원도]]에서 교편을 잡았다. [[강원대학교]]의 전신인 [[춘천농업대학]]의 설립에 주로 참여하였다. [[1952년]]에는 농림부 장관으로 잠시 재직하면서 8.25 직후와 건국 직후의 토지보 문제와 토지 관련 분쟁을 모두 해결하였다.
         [[1907년]](광무 10년) [[5월 3일]]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함병석과 진주 강씨 강리백가(姜利百加)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인이었으나 뒤에 인섭으로 고쳤다. 함병석은 [[대한제국]]시대의 법관이자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장로교]] [[목사]]로 활동했던 [[함태]]의 본처 밀양 손씨 소생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일찍 사망하였다. 형제로는 남동생 함의섭이 있었다.
         함인섭이 태어날 당시 할아버지 [[함태]]은 [[대한제국]]의 판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함태이 본처 밀양손씨와의 사이에서 장남 함병석을 1889년에 얻었고, 함병석은 다시 1년 연하인 강성흠(姜星欽)의 딸 진주강씨와 결혼하여 그를 얻었다. 친할아버지인 [[함태]]과는 나이 차이가 34살 밖에 나지 않았기에 비슷한 시대인 [[제1공화국]]에 사회활동을 하였다.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 촉탁직원이 되었다가 [[연희전문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동시에 7년간 직접 농장을 운하였다.
         [[1948년]] [[2월 1일]] 당시 춘천농업대학을 설립하면서 농업토목기술원 양성소를 부설로 설립하였다. 그러나 춘천농대 부설 토목기술원양성소는 48년 10월 30일 1기 수료생을 배출하였으나, 운 여건이 여의치 않아 [[1949년]] [[5월 5일]] 2기생을 배출하고 폐소하게 되었다.
         [[1948년]] [[8월]]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現 강원대학교) 설립,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 학장서리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그는 [[문교부]] 국가고등고시 전형위원의 한 사람으로 위촉되었다. [[1949년]] [[8월 30일]]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 초대 학장이 되었다. 건국 이후 그의 할아버지 [[함태]]이 조선 말 [[독립협회]]사건과 [[만민공동회]] 사건으로 수감된 [[이승만]]에게 관대한 한결을 내려 그 인연으로, 내각 법무장관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성사되지 않고 할아버지 [[함태]]은 [[심계원]]장과 제3대 [[부통령]]을 지냈다. 전쟁이 발생하자 그의 동생 함의섭이 일가족을 이끌고 [[부산광역시|부산]]으로 피신하였다.
         [[1952년]] [[3월 6일]] 제6대 농림부 장관이 되었다. 농림부 장관이 되자 그는 정부 수립 직후에 시행한 [[토지개혁]] 당시 농지보금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8·15 광복 직후에 발생한 토지관련 분쟁과 토지보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1952년]] [[8월 28일]], 1952년의 중석불 사건으로 인책 사임<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2102000329201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2-10-20&officeId=00032&pageNo=1&printNo=1947&publishType=00020 ]</ref>하였다. 그는 중석불 사건의 피해자라는 시각도 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32200099109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5-03-22&officeId=00009&pageNo=9&printNo=9047&publishType=00010 ]</ref> 그밖에 그는 강원도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강원도 교육위원 등으로도 위촉되었다. [[1956년]] [[9월 12일]] UN가입추진위원회 전원위원회 강원도지부 부위원장<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609120032920100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6-09-12&officeId=00032&pageNo=1&printNo=3366&publishType=00020 ]</ref>이 되었다. 1957년 4월 20일 춘천농과대학 학장이 되고 1957년 5월 12일부터 [[1960년]] [[7월 7일]]까지 문교부 중앙교육위원회 위원을 겸임하였다. 그는 또 [[1960년]] [[7월 5일]]까지 고등고시 전형위원에도 위촉되었다.
         [[1964년]] 할아버지 [[함태]]이 사망했을 때 [[국민장]]이 거행되었는데, 그는 일찍 죽은 아버지와 삼촌들, 그밖에 나이 어린 이복 삼촌들을 대신해서 그가 주 노릇을 하였다.
         1970년 3월 3일 춘천농과대학이 강원대학으로 바뀌면서 [[강원대학]] 학장이 되었다. 1972년 1월 1일부터 강원대학 학장에 재선임되고, 1972년 8월 31일 정년 퇴임하였다. 이후 학교법인 임이사, [[강원대학교]] 명예 교수, 중동학교 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밖에 [[농학]] 학문연구 활동으로는 주로 [[콩]](豆)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였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는 [[기독교]] [[장로]]로도 활약하였다. [[1970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고 [[1972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하였다. 그는 재산을 마련하지 못해 자기 집이 없었고, 일부 제자들과 교직원들이 기금을 마련해서 그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 [[1986년]] [[9월 15일]] 오전 10시 [[강원도]] [[춘천시]] [[춘천의료원]]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장례식은 [[강원대학교]]장으로 거행되었고 주는 차남 함춘호 였으며, 묘소는 [[춘천시]] 공원묘지에 있다.
         후일 그를 기념하는 함인섭 기념광장이 [[강원대학교]] 교정 내 대운동장 옆에에 설치되었고, [[2010년]] [[6월 12일]] [[강원대학교]] 개교 63주년을 기념하여 함인섭 광장 내에 [[강원대]] 미술학과 교수 양재건이 그의 동을 제작, 건립하였다.
         * 농장 7년 경
         * 학교법인 임이사
         == 수 경력 ==
         함인섭의 다섯 딸 중 네명의 딸은 증조부가 되는 [[함태]] 생존시에 이미 결혼한 태였다. 함태의 부고 공고장에 승중손 함인섭의 사위 네 명의 이름도 함께 올라가 있다.
  • 배경 세계 공유 . . . . 40회 일치
         다양한 창작물이 하나의 세계를 배경으로 공유하는 방식. 어느 한쪽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쪽에 향을 주는 식의 묘사를 볼 수 있다. [[마블 코믹스]], [[DC 코믹스]] 등의 미국 만화가 대표적이며 화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당한 역사을 지니고 있으며 화쪽도 MCU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미국 만화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향 탓에 서양권의 주류라 생각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서 동양권에서도 이러한 스타일이 있다. 만화가 [[미나기 토쿠이치]]의 만화 '[[아시아라이 저택의 주민들]]'이 그런 경우.
         단의 정보처럼 본 문서명은 가칭이다. 이러한 스타일에 관해 'shared universe', 'shared world' 등의 단어가 있으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향을 받아 화계열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고도 한다. 공통 세계관, 동일 세계관, 세계관 공유 등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 ===
          마블 코믹스 기반 화 세계. 배경 세계 공유 화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큰 인지도를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엑스멘 실사화 시리즈]]
          마블의 엑스멘 기반 화 세계. 현재 종료된 시리즈다.
          SF화 스타워즈와 관련 애니메이션, 만화 등이 있다.
          DC 코믹스 기반 애니메이션 시리즈. 화쪽보다 이전에 나왔다.
          거대 괴수 화 세계.
          드라큘라, 미이라 등의 고전 괴물화 캐릭터들을 활용한 화 세계.
          국 드라마 <[[닥터 후]]>가 대표적.
          해리 포터 실사화 시리즈와 신비한 동물사전 실사화 시리즈가 소속되어 있다.
          * 밸리언트 코믹스(Valiant Comics) 기반 화 세계
          밸리언트 코믹스의 캐릭터들을 활용한 화 세계를 만들겠다고 한다. 현재 소속 캐릭터인 '블러드샷'이 화화된 황.
          괴수화 [[클로버필드]]가 대표적. 현재까지 나온 관련 작품들의 성격이 많이 다르나 배경 세계를 공유를 증명하는 요소가 있다.
          화 <[[언브레이커블]]>과 배경 세계를 공유하는 화 세계가 진행되고 있다. <[[23 아이덴티티]]>가 그런 경우이며 이후 나올 <[[글래스]]>도 포함된다.
          화 <[[존 윅 시리즈]]>의 배경 세계 공유 시리즈가 나온다 한다.
          * 도호의 화 시리즈
          몬스터버스의 고질라 판권의 출처인 도호에서도 배경 세계 공유 괴수 화를 만든다고 한다.
  • 원피스/845화 . . . . 40회 일치
          * 몽키 D. 루피는 선언한대로 디와 싸웠던 들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 빈스모크 일가와 샬롯가의 다과회는 순조롭게 진행. 샬롯 푸딩은 디를 따로 불러내 사정을 전달한다.
          * 디는 자신의 가족사와 채워진 폭발수갑과 제프, 동료들이 인질로 잡힌 일을 푸딩에게 밝힌다.
          * 푸딩은 디를 안타까워하며 "나와의 결혼은 지옥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말해버린다.
          * 그 말에 감동받은 디는 푸딩에게 정식으로 프로포즈한다.
          * 디가 싸웠던 들판에 누워버리는 몽키 D. 루피. 나미는 파운드가 언급한 빅맘 샬롯 링링의 행적을 언급하며 곧 적들이 복수하러 올 텐데 정말 적진 한가운데서 무작정 기다릴 거냐고 말한다. 결국 디는 오지 않을 거라고도 하는데. 그래도 루피는 고집을 꺾지 않고 디를 기다리기로 한다.
          * 때마침 일기가 흐려지며 나미는 심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몰려드는 암운을 보고 킹 바움이 빅맘이 분노했다고 두려워한다. 파운드가 말했듯 정말로 빅맘을 기후를 조종하고 있었다. 스위트 시티에서는 시민들이 하늘에서 날뛰는 프로페테우스와 제우스를 목격한다. 그걸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빅맘의 분노를 직감한다.
          * 빈스모크 형제들은 루피는 끝장이라고 장담한다. 지나치며 보니 그 군단의 면면들은 확실히 막강한 인물들 뿐이다. 처리꾼 "보빙", 귀부인 "아망도", 서사 "몽도르" 등 업계의 유명인들이 총출동. 이들의 총합 현금은 가늠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디는 끝까지 기다리겠다던 루피의 말을 떠올린다. 형제들은 "저 군단을 보면 달아나지 않을 리 없다"고 낄낄대지만 디는 그렇지 않다는걸 알고 있다.
          *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루피가 있는 들판에도 비가 내린다. 하지만 이 비는 진짜가 아니라 물엿이다. 루피는 아예 돌아누우며 뭐가 됐든 디가 주는 것 외엔 먹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한다. 나미는 안스러운 눈으로 루피를 바라본다.
          * 홀케이크 성. 빅맘 샬롯 링링은 빈스모크 일가와 만나기 위해 가는 중이다. 그런데 작은 소녀 "아나나"가 요리장이 식칼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징징댄다. 봉제인형을 찢어야 한다나. 빅맘은 옆에서 풍선을 타고 놀던 뚱뚱한 도르체, 도르제 형제에게 빌려주라고 하지만 도르체는 그러면 아나나가 자기들 풍선을 터뜨려 버릴 거라며 싫어하고 아나나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위협한다. 다른 아이들도 빅맘 주위로 몰려와 도르체와 도르제가 "나쁜 말"을 쓴다고 일러바친다. 빅맘은 껄껄 웃으며 "누구에게나 죽이고 싶은 대는 백이나 이백 정도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형제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한다. 빅맘은 내일로 다가온 샬롯 푸딩의 결혼식과 사위가족과 만날 일로 들떠 있다.
          * 마침내 한 테이블에 모인 제르마 왕가와 샬롯 링링. 빅맘은 푸딩의 결혼식을 기대한 것과는 달리 "정략결혼이니 나와 빈스모크 저지만 만족하면 된다"는 식으로 떠들어댄다. 오히려 저지 쪽에서 "그래도 애들이 행복하면 나쁠 건 없다"고 자식을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화기애애한 이들과 달리 푸딩과 디는 표정이 무겁다. 특히 디는 심란한 와중에 음식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난리를 쳐서 더욱 짜증이 난다. 그러던 중 푸딩은 살짝 쪽지를 전해 나중에 단둘이 이야기하자고 전하는데.
          * 루피 쪽에서도 분노의 군단이 다가오는게 확인된다. 나미는 물론 킹 바움 조차 조금만이라도 피해있자고 간청하지만 루피는 결심을 굳힌 태다. 드디어 군단 쪽에서 루피를 발견, 임전태세에 들어가지만 루피는 디가 오기 전엔 한 발짝도 움직일 마음이 없다.
          * 홀케이크 성에선 푸딩이 디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푸딩은 루피 일행과 했던 약속에 대해 말하고 디를 데려가지 못한 것을 사과한다. 디는 어차피 자신은 해변에 가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며 그녀의 사과를 사양한다. 푸딩은 초대장 때문에 그런 거라면 자신이 죄를 뒤집어 쓰는 걸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빅맘이 도망칠 것같은 결혼대에게 어떤 짓을 하는지 말하는데, 설명 들을 것도 없이 디 본인이 폭발수갑을 보여준다. 디는 이미 빅맘이 손을 써놨다고 말하며 지금껏 얼굴을 씌우고 있던 마스크를 벗는다.
          * 레이쥬는 그의 처를 치유해준 것이 아니라 가죽같은 마스크로 덮어 씌워놨던 것이다. 그 밑에는 얻어맞아 퉁퉁 부운 얼굴이 그대로 나타난다. 디는 피로 이어진 가족이 있어도 이꼴이고 자신의 편은 하나도 없다고 털어놓는다. 푸딩은 그의 처참한 몰골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디는 이 결혼식을 피하려 하면 자신도 밀집모자 일행도 끝장이고 그의 "대은인"인 제프 또한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저항을 포기하고 그 대신 루피 일행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여기에 남은 것이다.
          * 푸딩은 빅맘이 그렇게까지 했을지 몰랐다고 눈물로 사죄하나 디는 그녀의 탓이 아니라고 위로한다. 그는 제르마 왕국에 있던 13년 전을 지옥이라 표현하고 그 이후 13년 간은 거기서 벗어나서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동안 만났던 모두가 "은인"이고 누구하나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 그 말을 들은 푸딩은 오열한다. 디는 자신이 비참해지니 그만두라고 달래는데 푸딩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 하지만 그녀는 곧 실언이었다고 하며 그는 이토록 고민하고 있는데 정략결혼 따윈 당연히 지옥일 거라며 쓸데없이 참견해서 미안하다고 또 사과한다. 하지만 디는 그녀의 발언에 감동한 듯하다.
          * 디가 푸딩의 프로포즈를 들은 그 순간, 루피는 빅맘의 군단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병사들은 쓰러뜨리고 있지만 군단의 이름있는 자들은 여유로워 보인다.
          * 푸딩은 당황한 나머지 두서없는 사과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디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그녀야 말로 "구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진담인지 어떤지 모를 말을 하는데.
         디의 발언이 어디까지 진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를 대로 거짓말은 하지 않는 성격 진담으로 보인다. 푸딩은 결과적으론 디의 저항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일을 하게 됐는데 일각에선 푸딩이 처음부터 빅맘의 편이었고 디를 회유하려고 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푸딩은 타마고 남작의 눈을 피해 정말로 디를 데리고 가려고 했으니 구태여 그런 복잡한 연극을 할 이유도 없었다.
  • 원피스/862화 . . . . 40회 일치
          * 빈스모크 일가는 샬롯가의 강자들 한가운데 배석. 눈치챈 건 [[빈스모크 레이쥬]] 뿐이나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며 [[디]]만은 살아나가길 기도한다.
          * [[샬롯 카타쿠리]]는 예과 달리 [[샬롯 푸딩]]이 쓰러지는 미래를 예지하고 당황한다.
          * 결혼식이 시작되고 푸딩은 계획대로 제 3의 눈을 드러내며 디를 쏘려하는데, 디는 죽을 위기인 것도 잊고 "너무나 아름다운 눈동자"라고 감탄한다.
          * 작전이 빗나가기 시작한걸 감지한 빅맘은 주례에게 신호해서 그가 디를 쏘게 한다.
          * 카타쿠리는 주례가 쏘는 총이 빗나가는 걸 예지, 자기가 직접 디를 저격하나 그는 견문색 패기로 피하고 카타쿠리가 저격한 것도 눈치챈다.
          * 뇌운 제우스가 짊어진 찻잔을 타고 새신랑 새신부가 나타난다. [[샬롯 푸딩]]과 [[디]]는 겉보기엔 너무나 행복한 한쌍이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한 쪽은 죽일 생각이 만만, 한쪽은 죽을 판인데도 헤롱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디는 죽을 거라는걸 뻔히 알고 정신차리자고 하는데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모른다.
          >반하고 개이면서 처입으며
          빅맘 [[샬롯 링링]]은 케이크가 훌륭하다고 슈트로이젠과 부하들을 몸소 칭찬한다. 하객들도 칭찬일색이다. 신혼부부를 태운 찻잔은 초거대 웨딩케이크의 정으로 향한다. 마치 장식처럼 보였던 꼭대기의 지붕이 두 사람이 맹세를 주고 받을 단이었다. 스튜시는 신부화장한 푸딩이 "옛날의 나처럼 아름답다"고 감탄하는데 옆에 있던 루 펠드가 "몇 십 년 전 일이냐"고 츳코미를 넣다가 얻어맞는다.
          * 빈스모크 일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자리로 안내된다. 하지만 그 자리가 위험하다는 걸 눈치챈 사람은 [[빈스모크 레이쥬]] 뿐이다. [[빈스모크 욘디]]는 푸딩이 마음에 드는지 "저런 여자라면 디대신 내가 결혼을" 하는 소리나 하다나 [[빈스모크 니디]]와 [[빈스모크 이치디]]의 비웃음을 산다. 신부 얼굴이 어떻든 빅맘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 하니까.
          레이쥬는 자신들의 테이블 근처를 샬롯 가문의 형제들이 둘러싸고 있는 걸 보고 이미 포위당한 걸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녀는 제르마라는 가문과 함께 죽기를 각오한 몸.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지만 디 만큼은 살아나가기를 바라며 루피에게 비책이 있기를 기도한다.
          * 결혼식을 지켜보던 삼장성 [[샬롯 카타쿠리]]는 해석되지 않는 미래를 예지하고 흠짓한다. 그가 본 미래에선 디가 아니라 여동생 푸딩이 쓰러지기 때문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이 왜 떠오른 건지, 카타쿠리는 당황하며 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굴린다. 삼장성 [[샬롯 스무디]] 오빠의 태도가 심치 않은걸 느끼고 왜 그러냐고 묻는다. 그리고 눈치 빠른 벳지도 그가 미래를 보고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파악한다.
          * 어느덧 언약의 키스를 할 시간이다. 문제의 "총성"이 울릴 것이다. 디가 푸딩에게 다가가 베일을 걷는다. 푸딩은 속으로 한껏 비웃는다.
          >후후, 잘 보라고
          * 디의 눈에 놀라운 기색이 번진다. 그가 방심하는 동안 푸딩은 치마 속에서 총을 준비한다. 그대로 디의 이마를 꿰뚫어줄 차례인데... 디의 반응이 예을 초월했다.
          디는 새삼 반한 듯이 홍조를 띄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푸딩의 반응도 예을 뛰어넘었다. 그녀는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는다. 이게 카타쿠리가 본 미래. 디가 당황해서 "가까이에서 보니 반해버렸다"고 수습하는데 푸딩은 그 말에 또 한 번 감동 받는다.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빅맘은 조바심을 낸다. 하지만 푸딩은 고백의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푸딩이 제 3의 눈을 가리게 된 이유는 빅맘 때문이었다. 어머니인 그녀 조차도 푸딩의 눈을 기분나빠 해서 이마로 가리라고 성화를 부렸다. 물론 다른 형제 자매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빅맘의 딸인데도 또래 사이에선 괴롭힘의 대이었다. 모두가 그녀의 눈을 놀리고 혐오했다. 그게 지금의 푸딩을 만들었다. 처음 사람을 찌른 것도 자신의 눈을 가지고 괴롭히던 남자애였다. 잠자코 비웃음 당하느니 전부 없애버리는 걸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혐오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자신은 괴물이라고 독백한다.
          푸딩은 쓰러진 채로 디에게 "너를 죽이고 말겠다"고 위협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 푸딩의 행동은 형제들 사이에도 동요를 일으킨다. 빅맘은 푸딩을 이용하기는 글렀다고 판단, 주례에게 신호를 준다. 주례는 조용히 자신이 준비한 총으로 푸딩을 돌보는데 여념이 없는 디를 겨눈다. 하지만 카타쿠리는 그가 주례의 총을 피하는걸 본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디를 저격하지만 이것도 맞추지 못한다. 조준은 정확했지만 디가 견문색 패기로 감지하고 피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빗나간 총알은 주례의 미간을 정확히 관통, 주례가 뒤로 넘어지면서 그의 총은 허공에 발사된다.
          디는 카타쿠리가 자신을 쏜걸 눈치채고 그를 노려본다. 그리고 루피는 총성을 듣고 "[[원피스/859화|기가막힌 등장법]]"을 시작한다.
  • 윤덕주 (농구인) . . . . 40회 일치
         [[1935년]] [[숙명여자고등학교]] 재학 중 농구 선수가 되어 해방 후, [[1950년대]]까지 농구 선수로 활동했다. 자녀를 임신한 태에서도 현역 농구선수로 코트에서 활약하여 화제가 되었다.
         시인 [[이화 (시인)|이화]], 독립운동가 [[이정]], 체육인 겸 사학자 [[이백 (사학자)|이백]]은 친정어머니 이숙경의 사촌 남동생들이었다. 치과의사 겸 치의학자 [[이열희 (1924년)|이열희]]는 외사촌 동생이었다. 대구 출신.<ref name="dibigos">[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307032 <nowiki>[</nowiki>부고<nowiki>]</nowiki> 윤덕주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 동아일보 2005.07.09</ref>
         독립운동가 겸 언론인 [[윤홍열 (1893년)|윤홍열]]의 딸이자 민족운동가 겸 사학자 [[윤필오]]의 손녀로 태어났다. 어머니 이숙경은 민족운동가 이일우의 딸로, [[이화 (시인)|이화]], 독립운동가 [[이정]], 체육인 겸 사학자 [[이백 (사학자)|이백]]의 사촌 누나가 된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안실 3층1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오전6시에 거행되었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507/h2005070818102324180.htm 윤덕주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 별세]</ref> 2005. 7. 12(화) 오전 6시 대한농구협회장(장례위원장, 이종걸)으로 거행되었으며 장지는 [[경남도]] [[통시]] [[산양면]] 연화리 선에 안장되었다.<ref>[http://www.jumpball.co.kr/cont/cont_view.php?cont_cd=02&cont_seq=2785 한국농구 대모 윤덕주 명예회장 별세]</ref>
         * [[1998년]] [[10월]] [[대한체육회]] 임고문
         ** 언니 : 윤
         ** 외삼촌 : 이
         *** 외당숙 : [[이정]](李相定, [[1897년]] [[6월 10일]] ~ [[1947년]] [[10월 27일]], 독립운동가. 아호(雅號)는 청남(晴南), 산은(汕隱). [[대한독립군]] [[3성 장군|중장]])
         *** 외당숙모 : [[권기옥]](權基玉, [[1901년]] [[1월 11일]] ~ [[1988년]] [[4월 19일]], '''이정'''(李相定)의 부인. 여성 비행사, [[대한독립군]] [[대령]])
         *** 외당숙 : [[이화 (시인)|이화]](李相和, [[1901년]] [[5월 9일]] ~ [[1943년]] [[4월 25일]], 작가, [[독립운동|민족]] [[시인]]. 아호(雅號)는 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백아(白啞).)
         *** 외당숙 : [[이백 (사학자)|이백]](李相佰, [[1904년]] [[8월 6일]] ~ [[1966년]] [[4월 14일]], 사학자 겸 체육행정가. 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아호(雅號)는 백(想白), 백무일재(百無一齋).)
         *** 외당숙 : 이오(李相旿, [[1905년]] ~ [[1969년]], [[사냥|수렵가]], [[바둑]]인. 아호(雅號)는 모남(慕南).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우현고등보통학교 및 [[일본]] [[호세이 대학교]] 법정학과 졸업.)
         **** 외6촌제부 : [[박창암]](朴蒼巖, [[1923년]] [[5월 15일]] ~ [[2003년]] [[11월 10일]], 군인, 정치가. 이오의 사위. 아호(雅號)는 만주(滿洲), 허주(虛舟), 농부(農夫). [[군사어학교|대한민국 군사어학교]] 1기 출신. [[대한민국 육군|육군]] [[1성 장군|준장]] 전역.)
         == 수 경력 ==
         * [[1997년]] [[2월]] [[대한올림픽위원회]] 공로
         * [[이정]]
         * [[이화 (시인)|이화]]
         * [[이백 (사학자)|이백]]
         * [[이오]]
         * [[육수]]
  • 이경희 (1880년) . . . . 40회 일치
         '''이경희'''(李慶熙, [[1880년]] [[6월 11일]] ~ [[1949년]] [[12월 4일]])는 [[대한제국]]의 교육자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구한 말 [[신민회]]의 회원이자, [[일제 강점기]] 당시 [[의열단]]과 [[신간회]]의 주요 멤버의 한 사람이다. 해방 후 초대 [[경북도]] 부지사와 초대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을 역임했다.
         광복 직후 초대 [[경북도]] [[부지사]]와 초대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 미 군정 경북도사령부 민정관 등을 역임했으나 [[미군정]]과의 갈등으로 사퇴했다. 이후 시민단체,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자는 군선(君善) 또는 군미(君美)이고, 호는 지오(池吾), 본관은 [[인천 이씨|인천]](仁川)이다. [[경북도]] 출신.
         지오 이경희는 [[1880년]](고종 17년) [[6월 11일]] [[경북도]] [[달성군]] [[공산면]] 무태리(현, [[대구광역시]] [[북구 (대구광역시)|북구]] 서변동)에서 아버지 이병두(李柄斗) 어머니 경주 최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동생 [[이강희 (독립운동가)|이강희]] 역시 독립운동가였다. 본관은 [[인천 이씨|인천]]으로,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증직|증]][[의정]](贈領議政)에 [[추증]]된 공도공(恭度公) [[이문화|오천 이문화]](烏川 李文和)의 19대손이며, [[조선]]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이주 (임란 의병장)|태암 이주]](苔巖 李李輈)의 11대손이다.
         소년기에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895년]](고종 32) 대구 공산의 소학교에 입학하고, [[1901년]](광무 4) 공산 소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부]]로 경, [[경성부]] [[기호중학교]](畿湖中學校)에 입학했다. [[1905년]] 한성 기호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그해 [[11월 17일]]의 [[을사 보호 조약]] 체결에 반대하였으나 조약이 강제로 통과되자, 관직의 꿈을 접고 교육계에 몸담았다. 그는 자신의 아호를 지오라 하였는데 이는 나라 잃은 나는 못난 이라는 뜻이었다.
         [[1909년]](융희 3) [[윤치호]],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를 결성하고, [[청년학우회]] 경성부지회의 회원이 되었다. [[1910년]] [[5월 13일]] 독립운동가 [[구찬회]]가 [[경성부]]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했다. 구찬회와 같은 고향 출신이던 그는 한국통감부와 일본의 눈을 피해 [[구찬회]]의 시신을 [[미역]] 속에 숨겨서 경성에서 대구 무태로 운반하여 [[구찬회]]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전달하고 [[경성]]으로 돌아왔다. [[1910년]](융희 4) [[10월]]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경성]]으로 올라가 청년학우회 한성지회의 일원으로 [[이동녕]](李東寧), [[윤치호]], [[안창호]], [[윤치소]], [[이회]](李會榮), [[윤기섭]](尹琦燮), [[이승훈]], [[김좌진]](金佐鎭),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결성하고 회원이 되었다. 이후 [[신민회]]의 비밀회의에 참여, 독립군 기지창건을 목적으로 자금을 마련하는데 동참했고, [[105인 사건]]을 피해 바로 [[서간도]](西間島)로 망명하여 무관학교(훗날의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위해 장사와 노동에 종사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돈을 모았다.
         동시에 현지 교민들의 문맹률을 보고 [[중국]] [[심양]](瀋陽)에서 달신학교(達新學校)와 중국어 학교를 세워 학생, 청년들을 가르치고, [[야학]]을 개설하여 성인들을 가르쳤다. 이어 마련한 돈으로 [[만주]] [[무송현]]에 둔전을 마련하여 다시 군자금을 만들고, 청장년을 훈련시켰다. [[1918년]] [[12월]] [[파리강화회의]]로 파견되는 [[김규식]] 박사와 일행의 차비와 여비로 일부 자금을 [[하이]]로 보냈다.
         무기와 폭탄이 들어오자 그는 [[김시현]], [[유석현]] 등으로부터 〈혁명선언서〉와 투항권고 격문 수백 장을 받아 [[경성부]] 시내 곳곳에 살포하고, 전국 각 도의 도지사와 경찰부(警察部)에 발송하였다. [[김시현]], [[유석현]](劉錫鉉) 등 [[의열단]] 단원들이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은행]], [[매일신보사]] 등을 폭파하할 것을 계획하고 준비에 들어갈 때 이경희는 [[조선총독부]] 폭파를 맡았다. 그러나 [[1923년]] [[5월]] [[조선총독부]] 폭파 일보 직전에 이들의 행동을 수하게 여긴 누군가의 신고로 밀정이 따라붙어, 동지 12명과 [[조선총독부]] 종로 경찰서에 체포되어 테러 미수 혐의로 재판받았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1년 넘게 형을 살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1927년]] [[2월]] [[경성]]으로 경하여 [[허헌]], [[조병옥]], [[김병로]], [[이인]], [[허정숙]] 등과 함께 [[신간회]] 발족에 참여하였고, [[신간회]] 경성중앙본부 총무간사를 맡았으며, 곧 [[신간회]] 경북도지회가 결성되자 [[신간회]] 중앙본부 총무간사와 경북도 지회장을 겸하였다. 그 뒤 [[신간회]] 경북도 대구부지회가 결성되자 [[신간회]] 대구부 지회장을 겸임하시면서 한때 30여 세포와 만여 회원을 포섭, 가입시켜서 단체를 키웠다. 1927년 12월 [[신간회]] 대구지회장 직을 부회장 [[최윤동]]에게 넘겨주고 이후 평회원으로 활동했다. 이어 [[신간회]] [[밀양]]지회 조직을 지원하러 내려갔다가 불심검문을 받고 [[밀양]]에서 검속되었다. 그뒤 [[신간회]] 밀양지회 산하 조직인 [[밀양청년회]](密陽靑年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는데, 항 [[밀양경찰서]]와 파견된 총독부 경찰의 요시찰인으로 감시를 받았다.
         [[대종교]]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로 신자들은 조선총독부의 감시를 당했으나 그는 개종을 거부하였다. [[1939년]]부터 [[창씨개명]]령이 나오고 [[1940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경희는 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1942년]] 여름 [[경성부]] [[돈암동]]을 떠나 대구로 내려가 야산에 숨어 밭을 갈고 농부로 생활하였으며, [[항일 단파 방송]]인 [[미국의 소리]] 방송을 비밀리에 밀청하고 해방을 예하였다. 이때 그 몰래 그의 부인 조씨가 [[청도군]]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둘째 사위에게 [[보리쌀]]을 얻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일제의 패망을 예하여 일제 패망론을 주장하며, 해방을 준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고 [[일본인]] 도지사와 부지사 등이 업무를 내려놓고 사퇴를 선언하자 행정공백을 피하기 위해 [[8월 16일]] 위촉장을 받고 초대 [[경북도]] [[부지사]]가 되고, 그날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을 겸직하였다.<ref>당시 경북도청은 대구시내에 있었으므로 그는 경북도 부지사와 대구부윤 업무를 보느라 양쪽을 오고 갔다.</ref> 그는 대구부윤 上野彦八에게서 행정권과 치안권 일체를 인수하였다. 그밖에 그는 [[대종교]] 본부 경의원의 참의로도 임명되었다. [[9월 2일]] 미군정이 주둔하자 레이몬드 재노스키(Raymond A.Zanowski) 미육군 대령의 천거로 경북도 미군정 사령부 민정관으로 위촉되었다.
         그뒤 [[우익]]에 가담하여 [[1945년]] [[10월]]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회]] 회원으로 가입하고, [[독립촉성중앙회]] 회장 [[이승만]], 부회장 [[김구]]의 친필 임명장을 직접 전달받았다. [[1945년]] [[12월]] 독립촉성중앙회 경북도지회와 독촉 대구부지부 결성에 참여하였다.
         [[1946년]] [[1월]] 다시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에 유임되었다. 그러나 [[미 군정]]의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정책에 환멸을 느껴 [[1946년]] [[9월 4일]] 부지사, 대구부윤, 군정청 민정관 사직서를 제출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46년 [[9월 5일]] [[독립촉성중앙회]] 경북지부의 후신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북도]]지부 위원장에 피선되고, [[대종교]] 남사도본사 선범에 선임되고, [[대한민국]] 건국 직후에는 [[1949년]] [[7월 1일]] [[남선경제신문사]] 제4대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 훈 ==
         * [[1945년]] [[경북도]][[부지사]] 겸 임시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
         * [[1945년]] 미군정청 경북도 사령부 민정관
         * [[이회]]
         * [[이석]]
         * [[이건]]
         * [[이시]]
         * [[장건]]
  • 이중환(법조인) . . . . 40회 일치
          * 위 문서 : [[법조인/목록]]
         || '''생년월일''' || [[1959년]] [[12월 25일]] [[경북도]] [[구미시]] ||
         1959년 [[경북도|경북]] [[구미시|구미]]에서 출생했으며 [[경북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 [[단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15기(1986년)) 수료 후, 검사로 임용되어 2011년까지 근무하다 퇴직하고 변호사로 전직하였다. 이중환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대통령 대리인단에 합류하였으며 대리인단의 대변인이자 대표 대리인 역할을 맡았다. 탄핵 심판 초반에는 대리인단의 대변인으로서 언론에 박근혜쪽 입장을 대변하는 인터뷰와 브리핑을 전담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밉으로 찍혀서 욕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탄핵 심판 중반부터 대리인단의 일부 [[서석구|변]][[김평우|호]][[조원룡|사]]들이 막말 변론을 해대고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집회]]에 나가 헌재를 마구 비난하는 등의 추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대적으로 무난했던 이중환 변호사는 대중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탄핵이 결국 인용되어 대통령이 파면된 후에 나름 이중환 변호사의 고충이 당히 컸다는 것이 알려졌다. 일단 대리인단은 탄핵심판 내내 의뢰인 박근혜와 거의 만나지 못했으며 의뢰인의 입장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던 탓에 변론의 방향 설정에 어려움이 매우 컸다고 한다. 대리인단이 헌법 재판관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증인 신문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단지 대리인단의 무능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중요한 사건을 맡았는데도 수임료를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 통적으로 이 정도 사건의 경우 [[http://www.huffingtonpost.kr/2017/04/03/story_n_15772380.html|수임료가 2억 이이 되어야 하는데]], 기사에서 보듯이 대리인단은 사실 무료 변론을 했다.
         탄핵 심판 중반 이후 황이 박근혜에게 많이 불리해지자 대리인단의 몇몇 변호사들이 변론의 기본을 무시한 채 정치적 발언을 일삼고 헌재를 모욕하고 협박하는 등, 대리인단 간에 의견 통일이 전혀 안되고 변호사들끼리 각자 변론을 하는 수준으로 팀웍이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든 대리인단을 추스려야 했던 이중환 변호사는 이에 대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90067|"벼룩 10마리 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만큼 힘들다."]]라는 표현으로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법조인들은 대리인단의 팀웍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로 대리인단이 무료로 변론을 한 탓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제대로 돈을 받고 변론을 했다면 일단 의뢰인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자신의 신념이나 기분을 앞세워서 마구잡이로 변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되고 심지어 구속까지 당한 후에도 제대로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고용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의 몰락은 결국 제대로 댓가를 제공하지 않고 누군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서 도와줄거라고 믿는 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박근혜의 성격에 대해서는 박근혜 저격수 [[전여옥]]이 지적한 바가 있다.]
         비록 국민 정서에 반하는 변호를 맡았던 탓에 욕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대리인단의 일부 변호사들처럼 법조인으로서의 기본적인 품격을 잃지는 않았고 소통이 전혀 안되고 돈도 안주는 의뢰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나름 동정표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박근혜같은 중범죄자도 자기 입장을 말할 권리와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왜 하필 저런 사람을 변호하느냐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어차피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누군가가 이 일을 맡았어야 한다는 것은 기하자.][* 물론 '변호사 전원 퇴진'이라는 카드를 보여주며 재판을 지연시키려 했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래도 '법조인'으로써 할수 있는 선에서의 카드였고 결국 이 카드를 쓰지는 않았다. 후에 박근혜 재판의 대리인을 맡은 [[유하]] 변호사가 변호인 전원퇴진을 진짜로 강행하여 재판을 지연시켜버리며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것을 보면 여러모로 대조적인 부분.]
          * 2011년 변호사이중환법률사무소 대표
         ||<#5c6bc0><-2> [[박근혜|{{{#white __박근혜__}}}]] {{{#white 측근 / 대리인}}} ||<-3> __[[김기춘]]__ · __[[우병우]]__ · ^^故^^[[이춘]] · __[[정호성]]__ · [[이재만(1966)|이재만]] · [[안봉근]] · [[박지만]] · [[박근령]] · ''[[신동욱(1968)|신동욱]]'' [br]/ [[이중환(법조인)|이중환]] · [[손범규(법조인)|손범규]] · [[채명성]] · [[서성건]] · [[서석구]] · [[전병관]] · [[이용(법조인)|이용]] · [[황성욱]] · [[박진현]] · [[유하]] . [[정기승]] ||
         ||<#5c6bc0><-2> [[최순실|{{{#white __최순실__}}}]] {{{#white 측근 / 변호인}}} ||<-3> ^^故^^[[최태민]] · ^^故^^[[임선이]] · [[최순득]] · __[[정윤회]]__ · __[[정유라]]__ · __[[장시호]]__ [br] ''[[최재석]]'' · ^^故^^''[[조순제]]'' · __''[[고태]]''__ · __[[차은택]]__ · [[윤식]] / [[이경재(법조인)|이경재]] ||
         || [[대한민국 정부|정부]] 관계자 ||<#ddd> [[청와대]] || __[[안종범]]__ · [[현기환]] · [[김한수(정치인)|김한수]][br] [[김률]] · [[조원동]] [br] [[윤전추]] · [[이선]] · ^^故^^[[김한(공무원)|김한]] ||<#ddd> [[대한민국 정부|행정부]] || __[[황교안]]__ · __[[문형표]]__ · [[김종덕]] · __[[조윤선]]__[br]__[[김종]]__ · [[송성각]] · ''[[유진룡]]'' · ''[[여명숙]]'' ||
         || 재단 · 협회 ||<#ddd> [[전경련]] || [[이승철(기업인)|이승철]] ||<#ddd> [[미르재단]] · [br][[K스포츠재단]] || [[정현식]] · [[정동춘]] · ''[[이성한(미르재단)|이성한]]'' [br] ''[[노승일]]'' · [[박헌(K스포츠)|박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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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현수 (영화감독) . . . . 40회 일치
         {{화인 정보
         | 직업 = [[화 감독]]
         '''장현수'''([[1959년]] [[10월 10일]] ~ 현재)는 [[대한민국]]의 [[화 감독]]이다.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중앙대학교]] 연극화과를 졸업했다. [[1985년]] 조감독에서 경험을 쌓았다. [[1992년]] 《걸어서 하늘까지》라는 로맨스 화로 감독 데뷔를 시작하였다. [[1994년]] 《[[게임의 법칙]]》으로 그 액션 화로 성공을 이어갔다. 이후 화 《[[엑스트라 (1998년 화)|엑스트라]]》로 카메오 출연으로 그 화제작을 선보였다.
         == 화 작품 ==
         ! 어 개봉명
         | 이병헌, 최지우, 추
         | 김해곤, 조준형, 최학락, 이승진, 홍소
         | [[남자의 향기 (화)|남자의 향기]]
         | 박중훈, 이경, 오연수
         | [[걸어서 하늘까지 (화)|걸어서 하늘까지]]
         * 1992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웅》
         * 1991년 《젊은 날의 초
         == 수 내역 ==
         * 2002년 제38회 백예술대 화 시나리오
         * 1994년 제5회 이천 춘사대화제 각본
         * 1993년 제29회 백예술대 화 신인감독
         * 1993년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 신인감독
         * 1993년 제30회 대종 화제 신인감독
         * 1992년 제3회 이천 춘사대화제 각색
  • 정운용 . . . . 40회 일치
         |출생지 = {{국기나라|일제강점기}} [[경북도]] [[대구]] [[남일동]]
         |소속 = [[경합동은행]] 취체역(이사), 두취(행장) <br /> [[한성은행]] 무취체역(무이사) <br /> [[조흥은행]] 2대행장
         '''정운용 (鄭雲用)''' (1904년 ~ 1963년 10월24일 )은 [[조흥은행]] 2대행장으로 일본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이후 최초의 한국인 행장이었다. 그는 [[경합동은행]] [[취체역]](이사), 경합동은행 [[두취]] (행장),한성은행 무취체역(무이사) 등을 거쳐 1945년 11월 조흥은행 행장에 올랐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231~234</ref>
         정운용은 대구 부호이자 민족자본은행의 개척자인 [[정재학]]의 장손으로 태어났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ref> 그의 모친 김인아는 정운용이 중학생이었던 1918년 타계했고 부친인 정응원마저 1933년 서거한 뒤 정재학 조부 밑에서 자랐다. 정재학은 3남인 [[정종원]]과 장손인 정운용을 각별히 여겨 니혼대학 법학과, 메이지대학 법학과로 유학을 보낸 뒤 3남에게는 관료로 활동하도록 했고 맏손자에게는 은행경 노하우를 전수했다.<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ref><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11</ref>
         정운용은 1938년 24세의 나이에 경합동은행 취체역(이사)에 선임됐다. 조부인 정재학 경합동은행 두취(행장)이 은행경권을 손자에게 넘겨주기 위한 포석이었다. 또한 동일은행 최대주주였던 민대식 등 황실외척이었던 민씨가문에 의한 경권 장악 기도는 물론 대구공은행을 운하던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의 경권 탈취시도와 맞서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ref name="ReferenceA">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정운용은 조부 밑에서 은행경 노하우를 습득한 뒤 1940년 조부의 타계 직후 경합동은행 두취(행장)에 선임됐다. 하지만 일본 총독부는 1941년 경합동은행을 수도권은행인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하다. 이때 그는 경합합동은행 두취 경력을 인정받아 한성은행 무취체역(무이사)에 임명됐다. 1943년 동일은행과 한성은행이 합병돼 출범한 조흥은행에서도 전무취체역(전문이사)을 맡았다.
         정운용은 대구은행과 경합동은행 등에서 27년간 최고경자였던 [[정재학]]의 맏손자다.
         정운용은 조부인 [[정재학]] 대구은행장, 경합동은행장 그리고 삼촌인 [[정종원]] 조흥은행장과 더불어 3대에 걸친 정씨 가문 은행장 배출이란 진기록을 남겼다. 정씨 가문의 3명 행장 재임기간을 합치면 34년에 이른다.
         정운용 조흥은행장은 미 [[군정청]] 골든 재무부장(중령)과 친밀한 관계였다. 해방 후 중앙은행이 정해지지 않은 태여서 조흥은행은 강력한 중앙은행 후보로 꼽혔다. 조흥은행은 민족자본비중이 절반을 넘은데다 일본자본의 침투가 가장 적었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222</ref> 하지만 1946년 광복1주년을 맞이하여 미 군정청 내각 전원이 한국인으로 채워진다. 골든 재무부장이 본국으로 돌아갔고 윤호병이 신임 재무부장으로 선임됐다. 조흥은행 대신 조선은행이 중앙은행으로 선정됐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 (창조사, 1970) p.237</ref> 정운용 행장 역시 1947년 10월 군정장관의 명령에 의거 행장에서 물러났다.<ref>경향신문, 1947년 10월 18일 2면 정운용 행장 해임</ref>
         대구은행 설립자 정재학의 후손인 [[정종원]](3남)과 정운용(장손)은 1957년 무렵 조흥은행의 주도권을 두고 동일은행계의 대주주였던 조선황실 외척인 민씨가문과 맞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흥은행은 일제 말 동일은행과 경합동은행을 흡수한 한성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은행이다. 따라서 양대 대주주인 [[경합동은행]] - [[대구은행]])계 정씨 집안과 동일은행계 민씨 집안 가운데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가 관심사였다.
         정재학의 3남 정종원이 조흥은행장으로 재직하던 1957년 3월말 실시 된 [[귀속주]]입찰에서 민씨 가문은 [[민덕기]]를 중심으로 계성(주), 휘문재단, 보합명회사 및 민병도 당시 조흥은행 전무 등의 지분을 합쳐, 7만8000 주를 확보하며 4만6000 주에 그친 정종원, 정운용 가문을 압도했다. 그러나 민씨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악화로 인해 민씨가문은 조흥은행 주식을 팔아 긴급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민씨 가문은 1957년 하반기부터 1958년 반기까지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갔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정재학]]의 손자이자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2대 조흥은행장에 오른 정운용은 첫 아내와 사별한 뒤 김분조와 재혼했다. 김분조의 부친 [[김진만]]은 1915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광복단]] [[대구권총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ref>경향신문 1963년 3월 1일 3면 대한광복단 사건</ref><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http://hrznnzrh.blog.me/60033398980 근대 100년 대구 거부실록 정재학가</ref><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8일 7면</ref><ref>독립기념관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의 전개 4. 대한광복회 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456</ref> 김진만은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대구의 부호들을 대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구 지역 부호였던 장인 [[서우순]]의 집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러나 실패한 뒤 도피하다 반항하는 하인 우도길에 총을 입혔다.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돼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ref>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독립운동가 김진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10638</ref><ref>독립기념관 29 김진만 독립운동가 서한집 http://www.i815.or.kr/media_data/data_chong/32.pdf</ref>
         [[김진만]]의 손자 [[김일식]] 역시 1920~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김진만]]과 함께 [[서우순]] 자택에 침입했던 광복단원들 가운데 [[정재학]]과 먼 친척관계인 [[정운일]](鄭雲馹)도 있었다. 정운일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선고받아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복 후 미군정 경북도 임고문과 반민특위 경북 도위원장을 역임했고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ref>민족문화백과사전 정운일 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50653</ref><ref>놀라운 사실은 [[정재학]] [[대구은행]]장이 자신을 협박대으로 꼽았던 친척 [[정운일]]에 대해 각별히 배려해줬다는 점이다. 정재학 행장은 정운일의 아들인 [[정인택]]( 1911~ 1973 )이 감옥에 있는 부친 때문에 급학교진학이 어려웠던 사정을 알고 보증인 역할을 해줬다. 정인택은 정 행장의 보증 덕에 대구고보에 합격할 수 있었다. 정인택 역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도 잡고 부산소년원장을 지냈다. 소년원장을 그만둔 뒤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맡으면서 유아에서 노인까지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살폈다. 원장 관사마저 병실로 개조한 뒤 원내 마당에 조그만 흙벽돌집을 세워 거처로 삼았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는 [[1966년]] 경향신문이 제정한 제1회 '국민의 주는 희망의 ' 대자로 선정됐다. 내무부장관 국회사무총장 등 각계에서 격려 축전을 보냈다. 정인택은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선소감에 자신이 정재학의 증손자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정재학이 1858년 출생인 점에 비춰볼 때 1911년생인 정인택이 증손자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정재학의 맏손자인 정운용 1대 조흥은행장이 태어난 해가 1904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항렬 등에 비춰볼 때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먼 친척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인택의 부친인 독립투사인 [[정운일]] (1884~1956)은 [[정재학]] [[대구은행]]장(1856~1940) 의 손자인 정운용 제2대 조흥은행장 (1904~ 1963 )과 같은 항렬이다.</ref>
  • 화완옹주 . . . . 40회 일치
         '''화완옹주'''(和緩翁主, [[1738년]] [[3월 9일]] ([[음력 1월 19일]]) ~ [[1808년]] [[5월]])는 조선의 제 21대 왕 [[조]]와 [[빈 이씨]]의 딸이다. 이름은 용완(蓉婉) [[조선 장조|사도세자]]의 친동생이자 조선의 제 22대 왕 [[정조]]의 고모이기도 하다. [[정후겸]]은 그녀의 양자이다.
         조가 특히 총애하던 딸로, [[조]]와 선희궁 [[빈 이씨]]의 딸이다. [[조선 장조|사도세자]]의 친여동생이다.
         [[1749년]](조 25) [[7월 6일]] [[소론]]의 거두 [[정휘량]]의 조카이자 이조 판서와 [[의정부]][[우의정]]을 지낸 [[정우량]](鄭羽良)의 아들 [[정치달]]과 혼인하였다. 정우량은 [[우의정]]까지 지냈고, 사후에는 [[의정]]에 [[추증]]되었다. 정치달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으나 일찍 죽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자 시댁 일가의 아들인 [[정후겸]]을 데려다가 양자로 삼았다.
         친오빠 사도세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화완옹주는 사도세자의 비행과 실수를 그대로 부왕 조에게 고해바쳤다. 인원왕후의 때 인원왕후전 나인이었던 빙애를 후궁으로 취한 뒤, 조의 추궁이 있자 사도세자는 빙애를 화완옹주의 처소에 숨겨두었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빙애의 존재가 조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화완옹주는 조의 여러 딸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 조는 옹주가 시집간 후에도 자주 그의 집에 거둥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조실록 88권, 89권, 112권 등. 조가 해산을 앞둔 화완옹주의 집을 방문하거나, 환궁 도중에 옹주의 집에 들렀다는 기록이 있다</ref> 또한 문과에서 장원을 차지한 정치달의 형 [[정원달]]에게도 많은 특혜를 하사하였으며<ref>《조선왕조실록》 조실록 88권, 1756년 10월 2일</ref>, [[1757년]](조 33) 정치달이 세을 떠나자 곡반을 하였고 이를 말리는 신하들을 파직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조실록 89권, 1757년 2월 15일</ref>
         순조실록에는 1808년 5월 17일 삼사에서 올린 글에서 정치달의 처가 죽어 더 이 죄를 묻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즉 옹주의 사망일은 그 이전으로 사료되나 정확한 몰일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왕가의 전통 졸기가 없고 무덤이 경기도 파주 유배지 인근이었던 것으로 보아 죽을 당시 죄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화완옹주 및 정치달 묘]]》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에 있다. 2001년 12월 21일 파주시의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 '''아버지''' : 제21대 [[조선 조|조]](英祖大王, 1694~1776)
         ** '''어머니''' : [[정순왕후 (조선 조)|정순왕후 김씨]] (貞純王后 金氏, 1745년 - 1805년)
         ** '''생어머니''' : [[빈 이씨|소유빈 이씨]](暎嬪 李氏, 1696년 7월 18일~1764년 7월 26일)
         *** 언니 : [[화협옹주]](和協翁主, 1733년 3월 7일~1752년 11월 27일) - 성위(永城尉) 신광수(申光綏)에게 하가
         ** 서어머니 : [[귀인 조씨 (조)|귀인 조씨]](貴人 趙氏, 1707 10 16~1780 10 05)
         ** 서모 : [[숙의 문씨 (조)|폐 숙의 문씨]](廢 淑儀 文氏, 생년미~1776 08 10)
         * 《[[조선왕조 오백년]] - [[한중록 (드라마)|한중록]]》 ([[MBC]], [[1988년]] ~ [[1989년]]), 배우 : [[이숙]]
         * 《[[홍국|홍국]]》 ([[MBC]], [[2001년]]), 배우 : [[유혜리]]
         === 화 ===
         * 《[[사도 (화)|사도]]》 ([[2015년]]), 배우 : [[진지희]]
         * [[경주 불국사 산회도 및 사천왕 벽화]]
         [[분류:1737년 태어남]][[분류:1808년 죽음]][[분류:조선의 옹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가족 살해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조]][[분류:조선 정조]]
  • 흥인군 . . . . 40회 일치
         |사망지= [[조선]] [[한성부]]에서 암살(고환외(매천야록의 기록))됨.
         흥선대원군의 친형이었으나 그의 무시를 당했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 [[흥선대원군]] 실각 후 좌의정, 세자부, 의정 등을 지냈으며 통리기무아문 총리대신으로 개화정책을 추진했다가 유림과 갈등하였다. 그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반대하여 [[1880년]] 이후 [[미국]], [[일본]]과의 개항 정책에 적극 동조하였다. [[1882년]](고종 19) [[6월]]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의 사주를 받은 난병에게 [[민겸호]](閔謙鎬)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 [[신도비]]문에는 [[조선 고종|고종]]이 어의를 보내 진료했으나 차도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하나, 난병을 피해 도주하다가 추락사했다는 설도 있다. 한편 동생인 흥선대원군과의 감정대립으로 민씨 정권의 측근으로 지냈는데, 민승호와 흥선대원군은 그를 이용해서 대방의 정세를 염탐하는데 이용하려 하였다. 별칭은 '''유유정승'''(唯唯政丞)이다.
         [[1815년]] [[2월 17일]] [[한성부]]에서 숙종 때의 정승 [[남연군]] 이구와 [[민정중]]의 4대손 [[선공감]]가[[감역]] 민경혁의 딸 군부인 여흥민씨의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성품은 신도비명에 의하면 말수 적고, 좋고 싫음을 내색하지 않는 성품이라 한다. [[홍순목]]이 쓴 신도비문에 의하면 그의 성격은 '사람의 허물을 보면 반드시 덮어주고 또한 사랑하고 미워함을 말하지 않'는 성격이라 한다. 그는 [[흥녕군]]과 [[흥완군]]의 동생이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친형이었으나, 그는 일찍부터 바로 아랫 동생 이하응에게 번번히 무시당했고,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머니 여흥민씨와 아버지 남연군, 두 형이 일찍 사망했지만 동생 [[흥선대원군]]과의 관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매천 [[황현]]에 의하면 그가 무식하면서 욕심이 많아서 그랬다 한다.
         동생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자신보다 무능력하면서 욕심이 많던 셋째 형 흥인군 이최응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형을 희미한 사람이라면서 무시했고 흥인군은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다. 이는 계속되어 감정대립으로 발전했다. 뒤에 [[명성황후]]는 그가 흥선대원군과 사이가 좋지 않은 점을 이용하여 그를 끌어들인다.
         [[1829년]](순조 29년) [[1월 1일]] 흥인부정(興寅副正)이 되고 [[1830년]] [[5월 6일]] [[명선대부]]로 승진한 뒤 흥인도정(興寅都正)으로 진봉되고, 다시 군으로 진봉된 뒤 [[돈녕부]]도정에 임명되었다. 이어 [[현록대부]]로 승진하자 형인 [[흥녕군]]보다 작위가 높다는 이유로 스스로 사양하고 받지 않다가, 형 흥녕군이 현록대부로 승진하자 그해 [[10월 20일]] 소의대부로 승진하고, 군의 품계를 받았다. [[1834년]](순조 34년) [[11월]] [[순조]]가 죽자 그의 능침 조성 때 [[수릉관]](守陵官)으로 참여하였다. 헌종 즉위 후 [[1835년]] 연주 도감(練主都監) 수릉관에 임명되었으며, 남연군의 3년 을 마친 후 헌종 연간에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고종 즉위 후, [[1863년]] [[12월]] 판[[종정경]]부사에 임명되고, [[조선 철종|철종]]의 빈전에 종척집사(宗戚執事)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1864년]](고종 1) [[1월]] [[희전]] 제조가 되고 3일 뒤 [[사도시]] 제조를 겸임하였으며, [[2월]] [[종묘서]] 제조, [[3월]] [[의원]] 제조에 임명되었다. [[1865년]](고종 2) [[4월]] [[경복궁]] 중건 때 [[건도감]]제조(營建都監提調)를 맡아보았으나, [[흥선대원군]]의 통수교거부정책에 반대하여 반목했다. 그해 [[9월]] [[의금부]][[판사]](義禁府判事), [[호위대장]] 등을 역임했다. [[1866년]]에는 익총의 옥책문 옥보 전문 제술관(玉寶篆文書寫官)이 되고, 같은 해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때 [[가례도감]] 당이 되었다. 그해 [[의금부]]판사가 되었다.
         [[1866년]] [[3월]]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 전각과 재목이 소실되자 [[흥선대원군]]은 대노하여 흥인군과 [[이경하]]를 투옥, 처형하려고 했으나 중신들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당시 마감용 목재에 기름칠을 하는 창고에서 불이 나 800여 칸에 쌓아 둔 목재가 모두 타버려 공사가 중단될 처지에 놓였다. 공사를 시작한지 1년 만의 일이었다.<ref name="ysys165">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백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165페이지</ref> [[흥선대원군]]은 공사 책임자인 [[이경하]]와 흥인군을 불러 면전에서 크게 질책하며 극형에 처하도록 했으나 여러 조정 대신들의 간언으로 원 복구의 책임만 지게 되었다.<ref name="ysys165"/>
         {{인용문2|지금까지 벌목한 나무는 국유림에서 가져온 것이니 지금부터는 산 주인과 묘 주인의 허락 여부는 관하지 말고 사유림에서 벌목하도록 하라!<ref name="ysys165"/>}}
         그러나 이경하와 흥인군은 [[목재]]가 더 이 나올 곳이 없다며 오히려 죄를 청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크게 화를 냈다.<ref name="ysys165"/>
         그는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을 발행하자 "일문전(一文錢)이 어찌 백문전(百文錢)으로 쓰이겠는가? 다만, 일문의 가치로만 쓰일 뿐이다"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물건값을 치를 때 당백전을 일전으로 계산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환전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얻은 인이 많았다 한다. [[1872년]] [[경복궁 중건]] 공사가 끝나자 [[돈령부]]판사로 전직되었다. 그는 자신의 동생이 섭정이 되자, 동생의 권력을 빙자하여 뇌물을 받기도 했다. 흥선대원군은 그를 경멸했고, 의정부와 육조에 흥인군에게는 어떠한 우대나 혜택도 해주지 말라고 비밀리에 지시하였다.
         [[1873년]](고종 10년) [[흥선대원군]] 실각 직전 민씨 일파에 의해 호위 대장(扈衛大將)에 임명되었다. 이어 [[판종정경]]과 행판부사를 지냈다. 그해 [[11월 30일]]부터 [[12월 4일]]까지 중궁전의 임시 승후관(承候官)으로 특별 채용되었다. 1874년에는 교정 유사 당(校正有司堂上)으로 [[선원보략]] 수정에 참여하였다. 그 뒤 판의금부사, 호위대장을 거쳐 [[1874년]] [[11월]] [[흥선대원군]] 실각 직후인 [[1874년]] [[12월]] [[의정부]][[좌의정]]에 올랐다. 이후 [[판종정경]]을 거쳐 [[1875년]] 종정경이 되고, 같은 해 [[세자부]](世子傅)에 임명되었다가 1878년 세자사가 되었다가 그해 겨울 [[의정부]][[의정]]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문관이 아닌데도 특별히 문무과의 주시관이 되어, [[과거 시험]]을 주관하기도 했다.
         [[1880년]] [[12월]]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이 신설되자 의정이 총리대신으로 관직이 바뀌자 초대 총리대신에 올랐다. 이때 그는 개항 정책을 추진했으나 남 유림(儒林)의 탄핵을 당했다. 또한 그는 [[미국]]과의 조약체결 때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한편 [[1875년]](고종 12) [[11월]] 그의 집에 의문의 방화사건이 발생하였다. 사람들은 [[흥선대원군]]을 의심하였다.
         그는 대미 개국 방침을 결정한 [[1880년]] [[10월]]의 중신회의에서 의정으로서 회의를 주재했다.<ref name="sisi459">강재언, 《선비의 나라 한국유학 2천년》 (한길사, 20003) 459페이지</ref> 그는 쇄국 정책에 비판적이었다.<ref name="sisi459"/> [[일본]]에 갔던 수신사 [[김홍집]] 일행이 귀국하면서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가져와 미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연미론(聯美論)를 주장하자 그는 "[[미국]]은 본래 원수의 나라가 아니니 서계(書契)를 가져오면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여 [[1880년]] [[9월 8일]] 연미론을 적극 수용하였다. 그의 주장에 고종도 [[병인양요]], [[신미양요]]는 우리나라가 스스로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하여 [[미국]]과의 조약체결을 결심하게 되었다. [[1881년]] [[1월]] 흥인군의 건의로 고종은 지난해 [[6월]] 자신이 미국사신을 거부한 것을 후회하는 문서를 톈진(天津)으로 가는 선사, 유학생들을 보낼 때, 그들을 통해 [[청나라]]로 보냈다.
         그의 개항정책에 위기의식을 느낀 남 유생들은 정조 이후 국가의 중대사때마다 올린 남만인소(嶺南萬人疏)를 올려 흥인군을 탄핵했다. [[1881년]] [[남만인소]]에서 그는 유림의 성토를 받았으며, 이후 홍재학(洪在鶴)은 이최응의 사형을 주장하는 소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만인소를 역모로 보고 만인소에 대한 취조관(委官)이 되어 [[홍재학]]을 [[교수형]]에 처했다. 이후에도 그는 개항정책을 반대하는 유림들을 처벌하였지만 이후에도 유림들의 탄핵은 계속되었고, 그는 사퇴하고 돈령부사(敦寧府領事)로 전임되었다.
         [[1881년]] 흥선대원군의 서자 [[완은군]] [[이재선]]이 흥선대원군의 추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사사되자, 그의 백부가 되는 흥인군 이최응은 이재선을 탄핵하는 소를 올렸으나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1882년]]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로 부임했다가 같은 해 다시 돈령부사가 되었다. 그해에 안국동 별궁에서 열린 세자 순종과 순명효황후의 가례 때 종실의 원로로서 참석하였다. [[1882년]] [[6월 10일]] [[임오군란]] 때 난군을 피하여 달아나다가 사로잡혀 살해되었다.
         사망 1개월 뒤 일단 [[한성부]] [[용산방]]에 가매장 후 난이 진압되길 기다렸다가 [[충청남도]] [[대흥면|대흥군]](현 예산군 대흥면) 우정리 신좌원에 안치됐다. 그 후 [[예산군]] [[덕산면 (예산군)|덕산면]] 가리의 아버지 [[남연군]] 묘소 아래로 이장됐는데 신도비문은 [[의정]] [[홍순목]]이 짓고 글씨는 흥인군의 조카인 판종정경부사 [[이재원 (1831년)|이재원]]이 썼다. 현재는 후손들이 다른 곳으로 이장한 태다.
         이장 과정에서 흥인군 묘의 석, 석물 및 [[신도비]]는 [[경기도]] [[용인군]] 양지면 양지리(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 산6-1번지의 세중 돌박물관에 기증됐다.
         흥선대원군과 흥인군의 알력과 갈등을 눈여겨본 [[민승호]]는 [[명성황후]]에게 흥인군을 중용할 것을 주했고, [[명성황후]]는 이를 수용하였다. [[명성황후]]는 흥인군을 의정부의 대신으로 임명하고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흥인군은 감격하여 한목숨 다 바쳐 충성할 것을 다짐하고 거듭 왕비의 은혜에 보답하리라 결심했다.<ref name="ysys40"/> 그러나 그는 이 한 때의 요행으로 작은 세도를 얻어 대부호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닥치는 대로 돈과 재물을 긁어모았다.<ref name="ysys40"/> 조선 말의 정치가 [[윤효정]]에 의하면 "흥인군 집 대문을 들어서는 빈객과 출석하다시피 하는 수령들은 말 한마디, 웃음 하나에 이르기까지 온통 뇌물에 관한 것 뿐이어서, 흥인군 집에서 이루어지는 내외 관료의 발탁, 임명 전형은 흡사 무역이 성한 도시 장터의 모습과 같았다.<ref name="ysys40"/>" 한다.
         흥인군은 자신이 원했던 대로 뇌물이 날마다 창고에 들어와 쌓이는 것을 보며 마치 나라를 위해 땅을 개척한 업적을 이룬 것처럼 흥에 겨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뜰에 있는 제1창고 문 앞에 가서는 청지기에게 자물쇠를 열게 하고, 잔심부름하는 노 아이에게 곳간 문을 열라고 한 다음, 그곳에 가득 쌓인 물건들을 보녀서 턱이 빠지는 줄도 모르고 넋 나간 사람처럼 허허 웃어 댔다.<ref name="ysys41">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백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41페이지</ref>
         {{인용문2|제7곳간에 쌓아 놓은 날 [[꿩]]고기와 [[동태]]가 요즘 날씨가 따뜻해서 절반 이이 썩어 곳간 밖까지 악취를 풍기고 있습니다. 마침 연말연시도 다가오고 하니 썩지 않은 것을 골라 친척이나 친구 분들 댁에 보내시고, 썩은 놈은 버리며, 반쯤 썩은 놈은 하인배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ref name="ysys41"/>}}
  • 손전 . . . . 39회 일치
         {{화인 정보
         |출생지 = {{국기나라|대한제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학력 = 경북도 대구농립농업학교 졸업 <br /> 일본 니혼 대학교 경제학과 중퇴
         |직업 = 연극배우 <br /> 화배우 <br /> 연극연출가 <br /> 화감독 <br /> 화제작자
         '''손전'''(孫全, [[1910년]] [[1월 27일]] ~ [[1999년]] [[9월 8일]], 본명: '''손병철''', 孫秉喆)은 [[대한민국]]의 [[남자]] [[배우]], [[제작자]], [[화감독|감독]]이다. 손전, 손일포, 한일호 등의 예명을 사용하였다. [[1925년]]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대구공립농업학교]]를 졸업했으며, [[1930년]] [[니혼 대학]] 경제학과를 중퇴했다. 총 1천 5백여 편의 화에 출연하였다.
         == 화 경력 ==
         === 수 ===
         * [[1987년]] [[한길]]
         * [[1989년]] [[백예술대]] 특별
         * [[1993년]] [[대종]] 특별 연기 (《개벽》)
         * [[1994년]] [[청룡]] 특별공로
         * 《[[무지개 (화)|무지개]]》
         * 《[[몸 전체로 사랑을 (1973년 화)|몸 전체로 사랑을]]》
         * 《[[나는 고백한다 (1976년 화)|나는 고백한다]]》
         * 《[[마지막 잎새 (화)|마지막 잎새]]》
         * 《[[장마 (화)|장마]]》
         * 《[[깊은 사이]]》
         * 《[[원한 제국]]》
         * 《[[연인들 (1975년 화)|연인들]]》
         * 《[[티켓 (화)|티켓]]》
  • 실업팀 . . . . 39회 일치
         [[스포츠]] 팀의 구성 구조. 어로는 Works team 혹은 factory team이라 불리는 형태. 일본어로는 실업단(実業団)이라고 부른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한 형태[* 대한민국의 경우, [[세미프로]]까지는 아마추어의 성격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므로 넓은 의미에서 아마추어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종목을 불문하고 각 지역을 대표하여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실업팀은 기업, 군부대, 공공기관, 지자체 등의 구성원, 종업원으로 구성된 팀이다, 실업팀은 원칙적으로 종업원의 "사내 스포츠 클럽"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스포츠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부 조직의 특정한 '부서'로서 운된다. 따라서 팀의 운은 전적으로 해당 부 조직의 관리 하에 놓여져 있다.
         실업팀의 운 실태는 모 회사나 운단체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일반 종업원과 똑같이 업무를 하고, 잔업 시간이나 여가 시간에만 연습과 시합을 하며 어디까지나 부가 활동으로서 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 실업팀 활동이 주가 되며 활동이 거의 프로 스포츠 [[클럽팀]]과 같은 수준으로, 형식만 실업팀일 뿐이지 종업원으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스포츠 활동에만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해당 종목을 관할하는 협회의 기준에 따라 준프로 내지는 세미프로로 규정되기도 하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다.[* 축구의 경우, KFA에서는 세미프로로 규정된 실업팀들은 대학팀 같은 완전한 아마추어 팀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FA컵]]에서 1라운드 예선을 면제받고 2라운드부터 참가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을 받는다.]
         이러한 역사가 흔적으로 남은 유명한 사례로,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의 [[아스날 FC]]가 있다. 아스날은 국 육군 조병창의 실업팀에서 유래하였으며, [[클럽팀]]으로 전환한 뒤에도 아스날(조병창)이라는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서 지자체, 공공기관이 의무적으로 운동경기부(실업팀)을 두도록 하고 있는데, 지자체는 실업팀을 '1팀 이'을 두도록 되어 있으며, 공공기관의 경우는 시 근무하는 직장인이 1천명 이인 경우에 설치하여 운용하도록 한다. 이 의무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신청을 거쳐서 면제될 수 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서는 [[프로 스포츠]]화가 진행되기 전 까지 기업 실업팀 실업리그가 '최위 리그'로서 명성을 누렸다. 야구와 축구는 1980년대 프로가 출범하기 전 까지, 농구와 배구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프로가 시작되기 이전까지가 실업리그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종목에서 프로 리그 출범 이후로 많은 실업팀 선수가 프로선수로 전환했다. 축구의 경우는 [[중공업]],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업 팀이 많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한국축구를 이끌어 나간 중심은 금융팀이 금융단 축구를 박정희의 비호 아래 육성하면서 본격적인 세미프로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야구는 한 때 실업리그가 존폐 태에 놓일 정도로 쇠퇴했으나 2010년대에는 [[프로야구]] 붐을 타고 아마추어 야구단이 새롭게 설립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농구, 배구는 실업팀이 고사 위기에 놓인 태이다.
         지자체 실업팀(운동경기부)는 주로 [[전국체전]]과 그에 이은 [[올림픽]]을 목표로 육성되고 있다. 프로화가 활성되지 않은 종목에서는 지자체 팀은 사실 예비 [[국가대표]]라고 할 수 있다.
         실업팀을 운하는 장점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종업원에게 오락과 여가활동을 제공하여 회사의 복리후생을 향시킨다. 나라에 따라서는 이러한 기업 내 스포츠 활동을 노동자 복지활동으로 보고 [[법인세]]를 감면해주기도 한다.
         종업원의 실업팀 활동을 통하여 조직의 단합력을 향시키고, 조직 생활에 적응한 인재를 육성시킨다.
         자전거 경기, 모터 스포츠 같은 경우는 회사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목적에서 실업팀 활동이 이루어진다. 실업팀을 위한 레이스 차량 개발이 일반 제품 개발에 연결이 되며, 대회의 성과는 회사의 홍보와 당히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 경진의 [[취미]] 활동(...) ===
         그냥 경진이 해당 스포츠를 좋아해서 실업팀을 꾸리는 경우도 있다. 농담인 것 같지만 진짜다. 삼성그룹의 회장인 이건희의 경우 원래 럭비를 좋아해서 럭비 실업팀을 운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축구팀 성남은 아예 일화가 운하던 시절, 일화가 창단한 이유중 하나가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취미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기도 한다. 프로팀도 취미로 운할 수 있는데 실업팀 쯤이야(...)]
         프로 스포츠가 없는 곳에서는 지자체가 실업팀을 운하여 경기를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여가활동을 제공하거나, 지자체의 명예와 시민의 고양을 위해 전국체전에서의 활약을 노리고 실업팀을 운하거나 유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국체전의 활약은 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실업팀 체계에서는 스포츠 팀이 전적으로 기업에 종속되어 있다. 팀은 독립된 법인격이 아니며, 선수의 신분은 기본적으로 '사원'인 경우[* 실업팀이라고 해서 계약 선수를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가 많고, 팀의 운과 활동은 선수 개인이나 팀 자체 보다는 기업 차원의 이득을 위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이러한 구조에서는 팀의 성적과는 무관하게, 기업의 실적에 따라서 팀의 향방이 정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팀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꼼짝없이 실업팀이 정리해고 대으로 올라갈 수 있다. 특히 불황기에는 눈에 뛰게 직접적인 수익을 올릴 수 없는 실업팀이 가장 먼저 해체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삼성의 경우는 이건희가 실질적으로 경활동에서 물러난 것과 동시에 럭비팀을 운하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5010506333771780|삼성중공업의 경실적이 악화되자 지체없이 짤렸다.]
         독립된 조직이 아닌, 부 조직의 일개 부서이기 때문에 실업팀은 외부 압력에 독자적인 생존능력이 약하다. 이는 지자체 팀에서도 마찬가지이며, 한국에서 여러 지자체는 실업팀을 너무 쉽게 해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프로 스포츠는 전 세계적으로 "지역밀착형 중심의 운"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실업팀은 기업에 종속되었기 때문에 "기업이 주소지를 이전하면 그 지역과는 관계청산"이라는 한계가 있다. 일례로 코레일이 본사를 옮기자 팀도 같이 움직이면서 [http://www.fnnews.com/news/201401161713584684|인천 연고였던 팀은 어느새 대전으로 가게 되는] 것.
         실업팀은 이들의 명확한 '실적'를 제시할 방법이 지극히 제한된다. 실업팀 단위로 운되는 리그가 활성화 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그걸 제외하면 전국체전 이외엔 증명할 길이 없다는게 문제. 실업팀 운의 비용과 효과가 의문시 되는 경우가 많다.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 시기에 올림픽의 업화가 추진되면서, 프로 선수의 출전을 용인하는 흐름이 되었다. 이 때문에 올림픽이라는 세계 무대가 프로 선수에게 전면적으로 개방되면서, 많은 스포츠 단체가 굳이 실업팀 같은 형태로 아마추어 신분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프로 스포츠로서 활성화된 종목에서는 실업팀이 대부분 고사 태에 놓이게 되었다.
  • 이철우(1955) . . . . 39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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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clude(틀:역대 경북도지사)]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70000B><-5><bgcolor=#FFFFFF><:>[[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징.png|width=30px]]]] {{{#70000B '''[[대한민국|{{{#70000B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국회의원}}}]] ([[경북도|{{{#70000B 경북}}}]] [[김천시(선거구)|{{{#70000B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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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정치인]]. 민선 7기 제32대 [[경북도지사]].
         [[자유한국당]] 소속이며 [[김천시(선거구)|김천시]]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민선 7기 제32대 [[경북도지사]]를 지내고 있다.
         1955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 곡송국민학교, 대구 [[남중학교(대구)|남중학교]], [[김천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이후 주 화령중학교, 의성 신평중학교와 단밀중학교 수학 [[교사]]를 역임하였다가 1985년 [[국가안전기획부]] 공채에 합격하여 정보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2005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이의근]] 도지사와 [[김관용]] 도지사 밑에서 경북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북도 김천시 선거구에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여 당선됐다. [[친이]]와 [[친박]]계의 대립이 심했던 제18대 국회에서 계파모임에 가담하지 않아 중립 성향으로 분류되는 편이었다. 국가정보원 출신으로 초선에 정보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한나라당 재해대책위원장과 국민공감위원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전국 최고득표율인 83.5%로 당선됐다. 국회직으로 정보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테러방지법]]을 대표발의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와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경북도당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회지방살리기포럼]]을 창립해 지방살리기 전도사로 나섰다. 전라남도와 경북도 국회의원의 모임인 동서화합포럼 창립을 주도하고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생가를 함께 방문해 동서화합 및 국민대통합 행보로 언론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화령중학교 교사 때의 제자이던 [[임이자]]도 해당 선거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제|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6년]] 6월 13일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간사이자 자유한국당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12월 17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2018년 1월 31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도지사]] 경선 전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계획을 돌연 철회했는데, 당에서 국회의원직 사퇴를 강력히 만류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국회의원 사퇴로 인해 다른 광역단체장 출마를 희망하는 국회의원들의 줄사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경북지사 선거 경쟁 후보자들이 국회의원 사퇴에 대해서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한국당 김천당협위원장을 사퇴했다. 사실 배수진을 친 셈이다. 4월 9일 경선에서 32%로 1위를 했다. 자유한국당의 경선은 결선투표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경북도지사 후보로 확정됐다. 당원 투표에서는 김광림 후보에 밀렸지만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1위가 됐다.
         [[2018년]] [[5월 24일]]에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도지사 후보로 등록하였으며 이후 경북도지사로 당선되었다.
         === 경북도지사 ===
         2018년 7월 1일 천호국원을 찾아 충혼탑을 참배하는 것으로 첫 임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동남권에 약속했던 제2청사 건립을 위해 포항 환동해안본부를 제2청사로 승격시키는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공약 이행을 하려고하자 안동을 비롯한 북부권의 반대가 심해 난항을 겪고 있다.
         2018년 8월 12일 대 후보였던 오중기를 만나서 인사했다는 트워터글을 남겼다 뒤에 있던 사람이 송길인거 보니 당대표 경선이 한창인 민주당 경북도당을 방문했는 것 같다.
         2018년 8월 13일 경북도청을 방문한 권진 대구광역시장과 함께 대구-경북경제공동체를 적극 실현하기로 했다. 산하 간부급 공무원 교류부터 여러 현안에 이르기까지 같은 광역경제권 발전계획을 세우고 협력한다고 하였다.
         2018년 8월 15일 첫 시행된 리얼미터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에서 8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지방선거 득표율 대비 직무수행 지지도 증감을 나타내는 주민지지 확대지수는 3위를 차지했다. [[http://www.idaegu.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6586|17개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권진 시장 6위·이철우 지사 8위]]
  • 정호용 . . . . 39회 일치
         |내각2 = [[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노신 내각]]
         |총리2 = [[노신]]
         |차관2 = [[이희 (1932년)|이희]]
         |전임3 = 대장 [[황시]]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북도 대구부 (현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웹사이트 =
         <!-- 이하 군경력 변수는 변수 중 하나 이이 채워져야 화면에 나타남 -->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자원 입대한 이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고 1955년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11기)하였다. [[전두환]], [[노태우]]의 육사 동기로 [[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5.17 비계엄 확대조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에 가담했다. 12·12 군사 반란 이후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사령관, [[제3야전군]] 사령관, [[대한민국 육군#역대 참모총장|제25대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예편 이후에는 [[국가보위비대책위원회|국보위]] 임위원회 위원, [[민주정의당]] 대구경북지구당 위원장,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장관과 [[대한민국 행정안전부|내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에서 군부 인맥의 서열 3순위였으나,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 무렵 노태우와의 경쟁 끝에 몰락하였다.---노태우와 정호용은 경쟁한적이 없습니다. 정호용은 김윤환과 더불어 노태우의 최측근으로 6공의 실세중의 실세였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후보자였던 [[김삼]]의 지지 유세를 하였습니 그러나 1995년에는 김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 일환으로 12.12 군사 반란,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 관련자로서 1997년 4월 12·12 군사반란 및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내란 중요임무 종사로 대법원에서 징역 7년 형을 선고 받았으나 사면됐다. 본관은 [[연일 정씨|연일]](延日)으로 호는 목우(牧牛)이며 [[대구광역시|대구]] 출신.
         [[12·12 군사반란]] 이후 특전사령관에 취임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행각을 방조한 의혹이 있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의심한 전두환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12·12 사건 때는 대구에서 경하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이 후 특전사령관에 취임했다.
         5월 18일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자 광주와 서울을 3차례 오가면서 공수부대로부터 보고를 받거나 현장 황을 확인했다. 5월 27일 [[광주 재진입 작전|무충정작전]] 직전 육군본부로부터 가발, [[수류탄]] 등 군수품을 지원받아 현지의 공수부대에 제공했다.
         5월 30일,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구성되자 [[국가보위비대책위원회|국보위]] 임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으로 위촉되었다.
         1987년 1월, [[대한민국 행정안전부|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가 4개월 만인 그 해 5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민주정의당]] 당내에 향력을 행사하였으며, 같은 해 7월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장관으로 내각에 복귀했으나 전두환 정권이 불과 7개월밖에 남지 않은지라 오래 재직하지 못했다. 이후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1988년 5월 민주정의당 대구경북지구당 위원장에 임명, 같은 해 [[대한민국 13대 총선|13대 총선]]에서는 대구 지역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제5공화국 비리에 대한 청문회, 5·18 청문회로 사회 여론이 공직사퇴요구를 제기하자 결국 1990년 1월 5일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ref>1990년 1월 5일에 사직했다.</ref> 이후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의 지역구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했지만 정치적 부담을 느낀 노태우 정부의 압력에 의해 후보직에서 다시 사퇴했다.
         1992년 다시 [[대한민국 제14대 총선|14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고 후에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우리가 남이가"(경남 출신 김삼과 정호용의 출신 지역인 [[경북도]]인들은 동향인이라는 뜻)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경북에서 김삼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러나 김삼 정부의 과거청산작업에 따라 1996년에 다시 12·12 군사 반란과 5·18 내란 혐의로 구속되어 유죄가 확정되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정호용은 5.18 당시 전두환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수 차례나 광주와 서울을 오갔다. 또한 정호용은 특전사령관이였기 때문에 특전사 소속 부대의 잔혹행위를 둘러싸고 훗날 책임론이 제기됐다. 1989년에 열린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정호용은 당시 특전사 소속의 진압부대들은 당시 광주 무대에 있던 전교사에 배속됐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신군부는 공식적인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사조직 하나회의 인맥에 의한 명령을 내리는 일이 빈발했음을 고려해야 한다. 1996년 1월에는 5.18 검찰 수사 결과 정호용이 [[5·17 쿠데타]]에서의 내란모의참여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 과정에 관여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 이듬해 1997년 4월 대법원은 정호용에게 내란모의참여죄,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 훈 경력 ==
         * [[박지]] - 1998년 《[[삼김시대 (드라마)|삼김시대]]》 [[SBS TV|SBS]] 드라마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80년대편 1 (인물과 사사, 2006)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80년대편 2 (인물과 사사, 2006)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80년대편 4 (인물과 사사, 2006)
  • 하이큐/230화 . . . . 39회 일치
          * 하지만 소심하 멤버들은 툭하면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긴장한 태.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특별 동을 준비한다.
          * 우카이 코치가 준비한 동은 선수들의 파인 플레이를 편집한 것으로 각자에게 "최의 플레이"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 1회전 하루전. 선수들은 각자 평심을 취하는 방법을 찾아 집중하고 두 매니저 시미즈 키요코와 야치 히토카는 함께 목욕을 한다.
          * 우카이 코치는 바로 이런 때를 대비해 타키노우에 유스케에게 맥주를 쐈다며 비장의 무기를 공개한다. 여관으로 돌아온 카라스노. 우카이 코치가 선수들을 집합시키는데 사와무라는 1회전 대의 일 것으로 예하지만 아니었다. 이름하며 NAE GAE JUZZ NUEN DONG-YEONG-SANG. 타키노우에 전자가의 혼신의 역작이다.
          * 바로 카라스노 멤버들의 파인 플레이 모음집. 선수마다 각각의 테마곡까지 할당된 하이퀄리티 이다. 참고로 니시노야는 록키의 테마. 기본적으로 선수별로 선호하는 음악이 배정된 모양이다. 우카이 코치는 과 음악의 힘을 빌려 긴장을 잡고 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자 이 을 의뢰했다. 그 의도대로 뻣뻣했던 선수들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풀리고 동에 집중한다.
          * 휴식 시간에 사와무라는 작전회의를 위해 자리를 비운다. 그 사이는 엔노시타에게 인솔을 맡기는데 부주장인 스가와라 코시가 왜 자기한테 맡기지 않느냐고 항의한다. 스가와라는 분위기 타고 같이 놀기 때문에 인솔로 부적합.
          * 나머지 멤버들은 숙소에서 동을 보거나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야마구치 타다시는 런닝에 동행하지 않고 동을 본다. 스가와라는 공부를 하는데 키노시타 히사시가 대단하다고 말을 건다. 스가와라는 이건 평정심을 위한 거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아즈마네는 아직도 우카이 코치의 동을 붙들고 있는데 멋진 에 홀려서 긴장은 잊어버린 모습이다.
          그때까진 얌전히 있던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때부터 매니저들의 입욕시간이다. 타나카는 그런 판국에 어떻게 평정을 유지하냐며 절규한다. 자칫하면 이 망이 NAE GAE JUZZ NUEN DONG-YEONG-SANG까지 덮어씌워버릴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듣고 있던 나리타 카즈히토는 "네 머리통엔 뭐가 들어있든 관없다"고 뼈아픈 말을 날린다.
          * 여성 멤버 끼리 목욕 중인 시미즈 키요코와 야치 히토카. 히토카는 둘만 있으면 긴장돼서 아무 이야기나 꺼내보는데 시미즈가 항 검정 스타킹을 신는것에 대해 묻는다. 사실 그건 다리에 남은 흉터를 가리기 위한 것. 육을 했던 시미즈는 주종목이 허들이었는데 심하게 넘어지면서 다리에 흉터가 남아버린다.
          * 3학년인 시미즈에겐 마지막 기회다. 히토카도 그 말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선수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밤을 맞이한다.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런닝 삼매경. 츠키시마의 생각과 달리 쉽게 돌아오지 못할 듯하다. 아즈마네를 중심으로 동에 푹 빠진 파. 니시노야는 속편하게 자고 있다. 여관의 밤이 깊어간다.
          * 마침내 오고야 만 1월 5일. 도쿄 체육관에 당도한다. 전국 배구 고등학교 선수권 대회. 통칭 봄고대회. 배구의 갑자원이라 불린다. 히나타는 작은 거인이 싸웠던 무대라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다른 학교 선수들이 지나가다 히나타와 부딪히는데 사과도 없이 가버린다. 당히 키가 큰 그룹. 츠키시마는 2m가 넘을 거라고 예한다.
          * 이렇게 투닥거리는 사이 카라스노의 숙적이자 악우 네코마 고교 일동이 체육관에 도착한다.
  • 한받 . . . . 39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동구 (대구광역시)|동구]] [[파동 (대구)|파동]]<br/>(現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대구)|파동]])
         | 웹사이트 =
         [[대구광역시|대구]] [[파동 (대구)|파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한진식이다. 청소년 시절 본래 화감독을 꿈꾸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좌절하고서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였다.<ref name="tam">{{서적 인용 |author= 한받 |제목= 탐욕소년표류기|꺾쇠표= 예 |publisher= 텍스트|year= 2010|id= {{ISBN|978-89-94159-03-4}}}}</ref>
         그러나 학업보다는 일제시대 시인들의 시집을 읽거나 독립 단편화를 만들고 이한 퍼포먼스를 하며 노래하였다.
         그러면서 화감독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여러 독립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대구 비디오 축제'를 주최하기도 하였지만, 1999년 무렵 경하여 화계에 작품을 소개하려다 절망하고는 화감독의 꿈을 접게 되었다. 그러다 학교 선배들과 벤처 회사를 설립하였지만 곧 망하고 빚더미에 올라 중국으로 탈출하였다가 누나의 편지를 받고 다시 귀국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로써 잠시 생활하였다.
         2002년 10월에 대구의 집에서 첫 앨범 《2/9/Y/O/M/C/(29세의 자위대)》를 제작했다. 곧 대학 졸업 즈음 일어난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에 충격을 받아 대구를 탈출하려 했고,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구하기 위해 경하였다.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원 기자재 조교로 취직하게 된 후 2003년부터 '아마츄어증폭기'라는 이름으로 [[홍대 (지명)|홍대 앞]]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화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한국화아카데미]]에 몇 번 응시하였으나 모두 탈락하였다. 2004년에는 독립레이블에서 2집 앨범 《극좌표》를 발매하였으나 곧이어 레이블은 도산하였다.
         이후에는 '레이디피쉬팝홀(Ladyfish Pop Hall)'이라는 공연장의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홍대 앞 인디씬에 대하여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2006년에는 3집 《소년중앙》을 발매하고서 한국화아카데미의 기자재 조교로 일하기도 했다. 2009년 중순에는 [[프랑스]] [[릴]]의 [[:fr:Le Fresnoy|프레누아 국립현대예술 스튜디오]]에 응시하여 포트폴리오까지 합격하였으나 면접에서 낙방하고 만다. 이 때에 비로소 화 때문에 음악을 소외시키지 말고 음악에 매진하기로 결심하였다.<ref name="tam"/>
         2010년에는 수유시장 공공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인들을 위한 노래들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 활동을 통해 '돈만 아는 저질'이라는 민중댄스음악을 시작하였다.
         여기 모인 음악가들이 중심이 되어 [[자립음악생산조합]]이 비로소 협동조합 형태로 창립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2011 젊은 예술가에 자립음악생산조합|url=http://www.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11228_0005650542|출판사=뉴시스|저자=박문호 기자|날짜=2011-12-28}}</ref><ref>[http://www.jaripmusic.org/?p=838 "자립음악생산조합 인터뷰", 연세(94호).]</ref>
         현재는 '구루부구루마'를 운하며 지역을 기반으로 음악가와 관객이 함께 소통하는 자립적인 유통채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한편 고등학교 시절 부터 이빨이 부서져서 2003년 무렵에는 앞니의 절반이 없는 태로 공연을 하고 있었으나, 이후 아마츄어증폭기의 팬인 치과의사의 도움으로 [[이식물|임플란트 수술]]을 통해 이빨을 되찾았다.<ref name="tam"/> [[2008년]] [[한대수]] 헌정 음반《물 좀 주소》에 참여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인디밴드들이 변주한 12색 '물 좀 주소'|url=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276350.html|출판사=한겨레|저자=이재성 기자|쪽=|날짜=2008-03-17}}</ref>, [[2009년]]에는 남성지 [[GQ]]의 '올해의 남자'로 선정되었다.<ref>[http://www.style.co.kr/magazine/view.asp?menu_id=01020204&c_idx=011005010000068 "2009 지큐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 part. 1", 《GQ》2009년 12월호.]</ref>
         음악이 알려지면서 2013년 1월에는 [[위댄스]]와 함께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를 돌며 [[콘서트 투어|투어]]를 가졌으며 이후에도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으로 해외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ref name="japantour">[http://younggiftedwack.com/archives/5013 "아마츄어 증폭기, 야마가타 트윅스터, 위댄스 일본 투어 과 현지 반응 모음", 《기획》, 2013년 1월 30일.]</ref><ref>{{뉴스 인용|url=http://www.thearti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93|제목=예술의 도시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 03. 민중 엔터테이너 한받|저자=이정훈|날짜=2015-11-16|출판사=디아티스트}}</ref>
         2014년 2월에는 [[EBS 스페이스 공감]] '윤배 / 야마가타 트윅스터'편<ref>[http://www.ebs.co.kr/space/broadcast/3455 EBS 스페이스 공감 1005회, '위험한 세계를 바라보다 - 윤배 / 야마가타 트윅스터', 2014년 2월 27일.]</ref> 에 출연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한받과 [[회기동 단편선|단편선]] 등이 출연한, 2009년 당시 두리반 강제 철거 반대 농성과 자립음악생산조합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화 '파티51'(감독 정용택)이 개봉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칼국수집 두리반 지키기, 그들이 하면 저항도 경쾌|url=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062130|출판사=오마이스타|저자=강성국 기자|날짜=2014-12-12}}</ref><ref>{{뉴스 인용|제목=한받-단편선 '두 사람만으로 꽉 차는 존재감' - 화 '파티51' 언론시사회|url=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17426740809270017|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권민 기자|날짜=2014-12-01}}</ref>
         '아마츄어증폭기'(Amature Amplifier)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활동하였다. '아마추어(amateur)'가 아닌 '아마츄어'라는 명칭은, '프로페셔널'의 반대 개념을 뜻할 뿐 아니라 일본 포르노 장르 중 '아마츄어(amature)'라는, 일반인을 섭외하여 제작하는 방식을 뜻하는 단어에서도 따왔다.<ref name="tam"/> 처음에는 [[2001년]] 대구에 있던 한받의 방 안에서 스스로 기타를 연주하면서 우연히 구성되었다. 클래식 기타를 단순한 주법으로 반복 스트로킹하는 진행을 주로 하고 있다. [[펑크 록]]에 향을 받아 [[최소주의]]의 원칙에 따라 [[코드]]를 적게(보통 3~4개)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이화여대]] 후문에 위치하고 있던 모던록 클럽 빵(현재는 홍대 앞 산울림소극장 근처에 위치)에서 오디션을 통과한 이후, 2003년 4월 20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2008년 2월까지 약 350여회의 공연을 했다. 음악 웹진 [[weiv]]와의 인터뷰<ref>[http://www.weiv.co.kr/archives/16684 "아마츄어 증폭기 - 나는 성실한 음악을 하고 싶다", 《weiv》2007년 4월 8일.]</ref> 에서 밝힌 바 있듯이 [[강병철과 삼태기]], [[펫 샵 보이스]], 스트레인지러브, [[피쉬만즈]]로부터 많은 향을 받았으며 생활에서 포착된 감정을 가사로 승화시켜 노래하였다. 공연할 때에는 가발을 쓰고 형형색색의 공연의을 입고 노래하였는데,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거리의 노숙자들의 패션으로부터 많은 향을 받았다고 하였다. 멤버는 인간인 본인 '한받'이 노래하고 기타를 연주하며, '황보리타'라는 클래식 기타 본체가 또 다른 멤버라고 칭하고 다녔다.
         '야마가따 트윅스터(Yamagata Tweakster)'는 무산층의 좌절된 일을 짝수비트의 [[댄스 음악]]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하는 한받의 또다른 1인 프로젝트 밴드이다.
         그는 [[TED]]의 독립 강연회 'TEDx홍대앞'<ref>[https://www.youtube.com/watch?v=QojgVWISytM Han Vad at TEDxHongdaeap]</ref> 과 다른 인터뷰<ref>[http://blog.naver.com/studiozemi/90171329891 재미공작소, 데뷔 10주년을 맞은 한받을 만나다. -하편-, 2013년 4월 16일.]</ref> 에서 구루부구루마를 시작한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칼국수집 '두리반'의 강제 폐업 농성 투쟁이 승리<ref>{{뉴스 인용|제목='홍대 앞 작은용산' 두리반 승리 - 시행사와 이주대책 합의, 철거투쟁에 새로운 이정표 될 것|url=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1832|출판사=참세|저자=김도연 기자|날짜=2011-06-08 }}</ref> 한 이후 용기를 얻어
         # 이한나라의톨
         * [http://atu4tal.godohosting.com/ 아츄포탈 - 한받 공식 사이트]
  • 김시진 . . . . 38회 일치
         |문 표기 = Kim Si-Jin
         |사진 사이즈 = 300px
         |출신지 = {{KOR}} [[경북도]] [[포항시]]
         * [[KBO (단체)|KBO]] 경기 운위원 (2017년 ~ 2018년)
         }}</ref> 순수신인 최초 2완봉승 도달 투수가 됐고 결국 그 해 5완봉승으로 마감했는데(당시 전구단 대 완봉승) 이 기록은 아직까지 순수신인 최다 완봉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프로 데뷔 이후 5년 만에 [[KBO 리그]] 사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을 올렸다. [[1985년]] 25승(21선발승으로 최다 선발승이었는데 전년도(15선발승)에 이어 2년 연속 최다 선발승 1위) 5패, 10세이브, 201탈삼진으로 소속 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기 통합 우승을 이끄는 등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111승을 올렸다.<ref name="ohmynews" />
         특히, [[1985년]]에 방어율 2.00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역대 선발 20승 이 투수 중 최저 방어율 기록<ref>{{뉴스 인용
         | 제목 = 20승 이 투수
         [[삼성 라이온즈]]에서 거둔 111승은 최다 승리 기록이였으나 2013년 8월 8일 [[배수]]가 112승을 거두면서 최다승 기록이 경신되었다.
         | 제목 = [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 MVP 향배를 갈랐던 과거 속 요소들
         | 저자 = 이
         }}</ref> 경쟁에서 탈락해 MVP의 예를 안을 수 있었으며 다음 해에는 최초 타격 3관왕으로 2연속 정규시즌 MVP가 유력했음에도 막판 타격왕 레이스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던 탓에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1980년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사건으로 인해 [[1988년 한국 프로 야구|1988년]] [[11월 23일]]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과 함께 [[최동원]], [[김성현 (1963년)|김성현]], [[오명록]]을 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두 팀은 [[장효조]]와 [[김용철 (야구인)|김용철]] 등의 트레이드를 성사했다. 이후 4년 간 [[롯데 자이언츠]]에서 13승 24패를 추가하는 데 그쳤고, [[1992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정규 리그 통산 124승을 올렸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승리없이 7패로 좋은 기록을 내지 못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하고 [[1993년]]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랫동안 [[김재박]]과 같이 활동하였으며,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기 전까지 투수 코치로 계속 활동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아마추어 실업 야구 팀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에서 잠깐 코치 생활을 하기도 했었으나, 이내 곧 [[1998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로 임명되어 프로에 복귀했고, 그 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첫 우승을 거두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를 맡으면서 그는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오주원]], [[황두성]], [[박준수]], [[장원삼]] 등 뛰어난 투수들을 조련하고 육성하는 데에 뛰어났으며 [[투수]]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투수 코치를 맡은 기간 동안 그는 '명 조련사'로 불렸는데, [[1998년]]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주원]] 등이 [[한국 프로 야구 신인왕|신인왕]]을 수했던 것을 예로 들면 그는 투수 코치로서 선수들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감독 생활에도 이어져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최초 1차 지명으로 선발한 좌완 투수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 역시 [[2009년 한국 프로 야구|2009 시즌]]에 옥석으로 평가받았다.<ref>[[스포츠 서울]]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013951 "히어로즈가 끝까지 지킨 강윤구는 누구?"]</ref> 시즌 전 트레이드로 홍역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는 걸출한 신인 우완 투수 [[고원준]]을 배출하였으며, 트레이드로 입한 [[금민철]]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그가 투수 코치로 있는 동안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어난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어 '투수 왕국'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06년 한국 프로 야구|2006년]]까지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를 역임하다가, 2006 시즌 종료 후 [[LG 트윈스]]의 감독이 된 [[김재박]]의 뒤를 이어 [[현대 유니콘스]]의 2대 감독이자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2007년]]에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현대 유니콘스]]에서 감독으로 생각 이의 선전을 하여 시즌 56승 69패 1무로 시즌 6위를 기록하였다. [[2007년]] 고별전을 끝으로 시즌 후 재정난을 이겨 내지 못한 [[현대 유니콘스]]는 이듬해 3월 해체되었다.
         [[2010년 한국 프로 야구|2010 시즌]]에는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장원삼]], [[이택근]], [[황재균]] 등의 이적 공백으로 인해 팀 전력에 큰 손을 입으면서 하위권으로 쳐졌지만 어려운 팀 황 속에서도 [[손승락]], [[고원준]], [[김성현 (1989년)|김성현]], [[김성태 (1982년)|김성태]], [[금민철]] 등 뛰어난 새 투수들을 키워 내 "투수 조련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 때 갓 제대하고 마무리로 전향한 [[손승락]]이 [[이용찬 (야구 선수)|이용찬]]을 제치고 세이브왕을 차지하였다. 한편, 경북 포항 운 면에 대해서 일부 팬들에게 "작전 능력이 미숙하다", "선수 교체 타이밍이 좋지 못하다"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12년]]에는 시즌 초반 위권에 있었으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경질되었다.
         2014 시즌 들어 수비진의 안정화로 리그 최소 실책 부문 최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나 [[강민호]]와 [[전준우]]를 필두로 하는 타선의 부침과 [[송승준]]의 부진이 겹쳐 6월까지 5할대 승률을 기록했다. 한편, 9구단 체제로 인한 휴식일에 팀 내부 사정으로 인해 [[권두조]]가 수석코치에서 중도 사임하였다. 이후 프런트와의 마찰로 인해 [[2014년]]을 끝으로 사퇴하였다.
         그는 감독에서 물러난 뒤 [[2008년]] 한 해 동안 [[KBO (단체)|KBO]]의 경북 포항 감독관으로 재직하였다. 2017년부터 [[KBO (단체)|KBO]]의 경북 포항 운위원으로 활동했다.
         == 수 ==
         * [[일간스포츠]] 프로 코치 (2000년)
  • 박상원(배우) . . . . 38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2, other1=한화 이글스 소속 야구선수, rd1=박원(야구선수), other2=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前 야구선수, rd2=박원(전 야구선수))]
         ||<#5F9EA0> '''{{{#ffffff 이름}}}''' ||<(> 박원 ||
         ||<#5F9EA0> '''{{{#ffffff 학력}}}''' ||<(> [[수창초등학교]] (72년 졸)[br][[인천남중학교]] (75년 졸)[br][[동산고등학교(인천)|동산고등학교]] (78년 졸)[br] [[서울예술대학교]] (80년 졸)[br] [[한국방송통신대학교]] (99년 졸)(편입)[br] [[세종사이버대학교]] (2007년 졸)(편입)[br][[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
         ||<#5F9EA0> '''{{{#ffffff 가족}}}''' ||<(> 슬하 1남 1녀 박지윤^^(1997년생)^^[* 현재 tvN 예능 '둥지탈출'에서 아버지인 [[박원]]과 출연중이다.] ||
         대한민국의 배우로 MBC 공채 18기 출신이다. 대표작으로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등이 있다. ~~명작만 찍었다~~ 선역전문배우. 같은 선역전문배우인 [[김동현(1950)|김동현]]이 험악한 인으로도 선역만 담당하는 반면 박원은 인이 선해서 선역전문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단 [[드림(드라마)|드림]]에서 악역인 강경탁의 역할을 맡았을 때, 선해 보이는 인을 역으로 이용한 위선자의 역할을 너무도 훌륭히 보여주기도 했다.
         == 세 ==
         [[대구광역시]] 출생이나 [[인천광역시]]로 이주해 동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하였다. 1979년 연극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한 후 연극 쪽에서 활동하다 1987년 MBC 공채 탤런트가 되었다. 이후 1988년의 [[인간시장]]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1989년 [[서울 시나위]]에서 [[변우민]], [[임미]]과 같이 3명이 공동으로 주연을 맡아 활약하면서 인지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여명의 눈동자]]는 그의 이름을 크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화 쪽은 1991년 화 <서울 에비타>로 데뷔했으나 이렇다 할 성공작은 없으며, 1997년 이후 드라마 출연에만 전념하고 있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맡았던 검사 역할은 현재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검사 시절에서 모티프를 따와 만든 배역이라고 알려졌다. 당시 드라마 작가였던 송지나가 2017년 대선 당시 아니라고 주장했었으나 하는데 사실 맞다고 보는게 옳다.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5번목차 참고. 홍준표는 이후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를 통해서 형성된 그의 대중적 인기에 주목한 신한국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송파 갑 지역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강직한 이미지와 달리 선거비용 사용 내역을 조작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후 2001년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사실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급자인 [[이건개]] 검사장을 구속하면서 검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자기한테 같이 밥 먹자는 동료 검사 한명이 없었다고. 정작 홍준표가 구속한 이건개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996년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박원 본인도 늘 정계진출 떡밥이 있는 배우. 일단 본인은 정계 입문은 생각에 없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하지만 1인 시위 등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입장[* 보수 성향으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과도 친분이 있다. 2011년 서울시 무급식 주민투표때 광화문 이순신 동앞에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을 드러내곤 해서 이 떡밥은 여전히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1990년대 전반에 [[에이스침대]] [[광고]]에 출연해서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라는 유행어를 낳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연하지만, 침대는 가구가 맞다. 그러나 이 멘트 때문에 한 초등학교의 시험에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으로 문제가 나왔는데 모두 "[[침대]]"라고 썼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1990년대 어린이들은 침대는 사이언스로 알고있다.~~
         2013년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8&aid=0002983280|스티브 잡스는 인류의 재앙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되었다]].
         === 화 ===
          * 2014년 [[장미빛 연인들]] (MBC) - [[이국]] 역
          * 박원의 아름다운 TV얼굴 (MBC) ([[1997년]] [[11월 5일]] ~ [[2002년]])
          * 박원의 WHY & HOW (YTN 사이언스) ([[2012년]] [[12월 7일]] ~ )
         == 수 ==
          * MBC 방송대 인기(1988년)
          * [[백예술대]] 신인(1989년)
          * SBS 스타 최우수연기(1995년)
          *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2006년)
  • 박화요비 . . . . 38회 일치
         || '''출생''' ||<(> [[1982년]] [[2월 11일]] [[전라북도]] [[군산시]][* 아버지가 [[대한민국 군무원]]이라서 3살 때 [[경북도]] [[포항시]]로 이사 가고 어린 시절은 포항에서 보냈다. 고등학교도 포항에서 다니다가 전학하여 졸업했다.][* 데뷔 초에는 창법이나 음색만 보고 [[윤미래]]처럼 [[미국]] 본토 교포 출신이라는 오해(?)를 받았으며 평시 말하는 스타일도 우물쭈물 어리바리 컨셉으로 웅얼거리는 게 많아서 아직까지도 교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
         '''한국 알앤비의 징과 같은 레전드 보컬리스트.'''
         본명은 박미[* [[마망|마골피]]와 본명이 같다.]이었다가 박레아로 개명했다. 예명 역시 (박효신 1집 등에 피처링하던 시절에는) 박노미였다가 데뷔하면서 박화요비로 바꿨다. 화요비라는 이름은 '이름을 지은 날(화요일)과 R&B의 B'에서 따 왔다는 이야기와 '화요일에 내리는 비'의 줄임말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화요일에 태어나서 화요비란 말이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 1982년 2월 11일은 화요일이 아닌 '''목요일'''이었다. ~~목요비~~] 2000년 8월 19일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본인 얘기로는 화요일에 이름을 지은 것에서 '화요'를 따왔고, R&B를 부르기 때문에 '비'를 따왔다고 한다. ~~힙합이었으면 화요합~~ (출처: [[https://youtu.be/vvcat903c44]], 박효신과 함께 나온다.) 그녀는 이후 인터뷰에서 각자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했다. 2017년 11월 중순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을 바꾸어 활동한다는 기사가 나왔고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도 다시 박화요비로 활동명이 바뀌어있다.
         데뷔 초기의 맑은 음색을 필두로한 테크닉 중심적인 음악에서부터 점점 감성과 소울이 짙어졌다고 하는 5집까지의 가창은 그녀의 목 태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금은 리즈 시절로 보는 2~3집 활동 당시에도 1집 때와 창법과 음색이 바뀌었다고 성토하는 팬들도 많았다.] 성공적인 성대 수술 이후의 가창은 '가사중심적이고 감성중심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향을 확실히 따라가고 있다. 6집에서의 음색은 오히려 5집의 그것보다 부드럽지만, 7집부터는 현재의 목소리로 노선을 전환, 현재는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수가 되었다. 현재 팬들도 거의 모든 앨범을 명반으로 추천하고 있고, 간간히 내는 싱글이나 OST들 역시도 팬들의 호감이 굉장히 높은 편.
         그녀의 연이은 예능 출연이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변화시켰다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다. 실제로 (박)'화요비'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노래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웃기는 사람(...)이라는 사람이 당히 늘은 것을 보면 예능의 파급력, 나아가 미디어의 향력은 방기할 수준이 아니다.
         후술할 '가창력 논란'과 더불어 예능 출연, 스타 화보 촬은 '알앤비 디바'로서의 화요비의 이미지를 바꾸게 한 요인이 되었다며 아직까지 걱정을 하는 팬이 남아있는 편이다. 정작 본인은 예능 출연이든 화보 촬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기에, 팬으로서 그녀의 다짐과 사을 믿어주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포항문화방송|포항MBC]] 라디오 '별밤 뽐내기' 연말 결선에서 이희진의 '용서'를 불러 대을 타고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 당시에는 박화요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지만, [[일본]] 진출을 위해[* '박화요비'의 '박화'가 '[[바카|バカ]]' 로 들릴 수 있다. ~~[[몬데그린|바보요일]]~~] 예명을 화요비로 바꿨다. 18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가창력과 성숙한 목소리로 주목받았으며, [[박효신]] 등과 함께 국내 R&B 아티스트의 대표주자였다. 당시는 [[박정현]], [[박화요비]], [[박효신]]의 이른바 '3박' 시절. 당시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해 환적인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고, 같은 소속사였던 [[박효신]]과의 듀엣곡 라이브도 선보였다. 본인의 노래 뿐만 아니라 [[머라이어 캐리]] 등의 팝을 굉장한 실력으로 소화했다. 화요비의 유명한 팝송 소화 능력은 데뷔 때부터 증명된 셈.
         2집 <Nineteen Plus One>을 내고 자신이 작사한 타이틀 곡 <눈물>로 활동했다. 판매량은 1집에 비해 다소 부진하였지만 환적인 가창력과 라이브 무대로 주목받았다.
         이후로는 4집 <Soul saver>의 타이틀곡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보아요>, 이하 당키세 활동을 기점으로, 아래 항목에서 후술할 예능 활동과 더불어 대중적인 인기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당키세는 화요비의 앨범 타이틀곡 중에서도 1집의 <그런 일은>과 더불어 굉장히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곡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역시 지명도가 높다. 원곡은 일본 가수 코야나기 유키의 것인데, 원곡의 락 요소를 발라드적 요소로 편곡하고 가사도 일부 바꾼 리메이크곡. 이후 SBS '김윤아의 뮤직웨이브'에서 두 가수가 한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이후 일본 활동, 일부 팬들 사이에서 화요비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5집과 리메이크 앨범을 거친다.
         2007년, 몇년 전부터 앓아오던 성대낭종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았다. 수술 회복 이후 2008년 초 6집 활동을 시작하고,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로 큰 인기를 얻었다. 특유의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와의 앙블은 코믹 그 자체. 자세한 사항은 후술할 문서 참조.
         2014년 12월 30일, 앨범 발매 전 연말공연 중 실신하여 병원에 후송되어 콘서트가 도중 취소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전액 환불 조치를 해주고, 소속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요비가 무릎을 꿇고 사과 동을 올리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기 까지했다. 다음날 공연에는 차질 없이 진행하여 잘 마무리 하였다.
         4집 활동 도중, 추후 화요비의 제 2의 전성기를 열어준 예능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난 예능 프로그램은 [[KBS 2TV]]의 [[플러스]]로, 그 전에는 음악 방송에만 출연해왔기 때문에 그녀의 발언과 화제성의 파급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이휘재를 비롯한 출연진들을 빵 터지게 한 '케이블 TV는 한 것을 자꾸 틀어준다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비슷한 기믹을 이어 '비디오' 관련 소재를 SBS [[X맨을 찾아라]]에서 사용하여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디오 기믹의 유느님과의 콤비네이션이 유려하다!~~
         이전의 예능 출연에 비해 더더욱 대중적인 알림과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2008년 한가위 특집부터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 지고지순(?)한 여성적인 매력이 부각되고 특유의 말투와 캐릭터성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로, 무뚝뚝한 남자인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와의 앙블은 팬들 입장에서보면 거의 환 그 자체였다. 환희의 다소 마초적인 모습까지 화요비에 대한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도를 승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이래저래 시너지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던 셈. 이후 [[언터쳐블(가수)|언터쳐블]]의 [[슬리피]]와 연애 사실이 알려지며 '가결혼'에 대한 진실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한동안 고정출연한 예능 출연은 없다가 2013년 2월 22일, [[마스터셰프 코리아 셀러브리티]]의 출연자로 참가했다. 평소 요리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보이던 터라 팬들의 이목 집중. 발 부으로 깁스를 하고 나오는 투혼을 발휘. ~~근데 이거 [[윤하|누구]]한테서 많이 본거 같은데? [[라이온미디어|소속사]]가 문제라고!~~
         [[복면가왕]] 37차 경연에서 [[아씨가 타고 있어요 꽃가마]]로 참가해 [[통금 12시 호박마차]], [[참 외롭다]]를 차례차례 꺾었으며 결승전 대인 [[뫼비우스의 띠(복면가왕)|뫼비우스의 띠]]에게 밀려 준우승했다. 자신은 방송에서 타이틀 곡만 하게 되니까 다른 장르의 노래를 해보고 싶어서 나왔으며, 또한 데뷔한 지 16년이 되었는데도 부모님이 자신 노래를 휴대폰 컬러링으로 안 해 놓아서 기왕이면 모두가 사랑하는 프로그램에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밝혔다.
         또 최근 '그 사람' 라이브 불안 때문에 화요비의 실력을 성대 수술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전부터 화요비는 컨디션에 향을 많이 받는 가수였고 박자 타는 것이 독특해 정박을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의 기대와 어긋날 수 있다.
          * 2014년 연말 전날 실신해서 목이 다 쉬어 화요비의 강점인 간드러지는 음색이 없는 태에서 가성과 진성만으로 20곡을 소화.
         * 2005년과 2011년의 'why dose it hurt so bad'를 비교해보면 두 커버 모두 훌륭하나 2011년의 이 좀 더 소울풀하다는 의견도 많다.
         이렇게 독보적이고 유니크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왜 많냐고 하면, 음악 방송과 음원의 특성 타이틀 곡에서는 가창력을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요비 본인이 레잇백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좋은 평을 얻지 못한 이유도 크다.
  • 백규정 . . . . 38회 일치
         || [[2013년]] - 제 35회[br][[김세(골프선수)|김세]] || → ||<#FFFFFF> [[2014년]] - 제 36회[br][[백규정|{{{#000000 백규정}}}]] || → || [[2015년]] - 제 37회[br][[안신애]] ||
         ||<#7ED5E4> {{{#FFFFFF '''출생'''}}} || [[1995년]] [[10월 15일]], [[경북도]] [[구미시]] ||
         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여자 프로[[골프]]선수. 국가대표 출신으로 [[고진]] - [[김민선(골프선수)|김민선]] 등과 동기이며 'KLPGA 슈퍼루키 3인방'으로 불리우며 14년 시즌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귀여운 외모, 화려한 패션으로 주목 받았고 시즌 첫 다승자가 되는 등 데뷔와 동시에 스타급 선수로 대접 받았지만 시합 중에 보여 주었던 표정, 태도 그리고 여러 구설수로 다사다난했던 루키 시즌을 보냈다. 팬클럽명은 아테나이며 중견 배우인 방은희[* 화 장군의 아들, 결혼이야기, 구미호 등 90년대 내내 작품 활동이 활발했던 조연급 여배우였다.] 씨가 갤러리로 전국을 일주(?)할 정도의 광팬이었다.--근데 1년 만에 미국 갔다...--
         2부 투어 금 순위로는 1부 투어 시드권을 얻지 못해 나간 시드전 최종전에서 우승을 하며 14년부터 1부 투어 진출을 확정 지었다.
         슈퍼루키 3인방으로 지칭되며 시즌 데뷔 전부터 화제의 중심에 섰고, 시즌 3번째 대회인 넥센 · 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서 전년도 대자이자 금왕이었던 [[장하나]]와의 불꽃 튀는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며 매우 빠른 시점에 1부 투어 첫 승을 기록하게 된다.[* 이 때 매우 펑펑 울면서 감격에 겨워 했었는데, 첫 우승의 감격 때문이 아니라 13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손녀의 프로 우승을 못 보는 게 한'이라고 하셨던 말이 기억이 나서라고 한다.] 그 다음 2개 대회에서 바로 컷 탈락을 하며 종 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이더니 다시 한달 반 뒤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2승째를 거두며 첫 다승자가 되었다.--전년도 슈퍼 루키였던 전인지, 김효주는 아직 승전보가 없는 태였다!--
         1~2라운드에서 2위 그룹과 7타 이이 나는 압도적인 경기로 손 쉬운 우승이 예 되었으나, 이 대회에서도 최종 라운드에서 맹렬한 기세로 압박해온 [[장하나]]에게 역전 당할 뻔 하였다. 그러나 당찬 모습 그대로 흔들림 없는 플레이를 지속했던 백규정은, 17번 파3홀에서 홀 50cm 안으로 붙이는 과감한 샷으로 버디를 따내었고, 이걸로 대회 우승은 최종 결정.
         하지만 여러 구설수로 안티팬들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클럽 하우스에서 선배 골퍼와의 알력이라든지, 경기 중 팬클럽의 도움을 받았다라든지[* 갤러리 제보에 의한 것인데, 골프규칙 6조4항의 '선수는 두 명의 캐디를 쓸 수 없다'는 규정에 위배 돼 2벌타를 받게 되지만, 정확히 봤는지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여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하지만 뭐라도 깔 준비가 되어 있는 안티들에게는... --조... 좋은 먹이감이다... !!--], 시합 중에 짜증을 자주 내는 걸 보면 인성이 부족하다는 등 [[고진]]과 함께 '뭘 해도 까이는' 수준에 이르렀을 정도.[* 이에 대해 시즌 후 백규정 본인도 어느 정도 명분을 제공했다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저 골프만 잘 쳐서는 프로로써 인정 받기 어렵다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인터뷰 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들쑥 날쑥한 경기력을 보이며 인적이지 못한 시즌 중반을 보냈으나, 시즌 2번째 메이저 대회인 메트라이프·한국경제 KLPG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손에 넣게 된다. 1~3라운드에서는 우승권과는 거리가 먼 성적을 올렸으나 최종 라운드에서는 이글을 기록하는 등 데일리베스트를 기록, 대회 내내 선두를 내달리던 홍란의 부진을 틈 타 공동 1위를 차지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끝에 최종 우승을 차지한 것.--그러나 구설수의 여왕답게 여기서도 대차게 까이는 장면이 등장하게된다[* 홍란이 우승 펏을 놓치고 연장전이 확정되자, 그린 주변에서 함께 지켜 보던 고진이 백규정에게 손을 내밀었고, 서로 하이파이브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노출된 것.][* 그러나 이 부분도 해명할 부분은 있다. 친구에게 메이저 우승의 기회가 왔으니 잘 해보라며 화이팅을 해주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그 부분에 대한 고려 없이 일단 걸려 들었다면 까고 보는 안티들이 문제인 것.]--
         금순위 위권자 자격으로 출전한, 국내 유일의 LPGA 대회인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5홀 연속 버디를 기록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던 [[전인지]]가 숏게임에서 삐끗한 사이 따라 붙으며 연장전으로 갔고, 거기서 역시 웻지샷을 실수하여 볼이 헤저드로 --퐁당!-- 빠져 버린 전인지와 LPGA의 브리트니 린시컴을 꺾고 LPGA 직행 티켓을 따내었다.[* 2002년 안시현 우승 이래 2005년 이지, 2006년 홍진주에 이어 역대 4번째.]
         KLPGA 3승, LPGA 1승 등 화려한 투어 첫 시즌을 보낸 백규정은, 연말 시식에서 친구인 [[고진]] - [[김민선(골프선수)|김민선]]과의 접전 끝에 신인왕에 선정 되었으며, 대 포인트 6위, 금 5위, TOP10 피니쉬율 7위, 평균 퍼팅 5위를 기록하며 신인으로써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즌을 마쳤다.
         2016년에도 부진은 여전해서 우승은 커녕 TOP 10에서도 이름을 보기 어려운 황이다[* 실제로 10월 현재, 최고 순위 11위로 한번도 TOP 10에 들어간 적이 없다.]. 넓은 미국땅에서의 고달픈 투어 생활을 보내고 있고 투어카드 유지도 쉽지 않아 보인다. 본인의 각성과 반전이 필요한 시점인 듯 하다.
         2016년 후반 부터 KLPGA에 출전하고 있다. 그 전에도 간간히 나와 30~50등대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10월 이후로는 3경기 연속 출전 중. 물론 결과는 60위 - 컷 - 컷으로 여전히 부진하다. 본인도 현재로썬 내년에 KLPGA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은 반반이라고 언급한 바 있고, 실력적인 것 보다는 멘탈이 많이 떨어져 있는 황이라 내년엔 KLPGA로 복귀 -- 효주, 인지 언니, 성현 언니 다 없고... -- -- 근데 진이가 남아 있잖아.. -- ~~2018년을 기점으로 진이도 미국으로 갔다. 이제 3인방 중 미국 진출 안 한 사람은 민선이 뿐인가.~~, 절치부심하며 14년도의 기량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할 것으로 예된다.
         2016년 12월, 2017년부터 KLPGA에서 활약하기로 확정하였다. 이로써 고진 - 김민선과 함께 14년도 데뷔조인 '95년 3인방'의 재결합이 확정.
         2017년 시즌 2번째 경기인 '삼천리 Together open 2017'에서 95년생 3인방 출신이 모두 모여 라운드를 치뤘다. 결과는 가장 입지가 굳건한 고진의 승리였고 본인은 컷 탈락에 그쳤지만 백규정은 "서서히 자신의 골프 완성 시켜 가겠다."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시즌 종료 후의 기록은 참담 그 자체. 1.6천만원 --1.6억이 아니다--의 금으로 111위라는 성적을 받아 든 것. 페어웨이 적중률 및 그린 적중률이 120위권 대이니, 전체 8위를 기록한 퍼팅은 아무 의미가 없는 성적이다. 심지어 KLPGA의 퍼팅 순위는 LPGA와 다르게 오직 퍼팅 수로만 따지기 때문에 만약 '온 그린 시의 퍼팅 수'라는 기록으로 따로 따졌으면 퍼팅 자체도 높은 성적이 아닐 수 있다.[* 백규정의 그린 적중률이 50%대로 120위권. 즉, 그린 주변에는 공이 떨어지기 때문에 '프로'라면 숏 아이언으로 얼마든지 홀 근처로 보낼 수 있다. 따라서 파4에서 보기를 기록했더라도 원 퍼트로 홀 아웃할 수 있기 때문에 KLPGA의 퍼팅 기록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는 것.]
         동료인 고진의 18년 LPGA 진출 확정은 물론, 본인 신인왕 시절에는 보이지도 않았던 [[박성현(골프선수)|남달라]] 언니가 이제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절치부심해야 하는 시점이다.
         2014년 10월 LPGA 투어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이로부터 3년 후인 2017년에는 [[고진|그녀의 친구]]가 이 대회에서 우승하여 2018년도부터 LPGA에서 뛰고 있다.]
         = 금 및 순위 =
          • 2015년 : 3,275,000원 (무순)[* 타 투어 프로이므로 금 순위에서 배제]
         • 2017년 : -[* 3개 대회 참여했지만 모두 컷 탈락 -- 벌어 들인 금이 없다! --. 최악의 부진으로 스스로 심기일전을 위해 투어권을 반납하고 KLPGA로 복귀했다.]
  • 식극의 소마/229화 . . . . 38회 일치
          * 2rd Bout의 여파로 [[츠카사 에이시]]와 [[코바야시 린도]]는 피로가 극심해 방에서 회복 중, [[사이토 소메이]]는 연전이 됐으니 목욕재계로 가뿐해졌다.
          * 소마 등에게 별명을 붙여주고 놀지만 [[잇시키 사토시]]는 그게 사실 "완전히 얕보는 대"에게 하는 태도인 걸 알기 때문에 긴장한다.
          * 마침내 시작된 3rd Bout. 대전 카드는 소마 대 사이토, [[타쿠미 알디니]] vs [[에이잔 에츠야]], 그리고 메구미 대 모모였다.
          * 메구미는 가을 선발 때 베스트 8까지 갔던 전적에도 불구하고 버리는 카드 취급을 받으나 [[사이바 죠이치로]], [[도지마 긴]]의 특훈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는다.
          * 레분 섬 결전의 1일 차 종료. 그리고 다음 아침이 밝았다. 반역자의 숙소는 센트럴 측과 같은 레분 섬 내의 리조트 시설 "설원화" 호텔이었다. 토오츠키 계열의 리조트였다. 2일차 결전의 아침. 대회장으로 향하는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반역자들은 호텔 로비에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출전이 결정된 [[타쿠미 알디니]]는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 차분한 표정이었다. [[요시노 유키]]는 그가 긴장감에 짓눌리지 않나 우려했지만 동생인 [[이사미 알디니]]는 저건 주방에서 집중할 때 보이는 표정이라며 안심했다. [[사카키 료코]]는 다른 출전자들의 태를 걱정했는데 적어도 [[미토 이쿠미]]의 눈에는 아주 괜찮아 보였다.
          *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이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아라토 히사코]]의 지도를 받으며 때아닌 서예 삼매경이었다. 백지에 쓰는 건 사람 인. 이제와서 때아닌 복수전공 지망인가? 하지만 손바닥에 사람 인 자 써서 삼키는 짓을 매번 하던 차였으니 거기서 스케일만 좀 커졌을 뿐 문제는 없었다. 반대로 [[유키히라 소마]]는 풀어야할 긴장이 존재하긴 하는지 불분명했다. 태평하게 설원화 호텔의 아침식사에 대한 격찬을 늘어놓으며 트럼프를 펼치고 있었다. 대는 [[쿠로키바 료]]와 [[나키리 아리스]]. 소마를 뺀 둘은 제법 본격적인 심리전을 펼치며 역시 복수전공을 고려 중인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반역자의 대장 [[나키리 에리나]]는 이 놀이에 끼지 못한 채 우두커니 구경 중이었다. 이 모든게 어쨌든 긴장이나 동요를 풀려는 행동들. 문제는 없었다. 이쿠미는 새삼 어제의 대전카드 추첨 결과를 떠올렸다. 그런 결과가 나올 거라곤 누구도 예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놀라봐야 소용 없는 일. 그렇기 때문에, 메구미는 사람 인을 쓰며 연대식극 2일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 황이 놀자판에서 헤어나올 기미가 없자 이쿠미가 에리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에리나는 긴장해서 굳어 있는 것 보단 낫다고 했지만 트럼프에 끼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꼬라지를 보면 딱히 생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쿠미한테 대답을 하는 동안에도 아리스의 카드패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끼지도 못하는 주제에 사사건건 훈수를 두다가 면박을 당했다. 아리스는 에리나를 떨궈낸 후 애꿎은 히사코를 건드렸다. 트럼프를 하고 싶지 않냐고 운을 띄우자 역시 이쪽도 과민반응이었다. 몹시 끼고 싶어했던 듯 하지만 "에리나 님의 특훈을 받고도 진 주제에 그럴 순 없다"는 네거티브 태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리스는 그런 생각을 하는건 이제 히사코 뿐이고 에리나도 아무 생각 없으니 잊어버리라고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 사이 대충 치던 것 같은 소마가 쿠로키바를 대로 패가 나면서 판돈을 쓸어갔다. 따고 보니 제정신이 들었는지 소마가 슬슬 출발할 때라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직 십걸 멤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언급해주길 기다렸던 것처럼 현
          * 소마는 언제나 그렇듯 붙임성을 발휘했다. 적이면서도 선뜻 모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다른 두 명의 십걸은 어디에 있냐는 것. 모모의 말로는 그 둘은 전의가 너무 충만해서 못 기다린다면서 벌써 대회장에 가있다고 한다. [[츠카사 에이시]]와 [[코바야시 린도]]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그들은 태가 좋지 않아 방에서 쉬는 태라 한다. 어제의 격전은 정말로 의 소모를 안겼다. 특히 린도는 왠지 불쌍하게 침대 옆 구석에 처박혀서 이불을 틀어말고 있다. 소마는 여기서 [[사이토 소메이]]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오늘도 싸워야 했다. 힘들겠냐고 말을 건네가 의외로 모모는 "소먕"은 괜찮다고 말했다. 어제 오늘 냉수마찰로 목욕재계를 했더니 아주 거뜬해졌다고 한다. 한겨울의 홋카이도에서. 요시노와 사카키가 기겁했다.
          * 소마가 적과 정담을 나누고 있자 다른 반역자들의 관심도 쏠렸다. 어느 정도 십걸과 친분이 있는 히사코가 모모가 평소와 달리 말이 많다고 한 마디 했다. [[잇시키 사토시]]도 거들었는데 원래 모모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제법 수다스럽다고 한다. 타쿠미도 이때만큼은 정신집중 태를 풀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이토가 냉수마찰로 목욕재계했다는 말을 듣고 "고풍스럽다"면서도 역시 그러면 컨디션이 안 좋아지지 않겠냐고 쥐가 고양이 생각을 해줬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모모가 타쿠미를 "타쿠먕"이라 부르며 "소먕"은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소먕은 분명 사이토를 부르는 말. 타쿠먕은 타쿠미를 부른 것인 듯 했다.
          이런 이론으로 치면 소마의 이름도 적격이다. 마지막이 "마"행이라 "소먕"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문제는 이게 사이토랑 겹친다는 건데, 어쩔 수 없이 피휘해서 "유키향"으로 결론을 본다. 지어준 사람도 붙여진 사람도 뭔가 어중간한 반응. 소마는 "향"도 귀여운 거냐고 물었다. 일단 아슬아슬하게 귀엽다는데 뭔가 석연치 않다.
          십걸 평의회 시절 알아차린 거지만, 그녀가 저런 식의 별명을 붙이는 대는 정해져 있다. "자기보다 낮은 대" 뿐.
          * 3rd Bout의 준비가 끝났다. 대전자 전원과 모든 관계자가 입석. 반역자들도 우리에 들어갔다. 센트럴 측의 참전자는 사이토와 모모, 3학년 콤비와 2학년이자 현 7석 [[에이잔 에츠야]]였다. 사이토는 모모가 증언한 대로 팔팔하게 회복했다. 그가 입장하며 에이잔에게 적이 하급생이라도 강적이니 의기건양하게 임하라 충고하자 에이잔은 충분히 의기건양하다며 살의와 짜증때문에 그렇다고 눈을 번뜩였다. 이제 자리에 앉은 심사의원들이 최종 마이크 테스트 중. 결전이 코 앞이다.
          * 소마가 슬슬 가보자고 말했다. 타쿠미는 마지막까지 메구미의 긴장 태를 걱정했다. 하지만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녀는 적어도 서예에 매진하고 있을 때 보단 떨쳐낸 태였다.
          소마는 그녀가 "의기건양"해진 게 대견한 듯 했지만 그 태는 그렇게 오래 유지되진 않았다.
          그 한 마디가 메구미를 완전히 정궤도로 돌렸다.
          * 결전 2일차에도 여전히 맛이간 [[카와시마 우라라]] 등장. 묘한 하이텐션 태 그대로 오늘의 참전자들을 소개했다.
          3rd Bout의 제 1카드 대결은 유키히라 소마 대 사이토 소메이. 역시 편파성 농후한 카와시마의 코멘트가 이어졌다. 소마를 "토오츠키에 도저히 안 어울리는 정식집 출신"이라고 깎아내리면서 그런 주제에도 계속 이기고 있다며 잡아먹을 듯이 소개했다. 그리고 "헤이세이 최후의 무사도" 사이토에게 제발 무찔러 주기를 당부했다.
          제 2카드는 타쿠미 알디니 대 에이잔 에츠야. 의외로 타쿠미에 대한 소개는 평범하다. 이탈리아 태생의 유학생. 그의 눈에 보이는건 파멸인가 광인다? 딱 식적인 수준의 멘트. 그런데 또 에이잔에겐 가차없다. "돈과 미식의 망자". 아무튼 편파적인 건 변함없다.
          그리고 제 3카드. 모든 과자의 스페셜 프로페셔널 아카네가쿠보 모모. 이에 맞서는 반역자의 출전자는 역시 타도코로 메구미. 카와시마는 메구미를 "명백히 버리는 카드"라며 평가절하했다. 관중의 여론도 비슷. 메구미 또한 가을 선발 때 베스트 8까지 갔던 인재건만 매우 평가가 박하다. 그녀에겐 아직도 "만년 낙제생"이미지가 따라다니고 있었고 사실 지금까지 거명된 라인업 중에선 가장 약체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의 야유가 퍼부어지는 이런 황에서도 메구미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담대한 태도를 보였다. 허둥거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라면 있었다. 레분 섬 결전이 시작되기 전 [[사이바 죠이치로]]와 [[도지마 긴]]이라는 양대 일류 셰프에게 특훈을 받은 바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훈련이 한 가지 더 있었다.
          * 이야기는 몇 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월광호에 타고 있던 시기. 도지마는 그녀만 따로 주방칸으로 불러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주방엔 아무도 없었다. 오도카니 기다리는 메구미. 도지마가 일전에 "오늘부터 다른 메뉴를 시작한다"고 한 적이 있어서 그것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맞는 추론이었다. 하지만 어떤 형태가 될지는 전혀 예하지 못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인기척이 들렸다. 메구미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고개를 돌렸다. 전혀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 원피스/854화 . . . . 38회 일치
          *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현명한 선택이라며, 그건 돌리는 이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 룰렛이었다고 설명한다.
          * 빅맘의 무기 "프로메테우스"는 [[브룩]]에게 처음으로 처를 입어서 징징댄다. 하지만 빅맘은 그만큼 브룩이 강하다며 좋아하는 중.
          * 빅맘은 다과회에서 [[디]]가 푸딩의 베일을 벗기는 순간 총에 맞아 죽고 나머지 빈스모크 일가도 학살 당할 것을 하며 즐거워한다.
          * 빅맘 측은 디의 방을 살펴보는데 때마침 경비가 그의 침대에 누워있다가 "디가 방 안에서 자고 있다"고 오인된다.
          * 디는 생각에 잠긴채로 있다가 보빈에게 발각되는데, 보빈은 무심코 그가 가지고 있는 도시락에 손을 댄다.
          * 모든걸 포기하고 있던 디였지만 그 도시락은 "평소대로"만드는 바람에 "루피의 취향"대로 만들어버린 도시락.
          * 디는 자기도 모르고 보빈을 때려눕히며 "네가 먹을 음식이 아니다"고 일갈한다.
          * 보빈은 쓰러지면서 그가 어째서 방에 있지 않은 거냐고 중얼거리고, 경비병들이 몰려오자 디는 자신이 뭘하는지 몰라하며 그 자리를 황급히 뜬다.
          그런데 그 사이에는 나미를 찾아다니던 [[쵸파]]의 모습도 섞여 있었다. 거울에서 막 나오던 참이었는데 재수없에 공격에 휘말렸다. 뒤이어 [[캐럿(원피스)|캐럿]]도 등장.
          일행은 [[브룩]]과 [[몽키 D. 루피]], [[디]]를 구하기 위해 출발한다.
          * 빅맘의 거처인 "여왕의 방"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처가 아프다고 징징거리고 있다. 그 처는 브룩이 낸 것인데 생각보다 깊어서 자꾸 벌어진다고 한다. 빅맘은 프로메테우스가 한심하다고 말하다가 "그보단 이 녀석이 대단한 것"이라고 말을 바꾼다. 그녀의 세 무기에 처를 낸 것은 브룩이 최초였기 때문이다. 빅맘은 브룩을 [[테루테루 보우즈]]처럼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며 예뻐한다.
          함께 있는 [[샬롯 푸딩]]은 "그 뼈"도 여기 있을 거냐고 묻는다. 브룩은 푸딩의 언행이 자기가 아는 것과 다른 것 같다고 여기지만 설마 "본성"이 어떤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빅맘은 으로 브룩을 마음에 들어해서 "살아있는 예술"이라 부르며 당분간은 도감에 넣지 않고 지니고 다니겠다고 말한다.
          브룩은 계속되는 이야기를 듣고 황을 파악한다. 빅맘이 짜놓은 "결혼식"의 전모는 이렇다. 모두가 주목하는 "맹세의 키스"를 하는 순간, 디가 푸딩의 베일을 벗기면 그 아래 있는 "제 3의 눈"을 발견하고 당황할 것이다. 그때 푸딩이 디의 "미간"에 총알을 박으면 이것이 신호가 돼서 빈스모크 일가의 배후에서 무수한 총알이 쏟아질 것이다.
          * 빅맘 해적단의 간부들은 디가 방에서 나오지 않도록 감시하고 있다. 체스병사가 방 안을 확인해보는데 누군가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다. 병사는 별 의심없이 "디가 방에서 자고 있다"고 보고하는데, 사실 그는 디가 아니라 방을 감시하던 감시병이었다.
          침입자들은 이렇게 정리됐다 치고 디와 빈스모크 일가도 문제가 없다는걸 확인하자 몬도르는 모든 방해꾼이 사라졌고 결혼식 준비만 무사히 마치면 된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역시 오페라를 신용할 수가 없어서 따로 병력을 차출해 일대를 감시하게 한다.
          * 복도 어딘가에선 디가 아직도 생각에 잠겨있다. 그는 자신이 푸딩에게 주기 위해 만들었던 도시락이 실수로 "평소대로", 그것도 "루피에게 주기 위한" 레시피로 만들어버린걸 깨닫는다. 하지만 디는 스스로 "뭐하고 있는 거냐"고 자문하며 그런 미련들을 잊기 위해서 발버둥친다.
          디는 그대로 죽을 생각이었다. 루피 일행이 자력으로 도망칠 거라 믿으며 자신을 포함한 "악의 군단 제르마"가 전부 죽는게, 그게 적을 자극하지 않고 끝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복도를 지나던 보빈이 그를 발견한다. 보빈은 처음엔 디인건 모르고 옆에 있는 도시락이 눈에 띄어 접근했던 모양인데, 디가 고개를 들자 그를 알아본다. 문제는 디는 분명 "방에서 자고 있다"고 보고되어 있는데.
          디는 보빈이 도시락에, "고기"에 손을 대는걸 발견한다. 그리고 루피가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여기서 굶어 죽겠다"고 선언한 일을 떠올린다.
          발끈한 디는 일갈과 함께 보빈을 걷어차 버린다.
          * 소란이 일어나자 경비병들이 몰려온다. 보빈도 정신을 잃지 않고 어째서 방에 있어야할 디가 어디에 있는 거냐고 중얼거린다. 황이 이하게 돼버리자 디는 또한번 "내가 뭘하고 있는 거지"라 되뇌인다. 그리고 경비병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도시락을 챙겨서 자리를 뜬다.
  • 원피스/857화 . . . . 38회 일치
          * [[몽키 D. 루피]]와 [[디]]가 있는 곳엔 떨어진 [[거울]] 조각이 있어서 미러월드의 [[쵸파]]일행과 연락이 닿는다.
          * 디는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쵸파 일행은 그의 복귀를 솔직하게 기뻐해준다.
          * [[나미(원피스)|나미]]는 디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당장은 잊어두겠다고 해서 디가 한 시름 놓는다.
          * [[징베]]는 다과회에는 지금 드러난 빅맘 [[샬롯 링링]]의 부하 이으로 강하고 위험한 인물들이 참석할 거라고 경고한다.
          * 벳지는 웨스트블루 출신으로 그곳을 주름잡는 5개의 마피아 중 하나. 지위나 역에 관심없이 잔인한 고문과 조직 내부의 패권다툼을 즐기는 성격.
          * [[몽키 D. 루피]]와 [[디]]는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디는 [[징베]]가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가 처형될 위기에서 구해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하지만, 한편으론 나미를 볼 면목이 없다며 시무룩해한다. 루피는 나미가 디를 제일 걱정했다고 격려하고 디는 무서운 일을 겪게 했다고 새삼 사과한다. 그러는 동안 비가 그친다.
          * 미러 월드에서는 [[쵸파]] 일행이 디와 루피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아냈다. 나미는 킹 바움에 올라타 이동할 때 평원 근처에서 거울을 깨뜨렸던 일을 생각해냈다. 즉 루피 일행이 그 거울 조각 근처에 있다면 연락이 가능할 거라는 것. 일행은 거울 조각과 연결된 미러월드 안의 거울 조각을 찾아낸다. 쵸파가 조심스럽게 루피와 디를 부르자 나미의 예대로 둘이 쵸파의 목소리를 듣는다.
          디는 어째서 거울 안에서 쵸파 일행의 목소리가 나는지 어리둥절해하지만, 루피는 설명하면 길다며 아무튼 그렇게 됐다고 하고 넘어간다.
          * 루피는 디와 합류하는데 성공했다고 전한다. 쵸파 쪽에서는 흩어진 일행이 모두 모였고 [[포네그리프]] 탁본을 뜨는데도 성공했다고 응답한다. 루피가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자 쵸파, [[캐럿(원피스)|캐럿]], [[브룩]]은 엄청 쑥쓰러워하며 오버한다. 그때 [[페드로(원피스)|페드로]]가 끼어들어 디와 이야기는 끝난 거냐고 묻는다. 루피가 "디는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답하자 일행은 크게 놀란다.
          >디의 가족을 구해낼 거야.
          >그러면... 디는 돌아와!
          * 디는 루피가 대뜸 그렇게 말하자 당황한다. 자신의 사정만으로 일행에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때 저쪽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들린다. 브룩, 캐럿, 쵸파는 루피와 디가 싸웠다는 얘기를 듣고 돌아오지 않게 되는거 아닌가 걱정했다며 대성통곡을 하며 기뻐한다. 나미 조차도 디가 돌아오는 걸 기뻐하는데 디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이렇게 말한다.
          >디군. 네가 나를 공포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던 건 '''절대 용서 안 해'''
          나미는 독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일단은 잊겠다"며 한 발 물러나며 반드시 돌아와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죽어가는 것 같았던 디가 "그건 프로포즈냐"며 거의 원태로돌아온다. 루피는 마침 자신도 [[빈스모크 레이쥬]]에게 해독을 받은 일을 언급하고 일행은 빈스모크 일가를 꼭 구하기로 결정한다.
          * 징베는 일행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그 말은 빅맘 [[샬롯 링링]]의 역린을 건들는 일이라고 냉정히 말한다. 게다가 지금것 일행이 대한 빅맘 해적단의 간부들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으며 더욱이 내일 다과회에는 해외에서 초대되는 어둠의 세계의 제왕들이 즐비할 거라고 말한다. 그에 비해서 이쪽은 [[샬롯 브륄레]]같이 인질로 잡은 인원까지 긁어 모아도 열 명가량 밖에는 되지 않는다.
          루피 조차도 그런 이야기는 오싹하다고 하는데, 그 오싹한 부분은 조직 운에도 그대로 반돼있다. 벳지는 역이나 지위에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항 다른 조직의 "보스의 목"만을 노렸으며 항쟁때에도 보스의 목만을 노리는 기괴한 취미를 보였다. 그렇게 대를 무너뜨리고 철저하게 금품을 빼앗고 이후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패권경쟁이나 뒷배경이 되어주던 권력자들이 당황하는걸 보고 즐기는 것이었다.
          징베는 [[페콤즈]]가 벳지에게 암살 당할 번한 일도 밝힌다. 벳지는 페콤즈에게 협력을 요구했지만 거절 당하자 그를 쏘고 어떼가 우글거리는 바다에 버렸다. 그때마침 징베의 동료가 발견해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벳지의 음모도 밝힐 수 있었다.
          * 루피는 당연히 벳지를 용서할 수 없다며 분노하지만, 징베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루피가 빅맘으로부터 디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움직일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황이라는 적이 생긴 시점에서 벳지까지 적으로 돌리는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게다가 밀집모자 일행은 지금부터 작전을 짜려고 하지만 벳지는 몇 년 전부터 용의주도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루피! 디!
          루피는 질색하는 것 같았지만 곧 생각을 정리해 "그도 그렇다"며 징베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징베는 그럴 줄 알았다며 껄껄 웃는데, 사실 사전에 나머지 일행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고 일행은 4대2로 이 동맹에 반대했다. 디 조차도 제정신이냐고 반발, 징베와 나미, 루피를 제외한 일행은 이 해적동맹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 이성희(배구감독) . . . . 38회 일치
          * 위 문서: [[배구 관련 인물]]
         || '''신체사이즈''' || 신장 182cm, 체중 73kg ||
         ||<width=30%><:> [[이희완(배구)|이희완]][* 시즌 중 건강의 문제로 중도 사임.] [BR] (2006~2008) ||<:> {{{+1 →}}} ||<width=30%><#2c3d47><:> '''{{{#e8581b 이성희[* 다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2007-08 시즌이 한창 진행중이던 2008년 1월부터 위암 발병으로 자리를 비운 이희완 감독을 대신하여 팀을 이끈 황이었다.]}}}'''[BR]'''{{{#e8581b (2008~2010)}}}''' ||<:> {{{+1 →}}} ||<width=30%><:> [[조혜정(배구인)|조혜정]] [BR] (2010~2011) ||
         이 동 1분 20초에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를 넣는 선수가 바로 이성희다. 182cm의 [[단신]]이지만, 탄력이 대단했고 강 스파이크 서브를 넣을만큼 공격력도 가졌다. 운동 능력이 출중하다 보니 오픈 토스의 구질이 좋아서 단신 공격수들 위주의 고려증권이 좋은 공격력을 보여 준 것도 이성희의 토스웍 때문이다. 다만, 본인의 부과 공기압 약화로 인해 토스의 질이 맛이 가면서 쿠세 토스를 잘 못하는 정통파 세터였던 이성희는 고려증권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고려증권이 해체된 [[1998년]]에는 [[독일]] 리그에 진출하여 바이어 04 부퍼탈에서 3년 동안 뛰었다. 그 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이 [[김경훈]]의 무 입대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콜을 보내면서 국내로 복귀했으며, [[김경훈]]이 제대한 후 2002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고려증권의 명 세터로 이름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여느 명선수 출신 감독들이 다 그랬듯이-- 감독으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평가를 남겼다. 그래도 GS칼텍스 시절에는 2007-08 시즌에 [[우승]]도 하는 등 [[나름]] 괜찮은 성적을 내기도 했었지만, 인삼공사에서는 [[빼도 박도 못한다|빼도 박도 못할]]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인삼공사의 고질병인 [[몰빵배구]]와 얇은 국내 선수층을 개선시키지 못하면서 부임한 시즌 대대로 최하위만 밥먹듯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4년 동안 [[물갈이]]가 전혀 되지 않아 '''철밥통''', '''[[돌아이|돌성희]]''' 등의 온갖 모욕적인 [[별명]]들로 인삼공사 팬들에게 당히 까이고 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으로 재직하던 2008년과 2009년에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10년, GS칼텍스 감독 사임 후에는 KOVO의 경기감독관으로 지내다가, 2011-2012 시즌을 앞두고 [[대전 KGC인삼공사]]의 수석코치로 입되어 [[박삼용]] 감독과 함께 인삼공사의 2011-2012 시즌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한유미]], [[장소연(배구선수)|장소연]], [[김세(배구선수)|김세]] 등 주전이었던 베테랑 선수들도 모자라 김회순[* 장소연과 김세 대신 원포인트 서버로 썼던 선수.], 오현미[* 윙 리시버로, 이 선수의 여동생이 현대건설에서 리베로로 뛰던 오아이다. --하지만 [[이호(배구선수)|이호]] 때문에 [[망했어요]]!--], 한은지[* 주전 세터인 [[한수지]]의 언니이자 센터.] 등 조커 역할을 하던 선수들도 대거 [[은퇴]]했다. 거기에 2011 - 12 시즌 엄청난 활약을 했던 외국인 선수 마델레이네 몬타뇨의 공백을 전혀 메우지 못해 5승 25패(6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냈다. 팀 최다이자, 리그 역사 최악의 기록인 '''20연패'''는 [[덤]].
         2013-2014 시즌에는 새 외국인 선수 조이스의 활약에 힘입어 14승 16패(3위)를 기록, 플레이오프에 진출[* 인삼의 홀수해 시작 시즌의 무조건 봄배구행 진리도 있었지만, 사실은 잘해서가 아니라 밑의 3팀이 못했던 게 [[이유]]. [[져주기 게임|옛 버릇]] 버리긴 커녕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대놓고 핵노답이었던 팀]], [[602 대첩|주장이 시구]]했더만 [[타어강]] 옮아서 [[김연견|병원 차릴 정도로]] [[김주하(배구선수)|부 선수가]] [[정미선(배구선수)|속출해서]] [[수원 현대건설|강제 탱킹한 팀]], [[김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 이의 [[경북 김천 하이패스|최악의 트레이드로 탱킹한 팀]]들 덕분에 거둔 3위였다. 즉, 이성희의 역량 발휘로 3위를 한 건 절대로 아니라는 소리다.]하였으나,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 스윕당하여 탈락하고 말았다.
         2014-2015 시즌은... '''말 그대로 2012-13 시즌의 재림'''. 뚜렷한 전력보강도 전무했고[* 다른 팀들이 FA 입, 보선수 이적 등으로 정신없이 오프 시즌을 보낸 반면 KGC는 조용한 것도 모자라 은퇴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김세이 [[한유미]]와 같이 [[수원 현대건설|현대건설]]로 이적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겨우 1명([[문명화]])만 지명하는데에 그쳤다. [[안양 KGC인삼공사|농구단]]과 마찬가지로 KGC 고위층의 투자 의지가 줄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떠돌 정도. --농구단은 [[양희종|누구]]한테 [[화폐|돈]]이라도 썼지...--], [[백목화]]와 [[이연주(배구)|이연주]]의 기량 하락, 조이스만 바라보는 팀 공격진, 도로공사에서 트레이드로 입했던 센터 [[이보람]]의 시즌 중 [[임의탈퇴]] 공시까지 겹치며 --늘어나는 [[흰머리]]처럼--[* 실제로 인삼공사 감독 부임 당시만 해도 흰 머리였으나, 2016년 1월 9일, 검게 [[염색]]을 하고 나타났다.] 패만 줄창 쌓이면서 8승 22패를 기록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승점에서 2점 모자라 최하위에 그쳤다.
         특히 인삼공사 감독 부임 후 꼴찌에서만 빌빌거리는 등 부진한 성적 때문에 인삼공사 팬들 사이에선 '''돌성희'''라며 대차게 까이고 있는데, 특히 경기를 패하면 용병 탓만을 하는 그의 고질병 때문에 그를 향한 [[비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로부터 한해 전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모 팀]]의 [[류화석|모 감독]]도 이랬던 거 같았는데?--
         트라이아웃 시행 이후 V리그 데뷔전을 치른 [[헤일리 스펠만]]에게 점유율 59%[* 마지막 5세트에서는 80% 이까지 치솟았다.], 득점 51점, 공격시도 118타라는 악몽같은 [[몰빵배구]]를 지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으로 풀세트 끝에 패배했다. 이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끝난 이후에도 배구 팬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해설진들이 탄식을 내뱉을 정도로 경기 내내 헤일리에게 모든 공이 올라갔고, 마지막 5세트의 마지막 공격까지도 헤일리의 범실로 종료되었다. 몰빵배구와 외국인 선수 점유율을 줄이기 위한 [[KOVO]]의 궁리 끝에 나온 트라이아웃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몰빵하는 감독은 몰빵을 못 버린다는 사실만 증명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는 인삼공사 팬들은 [[뒷목잡기|뒷목잡고]] 쓰러질 지경.
         그의 [[노답]] 행각은 12월 16일 화성 원정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는데 헤일리에게 몰빵지시도 모자라 작전 타임때 수비는 안할거냐는 둥 안 그래도 '''공격 점유율도 높은 선수에게 수비까지 전담'''하게 하는 정신병자급 작전을 선보여 인삼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대관절 이 인간에게 뇌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 '''안 그래도 국내 선수층이 얇은 팀 전력의 절반 이을 책임지는 헤일리가 [[야반도주]]라도 한다면 대체 이 팀에 남는 게 뭐란 말인가?''' 이같은 막장스런 행각 때문에 심지어 2012 - 13 시즌 부을 핑계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배째다 퇴출된 드라간 마린코비치가 재조명받는 사태까지 이르고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팬들이 헤일리에게 야반도주해도 되니까 하루 빨리 팀에서 도망치라고 얘기하고 있을까? '''그것도 타 팀 팬들이 아닌 인삼 팬들이!!!''' 이 사실들만 봐도 돌성희가 얼마나 [[쓰레기]]같은 존재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그리고 12월 29일 [[수원 현대건설]]과의 홈 경기에서는 아예 3세트 때 헤일리를 빼 버리기도 했다. 이날도 당연한 소리같지만 '''패했다'''. 사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 헤일리를 위해 다음 경기를 위해 체력을 안배하려는 의미에서 뺐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감독부터가 아예 경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특히 헤일리가 빠진 3세트는 그야말로 경기력이 처참한 수준. 이것만 봐도 감독이란 인간이 3년동안 부임 이래로 국내 선수들을 전혀 키우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냥 이렇게 지면 지워버리기라도 하면 되지만 2세트나 15점 이하의 득점도 모자라 현대건설의 16경기 연속 기록까지 갈아 치워주는 굴욕까지 당하며 1229 대첩을 발발하게 한 단초를 제공했다. '''이는 이성희가 그만큼 국내 선수들을 보는 안목이 전혀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volleyball&no=1478772&page=1&exception_mode=recommend|예전 용병 조이스를 깠던 적이 있는 인터뷰까지 발굴되면서]] 가뜩이나 안 좋은 이런 황은 더욱 이성희에게 안 좋게 흘러가는 중. --그래도 안 짤렸던 것이 [[함정]].--
         더구나 2015-16 시즌 진행 중에도 최하위에서 올라올 기미가 없는 등 당최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이자 인삼공사 팬들에겐 항명 파동으로 물러나게 된 도로공사의 [[이호(배구선수)|이호]] 전 감독과 함께 사실 '''감독 취급도 못 받는 [[금지어]] 신세로 전락했다'''. 심지어는 대놓고 탱킹하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의견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인삼팬들을 더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감독 부임 후 '''시즌 대대로[* 2013-14 시즌 제외.] 팬들을 우롱하는 [[시궁창]] 성적을 내고도 [[사퇴]] 혹은 [[경질]]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2월 1일, 혹사당한 헤일리가 어깨 부을 호소하며 6일까지의 3경기에서 출전 명단에서 제외시켰는데, 헤일리가 결장했던 2월 1일 국내 선수들로 똘똘 뭉치자 [[수원 현대건설]]전에서 풀 세트 접전 끝에 1승을 챙겼다. 헤일리가 부으로 보름동안 휴식을 가진 사이 현대건설에서 이적한 [[김진희(배구선수)|김진희]]와 문명화의 활약이 돋보였고, --그의 양딸-- 이연주와 [[백목화]]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나머지 두 경기는 모두 패했다는 게 함정.-- ~~헤일리 팔 돌려놔 [[개새끼]]야!~~
         부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헤일리가 복귀한 2월 16일부터 20일까지 2연승 행진을 하긴 했지만, 나머지 3경기를 모두 내주며 결국 '''7승 23패, 승점 22점'''으로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헤일리 복귀 후 여전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이성희의 질책은 계속되었고, 문제의 3월 2일 경기에서는 2세트 범실에 [[빡]]쳤는지 3세트에선 헤일리를 아예 빼버리기까지 했다. 그 사이 헤일리의 울먹이는 듯한 표정이 방송에 포착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진정시키는 일엔 아랑곳도 없이 웜업존에 처박아두는 비정함을 보인 이성희는 더 이 그를 코트에 출전시키지 않았고 팀은 0:3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심지어 '''헤일리의 어머니까지 직관을 왔는데도''' 말이다. 진짜 이건 '''사람이 아니라 [[백정]]이다'''. 얼마나 감독의 질책이 누적되었으면 저렇게까지 안타까운 모습이 포착되었을까? 평소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성실한 선수에게 저런 되도 않는 [[군기]]를 시전하는 행동은 어떻게 봐도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이에 대한 답례로 자팀팬들에게는 물론이고 타팀 팬들에게까지도 대차게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인삼공사와 계약이 만료됐는데, 4년 동안 최하위만 3차례(6위 - 3위 - 6위 - 6위)나 세우는 무능함을 보여주며 프로 팀이라고 하기엔 도저히 말도 안되는 개[[막장]]스런 성적을 낸 탓에 재계약은 사실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저런 한심한 성적까지 낸 주제에 성실하게 경기에 임하는 용병을 갈구는 고질병까지 감안한다면, 거의 '''구단 역사 최악의 감독'''이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인삼공사를 거쳤던 역대 감독들이 모두 금지어에 등극되어 있긴 하나, '''이 KGC란 팀 자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비박산내어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서 그래 외국인 선수에게까지도 폭언을 일삼는 막장스런 행각을 보인 감독은 이성희밖에 없다'''.
         저렇게 [[막장]]스런 행각을 보인 이성희에게도 유일한 [[장점]]이 있긴 한데, 그것은 바로 다른 감독들에 비해 [[비디오 판독]]을 의외로 잘 활용한다는 것.[* 실제로 2016년 2월 1일, 현대건설과의 홈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챌린지]]로 두 차례나 오심을 이끌어냈다.][* 이와 180도 대조되는 사람으로는 [[박미희]]가 있다.] 이 말인 즉슨, [[심판]]의 오심을 잘 캐치해 낸다는 것이다. 오심을 이끌어서 오심의 달인으로 등극했다. 이는 어찌 보면 인삼공사의 수석코치로 입되기 전에 실제 2010년 KOVO컵 대회부터 2010-2011 V리그 대회까지 재직한 경기감독관 경력에도 한 몫 하는 듯.
         이 때문에 배구 팬들 사이에선 감독보다 경기감독관이 더 잘 어울린다는 의견이 돌고 있으며, 2017년 KOVO컵 대회부터 경기감독관을 맡는다고 하였다. 다만, 정작 경기장에 안 나오는 걸로 봐선 사후판독관으로 있는 걸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이는 2017년 KOVO컵 대회때 잠깐 경기감독관으로 나온 심순옥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사후판독관으로 있던 [[강성형]]이 현 배구 국가대표 후보 선수 팀 감독으로 가면서, 심순옥이 사후판독관으로 바뀐 듯 하다.][* 다만, 기존 경기감독관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생길 경우, 일정기간 사후판독관이 대타로 경기장에 오기는 한다.]
  • 진격의 거인/86화 . . . . 38회 일치
          * 엘디아인은 수용 구역에서 갇혀사는데, 그리샤와 여동생이 이 규칙을 어겼다가 군인에게 여동생이 끌려가 참혹하게 살해당하나 진은 밝혀지지 않는다.
          * 어른이 된 그리샤에게 반체제 조직 "엘디아 복권파"가 접촉해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고 그를 동지로 입한다.
          * 지크가 일곱 살이 될 무렵, 마레 정부는 파라디섬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엘디아인 어린아이를 대으로 병사를 모집한다.
          * 하지만 이 계획의 진은 엘디아인을 이용해 프리츠 왕가의 "시조 거인의 힘"을 빼앗으려는 것으로, 이 정보를 입수한 그리샤는 이걸 이용하기로 한다.
          * 그리샤가 만났던 군인들이 집까지 와서 황을 설명한다.
          * 어머니는 말 없이 슬픔에 빠졌고 아버지는 비굴할 정도로 빌빌대는 태도로 이들을 대한다.
          * 그러나 그 이으로 너무나 어리석었던 자기 자신을 원망한다.
          * 아버지는 피해자 측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이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어도 관없는 일이라며, 단지 여기서 조용히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말한다.
          * 그리샤가 그게 어떻게 난 처냐고 묻자 "동포의 증거"라는 대답을 한다.
          * 그는 어리둥절한 그리샤에게 "당신의 여동생은 마레인에게 살해됐다. 진을 알고 싶거든 엘디아 복권파에게 협력해라."는 제안을 받는다.
          * 이들은 그리샤가 의사이며 마레 정부에 원한이 있는 것에 주목해서 반체제 조직 "엘디아 복권파"에 그를 가담시키려 한 것이다.
          * 그들이 밝힌 진은 여동생을 데려갔던 당국의 군인이 재미삼아 페이를 군견의 먹이로 줘버린 것. 페이는 군견들에게 물어 뜯겨서 죽은 것이었다.
          * 올빼미는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무기나 자금을 융통해주고 엘디아인이 모르는 역사서나 경전 따위를 제공해서 사실 조직을 이끌고 있었다.
          * 마레가 일으킨 내전 자체가 사실이 아니며, 원래 여덟 거인의 힘을 가진 가문들은 대립하고 자주 전쟁을 하던 사이라고 한다.
          * 다이나의 말이 진이라고 철썩같이 믿은 조직원들은 침울한 기색이 역력하다.
          * 결국 왕이 백성을 버린 결과라는 것으로, 엘디아 제국이야 말로 이향이었던 이들에겐 암담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
          * 마레 정부는 엘디아인을 대로 "병사"를 모집한다고 발표한다.
          * 그래서 거인을 계승할 수 있는 엘디아인 5~7세 어린이를 대으로 병사를 모집하는 것.
          * 최종적으로 발탁되는 아이가 속한 일족은 "명예 마레인" 칭호를 수여하며 자유민으로 삶을 유하게 해주겠다고 선언한다.
          * 이미 복엽기나 증기선 따위가 신병기로 유망하게 떠오르는 황.
  • 김효진 (배우) . . . . 37회 일치
         {{화인 정보
         | 형제자매 = 이학 이아연(조카)
         | 고모부 = [[이민]]([[2011년]] ~ 현재)
         | 수 =
         | 웹사이트 = [http://www.namooactors.com/bbs/board.php?bo_table=nm0901 나무엑터스 김효진]<br>{{인스타그램|hyojin__0705/}}<br>{{트위터|persona__84}}
         * [[한양대학교]] 연극화과 (학사)
         * [[한양대학교|한양대학교 대학원]] 연극화과 (석사)
         </ref> 2003년 개봉 된 사극 화 《[[천년호]]》에서 '자운비' 역으로 스크린 데뷔했다. 이후 김효진은 이지적인 외모와 독특한 분위기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2012년에는 [[임수]] 감독의 화 《[[돈의 맛]]》에서 주체적인 여성 윤나미 역을 통해 재조명받았고,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칸국제화제]]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칸레드카펫을 밟았다.
         2011년 12월에는 8살 연의 배우 [[유지태]]와 5년여의 열애 끝에 웨딩마치를 올렸다. 2014년 7월 5일, 첫 아이인 아들 유수인을 출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효진 유지태 부부 5일 득남 "가슴 벅차다"|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0906672|출판사 =뉴스1 |저자 =권수빈 |날짜 = 2014-07-05 |확인날짜 =2017-09-29 }}</ref>
         === 화 ===
         * [[2003년]] 《[[천년호 (2003년 화)|천년호]]》 ... 자운비 역
         * [[2004년]] 《[[누구나 비밀은 있다]]》 ... 한미
         * [[2009년]] 《[[오감도 (화)|오감도]]》 ... 강나루 역
         * [[2009년]] 《[[전우치 (화)|전우치]]》 ... 빨간 머리 역(특별출연)
         * [[2013년]] 《[[배꼽 (화)|배꼽]]》 ... 윤정 역
         * [[2013년]] 《[[결혼전야]]》... 배주
         * [[2000년]] [[SBS]] 드라마스페셜 《[[TV화 러브스토리]] - [[불면증, 메뉴얼 그리고 오렌지주스]]》
         * [[2004년]] [[SBS]] 주말특별기획 《[[매직 (드라마)|매직]]》 ... 윤단
         == 수 내역 ==
         * 2000년 [[KBS 연기대]] 신인 《[[RNA (드라마)|RNA]]》
  • 보나 . . . . 37회 일치
         무표정일 때는 시크한 느낌으로 차도녀 비슷한 인이지만, 웃을 때는 따뜻하고 맑은 이미지를 가진 반전 매력을 가지고 있다. [[http://gall.dcinside.com/cosmicgirl/42161|참고]] 게다가 앳된 [[동안]] 외모로 언니라인임에도 불구하고 동생라인으로 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 세 ==
         많은 사람들이 [[우주소녀]] 멤버 중에서 가장 많이 비주얼 갑으로 꼽는 멤버이다. '배우 얼굴'이라는 반응이 많다. 심지어 CG라는 반응도 나온다.
         전체적으로 몸이 가늘고 손발도 작다. 발 사이즈가 220mm이다.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의 배역 때문에 단발로 자르고 앞머리를 내렸다. 머리를 자르고 왔을 때 멤버들도 순간 못알아봤다고 하며, 인이 굉장히 순해졌다.
         유튜브에서 MR제거 을 보면 보컬라인을 제외한 멤버들 중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노래를 하는 멤버임을 알 수 있다. 본인 음역대 자체가 우주소녀의 곡과 잘 맞아서 더욱 그런 것도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안정적인 편. 그래서 '너에게 닿기를'에서 파트를 더 받았다.
         다만 [[미기(우주소녀)|미기]]는 파워풀한 파워댄스 스타일이고 보나는 춤을 가볍게 추면서도 선이 고운 타입이라서 같은 안무를 하면 [[미기(우주소녀)|미기]]와 대적으로 비교된다. 두 사람의 스타일 차이가 궁금하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4ZuN3soPv_4|이 ]][* 흘러나오는 곡은 [[비욘세]]의 Ego]을 보자. 확연한 차이가 구분될 것이다. 썸남에서 겟남까지 광고에서도 단체 안무를 보면 보나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확연히 춤을 가볍게 추는 것을 알 수 있다.
          * 2016년 9월 2일, KBS 2TV 뮤직뱅크에서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미미(구구단)|미미]], [[소나무(아이돌)|소나무]] [[뉴썬]], [[라붐(아이돌)|라붐]] [[해인]], [[브레이브걸스]] [[유정(브레이브걸스)|유정]]과 함께 만화를 찢고 나온 소녀로 [[카라(아이돌)|카라]]의 Pretty Girl 스페셜 무대를 가졌는데 [[우주소녀]] 무대에서는 보기 힘든 보나의 단독 샷과 엄청난 분량으로 보나 팬이라면 필수 감 무대. [[https://www.youtube.com/watch?v=PEOJ22Cg3x0|인터뷰 ]] [[https://www.youtube.com/watch?v=pXkg7wpjt9k|무대 ]]
          * 2017년 6월, [[KBS 2TV]] 금토드라마 [[최고의 한방]]에 '도혜리'역으로 출연했다. 최고의 한방 대본리딩 에서 보나의 모습이 비춰지게 되어 알려진 것. 연기력에 대한 호평은 많지만, 조연이라 분량이 많지는 않다.
          * 2017년 12월 31일, [[KBS 연기대|2017 KBS 연기대]]에 참석했다. [[최고의 한방]]과 [[란제리 소녀시대]]로 여자 신인, [[란제리 소녀시대]]로 여자 연작·단막극 2개의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나, 아쉽게도 수은 실패했다.[* 여성 아이돌 가수 중에서는 [[세정(구구단)|김세정]]만 KBS 연기대에서 신인을 받았다. [[김소혜(1999)|김소혜]]도 [[라미란]]에게 밀려 단막부문 수에 실패했다.]
          * 2018년 3월 26일, [[KBS 2TV]] 수목드라마 [[당신의 하우스헬퍼(드라마)|당신의 하우스헬퍼]]에 주연 임다 역할로 출연했다. 알다시피 같은 멤버인 [[다]]과 성도 같은 이름이다.
          * 소속사 내에서 당시 [[연습생]] 연차로도 연습생 중 당히 위라서 다른 [[연습생]]들의 교육을 보나가 많이 했다고 한다. [[루다(우주소녀)|루다]]의 댄스 교육도 보나가 했었다고 [[루다(우주소녀)|루다]]가 언급하기도 했다.
          * [[엑시(우주소녀)|엑시]]와 함께 [[청하(가수)|김청하]]와 친구 사이라고 한다. [[청하(가수)|김청하]]는 빠른 1996년생인데 친구다.
          * 첫 뮤비 촬 후 [[선의(우주소녀)|선의]]와 함께 울었다고 한다. 뮤비 촬이 3, 4일 걸려서 매우 고생했다고.
          * [[성소]]를 무척 귀여워하여 아기처럼 대하며, [[경도 사투리]]를 가르쳤다. [[https://www.youtube.com/watch?v=r-ikDvXaj8M|참고]]
          * 햄버거는 [[맥스파이시 하이 버거]]를 선호한다고 한다.
          * [[아이린(레드벨벳)|아이린]]과 비슷한 점이 꽤 있다. 둘 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에 팀에서도 리드댄서와 보컬을 하고 있으며[* [[아이린(레드벨벳)|아이린]]은 랩까지 한다. 셋 다 잘 한다.] 혈액형도 A형에 각각 그룹에서 대표 비주얼로 통해 비교하는 팬들이 많다.[* [[레드벨벳]]도 멤버들 전부 비주얼로 호평받지만,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은 [[아이린(레드벨벳)|아이린]]이다. [[우주소녀]]도 멤버가 13명이나 있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보나, [[성소]], [[루다(우주소녀)|루다]]를 스리톱으로 뽑고 다른 조합이라도 보나는 항 들어가는 편이다.][* 보나는 [[달서구]] 출신이고, [[아이린(레드벨벳)|아이린]]은 [[북구(대구)|북구]] 출신이다. 나이는 [[아이린(레드벨벳)|아이린]]이 4세 위다.]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는 점도 같다. 다만 둘 사이의 친목은 아직까지 알려진 건 없다.
          * 당한 달변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그룹으로서 나선 인터뷰 자리에 대표로 인터뷰하거나 예능에 많이 출연한다. 방송을 보면 당히 논리적으로 말하는 걸 볼 수 있는데, 팬싸나 다른 데서 실제로 대화를 나눈 팬들에 의하면 말할 때마다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고. 흡사 세일즈맨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기에도 나서는 듯. [[안유진(IZ*ONE)|엑시 닮은 소속사 후배 연습생]]도 보나같이 입담이 꽤 좋은 편이다.--그런데 [[안유진(IZ*ONE)|렌즈 후배]]는 보나와 달리 [[노안]]이다--
  • 송주훈 . . . . 37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구미시]] ||
         광명공고를 거쳐 [[건국대학교]]에 입학해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다. 이후 [[J리그]]로 진출하여 2014년 [[J1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 최초로 입단했으나, 한국 대표팀 소집 훈련 중 턱 부을 당해 큰 수술을 했고 이후 재활 기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2경기 출장에 그쳤다. 설으로 2015년에는 [[http://cafe.naver.com/jliga/24009|다리 골절]]이라는 중을 입으면서 전치 3개월 판정을 받았고,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팀의 배려로 재활과 출전 기회 획득을 위해 [[J2리그]]의 [[미토 홀리호크]]로 임대되었다.
         미토 홀리호크로 임대된 송주훈은 재활을 거쳐 2016년부터 주전 센터백으로 뛰게 되었으며, 시즌이 개막한 후 올림픽 직전까지 모든 경기 (19경기) 풀 타임을 소화하며 1골을 넣는 등 핵심 자원으로 거듭났고, 2016년 [[J2리그]] 선수들 중 공중볼 점유율 1위 선수로 뽑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출국을 앞두고 FC 기후와 가졌던 7월 16일 경기에서 대 선수와의 경합 도중 새끼발가락 골절[* 발가락이 완전히 부러져서 수술이 급한 황이었다고 한다. 송주훈 본인도 올림픽 직전에 당한 부이라 충격이 당했다고.]을 입어 다시 재활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중국 슈퍼 리그]] 소속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에서 유럽 이적을 추진하고 있는 [[김권]]의 대체 선수로 송주훈의 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이적할 가능성이 생겼으나,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08&aid=0002571906|#]] 광저우에서 [[김형일(축구)|김형일]]을 대신 입함에 따라 광저우 이적은 무산되었고, 결국 2017년 임대가 만료되어 본래 팀인 니가타로 복귀하게 되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819043605956304899|#]][* 그러나 2017년 슈퍼 리그의 외국인 쿼터가 5명 보유 3명 출전으로 규정이 변경되면서 각 구단들은 더욱 고연봉인 유럽이나 남미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김기희]], [[장현수]] 등 중국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이 [[벤치워머]]로 전락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중국 이적이 무산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 실제로 송주훈 대신 이적한 김형일 역시 1경기도 뛰지 못하다가 방출되었고, 반대로 송주훈은 니가타에서 주전으로 잘 뛰고 있으니 정말로 일본에 남은 것이 이득이 된 셈이다.]
         니가타에서의, 실질적인 데뷔 시즌. 니가타에서도 송주훈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는지 [[등번호]]로 팀의 핵심 [[센터백]]들이 주로 받는 4번을 받았으며, 시즌 초에는 부 완치에 집중하느라 출장하지 못하다가 완치된 후부터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며 자신이 위 리그에서도 실력이 통하는 선수임을 보여주었다. 다만 본인의 활약과는 별개로 소속팀인 니가타가 시즌 내내 꼴찌를 차지하다가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31795869929652224|강등이 확정되면서]] [[J1리그]] 경험은 1년만에 끝났고, 이전 소속팀이었던 미토와 대표팀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다음 시즌은 이적이 유력한 황이었으나, 예과 달리 니가타와 재계약을 맺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951257265041887232?s=17|#]] [[아시아 쿼터제]] 폐지로 인해 이적해봤자 [[벤치워머]] 신세일 것이 뻔한 [[중국 슈퍼 리그]]로 가느니 일본에서 주전으로 뛰는 쪽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2018년에도 시즌 초반부터 주전 센터백으로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가 장기 부을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소속팀인 니가타마저 강등권에서 허덕이고 있어 이적 가능성 또한 점쳐지고 있는 황.
         2010년 [[나이키]] U-16 친선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으며, 2012년 [[발렌시아]] U-20 친선 대회 때 故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은 후 꾸준히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왔다.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서도 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했고, 이광종 감독이 건강 문제로 하차한 후 출범한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도 주장을 역임하는 등 중용되었으며, 2015년 [[킹스컵]], [[2016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등의 대회에서도 꾸준히 주전 센터백으로 발탁되어 [[뿌뿌뿡|팀의 수비를 책임졌다.]] 올림픽 직전까지 있던 4개국 초청 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며 팀을 잘 이끌었으나, 올림픽 직전 입은 발가락 부으로 올림픽 최종 명단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그의 대체자로는 [[김민태]] 선수가 발탁되었다.
         한편 성인 대표팀 경험은 없었는데, 前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센터백]]으로 [[김기희]], [[김권]], [[김주(1988)|김주]], [[장현수]] 등의 [[중국 슈퍼 리그]] 소속 선수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인지 [[J리그]]에서 뛰는 송주훈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같이 J리그에서 뛰는 센터백 [[김민혁(1992년 2월)|김민혁]]이 몇 차례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긴 했으나 실전에서 뛰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슈틸리케가 떠난 후에 새로 출범한 [[신태용호]] 체제에서 커리어 최초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http://m.sportsseoul.com/news/read/554778?refer=facebook|#]] 이후 [[신태용]]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U-23 대표팀에서도 중용했던 송주훈이 올림픽 직전의 부으로 안타깝게 대표팀 승선에 실패한 것에 대한 보 겸, 성인 대표팀에서의 기량도 확인해볼 목적으로 이번 대표팀에 선발했다고 한다. [[https://www.facebook.com/KoreaFootballTeam/photos/pcb.10155941753318836/10155941751838836/?type=3&theater|#]] 그리고 10월 1일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이 대패를 당하게 되는데 첫번째 실점이 되는 수비에 기여하는둥 데뷔전임을 감안해도 아쉬운 수비 실력으로 신태용 감독 눈 밖에 나게 되고 다음번 대표팀 승선에는 실패하게 된다.
         190cm에 83kg라는 건장한 체격을 바탕으로 대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제공권 장악에도 능해 위험해보이는 공중볼도 잘 걷어낸다. 또 황에 따라서는 장신이라는 점을 이용해 최전방 공격수로서 득점까지 노리는 골 넣는 수비수로서의 모습도 갖추고 있다.
          * U-23 대표팀에서 함께 활동 중인 [[박용우(축구선수)|박용우]] 선수와는 [[건국대학교]] 동기이다. 다만 서로 부당했던 시기가 달라 송주훈이 부에서 복귀하면 박용우가 없고, 박용우가 부에서 복귀하면 송주훈이 없는 기이한 (...) 로테이션과 더불어, 송주훈은 대학 생활을 일찍 마치고 J리그로 진출했기 때문에 정작 친해진 것은 대표팀에서 다시 만난 이후라고 한다.
          * [[부]]이 잦은 편이다. 리그에서 당했던 다리 골절과 새끼발가락 골절은 물론, U-23 선수권 대회에서도 코 부으로 사진처럼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했던 적이 있고, 알려지지 않았던 손가락 부도 있었다. 경기 도중 대 선수에게 손가락이 밟혀 손가락에 금이 갈 정도로 부을 입었었지만 티내지 않고 끝까지 뛰었다고 한다.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축구/남자축구/조별리그 C조, D조#.s-2.2.4|2016 리우 올림픽 축구 조별 예선 독일전]]에서 [[황희찬]]이 선제골을 넣은 후, 부으로 불참한 송주훈의 4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어올리며 기뻐하는 [[골 세레머니]]를 펼쳤다. 송주훈도 이 골 세레머니를 보면서 매우 뭉클했다고.
          * 일본 내에서는 원래 팀인 [[알비렉스 니가타]]보다, 임대로 뛰었던 [[미토 홀리호크]]에서 더 인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토에서는 임대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으로 시즌 아웃을 당하자 그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는 현수막을 '''한국어로 써서''' 걸었을 정도.
  • 전혜빈 . . . . 37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 '''학력''' ||<(> [[고창남초등학교]][br][[고창고등학교]] 연극화학[br][[동국대학교]] 연극학 ||
         2013년 8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센텀119안전센터에서 《심장이 뛴다》 인트로를 촬중인 모습.
         == 세 ==
         [[2002년]] '''[[LUV(걸그룹)|LUV]]'''라는 그룹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여 [[오연서]] 등과 같이 활동했다. 2003년 "[[강호동의 천생연분]]"에서 춤을 추는 모습 때문에 '24시간 도는 아이'라는 뜻에서 '''이사돈''', '''이사도라'''같은 별명을 얻었다. [[강호동의 천생연분]]이 배출한 대표적인 스타 중 한 명이며, '이사돈'이라는 강력한 캐릭터를 얻었으니 그 중에서도 당히 수혜를 본 셈.
         이후 완전히 연기자로 전업했지만 초기에는 연기보다 예능 쪽의 출연이 많았고, [[해피 선데이]] [[여걸 식스]]에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그 후 연기 활동에의 전념을 이유로 여걸 식스에서 하차했으나, 그 이후에 딱히 출연한 화나 드라마도 없고 소식이 뜸했었는데...
         [[강심장]]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서 연예계에 입문했고, 그룹이 해체하고 솔로 활동을 하다가 배우로 키워주겠다는 업계 친한 언니에게 이용당한 모양. 대외적으로는 자기가 키우는 배우랍시고 떠들고 다니는 듯 했지만, 사실은 툭하면 여기저기 높으신 분들의 술자리에 데리고 나가서 노래나 춤을 시켰다고 한다. 자신은 원래 가수였으니 이런 일까지는 그냥 쇼케이스한다는 심정으로 견뎠지만, 사실 그건 전부 다 자기 사업을 위한 것이었지 전혜빈에게 일거리를 잡아주거나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사업 접대용으로 이용한 것.
         명절특집으로 방되었던 [[정글의 법칙 W]]에서 [[김병만]]을 연케 하는 뛰어난 생존 스킬을 보여줘 좋은 반응을 었었고, 이를 발판으로 오리지널인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마다가스카르]]편에 출연했다. 여기서 [[김병만]]을 보좌하는 여전사로 맹활약해 기존 2인자였던 리키김의 위치를 위협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줬고,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후에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는 여성 게스트들은 전부 전혜빈과 비교당할 정도.
         정글의 법칙에서 보여준 호감가는 모습으로 여러 드라마에 캐스팅되며 2000년대 후반 긴 암흑기를 보내던 전혜빈에게 '''제2의 전성기'''가 열린 셈. 실제로 2013년에는 [[KBS 2TV]]에서 방하는 미니시리즈 [[직장의 신]]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 중이다. 세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가씨인 [[금빛나]]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드라마 [[또 오해]]에서 [[오해(금)]] 역할을 맡아 빙썅연기의 절정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11화에서 박도경을 찾아가는 씬에서는 [[오해(금)]]이라는 인물이 가진 자기중심적 사고와 공감능력의 결여, 애정결핍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뛰어난 장면을 만들어냈다. 오해 연기에 전혜빈이 혼을 갈아넣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많이 늘어나는 중.[* 그런데 극중 라이벌인 전혜빈과 [[서현진(배우)|서현진]]은 실제로 꽤 친한 사이다.]
         [[아는 형님]] 30회의 게스트에 출연하였다. 춤은 여전히 잘 추는 편이었고, 그와 반대로 조곤조곤한 말투로 아재들을 감동시키는 코너도 진행했다. 특히 연애편지나 강심장 등 신인시절 자신을 잘 챙겨준 [[강호동]]에게 고마운 마음에 세족까지 해 줬다. 반면 [[민경훈]]에게는 [[유준]]의 아내 [[홍은희]]의 지인이었던 과거 썸녀 이야기 폭로로 녹화장 자진 퇴장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희철에게 '요즘 [[여장]]하고 춤춘다며!?!' + [[홍석천|석천오빠]] 말이 맞았어! 등의 독한 발언으로 그 희철마저 작살내는 활약을 보여줬다.
         === 화 ===
         ||<|2> [[2016년]] || [[럭키(화)|럭키]] || 드라마 여주인공 혜빈 || ||
         ||<rowbgcolor=#fb5a1e> '''{{{#white 방 연도}}}''' || '''{{{#white 방송사}}}''' || '''{{{#white 제목}}}''' || '''{{{#white 배역}}}''' || '''{{{#white 비고}}}''' ||
         || [[tvN]] || '''[[또 오해]]''' || [[오해(금)]] || ||
         ||<|2> [[2007년]] ||<|2> SBS ||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 || 설 || ||
         ||<|3> [[2004년]] || KBS || [[드라마시티]] - 사랑해요 수헬리 || 문 || ||
         || 모바일 || 다섯 개의 별 || 신 || ||
         ||<|2> [[2003년]] || KBS || [[두야 학교가자]] || 윤희서 || ||
          * 겨드랑이 노출 사진[* 의 자체가 소매가 없는 옷이라 팔을 들면 자연히 겨드랑이가 보일 수 밖에 없는 옷이었다.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56361|바로 이것]]]에 이어 절묘한 표정으로 순간캡쳐된 짤방이 한동안 유행했었다. 겨드랑이에 놀란 전혜빈 등의 제목으로 널리 퍼졌었으나, 천생연분 출연 및 솔로활동으로 인지도는 있으나 별다른 인기는 없었을 때 크게 유행했고 연기자로서 생명력을 갖게된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든 짤. 다만 지금도 일부 기레기들이 이 사진을 가지고 전혜빈의 충격 과거, 암내 운운하는 기사를 쓰기도 한다.
  • 한상덕 . . . . 37회 일치
         | 이름 = 한
         | 출신지 = 일제강점기 [[경북도]] [[대구시]]<br />(現 [[대구광역시]])
         '''한덕'''([[1944년]] [[1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성우]]이다. [[1965년]]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1970년]] [[KBS]] 12기 공채 [[성우]]로 [[데뷔]]하였다.
         *[[독수리 5형제]] (1996년 방/[[KBS]]) - 총통 엑스 / 켄페라
         *[[이한 나라의 폴]] ([[SBS]]) - 대마왕
         *[[미녀와 야수 (1991년 화)|미녀와 야수]](월트디즈니) - 아르크 박사
         *[[라푼젤 (화)|라푼젤]] - 경비 대장
         ** [[쥬라기 공원 (화)|쥬라기 공원]](KBS) - 레이 아놀드
         ** [[트리플 엑스 (화)|트리플 엑스]](KBS) - 오거스터스 기븐스
         ** [[레이더스 (화)|인디아나 존스: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KBS) - 살라
         ** [[사하라 (화)|사하라]](KBS) - 칼
         === 화 ===
         *[[델타 포스 (화)|델타 포스]](KBS) - 스콧 매코이([[척 노리스]])
         *[[미션 (화)|미션]](SBS) - 카베사([[척 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화)|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KBS) - 반 루이벤([[톰 윌킨슨]])
         *[[비근무]](KBS) - 바니([[아서 J. 나스카렐라]])
         *[[파이터 (2007년 화)|파이터]](KBS) - 자스민 아버지
         *[[에일리언 2]](KBS) - 사(알 메튜스)
         *[[초콜렛 (2000년 화)|초콜릿]](KBS ) -알퐁스([[론 쿡]])
         *[[응징자 (1989년 화)|응징자]]([[KBS]]) - 버코비츠([[루이스 고셋 주니어]])
  • 김굉필 . . . . 36회 일치
         |직업= 문신, 사가, 도학자, 정치가, 화가
         |웹사이트=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480년]](성종 11) 식년과 생원시와 초시에 합격하고, 다시 [[성균관]]에 들어가 유생으로 수학하였다. [[1494년]](성종 25년) [[훈구파]] 출신 [[경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에 의해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출사하여 주부(主簿), [[사헌부]]감찰, [[형조]][[좌랑]] 등을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연좌되어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지방관으로 부임한 [[조원강]]의 아들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다. [[무오사화]] 때 유배되어 [[희천군]] 시장에서 사형되었다. [[중종 반정]] 후 복권되어 [[승정원]][[도승지]]에 추증되고, [[1517년]] 증 [[우의정]], [[1575년]] 증 [[의정]]에 거듭 [[추증]]되었다.
         그는 [[1484년]] [[10월]] 스승 [[김종직]]이 [[이조]][[참판]]이 된 뒤에도 [[훈구파]]에 대해 간하지 않자, 이를 계기로 풍자시를 지었다가 [[김종직]]과 결별하게 되었다. 그 자신도 [[조광조]]·[[이장곤]]·[[주계정 이심원]]·[[김안국]]·[[이연경]] 등의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김종직]] 사후 사림의 수로 추대되었다. 김굉필의 문인들과 이들의 학통은 후대에 가서 [[조광조]], [[백인걸]]의 학통과 함께 기호 사림파를 거쳐 [[서인]]학파를 이루게 되었다. 《소학》을 행동의 근간으로 삼아 《소학》을 알지 못하고는 사서육경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본관]]은 [[서흥 김씨|서흥]](瑞興)이며, [[한성부]] 출신이다. [[문묘]]에 종사된 [[동방 18현|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한성]] [[정릉동]] 출신.
         한훤당 김굉필은 [[1454년]] [[한성부]] 정동에서 어모장군 행충좌위사직(禦侮將軍 行忠佐衛司直) 김유(金紐)와 한승순의 딸 청주한씨의 아들로 [[한성부]] [[정릉동]]에서 태어나, 집안을 따라 [[달성군]] [[현풍]]으로 이주, 그 곳에서 성장했다. 그리하여 일설에는 그의 고향을 [[대구광역시]]나 [[경북도]]로 보기도 한다.
         만년에는 [[경남도]] [[합천군|합천]]에 정착했다.
         남의 유학자 [[김종직]] 문하에서 수학하던 중 어느날 《소학》의 어느 글귀를 읽고 깊이 감동한다. 이후 [[소학]]을 읽고 스스로 "소학동자 (小學童子)"라 일컬었고 평소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길재]], [[김숙자 (1389년)|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성리학의 학문 전통을 이어, 성리학에 능하였으며 실천 궁행을 위주로 하는 학자가 되었다.<ref name="글로벌 서울 김굉필"> 《[[글로벌 세계대백과]]》〈[[: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지리/중부지방-남부지방/서울특별시/서울의 사회·문화#김굉필|김굉필]]〉 </ref> 그는《소학》을 행동의 근간으로 삼아 《소학》을 알지 못하고는 학문을 할 수 없고, 사서육경을 알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소학]]에 나온대로 실천궁행에 힘썼다.
         그는 남들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하여 이 때문에 고민하였으나, [[김종직]]은 그에게 학문을 하는데 있어 늦고 빠른 것은 없다며 자신은 새벽에 닭이 울 때 일어나 세수하고 앉아서 책을 읽는다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천에 힘쓴다면 나중에는 크게 발전할 것이라며 권면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였으니 더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였다. 초기에는 힘들었으나 매일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단정히 앉아 책을 읽기 시작, 나중에는 새벽에 닭이 울지 않아도 저절로 기하게 되었다.
         그뒤 [[1480년]](성종 11) 식년과 생원시에 3등으로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성균관]]에 들어가 성균관 유생으로 수학하였다. 성균관 유생으로 수학하는 중에도 조정의 정책에 대한 여러 소를 올렸다. 성균관 유생이 된 첫 해에 초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1484년]] [[10월]] 스승 [[김종직]]이 [[이조]][[참판]]에 등용된 뒤 [[훈구파]]와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자 김굉필은 이를 비판하였다. 이때 김굉필을 비롯한 김종직의 문하생들은 스승이 훈구파에 맞서 조정을 바로잡아 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오히려 중직에 임용되자 김종직은 조정에 건의 하나 올리지 않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김굉필은 스승과 사이가 벌어질 것을 각오하고 한 편의 시를 지어 황에 따라 변화하는 김종직의 현실타협적인 처세를 완곡하게 비판했다.<ref name=""hahao">한정주,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 조선 500년 명문가 탄생의 비밀》 (다산초당, 2015) 193페이지</ref>
         자신을 신랄하게 풍자한 제자의 시에 심기가 불편해진 김종직은 이에 화답하는 한 편의 시를 지어 보내면서 임금을 제대로 보필하고 세을 바로잡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내비치면서 자신의 처세가 권세와 이익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인용문|분수에 맞지 않게 공경대부 높은 관직에 올랐지만 / <br/>내가 어찌 임금을 보필하고 세을 바로잡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 <br/>그대 같은 후학(後學)들이 나의 허물과 어리석음 조롱하지만 / <br/>구차하게 권세와 이익을 따르지는 않네.<ref name=""hahao"/>}}
         그러나 이때의 일로 김굉필은 김종직과 틈이 갈라져 끝내 사제 간의 정을 회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굉필의 나이 39세가 되는 1492년 스승 김종직과 절친한 지기 남효온이 모두 세을 떠났는데 연보(年譜)에는 남효온의 집을 방문한 기록은 나오지만 김종직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ref name=""hahao"/> 그러나 사림의 학통과 인맥은 김종직이 세을 떠난 이후 오히려 김굉필을 김종직의 뒤를 이를 사림의 수로 만들었다.<ref>한정주,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 조선 500년 명문가 탄생의 비밀》 (다산초당, 2015) 194페이지</ref>
         그는 수기(修己), 치인(治人)을 직접 현실에서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중시했다. 이러한 수기와 치인의 직접적인 실천을 중시하는 현은 [[조광조]] 등을 거쳐 후대의 사림 내에 확산되었다. 그밖에 그는 또 이(理)를 절대적인 선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1494년]](성종 25년) [[경도]][[관찰사]]로 있던 [[훈구파]] 재 [[이극균]](李克均)에 의해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출사하였다. [[훈구파]]의 거물이었던 [[이극균]]은 [[김종직]]의 문하생을 대거 발탁해서 요직에 앉혔는데, 그는 후일 [[갑자사화]]를 일으키는 [[이극돈]]의 친동생이었고, [[이극균]] 자신도 김굉필과 [[김종직]]의 문하생을 추천했다는 이유로 [[무오사화]] 때 화를 당한다.
         [[1494년]](성종 25년) [[경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의 천거로 김굉필은 남부참봉(南部參奉)에 제수되었다. [[전생서]][[능참봉|참봉]], [[북부]]주부 등을 거쳐 [[1495년]](연산군 1년) [[12월 28일]] 북부주부(北部主簿)에 제수되고, [[1496년]](연산군 2년) [[군자감]]주부가 되었다.
         그 뒤 [[사헌부]] 감찰을 거쳐 [[1497년]] [[형조]][[좌랑]]이 되었으나 7개월만에 사직소를 내고 내려갔다. [[1498년]](연산군 4년) 동문 [[김일손]] 등이 실록에 [[조의제문]]을 실은 것과 [[남곤]] 등의 [[연산군]] 비판, [[폐비 윤씨]] 복위 반대에 염증을 느낀 [[연산군]]에 의해 [[무오사화]]가 발생했다. 오랜 고문 끝에 [[김일손]]이 그해 [[7월 17일]] 김종직의 문인이라고 진술한 명단에 그의 이름이 끼어 있어 그도 처벌을 받게 된다.
         그밖에도 [[이장곤]], [[김안국]], [[김정국]], 이장길, 정붕, 성세창, 강흔, 정응, 이연경, 주계부정 이심원, 윤탁, 우성윤, 김구(金絿), 정응, 허경, 박한참, 윤신, 유우, 민구손, 최수성, 이담 등이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굉필이 유배지(流配地)를 [[평안도]] [[희천]]에서 [[전라도]] [[순천]](順天) 승평(昇平)에 있던 친한 후배 [[정여해]]의 집 가까운 곳으로 유배지를 옮기자 [[정여해]]는 항 병으로 가마를 타고 김굉필을 방문하여 위로했다. 한번은 [[정여해]]가 그를 찾아와 김굉필의 신구를 청하는 소문(上疏文) 초(草)한 것을 보이고 그를 구하려 하였다. 그러나 김굉필은 그 소문을 살펴보고 안 된다고 하며 '만약 이 소장을 올리면 우리 동지들이 더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니 올리지 말라'고 만류하였다. 실망한 [[정여해]]는 그날부로 소문을 불살라 버리고 어찌할 수가 없음을 알고 통곡하며 [[순천]]의 집으로 돌아와 이후 아무도 만나지 않고 두문불출하며 은거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내려진 증직 및 각종 은전은 [[1519년]](중종 13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그의 문인들이 화를 받으면서 남곤(南袞<ref>같은 스승 김종직에게서 수학한 동문이기도 하다.</ref>)을 비롯한 반대세력에 의해 수정론이 대두되었다. 당시의 이같은 정치적 분위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뒤 그를 받드는 성균관유생들의 문묘종사(文廟從祀) 건의가 중종 반정 직후부터 계속되어 [[1575년]] [[의정부]][[의정]]에 추증되고, 1577년(선조 10년)에는 문경(文敬)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 김륵 . . . . 36회 일치
         '''김륵'''(金玏, [[1540년]] ~ [[1616년]])은 조선 [[조선 선조|선조]]·[[조선 광해군|광해군]] 때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예안 김씨|예안]],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이다. 시호는 민절(敏節). [[임진왜란]] 당시 경좌도 안집사와 체찰부사로 민심 수습에 기여하였으며, 진주에서 [[이순신]]을 만난 뒤 그가 백의 종군할 때 구명 운동을 벌였다. 광해군 때는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 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추숭을 반대하기도 했다.
         당색으로는 [[동인 (정치)|동인]]이고 학맥으로는 [[이황]]학파로, 퇴계 [[이황]]의 제자인 [[소고 박승임]], 금계 [[황준량]]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이황을 직접 찾아가 직제자가 되기도 했다. [[경북도]] [[천시]] (현재의 [[경북도]] [[주시]]) 출신.
         [[1540년]] [[경북도]] [[천시]] 에서 태어났다. [[조선 세종|세종]] 때의 천문학자 [[문절공 김담]]의 4대손으로, 증조부 김만칭(金萬秤), 조부 김우(金佑)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관직에 오르지 못했고, 김우는 사후 [[증직|증]]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생부 김사명(金士明)은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서 유생으로 수학한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이었다.
         김사명은 창원황씨와의 사이에서 김욱(金勖), 김륵 두 아들을 두었는데, 형인 김사문(金士文)이 아들이 없자 둘째 아들인 김륵을 형의 양자로 입양보냈다. 백부이자 양아버지인 김사문은 형조좌랑(刑曹佐郞)을 지냈다.
         7세가 되던 해부터 양아버지 김사문으로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양아버지가 일찍 세을 떠난 뒤에는 공부의 시기를 놓칠 것을 염려한 어머니의 배려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집안에 작은 서재를 꾸미고 학업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16세에 안동의 인동 장씨(仁同 張氏)와 혼인하였다.
         그러나 사마시 합격 이후 생부 김사명과 스승인 퇴계 이황이 연이어 사망, 그는 고향 주시에 머무르며 퇴계 이황의 위패를 주시 이산서원(伊山書院)에 배향하는 일을 추진하였으며 이후 천(주시) 지역 사림의 중심인물로 부하게 된다. 그는 흑석사(黑石寺)와 [[소수서원]] 등에서 수학하다 [[1576년]](선조 9)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오리 [[이원익]], 학봉등이 그의 동방이었다.
         [[1584년]](선조 17) [[사헌부]]지평을 거쳐 그해 [[8월 2일]] [[월군|월]] [[군수]](寧越郡守)로 부임하였다. 월군수로 재직 중 치적을 쌓아 [[선정비]]가 세워졌다.<ref>월군읍지 (1899년)</ref>
         [[1589년]](선조 22) 김륵은 내직으로 홍문관 교리에 임명되고 사헌부 집의(~[[1591년]] [[음력 6월 23일]]<ref>[[#선조실록 1616|선조실록 1616]]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406023_003 25권, 선조 24년 6월 23일 병진 3번째기사]</ref>)를 거쳐 당관으로 승진, [[승정원]] 우부승지·좌부승지가 되었다. 그 뒤 경좌도 초유사, 경우도 [[관찰사]], [[이조]] [[참판]],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594년(선조 27)에는 사헌부 대사헌·이조 참판·홍문관 부제학 등 요직을 역임했으며, 1595년(선조 28) 부체찰사(副體察使)에 올라 수원·전주·남원·거창·진주·대구·창녕 등지를 순시하며 군졸들을 위무하고 전황을 살폈다. 이때 [[한산도]]와 [[거제도]]에 파견되어 [[이순신]]을 비롯한 수군의 활약을 조사, 조정에 보고하고 이들의 전공을 위무하였다. 이후 진주에 가서 이순신을 만나 찾아가 대책과 전략을 의하고 숨져간 병사들의 위령제를 지냈다.
         1600년(선조 33)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인 천(주시)으로 물러난 뒤 김륵은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 밖에 월천 [[조목]]을 찾았고, 그 뒤 오운(吳澐)·배응경(裵應褧) 등 벗들과 이산서원에 모여 강학에 몰두하였다.
         [[1602년]](선조 35) 경도 변방으로부터 왜의 재침 기미가 있다는 보고가 들려오자, 조정에서 [[명나라]]에 파견되는 동지사로 보내 청병하였다. 그러나 [[만력제]]는 '재역불가의 5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하였다. 그는 반오조를 들어 설득하니 [[만력제]]가 이를 가히 여겨 그에게 [[벼루]]와 [[비단]] 등을 하사하며, 지금 출병은 어렵지만 왜에 대한 경계의 칙지를 내릴 것을 약속받고 되돌아왔다.
         [[1611년]] 그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 주시로 물러났다. [[1612년]](광해군 4) 대북(大北) 세력이 꾸며낸 [[김직재]](金直哉)의 옥사에 그가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심문을 받은 뒤 삭탈관직(削奪官職)되었다가 복관되었다.
         이후 주시내에 귀학정과 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천운정을 짓고 시문으로 소일하며 이수광·한석봉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했는데, 이때 석봉 한호로부터 친필 글씨로 귀학정 현판을 선물로 받았다. 1616년(광해군 8) 병으로 사망했다. 묘소는 경북 봉화군 운면에 있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 [[광해군]] 시절의 행동이 참작되어 1653년에 이조 판서로 증직되었다.
         정조 12년인 1788년에 '민절(敏節)'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경북도 주시의 [[구강서원]], 향현사(鄕賢祠) 등에 배향되었다.
         * 월군수로 부임해서 5년간 재직하는 동안 [[노산군]](魯山君<ref>단종은 숙종 때 가서야 복권된다.</ref>)의 묘에 사당을 세우고 위판(位版)을 봉안하는고 위령제를 지냈다. 아무도 수습하지 않는 단종의 시신을 비밀리에 매장한 월 호장 [[엄홍도]]의 후손들을 찾아내 호역<ref>군역과 각종 세금</ref>을 면제해주기도 하였다.
         [[분류:1540년 태어남]][[분류:161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임진왜란 관련자]][[분류:과거 급제자]][[분류:예안 김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천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조선의 화가]]
  • 김정혁 . . . . 36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삼성 라이온즈/선수단)]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소속팀''' || [[무 피닉스 야구단|무]](2008 ~ 2010)[br][[삼성 라이온즈]] (2011~2017) ||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이자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 주 포지션은 3루수.[* [[무 피닉스 야구단|무]] 복무 시절에는 1루수나 좌익수로 더 많이 나왔다. 이 때문에 같이 복무하던 [[모기]]와 포지션이 겹쳤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와 [[동국대학교|동국대]]를 졸업하고 [[무 피닉스 야구단|무]]에서 복무를 마친 후 [[삼성 라이온즈]]에 [[육성선수|신고선수]]로 입단했다.
         동국대 시절이나 [[무 피닉스 야구단|무]] 복무 시절에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무 피닉스 야구단|무]] 복무 첫 해에는 51경기에 출장해 46안타 4홈런 25타점 24득점 타율 0.317을 기록했고, 두번째 해에는 78경기에 출장해 59안타 6홈런 27타점 28득점 타율 0.278을 기록했다.
         저러한 활약에 신고선수가 정식으로 1군 등록이 가능한 [[6월 1일]]에 바로 정식선수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1군에는 올라오지 않아 팬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감독님 한번 좀 써 봅시다~~ 1군에서 기용하기에는 수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로스터가 확장되는 9월에는 1군에 올라오겠지 하고 기대했으나, 손목 부으로 [[10월 4일]]이 되어서야 1군에 등록되었다. 정규 시즌 게임이 고작 3경기가 남았을 때 올라온 것. [[안습]].
         다만 팬들의 의견과는 달리, 현장에서 김정혁의 1군 중용에 대해선 부정적인 황이다. 우선 [[류중일]] 감독은 수비가 되는 선수를 1군으로 올리는 경향이 있고, 거기다 삼성의 주전 3루수 [[박석민]]은 김정혁과 동갑이다. 거기다 지명타자로 가자니 삼성의 [[지명타자]] 포지션에 오를 선수들은 '''[[이승엽]]'''. '''[[최형우]]''', [[채태인]]이다.
         2012 시즌에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는데, 불과 3경기만에 손목 부을 당하면서 약 3개월 동안 결장했다. 복귀 후, 타율이 겨우 2할대를 턱걸이할 정도로 죽쑤다 시즌 막바지에야 타격감을 회복해 마지막 10경기 동안 0.464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0.269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손목 부이 재발해 4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또 8월 중순에서 9월 하순까지 장기간 결장하면서 그리 눈에 띄는 활약을 못 했다. 김정혁이 장기간 결장한 덕분에, 백업으로 시즌을 시작했던 [[정병곤]]과 [[성의준]]이 주전으로 기회를 받을 수 있었고 둘은 1군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3루수로 출장하다가 [[정현(야구선수)|정현]]의 3루 출장 비율이 늘면서 1루수로 출장했다. 8월 초반부터 결장하면서 2군 시즌을 마쳤지만, 0.302의 타율로 2011년 이후 3년 만에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10월 8일 [[조동찬]]이 허리 부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정식선수로 재전환됨과 동시에 3년 만에 1군에 올라왔다.
         그리고 두 번째 출장 경기인 4월 28일 LG전에서는 [[임지섭]]을 대로 안타를 기록했다. 만 서른살에 나온 프로 첫 안타. 이후로는 [[구자욱]]이 다시 주전 1루수로 복귀하면서 대타나 대수비로 나오다가 [[채태인]]과 [[김태완(1981)|김태완]]의 복귀가 다가온 5월 11일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6월 19일 1군에 올라왔다. [[박석민]]이 허벅지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후 대신 3루수로 선발 출장한 [[백원]]이 6월 18일 두산전에서 3타수 무안타 1볼넷 1삼진으로 이렇다 할 활약을 못 보여준데다 6월 19일 SK전 선발이 [[김광현]]이었기 때문이었는데, 7번 3루수로 선발 출장했지만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박석민의 복귀를 앞둔 6월 29일에 [[조현근]]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8일 [[이승엽]]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19일 두산전에서 9회초에 2사 후 2루타를 친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대신 대주자로 출장해 2사 1,2루 황에서 [[김재현(1991)|김재현]]의 좌전 안타를 치자 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포수 [[양의지]] 태그를 피해 슬라이딩하며 추가점을 내는 인적인 활약을 보였다. 반면 타격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 보이면서 2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9월 22일 전날 옆구리 부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진 [[구자욱]]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6월 4일 한화전에서 [[조동찬]] 대신 3루 대수비로 출장해 7회 말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을 대로 데뷔 첫 홈런을 쳤다.
         6월 14일 대구 SK전에서 솔로 홈런을 쳤다. 시즌 2호 홈런. 그러나 팀 타선이 '''살인적인 식물 타선'''을 보여 준 끝에 4:1로 패했다. 그나마 김정혁이 홈런을 쳐서 봉패를 면한 것.
         6월 17일 번트를 시도했는데 '''하필이면 세게 맞아서 2루주자였던 이지이 아웃되었다.'''
         그러나 조동찬이 ~~유리몸답게~~ 2일 만에 부으로 빠지며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했지만 [[아롬 발디리스]]와 [[구자욱]]이 차례대로 복귀하면서 백업으로 밀려났다. 7월 22일 선발로 내정된 [[아놀드 레온]]이 복귀하면서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9일 전날 얼굴에 공을 맞아 시즌 아웃된 [[최재원(야구선수)|최재원]]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9월 10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대신 [[이성규]]가 등록됐다. 10월 3일 부으로 시즌 아웃된 [[조동찬]]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9일 대전 한화전에서 선발 6번타자로 출장해서 5타수 3안타 3타점 2득점을 기록하면서 맹활약을 펼쳤다. 이날 압권은 9회 초였는데, 1사 만루 황에서 팀이 4-5로 한점 뒤진 가운데 [[정우람]]과 대하게 된 김정혁은 정우람의 6구를 타격해서 좌중간쪽의 기적의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만들어내면서 팀의 승리를 이끈 히어로가 되었다. 그 날 수훈선수가 되었는데 본인 프로 데뷔 첫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정새미나 리포터가 한화 김정혁이라고 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김정혁 본인은 넘어갔다.
  • 동군연합 . . . . 36회 일치
         한 왕이 두개 이의 국가의 왕이 되는것. 국가의 왕조가 바뀌는 일이 흔했던 유럽에서 일어났다. [* 그외지방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추가바람.]왕조교체-국가멸망으로 보통 받아들여지던 동양권에서는 익숙치 않은 개념. 당히 횡행했던 일이지만 반대로 분할속제가 대부분이던 서구권에서는 이렇게 국가를 늘려놓고는 분할속으로 날려먹던 일이 흔한지라(...) 전부다 적진 못하고, 유명했던 경우만 기술한다.
          * 중세 유럽 문화에서 왕위나 귀족의 작위는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지위로서 인식되었다. 동양에서는 한 명의 군주에게 보통 1개의 왕위나 작위 칭호만이 있지만, 중세에는 군주가 가지는 왕위나 작위가 2개 이에서 수십개에 달하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충렬왕]]이 고려왕과 심양왕을 겸하였던 사례가 있기는 한데, 이는 정말 특수한 사례이다. 픽션에서는 [[초한지]]에서 [[한신]]이 삼제(三齊)의 왕을 겸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현실에서 있었던 사례는 아니다.]
          * 중세 유럽에서 행정은 분권적으로 이루어졌다. 주민들의 인구조사, 빈민구휼 같은 현재의 일반적인 대민행정은 [[교회]]가 담당했으며, 도시의 행정은 시민들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이루어졌다. 납세는 징세권은 주나 국왕이 보유했으나 실제 징세업무는 [[징세청부업자]]가 대리했다. 법률은 각 지방의 관습이나, 역시 교회법에 따라서 처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본래 중세적인 구조에서 '귀족'이나 '왕실'은 일반 행정에서는 크게 하는 개입할 일이 없고(…) 징세권에 따라서 세금을 거둬가서 군대를 조직하고 외침을 방어하는 역할("싸우는 자")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했던 것이다. 이렇게 분권화된 행정체계였으며, 행정체계가 왕실에 종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왕실을 '갈아끼우는 것'이 용이했던 것이다.
         본래 포르투갈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에서 건너온 가문인 카페가문의 분가인 보르고냐가문의 분가인~~뭐저리 복잡해~~ 아비스가문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 포르투갈의 왕인 세바스치앙이 북아프리카로 원정을 나가다가 모로코 술탄국에게 대패하고 본인도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전사해버리면서 문제가 생긴다. 왕위 자체는 그의 종조부인 엔리케 추기경이 환속하면서 속받았지만, 그의 나이는 이미 66세인데다가 자식도 없어서 후사를 남길 가능성이 적었다. 결국 그가 2년 뒤인 1580년에 죽으면서 문제가 터졌다. 당시 왕위 주장자는 총 세명이었는데, 브라간자 공작 주앙 1세와 결혼한 카타리나 공주와, 주앙 3세의 손자인 안토니오 대주교와 스페인 왕 펠리페 2세가 있었는데,[* 3명 모두 조부가 포르투갈 왕 마누일 1세였다.(펠리페는 외손자)] 결국 펠리페 2세와 협업한 알바 대공 페르난도가 리스본을 점령하면서 펠리페가 다른 주장자들을 물리치고 포르투갈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 국과 협업한 포르투갈 토착 귀족들이 독립전쟁을 일으켜 승리해 해체된다. [* 단, 세우타는 스페인이 가졌다.]
         ''' 근세 유럽국가들의 동군연합중 최강의 동군연합 ''' 스페인의 왕위계승자였던 카를로스1세가 오스트리아 대공에 오르면서 생겨난 동군연합. 당시 스페인은 신대륙의 금광+저지대의 미친 생산력에서 나오는 자금과 스페인+보헤미아+오스트리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나오던 국력을 통해 당시 유럽 최강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는 통치면적으로 보자면 '합스부르크 제국'의 최전성기였다. 다만, 당시 스페인의 왕이던 카를로스가 독일 쪽에 관심이 없어서(...) 연합은 1대만에 해체.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로 나뉘어진다.[* 다만, 플랑드르 지방은 스페인에게 갔다. 그리고 이후 네덜란드, 벨기에로 독립하게 된다.]
         비록 이 때가 합스부르크 제국의 유럽 내 최대 토이기는 했으나, 이렇게 넓고 광범위한 역에 따로따로 흩어져 있는 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는 것은 당시의 행정기술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제국을 분할하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맨앞에게 너무 유명해서 그렇지. 이 경우도 당히 유명하다. 당시 헝가리왕이 아들없이 오스만제국한테 죽으면서 생겨난 동군연합. [* 다만, 2차 빈포위때 뽕을 뽑기 전까지는(...) 오스만 제국의 공세덕에 슬로바키아 지방만 겨우 지키고 있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 발전한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전하면서 해체.
         당시 보헤미아지방을 차지하던 룩셈부르크가가 단절되면서 생긴 연합. 다만, 보헤미아는 선거왕정이었기에 중간중간 오스트리아가 왕위를 놓치는 경우가 당히 많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생기면서 합병되었으며, 이후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제국이 패배하면서 실된다.
         당시 폴란드의 왕가였던 앙쥬왕가가 남계가 단절되면서 당시 폴란드 왕의 딸이 리투아니아의 대공에게 시집가면서 생긴 연합. 쭉유지되다가 이후 폴란드가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게 삼분할되면서 '''멸망'''~~딴애들은 전부 해체나 실인데 얘만 멸망이다. 안습~~
         여담으로, 브란덴부르크가 핵심지였지만, 이후의 국명은 '프로이센'이 되는데 이는 프로이센이 당시 '독일 바깥'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독일왕'을 겸하므로 독일역 내부의 주는 별도의 왕위를 주장할 수 없다. 프로이센은 본래 독일인의 역이 아닌 발트계 민족 프루사 족의 땅이라서 별도의 왕위로서 '프로이센 왕'이라는 칭호를 내세우는게 가능했던 것이다.(마찬가지로 체코 지역도 본래의 독일 지역이 아니었으므로 '보헤미아 왕'을 칭할 수 있다.) 다만, 역시 프로이센 공작위도 엄밀히 말하자면 본래 폴란드 왕의 봉신인 신세라 이걸로 트집이 잡힐걸 우려해서인지 'King of Prussia'(프로이센 왕)이 아닌 'King in Prussia'(프로이센 안의 왕)이라는 일종의 외왕내제식 편법을 썼다. 이후 프리드리히 대왕시기에 'King of Prussia'라는 칭호를 쓰게 됀다.
         당시 덴마크의 여왕이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왕자리에 오르면서 생긴 동군연합. 이후 스웨덴 독립전쟁에서 덴마크-노르웨이가 패배하면서 해체. [* 다만,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은 그이후에도 당기간 유지됬다.]
         === 하노버-국 ===
         [[국]]의 [[스튜어트 왕조]]가 단절되면서, 당시 하노버 선제후였던 게오르그가 국의 조지 1세로 즉위하면서 생겨난 연합. [[네덜란드]]-[[국]] 연합이 단절되고 대신 하노버-국 연합이 생겨났다. 하노버 선제후국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일시 멸망했으나, 하노버의 신하들과 군인들은 국으로 --됭케르그 후퇴-- 피신하여 '독일인 군단'을 결성하여 나폴레옹 전쟁에서 활약했고, 나폴레옹 몰락 이후 [[빈 회의]]에서 하노버 왕국으로 복귀한다.
         국에 빅토리아 1세가 즉위. 여왕을 인정하는 국과는 달리 [[살리카법]]을 따르는 하노버왕국은 여성 군주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대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가 즉위하면서 연합은 해체된다. ~~그리고 하노버 왕국은 프로이센한테 멸망당한게 함정.~~
         부부가 각자의 계승권에 따라서 군주로서 즉위하고 있는 태에서, 서로 혼인함으로서 '동군연합'이 형성된다. 이 경우 왕은 X국의 왕, 그 아내는 Y국의 여왕이므로, X국과 Y국이 부부 아래 동군연합이 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동군연합'과는 약간 다르지만, 대개 부부 한 쪽이 주도권을 잡고 움직이기 때문에 동군연합과 거의 다를바 없는 태가 된다.(내실을 보면 약간 복잡해진다.)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의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왕국은 엄밀하게 말하면,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부동군연합이 된다. 물론 실제로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사실 전부다 해먹고 여제 대우를 받았지만(…). 이후 프란츠 1세의 제위는 요제프 1세에게 넘어가면서, 모자동군연합이 된다.
         남프랑스 전역을 거의 장악하던 아퀴텐의 여공인 엘레오노르가 잉글랜드 왕의 헨리2세와 혼인하면서 결성된 동군연합. 이로 인해 당시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령에서는 명목 프랑스 왕의 봉신이면서 정작 프랑스 왕보다 더 쎈 기묘한 위치를 차지했다(...). 사실 이 플랜태저넷 왕조 - 일명 '앙주 제국'의 정체성은 단지 '잉글랜드 토'라는 식으로 국한하기는 좀 복잡했다.
         다만 부부관계는 최악이라 헨리나 엘레오노르 둘다 정부를 거느렸으며, 둘의 불화는 악화되어 헨리가 엘레오노르를 가두기까지 한다. 이에 둘사이에 나온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단체로 대항했으며, 결국 리차드가 헨리를 투옥시키고 잉글랜드 왕위를 속받으면서 모자동군연합이 됀다
         이후 리차드의 동생인 '실지왕'존이 프랑스의 필리프 2세한테 탈탈털리고 기스코뉴를 제외한 대부분의 프랑스령을 빼앗기고, 이후 백년전쟁때 프랑스령을 전부 빼앗기면서[* 칼레는 메리 1세까지 보유했다.] 사실 해체.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 . . 36회 일치
         [[마블 스튜디오]]의 [[화]] 프랜차이즈.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화만이 아니라 화 기반 [[만화]], [[드라마]]를 포함하는 배경 세계 공유 프랜차이즈다. 케빈 파이기가 총지휘를 맡고 있다. 줄여서 MCU라 부르기도 한다.
         특성 화와 드라마에 단편 까지 많든, 적든, 크든, 작든 연결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한 화에서 사건이 터지면 다른 화나 드라마 등에서 이것이 언급되거나 한다. 미국 만화 스타일이 떠오르게 하며 이것이 화된 것이다. 일단 이러한 [[배경 세계 공유]] 스타일이 MCU가 최초는 아니나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인지도와 신용도를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인기를 얻고있다보니 화의 요소가 코믹스에 반되기도 한다.
          * 마블 코믹스의 화들이기에 마블의 캐릭터와 세력, 설정이 등장하며, 내용 중에는 코믹스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으나 그렇다 해서 코믹스를 100% 반하지는 않고, 그렇기에 호불호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코믹스에서 아이디어를 얻기에 전혀 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코믹스에 나온 것을 기본 소재로 두면서 MCU에서 독자적인 전개를 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 각 화와 드라마들은 슈퍼히어로 장르라는 것을 전제로 각각 개성적인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언맨은 재수 없는 부자가 웅이 되어가는 이야기.
         == 화 ==
          * [[아이언맨(화)|아이언맨]]
          * [[앤트맨(화)|앤트맨]]
          * [[닥터 스트레인지(화)|닥터 스트레인지]]
          * [[블랙 팬서(화)|블랙 팬서]]
          * [[캡틴 마블(화)|캡틴 마블]]
         == 관련 ==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해도 판권의 문제 탓에 모든 캐릭터의 등장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엑스멘 시리즈의 경우가 그런 경우. 판타스틱 포도 마블의 전통 캐릭터들임에도 화 판권 문제 탓에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퀵실버와 스칼렛 위치의 경우에는 설정을 각색했고, 스파이더맨의 경우 화 판건이 소니에 있으나 협 덕에 등장이 가능해졌다.
         몇몇 캐릭터들은 판권이 판매된 황이었으나 현 시점에서는 판권을 회수해내 등장이 실현되었다. 다만 헐크의 경우 화 배급권이 유니버설 픽처스에 있어서 단독 주연 화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 소니 픽처스의 스파이더맨 화 시리즈는 MCU와 아무 관련 없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MCU판 스파이더맨이 등장했으나 이 스파이더맨과 소니의 기존 스파이더맨 화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MCU 이전에 나온 마블 관련 화나 드라마도 MCU와 관련없다.
  • 백성현 . . . . 36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https://web.archive.org/web/20140227072440/http://www.sidushq.com/star/bshyun 싸이더스HQ 백성현]<br>{{인스타그램|sunghyun0130}}
         | 조
         | [[웅시대 (2004년 드라마)|웅시대]]
         | 한
         | 피
         | [[당신이 잠든 사이에 (드라마)|당신이 잠든 사이에]]
         | 도학
         | 김
         === 화 ===
         | [[남자의 향기 (화)|남자의 향기]]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화)|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스피드 (2015년 화)|스피드]]
         == 수 및 후보==
         ! 시
         | [[SBS 연기대]]
         | 아역
         | [[KBS 연기대]]
         | 아역
         | 뮤직비디오 연기
  • 식극의 소마/225화 . . . . 36회 일치
          *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를 무기로 [[사이토 소메이]]를 완벽하게 카피하는 [[미마사카 스바루]]. 서포트와 조리를 양립하며 "최고의 전력"이란 찬사를 받는다.
          * 사이토는 의외로 미마사카를 높이 평가하지만 자신은 "소생"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다고 꼬집으나, 동료들은 모두 "실제론 쓴다"고 입을 모아 당황한다.
          * 다른 십걸들이 그렇듯 사이토도 조금 이한 인물. [[메기시마 토스케]]의 말로는 "무사도"에 너무 심취해 만사에 무사도를 적용하고 도취한다고 한다.
          * 미마사카는 자존심이 할 수도 있었으나, 승부를 위해 체면을 버리고 "나의 트레이스가 더 완벽해질 것이다"고 사이토의 애도를 넘겨받는다.
          *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진행되는 조리. 사이토는 참치 부위마다 다른 조리를 시도하고 있었고 미마사카는 거기에 지지않고 따라가고 있었다.
          * 대결은 마무리를 향해가고 먼저 요리를 완성한 것은 사이토. 작고 정교한 "참치 십관 홍옥알 스시"를 제출한다.
          * 시간은 10분 남은 가운데, 미마사카는 트레이스를 마치고 "어레인지" 작업에 돌입, 사이토에게 없는 공정을 더하며 승부수를 띄운다.
          * 종래의 한계를 뛰어넘은 [[미마사카 스바루]]의 새로운 필살기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강적 중의 강적인 십걸 4석 [[사이토 소메이]]의 기술을 완벽하게 따라하며 예을 한참 뛰어넘는 선전을 펼쳤다. 환호하는 반역자 동료들. 심사위원 이스트와르도 감탄을 마지 않는다. 아무리 동료와 연계가 허용된 연대식극이라지만, 동료를 서포트하는 행동은 리스크가 크다. 십걸들 조차 자기 조리에 매진할 뿐 동료와 협조하진 않는 것도 그 탓. 이런 황에서 서포트와 자기 조리를 양립할 수 있는 미마사카의 존재는 단연 돋보인다. 이스트와르는 미마사카야 말로 반역자 팀에 승리를 가져다줄 최고의 전력이라 단언한다.
          * 한 번 발동이 걸리자 미마사카의 트레이스는 멈추지 않는다. 잠시 손이 쉬는 동안에도 "소생 사이토 소메이, 자신이 믿는 요리도를 걷는자"라며 사이토의 입버릇을 흉내낸다. 의외로 사이토는 미마사카의 존재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카피라곤 하지만, 찰나의 관찰로 자신의 실력을 재현할 수 있는 미마사카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데, 자신은 스스로를 "소생"이라고 칭하지 않는데, 미마사카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
          듣고 있던 [[코바야시 린도]]가 정색한다. 이어서 [[츠카사 에이시]]도, 외야의 모모나 적인 [[메기시마 토스케]] 조차 한다고 증언한다. [[유키히라 소마]]는 사이토가 의외로 얼빠진 구석이 있는걸 알게 되자 "재미있는 사람이다"고 평한다. 메기시마도 "당한 별종"이라고 동감한다.
          * [[카와시마 우라라]]는 의외의 황이 발생하자 미마사카를 "스토커"라 성토하고 "1대1이면 절대 십걸이 질리가 없다"고 현실도피를 해댄다. 1라운드에서 [[키노쿠니 네네]]가 소마에게 졌던걸 잊었나 보다.
          정작 사이토는 미마사카를 "정말이지 재미있는 남자"로 인정한다. 그는 자신의 애도 "이사나키리"을 뽑아 남은 참치 해체를 단숨에 마친다. 그러고는 칼을 잘 닦아낸 뒤에, 놀랍게도 미마사카에게 건네준다. 이걸로 남은 해체를 마치라는 소리였다. [[타쿠미 알디니]]는 처음에는 무슨 함정이 아닐까 의심했다.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 "대등한 조건"을 갖추기 위한 조치에 불과했다. 미마사카가 설령 같은 수준의 기술을 구사해도 도구에서 수준 차이가 난다면 정당한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사도"에 어긋난다는게 사이토의 생각이었다. 린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깔깔거렸다. 메기시마도 "귀찮은 버릇"이 나왔다고 중얼거렸다. 사실 사이토는 진지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온갖 만사에 무사도를 들이대며 별 것도 아닌데서 무사도를 발견하고 집착하는 성미.
          미마사카의 비꼬기를 재하더라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얕잡아 보는 행동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반역자팀에선 잘난척이라고 불쾌해하기도 하지만 막 권유를 받은 미마사카는 망설이지 않고 이사나키리를 받아든다.
          * 이사나키리를 쥔 미마사카는 사이토가 그랬든 한 번의 기합으로 남은 참치해체를 단숨에 끝마친다. 사이토는 거기에 만족스러워하며 진짜 조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따라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미마사카도 지지않고 그 태도에 대항한다. 둘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됐건 간에, 지금 둘은 깨끗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반역자들은 저 미마사카가 군소리없이 사이토의 권유를 받은 것에 놀란다. 그도 자기 나름의 프라이드가 강렬한 요리사가 아닌가? 하지만 타쿠미는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쿠가 테루노리]]처럼 체면 따위는 내던져놓은 것이다. 오로지 승리를 위한 필사의 노력. 그 말대로 사이토의 조리 순간마다 미마사카의 눈이 빛을 내뿜었다. 끊임없는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 둘의 조리는 완벽하게 똑같았다. 붉은 살을 간장, 미림, 레드와인을 섞은 양념에 재우고 볼살 부분은 한쪽 면만 버터향을 입혀가며 굽는다. 사이토는 부위마다 다른 방식으로 조리하고 있었고 미마사카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걸 따라갔다. 이번엔 사이토가 짚을 준비한다. 처음엔 장식에 쓰려는 줄 알았으나, 그 정체는 볏짚구이. 참치살을 짚불에 올려 호쾌하게 구웠다.
          *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솜씨를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었지만 역시 힘이 들었다. 내색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의 고행에 가까운 노력은 연대식극에 멤버로 지목된 이후부터 시작됐다. 월 열차 식당칸. 미마사카는 거기서 연대식극에 대비한 "십걸 전원 트레이스"를 시험하고 있었다.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하던 그도 무릎에 힘이 빠질 만큼 고된 훈련이었다. 연대식극에서 누구와 대할지 모르는 만큼 십걸 전원 트레이스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복수의 요리사에 대해 동시에 트레이스를 진행하는건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줬다. 연습단계에서 이정도라면 실전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 훈련은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열차를 통제하는 진행요원이 소등시간을 한참 지났는데도 조리실에 불이 들어와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안에 있는 사람을 서둘러 객실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문을 여는 순간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십걸 전원 분의 코스프레를 시도하고 있는 미마사카가. 린도나 츠카사, [[에이잔 에츠야]]와 키노쿠니, [[아카네가쿠보 모모]] 조차 재현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기가죽은 진행요원은 차마 아무 말도 못한 채 동같이 굳었다.
          * 이제 최후의 공정. 트레이스를 마치고 어레인지를 가미할 타이밍이다. 모두가 조용히 두 사람의 조리를 지켜봤다. 먼저 완성을 본 것은 사이토. 미마사카는 아직 손을 놓지 않았다.
          * 사이토가 내놓은 요리. "참치 십관 홍옥알 스시". 화과자를 연케하는 작고 정교하고 화려한 초밥이다. 이전에 [[나키리 아리스]]가 만든 "테마리즈시"보다도 작다. 보는 이들은 누구나 "아름답다"고 입을 모으는 작품. 한편 아직 조리를 마치지 않은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공정에 없는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하고 있다. 어떤 재료를 볼에 담아서 꺼내는데. 소마는 그것이 뭔지 직감했다. 이것이 승부의 향방을 판가름할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조리 시간은 10분. 2라운드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 오중기 . . . . 36회 일치
         || '''출생지''' || [[경북도]] [[포항시]] ||
         || '''최종 학력''' || [[남대학교]] [[철학]] 학사 ||
         || '''약력''' ||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특별보좌관[br]민주통합당 비대책위원[br]남대학교 총동문회 이사[br][[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br][[청와대]] 선임행정관 ||
         대한민국의 정치인.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경북도에서만 10여년째 고군분투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다 2018년 2월 경북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경북도]] [[포항시]] 출신으로 [[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 [[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생으로 [age(1967-07-23)]세의 젊은 나이가 강점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두 번의 대선 동안 경북선대위 임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신뢰를 쌓아 2017년에는 대구경북 당직자 중에서 유일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경북도의 [[인동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경북도]] [[포항시]]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에서 과일, 해산물 도매을 하던 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자매는 2남4녀의 육남매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들 둘만 대학의 진학하고 누나들과 여동생은 일찍이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도 중학생 때부터 집안일을 돕기위해 과일배달 리어카를 끌면서 죽도시장에서 '''오씨 아들'''로 통했으며 지금도 인들이 반겨준다고 한다.
         [[남대학교]] 철학과에 86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대학가서 데모하지 마라 인생 망친다'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자발적으로 데모에 참석하곤 했다. 그러던 중 집회 현장에서 본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 책자를 보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생회 활동, 철학과 학생회장, 문과대 학생회장을 거쳐 [[전대협]] 통일선봉대 대구경북지역대장까지 맡았다. 결국 탄압이 심하던 당시,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를 받고 7개월 가량 도망다녔으나 붙잡혀 구속되었다.--잡히지 않기 위해 여장까지 했다고 한다.-- 몇달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3년에 특별복권되었으나 전과가 남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경하여 [[한국일보]]와 [[동아일보]]에서 일했다.
         2008년 포항시 북구 지역구에서 [[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총선에 처음 출마했지만 첫 여론조사에서 2%대의 참담한 지지율을 받고 낙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하였으나 한나라당 [[이병석(정치인)|이병석]] 후보에 밀려 5.8%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쓰라린 패배였지만 이를 발판삼아 경북 지역에서 당세를 키우는 노력부터 다시 시작했다. 예컨대 그가 포항시 북구 지역위원장을 처음 맡았을 때 지역에서 당비 내는 당원이 수십명에 그쳤으나 현재는 자발적 권리당원이 1,000명 이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 노력은 2016년까지 총 4번의 도당위원장 당선이라는 전무후무한 결과로 돌아왔다. 지역 당원들이 [[민주당(2008년)|민주당]] 경북도당의 성장에 대한 그의 기여를 높게 평가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당내 선거와는 달리 본선에서는 계속해서 고배를 마셨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단일화를 위해 불출마한 것을 제외하고,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와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낙선을 겪었다. 득표율이 낮아 선거비용을 100% 환급받은 적이 아직 없는데, 특히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는 15%에 겨우 0.07%포인트가 모자랐다.[* 선거 비용 100% 환급 기준은 15% 이의 득표율이다.] --안습--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새누리당]]출신 무소속 [[박승호(정치인)|박승호]] 후보에 표가 몰려 12.71% 득표에 그쳤다. 이후 2013년엔 [[제18대 대선]] 패배 이후 혼란스러웠던 [[민주통합당]]의 [[문희]] 비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비대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 경북도당위원장 선거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인 [[김현권]] 의원을 누르고 도당위원장 4선에 성공했다.
         2017년 1월, [[문재인]] 전 대표가 구미시청을 방문해 [[박사모]]의 습격을 받을 때 이를 온몸으로 방어하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했는데, 이 장면이 유튜브 생중계로 찍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https://youtu.be/eqhKXSYot1w|]]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후보의 경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중 균형발전비서관실의 선임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사실 지역 도당위원장 정도를 선임행정관으로 임명하는건 격이 너무 약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균형발전비서관이 일찌감치 사직해 공석인 황에서 2018년 2월 1일 선포된 국가균형발전 비전 수립을 이끌었다. 직후 사직하여 2018년 2월 5일, 경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북도지사]] 선거에 재도전하기로 [[https://youtu.be/7R_kl03ESn8|선언]]했다.
         2018년 4월 3일 경북도지사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단수공천이 확정되었으나[[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8523033|#]] 대 후보인 [[이철우(1955)|이철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하지만 경북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로써는 최선의 결과, 더 나아가서는 최고의 결과를 내었다. --선거비용을 보전받은 것은 덤-- 이 기록은 역대 민주당계 정당 소속 경북지사 후보가 받은 득표율 최고치를 갱신한 것으로, 직전 기록은 현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인 [[박명재]]가 2006년 4대 지선 당시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기록한 23.19%이다.
         선거이력의 안습한 황과는 달리, 민주당 내에서는 나름 크고 작은 역할들을 맡아왔다. 험지에서 고생하는 만큼 당에서 역할을 맡기는 것으로 보인다.
          *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문재인 후보 경북도 선거대책위원회 임위원장
          * 2013년: 민주통합당 비대책위원
          *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문재인 후보 경북도 선거대책위원회 임위원장
         경북도당위원장 경선을 앞둔 2016년 8월 4일 오후 10시 30분께 대구 북구의 한 음식점에서 민주당 지역위원회 간부에게 지지를 부탁하고 5만원 당 음식물과 현금 5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어 정당법 위반으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16/0200000000AKR20170216180200053.HTML|관련기사]] 당세가 약한 경북지역 특성 고생하는 지역위원회에 대한 격려 및 경비 지급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당내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사려깊지 못한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다.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도지사) || [[새정치민주연합]] || 189,603 (14.93%) || 낙선 (2위) ||
  • 원피스/856화 . . . . 36회 일치
          * 미러월드의 [[쵸파]] 일행은 홀케이크 성을 전부 뒤졌지만 [[디]]를 발견할 수 없어 불안해한다.
          * 디를 추적하던 처리꾼 [[보빈]]은 어떤 "집단"에게 당한다.
          * 빈스모크 일가는 빅맘 [[샬롯 링링]]의 계획대로 술집 여자들과 놀면서 완전히 방심한 태.
          * 디는 마침내 루피를 만났지만 도시락은 비바람에 젖어 엉망이다.
          * 도시락 냄새에 눈을 뜬 루피는 그런 도시락도 맛있게 먹지만 디는 거짓말쟁이라고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 루피는 돌아오라고 설득하지만 디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
          * 루피는 본심을 말하라 추궁하고 디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써니호로 돌아가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 디는 쓰레기같은 가족이라도 구해주고 싶다고 고백하고 루피는 그거야말로 디다운 일이라며 그들이 식을 엉망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 미러월드의 [[쵸파]] 일행은 홀케이크 성 어디에도 [[디]]와 [[몽키 D. 루피]]가 없자 당황한다. [[캐럿(원피스)|캐럿]]이 초화를 들이대며 묻고 다녀도 성 안에 있는 모든 거울이 "전에 지나갔다"는 말을 할 뿐, 여기 있다고 말하는 것이 없다. [[나미(원피스)|나미]]는 성이 아니라면 짐작가는 곳이 있다고 말한다. "아침에 둘이 싸운 장소", 홀케이크 성 인근의 들판이다.
          쵸파는 그 장소 보다는 둘이 싸웠다는 말에 울음을 터뜨린다. [[징베]]는 디가 빈스모크 일가로서 온 이 매우 복잡한 처리에 놓였을 것이고 간단히 돌아갈 수는 없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렇지만 디를 정말 데려갈 거라면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징베는 이미 빅맘 [[샬롯 링링]]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모두가 모인 다음에 밝힐 생각이었지만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냥 말한다. 사실 그는 [[페콤즈]]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음모"에 휘말려 바다에 떨어져 어밥이 될 처지였던 걸 징베가 구해준 것. 페콤즈는 빅맘의 다과회가 실제로는 디를 포함한 빈스모크 일가의 학살극이라는 걸 전한다.
          * 한편 스위트 시티에서는 의문의 총성이 들린다. 비내리는 소리에 휩쓸려 정확히 들리진 않지만 분명 그런 소리가 들렸고 개들도 흥분해서 짖어대고 있다. 그때 누군가 빗속을 걷고 있다. 그는 처리꾼 [[보빈]]. 분명 디를 추적한다고 했던 그는, 어찌된 일인지 누군가에게 공격 당해 만신창이가 됐다. 칼에 의지해 겨우 걷고 있는데.
          * 빈스모크 일가의 남자들은 빅맘이 제공한 술집 여자들과 함께 술판을 벌이고 있다. 여자들은 벌써 술에 취해 쓰러졌고 [[빈스모크 욘디]]가 그걸 빈정거린다. 욘디는 이런 여자들 보다는 "디의 동료 여자", 나미를 내놓으라며 웃는다. [[빈스모크 이치디]]와 [[빈스모크 니디]]도 맞장구를 치며 그런 여자를 좋아한다며 내일 나미를 넘겨달라고 교섭해 보겠다고 시시덕거린다.
          이들은 모르고 있지만 그 행동 하나하나가 감시의 대이다.
          * 들판에서 굶어죽어가던 루피를 발견한 디. 디는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지만 루피는 그가 들고 온 도시락의 냄새를 맡고 깨어난다. 디는 자기를 기다리라고 한 적은 없다면서도 먹을 수 있으면 먹으라고 도시락을 건낸다.
          * 하지만 그가 가져온 도시락은 비에 젖고, 도중에 떨어뜨리는 통에 엉망이다. 디는 도저히 먹을게 못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루피는 거리낌없이 도시락을 먹고 맛있다고 칭찬한다. 루피는 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도시락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모두 밀집모자 일당이 좋아하는 것만 있다고 기뻐한다. 디는 맛있게 먹는 루피에게 등을 돌리고 있지만 그가 기뻐하는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는다. 맛있다고 연호하는 루피의 칭찬을 들으며, 디는 씁쓸한 얼굴로 "거짓말 하는군"이라 중얼거린다.
          * 도시락을 완식한 루피는 미라같이 말랐던 신체가 정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디는 "먹었으면 돌아가라"고 말한다. 루피는 당연히 디도 함께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디는 세 가지를 들어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한다.
          >나는 모욕하고 무저항의 너를 있는 힘껏 처 입혔다.
          >해 레스토랑 발라티에를 만약의 경우 인질로 잡혀있다.
          디는 비록 쓰레기 같은 가족이더라도 버리고 도망칠 수는 없다며, 이의 세 가지 이유로 같이 돌아갈 수 없다고 못을 박는다.
          * 루피는 디의 말에 따르지 않는다. 냅다 그를 후려치더니 외친다.
  • 원피스/873화 . . . . 36회 일치
          * 황을 맞춰본 간부들은 반역자들의 음모를 거의 다 밝혀내지만 어째서 성이 붕괴했는지, 옥갑의 진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 [[샬롯 스무디]]가 케이크를 다시 만드는 수밖에 없다며 [[슈트로이젠]]을 찾으나, 그는 능력을 발휘한 이후 착지에 실패하면서 부을 당해 빈사태다.
          * 푸딩은 전과는 달리 제 3의 눈과 사악한 본성을 서슴없이 드러내 시민들이 의아해하나, 그녀는 더이 그걸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인다.
          * 푸딩은 [[디]]가 "아름다운 눈"이라 했던 걸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디일행을 처단하려 하는데, 빅맘이 그걸 이뤄준다면 "" 정도는 줘도 된다고 중얼거린다.
          * 하지만 추격대가 지척까지 와있고, 게다가 빅맘이 광란 태로 머리 위를 덮쳐오게 되는데.
          * 하지만 풀린 수수깨끼도 있다. 왜 다과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성 안의 간부들은 까맣게 몰랐을까? 그건 벳지의 공작이었다. 성내로 연결되는 연락라인이 전부 불통 태였던 것. 마침 짚이는 것도 하나 더 있다. 다과회 개시 직전 동쪽 해안을 점거 중이던 태양 해적단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 소식은 [[페콤즈]]가 직접 전했다. 용캐 성으로 돌아온 페콤즈가 그들이 자기만 해안에 남겨놓고 짐까지 빼앗아 가버렸다고 성을 냈다. 이야기를 맞춰보니 그건 [[징베]]가 안전하게 빅맘 산하를 떠나 밀집모자 일행과 합류하기 위한 조치였다. 빅맘의 분노가 어인섬과 태양 해적단에 미칠 걸 우려한 징베가 그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려고 한 짓이다. 그래서 한 번은 탈퇴를 취소했다가 그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다시 탈퇴를 확정한 것이다.
          * 물론 카타쿠리도 치가 떨리는 대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루피를 대했던 카타쿠리는 그가 장차 빅맘에 위협이 될 존재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목을 거두겠다, 그런 생각이었다.
          * 스무디는 이럴 때 어찌하는지 기억에 새겨질 정도로 숙지하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빅맘이 찾는 음식을 대령하는게 최선. 문제는 웨딩 케이크를 담당했던 슈트로이젠의 태였다. 쿡쿡 열매의 능력으로 성을 케이크로 만들고 사람들을 구한 것까진 좋았지만, 하필이면 착지할 때 와장창 실패. 전신에 붕대를 감고 드러누웠다. 의사가 적어도 며칠은 있어야 회복이 된다고 진단. 답이 없는 황이다.
          * 이때 교활한 [[샬롯 페로스페로]]가 잔꾀를 꾸며낸다. 그는 빅맘 앞에 나서더니 대뜸 "케이크가 있다"며 빅맘의 주위를 돌린다. 석을 씹어먹던 빅맘이 솔깃해한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 페로스페로도 큰 걸 바라고 친 공갈은 아니다. 그저 잠시 잠깐 황을 완화하려는 수작. 잘 돼서 친히 루피를 잡으러 간다면 좋고, 아니라도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와 주는 정도면 충분한 그런 소리였다. 일단 빅맘이 그 말을 듣긴 듣는거 같은데,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까? 카타쿠리와 간부들, 스위트 시티의 시민들이 이목을 집중한다. 스무디는 그렇게 형편좋게 유도가 될지, 그런게 가능한 일인가 의심한다. 이윽고 빅맘이 고개를 돌린다.
          * 빅맘이 스위티 시티를 괴멸시키는건 막았지만, 페로스페로의 수명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그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일이 꼬였다"고 중얼거렸다. 스무디도 예치 못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빅맘이 설사 루피를 잡더라도 케이크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으니, 빅맘이 돌아오는 데로 페로스페로의 목숨은 끝날 것이다. 하지만 스무디는 좋은 쪽을 보려고 한다. 적어도 시간은 벌었고 그 틈에 케이크를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살 수 있다.
          하지만 페로스페로는 머리가 좋은 만큼 현실적이었다. 스무디에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우선 총요리장이 며칠을 들여서 그걸 만들었던가? 여러 나라에서 납받은 "환의 식재"도 이젠 없다. 물론 있다 해도 그걸 만들 당사자가 의식불명. 난관은 더 있다. 빅맘은 지금까지 이런 "최고의 웨딩 케이크"를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빅맘이 고대에 고대를 거듭하면서 기대치는 한껏 올라갔고, 이제 그게 다시는 못 먹데 된 셈이다.
          >"마마의 안에서 부풀려진 먹어본 적도 없는 맛있는 케이크"라고!
          카타쿠리도 동감이었다. 그는 이 황의 위험성을 진단한다. 우선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 섬은 확실히 사라진다. 그 이후의 사태는 "미지수"의 역. 예지를 자랑하는 그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듣던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문다.
          * 하지만 구세주는 최악의 황에 등장한다.
          그리고 번뜩이는 권총. [[디]]를 쏘려던 그 총이다. 항 냥하고 사랑스러운 푸딩만 알았던 시민들은 이렇게 돌변한 모습에 당황하지만 돌아가는 황 때문에 연연할 수가 없었다. 푸딩의 "작전"은 계속된다. 그녀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예견이나 한 것처럼 마지막 난관도 타파한다. 재료 문제. "환의 식재"라면 예비분이 있다. 그것도 푸딩이 거주하는 카카오섬 "쇼콜라 타운"에. 그녀는 페로스페로에게 빅맘이 루피 일행을 처치한다면 이후엔 쇼콜라 타운으로 오게 유도해달라 부탁한다. 방금까지 죽는 줄만 알았던 페로스페로가 반색하며 "고맙다"고 말한다.
          그런데 흘러가는 대로 빅맘의 뜻에 따르기만 했던 그녀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까? 그녀는 디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제 3의 눈을 아름답다고 칭찬했던 푸딩. 누구나 괴물이라 기피했던 그 눈을 칭찬한 대가가 이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모욕한 디와 그 일행을 처리해 준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이런 뜻모를 말도 덧붙이는데.
          >마마에게 정도는 줘야겠지...
          * [[나미(원피스)|나미]]는 밀집모자 해적단의 퇴각을 진두지휘 중이었다. 사실 징베 등에 타고 있으니 "진두"라고 할 순 없었지만. 아무튼 그녀의 주도였다. 루피는 나미가 지시를 내리는게 불만이었다. 다들 뛰고 있는데 나미만 편하다고 생각했는지 "징베에 올라탔을 뿐인데 뭘 그리 당당하냐"고 쏘아붙였다. 옆에서 뛰던 디는 평소태로 돌아와 "나미씨는 귀여우니 그래도 된다"고 우겼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 [[캐럿(원피스)|캐럿]], [[쵸파]], 징베는 묵묵히 뛰는 중.
  • 윤흔 . . . . 36회 일치
         '''윤흔'''(尹昕, [[1564년]] - [[1638년]] [[12월 17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무신, 정치인이다. 본관은 해평. [[윤두수]]의 둘째 아들, [[윤훤]]의 형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초명은 양(暘)이고, 자는 시회(時晦), 호는 도재(陶齋) 또는 청강(晴江), 계음(溪陰)이다. 시호는 정민(靖敏)이다. [[이괄의 난]], [[병자호란]], [[정묘호란]] 당시 [[조선 인조|인조]]를 수행하였으며, [[병자호란|병자]], [[정묘호란]] 당시 [[청나라]]와의 협을 반대하며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병자호란]] 때에는 [[후금]]과의 협을 강력 반대하였다. 그 뒤 [[예조]][[참판]]으로 재직 중에는 [[1632년]] [[인목대비]]와 [[1635년]] [[인열왕후]]의 [[국]] 장례를 주관하였으며 [[정묘호란]] 때에도 임금을 호종하였으며, [[1636년]](인조 14년) [[정묘호란]] 때에도 [[남한산성]]으로 [[조선 인조|인조]]를 수행, [[김헌]]과 함께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사후 [[병자]], [[정묘호란]] 때의 [[호종]] 공로로 [[증직|증]]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윤웅렬]](尹雄烈), [[윤렬]](尹英烈) 형제는 그의 7대손, [[윤치호]]는 그의 8대손이다. [[이이]]·[[성혼]]·[[정철]]의 문인이다.
         도재 윤흔은 [[1564년]] [[조선 선조|선조]] 때 [[의정부]][[의정]]을 지낸 오음 [[윤두수]](尹斗壽)와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 황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증직|증]] [[의정부]][[좌찬성]] 윤희림의 증손으로, [[조선 인조|인조]] 때 [[의정]]을 지낸 [[윤방]](尹昉)의 동생이다.
         첫 부인은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장남인 [[월산대군]]의 손자 [[양원도정]](陽原都正) 이혜(李譓)의 딸과 결혼하였다가 일찍 처하고, 뒤에 스승 [[이이]], [[성혼]]과 동문수학한 [[신응시]]의 딸 산신씨(靈山申氏)와 재혼하였다. 그러나 재취 부인 산신씨 역시 그보다 먼저 세을 떠났다. 전처 전주이씨에게서 1남 1녀를 두니 아들 윤취지(尹就之)와 유시경(柳時慶)에게 출가한 딸이 있다. 또한 첩실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니, 서자 윤태지(尹泰之)는 관감 직장(觀象監直長)을 지냈고, 서녀는 무과(武科)에 급제한 유지만(柳之蔓)과 결혼하였다.
         이후 형조좌랑, 예조좌랑, 호조좌랑 등 다시 3조의 좌랑을 거쳐 [[평안도]][[도사]]로 나갔다. 복귀하여 [[형조]][[정랑]](刑曹正郞), [[예조]][[정랑]], [[호조]][[정랑]]을 거쳐 [[평안도]][[도사]](平安道都事)로 나갔다. 그 뒤 내직으로 복귀하여 [[형조]][[정랑]]을 세 번 역임한 뒤 [[세자시강원]] 문학(侍講院文學)으로 [[광해군]]을 보도하였다. 그 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지제교(知製敎)에 임명되고,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으로 올랐다가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로 옮겼다. 그 뒤 옥당(玉堂)에 선발되어 [[홍문관]]수찬(修撰)이 되고, 교리(校理)를 거쳐 부응교(副應敎)에 올랐다. [[1601년]] 모친을 당하여 사직하고 3년을 치뤘다. [[1603년]](선조 36년)에 3년을 마치고 복직, [[통례원]]례(通禮院相禮), [[군자감|군자감정]](軍資監正), 통례원 좌통례(左通禮)를 역임하였다. 이후 내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승정원]][[우승지]]가 되었다.
         [[1620년]](광해군 13년) 서반(西班)의 무관직에 여러 번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사직소를 올려 물러난 뒤, 당시 [[북인]] 정권이 장악하고 있던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1624년]](인조 2년) 논공행에 불만을 품은 [[이괄]](李适) 등이 거병하여 도성으로 쳐들어와, [[이괄의 난]]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즉시 [[공주시|공주]]까지 달려가 [[조선 인조|인조]]를 호종하였으며, 그 뒤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그 뒤 [[홍문관]]과 [[예문관]]의 제학을 거쳐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왕을 강화로 호종하였으며, [[청나라]]와의 강화, 회담을 강력히 배척하는 소를 올렸다. 그의 결사항전 주장은 묵살되었찌만 주화에 절대 반대한 점으로 [[사림]]의 지지를 받았다.
         [[1636년]](인조 13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였으며, [[병자호란]] 당시 그는 [[김헌]] 등과 함께 [[청나라]]와의 강화를 강력히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 [[1637년]](인조 15) [[정축하성]] 후 관직을 사퇴하고 칩거했으나 거듭된 출사 요청으로 [[한성]]에 되돌아와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특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그해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을 거쳐 다시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윤두수]]의 묘소 옆 자좌(子坐) 오향(午向)의 언덕에 안장되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의 호종 공로로 사후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감|관감사]]에 특별히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민(靖敏)이다.
         묘비는 [[1640년]](인조 18)에 세워졌으며 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이 비문을 짓고, 전서(篆書)의 대가였던 [[신익성]](申翊聖)이 글씨를 썼다. 그의 7대손이 [[윤웅렬]], [[윤렬]] 형제였고, 8대손은 독립운동가 겸 사가 좌옹 [[윤치호]]였다. 9대손은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의 대통령|제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과 [[서울대학교]]의 부총장과 [[서울대학교의 총장|총장]]을 지낸 [[윤일선]]이었다.
         *** 형님 : [[윤방]](尹昉, [[1563년]] ~ [[1640년]]) : [[윤덕]], [[윤택]]의 선조
         ***** 외손자 : 1명 이름 미
         *** 부인 : 산 신씨
         **** 서며느리 : 박진(朴震英)의 딸
         * 처조부 : 신보(辛輔商, [[1496년]] ~ [[1570년]])
         * [[심우]]
         * [[김헌]]
         * [[김용]]
         * [[윤렬]]
         [[분류:윤치호]][[분류:윤치]][[분류:윤보선]][[분류:임진왜란 관련자]][[분류:병자호란 관련자]][[분류:정묘호란 관련자]][[분류:해평 윤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감기와 폐병-->
  • 은혼/609화 . . . . 36회 일치
          * 원 황자는 지구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한 필승의 포진에 들어간다.
          * 히라가 겐가이 감은 가부키쵸 주민들을 모아 해방군에 대항할 병력을 확보한다.
          * '''비극의 병기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 부활'''
          * 그러나 이것은 에도성을 함락시킨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가 아니라 그걸 개량한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가이포다.
          * 겐가이 감은 킨토키 타마를 비롯 에도의 모든 기계의 힘을 모아 사람을 구하는 병기,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가이포를 작동시킨다.
          * 이어 지군은 타케미카즈치를 원호하고 지구군이 방해활동을 하지 못하게 봉쇄한다.
          * 겐가이 감이 뭔 짓을 했는지 멀쩡하게 살려놨다.
          * 그는 세의 반을 맡기겠다며, 절반 쯤은 불완전한 은이라도 어떻게든 될 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 타마도 겐가이 감과 함께 등장.
          * 긴토키는 무전으로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고 묻지만 겐가이 감은 입을 열지 않는다.
          * 양이지사 시절을 회하는 겐가이 감.
          * 감의 공방이 폭발하는가 싶더니 그로부터 거대한 기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거대한 대포와 같은데.
          * 하지만 겐가이 감은 대포도, 사람을 죽이는 물건도 아니라고 말한다.
          * 그리하여 겐가이 감이 찾아낸 답은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가이포'''--완성도 높은데 어이!--
          * 그 모습은 천인 도래 당시 천수각을 떨어뜨려 전쟁을 종결지었던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포와 똑같았다.
          * 그러나 원 황자만은 그것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라고 짐작하는 듯 한데.
          * 어쨌든 해방군은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가이포의 파괴를 최우선으로 하게 된다.
          * 겐가이 감은 천인이 에도를 함락하고 양이지사들이 전쟁에서 졌던 그때부터 이 대포를 몰래 만들어왔다.
          * 드디어 작동되는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가이포.
          * 타마과 킨토키의 힘을 받은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가이포는 에도 전역의 기계들의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 이종희 (1942년) . . . . 36회 일치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북도]] 대구
          | 경력 = 前 [[대한항공]] 총괄담당 대표이사 사장 <br /> 前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 사장 <br /> 前 [[인하대학교]] 겸임교수 <br /> 前 [[자유민주연합]] 특임행정위원 <br /> 금탑산업훈장, 프랑스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자랑스런 단국인 등을 수
          | 학력 = [[단국대학교|단국대 경학과]] 학사<br>[[연세대학교|연세대 경대학원]] 경학 석사 <br>[[서경대학교|서경대 대학원]] 경학 박사
         '''이종희'''(李鍾熙, [[1942년]] [[4월 15일]] ~ )는 [[경북도]] 대구 출신의 [[대한민국]] 기업가이다.
         이종희는 [[1969년]] 대한항공 공채 1기로 입사해 말단 직원에서 총괄사장 자리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로 평가받는다. 출범 당시 대한항공은 아시아의 작은 지역항공사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글로벌 톱10으로 세계적인 대형 항공사로 성장했다. 그동안 이종희는 [[대한항공]]의 성장 과정에서 40년 한국 민항 역사의 산증인 역할을 했다. 그는 경학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정비분야로 입사해 30여년간 정비 자재 기획 업 등 항공사의 전문경인이 되는 데 필요한 업무를 두루 섭렵한 '테크노 경인'이다. 특히 여객 업에만 20여년간 몸 담은 여객업 분야 전문가로서 신규 노선 개척 및 세계 항공사와 제휴 업무를 주도적으로 맡아왔다. [[대한항공]]은 [[2009년]] [[12월]] 말 인사에서 이종희를 대한항공 임고문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대한항공 대표이사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이종희 대한항공 고문과 서용원 부사장 3인의 각자 대표로 변경됐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22517362982441&outlink=1|제목=대한항공, "앞으로 3인 대표이사 체제"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로 겉보기에는 무척 부드러워 보이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강한 추진력을 발휘,매사에 빈틈이 없다는 평을 받는다. [[대한항공]]이 사업정화를 위해 제트기를 새로 도입할 당시 신입직원이던 이종희는 어로 된 부품과 정비매뉴얼을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가가 전무한 황에서 밤을 새워가며 정비매뉴얼을 완벽하게 번역하면서 오너로 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업부에서 항공기 운항과 정비 등의 운항 종합정보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아 5년간 휴일을 포함해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사무실을 지켰다는 일화는 지금도 사내에 회자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한 · 프랑스 협력에 앞장서고 세계 항공시장에서 양국 간 경제협력과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이종희에게 프랑스 정부 최고 훈장인 레종 드뇌르 슈발리에(La Legion d'honneur Chevalier) 훈장을 수여하였다. 레종 도뇌르 훈장은 ‘광의 군단’이란 의미를 지닌 프랑스 국가 최고훈장인데 레종 도뇌르는 일반적으로 코망되르, 오피시에, 슈발리에 등 3개 등급으로 구분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04년]] 이 훈장 가운데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인 레종 도뇌르 코망되르를 받은 바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112408021|제목=이종희 대한항공 사장‥40년 한국 민항 역사의 산증인|날짜=2009-11-25|출판사=한국경제|확인날짜=2010-04-12}}</ref>
         * [[대구업고등학교]]
         * [[단국대학교]] 경학과
         * [[연세대학교]]경대학원 경학 석사
         * [[서경대학교]]대학원 경학 박사
         * [[2000년]] 대한항공 여객업담당 부사장
         * [[1999년]] 대한항공 여객업담당 전무이사
         * [[1996년]] 대한항공 종합통제담당 무이사
         * [[1989년]] 대한항공 업본부 여객담당 겸 국제여객마케팅담당 이사
         == 수 ==
         * [[2009년]] 제36회 공의 날 금탑산업훈장
         * [[2003년]] 자랑스런 단국인
         * [[2003년]] 제23회 연세경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대학원 동문]][[분류:서경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경주 이씨]]
  • 이지은(2000) . . . . 36회 일치
          * 위 문서: [[고등래퍼]], [[믹스나인]], [[고등래퍼 2]]
         ||<:><#fcb4bd>'''{{{#white 학력}}}'''||<#ffffff>충주북여자중학교[br][[한국예술고등학교]] 연극화과||
         ||<:><#fcb4bd>'''{{{#white 별명}}}'''||<#ffffff>여장부[* 고등래퍼 출연 당시, 남자출연진들에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여러모로 당차게 리딩하는 모습을 보여 프로듀서들이 감탄하곤했다.], 안소희 닮은꼴[* 고등래퍼 선공개 에서 안소희 닮은 꼴로 소개가 되었으며, 좌우로 긴눈과 전체적인 얼굴형태가 닮았다는 평가], 코지은[* 코가 꽤 오똑하고 이쁜편이라 힙갤에서 불리는 편], 찐[* 학교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이라 한다], 햄[* 햄토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나온 별명], 자업자[* 믹스나인 방송내에서 콩알만한 분량으로 알아서 여자 직캠조회수 3,4위를 먹은 김시현, 이지은을 통칭하는 별명. ]||
         충청북도 충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수댄스 스튜디오에서 랩와 춤을 연습하며 꿈을 키워온 듯하다. 수댄스 대표의 당한 애제자인 듯하며, 대표 인스타에는 이지은에 대한 애정어린 포스트가 당하다. 현재 남아 있는 당수의 자료들이 수댄스에 있을 때 작성된 것이다. [[예지(피에스타)]]의 곡인 미친개 커버([[https://www.youtube.com/watch?v=o95OUDg2sOw|유튜브]])를 올리기도 했다.
         고등래퍼 지역예선에 강동지역으로 참여하였다. 예선은 클립으로 선공개되기도 했다. 방송에서는 한림예고 송한희와 여성래퍼 대결구도로 연출되었고, 각자의 외모나 실력, 그리고 닮은 꼴[* 송한희는 수지 닮은꼴에 비타 500 광고도 따라했고, 이지은은 안소희 닮은 꼴로 나온다.]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송한희는 고등래퍼 티저의 참가자이자, SNS에서 이미 유명세가 있던 참가자로, 여성 최강자 기믹이 있었다. 그에 반해 이지은은 철저히 신예에 언더독 이미지로 그려져, 대부분 송한희를 띄워주기위한 연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경연에서 송한희가 아쉽게 연속된 가사 실수를 하게되고 이지은은 훌륭하게 경연무대를 펼쳐, 멘토들의 찬사를 받아 194점으로 최종 5위로 다음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서울강동에 스타성이 있는 참가자들이 유독 많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비중이 당히 높았다. 빼어난 외모덕도 있겠지만... 찰진 리액션 때문이기도 하다.
         122번으로 예고편[[http://tv.naver.com/v/2125890|링크]]에서 0.5초 분량으로 등장했다. [[10월 26일]] 믹스나인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뮤직웍스 소속으로 [[한지예]], [[김시현(뮤직웍스)]], 마이틴 멤버들과 같이 공개됬다.[[https://www.instagram.com/p/Batfyb3n40r/|링크]] 최초 쇼케이스에서 얼굴을 드러내며, 방송 참여를 알렸다. 같은 소속사 [[김시현(뮤직웍스)]]과 참여하게 되었으며, 최초 B클래스 소속에 48번으로 호명되었다. 이후 [[http://tv.naver.com/v/2259465|30초 선공개]]과 [[http://tv.naver.com/v/2287038|뮤직웍스 단체무대 풀샷]]이 공개되었다.
         9화 이전 믹스나인 공식 인스타에 급식래퍼로 동이 떳다. [[https://www.instagram.com/p/Bc9aFATnlgG/|인스타그램 링크]]
         JUST DANCE 연습과 쇼케이스 준비가 들어가 있는 에피였으나 통편집됐다. 딱 2컷 나온다. 등급평가에서 실력이 부족한 연생들이 줄줄이 나오며 C등급으로 배치가 되는 이 나오는데 그중 [[양현석]]이 볼필요도 없다며 C등급에 이지은의 사진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최초 4명만 My number를 선택했고, 이후 3명이 보컬파트에서 미끌어져 참여하게 된다. 당연히 어수선한 황으로 분위기가 흘러갔고, 이러한 분위기를 해소해주는 역할을 한다.
         방송 에서 공개된 허니조는 그나마 편집이 살려준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초반 주목을 받았던 인형을 컨셉으로 한, 안무는 익스프레션 마리오네트의 어설픈 카피였고[* 그걸 의식해서인지, 본방에서는 편집으로 날려버린다. 물론 현재 춤이라는 역에서 익스프레션에게 완벽하게 자유로운 팀은 없겠지만.] 그 컨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 채, 컨셉이 붕떠버리게 된다. 그에 더해 확실한 보컬이 없는 관계로, 후반부 벌스에서는 밸런스가 무너지게 된다. 게다가 의컨셉이 최악인 황 도중 수란의 "지은이 랩하는데 의이... 허.." 라고 탄식하는 장면이 뜬다. 이 와중에 이지은은 나름 노래에 맞게 랩[* 방청러들의 말에 따르면, 심사위원들에게 노래에 맞는 랩을 했다고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근데 방송에는 통편집]을 하게 되었다. 최악의 평을 들은 공연에서 [[유키카]]의 엔딩과 함께 유이하게 살릴만한 퍼포먼스였던 것.
         12월 3주차 순위에서 15위로 22계단 급승했다! 제작진에서도 이것을 띄워주려는 듯, 여자연습생 그 쥐꼬리만큼의 분량 중에서도 15라는 순위를 크게 표시해서 4~5컷 정도 보여 주는 편집을 했다.
         곡은 HUSH(쉿), Dangerous girl, 이 밤이 지나면 총 세곡이었으며 당수의 연습생들이 이 밤이 지나면에 몰리게 되고, 그 중 이지은도 한명. 그 곡에 총 13명이 몰린 관계로 4명을 방출해야되는 황. 이수민은 자진해서 HUSH 팀으로 가버리고, 나머지 3명을 투표를 통해 방출해 버린다. 그리고 이지은은 여기 포함되었다.
         이 밤이 지나면이 당히 랩파트가 핵심인 관계로 남아있었던 유일한 랩재원인 신류진이 전부 하게 됐는데 로우톤인 보이스와 안 어울렸다는 평. 이지은이 간 Dangerous girl의 경우 랩파트가 있지만 핵심파트가 아니었고... 이미 랩재원인 정사라와 루이가 있었으며, 방출되어 가게된 멤버 3명 모두 랩파트였다... 쥐꼬리 만한 랩 파트를 5명이 나눠하게 된다.
         이래저래 Dangerous girl의 무대에서 랩은 다양한 보이스로 풍성했지만 분량 랩 파트 모두 다 손해를 본 황. 게다가 초반 적응 문제까지 겹치며 해당 미션 8위를 하게된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좋았고, 더 이 못 본다는게 아쉽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자신이 이지은의 질투로 친구 관계를 맺기 힘들었고 이지은의 전 남친과 친구, 그리고 이지은이 자신의 집에 술을 들고와 진창 취하고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성폭행을 당한 태였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원글은 삭제된 태. 이후 페이스북 메신저, 카카오톡 스샷을 올려, 논란을 부추겼다,
         글쓴이는 언제적 친구인가. 글쓴이는 자신이 이지은의 학교 친구라고 칭하고 있으나 이가 명확하지 않다. 그 글에는 "서울로 갔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서울에 사는 사람이 이런 표현을 쓸리가 없으니 충주북여중 시절 친구라고 볼 수 있겠지만. 추가적으로 서술한 내용에는 "연습생 언니들한테 이른다"라는 표현과 같은 학교내 연습생 중 튄다라는 표현이 있다. 만일 글쓴이가 충주에서 학교를 다닌다면, 이지은의 연습생 언니인 김시현과 한국예고 황을 알리가 없으므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서비스 운자로서 익명에 각종 음해와 명예훼손이 가득한 글을 보고서, 이를 조치하는 행위는 당연한 것이며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며, 이는 법적조치 대이다.
  • 장우석 . . . . 36회 일치
         {{화인 정보
         | 직업 = [[화 감독]]
         '''장우석'''(張祐碩, [[1977년]] [[1월 9일]] ~ )<ref>[http://gs343.blog.me/106555039 "차별 · 편견 없는 세 35mm 앵글에 담아요"], 《대구신문》스크랩 내용, 2008.9.9.</ref>은 [[대한민국]]의 [[화 감독]]이다. 미디어공작소°노림(www.facebook.com/norim)에서 공작원(film maker)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4월 23일 '[[세계 책의 날]]' 문을 연, 대구 최초의 '복합문화공간 헌책방' 물레책방(www.mulae.net)<ref>[http://www.atjob.co.kr/servlet/bbs.CBbsSe?hid_seq=3481&template=t_bbs_atjob_09 "헌책방, 돌고 도는 사람 세"], 《앳잡》, 2014.4.21.</ref>의 대표이기도 하다.
         *[[대구광역시]] [[진고등학교]] 졸업
         *[[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95학번)
         [[1977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음력 [[1976년]] 11월 20일) [[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경북산업정보전문학교 웹멀티미디어과정 3기를 수료했다.
         [[2002년]] 지금은 사라진 [[독립화]]제작단체 '제7예술'을 통해 알게 된 이동린 감독([[독립화]]제작소 '네오드라마 픽처스')이 연출한 단편화 《북회귀선》(2002)에서는 녹음(보)을, 《나의 메멘토》(2003)에서는 조연출과 조연을 각각 맡았다.
         [[2003년]] 단편화 《네 골통이 어디로 가긴》을 통해 [[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다큐멘터리 《故 이재형 선생 가시는 길》(2005), 《이(異像)한 사람들》(2008) 등 몇 편의 독립화를 [[대구광역시]]에서 만들었다.
         [[2005년]] 7월 25일부터 8월 7일까지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국적포기필요없는나라만들기모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동북아평화를 위한 한일공동 일본열도 도보행진단'<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9522 "일본열도 걸으며 동북아 평화 외칠 것"], 《오마이뉴스》, 2005.7.21.</ref>과 함께 일본 오사카, 교토, 우토로, 후코야마, 히로시마 등 8개 도시를 걸으면서 동북아 평화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일련의 과정을 으로 담았다.
         [[2004년]] 대구 평화화제를 시작으로 대구 5.18화제, 앞산달빛 마을화제, [[남대학교]] 북한화제 등 여러 지역 화제에서 프로그래머를 지냈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50515.010350815480001 장우석 독립화 감독·물레책방 대표, 10월항쟁·위안부 할머니 관련 다큐 제작], 《남일보》, 2015.5.15.</ref>
         [[2013년]]부터 현재까지 대구여성화제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
         [[2003년]] 《OST-BOX》에 <화 《[[하얀 비요일]]》 OST 리뷰>를, [[2006년]] 《[[녹색평론]]》 87호(2006년 3~4월)에 <4.3 항쟁, 변방, 끝나지 않은 세월><ref>[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5922 김경률 감독 추모전 대구에서 열린다], 《제주의소리》, 2006.3.24.</ref>을 각각 기고한 이후 《[[오마이뉴스]]》, 《[[대구신문]]》, 《이삭》 등 여러 매체에 지역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으며, [[2014년]] 3월부터 현재까지 《[[남일보]]》에 [[화]]칼럼 <장우석의 電影雜感(전잡감)><ref>[http://www.yeongnam.com/ynsearch/search.jsp?searchWord=장우석의+전잡감 <장우석의 電影雜感(전잡감)> 연재 읽기], 《남일보》, 2014.3.14~현재.</ref>을 연재하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진고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효신초등학교 동문]]
  • 탐라국 여왕 . . . . 36회 일치
         [[최]] 장군과 얽혀서 전해지는 전설의 인물이며, 도 아씨당에서 숭배되는 신령이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말기에 [[탐라국]](지금의 [[제주도]])를 지배한 [[여왕]]이다.
          * 탐라국 여왕과 최의 대결은, 실제 역사에서 최이 고려말에 제주도에서 진압한 [[목호의 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기록을 보면 실제로 제주도에는 탱자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목사 조정철이 1812년 선조에게 본도의 성터에 해자를 파고 탱자나무로 둘러쌋으므로, 고려 때부터 탱자성(枳城)이라 불렸는데, 근래에 성곽이 붕괴되고 탱자나무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고한다. 1749년 비변사 등록에 보면, 강화유수 원경하가 조에게 강화도에 탱자나무를 심자면서, "고려의 최이 탐라국을 격파하지 못한 것은 그 가려진 지책(枳柵,탱자나무 목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 부산 도에서 아씨당이 세워져 숭배된 것은, 도와 제주도의 교류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부산 도의 아씨당에서 지역신으로서 숭배된다.
         충남 홍성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탐라국 여왕은 탐라국에서 최 장군과 싸운다. 탐라국 여왕은 중국 여자로 키가 팔 척이며, 힘이 장사이며, [[탱자]]나무 숲을 성처럼 두른 탱자성에 살고 있었다. 최 장군이 탐라국을 정벌하러 왔을 때, 과연 탱자나무 숲이 성과 같아서 공격할 수 없었다.
         최이 고민을 하였는데 꿈에 신령이 나타나, 억새풀 씨를 따서 연에 매달아 탱자성에 뿌려, 다음해 억새풀이 무성하게 되면 가을에 불을 질러 공격하라고 일러주었다. 또 쳐들어갈 때는 몸에 구리판을 두르고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은 신령이 일러준 대로 하여, 가을에 탱자나무 숲을 모두 불태우고 공격에 나섯다. 최은 탐라국 여왕과 대결을 벌였는데, 여왕은 괴력을 가지고 있어 쉽게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최이 목까지 구리갑옷으로 둘둘 말고 있어 여왕도 최을 죽일 수 없었고, 마침내 여왕이 지쳤을 때 최은 목을 쳐서 이겼다.
         === 도 아씨당 전설 ===
         부산 도 아씨당에 전해지는 도 아씨당 전설에 따르면, 탐라국 여왕은 본래 칠원성군(七元星君)으로 옥황제에게 벌을 받아 천에서 쫓겨나 탐라국의 여왕이 되었다.
         충남 홍성 전설과는 달리 부산 도 아씨당 전설에서는 여왕이 죽지 않고 최에게 항복하였으며, 탐라국에서 머물 때 최의 [[첩]]이 되었다. 그런데 최은 신돈의 음해에 빠져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여왕은 도로 최을 찾아갔으나 최도로 갔다는 것은 풍문에 불과하여 만나지 못했다.
         결국 여왕은 적막한 땅에서 홀로 지내다가 죽어서 혼령이 됐으며, 최을 만나지 못하고 죽은 한 때문에 도 목마장의 말을 죽이게 되었다. 도 목마장에서는 멀쩡하던 말이 도를 떠나면 나자빠져 죽게 된 것이다.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36회 일치
         == 지 유닛 ==
         ===== 야리 웅(Yari Hero) =====
         ===== 고젠의 온나부시 웅(Gozen's Hime Heroines) =====
         나기나타로 무장한 매우 적은 양의 여성 사무라이. 똑같이 나기나타 웅인 벤케이의 날보다 근접 방어가 2 떨어지지만 근접 공격이 4 높다.
          * 불화살(Flaming Arrows) - 궁도(Way of Bow) 기예 연구 요구. 짧은 시간동안 일반 화살 대신 불화살을 사용한다. 공격력이 승하며 선박이나 성문같은 나무로 된 것에 불을 붙일 수 있게된다.
          * 명적화살(Whistling Arrows) - 일반 화살 대신 소리를 내는 화살을 적의 머리 위로 쏘아날린다. 해당 화살의 향범위에 있는 부대는 피아 구분 없이 사기와 전투능력이 감소한다.
         ===== 유미 웅(Bow Hero) =====
          * 명적화살(Whistling Arrows) - 일반 화살 대신 소리를 내는 화살을 적의 머리 위로 쏘아날린다. 해당 화살의 향범위에 있는 부대는 피아 구분 없이 사기와 전투능력이 감소한다.
         카타나를 든 사무라이. 적 보병을 각 뜨는데 특화되었다. 대기병 보너스가 없으니 기병 대는 좀 힘들다.
          * 반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카타나 웅(Katana Hero) =====
         적은 양의 만렙 검사. 카타나 사무라이, 노다치 사무라이보다 매우 월등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여전히 대기병 보너스가 없으니 기병 대는 좀 힘들다.
         시마즈 가문의 카타나 웅은 다른 카타나 웅에 비해 근접전 능력, 갑옷이 높으며 유지비와 모집 비용이 싸다.
          * 반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반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 반자이!(Banzai!) - 검술 전문화(Sword Expertise) 세력 기술 연구 필요. 짧은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이동속도, 돌격 보너스, 근접 공격을 향시킨다.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패주하지 않는다.
         화승총을 사용하는 부대. 화승총은 대 부대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지만 정확도와 재장전 기술이 딸린다. 또한 직사 무기이기 때문에 앞에 시야를 가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사격할 수 없다.
         이름의 유래는 타네가시마 토키타카. 타네가시마 섬의 도주였던 그는 포르투갈 인이 소지하고 있던 화승총을 전해받아 장인들에게 복제하도록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일로 일본에 화승총이 전파되었다.
          * 은신술(Stealth): 짧은 시간 동안 시 매복 태가 된다.
         적은 양의 만렙 키쇼 닌자. 다른 웅들처럼 머릿수가 적지만 애초에 키쇼 닌자의 머릿수도 적어서 별 생각이 안 든다.
  • 허근욱 . . . . 36회 일치
         [[1930년]] [[3월 28일]]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에서 변호사 겸 독립운동가 [[허헌]]과 문화 유씨 유덕희(柳德禱, 또는 유문식(柳文植))의 딸로 태어났다. 위로는 이복 언니 2명이 있었고, 둘째 언니가 독립운동가 겸 여성운동가 허정자([[허정숙]]으로 개명)였다. 유덕희에게서는 첫 딸이었다. 그 아래로 음악가인 여동생 [[허선욱]]과 허기욱, 허욱, 허선욱 그리고 [[북조선]]에서 외교관을 역임한 [[허종욱]] 등이 태어났다.
         어머니 유덕희는 [[신천군]] 월정리의 개화인사 유태정(柳泰正)의 딸이었다. 유태정은 지주가문 출신으로, 대지주인 유동승(柳束昇)의 아들이었으며 한성에 유학하여 동양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개화사을 가진 부모의 후원으로 [[한성부]]로 경하여 신문물을 배웠으며, [[이화학당]] 재학 중에는 이화학당의 학생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으로 진학했다. 해방 후에도 계속 가족과 함께 [[경성]]에서 체류하다가 [[1948년]] [[4월]] [[이화여대]] 문학과 재학 중 [[남로당]] 당수이자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 [[허헌]], 이복 언니 [[허정숙]] 등을 따라 월북하였으며 [[평양러시아어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뒤 아버지 [[허헌]]은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의장이었고, 언니 [[허정숙]]은 북한 문화선전, 보건성부, 사법, 최고재판소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을 지냈다.
         [[1984년]] KBS 방송국 집필담당 전문위원이 되었으며, 그밖에도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협회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89년]] KBS 방송국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는 [[1992년]] [[4월]] [[남북문학교류위원회]] 위원<ref name="nambb">동아일보 1992년 4월 20일자 13면, 생활문화면</ref> [[1993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이화여자대학교]] 동창문인회 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993년]] [[서정범]] 등과 함께 펜문학을 수하였다.
         [[2017년]] [[3월 25일]] 여든 여덟 번째 생일을 사흘 앞두고 노환에 따른 지병으로 세을 떠났다.
         * 《끝나지 않은 겨울》 (남, 1982)
         * 《마지막 수채화》 (하출판사, 1997)
         * 《그대 혼을 불사르리》 (동화출판공사, 1991)
         * 《환의 벼랑에서》 (인문당, 1992)
         * 《환의 벼랑에서》 (인문당, 1992) - 자전적 에세이
         그의 작품 중에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 문학 작품들도 존재한다. 이를 두고 자신의 출신과 관련된 남한 쪽에서의 모종의 제약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데올로기나 분단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는 평도 있다. 또한 일찍이 이념과 삶의 진정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아버지 및 가족과 결별하고 월남했던 이력이 말해주듯, 누구보다 분단과 가족공동체의 회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있다는 작품평도 있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명시적이지 않지만 때때로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그리움과 때로는 분노가 표출되기도 한다. 허근욱의 초기작품의 하나이자 대표작인 자전적 소설 《내가 설 땅은 어디냐》 등에서는 남과 북 어디에서도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한 채 수난을 겪어야 했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세에 대한 분노, [[6.25 전쟁]]이 막 끝난 직후 다시는 보지 못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이념, 이데올로기를 빌미로 한 폭력성에 대한 거부감 등이 담겨 있어 이 작가의 작품 경향을 대변해 주고 있다는 평도 있다.
         * [[이화여자대학교]] 문과대학 문학과(중퇴)
         * [[1948년]] [[이화여자대학교]] 문과대학 문학과(중퇴)
         == 수 경력 ==
         * [[1976년]] 대한민국 문학
         * [[1976년]] [[6월 29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반공문학 소설 부문, 문화공보부장관
         * [[1993년]] 한국 PEN문학
         * [[1997년]] 제2회 순수문학
         * [[1998년]] 제2회 이화 문학 (이 모든 시간의 끝에)
  • 김숙자 (1389년) . . . . 35회 일치
         '''김숙자'''(金叔滋, [[1389년]] [[8월 24일]] ∼ [[1456년]] [[3월 2일]])는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자배(子培), 호는 강호(江湖)·강호산인(江湖散人)으로 불렸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ref name="김숙자">《한국민족문화대백과》,김숙자(金叔滋),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선산 출신의 도학자이자 유학자이다. 야은 [[길재]](冶隱 吉再), [[윤 (조선)|윤]](別洞 尹祥)의 문인이다.
         [[1389년]](고려 창왕 1)에 [[경도]] [[선산군|선산]] 봉리(迎鳳里)에서 태어났다. 광위(光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은유(金恩宥)이고, 아버지는 김관(金琯)이며, 어머니는 유인귀(兪仁貴)의 딸, 유씨이다.<ref name="김숙자"/>
         김숙자는 12세 때부터 [[길재]](吉再)로부터 『소학』과 경서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역학에 밝은 당시 [[조선]] 유학자 별동 윤(別洞 尹祥)이 황간현감으로 임명되어 내려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걸어가서 배움을 청하자 윤은 그 열의를 보고 『[[주역]]』의 깊은 뜻을 힘써 가르쳐주었다. 윤은 다시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생 중 한 사람인 조용(趙庸)이 [[1392년]](태조 1) [[역성혁명]]을 반대하다가 [[예천]]에 유배되어 오자, 조말생(趙末生)·배강(裵杠) 등과 함께 조용을 찾아가 그를 사사하여 문인이 되었다. 김숙자는 [[길재]] 외에도 윤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정몽주]]의 학통을 이었다. 그밖에 그는 조용, 김말 등과도 교류하였다.
         [[1414년]](태종 14) 봄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417년]](태종 17) 봄 중성균시(中成均試)에 일등으로 합격하였으나, 그 해의 회시(會試)에는 낙방하였다.<ref>佔畢齋集彝尊錄 佔畢齋集彝尊錄 (上) 子通訓大夫前善山都護府使宗直撰, 先公紀年第二</ref> [[1419년]](세종 1) [[안동]][[향시]](安東鄕試)에 제2등으로 합격하여 [[한양]]으로 경, [[1419년]](세종 1) [[과거 제도|식년 문과]]에 병과 1등으로 급제하였다. [[장사랑]] 권지[[성균관]]학유에 임명되거 고향으로 돌아왔다. [[1421년]] 봄 학유에 다시 임명되고 이듬해 [[1월]] [[한양]]으로 올라가 관직을 시작하였고, 사관(史官)에 임명되었다. 이때 전처인 한씨와 이혼하였다.<ref name="ginyon"/> 전처 한씨의 자매의 남편 김주(金宙)는 의술 재주가 있었는데, 김주는 성주목사 이선(李相善)에게 그가 [[과거 제도|과거]]에 합격한 후 아내를 출처했다고 고하였고, 이는 그대로 [[예문관]]에 보고되었다.<ref name="ginyon"/>
         [[1422년]](세종 4) [[5월]] 종사랑으로 승진, 성균관학록이 되었다. 아들 김종직에 의하면 [[1423년]] 김주가 한성으로 간 뒤, 장인 한변(韓變)을 불러서 [[사헌부]]에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사헌부]]에 소환된 그는 대질심문을 받았으며 낙직(落職)당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한다.<ref name="ginyon"/> 고령현감을 거쳐, [[1423년]](세종 5) [[7월]] 성균 직학(成均直學)이 되었을때, [[사헌부]]가 [[세종대왕]]에게 그가 자식이 있는 조강지처를 망령되이 서얼(庶孽)이라 일컬어 아무 까닭도 없이 버려 이별하였으니, 형률에 의거하면 곤장 80대를 치라는 계를 올렸다.<ref>세종실록 21권, 1423년(세종 5년, 명 락 21년) 7월 4일 임오 3번째기사, "성균 직학 김숙자를 처벌하다"</ref> [[1431년]] [[7월]] 모친 유씨가 죽어 밀양에서 분했는데, 8월 아버지도 사망하였다. 그는 할머니 김씨부인 묘소 하에 빈소를 마련하였다. 이후 3년간 복하였다. [[1433년]] 가을 복을 벗고 [[밀양]]으로 돌아왔다.<ref name="ginyon"/>
         [[1438년]](세종 20) [[10월]] 내자 주부(內資主簿)로 재직 중 서연 정자(書筵正字) 직에 겸임되었다. 이때 사간원 좌정언 이예장(李禮長)으로부터 전에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고 죄를 얻어 침체되었다가, 이제 죄를 용서 받고 다시 벼슬길이 열렸사오나 잘못을 뉘우치는 행적을 듣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ref>세종실록 83권, 1438년(세종 20년, 명 정통 3년) 10월 26일 정축 2번째기사, "음사는 본궁의 은밀한 곳에서 행하도록 하다"</ref> 이후 집현전 주부(注簿)로 있다가 [[1439년]](세종 21) [[4월]] [[이조]]에서 그를 동부 교수관(東部敎授官)으로 발령하였다. 그러나 [[사헌부]]에서 탄핵 주를 올려, 왕명으로 사유록(師儒錄)에서 삭제당하였다.<ref>세종실록 85권, 1439년(세종 21년, 명 정통 4년) 4월 14일 신묘 8번째기사, "김숙자를 사유록에서 삭제하다"</ref>
         [[1440년]](세종 22) [[선교랑]], 1441년(세종 23) [[1월]] 김해교수관 노호(盧浩)와 보직환 변경되어 [[김해]]로 내려갔다. 이듬해 2월 남부령(南部令)이 되었다가 특별히 동반직을 받아 승의교위(承義校尉)에 제수되고,중군섭부사직 겸 성균관주부(中軍攝副司直兼成均注簿),남학교수관(南學校授官)이 되었다가 그해 11월 승훈랑(承訓郞)이 되어 고령현감(高靈縣監)으로 나갔다. [[1445년]] [[2월]] 승의랑이 되었다가, 지방의 수령들의 직급을 1계급씩 강하한다는 명에 따라 강임되었다. [[1447년]](세종 29) 10월 다시 승의랑으로 환급되고, 11월에 [[성균관]]주부 겸 남학교수관, [[1448년]] [[7월]] [[교서관]]교리가 되었다가 한달만에 전제경차관(田制敬差官)에 임명되어 [[전라도]] [[남원]], [[옥과]], [[장흥]], [[순천]], [[장흥]] 등을 순시하고 그해 [[10월]]에 봉훈랑으로 승진한 뒤, 12월에 도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ginyon"/> [[1450년]](문종 즉위) [[8월 13일]] 지풍기군사(知豊基郡事)로 발령, 부임하였다.
         [[1453년]](단종 원년) [[12월]] [[사재감]]부정, 54년 2월 성균관사예(司藝)를 거쳐 8월 봉렬대부로 승진하여 성주교수관이 되어 내려왔다. 그해 12월 봉정대부(奉正大夫)로 승진, 중훈대부(中訓大夫)로 승진되었으나, [[1455년]] [[12월]] 사직하고 [[1456년]] 처가가 있는 [[밀양]]으로 내려가서 그 해 [[3월 2일]]에 [[밀양군]] 대동리 정침에서 죽었다. [[1455년]](세조 1년) [[12월 12일]] [[세조반정]]에 참여하거나 기여한 관료들을 [[좌익공신|좌익]][[원종공신]]으로 포할 때 [[좌익공신|좌익]][[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16세기에 사림에 의해 확립된 도통(道統)의 계보에서 길재의 학문을 아들 [[김종직]](金宗直)으로 하여금 잇게 하였고 [[성리학]]의 계보 중, [[정주학]](程朱學)을 발전시켰다.
         효성이 지극해 『소학』의 법도를 따라서 어버이를 모셨다. 그리고 남을 가르치기를 권태롭게 여기지 않아, 친(親喪) 중에 여막 곁에 서재를 만들어 조석을 올린 뒤에 가르치기까지 해, 학업을 받는 자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가르칠 때에는 처음에 『동몽수지(童蒙須知)』 유학자설정속편(幼學子說正俗篇)을 모두 암송시킨 다음 『소학』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효경]]』·『[[사서오경]]』·『[[자치통감]]』 및 제자백가의 순을 밟았다.『소학』을 앞세우면서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자세는 [[고려]]의 유학자 [[길재]]에게서 물려받았으며,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1646년]](인조 24) 선산의 낙봉서원(洛峯書院)에 제향되었고, [[1786년]](정조 10) 김광형(金光泂)을 소두로 하는 [[경]], [[충청]], 원춘(原春), [[경기도]] 등 4도 유생의 사액 하사 건의로 이듬해 사액이 내려졌다. [[1905년]](광무 8) 설립된 거창 남의 일원정 (一源亭)에는 아들 [[김종직]] 및 스승 [[길재]], [[정몽주]], 기타 [[김굉필]], [[정여창]] 등과 같이 배향되었다.
         [[증직|증]]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추증]]되었다가, [[1845년]](헌종 11) [[의정부]][[의정]] [[권돈인]]의 추증 및 시호 하사 건의로 [[증직|증]] [[이조판서]] 겸 좨주(吏曹判書兼祭酒)에 가증되었지만 시호는 내려지지 않았다. [[1871년]](고종 8) [[3월 16일]] 왕명으로 문강공(文康公)의 [[시호]](諡號)가 [[추증]]되었다.
         == 남사림의 발흥 ==
         김숙자는 스승 길재의 가르침에 확신했고, 그걸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김종직]]은 아버지 김숙자의 이 가르침을 평생을 두고 지켰다. 어릴 때부터 책 목록을 정해 놓고, 그 순서대로 읽는 습관을 따랐다고 한다. ‘소학’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실천 강조 학풍은 김숙자-[[김종직]]을 거쳐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반적인 것이 될 정도로 큰 설득력을 발휘했다. 뒤에 남사림파의 큰 학자로 드러난 [[김굉필]]은 스스로 ‘소학동자’라고 지칭하면서 30세까지 ‘소학’에만 천착했을 정도였다. [[길재]]에서 김숙자를 거쳐 [[김종직]]에 이르는 [[정주학]](程朱學)의 학통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길재]]는 많은 제자를 길러 냈는데, 가장 먼저 입지를 세운 이가 김숙자였다. 이후 그의 제자들이 속속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특히 세조 때부터 김숙자와 [[김종직]] 부자 등 여러 신진 사류가 과거 급제 등을 통해 중앙정치 무대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른바 ‘남사림파 ’의 등장이었다. 이후에 [[이중환]]이 ‘[[택리지]]’를 통해 “조선 인재의 반은 남에서 나왔고, 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김숙자 이후에 ‘남사림파 ’의 발흥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628.010110742170001 남사림의 기반을 구축한 김숙자(金叔滋)] 남일보(2013.06.28) 기사 참조</ref>
         * [[윤 (조선)|윤]]
         [[분류:1389년 태어남]][[분류:1456년 죽음]][[분류:고려 사람]][[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
         [[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조선의 교육자]][[분류:사가]][[분류:조선 세종]][[분류:조선 세조]][[분류:원종공신]][[분류:선산 김씨]]
  • 맥스 페인/줄거리 . . . . 35회 일치
         3년 전, 맥스 페인은 뉴욕 미드타운 북구에 근무하는 형사였다. 그는 친구인 마약단속반 요원 [[알렉스 볼더]]에게 마약단속반으로 오라는 권유를 들었지만 아내 미셸과의 사이에서 막 아이가 생긴 참이었기에 거절했다.
         맥스가 뉴저지 주에 있는 집으로 돌아 왔을때, 집의 분위기는 심치 않았다. 방에는 V자와 주사기가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가 집 안에 쳐들어온 것이었다. 맥스는 마침 집에 걸려온 전화를 받아 911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전화 건너편의 여자는 도와줄 수 없어 유감이라는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조사 결과 맥스의 가족을 죽인 자들은 제작자를 알수 없는 마약 "발키리"를 투약한 태였다. 가족의 장례식이 끝난 이후 맥스는 알렉스에게 마약단속국으로 전근하겠다고 말한다.
         로스코 거리 역에서 내린 맥스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써진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곳에는 교통경찰 하나가 죽어 널부러져 있었다. 수한 낌새를 느낀 맥스는 권총을 뽑아 든 후 수색을 계속한다. 역 안에는 정체모를 일당들이 들이닥쳐 교통경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맥스는 교통경찰관 한명을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교통경찰관은 자신을 지하철 통제실로 데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맥스는 다시 폭탄이 설치된 문으로 돌아가 문을 폭파시킨다. 그 문은 현재 사용되는 구간의 개찰구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맥스는 그곳에 있는 알렉스를 만난다. 둘은 은행 강도가 루피노의 부하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이 개찰구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던 와중, 괴한 하나가 몰래 다가와서 볼더를 쏴 죽이고는 도망간다. 맥스는 자신을 습격해오는 루피노의 부하들을 해치우며 지하철역에서 탈출한다.
         호텔에 도착한 맥스는 그 호텔을 경하는 피니토 형제에게 루피노가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피니토 형제는 맥스가 잠입 경찰이라는걸 알고 있었고, 루피노는 여기 없다고 하며 그를 공격해온다. 맥스는 황급히 벽 뒤로 숨은후 반격을 가해 피니토 형제를 쓰러뜨린다. 이후 총성을 들은 피니토 형제의 부하들이 찾아오지만 이들도 맥스에게 몰살당한다.
         피니토 형제를 죽인 맥스는 그들의 책 위에서 [[비니 고그니티]]의 편지를 발견한다. 그는 루피노의 오른팔로 일하는 찌질이었다. 편지에는 피니토 형제의 호텔에서 발키리의 판매가 이루어 질 것이며, 리코 무에르테가 이를 도와줄 것이니 그를 정말 잘 대해주라고 써져있었다. 호텔에서 발키리 판매가 이루어 진다는 뜻은, 호텔을 지키는 마피아들의 머릿수가 늘어나고, 많은 문이 잠겨 있으며, 발키리에 찌든 마약 중독자들이 호텔을 매우고 있다는 뜻이었다.
         업무용 승강기가 도착한 곳은 호텔 지하였다. 그곳에 켜져있던 TV에서는 우빙과 폭설로 인해 많은 도로가 폐쇄되었으며, 되도록이면 실내에 머무라는 조치가 내려졌다는 뉴스가 방되고 있었다. 이를 본 맥스는 싸움에 무고한 행인이 말려들 가능성이 적어졌다는걸 다행으로 여겼다.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정문은 잠겨 있었기에 맥스는 지하실로 통하는 뒷문을 통해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마피아들을 해치우며 루피노의 사무실로 올라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앙 홀에 있는 공중전화서 [[알프레드 우든]]이라는 남자의 전화를 받게 된다. 우든은 맥스에게 경찰들이 오고 있고, 맥스가 그곳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린다. 그로부터 몇분 뒤, [[짐 브라부라]] 반장이 이끄는 경찰들이 루피노의 본거지를 포위하고 SWAT을 진입시킨다. 맥스는 SWAT과 벽 하나를 놓고 대치하는 황까지 가지만 결국 경찰을 피해 2층으로 올라가는데 성공한다.
         맥스는 4층까지 올라가지만, 폭발로 인해 계단이 무너지며 더이 올라갈 수 없게 된다. 그러자 맥스는 비계단을 통해 올라가기 위해 발코니로 들어선다.
         [[블라디미르 렘]]이 터뜨린 폭탄은 위로 올라가는 비계단까지 박살내버렸다. 맥스는 옆 건물에서 잭 루피노의 본거지로 넘어가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비니의 부하들을 전부 해치우고난 맥스는 책 위에 놓여져 있던 편지를 발견한다. 그 편지는 비니가 안젤로 펀치넬로에게 쓰던 편지였다. 비니는 루피노가 미쳐가면서 부하들을 죽이고 있는 황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 마피아들의 암호는 "존 우"인데, 이는 맥스 페인에 향을 준 홍콩의 화감독 [[오우삼]]의 어 이름이다.
         지하철 지붕 위에 올라탔던 [[비니 고그니티]]는 어느 한 건물 옥으로 뛰어내렸다. 맥스 역시 비니를 쫓기 위해 뛰어내린다.
         맥스는 피니토 형제가 운하던 호텔의 보일러룸에 있었다. 앞에는 피가 묻은 방망이를 든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맥스는 카론이 정박해있는 브루클린 강가로 간다. 하역장은 이미 펀치넬로 마피아들이 장악한 황이었다. 맥스는 마피아들을 해치우며 컨테이너 사이를 누빈다. 마피아들은 기중기를 이용해 맥스를 깔아뭉개려고까지 하지만 실패한다.
         >블라드: 보드카처럼 투명하군. 하지만 힘든 황에 처하면 언제든지 부르라고. 이게 좋은 우정의 시작이 될지도 모르겠군.
         블라디미르 렘과의 거래로 엄청난 무기를 얻은 맥스였지만 안젤로 펀치넬로의 저택으로 가는건 쉽지 않았다. 펀치넬로가 자신에게 비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맥스는 공중전화를 통해 펀치넬로에게 전화를 건다. 펀치넬로는 전화를 받자 마자 죽일거라며 방방 뛰지만 맥스와 협을 하기로 한다. 둘은 펀치넬로가 운하는 레스토랑, 카사 디 안젤로에서 만나기로 한다.
          * 중간에 피아노가 나오는데, 이 피아노한테 호작용을 시도하면 맥스 페인 테마의 첫 소절이 연주된다. 피아노가 부서진 황에서는 안 된다.
         맥스는 미셸은 포옹한다. 미셸은 사무실에서 바이킹에 관한 이한 메모를 봤다고 말한다. 맥스는 미셸에게 지금은 해야할 일이 있으니 저녁에 얘기하자고 말한다. 포옹을 나누는 둘 뒤에서 또다른 맥스가 나타나 "타락천사의 살"[* The flesh of fallen angel. 작중 극중국인 주소불명(Address Unknown)에서 등장하는 분홍색 플라밍고의 대사. 잭 루피노를 비롯한 발키리 중독자들이 읊조리는 소리이기도 하다.]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 민효린 . . . . 35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온라인 옴니버스
         | 단편
         | 《[[써니 (화)|써니]]》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012년 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스물 (화)|스물]]》
         | 《[[개인주의자 지씨]]》
         | 나지
         | [[박기 (가수)|박기]]
         * 2010년 제4회 공주 신옥 청년화제 홍보대사
         * 2014년 제2회 무주산골화제 홍보대사
         == 수 및 후보 ==
         ! 시
         | 솔로부문 신인
         | [[MBC 연기대]]
         | 여자 신인
         | 제19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
         | 화부문 신인
  • 식극의 소마/224화 . . . . 35회 일치
          * 심사위원들은 미마사카가 동료를 돕느라 자신의 조리에 소홀했을까 우려하는데 그의 대 [[사이토 소메이]]는 남을 거들면서 싸울만한 대가 아니었다.
          * 사이토는 하필이면 주제가 "참치"라며 미마사카를 동정하나, 정작 그는 매우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임하고 있다.
          * 사이토가 참치 해체를 마치자 동시에 미마사카의 새로운 필살기 "미마사카 FLASH !!"가 발동한다.
          * 대의 움직임을 보다 정교, 신속하게 트레이스하는 새로운 기술. 마치 대를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그 조리와 사로를 완벽하게 복사한다.
          * 미마사카가 쿠가를 도운건 사이토가 레시피를 고안하고 조리에 들어가는 때를 기다리는 동안을 이용한 것. 따라서 미마사카의 전술 아무 관도 없다.
          * 이스트와르는 쿠가가 돼지고기에 전념한건 미마사카의 조력 덕이라고 보고 멋진 팀워크라고 평하지만, 샤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결국 미마사카는 그 시간 동안 자기 조리는 하지 못한 채 쿠가를 돕는게 매진한 셈. 자기 승부는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 건가? [[안(식극의 소마)|안]]도 동의한다. 아직도 [[사카키 료코]]의 술 때문에 헤롱헤롱하지만 해설력만은 건재. 그녀는 미마사카의 대가 십걸의 4석, 당대 최강의 스시 장인 [[사이토 소메이]]란 점을 강조한다.
          아무래도 [[요시노 유키]] 등 후배들은 사이토의 특기 분야에 대해선 몰랐던 것 같았다. 하필이면 그런 대랑 싸우는데 "참치"같은 주제를 뽑다니, 미마사카도 어지간히 운이 없다. 반역자들이 그렇게 성토 아닌 성토를 이어가고 있을 때, 사이토 또한 미마사카의 불운을 불쌍히 여겼다.
          그가 항 가지고 다녔던 거대한 칼은 참치 해체용 식칼이었다. 이제 구을 마친 사이토가 참치에 칼을 댄다.
          마침내 사이토의 솜씨가 펼쳐진다. 거대한 참치를 한 번의 기합으로 잘라나가는 사이토. 힘과 기술을 겸비한 솜씨다. 그런데 관중들이 사이토의 솜씨에 눈을 빼앗긴 사이, 어느 새 미마사카 또한 참치 손질을 하고 있다. 그 진도는 사이토와 정확하게 같다. 사이토가 미심쩍인 구석을 감지하지만 그보다는 일단 조리가 먼저다. 이번엔 작은 칼로 바꿔들고 다시 한 번 기합을 넣는데, 그때 미마사카의 눈이 번뜩인다.
          * 사이토의 조리대 맞은 편에 거울이 놓였다. 그런 것처럼 보였다.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조리를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복사한다. 사이토의 손이 멈추자 비로소 미마사카도 멈춘다. 그는 놀라운 속도와 힘으로 재료를 다듬어가는 사이토를 완벽하게 카피하고 있었다.
          미마사카의 회심의 수.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는 카메라의 스트로보(플래쉬)가 번쩍이듯 순간적으로 대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똑같은 장면을 재현한다. 복사 속도와 품질은 지금 본 대로. 이스트와르는 방금 설명으로 왜 미마사카가 쿠가의 서포트에 전력했는지 깨달았다. 이 방식을 사용한다면 조리를 구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완전히 없애는게 가능하다. 그건 사이토가 대신 해준 셈이니까. 그 남는 시간을 쿠가의 서포트에 전부 투자한 것이다.
          * 침울하기 이를 데 없던 반역자 팀의 분위기가 바뀐다. 미마사카의 새로운 필살기는 기존의 트레이스를 아득히 넘어선 기술이다.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타쿠미 알디니]] 조차 "믿음직하다"고 말할 정도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그저 감탄. 소마는 이 황을 츠카사가 쿠가와 미마사카라는 두 명의 요리사와 싸우는 거라고 요약한다.
          >당신의 승가도는 여기서 끝내겠어.
          * 당당한 쿠가의 선언. 아까까지는 쿠가를 "자기 사이드에만 머무른다"고 비판했던 츠카사지만, 이렇게 된 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신애라 . . . . 35회 일치
          | 배우자 = 당부원군[[한명회]]
         [[1989년]] [[문화방송|MBC]] 특채 탤런트로 드라마 《[[천사의 선택 (1989년 드라마)|천사의 선택]]》을 통해 데뷔하였다. 어머니는 방송작가 우미이다. [[문화방송|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 함께 출연한 [[차인표]]와 [[1995년 11월]]에 결혼하였다. [[2000년]] MBC 《[[남의 속도 모르고]]》 이후 [[2005년]] SBS 《[[불량 주부]]》로 정극 복귀했다.<ref>{{뉴스 인용
         }}</ref> 기독교 신앙 활동과 자녀 유학을 위해 [[3차 교육]]기관인 [[히즈 대학교]]에 등록하여 자녀들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건너간 태이다.
         * [[중앙대학교]] 연극화학과 학사
         * 미국 캘리포니아주 [[히즈대학교]] 기독교 교육학 [[박사]]과정 ([[히즈대학교]]는 [[캘리포니아주]] 소비자보호국에 의해 "[[3차 교육]](고등학교 이후의 교육)기관"으로서만 허가난 태. 어떤 학위 인증기관에서도 인증이나 후보 인증을 받은 적이 없다. 미국 학위 인증을 관리하는 [[:en:National_Advisory_Committee_on_Institutional_Quality_and_Integrity|National Advisory Committee on Institutional Quality and Integrity (NACIQI)]] 의 인증학교 검색시스템인 [https://ope.ed.gov/dapip/#/home Database of Accredited Postsecondary Institutions and Programs (DAPIP)] 에서 히즈대학교가 검색되지 않고 있어 [[히즈대학교]] 학위는 곧 "가짜 학위"라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 [[2011년]] [[문화방송|MBC]] 일일드라마 《[[불굴의 며느리]]》 ... 오심 역
         * [[2000년]] [[문화방송|MBC]] 청춘시트콤 《[[가문의 광 (시트콤)|가문의 광]]》 ... 애라 역
         * [[1992년]] [[서울방송|SBS]] 주말극장 《[[모래위의 욕망]]》 ... 소
         * [[1991년]] [[KBS 제2TV|KBS2]] 《[[밥을 차리는 여자]]》 ... 은수 역
         * [[1990년]] [[한국방송공사|KBS]] 《[[사랑이 꽃피는 나무]]》 ... 선 역
         === 화 ===
         * [[2009년]] 《[[작은 웅 데스페로]]》([[애니메이션]]) ... 나레이션
         * [[2006년]] 《[[아이스케키 (화)|아이스케키]]》 ... 래 엄마 역
         * [[2010년]] [[스토리온|Story on]] 《70일 두뇌계발 프로젝트 재의 비법》 MC
         * [[1995년]] [[KBS 제2FM]] 《화음악실》
         * [[1994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마리아 역
         * [[1995년]] 일리베가구
         * [[2012년]] [[대 (기업)|대]] 청정원 순창고추장
         == 수 ==
         * [[2011년]] [[MBC 연기대]] 연속극부문 최우수연기
  • 원피스/839화 . . . . 35회 일치
          * 니디는 디를 도발하나 디는 그런것 보단 음식을 깨작거리는 니디의 식탈 예절을 신경쓴다.
          * 디는 니디가 음식 귀한줄 모르는 "멍청한 왕자"라 디스하는데 열받은 니디는 요리사 코제트를 불러 접시를 집어던진다.
          * 저지는 발라티에와 제프를 그냥두지 않겠다고 협박해서 디를 얌전하게 만든다.
          * 식사 후 코제트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견되는데, 격분한 디가 니디를 찾아나서려 하자 욘디가 안내를 자청한다.
          * 그들이 향한 곳은 어렷을 땐 금지된 구역이었던 구역. 그곳에서 디는 대량으로 복제되고 있는 제르마의 병사들을 목격한다.
          * 이들이 빅맘과 연루된 이 세계정부도 그들을 적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 그러나 저지는 "그 대신 얻게 될 힘"은 절대적이라며 "제르마는 변한다"고 말한다.
          * 니디는 "설마 네가 도움이 되는 날이 올 줄이야"라며 디를 비꼰다.
          * 뜬금없이 디가 막 가출했을 때의 얘길 꺼내며 "어디서 뭘 하다 객사하면 재미있을지"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도발한다.
          * 그러나 디는 이야기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니디의 접시만 쳐다보고 있다.
          * 디는 모조리 먹으라며 "식량의 중요함과 요리에 든 수고를 모르는 멍청한 왕자"라고 독설을 날린다.
          * 디가 접시를 낚아챈다.
          * "레이디의 얼굴에 처를 남길 셈이냐"
          * 내용물이 바닥에 흘렀는데, 디는 아랑곳 않고 그 요리를 집어든다.
          * 그 요리는 "아리고"라고 하는 치즈와 감자 요리. 디는 좋은 요리고 아침부터 만들려면 큰 수고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 코제트는 자기가 치우겠다고 만류하지만 디는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먹어버리며 "맛도 완벽"이라고 호평한다.
          * 그러나 니디는 그걸 "거지 근성"이라 일축하며 디를 걷어차려 한다.
          * 킥의 위력이 대단해서 디 뒤에 있던 코제트가 풍압에 밀려 넘어질 정도.
          * 니디는 디를 "빈스모크의 수치"라 욕하고 디는 "거기에 속한게 나의 수치"라고 응수한다.
          * 디는 음식에 경의를 표하지 않는 멍청이도, 여자에게 손대는 남자도, 부하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왕족의 오만도 모두 자기 사에 반한다고 일갈한다.
          * 오히려 디야 말로 부조리라는 이치디.
  • 이정길(영화배우) . . . . 35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불교/인물]]
         {{{#FFFFFF ''' 일반이정길의 주요 수 이력 ''' }}} }}} ||||
         ||<-5><tablebordercolor=#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예술대|[[파일:백예술대_로고.png|width=100]]]]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 ||
         || '''학력''' ||<(> [[서라벌고등학교]] 졸업[br][[중앙대학교|서라벌예술대학]] 연극화과 ||
         한 때는 [[드라마]]와 [[화]] 모두를 했었지만 [[1987년]] <[[유정]]>이란 작품을 마지막으로 화는 더 이 찍지 않고 있는 황. 사실 [[2001년]] 작인 [[아이 러브 유]]란 화에 한번 출연하긴 했지만 특별출연인데다 화가 완전히 망작이라서 잊혀진 태.
         드라마에서는 지적이고 무게감있는 역을 주로 맡는 편이다. 1991 ~ 1992년간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공산당 당원으로 시작하였고 명연기로 큰 인을 남겼다. 이로써 이후 드라마에서는 큰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때문인지 2000년대 들어서는 [[이순재]]와 함께 유난히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역을 많이 맡고 있다. [[프라하의 연인]] - [[꽃보다 남자(KBS)|꽃보다 남자]] - [[아이리스(드라마)|아이리스]] - [[아테나:전쟁의 여신]] 4연타는 이미 유명. 심지어 아테나와 아이리스는 세계관까지 공유한다. 그리고 이 때문인지 [[아이리스 2]]에서는 아예 전 대통령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런 무게감있는 역 전문배우가 된 것은 1984년 MBC에서 ~~한국판 미토 코몬 시리즈를 표방한~~ '암행어사' 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면서부터이다. 이때 따르는 방자 역을 한게 [[임현식]]. 올드팬들은 오프닝 화면에 마패가 나오던 그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이 작품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이후 이정길 하면 신뢰감있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1990년대 말 [[IMF]] 당시 삼부파이낸스라는 회사가 야심차게 투자사업을 시작하며 내세운 광고모델도 이정길이었는데, 투자회사의 모델로는 적격이었다. 당시 삼부는 부동산이나 연예 매니지먼트('이미 슬픈 사랑'으로 유명한 밴드 YADA도 삼부엔터테인먼트)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벌렸으나 경진의 [[병크]]와 IMF 등 잇다른 악재로 이래저래 사업이 망했다. 이후 회사와 투자가 사이에서 이정길에게 각종 소송을 하면서 이정길의 흑역사가 되었다…] 그러나 90년대에는 3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후배 [[김원희]]와 애정연기를 하는 코믹 로맨스 드라마에도 출연했었다.
         2007년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는 지적인 [[이미지]]를 한 번 꼬아서 ~~[[별명]]은 국신사인데 속은 능구렁이인~~ [[이주완]] 과장이라는 캐릭터를 맡았다. 이후 지위가 높고 고해 보이지만, 속은 졸렬하거나 악인인 캐릭터를 맡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지위가 높고 고해보이지만, 속이 검은 악인 캐릭터는 2005년 드라마 [[부활(드라마)|부활]]에서도 보여준 적이 있다.)
         또한 [[2009년]]에는 [[KBS 2TV]]의 [[수목 드라마]]에만 [[무려]] 3편을 연속해서 출연하셨다. ~~수목 드라마를 쉬지 않고 3번이나 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당시 이정길은 [[꽃보다 남자]]에서 전직 대통령으로 출연한 직후 수목 드라마 [[파트너]]에서 이태조의 아버지이자 냉철한 로펌 대표 이진표를 맡았으며, 연이어 후속 드라마인 [[아가씨를 부탁해]]에서도 강혜나의 할아버지이자 손녀 바보인 강산그룹 회장 강만호를 맡았다. 이후 연이어 또 후속드라마 [[아이리스]]에 3차 남북정회담을 진행하려고 하며 김현준에게 도움이 되고 또한 강인한 의지를 지닌 대통령 조명호 역을 맡았다. ~~알고 보면 이정길은 수목드라마 찍는 데 6개월정도 소요하신 것 같으며, 또 2009년에 드라마 찍는데는 9개월을 소요하신 것 같다.~~ ~~여기서는 냉철한 로펌대표였고, 후속에서는 손녀 바보 재벌 회장, 또 그 다음 후속에서는 주인공에게 도움이 되는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 전문배우로도 유명해서 MBC 공화국 시리즈의 2공화국, 3공화국, 5공화국에서 김종필 역을 맡았으며 [[SBS]] 코리아 케이트에서도 김종필 역을 맡았다. --현실사에선 [[콩라인]]이나 가 드라마에선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인-- 김종필이 등장한 작품 중에서는 4작품으로 최다 출연이다. 김종필이 등장하는 작품이 8작품인데 이 중 50%를 이정길 [[본인]]이 맡은 셈.
         그리고 2015년 즈음에는 [[한진희]]와 함께 각각 두 드라마에서 절대 선, 절대 악을 맡았다. 한진희의 경우 절대 선은 [[내일도 승리]]의 [[서동천]], 절대 악은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의 [[남일호]]. 이정길의 경우에는 절대 선은 [[내 딸 금사월]]의 [[신지]], 절대 악은 [[이브의 사랑]]의 [[구인수(이브의 사랑)|구인수]].
         당한 [[골초]]라고 한다. 하지만 큰 체력을 요구하는 새 작품을 시작할 때는 일시적으로나마 [[금연]]한다고... ~~그냥 그대로 금연하세요.~~
         2018년 [[스위치 - 세을 바꿔라]] - 최정필 역
         2016년 [[언제나 봄날]] - 강덕
         2015년 [[내 딸, 금사월]] - [[신지]] 역
         2013년 [[어(드라마)|어]] - 조국 회장 역
         2012년 [[힘내요, 미스터 김!]] - [[백재]] 역
         2009년 [[꽃보다 남자(KBS)|꽃보다 남자]] - 윤석
         2006년 [[그 여자의 선택]] - 안구 역
         1991 ~ 1992년 [[여명의 눈동자]] - 좌익 진의 김기문 역
  • 정종원 . . . . 35회 일치
         |출생지 = {{국기나라|일제강점기}}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남일동]]
         '''정종원''' (1896년 5월 22일 ~ 1977년 3월12일)은 [[조흥은행]] 5대 행장이다. 동아일보 창간발기인으로 참여했고 대한아이스하키협회 4대 회장도 역임했다. 1960년 불교단체인 [[법시사]]를 창립한뒤 1990년까지 발행된 불교 전문 잡지 [[법시]]의 초대 발행인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남북도에서 공직생활을 거쳐 평안남도에서 군수를 역임했다. 그의 부친은 [[정재학]] 대구은행 - 경합동은행 행장으로 일제하 27년간 행장 직을 유지했다. 또한 그의 조카인 [[정운용]]은 해방 후 첫 조흥은행 행장으로 선임된 바 있다.
         그는 일본유학 시절 지인들이었던 [[동아일보]] 핵심경진들과의 인연으로 1920년 4월1일 창간한 동아일보 지령 1호에 창간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지면에는 그의 개명전 이름인 정충원으로 기록됐다.
         정종원은 잠시 부친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관직의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1922년부터 1941년까지 19년간 경도 일대와 평안남도에서 경찰 요직을 거쳤다. 이어 1941년부터 1943년까지 평안남도에서 성천군수, 순천군수를 역임하고 해방을 맞이했다.
         행장 퇴임 직후 6개월 동안 록펠러재단의 초대를 받아 미국 유럽 시찰에 나섰다.<ref><<법시 제1호>>,(사단법인 법시사,1967) p.3</ref> 귀국 후 사단법인 [[법시사]] 운에 최선을 다했다. 1977년 3월 12일 서울 중구 장충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4</ref>
         정종원은 구한말 경기여고와 서울 사범대 출신의 교사였던 부인 신양정(신양숙)과 슬하에 2남 4녀를 뒀다. 두 사람 다 재혼이고 전 배우자들과의 사이에 자식들이 있다. 신양정은 정종원 사후 [[법시사]] 이사장과 법시 발행인을 역임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3</ref> 장남 [[정운철]]은 하와이 최연소 부사와 일본 고베 총사를 역임했다. 정운철은 두산그룹 [[박용성]]과 동서 지간이다. 정운철과 박용성의 장인은 삼성물산 대표를 역임한 [[김선필]]이다.
         정종원은 1914~1918년 일본 유학 시절 [[송진우 (정치인)|송진우]]([[동아일보]] 3대 사장), [[최두선]] (8대 국무총리), [[장덕수]] ( 보성전문 교수, 동아일보 이사), [[신익희]](독립운동가), [[김연수 (1896년)|김연수]](경성방직 삼양사 사장), [[이광수]] (소설가) 등과 교류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5</ref> 이 같은 인맥을 바탕으로 정종원은 동아일보 경북도 지역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당시 그는 정충원이란 이름을 쓰고 있어 동아일보 1970년 4월1일 13면 창간특집기사 '동아일보 발기인 명단'에 대구지역 발기인 정충원으로 기록됐다.<ref>동아일보 1920년 4월1일 2면 하단 발기인 명부</ref><ref>동아일보 1977년 3월 14일 "본보 창간발기인 정종원 씨 별세 "</ref>
         1949년 무 승진 후 1950년에는 전무 자리에 올랐다. 1956년 10월 23일 드디어 조흥은행 5대 행장에 선임됐다. 그가 선임된 해인 1956년 3월3일 개장된 증권거래소에서 [[조흥은행]]은 종목번호 '00001'을 부여받으며 대한민국 최고령 기업이자 최초의 장사가 됐다. 명실 공히 당시 국가를 대표하는 초우량기업이었다.<ref>경향신문 1996년 11월 5일 9면 "장사 평균 30세 조흥은행 최고령-증권거래소 분석 "</ref>
         이로써 대구은행과 경합동은행에서 27년갖 은행장을 역임한 정재학은 3남 정종원, 장손 정운용을 조흥은행장으로 배출하게 됐다. 3대에 걸쳐 은행장을 낸 사례는 [[정재학]] 가문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대구은행과 경합동은행에 대한 정씨 가문의 지분은 조흥은행 출범 당시 조흥은행 주식으로 변경됐다. 정종원과 정운용은 조흥은행 대주주로 남게 됐다.
         [[조흥은행]]은 [[동일은행]] [[한성은행]]의 통합으로 1943년 출범했고 앞서 1941년 [[경합동은행]]은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된 바 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6</ref><ref>국가문화유산 포털 조흥은행 역대은행장 사진첩 제1권</ref><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ref><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창조사,1970) p.684 조흥은행 계보도</ref><ref><<대구사회비평 2003년 7~8월 통권 10호>> 문예미학사
         == 조흥은행 경권 경쟁 ==
         대구은행 설립자 정재학의 후손인 정종원(3남)과 [[정운용]](맏손자)은 1957년 무렵 조흥은행의 주도권을 두고 동일은행계의 대주주였던 조선황실 외척인 민 씨 가문과 맞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흥은행은 일제 말 동일은행과 경합동은행을 흡수한 한성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은행이다. 따라서 양대 대주주인 [[경합동은행]](전 [[대구은행]])계 정씨 집안과 동일은행계 민 씨 집안 가운데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가 관심사였다.
         정재학의 3남 정종원이 조흥은행장으로 봉직하던 1957년 3월말 실시 된 귀속주입찰에서 민 씨 가문은 [[민덕기]](조선맥주)를 중심으로 계성(주), 휘문재단, 보합명회사 및 민병도 당시 조흥은행 전무 등의 지분을 합쳐, 7만8000 주를 확보하며 4만6000 주에 그친 정종원, 정운용 가문을 압도했다. 그러나 민 씨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악화로 인해 민 씨가문은 조흥은행 주식을 팔아 긴급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민 씨 가문은 1957년 하반기부터 1958년 반기까지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가게 됐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앞서 민 씨 가문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흥은행 대표취체역(대표이사)으로 [[민규식]]을 배출한 바 있다. 일본인 행장이 따로 있었고 실권은 없는 자리였다. 이어 해방 후 초대 한국인 조흥은행장은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이 맡았고 정재학의 3남인 정종원이 5대 행장을 역임했다.
         1950년대 중반 [[정재학]] 가문과 [[민휘]] 가문의 [[조흥은행]] 최대주주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이 급부한다. 이병철은 장내 외에서 조흥은행 주식을 대량 매수하여 무려 50%를 확보한다. 그뿐 아니라 한일은행 80%, 업은행 30% 등 주요 시중은행 주식까지 대거 차지했다. 금융계를 독점하려는 재벌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ref>경향신문 1982년 7월 27일 5면 삼성총수 이병철</ref> 기타 은행 지분까지 사들이며 이병철은 전체 시중은행의 주식 50%를 확보하게 된다. 그럼에도 정종원 행장은 행장 자리를 유지했다.
         정종원은 이병철마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정계 관계에 인맥이 두터웠다. 게다가 지역 갑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이병철과 달리 정종원은 일제 강점기 내내 최고층 재벌2세로 성장한 초류층이었다. 정종원행장은 1920년 동아일보 창간발기인(총 79명)으로 참여, 언론계와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ref>동아일보 1970년 4월1일 13면 전민족세력의 집결 동아일보 발기인</ref>
         이병철은 당시 대구에서 서울 장충동1가 110번지 <ref>매일경제 1974년 9월 11일 7면 고액재산세 부과대자</ref> 로 거처를 옮겼다. 정종원 자택 인근이었다.<ref>경향신문 1981년 6월 22일 9면 경제인록 22 재벌전횡 부른 귀속주 공매</ref><ref>매일경제 1987년 11월 20일 11면 이병철 그의 생애와 경반세기</ref> 이웃이 된 이후 정종원과 이병철의 부인들은 친분이 두터워졌고 그로 인해 자손들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정종원의 막내사위인 [[장유]] KDI정책대학원 교수 (전 보스턴대 교수)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자문역을 맡으면서 삼성의 미국 진출에 기여했다.<ref>매일경제 2011년 1월 16일</ref>
         정종원은 공교롭게도 1961년 5.16군사혁명 발발 보름 전 4년 반 동안 이어온 행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후 검찰이 추진한 3.15부정선거자금에 대한 특검에서 수사 대에 올랐지만 공소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종결됐다.<ref>경향신문 1961년 3월 5일 3면 특검천하 42일 (3)</ref> 그러나 [[군사혁명]] 발발 직후 [[이병철]]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시중 은행 주식을 모두 강제 환수당했다. 이병철은 [[조흥은행]] 70%, [[한일은행]] 60%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ref>경향신문 1961년 10월 15일 1면 대주주소유 오개은에 환수통고</ref>
         정종원 행장이 5.16쿠데타 직전 은행경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른다. 박정희 정부는 은행을 정부 경제성장전략의 들러리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은행은 대출심사권을 통해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사회적 역할이 있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 은행은 그렇지 못했다. 시장은 철저히 통제됐고, 사실 제대로 된 경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ref>경향신문 1965년 3월 11일 시은경태세 대전환 필요</ref><ref>매일경제 1970년 11월 3일 3면 금융은 정화될까</ref><ref>매일경제 1979년 5월 1일 1면 관치에 밀리는 자율화</ref>
  • 조원진 . . . . 3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정치인/목록, top2=대구광역시/인물)]
         ||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br][[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분석학 석사||
         || '''병역''' ||[[육군]] [[하사]] 만기전역[* 병사출신 일반하사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280106|#]]||
         2017년 4월 11일 비대책위원회에서 경선 후보로 단독 입후보한 조원진을 대선후보로 공식 확정했다.
         [[1959년]] [[1월 7일]] [[대구광역시|대구]] 원대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종로초등학교, [[협성중학교]], [[인창고등학교(서울)]][* [[청구고등학교]]에서 전학],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분석학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초기 정치 경력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데, [[이인제]]가 이끌던 [[국민신당(대한민국)|국민신당]]에도 가담해서 대구 수성 갑 지구당위원장을 역임한 적도 있었지만, 1998년 7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신당을 탈당하고 북구 갑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처음 선거 경력을 시작했다. 이때는 4등으로 보기 좋게 낙선했고, 16대 총선에서도 다시 무소속으로 북구 갑에 출마했지만, 역시나 4등으로 낙선했다. 이때까지는 [[극우]] 성향은 아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사업을 했는데, 이때 몽골까지 진출하고 (몽골 현지 법인의 대표 역임) 세계한인무역협회의 임이사 겸 베이징회장을 지냈다.
         2008년에 열린 제18대 총선 당시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 소속으로 [[달서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유재한을 꺾고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사실 달서구 지역은 그가 두 번 출마했던 북구도 아니었고, 정치 경력도 대인 유재한이 주택금융공사 사장 출신인 반면에 두 차례의 국회의원 출마와 중국에서의 소규모 기업 경이 경력의 전부였다. 더군다나 친박연대에서 해당 지역에 송선 출마를 검토하는 바람에[* 송선은 비례대표로 옮겨가 당선되었고, 이후 남양주시 갑으로 옮겨서 현직 당협위원장인 심장수의 지역구를 빼앗아 논란이 있었다. 알다시피 송선은 이후 비리로 당에서 제명되었다.] 실제 출마 여부도 선거 등록 당일에서야 결정되는 등,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도 이 당시 선거에서 불었던 친박 바람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3선 의원이 되는 동안 내내 쭉 [[친박]]계 세력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2016년 기준 [[새누리당]]의 원내 수석 부대표 겸 국회운위원회 간사였다.
         [[2016년]] 20대 국회가 구성되면서, 같은 당 소속인 신진 의원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1년씩 나눠서 맡기로 했다. 그러나 조원진 의원이 중도에 탈당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9일]] 실시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폭로한 9명의 [[친박]]의원 모임의 일원이다. 이른바 '''친박 9인회'''. 최씨 일가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사라져 생긴 박근혜정부의 권력 공백을 2016년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날부터 이들이 메우고 지원하고 있다. [[서청원]], [[최경환(1955)|최경환]], [[윤현(정치인)|윤현]]을 축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정치인)|홍문종]], [[유기준(1959)|유기준]], 조원진이 포진하고 있다. 매일 작전회의를 하여 [[이정현(정치인)|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http://h21.hani.co.kr/arti/politics/42751.html|전해준다고 하였다.]] 정황 탄핵 정국에 혼란을 야기하였던 제3차 대국민 담화도 이들의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박사모]], [[남]] 표심을 긁어모아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려 했으나... 초유의 5자구도에서 유의미한 득표 실패'''
         [[2017년]] [[4월 8일]] 탄핵반대 집회에서 [[자유한국당]]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5&aid=0003753080|탈당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바로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에 입당하였으며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조원진의 대선출마에 대한 여론은 꽤 싸늘하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2519|심지어 극우 신문인 뉴스타운마저 조원진의 대선출마를 대차게 까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뉴스타운은 대선후보로 [[남재준]]을 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난할 수밖에 없다.] 그의 대선출마로 인해 보수진은 또 한 번의 분열을 겪을 것으로 예된다. 이미 두 갈래로 갈라져버린 황에서 자유한국당보다 더 극우인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이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국정원장인 [[남재준]] 역시 출마함에 따라 보수표도 성향에 따라 강성친박 표인 조원진과 남재준, 온건친박 표인 홍준표, 비박 또는 반박의 중도보수 표인 유승민과 이재오 이렇게 다섯 갈래로 갈려져버리는 황이 되어 버렸다.
         [[박사모|박근혜 즉각 석방]], [[박근혜 탄핵]] 주동자 심판, [[언론통제|언론에 대한 강력한 제재]], [[5.18 민주화운동/왜곡|5.18유공자 전수조사]], [[호모포비아|동성애 금지]], [[박근혜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국정교과서]] 의무화[* 그러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후 국정교과서는 사형선고를 받게됐다.], 20억 이하 재산 속세 증여세 완전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박근혜의 석방만 외쳤을 뿐 대통령직 복권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1% 안팎이다.
         선거 1주 전가량 [[바른정당]]에서 보수 단일화를 요구하며 15명의 국회의원[* 김성태, 김학용, 김우, 여규, 장제원, 이진복, 이은재, 이종구, 박성중, 홍문표, 홍일표, 권성동, 이군현, 황철, 김재경을 의미한다. 대대수가 친김무성계에 속한다.]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려 하자 '[[자유한국당]]도 탄핵 주역에 배신자이다'라 비난하며 [[홍준표]]와의 단일화 협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다 [[홍준표]] 후보 측의 [[여론조작|댓글부대]] 운용 의혹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http://m.shinmoongo.net/a.html?uid=102498|기사]]
         [[한국갤럽]]이 조사한 조원진 후보의 예 득표율은 0.3%라고 한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0&sid2=265&oid=018&aid=0003819976|#]] 1%도 못 넘은 예 득표율이지만 그나마 원외정당 후보들보단 높은 수치이다.
         개표 결과, 42,949표(0.13%)를 획득해 낙선이 확정되었다. 당초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유권자들의 대거 지지를 기대했으나 예 득표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의 탄핵 반대자들이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에게 투표했으며 보수후보의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박사모]] 등 극렬 새누리 지지자들도 일부 이탈하여 홍준표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무소속으로 나와서 지원이 불리하면서도 7위를 기록한 정치신인 김민찬(...)에게도 밀릴 뻔했다.(당장 울산과 경남, 호남, 충남, 충북, 제주, 세종에서 밀렸다.) 최종 순위는 6위]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조원진/논란)]
         자유한국당을 탈당하면서 달서 병 당협위원장직을 [[홍준표]]의 측근이자 비서실장이었던 [[강효]]에게 헌납했기 때문에[* 홍준표는 북구 을 당협위원장이 되었다가 현재 사퇴하였다.] 다음 총선에서는 낙선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달서구]] 인구가 [[2014년]]부터 감소하는 바람에 [[달서구 병]] 지역구가 [[21대 총선]]에서는 없어질 수도 있다.~~선거구 조정으로 변수가 있지만~~ [[월배]] 등 신시가지는 인구가 소폭 늘고 있지만 그의 지역구는 [[달서구]] 동북쪽 지역으로 구 시가지가 대부분이다.
         홍준표는 지역구를 반납했지만 아직도 강효이 지역구에 있으며 언론계에서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TV조선 보도본부장을 맡으며 잔뼈가 굵기라도 한 강효과는 달리 조원진은 아무 것도 없는 수준인지라 더더욱 낙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강효, 조원진, 바른미래당 후보가 셋이 보수표를 갈라먹어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달서구 병에서 당선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 새누리당 비대책위원장
  • 최남선 . . . . 35회 일치
         |웹사이트=
         [[한성부]] 출생이고 한때 [[철원군 (남)|강원도 철원]]과 [[창원시|경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중퇴와 복학을 반복하다가 1907년 [[와세다대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 사건으로 퇴학당하고 귀국했다. 1907년 [[이광수]]와 함께 [[소년]]지를 창간했으나 [[한일 합방]] 후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당했고, 1912년 [[이광수]]의 도움으로 《붉은 저고리》, 1913년《아이들 보이》,《새별》등의 잡지을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신문지법' 명령으로 모두 강제 폐간되었다. 1914년에는 잡지 《[[청춘 (잡지)|청춘]]》을 발간했으나 1918년 [[일본]]의 압력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3.1 운동]]을 사주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투옥, 1921년에 석방되었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1924년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과 총독부의 압력 등으로 폐간,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27년 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성향으로 전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적극적인 친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1950년대에 [[장준하]]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ref name="changs">[[장준하]],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 『[[사계]]』 53호, [[사계사]], 1957.12.</ref>
         육당 최남선은 [[관감]] 기사로 근무하면서 [[한약방]]을 경했던 아버지 최헌규(崔獻圭)와 어머니 진주 강씨의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대로 명문이었고 아버지 최헌규는 하급 관리였으므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으며, 1901년 3살 연의 부인 연주 현씨(玄氏)와 결혼했다. 스스로 독학으로 한글을 깨쳐 1901년(광무 5)부터 《황성신문》에 글을 투고하기도 했다.
         1907년 5월, 귀국한 뒤 한민족의 시대적 각성을 위한 신문화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인쇄 시설을 구입하여 1907년 11월 [[이광수]] 등과 함께 잡지 [[소년]]지를 창간한다. 소년지에서 그는 논설문과 새로운 형식의 자유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였고, 이광수는 계몽적인 소설을 실어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발행한 잡지 《소년》지는 근대적 종합잡지의 대표적인 잡지이며 어린이, 소년을 대으로 한 잡지 중 초기작의 하나이기도 하다. 후일 그가 소년 잡지를 창간한 11월 1일이 잡지의 날로 정해지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 그는 [[조선]]의 귀중한 옛 책들을 다시 간행하였으며, 민족 문화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국가적인 사업을 일으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설립해 조선고서를 [[한글]]로 번역, 발간하였고, 20여 종의 육전소설(六錢小說)을 발간했다. 한편 그는 조선광문회를 통해 [[조선어]] 사전 편찬 계획을 세우고 구했었다. 조선어 사전 편찬계획 세우는 그 과정에서 당시 《[[동국통감]]》, 《[[열하일기]]》 등을 비롯한 20여 종의 고전이 간행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 〈[[기미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체포되어 2년 8개월형을 받아 복역한 뒤 1921년 10월 18일에 가출옥하였다. 그 뒤 변절하였다는 설이 있다. 가출옥 사유는 “청년들을 규합하는 데 대단히 좋은 향이 있을 것”이었다. 총독부는 [[조선은행]] 총재 미노베(美濃部俊吉)에게 잡지 《[[동명]]》의 발행 자금을 지원토록 주선하였으며, 그 이유를 최남선의 출판물이 “조선의 사계의 악화를 구하고, 또 [[진학문]](秦學文)·[[이광수]] 등의 생계비 출처로 삼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가출옥 후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창립했다. 같은 해 9월 주간지 '동명'을 창간해 [[1923년]] 6월까지 발행했다. [[1925년]]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활동에 참여했고, 동시에 《[[동아일보]]》에 사설을 쓰는 한편, 1926년 옛 백제 토 방문기 '심춘순례'를 근대 최초의 창작 시조집 '백팔번뇌'를 출간했다. 이어 〈[[단군론]]〉(1926년), 〈[[불함문화론]]〉(1928년)을 발표하였는데, 특히 〈불함문화론〉에서 그는 동방 문화의 근원지를 단군 신화의 무대인 백두산이라고 주장하였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국사 연구에 전념하여 《조선역사통속강화》를 연재했다. 1924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도 부족하였고, 신문의 반일적인 논조로 [[조선총독부]]의 압력을 받아 경난에 처하자 곧 사임하였다.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이 되어 사설과 칼럼을 발표하였다.
         1938년 《[[만몽일보]]사 (滿蒙日報社)》 고문과 일본 관동군이 만주에 세운 [[건국대학]](建國大學)의 한국사, 한국학 교수직에 임명되어 교수로 부임해 1943년 2월까지 역임했다. 1940년에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 무장 세력을 대로 귀순 및 투항공작을 전개한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東南地區特別工作後援會) 고문으로 활동했다.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매일신보를 비롯해 경성일보등에 학도병 권유 유세문을 기고했고, 각종 시국강연에 나서면서 활동했다.
         [[장준하]]는 [[사계]]지 1957년 12월호에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에서 그의 친일 협력이 본심은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한때 선생의 지조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의 본의가 어디까지나 이 민족의 운명과 이 나라 문화의 소장에 있었음은 오늘날 이미 사실로서 밝혀진 바요, 항간에 떠도는 요동부녀(妖童浮女)들의 억설과는 전면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ref name="changs"/>'라는 것이다. 그의 협력은 어쩔수 없는 것으로 '본의가 어디까지나 이 민족의 운명과 이 나라 문화의 소장에 있었음은 오늘날 이미 사실로서 밝혀진 바<ref name="changs"/>'라는 것이며, 그가 악의를 품고 친일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장준하]]는 '요동부녀(妖童浮女)들의 억설'이라며 일축하였다.
         이어 [[장준하]]는 '사람을 사赦하는 법이 없고 인재를 자기 눈동자와 같이 아낄 줄 모르고 사물을 널리 생각하지 못하는 옳지 못한 풍조 때문에 우리는 해방된 후에도 선생에게 광을 돌린 일이 없고 그 노고를 치하한 일도 없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욕된 일이 적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실로 온 민족의 이름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ref name="changs"/>'라며 그를 친일파라고 비판하는 것을 비난 하였다.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는 1943년 11월 24일 [[일본]] [[도쿄]] [[메이지 대학]]에서 조선인 전문·대학생들에게 학병에 지원하라는 강연을 했다.<ref name="daedams">[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03/2007030300046.html “화랑 사 지금 부활해도 좋을듯…”] 조선일보 2007.03.03</ref> 당시 [[도쿄]]에서 발행된 잡지 ‘조선화보’(1944년 1월호)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사회로 진행된 육당과 춘원의 대담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 대담에서 춘원은 강연회에 대해 “일종의 극적 광경이라고나 할까. 황국을 위해 전장에 나가 죽자는 생각이 모두의 얼굴에 드러났더군요”라며 “그때의 압권은 최(남선) 선생님의 강연이 아니었을까요”라고 말했다. 육당은 “적어도 천오백 명은 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며 “일찍이 없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지요”라고 화답했다.<ref name="daedams"/>
         최남선은 “어떤 학자는 ‘(일본)무사도의 연원은 신라의 화랑이 그 토대였다’라는 것을 생각할 정도”라며 한일 양국 공통의 무(尙武) 정신을 역설했고, 이에 [[이광수]]는 “저 ‘화랑’의 사이란 오늘날 막 바로 부활시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며 동조했다.<ref name="daedams"/>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경성부]] 우이동(牛耳洞)에 은거, 외부 출입을 삼가고 역사논문 집필에 전념하였다. 그해 9월 [[한민당]]의 입 제의를 사양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 그는 '민족개량주의로 흘러가 친일파로 변절했다.'는 것 때문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비난을 받았다.
         1949년 1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곧 바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투옥되었으나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5월에 공판을 받았다. 수감 중에 그는 자신은 민족을 위해서, 나의 연구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 협력하였다고 항변하였으며, 특별재판부에 참회의 뜻을 담은 '자열서'(自列書)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를 기소한 [[반민특위]]는 [[친일파]] 출신 정치인들이 친일 인사들을 정치적 목적에서 감싸면서 탄압받았고 1949년 2월 병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석방, 그의 친일행각은 사실 처벌되지 않았다.
         *사후 [[장준하]] 등은 추도사를 통해 그가 자의에 의해 친일하지 않았다며 그를 '우리의가장 친근한 벗이요 경애하는 스승'이라며 그의 업적을 치하하였다. [[장준하]]는 그가 죽자 장례식과 빈소를 방문하였고, [[사계]]지 1957년 12월호에 <육당 최남선 선생을 애도함>이라는 추도사를 실어 그의 업적과 공적을 추모하였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교육, 학술 분야에 수록되었으며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장준하]]는 '그를 경애하는 스승이며 민족 사 고취를 위해 노력했다'고 하였다.<ref name="changs"/> 장준하는 '선생은 약관 18세에 이미 궤란을 기도에서 구하려는 큰 뜻을 품고 우선 민족의 명원히 부지하려는 원대한 의도 밑에 문화의 황무지를 개척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이래 종시일관하여 68세를 일기로 세을 떠날 때까지 민족의 재흥을 위하여 발분망식하였다. 선생이 우리 역사학에 전심하여 마침내 사학의 태두로 일세의 숭앙을 받기까지에 이른 근본 연유도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f name="changs"/>'라며 그가 한국 역사학 연구에 끼친 공로를 높이 평가하였다.
         [[장준하]]는 이어 '그뿐 아니라 선생은 아탑의 일개 학구로 그치지 않고 실實에 즉하고 의義에 나아가 항 민족사의 고취에 힘썼고 3.1혁명에 가담하여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이어서 장시일의 옥고를 치른 후에도 한 길을 더듬어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육당 선생은 이 민족이 가장 암담한 절망의 골짜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항 우리와 더불어 있었고 우리의 가장 친근한 벗이요 경애하는 스승이었다. 그러 하여 민족의 생명은 싹을 부지하고 겨레는 위안을 받고 희망을 갖추어 광복에 이른 것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ref name="changs"/>'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 Victoria II/개혁 . . . . 34회 일치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s-2.1|나폴레옹 이후 사]] 연구 획득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해군#s-2.1|넬슨 이후 사]] 연구 획득
          * 토지 개혁: 토지권을 재분배해 농업과 광업의 효율을 승시킨다.
          * 빈민층 일 욕구 -5%
          * 중산층 일 욕구 -5%
          * 부유층 일 욕구 -5%
          * 빈민층 일 욕구 -10%
          * 중산층 일 욕구 -10%
          * 부유층 일 욕구 -10%
          * 빈민층 일 욕구 -15%
          * 중산층 일 욕구 -15%
          * 부유층 일 욕구 -15%
          * 빈민층 일 욕구 -20%
          * 중산층 일 욕구 -20%
          * 부유층 일 욕구 -20%
          *
          * 여당만 가능: 여당 의원들만이 원에 들어올 수 있게 한다.
          * 여당이 원을 구성함.
          * 임명제: 부유층인 귀족과 자본가들이 원의원이 된다.
          * 부유층이 원을 구성함.
  • 김연수(작가) . . . . 34회 일치
          * 위 문서: [[작가/목록]]
         ||||||||||||||<bgcolor=#00c000><:> '''{{{#white 제34회 [[동인문학]] 수 }}}''' ||
         ||<:> [[성석제]][br]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br](2002) || → ||<:> '''김연수[br]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br](2003)''' || → ||<:> [[김하]][br]검은 꽃[br](2004) ||
         ||||||||||||||<bgcolor=#ff8080><:> '''{{{#white 제33회 [[이문학]] 수 }}}''' ||
         ||||||||||||||<#FF5E00><:>'''{{{#white 제7회 [[황순원문학]] 수 }}}'''||
         ||<:>[[구효서]][br]명두[br](2006) || → ||<:>'''김연수[br]달로 간 코미디언[br](2007)'''|| → ||<:>수작 없음(2008)[* 본심에 오른 작품 중 수할 만한 작품 없음. 독자의 반응을 의식한 편향성이 명확하며 완성도가 수에 부합할 수준에 못 미침.] ||
         [[대한민국]]의 [[작가]]. 1970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문학과]] [[졸업]].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 <강화에 대하여> 외 4편이 당선되면서 등단했으며,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문학을 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도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왔다'고 할 만큼 왕성하게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수 경력도 화려하며, 내놓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김훈(소설가)|김훈]], [[박민규]]와 더불어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 중 한 명이며 중학교 동창인 [[문태준]], [[김중혁]]과 함께 김천 3인방이라고도 불리며, 21세기의 블루칩이라는 말 또한 들어왔다.
          * 꾿빠이, 이 (2001)
          * 사랑이라니, 선아 (2003)
          * 세계의 끝 여자친구 (2009)[* [[일본]]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world's end girlfriend]]에 감을 받아 쓰여진 소설집. 실제로도 팬이라고 한다.]
          * 우리가 보낸 순간 - 시 / 소설 (2010)[* 김연수 본인이 감명깊게 읽었던 시와 소설들을 소개하고 짧은 단들을 적어놓은 책이다.]
          * 소설가의 산책 (2014) [* 산문집 <소설가의 일>의 예약 구매 부록으로 첨부된 부록으로 2000년 독서잡지 <책과 인생>에 '책갈피 사이를 걷는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글들을 모아놓은 산문집이다.]
         초기 작품에서는 젊은 날의 실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혹은 <꾿빠이, 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밤은 노래한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장치를 첨가하기도 한다. 굉장히 유려한 문장이 특징이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렵다며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반대로 독자들의 허심을 채워주는 역할로도 작용한다. 사람의 심리를 잘 파고드는 문장을 구사하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외국어로 번역하기 편한 글을 구사한다고 하며, 동시에 번역투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사실 내용도 소설을 가볍게 읽는 사람들이 읽기엔 지나치게 현학적인 데가 있다. 김연수는 문학적 허세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며, 작가가 오히려 풍부한 독서를 바탕으로 문학 측면에서 어렵게 씀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많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산문집을 읽어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애독자인 듯 하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원더보이>에서는 청년과 중년 여성의 섹스, 가족이나 연인의 자살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 밤낮없이 길을 걸으며 방황하는 주인공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향을 받은 듯한 소재가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 작품 모두 격동의 시대를 살며 방황하는 청춘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자살과 섹스, 목적지 없는 도보 여행 등 '방황하는 청춘'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 [[달리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여러 인터뷰에서 달리기 예찬론을 펼친 바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향을 받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 [[홍수]] [[감독]]의 [[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잘 나가는 화 감독 역할. [[홍수]] 감독을 예술가로서 존경한다고 밝힌바 있다. 정작 주변에서는 [[홍수]]감독 화에 나오는 남자가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 왜 나갔냐며 핀잔을 줬다고 한다.
  • 원피스/850화 . . . . 34회 일치
          * [[디]]는 [[샬롯 푸딩]]을 위한 요리를 완성. 디는 그녀야말로 "이 세의 한 줄기의 빛"이라 칭송하며 그녀를 찾는다.
          * 디는 푸딩의 방을 찾지만 살아있는 문에게 방해받아 만나지 못한다.
          * 푸딩의 모든 행동은 연기에 지나지 않았으며 잔혹한 얼굴로 디를 비웃고 있는데.
          * 스위트 시티에선 거울 속에서 유령이 나타나는 괴현이 발생해 시민들을 놀래킨다. 유령의 정체는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 [[몽키 D. 루피]] 일행을 찾아 미러월드의 거울들을 둘러보고 있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 [[디]]는 자신의 방에서 [[샬롯 푸딩]]을 위한 요리를 마친다. 평소 습관대로 너무 많이 만들어 버렸는데, 푸딩의 식사량을 생각해서 덜어내려다 "내가 다 못 먹겠으니 디씨가 먹어줘 아앙"같은 패턴을 망하며 역시 전부 가져가기로 한다.
          >그래. 이 세에 '''단 한 줄기 뿐인 빛'''에 치유를 받으러.
          디는 지난 번에 만든 꽃다발과 도시락을 챙겨 푸딩의 방으로 향한다.
          >누군가 구해주지 않을까 생각만하는 사이에 모든걸 잃고
          * 안뜰. [[타마고 남작]]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를 직접 대하고 있다. 둘의 일기토를 부하들이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페드로는 격전 중에 과거를 떠올린다. 그때 타마고 남작이 "이번엔 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 디는 푸딩의 방 앞에서 살아있는 "문"과 옥신각신한다. 문은 푸딩은 바쁘다며 디가 아무리 사정해도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생각다 못한 디는 베란다 쪽에서 창문으로 살짝 들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베란다에 가보니 웃는 푸딩의 목소리가 들린다. 디는 처음엔 웃을 정도로 기운을 회복했다고 생각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뭔가 이하다.
          그녀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데, 그 대는 디의 누나 [[빈스모크 레이쥬]]였다. 레이쥬는 분명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태였는데.
          * 그리고 레이쥬 앞에 선 푸딩의 얼굴을 본 디는 눈을 의심한다.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이마엔 본적도 없는 제 3의 눈이 나타나있다. 게다가 디가 알던 푸딩에게선 도 할 수 없는 야비한 표정이 보이는데.
          도 할 수 없었던 푸딩의 돌변. 디가 엿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푸딩은 자신이 빅맘의 "금지옥엽"이며 특히 "연기력"을 아껴준다고 떠들어댄다. 빅맘은 지겨울 정도로 그녀를 돌봐주고 있고 그녀의 부탁으로 남자를 속이는 것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밀집모자 일행도 속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본성은 "가족들" 밖에 모른다고 하는데, 아마 간부들 중에서도 그녀의 본성을 아는건 일부인 듯하다.
          연기를 끝낸 그녀는 세 번째 눈을 번뜩이며, 루피와 나미를 조롱해댄다. 루피는 그녀가 처음부터 그들을 속일 생각이었음을 깨닫고 대체 디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 이런 짓을 하느냐고 소리친다.
         >공 속 세계에서나 살아가라고 떨거지들아.
          * 레이쥬는 쇼파에 묶여 있는 채로 폭언을 듣고 있다. 잠자코 있는 듯 하지만 그녀가 앉은 자리에서 뭔가 흘러내리는 듯 한데? 눈치채지 못한 푸딩은 빅맘이 제르마의 "클론병단"과 "과학력"을 노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빈스모크 일가와 손잡을 생각은 없었는데 그들은 반항적이라 도저히 말을 듣게 할 수 없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현재 제르마는 그 토를 포함해 "모든 것"이 빅맘의 역에 들어와 있다. 푸딩은 이들을 "정략결혼이란 달디단 과자에 꼬여든 파리"라고 빈정거린다.
          이것 또한 빅맘의 계획대로. 푸딩은 내일 결혼식에서 이들 전부를 "몰살"할 거라고 선언한다. 비에 젖은 채 그 모든 것을 듣고 있는 디.
         이번화에서 페드로와 타마고 남작의 정확한 현금이 공개됐다. 페드로는 3억 8700베리. 타마고남작은 4억 2900만 베리. 타마고 남작은 정확한 직함도 공개. "빅맘 해적단 '''나이트''' 전투원".
  • 원피스/864화 . . . . 34회 일치
          * [[샬롯 푸딩]]은 [[디]]를 여러번 쏘면서 "항 이런 식으로 남들을 속여왔다"고 외치는데 디가 "자기 자신도 말이야?"라고 지적하자 크게 동요한다.
          * 샬롯가의 3남 [[샬롯 다이후쿠]]가 푸딩을 쓸데없다고 까면서 난입. 그는 따끈따끈 열매를 먹은 램프 인간. 밸트를 문지르자 "램프의 요정"이 나와 디와 대치.
          * [[카포네 갱 벳지]]는 입장 [[몽키 D. 루피]]를 생포한 척 하지만 작전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자 초조해진다.
          * 그러나 [[샬롯 카타쿠리]]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걸 보고 "빅맘 진에 크게 불리해지는 예지"를 본 걸로 짐작, 더이 숨기지 않고 반역을 일으킨다.
          * [[징베]]가 빅맘 [[샬롯 링링]]과 결별. 멋진 결별선언이었으나 심사가 뒤틀린 빅맘은 "이 시간부터는 적"이란 명목으로 징베를 공격한다. 그러는 사이 루피 모습의 허수아비로 변장한 [[브룩]]은 조용히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든 액자로 접근, 망치를 휘둘러 깨끗하게 액자를 박살내 버린다.
          빅맘은 누군가가 "저걸 봐!"라고 경악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사진에 생긴 이변을 깨닫는다. [[카포네 갱 벳지]]의 예대로 그녀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간다. [[몽키 D.루피]]와 징베, 벳지는 작전이 성공했다고 확신하며 앞으로 3초 후 터질 괴성만을 기다린다.
          빅맘은 패닉을 일으키지 일보직전. 벳지와 부하들은 빅맘이 괴성을 지르며 무너지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빅맘 해적단은 "그날"의 재림이라며 그녀가 패닉을 일으키기 전에 황을 정리해야한다고 서두른다. [[샬롯 카타쿠리]]는 "아뿔싸!"라고 내뱉으며 완전히 낭패한 얼굴이다. [[빈스모크 저지]]는 이들이 [[디]]를 탈환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터무니없는 방해하고 분노한다.
          빅맘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왠지 그렇게 되지 않은 채로 황이 격화된다.
          * 그리고 또다시 울리는 총성. 이번엔 [[샬롯 푸딩]]이 쏜 것이 맞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더니 디를 대로 난사한다. 하지만 그의 견문색 패기 때문에 맞추지 못한다.
          디는 묵묵히 총알을 피하며 그녀의 말에 대꾸한다.
          * 샬롯가의 3남 [[샬롯 다이후쿠]]는 "쓸모 없는 동생"을 더이 못 보겠는지 푸딩이 휩쓸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공격을 가한다. 그는 "따끈따끈 열매"를 먹은 "램프인간"이다. 밸트를 문지르자 램프의 마인이 나타나 싸운다. 그가 개입하자 푸딩은 자신이 할 테니 기다리라고 하지만 다이후쿠는 푸딩을 쓸모없다고 매도하며 이미 기회는 지나갔고 그녀에겐 무리라면서 내동댕이쳐버린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하객들은 막연히 "밀집모자 일당이 신랑을 탈환하러 왔다"고 여기긴 하나 워낙 이하게 돌아가는지라 혼란스러워 한다. 디는 다이후쿠와 맞서 싸우지만 램프의 거인이 날린 "마인참"에 맞고 나가 떨어진다.
          * 혼란에 빠진 다과회장. 빅맘 해적단이 태세를 정비하지 못한 사이, 벳지는 루피를 생포한 척 연기한다. 일단은 자신이 경비 책임자이기 때문에 손놓고 있으면 수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가 루피를 사로잡았다고 외치자 누군가 "죽여버려!"라고 받아친다. 루피는 벳지의 처사에 반발하지만 그는 황이 좋지 않다며 손발을 맞춰줄 것을 요구한다.
          * 당초 벳지는 사진이 깨지고 괴성이 터지기까지 3초가 걸릴 거라 내다봤다. 그러나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징베는 최대한 버티고 있지만 중과부적으로 밀리고 있다. 그때 [[페드로(원피스)|페드로]]가 어떤 사내와 싸우려는 걸 발견하고 "그녀석의 공격을 직접 받아내지 말아라!"고 소리쳐 경고한다. 하지만 경고가 늦어서 페드로는 대의 공격을 검으로 받아낸다. 그러자 검이 뜨겁게 달아올라 칼을 놓친다.
          방금 페드로를 공격한 자는 샬롯가의 4남 "노릇노릇 대신" [[샬롯 오븐]]. "열열 열매"를 먹은 "고열 인간"이다. 자기 몸에 닿는 것을 가열하는 능력. 접근전을 벌이는 페드로와 성이 좋지 않다. 페드로는 기억에 없는 인물이지만, 저쪽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페드로가 [[페콤즈]]의 형이며 과거 빅맘에게 눈과 수명을 잃었던 남자라고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런 페드로가 얼마 남지 않은 수명으로 여기에 왔다는건, 각오를 했다는 얘길 거라며 그를 불태워 죽여주겠다 엄포를 놓는다.
          [[나미(원피스)|나미]], [[캐럿(원피스)|캐럿]], [[쵸파]]는 아직도 케이크 안에 숨어서 바깥 동향을 살피는 중. 역시 약속했던 3초가 훌쩍 지나 불안해한다. 브룩은 난전통에 목이 잘려서 머리가 루피 근처로 굴러온다. 하지만 이것도 연기. 애초에 브룩은 목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관없는 몸이다.
          * 그땐 혼란한 다과회장을 "살려줘"란 다급한 목소리가 뒤흔든다. 루피는 그 목소리를 듣고 벳지의 "연기"를 뿌리치고 달려가려 하고 디는 "얘기가 다르다!"고 분개한다. 어느틈에 샬롯가의 형제들이 빈스모크 일가를 둘러싸고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제야 암살계획을 알아차린 [[빈스모크 저지]]가 빅맘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그는 "악의 세계에도 인의는 있다"는 말을 하는데 누구하나 수긍하지 않는다. 그의 자식들 조차도. 빈스모크가의 형제들은 자기들도 머리에 총알을 박을 판인데 오히려 냉소한다. [[빈스모크 이치디]]는 아버지를 "꼴사납다"고 비웃으며 어차피 이제 살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 [[샬롯 페로스페로]]가 사탕으로 그들의 몸을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빈스모크 욘디]]는 무기도 레이드 슈츠도 지금은 없다고 내뱉고 [[빈스모크 니디]]는 "완전히 함정에 빠졌다 하하하"라고, 게임에 진 정도의 반응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지는 자식들의 냉담한 태도에 "제정신이긴 하냐"고 대꾸하지만 [[빈스모크 레이쥬]]는 그것도 자업자득이라 여긴다. 그들을 감정없는 기계로 기른 것은 저지 자신이다. 설사 가족이나 자기 자신이 죽더라도 무감정할 수밖에 없다.
          * 가족들이 저렇다면 적들은 말할 것도 없다. 샬롯가의 인간들은 철저하게 패배한 빈스모크가의 인간들을 비웃고 조롱한다. 페로스페로도 "꼴사나운 암살"이라며 빈정거리는데,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걸을 목격한다. 가족들이 총에 겨눠진 걸 보던 디 또한 그걸 목격한다. 사건을 속속들이 놓치지 않던 모간즈도 진귀한 장면을 발견하고 "특종"이라 외친다. 저지가 비참한 나머지 울음을 터뜨린 장면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노스 블루의 나라들에 복수하기 위해 바쳐왔다고 하소연한다. 하객들은 대놓고 그를 빈정거리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는 암살 주모자 빅맘에게 "무슨 말이든 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그가 호소하는 빅맘은 웨딩케이크의 붕괴, 망쳐진 결혼식, 밀집모자 일당, 그리고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깨진 것 등등.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 뇌가 정지하다시피했다. 페르스페로가 이런 빅맘의 태를 전하며 대신 대답한다.
          * 벳지가 말한 "좋지 않은 황"이란게 바로 이것이었다. 빅맘은 쇼크가 너무 겹치고 겹친 나머지 대혼란황. 패닉을 일으킬 정신 조차 없는 것이다. 브룩은 빅맘의 태가 저러니 "깨어진 사진을 다시 보여주자"고 제안한다. 벳지는 이제와서 효과가 있을지 미심쩍어하다가, 마침 [[샬롯 카타쿠리]]가 접근하는걸 발견하더니 대번에 태도를 바꿔서 "작전은 성공할 거다"고 확신한다. 지금 카타쿠리는 새파랗게 질린 낯짝이다. 벳지는 그가 그런 표정을 짓을 경우는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이종혁 (배우) . . . . 34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http://www.gngpro.co.kr/management_02.php?ReturnID=32 이종혁 공식 사이트]
         1993년 연극배우 첫 데뷔한 그는 이후 1998년 화 《[[쉬리 (화)|쉬리]]》로 데뷔하였고 2004년 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이름이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종혁, '엄마의 공책: 기억의 레시피'로 스크린 복귀|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864179|출판사 = 헤럴드POP |저자 = |날짜 = 2016년 11월 8일|확인날짜 = }}</ref> [[2002년]] [[6월 4일]] 최은애와 결혼식을 올려 장남 이탁수([[2003년]] 출생), 차남 이준수([[2007년]] 출생) 두 아들을 두었다. 2013년 MBC 예능프로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여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국민 아빠'로 불리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엄마의 공책'..이종혁, 철부지 아들로 변신 |url = 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09&aid=0003723802|출판사 = OSEN |저자 = |날짜 = 2018년 2월 22일|확인날짜 = }}</ref>
         === 화 ===
         * [[1999년]] 《[[쉬리 (화)|쉬리]]》 - 북한 제8군단 특수요원 역
         * [[2006년]] 《[[비열한 거리 (2006년 화)|비열한 거리]]》 - 화 속 건달 주인공 역
         * [[2014년]] 《[[황구 (화)|황구]]》 - 해설위원 역
         * [[2018년]] 《[[여중생A (화)|여중생A]]》 - 선생님 역
         * [[2018년]] 《두번 할까요?》 - 안철 역
         * [[2008년]] [[MBC 에브리원]] TV드라마 《[[별순검 시즌2]]》 - 진무
         * [[2009년]] [[SBS]] 미니시리즈 《[[천사의 유혹]]》 - 정모 역 (특별출연)
         * [[2010년]] [[KBS2]] 미니시리즈 《[[도망자 플랜 B]]》 - 사실 통역사, 황철호 역 (특별출연)
         * [[2011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덕우먼스 씨름단》 - 박주 (박복구) 역
         * [[2018년]] [[MBN]] 수요드라마 《[[연남동 539]]》 ... 봉태 역
         * [[2011년]] 《[[미녀는 괴로워 (뮤지컬)|미녀는 괴로워]]》 - 한준 역
         * [[2007년]] [[KBS2]] 《[[플러스]]》 - 160회
         == 수 ==
         * [[2001년]] 서울공연예술제 신인
         * [[2010년]] [[KBS 연기대]] 연속극부문 남자 우수연기 《[[결혼해주세요]]》,《[[추노]]》
         * 2012년 헤럴드 동아TV 라이프스타일 어워드 베스트드레서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블랙리스트 . . . . 34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블랙리스트]],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인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 '''셸리 호 샨진(Shelly Ho Shanjin, 何善津) / 사기 등'''[* 성인 何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하'로 발음하므로 표기는 He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설정 홍콩 출신에 광동어 사용자이므로 발음은 Ho라고 한다.]
          같은 동포인 중국인, 주로 홍콩인을 대로 사기를 치는 홍콩계 호스트. 미국의 류층에 대해 환을 품은 홍콩인들에게 중고급 사교계 클럽을 소개한 뒤, 거기에 어울리려면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이것저것을 거액에 팔아먹고 돈까지 빌려준다. 물론 그 빚을 갚지 못한 자들은 가차없이 미국의 나이트클럽이나 '말할 수 없는 곳'에 팔아버린다.
          결국 그 행각을 보다못한 누군가가 그를 제거해 줄 것을 [[창작:제러마이어 쿨리지|제러마이어 쿨리지]]를 통해[* 입장 의뢰인의 이름은 얘기해주지 않고 '미스터 탱(Mr. Tang, 唐氏)'이라고만 한다.] 주인공 일행에게 청부한다.
          자신의 패거리와 함께 촙 샵(chop shop)[* 자동차를 훔쳐 부품만 팔아먹는 범죄 사업 혹은 장소.]을 운하는 정비공. 동시에 불법 레이서로도 활동하고 있다. [[창작:아멜리아 디아즈|아멜리아 디아즈]]와 성씨가 같지만 친척은 아니다. 자동차 절도 위주로 활동했으나 소득이 잘 나지 않자 비비아나가 장악하고 있던 마약 배달업에 서서히 손을 뻗치고 있다. 패거리의 징색은 {{{#F6EABE 레몬 머랭(Lemon Meringue)}}}.
          정비공 겸 불법 레이서. 디아즈와 비슷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동족혐오 심리가 발동하여 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장악하고 있던 마약 배달업에 디아즈 패거리가 기어들어오는 황이라 가만히 봐줄 수가 없다고. 패거리의 징색은 {{{#59260B 실 브라운(Seal Brown)}}}.
          남미계 마약 카르텔의 경호원 겸 킬러. 서글서글한 인과 민머리가 인적이며 고용주든 부하든 가리지 않고 즐겁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메이커. 그래서 오히려 총잡이보다 외교관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나오는 모양. 실제로 운반책을 겸하고 있다.
          낮에는 해양생물학자, 밤에는 마약. 연구를 핑계로 세계 곳곳에서 마약을 들여온다. 환경을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에코파시스트이기도 하지만, 이는 마약 사업을 숨기기 위한 위장에 불과하다. 주무대인 바다가 지구의 모든 대륙과 맞닿아 있다 보니 활동 역도 매우 넓다. [[창작:NESTS|북극해 연안에서 활동하는 모 조직]]과도 연줄이 닿은 모양.
          모든 아가씨들의 남자를 자처하는 한국계 제비족 청년. 어학연수나 여행 때문에 왔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다가, 이런저런 함정에 몰아넣고는 돈만 먹고 튄다. 그리고 그 돈은 다른 아가씨들과의 파티에 날려버리는 악질. 반대로 미국에 너무 오래 머무르거나 이런저런 문제로 곤란해하는 한국인들에게 마약을 팔아먹기까지 하고 있다. 그렇게 인면수심의 짓거리를 하고선, 자기 이름을 단 어학원을 경하여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겁쟁이이기도 하다.
          도시 내외에서 거래되는 차량들 중 몇 가지를 훔쳐서 팔아먹는 차량 절도단의 리더. 프리뷰의 디아즈, 발레즈 패거리와 비슷한 황이지만, 본인은 마약보다 자동차가 좋다는 이유로 딱히 그들과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불법 차량 거래를 독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패거리 모두가 트레이닝복(속칭 츄리닝)을 입은 것이 특징. 패거리의 징색은 {{{#003366 크레욜라 버전 미드나이트 블루(Midnight Blue (Crayola))}}}.
          야쿠자 하위조직이자 폭주족인 야츠시키 노 카제(Yatsushiki no Kaze)의 리더이다. 뜻은 '여덟가지 색깔의 바람'. 처음엔 7색을 생각했으나 레인보우라는 유치한 이름이 연된다는 이유로 때려쳤다고.
          나이트클럽이건 졸업파티건 생일파티건 잔치가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참석하는 파티매니아 DJ. 물론 이 목록의 캐릭터들이 그렇듯이 DJ 짓거리보단 마약 판매에 더욱 열중하고 있다. 디아즈와 발레즈 패거리에게 마약을 공급하는 큰손이지만 아무래도 친인척 관계인 발레즈 패거리를 좀 더 밀어주고 있어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싸움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곧바로 튄다. 패거리의 징색은 {{{#03C03C 다크 파스텔 그린(Dark pastel green)}}}.
          친절한 거구의 나이트클럽 경비원.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장난으로, 실제로는 미국 남부에 있는 여러 나이트클럽을 소유한 경자이다. 나이트클럽을 거쳐가는 대다수의 거래와 음모 등등을 꿰고서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본인도 매춘과 인신매매 사업에 어느 정도 발을 담그고 있다. 그래놓고 집에 돌아가면 아내와 아이들을 챙기는 위선자.
          금발의 아름다운 보석 주인이지만, 실은 트와일라이트 시티 마피아의 일부인 그리지오 패밀리와 협력하여 장물을 팔거나 보석을 거래하는 인물. 한편으론 최대 파벌인 마르벨로 패밀리를 무시할 수 없는데다 세력도 없는 하부조직이기에 두 조직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줄타기를 하는 인물들 중 하나다.
          자동차에 관한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 라지만 실은 블랙 저널리스트. 뒷돈을 받고 특정 자동차 제조업체나 자동차 판매장의 장점 혹은 단점을 필요 이으로 비평하여 업계에서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 정작 본인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렇게 까댄 자동차들을 몰래 훔쳐다가 개인 전시장에 모셔두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다.
          도난당한 자동차를 주로 취급하는 독일계 자동차 딜러. 무식한 벼락부자 아들딸이나 망에 빠진 학생들에게 도난차를 비싼 값에 팔아치우는 악행을 벌인다. 또한 위의 디아즈, 발레즈 등이 활약할 수 있는 레이스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한다.
          마피아와 관계된 VIP들을 경호하거나 곤란한 사안을 대신 처리하는 총잡이. 실력도 실력이지만 겸손하고 조용하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는 대인배로 불리고 있다. 당연히 개차반들만 모여 있는 그리지오 패밀리에서는 당히 싫어한다. 언제 총을 써야 하는지 경우를 잘 가릴 줄 아는, 블랙리스트에서도 손꼽히는 식인. 모종의 사유로 그리지오 패밀리에게 추격을 당하고 있다.
          관련 조직 : ~~[[창작:미드나이트 서커스 모터사이클 클럽|미드나이트 서커스 모터사이클 클럽]]~~(탈퇴)
          미드나이트 서커스 모터사이클 클럽(Midnight Circus Motorcycle Club, 약칭 MCMC)의 前 지부장. 지금은 자신의 별명을 딴 크로스본즈 MC의 대장이다.
  • 킹덤/523화 . . . . 34회 일치
          * 몽념이 염두했던 남자, [[왕분]]은 진군 우익에 배치되어 조군 좌익 [[조아룡]], [[마남자]], [[악]]의 3만 병력과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 조군 좌익은 선봉을 맡는 문제로 장수들 간에 작은 신경전이 벌어진다. 악은 안면이 없는 조아룡, 마남자를 신용하지 못한다.
          * 그러나 마남자는 [[이목(킹덤)|이목]]의 부관을 맡은 검증된 인물이었으며 조아룡은 전 삼대천 [[인여]]의 측근이었던 인물로 역시 대단한 인물.
          * 마침내 개전. 조의 선봉은 악. 이에 아광도 직접 선봉에 서서 부딪힌다.
          * [[관]]은 아광을 "잔꾀가 없는 무인"이라 평하며 왕분에게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면 그를 주시하라 하는데, 과연 아광은 적진을 무쌍으로 휘저어놓는다.
          * 조군의 좌익은 총 3만 병력에 보기에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맹장 셋이 배치되었다. 우측부터 [[조아룡]], [[마남자]], [[악]]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거니와 함께 작전을 수행해본 적도 없었다. 이런 셋을 한 군으로 편성한 [[이목(킹덤)|이목]]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역시나 시작부터 신경전이 벌어진다. 선봉을 누가 맡는지 문제를 놓고 악이 먼저 나서며 다른 두 장수를 무시했다. 마남자는 자기가 말을 꺼냈는데 냉큼 악이 받아먹으려 들자 그를 "창쟁이"라 부르며 뭐하는 짓이냐 따졌다. 악이 차가운 태도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둘에게 이 전장의 첫 칼날을 맡길 수는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조아룡이 중재했다. 우선 악이 마남자를 잘 모른다고 했으나 그럴 리는 없다. 마남자는 대단한 체격의 거한이면서 그 이목의 부관을 맡을 만큼 검증된 인물. 악이 그 개인과 친분이 없을 지라도 그를 "보통내기"로 여기고 있을 리 없다고 지적한다. 악도 그 지적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이번엔 조아룡을 두고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냐고 험한 소릴 입에 올린다. 조아룡은 쓴웃음을 짓고 말이 심하다고 할 뿐,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선전하지 않았다.
          * 그에 대해서는 마남자가 입을 열었다. 조아룡은 전 삼대천인 [[인여]] 장군의 측근. 중앙군의 [[요운]]과 더불어 오랜 세월 왕도권의 질서를 지켜온 숨은 강자였다. 마남자의 입에서 인여의 이름이 나오자 악도 그를 달리본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조아룡은 전 삼대천 [[염파(킹덤)|염파]]의 사천왕 [[윤호(킹덤)|윤호]], [[개자방]]과 동렬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굳이 여기서 서열과 실적을 논한다면 악은 이들 틈에 낄만한 인물이 못 됐던 것이다.
          * 진군의 우익이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먼저 옥봉대의 전방에 포진했던 아광군이 넓게 횡진을 펼쳤는데 마치 옥봉대를 뒤에 숨기려는 듯한 배치다. 아광군이 한참 부산한데 옥봉대에는 아무런 지시사항이 오지 않았다. [[반]]이 여기에 안달이 났다. [[관]]을 붙들고 정말 아광군에서 전령이 오는게 맞긴 하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관이라고 더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므로 그만 죽을 맛이었다.
          * 아광은 왕전군의 제 1장으로 왕분과도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그는 왕분을 "도련님"이라 부르며 작전을 전달하러 왔노라 말한다. 헌데 관은 그가 유독 "도련님"이란 표현을 쓴 것을 거슬려했다.
          작전이란 결국 이런 식이다. 아광군이 단독으로 적과 맞서 싸우고 옥봉대는 "일격필살의 유격대"로 전력을 보존하며 대기하다가 아광군 측이 전령을 보내면 그때 지시에 따르면 된다. 언뜻 듣기에는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왕분이나 관은 그 참 뜻을 바로 이해했다. 왕분이 누가 이런 작전을 짰냐고 묻자 아광은 자신과 왕전이 짠 것이라 대답한다. 왕분은 더는 참지 않았다.
          * 왕분은 지금 작전의 전술적 착오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한다. 지금 옥봉대는 적이 1만이라 해도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 만큼 태가 좋다. 총 전력이 적에 비해 적인 진군이 옥봉대를 쓰지 않고 빼두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따라서 옥봉대가 횡진의 좌측을 맡아 전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여기까지도 왕분은 흥분을 내비치지 않았으나 아광이 대답하는 말에 격분하고 만다.
          >이하게 특별취급하지 말란 말이다 아광!
          이 황에서 옥봉대를 쓰지 않는다, 거기에 타당한 이유 따위가 어디있는가? 그런데도 옥봉대를 뒤로 물려놓는다는건 한 가지 의미 밖에 없는 것이다. 왕분이 분을 참지 못하고 그 말을 입 밖에 내려하자 아광이 "자만하지 마십쇼"라고 잘라버린다.
          그 자리의 대부분은 아광의 말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아광의 호된 꾸짖음을 듣자 왕분은 더이 따지지 못했다. 그리고 관은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좋게도 나쁘게도"라는 아광의 말뜻과, 그걸 받아들이는 왕분의 심정을 한 눈에 읽어냈다. 일단 왕분으로서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보다는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판단하는 데는 왕분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으나, 급하게 달려온 전령 때문에 더이의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적 1진이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급보였다.
          * 조의 선봉은 결국 악으로 정해졌다. 제 1진 1만이 구름처럼 몰려오자 아광고 1만을 뽑아 응전하고 적장이 있다는 깃발을 발견하자 자신도 곧 전장으로 달려간다. 옥봉대가 있는 위치에선 이러한 움직임이 한 눈에 보였다. 아광 장군이 선봉에 나서는게 보이자 관이 넌지시 왕분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아광을 "잔꾀를 꺼리는 무인"이라 평했다. 그건 관 개인의 소견이 아니었고 옥봉대 사이에서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 관이 말을 꺼낸 것은, 왕분에게 이런 조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34회 일치
         지전이 벌어지면 다른 요원들과 달리 장군은 호위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다. 만약 장군이 전투 중 사망하면 전투 이후 해당 호위대는 그대로 해체되며 장군 또한 사망처리되므로 주의.
         근대화가 3단계 이으로 올라가면 호위대 역시 근대화된다. 구식 호위대가 말 위에서 검을 휘두르는 사무라이 한 뭉치라면 신식 호위대는 말 위에서 권총을 쏘는 군인 소수다.
          * 방어자 - "죽이려고 오는 적은 환받아야만 한다."
          * 병참술 - "배도 고프고 맨발 태라면 어떤 남자도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불굴의 무사 - "고귀한 이을 지닌 마음은 아무도 움직일 수 없다."
          * 명예 - "세은 변모한다. 그러나 고요한 중심은 존재해야 한다."
          고무적인 지휘관 스킬 요구. 이 요원의 향력 범위 +20%,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부대의 사기 +1
          선봉 스킬 요구.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부대의 돌격 보너스 +5,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함선의 현측 손도 +15%, 해안포격 사거리 +2
          * 모범 - "열정은 전쟁의 검, 그리고 혼의 검을 단조할 수 있다."
          수호자, 선봉 스킬 요구. 지휘력 +1, 이 요원의 향력 범위 +40%, 이 요원이 지휘하는 모든 부대 및 함선의 유지비 -15%
          * 군의관 - "난 후방에서 부을 치료할 기술을 약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비겁함은 치료할 수 없다!"
          * 아 체스 세트 -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왕들의 게임"
          * 오스트리아 제빵사 - "크루와이 프랑스 빵이라고? 하! 이름만 프랑스어일 뿐이야!"
         외국인 베테랑에게 강하지만 시노비에게 약하다. 유신지사와 신선조를 대로 매혹이 불가능한데 설정 그 둘은 자신의 이념에 너무 충실해서 안 넘어온다고 한다.
          * 시녀(Attendant) - "시중드는 거 자체가 보이다."
          * 요부(Temptress) - "예술적인 수줍음으로 제공되는 모든 세."
          * 필라델피아 데린저 - "이건 항 최후의 방어 수단이다."
         >유신지사는 오직 한 가지에만 헌신하는 "이주의 남자"입니다. 그 한가지란 바로 덴노의 신성한 권위를 복권하는 것입니다. 덴노의 지지자인 이들은 경쟁 세력의 불안을 고조시키면서 충신을 결집하고 고무시킵니다. 하나만 바라보는 외골수이자 위험한 남자인 이들은 가고자 하는 길에 방해물이 있다면 그게 누구든지 죽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 다른 번 요원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수 있음. 성공시 목표가 사망하거나 부 치료를 위해 일정 시간 사라짐.
          * 외골수(Single-mindedness) - "명명백백하게 한 가지 일에만 열중하는 것은 세을 바꿀 수 있다."
  • 한확 . . . . 34회 일치
         |부모= 한정(부), 김씨 부인(모)
         |웹사이트=
         [[음서 제도|음서]]로 관직에 올라 [[명나라]]의 [[락제]]의 후궁으로 간택된 누이 여비를 호송하였다. [[1417년]](태종 17년) [[명나라]]의 초청을 받고 진헌부사(進獻副使)로 [[명나라]]에 건너가서 광록시 소경의 벼슬을 지냈으며, 귀국후 판한성부사, 판병조사, 판이조사를 거쳐 [[의정부]][[좌의정]]에 이르렀다. [[계유정난]]을 도운 공로로 정난공신 1등과 [[세조 찬위]]를 도운 공로로 좌익공신 1등에 녹훈되었으며, 서성부원군에 봉작되었다가 서원부원군으로 개봉되었다.
         [[명나라]] [[락제]]의 후궁 [[여비 한씨]], [[선덕제|선종]]의 후궁 공신부인은 그의 넷째, 다섯째 누이이다. 검소하고 청렴하였으며 [[한명회]], [[신숙주]] 등과 함께 [[조선 세조|세조]]의 즉위를 도왔고, [[1418년]]의 [[세종]]의 책봉 고명과 [[1455년]] [[조선 세조|세조]]의 책봉 고명을 받아왔다. 그는 누이들이 황제의 후궁인 점을 활용하여,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둘째 딸은 [[조선 세종|세종]]의 서자 [[계양군 (왕족)|계양군 증]]에게 출가하였고, 여섯째 딸은 [[조선 세조|세조]]의 장남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비 [[인수대비]]로서 [[조선 세종|세종]], [[조선 세조|세조]] 2대에 걸쳐 사돈이 되었다. [[한명회]]의 일족이다.
         간이재 한확은 [[1400년]](정종 2년) 녹사를 지내고 [[증직|증]] [[병조판서]]에 추증된 [[한녕]](韓寧)의 손자이며,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를 지내고 [[증직|증]] [[의정부]][[의정]] 서성부원군에 추증된 [[한정]](韓永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증 정경부인 의성 김씨는 의성군 양소공 [[김렬]](金英烈)의 딸이다.
         고려(高麗 때 시중(侍中)을 지낸 한강(韓康)의 후손으로 [[조선 세조|세조]]의 측근이었던 [[한명회]]와는 9촌숙질간이다. 한확은 한악(韓渥)의 넷째 아들 한방신의 증손이었고, [[한명회]]는 한악의 둘째 아들 한공의의 4대손이었다.<ref>광윤-강-악-방신-녕-정-확, 광윤-강-사기-악-공의-수-질-기-명회</ref>
         [[음서 제도|음보]]로 출사하여 부사정(副司正)이 되었다. [[1417년]](태종 17년) 가을 넷째누이 [[여비 한씨]]가 락제의 후궁으로 낙점되자 [[명나라]]에 파견되는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노구산]](盧龜山), 녹사(錄事) 김덕장(金德章) 등과 같이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으로 선발되어 [[명나라]]에 들어가는 황씨(黃氏)와 누나를 호송하여 [[연경]]에 갔다가 그해 말 귀국하였다. 그뒤 누나가 여비로 책봉되자, [[명나라]]의 초청을 받고 진헌부사(進獻副使)로 명에 가서 [[명나라]]의 [[봉의대부]]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에 제수되었다.
         [[1420년]] [[1월]] [[조선]]의 흉년기에 공물면제를 위한 사절단의 대표로 예조참판 하연(河演)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명나라]]의 광록시소경으로서 태종 이래 추진하였던 금과 은의 공물면제를 주청하여 황제의 허락을 받고 귀국하였다. [[1424년]] 명나라 성조가 북정(北征) 중 유목천(楡木川)에서 죽자 여비는 [[락제]] 사후 순장당하였다.<ref>목을 매고 죽었다.</ref> 그뒤 장군 절제사(掌軍節制使)가 되었다.
         그뒤 창성(昌盛)과 윤봉(尹鳳)이 또 한정의 막내딸이 얼굴이 아름답다고 [[명나라]]에 고하자 그의 막내 누이도 명나라로 뽑혀 가게 되었다.<ref name="han01">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5월 1일(무자) 4번째기사 "진헌할 처녀로 간택된 한정의 막내딸이 혼수로 준비했던 재물을 나눠주다"</ref> 병이 나게 되어 한확이 약을 주니, 한씨가 먹지 않고 말하기를,
         [[1438년]](세종 21년) 중추원사가 되었다가 통행금지 시간을 어겼는데 [[수문장]]에게 압력을 가하여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탄핵을 받고 파면당했다.<ref>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10월 19일(경오) 1번째기사 "성문 출입에 문제가 있던 한확·연경·이연기·남계을 벌주다"</ref> 그해 복직하여 정헌대부 중추원사를 거쳐, 1439년 판한성부사, 경기도관찰사, 판병조사,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해 경기도감사로 나갔다가 복귀, 1440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병조 판서, 판병조사를 거쳐 함길도도관찰사로 나갔다. 이때 그는 관직을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함길도]]로 부임해갔다. [[1442년]](세종 25년) 동지중추원사와 판한성부사를 지냈다.
         [[1443년]]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그해 동지중추원사로 [[의금부]]제조(義禁府提調)를 겸하였고, 그해 다시 [[판병조사]] 겸 지중추원사를 거쳐 다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가 되었다. [[1444년]] [[경도]], [[전라도]]의 진품을 받을 것을 청하였으나 [[세종]]이 이를 듣지 않았다. 그 해 [[판이조사]]가 되었는데, 이때 인사에 공정을 기하여 자못 명망이 있었다. [[1445년]] 중추원지사 겸 [[판병조사]](병조판서)를 겸하다가, 다시 판이조사(이조판서)가 되었다. [[1446년]] [[판중추원사]]로 승진되었다가 [[1447년]] 이조 판서가 되고, 행[[평안도]] 관찰사로 나아갔다. 그해 행[[평안도]][[관찰사]]로 평양판윤과 [[평안도]] 병마도절제사까지 겸임하였다. [[1448년]] [[평안도]]병마절도사 겸하였다. [[1450년]](세종 32년) 판중추원사가 되었다. 그 후 판이조사·[[좌찬성]] 등을 거쳐 [[조선 세조|세조]] 때 서성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해 [[11월]]에는 [[창덕궁]]에서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좌의정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단종의 왕비감을 간택하는데 세 번 참여하였다. [[12월]] 몇 번의 처녀 간택에 참여한 뒤 단종에게 왕비를 맞이할 것을 청하는 소를 올렸다.
         [[1454년]] 왕비 책봉의 공로로 을 받았다. [[1455년]](단종 3년) 초 형조 판서 이변(李邊)·도승지 [[신숙주]](申叔舟)와 함께 [[벽제역]](碧蹄驛)에 가서 [[명나라]]의 사신을 접하였다.
         한확은 세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충신이었다. 그는 그의 누나가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이 되면서 명나라 황실의 벼슬을 받고 외교채널이 된다.<ref name="ky">[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96702 <nowiki>[</nowiki>王을 만나다·16<nowiki>]</nowiki>서오릉-경릉 ( 추존 덕종·소혜왕후) : 남존여비 '女訓'과 반된 '여성위능'] 경인일보 2010.01.14</ref> 그리고 누이동생 또한 명나라 선종(宣宗)의 후궁으로 간택돼 더욱 외교적 입지를 다지게 된다. 사실 한확의 두 누이이자 인수대비의 고모들은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가슴 아픈 사연을 지녔다. 한확은 계유정난 때 세조를 도와 정난공신 1등에도 올랐는데 세조의 왕위 찬탈을 승인하지 않던 명나라에 들어가 단종이 왕위를 물려준 양위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한확은 골치 아픈 외교 문제를 해결하였다.<ref name="ky"/>
         사후 시신은 국내로 운구되어 [[경기도]] [[광주군 (경기도)|광주군]] [[초부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69-5) 동두미진 조곡산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소가 [[왕릉]]과 비슷한 크기라 하여 후일 능내, 능내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묘비명은 사가 서거정이 묘지명을 지었다. 한편 그의 부인의 묘소는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에 소재해 있다.
         * 아버지 : [[한정]](韓永矴)
         * 어머니 : [[의성 김씨]](? - [[1423년]] [[3월 13일]], 의성군 양소공 김렬(金英烈)의 딸)
         ** 누이 : [[여비 한씨]] - 명나라 [[락제]]의 후궁
         *** 며느리 : [[죽산 안씨]] - 안맹담(安孟聃)<ref>세종의 부마, 정의공주의 남편</ref>의 딸<ref>《국역 국조인물고》 권1 신(相臣) 한확의 비명(碑銘)</ref>
         * 외할아버지 : 김렬(金英烈)
  • 김동한(가수) . . . . 33회 일치
          * 위 문서: [[J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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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JBJ/활동)]
         6월 12일에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681188|일간스포츠 인터뷰]]가 공개되었으며, 13일에는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555573|OSEN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또한, 14일 디씨인사이드와 [[http://dc.news-ade.com/?c=news&m=newsview&idx=22358|인터뷰]]를 진행했으며, 14일부터 16일까지 2일을 거쳐 [[http://v.sports.media.daum.net/v/20170614160816847|뉴스엔 인터뷰 1]] [[http://m.newsen.com/news_view.php?uid=201706151736094110&r=1&http_referer=|2]] [[http://m.newsen.com/news_view.php?uid=201706151802364110&r=1&http_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3]]가 공개되었다. 다음 날인 15일에도 [[http://m.xportsnews.com/jenter/?ac=article_view&entry_id=862996#_adtep|엑스포츠뉴스]]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6월 22일 웹예능 [[http://tv.naver.com/v/1790344?openType=nmp|존잘러스]]에 [[김균(JBJ)|김균]]과 함께 출연했다.
         MBC 해요 TV '[[프린식스의 사생활]]'로 7월 13일부터 8월 3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9시에 생방송에 참여했다.[[http://www.xportsnews.com/jenter/?ac=article_view&entry_id=867340&_REFERER=https%3A%2F%2Fwww.google.co.uk%2F|#]] 다른 출연자는 [[권현빈]], [[김균(JBJ)|김균]], [[켄타(가수)|켄타]], [[이건희(1998)|이건희]], [[유선호(2002)|유선호]].
         7월 25일 sbs plus Must Ear20([[정진운]] 진행) 9화(패스트푸드특집)에 [[노태현]]과 출연했다.[[http://tv.kakao.com/channel/2826388/cliplink/375203190?playlistId=105929&metaObjectType=Playlist|9화 클립모음]] 촬중 팬들을 위해 인스타라이브가 진행되었다. [[https://youtu.be/Zb4_dL_3i4I|인스타라이브링크]]
         9월 4일 jtbc에서 정진운과 함께 취중막말 고정MC를 맡게 되었다. [[http://tv.jtbc.joins.com/clip/pr10010490/pm10043681/vo10168875/view|클림 모음]] [[http://tv.naver.com/v/2011784|혼술하면서 보는 라디오 [취중막말] ]]
         9월 11일 모해의 미앤미 이 공개되었다. [[http://tv.naver.com/v/2043490| 링크]]
          * 데뷔 전 댄스팀에서 활동했던 경력으로 나름 유명하다. [[대구광역시]]에서 '더페이스 댄스팀'으로 활동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KRQNssNa-Usr8rbtNXTFbw|유튜브채널]] [* 지금은 당시 을 찾아볼 수 없다.] ~~당시 홍보담당이어서 카카오스토리 아이디 이름설정도 'TF 홍보담당김동한'이였던 것은 덤~~ 서울로 올라간 후에는 [[2016년]] 약 4월부터 8월까지 [[홍대]] [[버스킹]]팀인 DOB에서 활동했다. 유투브에 당시 직캠이 다수 업로드 되어있다. ~~역시 직캠장인~~ 본인피셜 활동 당시 팬레터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 이전에 합기도를 했었다가[* 프로듀스101에서도 1분PR에서 도복을 입고 보여주었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부을 입어서 그만두었다고 밝혔다. 가수를 꿈꾸기 전에는 경호원을 꿈꾸었다고...
          * 호두를 깨는 것이 가능할 만큼 딱밤 때리기에 일가견이 있어서, 이전에 대구에서 댄스팀을 했을 때 틀린 사람에게 벌칙으로 본인이 딱밤을 때렸다고 한다. ~~맞고도 이마가 안 깨졌다면 다행이다~~ [[잘봐줘 JBJ]]에서도 숙소에서 자신의 규칙을 어길 시 벌칙에 "호♥두♥"라고 써져있다(...) ~~ 네 머릿 속에 호~두~ ~~[[https://youtu.be/qYGXgY5DxcU|호두 깨는 ]]~~일순간 스튜디오에 정적이 흐르는 게 관전포인트다~~
          또한 [[타카다 켄타]]와 [[김용국]]과의 [[V앱]] 라이브 도중 "[[JBJ]]는 비즈니스 관계"라고 [[농담]]을 하는가 하면,[[https://youtu.be/e1MKPlZxOEs|#]] [[노태현]]이 [[이대휘]]와의 핑크빛 소문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에서 [[1993년|나이]] [[2001년|차이를]] 강조하자 "사랑에는 나이 차이가 없죠"라고 받아 쳤다![[https://youtu.be/kioSnRWkpn8|#]] 취중막말 4회에서는 나야나를 추다 술잔을 엎자 "이 놈의 나야나는 평생 도움이 안되네"라고 하여 정진운을 포함한 촬현장은 웃음바다가 된다. 후에 말한바에 따르면 속으로 말하려던 걸 자신도 모르게 입밖으로 내뱉었다고. [[https://youtu.be/JRECEtdBSRk|#]]
          * 대구 사투리가 당히 찰지다. ~~고마 쎼리 마 다 때리 빻아뿔라마~~ 종종 해요TV나 브이앱 등에서 구사하는데 특유의 돌직구 말투와 어우러져 사투리를 요구했던 사람을 겁먹게 한다.
          * 댄스팀 시절 안무 커버를 위해 을 찾아보며 남자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데 아직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고. 2017멜론뮤직어워드에서 드디어 이루어졌다.[* 댄스팀 시절 커버 을 찾아보면 방탄소년단 곡의 비중이 많다. ] Fantasy 활동 중 [[태민]] 선배님을 실제로 보게 되어서 좋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은혼/640화 . . . . 33회 일치
         [[은혼]] 640훈. '''즐거운 일이 없으니 세을 재미있게'''
          * 폭발하는 해방군 모선. 탈출 중 [[키지마 마타코]]가 폭발에 휘말려 쓰러진다. [[다카스기 신스케]]는 대의와 동지애 사이에서 잠시 갈등한다.
          * 그런 신스케를 대신해 [[카와카미 반사이]]가 몸을 던져 마타코를 구하나 잔해에 깔리고 만다.
          * 반사이가 "다른 이의 시체를 밟더라도 대의를 추구하겠다"는 맹세대로 하라며 자신을 버리라고 하지만 신스케는 결국 그를 구하며 함께 낙오하는 길을 택한다.
          * 과거 헨페이타는 세의 괴리에 실망해 공직도 삶도 포기하려 한 적이 있지만 신스케의 "넌 단지 포기를 잘할 뿐"이란 비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 헨페이타는 다시 한 번 신스케의 포기하지 않는 기질을 따라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작전에 임하며 "여기서 보는 세은 참 재미있다"고 자조한다.
          * 해방군의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기 위해 해방군 모선으로 돌격했던 귀병대. 그러나 해방군 사령관 [[엔죠]] 황자는 모선의 일부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을 서둘렀고 그 결과 불필요한 구역을 아군까지 희생시키며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귀병대가 침투했던 구역이 하나둘 파괴되면서 최전선에서 지휘 중이던 [[다카스기 신스케]]와 [[카와카미 반사이]], [[키지마 마타코]]도 위험에 처한다. 하나둘 산화하는 부하들. 그러나 그저 달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신스케는 과거에 했던 맹세를 떠올린다. [[은혼/632화|반사이와 함께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반사이를 포섭한다. 어차피 나라의 심판으로 사라질 목숨이라면 자기를 위해 죽지 않겠냐고. 반사이가 "그럼 당신은 뭘 위해 죽을 거냐"고 묻자 그는 뻔뻔한 태도로 대답했다.
          신스케를 앞서가고 있던 반사이가 어느새 마타코를 위해 몸을 던진다. 폭발이 두 사람을 덮치고 신스케는 그 여파로 내팽개쳐진다. 폭연이 가신다. 다행히 반사이의 조치가 늦지 않아서 마타코는 큰 부이 없다. 그러나...
          * 폭발은 그들이 지나온 구역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떨어진 잔해가 반사이를 깔아뭉갰다. 마타코가 그를 꺼내보려고 안간힘 쓴다. 반사이는 아직 의식이 있다. 그는 멍청하게 바라보는 신스케를 질책한다.
          폭발은 이제 일행을 앞질러 간다. 반사이를 바라보는 신스케의 등 뒤에서 폭발이 일어나 복도가 무너진다. 이대로 시간을 지체하면 나아갈 수 없다. 반사이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들의 목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망설일 이유도 없다.
          * 신스케는 침묵 끝에 반사이의 말이 맞고 분명 자신은 시체를 디딤돌로 삼겠다했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칼을 뽑아 반사이의 목을 겨눈다. 고통을 줄여주기라도 하려는 걸까?
          신스케는 반사이를 덮은 잔해를 베어내고 그를 끄집어낸다.
          * 신스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많은 시체를 쌓아왔고 그걸 디딤돌로 삼은 건 사실이지만 마지막 시체는 단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바로 자기 자신. 자신이 그 약속을 지켜야하듯 반사이도 지켜야할 약속이 있다. 신스케를 위해 살겠다는 약속. 그러니 자신이 시체가 될 때까지 반사이는 살아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며 그를 부축한다.
          * 신스케는 이때 무전을 보낸다. 이미 자신들은 낙오됐고 본대와 합류도 바랄 수 없으니 이대로 히노카구츠치 제어 중추로 돌입하겠다는 전달이다. 그걸 위해서 현재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헨페이타는 대답 대신에 지금 황을 냉정하게 전한다. [[사루가쿠]]와 [[바토우]]가 당했고 [[가츠라 고타로]], [[사카모토 다츠마]] 부대와도 통신이 두절됐다. 아군 함대는 적 함대의 총공세를 막아내느라 여력이 없으며 원군도 더는 바랄 수 없다. 신스케가 돌입을 강행한다면 현재 가진 병력만으로 해야 한다. 헨페이타는 그럴 병력이 남아 있느냐고, 현재 병력이 얼마냐고 묻는다. 신스케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론 이길 수 없습니다.
          * 이또한 오래된 이야기다. 그가 아직 막부에 몸 담았던 시절이다. 동료들과 막부의 적을 급습했으나 단 한 사람을 어쩌지 못해 모두 죽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헨페이타. 적의 칼끝이 미간을 겨눈다. 헨페이타는 검에 손도 대지 않은 채였고, 적은 그점을 궁금해한다. 헨페이타가 원래 자신이 잡아야 했던 자, 신스케를 향해 "하늘과 땅이 뒤집혀도 내가 신스케를 쓰러뜨릴 수 없는걸 알기 때문"이라 대답한다. 신스케는 이미 죽은 녀석들 보단 말이 통한다면서, 질 걸 알아서 그렇다면 여기엔 왜 왔냐고 물었다. 헨페이타는 그 이도 알았다. 동료들은 사람을 심판할 권리를 잃었고 오히려 직권의 이름으로 백성을 괴롭힌 저들은 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이용 당한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도 죽이라고 청했다.
          >저는 이 세이 너무나도 시시하다는 것을
          >예 외의 일이 단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뭔가 해보기도 전에 포기해버리면 예 외의 일이 일어날리가 없지 않냐고 꼬집는다. 헨페이타가 그럼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치면 이 나라를 부술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신스케의 대답은 심드렁하다.
  • 이효상 . . . . 33회 일치
         | 이름 = 이효
         | 설명 = 1975년경의 이효
         | 출생지 = {{국기|대한제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 소속 = 前 [[남대학교]] 초빙교수
         '''이효'''(李孝祥, [[1906년]] [[1월 14일]] [[경북도|경북]] [[대구광역시|대구]] - [[1989년]] [[6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교육자, 철학자, 시인이다. 제5~7대, 제9~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1963년 12월부터 1971년 6월까지는 7년 6개월 간 [[국회의장]](6대~7대)을 역임했다. 이는 역대 국회의장 중 최장 재임기간이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이고 세례명은 아길로이다. 본관은 [[성산 이씨|성산]]이며 아호는 한솔이다.
         [[1945년]] [[경북도]] 학무국장에 취임, 1952년 경북대학 문리대 교수, 문리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0년]] 참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투신하였으나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사퇴하였다. 그 뒤 [[남학원]](嶺南學園)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1963~1971년 6, 7대 국회의원,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IPU․APU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다. [[1973년]], 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같은해 3월에는 공화당 의장서리 겸 당무위원이 되고, 1979년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공화당총재 임고문에 취임하였다. 훈으로는 [[서독]] 1급 대십자훈장, 교황청 대십자기사훈장, [[말레이시아]] 판쿠안네가라 최고훈장 등을 받았다.
         * [[남대]]재단이사장
         * 남대재단이사장
         *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당의장서리ㆍ당총재임고문
         그가 [[박정희]]의 대통령 선거 때 "이 고장은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 후보는 신라 임금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 년만의 임금으로 모시자.", "[[경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효시로 보기도 한다.<ref name="김충식">[[김충식 (1954년)|김충식]],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 1 (1992, 동아일보사)</ref>{{Rp|305}}<ref name="이우">[[이우]], 박 정권 18년: 그 권력의 내막 (1986, 동아일보사)</ref>{{Rp|343}}<ref>{{웹 인용 |url=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제목=[DJ 삶의 5가지 꼬리표] 시련·멍에는 역사의 거목을 키웠다 |확인날짜=2010년 1월 30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824010951/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보존날짜=2009년 8월 24일 |깨진링크=예 }}</ref>
         * [[안호]]
         * [[이돈 (1951년)|이돈]]
         * [[곽훈]]
         * 삼남 [[이문조]] (전 [[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코오롱 [[이동찬]] 명예회장의 사위)
         * {{헌정회|1320|이효}}
         |전임자= [[곽훈]]
         |직책 = 참의원([[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목록 (지역구별)#참의원 지역구별 보기|경북도 제1부]])
         |전임자 = (대구시 갑)[[서동진]]<br />(대구시 을)[[서일]]<br />(대구시 병)[[임문석]]<br />(대구시 정)[[조재천]]<br />(대구시 무)[[조일환 (1916년)|조일환]]<br />(대구시 기)[[장모]]
         |후임자 = 이효
  • 정종철 . . . . 33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minihp.cyworld.com/pims/main/pims_main.asp?tid=47540635 정종철 싸이월드 미니홈피]
         그는 [[경북도]] [[포항시]] 정 씨에서 출생하였고 [[부산광역시]] [[도구]] 에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한정식 요리·중화 요리·일식 요리 자격증을 취득 보유한 그는 월 260만원을 받으며 냉면집 주방장으로 일을 하고 있었던 정종철은 TV에 나온 [[심현섭]]을 보고 자신은 심현섭보다 더 재주가 많다는 생각을 하였고 오디션을 치렀으며 한번에 KBS 공채 15기 개그맨이 되어 데뷔하였다. 이후 [[개그콘서트]]에서 '옥동자' 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못생긴 얼굴'이라는 컨셉으로 전자 오락실 게임 소리 등 각종 효과음을 흉내 내어 큰 인기를 끌었다.
         === 화 ===
         * "화 찍는가봐 화~", "구경만 할게, 구경만!", "하!" - 개그콘서트 코너 '불청객들' 중
         == 수 ==
         * [[2007년]] 제43회 백예술대 남자예능
         * [[2007년]] 제19회 한국방송프로듀서 코미디언부문 출연자
         * [[2006년]] KBS 연예대 코미디부문 최우수
         * [[2006년]] KBS 연예대 코미디부문 최우수코너 ([[개그콘서트]] - 마빡이)
         *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 희극인부문
         * [[2005년]] KBS 연예대 코미디부문 최우수코너 ([[개그콘서트]] - 사랑의 가족)
         * [[2004년]] 제31회 한국방송대 코미디언부문 올해의 방송인
         * [[2003년]] KBS 연예대 코미디부문 최우수
         * [[2002년]] KBS 연예대 코미디부문 최우수코너
         2009년 10월 11일에 방송된 [[MBC]]의 새 개그 프로그램인 [[하땅사]]에 출연하였다. 《나 이런 사람이야》코너에서 '물을 아끼자'라는 주제로 정종철이 [[이순신#이순신과 관련된 것|이순신 동]] 앞 분수대에서 머리를 감는 모습을 미리 촬한 동이 방송되었다. 이에 시청자들은 "모두가 사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이러는 건 방송 횡포다" ,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라"라며 시청 후 불쾌함을 호소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하땅사' 개그맨은 웃고, 시청자는 뿔났다?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11/2009101100645.html |출판사 = 조선일보 |저자 = 박현민 기자 |날짜 = 2009-10-11 |확인날짜 = 2009-10-12}}</ref>
         {{백예술대 TV부문 남자예능}}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동양미래대학교 동문]][[분류:개그야]][[분류:하땅사]]
  • 주현미 . . . . 33회 일치
         {{{#FFFFFF ''' 주현미의 주요 수 이력 ''' }}} }}} ||||
         ||<table width=100%><-5><tablebordercolor=#d4f4fa><#D4F4FA><:> [[한국방송공사|[[파일:KBS_로고.png|width=60]]]] {{{+1 ''' [[KBS 가요대축제|{{{#00001E 가요대}}}]] ''' {{{#00001E '''대'''}}}}}} ||
         ||<width=30%> [[전록]][br]하얀 밤에[br](1987) || → ||<#FFFFA1><width=30%> '''주현미[br]신사동 그 사람[br](1988)''' || → ||<width=30%> [[현철]][br]봉선화 연정[br](1989) ||
         ||<table width=100%><-5><tablebordercolor=#ff2000><#FF2000><:> {{{+1 [[문화방송|[[파일:mbc.png|width=50]]]] ''' [[MBC 가요대제전|{{{#ffffff 가요대}}}]] ''' {{{#ffffff ''' 대 ''' }}} }}} ||
         ||<width=30%> [[전록]][br]하얀 밤에[br](1987) || → ||<#FFFFA1><width=30%> '''주현미[br]신사동 그 사람[br](1988)''' || → ||<width=30%> 주현미[br]짝사랑[br](1989) ||
         ||<tablealign=center><#FFD700><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D700><-5> [[골든디스크 시식|[[파일:골든디스크 시식_로고.png|width=50]]]][br]'''{{{#ffffff 음반 대}}}''' ||
         [[화교]] 3세[* 주현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4살에 한국으로 이민와서 자랐으므로 사실 2세인 것이나 다름없다.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180412 주현미편에서 주현미의 친할아버지는 중국인이고 친할머니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할머니는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한 조선인 1세(그 당시에는 [[조선]]이라고 불렀다. 물론 한국인 맞음)인 것으로 추정한다. 주현미의 [[할머니|친할머니]]와 [[어머니]]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주현미의 형제들은 어린 시절 집안에서부터 이미 한국 문화 방식으로 자랐다고 한다. 따라서 오히려 주현미와 형제들은 처음 화교 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그것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출신으로, [[전라북도]] [[남원시|남원]] 에서 4남매 중 첫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하여 자란 [[중국인]][* [[중국]] [[산동성]] 모평현에서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인]]이지만, 당시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의 [[정치]] 및 군사적 황에 의하여 [[대만]] [[국적]]이 되었다.] [[한의사]]였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참고로 주현미의 친할머니 역시 [[한국인]]이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따라서 주현미는 굳이 혈통을 따지자면 중국 [[쿼터]](1/4) [[혼혈]]인 셈이다. 대만 국적이었으나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주현미의 동생들은 아직 [[중화민국]] 국적이라 한다.[* 한국화교는 [[타이완 섬]]과는 거리가 먼 [[산둥 성]] 출신들이며 단지 국적을 부여한 나라가 [[중화민국]]이었을 뿐이다. 황이 이렇게 좀 꼬인 건 국부천대 때문. 물론 현재 화인들의 대부분이 귀화를 택하면서 중화민국 국적자는 줄고 있다.] 종교는 [[가톨릭]]으로 소화 데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 좀 비슷한 케이스인 외성인 출신 대만가수 [[등려군]]도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다. 등려군 역시 산둥 출신.~~틀린 정보이다 등려군 자신은 타이완 태생 부친은 하북성 모친이 산둥성 출신이다~~]
         남편은 한국 록그룹 비구(EXIT) 보컬리스트 출신이자 조용필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였던 임동신[* 1987년 '잃어버린 추억'으로 알려져 있다.]. 40일간 미주 공연으로 알게된 두 사람은 주현미가 28살일 때 결혼했다. 당시 주현미는 가수 일이나 인기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 남편을 사랑했다고 한다. 임동신은 결혼 후 자기 일은 거의 포기하고 아내의 매니지먼트와 프로듀싱 작업을 도왔다. 그래서 주현미가 가요대을 수했을때 '여보'라고 울먹이며 남편을 부르기도 했다. 주현미의 아들은 현재 버클리 음대 재학 중.
         연예인 중에서는 나름 엘리트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중앙대학교]] [[약대]]를 졸업해서 [[약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 딸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한 어머니의 바람이 컸다고 한다.] 이후 약국을 운하기도 했으나 수줍음 타는 성격이라 사업수완이 없었던데다 원칙을 고수하는 탓에 손님이 없어 일찍 가게를 접었다고 한다. 당시 [[의약분업]]이 이뤄지기 전이었는데, 증관없이 막무가내로 양제나 항생제 등을 달라는 손님들에게 그럴 수는 없다고 거절하다보니 별난 약사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https://youtu.be/lw2MKM2wwZE|약국이 망해서 가수한 주현미]]
         대중가수로서 처음 알려진 것은 [[1981년]] 제 2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주현미가 소속된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음악그룹 '''인삼뿌리 2기'''가 장려을 수하면서부터이다. 사실 그 이전 중학교 2학년때 이미 첫음반을 발매한 적 있다. 이때 첫 음반은 작곡가 정종택이 맡았었는데, 주현미가 성인이 되어 발매한 앨범도 정종택이 맡았다.
         솔로 데뷔 전인 [[1984년]] 무렵에 김준규랑 같이 부른 메들리 앨범 '쌍쌍파티'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같이 듀엣으로 녹음한 게 아니라 따로 따로 녹음한 걸 편집에서 합친 앨범이지만 편집한 둘의 호흡이 워낙에 대단했기에 80년대 중반 돌풍을 일으켰고, 이때의 흥행을 발판으로 솔로로 독립할 수 있었다. 그 기세를 타 [[1985년]] 1집 앨범 ≪비내리는 [[동대교|동교]]≫로 데뷔하여 단번에 트로트 탑 그룹에 올랐으며, 그 후에도 연이은 성공으로 히트곡이 당히 많다. [[1988년]]에는 '신사동 그 사람'의 대 히트에 힘입어 MBC, KBS 연말 가요대을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1989년]]에도 '짝사랑'으로 MBC 연말 가요 대을 2년 연속 제패하기도 했다.
         [[화교]] 출신이라 차별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주현미가 을 타면 왜 외국 가수에게 국내 가수을 주냐고 비아냥대는 기자도 있었다고. 그래서인지 비슷하게 차별받던 흑인 혼혈인 [[인순이]]와 동질감을 느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초중고를 모두 [[화교]] 학교를 다녔던지라 [[중국어]]도 잘 하며 방송에서 중국어 노래도 곧잘 부른다.
         참고로 [[경남도]] [[진주시]]의 시외버스 업체인 [[부산교통]]의 안내방송에 주현미 노래의 일부분이 BGM으로 나온다고 한다.[* 주로 "어제같은 이별"과 "비 내리는 동교"가 주로 나온다.] 이외에도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같이 짜라자짜로 활동했다.
          * 1993년 14집 <첫사랑/ 정으로 사는 세>
          * 1985년 1집 <비내리는 동교/ 길면 3년 짧으면 1년>
  • 추창민 . . . . 33회 일치
         {{화인 정보
         | 직업 = [[화 감독]]
         | 웹사이트 =
         | 수 = 2013년 제49회 [[백예술대]] 화부문 감독
         '''추창민'''(1966년 ~ )은 대한민국의 [[화 감독]], [[화 각본가]]이다.
         * [[2010년]] 《[[그대를 사랑합니다 (화)|그대를 사랑합니다]]》 - 각본, 연출, 편집
         == 수 ==
         * [[2012년]] 제49회 [[대종]] 감독 《[[광해, 왕이 된 남자]]》
         * [[2013년]] 제49회 [[백예술대]] 화부문 작품 《[[광해, 왕이 된 남자]]》
         * [[2013년]] 제49회 [[백예술대]] 화부문 감독 《[[광해, 왕이 된 남자]]》
         * [[2013년]] 제22회 [[부일]] 부일독자심사단 《[[광해, 왕이 된 남자]]》
         {{백예술대 화부문 감독}}
         {{대종 감독}}
         {{토막글|화 감독}}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화 편집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대학교 동문]]
  • 페어리 테일/545화 . . . . 33회 일치
          * 모든 것을 끝낸 전쟁 뒤 1년이 지난 X793년. [[루시 하트필리아]]가 문학을 수하는 경사가 생긴다.
          * 다른 길드들은 대체로 일을 유지 중이나 [[카구라 미카즈치]]는 머메이드 힐이 주간 소서로 전속 모델팀이 되면서 뜬금없는 모델활동 중
          * [[렉서스 드레아]]는 [[미라젠 스트라우스]], [[리사나 스트라우스]], [[카나 알베로나]] 등과 염문을 뿌리나 결국 진은 알 수 없다.
          * [[엘자 스칼렛]]은 내색하진 않고 있으니 그 소식 이후 몸단장을 빠짐없이 하는 등 행복한 일을 보내는 중.
          * 그 밖에도 길드원들은 각자 행복과 일위하고 있었고 그날 밤은 매우 행복한 분위기 속에서 끝나는 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루시가 정신을 잃는다.
          * 전쟁으로부터 1년이 지난 X793년의 어느 밤. 많은 일들이 있던 끝에 [[루시 하트필리아]]가 꿈꾸던 일이 이루어졌다. 언젠가는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던 꿈. 오늘은 그녀가 "이리스의 모험"이란 소설로 캠 자레온 문학 신인을 수하는 날이었다. 루시는 신인 트로피를 안은 채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 페어리 테일 길드 전원, 루시의 신인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러나 안에서 새던 바가지는 바깥이든 수식장이든 새기 마련. 자기네 길드에서 하던 대로왁자지껄하게 떠들고 흥청망청 마시고 있다. 루시는 파티에 부르는 대신 얌전히 있기로 하지 않았냐고 따지나 [[나츠 드래그닐]]과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그런 건 무리"라며 시원스럽게 약속을 어긴다. 사실 떠드는 정도로 그치면 별 일도 아니다. 멈추지 않는 기행이 문제. [[가질 레드폭스]]는 파티장의 식기를 "고급철"이라며 뜯어먹는데 사실 [[팬서 리리]]의 말에 따르면 이건 철 조차 아니다. 나츠는 정장을 갖춰 입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혼자 일복으로 와있고, 그걸 지적하는 [[그레이 풀버스터]]는 또 어느 순간에 탈의를 자행하고 팬티바람이다. 이 문제로 또 시비가 붙자 [[엘자 스칼렛]]이 두들겨 패서 얌전히 만들고 [[쥬비아 록서]]는 취해서 그레이 대신 벗겠다고 탈의쇼에 돌입. 루시를 위한 파티가 개판으로 치닫는다.
          * 루시는 전쟁 이후 틈틈히 글을 계속 썼다. 그렇게 해서 적은 "이리스의 모험"은 썩 많이 팔린 건 아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아 신인까지 수하며 꿈 중에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 [[안나 하트필리아]]도 소식을 듣고 축하하러 와주었다. 그녀는 아직 현대에 남아있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중. 지금도 종종 루시는 만나러 가곤 하며 오늘도 선조이자 선배 작가로서 조언을 해주었다.
          * 가질과 [[레비 맥거딘]]은 옆에서 보기에 괴로울 정도로 꽁냥꽁냥해졌는데 파티가 한창이던 도중 레비가 잠시 가질을 불러내 뭔가 귀띔을 한다. 그걸 들은 가질이 세 끝장난 표정을 짓는데. 루시는 순간적으로 "아기"란 단어를 들었지만 기분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그 옆에, 좀 더 귀가 좋은 [[웬디 마벨]]이 얼굴을 붉히고 있는 걸 보면 임신이 틀림 없는 모양이다. 오늘 밤에 밝혀진 또다른 경사.
          그레이는 자기가 원조 노출광인 주제에 쥬비아가 벗어대자 질색하며 바깥으로 끌고 나간다. "무슨 생각이냐"고 따지는데 사실 모든 길드원이 그레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문득 그레이의 시선이 쥬비아의 허리 쯤에 남은 흉터에 닿는다. 그 전쟁의 흉터가. 서로 자신을 찌러서 생겼던 처. 그레이가 웬디에게 부탁해서 완전히 없앨 수 있지 않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레이도 자기가 찌른 자국이 그대로다. 쥬비아가 그걸 말하자 어쩐지 당황하며 "남자와 여자의 몸은 다르다"고 허둥댄다.
          * 그레이와 쥬비아는 저런 식으로 결론이 난 셈이지만 그 말고도 신경쓰이는 관계는 더 있다. [[엘프먼 스트라우스]]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도 한 때는 그런 관계였지만 지금은 공인된 관계가 돼서 논외. 의외로 [[렉서스 드레아]]도 혐의가 짙다. [[미라젠 스트라우스]]와는 전부터 그런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있었지만 요즘은 또 잠잠한 모양. 그래도 관계는 나쁘지 않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여동생 [[리사나 스트라우스]]와도 제법 친한 관계. [[카나 알베로나]]도 의외로 같이 마시는 사이로 소문을 뿌린 적이 있다. 이렇듯 염문설은 잔뜩 뿌리고 다녔으나 정작 어디까지 진실이고 루머인지 알 수 없는, 렉서스의 여자관계.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스테리의 역인 데다가 신경쓰이는 방향이 다르다.
          * 엘자는 루시의 수을 축하하는 한편 자신의 글재주 없음을 한탄한다. 사실 재능 여부를 떠나서, 한 번은 신세를 진 길드에 감사장을 보냈더니 중무장한 녀석들이 결투하러 왔다고 하는 걸 보면 이 세이 소화하기엔 너무 이른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루시가 신경쓰이는 관계는 엘자와 [[제라르 페르난데스]]다. 그녀가 아는 것만 봐도 참 많이 엇갈렸던 인연이다. 그 엇갈림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맞물리게 되었다. 전쟁 후 피오레 왕국의 국왕 [[토마 E. 피오레]]가 [[히스이 E. 피오레]] 공주에게 왕위를 넘겼다. 선대왕이 된 토마는 은거, 여왕이 된 피오레는 알바레스 제국과 관계를 정화하는 한편 제라르와 그의 길드 크림 소르시엘에 한 가지 선물을 했다. 그들의 죄을 사면하는 은사를 내린 것이다. 이 조치는 매우 뜻밖의 일로, 은사를 받은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가 말도 안 된다고 할 정도였다. [[엔젤(페어리테일)|소라노 아그리아]]는 자신들은 어둠의 길드 출신이라 자격지심을 느낀다.
          이제 페어리 테일의 길드원들이 모두 그 쪽을 바라보고 있다. 누구도 그 황을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그 남녀는 이런 사정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자기들의 대화를 이어간다. 메이비스를 닮은 그 여성은 출판사 직원이었고 제레프를 닮은 남자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둘다 루시의 팬이라서 사인을 받고자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여성이 깜빡하게 손수건 뿐이 아니다. 왠지 신발도 잊어버려서 맨발이다. 남자가 웃기 시작하자 여성도 따라 웃었다. 한참 웃은 둘은 통성명을 했다.
          남녀는 함께 걸으며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누구도 그 황을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루시는 그저 모든게 행복하고 따뜻하다는 느낌으로 그 장면을 기억하고자 했다.
          파티는 계속되었다. 슬슬 술이 오른 길드원들이 난장판을 벌이기 시작하고 [[로메오 콘볼트]]는 [[아스카 코넬]]이란 나란히 앉아 "저런 어른들 만은 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마카오 콘볼트]]는 또 "내년부터는 일하겠다"고 선언하지만 지켜질지 어떨지 알 수 없다. [[알작 코넬]]과 [[비스카 무란]]은 여전히 사이 좋은 부부. 안경을 끼기 시작한 [[리더스 조나]]가 그들의 인물화를 그려주고 있다. [[키나나]]는 [[럭키 올리에타]]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알리는데, 이름이 에릭이라는 걸 보면 코브라를 말하는게 틀림없다.
          나츠는 그대로 루시를 붙들고 일터로 향한다. 감동과 기대를 배신 당한 루시가 원망하자 나츠는 그게 무슨 관이냐고 말한다.
          >그게 무슨 관이야.
          >그렇기에 원한 수수깨끼, 원한 모험
         대망의 완결. 작가는 차기작 구 중이라 한다.
  • 현주엽 . . . . 33회 일치
         [[1975년]] [[7월 27일]]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의류제조업을 하는 아버지 현진구(玄晉具)와 前 국가대표 농구 선수인 어머니 홍성화(洪性華) 사이에서 슬하 3남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그의 위로는 세 살 위의 두 쌍둥이 형이 있다. 그의 본관은 [[연주 현씨|연주]](延州)이고 [[종교]]는 [[불교]]이며 신장은 195cm이고, 체중은 120kg이다.
         * [[1998년]]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농구부|경학과]] [[학사]] 졸업
         서울 도성초등학교 6학년 시절 우연히 농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휘문중학교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키도 작고 농구 실력이 부족하였던 그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으나 공교롭게도 서울 휘문중학교로 학교를 배정받아 농구특기생이 아닌 일반학생으로 휘문중학교를 입학하고 다시 농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비교적 늦은 나이인 휘문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하게 된 현주엽은 1학년 동안은 늘 벤치를 지켰으며 2학년이 돼서야 코트에 첫 출전을 하게된다. 현주엽은 휘문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자신의 어머니가 농구선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의 경기를 관람하러 온 어머니를 현주엽의 농구 코치가 알아보는것이 계기가 되었다.<ref name=sports>SPORTS 2.0 2008년 10월 3호</ref> 운동선수 생활을 하였던 어머니는 현주엽이 농구선수가 된 후 항 주위 사람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예의를 지킬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현주엽은 그 당시 NBA 농구 비디오를 보면서 농구연습을 했고 그의 롤모델 농구선수는 매직 존슨이었다. 매직 존슨을 동경하여 2008년까지 줄곧 백넘버 32번을 달았다.
         현주엽이 대학진학후 첫 출전한 대회인 MBC배 대학농구에서 고대는 연대를 맞아 28점차로 대패하게 된다. 이 경기후 고대는 선수 전원이 머리를 짧게 깎고 절치부심하여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에 올라와 다시 연대를 만나 승리를 거두었고, 다시 최종결승전에서 고대는 연대에 시종일관 리드를 당했으나 시합종료 1분을 남기고 고대 양희승이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 동점황에서 현주엽이 속공으로 종료 직전 0.4초를 남기고 회심의 레이업을 시도하였고 연대 김택훈의 반칙으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침착하게 성공시키면서 고대의 우승을 이끌었다.<ref>경향신문 1994년 4월3일 “안암골 호랑이 "大(대)역전쇼””</ref> 대학무대 첫 대회에서 세간의 기대만큼의 활약을 벌이지 못한 현주엽은 대회 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이번 대회를 통해 모든면에서 선배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고교농구와 대학농구의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고 대답했다.<ref>스포츠서울 1994년 4월 2일 [http://kids.olivercho.com/SportsLeisure/148 “현주엽,고려 우승의 "일등공신",인터뷰”]</ref> 그러나 이 후 현주엽은 파워 포워드로서의 팀내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되고, 고대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신기성이라는 베스트 5 체제를 구축하며 대학무대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처럼 고려대학교가 연승가도를 질주하자 세간의 관심사는 고려대가 70년대말에 이룩했던 최다연승 49연승을 깨고 50연승을 달성할것인가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1995년 가을철 대학농구 연맹전 예선 첫 경기에서 현주엽이 발목 부으로 빠진 고대는 당시 약체였던 홍대에 3점차로 덜미가 잡히며 20연승에서 연승을 마감했다.<ref>경향신문 1995년 10월30일 “고려대 20연승 마감 약체 홍익에 덜미”</ref> 이후 고대는 다시 한동안 연승을 이어갔지만 50연승에 근접하지는 못하였다. 고려대학교는 충분한 전력을 갖췄음에도 현주엽이 졸업하기전까지 끝내 농구대잔치에서는 연세대학교가 이루어내었던 대학팀 우승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1998년 3월 9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은 전체 1순위로 청주 SK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의 안준호 감독은 드래프트에서 구슬 뽑기로 1순위 지명권을 받게 되자 ‘우승이야’를 외쳤다고 한다. SK는 그 지명권으로 바로 현주엽을 지명했고 이렇게 해서 현주엽은 SK에 이미 입돼 있던 [[서장훈]]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SK의 운명은 안준호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또 다른 기대주였던 외국인 선수 토니 러틀랜드의 부진과 더불어, 현주엽과 서장훈은 미묘한 자존심 대결과 포지션의 중복으로 부조화를 보였고 이 때문에 SK는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조차 오르지 못하고 만다. 그 책임을 물어 1998년 11월 26일 안준호 감독은 시즌 도중 경질되고 기아의 기술고문이었던 최인선이 SK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현주엽의 프로 첫해 개인성적은 뛰어났다. 3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23.94 득점, 6.35 리바운드, 4.65 어시스트를 기록했다.<ref name=sports /> 이듬해 시즌에서 현주엽은 스몰포워드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어내며 서장훈과 전년보다 나아진 팀웍을 보였다. 이에 SK는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시즌 트레이드 신청 마감일 하루전인 199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의 조현 + 현금 4억원과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대담한 승부수를 띄웠다.<ref>경향신문 1999년 12월25일 “현주엽=조현+4억원'빅딜'”</ref><ref>[최창환의 백 투 더 KBL] [http://news.jumpball.co.kr/news/view/cd/82/seq/4.html ‘X-MAS 빅딜의 추억’ 현주엽-조현 맞트레이드]</ref> 이는 최인선 감독이 이원재 단장에게 한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최인선은 현주엽의 3번자리(스몰 포워드)가 불만이었다. 우승을 위해 3번에 올라운드 플레이어보다 기동력 좋고 확실한 슛터를 원했던 그는, 이대로라면 챔피언전에 진출하더라도 현대를 만나면 승산이 없을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SK는 창단 이후 현대에게 12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직후, SK는 곧바로 트레이드 효과를 보이면서 승승장구, 결국 챔피언전에서 만나게 된 현대를 4승 2패로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실패했으면 최악의 자충수로 기록됐을 이 트레이드는, SK의 우승으로 인해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찾기’로 농구역사에 기록되었다.
         트레이드 소식을 최인선 감독이 아닌 신문기자에게서 처음 듣게 된 현주엽은 트레이드 직후 인터뷰를 통해 최인선 감독에게 대한 인간적인 실망을 토로하기도 했다. 애초에 현주엽의 트레이드는 현주엽과 최인선의 불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한 매체를 통해 설득력있게 제기되었다.<ref>스포츠투데이 1999년 12월 27일 [http://blog.naver.com/einer6623/50015480828 “현주엽 트레이드 진짜 이유 .. 현주엽 항명과 최감독의 단죄”]</ref> 이에 따르면 1999년 12월 14일 현대와의 경기에서 역전패 당하고 난후 최인선은 패배의 책임이 현주엽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자존심이 강한 현주엽은 이에 항명하여 부을 핑계로 다음 경기인 16일 LG전을 보이콧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 경기인 19일 신세기전에서 다시 현주엽은 워밍업까지 마치고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였으나 이번엔 최인선의 보복이 이어졌다. 현주엽을 고의로 출전시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였던 23일 동양전은 현주엽에게 SK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된다.
         또한 이 매체에 따르면, SK는 골드뱅크와 접촉하기전 삼성과 먼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이원재 단장은 현주엽을 내보내더라도 좋은 팀에 보내고 싶어했다. 실제로 현주엽은 SK의 지명을 받기전 삼성으로의 입단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삼성 역시 현주엽의 입을 간절히 원해 드래프트 1차 지명권을 딸 목적으로 전년도 시즌 막판 경기에서 고의 패배를 했다는 의혹을 받기까지 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2월 27일 “삼성 ‘부끄러운 져주기”</ref> 그러나 실 SK는 우승 가능권에 있던 삼성의 전력증가를 원하지 않아 삼성에 대한 현주엽 트레이드 타진은 시늉내기로만 끝났다. 결국 현주엽은 SK의 우승에 장애가 되지않는 약체 골드뱅크로 트레이드된다.
         골드뱅크는 현주엽 입효과를 톡톡히 보았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하게 된다. 이듬해인 2000년 현주엽은 무릎을 크게 다쳤고, 수술과 재활로 인해 00-01년 시즌에는 코트에 나서지 못한 경기가 더 많았다. 평균 득점이 16.70으로 떨어졌고 팀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 무 시절 (2001-2003) ==
         2001년 6월 14일 현주엽은 무에 입대하였다.
         01-02 시즌 농구대잔치에서 무는 김주성이 이끄는 전년도 우승팀 중앙대를 제압하며 우승을 하였고 현주엽은 대회 최우수선수(MVP)과 리바운드을 받았다.<ref>동아일보 2002년 1월16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0107547 “무, 중앙대 꺾고 농구대잔치 첫 우승”]</ref>
         현주엽은 무 복무중 출전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전에서 중국에 극적 역전승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ref>연합뉴스 2002년 10월14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255351 “아시안게임-<농구> 한국, 20년만의 금메달(종합)”]</ref> 당시 중국은 NBA 지명 1순위에 빛나는 야오밍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국은 시종일관 중국에 리드를 당해 종료 3분 17초를 남기고 71-84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다. 이때 김진 대표팀 감독은 작전타임을 부른후 현주엽과 김승현을 교체 투입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현주엽의 미들슛과 골밑돌파, 그리고 김승현의 가로채기와 어시스트가 빛을 발하며 한국팀은 무더기 득점을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4쿼터 종료 4.7초를 남기고 현주엽이 드리블에 이은 대담한 골밑돌파로 레이업슛을 성공, 동점을 만들면서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전에서도 김승현과 현주엽의 활약은 이어졌고 102-100로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20년만에 남자농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현주엽의 무 입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골드뱅크는 팀명을 코리아텐더로 변경하였고,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던 코리아텐더는 현주엽의 복귀가 몇달 지나지 않은 2003년 11월, 농구단을 KTF에 매각하였다. KTF에서는 무 시절 인연을 맺은 [[추일승]]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 두번의 무릎수술을 거치며 현주엽의 플레이 스타일은 포스트업보다 어시스트 위주의 외곽플레이로 바뀌어 갔고, 그의 전매특허인 몸을 날려 레이업슛을 쏜 후 바닥으로 쓰러지는 플레이 또한 횟수가 줄어갔다. 이 무렵부터 포인트 포워드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였다.
         04-05 시즌이 끝난뒤 현주엽은 자유계약 선수(FA) 자격을 얻었고, 변화를 원했던 그는 LG로 이적을 하였다. 그러나 무릎부은 그에게서 운동능력과 함께 공격 본능까지 앗아가 버렸다. LG로 이적한 06-07 시즌부터는 마침내 평균 득점이 한자릿수로 떨어졌고, 마지막해였던 08-09 시즌에는 6.73까지 하락했다.<ref>오마이뉴스 2009년 6월 29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66551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현주엽 ”]</ref>
         현주엽은 화려하였던 개인성적에 비하여 유독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0년대 그와 함께 대학농구 전성기를 보냈던 농구대잔치 스타들이 프로에 와서 대부분 한번 이의 우승을 경험해 본 것에 비해 현주엽은 9년의 프로생활 동안 단 한번도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보지 못하였다. 99-00시즌 SK가 정규리그 1위를 달리며 팀을 우승시키는가 했지만 시즌 도중 트레이드되며 SK의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고, 그 이후로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은 06-07시즌 LG에서 활약하고 있을때로 팀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으며 우승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지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LG의 외국인 선수 파스코의 심판 폭행사건이 얽히면서 KTF에게 패하고 만다. 그나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 유일한 우승 경력이다.
         그는 2007년 6월 21일 파티셰 박현과 결혼하였다. 현준희 현준욱이라는 두 아들이 있다.
         *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1년 선배 [[윤제한]], 2년 선배 [[박준 (농구 선수)|박준]]에 밀려 벤치워머였고, 이 때의 낙은 같은 벤치워머인 [[서장훈]]과 훈련을 제끼고 수장에 놀러가는 것이었다고 한다(MBC 무릎팍 도사-2013년 8월 15일 서장훈편).
         * 무에서 제대한 뒤 찍은 증명사진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흡사해 보여서 [[디씨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의 유저들은 그에게 '노무현주엽', '가카'라는 별명을 붙였다.
         * [[2016년]] [[서울방송|SBS]] 《[[동이몽, 괜찮아 괜찮아]]》
  • 황연대 . . . . 33회 일치
         |웹사이트=
         '''황연대'''(黃年代, [[1938년]] [[12월 12일]] [[서울특별시]] ~ )는 [[대한민국]]의 의사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장애인 출신 의사이기도 하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ua/books?id=UjQEAAAAMBAJ&pg|제목="RX: determination" - The Rotarian, Vol. 139, No. 5|성=Byong Ho|이름=Lee|날짜=1981년 11월|출판사=[[국제 로터리]] (Rotary International)|쪽=42-43|언어=en|isbn=}}</ref><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53&aid=0000029783|제목=패럴림픽 MVP 엔 순금 75g ‘황연대 성취’ 드립니다|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2550152|제목=[초대석]장애인올림픽 ‘황연대 성취’을 만든 황연대 씨|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
         [[1966년]]에는 사단법인 한국소아마비아동특수보육협회를 설립하여 임이사로 취임했으며 [[1974년]]에는 [[미국]] [[뉴욕 대학교]] 재활의확과 연수 과정을 이수했다. [[1975년]]에는 소아마비 장애인을 위한 재활 시설인 정립회관(正立會館)을 건립하여 관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장애인의 권익 향 활동에 참여했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여의사회 홍보부장 겸 잡지 《여의사회보》 편집인을 맡았다.
         [[1988년 하계 패럴림픽|1988년 서울 하계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1988년]]에는 월간 《주부생활》과 일요신문사가 공동 주관한 오늘의 여성식에서 받은 금 200만원을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에 기부했다. 이 금은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가 [[황연대 성취]](옛 이름 황연대 극복)을 시하는 계기가 된다.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대통령 직속 한국장애인복지대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민국 노동부]] 산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 훈 ==
         * 1979년 서울특별시 주관 서울교육 수여
         * 1983년 한국로타리 주관 새서울로타리
         * 1985년 5.16재단 주관 5.16 민족
         * 1986년 이화여자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아펜젤러
         * 1988년 월간 《주부생활》, 일요신문사 공동 주관 오늘의 여성
         * 1992년 《[[한국일보]]》, 서울특별시 주관 서울시민대
         * 2005년 대한민국 국회대 공로
         * 2009년 한국YWCA 주관 제7회 한국 여성 지도자<ref>{{웹 인용|url=http://whangaward.org/ko/dr-whang-youn-dai/main-awards|제목=주요 수 - 황연대|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
  • K리그 클래식 . . . . 32회 일치
         위항목: [[K리그]]
         K리그 클래식은 2012년 기존 K리그가 [[아시아축구연맹]] AFC의 [[AFC 챔피언스 리그]]의 개편에 따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승강제]]를 도입함으로써 구분된 대한민국 최위 프로축구리그다.
         K리그는 [[수퍼리그]] 시절부터 승강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승강을 실행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팀이 창설되지 않았던 관계로 이 부분이 당히 지지부진하였다. 그러던 것이 월드컵 유치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약간의 축구붐이 조성되면서 K리그에 참가하는 팀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실업팀의 프로화를 통한 K리그 참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했던 황.
         단적으로 K2리그를 출범하고 리그 우승팀을 프로화시켜 승격을 시키는 방안을 시작으로 실업축구단들의 참가를 유도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프로팀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며 장기적으로는 K리그의 프로팀 숫자를 늘리고, 늘어난 팀 수를 바탕으로 위와 하위리그를 나눠 승강제를 운할 계획이었다. K2리그라는 명칭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본래 K리그의 승강제 구성을 위해 탄생한 2부리그 격 세미프로리그였다. 하지만 2번이나 우승팀들이 승격을 거부함으로써 승강제는 아예 물 건너가게 되었고, K2리그는 내셔널 리그로 이름을 바꿔 완전히 별개의 리그가 되어버린다.
         이 와중에 아시아 축구를 총괄하는 AFC는 [[모하메드 빈 함맘]](이하 함맘) 회장이 집권하던 시기부터 아시아 클럽 대항전을 손보는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함맘이 회장에 당선된 시기는 2002년, ACL이 개편되어 시행된 건 2003시즌부터다.] 그리고 개편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참가팀 수를 [[UEFA 챔피언스 리그]]와 마찬가지로 32개 팀까지 확대하는 한편, [[AFC컵]]의 정립까지 당 부분을 손보게 된다.
         이로써 2012년에 승강제 계획안이 발표되고, 2013시즌부터 대한민국 최위 프로축구리그의 명칭은 '''K리그 클래식'''이 되었다.
         = 위 =
         2016년 기준, K리그 클래식의 리그 수준은 아시아 '''최고'''다.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통틀어 1위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ACL 무대에서는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허나 AFC의 최근 트렌드가 축구 개발도국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4장을 배정받던 과거완 달리 현재는 3.5장으로 줄었다. 현재 AFC의 정책이 점점 UEFA의 정책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는 걸로 봐서는 기존 강호들은 3.0장으로 줄어드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의 평가에서 K리그는 세계적으로 30위 내에는 꾸준히 들어가는 리그다. [[http://iffhs.de/the-strongest-league-in-the-world-2015/|2015년 발표만 봐도]] [[그리스]], [[네덜란드]]와 비슷한 점수를 받는 황. 그리고 [[스코틀랜드]]보다 순위가 더 높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봐도 결코 무시할 리그는 아니다.
         = 대회운 =
         본래 16개팀으로 운하던 대회가 장기적으로는 승강제를 도입함으로써 12개팀으로 축소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홈 앤 어웨이]] + 6강 플레이오프"''' 방식으론 2011시즌까지 유지되던 40주일정과는 괴리가 큰 이유로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SPL)를 본따 스플릿 시스템을 도입 및 운하게 된다.
         [[홈 & 어웨이]] 방식으로 정규 라운드를 30경기를 치뤄 스플릿을 구성하였다. 위 8개팀이 위 스플릿, 하위 8개 팀이 하위 스플릿으로 나뉜 뒤엔 스플릿끼리 다시 홈 & 어웨이를 치뤄 14경기를 추가로 마치게 되었다.
         2013시즌은 2012시즌의 결과로 주와 광주가 강등된 태에서 14개 팀으로 운하였다.
         14개 팀이기 때문에 스플릿 라운드가 2012시즌에 비해 당히 줄어들었다. 정규 라운드는 26라운드, 스플릿 라운드는 12라운드로 총 38라운드가 된 것.
         2014시즌부터는 연맹의 장기계획에 따라 큰 변화가 없는 이 12개팀으로 구성되며, 대회운방식이 안정된다. 이는 2016시즌까지 유지되고 있는 중.
         "(클래식12개팀 - 자기자신) * 3"이라는 형태로 홈 앤 어웨이를 치루며, 정규라운드동안 대팀을 세번씩 만나게 되는 구조다.
         여기에서 위 6개팀은 위 스플릿(=스플릿 A)으로 편성되고, 하위 6개팀은 하위 스플릿(=스플릿 B)에 편성된다.
         정규 라운드에서 획득한 점수는 그대로 이양되고 "자신의 팀이 속한 스플릿의 경쟁자와 한번씩 대결"을 통해 위 스플릿에선 우승과 차기 ACL 티켓을 두고 경쟁을 하게 되며, 하위 스플릿에서는 강등팀(꼴찌)과 승강 플레이오프로 갈 팀(꼴찌에서 [[홍진호|2등]])을 정하게 된다.[* 처음 도입되었던 2012시즌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걸 이해하지 못해 욕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스플릿 라운드에 돌입하게 되면 정규시즌의 기록이 다 사라지고 스플릿 라운드에서 얻은 기록만을 비교하여 우승팀을 가린다고 착각했던 것. 덕택에 [[샤다라빠]]가 신명나게 까댔다.]
         스플릿이 나뉜 뒤에는 하위 스플릿간 성적은 서로 비교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팀들의 1차 목표가 바로 이 위 스플릿에 진입하는 것이다. 위스플릿에 가면 나머지 경기에서 뻘짓을 해도 강등은 안 당하기 때문. 말인즉슨 위 스플릿 팀은 5경기를 모두 져도 무조건 6위는 보장되며, 하위 스플릿에 속한 팀이 5연승을 달려 위 스플릿 팀보다 승점이 더 높아도 최대 7위밖에 할 수 없다.
  • 반효정 . . . . 32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국기|일제 강점기]]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1964년 [[신옥]](申相玉)이 [[화 감독|감독]]한 [[화]] 《쌀》의 단역으로서 [[화 배우|화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어 그 해에 [[한국방송공사|서울중앙방송]](지금의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공채 [[배우|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다.
         1970년대 중후반 때부터 프리랜서 연기자가 되어 KBS, MBC를 오고 갔다. 1987년, 인기 사극이었던 《[[토지 (1987년 드라마)|토지]]》에 윤씨 부인으로 출연해 연기력을 인정받아 [[KBS 연기대]]에서 대을 수하기도 했다.
         * 2013년 《[[내 딸 서이]]》 - 법률 자문 구하러 온 할머니 역
         * 2011년 ~ 2012년 《[[브레인 (드라마)|브레인]]》 - 황선 역
         * 2005년 《[[어여쁜 당신]]》 - 유순 역
         * 2000년 ~ 2001년 《[[세 친구 (시트콤)|세 친구]]》 - 박면의 누나 박효정 역
         * 1992년 《[[두 여자]]》 - 양자 역
         === 화 ===
         * 2006년 《[[오래된 정원 (화)|오래된 정원]]》 - 윤희 모
         * 2002년 《[[몽중인 (2002년 화)|몽중인]]》 - 외할머니
         * 1988년 《[[연산일기 (화)|연산일기]]》 - [[정현왕후]]
         * 1975년 《[[욕망 (1975년 화)|욕망]]》
         == 수 ==
         * 2009년 [[SBS 연기대]] 공로
         * 1988년 제15회 [[한국방송대]] TV연기 《[[토지 (1987년 드라마)|토지]]》
         * 1988년 [[KBS 연기대]] 대 《[[토지 (1987년 드라마)|토지]]》
         | 제목 = [[KBS 연기대]] 《대
         {{KBS 연기대}}
  • 신동일 (언어학자) . . . . 32회 일치
         |출생지= {{국기나라|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현 대구광역시)]]
         |웹사이트=http://www.dongilshin.com
         대구 출신으로 경중학교,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90년]]에 [[중앙대학교]] 문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에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어과에서 응용언어학 분야 중 하나인 구술능숙도(spoken proficiency) 평가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99년]] 10월에 <진단목적으로의 어 듣기 평가도구 타당도 검증: 수행능력 모형화 작업과 다차원구조 이슈 중심으로(Construct validation of a diagnostic L2 listening test: An operational model utilized and multidimensionality issues revisited)>라는 논문<ref>[http://www.slate.illinois.edu/people/graduates/#3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제 2언어습득 및 교육학과 동문]</ref>으로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호주 ISLPR (International Scale of Language Proficiency Rating, Griffith University, Australia), 국 ELT and Assessment International Seminar (British Council, UK), Cambridge ESOL YLE (Young Learners of English) Examiner, 미국 ACTFL (American Council of Teachers of Foreign Languages, University of Pennsyvania, USA) 기관 등에서 어평가 전문가 및 채점자/면접관 훈련 과정을 200시간 이 이수했다.
         숙명여자대학교의 MATE(Multimedia Assisted Test of English), [[YBM-Sisa]]의 [[SEPT]](Spoken Engish Proficiency Test), 크레듀가 참여한 [[OPIc]] (Oral Proficiency Interview computer), 교통부의 Pilot & Air Traffic Controller 대 어말하기능력인증평가, 교육부의 국가어인증시험 등과 같은 학교, 기업, 국가 단위의 다양한 언어시험 개발/시행, 말하기/쓰기교육 콘텐츠개발에 관한 (책임)연구에 참여했다. 2000-2007년에 한국어평가학회 총무로 일했고, 2007-2009년 동안은 비리교육단체인 ACTFL((American Councils on the Teaching of Foreign Languages) 한국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장을 맡았다.
         교육과 연구분야는 어평가(시험개발과 시행), 언어(평가)정책, 언어권리, 언어생태계, 언어정체성, 말하기교육과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 적정교육, 사회적기업, 기독세계관 등이다. 해당 분야로 80여편의 논문을 학술등재지에 게재했으며 10여권의 단행본과 번역본 중 몇 권은 문화관광부나 대한민국학술원의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숙명여자대학교]] 문학과 교수([[2000년]]-[[2005년]])를 거쳐, 2005년부터는 [[중앙대학교]] 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2008년에 신동일어평가연구소를 창업해서 어과 진단교육 콘텐츠를 학교 밖에서 제작하고 유통시키는 일에 참여했다. 2013년부터 2016년 까지는 [[중앙대학교]]에서 [[BK21 PLUS]] 스토리텔러 교육공동체 사업단장을 맡았다.
         * 〈한국의 어평가학 4: 사회문화편〉([[2012년]])
         * 〈한국의 어평가학 3: 스토리텔링편〉([[2009년]])
         * 〈문과 학생도 모르는 어말하기 전략〉 ([[2008년]])
         * 〈Hello! OPIc : 어 말하기 평가의 세계적 기준〉(공저) ([[2007년]])
         * 〈어교육현장연구를 위한 내러티브탐구 방법의 이해〉(공저) ([[2006년]])
         * 〈한국의 어평가학 2: 말하기시험편〉 ([[2006년]])
         * 〈한국의 어평가학 1: 시험개발편〉 ([[2003년]])
         * 〈어청취론〉(공저) ([[2001년]])
         [[분류:대한민국의 언어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왝더독/줄거리 . . . . 32회 일치
         화 [[왝더독]]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페이지.
         화의 시작은 선거 홍보 으로 시작된다. 승마장에서 남자 두 명이 다음에는 대화하다가 "달리는 중에는 말을 바꾸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다.그러고는 현직 대통령의 재선을 주장하는 문구가 나오는 . 이 은 여러 버전이 있는데, 나올 때마다 등장인물들에게 구리다고 까인다.
         다음날, 대통령이 병에 걸려 귀국이 지연되었다는 뉴스와 반딧불 소녀단 단원이 대통령의 성희롱을 고발했다는 뉴스가 연이어 방송된다. 브린은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알바니아]]와 [[전쟁]]이 난 것 처럼 꾸미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를 위해 [[헐리우드]] [[화 제작자]]인 스탠리 모스(더스틴 호프만)를 찾아간다.
         모스는 알바니아에 위치한 [[이슬람]] 테러조직이 [[핵무기]]를 숨기고 있고, [[캐나다]] 국경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각본을 짜낸다. 그리고는 이 일을 돕기 위해 동료 예술가인 패드 킹(데니스 리어리), 조니 딘(윌리 넬슨)을 부른다.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알바니아 소녀가 고양이를 안고 도망치는 [* 소녀는 섭외한 배우. 고양이와 배경은 [[컴퓨터 그래픽|CG]].]도 찍어 뉴스에 올리고, 미국에 사는 알바니아인들이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는 생방송 뉴스를 조작해낸다. 이 와중에 전쟁이 없다는걸 눈치챈 [[CIA]]에게 잡혀가기도 하지만 브린의 현란한 말빨로 풀려난다.
         하지만 전쟁 발발(뻥) 3일 만에 미국과 알바니아가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뉴스가 올라온다. 속아 넘어간 줄 알았던 CIA가 뒤에서 손을 쓴 것. 이후 사실을 추궁하는 여론이 일자 일행은 망연자실하지만 모스는 포기하지 않고 또다른 계획을 짠다. 알바니아에 [[포로]]로 잡힌 미군 병사가 있다고 꾸며내는 것. 이들은 펜타곤에서 윌리엄 슈만 사(우디 해럴슨)를 제공받아 슈만 사를 전쟁 웅으로 포장한다.
         일행은 슈만 사를 선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조니 딘이 만든 노래는 1930년대 노래로 포장해 "지금 황에 딱 맞는 노래"라며 퍼뜨리고 백악관 앞 나무에 슈만 사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낡은 운동화를 던진다. 슈만 사의 귀환을 바라는 물결은 미국 각지에 퍼져나가고, 성희롱 사건은 모두의 머릿속에서 잊혀진다.
         선거 직전, 일행은 "알바니아의 숲 속에서 찾아낸" 슈만 사의 귀환식을 열기 위해 군대에서 슈만 사를 인수받는다. 슈만 사는 [[수녀]]를 [[강간]]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러 육군 교도소에 수감된 정신 이자였다. 귀환식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악천후를 뚫고 비행하던 비행기는 슈만의 난동으로 추락하고, 일행은 멕시코인 [[불법체류자]]가 모는 콤바인을 타고 귀환식장으로 향한다. 이 와중에 슈만은 중간에 들른 점 주인의 딸을 강간하려다 점 주인의 [[총기|총]]에 맞아 죽는다.
         어찌어찌 귀환식장에 도착한 일행. 슈만의 결식을 진행하는 동안 브린과 모스는 TV를 본다. TV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대까지 올라갔다는 내용의 방송을 하며 그 공을 홍보 에게 돌린다. 모스는 자신의 업적을 병신같은 홍보 따위에 빼앗긴 것에 분노,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브린과 말싸움을 하다 자리를 떠난다. 이후 요원들이 모스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간다.
         며칠이 지난 후, 화 프로듀서 스탠리 모스가 자택에서 일광욕 중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이후 알바니아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뉴스와 함께 화가 끝난다.
         대통령이 반딧불 소녀단 단원을 성희롱한게 사실인지의 여부는 화 끝날 때 까지 안 나온다.
  • 정성왕후 . . . . 32회 일치
         |배우자 = [[조선 조|조]]
         |사망일 = 조 33년(1757) 2월 15일
         |후임자2 = [[정순왕후 (조선 조)|정순왕후]]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 [[1693년]] [[1월 12일]] ([[1692년]] [[음력 12월 7일]]) ~ [[1757년]] [[4월 3일]] ([[음력 2월 15일]])는 조선의 제21대 왕 [[조선 조|조]]의 정비(正妃)이며 조선의 역대 왕비 중 왕비재임기간이 가장 긴 왕비이다.
         정식시호는 '''혜경장신강선공익인휘소헌원렬단목장화정성왕후'''(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元烈端穆章和貞聖王后)이다. 본관은 [[대구 서씨|달성]](達城).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 [[서종제]]와 잠성부부인(岑城府夫人) 이씨(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692년 음력 12월 7일 술시에 가회방 사제에서 태어났다. [[1704년]](숙종 30년), 연잉군(延仍君, 훗날의 조)과 길례를 행하고 달성군부인(達城郡夫人)으로 봉해졌다.
         어질고 너그러운 성품을 가졌다고 전해지며, 생전에 [[정빈 이씨]]의 소생인 [[조선 진종|효장세자]]와 [[빈 이씨]]의 소생인 [[조선 장조|사도세자]]를 친아들 처럼 아꼈다.
         [[1757년]] 창덕궁(昌德宮)의 대조전'''(大造殿)'''에서 66세로 시어머니인 [[인원왕후]] 보다 먼저 세에 떠났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의 [[서오릉]] 내에 위치한 '''[[홍릉 (정성왕후)|홍릉]]'''이다.
         [[1757년]], 66살의 나이로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조는 정성왕후의 능을 아버지인 [[조선 숙종|숙종]]의 명릉(明陵) 근처에 만들고 훗날 자신이 정성왕후의 옆에 묻히기 위해 옆자리를 비워놓았다. 그러나 [[1776년]], 조가 승하한 뒤 손자인 [[조선 정조|정조]]는 당시 왕대비(王大妃)였던 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조)|정순왕후]]를 의식하여 현재의 [[동구릉]] 위치에 조와 정순왕후의 무덤인 [[원릉]]을 조성하였고 결국 정성왕후는 옆자리가 비워진채 홍릉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1740년]], 혜경(惠敬)이라는 존호가 올려진 뒤 생전에 장신(莊愼), 강선(康宣) 등의 존호가 올려졌고 승하 이후인 [[1772년]]에는 공익(恭翼)의 존호가 추되었으며 인휘(仁徽), 소헌(昭獻)이 다시금 추되어 혜경장신강선공익인휘소헌(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昭獻)의 존호를 가지게 되었다. [[1778년]], 단목장화(端穆章和)의 존호가 추가되었다.
         ** 조부 : 장례원사평 증 의정 서문도(掌隷院司評 贈 領議政 徐文道, 1628~1700)
         *** '''아버지''' : 신천군수 증 의정 달성부원군 효희공 [[서종제]](信川郡守 贈 領議政 達城府院君 孝禧公 徐宗悌 1656~1719)
         **** 언니 : 광주인 이부(李英符)의 아들 이조판서 이중경(吏曹參判| 李重慶)
         **** 언니 : 고령인 군수 신(郡守 申泳)의 아들 신정집(申正集)
         *** '''남편''' : 제21대 [[조선 조|조]](英祖, 1694~1776, 재위 1724~1776)
         === 화 ===
         * [[2014년]] 화 《[[의원 (화)|의원》]] 배우:[[박신혜]]
         * [[2015년]] 화 《[[사도 (화)|사도》]] 배우:[[박명신]]
         후임자=[[정순왕후 (조선 조)|정순왕후]]|
         [[분류:1692년 태어남]][[분류:1757년 죽음]][[분류:조선의 왕세자빈]][[분류:조선의 왕비]][[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 조]][[분류:조선 정조]][[분류:서재필]][[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구 서씨]][[분류:조선 진종]]
  • 진격의 거인/95화 . . . . 32회 일치
          * [[라이너 브라운]]은 [[가비 브라운]]이 어젯밤 이후 풀죽어 있다고 여기나 정작 가비는 라이너야 말로 팔라디섬에서 돌아온 이후 이해졌다 여긴다.
          * [[포르코 갤리어드]]는 지금껏 전쟁에도 정치에도 개입없이 무위도식하던 그들이 웅행세를 하게 됐다고 꺼림직해 한다.
          * 사실 이들의 발언은 옆 방에서 [[마가트]] 대장 등이 도청 중. 큰 작전을 앞두고 마레의 전사들을 사검증한 거였다.
          * 라이너는 또다시 팔라디섬으로 가게 된 것을 씁쓸해하며 과거를 회한다.
          * 짐승거인은 본래 그저 클 뿐, 보통 거인에 비해 강점이 없었으나 지크가 투척기술을 구사해 엄청나게 평가가 승했다.
          * 모두가 "거짓말쟁이"였다. 멍한 태로 돌아다니던 라이너는 당시 무지성 거인이었던 [[유미르(진격의 거인)|유미르]]의 습격을 받는다.
          * 그러면서도 "모두를 구원할 웅이 될 것이다"는 다짐을 되풀이하는데.
          >이한 건 라이너야. 뭔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
          라이너가 할 말을 잃은 동안, 가비는 그걸 무언의 동의로 이해한 것 같다. 그녀는 곧 거인학회의 최신 연구를 인용한다. 아홉 거인의 "기억 계승"에는 "혈연관계가 강한 향을 준다"는 내용. 가비는 그게 라이너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크와 라이너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지크는 가끔씩은 쉬는 것도 좋다며 커피를 돌린다. 하지만 그들이 모인 이유는 결코 쉴려고 그런게 아니었다. 자리에 앉은 지크가 본론을 말한다. 그는 거두절미로 "황이 좋지 않다"고 운을 뗐다. 수년 간 계속된 "자원쟁탈전 시대". 마레는 거인의 힘으로 승리하고 역시 그 힘으로 주변국의 반발을 억눌러왔다. 그리고 그 첨병역을 하는 거인, 엘디아인에 대한 여론은 역대 최악으로 과거 엘디아제국 시절에 견줄만 하다. 지크는 분명 엘디아 민족이 분명한 반성의 뜻을 표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속죄라고 말하는게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엘디아인의 멸절을 바라고 있다.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과학병기가 거인병기를 앞지르는 것은 시대적 필연. 거인은, 엘디아인은 멀지 않은 장래에 전술적 가치를 잃는다. 거인에 의존하는 마레가 국력을 실하는 건 뻔한 일이고 마레가 약해지면 엘디아인과 세계를 가로지르는 장벽도 사라진다. 엘디아인을 존속시킬 필요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세계에 던져지는 것이다.
          "망치의 거인"의 타이바 가문. 그 이름은 일행에게 민감한 반응을 일으켰다. 그들은 100년 전 거인대전의 웅 가문이다. 최초로 프리츠 왕가에 반역했으며 마레에 협력했다. 일찌감치 "명예마레인" 타이틀을 거머쥐고 정치나 전쟁, 모든 사회적인 이슈에서 불간섭을 표방하며 안락한 삶을 누렸다. 그런 그들이 "마레와 엘디아의 미래를 걱정해" 일어나 주었다, 지크는 그렇게 "스토리"를 설명했다.
          그들이 나선다면, 피크가 보기에도 괜찮은 그림이다. 우선 그들은 단 한 번도 거인의 힘을 타국에 휘두른 바가 없다. 게다가 거인대전에서 프리츠 왕가를 타도한 가문으로 유명해 단순히 특별대우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해외에 향력을 가질 정도로 권력을 가졌다. 만일 그들이 선전작업에 동원된다면 세계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 명쾌한 해석에 지크는 다시 한 번 "과연 피크쨩"이라며 감탄한다.
          그러나 한 사람, 포르코의 탐탁치 않았다. 그가 보기에 타이바 가문은 뭐랄까... 우선 그들은 망치 거인을 가졌으면서도 나라를 위해 싸운 적이 없고 엘디아인이 수용구에서 생활할 때 자기들은 넓은 토지와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무위도식했다. 그러던 것들이 이제와서는 입바른 소리를 해주는 대가로 웅행세라?
          >엘디아인과 마레의 운명은 이 작전에 달려있다. 더이... 실패는 용납되지 않아.
          * 그리고 지크의 발언까지 포함해, 전사장의 방에서 이루어진 모든 대화는 검열되고 있었다. "이 방에는 없다", 다른 방에는 있다. 마레인들이었다. 그들은 도청장치를 통해 전사들이 나누는 대화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결과는 양호. 갤리어드가 다소 불만을 표했지만 작전에 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임무엔 철저한 인물이다. 마레인들은 밀실대화의 내용이 이정도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고 결론짓는다. 단 한 명, [[마가트]]만은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지크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 부분. "이 방에는 없다". 마가트만큼 감이 좋은 마레인은 없었고, 전사들 중에도 별로 없었다. 라이너는 도청기 위치까지 알아챘다. 자신의 뒤쪽 축음기. 피크도 아마 지크의 암시를 눈치챘을 것이다.
          라이너는 본부 건물을 나와서 전사대가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방금 전 황은 대규모 작전의 전초작업이었다. 사검증. "그 시절"과 달라진 게 없는 방식. 그리고 눈 앞에서, 전사후보생을 놓고 다투는 가비와 파르코. 뭔가를 지키기 위해 죽일 듯이 다투는 모습. "그 시절"과 달라진 게 없는 방식.
          차력의 거인은 차원이 다른 지속력이 장점. 장기간 임무에 적합하며 그런 만큼 다양한 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 전술의 폭을 확연하게 넓힌다. 머리가 좋은 피크에게 맡기는 것이 적격. 지금 차력의 거인은 강줄기를 통해 전선을 통과, 적의 배후를 잡았다. 아직도 피난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이었다. 피크는 그 근처에 륙해서 어떤 케이스를 내려놓고 돌아가는데, 자신의 동료 [[베르톨트 후버]]였다.
          이 일곱 거인의 위력을 검증하는 자리에는 마가트 또한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저런 것들이 들이닥치게 될 "섬의 악마들"이 불쌍하다는 동료에게, 그도 동감을 표했다. 현 세대 계승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단련시킨 값을 충분히했다. 분명 전세대 보다 강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팔라디 작전과 그 작전을 인가한 층부를 불신했다. 고작 네 명의 전사들에게 시조 거인 탈환을 맡긴다? 그는 "제정신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동료는 "방금 전 그 애들이 나라 하나를 짓뭉개는 걸 봤잖아"라며 전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하긴 이 녀석은 훗날 밀실 대화를 듣고도 지크의 꿍꿍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놈이다.
          * 명령은 명령이다. 마가트는 시조 거인 탈환 작전의 세 개요를 전달한다. 실제 투입되는 인원은 턱, 갑옷, 여성형, 초대형의 네 명. 짐승과 차력은 본토방위를 위해 참전하지 않는다. 마가트가 설명 막바지에 라이너, 애니, 베르톨트, 마르셀을 거명하며 작전의 성공을 기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유일하게 한 사람, 포르코만 소외된다. 그는 아무 거인도 받지 못한 것이다.
          * 작전이 발표되자 전 국민적인 성원이 뒤따랐다. 작전에 참가하는 네 사람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카퍼레이드까지 벌이며 최고의 환희를 맛본다. 언제나 심드렁한 애니는 여전히 관심없어 했지만. 라이너는 거리를 가득채운 시민들 사이에서 어머니를 발견하고 감격한다. 그런데, 그는 퍼레이드에서 등 돌리는 어떤 남자를 발견한다. 낯설지 않다, 감이 왔다.
  • 최영미 (시인) . . . . 32회 일치
         | 이름 = 최
         '''최미'''([[1961년]] [[9월 25일]]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소설가]]이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섬세하면서 대담한 언어,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직시하는 신선한 [[리얼리즘]]으로 한국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에 따르면 "최미는 첫 시집이 너무 성공한 탓에 문학 외적인 풍문에 휩싸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행한 시인이다”. 1992년 등단 이후 시와 소설, 에세이를 넘나들며 5권의 시집을 펴내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청동정원》을 출간하고 미술과 축구에 대한 산문을 많이 썼지만, 한국에서 그녀는 여전히 시인으로 더 알려져 있다.
         [[서울대학교]] 2학년이던 198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내 시위에 가담하여 [[서울관악경찰서|관악경찰서]]에서 구류 10일을 살고 1년간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대학졸업 후에 반독재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비합법 조직 '제헌의회그룹'의 사회주의 원전 번역팀에 들어가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레닌]]의 저작물을 공동번역했다. 십 여명이 번역과 교열작업에 매달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해방 이후 최초로 현대 한국어로 옮긴 《자본 1》이 1987년 이론과실천사에서 김민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역자로 내세워 출판되었고, 출판사 대표는 사회주의 원전을 출판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1980년대 말 [[소련|소비에트 정권]]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최미는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되는 심각한 변화를 글로 표현하려 노력하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투명한 언어, 일의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정확한 비유, 대담한 발과 세련된 유머, 자본과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한국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첫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1994년]] 50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저서로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이미 뜨거운 것들》이 있다. 1970년대 서울 변두리의 가족사를 다룬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2005년)를 출간했고, 1988년 이후 26년 간 틈틈이 써온 원고를 다듬고 보완하여 1980년대 청춘의 방황과 좌절을 다룬 자전적인 소설 《청동정원》(2014년)을 펴냈다.
         최미는 인간의 조건을 풍자적인 언어로 파헤친 시집 《돼지들에게》로 2006년 [[이수문학]]을 수했다. 이수문학 심사위원 유종호교수는 “최미 시집은 한국사회의 위선과 허위, 안일의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며 다시 한번 시대의 양심으로서 시인의 존재이유를 구현한다”라고 수 이유를 밝혔다. 《돼지들에게》의 추천사에서 [[신경림]] 시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 없이는 이와 같은 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자칫 관념적 교훈적으로 될 수도 있는 알레고리적 방법이 시에 활기와 재미를 더해주는 점도 주목을 끈다”라고 썼으며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진정성과 언어의 조탁이 돋보인다”라며 심사평을 전했다.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2013년 반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다
         구겐하임(Guggenheim fellowship) 수자인 시인 제임스 킴브렐(James Kimbrell)과 유정열이 공동 번역한 3인 시집 《현대한국의 세 시인:이, 함동선, 최미》(''Three Poets of Modern Korea: Yi Sang, Hahm Dong-seon and Choi Young-mi> (2002,Sarabande books'')는 2004년 미국번역문학가협회(ALTA Awards:American Literary Translators Association)의 최종 후보로 지명되었다.
         최미의 시는 관습과 예의를 따지는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위험스런 모험을 느끼게 한다. 그녀의 스타일은 바로 그녀의 독립성이다. 그녀의 시는 삶으로 쓴 시들이다
         미국의 계관 시인이자 [[버클리 대학]] 교수인 로버트 하스(Robert Hass)는 2009년 버클리에서 열린 시 낭송회 런치 포임(lunch poem)에서 " 최미의 시는 추표현주의 회화같다."라고 평했다. 2005년 일본의 청수사(靑樹社)에서 출간된 최미의 시선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문화면 머릿기사로 다루며 《아사히신문》은 "다의성(多意性)이 풍부한 명석한 언어"라며 "시에 의해서 잉태된 언어를 이만큼 신중하게, 고독하게 기르고 있는 시인이 가장 이웃한 나라에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라는 사사키 미키로 시인의 평을 실었다.
         최미는 삶과 여행, 그리고 예술에 관한 산문집 『《시대의 우울: 최미의 유럽일기》,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를 출간했으며, ''Francis Bacon in Conversation with Michel Archimbaud''를 한국어로 번역해 《화가의 잔인한 손: 프란시스 베이컨과의 대화》(1998,도서출판 강)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인하대학교]]와 [[강원대학교]]에서 시 창작을 가르쳤으며, 지학사 고등검정교과서 문학(2014년)에 최미의 시 〈선운사에서〉가, 창비사 고등인정지도서 문학(2012년)에 〈지하철에서 2〉가, 학연사 고등검정지도서 작문에 (2012년) 산문집 《시대의 우울》, 〈쾰른〉편이 수록되었다.
         세 명의 한국 작곡가- 이건용, 김대성 그리고 안치환이 최미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서울오페라단]] 단장인 이건용이 작곡하고 전경옥이 노래한 아트 팝 겸 클래식 음반 《혼자사랑》 (1998년)에 최미의 시 4편을 노랫말로 삼은 〈선운사에서〉,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슬픈 카페의 노래〉, 〈북한산에 첫눈 오는 날〉의 4곡이 포함되었다. 무형문화재인 국악인 강권순의 창작 가곡집 《첫마음》(2007년)에 김대성이 작곡한 노래 '선운사에서'가 수록되었고, 안치환의 10집 앨범인 《오늘이 좋다》(2010년)에 안치환이 작곡하고 부른 노래 〈선운사에서〉가 실렸다.
         최미는 2011년 [[국회도서관]] 홍보 대사로 위촉되었고,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대한축구협회 축구사랑나눔재단 이사로 활동했다. 열렬한 축구팬인 그녀는 2006년 ''Die Tageszeitung''에서 발행한 독일월드컵 특집호 ''Taz journal Mai 2006''에 한국 축구에 대한 글을 기고했고, 2011년 축구 에세이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시는 내게 밥이며 연애이며 정치이며, 그 모든 것들 위에 서 있는 무엇이다. 그래서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시들이여. 세의 벗들과 적들에게 맛있게 씹히기를……<br/>으자자자작.
         나의 선택이 항 옳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마흔이 넘어 이해했다. 너무 늦기 전에 깨달음을 내려주신 신에게 감사하며 내일도 나는 광야에 홀로 서 있을 것이다.
         * 사가와 아키 "글로벌 시대의 세련된 지성" --2009년, 최미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의 해설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 . . . 32회 일치
         2010년에는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온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버전이 나왔지만 현재는 서비스가 종료된 태.
         게임 내 사용 가능한 자원으로는 인력, 군수품, 연료가 있다.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해당 자원을 제공하는 지역을 점령하여 얻어야 한다. 모든 지역(본부가 있는 곳 포함)이 인력을 제공하며, 총알 모양이 그려진 지역이 군수품을, 제리콘이 그려진 지역이 연료를 제공한다. 지역을 점령하려면 보병 유닛을 해당 위치의 전략 거점으로 보내 점령 작업을 시켜야 한다. 이렇게 지역을 점령하면 해당 위치에서 자원이 조금씩 들어온다. 이렇게 점령한 지역은 추가적으로 "확보"하는 과정을 통해 대가 빼앗는 걸 어렵게 하고 자원 획득량을 늘릴 수 있다. 확보의 방법은 각 진마다 다르다. 마지막으로, 점령한 지역이 본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해당 지역의 보급이 끊긴 걸로 쳐서 그 지역에서는 자원을 얻을 수 없게된다.
         보병 유닛들이 기관총 사격이나 박격포 공격같은 걸 당하면 제압 태가 된다. 제압된 보병 유닛들은 그대로 포복하기 때문에 생존성은 올라가지만 이동 속도가 느려진다. 이 태에서 추가적인 공격을 당하면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엎드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기 저하 태가 된다. 이 경우에는 총을 쏠 수 조차 없기 때문에 다른 유닛의 도움을 받거나 후퇴를 통해 본부로 돌려보내야 한다.
         차량 유닛들은 뒤에서 공격하면 "후방 피격!"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추가 피해를 받는다. 또한 공격을 받으면 여러가지 태이이 생길 수 있다.
          * 엔진 손
          엔진룸 부분이 노랗게 표시된다. 이동 속도가 느려지는 태이으로 제일 흔하다.
          엔진룸 부분이 붉게 표시된다. 엔진 손의 업그레이드 버전. 이동할 수 없다.
          주포 부분이 붉게 표시된다. 공격을 할 수가 없게 되는 태이으로 보통 죽기 직전에 걸린다.
          차량 유닛들이 죽을 때 일정 확률로 일어나는 현. 그대로 돌진해 어딘가에 꼴아박고 폭발한다. 이 태의 차량 유닛은 공격할 수 없다. 만약 꼴아박힌게 보병 분대였다면 걔네들한테도 피해가 간다.
         적 유닛을 죽이거나, 건물을 짓거나, 지역을 점령해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충분한 경험치가 쌓이면 지휘 점수가 주어지는데, 해당 지휘 점수를 사용해 중대 지휘 테크를 탈 수 있다. 중대 지휘 테크는 각 진마다 세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골라 타면 된다. 각 테크는 유닛과 건물의 성능을 향시키는 능력, 외부에서 제공되는 지원, 특정 유닛을 생산할 수 있는 권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국군 ====
         확장팩 "어포징 프론트"에서 추가된 진.
         네개 진 중 가장 이질적인 운 방식을 가지고 있다. 다른 진들은 건물로 된 본부를 가졌지만 국군은 본부가 지휘트럭이다.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MCV]] 같이 지휘 트럭을 펼치고, 접어서 위치를 바꾸고, 다시 펼치고 하는 방식. 지휘 트럭이 위치한 지역은 확보 판정을 받아 자원 제공량이 증가하고 적이 점령할 수도 없지만 지휘 트럭을 움직이는 동안에는 모든 지역이 보급이 끊겼다는 판정을 받게된다.
         확장팩 "어포징 프론트"에서 추가된 진.
          * 노르망디 륙 작전
          어포징 프론트에서 지원되는 캠페인. 주인공 세력은 국군. 노르망디에 륙한 국군 부대가 캉을 해방시키기까지 벌인 전투를 다루고 있다.
          테일즈 오브 발러에서 지원되는 캠페인. 막시밀리안 보스 대위가 전차장인 티거 전차가 주인공. 보스 대위와 포수인 조셉 슐츠 하사, 그리고 그 외 티거 전차의 승무원들이 빌레르-보카쥬에서 국군을 대로 벌인 전투를 다루고 있다.
         국군 세력과 이들이 주인공인 "캉 해방" 캠페인, 전차군단과 이들이 주인공인 "마켓 가든 작전" 캠페인이 추가되는 확장팩.
  • 편혜영 . . . . 32회 일치
         | 이름 = 편혜
         '''편혜'''(片惠英,[[1972년]]~)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예술대학|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이슬털기〉가 당선되면서 데뷔했다. 2007년 단편소설 〈사육장 쪽으로〉로 제40회 [[한국일보문학]]을, 2009년 단편소설 〈토끼의 묘〉로 제10회 [[이효석문학]]을, [[2012년]] 소설집 〈저녁의 구애〉로 제42회 [[동인문학]]을, 2014년 단편소설 〈몬순〉으로 제38회 [[이문학]]을 수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13~)로 재직 중이다.
         == 수 ==
         * 2007년 제40회 [[한국일보문학]]
         * 2007년 제5회 자랑스런 문화인
         * 2009년 제10회 [[이효석문학]]
         * 2010년 제18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문학부문)
         * 2012년 제42회 [[동인문학]]
         * 2014년 제38회 [[이문학]]
         * 2015년 제60회 [[현대문학]]
         |제목=작가 편혜 "엽기적이라는 말도 싫진 않아요"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7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이문학자]][[분류:한국일보문학자]][[분류:이효석문학자]][[분류:이문학자]][[분류:동인문학자]][[분류:절강 편씨]][[분류:현대문학자]]
  • 홍정욱 . . . . 32회 일치
         {{다른 사람|홍정욱 (배우)||대한민국의 탤런트 겸 화배우}}
          | 웹사이트 = [http://www.jwhong.com/ 공식 사이트]
         1998년 [[스탠퍼드 로스쿨|스탠포드 로스쿨]] 졸업 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뉴욕의 [[리먼 브라더스|리먼브라더스]] [[인수합병]] 그룹에 입사하여 투자금융가로 몇 년간 일하다 사퇴하고, 벤처기업 스트럭시콘의 창업자 겸 CFO로 재직했다. 2001년 병역 이행을 위해 가족과 함께 귀국했으며, 2002년 12월 오랜 경난에 시달려온 언론 지식기업 [[헤럴드 (기업)|헤럴드]]를 인수해 국내 최연소 언론사 CEO이자 [[헤럴드경제]] 및 [[코리아헤럴드]]의 발행인이 되었다. 2005년 인수 2년 반 만에 [[헤럴드 (기업)|헤럴드]]의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 [http://www.heraldcampus.co.kr/ 캠퍼스헤럴드], [http://junior.heraldcorp.com/ 주니어헤럴드] 등 새로운 매체를 창간하고, 서울어마을, 부산어마을 등의 운권을 획득하며 교육사업을 확장했으며, 2007년에는 프리미엄 여성채널 [[동아TV]]를 인수해 방송으로 사업역을 넓혔다(2015년 [[LF (기업)|LF패션]]에 매각). 그러나 2008년 [[대한민국 제18대 총선|제18대 총선]] 출마를 위해 [[헤럴드 (기업)|헤럴드]] 및 [[동아TV]] 회장직을 사임했다.
         2008년 4월 9일 노원구 병 선거구의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시 [[진보신당 (대한민국)|진보신당]]의 후보였던 [[노회찬]]을 누르고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제18대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통일위원회|국회 외교통통일위원회]] 위원, 독도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 위원이며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위원,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정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9년 9월 24일 [[한나라당]] 국제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으며, 2010년 8월 17일에 [[한나라당]] 2030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외에 [[한나라당]]에서 천안함대책위 위원, 북핵도발대책특위 위원, 서울시당공천심사위 위원, 지방선거기획위 위원, 2010 지방선거 중앙선대위 스마트유세지원부단장, 2010 지방선거 서울시장후보선대위 O2유세지원단장,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3년 연속 (2008, 2009, 2010) NGO 국감모니터단이 평가하는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으며, 2011년 6월에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주최하는 ‘제18대 국회 의정활동 종합평가회’ 에서 헌정우수을 수하였다. 2009년 바른사회시민회의 '바른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 , 2009년 제7회 시민일보 '의정대' 을 수하였다. 그러나 2011년 12월 11일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홍정욱은 화배우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남궁원]]과 [[이화여대]] 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 스튜어디스 출신의 양춘자 사이 1남 2녀 중 외아들이다. 누나인 홍성아는 미국 [[바너드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헤럴드 (기업)|헤럴드]] 계열사인 헤럴드아카데미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동생인 홍나리는 독일 [[베를린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최초의 동양인 여성 연주자로 선발된 바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홍정욱은 미국 [[바너드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http://www.jungheesohn.com/ 손정희](1974년~)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고 있다. 장인인 손명원은 [[현대미포조선]], [[쌍용자동차]] 사장을 지낸 전문 경인으로 정치인 [[정몽준]]의 손윗 동서이다. 처의 증조부는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제2대 의장을 역임한 [[손정도]] 목사이고, 처의 친할아버지는 [[대한민국 해군]] 창군 주역이자 전 국방부 장관인 [[손원일]] 제독이다. 처의 외할아버지는 [[김동조]] 前 외무부 장관이다.
         * 現 [[국립중앙박물관회]] 이사, 한미협회 이사, [[서울대학교미술관]] 운위원
         == 훈 ==
         * 2006년 아시아소사이어티 'Asia21 Fellow'
         * 2009년 바른사회시민회의 '바른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
         * 2009년 시민일보 '의정대'
         * 2011년 법률소비자연맹 ‘헌정우수'
         미국 주권자인 어머니를 통해 1985년 미국에 가게 되었으며, 미국 주권자로 [[1987년]] 군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2001년 주권을 포기하고 귀국해 군복무를 하였다. 30세를 넘긴 나이로 부모가 모두 환갑을 넘겼고 누나가 모두 분가한 이유로 2001년 12월 17일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육군 제30사단에 입대해 4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6개월간 서울용산초등학교에서 전산요원으로 공익근무를 한 후 2002년 제대하였다.
         |같은 지역구 의원 = (노원구 갑)[[현경병]]<br/>(노원구 을)[[권진 (정치인)|권진]]
  • 홍진 . . . . 32회 일치
         |출생지 = [[조선]] [[충청도]] [[동군|동]]
         |거주지 = [[조선]] [[충청도]] [[동군|동]] <br/> [[조선]] [[한성부]] <br /> [[대한제국]] [[한성부]] <br /> [[중화민국]] [[쓰촨 성]] [[충칭 시|충칭]] <br/> [[미 군정 조선]] [[서울특별시|서울]]
         |배우자 = 남
         |웹사이트 =
         |설명 = 이
         |출생지 = [[조선]] [[충청도]] [[동군|동]]
         '''홍진'''(洪震/洪鎭, [[1877년]] [[10월 3일]]([[음력 8월 27일]]) ~ [[1946년]] [[9월 9일]])은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1926년]] [[7월]]부터 [[1926년]] [[12월]]까지 제5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냈다. 본명은 '''홍면희'''(洪冕憙), 본관은 [[풍산 홍씨|풍산]]. 아명은 봉근(鳳根) 또는 우봉(又鳳). [[호]](號)는 '''만오'''(晩悟). [[충청북도]] [[동군]] 출생.<ref>[[한성부]] 출신설도 있다.</ref> [[1946년]] [[7월]] 심장천식으로 입원, 입원 중 남철의 권고로 세를 받고 세례명은 [[안드레아]]이다.
         [[1898년]] 법관양성소<ref>[[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전신</ref>를 졸업한 뒤 [[평리원]](平理院) 판사, 충주재판소 검사를 지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맞자, 변호사가 되어 경성부와·평양 등지에서 애국지사를 변론하는 법정 투쟁을 계속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연락책임을 맡아 활동했고, 4월에는 [[한성 임시정부]]의 조직에 참가하여 법무차장이 되었다. 그 뒤 중국 [[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으며, 법제위원장으로 헌법 개정, 국무위원 개선 등 제도 정비에 노력했다. 11월에는 임시의정원 충청도 선거위원장으로도 활약했다. [[1921년]] 4월 장붕(張鵬)의 뒤를 이어 하이 대한교민단(大韓僑民團) 단장이 되었고, 5월에는 임시의정원 의장이 되었다. 그해 8월 대(對) 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의 간사장이 되어 한국의 완전독립을 주장하고 일본에게 손해배을 요구했으며, 의정원 의원 25명의 연서로 태평양회의의 각국 대표에게 독립청원서를 발송했다. 다음해 7월 [[국민대표회의]] 문제를 둘러싸고 임시정부에서 의견대립이 생기자 [[여운형]](呂運亨)·[[김구]](金九) 등과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를 조직하여 사태를 수습하고자 노력했다.
         [[1923년]] 임시정부 법무총장에 선임된 뒤 여러 요직을 역임했다. [[1926년]] 7월 국무령(國務領)이 되었으며, 9월에는 외무총장까지 겸임하면서 비타협적 자주독립운동의 진작, 전민족대정당의 창당, 피압박민족과의 연맹 체결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시정 3대 강령을 발표했다. 임시정부를 강화하고자 노력했으나 독립운동단체들간의 분규가 계속되자 그해 12월 국무위원들과 함께 사직하고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27년]] 4월 하이에서 한국유일독립당 해촉성회를 결성하고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1월에는 [[베이징]]·[[우창]]·[[난징]]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연석회의를 열었다. 그해말에는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1930년]] 7월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중앙위원장 및 군민회의(軍民會議) 부위원장이 되었다.
         * [[1896년]] 의령 남씨 남숙희의 차녀 남복(南相福)과 혼인.
         :* [[4월 15일]] [[이규갑]]과 함께 한성정부의 각원 명단과 문건을 가지고 [[중국]] [[하이]](上海)로 망명. 압록강을 건너며 이름을 홍진(洪鎭)으로 바꿈.
         * [[1920년]] [[3월 19일]] 임시의정원 임위원회 제4분과 위원.
         :* [[4월 20일]] 해대한교민단장에 선임.
         :* [[8월 13일]] 해교민단 사무소에서 대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를 발족하고 임시회장으로 선출.
         * [[1938년]] 독립운동단체가 통합하여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이 결성되자, 광복전선 운 간부에 선임.
         * [[1945년]] [[11월 5일]] 한국 해방에 따라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 29명과 함께 [[충칭]]을 떠나 [[하이]]에 도착.
         :* [[12월 1일]] 임시정부 제2진으로 22명과 [[하이]]를 출발, 폭설로 김포가 아닌 군산비행장에 도착.
         :* [[12월 24일]] [[한국 소년군]] 총본부 고문에 추대되었다.<ref>아 비운의 역사현장 경교장(1993, 백범사실천운동연합) 221</ref>
         * [[1946년]] [[2월 1일]] [[명동성당]]에서 비국민회의 창립대회를 개최하고, 비국민회의 의장에 선출됨.
         :* [[7월]] 심장천식으로 입원, 입원 중 남철의 권고로 세를 받음(세례명 [[안드레아]]).
  • 황희두 . . . . 32회 일치
         '''황희두'''(黃熙斗, [[1992년]] [[1월 29일]] ~ )는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이자 현재는 소셜 디자이너로 활동중이다. 비리민간단체 [[청년문화포럼]] 초대 회장, [[주권자 전국회의]] 임 공동대표이며, 호는 청도(靑道)다.<ref>{{웹 인용|url=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865208|제목=청년문화포럼 황희두 회장, 열암 송정희 선생으로부터 ‘靑道’ 호 선사 받아|언어=ko|확인날짜=2017-07-04}}</ref> 수필가 겸 칼럼니스트, 금융인 [[황태]]의 아들이다.
         前 프로게이머 출신 황희두와 넛지스토리 대표 [[국도형]]이 만든 비리 민간단체다. <ref> http://www.sim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9017 "비리단체 청년문화포럼, 제1회 '컬쳐쇼' 녹화 성황리에 마쳐" 시민일보 2016.02.02. </ref>
         "청년이 청년을 돕는다"와 "청년이 세을 바꾼다"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사회적 문화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매 달 한 번씩 전체 회원이 모이는 <컬쳐쇼>를 진행한다. 2016년 1월 청년문화포럼을 설립해 21세기 新 문화운동,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 ADRF와 협력하는‘청년들과 함께하는 해외봉사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 노란 목도리 캠페인, 북트로(지하철 內 독서 장려), 동북4구 청년&청소년 문화행사 등의 다양한 사회 공익적 활동을 하고 있다.
         역대《컬쳐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가수 [[김장훈]], [[표창원]] 의원, [[곽노현]] 전 교육감, [[김태동 (1947년)]] 전 경제수석,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래퍼 [[정수]] 등이 참가하였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mhj21.com/sub_read.html?uid=100657§ion=sc243|제목=청년문화포럼 제9회 ‘컬쳐쇼’ 성황리 종료|뉴스=문화저널21|확인날짜=2016-11-26}}</ref>
         청년문화포럼의 고문에는 [[노소]], [[박립]], [[채현국]], [[홍사덕]], [[김태동]], [[송정희]], [[곽노현]] 등이 있다. (2017.11 기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정치 검찰의 비정적인 판단을 보며 현직 대통령을 고발한 내용이다. 청년문화포럼 민주참여위원회 김민성 위원장과 함께 국회 앞에서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 더불어“국회탄핵무효“ “계엄을 선포하라” “촛불시민을 다 죽이라”는 등의 선동과 내란 유발도 서슴지 않는 반국가적 장소에 나가고, 국회의 기정사실인 탄핵입장을 반대해온 국회의원까지 국회 윤리위제소 및 징계를 요구한 사건이다. <ref>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3|<긴급> 모두행복실천단 국회 앞 기자회견</ref>
         수필가 [[황태]],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을 필두로 문화운동가 [[황희두]], 서양화가 [[송미]], 캘리그라퍼 [[진성]], 기업인 [[국도형]] 등을 모아 단체 [[대한북레터협회]]를 만들어 '북레터 365 운동'을 활성화 시키는 중이다. 책에 편지쓰기 캠페인을 진행하여 독서 장려, 따뜻한 사회 만들기 등을 목적으로 다양한 활동중이다. 2015년 11월 [[대한북레터협회]] 임 부회장으로 선임되었다.<ref>[http://www.weeklypeople.co.kr/detail.php?number=1954 황희두 대한북레터협회 임부회장 겸 H&P GLOBAL COMPANY 마케팅이사 2015.12.10 | 주간인물]</ref> <ref>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061951018&code=910100 황희두 부회장, “시민문화운동 ‘북레터 365 운동’으로 대한민국 소통문화를 혁신하겠다.” 2016.01.06 | 경향신문 </ref>
         곽노현 임공동대표, 이주 민주노총 사무총장, 배우 문성근씨 등이 청구인단으로 참여한 내놔라시민행동은“국정원은 이번 정보공개청구를 사찰 근절 의지를 표명하는 계기로 삼아 기록을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며 시작된 시민운동으로 국정원의 불법 사찰을 근절하자는 취지의 운동으로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8290.html|“국정원, 민간 사찰 정보 내놔라” 정보공개청구 운동 첫발</ref>
         적폐청산과 국가 대개조를 위한 모임으로 트럼프 방한 반대, 사드 배치 반대, 박근혜 탄핵, 촛불 정치학교 등을 진행중에 있으며, 현재 임 공동대표로 선임되어 활동 중이다.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13095|적폐청산과 국가 대개혁을 위한 주권자전국회의 개최</ref>
         * "어제의 기성세대와 오늘의 청년이 내일의 청소년들을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하고 노력하여 좋은 세을 만들어야합니다." - 《박근혜 체포 기자회견 中》<ref>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3</ref>
         * [[2017년]] 주권자 전국회의 임공동대표
         * [[2017년]] 한일축제한마당 운위원
         * [[2016년]] 대한북레터협회 임부회장
         * [[2016년]] 한국소공인지원센터 센터장
         == 훈 ==
         * [[2016년]] 대한민국 문화발전인재 대 청년활동부문<ref>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0636|청년문화포럼 황희두 회장 ‘2016 대한민국 문화발전인재 대' 수</ref>
         * [[2013년]] 서울지방경찰청장 표장
         * [[2009년]] 제54회 스타크래프트 커리지매치 입
         * [[청년 사이 꿈을 묻다]] - 민중의소리, 2017.7. 바꿈 청년네트워크 42인 공동저서<ref>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31774|[신간도서]청년 사이 꿈을 묻다</ref>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창원 황씨]][[분류:MBC게임 히어로의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H&P Global Company]][[분류:희여골]][[분류:대한북레터협회 임부회장]][[분류:청년문화포럼 회장]][[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Team SCV Life의 선수]]
  • 경순왕 . . . . 31회 일치
         |설명 = 신라 경순왕
         |섭정 = [[대등|대등 김웅렴 공]]<br/>[[마의태자|태자 김공]]
         [[935년]] 11월 그는 재위 8년만에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하고, [[고려]] 조정으로부터 주국(上柱國) 낙랑왕(樂浪王)에 봉군되었다. 또 정승공(政承公)에 봉해지고 [[경주시|경주]]를 식읍으로 하사받았는데 그 품위가 [[태자]](太子)보다 높았다. 신란궁(神鸞宮)을 하사 받고, [[경주시|금성]]의 [[사심관]]에 임명되어 [[고려|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경순왕은 이름이 부(傅)이며, [[신라 문성왕]](文聖王)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대아찬]](大阿飡)을 지낸 [[김효종 (신라)|김효종]]이고, 어머니는 [[신라 헌강왕]]의 딸인 계아태후이다.<ref>성은 김(金)씨이다. 출처: 한국고대인명사전 - 헌강왕(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73670&cid=42953&categoryId=42953)</ref> [[927년]]부터 [[935년]]까지 재위하였다. 가계는 [[신라 문성왕]](文聖王)-대등 '김안'(金安)-각간 '김민공'(金敏恭)-추존 의흥왕 '김실홍'(金實虹. 일명 仁慶)-추존 신흥왕 [[김효종 (신라)|김효종]](金孝宗)-경순왕(敬順王)으로 이어진다.
         [[927년]] [[신라]]를 침공한 [[견훤]]에 의해 [[경애왕]]이 강제적으로 목숨을 끊게 되고, 그가 신라 56대 왕위에 올랐다. 그는 본래 왕위 계승 위치에 있지 않았으나, [[927년]] [[경애왕]]이 갑작스럽게 피살 당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즉위 배경은 미이며 왕위에 오를 당시 [[경애왕]]의 자녀들이 있었는지, [[화백 회의]] 추대를 받아서 즉위 했는지에 대한 진위 여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경순왕 정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74호)
         [[935년]] 11월 [[고려 태조]]는 태(太相) 왕철(王鐵) 등을 보내 경순왕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경순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고려에게 가는데 향나무 수레와 구슬로 장식한 말이 30여 리에 이어지니, 길이 막히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장을 친 것과 같았다. [[고려 태조|태조 왕건]]이 교외에 나와 경순왕을 접하여 위로하며, 궁궐 동쪽의 제일 좋은 구역(지금의 정승원(正承院))을 내주어 머물도록 하였다.
         [[935년]] 12월 경순왕을 정승공(正丞公) 주국(上柱國) 낙랑왕(樂浪王)에 봉하고 위계를 태자(太子)의 위에 두고 녹봉으로 1,000섬을 주었다. 또 왕을 모시고 온 관원과 장수들도 모두 다 관직을 주어 등용시켰다. 신라를 [[경주]]로 고치고 식읍으로 삼도록 하고, [[경주]]의 [[사심관]]에 임명하여 [[고려]]시대 사심관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경순왕은 첫째딸을 [[고려 태조]]의 손자인 [[고려 경종|경종]]에게 출가시켰는데, 그녀가 [[헌숙왕후]](獻肅王后) 김씨이다. 이 일로 [[고려 경종|경종]]은 그를 특별히 배려하여 보령(尙父令)으로 삼고 식읍과 녹봉을 더해 주었다. 그는 [[고려 태조]]부터 [[고려 혜종]]·[[고려 정종|정종]]·[[고려 광종|광종]]·[[고려 경종|경종]]대까지 5대에 걸쳐 살았으며, [[고려 태조|태조 왕건]]이 죽은 후에도 왕 다음으로 높은 존재로 인식되고 그 향력이 컸다.
         1904년작 경순왕 정 초본
         그가 죽자 그의 시신을 다른 [[신라]]의 왕릉이 있는 [[경주]]로 운구하려 하였으나, [[고려]] 왕실에서 왕의 구는 도성 밖 100리를 넘을 수 없다고 하며 반대함으로써 [[임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현재의 묘자리에 안장되었다. 이후 그의 묘소는 [[임진왜란]] 이후 실전되었다가 [[1747년]](조 23) 다시 되찾아 정비하였다.<ref name="dk01"/> 경북 경주 황남동의 숭혜전, 하동 청암면의 경천묘 등에 제향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746년]](조 22) 10월 14일 [[경기도]](京畿道) 장단(長湍. 현 연천군 장남면)에서 경순왕의 지석(誌石) 및 신도비(神道碑)가 나왔음을 아뢰는 동지(同知) 김응호(金應豪)의 소가 있고, 그 후속 조치로 [[1747년]] 4월 20일 경순왕의 묘를 수치(修治)하고 묘비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1748년]](조 24) 1월 29일에 고려 왕릉의 예에 준하여 경순왕릉에도 수총군(守塚軍) 5명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현재의 경순왕릉 모습을 유지 보존할 수 있었다.<ref name="dk01"/>
         경순왕릉비는 [[1748년]](조 24) [[연천 경순왕릉|경순왕릉]] 있근 경기도 연천군 장단면 고랑포 마을 민가에서 후손 [[경주 김씨]] 김빈(金礗)과 김굉(金硡) 등이 발견한 것으로, 비문 내용은 10여자 정도 남아 있는데 자연풍화 등으로 많이 훼손되어 거의 알아 볼 수 없다.<ref name="dk01"/> 이후 한국전쟁 당시 경순왕릉에서 300m 떨어진 고랑포리 시가 지역에 방치되어 오던 것을, [[1973년]] 고랑포 초등학교로 이전되었다가, [[1987년]] 경순왕릉 정화사업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비석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크기는 높이 132cm, 너비 65cm, 두께 16cm 이며, 태는 1면만 겨우 남아 10여개의 문자만 판독되고, 내용은 거의 알 수 없다.<ref name="dk01"/>
         ***셋째왕자: -(추정) 일부 문헌에 분공(永棼公) 김명종(金鳴鍾), [[경주 김씨|경주김씨 분공파]] 시조
         고려에 항복 후 경순왕은 첫째딸을 [[고려 태조]]의 손자인 [[고려 경종|경종]]에게 출가시켰는데, 그녀가 [[헌숙왕후]](獻肅王后) 김씨이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정승공(正丞公) 보령(尙父令)에 봉해지고 식읍과 녹봉을 더 받았다.
         경순왕 정 (1794년, 이명기작)
         경순왕의 어진을 처음 제작한 것은 [[통일 신라]]가 멸망한 직후인 고려 초였다.<ref name="kydy">[http://news.donga.com/Culture/3/07/20100602/28785354/1 ‘비운의 경순왕’ 초화 첫 공개] 동아일보 2010년 06월 02일자</ref> 경순왕을 추모하기 위해 그린 이 어진은 강원 원주시 고자암에 봉안해 놓았다.
         그 후 원본은 사라졌지만 조선시대에 이모한 작품 5점이 전하고 있다. 5점은 [[1677년]](숙종 2년) 강원 원주의 고자암에서 제작한 것, [[1749년]] 경북 천 은해사 용암에서 그린 것, [[1794년]] 초화가 이명기가 은해사본을 보고 다시 그린 것, [[1904년]](광무 8년) [[승려]] 출신 [[대한제국]]의 화가 이진춘이 이명기 본을 보고 다시 그린 것과, 이진춘 본의 초본 등이다.
         [[대한제국]] 시절 그려져 [[경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산 107-1 경천묘에 봉안중인 '경순왕 어진'은 [[2008년]]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74호로 지정되었다.<ref>[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829 경천묘 ‘경순왕 어진’- 경남도유형문화재 지정] 경남매일 2008년 12월 08일</ref>
         [[분류:생년 미|경순왕]][[분류:978년 죽음|경순왕]][[분류:신라의 왕|경순왕]][[분류:고려의 귀족|경순왕]][[분류:고려의 문신]][[분류:불교도 군주|김부]][[분류:고려의 정치인]][[분류:경주 김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고려 태조]][[분류:고려의 불교 신자]]
  • 노영하 . . . . 31회 일치
         |이름 = 노하(No Yungha)
         |사진설명 = 노하 9단
         |원어 이름 = 노
         '''노하'''(盧永夏, [[1951년]] [[3월 15일]] ~ )는 [[대한민국]]의 프로 [[바둑 기사]]이다.
         * [[1972년]] 제17기 [[국수전]] 준우승(대 윤기현)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07060020920802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2-07-06&officeId=00020&pageNo=8&printNo=15617&publishType=00020 盧永夏四(노하사)단 國手戰(국수전)서 河燦錫四(하찬석사)단 꺾어 河四(하사)단 重大(중대)한 失着(실착)] 동아일보 8면 1972년 7월 6일 확인</ref>
         * [[1984년]] 제2기 박카스배 본선,[[KBS 바둑왕전]] 해설자.<ref>노하는 30년동안 [[KBS 바둑왕전]] 해설자로 활약했다.</ref> <ref> (1984년 1월 14일) 《동아일보》[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1140020920502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1-14&officeId=00020&pageNo=5&printNo=19163&publishType=00020 KBS바둑왕전 盧永夏(노하)씨가解說(해설)] 동아일보 5면 1984년 1월 14일 확인</ref>
         * [[1995년]] 제4기 SBS 연승바둑최강전 본선 .<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61600209125005&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6-16&officeId=00020&pageNo=25&printNo=22884&publishType=00010 盧永夏(노하) 바둑비디오 출시기념회] 1995년 6월 15일 동아일보 25면</ref>
         * [[1996년]] 제5기 SBS 연승바둑최강전 본선 ,최고위전 본선,8단 승단(특레승단).<ref>(1996년 3월 24일) 《[[한국일보]]》[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3240020912201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3-2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3147&publishType=00010 盧永夏(노하) 8단으로 특례승단] 동아일보 22면 바둑 1996년 3월 24일 확인</ref>
         * [[1999년]] 제4회 LG정유배 본선, 9단 승단, 제1기 맥심배 본선, 제1기 청풍공기청정기배 프로 시니어기전 본선 .<ref>명해설가 노하 九단 승단</ref>
         * [[2004년]] 맥심배 입신최강전 본선(정수현 대로 백반집승 이후 대 박훈을 패배)
         * [[2006년]] 제8기 맥심배 본선(대 [[박훈]] 패)
         * [[2009년]] 한국경제신문 바둑 관전기 집필자.<ref>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41290041<ype=1&nid=105&sid=8398 한경바둑기보, 노하 9단이 해설] 한국경제신문 바둑</ref>
         * [[2012년]] 더 리버사이드 시니어 삼국지 본선(국수팀)
         * [[2013년]] [[KBS 바둑왕전]] 해설자 은퇴.<ref>노하 八단 KBS 바둑왕전 30년만에 해설자 은퇴로 퇴장.</ref> <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51906041 "조훈현 우승 중계 때 만세삼창 가장 감동…노하를 끝으로 바둑해설 1세대 퇴장합니다"] 한국경제신문 바둑 </ref>
         * [[2014년]] 2014 시니어 왕위전 조훈현 九단 제압<ref>[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4/09/25/1006000000AKR20140925174300007.HTML 바둑 노하, 39년 8개월 만에 조훈현에 설욕(연합뉴스)] 연합뉴스 바둑</ref>
         * [[2014년]] [[11월]] : 시니어 기사회장 역임<ref>[http://baduk.or.kr/info/report_view.asp?gul_no=1147&cur_page=0&key=1&keyword=시니어 한국기원 바둑뉴스 ‘시니어 기사회’ 발족초대 회장 노하 9단 선임]</ref>
         * [[경인방송]] : 노하의 바둑 이야기
         * 《바둑 이래야 늘어》 (양국 공저) - 한국기원
         * 《노하 바둑강좌》 비디오 10개
         * 《노하 바둑특강》 비디오 10개
  • 무라하치부 . . . . 31회 일치
         장례식과 소방 활동에는 도움을 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디까지나 도움을 주지 않으면 자신들까지 피해를 입을 황에서 지원을 준다는 의미.
         다른 설도 있는데, 없애다 줄이다는 뜻의 하부쿠(はぶく)나 튕기다는 뜻의 하지쿠(はじく) 혹은 쫓아내고 신용하지 않는다는 뜻의 하츠무(撥撫)가 변화하여 무라하치부가 되었고, 이의 이유는 민간어원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과 같이,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올 황이 아닌 이 거의 어떤 마을 행사에도 참가시켜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마을의 공동 자산[* 마을 주변의 야산 등. 땔감이나 산채를 채집할 수 없게 된다.]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며, 이웃 간의 최소한의 교제도 하지 않음으로서 철저하게 마을 내에서 "따돌림"을 하는 것이 바로 무라하치부라고 할 수 있다.
         무라하치부 자체는 법률로서 처벌이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범죄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사실을 통보하는 행위는 협박죄라는 판례가 존재한다. 또한 이로 인한 손해는 민사소송에서 배이 될 수 있다.
         전국시대에는 전국 다이묘에 의한 지배가 강화되고,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총촌의 자체적인 군사력이나 자치능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한 무라(村, 촌락)의 경제적, 자치적 기능이 우수하여 전국시대의 주들 역시 지배 단위를 무라로 삼았다. 무라 내부의 자치에는 크게 간섭하지 않고, 무라의 촌장을 통하여 촌락 단위로 지배[* 예를 들어, [[세금]]이 농민 개개인이 아니라 촌락 단위로 부가되는 등.]를 했던 것이다. 메이지 시대에 근대적인 행정이 도입되었지만 전통적인 농촌 지역 사회의 공동체적 생활양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현대까지 많은 향을 미쳤다.
         총촌은 오토나(乙名, おとな), 사타닌(沙汰人, さたにん)을 중심으로 자치가 이루어졌는데, 오토나는 마을에서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하며 집안이 좋거나 많은 농지를 보유한 유력자였다. 사타닌은 본래 마을에 주하며 주의 판결이나 명령을 집행하는 관리였지만 총촌의 자치능력이 강해짐에 따라서 지위를 세습하면서 마을의 중심적인 인사가 되었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와카슈(若衆)라고 불렸으며, 이들은 젊은이들만이 모인 숙소에서 집단 생활을 하면서 마을 내에서 자경, 방위, 소방, 농지 경작 등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대의 학교이자 청년단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아니고 젊은이들이 모였으므로 서로 간의 친목에 필요한 음주, 흡연을 가르치기도 하고 요바이(夜這い) 등을 통하여 연애, 결혼 대를 찾기도 했다.
         총촌의 치안은 이러한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창, 칼, 활 같은 무기로 무장하는 것 역시 일적이었다. 본래의 헤이안 시대의 국법대로라면 형사 재판과 처벌은 주나 관리가 하는 것이 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의 간섭을 무라 사회는 거부하는 예가 적지 않았고, 가마쿠라 후기에는 무로마치 시대에는 총촌의 자치능력이 강화되고 주의 지배력이 부족하다보니 이러한 자경 활동을 승인하였다.
         가마쿠라 시대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서는, 총촌에서는 회합으로 소우오테키(惣掟) 등의 독자적인 자치 규약을 만들고, 이 규약은 지배 주와 무라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맺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자치 규약을 위반할 경우에는 무라에서 자체적으로 추방, 재산몰수, 신체형(태형), 심지어 사형 등과 같은 엄격한 형사 처벌을 시행하였다.
         추방이나 재산 몰수는 일정한 연한이 지난 뒤 해제될 수도 있었지만, 절도나 해에 대한 처벌은 엄격하게 집행되었으며, 심지어 사형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이러한 무라의 자체적인 치안활동을 자검단(自検断)이라고 부른다.
         전국시대에 자검단은 전국 다이묘의 지배가 강화되면서 겉으로는 소멸, 감소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겉으로만 폐지되었을 뿐, 주로서는 무라에 과도하게 간섭해서 반발을 부르는 것보다 회유하여 연공을 받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묵인되고 있었다. 에도 시대에도 무라 내부에서 벌어지는 자검단은 거의 묵인되고 있었다.
         이러한 자검단의 징과도 같은 것이 농촌에서 보유하고 있던 대량의 무기이다. 에도 시대에는 신분지배의 징적인 관점에서 무기를 몰수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거의 명분의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무라에서 칼, 창, 총, 활 같은 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신불에게 헌납한다는 목적, 혹은 맹수 피해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인정되었다. 심지어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당한 양의 무기가 농촌에 보유되어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GHQ에 위한 무장 해제 정책, 극좌, 극우 혁명의 위험에 대비하여 경찰의 강력한 무장 해제 조치를 통하여 사라지게 된다.
         6월 24일 자 아사히 신문을 시작으로 전국의 신문과 잡지가 따돌림 문제를 보도하여 우에노 마을은 전국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시카와는 "불의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이 마을을 사랑하는 길입니까?"라고 신문 지에서 주장하였고, 이시카와가 다니던 후지노미야 고등학교(富士宮高等学校)의 학생회는 만장일치로 이시카와의 행동에 지지를 선언, 교직원들도 이시카와를 지지하여 7월 순에는 교직원 조합의 후지노미야 고등학교 분회, 시즈오카 현 교직원 조합에서도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이시카와는 경하여 마을에서 떨어져 있을 때도 있었지만, 1952년 가을 무렵에는 무라하치부는 진정되고 이시카와 일가 역시 교류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유력자는 "따르지 않으면 무라하치부 하겠다."며, 11가구에 대해서 산나물 채집과 쓰레기 수거함 사용을 금지했다. 주민 11명은 그 해 여름 무라하치부 중지를 요구하고 유력자 등 3명을 니가타 지방 법원에 제소하였다. 이에 대해서 지방 법원은 유력자 측에 불법 행위의 금지 등 총 220만엔의 손해 배을 명령했다.
         가해자인 남성은 본래 이 지역 출신으로 농림업을 하던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중학교 졸업 이후 경하여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에서 살고 있었다. 1994년 귀향하고 부모님을 개호하였으나, 가나가와 현에서는 미장이로 일하면서 귀향한 뒤에도 기술을 살려 집을 건축하고 현지 TV쇼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사별한 뒤에 지역 주민들과 문제가 잇따르게 되었다.
         이곳은 벼농사 지주의로서, 밭을 빌릴 땅을 찾으면 "자신들이 먹으려고? 파는 거야?"라고 물어보고 팔기 위해서라면 "쌀 이외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라고 거절했다. 지금은 하우스 제배 파벌에 들어가 있지만, 벼농사 농가에서는 여전히 따돌림 당하고 있다.
         치바현 모현의 별장지에 이주한 M씨(39세) : 주위는 본래 도시에서 살던 고소득 리타이어 노인 뿐이다. 1주일에 1번 씩 아이가 시끄럽다고 불만이 들어오고, 현관에 노부부들이 직접 몰려왔다. 집집마다 부지가 300평방미터 이은 되는데.
         외벽이 파손되어 재도장 공사를 하니까 "비식이다."고 연명 항의서가 투고되었다.
  • 박신우 (영화감독) . . . . 31회 일치
         {{화인 정보
         | 사진설명 = 《[[백야행 (화)|백야행]]》 시사회장에서 (2009)
         | 직업 = [[화감독]]
         | 웹사이트 =
         | 수 = 제3회 아시아나국제단편화제 단편의 얼굴
         '''박신우'''는 대한민국의 화감독이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가 재학시절 연출한 단편 〈금붕어〉로 제 9회 부산국제화제 선재펀드을 수했고, 원 재학시절 만든 단편 〈미성년자 관람불가〉로 제4회 미장센 단편화제 심사위원특별을 수하며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다. 연극화 감독데뷔작은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백야행 (화)|백야행]]》이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 《[[백야행 (화)|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 2011년 제9회 [[미쟝센 단편 화제]] 공포, 판타지부문 심사위원
         == 수 ==
         * 2004년 제9회 [[부산국제화제]] 선재
         * 2005년 제4회 [[미쟝센 단편 화제]] 심사위원특별
         * 2005년 제3회 아시아나국제단편화제 단편의 얼굴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화 각본가]][[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
  • 백정현 . . . . 3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top2=삼성 라이온즈/선수단)]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74CA1><bgcolor=#074CA1> '''{{{#FFF 백정현의 수 이력 / 역대 등번호}}}''' ||
         || [[이목]](2008) || → ||<#c0c0c0> '''백정현(2009~)''' || → || 현역 ||
         ||<:> '''학력''' || 옥산초 - 대구중 -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원고]] ||
         ||<:> '''등장곡''' || 키(Key), 도 - Cool ||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원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별명으로는 '백작가'[* [[작가(야구)|마운드 위에서 작품활동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여행 사진의 퀄리티가 사진작가급이라는 것에서 유래. --[[랜디 존슨]]?-- '이야깃거리' 항목 참조. ],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만 잘하는 것에서 따온 '오키나와 에이스', '오키나와 커쇼', 이름에서 따온 '백정', 그리고 못할 때는 '[[백린탄]]'이라고 불리며 까인다. 팀내 별명은 '말순이'인데, 과거 드라마 [[육남매]]에서 말순이 역할을 맡은 송은혜와 비슷해서 붙은 별명이다. 2017년 지금은 삼성 선발진에서 에이스나 다름 없는 활약을 하며 '백쇼'(백정현+커쇼)라는 별명이 거의 정착된 태.
         입단 첫해인 2007년에는 고교 시절 당한 무릎 때문에 재활하다가 그해 8월 21일 [[권혁]]의 부으로 인해 좌완계투 자리가 비자 데뷔 첫 1군에 콜업되었다. 1군 데뷔 첫 경기였던 2007년 8월 25일 KIA전에서 [[장성호]]와 [[최희섭]]을 연속 삼진으로 잡기도 했다. 이후 11경기에 등판한 채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
         특징이라면 150 가까이 나오는 구속으로 인해 탈삼진률이 급승했다. 그러나 이듬해 구속이 다시 줄면서 도루묵... 그래도 2군에서는 길게 던지는 걸 보면 선발요원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월 31일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 열린 [[kt wiz]]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였다. 3회까지 1실점으로 잘 막았지만 4회부터 제구가 흔들렸고, 2점을 더 내주고 1사 만루 황에서 강판되었다. 3과 ⅓이닝 동안 4피안타 5사사구 5탈삼진 5실점을 기록하였다.
         이 이후에는 불펜에서 롱 릴리프와 추격조 역할을 맡아 하고 있는데 2014년 불펜에서의 활약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듯 빼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시즌이 지나가면서 롱 릴리프 역할도 김기태에게 넘기고 추격조의 핵심으로 성장 중. 이 태를 유지하면서 한 시즌을 보낸다면 2016 시즌에는 승리조로 승격할 수 있을 듯.
         6월 16일 아침에 목욕탕을 갔다온 후 갑자기 허리 통증을 호소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대신 [[김현우(야구선수)|김현우]]가 올라왔다. [[이병훈(야구)|이병훈]] 해설위원 말로는 이날 목욕탕에서 자빠졌다고 한다. 6월 26일 1군에 복귀했다. 그러나 허리 부의 여파로 밸런스가 무너진 모습을 보이면서 7월 1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7월 30일 1군에 복귀했다. 7월 31일 두산전에서 1이닝 2실점, 8월 10일 넥센전에서 0⅓이닝 2실점 등 2경기 연속 부진했다. 8월 13일 다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권오준]]이 대신 올라왔다.
         장원삼이 30대 중반을 향해가고 박근홍이 좌완 불펜 No.1을 하고 있는 삼성인지라 큰 기대를 걸고 육성하는데 당최 안터져서 안타까운 선수. 동갑내기 차우찬은 부침이 있었지만 결국 리그 수위급 선발투수로 정착하는데 성공했기에 더더욱 아쉬운 황.
         시즌을 총평하자면, 그놈의 부이 문제였다. 6월까진 방어율 2점대를 유지했으나, 부 이후 제 기량을 찾지 못하면서 그냥 폭탄이 되어버렸다.
         4월의 기록은 7경기 7.1이닝 평균자책점 1.23이고 16시즌 약화된 삼성불펜으로 인한 분식회계까지 생각하면 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3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10회말 6:6 동점 황에서 등판하여 첫 타자 김문호를 잘 처리했지만 후속타자 황재균에게 초구를 얻어맞고 끝내기 홈런을 내주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7월 14일 롯데전 3번째 투수로 등판해 무려 '''11경기 연속 출전을 달성했다!''' ~~대전 모 팀 감독님도 이런 짓은 안 하시는데...~~ 박근홍이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는데, 이닝 쪼개기와 좌우놀이를 즐겨 하는 코칭스태프의 성향 팀 내 유일한 좌완 계투인 백정현이 휴식일 외에는 계속하며 등판하고 있으며 선수는 선수대로 연투에 지쳐서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
         7월 21일, 두산과의 3차전에서 7회에 또 등판. 선두타자 김재환을 김수의 실책으로 내보냈고, 이어 폭투로 김재환을 2루에 보내며 무사 2루의 위기를 맞았다. 허나 민병헌-오재일-양의지에게 '''147km'''에 육박하는 공을 던지며 세 타자 모두를 뜬공으로 잡아내고 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시즌 6번째 홀드를 기록해 냈다. 이후 꾸준히 필승조로 나오다 팀내 선발진 붕괴로 인해 9월 들어 선발진에 편입되었다.
         '''[[윤성환|윤태자]]와 함께 명실부 2017 라이온즈 원투펀치'''
         코칭 스텝의 의 끝에 불펜으로 다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팀내 믿음직한 좌완 불펜이 사실 전무하다 시피 한점 때문에 내린 결정 같은데, 하지만 작년에 선발로써 보여준 가능성을 생각해서라도 이러한 결정에 대한 비판여론이 많다. 비판을 의식했는지 확정 의견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 슈퍼히어로 . . . . 31회 일치
         [[초인]](Super), [[웅]](Hero)이 등자하는 [[픽션]]. 혹은 그러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
         슈퍼히어로란, 초인(Super) 웅(hero)이다.
         === 웅 ===
         슈퍼히어로 장르가 다른 액션물, 배틀물과 차별화 되는 점은 슈퍼히어로인 주인공은 사회(사회는 도시, 세계, 때로는 우주가 되기도 한다.)를 악으로부터 수호하는 '[[웅]]'이라는 점이다. 즉, 슈퍼히어로 장르의 주인공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건 사회의 웅으로서 활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 특성 슈퍼히어로가 존재하는 사회는 일반적인 경찰이나 군인이 해결하기 힘든 황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미치광이 과학자가 거대한 로봇을 만들어 도시를 공격한다던가, 사악한 목적을 가진 비밀결사가 암약한다던가, 파괴적인 외계인이 침공해온다던가, 엄청난 괴력을 가진 슈퍼 빌런이 날뛴다던가. 그러다보니 경찰이나 군대조차 버거워지고, 그러기에 슈퍼히어로가 나서야 하는 황이 된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부패해서 빌런은 물론 경찰, 군대와 싸우게 되기도 하며 이럴 경우 슈퍼히어로는 부패한 권력에 맞서서 무고한 약자를 보호하는 일종의 혁명가이자 자유의 투사에 가까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특성 작품이 [[능력자 배틀]] 경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히 '[[초능력]]'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지혜]], [[용기]] 같은 정신적인 측면의 역할도 많이 나타난다. 특히 자신의 능력을 약간 활용한 기천외한 아이디어나 전술로서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많다.
         여담으로 슈퍼히어로 장르의 작품은 일반적인 [[배틀 만화]]보다 오히려 [[파워 밸런스]]가 당히 엉망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저스티스 리그]]를 압도하던 하얀 화성인을 일반인들이 [[라이터]] 하나로 제압당하거나.(…) [[뱃신]] 같은 사례가 있다.[* 다만 이 경우는 화성인들의 약점이 불이라서다.]
         어로는 시크릿 아이덴티디.
         슈퍼히어로는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데 주로 자신의 주변인들에 대한 보복 우려나 일생활의 보장 등의 이유가 있다. 만약 이 정체가 들통나면 무슨 사단이 벌어지는지는 불행 히어로의 대명사 [[스파이더맨]]의 경우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다보니 작품에 따라서는 맨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웅을 믿을 수 없다는 묘사가 나오거나 아예 정부에서 얼굴 보이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히어로에 따라 조금 달라지는데 [[슈퍼맨]]은 얼굴을 가리는 코스튬이 아니지만 이 비밀 신분은 확실하게 만들었다. [[판타스틱 포]]의 경우 없다. 그냥 자신들에 관해 다 공개했다. [[헐크]]의 경우에는 딱히 숨기고, 뭐고 할 황이 아니다.
         다수의 슈퍼히어로들이 힘을 합치는 스타일로 [[슈퍼히어로 팀]]이 있다. 슈퍼히어로들의 조수로 [[사이드킥]]이란 개념이 있다.
         == 매체 ==
         슈퍼히어로를 소재로 한 실사물은 당히 역사가 깊다. 캡틴 아메리카의 경우 1944년에 최초의 화가 나왔으며 소위 말하는 펄프 히어로들도 흑백 시절에 화가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의 화화는 1930년대.
         화 외에도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처럼 슈퍼히어로를 소재로 한 드라마도 만들어졌다.
         이런 실사매체에서 히어로들의 힘에 대한 묘사력은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성장하고 있는 황이다. 이는 초능력에 대한 묘사만이 아니라 격투같은 액션도 마찬가지. 다만 딱히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 [[사이드킥(웹툰)]]
  • 안영준 . . . . 3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농구 관련 인물(한국), top2=동명이인/ㅎ)]
         ||<-2><#ef6c00> {{{#ffffff 안준}}} ||
         || '''출신지''' || [[경북도]] [[구미시]] ||
         || '''수내역''' || KBL 최우수 신인 (2018) ||
         ||<width=125><:> [[강재]][br]([[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 → ||<width=125><:> '''안준[br]([[서울 SK 나이츠|서울 SK]])''' ||<:> → ||<width=125><:> 미정 ||
         ||<width=125><:> 없음 ||<:> → ||<width=125><:> '''안준[br]([[서울 SK 나이츠|서울 SK]])''' ||<:> → ||<width=125><:> 미정 ||
         2017년 11월 5일 오리온전에 데뷔전을 치뤘으며 7분여 정도 소화하면서 6득점 2리바운드로 출전시간 대비 당히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지금까지 활약으로 봤을 때 본인의 좋은 피지컬에 기반한 적극적인 수비력과 리바운드에서 강점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평.
         드래프티 동기인 허훈과 양홍석도 소속팀 kt에서 활약 중이고 안준은 팀 성적에서, 허훈은 개인 성적에서 대방보다 앞서 있었기에 신인왕에 어느 선수가 적합한지 여러 의견이 오가는 중 뜬금없이 3월 9일 [[유재학]] 감독이 기자들의 신인왕 관련 질문에“자질만 놓고 보면 양홍석이 안준보다 훨씬 낫다”, “양홍석은 국가대표가 될 수 있지만, 안준은 지금처럼 하면 국가대표에 뽑히기 힘들다. 가지고 있는 기본 자질이 다르다”라고 평가한 보도가 나왔다. [[http://www.basket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78063|기사]] 유재학 감독이 국가대표 선발 주무 부처라고 할 수 있는 농구협회 경기력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선수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순 있겠지만 동시에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두고 경쟁하던 팀의 감독이니만큼 언론에 대고 한 본 발언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부터 안준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위한 고비였던 DB, KCC전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활약했으며 팀을 정규시즌 2위로 올린 활약을 바탕으로 2017-18시즌 신인왕을 수했다. 유효 투표 108표 중 59표를 득표하며 각각 39표, 18표를 얻은 허훈과 양홍석을 제쳤다.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대팀의 에이스인 에밋을 잘 수비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외곽슛을 성공시키며 활약했다. 1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야투율 100%), 2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 3차전 13득점 4리바운드, 최준용이 부으로 결장해 활약이 절실했던 4차전에서도 파울트러블로 고생하면서도 3점 3개 포함 16득점 6리바운드로 펄펄 날며 이번에는 팀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올려놓았다. 4차전 4쿼터에 5반칙 퇴장을 당한 것은 옥에 티. 신인답지 않게 터프한 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3점을 던지는 모습에 문경은 감독에게 강심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원주 DB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신인답지않은 레이업을 하는 등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차전 4쿼터 막바지, 버튼의 팔꿈치에 얼굴이 접촉된 후 몸이 뒤로 넘어진 것이 플라핑이라고 지적받으며 성숙하지 못한 플레이라고 팬들에게 비판받았다. 슬로우로 봤을 때 버튼의 팔꿈치가 명백하게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접촉의 강도가 약했음 에도 불구하고 액션이 과했다는 지적이 존재했다. 정규리그 동안 안준이 이러한 플레이를 한 적은 없었고, 플라핑은 본래 근절되어야하는 플레이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SK나이츠가 18년만에 우승하면서 신인왕+챔피언결정전 우승에 성공한 역대 6번째 선수가 되었다. 소속팀이 워낙 오랫동안 무관으로 고생했던지라 너는 축복받은 선수다라고 선배들이 말하는 듯. 안준 본인도 대학 우승 이후 곧바로 프로에서 우승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SK 나이츠 국내 선수들 중에서 챔피언결정전 평균출장시간이 28.1분으로 팀내 최장출장시간을 기록했다. 첫 시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대활약. 신인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면서 성장시키는 스타일의 문경은 감독 체제하에서 발전이 기대되는 선수다.
         연세대 1년 선배인 [[최준용]]과 자주 붙어다니며 팬들 사이에서는 '연세대 콤비'라고 불린다.
         ||<:><#0A6EFF> {{{#ffffff '''이름''' }}} || '''안준'''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3X3 농구]] 종목에 출전하기 위해 [[김낙현]], [[박인태]], [[양홍석]]과 'KBL 윈즈'팀을 결성하여 3X3 코리아 투어 선발전에 참가했다. 2018 KBA 3x3 코리아투어 최강전에서 'KBL 윈즈'가 우승했고 안준은 MVP를 받았다.
         좋은 피지컬 능력을 이용한 돌파, 적극적인 수비가담, 그리고 리바운드에 강점이 있다. 이 부분은 프로에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야투 기복이 존재하며 대학 4학년 기준 3점슛 성공률은 26.19%(22/84) 로 다소 떨어졌다. 드래프트 전 평가는 외곽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슬래셔에 가깝다는 평가였고, 프로에서는 대학무대에서의 활약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많이 존재했다. 하지만 프로 진출 후 문경은 감독에게 슈팅폼 수정을 받은 후 3점슛 정확도가 매우 승한 케이스이다. 팀 선배 [[최부경]]과 함께 경기 2시간 전부터 슈팅연습을 할 정도로 노력을 보인 끝에 데뷔시즌부터 본인의 약점이였던 3점슛을 크게 개선시켰다.
         1년 선배인 최준용에 비해 돌파라는 '확실한 득점 루트'가 있는 것이 장점이다. 운동능력을 이용해 미리 떠서 대의 블락을 피하는 경우가 많고, 몸으로 밀고 들어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볼 핸들링이 나쁘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외곽에서 헤지테이션에 이은 크로스 오버 돌파를 자주 시도하는 편이다. 데뷔시즌 4강 플레이오프 때부터 챔피언결정전 6차전까지 내내 터졌던 3점슛은 SK 나이츠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 [[서울 SK 나이츠]]에서 지명을 한다면 1년 선배인 [[최준용(농구선수)|최준용]]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서울 SK 나이츠]] 감독인 [[문경은]]이 "[[허훈]], [[양홍석(농구선수)|양홍석]], [[유현준(농구선수)|유현준]]은 어차피 앞에서 뽑힐 것이고, 우리 순번에서는 [[안준]]과 [[김국찬]]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우리 팀에는 [[김국찬]]보다 [[안준]]이 더 어울린다"고 애기하였다. 왜냐하면 슈가를 뽑아봤자 변기훈과 화이트와 롤이 겹치는데다, SK의 백업 포워드가 [[김우겸]], [[함준후]] 정도라는 걸 감안한다면 포워드인 안준을 뽑는 것이 선수풀의 유지를 위해서는 더 좋다는 시각. 그리고 이 예처럼 문경은 감독은 안준을 뽑았고, 김국찬은 다음 순위로 KCC로 갔다.
  • 양예나 . . . . 3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유용근밴드리즈)]
         ||<bgcolor=#FF69B4><:>'''{{{#ffffff 학력}}}''' ||<(>지묘초등학교 (졸업)[* [[샤이니]]의 [[Key(샤이니)|Key]]가 나온 그 학교다.][br]공산중학교 → [[용인한빛중학교]] (졸업)[br][[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연극화과 (재학) ||
         [[대한민국]]의 6인조 [[걸그룹]] [[APRIL]]의 멤버다. 2000년에 탄생한 밀레니엄 베이비 세대다. 15세라는 당히 이른 나이에 데뷔했는데, 이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은 [[아이유]]와 [[샤이니]]의 [[태민]], [[f(x)]]의 [[설리(배우)|설리]]와 [[크리스탈(f(x))|크리스탈]], [[포미닛]]의 [[권소현]], [[현아(가수)|김현아]][* [[포미닛]]으로 데뷔 전 [[언더걸스]] 멤버였다.], [[유용근밴드리즈15]]의 [[오하]], [[언더걸스]] [[선미]], 배우 [[안소희]][* [[언더걸스]] 멤버였다.] 등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막내가 아닌데, 팀에 데뷔 당시 기준으로 [[이진솔|前 대한민국 공식 최연소 여자 아이돌]]이 있기 때문.
         개인 소개를 할 때 자신을 [[APRIL]]의 다람쥐라 소개하며 양볼에 주먹을 갖다대는 제스쳐를 곁들인다.[* 유일하게 외형적인 면을 소개 멘트로 쓰는 멤버이며, 말 그대로 다람쥐를 닮아서 이기 때문이며 황에 맞게 바꿔 부르기도 하다. ex)예람쥐, 날다람쥐]
         과거 육선수였던 이력으로 팀 내에서 운동 신경과 체력이 가장 좋은데다 겁도 없어, 몸 쓰는 일에는 단연 발군인 멤버.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은 나서는 일없이 말수가 적고 침착하며 조용한 편이고 감정 표현 또한 크지 않다. 하지만 순발력과 체력을 담당하는 게임감만큼은 출중해 팀내에서 멤버 간 대 승률이 가장 높은 편이다.
         때론 포스 있어 보일 수 있지만 멤버들과 있을때는 꽤나 장난꾸러기이며 웃을 때는 락없이 귀여운 소녀의 모습으로 멤버들에게 스킨십으로 애정 표현을 한다. 본인 말로는 팀에서 리액션을 맡고 있다고 한다. --반사신경은 [[이나은]]이 압승-- 그리고 팀에서 애교도 가장 많다고 한다.
         하지만 포근함과 차가움 두가지 반된 매력을 자연스럽게 모두 갖춘 캐릭터는 아마 예나가 유일할 것이다.
         동글동글한 인으로 코위로 눈과 눈썹만 봤을때 꽤나 잘생긴(!) 외모 이지만 양볼살이 큰 매력으로 귀여움이 묻어나는 편이다.
         노래 파트는 멤버들 중 적은걸 넘어서 [[병풍|거의 없다시피한 수준]]이다.[* 꿈사탕 활동 때는 '''단독 파트가 아예 없었고''' Muah! 활동 때는 '''어머~'''였다. 팅커벨 활동 때는 ''''Make Your Smile.'''', ''''두눈을 감고'''', ''''나는 팅커벨!''''.봄의 나라 이야기에서는 ''''난 그래요'''' 네 글자가 전부.. MAYDAY는 '''Help me help me babe right now, 누가 날 좀 도와줘 내게서 이 마법을 제발 풀어줘'''뿐이다. ~~그나마 이건 글자가 많네~~ 파랑새 에서는 (마법처럼도 있지만) '''"할 말이 있어"''' 부분만 눈에띈다.아무래도 춤에 비해선 가창력이나 라이브 안정감이 많이 부족한게 이유인 듯하다. 때문에 보컬적인 면에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팬들 사이에선 예나의 노래 파트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 ~~아니 딩고라이브 팅커벨이랑 WOW를 보면 전혀 못하는게 아니던데???~~
         평시 말할 때의 보이쉬하고 씩씩한 목소리에 비해 노래 부를 때 목소리는 전 멤버 [[이현주(배우)|이현주]] 부럽지 않게 가냘프고 여리여리하고 포근하다.또 허스키한 목소리가 난다.[[오마이걸]]의 [[아린]]과 비슷한 목소리지만 더 묵직한 느낌이 있고 목소리가 [[에이핑크]]의 [[박초롱]]과 비슷하다.그래서 에이핑크의 LUV를 더쇼에서 부를때 초롱파트를 맡은것 같다. 시간아 멈춰라에서"조금 조금씩 네가 가까워져
          * 2015년 11월 22일 [[KBS 2TV]] <[[출발 드림팀|출발 드림팀 시즌2]]>에 출연했다. 좋은 기량을 보여주며 결승에 진출하였으나,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805762|탈진 증으로 기권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br]
          * 음식 중에서 빵을 당히 좋아하는데 가족들도 인정하며 편의점내 수 많은 음식중에 빵만 고를 정도였다.
          * 육 경력 때문인지 댄스와 달리기가 취미라고 한다. 다만 [[APRIL]]의 첫 [[아이돌스타 육 선수권대회|아육대]] 출전인 [[아이돌스타 육 선수권대회/2016년|2016 설날 아육대]] [[육]] 60m 예선에 출전했으나 [[광속 탈락|광탈]]했는데, 중계석에서는 예나를 [[이진솔|진솔]]로 착각해서 "[[이진솔|진솔]]! [[이진솔|진솔]]!"로 불렀다.--[[안습]]-- 2년 후 복귀전을 치른 [[아이돌스타 육 선수권대회/2018년|2018 설날 아육대]]에서 [[리듬체조]]에 출전한 [[레이첼(APRIL)|레이첼]]이 난적 [[성소]]를 꺾으며 [[APRIL]]의 첫 [[아이돌스타 육 선수권대회|아육대]] 메달이자 [[APRIL]] 최초의 [[아이돌스타 육 선수권대회|아육대]] 금메달을 획득했다.
          * [[아이돌스타 육 선수권대회/2018년|2018 추석 아육대]]를 통해 오랜만에 육에 복귀했으나, [[이진솔]]과 함께 나간 60m는 또 예선에서 광탈했고 첫 출전한 400mR은 [[APRIL|에이프릴]]이 윤여춘의 저주(...)에 걸리는 바람에 4위에 그쳤다. 이 날 에이프릴은 [[리듬체조]]에 출전한 [[이나은]](후프)이 동메달을 획득하며 [[리듬체조]] 2연속 메달 행진을 이어 갔다.
          * 한 살 아래 동생인 멤버 [[이진솔]]과 친한 듯하다. 실제로 유튜브에 들어가면 이진솔을 챙겨주거나 진솔과 투닥거리는 들이 있다. ~~같이 헬륨 가스를 마시기도 한다~~ 또한 APRIL 멤버 중 가장 친동생 삼고 싶은 멤버로 이진솔을 꼽았다. 스킨십하는게 좋다며. --[[이진솔]]이가 완강하게 거부(?)한건 덤--
          * 담력이 당한 듯하다. [[APRIL이 간다]]에서 망설임없이 번지 점프를 제일 먼저 하고 날다람쥐로 진화(읭?)한다던지, 폐가도 성큼성큼 들어가서 돌아다니며 웃으며 춤까지 출 정도. ON APRIL에서도 다른 멤버들은 놀이기구가 무서워서 울려고 하는데 예나는 '스릴있는걸 못타서 아쉽다'라고 하며, [[아프리카 TV]]에서 공포 게임인 [[Five Nights at Freddy's 4]]를 플레이해 보는 방송이 있었는데, 다른 멤버인 [[이현주(배우)|이현주]], [[이나은]]은 무서워서 기절하려고 하는데 예나는 아주 무덤덤. ~~정작 심박수는 제일 높다는게 함정~~ [[https://youtu.be/KOlh9SiHq-M|보기]] [[https://youtu.be/KuQf2_z0MWg|다른 게임]]
          * 2016년에 고등학생이 된다. 이후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예나가 입학하게 된 기수부터 연기예술과의 명칭이 연극화과로 변경되어서 연기예술과로 표기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이진솔]], [[레이첼]]을 고등학교 후배로 맞이하게 된다.
  • 원피스/870화 . . . . 31회 일치
          * 나미가 [[디]]의 구출, [[포네그리프]] 확보라는 자신들의 목적과 "가족을 구한다"는 디의 목적까지 모두 이뤘는데 싸울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 [[빈스모크 저지]]는 디에게 왜 자신을 구했냐 묻는데 그는 "아버지가 슬퍼할 테니까"라고 대답한다.
          * 디는 제프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가족을 구한 것 뿐이라며 자신이 저지의 아들이 아님을 인정하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요구한다.
          * 저지는 디의 말대로 하겠다며 "이스트 블루"에도 손대지 않겠다 약속한다. 그리고 제르마66이 호위를 할 테니 벳지의 탈출작전을 실행하자고 한다.
          * [[빈스모크 레이쥬]]가 빅맘의 공격을 받고 휘청대자 결국 참다 못한 디와 루피가 뛰쳐나와 빅맘을 막는다.
          * 빅맘 [[샬롯 링링]]이 눈을 뜨고 무서운 보복이 이어진다. "빅파더"로 변한 [[카포네 갱 벳지]]가 그 공격을 막아내다 사경을 헤맨다. 빅맘의 딸이자 벳지의 아내인 [[샬롯 쉬폰]]이 성의 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그녀는 자기와 손주의 얼굴을 봐서 남편을 용서해달라 애원한다. 너무 섣부른 짓이었다. 평소에도 [[샬롯 로라]]를 연시킨다고 학대를 일삼던 빅맘이다. 쉬폰의 얼굴을 보다 더욱 화를 터뜨린다. 얼굴을 보였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녀도 암살 공범이란 이유로 공격이 거세진다.
          * 빅파더 내부의 방. 벳지의 분신체가 고통에 겨워 몸부린친다. 빅파더의 위용에 환호하던 [[몽키 D. 루피]]도 황의 위급성을 인식한다. 본래 빅파더는 보통 대포 따위는 먹히지도 않는 방어력을 지녔지만 빅맘은 차원이 너무 달랐다. 루피는 더는 못 보겠다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빅맘을 날려버리겠다고 성화다. 그걸 [[쵸파]]와 [[나미(원피스)|나미]]가 찍어누르다시피 막는다. 나미는 그가 화풀이로 싸우려 드는 것에 불과하다며 밀집모자 일당의 목표는 모두 달성됐다고 쏘아붙였다. 그들은 [[디]]를 탈환하고 [[포네그리프]]의 사본을 확보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 본래 목표는 아니지만 뜻밖의 부수입도 있었다. "가족을 구하고 싶다"는 디의 의지도 이루어진 것이다. 나미가 큰소리로 루피를 꾸짖으며 그렇게 말한다. 빈스모크 일가에게도 들릴 정도로.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던 [[빈스모크 레이쥬]]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빈스모크 저지]], 그리고 무감정한 빈스모크 형제들 조차도 벌레 씹은 표정이다. 디는 자기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네놈들 따위 처음부터 어찌되건 관없었어...
          감격에 겨워하는 벳지의 패밀리. 놀랍게도 벳지는 딱 한 가지 탈출루트를 구해냈다. 사실 지금 이들이 있는 방은 벳지의 열매 능력. 벳지가 인간으로 돌아가도 아무 향이 없다. 그래서 벳지는 일행을 넣어둔 채로 "인간" 모드로 돌아가, 시저가 자신을 들고 하늘로 도망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럴듯하지만 시저는 "내 목숨을 희생하는게 전제지 않냐"고 반발, 자살행위라고 치를 떤다. 틀린 말 만은 아니다. 이미 샬롯가의 형제들이 진치고 있으니. 벳지가 인간체로 돌아가는 순간 벌집이 되는 미래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무장색 패기 구사자도 차고 넘치니 가스화한 시저라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건 덤.
          * 한편에서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동안 저지는 조용히 디에게 묻는다.
          >어째서 구했지? 적의 함정에 빠진 증오스러운 대인 우리들을...!
          디는 여전히 담배를 깨문채로 대답했다.
          끔찍한 학대의 나날. 가정의 정은 커녕 인간 이하의 삶이 주어졌던 어린 시절. 디는 지금도 그때의 악몽에 몸서리친다. 그러나 그것들도 이제는 흘러간 일. 그때의 원한을 고집해서 핏줄의 죽음을 비웃는 속좁은 인간이 된다면, 한심하게 여길 것이다. 그의 "진짜 아버지"인 [[제프(원피스)|제프]]가 말이다.
          이것이 그가 택한 끝맺음이었다. 루피는 조용히 디가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나누는 대화를 경청했다.
          * 디는 [[원피스/841화|저지가 원했던 대로]] "빈스모크 디"는 13년 전 바다에서 한 번 죽었다고 말한다. 디는 그날 도망치려 했지만, 사실 그건 저지에게 버림 받은 거였다. 아버지라고 부르게 허락하지도, 자기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게 했던 그날. 돌이킬 수 없는 부자가 같은 기억을 회한다. 디는 빈스모크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아당긴다.
          동료들은 디의 절연선언을 묵묵히 듣고 있다. 그리고 저지,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이 버린 아들의 얼굴을 쳐다봤다.
          >관없다.
          루피가 거기에 고무돼서 자신도 시간벌이에 나서겠다고 하지만 디가 그러지 말라고 한다.
          * 벳지의 품을 해집고 두 명이 튀어나온다. 디와 루피. 디가 "디아블잠브 스트라이크"로, 루피가 "고무고무 엘리펀트건"으로 제우스를 쇄한다. 이럴 줄은 몰랐던 레이쥬. 루피와 디는 서로 왜 뛰쳐나왔냐 탓한다. 루피가 "나오지 말라더니 너는 나왔냐"고 까자 "나는 나와도 되니까 한 소리"라 응수한다. 그리고 이 둘을 제일 까고 싶은 브룩, 나미, 쵸파는 "저 바보들이 나가버렸다"고 비명을 지른다.
  • 은혼/632화 . . . . 31회 일치
          * [[다카스기 신스케]]는 [[카와카미 반사이]], [[키지마 마타코]]를 별동 병력으로 편성, 모선에 각기 돌입시켜 혼란을 야기한다.
          * 당시 관군에 있던 헨페이타는 신스케를 끌어내기 위해 마타코를 미끼로 쓰는데, 이때 생각지도 못하게 살인귀 반사이까지 엮여든다.
          * 신스케와 반사이는 협력해서 마타코를 도주시켰지만 자신들은 구속, 처형을 앞둔다. 이런 와중에도 신스케는 태평하게 반사이에게 가담해줄 것을 권유한다.
          * 그렇게 시작된, 세을 부수려던 귀병대가 지금은 세을 구하려 한다, 헨페이타가 그런 아이러니를 느끼자 마타코는 "그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 어느 달 밝은 밤. 한 소녀가 [[다카스기 신스케]]에게 거둬주길 청하고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키지마 마타코]]. 신스케의 이력과 그가 세을 부수려함을 알고 자신도 동행시켜 달라고 청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양이지사였으나 막부에 탄압 당해 사망, 어머니는 죄인의 부인이란 오명 속에서 박해를 받다 사망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버지의 유품인 한 정의 리볼버. 이것으로 가족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털어놓는다.
          마타코는 이때의 신스케가 나라가 아닌 자기 자신을 부수는, 그런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고 회한다. 이것이 이들의 첫 만남의 기억.
          * 한 번 신스케가 내쳤던 소녀, 마타코는 근시일 안에 신스케와 다시 만난다. 이번엔 죽음이 예정된 "사형수"로서. 때는 양이지사를 탄압하던 시절. 막부는 폐도령을 내리고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던 때였다. 마타코도 검문에 걸렸는데 아버지의 유품을 내놓을 수 없어 저항하다 양이지사로 낙인 찍혀 잡혀왔다. 마타코의 이런 사정은 백성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관군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양이지사로 몰아 잡아들이고 있고, 백성들이 저항할 방도는 없다.
          신스케는 수근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죄인 신세가 된 마타코와 재회했다. 신스케가 말없이 보고 있는데 또다른 행인이 그에게 말을 붙인다.
          >'''살인귀 [[카와카미 반사이]]'''
          연주 소리를 듣고 관군들이 다가온다. 무슨 짓이냐고 추궁하자 그는 조용히 듣기나 하라며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무렇게나 둔 칼이 발각된다.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 양이지사로 모는 시대. 시비가 일어난 동안 관군들도 행인들도 반사이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느라 정작 사형수에게 일어난 이변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 소녀를 감시하던 병력들을 쓰러뜨렸고 어느 새 소녀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없었던 것이다.
          * 신스케가 진입한 정확한 위치는 해방군 모선의 제 17구획이었다. 그와 대치하는 부대는 501 부대. 열세에 처했는지 다른 병력들에 원군 요청이 쇄도한다. 그러나 그들이 501부대를 원호하러 갈 기회는 없었다. 곧이어 제 7, 제 22 구획에도 돌격정이 진입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귀병대, 카와카미 반사이와 키지마 마타코의 병력들.
          * 마타코를 구한 반사이와 신스케는 사이좋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아무래도 황은 그들이 생각한 거 보다 복잡했나 보다. 마타코는 신스케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 그가 마타코와 접촉했던 걸 목격한 정부의 개, 다케치 헨페이타에 의해 꾸며진 함정이었다. 반사이는 벽을 사이에 두고 신스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 신스케가 부추기긴 반사이가 부추긴게 아니었냐고 대꾸하자 그는 단지 살아있는 전설이 어떤 남자인지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본 남자는 이랬다.
          >나를 위해 죽지 않겠나, 살인귀 반사이.
          반사이는 이런데서 권유하는 것도 바보같다고 말하지만, 그래서 신스케는 무엇을 위해 죽을 거냐고 묻는다.
          반사이는 그 허풍이 실현된다면 이 목숨을 그 허풍을 위해 쓰겠다고 말한다.
          * 이같은 옥중대담은 헨페이타가 모두 헨페이타가 듣고 있었다. 그는 관군 내에서도 당한 지위를 가진 남자였다. 신스케를 함정에 빠뜨린 그가 이제 저 두 위험분자의 대화를 어떻게 취급할까? 그는 조용히 감옥을 나선다. 그리고 인적이 없는 길로 접어 들었을 때, 자객을 맞이한다. 마타코였다. 마타코는 신스케가 구해준 뒤 줄곧 근처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녀는 칼을 들이대며 신스케를 해방시키라고 요구한다.
          그는 마타코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같은 시각 감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양이지사들이 스스로 옥문을 나와 신스케와 반사이를 해방시켰다. 어리둥절한 반사이에게, 양이지사들이 말한다.
          반사이가 구하려던 이들은 모두 신스케에게 포섭된 자들이었으며 관리 조차 포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굴러가든 관없슴다.
          >대가 나라던 우주던
  • 이강돈 . . . . 31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100200329130003&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10-02&officeId=00032&pageNo=30&printNo=15897&publishType=00010|포항시 태생이다.]] 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보냈다.] ||
         || 학력 || 포항청림초 - 포항중 -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 [[건국대학교|건국대]] ||
         |||||||||||||||||| '''1988 ~ 1990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외야수]] [[KBO 골든글러브|골든글러브]] 수자''' ||
         |||||||||||| '''1989, 1990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최다 안타''' ||
         || 1985년 당시 신인 시절의 이강돈.[* 왼쪽에 있는 선수는 현 [[kt wiz]] 코치인 [[이광길]], 가운데는 박조 코치, 오른쪽이 이강돈.] ||
         오랫동안 빙그레-한화에서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전 사람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포항 사람이다.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1978년~1981년 졸업)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1981학번)에 진학했는데,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시절에 비해 [[건국대학교]]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하면서 [[1984 LA 올림픽]] 국가대표[* 이 당시에는 야구는 시범종목이었다.]로 발탁되는 등, 일약 대학 무대 최고의 톱 타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당시 드래프트 제도 대구 지역의 선수는 [[삼성 라이온즈]]가 우선권을 가졌는데, 여기서 삼성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지명해 놓고서는 이강돈에게 먼저 군대를 갔다 오면 입단시켜 주겠다고 한 것. 다른 선수에게는 관대하게 입단 조건을 걸고서, 유독 자신만 군대를 걸고 넘어지는 것에 화가 난 이강돈은 전격적으로 빙그레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드래프트의 질서를 해치는 이 행동은 '''그냥 넘어갔다.'''[* 그렇긴 한데, MLB에서 [[스캇 보라스]]의 유명세를 알린 loop hole FA사건 원인이 드래프트 지명 후 15일 안에 구두로든 서면으로든 계약하겠다는 의사를 선수에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의무 불이행이므로 계약 무효를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서인 만큼, 삼성 측이 계약하지 않고 군입대를 제안한 것이 의무 불이행으로 해석될 가능성 때문에 법적 공방 들어가도 이강돈에게 승산이 있는 사안이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왜냐면 당시 빙그레는 막 생긴 신생팀으로서 기존의 6개 구단들보다 전력이 한참 빈약했기 때문이었다.[* 원년 참가 팀들을 제외하고, 1군 첫 시즌을 보낸 팀들 중 최저승률 기록을 갖고 있다.] 여기에 당시 빙그레의 초대 단장인 노진호는 바로 직전까지 삼성에서 [[프런트]]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결국 삼성은 전관예우 + 신생 구단에게 선심쓰는 차원에서 무으로 그의 지명권을 양도했다. 그래서 이강돈은 빙그레에 입단할 수 있었고, 프로야구 역사 전무후무한 드래프트 질서를 거부하고도 별 일 없는 선수가 되었다.
         || 1987년 8월 27일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후.[*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고 받은 사사키 제품의 배트 세 자루와 KBO에서 준 황금배트를 들고 이강돈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빙그레에서 이강돈은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데뷔 첫 해 .297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빈약했던 빙그레 타선의 희망으로 떠오른 것이다. 비록 신인은 [[MBC 청룡]]의 에이스로 급부한 [[김건우]]에게 내줬지만, 이강돈은 빙그레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정훈(1963년생)|이정훈]], [[장종훈]], [[강정길]], [[이중화]]같은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신생 빙그레는 일약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리며 프로야구를 풍미하기 시작했고, 막강 해태에 도전장을 내미는 팀으로 자리잡았다.
         그래도 이강돈 본인은 타율보다 안타에 더 애착을 가졌던 만큼, 타격왕을 놓친 것에 큰 아쉬움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0 시즌 막판 한대화 등과의 타격왕 경쟁에서도 마음만 먹었다면 타율 관리 명목으로 쉴수도 있었지만, "정정당당히 승부하겠다"면서 이를 사양했다. 대신 그해 이강돈은 최다 안타 1위를 차지했고, [[KBO 리그]] 역사 최다안타 부문에서 정식으로 시을 받은 첫 주인공이 되었다.
         어쨌거나 빙그레의 주축으로 매년 10개 가량의 홈런을 기대할 수 있고, 3할 근처의 타율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 결과 이강돈은 두 차례 최다안타 1위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4년 연속 [[KBO 골든글러브]]를 수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강돈은 1992년의 최후의 전성기를 끝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큰 부은 없었지만 슬럼프에 빠지고, 여기에 여러 부이 겹치면서 조금식 무너지기 시작했다. 허벅지, 무릎, 어깨가 아프고 점차 그 자리를 신인들이 메우면서 이강돈의 입지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결국 1997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하기에 이른다.
         특이한 기록도 두 가지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1987년 8월 27일 [[OB 베어스|OB]]전에서 수립한 프로야구 통산 2번째 [[사이클링 히트]] 기록이다. 그런데 이강돈은 전날 저녁, 다음 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만 믿고 밤새 술을 들이붓고 고주망태가 되었는데, 정작 경기 당일 비가 오기는 커녕 쨍쨍한 날씨인지라 정적으로 경기가 거행되었다. 당연히 [[숙취]]에 찌들어 고통스러워하던 이강돈은 대충 휘두르고 죽자는 생각으로 출장했지만 뜻밖에도 홈런에 2루타, 번트 내야안타, 3루타를 차례로 때려내며 대 기록을 작성하였다. 나중에 이강돈은 사이클링 히트 기록에 대한 소감으로 "술기운이 남아서인지 공이 수박만하게 보이더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마찬가지로 술기운에 7타수 7안타 날린 [[오시타 히로시]]와 오버랩된다~~
         다른 하나는 1993년 올스타전 MVP 수인데, 원래 팬투표로 선발되지 못해 추천 선수로 나갔지만 1회 [[홍현우]]가 2루타를 치고 부당하면서 대주자로 투입되고, 이후 타석에서 홈런까지 날리며 맹활약하면서 사 처음으로 베스트 10 외의 선수로 올스타전 MVP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지도자로는 평가가 [[ 좋지 않다]].
         201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북일고를 이끌고 결승까지 올라가 지역 라이벌인 [[공주고등학교 야구부|공주고]]와 맞붙었는데, 0:4로 끌려가던 중 대 [[선발 투수|선발]]인 [[김훈호]]의 볼질로 한점차까지 따라간 황에서 뜬금없는 스퀴즈를 지시했다. 결과는...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다.[* 공주고는 [[김경문]]이 활약하며 [[MVP]]로 선정됐던 1977년 이후 36년만의 대통령배 우승이었다. 이 날 경기는 월요일에 목동야구장에서 진행되었으며 공주고 동문인 손혁, 박정배, 조동화가 와서 관전했다. 박찬호는 아예 덕아웃 옆에 있었고...]
  • 이보림 . . . . 31회 일치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세종시]]) 조치원읍 출신으로,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5867|2012년 연기군이 세종시로 출범하기 직전에 열린 ‘복사꽃 아가씨 선발 충남대회’에서 진으로 선발된 적이 있다]]. 2014년에는 제23회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 여담으로 [[프로듀스 101]] 시즌1에 출전한 [[성혜민]]도 여기에 출전하여 투어 2000을 받았다. 즉, 대회 동기인 셈.]에 참가, 본선에 진출해 MTP MALL을 수했으며 같은 해에 '[[미스코리아 충북]]'에 참가하여 이즈치과을 수했다.
         2017년 6월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그룹인 다이아 TV가 자체 제작한 웹 드라마인 '''뷰티학 개론~여자의 화장에는 이유가 있다(여화이) 시즌 1'''(총 4회 완결)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화제의 웹 드라마로, 현재 시즌 3까지 나왔다. 참고로 이 드라마에는 훗날 [[tvN]]의 드라마인 [[크리미널 마인드(tvN)|크리미널 마인드]] 15회(9월 13일 방)에서 납치된 수선수 여고생 3인방 중의 한 명으로 등장하는 같은 소속사의 임채연도 출연한다.]
         2018년에는 화 '스웨그'에 캐스팅되어 [[틴탑]] [[니엘]]과 함께 주연을 맡는다.
         ||<#fff> {{{#202020 '''직캠'''}}} || [[http://tv.naver.com/v/2335863|]] || [[http://tv.naver.com/v/2430647|]] || [[http://tv.naver.com/v/2548629|]] ||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5~6회|6회]] 참가자들과의 첫 만남에서는 대부분 현역 아이돌들인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배우/[[모델]] 출신인지라 아는 사람이 없어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잠깐 사이에 [[의진(소나무)|의진]]과 친해졌는지 의진이 [[멜로디데이]]와 [[DIA(아이돌)|다이아]] 연합에 들어갈 때 같이 데리고 들어가서 빨강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후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7~8회|첫 미션]] 준비 과정에서 이보림은 춤에 익숙하지 못해 중간 점검 때 안무가 김화으로부터 블랙홀 멤버라는 지적을 받았고, [[의진(소나무)|의진]]과 함께 다른 방에서 연습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로 인해 의진에게 "의진 센세"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9~10회|포지션 배틀]] 중 댄스 부문에 가장 먼저 [[http://tv.naver.com/v/2366699|참가]]해서 43부트를 받았는데, 뒤에 나온 [[박지원(1997)|박지원]]이 48부트를 받아 밀려났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9~10회|RESTART 미션]]에서는 빨강팀에서 'Gee'를 공연했는데, 막내 [[한비(립버블)|한비]]에게 안무를 배우면서 연습에 매진했다. 초보자인지라 안무 중간 점검에서는 김화에게 주시당했는데, 팀원들의 커버를 잘 받아서 '팀복은 타고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래도 많이 늘었다'는 칭찬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그래서 네가 틀리면 안 된다'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본 경연 도입부분에서 혼자 틀리는 실수를 범해 무대가 끝난 다음에는 이에 대한 자책감에 눈물을 보였고 이에 [[우희(달샤벳)|우희]]와 팀원들이 첫 실수 이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무대를 마친 것을 칭찬해 주며 격려했다. 현장 투표에서는 113표로 7위를 기록했다. 첫 미션에서 보여 준 [[의진(소나무)|의진]]과의 케미와 성장이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방송 종료 후 공개된 중간 개인 순위에서는 무려 19계단이나 승해 25위에 올랐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13~14회|1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8계단 승한 17위를 기록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3~24회|음원 발매 미션]]에서는 노랑팀에서 'Cherry On Top'을 공연하게 되었다. [[의진(소나무)|의진]]과는 3번째 같은 팀인데 의진은 개인 인터뷰에서 언니가 하면 하더라며, 이번에도 함께하면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데리고 왔다고 이야기했다. 포인트 안무를 배울 때는 이보림이 계속해서 김화에게 지적을 받았고, 의진에게 그만 의존하라는 소리도 들었다. 이보림은 개인 인터뷰에서 요즘 화 선생님 그림자만 봐도 떨린다며, 그래서 화 선생님한테 칭찬 들을 때까지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 점검에서는 김화이 이보림에게 다리를 들어 쭉 뻗는 동작을 추가하자고 했고, 본 경연에서도 이를 멋지게 성공시켰다. 현장 투표에서는 팀 내 3위를 기록했지만, 팀은 아쉽게 2위에 그쳤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5~26회|3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누구보다 습득력이 대단한 노력형, 실전에 강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18위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순위 대비 6계단이나 승해서 [[효선]]을 밀어내고 18위 막차를 타고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의 순위 발표에 놀라서 주저앉기도 했으며, '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절실함이 유닛 메이커분들한테도 통한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파이널 무대 준비 과정에서는 빨강팀에서 'You&I'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고, 안무 연습에서도 의진의 리드로 큰 문제없이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설 특집 스페셜 방송에서 이 때 [[예빈]]이 이보림의 안무 연습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다. '팀원들이 다 잘 해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예빈은 자신도 처음 데뷔했을 때 파트가 1줄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파트가 점점 늘어났다며 팀에서 이보림보다 다리 길고 키 큰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격려해 줬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7~28회|파이널]]의 [[킬링파트]]를 위한 안무 오디션 시작 전에는 항 지적만 해왔던 김화이 이보림에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솔직한 말로 너무 잘해 줬다'고 이야기했다. 안무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김화이 '이제 [[의진(소나무)|의진]]이 없어도 돼?'라고 물었고 이보림은 '서서히 독립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의진도 '좋아, 얼른 가!'라고 이야기했다. 제작진이 예고 없이 보여준 가족들의 에서는 따로 이보림의 가족 은 방송에 안 나왔지만, 합숙소를 찾아와 준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은 나왔다. 마지막을 앞두고 참가자들에게 남기는 말에서는 '같이 하는 협동심을 너무 많이 배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본 경연에서는 'You&I'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긴 했는데 맡은 파트가 적어서 무대에서 모습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남녀 합동곡인 'PRESENT'에서는 엔딩 파트를 맡았다. 최종 유닛 발표식에서는 17위를 기록하면서 데뷔조 합류에는 실패했지만, [[연습생]] 경력도 없고 예술고등학교 출신도 아닌 비 가수 출신 참가자가 그 많은 전현직 걸그룹 멤버 및 연습생 및 솔로 가수들과의 경쟁에서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온 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 정기고 . . . . 31회 일치
         | 웹사이트 = {{트위터|junggigo}}
         '''정기고'''(Junggigo, {{본명|'''고정기'''}}, [[1980년]] [[9월 5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큐빅 (Cubic)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한 정기고는 2002년 [[넋업샨]]의 제의로 [[아이에프]]의 "Respect You (Urban Night Mix)"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션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ref name="interview">[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94151.htm 피처링으로 경력 다진 정기고 "이제 제 이름 알려야죠"], 《스포츠서울》, 2011년 12월 18일</ref> 그 후에도 [[데프콘]], [[재지 아이비]] 등 여러 힙합 뮤지션의 곡에 피쳐링으로 참여하며 명성을 쌓아가던 정기고는 2005년 재지 아이비와 2인조 힙합 그룹인 서울스타 (Seoulstar)를 결성하고 1장의 싱글을 발매했으나 그 후에 서울스타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가지는 않았다. 2006년 [[더 콰이엇]]의 "그 남자 그 여자"에 참여하며 정기고 (Junggigo)라는 예명을 큐빅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ref name="interview"/> 정기고는 그 후에도 [[이루펀트]], [[에픽하이]], [[매드 클라운]], [[도끼 (가수)|도끼]] 등과 작업을 지속하며 보컬 피쳐링 아티스트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200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싱글 "Byebyebye"를 발표했고, 2012년까지 총 5장의 싱글 음반을 발매했다. 2011년에 발매한 "Waterfalls"는 화 《[[오싹한 연애]]》의 공식 티져 에 삽입되어 화제를 모았다.<ref>[http://www.newstown.co.kr/?m=newstown&bid=bd&cat=bdj&uid=108452 정기고, 화 오싹한 연애 OST 'WATERFALLS' 발매], 《서울타운》, 2011년 12월 2일</ref> 2013년 12월에는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47433 "정기고, 매드클라운 이어 씨스타와 한솥밥 “숨은 보석”" 《스포츠월드》, 2013년 12월 4일]</ref> 그 후 2014년 2월 7일, [[씨스타]]의 [[소유 (가수)|소유]]와 "썸"이라는 곡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썸"은 공개 즉시 8대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2016년 - ''Nocturne (야곡)''
         == 수 ==
         ===시식===
         * 2012년 제9회 《[[한국대중음악]]》 노래부문 최우수 알앤비&소울 〈Blind〉
         * 2013년 제3회 《[[리드머#리드머 어워드|리드머 어워드]]》 올해의 알앤비/소울 앨범 〈Pathfinder〉
         * 2013년 제3회 《[[리드머#리드머 어워드|리드머 어워드]]》 올해의 알앤비/소울 아티스트
         * 2014년 제6회 《[[멜론 뮤직 어워드]]》핫트렌드 ([[소유 (가수)|소유]]&[[정기고]]) - 〈썸〉
         * 2014년 제16회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베스트 콜라보레이션 ([[소유 (가수)|소유]]&[[정기고]]) -〈썸〉
         * 2014년 《[[SBS 가요대전]]》음원 ([[소유 (가수)|소유]]&[[정기고]]) -〈썸〉
         * 2015년 1월 15일 제29회 《[[골든 디스크]]》([[소유 (가수)|소유]]&[[정기고]]) -〈썸〉음원부문 본
         * 2015년 1월 28일 제4회 《[[가온 차트 K-POP 어워드]]》([[소유 (가수)|소유]]&[[정기고]]) -〈썸〉올해의 가수 2월 음원부분, 올해의 롱런 음악
         <!--KBS, MBC, SBS, M.net에서 방되는 가요프로그램 주간 1위 내역만 기록해 주시고, 나머지 내역들은 '그 외' 문단으로 분류하여 기재해주세요.(반기 및 연간 1위도 '그 외' 문단으로 기재.)-->
         ! 수 내역 (총 11회)
         {{가온 차트 K-POP 어워드 - 올해의 가수 음원}}
         [[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 음악가]]
         [[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자]][[분류:MBC 쇼! 음악중심 1위 수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자]][[분류:한국대중음악 음악가]][[분류:등포고등학교 동문]][[분류:2002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스타쉽 엑스 소속]]
  • 차수연 . . . . 3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 화 ===
         || 2005년 || 코마 || 소희 || 화 데뷔작 ||
         ||<|3> 2008년 || 아름답다 || 은 || [* 제58회 [[베를린 화제|베를린 국제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이 화가 선정되어 화제에 초대받는 광을 누렸다.] ||
         || [[여기보다 어딘가에]] || 차수연 || [* 이 화는 [[중앙대학교]] 첨단대학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
         ||<|4> 2009년 || [[오감도(동음이의어)#s-3|오감도]] || 안혜림/음악감독 || segment 2[br]segment 3[*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화로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2편에서는 안혜림 역으로 주연을 맡았고, 유식 감독이 연출한 3편에 음악감독 역으로 까메오 출연하였다.] ||
         || [[집행자(화)|집행자]] || 은주 || [* 극중 재경([[윤계]] 분)의 여자친구 역.] ||
         || [[화차(화)|화차]] || 강선 || 특별출연 ||
         || [[간기남]] || 혜 || ||
         ||<tablebordercolor=#7D6868><rowbgcolor=#7D6868> {{{#white '''방 연도'''}}} || {{{#white '''방송사'''}}} || {{{#white '''작품명'''}}} || {{{#white '''배역'''}}} || {{{#white '''비고'''}}} ||
         || 2008년 ||<|2> KBS2 || [[그들이 사는 세]] || 이연희 || ||
         ||<|2> 2012년 || KBS2 || KBS 드라마 스페셜 - 리메모리 || 이인 || 단막극 ||
         || MBC || 신과의 약속 || 이 || ||
         ||<tablebordercolor=#7D6868><rowbgcolor=#7D6868> {{{#white '''연 연도'''}}} || {{{#white '''작품명'''}}} || {{{#white '''배역'''}}} || {{{#white '''비고'''}}} ||
         || 2015년 || 친정엄마 || 미 || ||
         ||<tablebordercolor=#7D6868><rowbgcolor=#7D6868> {{{#white '''방 연도'''}}} || {{{#white '''방송사'''}}} || {{{#white '''프로그램'''}}} || {{{#white '''역할'''}}} ||
         || 2009년 || [[Olive TV]] || [[유진(배우)|유진]]의 메이크업 다이어리 2 || 게스트[* 화 《요가학원》에 함께 출연한 유진과의 인연으로 출연했다.] ||
          * 화 [[오감도(동음이의어)#s-3|오감도]]에 출연할 당시, [[클라리넷]]을 연주 안한지 너무나 오래되어서 열심히 연습하고, 촬을 했으나 정작 연주씬은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665|편집됐다고 한다.]] 공들여서 촬한 장면이라 많이 아쉬운 듯 하다.
          * 본인의 출연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2008년에 출연한 [[그들이 사는 세]]을 꼽았다. 원래는 다른 배역을 할 계획으로 미팅에 나갔는데, 표민수 PD가 극중 남주인공인 정지오([[현빈]] 분)의 옛 여자친구인 연희 역할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배역을 바꾸었다고 한다.
  • 최채흥 . . . . 31회 일치
         || [[이지(야구선수)|이지]](2012~2018) || → ||<#c0c0c0> '''최채흥(2019~)''' || → || 현역 ||
         ||<:> '''출신지''' || [[경북도]] [[경주시]] ||
         ||<:> '''학력''' || 경주 동천초 - 포항중[* 경주중에서 전학] -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원고]] - [[한양대]] ||
         원고 시절 동기인에 가려져 투수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한양대 진학 후 본격적으로 투수로 전업하였고, 대학 야구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원고]] 시절에는 동기에 밀려 주로 1루수로 출장했고 고등학교 3학년때 3할 4푼 5리의 타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http://www.hsbaseball.kr/player/daesang25]]] 그러나 1루수로는 특출난 성적을 내지 못하여 지명받지 못하고 한양대로 진학한다.[* 고교야구 팬이 아니라면 의아함을 느끼겠지만, 경기수가 적어 0.345의 타율도 높은 성적은 아니다. 그 해 [[http://www.hsbaseball.kr/record/batter_unity.htm|타율 40위이고]], 파워도 있는 편이 아니다.]
         한양대학교 진학 후, [[김한근]] 한양대 감독에게 투수가 아니면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김한근 감독은 너를 투수로만 생각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투수로 전업하여 1학년 때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에서 팀의 마무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67.2이닝 동안 피홈런 없이 54삼진 6사구 16볼넷 평균자책점 0.93을 기록했다. 1학년이던 2014년부터 팀의 에이스로 자리를 잡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는 팀을 17년만의 대통령기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투수을 수했고 바로 U-21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승선했다. 투수 전업 첫 해에는 평균구속이 130km/h 중반대에 불과했지만, 빠른 성장세로 평균구속을 10km/h 가까이 끌어올리면서 탈삼진 능력도 늘어나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2015년에는 27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활약했다. 2016년에는 학점 관리한다고 8월 이후에는 경기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 U-23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임지섭]]과 원투펀치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혹사 논란까지 일었을 정도.
         8월 23일 대만과의 경기에서 3.2이닝 1실점(1자책)으로 탈삼진 1개를 잡으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다만 이틀전 7이닝 이 소화한 후 이날 불펜으로 3.2이닝을 투구했다는 점이...
         퓨쳐스 호투에 힘입어 5월 19일 토요일 넥센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뤘다. 이날 선발로 등판했고 3⅔이닝 8피안타 2실점(1자책) 81구를 기록했다. 수비 도움도 받지 못했고, 겉으로 보이는 기록은 신인 치고는 기대 이이였으나 최대 구속이 140으로 대학 시절보다 떨어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날 선발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주전급 대부분이 빠져있었다.[* [[이정후]], [[서건창]], [[김하성]], [[박병호]] 대신에 들어와있는 황.] 2:2 동점 황에서 강판되어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고 팀은 3:6으로 패배했다. 21일 1군에서 제외됐다.
         6월 2일 1군에 등록돼 당일 [[NC 다이노스]] 원정전에서 5이닝 동안 87개의 공을 던지며, 3탈삼진 2자책(2피홈런)으로 호투를 펼치며 데뷔 승을 거두었다. 시즌 초 포심구속이 나오지 않았던 것에 비해, 이날 경기에는 140대 중반에 형성이 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황. 비록 실투가 가운데로 몰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2피홈런으로 이어졌지만, 삼성은 [[양창섭]]과 함께 미래를 이끌 좋은 선발 자원을 얻었고, 2018시즌 [[백정현]]-[[장원삼]]-[[최채흥]]으로 이어지는 좌완 선발 라인업을 갖추게 되면서 당한 경쟁력이 있는 마운드를 갖출수 있게 되었다. 장원삼이 노쇠화가 오며 10일 로테나 계투 강등이 필요해진만큼 양창섭까지 돌아온다면 선발진은 정말 무적일 듯.
         이후 부 때문에 2군에서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1달 가량을 결장했고 이후로도 띄엄띄엄 등판하면서 사실 그대로 시즌 아웃되는가 싶었는데, [[윤성환]]이 부으로 이탈하면서 9월 25일 한화전 선발로 내정됐다. 그리고 '''7이닝''' 5피안타 1피홈런[* vs이성열] 2볼넷 5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데뷔 첫 [[퀄리티 스타트]]와 함께 시즌 2승을 기록하였다.
         9월 30일 대구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선발 [[윤성환]]이 5회에 수비도움을 받지 못하며 급격히 무너지면서, 추격조로 등판했다. 5회 2사 만루 황에서 첫 타자인 [[최항]]에게 좌중간에 싹슬이 3타점 적시 2루타를 허용하며 분식회계를 해버렸으나, 이 후는 침착하게 잘 막아내면서 2⅓이닝 동안 2탈삼진을 기록하는 준수한 투구를 해주었다. --수야. 이게 다 너 때문에 벌어진 나비효과란다.--
         10월 3일 대구에서 열린 기아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양창섭]]이 피안타가 늘어나면서 3이닝만에 강판되고, 4회부터 중간계투로 올라왔다. 이미 3회말이 끝난 시점에 5:3으로 경기가 역전된 황에서 올라왔기에 잘만 던진다면 승리를 추가할 수 있는 황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흥하는 2이닝 3탈삼진 1피안타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를 보여주며 앞으로의 기대감을 높였다. 팀은 작년의 [[삼성 라이온즈/2017년/6월/29일|629 대첩]]을 완벽하게 복수하는 '''20:5'''라는 스코어로 경기를 이기면서 시즌 3승을 기록했다.
         10월 6일 수원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아델만]]이 선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4회 1사 이후 강판당하면서, 추격조로 또 등판했다. 기록은 1⅔이닝 동안 3탈삼진의 퍼펙트한 투구를 보여주었으며, 특히 5회에는 [[유한준]]과 [[박경수]]를 대로 삼진을 뽑아내면서 투구폼 교정 후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연이어 보여주고 있다.
         10월 13일 대구에서 열린 넥센과의 시즌 최종전에서는 선발 [[아델만]]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또 다시 3회 2사만에 강판되면서 분위기가 이번 시즌 넥센전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가 우려했으나, 중간계투로 올라온 양창섭이 4회에는 [[김혜성(야구선수)|김혜성]]과 [[김재현(1993)|김재현]]을 연속 탈삼진까지 잡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7회에는 [[이정후]]에게 3루타를 허용했고, 후속타자인 [[임병욱]]을 대로는 투수 땅볼을 유도했으나 비디오판독 결과 [[임병욱]]의 발이 조금 더 빠른 것으로 판정되어 내야안타로 바뀌면서 1타점을 내주고 말았다. 그래도 기록은 3⅔이닝 동안 3탈삼진 4피안타 1볼넷 1실점으로 충분히 잘 던져주면서 2018 시즌을 마무리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9월 25일 복귀한 이후 시즌 끝날 때 까지 선발 1번, 구원 4번하여 총 5번의 등판에서 --분식회계를 빼고-- 총 16⅔이닝동안 단 2자책만 했으며, '''방어율이 무려 1.08'''로 6월 8일 LG전까지[* 1군 엔트리 말소 이전] 6.35였던 방어율과 0.365였던 피안타율을 각각 3.21과 0.270으로 낮춘 점을 봤을때 [[양창섭]]보다도 내년이 더 기대케 되는 피칭을 보였다. ~~최채흥은 대졸인데 당연하지~~ 그리고 후반기 탈삼진은 무려 16개를 뽑는 동안 볼넷은 단 3개만 내주었다는 부분에서 내년을 확실히 기대하게끔 하는 투구를 보였다. 특히 투구폼을 교체한 이후 확실히 진화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년 2019 시즌에는 큰 부이 없는 한 [[양창섭]]과 함께 나란히 선발 로테이션에 들 가능성도 충분히 보인 9~10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으로 빠진 [[양창섭]], 그리고 [[윤성환]]을 대신해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리고 3월 28일 [[사직야구장]]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96투구수 (S:60, B:36) 4피안타 2사사구 8삼진 4실점 3자책을 기록하며 시즌 첫 경기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4월 14일 역시 [[kt wiz]]를 대로 홈경기에 출전, '''7이닝 104투구 (S:71,B:33) 6피안타 1피홈런 (1회 유한준 3점) 1볼넷 7삼진 3실점 3자책'''을 기록해 [[QS+]]를 기록했다. 타선이 간만에 터지며 3:14까지 점수를 벌렸으나 이후 올라온 [[이승현(야구선수)|이승현]], [[김대우(1988)|김대우]], 최충연을 대로 [[kt 위즈]] 타선이 9점씩이나 뽑아내며 12:14까지 좁혀져 승을 날려 먹을 위기에 놓였었다. 역전 주자까지 내보낸 황에서 [[장필준]]이 두 명을 삼진으로 잡으며 어찌어찌 2승에 성공. 이때 덕아웃을 비춘 카메라에 잡혔는데, 볼 카운트 하나하나에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보여 많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오해들을 하는 것이, 최채흥을 단지 흙수저 출신의 깜짝 활약 선수로 많이 인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틀린 것이 최채흥은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고교]]시절 에게 밀린 것은 사실이나, [[한양대학교|대학]]야구의 에이스 투수였고 대학야구 3대명문중의 하나인 한양대를 나왔으며, 대표팀 역시 아시아선수권 우승,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동메달, 23세 이하 세계선수권 3위 등을 이끌고 대표팀 역시 u-18,u-21,u-23 등 연령대 대표팀을 단계적으로 밟았을 뿐만 아니라 핵심투수로 활약하며 엘리트 코스는 차근차근 밟은 선수다. 오히려 대표팀 경력만 보면 또래인 95년생 동기들보다 화려하다.
  • 츠라츠라 와라지 . . . . 31회 일치
         에도 시대의 제도인 '[[산킨고타이]]'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당시 일반적인 '다이묘 행렬'의 세한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츠라츠라 와라지'란 말은 다이묘 행렬 수행원들이 짚신 신고 걷는 모습을 '짚신(와라지) 행렬(츠라리츠라리)'이라고 묘사한 것.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립할 때 주와 장남이 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하여 차남 '쿠마다 테루타카'가 가문을 이었고, 이에야스는 화친 후 쿠마다를 묶어놓기 위해 히데요시를 움직여 테루타카를 억지로 이혼시키고 도쿠가와 가문의 여식과 결혼시켰다. 이 때의 원한이 대를 이어 내려왔고, 이 때문인지 후임 주 쿠마다 타카토시(테루타카와 전처의 소생)가 석연찮게 급사하고 그 아들 미츠타카는 2차례에 걸쳐 전봉당해 오카야마 지방에 자리잡게 되었다.
          * 쿠마다 하루타카 : 오카야마 번 5대 번주. 대대로 검약을 기풍으로 삼던 쿠마다 가에서 유독 풍류와 호사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도를 넘는 사치는 하지 않는다. 막부의 검약정책을 지나치다고 여겨 우회적으로 비꼬곤 했기 때문에[* 사치를 막기 위해 은 제품을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오자 일부러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 (그 직후 금 제품 또한 금지령이 내려졌으나, 그 이후로도 금으로 된 곰방대를 사용하였다.)] 막부의 실력자인 마츠다이라 사다노부와 사이가 나쁘다. 여러가지 일화가 따라다니는 인물로 기행을 일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속이 깊고 대범해서, 이 때문에 행렬 중간중간마다 과거에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선물을 바치려고 줄을 잇곤 한다. ~~전국시대 시절이었다면 천하통일은 무리라도 관서 제패는 해냈을 것 같은 포스다~~
          * 쿠마다 이즈미 : 수행 가로. 하루타카의 가신으로 쿠마다 종가인 '아마키 쿠마다 가'(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남의 가문)의 자손. 기본적으로 학식이 깊고 민하지만 17세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로 불과 4개월 전에 가로가 되어 미숙한 면이 있으며 쿠마다 종가의 긍지와 체면을 매우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가문의 기풍 때문에 매사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꽃꽂이가 취미.
          * 이와타 토메지로 : 오오고쇼가시라. 루스이(留守い. 참근교대 때문에 주가 비운 거성을 관리하거나, 또는 반대로 에도에 있는 주의 저택을 관리하는 직책) 출신으로, 온화하고 여려보이지만 배후에서 기민하게 움직이며 유능하게 일처리를 해낸다. 다만 야마와키와는 달리 하루타카의 속내까지 읽어내는 정도는 아니다.
          * 이기 나가토 : 수석 가로. 원래는 제2가로였으나 새로 가로가 된 이즈미가 수석 가로 자리에 앉는 것은 맞지 않다고 여긴 하루타카가 서로 위치를 바꾸게 하였다. 가로 경력 17년의 베테랑으로 민하고 빈틈이 없어 지의 일을 실수없이 이끌어 왔으며 다도에도 능하다. 이즈미의 성장을 위해 매우 신경을 써 주고 있으나, 이즈미는 수석 가로 자리를 '빼앗겼다'고 여겨 그를 시기한다.
          * 쿠마다 치카라 : 전 수석 가로로 이즈미에게 가독을 넘기고 은퇴했다. 쿠마다 종가의 긍지나 체면을 강하게 의식해서 이즈미에게도 항 그것을 주지시키는 완고한 인물[* 쿠마다 종가의 사람들은 역대로 이러한 경향이 강했다고 하는데, 일례로 초대 가로의 경우에는 오만한 성격으로 인해 한 가신에게 원한을 사 강을 건너던 중 살해당했다고 한다. (초대 가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에야스와 싸우다 전사한 장남의 자손으로 추정되는데, 숙부인 테루타카에게 가독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모난 성격이 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로, 이 때문에 나가토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 마츠다이라 사다노부 : 막부의 수석 로쥬로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보통 관직명인 '엣츄노카미'로 불린다. 실제 역사에서 전 시대인 '타누마 시대'의 중주의 정책을 백지화하고 검약을 강요하던 '칸세이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굽힘없는 완고한 성격 때문에 수많은 정적을 만들어냈으며 급기야는 쇼군에게도 노여움을 샀다. 자신의 정책에 우회적으로 비판을 던져오는 하루타카를 불편하게 여기지만 그 능력은 인정하고 있다.
          * 키쿠히메 : 하루타카의 정실부인. 에도 저택에서 기거하고 있다. 기품있고 현명한 인물.
          * 오스미노카타 : 하루타카의 측실. 역시 에도 저택에서 기거하고 있다. 키쿠히메와도 사이가 나쁘지 않다.
          * '호노이케' 젠자에몬 : 오사카 인으로 환전이자 오카야마 번의 전속 인. '호노이케 단'의 우두머리라서 평소에는 호노이케라고 불리고 있다. 번의 재정을 사실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점잖은 성품을 지녔다. 수완좋은 인으로 주변의 다른 인들도 앞다투어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있으며, 칸세이 개혁의 한계를 궤뚫어보고 일시적인 정책에 그칠 것이라 내다보며 느긋하게 관망한다. 하루타카에 대해서 돈의 흐름을 알고 있다고 하며 높게 보고 있다.
          * 관백 : 후지와라 씨의 혈통을 지닌 다섯 가문 중 하나인 이치죠 가문 출신 공가(公家. 귀족). 형제가 없어서, 종제(從弟)인 이즈미(관백의 모친이 이즈미의 백모)가 수행 가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고 싶어하여 거짓 칭병(稱病)을 하였다. 조정과도 사이가 소원한 사다노부에게 반감을 갖고 있으며, 반대로 하루타카의 인품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 나카야마 : 조정의 의주(議奏. 칙명 출납을 담당하는 직책)로, 당시 코카쿠 덴노(전대 덴노의 양자가 되어 즉위했다)의 부친에게 황(上皇)의 존호를 내리도록 막부에 강하게 요구하여 이를 반대하는 사다노부와 대립하고 있다.
          * 백락 : 호노이케가 하루타카에게 바친 명마로 하루타카가 이름을 지어줬다. 성격이 까탈스러워서 자주 소동을 일으키곤 하지만 기품이 있고 민하다. 하루타카와 큐사쿠의 보살핌을 받은 뒤부터는 큰 말썽을 부리지 않게 된다.
          * 협본진 찬모 : 고오리야마 본진(本陳. 에도 시대의 숙박 시설 중 다이묘와 그 수행원들이 이용하던 숙사의 통칭)의 찬모(반찬을 비롯한 음식을 만드는 여자). 누명을 쓰고 탈번(脫藩. 번을 이탈하여 낭인이 되는 것. 당시 무단으로 탈번하는 것은 중죄였다)한 관리와 정을 통한 사이로,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관리가 숙사를 수배하러 온 선발대에게 들켜 처형당하자 쿠마다 가에 원망을 품었다.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 하루타카가 그녀 뱃속의 자식을 자신의 사생아인 것으로 꾸미고 이를 인정하는 듯한 연기를 하여 협본진에서 계속 일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고, 원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하루타카의 배려에는 감사하게 된다.
          * 미야노 요시키요 : 코케하타모토(高家旗本. 막부의 행사나 의식을 담당하는 막부 직속 무사계급). 막부의 명으로 이세 신궁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쿠마다 가에서 수배한 본진의 팻말을 보고는 막부와 사이가 나쁜 하루타카를 골탕먹일 속셈으로 억지로 숙사를 빼앗아 묵는다. 그러나 하루타카 일행이 본진 문 앞에서 야을 하면서 숙박비는 그대로 치러서 숙사 인근이 잔치 분위기가 되는 바람에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체신머리없다, 쪼잔하다는 비아냥을 듣게 된다.
          * '토리비토' 코키치 : 오오이 강 인근에서 포목을 운하는 인. 과거 비젠 지방에서 표구을 했으나 7년 전에 새 모양의 글라이더를 타고 성 아래를 날아다니다 붙잡혀 추방을 당했다. 그 이후로도 글라이더를 계속 개량하며 비행 시도를 해서 '텐구'(天狗), '토리비토'(鳥人)이란 별명을 얻었다. 추방 당시 하루타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타카가 잠시 행렬을 멈추고 망원경으로 지켜보는 앞에서 글라이더로 다시 날았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블라드 . . . . 31회 일치
         경찰에게 잡혔던 블라드가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났지만, 블라드의 세력권에 들어온 점주들은 블라드에게 복종하지 않는 황. 블라드는 복종하지 않는 점주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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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드를 밀고해 경찰에 잡히게 했던 동료 디미트리의 결혼식을 망치는 의뢰. 보석을 습격해 결혼식에 쓸 티아라를 훔치는게 목적이다.
         >블라드는 스톤으로부터 보호비를 받길 바란다. 블라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당신이 스톤이 경하는 쇼핑몰을 파괴하길 원한다.
          * 2층 자동차 가게의 자동차. 창문과 사이드미러를 깰 수 있다.
         박살낸 물건들의 총 가치가 5만 달러 이을 넘어가면 베인이 탈출용 헬리콥터를 부른다. 헬리콥터가 도착할 때 까지 버틴 후 탈출하면 클리어.
         몇몇 가게들의 금고나 보석의 진열장에서 가방을 루팅할 수 있다. 하지만 전리품 회수용 밴이 없으므로 한명당 한개씩 짊어지고 탈출하는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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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들이 머키워터 창고 안에 숨어들었다는 이야기는 끝내줬어. 매우 인깊었지. 다시 거기 가줬으면 하는군. 그 용병들이 얻어낸 "뭔가 작은걸" 숨기고 있다는군. 그 작은 것은 내가 원하는 물건이야. 머키 놈들이 발을 빼려 하고있어. 난 그게 사라지기 전에 가져가고 싶어.
         금고가 들어있는 컨테이너를 발견하고 나면 금고를 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베인은 금고 내 기온이 일정 수준 이으로 올라가면 금고가 긴급 개방된다는 점을 이용해 금고를 열려고 한다. 창고 곳곳에서 크로우바를 주워 금고 환풍기에 쑤셔박자. 환풍기 하나만 쑤셔박아도 금고 내 기온이 일정히 오르지만 턱없이 느린 속도로 오르므로 크로우바 세개를 전부 쑤셔박는일이 많다. 또한 크로우바는 창고 내 자를 따고 추가 전리품을 얻는데 사용할 수도 있으니 추가 전리품을 충분히 얻었다 싶을 때 금고에 쑤셔박자.
         서해안에서 금고를 들여오려는 블라드. 하지만 LA에 발생한 지진 때문에 수송대가 오도가도 못하는 황이 되었다. 이에 블라드는 Crime.Net.에 연락을 걸어 금고를 회수해 올 것을 의뢰한다.
         시작하면 무너진 고속도로 어딘가에 있는 수송 트럭 두대를 찾아내야 한다. 수송 트럭 한 대마다 갱단원 두명이 있는데, 이들은 블라드가 금고를 지키기 위해 딸려보냈던 경비들이므로 죽이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있으면 함께 경찰을 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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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드의 매형이 코카인 운송 도중 경찰에게 걸리고 말았다. 블라드의 매형은 쇼핑몰 창고로 도망쳐 아무 자에나 코카인을 숨긴 후 산타옷을 훔쳐 산타로 위장했지만 잡히고 말았다. 이에 블라드는 베인에게 블라드의 매형과 코카인의 확보를 의뢰한다.
  • 함병춘 . . . . 31회 일치
         '''함병춘'''(咸秉春, [[1932년]] [[2월 26일]] ~ [[1983년]] [[10월 9일]])은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이자 외교관, 법학자이다. 한국의 법사회학을 전문으로 연구하였다. 제3대 부통령을 지낸 [[함태]]의 아들이고, 25년 연으로 농림부장관, 강원대학 학장을 지낸 [[함인섭]]의 이복 삼촌이다.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길에 동행했다가,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피폭되어 사망하였다. 본관은 [[강릉 함씨|강릉]](江陵), 아호는 창은(滄隱) 또는 고송(苦松)이다.
         [[1932년]] [[2월 26일]]에 [[서울]] 연못골 연동목사 사택에서 태어났으며 [[함태]]의 14남매 중 14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함태]]은 두 번 처하고 세번째 부인으로 고숙원과 재혼하였다. 아버지 함태은 환갑이 넘어 그를 보았는데, 함태은 20세가 되기 전 본처에게서 아들 함병석을 얻었고, 일찍 죽은 50여년 연의 이복 형 함병석의 아들로, 함병춘보다 20년 연인 이복 조카 [[함인섭]], [[함의섭]]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날 때는 4살 연의 동복 친형 함병소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연동교회]]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고, 이후로도 계속 교회를 다녀 집사로 활동했다. [[1943년]] 어머니 고숙원이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셋방에서 사망하고 아버지 [[함태]]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머니 사후 아버지 [[함태]]이 직접 도시락을 챙겨주었다 한다.<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944004 아웅산 테러 30년,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의 思父曲]</ref>
         [[1959년]]에 [[연세대학교]] 법학 교수가 되었으며, 법철학, 미법, 한국법제사 강의를 맡으면서 새로운 연구 역을 개척하였다. 이후 [[양승두]] 교수와 한국인의 법 의식에 대한 연구, 한국 사회의 법에 대한 태도 연구를 진행했으며, 한국어 논문 뿐만 아니라 어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법학자였지만 그는 한국 사회의 전통과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교수 재직 중 [[연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에 임명되어 겸임하였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2년간 [[예일대학교]]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귀국하였다.
         [[1976년]] 한국인사가 미국 여야 정치인과 원, 하원 의원을 대로 [[대한민국]]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자 만찬과 정치자금을 지원했다가 발각,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되고, 주한미군 철수 여론이 [[미국]] 정계와 학계에 등장하자 그는 미국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설득, 주한미군 철수 여론의 확산을 막았다.
         [[10·26 사태]] 이후 다시 연세대학교 법학 교수로 복직하여 법철학, 동양법제사, 법인류학 등을 강의하였으며 [[12월 17일]] 다시 [[최규하]]대통령에 의해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로 기용되었다. 1980년 8월 2일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에 위촉되었다. [[1981년]] [[8월]] 다시 연세대학교 법학 교수로 출강했다가 다시 [[1982년]] [[6월]]에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자신이 정치 전문가가 아니라 외교분야에서 활동한 것을 들어 거절했고 [[이순자]]가 공식 석에서 활동하는 것을 전두환의 면전에서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이학봉]] 비서관을 보내 함병춘을 설득했다.
         독립 운동가이며 대한민국 부통령을 지낸 [[함태]]의 막내 아들이며, 장남 [[함재봉]]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미국 랜드연구소 한국정책석좌를 거쳐 현재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차남 함재학은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이다.<ref>{{뉴스 인용|인용=실제로 우리 모두는 함대사의 장남인 함재봉 연세대 교수가 93년 10월 몇몇 학자들과 함께 부친 의 유고를 모아 책을 발간하자 매우 기뻐했다. 「한국의 법, 정치 그리고 문화」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의 문 유고는 이미 86년 연세대 출판부에서 발간했었다. 이 책은 근대 한국을 이해하고자 하는 서구인들이 반드시 읽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역저라고 생각한다. 둘째 아들 재학군도 부친의 위업을 따라 법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20년 연인 [[함인섭]], 함의섭은 이복 형 함병철의 아들들로, 그에게는 조카에 해당된다. 아버지 [[함태]]은 세번 처하였고 14남매를 두었으나 대부분 일찍 사망했다.
         * 아버지 : [[함태]](咸台永, [[1872년]] [[10월 22일]]<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250 함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 [[1964년]] [[10월 24일]])
         외교부 안에서도 [[어]]로 미국인, 국인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인물이라는 평가와 충분하지 못한 행정경험으로 다소 빛이 덜 났다는 평도 있다.
         * [[1995년]] - [[김사천]]<ref>1인 4역으로 대구시장 허억, 교수 윤천주, 정치인 곽훈 역을 하여 1인 4역이었다.</ref>, 《[[코리아게이트 (드라마)|코리아게이트]]》, [[SBS TV|SBS]] 텔레비전 드라마
         * [[함태]]
         * [[심우]]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1983년 죽음]][[분류:순직자]][[분류:테러로 죽은 사람]][[분류:테러 피해자]][[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법철학자]][[분류:법제사학자]][[분류:대한민국 공군 중위]][[분류:함태]][[분류:박정희]][[분류:전두환]][[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노스웨스턴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로스쿨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강릉 함씨]]
  • K리그 챌린지 . . . . 30회 일치
         K리그 챌린지는 대한민국 차위 프로축구 리그의 명칭이다.
         K리그 챌린지의 발족은 승강제 도입과 관련한 이슈로 인해 탄생하게 되었다. 허나 K리그는 선수들의 수준만 보면 아시아 최고라 자부할 수 있을지언정 리그 자체가 가진 업성은 아시아 최하위 수준으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라서 새로 프로축구구단을 창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태였다.
         허나 ACL참가조건에 대해 승강제 여부를 보겠다는 AFC의 발언에서 승강제 도입문제가 이슈화되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부리그에 참가할 팀을 구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K리그 가입금에 대한 조건을 폐지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간 미적했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K리그 신규구단 창설을 위한 태로 전환된다.
         특히 축구에 대해 한이 많은 부천, 안양을 중심으로 프로화를 진행 및 시민구단이 창설되고, 또 수원 FC나 충주 험멜과 같이 기존 [[내셔널리그]] 팀들이나 [[R리그]]에 참가했던 경찰청 축구구단들이 기준을 충족하면서 2013시즌부터 챌린지에 참가할 6개 팀이 탄생하게 된다. 여기에 2012시즌 K리그에서 강등된 광주와 주가 챌린지에 합류하며 2013시즌을 원년으로 K리그 챌린지가 시작된다.
         2013시즌은 8개팀으로 운되었으나 2014시즌엔 클래식에서 추가로 강등된 팀을 포함하여 10개팀으로 운되었고, 2015시즌에는 서울 이랜드가 새로이 창단 및 합류하면서 총 11개팀으로 운되고 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쉽의 관계처럼 새로 1부리그에 부여하는 이름이 명확하게 다른게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의 명칭이 당히 헛갈릴 우려가 있었던 점이 지적되었다. 이런 이유로 2부리그도 단순히 K리그의 이름을 물려받는게 아니라 K리그 클래식처럼 충분히 구분가능한 명칭을 짓는 것이 공론화되었고, K리그 챌린지란 이름이 공식화된다.
         그러나 이 챌린지란 이름도 기존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운하던 U-18대회인 챌린지리그와 또 같은 이름이 되기 때문에 기존의 챌린지 리그는 [[K리그 주니어]]로 명칭을 변경하는 원인이 된다.
         게다가 K2리그로 출범했던 당시에는 리그의 운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아니라 한국실업축구연맹으로 봐야 하며, 이 두 연맹은 하위적 조직이 아니다. 또한 챌린지가 발족하였음에도 별도로 운되고 있다는 점까지 미뤄 보면 이 둘간의 관계는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대회운 =
         챌린지의 대회 운도 승강제 도입과 관련한 문제 때문에 각 시즌마다 다른 운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013시즌은 8개 팀이 약 40주 일정에 가깝게 치뤄야 했으므로 [[홈 & 어웨이]] 방식을 쓰되 서로 5번씩 만나는 구조로 운되었다. 우승팀은 2014시즌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위해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 진출자격을 부여받았다. 주가 여기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승리하면서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을 이루게 되었다.
         2014시즌은 주가 승격하고 K리그 클래식에서 3개팀이 내려오면서 10개팀 체제로 운하게 되었다. 10개팀이 되었기 때문에 2013시즌과 같이 5번씩 만나는 홈 & 어웨이에서 4번씩 만나는 홈 & 어웨이로 운방식이 변경되었다.
         기본 운방식은 변경이 없었으나, [[서울 이랜드 FC]]가 새로이 창단 및 합류함으로써 경기수가 40경기로 늘어난 태로 운하게 되었다. 이 밖에 리그를 구성하는 팀이 짝수가 아니라 홀수로 변경되었기에 각 라운드마다 1개팀은 휴식기를 갖는 기회가 생겼으나, 일정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챌린지 팀들 사이에서 불거지게 된다.
         또한 2014시즌에 처음 운되었던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가 챌린지의 연장선으로 인정받게 되어 챌린지의 통산기록으로 산입되었다.
         또한 챌린지에 기록되는 선수의 성적은 모두 정규시즌 중에 획득한 것으로만 한정했었다가 2015시즌부터는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성적을 통산기록으로는 인정하되, 시즌이 끝나고 시할 때는 산정기준에서 빼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과거 K리그가 K리그 챔피언십을 운하였던 방식과 유사하게 바뀐 셈.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는 챌린지 2위부터 4위팀들끼리 벌어지는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자격 획득을 위한 경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규정한 바에 따라 플레이오프는 챌린지 정규시즌의 연장선이 아니므로 별개의 대회로 취급했었으나, 2015시즌부터는 챌린지PO도 챌린지의 연장선으로 인정함으로써 챌린지 PO의 승자는 챌린지의 최종순위 2위로 인정받게 되었다. 때문에 챌린지와 플레이오프 사이에서는 기록이 호환되지 않았다가 통산기록으로는 인정하게 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항목 참고.
  • 고준희 . . . . 30회 일치
         |웹사이트 = {{공식 블로그|www.instantcoop.com/}}<br>{{인스타그램|gojoonhee/}}
         [[2001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맞추러 갔다가 우연히 권유를 받고 'SK 스마트 교복 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해 금을 수하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206604 주진모와 연인사이 밝힌 고준희는 누구?]</ref> [[경희대학교]] 연극화과에 재학 중이다.
         | 조
         |
         === 화 ===
         | 《[[헨젤과 그레텔 (2007년 화)|헨젤과 그레텔]]》
         | 혜
         | 《[[걸스카우트 (화)|걸스카우트]]》
         | 《[[려수 (화)|려수]]》
         | [[기캐스터]]/김유민
         | 《[[레드카펫 (화)|레드카펫]]》
         | [[이수]]
         |2005||[[TU미디어]]||TU||[[송재]]
         ||에이블씨앤씨||미샤 (화장품)||[[박주미]], [[이혜]]
         == 수 내역 ==
         [[파일:121206 문화연예대 고준희.jpg|섬네일|150px|2012년 제20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의 고준희]]
         * [[2001년]] : SK 스마트학생복 모델 선발대회 금
         * [[2002년]] : 퍼슨스 모델 선발대회 대
         * [[2003년]] : 미스 [[빙그레]] 선발대회 미스 빙그레
         * [[2012년]] : 제5회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 특별
  • 김중혁 . . . . 30회 일치
         ||||||||||||||<#F7EA6E><:>'''{{{#white 제2회 [[김유정문학]] 수 }}}'''||
         ||||||||||||||<#0000FF><:>'''{{{#white 제13회 [[이효석문학]] 수 }}}'''||
         ||||||||||||||<#00c000><:>'''{{{#white 제46회 [[동인문학]] 수 }}}'''||
         [[대한민국]]의 [[작가]]. 1971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슈퍼집 아들이었다고 한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소설가]] [[김연수]]--역전 앞 뉴욕제과 아들--, [[시인(문학)|시인]] [[문태준]]과는 고향 친구이자 중학교 동창이다.
         친구 [[김연수]]가 한국 문학의 기대주로 승승장구 하는 것을 보고 2000년 '문학과 사회'에 중편 소설 [[펭귄 뉴스]]를 발표하며 뒤늦게 등단했다. 이후 <엇박자 D>로 2008년 제2회 [[김유정문학]]을 수했다. 그 외 2010년 제1회 젊은작가, 2011년 제19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문학부문), 2012년 <요요>로 이효석 문학을 수했으며 2015년 <가짜 팔로 하는 포옹>으로 [[동인문학]]을 수했다.
         음악, 화, 스포츠, 그림을 아우르는 다양한 관심사 만큼이나 작가의 경력 또한 화려한데, 홍대 마당에서 열리는 인디밴드 쇼케이스를 진행했고, [[이동진(평론가)|이동진]] 평론가와 함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흑임자~~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칼럼도 쓰고, 웹툰 작가로도 활동했다니[* 그림 솜씨가 출중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고 개성있는 편이다. <펭귄 뉴스>, <뭐라도 되겠지>, <미스터 모노레일>의 표지도 직접 그렸다.] 그야말로 문학계의 [[팔방미인]](...)
         [[씨네21]]과 연이 깊다. 2009~2010년 절친 [[김연수]]와 함께 '나의 친구 그의 화'를 연재했다. 이어 2011~2012년에는 '최신가요인가요'를 연재했고, 2014~2015년에는 '김중혁의 바디 무비'를 연재했다. 세 칼럼은 <대책없이 해피엔딩>과 <모든 게 노래>,<바디무빙>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되었다. [[한겨레]]와도 연이 닿아 목요일 ESC 지면에서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을 연재했고, <메이드 인 공장>이라는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2016년부터 평론가 이동진과 화소개프로그램 [[화당]]을 진행한다.
         2016년 6월부터 [[무비썸]]이 개편을 하면서 [[송경원]] 화 평론가와 함께 진행한다.
          * [[가짜 팔로 하는 포옹]][* 2015년 동인문학작] (2015)
          * 대책없이 해피엔딩 (2010) [* ~~불알 친구~~김연수와의 공저. 씨네21 <나의 친구 그의 화> 모음.]
         강동 경찰서 사이버 수사팀에 근무중인 경위. 친구인 동진과는 [[베스트 프렌드|제일 친한 친구]]라고 한다. 동진과는 대학에 들어와 친해진 사이로 추정된다. 그러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문자를 보낸 친구와 한 달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무심한 성격인듯.(본인은 매일 연락을 주고 받아야 친구는 아니다는 말을 했다.) [[아싸|사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것이 매우 서툴다]]. 하지만 먼저 다가와 인사해주는 동진에게 처음에는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그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이내 마음을 열게된다.
         사람에게 맘을 쉽게 열지 않는 특유의 성격 본인은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 케이스'''라는걸 알게 된다.
         동진은 자신이 사라지면 중혁이 반드시 조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블로그를 개설하여 비밀글들을 숨겨두었고 예대로 중혁은 동진의 블로그속 마녀의 법칙을 찾아낸다. [* 이때 아이디는 중혁의 주민등록번호였으며 비밀번호는 'Shine on you'였다.]동진의 조사가 유독 오래 걸린 이유가 미정을 조사함과 동시에 대학시절부터 중혁에 관해서도 눈치채고 같이 역학조사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혁과 관계된 여성 리스트가 나오는데 수십명~~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부럽다'''. 게다가 다 남녀공학이야~~가까이 중혁을 좋아하여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글은 이 글을 볼 중혁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중혁아. 네가 사랑해야 돼.''' 라는 말, 즉 해결책을 써준 동진에 대한 크나큰 고마움을 느낀다.
  • 남유진 . . . . 30회 일치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15A38><-5><bgcolor=#FFFFFF><:>'''[[경북도|{{{#005BAB 경북도}}}]] [[구미시|{{{#005BAB 구미시장}}}]]'''||
         || '''출생지''' ||<(> [[경북도]] 선산군[* 현 [[경북도]] [[구미시]]] ||
         || '''학력''' ||<(> [[경북고등학교]] {{{-1 ([[졸업]])}}}[br][[서울대학교]] {{{-1 (철학 / [[학사]])}}}[br][[서울대학교]] {{{-1 (행정학 / [[석사]])}}}[br][[조지타운 대학교]] {{{-1 (경학 / [[석사]])}}}[* 수료][br][[금오공과대학교]] {{{-1 (경학 / [[박사]])}}} ||
         || '''외부 링크''' ||<(> [[http://www.namyoochin.com/|공식 사이트]] [[https://blog.naver.com/namyoochin|[[파일:네이버블로그.png|width=24]]]] [[https://www.facebook.com/namyoochin1|[[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24]]]] [[https://www.youtube.com/channel/UC9idNb2O1DSBW_Ua6sh-iEQ?view_as=subscriber|[[파일:유튜브 아이콘.png|width=24]]]] [[https://www.instagram.com/gumi_yoochin/|[[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width=24]]]] ||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 동안 [[구미시]]의 시장을 지냈으며, 소속 정당은 [[자유한국당]]이다. 그리고 [[박정희]] 기념 사업에 지나친 예산 투입을 반복하여 결국 [[구미시]] 경제를 파괴해 '''역사 최악의 구미시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구미판 니콜라스 마두로--
         1953년 [[경북도]] 선산군 선산면(현 경북도 [[구미시]] 선산읍)에서 태어났다. 선산초등학교,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금오공과대학교]] 대학원 경학 [[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제22회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총무처, 내무부(이 현 [[행정자치부]]), [[산림청]] 등에서 근무하다가 [[노태우 정부]] 후기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였다. [[김삼 정부]] 초기에는 관선 경북도 [[청송군]]수를 지냈다. 이후 다시 내무부, 행정자치부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김관용]] 구미시장[* 15 ~ 17대 [[경북도지사]]를 지냈다.] 밑에서 구미시 부시장을 지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북도]]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까지는 경제가 호황이었고 D램 시장이나 여러 디스플레이 시장이 호황이었기 때문에 이 때까지는 괜찮았다. 수출액도 2006~2007년 4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구미 역사 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고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긴 했지만,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덮쳤기 때문에 이는 전국 모든 도시의 일부 대기업들과 꽤 많은 중소기업들이 박살나는, [[1997년 외환위기|IMF]]와 비견되는 그런 황이었기에 남유진 한 사람 만의 책임으로 몰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쨌든 기업들은 피터지는 환경을 겪긴 했어도 나름 선방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구미시장 재선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구미에 암운이 드리웠다.''' 이 즈음부터 대기업들이 하나둘 씩 구미를 떠나기 시작했고,[* 2005년 수도권 규제 완화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파주 같은 과세율이 낮은 지역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기감은 인식했고, 그 당시 구미시장 김관용도 어느 정도 이 현을 감지는 하고 있었다. 다만 두 시장 모두 제대로 대처하지는 못했다.] 2010~11년을 전후해서 구미 1공단이 급격히 몰락한데다 2012년 즈음에는 2, 3, 4공단도 완벽하게 터져버렸다. 구미시민들은 안 그래도 물가도 비싸고 생활 환경은 최악의 수준임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불황 속에서 정말로 경제를 살려줄 수 있는 다른 후보가 혹여나 나설 수 있는지를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극렬 [[친박]] 성향의 정치인 중 하나로, '''[[박정희]] [[반인반신]] 발언의 당사자'''라고 하면 더 이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생지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시 예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서 그게 논란이 됐다.[* 남유진 재임기간 중 구미시 1년 예산은 1조 가량 되는데 매년 수백억을 박정희 관련해서 낭비했고 임기 말에는 1400억짜리 박정희 타운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도 참석해서 비판을 받았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인용([[파면]]) 판결에는 존중한다고 하였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15500010|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는 반신반인” 신격화 논란]] [[http://www.idaegu.com/?c=4&uid=357752|남유진 구미시장, 기초 지자체장 중 첫 탄핵반대 집회 참석 논란]]
         [[박정희]] '탄신' 100주년 기념우표 발간을 추진하다 국민들의 거센 반발로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박정희]] 기념우표 발간 촉구 1인 시위를 진행하는 등의 행보로 빈축을 사고 있다. 그 외에도 시정 능력까지 도마에 올랐다. 사실 12년간 제대로 구미를 위해 한 일이 없었기 때문. 구미의 몰락을 이끌어간 그의 행보에 경제 발전에 목말라 있었던 시민들의 반감도 당해진 태였다.
         이렇게 남유진 전 시장이 [[박정희]], [[육수]], [[박근혜]] 찬양에 정신이 팔린 동안 [[구미시]]에 있던 공장들은 줄줄이 도산했으며, 크나큰 오판으로 인한 잘못된 정책 수립으로 주택을 과잉 공급하여 집값이 3년간 무려 30%나 폭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마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우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던 [[북한|한반도의 윗 동네]]랑 다를 게 뭔가 싶을 정도이다.
         한 지자체장에 3선을 초과하여 도전할 수 없다는 우리나라 법에 따라 구미시장 4선 도전은 할 수 없기에 2018년 1월 25일에 [[경북도지사|경북도지사]] 출마를 위해 자진 퇴임을 하였다. 곧바로 박정희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경북도지사 출마 선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석 이력을 강조하며 공약으로 포항 일대에 박정희 동을 설치하겠다고 한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26/0200000000AKR20171226141300053.HTML|연합뉴스]] 하지만 자유한국당 경북도지사 경선에서 11.0%를 득표함으로써 경선을 꼴찌로 마감했다. 이후 경선에서 선출된 [[이철우(1955)|이철우]] 경북도지사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 마블 퍼즐퀘스트 . . . . 30회 일치
         스타팅 1성 캐릭을 받아 팀을 편성 -> 초보자도 환하는 길드(얼라이언스)에 가입 -> PvE시나리오 진행 -> 시나리오 보으로 주는 2성캐릭을 수집하여 2성캐릭으로 서서히 팀 교체. 이 과정에서 얻는 히어로 포인트는 모두 창고를 키우는데 사용한다. -> 적당히 2성캐릭 만렙(94렙)을 한두개 만들었으면 슬슬 PvP나 이벤트를 참여한다. 2성캐릭은 꽤 안정적으로 얻을수 있으며 3성캐릭도 간간이 얻을수 있다. -> 인벤이 모자라면 사용하지 않는 1/2성 캐릭은 정리하나, 데드풀 일퀘를 위해 2성 1팀, 1성 1캐릭은 남기도록 하자. 소과금을 한다면 이 시기에 창고를 팍 늘려놓으면 좋다. ->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3성/4성 캐릭을 모은다.
          캐릭터 자체는 당히 후하게 퍼주는 편이지만 (보통 주력으로 삼게되는 3성캐릭의 드랍률이 실버카드로 대략 5%, 골드카드로 25%정도이다. 4성은 골드카드 기준 약 3%) 카드를 한장만 얻어서는 제역할을 하기 힘들고, 최소 3장, 실질적으로는 10장이 중복으로 얻어야 제대로된 활약을 할수 있다. 이 게임은 각 히어로 카드가 3개의 스킬카드로 드랍되며, 각각의 스킬카드를 중복으로 얻어 스킬레벨을 향시켜야 스킬 위력도 승하고 히어로의 레벨도 올릴수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한두명의 만렙 히어로를 구성하려면 당히 많은 카드를 뜯어야하며, 이동안 온갖 잡스런 히어로를 얻게 되어 인벤이 폭발하게 된다.
          일정 이 3성/4성 캐릭을 보유하게 되면 의외로 이들을 추가로 얻는것 자체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특히 데드풀 일퀘로 확정적으로 특정 3성 카드를 얻을수 있게되었기도 하고.. 그러나 스킬레벨을 올리고 레벨 한선을 올려도 실제로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ISO라는 게임내 화폐가 필요한데, 3성 히어로를 만렙까지 올리는데에 히어로 한명당 대략 10만 가까운 ISO가 필요하다. 각종 일퀘나 이벤트를 수행하면 하루에 3천정도는 얻을수 있으나, 이러한 획득속도보다 보유 히어로의 ISO요구치가 더 빠르게 올라간다.. 따라서 ISO를 생기는대로 투입하기 보다는 어느정도 모아두고 있다가 이벤트시 버프를 받는 캐릭위주로 레벨을 올려주는 것이 그나마 효율적인 소비이다.
          이 게임은 따로 피로도 게이지 같은 것은 없으나, 히어로들은 전투시 소모된 체력이 바로바로 회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매 전투시 피해를 적게 입도록 해야 최대한 많은 전투를 수행할수 있으며, 전투시 회복스킬을 사용해도 소위 트루힐링이라고 불리는 몇몇 회복기를 제외하고는 임시체력만 부여받고 전투가 종료되면 회복스킬로 얻은 체력은 증발한다. 따라서 전투를 일정이 수행하고 너덜너덜해진 히어로를 빠르게 회복시키려면 헬스팩이라는 아이템을 사용하여 체력을 채워주게 되는데, PvE에서는 그럭저럭 모자라지 않게 운용할수 있는 반면 대점수 경쟁제인 PvP이벤트에서는 당히 모자라게 된다. 헬스팩 갯수가 5개 미만이면 헬스팩도 천천히 충전되지만 본격적으로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면 헬스팩의 부족을 곧잘 느끼게 되며 이는 트루힐링 캐릭으로의 쏠림현을 만들었다.
          * 게임내 이벤트는 크게 2가지가 있으며, 보도 2가지로 나뉜다. 먼저 이벤트는 크게 PvP이벤트와 PvE이벤트로 나뉜다. PvP이벤트는 각자 구성한 팀으로 플레이어간 경쟁을 하는 이벤트이다. 허나 실시간으로 직접대결하는것이 아닌, 방어측은 컴퓨터가 운용하여 다소 공격측이 유리하게 되어있다. PvE 이벤트는 사용자가 보유한 캐릭터 레벨에 비례하여 적의 레벨이 올라가며, 전투를 하면서 짤막한 시나리오를 알게되는 식으로 구성되어있다.
          * 이벤트 보은 랭킹보과 절대점수 보이 있다. 랭킹보은 말 그대로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간의 점수 순위로 차등 보이 이루어지며 이벤트 종료시점의 점수를 토대로 산정한다. 위권은 3,4성캐릭, 중위권은 2성캐릭, 하위권은 은카드 보으로 이루어져있다. 절대점수 보은 랭킹과 무관하게 이벤트에 참가하여 획득한 포인트에 따라 주어지며, 최종점수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점수를 올려 일단 획득하고 나면 차후 패배하여 점수가 차감되더라도 무관하다. 낮은점수에서는 참가 정도의 은카드와 소량의 ISO지만 보통 300점정도만 획득해도 금카드를 한장 주고, 그 이부터는 히어로포인트나 3,4성캐릭, 당량의 ISO를 제공한다.
         PvE이벤트의 보도 마찬가지로 대랭킹과 절대 랭킹으로 이루어지는데, PvE이벤트는 짧게는 3일 길게는 7일정도의 기간으로 개최되며 해당기간 동안 얻은 포인트 전체를 합산하는 보과 이벤트내의 서브 이벤트를 개별 산정하여 주는 보이 있다.(보통 서브이벤트는 절대점수 보이 없다)
  • 문창진 . . . . 30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광양제철남초와 포항 스틸러스 유스클럽인 포철중학교, 포철공고를 졸업하였다. 광양제철남초 시절에는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과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SV 베르더 브레멘]]에서 훈련을 받았다. 국내 복귀 이후에는 포항 유스클럽에 진학하였으며 2010년 백록기 우승, 2011년 고교클럽챌린지에서 6골 4도움을 기록하여 팀이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본인은 MVP를 수하였다. 이러한 활약에 문창진은 대학 진학 대신, 우선지명을 통해 바로 프로로 직행했으며 이는 [[신광훈]] 이후로 2번째 사례가 되었다.[* 이때 같이 프로로 직행했던 동기로 이광훈, 문규현이 있으나 문규현은 2013 시즌 이후 방출당했고 이광훈은 2015 시즌 대전에 임대 갔다가 임대 종료 후 수원 FC로 이적했다.] 하지만 허리 디스크로 인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기에 출장 경기 수는 많지 않다.
          * 2012년 6월 14일, 인천과의 무관중 경기에서 프로 데뷔이자 K리그 데뷔전을 치뤘다. [* 3월 24일, 인천은 대전 시티즌과의 2012 K-리그 4라운드 홈경기에서 원정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팀의 마스코트를 폭행하자 홈 팬들이 보복 폭행을 가하는 불사가 일어났고 그에 대한 징계로 1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뤄야했다.]
          * 2012년 6월 20일, 광주 FC를 대로 FA컵 데뷔전을 치뤘다.
          * 2013년 3월 13일, 분요드코르를 대로 ACL 데뷔전을 치뤘다.
          * 2015년 4월 29일, 대구 FC를 대로 팀의 첫 골이자 자신의 FA컵 첫 골을 넣었다.
         2014 시즌 들어서면서 서서히 출전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다만, [[피지컬]]이 약점으로 지적되는데 허리 디스크 경력 때문에 웨이트를 신중하게 해야 하는 황이라 이도저도 못하는 황. [[이명주]]의 이적과 [[손준호]]의 아시안 게임 차출로 반강제적으로 주전으로 뛰는데도 [[피지컬]] 때문에 조금만 압박이 들어와도 아무 것도 못하고 막혀버린다. 그러다보니 포항 팬들이 속을 태울 정도로 성장이 더뎌지는 것이 눈에 보였을 정도였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황진성]]의 신인 시절이다. 물론 황진성은 문창진보다 발이 느리고, 기술은 더 좋았다. 그리고 문창진보다는 대의 견제를 잘 뚫어냈어서 조커 역할을 쏠쏠하게 해냈다. ~~결론은 창진아 형이랑 고기 먹자~~] ~~[[유리몸]]~~
         2015 시즌에는 [[피지컬]]도 어느 정도 보강이 됐고 탈압박 능력도 어느정도 익히면서 패스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포철고 후배 [[이광혁]]과 함께 팀내 크랙수준으로 활약하고 포지션 경쟁자인 [[조찬호]]가 극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문창진의 임무가 막중해졌다. 그러나 6월에 6주짜리 부을 당하고 그 뒤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2015 시즌도 부으로 통째로 날린 셈.
         2016 시즌 들어서 점점 팀의 에이스로 그 날개를 펼치고 있다. 팀 내 거의 유일한 정통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인지라 꾸준히 기용되는 중. 팀이 AFC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 클래식을 병행하는 중이라 자칫 혹사 논란에 휘말릴 뻔 했으나 --[[손준호]]가 대신 노예가 되면서-- 그나마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출전하는 중. 특히 3월 20일에는 후반전 중반에 투입되어 인천 유나이티드의 수비 세 명을 벗겨내고 난 후 바이시클 킥을 통해 팀의 추가골을 넣는 기염을 토해냈다. --드디어 문창진이! 드디어!-- 그와 함께 후반전 끝까지 인천 중원과 수비진을 그야말로 유린하며 K리그 최고의 재능 중 하나라는 걸 보여주었다. 부 등의 악재가 없는 한 주전으로서 계속 기용될 듯하다.
         다만 올대에서의 활약과 달리 포항에서의 활약은 미미한 편인데 일단 [[손준호]]가 시즌아웃을 당해버리고, 5월까지 조수철이 복귀하지 못하다 보니 사실 공미자원은 문창진 혼자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무리 문창진이 지난 시즌보다 실력이 좋아지고 올대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데다 험하기로 소문난(...) 포항의 중원을 손준호와 같은 믿을만한 미드필더의 지원없이 혼자 맡기는 건 무리였고, 실제로도 최진철이 그나마 남은 포항의 다른 미드필더 자원들을 가지고 조합을 해보았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최진철이 전술 자체라 3-4-3으로 바꾸면서 기존의 4-2-3-1 스타일에 맞춰져 있던 문창진의 자리가 붕 떠버린 황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포항에서의 출전 기회마저 줄어들었는데 그나마 이런 와중에도 중간중간 불려나가는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2016 리우 올림픽 최종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그냥 포함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문창진이 없으면 올림픽 팀 중원 자체가 안 돌아갈 정도로(...) 핵심 자원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최진철도 3-4-3에서 해법을 찾아내었는데 그냥 '''원래''' 자리였던 측면 2선자원으로 문창진을 돌려버리면서 중원을 맡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자 양동현, 심동운과 호흡을 맞춰가며 다시 공격력이 살아나는가 했으나...리우 올림픽에서 잠재되어 있던 문제점들을 모두 드러내며 아시아를 벗어난 세계무대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지지 못했고, 포항 복귀 이후에도 별 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시즌을 마무리 하였다.
         2017년 10월 7일, [[아라비안 걸프 리그]]의 클럽인 [[알 아흘리 클럽]]로 8개월간 임대된다는 기사가 떴으며, [[강원 FC]]에서는 임대료 수익을 받고 문창진을 보내주기로 합의했다.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36&aid=0000026829&redirect=true|#]] 그런데 이후 UAE 언론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임대가 아닌 자유 계약이라고 하는데, [[아라비안 걸프 리그]]의 이적 시장이 이미 종료됐기 때문에 임대는 불가능했고 자유 계약만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https://www.facebook.com/AsiaFootballNews/photos/a.1452270805076338.1073741828.1452245628412189/1752021595101256/?type=3&theater|#]] 그래서 이 계약을 일종의 꼼수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선수가 급한 알 아흘리가 강원한테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대신 위약금 등의 비용을 지불했고, 돈을 얻은 강원은 문창진과 호 합의로 계약을 해지했다는 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https://twitter.com/dullahbank/status/918462549665964032|연장 옵션이 붙은 1년 계약이라고 한다.]]
         2012년 U-19 아시아 챔피언십에서 거의 혼자서 팀을 결승까지 끌고 가 승부차기 끝에 우승시켰다. 하지만 언급된 대로 정작 본선은 부으로 낙마했다.
         이후 부과 [[피지컬]] 문제로 고생하다가 [[신태용호]]의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두각을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8월 동아시아 대회에 젊은선수들과 올림픽 대표 위주로 선발하겠다고 밝혀 선발이 유력해 보였지만, 부 때문에[* 올대의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갈비뼈 부을 입고 귀국했다.] 예비 엔트리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수원 소년가장 [[권창훈|빵훈이]]가 슈틸리케호에서 날아다니는 걸 생각하면 [[김승대|소속팀]] [[신화용|선배들처럼]] [[손준호|벌써부터]] [[이명주|국대 운이 안 좋다.]]
         하지만 이후 [[신태용]]이 이끄는 2016 리우올림픽 대표로 뽑혔고, 올림픽 예선을 겸한 AFC u-23 대회 조별예선 1차전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팀 동료가 될 뻔 했던~~[[황희찬]]과 함께 맹활약하며 2골을 집어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황희찬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전력이 약한 대표팀을 끌다시피 하고 있으며, 8강전에서는 황희찬이 후반 초반 부으로 실려나가자 사실 혼자 캐리쇼(...)를 벌이며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1골을 넣어 1:0 승리에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공수 모두가 붕괴된 후반전 사실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가 되어 공격 수비 모두 ~~싸질러놓은 X들을 치우느라~~ 문창진 혼자서 책임지다시피 했다. ~~그렇게 [[이명주]] 3호기가 되는거야~~] 4강전에서는 2:1로 앞선 후반 추가시간에 승부의 쐐기를 박는 골을 작렬시켰는데, 골이 터지는 순간 경기는 그대로 끝나며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 8연속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결승에서는 후반 중반까지 혼자서 공격진과 수비진을 연결하며 개인기를 통한 탈압박 후 연결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 김현 투입 후 롱볼전술로 팀의 전술이 변경됨에 따라 공격진으로 올라갔으나~~센터백과의 몸싸움에서 밀리며~~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이는 신태용 감독의 전술변화에 의한 것으로, 대적으로 제공권 장악력과 포스트 플레이가 가능한 [[김현(축구선수)|김현]]~~뭐라고?~~을 투입하면서 수비진에서 한번에 공격진으로 연결하는 전술변화에 의한 면이 크다. 하지만 피지컬이 약점인 문창진마저 최전방으로 내몰면서 결국 공격과 수비의 가교 역할을 하던 문창진마저 공격을 [[강요받고 있는 거다!|강요받으면서]] 팀 밸런스가 붕괴하고 만다. 여기에 대회 내내 사실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굴려진 문창진의 체력이 후반에 바닥나버린 건 덤.] ~~[[도하 참사(축구)|그리고...]]~~
         리우 올림픽 본선에서 볼을 소유하고 있을때나 소유하지 않고 있을때나 한결같이 한심한 플레이를 보이면서 보는이들의 탄식을 자아내는중이다. 피지전은 4-3-3에서 중앙 미드필더에 가깝게 뛰었기에 본 포지션이 아니라는 쉴드는 쳐줄수 있지만 PK를 날려먹었고(...), 독일전에서는 독일선수들의 피지컬에 완벽하게 밀려버리며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여러차례 좋은 기회를 날려먹었다. 결국 멕시코전은 결장했고 8강 온두라스전에서 선발 출전했으나 역시 이번에도 어정쩡한 플레이와 흐름을 끊는 백패스와 탐욕을 일삼다 팀을 좌초시키고 말았다.[* 다만 이 경기는 문창진 혼자만의 책임이라기도 보기 힘든게, 사실 황희찬 혼자서 멱살을 잡고 가는 경기였고 ~~소몰이~~ 손흥민, 풀백 수비 모두 삽질을 일삼다가 결국 역습 한 방에 팀이 털려버렸다.] 결국 포항 소속으로 경기할때 보이는 문제점인 기복있는 플레이와 피지컬 적인 한계, 탐욕, PK 미스 등(...)이 정작 본선 무대에서 골고루 터져버리며 그동안 국대 팬들에게만큼은 까이지 않았던 문창진이었으나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안티가 늘어나게 되고 말았다.이하게 연령대 대표팀 에서는 40경기 23골을 넣을 만큼 에이스고 클럽에서의 활약도 준수하지만 이하게 국가대표팀에는 한 번도 차출 된 적이 없다. 동기인 진성욱 김동준, 이창민, 권창훈 그리고 2살 아래인 황희찬이 차출된 적이 있는 만큼 문창진에게는 안타까운 부분.
         국가대표팀과 올림픽에 나가는 U-23팀에 대한 집착이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타공인 동년배 에이스이자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는 문창진이지만 잦은 부 때문에 선발되지 못할까봐 걱정한 것. 그 [[황선홍]] 감독조차 대표팀에 너무 마음이 많이 가 있다고 염려할 정도였으니... 거기에 혹시나 나이 때문에 올림픽에 나가지 못할까봐 날짜 단위로 계산까지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http://sports.news.naver.com/amatch/news/read.nhn?oid=111&aid=0000447007|[이성필의 NOW 도하]생일 날짜까지 계산했던 문창진의 대반전]]
  • 변우민 . . . . 30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 '''학력''' ||<(> 무주초등학교 졸업 (1977년)[br]무주중학교 졸업 (1980년)[br]무주고등학교 졸업 (1983년)[br]무주종합수련원[br][[중앙대학교]] 연극화학 (안성캠퍼스) 학사 [* 연극화학과가 장수로 올라온 것은 2007년부터이므로 그 이전의 연극화학과 학생들은 안성캠퍼스 소속이었다.] ||
         [[대한민국]]의 남성배우. [[1965년]] [[2월 1일]] 전북 무주 출생. 무주종합수련원에 진학하여 일어일문학, 화학 등을 공부하였으나,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학원에 나가서 연극화과 준비를 하였다. 당시에 부산에는 예능계 학원이 없어 오로지 혼자서 입시 준비를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3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중앙대학교]] 연극화과에 입학했다.
         전북 무주 사투리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매일 연필을 물고 노력하여 표준말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중앙대학교]] 재학 중에 당시 중앙대학교 교수였던 김정옥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 이라는 화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하였다. 한학기 등록금의 무려 10배가 넘는 돈을 개런티로 받아서 제일 먼저 부모님에게 내복을 사드릴 정도로 효자였다고 한다. 그 후 "서울시나위" "어둔 하늘 어둔 새" "남자 대탐험" 등의 드라마를 통해 안방극장에서 인기있는 연기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TV 와 은막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해 왔고 "풀 몬티" 등 다수의 연극에 출연했다.
         [[SBS]]의 전설의 [[막장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나쁜 남편의 대명사격인 [[정교빈]] 역으로 유명하다. 이 드라마는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변우민의 결혼 때 동남아 여러나라에서 변우민의 팬 및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 결혼식에 찾아오거나 부조를 하였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엔 최고의 미남청춘스타였다.[* 변우민은 부산교대부속초등학교, 부곡중학교, 동래고등학교 출신인데, 그 당시 부산에서 학교를 다닌 여고생들 사이에는 "부산 출신 배우 변우민을 모르면 간첩" 이라는 전설이 후배들에게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실제 성격은 드라마 속 인물인 정교빈과 다르게 [[대인배]]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일부 출연배우에게 출연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황이 생기자, 변우민은 우선 자신의 출연료 일부를 떼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다른 배우들에게 준 일화도 있다.
         2009년 11월 인연만들기라는 드라마에 출연하였다. 배역은 정교빈과 같은 재벌 캐릭터지만, 정교빈과는 달리 어느 정도 개념이 제대로 정립된 캐릭터였다. 부모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다른 집 여자와 결혼한다든지, 헤어질 쯤 되어서 여자친구는 자신의 딸을 임신하고 있다든지 이런 황을 보면 캐릭터는 성숙되지 못한 21세기의 방황하는 한국의 도시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은 후 약간 성숙되어 돌아와서 자기 딸을 되찾아가려는, 다소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하였다.
         한때 잠시 노래도 부른 적이 있다. 노래 제목은 "꽃사슴" 인데, [[출발 드림팀]] 에 이 노래가 나온 적이 있다.[* 전원석과 함께 부른 '세보기'라는 노래도 있다.[[https://youtu.be/J1Vuov_OnX0|#]]] 하지만 정작 제작진에게 어떤 음원을 넘겨줬는지 맨날 노래가 나오다가 테이프 늘어진 소리나 판이 튀어서 제대로된 노래가 나온 적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한때 배우 [[옥소리]]와 사귀었는데, 당시로선 굉장히 이례적인 스타 커플이었고 엄청난 열애 관계라 유명했지만 결국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이후 [[옥소리]]는 [[박철]]과 결혼했는데..... 그 뒤에는 [[더 이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최준용(배우)|최준용]]과는 '''아유월드'''에서와 다르게 실제로는 서로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하다.[* 1996년 여름에 방된 SBS 드라마스페셜 '남자 대탐험'이라는 드라마에서 [[재수학원]]부터 큰 의류회사 샐러리맨까지 동고동락하는 친구 역으로 나온 바 있다. 그 때 부쩍 친해졌다고.] 거기다가 변우민이 20세 아래의 여성과 결혼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최준용(배우)|최준용]]도 16세 아래의 여성과 교제 중이었다고... 그래서 변우민한테 많은 조언을 구했다고... 그리고 변우민의 결혼식 때 [[최준용(배우)|최준용]]이 사회까지 봤다.
         가족으로 그의 위로 형과 누나 1명씩 있고, 아래로는 여동생 1명이 있는데, 변우민을 제외하고 모두 [[서울대학교]] 동문. 매형과 매제도 서울대학교 출신으로 직계 형제로만 서울대 동문이 다섯 명이나 된다. 변우민은 [[1985년]] [[중앙대학교]] 연과에 입학하였는데 같은 학과 출신으로는 화배우 [[박중훈]], [[전인화]], [[조용원]] 등이 있다. 변우민의 아버지는 교육공무원으로 평생 일하고 정년 퇴임. 매형은 제주도에서 판사를 거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형은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변우민의 형(변우진) 은 서울대 언어학과 출신으로 1990년에 '나는 지금 몇시에 와 있는가'라는 책을 낸 적이 있고(책에 변우민 이야기도 잠깐 나온다), 훗날 미네소타 주에서 한인회장을 지내는 등 유지가 되었다. 2016년 세계로타리클럽 총회에서 연사로 초빙되어 한국으로 와서 한국의 신문에도 기사가 난 바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20171|#]]] 여동생[*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출신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과 매제는 한국에서 교수로 활약 중. 형수도 미국에서 검사를 거쳐서 변호사를 하고 있고, 여자 조카도 최근에 뉴욕의 변호사 시험을 합격하여, 집안에 법조인이 네 명이나 있다. 교육 쪽으로는 대단히 성공한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http://news.joins.com/article/2699759|1992년 4월 6일]] 교통사고 환자의 진단서로 군 복무를 면제받은 사실이 검찰에게 발각되어 수배되었고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2/1913179_19402.html|4월 12일]]에 검거되었다. 그래서 출연정지 태였다가 95년 SBS 드라마 고백으로 복귀, 출연금지가 [[http://news.joins.com/article/3032768|해제]]되었다.[* 당시 변우민은 병역비리로 논란이 되어 연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법처리 되었다.]
         ||<tablebordercolor=#FFA500><rowbgcolor=#FFA500> '''{{{#ffffff 방 연도}}}''' || '''{{{#ffffff 방송사}}}''' || '''{{{#ffffff 드라마 제목}}}''' || '''{{{#ffffff 배역 이름}}}''' || '''{{{#ffffff 비고}}}''' ||
         || 2017년 || KBS || [[이름 없는 여자]] || 구도 역 || ||
         || 2015년 || QTV || 웅들 || || ||
         || 2005년 || KBS ||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 || 최태 역 || ||
         || 1996년 || SBS || 남자대탐험 || 강웅 역 || ||
         === 화 ===
         ||<tablebordercolor=#FFA500><rowbgcolor=#FFA500> '''{{{#ffffff 개봉 연도}}}''' || '''{{{#ffffff 화 제목}}}''' || '''{{{#ffffff 배역 이름}}}''' || '''{{{#ffffff 비고}}}''' ||
         || 1997년 || [[체인지(화)|체인지]] || || ||
  • 브로포스/브로 . . . . 30회 일치
         화 [[람보]] 시리즈의 [[존 람보]]를 패러디한 캐릭터. 처음부터 주어지는 브로다.
         화 [[코만도]]의 [[존 매트릭스]]를 패러디한 캐릭터.
          섬광탄 폭발 범위 내부의 적들은 패닉 태가 되어 서로 싸우게 된다.
         화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을 패러디한 캐릭터.
          짧은 거리에 빛을 반짝한다. 빛에 맞은 적은 혼란태가 되어 아군을 공격한다. 효과음은 맨인블랙 화에서 그냥 뜯어왔으니 컬럼비아 픽처스에 이르지 말아달라고. 아마 농담일거다.
         화 [[맨인블랙 시리즈]]의 J를 패러디한 캐릭터. 스팀 트레이딩카드의 설명에 따르면 초기 버전에서는 점착 폭탄을 사용했다고 한다.
         화 [[더티 해리 시리즈]]의 [[해리 캘러한]]을 패러디한 캐릭터.
         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T-800]]을 패러디한 캐릭터.
         화 [[로보캅 시리즈]]의 [[로보캅]]을 패러디한 캐릭터.
          맞은 적을 공포에 질리게 한다. 공중에 뜬 황에서 벽에다가 채찍질을 한 후 주무기 키를 꾹 누르면 채찍으로 움직일 수 있다.
         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인디아나 존스]]를 패러디한 캐릭터.
          일정 시간동안 전기톱을 들이댄다. 이 태에선 이동속도가 빨라지며, 애쉬를 본 적들이 도망친다. 전기톱으로 두 명 이의 적을 갈아 죽이면 왼쪽 하단에 그려진 얼굴에 피가 묻는다.
         화 [[이블데드 시리즈]]의 [[애쉬 윌리엄스]]를 패러디한 캐릭터.
         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네오]]를 패러디한 캐릭터. 근접공격키를 누르면 워프를 시전한다.
         화 [[분닥 세인트]]의 맥마너스 형제를 패러디한 캐릭터. 두명이 함께 다니며, 한명이 죽으면 일정 시간 동안 광분해 엄청난 화력을 낸다.
         화 [[마셰티 시리즈]]의 마셰티 코르테스를 패러디한 캐릭터.
         화 [[에일리언 시리즈]]의 [[엘렌 리플리]]를 패러디한 캐릭터.
          로켓을 이용해 급승 한 후 그대로 내려찍는다. 아무에게도 맞지 않으면 소모되지 않는다.
         화 [[타임캅]]의 [[맥스 워커]]를 패러디한 캐릭터.
         화 [[유니버설 솔져 시리즈]]의 [[루크 데브로]]/GR44를 패러디한 캐릭터.
  • 원피스/879화 . . . . 30회 일치
          * [[징베]]는 일행을 질타해 "앞으로 나아가라"던 페드로의 말을 기시키고 토트랜드를 벗어나는 순간까지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 다그친다.
          * 일행은 징베의 꾸짖음을 듣고 다시금 탈출에 온힘을 쏟지만 징베가 예한 것보다 훨씬 빨리, 빅맘 [[샬롯 링링]]이 바다 위를 걸어 다가온다.
          * [[샬롯 시폰]]과 [[샬롯 로라]]의 아버지 "파운드"는 바다에 나와 있다. 우연히 공을 날아가는 시폰을 발견하고 소리치지만 그대로 엇갈린다.
          * 시폰은 [[디]]에게 로라가 원래 초콜릿 대신이었고 [[샬롯 푸딩]]이 그 뒤를 이어야 하지만 로라가 돌아올거라 믿어 공석으로 뒀다는 얘길 해준다.
          * 푸딩은 여전히 사악한 얼굴과 뿅간 얼굴을 오가면서 과격한 츤데레기질을 발휘 중. 심하게 오락가락하는 태 그대로 쇼콜라 타운에 도착한다.
          * 카타쿠리는 능력의 특성 루피가 되는 걸 자신이 못할 리 없고 실력도 한 수 위라 자신한다. 그 자신대로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며 불리한 싸움을 계속한다.
         == 세 ==
          미러월드에서 [[샬롯 카타쿠리]]와 일기토 중.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카타쿠리가 모치모치 열매 능력이 고무고무 열매의 위호환이라 주장하며 루피가 쓰는 기술을 배껴서 더 강력하게 어레인지해서 사용하는데 전혀 대응을 못하는 중. 카타쿠리는 미래예지 가능한 견문색 패기까지 갖췄기에 전혀 사각이 없고 유효타 한 번 맞추질 못한다. "레드 호크 개틀링"이나 "호크 스탬프" 같은 기술이 전혀 통하지 않다 "엘리펀트 건"으로 공격하는데 이마저도 카타쿠리가 훨씬 크고 아름다운 스케일의 엘리펀트 건으로 부딪혀온다. 힘과 스피드, 기술에서 조차 완전히 밀리면서 그대로 처맞고 천장에 처박힌다.
          >여기는 "그런" 곳이라고 항 몸을 바칠 각오를 다져왔다.
          그의 호통 덕에 침울해진 일행이 다시 탈출작전으로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빅맘 [[샬롯 링링]]이 그의 예보다도 훨신 빠르게 추격해 오자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화에서 페드로가 자폭하면서 [[샬롯 페로스페로]]가 걸어놓았던 사탕 코팅이 벗겨진다. 좀 어리둥절한 태였던 듯 한데, 나중에 전말을 전해듣고 오열하며 자책한다. 자기가 더 강했더라면 페드로의 희생을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브룩을 따라서 [[쵸파]], [[캐럿(원피스)|캐럿]]도 통곡하면서 써니호는 탈출하던 것도 잊다시피 했는데 [[징베]]가 호통을 쳐서 작업에 복귀 시킨다. 처음에는 징베가 너무 매정하게 군다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그가 페드로의 의지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줄 깨닫고 탈출작업으로 복귀한다. 쿠드 버스트로 소모된 콜라를 채우러 가는 중.
          브룩과 함께 사탕 코팅에 갇혀 있다가 간신히 해방. 브룩처럼 처음에는 황을 몰랐지만 페드로가 희생했다는 말을 듣고 브룩을 따라서 오열한다. 하지만 징베가 일갈하고 페드로의 의지를 되새기면서 가장 먼저 털고 일어나 적극적으로 탈출작업으로 복귀한다.
          밀집모자 일당이 충격을 이겨낸 직후에 등장. 여전히 있지도 않은 케이크를 찾아 폭주하고 있다. 경악스럽게도 바다위를 그냥 걸어서 나타났는데 알고보니 페로스페로가 사탕으로 만든 발판을 딛고 걸어오는 거였다. 페로스페로의 말로는 원래 빅맘의 이동은 거의 전적으로 "제우스"가 담당하고 있었던 듯. 정작 그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랑 사이 좋게 낙오해서 홀케이크 아일랜드 서쪽 해안에 있다. 일행이 어디로 간지도 몰라서 오도가도 못하는 중. 프로메테우스는 힘을 너무 써서 배 고파서 아무 것도 못하겠다고 징징거린다.
          지난 회에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자폭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사실 무사히 견디진 못했다. 오른팔을 잃어버려서 사탕으로 대체 중. 자신은 팔 정도는 사탕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하지만 "뜨거운 홍차를 마실 때마다 손이 찐득하게 녹아내리는걸 봐야 한다"고 말하는걸 보면 엄청 분해하고 있다. 실제로 이젠 웨딩 케이크고 뭐고 그냥 밀집모자 일당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생겨서 추격하는 거라고 단언. 빅맘의 모자 나폴레옹에 타고 있는데 나폴레옹 대로 "평생 페드로의 얼굴이 떠오를 거다"고 성질을 부리고 있다.
          * [[디]]
          아직도 쇼콜라 타운으로 가는 중. [[샬롯 푸딩]]하고 관계가 완전히 역전돼서 디는 평범하게 대하는게 푸딩이 전전긍긍한다. 가정 도중 [[샬롯 시폰]]이 원래 [[샬롯 로라]]가 초콜릿 대신이었고 푸딩이 후임이지만, 푸딩이 거부해서 초콜릿 대신 자리는 비어있다는 설명을 듣는다. 그래서 스릴러 바크에서 로라가 뛰어난 초콜릿 만들기 실력을 보였던걸 납득하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겨우 쇼콜라 타운에 도착. 작업을 시작한다.
          츤데레 증이 갈수록 심해져서 디랑 같이 앉아있지도 못하게 됐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 디와 앉아 있으면 "부부 사이처럼 보인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디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사악한 얼굴과 뿅간 얼굴을 오가며 바쁜 츤데레 활동에 여념이 없다. 양탄자 밑에 몸을 말고 숨어있는 중. 이동 중에 시폰이 밝히기론 로라가 사라진 뒤 초콜릿 대신 자리가 비었고 푸딩이 후임이 돼야 했지만 푸딩의 의사로 무산되었음이 밝혀진다. 푸딩은 로라야 말로 진짜 초콜릿 대신 자격이 있고 언젠가는 돌아올 거기 때문에 그 자리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
          쇼콜라 타운으로 이동하는 중에 아버지 "파운드"를 지나쳐가지만 눈치채지 못한다. 디에게 원래 [[샬롯 로라]]가 쵸콜릿 대신이었고 푸딩이 후임이었으나 그녀의 의사로 공석으로 남겨뒀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정신병에 가까워지는 동생의 츤데레 활동을 타이르지만 별 소용은 없는 듯 하다.
          무슨 일인지 바다로 나와있다. 배로 이동 중. 그런데 공으로 시폰을 태운 양탄자가 날아가는 걸 보고 딸을 알아본다. 파운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딸의 이름을 불러보는데, 시폰 일행은 바쁜 탓에 모르고 지나쳐간다.
         정 결전이래 오랜만에 하관계 드립이 나왔다. 카타쿠리가 모치모치 열매가 루피의 고무고무 열매의 위호환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루피가 쓰는 기술은 대부분 카타쿠리가 쓸 수 있었다. 심지어 루피의 무장색 패기 기술도 똑같이 구사하는데 카타쿠리는 견문색만이 아니라 무장색 또한 루피 이으로 구사하는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 은혼/612화 . . . . 30회 일치
          * 지에선 다키니 군단을 앞세운 해방군 지병력이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향해 진군 중
          * 진선조와 오니와번슈는 지군 저지를 기도한다. 해결사 일행은 별동대로 활동 중.
          * 다키니의 리더 오우가이는 지군의 지휘권을 장악하고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향해 진군한다. 겐카이 포를 파괴하면 망가진 기계들과 후방과의 통신이 부활할 거라고 여기고 있다.
          오니와번슈는 이런 점을 이용하고자 움직인다. 적은 대군이지만 지금처럼 통신이 끊긴 황에선 빠른 연락이 불가능해 이변이 다발하면 군 전체가 대응하지 못하는 황이 되는 것. 핫토리 젠조는 다방면에서 계속 혼란을 야기하면 자중지란에 빠질 거라 예측한다. 다만 물량차가 압도적인건 변하지 않으므로 결코 적진 깊숙히 들어가선 안 된다고 지시한다.
          * 진선조도 지군을 맞이할 채비를 한다. 전령이 준비가 끝났다고 알리자 곤도 이사오가 움직인다. 이들은 지군 병력이 가부키쵸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게 목적. 쭉 늘어진 병력의 허리를 끊어 분단시키고자 한다. 곤도는 자신이 신호하면 "그것"을 사용하라고 말한다. 이후는 1인당 200명 씩만 베어버리면 되는 심플한 작전. 곤도가 200명만 베면 보너스를 준다고 하자 오키타 소고가 "그럼 1000명을 베면 부장자리는 내것"이라고 말한다. 왠일인지 히지카타 토시로는 "생각해두겠다"고 쿨하게 반응한다. 대원들은 오키타다 부장이 되는 날엔 세계가 멸망하는거 아니냐고 드립을 치고 야마자키 사가루는 어차피 망할거 그 편이 재미있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곤도가 망하고 안 망하고는 중요하지 않은 거냐면서, 자신도 사실 그런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 해방군 지군의 행군 중에 고층빌딩이 폭발해 무너진다. 길 위로 잔해가 떨어지자 많은 병사들이 깔리면서 병력이 양단된다. 진선조와 오니와번슈는 일제히 기습을 건다.
          * 한편 우주. 해방군 본진의 도쿠가와 노부노부와 사카모토 다츠마는 다시 감옥으로 옮겨진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무츠는 지구의 동향과 현황에 대해 묻는다. 다츠마는 기적적으로 잘 버티고 있지만 병력차가 너무 커서 한계가 있다며, 그들이 버티는 동안 자신들이 무슨 수를 써서든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 반대편 감옥에서 "무슨 수라도 있냐"고 말을 거는 이가 있는데.
          * 원 황자에게 축출된 자작 제독이다. 자작은 설사 그런 방법이 있더라도 이미 늦었다며, 자신이 원 황자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 하지만 이미 부풀어 오른 해방군의 복수의 불꽃은 어찌할 바가 없다고 하는데, 다츠마는 불꽃이라면 다른데로 옮기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천도중은 이미 처리된 태. 다츠마는 아직 해방군과 자작이 모르는 또다른 적이 있다고 말한다. 해방군의 고향을 불태운 장본인이자 천도중 조차 처리해버린 괴물. 우츠로의 존재다. 다츠마는 이대로 계속 싸우면 복수는 커녕 우츠로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거라고 말한다.
          * 다츠마는 원에게 호출됐을 때부터 어떤 각오를 마쳤고 그걸 위한 포석도 이미 완료도었다. 가츠라 고타로. 그가 바로 탈출의 열쇠다. 가츠라에게 별동대를 맡겨 피신 시킨 것. 그는 쾌원대가 자랑하는 스텔스 함을 이끌고 본함으로 접근하고 있다. 신호만 보내면 바로 처들어올 수 있는 태. 다츠마는 숨겨두었던 통신기로 "역습의 때가 왔다"고 알린다. 그리고 통신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 실은 다츠마 일행과 헤어진 직후 어떤 사고가 생겼던 것. 생각보다 긴 시간 다츠마와 연락이 두절되자 가츠라는 언제든 역습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킨다. 그때 부하들이 스크린에 나타난 적전함을 보고 놀라는데, 가츠라는 본함은 스텔스 함이므로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촌구석 사무라이. 스텔스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부하들은 정말 안 보이는 거냐고 미심쩍어하는데 가츠라가 투명해지는 그런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 설명하던 즈라 조차 방향이 이해져서, 전함은 투명해져도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며, 우주공간에 둥둥 떠있는 걸로 보이는게 아니냐고 의심하게 된다. 유일하게 정인인 엘리자베스가 그런게 아니라고 설명해주는데, 이번엔 가츠라가 "우리도 투명해진다 해도 우리가 섭취한 내용물은 완전 노출되는게 아닌가"라고 쓸데없는 걱정을 시작한다.
          엘리자베스가 참을 인을 써가며 "스텔스는 투명해지는게 아니라 주변 사물에 맞춰 모습을 감추는 기술"이라고 정정해주는데, 이번엔 또 "우리 내용물이 보여도 배도 그것에 맞게 카모플라쥬해주는 것"이라고 이한 오해를 하고, 결국 그들의 전함이 거대한 똥덩어리로 보이고 있을 거라는 망에 도달한다.
          엘리자베스 조차 손 놓고 포기하는 가운데 능숙한 카모플라쥬 기술을 과시하나 부하들은 곧 "전부 꺼버리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난 맹점을 깨닫는다. 그러나 수정할 틈도 없이 정체불명의 거대 우주선을 들이받아 버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총을 든 묘한 천인들 사이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해방군 소속이 아니다. 가츠라는 "이마에 외설물 같은게 자라나 있는 천인"이라고 표현하는데.
          * 황태자는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위비비"라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우리에 가보니 위비비는 보이지 않고 똥만 보인다. 할아범은 "동물원에선 흔한 일"이라며 어느 동물원이든 가보면 똥만 있고 동물은 없더란 황이 있다고 얼버무린다. 황태자는 그런건 됐고 위비비는 어디있냐고 찾아 이번엔 "똥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똬리를 튼 위비비"라는 황이 동물원에선 흔하다고 얼버무린다. 하타 황태자도 안 속는 무성의한 개드립이다.
          * 그때 장막을 뚫고 나오는 손. 하타 황태자 이마의 외설물을 낚아챈다. 똥도 위비비도 처음부터 없었다. 수형인들이 우리 안에서 위장을 한 것. 똥 무늬의 장막을 내걸고 있던 것 뿐이다. 황태자를 잡은 손은 "위비비는 주변 배경에 맞게 의태해서 스스로 모습을 감춘다"고 조심하라 경고한다.
  • 은혼/642화 . . . . 30회 일치
          * 히노카구츠치 충전이 막바지에 이르러 불과 5분여를 남겨놓은 황.
          * [[카와카미 반사이]]는 홀로 대군을 막아내면서 [[다카스기 신스케]]의 후방을 든든하게 지킨다.
          * 반사이와 헨페이타 모두 신스케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위해 분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점차 한계를 드러낸다.
          * 반사이는 마침내 쓰러지나 놀랍게도 자신을 마중온 [[오카다 니조]]의 환을 보고 일어선다.
          * 남은 시간은 불과 1분. 신스케의 미래를 보고 싶었던 헨페이타와 반사이, 둘은 그가 기적을 일으킬 것을 믿으며 자폭을 감행한다.
          * 지금 헨페이타 일행의 몸을 실은 소형정은 해방군 함대의 집중 공격에 노출되어 언제든 침몰할 수 있는 황이었다. 아메노토리후네 내부에서 분전 중인 [[카와카미 반사이]]도 그랬다. 설사 해방군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그는 언제든 쓰러져 죽을 지 모르는 몸이었다. 이제 오른팔 밖에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총에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잘도 움직이고 있다. 이들에게 불굴의 자세는 [[다카스기 신스케]] 때문이다. 그가 아직 아무 것도 포기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그를 믿듯 그도 동료들의 임무완수와 생환을 믿으며 중추 시스템을 향해 달렸다.
          * 히노카구츠치 발사까지 앞으로 3분. 엔죠 황자는 단신으로 일대의 병력을 묶어두고 있는 반사이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을 태세라는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서툰 넘겨짚기였다. 반사이의 목표는 달라진 적이 없었다. 그는 지금도 중추 시스템을 향해 한걸음 씩 옮기고 있었고 그때마다 그를 막으려는 병력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이제 벽 하나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적은 셋. 그의 의지가 이겼다.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 남은 셋을 처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고지에 도달했다.
          * 난데없는 폭발과 함께 반사이의 몸은 저 멀리까지 튕겨나갔다. 한 걸음씩 걸어온 고지가 다시 멀어졌다. 그는 중추시스템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그 문 뒤엔 쓰러뜨린 것 만큼이나 많은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고 신스케가 얌전히 문을 열개 두지 않았다. 그들은 문 째로 포격을 가했고 반사이는 그대로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한 명의 전과를, 쓰러지는 동료들의 보고를 들으며 기다리고 있던 최후의 적들은 경계태세를 풀지 않고 철저하게 옭아 매었다.
          * 이제 반사이는 고개를 들 힘도 없었다. 이제 적들은 어떻게 나올까 중화기는 아직 이쪽을 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반사이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건,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마중을 나왔기 때문이다. 반사이가 엎드린 그대로 인사를 건냈다.
          니조가 기억하는 귀병대는 그렇게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는 반사이의 안부인삿말에는 관심도 없이 떨어진 그의 샤미센을 주웠다. 그것을 건네며, 자신이 나타난 용건을 밝혔다.
          * 더 많은 이들이 뒤따라 오고 있다. 반사이는 편히 누워있지도 못하게 하는 박정한 말을 그대로 따랐다. 시체가 되어서도 짓밟혀서도 거기에 있다, 그런 얘기다. 적들은 다시금 일어서는 반사이에게 공포를 느꼈다. 아직도 부족한가? 혼자서 뭘 더 하겠다는 건가?
          어쩌면 반사이를 일으켜 세운 것은 그 동료들일지도 모른다. 샤미센이 다시 울린다. 현이 널부러져 있는 해방군의 사체로 뻗는다. 죽은 동료들의 혼이 들어간 듯 일어서는 시체들. 반사이가 그들과 함께 행진한다.
          * 적의 화력공세 속으로 무모한 돌진을 감행하는 헨페이타 일행. 먼저 간 동료들과 함께 나아가는 반사이.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준 기회를 낭비하지 않는 신스케와 [[키지마 마타코]]. 히노카구츠치 완충까지 2분 여.
          * 불사의 사나이가 펼친 시체들의 행진. 해방군의 반응은 겁에 질렸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화기가 불을 뿜었다. 이제 전방은 피어오르는 연기로 혼탁하다. 그들은 고작 한 사람을 대로 이런 화력을 쏟아붓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하고 나서도 폭연 속에서 건재하게 서있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더욱 몰랐다. 폭연이 거치면서, 전열에 있던 한 병사가 어떻게 그런게 가능했는지 눈치챘다.
          반사이는 이미 이 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시체에 현을 걸었다. 자기 자신의 시체에까지. 그는 마치 자신이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연출해서 적들의 이목을 끌어왔던 것이다. 해방군은 감탄과 함께 대체 이 남자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했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자 무서운 황이 떠올랐다. 중추 시스템을 수비하던 병력 대부분이 이쪽에 몰려있었다. 반사이가 노린 것은 이것. 병력이 빠져서 수비가 약해진 틈에 동료들을 투입 시킬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 여기까지는 똑똑한 병사들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대목. 반사이는 거기에 한 가지 고안을 더했다. 그가 죽어서도 놓지 않았던 샤미센이 떨어졌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이었고, 반사이가 계산한 대로였다. 샤미센 뒤에 숨겨놨던, 그가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수류탄. 샤미센이 떨어지면서 그 기폭 장치가 작동했다.
  • 이명주 (축구선수) . . . . 30회 일치
         |청소년 클럽= [[포항제철중학교]] <br/>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br/> [[남대학교]]
         [[포항 스틸러스]]의 산하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중학교]]와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거쳐, [[2009 K리그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우선 지명 받은 뒤 [[남대학교]]에 진학하였고, [[2012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2012년]] [[4월 8일]] [[성남 FC|성남 일화]]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른 이명주는 이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경기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시즌 초 [[무 축구단|무]]에 입대했던 [[김재성 (축구 선수)|김재성]]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떠오른 이명주는 신인임에도 침착하고 센스 넘치는 패스 플레이와 공격적인 플레이 등으로 [[황선홍]] 감독의 눈에 들어 비교적 빨리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2012년]] [[6월 2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이자 본인의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후로도 [[6월 27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전과 [[7월 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에서 1도움씩을 기록했고 팀의 [[FA컵 2012]] 우승에도 일조했지만 7월 1일 이후로 공격 포인트가 없어 "출장 수로만 신인왕 후보"이라는 비아냥을 받다가 10월 28일 [[경남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골을 기록했고 신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 MVP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 11월 17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전 1골, 11월 25일 [[경남 FC|경남]]전 1골 1도움, 11월 29일 [[FC 서울|서울]]전 2도움, 12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 1골을 터뜨리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된 선수들 중 가장 많은 5골 6도움 11개의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이명주는 [[12월 3일]] K리그 대식에서 [[광주 FC]]의 [[이한샘]], [[전남 드래곤즈]]의 [[박선용]]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치고 [[K리그 플레이어|신인 선수]]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대) ‘신인왕’ 이명주 “포항의 축구스타일, 나랑 잘 맞았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452360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2-12-03}} }}</ref>
         2013년에는 시즌 내내 에이스로 활약하며 [[포항 스틸러스|포항]]이 국내 최초로 [[더블 (축구)|더블]], 즉, [[K리그 클래식 2013|K리그 클래식]] 우승과 [[FA컵 2013|FA컵]] 우승을 이루어내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 받아 프로 데뷔 2년차에 연말 시식에서 MVP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 수을 놓쳤고, 그 해 [[K리그 베스트 11|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에 선정되었다.
         [[홍명보]] 감독 하의 대표팀에서도 초반 꾸준히 승선했으나 [[2014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탈락하였다. [[2014년]] [[9월 5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베네수엘라]]와의 친선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0-1로 뒤지고 있던 전반 33분 각도가 없는 황에서 감아차기를 시도하여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어 후반 17분 대 진에서 수비의 공을 가로채 곧바로 크로스를 올려 이동국의 쐐기골에 기여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이명주, 우리가 바라던 공격형 MF 모습 보였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343&article_id=0000041020 |출판사=베스트일레븐 |date={{날짜한글화|2014-09-05}} }}</ref>
         == 수 ==
         * [[K리그 2012#수|2012년]] [[K리그 플레이어|K리그 신인]]
         * [[K리그 클래식 2013#수|2013년]] [[K리그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
         |내용='''[[K리그 신인선수]]'''
         {{둘러보기 자 묶음
         {{K리그 신인선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아랍에미리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알아인 FC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플레이어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자]][[분류: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정승화(육군) . . . . 30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대한민국 국군/인물)]
         [[경북도]] 김천군(현 [[김천시]]) [[봉산면]] 출생이다. 관을 잘못 만나서 고생을 많이 했었다. [[육군사관학교]] 5기 출신으로 [[임관]]한 뒤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하필 강태무/표무원 [[소령]]이 [[월북]]해 버리는 사건이 터져 버렸다. 그리고 [[6.25 전쟁]] 당시 3사단 백골부대 예하 [[대대장]]으로 보임되어서 참전하였는데 [[군단장]]이 [[유재흥]] 장군이었고 그 전투는 [[현리 전투]]였다. 이 때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일도 있었다. 탈출할 때 한 화전민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후 보답으로 여러 편의를 봐주었다고 한다.
         [[5.16 쿠데타]] 때는 방첩대장(현재의 명칭은 [[국군기무사령부|국군기무사령관]])을 역임했다.회고록에 따르면 이후의 원수지간이 되는 노태우와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노태우는 방첩대 정보과에 있었는데, 방첩대의 특성 정치 분야에 관여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너무 그 쪽(정치)에 열중하지 마라. 군인이라면 야전에서 일하는게 더욱 군인답지 않겠나'라고 가볍게 충고한 적이 있었다고. 이 때 육군사관학교 제11기생들의 쿠데타 음모를 감지하였으나 육군사관학교 5기 동기생인 [[김재춘]]과 함께 이 사건을 덮기로 하였다. 김재춘은 5.16쿠데타에 가담해서 한때 중앙정보부장까지 올랐으나 김종필을 중심으로한 육사 8기생 그룹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하면서 군부정권 핵심부에서 밀려났다.
         5.16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 3공화국, 4공화국을 거치면서 계속 승승장구했다. [[제7보병사단]][[사단장|장]],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인사국장, [[제3군단]][[군단장|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이후에 [[1979년]] [[2월]] [[육군참모총장]]으로 전했다. 여담으로 당시 정승화는 [[김대중]]에게 부정적이라 그가 당선되어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편파적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여하간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시도는 없었다.
         10.26 사건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어 사건 수습을 진행한다. 그러나 당시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때 신군부측에 납치당하고 만다. [[10.26 사건]] 문서에도 자세히 나오지만, [[박정희]]가 피살된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가'동(피살장소는 '나'동이었음)에 있었다는 점을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두환의 부하 허삼수 [[대령]] 등에게 강제 연행,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사건 당일 [[김재규]]는 대통령이 연회가 있으면서도 정승화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궁정동으로 불러냈다. 물론 김재규는 박정희와의 연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승화와 함께하지 못했고, 정승화는 김재규가 보낸 중정 차장과 저녁을 먹던 중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김재규의 치밀한 계략인지, 순간적인 기지인지, 본능적인 직감인지는 이제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 피살 현장에서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김재규의 암살 시도를 눈치채지 못했고,[* 다만 뭔가 수쩍다는 건 느꼈는지 차 안에서 김재규가 "목이 마를 텐데 이거라도 좀 드시라." 하면서 준 사탕을 바로 바닥에 버렸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자신도 암살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다고... 화 [[그때 그사람들]]에서는 사탕 대신 껌을 준다.]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에 갔으며, 육군본부에 도착한 이후에도 대통령이 저격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긴 채 [[노재현]]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으며 자세한 경위는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어보라면서 사건 경위를 축소하여 보고하였고 [[차지철]]이 지휘했던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려 시도하는 등 김재규의 정권장악시도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행보를 보인 사실은 정승화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훗날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현장에서 막지 못한 죄인이니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사람인데 뻔뻔하게도(?) 자리를 보전하길래 의로운 마음으로 들고 일어났다고 주장했지만...]이에 대해 정승화는 청문회 등에서 평소 차지철의 행보와, 당시 황의 급박함으로 인해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이 차지철이라고 오판해서 수경사 병력을 장악해 차지철을 제압하려 한 것이라고 자기 변호하였다.
         이후 남한산성에서 형기를 채우다가 형집행 정지로 출옥하여 조용히 지내다가 세간에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생기니 그것이 87년 대선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직선제로 치러지게 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는 야당의 [[김삼]]-[[김대중]]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했고, 거기다가 재야 진보진에서 [[백기완]]까지 출마하면서 야당표의 분산으로 노태우 당선(당시 김삼과 김대중 등 두명이 하나로 단일화됬어도 노태우가 대선에 당선될일은 없었을것이라고 한다. 노태우는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무혈입성)이 유력하였다. 정승화는 이런 황을 타개하기 위한 [[김삼]]의 삼고초려 끝에 1987년 대선 직전 [[통일민주당]]의 임고문 겸 부총재로 전격 등장했다.
         공식선거운동 시작 직후 김삼이 정승화를 통일민주당 부총재로 입하자 김삼의 지지율이 1위로 치솟았다. 그러나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이 터지고 선거 바로 전날 [[김현희(1961)|김현희]]가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엄청난 북풍이 불었고, 3김이 서로 먼저 대통령 해보겠다고 동시출마하는 병크까지 터뜨려, 결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노태우-36%, 김삼-27%, 김대중-26%, 김종필-7%[* 보면 알 수 있듯, 3김이 단일화만 했어도 노태우는 절대 당선될 수 없었다.], 즉 여당인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의 당선으로 마무리되었다.
         결국 정승화는 노태우가 당선되자 조용히 정치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에 이어 전두환 정부에서 강등 조치된 장교들의 계급 환원 처리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예비역 장군들의 계급 복권 대에 포함되어 [[이규광]], [[강문봉]] 등과 함께 정승화도 '''예비역 육군대장의 자격'''을 되찾았고 몰수된 돈과 군인연금 수급권도 돌려 받았다. 1988년 시작된 5공 청문회에서는 12.12사태 당시의 피해자로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하여 사태의 전말을 직접증언 했다. 1993년에는 [[장태완]](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육본 헌병감), 하소곤(육본 작전참모부장) 등 12.12 사태 당시 육본 진압군 측 장군들과 함께 전두환, 노태우 등 당시 신군부(하나회) 출신 인사들을 검찰에 군사반란 혐의로 고발 했으나 당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좆논리|모종의 이유를 들어]] 고발된 인사들을 [[기소유예]] 처리했다. 이것으로 기세등등해진 신군부 출신 인사들은 자신들을 검찰에 고발한 정승화를 포함한 육군본부 측 장군들을 외려 군사반란, [[무고]] 혐의 등으로 역고소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이 무고 혐의 역시 기각됐다.
         1995년에는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구속 사건]]이 87년에 제정된 헌법이후 최초로 발생하자 증인으로 채택되어 증언하였다. 그의 기대대로 [[전두환]]은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아 평생의 한을 푸는 듯 했으나, 1997년 12월 22일 [[김삼]] 대통령과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전두환, 노태우가 [[특별사면]] 혜택을 받아 풀려나자 "반성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래도 풀어준다니 이 나라가 진정으로 법치주의 국가입니까?" 라며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문화방송]]의 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에서는 MBC 성우 [[정승현]]씨가, [[SBS]]의 드라마 [[코리아게이트(드라마)|코리아게이트]]에서는 MBC 성우 [[최병학]]씨가,[* 이후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12.12 직후 신군부의 지지로 [[국방장관]]이 되어 [[5.17 내란]]에 동조한 [[공군참모총장]] 출신의 [[주복]] 역할로 출연했다.]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박인환(배우)|박인환]]씨가 정승화 역을 맡았다. 화 [[그때 그 사람들]]에선 정종준씨가 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종준은 1995년 [[코리아게이트(드라마)|코리아게이트]]에서는 정승화 체포령을 내린 [[전두환]] 역으로 출연했다.] 화 자체가 블랙코미디이다 보니 꽤나 우유부단하고 코믹하게 나오는데 육군본부 앞에서 자신을 못알아보는 초병에게 내가 육군참모총장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씬은 이 화의 백미. 화 속 설정 여자에는 사족을 못 쓰는 것은 덤.
         특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1987년 대선 국면에서 김삼의 제안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집앞에서 후배 [[고명승]]이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말을 하자 '''"전두환이가 보내서 왔나? 가서 전하게. 그렇잖아도 고민 중이었는데, 결심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이만 가보게."''' 라고 말하는 간지나는 장면이 나왔으며, 해당 대사로 인해 평소 서민들의 아버지 역할로 자주 출연했던 박인환의 연기력이 재평가 되기도 하였다.
          * 10.26 당시 자신을 몰라보는 육군본부의 초병에게 "나 참모총장이야!!" 하니 그 초병이 대답하기를 "뭔 총장?? 대학교 총장 말인가요?"라고 한 일화는 정승화 회고록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대통령 저격이라는 비사태가 일어났으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궁정동 안가의 연회에 참석할 때 정승화 대장은 군복이 아닌 사복, 즉 [[정장]] 차림이었고, 자신의 관용차가 아닌 [[김재규]]의 차를 타고 온 황이었다. 육본의 초병도 "한밤중에 갑자기 민간차량을 타고 나타난 사복 차림의 장년 남성"이 설마 육군참모총장이라곤 생각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곧 다른 장교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알아보고 무사통과시켰다고.
          * 세간에서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사건([[12.12 사태]])과 관련지어 정승화 장군을 기억하지만, 원래 군부에서 기억하는 정승화는, 휘하 장병들의 '''사격술 향에 매우 공을 들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정승화 장군이 거쳐간 부대는 사격자세라던가, 격발 등 [[사격]] 기본이 탄탄하게 갖춰졌다는 참군인 중의 군인이라는 후문.
  • 홍아름 . . . . 30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 교동 (김천시) (교동택지4길) 삼락동 (김천시) (삼락택지길)
         | 웹사이트 = [http://www.urbanhils.co.kr/sub02/sub02_01.php 어반힐스컴퍼니 홈페이지]
         * 2009년 [[KBS2]] 아침드라마 《[[다 줄거야 (드라마)|다 줄꺼야]]》 ... 공희 역
         * 2014년 [[MBN]] 특별기획 드라마 《[[천국의 눈물]]》 ... 윤차
         === 화 ===
         == 수 및 후보 ==
         ! 시
         | [[KBS 연기대]]
         | 여자 신인
         | 제45회 [[백예술대]]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
         | [[MBC 연기대]]
         | 연속극부문 여자 우수연기
         | [[KBS 연기대]]
         | 일일극부문 여자 우수연기
         | 제52회 [[대종]]
         | 신인여우
         | 제35회 [[황금촬]]
         | 신인여우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29회 일치
         김모씨는 2008년부터 올해까지 6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정도로 불안정한 정신태였다. 그의 병력은 조현증, 즉 정신분열증이었으며 평소 여성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피해망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찰은 피해망에서 비롯된 묻지마 범죄로 규정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시민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대체로 수사관과 범죄심리학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기존 묻지마 범죄의 전례와 완전히 일치하며 특정한 편견에 의한 범죄가 아니므로 묻지마 범죄로 봐야한다는 여론이 강세이나 반대로 사회학자, 페미니즘 학자들 사이에서는 전형적인 여성혐오범죄이며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며 강력 범죄에 취약함을 주지시키는 사건이라는 여론이 강세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극명하여 때아닌 성대결 양으로까지 비화되었다.
         경찰은 우선 이 사건이 묻지마 범죄의 전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묻지마 범죄는 그 어감 탓에 무차별 살인과 동의어로 통용되기도 하나 실제로는 다르다. 정신이자가 비정적인 동기에서 저지르는 경우도 있으며 정인일지라도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불특정다수를 대로 공격성을 띄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묻지마 범죄로 부른다.
         반대로 혐오범죄는 일종의 정치성을 띈다고 할 수 있는데 특정 대에 대한 편견이나 비하에서 비롯된다는 차이가 있다. 김모씨는 여성에 대한 피해망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 형태가 "여성이 내가 가고 있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나 "여성의 음해로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다"다 같이 편견보다는 전형적인 망의 형태이므로 혐오범죄의 유형과 다르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권운동가 및 사회학자들 사이의 입장은 다르다. 우선 경찰측에서 분류하는 혐오범죄의 범주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피의자가 이미 여성을 범죄의 대으로 특정하고 있으며 피의자에 증언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혐오 또한 분명히 확인된다는 점에서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걸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모씨가 여성에 대한 심각한 피해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범행대으로 여성을 물색하고 있던 점 등으로 이 사건은 인터넷 에서 여섬혐오범죄로 크게 주목받게 된다. 특히 이 시각을 강조하고 전파하는데 앞장선 것이 워마드, 메갈리아와 같은 여초성향 사이트였다.
         여초사이트가 주도한 만큼 이 사건은 웹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는데 주로 SNS를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됐다. 처음에는 시민사회 전반의 애도가 모였으나 워마드를 비롯한 여초사이트의 공세가 강화되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한국사회를 답이 없는 여혐사회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활발히 일어났다. 워마드를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을 모두 "여혐"과 "반성을 모르는 남성"으로 규정, 철저히 비하하면서 이 사건은 여혐 대 남혐의 구도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때 정도를 지켜야할 언론에서는 사건을 원색적이고 편파적으로 다루면서 논란을 부채질했다. 특히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 언론에서는 워마드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면서 극도의 페미나치스러운 기사를 쏟아내어 진보 진 안에서도 성토를 당했다. 일부 유명인들도 이 사건과 관련해서 워마드에 편승하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특히 진보논객이자 미학자로 유명한 진중권은 한국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하면서 "x잡고 반성이나 해라"는 폭언을 늘어놓고 욕을 먹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작 피해자와 유가족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특히 피해자의 오빠는 여혐논란에 대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피해자의 죽음을 이용하는 것"이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여초사이트에서는 이러한 유가족의 목소리 조차 "한국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비하로 일관하였다.
         당초 여초사이트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것은 메갈리아였다. 그러나 메갈리아가 여러 사건을 거치며 세력이 위축되자 거기서 한 번 더 분화되어 나온 것이 워마드였다. 워마드는 여성판 일베, 혹은 소라넷으로 불리울 정도로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주장을 펼치는 세력이었는데 강남역 살인사건 논란과 함께 주목을 받으면서 급속도로 세력을 불렸다.
         그러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발언과 미러링이라는 핑계 조차 내다 던진 노골적인 남성혐오 때문에 "남성을 강간하자"라는 일베스러운 논의를 하다가 발각되어 기사화되기도 하는 등, 여초사이트의 명암을 극명히 드러내게 되었다.
         워마드는 메갈리아가 SNS와 홈페이지에서 활동하던 것을 넘어 오프라인 시위와 추모행사를 주도하며 훨씬 행동력 있는 조직으로 부각되었고 이에 대항해 일베 등의 남초 사이트에서도 강남역 추모현장에서 행패를 부리고 추모 포스트잇을 훼손하는 등 민폐에 민폐로 대항하는 행동을 보였다.
  • 금조(나인뮤지스) . . . . 29회 일치
         [[9MUSES S/S EDITION]] 쇼케이스와 중간중간 비춰지는 비하인드 및 인터뷰 에서 데뷔 초와는 다르게 자연스럽고 활달한 모습을 보아 [[나인뮤지스]]에 잘 적응했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쇼케이스에 어머니가 오셨다. [[나인뮤지스]]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과 쇼케이스를 하고 어머니를 본 것에 감정이 복받쳤는지 잠시 눈시울을 붉힌것 같은 모습도 보였다.--금조 : 엄마 안녕~ [[이유애린]] : 어머니 금조가 이런애에요~--
         [[아프리카TV]] 생방송인 데일리나뮤를 보면 실제 성격은 장난끼가 많은 것을 알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1G-Tnv6z38Y|소진이 밝히는 금조의 첫인]]
         사실 알고보면 나름 험난한 연습생 생활을 보낸 멤버이다. 20세에 [[계명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담당 교수의 추천으로 경하여 가수준비생 생활을 시작했으며[* 나뮤캐스트 6회 신입생 환회편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 전 소속사인 아이맥스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중 [[소진(나인뮤지스)|소진]]을 비롯한 다른 연습생들과 잘 맞아서 이번에 데뷔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한번 엎어진 후 회사에서 나와 [[스타제국]]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이후 어느 날 [[이유애린]]과 [[성아]]가 지하 연습실에 찾아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너희 힘들지"라는 한마디에 고맙다며 울음을 터트렸고 이를 보던 [[이유애린]]과 [[성아]] 또한 같이 펑펑 울었다고, 이에 용기를 얻고 계속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마침내 4년 간의 연습생 생활 끝에 [[나인뮤지스]]의 새로운 멤버로서 정식 데뷔를 하게 되었다.
         [[2015년]] [[1월 12일]] 자정에 [[나인뮤지스]] 공식 [[트위터]]를 통해 신곡 <DRAMA>의 티저 사진으로 새 멤버의 뒷모습 사진으로 처음 공개가 되었으며 이어 같은 날 정오에 [[나인뮤지스]]의 새 멤버로 알려지게 되었다. 같은 날 공개된 나뮤캐스트 6화 신입생환회 편에서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같이 등장했다. 깨알 같은 트로트는 덤. 그리고 본인이 연습생 생활동안 힘들었던 점을 같은 새 멤버 출신인 [[문현아(가수)|현아]], [[성아]], [[경리(나인뮤지스)|경리]]한테 털어놓는 등 금조의 데뷔 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2015년]] [[1월 16일]] 로버타 플렉의 [[http://youtu.be/m9t8T1Kv1VI|<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을 커버한 프로모션 이 공개되었다.
         자신이 입되기 전의 곡에서는 주로 [[류세라|세라]]의 일부 파트를 맡는다. [[문현아(가수)|현아]]의 탈퇴 이후 완전체에서는 [[문현아(가수)|현아]]의 파트를 주로 맡을 것으로 보인다.
         통적으로 [[코러스]]라고 불리는 작업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실제 앨범에는 "백그라운드 보컬"이라고 표기된다.] 실제로 [[http://www.fkmp.kr/|한국실연자협회]]에 금조가 참여한 곡을 검색하면 실연정보에 '''<부실연 : 금조 [BACKGROUND VOCAL]>''' 이라고 나오는걸 볼 수 있다. 데뷔 전부터 참여해온 활동인데 데뷔한 이후에도 여전히 진행중. --참여한 곡들만 모아도 이미 정규앨범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 [[구하라]] - [[구하라/음반 목록|어때? (Feat. 허지)]]
         2015년 9월 29일, MBC뮤직 추석특집 '미코 ON-AIR :캐스팅데이'에서 벤의 '오늘은 가지마'를 열창하며 [[김예림]]과 발라드 대결을 펼쳤다.[* 첫 단독 출연.] 두 사람 모두 막막하의 가창력을 보여줬지만, 우승은 금조가 차지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XaKEU6yNS0|금조 cut]]
         ||<#ab9a9e> {{{#FFFFFF '''방일'''}}} || 2017.04.11.~ (방송중) ||
         ||<#ab9a9e> {{{#FFFFFF '''사이트'''}}} || [[http://kstar.ihq.co.kr/iamactor/|공식홈페이지]] ||
         2017년 4월 11일 ~ 6월 27일, 참가자로 출연했다. 데뷔 후 첫 개인 고정 출연. 정확한 대사구사력과 감정변화의 표현력이 풍부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초반부터 꾸준히 승세를 이어가고 위권을 유지하였으며, 5월 16일자 방분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광을 누렸다. 마지막 회에서도 평소와 같이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아쉽게도 2위를 기록하여 1위를 놓치는 바람에 1등 혜택이었던 웹드라마 출연도 놓치게 되었다.
          *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함께 입되며 2013년 [[Wild|WILD]] 당시만 해도 개성이 강하던 [[나인뮤지스]]가 주류 [[걸그룹]]과 컨셉이 같아져서 아쉽다는 평이 있다.--원히 고통받는 소금라인-- 그러나, 이 둘의 입 후 친근함과는 벽이 있었던 모델돌[* 너무 키가 커서 기가 쌔보인다거나, 섹시하기만 한 아이돌 등.]이라는 이미지에 환기를 준 건 사실이다. 일반적인 걸그룹 색을 더하여 [[나인뮤지스]]의 [[마인(나인뮤지스)|팬덤]]이 승세를 겪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실제로 LOST의 초동 판매량이 [[나인뮤지스]] 커리어 최대치를 찍기도 하였다. 또한 이 둘이 리얼리티에서 보여주는--공룡 로봇과 능청 변태 막내-- 등의 모습이 팬들에게 매력을 끌고 있기도 하다. 또한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금조의 입 후 곡과 컨셉 스타일도 변화했다. 둘의 입 전에는 [[PRIMA DONNA|GUN]]과 [[Wild|WILD]] 등 카리스마 넘치는 모델돌의 곡들을 들고 나왔으나 새 멤버 입 후에 발표한 [[DRAMA]]나 잠은 안오고 배는 고프고는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 자신이 먼저 이별은 선언했지만 후회하는 여성의 모습 등 전에 보여줬던 카리스마를 보여줄만한 곡은 아니다.
          * 입 전에 탈퇴한 전 멤버 [[류세라|세라]](위 사진의 좌측)와 외모가 비슷해 팬들의 혼동을 빚기도 했다. 심지어 음색이 당히 특이한 편임에도 독특한 음색 마저 [[류세라|세라]]와 비슷해 드라마 이전 곡을 부를 때에 가끔 [[류세라|세라]]의 파트를 커버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PRIMA DONNA|GUN]]에서는 세라의 강림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 덕분에 지금도 [[류세라|세라]]의 탈퇴를 아쉬워하는 [[마인(나인뮤지스)|마인]]들은 금조를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 [[오버워치]] 경쟁전 점수 2800점 정도로, 오버워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육군의 지군 페스티벌 오버워치 경기의 번외 이벤트에서 [[파라]]로 그 실력을 보여주었다.
  • 김경애(배우) . . . . 29회 일치
         {{화인 정보
         [[대구광역시]] [[수성구]]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다. 특기는 고전 무용, 창, 국악, 노래, 행사 MC등이 있다. [[고려대학교]] 컴퓨터과학기술대학원과 [[중앙대학교]] 연극화학을 졸업한 후, 화 배우로 활동하다가, 1966년 《'''나는 매국노'''》로 데뷔를 시작했다. 그 당시 노래, 춤, 대중가요로서 실기전용의 테스트에서 합격되어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화에만 몸담았다가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텔레비전 드라마로 뛰어들었다. [[전원일기]], [[대추나무 사랑걸렸네]]가 흥행되면서 배우로 인정을 받았다. 연극배우로 활동을 하다 부정적이 많지 않다. 2006년 서울특별시장 사회봉사창 표창을 수하였으며, 2007년 국민추천 사회발전 유공자 훈장 국무총리를 표창하였다.
         === 화 ===
         * 2014년 《[[몬스터 (2014년 화)|몬스터]]》 - 복순 할머니 역
         * 2013년 《[[전국노래자랑 (화)|전국노래자랑]]》 - 홍 할매 역
         * 2002년 《[[재밌는 화]]》 - 노파 역
         * 2000년 《[[킬리만자로 (화)|킬리만자로]]》 - 뚱할머니 역
         * 1996년 《[[축제 (화)|축제]]》 - 광주누님 역
         * 1995년 《[[소낙비 (1995년 화)|소낙비]]》
         * 1994년 《[[태백산맥 (화)|태백산맥]]》
         * 1994년 《[[휘모리 (화)|휘모리]]》 - 할멈 역
         * 1994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담녀 4 역
         * 1992년 《[[구와 흡혈귀 드라큐라]]》 - 주막 사람들 역
         * 1991년 《[[전국구 (화)|전국구]]》
         * 1986년 《[[몸 전체로 사랑을 (1986년 화)|몸 전체로 사랑을]]》
         * 2009년 《[[수한 삼형제]]》
         * 2006년 《[[대조 (드라마)|대조]]》
         * 등포교도소 교정위원
         * 한국화배우협회 운위원
  • 김지훈(배우) . . . . 29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 '''출생''' ||<(> [[1981년]] [[5월 9일]] ([age(1981-05-09)]세), [[경북도]] [[포항시]] 득량동 (이동로) ||
         || '''팬 페이지''' ||<(> [[http://cafe.daum.net/jihunforever|[[파일:다음 카페.png|width=24]]]] [[http://gall.dcinside.com/m/jihoonlove|[[파일:디시인사이드_로고.png|width=24]]]][* 개설은 2016년에 했으나 약 1년간 인스타그램 업뎃 위주로 글이 올라오다가 ~~인별갤~~ 몇몇 고닉들이 꾸준히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인별갤에서 벗어난 태이다. 현재는 유동닉들도 글을 많이 올리고 있고 최근 케이크 조공도 계획했었지만, 총대가 나타나지 않은 관계로 무산되었다.] ||
         주로 주말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이우]]와 더불어 주말드라마계의 황태자로 불린다.
         [[JTBC]]의 예능 [[크라임씬 2]]와 [[크라임씬 3]]에서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크라임씬 2에서 게스트로 출연해 범치 않은 모습 ~~사카린쨩~~을 보여주었고 크라임씬 3에서는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크라임씬3/숙다방 살인사건|간첩]], [[크라임씬3/캠핑장 살인사건|고자]], [[크라임씬3/과학고 연쇄살인사건|탈모]], [[크라임씬3/호텔 살인사건|정신병자]] 등 독특한 캐릭터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출연 작품들을 보면 [[법조인]]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본인은 크라임씬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할 수 있었다면서 색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table align=center><rowbgcolor=#fb5a1e> {{{#ffffff '''방 연도'''}}} || {{{#ffffff '''방송사'''}}} || {{{#ffffff '''제목'''}}} || {{{#ffffff '''배역'''}}} || {{{#ffffff '''비고'''}}} ||
         || [[2003년]] || [[SBS]] || 흥부네 박 터졌네 || 박구 || ||
         || SBS || [[토지]] || 김길 || [[유준]] 아역 ||
         === 화 ===
         || 2010년 || [[나탈리(한국 화)|나탈리]] || 민우 ||
         || [[유리자]] || 기억력 ||
         == 수 ==
         ||<table align=center><rowbgcolor=#696969> '''{{{#ffffff 수 연도}}}''' || '''{{{#ffffff 시식}}}''' || '''{{{#ffffff 부문}}}''' || '''{{{#ffffff 작품}}}''' ||
         ||<|2> 2007년 ||<|2> [[KBS 연기대]] || 남자 신인 ||<|2> 며느리 전성시대 ||
         || 베스트 커플 (with [[이수경]]) ||
         || 2013년 || [[SBS 연기대]]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 || 결혼의 여신 ||
         ||<|3> 2014년 || 제3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 ||<|3> 왔다! 장보리 ||
         || 제22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 || 드라마부문 남자 최우수연기 ||
         || [[MBC 연기대]] || 장편드라마부문 남자 최우수연기 ||
         그리고 여담이지만 그가 맡은 배역들을 가만히 보면, [[현종]]으로 맡았던 사극에 같이 출현한 이덕화처럼 후대에 연결되는 황이다. 아닌게 아니라 강감찬의 후손인 민희빈 강씨와 소헌세자의 후손인 [[밀풍군]]을 보위에 올리기 위한 움직임에 가담한 [[이인좌]]와 당장 다음해에 [[조선X파일 기찰비록]]에서 스승의 억울한 죽음에 의해 속하게 된 기찰비록에서 후에 능양군이 보위에 오른다는 예언을 듣게 된 남주역을 맡았다. 인조반정은 안 나왔지만, 광해군에 대한 반감과 예언 및 함경도 실태를 합친다면 반정 참여라는 생각을 갖기 충분하다.
  • 박경석(1933) . . . . 29회 일치
         입교 보름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생도 2기생들은 [[채병덕]]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어이없는 명으로 윗 기수인 육사 10기생과 육사 생도대대로 편성되어 포천 방면으로 이동, 첫 전투를 치렀다. 졸업 및 임관이 머지않은 육사 10기와 달리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육사 11기는 입교한 지 보름째로 기껏 소총 점을 맞추었을 뿐이라 실전에 투입될 처지가 아니었다.[* 육군본부 작전국장이었던 [[장창국]] 대령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에서는 전쟁 수행인력이 부족하여, 교육중인 사관생도들을 교육 단축을 시켜 졸업, 임관을 시켜 전쟁에 내보내 전쟁임무 수행의 전례를 들어, 졸업, 임관이 얼마 남지 않는 육사 10기와 11기에 해당하는 생도 2기생들을 교육 중에 투입할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채병덕]]에게는 그런 말이 조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채병덕 장군의 오판으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결국 애꿎은 생도 절반이 이 포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박경석 생도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끊어진 한강 다리를 구사일생으로 넘어 후퇴, 임시 수도인 대전 원동 국민학교에서 1기 선배인 육사 10기생들의 철모에 일명 반창고 소위 계급장을 붙여 주며 눈물의 소위 임관식을 치러 주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729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7-29&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42&publishType=00010|육사 10기생의 눈물겨운 반창고 임관식과 비운의 육사 생도 2기생의 비화.동아일보1993년 軍 어제와 오늘 편]]
         이후, 전장에서 더 많은 위관장교 자원을 필요로 하자 정부는 이들을 신설된 [[육군종합학교]][* 12.12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동 사건 당시 육본 측에 있었고 갑종 전우회 대부였던 [[하소곤]]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전두환]]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오자복]] 예비역 대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길]] 예비역 대장, [[박정희]] 정부에서 경호실장을 지낸 [[차지철]] 예비역 중령 등이 육군 종합학교 출신이다.]에 입교시켜 단기 교육 후 소위로 임관시켰다. 박경석 소위도 이 때 임관된 초임장교 중 하나였다. 이들은 생도 2기 출신 1명을 제외하고, 전부 새로 신설된 제9사단[* 사단장 [[장도]], --5.16군사정변 당시 박정희의 얼굴마담, 핫바지 노릇했던 그 때 그 사람-- 사단 참모장은 [[박정희]] --5.16 군사정변에서 대통령에 오른 그 분--]의 소대장으로 갔다. 그 1명은 당시 권력자였던, [[원용덕]] 헌병 총사령관의 아들 원창희 소위였다. 원창희 소위는 임관과 동시 후방의 육군본부로 배속받았다.[* [[원용덕]] 장군도 최종 보직이 헌병 총사령부 사령관이었고, 아들 [[원창희]] 장군도 헌병의 꽃 헌병감 보직을 마지막으로 육군 준장에서 전역하였다.]
         그후 박경석 소위는 여러 전투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으며, 한 번은 북한군에 잡혀 포로가 되었지만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사실 박경석 소위가 포로로 잡힌 북한군 내에서는 박경석 소위를 비롯한 많은 한국군 장교포로들을 해방군관이라는 이름으로 전향시키려 했지만, 그게 안 되었고, 포로 생활도 도망가든 말든 자유로웠다고 한다. 박경석 장군은 포로 시절을 회고하며, 포로로 잡힌 북한군 사단의 사단장이 적이었지만, 그의 리더쉽에 감명 받았다고 한다. 부대에 식량이 떨어지면 사단장도 부하들과 함께 굶는 등의 리더쉽에 향을 받아 뒷날 한국군내 정치군인이 판을 칠때도 그들의 회유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참군인으로써 군인의 본분과 사명을 다하는데 계기가 되었다.
         1951년쯤, 전쟁이 교착 태가 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초기 육사 생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려, 미 8군의 도움으로 육사를 재건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중위 신분이던 [[육사 생도 2기생]]들은 육사 생도 복귀를 놓고 논쟁하다가 결국은 새로운 모집 공고에 의한 [[육군사관학교]] 재건으로 [[전두환]], [[노태우]]등이 판을 치던 그 육사 11기생들이 첫 정규 4년제 육사 생도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후반부터 위관, 관급 등 연간 100명의 장교들이 미국 [[포트 베닝]] 보병학교에 군사학 유학을 떠나는데, 여기서 배운 자유진의 선진 군사학은 귀국 후, 전술 교관으로서 후배 장교들의 군사 지식에 많은 향을 주었고, 한국군의 현대화에 있어 양적 팽창에 이어 질적 성장에도 많은 향을 끼쳤으며, 후에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하면서 전승 행진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군 위관, 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은 한국군의 현대화에 많은 향을 끼쳤다. 한국 전쟁 전후, 전쟁으로 인한 양적으로 급성장한 한국군은 1950년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으로, 질적 성장에도 많은 향을 끼친 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선진 교육문화를 배워 온 일부 장교들의 엘리트심 발동으로 5.16이라는 쿠데타를 잉태하기도 하였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어]]와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풍운의 별에서도 1950년대 한국군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 도미를 세히 기술하고 있다.]
         1965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청과 월남의 파병 요청 형식으로 [[조문환]] 장군을 단장으로 하는 [[주월 한군군]] 군사원조단 비전투부대 [[비둘기부대]]가 파병되었고, 뒤이어 미국의 대 한국 군사원조 약조인 [[브라운 각서]] 체결과 야당의 반대 등 진통 끝에 전투병력의 파병이 이루어졌다. [* 야당과 여당의 일부 소장파 국회의원들은 월남 파병에 있어 한국군의 처우에 대해 많은 불만을 나타내었다. 특히나 집권 여당 공화당의 초대 당 의장을 지낸 [[정구]]변호사는 "이 장관 엄밀히 따지면 호지명의 월맹은 민족주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우리가 그들과 총칼을 맞대야 하는거요. 내가 보기엔 그간 프랑스는 자신의 식민지 정책의 일로 싸웠고, 지금 미국은 제국주의 위세를 떨치려 월남에서 군사적 시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도와주어야할 이유가 없지 않소. 물론 이 장관 말대로 우리는 가난하오. 월남전 파병으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러나 더러운 전쟁에다가 피를 뿌리며 돈을 벌기보다는 궁핍하지만 깨끗하게 사는것이 옳다는 생각이오."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회고록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8576|[[대통령을 그리며]]]]에서 발췌. [[http://gyuraeman.blog.me/110018127454|(대한 군사 원조의 약속인 브라운 각서)]]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를 포함한 경제적 원조와 월남이라는 특수 시장 개척에 한국 기업을 포함한다는 파병의 조건으로 협하였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태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남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남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절의 회고부분은 월남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남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식 요청하였고, 협 끝에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월남전]]에 있어, 초대 [[주월 한군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장교 이하 모든 장병이 누구하나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령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금 억르누고 있는것이 고엽제 문제와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에요.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문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월남에 간 것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간 것이지, 나나 우리 장병들이 가고 싶어서 월남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국가를 위해서 월남에 갔고, 실지 국가의 경제 발전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없어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갔다면 국가가 거기에 대한 보을 해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화방송 1993년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22회 월남파병 편에서 인터뷰 전문]을 하는 등 국가의 월남파병 장병들의 고엽제 문제와 국가 차원의 보 문제가 남아있고, 일말의 강제적 파병의 성격을 띄었지만, 용병이다, 돈을 받고 군대를 보낸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한다는 일각의 생각은 매우 잘못되고 편협한 것이다. 분명 [[월남전]]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파병을 결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성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주었기에 그에 응한 군사원조와 경제적 원조 및 이익을 바탕으로 1970년대 공업화를 이루어 우리 아들, 딸들이 적어도 풍요롭게 사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주지없는 사실이다.[* 2000년 일부 진보적인 학자라 자처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 등이 월남전 파병 기간 동안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채명신]] 장군, [[박경석]]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 등 월남전 참전 원로들이 나서서 이에 반박하는 글과 함께 학살 주장에 무게를 잡는 학자들을 대로 토론을 제안했다. 동년 한겨례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의 신문을 기고하자, [[채명신]]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일어난 내란이며, 5.18 희생자와 시민군들을 광수1, 2로 지칭하며 현재 북한의 고위층과 비슷하다며 개드립을 쳤던 그 지만원 박사가 맞다. 삼만원도 안되시는 그분--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와 이 주장에 반박하며,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와 동으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화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95%98%EC%96%80%EC%A0%84%EC%9F%81|[[하얀전쟁]]]]의 원작자 [[안정효]] 작가는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로써, 당시 한국군의 학살이 있었다며 자신의 소설에 실화를 밝혔는데, 적과 민간인의 구별과 식별이 어려웠던 현대전 특히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이 빈번했던 월남전에서 총기 오발 또는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유학성]], [[우종림]], [[전성각]]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기술되어 있다. 일단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자료 수집, 그에 근거한 증언이 더 필요하다. 성급히 주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가 타국의 전쟁에 정당한 명분 없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민간인 학살 역시 아예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 또한 [[라이따이한]]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보다 더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1972년 10월, 육군본부 인사운감실 대령과장으로 있던 박경석 대령에게 당시 실세 중에 실세 육군 수경사령관 [[윤필용]] 사령관의 참모장 [[손길]] 대령이 찾아왔다. 육사 12, 13기 출신의 신참 대령들의 연대장 가용 청탁 쪽지였는데, 박경석 대령은 이 쪽지의 명단의 인물들을 대차게 거절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한달 뒤, 박경석 대령은 거의 확실시 되던 준장 진급에서, 진급에 한참 밀리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인 김성배 대령 준장 진급자 명단이 바뀌었다. 그후 2번이나 연거푸 준장 진급 누락끝에 진급이 된 박경석 준장의 첫 보직은 [[6사단]] [[부사단장]] 겸 [[DMZ]] 내에서 발견된 땅꿀 특수개척팀장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230020910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3-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96&publishType=00010|박경석 장군의 준장 진급 비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창군 및 초창기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던 진급문제에 관해서다. 물론 후자에 기술하겠지만, 이 고질적인 진급문제가 [[5.16]]과 [[12.12]] 일어났던 원인이기도 했다. 창군과 한국전쟁으로 군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장교들의 진급이 빠른편이었다. 소위 달고 몇개월 후에 대위, 소령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관급에서 장성으로 진급하는 일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러한 초고속 진급은 멈춰졌으며, 특히나 [[군사어학교]] 출신 70여명 대부분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자리를 계속하여 번갈아 앉는 사태가 생겼다.--대표적인 인간들이 [[정일권]]과 [[백선엽]]이다. 이들은 대장 진급 후에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자리를 번갈아 2번씩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아래 후배 장교들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갔으며, 특히나, [[육사 5기]]의 대령급과 [[육사 8기]]의 중령급에서 그 불만이 많았다.--특히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정규 육사 출신들과 단기 육사 및 비육사 출신간의 진급문제가 두드러졌다. 박경석 장군 같은 경우에도 1950넌에 소위 임관후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있었는데. 1955년 갓 소위 임관한 정규 육사 11기생들이 1970년 후반 관급 대 장성급으로 진급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지낸 [[최갑석]] 장군의 증언과 그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 블랙 클로버/118화 . . . . 29회 일치
          * 대팀은 어쨌든 단장인 그를 빨리 치워버리려고 집중공격을 가하는데, 그때바로 릴의 감이 번뜩인다.
          * 릴은 강한 대를 만날 수록 감을 떠올리고 뛰어난 그림을 그리는데, 그게 곧 회화마법으로 구현되어 모든 속성을 재현할 수 있다.
          *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모든 공격에 성인 마법을 그려 제압해 버린다.
          * 3시합을 마치고 쉬고 있던 E팀은 막간을 이용해 식사를 한다. 원래 잘 먹는 [[하몬 카세우스]]와 먹는거 마저 경쟁하는 [[레오폴드 버밀리온]] 사이에서 [[핀랄 룰러케이트]]는 식욕도 없는데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넣는다.
          * 그때 [[노엘 실버]]가 익숙한 솜뭉치가 떠다니는걸 발견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식탐이라면 빠지지 않는 [[챠미 퍼밋슨]]이 등장한다. 왠지 [[네로(블랙 클로버)|네로]]까지 끼어왔다. 나오자마자 넉살좋게 하몬에게 음식을 요구하는 챠미. 하몬은 의외로 쉽게 음식을 나눠준다. 노엘이 여긴 왜 왔냐고 묻자 우물쭈물 대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응원하러 왔다"고 하는데 그 대인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무슨 말인지 눈치채지 못한다.
          * 이제 시합은 5시합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싸워야할 마도사 중에 "X"라는 묘한 이름이 있다. 문자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그걸 "가위표"라고 읽어서 옆의 [[미모사 버밀리온]]이 "엑스"라고 읽어야 한다고 정정해준다. 그녀는 아마도 본명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일거라고 추측한다. 문제는 그의 팀원들 마저도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정체는 고사하고 시합장에 있는걸 본 적도 없다. 대체 어떤 인물일까? 의문은 금방 풀린다. 이름이 거명되자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수한 인물, 묘한 가면을 쓴 자가 불쑥 나타난다. 척보기에도 수한 놈. 그 수한 놈이 가면 속에서 "X란 접니다"라고 밝힌다.
          * X가 빛을 발하더니 가면이 부서지면서 유명인사가 등장한다. 물빛의 환록 단장 [[릴 부아모르티에]]. 회화마법을 구사한다는 역대 최연소 단장. X의 정체가 릴이라는데 놀라는 것도 잠시, 로열 나이츠 선발 시합에 단장이 직접 나왔다는데 도마에 오른다. 정말로 단장이 기사단도 팽개치고 나와도 되는 건가? 적어도 마법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명목으론 "단장을 쓰러뜨리고 이름을 떨칠 찬스"를 준다는 거지만 실 릴의 마법을 볼 수 있다는 덕후기질 발동이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명목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이럭절거 설득된다. 하긴 굳이 그를 쓰러뜨려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해볼만한 싸움일 것 같기도 하다.
          * 지옥에서 마왕의 집사노릇을 할 거 같이 생긴 노인이었다. 험궂은 이목구비에 이마에 뚜렷한 흉터. 그리고 아스타가 움찔할 정도로 재빠른 몸놀림. 범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단장씩이나 되는 릴을 "도련님"이라 부르며 유치원생처럼 챙기고 다녔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릴을 잘 부탁드린다"고 당부할 정도였다.
          * 하지만 험악한 인과는 달리 정중한 사람이긴 했다. 그는 아스타를 발견하더니 우아한 동작으로 차를 대접했다. 릴과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발터". 역시나 릴의 집사였다. 그가 대접하는 차는 너무 류층 취향이라 아스타로선 맛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마시는 시늉을 하긴 했다.
          발터는 릴에게 친구가 생기는건 전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라고 감격의 눈물까지 보였다. 릴이 옛날 얘길 꺼내지 말라고 투정부리는 사이 슬슬 시합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릴은 기합을 넣고 힘차게 시합장으로 향했다.
          * 모든 이가 물빛의 환록 단장의 실력에 주목했던 제 5시합은 시작과 동시에 어이없는 헤프닝으로 끝날 위기였다. 쓸데없이 적진에 얼쩡거리던 릴이 덩쿨마법에 단숨에 잡혔다. 오히려 잡은 대팀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한심하긴 해도 단장은 단장. 그를 재빨리 해치우는게 승리의 열쇠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이 그를 잡고 있는 동안 나머지 두 사람이 각자의 최강 마법으로 릴을 공격한다. 불과 얼음의 속성 마법들. 강한 마법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걸 본 순간, 릴은 잠들어 있던 감이 깨어났다.
          >창작 욕구가 솟아오른다고 감.
          * 발터는 그가 처음 그리모어를 얻었을 시절에도 그의 집사였다. 정확히는 그의 집안의 집사였다. 부아모르티에 가문의 저택은 릴이 일으키는 마법사고로 성할 날이 없었다. 그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마다 뭔가가 망가졌다. 자기 방이 박살나는 것도 예사였다. 언제 인명사고가 나더라도 그건 예정된 수순으로 보였다. 릴은 본래 조금 이한 아이라는 평가였지만 그리모어를 얻으면서 평가가 곤두박질쳤다. 방에 틀어박힌 채 날뛰는 아이, 집안의 고용인들조차 그렇게 수군거렸다. 그의 아버지 도 릴을 억누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어머니는 "어쩌다 저런 아이가 되었을까"라고 한탄하며 정신이 병들고 있었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깨어난 릴의 눈 앞에, 처투성이의 발터가 있었다. 릴이 무아지경으로 그려대던 그림들은 하나하나가 무서운 파괴를 일으켰다. 발터는 아랑곳 없이 그의 방을 찾아왔다. 마법에 맞아 온몸에 성한 데가 없고 이마에 깊은 처가 생겨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집사로서 도련님에게 따끔하게 가르쳐 줄게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처 받으면 아프다는 것. 지금 릴이 맞은 뺨처럼. 그래서 사람들은 다치는걸 두려워한다. 정체모를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 것에 다가가고 싶지 않아 한다. 같은 짓을 반복한다면 누구도 그에게 다가오지도 이해하지도 않는다. 정말로 남에게 이해받고 싶다면 그가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도 모처럼 그린 그림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게 아닌가? 발터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단지 릴이 남을 이해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감이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었습니까!
          릴의 붓이 허공을 누빈다. 그의 그림은 좁은 사각틀이 필요가 없었다. 최고의 마법을 본 순간이라면 어디든 그의 캔버스였다. 그가 풀어놓은 물감은 저마다 부여된 힘을 그대로 구현했다. 릴 부아모르티에의 회화마법 "불꽃과 얼음의 드 탕펫드"(폭풍우). 살아난 불과 얼음이 각자 극의 속성마법을 제압한다.
          그는 모든 속성을 그려서 재현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다. 대가 강할 수록 그의 창작욕은 치솟고, 그럴 수록 보다 강력한 마법의 그림이 그려졌다. 이게 그를 최연소 단장으로 만들어준 힘. 발터가 발굴한 힘이다. 발터는 릴의 눈부신 마법에 갈채를 보냈지만, 정작 자신은 조금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 원피스/851화 . . . . 29회 일치
          * 푸딩은 [[디]]가 내일 어떤 표정을 지을지 흉내내며 깔깔거린다. 그리고 프로포즈할 때 엉망이던 얼굴을 흉내내며 그를 모욕한다.
          * 모든 것을 들은 디는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이려 하지만 떨어지는 눈물 때문에 라이터가 자꾸 꺼진다.
          * 빅맘은 디보다 포네그리프가 중요하냐고 빈정대나 브룩은 최소한 디가 자책하지 않으려면 포네그리프 정도는 얻어야 하기 때문이라 받아친다.
          *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샬롯 푸딩]]의 폭로도 멈추지 않는다. [[디]]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모든걸 듣고 있다. 푸딩은 내일 회장이 새빨갛게 물들 텐데 마마가 화낼 테니 "케이크"만은 피범벅으로 만들지 말라고 빈정거린다.
          * 그때 푸딩이 갑자기 총을 쏘는데 총알이 디가 서있는 벽 옆을 뚫고 나간다. 퍼커션 락 36구경 권총 "워커"와 통칭 "캔디 재킷"이라 불리는 탄환이다. 그 위력은 장갑을 두른 방패병을 등까지 관통하며 "철의 몸"을 가진 빈스모크 일가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푸딩은 바로 이 총으로 [[빈스모크 레이쥬]]를 저격했던 것이다. 푸딩은 내일도 이 총으로 디를 쏠 건데 무슨 표정을 지을 건지 기대된다며 악취미적인 발언을 한다.
          * 그녀의 말을 들은 부하 "젤리" 니트로와 "양탄자" 라비앙도 맞장구를 친다. 이들은 디는 푸딩이 자신에게 반했다고 철석 같이 믿을테니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볼만할 거라고 시시덕거린다.
          푸딩은 바보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일 디는 이렇게 하지 않을까"라며 마음대로 디를 조롱한다. 레이쥬는 일부러 그 모습에 눈길을 주지 않는데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디가 프로포즈 할 때의 일도 들먹인다.
          * 디는 마스크 밑의 퉁퉁 부은 얼굴을 보여주었었다. 그때 푸딩은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보기도 역겨운 얼굴"이었다며 독설을 내뱉는다. 이미 디의 손에선 꽃다발고 도시락도 들려있지 않다. 그것들은 바닥에 떨어져 비를 맞고 있다. 디는 담배를 문 채 라이터에 불을 당긴다. 하지만 비 때문인지 잘 붙지 않는다.
          푸딩은 그때 디의 진심어린 프로포즈를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며 그의 모든 것을 비하한다. 그동안 형제들이 디를 비웃고 괴롭히는 것도 내색없이 들어넘겼던 레이쥬는 정말로 거북하다는 듯 어두운 얼굴로 외면한다.
          빈스모크 일가의 형제들과 똑같은, 그보다 더 비수같은 말을 해대는 푸딩. 디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잘 붙지 않는 라이터에 집중한다. 하지만 비를 피해 고개를 숙여도, 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때문에 불은 붙지 않는다.
          * 보물전에서는 몇 번이나 쓰러졌던 [[브룩]]이 다시금 일어선다. 빅맘 [[샬롯 링링]]은 "디가 아닌 '''돌'''을 원하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하지만 브룩은 디가 너무 착하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최악"의 결과 디씨가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단했을 때 그가 자신을 탓하지 않도록
          빅맘은 웃으며 그런 "최악"이란건 어설프다며, 다 죽을지도 모르는 판에 고작 디가 돌아오지 않는걸 최악으로 치냐고 야유한다. 이번엔 브룩이 빅맘을 바보취급하며 빈정거린다.
          그 말대로 거울들을 향해 "성의 거울이 누구냐"고 묻자 여기저기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쵸파는 기뻐하며 일행의 소재를 묻는데, 거울들이 루피나 브룩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하지만 캐럿이 "초화는 특기"라며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하는데.
          * 다시 푸딩의 방 앞. 푸딩은 레이쥬에게 다가서며 지금 안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나, 이대로 과다출혈로 죽는 것도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레이쥬의 머리로 손을 가져가는데. 그 손은 마치 생크림 속을 휘젓는 것처럼 거침없이 레이쥬의 머릿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더니 마치 화필름 같은 것을 끄집어 낸다.
          그리고 방의 바깥. 디는 어느새 자리를 떠났다. 그 자리엔 구겨진 꽃다발만 떨어져 있는데.
         푸딩의 무기 "워커"는 철판도 뚫는 철갑탄으로 원피스 세계관에선 별볼일 없는 무기 취급이었던 총기가 엄청나게 향. 육식의 철괴나 신체를 철 이의 강도로 만드는 열매 능력자들과의 성이 기대된다.
         디는 과거가 밝혀졌을 때 이미 불쌍함의 정점을 찍은 듯 했지만, 이번 화에서 간단하게 갱신했다.--원피스 최고의 안습남--
  • 은혼/613화 . . . . 29회 일치
          * 이러한 황에서 칭코가 작아 설움 당하던 신하 단이 반란을 일으키고 황은 꼬이게 된다.
          * 혼란하게 황 속에서 의기소침해있던 자작 제독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데... 그의 이마엔 작지만 당당한 외설물이...
          * 이마에 외설물을 달고 살아가는 오우고쿠별 사람들. 과거 하타 황태자는 왕위를 둘러싼 정쟁에 휘말린 적이 있다. 왕이 병에 걸려 언제 붕어할지 모르는 황. 왕궁 오우고쿠성에선 왕위 계성을 놓고 두 파로 갈라져 지저분한 당파 싸움을 벌인다. 이에 오우고쿠 왕이 가신들을 불러 두 파벌을 화합시키고 후사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다.
          * 지금도 하타 황태자를 따라다니는 감, 그의 이름은 네스로 젊은 시절 하타 황태자를 옹립하려는 파벌의 리더였다. 이 무렵은 제법 이지적인 이미지였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주책맞은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네스의 파벌은 오우고쿠왕이 하루라도 더 옥좌에 있길 바란다면서도 하타 황태자가 온갖 생물을 애호하는 냥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점이 자신들을 이끌어준다며 은근히 하타 황태자를 앞세운다. 지금은 그 모양 그 꼴이지만 놀랍게도 이 시절의 하타 황태자는 꽃미남에 탈모도 없었다. 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세월--
          * 그렇다. 오우고쿠 행성은 수컷의 징인 이마의 외설물... 아니 "치당네쿠스코"란 기관, 줄여서 "칭코"의 크기야 말로 남자의 가치이자 인격의 척도로 통했던 것이다. 다른게 다 별로여도 칭코만 크면 굉장한 사람이고 하다못해 택시라도 칭코가 큰 쪽이 잘 잡는다. 단도 작은 편이지만 황태자인 바루카스야 말로 정말 눈물나게 작은 칭코의 소유자였다. 이 점이 후계자로서 치명적인 단점이다.
          * 신하들이 병림픽을 벌이는 사이 왕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진다. 숨도 가빠지는데 아무래도 눈 앞에서 신하들이 이런 키배질이나 하고 있으면 암이 발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오우고쿠왕은 각혈하고 쓰러진다. 신하들은 정신없는 병림픽 탓에 뒤늦게 깨닫고 왕의 주위로 모여든다. 왕의 태를 보아 가망이 없다 여긴 것인지 이와중에도 칭코가 큰 쪽과 작은 쪽, 어느 쪽이 왕위를 이어야겠냐고 묻고 자빠졌다. 죽어가던 오우고쿠 왕은 마지막 기력을 짜내 말한다.
          * 문제의 두 황태자는 선왕의 묘 앞에 모인다. 아버지의 유언을 곱씹으며 바루카스는 자신의 형이며 모든 것을 갖췄던 남자, 드라고니아 황태자를 떠올린다. 결국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그를 잊지 못했던 것이라고. 그는 일찍이 구룡공자라 불린 호걸로 5세에 그 칭코가 마치 용의 수염처럼 길었고 재능은 용의 뿔처럼 하늘을 찔렀던 천재였다. 회에 나오는 것도 일단은 5세 버전인데 칭코만 큰게 아니라 여러가지가 다 크다.
          * 모든 것을 갖췄던 형을 떠올리며 "왕이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라 자조하는 바루카스. 하타는 그 말을 부정하며 "형님은 그 못지 않다. 단지 칭코가..."라고 아쉬워한다. 하지만 무심결에 그의 결점을 찔러버린게 돼서 사과한다. 바루카스는 너그럽게 용서하며 이 평화에 시대는 하타처럼 냥한 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여기에 있는다면 왕위를 놓고 내전이 일어날 테니, 지금의 평화조차 지킬 수 없는 인물이라 자학한다.
          >살아있는 온갖 생물을 사랑하는 냥한 왕이 되거라, 하타.
          * 그의 발언을 듣고 하타 황태자와 그 부하들은 물론 무전으로 황을 전해듣던 자작 제독과 사카모토 다츠마 일행까지 경악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오우고쿠 행성과 지구의 동맹. 하지만 사카모토 조차 이런 황에서 가능할리 없다고 여긴다. 그 멍청한 하타 황태자도 고작 지구인들을 위해 전우주를 대로 싸우란 소리냐고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가츠라는 단지 동맹이 되라는 거지 싸우란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노리는건 해방군이 "설마 지구에도 동맹이 있었다니"하고 동요하는 것. 일시적으로 해방군의 이목을 끌고 나면 그대로 달아나든 말든 관없다. 일시적으로 생긴 틈으로 해방군 본부를 단숨에 점령, 전쟁을 멈춘다는게 카츠라의 구이다.
          * 잠자코 있던 감, 네스가 "당신 지시"라고 말하다 "멸종돼도 좋은 종이란 보호해야 하는 종도 구분 못하냐"고 욕을 먹는다. 빈정이 한 네스는 알겠다며 "거기 흰 돼지랑 위비비를 함께 없애라"며 답지 않게 하드보일드한 자세로 명령한다. 그는 담배를 피워물며 한순간 생긴 권력에 취한다. 그는 지금 황태자의 목숨을 쥐고 있는건 자신이라고 과시한다. 그러면서 "대답 안 하냐 돼지"라고 갈구고 하타 황태자가 "꿀꿀"이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대답하자 "저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돼지를 연기하며 자신과 위비비를 쏘라는 의미"라고 갖다 붙인다. 이 양반 어떻게든 하타 황태자를 치워버릴 생각이다.
          >무려 지면에 찰싹 붙어버릴 뻔한 황에서 날아온 거라고. 좀 봐달라고. '''패배자한텐 패배자만의 나는 방법이 있는 거다.'''
          * 황이 완전히 꼬여버리자 네스도 돼지처럼 소리지르며 아우성친다. 네스는 황태자가 "복수"[* 하타 황태자가 첫 등장했을 때 마다오한테 쳐맞았다.]한답시고 이런 녀석을 주워오니까 이렇게 된 거라고 원망한다. 황태자는 황태자대로 꼴좋게 됐다고 서로 디스하고 쏴죽이라고 명령해댄다. 부하들은 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총에 맞는다.'''
          무전으로만 황을 듣던 사카모토는 총성을 듣고 다급히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지금 가츠라 측은 대답할 겨를이 없다. 함께 듣던 자작 제독은 심치 않은 눈빛을 빛낸다. 완전히 꼬인 것 같았던 황이 한 번 더 꼬인다. 단은 바루카스 황태자가 추방 당했을 때부터 반역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타 황태자가 인질로 잡힌 건 그야말로 호기. 단은 바보같이 칭코만 큰 녀석들을 구축하고 "작은 칭코국"을 세우겠다고 선언한다. 하타나 네스 같은 무리에게 나라를 맡기면 당연히 망할 거라고 예은 했지만, 지구와 동맹을 해버리면 나라는 커녕 행성이 망할 기세. 그는 시간에 맞춰 반역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마지막만이라도 나라에 보탬이 되라며 쓸데없이 큰 칭코와 함께 사라지라 말한다.
         아무튼 이렇게 거의 항 민폐만 끼치고 도움되는거 하나 없던 인생이지만 훈훈한 미담 하나 있는 걸로 왠지 감동적인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알고보니 좋은 놈이었어.-- 자작 제독은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이 만화 최악의 막장 인생의 형님이었다. 역시 할복이랍시고 똥때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어쨌거나 자작제독이 정체를 밝히는 부분은 조그마한데도 폭풍간지.
         하세가와 타이조는 사실 등장부터 하타 황태자랑 엮여서 피곤한 황이었고 결국 하타 황태자의 민폐를 철권제재한 대가로 관직에서 짤려 마다오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로는 딱히 둘이 엮인 적은 없지만 일단 원한관계는 아직도 살아있는 듯. 결과적으론 하세가와가 또 하타 황태자에게 한 방 먹인 셈이 됐다.
  • 이노센트 투어 . . . . 29회 일치
         한때 [[무인도 이야기]]로 유명세를 떨쳤던 [[KSS]]에서 제작한 [[보드 게임]]이다.[* T-RPG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다이스 때문에 운이라는 특성이 반 이 작용하는 걸 고려하면 순수한 전략과는 거리가 당히 떨어져 있다.] [[1996년]]작.
         기종은 [[PC98]]로 최초 발매하였다가 후에 IBM PC로 컨버전되었으며, 이에 따라 사운드 블래스터를 정식 지원하게 되면서 음악의 질도 당히 좋아지게 되었다.
         주인공은 [[엘프(포리)]], [[발키리(니나)]], [[흑기사(아니에스)]]로 이 세 주인공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엘프는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발키리는 "재미있는 일"을 위해 아스가르드로 돌아가고자, 흑기사는 본의가 아니지만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엘프의 숲에서 각자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세 스토리는 각 등장인물들의 개별항목을 참고.
         보드위의 캐릭터들은 고유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능력치에 따라 적절한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보드게임의 특성 주사위 신이 보여주는 변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각 캐릭터마다 가진 특성과 시작 능력치를 생각하고 전략을 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 능력치들은 오로지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는 보으로만 승시킬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체력.~~더 이의 설명이 必要韓紙?~~
         이 게임에서는 체력이 0이 된다고 게임이 종료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 게임종료라 할 수 있을만한 패널티가 주어지는데, 어떠한 경우에라도 체력이 0이 된다면 그 캐릭터는 '''해당 보드의 스타팅 포인트로 되돌아간다'''. 이는 결투에 의해서든, 혹은 적의 방해마법이나 트랩에 의한 결과든지 관없다. 따라서 HP의 관리는 여타 게임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하다.
         HP는 적의 마법이나 배틀의 결과로 피해를 입으며, 자신의 마법이나 아이템으로 치유가 가능하다. 혹은 맵 곳곳에 위치한 점이나 온천에 들러 1턴을 소모하면 체력이 완전히 채워진다.
         최대HP의 승은 오로지 보드(맵)에서 획득하는 다이아몬드 카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장비를 뺀 기초 능력치의 승은 각 능력치에 대응하는 카드들을 맵에서 획득하는 방법에 의해서만 승이 가능하며, 흑기사를 제외한 캐릭터들이 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장비 아이템들은 이 배틀능력치에 변동을 줄 수 있는 물품들이므로 전략적으로 점을 이용하도록 하자.
         HP나 배틀 능력치와 마찬가지로 각 캐릭터마다 초기 능력치가 다르며, 이 능력치의 승도 다른 능력치와 똑같이 맵에서 플레이 하며 얻는 카드로만 승이 가능하다.
          1. 불의 정령력 - 불의 마법(사라만다)이 대에게 주는 대미지에 대응된다.
          1. 물의 정령력 - 물의 마법(님프)이 대을 되돌리는 정도에 대응된다.
         정령들의 종류는 사라만다(불), 님프(물), 실피드(바람), 노움(땅)이며 일정 이의 정령력을 보유하게 되면 속성에 해당하는 정령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각 속성마다 사용가능한 정령마법의 필요 정령력은 이하며, 대방을 방해하는 용도 뿐만 아니라 대방의 정령마법을 막는데도 사용할 수 있다.
         정령마법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자신이 축적한 정령력을 통해 사용가능한 마법으로 사실 공통마법으로 봐도 무방하다. 공통이기 때문에 신화의 특성과는 관없이 위에서 언급한 정령 능력치에 따라 효율이 달라진다. 단, 회복마법은 정령능력치에 관없이 투자한 정령력만큼 정비례하여 HP가 회복된다.
         위의 정령 능력치에서 설명했듯이 각 정령력을 일정 포인트 이 모으면 그 정령의 속성에 해당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턴에서 사용하는 마법은 실피드를 제외하고 공격마법이며, 반대로 타 캐릭터가 쓴 마법은 방어마법으로 대응 가능하다.
         게임 진행중에 몹을 해치우거나 자를 열면 얻을 수 있다. 자세한 것은 [[이노센트 투어/카드]] 항목을 참고.
  • 임은정(법조인) . . . . 29회 일치
          * 위항목 : [[법조인/목록]]
         || '''출생지''' || [[경북도]] [[포항시|일군]] ||
         [[1974년]] 7월 14일 생으로, [[경북도]] 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산]]에서 성장하여,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2001년]] 제30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로 검찰생활을 시작하였다.
         >“오늘 특히 민감한 성폭력 사건 재판이 있었다. 6시간에 걸친 증인신문 시 이례적으로 법정은 고요하다.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자들은 수화로 이 세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그 분노에, 그 절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 […] 어렸을 때부터 지속된 짓밟힘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도 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떠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가해자 측) 변호사들은 그 (피해자) 증인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데 막을 수가 없다. 피해자들 대신 세을 향해 울부짖어 주는 것, 이들 대신 싸워주는 것, 그리하여 이들에게 이 세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 변호사들이 피고인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해야겠지.”
         위의 일기 내용은 화 ‘[[도가니(화)|도가니]]’가 관객에게 충격을 주며 돌풍을 일으키던 2011년 10월 뒤늦게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제 조용히 대세에 묻어가기만 하면 검찰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몸이었으나, 2012년 9월 6일,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 목사의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여 검찰은 물론이고 법조계 전체에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켰다. 당시 검찰 부에서는 백지구형[* 백지구형이란, 검찰의 할 일을 포기하고 판사에게 형량을 일임하는 것이다. 즉 판사에게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고 의견을 내는 것을 말한다. 관행이라는 말로 합리화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검찰권의 포기이자 검찰 고유 권한의 불이행이다.]을 지시해 놓은 태였으나, 지시를 거부하고 무죄를 구형한 것이다.[* 정권의 바람을 잘 알고 있는 부장 검사는 "무죄 구형을 하는 것은 검찰의 잘못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 되니,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허나 임 검사는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무죄 구형도 그렇지만, 그때의 논고(최종진술) 또한 화제가 되었다: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에 맞아 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온 몸으로 민주주의 싹을 지켜낸 우리 시대의 거인에게서 그 어두웠던 시대의 흔을 씻어내며 역사의 한 장을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위반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는 헌법에 위반되어 무효인 법령이므로 무죄이고, 내란선동죄는 관련 사건들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관련 증거는 믿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정권교체를 넘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한 폭동을 선동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나 대검 감찰본부는 2013년 2월 직무 의무 위반, 품위 손 등으로 법무부에 임 검사의 정직을 청구했고, 같은 달 법무부는 그에게 정직 4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임은정 검사는 이에 대하여 서울행정법원에 징계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2014년 2월 21일 징계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법무부에서는 항소하였으나, 2014년 11월 6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법무부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법무부는 고했고 대법원은 2년 10개월째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22245|2017년 10월 31일에 선고할 것이라고 한다.]] 대법원은 결국 2017년 10월 31일 고를 기각하여 임은정 검사가 승소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판결 이유는, 무죄구형이나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린 행위는 징계 대이 될 수 없고, 근무시간 위반만 징계사유가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징계의 정도가 과중하여 위법하다는 취지이다([[http://www.law.go.kr/precInfoP.do?mode=0&precSeq=186092|대법원 2017. 10. 31 선고 2014두45734 판결]]).
         2015년 이후부터는 의정부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12월 3일 검사로서의 직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의심받아 심층적격심사[* 2004년 법무부는 7년마다 한 번씩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검사'를 골라내겠다며 적격심사제도를 도입했다. 적격심사 대은 검찰 내 특정 기수 전체이며, 법무부는 이 가운데 심층심사를 할 사람을 걸러내 특정사무감사를 진행한 다음 적격심사위원회를 연다. 여기서 최종 탈락한 인물은 강제로 퇴직당한다. [[검찰청법]] 제39조 참조.]를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검찰 부가 '[[보복|찍어내기]]'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수많은 네티즌들이 격분하였다. 무죄 구형 후 법무부의 한 간부가 ‘임은정이 적격심사 얼마 남았냐’고 묻더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를 듣고 ‘적격심사를 계기로 자르려는구나’ 싶었다고. 자신이 대자 명단에 올랐다는 [[한겨레]] 보도가 나오기 전 실제로 ‘(검찰 부에서) 자르기로 했으니 마음의 준비 해야 할 것 같다’는 동료의 귀띔을 들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그때는 돌아버리겠더라. 누가 볼까 싶어 집까지는 씩씩하게 걸어 들어왔는데, 현관문을 닫고 주저앉아 ‘너무 힘듭니다, 견디겠습니다만, 너무 힘듭니다’하고 신에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친한 동료들까지 나와 연락하길 주저한다고 느껴질 때는 정말 많이 외로웠다고 한다.
         2017년 8월 17일, 2년만에 서울북부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로 승진하게 되었다.[* 동기들은 이미 부장검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80799|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부에서 통제 안 되는 검사로 찍힌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70811.99099004905|기사 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80799|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당히 의외인 인터뷰인데 검찰 내에서 언론과 대응하는 공식 직책은 차장검사로 차장검사를 제외하고는 수사 보안 등을 이유로 언론과의 접촉이 금기시 되는 게 검찰 내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사윤리강령 이런 인터뷰는 기관장 승인 사항이다. 또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특정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의 ‘사건’에 대한 인터뷰가 아닌, 검찰 전체에 대한 비판을 SNS에 쏟아냈던 임은정 검사의 평소 견해를 중심으로 이뤄진 인터뷰였기 때문에 훨씬 더 이례적이다. 임은정 검사도 인터뷰에서 “대검찰청에서 (인터뷰) 허락을 해주다니 얼떨떨하다. 정말 세이 좋아졌나 보다”라며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천지개벽을 맞은 기분이었다고. 도가니 사건, 백지구형 사건 등 여러 뒷이야기들과 검찰과 검찰 개혁에 대한 임은정 검사의 얘기와 생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역시라면 역시랄까, 이 인터뷰를 가지고 부에서 뭐라고 했다고.[[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273053|#]]
         [[더 킹(화)|더 킹]]의 안희연 검사의 실제 모델로 알려졌다. 여러모로 화와 비슷한 결말을 맞게 되었다.
  • 장영희 (대학교수) . . . . 29회 일치
         |이름 = 장
         |학력 =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 대학원 문학 박사
         |웹사이트 =
         '''장희''' (張英姬, [[1952년]] [[9월 14일]] ~ [[2009년]] [[5월 9일]])는 [[대한민국]]의 수필가이자, 번역가, 문학자이다.
         [[서울특별시|서울]] 출신으로 [[1975년]]에 [[서강대학교]] 문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에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85년]]에 '[[19세기]] [[미국]] 작가들의 개념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의 자아여행(Journeys between Real and the Ideal)'이라는 논문으로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5년]]부터 모교인 [[서강대학교]] 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코리아 타임즈]]([[1987년]]부터)와 [[중앙일보]]([[2001년]]부터) 등 주요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였고 한국 호손학회([[1995년]]부터)와 한국 마크 트웨인 학회([[2003년]]부터) 등에서도 이사 및 편집이사로 활동하였다. 2004년 재단법인 한국장애인 재단 감사로 활동하였고, 2006년 동아일보 ‘동아광장’의 집필진으로 활동하였다. 서울대학교 문과 교수였던 문학자 [[장왕록]]의 차녀이다.<ref>[http://people.naver.com/DetailView.nhn?frompage=nx_people&id=17137 네이버 인물검색]</ref> 그 외에도 고등학교 어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생후 1년 만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에 걸려 1급 장애인<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653209 열정적인 강의하는 장희 교수 - 연합뉴스 2009년 5월 11일]</ref>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의 차별과 싸워야 했다.
         대학교에서 공부하려고 할 때에는 입학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차별]]탓에 공부할 대학교가 없었다. 아버님인 [[장왕록]] [[서울대학교]] 교수가 [[로마 가톨릭]]계 대학교인 [[서강대학교]]의 문과장이던 브루닉 [[신부]]를 찾아가 시험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했다. 브루닉 신부는 이런 말로 입학시험을 보도록 허락했다.
         {{인용문2|무슨 그런 이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는 것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ref>《기독교 사》2005년 10월호,대한기독교서회 p.14-15</ref>
         장희 교수가 [[박사]]과정을 공부하려고 다른 대학교에서 공부하려고 하니 [[교수]]들이 받아주지 않았다. 그날 부로 [[어]] 공부를 해서 그 다음해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 유학갔다.<ref>《[[기독교 사]]》[[2005년]] 10월호,대한기독교서회 p.15</ref>
         [[2001년]]에 [[유방암]] 선고를 받고 3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은 끝에 회복되었으나 [[2004년]]에 다시 [[척추]]에서 [[암]]이 발생하여 [[2006년]]에 회복되었으나, 마지막으로 [[2008년]]에는 [[간암]]까지 발병하여 학교를 휴직하고 치료를 받았으나 2009년 사망하였다. 이렇게 세 차례 암이 발병하였으나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투병 와중에도 여러 책을 펴내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10/2009051000732.html 그녀의 삶,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 조선일보 2009년 5월 11일]</ref> 신실한 로마 가톨릭 교인인 장희 교수는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라고 했다.
         [[2001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방문교수로 있었을 때, 당시 거주했던 7층짜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 꼭대기 층에 살았기 때문에 3주 동안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었다. 이에 그 아파트를 관리하던 부동산 회사를 대로 싸워 사과와 함께 보을 받아냈다.
         == 훈 ==
         *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 (2009년)
         * 올해의 문장 ([[2002년]]) -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으로 수
         * 한국문학번역 ([[1981년]]) - 김현승의 시를 번역해 수
         [[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강대학교 동문]][[분류:1952년 태어남]][[분류:200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간암으로 죽은 사람]][[분류:뉴욕 주립 대학교 버펄로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지체 장애인]][[분류:결성 장씨]]
  • 전상욱 (프로게이머) . . . . 29회 일치
         | 이름 = 전욱 <br/> (全相昱)
         | 설명 =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을 위한 추가선발전에 출전한 전
         | 별명 = 욱곰, 명품엔진, 곰욱, 뱅나쌩, 송명구 소환술사, 프로토스 킬러
         {{메달 경기|[[월드 사이버 게임즈|월드 사이버 게임즈 (WCG)]]}}
         '''전욱''' (全相昱, [[1987년]] [[2월 21일]]~ )은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이다. '''midas[gm]'''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며, 종족은 [[테란]]이다.
         은퇴 후 [[아프리카TV]]에서 Midas전욱 이라는 닉네임으로 [[스타크래프트]] 개인 방송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http://www.fighterforum.com/news/news_read.asp?cat=INT&idx=23232 서지훈-전욱의 조용한 대화(FighterForum)]</ref>
         2005년 눈부신 성장과 함께 토스전 승률 1위라는 대기록과 E스포츠 최고의 승률 을 수하여 2006년 프링글스 MSL 3위 신한은행스타리그 시즌 2 3위 와 T1의 광안리 오버 트리플 크라운의 주역 으로활동하여 전성기시절 [[마재윤]]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기도 했다.
         이후 부진을 거듭하다가 [[2009년]] [[9월 8일]] [[위메이드 폭스]]로 이적했다. 이적 후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09-10 시즌]]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프로리그]]에서 [[신문]]을 잡고 1년 3개월만에 승리를 거두었으며, MBC게임 서바이버 예선을 통과하고 스타리그 예선에서도 최종전에서 아쉽게 탈락하는 등 서서히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0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시즌1에서 [[조일장]], [[신문]]을 꺾고 8시즌 만에 MSL에 복귀하였고, 2010년 2월 21일 한봉과 김명운을 선봉으로 나서서 2킬을 하는 등 서서히 전성기시절의 탄탄한 운능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하나대투증권 MSL 2010]]에서는 현존 최강의 테란으로 불리는 [[이호]]와 [[이스트로]]의 저그라인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김성대]]를 꺾고 16강에 진출했으며, 이후 프로리그에서의 2번의 경기도 모두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MSL 16강에서는 [[허무]]를 2:1로 꺾고 11시즌 만에 MSL 8강에 진출하며 부활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 최근 MBC게임에서 열린 빅파일 MSL 에서도 박우를 2번꺾고 2승1패로 조2위로 16강본선에 진출하였다.
         최근 열린 2011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박재혁을 잡고 승자전에 진출하였으나 이호 ,박재혁에게 연달아 2패하며 MSL 8회본선과 4회연속 진출은 좌절되었다.
         2011년 8월 22일 위메이드 폭스가 해체되었고 타 팀과의 이적 협에 실패하여 거취가 불분명해지자 2011년 11월 전욱은 결국 은퇴를 선언하였다.
         전욱의 전성기 시절은 2005~2006년 사이였다.
         그 당시 전욱은 2005년도 e스포츠 최고의 승률과 함께 대 프로토스전 승률 1위라는 기록으로 '프로토스 킬러' 라고 불리었다.
         == 수 경력 ==
         * [[2006년 3월]] 2005 대한민국 e스포츠대 최고승률
  • 진격의 거인/87화 . . . . 29회 일치
          * 동료 그라이스는 예거 부부를 원망하며 거인의 먹이가 되어 죽어간다. 다른 동료들은 거인이 되어 파라디 섬에 방생, 원히 헤매게 된다.
          * 그리샤 예거는 그 아들 지크 예거 또한 어린날의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오판이었다. 왕가의 피도 엘디아 복권파의 이도 아들에겐 남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지크는 자신을 위험에 노출 시킨 양친을 버리고 자신과 조부모의 안녕을 선택했다. 그리샤와 다이나 프리츠가 치안당국에 잡혀가는 동안 지크는 냉정한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 그때 고문실에 낯익은 남자가 들어온다. 그는 그리샤의 여동생을 죽이는데 일조한 남자, "클루거"였다. 하지만 그리샤는 낯이 익다고 생각했을 뿐,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가 기억을 뒤져보는 사이 클루거는 관리들에게 황을 보고받는다.
          * 엘디아 복권파는 눈이 가려진 채 배로 옮겨진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땐 낙원, 파라디 섬 해안가의 거대한 벽 위였다. 약 30미터에 달하는 벽이 항구와 섬을 분단하고 있다. 복권파들은 이 벽 위에 꿇어 안아있다. 클루거는 그리샤의 안대를 벗겨주면서 이곳이 "엘디아인 반역자의 귀양지"인 파라디섬, 그 경계선 위라고 알려준다. 이제부터 반역자들은 종신형에 처해지는데 지성도 없고 수명도 없는 거인이 된 채로 이 섬을 헤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떠돌며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으로 살아야 하지만 정작 거인은 죽을 일이 거의 없다. 결국 원히 지옥에서 해방될 수 없다.
          이런 소란을 듣고 뚱뚱한 남자가 다가온다. 그는 대뜸 "너는 자유"라며 그라이스를 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그리샤는 깜짝 놀라지만 클루거가 밑은 모래언덕이라 떨어져도 죽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 말대로 그라이스는 금방 일어서는데 떨어뜨린 남자가 "북쪽으로 달려라! 운이 좋다면 벽에 도달할 것"이라 소리친다. 그라이스는 문도 모른 채 그 말만 듣고 뛰기 시작한다.
          하급자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뚱뚱한 남자, 글로스 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글로스는 대수롭지 않게 설명한다. 저렇게 "미끼"를 던져둬야 거인들이 금방 사라져서 일하기 편해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옆에 있는 클루거에게도 아는 척을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그리샤는 모든 것을 떠올린다. 뚱뚱한 남자는 여동생을 데리고 사라졌던 그 남자. 모든 일의 원흉인 그자였다.
          * 일제히 거인으로 변한다. 인간의 자아는 남지 않은 이들은 본능에 따라 그라이스를 감지하고 잡아먹으려고 쫓아간다. 그리샤는 그라이스를 못 알아보는 거냐고 절규하지만 그들에겐 전혀 닿지 않는다. 글로스는 그리샤가 시끄러우니 얼른 거인화시키라고 서두른다. 하지만 클루거는 심문하고 싶은게 남아있다며 시간을 끈다. 그 사이 새로운 처형대이 끌려온다. 그리샤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아내인 다이나 프리츠였다. 하지만 그는 다이나가 왕가의 핏줄이란 것을 실토했다. 프리츠 왕가의 혈통은 마레 측에서도 중요한 인물일 것이므로, 그녀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도 보통의 죄수로 취급됐다.
          * 그리샤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다이나가 왕가의 혈통이라고 밝히려 하지만 클루거가 시끄럽다며 입을 막는다. 그리샤는 클루거가 보고받은 내용을 묵살했을 거라고 직감한다. 그 증거로 글로스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들을 가치도 없는 헛소리"라고 얼버무리려 형을 집행하라고 말한다. 결국 다이나도 거인화 약물이 주사된다. 다이나는 마지막으로 자아가 있는 동안 "어떤 모습이 돼도 당신을 찾아낼게"라며 울먹인다. 글로스는 "거인끼리 사이좋게 살아라"라고 비웃으며 다이나를 걷어찬다. 절규하는 그리샤. 그의 눈 앞에서 다이나는 어떤 거인의 모습으로...
          *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는 엘런 예거. 여기는 징벌방이다. 엘런은 창살 안에 있고 옆방엔 미카사 아커만이 자고 있었다. 아르민 알레르토는 그 앞의 의자에서 함께 밤을 지내고 있었는데 엘런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모두가 깨어난다. 엘런은 꿈 때문인지 기억이 혼선된 태인데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른다. 아르민은 여기가 징벌방이고 미카사랑 같이 병기위반으로 벌을 받았다고 알려준다. 엘런은 천천히 기억을 되찾아가는데 아르민은 방금 전 "나는 왜"라고 중얼거린걸 지적하며 일인칭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기억이 애매하다.
          엘런은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는데 아주 긴 꿈을 보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다. "기억"이다. 지하실에서 책을 읽고 여기에 오기까지 황을 전부 떠올린다. 엘런은 역시 그 책 내용이 사실이었다고 말한다. 꿈은 아버지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거인. 어머니 카를라 예거를 잡아먹었던 바로 그 거인은...
          글로스는 거인화 약물을 주사하며 계속 말한다. 본래 생물은 "오늘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걸 실감하고 사는게 정인데 평화로운 세이 당연하다 느끼는 녀석들은 이한 거다. 그러나 자신은 다르다. 인간은 언젠간 죽고 자신은 그 날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 항 잔혹한 세계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 "취미생활"로. 그가 여동생을 개에게 던져준던 "교육"으로 그걸 본 아들들이 어엿하게 자랐다고 자평한다.
          죄수가 벽 아래로 떨어진다. 아연해진 그리샤는 체념한듯, 힘없이 가슴이 아프진 않냐고 묻는다. 뜻밖에도 글로스는 "당연히 내 아들이 같은 황이면 그랬을 것"이라 말한다. 그리샤는 그때 그들이 비행선이 보고싶었을 뿐이고 그걸로 멀리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겼을 뿐이라 말한다. 글로스 다시 한 번 "불쌍하다"는 예과 다른 말을 한다. 하지만 거기에 "엘디아인만 아니라면"이란 단서가 달린다. 클루거는 이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다.
          그리샤는 "엘디아인만 아니라면"이란 꼬리표에 귀를 의심한다. 글로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군다. 막 거인으로 변한 죄수를 가리키며 "저게 너희의 정체"라고 말한다. 단지 "거인의 척수액"을 체내에 주입하는 것만으로 거인으로 변하는 엘디아인이 어떻게 "같은 인간"일 수 있냐는 것이다. 글로스는 지구의 생물 중 이렇게 되는건 오직 "유미르의 자식들"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의 가죽을 썼을 뿐인" 괴물이 대량으로 발생한 것은 악몽이라 말한다.
          * 말문이 막혔던 그리샤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마레의 역사는 날조이며 엘디아인이 인류에게 번을 주었다는 자신의 믿음을 말한다. 하지만 글로스는 무관심하다. 아무래도 좋으니 "밑에 있는 친구"랑 이야기하라며 그리샤를 떨어뜨리려 한다. 그리샤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묶여있는 태에선 어쩔 수가 없다. 글로스는 참신하게 먹히라는 둥, 여동생이 부르고 있다는 둥 개소리를 지껄이지만 그리샤는 절규할 뿐, 아무런 방법도 없다. 그런데...
          글로스는 떨어뜨리는 클루거. 모래언덕 아래로 떨어진 글로스는 자신이 만든 거인과 마주친다. 잠시 뒤, 그의 절규소리가 벽 너머로 울려퍼진다. 클루거는 모자를 벗으며 그리샤에게 말을 건다. "이게 재미있다고 생각해?" 방관자인 줄 알았던 클루거는 누구도 하지 못했던 것을 폭로한다.
          * 벽 너머에선 이변을 눈치챘다. 쉬고 있던 병력들이 총기를 모여든다. 클루거는 황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그리샤의 눈 앞에서 손 바닥을 긋는다. 그에게 잘 봐두라고 말하면서.
         마레 동쪽의 "적대국"이 언급되었는데, 이쪽도 거인의 힘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걸로 추정된다. 마레가 군사력을 원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적대국의 존재 때문. 그 외에도 다양한 나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엘디아 복권파는 시조 거인의 힘을 앞세워 망명한다는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정말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글로스는 전인류가 엘디아인을 증오하고 박멸하려 한다고 주장하는데 과장이 섞였더라도 보통 인간의 나라인 이 엘디아인에 대해서는 비슷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또 시조 거인의 힘이라는 매력적인 힘을 손에 넣는데, 그 주도권을 여전히 엘디아 복권파 손에 남겨놓을지도 의문. 결국 그 적대국에서도 엘디아 복권파의 미래는 밝지 않다.
         거인화 약물의 정체는 "거인의 척수액"이었다. 지크가 벽 안에서 거인을 발생시킨 방법도 규명이 됐다. 지크 측은 거인의 척수액, 거인화 약물을 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 또 글로스의 말에 따르면 사전에 어떤 형태의 거인이 될지 조절할 수 있는 듯 하다. 베르톨트가 초거대 거인이 된 것이나 라이너가 갑옷 거인이 된 것도 사전에 설계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카를라 예거를 잡아먹은 거인이 다이나 프리츠일 거라는 예측은 맞았다. 결과적으로 엘런은 아버지의 전체가 어머니를 죽였고 자신이 전처에게 복수한 막장스런 황이 되었다. 어쨌거나 다이나가 "어떤 모습이 돼도 당신을 찾겠다"고 한 약속은 지켜진 셈이다.
         거인화된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 본편 중에 지나가듯 나왔던 거인들이 당히 있다.--그냥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거 같지만--
  • 킹덤/525화 . . . . 29회 일치
          * [[아광]]은 교전 직전까진 옥봉대가 대기하고 있을 것을 지시했으나 막 위기의 순간 [[왕분]]과 옥봉대가 나타나자 그들과 힘을 합쳐 적을 막고자 한다.
          * 왕분은 아광군의 측면을 파고들던 [[마남자]]군의 우측을 찔러들어갔고 교전은 [[관]]에게 맡긴 채 자신은 적장을 직접 처단하러 나선다.
          * 왕분의 호위를 맡고 있던 [[강]]은 불길한 예감에 호위를 더욱 두텁게 하는데, 때를 같이 해 마남자가 역으로 왕분의 목을 노리고 나타난다.
          * 마남자는 괴력을 발휘해 전방을 호위하던 장수들과 강까지 단칼에 두동강내고 진심으로 육국을 멸망시키려 하는 진나라의 무도함을 꾸짖는다.
          * 그는 본디 북방에서 대 흉노 최전선인 "안문"을 수비하며 참을 목격해왔으나 지금 진나라가 하려는 짓은 그 이의 폭거.
          * 그러나 강의 죽음을 목격하고 격앙된 왕분은 마남자와 말 섞기를 거부하고 그의 꾸짖음도 "중화통일이 역사적 필연"이란 말로 일축한다.
          * [[악]]의 조군 1진을 성공적으로 붕괴시키고 있던 [[아광]]군은 [[마남자]]군에게 측면을 내주면서 급격히 위기에 처한다. 마남자가 선두를 이끌고 아광에게 쇄도하자 전방의 악군과 교전에 힘쓰고 있던 아광으로선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는데, 그때 대기를 지시했던 [[왕분]]의 옥봉대가 전장에 난입해 마남자군을 요격하면서 전황은 다시 바뀐다.
          악의 부하들은 지시를 어긴 옥봉대가 못 마땅한 듯 했지만 아광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부하 장교에게 군을 이끌게 하고 자신은 백 여기를 이끌고 적장 마남자에게 향했다. 옥봉대와 합류해 적장을 직접 처리할 작정이었다.
          * 아광군을 한 번의 돌격으로 막아세웠던 마남자는 자신도 같은 처지에 처했다. 그들이 아광군을 한참 몰아세우던 사이 옥봉대가 우측을 깊게 찔러 들어오자 부대가 앞뒤로 분단되고 마남자도 고립됐다. 이윽고 이쪽을 노리고 달려오는 적 기병대의 선두가 보였다. 깃발의 숫자를 보면 적장. 황이 숨가쁘게 변하고 있었고 결코 유리하지 않았으나 마남자는 어찌된 일인지 미소를 머금었다.
          후위에 있는 병사들은 마남자를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왕분이 펼치는 창술 앞에 부질없이 목숨을 잃었다. 옥봉대의 공격이 쐐기처럼 박히고 황이 난전으로 전환됐다. 왕분은 현장을 [[관]]에게 맡겼다. 이대로 적의 후위가 올라오는걸 막고 적장의 고립 태를 유지한다. 그동안 자신은 직접 적장의 목을 취할 것이다. 관은 이 같은 지시에 별 반대 없이 무운을 빌었다. 그리고 [[강]]에게 부탁에 왕분의 호위를 맡겼다. 늘 한 마디씩 토를 달던 관이었다. 아무 반대도 없어 미심쩍기도 했으나 왕분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곧 [[반양]]과 함께 출발했다.
          * 그의 고분고분한 태도가 이한건 [[흑금]]도 마찬가지였다. 싸우던 그가 다가와 "별 일이다"고 말을 걸었다. 관은 자기가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건 아니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하다. 아광이 내린 대기명령을 대놓고 위반하지 않았나? 깐깐한 관이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흑금이 그렇게 말하자 관이 "고립유군으로서 틀린건 아니다"고 대답했다. 마남자의 돌격은 아광군의 큰 위기였는데, 옥봉대가 끼어들면서 그 고비를 넘겼고 오히려 적장을 궁지로 몰아세웠다. 이대로 적장을 쓰러뜨린다면 진군 우익의 싸움은 초반부터 크게 우세해지는 격. 지시야 어떻든 전술적으로 틀린게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흑금은 새삼 왕분의 전술안이 보다 날카로워진다 감탄했다. 관도 그게 틀림없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흑금이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말에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떨떠름하게 "맞아"라고 대답하는데.
          * 조군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던 강은 불길한 느낌에 왕분 주위의 호위를 두텁게 했다. 반양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강은 그저 "아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대답했다.
          * 마남자가 휘두르는 한 칼이 전방의 병사들을 반으로 갈랐다. 강은 철구를 들어 재빠르게 막았지만 힘에서 밀려났다. 강은 무기가 부러졌지만 낙마했을 뿐 경에 그쳤다. 옥봉대 병사들의 떨어져 나간 몸뚱이가 흩날렸고 돌격은 저지됐다. 병사들이 왕분을 지키려고 모여드는 동안 왕분은 죽은 부하들의 시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 . . . . 29회 일치
         [[미국]] [[화]]. [[마블 코믹스]]의 [[판타스틱 포]] 실사화다. 2015년에 개봉했으며 개봉일은 8월 7일(미국기준). 국내 개봉은 8월 20일.
         《[[크로니클]]》의 조쉬 트랭크가 연출, 사이먼 킨버그가 제작/각본 담당.
         [[위플래쉬]]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마일즈 텔러가 '리드 리차드/[[미스터 판타스틱]]'을, [[케이트 마라]]가 '수잔 스톰/[[인비저블 우먼]]', 크로니클에서 학생 회장이자 초능력자인 스티브로 열연했던 마이클 B. 조던이 '쟈니 스톰/[[휴먼 토치]]'를 맡으며 [[제이미 벨]][* 빌리 엘리어트의 소년 역, [[설국열차(화)]]의 에드가 역.]이' 벤 그림/[[씽(마블 코믹스)|씽]]'의 역할을 맡는다. [[닥터 둠]]의 역에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코바]] 역을 맡은 바 있으며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 [[듀로탄]] 역을 맡을 예정의 배우 [[토비 캡벨]]이 맡는다.
         마블의 유명인사인 판타스틱 포의 리부트 화이기에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우려가 많았다.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 [[배트맨과 로빈]]보다 형편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단 사람에 따라 평에 차이가 생길 수는 있으나 적어도 앞의 두 화와 같은 대열에 서게된 것은 확정되었을 듯.
         [[엑스맨 실사화 시리즈]]와 크로스오버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으나 화 개봉 이후 그럴 일은 없다고 한다. 본 화의 참패가 많은 향을 줬을 것으로 추측된다만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화도 화인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정보에 의하면 감독도, 폭스도 아니게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초기 각본이 공개되었는데 내용은 지금의 화와 많이 다르다고 하며 이에 호의적인 반응도 있지만 저건 저거대로 좀 그렇다는 식의 반응도 있다. 더불어서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도 거짓말이거나 부풀려졌다는 추측도 있는 듯 한데 이에 관해 어떤 결론이 나오든 화가 망했다는 현재의 사실은 바뀌지 않을 듯.
         이 화의 실패로 서구에서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예시로 들며 이 기회에 판타스틱 포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돌아올 가능성이 생겼다며 전화위복으로 생각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될지는 일단 두고봐야 할 것이 먼저 어메이징 스파 시리즈가 샘 레이미 스파이더맨 시리즈보다 격이 떨어지고, 어메이징 스파2가 그렇게 되긴 했지만 스파이더맨의 MCU 참가는 그것만이 이유가 아닌데다 완전히 돌아왔다고 보기 뭐해서 이를 예시로 들어야 할지는 뭐하다. 결국 폭스는 판타스틱 포의 판권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속편도 내놓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감독은 교체하고 배우들은 그대로라 하는데 2015년판의 오명을 떨쳐내려면 당한 노력이 필요할 듯 하다. 그러나 결국 이 속편은 무산되었다고 한다.(...)
         사실 폭스의 의향이 어떻건 마블 스튜디오가 폭스를 대로 판포 판권을 회수할 가능성은 뭐하다고 볼 수 있는데 애초에 판타스틱 포의 판권은 폭스가 아니라 독일의 콘스탄틴 필름이 가지고 있어서다. 그리고 이 콘스탄틴 필름이 판권 소유 기간 연장을 위해 로저 코먼에게 만들게 한 화가 90년대에 나온 [[판타스틱 포(1994년 실사화)|판타스틱 포 실사화]]다.
         각본가 사이먼 킨버그는 캐스팅 그대로 해서 속편을 내길 원한다 하나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라 봐야할 듯. 오명을 떨처내길 원해서 그런다 할지라도 손해가 막심한데 폭스가 허락해줄지가 의문이다.
          * 마찬가지로 마블 코믹스 원작에 폭스에서 화화한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멘 실사화 시리즈]] 세계관과 크로스오버를 얘기하는 팬들도 있는데, 사실 판타스틱 포 화의 리부트 계획 당시 엑스맨 화의 세계관과 병합시키고자 하는 '''크로스오버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차츰 계획 진행이 예과 달라지면서 세계관 병합은 무리라고 판단한 20세기 폭스가 독자적인 화로 만들고자 했는데, 제작자의 현재 입장은 "엑스맨과의 크로스 오버는 언제든 가능하다. 하지만 일단 판타스틱 4는 그 자체 작품만으로 집중할 것이다. 마블이 그들만의 세계관을 합치는 과정에서 감을 받았으며, 엑스맨과 판타스틱 4 역시 그러한 방면에서 융합이 시도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
  • 폐비 윤씨 . . . . 29회 일치
         }}</ref> ~ [[1482년]] [[8월 29일]] ([[음력 8월 16일]]))는 [[봉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 尹起畝)<ref>조선왕조실록에는 둘 모두 쓰였으나, 윤기무라는 이름이 비교적 적게 등장하므로 {{출처|날짜=2009-03-14|윤기견의 오기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한편 작가 [[신봉승]]은 자신이 집필한 드라마 《[[한명회 (드라마)|한명회]]》의 제94회에서, 윤기무는 윤기견의 아우로 슬하에 자식이 없었음이 [[함안 윤씨]]의 세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고, 이를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ref> 와 고령 신씨(申氏)의 딸로 [[조선]]의 제9대 임금 [[조선 성종|성종]]의 계비이자 둘째부인으로 투기와 남편인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처를 내어 폐위되었다.
         [[1473년]]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의 지위에 있다가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으나 남편 용안에 처를 내어 폐비(廢妃)되어 사사되었다. 아들 [[연산군]] 즉위 후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추존되었으나 [[중종반정]] 이후 삭탈되면서 죽을 당시의 폐서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남편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시어머니인 [[소혜왕후|인수대비]]와 고부갈등으로 유명하며,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처를 낸 일로 인해 폐비(廢妃)된 후 사사되었다. 사사 당시 윤씨는 친정어머니 신씨에게 세자가 자라서 왕이되거든 피를 토한 금삼을 넘겨줄 것을 유언했고, 이는 후일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도화선이 된다. [[조선 연산군|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가 되는 윤씨를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를 추숭시켰다. 그러나 [[중종 반정]]이 일어난 후 왕후(王后)의 호는 삭탈되었다.
         봉시 판사(奉常寺 判事)를 지낸 [[윤기견]]과 고령 신씨의 딸로 태어났으며, 3명의 이복 오빠와 1명의 친오빠가 있었다.<ref>[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6JOa_A1445_2_0019315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ref>.
         고조부 [[윤희]](尹禧)는 [[고려]]조에서 정순대부(正順大夫) 좌산기시(左散騎常侍)를 지낸바 있다.
         일부 현대극이나 야사 등에서 그녀의 아버지 [[윤기견]]의 죽음으로 인해 집안의 생계가 어려워지자 궁녀로 입궁했다고 하지만<ref>[[2011년]] 방된 [[JTBC]]의 드라마 《[[인수대비 (드라마)|인수대비]]》 등에서는 폐비 윤씨가 궁녀로 입궁한 것으로 그렸다.</ref>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희왕후]](자성대왕대비)가 그녀를 훗날의 [[정현왕후]]가 되는 [[윤호]]의 딸과 함께 입궁시켜 숙의(淑儀)의 첩지를 내린 사실이 명백히 표기되어 있다.
         [[성종]] 5년(1474년)에 [[성종]]의 첫 번째 왕비인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성종]]은 2년 뒤 [[공혜왕후]]의 3년을 마치고 [[1476년]] [[7월 31일]]([[음력 7월 11일]])에 숙의(淑儀)였던 윤씨를 왕비(王妃)로 삼을 것을 전교하였다.
         바로 그의 아버지는 의정부 의정(議政府 領議政)에 [[추증]]되고 함안부원군(咸安府院君)에 추봉되었으며 두 어머니는 각각 정경부인 [[양성 이씨]](貞敬夫人 陽城 李氏) 장흥부부인 [[고령 신씨]](長興府夫人 高靈 申氏)로 추숭되었다.
         폐비(廢妃)된 이후 조정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원자의 생모이자 조강지처가 되는 윤씨를 다시 왕비(王妃)로 복위시켜야 된다는 소와 시위가 끈임없이 반복되었으며, 많은 조정대신들이 파직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었다.
         여기서 윤씨를 복위시켜야 된다고 하여 유배를 갔거나 파직당한 대신들은 [[연산군]]이 즉위함으로서 부귀화를 누렸으나 반대로 윤씨 폐위에 앞장 섰거나 복위에 동참하지 않았던 대신들은 무자비한 보복을 당했다. 대표적으로 [[한명회]] [[한치형]] [[윤필]] 등이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의 [[조선 연산군|연산군]]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조선 연산군|연산군]]에 의해 제헌왕후(齊獻王后)에 추숭되고, [[회묘]]는 회릉(懷陵)으로 격되었다.
         성종은 폐비 윤씨의 묘를 '윤씨지묘(尹氏之墓)'라 비석을 세우고, 제관 2명을 보내 기일에 제사를 올리도록 하되, 묘의 이름을 구히 고치지 못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후에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묘는 [[회묘]]에서 효사묘(孝思墓)로 바꿨다가 다시 회릉으로 격시켰다.
         * 조부 : 교하현감 윤응 (交河縣監 尹應, 생몰년 미)
         * 조모 : 정부인 [[안동 권씨]] (貞夫人 安東 權氏, 생몰년 미)
         ** 아버지 : 봉시판사 [[윤기견]](奉常寺判事 尹起畎, 생몰년 미)
         * 외조모 : 정부인 [[장흥 마씨]] (貞夫人 長興 馬氏, 생몰년 미)<ref>장흥부원군 충정공 [[마천목]](長興府院君 忠靖公 馬天牧)의 딸</ref>
         ** 어머니 : 정부인 [[고령 신씨]] (貞夫人 高靈 申氏, 생몰년 미)
         *** 오빠 : 병조참판 [[윤구 (조선 전기)|윤구]](兵曹參判 尹遘, 미~1513)
         *** 올케 : 정부인 [[안동 권씨]](貞夫人 安東 權氏, 생몰년 미)
  • 하성란 . . . . 29회 일치
         *《곰팡이 꽃》(조선일보사,1999): 제30회 동인문학작품집 1999
         *《내 화의 주인공》(작가정신,2001)
         *《강의 백일몽》(삶과꿈,2004): 2004년 제11회 이수문학작품집
         *《사랑을 믿다》(문학사사,2008): 2008년 제32회 이문학 작품집
         *《알파의 시간》(현대문학,2008): 제54회 현대문학소설집)
         *《소설가로 산다는 것(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문학사,2011)
         *《어떤 외출(낯선 공간이 나에게 말을 걸다)》(이,2012)
         == 수 경력 ==
         *2013 제13회 [[황순원문학]]
         *2009 제54회 [[현대문학]]
         *2008 제16회 [[오수문학]]
         *2004 제11회 [[이수문학]]
         *2000 제33회 [[한국일보문학]]
         *1999 제30회 [[동인문학]]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인문학자]][[분류:한국일보문학자]][[분류:현대문학자]][[분류:오수문학자]]
  • Victoria II/정당 . . . . 28회 일치
         모든 정당은 사마다 최소 하나씩 존재하며, 여러 특성을 조합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특성들은 해당 정당이 집권당이 되었을 경우 적용된다. 집권당은 국가의 정치 체제에 따라 플레이어가 직접 임명하거나 총선을 통해 임명하게 된다.
         실제 역사 해당 사을 가진-혹은 그렇게 개발자들이 생각한-정치 세력이 있었다면 정당으로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클론 정당으로 튀어나온다.
         == 사 ==
         해당 정당이 개혁을 얼마나 지지하는가에 향을 끼친다. 개혁은 집권당이 하는게 아니라 근데 원 의회에서 하는거라는게 함정.
          징색은 짙은 파랑색. 개혁을 항 반대하며 폐지하려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보수파와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징색은 파랑색. 현재 황에 만족하며 변화를 바라지 않는 이들. 행복할 경우 절대로 개혁을 지지하지 않지만 POP의 투쟁성이 높을 경우 분열되어서 일부는 정치적/사회적 개혁을 지지한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반동과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게임 내에서는 [[장제스]]의 [[국민당]]이 이 성향으로 나온다.
          징색은 노랑색. 정치적 개혁은 항 지지하지만 POP의 투쟁성이 높을 경우에만 사회적 개혁을 지지한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무정부 자유주의자와 연대한다. 게임 내에서는 [[흥선 대원군]] 정권이 이 성향으로 등장한다.
          징색은 짙은 노랑색. 초반부부터 등장한다. 개혁을 항 반대하며 폐지하려 하는 이들. 허구한날 정권을 잡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자유주의자와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징색은 빨강색. 중반부부터 등장한다. 사회적 개혁을 항 지지하지만 정치적 개혁은 POP의 투쟁성이 높지 않은 이 반대한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공산주의자와 연대해 총선에 나온다.
          징색은 짙은 빨강색. 사회주의자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등장한다. 사회적 개혁을 항 지지하지만 정치적 개혁은 반대하며 폐지하려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투쟁성이 낮을 경우 사회주의자와 연대한다.
          징색은 검은색. 후반부에 등장한다. 집권하지 않을 경우 정치적/사회적 개혁을 항 반대하지만 집권할 경우 사회적 개혁을 지지한다. 하지만 정치적 개혁을 반대하며 폐지하려 한다.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연정할 애들도 없는 찐따들이다.
         관세에 향을 끼친다.
          인들의 거래에 간섭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관세를 폐지할 수 있지만 평균치의 125% 수준까지 밖에 끌어올릴 수 없다.
         플레이어와 자본가 POP의 공장, 철로의 관리 가능 여부와 세금 한도, 공장 효율 등에 향을 끼친다. 그런데 못 알아먹겠으니 관리 가능 여부만 쓸거임 ^오^.
          정부가 품 및 서비스에 대해 모든 결정권을 가지길 원한다. 자본가 POP는 국내 산업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직접적인 효과는 없다. Vic2 위키 말로는 디시전과 이벤트에 향을 준다더라.
         선거권과 문화 동화율에 향을 미친다.
         군대의 효율, 전쟁명분 조작 속도, 동원령으로 생성되는 병력, 군대가 퍼먹는 보급품 등에 향을 끼친다.
  • 기간트 . . . . 28회 일치
         [[미래소년 코난]]에 등장하는 거대 비행체. 말 그대로 공중요새에 가까운 물건이다. 과거 세계를 멸망직전까지 몰아붙였던 원흉으로, 당시에는 소형 양산기들이 셀 수조차 없을 만큼 하늘을 뒤덮었다고....... 본 작품의 시기에는 인더스트리아의 [[삼각탑]] 옆에 숨겨진 격납고에 대형기 1기가 잔존한 태였다. 국내 방판에선 우주 비행기라고 부른다.
         원래 시민들이 일으킨 혁명에서 플라잉 머신이 추락하면서 죽은 줄 알았던 레프카는 살아남은 태였다. 이들은 기간트의 격납고에 숨어있었다가 [[삼각탑]]의 주조종실을 기습해서 기간트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지하 격납고의 문을 열고 기간트를 출격시킨다. 이때의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작중 등장한 다른 비행체는 물론 어떠한 무기와 견주어도 대단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솔직히 작중 시대에서는 정적인 교전에서 대등하다고 볼 존재가 없으며, 그야말로 전쟁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한 존재다. 그렇기에 레프카는 기간트를 부활시켜 세을 지배하는데 쓰려 했다. 그러나 이런 기간트조차도 코난과 그의 친구들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최후에는 코난이 탑승하게 된 탈출용 부분 외에는 바다에 추락한 후 대폭발한다. 이 과정에서 레프카와 심복들은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나온 걸 봐도 이들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었다. 불타던 기간트가 바다로 추락할 당시 엄청난 파도와 그 압력을 봐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거니와 그 거리에서 떨어진 충격을 봐도. 게다가 마지막에 바다로 추락하며 기간트가 터진 위력은 거의 핵폭발급이었다.
         참고로 기간트가 추락한 바다 아래에는 과거 시대의 도시가 있었다. 기간트가 구시대의 징물로도 해석될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의미깊은 부분.
          * 무장도 다양하며, 수량이 많다. 작품 전개 방어용 대공화기 위주로만 등장하지만 총탑만 따져도 100기가 넘어가며, 여기에 대포를 갖춘 선회포탑이 있고, 동체 중심부 근방에는 [[레이저]] [[포탑]]까지 있다. 일단 요격하려는 [[전투기]]를 대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으며, 레이저 포탑의 경우 지 목표도 사격이 가능한데, 단 1격에 삼각탑의 반사경 1개를 개발살내고 삼각탑을 반신불수로 만들었을 정도로 위력이 세다. 그리고 이런 총탑과 포탑은 모두 수납이 가능하므로 사용시에만 돌출하기 때문에 비행성능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이 외에도 설정으로는 동체 하부에 초자력 병기를 보유하지만, 작품에는 나오지 못했다.
          * 방어력 및 장갑도 충실하다. 동체와 날개는 기본적으로 [[기관포]]이하는 아예 튕겨내버리며, 자신의 총탑으로 집중사격해도 표면만 좀 긁히고 마는 수준의 단단함을 자랑한다. 물론 대포를 장비한 선회포탑의 사격으로는 손을 입지만 비행에는 지장이 없는 국부적인 손만 입으며, 레이저 포탑으로는 큰 손을 입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발 맞는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여기에 자동소화설비도 갖추어져 있으며, 엔진이나 수직꼬리날개등의 경우에는 손을 너무 입어서 복구가 불가능하거나 연쇄폭발 위험성이 있으면 임의로 비행중에 분리가 가능하다. 그리고 기체 각부의 수리나 유지를 위해 승무원을 빨리 보낼 목적으로 동력이 있는 열차가 움직이는 통로가 동체와 날개의 각 부분에 매설되어 있다.
          만일 더 이 피해를 감당하지 어려워서 추락할 지경에 놓이더라도 기수에 별도의 탈출장치가 있으며, 해당 탈출장치는 자력비행이 가능하다.
          * 비행능력도 탁월하다. 우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직이착륙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주선]]도 아닌 주제에 '''단독으로 대기권 돌파 및 우주공간 진입도 가능하다.''' 물론 우주공간에서 다시 지구로 재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우주공간으로 올라가면 태양 에너지를 직접 받으므로 동력원 문제가 해결되면서 반구적으로 지속비행이 가능해지고, 따라서 항속거리는 이론 무한대에 가깝다. 덤으로 태양 에너지로 초자력 병기를 충전해 사용할 수도 있다.
          * 신뢰성 및 내구성도 뛰어나다. 격납고에서 제대로 된 정비를 받지 못한채 수십년간 처박힌 신세였지만, 태양 에너지를 주입받자마자 이륙이 가능했다. 여기에 숙련도가 떨어지고 정원에 한참 모자라는 인원이 운용했지만 정적인 비행이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최종전쟁 이후의 지구는 [[대공포]]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태였으므로 이 황에서는 단 1기만 동작이 가능하더라도 [[세계정복]]이 가능해진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며, 그걸 충족할 에너지는 태양 에너지뿐이다. 레프카가 기간트를 굴리기 위해 태양 에너지를 손에 넣으려고 광분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레프카가 권좌에서 쫒겨난 황이었고, 아직 자신을 따르는 얼마안되는 부하[* 애니에서 나온 부하들 수는 많아도 10명이 넘을까 말까 정말이지 수가 적었다! 게다가 이 가운데 항복하여 같이 공존하자고 충고하는 부하 1명을 레프카는 군말없이 쏴죽여버렸다.]들만 이끌고 삼각탑에서 탈출하는 방식으로 출격했기 때문에 더 이 정비나 인원보충을 받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코난 일행의 방해가 아니더라도 장기간 기간트를 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물론 일부 지역을 점령해서 레프카가 왕국을 세울수는 있겠지만...
          * 인원 부족 및 숙련도 저하 : 레프카의 심복들은 숫자가 적은데다가 기간트가 원래 1급 비밀에 가까운 물건이라서 해당 기체의 성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황이었다. 따라서 간신히 조종블록에서 다른 곳을 원격조종하는 수준만 가능했기 때문에 엔진실등 중요 부위에 인원을 하나도 배치하지 못했다. 그래서 코난 일행이 파괴공작을 쉽게 한 것이다.
          설으로 숙련도까지 크게 부족해서 일이 터지면 레프카가 직접 승무원들에게 하나하나 지시하는 것도 모자라서 직접 조치를 취해야 했다.[* 코난 일행 활약으로 기간트에 큰 불이 나는데도 우왕좌왕 당황하며 작은 소화기로 끄려고 했다. 직접 간 레프카가 한심하다면서 자동소화장치를 작동하고나서야 그 불을 껐을 정도.] 게다가 레이저 포탑을 함부로 사용하다가 오사를 내는 레프카 모습을 보면 레프카도 100% 기간트의 특성을 파악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 모든 기능에 승무원이 필요 : 첨단기기답지 않게 총탑의 사격부터 비행의 유지등 여러 분야에 다수의 승무원이 필요하다. 즉 인공지능이나 자동화 사격장치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총탑은 [[B-29]]처럼 총탑을 담당한 승무원이 별도의 감시탑에서 총탑들을 조종해서 사격하는 형태를 취한다. 가뜩이나 인원이 부족한 황에서 이렇게 승무원이 많이 필요해지니 엔진실같은 중요 지역에 승무원을 1명도 배치하지 못한 것이다.
          * 코난 일행의 활약과 레프카의 대응 실수 : 원래 코난 일행은 이런 파괴공작에는 이골이 난 정도로 달인인데다가, 레프카는 성질이 급한 편이다. 이런 요인이 시너지를 이루자 파괴공작 + 레프카의 오사등으로 인해 기간트가 비행능력을 유지하지 못할 수준의 손을 입게 된다.
  • 김관용 . . . . 28회 일치
         |직책 = [[경북도지사]]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북도]] [[구미시]]
         |학력 = [[남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웹사이트 = [http://www.gb.go.kr/governor2014/pages/index.jsp 김관용 홈페이지]<br />[http://pf.kakao.com/_YdTFd 카카오 플러스친구]<br />[http://blog.naver.com/likegy/ 네이버 블로그]<br />[http://www.instagram.com/kimkwanyong1/ 인스타그램]<br />[https://twitter.com/kimkwanyong1 트위터]<br />[https://www.facebook.com/kimkwanyong1 페이스북]
         '''김관용'''(金寬容, [[1942년]] [[11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민선 4·5·6기 제29·30·31대 [[경북도지사]]이다.
         * 1969년 [[남대학교]] 경제학 학사
         * 2001년 남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 1989년 7월: 경북도 구미세무서 서장
         * 1999년 7월: 경북도 시장, 군수 협의회 회장
         * 2006년 7월 ~ 2018년 6월: [[경북도지사]] (민선4·5·6기)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제6회 지방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경북도지사 예비후보였던 [[박승호 (1957년)|박승호]]는 2014년 3월 3일에 김관용의 석사 학위 논문과 또 다른 표절 대 논문을 입수해 대조한 결과 본지가 보도한 29~48페이지까지 2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 원문 그대로 실은 것뿐만 아니라 4페이지에서 25페이지도 표절했다고 밝혔다. 박 예비후보는 또 "김관용 예비후보의 같은 논문 48~58페이지에서도 1999년 10월 경기개발연구원 [[이기 (학자)|이기]], [[김응례]] 연구원의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지방정부([[경기도]])의 인센티브 연구'라는 연구보고서 38~49페이지를 그대로 옮겼다."고 덧붙였다. [[박승호 (1957년)|박승호]]는 "김관용 예비후보의 논문은 표절을 넘어 복제 수준이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시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f>[http://www.weekly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8036 박승호 "김관용, 논문 표절 또 있다"]《위클리오늘》</ref>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4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29대 | [[지방 관청|지사]] | [[경북도지사|경북도]] | 한나라당 | 961,363 표 | 76.80 | 1위 | 당선_경북 | [[대한민국 제4회 지방 선거|초선]], 민선 4기}}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0대 | [[지방 관청|지사]] | [[경북도지사|경북도]] | 한나라당 | 913,812 표 | 75.36 | 1위 | 당선_경북 |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 경북도#광역자치단체장|재선]], 민선 5기}}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1대 | [[지방 관청|지사]] | [[경북도지사|경북도]] | 새누리당 | 986,989 표 | 77.73 | 1위 | 당선_경북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 경북도#광역자치단체장|3선]], 민선 6기 }}
         |직책 = [[구미시장|경북도 구미시장]]
         |직책 = [[경북도지사]]
         |전임자 = [[박준 (1946년)|박준]]
         {{경북도지사}}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선산 김씨]][[분류:구미시 출신]][[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친박]][[분류: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후보]]
  • 디펜더 2 . . . . 28회 일치
         전작과는 달리 한글 번역이 되었는데, 번역이 당히 엉망이다. 'Strength'를 힘이 아닌 발음인 '스트렝스'라고 번역하지를 않나, 'Final Judgement'를 '말일심판'이라고 번역하지를 않나, 'Life'를 '생활'이라고 번역하지를 않나, 'Kills'를 '죽이기'라고 번역하거나 'Final Fantasy'를 직역해서 '최종환'이라 번역하는 등.... 위의 몇 오역된 표현들이 중국식이고, 이 게임이 [[중국]]에서도 서비스가 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중국 번역을 중역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 사실 Droidhen이 중국 회사인걸 생각해보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자원은 골드와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골드는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전투 후의 보으로 받는다. 보석은 전투 후의 보으로만 받으며(스테이지 모드에서는 2개, 대전에서는 1개), 업그레이드와 MP 회복에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보석을 쓸 곳은 많은데 비해 얻기는 어려우니 MP 회복보다는 기술 업그레이드용으로 쓰는 것이 훨씬 낫다.
         스테이지 모드(단일)와 대결 모드로 나뉘는데, 특이하게도 대결 모드가 플레이어가 사망할때까지 끝나지 않는 무한 전투다. 대방은 랜덤으로 매치되며 1:1이다. 오래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데, 대방이 죽는다고 해서 게임이 끝나진 않으며 자신이 사망할때까지 계속 게임을 이어갈 수 있다. 우측 단의 화면으로 대방의 현황을 볼 수 있으며 몬스터의 출현패턴은 양쪽 다 동일하다. 승리시 살아남은 시간에 비례하는 골드와 경험치를 받을 수 있으며 패배해도 경험치나 골드는 받을 수 있지만(죽인 몬스터 수당 1씩 받는다.) 보석은 받지 못하므로 주의.
         덧붙여 대와 자신의 스펙(정확히 어떤 조건인지는 [[추가바람]])에 따라 난이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3분 이 버티기가 당히 힘들다.
          스킬특성 투석기와 보스1말고는 쓸일이 없고 그마저도 보스1에게는 강력일격으로 타격을 방지하는게 대부분이라 사실 강력일격과 성벽을 올리는게 이득이다
          * 베테랑 헌터 - 다중화살 2 필요. 한 라운드를 클리어할 때마다 얻는 경험치가 증가한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성능이 좋아지는 활인 최종환을 위해 존재하는 스킬. 9레벨이 최고 레벨이다.
          * 빙첨주 - 얼음계 공격. 따로 연구를 해야 사용할 수 있다. 주변 적들에 얼음 속성 피해를 입히고 일시적으로 얼린다. 강화판은 지신성(마력연구 4, 빙첨주 3 필요) -> 빙하세기(마력연구 6, 지신성 3 필요).
          * 환지궁 - 보석을 주고 사야 하는 대신, 힘과 민첩성을 모두 증가시켜 주고 그 보조기들도 함께 강화시켜 준다.
          * 최종환 - 보석 250개. 말 그대로 마지막 단계의 석궁이다. 현재 레벨에 따라 강화치가 달라지는 것이 특징.최종황이 환지궁 최종단계보다 좋아지는것은 레벨50이후
         40부터 10레벨간은 환지궁 최종단계가 옵션이 뛰어나다
          * 수호자 - 스테이지를 일정 수 이 클리어하면 획득. 솔로 플레이 시의 경험치량이 많아진다.
          * 전술대사 - 대전 모드에서 일정 수 이 승리하면 획득. 대전 모드 플레이 시의 경험치량이 많아진다.
          * 화계조종 - 화염 속성 마법을 일정 횟수 이 사용하면 획득. 화염 속성 마법의 공격력이 증가한다.
          * 빙계조종 - 얼음 속성 마법을 일정 횟수 이 사용하면 획득. 얼음 속성 마법의 공격력이 증가한다.
          * 전계조종 - 전기 속성 마법을 일정 횟수 이 사용하면 획득. 전기 속성 마법의 공격력이 증가한다.
          * 투석기 - 이번작에서 새로 추가된 몬스터. 원거리형으로 이동속도, 공격속도 모두 악마보다 크게 떨어지지만 공격력이 15로 훨씬 높고 체력도 끔찍하게 높으며 빙결과 마비의 향을 받지 않는다.
          * 보스1 - 거대한 오크. 마법 공격을 받아도 마법의 향을 받지 않고 뒤로 튕겨져 나가기만 한다. 화살로 공격시 확률적으로 다른 Y축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조금 귀찮다. 공격력은 7.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28회 일치
         일본의 라이트 노벨로 한국에도 정발되었다. 작가는 [[마이사카 코우]]. '로마 제국'을 모티브로 한 가의 제국 '롬니아 제국'이 초대 황제의 갑작스런 서거로 인해 혼란에 빠지는 것을 주인공 '사이파카르'가 수습하고 패업을 이뤄낸다는 내용.
          * 롬니아 제국 : 변방 소국 중 하나인 '롬니아 왕국'이 정복활동 끝에 서방 세계의 8할을 차지하면서 성립된 제국. 이름은 물론 지도부터가 로마제국의 전성기 판도를 연시키는 모양.
          * 사이파카르 : 주인공. 6황자. 바보같이 보이는 면이 있지만 실제로는 야심가이면서도 신중하고 인내심이 많은 성격. 그 재능 때문에 오히려 황제에게 경계심을 사서 변경으로 쫓겨간다. 주변의 여성 가신들에게 하나같이 사랑받고 있는 게 특징.
          * 스테라스테라 : 사이파카르의 교육담당관. 황제를 대신해 사이파카르를 제어하고 그 동태를 보고하는 역할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이파카르를 흠모하여 자신의 처지 때문에 갈등한다. 무투파가 대부분인 가신단 내에서 몇 안되는 '지모' 담당.
          * 리 인 : 사이파카르의 식객으로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글래머. 사이파카르야말로 제국의 통치자에 합당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다.
          * 프레이야 : 사이파카르의 친위대장. 여자이면서도 빼어난 창술을 자랑한다. 사이파카르 주변의 여인들 중 가장 거유라서 다른 여자들에게 견제받고 있다. 혼자 멋대로 생각하고 비약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 네무네모 : 산악민족 출신으로 사이파카르를 그 언행 하나하나까지 전부 경애하고 있다.
          * 슈라투 : 사이파카르의 가신 중 유일한(?) 남성. 특기는 문서 위조 및 날조. 제국이 천하를 평정한 후의 평화로운 세에 지루해한다.
          * 소피 : 사이파카르의 시녀. 유사시에 전쟁터에서도 수발을 들 경우에 대비해 일정 수준 이의 군사 기술도 연마했다. 평소에는 온화하지만 의외로 가차없는 성격이기도 있다.
          * 제피 : 소피의 동생으로 여장남자. 그 존재 때문에 사이파카르는 실은 남색 취향도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어지간한 여자보다도 귀여워서 다른 여자들에게 성희롱당하기도 했다. ~~외모와 달리, 크고 아름다운 그것을 지녔다.~~ 누나를 매우 잘 따르는 시스콘.
          * 그라쿠스 : 롬니아 제국에게 멸망당한 구 에스파르 왕국의 잔당을 이끌던 인물. 왕국 재건을 명분으로 산적질을 하다 사이파카르 일행과 만나게 되어, 프레이야와 결투를 벌인 뒤 일행에게 설득되어 부하가 된다. 자신과 대등한 무예를 가진 프레이야를 보고 아내로 삼고 싶어한다.
          * 롬니에우스 1세 : 롬니아 제국을 당대에 세운 걸. 군사와 정치에 두루 통달한 먼치킨으로, 사이파카르의 재능을 높이 사면서도 그 때문에 오히려 안정기에 들어선 제국에 화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의 세력을 빼앗고 변경으로 좌천시킨다. 그러나 사이파카르가 임지로 가던 도중에 사고로 서거하고 만다.
          * 캘거리 : 제국의 재. 딸이 황태자의 정비이다. 사이파카르를 비롯하여 권세에 방해가 될 정적들을 제거하려고 획책한다.
          * 리셉트 : 캘거리의 비서관. 재의 '암시'를 읽어내어 정적들을 제거하는 뒷공작을 수행하는 '까마귀'란 조직을 이끌고 있다.
          * 요코 : 일본 풍이 강한 의을 한 극동 출신의 여인으로 부군단장. 무기는 카타나.
          * 록시느 : 4황자. 동방 변경주로 가는 길목인 앰브로우 주의 주로 황태자와 사이가 나빠 숙청 대에 포함되어 있다.
  • 마철준 . . . . 28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소속팀 ||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 (2003) [br]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 (2004~2012.7) [br] [[무|광주 무]] (군 복무) (2007~2008) [br] [[전북 현대 모터스]] (2012.7~2012.12) [br] [[광주 FC]] (2013~2015) ||
         [[경북도]] [[포항시]] 출신으로 포항제철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003년 경희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모 프로 팀과 입단 계약을 조율하였으나 협이 뜻밖에 결렬되어 미아 신세가 되고 말았고 그렇게 방황하다 2003년 [[고양 자이크로 FC|김포 할렐루야]]에 입단하여 K2리거로 실업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2004 시즌을 앞두고 2004 K리그 자유선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자유 계약으로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입단 첫 시즌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풀백]]을 가리지않고 주전 선수들의 백업용으로 활동하다 투쟁심과 꾸준한 경기 운 능력 등을 [[정해성]] 감독에게 높이 평가받아 후에 부천 SK의 주전 수비수로 도약하는데 성공하였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붙박이 사이드 [[풀백]]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마철준은 안정적인 경기 운 능력과 기복 없는 플레이로 오랜 시간 [[제주 유나이티드]]의 측면을 책임지다 2012년 32살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신인 및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 [[무|광주 무]] ====
         2006 시즌을 마치고 군 복무를 위해서 [[무|광주 무]]에 입대하였고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2008년 11월 10일 팀에 복귀하였다.
         2012 시즌 여름 이적시장이 다가오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5928|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는 [[최철순]]의 [[무]] 입대 등으로 수비 서브 멤버가 시급한 태였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가 장기인 마철준의 입은 적절한 선택인듯 보였다. 하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는 [[박원재]] 선수마저 부 당하면서 마철준을 급히 주전 수비수로 쓰게 되었고,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이적하기 전부터 리그 전반기를 통으로 쉬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제 컨디션이 아닌 태로 경기를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경기력 문제로 속사정을 모르는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2012 시즌 종료 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계약을 해지하여 자유 계약 신분(FA)이 되었다.
         발 기술이 당히 좋은 편에 속하는 사이드 풀백으로 불렸다. 군더더기 없는 크로스 능력과 간결한 드리블로 SK 유나이티드 시절 전성기를 보내왔으며, 팀의 준우승 멤버로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다. 수비력에 있어서도 악착같은 수비를 잘 보여주며 평균 이은 해준다는 평. 그러나 점차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체력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수비력이 떨어지고 공격 가담 황에서도 크게 힘을 못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분류:1980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제주 유나이티드/은퇴, 이적]] [[분류:무 축구단/전역]] [[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은퇴, 이적]] [[분류:광주 FC/은퇴, 이적]]
  • 성현아 . . . . 28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 신음동 (부거리4길)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sunghyunah_official}}
         [[2002년]]에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되었고,<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2/1887524_13454.html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성현아 마약복용 구속] (2002년 3월 7일, MBC 뉴스데스크)</ref> 2003년에 [[나체|누드]] 화보를 발표한 후 2004년 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출연해 [[칸 화제]]에 진출해 재기에 성공했으며 [[2006년]] SBS [[어느날 갑자기 (2006년 드라마)|어느날 갑자기]]로 정극 복귀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MD포토] 성현아, '4년만의 TV복귀 떨려요' |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0038591| 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곽경훈| 쪽= | 날짜= 2006-02-21| 확인날짜= 2018-09-25}}</ref>
         2010년에 여섯 살 연의 사업가와 재혼하여 아들을 [[출산]]했다. 그러나 재혼한 남편의 사업이 순탄치 않아 별거에 들어갔고, 이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2013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으나 [[2016년]]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를 인정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MBC로부터 출연금지를 받아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언론에 부담느꼈나? 성현아 끝내 제작발표회 불참| url=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276165| 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강은| 쪽= | 날짜= 2018-02-06| 확인날짜= 2018-09-25}}</ref>
         그 이후 [[2018년]] KBS 2TV 아침 TV 소설 [[파도야 파도야]]로 안방극장에 복귀했는데 KBS 정극으로 치자면 1997년 월화 미니시리즈 [[열애 (1997년 드라마)|열애]]<ref>{{뉴스 인용| 제목= '제주 초원'서 그리는'사랑의 수채화' KBS 새미니시리즈 '열애'6일 첫방송 박민·성현아·이정길·정애리등 열연| url=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0300329127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0-03&officeId=00032&pageNo=27&printNo=16233&publishType=00010| 출판사= 경향신문| 저자= 오광수| 쪽= | 날짜= 1997-10-03| 확인날짜= 2018-09-25}}</ref> 이후 21년 만이었으며 그 이후 [[내사랑 누굴까|내 사랑 누굴까]] 등의 KBS 정극에서 섭외가 왔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거절했다.
         * [[1995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아델라이데》 ... 채
         * [[2001년]] [[SBS]] 단막극 《[[SBS 오픈드라마 남과여]] - 나는 Mr. 하이디와 결혼했다》 ... 혜 역
         == 화 ==
         * [[1997년]] 《[[할렐루야 (화)|할렐루야]]》 ... 노유라 역
         * [[2002년]] 《[[보스 륙 작전]]》 ... 명품녀 역
         * [[2004년]] 《[[주홍글씨 (2004년 화)|주홍글씨]]》 ... 지경희 역
         * [[2005년]] 《[[애인 (2005년 화)|애인]]》 ... 여자 역
         * [[2006년]] 《[[시간 (2006년 화)|시간]]》 ... 새희 역
         * [[2016년]] 《[[그물 (화)|그물]]》 ... 전향팀담당자 역
         * [[1997년]] [[SBS]] 《세체험, 온몸을 던져라》 MC
         * [[1997년]] HBS 《진을 찾아라》 MC
         * [[1999년]] [[캐치원]] 《캐치원 화세》 MC
         == 수 경력 ==
         * [[1994년 미스코리아]] 미(美), 포토제닉
  • 원피스/853화 . . . . 28회 일치
          * [[몽키 D. 루피]]는 병사들을 때려잡으며 [[디]]의 행방을 찾는 중.
          * 레이쥬는 디가 방금 떠났다는 것과 푸딩의 본성에 대해 디가 알게 됐다고 전달한다.
          * 한편 디는 성 어딘가에서 "난 돌아가지 못해 루피"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달걀달걀 열매"(타마타마 열매) 능력자. 문자 그대로 달걀이 되는 열매. 달걀->병아리->닭 순으로 강해지는 능력으로 달걀 태에서 페드로에게 당하다 곧 "병아리 자작"으로 부활했던 것이다. 작위도 오르고 전투력도 오른 태라 페드로를 애먹인다. 그러나 결국 페드로에게 또 한 번 베이고 만다.
          * 쓰러진 병아리 자작은 잘려진 몸통 속에서 달걀 같은 내용물이 흘러나오더니 그게 닭의 형태로 변해간다. 이것이 바로 "닭 백작". 이 태가 "진정한 기사"라 불릴 정도로 전투력이 올라간다. 하지만 마지막 변신이라 그런지 당히 시간이 걸리는데 페드로가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다. 변신이 끝나기 전에 타마고 남작의 숨통을 끊으려 하자 부하들이 저지하려 한다.
          * 페드로는 자폭한게 아니었다. [[쵸파]]와 [[캐럿(원피스)|캐럿]]이 거울을 통해 그를 구해낸 것이다. 사실 자폭하려고 했던건 진심이었지만 그 직전에 쵸파 일행이 미러월드를 통해 그를 발견했고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그를 빼돌릴 수 있었다. 쵸파와 캐럿이 "무리 좀 하지 마라"고 타박하자 페드로는 "거울에서 나타나다니, 놀란 건 이쪽"이라 받아친다. 한 번 빅맘의 역을 침범했던 그도 [[샬롯 브륄레]]의 능력에 대해선 몰랐던 모양이다.
          캐럿은 손수 그린 초화를 들고 다니며 거울들에게 "이렇게 생긴 사람 못 봤냐"고 묻는데 잘 그리긴 했지만 너무 미화된 화풍. 페드로는 그 점을 지적하며 도움이 안 된다고 투덜댄다. 그런데 페드로의 생각과 달리 거울들은 그 주인공들을 알아본다. 몇몇 거울이 [[나미(원피스)|나미]]는 본 적이 있다며 그녀가 [[징베]]와 같이 도주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갑자기 징베의 이름이 나오자 일행은 놀란다.
          * 한편 [[몽키 D. 루피]]는 [[디]]를 찾아 헤매며 성안의 적들을 족족 쓰러뜨리고 있다. 벌서 3층 바움까지 진격했는데 부을 입은 몸인데도 그를 쓰러뜨릴 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루피는 일단 디를 부르며 마구잡이로 돌격하고 다니는데 그가 의무실 앞을 지나칠 때 문에서 나온 손이 그의 팔을 잡아 끈다. 이때 루피의 팔에 난 처가 또 벌어진다.
          그건 [[빈스모크 레이쥬]]. 디는 의무실을 떠났지만 그녀는 아직 여기에 남아 있었다. 레이쥬가 루피를 불러들이고 방문을 잠그자 루피를 추적하는 병사들이 문 앞을 지나간다. 일단 루피를 숨겨준 셈이지만 디를 빨리 찾아야 하는 루피는 성가셔 한다. 하지만 그녀가 디의 누나라는 건 기억하고 있다.
          레이쥬는 디를 찾고 있지 않냐고 말을 꺼내며 그가 방금 전에 의무실을 떠났다고 알려준다. 루피는 빨리 디를 찾아서 푸딩에게 모두 속았고 그를 죽이려 하고 있다고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뒤늦게 레이쥬의 부을 발견하고 괜찮냐고 묻는다. 레이쥬는 그 대답 대신 "디는 이미 푸딩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다."고 알려준다. 그녀는 디에게 도망치라고 계속 설득했지만 그는 밀집모자 일행과 이스트 블루의 인질을 계속 걱정해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해준다. 루피는 이스트 블루의 인질이 발라티에의 제프 일행이란걸 알아차린다. 루피는 그들이 정말로 위험하다면 이스트 블루에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가서 싸우겠다고 외친다.
          그때 루피의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낸다. 레이쥬가 먹을 걸 권하지만 루피는 거절하는데 레이쥬는 그가 디 앞에서 "네가 주는 밥이 아니면 안 먹는다"고 선언한걸 기억해낸다. 루피는 디가 속지 않았다면 다행이라며 레이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갑자기 창문으로 달려간다. 레이쥬가 무슨 짓이냐고 묻는데 루피의 대답은 간단하다.
          * 디는 성 어딘가에 홀로 있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빈스모크 저지]]가 제프의 목숨을 빌미로 협박한 일, 그를 제물 취급한 일, 그리고 빅맘의 턱없는 회유, 푸딩의 배신과 자신이 동료들을 지킨다는 미명 하에 폭언을 내뱉앴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디는 그 모든 것들을 이제와서 돌이킬 순 없다며 루피를 떠올린다.
          * 성의 아랫마을에서는 갑자기 하늘에서 추락한 괴한 때문에 소란이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루피였다. 루피는 기진맥진하고 처투성이가 돼서도 디를 기다리기로 약속한 그 자리로 가겠다고 다시 일어선다.
  • 이하영(강사) . . . . 28회 일치
          * 이름이 비슷한 역 강사는 [[이아]] 항목으로.
         [[EBSi]]의 수학 역 강사. 현 [[서초고등학교]] [[수학교사]].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교육과 98학번.
         2016년 2월 5일 공지사항을 통해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고 밝혔다.[* 사실 그 전에 [[강봉균]] 선생님이 강의에서 이하 선생님의 임신 사실을 먼저 말했었다.] 이로 인해 2017 [[수능특강]]과 [[수능완성]] 강의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2016년 11월 '고2 학평기출의 7대 함정' 강의로 돌아왔다.
         고향은 [[경북도]] [[포항시]]로, 포항제철서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 학창시절 합창단[* 포커스 인터뷰에서 본인이 방황했던 시기 사진으로 합창단 사진이 나왔다.], 전교부회장으로도 활동했었다.
         [[수능개념]]의 경우 중학교 개념, 고1 개념 등등의 수능 비출제 범위이지만 수능 수학의 기초가 되는 부분을 초반에 강의해 기초가 없는 학생들을 배려한다.이후 [[수능특강]], [[수능완성]]등에서 문풀을 할 때도, 어려운 공식 등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며[* 이 부분에서 최위~~어차피 걔넨 ebs 무시하지?~~--무시하는게 아니라 자기들 공부커리에서 ebsi가 주마등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학생들은 잘 동의를 하지 않는다.] 공식을 잘 쓰지 않고 일일히 풀어 쓰는 편.
         그 이외에도 연계교재 문제나, 수능 기출문제의 문제라도 지나치게 복잡한 것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수능 기출도 최근 3개년만 정도를 권하는 등 학습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수학역 난이도가 그리 어렵지 않게 출제되어 선생님의 강의 스타일이 더 맞아들어가고 있다.[* 다만 현장강의나 정모 등에서 온 수강생들을 보면 1등급보다는 2, 3등급 학생이 많이 보인다. 물론 대부분 그 이전에는 4~6등급 등 수포 직전까지 갔던 학생들이 이하 선생님 강의로 성적을 올린 경우이기에 저평가할 수는 절대 없다.][* 다만, EBSi 수학 자체의 문제로, 강사 능력과 별개로 연계교재 위주의 공부로는 신유형이나 등급을 가르는 고난도 문제에 대한 대처는 부족한 건 사실이다.]
         역 [[이아]] 강사와 공통점이 많다. 두분 다 미인 강사로 유명한데다 이름부터가...[* 실제로 이름을 크게 말하지 않으면 둘이 헷갈린다고 과거 강의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화여대 출신에, 해당 역의 중하위권 학생에 포커스를 두고 친절하게 풀어가는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사적으로도 친한 사이라는 과거 강의에서의 언급도 있다.~~그런데 이'아' 선생님 항목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이'하' 선생님 항목은 2016년에야...~~
         가끔 강의 이벤트나 수강생 정모[* 2013년 1월에 했던 ebsi 탐방 정모 이후에는 개인사정으로 하지 않는다.] 품으로 스마일[* 스무살 마음껏 날아오르기 위해 1년만 꾹 참자의 약자]마크와 본인 사진과 이름이 들어간 달력, 파일 등을 주기도 한다.
         수강생 정모의 경우 2013년 [[수능 끝난 고3]] 대으로 한번 한 적이 있다. 이 정모 참가자 중 몇몇 학생들의 인터뷰를 찍어 2014 수능특강에 을 삽입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출산+육아 등 개인적 문제로 하시지 않는 듯.
         저명성이 높은 인터넷 강사이며 ebsi에서 수학역 대표강사, 전임강사도 역임한 적이 있다. 수학역에서 [[심주석]] 정도를 제외하고는 ebsi 내에서 저명성으로는 이 분보다 높은 사람은 거의 없다 봐도 무방.[* 국어의 [[윤혜정]], 어의 [[이아]] 등보다는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편인데, ebs 수학이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라 그런 듯 하다.]
         ebsi의 사회탐구 역 담당의 모 피디[* 진리 피디라고 불린다.]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실제로 지리과의 [[강봉균(강사)|강봉균]] 선생님 라이브 클래스에 둘이 같이 나온 적이 있다!!! 단 2013년 라클이라 지금은 아쉽게도 지워져 볼 수 없다. 강봉균 강사와 당히 친하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하, version=129)]
  • 인교진 . . . . 28회 일치
         {{화인 정보
         |웹사이트 = [http://www.keyeast.co.kr/index/artist/profile.asp?art_idx=54 키이스트 인교진]<br>{{싸이월드|gyojin}}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경하는 기업인 인치완<ref>[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152260&year=2013 인교진 아버지, 연 매출 200억 원대 CEO…‘반전 집안’ 눈길↑], 매일경제 2013년 2월 28일자</ref>의 2남 중 첫째로 태어났다.
         2000년 [[문화방송|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재동 역을 맡아 연기생활을 시작한 인교진은 2012년 4월 22일 종된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주말극 《[[내일이 오면 (2011년 드라마)|내일이 오면]]》을 통해 인연을 맺고 연인으로 발전, [[서우]]와 함께 공개 연애를 선언했으나, 2013년 5월 결별하였다. 이후 2014년 4월, 인교진은 12년 간 같은 기획사에서 만나 동료 연기자로 친분을 맺어 온 [[박수진 (1987년)]]과 교제를 시작했으며 동년 10월 4일 결혼식을 올렸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008217748&cp=nv 인교진-박수진 결혼 공식입장 “지난달 초 결혼 프로포즈… 10월 결혼”], [[국민일보]] 2014년 4월 9일자</ref> 그리고 임신 소식이 전해져 태명을 기쁨이로 지었다. 2015년 12월 4일에는 딸이 태어나 그의 딸을 박하은으로 지어 가족으로 발전되기 시작되었다.
         * [[단국대학교]] 문학과 졸업
         * 2003년 [[서울방송|SBS]] 수목드라마 《[[선녀와 사기꾼]]》 ... 고민
         * 2013년 [[MBC]] 단막극 《[[드라마 페스티벌]] - [[이 그 이]]》
         * 2017년 [[KBS2]] 월화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 ... 오만
         * 2017년 [[KBS2]] 월화드라마 《[[저글러스]]》 ... 조무 전무 역
         === 화 ===
         * 2008년 《[[신기전 (화)|신기전]]》 ... 인하 역
         * 2018년~ [[SBS]] 《[[동이몽 2 - 너는 내 운명]]》
         == 수 및 후보 ==
         ! 시
         | [[MBC 연기대]]
         | 연속극부문 베스트 남자 조연
         | [[KBS 연기대]]
         | 남자 조연
         | [[KBS 연기대]]
         | 남자 조연
  • 정겨운 . . . . 28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 웹사이트 = [http://www.c9ent.co.kr/ C9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br>{{인스타그램|gyuwoon_rim}}<br>{{페이스북|ft.jgwoon}}<br>{{싸이월드|44388234}}
         * [[2009년]] [[KBS2]] 납량특집드라마 《[[전설의 고향 (드라마)|전설의 고향]]》〈죽도의 한〉 ... 남헌 역
         === 화 ===
         |[[시간 (2006년 화)|시간]]
         | [[간첩 (화)|간첩]]
         * [[2019년]] SBS [[동이몽 2 - 너는 내 운명]]
         * [[2011년]] 제7회 제천국제음악화제 홍보대사
         == 수 및 후보 ==
         ! 시
         | [[KBS 연기대]]
         | 남자 신인
         | 연기자부문 스타
         | rowspan="2"| [[SBS 연기대]]
         | 뉴스타
         | 연속극부문 남자 연기
         | [[SBS 연기대]]
         | 특별기획부문 남자 우수연기
         | [[SBS 연기대]]
  • 정몽헌 . . . . 28회 일치
         |학력 = [[:en:Fairleigh Dickinson University|페어레이디킨슨대학교 경대학원]] DBA
         |부모 = 아버지 [[정주]], 어머니 [[변중석]]
         |웹사이트 =
         정몽헌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주이 명예 회장이 되면서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하였다. 아버지 [[정주]] 사후 [[금강산 관광 개발]] 사업을 주관하였다.
         그는 현대가의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형제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었는데, 이후 [[2002년]] [[9월]]에 5억 달러 [[대한민국의 특별검사제도#대북송금 특검법|대북 불법송금 사건]]이 터지면서 [[2003년]]에 검찰 조사를 받았고, 추진하던 [[현대아산|대북사업]]의 차질과 현대그룹의 경 악재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 [[연세대학교|연세대학교 경대학원]] MBA
         * [[:en:Fairleigh Dickinson University|페어레이디킨슨대학교 경대학원]] DBA
         * 1981년 2월~1988년 2월 현대선 대표이사 사장
         * 1996년 현대그룹 부회장,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현대선 대표이사 회장
         * 1998년~2000년 현대 경자협의회 공동 의장 (그룹 회장)
         * 2000년 3월 현대 경자협의회 의장
         * 2002년 3월 현대선 비임이사
         == 수 ==
         * 1995년 무역의 날 금탑 산업 훈장, 신산업 경원 올해의 정보통신인
         * 1998년 한국협학회 제3회 한국협
         * 2004년 제2회 통일문화대
         ** 아버지 : [[정주]] (1915 ~ 2001)
         **** 차녀 : 정이 (1984 ~ )
         **** 장남 : 정선 (1985 ~ )
         |직책 = [[현대그룹]] 경자협의회 의장
  • 진격의 거인/92화 . . . . 28회 일치
          * 마레 지군은 턱의 거인 "갤리어드"와 차력의 거인의 힘으로 적의 참호를 돌파하는데 성공한다.
          * 라이너는 게라이드의 원호를 받으며 스라바 요새 초토화에 성공, 지크는 해의 연합함대를 향해 투석으로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 함대는 전멸 당하면서도 함포로 응사, 놀랍게도 그 화력은 라이너의 갑옷을 뚫고 치명을 입힌다.
          * 작전 지역이 가까워지면서 공수부대 지휘관은 강하를 앞두고 간략히 황을 전달한다. 방금 전 보고로는 지군이 장갑열차 파괴에 성공했다. 그러나 요새 내부엔 위협적인 야전포가 있을게 뻔하다. 지휘관은 그 점을 강조하며 브리핑을 마친다.
          공수부대를 실은 마레의 비행선이 스라바 요새 공에 도착한다. 주력은 물론 마레의 전사 [[라이너 베르너]]와 [[지크 예거]]다. 하지만 마레의 전사는 그들만이 아니다. 비행선의 공간 대부분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특이한 적재물이 차지하고 있다. 하나같이 약에 취한 것 처럼 눈에 초점이 없고 입가가 침으로 번들거린다. 이들도 "마레의 전사"다. 자아를 잃었음이 틀림없는 엘디아인들이 정육점의 고기처럼 천장에 매달려서 도하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마레의 지군은 최후의 돌격을 감행한다. 턱의 거인 "갤리어드"가 최전방을 해집어 놓으며 활약한다. 장갑열차가 다니는 선로는 적의 최종 방어선이다. 게라이드는 참호 속의 병력을 쓸어버리고 선로를 철저하게 파괴한다.
          * 중동연합의 저항도 거세다. 다가오는 마레의 병사들은 포격과 기관총 세례를 받으며 쓰러진다. 사격에 몰두하던 적 병사들은 곧 그들 위로 드리운 그림자를 발견한다. 기관총 포탑을 짊어지고 다니는 "차력의 거인"이다. 매우 특이한 거인으로 엎드려 걸어다니며 등에는 한 쌍의 기관총 포탑이 올라가 있다. 얼굴은 말이나 개처럼 길쭉한데 묘한 형태의 철가면을 썼다. 각 포탑에는 병사가 타서 기관총을 난사한다. 적의 기관총 진지 코 앞까지 돌진한 차력의 거인. 포탑의 기관총이 진지 앞의 병력을 섬멸한다. 차력의 거인은 길쭉한 얼굴을 진지로 들이밀어서 지붕을 들어내 버린다. 그 사이 보병들이 진격, 적의 최종 방어선은 이렇게 무력화된다.
          * 전사 후보생 파르코는 낙오된 적의 병사를 자군 참호로 끌어들인다. 총에 맞아서 전투능력을 실한 병사다. 옷을 입던 가비는 그 짓을 보고 뭔 짓이냐고 묻는다. 파르코는 "보는대로 전투능력이 없는 포로를 잡았다"고 대답한다. 그의 지혈이 성공했을 때의 얘기지만. 그들 바로 옆에선 마레인 장교가 총을 입고 투덜거린다. 원래 최전선은 엘디아인의 몫인데, 왜 마레인인 자신이 다쳐야 하냐는 얘기였다.
          파르코는 동료 우도에게 포로의 지혈을 부탁한다. 가비는 그런 모습을 보며 빈정거린다. 국제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어필한다고 자신에게 돌아올 갑옷 거인의 후계자 자리를 뺏을 수는 없다면서. 파르코는 알 바 아니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가비에겐 그런 태도도 이해 보인다.
          만족스럽던 파르코의 표정이 굳어져 간다. 총을 가지고 투덜거리던 마레인 장교가 웃음을 터뜨린다. 기분 좋아보이는 폭소다.
          * 지휘관 마가트와 콜트는 전선의 동향을 주시한다. 마가트는 콜트의 의견을 묻는데, 그는 적 전선을 충분히 타격했으니 전사대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의 퇴로를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시선은 곧 하늘로 향한다. 이제 공의 비행선이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보인다. 마레의 최주력이자 최고전력. 작전의 성패는 그들 몫이다.
          퇴각을 알리는 신호탄이 발사되자 병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퇴한다. 어하다간 휘말린다. 병사들이 참호로 돌아오는 가운데 후보생들은 막 강하가 시작된 하늘을 쳐다본다. 가비가 시작됐다고 중얼거린다.
          그 목소리에 공명하듯 낙하산에 매달린 엘디아인들이 발광한다. 대낮에 보는 불꽃놀이같다. 지의 엘디아인들, 콜트와 후보생들은 견디기 어렵다는 눈길로 그들의 변신을 바라본다.
          마침내 허공의 엘디아인 낙하산 부대는 같은 수의 지성없는 거인들로 바뀐다. 그저 식욕 뿐인 괴물들이 중력에 따라 요새 위로 쏟아진다. 아래에서 보면 거인이 비처럼 내리는 것 같다. 이들의 육중한 신체는 그 자체로 요새에 폭격을 가하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거인들이 쏟아지는 곳 마다 벽이고 건물이고 관없이 무너져 내린다. 중동연합의 병사들은 허겁지겁 피하지만 그래봐야 의미가 있을까?
          마레 지군은 멀찍히 떨어진 참호에서 그 괴한 종전파티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거인들이 음식을 주워먹는 것처럼 적 병사들을 잡아먹는다. 파르코의 아이러니를 비웃던 장교가 좌우의 엘디아인들을 향해 인깊은 감평을 남긴다.
          * 폭격이 비켜나간 온전한 요새 벽에서 최후의 저항이 이어진다. 지휘관이 말했던 대거인전용 야전포다. 위력이 당해서 벽 위를 공격할 수 없는 작은 거인들은 속절없이 박살난다. 라이너는 낙하하면서 이 야전포의 숫자와 위치를 파악한다. 약 29대. 당한 숫자가 기동 중이다. 거인병력의 6할은 낙하와 동시에 전멸했으니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하지만 라이너에게 치명적인 정도는 아니다. 그보단 벽이란 것 자체가 싫다. 그는 "또 벽이냐"도 중얼거린다. 그건 싫은 기억을 자극한다. 4년 전의 기억을.
          * 갑옷의 거인이 낙하. 가비는 그것을 보고 "라이너, 조심해"라고 작게 속삭인다. 옆에 있던 파르코가 그걸 의식한다. 거기까지 들리진 않았겠지만 라이너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다. 그는 낙하와 동시에 요새 벽 위의 야전포를 차례 차례 쓸어버린다. 문자 그대로 벽 위의 먼지를 쓸어내는 것처럼. 적들은 대거인전용 철갑탄으로 응수한다. 이 철갑탄은 라이너의 갑옷을 꿇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라이너는 첫 응사를 막아내지만 오래 노출돼봐야 좋을게 없다. 다음 탄을 장전하는 사이 라이너가 철갑탄을 쏜 쪽으로 우선 달려든다. 하지만 충분히 거리를 좁히기도 전에 사격 준비가 끝난다.
          * 지크를 향해 집중된 포격을 라이너가 대신 맞는 동안, 연합함대가 괴멸한다. 함대의 괴멸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갑옷 거인의 반신이 날아가는건 누구도 예하지 못한 일이다. 마레의 병사들은 작전의 성공도 전쟁도 끝도 기뻐할 겨를이 없었다. 이들은 패배를 당한 것처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부서진 갑옷 거인이 쓰러지는 걸 바라본다. 가비는 망연자실하게 "이럴 수가"라고 중얼거린다.
          * 전쟁은 끝났다. 최후의 보루가 무너진 중동연합은 마레측과 강화협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레에겐 처 뿐인 승리였다. 이제 거인의 힘이 기계화된 병기를 능가할 수가 없다. 마레는 전력 보강을 위해 한 시라도 빨리 시조의 거인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28회 일치
         ||<#878787> '''{{{#EEE156 학력}}}''' ||<(> [[경희대학교]] 연극화학과 (학사) ||
         ''' 2000년대 정급 R&B 남자 보컬.'''[* 물론 2018년 현재에도 당한 수준이다.]
         남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아현직업학교[* 현재는 아현산업정보학교로 [[개명]]했다. 특히 [[실용음악과]]가 매우 [[인지도]]가 높고 학생들의 실력도 매우 뛰어나다. [[비스트(아이돌)|비스트]]의 [[이기광]], [[양요섭]], [[K팝 스타]]의 백지웅, [[K팝 스타 시즌3]]의 [[남주]], 허니핑거식스의 황예린 등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매우 많다.]라는 위탁고등학교 실용음악과를 다녔다.[* 직업학교라서 본교인 광문고등학교는 일주일에 한번 가는 식으로 가끔씩 방문하고, 나머지 일수에 아현직업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듣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거다. 사실 여느 [[인문계고등학교|인문계고]]의 직업반들도 이런 식으로 운이 된다.] [[휘성]], [[박효신]], [[UV]]의 [[뮤지]][* 그런데 서로 같은 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잘 모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등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휘성은 당시 A4라는 그룹으로 이미 가수 활동을 하는 중이었고, 박효신은 워낙에 학교에서 유명하던 터라 어린 마음에 '나보다 잘하나'하는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엔 과와 반이 달라서 그리 친하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데뷔 후에 방송에서 자주 만나며 친해졌다고. 휘성의 말에 따르면 당시 환희는 대형 기획사([[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잘생긴데다 노래와 춤이 기가 막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학교에서는 보여주질 않아 더 전설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현재의 터프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에 비해서는 말이 없고 조용한 ~~자발적 아싸~~ 모범생 타입이었다고.
         휘성과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꽤나 친한지 매번 앨범의 땡스투에 서로의 이름을 적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일명 '저마다의 길' 이전 마지막 방송인 절친노트에 휘성이 중재자로 나오기로 했다. 2009년과 2010년엔 환희와 휘성의 활동 시기가 겹쳐 예능이나 행사에 동반 게스트로 자주 나갔다. 2018년에 환희와 휘성은 엠넷 음악예능 더콜에서 그들의 20년 가까이 되는 우정을 지켜 볼수있던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 [[박효신]]과는 환희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0년 동안 사적으로 만난 건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한다. 그래도 박효신 말로는 환희는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것처럼 어색하지 않은 편한 사이라고.
         1집 녹음 당시 회사와 주변의 권유에 따라 일부러 목소리를 얇게 내었다. 실제로는 데뷔 전부터 굵고 낮은 목소리에 가까웠다. 목소리를 얇게 내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유진(작곡가)|유진]], [[강타]], [[신혜성]]같은 SM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더니 돌아온 건 "'''강타 + 환희 = 환타'''"냐는 비아냥 뿐.(...) 그 때부터 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후 앨범마다 목소리가 진화한다. 실제로 플라이투더스카이 1집을 듣고 "'''환희 목소리가 좋아서 계속 찾아 들었는데, 멤버가 바뀐거냐'''?(...)"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
         3집부터는 얇게 내던 목소리를 버리고[* 3집의 경우 창법 변화 과도기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일부 노래는 아직 얇은 목소리가 확연히 남아있는 걸 느낄 수가 있다. 그 예로, sea of love에서 들리는 굵은 목소리에 반해 rain에서 환희의 목소리는 조금 얇은 편이다.] 4집 즈음부터 [[소몰이창법]]을 구사했다. 훗날 회하길 Missing You 당시엔 [[소]]를 한 2만마리 정도 몰았다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8&aid=0000354994|#]] 기본적으로 굵고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여기에 흉성을 가미하여 매우 깊이있는 중저음을 가진 보컬이 되었다. 음역폭이 매우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특유의 기교와 애드립은 수준급. 이 때문인지 [[김구라]]의 [[가요광장]]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바이브레이션]] 부분 수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KBS라디오 쿨FM 4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였다. 그 외 수자들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14154|기사]]에서 확인]
         신인 시절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출연하여 최후의 5인까지 살아남았으며 ~~유승준~~-이범수-박경림-김성수 다음으로 오래 생존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도 꽤 적응이 됐는지 임창정, 김조한이 게스트로 와 R&B 브라더스를 결성, 원히 계속되는 애드립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당시 가장 막내라(중간에 2001년을 맞아 스물한 살이 됐다) 다른 출연자들이 게임을 살살 해주는 등 당히 신경을 많이 써준 것이 생존에 가장 크게 기인한 듯 하다. 참고로 브라이언은 초반 광탈.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텐텐클럽을 진행했다. [[브라이언(플라이 투 더 스카이)|브라이언]]은 비자문제로 중도하차하여 환희 단독 DJ라고 봐야되지만 이름은 일단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텐텐클럽이다. [[김연우(가수)|김연우]], [[린(가수)|린]], [[김범수]], [[김현성]], [[서은(가수)|서은]] 등등 실력파 가수들이 게스트로 나와 같이 노래부르던 삼색떡볶이라는 코너가 유명했다. 노래만 편집해서 [[MP3]] 파일로 인기리에 떠돌아다녔을 정도.
         [[화요비]]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촬했었다. [[화요비]]에게 지어준 별명은 다름아닌 개똥이. 장난치기 좋아하는 나쁜 남자 기믹이었으나 ~~네티즌들이 무서웠는지~~ 점점 온순해졌다. 당시 "싸가지 없다"라거나 "차갑다"라는 식의 여론이 당한 스트레스였는지 이후에 방송에서 예능이라 그런 점이 과장됐을 뿐, 실제로 무뚝뚝하긴 하지만 나쁜 남자는 아니라며 자주 억울함을 호소한다. ~~게다가 후반에 나쁜남자 기믹을 좀 죽였더니 이번엔 전보다 재미없다며 난리~~ 결국 금방 하차했다. 가장 빨리 하차한 커플 중 하나. 현재도 [[화요비]]와는 음악적 동료이자 좋은 친구 사이를 유지 중이다. 화요비의 [[화요비/음반 목록|앨범]] 인터뷰 당시, 앨범 공개전에 미리 노래도 들려줘서 환희의 조언도 받고, 다시 우결을 해도 환희와 다시 하고 싶다는 등을 언급했었다.
          * [[Over The Rainbow#s-3|오버 더 레인보우]](2006) - '렉스' 역[* [[드라마]]는 [[망했어요|망했으나]] 환희가 부른 'Tomorrow'라는 OST 곡은 당한 인기를 끌었다. 몇년이 지난 지금도 노래방 OST 차트 위권에서 보이는 노래지만 드라마 제목은 커녕 이게 [[OST]]라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출연한 3개의 드라마가 모두 [[시청률]]이 [[ 좋지 않다| 좋지 못했다]].
         === 화 ===
         데뷔 이전부터 습관성 어깨탈골을 겪고 있다. 예능 촬하다가는 물론이고 콘서트 중에 춤추다가도 빠진 적이 있다. 예능에서 게임 중 빠졌을 때는 공교롭게도 다른 연예인이 같은 게임을 하다 부을 당한 적이 있어 기사가 나는 등 해당 프로그램이 조금 욕을 먹었으나 본인은 "자주 그런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창 시절에 야구부를 하고 싶었으나 탈골로 실격 당했다고 한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멤버 물망에도 올랐었으나 같은 결과. 주변 사람들도 적응이 되어서 어깨가 빠지면 두어명이서 같이 힘 모아 끼워 넣는다고(...) 현역을 위해 재검을 받았으나 결국 공익판정을 받았다.
         워낙에 남자 이미지라 예전 소속사였던 [[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들 사이에선 매니저 차 안타고 늘 바이크 타고 출근하더라는 둥 회사 주변 주민들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처리했다는 둥 일명 '환희 선배님 전설'이라는게 도시전설처럼 떠돌았다고 [[슈퍼주니어]]가 방송에서 이야기 한 적이 있다.
  • 가희 . . . . 27회 일치
         | 본명 = 박지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br/> (현재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 웹사이트 = {{트위터|misskahi}}
         '''가희'''({{본명|박지}}, [[1980년]] [[12월 25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A%B0%80%ED%9D%AC&os=174175 네이버 인물 정보]</ref><ref>[http://search.nate.com/search/all.html?q=%B0%A1%C8%F1&hi=PR262528&ht=h_pf&csn=12&dsn=4&asn=001200294 네이트 인물 정보]</ref> 가희는 1980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백댄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0년 [[DJ DOC]]의 메인 댄서가 된 이후로 수많은 가수들의 댄서, 안무 코치로 활동했다.
         [[1980년]] 12월 25일 대구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가던 가희는 16살 때 음악 그룹 [[룰라 (음악 그룹)|룰라]]를 보고 춤에 매력을 느껴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가족의 거센 반대로 인해서 그녀는 정식으로 댄스 수업을 받을 수도 없었고 혼자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런 가희의 부모님은 가희를 지방에 있는 대학에 보냈고 가희는 결국에는 더 이 이대로만 있을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고향을 떠나서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빈손으로 서울로 올라온 그녀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백업댄서가 됐다.
         가희는 애프터스쿨로 활동하기 이전 [[손담비]]와 함께 [[미국]]에서 에스블러쉬라는 그룹으로 활동했으며, 한때 핫클럽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라간 적이 있다.<ref>{{뉴스 인용|제목=박가희빌보드 2위 등극 “손담비와 함께한 에스브러시 활동 때 차트 올라”|url=http://kr.ibtimes.com/article/news/20090120/3539369.htm|출판사=아이비 타임즈|저자=디지털 뉴스부|쪽=|날짜=2009-01-20|확인날짜=2009-12-12}}</ref> 또한 애프터스쿨로 데뷔하기 전에는 [[보아]]와 [[손담비]]의 백댄서, [[메이다니]]의 춤 선생님으로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보아 “백댄서였던 가희언니 데뷔때 축하못해 미안” 10년 인연과시|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8101549081001|출판사=뉴스엔|저자=이은지 기자|날짜=2010-08-10|확인날짜=2010-10-09}}</ref> 2005년에는 '''지누션'''의 4집 타이틀곡 전화번호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그 후, 1년 반 동안 [[애프터스쿨]]에 캐스팅 되어 트레이닝을 받았으며, 리더를 맡았다. 가희는 애프터스쿨에 처음 데뷔했을 때 이미 백댄서 경력이 10년이 넘는 고참급 백댄서로 가수로서는 처음이였으나 무대 경력으로는 어지간한 중견가수들 보다도 경력이 훨씬 길었다. 2009년에 첫 싱글 "[[New Schoolgirl]]"로 데뷔했다. 이후 디지털 싱글 "[[Diva (애프터스쿨의 노래)|Diva]]"를 발매하여 활동했고, 2009년 11월에 세 번째 싱글 〈[[너 때문에]]〉를 발매하여 [[SBS 인기가요]] 에서 처음으로 공중파 1위를 차지해 애프터스쿨이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가희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섹시 댄스와 넘치는 끼로 각종 예능을 휩쓸며 예능 섭외 순위 1위로 전격 부했다.<ref>{{뉴스 인용|저자 = 배선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2232146281002|제목=가희, 예능 섭외 1순위로 전격 부 ‘섹시댄스+넘치는 끼’|출판사=뉴스엔|확인날짜=2009-12-23|날짜=2011-01-28}}</ref> 이후 2010년 4월에 세 번째 싱글 "[[Bang! (애프터스쿨의 노래)|Bang!]]"을 발매하여 군악대 컨셉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가희는 SBS 《[[웅호걸]]》에 고정 출연을 해 많은 활약을 펼쳐 2010 [[SBS 연예대]]에서 뉴스타을 수하기도 했다.<ref name="SBS 연예대">{{뉴스 인용|저자 = 머니투데이 김지연, 배선 기자|url=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6&gid=623534&cid=623535&iid=245673&oid=108&aid=0002063139&ptype=011|제목=강호동, SBS연예대..통산 5번째(종합)|출판사=네이버 뉴스|확인날짜=2010-12-31|날짜=2010-12-30}}</ref> 한편, 2010년 6월 1일 에세이집 《플레이 걸즈》 발간 기념식 브런치파티에서 박가희는 솔로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계속 활동이 미루어져 정확한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2011년 2월 14일에는 가희의 데뷔 음반 《[[돌아와 나쁜 너]]》가 발매되었다. 가희는 앨범의 수록곡 〈돌아와 나쁜 너〉와 〈롤러코스터〉를 직접 작사하고 무대 아이디어를 내는 등 앨범에 참여했다.<ref name="뉴스엔">{{뉴스 인용|제목=‘솔로 데뷔’ 가희, 팬들위해 스포일러 자청 ‘미니앨범 살짝 공개’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2100916591002|출판사=뉴스엔|저자=이수연|날짜=2011-02-10|확인날짜=2013-07-28}}</ref> 동명의 타이틀곡 〈돌아와 나쁜 너〉로 활동했는데, 섹시 컨셉으로 갈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예과 달리 성숙하고 몽환적인 컨셉을 들고나왔다.<ref>{{뉴스 인용|제목='솔로데뷔' 가희, '섹시' 버리고 '성숙·파격' 무대 선보여|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102181859301131|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김경민|날짜=2011-02-18|확인날짜=2013-07-28}}</ref> 하지만 《[[뮤직뱅크]]》에서 최고 18위를 기록하고 하락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솔로' 가희, '온리 원'이 될 수 없는 이유|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559854&rrf=nv|출판사=조이뉴스 24|날짜=2011-03-24|확인날짜=2013-07-28}}</ref> 2012년 1월 30일부터는 KBS 드라마 《[[드림하이 2]]》에 기린예고의 선생님 현지수 역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가희 드림하이2 확정, "까칠한 교사로 등장"|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fs=1&ss=5&news_idx=201112081029451500|출판사=뉴스한국|저자=황윤경|날짜=2011-12-08|확인날짜=2013-07-28}}</ref> 2012년 6월에는 애프터스쿨 졸업을 확정지었고, 6월 17일 일본 도쿄돔 시티홀에서 열린 애프터스쿨 콘서트에서 마지막 무대를 섰다.<ref>{{뉴스 인용|제목=가희 마지막 무대 “애프터스쿨 이젠 안녕” 눈물 펑펑|url=http://sports.donga.com/3/all/20120618/47100731/1|출판사=스포츠동아|날짜=2012-06-28|확인날짜=2013-07-28}}</ref>
         가희는 2008년부터 꾸준히 작사, 피처링 활동을 했는데, 대표적으로 애프터스쿨의 "When I Fall", "With U" 등을 작사했고 [[숙희]]의 "One Love"중 랩 가사를 직접 작사하고 피쳐링을 했다. 또한 [[손담비]]의 "BEAT UP BY A GIRL"을 작사하며 작사가로서의 재능을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애프터스쿨 가희, 손담비에 '작사 선물'|url=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broad/2010/0707/20100707101040200000000_8501781378.html|출판사=스포츠 서울|저자=김호 기자|날짜=10/07/07}}</ref> 2010년 겨울에는 애프터스쿨 자선 캐롤 앨범 "[[Happy Pledis 1st Album]]"을 발매했는데, 그 중 수록곡인 "Someone is you"의 가사를 가희의 추억을 담아 썼다.<ref>{{뉴스 인용|제목='뮤뱅' 애프터스쿨, 짧은 미니원피스 눈길 '新 여신컨셉트'|url=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91973830111775010|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한승균|날짜=2010-12-10|확인날짜=2010-12-20}}</ref> 2011년 발매한 첫 솔로 앨범 《[[돌아와 나쁜 너]]》에서 타이틀곡 〈돌아와 나쁜 너〉와 〈롤러코스터〉 역시 직접 작사했다.<ref name="뉴스엔"/>
         == 향 ==
         가희는 "비욘세는 여성에 대한 존중을 메시지로 담은 노래를 많이 불렀거든요. 비욘세의 가창력, 섹시함, 무대 퍼포먼스 모두 좋지만 특히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요. 저도 비욘세처럼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많이 부르고 싶어요."라며 자신의 롤 모델이 [[비욘세 놀스]]라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가희 "예 가능한 모습으로 나오기는 싫었죠"|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21364.htm|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김호|날짜=2011-02-27|확인날짜=2011-02-28}}</ref>
         | 2010 || 《[[웅호걸]]》|| 고정출연 ||
         == 수 목록 ==
         * 2010년 [[SBS 연예대]] 예능 뉴스타 《[[웅호걸]]》 <ref name="SBS 연예대"/>
  • 김재연 (1980년) . . . . 27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 특이사항 = [[헌정]] 사 첫 [[외고]] 출신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
         | 소속임위= [[안전행정위원회]]<br />[[여성가족위원회]]
         '''김재연'''(金在姸,<ref>[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01.jsp?id=8809 조선닷컴 포커스]</ref> [[1980년]] [[10월 30일]] ~ )는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정치인]]이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제19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헌정 사 첫 [[외고]] 출신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일외고]]) 기록을 세웠다.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의원직을 실하였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12199204g 헌재, 통합진보당 해산…재판관 8대 1로 결정] 《한국경제》 2014년 12월 19일 작성</ref><ref>[http://news.donga.com/DKBNEWS/3/all/20141219/68633024/3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국회의원 5인 의원직 실]《DKB News》2014년 12월 19일 작성.</ref>.
         같은 해 3월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학과를 입학했다.<ref>http://blog.daum.net/youth-power/2 이후 생애 내용도 김재연 블로그에서 당수 참조했음</ref> 2001년 [[매향리사격장]] 폐쇄운동 참가를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이듬해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됐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사 최초로 여성으로 10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선거에 도전했으나<ref>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132566</ref> 낙선했다. 이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대의원으로 생활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2004년]] 11월까지 수배자 생활을 했다. 2006년부터 김재연은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에서 학생위원회 대학교육국장으로 활동했다. 2008년에는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직을 맡았고, [[대한민국 제18대 총선|18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대 총선 이후인 2012년 5월 4일 통합진보당 진조사위원회는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이 총체적 부실, 부정이었다고 밝혔다. 이튿날 당 전국위원회는 대표단 총사퇴와 김재연을 포함한 비례대표 후보 14명의 전원 사퇴 권고안을 통과시켰다. 다음날인 5월 6일 김재연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비례 선거는 100% 온라인 선거로 치러졌다" "문제투성이 진조사보고서를 근거로 청년비례 사퇴를 권고한 전국운위원회 결정은 철회되어야 한다" "청년당원들과 청년선거인단의 명예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2050616304606768&outlink=1</ref> 당내 비례경선 부정의혹이 제기된 초반인 3월 20일에는 [[MBC]] [[백분토론]]에 출연해 "당의 온라인투표 시스템을 믿지만, 제기하신 부분이 사실로 밝혀지면 당연히 그렇게(사퇴)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ref>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6064</ref>
         5월 14일 당 최고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도 경쟁명부 비례대표들에 대한 사퇴 권고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튿날 김재연은 [[이석기]] 등과 더불어 국회의원 신분을 국회에 등록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32365</ref> 이후 김재연은 5월 24일 [[한겨레TV]]의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출연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퇴하지 않는다고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왜 청년 비례대표 당선인이 사퇴해야 하는지, 왜 우리 당이 부정선거를 한 비도덕적인 정당으로 낙인 찍혔는지에 대해 천천히 바라볼 수 있게 설명드릴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청년 정치에 대해 많은 분이 기대를 했는데 황이 이렇게 된 것이 너무너무 죄송하다. 저도 사람이니까 정해놓은 답을 갖고 귀를 닫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한번 더 믿어주시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끝까지 이 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34476.html</ref>
         5월 31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황에 떠밀려서 사퇴를 하게 된다면, 지금은 이석기, 김재연이 사퇴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지만 내일, 그 다음은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논란에 대해 "3월, 4월부터 (보수언론에 의해) ‘경기동부’ ‘종북세력’ 논란은 있었다. 이 모든 문제들이 그 연장선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강기갑]] 당시 통합진보당 혁신비대책위원장은 김재연, 이석기 등 당의 제명 권고에 불복한 비례대표 후보자, 당선자들에게 5월 25일까지 자진사퇴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사퇴시한까지 해당 비례대표 후보자, 당선자들이 사퇴하지 않자 강기갑은 당기위원회에 이들을 제소했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당기위원회는 6월 29일, 김재연과 이석기를 최종 출당조치했다. 하지만 정당법 국회의원의 출당은 당 소속 국회의원의 과반수 이의 찬성으로 최종 의결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당적은 유지됐다.
         여러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2012년 7월 초 통합진보당 의원 13명 중 [[경기동부연합]] 등 '구당권파'로 분류된 의원과 [[민주노총]] 출신, [[진보신당]] 탈당파, [[국민참여당]] 출신으로 구성된 '신당권파' 소속 의원은 각각 6명으로 나타났다. 중립적 성향으로 알려진 [[김제남]]의 결정에 따라 김재연의 제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김제남 역시 신당권파의 입장에 동조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뒤 [[심정]] 원내대표 등 신당권파는 7월 26일 의원총회를 열고 김재연, 이석기 제명 안건을 논의했다. 논의 결과 신당권파 6명은 모두 제명에 찬성한 반면, 김제남은 예과 달리 기권표를 던져, 김재연-이석기 제명은 당 소속 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제명안이 부결된 뒤 김재연은 "당이 처를 딛고 통합과 단결을 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결정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4630596</ref><ref>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207/h2012070421135021000.htm</ref><ref>http://news.donga.com/3/all/20120727/48093879/1</ref>
         김재연이 서울에서 경기도로 전입한 이유는 당적지를 옮기기 위함이다. 통합진보당의 당헌 출당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광역시도당의 당기위원회다. 서울에 비해 경기도에 [[경기동부연합]] 등 당권파의 주도권이 강했기 때문에 김재연이 경기도로 이사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편 [[문성현]] 전 민노당 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경기도에) 직장도 없고 거주하지도 않은 채 주민등록만 옮겼다면 편법"이라며 김재연의 전입을 문제삼았다.<ref>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8248375&cloc=olink|article|default</ref>
         김재연 역시 일부 북한과 관련된 부분에서 논란에 선 바가 있다. 국회의원 당선 직후인 2012년 6월 4일 KBS 인터뷰에서 그는 "북한 체제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질문에 "당이 그간 얘기해왔던 평화통일을 위해 대방으로서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것은 정체성이라 생각한다"며 "(북 체제를) 인정하지 말자는 것은 전쟁하자는 것밖에 안 된다. (따라서 북 체제 인정이) 평화통일의 노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정은]] 체제를 인정해야 평화통일을 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또한 같은 자리에서 김재연은 "[[연평해전]] 도발들이 있었는데 그 황에서도 평화를 위해 공격을 해오더라도 참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도 "맞불을 놓으면서 전쟁을 일으키면 안 된다"며 "오히려 지난 (이명박 정부)5년 동안 남북관계 매우 심각히 경색되면서 더 많은 희생과 어려움이 있었기에 남북화해모드를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친북인사냐"란 물음에는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206/h2012060502431521060.htm 김재연 "北이 공격해도 남한은…" 발언 파장] 2012년 6월 5일 한국일보</ref>
         [[공지]]은 김재연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며 비판하였다.<ref>[http://www.gg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09 경기타임스] 2012.05.07 공지,'제2의 이정희' 김재연에 일침 "기자회견 보니 한숨 나온다"]</ref> 평론가 [[진중권]]은 국민이 통합진보당에 비례대표의 표를 준 것은 김재연을 향해 준 것이 아니라며, 김재연의 사퇴를 강하게 주장하였고,<ref>[http://www.abckr.net/sub_read.html?uid=2236§ion=sc1 데일리뉴스앤뷰] 2012.05.08 진중권, "김재연, 드러누워 배 째라는군요"]</ref> 진보 언론들조차 김재연의 사퇴를 종용하였다. 이런 범국민적인 사퇴 여론 속에서 의원 등록을 마쳤다.<ref>[http://media.paran.com/news/view.kth?dirnews=1529304&year=2012&dir=5&rtlog=MV&key=hit&p_eye=news%5Eright%5Ee01%5Emedia%5Emajor 한겨레] 2012.05.15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등록 마쳐]</ref> 언론들은 김재연과 이석기의 국회 입성으로 통합진보당이 국민적 조소와 골칫거리가 되었다고 평가했다.<ref>[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006563 대전일보] 2012.05.26 국민적 조소와 골칫거리 된 통합진보당]</ref> 그리고 이석기+김재연의 사퇴 없이 진보정치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2050909081238019&outlink=1 머니투데이] 2012.05.09 진중권 "이정희 은퇴..이석기+김재연 사퇴" 비판 이어가]</ref> 한편 이 사태가 오랫동안 NL계열에 있던 부정 관행이 낸 산물이며, 통합진보당 내부 당파간 갈등이라는데서, 통합진보당이 반드시 겪어야하는 사건이 폭발된 것이라는 분석들이 제기되었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045354&cp=du 대전일보] 2012.05.03 NL계 당권파 독단에 불만 폭발, 권력투쟁 산물… 公黨 포기한 ‘경선 부정’ 일파만파]</ref> 이런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해 '유죄의 증거가 없으면 무죄'라는 근대 형사법의 식을 들어 진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사례로 밝힌 120곳의 부정사례 당사자들이 참가하는 공청회를 여는 등 강력히 항의 했다.<ref>[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20508_0011090679&cID=10301&pID=10300 뉴시스] 2012.05.08 통합진보, 당권파 거센 공세속 '부정선거'내홍 심각]</ref>
  • 김종훈 (1952년) . . . . 27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br>(현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학력 = [[연세대학교|연세대학교 경학과]]
         |소속임위 =
         |웹사이트 =
         제8회 [[외무고등고시]]에 합격하여 [[1974년]]에 [[외무부]]에 입부하였다. [[노무현 정부]]부터 [[자유무역협정|FTA]]를 담당하며, FTA 협 업무를 수행하면서, [[2008년]] 한미 FTA협을 체결해낸 주역이다. 이후 [[칠레]], [[유럽]] 등과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다. [[외교통부]]의 [[통교섭본부]] 본부장을 역임했다.
         * 2007년 8월 ~ 2011년 12월 : 외교통부 통교섭본부장
         * 2002년 ~ 2004년 : 주샌프란시스코사관 총
         * 2000년 ~ 2002년 : 외교통부 통삽교섭본부 지역통국장
         * 2015년 1월 : 새누리당 인재입위원회 위원
         * 2014년 11월 ~ 2016년 5월 : 제19대 국회 산업통자원위원회 위원
         * 2014년 2월 ~ 2014년 6월 : 제19대 국회 통관계대책특별위원회 새누리당 간사
         * 2012년 11월 ~ 2012년 12월 : 새누리당 대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인재입위원회 위원
         * 2012년 10월 ~ 2012년 12월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직능총괄본부 외교통본부장
         * 2012년 7월 : 새누리당 인재입위원회 위원
         [[2010년]] [[12월 13일]] [[한미 FTA]]와 관련된 세미나에서 FTA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농민을 두고 '정부관리를 매수하여 농업보조금을 타는 다방 농민'이라고 비판하였다. 민주당 부대변인 [[김현 (정치인)|김현]]은 "김종훈 본부장이 숭미사대주의에 빠져 쌀값 폭락과 구제역에 피눈물을 흘리는 농민들의 아픔은 아랑곳 않고 있다"며 "터무니없는 언사를 듣고 있자니 김 본부장이 어느 나라 머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판하였다.<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662115 김종훈 '다방 농민' 발언 일파만파] 《노컷뉴스》 2010년 12월 14일</ref> [[진보신당]]도 "통교섭본부장 그만 두고 다방에서 커피나 마시는 게 더 국익에 도움이 될 것"과 "한미FTA로 인해 고통당할 농민들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공식적으로 비판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2141521251&code=940100 김종훈 ‘다방농민’발언에 “다방에나 가라” 역공] 《경향신문》 2010년 12월 14일</ref>
         또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김종훈은 SBS 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서 강북 출마설에 대해 묻자 강북을 저 어디 어두컴컴한 데'라고 묘사하여 물의를 빚었고,<ref>[http://www.mt.co.kr/edition/se_vote2012/vote_view.php?no=2012032014002808265&sec=news&gb= 김종훈 '강남아니면 컴컴한 곳'? SNS'폭발'] 《머니투데이》 2012년 3월 20일</ref> CBS와의 인터뷰에서 “구멍가게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 20년이 됐다”며 “이것이 한-미 에프티에이(FTA)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발언으로 대한민국내 세업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25380.html “컴컴한 데” 발언 김종훈 “구멍가게 20년전에…”] 《한겨레》 2012년 3월 26일</ref>
         새누리당은 28일 논평을 통해 "4.11 총선거를 앞두고 홍사덕, 김종훈 후보 등 새누리당 후보들의 트위터 계정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며 트위터 계정폭파를 신종 사이버 공격으로 규정하고, "검찰은 트위터 계정폭파 범죄에 대해 즉각 수사에 나서 선거를 방해하려는 집단의 배후를 밝혀내라"고 촉구했다.<ref>[http://news1.kr/articles/608133 새누리 "김종훈 트위터 폭파는 조직적 테러"] 《뉴스1》 2012년 3월 28일 차윤주 기자</ref> 그러나 "트위터 계정폭파란 존재하지 않으며,<ref>[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7745518&ctg=1200 트위터 본사 "계정폭파?...이용규정 위반으로 정지는 된다"] 《중앙일보》 2012년 3월 30일</ref> 오히려 사용자가 반복된 글을 일방적으로 보내는 등 이용규정 위반할 경우 정지된다"는 트위터 본사 측 반박<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330800080 트위터 측 “새누리당, 반복 글 보내 정지된 것” 반박] 《서울신문》 2012년 3월 30일</ref> 으로 새누리당 측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329031607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새누리당, 새 됐네"] 《프레시안》 2012년 3월 29일 이명선 기자</ref><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84981 보수지 신봉하던 새누리, '국제적 대망신' 자초] 《뷰스앤뉴스》 2012년 3월 29일</ref><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5874.html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당했다더니…“국제적 망신살”] 《한겨레》 2012년 3월 29일</ref>
         |직책 = [[통교섭본부|통교섭본부장]]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외교관]][[분류:통교섭본부장]][[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바른미래당의 정치인]]
         [[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한미자유무역협정]][[분류:SK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외이사]]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27회 일치
          * 올마이트의 은퇴 후 급변하는 사회. 히어로의 세력이 약화되고 조직화된 빌런들이 난무한다.
          * 통적인 빌런과는 달리 정체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자신과 닮은 빌런들을 눈여겨 보고 있다.
          * 미디어에서는 연일 히어로 사회의 위기를 떠든다. 드물게 미야기 캐스터처럼 진지한 의견을 내놓는 언론인도 있다. 아저씨도 그만은 인정하는데, 한편으론 또 인정 못한다. 언론에서 말하는건 결국 "올마이트란 존재가 너무 큰 존재"였다는 것. 그의 존재로 인해 가려져 있던 것들이 은퇴와 함께 쏟아져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엔데버가 그렇다. 지금은 명실부 No.1 히어로지만 적어도 일반시민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민들은 엔데버로 딱히 안 되는건 아니지만 올마이트와 비교된다고 말하한다. 아저씨가 보기엔 너무 거친 인물이며 범인이 초인인척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를 초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는 불가항력으로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올랐다. 그건 그의 불행이다.
          현재 엔데버는 오히려 "히어로 약체화의 징"이다. 하는 일도 너무 지나친 부분이 있고 지지층도 2~40대 남성으로 편중되어 있다. 미야기 캐스터는 이렇게 된 마당에 그저 보호만 받기 보단 히어로를 북돋아 약점을 보완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 그는 미야기 캐스터가 말하는 부분은 파워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또 파워를 말하는 거라고 모순되게 생각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반된 두 개의 생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저씨는 신경질적으로 닥치고 있으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올마이트의 존재가 성실한 사람들에겐 든든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녀석들에겐 저주에 불과하고 그 저주가 풀린 지금은 폭주하게 된다고 본다. 그의 말처럼 그가 외출하자마자 한 무리의 빌런이 가를 약탈하는 모습이 보인다.
          * 그와 통화하는 아저씨의 태가 이하다. 기란의 말에 동의하는가 싶더니 곧 부정하고 바쁘다고 하다가 갑자기 한가하다고 대답한다. 기란은 아랑곳 없이 "다비"의 행적을 묻는다. 곧 "시가라키 토무라"가 모이고 싶어한다며 조만간 호출이 있을 거라 알려준다. 아저씨의 태는 점점 나빠져서 정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기란은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는다. 아저씨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나"라고 힘겹게 중얼거린다.
          이마의 처는 그때 생겼다. 그의 분신은 어느 정도 데미지를 받아야 없어졌기 때문에 쉽게 없앨 수도 없었다. 이윽고 분신들은 그를 사로잡고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런 황은 9일간이나 계속됐다. 종국엔 서로 죽인 끝에 모두 사라졌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자신이 진짜 나인지 어떤지 알 수 없게 됐다. 그게 그가 보인 증의 정체다.
          방금 전 점가를 털었던 빌런집단이 괴멸됐다. 그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 타이어, 도로 따위에 엉망으로 융합된 모습이 되어 있다. 어떤 삼인조의 소행인데 적어도 히어로로 보이진 않는다. 가운데의 리더로 보이는 인물은 "다큰 어른이 모여서 고작 편의점 털기"라며 빈정대며 이정도 모였으면 더 큰 목적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 그는 자신이 처리한 빌런들을 "병"이라고 비하하며 고쳐야 하는 대이라고 말한다. 새의 부리같이 생긴 묘한 가면을 쓰고 있다. 신호등 위에는 네 번재 동료도 있는데, 역시 비슷한 가면을 쓰고 있다. 녀석은 리더를 "오버홀"이라 부르며 돈은 받았으니 히어로가 오기 전에 튀자고 한다. 부하의 말에 대답도 없이 타오르는 잔해를 바라보며 "환자들 뿐"이라 중얼거리는데.
          트와이스는 미친 놈들이 직접 있을 곳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대를 발견한 그는 이제 어떻게 할지 다음 작업을 구한다. 이미 히어로 측도 빌런 측도 곤죽처럼 변모하기 시작했다. 중요한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자신이 어떻게 되고 싶나, 어떻게 하고 싶나. 그것이야 말로 중요하다.
          * 웅고 A반이 한창 임시면허 시험을 치르고 있을 무렵, 올마이트는 "어떤 빌런"을 방문한다.
          올마이트가 방문한 대는 올 포 원. 뭘 하느냐 묻는 그에게 올마이트는 "결판을 짓는 것 뿐"이라고 대답한다.
         쓸데없이 하드보일드하게 재등장한 트와이스. 개성은 하나를 두 배로 늘리는 능력으로 심플하지만 매우 활용도가 높다. 하지만 살아있는걸 늘리는건 리스크가 있는 모양인지 본편에서 언급처럼 분신이 진짜를 적대시하는 미친 황이 발생한다.
         마스크를 벗으면 다중인격 성향이 드러나는데 당히 중증. 평소에도 또다른 자아가 생각을 방해하는 수준이다. 마스크를 쓰는 걸로 자아를 확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임간학교편 당시에도 모순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는 등, 본인이 괜찮다고 여길 뿐 전혀 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원래 캐릭터 모델이 데드풀로 추정되는데 실제 데드풀도 다중인격 성향이 있다.
         마그너와 스피너의 일 모습도 나왔는데 의외로 평범. 그런데 그다지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
         올마이트 은퇴 후의 사회도 보다 자세하게 묘사되었는데 당히 혼란에 빠져 있는 걸로 보인다. 빌런들이 조직화돼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히어로측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버홀의 경우 일종의 현금 사냥꾼 같은 이미지인데 정작 본인도 빌런 생활을하는 걸로 보인다. 엔데버는 기껏 No.1 히어로 자리에 올랐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고 있지 않다. 게다가 본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히어로 약체화의 징" 같은 꼴사나운 수식어가 생겨버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8화 . . . . 27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 사무소를 주축으로 한 히어로 팀은 경찰의 협조를 얻어 시에핫사이카이]]의 아지트를 급습한다.
          * 마침내 작전 결행, 원래 계획은 경찰이 장을 제시하고 자택을 수색하는 것이었지만, 초인조을 누르기 무섭게 이변이 발생한다.
          * 오버홀은 이런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키운 부하 "철포옥(텟포다마) 핫사이슈"를 배치한다.
          * [[서 나이트아이]]는 우연찮은 기회에 시에핫사이카이의 부하를 "예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가 핫사이카이 저택 지하의 비밀 시설에서 "에리쨩"과 접촉하는 모습이 확인, 시에핫사이카이에 대한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이 예지에서는 지하시설의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입구부터 에리쨩이 감금됨 방까지 이르는 "최단 루트"는 확보되었고, 작전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오전 8시 담당 경찰서 앞. 지휘를 맡은 담당 형사가 경찰과 히어로의 연합군을 앞에 두고 다음과 같이 브리핑했다. 지리적인 문제는 해결이 됐지만 대측이 개성으로 저지하려 들 경우를 감안해서 현재 확보된 시에핫사이카이 인원들의 개성에 대한 정보도 제공되었다. 작전 목표는 시에핫사이카이의 전 구성원의 확인과 체포. 가능한 신속해야 한다.
          * 기존에 협조하고 있던 히어로들은 대부분 참석했다. [[패트껌]] 사무소도 물론 참석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얼른 가자며 의욕을 보이는데 선배인 [[아마지키 타마키]]는 언제나 그렇듯 시들시들하다.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야)|류큐]]의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도 옆에 있었는데 이들은 잘 모르는 환경이라서 긴장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경찰과의 협력 같은 황은 별로 알려주지 않았다. 류큐도 이런걸 배우지 못해서 신인 시절엔 고생했다고 회고한다.
          패트껌은 타마키에게 "청새치를 먹어둬라"고 권하는데 타마키는 무슨 문인지 모르면서도 일단 먹어둔다.
          * 형사는 히어로들에게 별도의 브리핑을 한다. 그는 조금 난폭한 황이 돼도 어쩔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수황이 오면 바로 조치해달라고 요청한다.
          >대는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폭력배들이다.
          * 같은 시각 시에핫사이카이의 아지트. 표면적으로는 호화로운 저택이다. 그 안의 어느 방. 노쇄한 남자가 중환자 같은 행색으로 누워있다. 그 곁에는 [[오버홀]]이 서있었다. 그는 남자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 8시 30분. 시에핫사이카이의 아지트 앞이 경찰과 히어로들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형사는 장을 읽고 바로 돌입할 테니 신속히 대처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오늘도 동행한 "록록"이란 이름의 레게풍 히어로는 "끈질기다. 안 믿는 거냐"고 투덜거린다. 패트껌이 거기에 "그런 의미가 아니니 심술궂게 굴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가면을 쓴 거구의 시에핫사이카이 조직원이 경찰을 문짝 째로 날려버렸다. 대사만은 선량한 시민 같다.
          * 여기서 류큐가 나선다. 그녀는 개성을 발동해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이, 직접 핫사이카이의 부하를 제압한다. 그녀가 여기는 자신이 대처할 테니 다른 히어로들은 안으로 돌입하라고 하고 네지레와 오챠코, 츠유가 그녀를 서포트한다. 미도리야와 키리시마는 오챠코와 츠유를 응원하며 내부로 돌입한다.
          내부에서도 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부에도 시에핫사이카이의 조직원들이 일행을 방해했다. 가면을 쓰지는 않았지만 수색장을 들이대는 경찰을 향해 개성을 사용한 공격을 가한다. 히어로들은 순식간에 이들을 제압하며 진격을 제촉한다. 나이트아이와 패트껌이 선두에서 이끈다.
          * 그 동안 오버홀은 지하시설을 통해 자리를 피하는 중이다. 곁에 있는 측근은 히어로 일행이 "전속력"으로 "같은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는걸 감지한다. 그건 이들의 목표를 정확히 포착하고 움직인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이곳도 알고 있을 것이며 제대로 걸리면 끝장이다. 측근이 그런 말을 하는데도 오버홀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황이 오는 것도 정했던 바라며 단지 그게 좀 빨랐을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이 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자신이 선별한 부하들을 부르도록 지시한다.
          그렇게 해서 소집된 오버홀의 장기말. "철포옥(텟포다마) 핫사이슈" 8명이다.
  • 로버트 켈리 . . . . 27회 일치
          * 강의계획서에는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끄시오.","앞자리가 비어있으면, 뒤에 앉거나 구석에 앉지마시오."같은 부분까지 있으며, 책 밑에서 몰래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도 안된다고 한다.
          * 공사 구분이 철저하여 차갑고 냉정하다고 느끼는 학생도 있으나, 작문 조언을 얻으러 찾아가면 개인적인 조언도 해주는 면이 있었다고 한다.
          * 수업 종강 이후에 종종 학생들이 교수의 집에 찾아가서 화를 보고, 피자를 먹으며 서로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무비 나이트'를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 BBC 방송사고 에서 눈을 감고 꾹 참는 표정은, 수업 중에 답답할 때 지었던 것이라고 한다.
          * 가정적인 성격으로서, 사적인 이야기는 자주 하지 않으나, 부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고 하며, 주말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이유로 시사어연구회 동아리의 스피치 콘테스트 심사의원을 거절하기도 했다.
         아시아 국제정치 전문가로서, 국 BBC, 중국 CCTV, 알자지라 등 세계 주요 언론에 출연하거나 글을 기고하고 잇다
         2017년 박근헤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압두고, 블룸버그에서 "한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한국 역사에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현재로써 한국 증시에 미치는 향은 없다. 하지만 기각이 될 경우 대규모 시위가 우려된다"고 전망했다.[[http://msportalkorea.mt.co.kr/news/n_news_view.php?sec=2&gisa_uniq=2017031010131578173&key=&page=1&field=§ion_code=#_adtep (참조)]]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며, 수업중에 흥분하여 비판 발언을 날리고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된 날에는 수업을 잠시 중단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오자, "박근혜 탄핵으로 브렉시트, 트럼프 현사응로 인한 세계적인 민주주의 쇠퇴 현이 멈춰졌다. 이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트위터]]에서 발언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4/2017031402097.html (참조)]]
         [[톰 행크스]]도 이 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http://www.weekly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54955 (참조)]]
         로버트 켈리 교수는 3월 14일 가족과 함께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국 BBC와의 인터뷰에 응해서 당시 황을 밝혔다. 인터뷰를 하는 중 실수로 문을 잠궈놓지 않았는데, 딸이 유치원 생일 파티를 해서 무척 신이 나서 들어왔고, 아들까지 방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아내 김정아는 당시 휴대전화로 방송을 촬하고 있다가 아이들이 방송에 출연한 것을 보고 놀라서 달려가서 제지했다고 한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5/2017031501076.html (참조)]]
         "그날 딸이 유치원에서 생일 파티를 해 무척 신이 났다. 아들까지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제 다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들어온 것은) 전적으로 문을 잠그지 않은 내 책임"이라고 방송사고에 자신의 책임을 밝혔고, "예치 못한 황에서 아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수습을 해줬다"고 아내 김정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방송 사고 후) 다시는 출연 요청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최악의 황을 우려했지만 아이들을 혼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심경에 대해서는 "을 보면 내가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놀랍고, 당황했고, 즐거웠으며 사랑스러웠다"고 밝혔다.[[http://www.wowtv.co.kr/newscenter/news/view.asp?bcode=T30001000&artid=A201703150203 (참조)]] 또 하의실종 의혹(…)에 대해서도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5/2017031501076.html (참조)]]
         방송사고 사건은 아찔한 황이었으나, 인터넷에서 엄청난 뷰를 달성하면서 굉장한 주목을 받게 되어 어떤 의미에서는 [[전화위복]]의 황이 됐다. 부산대 제해치 홍보팀장에 따르면, 국내외 언론사에서는 켈리 교수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폭주하고 있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4/2017031402097.html (참조)]]
         위의 방송사고 사건과 연관된 것. 위의 황 비디오를 BBC가 업로드 하면서 인터넷에서 유머 으로 널리 퍼지게 됐는데 --이렇게 박근혜 탄핵은 딱히 관심없던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다-- 어권 언론매체나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가는 로버트 켈리 교수의 아내를 보고 "겁먹은 유모(horrified nanny)"라고 표현하거나, "저 유모/베이비시터는 해고당하겠다."는 댓글을 달았던 것이다. [[http://www.latimes.com/nation/la-na-bbc-professor-video-asian-wife-nanny-stereotypes-20170310-story.html (참조)]]
         [[트위터]]에서는 몇몇 어권 여성 페미니스트 계정에서도 "겁에 질린 듯한 행동을 봐서 유모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하거나, "억압받는 아내처럼 보인다."고 주장하며 이를 정당화 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에 공감하지 않았다.[[http://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32965699 (참조)]]
         2012년에 아내와 함께 한국 투표소를 찾아서 사진을 찍고 트윗을 올린 적이 있으며, 투표가 아주 빠르고 신속하여 미국과는 참 다르다는 감을 남겼다.[[https://twitter.com/Robert_E_Kelly/status/281231957965279232 (참조)]]
  • 마기/349화 . . . . 27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이 싸움을 "신에 어울리는 자"를 가르는 것이라 여겼으나 [[알리바바 사르쟈]]에 의해 판도가 변하자 더이하기를 그만둔다.
          * 우고는 다윗의 향으로 정신이 혼탁해져 있으나 지성만은 변함이 없었어서 마고이 소모도 그렇고 "저쪽 주민들에게 민폐"라는 또다른 맹점도 지적한다.
          * 아무도 희생하지 않고 아주 적은 마고이로도 차원 간의 벽을 부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알리바바 사르쟈]]. 그는 자신이 저 세에서 돌아올 때 쓴 "대마법"으로 세을 감싸고 있는 가로의 벽과 세로의 벽 모두를 파괴해 세의 다중 구조를 없애고 루프도 전부 통합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아르바(마기)|아르바]]는 획기적이라고 여기긴 하지만 반신반의하는 듯한데, 특히 아르바는 여전히 미심쩍은 인이다.
          >이제부터는 나도 예을 못하겠군.
          * 그런데 하늘에서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우고(마기)|우고]]가 나타난다. 맛이 간 눈이다. 그는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을 적은 마고이로 쓰는건 불가능하다고 소리쳤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우고가 나타난 것도 놀랐지만 그가 하는 말에는 더 놀랐다. 우고는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과 [[솔로몬(마기)|솔로몬]] 대왕이 한 계층의 차원에 간섭하기 위해 일 일라의 모든 마고이를 총동원했던 사례를 들면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단순히 차원을 연결하는 마법은 자신도 예전에 고안했지만 신 하나 분량의 마고이가 필요한 무지막지한 마법이다. 그러니 차원끼리 연결시키려면 솔로몬이 만든 세을 루프로 환원시켜 동력으로 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다.
          * 너무 격렬한 태도의 우고 때문에 얼이 빠진 알라딘과 알리바바. 알리바바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그 솔로몬 왕이 만든 세이 루프로 환원돼 사라지는건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 그러자 우고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더니 "그건 슬프다"고 울 것 같은 얼굴이 된다. 알라딘이 그의 모습을 이하게 여기자 신드바드가 "다윗의 마법으로 머릿속이 혼탁해져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지성 자체는 알마트란 최고의 마법사인 그대로다. 결국 그가 한 말이 단순한 헛소리는 아니라는 것.
          >애당초 말이야. 세의 세로의 벽은 쉽게 부숴선 안 돼.
          >이 세 너머에도 세이 있으니까.
          * 여기서 알라딘은 과거 솔로몬의 행동을 다르게 해석해 본다. 혹시 그는 "운명"을 "산산조각" 냈던건 아닐까? 말하자면 신에게 대항하는게 아니라 세을 신에게서 완전히 독립, 분리 시켜서 간섭을 막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럴 듯한 해석이지만 알리바바가 부정한다. 세을 완전히 독립시키는 건 무리다. 우선은 솔로몬 그 자신이 실패했고 다윗이 이용한 "암흑점"처럼 바깥 세의 신들이 간섭할 수도 있다. 이걸 내버려 둘 순 없다. 그러니 신드바드의 생각대로 벽은 부숴야 한다고 말한다.
          * 이들이 내놓은 의견은 저마자 근거도 있고 어느 정도 타당했지만 분명히 어느 의견이 옳다 결정할 수가 없었다. 알라딘은 벽을 부순다면 대체 어디까지 부술 것인지를 지적했다. 아르바는 일 일라 같은 존재들을 단순한 에너지체로 취급한 알라딘이나 우고 등을 "거만하다"고 까며 그분에겐 의지가 있고 자신에겐 그게 들린다고 주장했다. 우고는 "같은 인격체"일 뿐이라는 아르바의 주장에 반박해 "위의 존재들은 하위 세계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못박고 신드바드의 말대로 세로의 벽을 부숴 그들을 타도해야 한다 주장한다. 아르바는 여기에 반박, 계속 솔로몬이 한 것처럼 위의 신을 쓰러뜨리고 그 힘으로 새 세을 만든자면 자기도 세을 계속해서 멸망시킨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논쟁은 격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최종적으론 "운명을 쟁취하자"는 입장으로 세의 벽을 무너뜨리자는 우고 와 알리바바, 반대로 "운명은 독립해야 한다"며 차원간의 벽을 더 두껍게 만들어 서로 분리되자는 알라딘과 아르바의 입장이 대립했다.
          * 신드바드가 생각에 잠긴 동안 논쟁은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졌다. 알라딘이 "운명을 쟁취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쓰러뜨린다는 것이고 다른 세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라 지적하자 알리바바가 거기에 설득돼버렸다. 하지만 일 일라를 "불쌍하다"고 표현한게 문제가 됐는지 아르바가 "이 놈들은 답이 없으니 다 멸망시켜야 한다"고 원점으로 돌아간다. 우고는 논쟁에 지쳐서 솔로몬을 찾으며 머리를 감쌌다.
          >너희는 어째서 바깥 세과 커뮤니케이션을 취할 수 없다는 걸 전제로 얘기를 하는 거지?
          신드바드는 우선은 국경을 올바로 관리하되 미지의 세에서 미지의 생명체와 의사소통이 가능한지를 먼저 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그걸로 발전적인 관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없는 자원을 교류하며 유익한 거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토론자들은 그 점을 놓치고 있는가? 비로소 우고와 알라딘, 알리바바가 아차하면서 맞는 말이라 맞장구친다. 물론 처음부터 "커뮤니케이션은 된다"고 주장했던 아르바는 왜 이제야 그 말을 듣냐고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 분명 합리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알라딘은 본래 루프를 환원시켜 세로의 벽을 다 파괴하자던 그가 너무나 다른 의견을 내놔서 의아해한다. 신드바드도 그 말을 듣고 보니 이하다 여기지만, 그들의 논쟁을 보다보니 너무 극단적인 의견만 있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했다고 대답한다. 아르바도 "모든걸 뒤집으려면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고 했지 않냐고 따지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시점에서 낸 미숙한 답"이었다며 순순히 실수를 인정한다. 아르바는 툴툴거리며 "이렇게 쉽게 의견을 바꿀지 몰랐다"고 빈정거리고 우고는 거기에 수긍하며 "왜 이렇게 됐었지?"하고 어리둥절해한다. 확실히 신드바드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너무나 극적인 변화였다.
          알리바바는 "역시 신드바드씨다, 나 혼자서는 절대 떠올릴 수 없었다"고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다. 비로소 그가 했던 말을 깨닫는 신드바드. 그의 말처럼 신을 자칭하던 신드바드도 "휘말린 인간"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알리바바라는 큰 그릇에는 자신을 포함한 세 전부가 처음부터 담겨 있었던 것이다.
  • 안지만 . . . . 27회 일치
         |문 표기 = An Ji-Man
         |사진 사이즈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5순위(전체 4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2005년]]에 [[오승환]]과 함께 불펜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2010년]]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며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권혁]], [[정현욱]]과 함께 불펜의 '안정권' 트리오라는 별칭이 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200005 오치아이 코치가 바라보는 안정권 트리오] - OSEN</ref>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4홀드로 맹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3년]] [[8월 17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우완 [[투수]]로써 최초의 100홀드를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77859 삼성 안지만, 우완 투수 최초 100홀드 대기록] - 스포츠조선</ref> 그리고 [[2014년]] 프로 데뷔 12년 만에 FA 자격을 획득하여 계약금 35억, 연봉 7억 5000만원으로 총액 4년 65억에 [[삼성 라이온즈|삼성]]과 재계약하였다. 그 뒤 [[2015년]] [[6월 5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는 [[KBO 리그]] 최초 개인 통산 150홀드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해외원정 불법도박 혐의로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년 한국시리즈]]에 승선하지 못했고 [[2015년 WBSC 프리미어 12|2015년 프리미어 12]]에도 탈락하였다. [[2016년]] [[7월 20일]]에 검찰로부터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자금 투자와 관련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다음날 계약 해지를 발표함에 따라서 유니폼을 완전히 벗게 되었고, 구단에서 퇴출되었다. 퇴출 이후에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가르치며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송은범]]과 함께 불펜에서 맹활약하며 금메달에 기여하였고, 병역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조동찬]]과 함께 이미 [[무 야구단]]에 합격하였으나,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중화 타이베이]]([[중화민국]])와의 결승전에서 1점차로 뒤진 7회말 [[양현종]]으로부터 무사 1, 3루의 위기 황에서 등판했으나 삼진 1개를 잡아낸 후 뒤따른 두 타자를 모두 외야 플라이로 처리하면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아냈고, 8회에도 등판하여 삼자 범퇴로 이닝을 마쳤다. 이때 위기 황에서 등판할 시 자주 나오는 기합소리가 카메라에 잡힐 정도였고, 이 경기를 통해 팬들로부터 '안순신'이라는 별명을 받았으며, 결승전 MVP로 선정되었다.
         * 힙지만 - 그는 시합에 나갈 때마다 [[모자]] 챙을 세우면서 나가는데, 이로 인해 '힙지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자 챙을 세우게 된 이유로는 예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강식 (야구 선수)|강식]](현재 [[롯데 자이언츠]])과의 내기로 모자 챙을 세웠다고 한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는 이유는 예전에 같은 팀 선배였던 [[양준혁]]이 "너는 인이 선해서, 모자로 포인트를 줘봐라" 라고 한 후 쭉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한다. 몇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선배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활동하였던 [[장효조]]가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그 무렵에는 경기에 나갔을 때 추모를 위해 모자 챙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도 힙합모자를 쓰지 않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142945 삼성 안지만, 힙합 스타일을 버린 까닭은?] - 스포츠조선</ref>
         * 칩지만, 땄지만 - 도박 및 불법 도박 사이트 개설 혐의로 방출당하면서 그가 얻은 치욕스러운 별명이다.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경기를 앞두고 있었던 [[10월 15일]]에 팀의 [[스타]]급 플레이어로 평가받는 간판투수 3명이 마카오에서 바카라 도박을 즐겼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며칠 뒤 [[삼성 라이온즈]]는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결국 팀은 [[두산 베어스]]에게 1승 4패로 패배하여 통합 5연패가 좌절되었다. 검찰 조사가 늦어지면서 같이 거론된 [[윤성환]]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 전지훈련에 참가하였다. [[2016년]] [[4월 3일]] 1군에 재합류했다. 경찰은 "도박 혐의로 수사 중인 프로야구 선수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려면 중요 참고인을 소환해야 하는데, (그들이) 외국에서 아직 안 들어오고 있으니 현재 황이 계속될 경우 수사는 '참고인 중지' 결정으로 끝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들의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수사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러나 6월 초에 이들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이 확인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8&aid=0002510793 '원정도박 혐의' 안지만-윤성환, 수사보류 가능성↑.. 복귀?] - 스타뉴스</ref> 이후 7월 중순에도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16년]] [[7월 21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그를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며, 이에 [[삼성 라이온즈]]는 [[KBO (야구)|KBO]]에 계약 해지 승인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실 퇴출됨으로써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ref>[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0401 삼성라이온즈 안지만, 보류선수 명단 ‘제외’… ‘사실 은퇴 수순’] -이뉴스투데이</ref>
         결국 지인의 도박 사이트 개설 자금 지원과 관련한 1심 재판에서 징역 8개월, 집행 유예 2년, 120시간의 사회 봉사 명령을 선고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68&aid=00002349</ref> 검찰은 수익금을 분배 약정을 했다는 점에서 안지만을 공범으로 판단했는데, 그나마 재판부에서 직접적으로 사이트 운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은 데다 그동안 이로 인해 언론의 도마에 오르내리며 손해를 받은 점을 참작해 집행 유예 처분이 내린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지만은 항소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1&aid=0009035460</ref> 안지만의 항소로 재판이 장기화되는 데다, 앞서 언급했듯이 재판부도 안지만을 도박 사이트의 공범으로 판단했기 때문에<ref>그동안 법원 판례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에 돈을 댄 사람도 공범으로 인정해 왔다.</ref> 향후 야구계 복귀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Color|red|빨간 글씨}}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 최고 기록
         {{둘러보기 자 묶음
         {{KBO 홀드}}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홀드자]][[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
  • 원피스/831화 . . . . 27회 일치
         홀 케이크 아일랜드에 륙한 밀집모자 일행은 이한 숲에 가로막힌다.
          * 나머지 일행은 륙하는데, 디가 그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가 사라진다.
          * 일행은 거기에 이끌려 이한 숲으로 진입하는데, 루피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적과 조우한다.
          * 나미, 캐럿, 쵸파는 숲속을 헤매다 반쯤 묻혀 있는 거인이 사과쥬스를 가져다 주면 디의 정보를 준다고 한다.
          * 이들은 이한 토끼의 습격을 받고, 나미는 숲 자체가 이하다고 생각하고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 페드로는 페콤즈의 마지막 메시지를 기시키며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 나머지 인원은 그대로 륙. 해안은 단단한 생크림으로 되어 있다.
          * 루피는 배에서 두 명이 있는걸 봤다며 디를 불러보는데 인기척은 없다.
          * 그때 숲 쪽에서 디가 모습을 드러낸다.
          * 일행과 눈이 마주쳤을 텐데 디를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 디의 모습을 쫓아 가보니 그곳은 "과자로 된 숲"
          * 나미는 디의 행동거지가 수하다고 말하지만 일행은 디와 사방에 널린 케이크에 정신이 팔려서 듣질 않는다.
          * 나미는 역시 이 숲은 이하고 위험하다고 강변한다.
          * 마침 근처에도 또 디의 모습이 발견된다. 하지만 디는 이번에도 남의 일처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반응도 없다.
          * 루피는 나머지 일행에게 먼저 디를 쫓아가라고 하는데, 나미는 흩어져선 안 된다고 하지만 쵸파와 캐롯은 루피의 말을 따른다.
          * 나미는 지침도 시계도 이하게 돌아가는걸 보고 역시 이곳은 이한 곳이라고 돌아가자고 한다.
          * 쵸파는 디를 찾아야 한다고 하지만 나미는 그게 진짜 디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굽히지 않는다.
          * 루피가 대하는 복제 루피는 단순한 복재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것처럼" 완전히 똑같이 행동한다. 거울거울 열매의 능력자?
          * 디도 가짜로 보이는데 복제된 루피와 관련이 있을듯?
  • 원피스/832화 . . . . 27회 일치
          * 제르마66의 정체는 유일무이한 해 해적국가 "제르마 왕국"이었다. 토가 없이 그들이 가딘 선단이 연결되어 "왕국"이 된다.
          * 구성원 대부분은 남자이자 병사이며 고도로 단련된 전사들.
          * 디는 제르마가 자신의 가족임을 부정하고 아버지인 국왕 "빈스모크 저지"와 대립한다.
          * 숲 자체가 이하다고 느낀 나미 일행은 빨리 벗어나려고 안간힘쓴다.
          * 루피는 디는 어쩔 거냐고 하지만 나미는 그것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 그녀는 자기 얼굴의 처를 보라면서 "너희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진다"고 소리지른다.
          * 제르마66의 정체는 토가 없는 해적국가 "제르마 왕국"
          * 유일무이한 토가 없는 나라. 수십척의 배가 토를 대신하며 이것들이 집결해서 왕국의 모습이 된다.
          * 이 제르마 왕국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디.
          * 그는 누나 "빈스모크 레이쥬"에게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냐고 한다.--아무리 디라도 누나는 거른다.--
          * 방에는 그들의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의 초화도 있다.
          * 일명 "4국 베기" 사건을 묘사한 초화. 노스 블루의 네 왕국을 제압한 일을 그린 것이다.
          * 디는 이런 "재수없는 장식"이라고 말하며 마구 까는데 레이쥬는 오히려 "아버지의 꿈은 다시 노스 블루를 제압하는 것이고 남자가 힘과 명성을 추구하는게 뭐가 어떻냐"고 대답한다.
          * 그녀는 "그런 작은 해적단에 집착하지 말고 왕가의 피를 즐겨라"며 시녀들도 디가 바라면 뭐든 해줄 거라고 달랜다.
          * 눈알이 튀어나올 듯 하면서도 결국 넘어가진 않는 디.
          * 디는 이제와서 무슨 말이냐며 결혼도 거부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
          * 들어오자마자 디가 아직도 억지를 부린다고 비난한다
          * 디는 저지가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반발하며 자신에겐 부모가 없고 있어도 당신은 아니라며 막말을 한다.
          * 저지는 그가 꽤 강한 녀석이라고 하는데 디는 태연히 "내가 그 이이었을 뿐"이라 대꾸한다.
          * 얼굴에 사선으로 깊은 흉터가 있는 등 기존에 등장했던 자식들과는 인이 확연히 다르다.
  • 원피스/859화 . . . . 27회 일치
          * [[디]]는 빅맘 [[샬롯 링링]]이 정말 죽일 수 있는 대인지 의심한다. "강철의 풍선"이라 불리는 그 몸에 통하는 무기가 없다는 것.
          * KK런처는 시저가 직접 제작한 독가스를 치사량 이으로 때려박는 극악한 생화학 무기. 그러나 이 조차도 빅맘에겐 통하지 않는다.
          * 많은 피해자가 생긴건 물론이고 빅맘 본인도 약해져 몸에 처를 입는 모습을 보여줬다. 즉, 사진을 망가뜨리는 걸로 빅맘이 약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
          * 일이 잘 풀리면 비행이 가능한 시저가 거울을 들고 공에서 나타나 [[샬롯 브륄레]]의 능력으로 일행을 피신시킨다.
          * 개시신호는 [[샬롯 푸딩]]이 맹세의 키스 대신 쏠 총성. 디는 자신이 어떻게든 피할 때니 그때 나타나달라고 부탁한다.
          * 루피는 사실 총알받이 역할을 강요받았지만 빈스모크 일가를 구하기 위해 흔쾌히 받아들이고 "재미있게 등장할 방법"도 있다고 즐거워한다.
          * 이럭저럭 해적동맹은 성리했지만 [[디]]는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과연 "빅맘 암살"이란 것이 가능하긴 하냐는 것. 빅맘 [[샬롯 링링]]은 총이나 대포로 죽일 법한 인간이 아니며 그 별명처럼 "강철의 풍선" 같은 인간. 죽일 수 있는 형질의 인간이 아니다.
          [[페드로(원피스)|페드로]]도 그 말에 동감한다. 암살이라면 순식간에 처리할 필요가 있고 그게 실패하면 포위 당해 죽을 뿐이다. [[몽키 D. 루피]]는 역시 사황은 그정도로 대단한 거냐고 묻는데 [[브룩]]을 구할 때 직접 대면했던 [[나미(원피스)|나미]]는 그때 일을 회하며 치를 떤다.
          벳지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우선 암살에 필요한 "물건"이 두 가지. 우선은 시저가 개발한 KX런처다. 독가스를 적의 체내에 주입시키는 흉악한 병기로 한 발만 맞춰도 충분히 치사량이지만 만약을 위해 총 세 정을 준비했다. 그런데 팔팔한 태의 빅맘에겐 이것도 통하지 않는다. 피부가 너무 두껍고 강인해서 이런 걸로는 체내로 뚫고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
          * 여기서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해진다. "5초간 아무도 손 쓸 수 없는 황을 만드는 것". 그리고 "빅맘이 약해져 있을 것". 억지스러울 정도로 유리한 조건인데, 그 억지스러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게 "다과회"라고 벳지가 설명한다.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벳지의 아들이 잠투정을 부린다. 벳지는 그야말로 아들바보로 표변해서 "아 미안해쪄용"하면서 아기를 달래고 다시 얼굴을 돌린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설명을 이어가는 벳지.
          벳지가 빅맘 산하로 들어간 것은 약 1년 전이다. 그때부터 면밀히 관찰했지만 빅맘은 도무지 처를 입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거리를 부수고 포탄에 맞고 배를 가라앉혀도 그녀의 육체는 흠집하나 생기지 않았다. 벳지는 새삼 강철의 풍선이란 별명이 참 적합하다고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 그런 빅맘도 딱 한 번은 처를 입었다. 그것이 바로 "마더 카르멜"의 사진 사건이다.
          * 거기서부터 시폰이 이어서 말한다. 한 번은 급사가 다과회 준비 중 실수로 사진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그때 빅맘은 평시의 발작과도 다른, 아주 극심한 발작을 일으켰다. 얼굴이 새파래진 빅맘이 들어본 적도 없는 괴성을 지르며 쓰러진 것이다. 먹을게 없을 때 일으키는 발작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꼼짝도 못하고 귀를 감싸고 있는게 고작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리기도 했다. 벳지는 괴성에 섞어 패왕색 패기를 은연 중에 방출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저 사진이 떨어진 것 뿐인데 말이다.
          중요한 건 이때 쇼크로 쓰러진 빅맘. 그녀는 이때 무릎을 꿇으며 무릎이 까져서 피를 흘렸다. 벳지는 빅맘도 과연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다고 놀랐다고 한다. 이 태의 빅맘이 평소와 같은 강인한 육체를 잃는건 자명하다.
          * 루피는 사진을 찢는 것만으로 그런 소동이 일어난다면 그 틈에 디의 가족 빈스모크 일가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벳지는 무슨 남의 일처럼 말하냐고 타박하며 루피 일행에겐 다른 일거리가 있다고 한다. 벳지는 사진을 찢고 빅맘이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약 3초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 예한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분노한 빅맘과 부하들을 막아내야 한다. 솔직히 그들을 대로 3초나 버티는 건 기적같은 일.
          좌우간 본인이 승락한 이 벳지로선 나쁠게 없다. 그는 타이밍은 아냐고 묻는데 루피는 [[샬롯 푸딩]]이 디에게 맹세의 키스를 하는 순간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자 디가 "못한다고!"라고 태클건다. 푸딩은 키스하는게 아니라 총을 쏠 거다. 디는 그 점을 강조하며 총은 어떻게든 피할 테니 총성을 신호 삼아서 등장하라고 못박는다.
          그리고 바보의 등장이다. 바보가 신나서 설명한다. 가스인 자신이 공으로 거울을 들고 나타나면 [[샬롯 브륄레]]의 능력을 이용, 전원을 거울로 피신시킨다. 이후는 미러월드를 통해 각자의 배로 피신. 각 배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거울을 비치하라고 권고한다. 좀처럼 누굴 칭찬하지 않는 벳지도 브륄레를 확보한건 밀집모자 일행의 공이라며 치하한다.
          * 이것으로 작전회의는 종료. 각자의 위치에서 실행을 준비하기로 한다. 현재 시각은 다과회 개시로부터 2시간 반 전. 디는 신랑의 방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벳지 해적단도 호위 준비에 들어간다. 루피는 등장할 때를 위해 뭔가 부탁할게 있다고 하다가 벳지가 "재미에 집착하지 마라"고 일갈한다.
          * 제르마 왕국 쪽도 비슷한 양이다. 병사들은 결혼식 같은거에 호위가 필요하겠냐며 답지 않게 풀어진 모습이다. 홀 케이크 성의 제르마 일가는 정장으로 갈아입는 중. [[빈스모크 저지]]는 [[빈스모크 레이쥬]]가 없어진걸 눈치채지만 깊게 신경쓰진 않는다. [[빈스모크 이치디]]는 별실에서 준비를 끝냈을 거라 여기며 역시 신경쓰지 않는다.
          * 그리고 신부 푸딩의 방. 신부화장을 마치고 드레스까지 착용한 푸딩은 뜻밖에 우울한 모습이다. 니트로와 라뱐이 그녀에게 "메리지 블루"냐며 가볍게 놀린다. 푸딩은 자신에게 주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고 투정한다. 디를 죽인 뒤 피가 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만은 착한 아이로 남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다녀야 하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 --VX-- KX런처라는 독가스를 사용한다는 암살계획이 마치 [[김정남 암살사건]]을 연케 한다.
  • 은혼/627화 . . . . 27회 일치
          * 마왕의 봉인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헤도로는 선한 인격의 "헤도로"와 사악하고 파괴를 꿰하는 "헤도라"의 인격이 공존하는 위험한 태가 된다.
          * [[도로미즈 지로쵸]], [[오토세]] 여사, [[사이고 토쿠모리]]의 가부키쵸 사천왕들은 모처럼 평화를 기리는 술잔을 기리며 승리의 밤을 자축한다.
          * 곤도와 오타에의 감격의 재회... 는 무슨 [[판데모니엄]]이었다. 판데모니엄을 사이에 둔 곤도와 신파치의 사투.
          헤도로는 해방군에 의해 에도가 유린되고 전란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며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그토록 얼굴답지 않게 냥한 말을 하고 있는데, 긴토키는 꺽어진 꽃을 살짝 들어올려 본다.
          사이코드라마 같은 일인극을 홀로 감해야 하는 긴토키. 가구라와 신파치는 그가 왜 헤도로에 달라붙어 있는지 끝가지 알 수 없다. 가구라는 즐거워보이니 냅두자고 하면서 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뤄진다.
          * 보름달이 떠올랐다. 가부키쵸는 네온사인이 아닌 모닥불로 밝혀진다. [[도로미즈 지로쵸]]는 [[오토세]] 여사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아 담배를 태운다. 그가 이런 밤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지 오토세 여사도 "그래도 밤을 맞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거냐고 대답한다. 지로쵸는 그렇다며 이 다음으로 아침 햇살로 빛나는 마을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거라고 말한다. 오토세여사는 내일을 맞이하는게 큰일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토록 애를 썼는데 내일을 맞이하기엔 부족한 거냐고 묻는다.
          지로쵸는 냉정하게 황을 설명한다. 설사 적을 물리쳤지만 그건 일시적인 황에 지나지 않는다. 적의 전체 병력에는 조금 금이 간 수준의 향 밖에는 없으며 반대로 가부키쵸는 많은 소모를 치렀다. 막부군이 퇴각한 적을 요격하며 시간을 벌고 있지만 진짜로 작정해서 잔존 세력을 규합, 다시 한 번 들이친다면 버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짧은 휴전기간에 우주에 있는 [[가츠라 고타로]] 일행이 본대의 작전을 바꿔야할 필요가 있다.
          그때 [[사이고 토쿠모리]]가 항 으르렁대던 가부키쵸 사천왕이 오늘 밤은 즐거워보인다며 자리에 끼어든다. 오토세는 마침 그도 부르고 싶던 참이라며 자리를 내어준다. 어차피 이들과는 지구가 멸망하지라도 않으면 얼굴 보기도 힘든 사이이니 이런 기회도 없다면서. 그래서 오토세는 차라리 이 황에 감사하고 있다. 이럴 때이기 때문에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게 있다. 덕분에 이전보다 조금은 인간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 늦은 시각까지 가부키쵸를 둘러보는 신파치와 가구라는 역시 이겼다고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직감한다. 해방군은 물리쳤지만 가부키쵸 측의 피해가 예보다 컸다. 신파치는 이만한 사람들이 이만큼 함께 싸워준 걸 기적이라 말하며 비단 가부키쵸 주민들만이 아니라 에도에 남아있던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친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컷마다 [[게도마루]]가 [[판데모니엄]]을 배급하고 나눠먹으며 알짱거린다.
          흑역사를 자극 당한 신파치가 과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판데모니엄은 게도마루의 말마따나 처치료에 효과적인 만능 재료. 이 시기에 매우 필요한 보급품임에 틀림없다. 신파치는 징그러운 것이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귀찮게 해버렸다며 방해하지 않겠다는 판데모니엄씨에게 다시 심쿵해 버린 신파치는 결국 인외의 길로 들어서 판데모니엄에게 프로포즈하고 만다.
          * 누나 [[시무라 타에]]는 태클과 인외연애에 여념없는 신파치를 염려해서 쉬라고 권한다. 그녀는 부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사실 게도마루는 신파치를 심란하게 하는 것 말고도 부자들의 치료와 휴식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물론 아까도 부자들을 도우며 태클 말고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신파치보단 훨씬 도움이 되고 있었다. 게도마루와 음양사들은 늦게 온 만큼 조금 더 컷에 나와서 분량을 뽑고 싶다는 의향에 따라 가부키쵸 주민군에 늘러앉았다.
          게도마루와 식신들은 판데모니엄으로 차린 다채로운 급식과 배식자들의 호러블한 비쥬얼로 배식을 익사이팅하게 해주며, [[게츠노 세이메이]]와 [[시리노 도만]]은 순찰대를 빙자해 서로 식신이 더 흉악하고 무섭다고 싸우며 소란, [[게츠노 아나운서|게츠노 크리스텔]]은 기도로 싸움하게 좋은 날씨를 만들며 싸움을 조장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오토세는 부자들에게 지금은 푹 쉬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부자들은 지금이라도 적들이 처들어올게 두려워서 편히 쉬지도 못한다. 오토세는 자신들이 있으니 잘 먹고 잘 쉬라며 특제 다크마타를 처먹여 원히 쉴 수 밖에 없는 몸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게도마루는 재기불능이 된 병력에게 판데모니엄을 데코레이션하는 흉악한 짓을 하는데 신파치는 제대로된 식량을 배급하라며 태클을 건다. 그때 또다시 나타나는 판데모니엄씨. 이제 신파치의 본심을 알았다며 떠나려고 하는 그녀. 신파치는 눈물을 흘리며 모든 판데모니엄을 먹어치우려고 한다. 가구라는 머리가 맛이 가버린 신파치에게 좀 쉬는게 좋겠다고 권한다.
          * 오토세가 돌보던 부병 옆에 [[곤도 이사오]]가 주저앉는다. 힘겨운 싸움을 마치고 마침내 돌아온 곤도는 마치 멀쩡한 사람같은 소리를 했다.
          마치 멋있는 인물처럼 재회의 인사를 하는 고릴라. 타에는 분위기 때문인지 뜨거운 눈물로 그의 귀환을 환하는데.
          이 개판에 뒤따라 [[히지카타 토시로]]와 [[오키타 소고]]도 도착한다. 히지카타는 세이 망하는 줄 알았는데 평소란 똑같다고 투덜댄다. 하지만 오키타는 오히려 곤도는 저런걸 원했던 거라며 디스인지 뭔지 모르게 덧붙인다.
          * 타에는 세이 망할 판이 돼서야 돌아온 순경들도 여전하다고 대꾸한다. 히지카타는 순경은 지구가 망하는걸 구할 의무는 없지만 이것저것 바빴다고 변명한다. 거기에 맞장구치며 허공에서 내려앉는 두 사람. [[핫토리 젠조]]와 [[사루토비 아야메]]도 무사히 귀환했다.
  • 은혼/634화 . . . . 27회 일치
          * 해방군 지군 소속의 야토 용병부대는 [[히라가 겐가이]]의 협조로 겐가이포를 무력화시킬 유일한 수단을 확보한다.
          * 이럭저럭 숙취가 풀린 [[사카타 긴토키]]는 [[시무라 신파치]]와 함께 몰려드는 지군 잔당을 처리하지만 좀처럼 수가 줄지 않는다.
          * 황에 야토족 부대가 개입했음을 직감한 [[가구라]]는 정체된 아군 부대를 놔두고 겐가이 감을 찾아 나선다.
          겐가이 감이 그렇게 말했다. 발명가란 "절대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만들라 하면 그걸 유일하게 부술 창도 만들어야 비로소 그 물건을 이해한 거라 보기 때문이다. 그건 지금 에도를 지키는 겐가이포, 그것이 살포한 나노머신을 부술 방법도 준비해뒀다는 말이다.
          * 지의 사정이 이렇게 되는 동안 우주에서 싸우는 [[다카스기 신스케]]와 귀병대는 해방군을 대하며 히노카구츠치를 멈출 방법도 찾아내야 했다. 신스케는 병력을 이끄는 한편 [[다케치 헨페이타]]에게 후방의 황을 확인한다.
          * 역시 해방군을 대 중인 [[카와카미 반사이]]도 "그놈"들이 나설 차례는 없을 거라고 호언한다. [[키지마 마타코]]는 어차피 자신들이 나선 이후 세을 지키든 부수든 둘 중 하나라며 히노카구츠치의 해석은 어떻게 되었냐 묻는다. 사실 이들은 대책없이 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뒤쪽으로는 기술자를 잠입시켜 해방군 모함의 데이터를 해킹하고 있다. 이 자료는 그대로 헨페이타의 전함으로 송신, 적 병기의 헛점을 찾을 단서가 됐다. 헨페이타는 "별을 파괴할 수 있는 병기"라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오래된 구식 병기라며 데이터를 분석하면 파고들 틈이 있다고 장담한다.
          * 겐가이 감을 찾으러 나섰던 [[사카타 긴토키]]와 [[진선조]] 일행은 뜻하지 않은 적들과 만나 발목이 잡힌다. 해방군의 지군 잔당이 엔죠 황자의 파괴선언 이후 기어나와 발악하고 있다. 긴토키는 일단 싸우고는 있으나 좀처럼 적의 수가 줄지 않아 히스테리를 일으킨다. 아무리 베도 똑같은 얼굴을 가진 놈들이 얼굴을 들이민다며 "킨타로 아메"사탕에 비유한다.[* 반죽을 길게 늘여 같은 얼굴이 계속 나오도록 자르는 일본의 사탕]
          * 가구라가 가버리자 이제는 겐가이 감이 아니라 가구라부터 찾아와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 [[히지카타 토시로]]가 하늘에서 수한 빛을 발견했다. 그 빛은 일행이 있는 쪽으로 곧게 뻗어오고 있었다. 혹시 이것이 히노카구츠치의 포격인가? 해결사와 진선조도, 그리고 본진의 공격이 무서웠던 해방군도 "히노카구츠치의 공격이 시작됐다"며 패닉에 빠진다.
          그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야토족 부대, 지휘관 노사에게도 똑똑히 보였다. 그러나 노사는 송사리들이 소란을 부린다며 코웃음을 친다. 저것은 히노카구츠치의 빛이 아니다. 그랬다면 자신들은 그 시점에 우주의 먼지가 되었을 터였다. 아마 저것은 멋모르고 지구에 접근해 버린 우주선일 것이다. 겐가이포의 나노머신 "벌"의 먹이가 됐겠지. 그래도 그 벌이 대기권 바깥까지 향을 준다는 건 대단히 큰 문제긴 하다.
          그의 짐작대로 추락한 것은 정체불명의 우주선. 긴토키 일행이 싸우고 있던 큰 길로 불시착한다. 이걸 피하느라 양진은 잠시 분단, 싸움이 멈추치지만 잠시 뿐이다. 우주선 표면엔 놀랍게도 우주해석 "하루사메"의 표식이 있다. 이윽고 서서히 문이 열리는데, 긴토키 일행은 긴장한 채 그 안에서 내리는 사람이 누군지 주시한다.
          * 이제 지구의 봉쇄도 끝이다, 노사는 그렇게 말했다. 겐가이가 제공한 실린더에는 나노머신 "벌"을 멈출 물건이 들어있다. 이것은 "벌"을 파괴하는 나노머신. 겐가이의 말대로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부수는 유일한 창"이다. 이 녀석을 뿌리면 에도를 장악한 나노머신이 멈추지만, 이걸 뿌릴 기계를 사용할 수 없는 모순된 황. 그래서 필요한 것이 대량의 폭약이다. 폭발을 이용해 이 안티나노머신을 연쇄적으로 확산시켜서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역을 확보, 거기를 기반으로 에도에서 벌을 지워버린다. 시간이 들더라도 이 방법이 최선이다.
          노사는 기계를 쓸 수 없는 황이 되더라도 폭약을 통해 벌을 억제할 수단을 만든 겐가기의 발에 감탄한다. 그는 안티나노머신이 든 실린더를 들고 신기한 듯 들여다 본다. 그리고 겐가이 감에게 "잘도 협력할 생각을 해줬다"는 칭찬인지 뭔지 모를 말을 한다.
          겐가이 감은 지구가 아주 사라지는 것과 벌이 멈춰서 공격 당하는 것 중, 그나마 후자가 나아서 그랬을 뿐이라 대답한다. 게다가 야토족이 본진에 처들어가서 엔죠 황자의 목을 따준다고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부터 노사의 말이 달라진다.
          >그러니 이제 죽어도 관없겠지.
          * 폭발은 현장에 있던 야토족 부대를 집어삼킨다. 하지만 겐가이는 아니었다. 가구라가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 폭발 속에서 겐가이 감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겐가이는 구했지만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정도 대폭발로도 야토족 부대를 일소하지는 못했다.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야토족들이 추적해온다. 가구라가 그들을 의식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역시 건재한 노사가 가구라의 정면에서 나타나 공격을 가한다. 가구라가 쓰러지면서 겐가이도 멀리 밀려나간다.
          야토족 병사가 가구라를 일제히 덮친다. 가구라는 응전하며 "너희 적은 다른 곳에 있고 이러면 다 같이 끝장날 거다"고 항변한다. 노사는 가구라의 빈틈을 파고들어 치명과 독설을 떠안긴다.
  • 이윤열 . . . . 27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구미시]]
         2000년도 경 iTV 고수를 이겨라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인규를 격파한 것이 데뷔전이었으며 이후 2001년 반기, Game-i(이후 [[화승 OZ]]의 전신인 IS와 합병)에 입단하면서 프로게이머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2년 12월엔 KTF 매직엔스(현 [[KT 롤스터]])로 임대 이적했고, 이듬해 2003년 12월 24일 투나 SG(현 [[위메이드 폭스]])로 복귀한 이후 2010년까지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 KPGA(MSL의 전신) 3회 우승 등 역대 프로게이머 중 [[이호]]와 함께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보유중이며, 준우승 경력을 포함, 양대 개인리그 10회 결승 진출, 6회 우승과 4회 준우승으로 역대 최고의 위엄을 보여준다.
         뒤를 이어 9회 결승 진출(5회 우승/4회 준우승)의 [[이제동]], 8회 결승 진출(6회 우승/2회 준우승) [[이호 (1992년)]]가 있다.
         이후 Stout MSL에서 준우승, 천적 최연성의 등장으로 기세가 조금 꺾이긴 하였지만 꾸준히 MSL 결승에 오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5년에는 IOPS 스타리그에서 당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던 저그 박성준을 3:0으로 완파하고 우승하였다. 또한 2006년 11월 18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2 우승을 차지하며 골든 마우스의 첫 수자로 기록되었다. 골든 마우스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부으로, 이윤열과 박성준(STX SouL), 이제동(화승 OZ), 이호(KT 롤스터)만이 수한 바 있다.
         64강전에서 신예 조경준(T)을 만나서 2:0 승리를 거두었고 32강전에서도 박종혁(T)에게 2:0 승리를 거두며 16강전에 진출하였다. 16강전에서는 이동녕(Z)를 대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마침내 8강전에 진출하였다.
         2012년 12월 25일 [[팀 아주부|아주부 팀]]의 매니저로 입되었다.
         2013년 7월 16일 근 예비역으로 군입대했다.
         경북 구미시에서 구미시지역대 근예비역으로 근무하다 2015년 4월 15일 전역해 아프리카 BJ로 활동중이다.
         === 개인 수 ===
         * 2003년 여수 사이버 게임체전 4대천왕전 준우승 (0:1 [[홍진호]])
         * 2003년 2003 대한민국 게임대 우승 게이머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2 우승''' (3:2 [[오종]])
         * 2006년 2006 대한민국 e-SPORTS 대 테란 최우수선수
         * [[2009년]] 로스트사가 MSL 2009 8강 (2:3 [[허무]])
         *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초의 3회 우승 및 최초의 골든 마우스 수 (2006년 11월 18일)
         | 제목 = 스타리그 [[골든마우스]] 수
         | 제목 = [[MSL 금배지]] 수
         |다음=[[김준 (1985년)|김준]]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KT 롤스터의 선수]][[분류:위메이드 폭스의 선수]][[분류:Old Generations의 선수]][[분류:SK 게이밍의 선수]][[분류:테란 선수]][[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골든마우스 수자]][[분류:MSL 우승자]][[분류:MSL 금배지 수자]][[분류:로열로더]][[분류: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분류:구미시 출신]][[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이현우 (가수) . . . . 27회 일치
         | 가족 = 자녀는 슬하 2남 <br/> 형제자매 관계는 2남 2녀 중 차남 <br /> 친척 관계는 5촌 당숙 [[이경 (1960년)|이경]](화배우)
         | 웹사이트 = [http://www.leehyunwoo.com/ 이현우 홈페이지]
         '''이현우'''(李鉉雨, [[1966년]] [[3월 6일]] ~ )는 [[미국]]의 [[가수]]이자, [[작사가]], [[작곡가]]이며, [[사회자|방송인]], [[화배우]], [[연기자]], [[뮤지컬 배우]]이다. [[미국]] 국적 소유자이므로 군에 입대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이경 (1960년)|이경]]의 오촌 조카로 알려져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088912 화 탤런트 하희라 화 '몽중인'으로 활동 재개]</ref>.
         === 화 ===
         * 《[[천의 컬렉션]]》[[KBS]]
         * 《[[이한 나라의 며느리]]》[[MBC]]
         * [[오리온 (기업)|오리온]] 쎄이 ([[1993년]])
         * [[LG생활건강]] 테크 ([[2004년]]) (faet.[[정준호]],故[[장진]])
         == 수 ==
         === 가요 수 ===
         * 1992년 MBC 10대가수 가요제 신인
         * 1992년 KBS 가요대 올해의 가수
         === 기타 수 ===
         * 2004년 MBC 연기대 특별 TV MC 부문
         ! 수 내역 (총 19회)
         2007년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는데 당시 이현우가 가지고 있던 국제 면허증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태였다.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 0.114%의 만취태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6&aid=0000053562 이현우, 무면허 음주 운전 적발]</ref> 그 뒤 자숙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자동차 광고 출연, [[대부업]] 광고 출연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0세기 미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미국의 개신교도]][[분류:파슨스 디자인 스쿨 동문]][[분류:경원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마약범]][[분류: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이라크 전쟁 반전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정성주 . . . . 27회 일치
         | 수 = 제50회 백예술대 극본<br />제36회 백예술대 극본
         | 언어 = [[한국어]], [[어]]
         | 향 받은 인물 =
         | 향 준 인물 =
         | 웹사이트 =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하늘이여〉가 당선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다.<ref>정희서.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478943 ('풍문' 종③)안판석·정성주, 두 장인이 빚어낸 명품 드라마]. 엑스포츠뉴스. 2015년 6월 3일.</ref>
         == 수 내역 ==
         * 제03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작가 ([[밀회 (드라마)|밀회]])
         * 제50회 [[백예술대]] 극본 ([[밀회 (드라마)|밀회]])
         * 제36회 [[백예술대]] 극본 ([[장미와 콩나물]])
         * 2001 자랑스러운 이화언론인<ref>민태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52103 자랑스런 이화언론인숙·손지애·정성주씨]. 국민일보. 2001년 4월 24일.</ref>
         * [http://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56417 정성주] - [[네이버 화]]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극작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백예술대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성국 (축구선수) . . . . 27회 일치
         | 클럽 =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 호랑이]] <br /> → [[가시와 레이솔]] (임대) <br />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 <br /> → [[광주 무 불사조]] (군 복무) <br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동곡초등학교]], [[역곡중학교]], [[정명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를 중퇴하였다. 개인기가 좋아 환적인 드리블로 대 수비 2~3명을 쉽게 따돌리는 점이 [[디에고 마라도나]]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리틀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여,<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계약금 3억원에 울산 입단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32639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3-2-2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5년]]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에 임대되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가시와로 5개월간 임대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92266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5-2-24}} }}</ref> 만족스러운 활약을 하지 못한 채 5개월 뒤 [[울산 현대 호랑이|울산]]으로 복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K리그로 복귀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5786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5-6-25}} }}</ref> [[울산 현대 호랑이]]로 복귀한 뒤 그 해 [[K리그]] 우승에 공헌하였고, [[2006년]] [[K리그 컵 2006|K-리그 컵]] 득점왕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제목=성남 '컵대회 준우승', 최성국 '득점왕 우뚝'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16823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6-7-29}} }}</ref> [[2007년]] [[1월 17일]]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여,<ref>{{뉴스 인용 |제목='리틀 마라도나' 최성국, 성남에 현금 트레이드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1171527142230 |출판사=마이데일리 |date={{날짜한글화|2007-1-1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8년]] [[8월 2일]]에는 [[대한민국]]과 [[일본]] 프로 축구 사 첫 올스타 맞대결인 'JOMO CUP 2008'의 MVP를 차치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올스타, J리그 올스타에 3-1 대승...최성국 MVP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34725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8-8-2}} }}</ref>
         [[2008년]] [[12월 22일]] [[광주 무 축구단|광주 무]]에 입대하였고,<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최원권, 무 입대 확정…22명 선발자 발표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81210091454§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8-12-10}} }}</ref> 등번호 10번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광주 무 내년시즌 배번 확정... 최성국 10번, 김용대 1번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81211190355§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8-12-11}} }}</ref> 그는 제대 후 [[성남 일화 천마]]로 복귀하여 [[K리그 2010|2010 시즌]] 4경기를 소화하였다.
         [[2011년]] [[1월 10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최성국의 입을 공식 발표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수원, 공격수 최성국 입 발표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11016004047§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0-1-10}} }}</ref> 수원에 입단한 후, [[2011년]] [[3월 5일]] [[FC 서울|서울]]과의 [[K리그 2011|2011 시즌]] 개막전에서 데뷔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 |제목=‘게인리히 데뷔골’ 수원, K리그 슈퍼매치 완승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0614522512§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이민선 |날짜=2011년 3월 6일 }}</ref> [[2011년]] [[4월 15일]] [[강원 FC|강원]]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마토 4호골’ 수원, 2-0 완승…강원 시즌 6연패 수렁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41520291628§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홍재민 |날짜=2011년 4월 15일 }}</ref>
         [[2011년 5월]] [[K리그 승부조작 사건|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후 최성국은 승부조작 근절을 위한 [[K리그]] 전 구단 전 선수가 참여하는 워크숍에서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 솔직히 웃어 넘길 수 있었으나 계속 들으니 지치기도 했다"라며 또 "모르는 전화는 받지도 않는다. 부끄러움 없이 정직하게 살았다"라고 하면서 승부 조작을 극구 부인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유병수, “통장, 통화 내역 공개할 수 있다”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gisa_uniq=20110531171825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5월 31일 }}</ref> 그러나 [[2011년]] [[6월 28일]] [[무 피닉스|광주 무]] 소속 시절 승부조작에 참여했다고 자진 신고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결백 주장하던 최성국, 승부조작 자진신고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629102140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6월 29일 }}</ref> 게다가 브로커 역할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ref>{{뉴스 인용 |제목='혐의 없다던' 최성국, 400만원 수수에 선수 섭외까지 |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28785 |출판사=OSEN |저자=허종호 |날짜=2011년 7월 7일 }}</ref> 더 이 축구계에 발을 딛을 수 없게 구 제명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41&aid=0002054535 승부조작 가담 선수 모두 “선수자격 구박탈”] 일간 스포츠 김민규 기자 2011-08-25</ref> [[마케도니아]]의 [[FK 라보트니치키]]에 입단하여 축구 선수로서의 생명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2012년]] [[3월 16일]](한국시간), [[국제 축구 연맹|FIFA]]가 최성국의 모든 선수 활동을 세계적으로 정지시키는 구제명을 결정함으로써<ref>{{뉴스 인용 |제목=FIFA, 최성국에 '선수 활동 정지' 징계 |출판사=OSEN |날짜=2012년 3월 16일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a_match/breaking/view.html?cateid=1172&newsid=20120316073304526&p=poctan }}</ref> 축구 선수로서의 삶은 끝나게 된다.
         구 제명을 당한 이 후, [[2012년]] [[6월 26일]] [[성남시]] [[분당구]]의 한 [[병원]]에 사무직으로 취직하였고 지금은 그만둔 태이다.
         2014년 현재 최성국은 어느 한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7월 축구선수 최성국·김동현 협박했던 30대 남성이 6년만에 기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news.mk.co.kr/newsRead.php?no=537548&year=2016|제목=축구선수 최성국·김동현 협박했던 30대 남성 6년만에 기소|확인날짜=2016-08-08}}</ref> 그와 동시에 2016년 7월 징계가 끝나는것과 관련하여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연맹은 아직 구제명에 대해 경감의사가 없는것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675935|제목=복귀 타진 최성국…축구계 "현실성 없는 일"|확인날짜=2016-08-08}}</ref>
         [[2016년 4월]] [[스포빌]]의 축구해설위원으로 취직하였다. <ref> {{뉴스 인용|제목=스포츠 중계 전문 ‘스포빌’, 스포플레이 해설위원으로 전 축구선수 최성국 입 |url=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536089&code=61161111&cp=nv |출판사=국민일보 |date={{날짜한글화|2016-4-15}} }}</ref>
         == 수 ==
         * [[K리그 신인선수]] : 2003
         * 올해의 프로축구 대 프로스펙스 특별 : 2004
         {{둘러보기 자 묶음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FK 라보트니치키의 축구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7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명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헌터X헌터/369화 . . . . 27회 일치
          * 빌의 추정으로는 스틸 체인을 공유하는 대은 크라피카와 연결돼 있어 태가 향을 받는 것. 크라피카가 눈을 뜨자 곧 왕비도 정신을 차린다.
          * 크라피카는 엠퍼러 타임의 지속시간은 세 시간이며 한계를 넘으면 세 배의 반동을 받는 걸로 추측하나 변수는 더 있을 듯하다. 마치 폭음같은 맥동이 전조 증.
          * 깨어난 왕비와 크라피카는 바로 수색을 재개하는데, 크라피카가 시간 한계 제 4왕자 체리드니히의 수색을 우선하자 하자 오이토 왕비가 정색한다.
          * 즉 오이토 왕비는 이미 넨능력의 소양이 개화된 태인 것. 그런 사실이 밝혀진 채 아침이 다가오고, 약속한 오전 9시의 넨 습득 교습이 시작된다.
          * 8왕자 사레사레 측은 경비대장 "무샤호"를, 7왕자 루즈루스는 두아즐 왕비 소속병 "사토비"를 보낸다. 그는 크라피카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인을 지우지 못한다.
          * 왕위계승전의 무대가 되어버린 BW호. 그러나 배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바다 위에 떠있었다. 목적지는 암흑대륙. 출항 2일 째. 항구를 떠난지 18시간이 되는 시점이었다. [[크라피카]]가 눈을 뜬 시각이었다. 끔직한 파열음을 끝으로 기억이 끊겼던 크라피카. 그는 여전히 [[오이토]] 왕비의 주침실에 있었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빌"이었다. 그는 크라피카가 의식을 되찾은 걸 보고 다행이라고 말했다. 방금 전까지 리스크를 감수해더라도 의사를 불러야 되나 망설이던 참이었다. 크라피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몇 시냐고 물었다. 빌은 그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크라피카가 실신했던 사실을 함구했기 때문이다. 다른 경호원들은 그가 임무 수행 중인줄 알고 있다. 크라피카가 안달하지 않아도 빌은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잘 전달해주었다. 그가 쓰러진지는 약 9시간. 크라피카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렇게나 지났을 줄이야. 크라피카는 왕비의 안위도 확인했다. 그리고 빌은 뜻밖의 사실을 전했다.
          * 왕비도 같은 태였다. 크라피카가 정신을 잃고 얼마지 않아 그녀도 쓰러졌다. 지금 그녀는 시마노의 간호를 받으며 침대 위에 있었다. 크라피카가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엔 왕비와, 그 곁을 떠다니는 "스틸 체인"의 아바타 "돌핀"이 보였다. 왕비가 막 눈을 뜨고 있었으나 크라피카는 거기에 신경쓸 정신이 아니었다. 돌핀이 아직도 왕비 곁에 있다는 것, 엠퍼러 타임이 12시간 째를 발동 중이란 말이었다.
          왕비는 잠에서 깬 것처럼 일어났다. 그녀가 시마노에게 와블 왕자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 빌이 크라피카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같은 시간에 쓰러지고, 다시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크라피카가 무리해서 쓰러지면 능력을 공유하는 인물도 같이, 그런 패턴이었다. 크라피카의 계산도 복잡해졌다. 혹시 엠퍼러 타임의 한계 시간이 3시간이란 의미인가? 그 한계를 넘으면 3배인 9시간의 블랙아웃 태에 빠지는 걸까? 아니다.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빼앗은 능력에 따라 시간에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엠퍼러 타임은 여전히 발동 중이고 다음 번에도 3시간 만에 쓰러진다고 장담 할 수 없다. 정신을 잃기 직전 들었던 끔찍한 파열음. 그 폭음 같은 맥동이 신호일지 몰랐다.
          왕비의 안에서, 뭔가 바뀌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빌과 시마노도 크라피카와 같은 걸 생각했다. 크라피카는 왕비에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체리드니히를 우선한건 순수하게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 위 왕자를 우선시 한 건 물론 시간의 제약 때문. 그리고 위 왕자 중에선 체리드니히가 가장 적격한 대이다.
          오이토 왕비의 비명이 세어나갔다. [[바비마이나]]를 포함해 경호원 전원이 달려온 걸 보면 꽤 먼 곳까지 들린게 틀림없었다. 바비마이나가 설명을 요구하자 크라피카는 "왕비님이 악몽을 꾸셨다"고 둘러댔다. 마침 그녀는 침대에 있었으니까. 바비마이나는 납득한 것같진 않았지만 트집을 잡을 구실도 없었다. 결국 경호원들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왕비는 그들이 나가고 나서야 황을 설명했다. 통풍구에 나타난 여자. 아마도 바퀴벌레는 먹혔을 것이다. 마침 왕비 곁의 돌핀이 "리틀아이가 강제 해제됐습니다"라고 알렸다. 오이토가 그 사실도 전달하자 크라피카는 이제 해제명령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으로 엠퍼러 타임은 종료. 장장 12시간, 그 중 9시간이나 허비한 결과 아무 수확도 없는 헛수고를 했다. 왕비가 발견한 통풍구 속의 여자가 수확이라면 수확일까? 보안 통풍구에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넨수, 체리드니히의 넨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크라피카는 갑자기 밀려드는 피로감에 몸이 휘청거렸다. 아무리 제약을 둔 넨이라도 몸에 아무런 반동도 없을 순 없었다. 자신의 능력이라지만, 정말 성가신 능력이다.
          크라피카는 "넨능력을 아는 것만으로 생존확률이 대폭 승"이라 말했다. 공감가는 말이다. 특히 그녀처럼 넨능력의 편린을 봤다면 더더욱. 그녀는 와블왕자를 위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늘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부탁을 받은 크라피카는 의외의 대답으로 돌려줬다.
          * 11왕자 후게츠와 10왕자 카쵸는 나란히 시녀를 보냈다. 경호원이 아닌 시녀. 두 자매는 어떤 협의를 한 걸까? 어쨌든 두 왕자의 시녀들은 대조적이었다. 후게츠의 시녀 "이랄디아"와 "라디오라스"는 왜 전투원도 아닌 자신들이 여기에 있는지 문을 몰라하고 있다. 반면 카쵸의 시녀 "로베리"와 "유리"는 이유가 뭐든 그 카쵸 밑에서 몇 시간이나 떠나있을 수 있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다.
          * 제 9왕자 할겐부르그는 사설병 둘을 보냈다. "세쥬르"라는 안경잽이 남자와 검은 머리의 "유히라이"라는 남자. 할겐부르그는 계승전에서 빠지기로 했지만 자신을 비롯해 소속병 전원의 손등에 "깃털문양"이 나타나자 예사일로 느끼지 않았다. 분명 "넨수"가 관련되었다, 그렇게 직감했다. 그 정보를 유포한 와블 왕자측과 접촉해 이 깃털문양의 실체를 밝히는게 목표. 그걸 위해서라면 이쪽의 정보를 전부 공개하는 것도 관없다. 세쥬르는 알아볼 필요도 없이 할겐부르그의 넨수일 거라고 짐작한다. 유히라이도 동감한다. 이 문양은 왕자가 말하는 "각오의 각인" 그 자체다.
          * 8왕자 사레사레는 쉰코쉰코 왕비 소속병 대장 "무샤호"를 보냈다. 짧은 머리에 이마가 돌출된 독특한 인. 그는 약간 씁쓸해하고 있다. 왕자가 적당한 이유를 붙여서 내쫓은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전 내용 자체는 분명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는 "최중요 임무".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제 7왕자 루즈루스도 사레사레와 마찬가지로 두아즐 왕비 소속병 대장 "사토비"를 보냈다. 이마에 주름살이 가득한 중년남. 그는 이 수업을 정찰 임무로 이해하고 있다. 다른 진 경호원들의 동향을 살피면서 교섭도 할 수 있는 기회. 그렇게만 보면 너무 좋은 조건이지만, 단 한 사람의 경호원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그는 크라피카를 위험인물로 간주했다.
          * 5왕자 츠베파는 철저하게 실리주의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사전에 접촉시켰던 사설병 대장 "마올"을 다시 파견하고 "롱기"라는 머리가 긴 남자를 딸려보냈다. 그 역시 츠베파의 사설병. 그들의 목표는 "크라피카의 두뇌". 그를 동료로 확보하는 것이다. 와블 왕자까지 포함해도 좋으니 꼭 동료가 될 수있도록 설득하라는게 진짜 목표였다. 넨 습득은 오히려 구실. 마올은 다른 진 경호병의 눈을 의식해 은밀하게 처리하려면 편지를 사용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롱기도 같은 생각이다. 부호를 쓰거나 동작으로 신호를 주고 받는 것도 노출된 우려가 컸다.
          4왕자 사설병 "뮤한"은 인만큼이나 정신태도 이한 녀석이었다. 왕자의 지시를 떠올리며 신이난 듯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다. 그 옆의 같은 소속 "단진"은 그보다는 멀쩡해 보이는 사내로 뮤한에게 "그렇다고 일부러 습득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당부 중이다.
          * 첫 정찰의 성과는 놀라웠다. 헌터 협회 소속 경호원은 당연히 넨능력이 있겠지만, 그를 제외해도 네 명이나 더 있었다. 못 쓰는 척을 하고 있다. 그들이 그저 잠복이나 하자고 와있는 거라면 관없지만, 만일 자신과 "같은 임무"를 받아온 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들이 먼저 능력을 발동한다면 자신도 적극적으로 "방어권"을 발휘할 거라고 다짐했다. 그는 녀석들이 어떤 면을 숨기고 있을지도 뻔히 알았다.
  • 홍인한 . . . . 27회 일치
         |학력= 1753년(조 29년) 문과급제
         |친척= 형 홍봉한, 사촌형 홍한, 조카 혜경궁홍씨, 조카사위 사도세자, 외종손 정조, 외종손 의소세손, 8촌형 홍창한, 9촌조카 홍낙춘, 10촌 종손 홍국
         |웹사이트=
         '''홍인한'''(洪麟漢, [[1722년]] ~ [[1776년]] [[7월 5일]])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자는 정여(定汝), 본관은 풍산(豊山). [[예조]][[판서]] [[홍현보]]의 아들이고 [[의정]] [[홍봉한]]의 이복동생이다. 혜경궁 홍씨의 이복 삼촌이 된다. [[홍국]]의 일족이기도 하다. 당색으로는 [[노론]]이며 노론내 외척당의 지도자였다.
         선조의 6대손이자, 정명공주와 안위 홍주원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예조판서 [[홍현보]]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로 이세황의 딸이다. [[홍봉한]]의 이복동생이다. [[혜경궁 홍씨]]의 이복 작은 아버지(숙부)이며, 관찰사를 지낸 홍창한은 8촌 형이 된다. 친동생은 [[홍용한]], [[홍준한]] 등이 있다.
         음서로 관직에 올라 [[통덕랑]]이 되었다. 통덕랑으로 재직 중 [[1753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조선의 대표적 명문 가문인 [[풍산 홍씨]] 가문의 일원이며, 혜경궁 홍씨의 친정 숙부라는 점도 작용해 [[조]]의 신임을 받으며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53년 가주서와 [[정언]]을 지내고 1754년 [[교리]]로 있을 때 [[조순]](趙榮順)을 변호하려다 파직되었다.
         55년 헌납을 거쳐 당관으로 특진하여 [[1757년]] [[전라]]감사로 부임했다. 전라도관찰사 재직 중 [[기생]]들의 춤과 노래실력을 트집잡아 [[곤장]]을 남발하고 즐겼다고 한다. 이는 중앙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대중]]이 이를 듣고 청성잡기에 기술하였다.
         [[1774년]] [[우의정]]에, [[1775년]]에 [[좌의정]]에 각각 임명되었으며, 1775년 세손(훗날의 정조)이 대리청정을 맡게 되자 이를 반대해 [[조]]가 세손의 대리청정을 명할 때 세손은 세가지를 알 필요가 없다 강변하며, 승지와 사관의 대필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의 대리청정 뜻이 확고해지자 [[혜경궁 홍씨]]는 사전에 삼촌에게 편지를 보내 세손의 대리청정을 막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 [[한중록]]에 의하면 대조의 뜻이 그러함을 편지로 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인한은 벽파의 당론에 따라 벽파, 외척당, [[정후겸]] 등과 함께 세손을 반대하였고, 홍인한은 조의 면전에서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했다. 이후 [[정후겸]], [[심운]] 등과 함께 [[홍국]] 등을 모해하는 소를 올렸다. 또한 부사직 심운을 시켜 세손의 대리청정 반대 여론을 조장했지만, [[홍국]]의 부탁을 받은 부사직 서명선이 역탄핵소를 올려 논박했고 오히려 심운은 유배되었다.
         한편으로 권력남용을 하고는 자기쪽 무리들과 야합하여 말을 퍼뜨리기를, "홍씨(洪氏)를 공격하면 이는 동궁(東宮)을 불리하게 만드는 일이다." 하면서 그것을 구실로 온 세의 입을 막으며 위협을 가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1776년]] [[음력]] [[3월]] [[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즉위하자, 숙청에 들어갔으며, 홍인한은 서명선 등의 탄핵을 받은 뒤 [[정후겸]], [[문성국]], [[김귀주]] 등과 함께 여러번 탄핵을 당한 뒤 [[충청도]] [[여산]](礪山)에 유배되었다가 배소가 옮겨져 [[고금도]]에 유배되었으며, 다시 거듭 탄핵을 받고 [[위리안치]](圍籬安置)형을 받았다가 그해 [[7월 5일]] 사사령을 받고 처형됐다.
         아들인 동지돈령부사 [[홍낙윤]](洪樂倫)이 아버지 홍인한의 신원을 청하는 소를 올렸다가 거절당하였다. [[1809년]] [[1월]]에는 [[조선 순조|순조]]를 찾아가 아버지의 억울함을 들어 변호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1832년]]에는 손자 홍백(洪百榮)이 할아버지의 억울함을 격쟁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이때 홍백을 처벌하자는 주장이 나왔으나 순조가 무마시켰다.
         === 화 ===
         * 이금희, 한중록 (, 하) (국학자료원, 2006)
  • 황보관 . . . . 27회 일치
         |출생지=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황보 관''' (皇甫 官, [[1965년]] [[3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감독, 축구 클럽 경자이자 전 [[대한축구협회]] 소속의 행정가였다. [[일본]] [[J리그]] 팀 [[오이타 트리니타]]의 코치, 감독을 거쳐 오이타 구단의 부사장 및 이사를 맡았고 [[2010년]]부터 오이타의 감독직을 다시 맡게 되었다. [[2011년]]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K리그]] 팀 [[FC 서울]]의 감독을 맡아 [[대한민국]] 무대에 복귀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117일 만에 사임하고 [[최용수 (축구인)|최용수]]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사임한 후 [[대한축구협회]]로 옮겨 기술교육국장을 맡았고 [[이회택]]의 후임으로 기술위원장이 되었다. 본관은 [[천 황보씨]]이다.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대구침산초등학교]],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계성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축구부가 해체되어 [[서울체육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347934 "죽기 살기로 뛰기보다 황대처 능력 키워라" 황보관 축구협 기술위원장] - 매일신문</ref> [[서울체육고등학교]],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A매치]]에서 종종 캐넌슛으로 골로 기록하여 '캐넌 슈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재엽]]과는 [[계성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에서 데뷔하여, 그 해 [[K리그 플레이어|K리그 신인]]을 받았다. [[1994년]] [[8월 6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버팔로]]와의 경기에서 [[K리그 클래식|K리그]] 통산 7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다. [[1995년]] [[일본]]의 [[오이타 트리니타]]로 이적하여 [[1996년]] 팀의 1부 리그로의 승격에 공헌하는 등 중심 선수로 활약하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하였다. [[1998년]] 시즌 중 은퇴하였다.
         은퇴 후 그는 지도자보다는 구단 경자, 행정가로 더 두각을 드러냈다. [[1998년]] 은퇴한 후, [[아시아 축구 연맹|AFC]]에서 주관하는 'C,B,A 코스' 및 '프로페셔널 지도자 코스'를 이수하였다. [[1999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대표팀]] 트레이너를 맡은 뒤,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1년]] [[오이타 트리니타]] 유스 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4년]] [[오이타 트리니타]]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5년]] [[요한 베르거]]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오이타 트리니타]] 감독으로 승격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4120600017 황보관 J리그 오이타 감독 승격]</ref> 감독 취임 뒤, [[경남도]] [[통시]]에서 열린 [[통컵]]에 참가하여 데뷔전을 치러 우승을 차지하여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으나,<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5022700011 황보관의 오이타, 2005 통컵 패권]</ref> 성적 부진으로 9개월 만에 해임되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20&g_serial=167328 황보관 오이타 감독, 전격 해임 '성적 부진 탓']</ref> 이후 [[오이타 트리니타]] 유소년 육성부장을 거쳐, [[오이타 트리니타]] 부사장 및 이사에 올랐다. [[2008년]] 팀이 [[J리그 컵]]에서 우승하자, 우승컵을 갖고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또한 [[일본문리대학]] 축구부의 테크니컬 디렉터도 맡았다. 오이타가 [[2009년]] 경난 속에 [[J리그 디비전 2|2부 리그]]로 강등된 후, 이듬해 감독직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2부 리그에서도 15위에 그치자 사임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황보관, J2 오이타 사령탑에서 퇴임|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300164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0-11-30}} }}</ref>
         == 수 ==
         * [[1988년]] [[K리그 신인선수]]
         |내용='''[[K리그 신인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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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코칭스태프]][[분류:1988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천 황보씨]][[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감독]][[분류:J1리그의 축구 감독]][[분류:J2리그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재팬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플레이어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Victoria II/POP . . . . 26회 일치
          * Nationality(민족): 크게 주류 민족, 주류는 아니지만 받아들여지는 민족, 갈굼당하는 민족으로 나뉜다. 주류 민족가 아닌 이들은 민족주의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꾀할 수도 있다. 또한 "타국 토에서 살고있는 우리 민족"은 위기를 유발시킬 수 있다. 예시의 POP는 조선인이다.
          * Ideologies(사): 해당 POP들이 가진 사의 분포. 사의 종류는 [[Victoria II/정당]] 페이지를 참고하자. 예시의 POP는 자유주의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 Life Needs(생명 욕구): 살아있기 위해 필요한 것들. 물컵으로 표현된다. 가장 우선적으로 충족하려 하는 욕구로, 만약 충족되지 못한다면 의식도와 투쟁성이 크게 증가할 뿐만 아니라 POP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반대로 생명 욕구를 충족하고 거주 프로빈스의 생활등급이 30 이이라면 어떻게든 애를 낳고 기르면서 산다. 그러니까 인구가 증가한다.
          * Everyday Needs(일 욕구): 지장 없이 살기위해 필요한 것들. 맥주잔으로 표현된다. 충족되지 못한다면 의식도와 투쟁성이 증가하며, 자신의 처지에 불만족해한다.
         각 POP 집단은 직업에 따라 여러가지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인다. 이들은 벌어들인 돈으로 세금을 내며 그 다음에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품을 구매한다.
         모든 욕구를 충족한 POP는 문제를 일으키려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남아나는 돈을 모으거나, 예금하거나, 국립 은행에 투자한다. 이런 이들 중 의식도가 높은 POP는 좀 더 위 등급의 POP로 승진하기까지 한다. 반면 오랜 기간 불만족한 POP들은 (실업자일 경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주나 국가로 이주하거나 직업을 바꾸게 된다.
          * 일 욕구: 석탄, 종이, 담배, 커피, 포도주, 사치품 의류, 사치품 가구
         공장, 철도, 국립 은행에 자신의 돈을 투자한다. 투자할 수 있는 대은 집권당의 경제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자본가가 많을수록 해당 주에 공급되는 재료의 가격이 감소한다.
         공장에서 생산된 품을 팔아 돈을 번다.
          * 일 욕구: 석탄, 종이, 담배, 커피, 포도주, 사치품 의류, 사치품 가구
         자신의 돈으로 재료를 사 품을 제조한다. 아직 공장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원자재 외 품은 이들이 제조하게 된다. 뭘 어떻게 하는건지는 몰라도 전차와 항공기도 만들 수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 공장과 기능공들에게 밀려나 쇠락한다.
         자신이 생산한 품을 팔아 돈을 번다.
          * 일 욕구: 석탄, 유리, 종이, 담배, 차, 술, 일반 의류, 가구
          * 일 욕구:
          * 일 욕구:
          * 일 욕구:
          * 일 욕구:
         공장에서 일하면서 품을 생산한다.
          * 일 욕구:
          * 일 욕구:
  • 권은희 (1959년) . . . . 26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 경력 = (주)헤리트 대표이사<br>KT네트웍스 전무<br>KTH 무이사<br>바른정당 최고위원<br>바른미래당 최고위원
         | 소속임위=
         | 웹사이트 = [http://www.eunhee.kr/ 공식사이트]<br />[http://ehkwon1.blog.me 권은희 블로그]
         * 2004년 12월 ~ 2006년 12월: (주)KT 무(여성임원 2호)
         * 2006년 12월 ~ 2007년 5월: (주)KT하이텔 경지원부문장(무이사)
         * 2007년 5월 ~ 2009년 6월: (주)KT하이텔 파란포탈사업부문장(무이사)
         == 훈 ==
         * 1998년: 정보통신부장관 부가서비스 발전 공로
         * 2012년: 소공인연합초정
         * 2012년: 2013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3년: 2012 대한민국 국회 과학기술 진흥공로 및 우수의정
         * 2013년: 2013 자랑스러운 경대인
         * 2013년: 2013 국회헌정대
         * 2013년: 2013 국감 우수의원
         * 2013년: 유권자 시민행동 국감 우수의정
         * 2014년: 2013 대한민국 의정대
         |전임자 = (대구 북구 갑)[[이명규 (1956년)|이명규]]<br />(대구 북구 을)[[서기 (1946년)|서기]]
         |같은 지역구 의원 = (대구 북구 을)[[서기 (1946년)|서기]]
  • 김성주(축구선수) . . . . 26회 일치
          * 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축구 해외파 선수들]], [[제주 유나이티드]]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소속팀 || [[알비렉스 니가타]] (2012~2013) [br] 카탈레 도야마 (임대) (2013) [br] 카탈레 도야마 (2014) [br] [[서울 이랜드 FC]] (2015~2017) [br] [[무]] (2016~2017, 군 입대) [br] [[울산 현대]] (2018.1~2018.7) [br] [[제주 유나이티드]] (2018.7~) ||
         2015 시즌 도중 이름을 '''김근'''에서 '''김성주'''로 개명하였다.
         3월 29일 [[FC 안양]]을 대로 역사적인 첫 리그 홈경기에 선발 출전해서 90분을 소화했지만 팀은 1대1 무승부를 기록했다.
         4월 11일 [[선문대학교]]와의 [[대한축구협회 FA컵/2015년|FA컵]] 3라운드 홈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서 전반 30분 오창현의 드로인을 머리로 받은후 오른발로 접어 대 수비와 골키퍼를 속인 뒤 왼발슛으로 첫골을 기록했다. 팀은 2:0으로 승리하여 32강전에 진출했다.
         4월 15일 [[무]]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지만 70분에 보비와 교체되며 나갔다. 팀은 3대2로 패배했다.
         4월 18일 [[아산 무궁화|안산 경찰청]]과의 리그 원정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해서 전반 7분 프리킥 황에서 높이 찬 공이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발 앞으로 뚝 떨어지면서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침착하게 득점을 성공시키면서 도움을 기록하고 75분에 라이언 존슨과 교체되어 나가며 팀은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5월 13일 [[강원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51분 이재안 선수와 교체되며 투입되었다. 후반 종료직전에 보비와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 사이로 패스를 보냈고 이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받은 후 드리블로 수비를 속이고 오른발 슛으로 득점에 성공하지만 팀은 결국 2:4로 패하고 만다.
         5월 16일 [[충주 험멜]]과의 리그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 전반 34분 엄청난 개인기에 이은 크로스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헤딩으로 골을 넣으며 도움을 기록하고 48분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개인기에 이은 힐패스를 받아 수비와 키퍼 사이로 패스, 이를 타라바이가 골을 넣으며 2도움을 기록하고 첫 MOM을 달성했고 팀은 4:0 완승을 거두고 리그 홈 첫승을 달성했다.
         5월 23일 [[고양 Hi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선발 출전해서 47분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뺏은 공을 드리블 후 먼거리에서 감아찬 슛이 들어가며 골을 기록하였고 55분 코너킥 황에서 대 키퍼가 펀칭으로 처리한 공을 페널티박스 밖에서 또 감아찬 슛이 키퍼에 손에 닿지한고 들어가며 멀티골을 기록하며 2연속 MOM을 달성했고 팀은 4:2로 승리를 거두며 리그 2연승.
         6월 20일 [[무]]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선발출전해서 90분을 소화했지만 팀은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2골을 넣었음에도 2:3으로 패하며 연승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8승 4무 3패, 리그 2위 유지.
         7월 12일 [[경남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전반 초반 선취골을 넣었으나 곧바로 동점골을 실점한 이후 양팀 키퍼들의 동반 선방쇼로 서로 수많은 찬스들을 놓치면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김광(축구선수)|김광]]이 MOM 선정. 10승 5무 5패, 리그 3위 유지.
         8월 3일 [[FC 안양]]과의 리그 홈경기에서 선발출전해서 캡틴 김재성의 결장으로 세트피스를 전담했지만 득점에 관여는 못하고, 후반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의 선제 결승골로 1:0 승리했다. 1득점을 기록한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MOM 선정. 11승 5무 5패, 리그 2위로 한계단 승.
         ==== [[무]] ====
         2016년 [[무]]에 입대하여 11경기 1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K리그 클래식]] 잔류에 일조하였다. 그리고 2017년에는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하여 21경기 1도움을 기록하였고, 9월에 전역하여 [[서울 이랜드 FC]]로 복귀하여 5경기를 뛰었다. [[K리그]] 데뷔를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서 했기 때문에 실력에 의문을 갖는 팬들이 많았지만, 2년 연속으로 [[무]]의 클래식 잔류를 도왔다는 점에서 클래식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을 듯.
         [[분류:1990년 출생]]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알비렉스 니가타/은퇴, 이적]] [[분류:서울 이랜드 FC/은퇴, 이적]] [[분류:무 축구단/전역]] [[분류:울산 현대/은퇴, 이적]] [[분류:제주 유나이티드/현역]]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26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의 사무소 2층 대회의실에선 시에핫사이카이와 젊은 두목 [[오버홀]]에 대한 회의가 시작된다.
          * 이것은 시에핫사이카이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여기에 "사람의 피나 세포"가 들어 있었다는 것.
          * 오버홀, 치사키의 능력은 "대의 분해와 수복". 그리고 그에겐 딸 에리가 있다.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는 그때 본 처가 불현듯 떠오른다.
          * 공교롭게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고 생각했더니 [[미도리야 이즈쿠]]와 친구들은 모두 같은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서 나이트아이]]의 사무소 2층 대회의실. 이곳에 현역에서 뛰고 있는 다양한 히어로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엔 [[아이자와 쇼타]]와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처럼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각각 인턴활동을 하고 있는 미도리야와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도 참석대이다. 물론 그들의 사무소 책임자들도 참석.
          나이트아이는 회의의 시작을 알리며 착석을 요청한다. 미도리야는 히어로 덕후 기질을 발휘, 짧은 시간 동안에도 참석한 히어로들의 면면을 빠르게 살핀다. 랭킹에 올라간 유명인사들도 있지만 지방에서 활동하는 마이너 히어로들도 있다. 오챠코와 츠유는 담임인 아이자와에게 먼저 다가간다. 아이자와는 나이트아이 측에서 협력 요청이 있어서 왔다가 밝히고 자신도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키리시마는 선배 [[아마지키 타마키]]와 함께 [[패트껌]]에게 다가간다. 키리시마에겐 시에핫사이카이도 금시초문. 패트껌은 그 녀석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몰라서 모인 것이며, 사실 그들도 이미 엮여 있다고 하는데.
          * 착석이 끝나고 회의가 시작된다. 나이트아이의 사이드킥 [[버블걸]]이 간단히 브리핑을 시작한다. 나이트아이의 사무소는 2주 전부터 지정빌런 단체 "시에핫사이카이"를 조사하고 있었다. 계기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레저보어독스라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빌런 강도단의 사고]]였다. 경찰은 사고로 처리했지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그들에게 의뢰, 조사가 시작되었다.
          * 나이트아이 사무소의 또다른 사이드킥 [[센티피더]]가 이어받는다. 그 또한 시에핫사이카이를 추적하고 있었다. 요 1년 동안 그들의 움직임은 활발해졌다. 전국의 조직과 외부 인사들과 접촉이 급증, 조직을 확장하고 자금을 모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옆에 앉은 [[토오가타 밀리오]]는 그가 그랜토리노와 아는 사이냐고 묻는데 미도리야는 직장 체험 때 인연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맞은 편에 앉은 키리시마는 그랜토리노가 카미노 사건 때 [[올마이트]] 옆에 있던 노인이란걸 알고 미도리야가 굉장한 사람과 안면이 있다고 감탄한다.
          * 나이트아이도 미도리야와 그랜토리노 사이의 대화를 뜻모를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회의를 속행시킨다. 이후는 여기까지 입수된 정보를 바탕으로 HN에서 협력을 요청했으며 현재에 이른다. 오챠코와 츠유는 HN가 뭔지 모르는데, [[하도 네지레]]가 설명해준다. 히어로 네트워크의 약자로 프로 히어로들이 사용하는 넷서비스로 호활동 보고와 정보교류, 협력 요청 등을 처리할 수 있다.
          * 레게풍의 프로 히어로는 이 자리에 프로 이외의 인물이 있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꼬맹이가 있으면 회의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자 패트껌이 반발하며 "이들은 '''슈퍼''' 중요 참고인"이라며 키리시마와 타마키를 소개한다. 정작 둘은 문을 모르는 태. 특이 타마키는 이 장소 자체가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다.
          * 관서의 히어로인 그는 여기서는 초면인 사람이 많다. 그는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는데 둥글둥글한 몸매가 여학생들의 호평을 산다. 패트껌은 좋아라하며 사탕을 나눠주겠다며 꺼낸다. 그 사이 나이트아이는 그가 합류한 정황을 설명한다. 시에핫사이카이가 금지약물을 유통해 수입원으로 삼는다고 보고 관련 계통에 빠삭한 그의 협조를 구했던 것이다. 패트껌은 사탕을 나눠주려다 말고 며칠 전 사건에 대해서 열변을 토한다. 금지 약물 유통은 과거에 한 번 근절시켰다. 그런데 키리시마, 레드 라이오트의 데뷔전 날 사건이 터졌다. 그때 전혀 본 적도 없는 종류의 약물이 타마키를 맞췄다고 말한다.
          * 이번에는 이 탄환이 왜 시에핫사이카이와 연결되냐는 질문이 나왔다. 여기에 대해서도 패트껌이 설명한다. 분명 아직 증거는 없다. 하지만 키리시마가 잡은 빌런을 시작으로 조사를 한 결과 그 탄환은 시에핫사이카이와 교류가 있는 어떤 조직에서 나왔다. 원래 이런 약물 유통은 몇 단계의 그룹과 조직을 거쳐 추적이 어려운데, 이 과정에서 저런 조직이 끼어 있다는건 최종적인 경로는 시에핫사이카이라는 걸 암시한다.
          이것만 가지고는 시에핫사이카이를 추적할 만한 근거는 안 되지만, 이번엔 류큐의 사무소가 처리한 일이 연결고리가 됐다. 네지레, 오챠코, 츠유가 함께 처리한 빌런단체의 리더가 방금 전 유통망에 끼어 있던 조직의 일원이었다. 게다가 이때 거대화했던 빌런은 "개성을 강화하는 약"을 사용했는데, 이건 키리시마가 대한 빌런과 일치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모두 정황이며 "이으려 하면 이어진다"는 정도의 정보일 뿐. 히어로들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여기서 나이트아이는 좀 더 구체적인 단서를 제시한다. 그것은 시에핫사이카이의 젊은 두목 치사키, [[오버홀]]에 대한 정보다.
          >대의 분해, 수복이 가능한 힘입니다.
          * 미도리야와 밀리오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다. 둘은 정확히 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그들이 놓치고 말았던, 지금와서 보면 치명적이었던 복선. 치사키와 함께 있던 소녀. 그리고 그 처들. 지금 이 자리에서 듣고 있는 정보들과 그들이 본 것, 모든 것을 합쳐보면 무시무시한 자괴감이 그들을 덮쳤다.
         나이트아이의 사이드킥 센티피더는 독자응모 디자인. 팬아트 콘테스트 우승작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26회 일치
          *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단독으로 [[오버홀]]을 뒤쫓는 밀리오. 그리고 그런 그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은 타마키. 홀로 오버홀의 부하들을 대하겠다고 나선다.
          * 철포옥 핫사이슈의 저항은 예보다 강했다. 이들은 한 번 삶을 등졌던 자들이나 오버홀이 "재활용"해줬다면서 "기대를 받으면 부응"해야 한다고 격렬히 저항한다.
          * [[오버홀]]이 감금한 "에리쨩"을 구출하고 시에핫사이카이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아지트를 급습한 히어로&경찰 연합. 그러나 프로 히어로로 구성된 선두 그룹이 [[이리나카]]의 함정에 빠지며 후위와 분단된다. 이리나카는 우선 경찰 위주로 구성된 후위를 먼저 처리하려고 생각하는데.
          한편 아랫층으로 떨어뜨린 선두그룹은 서둘러 오버홀과 단독으로 그를 추격하러 간 밀리오를 따라나서려 하나, 사전에 버림말로 동원된 "철포옥 핫사이슈"에 발목이 잡힌다. 이때 혼자서 이들을 처리하겠다며 나서는 타마키. 더이 밀리오의 발목을 잡을 순 없다고 다짐한다.
          * 타마키의 사무소 후배 [[키리시마 에지로]]가 "혼자 맡겠다"는 말에 반발한다. 이럴 때일 수록 공동대응해야 한다는데. 이때 핫사이슈 중 검은 마스크를 쓴 단발머리가 먼저 움직인다. 날붙이를 든 녀석이다. 형사가 그 녀석은 "세츠노"이며 "화기를 쓸 수 없는 대"라고 하는데. 무슨 개성인진 모르지만 성가신 모양이다. 세츠노가 바로 손을 올려 개성을 쓰려고 하니 [[아이자와 쇼타]]가 선수를 친다. 세츠노가 개성을 쓰지 못하자 옆의 대머리가 "개성을 지우는 개성"임을 간파한다. 그는 그걸 "에리의 열화 개성"이라 말하는데.
          * 대머리가 총을 꺼낸다. 총기에 면역인 [[패트껌]]이 맨 앞으로 나와 일행을 지키면서 "총도 칼도 안 통하니 얌전히 잡혀라"고 위협한다. 핫사이슈들은 "그런건 목숨이 아까운 놈들한테나 통하는 말"이라며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제가 대하겠습니다.
          타마키는 공언한 대로 자기 혼자서 이 셋을 대하겠다 재차 선언한다. 단발머리는 세츠노. 개성은 "절도". 대머리는 호죠. 개성은 "결정". 빵봉투는 타베. 개성은 "식". 이 세 명이다. 타마키는 패트껌 사무소에서 타코야키를 충분히 먹어서 문어다리의 숙련도도 최고조에 달했고 지난 번 사건의 경험으로 원거리 공격에도 민감해진 태다. 그는 이런 조무래기들 대로 프로히어로가 몇 명이나 묶여 있는 거야 말로 적들이 바라는 일이라며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후배인 [[미도리야 이즈쿠]]와 키리시마가 주저하나 이런 황일 수록 프로들의 개성을 아껴두는게 좋다고 사인 패트껌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 키리시마와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타마키를 혼자 두는 패트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너무 위험하다는 것. 그러나 패트껌은 실력으로 치면 지금 여기 있는 이 중 타마키가 제일이라고 단언한다. 단지 마음이 약하고 네거티브가 심한 것이 흠이었는데, 반대로 말하면 그런 태로도 웅고의 빅3 중 일각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패트껌의 판단대로 타마키는 망설임이 사라졌고 정확하게 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이리나카의 의태능력이 별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윗층에 남은 경찰을 우선한다고 추정, 동시에 여러 무리를 대할 수 없다는건 미궁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낸다. 그렇다면 이녀석들만 손쓰면 된다. 타마키는 문어다리로 적들을 꽁꽁 묶어놓은 채로 잠재워버리려 한다. 하지만 적들도 필사적인 이 그렇게 쉽게 풀릴 수는 없다. 세츠노가 문어다리로 변형시킨 타마키의 주먹을 안면으로 들이받는다. 무슨 짓일까?
          >쓰레기같은 인간들을 대하고 있으니까
          칼이다. 검은 마스크 아래에 날붙이를 숨겨뒀다. 그것으로 타마키의 문어다리를 그어버렸다. 타마키가 움찔하는 사이 마침 아이자와의 무효화도 효력이 다해가고 있었다. 호죠가 자신의 개성 "결정"을 발동시킨다. 키리시마와 비슷하게 피부를 "결정"화시켜 단단하게 만드는 개성으로 보인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나오는 것일까? 세츠노는 본래 자신들이 인생을 버린 종자들이라 말한다. 오히려 히어로에게 구해졌을 땐 살아남은 것에 절망했던 패배자들이다. 그런 이들을 "재활용"해준 것이 오버홀, 시에핫사이카이의 차기 두목 치사키다. 호죠가 그런 사실을 밝히며 묵직한 주먹을 날린다.
          * 호죠의 공격을 받는 순간, 그리고 "기대 받으면 부응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타마키도 떠오른 것이 있었다. 중학교 때 "개성 교육" 시간. 이때도 타마키의 성격이 문제였다. 교사들에게는 "좀 더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 받았지만 쉽게 긴장하는 탓에 제대로 개성을 쓰지 못했다. 결국 교사도 포기하고 빠져있으라는 황.
          * 호죠의 공격은 적중하지 않았다. 그리 호락호락한 대가 아니다. 타마키, 히어로 "선 이터"가 취한 방식은 방어가 아니다. 그는 문어다리를 게껍질로 감싸 "경화"시켰다. 빌런의 어중간한 경화 따위는 가볍게 분쇄할 수 있는 강력한 힘. 그는 호죠의 주먹을 부수며 예전 친구가 붙여준 이름을 자랑스럽게 밝힌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26회 일치
          * 자신은 히어로의 자질은 커녕 "의협심" 조차 없다고 좌절한 [[키리시마 에지로]]는 웅고 진학도 포기하려 했다.
          * 웅고에 합격한 키리시마는 나약한 과거와 결별의 의미로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데 사정을 아는 [[아시도 미나]]가 "어두운 얼굴을 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 히어로는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나 외견, 인기가 아니라 "의협심". 동경하는 히어로 "크림슨 라이오트"의 가르침을 따르며 히어로를 지망했던 [[키리시마 에지로]]는 기묘한 사건으로 그 자긍심이 무너지는 일을 겪는다. 히어로는 커녕 사나이도 아니다, 그런 자괴감이 들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저 겉으로만 그럴 듯한 말과 행동을 했고,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앞에선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아시도 미나]]처럼 그런 황에서도 한 발짝 내딛을 수 있는 인간이 진정한 히어로다.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
          더 옛날의 얘기지만, 개성이 막 발현했을 무렵은 더 한심했다. 개성이 처음 발현했을 때 눈을 비비다 눈을 베어버릴 뻔한 일이 있었다. 지금 눈 위에 있는 흉터가 그때 생긴 것이다. 거기에 겁을 먹은 어린 키리시마는 한동안 자기 개성이 싫다며 울었다고 한다. 그가 크림슨 라이오트를 동경하게 된 것도 그때 일이 향을 준 걸지 모른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개성을 가진 히어로였다. 키리시마가 히어로를 지망했던건 단순한 도피행위, 대리만족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 지금도 책 한켠에는 그 시절 읽던 히어로 백과가 보관되어 있었다. 키리시마는 그 책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다 견디기 어려운 듯 책장으로 집어 던진다. 책과 함께 진열했던 히어로 굿즈들이 떨어진다. 그 중엔 언젠가 생일선물로 받았던 히어로 위인전의 부록도 있었다. 물론 크림슨 라이오트가 나오는 것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충격 때문인지 홀로그램을 투사하는 부록이 멋대로 작동했다.
          속 크림슨 라이오트가 키리시마를 꾸짖었다.
          * 부록의 은 크림슨 라이오트가 출연한 인터뷰 장면이었다. 자신의 히어로관을 피로하던 대목이다. 키리시마는 이 으로 처음 크림슨 라이오트를 만났다.
          방금 전 꾸짖음은 키리시마가 아니라, 인터뷰하는 대인 아나운서에게 뱉은 말이었다. 곧이어 당황한 아나운서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크림슨 라이오트를 "보통 히어로 보다 저돌맹진"이라 평하며 "위험에 몸을 던지는데 공포는 없는지"에 대해 물었다. 사나이다움으로 똘똘 뭉친 히어로는 뭐라고 대답할까? 당연히 그런건 없다고 하지 않을까?
          을 꺼버릴 수도 있었지만 키리시마는 그러지 않았다. 이 인터뷰의 내용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키리시마는 곧 처음 본 것처럼 에 빠져들었다. 그 속에서 라이오트가 하는 말은 초등학생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땐 어려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말들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던 말들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당시 키리시마는 그저 라이오트가 전력으로 달려드는 모습에 매료됐을 뿐이다. 지금은 다르게 보였다.
          * 라이오트가 위험을 무릎쓰게 된 계기. 그것은 사이드킥 시절의 경험이었다. 구할 수 있었던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히어로를 선전하려는 이런 매체에선 부적절한
          다 듣고 났을 땐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실제로 흘렸다. 다음날 키리시마는 새 진로희망 조사서를 받았다. 거기엔 깨끗하게 웅고 지망을 적어넣었다. 이제는 그걸 숨기지도 않았다. 친구들이 보고 정말이냐고 물었다. 정말이었다. 각오가 섰다.
          *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는 어제 괴한을 만났던 여학생들을 찾아나섰다. 그녀들을 찾아낸 키리시마는 "그때 둘을 보고도 쫄아서 움직이지 못했다"고, 아무 것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사과했다. 허리가 90도로 꺾어지는 정중한 사과였다. 사실 사과를 받는 쪽에서 왜 사과를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두 여학생은 괜찮다고, 보통 무서운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런 황에서 개입할 수 있는 미나가 굉장한 경우다. 마침 미나도 그 옆에 있었다. 그녀도 문을 모르긴 마찬가지였지만 묘한 인을 주는 키리시마를 눈여겨 보았다.
          이후 끝없는 노력의 나날. 키리시마의 개성은 강해졌고 웅고를 향한 수업도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그가 쌓은 것은 거짓말하는 법 없이 보답을 가져왔다. 키리시마는 웅고 합격을 알리고 친구들의 축하를 받았다.
          * 키리시마의 집착은 그날에서 계속 이어져왔다. 지금까지 무서운 일은 많았다. 그러나 그 이으로 무서운건 한 가지 뿐이었다. "그때로 돌아가는 것". 나약한 시절을 뒤풀이하는 일이다.
          * 텐가이가 최대 경도의 배리어를 친다. 하지만 랏파는 본능적으로 그것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 예이 맞았다. 패트껌의 창이 방패를 부수고 철포옥 핫사이슈를 꿰뚫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26회 일치
          * [[시가라키 토무라]]가 시에핫사이카이와 협력을 결정했을 때, 이들을 비롯해 [[빌런 연합]] 멤버들의 반발이 거셌다.
          * 토가와 트와이스는 이미 동료들을 죽이고 부입힌 그들과 협력할 수 없고, 뭣보다 왜 하기 싫은 일을 굳이 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 이리나카의 책략으로 분단된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 뜻하지 않았던 [[빌런 연합]]의 개입. [[토가 히미코]]의 습격으로 이미 희생자가 나왔다. 자물쇠 히어로 [[록록]]이 당했다. [[미도리야 이즈쿠]]도 그럴 뻔 했지만 [[아이자와 쇼타]]가 눈치 챈 덕에 제지했다. 대신 그가 부을 입고 피를 빼앗기는 사태가 생겼지만.
          아이자와는 부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미도리야에게 록록의 지혈과 주변의 경계를 먼저 부탁했다. 특히 토가가 남긴 나이프는 필히 회수해야 했다. 행동으로 보아 피를 취해서 사용하는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다. 날붙이를 방치하면 아픈 꼴을 당하겠지. 아이자와는 자신의 안일함을 통감했다. "사자가 나올 정도의 다툼". 그 단편적인 정보를 너무 믿었다. [[시가라키 토무라]]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다. 그 성격으로 누구 밑에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사자가 나올 정도로 다퉜다면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안일함. 그 결과가 이 황이다.
          * [[서 나이트아이]]를 습격한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야쿠자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나이트아이를 "평범한 샐러리맨"이라고 비웃으며 "야쿠자를 얕보지 말라고" 뻔뻔스럽게 외쳤다. 하지만 대하는건 자신이 아니다. "랏파"의 "카피"가 나이트아이에게 러쉬를 가했다. 트와이스의 개성은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두뇌파 히어로의 대위기. 그러나 다음 장면은 누구도 예하지 못했다. 나이트아이 자신만을 제외하곤.
          나이트아이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랏파의 주먹을 피하며 허술한 하체를 공략했다. 그 거체가 나이트아이의 발에 걸려 붕 떠올랐다. 이 시점에서 나이트아이의 예은 한 가지만 빼곤 전부 들어맞았다. 랏파의 주먹이 옷깃을 스친 것. 나이트아이는 그것을 담담히 인정하며 랏파가 강하다고 했지만, 그게 그가 예측한 미래를 바꿀 순 없었다.
          방금 그의 설명은 도장사이즈로 고밀도 압축된 5kg의 쇳덩이를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투사했다는 말이었다. 순수한 자기 힘만으로. 외견으론 믿기지 않겠지만 그는 근접전의 강자였다. 많은 사건, 많은 사람의 미래를 보아온 탓에 그는 "예측하고 선수친다"는 당연한 요령에 매우 능했다. 그는 겸손하게 "보통사람보다 조금 빠른 정도"라고 표현했지만 그 빠른 예측이 빗나갓다는 점에는 놀라워하고 있었다.
          처박힌 랏파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날인"은 트와이스도 볼 수 있었다. 지금 나이트아이의 손에는 그런게 몇 개나 들려있었다. 그의 찢어진 옷긴 사이로 빈틈없는 단련의 편린이 드러났다. 허세도 거짓도 없다. 트와이스의 저항의지는 금방 꺾였고 그 꺾인 탓인지 카피 랏파가 녹아내렸다. 하지만 그는 패인을 카피의 원본에게 돌렸다
          * 나이트아이에겐 관심없는 문제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날인이 트와이스를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날인은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마스크 좌측을 크게 찢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나이트아이는 다음 날인을 꺼내고 있었다. 저 괴물은 저런걸 얼마나 가지고 다니는 걸까? 도망치자, 트와이스는 미련없이 등을 보였다. 그가 허겁지겁 뛰자 이리나카가 그와 나이트아이 사이를 벽으로 막았다.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었지만 트와이스가 원망을 늘어놨다. 찢어진 마스크. 트와이스는 이것도 이리나카가 미적거려서 당한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열하고 있었다. 위험신호였다. 그의 자아가 주체할 수 없이 갈라지려고 했다. 만일 토가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트와이스는 그대로 끝장이었다.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냥하게 그의 찢어진 마스크를 감싸주었다. 감싸면 하나. 토가의 손길이 닿자 트와이스가 급속히 안정을 되찾았다.
          * 이리나카를 규탄하기는 토가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자신도 이리나카 덕에 무사히 빠져나와 놓고는 말이다. 그녀는 모처럼 협력해주고 있는데 야쿠자 측이 너무 불성실하다고 투덜거렸다. 트와이스는 토가를 구원의 여신처럼 바라보며 칭송하고 사귀자고 치근덕거렸다. 토가가 그를 강아지처럼 쓰다듬으며 슬픈 심정을 헤아려주었다. 트와이스는 [[오버홀]]을 빌런 연합에 소개한 탓에 [[마그네]]를 죽게 했다고 누구보다 자책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핫사이카이에 협조해주고 있는데, 정작 협조대은 그걸 전혀 몰라주고 있지 않은가?
          >협력대이 안 하려고 하면 보답받지 못한다니까
          >핫사이카이랑 협력하겠다고?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트와이스였다. 그가 그렇게 되묻자 시라가키는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며 다시 한 번 시에핫사이카이와 협조한다고 선언하고 오버홀이 제공한 계획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가와 트와이스에게 "너희는 오늘부터 야쿠자"라고 통보했다. 트와이스는 이 "재미없는 농담"을 그만두라고 말했지만 시라가키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재미없는 농담은 정도를 넘어서 중요한 임무 중인 [[쿠로기리]]까지 뺏길 뻔 했는데 간신히 막았다는 자찬으로 이어졌다. 시가라키의 설명이 구체적인 임무 브리핑으로 이어지려 하자 트와이스가 그만두라고 언성을 높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토가는 춤 추듯 빙글빙글 돌며 자신은 연합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시작은 [[스테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스테인]]이었다. "스테 님"을 접한 걸 계기로 그녀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하기 편한 세으로 만들기 위해서 연합에 들어왔고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연합에서 하는 일이 그 목적에 부합하자면 그녀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게 정말 필요한 일이라면.
          * 하지만 그녀는 더이 시가라키를 위협할 수 없었다. 동료들이 진심의 얼굴을 보였다면, 자신도 그렇게 한다. 시가라키가 맨 얼굴을 드러냈다. 진심의 얼굴이었다.
          시가라키는 맨 얼굴인 채로 아까 하려던 설명을 이어갔다. 시에핫사이카이, 오버홀은 빌런 연합의 기동력을 깎으면서 연합의 유용한 인재들을 회유하려는 속셈이다. 바깥으로 끌어내 구슬려서 정식으로 시에핫사이카이의 장기말로 만들려는 수작. 저쪽은 처음부터 이쪽과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사실 시가라키도 마찬가지였다. 세력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문제가. 그 부분이라면 시가라키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지금만 멋대로 사이좋게 지내겠다, 히어로.
          눈이 뒤집힌 이리나카는 지금껏 구했던 작전이나 강화약의 효능같은건 머리 속에서 지워졌다. 그가 생각하는 건 한 가지.
  • 둠 패트롤 . . . . 26회 일치
          본명 리타 파(Rita Farr). [[올림픽]] [[수]]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할리우드]] 여배우로서 활동했다. [[아프리카]]에서 화 촬하다가 이한 화산 가스에 노출되었고, 그 향으로 자신의 몸 크기를 100피트까지 늘리거나 몇 인치까지 줄일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나중에 능력이 발전하여 신체 일부분의 크기만을 조절하기도 한다. 신체를 [[거대화]]화는 이미지도 있다.
          외모는 손을 입지 않았지만 리타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위험한 괴물로 여겨졌다. 화배우로서 더 이 활동하지 못하게 되어 은둔 태가 되었으나 치프에게 둠 패트롤로 스카우트 된다. 나중에 멘토와 결혼하고, [[비스트 보이]]를 입양한다.
          여담으로 [[인크레더블]]의 '엘라스티걸(Elastigirl)'과 이름이 같은데, [[픽사]]에서 디씨 코믹스에게 허가를 얻은 것이다. 다만 이 허가는 '화 내부'에만 국한되어 있고 머천다이징에서는 허가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인크레더블 부인'으로 표기된다.
          본명 래리 트레이너(Larry Trainor). 비행기 테스트를 하다가 대기중의 [[방사능]]에 노출되어 초능력을 얻었다. 자신의 몸에서 음전하로 충전된 빛에 둘러쌓인 그림자 같은 [[분신]]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는데, 분신을 분리한 태에서는 매우 약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분신을 꺼내는 것은 60초 동안만 가능하다. 또한 사고의 향으로 [[투명인간]]이 되버려서 평소에는 붕대를 감고 있다. 능력 때문에 이런 이름인 것 같지만 사실 이름 그대로 네거티브한 성격이기도 하다.
          본명 클리프 스틸(Cliff Steele). 자동차 사고로 중을 입었으며, 치프가 그의 [[뇌]]를 [[로봇]] 몸체에 이식하여 살려냈다. 자신의 몸 때문에 [[우울증]]이 있다. 로봇 신체에서 [[괴력]]을 발휘.
          * 웅 팀은 '사회적 기피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 둠 패트롤이 스탠 리의 [[판타스틱 4]]에서 향을 받았다는 반론도 있다. 판타스틱4는 1961년에 첫등장했다.
         오리지널 둠 패트롤은 당한 문제작으로 꼽히지만, 미디어로 다뤄지지 않아서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 2006년에 [[워너 브라더스]]에서 화로 만든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2014년에도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 엎어진 듯.
         [[NEW 52]] 이후 <[[포에버 이블]]> 타이인 이슈에서 멤버들이 [[크라임 신디케이트]] 멤버인 쟈니 퀵과 아토미카에 의해 의해 몰살당하다시피 패했다. 이후 치프로 보이는 사람이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군'이라 말한다. 결국 포에버 이블 이후 등장 암시가 나오더니 [[저스티스 리그]] #31화 막바지에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치프는 새로운 [[할 조던(지구-3)|파워 링]]인 제시카 크루즈 역시 팀에 넣을 생각인듯 싶었으나 숙주(제시카 크루즈)를 죽여서라도 [[볼툼]]의 반지를 얻으려는 것 같으며 민간인이 다치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 네거티브 맨, 로봇맨, 엘라스티 걸, 엘레멘트 우먼이 불난 빌딩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했지만 치프는 "파워 링을 제압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며 민간인을 놔두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간신히 파워 링을 얻을 기회가 생기지만 [[렉스 루터]]가 치프를 붙잡는다. 치프와 루터의 대화로 볼때 둘은 잘 아는 사이인듯.[* 이때 루터가 치프에게 "네 척추에 구멍을 내기 전에 파워 링을 넘겨라." 라고 협박하는 것으로 봐선 곧 휠체어에 탈 운명인듯 싶다.]
         멤버 구성이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여러모로 반대되는 인물들로 되어있다. 당장 리그 멤버였다가 합류하게된 엘리먼트 우먼도 마찬가지. 저스티스 리그가 사람들에게 호감받을법한 자들이라면 둠 패트롤은 기피대이 될것같은 자들.
          나일스 콜더. 현 매드 사이언티스트. 볼툼의 반지의 새 숙주가 된 제시카 크루즈의 앞에 둠 패트롤을 이끌고 등장했다. 루터가 말하길 새로운 파워 링이 된 제시카 크루즈 또한 실험체 리스트에 올리기 위해 확보대에 속하는 거라고 주장하지만, 치프는 루터의 모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팀원들에게 휘말린 민간인들 냅두고, 볼툼의 반지에 집중하라 하면서 이를 따르지 않으면 자기가 준 생명을 다시 거둬갈거라 위협하고, 제시카가 반지에 지배 당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뇌에 손을 대는거라 주장하며 이 막장 선택지를 실행하려 한 막장 인물. 이를 보아 루터의 언급의 진위 여부는 둘째 치고, 현재의 그가 막장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한편 폭주하는 제시카를 배트맨이 저지한다.
          자신은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사회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메타휴먼을 위한다고 루터에게 강변한다. 다른 멤버들은 치프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일부러 다른 멤버들에게 오직 자신만이 다른 멤버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존재라고 반복해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위협하기도 하는 등 정말일지는 의문스럽게 하는 인물. 일단 치프에 대한 묘사는 치프 스스로의 말과 루터의 말이 엇갈리고, 리붓 이후의 치프의 과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스티스 리그와 대면한 에피소드에서 보인 행동이나 내뱉는 말들을 보면 최소한 지금의 그는 확실히 아닌 인성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둠 패트롤 멤버 중에서 가장 괴물같은, 혹은 진짜 괴물인 인간.
          리타 파. 별명은 리타 스타. 전 할리우드 화배우. 이한 가스에 노출되어 세포 구조가 변경되었다. 감정이 항 기분 좋음에 고정되어 있어야 신체 형태가 유지 된다. 그래서 웃는 표정으로 지낸다. 하지만 집중이 풀리고 감정이 안 좋아지면 몸이 순식간에 젤라틴으로 바뀌면서 녹아 내린다. 신체 크기를 변경해서 거인이 될수 있다.
          방어적인 텔레파시 신경 교란 능력자. 이 능력은 대가 열심히 근접 공격을 날려도 자연적으로 회피 할 수 있다. 스코티와 달리 치프인 콜드가 소름끼친다고 생각 중. 모히칸 머리 양아치 스타일 복장. 쟈니 퀵에게 폭탄으로 사망.
  • 마기/325화 . . . . 26회 일치
          * 알라딘은 유난과 함께 국제연합이 있는 천산산맥 공에서 심치 않게 변한 세계를 걱정하고 있는데.
          * 훗날 그가 알마트란을 통치하며 마법으로 원에 가까운 존재가 되자 그는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나는 신과 견줄 수 있는 존재다." 신에게 선택받아 새로운 신이 될 존재임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에 지나지 않았다. 우고에게 패한 지금은 그저 더 큰 특이점이 신이 되기 위한 발판, 그정도가 다윗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다윗은 그 점을 인정하며 씁쓸히 자조하는데.
          * 그때 눈부신 빛과 같은 존재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그를 비춘다. 그 목소리는 오히려 지금부터 다윗의 역할이 시작된다며 마법이란 세을 전진시키는 힘이며 마법사란 "왕을 지탱하는 왕좌의 현좌"라 말한다. 세을 창조하는 것은 신이 아닌 "왕"이며 그것을 보좌하는 역할이 다윗의 진정한 사명이었던 것이다. 그 목소리는 손을 내밀어 다윗을 "마기"로 선택한다.
          * 루프 속에서 나타난 인물은 신드바드. 우고 루프에 환원되고도 자아를 유지할 리 없다고 경악하지만 다윗은 7명의 진들이 힘을 합쳐 그들의 왕, 신드바드의 혼을 붙들어 놓은 거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외부에서 다윗이 그걸 끌어 올림으로서 신드바드는 다시금 세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니, 그토록 염원하던 성궁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 그때 또다른 목소리가 나타난다. 우고는 그게 신드바드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솔로몬의 혼이다. 그 혼은 우고의 수고를 치하하고 자신도 지쳤다며 이젠 신드바드에게 뒤를 맡기고 편히 살자고 말한다. 그것은 다윗이 보여주는 허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정신이 피폐해진 우고는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속아넘어간다.
          * 우고가 무력화되자 신드바드는 성궁의 문지기 역할을 완전히 빼앗는다. 아르바는 급변하는 황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신드바드는 이미 그들의 권속을 데리고 세계를 재구축하는 작업이 착수한다.
          * 그때 지의 황제국. 수도 낙성에선 연홍옥과 연백룡은 머리를 맡대고 정사를 논하고 있다. 백룡은 홍옥의 지도 아래 황제국이 다시 일어섰다며 감격하고 홍옥은 함께 힘내자고 답한다.
          * 그 옆에선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가 결혼식 준비로 바쁘다. 알리바바는 청첩장 쓰는 일로 정신이 없는데 회 단골들을 빠짐없이 초대하려고 엄청난 수의 청첩장을 집필 중. 심지어 일일히 수기로 적고 있다. 모르지아나도 마스루드 앞으로 보낼 청첩장을 작성하는데, 청첩장이라기 보단 도전장에 가까운 디자인. 게다가 여전히 글씨가 지저분하다. 알리바바는 콩깍지가 낀 향인지 "글씨가 예뻐졌다"고 칭찬하고 백룡도 진담인지 빈말인지 달필이라고 칭찬. 홍옥만 위화감을 느낀다.
          * 알리바바는 너무 태연하게 나타난 쥬다르를 빤히 쳐다보는데 이제 전쟁하겠다고 설치지 않냐고 묻는다. 쥬다르는 그런건 벌써 하고 왔다고 하는데. 모르지아나는 쥬다르가 협조성없이 굴자 그냥 백룡에게 어디서 찾아왔냐고 물어본다. 백룡은 그를 그의 고향 산골마을에서 찾아냈다고 하는데. 알리바바는 쥬다르도 고향이 있었다는데 놀라면서도 잘된 일이라고 말한다. 쥬다르는 귀향이었다고 으스대는데 그꼴이 보기 싫었는지 백룡이 고향 마을에서 알아낸 일을 마구 폭로하기 시작한다. 쥬다르의 이름은 알 사멘이 붙인 예명이고 고향에서 불리는 본명은 따로 있는데 그게 "얼굴에 안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것. 쥬다르는 백룡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더니 알라딘을 찾으며 화제를 필사적으로 화제를 전환한다.
          * 쥬다르가 그토록 찾는 알라딘은 천산산맥 공, 국제연합 건물이 보이는 위치에 있다. 옆에는 유난도 동행 중. 두 사람은 국제 연합 위에 열린 성궁으로 가는 문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눈다. 알라딘은 일이 커졌다고 말하는데 유난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묻는다. 알라딘은 그건 모르겠지만 이미 느껴지고 있다고 한다.
         || 이 세은 더이 예전과는 달라. ||
         신드바드가 부활할 수 있었던 열쇠는 일곱 명의 진. 분명 이들도 우고가 주창한 솔로몬의 이에 동조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신드바드에서 감화된 것인지 완전히 솔로몬의 이을 부정하게 됐으며 신드바드의 수족으로서 우고 마저 배신하게 되었다. 이들이 배신한 이에 있는 신드바드의 옛동료들은 권속기를 사용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알라딘은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지 세계에선 거의 무적이나 다름 없는 태가 되었지만 성궁을 장악한 신드바드가 최종보스로 급부한 이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 박소희 (만화가) . . . . 26회 일치
          | 출생지 = {{KOR}}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시]] <br/> (現 {{KOR}} [[대구광역시]])
          | 수 =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출생인 그녀는 2000년에 만화가 첫 등단하였고 특히 2002년에서 2012년까지 [[순정만화]] 잡지 《[[윙크 (잡지)|윙크]]》에 10년간 연재한 《[[궁 (만화)|궁]]》은 [[2006년]]에 MBC [[문화방송]] TV 시리즈 《[[궁 (드라마)|궁]]》으로도 만들어져 방되었다.
         * 《[[혼결혼식]]》
         == 수 경력 ==
         * [[2000년]] 제2회 서울문화사 신인만화대
         * [[2003년]] 대한민국 만화대 신인
         * [[2003년]] 대한민국 만화대 인기
         * [[2003년]] 독자만화대 장편부분 1위
         * [[2004년]] 대한민국 만화대 인기
         * [[2005년]] 대한민국 만화대 인기(중복 수)
         * [[2006년]] 대한민국 만화대 인기(3회 중복 수)
         * [[2007년]] 일본 국제만화 장려
         * [[2009년]] 대한민국 만화대 인기(통산 4회 중복 수)
  • 산킨고타이 . . . . 26회 일치
         [[에도 시대]]에 시행된 제도. 다이묘들이 에도에 처자를 두고 본래 부임 지와 에도를 왕복하도록 한 제도이다. 지방의 다이묘들로 하여금 가족들은 에도에 머물게 하는 한편 다이묘 본인도 1년은 에도에, 1년은 본래 번에 있도록 정하고, 반복해서 오가도록 한 제도이다. 각 다이묘들은 에도에 출장소를 만들게 된다.
         이는 중세 봉건제도의 관습에 근거하여, 하급자인 사무라이가 급자인 대귀족[* 후대에는 실권을 사무라이가 쥐게 되었지만, 당초 사무라이는 대귀족을 따르는 호위무사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이나,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막부의 쇼군에게 '참배'하여 그들을 호위함으로서 '병역'을 봉공으로 바치고, 그 댓가로서 지를 보유할 권리(은)을 얻는다는 개념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전부터 사무라이들은 일종의 군역으로서, 중앙에 경하여 귀인을 호위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교토대번역(京都大番役)이라고 하여 지방무사들이 교토에 경하여 호위를 맡는 관습이 있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가마쿠라 대번역(鎌倉大番役)이라고 하여 가마쿠라에도 경하도록 어성패식목(御成敗式目,가마쿠라 시대의 무가법률)에 지정되어 있었으며, 교토에 경하여 호위하는 임무도 무사들마다 균등하게 분배하였다. 이러한 관행은 일본에서 어느 정도 통일 세력이 나타날 때마다 반복되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에서도 오사카에 각 주들을 경하여 주둔하고 가족을 인질로 두게 만들었다.
         이러한 관습에 따라서 도쿠가와 막부가 열리고 에도 시대가 시작되자, 다이묘들은 에도에 처자를 두고 지와 에도를 오가면서 생활하는 관행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무질서하게 시행되었기 때문에 폐해가 많아,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반포한 간에이령(寛永令)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의 제2조에 지정되어 공식적인 제도가 되었다. 법령으로 정해진 까닭은 이전까지는 참근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그 시기가 정확하지 않아 오히려 다이묘들이 불편[* 일일이 참근할 것인지, 지에 돌아갈 것인지를 막부에 물어보지 않으면 안된다.]하였기 때문에 1년 간격으로 하도록 명확하게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법령이 정해짐으로서 다이묘들이 막부에 '인사'를 오는 것이 명확하게 결정되어, 막부와 다이묘의 하관계가 완성되었다.
         이러한 인질 정책 때문에 오히려 다이묘의 가족(본처와 적자)들은 지방 지에 내려가지는 것이 금기시 됐다. 그래서 다이묘들은 지방에 [[첩]]과 [[서자]]를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막부 말기에는 이 금제가 해제되었는데, 그 때문에 인질 걱정없이 반란을 일으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본래 지가 지방에 있는 다이묘가 '경'하는 현대의 관점에 맞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후기에는 오히려 본래 수도 출신이었던 다이묘가 지방으로 '하향'하는 이미지에 가깝게 된다. 다이묘들은 대부분 에도에서 태어나서, 유년기를 에도에서 지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적자가 대를 이을 수 없는 경우가 되서 지방에 있던 서자가 대를 이어받게 된 경우라면 '경'하는 이미지가 될 것이다.
         다이묘들은 서로 체면치례를 하려고 경쟁적으로 행렬을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에도 막부에서는 규제를 정해서 다이묘들의 [[석고]]에 맞춰서 일정한 수의 인력만을 동원하도록 했다. 당초에는 각 번의 번사(번에 소속된 사무라이)들이 실제로 행렬에 참가했으나, 후기에 가면 경제적 문제로 다이묘 행렬에만 전문으로 참가하는 일용직을 동원하게 됐다. 이러한 일용직들은 겉치레는 사무라이였지만, 실 단순한 아르바이트 코스플레이어(…)에 가까웠다. 일설에는 사쿠라다문의 변(桜田門外の変)이 단 10인으로 성공했던 것도 이러한 저질 일용직 행렬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가 벌어지자 다들 도주했기 때문이라고.
         == 향 ==
         이처럼 각 번의 재정에 부담을 주던 제도였으나, 반대로 이러한 '다이묘 행렬'을 접대하는 숙박시설과 역참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이를 통해 일본 내 업 및 서비스업이 발달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 당시 업의 발달에 대해서는 "오사카 인이 노하면 전국의 다이묘들이 벌벌 떤다"는 말이 대변해 준다. 다이묘들이 너도나도 거들에게 돈을 빌리다 보니 나중엔 그들에게 번의 재정까지 목줄을 쥐이고 만 것.] 오가는 길마다 다이묘가 체면치례를 위해서 돈을 뿌리고 다녔으니 당연한 일이다. 각지에서는 다이묘 행렬을 접대하고 팔기 위하여 '특산물'을 만들었다. 이로서 전국의 부가 집중된 에도는 번을 누릴 수 있었다.
         지방 다이묘 측에서도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정치 중심지인 에도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수집하고, 번하는 에도의 문화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시대극에서도 '다이묘 행렬'은 단편적으로만 묘사되지만, 일본 만화 '[[츠라츠라 와라지]]' 등의 일부 작품에선 제법 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 식극의 소마/218화 . . . . 26회 일치
          * [[마루이 젠지]]는 급생들이 질 경우 사기가 꺾일 걸 우려해 반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결국 결정권은 [[나키리 에리나]]에게.
          * 쿠가는 의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으나 위장이었고 손이 떨려서 부채를 떨어뜨릴 정도로 긴장한 태. 그걸 소마가 주워주다 엉겁결게 듣고 있던걸 들킨다.
          * [[유키히라 소마]]는 방금 전 황과 이할 정도로 츠카사와 승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은 이번 2회전에선 빠지겠다고 선언, 쿠가에게 차례를 양보한다.
          * 아니나 다를까 센트럴은 츠카사, [[코바야시 린도]], [[사이토 소메이]]로 최강 전력을 구성해 보냈다.
          * 매치업은 진작부터 사이토를 노리고 트레이스를 해온 미마사카가 사이토와 대결. 메기시마는 린도와 붙는다.
          * 2라운드 대전자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 반역자의 대기실이 떠들썩하다.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건 [[나키리 아리스]]. 그녀는 [[사토시 잇시키]], [[메기시마 토스케]], [[쿠가 테루노리]]로 현재 낼 수 있는 최강 전력을 구성해 "최대 전력을 단번에 투입해 적을 빠르게 제압한다"는 이론을 주창한다. 그녀는 이 이론을 강조하기 위해 별 관없는 수식까지 칠판에 빼곡히 적어놓는 열성을 보였다. 여기에 대항해 [[마루이 젠지]]는 강한 카드를 순식간에 소모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경고했다. 황을 보면서 전력을 온존하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 그 옆의 [[쿠로키바 료]]와 [[하야마 아키라]]는 별 의견이 없다.
          * 논쟁은 평행선. 쿠로키바가 슬며시 [[나키리 에리나]]에게 결정권을 넘긴다. 그녀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연대식극은 승자가 계속 싸우는 구조이므로 "버리는 패"같은건 큰 의미가 없다. 몇 승을 거둔들 대측의 강자가 온전하다면 혼자서 연승을 거둬 역전을 거두는 것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 기회가 있다면 강한 카드를 대로도 과감하게 덤벼볼 필요가 있다. 뭣보다 1라운드에 전승하지 않았나? 이 기세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어떤 카드가 있을지? 에리나가 곧 결정을 내린다.
          * 동료들이 수읽기로 골몰하는 동안 쿠가는 돌발행동을 취했다. [[유키히라 소마]]는 화장실을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그의 행동을 목격한다. 쿠가는 적측에 개인적으로 식극 신청을 하고 있었다. 다음 라운드에서 자신과 싸우자고. 그 대는 [[츠카사 에이시]]. 십걸의 제 1석. 대방은 물론 현재 연대식극 참가자 중 최강자다. 쿠가는 방금 전까지 촐랑거리고 있더니 승부를 신청하는 이 순간, 전에 없이 진지하다. 그걸 받은 츠카사 또한 푼수떼기같은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을 둘러싼 무거운 분위기. 소마는 차마 끼어들지 못하고 모퉁이에서 조용히 황을 지켜본다.
          * 침묵 끝에 츠카사의 대답. 그런데 진지한 것도 여기서 끝인지 곧 평소대로 궁맞게 군다.
          그는 자기 혼자 정할 수 없는 문제라며 애매하게 말을 돌렸다. 그래서 다른 애들과 담해보고 오겠다며 끝까지 승락인지 거절인지도 밝히지 않는다. 그저 "나중에 보자"며 떠나는데. 쿠가는 대답을 재촉하지도 않고 그가 떠나는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그가 보이지 않게 되자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쉬며 부채질을 한다. 그러나 그 손도 떨리고 있다. 어쩌면 츠카사를 대하는 내내 떨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부채를 흘리기까지 하는데, 엉겁결에 소마가 그걸 받아낸다. 엿듣던 걸 들켰다. 쿠가는 아무렇지 않은 채 하지만 속으론 짜증을 부린다. 자기가 긴장한 걸 들키진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마저도 뜻같지 않았다. 소마가 "손바닥에 사람 인을 써서 먹어라"며 긴장대책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키히라류 긴장풀기"라는 정체불명의 민간요법을 추천하며 합장을 시키려든다.
          * 쿠가의 심통은 소마가 당시 황을 설명하고 나서야 해결됐다. 그때 츠카사가 소마를 서포터로 스카웃하기 위한 비공식 식극이었다고 설명하자 쿠가는 신난 똥강아지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소마는 그저 서포터 자질을 보기 위한 거였고, 쿠가 자신은 "요리사로서" 싸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히려 소마에게 "풀 죽을 필요 없다"고 여유까지 부리는 마당이다. 너무 텐션이 올랐다. 소마는 쿠가가 츠카사에게 질 경우 자기가 복수하겠다고 장담하는데 쿠가는 소마가 그렇게 나오면 자신은 오기로라도 더 집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둘은 대기실로 향하며 다음 대결에 꼭 츠카사가 나오길 바라는데, 만약 나오지 않을 경우 쿠가가 츠카사를 끌어낼 때까지 다 때려잡겠다고 선언한다.
          * 연대식극 2회전의 무대가 시작됐다.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반역자 측에서 나타난 출전자들은 이 셋. 쿠가, 메기시마, [[미마사카 스바루]]다. 셋 모두 더할나위 없이 자신감에 차 보이지만 관중들의 평가는 미묘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는건 역시 전 3석 메기시마. 그를 누구와 싸우게 하느냐가 2라운드 승패를 가늠할 것이다. 미마사카는 그저 "기분 나쁘다" 외에는 논외. 그리고 쿠가는 전 십걸 출신인데도 "3학년을 꺼내면 무난하게 이길 대"라고 당히 평가 절하 당한다. 어느 정도는 쿠가 자신도 그런 평가를 알지 모른다. 센트럴 측 출전자가 발표되려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재점검하고 소마의 승리를 떠올린다. 소마도 이겼는데 여기서 멋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쿠가 테루노리의 이름이 운다면서. 그는 호기를 부려서 센트럴 측을 향해 "나와라!"라고 소리친다.
          * 쿠가의 기합과 관중들의 환호에 등판하는 센트럴의 참전자. 1석 츠카사, 2석 [[코바야시 린도]], 4석 [[사이토 소메이]]. 현 십걸 중 최강 전력이며 연대식극 참가자 전원을 기준으로 봐도 최강의 카드가 여기서 나왔다.
          * 린도가 대결 대를 정하자고 한다. 먼저 응하는 것은 미마사카. 처음부터 사이토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를 트레이스하고 있는 태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나는 사이토 소메이"라고 소개하며 그의 입버릇을 따라하는데. 사이토는 그런 부분을 재미있다고 평하며 승부에 응한다. 메기시마는 린도 쪽으로 도전. 남은 것은 자연히 쿠가와 츠카사. 쿠가가 바라마지 않던 매치가 성립했다. 관중들은 8석 대 1석이라며 무모한 대결이라고 혹평하지만 어쨌든 소마는 쿠가의 선전을 기원한다. 그리고 공이 울리는 2라운드.
  • 식극의 소마/228화 . . . . 26회 일치
          * [[나키리 에리나]는 출전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굳이 약한 선수를 강한 대에게 부딪혀 나중에 확실한 승리를 따내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 2rd Bout결과는 반역자팀의 전패. [[미마사카 스바루]]가 결과에 불복하자 [[사이토 소메이]]는 그가 칼집 넣기를 미처 트레이스 못한 점을 지적한다.
          * [[메기시마 토스케]]와 [[코바야시 린도]]는 박빙이었으나 결국 린도의 승리. 반역자들은 십걸 위 멤버의 실력을 새삼 실감한다.
          * 그러나 이들의 패배가 완전히 무의미하지만은 않아서 십걸 측에 생각이으로 많은 "소모"를 강요했고 3rd Bout에선 이들의 출전이 불가능해진다.
          * 에리나가 말했던 "어떤 조건"이 이것. 대를 충분히 소모시킨다면 다음 대전자에게 그만큼 유리해진다는 것이었다.
          * 2rd Bout를 앞두고 출전자를 선발하면서 [[나키리 에리나]]는 "버리는 대장 작전은 의미없다"는 전제를 세웠다. 오히려 위 실력자에게 맞먹는 실력자를 붙여서 이겨나가지 않으면 최종적인 승리는 불가능. 전략안이 결여된 [[유키히라 소마]]로선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는 슬쩍 [[타쿠미 알디니]]에게 에리나가 한 "버리는 대장"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우선 전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타쿠미가 "강한 적에게 약한 적을 붙여 버리는 패로 삼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해줬지만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그때 에리나는 퍽 냉정한 발언을 하고 있었다.
          반역자들은 껄끄러워하면서도 맞는 말이라고 수긍했다. 어쨌거나 1석 [[츠카사 에이시]]와 2석 [[코바야시 린도]]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얼마나 승리하든 의미가 없으니까. 그런데 에리나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이라는 단서를 달아 말을 이었고, 소마에겐 꽤 인적인 말이었다.
          * 미마사카의 트레이스 대였던 [[사이토 소메이]]는 뭐가 문제였는지 짐작이 갔다. 확신에 가까웠다. 미마사카는 그가 놀랄 정도로 완벽한 트레이스를 보여줬지만 딱 한 가지를 간과했다. 지금 만든 초밥은 보통 에도 초밥이 아니라 "알스시"였다는 것. 그 말을 듣자 미마사카도 짚이는 데가 생겼다. 칼집을 너무 넣었다. 크기가 작은 알스시에 보통 초밥과 같은 칼집을 넣으면 재료가 너무 빨리 녹아버려서 충분히 여운을 주지 못한다. 사이토는 그가 미처 몰랐던 것도 그의 탓은 아니라고 했다. 이건 얼마나 "스시도"를 익히고 단련했는가 하는"경험의 차이"였으니까. 이제 미마사카도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러나 2rd Bout에서 가장 주목할 음식은 [[안(식극의 소마)|안]]이 심사한 [[츠카사 에이시]]의 "네 가지 녹차를 사용한 그라데이션 퓌레 스프"였다. 각기 사용한 녹차와 가장 성이 좋은 채솟, 버섯, 콩을 사용한 퓌레를 한 접시에 담은 요리다. 각각의 퓌레는 옥로와 아티쵸크, 찐 전차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현미차와 병아리콩, 전차와 포르치니의 네 가지 조합.
          안은 [[쿠가 테루노리]]의 흑초 탕수육을 맛봤을 때만 해도 쿠가의 승리를 확신했지만 츠카사의 퓌레를 먹은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이 요리는 쿠가의 요리를 능가하는 임팩트가 담겨 있었다. 주제가 결정되고 조리 시작까지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깊고 다층적인 맛을 구할 수 있었을까? 안은 츠카사 쪽이 쿠가보다 녹차라는 소재를 다루는 격이 훨씬 높다고 평했다.
          * 그야말로 압도적. 반역자들은 센트럴의 힘을, 십걸 위 멤버의 힘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rd Bout 이후 침체돼 있던 관중들과 [[카와시마 우라라]]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카와시마가 그만한 전력을 보내놓고 전멸 당했다며 꼴좋다고 조롱했으나 에리아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 [[메기시마 토스케]]를 격파한 [[코바야시 린도]]는 최의 컨디션이었다. 이대로 여세를 몰아 3rd Bout까지 참전할 태세였다. 그녀는 츠카사에게도 함께 나가자고 제안하는데 의외로 츠카사는 약한 소릴했다.
          츠카사의 한 마디는 승전보로 뜨거워진 센트럴 측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쿠가와 승부가 예보다 힘겨웠고 그만큼 "소모"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3rd Bout를 쉴 것이다. 린도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며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린도는 한심한 소리나 한다고 갈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키노쿠니 네네]]가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구급반이 들것을 가져오고 있었다. 츠카사의 말이 맞았다. 린도도 메기시마의 라면은 정말 굉장했고 기진맥진해졌다고 인정했다. 츠카사는 아무 내색이 없는 사이토에겐 역시 터프하다고 감탄했지만 그도 허세는 부리지 않았다. 메기시마와 일전은 마치 자기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것 같았으며 자신도 예으로 소모를 한 태라고 밝혔다. 이제 센트럴 측에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을 시점이었다. 소마는 이제 에리나가 말했던 황이라고 깨달았다.
          만일 먼저 대전자가 강적의 전력을 충분히 소진시켰다면 바톤을 이어받는 대전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통적으론 이길 수 없는 대에게 소모를 강요하는 것도 연대식극의 전술. 패배는 사실이지만 무의미하진 않았다. 오히려 큰 희망을 남겼고 그걸 남은 사람들이 확실히 이어받게 될 것이다.
          * 에리나의 예측대로 츠카사, 린도, 사이토의 소모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사이토와 츠카사가 논의한 바로는 오늘은 확실히 무리고 내일 대전도 하루를 쭉 쉬어야 할지 몰랐다. 린도는 그보다도 더 걸릴지도 몰랐다. 전 십걸 3석인 메기시마가 대였으니 셋 중 가장 소모가 심했을 것이다. 린도 본인은 키노쿠니의 간호를 받고 있는 주제에 여전히 "이정도는 금방 회복한다"고 떠들고 있었지만 지금도 일어서질 못하고 있었다.
          * 츠카사는 소마에게 다가와 센트럴의 결정을 전달했다. 내일 십걸 위 멤버의 출전은 없다. 그러면서 자신과 싸우고 싶다면 소마도 내일 안 나오는게 좋을 거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소마는 그의 기대를 져버렸다.
  • 신혜진 . . . . 26회 일치
         ||<#7BDEFB> {{{#000000 '''출생'''}}} ||<(> [[1995년]] [[1월 22일]] ([age(1995-01-22)]세), [[경북도]] [[포항시]] ||
         ||<#FFF57C> {{{#000000 '''별명'''}}} ||<(> ~~[[CCTV]][* 멤버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항 뒤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 --[[http://me2.do/5MlN9js3|일진이(...)]]--, '''[[핑크]]빛 [[고래]]'''[* [[PINK OCEAN]]의 [[타이틀 곡]]인 [[PINK OCEAN#s-2.1|LIAR LIAR]]에서 진이의 파트 중 "한 마리 [[고래]], [[핑크]]빛 [[바다]] 위에"라는 [[가사]]가 있었고, [[PINK OCEAN]] 활동 당시 진이의 [[머리]]가 [[고래]]가 물줄기를 뿜는 듯한 모양의 [[머리]]였다.][* [[건강]]의 [[이유]]로 [[Coloring Book(오마이걸)|Coloring Book]] [[앨범]]에 참가하지 못해, [[Coloring Book(오마이걸)|Coloring Book]] [[뮤직비디오]] [[배경]]에 [[핑크]]빛 [[고래]]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는 진이를 [[징]]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부분.] ||
         [[2010년]] [[12월]]에 [[W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멤버들 중 제일 긴 4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 [[데뷔]]했다.[* [[2010년]] [[12월]]이면 [[선배]]인 [[B1A4]]가 [[데뷔]]하기 전부터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연습생]]이었을 당시 [[고향]]인 [[포항]]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주말에는 [[서울]]로 올라와서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평일에는 [[버스]]를 타고 다시 [[포항]]에 내려가 [[학교]]를 다녔다. 이 때문에 어린 [[나이]]에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작 [[본인]]을 힘들게 했던 건 혹독한 [[다이어트]]였다고.[* [[연습생]] 당시 [[다이어트]] 때문에 힘들었을 때마다 자신을 힐링시켜 주었던 [[노래]]는 [[옥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룸메이트]]로 4년 동안 연습을 같이 했다. [[언니]]는 [[여신]] 같은 [[분위기]]가 나온다. 항 그런 [[느낌]]을 받는다.
         >따뜻하게 지켜봐주고, 항 [[배려]]해준다. 그런 따뜻한 모습에 감동받는다."
         '''[[오마이걸]]의 원한 [[러블리]] [[핑크]]빛 [[고래]]'''
         이외에도 조용한 [[성격]] 때문에 [[안무]] 등 퍼포먼스적인 면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크게 돋보이는 멤버는 아니지만, 자한 [[성격]]을 가진 '''팀의 둘째로서 팀을 융화하고 지지하는 필수불가결한 [[오마이걸]]의 멤버였다.'''[* 실제로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쉬는 기간에도 [[오마이걸]]이 [[Coloring Book(오마이걸)|Coloring Book]]으로 [[콘셉트|컨셉]]돌로 도약하는 과정에서도 제일 큰 [[역할]]을 했던 멤버는 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8월 25일]], [[거식증]]으로 인해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거식증이 뭐가 큰 병이냐"고 하는 이들이 간혹 보이는데, [[거식증]] 문서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심할 경우 '''[[사망]]'''까지 가는 엄연한 [[정신병]]의 일종이다.] 이로 인해 [[현재]] [[포항시|고향]]에서 휴식 중. 진이의 경우 [[체중]] 감소가 심각해 [[거식증]]의 기본 증인 [[저체온증]], 무[[월경]], 부종, 그리고 [[저혈압]] 등의 다양한 내과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승희(오마이걸)|승희]]와 [[비니(오마이걸)|비니]]에 이어서 또다시 [[건강]]의 [[문제]]가 불거지자 [[미라클|팬들]]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중. 사실 [[거식증]] 외에도 살짝 통통했던 <[[OH MY GIRL#s-2.2|CUPID]]> 활동 때 [[사진]]을 보고 2달 만에 8~9kg를 빼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다가 [[식도]]염 증세가 생긴 적이 있다. ~~혜진아 안 빼도 돼ㅠㅠ~~ 결국 식단 조절과 병원 치료까지 받은 뒤 지금은 나아진 태지만 가장 적게 나갈 때는 38kg이었다고 하며, 조금 나아진 현재도 40kg 초반으로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활동 재개 이후에도 자존감이 낮아질 것으로 예돼 팬들의 마음을 여전히 아프게 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가 공식적으로 [[언론]]에 밝힌 [[거식증]]의 [[원인]]으로는 [[데뷔]] 당시 정 체중이었지만 살이 잘 찌는 체질 때문에 통통하다는 [[악성 댓글]]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PINK OCEAN#s-2.1|LIAR LIAR]]'부터 '[[PINK OCEAN#s-2.5|한 발짝 두 발짝]]', '[[WINDY DAY]]', '[[내 얘길 들어봐]]'까지 휴식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활동한 것이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된다.]
         [[오마이걸]](OH MY GIRL) 진이 양이 [[건강]]의 [[이유]]로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또! 항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고 자꾸자꾸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여러분이 저에겐 정말 큰[[힘]]이고 [[사랑]]이자 활력소예요! 늘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해요. 진심으로! 알라뷰.
         당사 소속 아티스트인 [[오마이걸]] 멤버 진이 양은 건강의 문제로 지난 1년 여 간 모든 활동을 중단한 태였습니다.
         오랜만의 [[인사]]지만 이제 [[오마이걸]]의 [[진이]]로서의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아요… 저는 저 자신, 신혜진으로서의 일으로 돌아가 새로운 [[꿈]]과 함께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 [[미라클]] 여러분도 저와 같이 많이 속하실 걸 알기에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오마이걸]] 멤버로 활동하면서 [[미라클]]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평생 그 때 그 자리에서 잊지 못한 소중한 [[추억]],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미라클]] 여러분께도 [[오마이걸]]의 둘째, [[CCTV]], [[러블리]] [[보컬]] [[진이]]는 늘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도전에도 여러분의 [[응원]]을 떠올리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우리 [[오마이걸]]! [[효정|효정이]], [[미미(오마이걸)|미현이]], [[유아(오마이걸)|시아]], [[승희(오마이걸)|승희]], [[지호]], [[비니(오마이걸)|유빈이]], [[아린(오마이걸)|예원이]]… [[오마이걸]]이라는 [[이름]]으로 그 안에서 각자 자기만의 [[색깔]]로 [[오마이걸]]을 지키는 모습이 너무나 빛나고 또, 그런 [[오마이걸]]을 [[사랑]]으로 지켜주는 [[미라클]]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져! [[무대]] 위에서 [[오마이걸]]의 [[노래]] 한 소절, 한 소절과 [[미라클]]의 [[응원]] [[소리]]가 [[화음]]을 이룰 때 가끔은 [[눈물]]이 날 것처럼 울컥할 만큼 [[감동]]이었어… 앞으로도 가끔 [[추억]]의 그리움에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겠지만 내 [[마음]] 속엔 그 누구보다 최고인 [[오마이걸]] 항 [[마음]] 깊이 [[응원]]할게!
         [[WINDY DAY]]의 진이 파트[* 1분 52초~58초]를 [[승희(오마이걸)|승희]]가 넘겨받았는데 '따스한 햇살' 다음 부분에 "신혜진" 응원법[* [[WINDY DAY]]의 응원법은 각 멤버의 파트가 끝나면 본명을 외친다.]에서 지금도 진이를 찾는 [[미라클|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https://youtu.be/nKC1voi97pA|승희도 이 파트에서 입모양으로 신혜진을 자주 한다.]]] 공카에서는 1시 22분마다 진이시를 외친다. ~~진이야 항 기억할게~~
          * [[얼굴]]이 [[토끼]] 그 자체다.
          * 태어나서 한 번도 [[마라톤]]을 해본 적이 없어서, 기회가 된다면 [[미라클|팬들]]과 함께 [[마라톤]]을 하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서로를 [[응원]]할 수 있고, 그렇게 [[마라톤]]을 완주하게 되면 더욱 끈끈한 사이가 될 것 같다고. 또 [[마라톤]]을 하면 [[다이어트]] 효과도 있고, [[건강]]해질 것 같다고 말하기도. ~~기승전 [[다이어트]]~~
          * [[게임]]을 꽤 잘하는 편인 듯하다.[[https://m.youtube.com/watch?v=XZ-gTV8Xzm4|#]] 멤버들 모두가 참여한 [[https://m.youtube.com/watch?v=JlM8sU2t8eU|두더지 잡기 게임]]에서 가장 좋은 890점대를 기록했고, [[네이버]] [[V LIVE|V앱]] [[방송]]으로 나온 오마이걸림픽에선 종목 본선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http://www.vlive.tv/video/12253/|사전 게임]]에서 모두 다 [[1등]]을 했을 정도. 그런데 정작 [[http://www.vlive.tv/video/12496/|본 게임]]에서는 별로 [[힘]]을 못 써서 [[메달]]은 따지 못했다. --[[효정|???]]: 진이야×2, 사전 [[게임]] 때 열심히 하지 말고... 본 경기 때 열심히 하라고!!!-- 그래도 사전 [[게임]]에서 모두 이긴 덕분에 마지막 시식에서 [[치킨]] 한 마리를 제작진에게 주문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 [[Coloring Book(오마이걸)|컬러링북]]에서 [[핑크]] [[고래]]가 [[진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했고 [[탈퇴]] 후 첫 [[뮤직비디오]]인 [[비밀정원]]에서도 [[고래]]가 여러 번 나왔다. 이것이 [[진이]]라고 [[미라클|팬들]]은 추론하고 있다. ~~원히 잊지 않을게~~
  • 원피스/855화 . . . . 26회 일치
          * [[디]]에게 어이없이 당했던 "처리꾼 [[보빈]]"은 현금 1억 550만 베리의 거물. 그는 몰려오는 부하들을 능력으로 잠재우고 직접 디를 추적한다.
          * 디는 [[몽키 D. 루피]]가 기다리는 장소로 향하는 중. 도중에 어렸을 때처럼 들개의 습격을 받기도 해서 당황.
          * 이제 일행의 목적은 디를 탈환하는 것 뿐이다.
          * 약속의 장소에 나타난 디는 멀리서 "꼬르르르륵" 소리를 듣는데, 그곳엔 미라처럼 홀쭉해진 루피가 기다리고 있었다.
          * 빅맘 해적단의 전투원(비숍 클래스) "처리꾼 [[보빈]]". 현금이 1억 550만에 달하는 나름 거물이다. 그는 [[디]]에게 공격 당한 충격에서 금새 벗어난다. 부하들이 달려와서 방금 전 소란은 뭐였냐고 묻는데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몸을 좌우로 흔든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음파같은 것이 발산, 부하들은 서서히 잠들어 쓰러져 버린다. 그는 "마무리는 내가 한다"며 직접 디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디는 성을 벗어나 [[몽키 D. 루피]]가 기다리겠다고 약속한 평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 미러월드를 샅샅이 뒤지던 [[쵸파]] 일행은 마침내 [[브룩]]을 발견하지만 매우 난처한 황에 직면했다.
          빅맘 [[샬롯 링링]]의 처소 "여왕의 방". 빅맘은 브룩을 소중한 인형처럼 품에 끼고 잠들어 있다. 게다가 브룩 자신도 꿀잠 중. 주위엔 "프로메테우스", "제우스", "나폴레옹"이 함께 자고 있다. 브룩을 구하려던 일행은 예치 못한 난관에 당황한다.
          * 거울을 들여다 보며 발만 구르는데, 빅맘이 갑자기 눈을 뜬다. 하지만 단순한 잠꼬대. 그때 마침 파리가 날아가고 빅맘이 잠결에 때려잡는다. 그 충격에 바닥이 박살나고 잠자던 프로메테우스, 제우스, 나폴레옹이 짜증을 부리며 소리가 난 곳을 공격한다. 정작 깨줬으면 하는 브룩은 잠깐 일어났다가 "뭐야 파리냐"하고 도로 잠들어 버린다. 속 터지는 황에 빅맘의 엄청난 위력까지 목격한 일행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 비바람을 맞으며 약속의 장소로 향하던 디. 어렸을 적 태풍을 뚫고 어머니에게 향하다 들개의 습격을 받은 것처럼, 이번에도 어디선가 들개가 나타나 도시락을 노린다. 디는 당황하며 개를 쫓아낸다.
          처음 시도는 쵸파가 한다. 징베가 브륄레는 거울 중간에 붙들어 놓고 터치하는 걸로 누구든 자유롭게 거울을 드나들 수 있게 된다. 쵸파는 작은 사이즈로 변해서 접근을 시도하는데, 잘 가는 듯 하다가 중간에 재채기를 하면서 산통을 깬다. 또 파리라고 생각한 빅맘이 힘껏 팔을 휘둘러 공격, 짜부가 될 뻔한걸 겨우 피한다.
          * 디는 루피가 약속한 스위트 시티의 변방 평원에 도착한다. 이곳은 낮에 루피가 사투를 벌이며 쓰러뜨린 체스병들의 시체가 널려있다. 디는 루피가 이곳에서 기다린다고 했으니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체들 사이에서 루피를 찾기 시작한다.
          * 일행과 재회한 브룩은 깜짝 놀랐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나미는 놀란건 이쪽이라며 면박을 준다. 페드로는 브룩이 살아있어 다행이라며, 애초에 그런 황에서 무리한 작전을 구한 자신의 탓이라며 브룩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브룩은 그건 자신들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며 당치도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언젠가 또 포네그리프를 빼앗으려면 어차피 전면전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자기 두게골을 열어보인다. 그런 기능이 있는줄 몰랐던 징베와 캐럿은 경악.
          브륄레는 자기들의 포네그리프를 훔쳤다는 말을 듣고 경악. 밀집모자 일행은 브룩을 껴안으며 환호성을 지른다. 브룩은 분위기를 타고 나미에게 팬티를 보여달라고 드립을 치다 얻어맞는다. 쵸파는 이제 목적 중 하나는 달성됐고, 디를 구하는 것만 남았다고 하는데.
          * 평원을 살피고 있던 디는 어디에선가 커다랗게 "꼬르르르륵" 소리가 나는걸 듣는다. 그 소리를 따라간 디는 마침내 자신의 친구를 발견한다. 루피는 약속대로 그 평원에서, 너무 굶어서 미라처럼 홀쭉해진 채 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디는 그 모습을 보고 물엿비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웃는다.
  • 유병수 . . . . 26회 일치
         유병수는 대구신암초등학교를 다니며 축구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대구 청구중학교에 입학한 후 서울 수서중학교로 전학해 매경기 1골이을 득점하여 활약을 했고, 서울 [[언남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백록기 전국고교 축구대회 득점과 추계 한국고교축구연맹전 득점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홍익대로 입학을 결정한 그는 전국 추계 1, 2학년 대학축구대회 도움을 받으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홍익대학교를 휴학한 유병수는 [[K리그 2009|2009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며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시즌 시작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멤버인 [[방승환]]을 팔게 되는데, 이는 주 공격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의 이적이므로 팬들의 걱정을 야기시켰으나 오히려 대표이사인 안종복 사장은 "신인 유병수가 그의 자리를 메꿔 줄거라 의심치 않는다" 라는 발언으로 유병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천의 새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역시 앞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고 무회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인적인 활약을 펼쳤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308_0001583942 |제목='유병수 데뷔골' 인천, 부산에 1-0 승리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뉴시스}}</ref> [[2009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볼턴 원더러스]]가 유병수의 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볼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Wanderers line up another raid on South Korea |url=http://www.theboltonnews.co.uk/sport/4734025.Wanderers_line_up_another_raid_on_South_Korea/ |출판사=The Bolton News |저자=Marc Iles |날짜=2009년 11월 12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그러나 유병수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사에 반박했다.<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7817 |제목=유병수 "볼턴行? 금시초문, 오직 인천 우승이 목표"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K리그 2009|2009 시즌]]이 끝날 때까지 [[김후]]와 [[K리그 신인선수|신인왕]] 대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10122224013&sec_id=520101&pt=nv |제목=‘유병수 vs 김후’ K리그 신인왕 경쟁 후끈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칸}}</ref> 결국 김후가 간발의 차로 신인왕의 자리에 올랐지만<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8762 |제목=김후, K-리거가 뽑은 2009년 '최고 신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유병수는 프로 데뷔 첫 시즌만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K리그 2010|2010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7라운드까지 무득점으로 일관하다가 8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네 골을 터뜨린 것부터<ref>{{웹 인용|url=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13432 |제목=유병수 4골 '펄펄' 6년 만에 진기록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경인일보}}</ref> 시작해, 강원전까지 네 경기에서 아홉 골을 몰아쳤다. 비슷한 시기에 [[김후]] 또한 득점포를 터뜨려 언론은 이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재조명했다.<ref>{{웹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080011 |제목=유병수-김후는 전생에 부부?...득점 사이클 '비슷'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OSEN}}</ref><ref>{{웹 인용|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508870 |제목='찰떡궁합(?)' 김후-유병수, 올해도 경쟁은 계속된다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아이뉴스24}}</ref> 이후 유병수는 대전전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리그 20골을 기록, K리그 최연소 한국인 득점왕과 최연소 20골을 달성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22골을 기록하며 17골을 기록한 [[호세 오르티고사]]를 5골로 따돌리고 [[K리그 2010|2010 시즌]] 득점왕을 차지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1071805472239&ext=na |제목=유병수, 올시즌 정규리그 득점왕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10-11-07}}</ref> 2011년 2월 22일 유병수는 인천 유나이티드와 2013년 12월까지 계약 연장에 성공했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2230096 |제목=유병수, 인천과 2013년까지 계약 연장 |출판사=OSEN |날짜=2011-02-23}}</ref>
         [[K리그 2011|2011 시즌]]에는 3월 한 달까지 골이 없었지만 유병수는 4월 달이 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3015114813§ion_code=10&key=&field= |제목=유병수, “잔인한 4월? 내겐 기분 좋은 4월 될 것이다” |출판사=스포탈코리아 |날짜=2011-03-30}}</ref> 얼마후 곧바로 4라운드 [[경남 FC|경남]]전에서 리그 첫 골을 터뜨렸고,<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4030100032850001980&ServiceDate=20110403 |제목='뜨거운 감자' 유병수, K-리그 첫 골에도 감독들 의견은 분분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이건 |날짜=2011-04-03}}</ref> 다음 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연속 골을 터뜨렸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90104 |제목='유병수 극적 동점골' 인천, 포항과 2-2 |출판사=OSEN |날짜=2011-04-09}}</ref> 2011년 5월 발목 골절로 2주 간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5090100072070005718&ServiceDate=20110508 |제목=인천 유병수, 발목 피로골절로 2주 아웃 |출판사=스포츠조선 |날짜=2011-05-08}}</ref> 예과는 다르게 유병수는 2달 동안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1년 6월 25일 [[FC 서울|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제목=유병수, FC서울전서 2개월 여만에 1군 복귀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10625200613306&p=SpoChosun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김진회 |날짜=2011년 6월 25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2011년]] [[7월 23일]], [[알힐랄 (리야드)|알힐랄]]이 유병수의 입을 공식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알 힐랄, 유병수와 3년 계약 공식 확인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7250100208830017535&servicedate=20110724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박경 |날짜=2011년 7월 24일}}</ref> 입단 초반 부으로 고전하였으나 부에서 회복한 이후 2011-12 시즌 크라운 프린스 컵에서 4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라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AFC 챔피언스리그 2012|2012 ACL]] 16강 경기에서는 무려 4골을 몰아치며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이후 [[2011년 AFC 아시안컵]]을 앞두고 예비 명단에 소집되었고, 연습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39&article_id=0001969448 |제목='유병수 해트트릭' 조광래호, 단국대와 연습경기서 8-0 대승 |출판사=스포탈코리아 |날짜=2010-12-19}}</ref><ref>{{뉴스 인용|url=http://www.ibest11.com/Country/news_01_view.asp?iBoard=5&iIDX=32713 |제목=유병수, 아쉬움 떨치고 ‘조광래호 병기’로 거듭나나 |출판사=베스트 일레븐 닷컴 |날짜=2010-12-24}}</ref> 또한, 시리아와의 평가전에서 지동원에게 완벽한 찬스를 제공해주는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2302056282239&ext=na |제목=지동원 골-유병수 AS, 박주 공백은 없다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10-12-30}}</ref>
         == 수 ==
         * [[K리그 득점]]: [[K리그 2010|2010]]
         |내용='''[[K리그 득점|K리그 득점왕]]'''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언남고등학교 동문]][[분류:수서중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둔촌중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알힐랄 (리야드)의 축구 선수]][[분류:FC 로스토프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러시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김포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 득점자]][[분류: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사우디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
  • 이석훈 . . . . 26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대한민국의 화감독, rd1=이석훈(화 감독))]
          * 위 문서: [[가수/한국]], [[SG 워너비]]
         ||<#0D3EA3> {{{#ffffff '''출생'''}}} ||<(><rowbgcolor=#ffffff> [[1984년]] [[2월 21일]][* 빠른 84년생이라 83년생하고도 친구다. 대표적으로 친분있는 83년생 연예인들은 [[V.O.S]]의 [[김경록]], [[슈퍼주니어]]의 [[이특(슈퍼주니어)|이특]].][* 그와 동시에 [[김용준(가수)|김용준]]과도 친구다. 아마 그룹 내에서 리더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듯. 민경훈하고도 친구다.] ([age(1984-02-21)]세), [[경북도]] [[포항시]][* 다만 5세 무렵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로 이사갔다.] ||
         ||<#0D3EA3> {{{#ffffff 학력}}} ||<(><rowbgcolor=#ffffff> [[포항명도학교]] (졸업)[br][[동아방송예술대학교]] 음악과 (전문학사)[br][[청운대학교]] 방송음악과 (학사)[br][[경희대학교|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과정) ||
         동아방송예술대학 음악계열, 청운대학교 방송음악과를 거쳐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위와 같이 빼어난 외모와 --교회오빠, 안경버프남--중저음의 목소리와 올바른 발성[* [[김연우(가수)|김연우]]의 제자. 김연우 본인은 가르친 가수가 당히 많지만 방송마다 언급하는 제자는 몇 안된다. 이석훈은 매번 언급하는편. 그만큼 애착이 많은듯. 이석훈이 R&B 틱한 창법으로 노래를 하자 혼쭐을 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 언급하는 멤버들을 보면 인기보단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는걸 알 수 있다.]으로, 당히 안정적으로 노래하는 고수.[* 중저음의 목소리지만 발성법이 훌륭해 고음도 무리없이 내지른다. ] SG워너비에서도 들어오자마자 김진호와 동급에 심지어 일부 곡에서는 김진호 이으로 파트를 얻을 정도. 거의 원맨 느낌이라, 아니나다를까 솔로 앨범도 당히 많이내서 활동하는 중이다.
         5집 활동을 마무리하고 6집을 발표한 이후부터는 안티들의 말을 듣고 연습을 했는지 고음역대가 당히 깔끔해졌다.[* 사실 5집의 이석훈 파트를 2주만에 녹음하는 바람에 성대결절이 걸렸었다. 최의 목태로 데뷔를 한 건 아닌 셈.]
         물론 기존 채동하 파트를 김용준과 반반 나눠 부르긴 하지만, [[https://youtu.be/OYcx8blRyj0?t=7m4s|2008년]]과 [[https://youtu.be/qvhttEgA-K8?t=2m19s|2009년]]의 「내 사람」 라이브 만 비교해봐도 훨씬 깔끔해졌고 바이브레이션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여성에게 어필이 가능한 목소리와 외모인지라 노래도 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의 곡들이 많은 편이다.[* 이석훈 솔로 미니앨범 [[인사]]의 선공개곡이었던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가 대표적.~~10가지 이유를 다 들으면 노래가 끝나지만 높은 항마력이 요구된다~~ 물론 이 곡의 경우, 발표하자마자 싸이월드 뮤직 1위, TJ나 금 등의 노래방 차트에서도 위권을 차지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흔한 발라드를 부르는데, 이석훈이 부르기에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른다. 시력이 굉장히 좋지 않아 평소에도 안경을 착용하지만 도수가 너무 높아 눈이 작아 보인다는 이유로 방송활동에는 렌즈+알 없는 안경을 쓴다.(진짜 자기 안경을 착용한 이석훈은 '원나잇 푸드트립'에서 볼 수 있다.)
         [[연예병사]]로 복무중이였으나 [[SE7EN|세븐]]과 [[추(마이티 마우스)|추]]의 [[안마시술소#s-2|안마시술소]]출입 사건이 터지면서 연예병사가 폐지돼 [[제7보병사단]]으로 배치되었다.~~안습~~ ~~2대대에서 같이 근무한 위키러에 의하면 [[치즈볶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프로듀스 101 시즌2]]에 보컬트레이너로 출연했으며 똑 부러지는 트레이닝과 착한 이미지로 밀고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는 다르게 연습생들에 대한 사이다지적으로 의도치 않게 인기를 얻고 있다. ~~고정픽 이라는 사람도 생겼다~~
         || [[2011년]] [[12월 10일]] || 7080 화음악 특집 || 눈물로 쓴 편지 (원곡자: 김세화) || 7번 || 0승 ||
         남자 보컬리스트 특집에 2번 참여했으며, 1승 했다. 이 때 타 남자가수들 평이 '첫 무대부터 이러면 어쩌자는 거임?' 이후 2011년 11월 말부터 불후의 명곡 2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최백호]] 편에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는데... 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이적이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을 때와 편곡의 방향이 아주 묘하게 비슷하다. 착각이거나 혹은 [[아코디언]]과 [[반도네온]]의 차이 때문일 수도...][* 참고로 이 「낭만에 대하여」 무대는 이석훈 불후의 명곡 무대 탑 중 하나다.] 여러 번 참여했으나 번번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의 특징 풍부한 중저음보단 높고, 개성있고, 자극적인 무대를 선호하기 때문인듯 하다.
         || [[2016년]] [[9월 9일]] || 6번 || 나와 같다면 (원곡자: ~~[[김장훈]]~~박태[*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은 98년도에 불려진 리메이크판이다. 1995년에 가수 박태가 이미 앨범에 넣었는데 히트하지 못했고 이후 김장훈이 불러 히트한 것.]) || 1승, 432점[br]'''우승''' ||
  • 인천광역시/인물 . . . . 26회 일치
         * [[김실]] - 강화군
         * [[김준(야구선수)|김준]] - 미추홀구
         * [[김철(축구)|김철]] - 미추홀구
         * [[김진(야구)|김진]] - 옹진군(인천)
         * [[공서]] - 강화군
         * [[김주(1952)|김주]] - 동구(인천)
         * [[김주(1987)|김주]] - 부평구
         * [[나희]] - 부평구
         * [[박은]] - 강화군
         * [[변훈]] - 동구(인천)
         * [[박시]] - 중구(인천)
         * [[손진]] - 부평구
         * [[평군(1828)|양평군]] - 강화군
         * [[이복(정치인)|이복]] - 강화군
         * [[위재]] - 남동구
         * [[이순]] - 남동구
         * [[이수(연예인)|이수]] - 남동구
         * [[이종수(화배우)|이종수]] - 미추홀구
         * [[한채]] - 남동구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26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메라스큐라]]의 "암담의 고치"를 뚫기 위해 마신왕의 힘을 무작정 끌어냈지만, 감정을 잃은 태인 탓에 "섬멸태"로 돌입하고 말았다.
          * 그건 멜리오다스가 십계를 통솔하던 절정기의 태로 돌아갔다는 말이었고, 메라스큐라는 모든게 끝장이라고 두려움에 떤다.
          * [[에스카노르]]는 멜리오다스와 자신을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퍼펙트 큐브로 격리시키고 단독으로 단장을 대한다.
          * 일곱 개의 대죄 일행이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부활과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각성으로 기뻐했던 것도 잠시. [[메라스큐라]]가 암담의 고치로 감금했던 [[멜리오다스]]가 심치 않은 태로 풀려난다. 그의 등 뒤로 드리운 검은 날개.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조차 위험시 해 "너 조차 어쩔 수 없다"고 경고하나 오만의 죄 [[에스카노르]]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아이 돌보기"를 하러 다가선다.
          멜리오다스가 나타난건 코란도의 중심부였으나, 그 힘이 내뿜는 여파는 외곽에 있는 일행에게까지 날아왔다. 멀린은 일찌감치 퍼팩트 큐브로 엘리자베스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를 보호했다. 엘리자베스가 멜리오다스의 태를 보고 폭주했다고 생각하나 멀린의 말에 따르면 통적인 폭주와는 전혀 다르다. 그를 감싼 검은 기운이 주체할 수 없이 용솟음쳐서 걸치고 있던 갑옷 조차 하나씩 터져나간다. 엘레인과 공에 있던 [[반(일곱 개의 대죄)|반]]이 걱정스럽게 지켜본다. 적인 메라스큐라 조차도 일곱 개의 대죄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모든 게 끝장"이라고 두려움에 떤다. 그녀는 저 태의 멜리오다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십계" 통솔자 시대, "십계" 조차 두려워한 "섬멸태"!
          멜리오다스에게 접근한 에스카노르가 멀린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녀가 큰 규모의 퍼펙트 큐브를 그들 주위에 생성한다. 암담의 고치에서 나와 퍼펙트 큐브에 갇힌 멜리오다스. 그리고 그 앞의 에스카노르. 멀린은 멜리오다스가 일단 암담의 고치를 부수려고 내면의 마신왕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 결과 빠져나올 수는 있었지만, 위험한 도박의 대가가 크다. 자신이 마신왕의 저주로 감정을 실한 태였던 걸 간과한 것이다. 멀린은 새삼 그를 "바보 녀석"이라며 탓한다.
          하지만 섣부른 행동이었다. 지금 태의 메라스큐라는 길고 긴 몸 어디로든 심장을 옮길 수 있었다.
          * 심치 않은 땅울림과 함께 대지가 뾰족하게 치솟았다. 메라스큐라가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잇따르는 대지의 융기. 메라스큐라가 급하게 몸을 피하며 보니 그것은 대지의 마력이었다. [[디안느]]였다. 농락 당한 원한을 갚으러 왔다. 힘의 정체가 그녀라는 걸 알자 메라스큐라가 코웃음을 쳤다. 거인족은 그저 힘만 셀 뿐인데 지금 태의 자신은 거인족 조차 힘으로 압도한다는 것이었다. 메라스큐라가 디안느의 대지의 마법을 유유히 피하며 빠르게 쇄도했다.
          디안느는 벌레를 잡는 것처럼 가볍게 메라스큐라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을 초월한 충격에 메라스큐라는 어이가 없었다. 멍청하게 비틀거리는 메라스큐라의 머리를, 다시 한 번 기데온을 휘둘러 골프공처럼 처날렸다. 이 두 공격으로 메라스큐라는 이미 피투성이. 자랑하던 독니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분명 메라스큐라에겐 거인을 능가하는 힘이 있었지만 디안느는 그것 조차 아득히 초월했다. 마치 거인왕 [[드롤]]을 연시키는 힘. 메라스큐라는 경악과 함께 날아갔다.
          * 놀랄 일은 아직도 한참 남았다. 이번엔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의 분풀이 차례였다. 그 몸이 바닥에 채닿기도 전에 무수하게 분열된 창이 벌떼처럼 덮쳤다. "버블비". [[그로키시니아]]에 필적하는 신수의 힘이었다. 긴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더로 잘게 저며진 메라스큐라는 맥 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 메라스큐라는 이미 전투능력을 실했지만 황을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고작해야 요정이나 거인에게 자신이 당하는걸 이해할 수 없었다. 십계의 프라이드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불현듯 멜리오다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이 맞았다. 멀린을 앞세운 일곱 개의 대죄가 마지막 처분을 내리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멀린은 그녀를 "어리석은 메라스큐라"라고 지칭했다. 대죄를 얕보고 뱀의 형태를 드러낸게 메라스큐라의 패착. 차라리 통의 모습으로 마력을 발휘했다면 골치 아픈 황으로 전개시킬 수 있었을 거라고 멀린은 혹평을 내렸다. 반박할 말은 없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라스큐라는 분함을 억누르고 달아날 방법을 모색했다.
          * 그리고 그 마지막 시도는 엘레인이 틀어막았다. 각성한 그녀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몇 개나 생성해서 메라스큐라의 퇴로를 차단했다. "템페스트 펄스". 지금의 그녀로서도 당히 무리를 요하는 기술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신경쓸 이유가 없었다.
          * 저쪽의 승부는 싱겁게 끝이 났지만, 이쪽의 황은 그보다 심각했다. 퍼펙트 큐브에 갇힌 두 남자의 신경전이 불꽃 튀었다. 마신왕의 힘을 끌어낸 멜리오다스를 눈 앞에 두고도 에스카노르는 "재미있는 변화"라고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소의 단장과 명백히 다른 모습. 그것만은 에스카노르도 인정했다. 그렇게 말하며 그 말이 이해가 되느냐고 묻자, 평소와 다른 단장이 위협적으로 대꾸했다.
  • 장수영 (방송인) . . . . 26회 일치
          | 이름 = 장수
          | 필명 = [[아명]](兒名)은 '''장선'''('''張宣榮''')
          | 주요 작품 = 수필 <br/> 《기캐스터 4년 경력기》
          | 언어 = [[한국어]], [[어]]
          | 직업 = 수필가, 기 캐스터
          | 배우자 = [[이무 (화 감독)|이무]](본명 송충섭)
         '''장수'''(張修榮, [[아명]](兒名)은 '''장선'''(張宣榮), [[1971년]] ~ )은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기 캐스터]]를 지낸 전력이 있는 [[대한민국]]의 [[수필|수필가]]이다.
         [[1994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공채 [[기 캐스터|기캐스터]] 입사하였고 [[1996년]] 음악평론가 겸 화평론가 [[이무 (화 감독)|이무]](훗날에는 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로 더 큰 활약)과 결혼하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차렸으며 이후 [[1998년]]에 MBC 문화방송 기 캐스터 직위를 퇴사하였고 이듬해 [[1999년]] [[수필|수필가]]로도 등단하였다.
         *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보도국 기센터]] 기 캐스터
         * [[MBC 뉴스데스크]] 기 캐스터
         * 1999년 《기캐스터 4년 경력기》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X73283 Daum 데이터 사전 - 장수]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 캐스터]][[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경인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
  • 진격의 거인/93화 . . . . 26회 일치
          * [[라이너 브라운]]은 스라가 요세 작전 이후 오랫동안 병에 있다 일어났다. 하지만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려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
          * 갤리어드의 턱의 거인은 유미르로부터 계승한 것이며 그녀의 기억 일부를 가지고 있다. 라이너는 형을 희생시켰다고 여겨서 사이가 좋지만은 않다.
          * "차력의 거인" [[피크]]는 갤리어드를 "포코"라고 부르는 사이. 전쟁 중엔 두 달 가량 거인으로 생활하다 돌아온 여파로 두 다리로 걷는 데 익숙지 않아졌다.
          * 4년을 허비한 전쟁은 끝났지만 승전국 마레의 사정은 좋지 않다. [[지크 예거]]가 적의 마지막 함대를 섬멸한 건 좋았으나 그 대가로 갑옷 거인 [[라이너 브라운]]을 희생시켰다. 비록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다지만 "마레의 갑옷"이라 일커러지는 그가 빈사에 처했다는 사실, 언론들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어찌보면 마레의 승리가 초라할 정도로 "과학기술의 승리"를 대서특필, 소식을 접한 나라들은 패전국인 중동연합을 칭송하는 기현이 일고 있다.
          중동연합과의 전쟁은 해전이었다. 대부분의 중요한 전투는 거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해전. 연합 측은 최신전함을 보유했지만 마레는 수만 많은 구식함을 구색만 맞춰둔 오합지졸. 다른 참모가 "우리 함대가 오합지졸이라 졌다는 거냐"고 따지자 마가트는 그게 본질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마레는 팽창적인 식민지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건 거인의 힘을 과신한데 따른 전략이다. 잘 먹혀왔지만 그만큼 다른 나라는 거인에 대항하는 힘을 기르는데 필사적이었고, 이제 그 성과가 가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육에서 거인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겠지만, 이대로 항공기가 계속 발달하고 공에서 수십 kg의 폭탄이 비오듯 쏟아져 내린다면?
          다시 시선은 그에게. 마가트는 자신의 설명이 충분치 않았던가 싶어 좀 더 직설적인 말을 하려 하지만 원수는 넋두리를 했을 뿐이다. 사실 그는 마가트보다 더 뼈져리게 현실을 직시했다. 마레는 전쟁의 주도권을 잃었다. 아예 뒤쳐져 버렸다. 원수는 한때 악마 엘디아인을 쳐부순 "웅의 나라" 마레가 지금 이 꼴이 된 것을 씁쓸하게 여긴다.
          * 회의 후. 지크는 콜트를 데리고 건물 옥에 올라왔다. 마레 군부가 있는 지역은 긴 언덕 위에 건설된 계단식 도시였다. 지크는 담배를 피우며 콜트에게 회의에서 발언을 사과한다. 콜트는 사과받을 일이라 여기기 보단 "멋졌다"고 말한다. 엘디아인이 마레군의 총수에게 발언할 기회가 있다니, 엄청난 활약이다. 게다가 그 간언이 채택돼 임무를 부여받다니. 그리고 콜트는 지크의 발언이 틀린 것도 아니라고 인정한다. 설사 자신이 짐승 거인을 이어받아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지크는 매우 특별하니까. 그의 척수액이 투여된 거인은 지크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고 달만 떠있다면 밤에도 활동한다. 이런 능력은 역대 어떤 짐승 거인에게도 없는, 마치 시조 거인과 같은 능력이다. 이야기를 하던 콜트는 새삼 이하게 생각됐다.
          대장 마가트가 옥으로 올라오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담배를 문다. 콜트가 불을 붙여주자 연기를 마시며 밀담을 계속하라고 제촉한다. 지크는 "엘디아인의 비밀에 관심이 있으시냐"고 농담하듯 화제를 돌린다.
          >20년 이 너를 봐왔다만 지금까지도 속내 모를 꼬맹이다.
          우선 시조의 거인과 [[엘런 예거]]가 가진 "진격의 거인", [[베르톨트 후버]]를 잃으면서 넘어간 "초대형 거인", [[애니 레온하트]]가 포로가 되며 넘어간 "여성형 거인". 이 중 시조의 거인과 진격의 거인은 엘런이 한 몸에 지닌 걸로 유력하며 초대형과 여성형은 정확한 최후는 불명이나 적어도 하나 이이 적에게 넘어갔다. 우선 둘이 죽었다면 이쪽에서 새롭게 해당 거인의 힘을 가진 아이가 태어났을 텐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들이 거인의 힘을 빼앗아 쓰고 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콜트가 끼어들어서 "라이너의 보고에 따르면 적들은 그럴 만한 기술이 없다"고 지적한다. 지크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 보고의 정확성은 보장할 수 없다. 라이너가 섬의 모든 비밀을 파악한 것은 아니며 단지 가능성이라고 정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가정이 가능해진다. 이 일은 22년 전 "올빼미"라 불리는 혁명군 잔당이 그리샤를 섬에 보내면서 시작됐다. 프리츠 왕가는 레이스 왕가로 이름을 바꾸고 무저항 원칙을 천명했으나 그리샤에게 시조의 거인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빼앗겼다. 분명 현재의 적들은 보다 많은 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는 조사선의 행방. 32척의 배가 도망 치지도 못하고 전멸 당했다면 거인 하나의 힘이 아니다. 분명 적은 진격의 거인을 포함, 두 마리 이의 거인을 보유했다.
          * 마가트는 지크와 같은 의견이라며 동의한다. 그리고 섬을 공격하기 위해선 적어도 전함의 지원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지크는 그것 말고도, 적들이 가진 거인 이외의 전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한다. 그 "이한 기계, 입체기동장치와 뇌창 같은 대거인전용 장비의 존재이다. 지크는 4년 전 자신의 폐인은 그 무기를 너무 얕봤기 때문이라 토로한다.
          바로 옆 책에서는 같은 마레의 전사 동료가 샌드위치를 먹으며 뭔가를 작성하고 있다. 그는 턱의 거인, 스라가 요새에선 한 번 라이너를 구하기도 했던 갤리어드였다.
          라이너는 그 말에 대해서만큼은 인을 찡그린다. 갤리어드는 형의 기억은 찾지 못했지만 "유미르라 불렸던 여자", 라이너와 함께 돌아온 유미르에 대해서는 알게 됐다. 그는 그녀의 기억을 이어받고 "거창한 이름이 붙은 불쌍한 여자"였다고 동정한다. 게다가 그가 턱의 힘을 돌려받게 된 것도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 적어도 갤리어드는 그녀에겐 원한이 없었다. 라이너도 그 점에 동의한다. 갤리어드는 "넌 그 섬에서 뭘했냐? 남의 도움만 받았다"고 책망한다. 라이너는 조용히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대답한다.
          * 가비와 [[파르코 그라이스]], 조피아, 우도는 부둣가에 앉아 석양을 바라본다. 수평선에는 침몰한 전함이 버려져 있다. 우도는 바다를 향해 돌맹이를 던지다 "거인이 전쟁에 도움이 안 되게 되면 전사대와 엘디아인은 어떻게 될까?"하고 묻는다. 그 이슈는 소년들 사이에서도 꽤 퍼져있다. 조피아는 무거운 주제 대신이 옆집 아저씨한테 들은 말을 전한다. "바닷물이 짠 건 내가 바다에 쉬를 해서다.". 말같지도 않은 말인데 파르코는 "브라운 씨라면 괜찮다. 머리가 날아가도 살아있는 사람"이라 대답하는 걸 보니, 다름 아닌 라이너의 말인가 보다. 그러면서 파르코는 "이번엔 머리가 엉망이 됐지만 이제 괜찮다"고 덧붙인다. 아마 전후의 라이너는 꽤 태가 나빴나 보다.
          일행은 인근에서 포로들이 배로 옮겨지는 장면을 본다. 하나같이 정신적인 외을 입은 몰골이다. 모두 "무구의 거인"을 대하고 살아남은 포로들로 본국에 돌아가서는 거인병기의 공포와 비인도성을 설파하고 다닐 것이다. 그건 엘디아인에 대한 여론을 더 악화시킬 것이며 전세계에서 유미르의 백성들을 죽여버리자고 떠들 것이다. 우도는 분한 듯이 물건을 걷어찬다. 그때 누군가가 우도의 행동을 나무라며 그런데 화풀이하지 말라고 한다. 라이너였다. 침울해졌던 소년 소녀들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지며 그에게 뛰어간다. 라이너는 그들의 무사를 확인하며 한 사람씩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가비가 특히 라이너를 좋아하는데, 파르코는 대조적으로 조금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고 쓰다듬도 받지 않았다.
          소년들은 그의 이한 기색을 눈치챈다. 의아한 눈동자들이 자신에게 모이자, 라이너는 금방 얼버무리며 "그쪽은 너희한테는 이르다"고 둘러댄다. 어쨌든 라이너는 그들을 데리고 마을로 향한다.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거기서 그만 말할 수도 있었지만, 파르코는 그러지 않았다.
          파르코가 아차할 틈도 없이 라이너는 추궁이 이어진다. 거의 협박조다. 이 발언은 곧 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 자신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 들었다면 밀고할 감이라는 것. 이렇게 되면 콜트가 짐승의 거인을 계승하기는 커녕 그의 그라이스 일가가 모두 반역자로 몰려서 "거인병기행"이다. 다음 작전에서 비행선에서 투하되는건 다름아닌 파르코와 콜트, 부모님이 될 것이다. 겁에 질린 파르코는 뒤늦게 발언을 정정하겠다고 한다. 라이너는 다시 아홉 거인을 계승하는 명예를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 최재웅 (배우) . . . . 26회 일치
         | 웹사이트 =
         |[[마마 돈 크라이]]<ref>[http://newsculture.heraldcorp.com/sub_read.html?uid=81098§ion=sc169 [인터뷰] ‘마마 돈크라이’ 김재범-최재웅 “18년 지기 향한 기대감? 과감하게 만족시킬게요”]</ref><ref>[http://newsculture.heraldcorp.com/sub_read.html?uid=81274§ion=sc165 [더하기컷] 18년 동안 쌓은 믿음을 무대 위로, ‘마마 돈크라이’ 김재범-최재웅]</ref><ref>{{웹 인용|url=http://m.viva100.com/view.php?key=20160607010001677#ba|제목=[비바100] 꼭 닮았지만 또 다른 18년 지기 단짝친구, ‘마마돈크라이’ 최재웅·김재범|웹사이트=100세시대의 동반자 브릿지경제|확인날짜=2016-06-16}}</ref>
         |rowspan="7"|강무
         |rowspan="3"|현재 훈 역
         |KT&G 아트홀<ref>[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598509 <헤드윅> 최재웅 "뮤지컬 스타 꿈꾼다면 이렇게..."]</ref>
         |엣지스<ref>[http://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05179 '쿨한 배우' 최재웅 "고민담 해요" -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 '엣지스' 주인공 맡아]</ref><ref>[http://eto.co.kr/news/view.asp?Code=20101215101601200 배우는 '수다' 떨듯 연기... 관객은 '개콘' 보듯 폭소]</ref>
         |[[쓰릴미]]<ref>[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4033 최재웅 "3년 사이 김무열이 능구렁이가 됐다"]</ref>
         |KT&G 아트홀
         |rowspan="2"|[[쓰릴미]]<ref>[http://kr.channel.pandora.tv/channel/video.ptv?ch_userid=yunhap&prgid=4228455&categid=1608216&page=4572&ref=ch&lot=cthum2_1_2 연합뉴스 TV 살인사건 다룬 2인 뮤지컬 '쓰릴미' 시사회]</ref><ref>[http://weekly.hankooki.com/lpage/culture/200706/wk2007060514090137140.htm 정주의 공연리뷰 뮤지컬 '쓰릴 미(Thrill Me)']</ref>
         === 화 ===
         * 《[[페이스 메이커 (화)|페이스 메이커]]》 (2012년) - 주성호 역
         * 《특수사건전담반 TEN 시즌 2》 (OCN, 2013년) - 신근 역
         == 수 ==
         * [[2010년]] 제18회 이천춘사대화제 신인남우
         * [[2009년]] 제29회 한국화평론가협회 신인남우
         {{한국화평론가협회 신인남우}}
         {{춘사 신인남우}}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정호 (성우) . . . . 26회 일치
         *[[극학생회]]([[챔프]]) - 이와자쿠라 류헤이타 / 해설
         *[[용이가 간다]]([[KBS]]) - 호 / 무전병 / 그림자
         === 특수촬 드라마 ===
         *[[삼총사 (2014년 국 드라마)|삼총사 시즌 1]]/[[삼총사 시즌2|2]] ([[KBS]]) - '''포르토스 (하워드 찰스)'''
         ==== 화 ====
         *[[광의 대가]]([[KBS]]) - 자니
         *[[트랜스포머 (화)|트랜스포머]]([[KBS]]) - 범블비([[마크 라이언]])
         *[[더 원 (화)|더 원]]([[KBS]]) - 의사 / 죄수
         *[[광의 아이들]]([[KBS]])
         *[[브라더스 (2004년 화)|브라더스]]([[KBS]]) - 통역
         *[[스포트라이트 (화)|스포트라이트]]([[KBS]]) - 매트([[브라이언 다시 제임스]])
         * [[세의 모든 다큐]] ([[KBS]]) 순록 유목민의 북극 횡단기
         * [[세의 모든 다큐]] ([[KBS]]) 아름다운 다리, 아름다운 도전
         * 2012.05.24 ~ 2012.06.22 전우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 '''(낭독)'''
         * 2005.08.01 ~ 2005.08.31 고훈 <청초 우거진 골에> (삼돌)
         * 2001.04.22 김연수 <굳빠이, 이> (청년)
         * 2001.05.27 김주 <거울 속 여행> (형사)
         * 2001.07.15 공지 <우리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2002.04.21 윤수 <이인소극> (용훈)
         * 2005.12.18 이철환 <행복한 고물> '''(해설)'''
  • 킹덤/524화 . . . . 26회 일치
          * [[악]]이 이끄는 조군과 격돌하는 [[아광]]. [[왕전(킹덤)|왕전]]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만큼 전면전에선 절대 밀리지 않는 무용을 펼친다.
          * [[왕분]]의 측근인 [[관]]은 이런 점을 설명하며 분하지만 지금은 아광과 그 부대가 왕분과 옥봉대의 몇 배는 더 강하다고 냉정히 평한다.
          * [[조아룡]]과 [[마남자]]가 후배뻘인 악에게 제 1군을 양보한건 그를 통해 적의 역량을 가늠하고 다음 수를 펼치기 위해서.
          * 마남자는 최전선에서 적을 유린하는 무인일 뿐만 아니라 부대를 둘로 나눠 악의 1진과 2진을 동시에 타격하는 전술안도 지닌 명장.
          * 마남자가 아광군의 좌측을, 악이 정면을 압박하자 아광군도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하는데, 어느 소규모 기마대가 나타나 아광군에 조력한다.
          * 진군의 우익과 조군의 좌익이 격돌하는 첫 싸움. [[악]]이 이끄는 조군과 [[아광]]이 이끄는 아광군이 격돌한다. 아광은 잔재주를 모르는 강직한 무인이고 그를 본받은 부하들인 만큼 정면에서 달려오는 적을 대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 해 부딪혔다. 그 기세는 백중세.
          * [[왕분]]과 옥봉대는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의 지시로 전장에서 물러나 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광군이 적과 비등하게 부딪히자 모두가 감탄했으나 [[관]]만은 그저 맞먹을 뿐이 아니며 아광군이 강한건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곧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양군의 제 1열은 적과 부딪히면서 큰 희생자를 냈다. 아무리 급박한 전장이라도 이렇게 격돌하고 나면 서로 부자와 시신에 가로막혀 잠시 물러설 수도 있는 일. 그러나 아광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제 1열의 병사들을 방패로 삼고 넘어뜨리고 짓밟으면서 계속 전진했다. 관은 선두의 기마들은 설사 그 앞에 있는게 자기 가족이라 해도 결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며 무엇이든 짓밟고 무너뜨릴 각오 뿐이라고 말했다.
          * 그 차이야 말로 아광군이 정면에서 격돌해 결코 패배한 적이 없는 강군으로 만들었다. 곧 전선의 균형이 크게 깨지며 조군을 밀어냈다. 관은 지금 옥봉대의 기마대도 충분히 강하며 진군 전체를 통틀어봐도 손꼽히는 수준이라 인정했다. 그러나 저같은 냉혹함 승부욕을 발휘한 적은 없었다.
          관은 아광이 한 것처럼 그를 도련님이라 불렀다.
          * 아광은 더욱 기세를 올려서 눈 앞의 조군을 전멸시킬 기세다. 악은 군의 좌우익이 전부 밀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적을 너무 얕봤음을 시인했다. 그리고 작전을 바꿔 우선은 적장을 노려서 발을 묶기로 결정한다.
          * 악에게 1군을 양보한 [[조아룡]]과 [[마남자]]. 둘은 한참 싸움이 격해지는 벌판을 응시했다. 마남자가 문득 조아룡에게 물었다. 어째서 악에게 제 1군을 양보했는가? 조아룡이 답하길 악과 그 군은 강하며 그런 군이 적들과 먼저 부딪힌다면 적의 역량이 완연히 들어나기 때문이라 답했다. 그러자 마남자도 같은 생각을 했다 털어놓는다. 이렇게 악을 통해 살펴보니 적들의 총 수는 약 2만. 그 힘도 결코 얕볼 대가 아니다. 두 장군은 모두 여기에 동의했다.
          * 아광은 자신의 군단을 둘로 나눠 악과 직접 격돌한 1진, 후방에서 대기하는 2진으로 구성해두었다. 1진이 난입한 마남자 군에 측면을 유린 당하자 2진의 제 1대, 2대가 원군을 급파한다. 그런데 그 2진도 좌측에서 습격을 받았다. 마남자는 아광의 부대 구성을 꿰뚫고 있었다. 그도 부대를 둘로 나누었다. 악을 구하러 가는 주공에 3천, 그리고 제 2진을 저지하러 가는 조공을 7천으로 배정했다. 주공의 목적은 악군과 합류해 아광 1진을 정면과 좌측에서 압박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조공은 제 2진에서 조력하러 오는 병력을 저지하는 것.
          * 적을 몰아붙이는데 골몰하고 있던 아광군은 측면을 내주면서 급격히 약화되고 있엇다. 1진은 이미 악군과 한참 교전 중이라 측면을 강화하러 보낼 병력이 없었고 2진도 마남자가 세운 벽에 걸려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싸움은 순식간에 난전 양으로 바뀌고 있었는데, 이때 1진과 2진 사이를 소속 불명의 기마대가 가로질러갔다. 양군 모두 전투의 도중인데도 저 기마대가 어디서 온 건지, 누구의 편인지 어리둥절해했다.
          * 이 정체불명의 기마대는 마남자의 눈에도 들어왔다. 그 기마대는 곧 말머리를 돌려 마남자가 있는 주공 3천을 향해 돌진해왔다. 분명 진군의 별동대다. 주공의 중심을 쳐서 전위를 고립시키려는 계산이다. 마남자는 [[친비]]를 시켜 우측에 나타난 새로운 적을 방어하도록했다. 친비는 기마대를 이끌로 적이 접근하기를 기다려 요격을 가한다. 그러나 적의 선두가 눈부신 창술을 펼쳐 친비와 그 부하들을 일소한다. 이들은 왕분과 옥봉대였다. 그렇게 얌전히 있으라고 일렀건만 결국 멋대로 전장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관이 나중에 아광에게 한 소리 듣겠다 투덜대지만 왕분은 "시끄러" 한 마디로 대꾸했다.
  • 하이큐!! . . . . 26회 일치
         == 세 ==
         단행본으로는 2015년 3월을 기준 [[일본]]에서 15권까지 발매했으며, [[한국]]에서는 [[대원씨아이]]에서 정식으로 수입하여 13권까지 정발됐다. 일본에서는 9권 발매시 [[애니메이션화]] 기념으로 [[드라마 CD]]가 동봉된 한정판도 함께 발매했으며 15권 발매시 [[점프]] 스페셜 애니메이션 페스타에서 방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동봉된 한정판을 함께 발매했다.
         2013년 골든 위크에 신쥬쿠 역사에 대형 브로마이드 전시를 하기도 했으며, 2013년 [[7월 22일]], 7권 발매 및 누계 250만부 판매 기념으로 슈에이샤 본사 1층 전시회실에서 하이큐!! 전을 개최, 예 외의 호평에 9월 20일까지 연장되기도 했으며 2013년 10월에는 하이큐!! 점프샵 페어가 열렸다.
         기존의 배구 만화들이 에이스 스파이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반면, 하이큐!!는 세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배구에서는 흔히 하는 말로, '[[야구]]를 [[투수]] 놀음이라 한다면 [[배구]]는 세터 놀음' 이라 한다. 그만큼 배구에서 세터란 포지션이 중요하며, 이는 작중에서 [[코즈메 켄마]]가 '세터는 가장 능력이 좋은 사람이 하는 포지션' 이란 대사로도 언급된다. 이처럼 현실 배구에서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임에도 그 특성 화려함은 떨어지는 포지션[* 아예 [[히나타 쇼요]]는 세터에 대해서 '수수하고 어려운 포지션'이라고 말한다.]이라, (시각 매체인) 만화에서 세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면 작가의 역량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이큐!!는 이 세터들을 중심으로 경기를 묘사한다. 그래서인지 작중 등장하는 세터들은 유독 [[사기캐]]와 [[먼치킨]]들이 많은데, 그 정점에 본작의 투탑 주인공 중 하나인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다.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 부활동으로 배구를 했으며, 배구 만화에 대한 구은 이때부터 있었던 걸로 보인다. 세터가 주인공에, 천재 세터가 스파이커에게 맞춰 주는 만화를 그릴 생각이었다고.
         본작의 원안이 되는 최초 단편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여기서는 세터인 [[카게야마 토비오]]가 사실 주인공이었으며 비중도 [[히나타 쇼요]] 보다 더 컸다. 후에 연재된 두번째 단편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정식 연재분과 가장 흡사해졌고 둘의 비중도 뒤바뀌었다(...). 그리고 정식 연재에 와서는 지금처럼 되었다.
         작품에 대한 평가로는, 대체적으로 '''평작 이'''이라는 반응이다. 이전에 연재를 한 경험이 있어 그림체가 호불호가 갈린다곤 해도 당히 안정된 편이고, 캐릭터가 주연 조연 모두 매력적이며 구성도 탄탄하다. 뿐만 아니라 만화 특유의 페이지를 넘겼을 때의 칸 연출에 당히 능숙한 편. <하이큐!!>의 최대의 강점은 그 연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허무맹랑한 필살기나 기술명이 난무하지 않고, 스포츠를 가장한 특수 [[능력자 배틀물]]의 성격을 띄는 경우[* 대표적인 만화가 테니스의 왕자다. 필살기 난무, 특수능력 난무로 만화 자체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후 이작품은 매너의 스포츠로 불리는 테니스를 모욕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테니스 한 번 치면 사람이 다치고 인사불성~~]가 많은 점프계치고는 [[주인공 보정]]이나 만화적 연출을 제외하면 당히 현실성 넘치는 경기 묘사[* 많은 [[덕후]]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스포츠물]]에서 진짜 100% 현실적인 묘사는 사실 불가능하다. 설령 100% 현실적인 묘사로만 이루어진다해도 정말 ~~[[암]]을 유발할 것 같은~~ 답답한 전개가 펼쳐지기때문에 그야말로 독자들이 지쳐 나가떨어진다. 이는 현실의 스포츠 경기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그나마 현실적인 묘사를 하더라도 약간의 판타지는 섞여있을 수 밖에 없다. 리얼계 스포츠물의 [[레전설]]로 불리는 <[[슬램덩크]]>도 사실 100% 현실적인 건 아니다. 비슷하게 현실적이라는 호평을 듣는 스포츠물인 <[[크게 휘두르며]]>도 100% 현실적이진 않다.]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점이 호감을 사는 면도 있다.
         [[카라스노 고교|주인공 팀]]에 비중이 너무 편중된다거나 하는 점이 없다. 오히려 대팀의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조명하는데, 이런 점도 본작이 당히 호평 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작중 배경은 작가의 전작 [[궤변학파 요츠야 선배의 괴담]]처럼 [[미야기]]현이다. 미야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정도 되는 곳인데, 그 중에서도 [[카라스노 고교]]가 있는 곳은 시골이다. ~~괜히 얘네들이 패스트푸드점 대신 [[만두]]를 사먹으러 가는 게 아니다~~ 카라스노 학생들이 촌사람이라는 걸 반한 연출인지, 도쿄에 간 [[카라스노 고교]] 부원들이 눈에 보이는 철탑 마다 [[도쿄 타워]]냐고 묻거나, [[타나카 류노스케]]는 [[관동]]의 학교들을 가리켜 '시티보이 연합'(...)이라 부르거나 한다.
          * 2014년 9월 22일부터 소년 점프+에서 れっつ!ハイキュー!?(렛츠! 하이큐!?)가 연재되고 있다. [http://plus.shonenjump.com/rensai_detail.html?item_cd=SHSA_JP01PLUS00000087_57 소년 점프+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감할 수 있다. 카게야마가 대놓고 왕관을 쓰고 백마를 끌고 다니고 킨다이치는 진짜 머리에 락교를 쓰고 있는 등, 본편 내용을 개그로 바꾼 내용이다. 때문에 [[캐붕]]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정적인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사실 그것보다는 본편과 개그 코드가 당히 달라서 안 맞는 사람들은 정말 안 맞다. --그러나 고양이인간 쿠로오와 켄마가 정말 귀여운 데는 이견이 없을 듯--
          * 배구계에서도 작품의 인기와 향력을 의식하였는지 [https://twitter.com/ALan_twt_/status/507780608991322112/ 실제 일본 봄고 배구대회 포스터]까지 장식하는 쾌거를 누린다.
          * 작가인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이 불분명하다. 심지어는 후루다테 작가가 졸업한 도쿄 디자인 전문학교에 졸업 후 찾아왔었다는 포스팅이 어떤 블로그에 올라왔는데, 댓글에서 어떤 팬이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을 묻자 '작가님이 직접 공개하지 않으신 사생활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라고 철통방어(...)를 하기도 했다. 종합 1000만 부 이 팔린 만화책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으로도, 온라인으로도, 심지어는 인터뷰조차도 그의 활동은 적어 필명이 본명인지, 나이가 얼마인지, 성별이 무엇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작품들이 [이와테]현 및 [미야기]현을 작중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작가 본인도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으므로 출신지가 그 쪽인 것은 분명하다. 작가가 여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팀메이트 간의 감정 묘사, 이름 및 생일의 의미와 관련성까지도 계산한 ~~설정덕후의~~ 섬세함, 특유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근거로 내세워 여자 작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반면 작가가 남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wiki:"니시노야 유" 니시노야]와 [wiki:"타나카 류노스케" 타나카]의 [wiki:"시미즈 키요코" 시미즈] 빠질을 저렇게 완벽하게(...)그려내는 것은 남자밖에 하지 못한다.', '[쿠로코의 농구]도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고 있다' 등을 근거로 남자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점치고 있다.
          * 종종 점프계열 행사가 열릴 때 공식 트위터로 하이큐 부스에서 키요코 코스프레를 한 남성이 찍혀있는데, 하이큐 편집 담당자 혼다[* 本田佑行. 2010년 6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은혼 담당을 했었다. 은혼 애니화 재기로 4기 1화 방 이후 하이큐 트위터 계정을 통해 비화를 밝히기도. [https://twitter.com/haikyu_com/status/585738044281491456 이런 심한 얘기를 점프에 올린 사람이 누구?! 나인가?!]]다. [https://twitter.com/haikyu_com/status/546458211255992320 점프페스타 2015]
          * 애니메이션 2기와 극장판 모두 제작이 결정되었다!! [http://www.j-haikyu.com/project/index.html 공홈 부설 사이트]에 따르면 극장판은 1기 애니메이션의 총집합 편으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2기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의 담당 제작사 및 감독은 1기 때와 같다.
          * 공식 [[굿즈]]를 잘 뽑아낸다. 그중에서도 '''[[일코]]용 굿즈'''를 잘 낸다. 가방이나 신발 등의 의류는 그야말로 일코용 캐릭터 품의 모범적인 예로 삼을 만한 정도. ~~그래도 알아볼 덕후는 다 알아본다~~
          * 어떤 [덕후]가 [오이카와 토오루]의 방을 실제로 재현했다. 베스트 세터 패까지(...) [https://www.facebook.com/haikyuu.fans/posts/591001484368357 위대한 덕후]
         2015년 2월 기준 13권까지 강동욱의 번역에 의해 정발되었는데, 그 사이에서 원어판과 비교해 오역이 많이 드러나 팬들 사이에서는 일어가 가능하다면 원서를 사서 보라고 할 만큼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1권 신젠 고교에서의 합숙 줄거리 중 보쿠토와 쿠로오보다 한 살 어린 아카아시가 뜬금없이 반말을 하거나, 오이카와의 그 유명한 '이와짱은 우리 엄마에요?'[* 원어로는 「岩ちゃんは俺のお母ちゃんですか?」.] 대사는 '''네가 내 엄마라도 되냐?'''라는 대사로 바뀌어 오이카와에게 일진카와(...)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게다가 대화에서 자주 쓰여진다고 보기 어려운 '~예요' 체가 남발되는 경향이 있고, 당당하고 맹한 느낌을 주는 '[~슴다체]'가 번역되지 않고 나오기도 한다. 일단 번역이 등장인물의 성격을 너무도 다르게 표현하는 게 큰 문제. ('''츠키시마: 짜식 멋있는데.''') 당장 몇 년만 지나도 어색할 유행어 집어넣는것은 덤. (시합중의 멘탈은 '''갑 오브 갑'''이지만.) 번역가가 글자를 못 읽는 경우도. ('''네코마 농구부''' ~~쿠로오의 농구?~~ '''호쿠토. 아카아시 케이시''') 더 많은 오역 사례가 있으면 [추가바람].
  • 강원래 . . . . 25회 일치
         | 관련활동 = [[현진]]과 와와
         | 웹사이트 =
         부산 출생이고 [[포항시|경북도 포항]]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산업공예과를 중퇴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클론 강원래, 강릉사 "쿵따리 샤바라|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7&aid=0000011973|저자=|출판사=강원일보|날짜=2004-09-08|확인날짜=2012-06-02}}</ref> 1990년 [[현진|현진과 와와]]에서 동갑내기 [[구준엽]]과 함께 백댄서 와와로 연예계에 등장하였으며, [[박미경]]의 백댄서 등으로 활동하고 1996년 [[구준엽]]과 그룹 [[클론 (가수)|클론]]을 결성하여 국내·외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4집 활동을 마친 후였던 2000년 11월 9일 오후 1시경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던 중, 불법 U턴하는 차에 치여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이후 생사에 큰 위기까지 맞이하였으나 극적으로 깨어나 현재는 재활에 성공하여 2005년 5집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휠체어에 앉은 채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란과 관련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강원래는 [[황우석]] 교수의 장애인 대 강연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척수 손 장애인을 치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듣고,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관심을 가져 왔다고 한다. [[황우석]] 박사는 강원래에 대해 2005년 7월 26일 [[KBS]] 《[[열린음악회]]》 녹화장에서 다시 춤을 출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우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1060126 황우석 교수 "강원래 일으키고 싶다"] - 연합뉴스</ref>
         == 수 ==
         *2005 장애인 먼저 실천
         *2001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발 공로
         *1999 서울가요대
         *1999 골든 디스크 수
         *1997 한국음반대
         *1996 KMTV 가요대전 인기가수
         *1996 KBS가요대전 올해의 가수
         *1996 서울가요대
         * [[구준엽]], [[홍록기]], [[현진]], [[유진 (작곡가)|유진]], [[김성재 (가수)|김성재]], [[이현도]], [[이탁 (가수)|이탁]]과 절친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였다.
  • 고수희 . . . . 25회 일치
         {{화인 정보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학력 = [[대진대학교]] 화과
         | 웹사이트 =
         * [[대진대학교]] 화과
         2005년 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마녀]] [[죄수]]로 출연 [[이애]]에게 죽임을 당하는 역할로 열연해 주목을 받았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043371 '친절한 금자씨' 고수희, 전통혼례로 사업가와 결혼] 마이데일리. 2009년 10월 18일</ref> 2011년 화 《[[써니 (화)|써니]]》에 칠공주파 멤버 장미 역으로 출연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2524181 ‘써니’의 고수희 주연 화 ‘바다’ 캐스팅 비화는?] 매일경제. 2011년 08월 20일</ref>
         * [[2008년]] : 《야끼니꾸 드래곤》 - 고순 역
         === 화 ===
         * [[2000년]] : 《[[플란다스의 개 (화)|플란다스의 개]]》 - 윤장미 역
         * [[2001년]] : 《[[사자성어 (화)|사자성어]]》 - 페미니스트 역
         * [[2005년]] : 《[[너는 내 운명 (화)|너는 내 운명]]》 - 황유순 역
         * [[2006년]] : 《[[괴물 (2006년 화)|괴물]]》 - 간호사 역
         * [[2006년]] : 《[[징적 그녀]]》 - 수희 역
         * [[2009년]] : 《[[친구사이?]]》 - 레스토랑 사장 역
         * [[2011년]] : 《[[바다 (2011년 화)|바다]]》 - 수희 역
         * [[2011년]] : 《[[써니 (화)|써니]]》 - 장미 역
         * [[2018년]] : 《[[레슬러 (화)|레슬러]]》 - 귀보체육관 회원 역
         == 수내역 ==
         * [[2006년]] 동아연극 연기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진대학교 동문]]
  • 구자욱 . . . . 25회 일치
         |문 표기 = Koo Ja-Wook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2013년 ~ 2014년)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로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나 초기에는 주로 2군에만 머물러 있었으며 시즌 후 곧바로 [[무 야구단]]에 입대하였다.
         ==[[무 야구단]] 시절==
         [[2013년]]에는 3번이나 5번 타자로 출장하면서 시즌 중반에는 3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시즌 후반 부으로 결장하면서 3할대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장타율이 늘었고 볼넷/삼진 비율도 꽤나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2013 시즌 말 동아시아컵에 [[무 야구단|무]]-[[경찰 야구단|경찰]] 연합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는데, 거기서 좌익수로 전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U-21 야구 월드컵에 참가해서 4할이 넘는 타율과 6번의 도루를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었고 도루왕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이 대회서는 2루수와 중견수로도 나왔는데([[무 야구단]]에서는 1루수, 3루수, 좌익수, 우익수로만 나오고 중견수를 본 적은 없었다), [[2014년]] 시즌에 투수, 포수, 유격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 때 맹활약하며 기대를 받았으나, 외야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박해민]], [[박한이]], 내야의 [[채태인]], [[박석민]]을 제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범 경기 때 부을 당한 [[채태인]]을 대신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며,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데뷔 첫 타석에선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쳐,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1일]] [[kt 위즈|kt]]전에서 [[정대현 (1991년)|정대현]]을 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 아쉬운 1루 수비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홈런을 기록한 [[4월 3일]]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안좋아지자, [[강봉규]]가 한동안 1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4월 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강봉규]]의 대타로 타석에 나와 [[김승회]]를 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부당한 [[채태인]]이 1군에 올라와 시즌 첫 선발 출장을 했으나, 한 타석만에 그와 교체되었고, 그는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하였다. [[채태인]]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며 주전 자리를 이틀만에 꿰찼지만, 다시 타격감이 안 좋아져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도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4월 29일]]에 그는 다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데뷔 첫 3안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뒤로 꾸준히 타격감을 끌어올린 그는 [[채태인]]이 부에서 돌아오자, 타격 부진에 빠진 [[박해민]]을 대신해 중견수로도 출장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5월 21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윤명준]]을 대로 홈런을 기록하였고, 이 홈런은 [[삼성 라이온즈]]의 4000번째 홈런이 되었다.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이승엽]]의 [[KBO (야구)|KBO]] 최초 400호 홈런이 터지던 날, 대수비로 출전한 그도 나란히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이 포스트 [[이승엽]]의 자격이 있다는걸 증명했다. 꾸준히 타격감을 올린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치며 3할고지를 돌파하였고, 시즌 끝에는 3할 4푼 9리의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 뒤 그는 부으로 빠진 [[박석민]]과 [[박한이]]를 대신하여 3루 수비와 우익수 수비도 소화하며 수비에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그는 전반기 0.329의 타율과 9개의 홈런으로 [[2015년]]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의 1루수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8월 4일]] [[kt 위즈|kt]]전에서 [[저스틴 저마노|저마노]]를 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신인 최다 경기 연속 안타인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였고, 다음 날 경기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23G 연속 안타로 기록을 늘렸다. [[8월 2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5타수 5안타 5득점 1홈런으로 맹활약하며 생애 첫 5안타, 5득점에 두 자릿수 홈런까지 달성하였다.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타격 후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을 아쉽게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신인 최고 타율을 갱신하였다. 최종 성적은 11홈런, 17도루, 57타점, 97득점이었다. 이는 타율 3위, 득점 10위, 출루율 10위의 대단한 성적이였다. 비록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는 0.286의 타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은 준우승을 하였으나, [[김하성]]과 [[조무근]]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르게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4/0200000000AKR20151124125600007.HTML?input=1195m '타격 3위' 삼성 구자욱, 2015 신인왕 수] - 연합뉴스</ref>
         그의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채태인]]을 [[넥센 히어로즈]]에 보내고 [[김대우 (1988년)|김대우]]를 받아오는 1:1 트레이드를 하였다. 팀에서 3번 타자 겸 1루수를 맡아 활약하였으나, 크고 작은 부 때문에 전경기 출장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3할대 타율과 14홈런으로 데뷔 시즌에 비해 기록이 승하였다.
         수비에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야수로 전향하였다. 이전 두 시즌 동안은 부을 달고 살았으나, 이 시즌에는 부 없이 전 경기에 출장하였다. 그 덕에 기록이 승하였다. 특히 장타 비율이 가장 많이 늘어났지만, 그에 반해 삼진 비율도 많이 늘어났다. 이 시즌에 100득점-100타점 기록을 세웠다.
         {{KBO 신인}}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무 야구단 선수]]
  • 김기창 (법학자) . . . . 25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언어 = [[한국어]], [[어]]
         |웹사이트 = [http://lawlec.korea.ac.kr/ 공식 사이트 - 001] <br/> [https://twitter.com/youknowit2 공식 사이트 - 002] <br/> [http://opennet.or.kr 공식 사이트 - 003]
         국 유학 시절 [[리눅스]] [[운 체제]]를 사용하면서 [[오픈 소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국내 독점에 대항하는 [[오픈웹]]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모든 운 체제에서 [[공인인증서]]를 사용해야 한다며 [[금융결제원]]을 대로 2007년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제1심과 항소심에서 패소하고<ref>[http://m.ddaily.co.kr/view.php?uid=48223 오픈웹, 금결원과의 민사소송 2심서 패소]{{깨진 링크|url=http://m.ddaily.co.kr/view.php?uid=48223 }}</ref> 대법원에 고했으나 2009년에 기각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0&oid=001&aid=0002906855 대법 "익스플로러만 공인인증 위법 아니다"]</ref> 2009년에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서적을 저술하였다. 오픈웹은 2013년에 [[사단법인]] [[오픈넷]]에 통합되었고 현재는 오픈넷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에서 행정 심판 위원을 역임한 바가 있고,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와 관련하여 《서해안기름유출사고와 삼성중공업의 배책임》에 대한 논문을 저술하였다. 2008년 10월에는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에 대한 형사 소송 사건에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취지의 증언을 하였고, 2009년 6월에는 [[2009년 대한민국의 시국 선언|법률가 시국 선언]]에 참여하였다.
         전문 분야 저술과 일 생활이 가능한 언어로 [[한국어]], [[어]], [[프랑스어]]가 있고 전문 서적 독해가 가능한 언어로 [[라틴어]], [[독어]], [[일본어]]가 있다.
         * 법관의 배책임과 사법면책 -국의 경우-, 高麗法學 41호,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2003.10
         * SOFA 제4조와 환경손해 -원회복의무와 손해배의무에 관하여-, 民事法學 26號, 韓國民事法學會, 2004.09
         * 국의 법조인 양성 및 선발제도 개관, 한국법학교육과 법조실무의 국제경쟁력: 도전과 대응, 한국법학교수회, 2004.12
         * 법학전문대학원(가칭)의 구성과 운, 安岩法學 20號, 安岩法學會, 2005.04
         * 보증채무의 부종성과 독립성 -국법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民事法學 29號, 韓國民事法學會, 2005.09
         * 국의 수습변호사제도 -로스쿨 개혁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제안-, 人權과 正義 382號, 2008.06
         *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와 삼성중공업의 배책임, 比較私法 15卷 3號, 韓國比較私法學會, 2008.09
         * Long Seisin and Novel Disseisin: Acquisitive Prescription in Medieval Common Law? (장기점유와 부동산신침탈(新侵奪): 중세 컴먼로의 취득시효?), 고대로마와 중세의 법과 평화,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주최 국제학술대회, 2005.10.07
         * 서해안 기름유출사고와 삼성중공업의 배책임에 관하여, 한국비교사법학회 제56회 정기(춘계)학술대회, 2008.5.23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25회 일치
          * [[오버홀]]과 히어로들의 난전이 이어지고 있는 사이, 이레이저 헤드 [[아이자와 쇼타]]는 [[쿠로노 하리]]에게 포획됐다. 시에핫사이카이는 에리를 연구하는 동안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지우는 아이자와의 개성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쿠로노는 혼란한 틈에 아이자와를 자신의 개성으로 포획, VIP룸으로 격리시켰다.
          * 쿠로노의 개성은 "크로노스타시스". 앞머리를 시계바늘처럼 늘여서 공격하는 능력인데 여기에 당한 대은 움직임이 둔화된다. 공격하는 순간 자기 자신은 정지된 태여야 한다는 패널티가 존재. 여기에 당한 아이자와는 아무리 용을 써도 달팽이 같은 움직임 밖에는 취할 수 없다. 그를 포획한 쿠로노는 그 몸을 제압한 채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에리는 사실 "두목"의 딸이며 오버홀은 목적을 위해 뭐든 쓸 수 있는 남자라고 말한다.
          * [[네모토 신]]을 먹고 파워업한 오버홀은 원 포 올 풀카울 20%로도 대적하기 어려운 대. [[미도리야 이즈쿠]]는 파편이 되어 오버홀이 접촉되지 않은 지면을 벽으로 삼아서 돌진한다. 그래도 오버홀은 자기 근처의 지면을 촉수처럼 뻗어서 공격을 가하는데 매우 빠르고 정교해서 피하기 쉽지 않다. 오버홀이 죽어도 공격을 머뭋지도, 에리를 포기하지도 않을 인물이라고 직감한 미도리야는 단기결전으로 치명을 주는 걸 노린다. 미도리야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천장을 박차고 떨어지며 정수리를 노려서 공격을 가하나 오버홀은 몸을 비틀어 피해서 오른팔을 다치는데 그쳤다. 오버홀은 지금 미도리야가 빠르고 강하긴 해도 루밀리온 [[토오가타 밀리오]]나 [[서 나이트아이]]에 비하면 너무 움직임이 단순해 오히려 쉬운 대라 평하며 반격을 가한다.
          * 밀리오는 만신창이 몸으로 에리를 데리고 피신 중. 하지만 신체적으로 한계이고 방금 전 나이트아이가 당하는 모습까지 본 뒤라서 무너지고 만다. 움직일 힘도 낼 수 없는 밀리오는 에리에게 근처에 숨어서 후속병력이 도착하길 기다리라고 하지만 에리의 표정은 어둡다. 밀리오는 그런 황에서도 어떻게든 에리를 안심시키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때 오버홀의 목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들려온다.
          오버홀의 반격도 미도리야에게 치명을 입히진 못했다. 오른팔과 왼발을 당한 미도리야. 그렇지만 오버홀은 자신도 꽤 타격을 입은 데다 미도리야가 밀리오처럼 죽을 힘을 다해 버텼기 때문에 더는 싸울 생각이 사라졌다. 그는 어딘가에 있을 에리를 향해서 "너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 에리는 이미 길고 긴 "실험"기간 동안 체력이 떨어지면 부숴지고 수복되길 반복한 경험이 있었다. 지금 에리의 마음엔 일말의 희망도 품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 몇 명이나 죽고 다치는 황 속에서 완전히 절망했다. 결국 에리는 갔던 길을 되돌아와 오버홀 앞에 나타난다.
          오버홀은 에리를 더욱 압박해 결국 돌아가겠다고 말하게 만든다. 에리가 자신이 돌아갈 테니 모두를 원래대로 만들어달라고 매달리자 오버홀은 다시 미도리야를 압박한다. 에리는 자기 때문에 남이 처받기 보단 자신이 아픈 쪽이 편하다는걸 알고 있고 루밀리온이 분투했을 때 품은 작은 희망이 미도리야와 나이트아이의 등장으로 무너졌다며, 정말 잔혹한 짓을 하는건 히어로들이라고 매도했다. 그리고 에리는 미도리야의 도움을 바라고 있지 않다고 선언한다.
          * 의식이 남아있던 나이트아이는 정말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가 본 예지에는 자신과 미도리야가 죽고 오버홀이 도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도리야는 나이트아이가 "원 포 올은 밀리오에게 줘야했다"고 말한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를 멈추진 못했다. 미도리야는 설령 "쓸데없는 참견"일 지라도 누구도 죽게하지 않고 에리를 구하겠다고 선언하며 다시 일어섰다. 바로 그때, 현관에서 철포옥 핫사이슈와 싸우던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류큐]] 팀이 적과 함께 천장을 부수며 도착한다.
         == 세 ==
          에리의 회을 통해서 단순히 에리가 한계에 달할 때도 분해오 수복을 거듭해왔음이 밝혀졌다. 원 포 올 20%의 미도리야를 대로 여전히 우위를 점하나 생각보다 타격을 받고 밀리오처럼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대와 싸우는데 질력이 나서 에리를 협박하는 걸로 전략을 바꾼다. 오랜 시간의 세뇌와 학대로 간단하게 성공. 에리가 "돌아갈 테니 모두를 되돌려달라"고 애원하게 만든다. 자신만만하게 미도리야에게 "에리는 너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고 선언하나 미도리야는 굴하지 않았고 그때마침 류큐 팀이 현장에 착한다.
          쿠로노의 말로는 오버홀의 딸이 아니라 "두목"의 딸. 토오가타 밀리오를 따라 도피하고 있었으나 오버홀이 "너 때문에 또 누군가가 죽는다"고 협박하자 발길을 돌린다. 이때 회으로 체력이 다할 때마다 오버홀이 분해와 수복을 거듭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에리는 자신이 돌아갈 테니 모두를 원래대로 복구해달라고 애원한다.
          지난 회에 당한 채로 널부러져 있으나 의식을 잃진 않았다. 오버홀에게 자신과 미도리야가 당하고 그가 도주하는 미래를 예지했기 때문에 절망하고 있지만, 그런 황에서도 미도리야가 꺾이지 않는 걸 보고 무언가를 느낀다.
          지난 회에 오버홀이 언급한 VIP룸에 포획된 채로 등장. 쿠로노 하리의 개성에 당해서 옴짝달싹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그의 무효화 개성은 시에핫사이카이가 관심있게 연구한 대인 듯. 에리 다음으론 그를 연구하기 위해 포획한 듯 하다. 쿠로노가 엎드리게 하고 그 위에 걸터앉아 있어서 도움 없이는 무효화를 걸 수도 없는 황.
          마침내 얼굴이 드러났다. 개성은 "크로노스타시스". 앞머리카락을 시계바늘 모양으로 늘려서 공격하는 묘한 개성이다. 당한 대는 움직임이 극도로 느려진다고 하는데 이름으로 보면 몸에 조작을 가하는게 아니라 대의 시간을 조작하는 걸지도 모른다. 지속시간은 약 1시간. 공격하는 순간에 자기 자신은 정지해 있어야 한다는
          패널티가 있다. 아이자와의 무효화를 경계한 건지 엎드리게 해놓고 그 위에 올라타서 시선을 피하고 있다. 아이자와를 VIP룸에 포획해둔건 좋은데 입이 가벼운 건지 쓸데없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다. 아이자와의 개성이 전부터 연구대이었다거나 쓸모가 있어서 살려뒀다거나 하는 둥 쓸데없이 나불거린다.
          현관에서 거구의 핫사이슈와 대치중이었다가 천장을 무너뜨리며 세 명 모두 현장에 도착. 그냥 떨어진건 아니고 원래 일행과 합류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 마기/329화 . . . . 25회 일치
          * 알리바바는 신드바드에게 대드는 알라딘을 야단치며 "그도 좋은 세을 만들려 할 뿐"이라 변호한다. 그러나 신드바드에 동의할 수 없는건 마찬가지.
          * 성궁의 루프를 고쳐 쓴 신드바드와 그것이 잘못됐다 말하는 알라딘. 둘 사이에 폭언까지 오가며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평행선을 달리던 두 사람은 동석한 알리바바 사르쟈에게 의견을 묻는다. 알리바바는 당황한 탓인지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마침내 입을 연다.
          * 의혹을 벗은 알리바바가 의견을 말하는데, 우선 알라딘을 지목한다. 뜻밖에도 알라딘에게 일갈을 날리는데 "신드바드씨에게 건방지게 대들지 마!"라는 얘기라 역시 알라딘이 세뇌당한게 아니냐고 놀란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었고 신드바드도 "좋은 세"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중재하려는 의도였다. 그는 다시 신드바드에게 "세에서 분쟁을 없애고 싶은 거라면 언쟁은 멈춰라"고 설득한다.
          알리바바 덕에 고성이 오가던 분위기는 정돈된다. 알리바바는 다소 관없는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가 암흑대륙에서 돌아와 신드바드와 벌인 업대결이 즐거웠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게 왜 즐거웠는지 생각해 봤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 대답에 도달했고, 그래서 전에 마스루르에게 "신씨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라고 들었을 때 이해가 안 됐던 것도 지금은 깨달았다고 한다.
          >세에서 제일 굉장한 사람일지라도
          * 신드바드는 그런 알리바바에게 세의 구조를 아냐며 선문답같은 말을 시작한다. 그는 세은 단 한 명의 신이 관리하고 있다며 성궁에서 만났던 우고를 언급한다. 알라딘이 동요하며 우고를 만났냐며 묻는데 신드바드는 그가 완전히 미쳤다고 대답한다. 우고의 사정을 몰랐던 알라딘은 그 말에 충격을 받는다. 알리바바가 알라딘 대신 무슨 뜻이냐고 묻는데 어쩐지 신드바드의 태가 이하다. 그의 주변이 요동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쓸데없고 핵심과 관없는 것까지 미주알 고주알 늘어놓기 시작한다. 마치... 우고처럼.
          그는 자신이 성궁에서 본 것을 말한다. 이 세엔 여러 개의 세과 제각각의 신이 있다. 우고는 그 순위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손에 넣으며 그걸 사용하면 알라딘을 이 세계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간단하다. 그런 그가 일 일라의 힘을 빼앗고 배제하는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인간의 손"으로 일 일라와 알 사멘을 없애고자 했다. 그건 바로 그 자신이 "욕망"이 없기 때문. 그런 존재는 단지 주어진 역할에 묶여 있을 뿐, 단지 남이 부여한 대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 "신드바드"는 다르다.
          *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사이, 신드바드의 손에 들려있던 한 자루의 펜이 기괴하게 변한다. 펜은 소용돌이치더니 우고의 수족관에 들어있던 일 일라의 그가 창조한 세으로 바뀌고 다시 신드바드의 손아귀에서 깨어져 한 자루의 돌아간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그 모습에서 신드바드가 손에 넣은 힘을 실감한다.
         >원히!
          * 어째서 그렇게하냐는 두 사람의 질문에 신드바드는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단지 "내가 그러고 싶기 때문에". 그는 태연한 얼굴로 그 욕망을 위해서 이 세의 루프를 완전히 새롭게 환원하겠다고 선언한다.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를 태연한 얼굴로 한 탓에 진짜 의미를 이해하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알라딘은 힘겨운 표정으로 자신의 이해한 의미를 말한다. 부정해주길 바라는 듯이. 하지만 신드바드는 여전히 태연할 뿐, 그걸 넘어 쾌한 표정이다.
          * 그는 잘못됐다. 알라딘이 그렇게 소리친다. 신드바드는 일순간 평정을 잃는다. 그 광기를 숨기지 않는지, 그러지 못하는지 어둡게 변한 표정으로 자신은 잘못되지 않았고 오히려 알라딘에게 눈을 뜨라고 다그친다. 신이 무수히 있다면 정의도 악도 이 세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책을 내려친다. 그런데 그 팔이 인형의 팔처럼 떨어진다. 표정에 웃음이 돌아온다. 무엇이 재미있는 걸까? 그는 웃으며 바닥에서 팔을 되돌린다. "아직 이 모체에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
          * 알라딘은 그가 더이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신드바드는 부정한다. 자신은 인간이다. 그렇기에 꿈을 좇는다. 그 어떤 차원의 신보다 욕망스러운, 인간 "왕".
         그는 우고를 미쳤다고 하지만 그 자신도 광기에 휘말리고 있는 듯 하며 우고와 마찬가지로 그를 중심으로 사물이 일그러지는 묘사가 있다. 현실 으로는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분명 성궁에서 루프를 다시 쓰는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이 필요했을 것이며, 더군다나 한 번 죽어서 루프에 환원되기도 했다. 모두 정신적 소모가 심한 작업이었을 텐데 더군다나 우고 조차 정신줄을 놓게 만든 강대한 힘이 주어졌으니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알리바바만은 루프에 손댈 수 없었던 걸로 나오는데, 이는 신드바드 이의 특이점이란 의미가 된다. 아무리 신드바드라도 진들의 도움을 받아서야 루프에서 자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즉 신드바드도 그 자신은 루프 안에선 평범한 인간이란 이야기. 그런데 알리바바가 그 루프에서 벗어나있고 성궁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건 유례가 없는 특이점이란 소리나 다름없다. 신드바드도 그저 신비하다고 생각하고 말고 알리바바는 자신이 한 번 죽어서 그런거 같다고 대충 넘어가는데, 중요한 복선이 될 수 있다.
         알리바바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알라딘과 신드바드를 화해시키려고 나름대로 설득했으나 신드바드가 너무 글러먹어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알리바바가 신에게 "신이 돼버린 거냐"고 하는 장면에선 알리바바가 부모를 잃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도 어정쩡한 관계 밖에 가져보지 못한 그에게 신드바드는 친구이자 아버지인 존재이며 그 점은 단을 꾸릴 당시 "신드바드씨는 나의 아버지 같은 입장"이라 한 데서도 드러난다. 결국 이번 에피소드에서 알리바바가 한 말은 설득하기 위해서 짜낸 말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의 속내를 드러낸 걸로 보이는데, 이미 정신이 나간 신드바드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25회 일치
         일본의 런앤건 [[슈팅 게임]] 시리즈. 로널드 모덴 원수가 일으킨 반란군 및 사이비스러운 불법 무장 단체, 괴생물체, 외계인, 그 외 등등에 대항해 싸우는 특수부대를 다루고 있다.
         플레이어는 특정한 적이 드롭하거나 특정한 순간에 드롭되는 무기 아이템을 통해 무기를 바꿀 수 있다. 무기는 현재 황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무기는 정해진 장탄수가 있으며, 해당 무기의 장탄수가 전부 소진될 경우 사라진다. 플레이어가 사망할 시, 모든 무기를 잃게 되고 기본 무기인 권총과 수류탄으로 돌아온다.
         === 태변화 ===
         메탈슬러그 2 부터 나온 시스템. 특정한 황에 처하면 플레이어의 태가 변하게 된다. 보통은 이동속도나 공격속도가 변하게 된다.
          풀네임은 타미클 로빙 3세. 일본 홋카이도 출신으로 정부군 대위이다. 아버지는 우수한 군인이었으며, 타마 또한 중학교 졸업 즉시 군대에 들어갔다. 20대에 대통령을 구했으며, 군대에서 사귄 친구인 마르코와 함께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았다. 메탈슬러그 이후 은퇴해 바이크샵을 차리려고 했지만 그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부의 요청으로 연기되었다.
          풀네임은 피올리나 제르미.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으로 정부군 사이다. 장남이 군인이 되는게 전통이었던 제르미 가문의 외동딸로, 어머니가 피오를 낳고 더이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기에 군인이 되었다. 부모님에게 사랑받으며 지냈기에 점잖은 성격. 대학에서 척추 지압법, 침술, 뜸질을 공부받았으며 스포츠 닥터가 되는게 꿈이다.
          일본 히로시마 출신으로 정부군 소위이다. 어렸을 때 교회 계단에 버려졌으며 성장한 후 교회에서 도망쳐 부랑아의 리더가 되었다. 이후 그녀의 전투기술을 눈여겨본 정부군에게 입, 1등급 공작원으로 수많은 임무를 성공했다. 이후 암살같은 임무나 양심에 걸리는 계획에 싫증을 느껴 특수분대 S.P.A.R.R.O.W.S.로 전속하였다.
          메탈슬러그 어드밴스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펠그린 팔콘즈"에 지원한 훈련병. 사이트에서는 자신의 기척을 완전히 숨기고 목표물에 접근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암살자라고 한다.
          모덴군의 병사. 시리즈의 중간 보스격 인물로 기관총과 수류탄, 대검으로 무장하고 주인공들을 대한다. 아무리 죽여도 다음 편에는 살아있다. 신기해라.
         [[http://www.metalslug10th.com/top_e.html|메탈슬러그 공식 웹사이트(어)]] - 2006년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다. 도메인을 보아 2006년에 10주년 기념으로 만들고 내버린 듯.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5/english/ms5_top.html|메탈슬러그 5 공식 웹사이트(어)]]
         [[http://www.metalslug10th.com/top_j.html|메탈슬러그 공식 사이트(일본어)]] - 어 버전과 동. 이쪽은 업데이트가 2009년까지 되었다.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ms4_top.html|메탈슬러그 4 공식 웹사이트(일본어)]]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5/ms5_top.html|메탈슬러그 5 공식 웹사이트(일본어)]]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6/|메탈슬러그 6 공식 웹사이트(일본어)]]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7/|메탈슬러그 7 공식 웹사이트(일본어)]]
         [[http://game.snkplaymore.co.jp/official/msxx/|메탈슬러그 XX 공식 웹사이트(일본어)]]
  • 박세웅(1995) . . . . 25회 일치
          * 위 문서 : [[야구 관련 인물(KBO)]], [[롯데 자이언츠/선수단]], [[박세웅 ↔ 장성우 트레이드]], [[불교/인물]], ~~[[금테안경]]~~
         || [[양훈]]([[경찰 야구단]]) || → || '''박세웅'''([[kt wiz 2군]])[br][[이형범]]([[경찰 야구단]]) || → || [[김수(투수)|김수]]([[무 야구단]]) ||
         >하지만 저는 그 사이에 박세웅을 넣고 싶어요. 괜히 같은 팀 선수라서 그러냐고요? 아니에요.
         >'''2017년~2020년 사이에 [[한국시리즈]] 1선발로 뛰게 될 선수예요.--근데 그 기간동안 롯데가 한국시리즈 한번이라도 들어갈수있을까?--'''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시절에 [[대구 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원고]]의 [[이수민(야구선수)|이수민]]과 함께 대구/경북 지역의 기대받는 유망주였다. [[삼성 라이온즈|삼성]]은 ~~[[삼적화|외모가 팀컬러에 맞고]]~~ 좌완의 이점과 고교 시절 한 경기 26탈삼진(!)이라는 인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수민을 1차 지명으로 선택하였고, 이어진 신생팀 [[NC 다이노스|NC]]와 [[kt wiz|KT]]에게만 주어진 전국 단위 1차 지명에서 먼저 선택할 기회가 있었던 NC는 내야진의 보강을 위해 [[강민국]]을 선택했으며, 이어 kt는 박세웅을 골랐다.
         [[kt wiz|KT]]가 드래프트에서 선택한 [[류희운]], [[심재민]], [[조현우(야구선수)|조현우]] 등의 고교 유망주 투수들이 하나같이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부진했던 것과 달리, 꿋꿋하게 선발 로테이션을 버티면서 퓨처스리그에서 kt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118이닝을 소화하며 9승 3패, 평균자책점 4.12, 123 탈삼진을 기록했다. 북부리그 다승 1위, 평균자책점 4위, 탈삼진 1위다. 당시 홈구장이었던 [[성균관대]] 야구장이 센터가 110m에 불과한 극악의 타자 친화적 구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졸 1년차로서 놀라운 활약을 선보인 셈. 다만 고졸 1년차에다가 체형마저 마른 투수가 몸을 제대로 만들지 않고 120이닝 가까이 던졌다는 것은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일이다. 창단 첫 해라고 2군 타이틀을 따기 위해 애지중지 아끼면서 관리해야 할 1픽 투수를 KT 구단이 혹사시킨 면이 없지 않고 그 여파를 증명하듯 15시즌 초반에 구속이 하락하는 현을 보이다가 결국 [[롯데 자이언츠|롯데]]로 트레이드되며 몸 관리를 받기 시작한다.
         '''[[kt wiz|KT]]의 차기 [[에이스(야구)|에이스]] → 실패한 트레이드 → [[롯데 자이언츠|롯데]]에서 가장 미래가 기대되는 건'''
         '''[[소년가장]]과 특급 에이스, 그 사이'''
         시즌 초기엔 에이스 모드였으나, 시즌 후기엔 떨어진 체력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전년 대비 [[이닝]] 수가 꽤 증가했다. [[버두치 효과]] 문서 참고. 14년부터 퓨처스에서부터 꾸준히 100이닝 이을 던져서 별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으나 쉬운 예로 [[장원준]]이 04년 84 2/3, 05년 107.1이닝을 던졌다가 06년 179.2이닝을 던졌는데 그 다음해에 바로 성적이 떨어졌고 11시즌까지 06년도 이의 이닝을 던지지 못했다. 시즌 종료시까지 180이닝 정도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데 롯데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했다는 점, 그리고 시즌 후에 있을 대회의 국가대표로 차출됐다는 점때문에 총 이닝은 200이닝 가까이 될 것으로 보여 팬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이에 혹사라는 의견도 있지만 후반기 들어 5선발 로테이션이 잘 돌아가며 당겨쓰기를 하지 않았기에 혹사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전반기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장점과 보완해야 될 점을 정확히 파악하게 된 시즌.
         [[박진형]]과 [[나경민]]과 함께 나간다. 동시에 [[KIA 타이거즈|서쪽동네]]에 가있는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김윤동|선배]] [[임기|두명]], 한양에 있는 [[김명신|또 다른 선배]]도 뽑혀서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출신 4명이 뭉치게 되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22097697|#]]
         '''잃어버린 에이스의 위.'''
         약점으로 지적되는 건 제구력이 급격하게 흔들리는 황이 종종 나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소 힘이 들어가는 투구폼이라 힘을 빼고 던지든가, 혹은 팀에서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하체보단 체를 많이 쓰는 투구폼이다. [[염종석]]과 비슷한 계열. 자칫 잘못하면 팔꿈치에 심각한 부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오프스피드 피치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투수가 제구력이 떨어지면 생기는 문제인 피홈런 역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은 2017년 당히 개선되어서 2017년 5월 25일 기준 55 2/3이닝 동안 피홈런이 혼자 0개였다.
         그의 투구 패턴을 보면, 초구는 반 정도 확률로 패스트볼이 들어오며, 우타 대로는 슬라이더의 구사율이 높고, 좌타 대로는 슬라이더를 줄이고 포크볼의 비중을 약 30%, 패스트볼의 구사율을 50% 이으로 끌어올린다. 스트라이크가 볼보다 많으면 포크볼의 비중을 높이고, 볼이 스트라이크보다 많으면 포심 구사율을 50% 후반까지 끌어올린다.
          * 故 [[최동원]]과의 비교 사진. '''릴리스 때의 투구폼이 당히 비슷하다.''' ~~표정도~~
          * [[SK 와이번스]]의 [[염경엽]] 단장과 당히 닮았다. ~~명장의 포스도 같이 느껴진다~~
  • 보에몽 1세 . . . . 25회 일치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중심이 된 주 가운데 1인으로, [[십자군 국가]] 가운데 주요한 세력이 된 [[안티오크 공국]]의 초대 공작. [[노르만]] 종족으로서 [[비잔티움 제국]]령이던 남이탈리아를 침략해 아풀리아 공국을 세웠던 [[로베르 기스카르]]의 장남이자, 안티오크, 타란토의 공작. 그가 가진 지에서 따온 칭호인, '''타란토의 보에몽'''(Bohémond de Tarente)이라고도 불렸다.
         === 내가 지가 작은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가 나빠! ===
         그는 로베르의 장남으로, 그의 전처 알베리다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로베르 기스카르는 1081년에 [[비잔티움 제국]]을 침공하면서 그를 데려가고, 그의 지인 아풀리아를 동생인 루지에로에게 속하는 대신 [[비잔티움 제국]]을 정복하면 그곳의 지를 속해주겠다고 한다. 이후 보에몽은 아버지가 남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반란을 진압하러간사이 분열된 군대를 이끌고 계속 제국과 맞서지만, 테살로니카에 라리사란 곳에서 알렉시오스 1세에게 격퇴당하고 쫓겨난다.
         이후 보에몽은 아버지의 동쪽 지를 속받지만 역병의 여파로 전력이 크게 약화된 태였고, 얼마안되어 알렉시오스에게 격퇴당한다.
         그러던 중,교황 우르비노 2세가 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오스 1세에게서 지원 요청을 받고 십자군을 선포하자, 그는 즉시 아말피 시를 내버려두고 조카인 탕크레드와 함께 500명의 기사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향한다. 당시 비잔티움은 [[군중십자군]]때 십자군이 부린 행패와 1차 십자군에 참여한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군대와의 갈등으로 인해 십자군과 당한 갈등에 빠져 있었는데, 이황에서 보에몽이 오자, 알렉시오스는 과거 그가 아버지로부터 속받았다가 축출당했었던 제국의 서부토(디라키움, 에피루스등)의 속권을 요구하지 않을까 고민하게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아드리아해 인근을 횡단하면서 규율을 엄하게 잡아 그들이 근처 마을을 약탈하지 않도록하고, 행군중 근처 마을에서 식량을 사들일때도 제값에 식량을 사들이는등[* '''전부''' 사버리는 바람에 뒤에 따라오던 툴루즈의 레몽에게 큰 민폐가 되었지만] 황제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십자군 초기 그들사이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되었던 황제의 충성서약 요구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 많은 군사적 공적을 세웠으며, 특히 안티오크 공방전에서 안티오크를 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반년에 걸친 공방전을 펼친 끝에 안티오크 점령에 성공, 안티오크 공작 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안티오크 시내의 이슬람이나 시리아계 기독교인 다수를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현대까지도''' 지속되는 악명을 쌓았다(…). 안티오크를 획득한 보에몽은 예루살렘 원정에서 이탈하여 안티오크 공국의 기반을 다지는데 전념한다.
         안티오크 공작으로서 보에몽은 명목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독자성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대립 관계였다. 주변 이슬람 세력을 정복하여 토를 늘려나갔는데, 이렇게 이슬람 세력과 대립하다가 결국 이슬람 셀주크계 다니슈메드 왕조(Dânişmendliler)에 포로로 잡히고, 당시 그와 대립하던 알렉시오스 1세에게 이송될뻔했기도 했으나, 군사적 협약을 미끼로 풀려나 다시 공작위를 되찾는다.
         거기서 그는 프랑스 왕에게로 가 그에게 군사적 지원을 얻어낸 뒤, 남이탈리아 주들에게 황제가 십자군을 배신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해 그곳의 주들이 자신을 돕게 공작을 한뒤, 남부 이탈리아에서 디라키움에 륙해, 그곳을 통해 콘스탄티노플로 가려고 시도한다.[* 이는 그의 아버지인 로베르 기스카르가 비잔티움 침공을 시도할때 거친 경로와 흡사, 아니 똑같다. ~~그리고 둘다 털렸다.~~]
         결국 보에몽은 알렉시오스에게 패배했고, 그에게 안티오크의 비잔티움 속국화와 안티오크의 확장을 사실 저지하는 조약을 맺게 됀뒤, 1111년 실의속에 죽는다
         알렉시오스 1세의 딸 안나 콤네나가 그의 아버지를 소재로 한 연대기에 '그는 그의 아버지만큼이나 교활하고 위험한 인물이다.'라고 적었듯이, 그의 군사적 능력은 출중한게 확실하다. 한편으로는, 그의 아버지를 닮아 알렉시오스 1세가 십자군의 봉신서약을 요청했을때 이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이를 뒤통수쳐서 안티오크 공국을 독자적으로 형성한 교활함까지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매우 안타깝게도 그의 목표이자 야망이었던 비잔티움 제국과 그곳의 지도자인 알렉시오스 1세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고, 결국 그가 그의 야망을 충족시킬만한 황이 되지못했다.
  • 식극의 소마/196화 . . . . 25회 일치
          * [[사이바 죠이치로]]의 괴식요리는 나날이 심해지고 후배였던 [[시오미 준]]도 단골 피해자가 된다.
          * 이 시절 젊은 요리인을 대으로 한 THE BLUE라는 요리사 선수권 대회가 있었는데 죠이치로가 토오츠키 대표로 뽑힌다.
          * 죠이치로는 이들 전원을 대로 연대식극을 선언하고 50대1의 말도 안 되는 승부를 시작한다.
          * [[사이바 죠이치로]]는 레시피로 보이는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조금 피곤해 보이는 그는 그 서류뭉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시 개척의 길로.
          * [[도지마 긴]]은 죠이치로에게 묘한 버릇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죠이치로는 당시 중1이던 [[시오미 준]] 등 후배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괴식요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시오미는 질색하지만 결국 선배의 권력을 남요하는 죠이치로에게 잡혀 시식의 고통을 맛본다. 그런데 어떤 여학생들은 그 해괴한 맛에 중독돼서 자청해서 먹으러 오는 등 기묘한 흐름이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일적이고 즐거운 생활이었다.
          변화를 감지한건 도지마만이 아니었다. [[나키리 아자미]]는 요리 얘기를 많이 하던 죠이치로가 요즘은 멍하게 있는 때가 늘었다고 이하게 여기고 [[다이미도 후미오]]여사는 안 그래도 이한 녀석이 그러고 다닌다고 역시 수하게 여긴다.
          그러나 막 식극을 해봤더니 공연한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죠이치로는 콩쿠르를 격파하고 나서도 여전히 쌩쌩해서 도지마와 아자미를 연거푸 패배시킨다. 도지마는 그 놀라운 체력과 무엇보다 뛰어난 발력으로 만들어낸 요리에 경탄하며 다음에는 꼭 이기겠다고 다짐한다. 죠이치로는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우리 기숙사가 최고"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아자미도 다음에는 지지 않겠다며 눈물을 훔치는데 죠이치로는 실컷 놀려먹으며 즐거워한다. 이렇듯 표면으론 크게 이할 것도, 변한 것도 없는 듯 했다.
          혼자서 불만자 50명을 대로 연대식극을 벌이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도지마가 보기엔 무모할 뿐더러 의미도 없는 싸움. 죠이치로는 실력을 보여주면 잠잠해 질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지만, 도지마는 위화감을 지울 수가 없다.
          * 그렇게 해서 실현된 50 대 1의 연대식극. 그 자체로 엽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죠이치로는 연승가도를 달리며 대 진을 압살한다. 오히려 "10명 씩 덤벼봐라"고 호기를 부리는데 대가 어떤 수로 나오든 죠이치로는 그 이가는 발력과 기술이 가미된 요리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불만자들의 리더였던 사와츠바시 집안의 아들도 그의 솜씨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를 비롯한 불만자들 진에선 "어차피 천재는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이 팽배해있다.
          마침내 모두 쓰러지고 사와츠바시만 남은 황. 죠이치로가 대해줄테니 올라오라고 하지만 그는 겁을 먹고 나서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보고 죠이치로는 아주 불쾌한 기억을 떠올린다.
          어느 콩쿠르에서 우승한 죠이치로. 대였던 요리사에게 악수를 청하지만 그쪽은 아주 불손한 태도로 "어차피 못 이길 줄 알았다. 천재를 대로 화낼 수도 없지"라며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
          * 흥분한 죠이치로는 사와츠바시의 멱살을 끌어당겨서 위협한다. 그는 끝없이 "앞"을 개척하는 괴로움을 알기나 하면서 천재타령이냐고 비난한다. 그런 되먹지 못한 각오로 "진심으로 정진"같은 그럴듯한 말을 떠들지 말고 요리 만들 생각이 없다면 때려치우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그 신랄한 모습에 학생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라며 두려워한다. 독설만이 아니라 그가 승리한 자리엔 망연자실한 패배자들이 널려있다. 누가 봐도 이것은 정적인 승리도 아니고 평소의 죠이치로와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 모든 것을 지켜본 도지마는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다고 느낀다. 더이 죠이치로는 요리 중에 미소를 짓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당혹해하는 도지마의 옆에 아자미가 있다. 그런데 그는 "훌륭해"라며 지금의 죠이치로를 칭송한다. 도지마에겐 죠이치로의 변화만큼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 식극의 소마/226화 . . . . 25회 일치
          * 종극에 다다른 [[미마사카 스바루]]와 [[사이토 소메이]]의 참치 대결. 미마사카는 놀라운 발전을 선보이며 사이토의 "홍옥알 스시"를 완벽하게 트레이스한다.
          * 사이토가 선보인 초밥은 교토의 오이란들이 화장을 하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만든 한 입 크기 초밥의 발전형.
          * 마무리에 특유의 어레인지를 더하는 미마사카의 특징 답게 사이토 쪽에는 없는 "군함말이" 초밥이 있는 것이 특징.
          * [[카와시마 우라라]]는 여전히 편파적인 진행 중. 미마사카가 흉내 따위로 사이토의 솜씨를 따라갈 리 없다고 장담하나 막 시식을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 미마사카는 사이토가 비장의 재료로 사용한 "붉은 식초"까지 간파해 사용, 그 맛은 틀림없는 십걸 위멤버의 솜씨다.
          * 시식은 아직 관건인 마지막 한 점까지 진행되지 않은 가운데, 다른 조리대의 요리들도 속속 완성, 심사위원들이 한꺼번에 모든 음식을 맛봐야 하는 황이 되는데.
          * [[사이토 소메이]]가 완성한 "참치 십관 홍옥알 스시". 한 입 사이즈인 작은 크기에 참치의 각 부위를 이용한 열 조각의 초밥이다. 이스트와르는 교토 오이란들이 화장이 하지 않게 먹을 수 있게 만든 작은 초밥에서 발전한 것 같다고 평한다. 그 말대로 오이란의 치장용품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작고 아름다운 초밥.
          * 사이토를 완벽하게 트레이스한 [[미마사카 스바루]]도 완전히 똑같은 구성의 초밥을 완성했다. 그러나 [[유키히라 소마]]는 마지막 한 조각 만큼은 미마사카 특유의 어레인지가 들어갔음을 눈치챈다. 사이토의 초밥에는 없는 "군함말이" 초밥이 들어가 있었던 것. 이 마지막 조각이야 말로 승부의 최대 갈림길이 될 터였다. [[타쿠미 알디니]]는 과연 이것으로 사이토의 원본을 뛰어넘었을지 기대한다.
          * 그때 [[카와시마 우라라]]가 마이크를 씹어먹을 기세로 폭발한다. 그녀는 반역자들이 갇힌 감옥까지 오더니 "건방진 소리만 한다"며 철창을 두드려 댄다. 한 마디로 "감히 사이토 선배를 이길 생각도 하지 마라"는 것. 그녀는 초밥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숙련이 필요한 일인지 역설한 뒤 그저 흉내쟁이일 뿐인 미마사카가 제대로 맛을 냈을리 없다고 폄하했다.
          카와시마는 이 초밥 밥이야 말로 이 절묘한 맛의 바탕이라고 지목한다. 미마사카의 초밥 간에는 식초 특유의 모난 맛이 없었다. 그 부드러운 맛에 평범한 밥이 아님을 직감하는데. 미마사카는 친절하게 그 비결을 스스로 밝혔다. "붉은 식초". 일반적인 초밥용 식초는 쌀, 밀, 콩 등을 혼합 발효해 만들지만 붉은 식초는 장기 숙성한 "지개미"를 이용한다. 본래 에도 시대의 초밥에는 이 붉은 식초가 필수품이었지만, 제조에 5, 6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지금은 흔히 보기 어려운 고급품이 된 것. 그러나 희소한 만큼 그 맛은 지금 확인한 대로다. 물론 그건 사이토의 비결이기도 했다.
          박식한 [[아라토 히사코]]는 단지 그거에 그치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붉은 식초는 일반 식초에 비해 단맛이 적고 부드러운 감칠맛이 있다. 밥알이 딱딱해지지 않게 하는 효과는 덤. 하지만 붉은 식초로 간을 하면 재료간의 하모니나 깔끔한 맛을 살리려 할 땐 매우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미마사카는 그런 기술을 카피하는 역까지 성장한 걸까?
          >학원축제나 수업 같은 데서 먹은 적이 있는 십걸 위 멤버의 요리
          * 아직 심사가 시작된 것 조차 아니건만 반역자 팀은 벌써 축제 분위기.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성공적인건 사실이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그것은 미마사카가 어레인지한 마지막 한 조각의 초밥에 달렸다. [[나키리 에리나]]와 소마는 친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에도 말없이 승부를 주시한다. 소마는 항하던 대로 까불거릴 만도 하건만 이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는데.
          * 카와시마가 여러 가지 신조가 깨진 바람에 분노의 포효를 하는 동안 샤름이 그녀를 달래며 미뤄진 심사를 속행하려 한다. 그때 예치 못한 변수가 또 발생했다. [[코바야시 린도]]가 자신도 요리를 막 완성했다며 식기 전에 맛봐달라고 들이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대결 대 [[메기시마 토스케]]는 물론 [[쿠가 테루노리]]와 [[츠카사 에이시]]의 요리까지 모두 완성되었다. 2라운드 참가자 전원의 요리가 완성. 갑자기 심사위원들이 바쁘게 됐다.
          * 반명 "녹차"를 주제로 대결한 쿠가와 츠카사는 각기 컨셉이 뚜렷했다. 쿠가는 흑초를 사용한 탕수육 풍의 요리. 하지만 장식이나 플레이팅은 고급 이탈리아 음식을 연시키는 세련미가 있었다. 과연 쿠가는 자신의 주전공인 사천요리로 살리기 어려운 차의 맛을 어떤 식으로 요리했을까?
  • 용덕한 . . . . 25회 일치
         |문 표기 = Yong Deok-Han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2007년 ~ 2008년)
         [[대구원고등학교|대구고]] 2학년이던 [[1998년]], 제52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투런 홈런을 쳐 내면서 팀이 5년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하는 데 공헌하였다. 3학년이던 [[1999년]]에도 제54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공·수에 걸쳐 맹활약을 하며 팀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무 야구단]] 시절===
         2008년에 복귀했다. [[2009년]] 시즌에 [[최승환]]의 부으로 인해 79경기를 출장한 것이 최다 출장한 기록이 되었다. [[2010년]] 포스트 시즌에서 주전 포수 [[양의지]]를 대신한 특급 백업 요원으로 자리매김하였고, 대적으로 경험이 적었던 [[양의지]] 대신 노련한 모습을 선보이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00601032233169006 준비된 백업 용덕한 준PO 시리즈 MVP로] 문화일보</ref> 그러나 [[2011년]] [[5월 27일]] 잠실 한화전에서 낫아웃 황에서 파울이라고 항의하다가 [[오선진]]이 3루까지 뛰는 황을 자초하여, 이후 2군행을 통보받았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5280001 낫아웃에 3루까지...어떻게 된 건가?] - OSEN</ref> 이는 [[1997년]] [[8월 23일]] 대구에서 열렸던 [[삼성 라이온즈|삼성]]과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과의 연속 경기 1차전의 낫아웃 해프닝 이후 낫아웃 황의 착오가 발생한 사건이었다(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포수 [[김진 (야구 선수)|김진]]은 이후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5870 김진의 ‘희대의 해프닝’ 낫아웃 오판] - OSEN</ref>
         [[양의지]]에 이어 [[김재환 (야구 선수)|김재환]], [[최재훈 (야구 선수)|최재훈]] 등 신진 포수들에게 밀려 [[2012년]] [[6월 17일]] [[롯데 자이언츠]] [[투수]] [[김명성 (1988년)|김명성]]을 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었다. 이는 [[장성우]]의 [[경찰 야구단]] 입대에 따른 [[강민호]]의 백업 포수가 필요하였던 [[롯데 자이언츠|롯데]] 측의 요청으로 성사되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367321 포수 물색하던 롯데, 용덕한 결정한 이유는?] - OSEN</ref> [[2010년]] 포스트 시즌에 이어서 [[2012년]] 포스트 시즌에도 맹활약을 보여 롯데가 13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서 승리를 거뒀다. 주전 포수인 [[강민호]]가 준PO 1차전에서 손등 부으로 2차전부터 주전 포수로 출전하였고, 2차전 1:1 동점 황에 9회에 대 [[투수]] [[홍삼]]을 대로 역전 솔로 홈런을 쳐내며 결승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인터뷰에서는 "친정 팀이건 뭐건 간에 내가 속해 있는 팀이 이기는 게 먼저다. 나는 롯데 선수고 친정 팀이란 건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 말을 하며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2014년]] [[11월 28일]] [[kt 위즈|kt]]의 신생팀 특별지명을 받아 [[kt 위즈]]로 이적했다. [[2015년]] [[5월 6일]]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5회초 1사 만루 송창식을 대로 시즌 첫 홈런, 생애 첫 [[만루홈런]]을 기록하였다.
         2016 시즌 후 프로 입단 13시즌 만에 FA 자격을 취득했다. [[NC 다이노스]]는 그에게 코치직을 제안했고, 결국 [[2016년]] [[12월 7일]]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고양 다이노스]] 배터리코치로 선임됐다. 그는 은퇴 후 인터뷰를 통해 "그 동안 경험하고 배운 걸 토대로 공부하는 지도자가 되겠다. 강압적이지 않고 선수들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17&aid=0002849960 FA 용덕한, 은퇴 결정… NC 코치 변신] - 마이데일리</ref><ref>{{뉴스 인용 |저자=이철|제목=‘FA→은퇴→코치’ 용덕한 “새 길 찾겠다”|url=http://sports.mk.co.kr/view.php?no=848528&year=2016 |뉴스=MK스포츠 |출판사= |위치= |날짜= 2016-12-07 |확인날짜= 2016-12-07}}</ref>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분류:홍천 용씨]][[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
  • 은혼/610화 . . . . 25회 일치
          *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의 위력으로 해방군은 물론 전장 일대의 기계 장치가 봉인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 자체도 기계인 이 나노머신에 저항하면서 시스템을 유지시켜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할게 타마와 킨토키.
          *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가 발사된 직후부터 해방군의 모든 기계화 병력이 정지된다. 이는 지군만이 아니라 공의 함대까지 겪는 현. 통신조차 차단되고 함선들은 고도를 유지할 수도 없게 돼서 서서히 추락한다. 이것이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의 진짜 목적. 이것은 포격을 위한 대포가 아니라 기계를 죽이는 바이러스를 살포하는 나노머신 병기였던 것이다.
          * 히라가 겐카이가 말한 "기계를 멈추는 병기"란 것은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 자체를 말하는게 아니었다. 거기에 탑재되는 작은 "탄두" 쪽. 이것은 최첨단 나노머신으로 겐카이는 이것을 "벌"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벌은 대포를 통해 대기중에 살포, 꽃가루처럼 퍼져나가 기계에 점착하면 탑재된 컴퓨터 바이러스를 심어서 시스템을 점거하고 자기자신을 "독침"으로 바꿔 회로를 파괴, 기계 자체를 말살해버리는 무서운 무기다.
          * 본래 천인의 기술을 해석해 만든 것으로 설사 해방군의 병기라도 예외는 없으며 겐카이 감은 "전장은 죽창을 들고 다니던 시절로 회귀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다. 다만 일시적으로 벌을 살포하는 것만으론 의미가 없고 실질적으론 이 나라 전역을 커버할 정도의 규모로, 그것도 장시간 동안 유지해야 해방군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연히 이 에도에서 활동했던 모든 기계들까지 파괴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겐카이 감이 작전 시작 전에 타마에게 이야기하길 "인간이 살기 위해 너희를 버리는 것"이라 표현한다.
          * 게다가 이 벌들은 최소한 20분은 활동해야 유효할 텐데 그 막대한 에너지는 에도 전역에서 끌어모아도 부족할지 모른다. 발사대인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 자체도 기계이므로, 처리를 잘해봐야 버틸 수 있는 시간은 10분 가량. 대포가 먼저 정지되면 그 이후부터는 다른 기계의 힘으로 시스템을 유지해야한다. 물론 그 기계 또한 벌의 공격을 받을 테니 말도 안 되게 하드한 작업. 그렇게 할 수 있는 기계는 에도에는 단 둘 밖에는 없다. 바로 타마와 사카타 킨토키.
          *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의 정비 작업을 하던 사카타 킨토키는 주저없이 그 역할에 자원한다. 금혼 사건 이후로는 쭉 겐카이 공방 지하에서 정비업무만 맡고 있던 듯 하다. 이런데서 "나사"만 돌리던 일이 질력난다며 즐겁게 자원하는데 겐카이 감은 무슨 임무인지 이해는 하는 거냐고 묻는다. 뜻밖에도 킨토키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 않으면 세계가 끝나지". 킨토키는 어차피 끝나는 거라면 어떻게 끝내는게 나을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싸우는 대는 해방군이 아닌 사카타 긴토키. 그가 구하려는 세계를 한 발 앞서 구해낸다면 그거야말로 자신의 복수가 될 거라고 말한다.
          * 타마는 이 "골든 아이디어"를 자랑스레 떠드는 킨토키에게 "금색은 똥색"이라 디스하나 "하지만 역시 겐카이님이 만든 기계"라며 칭찬한다. 그러면서 겐카이감에게 자신들을 생각해서 망설이지 말라고 말한다. 그가 기계에 가지는 애정도, 어떤 생각으로 기계를 만들고 나사를 돌려왔는지 잘 알고 있다면서.
          *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는 가부키쵸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해방군 함선이 추락하는걸 발견한다. 긴토키는 무전으로 모든 기계를 다 파괴할 생각이냐고 따지는데 겐카이 감은 무전을 꺼버린다. 이 포격으로 촉발된 사태를 누구보다 이해하는건 그 자신이다. 그는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유지하기 위해 버티다 하나씩 쓰러지는 기계들을 바라본다. 그는 차라리 원망이라도 해보라고 생각하지만 기계들은 묵묵히 할 일을 다할 뿐이다.
          * 겐카이 감에게 있어 "기계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란 당연한 원칙이었지만, 설사 그들이 싫다고 했다면 그는 그래도 좋았을 거라고 독백한다. 도움이 되지 않고 고철일 뿐이라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같이 망해버릴 각오'''를 했던 것이다. 겐카이 감은 망가져가는 기계들 앞에 무릎 꿇으며 미안하다 사죄한다.
          * 중추회로 안의 킨토키는 벌의 향을 받고 있다. 그는 기계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죽음보다 괴로운 선택을 하게 해버렸다고 말하면서도 꽁무니는 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히라가 겐카이가 만든 기계들이니까'''. 그는 타마에게 작별인사는 하고 왔냐고 말을 건다. 타마 또한 벌의 향으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그들이 사력을 다하는 사이 해결사 일행도 가부키쵸의 동료들도 반격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 거대 기동병시 타케미카즈치가 추락, 지면에 처박힌다. 벌은 대기권을 뚫고 우주공간에 있던 해방군 본진에까지 향을 미치며 그야말로 해방군 전체가 마비된다. 당황하는 원 황자.
  • 은혼/639화 . . . . 25회 일치
          * [[다카스기 신스케]]는 그답지 않게 "희망"을 지키기 위해 지의 동료들을 믿고 싸워나간다.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플하고도 거대한 음모. 모든 걸 파멸시키려는 [[우츠로(은혼)|우츠로]]의 계획은 우주에서 싸우는 [[귀병대]]에도 전달된다. [[다케치 헨페이타]]가 관련된 사실을 전달하자 [[키지마 마타코]]가 귀를 의심한다. 그녀는 병력을 이끌고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기 위해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해진 아르타나의 폭주. 마타코는 에도의 가부키쵸 연합군이 어떻게 됐는지 다급하게 물었다. 거기까지는 헨페이타도 알 수 없는 일. 그저 많은 별들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사태가 지구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 배후가 우츠로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카와카미 반사이]]가 우츠로의 진짜 목적은 뭐냐고 물었다. 헨페이타가 알아낸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지의 해방군 잔당을 일소하고 본대가 히노카구츠치로 보복하는 걸 유도하는 것. 거기에 지구의 전 아르타나를 모은 아르타나 캐논을 작렬, 막대한 힘을 충돌시켜 지구를 부수고 전우주에서 모인 해방군과, 잘하면 이 은하까지 부수는 걸 노리고 있다.
          * 마타코와 반사이의 병력이 합류. 하지만 모퉁이 바로 뒤에 적의 대병력이 진치고 있다. 적의 화력과 무장 태가 좋아 진격이 막힌 태. 뚫자면 골치 아프게 생겼다. 마타코는 이 고생을 해가며 히노카구츠치를 막아도 거기서 끝나는게 아닌 거냐고 반문했다. 반사이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르타나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 결국 지구는 끝. 하지만 이미 폭주 태에 들어간 지구를 돌이킬 수 있을까? 적어도 한 사람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귀병대 대장 [[다카스기 신스케]]가 적들의 머리 위에서 천장을 뚫고 습격한다. 전방의 반사이, 마타코의 병력에 집중하던 해방군 부대는 위에서부터 공격에 급속히 와해된다. 신스케는 어떤 방어진이든 돌파할 구멍이 있는 것처럼 지구가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애초에 지구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신스케의 기습으로 적의 화력이 분산되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마타코와 반사이의 병력이 진격한다. 진형이 무너진 해방군은 앞뒤에서 몰려드는 귀병대 병력에 끼어서 압살 당한다. 신스케는 지의 동료들에 대해서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방해를 해왔던 녀석들이 쉽게 죽게 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여기서 싸우는 거다. 지이 얼마나 절망에 물들 건 간에.
          * 통신을 통해 들은 헨페이타도 그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들은 지에 전해줄 무기도 격려도 없지만 한 가지는 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희망, 해방군의 유해와 함께 지에 차서 떨궈줘야 겠군요.
          다시금 시작된 귀병대의 진격. 신스케가 선두로 나선다. 끝없이 밀려드는 적을 끝없이 베어넘기는, 문자 그대로 지옥. 하지만 신스케는 지옥이야 말로 귀병대에게 어울리는 무대라고 단언한다. 반사이는 참모인 헨페이타가 "희망"이란 불확실한 단어를 입에 올렸다고 빈정댄다. 하지만 마타코는 맨날 로리만 입에 달고 사는 변태 보단 방금 전 그게 훨씬 정이라고 대꾸한다. "평소답지 않다". 그런 거라면 헨페이타가 문제가 아니다. 헨페이타는 사실 자기도 그들과 함께 진격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답지 않은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 잡무를 떠받은 바토우가 투덜대면서도 일처리를 시작한다. 그의 부하가 해방군 모선의 네트워크에 컴퓨터를 연결한다. 그 컴퓨터에 있는 것은 데이터만 남은 태의 [[한카이]]. 증원군의 임무란 한카이의 능력으로 히노카구츠치를 해킹하는 것이다. 한카이는 부팅되자 마자 자신의 육신을 빼앗은 지구인을 위해 일하라는 거냐며 기막혀한다. 통신으로 연결된 헨페이타는 바로 그런 이야기라며 기공도사라 불린 그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말한다. 게다가 이미 별을 부술 만한 에너지가 모인 태니, 외부에서 두들기는건 너무 위험한 일. 한카이라면 최적의 인물이다.
          한카이는 승락도 거부도 하지 않은 태로 시큐리티에 접근하다 실패한 흔적을 찾아낸다. 이게 "지구인의 한계"라며 비웃는데, 사실 그는 그럴 처지가 못됐다.
          사루가쿠는 자기들은 머리가 나빠서 한카이처럼 보이지 않는 벽은 어쩌지 못하지만, 보이는 벽을 부술 머리는 있다고 농담한다. 적을 박살내는 그의 행렬에 바토우도 동참한다. 같은 삼흉성인 이 한카이가 부수지 못하는 벽은 자기들에게 권리가 있다면서. 헨페이타는 결국 둘 다 일벌레이지 않냐고 지적한다.
          * 하지만 황은 일벌레가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막 진격을 개시하던 바토우는 후방을 일소하는 강렬한 빛을 느꼈다. 그가 돌아보았을 땐 뒤따르던 부하들이 지워지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가 미처 황을 보기도 전에 끝났다. 부하들을 지워버린 빛이 그의 사지를 찢고 흩어버린다. 그리고 지워진다. 뒤늦게 떠진 세 번째 눈.
          폭음과 연기가 뒤따랐다. 바토우와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던 사루가쿠는 폭발음과 함께 바토우의 무전이 끊기자 심치 않은 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도 한 발 늦기는 마찬가지였다. 바토우가 그랬던 것처럼 눈부신 빛이 뒤따른다. 그의 무전도 소실. 헨페이타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설마, 한 가지 해석이 떠올랐다.
          * [[엔죠]]황자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적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인물이다. 그게 불필요해진 모든 아군을 버리는 일이 되더라도. 그는 지의 아르카나 캐논 보다 먼저 히노카구츠치를 발사하기 위해 모선의 전 에너지를 그쪽으로 돌리고 가동에 불필요한 구역의 전력을 전부 차단, 산소공급마저 끊는다. 각 구역에서 침입자들과 교전하던 병력들은 당연히 몰살. 황자는 그것도 공멸이 불러올 참사에 비하면 싼값이라 합리화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그는 희생자들을 위한 대책도 세워놨다. 마지막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헨페이타의 다급한 퇴각 선언도 시간에 맞출 순 없었다. 귀병대가 황이 급변을 인지하기도 전에 세 번재 폭발음이 모선을 뒤흔든다.
  • 은혼/654화 . . . . 25회 일치
          * 우주의 전쟁이 끝난 뒤. 그 소식은 하타 황태자의 배에도 전해졌다. [[하타 황태자]]는 전쟁은 혼자 다 해먹은 것같이 폼을 잡는다. 그러나 실제 전투 중엔 화장실에 처박혀서 압사도 감수할 작정이었다. 어쨌든 황태자가 이만한 군세가 단번에 백기를 들 줄은 몰랐고 "전쟁을 결정짓는건 숫자가 아니라 각오"라며 죽음을 각오한 자신의 기백에 해방군이 패배를 깨달았다고 개드립을 친다. 전직에 실패해 내세에서 다시 시작하려던 [[하세가와 다이조]]는 써놓은 유서가 첨부된 그 대로 어디서 기어나와서 그 개드립에 "나도 매일 각오를 다지며 죽음과 마주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감 [[네스]]는 거기에 일일히 츳코미하며 어차피 이 전쟁에 조력한 것도 억지러 한거 아니었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하세가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찌됐건 하타 황태자의 도움이 있어 이길 수 있던게 사실이라며 고마움을 표한다. 그렇게 쓸데없이 훈훈하게 뭉뚱그려지고 있는 찰나, 해방군 모선에 진입했던 부대와 연락선을 잇는 작업 도중 적의 모함이 갑자기 이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하타 황태자는 전리품을 쓸어담고 도주하는 거라고 생각해 직접 추격할 것을 명한다.
          * 지구에서는 아네 모네 자매와 이누카미 "코마코"가 [[사다하루]]와 합류해 용맥을 안정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그러나 세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많은 작업을 거치고 나자 체력이 바닥. 그래도 이제 용혈, 터미널을 진정시키는 것으로 사태는 진정될 듯 했다. 자매는 이제 막부군도 터미널로 진격할 거라 예하고 자신들도 보조를 맞춰 접근해 보기로 결정한다.
          * 아네의 눈높이 수준으로 줄어든 사다하루. 아네는 검력을 너무 쓴 나머지 L사이즈가 M으로 보인다고 눈을 부비는데, 모네는 그게 기분 탓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언니가 너무 늠름해져서 그렇다는 것. 그동안 캬바레나 들락거리던 언니가 일족의 사명을 완수하러 동분서주하는 지금의 아네는 오오바야시 모모코 만큼 커보인다고 드립을 쳤다. 그리고 코마코도 동의하듯이 짖는데, 어째 이쪽도 심하게 작아졌다. 고작 모네의 손바닥 위에 올라오는 초미니 사이즈. 이누카미 티컵 강아지 에디션.
          * 노부메의 짐작대로였다. 우츠로의 지시로 터미널을 폭주태로 몰고간 시생인들이 보고를 올렸다. 이미 터미널을 한계. "문"은 더이 부하를 견딜 수도 없고 제어할 수도 없다. 우츠로는 그 보고가 오히려 기뻤다. 자신의 부하들도, 아네모네 자매와 이누카미들도 모두 훌륭하게 사명을 완수했다. 그런 자들은 적이든 아군이든 칭찬할만하다고 우츠로가 말했다. 그러니 그 마음을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우츠로는 진선조를 앞세운 카부키쵸 연합군이 터미널로 진격할 것도 알고 있었다.
          우츠로가 바라보는 용은 대기권에 돌입 중인 해방군 모선에서도 보였다. 자작 제독은 창 너머로 그것을 보며 "용이 입을 벌리고 세계를 집어삼치려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사루가쿠]]는 함선 내를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제어를 되살려보려 했지만 역부족. 지구로 추락하는건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의 웅들 [[가츠라 고타로]], [[사카모토 다츠마]], [[다카스기 신스케]]는 빈사에 달해 누워있고 이 배는 너무 손돼서 키 조차 잡을 수 없는 태. 속수무책. 다른 말이 없었다.
          * 자작 제독은 이제 함 내에서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확정했다. 이미 히노카쿠츠치의 에너지가 역류하면서 배를 파괴하고 있다. 배는 곧 컨트롤이 안 되는 거대한 에너지 덩이가 될 것이고, 인력에 이끌려 확실하게 지구에 때려박을 것이다. 그 충격의 여파는 지구는 커녕 은하가 무사할지 걱정해야 할 판. 그러므로 지금으로선 배의 외부에서 모선을 공격, 추락하기 전에 우주공간에서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선내의 인원을 대피시킬 시간적 여유는 없고 그렇다고 전은하의 생명과 저울질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이 배를 외부에서 파괴하는게 가능한 병력을 가진 건 한 군데 뿐. 자작 제독은 이의 내용을 정리해 접근한 하타황태자에게 전달했다.
          >그걸 할 수 있는 황에 있는 건
          * 모네는 아네를 스쿠터에 태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터미널에서 용이 튀어나온 뒤 시생인의 추적은 사라졌지만 황은 좋아진게 없었다. 중을 입은 아네는 그 시끄러운 입이 조용했다. 모네가 정신 차리라고 실컷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겨우 "시끄럽다"고 대꾸하는 정도였다. 아네는 괜찮다며 어서 터미널로 가길 원했지만 모네는 무리라고 대꾸했다. 이미 검력도 다 소진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아네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문이 파괴된 이 그걸 멈출 수 있는건 자신들 뿐. 모네는 자기가 아네 몫까지 하겠다고 했지만 아네는 그것도 안 된다고 고집했다. 그랬다간 모네는 그렇다쳐도 두 이누카미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만다. 그게 문제였다. 이누카미는 성을 띄면서 동시에 육체도 지닌다. 하지만 그 육체는 성에 의해 유지되는 것. 대량의 검력을 써버린 지금의 이누카미들은 육체를 유지할 힘도 부족했고 그래서 몸이 작아진 것이다. 여기서 더 부담을 주게 된다면, 몸이 작아지는 걸론 끝나지 않는다. 코마코와 사다하루는 확실하게 이 세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 세 ==
          우츠로가 양이 사천왕도 방치하고 있는 마당에 친히 처치하러 나와서 주역급 주목도를 받았다. 열심히 뛰어댕긴 덕에 에도를 날려먹을 것 같았던 용맥의 폭주는 진정. 하지만 본류에 해당하는 용혈 그 자체의 폭주는 아직도 남아 있다. 아네는 한때 사다하루를 버리고 일족의 사명도 팽개쳤던 관계로 죄책감이 심한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사다하루를 반드시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필 그때 사다하루와 코마코가 검력을 너무 소진해 쪼그라든걸 발견했고 덮친격으로 우츠로의 시생인 부대까지 습격하면서 치명사을 입는다. 일단 모네가 데리고 열심히 도망쳤는데, 결국 용혈은 손 쓸 수 없는 태로 돌입하고 앞으로 코마코와 사다하루가 계속 검력을 쓰면 아예 존재가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처지에 처한다.
          아네 모네 자매와 합류해 용맥의 폭주를 죄다 정리해버려 순식간에 해결사 일행 중 최고의 공을 세웠다. 하지만 너무 검력을 소진한 바람에 같은 이누카미인 코마코와 함께 형편없이 작아졌다. 코끼리 만하던 덩치가 이젠 소 정도로 다운그레이드. 아네는 이누카미들은 성으로 육체를 유지하는데 검력을 너무 써서 성이 약해진 탓에 육체마저 사라지고 있는 거라 진단, 더이 무리를 하면 둘이 완전히 사라질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사다하루를 찾기 위해 뛰는 중이지만 막 어딜 가서 찾을지 감은 못 잡고 있다. 다시 용맥이 폭주하는 기미를 보이자 가구라가 제일 먼저 사다하루 쪽에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 직감하고 그게 사실이었다. 노부메는 용혈에 대해서 잡지식이 많아서인지 지진을 보고 곧 용혈을 컨트롤하는 문 그 자체가 붕괴할 지경이라는 걸 직감한다. 그 직감대로 터미널은 붕괴하고 아르타나는 "용"이 되어 우주로 뿜어진다.
          전투 내내 화장실에 짱박혀 있던 주제에 끝난 뒤에는 혼자 다 싸운 것처럼 생색내며 베르세르크의 가츠같은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났다. 하세가와는 이 와중에도 자살시도를 멈추지 않다가 역시 다 끝나고 나서야 "나는 항 죽음을 마주하고 살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고 하타와 드립을 주고 받는다. 다들 싸우느라 떠나서 츳코미 역이 없어 네스 감이 열심히 츳코미를 넣고 다닌다. 어쨌든 하타 황태자가 도와줘서 전쟁에 이긴 건 사실. 하세가와가 "맨날 지구를 멸망시킬 뻔 했던 너네에게 도움 받을 줄은 몰랐다"며 감사를 표한다. 만일 여전히 공무원이었으면 지구 대표로 하타황태자에게 정식으로 감사할 뻔 했으니 차라리 짤린게 다행이라는 정신승리와 함께.
  • 이규환 (영화감독) . . . . 25회 일치
         {{화인 정보
         | 직업 = 화연출
         '''이규환'''(李圭煥, <small>일본식 이름: </small>岩本圭煥, [[1904년]] [[2월 18일]] ~ [[1982년]])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화 감독|화감독]]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나 어릴 때 [[경성부]]로 이주하여 자랐다. [[우미관]]을 드나들며 [[찰리 채플린]]의 작품을 보며 성장하였다. [[1919년]]에 대구 [[계성고등학교]]의 전신인 계성중학교에 재학 중, [[3·1 운동]]으로 인해 [[밀양시|밀양군]]의 시골 마을에서 2년 동안 피신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후에 이규환의 화 작품에 드러나는 향토적 화면에 향을 미쳤다.
         피신 생활 중에 화감독이 될 것을 결심하고 [[192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화 공부를 했다. [[1928년]] 경에는 [[하이 시|하이]]로 가서 1년 정도 머물렀다. 이 곳에서 [[전창근 (화 감독)|전창근]]과 [[이경손]]을 만나 교류했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시]]의 [[신코키네마]]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1932년]]에 귀국하여 제작한 작품이 《임자 없는 나룻배》이다. [[나운규]]와 [[문예봉]]이 출연한 이 화는 좋은 평가를 받고 문예봉을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후 제작비 문제 등으로 순탄치 않은 화 작업을 계속했다. [[1937년]]에는 [[성봉화원]]을 설립하고 로컬리즘 색채가 강한 《나그네》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성봉화원이 [[조선화주식회사]]로 통합된 뒤 이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만주]]로 떠나, 일제 강점기 말기의 [[군국주의]] 화 제작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1944년]]부터 강제징용으로 노역을 하던 중 [[태평양 전쟁]] 종전을 맞았다. 라디오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을 화화하는 등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 전쟁]] 후 연출한 《춘향전》(1955)은 전후 대한민국 화 부흥의 기폭제로 평가받았다. 일제 강점기 한국 화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며, 화의 경향은 민족주의, 서정적 리얼리즘, 향토색으로 주로 설명된다.
         |저자=강옥희,이미,이순진,이승희
         [[분류:1904년 태어남]][[분류:1982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화 감독]][[분류:일제 강점기의 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이상정 (1897년) . . . . 25회 일치
          | 이름 = 이
         | 출생지 = [[조선]]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부]] 서문로 12번지
          | 사망지 = [[대한민국|미 군정 남조선 과도정부]]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에서 뇌일혈로 사망
          | 배우자 = 한문이(초취), [[권기옥]](재혼)<ref>[[권기옥]]과의 재혼은 사실 중혼이다.</ref>
          | 친척 = 이동진(조부) <br/> 이일우(백부) <br/> 백자화(백모) <br/> 한정원(장인) <br/> 박학남(장모) <br/> 권문각(장인) <br/> 장문명(장모) <br/> [[이화 (시인)|이화]](아우) <br /> 서온순(제수) <br/> 이용희(조카) <br /> [[이백 (사학자)|이백]](아우) <br/> 이학희(조카) <br/> [[이오]](아우) <br/> 이겸희(조카딸) <br/> [[박창암]](조카사위) <br/> 이준희(조카) <br/> 이악(사촌 형) <br/> 이무(사촌 남동생) <br/> [[이열희 (1924년)|이열희]](5촌 종조카) <br /> [[박부남 (1932년)|박부남]](5촌 종질부)
         '''이정'''(李相定, [[1897년]] [[6월 10일]] ~ [[1947년]] [[10월 27일]])은 [[일제 강점기|일제 강점기 조선]]의 [[한국의 독립 운동|독립운동가]] 겸 [[군인]]이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고 아호(雅號)는 청남(晴南), 산은(汕隱)이며 일명(一名)은 '''이연호'''(李然晧)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이다.
         그는 시인 [[이화 (시인)|이화]](李相和), 사학자 [[이백 (사학자)|이백]](李相佰), 수렵가 [[이오]](李相旿)의 형이다. 호적에 등재된 부인은 2년 연의 한문이(韓文伊, 1895년 5월 7일 ~ 1941년) 여사인데, 우리나라 여성 [[비행사]] 1세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독립 운동|독립운동가]] 겸 항공비행사였던 4년 연하의 [[권기옥]](權基玉, 1901년 1월 11일 ~ 1988년 4월 19일) 여사와 [[1928년]], [[내몽골 자치구|중화민국 네이멍구 자치구]] [[후허하오터 시|후허하오터]]에서 다시 결혼하였다.
         * [[대륜고등학교|경북도 대구 우현학교]] [[졸업]]
         * [[히토쓰바시 대학|일본 도쿄 업전문학교]] 전문학사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36082 두산대백과사전 - 예비역 대한독립군 중장 이정 前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 [http://www.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5633&ipp=10000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이정 선생 공훈록]
         [[분류:1897년 태어남]][[분류:194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장교]][[분류:한국의 장군]][[분류:반일 감정]][[분류:김구]][[분류:염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분류:육군 장군]][[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자유 연애]][[분류:일제 강점기의 서예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조각가]][[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도쿄 공업대학 동문]][[분류:도쿄 예술대학 동문]][[분류:히토쓰바시 대학 동문]][[분류:고쿠가쿠인 대학 동문]][[분류:유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
  • 이평 (1572년) . . . . 25회 일치
         '''이평'''(李坪, 1572년 [[8월 17일]] - 1612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이다. 자(字)는 여원(汝遠)이고 본관은 우계(羽溪), 도촌 [[이수형]](李秀亨)의 4대손이다. [[경북도]] [[천]] 출신이며 이잠(李埁)의 형이다.
         [[1612년]] [[유경]]의 추죄와 광해군에게 존호를 올리기를 소하였다.
         [[경북도]] 출신으로,[[이수형 (1435년)|도촌 이수형]]의 셋째 아들 참봉 [[이준근]](李峻根)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이효린]]이고, 어머니는 천 이씨(永川李氏)로 [[생원]] [[이여량]](李汝樑)의 딸이고 [[장악원]] 직장 찰방 이현준(李賢俊)의 손녀이다.
         유학(儒學)으로 [[1612년]](광해군 4년)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경했다. [[1612년]](광해군 4년) [[5월 12일]] [[광해군]]의 즉위를 방해한 [[유경]](柳永慶)을 강경하게 탄핵하였다. 대동야승과 연려실기술, 광해군일기에 그가 유경의 죄를 탄핵한 기록이 실려 있다. 유경(柳永慶) 등을 추형(追刑)하고, [[광해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고, 공신(功臣)을 녹훈하고, 역당(逆黨)의 흉서(兇書)를 중외에 반포할 것을 요청하는 소였다.<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일 을미 1번째기사, 이평이 유경 등의 추형, 존호를 올리는 일, 공신을 녹훈하는 일 등을 소하다</ref> 이에 그해 [[5월 29일]]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호를 올리는 일을 아뢰었는데 입계하였다. 광해군은 "임금은 부귀하기는 한 나라를 소유하였고 귀하기는 군왕이니, 그 화와 높게 드러난 것이 그 이 더할 수 없다. 저 존호를 올려 찬양하는 일은 하늘 끝의 한 점 뜬 구름에 지나지 않는다. 명예에 대해 옛날의 지사(志士)들은 얻고 잃고 가고 오는 것을 역시 개의치 않았으니, 임금에게 헛된 칭호를 가하는 것이 무슨 털끝만한 보탬이라도 있겠는가. 도리어 손만 시키는 것이다. 나는 감히 과장하지 못하겠으며 명예도 원치 않고, 다만 본분을 지키다 자연을 따라 죽고자 할 뿐이다. 더구나 지금 이평(李坪)의 소 하나로 인하여 경들이 정청(庭請)을 그치지 않으니, 내가 더욱 통탄스럽게 여긴다. 내가 비록 불초하지만 어찌 한 애숭이 유자의 망언으로 인하여 경솔하게 당치도 않은 큰 칭호를 받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이럴 리는 없으니, 번잡하게 하지 말고 빨리 물러가도록 하라.<ref>광해군일기 53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5월 29일 임술 3번째기사,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숭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다</ref>" 하였다.
         이후 [[이항복]] 등이 신하들을 데리고 입계하여 그에게 존호 올리기를 청하기도 했다.<ref>광해군일기 54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6월 1일 갑자 4번째기사, 우의정 이항복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호를 올릴 것을 재차 청하다</ref> 일설에는 [[이이첨]]이 이평을 사주하여 유경의 추죄를 청하는 소를 올리게 했다는 의견도 있다.<ref>광해군일기 54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6월 4일 정묘 5번째기사, 양사에서 시관으로서 시험 출제를 잘못한 김시언을 국문할 것을 청하다</ref>
         그의 묘소는 [[경북도]] [[주시]] [[부석면]] 감곡리 석남마을 후곡 자좌(子坐)에 있고, 그의 부인 파평윤씨는 주 옥산에 묘가 있다.
         * 어머니 : 천이씨(永川李氏), [[이여량]](李汝樑)의 딸
         * [[유경]]
         [[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우계 이씨]]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25회 일치
          * [[효부 쿄스케]]에게 치명을 입힌 [[마기 시로]]는 일시적인 동요를 보이며 [[세뇌]]가 흔들린다.
          * 바깥에는 이미 블랙 팬텀의 새로운 병력이 몰려오고 있는데 ECCM에 봉쇄되고 부자가 속출한 황에서는 저항이 어렵다.
          * [[마기 시로]]는 [[효부 쿄스케]]가 심장을 관통 당하는 치명을 입자 예으로 동요한다. 다른 세뇌자들 이으로 강력해 보였던 세뇌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다.
          * [[사카키 슈지]]는 [[츠보미 후지코]]의 처치에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다. 그는 [[산노미야 시호]]에게 대신 효부를 진찰하라고 하는데 시호는 사카키에게 지시 받는 것이 불만이지만 위급 순간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확인해본 효부의 태는 '''심장이 망가져서 정기능을 하지 않는 황'''. 효부는 시로를 동요시키기 위한 좋은 구실일 뿐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시호가 바보멍청이 취급한다.
          * 미나모토는 그 지경이면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고 경악한다. 효부는 심장은 혈액순환용 펌프일 뿐이고 자신은 천재 에스퍼라 염동력으로 대신하고 있다고 태연하게 말하는데, 그의 몸 태는 태도만큼 태연하지 못하다. 그 자신은 혈류를 확보하고 출혈도 최소한으로 막았다고 여기지만 곧 빈혈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다.
          * 미나모토는 사카키에게 효부를 조치할 수 없겠냐고 묻지만 여전히 후지코의 태가 좋지 않아 무리다. 대신 카오루에게 효부가 하던 염동 펌프 역할을 대신 하라고 지시한다. 효부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원래 초능력은 뇌 작용의 섬세한 밸런스가 향을 주는데 혈액순환이 끊어져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초능력의 출력도 유지를 못한다. 그걸 효부가 모를리도 없는데 굳이 그런 길을 택했다는건, 그에게 다른 계획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카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카오루에게 조치를 맡긴다.
          * 그런데 [[마츠카제 코우이치]]가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한다. 감시 에는 특수부대가 ECCM까지 준비해서 접근하고 있다. 이미 복도는 봉쇄. 더이 지체되면 탈출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사카키도 좋지 않은 소식을 더한다. 후지코는 여전히 전혀 움직일 수 없는 황까지 나빠졌다. 그녀의 처도 효부가 염동력으로 억제하고 있었는데 효부가 쓰러지면서 악화돼버린 것이다. 결국 효부는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을 세워버린 셈.
          * [[노가미 아오이]]는 다른 대책은 없는 건지 묻지만 미나모토로서는 투항하는게 최선이라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쪽은 초능력을 온전히 운용할 수 없는 데다 부자까지 끼고 있다. 부딪히게 되면 저쪽은 사력을 다해 저지하려 할 테니 사자가 나오지 않고 돌파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투항해서 효부와 후지코를 의무실로 보내는 것이 최선. 요우는 자기들더러 돼지우리에 들어가라는 말이냐고 반발한다. 하지만 미나모토의 계산으로는 일단 후지코의 세뇌를 제거했으니 제정신만 돌아오면 금방 내보내 줄 거라 본다.
          * 그때 막 정신을 차린 마기가 안 될 말이라고 끼어든다. 후지코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효부가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손에 들어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더이 방법이 없다.
          요우는 마기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하지만 유리의 힙노 효과로 일시적으로 네트워크에서 차단됐을 뿐이다. 실제로는 블랙 팬텀의 세뇌가 너무 강해서 백신이 접종되려는 순간, 자신의 신체를 탄소 결정으로 피막을 씌워 주사를 막았다. 그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 요우는 그래도 함께 도주하자고 하지만 마기가 거절한다. 도중에 세뇌가 다시 걸리면 다 같이 위험해지기 때문. 대신 마기는 자신이 남아 시간을 벌겠다고 한다. 요우는 그러다 죽을 거라고 하지만 마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고 단호히 말하며 의지를 꺾지 않는다. 세뇌 당했을 때 그는 무엇이 이한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굴욕적인 일이고 소령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 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츠보미 문서", 후지코의 사념체도 그 말에 동조한다. 그녀는 효부와 칠드런 전원이 생포되는 황을 가장 두려워한다. 후지코의 사념체는 요우에게 몇 명이나 데리고 날 수 있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요우의 비행은 공기를 진동시켜 부력을 만드는 거라 효율이 좋지 않다.
          * 특수부대가 문을 부수며 돌입을 개시한다. 더이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들은 이미 칠드런 일행에 대해 "처분"할 권한도 가지고 있다. 미나모토는 다급하게 마츠카제를 떠밀며 명령이라고 못박는다. 짧은 순간 마기와 요우는 눈빛을 교환하고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카오루는 탈출하는 순간까지 미나모토의 안위를 걱정하는데.
          * 칠드런에게 있어서 미나모토의 존재가 결코 작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면, 여기서 길리엄이 미나모토를 대로도 모종의 조작을 걸 여지가 있고, 그럴 경우 과거 보여졌던 미래의 파국(미나모토가 카오루에게 총을 쏘는 미래)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 정동진 (1946년) . . . . 25회 일치
         |문 표기 = Jeong Dong-jin
         |사진 사이즈 =
         |출신지 = {{국기|미 군정 조선}}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77년 ~ 1978년)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국가대표팀 [[포수]]로서 이름을 알렸다. [[대구원고등학교|대구고]]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제일은행]]을 거쳤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1977년]]부터 [[1978년]]까지 모교의 감독을 역임하였지만 물러나고 잠깐 야구계를 떠나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제일은행]]의 평범한 은행원으로 7년 간 종사했다.
         이후 [[1984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입되어 [[김덕 (야구인)|김덕]], [[박길 (야구인)|박길]] 감독을 보좌하였다. [[1989년]]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전력이 약화된 팀을 4위까지 올렸고, [[1990년]]에도 정규 시즌 4위로 마감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그동안 번번이 삼성의 우승을 가로막았던 난적 [[해태 타이거즈]]를 3연승으로 스윕하고 [[1990년 한국시리즈]]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에게 스윕을 당해 우승에 실패하여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고질병이었던 [[한국시리즈]] 징크스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이 징크스는 [[2002년 한국시리즈|2002년]]에 깨졌다.)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 실패의 책임을 물어 삼성의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미국]]으로 야구 연수를 떠났다가 [[1992년]] [[태평양 돌핀스]]의 감독으로 입되었다. [[1992년]] 6위, [[1993년]] 최하위로 마감했지만, [[1994년]]에는 그동안 부으로 신음했던 투수들이 복귀하여 정규 시즌 2위로 마감하는 선전을 하였다. 그 해 [[태평양 돌핀스]]가 [[LG 트윈스]]에게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스윕당해 [[LG 트윈스]]가 우승했지만, 그 해 성적은 [[1998년]] [[현대 유니콘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인천광역시|인천]] 연고 야구단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감독으로 2번 경험한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모두 [[LG 트윈스]]를 대로 스윕당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재임 시절에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팀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는 [[김시진]]을 투수코치로 입, 투수 조련에 힘써 [[태평양 돌핀스]] 때부터 "투수 왕국"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1990년대 후반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 전성 시대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임자 = [[박길 (야구인)|박길]]
         |전임자 = [[김덕 (야구인)|김덕]]
         |후임자 = [[박길 (야구인)|박길]]
         |전임자 = [[박길 (야구인)|박길]]
         [[분류:태평양 돌핀스 감독]][[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4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
  • 진격의 거인/91화 . . . . 25회 일치
          * 엘디아인 병사이자 "전사 후보생"인 가비와 파르코는 스라바 요새 공략에 동원된다.
          * 아군 참호로 돌아온 형제. 소년의 이름은 "파르코", 형은 "콜트"였다. 참호엔 비슷한 또래의 소년소녀들이 파르코의 생환을 반긴다. 파르코는 뇌진탕으로 일시적인 기억실 증세를 보이고 있다. 친구들은 기억하지만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지휘관인 마가트 대장은 콜트에게 황을 묻는다. 콜트가 유탄이 직격해 전방의 전사대가 전멸했으며 이 이 참호를 연장하는건 무리라고 보고한다. 그 보고를 들은 마르코는 "무리"라는 말에 인을 찡그리며 그건 "명령"이냐고 빈정거린다. 옆에 있던 부관이 마가트 대장님께 무슨 소릴 하는 거냐고 비난한다.
          * 파르코의 친구들은 응급조치를 취하며 지금 황을 천천히 설명한다. 그들은 벌써 4년이나 전쟁을 했고 겨우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금 공격하고 있는 "스라바 요새"만 공략한다면, 아니 그 요새 뒤에 있는 중동연합함대가 정박한 항구를 점령, 함대를 격멸한다면 전쟁이 끝날 것이다. "가비"라는 이름의 단발머리 소녀가 "그렇게 되면 마레의 승리"라며 설명해준다. 문제는 그 항구를 노리려면 철통같은 이 스라바 요새를 꼭 공략해야 한다는 거지만. 그런 설명들을 들으면서 파르코는 천천히 기억을 되찾기 시작한다.
          * 조피아는 파르코 머리에 난 처를 살펴보며 "해군이 어떻게든 해주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러자 붕대를 감아두던 "우도"란 안경잽이 소년이 흥분한다. 얘기를 들어보면 마레의 해군은 양적으론 대단했던 모양이지만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4년이나 걸렸다. 전쟁이 총 4년 걸렸으니 아주 최근에야 제해권을 잡은 모양이다. 게다가 그렇게 많았던 전함을 반 이이나 잃었다. 그런 주제에 육군을 대로는 "육군이니까 요새 하나 정도는 따내봐라"는 아니꼬운 소리를 해댔나 보다. 우도는 그런 말을 하면서 격앙한 나머지 파르코의 머리를 졸라 터뜨릴 뻔한다.
          가비는 누가 선택될지 기대된다는 얼굴이지만, 매우 자신감에 차있다. 모든 것이 기억난 파르코. 그는 가비의 표정을 보고 "너 말고는 비교대이 없다는 말투"라며 장난을 건다. 그러자 가비는 시시할 정도로 깨끗하게 "그야 달리 없잖아"라고 인정한다. 우도와 조피아도 현재 성적으론 그렇다고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비는 그들의 말에 반박한다.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면서.
          * 그녀는 자신이 엘디아인의 운명을 짊어지고 "그 섬의 악마들"을 몰살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세에는 선량한 엘디아인만 남길 것이며 수용구의 엘디아인들을 해방하겠다고 결의한다.
          * 한편 그 옆의 콜트는 마가트 대장을 대로 설득에 들어간다. 현재 그들 부대의 목표는 기관총 진지 뒤에 있는 열차 선로다. 하지만 보병들이 참호만 파대서는 승산이 없게 됐다. 적 측의 참호가 훨씬 견고하게 구축돼있다. 요새의 지원포격도 있기 때문에 전진하는건 말도 안 되고 여기서 버티는 것 조차 의미가 없다. 이대로는 전부 포탄의 밥이 될 뿐.
          * 그때 관측병이 "놈"이 나타났다고 알린다. 그것은 "장갑열차"다. 거기에 달려있는 열차포는 "대거인포"라 불리는 연합의 신병기다. 장갑열차에 총 4문이 장착돼있다. 100mm짜리 철갑포로 보통 거인은 말할 것도 없고 "아홉 거인"이라 해도 한 방이면 처리할 수 있는 괴물. 마가트가 우려한 것이 저것이었다. 콜트는 턱과 차력은 재빠른 거인이므로 목덜미를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만 마가트는 도박의 여지를 두고 싶지 않다. 만약 당하면 어쩔거냐는 반문에, 콜트는 거인의 힘과 전사를 잃고 거인의 힘을 되찾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가트 대장은 거기에 9년 전 있었던 "시조탈환 계획"의 처참한 실패를 덧붙인다. "여성형 거인" [[애니 레온하트]]와 "초대형 거인" [[베르톨트 후버]]를 잃은 실패 말이다. 이 전력의 실이 지금의 전쟁을 일으킨 방아쇠가 되었다. 마레의 군사력이 저하됐다고 본 주변국들과 분쟁으로 전쟁이 시작,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팔라디섬 공략은 한없이 뒤로 밀렸다.
          거인의 힘은 절대적이다. 지금껏 마레를 초대국으로 만들어준 것도 거인의 힘이었다. 그러니 이 이 실할 경우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 마가트 대장은 그렇게 말하며 "전사대"에 돌격준비를 지시한다. 콜트는 반발한다. 하지만 마가트는 코웃음을 친다.
          잔인한 이야기였지만 지휘관으로서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결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콜트는 미련이 남는다. 마가트는 그런 콜트에게 '''[[지크 예거|짐승 거인]]을 이어받는 자'''라면, 위에 서는 자로서 각오를 다지라고 핀잔을 준다. 콜트는 이 작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황은 고스란히 전사후보생들에게도 보여진다.
          그 말은 들은 마가트는 입을 다문다. 그러는 사이 가비는 "저에게 800명 이의 가치가 있거나 대대장님이 저를 너무 사랑하시거나 해서 전사대를 희생시키겠다면" 같은 소리나 떠벌거린다. 마가트는 그 말이 더 길어지기 전에 잘라버린다.
          * 열차포가 부대에 가까워진다. 그 말은 방금 전까지 총알을 퍼붓던 그 기관총 진지에도 가까워진다는 말이었다. 가비는 투항하는 척, 두 손을 들고 진지로 다가간다. 수류탄 다발은 줄로 오른발이 묶어서 질질 끌고 간다. 적이 보기엔 투항자가 다리를 절며 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적들은 그녀를 발견하지만 투항자라고 생각해서 바로 사격하지 않는다. 적도 대가 엘디아인일 가능성을 정하지만 소녀이고 투항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인지 주저한다. 게다가 가비의 계산이 대충 들어맞아서 다리에 건 수류탄을 족쇄라고 잘못 관측한다.
          * 가비가 가까워지자 기관총 진지의 병사들은 의견이 엇갈린다. 소총수는 엘디아인이 틀림없다며 거인화하기 전에 쏴버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관총사수는 그럴 거면 소총수인 네가 쏘라며 떠넘긴다. 그러자 소총수는 욕지거리를 하며 조준한다. 아무리 엘디아인이라도 어린애를 쏘는게 마음에 걸린 걸까? 그러는 사이 가비는 바닥에 쓰러져 있다. 이것도 연기의 일환일까?
          * 소위 '편의병'은 현실의 국제법에서도 금지된 것이지만,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서 난징 학살 등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은 '편의병 사냥'을 명목으로 도주한 중국군/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현재 일본 우익들은 "편의병은 죽여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군은 단순히 군복을 벗고 도주했을 뿐. 조직적으로 군복을 벗고 위장 공격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애초에 이러한 '특수작전'을 실행하려면 당한 사전 준비와 그에 걸맞게 훈련된 특수부대가 필요하다. 군복을 벗어 군사 지휘체계에서 벗어난 태에서도 자연스럽게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면서 동시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병 사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군복을 벗고 도주한 병사를 색출해서 무조건적으로 죽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 제네바 전투 조약 이러한 행위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하나, 이는 즉결처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이다. 또한 이때 쓰인 색출기준이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 자세가 좋은 사람, 구두를 신어 발목이 까진 사람 등으로 자의적이고 조잡해서 청년, 장년을 무차별로 죽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창작:블랙 마켓 . . . . 25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코스모폴리턴]]'''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창작:코스모폴리턴|코스모폴리턴]]에 존재하는 범죄세계의 총칭. 범죄 특성 드러내놓고 활동하거나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시각적인 편의'를 위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간주하고 표현한 것이다.
         = 세 정보 =
         [[창작:코스모폴리턴|코스모폴리턴]]에 존재하는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항 존재하며, 당연하겠지만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크고 정교하게 형성되어 있다. 편의 도시나 주에 따라 "트와일라이트 시티 블랙 마켓", "트와일라이트 시티 블랙 마켓"처럼 부르기도 하나, 복수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사실 지역적인 구분은 무의미하다.
         나름대로 경제학을 도입했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독과점 등의 당연한 개념은 물론 구제금융이나 가격정책 등 중앙정부가 할 법한 황들도 벌어진다. 게다가 일반적인 전화번호부처럼 업종별 연락처 리스트가 존재할 정도로 당히 세분화되어 있다. 또한 시장답게 항 강자와 약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장과 당히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하극이 비교적 쉽다'''는 것이다. 철저한 계획과 든든한 자본, 유능한 인력 및 장비가 있으면 얼마든지 하극을 일으켜 강자로 올라설 수 있다. 하지만 그 준비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란 것은 일반적인 시장과 똑같다. 하지만 하극에 성공한 사례가 많은데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베테랑'으로서 계속 활약하기 때문에 하극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에 그러한 강자들이 하극을 막기 위해 베테랑들을 고용하여 막다 보니 범죄자들끼리 서로 지위다툼을 하는 황이 벌어진다. 여기에 준법자들이나 민간인들까지 끼어들면서 전황과 결과를 파악하기 힘들어졌다.
         당연하겠지만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한 놈~~
         블랙 마켓 자체가 형태를 가진 조직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들은 각자 별도의 직업이나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이 중에는 진짜로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직업도 있고, 단순히 위장을 위해 만들어낸 역할도 있다. 다만 이들 중 위험도가 높거나 자주 알려진 인물들은 범죄자건 일반인이건 모두 [[창작:코스모폴리턴/블랙리스트|코스모폴리턴/블랙리스트]]에 등록된다. 이런 블랙리스트 등록자들을 사살 혹은 생포~~원피스의 현금?~~하는 자에겐 사회적 명성과 보이 주어지며, 이를 본업으로 삼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를 빌미삼아 범죄의 길로 빠지는 자들도 많다. ~~원피스 표절이네.~~
          작전의 수행 혹은 팀의 운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을 제공하는 직군. (ex. 자금 지원, 인맥 소개, 치료, 은신처 제공...)
         [[창작:작전|범죄와 관련된 활동]]부터 일반인들의 아르바이트(?!)까지 범위가 다양하다. 그러다보니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 실제 규모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주로 '예보다 큰 쪽'이 많다.
         어느 정도의 활동이어야 블랙 마켓에 알려지는가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불법적인 행위가 충분히 존재한다면 이는 곧 수사 대이란 뜻이므로, 자연스럽게 블랙 마켓에 알려지게 된다. '알려진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이를 활용해 도와주거나 막으려는 자들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적은 바와 같이 처음에 예했던 것보다 사건이 확대되기도 한다.
          * 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된 것들은 GTA 온라인과 세인츠 로우 등을 비롯한 범죄 샌드박스 게임의 사이드 미션, 만화 "헌터X헌터"의 유성가 등이다.
  • 채상병 . . . . 25회 일치
         |선수명 = 채
         |문 표기 = Chae Sang-Byeong
         |사진 사이즈 =
         '''채병'''(蔡尙秉<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79년]] [[12월 1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배터리코치이다.
         [[1998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인 [[2002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다. 한화에서는 [[심광호]] 등의 경쟁에서 밀려 몇 경기만 출전했다. 입단 후 1년 뒤인 [[2003년]]에 투수 [[문동환 (야구인)|문동환]]과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이때 [[문동환 (야구인)|문동환]]은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는데, [[정수근]]의 보 선수로 [[두산]]으로 왔다가, 불과 3시간 후에 채병과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되었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0594734&cp=nv 채병, 두산 40승 숨은 주역… 주전 홍성흔 부 공백 완벽히 메꿔] - 쿠키뉴스</ref> 그러나 [[두산 베어스]]에서 채 자리잡기도 전에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ref>[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05714 난처한 채병, 그러나 놓칠 수 없는 기회] - 데일리안</ref> [[2007년]] 주전 포수였던 [[홍성흔]]이 허벅지 부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홍성흔]]이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등 잡음<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271719545&code=980101 두산 홍성흔“작년 부진 잊지 말고 나만의 스윙을 하자”] - 경향신문</ref> 이 일자, [[홍성흔]]을 밀어내고 주전 [[포수]]로 자리매김하였다.
         [[2009년]] 시즌에 접어들어서는 [[최승환]], [[용덕한]] 등의 팀 내 다른 [[포수]]들의 경쟁에 밀려 1군 경기보다는 2군 경기에서의 출전이 잦아지게 되었고 1군에는 몇 경기에만 나와서 손가락 부을 당하는 등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5231651142222&ext=na 두산 채병-SK 채병용, 부으로 1군 엔트리 말소] - 마이데일리</ref> 때마침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 [[포수]]였던 [[진갑용]], [[현재윤]] 등이 잇따라 부을 입으면서 남아 있는 포수는 1군 경험이 거의 없는 신고선수 출신 [[이지 (야구 선수)|이지]]뿐이라 [[포수]] 자원이 부족해진 황에 놓이자, [[2009년]] [[7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인 [[지승민]]을 대로 한 1: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907160125 두산, 삼성 좌완 지승민 입] 《Osen》, 2009년 7월 16일 작성</ref> 하지만 [[2010년]]에는 [[진갑용]]과 [[현재윤]]의 회복, 그리고 [[이정식 (야구 선수)|이정식]]이 군에서 제대하여 다시 2군으로 밀렸다. [[2011년]]에 포수들이 대거 부을 입어 주전 자리에 다시 앉게 되어 감각을 찾았고,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여 처음으로 우승을 맛보았다.그러나 2012년 이후 부터 경쟁에서 밀리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4 시즌 후 구단과의 합의 끝에 은퇴를 결정하였고, 배터리 코치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국군의 계급이 병이 있는데 그것을 본떠 삼성 선수단들은 채병을 병님이라고 부른다. 또한 삼성 팬들의 경우 중의적 표현으로 병신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이는 잘할때는 神의 의미로, 못할때는 욕설로 쓰이기도 한다. 또 그의 응원가는 '멋있는 사나이'라는 음원으로 '멋있는 채병'라는 응원가를 보유했었다.
  • 카치구미 . . . . 25회 일치
         일본어 신문이 폐지되었고, 본국과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날리는 [[단파방송]]만이 일본의 소식을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루트였다. 하지만 단파방송 수신기를 가진 사람은 소수였고, 입에서 입으로 [[루머]]가 전파되기 쉬웠다. 게다가 단파방송으로 얻을 수 있는 일본의 소식 역시, 군부에서 일방적으로 패전을 승전으로 바꿔서 발표하는 엉터리였기 때문에 일본은 항 이기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 쉬웠다.
         적대국 국민으로서 브라질 정부에서 압박을 받는 황에서, 대부분의 일본계 이민자들은 '일본의 승리'만이 이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런 황에서 일본이 패전하기 직전인 1945년 7월, 브라질 일본인들이 조직한 신도연맹(臣道連盟)이라는 단체가 [[파울로]]에서 결성되었다. 신도연맹은 이들의 조국인 '''일본을 응원하고, 승리를 믿는 조직'''으로서, 7월에 발족하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12월에는 회원은 3만 가구에 달하게 되었다.
         == 세 ==
         >미국의 8배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원자폭탄]] 공격으로, 누보자키(犬吠崎沖) 앞바다에 집결해있던 미국, 국 함대 400 척이 전멸.
         >[[소련]], [[중국]]이 무조건 항복. [[맥아더]]는 포로가 되고, 미태평양함대는 무장해제.
         신도연맹이 배포한 정보는 이과 같은 황당무계한 것이었으나, 아무튼 일본이 유리한 정보만을 전달했기 때문에 브라질의 일본인들은 이를 받아들여서 믿었으며, 약 80%~90%의 브라질 일본인이 이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1945년 9월에는 위문사절단이 일본 군함으로 온다는 소문이 퍼져서, 오지에서 일본인이 파울로 항구에 몰려들기도 했다. 물론 일본 군함들은 그때 대부분 바다 밑바닥에 있었다.
         사실 신도연맹이 탄생하기 이전, 1944년 부터 브라질 일본인 사회는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이 당시 '박하국적론'이라는 괴문서가 브라질의 일본인들 사이에 나돌고 있었는데, 이것의 내용이 이과 같이 황당무계한 것이었으나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믿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괴문서가 돌면서 당시 박하를 재배해서 미국에 수출하던 브라질의 일본인은 모두 미국에 무기를 보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들은 적에게 협력하여 일본을 공격하는 국적(国賊)이라는 논리였다. 이 괴문서 때문에 일본인이 운하는 박하 재배 농장, 박하 가공 공장에서 일본인에 의한 [[방화]]가 잇따라 일어났던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대부분 [[세탁소]] 등에서 근근하게 생활하고 있었으므로, 박하 가공 공장이나 박하 재배 농장을 경하는 부유한 일본인에 대한 질투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된다.
         1946년 3월 7일, 산업조합 이사 키요베 이쿠타(清部幾太)가 파울로에서 460킬로미터 떨어진 바스토스 마을에서 살해되었다. 키요베 이쿠타는 일본의 패배를 인정하는 '마케구미'였기 때문에 카치구미의 과격파에게 습격을 받아, 한밤중에 화장실을 갔다가 살해당했던 것이다. 키요베 이쿠타를 시작으로 하여 총 23명의 마케구미로 지목된 인사가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카치구미의 연속 테러 활동은 브라질 국민들이 보기에는 '일본인끼리 서로 죽이네?'에 불과했고, 일본인들의 인은 매우 나빠졌다. 브라질 신문은 일본인 간의 항쟁을 크게 보도했으며, 경찰에서 개입해왔지만 카치구미는 수습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일본인과 브라질 시민들 사이에서도 대립이 발생하여, 7월 30일에서 8월 2일 까지는 파울리스타 선 오스왈드 드 크루즈 시에서 일본인과 브라질 시민 사이에서 대규모 난투극이 벌어져 살해까지 일어났다.
         1945년 10월 3일, 브라질 일본인 사회에서 명망이 높은 인사였던 미야코시 치바타(宮腰千葉太)가 일본에서 종전을 알리는 문서와 외이 해외 일본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만국 적십자사 브라질 지부를 통하여 받았다.
         10월 19일에 인식파는 파울루의 미국 총사관에 일본으로부터 [[신문]], [[잡지]]를 주문해달라고 의뢰하여, 1946년 3월 16일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이를 각 도시에 배포했다. 하지만 3월 이후에는 카치구미가 더욱 과격화하여 '특행대'가 조직되고 일본계 사회 지도층과 인식파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습격을 당하게 되었다.
         6월 3일 스웨덴 공사관 일본인 권익부는 요시다 총리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파울루 주 집정관이 관저에 카치구미 600명을 모아서 진실을 알리고 설득했다. 심지어 일본에서 직접 정치인이 브라질까지 와서 향후에 대한 연설을 하기도 했지만, ''''카치구미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심지어 카치구미들 사이에서는 더욱 황당한 소문까지 퍼졌는데….
         아무튼 카치구미의 테러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식파 인사들 만이 아니라 미국 국무부, 일본 정부, [[GHQ]] 등에서 카치구미를 열심히 설득하였고, 일본 국내에서는 브라질에 친구와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라는 호소가 퍼졌으며, 일본의 현재 을 브라질에 보내기도 했다.
  • 트로피코 4/진영 . . . . 25회 일치
         게임 [[트로피코 4]]의 진을 설명하는 페이지.
         각각의 진은 각기 다른 요구를 하며, 이들을 만족시켰을 경우 존경심이 올라간다. 반면 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존경심이 내려가는데 관계가 험악한 지경일 경우 특정한 행동을 해서 플레이어에게 지장을 줄 수 있다. 이 행동은 해당 진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면 사라진다.
         특정 정책이나 운 계획에 대한 제안을 들어줬다가 원복귀 시키면 속였다면서 존경심이 떨어진다.
          * 무 주거 칙령 발표
          * 특정 진의 대표 체포 - 해당 진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충만한 적 만족
          * 종교 만족도
          * 고등학교의 운 계획을 신학 교육으로 변경 - 지식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특정 진의 대표 파문 - 해당 진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환경 만족도
          * 수출량 향
          * 전체적인 만족도
          * 특정 기간 내에 일정 수 이의 건물 건설
          * 특정 기간 내에 일정 수 이품 수출
          * 묘 건설
          * 황금 대통령 건설
          * 조각 건설 - 지식인의 존경심이 떨어진다.
          * 사 교육 칙령 발표
          * 사 주입 칙령 발표
          * 존경심
  • 피수영 . . . . 25회 일치
         | 이름 = 피수
         | 친척 = 피세(형) <br /> [[피서]](누이동생) <br /> 로먼 재키브(매제) <br /> [[스테판 피 재키브]](생질)
         | 웹사이트 =
         '''피수'''(皮守英, [[1943년]] [[2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의과대학]] [[대학 교수|교수]] 및 [[소아과]] [[의사|전문의]]이다.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1년간 [[군의관]]으로 참전하기도 한 피수은 대한민국 신생아학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며, 대한민국의 신생아 치료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 1980년 7월 ~ 1995년 8월 : [[미네소타 대학교]] 의과대학 임부 교수, 둘루스클리닉 신생아과 과장
         피수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미네소타 대학교]] 외과대학 소아과 교수,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과장,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1996년 대한민국의 신생아학회를 탄생시킨 실질적인 주역으로, 신생아 진료 분야를 세계적 수준으로 향시켰으며, 대한신생아학회 및 대한주산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피수 교수는 많은 극소·저체중 출생아(일명 '미숙아, 체중 1.5kg이 되지 않은 신생아를 이르는 용어)를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낸 명의(名醫)로 불린다. 피 교수는 20여 년간 [[유타 대학교]] 부속병원 등 [[미국]] 내 여러 병원을 거치면서 의술을 쌓았다. 미국에서도 그의 의술은 명성이 높았다. 그가 살았던 미네소타에선 지금도 "피 박사(Dr. 피), 당신이 내 아이를 살렸어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피수은 인터뷰를 통해 "미국을 떠나 10년 후에 내가 살던 동네 서점에 갔는데 어떤 남자가 오더니 ‘당신 피 박사 아니냐’고 그래서 ‘날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까, 12살 먹은 아이를 불러와서 ‘당신이 살려준 애다’하였다. 그때 의사 하길 잘 했다, 보람이 있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피수은 1995년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오면서 국내의 수많은 미숙아들을 살리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2000년엔 국내 의료진과 함께 468g 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를 성공적으로 살려냈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은 미국 의사들이 "너희들은 이런 아이들까지 살리느냐"고 할 만치 위험한 태의 미숙아를 살려내기도 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의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나도 백내장에 걸려 치료도 못 받는데 아기를 살려서 뭐하냐"는 아기 할아버지의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땐 피 교수가 "미숙아도 생명이다"라며 자기 돈을 들여 아이를 살려냈다고 한다. 피수 교수는 '더 이 경제적 이유로 미숙아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바람으로 유명 탤런트 등 몇몇 지인들과 몇백 만원씩 모아서 1억5000만원을 아산사회복지재단에 기부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8071222083196938 피수 교수가 말하는 '나의 아버지, 피천득'], 《머니투데이》, 2008년 7월 25일</ref>
         2008년 10월 24일 대한민국 신생아학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서울아산병원 피수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 국제심포지엄이 서울아산병원 대강당에서 열렸다.<ref>[http://www.whosaeng.com/sub_read.html?uid=23675 서울아산병원, 피수 교수 정년 기념 심포지엄], 《후생일보》, 2008년 10월 24일</ref>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아버지 [[피천득]](皮千得)과 어머니 임진호(林珍鎬) 사이에서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 [[피천득]](皮千得)의 1965년 수필 〈피가지변(皮哥之辯)〉에서 "… 피(皮)씨의 직업은 대개가 의원이요, 그 중에는 시의(侍醫, 임금·왕족의 진료를 맡은 의사)도 있었다는 것이다. … 의학을 공부하는 우리 아이는 옥관자는 못달더라도 우간다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올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수필에 나오는 아이가 바로 당시 23세로 [[서울대학교]] 의대에서 의학 공부를 하던 [[피천득]]의 차남 피수이다.
         피수은 부친 [[피천득]] 선생에 대해 '순간의 배부름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지 않는 강인한 기을 자식들에게 보여줬다'고 회했다. 또 "꼿꼿함과 선비다움을 가풍으로 물려줬다"고 말했다.
         * 피수 교수는 미국에서 신생아과 전임의(醫)로 자리잡은 38살이 돼서야 결혼하고, 늦은 나이에 두 아들을 얻었다. 장남 피윤범·차남 피윤성이다. 맏아들 피윤범은 [[뉴욕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화를 공부하였고, 차남 피윤성은 [[미국]] 명문인 [[코넬 대학교]] 법대를 다녔다.
  • 효령대군 . . . . 25회 일치
         |그림설명 = 효령대군 정(연주대 효령각 봉안)
         |웹사이트 = [http://www.hyor.or.kr/ 효령대군 묘소 청권사]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반야심경》, 《능엄경》, 《선종가집》 등 불경의 번역과 교정에도 힘썼고, 많은 사찰을 순회하면서 신도들을 온후하게 계도하였다. 그리고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헌(鄕憲) 56조를 지어 백성들의 윤리 도덕심을 함양하였으며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1395년]] [[음력 12월 11일]]에 태어나 92세의 천수를 다하고 [[1486년]](성종 17, 丙午年) [[음력 5월 11일]]에 세을 떠났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예장되었다. 묘소는 [[1972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현 사당은 [[1736년]](조 12)에 왕명으로 효령대군 묘 앞에 처음 세우면서 '청권사'라고 하였다.
         [[서울특별시]]는 [[1984년]] [[11월 7일]] 청권사 앞길을 '효령로'로 명명하였다.<ref name="hrdg">{{뉴스 인용|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81153|제목=세종대왕의 '형님'으로 세 살아가기|성명=이정근 기자|날짜=2005-09-16|출판사=오마이뉴스|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0-05-15}}</ref>
         **** 손자 : 무송군, 잠성정, 운림도정, 서림도정, 봉성군, 신군, 총곡수
         *** 자부 : 광록시소경 이무창(李茂昌)의 여식 청풍군부인(淸風郡夫人), 락제 후궁 이소의(李昭儀)의 조카
         *** 5남 : [[천군(1422년)|천군 정]](永川君), (1422년 ~ ?)
         **** 손자 : 평부정, 습계군, 회양부정, 개산부수, 천령군, 자인부수, 양양정
         * 백부 : [[조선 정종|안대군]](1357년 ~ 1419년)
         * 처조카 : 양위 [[정종 (양위)|정종]] - 종손녀인 경혜공주의 남편
         * 처조카딸 : 춘성부부인(응대군의 처) - 응대군은 조카이면서, 처조카사위도 된다. 춘성부부인은 질부이면서, 처조카딸이다.
         === 화 ===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로 나한도량(羅漢道場)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사찰이다. 나한은 여섯가지 신통(神通)과 여덟가지 해탈을 모두 갖추어 인간과 천인들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복전(福田)이기 때문에 통일신라시대부터 신앙의 대이 되어 있다.
         연주대는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로 의대 자리에 석축을 쌓고 30m<sup>2</sup> 정도의 대를 구축하여 그 위에다 암자를 지은 것이라 한다. 이곳에 특이하게도 효령각을 만들어서 효령대군의 정([[경기도]] [[문화재]] 제81호)을 봉안하고 있다. 찾는 등산객의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있는 곳이기도 하다.<ref>{{뉴스 인용|url=http://er.asiae.co.kr/erview.htm?idxno=2009042321152119354|제목=연주암 점심공양 300그릇에서500그릇으로 늘어나,관악산 체감경기|성명=이형구 기자|날짜=2009-04-28|출판사=이코노믹리뷰|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0-05-15}}</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9&no=550624|제목=이웃과 함께하는 열린 종단 일궈낼 것|성명=문일호 기자|날짜=2009-10-23|출판사=매일경제|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0-05-15}}</ref>
         [[보성군]]의 증손 [[전성군 (1488년)|전성군 이대]]는 생전에 용강현령, 병마동첨절제사에 이르렀지만 다시 후손들의 출세로 [[증직|증]](贈) [[호조]][[참판]], [[호조]][[판서]]를 거쳐 [[의정부]][[의정]]으로 여러 번 증직을 받았다. [[전성군 (1488년)|전성군 이대]]의 아들이 [[이량 (조선)|이량]]이고, 딸 부부인 이씨는 청송 심씨 [[심연원]]의 아들 [[심강]]과 혼인하여 자녀를 두었는데, 딸이 [[인순왕후]]로 [[조선 명종|명종]]의 비가 된다. 아들은 [[심의겸]]과 [[심충겸]]으로, [[심의겸]]은 [[서인]](西人)의 초대 당수가 된다.
         * [[선종가집(언해)]] - 보물 제774-2호
         * [[효령대군정]]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1호, 가로70cm X 세로90cm, 경기도 과천시 연주암 봉안
         * [[임대군]]
         [[분류:1396년 태어남]][[분류:1486년 죽음]][[분류:사가]][[분류:조선의 왕자]][[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학자]][[분류:조선의 승려]][[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한국의 불교사]][[분류:유교 이탈자|이보]][[분류:조선의 불교 신자]][[분류:조선 세종]][[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 태종]][[분류:전주 이씨]]
  • K리그 . . . . 24회 일치
         초기에는 급하게 시작한 감이 있어 첫 수퍼리그가 끝난 이후에도 수퍼리그를 주도했던 국민은행이 빠지고, 또 우승까지 거머쥐었던 할렐루야가 불참했던데다가 지역연고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이 없이 발족했기 때문에 유럽과 남미에서 볼 수 있었던 리그운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좀 멀었다.
         시작은 5개 팀이었지만 어쨌거나 참가팀 수는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1994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조직되고나서부터 KFA가 운하던 때보다 좀 더 세심하게 "프로"리그를 구성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당한 잡음이 생기긴 했으나 본격적인 지역연고정착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월드컵 유치와 관련하여 축구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기 시작한다. 또한 대우 로얄스와 성남 일화, 포항 스틸러스, 수원 삼성이 ACL의 전신인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ACC)를 돌아가며 제패하는 등, 아시아 최위 리그임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2002 월드컵 개최 이후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개편에 향을 받아 승강제가 정착하고, 이에 따라 현 스플릿 시스템까지 이르게 된다.
          * [[무 프로축구단]]
          * [[무 축구단]][* 현재 무 프로축구단과는 연맹의 기준으론 "연속성이 없는" 관계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도 항목으로 소개]
          * [[할렐루야 축구단]][* 무와 마찬가지로 연맹의 기준으론 고양 Hi와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 구단이다.]
         해당 구단들은 다소 역사으로 논란이 컸던 축구단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규정으론 현존 K리그 구단들이 역사를 계승하고 있으나, 팬들의 인식으로는 같은 구단으로 인식하지 않는 부분을 별도로 서술한다.
         2012시즌과 2013시즌은 리그에 속한 팀이 장기적인 플랜에 맞추기 위해 한시적으로 운한 시스템이기에 지금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13시즌부터 2부리그[* 이 시점에선 2부리그의 명칭이 확정되지 않았다.]를 운할 예정이었으며, 2부리그의 팀을 장기적으로 10개팀 이으로 운하기 위해 K리그의 16개 팀들 중, 최소 2개팀이 강등하는 걸 구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당연히 기존 K리그 회원들의 반발이 거셌고, 특히 강등할 가능성이 높은 시민구단들이 가장 거셌는데 이에 대해 연맹이 내 놓은 해결책은 사실의 세미프로인 군경팀을 일단 확정적으로 강등시키며, 군경팀을 제외한 최하위 팀을 추가로 강등하는 1+1 강등안을 발표한다. 때문에 군경팀인 무는 자동으로 강등되었으며, 추가로 주를 제외한 팀들 중 최하위를 기록한 광주가 사 첫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게 된다.
         2013시즌도 승강구조가 한시적으로 운된 케이스이다. 클래식 스플릿 B의 최하위 2개팀은 챌린지로 자동강등, 마찬가지로 스플릿 B의 차하위 1개팀은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에서 잔류 여부가 결정되었다. K리그 챌린지의 우승팀은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획득하며, K리그 클래식 스플릿 B의 차하위 팀과 겨뤄 승격 여부가 결정된 시즌이다.
  • That 70's show . . . . 24회 일치
         레드는 이 기회에 제럴드 포드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지려고 결심하지만, 마을 유지들 협의회에서는 레드에게 미리 할 질문을 정해주었다. 자동차 공장이 묻을 닫아가면서 거의 실직한 태에 놓여있던 레드는 경제가 이 모양인데 이제는 자기 할 말도 못하게 하는거냐고 크게 심한다.
         에릭 일당은 막 스트리킹 시위를 하기로 하자 경비가 생각보다 삼엄한 걸 보고 다들 겁을 먹고 그만두려 한다.
         주인공. 1970년대를 살아가는 방황하는 청춘. 스포츠에 약하고 빈약하지만 날카로운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는 지하실이 포먼네 집에 있어 에릭이 친구들 사이에서 중심 인물이 된다.
         에릭의 베프. 반항하에 시니컬한 성격으로서 아프로와 선글래스가 특징. --왠지 [[도우너]]가 연된다.-- 가정사가 매우 복잡한데, 어머니만 있는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다가 그나마 어머니도 도망가서 에릭네 집 지하실에서 집세를 지불하며 얹혀 살게 된다. 실종됐던 아버지 버드가 돌아오면서 잠시 아버지네 집에 가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또 실종되면서 다시 지하실에 돌아온다. 6시즌에서 버드는 생부가 아니었고 윌리엄 바넷이란 사람이 생부였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흑인]]으로 레코드 체인점을 소유한 [[부자]]였다. 흑백혼혈이었던 것, 하이드 본인은 자신의 반항적인 혈통의 기원을 찾았다며 아주 기뻐한다. 또 배다른 여동생 엔지 바넷이 생기게 된다.
         중간 시즌 쯤에서 재키와 사귀게 됐으나, 재키가 시카고로 떠나고 켈소와 얽히는 일이 생기면서 깨지고 만다. 하이드는 한동안 라스베가스에서 방황하다가 돌아오는데, 라스베가스의 스트리퍼 사만다가 하이드와 결혼했다면서 쫓아오면서 재키와 완전히 깨진다(…). 게다가 사만다는 나중 시즌에서 다른 남자하고 이미 결혼한 태였다는 것이 드러나서 또 헤어지게 되고, 8시즌에는 특별히 커플 라인이 없다.
         직업은 레오의 포토헛에서 일하다가, 레오가 사라진 뒤에는 레스토랑에 취업, 6시즌 이후로는 아버지가 운하는 레코드 체인에서 체인점을 하나 받아서 일하게 된다. 8시즌에서 하이드의 아버지는 레코드 체인점을 매각하고 그만두지만, 하이드의 가게만은 하이드에게 주게 되어 계속 운하게 됐다.
         온갖 바보짓 유머로 이 시트콤의 꿀잼 요소를 하드캐리한다. 기본적으로 바보지만 가끔 이하게 날카로워지는 황[* 스타워즈에서 [[한 솔로]]와 레아가 맺어지는걸 직감하거나, 퐁 비디오 게임기를 보면서 미래에는 이게 흥하게 될 것 같다고 하는 등.]도 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전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일단 지구 반대편이고, 국과 네덜란드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외국인 유학생. 뜨거운 호르몬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여자에게 열심히 들이대지만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5시즌에서 추방 위기에 놓이지만 로리와 결혼하여 회피에 성공,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걸 위탁부모 가정에 알리지 않고 그냥 살다가 들켜서 쫓겨나고, 에릭네 집에서 몰래 얹혀살다가 들킨다. 이후 켈소와 룸메이트가 된다. 미용실에서 샴푸보이를 하게 되는데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안정적인 직장도 얻게 된다.
          * 할머니는 [[스웨덴]] 출신. 키티는 할머니의 억양이 이해서 부끄러워서 졸업식에 부르지 않았는데, 할머니는 그로부터 16년 뒤에 통풍에 걸려서 돌아가셨다는 사연이 있다. 1시즌 1에피소드에서 도나에게 이 사연을 이야기 해줄 때 말하는 교훈은 "모든 가족은 부끄럽다. 부끄럽지 않게 되는건 죽은 뒤일 뿐.(…)"
         에릭의 [[누나]]. 섹시하지만 사생활이 매우 문란한 [[빗치]](…). 에릭과는 반대로 키티와는 사이가 나쁘고, 레드에게는 귀여움 받는 딸이다. 에릭과는 견원지간으로 사이가 나쁘다. 시즌 초반에는 대학생이었지만 중간에 뭔가 문제로(…) 대학에서 짤리게 된다. 재키와 사귀던 켈소를 유혹하여 켈소와 관계를 맺고 삼각관계가 됐다가, 재키와 켈소 사이를 파탄내기도 했다. 5시즌에서는 페즈와 캠핑장에서 관계를 했다가 강제출국 위기에 놓인 페즈를 구해주려고 결혼을 해버렸는데 이 때문에 레드는 심장마비 발작을 일으켰다.
         도나의 아버지. 아프로 헤어에 듬직한 곰 같은 인. 감정적이고 잘 우는 성격이라 레드는 밥이 우는걸 매우 싫어한다.
         본래 마을에서 전자제품 점 '바겐 밥'을 운하는 지역 유지였지만, 프라이스 마트가 들어서면서 폐업하게 된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으나, 발명품과 몇가지 사업에 성공하면서 다시 부자가 된다. 8시즌에서는 [[플로리다]]로 이주하고 낙시용품점을 차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도나의 어머니.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하게 살던 아줌마로 밥과 딱 맹렬하게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인생에 공허함을 느끼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게 되는데 [[페미니즘]]이나 [[요가]]나, 뭔가 수한 정신치료나 [[태극권]] 등등. 그러다가 [[캘리포니아]]로 떠나면서 밥과 헤어지게 된다.
         사진관 체인점 포토헛(Foto Hut)을 경하는 [[히피]]로 등장. 과도한 대마초 사용으로 단기기억실증을 앓고 있으며,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 그런데 8시즌에서 사실 과거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퍼플하트훈장을 받은 전쟁웅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수송병으로 참가했지만 수송 트럭으로 독일군 탱크 부대를 뚫고 들어가서 소대원을 구출한 경력이 있다고. 귀국하고 차를 타는데 대마 연기를 풍풍 풍기는 수한 재즈 뮤직션의 차를 얻어탓다가 그 이래로 히피화 된 것으로 보인다.
  • USS 피닉스 (CL-46) . . . . 24회 일치
         USS Phoenix. [[제2차 세계 대전]]과 [[포클랜드 전쟁]]에서 활동했던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해군 함정으로 활동하였으며 전후 [[아르헨티나]]에 넘겨져 ARA 헤네랄 벨그라노(ARA General Belgrano)라는 이름으로 취역하였다. 1982년 5월 2일, 국 원자력 잠수함 [[HMS 컨쿼러]]의 뇌격으로 격침. 323명의 사망자를 내며 가라앉았다.
         1941년 12월 7월 아침, 진주만에 기항해 있던 중 [[진주만 공습|일본군 전투기들의 공습을 받는다.]] 피닉스는 그 아비규환에서 비무장 태로 탈출, 오후에는 해당 공습을 벌인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수색하는 작전에 참가하였다.
         이렇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피닉스는 미국 본토와 하와이 간의 수송 함대를 호위하는 임무나 호주 해역을 항해하는 병력수송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2년 2월에는 당시 네덜란드 토였던 [[자바]] 섬에 항공기를 수송하는 선박들[* USS 랭글리(USS Langley)와 MS 씨위치(MS Seawitch).]을 호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도양 초계, [[봄베이]]로 가는 수송선단 호위, 자바 섬에서 패배한 연합군 병력 구조 등의 임무에 참가하였다.
         1943년 7월, [[국무장관]]이었던 [[코델 헐]]을 [[카사블랑카]]까지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한 피닉스는 다시 태평양 전역으로 돌아온다. 같은 해 12월에는 글로스터 곶에 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으며, 1944년 1월에는 [[뉴기니]] 섬의 해안시설을 포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2월에는 [[로스니그로스]] 섬에 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3월에는 다른 연합군 순양함과 함께 일본군의 해안 포대를 깨부쉈다. 4월 22일에는 홀란디아[* 現 [[자야푸라]].]에 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그로부터 1주일 후에는 근처 지역의 일본군 비행장을 포격, 연합군을 위협할 수 없게 하였다. 5월에는 또다른 륙작전들을 지원하여 일본군의 초소를 초토화시켰다. 6월에는 해당 지역에 증원군을 수송하던 일본군 구축함들을 발견, 쫓아내었다. 7월에는 Numfoor[* Neumfoor라고 읽기도 하는 듯. 갓-구글님께서 한국어 표기를 말씀하시지 않으신다.]의 해안을 포격했다. 9월에는 말루쿠 제도의 [[모로타이]] 섬 륙작전을 지원하였다.
         1944년 10월 20일에는 [[필리핀]]에 륙하는 미군을 지원해 해안포격을 실시하였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수리가오 해전]]에 참가, 일본군 전함 [[IJN 후소|후소]]에게 포탄을 먹였다. 이후 레이테 만 입구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민도로]] 섬을 공격하는 동안 륙부대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과 분쟁이 있던 [[포클랜드 제도]][* 아르헨티나측은 이 제도를 말비나스 제도(Las Malvinas)라고 부른다.]를 점령한다. 이에 국이 군사적 대응을 시작하며 [[포클랜드 전쟁]]을 발발한다.
         당시 아르헨티나 해군이 소유한 군함 중 두번째로 컸던 헤네랄 벨그라노는 국 해군에 크나큰 위협이 되었다. 이에 당시 국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에 의해 격침 명령이 내려진다.
         1982년 5월 2일, 국 해군 원자력 잠수함 HMS 컨쿼러가 헤네랄 벨그라노에게 [[어뢰]]를 발사, 명중시킨다. 국 국방부는 이에 대해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발표하였다. 벨그라노는 심각한 피해를 입는 수준을 넘어서 가라앉았고, 이로인해 1,042명 중 323명의 승무원이 사망한다.
         국 국방부는 벨그라노가 전쟁 구역인 포클랜드 반경 200 마일 내에 들어왔을 때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르헨티나 정부는 벨그라노가 격침 당할 당시 전쟁 구역에서 36 마일 떨어져 있었기에 벨그라노에 대한 공격 행위는 전쟁 범죄라고 주장했다.
         화 "철의 여인"의 대처가 [[https://youtu.be/jcBkvr_PGaY|포클랜드 전쟁 당시를 회하는 장면]]에서 언급된다.
         국의 ~~찌라시~~황색 언론 [[더 선]]은 헤네랄 벨그라노의 피격 사실을 전할때 1면 헤드라인에 "'''잡았다!''': 우리 친구들이 포함을 격침시키고 순양함을 구멍냄"[* GOTCHA!: Our lads sink gunboat and hole cruiser]라고 쓰는 패기를 보였다. 이외에도 더 선은 포클랜드 전쟁 동안 "'''뒈져라 군사정부놈들'''"[* STICK IT UP YOUR JUNTA] 등의 부적절한 헤드라인을 내걸기도 했다.
         [[https://www.history.navy.mil/research/histories/ship-histories/danfs/p/phoenix-iii.html|미해군 역사유산 사령부의 USS 피닉스 소개(어)]]
         [[https://www.theguardian.com/uk/1982/may/03/falklands.world|Guardian - Argentine ship General Belgrano torpedoed by British submarine(어)]]
         [[http://www.bbc.com/news/world-latin-america-17932669|BBC - Falklands tension: Argentina marks Belgrano anniversary(어)]]
  • 가상 메모리 . . . . 24회 일치
         가 메모리(Virtual Memory)란, [[오퍼레이팅 시스템]] 기술의 하나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에서 가 메모리 운용의 필요성은, [[GUI]] OS로 전환하고 [[멀티 태스킹]]이 보편화되면서 나타났다. 멀티 태스킹 기능은 다수의 어플리케이션을 하나의 OS에서 돌릴 수 있게 했으나, 프로그램을 마구 올리다가는 [[램]]이 [[으앙 죽음]] 수준으로 심각하게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OS차원에서 고도의 메모리 관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에 제시되었다.
         가 메모리 기능이 없는 OS는 메인 메모리를 그대로 물리적 어드레스에 따라서 액세스(읽고 쓰기)를 지원한다. 그래서 실제 존재하는 메모리 이의 프로그램은 절대로 돌릴 수 없다. 실제로 DOS에서 메모리가 모자라면 일단 프로그램이 안 올라간다. 게다가 이게 좀 [[복불복]]스러워서 최악의 경우는 프로그램이 돌아가는데 잠깐 실행되다가 OS자체가 다운된다.
         가 메모리 기능이 있는 OS에서는 메모리 역의 물리적인 어드레스 이외에 ‘보조기억장치’, 대표적으로 하드 디스크를 대으로 가의 어드레스를 할당하고 이를 OS에서 하드웨어의 MMU(Memory Management Unit)와 맞물려서 알아서 관리를 해준다.
         가 메모리 기능이 있으면 실제 메모리 공간이 어느 정도 부족하다고 해도, OS는 당장 실행중이긴 하지만 당장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가 메모리 역으로 내려보내고 지금 실행중인 프로그램은 실제 메모리 공간으로 올려보낸다. 이렇게 유연하게 사용자의 멀티 태스킹에 맞춰서 대응해주는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유저가 [[메모장]]을 쓰고 있다가 [[그림판]]과 [[계산기]]를 켠다. 그런데 3개의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돌리기에는 메모리가 부족한 황. --미친 [[똥컴]]이군--
         가 메모리 기능이 없는 DOS는 이런 황에서 그냥 그림판과 계산기를 올려주지 않거나, 그림판은 어떻게 돌아갔는데 계산기를 돌리려는 순간 최악의 경우 프로그램과 OS자체가 다운되는 암울한 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작업한 모든 작업물은 사요나라--
         윈도우즈는 어쩔 수 없이 그림판과 계산기만 메인 메모리에 올려놓고, 메모장은 가 메모리로 내려보낸다. 얼마 있으니 계산기도 안쓰게 되서 가 메모리로 내린다. 1시간 쯤 그림을 그리다가 다시 메모장을 켜고 그림판을 작업 표시줄에 내려놓으면 메모장이 메인 메모리에 올라오고, 그림판은 가 메모리 역으로 내려간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예시지만 간단하게 받아들이자.--
         문제는 가 메모리가 되어줘야 하는 하드 디스크는 램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이다. 하드 디스크는 용량으로는 가의 메모리가 되어줄 수 있지만, 억세스 속도는 램보다 훨씬 느리다.
         이래서 가 메모리를 사용하여 많은 용량의 메모리를 교체할 때는 [[하드 디스크]]와 [[램]]의 억세스 속도 차이 때문에 엄청난 [[랙]](…)이 발생하여, ‘일단 돌릴 수는 있지만 체감 스피드는 좆망’이 되버린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사용자가 하드 디스크에 미리 설정된 가 메모리 용량마저 초과할 정도로 어플리케이션을 돌려대면 가 메모리로도 [[노답]]이다. 어떤 소프트웨어 기술도 없는 메모리를 만들어내는 재주는 없다.--얌전하게 리붓해라.--
  • 강승현(모델) . . . . 24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패션모델)]
         ||<#FFFFFF> '''이름(로마자)''' ||<(> Kang Seung-hyun[br]Hyoni Kang[* 전자는 본명을 그대로 로마자로 옮김. 후자는 뒤의 '현'에서 따서 붙인 예명. 어권에서는 후자로 많이 통용되고 있다.] ||
         ||<#FFFFFF> '''외부 링크''' ||<(> [[http://ygstage.com/yg-profile/about?star=kang-seung-hyun&profile_id=11792| [[파일:YG엔터테인먼트_로고.png|width=25]] 공식 홈페이지]][br][[https://instagram.com/hyoni_ka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width=15]] 공식 인스타그램]][br][[https://twitter.com/hyonika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 공식 트위터]][br][[https://www.youtube.com/user/hyonitv| [[파일:유튜브 아이콘.png|width=15]] inoyhmedia HYONITV]][* 강승현의 일을 담은 [[유튜브]] 채널] ||
         [[대한민국]]의 [[모델]] 겸 [[디자이너]], 사업가 그리고 화배우
         어린 시절부터 꽤나 [[장신|큰 키]]였는데, 그 땐 그게 [[콤플렉스]]로 작용했다고 한다. 다만 그 시절부터 패션잡지를 접하며 모델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덕여자대학교]] 모델학과에 입학한 후 자신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큰 키[* 프로필에도 적혀 있지만, 현재 178cm다. 이는 [[장윤주]](171cm)보다도 7cm나 더 크고(다만, 슈퍼모델계는 평균키가 워낙 커서 171cm 정도는 [[장신]] 축에도 못 끼긴 한다. 런웨이에 서는 사람들 평균이 175cm다.) 13/12 법칙을 사용할 경우 이에 응하는 남성의 신장은 약 193cm.]를 장점으로 바꾸어 나가는 데 성공했다.
         키는 무지하게 큰데 얼굴이 귀염인 게 반전매력. 그러면서도 시크한 패션을 위화감 없이 소화한다.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503291527343&mode=sub_view|관련 기사 - (bnt포토) 강승현, 시크함 넘치는 맥앤로건 런웨이]] 기사 사진에서 [[하의실종 패션]]을 멋들어지게 소화해 내었다.
         세계 50개국을 대표하는 모델들이 참가한 2008년 포드 세계 수퍼모델 대회에서 '''1위'''를 차지. 아시아계가 1위를 차지한 기록은 '''28년 간의 대회 역사 최초'''라고 한다. [[http://news.nate.com/view/20110716n00339|관련 기사 - 강승현, 스물네살에 모델·디자이너·사업가 …]]
          * 2008 엘리트모델 룩 코리아 참가 (이 2008)
          * 라코스테 봄/여름 광고 모델 (이 2009)
          * 2011 F/W 서울패션위크 이봉 패션쇼 런웨이 모델
          * 화배우 김윤진과 함께 로레알 파리 투톱 모델로 발탁 (이 2011)
          * 2012 헤럴드 동아TV 라이프스타일 어워드 올해의 베스트모델 (이 2012)
          * 2013 제8회 아시아모델식 패션모델 (2013)
         2016년 6월 19일 MLT-30 녹화 [[마리텔/방 목록(MLT-26~MLT-30)#s-6.2|차홍 : 헤어 탐구 생활]]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2018년 개봉한 화 [[독전]] 에서 마약 수사반의 홍일점, 소연 역을 맡았다. 화 베테랑의 [[장윤주]]와 비슷한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 강승현이 톱 모델의 길을 걷게 된 건 어머니의 향이 컸다고 한다. 어머니 역시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인데, 그게 유전이 된 모양. 게다가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보그]]를 구독했고, 그렇게 해서 관련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43&aid=0000065191|2007년 경남 통의 의사가 여성 환자들을 마취시킨 후 성범죄를 저질렀다가 구속되어 그로부터 4년 후 징역 5년과 의사자격 3년 정지에 처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트위터]]에서 曰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149414|우리 나라 성폭행범 처벌이 왜 이렇게 송방망이인 거죠? 징역 5년에 정지 3년이면 3년 뒤에 소문 안 들린 곳으로 가서 병원 다시 하면 되겠네? 왜 많은 이들이 이에 문제를 삼아도 누구 하나 바꾸는 이 없는 거야?]]" 하고 일침을 가했다.[* 사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때문에 '''형 집행 종료 후 10년 간''' 의료기관을 운하거나 의료기관에 취업할 수 없기는 하다. ~~더러워서 판사 못해먹겠네~~] 이에 네티즌들은 전적으로 동감하는 반응이었다.
          * 본래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 [[강승현]] 문서로 들어가면 이 사람을 포함하여 3명의 동명이인으로 갈라지도록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쪽을 [[한화 이글스]][[강승현(야구선수)|에서 뛰고 있는 오빠뻘 되는 야구선수]][* 다만 문서 작성 당시는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다. ]가 생기며 뒤늦게 이 사람에 대한 문서가 작성되었다. 근데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https://ko.wikipedia.org/wiki/%EA%B0%95%EC%8A%B9%ED%98%84|강승현]]으로다가 들어오면 바로 이 사람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는 어 [[위키백과]]에서도 [[https://en.wikipedia.org/wiki/Kang_Seung-hyun|마찬가지]]. 아마도 세계적인 인지도 때문인 모양.
  • 김상엽 (야구인) . . . . 24회 일치
         |선수명 = 김
         |문 표기 = Kim Sang-Yeop
         |사진 사이즈 =
         |출신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 [[남대학교]] 야구부 코치 (2002년 ~ 2010년)
         '''김엽'''(金相燁, [[1970년]] [[5월 11일]] ~ ) 은 전 [[KBO 리그]] [[LG 트윈스]]의 [[투수]]이자, 현재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재활군 투수코치이다. 부 이전 촉망받던 고졸 강속구 투수였다. 최고구속 150km대에 근접한 강속구를 뿌렸으며, 당시에는 희귀한 낙차 큰 파워 커브로 타자들을 대했다. 1990년대에는 당시 보기 드물게 야구 선수로서 [[삼성물산]]의 패션 사업부인 [[삼성물산|에스에스패션]]의 신사복 빌트모아 TV CF에 출연하였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1993년]] 시즌 170탈삼진으로 탈삼진왕에 올랐으며, [[김시진]]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2번째로 기록한 탈삼진 1위였다. [[1995년]]에는 17승을 거둬 1990년대 초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당시 대적으로 투수진이 열악하였던 소속 팀 [[삼성 라이온즈]]의 특성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무리한 투구로 혹사당했으며, 어깨 및 허리 부으로 지속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고 [[1998년]] 이후에는 전력에서 이탈했다.
         [[1999년]] 12월 [[삼성 라이온즈]]가 [[LG 트윈스]] [[포수]] [[김동수 (야구인)|김동수]]를 FA로 입하면서 보 선수로 [[LG 트윈스]]로 이적하였으나 부이 지속되어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2경기 동안 6.2이닝, 2패만 기록한 후 [[2001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통산 78승 56패,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현역으로 활동할 때 홀수 해에 성적이 좋고 짝수 해에는 성적이 부진한 징크스가 있었다.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출신 [[남대학교]] [[권호]] 감독의 제안으로 [[남대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활동했으며 [[2011년]] [[투수]] [[박찬호]]의 주선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077 오릭스 김엽 코치 “박찬호야말로 진정한 위너다”] - 이미 칼럼</ref> 연수 후 [[NC 다이노스]]의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 {{KBO 투수|89410|김엽}}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95&aid=0000000112& 김엽 “파워 커브처럼 낙차 컸던 내 인생”] - 박동희 칼럼
         {{KBO 탈삼진}}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KBO 탈삼진자]][[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김용판 . . . . 24회 일치
         '''김용판'''(金用判, 경북도 대구시, 1958년 ~ )은 [[대한민국]]의 전 국가공무원으로 [[서울지방경찰청|서울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하였다.
         김용판(金用判) 은 1958년 대구 달서구 월배에서 태어나 월배초등학교, 달성중학교, 경북대 사대부고를 거쳐 1982년 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2000년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4488032|제목=[프로필]김용판 서울경찰청장 내정자|확인날짜=2018-02-06}}</ref>.
         * 1982.02 남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경제학사)
         1998년 경북 성주경찰서장으로 근무하였고<ref>{{뉴스 인용|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3196&yy=2007|제목=[생의 땅 가야산] '칠불=주봉' 확인 주역 김용판 경무관|저자=이대현|날짜=|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그의 고향 대구의 달서경찰서장(2001~2003) 재직 시에는 ‘선채증 후체포’라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대구 경북을 누비던 폭주족을 일망타진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21115000189&md=20121118003341_BL|제목=무협소설에 빠진 소년, 장풍을 날리다|성=헤럴드경제|날짜=2012-11-15|확인날짜=2018-02-06}}</ref>
         서울 성동경찰서장(2004~2006) 재직 시에는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하는 제2회 대한민국 개선스킬 경진대회에서 은을 수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0&aid=0000327205|제목=[광화문에서/홍권희]‘블루오션’이 눈앞에 있는데|확인날짜=2018-02-06}}</ref> 경무관으로 승진한 뒤 주 중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외사협력관(2006~2009)으로 근무하였다. 2010년 충북경찰청장으로 부임해 ‘주폭(酒暴)’ 개념을 처음으로 창시하였으며<ref>{{뉴스 인용|url=http://www.kns.tv/news/articleView.html?idxno=193933|제목=‘주폭’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특허 낸 김용판 (전)서울경찰청장을 만나다 - KNS뉴스통신|날짜=2015-04-15|확인날짜=2018-02-06}}</ref>, 한국생산성본부 주관의 제35회 국가생산성대회에서 중앙행정기관으로서는 최초로 국무총리 종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4488032|제목=[프로필]김용판 서울경찰청장 내정자|확인날짜=2018-02-06}}</ref>.
         서울경찰청장(2012.5~2013.3) 재직 시 치안복지개념을 주창하고 이를 위해 존중·엄정·협력·공감의 4대 전략과 책무 중심의 3대 관점을 제시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3590436|제목='치안복지' 김용판 충북경찰청장, 취임 100일|확인날짜=2018-02-06}}</ref><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newsView/20120511020461|제목=신임 김용판 서울청장, “주민의 삶의 질을 향시키는 경찰이 되겠다”|성=세계일보|날짜=2012-05-11|뉴스=신임 김용판 서울청장, "주민의 삶의 질을 향시키는 경찰이 되겠다" - 세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8-02-06}}</ref> 특히 충북에 이어 추진한 주폭척결 시책은 직원, 주민 모두에게 호응을 얻었으며 사회 각 분야에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21115000189&md=20121118003341_BL|제목=무협소설에 빠진 소년, 장풍을 날리다|성=헤럴드경제|날짜=2012-11-15|확인날짜=2018-02-06}}</ref>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에 달서구청장으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결선투표에서 이 구청장 56.1%, 김 전 청장 52.68%을 각각 기록해 현직 프리미엄을 극복하지 못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daegu.com/?c=4&uid=386082|제목=이식·김용판 등 경찰 출신 줄줄이 낙마|성=http://www.idaegu.com|언어=ko|확인날짜=2018-05-21}}</ref>
         == 훈 ==
         어머니의 암 치유 과정을 정리한 <내 건강비법>(우리출판사)<ref>과 23년 경찰생활의 철학과 보람을 담은 <우리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가 있다.{{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4502083|제목=<화제> 현직 서장이 자연건강법 책 발간|확인날짜=2018-02-06}}</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4796527|제목=김용판 서울경찰청장 "검-경관계는 명하복아닌 호존중"|확인날짜=2018-02-06}}</ref>
         * 우리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2012년, 김사 {{ISBN|8934959625}}<ref>{{서적 인용|url=https://www.worldcat.org/oclc/975636215|제목=<>.|날짜=2012|출판사=김사|isbn=8934959622}}</ref>
         김용판이 기소된 죄명은 ① 공직선거법위반, ② 경찰공무원법위반, ③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서<ref>{{뉴스 인용|url=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4/02/06/2014020600091.html|제목=김용판 '무죄 선고'에, 민주당 '긴급회의' 소집|뉴스=뉴데일리|확인날짜=2018-02-06}}</ref>, “2012. 12.경 허위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시킨 직권남용, 수사방해 직권남용을 함으로써, 경찰공무원법의 정치운동 금지 규정을 위반함과 아울러 서울청장이라는 공무원 지위를 이용하여 대통령선거 직전에 실체를 은폐한 허위의 수사 공보를 하게 함으로써 선거운동을 하였다”는 것이 공소사실의 요지였다. <ref>{{뉴스 인용|url=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231390&plink=OLDURL|제목=[취재파일] 쉬운 판결문: 김용판 1심 판결|성=김요한|날짜=2014-02-12|뉴스=SBS NEWS|언어=ko-KR|확인날짜=2018-02-06}}</ref>이는 주로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던 권은희의 ‘김용판으로부터 외압을 당했고, 서울청이 증거를 은폐하고 축소하였다’<ref>{{웹 인용|url=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A&nNewsNumb=201712100009|제목=국가정보원 정치개입(댓글) 의혹 사건은 무엇?|확인날짜=2018-02-06}}</ref>는 일방적인 주장<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2/2013042200045.html|제목='국정원 여직원 수사' 경찰 집안싸움… 소신이냐 돌출이냐|확인날짜=2018-02-06}}</ref>에 기초한 것이었기에, 1심 재판에서부터 ‘권은희의 증언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는지, 일관성이 있는지, 식에 비추어 그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다투어졌다.
         구체적으로 1심 재판에서 문제되었던 쟁점을 꼽자면, i) 권은희가 ‘김용판의 외압’으로 꼽았던 대표적인 사례로서 “김용판이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압수·수색장 신청 보류지시를 하였는지 여부”, ii) “디지털증거분석이 서울청에서 이루어지게 하고, 그 과정에서 국정원 여직원을 개입시킴으로써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는지 여부” iii) “분석범위를 제한함과 동시에 디지털증거분석 과정에 수서서를 배제함으로써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는지 여부”, iv) “김용판이 수기보고를 받아가며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는지 여부”, v) “2012. 12. 16. 밤에 전격적으로 허위의 증거분석결과를 바탕으로 한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함으로써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는지 여부”, vi) “디지털증거분석이 끝나고도 분석결과물을 수서서에 지연 송배함으로써 수서서의 수사를 방해하였는지 여부” 등을 들 수 있다.
         모든 쟁점에 관하여 권은희의 진술은 “객관적 사실관계에 명백히 배치되는 부분이 많아 신빙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배척<ref>{{웹 인용|url=http://news.kukinews.com/news/article.html?no=182938|제목=“이제 권은희가 무고죄?” “소신 판결”…김용판 무죄, 네티즌 뜨거운 갑론을박|확인날짜=2018-02-06}}</ref>되었고, 권은희의 진술과 반대되는 다른 경찰관들의 진술에 대하여는 <ref>{{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05187.html|제목=‘자가당착’ 검찰…‘김용판→권은희’ 2년만에 뒤바뀐 기소|날짜=2015-08-19|확인날짜=2018-02-06}}</ref>“그 내용이 대체적으로 서로의 진술 및 객관적 사실관계에 부합하며, 특히 수서서의 다른 직원들 또한 일치하여 진술하고 있다”, “직급과 경찰 내부에서의 위치 및 개인적 성향 등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모든 경찰관들이 당한 시차를 두고 검찰에서 수사를 받고 법원에서 증언을 하면서, 서로 모의하여 진술내용을 허위로 맞추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1528165|제목=김용판, 국정원 수사 외압 혐의 무죄 이유는|날짜=2014-02-06|뉴스=뉴스1|확인날짜=2018-02-06}}</ref><ref>{{웹 인용|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5183|제목="권은희 진술, 진실 근거 없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무죄|날짜=2014-02-06|확인날짜=2018-02-06}}</ref>는 취지의 1심 판결이 내려졌다.
         일례로, 권은희는 국정조사 때부터 1심 증인신문에 이르기까지 “서울청이 2018. 12. 18. 분석결과물인 하드디스크를 1차로 송부할 당시 본격적인 수사 진행에 필요한 ID와 닉네임 40개를 넘겨주지 않음으로써 수서서의 수사를 방해하였다”고 주장<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40208/60655999/1|제목=“13개 쟁점서 모두 완패” 얼어붙은 檢|날짜=2014-02-08|뉴스=news.donga.com|확인날짜=2018-02-06}}</ref>하여 왔다. 그런데 1심 증인신문 당시 ‘수서서가 교부받았다는 확인 서명이 있는, “추출된 ID, 닉네임 목록”이라고 겉면에 쓰여지기까지 한 하드디스크’ 사진이 제시<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08/2014020800075.html?Dep0=twitter&d=2014020800075|제목=권은희, 구체적 근거 못 대고 재판부만 비난|확인날짜=2018-02-06}}</ref>되자, 권은희는 당황하여 이에 대한 반박을 전혀 내놓지 못하였다. 위와 같은 권은희의 증인신문이 있은 후 그제서야 검찰은 “제때 ID와 닉네임 40개를 넘겨주지 않는 방법으로 수사를 방해하였다”는 취지 대신 “현저히 확인, 분석이 곤란한 태의 자료만을 넘겨주는 방법으로 수사를 방해하였다”는 취지로 공소장을 변경<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40208/60655999/1|제목=“13개 쟁점서 모두 완패” 얼어붙은 檢|날짜=2014-02-08|뉴스=news.donga.com|확인날짜=2018-02-06}}</ref>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도 1심 법원은 “위 하드디스크의 겉면만 보아도 ID와 닉네임이 송부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인데, 검사가 무엇을 근거로 1차 송부된 하드디스크에 아이디와 닉네임이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공소를 제기했던 것인지 의문<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40208/60655999/1|제목=“13개 쟁점서 모두 완패” 얼어붙은 檢|날짜=2014-02-08|뉴스=news.donga.com|확인날짜=2018-02-06}}</ref>이다. 특정인의 진술만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최소한의 객관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공소를 제기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ref>{{뉴스 인용|url=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231390|제목=[취재파일] 쉬운 판결문: 김용판 1심 판결|성=김요한|날짜=2014-02-12|뉴스=SBS NEWS|언어=ko-KR|확인날짜=2018-02-06}}</ref>며 검찰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마지막으로 검찰의 고로 열린 3심 법원 또한, 2심 판결에 채증법칙 위배 및 심리미진,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면서 검사의 고를 기각<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14884884|제목='국정원 수사외압' 김용판 2심 무죄…"진실 밝혀졌다"(종합)|날짜=2014-06-05|뉴스=중앙일보|언어=ko-KR|확인날짜=2018-02-06}}</ref>하여 무죄가 확정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f.co.kr/read/life/1480807.htm|제목=김용판 무죄 판결에… 권은희 허위 진술에 초점|성=tf.co.kr|날짜=2015-01-29|뉴스=더팩트|언어=ko-KR|확인날짜=2018-02-06}}</ref>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찰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월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달성중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자유한국당 당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24회 일치
          * 미도리야는 회의 이후에도 침울한 태인데 아이자와가 직접 찾아와 "막아도 뛰쳐나가긴 마찬가지니 내가 보는 데서 정규활약 해라"고 격려한다.
          * 에리는 여전히 [[오버홀]]에 의해 감금 태. 하지만 잠시 접촉했던 미도리야에게 깊은 인을 받아서 계속 떠올리고 있다.
          * 그러나 현실적으로 처한 고난이 만만치 않다. 불평만 늘어놓던 레게풍의 히어로는 이번에도 둘의 의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둘을 "꼬마"라 부르며 아무리 열을 올려봤자 쉽지 않은 일이라 강조한다. 우선 그 에리라는 소녀가 적의 핵심적인 자원이라면 당연히 꼭꼭 숨길 것이다. 하물며 소녀가 예기치 않은 트러블로 외부로 노출, 히어로 둘에게 보여져 버렸다면 더욱 방비를 두텁게 할 것이다. 레게풍 히어로는 자신이라면 더이 아지트에 두지도 않을 거라고 말한다. 이런 황에서 시에핫사이카이의 본거지를 틀어봤자,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을게 분명하다. 하려면 적어도 소녀가 어디에 있는지 특정할 필요가 있다.
          * 나이트아이도 그 부분을 난점으로 지목한다. 아직은 전체 계획도 목적도 불분명. 한 번에 확실히 노리지 않으면 반격의 기회를 허용한다. 여기에 대한 대책으로 현재 시에핫사이카이가 소유한 모든 부동산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조직들의 역을 전부 리스트로 만들었다. 거의 전국적인 규모의 리스트. 각지의 마이너 히어로들까지 소집한 건 이 때문이었다. 해당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토박이들이 조사에 유리할 터. 나이트아이는 각자 할당된 지역을 살피고 거점이 될 만한 곳을 지목해 달라고 요청한다.
          * 식적인 접근법이긴 하지만 너무 신중한 움직임이다. [[패트껌]]은 "[[올마이트]]의 사이드킥 칙곤 답답하다"고 힐난한다. 다혈질인 그는 이미 소녀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마당에 너무도 지지부진한 방법이라고 성토한다. 나이트아이는 거기에 "우린 올마이트가 아니다"고 받아치며 그러므로 분석과 예측을 거듭해 성공률을 10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항변한다.
          * 의견이 대립하는 사이 [[아이자와 쇼타]]가 발언권을 청한다. 그는 패트껌처럼 당장 움직이자는 의견은 아니지만, 작전에 합리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나이트아이에게 "미래 예지"라는 개성이 있다면 왜 그걸 쓰지 않는가? 자세한 성능은 모르나 그걸로 이후 전개될 황을 예시한다면 큰 도움이 되는건 분명하다.
          나이트아이가 내놓은 의외의 대답. 그는 말이 나온 김에 예지의 성능에 대해서 설명한다. 일단 발동하면 쿨타임은 24시간. 즉 하루에 한 시간, 한 사람 분량 밖에 볼 수 없다. 또 예지가 구체적인 황 전체를 묘사하는 것도 아니다. 플래시 백처럼 보려는 사람의 황이 한 장씩 떠오른다. 발동 시점에서 한 시간 동안 앞으로 그 사람이 겪을 운명을, 기록 필름을 넘겨보는 것처럼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보이는건 해당 인물의 아주 가까운 시점. 개인의 행동과 약간의 환경 정도다.
          그의 사정을 아는 자, 혹은 모르는 자. 히어로 사이의 의견은 엇갈린다. 더이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들 표정에 나타난 것을 보면 모두가 납득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음은 자명했다. 아이자와나 레게풍 히어로, 패트껌은 시원찮은 결말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그를 대변해줄 사람은 미도리야와 그랜토리노 정도지만,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턴 히어로들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 이런 황을 류큐가 "우선은 해보자"는 말로 정리한다. 어쨌든 위기에 처한 소녀가 있다는게 가장 중요하니까. 여전히 분위기는 어색했지만 나이트아이는 회의의 요점을 정리하며 협력을 당부한다.
          이후 [[버블걸]]이 세한 자료를 개별적으로 나눠주며 회의가 종료된다.
          * 웅고의 학생들은 잠시 뒤 따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미도리야와 밀리오가 겪였던 일을 다시 한 번 듣는다.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 [[아스이 츠유]]는 미도리야의 분한 심정에 공감한다. 밀리오와 미도리야는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낙담하고 있다. [[아마지키 타마키]]는 이렇게 침울한 밀리오는 처음 본다며 내심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이자와는 황이 꼭 나쁘기만 하진 않다고 말한다.
          같은 건물의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는 나이트아이가 그랜토리노와 대화 중. 그랜토리노는 미도리야를 굳이 나이트아이에게 보낸건 그걸 통해 올마이트와 그의 관계를 화해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 꼬여서 이런 황이 되자, 그랜토리노는 "나이를 먹어서 괜한 짓을 하게 됐다"고 자책한다.
          * 모든 문제의 시작점이자 구출대인 에리는 시에핫사이카이의 어느 어두운 방에 갇혀 있다. 일견 보통 어린이의 방이지만 어둡고 답답한 공간이다. 에리는 침대에 틀어박혀 있는데 침대 주위에는 완전히 새것인 장난감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널려 있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연다. [[오버홀]]이 지명한 새 "돌보미"다. 다소 뺀질거리는 인의 남자가 들어서자 에리는 경계하는 듯이 몸을 일으킨다. 남자는 그저 잘 있나 보러 왔다고 말하지만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손도 대지 않은 장난감들을 보며 "조금은 마음을 열어도 좋지 않냐"고 하지만, 에리의 겁먹은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겁이 나는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 다크 유니버스 . . . . 24회 일치
         [[유니버설 픽처스]]의 [[셰어드 유니버스|배경 세계 공유]] 화 시리즈. [[드라큘라]], [[늑대인간]], [[미이라]],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투명인간]], [[길맨]] 등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클래식 [[몬스터]]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고전 [[괴물]]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다.
         [[미이라(2017년 화)|미이라]]가 2017년에 개봉했다. 늑대인간을 다룬 울프맨도 각본을 준비 중이라 하며 투명인간도 리메이크 소식을 밝혔다. 좀 더 진행되는 것을 봐야 알 터이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길맨, 반 헬싱도 화화될 듯. 다만 미이라의 실패 이후, 계획이 취소되었다가 다시 재게되는 등 진행 여부는 아직 지켜봐야 할 황이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는 예정된 황. 현재 투명인간이 나온 황이다.
          * [[미이라(2017년 화)|미이라]](The Mummy)
          * '''예정 화'''
          드라큘라의 등장인물인 반 헬싱 화라 예된다.
          미이라 개봉 후에 공개된 타이틀. 콰지모도 주연이 아닐까 예된다.
          * 본 게시물은 정식 명칭이 나오기 전까지 '유니버설 몬스터즈(Universal Monsters)'라 표기되었다. 문 위키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유니버설 픽처스의 괴물 화 목록 페이지인 유니버설 몬스터즈에도 링크되어있다. 정식 명칭 공개 후에는 별도의 명칭을 가지게 되었으며 물론 문 위키의 유니버설 몬스터즈 항목에서도 다크 유니버스를 찾을 수 있다.
          * 관련 을 보면 투명인간과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도 등장하는 듯 하다. 그리고 예정 목록을 보면 노틀담의 꼽추인 콰지모도도 예정된 듯. 그런데 이한 것이 투명인간이야 그렇다 해도 팬텀과 콰지모도는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다.(...) 물론 시점을 괴물화보다 고전 호러 화에 두면 딱히 이하진 않다만 드라큘라, 미이라 등 대표적인 캐릭터들을 생각해보면 뭔가 안맞는 느낌도 있다.
          * 사실 유니버설의 고전 괴물 콜라보는 이 다크 유니버스가 처음이 아니다. 1943년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Frankenstein Meets the Wolf Man>이 나왔으며 휴 잭맨 주연 화 <반 헬싱>은 흡혈귀에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한 스크린에 등장한다. 다만 배경 세계 연계는 아니었다.
          * 화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은 이 세계에 소속된 화였으나 현재는 취소되었고, 2017년에 개봉한 미이라가 다크 유니버스의 첫번째 화가 되었다. 미이라 개봉 후에 공개된 예정 타이틀을 보면 드라큘라를 다크 유니버스에 등장시키려는 생각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다크 유니버스 자체가 취소되는 일이 있기도 해서 먼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가 나와봐야 알게 생겼다.
  • 원피스/842화 . . . . 24회 일치
          * 디는 형제들에게 당한 처를 레이쥬가 치료해주는데, 레이쥬가 그런 "신사도"를 어디서 배웠냐 묻자 제프 밑에서 받은 혹독한 수련을 떠올린다.
          * 제르마 왕국에선 디의 예물교환을 위해 출발할 채비를 마친다.
          * 레이쥬는 출발하기 전에 디의 처를 고쳐주는데 마스크 팩 같은 것을 얼굴에 붙이자 짜릿한 충격과 함께 붓기가 싹 빠진다.
          * 이건 붓기를 빠르게 빼는 팩인데 몸의 정적인 반응을 억제하는 방식. 따라서 실제로 처가 낫는건 아니고 오히려 몸에 나쁘다.
          * 그 말에 디가 질색을 하는데 레이쥬는 "돌아온 건 네 책임."이라며 "두 번째"는 없다고 못을 박는다.
          * 그리고 디의 그 "기사도"는 어디서 익힌 거냐고 묻는데, 디는 그 말에 담배를 피워물며 제프 밑에 있던 시절을 회한다.
          * 디의 그 지독한 기사도는 바로 제프의 작품.
          * 디를 비롯해 부하 요리사들은 모두 여성 쉐프를 원했는데, 디는 제프에게 "여자라도 말을 못 알아들으면 걷어차면 된다"고 했다가 혼구멍이 난다.
          * 만약 디가 이 원칙을 어기면 "너의 거시기를 떼고 나의 목숨도 떼버리겠다"고 혼낸다.
          * 디는 왜 제프의 목숨까지 거냐고 묻는데 제프는 그게 "부모의 의무"라며 자기가 싫어하는 인간이 되지말라고 말한다.
          * 회을 마친 디는 "공룡 시대부터 식"이라고 얼버무린다.
          * 그때 시녀가 들어와 디에게 출발할 시간이라고 알린다.
          * 디를 비롯한 빈스모크 일가가 탑승한 마차--묘차--가 홀케이크 성으로 출발한다.
          * 루피는 그 태에서 기어4를 감행, "탱크맨 만복버전"이란 어처구니 없는 모습으로 변신한다.
          * 신기술 캐논볼로 날아간 크래커는 단단한 태의 비스킷 병사를 몇 개나 뚫고 한없이 날아간다.
         디가 지금껏 기사도를 준수한건 다른 누구도 아닌 "제프"를 위한 것. 제프가 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였다.--의리남--
  • 원피스/868화 . . . . 24회 일치
          * 빅맘이 여섯 살 때 일어난 사건은 양의 집이 걱정돼서 보러왔던 엘바프 전사에게 목격, 거인족 사회에 알려져 빅맘은 거인족들이 혐오하는 대이 된다.
          * 카르멜이 한 말을 잘못 이해해서 모두 자기들만한 몸집으로 커지는 세을 생각한 것이고, 이걸 이루기 위해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파괴했다.
          * 설 [[샬롯 카타쿠리]]가 자신의 떡으로 임시 귀마개를 만들어서 형제들에게 나눠줘 빅맘의 괴성을 극복, 연합군은 순식간에 포위된다.
          * 빅맘 [[샬롯 링링]]의 트라우마가 시작된 63년 전의 "양의 집" 실종 사건. 그녀가 소중하게 여겼던 [[마더 카르멜]]도 양의 집 친구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녀 자신만 모르는 곳으로. [[몽키 D. 루피]]가 깨어진 마더 카르멜의 사진을 보여주자 빅맘은 세이 무너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대로 과거에 사로잡혔다. 이때를 노리고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카포네 갱 벳지]]. 그리고 본래 이 자리에서 죽기로 되어 있었던 [[디]]는 역전된 입장으로 그녀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었다.
          * 또 한 사람은 그 섬에서 살던 요리사였다. 은퇴한 해적이었던 [[슈트로이젠]]. [[샬롯 푸딩]]의 [[원피스/858화|웨딩케이크]]를 만든 그 요리장이다. 그도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재미있는 사건"으로 여기며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쿡쿡 열매"의 능력자. 이 세 만물을 모두 식재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별난 능력자였다. 그는 나무토막을 생햄으로 만들어 먹으며 이 재미있는 사건을 일으킨 "괴물"에 대해 생각했다. 본 적도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굶어 죽겠지. 슈트로이젠은 그 힘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망친 엘바프 전사와는 달리 링링에게 다가갔다. "꿈에 대해서라도 이야기하지 않겠냐"고 말을 건 그에게 링링은 경계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슈트로이젠은 "너의 마더가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주겠다"는 말로 구슬렸고 이 만남이 훗날 빅맘 해적단의 토대가 되었다.
          * 명실부한 사황 세력의 개국공신인 슈트로이젠. 이제 나이를 먹고 일선에 나서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요리장으로서 빅맘 곁에 있었다. 웨딩케이크가 망가졌을 땐 빅맘이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지만, 그의 충성심에는 향이 없었다. 빅맘의 괴성으로 꼼짝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지만 [[카포네 갱 벳지]]가 부하들과 함께 수한 움직임을 보이는걸 놓치지 않고 빅맘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빅맘은 63년 전 세으로 돌아가서 주위를 볼 정신이 아니었다. 경계심도 없고 더이 무적도 아닌 약 5초간의 간격. 벳지는 그 간격을 놓치지 않고 비장의 무기 KX런처를 조준한다. 모든게 그의 계획대로다. 마침내 발사되는 맹독의 탄두.
          * 빅맘이 추억하는 카르멜의 기억. 그저 연극이고 위선일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녀는 아이들 앞에서는 좋은 보호자였다. 카르멜은 항 "종족끼리 차별이 없고 다들 같은 눈높이에서 살 수 있는 나라"에 대해 말했고, 양의 집을 세운 그 섬에 그런 "꿈의 나라"를 만들자고 말했다. 비록 어렸던 빅맘은 그 뜻을 "다들 나처럼 덩치가 커진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엘바프의 섬 시절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닌 착각이었다. 좌우간 카르멜은 이런 나라를 이야기하고, 이런 나라가 많아진다면 세은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 찰 거라고 가르쳤다. 그건 곧 링링의 꿈으로 이어졌다.
          * 그리고 이어지는 침략과 약탈의 나날. 여섯 살 링링에게는 어느새 5천만 베리의 현금이 붙었고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해군은 그녀를 최고의 위험인물로 판단, 위험도가 높아지기 전에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혈안이 됐다.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다. 빅맘은 갈 수록 강대해지는 힘으로 여러 나라를 침략했고 거침없이 박살냈다.
          이제 그녀의 꿈은 카르멜의 꿈도, 당초 그녀가 가졌던 꿈과도 관없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는 삶"에 대한 집착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없어진, 어떤 의미에선 원히 하나가 된 카르멜과 그녀의 친구들을 꼭 다시 찾고 자신만큼 크게 만들어서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밥을 먹겠다고 다짐했다. 사황에 오른 지금까지도.
          황이 바뀌었다. 빅맘의 무방비, 절규가 한계를 넘었지만 전화위복. 삼장성 [[샬롯 카타쿠리]]가 이 교착 태를 끝내고자 수를 쓴다. 그는 자신의 모치모치 능력을 이용해서 떡으로 만든 임시 귀마개를 만든다. 이걸 형제들 쪽으로 굴려보낸다. 벳지와 밀집모자 일당이 경악 속에서 굳어버린 동안 형제들 전원이 떡 귀마개를 나눠가진다. 연합군에서 제일 먼저 움직인 건 벳지. 그는 작전 실패를 선언하고 바로 내뺀다.
          * 사색, 그 태평한 루피 조차도 절망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미는 물론 [[쵸파]]나 [[징베]] 조차 이 참담한 실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 끝이다. 여기는 홀케이크 성 옥. 도망칠 곳도 없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
          설. 샬롯가의 형제들이 몰려온다. 그들이 떡 귀마개를 차는 것도 계획에 없던 일이다. 도저히 승산이 없는 황.
          * '악마의 열매'의 능력을 해당 능력자를 '먹어서'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 증명됨에 따라, 과거 정결전 당시 검은 수염이 흰수염의 힘을 빼앗아갔을 것이라고 추측하던 가설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 은혼/611화 . . . . 24회 일치
         [[은혼]] 611훈. '''축제를 좋아하는 고물만큼 성가신 건 없다'''
          * 원 황자는 예과 다르게 황이 돌아가자 크게 당황하고 사카모토 다츠마와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빈정거리며 감옥으로 돌아간다.
          * 해방군은 가부키쵸에 나타난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의 파괴를 목표로 진군을 시작한다.
          * 우주의 해방군 본대는 지구측과 통신조차 두절되고 패닉 태에 빠진다. 대기 중이선 함대까지 이이 오고 최종적으론 더이 병력을 충원하는건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원 황자는 예하지 못했던 전개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원에게 사카모토 다츠마는 "장군님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줄 생각이었겠지만 습기가 차버렸군"이라고 빈정거린다. 다츠마는 서있기도 지친다며 그냥 감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원은 돌아가려는 그들을 불러세우지만 도쿠가와 사다사다는 "보지 않아도 안다. 우리들은 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감옥으로 돌아간다.
          * 해방군의 기계화 병력은 전멸. 가부키쵸의 주민들은 히라가 겐카이 감의 성과에 환성을 지르지만 사정을 짐작하고 있는 시무라 타에, 캐서린은 겐카이 일행을 걱정한다. 오토세 여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분명 겐카이 감이 타마와 사카타 킨토키를 희생시켰을 거라고 직감한다.
          * 해방군이 무력화되며 활로가 뚫린다.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는 선봉으로 치고 나가며 해방군을 무찌른다. 진선조와 오니와반슈도 기세를 올리며 거침없이 돌격한다. 겐카이포 덕에 기계가 내장된 총기까지 전부 무력화되었으며 재정비가 되지 않은 해방군을 대로 쾌진격이 가능했다. 진선조 대원들은 겐카이 감이 정말로 세의 절반을 구했다고 칭송한다. 하지만 사루토비 아야메는 타마가 희생했다는걸 알기 때문에 좋아하지만은 못하고 핫토리 젠조는 모처럼 죽을 각오를 했는데 묘한 기대를 갖게한다고 툴툴댄다.
          * 같은 용병민족이지만 신라 측은 드라이하게 관망하고 있다. 리더인 소타츠는 다키니는 이끼 낀 고대 유물들이라고 비하하며 어차피 현시점에선 통솔도 어려울 병력 따윈 다키니에게 던져주자고 한다. 저들이 지구측과 교전해서 교착태가 되면 그때야 말로 자신들이 목표를 달성할 때라는 것.
          * 야토 측도 아직은 관망 태. 야토의 두목은 해가 저무는걸 보고 곧 자신들의 시간이 될 거라고 말한다.
          * 오우가이는 병사들을 모아서 병기는 못 쓰게 됐지만 적도 마찬가지며 병력 자체는 자신들이 압도적이라고 교시한다. 그리고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카이포를 파괴하고 본대와 통신을 복구하는걸 목표로 하여 진격을 명령한다. 따라서 이들은 가부키쵸를 향해 진격하게 되는 셈. 해결사 일행은 이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구라와 신파치는 가부키쵸의 동료들을 걱정하는데 긴토키와 히지카타 토시로는 그정도는 가부키쵸에서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본진과 단절된 이 해방군의 행동은 정해져 있던 셈이고 가부키쵸에서는 그걸 감안해서 미끼역을 자처한 것이다. 핫토리는 전쟁에서 중요한 점은 적의 행동을 먼저 아는 것이라 강조하고 곤도 이사오는 에도 전체를 대로 무차별 파괴를 하던 해방군이 뚜렷한 목표로 일정한 작전을 수행하게 됐으니 오히려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있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때라고 말한다.
          * 한편 가부키쵸의 주민들은 오토세 여사의 지휘를 받아 마을을 요세화시키고 있다. 가부키쵸는 "지구방위도시"라는 이름으로 해방군을 맞이해 버틸 준비를 마친다. 타에 조차도 완전 무장을 하고 임전태세로 나선 태. 이들이 표적이 되어 있는 동안 외부의 저항 세력이 적의 배후를 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외부의 동료들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캐서린은 외부와 연락할 수도 없는 마당에 과연 와줄 사람이 있을지 우려하지만 타에는 분명 올거라 장담한다.
         한대 타마에게 반했던 야마자키 사가루는 타마의 안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데다 은근슬쩍 통폼으로 돌아와 있어 역시 야마자키는 안 된다는걸 느끼게 해준다.
  • 은혼/615화 . . . . 24회 일치
          * [[오우가이]]의 지군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에 돌입. [[진선조]]와 [[오니와반슈]]가 적진으로 돌격하고 [[가부키쵸]]는 농성전에 들어간다.
          * 가부키쵸의 선전은 적장 오우가이에게도 인적을 다가온 듯. 그는 이들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 발씩 전진, 굳게 닫힌 가부키쵸의 성문을 단 한 방에 열어젖힌다.
          * 양단 작전의 성공으로 해방군의 지군이 허리가 잘린다. [[진선조]]의 [[곤도 이사오]], [[히지카타 토시로]], [[오키타 소고]]가 일제히 부대를 이끌고 돌진, 해방군의 후방을 공격한다. 해방군 내에선 후방으로 돌아가 원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지휘관 [[오우가이]]는 일언지하에 각하한다. 기책 정도로 뒤집을 전력차가 아니며 그대로 냅둬도 후방 부대가 그정도는 알아서 할 거란 논리.
          * 신파치가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타에는 투석을 멈추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해방군이 지척까지 몰려와있다. 이대론 해결사 일행이 가부키쵸와 해방군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가 되어버릴 위기. 다급히 피하는 통에 긴토키의 알이 어디론가 굴러가 버린다.
          * 그때 [[무라타 테츠코]]가 자신이 수비하는 문에서 부른다. 신파치는 살았다고 생각해서 그쪽으로 접근, 테츠코는 서둘러 문을 열어주려고 한다. '''지옥의 문(헬즈 도어)을 말이다.''' 테츠코가 지키는 문은 적을 지옥으로 보내주는 문으로 못 쓰는 칼로 만들었다. 작동시키자 문 사이사이로 날붙이들이 날아가 적을 꼬챙이 신세로 만든다. 신파치는 왜 이런 위험한 입구로 부르냐고, 안 들여보내주냐고 투덜대지만 "지옥의 문은 한 번 들어오면 다시는 못 나가는 입구이며 입구가 아닌 병기"라는 핀트가 빗나간 답변이 돌아온다. 테츠코는 대신 다른 입구가 있다며 저쪽으로 가보라고 하는데. '''천국의 입구 말이다.''' 신파치가 발을 내딛자 바닥이 내려앉으며 창이 번쩍거린다. 결국 적을 천국으로 보내는 입구이지만 입구가 아닌 병기.
          * 신파치가 테츠코에 의해 사경을 헤매는 사이 긴토키는 아직도 알이나 주우러 다니고 있다. 이번엔 아고미(턱순이)가 자신이 지키는 문으로 긴토키를 부른다. 곧 문을 열어주겠다고 하는데 막 긴토키가 접근하자 '''굴러들어온 알만 회수하고 긴토키는 그대로 둔다.''
          결국 이곳도 다른 세으로 가는 입구에 지나지 않았다. 아들이 인질로 잡힌 긴토키는 전쟁통인 것도 적들이 뒤통수를 노리고 있는 것도 잊고 문 앞에서 애걸복걸한다. 긴토키가 아들과 함게 지옥의 입구로 가려는 찰나, 문틈으로 누군가의 손이 뻗어나와 적 병사의 아들래미를 부여잡는다.
          [[사이고 토쿠모리]]의 자비없는 징수. 순식간에 아들을 잃어버린 병사들. 긴토키와 같은 신세가 되어 사이좋게 누워버린다.
          호스트클럽까지 진출한 마드모아젤 사이고. 오카마들과 징수에 앞장서고 있다. 또다시 아들 잃은 시체가 다섯. 긴토키도 어느새 같이 누워있다.
          뭔가 수한 플레이 중인 코제니가타. 어쨌든 여왕과 '''못난 돼지'''를 믿어달라고 호소한다. 어쨋든 급하니 줄을 잡긴 잡는데, 잡아돌리긴 커녕 코제니가타가 창문을 뚫고 딸려나올 기세다. 게다가 이 줄 어디에 묶여 있는 거야?
          건물 안에선 "여왕님"과 "못난 돼지" 간에 수한 대화가 오간다.
          그런 논쟁 끝에 건물 안에선 "꿀꿀"과 "찰싹" 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또다시 적이 목전까지 다가온 황. 긴토키와 신파치의 다급한 도움 요청을 '''또 마드모아젤 사이고가 접수한다.'''
          사이고는 못난 돼지를 휘둘러 적들을 소탕한다.
          * 예치 못했던 분전. 전황이 고착되려는 양을 보이자 오우가이가 움직인다. 그를 대하던 오니와반슈의 닌자들이 초주검이 되어 있다. 그는 날아오는 투석도 벌레잡듯이 쳐내고 터벅터벅 걸어온다. 쏟아지는 공격 사이로 무인지경인듯 걸어온 그는 굳게 잠긴 가부키쵸의 문 앞에 선다.
         결국 제대로 적과 싸우고 있는건 사이고 뿐이다. 사이고무쌍.
         오우가이가 가부키쵸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 가부키쵸 주민들도 백병전을 준비해야 할 듯. 한편 오우가이는 가부키쵸 측 다키니인 [[헤도로]]가 대한다는 예측이 지배적.
  • 은혼/616화 . . . . 24회 일치
          * 다키니를 앞세운 해방군의 파공세 앞에 가부키쵸의 저항자들은 수세에 몰린다.
          * [[사카타 긴토키]]와 [[사이고 토쿠모리]]는 양이전쟁 경험자답게 최전선에서 활약 중.
          적들은 수만이 아니라 다키니라는 무서운 전력을 앞세우고 있는 태. 가부키쵸에서 적의 1파와 맞딱드린 진선조의 특동대는 다키니의 위력 앞에 여지없이 쓸려나간다. [[오토세]] 여사 또한 그 장면을 보면서 어떤 벽이든 그들 앞에선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며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 건물 옥에서 투석기를 담당하던 캬바쿠라 "스마이루"의 아가씨들은 다키니의 투석에 밀려서 피신한다. 이들의 리더인 [[시무라 타에]]는 [[료우(은혼)|료우]]와 [[하나코(은혼)|하나코]]와 합류한다. 하나코와 료우 쪽도 투석기가 박살나면서 급히 피신했는데, 아직도 저항의지가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타에는 이들을 피신시키도록 한다. 료우와 하나코는 "힘을 합쳐 마을을 지키기로 했다"고 반발하지만 타에는 다키니의 힘을 체감하고 냉엄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타에는 자신이 척후를 맡고 동료들을 먼저 피신시키려 하는데 료우는 타에와 함께 가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남자 주민이 그녀의 팔을 이끌며 데려가려고 실갱이가 벌어지는데, 그때 쿵소리와 함께 료우의 팔을 잡았던 손만 덩그라니 남는다. 무자비한 다키니의 공격. 그들이 벌써 옥까지 추격해온 것이다.
          * 가부키쵸의 문 앞에선 [[사이고 토쿠모리]]가 다키니 병사를 힘으로 제압하려 한다. 그러나 다키니도 힘으로는 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이고의 손을 맞잡고 찍어누르는데 힘에서 밀린 사이고가 머리로 들이받는데도 꿈쩍도 없다. 한계까지 밀리던 사이고의 왼팔 쪽에서 검붉은 핏줄기가 뿜어지는 듯 했으나...
          [[사카타 긴토키]]가 구원한다. 긴토키가 다키니의 오른팔을 후려쳐 부러뜨리면서 선혈이 낭자하다. 균형이 무너진 사이 긴토키와 사이고의 집중공격으로 다키니 병사를 쓰러뜨린다.
          힘겹게 하나씩 처치하고 있지만 다키니의 병사들은 만만한 대가 아니다. 보통 천인 병사는 무쌍하듯 처부수던 양이전쟁의 경험자들도 이들을 대하는건 목숨을 걸어야할 판이다. 긴토키와 사이고는 이런 놈들이 마을로 몇 명이나 들어갔을지 셀 수도 없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무서진 문을 사수하며 더이 마을로 진입되는 병력이 없도록 저지할 생각이다.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 [[턱순이]]등도 최선을 다하지만 적들의 수가 줄지 않는다.
          긴토키는 여기서 적을 저지하는 것도 하는 거지만, 이러고 있다간 마을 안에 들어간 녀석들이 마을을 다 부숴버릴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안으로 가서 가세하자니 바깥 녀석들이 들이닥칠 거라고 푸념한다. 사이고는 넉살좋게 "결국 취향 문제"라고 받아친다.
          >벽이 돼서 외부의 대군을 대로 싸우다 죽을지
          긴토키는 자기가 남은 쪽을 맡을 테니 사이고더러 어느 쪽을 택할지 고르라고 말한다. 사이고가 정말 그래도 좋겠냐고 하자, 긴토키는 댁이나 자기나 양이전쟁에서 "백훈의 사이고", "백야차"라고 부르던 처지가 이 마을에 물들어 하얗지 않게 되지 않았냐고 말한다.
          사이고는 씩 웃으며 어차피 죽을 거면 대답은 모두가 한결 같을 거라고 대꾸한다.
          * 사이고의 의지와 달리 스마이루 일행은 생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타에가 척후를 맡아 뒤를 방비하며 피신 중. 그러나 적은 생각지도 못하게 정면에서 덮쳤다. 앞서 가던 남자 주민이 순식간에 피떡이 되면서 진로가 막힌다. 설 뒤에서 추격하던 다키니들도 목전까지 도달.
  • 은혼/628화 . . . . 24회 일치
          * 한편 겐가이 감은 야토족 용병부대에 잡혀 포박 당한 태인데.
          * 밤이 시작되고 화톳불이 피워졌다. 가부키쵸의 생존자들이 내일 일을 의논하기 위해 불 주위로 모여든다. [[시무라 신파치]]는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새삼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느낀다. 우선 가부키쵸의 터줏대감들인 "가부키쵸 사천왕"들이 있다. [[사이고 토쿠모리]]의 오카마 군단과 [[도로미즈 지로쵸]]의 흙탕쥐파 야쿠자들이 혼성된 묘한 군단. [[오토세]] 여가사 이들의 대표격으로 나서 의견을 듣고 있다. 방금 전엔 "해방군이 금방 돌아오진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는지, 오토세 여사는 그 말을 되짚으며 "해방군이 갑작스레 보복하러 올 일은 없다는 거냐"고 묻는다.
          * [[진선조]]의 국장 [[곤도 이사오]]가 대답한다.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암스트롱 겐가이포에 의해 우주와 지의 통신이 두절되고 지휘계통까지 무너진 해방군이 금방 재건되기는 어렵다. [[히지카타 토시로]]도 놈들은 패주하다 막부의 추격대까지 들이닥쳤기 때문에 거의 와해된 태라고 덧붙인다. [[오키타 소고]]는 오히려 지금은 공세로 전환할 찬스라며 저정도 대군이 지휘계통도 없이 흩어진 지금이라면 병량을 노려서 궤멸시킨다면 그걸로 전쟁은 끝이라고 자신한다.
          * [[야규 빈보쿠사이]]의 야규진음류 일가는 그 의견에 동감한다. 빈보쿠사이는 이 승리가 기적적인 것이었다는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야규진음류는 확실히 가장 큰 출혈을 본 파벌이라 할 수 있다. [[니시노 츠카무]]가 한 팔을 잃고 빈사, 후계자인 [[야규 큐베]]도 [[오우가이]]에게 당해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이런 황 때문인지 빈보쿠사이는 기적같은 승리 뒤에는 그만한 대가도 있는 거라 말하며 이 이을 바라면 반드시 잃는 것도 더 나올 거라고 경고한다.
          * 백화의 리더 [[츠쿠요]]도 일단은 신중론파. 그녀는 사실 이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그들의 목적은 더이의 싸움을 막기 위해 싸운 것. 그런데 그 싸움을 다시 확전시키고 피해를 키운다면 해방군이 하는 짓과 다를게 뭐냐고 지적한다.
          * 헤바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지만 왠지 다들 옆 사람은 아는 것 같아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헤바 파일럿이 헤바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세계는 해방군과 별개의 문제로 약 7번 정도 망할 뻔 했고 최종적으론 그 원흉이 헤바가 되는 것으로 어떻게든 됐다. 헤도로 안에 있는 악한 인격 "헤도라"가 그것인데, 헤선한 인격 "헤도로"가 그걸 막고는 있지만 긴토키는 그저 막기 보단 세을 구하기 위해 그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발을 바꿨다.
          긴토키는 이렇게 천사와 악마를 황에 맞게 꺼내는 것으로 인류를 지킨다, 인류보완계획의 전말이 이것이라고 폭로한다.
          신파치가 츳코미를 한 건데 여기에도 또 츳코미가 날아온다. 긴토키의 짓이다. 긴토키는 "보케질은 엉뚱하거나 바보같은 말 전부"를 칭하는 거라며 아무튼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츳코미를 넣겠다고 당당히 선언한다. 실로 악마 위에 악마가 타고 있는 황.
          왜 이런 황극을 확산시키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긴토키도 보케로 판단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그의 소원은 바퀴벌레가 이루어줬다. 헤도로가 진로 에 바퀴벌레가 있는걸 발견하고 급정지, 타고 있던 긴토키가 시원스레 날아가 처박히면서 모든 개판이 츳코미로 마무리되었다.
          히지카타는 어차피 세이 멸망하면 쉬는건 얼마든지 할 테니 사바세계를 즐겨두라고 대꾸한다. 하지만 세은 겐가이포의 향으로 전등불 조차 없는 깜깜한 어둠. 오키타는 이런데서 할 수 있는건 자는 거나 그거 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대정전이 일어난 도시는 이듬해 출생률이 오른다는 도시전설도 주절거린다. 우연의 일치인지 막 잠자리에 든 긴토키는 사루토비가 이불 속에 숨어들어와 내쫓는 중이다.
          * 히지카타는 정전이란 말에 "내가 찾는게 그거"라고 말한다. 오키타는 "그거할 대"라고 알아듣지만. 그가 말한건 정전을 넘어 에도의 모든 기계를 멈춘 남자 [[히라가 겐가이]]였다. 겐가이포 덕에 그나마 해방군을 막아낸 거지만, 이대로는 그들도 우주와 단절된 태로 아무 연락도 취할 수 없다. 우주로 나간 [[가츠라 고타로]] 일행과 교신하려면 무슨 수를 써야할 텐데, 그러자면 겐가이의 협조가 필연적이다.
          한편 진선조 일행의 겐가이 감 수색은 계속 벽에 부딪힌다. 겐가이포 발동 이후 그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진선조는 몇몇 시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의 행방을 쫓고 있다. 어떤 사람이 그가 용병부대에 잡히려 할 때 도망치던걸 봤다는 증언을 해준다. 또 다른 사람에게서는 "같이 도망쳤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며 헤어졌다"는 증언도 확보한다.
  • 정혜선(배우) . . . . 24회 일치
         {{{#FFFFFF ''' 정혜선의 주요 수 이력 ''' }}} }}} ||||
         ||||||||||||||<#c0c000><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1 '''[[백예술대|[[파일:백예술대_로고.png|width=100]]]] TV부문 대'''}}} ||
         ||<width=30%><:>―[br][* 백예술대 TV부문은 1979년 제15회 시식부터 수했다.] ||<:> → ||<width=30%><#FFFFA1><:> '''정혜선'''/[[김혜자]]/[[김옥(배우)|김옥]][br]'''(1979)''' ||<:> → ||<width=30%><:>김민자[br](1980) ||
         ||<-5><#c0c000><table width=100%> {{{+1 '''[[백예술대|[[파일:백예술대_로고.png|width=100]]]]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 ||
         || 김혜자/강효실[br](1978) || → ||<#FFFFA1> '''정혜선'''/김혜자/[[김옥(배우)|김옥]][br]'''(1979)''' || → || 김민자[br](1980) ||
         [[대한민국]]의 배우. [[본명]]은 정자이며, [[1942년]] [[2월 21일]] [[경북도]] [[김천시]] 다수동 출생([age(1942-02-21)]세)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카타리나이다. [[1961년]]에 [[KBS]] 공채 1기 [[배우]]로 데뷔하였다. [[성우]] 출신이고, 공채 출신이라 초기에는 주로 KBS에서 활동하였으나 나중에는 타방송국에도 많이 김천서현교회 출연하였는데 대표작들은 주로 MBC쪽이 많다. 드라마 [[아들과 딸]]의 어머니가 대표적이다. [[최불암]], [[김수미]] 처럼 젊을 때부터 노역을 많이 맡은 편이다. 나이가 든 후에는 완고한 시어머니 역을 많이 맡는 편이다.
         [[1963년]], [[KBS]] [[공채]] 동기인 [[박병호(배우)|박병호]]와 [[결혼]]했으나, [[1975년]] [[이혼]]했다. 당시 박병호가 화제작으로 생긴 빚을 일부 떠안았으나 이혼 후에도 묵묵히 다 갚으며 세 자녀를 키워냈다고 한다.
          * [[광의 재인]]
          * [[밥 차리는 남자]] : 34회에서 이루리 [[고모]] 역으로 특별출연하였다.
  • 최효진 (축구선수) . . . . 24회 일치
         |클럽= [[인천 유나이티드]] <br />[[포항 스틸러스]]<br />[[FC 서울]]<br />→ [[무 축구단|무]] (군 복무)<br />[[전남 드래곤즈]]
         [[2007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여, [[K리그 2007|2007 K리그]] 우승과 [[FA컵 2007|2007 FA컵]] 준우승, [[FA컵 2008|2008 FA컵]]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2008년 FA컵 우승 당시 대회 MVP를 받았고,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대한축구협회]] 주관 최우수선수 부문을 수, 2008년, 2009년 [[K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또한 [[AFC 챔피언스리그 2009|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전 경기 출장하며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특히 16강전 [[뉴캐슬 유나이티드 제츠 FC|뉴캐슬 제츠]]와의 경기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6-0 대승을 이끌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4&oid=139&aid=0001950957 |제목=(ACL 리뷰) '최효진 해트트릭' 포항, 뉴캐슬 6-0대파하고 8강행 |날짜=2009-06-24 |출판사=스포탈코리아 }}</ref>
         [[2010년]],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FC 서울]]로 이적한 후 주전으로 활약하며 이적 첫 해 [[K리그 2010|2010 K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공헌하였다. 시즌이 끝난 후,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무 피닉스|무]]에 입단하였다. 무에서 주전 라이트 백으로 활약하며 [[2012년]] [[9월 10일]] 전역할 때까지 53경기에 출전하였다. 전역 후 FC 서울에 복귀하였으나, [[2013년]] [[차두리]]의 입단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전매특허인 부지런한 몸놀림과 특유의 탱크같이 시원한 돌파로 공수를 오가며 공격을 지원한다. 수비황에서의 근성 또한 최대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넘어지는 순간까지 공을 눈에서 떼지 않는 집중력과 근성은 그를 [[K리그]] 최고의 오른쪽 풀백으로 만들었다.
         * [[2011년]] ~ [[2012년]] {{국기그림|대한민국}} [[무 피닉스]] (군 복무)
         == 수 ==
         * [[2004년]] 대학 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 [[2008년]] [[FA컵 (대한민국)|FA컵]] MVP 수
         * [[2009년]] 축구인의 날 최우수선수
         {{둘러보기 자 묶음
         {{둘러보기 자 묶음
         {{둘러보기 자 묶음
         [[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중동중학교 동문]][[분류:중동고등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자]]
  • 토탈워: 쇼군 2 . . . . 24회 일치
         >1545년. 지금은 센고쿠 지다이: 전쟁에 휘말린 전국시대이다. 200년 동안, 아시카가 쇼군은 교토에서 통치를 해왔다. 대단한 광과 권력은 그들의 것이었다. 이제 그들보다 더 강력한 가문은 더 이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새로운 주가 쇼군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과연 누가 승리하게 될 것인가?
         외교 관계에 긍정적인 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 적의 적은 나의 친구: 두 가문이 공통의 적을 대로 전쟁 중인 경우 생긴다.
         외교 관계에 부정적인 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 토 확장
          * '''전국포위망''': 플레이어의 가문이 다른 가문들을 쓰러뜨리고 쇼군에 가까워질수록 들어오는 견제. 매 턴마다 추가된다. 게임의 후반부에는 전 일본을 대로 전쟁을 벌여야 할 정도.
         이 경우 군대를 적 토 안으로 보낼 수 있다. 적의 시설을 습격해 수리할 때 까지 못 쓰게 만들 수 있고, 적의 군대를 공격해 야전을 벌이거나 적의 성을 공략할 수도 있다. 해군 역시 마찬가지로, 적 항구나 무역로를 봉쇄해 무역 수입을 끊어주거나 건널 수 있는 해협 한가운데 함대를 박아서 적 지군이 못 건너가게 막을 수 있다.
         겨울에 적 토에서 턴을 끝내면 병사들 중 소수가 얼어죽는다. 주의하자. 물론 그정도 피해를 버틸 수 있다면 그냥 씹어도 된다.
         자동 전투는 양측 군대의 전투력을 비교해 양측의 피해와 승패여부를 결정한다. 수동 전투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과 같이 진행된다. 전력차가 압도적이라 이길게 뻔한 전투에서는 자동 전투를, 비슷하거나 약간 밀려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전투에서는 수동 전투를 하는게 좋다. 전력차가 압도적으로 밀린다면 열심히 짱돌을 굴려보자. 운이 좋지 않은 이 별로 좋은 결과는 못 내겠지만.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장군이 연설하고 병사들이 환호하는 컷신이 나온다. 이 컷신은 스킵할 수 있으며 반란군을 대할시에는 나오지 않는다. 컷신이 끝나면 자신의 부대를 맵에 배치한다. 대부분의 부대는 자신의 지역에만 배치할 수 있지만 일부 특이한 부대는 중립 지역에도 배치할 수 있다. 방어측은 이 시기에 궁병이나 조총병들로 여러가지 방어용 장애물을 설치할 수 있다. 준비가 다 되었다면 전투 시작 징을 클릭해 전투를 시작한다. 인근에 다른 아군 군대가 있었다면 전투가 시작하고나서 지원군의 형식으로 난입한다. 지원군이 오는 방향은 해당 군대가 있던 방향과 같다.
         전투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는 사기이다. 사기는 공격을 받거나, 아군이 패주하거나, 장군이 전사하면 감소한다. 사기가 0이 된 부대는 통제 불능 태가 되어 전장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그걸 본 아군 부대는 또 사기가 떨어진다. 이런 일이 몇차례 반복되다보면 더이 싸울 부대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또한 전투를 치르면서 부대의 피로도 역시 감안해야 한다. 부대가 전투를 벌이거나 달리기로 이동하면 피로도가 증가하는데, 이 피로도가 일정 수치 이을 넘어가면 부대의 전투 효율이 감소한다.
         보병들은 숲과 수풀에 숨을 수 있다. 이렇게 숨은 부대는 사격을 하거나 적 부대가 일정 거리 이 접근하면 노출된다.
          * 성벽: 나무로 된 성벽. 보병 부대를 배치할 수 있다. 여기 배치된 보병 부대는 원거리 공격, 특히 조총에게서 몸을 그나마 지킬 수 있게 된다. 공격측의 보병들이 타고 올라갈 수 있지만 일부 병사들이 올라가던 도중 손을 놓쳐 추락사하며, 다 올라간 병사들도 성벽에 배치된 방어측 부대의 격렬한 환을 받게된다. 만약 파괴되면 배치되었던 병사들 모두가 튕겨져나가 죽는다.
          * 성문: 나무로 된 성문. 말 그대로 문이다. 성벽과 같이 보병 부대를 배치할 수 있다. 본래 방어측 부대에게만 문을 열어주지만 파괴되거나 공격측이 점령하면 시 개방 태가 된다. 만약 파괴되면 배치되었던 병사들 모두가 튕겨져나가 죽는다.
         농성을 벌여 점령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오래 걸린다. 그냥 버티면 된다. 일정 시간 이 버티면 굶주림에 지친 수비군이 항복한다. 하지만 보통 1~2턴 남기고 들판으로 나와 최후의 저항을 벌이는 일이 많다.
         성을 성공적으로 점령한다면 평화롭게 점령할 것인지, 약탈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약탈할 경우 그냥 점령하는 것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해당 지방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고 민심이 악화되며 다이묘의 명예가 추락한다. 본래 그 지방을 본거지로 했던 가문이 멸망한 태라면 다시 재건시켜 봉신으로 삼을 수도 있다.
         ===== 해전 =====
          바닐라 게임에 9종류의 웅 유닛을 추가한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24회 일치
          * 지의 주인
         [[시코쿠]] 남쪽에 있는 토사를 본거지로 한 가문. 난이도 쉬움. 튜토리얼은 초소카베 가문으로 진행된다. 토사의 원래 주인이던 이치조 가문을 반쯤 쫓아낸 태이기에 이치조 가문의 반란군이 존재한 태로 시작된다. 동쪽에 있는 미요시 가문과 무역 중이며 북쪽에 있는 코노 가문과 전쟁 중.
          * 뛰어난 카타나 웅을 모집할 수 있음
          * 해의 주인
         실제 역사에서는 [[큐슈]]까지 뻗어나갔으나 오다 가문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오다 가문의 다이묘이던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통수맞고 죽어버리는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실한 가신으로 활동해 조선에 군대를 보내기도 했다.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도쿠가와 가문간의 분쟁에서는 도요토미 가문 지지 세력인 서군을 이끌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 대로 빠르게 딜을 하고 빠져나갔다. 그 결과 모리 가문은 초소카베 가문처럼 망하지 않고 지 대다수를 몰수당하는 선에서 끝나게 된다. 모리 가문은 자신들이 도쿠가와 가문을 도왔음에도 지를 몰수당했다는 것에 반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 원한은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200여년 뒤에 폭발하게 된다.]]
         현대의 나고야 근처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어려움. 본거지 오와리. 동남쪽에 있는 도쿠가와 가문, 그 동쪽에 있는 이마가와 가문, 오다 가문의 북쪽에 있는 사이토 가문과 죄다 전쟁중이다. 오다 모리타카의 반란군도 있다. 서쪽에 있는 기타바타케 가문과는 무역 관계. 주변 가문에게 존경받지 못해 외교에 패널티가 있다.
         현대의 야마나시 현 부근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어려움. 본거지는 카이. 무라카미, 오기가야츠, 이마가와, 호조, 키소 가문 사이에 끼어 있는 내륙 가문이다. 북쪽에 있는 무라카미 가문과 전쟁 중. 호조 가문과 무역 관계다.
         큐슈 북부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어려움. 본거지는 분고, 이외에 부젠을 토로 가지고 있다. 이토 가문과 무역 관계이며 쇼니 가문, 오우치 가문과 전쟁 중.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기독교로 개종한 가문. 가문을 선택하면 나오는 도 서양인과의 접촉과 그로인한 철포, 기독교의 전파를 다루고 있다. 다들 신토-불교를 믿는데 혼자 기독교를 믿기 때문에 외교에 패널티가 심하다.
         처음 시작하면 양 옆에서 공격이 들어온다. 다행히 동쪽의 오우치 가문하고는 사이에 해협을 두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있는 오토모 뎃포 코바야로 해협을 틀어막고 쇼니 가문부터 대하자. 브리핑부터 경계하라고 말해주는 시마즈 가문은 처음에는 이토 가문이 막아주지만 이토 가문을 먹어치운 다음에는 카타나 사무라이를 잔뜩 데려와서 싸움을 건다. 이토 가문이 역으로 시마즈 가문을 먹어치우면 어떻게 되냐고? 종교 차이 때문에 금방 사이가 나빠진다.
         플레이 불가능한 AI 가문들. 밑에 써져 있는건 신경 쓸 필요 없다. 게임 시작시 바로 옆에 있는 가문이 아닌 이 저런 모습으로 나타날 일은 없을 거니까.
          * 사이
          혼슈의 미노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오다 가문과 전쟁 중.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사이토 도산. 실제 역사에서는 오다 가문에게 패배해 몰락했다.
          * 아사이
          혼슈의 오미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원래 "아자이"라고 읽지만 어째선지 아사이로 번역되었다.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아사이 히사마사. 실제 역사에서는 오다 가문에게 패배해 멸망했다.
          혼슈의 미야기, 노토, 키이, 카와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문. 토가 세조각 나있는게 매력 포인트. 다이묘는 하타케야마 요시쿠니. 미요시 가문과 전쟁중이다.
          * 유럽 무역
  • 강석경 . . . . 23회 일치
         | 출생지 = {{KOR}}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 향 받은 인물 =
         | 향 준 인물 =
         | 수 = 1986년 제10회 오늘의작가<br />2001년 제8회 21세기문학
         | 웹 사이트 =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1974년]] 《문학사》 신인에 〈근(根)〉,〈오픈게임〉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순례자의 노래》,《밤과 요람》,《청색시대》,《가까운 골짜기》,《아브라함 아브라함》 등이 있다. 《숲속의 방》으로 [[오늘의 작가]]을 수하였다. 현실 속에서 강한 자아의식을 가진 인물의 삶의 고통과 진실을 그려낸 작가이다.
         == 훈 ==
         * [[2013년]] 제16회 <[[동리·목월문학|동리문학]]> <ref>[http://news.donga.com/3/all/20131106/58705155/1 2013 동리-목월문학… 소설가 강석경 - 시인 유안진 / 동아일보]</ref>
         * 2001년 제8회 21세기문학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68023 강석경씨 21세기문학/국민일보/2001.08.03]</ref>
         * [[1986년]] 제10회 <[[오늘의 작가]]> <ref>[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550036&thread=07r02 경주시립송화도서관, '작가와의 만남' 개최 소설가 강석경 작가 '능으로 가는 길' 주제로 / 아시아뉴스통신]</ref>
         * 1986년 제6회 녹원문학 <ref>[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550036&thread=07r02 경주시립송화도서관, '작가와의 만남' 개최 소설가 강석경 작가 '능으로 가는 길' 주제로 / 아시아뉴스통신]</ref>
         * 1974년 제1회 문학사 신인 <ref>[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550036&thread=07r02 경주시립송화도서관, '작가와의 만남' 개최 소설가 강석경 작가 '능으로 가는 길' 주제로 / 아시아뉴스통신]</ref>
  • 고창석 . . . . 23회 일치
         ||<#878787> '''{{{#EEE156 데뷔}}}''' ||<(> [[2001년]] 화 '이른 여름, 슈퍼맨' ||
         데뷔 이래 단역이나 조역을 통해 스크린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2009년 SBS <드림>을 통해 처음으로 드라마에 등장했지만, 제대로 이름을 알린 건 2010년작 [[의형제(화)|의형제]]에서 [[베트남]]인 악역으로 출연한 것. 그 때의 베트남인 포스가 하도 강해서 베트남인이냐는 소리를 지금도 듣는다고.
         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주로 조연으로 나와 깨알같은 웃음을 선사하는 역을 자주 맡는다.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도 1박 2일의 명품 조연 특집 출연과 그 다음 무한도전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못친소]] 출연 덕 [* 특히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못친소]] 초대장을 받았을 때에는 [[이병헌]] [[감우성]]과[[노안#s-2|동갑이라고 폭로]]하는 강력한 자폭개그를 선보였다]. 특유의 익살스럽고 어딘가 친근한 페이스 덕분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출연도 종종 있다. 연극 공부를 한 사람답게 좋은 가창력을 가졌으며, 못친소 특집 때도 이 가창력을 보여 주었다. [[http://www.tving.com/clip/player/S001816768|링크]]
         === 화 ===
         || 2005년 || [[친절한 금자씨]] || 우소 남편 || ||
         || 2008년 || [[화는 화다]] || 봉감독 || ||
         || 2008년 ||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화)|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 게이클럽 마스터 || ||
         || 2011년 || [[퀵(화)|퀵]] || 서형사 || ||
         || 2012년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한국 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홍석창 || ||
         || 2013년 || [[은밀하게 위대하게]] || 서구 || ||
         || 2013년 || [[관(화)|관]] || 최대감 || 특별출연 ||
         || 2017년 || [[1987(화)|1987]] || 동아일보 편집국장 || 특별출연 ||
         ||<#fd5a1e> {{{#ffffff '''방연도'''}}} ||<#fd5a1e> {{{#ffffff '''방송사'''}}} ||<#fd5a1e> {{{#ffffff '''제목'''}}} ||<#fd5a1e> {{{#ffffff '''배역 이름'''}}} ||<#fd5a1e> {{{#ffffff '''비고'''}}} ||
         == 수 ==
          * 2010년, 제18회 춘사대화제 남우조연
          * 2011년, 제20회 부일 남우조연 [[고지전]]
  • 김대환 (법조인) . . . . 23회 일치
         1942년에 [[경북도]] 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육군 대위를 전역한 이후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와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서울고등법원]]에서 수석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인 1999년 10월 11일에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다.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된 직후인 11월 20일에 수원지역 주민들의 등기민원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2000년까지 수원시내 택지개발지구에 2개 등기소 를 설립하였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559307]</ref> 2000년 6월에 [[최종]]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신임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08261]</ref> 2000년 7월21일에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승진하였으며 2001년 2월 12일에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전보되면서 대법원장에 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 지명되었다. 서울고등법원장을 끝으로 법관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법무법인 율촌에서 송무 Group<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6&aid=0000189786]</ref> 변호사를 하다가 2004년 3월 2일에 박철 고려대 교수와 함께 대법원장 추천으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에 임명되었다. 2013년 4월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을 관할하는 서울법원조정센터 임조정위원과 센터장을 맡았다.<ref>[http://news1.kr/articles/?1087614]</ref>
         광주고등법원에서 재직하던 1991년 12월 20일에 성폭행한 남자를 보복 해한 피고인에 대한 항소를 기각하면서 집행유예와 치료감호를 선고한 원심대로 선고하자 성폭행 사건 대책위원회와 전남여성회 등이 재판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재판장실을 점거 농성한 사건이 일어났으나 경찰에 강제연행됐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10020921500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1-12-21&officeId=00020&pageNo=15&printNo=21685&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91년 12월 21일</ref>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3월 5일에 "보행자가 녹색 신호를 보고 횡단보도에 들어선 이 횡단 도중에 적색 신호로 바뀌더라도 다 건널 때 까지는 도로교통법 제48조 제3항에 의한 운전자가 보호해야 할 보행자에 해당되어 이런 의무를 위반해 사고를 낸 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형사처벌 대이 된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8년 3월 5일자</ref> 7월 30일에 [[전대협]] 의장으로서 교내외에서 각종 시위를 주도하여 1심에서 징역1년6월 자격정지2년을 선고받은 [[이인]]에 대해 징역6월 자격정지2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8년 7월 1일</ref> 1989년 6월 8일에 변호사법위반으로 구속
         서울민사지방법원 합의15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9년 11월 17일에 투서 사건으로 54억원 당의 재산을 강제로 국가에 헌납했던 전 [[민정당]] 대표 [[정래혁]]의 국가 대 재산의 반환을 요구한 소송에서 "이유없다"며 기각했다.<ref>경향신문 1989년 11월 17일자</ref>
          1993년 2월 27일자</ref> 4월 2일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기소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치안본부장 강민창(60세)에 대해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하면서 직권남용에 대해 "부검의가 직책 피고인의 지시를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판결했다.<ref>한겨레 1993년 4월 3일자</ref> 8월 23일에 [[김근태]]에 대한 고문한 혐의로 법원에서 재정신청을 인용하여 공판에 회부된 치안본부 대공수사국 소속 김수현 경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불법체포,감금, 형법 독직 폭행죄를 적용해 징역3년 자격정지2년, 그외 백남은 경정과 김두, 최남 경위에 대해 징역2년~1년6월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82400289101004&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8-24&officeId=00028&pageNo=1&printNo=1655&publishType=00010 한겨레 1993년 8월
         징역15년을 선고받고 1988년 가석방되었으나 1995년 보안관찰 처분을 갱신하자 낸 소송에서 "재범 위험성을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ref>한겨레 1997년 1월 22일자</ref> 5월 20일에 1994년 인천 북구청 세무계장으로 있으면서 지방세 55억여원을 횡령하여 1심에서 징역22년6월 벌금40억원 선고받자 전재산 사회 헌납 약속으로 2심에서 벌금없이 징역22년6월만 선고된 안휘의 가족이 "가족 명의의 재산을 압류한 것은 부당하다"며 청구한 소송에서 "구청은 안씨 명의의 부동산을 처분해 20억여원을 환수하라"는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52100329123005&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5-21&officeId=00032&pageNo=23&printNo=16110&publishType=00010 경향신문 1997년
         대한 항소심에서 "공판 전 증인신문은 무효"라며 원심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공판 전 증인신문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받은 이후 첫 판결이다.<ref>동아일보 1998년 4월 20일자</ref> 4월 28일에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운동기간 전에 선거기획단을 운하여 법정선거운동 비용을 초과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명박]]에 대해 [[공직선거법]]과 범인도피죄를 적용해 각각 벌금400만원,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4월 29일자</ref> 6월 30일에 사전 선거운동으로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박계동]]에 대해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8년 7월 1일자</ref> 11월 4일에 "[[이회창]] 후보 아들 이정연이 고의로 체중을 감량해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했던 전 서울병무청장 직원 이재왕에 대해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8년 11월 5일자</ref> 11월 30일에 1심에서
         징역5년을 선고받은 [[권해]] 전 안기부장이 청구한 보석 신청에 대해 "증거인멸할 우려가 있고 병세가 심각하지 않다"며 기각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12월
         뇌물을 받아 1심에서 징역2년6월이 선고된 이강우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 대해 "공직생활 중에 성실히 근무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실형은 과중하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면서 징역2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8년 12월 9일자</ref> 12월 24일에 대학원 연구과정을 수료한 뒤 선거 인쇄물에 대학원 총동문회 이사라고 기재하여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벌금80만원을 선고했다.<ref>매일경제 1998년 12월 25일자</ref> 1999년 1월 22일에 윤홍준 기자회견, 오익제 편지사건 등 [[안기부]] 북풍공작을 주도한 [[권해]]에 대해 원심대로 징역5년
         자격정지3년을 선고하면서 박일룡 전 안기부 1차장에게 징역2년 집행유예3년 자격정지2년, 임광수 전 101실장과 임경묵 전 102실장 등 전직 안기부 간부 4명에게 징역8월~1년6월 집행유예2~4년 자격정지1~2년을 선고하면서 [[김대중]] 후보를 비방하는 X파일 시리즈를 게재한 격주간지 인사이더월드 발행인 손충무에게 징역2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1월 23일자</ref> 4월 26일에 대통령과 함께 찍은 것처럼 합성한 사진을 선거공보에 실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벌금150만원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4월 27일자</ref> 5월 20일에 [[자민련]] 후보가 시장 후보를 결정하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면서 [[새정치 국민회의]]의 추천을 받았다며 선거운동을 했던 경기 안성시장 [[한식]]에게 원심대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5월 21일자</ref> 8월 31일에 성남시 지하가 개발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오성수]] 전 성남시장에 대해 징역5년 추징금 1억6천만원을 선고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벌금100만원, 업무 횡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9월 1일자</ref>
         [[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성주 (기업인) . . . . 23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 학력 = 미국 하버드 대학교 경대학원
          | 경력 = [[성주그룹]] 회장 <br/> 前 새누리당 임위원
          | 웹사이트 = [http://www.kimsungjoo.com/ 김성주 홈페이지]
         1975년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연세대학교]] 신학 학사를 받았다. 이후 [[애머스트 대학교]], [[런던정치경제대학교]], [[하버드대학교]] 경대학원 등에서 공부했다.
         [[1990년]] ㈜성주그룹을 설립, 글로벌 명품 패션브랜드인 [[구찌|Gucci]], [[Sonia Rikyel]], [[이브생로랑|YSL]]과 국내 최고 패션 유통회사인 [[막스앤스펜서|Marks & Spencer]]를 국내에 런칭 하며 한국 패션산업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5년에는 국내 역사 처음으로 독일에서 탄생한 가방 브랜드인 [[모드 크리에이션 뮌헨|MCM]]을 전격적으로 인수하여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개인의 신념이자 경철학인 “Succeed to Serve", 사회환원기업 (Social Enterprise)으로써의 책임의식으로 2009년 ㈜성주재단을 설립, 기업의 순수익 10%를 적극적인 사회공헌활동으로 환원하며,
         그녀는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경을 통해 아름다운 자본주의의 모범이 되고, 중소기업과 젊은이,여성을 키워 글로벌 무대를 만들어 주겠다는 미션으로 진취적인 사업전개와 글로벌 활동을 펼쳐왔다. 세계의 주목을 먼저 받은 그녀는 한국여성으로는 최초로 2013년부터 Asia Pacific Economy Council의 ABAC (APEC Business Advisory Council)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ref>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25/2013062502603.html</ref>
         MCM은 2008년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 이래 클래식한 유명 명품 브랜드들에 못지 않는 유니크한 브랜딩을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 시장에 역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3년 5월 김성주는 [[권우]], [[피오나 헤프티]] 등과 함께 [[스위스]] [[취리히]]의 매장 오픈을 하거나 <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357509</ref>, CNBC, 르 피가로, 가디언 지 등에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MCM의 인기로 대서특필 되는 등 국내보다 해외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중이다. 개성있고 트렌디한 마케팅으로 유명한 주력 브랜드 MCM은 중국인들의 큰 사랑에 기인하는 글로벌 성장세에 힘입어 전 세계 35개국에 300여개의 매장을 운중이다.
         김성주는 MCM을 글로벌하게 키워냈으며 직설적이고 튀는 발언을 많이 하는 캐릭터로도 알려져 있다. 2014년 제주 BPW(Business & Professional Women) Congress에서 '글로벌 여성 지도자 ' 수 당시 "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더이 권리가 아닌 의무"라며 "세월호 사태도 기득권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며 여성들은 더이 이런 사태를 주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장관의 1/3은 여성으로 채워져야만 한다"고 말하는 등 여성의 사회활동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 수 ==
         2015. 6 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로부터 대제국훈장 (Honorary 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OBE)수훈
         2012. 4 Fortune Asia의 '아시아에서 가장 향력 있는 비즈니스 25인'(Asia's '25 Hottest Business Women')에 선정
         "2009기업윤리(Ethics in Business Awards)" 수
         * {{공식 웹사이트|http://www.kimsungjoo.com/|김성주}}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적십자사 대표]][[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여성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23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의 현관에서 철포옥 핫사이키 "카츠카메 리키야"를 저지하던 드래곤 히어로 [[류큐]]와 웅고 인턴들은 그를 어렵지 않게 제압한다. 리키야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은 접촉한 대에게 "활력"을 흡수해 거대화하는 능력. 그를 제압한 류큐팀은 서둘러 선행한 히어로 연합군을 따라가기 위해 저택으로 돌입하려 했다.
          * 하지만 리키야는 [[이리나카]]에게 밭은 개성 부스트 약물을 복용한 태. 제압된 태임에도 공기를 흡입하는 것만으로 주변에 있던 경찰과 류큐팀의 활기를 흡수하게 된다. 기운을 되찾은 데다 구속까지 풀리자 다시 날뛰는 리키야. 반대로 활력을 빼앗긴 류큐팀과 경찰들은 기운이 없어서 대피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 류큐가 드래곤 폼으로 경찰들을 보호하는 동안 [[하도 네지레]], [[우라라카 오챠코]], [[아스이 츠유]]가 리키야를 대한다. 하지만 네지레의 경우는 개성이 "활력을 충격파로 만들어 쏘는" 타입이라 성이 좋지 않고 나머지 인원도 활력 흡수의 여파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여유를 되찾은 리키야는 성희롱이나 날리며 날뛰고 그대로 20분이란 시간이 흘러간다.
          * 류큐가 드래곤폼으로 리키야를 붙들고 우라라카가 공으로 띄운다. 그걸 아스이가 혀로 잡아끌고 십자로까지 이동. 네지레가 그 위에서 전력을 다한 충격파를 날려 류큐째로 리키야를 바닥에 처박아 버린다. 류큐와 거대화한 리키야의 무게 때문에 지반이 무너지면서 단숨에 미도리야와 [[오버홀]]이 격전 중인 장소로 떨어진다.
          * 목적지에 도달한 츠유와 우라라카는 오버홀과 싸우던 미도리야를 보고 방금 전엔 가짜 미도리아였다는걸 눈치챈다. 그 정체는 미도리야의 피로 변신한 [[토가 히미코]].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탈출 목적으로 [[Mr.컴프레스]]의 카피를 생성했다. 컴프레스의 능력으로 굴을 파서 지으로 나가려 한 것.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고, 당초엔 핫사이카이 조직의 "핵"인 "에리"와 접촉하는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내내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오버홀과 히어로들이 교전 중인 지금 접촉을 노리는 것이었다. 트와이스는 본체인 자신들은 위험부담을 지기 싫으니 카피인 컴프레스더러 임무를 수행하러 오라고 떠민다. 컴프레스는 투덜대면서도 지시에 따라 하강. 류큐팀은 컴프레스를 보고 [[빌런연합]]이 현장에 나타난 걸 알아차리나 복잡한 황 때문에 뭐가 뭔지 파악이 늦다.
          * 그때 무슨 우연인지 루밀리오의 망토가 날아다니다 낙석에 휘감겨 스쳐 지나간다. 오버홀은 단지 기분 나빠하고 마는데, 에리가 문득 망토를 붙잡는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오버홀은 에리의 뿔에서 기이한 빛이 나는 순간 섬뜩한 기분과 함께 에리에 내력에 대해서 떠올랐다. 에리는 두목의 딸이 낳은 딸. 즉 두목의 손녀였다. 두목의 딸은 "남편이 저주받은 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서 딸을 버리고 잠적해버렸다. 어느날 남편이 에리를 만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것. 조사 결과 에리는 양측 가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돌연변이. 저주도 뭣도 아닌, 아주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에리는 너무 어렸던 관계로 자신의 개성을 자각하지도 컨트롤하지도 못했다. 두목은 "접촉한 대가 소멸했다"는 점이 오버홀의 개성과 닮았다고 여겨 에리를 보살피고 그 개성의 실체에 대해 파악해 보라고 지시했는데, 그게 오버홀의 "사업"의 시작이었다. 조사에 착수한 오버홀은 곧 해답을 찾아냈다. 에리의 개성은 "되감는 것". 두목은 오버홀과 에리의 개성이 닮았다고 했지만, 오버홀 자신은 "차원이 다르다"고 두려워하게 된다.
         == 세 ==
          현관에서 덮쳤던 카츠카메 리키야를 제압하지만 잠시 방심했다가 크게 통수를 맞았다. 리키야는 원래 "닿은 대"의 활력을 빼앗는 개성인데 개성 부스트 약물의 힘으로 직접 닿지 않아도 공기를 빨아들여서 활력을 흡수하는게 가능한 태였다. 하도 네지레는 처음으로 정확한 개성이 공개. 자신의 활력을 충격파로 쏘아내는 능력. 왠지 빙글빙글 돌면서 나가서 속도는 느리다. 활력을 흡수하는 리키야와는 성이 나쁜 모양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공격해도 통하지 않고 리키야에게 성희롱 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전원이 활력을 빨려서 지지부진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토가 히미코가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힌트를 준 덕분에 역전할 수 있었다. 다들 힘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지만 능력을 종합해 리키야를 지면으로 떨어뜨리고 아예 지반을 붕괴시켜 역전과 미도리야 일행과 합류를 한 큐에 성공. 이후에 빌런연합의 개입을 눈치채지만 황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받지 않는다의 행동을 보였지만 미도리야, 밀리오, 나이트아이가 죽어도 에리를 구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보이면서 의식이 바뀐다. 자기 때문에 남들이 죽고 다치기를 원치 않는데서 나아가 자신이 남을 돕고자 생각을 바꾼 것. 본래 개성은 대을 "되감는 능력"으로 오버홀의 수복 능력의 위호환이다. 어린 탓에 제대로 컨트롤을 못해서 스스로 의지로 쓰지도 못하고 불현듯 발동해 아버지를 태어나기 전 태로 "되감아"버리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모친인 두목의 딸에게 "저주받은 아이"로 불리며 버림 받았지만 두목에게 거둬졌다. 두목은 오른팔격인 오버홀에게 보호와 개성 규명을 맡겼는데 오버홀이 조직을 장악하고 연구를 악용해 지금에 이른 것. 한 번은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떨어지는 루밀리온의 망토를 보고 도우려는 마음을 각성, 그와 함께 뿔에서 능력이 발현해 네모토 신과 융합한 오버홀의 태를 이전으로 돌린다. 그리고 망토를 뻗어서 미도리야가 붙잡고 올라오도록 돕는다.
          원래 두목에게서 에리의 보호와 개성규명을 부탁 받았는데 배신하고 그 능력을 악용해 지금의 사업을 꾸렸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무자비한 학대와 인권유린은 덤. 자신을 믿고 에리를 부탁한 두목을 배신하기도 했다. 조직을 두목의 뜻과 다르게 이끌기도 했으니 두 번 통수를 친 셈. 미도리야에게서 선수쳐서 에리를 다시 빼앗지만 에리가 루밀리온의 망토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눈뜨면서 개성이 발동, 네모토 신을 흡수했던 태를 되감아 다시 분리시켜 버린다.
  • 맥스 페인 . . . . 23회 일치
         2008년 화판도 있다. 평가 시망.
          * 왼쪽 아래의 사람 모양으로 생긴 것은 맥스의 [[체력]]이다. 체력이 붉게 차버리면 맥스는 죽는다. 화염과 접촉하면 체력 관 없이 불춤을 추며 죽으니 주의. 돌아다니다가 주울 수 있는 [[진통제]][* Tab이나 백스페이스로 사용함.]로 체력을 천천히, 약간씩 회복할 수 있다. 진통제의 소지 유무와 수는 체력 옆에 표시된다. 총 8개 까지의 진통제를 소지 가능.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자 부수는데나 쓰자. 가스통 부수는데는 쓰지 말고.
          근접샷 제대로 먹으면 맥스도 한방에 널부러지니 주의하자. 펌프를 당기는 속도가 예 외로 느린 편이라 슛닷지를 하며 한번밖에 못 쏜다. 장탄수 7발이며 한발씩 장전한다.
          펌프를 당기지 않기에 펌프액션 산탄총보다 연사력이 좋다. 다만 2라는 조루 장탄수가 문제. 불릿타임을 사용하는 순간 자동으로 장전되기 때문에 황에 따라서는 펌프액션보다 좋다.
          장탄수 50발. 연사속도가 빨라 탄막을 형성할 수 있다. 대가 잉그램을 들고 있으면 당히 무섭다.
         현대의 뉴욕, 경찰이 모여드는 마천루 꼭대기에서 저격소총을 든 남자가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회한다.
          Max Payne. 뉴욕시경 형사. 아내와 갓난아기 딸이 마약 "발키리"의 중독자들에게 살해당한 후 마약단속국에 들어간다. 가족의 몰살에 연루된 마약 "발키리"의 제조원을 찾아 갱단에 잠입해 잠복 수사를 벌지만 동료 형사인 알렉스 볼더와 접촉하던 중 의문의 총격으로 볼더가 사망. 경찰에 의해 범인으로 몰린다. 설으로, 잠입하고 있던 갱단에게도 형사라는걸 들켜 모두에게 쫓기는 처지가 되었다. 이 와중에서도 볼더를 죽이고 발키리를 유통한 범인을 찾아 족치기 이해 이곳 저곳을 누빈다.
          Jack Lupino. 펀치넬로 패밀리의 언더보스. 매춘, 마약매매, 청부살인을 밥줄로 삼고있다. "발키리"를 밀거래하고 있었기에 맥스가 펀치넬로 패밀리에 잠입수사를 벌이는 이유가 되었다. 뇌가 벽에 튀긴 모습을 보려고 사람을 쏠 정도로 미쳐버린 태로 펀치넬로 또한 이를 알고 있어서 개선하지 않으면 트리오를 보내겠다고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루피노는 인신공양을 할 정도로 미쳐버렸기에 효과가 없었다. 라그나록에 쳐들어 온 맥스를 죽이려고 했지만 맥스에게 죽는다. 맥스는 루피노가 죽은 후에도 그에게 총을 쏜다. 더블배럴 샷건과 화염병으로 무장했기에 짜증난다. 화염병 작작 던져라.
          Finito Brothers. 조이 피니토(Joey Finito)와 비르질리오 피니토(Virgilio Finito). 누가 조이이고 누가 비르질리오인지는 모른다. 루피노 휘하의 부하들로 매춘이 벌어지는 낡은 호텔을 경하고 있다. 경찰의 잠입수사 요원이라는걸 들킨 맥스를 죽이려고 했으나 맥스에게 역으로 죽는다.
          Rico Muerte. 펀치넬로 패밀리의 구성원. 맥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일반적인 [[유주얼 서스펙트|카이저 소제]]"[* a regular Keyser Soze]. 시카고에서 일을 망친 후에도 펀치넬로 패밀리가 빼낸 걸 보면 나름 중요 인물로 보인다. 유사성행위 대에게 웃으면서 사람 죽인 이야기를 하는걸 보면 제정신은 아니다. 바에서 캔디 던에게 [[펠라치오]]를 받던 중 맥스가 난입하자 바지를 올리지도 못하고 도망가다 죽는다. 잉그램을 쏴갈기며 도망가기 때문에 무섭다.
          Trio. 안젤로 펀치넬로의 경호원들. 펀치넬로 마피아들 사이에서 겁나 무서운 대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펀치넬로 저택에 쳐들어온 맥스를 죽이려고 하지만 역으로 죽는다.
          Frankie "The Bat" Niagara. 펀치넬로 패밀리의 구성원. 모나가 먹인 약탄 위스키에 기절한 맥스를 의자에 묶어놓고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팼다. 펀치넬로 패밀리에 손해를 입힌 맥스를 개처럼 죽이라는 명령에 따른 것.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러 바에 간 사이 탈출한 맥스에 의해 죽는다. 사용하는 무기는 듀얼 잉그램.
          미 육군이 연구한 "발할라 계획"의 산물로, 1991년 처음 만들어졌다. 제작 목적은 병사들의 체력과 사기를 향시키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불만족스러운 성과를 내 1995년에 발할라 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다. 그럼에도 니콜 혼을 비롯한 몇몇은 허가 없이 실험을 계속했으며, 정량의 두배를 투여한 실험체들을 도시에 풀어 맥스의 가족들을 죽이기도 했다.
          Ragna Rock. 잭 루피노의 개인 나이트클럽. 오래된 극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맥스의 말로는 "마약굴"[* A den of drugs]이라고. 내부 인테리어가 당히 기분 나쁘다. 이름의 유래는 [[북유럽 신화]]의 세의 종말인 [[라그나로크]].
          Casa di Angelo. 안젤로 펀치넬로가 운하는 레스토랑. 블라디미르와의 거래로 무기를 확보한 맥스가 펀치넬로와 만나기로 한 곳이었지만, 펀치넬로는 카사 디 안젤로 전체에 휘발유를 끼얹은 후 맥스가 오자 불을 질러버린다.
         [[http://store.steampowered.com/app/12140/|스팀 점 페이지]]
  • 모레아 전제국 . . . . 23회 일치
         현재의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지역에 있었던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국이다. 이 지역은 본래 전통적으로 비잔티움의 유럽 방면 토였으나, 통치력이 잘 미치지 않아 독립성향이 강했고 [[제4차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이 지역에 세워진 '아카이아 공국'의 향으로 비잔티움의 봉신국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성장으로 트라키아와 발칸 반도 북부가 오스만의 지배 하에 넘어가면서 수도 콘스탄티노플과의 육교통이 단절되어 '위요지'가 되었다. 하지만 위요지라고는 해도 모레아는 토, 인구 면에서 도시국가 수준으로 전락한 콘스탄티노플보다 훨씬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 사실 제국의 핵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이 지닌 정치적, 종교적 징성 탓에 모레아 전제국은 어쩐지 무시당한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제국의 토가 사실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을 지배하는 도시국가' 수준이라고 아예 무시(…)하고 설명하거나, '모레아도 공격받았다. 모레아도 망했다.'는 식으로 고작 한 줄 남짓 언급되는 등.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전후한 시기를 살펴보면, 모레아의 역사는 제국의 마지막 저력과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모레아 전제국은 '팔레올로고스 르네스'를 이룩하여 제국 최후의 광을 빛냈으나,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에도 정치적, 종교적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대적으로 다민족화된 비잔티움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그리스 인]]의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잔티움 멸망 이후 그리스 독립 전쟁의 시작도 이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제4차 십자군]] 시기 이 지역에서는 '아카이아 공국'이 세워졌다. 아카이아 공국은 [[니케아 제국]]과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포로로 붙잡힌 기욤 2세는 콘스탄티노플 탈환 이후 토를 할양하고 풀려났다. 비잔티움 제국은 펠로포네소스 토에 케파리(군정관)을 두고 이들에게 펠로폰네소스 방면의 전권을 위임했다. 케파리는 연단위 임명이었지만 이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종신 임기가 되었고 팔레올로고스 황족이 부임하게 되었다. 토가 확장되면서 지역을 다스리는 멜리키 케파리와 전역을 다스리는 카소리키 케파리로 분화된다.
         === 팔레올로고스 르네스 ===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광'''||
         모레아는 제국의 다른 지역처럼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받거나 전염병의 유행으로 타격을 입기도 했으나, 코린토스 지협으로만 본토에 연결되고 이 지역에 건설한 [[헥사밀리온]] 성벽 덕분에 방어가 쉬워 제국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대적으로 안전한 편이었다. 모레아는 아카이아 공국 세력을 몰아내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모레아의 전제공들은 코린토스 지협에 건설되었던 [[헥사밀리온]]을 수복하고, 내정을 보살폈으며 [[알바니아]] 인을 이 지역에 이주시키기도 했다. 모레아 지역은 인구가 늘어나 요새였던 미스토라스는 도시화 되었고,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이룩했다. 1428년 취임한 전제공 콘스탄티누스(후의 [[콘스탄티누스 11세]])는 파트라를 점령하고 아카이아 공국을 완전히 축출했다.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모레아는 '팔레올로고스 르네스'라고 불리는 문화적, 경제적 부흥이 일어났다.
         1446 년 11월, [[무라트 2세]]의 침공으로 [[헥사밀리온]]이 파괴되어, 모레아는 오스만에 유린되었다. 제국 말기에 반짝했던 모레아의 발전과 팔레올로고스 르네스는 여기서 한계를 보이고 만다. 1448년 10월 황제 요하네스 8세 파레올로고스가 사망하고, 콘스탄티누스 전제공은 비잔티움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로 선출되어, 1449년 1월 모레아의 수도 미스토라스에서 황제로 즉위하고 콘스탄티노플로 떠난다.
         모레아는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떠나고, 후임으로 동생 드미트리오스와 토마스, 두 명의 전제공의 공동 통치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 두 명은 개인적으로 사이가 나빴고, 정치적으로 드미트리오스는 친 오스만, 토마스는 친 라틴, 종교적으로 드미트리오스는 동서교회합동반대, 토마스는 합동찬성파였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대립하였다. 일단 오스만의 위협에 대항하여 1453년 메흐메트 2세의 공격을 공동 작전으로 격퇴하기도 했지만.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이후 모레아는 유일한 비잔티움 제국의 잔존 토로 남게 된다. 그러나 두 전제공의 대립, 토 내 토착민과 알바니아 인 등의 대립, [[베제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의 간섭으로 위태롭게 된다. 1453년 가을에는 알바니아 인이 반란을 일으키고, 1458년에는 오스만 군이 침공을 벌였다. 심지어 토마스가 부하 유력자들에게 떠밀려서 드미트리를 공격하고,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인 가운데 두 전제공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참사가 발생한다.
         이러한 황을 놓치지 않고 메흐메트 2세는 모레아에 친정하여, 1460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 7년 만에 수도 미스토라스가 점령되고, 그 해 여름까지 반도의 거의 전역이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어 모레아 전제군주국은 멸망한다. 드미트리는 오스만 제국에 복속하였고, 토마스는 이탈리아로 망명하였다. 모레아의 그리스인은 산악 지역이나 해안 지역에서 저항하거나, 이 당시 모레아 각지에 거점을 가지고 있던 [[베네치아 공화국]]에 투항하였고 베네치아 공화국은 그리스 인 군단을 편성하여 오스만에 저항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거점들 마저도 오스만-베네치아 전쟁에서 궤멸하면서 그리스는 베네치아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코르푸를 제외한 모든 지방이 오스만의 지배하에 들어서게 됀다.
  • 몬스터 페어런트 . . . . 23회 일치
         몬스터(괴물)과 부모(페어런트)의 합성어. 학교에 자기중심적이고, 비식적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부모를 뜻한다. 기본적으로 교사에게 직접 클레임을 하지만, 교장, 교육청, 지자체 등 권한이 강한 부서에 클레임을 하여, 간접적으로 교사와 학교에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 교육문제 때문에 학교와 협을 할 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공표하겠다고 하는 등 협박을 가한다.
         몬스터 페어런트의 출연으로 협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게 되어,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업무에 방해를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개별 교직원이나 학교 단위에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교육위원회에서 이러한 문제에 지원을 하는 전문 팀을 구성할 것이 제언되었다.
          * 대는 평범한 인간이며, 항 몬스터인 것이 아니다. 몬스터화한 사람의 피해를 입은 사람도 언젠가 자신이 몬스터화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 대가 트집잡아서 해오는 요구를 액면 그대로 파악하지 말고, 대가 실제로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파악하도록 노력한다.
          * 일대일로는 대응하지 않는다. 반드시 세한 기록을 가지고 가능한한 대화를 녹음한다. 대화에 맞장구 칠 때는 결코 대의 말에 동의하는 듯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몬스터 페어런트의 자녀로서, 부모의 향을 받아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부모에게 주로 의지하며 교사에게 반항적이고 위협적,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를 몬스터 칠드런(モンスターチルドレン)이라고 부른다. 기존의 반항기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고생 시기에 많았다면, 몬스터 칠드런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반항적인 경향이 많다고 말해진다.
         예를 들어 집단 괴롭힘 문제를 담하는 변호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가 집단괴롭힘을 당해서 학교에 담을 했는데,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몬스터 페어런트 취급을 당했다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기사]
         2010년 9월 사이타마 현의 시립 초등학교 여교사가 담당하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의 부모가 식을 벗어난 항의를 해와서 불면증이 되었다고 500만엔의 손해 배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사건이 있었다.
         발단은 같은 해 6월, 피고의 딸이 다른 아동을 걸레로 때리는 문제가 발생. 교사가 문제를 중재하면서 수업 시간에 피고의 딸과 대 아동 가운데 어느 쪽이 나쁜지 다수결로 결정하게 하여, 피고의 딸이 나쁘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결과가 나오자 대 아동에게 사과를 강요했다는 사건이다.
         이후 피고인 어머니로부터 항의를 받고 호연락책에 "최저의 선생","비식","악마"등의 발언을 쓰고, 교육위원회와 교육부에 비판하고 책임을 요구했다. 다른 날에는 교사가 급식지도중에 피고 아동의 등을 가볍게 만진 것 만으로 폭행 혐의로 경찰서에 피해를 신고하였다. 교사와 학교 측은 대화를 가지고자 했지만 부모는 참석을 거부했고, 교사는 이 때문에 불면증에 몰렸기 때문에 제소를 단행하였다.
         한편, 피고의 부모는 학교 측과 언론 보도에 불만을 품고 반박을 하였는데, 연락장의 문구 내용은 아무리 써도 답변이 없고, 학교에 전화를 해도 끊어버려서, 교육위원회에 담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폭행에 대해서는 딸이 선생님이 등을 때렸다고 호소했지만, 교사는 허리를 가볍게 만진 것 뿐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교장도 받아들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경찰에 담했지만 피해 신고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건으로 불만을 품은 부모는 딸에게 IC레코더를 항 소지하고 있도록 지시하고, 10월에는 교사가 갑자기 반 아이들 전원을 기립시켜서 "거짓말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까지 전원이 선 채로 수업을 받도록!" 지시하고 사과를 강요하는 사건까지 있었으며, 이후로 딸은 신발을 버려지는 등의 괴롭힘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언론의 취재에 녹취록을 공개하였다.
         2013년 2월에 사이타마 지방법원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원고 측 교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연락장에 써진 문구는 교사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을 포함하지만, 연락장은 비밀 유지 의무 있는 교직원으로 제한되어 있으므로 불특정 다수에게 내용이 전파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악마 같은 선생"이라고 써진 것은 "지독한 선생"과 같은 표현이므로 모욕은 성립하지 않아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내렸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23회 일치
          바실레이오스 1세 '마케도니아인'[* 참고로 그는 혈통 마케도니아랑 아무 관이 없다(...) 이런데도 이렇게 불린 이유는 후술.], Βασίλειος Α΄ο Μακεδών[* 현대 그리스어로는 '바실리오스'라 읽는다.], Basil I 'the macedonian'
         아무튼간에 그는 미카엘밑에서 일하게 되었고, 얼마안가서 시종장 디미아누스가 해임되고 난뒤 그의 후임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황제의 절친한 친구로 지내게 되는데, 여기서 그와 미카엘사이에 살짝 사이에 금이 가는 조치가 내려진다. 바실레이오스는 그의 전처인 마리아와 강제로 이혼하고 미카엘의 정부였던 에우도키아와 재혼하게 된것이다. 이는 유도키아를 다시 황궁안에 들여놓기 위해 미카엘이 취한걸로 보이며, 이걸로 인해 당한 논란을 낳게 되나, 이는 후술하도록 한다. 이후로 황제는 에우도키아의 보으로 자신의 누나 테클라를 바실레이오스의 정부로 주기 까지 한다.
         이후 바실레이오스가 미카엘과 절친해지면서 점점 더 큰 향력을 행사하자, 당시 실권자였으며 사실 후계자로 점찍혔던 황제의 외삼촌 바르다스와 바실레이오스와의 관계는 나날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처음에 바르다스는 바실레이오스를 그저 변방 촌뜨기로 보고 무시했었으나, 점차 그가 미카엘과 친해지자 자신의 위치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실레이오스도 바르다스가 제위에 오르면 자신이 밀려나리란것도 예하고 있었고, 이에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후 바실레이오스는 미카엘과 사이가 점점 벌어지는데, 미카엘이 국정에 흥미를 읽고 전차 경주나 술에 열중해 있었고, 에우도키아 문제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건 바실레이오스의 야망이 단순한 공동황위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을것이다. 결국 867년에 바실레이오스는 미카엘을 암살하고 단독 황위에 오른다
         단독 황위에 오른 바실레이오스는 적극적으로 제국의 고토를 되찾으려 했는데, 그 중 하나인 남이탈리아의 장악을 위해서는 교황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그걸 위해서 그는 우선 서방과 사이가 좋지못했던 포티우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해임하고, 그의 정적이었던 이그나티우스를 새로운 대주교로 임명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에 공의회를 열며, 포티우스를 해임했다는 소식을 교황에게 전하는데, 당시 교황이던 히드리아누스 2세는 황제의 해당 행위를 회개의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포티우스 분열]]을 일으켜 동방과 서방교회의 관계를 험악하게 만든 포티우스를 처벌하게 만들기 위해 사절을 보낸다.
         같은해 2월, 제국은 프랑크 황제 루트비히 2세의 서신을 가지고 왔다. 그는 2년전에 사라센이 장악하고 있던 남이탈리아의 바리를 공격했는데,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바실레이오스는 그에게 해군함대를 보내 지원해주겠다고 하면서 그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와 딸 헤르밍가르데의 결혼도 제의한다. 루트비히는 우호적인 답신을 보냈고, 869년에 니케타스 제독을 지휘관으로 한 제국의 함대가 바리를 향해 출항한다. 그러나 니케타스는 프랑크군이 군기가 형편없는 모습을 보고 경멸을 감추지 못했고, 루트비히에게 '프랑크 왕'이라고 한단계 낮춰부르기까지 했다. 결국 두사람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니케타스는 함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버린다. 이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사절을 보낸것이다. 자칫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황이었으나, 루트비히가 베네벤토를 공격하다가 그곳 공작의 포로가 되어 베네벤토를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다고 복음서에 맹세를 한 굴욕을 당해 어느정도 조용해졌다.
         이후 그는 건축사업에 착수하는데, 우선은 성 소피아 성당과 성 바울 성당을 보강했고, 이후 '네아 바실리카'라 불리는 그의 걸작품인 성당을 축조한다. 이 성당은 바실레이오스의 성 소피아 성당이라 할 수 있는데, 금을 입힌 돔은 도시밖에서도 보였고, 내부를 들여다보면 돔내부에는 예수의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으며, 그외에 천사, 대천사, 순교자, 사도 등등이 묘사된 모자이크가 실내 곳곳을 장식했다. 성 칸막에는 금은과 보석들이 장식도 있었고, 주제단은 '금보다 더 귀한 금속으로'장식되 있었다고 하며, 은을 입힌 닫집 기둥[* 중간을 오목하게 파서 장식한 기둥]이 성당주위를 둘렀다. 그외에도 그는 금고와 목욕탕, 트리클리니움[* 침이 구비된 식당]을 많이 지었으며 칼케대문과 도시의 수많은 궁전들을 보수하고 일일이 장식했다. 말그대로 그의 치세에 도시는 전성기를 열었다.
         본래 바실레이오스는 전처인 마리아사이에서 태어난 콘스탄티노스를 아끼고 후처인 에우도키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인 세아들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특히 그들중 차남인 레온은 특히나 싫어했는데, 이러한 면모는 아마도 그가 레온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전임황제 미카엘의 아들로 의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레온 본인도 바실레이오스가 죽고난뒤, 미카엘의 명예를 복원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그에게 있어서 남은건 사냥뿐이었다. 그의 죽음도 사냥사고라고 사서에 알려져있는데, 문제는 해당 사고에 대한 설명이 당히 이해하기어렵다. 그의 죽음에 대해 설명한 사서에 따르면, 그는 수행원들이 '지쳐서'그를 따라가지 못할때 혼자 숲 깊숙한 곳에서 사냥중이었으며, 그러던중 한 사슴을 만난다. 황제가 그 사슴을 잡으려 할때, 그 사슴이 황제에게 돌진해 뿔로 그의 허리띠를 걷어 그를 안장에서 내쳤다. 그리고 그사슴은 장장 25km를 황제를 건채로 다니다가(...) 황제를 찾은 경호병이 허리띠를 잘라버리고 수행원들이 모여들자 도망쳐버렸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로썬 낙제점중에 낙제점이었는데, 차남 레온이야 그의 아들이 아니란 의혹이 있으니 그렇다치더라도, 나머지 에우도키아의 탯줄에서 난(자신의 아들이 확실한) 두아들들까지 미워하고 싫어했고, 오로지 전처인 마리아 사이에서 난 콘스탄티노스만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후 레온 다음에 왕위에 오른 알렉산데르의 막장짓은 어찌보면 어릴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게 컸을것이다.
         paradox interactive사의 시뮬레이션 게임인 [[crusader kings 2]]에서도 등장한다. 그의 힘을 나타내기위해서인지 '강인함'특성이 붙어있으며, 그외에 야망, 기만적, 용감함 등 그의 생애를 잘요약한 특성들이 붙어있다. 처음 능력치는 크게 좋지는 못하나, [* 오죽하면 숙련자들은 발칸반도밖에 토가 없지만 사기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있는 알렉시아드 시나리오가 더 좋다고 할까(...)] 전쟁터에서 굴려주면서 성장시키먼 당히 높은 능력치가 되준다. 다만, 시스템 비잔티움은 황제가 되고 난뒤에 태어난 아이인 '자주색 혈통'특성을 가진 후계자가 우선 속하기에, 십중팔구 콘스탄티노스가 살아있어도 레온이 황위에 오른다(...)
  • 블랙 클로버/126화 . . . . 23회 일치
          * 어린시절 [[핀랄 룰러케이트]]는 부모님의 냉대와 매도를 당하며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동생 [[랜길스 보드]]는 형이 경쟁대 조차 못 된다고 여겼다.
          * 하지만 피네스는 그의 냥한 면모를 좋아했고 동생만 못하다고 자학하는 그를 격려해주었다.
          * 랜길스의 E팀은 1회전처럼 [[셋케 브론자차]]의 청동마법으로 접근해 랜길스가 공격을 가하나 핀랄이 공간마법을 공간마법으로 쇄하며 제압한다.
          * [[레오폴드 버밀리온]]과 [[하몬 카세우스]]는 E팀의 크리스탈을 지키는 [[프라길 토르멘타]]를 급습하나 함정 마법에 걸려 대치하는 태가 된다.
          * "피네스"양이 나타나면서 형제싸움은 전혀 다른 양이 된다. 피네스 양은 아버지가 점찍은 며느리감이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피네스양을 형제에게 소개했다. 차기 보드가 당주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면서. 그녀는 형제보다도 연이었고 지병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기준에선 문제가 없었다. 그녀가 유서 깊은 마력을 계승한 사람이라는게 중요했다.
          얼마 뒤 랜길스는 형과 약혼자가, 피네스가 함께 있는 걸 목격한다. 정원의 벤치에서였다. 피네스가 핀랄에게 "병들고 연인 이런 여자가 약혼자라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시절 핀랄은 아직 여자가 서툴렀는지 우물쭈물대며 "그렇지 않다, 당신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조하는 웃음과 함께 자기 처지를 말했다. 자신은 보드가 당주가 되지 못할 거고, 동생 랜길스가 피네스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얘기였다.
          >당신은 정말로 냥하신 분이에요.
          저 시시한 여자가 나를 형보다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랜길스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그때까지 경쟁 대 조차 못 된다고 생각했던 돼먹지 못한 형이, 우등생 동생이 확실히 짓밟아야할 대로 재인식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핀랄이 끝내 가문을 등지고 나가버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 핀랄이 속한 E팀은 크리스탈을 중심으로 세 명이 밀집해 있었다. G팀은 1회전에서 써먹은 전법을 다시 들고 나왔다. 랜길스가 [[셋케 브론자차]]의 청동마법 탈것에 타고 맹렬한 속도로 접근 중. [[레오폴드 버밀리온]]이 전방에서 나타난 적을 확인했다. 레오폴드는 1회전에서 보여준 랜길스의 공격형 공격마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대처를 핀랄에게 일임했다. 작전이 있었다. 랜길스는 1회전에서 했듯 크리스탈이 적당한 거리에 들어오자 공간마법을 날렸다. 그리고 핀랄이 작전의 1단계를 실행했다. 랜길스가 던진 공간마법이 핀랄이 펼친 공간마법과 부딪혀 사라졌다. 한 방에 게임을 끝내겠다 자신했던 랜길스가 표정을 구겼다. 하지만 방금 전 황은 속임수도 요행도 아니었다. 핀랄은 고브를 통해서 "공간마법과 공간마법이 부딪히면 소멸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핀랄이 있는 한, 멀리서 공간마법으로 쉽게 이기는 일은 없다.
          * 이제 작전 2단계. [[하몬 카세우스]]가 시합장 전역에 유리마법 "벨 디텍션"을 펼쳤다. 시합장 구석구석에 거울이 깔리고 거기 맺힌 들이 반사를 거듭해 하몬에게까지 전해졌다. 시합장을 손바닥 보듯 할 수 있는 탐색 마법. G팀의 세 번째 멤버 [[프라길 토르멘타]]가 탑 안에 숨어있는게 보였다. 크리스탈을 지키고 있었다. 핀랄이 공간마법으로 탑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다. 핀랄이 랜길스의 공격을 막는 동안 레오폴드와 하몬이 공격, 이것이 작전이다. 지금까지는 매우 순조롭다. 하지만 레오폴드와 하몬이 탑 안으로 들이닥치는 순간 함정이 발동했다. 프라길 또한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는 성미는 아니었다. 그녀는 방 전체에 눈 마법 "환설의 정원"을 발동시켰다. 일종의 환각마법으로 대의 감각을 조종해 강제적으로 잠들게 하는 마법이다. 그녀는 이 마법의 사정거리 안에서 자신을 공격하는게 불가능하다고 장담했다.
          * 하몬은 그 장담대로 일찌감치 쓰러졌다. 하지만 레오폴드는 조금 더 질겼다. 그는 마나스킨을 펼쳐 저항하는데다 그 와중에도 불꽃마법 "나선염"으로 반격을 가했다. 프라길이 크리스탈과 함께 가까스로 피하긴 했지만 크리스탈에 손이 갔다. 보통 이으로 날카로운 감각. 프라길은 오래는 못 버티겠다고 생각했다.
          * 반면 랜길스 쪽은 볼일이 길어질 모양이다. 핀랄이 기대이으로 잘 막고 있었다. 랜길스가 날리는 공간마법을 자신의 마법으로 족족 지워버리며 크리스탈에는 손끝 하나 닿게하지 않았다. [[마법제]] 또한 공간마법 공방은 쉽게 볼 수 없다며 둘의 기량을 칭찬했다. 항 형을 깍아내리던 랜길스 조차 "형이 천적이 될 줄은 몰랐다"고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우세한건 여전시 자신 쪽이라 확신했다. 이쪽은 얼마든지 공격을 날릴 수 있지만 핀랄은 한 방이라도 놓치면 그걸로 끝. 과연 언제까지 막고 있을 수 있을까?
          * 셋케가 "시시하고 시원찮은 마법"이라며 그런게 물이 오른 자신에게 맞겠냐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탈것의 궤도를 살짝 비틀어 가볍게 회피,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뒤에 탄 랜길스는 비켜나간 마법이 반원을 그리고 뒤따라 오는걸 볼 수 있었다. 호밍 기능.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랜길스가 셋케를 버리고 뛰어내렸다. 셋케는 조금 늦게 눈치챘지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방어마법 "셋케매그넘 캐논볼"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럴 거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마법이 닿는 순간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건 랜길스 조차 예치 못했던 공격. 하지만 이걸 시전한 핀랄은 스스로를 안스럽다고 자조했다.
          >마력 향으로 머리 모양이 바뀔 정도로 특훈을 했는데
          * 공간마법 "타천사의 날개짓". 핀랄이 머리 모양이 바뀔 만큼 특훈을 해서 얻은 신 마법. 닿은 대를 강제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마법이다. 후배인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헌팅한 하고 다닌게 아니었다"며 환호했다. 핀랄은 또 한 번 타천사의 날개짓을 준비했다. 그의 냥한 성격은 동생을 다치게 할 "공격 마법"을 쓸 순 없었지만 단지 멀리 옮겨 버리는 거라면 못할 리 없었다.
          >나는 너를 처입히고 싶지 않아.
          * 랜길스에게 심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게 그때부터 였다. 랜길스가 펼쳐지는 어떤 마법 때문이었다. 그는 시합이 시작된 이후 한 번도 그리모어를 펼치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지금 막 열리고 있었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23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두 번에 걸친 블랙 태 발동과 부 덕에 [[미모사 버밀리온]]의 백업을 감안해도 오래 싸울 수 없는 태였다. [[랜길스 보드]]의 맹공이 끝날 줄을 모르고 크리스탈도 점점 파괴되면서 패색이 짙어진다. 항 아스타를 신뢰하던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우려를 금하지 못한다. 아스타는 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 번째 블랙 모드를 쓰려했다. 원래 하루에 발동할 수 있는 한계는 두 번. 세 번째는 유노와 결승전에서 쓰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황이 됐다. 그마저도 한숨 돌릴 타이밍이 필요해 지금처럼 숨도 쉴 수없는 황에선 도저히 기회가 없다. 그때 아스타는 다름 아닌 [[잭스 류그너]]에게 도움을 청하며 발동 자세로 들어간다. 아스타의 요청이라면 들은 척도 안 하던 잭스였으나 "저 자식(랜길스)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응해준다"며 아스타의 앞을 막아준다. 하지만 그가 도와준다는걸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아스타의 태도를 보며 먼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입맛이 쓰다.
          * 잭스는 그렇게 일갈하며 마법진을 펼쳤다. 하지만 랜길스는 "나야 말로 진정한 마법기사"라며 잭스의 마법진을 간단하게 우회해 잭스를 직접 공격한다. 하지만 그거야 말로 함정. 진짜 마법진이 설치된건 잭스 자신의 몸이었다. 간단해 보이는 트릭이지만 본래 자기 몸에 마법진을 설치하는건 자해하는 거나 다름없는 도박.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대체 잭스가 누구인지, 뭐하는 작자인지 경악스러워했다. 잭스가 날려버린 적들은 항 그랬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준비돼있었다.
         == 세 ==
          멀쩡해 보였지만 원래 블랙 태는 하루에 두 번이 한계인데다 부도 입어서 정 태가 아니었다. 세 번째 블랙 모드는 유노를 위해서 아껴놨다고 하는데 원래도 두 번밖에 못 쓰는 거였으니 엄청 무모한 생각이었다. 랜길스의 맹공을 막을 수 없어 결국 세 번재 블랙 모드를 쓰려고 하는데 타이밍이 나지 않아 잭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린시절 모습이 공개됐다. 당시 12세. 진짜 이름은 "조라 이데아레". 다만 자신은 그 정체성을 버린 듯 하다. 지금 모습은 아버지가 어릴 적 만들어준 히어로 인형 "슈퍼 마도사 조라"에게서 따왔다. "입은 거칠지만 한 말은 반드시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웅"이란 설정이다. 조라가 내성적이고 친구도 없는걸 걱정한 아버지가 "꼭 이렇게 될 필욘 없지만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봐라"는 격려의 의미에서 만들어줬다. 실패가 많지만 항 노력하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전장에서 허무하게 죽으면서 크게 낙담한다. 그런 태에서 아버지의 동료라고 믿었던 마법기사들이 실은 아버지를 매도하고 아니꼬와하고 있었으며 전장에서 봉사하던 아버지를 팀킬했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자 정신줄을 놔버린다. 이후 슈퍼 마도사 조라의 모습을 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마법기사들을 응징하고 다녔다. 지금 이름인 잭스 류그너도 실제론 인간말종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박살내고 그 이름을 빼앗았다. 로열 나이츠 시험에 난입한 것도 마법기사들을 박살내려주려는 의도였던 듯. 아버지가 동경하고 있었던 마법기사의 이미지를 아직도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으며 마법기사들을 싫어하는 것도 그런 아버지의 이에 맞지 않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해서다.
          랜길스를 대로 마법진을 펼치나 랜길스는 간단하게 우회, 잭스에게 공격을 명중시키나 그것 자체가 페이크. 진짜 함정마법진은 자기 몸에 설치해놨다. 마르크스는 그런 짓을 하는건 자신을 공격하는 거나 다름 없다고 경악해 하는데 이런 독한 짓을 하는건 그 말고는 없었는지 보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경악한다. 함정마법은 반사 마법이었고 랜길스의 공간마법들이 몇 배로 커져서 반사된다. 랜길스의 공간마법에 맞았을 땐 "오늘 처음 나에게 공격을 성공시켰다"며 축하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확실히 2회전에서 구덩이 파느라 개고생하긴 했지만 공격에 맞은건 처음.
          조라에게 이름을 빼앗긴 진짜 잭스 류그너. 자줏빛 범고래의 부단장으로 겉으로는 "여빙의 성자"라고 불리고 있지만, 이면에선 부녀자를 납치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악당이었다. 처음 등장했을 땐 인망과 명성이 자자하다는 설명에 로열 나이츠 시험장에 가던 길에 우연히 잭스랑 마주쳐서 박살난 것처럼 보여서 불쌍한 놈 취급이었지만 진이 공개되자 인간쓰레기가 됐다. 조에라는 마을에서 어떤 소녀를 납치해놓고 가족들이 돌려달라고 애원해도 대도 해주지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왕도까지 찾아와 매달리자 종자가 "기사님이 피곤해하신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돌아가라고 윽박을 지르고 잭스 귀찮아하며 아예 죽이려 들었다. 잭스한테 재기불능으로 박살나서 참 다행.
          조라 이데아레의 아버지. 이름은 "자라 이데아레". 사용하는 마법은 조라와 비슷한 함정계통이었던 걸로 보인다. 이걸로 곧잘 아들에게 장난을 걸곤 했는데 기본적으론 냥하고 명랑한 아버지였던 듯. 마법기사를 나라를 지키는 웅들이라고 생각해서 자신도 마법기사를 목표로 노력했다. 입단에 여러번 탈락했으나 결국 성공, 마법기사가 되어 전장에서 활약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전사하고 말았는데, 알고보니 귀족인 동료들이 그를 아니꼽게 여겨 살해한 것이었다. 자라는 남을 돕는걸 중요하게 여겨 전장에서도 민간인을 구조하는 등의 활동을 했는데, 이게 귀족들 성미를 자극했던 듯. 애초에 하층민이 마법기사가 된 것 자체를 불만스럽게 여기는 자들도 있었다.
          억울하게 죽었지만 사실 굉장한 사람. 작중에서 "최초의 하층민 출신 마법기사"로 명시되어 있다. 마법기사는 귀족만 되는게 당연한 시절에 편견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는 말이니 당한 실력자였을 걸로 보인다.
  • 신은정 . . . . 23회 일치
         {{다른 사람|[[신은정 (화 감독)|배우|화 감독]]}}
         {{화인 정보
         | 출생지 = {{KOR}} [[경북도]] [[김천시]] 지례면 (도곡4길)
         | 자녀 = 슬하 1남 (아들 박우)
         | 수 =
         | 웹사이트 = [http://www.popeye-ent.com/artist/shin.html 뽀빠이엔터테인먼트 신은정]<br>{{싸이월드|41418822}}
         [[1992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으며, 5년 후 [[1997년]] [[서울방송|SBS]] 7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다. 이에 앞서 1994년 [[SBS]] 추석특집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주인공 심순애 역을 맡았으며, 그 외에도 [[SBS]] 《[[기쁜 우리 토요일]]》, [[KBS2]] 《토요일 전원출발》 객원 MC, HBS 드라마 《작은 웅들》, 시트콤 《둘 곱하기 하나》 등에 일찍부터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 [[2001년]] [[MBC]] 시트콤 《[[세 친구 (시트콤)|세친구]]》 ... [[윤다훈]]과 [[박면]]과 [[정웅인]]의 문화고등학교 1년 후배 신은정 역으로 특별출연
         * [[2004년]] [[MBC]] 일일연속극 《[[왕꽃 선녀님]]》 ... 강준
         * [[2014년]] [[tvN]] 금토드라마 《[[미생 (드라마)|미생]]》 ... 선지 차장 역
         * [[2017년]] [[SBS]] 드라마스페셜 《[[당신이 잠든 사이에 (드라마)|당신이 잠든 사이에]]》 ... 김주
         === 화 ===
         * [[2002년]] 《[[오버 더 레인보우 (화)|오버 더 레인보우]]》 ... 미 역
         * [[2007년]] 《[[두 얼굴의 여친]]》 ... 유리 언니, 희 역
         == 수 ==
         * [[2008년]] [[MBC 연기대]] 조연배우부문 황금연기
         * [http://popeye2010.cafe24.com/13sej.html 소속사 사이트]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 . . . . 23회 일치
         이 태에서 한번 더 공격하면 짓밟아서 축 늘어지게 한다. 아무리 봐도 죽은 것 같지만 살해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
         Hidden Blade. 무방비 태의 적을 죽이는 속도가 빨라 암살에 애용되는 무기. 플레이어의 양 손목에 설치되어있다. 두명이 나란히 서 있을 경우에는 동시에 암살할 수 있다.
          작고 붉은 나무통. 이걸로 대를 공격할 수는 없고 운반할 수만 있다. 총으로 쏘면 폭발한다. 보통 요새의 화약고를 파괴할 때 사용한다.
         모든 소모품은 점에서 사거나, 대번포트 농지에서 조합하거나, 적에게서 루팅하는 방법으로 획득할 수 있다.
         사용시 화살을 소모한다. 잡화점에서 10파운드에 살 수 있다. 활로 쏴 맞춘 대에게서는 화살을 회수할 수 있으니 참고할 것. 기본적으로 화살 8발 까지 소지할 수 있다.
         Rope Dart. 승표, 혹은 성뱌요라고도 한다. 설정 샤오 준이라는 암살단원이 중국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다트의 일종으로 밧줄이 달려 있어서 맞은 적을 끌어당길 수 있다. 사용자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적 대로 사용하면 목을 매달수도 있다. 끌어당기지 않아도 여기 맞은 적은 엎어진다. 예거를 대할 때, 로프다트로 엎어뜨린 다음 확인 사살 하는 방법으로 쉽게 대할 수 있다.
         Smoke. 화약과 백린을 섞어 만든 연막탄을 자기 발 밑에 던진다. 이로인해 생긴 연기 범위 안에 들어간 적은 한동안 콜록거리며 무력화된다. 카운터킬에 쓸 수는 있지만 연막탄 던지고 끝이므로 대 때려잡는건 직접해야한다.
         Trip Mines. 독일제 플라더미네(Fladdermine)에 감을 받은 감압식 지뢰. 플라더미네보다 작고 쓸만하다. 적이 일정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 폭발한다. 설치에 시간이 걸린다. 카운터킬에 사용하면 폭발한다.
         === 의 ===
         코너의 의.
          * 암살단 의(Assassin Outfit)
          시퀀스 5 The Hard Way 임무 이후 해금되는 의. 기본적인 암살단 복장이다. 염색할 수 있다.
          * 뉴욕 의(New York Outfit)
          * 볼티모어 의(Baltimore Outfit)
          * 보스턴 의(Boston Outfit)
          * 제임스타운 의(Jamestown Outfit)
          * 필라델피아 의(Philadelphia Outfit)
          * 찰스타운 의(Jamestown Outfit)
          * 암살단 의(Assassin Outfit)
          30 파운드. 세에서 제일 단단한 금속도 손볼 수 있다는 경화강으로 된 망치 대가리. 전문 대장장이를 위한 필수품이라고 한다. 대번포트 농지 임무인 The Proper Tools 임무 때 사게 된다.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23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나치 독일이 세을 지배하는 1960년을 다루고 있다.
         1946년, 나치 독일은 우월한 과학 기술로 연합군을 찍어누르고 있었다. 이는 나치 독일의 과학자이자 장군인 빌헬름 슈트라세, 일명 데스헤드의 업적이었다. 이에 연합군은 데스헤드를 제거하기 위한 특공대를 조직해 데스헤드의 본거지를 습격하지만 실패한다. 특공대원이었던 B. J. 블라즈코윅즈는 두명의 동료를 데리고 데스헤드의 본거지에 탈출하지만, 탈출 중 머리에 부을 입고 정신을 잃는다.
         1960년, 블라즈코윅즈는 폴란드의 정신병원에서 눈을 뜬다. 나치에 의해 학살의 장이 된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블라즈코윅즈는 나치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세을 지배한다는걸 깨닫는다. 블라즈코윅즈는 나치에 대항하기위해 레지스탕스 조직을 찾아 나선다.
          블라즈코윅즈를 보살피던 정신병원의 수간호사. 블라즈코윅즈와 함께 정신병원을 탈출한다. 폴란드 출신으로, 의사와 지식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고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전쟁 때문에 고고학을 배우는걸 그만두고 가업인 정신병원 운을 돕게 되었다.
          크라이슬라우 서클의 단원. 잉글랜드 출신으로 런던 남동부에서 빵집을 운했었다. 빵집이 폭격당한 다음주 국군에게 징집되었다. 국이 항복한 후 런던에 돌아와보니 아내는 죽어있었다.
          적을 은밀하게 처리할 수 있는 단검. Knife Throwing 퍽이 있으면 남는 단검을 던질수도 있다. 나무자를 부수는데도 사용된다.
          나치 사령관들이 사용하는 제식 권총. 단거리에서 경무장한 적을 대하는데 적합하다. 소음기를 장착할 수 있다.
          첫번째 챕터에서만 등장하는 무기. 미 육군의 제식 기관단총이다. 권총과 같은 탄약을 사용한다. 단거리에서 다수의 적을 대하는데 적합하다……고 한다.
          독일 육군의 제식소총. 단발과 연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중거리에서 다수의 적을 대하는데 적합하다.
          1946년 돌격소총의 강화형. 장탄수와 연사력이 향되었다. 중거리에서 다수의 적을 대하는데 적합하다. 총열 밑에 로켓발사기를 부착할 수 있다.
          조준경이 달린 반자동 소총. 먼 거리의 적을 대하는데 적합하다.
          거치되어 있는 기관총. 거치된 그대로 쓰거나 잠시 떼어내서 쓸 수 있다. 원히 가지고 다니는건 불가능. 거치될 시에는 무한탄창이지만 떼어내면 장탄수에 제한이 생긴다. 장탄수가 소진된 기관총은 거치대에 거치하는걸로 장탄수를 채울 수 있다. 실탄을 발사하는 1946년 버전과 레이저를 발사하는 1960년 버전이 있는데 1960년 버전은 얇은 철판을 뚫을 수 있다.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블라즈코윅즈의 능력을 향시키는 퍽이 해금된다.
          과충전 태에서 적 5명을 은밀하게 처형하면 해금. 처형시 체력이 회복된다.
          병사 50명과 캄프훈트 5마리를 은밀하게 사살하면 해금. 뛰어다닐때 나는 소음이 감소하며 수그린 태에서의 이동 속도가 증가한다.
          나치 독일의 거대 로봇. 런던의 평화를 유지하는 임무를 맡고있다. 레이저포와 미사일 발사기로 무장했으며 다리 밑으로 접근하는 적은 화염방사기와 기관총으로 대한다. 런던 지역에서 활동하던 국계 레지스탕스가 이 로봇에 의해 괴멸당했다.
          나치 독일이 달에 세운 기지. 트램도 운한다.
         [[http://neworder.wolfenstein.com/en-gb/|울펜슈타인 : 뉴오더 홈페이지(어)]]
  • 원피스/843화 . . . . 23회 일치
         [[원피스]] 843화. '''빈스모크 디'''
          * 루피 일행은 킹 바움을 이용해 이동하는데 이동 중에 루피는 소화가 끝나서 평소 태로 돌아온다.
          * 일행은 홀 케이크 성으로 향하던 제르마의 고양이 마차와 마주치고 디는 밀집모자 일행을 발견하고 크게 당황한다.
          * 루피는 반갑다고 무작정 달려가는데 인질과 동료의 안전을 생각한 디는 폭언을 내뱉으며 루피 일행을 내쫓으려 한다.
          * 성에는 "귀가명령"이 내려진 태였지만 긴급경보와 함께 크래커의 패배가 빠르게 전파된다.
          * 루피는 디가 결혼식을 올리면 빅맘의 동료가 되는 거라고 말하고 나미는 오늘 빈스모크가가 입성할 거라고 말한다.
          * 루피는 킹 바움에게 자신들을 성으로 옮기라고 명령하며 디를 꼭 탈환하겠다고 다짐한다.
          * 캐럿이 디를 되찾으면 이 거울로 연락하라고 말하던 중 갑자기 거울조각이 깨져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다.
          * 나미가 통화하던 사이 잠들어 있는 루피는 살이 쭉쭉 빠져서 원래 태로 돌아간다. 게다가 잠꼬대로 고기를 찾는데.
          * 루피는 반가워하지만 디는 일행을 발견하고 사색이 된다.
          * 하지만 루피는 디가 인질이 잡혀 있다는걸 모르는 태고 그래서 디는 심하게 갈등하게 된다.
          * 자신의 두 손과 밀집모자 일행, 그리고 제프의 목숨까지 걸려 있는 황. 디는 갈등 끝에 결정을 내린다.
          * 루피를 걷어차 떨구는 디.
          * "내 이름은 빈스모크 디. 제르마 왕국의 왕자다."
          * 디는 밀집모자 일당의 신세가 처량해 어울려준 것일 뿐이라며 모욕한다.
          * 디는 이런 곳까지 찾아올 줄 몰랐다며 돌아가라고 하는데, 루피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척을 한다.
          * 그러나 디는 손대지 말라며 "내가 쫓아내겠다"고 선언한다.
         지난 화에서 디의 기사도가 제프의 교육 탓이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여자를 밝히는 성미도 당연히 그 향일 거라고 추측됐는데, 걍 집안내력이었다.--피는 물보다 진하다.-- 루피는 거들떠도 안 보던 빈스모크 형제들이 하나같이 하트 눈이 돼서 나미에게 집중.
  • 원피스/846화 . . . . 23회 일치
          * 디는 계획대로 빅맘 샬롯 링링에게 거래를 제안하고 빅맘은 기쁘게 받아들인다. 이로써 밀집모자 일당은 안전하게 섬을 탈출할 수 있다.
          * 샬롯가의 14녀 쥬스 대신 "샬롯 스무디" 등장. 삼장성 중 하나이며 현금 9억 3200만 베리에 달하는 거물.
          킹 바움고 엉겁결게 반역자로 몰리는데 그가 대하는 여성 검사, "귀부인" 아망도는 아무리 사정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녀가 쓰는 검은 명도 "시라오우". 슬로우 발라드라는 기술로 킹바움을 일도양단하려 든다. 원래 이 기술은 아주 천천히 느리게 베어서 대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하는 기술. 킹 바움은 차라리 단숨에 끝내 달라고 애원한다.
          * "서사" 샬롯 몬도르는 별명대로 책을 무기로 쓴다. 책들이 허공을 날아디는데 그걸 밟고 돌아다닌다. 남자는 루피가 삼장성 중 하나인 크래커와 하룻밤 내내 싸웠는데 선전하고 있다고 감탄한다. 실제로 결코 약하지 않다고 평가한 체스병들이 무수히 널부러져 있다. 모두 루피가 쓰러뜨린 것. 하지만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달했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강자들 덕에 황은 좋지 않다.
          * 루피가 생크림을 뿌리치며 공격하려는데 갑자기 기이한 공간으로 바뀐다. 물리법칙을 무시한 듯 위도 아래도 없는 이한 공간이다. 여기는 몬도르가 사용하는 "책의 세계" 나미가 조심하라고 소리치자 루피를 둘러싸고 있던 환은 사라진다. 하지만 오페라의 생크림에 발이 묶인 태였고 부하들이 "크림 펀치"로 양쪽에서 공격하자 그대로 맞고 쓰러진다.
          * 같은 시각 디는 빅맘 샬롯 링링을 대로 교섭을 벌인다. 그가 순순히 결혼하는 대가로 섬에 있는 밀집모자 일당을 무사히 돌려보내주는 것. 의외로 빅맘은 흔쾌히 승락한다. 자신은 "사리에 맞으면 말이 통하는 여자"라며 디만 협조해주면 그런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디가 고맙다고 답하며 꼭 샬롯 푸딩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하자 빅맘은 만족스럽게 웃는다. 하지만 "원래 밀집모자 일행이 한 짓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무단침입은 물론 크래커를 쓰러뜨리고 어인섬에서 과자를 가로챈 것까지. 어느 것 하나 빅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게 없다. 하지만 이 정략결혼이 성사돼 제르마의 군사력만 손에 넣는다면 별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디는 그저 동료들이 무사하다는 생각만으로 도망도 치지 않고 순순히 결혼하겠노라 약속한다.
          * 홀케이크성 안의 "보물전"에선 타마고 남작이 간부들을 모아놓고 있다. 그는 이 방에 모아놓은 "포네그리프"가 무엇인지 일장설명을 늘어놓는다. 전세계에 있는 30개의 돌비석의 문헌. 그 중에서 "정보"를 가진 것은 고작 9개. 세간에서 말하는 "리오 포네그리프"다. 그것들을 최후의 섬 "라프텔"에 인도했을 때 돌은 세의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프텔에 가는 정보를 적은 문헌이 4개의 "로드 포네그리프". 얼마 전 징베가 하나를 진하면서 현재 빅맘 해적단이 소장하고 있는 건 "포네그리프" 2개와 "로드 포네그리프" 하나. 총 세개다.
          * 이런 설명을 하는 동안 샬롯 가의 14녀이자 스위트 3장성 중 하나, "주스 대신" 샬롯 스무디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녀 하나를 잡아서 "쥐어짜고" 있다. 문자 그대로 걸레짜듯이 짜는데 놀랍게도 시녀는 "주스"를 흘리며 미라처럼 쪼그라든다. 현금은 9억 3200만 베리. 스무디는 당한 거체의 여성으로 등에 커다란 칼을 차고 있다. 시녀를 짜낸 "주스"를 잔에 담으며 "포네그리프가 중요한건 알겠지만 왜 이곳 경비를 강화해야 하냐"고 묻는다. 타마고 남작이 이들을 소집한건 보물전의 경비 강화 때문인 모양이다.
          타마고 남작은 5년 전 밍크족이 이 보물전에 침입하는 불사가 있었다고 말한다. 포네그리프를 노렸던 도둑은 당시 페콤즈의 탄원을 받아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 달아났다. 범인은 페드로. 그가 다시 이 곳에 나타났다. 타마고 남작은 로드 포네그리프는 해적왕이 되는 길이며 빅맘을 위해 꼭 지켜야 하는 물건이라며 이번엔 절대로 같은 불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
          * 이의 대화를 누군가 엿듣고 있다. 혼이 된 브룩. 보물전 옆에 있는 주류저장소에 페드로와 브룩의 본체가 있다. 브룩은 태로 돌아와 들었던 얘기를 전부 전달한다. 페드로는 하필 이런 시점에 경비가 강화되었다며 밤에도 틈은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의 존재가 타마고 남작에게 알려진 시점에서 이미 희망은 사라졌던 것이다. 그는 루피 쪽이 난항을 겪고 있으니 그들만이라도 임무를 완수하고 싶다고 하는데.
  • 원피스/861화 . . . . 23회 일치
          * 다과회가 시작되는 홀 케이크 성의 옥. 괴총 비트는 다과회장을 훔쳐보면서 명성이 자자한 괴물 뿐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 게스트들이 진한 다양한 선물과 함께 어인섬의 비보 "타마테바코"도 공개. 빅맘은 [[샬롯 푸딩]]의 예식 후에 다 함께 열어볼 작정이다.
          * 신랑신부 대기실에서 푸딩은 역겨움을 참아가며 귀여운 신부를 연기하는데, [[디]]는 연기인줄 알면서도 홀랑 넘어가고 만다.
          * 다과회 분위기가 무르익고 신랑신부가 입장한다. 벳지는 그저 행백해 보이기만 하는 디를 보고 대단한 "연기파"라고 생각한다.
          * 홀 케이크 성의 옥에서 다과회가 시작된다. 괴총 비트는 대문 너머로 빅맘의 게스트들을 훔쳐보고 있다. [[카포네 갱 벳지]]가 뭘하냐고 묻는데 비트는 세계경제의 사장과 제르마의 대장이 대화하고 있다며 탄성을 내고 있다.
          * 비트는 게스트들도 그렇지만 빅맘의 부하들도 만만치 않은 거물이라 놀란다. 우측 단은 장남 "캔디 대신" [[샬롯 페로스페로]], 좌측 단은 장녀 "후르츠 대신" [[샬롯 콩포트]], 우측 하단은 차남 "장성" [[샬롯 카타쿠리]], 하단 가운데 14녀 "장성" [[샬롯 스무디]], 좌측 하단 3남 [[샬롯 다이후쿠]]와 4남 [[샬롯 오븐]]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결집했다. 비트는 자기도 모르게 "동료일 때는 든든했지만 적이라고 생각하니 오싹하다"고 말하는데, 그 "적"이란 표현을 대문이 놓치지 않고 듣는다.
          주위의 게스트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이 할머니의 사진을 자기 어머니라도 된 것처럼 칭찬한다. 어떤 남자가 "마더가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하자 빅맘은 거기에 맞장구치며 "마더는 세의 빛"이라고 극찬한다.
          벳지는 다시 한 번 시저의 역할을 기시켜 준 뒤 시저의 심장을 움켜쥐며 "헛된 생각 품지 마라"고 경고한다. 시저는 이제와서 그런 짓은 안 한다고 하지만, 방심할 수 없는 위인이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대문이 심치 않게 지켜보고 있다. 특히 시저 크라운까지 동행하고 있는걸 보고 벳지가 뭔가 꾸미고 있다고 직감하는데, 아쉽게도 벳지의 눈치가 더 빨랐다. 그가 눈짓하자 부하가 나서서 대문의 얼굴 부분을 도려내 버린다. 이제 이 문은 평범한 "문"이다.
          * 예식까지 30분이 남았지만 벳지가 확인해 보니 "미끼"들은 전혀 준비가 안 됐다. 시저처럼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일당은 벳지의 몸 속에 숨어 있다. 벳지가 들여다 보니 [[징베]]를 제외하곤 곯아 떨어진 태. 벳지가 준비는 어쨌냐고 호통을 친다. 징베는 륙 후 제대로 자지도 못했으니 냅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10분 전까지는 준비를 마치겠다고 장담한다. 벳지는 별로 믿음직하지 않은지 "걸림돌이 되면 바로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징베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말라고 이른다.
          * [[디]]와 푸딩은 9층 신랑신부 대기실에서 준비를 마쳤다. 디는 아직까지는 "좋은 신랑"을 연기해야 한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결혼하지 않을 셈으로 이 섬에 왔는데 이렇게 둘만 있게 돼서 꿈만 같다고 말한다. 진이 밝혀진 줄 모르는 푸딩은 "좋은 신부" 연기에 한층 박차를 가한다. 그녀는 귀여운 척하며 그 꿈은 "좋은 꿈? 나쁜 꿈?"이냐고 애교를 떤다. 그런데 그게 먹힌다. 답이 없는 변태신사인 디는 뻔히 알면서도 홀라당 넘어가서 심장이 멈출 뻔 한다.
          디는 이런건 당연히 연기라며 자기 자신에게 강조한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혹시 정말로 꿈을 꾼게 아닐까"라며 자신의 기억을 부정하는 단계까지 가버린다. 디는 정신줄을 잡고 있으려고 아무 말이나 한다. "맹세의 키스"를 할 때 사람들 눈도 있으니 이마에 해주면 어떻겠냐고 하자 푸딩은 한껏 귀여운 척하며 "부부가 되는 거니까 당연히 입술에"라고 대답한다. 거기에 또 넘어간다. 도저히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로 무너지는 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벽에 달려가 부딪히기까지 한다. 디가 피를 흘리기 시작하자 푸딩도 일단은 걱정하는 시늉을 하지만, 속으로는 질려하며 "얼른 쳐죽이고 싶다"고 이를 간다.
          * 다과회는 대성황. 빈스모크 일가는 각자 게스트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빈스모크 저지]]는 빅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세계 정급 게스트들과 대화 중. [[빈스모크 레이쥬]]를 비롯한 형제들은 각자 편한 자리에서 나름대로 시간을 즐기고 있다.
          * 이렇게 음모와 악의가 촘촘하게 깔린 결혼식장이지만, 거기로 내려오는 신랑신부의 얼굴은 그저 행복해 보인다. 특히 디는 너무나 사심없이 행복한 얼굴이었기 때문에 벳지는 그가 대단한 "연기파"라고 감탄하고 만다.
          * 현재까지 많은 비극이 나왔음에도 그 당사자인 디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 원피스/867화 . . . . 23회 일치
          * 셈라를 먹은 링링이 제정신을 되찾아 파괴행위를 멈췄지만 거인족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태.
          * 그리고 회 종료. 긴 비명을 지르던 빅맘은 회에서 깨어나며 "어디로 간 거야 마더!"라고 절규한다.
          * 배고픔에 눈이 뒤집혀 거인족 마을을 파괴한 [[샬롯 링링]]. 동지제의 기념음식 "셈라"를 찾으며 폭주한다. 도저히 아이의 짓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만행에 엘바프의 웃어른 폭포수염 [[요를]]이 진노한다. 그는 링링을 더이 아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아이의 탈을 쓴 악귀"라고 욕하며 처단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거인족 전사를 여럿 해치운 링링에게 노쇄한 그의 공격이 먹힐리 없었다. 요를이 내리치는 검을 간단하게 부러뜨린 링링은 그의 긴 수염을 잡아 내동댕이 쳐버린다.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피를 토하는 요를. 링링의 보호자 [[마더 카르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 카르멜은 링링을 막기 위해 거인족 여인에게 셈라를 준비해줄 수 없냐고 묻는다. 마침 동지제 당일에 먹을 양을 남겨놓은게 있었다. 셈라가 준비되는 동안 거인족 청년들은 어떻게든 링링을 막고 카르멜은 마을에 번진 불을 끄겠다고 한다. 카르멜이 "게브아"라고 중얼거리자 손에서 희미한 체가 빠져나온다. 이어서 "츠타크"라 외치자 손 안에 있던 체가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러자 불꽃들이 마치 악마의 얼굴과 같은 형으로 뭉친다.
          양의 집 아이들은 카르멜이 불꽃을 향해 이름을 지어주고 "사라져라"고 명령하는 모습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봤다. 거인족들이 링링에게 셈라를 먹여서 진정시키는 동안, 카르멜은 자신의 혼을 부여한 불꽃을 끌어모아 한 순간에 소멸시킨다. 마치 빅맘의 "소울소울 열매" 능력자처럼.
          * 그러나 진짜 끝은 아직 나지 않았다. 요를은 빈사태에 이르러서도 링링을 죽이란 말을 반복한다. 그 말에 따른 것은 엘바프의 또다른 웃어른, 산수염 [[야를]]이었다. 그는 직접 칼을 들어올려 링링을 찌르려한다. 카르멜이 그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야를에게 있어 요를은 300년이나 함께 한 전우. 그도 링링을 죽이는게 기꺼운 일은 아닌 듯 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요를의 숨이 끊어지진 않았다지만, 저 나이를 생각하면 구해낼 수 없을 거다. 아무리 전사에게 오래 사는건 중요하지 않다지만, "어떻게 죽느냐"는 중대한 문제다.
          그것은 야를에게도 뜻밖의 결론이었다. 야를이 고민하는 사이, 한때 링링의 친구이기도 했던 [[하이루딘]]은 "왜 링링을 죽이지 않느냐"고 아우성친다. 그 또한 링링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야를은 자비심이 생긴 건지, 카르멜을 결단을 봐서인지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칼을 거둬들인다. 그리고 링링이 정신을 차리는데, 폭주했을 때의 일을 기억 못할 뿐더러 요를의 죽음을 슬퍼하는 등, 남의 일처럼 행동해서 더욱 거인족들의 분노를 산다.
          * "요를의 죽음", "링링이라는 악신", "카르멜의 기적". 이날의 사건들은 엘바프를 넘어 전세계의 거인족들에게 전파된다. 링링이 거인족 전체에게 눈엣가시 취급을 받게 되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카르멜과 링링, 그리고 양의 집 아이들은 엘바프를 떠나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고생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록 링링은 증오하긴 하지만 그게 "성모" 카르멜에 대한 은의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거인족들은 그들의 역 밖에 새로운 양의 집을 지어주고 앞으로도 간접적인 지원은 계속하기로 약속한다. 새로운 터전이 생기고 카르멜도 밝게 행동하자 한동안 불안해 했던 아이들도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 이렇게 큰 사건이 있었지만 "성모" 카르멜과 "양의 집"의 명성은 조금도 흠집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엘바프에서 일으킨 "기적" 때문인지 "어떤 문제아라도 양의 집에 가면 성모의 기적으로 갱생하여 좋은 양부모를 만난다"는 신화적인 평판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평판의 이면에는, 할 수도 없었던 진실이 감춰져 있었다.
          카르멜이 누군가와 접촉했다. 수한 가면을 쓴 남자였다. 그는 설마 양의 집이 엘바프를 떠날지는 몰랐다면서 그렇게 해서라도 "그 아이"를 버릴 수 없었던 거냐고 묻는다. 카르멜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에 대한 남자의 대답도 수하다.
          >'''"아동밀매" 사업 50년인 나도 역대 최고의 품이야!'''
          이것이 카르멜의 진짜 정체. 그녀의 진짜 얼굴은 "고아판매"이며 뒷세계에서는 "야만바"(산 속 마귀할멈)이라 불리는 극악한 인물이었다. 그녀가 대하는 인물은 세계정부의 하수인이며 양의 집을 통해 2년에 한 번씩 고아를 공급 받아 CP의 요원으로 쓰고 있었다. 37년 전 카르멜이 거병 해적단 잔당을 구한 것도 연극. 처음부터 해군과 그녀는 한패였으며 엘바프 섬에 그녀를 잠입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다. 목적은 거인족의 아이를 꾀어내 해군에 "납품"하기 위해서였으며 해군 최초의 거인 해병 "존 자이언트" 또한 그녀의 "유통라인"에서 나온 성과였다.
          지금은 "역대 최품"인 샬롯 링링의 몸값을 흥정하는 자리였다. 카르멜은 이 거래를 자신이 손을 씻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 성모를 연기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그녀는 "은퇴작"에 걸맞는 대가를 톡톡히 챙기려 했고, 그동안의 기여도를 운운하며 압박하는 카르멜에게 결국 남자가 지고 만다.
          너무나 열정적으로 먹어치운 탓에 탁자까지 먹어버렸다. 잔치을 전부 먹어치우고 나자 눈물이 그치고 겨우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과 오늘을 평생 기억할 거라고, 친구들과 카르멜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카르멜은 사라졌다. 양의 집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은퇴작인 링링을 남기고. 그들이 있던 자리엔 링링이 먹다 남긴 탁자와, 잔해들 뿐. 카르멜의 옷자락만 잔해들 사이에 섞여 남겨져 있다. 어리둥절한 링링은 주위를 둘러보다 혹시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간건가 싶어 양의 집으로 가본다. 역시 아무도 없다. 그들은 사라져버렸다. 링링이 모르는 사이에. 크로캉붓슈를 신나게 먹어치우던 그 순간에.
          엘바프에서 처럼 문도 모른채 버려진 링링. 오래가지 않아 울음을 터뜨린다.
  • 이영훈 (경제학자) . . . . 23회 일치
         '''이훈'''(李榮薰, [[1951년]] [[9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토지소유와 농업경'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안병직]] 교수의 수제자로, 뉴라이트 진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이끌며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신대학교 등에 강사로 출강했었고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 및 다산학술문화재단 이사, 경제사학회 연구이사를 역임하였으며,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후 2017년 2월 28일 정년 퇴임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28/0200000000AKR20170228081000004.HTML?input=1195m|제목=서울대 교수정년식…'식민지근대화론' 이훈 등 28명 퇴임|성=이재|날짜=2017-02-28|뉴스=연합뉴스|언어=ko-KR|확인날짜=2017-03-26}}</ref>.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ref>{{웹 인용|url=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2&nNewsNumb=20170324115&nidx=24116|제목=이훈 서울대 명예교수, “자본주의 맹아론은 대한민국 부정으로 이어지는 주장”|언어=ko|확인날짜=2017-04-13}}</ref>
         [[뉴라이트]] 진에서 대안 역사 교과서 집필이나 칼럼 기고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저서 《대한민국 이야기》와 여러 논문에서 이훈은 무력이 아니라 법과 무역을 통해 전개된 식민지적 수탈을 논하였다.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이훈은 정신대와 종군위안부의 차이점을 명확히 밝히고, 위안부는 강제 징집된 것은 아니나 배후에 일본군과 조선총독부가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2004년]] [[9월 2일]]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으로 참여로 이뤄진 업적 공창"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일제 식민 통치를 찬양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이 교수는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고 그 명단이 있다"고 주장하여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와 동일시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훈 교수, 정신대, 자발적 참여 망언
         }}</ref> 그러나 이훈은 이후 자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으나 결과적으로 할머니들에게 처를 주게 되었다며 사과를 한 바 있다.
         [[2006년]] [[12월 1일]] 고등학생용 《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에서 [[4·19혁명]]을 《4·19학생운동》으로, [[5·16군사정변]]을 《5·16혁명》으로 기술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교과서포럼]]》의 심포지엄에서 4·19민주혁명회, 4·19혁명공로자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회원 30여 명에게 격렬한 항의를 받았으며, 이 교과서는 [[2008년]] [[3월 24일]] 내용을 수정하여 출간하였다. 이 교과서는 이훈 이외에 [[박효종]] 등의 교수가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서울교육청 역사특강 조갑제·이훈씨 제외
         2013년 그가 저술한 《대한민국 역사》(도서출판 기파랑)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관하는 시장경제대 저술부문 대자로 선정됐다.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공저, 2006, 책세)
         == 훈 ==
         * 한국경제학회 청람
         * 전경련 시장경제 대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과대학 동문]][[분류:식민지근대화론]][[분류:대한민국의 뉴라이트]]
  • 이영희 (1936년) . . . . 23회 일치
         '''이희'''([[1936년]] [[2월 3일]] ~ [[2018년]] [[5월 17일]])는 대한민국의 [[한복]] 예술가이다.<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D%B4%EC%98%81%ED%9D%AC&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98149 네이버 인물검색 정보]</ref>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한 그녀는 [[1994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ref>[http://news.joins.com/article/18725617 반평생 바친 한복, 한류 명품으로 키울 자신 있어요] 《중앙일보》 2015-09-23</ref> [[2001년]] [[6월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직할시|평양]]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108528 한복 디자이너 이희의 인생 이야기] 《연합뉴스》 2014-09-06</ref> 또 2005년 APEC 정회의 때는 APEC 정회의의 이벤트였던 전통의 부문에서 참가국 정들의 두루마기를 제작한 바 있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12674691 APEC 정들의 두루마기 패션쇼] 《한국경제》 2016-01-26</ref> 배우 [[전지현]]의 시외조모이다.<ref>[http://news.ichannela.com/enter/3/06/20151004/73990365/1 ‘전지현 시할머니’ 이희, 누구 한복 만들었나] 《채널A》 2015-10-04</ref>
         * 주식회사 매종 드 이희 대표
         * 사단법인 미래문화(뉴욕 이희 한국박물관) 대표
         * [[동덕여자대학교]] 의디자인학과 겸임교수
         === 수 ===
         * 황금바늘 특별(1993)
         * 한국인(1994)
         * 서울패션인(서울특별시, 1997)
         * 패션인(ELLE, 1999)
         * 대한민국 디자인대(대통령, 1999)
         * 자랑스런 한국인대(언론인협회, 2008)
         * 딸 : [[이정우 (의 디자이너)|이정우]]
         * [http://www.leeyounghee.co.kr/ 이희 홈페이지]
         * [http://people.mygo.co.kr/people.php?cmd=view&pp_no=37308 마이고 인물정보 - 이희 前 동덕여자대학교 의디자인학과 겸임교수]
  • 이장희 (시인) . . . . 23회 일치
          | 출생지 = {{국기나라|대한제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 사망지 = {{국기|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에서 음독 자살
         [[1900년]]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에서 아버지 [[이병학 (1866년)|이병학]]의 11남 8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구의 부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 (1866년)|이병학]]이며, 어머니는 박금련이다. 다섯 살때, 어머니를 잃고 이후 계모 밑에서 크며 아버지와 불화했다. 아버지 이병학은 두 번째 부인과 5남 6녀를 두었고, 이장희가 죽기 5년 전에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그 외에 측실도 1명을 거느렸다. 이장희 자결 당시 형제는 모두 10남 8녀로 매우 복잡한 가계였다.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교우관계는 [[양주동]], 유엽, 김진, [[오순]], 백기만, [[이화 (시인)|이화]], [[현진건]]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부친이 중추원 참의로서 일본인들과의 교제가 빈번하여 아들 이장희 시인에게 중간 통역을 맡기려 했으나, 이장희 시인은 한 번도 복종하지 않았고, 총독부 관리로 취직하라는 지시도 거역하여 부친은 이장희 시인을 버린 자식으로 아주 단념하였다 한다. 그래서 극도로 빈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9년]] [[11월 3일]]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ref>장백일, 〈고월 이장희시 연구〉, 《국어국문학》84권, 국어국문학회, 1980, 79~82쪽</ref>
         * [[시 (문학)|시인]] [[이화 (시인)|이화]](李相和, [[1901년]] [[5월 9일]] 출생 ~ [[1943년]] [[4월 25일]] 사망. 아호는 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백아(白啞). [[소설|소설가]], [[수필|수필가]], [[번역]][[문학가]], [[문학평론|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 [[대구종로초등학교|경북도 대구 대남보통학교]] 수료
         * [[대구초등학교 (대구)|경북도 대구보통학교]] 졸업
         [[1924년]] 《[[금성 (잡지)|금성]]》 3월호에 〈실바람 지나간 뒤〉, 〈새한마리〉, 〈불놀이〉, 〈무대〉, 〈봄은 고양이로다〉 등 5편의 시 작품과 [[레프 톨스토이|톨스토이]] 원작의 번역소설 〈장구한 귀양〉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신민》,《생장》,《여명》,《신여성》,《조선문단》등 잡지에 〈동경〉, 〈석양구〉, 〈청천의 유방〉, 〈하일소경〉,〈봄철의 바다〉등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요절하였기에 생전에 출간된 시집은 없으며, 사후 [[1951년]] 백기만이 청구출판사에서 펴낸 《화와 고월》에 시 11편만 실려 전해지다가 제해만 편 《이장희전집》(문장사, 1982)과 김재홍 편 《이장희전집평전》(문학세계사, 1983)등 두 권의 전집에 유작이 모두 실렸다.
         시인 생존시에 이루어진 평으로는 [[박종화]]와 [[이화 (시인)|이화]]의 것이 있다. 박종화는 《조선문단》 1925년 10월호 〈9월의 시단〉에서 《여명》에 실린 이장희의 시〈청천의 유방〉과 〈비오는 날〉을 평가하면서 〈청천의 유방〉은 "기괴를 쓰랴는 마음, 징을 위한 징시라는 것을 나는 말할 뿐이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하고 말했으며, 〈비오는 날〉은 "작자에 착각적 정서로부터 나온 작품이다. 다만 한 때에 마취된 감흥의 씌운 붓장난이라 할 것이다."하고 혹평했다.<ref>이기철, 〈이장희 연구(1)〉, 《인문연구》6권, 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4, 179쪽</ref> 반면, 이장희와 동향 친구였던 이화는 같은 해, 《개벽》 6월호에서 이장희의 시 〈고양의의 꿈〉과 〈겨울밤〉을 이채 있는 시라고 하면서, 이화를 정관(靜觀)시인이라고 고평하였다. 다만 생명에서 발현된 열광이 없음을 덧붙였다.<ref>{{서적 인용
         |제목=이화 전집
         정우택은 비속한 현실에 맞서 절대 자유, 절대 자아의 순전함을 추구했던 이장희의 삶은 곧 그의 시라면서 그의 미적 태도를 '미적 근대성의 자기 파괴적인 양'으로 명명하였다. 또,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이장희는 근대적 주체의 자율성을 옹호하기 위해 예술의 자율성과 미적 근대성을 절대적인 지점까지 추구했던 시인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했다.<ref>정우택, 〈고월 이장희 시 연구〉, 《민족문학사연구》21권, 민족문학사학회, 2002, 216쪽</ref>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23회 일치
          * 해골병사를 포기한 [[메라스큐라]]는 [[멜리오다스]]의 힘으로 강화된 원념을 [[디안느]]의 마음의 처로 파고들게 했다.
          * 디안느의 마음의 처는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를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구해보려 했지만 원념의 힘이 을 초월했다.
          * 헬브람이 원념에게 혼을 바치는 것으로 죄를 갚자 디안느 안의 원념들이 당수 사라졌지만 여전히 몇몇 강한 원념이 남아 디안느를 괴롭혔다.
          * [[멜리오다스]]의 부의 에너지로 강화된 해골병으로 일곱 개의 대죄를 처치하려던 [[메라스큐라]]의 계획은 좌절됐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도 않고 새로운 음모를 고안했다. 해골병이 감당하지 못한 부의 에너지, 그렇다면 같은 일곱 개의 대죄는 어떨까? 예대로 안성맞춤인 그릇이었다. [[디안느]]가 마수에 걸려들었다. 섬뜩한 피눈물과 불길하게 물든 눈동자. 사령에 지배당한 디안느가 일행을 향해 공격 자세를 취했다. "드롤의 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의 그만두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공격이 쇄도해온다. 심지어 즐거워 보였다.
          일행이 뒤로 넓게 흩어지며 공격을 피했다.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발빠르게 분석에 들어갔다. 디안느의 태는 통의 세뇌나 최면과 달랐다. 할리퀸이 보기에 디안느를 조종하는 것은 단순히 메라스큐라의 마력이 아니라 성채도시 코란도에서 학살 당한 사람들의 원혼이었다.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그런걸 어떻게 쓰러뜨리내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헬브람]]이 이했다. 이 모든 황은 자기 책임이라며 할리퀸에게 용서를 구하는데.
          * 멀린은 "다소 죽일 생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반은 거부감을 느꼈지만 디안느의 힘이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도 결국 "나쁘게 생각마라 디안느"라며 멀린의 지시에 따른다. 할리퀸 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디안느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그는 일행과 디안느 사이를 가로막았다. 헬브람은 원념에겐 물리적 공격은 물론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줬다. 그 말대로라면 설사 디안느를 다치게 해도 원념을 쓰러뜨릴 순 없다. 킹은 그런 말을 하며 일행을 말리고 디안느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원념에게 삼켜지지 말라고. 그러나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측정해 보니 디안느의 전투력은 점점 올라 4만 8천에 육박했다. 킹이 위험했다. 고서의 경고는 애타는 할리퀸에겐 들리지 않았다. 헬브람의 경고도 마찬가지. 그러나 디안느는 아랑곳 없이 무자비한 발길질을 보냈다.
          걷어차인 킹이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헬브람의 투구가 지켜준 덕에 직격만은 면했지만 의식을 잃었다. 고서가 태를 보려고 다가갔는데, 그는 할리퀸 곁에 찌그러져 있는 투구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곧 멀린이 다가과 태를 물어서 깊게 신경쓰지 못했다.
          * 디안느는 재미있는 장난이 성공해서 흡족했다. 깔깔거리는 여유를 보였지만 [[에스카노르]]의 접근을 허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디안느의 태를 보고 "다소 난폭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작렬하는 "다소 난폭한" 치료. 거인족의 허리가 꺾이는 강렬한 보디 블로우. 그렇지만 "여성인 점을 고려해 얼굴만은 피하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 위력 자체는 디안느의 갑옷이 터져나갈 정도였지만, 지금의 디안느에겐 정말로 "다정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 타격도 주지 못한 채 주먹으로 되갚아주는 디안느. 에스카노르 또한 아무 처도 입진 않았지만 자신의 다정함이 무시 당한게 아쉬운 모양이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주먹으로 대화를 하려고 드는 에스카노르.
          * 고서가 그런 에스카노르를 제지했다. 할리퀸의 말대로 디안느를 처입힐 필요는 없었다. 정신지배라면 자신의 전공분야니까. 디안느가 다시 달려든다. 고서는 자신이 구하겠다며 "인베이전"을 사용한다. 고서의 손에서 발사된 빛이 디안느의 머리를 감싸자 두 사람의 정신이 연결됐다. 이제 고서의 의식은 디안느의 심세계에 있었다.
          * 마치 수렁같은 세계였다. 곧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디안느가 수렁에 잠긴 채 울고 있었다. 킹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은 글러먹은 애라고 자학했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의 일이 때문이었다. 아직도 엘리자베스가 죽게 된 건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그리고 정말로 엘리자베스가 죽으면 어쩌나 하는 공포. 원념이 그 마음의 처를 파고 든게 분명했다. 고서는 침착하게 그녀를 달래서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원념의 지배는 깊은 곳까지 뻗어있었다. 디안느가 고서를 알아보는 듯 하자 부정형으로 일렁거리는 원념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이 디안느를 낚아채서 더 깊은 깊은 곳까지 끌고갔다. 고서가 손을 뻗어보지만 결코 닿지 않았다.
          >너희들은 원망할 대를 잘못 골랐어.
          >원한을 풀어야할 대는 바로 나...
          * 원념은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나타나자 믿기지 않는 듯했다. 기데온을 든 손이 축 늘어졌다. 대신 다가오는 투구를 손아귀에 넣었다. 그들에겐 보였다. 헬브람이다. 자신들을 학살한 요정. 이 마을을 멸망시킨 요정. 성채도시 코란도의 멸망은 마신족이나 십계 때문도, 전쟁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이 증오스러운 요정의 소행이다. 무수한 억울하고 분노한 혼들이 얼굴을 들었다. 그들이 디안느를 빠져나와 헬브람의 목을 조르러 왔다. 헬브람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할리퀸이 친구에게 가지 말라고 말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헬브람은 아주 편안한 얼굴로 돌아섰다. 웃고 있었다.
          * 그걸로 끝이었다. 원념들이 디안느의 손아귀로 헬브람의 투구를 짓이겼다. 작은 소음과 함께 헬브람이 누리던 세 번째 삶도, 은원의 고리도 끊겼다. 고서는 그 직후 디안느를 사로잡고 있는 탁한 기운이 급속도로 흩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여전히 몇몇은 오갈데 없는 분노를 분출하고 있었다. 그것은 더욱 격렬하고 끈질기게 디안느를 얽어맸다. 디안느의 자아는 누구도 처입히고 싶지 않다고 절규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원념의 것이었다. 바로 그때 갑작스런 강풍이 불어와 디안느가 휘청거렸다. "금풍의 역린". 바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원념에게 "이젠 잠들어도 괜찮다"고 속삭였다.
  • 정대석 . . . . 23회 일치
         | 수 = 2003 [[KBS]]국악대 <br>2003 [[KBS]]국악대 현악 <br>제2회 대한민국작곡<br> 제15회 동아음악콩쿠르 1위
         | 사이트 = [http://geomungo.org/jds/ 정대석 공식사이트]
         정대석은 전통적 기반위에 현재의 감성을 입혀 새로이 재구성하여 거문고를 일반인에게 알리고 보급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연주자다. 출중한 거문고 연주자로서의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그동안 고고하게 기품을 유지해 온 거문고를 일반 계층에게 전파시키는데 기여해온 바 크다. 그는 거문고와 더불어 연주자 및 창작자로서의 삶을 일관하여 온 사명의식을 갖고 있는 국악인이다. 정대석은 일찍이 거문고의 창작음악에 몰두하여 많은 거문고 곡을 탄생시켰으며 그 곡들은 거문고의 고유한 특징과 매력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을 받고 있다. 거문고연주자 정대석은 이런 관점에서 면면히 자기완성을 의지하며,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국악인으로서의 자태를 유지해온 예술인이다. KBS국악관현악단 수석 및 악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 서울악회 동인, 거문고연구회 동보악회 대표이다. 2003년 KBS국악대 및 현악과 제2회 대한민국 작곡을 수하였다.<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3/11/20070311000979.html 거문고 명인 정대석씨 ''非음대'' 첫 서울음대] 교수세계일보(2007.03.12)</ref>
         * 정악사사: 성경린 구윤국, 산조사사: 한갑득 김윤덕 원
         == 수 ==
         * 2003 KBS국악대
         * 2003 KBS국악대 현악
         * 1978 제2회 대한민국작곡
         == 공식 사이트 ==
         {{KBS 국악대}}
  • 주다영 . . . . 23회 일치
         {{화인 정보
         | 이름 = 주다
         |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3길)
         | 종교 = [[개신교]]<ref>[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032863&code=61221111&cp=nv 주다 “평시에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하정우 오빠 말 새기고 있어요”…스타인헤븐]</ref>
         | 웹사이트 =
         | 수 =
         '''주다''' ([[1995년]] [[6월 16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2010년]] [[KBS1]] 대하드라마 《[[거 김만덕]]》 ... 어린 오문선 역 ([[박솔미]] 아역)
         * [[2011년]] [[MBC 에브리원]] 틴에이저 시트콤 《[[레알스쿨]]》 ... 주다
         * [[2012년]] [[슈퍼액션]] 토요드라마 《[[홀리랜드 (2012년 드라마)|홀리랜드]]》 ... 전미 역
         * [[2013년]] [[JTBC]] 주말드라마 《[[무자식 팔자]]》 ... 미혼모 역
         * [[2015년]] [[SBS]] 월화드라마 《[[미세스 캅]]》 ... 장은
         === 화 ===
         * 《[[태극기 휘날리며]]》 (2004년) - 자 역
         * 《[[백야행 (화)|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2009년) - 이지아 역 ([[손예진]] 아역)
         * 《[[순정 (2016년 화)|순정]]》 (2016년) - 길자 역
         * 《[[궁합 (화)|궁합]]》 (2018년) - 여희 역
         * 1997년 잡지 모델로 시작해 베비라 모델 ,비유와징, 농협 아름찬 김치, 데이콤 08217, 우리은행, 해태제과 베스트 원 아이스크림, 페브리즈, 한국통신, 맥도날드, LG 휘센에어컨, 대교, 하나은행, 삼환 아파트, 마몽드, 장인가구, 풍성건설, 아디다스, 톰키드, 원아동복, 블루독, 정어학원, 소니 핸디캠, LG CNS, 메이크업 포에버, 간지(GanGee) 2013년 12월호 표지모델, CAMPUS JOB&JOY 제52호 표지모델, 간지(GanGee) 2014년 11월호, 센트리얼 휘트니스
         <!-- 위키백과에서는 공식사이트가 아니면 팬사이트나 팬카페를 기재 할 수 없습니다. -->
         [[분류:199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진격의 거인/94화 . . . . 23회 일치
          * 얻어맞은 라이너를 베르톨트가 위로해주며 "13년 밖에 못 살아도 괜찮겠냐"고 묻는데, 라이너는 "웅이고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거니 관없다 답한다.
          파르코가 혹시나 하며 뒤돌아봤을 때 눈 앞엔 수하게 여기는 표정의 가비가 있었다.
          파르코는 라이너를 의식해서 힐끗힐끗 돌아봤던 건데, 가비는 그걸 수하게 여기고 있다. 이걸 "반역의 예조"라며 부대에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파르코가 "이게 누구 때문인데!"고 항변한다. 가비가 알아듣지 못하자 라이너와 지나가던 병사들이 "가비 너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사자만 의미를 몰라서 반발하느라 파르코에게서 관심이 떨어진다.
          황을 모면한 파르코는 라이너가 무심한 듯한, 혹은 신뢰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걸 본다. 파르코는 아직도 반신반의한 태다.
          * 봉을 마친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파르코도 그 행렬에 끼어있었지만 길 가장자리에 또다른 행렬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춘다. 엘디아인 부병들이었다. 코스로라는 병사가 인솔 중이었다. 이들은 전방에서 오랫동안 참호를 파온 병사들이다. 하지만 심각한 부을 당한데다 심적외까지 발생했다. 이들은 가족도 돌아갈 곳도 없는 부류여서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된다. 이들의 태는 한 눈에 봐도 폐인이다. 코스로가 "콰앙!"하고 폭발음을 모사하자 곧바로 패닉태에 빠진다. 코스로는 그걸 보고 껄껄 웃는다. 파르코는 가족들이 형을 부축해서 먼저 가도록 하고 자신은 남아서 부병들을 부축한다. 그는 다리 잃은 부병의 완장을 바르게 채워주면서 꼭 괜찮아질 거라고, 당신은 이제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한다.
          [[사샤 브라우스]]의 일이었다. 교관이 무슨 짓이냐고 물었을 때 조차 "맛있어 보여서 훔쳤다"고 대답하던 그녀. 이런 악당인데다 황이 위험하다가 판단되자 교관을 매수하려고 감자의 반을 제시했다. 하지만 거기서 내민 양은 절반에 절대로 미치지 못하는 양이었다. 정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야비함. 이 뿐만이 아니다. 화장실에 가더니 뭘 싸러 갔는지 잊어버려서 그냥 돌아오는 얼간이, [[코니 스프링거]]도 있었다.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 것도 신경 안 쓰는 불성실한 [[장 키르슈타인]]. 반대로 남을 끔찍하게 챙겼던 [[마르코 보트]]. 그리고...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악마들이 있었던가? 그 많은 얼굴들 사이에는...
          라이너의 짧은 낙담. 카리나는 가비의 말에 열렬히 호응했다. 그 섬에 있는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는 악마들이며 세을 지옥으로 바꾼 자들이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엘디아인들은 다르다. 그 생애를 마쳐 마레인들에게 처참한 역사를 속죄하는 선량한 시민들이다. 섬의 악마들이 돌아올 때 그걸 저지하는건 엘디아인이어야 하며 그걸 이뤘을 때 비로소 전세계에 엘디아인의 선량함을 입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대륙의 엘디아인을 버린 족속들이 아닌가? 제재를 가해야 한다. 그들을 버린 자들에게. 이런 말을 가비에게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라이너에게 고정돼 있었다.
          * 엘디아인을 버린 섬의 악마들에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 어머니의 말은 라이너의 오래된 기억을 기시켰다. 방으로 돌아와 누운 라이너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백병전시험은 더 형편 없었다. 대인 [[애니 레온하트]]는 "아주 좋다"는 격찬을 받으며 합격했다. 그녀는 그때이미 완성된 투사였고 그녀의 실력에 라이너가 공중에서 완벽하게 한 바퀴 굴렀다. 그리고 다른 시험에서도 그건 마찬가지. 뭐하나 쉬운게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는 언제나 "제길"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필기시험에서도, 옆자리의 [[포르코 갤리어드]]가 여유로운 얼굴로 답안지를 채워가는데 자신은 사색이다.
          >13년으로 웅이 될 수 있잖아?
         파르코가 부축해준 다리 잃은 부병이 엘렌이라는 가설이 돌고 있다. 첫 등장한 컷에서 부자연스럽게 말풍선이 얼굴을 가리고 있고 파르코가 완장을 고쳐주는 씬에선 얼핏 드러난 이목구비가 엘런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
         다리잃은 부병은 93화에서 스치듯이 뒷모습이 나왔다.
         게다가 이들은 "다른 전선"에서 온 부자들이라 하는데 팔라디 섬에서 역으로 엘런을 침투시켜 내부에서 혼란을 일으키려는 작전일 수도 있다.
  • 진창현(음악인) . . . . 23회 일치
         [[일제강점기]]에 [[경북도]] [[김천시|김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나무를 깎아 고무동력기를 만드는 등 손재주를 발휘했고, 이후 고향에서 약장수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현악기의 매력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소학교]] 4학년 때 [[중일전쟁]]의 징병을 피하기 위해 조선으로 건너와 교사로 부임한 아이카와 키쿠에(相川喜久衛)가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기초적인 바이올린 연주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일본이 패전한 뒤에도 남아서 계속 육체 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이후 [[요코하마]]로 옮겨가 [[인력거]]를 몰면서 학비를 모아 [[메이지 대학]]의 문과 야간학부에 입학했다. 여기서 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당시 조선인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 때문에 일본에서는 교사로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1961년 가을에는 학원과 비교적 가까운 도쿄의 마치다 시로 이사했고, 약 1년 뒤 초후 시의 센가와로 다시 이사해 바이올린 공방을 만들어 악기 제작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후 교육용에서 성인용으로 악기 제작 역을 넓혔고, 바이올린 외에 [[비올라]]와 [[첼로]]의 제작도 시작했다. 악기 제작으로 어느 정도 생계 유지가 가능해지자 1970년에는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동생의 명성을 시샘했는지 이복형이 [[북한]]의 [[공작원]]이라고 허위 신고를 하면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고문(범죄)|고문]]을 받다가 [[일본 경찰]]의 신원 보증이 있은 다음에야 풀려나 도망치듯 일본으로 돌아오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자작 현악기들로 도쿄에서 개인전을 개최해 악기들의 관심을 모았고, 1974년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진창현: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976년 12월에는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미국 현악기 제작자 협회(The Violin Society of America) 주최의 제2회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 참가해 여섯 개 부문 중 바이올린 세공 부문, 비올라 세공/음향 부문, 첼로 세공/음향 부문에서 [[http://www.vsaweb.org/Previous-Conventions|금메달을 수]]하면서 세계구급 제작자로 명성을 확고하게 만들었고,[* Chang Heyern Jin이라고 표기된 수자가 바로 진창현이다.] 1984년에는 미국 현악기 제작자 협회에서 무감사 현악기 제작자(Hors Concours)[* 다른 악기 제작자나 감정가의 감사 없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악기를 제작/판매할 수 있는 장인이라는 뜻.] 자격과 마스터 메이커(Master Maker) 칭호를 받았다.
         이후에도 계속 초후의 센가와 공방에서 현악기 제작을 계속 했고, 2000년에는 미국 [[신시내티]]에서 열린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무감사 현악기 제작자의 제작 참고 악기로 선정되어 전시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에 바이올린 '광주호'를 시작으로 이듬해 바이올린 '대구호', 비올라 '한라호', 첼로 '백두호'까지 네 점의 악기를 무 기증하면서 [[대인배]] 인증을 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후지 테레비]]에서 구술 회고록을 바탕으로 각색한 [[드라마]]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海峡を渡るバイオリン)'이 방되었고, 여기서 진창현 역을 [[쿠사나기 츠요시]]가 맡아 화제가 되었다.[* 나머지 배역들의 캐스팅도 꽤 주목할 만한데, 진창현의 아내인 나미코 역을 [[칸노 미호]]가, 진창현의 어릴 적 [[멘토]]였던 아이카와 선생 역을 [[오다기리 죠]]가 맡았다.그리고 아버지는 [[정동환]]이 맡았다.] 이외에도 2003~06년에는 야마모토 오사무가 일대기를 '천의 현(天上の弦)'이라는 제목의 [[만화]]로 만들어 [[쇼가쿠칸]]에서 연재하기도 했다.
         == 수 경력 ==
          * 일본 문화진흥회 국제예술문화 (1998)
          * 초후 시 시민문화 (2001)
          * 인력거꾼으로 일할 때 [[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주로 주일[[미군]]을 고객으로 맞이했고, 덕분에 수입이 꽤 좋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 톰(Tom)이라는 이름의 [[루이지애나]] 출신 [[흑인]] 병사와 친해졌는데, 톰의 소속 부대가 [[한국전쟁]]에 투입되기 위해 일본을 떠나기 전에 같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미국에서 차별받던 흑인과 일본에서 차별받던 조선인의 심정을 나누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 일본인임에도 조선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아이카와는 교편을 잡으면서 병역을 피할 수 있었지만, 불과 2년 뒤 현역병으로 소집되어 [[중일전쟁]]에 참전해야 했다고 한다. 이후 편지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전투 중 다리에 총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진창현은 이후 일본에서 현악기 제작자로 성공한 뒤 아이카와의 친족들을 수소문해 만나기도 했고, 죽기 직전까지 [[사이타마]]의 혼조 시에 있는 아이카와의 묘지를 정기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후지테레비의 드라마에서도 꽤 비중있는 인물로 나온다.
          * 바이올린 도색에 필요한 염료를 구하기 위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오징어]] 먹물이나 [[지렁이]]까지 쓰는 등 온갖 실험을 했다. 심지어 집에서 [[알코올]]로 염료를 추출하고 [[니스]]에 혼합하는 작업을 하다가 니스가 폭발하면서 [[화(질병)|화]]을 입기도 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전학공투회의|전공투]]와 [[적군파]]를 비롯한 극좌 세력의 무장 투쟁이 강성하던 시기여서 [[의사]]가 그 쪽 사람이 사제 폭발물을 제조하다가 사고를 친 것으로 여기고는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계속 눌러 살면서 [[조선적]]을 고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방문했을 때도 생각치 못한 고초를 겪었지만, 이후에도 한국 국적으로든 일본 국적으로든 전환하지 않고 계속 무국적이나 다름없는 조선적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 때 [[종북주의자]] 수준으로 의심받기도 했지만, 조선적 소지자이면서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북한계 단체와는 접점이 없이 악기 제작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적 문제로 말썽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조센징'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여느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현악기 장인이었음에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훈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 듯 보인다.
          * [[1970년]]의 한국 방문에서 당한 일이 워낙 충격적이었는지, 자서전에도 그 경위를 세하게 적어놓고 있다. 일본으로 떠난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어머니]]와 [[여동생]]의 가난했던 삶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충 조사를 마무리지은 뒤 회식비를 자신에게 모두 떠넘겼다거나 1976년에 모친을 치르기 위해 다시 귀국했을 때 자신이 만든 악기가 위조품으로 간주되어 반입 불가를 당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어서 당시 한국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한국이 [[민주화]]되고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이념적 재단 같은 편파적인 잣대가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2008년]]에 국민훈장을 수하면서 공식적으로도 명예회복을 이루었다. 말년에는 한국 언론들과 자주 인터뷰나 대담 등을 가지기도 했고, 생전에 마지막으로 언론과 접촉한 것도 타계 열흘 전인 5월 3일에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이 병을 찾았을 때였다.
  • 카라스노 고교 . . . . 23회 일치
          * 위 항목 : [하이큐!!], [하이큐!!/등장인물]
         [[하이큐!!]]에 등장하는 고등학교. 징동물은 '''까마귀'''[* 학교 이름인 카라스노(烏野)의 '카라스(烏)'는 까마귀라는 뜻이다].
         두 학교의 감독들 모두 은퇴하면서 네코마 고교와의 인연도 끊어졌으나, 작중에서 5년 만에 연습경기를 가졌다. 그리고 두 학교는 공식전에서 쓰레기장의 결전을 성사시키기로 결의한 태.
         인터하이 미야기현 예선에서는 현내 베스트4인 [[다테 공업 고교]]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노장의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이어진 [[아오바죠사이 고교]]와의 시합에서는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퇴. 봄고 미야기 대표결정전에서 아오바죠사이 고교와 다시 한번 맞붙은 결과 설욕하는데 성공했다.
         시합 때 입는 유니폼은 오렌지색과 남색을 배색한 디자인으로 무난하다는 평. 그런데 연습할 때 입는 배구부 트레이닝복이 하의 모두 칙칙하다 못해 시꺼먼 '''검정색'''이다.[* 사족으로 카라스노 고교의 학교 체육복은 팥색.] 여기에 학교의 징동물인 [[까마귀]]와 [[타나카 류노스케|얼굴만으로]] [[카게야마 토비오|사람을]] [[아즈마네 아사히|쫄게 하는]] 선수들이 더해지면서, 이미지만으로는 매우 살벌한 학교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대회장에서 '날지 못하는 까마귀' 운운했다가는 높은 확률로, 이들이 전원 [[죽은 눈]]을 한 채 호러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팀 스타일은 공격적이고 득점력도 높은 편이지만 에러나 범실이 많다. 한때 [[우카이 케이신]]은 네코마 고교와 비교하면서 카라스노의 팀 스타일에 대해, '들쭉날쭉한 팀을 세터 카게야마가 압도적인 재능으로 잇는 팀'으로 정의내린 바 있다. 이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잘 짜여진 조직력을 자랑하는 라이벌 [[네코마 고교]]나 [[아오바죠사이 고교]]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사실 극이어서, 카라스노는 이 두 학교들과 붙으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애초에 중학시절 베스트 리베로 을 받은 [[니시노야 유]]와 키타가와 제1중 출신의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는 것만으로, 전력 무시 못 할 팀이다. 실제로 남덕들 사이에서는, 주인공 학교의 리베로와 세터가 너무 [[사기캐]]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 과장이 아닌 게 니시노야는 키 빼고[* 아무리 포지션이 리베로라 하더라도 [[니시노야 유|니시노야]]의 경우에는 '''너무 작다'''. 프로필 신장은 160cm 근방이지만 이 키가 세운 머리(10cm)까지 포함한 거다. 아무리 만화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 신장으로 배구를 한다는 건 [[흠좀무]]다. 아직 고2니까 더 클 가능성도 있지만.] [[먼치킨]]이며,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냥 [[스탯]]부터가 깡패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적인 [[천재]]으로 카게야마를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탯을 몰빵해놓은데다[* 현재까지 등장한 캐릭터들 중 능력치 총점에서 카게야마를 앞선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마저도! 때문에 독자들은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우시와카의 프로필이 어서 공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중 활약(문제의 토스들)만 따져도 얘만한 먼치킨이 없다.
         그렇다고 이 둘 말고 다른 선수들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다. ~~어째 배구 외적인 일로 더 유명한~~ [[아즈마네 아사히]]와 [[타나카 류노스케]] 등 준수한 공격 자원들이 있으며, 공격과 수비 모두 다재다능한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있다. [[히나타 쇼요]]는 봄고 대회에서, 신장이 2m인 대학교 선수와 대등하게 매치업하면서 타교 선수들에게 꽤 이름이 알려진 모양이다. 또 부원수가 적은 팀 치고, 주전과 벤치조 간 전력차가 그리 큰 편이 아닌 것도 장점이다. 1학년들 중 유일하게 벤치 멤버인 [[야마구치 타다시]]도 원포인트 서버로 활약하고 있으며, 존재감 없는 2학년 둘도 속공 없는(즉 카게야마가 없을 때)히나타 보다는 더 뛰어나다는 언급이 나온다.
         [[매니저]]인 [[시미즈 키요코]]가 당한 [[미인]]으로, 타교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아예 [[아오바죠사이 고교]] 선수인 야하바는, 카라스노 선수들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매니저가 예쁘다는 것만은 기억했다.
         || 번호 || 경기 || 분류 || 대팀 || 결과 || 스코어 || 장소 || 날짜 || 권수 ||
         || 1 || 연습경기 || || [아오바죠사이 고교] || 승리 || 2 : 1 || [아오바죠사이 고교] || || 2권 ||
         || 5 || 인터하이 || 1차 예선 3회전 || [아오바죠사이 고교] || 패배 || 1 : 2 || 센다이시 체육관 || 6월 3일 || 6권 ~ 8권[* 애니화 1기까지의 줄거리.]||
         || 10 || 봄고 || 예선 준결승 || [아오바죠사이 고교] || 승리 || 2 : 1 || 센다이시 체육관 || 10월 26일 || ||
  • 페어리 테일/508화 . . . . 23회 일치
          * 블러드맨, 윌을 대하던 미네르바 올랜드와 로그 체니도 목격한다.
          * 이 빛은 라케이드 드래그닐의 마법으로 페어리 로의 답례라며 역시 전장 전역을 대으로 마법을 시전한다.
          * 이 마법은 대의 쾌감을 증폭시켜 승천하게 만드는 마법. 그런데 당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쾌락을 아는 자" 뿐이다?
          * 처투성이가 된 로그 체니와 미네르바 올랜드. 블러드맨과 윌이 쓰러져 있다. 미네르바는 해치웠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그들이 쓰러뜨린 건지 술자(나인하르트)가 쓰러져서 사라지는 건지는 불분명. 태로 봐선 후자에 가까운 듯 하다.
          * 이들도 마카로프 드레아의 페어리 로의 발동을 목격했는데 로그는 처음 보는 건지 그 정체를 알지 못한다. 미네르바가 그 정체를 설명해주면서 "페어리 테일과 화해하길 잘했다"고 농담한다. 미네르바는 모든 적을 처리하진 못했어도 당히 줄였을 거라고 추측하는데, 로그는 아군 측도 소모가 심각하다며 쉽게 우세를 점치지 못한다.
          * 유키노 아그리아, 소라노 아그리아(엔젤) 자매도 적과 싸우고 있었는데 페어리 로로 인해서 적들이 분쇄됐다. 프로시와 렉터도 갑자기 적들이 쓰러졌다고 좋아한다. 유키노도 로그처럼 페어리 로에 대해선 모르지만 일단 적들이 사라졌다고 한숨 돌린다. 소라노는 아직도 언니라 불릴 때마다 "언니가 아니다"라고 무의미한 부정을 하는 태.--만담이냐-- 이들은 언덕 아래 쓰러진 적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절벽 위에서 "화려한 마법을 사용했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 어떤 남자가 태양을 등지고 앉아 있다. 그는 "답례를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고개를 못 들겠다"고 투덜거리고 있는데, 바로 라케이드 드래그닐. 유키노는 그가 스프리건 12의 일원임을 알아보지만 어딘지 다른 12와 다른 신성함이 느껴진다. 그는 전장에 있는 적 전원을 대로 어떤 마법을 발동하는데, "하얀 혼은 자유로운 하늘로"라고 뜻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 페어리 로처럼 전장을 가득 채우는 빛. 그런데 이 빛이 휩쓸고 지나가자 소라노가 격렬하게 몸을 떨더니 쓰러져 버린다. 같이 있던 유키노에겐 아무런 향도 없는데.
          * 같은 시각 미네르바와 로그도 향을 받는데 미네르바가 먼저 심하게 향을 받고 로그는 멀쩡해 보였지만 곧 향을 받고 쓰러진다.
          * 페어리 테일도 하나둘 향을 받으며 쓰러지는데 렉서스 드레아 조차도 견디지 못한다. 메이비스 버밀리온은 어른들만 걸리는 마법인가 생각하지만 모든 어른이 다 걸리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 자신도 향을 받는다. 메이비스는 "저항할 수 없다"고 말하며 쓰러지는데. 지금까지 무적의 포스를 자랑하던 길다트 클라이브 조차도 갑자기 쓰러져서 딸 카나 알베로나가 걱정하는데... 왠지 승천할 것 같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어서 한 대 맞는다.--가정폭력의 현장--
          * 오시리스 세이스와 제라르 페르난데스를 대하던 오거스트도 라케이드가 발동한 마법을 감지한다. 하지만 동요가 없어서 향을 받은 건지 어떤건지는 불명. 오시리스 세이스와 제라르는 쓰러져 있는데 오거스트에게 이미 당한 뒤같다.
          * 아이린이 엘자 스칼렛 일행과 대치하고 있는 현장. "나는 너, 너는 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데, 바로 그 직후에 라케이드의 마법이 덮치면서 아이린의 태가 안 좋아진다. 홍조를 띄우며 빈틈을 보이자 엘자는 바로 나츠 일행을 대피시키도록 하고 자신은 아이린과 싸우려 한다. 아이린은 당황하며 마법을 사용하는데 웬디 마벨이 막으며 엘자를 돕겠다고 한다. 아이린은 웬디의 마법이 부가술이라는걸 간파하는데, 그보다는 엘자 측에서 단 한 사람도 라케이드의 마법에 걸리질 않았다고 다들 "꼬맹이"라고 짜증낸다.
          * 라케이드가 밝히는 자신의 마법은 바로 "쾌락". 쾌락을 깨우친 자는 그의 마법을 거역할 수 없다. 쾌락을 계속 부여해서 결국 승천시켜 죽이는 어찌보면 행복한 마법. 향을 받지 않았던 유키노는 성령마법을 발동하며 라케이드를 공격하려 하는데 그가 한 발 빨랐다. 라케이드의 손짓에 따라 촉수 같은 것이 나타나 유키노를 휘감는데, 강제로 쾌락을 주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향을 받지 않던 유키노도 쾌락에 빠져 태가 안 좋아진다. 함께 묶인 프록시, 렉터도 마찬가지. 라케이드는 지와 무지는 "백과 흑"이라며 "쾌락과 고통"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라케이드의 마법의 발동 조건은 누가 봐도 "그거"지만 소년지의 한계 다른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독자들은 음란마귀가 잔뜩 껴서 그거 말고 다른 예측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는 태. 아무튼 이번 화 때문에 메이비스까지 비처녀 논란에 휩쓸리고 있다.--보기에만 저렇지 사실 마카로프보다 할머니--
         그럼 결국 동정 캐릭터가 하드 카운터가 아니냐는 설이 나오지만 유키노처럼 강제로 쾌락을 느끼게 해서 발동하면 되므로 거의 무적이나 다름 없는 마법--사실 동인계 제패를 위한 마시마의 포석--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하이스트 . . . . 23회 일치
          금고 안으로 뛰어내려 돈더미를 가방에 쓸어담는다. 구석구석의 돈뭉치도 잊지 말자. 곧 경찰이 금고 문을 열고 들어오니 서두르자. 하드 난이도 이부턴 금고 안에 불도저가 들어있다.
         >오전 11시 정각, 시 외곽 - 배반
          운전수인 맷이 페이데이 갱을 내버려 둔 채 서류가방만 가지고 도망갔다. 문을 열고 맷의 밴이 지나간 길을 따라 추격하자. 설으로 누군가 경찰에 찔러버려서 도로 곳곳에 경찰 저지선이 설치된 황.
          브루스가 오다가 경찰 총에 맞아 죽었다. 브루스의 차는 벽에 그대로 박아 못쓰게 된 황. 그냥 가자. 노말 난이도 부터는 브루스의 차 트렁크에 돈이 들어있다.
          맷의 밴은 뒤집어진 황. 하지만 맷은 나오기를 거부한다. 맷을 나오게 하기 위해 주변에서 가솔린을 구해 밴에 불을 붙이자. 한번으로는 안 나오므로 불이 꺼질 때 마다 가솔린을 구해 불을 붙여야한다. 피운 불에 닿으면 데미지를 입으니 주의.
          결국 견디지 못한 맷이 밴에서 기어 나왔다. 서류가방은 맷의 손목에 수갑으로 묶여있는 황. 베인은 일단 맷을 데리고 주차장에 와보라고 한다. 맷에게 주차장으로 가라고 명령하며 이동하자.
         갱단의 마약 공장을 기습, 마약 공장에 설치된 패닉룸[* 긴급 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소형 대피소.] 자체를 훔쳐가 그 안에 든 돈을 차지하는 하이스트.
          패닉룸을 끌어올릴 길을 트기 위해 C4가 필요하다. C4는 알렉스가 헬리콥터에서 던져줄 예정. C4를 얻기 위해 옥으로 가자.
          경찰이 주변 건물에 저격수를 배치했다. 이 태로는 알렉스가 C4를 던져줄 수 없다. 저격수를 제거하자. 은엄폐에 철저할 것.
          알렉스가 맵 내 랜덤한 곳에 C4를 던져줬다. 이제 건물 곳곳에 C4를 설치하자. 4층에 세개, 5층에 세개, 옥에 세개. 총 아홉개의 C4를 설치해야 한다. 한번에 C4 세개까지만 들 수 있으니 주의.
          * 옥으로 돌아가 헬리콥터를 기다린다
          알렉스의 헬리콥터가 패닉룸을 끌어올리기 위해 오고있다. 옥에서 기다리자.
          * 옥을 확보한다
          경찰 때문에 헬리콥터가 오도가도 할 수 없다. 옥으로 돌아가서 경찰들을 처리하자.
          이제 의뢰인의 아들을 찾을 시간. 죄수호송차 네대에 톱을 설치하고 막아내자. 호송차 네대가 넓게 널려있는데다가 경찰들이 헬기를 타고 오기 때문에 당히 힘들다. 죄수 호송차가 열리면 다가가서 죄수에게 호작용을 시도하자.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가넷 그룹 빌딩에 잠입, 2억달러 당의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하이스트.
          공범이 대형 교통사고를 내 운반차의 경로를 바꿨다. 운반차가 페이데이 갱의 위치를 지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건물 사이를 잇는 다리로 가자.
          포크레인이 금괴운반차를 도로 옆 낭떠러지로 밀쳐버렸다. 옆건물 비계단, 포크레인 옆 계단을 타고 내려와 도살장 건물에 들어가자. 머키워터 용병이 강하니 주의. 도살장 안에 있는 경비 두명을 처리하면 천장에 박힌 금괴 운반차가 보일 것이다. 기습 때 운반차를 쏘지 않았다면 운반차의 뒷쪽이 밑으로 가있다. 이 경우 뒷문에 C4를 설치해 금고를 떨어뜨려야 한다. 운반차를 쏘았다면 운반차의 앞쪽이 밑으로 가있다. 이 경우 전선을 쏴 운반차를 떨어뜨린 후, 뒷문에 C4를 설치해 금고를 꺼내야 한다. 전선을 쏘지 않고 오랫동안 기다려도 운반차가 떨어지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가끔씩 차량 안에 불도저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경찰의 눈을 가리기 위해 연막을 피워야 한다. 도살장 안에서 가솔린을 챙겨 컨테이너 야적장 앞 폐타이어 더미에 불을 지르자. 이걸 수행하면 더이 금괴를 옮길 수 없게된다.
         돈 세탁사이자 지폐 위조사인 미첼과 윌슨의 집을 습격하는 하이스트. 울프팩 DLC를 구매해야지만 플레이 가능하다.
  • 홍서범 . . . . 23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 대광동 (김천시) (환경로)
         |웹사이트 = {{싸이월드|43784609}}
         홍서범은 [[1958년]] [[12월 7일]]에 [[경북도|경북]] [[김천시|김천]] 대광동 (김천시) (환경로) 에서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재학 중 대학 2학년때 팀 '옥슨79'를 창설하면서 멤버로 활동했다. [[1980년]]에는 대학 캠퍼스 밴드 '옥슨80'의 멤버로 같은 해 [[동양방송|TBC]] '젊은이의 가요제'에 출전하여 '''불놀이야'''로 금을 수하며 데뷔하였다. '옥슨80'의 멤버로 활동하다 [[1989년]] 32세에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라는 자작 록 발라드 곡으로 솔로 가수가 되었다. 솔로 가수로 데뷔한 뒤에는 '''구인광고''', '''김삿갓''' 등이 히트를 치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TV 방송에도 출연, [[1994년]]에는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프로그램 홍서범의 뮤직쇼 DJ를 진행하였으며 그 해 화 《[[커피 카피 코피]]》의 주연(화배우)으로 스크린에도 데뷔하였다. [[2003년]]에는 라디오 DJ를 복귀하면서 [[서울방송|SBS]] 라디오 프로그램 '홍방불패'의 DJ로 활동하였다.
         == 수 ==
         * [[1980년]] - [[TBC]] 《[[젊은이의 가요제]]》 금
         * [[1993년]] [[KBS 가요대]] 올해의 가수
         * [[2008]] [[tvN]] 《발칙한 아내가 결혼했다》
         * [[2013년]] [[JTBC]] 《[[유자식 팔자]]》
         * [[2015년]] [[채널A]] 《[[아내가 뿔났다|아내가 뿔났다-남편밥]]》
         * [[2016년]] [[SBS]] 《[[동이몽, 괜찮아 괜찮아]]》
         == 화 ==
         * 홍서범 5집 RETURN TO ROCK (그래, 희야 놀자, 그대 떠난 이밤에)(2008)
         * 〈나 어떡해〉는 사회적으로 암울했던 시대, 대학 가요제 대을 수했던 곡이었다고 한다.<ref>[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39036 불후의 명곡2 홍서범, "'나 어떡해'는 당시 사회적 편견을 깬 곡"] {{웨이백|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39036# |date=20131227041836 }}《한국일보》</ref> 홍서범은 "당시 부모님들은 공부를 안 하고 기타치고 노래하면 혼을 내서, 대학생들이 몰래 노래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가요제 대을 수한 거다. 그래서 놀란 부모님들이 노래를 부르라 허락했다"고 하였다.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8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남양 홍씨 (당홍)]]
  • 강봉균(강사) . . . . 22회 일치
         (주) [[비교육]] 7차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사회> 교과서
         (주) [[비교육]] 7차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주) [[비교육]] 2009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사회> 교과서
         (주) [[비교육]] 2015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사회> 교과서
         (주) [[비교육]]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서
         (주) [[비교육]] <중 1 사회 내게 꼭 필요한 사회 자습서>
         (주) [[비교육]] <중 1 사회 시험에 강한 평가문제집>
         매년 강의마다 항 '''돌격!''' 이라는 슬로건이 붙는다. 2017 [[수능개념]] 강의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뽕큐'''라는 퀴즈를 만들어 강의 말미에 단답형 세 문제를 출제(?)하여 학생들이 강의 후기에 정답을 작성하도록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모든 학생들의 후기에 일일이 댓글을 다 달아주신다!'''
         문제를 풀이할 때 당히 창의적인 방법으로 푸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인구 부양비 관련 문제를 풀이할 때 유소년 부양비와 노년 부양비의 합이 총 부양비라는 원리를 이용하여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만 보고 정답을 도출해내는 등, 당히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문제를 풀이하는 편.
          * 고향이 [[경북도]] [[김천시]]로, [[한국지리]] 과목 특성 탓에 거의 매 강의마다 [[김천시]] 이야기가 나오는 듯 하다. ~~[[김밥천국]]의 [[약칭]]이 아니다!~~ 어릴적 김천에서 어머니가 운하셨던 슈퍼마켓 딸이라고 소개한다.
          수업 중간중간 먹방투어로 유명한데, 배 안고픈 태에서 들어도 침이 넘어가는 설명 때문에 ~~밤에 들으면 위험하다.~~
          수업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과 동시에 급연기를 하실 때가 많다. 1인2역으로 하는 연인 연기와 할머니 연기를 많이 하신다. 소울연기를 펼치다가 빠르게 설명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인적이다. --연기 중에서도 할머니 연기를 제일 잘하시는 것 같다.--
          * 학생들과의 수강후기 대화가 당한 편인데 잘하면 칭찬하거나 선물을 주기도 하고 잘못했거나 좌절하면 가끔 조언이나 [[팩트폭력|따끔한 충고]]를 주기도 한다.
          * 2018학년도 [[수능특강]] 강의에서 언급하기를 [[EBSi]] 내에서 [[수학]]의 [[이하]][* 모 [[위키니트]]가 [[이하]] 선생님 수강생 정모 당시 친분을 확인하였다. 이하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너'라고 편하게 불렀다고!][* [[여담]]으로 담당 PD 중 '진리 PD'라는 별명을 가진 PD와 이하 강사가 닮은꼴인 덕에 라이브 클래스에 두 사람을 같이 출연시킨 바 있다.]과 절친이라고 한다. [[지구과학]]의 박남정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모양이다. 또한 [[세계지리]]의 [[민병권(강사)]]과 매우 친해 2017 수능대비 민병권 세계지리 수능개념에서 아기공룡 둘리옷을 입고 부르기도 했다.~~참고로 강의 12강 냉ㆍ한대 기후와 빙하 지형(2)을 들으면 둘리옷을 입은 봉균쌤을 만날 수 있다!~~ ~~[[귀요미|귀엽다]]~~
          * 악기 연주 실력이 당하다. [[2012년]] [[8월]]에 진행한 '[[사회탐구]] talk 콘서트'에서 선보인 바 있다.
          * 생년월일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하 선생님과는 동갑인걸로 봐서 [[1979년]]생인데, 그렇다면 [[노안]]이다. 70년 초중반에 태어난 강사들과는 달리 후반에 태어났음에도 유일하게 나이들어 보인다.[* 사족이지만 2012년 현장강의에서 첫 [[EBS]]에 입사했을때 이런 외모 때문에 좌절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오래가지 않고 일찍 극복했다고 한다.] 민쌤보다 누나라고 한다!
          * [[배우]] [[고현정]] or [[강소라]]를 닮았다고 말하면 기분이 좋다고 하신다. 어떤 경우는 [[이경실]]을 닮았다는 평도 있다. 눈웃음을 지으면서 웃을 땐 [[하회탈]]을 닮았다고 인정하셨다. ~~수능 점수 승 버프를 받으면 갑자기 샘이 더 예뻐보인다.~~
  • 권해효 . . . . 22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조윤희[* 같은 연극 배우출신. 2017년 [[홍수]]의 화 [[그 후]]에서 권해효가 맡은 캐릭터의 아내로 출연한다.], 슬하 1남 1녀 ||
         || '''학력''' ||<(> [[한양대학교]] 연극화학 학사 ||
         || '''수''' ||<(> [[1998년]] SBS 연기대 우수조연 ||
         당히 독특한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데 부리부리한 눈과 큰 하관 때문에 턱과 관련된 별명이 많다. 예를 들면 90년대 말부터 불렸던 '''턱주가리'''라든지(...)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에르난 크레스포]]와 이목구비가 비슷하다. 또, 유럽 최대 컨설팅 회사 롤랜드버거의 샤를 에두아르 부에 CEO나 스티브 부세미와 몹시 닮았다.
         한양대 선배이자 동료 배우인 [[박광정]]과는 막역한 사이로, 서로 첫 대면한 자리에서 대방의 얼굴을 보자마자 속으로 ''''이야 이거 만만치 않은데?''''(권해효), ''''저쪽도 한 코 하는데?''''(박광정)하는 생각을 했다고. 나중에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하던 중 누군가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한 쪽이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서로 첫인이나 생각까지 비슷했던 걸 보니 역시 우린 잘 맞는다." 며 웃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두 사람은 오랜 시간 깨알같은 콤비로 활약하며 함께 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후 [[박광정]]이 폐암으로 별세하자 가족과 같은 수준으로 빈소를 지키며 장례를 마무리하는 의리있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중파 신인 시절인 1994년에 촬한 [[오뚜기]] [[스낵면]] CF의 자신의 이름을 활용해 입에 착착 감기는 애드립성 멘트 덕분에 광고 대인 스낵면이 아닌 본인의 인지도가 더 올라가기도 했다(...)
         === 화 ===
          * 1994 [[세 밖으로]]
          * 2002 [[패밀리(화)|패밀리]] : 최 검사 역
          * 2009 [[오체투지 다이어리]] : 나레이션[* 다큐멘터리 화]
          * 2013 [[사이비(애니메이션)]] : 최경석 역 (성우)
          * 2016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 박재
          * 2016 [[스플릿(한국 화)|스플릿]] : 백사장 역
         [[2005년]] [[10월 23일]] 혈중알코올농도 0.119%의 만취태에서 자신의 [[랜드로버|랜드로버 지프]]를 운전하다 [[http://star.mt.co.kr/stview.php?no=2005102607482318436&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음주단속에 적발]]되어 불구속 입건되었고, 운전면허는 취소됐다.
          * 각종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농성 지원, 위안부 일인 시위, 안티 조선 운동 등 여러 방면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며, 2015년 12월 28일의 위안부 협 국면에서는 아베에게 경고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기도. 또한 [[이승만]]의 어두운 일면을 남김없이 들춘 '''백년전쟁 - 두 얼굴의 이승만'''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나레이션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 [[우리겨레하나되기 운동본부]]의 홍보대사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22회 일치
          * 그는 일 중에도 그런 고민을 은연 중에 비추곤 했는데 [[이이다 텐야]]는 "진짜 어찌할 수 없으면 말해줘"라고 했던 말을 기시켜 그를 고무시킨다.
          * 수사가 진전되어 마침내 결행일. 나이트아이가 시에핫사이카이의 하수인으로 보이는 남자를 특정하면서 작전이 결정된다.
          * 시에핫사이카이에 대한 수사에서 "에리쨩 구출작전"으로 변경된 [[서 나이트아이]]의 수사. [[미도리야 이즈쿠]]를 비롯한 웅고 1학년 A반의 인턴 히어로들 또한 참가가 결정, 구체적인 작전이 실행되기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대외적으론 극비. 작전에 참가하는 [[키리시마 에지로]], [[우라라카 오챠코]], [[아스이 츠유]]는 겉으로는 평범하게 수업에 참가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태도가 달랐다. 이는 학업 성적에도 향을 줘서 다른 학생들이 "인턴조는 뭔가 다르다"고 감탄할 정도였고 질투가 심한 [[바쿠고 카츠키]]는 "인턴에서 뭘 알아낸거 아니냐"고 그 비결을 알려달라 닥달하지만, 이미 "극비"처리된지라 누구도 발설하지 않았다.
          * [[아이자와 쇼타]]가 교사이자 선배 히어로로서 미도리야의 각오를 확인한 그날, 다른 학생들도 거기서 참가가 결정되었다. 아이자와는 그들의 참가를 일단 허가하지만 "어차피 너희에겐 별로 활약할 여지가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알려준다. 물론 빅3, [[토오가타 밀리오]]와 [[하도 네지레]], [[아마지키 타마키]]는 다를 것이다. 이들은 이미 프로와 동등 이의 평을 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1학년들은 사정이 다르다. 그러면서 미도리야는 어쨌든 나머지 셋은 자기들 의지로 여기 있는게 아니냐며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 우라라카는 그를 "이레이저 헤드"라 부르며 벌떡 일어난다. 츠유도 마찬가지였다. 담임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물러날 수가 없다, 그녀들의 입장은 확고했다. 우라라카가 격하게 입장을 표명하자 츠유는 선생님이 반대하지 않는데다 어린 소녀가 처입고 있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다며 조력할 의사를 표명한다.
          타마키는 "회의에 참가한 이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이들의 발언에 힘을 보탠다. 쓸데없이 "나같은 거 보다 1학년이 더 눈부시다"는 네거티브를 하다 네지레에게 츳코미 당하지만.
          키리시마도 "우리 힘이 조금이라도 그 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겠다"고 물러서지 않는다. 이렇게 세 사람이 분명히 입장을 밝히자 아이자와 쇼타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단지 "의사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라 밝히는데, 그러면서 이번 작전에서 학생들이 담당할 역을 정확하게 밝힌다.
          작전은 어디까지나 "에리쨩"이란 소녀의 발견과 보호가 목적. 그 이 파고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일 걱정해야 할 건 [[빌런 연합]]의 그림자다. 경찰이나 나이트아이의 견해 으론 딱히 양호한 관계는 아니라 하니 이번 가택 조사에서 같은 장소에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황이 발생한다면 1학년의 참가는 거기서 끝이다. 이 점은 학생들도 납득한다.
          * 그렇게 해서 "에리쨩을 보호한다"는 목표 아래 1학년들은 분발했다. 그렇지만 미도리야 만은 순수하게 그 임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직도 나이트아이와 [[올마이트]] 간의 문제에 대해서, 나이트아이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기회도 용기도 없었다. 달리 누군가에게 담할 수도 없었다. 작전에 함구령이 내려졌으니 올마이트와 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문제를 키리시마나 우라라카와 공유할 수도 없다.
          미도리야는 일단은 "에리쨩 보호에 전력으로 임해야 한다"는 각오로 여러가지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이미 아슬아슬한 태인 거라고 자평했다. 그도 그럴게 고민하는 기색을 도저히 숨기지 못하고 남에게 보여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지금도 학생 식당에서 밥을 앞에 두고 멍하니 있다가 [[토도로키 쇼토]]가 "안 먹냐"고 지적했다.
          * 지난 회의에서 불평만 늘어놓다 끝난 레게풍 히어로는 일단 임무는 충실히 이행했다. 미도리야가 학교에 있는 동안 어느 도심지. 그는 시에핫사이카이와 연루된 시설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는 "거점이 될만한 포인트"를 염두하며 원탑 형태의 어떤 건물을 조사했다.
          흥분한 히어로들이 목청을 높였다. 그렇다면 요 이틀동안 돌아다닌게 다 허사란 이야기. 나이트아이는 "새로운 정보"를 입수한 경위를 설명하며 그들을 달랜다. 그가 내놓은 정보는 허무맹랑할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시에핫사이카이의 하수인이 며칠 전 백화점에서 여아용 완구를 샀다는 것. [[패트껌]]이나 레게풍 히어로는 고작 그런 걸로 특정이 되는 거냐고 따진다. 패트껌이 "단지 그런 취미를 가진 인간은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하자 나이트아이는 "그런 취미가 있는 거라면 하지 않을 대사"를 했다고 밝힌다.
          * 그가 공언했듯 "확신을 얻었을 때 확인용"으로 사용한 예지. 이번엔 유효하게 작용했다. 이후 그 남자가 집에 있는 시간은 [[버블걸]]과 [[센티피드]]가 확보.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는 장도 발부됐음을 알린다.
          * 작전개시. 빅3, 1학년 인턴들을 포함한 히어로 군단이 시에핫사이카이의 본거지 앞에 당도했다. 하나같이 의욕이 충만한 모습들. 이대로 에리쨩을 구출하고 시에핫사이카이를 일망타진할 수 있을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22회 일치
          * [[키리시마 에지로]]가 이목을 끄는 사이 [[패트껌]]이 회심의 창을 완성시켰다. 랏파는 여전히 싸우길 원하나 텐가이는 배리어를 치고 꼼짝도 안 한다.
          * 텐가이는 키리시마가 이것을 노리고 특공을 한 거라 여기나 사실 키리시마는 그저 "어떤 황"이 두려워서 한 일일 뿐이다.
          * 의협 히어로 "크림슨 라이오트"를 동경해 단련하고 있었으나, 같은 학교의 [[아시도 미나]]처럼 진작부터 웅고 지망생으로 취급되지도 않았다.
          * 어느날 기이하고 거대한 사내가 나타났다. 특별히 행패를 부리지 않았으나 험궂은 외모에다 건물만한 키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했다.
          * 키리시마는 "의협심"을 발휘해 보려 했지만 너무 무서워서 발이 떨어지지 않고, 그 사이 아시도가 용기를 내어 길을 알려줘서 무사히 화이 끝난다.
          * 그러나 키리시마는 엄청난 좌절감을 맛봤다. 드러내진 않았으나 내심 웅고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방금 전 사건으로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
          * 자신의 나약함에 절망한 키리시마는 진로조사서에 1지망으로 웅고를 적어놨던 것도 지워버린다.
          * 전의를 실한 줄 알았던 [[키리시마 에지로]]가 랏파의 난타에도 불구하고 그를 몰아붙였다. 비록 텐가이의 배리어에 막혀 마지막 한 발을 꽂아넣진 못했으나 랏파가 크게 호응할 정도로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무리한 탓에 금새 쓰러지는 키리시마. 그러나 그 사이 [[패트껌]]이 자신이 축적한 에너지를 끌어모은 최강의 "창"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위력을 직감한 텐가이. 랏파가 배리어를 풀라고 아우성쳐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금 키리시마의 분전이 이 한 방을 위한 특공이었다며 자신의 오판을 후회한다.
          키리시마의 이런 참견은 그 학교 깡패들 사이에선 유명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별다른 위협이 되진 못했는데, 당시만 해도 키리시마의 경화는 어정쩡한 수단이었고 싸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조금 단단해지는 정도의 개성"으로는 횡포를 말릴 수가 없었다. 깡패들은 그를 귀찮아 하며 삥뜯던 후배를 끌고 다른 데로 가버린다.
          크림슨 라이오트는 키리시미가 존경하는 히어로였다. 꽤 오래 전에 활약한 인물로 지금 시대의 중학생들 에겐 낡은 히어로 취급을 당했지만, 키리시마만은 그의 어록을 항 곱씹으며 생활화하곤 했다.
          * 사건을 해결한 미나는 아무 일도 없던 듯 친구들과 어울리러 간다. 키리시마와 그 친구들은 좀 떨어진 위치에서 모든 장면을 목격했다. 친구들은 "저런 사람이 자연스럽게 되는 거다"라며, 그녀가 웅고를 지망한다는 정보를 수군댄다. 그녀에 대한 평가는 당이 높다. 운동신경이나 사교성, 게다가 "강렬한 개성"에 외견까지 눈에 띄는 그녀는 누가봐도 히어로가 될 만한 재목이다. 현재의 히어로 업계는 일종의 연예산업과도 같다. 대중의 인기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친구들의 화제는 곧 진로로 돌아간다. 친구 중 하나가 미나처럼 자기도 웅고 지망으로 해볼까 하지만, 다른 친구는 택도 없다고 여긴다.
          키리시마에게도 어쩔 생각이냐고 묻는데, 그는 그냥 얼버무려 버린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제 1지망으로 웅고를 적은 용지가 감춰져 있다. 그걸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다. 그리고 한편으론 미나처럼 화려한 개성을 가졌더라면 당당하게 웅고 히어로과를 지망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며 귀가했다.
          * 사건은 그 평범한 귀가길에서 일어났다. 길 건너편의 무언가가 키리시마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집체만한 거인이었다. 넝마조각을 뒤집어 쓰고 구부정한 자세에 맨발, 의미없이 켜져 있는 라디오 방송. 평범한 노숙자의 행색이었다. 그 덩치를 빼면 말이다. 덩치 때문에 누가봐도 수한, 위험한 인물이었다. 거인은 길을 가던 여학생들에게 길을 묻고 있었다.
          키리시마와 같은 학교 학생들이었다. 단지 길을 묻고 있었지만 수한 분위기와 몸집 때문에 여학생들이 겁을 먹었다.
          위험이 사라지고 나서야 하나둘 사람들이 다가갔다. 하지만 키리시마는 그때까지도 전혀 다가서지 못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대로 답이 분명한 질문을 던졌다.
          * 그날 밤. 키리시마는 진로희망 조사서를 책에 펼쳐놓았다. 지난 봄에 [[바쿠고 카츠키|키리시마랑 동갑인 중학생]]이 강력한 빌런에게 저항한 사건이 화제가 된 적 있다. 결국 [[올마이트]]가 해결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사건.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부분 이외에, 올마이트가 도착하기 전에 [[미도리야 이즈쿠|중학생의 친구]]로 보이는 아이가 뛰쳐나왔다는 말도 있었다. 의협심. 크림슨 라이오트가 강조한 것.
          * 자신의 나약함을 마주한 키리시마는 진로희망 조사서에 적혀 있던 "웅고"란 글자를 까맣게 덧칠해 비워버린다.
  • 류중일 . . . . 22회 일치
         |문 표기 = Ryu Jung-Il
         |사진 사이즈 = 270px
         |출신지 = [[대한민국]] [[경북도]] [[덕군]]
         [[1982년]] 3학년 재학 때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기념으로 열렸던 와의 우수 고교 초청 대회 결승전에서 [[투수]] [[김종석 (1964년)|김종석]]을 대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1호 홈런을 기록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410&aid=0000011188 류중일 감독, 손주인-강명구에게 특별한 선물] - 매일경제</ref> 1981년 봉황대기 미기고 주장을 맡은 1982년 대통령배 감투, 대붕기 최우수선수을 수. 초고교급 유격수로 발돋음하고. [[한양대학교|한양대]] 체육학과(1983학번) 시절 1985년 ~ 1986년에 3학년, 4학년 때 대학야구 올스타 [[유격수]]로 선정되었다.
         [[2006년]]·[[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및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어 활동했다. [[199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2000년]]부터 [[김용희 (야구인)|김용희]], [[김응용]], [[선동열]] 감독 밑에서 코치로 보좌한 후, [[2010년]] [[12월 30일]] [[선동열]]이 경질되자 [[선동열]]의 후임으로 [[2011년]] [[1월 5일]]에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09&yy=2011 류중일 감독 "신인 패기로 KS 우승 데뷔 축포 쏜다" ] - 매일신문</ref>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다.<ref>최초의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감독은 [[서정환]]이고, 류중일은 [[삼성 라이온즈|삼성]] 출신 선수 중 선수 및 코치로 활동하면서 단 한번의 팀 이동 없이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2011년]] 감독 부임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으며, "야구 대통령"을 줄인 '''"야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9280100191240017032&servicedate=20110927 류중일호, 우승을 가능케 한 키워드 4개] - 스포츠조선</ref> [[대한민국]]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소프트뱅크]]를 꺾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5476 '야통' 류중일 감독, 야신도 못한 亞 정 위업] - OSEN</ref> [[2012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과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냈다. [[2013년]] 정규 리그 우승과 [[2013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 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3년]] 시즌 후 계약 기간 3년의 조건으로 계약금 6억 원, 연봉 5억 원 등 총액 21억 원에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72898 류중일 감독, 3년 재계약…총액 21억원 사 최고 대우] - OSEN</ref>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어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1라운드 탈락의 쓰라림을 딛고 우승을 이뤄냈다. [[2014년]]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사 최초 통합 4연패를 달성하였고, [[2015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으로 5년 연속 정규 리그 우승으로 새 역사를 썼지만,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개최되기 전, 삼성 투수들의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인해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두산 베어스]]에게 내주고 만다. [[2016년]]에는 [[박석민]],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채태인]]을 잃었고,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 선수들의 줄부과 부진으로 팀 최초 정규리그 9위에 머물게 되자, [[2016년]] [[10월 15일]] 계약 만료로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기술고문을 맡게 되었다.
         2017년 10월 3일 정규 시즌 최종전에서 계약기간 3년에 총액 21억원(계약금 6억원, 연봉 5억원)에 계약하며 [[LG 트윈스]] 1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631314 오피셜 LG 공식발표, "양문 단장-류중일 감독"] - OSEN</ref>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골든 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골든 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
         |전임자 = [[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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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 류씨]][[분류:덕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LG 트윈스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블랙 클로버/121화 . . . . 22회 일치
          * 노엘은 적진의 크리스탈에 도달하는데 성공하나 그 앞은 오빠 [[솔리드 실버]]가 막고 있는 황. 링가드는 마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해 노엘을 격려한다.
          * 노엘은 오빠의 뱀 형의 마법이 초라해보일 정도로 거대한 마법 "해룡의 포효"를 발동, 오빠와 적 크리스탈을 한꺼번에 때려눕히고 승리를 쟁취한다.
          * 때는 수년 전. [[알렉드라 산드라]]는 전쟁 중 부을 입었다. 숨어있던 매복에 당한 그는 어느 동굴에 고립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구조는 바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찰라. 신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금색의 여명 단장 [[윌리엄 벤전스]]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나타난 그를 바라보며, 알렉드라는 일종의 경의를 느꼈다. 그 표현도 부족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본 그림을 떠올렸다. 그 안에 묘사된 신의 모습. 신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신은 벤전스였다. 벤전스에게 구원 받고, 그를 추앙하며 지내온 나날. 알렉드라는 벤전스에게 마법 외에도 불가사의한 힘이 있고 그 따스한 힘이 단원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고 믿었다. 금색의 여명은 바로 그런 형태의, 벤전스에게 선택받은 엘리트 귀족 집단. 마치 신앙 같은 믿음. 그는 벤전스와 자신의 믿음을 위해 싸워왔다. 그 믿음은 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한 사람의 등장으로 무참히 짓밟혔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의 입단. 볼품없는 하층민. 모든 단원을 평등하게 대해준 벤전스가 유일하게 특별취급하는 햇병아리.
          기회가 왔다.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로얄 나이츠 선발시합. 딱 좋은 무대였다. 알렉드라는 크리스탈을 지키러 온 유노를 뭉게버릴 작정이었다. 단숨에 자신의 최강 마법을 발동시켰다. 거대한 기사의 형을 취하는 모래의 마법.
          알렉드라가 일갈했다. 바람의 정령 "벨"은 그 말에 반발했다. 자신에게 선택받은 것도 유노의 힘. 벨이 그렇게 말하며 저 열받는 녀석을 해치우라고 부추겼지만 유노는 지극히 냉정한 태였다.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벨더러 물러나라고 하는데. 그 태도 또한 알렉드라를 자극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어깨에서 버섯이 돋아났다. 그 버섯은 점점 무거워지더니 더이 비행을 유지할 수도 없을 정도가 됐다. 추락하는 천연파마. 바닥에 쳐박혀 있는 그를 달리는 버섯이 지나쳐간다. 다리는 버섯? 아무도 신경쓰고 있지 않았던 [[엔 링가드]]의 균 마법 "달리는 버섯 군"이었다. 그가 천연파마를 지나치며 진작에 포자를 붙여두었다고 설명해줬다. 그는 노엘이 적 크리스탈까지 가도록 서포트할 작정이었다.
          * 링가드 덕분에 노엘은 무사히 적 크리스탈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할 무렵엔 솔리드가 그녀를 추월해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자신이 온 이 노엘은 크리스탈에 처 하나 낼 수 없다 자신하는 솔리드. 거기에 반박한 것은 노엘이 아니라, 그녀 어깨에서 돋아난 싸나이다운 면의 버섯이었다. 버섯은 적보다는 아군인 노엘을 놀래켰다. 버섯은 그 뻔뻔한 면으로 나불거리며 노엘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이것은 "말하는 버섯군"이란 링가드의 마법이었다. 링가드의 목소리를 전하는 통신기 같은 것이었다. 편리한 마법이지만 기괴한 형 탓에 노엘은 왜 이딴걸 붙여놨냐고 기겁했다.
          >그걸 그런 식으로 처 입히는 소리를 하다니... 용서못해!
          버섯을 통해 하는 말은 본체를 할 수도 없이 쌈박한 것 뿐이었다. 노엘이 꺼림직해할 정도로 극과 극. 물론 자제심 없는 솔리드가 오래들어줄리 없었다. 그는 뱀 형의 물마법을 채찍처럼 휘둘러 버섯군을 베어버리고 노엘의 왼쪽 뺨에도 처를 냈다. 빌어먹게 약한 노엘이 자신을 이길리가 있겠냐면서.
          >이제 당신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관없어.
          * 알렉드라가 자신한 그의 최강 마법은 그 위력을 선보이지도 못했다. 유노는 정령마법을 쓰지 않았다. 바람 마법. "폭풍의 탑"을 사용했다. 탑처럼 거대한 회오리의 마법. 그러나 그것은 알렉드라의 마법 내부에서부터 치솟았다. 거대한 기사가 허무하게 모래바람으로 흩어진다. 유노는 아무 수고도 없이 사용한 마법이지만, 그걸 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경악했다. 알렉드라 조차도. 타인의 마법 내부에 자신의 마법을 발동하는건 누구도 예치 못한 묘기였다. 모두가 목격해놓고도 저런게 정말 가능한 거냐고 하나같이 수군거렸다.
          * 유노가 정령 마법에만 의존한다고 믿었던 알렉드라에겐 천지가 뒤집힌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정작 유노는 아무렇지도 않게 등을 돌렸다. 더이 알렉드라를 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특히 그에겐 "벤전스의 꿈을 이루어주겠다"는 알렉드라의 소망이 이해할 수 없는 얘기였다.
          * 자신만만했던 솔리드는 빠르게 무너졌다. 그의 눈 앞에선 불가능한 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일족의 수치가 쓰는 마법이, 자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는 물의 뱀을 만들어냈지만 노엘은 그것을 몇 배나 초월한 거대한 용을 불러냈다. "해룡의 포효". 노엘은 해룡을 몸에 휘감은 채 정말로 이걸 쏴도 되겠냐고 압박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존심을 포기하지 못한 그는 "저런 녀석이 쓴 마법이 내게 맞을리 없다"는 근거없는 추정을 맹신했다.
  • 서지영(가수배우) . . . . 22회 일치
          * 위 문서: [[가수/한국]], [[배우/한국]]
         || '''이름''' ||<(> 서지(徐智英) ||
         || '''가족''' ||<(> [[서종철]](조부), 조은주(어머니), 서배준[* [[거침없이 하이킥]]에 [[신지]]와 잠깐 사귀었다가 안좋게 헤어진 한민 역을 맡은 배우. 이 당시엔 서현이라는 예명을 쓰고 있었다.](오빠), [br] 남편[* 일반인. 5살 연의 금융계 종사자라고 한다.], 아들, 딸 ||
         [[아이돌]] 혼성그룹 [[S\#ARP]]의 멤버였으나 불미스런 일[* [[http://blog.naver.com/lovelyglory/30186651265|당시 사건을 정리한 글.]] ~~어째 [[류시원]]의 흑역사인 것 같다?~~]로 탈퇴, 그리고 그룹 해체의 원흉으로[* 당시 서지이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했는데 그 와중에 ~~더이 못참은~~ 매니저가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기자회견은 종결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ZLciKUxVTsU|이 때의 기자회견 은 서지 역관광 으로 길이길이 보전되었다.]]] 매니저가 진실을 폭로한 이후 서지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과 그 행동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허둥지둥이 압권이다~~ 밝혀져 당시 여론의 비난을 엄청 받았다. --결국 남자 멤버 2명은 덤으로 실직자가 돼버렸다-- [[이지혜(가수)|이지혜]]와는 그 후로도 서로 거리를 두다가 [[절친노트]]에 같이 출연한 것을 계기로 화해를 시도[* 절친노트 이전에도 회사 차원에서 연결해준 자리에 가서 몇 번 만났다 기사에도 났지만 생각만큼 잘 풀리지는 않았고, 절친노트 이후가 되어서야 서로에 대한 언급을 조금 더 편하게 하기 시작한 듯. 그래도 직접적인 만남은 피해오다가 이후 장석현의 주선으로 조금씩 가까워진 모양.]했고 나중엔 남자멤버들과도 같이 만나는 사진들을 공개하는 등 이제는 앙금은 거의 씻겨 나갔다고 봐도 될 정도로 절친이 되었다고 한다. 서로의 인스타그램에서도 간간히 만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지혜 보살설--
         [[한류]]스타 [[류시원]] --류시퍼-- 과 세기의 커플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화려한 연애를 한 적이 있었다. 결별 후 류시원은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서지에 대해 언급하기도.
         또 [[신화(아이돌)|신화]]의 [[이민우(신화)|이민우]]와 연애를 한 적이 있었다. 공개연애는 아니었으나, 미용실도 같이 다니는 등 꽤 대놓고 사귀었으며 세기말 때 신화 숙소를 뛰던 팬들은 다 아는 사실. 그런데 2007년, [[MBC 드라마넷]] '[[박경림]]의 화려한 외출' 에서 이민우가 "샵의 서지과 연기자 신애와 스캔들이 났었다" 고 말한 뒤 곧 "서지과 신애는 내가 정말 좋아했고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라며 교제했던 사실을 당당히 밝혔다. 그러나 헤어진 연인의 이름을 방송에서 일방적으로 밝힌 것이 경솔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후에 이민우는 서지과 신애에게 전화로 사과했다.
         하지만 [[http://tvpot.daum.net/v/OFfj6mGnZp4$|당시 방송]]을 보면 꽃다발의 꽃들이 병문안에 부적절한 조합은 아니었고 해당꽃도 어디까지나 사진의 각도 비슷하게 보인것이지 국화꽃이라 보긴 무리가 있다. 일반 국화가 아닌 들국화일 가능성은 있지만 들국화 자체는 병문안에 부적절한 꽃은 아니다. 과거에 안 좋았던 행실로 욕먹는건 당연하지만 당시에 받은 이지혜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았고 이후로도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는 황을 왜곡하는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
          * 집안이 당한게 화제가 되었었는데, [[할아버지]]인 [[서종철]]은 前 [[육군참모총장]]에 [[국방부장관]]을 지냈고 초대 [[KBO]] 총재를 지냈으며, 작은아버지 서승환은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에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어머니 조은주도 디자이너이자 대학 시간강사로 재직중이다.
          * 2011년 11월 10일, 지인의 소개로 약 1년간 교제해온 5세 연의 금융계 종사자와 [[결혼]]하여 2014년 딸을 출산했다. 이후 2017년에는 아들을 출산했다.
  • 소진은 . . . . 22회 일치
         '''소진은'''(蘇鎭殷, <small>일본식 이름:</small> 伊蘇正峰, [[1892년]] [[1월 18일]]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겸 경찰 간부로, 본적은 [[경북도]] [[대구부]] 삼립정이다.
         [[조선총독부]] 군수를 지낸 [[소진하]](蘇鎭夏)와는 형제 관계이며, 아버지는 [[소규]](蘇榮奎)이다. [[1911년]]에 문관보통시험에 합격하여 총독부 관리가 되었다. [[1912년]] [[1월 29일]] 조선총독부 경북도 김산군 서기로 임명되었고, 1914년부터 1920년까지 [[김천군]] 서기로 근무했다.
         [[1921년]] 조선총독부 경북도 경부에 임명되었으며, 왜관경찰서 경부로 발령받은 뒤부터 경찰 간부로 이동했다. 주경찰서(1922년 ~ 1923년), 포항경찰서(1925년 ~ 1929년)를 거쳐 경북도 경찰부 보안과 경부(1930년 ~ 1931년)로 근무하면서 정치범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다. [[1932년]]부터 1933년까지 경북도 경찰관교습소 교관으로 활동했고, [[1933년]] [[5월 12일]]에는 도경시로 승진하면서 전라북도 경무과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 때부터 전라북도 순사교습소장, 순사징계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다시 관계로 돌아와 총독부 군수직을 지냈다. [[평안북도]] 선천군수(1937년 8월 6일), 의주군수(1941년 3월 31일 임명)를 역임했다. 1938년 8월 1일 당시에는 종6위에 서위되어 있었으며, 그밖에 쇼와 대례 기념장(1928년 11월 16일), 훈8등 서보장(1930년 2월 12일), 훈7등 서보장(1933년 9월 4일), 훈6등 서보장(1935년 9월 9일), 훈6등 단광욱일장(1940년 4월 29일), 훈5등 서보장(1941년 8월 9일), 일본적십자사 유공장(1944년 12월) 등을 받았다. 특히 훈6등 단광욱일장은 선천군수 재직 시절 [[중일 전쟁]] 당시에 군대의 숙 및 급식, 군용물자의 조달, 군대 군인 및 파견 가족의 후원 및 위로, 국채 소화 및 저축 장려, 국방헌금 및 애국기 헌납자금 모집, 국방 사 보급 및 선전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여 받은 것이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경시 부문,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와 경찰 부문에 수록되었으며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5남 3녀의 자녀 중 3남이 대한민국 외무공무원이며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지낸 [[소 (1922년)|소]]이다.
         * [[소 (1922년)|소]]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
         |제목=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 보고서 Ⅳ-8|연도=2009
         [[분류:189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진주 소씨]]
  • 식극의 소마/203화 . . . . 22회 일치
          * 서로의 음식을 시식한 학생들은 각자 승자라고 생각하는 팀을 선택하는데, 놀랍게도 정확히 2대2로 표가 갈린다. 그것도 모두 대방의 음식을 선택.
          * 하지만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팀 사이바 쪽이 승리라고 주장한다. 특히 타쿠미는 에리나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 타쿠미는 팀 사이바의 것은 전위예술처럼 호의 발을 마구 부딪힌 것으로 매우 파격적이고 재미있는 발이라 칭찬한다.
          * 센자에몬은 손녀가 즐겁게 홍백전을 즐긴 것에 만족하며 호의 기량을 파악한 거야 말로 홍백전 최대의 성과라 평한다.
          * 센자에몬은 에리나가 [[사이바 죠이치로]]에게 자신의 요리를 펼쳐보였 듯 아버지 [[나키리 아자미]]에게도 그렇게 하길 원한다.
          *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양팀의 아쉬 파르망티에. 심판을 맡고 있던 [[나키리 센자에몬]]이 시식을 앞두고 있다. 팀 도지마의 경우 어느 정도 정석에 가까운 아쉬 파르망티에지만, 팀 사이바 쪽은 정말 괴한 발들만 때려박은 물건이라 어떤 맛을 낼지 모두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 팀 도지마의 아쉬 파르망티에를 시식한 에리나와 [[유키히라 소마]]는 보들보들한 머쉬 포테이토[*폼므 퓨레]를 연한다. 소마는 마법처럼 섬세하게 만든 화과자 같다고 평.
          * 이번엔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팀 사이바의 아쉬 파르망티에를 시식한다. 에리나가 구웠던 스테이크는 주사위 썰기 해서 건더기로 들어가 있고 [[사이바 죠이치로]]가 구웠던 크레이프는 이 스테이크와 소마의 치리멘차코, 그리고 머쉬 포테이토를 감싸고 있다.
          * 마침내 선택의 시간. 센자에몬은 서로 이겼다고 생각하는 팀을 가리키라고 지시한다. 학생들은 고민 끝에 선택하는데, 서로가 대방을 가리키고 있다.
          * 지켜보던 사람들은 의외의 결과를 보고 놀란다. [[도지마 긴]]이나 죠이치로는 말 없이 지켜본다. 어쨌든 관객들은 "신의 혀"를 가진 에리나가 대팀을 가리키고 있으니 가장 정확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 하지만 타쿠미는 납득할 수 없는 평이라 말한다. 타쿠미는 팀 사이바의 참신함을 높이 평가한다. 아쉬 파르망티에의 세 가지 구조를 대범하게 재해석한 결과물이 이것이다. 팀 사이바는 마치 아티스트들이 호의 개성을 맞부딪히는 전위예술과도 같다. 매우 이색적인 콜라보레이션인 것이다. 특히 에리나가 구웠던 스테이크를 칭찬하는데 쇠고기의 최고급 부위인 "앙트르코트"를 웰던으로 구운데다 볼트 와인을 아낌없이 쏟아부워 소스 보르돌레즈를 만들어 크레이프에 담았다. 이것으로 중후함과 식감이 겸비된 미트 소스가 된 것이다.
          * 에리나는 겸연쩍어 하며 좀 더 치리멘자코의 맛을 살리는 소스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것으로 충분히 멋진 요리였다고 추켜세운다. 셋은 에리나가 그렇게 즐겁게 요리하는건 처음이었다고 수군대는데 에리나는 자기를 놀린다고 발끈한다. 넷은 서로 싸우는 듯한 말투로 서로의 발을 칭찬하며 티격태격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승부는 무승부지만 자기들이 의도한 바는 달성했다고 흡족해한다. 게다가 왠지 애초에 다퉜던 주제에 대해선 흐지부지 잊어버린다. 센자에몬은 이 승부의 진정한 의도는 각자의 역량과 기술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것이었다며 홍백전의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 센자에몬은 에리나에게 재밌어 보이는 요리였다고 칭찬하는데 에리나는 또 놀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본래 자기라면 이런 요리는 하지 않았을 텐데 소마 부자에게 휘말려서 그렇게 된 거라 변명한다. 하지만 센자에몬은 그런 부분이 저 부자를 서로 향시켜 온 거라고 말하며 저 부자에겐 저런게 일이었기 때문에 이 승부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요리를 낼 수 있었던 거라 말한다.
  • 원피스/877화 . . . . 22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가 봤던 "예지"는 부하들 전원이 루피에게 당하는 모습. 카타쿠리는 부하들 전원을 미러월드로 달아나게 하고 루피를 대하러 나선다.
          * 나미는 쿠드버스트를 사용해 단숨에 해안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페로스페로의 사탕이 배를 덮어 불가능한 황.
          * [[브룩]]과 [[쵸파]]의 선전도 거기까지였다. 적을 아무리 쓰러뜨려도 소용없었다. [[샬롯 브륄레]]가 미러월드에서 보내오는 병력은 끝이 없었다. 거울에 있는 나미의 방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모두 브룩과 쵸파를 노리고 오는 적들이었다. 먼저 제압된 건 쵸파였다. 브룩도 얼마 시간을 두지 않고 잡혔다. 적의 수도 만만치 않았지만 [[샬롯 페로스페로]]의 사탕 공격이 결정적이었다. 쵸파는 벌써 몸의 대부분이 사탕으로 코팅 당했다. 사탕 코팅에 당한 이 변신도 무리였다. 브룩은 아직 팔다리 뿐이지만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페로스페로는 무슨 생각을 한 거냐고 비웃었다. 정말 자기들로부터 배를 탈환할 줄 알았냐면서. 그는 겁에 질린 쵸파를 잔인하게 조롱했다. 이미 한 번 기회를 줬지만 그들이 차버렸으니, 전부 "캔디 인간"으로 만들어서 핥아먹어주겠다고 말했다. 사탕 코팅은 이제 쵸파의 얼굴까지 도달했다. 쵸파가 사탕에 익사당할 것 같았다. 완전한 "캔디 인간"을 만드는데 드는 시간은 단 3분. 마침내 쵸파의 머리 끝까지 사탕에 쌓이며 머리 위엔 남은 시간을 나타내는 사탕 타이머까지 생겼다.
          * [[샬롯 카타쿠리]]가 유혹의 숲에서 묘한 움직임을 주목한 건 그때였다. 숲이 심치 않은 굉음을 내고 있었다. 곧 호미즈들이 뿌리째 뽑혀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곧장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카타쿠리가 그 움직임을 형에게 알렸다. 빅맘 [[샬롯 링링]]이 틀림없다. 페로스페로는 그렇게 여겼다. 이제 마마가 왔으니 장난질도 끝마칠 때다. 빅맘을 [[샬롯 푸딩]]이 웨딩 케이크를 만들고 있는 카카오 섬으로 유인해야 하니까. 행여라도 빅맘이 이 배에 웨딩 케이크가 없다는걸 알아차리면 그도 죽을 것이다. 하지만 숲을 유심히 관찰하던 카타쿠리는 "그럴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곧 페로스페로도 그걸 깨달았다. 숲을 무너뜨리듯이 가르고 나타난 것은 빅맘만이 아니었다. 빅맘에게 죽었다고 생각했던 밀집모자 일당, [[몽키 D. 루피]]와 그 일당들이었다. 여전히 빅맘의 추격을 피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 카타쿠리는 방금 전 번개에 당한건 빅맘 해적단의 추격대였음을 직감한다. 페로스페로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루피 일행이 나타나자 낭패했다. 루피의 위치기에선 육안으로 써니호의 선이 보였는데 브룩과 쵸파가 사탕에 코팅돼 굳어 버린 걸 보고 깜짝 놀란다.
          * [[페드로(원피스)|페드로]]도 선을 점거한 페로스페로와 카타쿠리를 보고 "귀찮은 녀석들이 앞질렀다"고 불평했다. 이제 선에 남은 빅맘 해적단은 카타쿠리와 페로스페로 단 둘. 페로스페로가 먼저 움직였다. 그가 일행에게 잘도 도망쳤다고, "감동 받은" 데 대한 선물을 날렸다. "캔디 메이든". 캔디로 된 아이언 메이든. [[캐롯(원피스)|캐롯]]은 그게 사탕 벽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벽일리 없었다. 캔디 메이든의 날카로운 이빨이 일행을 덮쳤다. [[징베]] 조차 여기선 우회하자고 했지만 루피는 강행돌파를 고집했다. 루피의 전력을 다한 "고무고무 레드호크"가 불길을 일으키며 캔디 메이든을 꿰뚫었다. 관통력에 불까지 붙은 레드호크는 페로스페로에겐 천적 같은 기술이었다. 당황하는 페로스페로.
          * 앞에는 카타쿠리, 뒤에는 빅맘. 협공을 당할 판이었다. 징베는 루피에게 카타쿠리를 쫓아내라고 했다. 그 사이 자신들은 어떻게든 출항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승부를 내고 싶었던 대였다. 루피는 맡겨달라고 외치며 카타쿠리에게 달려들었다. 카타쿠리는 어쩐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선공은 루피의 차지였다. "고무고무 호크 개틀링". 머신건 같은 속도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 징베가 나미를 옆구리에 끼고 선으로 뛰어 올랐다. 페드로와 캐럿은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급박한 황이었지만, 페드로는 캐럿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녀에게 놀라지 말라고 하면서 루피 일행이야 말로 자신들이 기다려온 자들이라 말했다. 밍크족과 "코즈키 가"가 수 백 년간 기다려온 "세계를 여명으로 이끌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페드로는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캐럿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카타쿠리가 루피를 대하는 동안, 페로스페로는 구태여 배에 오르는 일행을 요격하지 않았다. 대신 전보벌레를 들었다. 반대편에선 [[샬롯 몬도르]]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가 군함으로 해안을 포위하라고 명령했다. 루피 일행이 아직도 살아남았다는걸 안 몬도르는 지체없이 지시를 이행했다. 곧 그의 명령만 기다리던 빅맘의 해병력들이 움직일 것이다. 밀집모자 일당은 이 배와 함께 해안에서 수장될 것이고.
          선에는 수월하게 오른 일행은 막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나미가 "쿠 드 버스트"로 단숨에 해안을 빠져나가자고 제안했지만 징베는 그게 뭔지도 몰랐다. 하긴 이 배가 처음이었으니까. 나미는 1km는 날아갈 수 있는 기능이라 설명하며 평범하게 출항해선 금방 빅맘에게 잡힐 테니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빅맘은 벌써 배의 코 앞까지 당도했다. 페드로는 캐럿에게 출항 준비를 돕게하고 자신은 뭔가 다른 일을 하려고 등을 돌렸다.
          * 징베는 브룩과 쵸파의 태를 확인하며 닻을 끌어올렸다. 배가 무사히 빠져나가도 그 둘이 죽는다면 안 될 말이었다. 하지만 징베가 아무리 불러봐도 이미 사탕에 묶인 둘이 소리를 내는건 불가능했다. 그때 징베는 수평선에 빅맘의 군함이 몰려드는 걸 발견하고 첩첩산중이라고 탄식했다. 쿠 드 버스트는 아직도 준비가 안 끝났다. 나미 말고는 아무도 작동법을 모르는 게 문제였다. 그녀는 사용법은 알아도 콜라 세 통을 장비시키는 데도 애를 먹고 있었다.
          * 카타쿠리와 격전을 펼치는 루피. 루피가 맞고 쓰러지면서 바닥이 뭔가 이하다는 걸 느꼈다. 정확히는 배의 태가 이했다. 사탕이 배를 잠식하고 있었다. 페로스페로의 "캔디 웨이브". 나미가 확인했을 땐 이미 코팅이 당히 진행돼서 쿠 드 버스트를 쓸 수도 없을 정도였다. 페로스페로는 어느새 배에서 내려 해안가에 있었다. 그는 발이 묶인 채 빅맘이 코 앞까지 닥쳐온 써니호의 황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캐럿이 해안가의 그를 발견하고 아우성쳤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진퇴양난. 빅맘에게 뭉개지는게 먼저인가 군함의 포격에 삼켜지는게 먼저인가? 그리고 일행에겐 페로스페로가 몰랐던 제 3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 페드로였다. 페로스페로의 움직임을 예측한 그가 해안가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페로스페로의 등을 노리는 페드로. 그러나 역시 페로스페로는 만만치 않았다. 그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내며 넘어뜨렸다. 페로스페로는 페드로를 짓밟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자신은 현금 7억짜리 남자라고. 그런 자신이 너따위에게 당하겠냐고. 페드로가 그때 코트 자락을 펼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안에 폭탄이 없었다면 말이다.
  • 윤진이 . . . . 22회 일치
         {{화인 정보
         |웹사이트 =
         [[1990년]] [[서울특별시|서울직할시]] (現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어릴 때 현대무용을 하였던 경력이 있다. 중학교 3년 간 미국 얼바인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고,<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귀국 후를 졸업하고 화예술학과 진학하였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였다.<ref name="midopa1">김보라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717114513244 윤진이 초등학교 시절, 모태 미모 입증 '귀요미']TV리포트 2012.7.17. 작성</ref> 2011년, 학교로 오디션을 보러온 소속사 관계자에게 캐스팅되었다.<ref name="midopa2"> 유아정 기자[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20816091204527 윤진이 “美 유학 3년, 정말 외로운 시간이었다”]일간스포츠 2012.8.16 작성 </ref> 2012년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임메아리 역으로 데뷔했다. 2018년 하반기에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데뷔 이래 최대의 악역을 맡았다.
         === 화 ===
         | [[적도 (화)|적도]]
         | 여성 캐쥬얼 의류
         == 수 및 후보 ==
         ! 시
         | 여자 신인
         | 라이징 스타
         | rowspan="2"| [[SBS 연기대]]
         | 뉴스타
         | 베스트 커플<small>(with [[김민종]])</small>
         | 제8회 아시아 모델
         | 뉴스타
         | 제49회 [[백예술대]]
         | TV부문 여자 신인연기
         | [[KBS 연기대]]
         | 여자 조연
         [[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201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이시영 (1882년) . . . . 22회 일치
         '''이시'''(李始榮, [[1882년]] [[1월 10일]] ~ [[1919년]] [[7월 9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 본관은 [[경주시|경주]](慶州). 본명은 이중현(李仲賢), 호는 우재(又齋). 친족 관계에 있는 동명이인인 [[이시 (1868년)|이시]](李始榮, 성재 이시)과의 구별을 위해 '우재 이시'으로도 부른다. [[성리학]]자 이관준의 차남으로 [[대한민국]]의 제1대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법무부 장관]] [[이인]](李仁)의 숙부이다.
         이시은 [[1882년]] [[1월 10일]]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에서 성리학자 만당(晩堂) [[이관준]](李寬俊)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이관준]]으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몸이 건장하여 무인(武人)의 기이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시(詩)과 글씨(書), 그림(畵)에 모두 능하였고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그런 성격이었다. 이러한 그의 성격과 과단성 있는 추진력 때문에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는 그를 '''날개 달린 호랑이'''라고 칭찬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koreastory.co.kr/daegustory/human/leesiyoung.htm 대구의 인물<!-- 봇이 붙인 제목 -->]</ref>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듬해 기울어가는 국운을 한탄하고 남의 나라를 삼키려는 일본을 무찌르겠다는 결연한 각오 아래 [[중국]]으로 망명, 독립 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베이징]], [[만주]]일대 그리고 국내의 각지를 그야말로 날개달린 호랑이처럼 다녔다. 괄괄한 성격의 그는 실력투쟁만이 독립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윤태]](尹相泰), [[서호]](徐相鎬), [[정운일]](鄭雲馹) 등과 [[애국단]]이란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애국단을 조직한 그들은 우선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모라는 당시 대구부호의 지원을 얻기로 했다. 그러나 서부자는 이름난 구두쇠인데다 민족의식이 없어 말로 해서는 응하지 않을 것 같았고 더욱 서는 우재의 사돈(族兄의 妻家)이었다.<ref name=autogenerated1 />
         그는 서부자의 아들을 애국단에 가입시켜 그가 자발적으로 군자금을 희사하기를 원하였으나, 서부자는 끝내 외면했다. 군자금은 마련해야겠고 저쪽에서는 응할 기미가 없자 최후 수단으로 하루밤 그의 아들을 앞세우고 그 집에 침범했다가 정체만 드러낸 채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 일경에 체포되어 강도죄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뒤 다시 [[최준]](崔俊), [[안희제]](安熙濟), [[서일]](徐相日) 등 동지를 규합하여 [[광복단]]을 조직했다. 광복단은 무기를 구하고 병사를 길러 일본 세력에 무력으로 겨루자는 목적으로 조직된 무장단체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백남채]] 외에도 [[김좌진]](金佐鎭), [[김동삼]](金東三) 등과도 많은 일을 했다. [[1918년]] 귀국했고 [[1919년]] [[2월]], [[지청천]](池靑天), [[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남]][[유림]]대표 2백여 명을 [[경성부|경성]]으로 보냈다. 그때 유림측에서 그에게 민족대표로 서명해 달라고 하자 '내 목적은 오직 왜놈과 싸우는 것'이라며 과격한 활동 노선을 밝혔다. 그 후 임시정부에서 재무부장서리를 맡아 달라는 것도 거절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1919년]] 3월 [[3·1운동]] 직후 그는 그를 따르는 [[한위건]](韓偉健), [[김호]](金永浩) 등 청년을 데리고 [[만주]]로 가서 [[유하현]] [[삼원포]](柳河縣 三源浦)에 [[한인무관학교]](韓人武官學校)를 설립하였다. 무관학교에서 독립운동의 인재를 길러내 힘으로 왜적을 몰아내겠다는 결심이었다.<ref name=autogenerated1 />
         그러나 [[1919년]] [[7월 9일]] 피로와 식중독으로 병을 얻어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은 [[안창호]]는'문무 겸전한 우재가 갔으니 또하나 큰 별을 잃었구나'땅을 치며 통곡했고 성재 [[이시 (1868년)|이시]](省薺 李始榮)도 "나라의 큰 별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다.<ref name=autogenerated1 />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이시 (1868년)|이시]](1868~1953)
         * [[서일]]
         * 족숙 : [[이유원]], [[이시 (1868년)|이시]], [[이회]] 7형제의 아버지
         <!--1945년 이전 대구시는 경북도 관할이었음-->
  • 이혜숙(영화배우) . . . . 22회 일치
         {{{#FFFFFF ''' 이혜숙의 주요 수 이력 ''' }}} }}} ||||
         ||<-5><tablebordercolor=#c0c000><tablewidth=100%><#c0c000> {{{+1 '''[[백예술대|[[파일:백예술대_로고.png|width=100]]]] 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 ||
         ||<#87CEFA> '''{{{#ffffff 학력}}}''' ||<(> 고창중학교 (졸업)[br] 고창고등학교 (졸업)[br][[한양대학교]] 연극화과 학사 ||
         ||<#87CEFA> '''{{{#ffffff 데뷔}}}''' ||<(> 1978년 미스 해태 우수 ||
         ||<#87CEFA> '''{{{#ffffff 링크}}}''' ||<(> [[https://www.wecaresent.com/blank-4|공식사이트]] ||
         1978년 '미스 해태 선발대회'에서 우수을 받아 연예계에 주목을 받아, 1979년 MBC 10기 공채 탤런트로 입문하였다.
         화계에도 진출하여 1992년 [[몬트리올]] 화제에서 《은마는 오지 않는다》로 여우주연을 받았다. 1992년 4월 17일 화진 화사의 사장이었던 한기은씨와 [[결혼]]하면서 잠정 은퇴하였다가 1994년 KBS 아침드라마 《창밖에 부는 바람》의 여주인공 역할로 복귀하였다.
          * [[별도 달도 따줄게]] - [[오선(별도 달도 따줄게)|오선]]
          *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 - [[장자]]
          * [[웅시대]] - 천태희
          * [[백만송이 장미(드라마)]] - 김순
         === 화 ===
          * [[국가대표(화)|국가대표]] - 밥 친엄마
  • 정난정 . . . . 22회 일치
         '''정난정'''(鄭蘭貞, ? ~ [[1565년]] [[11월 13일]])은 [[조선]] 중기의 외척이며 [[조선 명종|명종]]의 넷째 외삼촌이자 재인 [[윤원형]]의 애첩이자 그의 둘째 부인이다. [[조선 명종|명종]]조의 권력자 중 한 명으로, [[윤원형]]의 본부인 연안 김씨를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사후 [[사림파]]는 그를 악녀의 대명사로 일컬었다.
         본관은 [[초계 정씨|초계]](草溪)로 아버지는 도총부 부총관을 지낸 [[정윤겸]]이고, 정난정은 그와 그의 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였다. [[한성부]] 출신.
         [[한성부]]에서 [[초계 정씨]]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차실(次室) 남씨(南氏)의 2남 3녀 중에서 막내 딸로 태어났다. 모친은 본래는 민이 아니었으나 난신에 연좌된 부녀로서 노비가 되었고, [[정윤겸]]의 집에 분배되었다. 그는 정윤겸과 노비가 된 반가 여성 사이에서 서녀(庶女)의 신분으로 태어났다.<ref>그러나 그 모친의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ref> 그리고 정난정은 어릴 때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이재에도 능했던 그는 윤원형의 권세를 배경으로 권을 장악하여 전매, 모리 행위로 많은 부를 축적하였으므로, 당시 권력을 탐했던 조신들은 윤원형과 정난정 부부의 자녀들과 다투어 혼인줄을 놓았다고 한다.<ref name="yunnaev">[http://100.naver.com/100.nhn?docid=756940 정난정]</ref>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였으며, [[1553년]](명종 8) 직첩(職帖)을 받아 마침내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이 되었다. 또한 [[윤원형]]이 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승려 [[보우 (조선)|보우]]를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선종판사(禪宗判事)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선·교(禪敎) 양종이 부활되고 도첩제도(度牒制度)가 다시 실시되는 등 한때나마 [[불교]]가 융성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보우 (조선)|보우]]를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적극 추천하여 그를 총애받게 한다. 정난정은 봉은사의 승려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병조판서직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불교가 융성하기도 했다.<ref name="park207">박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 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207페이지</ref>
         윤원형이 이조판서에 오를 때 정부인으로, [[의정부]] [[우의정]]과 [[의정]]에 오를 때에는 [[정경부인]]으로 작호가 올랐다. 정경부인으로 오른 후 궐에 자주 들어 [[조선 명종|명종]]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 《[[교동 마님]]》 ([[MBC]], [[1981년]], 배우: [[김란 (배우)|김란]])
         * 《[[풍란 (드라마)|풍란]]》 4회 ([[MBC]], [[1985년]], 배우: [[김란 (배우)|김란]])
         * 《[[임꺽정 (1996년 드라마)|임꺽정]]》 ([[SBS]], [[1996년]]~[[1997년]], 배우: [[박선 (1970년생 배우)|박선]])
         * 《[[여인천하 (드라마)|여인천하]]》 ([[SBS]], [[2001년]]~[[2002년]], 배우: [[수혜 (배우)|장수혜]], [[강수연]])<ref>해당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단, 해당 드라마에서는 정난정을 왕실의 인물인 파릉군의 서녀로 나타내고 있으나 파릉군이라는 인물은 해당 드라마만의 가공의 인물로, 실제와는 다르게 그려졌다. 그 외에도 사실과 다른 여러 가지 내용이 등장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065244 인기 승 <여인천하> 어디까지 사실인가?] 《동아일보》, 2001년 5월 21일 작성, 2012년 10월 31일 읽음</ref>
         그는 자신이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측근인 점을 이용,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서자 서녀도 능력이 되는 인물을 등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남편 윤원형이 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ref name="yunnaev"/> 이는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ref name="yunnaev"/>
         * 선조시대에 판중추부사로 지냈던 [[정종]]은 정윤겸의 손자이자 정난정에게는 서조카였다. 원형이 변(上變)하여 옥사를 일으킬 적에 논의에 참여하도록 넌지시 일깨워주었으나 종은 거짓 모르는 체하고 응하지 않았다. 난정이 참람하게 정실(正室)이 되어 부인(夫人)에 봉해져서 외명부(外命婦)의 우두머리에 있게 되자 사람들이 감히 항변하지 못하였으나 종은 오히려 얼척(孼戚)으로 대우하였다. 이 때문에 원형이 크게 유감을 품어 매양 죄를 얽어 해치려 하였다. 난정의 어머니가 난정을 경계하기를 "너는 종손을 해치지 말라. 내가 맹세코 죽음으로써 당하겠다”하였으므로 화를 면하게 되고 예전처럼 현달(顯達)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 정난정의 동복 둘째 오빠는 담(淡)이었다. 그는 언젠가는 정난정이 반드시 화근이 될것이라 예하고, 일체 그녀와 왕래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찾아올까봐 집 입구의 담을 꼬불꼬불하게 쌓아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통로를 만들었다. 정난정은 늘 가마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가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때문에 정난정은 그의 집에 가볼 수가 없었고, 덕분에 [[윤원형]]과 정난정이 몰락한 뒤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
         [[분류:생년 미]][[분류:1565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윤원형]][[분류:음독 자살한 사람]][[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불교 신자]][[분류:초계 정씨]]
  • 정시아 . . . . 22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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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1983년]]생이라고 데뷔하여 1983년생이라고 알려졌으나, [[2008년]] [[7월 5일]] 방된 《[[무한도전]]》에서 스스로 닭띠([[1981년]]생)라고 밝혔고, 《[[무한걸스]]》에서도 여러차례 본 나이를 밝혔다. 무한걸스를 통해 2008년《무한걸스 가수되기 프로젝트》 대표곡 〈〉(원곡 : 송은이 〈〉) 앨범도 냈다. [[2011년]] [[1월 13일]] 방된 《[[해피투게더]]》에서도 [[1980년]]생인 [[신봉선]] 보다 한살 어리다고 밝혔다.
         2009년 3월 7일 의 아들 [[벡도빈]]과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ref>{{뉴스 인용 |저자= 김호기자 |제목= 백도빈-정시아, 7일 비공개로 웨딩마치 올려 |url= 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broad/2009/0308/20090308101040200000000_6693561073.html |출판사= 스포츠서울닷컴 |날짜= 2009-03-08 |확인날짜= 2008-03-08}}{{깨진 링크|url=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broad/2009/0308/20090308101040200000000_6693561073.html }}</ref>
         * [[2008년]] [[OCN]] 《[[여사부일체]]》 ... 김효
         * [[2014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주말드라마 《[[모던 파머 (드라마)|모던 파머]]》 ... 유미 역 (6회~20회)
         * [[2016년]] [[KBS1]] 일일드라마 《[[별난가족]]》 ... 장실 역
         * [[2017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월요드라마 《[[초인가족 2017]]》 ... 고서
         === 화 ===
         * 2015년 《[[살인캠프]]》 은 역
         * 2008년 [[KBS2]] 《[[해피선데이]] - 꼬꼬관광 싱글♥싱글》 품소개 나레이션 겸임
         * 2016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동이몽, 괜찮아 괜찮아]]》 게스트
         * 2018년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 (암동 장인이 한 땀 한 딴 자개아가씨)
         * 2018년 [[tvN]] 《나의 어사춘기 100시간》
         * [[손호]] <하늘에 내 마음이>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조환길 . . . . 22회 일치
         | 전임자 = [[최수]] 대주교
         | 주교서품자 = [[최수]] 대주교
         | 좌우명 =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 원히
         | 징 =
         조환길은 1954년 11월 7일 [[대구]] 달성에서 조순조(레이문도)와 나일남(임파) 사이에 5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3대째 가톨릭 신앙을 이어온 가정이다. 1981년 3월 19일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대덕본당과 복자본당의 보좌신부, 군종사제, 덕수본당·형곡본당 주임신부 등 일선 본당과 [[대구대교구]] 사목국 사도직 담당, 대구대교구 사목국장, 대구대교구 사무처장, 관덕정순교기념관장(겸), [[매일신문|매일신문사]] 사장 등 특수사목직을 두루 경험한 그는 대구대교구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제1차 대구대교구 시노드 당시 사목국장과 사무처장을 겸임하며 대구 대교구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또한, 전신마비 장애인인 이열(바오로)씨와의 인연으로 비리 장애인 복지시설인 베들레헴 공동체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4월 주교품을 받고 교구 총대리로 봉직해 오다가 2009년 8월 18일 대구대교구장 [[최수]](요한) 대주교의 사임에 따라 교구장 직무대행으로 대구대교구를 14개월여 동안 임시 사목하였다. 조 주교는 부교구장 주교와는 달리 교구장 계승권이 없는 보좌주교 직책에 있었지만, 2010년 11월 4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대구대교구 교구장에 임명되고 대교구의 교구장은 대주교직이므로 대주교로 승임되었다. 또한, 대구관구 관구장 주교 직무도 자동으로 맡게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제10대 대구대교구장에 조환길 대주교|url=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195179&S=%uc870%ud658%uae38|출판사=가톨릭신문|저자=우세민 기자|날짜=2010-11-14|확인날짜=2011-03-02}}</ref>
         조환길 대주교의 문장은 전체적으로 주교의 전통적 징인 [[갈레로]]와 [[주교 지팡이]], 신앙의 수호를 징하는 방패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십자가]]와 십자가 가운데 있는 다윗의 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징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늘(청색-구원)과 땅(적색-사랑)이 연결되고 하느님 사랑과 구원이 온 세에 실현됨을 나타낸다. 방패 단의 불꽃은 성령강림절에 [[성령]]이 성모 마리아와 사도들 머리 위에 내려온 것을 형화한 것으로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교회가 하나로 일치되는 모습을 담았으며, 하단의 Α(알파)와 Ω(오메가)는 시작이며 마침인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 나라의 원함을 표현했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대구대교구의 제1주보성인인 [[루르드의 성모|루르드의 성모 마리아]]이며 마리아의 이니셜인 ‘M’을 기도 손 모양으로 형화했다.
         사목 표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 원히’는 하느님 나라가 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사제서품 때 서원한 처음의 마음이 원히 이어지기를 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조환길 대주교 사목 표어·문장 확정|url=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195268|출판사=가톨릭신문|저자=우세민 기자|날짜=2010-11-14|확인날짜=2011-04-27}}</ref>
         |전임자= [[최수]] (요한)
  • 창원시/인물 . . . . 22회 일치
         * [[김진(1970)|김진]] - 마산합포구
         * [[박태(야구코치)|박태]] - 마산합포구
         * [[박혁(야구선수)|박혁]] - 마산회원구
         * [[박민(배우)|박민]] - 진해구
         * [[박완(야구선수)|박완]] - 진해구
         * [[이은(시조시인)|이은]] - 마산합포구
         * [[이주(1951)|이주]] - 마산합포구
         * [[안수(창원)|안수]] - 마산회원구
         * [[이백(야구선수)|이백]] - 성산구
         * [[이숙(배우)|이숙]] - 의창구
         * [[진(GOT7)|진]] - 진해구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22회 일치
         세무서 직원이 FBI 요원들을 피해 리무진으로 도망가자, 알렉스가 자석 달린 크레인을 조종해 리무진을 건물 옥으로 올려놓는다. 이 때 리무진이 운반되는 위치는 셋으로 나뉜다. 리무진이 옥에 안착하는 경우, 리무진이 옥에 안착했지만 지붕이 무너지며 건물 내부 계단에 걸리는 경우, 리무진이 발코니에 걸리는 경우. 이후 플레이어들은 세무서 직원과 서버를 끌어내기 위해 리무진에 전동 톱-호스트가 기본적으로 소지함-을 설치하고 농성전을 벌여야 한다.
         해킹이 끝나고 나면 옥으로 올라가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하면 된다. 옥은 경찰 저격수들의 사격장이나 다름 없는 곳이니 저격수를 주의하자. 중간에 길이 끊겨서 점프해야 하는 구간이 있는데, 전력질주를 하며 점프하면 된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팀원들은 짜증나겠지만.
          Undercover 하이스트를 메이헴 난이도 이으로 클리어
          Undercover 하이스트를 데스위시 난이도 이으로 클리어
          Undercover 하이스트를 원다운 난이도 이으로 클리어
          오버킬 난이도 이의 Undercover 하이스트를 모든 팀원이 다운되거나 수갑이 채워진 적 없이 클리어
          오버킬 난이도 이의 Undercover 하이스트를 유탄발사기와 로켓발사기 만을 이용해 클리어
         >우리가 부패한 세무서 직원 에이드리언 스터를 체포하려고 했을 때, 페이데이 갱이 나타나 요원들에게 발포하였다. 요원들은 스터가 숨은 리무진이 크레인에 의해 들어올려져 길 건너 폐건물에 떨어지는 광경을 볼 수 밖에 없었다. SWAT을 호출해 빌딩을 습격하게 했지만, 페이데이 갱은 목표를 이룰 때 까지 버티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 요원들이 빌딩을 겨우 확보했을 때, 스터는 숨만 붙어있는 태로 발견되었다. 서버는 사라졌으며, 방에 있던 컴퓨터 모니터에는 2천 5백만에 달하는 거금이 추적할 수 없는 계좌로 보내졌다는 내용이 남겨져있었다.
         저격수를 전부 처리하고 나면 바일이 C4 가방을 떨어뜨린다. C4가 떨어지는 곳은 보통 옥 계단 뒷쪽에 떨어지지만 4층 발코니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C4를 주워 아파트 내 9개 지점-옥에 3곳, 5층에 3곳, 4층에 3곳-에 설치해야 한다. 설치가 전부 끝났으면 C4의 폭발에 휩쓸리지 않게 2층으로 대피하면 된다.
         C4가 폭발하면 다시 옥으로 올라가 진을 치고 있는 경찰들을 처리하자. 이후 바일의 헬리콥터가 다시 와서 자석을 옥에 생긴 구멍 안으로 서서히 집어넣는다. 이때 누군가가 4층으로 내려가 패닉룸 윗부분에 자석을 붙여줘야하니 주의. 이후 헬리콥터가 패닉룸을 매달고 날아갈 때 까지 옥을 지킨 다음, 1층으로 내려가 지하실로 탈출하면 클리어.
          Panic Room 하이스트를 메이헴 난이도 이으로 클리어
          Panic Room 하이스트를 데스위시 난이도 이으로 클리어
          Panic Room 하이스트를 원다운 난이도 이으로 클리어
          팀원 모두가 옥에 있는 태에서 탈출 개시 20초 내에 지하실 문 개방
          Panic Room 하이스트를 팀 전체 명중률 200% 이으로 클리어
  • 하이큐/266화 . . . . 22회 일치
          * [[코즈메 켄마]]가 아직 1학년이던 시절. 훈련 중에 곧잘 요령을 피우는 코즈메와 언제나 전심전력으로 임하는 [[야마모토 타케토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 고교 1학년을 맞이한 [[코즈메 켄마]]는 빡빡한 훈련 일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학교를 출발해 인근 하천을 끼고 도는 런닝 코스는 고역이었다. 강압적인 3학년들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코즈메는 그런 와중에도 좋은 구석을 찾아내곤 했다. 달리는건 싫지만 뛸 때의 풍경과 뛰면서 펼치는 공의 나래는 조금은 좋았다. 저 강물 위로 드래곤이 거닐고 있다면, 맞은 편 건물에 자라난 담쟁이 덩쿨을 타고 오를 수 있다면. 그걸 타고 올라간 지붕 위엔 보물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게 즐거웠다. 마음껏 만 펼칠 수 있다면 고된 런닝도 조금은 즐겁다. 문제는 그런 평안을 뒤흔드는 존재가 있다는 것 뿐.
          그런 말을 해봐야 마리오 카트에서 한 바퀴 뒤쳐지는 것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코즈메로서는 알아먹지 못할 충고였다. 코즈메는 대답없이 그저 마음의 벽을 쌓아올렸다.
          * 문제의 닭벼슬은 [[야마모토 타케토라]]라고 했다. 근성타령이 심하고 단세포인 걸 빼면 특별히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야쿠 노리스케]]의 A패스 연습을 보며 "역시 네코마"라고 눈을 빛내는걸 보면 [[네코마 고교]]의 배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1학년이었다. 정말 이한 녀석이라면 [[후쿠나가 쇼헤이]]를 들 수 있었다. 그의 이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발언도 있었다.
          코즈메 또한 스포츠맨으로서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니, 당시 네코마의 1학년들은 하나같이 별종이었던 셈이다. 그런 별종들끼리 잘 어울려서 해나가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특히 코즈메와 야마모토의 관계가 문제였다. 함께 훈련을 거듭하는 동안 둘은 극과 극의 성격 때문에 도무지 어울리질 못했다. 지나치게 스포츠맨적인 야마모토와 지나치게 스포츠맨답지 않은 코즈메, 둘은 훈련 중에도 공공연하게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패스 연습에서 둘이 한 조가 되자 어김없이 으르렁 거리기도 했다. 야마모토에겐 코즈메가 2학년 [[쿠로오 테츠로]]와 소꿉친구 사이라는 것도 거슬렸다. 대놓고 "쿠로오 선배랑 친해도 봐주지 않겠다"고 신경을 건드렸다. 코즈메도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건 관계없고 지금은 패스 연습 중이지 않냐고 받아쳤다. 야마모토가 코즈메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패기도 없고 목소리도 작은 점.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실력은 또 그럭저럭 괜찮은 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코즈메 쪽은 딱히 어느게 싫다기 보단, 저쪽이 싸움을 거니 응해준다는 식이었다. 어쨌든 둘은 패스 연습 중에도 일부러 까다롭게 공을 보내며 티격태격했다. 근처에 있던 야쿠는 기합이 들어갔다고 웃었지만 쿠로오 쪽에서 보면 진은 명백했다.
          * 그날 저녁. 체육관 정리 중. 코즈메는 쿠로오, 야마모토와 비품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쿠로오가 교사의 호출로 불려가면서 둘만 남게 된다. 코즈메가 문득 쿠로오의 조언을 떠올렸다. "조금은 협력할 생각도 해라".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오늘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언에 따라보기로 했다. 용구실을 나서던 코즈메가 야마모토에게 말을 걸었다. 어깨에서 힘을 조금 빼면 좋지 않겠냐고. 그게 대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일 거라곤 생각지 못한 채.
          슬슬 신경전을 넘어서는 분위기를 근처의 후쿠나가도 느낄 수 있었다. 야마모토는 방금 코즈메의 지적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공만 너무 본 것, 대의 도발에 넘어간 것, 어려운 공이 너무 욕심을 낸 것 등등. 코즈메가 아는 것 보다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코즈메가 그렇게 잘 알면서도 왜 "근성"으로 뭉뚱그리냐고 하자 그건 애초에 연습 단계에서 노력과 근성이 부족했다는 말이었다고 대꾸했다. 코즈메는 수긍할 수 없었다. 결국 넘으면 안 되는 선을 넘어버렸다.
          거기서부터는 플레이에 대한 토론이 아니었다. 야마모토는 더이 스포츠맨 답게 나오지 않았다. 코즈메의 멱살을 잡으며 그러는 너는 어땠냐고 반박했다. 코즈메는 오늘 시합에서 좋은 평가를 내긴 했지만 잡을 수 있는 공 몇 개를 그냥 보냈다. 딱히 생각없이 놔둔 건 아니었다. 대체로 그런건 고생해서 잡아봐야 대편 찬스볼이 될 것 같은 공들이었다. 하지만 얼른 반박하지 못하는 건 "피곤했다"는 이유도 있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즈메의 주장은 야마모토의 근성론 이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슬슬 싸움은 몸싸움으로 번지려는 조짐이었다. 야쿠 조차 너무 나갔다 싶어서 말리려고 했는데, 뜻밖의 인물이 둘의 싸움을 종결지었다. 후쿠나가였다. 진작부터 둘의 다툼을 지켜보던 그가 물 한 바가지와 애드립만으로 둘을 제압했다.
          * 체육관 사건 이후, 둘은 여전히 한 팀에서 티격태격하며 훈련을 받았다. 여전히 연습에서는 코즈메가 야마모토에게 대가 되지 않았지만 시합에서는 달랐다. 홍백전을 하면 코즈메의 교묘한 플레이에 야마모토가 속아넘어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이전처럼 "기합이 빠졌다"고 느끼지 않게 됐다. 그가 코즈메를 잘 관찰해본 결과, 그건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 대를 달리보기 시작한건 야마모토 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야마모토가 투자한 근성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국대회 예선이 시작될 쯤에는 스파이커로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고 세터인 코즈메와 함께 "네코마의 1학년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즈음 코즈메는 단순한 세터가 아니라 팀의 사령탑, 네코마의 뇌로써 소질을 보였다. 둘의 개인적인 감정은 딱히 해소된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피차 "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여길 정도로 실력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예치 못한 제안에 우물쭈물대던 코즈메가 대답했다
          이러한 전략은 네코마의 벤치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절묘하게 꺼려지는 곳만 공략한다, 전력을 다하면 넣을 수 있는 곳에도 절묘하게 절제하며 시합을 이어간다, 그걸 꾸준히 시도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언뜻 듣기엔 비겁한 전술 같지만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같은 전술을 가지고도 막 코트에 서면 "화이트 보드에 그리는 것처럼"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네코마타 감독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았다.
          >하지만 그걸 해내는 자제력과 시합 전체를 바라보는 리함, 냉정함.
          네코마타 감독은 반대진의 제자와 그가 길러낸 제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 제자들이 자신의 방침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위기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 홍세화 . . . . 22회 일치
         |웹사이트 = [http://www.hongsehwa.pe.kr/ 홍세화의 아름다운 나라]
         '''홍세화'''(洪世和, [[1947년]] [[12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 학위 이후,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2002년]] 한국으로 구 귀국하여 언론인, 작가, 교육인 등으로 활동하였다. 프랑스 망명 생활 중에 쓴 책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로 유명하다.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등을 지냈으며 2013년 계간지 <[[말과활]]>을 창간했다. 2011년 [[진보신당 (대한민국)|진보신당]] ([[노동당 (대한민국)|노동당]]의 전신) 당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 해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 체류 중 [[망명]]하였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의 자유 침해에 따른 망명자로 인정받았고, [[1982년]]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망명생활을 하며 집필, 기고활동에 종사하였다. [[1995년]] 자서적 고백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발간하고, [[1997년]] 《[[르 몽드]]》에 실린 기사 묶음인 〈진보는 죽은 사인가〉를 번역하여 출간했으며, [[1999년]] 문화비평 에세이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펴냈다.
         2000년 단행본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격월간 《아웃사이더》지의 발간에 참여하였다. 이후 2002년 귀국하여 《아웃사이더》 편집위원으로 선임되었고, 2002년 1월 한겨레 신문사 기획위원에 선임되었으며 이후 언론, 강연 등의 활동을 했다.
         * 《[[거꾸로 생각해봐! 세이 많이 달라보일걸]]》
         *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작은책 스타가 바라본 세)》
         * 《세계는 품이 아니다》 ([[조제 보베]], 프랑수아 뒤푸르 지음)
         * 《진보는 죽은 사인가》 ([[막스 갈로]] 지음)
         == 수 경력 ==
         * [[2002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민주시민언론
         * 인물과사사, 《인물과 사 2002년 6월호》 (인물과사사 편집부 지음, 인물과사사, 2002)
         * [https://www.youtube.com/watch?v=lUXPz5USnIY 홍세화 선생님 강연회]. 김준국어논술전문학원. 2011년 2월.
         [[분류:대한민국의 사가]][[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프랑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반파시스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중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분류:대한민국의 학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사회민주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반체제자]][[분류:홍세화|*]][[분류:아웃사이더]][[분류: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사회주의자]][[분류:한겨레]][[분류:민중민주파]][[분류:프랑스어-한국어 번역가]]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육군 . . . . 21회 일치
         === Post-Napoleonic Thought(나폴레옹 이후 사) ===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6.2|조직화된 공장]]''' 기술 연구시 '''{{{#green +2%}}}'''
          * '''Colonial Negotiations(식민지 협)'''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5.5|경제적 책임]]''' 기술 연구시 '''{{{#green +25%}}}'''
          * '''식민지 협''' 기술을 연구한 국가가 주요 열강일시 '''{{{#green +25%}}}'''
          * '''식민지 협''' 기술을 연구한 국가가 이웃 국가일시 '''{{{#green +25%}}}'''
         기관총의 무장 발명의 방어력 승 능력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진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6.4.1|시간연구]]''' 발명 발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6.3|과학적 경]]''' 기술 연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6.3|과학적 경]]''' 기술 연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6.3.1|순서 계획]]''' 발명 발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2.3.1|유통 경로]]''' 발명 발견시 '''{{{#green +1%}}}'''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2.3.1|유통 경로]]''' 발명 발견시 '''{{{#green +3%}}}'''
          * '''Operational Destruction Doctrine(작전 파괴 교리)'''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s-3.2|이주의]]''' 기술 연구시 '''{{{#green +1%}}}'''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s-5.2|이데올로기적 사]]''' 기술 연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s-5.2|이데올로기적 사]]''' 기술 연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6.3.1|순서 계획]]''' 발명 발견시 '''{{{#green +1%}}}'''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2.3.1|유통 경로]]''' 발명 발견시 '''{{{#green +1%}}}'''
  • 기동전사 건담 . . . . 21회 일치
         전반적으로 아폴로 계획으로 태동된 우주개발 붐 문화('아폴로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작품[* 아폴로 붐 당시 우주개발에 대한 열기는 경제적인 문제로 본격적인 우주개발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현대와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이다. 또한 당시 인기를 끌었던 SF 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향이 강하다. 소년병들이 다수인 집단이 지구와 우주 각지를 떠도는 부분은 '15소년 표류기' 등의 작품에서 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유행하는 로봇이 최소 10여가지 이에서 수십가지에 달하는 무기를 장착하여 걸어다니는 '무기고' 수준으로 설정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건담의 무기는 종류가 매우 적어서 10여가지 이하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쓰이는 무기는 발칸, 빔사벨, 라이플 혹은 바주카 밖에 없다. 해머나 빔 자벨린 같은 무기가 있기는 하나 일회적인 출연에 불과하다.
         마징가Z가 이미 10가지 이의 무장을 갖추고 있었고, 콤바트라 V 같은 것은 수십종류 이으로 무기 만으로도 도감을 차릴 수 있을 정도. 이러한 로봇물에서 후반 20여분 대의 핵심 전투씬은 매화마다 적절한 무기 뱅크씬을 돌려쓰고, 무기가 적당히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대사를 외치다가, 최종적으로 필살기로 마무리 하는 형식이었으며, 때때로 '신무기 추가'라는 이벤트로서 뱅크씬을 교체했다.
         그러한 반면에 건담은 TV판 40화 이 혹은 극장판 3편이라는 장기 작품을 사실 단 세가지 무기만 가지고 밀도 있는 액션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무기의 숫자는 줄었지만 오히려 액션은 훨씬 다채롭고 창의적으로 만들어졌다.
         적군 유닛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신형 메카들이 일회성으로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초반 적 기체인 '자쿠'의 경우 초반 악역은 일회용 취급당하던 과거의 패턴을 깨고 건담과 함께 건담 시리즈의 대표적인 메카 디자인으로 자리잡는다. 이는 마케팅적으로 소수의 주역 메카'만'이 품성이 있었던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적아군을 모두 합쳐 거의 20여가지 이품 라인업을 갖출 수 있었다. 단지 소수의 주역 로봇(많아봤자 2,3체)만이 품으로서 가치가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적의 로봇은 1회용으로만 쓰이며 품화 되지 않고 낭비되다시피 했던 대부분의 다른 로봇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적의 로봇 역시 품으로서 가치가 있게 되었으므로 훨씬 다양한 품을 프라모델로 출시하고 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마징가Z의 경우, 마징가Z 이외의 로봇은 거의 품화 되지 않았다.(적 메카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보스보로트나 아프로다이A는 마이너한 인기가 있는 정도) 반면 건담은 프라모델 생산 라인으로 수십가지 품군을 갖출 수 있었고, 이를 매년 신 시리즈를 내고 갱신하면서 20년 이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훗날 신경향 건담들이 나오면서 '건담 우려먹기'가 시작되어, 건프라도 건담 계열에 치중된 라인업 우려먹기로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 1년 전쟁 : 우주세기 0079년에서 0080년 사이에 벌어진 지구연방과 지온 공국의 전쟁. 해당 작품의 배경으로, 초반에 지온 공국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지구권의 당 부분을 점유하기도 했으나 지구연방의 반격과 공국의 내분으로 인해 결국 지구연방이 전세를 역전시켜 최종 방어선인 아바오 아 쿠 요새 함락 후 종전 협정을 체결해 끝난다.
  • 김경식 (희극인) . . . . 21회 일치
          | 웹사이트 =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하여 [[부산광역시|부산]]과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광고창작학과]]를 [[전문학사]] 졸업하였으며, [[1989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으며, [[1991년]] 뮤지컬배우 데뷔한 그는 이듬해 [[1992년 3월]] [[서울방송|SBS]]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정식 데뷔를 하였으며, [[틴틴파이브]] 멤버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가수 故 [[유채]]과 함께 [[MBC 표준FM]] 《[[좋은 주말]]》을 진행한 적이 있으며, [[서현진 (방송인)|서현진]] 前 MBC 아나운서 와 함께 《[[생방송 원더풀 금요일]]》을 진행한 적이 있다.
         | 저자 = 김보
         }}</ref>, [[2000년]] 봄부터는 KBS로 활동역을 넓혔으며<ref>{{뉴스 인용
         하지만, [[2002년]] [[1월]] 종된 예능 프로그램 <토요일이 온다> 이후<ref>{{뉴스 인용
         == 수 ==
         * [[1994년]] - SBS 인기
         * [[1999년]] - MBC 코미디대 우수
         * [[2002년]] - MBC 방송연예대 최우수 코미디부문
         * [[2012년]] - MBC 방송연예대 라디오부문 우수
         * [[2017년]] - 제44회 한국방송대 내레이션
         * KBS2 《[[구수한 세 누룽지]]》
         === 화 ===
         * [[MBC]] 《[[좋은 주말]]》 (2013~2015) - 故 유채 / 김경아와 함께 진행
         {{MBC 방송연예대 최우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21회 일치
          * 미도리야 일행은 공격자 그룹에 둘러 쌓였지만 황을 타개할 전략을 구한다.
          * 한편 바쿠고 카즈키, 카미나리 덴키는 사걸고교의 학생을 대하는데, 묘한 개성 때문에 키리시마 에지로가 당하고 만다.
          * 사걸 고교의 여학생은 변장을 위해 알몸 태. 본인의 개성인지 장비인지 불분명.
          * 대는 변장을 위해 옷까지 벗은 태이므로 패널을 터치할 수도 없고 시간 으로도 무리.
          *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다수가 소수를 공격하는 황이므로 공격자들 간의 포인트 따기 경쟁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 세로는 그런 황이라면 A반도 모여봐야 메리트가 없는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 미도리야는 다시 한 번 룰을 기하며 "무작정 던져서 맞추는건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 따라서 A반 전원 합격이 가능한 대 인원을 미리 포획해서 확실하게 패널에 볼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
          * 게다가 A반은 범위 공격이 가능한 멤버가 많으므로 모이면 유리해지는 황이다.
          * 미도리야는 자신이 미끼가 될 테니 둘이 대를 구속해 달라고 부탁한다. 둘의 개성은 대의 자유를 빼앗기에 적합하다는 것.
          * 한편 바쿠고를 따라간 일행은 묘한 적을 대하고 있다.
          * 키리시마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당 수가 당했다. 사걸고교의 학생은 희생자들을 길에 늘어놓고 있다.
          * 바쿠고는 "싫어하는 타입"이라며 디스하고 머리가 나쁜 카미나리는 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를 못한다.
          * 바쿠고는 적당히 "눈이 가늘어서 대의 실력도 못 본다는 소리다"라고 드립을 치는데 본인이 콤플렉스인지 "내 눈은 잘 보이고 크다"고 반발한다.
          * 사걸고교 학생은 "웅고는 존경하지만 1학년 A반은 그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등 뒤에서 손가락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생성한다.
          * 그는 시험장의 황을 잘 볼 수 없어서 애가 탄다고 하는데, Ms, 죠크가 걱정하는 거냐고 묻는다.
          * 그 둘은 반의 리더도 중심인물인 것도 아닌데다 사이 조차 최악. 그런데도 그 두 사람의 열기가 반으로 전파되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3화 . . . . 21회 일치
          * "웅고의 톱"이란 어마어마한 명칭으로 등장한 빅3.
          * [[미도리야 이즈쿠]]는 세 명이 참가했던 웅고 중계를 본적이 있지만 딱히 인적인 기록을 남기질 않았다.
          * [[키리시마 에지로]]와 미도리야가 적극적으로 대련에 나서고 특히 미도리야는 "웅고 톱과 차이를 알고 싶다"며 의욕적으로 덤빈다.
          * 대련은 토오가타 한 사람이 대하는데 그는 공격을 통과시키고 워프하는 듯이 움직이는 개성을 사용한다.
          * [[아이자와 쇼타]]는 그가 명실부한 "넘버1에 가까운 남자"이라며 조심하라고 하는데, 단 몇 초만에 A반 인원 대부분이 K.O당한다.
          * 웅고 재학생 중에서도 최강으로 불리는 "빅3"의 등장. 그 존재에 관해서는 A반에도 소문이 전해져 있었지만 실물을 보는건 대부분 처음이다. [[카미나리 덴키]]는 여학생을 보고 "예쁘지만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론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 [[미도리야 이즈쿠]]는 그 사이에 끼어있는 얼굴을 알아본다. 어제 쓰레기장에서도 나타났지만, 무엇보다 이전 웅제 때 그가 참가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당시 Tv 중계로 보고 있었는데 성적이 대단한건 아니었지만 "묘한 임팩트"를 남긴 인물이었다. 그 옆에 있는 두 사람도 그때 보긴 했지만, 당시엔 특별히 높은 기록을 남기진 않았다. 그런 그들이 올해에는 빅3. 미도리야는 이들이 어떤 개성을 구사할지 궁금해졌다.
          터무니 없는 네거티브한 말언을 쏟아놓더니 벽에 머리를 처박으며 "집에 가고 싶다"고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경악스럽기도 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앞줄에 앉은 [[오지로 마시라오]]가 "웅의 톱 맞죠?"라고 의심한다.
          그녀도 아마지키 못지 않게 괴짜같은 면모를 드러낸다. 인턴 제도의 설명을 부탁받고 왔다면서 곧바로 A반 학생들을 뜯어보며 이것저것 캐묻고 다니기 시작한다. 우선은 앞에 있던 [[쇼지 메조]]에게 마스크를 왜 썼냐고 묻는다. 근데 쇼지의 대답도 듣지 않더니 다음은 [[토도로키 쇼토]]에게 얼굴의 화 자국 같은 민감한 부분도 마구잡이로 질문한다. 또 대답도 듣지 않고 다음 학생, 그런 식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게 신기하거나 이하다고 말하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카미나리나 [[아시도 미나]]는 천연스럽고 유치원생 같다며 귀여워하는데 대부분은 불편해한다. [[미네타 미노루]]는 "나의 알(머리에 생성되는 알)에 대해 묻다니 성희롱이다"는 개드립을 치다 제지 당한다.
          * 이대로는 강연이고 뭐고 진행이 안 된다. 아이자와가 짜증을 내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미도리야와 만났던 선배가 "안심해주세요"라고 나선다. 그런데 그는 앞뒤없이 "전도!"라고 외치며 학생들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취한다. 너무 뜬금없어서 학생들이 입을 다물고 있자 "다난"이라고 해야지 않냐며 웃어넘긴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이한 사람들 뿐이라고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모두 다 승지향에 가득 차 있는게 아냐.
          하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녀는 아시도의 움직이는 뿔을 신기해하며 만지작거리면서도 "좌절해서 히어로를 포기하고 문제를 일으킨 애가 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두 사람의 말을 모두 들었는데 당히 자극을 받은 것 같다. 같이 이야기를 들은 [[토코야미 후미카게]]도 그렇다. 토코야미가 "우린 프로 히어로와 싸움도 겪어 봤다"고 말하자 키리시마가 "빌런과도 싸워봤다"고 맞장구치며 자기들이 "그런 걱정이나 받을 정도로 조무레기로 보이냐"고 직설적으로 따진다. 거기에 대한 밀리오 선배의 답은 이렇다.
          >응. 언제 어디서 와도 관없어.
          * 밀리오도 "문제아, 역시 기운이 넘친다"며 만족스러워한다. 미도리야는 웅의 톱과 대련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는 기회라며 현재의 자신과 그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다짐한다. 미도리야가 선두를 맡고 키리시마, 오지로, [[사토 리키도]]의 근접전 특기자들이 포위를 맡는다. 나머지 학생들도 각자 몸을 풀며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한다.
          미도리야는 그런 모습이 "헛점투성이"라며 슛스타일로 킥부터 날리고 보지만, 그 공격은 밀리오의 얼굴을 통과해 흘러나가 버린다. 물론 히어로 덕후인 미도리야에겐 예한 바였다. 작년 웅제를 본 기억도 있고, 어제 밤에 만난 적도 있기 때문에 그의 개성에 대해선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서지 않는 굉장한 개성.
          사라졌던 그가 지로 쿄카의 등 뒤에서 등장. 개성의 향인지 또 옷이 벗겨져 있다. 그리고 지로의 개성이 원거리타입인걸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지로를 처리하는데 한 컷도 쓰지 않고 거침없이 다음 대에게 돌격. 학생들은 그가 워프했다고 여기면서 "엄청나게 좋은 개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밀리오는 놀라운 속도로 학생들을 하나씩 처리해 버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21회 일치
          * 오버홀은 그중에서도 "시에핫사이카이"라는 조직의 2인자이다.
          * [[마그네]]는 시가라키에게 오버홀이 유명인인 거냐고 묻는다. 사실 그는 "선생님" [[올 포 원]]이 직접 언급한 적이 있을 정도의 인물이다. 과거 뒷세계를 지배했던 "야쿠자"의 잔존세력인 "극도". 그 중 "시에핫사이카이"란 조직의 2인자 자리를 맡고 있는 인물이다.
          올 포 원의 진정한 모습은 "뒷세계를 지배하는 어둠의 제왕"이었다. 야쿠자 세력이 괴멸 이후 뒷세계를 지배하는 건 그의 몫이었다. 다만 오버홀 세대에서는 그를 직접 목격한 사람은 거의 없고 노인네들이 맹신하는 도시전설 쯤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지난 번 결전으로 올 포 원이 건재하다는 것, 여전히 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나 결국 패하고 타르타로스에 갇혔다는 것이 알려지고 만다. 즉 지금은 양지도 음지도 모두 지배자를 잃어 버린 태.
          >계획이 없는 목표는 망이라고 한다. 망을 프레젠테이션 해봤자 이쪽이 곤란해.
          *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그네는 더이 참지 못하고 오버홀을 공격한다. 그는 자신들은 누구 밑에 들어가려고 모인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빌런연합이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자신의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그 또한 마그네와 마찬가지로 오카마였다. 그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그네와 달리, 그녀는 세의 눈을 의식하며 살고 있다. 이 세은 "식에 얽매이는 사람들이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비웃는"다. 그녀는 마그네는 거기서 뛰쳐나갈 용기가 있엇지만 자신에겐 없었다고 부러워한다.
          * 그런데 그 순간, 오버홀은 마그네의 팔을 손가락으로 쿡 찌른다. 마그네도 그걸 느끼는데 어떻게 된다고 자각하기도 전에, 마그네의 반신이 거품처럼 터져버린다. 경악하는 빌런연합. 오버홀은 "너희가 먼저 손을 댔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그런데 오버홀의 태가 조금 이하다. 몸에 묻은 피를 못 견디겠다는 듯이 문질러 닦아내면서 "더럽다"고 질색을 한다.
          오버홀은 태가 매우 이해서 결벽증 같은 증세를 보일 뿐만 아니라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있다. 컴프레스가 무력화된 채로 부딪히자 짜증스럽게 "만지지 마라"고 말하며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컴프레스의 왼팔이 날아가 버린다.
          * 더이 어쩔 수 없는 황이 되자 시가라키가 나선다. 오버홀은 시가라키의 개성을 아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어떤 위험을 직감했는지, 그동안 잠복시키고 있던 부하들을 불러낸다.
          * 부하가 나타나 시가라키와 오버홀 사이에 끼어든다. 시가라키의 개성을 대신 맞은 부하는 그대로 썩어서 부스러져 버린다. 나머지 부하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일부러 미행은 붙지 않도록 트와이스가 신경쓰면서 데려왔지만, 아마 누군가의 "개성"으로 감쪽같이 근처에 숨어있었다. 그 중 후드티를 쓴 쪽이 컴프레스의 개성을 무력화시켰던 쪽인 듯 하다. 오버홀이 늦다고 불평하자 "한 발이 빗나갔다"고 인정한다.
          오버홀은 이렇게 된 이 냉정한 대화를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마침 각 진에서 시체가 한 구씩 나왔으니 그걸로 퉁치면 어떻겠냐며 물러갈 채비를 한다. 빌런연합 측에선 당연히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 없고 특히 트와이스는 자신이 데려온 인물 때문에 이런 참사가 생겼으므로 "책임을 지게 해달라"며 교전을 강력하게 원하지만 시가라키가 허락하지 않는다.
          * 한편 "양지", 웅고에서는 올마이트가 자신의 제자들을 불렀다. [[미도리야 이즈쿠]]와 [[토오가타 밀리오]]였다. 그는 둘을 불러놓고 이것저것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21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 본부장 [[이리나카]]는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동화된 벽 자체를 수축시킨다.
          * 록록을 습격해 그 외형을 훔친 토가가 아이자와와 미도리야마저 습격, 아이자와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처를 입고 피를 빼앗긴다.
          * 한편 [[서 나이트아이]]는 철포옥 핫사이슈 "랏파"를 복사한 트와이스와 대결하게 되는데.
          *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철포옥 핫사이슈 랏파, 텐가이와 힘겨운 격전을 마무리했을 무렵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 본대는 살아있는 복도에 갇혀 압살 당할 위기에 처했다. 시에핫사이카이의 본부장 [[이리나카]]는 지금까지는 길을 막거나 일행을 분단시키는 전법으로 진로를 방해했으나 갑자기 노선을 변경, 동화된 벽을 수축시켜서 일행 전체를 한꺼번에 분쇄하려고 들었다.
          * 사방이 막힌 채 압사당할 처지. [[서 나이트아이]]가 발 빠르게 자물쇠 히어로 [[록록]]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는 나이트아이에게 이것도 따지고 보면 나이트아이의 실책이니 리더인 척 굴지 말라고 툴툴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 "잠금"을 발동한다. "데드볼트"란 기술을 사용하자 사방에서 밀려들던 벽이 "잠금"된다. "잠금"은 접촉한 대을 문자 그대로 잠가놓는 기술. 편리한 개성이지만 "살아있는 것에는 쓸 수 없다"는 제약이 있고 대의 힘이 너무 강하거나 면적이 너무 넓다면 한계가 있다. 일단 이것으로 다소의 안전지대는 확보. 그러나 방심할 틈이 없다. 록록이 잠글 수 있는 범위 바깥에서 벽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미도리야 이즈쿠]]가 벽이 다가올 때마다 원 포 올로 강화된 킥으로 분쇄했다.
          * 아이러니하지만 록록의 불평은 이리나카의 입장에도 적용됐다. 그도 당한 무리를 하고 있었다. 진작부터 압살 작전을 쓰지 않은건 그만큼 방대한 체력을 소비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대는 숙련된 히어로 집단. 만일 압박한 보람도 없이, 일행이 더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길을 양보해준 거나 다름없다. 본래 이리나카는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본부장의 지위를 얻은 것도 그 성격 덕이다. 그런 그가 압살작전처럼 불확실한 패를 사용하는 건 당히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가 복용하는 "강화약"의 약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다 히어로 연합군은 지연은 될 지언정 착실하게 진격하고 있다. 더이 보내서는 안 된다, 실패할 수는 없다는 초조함이 그를 무모하게 만들었다.
          나이트아이의 경고가 벽을 타고 록록에게까지 들렸다. 그는 여전히 불평불만만 늘어놓을 뿐 황을 타계할 방법을 떠올리진 못했다. 우두커니 서있는 그의 뒤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림자는 이내 분명한 형태를 드러낸다. [[토가 히미코]]. 그녀가 두 손으로 나이프를 내리찍었다.
          * 록록이 습격 당했다. 얇은 벽은 록록이 습격 당한 순간의 소음을 전혀 막아주지 못했다. 벽 하나 사이에 있던 미도리야와 아이자와가 그 소리를 들었다. 아이자와가 불러도 그의 대답이 없자 미도리야가 벽을 파괴한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두 명의 록록. 한 쪽은 뻗어있다. 멀쩡한 록록은 "가짜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설명한다. 가짜가 나타나 갑자기 공격했으니 그들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그 순간 록록의 시선이 미도리야에게 꽂힌다. 아이자와는 재빨리 쓰러진 "가짜" 쪽에 다가간다. 뭔가 이하다. "칼자국"이었다. "가짜"는 칼에 찔렸다. 록록이 날붙이를 지녔던가?
          * 아이자와는 최악의 황이란 생각과, 그래도 여기서 한 명을 처리하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붕대를 끌어당겼다. 행복한 순간을 방해받은 토가가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무효화는 잘 작용하고 있었지만, 토가의 전투력은 개성에서 나오는게 아니었다. 토가는 아이자와가 팽팽하게 당기는 붕대를 잡고 축으로 삼아 공중제비를 돌았다. 몸이 재쳐지면서 아이자와의 머리 위를 지났다. 그때 미도리야를 찌르려던 나이프가 아이자와의 어깨 뒤쪽에 깊이 박힌다. 아이자와가 나이프를 뽑는 것과 동시에 휘둘러 반격했으나 붕대만 잘려나갔을 뿐. 토가는 아이자와의 후방에 착지하면서 거추장스러운 것들, 몸에 감긴 붕대를 팽개친다.
          미도리야가 아이자와를 보호하려고 다가왔으나 아이자와는 다가오지 말라고 했다. 토가가 구석으로 물러나자 이리나카의 벽이 미도리야 일행과 토가 사이를 가로막는다. 협력체제. 압박을 풀었던건 이것 때문이었다. 연합을 끌어들여 일행을 처리하게 하기 위해서. 벽 뒤에서 안전하게 장비를 회수한 토가는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아이자와가 휘두른 칼날이 왼쪽 눈밑을 스쳤지만 큰 처는 아니었다. 그런 자잘한 처, 고통보다는 미도리야와 재회한게 중요했다. 그녀는 이쪽에 합류해서 잘했다고 만족하고 있었다.
          * 수시간 전. 빌런 연합의 수장 [[시라가키 토무라]]는 오버홀의 접견실을 방문했다. 위태로운 협 끝에 성립된 동맹. 여전히 딱딱하고 날선 분위기 속에서 오버홀, 치사키는 뜬금없이 장기판을 펼쳤다. 장기를 둬본 적이 있냐고 묻는 치사키. 시라가키는 그런건 두지도 않고 룰도 모른다고 치우라고 말했다. 치사키는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즐겨보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 "국면을 내다볼 수 있게"된다면서. 그러자 시라가키도 조금은 흥미를 보였다.
          오버홀이 말하는 장기의 재미있는 점. 대편 말을 빼앗아 쓸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대편 말을 빼냈다. 빌런 연합의 토가, [[쿠로기리]], 부바이가와라. 그들 중 몇몇을 쓰겠다고 통보한다. 그들이 멋대로 움직이면 자신들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시라가키는 난색을 표했다. 거명된 인물들은 연합에서도 핵심적인 전력. 전부는 줄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오버홀은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응수한다. 아직까지 서로 원한이 있다. 이쪽은 계획의 전모를 알려줬으니, 연합 쪽에서도 뭔가 내놔야 한다.
  • 남명학파 . . . . 21회 일치
         남명 조식을 시초로 하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경도를 나눌때 그 오른쪽(서부)에 속하는 학파이다. 남학파중 하나로 분류되며, 조선의 붕당에서 대북이라는 세력의 주축을 형성했다.[* 엄밀히 말해서 대북=남명학파는 조금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아주 틀렸다 볼 수는 없지만, 이이첨등 애초에 남명학파도 아니면서 대북인 경우도 있고, 곽재우등 남명학파이면서 대북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한 이도 있기 때문.]
         이에 따라 이들이 남긴 저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나마 이들의 시초인 조식의 사을 그의 애제자인 정인홍이 정리한 남명집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그들은 마음을 기본적으로 하나의 지켜야될 '성'으로 보았고, 이것을 공성하려하는 잡념이나 악심들을 막는걸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학문적 특징때문에, 이들은 군사학 역시 해박하게 공부했다고 하며, 임진왜란 시기 이들은 의병장으로써 크게 활약했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학문의 시조인 조식은 노장사역시 받아들였다고 하며, 이때문에 퇴계학파로부터 이단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이들은 전술했듯이 이론만 왈가왈부하면서 정작 그에 따라 실천하지 않는 경우를 혐오했으며, 이때문에 조선 성리학 이론을 집대성하려한 퇴계 이황과 그의 학파와는 앙숙이었다.[* 조식은 이기론에 관한 논쟁을 '입만 나불댈줄 아는 유생놈들이 실천에는 신경쓰지 않고 이론가지고만 키배하는 짓'정도로 여겼을 정도였다.] 이황은 조식을 두고 '오만해 중용이란것을 모르고, 노장사에 물들어 있다'고 비판했고, 이에 조식은 '요즘 학자들은 물뿌리고 청소하는 법도 모르면서 천리를 논한다.'라고 그를 간점적으로 비꼬았을 정도였다.
         이러한 논쟁은 둘모두가 죽고난뒤 조식의 제자인 정인홍이 이황과 그의 스승 이언적이 문묘에 모셔진것에 분개해 소를 올리면서 더더욱 격화된다.
          '''... 신이 일찍이 故 찬성 이황이 조식을 비방한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대에게 오만하고 세을 경멸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높고 뻗뻗한 선비는 중도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노장(老莊)을 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운에 대해서는 청은(淸隱)이라 지목하여 한 조각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신이 일찍이 원통하고 분하여 한 번 변론하여 밝히려고 마음먹은 지가 여러 해입니다... 이황은 과거로 출신하여 완전히 나아가지 않고 완전히 물러나지도 않은 채 서성대며 세을 기롱하면서 스스로 중도라 여겼습니다. 조식과 성운은 일찍부터 과거를 단념하고 산림(山林)에서 빛을 감추었고 도를 지켜 흔들리지 않아 부름을 받아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황이 대번에 괴이한 행실과 노장의 도라고 인식하였으니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더구나 조식과 성운은 비록 세을 피해 은거하였다고 하지만 선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달려가서 한 번 임금을 존중하는 뜻을 폈고, 누차 소를 올려 정성을 다해 치안과 시무를 발씀드렸는데, 이것이 과연 괴벽의 도리이며 이한 행실입니까. 그때 나이 이미 70이었습니다. 어찌 벼슬을 그만두어야 할 나이인데 출임하려고 하겠습니까. 수레를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 자신의 행실을 닦고 삶을 마친 것이 과연 중도에 지나치고 괴이한 행실을 한 것이며 세을 경멸하는 노장의 학문이란 말입니까 신은 의혹스럽습니다.'''
         이소는 아마 자신의 스승을 깊이 존경했던 정인홍이 자신의 스승이 학문적으로 퇴계에 비해서 전혀 밀리지 않는데 오히려 그가 문묘에 모셔지지 못하고 학문적으로 반대방향이었던 퇴계가 모셔진것에 불만을 품어 낸것이지만, 이로 인해 두학파의 사이는 거의 완전히 갈라졌다.
         붕당이 형성되면서 이들은 처음에는 퇴계등 기타 남학파와 함께 [[동인]]을 형성했으며, 이후 정철의 처리문제로 인해 류성룡등 퇴계파와 갈라져 북인을 형성하다. 이후 유경등 일부 소북인사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결국 대북으로 완전히 갈라진다. 선조 말기 이들은 후계로 [[광해군]]을 지지했고, 광해군의 가장큰 지지세력으로 남았다. 이에 대한 보으로 광해군 즉위뒤 유경등의 탁소북이 제거되고 난뒤, 그들은 청소북과 함께 광해군 시기 정국을 장악했으며, 광해군 중기때엔 아예 국정의 중심을 대북이 잡기까지 한다. 아예 광해군 말기때는 그가 대북을 견제하기 위해 서인의 세를 키운 행적까지 보일 정도였다. [* 그 보답은 인조반정으로 돌아오지만....]
  • 대잠비행정 . . . . 21회 일치
         '''장점''' : 비행정은 활주로 없이 해에서 이착륙 한다는 특성, 기체를 비교적 크게 만들 수 있으며 고성능을 추구할 수 있다. 비행정의 특성 [[항공모함]]이 없이도 활동할 수 있다. 비행정은 해난사고구조 등의 임무에도 사용할 수 있다. 또 수에서 소나를 직접 물에 담궈서 탐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단점''' : 수직접이착륙은 사실 비행정에 당히 큰 부담으로 작용하며, 다양한 기계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 아무리 대잠비행정이 크고 성능이 좋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수기나 함재기와 비교한 것이지 육발진 대잠초계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항공모함이 충실하여 대형 대잠초계기를 안정적으로 함재기로 쓸 수 있다면 굳이 대잠비행정을 쓸 이유가 줄어들게 된다. 특히 대잠헬기가 개발되고 이를 구축함에서도 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대잠비행정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직접 착수해서 소나로 탐지하는 것은, 디핑소나와 소노부이의 성능이 향되면서 별로 이점이라고 볼 수 없게 됐다. 오히려 소나 탐지를 위해서 직접 착수하다보니 기체에 기계적으로 부담이 가고, 파도가 치는 해에 착륙하는 것은 조종사에게도 당히 위험한 행동이라 디핑소나만 못하게 됐다(…).
         구조 분야에서도 대잠비행정은 착수하지 않고 구조할 수 있는 헬리콥터에 비해서, 착수를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파도의 높이나 바람의 향을 많이 받아 오히려 불리하다. 예를 들어 헬리콥터는 높이 12미터의 격렬한 파도가 치는 황에서도 구조를 해낸 실적[* http://articles.latimes.com/1986-12-19/local/me-3602_1_coast-guard]이 있지만, 대잠비행정은 이렇게 결렬한 파도를 버텨낼 수 없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개발된 US-2 같은 경우는 높이 3 m~4 m 이의 파도가 치면 착수가 어렵게 된다.
         헬리콥터보다 빨리,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헬리콥터가 닿을 수 없는 외양까지 나가는 배는 애초에 당한 대비를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배를 구조해야 하는 황은 사실 별로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미군에서 운용한 P3Y, PBM, 국의 쇼트 선더랜드(Short Sunderland), 소련제 Be-6와 Be-12 등이 있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력이 충실하여 대잠초계기와 대잠헬기에 주력하게 되면서, 1960년대 대잠비행정에서는 손을 뗐다. 미국이 여기에서 손을 뗀 뒤로 서구권에서는 특별히 눈에 뛰는 대잠비행정이 존재하지 않게 됐다.
         대적으로 해군력이 뒤떨어지는 소련의 경우는 대잠비행정을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비행정 제조는 주로 벨리에프 설계국[* 소련 붕괴 이후 수호이의 사업부로 흡수]이 맡았는데, 이 설계국에서 개발한 Be-12는 소련 붕괴까지 계속 운용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등 몇몇 나라에서 대잠공격기 등의 용도로 운용되었다. 1980년대에 소련은 Be-12의 후속기로서 A-40 ALBATROSS를 개발하였으나, 소련 붕괴에 경제위기가 닥치고 붕괴한 탓에 정식으로 도입되지 못했다.
         일본은 소련 잠수함의 위협에 대처하려는 목적으로 1960년대 후반에 대잠비행정을 개발하였다. 이렇게 하여 개발된 신메이와 PS-1은 막대한 설계비와 제작비를 들였으나, 기대한 만큼 대잠성능이 나오지 않아 돈낭비(…)였다는 비판을 받았다.--플레이스테이션 1은 잘나갔는데--. 결국 일본은 육대잠초계기로 방향을 돌렸으며, PS-1은 US-1, US-2 등의 수기로 개량되어 해구조 임무 등에 사용되었다.
  • 드래곤볼 . . . . 21회 일치
         토리야마 아키라 원작의 만화. 한 시대를 풍미한 소년만화의 왕도격인 작품이었다. 스토리으로 초반에는 '서유기'를 기반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 '닥터 슬럼프'를 섞어넣은 듯한, 슬랩스틱 코메디가 섞인 로드 무비 방식이었으나 점차 소년 격투만화 스타일로 변모해 갔다.
          기뉴의 필살기. 대방과 몸을 바꾼다. 여담으로, 성우도 바뀌어 버린다.
          대의 몸을 차지할 수는 있지만, 파워를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기뉴가 전투력 18만 이이었던 오공의 몸을 차지했을 때 기뉴가 쓸 수 있었던 최대 파워는 고작 23,000. 본래 기뉴 자신의 몸이었을 때보다도 약해졌다. (이 경우에는 손오공과 달리 기뉴 본인은 계왕권 등의 파워 업 방법이 없었던 부분이 한몫했다.)
          프리더 군단에서 사용. 환자를 특수 액체에 담궈서 부을 회복시키는 기능이 있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들어간다. 스타워즈의 박타 탱크와 비슷하다.
          작중에서 혹성 프리더나, 프리더의 우주선에 설치되어 있으며, 구형과 신형이 있다. 혹성 프리더에서는 지구에서 돌아온 베지터가 회복할 때 사용, 자봉에게 당한 베지터를 회복시킬 때나, 기뉴와의 전투로 부을 입은 오공을 치료할 떄 사용되었다. 구형이라도 당한 중을 입은 오공을 40분~50분 내에 치료할 수 있는 성능을 지니고 있다.
          * 78화 : 프리더의 회으로, 베지터 왕이 엘리트 전사들을 이끌고 프리더를 공격하는 사건이 나온다. 그 직후에 프리더가 데스볼로 혹성 베지터를 멸망시킨다.(버독편 도 들어감)
          * 87화 : 오공이 가메하메파를 쓰고 나서 '오랜만이다'라는 메타 발언을 한다. 작중 시간으로는 기뉴 특전대와 싸우고 나서도 하루도 안 지났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보면 오공의 활약 자체가 당히 오랜만.
          * 88화 : 오공과 프리더의 대결 와중에, 치치가 나메크별에 가서 오반에게 숙제를 주겠다느니 피콜로가 갔다는 말을 듣고 또 오반이 불량해지겠다면서 고집을 부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역시 애니판은 당히 치치의 이미지 악화에 일조한 듯 하다.(...)
          * 오공이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하는데 몇화씩 끌었다는 감이 있지만, 오공이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하는 건 의외로 96화에서 아주 빠르게 처리한다.
         나메크 별에서 전투력 이 반응이 나타나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우리 종족을 멸망시킨 프리더가 드디어 죽었다."고 발언을 하는데, 그 발언을 하자마자 광선 총에 무수히 맞아서 시체도 안 남기고 소멸한다. 숙청을 한 것은 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망토 장비). '사령관'이라고 불리는 이 캐릭터가 "우리가 우주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건 프리더 님 덕분, 언젠가는 우리 종족을 부흥시켜 주신다고 약속했다. 프리더 님이야 말로 전 우주의 구세주다!"라면서 열렬한 프리더 빠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초사이어인 오공의 전투력을 계측한 순간 계측기가 폭발하여 기지채로 전멸.
         손오반이 뜬금없이 뛰쳐나가서 프리더와 싸우는 에피소드가 추가. 오공이 죽은 줄 안 오반이 프리더는 어차피 사이어인을 전멸시키러 지구로 올 테니까 오공의 아들 답게 싸우겠다고 나선다.
         오공과 프리더의 대결 도중 지구로 시점 전환, 부활해서 지구로 온 베지터가 과거를 회한다.
         내퍼는 베지터에게 프리더가 베지터왕을 죽이고 혹성 베지터를 멸망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지만, 베지터는 그런 것은 자신에게 관계 없다면서 강한 자가 세을 지배하는 것이 진리라고 말한다.[* 라데츠는 몰랐던 듯. 놀란다.(…)] 그리고 언젠가 강해져서 프리더를 대신하여 우주를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드러낸다.
  • 마기/324화 . . . . 21회 일치
          * 아르바를 소환해 이런 황을 보여주는데, 그는 자신이야 말로 전능한 신이며 아르바의 1000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세월 동안 외로웠다고 말한다.
          * "성궁은 일 일라의 세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순환시키는 시스템이자 나도 이 세의 일부, 인간이 신을 내다볼 순 없다."
          * 우고는 이렇게 말하면서 "발을 전환했다"고 덧붙인다.
          * "자 속에서도 신을 훔쳐볼 수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 한편 지에 있던 아르바는 의식을 잃은 채로 방치돼 있었다.
          * 아르바는 일 일라의 락을 보고 분노하지만 우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쓸데없는 설명을 계속 이어간다.
          * "신의 의지는 하위 세계의 생명은 알 수가 없어. 마치 사람을 구성하는 미세한 세포 하나하나에 자신의 존재의식과 사람의 의식 따위를 원히 알 수 없는 거랑 비슷하지 않아?"
          * "알라딘이 있는 세계에선 말이야. 나는 솔로몬이 맡기신 세을 잘 운용해야돼. 이러면 됐겠지 솔로몬?"
          * 우고의 정신은 붕괴했다. 을 초월하게 긴 고독과 방대한 연구가 그의 정신을 좀먹었다.
          * 이제 그는 인간의 형태 조차 유지하지 못하는데 거대한 부정형의 형이다.
          * 아르바는 우고가 알라딘을 잃은 향으로 망가졌고 맹목적으로 목적만을 성취하는 기계가 되었다고 평한다.
          * 하지만 이미 우고는 너무나 초월적인 역에 있어 아르바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
          * 이러는 사이, 다윗과 일 일라는 자신만의 작은 우주에서 창조의 기쁨을 누리며 신이 된 기분을 만끽한다.
         이번 화 시점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세계관 최강자로 일 일라가 개입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우주가 등장하지 않는 이 우고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걸로 보인다.
         신드바드가 어떻게 생존해 있는지는 미지수. 루프로 완전히 돌아간 걸로 보였는데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지에서 다윗이 한 것처럼 그에게 접근해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여전히 성궁을 탈취할 생각인 듯 한데 "고지에 오르기 위한 포석"이라는 걸로 보아 이미 방법은 연구를 끝낸 듯.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그와 다윗이 성궁에 있기 때문에, 실제론 그들도 무한한 시간 속에서 연구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우고가 한 것처럼 보다 위의 신으로 위을 바꾸는 방식으로 우고를 처리하려 할 것으로 예.
         아르바는 이미 밑바닥까지 떨어진 줄 알았는데 더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우고가 미쳤다는걸 알고 짓는 표정이 압권. 이 만화의 미친년 지분을 독점하다 시피하던 캐릭터였지만 현시점에선 그나마 제일 정인이 되고 말았다.
  • 마기/343화 . . . . 21회 일치
          * 아르바는 세이 망하든 말든 자신과는 관없다며 이 시련도 대충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어쩌면 솔로몬보다도 위에 있는 "어떤 존재"의 의지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알라딘(마기)|알라딘]]이 자신의 이론을 앞세워 신드바드를 방해하는건 커다란 독선이자 오만이다. 옆에 있는 [[세렌디네 파르테비아]]는 신드바드 대신 알라딘을 비웃는다.
          알라딘은 여전히 맞설 생각을 거두지 않는다. 신드바드는 다시 한 번 "그건 솔로몬 왕의 의지에 대한 반역. 넌 솔로몬 왕의 사자가 아니냐"고 꼬집는다. 알라딘은 그 말에 이전에도 그가 자신을 "멸망한 세(알마트란)의 사자"라고 지칭했던 일을 떠올린다. 알라딘은 그때 대답을 지금하겠다고 말한다. 신드바드가 그때 일을 아직 기억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래도 알라딘의 대답은 이어진다. 자신은 멸망한 세의 사자도 솔로몬 왕의 사자도 아니며 이 세에서 한 사람의 인간이 되었다. 그러니 이 세을 위해 자그마한 이론을 세우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의 동료들도 각자의 신념 때문에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으며 자신도 마찬가지다.
          알라딘이 설마 알마트란과 솔로몬을 부정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신드바드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알라딘은 그 존재 자체가 알마트란의 징 같은 것 아니냐고 반박하려 하지만 알라딘은 단호하게 관없다고 말한다. 신드바드는 알라딘으 망설임을 버렸다는걸 깨닫는다. 이제 그들에겐 싸움이 남았을 뿐이다.
          >대하지! 과연 나한테 이길 수 있을까?
          * 알리바바는 정오가 지나면서 다급해졌지만 아르바는 매우 태평한 태도다. 알리바바는 세이 멸망한 위기인데 왜 태평하게 누구냐고 말하는데 그녀는 자신하고는 관없는 일이라고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그 분"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이고 지금 임하는 시련도 "빨리 안 끝나나 이거"라고 투덜거릴 뿐, 아무런 의욕도 없다. 알리바바는 그런 모습을 이하게 여기지만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색한 채로 던전 내부로 걷고 있는 두 사람.
          알리바바도 자신이 왜 거기까지 갈 수 있었는지 자세한 원리는 모른다. 단지 베리알의 마법 덕분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셋타가 나름대로 추정한 가설도 들려주는데 아르바와 그녀의 일당이 매그노슈타트에 차원 구멍을 낸 탓에 차원의 구분이 흐릿해진 향일 수도 있다. 거기까지 듣자 아르바도 더이 흘려듣지 못한다. 알리바바는 그곳을 일종의 "사후세계"라고 부르는데 자신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현세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 알리바바는 그때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백룡과 싸우다 패해서 망연자실했던 그는 정신을 차려보니 덥지도 춥지도 않고 아무 것도 없는 기묘한 공간에 있었다. 우두커니 정좌하고 있을 뿐인 그는 이윽고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기록처럼 보게 되었다. 그건 거기 있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몇 십, 몇 백 번이나 그 을 보면서 "아무 것도 못했다"는 좌절감과, "나는 죽었다"는 자각이 자라났다. 그는 다른 이들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좌절감을 삭히고 있었다.
  • 마기/351화 . . . . 21회 일치
         [[마기]] 351번째 밤. '''세을 루프로 환원시키는 마법'''
          * 그러나 하늘에서 성궁의 사자들이 강림. 세을 무차별 공격해 루프로 환원시키기 시작한다.
          * [[연백룡]]과 [[쥬다르]]도 일행을 쫓아와 합류. 우고는 아무래도 "세을 루프로 환원시키는 마법"이 작동한 것 같다 하는데.
          * 뢰엠 제국의 속주 카타르고의 "대협곡". 인근에 거주하는 원주민 일가는 과일을 수확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가족의 아이가 하늘에서 이한 걸 발견한다.
          * 그것은 그물과 같은 균열이었다. 균열을 통해 천사와 같은 형이 나타난다. 원주민들도 그것이 천사라고 생각했지만 이할 정도로 흉흉한 분위기.
          * 천사는 성궁의 방어 시스템이었다. 천사가 검을 내리쳐 가족들과 그 가족이 있던 자리의 마고이를 루프로 환원시킨다. 그렇다.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이 발동해 버린 것이다.
          * 방금 전까지 세의 앞날을 놓고 열띈 토론을 하고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생각마저 돌려놓았던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알리바바 사르쟈]]. 갑자기 던전이 사라지고 성궁에 밤이 찾아온다. 성궁의 관리자 [[우고(마기)|우고]] 또한 문을 알 수 없는 사태. 우고는 혹시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이 발동된게 아닌가 의심한다. 그렇지만 알라딘은 방금 전 신드바드가 그 마법을 막지 않았냐고 반박하는데, 그 신드바드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 알리바바가 대체 누가 그럴 수 있냐고 묻는다. 성궁을 관리하는 우고도 신드바드도 여기에 있지 않나? 우고도 "그런 사람은 있을 리 없다고" 자기가 한 말을 바로 부정한다. 신은 세에 단 한 명 뿐. 신드바드가 이 세의 신인 지금 다른 신이 존재할 리가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을 하는 우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 그런데 신드바드보다 위의 신이라면?
          그 불길한 말에 대답하듯 성궁이 진동하고 하늘이 무너진다. 무너진 하늘 너머에서 또다른 우주가 엿보인다. 우고는 이 현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순서를 뒤바꾸었을 때" 모습이다.
          * 우주로부터 한 쌍의 손이 내려와 우고를 붙든다. [[다윗]]이다. 그가 우고에게 잡혔을 때 황을 그대로 되갚아준 것이다. 붙잡힌 우고가 이 모든게 네 짓이냐고 묻자 다윗은 그저 웃을 뿐이다. 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묻자 다윗이 설명을 시작한다. 이 또한 우고에게 잡혔을 때 당했던 일이다. 그는 우고를 "우랄투고"라 부르며 이것은 그가 가르쳐준 "신의 서열을 뒤바꾸는 마법"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신의 자리를 빼앗은 다윗은 성궁을 장악해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재시동했다. 다윗은 신의 서열을 바꾸는 마법이 멋지긴 하지만 자신이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이라 말한다. 그래도 우고가 그걸 구축해냈으니 단지 쓰는 것 뿐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였다.
          >세 만물을 루프로 환원시키는 마법은 내가 완수하겠어!
          * 대협곡을 덮친 성궁의 사자들은 전세계 공에 나타난다. 많은 나라들, 많은 민족들. 아무 것도 모른 채 일유하고 있던 세계를 무자비하게 난도질한다. 그들을 조종하는 다윗의 광기어린 외침.
          * 절망에 삼켜질 것은 우고. 그러나 좌절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당초 성궁에서 결판을 짓기로 했던 네 명의 젊은이들. 알라딘, 알리바바, 백룡, 쥬다르는 다윗을 타도하고 세을 구할 싸움을 시작한다. 어찌보면 결국 처음부터 이럴 각오로 시작한 싸움이었다.
  • 송창현 . . . . 2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top1=한화 이글스/선수목록, top2=야구 관련 인물(KBO))]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군 복무''' || [[무 야구단]] (2017~2018) ||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2013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27순위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으나, 2012 시즌이 끝나자마자 [[김응용]]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자신이 야인 시절 직접 점찍어 두었던 송창현을 곧바로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이 때 트레이드로 롯데로 넘어간 선수가 다름 아닌 '''[[장성호]]'''였기에, 졸지에 화제의 신인으로 급부한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니라(…).
         분명 노쇠화가 진행되고는 있다고 하나, '''최연소 2,000안타'''를 달성한 장성호의 가치가 위픽도 아닌 신인 한 명분밖에 안되냐는 논란으로 화제가 되었다. [[김응용]] 감독이 이 트레이드에 확신을 보였으니 일단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황이었다.
         2014 시즌 이후 마무리 훈련에 참가했지만 부으로 도중에 낙마했다. 이후 11월 19일 요코하마의 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좌측 어깨 전관절 와순 부분 파열로 접합 수술을 받았다. 26일에 퇴원해서 귀국한 이후 서산에서 재활훈련에 들어간다고 한다. 단계적으로 내년 2월쯤에 캐치볼을, 5월달쯤에 실전 피칭에 들어간다고 한다.
         결국 장운호와 함께 작년 김기현처럼 군 팀에 들어가는 것으로 탈출할 듯 하다. 무 1차 합격자 명단에 들어갔다. 홈 경기에서 평균자책 1.17로 매우 준수한 피칭을 보였다.--홈깡패--
         그리고 11월 24일 팀 동료 [[장운호]]와 무에 최종합격했다.[[http://m.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521958|#]]
         신체조건 하나는 [[김응용|코감독]]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좌완 떡대다. 키 181cm에 100kg의 건장한 체격에 아마시절에도 큰 부 이야기는 없는게 내구성도 괜찮아보인다. 특히 멘탈이 아주 좋은 편이라 맞는 걸 두려워하지않고 정면 승부를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의외로 피안타율이 높지 않다.
         다만 문제는 제구력인데, 위에 나온대로 폭투와 사구가 너무 많다. 2013년 시범경기에서도 공을 그냥 패대기(...)친다라고 할 정도로 불안정한 제구를 보인다. 그래서 낮은 피안타율을 보임에도 볼질로 주자를 쌓다가 한두 방에 무너지는 패턴을 보이는게 가장 큰 문제. 그런데 [[정민철]] 코치의 지도로 인해 2013 시즌 중에 놀라울 정도로 향되고 있다. 아직 완벽하기엔 멀었지만 2013년 9월, 시즌 초와 비교해 보면 거의 [[괄목대]]급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2014년엔 다시 제자리로... 애초에 13년 기록이 플루크라니까~~
          * 2013 시즌 신인이기는 하나 [[오선진]]과 동갑이다. 송창현이 1년 유급을 했기 때문.[* 고등학교는 정적으로 마친 것을 보면 중학교 때 포항에서 성남으로 전학하는 과정에서 유급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화팬들 사이에서는 데뷔 시즌에 제대로 활약 못하면 군대부터 보내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 트레이드 초기에 [[류현진]]의 [[등번호]]인 99번을 요구했다는 소리가 있어 ~~안 그래도 트레이드로 호구잡힌 기분에~~ 언짢아 있던 한화팬들의 심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루머로 밝혀졌다.[[http://www.sportsworldi.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130124022341&subctg1=25&subctg2=00&OutUrl=naver|#]] 롯데에 지명되었을 때는 [[이대호]]의 등번호였던 10번을 요구하였다는 소리도 있었다.[[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122637.htm|#]] 물론, 한화로 트레이드 되면서 이 번호는 [[스캇 리치몬드]]에게로 넘어갔으나 리치몬드도 무릎 부으로 인해 퇴출. 이 향인지 네이버에서 송창현을 치면 처음으로 뜨는 연관 검색어가 '송창현 무개념'이었다(…).
          * 여담이지만 [[선동열|김응용 감독의 수제자이자, 0점대 방어율 투수]]와 당히 닮았다. 트레이드 당시에도 뭐가뭔지 모르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송창현을 선택한 진짜 이유'''라는 우스개 소리로 돌아다니는 짤. ~~얼굴은 선동렬인데 제구는 [[김정수(1962)|김정수]]...는 무리인가~~
          * 한화의 경기가 있을 때는 아버지가 경기를 보러 오기도 하는데, 경기 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면 안절부절못하시는 게 심히 안습하시다(...). [[부모]]의 마음은 모두 다 저렇다는 걸 보여주시는 것 같기도.
         || 2017 ||<|2><:><-16> [[무 피닉스 야구단]] 복무 ||
  • 식극의 소마/208화 . . . . 21회 일치
          * 연대식극의 세부룰은 각 팀에서 3명 씩 선발돼 각각 대와 대결.
          * 이런 식으로 대결을 계속해서 대방 진의 요리사를 전멸시키면 최종승리.
          * [[키노쿠니 네네]]는 [[잇시키 사토시]]가 [[유키히라 소마]]를 고평가하는걸 의식하지만 대결주제가 "소바"인 이 승산이 없을 거라 단정한다.
          * 소마는 전날 [[사이바 죠이치로]]에게 누굴 대하든 "정식집"이란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려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이같은 조리를 시도하는 중.
          각 진에서 임의로 선발된 세 명의 요리사가 동시에 대결을 진행. 각 대결에서 승리한 요리사가 흰 별을 얻고 생존한다. 생존한 요리사는 새로운 대결에 나갈 수도 있고 아군의 대결에도 서포트해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대결을 반복해 대방을 전멸시키는 쪽이 최종 승리. 카와시마는 이러한 룰은 제대로 전달했지만 소소하게 반역자 진이 지라고 저주를 꽂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감옥에 갖힌 반역자들은 어느 틈에 카와시마가 세뇌된 건지 의아해하지만 원래부터 권력에 약한 속성이 있어서 그럴 거라는 가열한 추측이 대세다.
          * 일식의 재능으로 십걸 6석에 오른 [[키노쿠니 네네]]. 게다가 자신의 특기 중의 특기 소바가 주제다. 키노쿠니는 잇시키가 소마를 고평가하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제가 저런 이 소마가 자신을 대로 뭘 할 수 있겠냐며 벌써부터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라는걸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에 경험을 쌓고 실력을 갈고 닦는 일이 즐거웠고 그걸 과시하는 것 역시 그랬다. 이런 경향은 요리에도 이어져서 특히 "소바"에 관해서라곤 누구를 대로라도 자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순발력과 발력, 아이디어, 허세. 이번에는 그런 것들이 통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소바는 들여온 시간과 역사만이 맛을 낼 수 있는 비법이라며 소마에겐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소바로는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고 일찌감치 승리선언을 한다.
          * 소마에겐 엄청난 야유가 퍼부어진다. 사실 동료들까지 그의 주제 선택과 메뉴 선정에 쓴소리를 하는 판이니, 여기에 그의 아군은 없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소마는 특훈 기간 동안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와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너 십걸을 대로 어떻게 이길 거냐?
          항 건성건성하는 것 같던 죠이치로가 그때의 패배를 냉정하게 분석해준다. 패인은 하야마의 "향기의 일점돌파"를 이기지 못한 것. 앞으로 대한 십걸들은 이렇게 각기 특기 분야에 특화된 인재들이다. 그러니 임기응변으로 떠오른 레시피만으론 이기기 어렵다. 듣고보니 맞는 말이라 소마도 순순히 인정한다. 죠이치로는 지적에 그치지 않고 그들에 대항할, 소마만의 무기를 일러준다.
          그렇게 말하는 소마의 손에는... 제면기가 들려있다. 소마는 얼빠진 표정으로 제면기의 성능에 감탄하며 열심히 면을 뽑고 있다. 보는 이들이 황당하는 것도 잠시. 곧 조롱거리 삼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동료들은 그가 승부를 포기한거 아니냐는 예측까지 나오는데, 이 황에서 딱 세 사람만 그가 정확히 판단했다고 본다. 아자미와 키노쿠니, 그리고 에리나였다.
          에리나는 면을 만들 때 "수타"를 칭송하긴 하지만, 수타가 딱히 맛있는 면을 만드는 비법은 아니다. 수타로 유명한 집들은 그냥 수타를 해서 맛있는게 아니라 "뛰어난 수타"를 구사해서 맛있는 것이다. 사실 유명 가게 중에도 제면을 기계에 맡기는 집도 적지 않다. 이미 매니아들 사이에선 어중간한 수타일 바엔 제면기를 쓰는게 낫다는 게 식이다. 그러니 수타 기술이 없는 소마가 제면기를 택한건 잘한 선택이다.
          키노쿠니는 그의 반죽 비율도 눈여겨 본다. 키노쿠니는 밀가루와 메밀가루를 1 대 9로 섞은 "9할 소바"를 만들었다. 하지만 소마는 밀가루가 2, 메밀가루가 8인 "28소바". 세간에는 메밀 비중이 높은 걸 좋다고 여겨 100% 메밀가루 소바도 팔지만, 냉정하게 맛으로 보면 밀가루를 충분히 섞는게 훨씬 맛있다. 물론 100%에 가까울 수록 메밀향은 좋아지지만, 원래 메밀은 특성 반죽이 퍼석해서 면을 뽑아도 밀가루 면처럼 매끄럽게 나오지 않는다. 밀가루를 섞으면 향은 좀 덜해도 면으로서 쫄깃하고 맛있는 국수가 되는 것. 실제 메밀 장인들도 "맛의 밸런스는 28소바가 최고"라는 말이 정설이다. 키노쿠니는 소마가 그저 대항심만으로 10할 소바에 도전하지 않고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며 그 점에 대해서는 감탄한다.
  • 식극의 소마/217화 . . . . 21회 일치
          * 연대식극 1라운드도 한 대결만 남은 황. 2승을 확정지은 [[유키히라 소마]]와 반역자들은 득의양양한데 [[카와시마 우라라]]가 찬물을 끼얹는다.
          * 키 163cm, 쓰리 사이즈 B79 W56 H84, 좋아하는 것은 애플티와 테니스 관전, 싫어하는 것은 담배냄새와 거미다.
          * [[유키히라 소마]]와 [[잇시키 사토시]]의 연승으로 1라운드는 어느새 반역자 팀의 2승. 이미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알몸 변태의 삶을 살던 잇시키가 멀쩡한 얼굴로 승리를 거두자 불신으로 가득했던 후배들도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부사키 슌]]은 남이 만든 식재를 멋대로 썼다 지면 어쩔 생각이었냐고 심드렁하게 묻지만 잇시키가 "너희 식재료를 쓰는 이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하자 쑥스러워한다.
          * 십걸 진은 초집 분위기에 가까운데 [[시라츠 쥬리오]]는 너무 심하게 압살 당한 탓인지 좀처럼 몸을 추스르지 못해 들것에 실려나간다. [[코바야시 린도]]는 큰 일이나 난 것처럼 "뒷 일은 나에게 맡겨라"고 소란을 피운다. 정작 쥬리오는 잇시키만 찾으며 "너무나 멋지다"는 말만 하고 듣질 않는다. [[츠카사 에이시]]는 누가 봐도 맛이간 시라츠의 태를 보고도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는 핀트가 빗나간 평을 남긴다. 옆의 [[사이토 소메이]]는 "잇시키의 강렬함이 작렬"한 대결이었다 총평한다. 특히 그의 "후배들을 위해 싸운다"는 대의에 감동한 듯 하다. [[에이잔 에츠야]]가 "그런게 아니라 대세에 거스르는 자신에 취한 것"이라 혹평하는데 사이토는 딱히 반박하진 않지만 "자신의 방식을 관철한다는 강한 각오"를 느꼈다고 덧붙인다. 같은 2학년이 3학년 사이토에게 이정도까지 평가를 받자 에이잔은 물론 그에게 패한 [[키노쿠니 네네]]도 할 말이 없어진다.
          * 그렇다면 반역자 진의 2학년이자 전 십걸 [[쿠가 테루노리]]는 어떨까? 놀라게도 아무 생각이 없다.
          얄미운 얼굴로 이따위 드립이나 친 쿠가는 딱히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주 코스프레를 하며 2승을 거뒀다고 소마를 치하한다. 왠지 또 거기에 어울려 고개를 숙이는 소마. [[요시노 유키]]는 역시나 긴장감없는 사람이라 느낀다.
          * 어쨌든 1라운드는 반역자팀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타도코로 메구미]]는 이대로 1승을 더 추가할 가능성도 타진한다. 소마도 거기에 호응해 그렇게만 된다면 꽤 큰 차이를 내는 거라고 하는데, 이 좋은 분위기에 불청객이 끼어든다. MC인 [[카와시마 우라라]]다. MC 주제에 마이크까지 내던져 놓고 호쾌한 뻐큐부터 들이민다. 그녀는 반역자팀의 전승 가능성을 "그렇겐 안 된다"고 일축한다. 그리고 연대식극은 각 대결 대결에서 한두판 앞서 가도 최종승리하고는 관없다며 정신승리를 시전한다. 센트럴에 넘어간 관중들이야 이 드립에 크게 호응하지만 반역자팀의 분위기를 죽이진 못했다. 쿠가가 태연하게 "그러다 얼굴에 주름 생긴다"고 극딜을 넣자 이성을 놓고 Fuck을 연발, 역으로 도발 당한다.
          >그 사람이 대하고 있는 사람
          언뜻 보기엔 벗겨지지 않고 양호한 패배 같지만 [[아헤가오|얼굴이 심의 보여주기 어려운 형태]]다. 어쨌든 불쌍해서 공개하는 프로필.
          >키 163cm 쓰리 사이즈 B79 W56 H84
          * 반역자들로선 꿈도 꾸지 않았던 반전. 1st BOUT 반역자팀의 전승 선언이 울려퍼진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키리 아자미]]는 순식간에 불리한 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보람이 없다"는 허세를 작렬해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리는 반역자와 센트럴 측. 사이토가 담담하게 황을 정리한다. 현재 남은 인원은 반역자 8에 십걸 5.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3라운드에서 십걸의 전멸이다. 괜한 호들갑이나 떨던 린도지만 "그건 곤란하다"며 조금은 진지하게 듣는다.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네네에게 "너무 책임감 느끼지 마라"며 위로인지 부담을 주는 건지 알 수도 없게 격려한다.
          * 허세력을 뽐낸 아자미 총수가 객석에서 일어나 1라운드의 종료와 1시간의 휴식을 선언한다. 그 동안 양 진은 대합실에서 다음 시합에 나올 인원을 협의해야 한다. 잠시 뒤 대합실로 자리를 옮긴 반역자들. [[나키리 에리나]]가 아버지의 말이 맞다며 "전승했다고 기뻐할게 아니라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못박는다. [[이사미 알디니]]와 [[아라토 히사코]]가 십걸 측이 어떤 인물로 승부할지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히사코의 분석으로는 1라운드 결과로 적도 초조해할 테니 갑자기 1석 츠카사나 2석 린도가 나오는 것도 정할 법하다. 그 말에 얼굴이 파래지는 유키와 료코.
          * 화장실에 갔다 나오는 소마는 아직도 꽁한 태. 그런데 막 모퉁이를 돌려는데 복도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 쿠가였다. 그가 대화하는 대는 적의 대장 츠카사 에이시. 쿠가가 츠카사에게 "다음 라운드에 나올 생각 아니냐"고 떠보는 중이다. 츠카사는 애매하게 "그렇다면?"이라고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다. 쿠가가 그런 태도가 심술궂다며 자기는 쭉 이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찌된 일인지 츠카사는 푼수같은 평소 모습이 간데 없이 진지하고 말이 적다. 쿠가의 드립에도 "확실히 그랬지"라고 짧게 대꾸하는데. 쿠가는 여전히 까불거리는 태도로 "귀여운 후배의 부탁"이라며 두 손을 모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쿠가는 손을 주머니에 꽂아넣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소마는 얼핏 그의 팔이 미세하게 떨고 있는걸 발견하는데.
  • 신동주(야구) . . . . 21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최문호(1993) || → ||<:> '''신동주(1994~2000)''' || → ||<:> [[강식]](2001) ||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전 야구 선수. 등번호는 37번(삼성) - 25번(해태) - 37번(KIA) - 40번(삼성, 2004) - 24번(삼성, 2005, 트레이드 전) - 52번(KIA, 2005) - 37번(KIA, 2006). [[마해]]이 삼성으로 오기 전 [[이승엽]]-[[양준혁]]과 클린업을 구축하여 대의 투수에게 공포를 선사하던 장본인. 그래서 [[임창용]]도 신동주가 해태로 이적하고 나서야 원래 등번호인 37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당한 활약을 하던 선수 치고는 항목이 엄청 짧다.~~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5번타자. ~~더불어 롯데 왕자의 난 덕에 기업인 동명이인에게 밀린 [[안습]]의 사나이~~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1999년 6월 24일 대구에서 벌어진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2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뒤 2,3루 도루와 홈 스틸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게다가 그의 이미지는 찬스에 강하며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삼성에서 뛰었던 2000년까지 6개의 만루 아치를 그렸으며 그것은 [[김기태(1969)|김기태]](당시까지 8개)에 이은 2번째 기록이며 당시 한참 홈런을 많이 때리던~~먹튀의 [[흑역사]]로 징되던~~ [[홍현우]](5개)보다도 많은 수치였다.[* 2000년 당시까지를 기준으로 [[김기태(1969)|김기태]]는 227홈런, [[홍현우]]는 173홈런을 때려냈다. 신동주의 홈런수는 82개에 불과했다. 그가 얼마나 만루에 강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그러나 [[김기태(1969)|김기태]]와 [[마해]] 등 거포입에 혈안을 기울이던 삼성프런트의 정책에 따라 장타력이 그들에비해 어정쩡(?)한[* 물론 당시로 따져도 평균이의 호쾌한 타구를 날리던 그였다.] 장타력을 가진 선수로 각인되어 [[김응용]] 감독 부임 직후 2001년 초 [[강식]]과의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해태-KIA에서도 주전 외야수로 뛰다가 2003년 시즌 후 KIA로 이적한 FA [[마해]]의 보선수로 친정팀인 삼성에 복귀했다. 2005년 시즌 중 최용호와의 트레이드로 다시 KIA로 오고 이듬해인 2006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9년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롯데와의 플레이오프]] 당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으나 팀은 7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그가 강식과 트레이드되어 KIA에 있었을 때인 2002년에는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가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린 해였다. 이후 2004년 다시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와 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며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도 밟아봤으나 팀은 9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2005년 초 다시 KIA로 트레이드된 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우승하는 등 여러모로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현역 시절 당대 최고의 좌완투수였던 [[이훈(좌완투수)|이훈]]에게 무척 강한 모습을 보였고 불꽃 남자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고 찬스에 무척 강했다. 또한 타격 시에 배팅장갑을 착용하지 않고 타격을 하기로 유명했다.
         은퇴 후 [[대구광역시]] [[북구(대구)|북구]] 침산2동에 B&G 스크린 골프연습장을 열었으며, 전 삼성 - 두산 - 롯데 투수 출신 [[이훈(우완투수)|이훈]]을 티칭 프로로 맞이하여 함께 운했다. 2012년 현장으로 복귀하여 친정 팀인 삼성의 원정 기록원으로 활동했다.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21회 일치
         조작키가 에치오 삼부작 시절에 비해 겁나게 많이 바뀌었다. 후속작인 [[어쌔신 크리드 IV 블랙 플래그]]에서도 당히 많은 조작키가 바뀌었다.
          * 1단계: 경비병들이 플레이어를 의심하게 된다. 변경 지역에서는 이 태로 고정된다.
          * 현수배 포스터를 뜯어낸다.
         대방이 근접 공격을 걸어올 때, 대방의 머리 위에 붉은 삼각형이 뜨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막기가 가능하다는 뜻[* 삼각형이 안 떠도 공격을 막을 수는 있다.]으로, 반격키(PC 기준 보통 설정 "E")를 눌러 막을 수 있다. 이렇게 공격을 막고 난 후에는 몇가지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대방이 특수한 행동을 할 때는 그 대방의 머리 위에 노란색 역삼각형이 뜬다. 이는 대방의 종류에 따라 대처법이 다르다.
         대방이 뒤에서 플레이어를 붙잡은 경우에는 LMB를 연타해 빠져나올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3명 이 죽이면 비동기화되며 아이는 죽일 수 없다. 돈을 뿌리면 몰려들어 돈을 줍는다. 폭동을 선동해 경비병과 싸우게 할 수 있다. 시체를 뒤져 약간의 돈과 잡화 몇개를 루팅할 수 있다.
          호작용으로 놀아줄 수 있다. 3마리 이 죽이면 비동기화된다.
          호작용으로 놀아줄 수 있다. 아무리 죽여도 비동기화 되지 않는다.
          * 옥에 있다가 옥 위에 올라가 있는 병사에게 걸리기
          * 병사들을 밀치고 지나가기 - 이 황에서 한번 더 밀치면 강제 전투
          "대표 없이 조세 없다,"를 외치며 국에 대항하는 식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당시 식민지인의 40~45%가 애국자를 지지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보스턴 한구석에만 자리잡고 있다가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왕당파를 몰아내기 시작, 스토리가 끝난 시점에는 전 지역을 차지한다.
          * 왕당파(Loyalists)/국군
          애국자의 반역에 맞서 국을 지지하는 식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식민지인 다섯명 중 하나는 열성 왕당파였다고 한다.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며 점점 세력권이 좁아지다가 메인 스토리 완결 후 사라진다.[* 실제 역사에서 미국 독립 이후 왕당파는 아직 국령으로 남아 있던 [[캐나다]]로 도주했다.]
         [[http://store.steampowered.com/app/208480/|스팀 점 페이지]]
  • 위안부 소녀상 망치 테러 사건 . . . . 21회 일치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위안부 소녀]])을 30대 여성이 [[망치]]로 내리친 사건.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 철거 반대! 대학생행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협결과를 반대하고 특히 소녀 철거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으며, 2015년 12월30일부터 소녀을 경비하고 있었다.
         == 세 ==
         2016년 6월 3일 오후 12시 30분, 33세 최모 여성이 소녀의 머리 부분을 망치[* 망치머리 12.5cm, 길이 49cm]로 3,4회 내리쳤다.
         최씨는 곧바로 소녀을 경비하고 있던 대학생들에게 붙잡혔다. 이후 최모 여성은 경찰에 재물손괴 혐의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소녀에는 길이 1㎝가량의 흠집이 생겼다.
         최씨는 과거 조현병으로 2차례 입원[* 약 5년 전에 3개월, 1~2년 전에 2개월]한 적이 있었다. 최씨는 “망치를 [[철물점]]에서 구입해 소녀을 내리치라고 (머리가) 지시했다”고 경찰에서 증언했다. 경찰에서는 조현병으로 인한 망, 환청 증세로 보고 있는 듯 하며, 가족의 동의 하에 최씨를 정신병원에 입원 시킬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 철거 반대! 대학생행동'은 오후 5시, 소녀 테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이들은 "소녀 테러를 사주한 배후를 철저히 수사해 진실규명과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 학생은 "여성이 소녀의 머리를 가격하는데 바로 앞에 있던 수많은 경찰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고 주장했다.
          * 일본 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징성이 강하여, 과거에도 테러 목표가 된 적이 있다. 2012년 6월, 극우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가 ‘다케시마는 일본 토’라고 적은 말뚝을 소녀에 묶는 [[위안부 소녀 말뚝 테러 사건]]을 저질렀다.
  • 은혼/631화 . . . . 21회 일치
          * 야토 용병부대를 통솔하는 "노사"는 해방군 본대의 결정을 지군에 전파하고 [[히라가 겐가이]]에게 "[[엔죠 황자]]를 죽일 방도"를 묻는다.
          * 해방군의 지군은 최후의 발악으로 가부키쵸를 습격, [[사카타 긴토키]]와 [[진선조]]도 교전에 들어간다.
          * 지과 우주 모두 열세, 자칫 전멸의 위기가 올 수도 있을 시점에 구세주가 나타난다.
          * 자신이야 말로 세을 부술 자라 공언하는 자, [[다카스기 신스케]]였다.
          * 통신의 부활로 성사된 [[히라가 겐가이]]와 [[엔죠 황자]]의 기묘한 대담. 이들의 만남은 주선한 셈이 된 야토족 용병부대의 통솔자 "노사"란 인물은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해가 뜰 때까지 나노머신 바이러스를 처리하지 못하면 지구를 통채로 지운다. 이것은 겐가이 감한테만이 아닌, 지병력 전체에 대한 협박이기도 했다. 그는 곧 최대한 무전을 돌려 지군 잔존세력에게 엔죠 황자의 의사를 전달한다.
          * 노사는 부하가 자신들은 어찌해야겠냐고 묻자 지팡이로 겐가이 감을 쳐서 멀찍이 보낸다. 그리고 자신들이 할 일을 지시한다.
          노사는 겐가이가 고문에 굴할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기 때문에 지금 하는 말은 "협박"이 아니라고 전제한다. 그는 겐가이 감에게 무슨 방법이든 써보라고 한다. 만일 쓸모없다고 생각되면 그냥 죽일 것이다. 그가 겐가이 감에게 하라는 것은 나노머신을 무력화시키는게 아니다. 그게 안 된다는건 이미 알고 있다.
          * 해방군 모선 내부에서 교전 중인 [[사카모토 다츠마]] 일행. 그의 옆을 [[자작 제독]]과 [[무츠(은혼)|무츠]]가 지킨다. 일단은 쾌진격이나 엔죠 황자에겐 기껏 남은 수단이 저따위 밖에 되지 않는다며 비웃음의 대이다.
          * 그때 레이더에 이한 정보가 잡힌다. 당한 수의 함대가 해방군 모함의 후방을 잡고 있다. 부하는 고장이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건 [[하타 황태자]]가 고국 오우고쿠성에서 소집한 병력이었다. 하타 황태자는 무전을 통해 해방군에 선전포고를 한다. 그들의 행위가 해방이란 이름의 침략 행위에 지나지 않고 이 이의 만행은 우주가 용서해도 자신들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실로 그럴 듯한 선전포고를 하는 사람은
          * 거기에 또 낚이는게 [[하세가와 다이조]]. 역시나 마다오 답다. 하타 황태자의 말만 믿고 당당하게 거수하는데 딱 걸렸다. 하지만 그는 급식비를 훔친게 아니었다. 하타 황태자의 간식인 고급 푸딩을 훔쳐먹었을 뿐. 그는 그 원인을 개밥이나 주는 열악한 처우로 돌린다. 결국 푸딩에서 비롯된 결투로 치닫는데, 알고 보니 네스도 항 하타 황태자의 푸딩을 훔치고 있었다. 그도 먹잇감을 가로챈 원한을 하세가와에게 풀기 시작하고, 셋은 뒤엉켜서 추접한 전쟁을 시작한다.
          * 잠잠하던 지군도 격렬한 발악을 시작했다. 겐가이 감을 추적하던 [[사카타 긴토키]]와 [[가구라]] 앞에 잔당들이 덮친다. 같은 시각 각지의 [[진선조]] 병력들도 지군의 재침공을 받는다.
          * 히지카타는 무슨 수가 없겠냐고 묻는데 마츠다이라는 태연하게 "아직 캬바레 하는데 없을까"같은 실없는 소리나 던진다. 히지카타가 포기한 거냐고 츳코미하자 자기는 포기하지 않았고 분명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싸우는 캬바레 아가씨가 있을 거란 덧없는 희망을 불사르고 있다. 그는 작은 튜브에 연연하다간 옆에 있는 큰 튜브를 보지 못할 때도 있다며 "포기하는게 꼭 나쁜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지구는 대충 냅두고 겐가이 감부터 찾으라고 조언하는데, 제일 냅두면 안 되는걸 왜 냅두라는 거야 이 아저씨.
          모선에 있는 다츠마 일행도 썩 좋지 않은 황에 몰렸다. 자작의 안내로 진군하고 있었으나 적이 한 발 빨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엔 미리 적들이 배치돼 있었고 퇴로까지 차단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다른 출구를 찾아보려 하지만 시스템을 장악한 엔죠 황자 보다 빠를 순 없다.
          이 세을 부수고 싶어 안달난 또다른 인물, [[다카스기 신스케]] 등장.
  • 이상오 . . . . 21회 일치
          | 이름 = 이
          | 출생지 = {{국기나라|대한제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서문로 12번지
          |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 친척 = 이동진(조부) <br/> [[박창암]](사위) <br/> 이일우(백부) <br/> [[이정 (1897년)|이정]](형) <br/> 한문이(형수) <br/> [[권기옥]](형수) <br/> [[이화 (시인)|이화]](형) <br /> 이용희(조카) <br/> [[이백 (1904년)|이백]](형) <br/> [[이열희 (1924년)|이열희]](5촌 조카)
         '''이오'''(李相旿, [[1905년]] [[11월 6일]] ~ [[1969년]] [[12월 15일]])는 [[대한민국]]의 [[사냥|수렵가]], [[작가|문필가]], 저술가, [[사격|사격인]], [[바둑|바둑인]]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이며 독립운동가 [[이정 (1897년)|이정]](李相定), 시인 [[이화 (시인)|이화]](李相和), 사학자 [[이백 (사학자)|이백]](李相佰)의 아우인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혁명검찰부장을 지낸 대한민국 육군 준장 출신이자 [[자유월보사]] 사장을 지낸 [[박창암]](朴蒼巖)의 장인이기도 하다.
         [[1929년]] [[사냥|수렵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고 살생유택(殺生有擇) 사을 겸비한 [[사냥|수렵가]]로 이름을 날렸다.
         * [[대륜고등학교|경북도 대구 우현보통학교]] 졸업
         * [[대륜고등학교|경북도 대구 우현고등보통학교]] [[졸업]]
         [[분류:일제 강점기의 스포츠 평론가]][[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김구]][[분류:한국독립당]][[분류:염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역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유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호세이 대학 동문]]
  • 이성민 (야구선수) . . . . 21회 일치
         |문 표기 = Lee Sung-Min
         |사진 사이즈 =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거쳐서 [[남대학교]]에 진학하였다. [[남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직구 스피드가 147 km/h에 이르고 변화구 제구도 수준급이어서 스카우트 사이에서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 이전 부터 대졸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다.[[2012년]] [[8월 20일]]에 열린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윤형배 (1994년)|윤형배]]와 함께 특별 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였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1208/h20120820204711111960.htm "4할 승률 위하여" 발톱 드러낸 NC] - 한국일보</ref> [[2012년]] [[12월 5일]]에 열린 2012 [[야구인의 밤]]에서 우수 선수을 수하였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9144 '야구인의 밤' 남대 이성민, 우수 선수 ] - 스타N뉴스</ref> [[대한민국의 대학 야구 대회|대학리그]] 4년 동안 17승 15패, 252 1/3이닝, 222탈삼진, 89볼넷,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하였다.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특별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며 즉시 전력감 [[투수]]로 주목받았으나, 기대와 달리 시즌 초에는 별로 좋지 않았다. [[2013년]] [[4월 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서 선발 [[애덤 윌크|아담]]을 대신하여 7회에 구원 등판하였으나 [[박종윤 (1982년)|박종윤]]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해 구단 첫 패전 [[투수]]가 됐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30402/54154104/1 ‘제 9구단’ NC, 1군 데뷔전에서 롯데에 봉패] - 스포츠동아</ref> 이후 필승계투로 활동하였으나 기대에는 못 미치는 부진한 투구와 팔꿈치 통증까지 겹쳐 잠시 C팀(2군)에 내려가기도 했으며, 자신감을 되찾은 후 [[7월 14일]] 올스타 휴식기를 맞아 [[이재학 (야구 선수)|이재학]]을 대신해 1군에 등록된다.
         [[7월 27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구원 등판해 1 2/3이닝 무실점 호투로 프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 [[애덤 윌크|아담]]이 선발진에서 부진하고 부과 팀 내 융화 문제까지 겹쳐 C팀 강등 후 [[트위터]]에 불만을 표시하자, [[김경문]] 감독은 [[애덤 윌크|아담]]을 대신해 그를 선발진에 넣었고 [[애덤 윌크|아담]]을 퇴출했다. [[2013년]] [[8월 31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첫 선발승을 거두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370496 ‘1피안타’ NC 이성민, 선발 데뷔전에서 깜짝 승리] - 마이데일리</ref>
         2015 시즌 구원 투수로 나섰으나 [[2015년]] [[5월 1일]] [[NC 다이노스]]전 까지 11경기에 나서 평균자책점 7.82로 인적인 활약을 펼치진 못하였다. <ref>[http://www.thesportstimes.co.kr/detail.php?number=88218&thread=33r01 kt, 정대현 이성민 용덕한 이대형 등 특별지명 완료] - 스포츠타임스</ref>
         이후 롯데는 이성민을 보류 명단에서 제외했고, 12월 20일 공식적으로 임의탈퇴 처리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683982</ref> 팀은 이성민이 재판을 받고 있어 제대로 활동을 못하는 황이니 더 이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8개월이 지난 2018년 8월 오랜만에 그의 근황이 올라왔는데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ref>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68&aid=0000415673</ref> 사실 선수 커리어는 끝장났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 [[남대학교]]
         === 수 경력 ===
         * [[2012년]] 2012 [[야구인의 밤]] 우수선수(대학)
         ! style="color:white;background-color:#408080;" |'''인율(%)'''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남대학교 동문]]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21회 일치
         [[일곱 개의 대죄]] 제 219화. '''웅들의 휴식'''
          *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십계 진을 염탐하며 "왕에 걸 맞는 마력"을 찾던 도중 사역마 올론디가 죽은 줄 알았던 [[젤드리스]]에게 발각 당한다.
          * 젤드리스가 올론디를 공격하나 올론디에겐 전혀 타격을 주지 않고 그를 부리던 멀린에게 부을 입힌다.
          * 장막을 벗어던진 새로운 돼지의 모자정. 거대한 맥주컵 형으로 변했다. 작은 정원시설로 부설.
          * 이래저래 빈정 한 호크가 "돼지에 치어 죽어라!"고 욕한다. 반이 오늘 저녁 연회 때 최고의 잔반을 먹게 해주겠다고 달래자 "반만 용서한다"는 걸로 완화된다. 반과 멜리오다스에겐 호크의 분노 같은것 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안방을 차지하는 거였다. 치고 받으며 스위트룸으로 달려가는 두 남자. 거의 동시에 방문을 열어재낀다. 서로 "우리방"이라며 자신과 연인의 침실로 삼으려고 성화인데 일단 승기를 잡은건 반. 사이즈의 차이로 딱 한 발 먼저 방에 밀어넣었다. 멜리오다스는 "개축비를 낸게 누군거 같냐"고 떡밥을 던지는데 반은 [[바트라 리오네스]] 국왕이 낸걸 뻔히 알았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 멜리오다스가 동전 던지기로 승부를 내자고 하는데.
          * 한편 리오네스 왕국 한 구석의 어느 가정집. 외견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의 거처였다. 두 여성이 이 집을 향해 기척을 죽이며 다가온다. 하지만 집 안에 있는 여성은 그녀들이 집 근처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눈치채고 있었고 문밖의 그녀들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환한다.
          * 반과 재회한 이후로 엘레인은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에겐 "생각을 닫아도 안절부절하는 기분은 다 전해졌다"고 핀잔하고 디안느에겐 "[[킹(일곱 개의 대죄)|오빠]] 생각 뿐이라 금방 들켰다"고 핀잔한다. 물론 그 이으로 연인 생각만하는건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지만. 인사를 마친 엘레인은 "정말 오빠로 괜찮겠냐"고 디안느를 걱정한다. 그러고 보니 문제의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할리퀸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랑 남자의 대화를 한다며 술집으로 향했다 한다. 오늘밤 연회가 있는데 낮부터 술집이라니. 엘레인은 역시 오빠로 괜찮은지 고심해본다.
          디안느는 엘레인의 몸을 걱정한다. 그녀는 금술로 혼을 묶어놓은 태이기 때문에 정이라고 할 순 없지만 엘리자베스의 마력 지원으로 한결 편안한 태다. 이번엔 엘레인이 요정왕의 숲 근황을 묻는데 디안느는 이럭저럭 잘들 있다고 대답한다.
          * 한편 고서는 "나는 인형이라 술을 못 마신다"는 설명을 12번째 되풀이하는 중이지만 싱글벙글이다. 감정을 되찾은 것은 밉쌀스러운 성격은 별개의 문제인 듯 하다. 아무튼 그는 "지금 취하면 저녁 연회 때까지 못 버틴다"는 뼈아픈 팩트까지 날리는데 이 술자리에 낀 [[에스카노르]]에겐 할리퀸의 주사 이으로 골치아픈 행동이었다.
          할리퀸은 과거의 은원이 정리됐으니 서로의 벽을 허물고 싶었다고 주절거렸다. 하지만 막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일단 술집에 와본 건데, 고서는 그 말을 자르며 "술 기운을 빌리는 거냐"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사이에 낀 에스카노르가 그가 감정을 되찾아서 더 날카로워진거 아니냐고 안절부절 못한다. 할리퀸이 다시 아저씨 모습으로 변해 "툭 까놓고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중얼거린다. 여기에 고서는 어차피 1시간 후 그가 이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 확률은 5% 밖에 되지 않는다고 조소한다. 곧바로 할리퀸이 노멀폼으로 돌아와 하는 말은, 도저히 고서의 대답과 이어지지 않았다.
          고서는 할리퀸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디안느의 기억을 멋대로 조작했으니까. 에스카노르는 그를 위로하며 괜찮을거라 말한다. 할리퀸은 냥한 사람이니까, 라면서. 고서는 복잡한 미소와 함께 "나는 좋은 인형이 되고 싶어"라고 대답한다.
          둘은 이제 일어서지도 못하는 킹을 부축해서 돌아가려고 하는데, 킹이 잠결에 손을 휘두르는 바람에 에스카노르의 마법의 안경이 벗겨진다. 그리고 정오의 태양의 받아 오만한 태가 된 에스카노르. "건방지다!"는 일갈과 함께 주위를 파괴한다.
          할리퀸이 그대로 엎어져 코피를 쏟게 되는 동안 고서는 깔끔한 동작으로 안경을 캐치, 원래 자리로 되돌린다. 이 마법의 안경은 멀린에게 받은 특제품. 정오에도 겸손한 태의 에스카노르를 유지시켜준다.
          * 원래 태로 돌아온 에스카노르는 고서와 협력해 뻗어버린 킹을 데리고 돌아간다. 고서는 재미있는 사건이라 여겼는지 "좋은게 하나 늘었다"고 중얼거린다. 킹은 인사불성. 에스카노르는 할리퀸이 이걸 기억하지 말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렇게 해서 술집의 평화는 처를 남긴 채 돌아왔다. 사실 옆 테이블에서 [[그리아몰]]과 [[하우저(일곱 개의 대죄)|하우저]]가 마시던 중이었는데 무섭기도 하고 "시끄러운 손님들"취급을 받는 그들이 창피하기도 해서 모른척해버렸다.
          * 단원들이 각자 한가한 시간을 가지는 동안, 일행의 책사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자신의 실험실에서 다급한 용무를 처리 중이었다. 그는 수정 너머를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십계가 정복한 역에 돌입한 사역마 올론디였다. 올론디는 "왕에 걸맞는 마력"을 찾으란 분부를 받고 십계가 정복한 구역에 잠입했다. 하지만 보이는건 마신족 졸개나 세뇌된 인간 뿐. 말도 안 되는 명령이라고 불평하던 올론디는 갑자기 멀린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란다.
          * 멀린이 올론디를 지켜보던 수정이 깨졌다. 젤드리스가 공격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멀린이 피를 토할 정도로 심한 부을 입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서있다. 그녀가 이런 위험을 무릎쓰고 찾던 이는 바로 카멜롯의 젊은 왕 [[아서 펜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 펜드래곤]]이었는데.
  • 장범준 . . . . 21회 일치
         | 웹사이트 =
         * [[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전공 (재학)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nationGbn=T&serviceGbn=ALBUM&targetTime=35&hitYear=2014&termGbn=week|제목=장범준 1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4-08-28}}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week&hitYear=2016&targetTime=13&nationGbn=T|제목=장범준 2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6-03-31}}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week&hitYear=2019&targetTime=12&nationGbn=T|제목=장범준 3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9-03-28}}</ref>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4&targetTime=08&nationGbn=T|제목=장범준 1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4-09-11}}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6&targetTime=03&nationGbn=T|제목=장범준 2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6-04-07}}
         * {{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9&targetTime=03&nationGbn=T|제목=장범준 3집|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9-04-11}}</ref>
         * 대한민국: 11,162+<ref>{{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4&targetTime=08&nationGbn=T|제목=2014년 08월 Album Chart |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4-09-11}}</ref>
         # 홍대와 건대 사이
         * 대한민국: 10,000+<ref>{{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6&targetTime=03&nationGbn=T|제목=2016년 03월 Album Chart |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6-04-07}}</ref>
         # 속에서
         * 대한민국: 5,856+<ref>{{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9&targetTime=03&nationGbn=T|제목=2019년 03월 Album Chart |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9-04-11}}</ref>
         === 화 ===
         == 시 ==
         * 제05회 [[대구만화캐릭터공모전]] 대
         * 제44회 [[전국 학생 미술 실기대회]] 최우수
         * 제07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동
         {{가온 차트 K-POP 어워드 - 올해의 가수 음원}}
         [[분류:버스커 버스커]][[분류:1989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명대학교 동문]][[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장씨]]
  • 장진 (영화감독) . . . . 21회 일치
         {{화인 정보
         | 직업 = [[화 감독]]
         | 배우자 = 차
         | 웹사이트 =
         | 수 =
         '''장진'''(張鎭, [[1971년]] [[2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화 감독]], [[화 각본|각본가]], 제작자이다. 화배우 [[정재]]과 절친한 사이이며, 정재이 죽으면 자기도 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남다른 우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이힐 (2014년 화)|하이힐]]
         | | [[된장 (화)|된장]]
         | [[아들 (2007년 화)|아들]]
         | 모바일
         {{토막글|화 감독}}
         [[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화 프로듀서]][[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
  • 장항준 . . . . 21회 일치
         {{화인 정보
         | 직업 = [[화감독]]
         | 웹사이트 =
         | 수 =
         '''장항준'''([[1969년]] [[9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화감독]]이자 드라마 작가로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연극화과 [[교수]]이다.
         [[2002년]] 화 [[라이터를 켜라]]로 데뷔하였다.
         === 화 ===
         * 2016년 [[MBC]] 《[[무한도전]] - [[무한사|2016 무한사-위기의 회사원]]》 - 연출
         * ~ 2010년 [[SBS]] 《[[접속! 무비월드]] - 화는 수다다》 - 공동 MC
         === 화 및 드라마 카메오 출연 ===
         * 2012년 《[[슈퍼스타 (2012년 화)|슈퍼스타]]》
         * 2013년 세계여성경제포럼 <ref>[http://www.wwef.or.kr/kor/other/wwef2013/ 세계여성경제포럼 2013 공식웹사이트]</ref>
         == 장항준의 어수선한 화이야기 ==
         '''장항준'''의 어수선한 화이야기는 [[윤종신]]이 진행하던 [[MBC FM4U]]의 라디오 프로그램인《[[두시의 데이트]]》에서 매주 목요일에 방송하던 코너로 폭 넓은 화이야기, 그리고 장항준 특유의 입담으로 많은 청취자로 부터 사랑을 받았다.
         *[http://www.imbc.com/broad/radio/fm4u/date/movie_aod02/index.html 장항준의 어수선한 화이야기 코너 소개 페이지]
         *[http://www.imbc.com/broad/radio/fm4u/date/movie_aod/aod/index.html 장항준의 어수선한 화이야기 다시 듣기 페이지]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감독]][[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화 각본가]][[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전수지 . . . . 21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83|11|10}} <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A0%84%EC%88%98%EC%A7%80&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61090 전수지-네이버화정보]</ref>
         | 웹사이트 =
         === 화 ===
         * 《[[퇴마: 무녀굴]]》 (2015년) - 이례 역
         * 《[[제보자 (화)|제보자]]》 (2014년) - 연구원 1 역
         * 《속인》 (2011년)
         * 《[[두 여자 (화)|두 여자]]》 (2010년) - 레지던트 역
         * 《[[서울 (2010년 화)|서울]]》 (2010년) - 작가 역
         * 《[[하모니 (화)|하모니]]》 (2010년) - 강 조교 역
         * 《화, 한국을 만나다》 (2009년)
         * 《[[내 사랑 내 곁에 (화)|내 사랑 내 곁에]]》 (2009년) - 김종도 아내 역
         * 《돌아봐요 빨래리나》 (2007년) - 은 역
         * 《쁘와송 다브릴》 (2006년) - 주
         * 《생리해서 좋은 날》 (2005년) - 후 역
         * 《[[달콤한 나의 도시 (드라마)|달콤한 나의 도시]]》 (2008년, SBS) - 순
         * 《[[제5공화국 (드라마)|제5공화국]]》 (2005년, MBC) - 박근
         == 수 ==
         * [[2006년]] 제4회 아시아나국제단편화제 경쟁부문 단편의얼굴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광용 . . . . 21회 일치
          * 위 문서: [[친박]], [[박사모]],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 [[정치깡패]], [[범죄자/목록/한국]]
         || '''출생지''' ||<(> [[경북도]] 일군 신광면[br](現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신광면) ||
         사맨과 CF 감독으로 일했고, 한때 키스콤이라는 광고제작사를 경하기도 했다. 2004년 3월 30일부터 정치인 [[박근혜]]를 지지하는 인터넷 카페 [[박사모]]를 개설해 운해왔다.
         2017년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 사무총장을 맡게 되었다. 허나 얼마 안가 열린 [[19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를 밀지 않고, 대선 막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면서 새누리당 내부 분열을 자초했다. 직후 반대파에선 정광용 회장의 [[공금]] [[횡령]] 의혹까지 제기하며 감정의 골이 깊어진 황으로 보인다. 일단 [[박사모]] 내에서는 이전의 정광용을 비난하던 여론을 누르고 [[변희재]], [[정미홍]] 등의 조원진 지지파가 배신자로 몰리며 황이 역전된 모양새다.[* 정광용은 박사모를 10년 넘게 운해 사실 박사모 회원들의 실질적 교주 역할을 하고 있다. 변희재, 정미홍이 바깥세에선 정광용에 비해 유명인사라 하더라도 박사모 내부에선 철저한 아웃사이더에 불과하며, 정광용은 카페 매니저라는 시스템적으로도 자신의 생각과 책임회피를 늘어놓는데 있어 둘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사실 박사모 내부에서의 여론전은 정광용이 압도적으로 우세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이후 [[조원진]] 지지파는 [[대한애국당]]을 만들고 분리되었다.
         2017년 5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던 3월 10일 폭력 집회를 주최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9289767&date=20170524&type=1&rankingSeq=3&rankingSectionId=102|#]] 당시 그 폭력집회로 인해 총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을 당했다.
         5월 31일자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조만간 서울구치소에 수감될 예정이라고 한다. [[http://naver.me/xoxNhky9|#]] 6월 15일자로 구속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2726379|#]] [[박근혜|님]]이 계신 곳으로 가니 오히려 광이라고.--아이돌 스타를 접(?)하는 아이돌 팬클럽 회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6&aid=0001251498|#]] [[http://cafe.daum.net/parkgunhye/U8YZ/862421|박사모에 올라온 원문]] [[독수리 켄|--??? : 역시 우리 팬클럽 회장님이셔. 날 구하러 왔구나!-- --아니야 나도 잡혔어--]]
         그에 대한 검찰의 3년 구형이 나왔고, 2017년 12월 1일, 1심에서 [[뉴스타운]]대표 [[손대(언론인)]]과 함께 징역 2년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77&aid=0004131128|선고되었다]]. 이에 정광용은 항소하였으며 건강악화를 이후로 보석을 신청했으나 [[http://news.joins.com/article/22389647|기각되었다]].
         '''[[박사모]]를 비롯한 [[친박]][[극우]]단체들을 이끌며 그들의 추악하고 광신도적인 모습을 세에 보인 악질 선동꾼.'''
         탄핵반대 집회 관련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박사모 집회에서 계엄령 선포요구, 폭력집회 선동, 내란 선동, 경찰관 폭행, 기자, 시민 폭행 등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불법행동을 많이 저질러졌다. 심지어 3월 10일 박근혜 파면이 결정된 날에는 박근혜 지지자들의 폭동이 격화되는 바람에 사망자가 3명이나 나왔다. 결국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의 주동자 정광용은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지만 끝까지 변명을 늘어놓으며 책임지지 않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7885974|무책임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결국 2017년 5월 25일 같이 폭력 시위를 선동한 손대 뉴스타운 대표와 함께 구속되었고 2017년 12월 1일 1심 재판에서 손대와 함께 실형 2년을 선고 받았으나 2018년 5월 31일,2심 재판부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http://naver.me/GGVzj1Wi|#]]
         2017년 4월 10일 정광용은 40억원대 기부금법 위반 및 사기‧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후 친박 단체간 내홍은 더욱 격화되어 5월 13일 대선이 끝난 직후 벌어진 첫 주말집회에선 정광용 찬성파vs반대파 인원들간에 험한 욕설과 몸싸움이 빚어지는 꼴사나운 황이 연출되기도 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991276|#]]
  • 정몽규 . . . . 21회 일치
         | 부모 = [[정세]]
         | 학력 = [[고려대학교]] 경학과<br />[[옥스퍼드 대학교]] PPE(철학∙정치∙경제) 학사∙석사
         HDC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설립된 [[종합부동산인프라기업]]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단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40만여 세대의 주택을 공급했고, 대표사업지로는 ‘[[삼성동 IPARK]]’, ‘[[수원 IPARK CITY]]’, ‘[[해운대 IPARK]]’ 등이 있다. [[주택사업]] 뿐 아니라 [[도시개발사업]]과 [[건축]], [[토목]], [[플랜트]], [[SOC개발사업]] 등 다양한 건설 분야의 사업을 위하고 있다. 2017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것을 목표로 ‘[[풍요로운 삶과 신뢰할 수 있는 세]]을 만든다’는 그룹 철학 선포했다. 현대산업개발은 2018년 5월 투자회사인 HDC와 사업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로 분할하고 정몽규 회장은 HDC 회장으로 취임했다. HDC는 자회사 관리와 부동산 임대사업 등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에 집중하고, HDC현대산업개발은 사업집중 회사로 주택, 건축, 인프라 부문에서 전문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정몽규 회장은 부동산인프라건설을 중심으로 [[제조]], [[유통]], [[IT]], [[레저]], [[서비스]] 등 HDC그룹의 사업 역을 다각화하고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계열사로는 [[HDC]], [[HDC현대EP]], [[HDC아이콘트롤스]], [[HDC아이서비스]], [[HDC현대아이파크몰]], [[HDC창뮤직]], [[HDC아이앤콘스]], [[HDC호텔아이파크]], [[HDC현대PCE]], [[HDC아이파크스포츠]], [[HDC자산운용]], [[HDC신라면세점]] 등이 있다.
         또한 정몽규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 봉사단원으로 직접 활동하고, 2015년 사회공헌 재단인 [[포니정]]재단을 설립, 기부하며 나눔 경을 강조하고 있다. [[포니정재단]]은 출연금 571억원 규모의 장학재단으로 [[포니정 혁신]], [[학술지원]], [[장학지원]] 프로그램을 운하고 있다.
         *~ 1985년 [[고려대학교]] 경학 학사
         * 1998.07 : 전국경제인연합회, 한∙ 경제협회 회장
         == 수 내역 ==
         *2017.08 : 한국경학회 대한민국 경자 대
         *2017.05 :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
         *1997.11 제2회 한중청년학술(경제부문) – 한중우호교류기금회
         |전임자 = [[정세]]
  • 천운영 . . . . 21회 일치
         | 이름 = 천운
         | 수 = [[신동엽창작]] ([[2003년]]), 올해의 예술 ([[2004년]])
         | 사이트 = }}
         '''천운'''([[1971년]]~)은 대한민국의 소설가다.
         “예리한 바늘이 정곡을 찔러 육체에 음산하고 정교한 수를 놓으며 살 속에서 맴돌던 언어를 해방시킨다”는 신춘문예 심사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늘〉은 이후 ‘원색의 고통과 절규로 점철된 사실화’로 징되는 천운식 소설을 직조하는 중요한 글쓰기의 도구가 되었다.<ref>{{웹 인용|ur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4061610471&code=900308&fid=|제목=바늘로 우리를 자극하다|출판사=경향신문|저자=심진경|날짜=2007-04-06|확인날짜=2010-10-18}}</ref>
         문학평론가 류보선은 〈잘 가라, 서커스〉에 대해 “대단히 밀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천운 소설이 행했던 역할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한국소설사의 새로운 역을 개척했다”고 평가했다.<ref>{{웹 인용|url= http://for-munhak.or.kr/_renewal/_index.php?ForMunhak=board.php&dbbase=book3&field=cGFydF9ib29rc195ZXNfYmI%3D&words=2005-4&parts=2005-4&numerals=1561&page=1|제목=잘 가라, 서커스|출판사=문학나눔|저자=|날짜=|확인날짜=2010-10-18}}</ref>
         == 수 ==
         [[신동엽창작]] ([[2003년]]), 올해의 예술 ([[2004년]])을 수했다.
         * [[2005년]] 문예진흥원 소극장에서 〈명랑〉을 노래와 춤, 모노 드라마 등으로 ‘번역’하는 공연이 있었다.<ref>{{웹 인용|url=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630.html|제목=천운이 무대에 올랐을때|출판사=한겨레|저자=|날짜=2005-01-07|확인날짜=2010-10-18}}</ref>
         {{위키인용집|천운}}
         {{신동엽문학자(2000년 – 2009년)}}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양 천씨]][[분류:신동엽문학자]]
  • 추경호 . . . . 21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달성군]]
         |소속임위 =
         |웹사이트 =
         추경호는 [[1960년]] [[7월 29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다.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계성고]]를 졸업했고 [[1986년]]에 [[고려대학교]] 경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오리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을 거쳐 2010년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주요 20개국(G20) 정회의를 개최하는데 일조했다. 2011년부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 1986년 [[고려대학교]] 경학 학사
         * 2010년 5월: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비경제황실장
         * 2017년 9월 ~ : 자유한국당 소공인특별위원회 위원
         * 2018년 1월 ~ : 자유한국당 가화폐대책TF 위원장
         == 훈 ==
         2014년12월 고려대학교 경대학 교우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교우’을 받았다. 이 은 1980년부터 고려대 경대 교우회가 각 부문 특성에 맞춰 뛰어난 동문에게 수여하고 있는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품성과 덕망도 함께 평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각 기관에서 공공, 민생, 경제·금융 분야 등 3대 분야에서 우선 추진할 과제를 선정하고, 즉시 실행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마련해달라. 부정부패는 단호하게 척결해가되 비리의 환부만을 정확히 찾아 제거함으로써 정적인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유념해달라. "(2015/03/20 서울청사에서 추 실장의 주재로 열린 부정부채 척결 관계 차관회의에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시절 국제경제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주요 20개국(G20) 정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데 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 사이에서 덕장의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배는 물론 후배들로부터도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대내외 소통에도 적극적이며 언론 친화적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
         2005년 은행제도과장으로 재직할 때 재정부 직원들이 뽑은 ‘가장 닮고 싶은 사’에 선정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Who Is ?]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실물경제와 금융 모두 정통한 경제관료|url=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37|날짜=2015-04-07|뉴스=비즈니스포스트}}</ref>
         부인 김희경 사이에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 콩고(소설) . . . . 21회 일치
         [[마이클 클라이튼]]의 SF 모험 소설. 1995년 화로 만들어졌다.
         배경은 1970년대, 장래 레이저 산업 분야나 반도체 분야에서 유망한 용도가 전망되는 블루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서, 미국의 지구자원개발연구소는 콩고의 정글로 탐사대의 파견하지만 목적지에 거의 도달한 태에서 미지의 존재에게 기습당해 전멸된다. 단서라곤 연결되어 있던 통신에 잠깐 잡힌 이한 고릴라의 모습 뿐.
         그렇지 않아도 일본과 유럽 합작 기업의 탐사대가 추격 중이라 바짝 긴장한 연구소는 급히 과학자 카렌 로스를 팀장으로 삼아 소규모 탐사대를 재차 투입한다. [* 이렇게 급하게 탐사대를 다시 꾸린 건 경쟁 기업의 추격도 있었지만 해당 지역이 정부군과 식인종 키가니족이 내전 중이라 어렵게 따낸 탐사 허가를 또다시 따낼 틈이 없어 일단 탐사대의 전멸은 비밀로 한채 새로운 탐사대를 투입하는 걸 들키기 전에 얼른 투입시키기 위해 서둘렀다.] 에 집힌 고릴라의 이미지 때문에 장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카렌은 수화를 할 줄 아는 [[고릴라]] 에이미와 그녀를 돌보는 동물학자 피터 엘리어트, 아프리카의 백인 용병 찰스 먼로 등이 이끄는 탐험대가 자이르 정글 깊숙한 곳으로 잃어버린 전설의 다이아몬드 광산도시 진즈(Zinj)를 찾는 모험이 중심 소재이다. 마치 전형적인 모험 소설 같지만, 탐험의 주체가 현대적인 광산 기업이거나, 위성으로 연락,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하거나 NASA에서 개발된 탐험 장비를 사용하는 등 당히 현대적인 가제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정글에 투입시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시작으로 식인종의 식인 행위를 목격하고[* 창칼로 무장한 원시인 수준이긴 했지만 너무 호전적이라 닳고닳은 용병인 먼로도 경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정부군이 멀쩡한 건 아니라 수틀리면 간빼먹는 건 일도 아니게 생각할 병사들이 그득하다고.] 하마의 공격에 혼쭐나기도 하고 피그미족에게 구출된 1차 탐사대원도 만난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마디도 못하는 폐인이 된 태였지만 에이미의 냄새를 맡자 극도로 흥분한다. 이들이 당했던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 일본, 독일, 네덜란드의 합작 기업을 추격하지만 결국 그들이 먼저 도착했다는 연구소의 소식에 좌절하고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며 털레털레 가지만 정작 추락한 합작 기업의 수송기에 실린 물자는 그대로고 곧이어 찾은 합작 기업의 탐사대 캠프 역시 전멸당한 태였다.
         어찌됐든 앞서게 된 일행은 잃어버린 도시 진즈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즈의 원주민들이 경비를 위해서 남겨놓은 회색 고릴라 집단이 살고 있었고, 곧이어 회색고릴라 무리의 집요한 공격에 노출된다. 첫교전에선 전기철조망과 자동사격기관포로 막아내지만 탄약이 절반이 소모된데다 고릴라들의 전기철조망에 한번 당하자 나무 막대로 철조망을 젖혀놓고 들어와 대원 하나 살해할 정도로 높은 지능과 무서운 집념을 보인다. 이후로 장류가 물을 싫어하는 특성을 사용해[* 에이미도 앞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급류를 타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야하자 피터에게 똥 같은 놈이라고 욕했다.(...)] 강물을 끌어들인 도랑도 파고 보유량이 넉넉한 최루탄으로 밀어내는 등 선전을 펼치고 고릴라 무리를 선제 공격하거나 아예 철수하는 방법도 찾지만 고릴라 수가 너무 많이 총으로 무장했어도 십여명 수준으로는 대책이 없었고 퇴로도 다 매복한 태라 오도 가도 못하며 탐험대는 희생을 내며 궁지에 몰린다.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탄약도 떨어지고 비까지 내려 최루탄도 무력화되고 도랑은 고릴라가 나무를 걸쳐 통과해버리면서 몰살될 위기에 처하는데 에이미의 도움으로 엘리엇은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여 그들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장류 연구가. 동물학자. 에이미에게 [[수화]]를 가르쳤다. 에이미가 그린 꿈 속의 도시와, 아랍인들의 그림으로 그려진 진즈가 기묘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에이미를 고향에 데려가보는 것을 목적으로 탐험에 나서게 된다. 진즈에서 회색 고릴라들과 만나게 되자 본래 목적을 잃고 회색 고릴라를 고릴라 엘리어트네스라고 이름 붙이고 신종임을 입증하는데 열중하기도 한다.
         암컷 [[고릴라]]. [[수화]]를 사용할 줄 아는 고릴라로서 지능이 높으며, 성격은 대체로 냥하고 온순하지만 가끔 토라져서 화내기도 하는 [[츤데레]]. 인간으로 치면 사춘기 정도이다. 과거에 진즈 주변에서 살았으며, 진즈에 접근했다가 회색 고릴라에게 모친이 살해당하고 고아가 되었다가 잡혀서 팔려가게 되었다. 피터가 회색 고릴라 무리 앞에 떨어졌을 때 직접 나서서 우호적인 행동을 보여서 피터를 구해내고, 회색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탐험대의 캐리어로 대활약한다. 피터와 먼로 쌍방에서 관심을 받는 이 소설의 메인 히로인(!) 격인 고릴라, 모험이 끝난 뒤에는 야생 고릴라 무리들 사이에 들어가서 아이도 낳고 살게 된다.
         아프리카 출신 백인 [[용병]]. 일명 캡틴 먼로. 탐험의 무력을 책임진다. 의외로 에이미와 사이가 좋은데 고릴라 취급 안하고 평범한 10대 여자애들처럼 대하기 때문. 인정도 많아서 피그미 마을에 낙오된 백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정이 촉박한 와중에도 도와주려 나섰다. 이때 카렌이 시간 없다며 반대하는데 극중 먼로가 유일하게 화낼 때가 이때였다. 이후 그 백인이 먼저 투입됐던 탐사대원이라는 걸 알고 카렌도 군말 없어디긴 하지만.
         정체는 당히 충격적인데, 작중에서 고대에 살았던 진즈 주민들과 기존 고릴라와의 '성관계'로 태어난 '인간과 고릴라의 [[혼종]]'으로 추측된다. 원주민 여성과 고릴라가 성관계를 하는 부조물 등에서 추측되는 결과.
         진즈에서 나오는 회색 고릴라들은 당히 깨는 설정이다. '''인간과 고릴라의 혼종'''이라니…. --아무래도 마이클 클라이트이 약빨고 설정한 것 같다.--
         화는 골든 라즈베리에서 7개나 노미네이트 됐다. 당시에는 그래도 흥행 성적은 좋았던 듯. 또 다른 마이클 클라이튼 원작의 [[쥐라기 공원]]이 엄청난 특수효과로 이목을 끌었던 것과는 달리, 콩고는 특수효과나 줄거리 면에서 별로 평가가 좋지 않았다.
  • 킹덤/528화 . . . . 21회 일치
          * 역의식이 강해 침입자를 용납하지 않는 이들은 곧 양단화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위험을 느낀 [[슌멘]]이 나서나 가볍게 제압 당한다.
          * 거기서부터는 [[공손룡]]이 설명을 잇는다. 그도 왕도권을 지켜온 장수인만큼 견융족의 내력에 대해서는 밝았다. 조나라가 견융족을 포용한 듯 보이지만 실은 그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는데다 자치권까지 가지고 있어 치외법권으로 다뤄지고 있다. 아무리 조나라의 요인이라도 이 성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타국만도 못한 곳이다.
          >소문에 따르면 놈들은 무단으로 "역"에 침범한 대에겐 가차없다고 하더군.
          그 말대로였다. 견융족은 어떠한 사전조율이 없었음에도 "역"을 침범한 양단화군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미 임전태세에 돌입한 이들은 장수가 이민족 말로 뭐라 외치자 기마들이 일제히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 그토록 자신들을 괴롭혔던 산민족이 초전박살나자 조군은 경이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조군 또한 즐거워하고 있을 황이 못 됐다. 그들도 "역"에 침범한 대였다. 어느 새 공손룡과 순수수의 사이로 거대한 체구의 견융족 장수가 나타났다. 그 거구의 견융족이 자신을 밝혔다.
          그들도 역에 침범한 대였다.
          * 짧은 문장이었으나 짐짓 놀란 볼프가 칼끝을 멈췄다. 견융왕도 흥미를 보이고 그가 말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순수수는 이민족의 말을 계속했다. 그는 사전에 양해없이 역을 침범한 점을 사죄했으나 자신은 지금 [[이목(킹덤)|이목]]의 대리로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따라서 자신을 베면 이목을, 조나라의 승을 베는 것과 같은 격이다.
          >조 승에게 해를 가하면 아무리 너희라도 내일 해는 못 볼 텐데?
          견융왕이 본 것은 무엇일까? 순수수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챘지만 그와 관없는 일이라며 말을 잘랐다. 여기까지 모든 대화는 순수하게 이민족의 말, 흉노의 말로 주고받고 있었다. 조군 장수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견융왕이 먼저 평지의 말로 그들의 말을 들어는 보겠다며 적대감을 누그러뜨렸다. 이목의 이름을 댄 것이 효과가 있었다. 견융왕은 조나라 도양왕을 "쓰레기"라 칭했지만 이목에 대해서는 대단히 좋게 보았다. 그는 매년 한 번씩 직접 요양을 방문했으며 그때마다 안문 땅에서 가져온 맛있는 양고기를 베풀었다. 그 이목의 대리를 칭하는 순수수를 봐서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 순수수의 목이 떨어질 시간은 조금 더 미뤄졌다. 볼프의 칼이 여전히 목에 닿아있었으나 순수수는 그런 엄포에 개의치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용건은 간단했다. 이 자리에서 조군과 함께 진군과 싸워 적을 격멸하는 것. 견융왕도 자질구레한 것은 거론하지 않았다. 바로 보이 뭐냐고 물었다. 순수수는 그 대답보다는 현재 진군이 업성을 노리고 왕도권에 진출한 것, 그걸 저지하지 못하면 더 많은 진군이 처들어와 공세를 펼치고 요양도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보은 내년 이후에도 이목님께서 스스로 베푸실 맛있는 양고기다.
          농담 같은 진담. 그 뿐인가? 결국 순수수의 말은 "살려주는 대가로 싸워라"고 엄포를 넣는 거나 다름 없었다. 진군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심지어 견융왕의 말 한 마디에 목숨이 달린 사람이 할 만한 말이 아니었다. 조군들 사이에서 조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울을 지었다. 이제 그들은 총대장의 시체를 수습할 방법이나 찾아야 했다.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잠시 뒤 그들은 자신들도 살아남고 총대장의 시체를 처리할 방법도 필요가 없어졌다.
          뜻밖의 수락. 무엇이 견융왕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크게 만족해했다. 곧 부하들을 시켜 성 안의 병사들까지 모조리 데려와 "축제"를 시작한다고 선포했다.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 단 하나, 진군의 격멸만이 남은 순수수는 견융왕에게 대를 얕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는 적의 정체가 서쪽 산민족을 통일한 자라고 알려주려 했는데, 견융왕은 그의 정보가 필요치 않았다.
          >알다마다. 우리야말로 "서융"의 조이라.
  • 하일권 . . . . 21회 일치
         | 향 받은 인물 =
         | 향 준 인물 =
         | 웹사이트 =
         2006년 파란 웹툰에서 연재하여 총 조회수 1천만 회를 넘기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외모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자괴감에 빠져 ‘외모 바이러스’에 걸려 발작을 일으키고, 이발사 ‘삼봉’이 저마다의 처를 안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해준다는 이야기이다. 하일권의 작품들 중 첫 연극화가 되어 2011년 11월 24일부터 12월 19일까지 공연하였다. 2012년 5월 2일부터 연극이 다시 열린다. 2012년 3월 네이버에서 재연재되고 있다.
         2008년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의 하일권의 첫 작품이지만, 사실 졸업작품을 각색한 것이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주인공 호구가 어느 날 인간의 기본적인 인격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로봇 시보레의 짝궁이 되어 펼쳐지는 만화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목에 대해 궁금해 하였으나, 제목 3단합체김창남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후기에 밝혔다. 2009년 <3단합체 김창남>의 판권이 국 제작사 페브러리 필름즈에 팔리게 되었다.
         2009년 연재하기 시작했다. <3단합체 김창남>을 연재하기 전에 기획하였던 수만화를 조금 수정, 각색하여 준비하였다. 중학교 때 1등과 반장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배수구는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수복을 달라고 하여 변태로 오인받게 된다. 결국 배수구는 아버지가 교감선생님으로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로 인해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게 된다. 어느 날 학교에 수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배수구는 수복사진을 찍다 담임선생님에게 들키고 만다. 수구부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담임선생님은 수장에서 벌어진 일을 눈 감아주는 대신 여장을 하고 수구부에 들어오라고 배수구에게 제안한다. 결국 배수구는 김소녀라는 가의 이름을 가진 소녀로 수구부에 들게 되고, 수구부에 들어오면서 자기와 같은 갈등과 고민을 갖고 있는 친구들을 발견하면서 그 갈등을 견디어 나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WATERCUBE'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2011년 연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때밀이인 주인공 허세는 우연히 목욕탕 금자탕에 피신하게 되고, 그 곳에서 회장에게 목욕의 신 태미러스의 손을 가졌다는 말을 듣게 된다. 허세는 결국 금자탕의 목욕관리사가 되고, 때밀이 대회에서 1등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며 꿈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하일권 역대 만화 중 가장 높은 누적수를 기록하였다. 또한, 만화에서 나온 목욕투의 폭발적인 인기의 힘입어 목욕투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었고, 2012년 4월 화화가 결정되어 2013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화화가 결정되었으나, 불발되었다.연출자가 바뀌었다는 이유. 하지만, 제작사 문와쳐 측에서 제작 중단설을 부인.
         관계자는 스케줄의 이유로 당초 연출자에서 다른 감독으로 대체되었고, 케스팅 또한 감독이 재진행 할것이라고 설명했다.
         == 수 ==
         2008년 대한민국 만화대 신인을 수하였다.
         2012년 부천만화대 우수이야기만화을 수하였다.
  • 함신익 . . . . 21회 일치
         |웹사이트 = http://www.shinikhahm.com, http://www.symphonysong.org
         '''함신익'''(咸信益, [[1957년]] - )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경신 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음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미국]]으로 유학해 [[라이스 대학교]] 석사 와 [[로체스터 대학교]] 이스트만 음대에서 지휘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1991년 [[폴란드]]의 피텔베르크 국제 지휘자 콩쿨에서 은을 수했고, 이듬해 밀브룩 관현악단 임 지휘자와 퍼시픽 대학교 지휘 교수로 부임했다.1995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학과 교수가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에벌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린베이 교향악단의 임 지휘자와 예일 교향악단 음악 감독, 폴란드의 실레시아 오페라단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2001년~2006년까지 [[대전 시립 교향악단]]의 임 지휘자로 부임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KBS 교향악단]]의 임지휘자로 취임했다. 2014년 현재, 혁신적인 재원 지원 정책 및 경 방침을 근간으로 한 함신익의 심포니 송(Symphony S.O.N.G; Symphony Orchestra for the Next Generation) 오케스트라를 창단 후 창단연주회를 2014년 8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하였다.
         함신익은 Robert Schumann Orchestra, 아비뇽 오케스트라, Malaga Symphony, North Czech Philharmonic, 광쩌우 심포니, 하이 심포니, 우루과이 국립 오페라,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리 등 각국의 대표적 오케스트라에서 그 예술성과 리더십을 인정 받고 있다.
         그는 예일대 지휘과 교수로 1995년 이래 재직중이고, 대전시립교향악단 (2001-2006) 과 KBS 교향악단 (2010- 2012)의 임 지휘자를 역임하였다. 미국에서는 Abilene Philharmonic과 Tuscaloosa Symphony의 음악감독 으로 각 10여 년간 재직하였다. 또, Green Bay Symphony와 Milbrook Orchestra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2010년 10월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임 함신익과 KBS 교향악단의 연주는 New York Times로부터 “존경 받을 만한 연주” 라는 평론을 받았다. 국의 The Financial Times 는 "확실한 자부심과 확실한 헌신, 열정과 뛰어난 정교함이 어울린 음악" 으로 함신익과 대전시향의 카네기 홀 연주를 평가하였다.
         * 예일대 명물교수 함토벤 (김사)
         * 다락방의 베토벤 (김사)
         직책=[[대전 시립 교향악단]] 임 지휘자|
         직책=[[KBS 교향악단]] 임 지휘자|
         직책=Symphony S.O.N.G 임 지휘자|
         * [http://music.yale.edu/faculty/hahm.html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홈페이지 함신익교수(어)]
         * [http://music.yale.edu/ 예일 대학교 음대 홈페이지(어)]
         * [http://www.esm.rochester.edu/ 로체스터 대학교 이스트만 음대 홈페이지(어)]
         * [http://music.rice.edu/ 라이스 대학교 음대 홈페이지(어)]
  • 황태연 . . . . 21회 일치
         |직업 = 문 소설가, 한글 소설가,<br>수 이론 전문가
         |언어 = 한국어, 어(국, 미국 및 기타)
         |등단작 = [[Lotus]](문 소설),<br>[[수 바이블]](수 이론서)
         |장르 = 청년 소설, 희비극(tragicomedy), 범죄 소설crime fiction,<br>수 이론(swim lessons)
         |주요 작품 = [[Lotus]](문 소설),<br>[[수 바이블]](수 이론서)
         |수 =
         |향 받은 인물 =
         |향 준 인물 =
         |웹사이트 =
         필명 황태연과 황연으로 활동하는 저자는 한국의 소설가이자, 외국인 번역가나 대리인 없이 문 소설을 처녀작으로 직접 집필, 퇴고, 편찬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현재 [[Lotus]](ISBN-10: 1980979170, ISBN-13: 978-1980979173)라는 소설 작품으로 해외 [[아마존닷컴]]에 등단하여 종이책, [[아마존 킨들]] 전자책으로 판매 중이며 왕성한 활동 중인 작가는 연이어 한국 수 이론서인 [[수 바이블]]을 BOOKK란 출판사와 교보문고 퍼플 출판사, 유페이퍼 출판사를 통해 종이책 컬러본과 흑백본, 그리고 전자책으로 출간하였다.
         [[분류:한국 최초의 문 소설 처녀작 등단가]][[분류:문 소설가]][[분류:한글 소설가]][[분류:수 이론 전문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어학자]][[분류:여러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
  • Crusader Kings 2 . . . . 20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 제작사 [[패러독스 인터랙티브]]가 제작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중세]]의 수많은 [[주]]들중 하나를 골라 그 주가 속한 [[가문]]의 번을 위해 플레이하는것이 목표다.[* 반대로 말하면 지를 가진 가문원이 없거나 단절되버리면 게임오버다. 주의.]
         비잔티움쪽은 안습하기 짝이 없는데, 우선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5세가 성파괴주의자이어서[* 게임 시스템파괴주의는 정교회의 이단으로 취급된다] 종교권위가 개판이라 반란이 넘쳐나고, 불가리아와 아바스가 토를 노리고 침공해오는 경우도 잦아 살아남기 힘들다. ~~몇안되는 비잔티움의 양심 시나리오~~
         그외에 북유럽쪽에는 게르만 신화를 믿는 주들이 난립하는데, 이들중 특이할만한 자가 있다면 스비요르드 대족장 반지의 시구르드. 시작부터 최위 유전 트레잇중 하나인 '재'[* 전능력치 +3]을 달고 있는데다가 그의 아들은 그 유명한 [[털반바지의 라그나르]]다.
         이베리아 일대는 아스투리아가 답이 없는 항쟁을 우마이야에 맞서 하고 있는 황. 올드갓보다 왕도 안좋은데다가 땅도 더작아서 당히 힘들다. 물론 우마이야 왕조는 플레이어든 AI든 금새 히스파니아를 일통하고 히스파니아 제국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시작지점에서 라그나르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게만든 잉글랜드 7왕국을 조지겠다고 할프단과 이바르를 중심으로 침략전쟁을 건 태이다.
          2. 선택한 인물의 나이와 [[위키피디아]] 링크. 여성의 경우 45세 이은 임신을 할 수 없으니 후계자가 필요하다면 주의하자. 위키피디아 링크의 경우 해당 인물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면 작동하지 않는다.
          3. 선택한 인물의 대표 작위 문장. 해당 문장은 더블린 백작령의 문장이다. 옆에 보이는 초화에는 배우자, 군주, 후계자, 섭정[* 모종의 사유로 섭정이 대신 통치중인 경우], 그 외 여러가지의 초화가 딸려나온다.
          * 외교력: 외교활동에 관한 능력치. 다른 캐릭터가 자신을 보는 의견에도 향을 준다. 이 능력치가 높으면 몇몇 이벤트에서 혓바닥을 놀려 약을 파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7. 그 외 여러가지 정보들. 해당 정보들을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덤으로 자신의 정보들은 화면 오른쪽 위에 항 표시된다.
          * 봉신: 해당 캐릭터가 밑에 거느리는 주들.
  • 경주시 . . . . 20회 일치
         경주는 태백산맥 또는 백두대간의 인근 도시로 경북도 남동쪽 끝에 위치한다
         토함산 정 기념비
         |align="center"|화감독 · 제작자
         |align="center"|[[김호 (1970년)|김호]]
         |align="center"|화 배우
         |align="center"|화 배우
         |align="center"|화 배우
         |align="center"|[[백승]]
         |align="center"|미
         |align="center"|미
         |align="center"|화 배우
         |align="center"|화 배우
         |align="center"|화 배우
         |align="center"|화 배우
         |align="center"|[[조구]]
         |align="center"|화 배우
         |align="center"|화 배우
         |align="center"|화배우
         [[분류:경주시 출신|경주 출신 인물]][[분류:경북도의 도시]][[분류:1955년 설치]][[분류:1995년 폐지]][[분류:1995년 설치]][[분류:한국의 옛 수도|서라벌]][[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
  • 김기섭 (1939년) . . . . 20회 일치
         '''김기섭'''(金己燮, [[1939년]] [[12월 7일]] ~ )은 [[신라호텔]]에서 근무한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며, [[김삼]]의 가신 그룹 인사였다. 본관은 [[김녕 김씨|김녕]]. [[대구광역시|대구]] 출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아남산업]]에서 근무하다가 삼성계열사로 이직, [[신라호텔]]과 삼성전관 등에서 이사, 무, 전무 등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김삼]] [[민주자유당]]의 총재특보로 발탁되었으며, 대선 당시 총재특보와 이미지메이킹 등을 담당하였다. [[문민정부]] 출범 후 [[안기부]]의 기조실장과 운차장을 역임했다.
         * [[신라호텔]] 무이사 겸 총지배인
         * [[1990년]] [[1월 11일]] [[삼성전관]]
         * [[1990년]] [[2월]] 김삼 민주자유당 대표 의전비서
         * [[1990년]] [[3월 7일]] [[김삼]] 민자당총재 소련 방문 수행원
         * [[1992년]] [[김삼]] 대통령후보 특별보좌관
         * [[1992년]] [[김삼]] 선거캠프 의전, 민정, 홍보담당
         * [[1993년]] [[6월]] [[안기부]] 운차장
         * [[1997년]] [[3월]] 안기부 운차장 겸 기조실장에서 면직
         * [[김삼]]
         * [[김삼 정부|문민정부]]
         * [[김동]]
         * [[도동계]]
         |직책 = 초대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국가안전기획부 운차장]]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녕 김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호텔 경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삼]][[분류:김삼 정부]][[분류:대한민국의 국가안전기획부 차장]][[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
  • 김상화 (시인) . . . . 20회 일치
          | 이름 = 김
          | 출생지 = {{국기|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경북도 대구부 중구역]]
          | 직업 = 시인 <br/> 피아니스트 <br/> 음악평론가 <br/> 문학평론가 <br/> 시조 시인 <br/> 무용평론가 <br/> 연극평론가 <br/> 화평론가 <br/> 작사가 <br/> 서예가 <br/> 동양화가 <br/> 서양화가 <br/> 미술평론가
          | 친척 = 셋째사위 [[오승근 (가수)|오승근]](가수 겸 작사가) <br/> 형 [[김옥 (1920년)|김옥]](시조 시인) <br/> 조카딸 김훈정(패션 디자이너) <br/> 조카딸 김훈아(기혼 및 출가) <br/> 조카 김홍우(법조인)
         '''김화'''(金相華, [[1928년]] [[3월 18일]] ~ [[2007년]] [[12월 17일]])는 [[대한민국]]의 [[시 (문학)|시인]] 겸 [[피아노 연주자]], 평론가 겸 [[서예|서예가]], [[화가]]이다.
         [[본관|본관(관향)]]은 [[서흥 김씨|서흥]](瑞興)이고 아호(雅號)는 현우(縣友)이며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통시|경남도 통군 충무읍]]과 [[경성부]]에서 성장하였으며 문학, 음악, 미술에 다재다능(多才多能)한 [[1970년대]] 당시 몇 아니 되는 화제의 예술가였다.
         * 1951년 [[부산광역시|경남도 부산]] 6·25 피난지에서 시인으로 본격 등단.
         * 1965년 [[화 평론|화평론가]] 등단.
         * 2001년 문화예술 분야에서 사실 은퇴(2001년 1월 6일).
         * [[통초등학교|경남도 통보통학교]](前) → [[서울교동초등학교|경성교동보통학교]] [[졸업]]
         * [[경기고등학교|경성제1고등보통학교]](前) → [[경복고등학교|경성제2고등보통학교]](前) → [[경북고등학교|경북도 대구고등보통학교]] 졸업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88809&cid=41708&categoryId=41711 네이버 백과사전 - 시인 겸 음악평론가 김화 前 동국대학교 전임교수]
         [[분류:일제 강점기의 서예가]][[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고전 피아노 연주자]][[분류:서흥 김씨]][[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1936년 데뷔]][[분류:서울교동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무용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서예가]][[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대한민국의 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법률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
  • 박명재 . . . . 20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정치인/목록)]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70000B><-5><bgcolor=#FFFFFF><:>{{{#70000B '''{{{#70000B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국회의원}}}]] ([[경북도|{{{#70000B 경북}}}]] [[포항시 남구·울릉군|{{{#70000B 포항시 남구·울릉군}}}]])'''}}}||
         ||<width=30%><:>제19대[br][[김형태(정치인)|김형태]][* 의원직 실]||<width=5%><:>→||<width=30%><bgcolor=#FFFFA0><:>'''제19·20대[br]박명재'''||<width=5%><:>→||<width=30%><:>''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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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color=#C9151E> '''{{{#FFFFFF 지역구}}}''' ||<(> 경북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울릉군]] ||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19~20대 국회의원[br]행정자치부 장관[br]새누리당 사무총장[br][[차의과학대학교]] 총장[br]경북도 행정부지사[br]무임소 장관[br]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br]청와대 행정비서관 ||
         대한민국의 전직 [[공무원]], 현 [[정치인]]. 현재 대한민국의 재선 [[국회의원]](제19대 ~ 제20대)으로서, 지역구는 [[경북도]] [[포항 남구]]·[[울릉군]]이다.
         [[1947년]] [[경북도]] 일군 동해면(현 [[포항시]] 남구 동해면)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여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고, 국비로 네덜란드 유학을 다녀왔다. 이후 20년 넘게 내무부, 총무처, [[행정자치부]] 등에서 근무하였는데.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참여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 시절까지 진을 가리지 않고 주요 요직과 장관직을 두루 거쳤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당시 [[한나라당]] [[김관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 때 23.1%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기록했는데,(이후 지방선거에서도 [[홍의락]]이 11.8%, [[오중기]]가 14.9%에 그치며 20%는 고사하고 15%도 넘지 못했다. 이 기록은 2018년이 되어서야 오중기가 34.32%로 갱신한다.) 특히 그때 '''호남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열린우리당에 대한 반감이 컸었던 걸 생각하면 더욱 놀랍다. 만약 경북에 계속 도전했다면 언젠가 당선되어 지금보다 더 큰 정치인이 되었을 수도? ~~하지만 몇 번 낙선하다 한 번 당선되는 것과 새누리당 공천받아 계속 당선되는 건 차이가 있다~~] 이후 2008년까지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참여정부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송선]]과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78aVcg_chko|관련링크]]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남/울릉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지만 낙선하였다. 이후 해당 선거에서 승리한 [[김형태(정치인)|김형태]] 의원이 의원직을 실함에 따라 치뤄진 [[2013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 과거 참여정부의 장관, 열린우리당 경북지사 후보 경력을 지적하며 철새로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당선에 향을 주지 않았다.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담배]]값을 더 높이려는 안건을 대표 발의한 사람이기도 하다. 탈세 방지와 [[담배]] 유통 경로 추적을 위한 디지털 보안필증을 의무화 시키면서 현재 4500원인 [[담배]]를 7500원으로 인이 불가피해질 듯 하다, 그 논의중인 개정안으로 인하여 불법담배 유통으로 인한 세금탈루를 막기 위한다는 목적으로 개당 150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고 한다. ~~흡연자:망했어요~~
         2017년 12월 20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도 도지사 출마를 선언했으나 3위로 경선에서 탈락했다.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도지사) || [[열린우리당]] || 290,358 (23.19%) || 낙선 (2위) || ||
         || 2013 || [[2013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19대 국회 경북 포항 남구/울릉군)[* 전임자 김형태 의원직 실] || '''[[새누리당]]''' || '''57,309 (78.56%)''' || '''당선 (1위)''' || ||
         [include(틀:제20대 국회의원/경북도)]
  • 블랙 클로버/119화 . . . . 20회 일치
          * 대팀은 은익의 참수리 출신 "로브 비테스"라는 바람의 마도사가 강자로 평가된다.
          * K팀을 공격하서 나섰던 로브는 놀라운 기동성으로 한순간에 크리스탈을 지키러 오지만 격투전에선 락의 대가 되지 못하고 패배, 크리스탈도 파괴된다.
          * 배틀로얄 승부에 만족한 락은 다음 대전에선 좀 더 재밌는 대가 있을 거라 확인하고 대결이 확정된 릴 또한 K팀이라면 좀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거라 확신한다.
          * [[릴 부아모르티에]]는 어리숙한 첫인과 달리 분명 단장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대팀의 총공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대측의 두 마법기사를 간단히 제압, 손쉽게 I팀의 승리로 연결시킨다. 동료들도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두말이 없어졌지만, 정작 그는 방금 전 "한 장"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쓴 회화 마법은 시합장의 지형을 바꿀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으나 그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구석이 많다며 반성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좀 더 시합에 집중해주질 바랐지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집사 "발터"는 이런 태도 조차도 "도련님이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니까 주변 사람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하는 거다"고 이 또한 그의 재능이라고 포장한다. 어리숙한 걸론 안 빠지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설명이었다.
          * 그리고 이 팀의 세 번째 멤버는 푸른 들장미단 소속 4등 급 마법기사 [[푸리 엔젤]]이었다. 당히 통통하게 생긴 여성. 그는 팀이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고 기겁한다. 락은 "크레이지 보이"였고 클라우스는 "괴물 쿨 안경"이었다. 면면들도 위험한 인물들이지만 팀웍도 개판이니 과연 이런 팀으로 경기가 가능할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푸리 또한 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대단히 텐션이 높아서 단숨에 표변, 분위기를 휘어잡고 작전회의를 시작한다.
          * 대팀도 만만치 않았다. 대팀 리더는 6회전에서 가장 주목할 선수로 꼽히는 "로브 비테스"였다. 은익의 참수리 소속 2등 급 마법기사였다. 높은 기동성을 자랑하는 바람 마도사. 그 명성대로 날카로워 보였다.
          * 이제 6회전 시합이 시작됐다. 예대로 초반부터 난타전이었다. 양팀 모두 필드 중앙에 진출해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육박전에 돌입했다. 클라우스 류넷은 크리스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돌적인 싸움에 나섰다. 적 마법기사가 공격을 가하자 자신의 강철 마법으로 방벽을 세워 막았다. 하지만 부정형의 액체를 다루는 적의 마법은 방벽을 돌아서 크리스탈을 덮쳤다. 이때 잽싸게 움직인 것이 락 볼티어. 크리스탈을 옆구리에 끼고 적을 뛰어넘었다. 아스타는 그의 마법 형태가 바뀐 걸 눈치챘다. [[매그너 스윙]]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모어에 추가 페이지를 채워넣어서 모습을 강화한 거라고 한다. 그 위력은 보는 그대로였다. 락은 크리스탈을 가진 채로 필드 중앙을 안마당처럼 누볐다. 거의 활공에 가까운 점프를 거듭하며 건물 뒤에 숨은 적 크리스탈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그의 장기인 벼락 마법 "진뢰의 붕옥". 백병전 타입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위력과 탄속을 자랑하는 원거리 공격이었다. 그야말로 근, 원거리를 가리지 않는 공격력. 필드 바깥의 선수들이 "하급 기사의 실력이 아니다"고 하나같이 감탄하는 가운데 매그너는 자신도 락도 [[야미 스케히로]]에게 몇 달에 걸쳐 지겹게 부려먹힘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한다.
          클라우스의 새로운 강철마법 "선관의 열창". 적을 분쇄하는 거대한 드릴형태의 창이었다. 대의 마법을 분쇄하고 쾌진격하는 클라우스. 락도 그의 강함을 인정하고 "시합이 끝나면 따로 붙자"고 깐죽거렸다.
          * 클라우스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요주의 인물, 로브 비테스의 등장이다. 크리스탈 위치를 이동시킨 그가 중앙의 난타전에 끼어들었다. 크리스탈은 가까운 거리지만 적의 세 마도사가 그 앞에 빈틈없이 배치됐다. 클라우스는 이 셋을 돌파하고 단숨에 크리스탈을 파괴하자고 제안했다. 락은 물론 사양하지 않았다. 그때, K팀도 중앙에서 거리를 두고 있던 세 번째 팀원이 달려왔다. 푸리 엔젤이었다. 그녀는 "날개 마법" 구사자. 날개로 마음껏 비행이 가능한 우수한 마법이다. 둘의 선전을 "멋지다"고 칭찬한 그녀는 자군의 크리스탈을 들고 높이 날아오른다. 날개 마법 "엔젤 플래핑". 넓게 펼쳐진 날개에서 깃털의 폭풍우가 뿌려진다. 이 기술은 적에겐 시야를 가리고 진격을 방해하는 공격을, 아군에겐 진로를 열고 목표를 추격을 바람을 뿌려주는 마법이었다. 적들이 휘날리는 깃털에 시야와 발이 묶인 사이, 클라우스가 강철로 된 발판을 생성한다. 락이 이것을 밟고 뛰어올라 빠른 속도로 적의 크리스탈로 향한다.
          * 승기를 잡았다. 클라우스가 그렇게 생각할 무렵 역시 적은 호락호락하게 승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바람 마도사인 로브에겐 엔젤 플래핑이 별 향을 주지 못했다. 바람을 휘감아 깃털을 뿌리친 그는 락의 돌진을 추월해 크리스탈을 지키러 돌아갔다. 푸리가 락에게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녀는 락의 본성을 다 모르고 있었다.
          * 시작 전만 해도 사이가 나쁠 거 같았던 세 사람은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주고 받는다. 클라우스 조차도 기뻐하며 락에게 달려왔다. 푸리는 두 사람 모두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스타와 매그너는 동료의 승리를 기뻐하며 "너무 강해진게 아닌가" 투덜댔다.
          이것으로 대진표 으론 다음 I팀과 K팀의 대결. 전혀 다른 타입 같았던 두 팀의 에이스는 비슷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락이 말했다.
          >다음 대는... 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다음 대는... 좀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 블랙 클로버/124화 . . . . 20회 일치
          * [[잭스 류그너]]는 [[네르슈 버밀리온]]이 기절한 것도 관치 않고 독설을 퍼부우며 그대로 생매장시켜 버린다.
          * [[매그너 스윙]]은 기동성을 향시키는 새로운 마법 "폭주 소울"과 사라지는 마구인 "궁극소멸마구"로 아스타를 공격한다.
          * 네르슈는 마론이 접근해 간신히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데, 하층민 노이로제 때문에 제대로 싸울 황이 아니다.
          * 아스타는 매그너의 파공세를 대로 조금씩 움직임을 따라잡아가기 시작, 검은 폭우단 선후배의 팽팽한 대결이 시작된다.
          * [[잭스 류그너]]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네르슈 버밀리온]]을 처리하는 동안 양팀 여성진의 격돌이 있었다. [[미모사 버밀리온]] 대 [[솔 마론]]. 마론이 골렘을 앞세워 그녀를 덮쳐왔으나 미모사는 식물마법 "마포의 꽃"으로 골렘을 분쇄한다. 마론은 그녀가 예으로 강적이란걸 인정했지만 그녀를 오래 대할 생각은 없었다. 마포의 꽃의 레이저를 맞고 날아간 골렘의 오른팔이 공중에서 형태를 바꿨다. 흙마법 "흙덩이 봉인". 하늘에서 거대한 토사가 미모사를 덮쳤다. 거기에 파묻힌 미모사는 당분간 움직임을 봉쇄 당했다.
          >여자를 처 입히는 취미는 없거든. 거기서 쉬고 있으라고.
          * 잭스의 독설은 대를 가리지 않는 만큼 대의 태도 가리지 않았다. 아스타의 일격으로 네르슈는 기절. 계속 마력을 빨리도록 그 위에 반마법의 검을 얹어 봉인조치까지 했다. 그래도 잭스는 독설을 퍼부었다. 이런 "원시적인 함정"에 걸렸으니 기사단이고 부단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라고 빈정거린 그는 "어쨌든 기분 나쁜 나르시스트"라는 원색적인 욕설까지 잊지 않았다. 이 황을 합작한 아스타 조차 적당히 봐주라고 한소리했다.
          * 이때 일으킨 굉음이 말썽이었다. [[매그너 스윙]]에게 위치가 발각됐다. 그는 새로운 마법 불꽃 강화마법 "폭주소울"로 단숨에 달려왔다. 아스타와 잭스, B팀의 크리스탈까지 발견. 아스타는 예 외로 빠른 그의 접근에 놀랐지만 매그너는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적당히 거리를 버린 태에서 정지. 그게 매그너의 "필승존"이었다. 매그너는 그 태에서 특기인 원거리 공격으로 나왔다. 그는 아스타를 노리고 "입단식 때의 리벤지"를 선언했다. 아스타도 선뜻 "덤벼보십쇼 선배!"라며 그때처럼 자세를 잡았다. 그 다음 매그너의 전력투구. 아스타는 입단식 때와 같은 방법으로 받아치려고 했다. 오히려 지금의 자신이라면 더 정확하게 받아칠 수 있다,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불꽃의 마구가 눈 앞에서 사라져 크리스탈을 강타하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매그너는 정말 까다로운 대. 아스타는 마땅한 공략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접근하려고 하면 "폭주소울"로 단숨에 달아날 테고 크리스탈이 노출된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방법은 "블랙" 태가 되는 것 밖에 없는데 그걸 시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스타는 급기야 미모사에게 빨리 돌아와달라고 절규했다. 그때 잭스가 돌파구를 마련했다.
          네르슈가 그 시절의 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호되게 깨웠다. 마론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변형될 정도로 따귀를 때려서 그를 겨우 깨웠다. 잭스가 미리 발동한 함정의 두 번째 말썽. 네르슈에게 접근하는 팀원을 저지하지 못했다. 마론은 골렘으로 단마의 검을 치웠다. 정신을 차린 네르슈는 자기 아름다운 얼굴을 때린 것부터 따졌으나 사실 그 전부터 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계속 하층민에서 당한 탓에 노이로제 태인 그는 마론에게도 하층민 아니냐고 물었다. 마론은 평민이긴 했지만 그런걸 따질 황이 아니라고 쏘아붙였다. 마법제도 말하지 않았던가? 신분 차이를 넘어서 싸우라고. 그도 구태여 남자를 구해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언니를 위해서, [[샬롯 로즈레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마론은 샬롯이야 말로 살아갈 희망을 준 사람이며 네르슈에겐 그런 존재가 없냐고 물었다.
  • 샬롯 링링 . . . . 20회 일치
          * 위 항목 : [[원피스(만화)/등장인물]], [[빅 맘 해적단]], [[사황]]
         [[위대한 항로]]를 주름잡는 최강의 [[해적]]인 '''[[사황]]''' 중 한 명이자 [[빅 맘 해적단]]의 선장이다. 통칭 '''빅 맘'''.[* 그녀의 배에 써 있는 글씨에 따르면 Big Ma'am이 아니라 Big Mom이다. 전자는 마담, 후자는 마더.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나온 바로는 빅 맘 해적단의 선원들은 샬롯을 '''"마마"'''라고 부르고 있다. 원피스 그린에서는 BIG MOM이라고 써 있는데 610화에서 파파구의 설명에서는 배경에 BIG MAM이라고 써 있다. Mam은 마마(Mamma)의 준말이니 의미의 차이는 없지만. 다른 표기가 작중 또는 공식 설정집에 나왔다면 출처와 함께 [[추가바람]].] 생일은 [[2월 15일]].
         본명은 밝혀졌지만 아직 뚜렷한 모습으로 등장한 적은 없기에 구체적인 외모도 전투능력도 불명이다. 실루엣으로 볼 땐 [[wiki:"엄마(아따맘마)"뽀글머리에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괴한 인체비례를 가진 거대한 덩치]][* [[흰 수염]]과 동급인 듯.]의 [[대두]] 아줌마. 실루엣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통칭으로 볼 때 여성일 것이란 견해가 높았으며 651화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왠지 [[엄마(아따맘마)|이 분]]을 닮으셨다.-- 전투 능력은 대략 같은 사황들이나 미호크, 가프, 센고쿠, 제파, 로저랑 동급인 듯.
         분노한 샬롯을 달래기 위해 [[타마고 남작]] 이 제안한 거래도 거절하고[* [[유스타스 키드]]가 빅 맘 해적단의 산하 해적선 2척을 박살내 버리는 바람에 손해가 막대하여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루피 일행이 가진 보물을 전부 넘겨주는 대신에 사탕 공급은 2주 기다리자고 한 것. 허나 '''"원하는걸 타협하는 해적이 어딨냐!"'''며 단칼에 거절했다. 파파구는 빅 맘이 거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으나 딱히 나쁘지않은 거래를 거절한 건 대방의 뜻대로 되는 거래를 샬롯 링링이 싫어하기 때문인 듯.] 결국 수틀린 [[몽키 D 루피]]에게 어인섬의 지배권을 놓고 도전을 받았다.[* 루피 曰 '''"너는 이 섬을 지배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원문은「危なっかしい」단순히 위험하다는 뜻 보다는 위태스럽다거나 아슬아슬하다는 뜻에 가까운 의미로, 단순히 샬롯 링링이 위험인물이라는 의미보다는 '''"너같이 기분따라 섬 하나 작살낸다 만다 하는 인간한테 맡겨두자니 안심이 안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하지만 루피의 호기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어인섬을 박살내기로 한 분노는 루피에게 돌린다고 한다. 이름을 알았으니 [[신세계]]로 빨리 오라고 사실 선전포고를 한 태. 참고로 루피가 이름을 댔을 때 초신성이 아닌 "가프의 손자구나?"라고 말한 것으로 로져나 흰수염과 같은 세대의 해적으로 보인다.
         다만 이와는 반대로 '''부하를 최소한 한 명은 잡아먹었다.''' 그런데 이 부하들이라는 것이 인간이 아닌 과자로 된 병사들일 수 있다. 만화책에서는 651화에서 자세히 나오지 않았으나, TVA에서는 [wiki:"보빈" 과자로 만들어진 듯한 부하]가 빅 맘에게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를 근거로 빅 맘은 과자 같은 무생물을 사람처럼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능력자인지도 모른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730화에서 빅맘의 배'''[[선수]]이 노래를 불러서''' 이 무생물에 생명 부여 설이 강화되었다. 무엇보다도 빅 맘이 정말 [[wiki:"식인" 사람을 잡아먹는]] 사악한 인물이었다면, 그 [[징베]]가 머리를 숙이고 산하에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 단, 징베의 경우 [[사황]] 페이지에도 언급되었듯이 속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빅 맘 본인이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자일 필요는 없고 그냥 해적단의 간부 중 하나가 그런 능력자일 수도 있다.] 또한 오다가 제일 존경하는 작가이고 콜라보도 함께한 [[토리야마 아키라]] 의 [[드래곤볼]]에 나온 [[마인부우]]도 인간을 과자로 만들어 먹는 기술이 있어 여기서 따왔을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스릴러 바크]]편에서 등장했던 [로라(원피스)|로라]의 어머니라는 추측이 있다. 입모양이라든가 사이즈를 볼 때 그럴 듯 하긴 하다. 거기다가 로라라고 하는 이름은 어로 샬롯의 애칭이다. 무언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진짜 로라의 엄마라고 해도 어인섬에서 빅 맘의 성질을 이미 하도 긁어놓아 버린지라... 정말로 로라와 무슨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한바탕 하고 난 다음에야 언급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빅맘 曰 : 로라의 친구? 그렇다면 싸울 이유가 없지! 오늘은 잔치다! 이런 전개는 없다.~~ 로라나 그 부하들이 페콤즈, 타마고 남작, 보빈처럼 마마(ママ)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로라가 빅 맘의 친딸이라는 뜻이 아니라 과거 빅 맘 해적단의 일원이었을 거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근데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닮았다.~~ ~~아빠는 도대체 누구냐 그럼~~
         거기다가 빅 맘 해적단의 모티브는 [[이한 나라의 앨리스]]로, 빅 맘의 모티브는 [[퀸 오브 하트]]로 추정된다. 다과회를 좋아한다는 점이나, 부하 목숨을 막 날려버리는 점, 그리고 자기 먹을 거를 누가 훔쳐먹었을 때 불같이 화낸다는 점이 비슷하다.[* 하트의 여왕이 첫 등장할 때도 자기 파이를 훔쳐먹은 범인을 찾는 재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부하들도 '트럼프 병사'들처럼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한 것일 확률이 높다.[* 사실이라면 적어도 먹혀버린 부하들이 빅맘을 마마라고 부른 이유는 해명된다.]
         [[디]]는 '여자 해적'이라는 말을 듣고 과자를 좋아하는 예쁘게 생긴 마담일 것이라고 망을 하고 있다. 물론 위에서 보다시피 [[현실은 시궁창]]
         그리고 730화에서 [wiki:"망했어요" '''드레스로자에 배를 이끌고 나타났다!'''] ~~루피 해적단 멘붕~~ ~~칠무해에 해군 대장에 사황이라니~~[* 배가 거의 웬만한 해왕류 만한 크기로 아일랜드 고래의 1/2~ 1/3 정도의 엄청난 크기이다. 게다가 배의 선수이 말을 하고 있다. 위의 생명 부여 능력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 게다가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써니 호에 남아있던 사람은 디(부 입은 태), 나미[*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가지고 있다.위의 로라의 엄마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쵸파, 브룩, 모모노스케, 그리고 인질인 시저 뿐. 일당의 총 전력 중 절반 이을 섬에다 두고 와 버린 최악의 황인 판이다.
         그리고 이를 본 시저가 당황해 하면서 디에게 제발 달아나 달라고 애원하는데, 과거에 빅 맘을 속여 많은 돈을 연구비로 사기쳤기에 빅 맘에게 걸리면 자긴 죽은 목숨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현재까지 드러난 빅 맘의 성격을 보자면 시저는 잡히기라도 한다면 정말 끔찍하게 괴로워질듯.
  • 시드 마이어의 에이스 패트롤 . . . . 20회 일치
         서로 번갈아 가며 아군 기체들이 어떤 기동을 할지 선택한다. 적을 공격할 수 있는 황이 오면 자동적으로 공격하는데, 적을 공격하게 되는 기동은 초록색으로 표시되며 입힐 수 있는 피해량이 표시된다.
         기체가 전체 체력의 50% 이의 피해를 입게 되면 치명타(Critical Hit)가 발생된다. 이 경우에는 다음 네가지 태이 중 하나가 생긴다.
         전체 체력의 100%를 입은 기체는 그대로 추락한다. 만약 적의 토에 추락하게 될 경우에는 조종사가 포로로 잡혀 크리스마스 포로 교환 이벤트까지 사용할 수 없게된다. 아군 토에 추락하게 된다고 해도 조종사의 부을 회복시켜야 일정 시간 사용할 수 없게된다.
          국가 특성: 조종사가 부에서 더 빨리 회복함
          * 승: 3
          * 승: 4
          베베보다는 기동성 외의 부분들이 엄청나게 승했지만 저속비행이 불가능하다. 쓰다보면 미세한 조정이 잘 안되서 짜증날수도있다.
          *
          * 승: 2
          * 승: 3
          * 승: 3
          * 승: 3
          추락해도 부이 없음.
          적군의 최고급 에이스와 일기토를 벌이는 임무. 1명만을 골라서 보내야 한다. [[만프레드 폰 리히토펜]]과 같은 실존 에이스를 대하게 된다.
          사령부에서 시험중인 신무기를 촬하려는 적 정찰기를 격퇴하는 임무. 적 정찰기가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도망가기 전에 격추하면 성공으로 처리된다.
          아군 공에서 초계비행을 벌이는 적 편대를 격퇴하는 임무.
  • 애니 일본어 . . . . 20회 일치
         [[애니메이션]]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 일생활에서 주로 쓰이는 일본어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애니로 일본어를 배우고 그대로 쓰면 일본의 실생활에서 격렬한 위화감을 줄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묘사하는 황은 대개 극단적인 전투나 비일적인 황으로서, '[[일]]'과는 거리가 멀다. 애니메이션에서 발언하는 애니메이션 성우들은 애니메이션을 위하여 단련된 '성우 기술'로서 특정한 패턴에 따라서 '연기'를 하는 것이며, 이 역시 일 회화와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특유의 오타쿠 문화 친화성이 더해져서 '애니 일본어'는 일 일본어와는 동떨어진 특수한 문화가 되는 것이다.
         이런 특이한 발음을 것은 발음을 과장스럽게 하고, 명확하게 하여, 청취자가 알아 듣기 좋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 일회화의 발음은 성우 목소리에 비하면 조곤조곤 거리고 알아듣기 어렵게 뭉개진게 많다.
         이는 한국 성우들도 마찬가지. 성우 발성훈련을 받은 목소리는 일회화에 비해서 청취하기는 좋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회화의 발음이나 어투와는 완전히 별세계의 일본어가 되는 것이다.
          * 오타쿠 대 애니의 경우, 애니를 보는 사람은 오타쿠이므로, 그들에게 명백한 '오타쿠 용어'를 일회화에 섞어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오타쿠 용어는 일회화에 침투한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막 써대면 말이 안 통할 수도 있다. 가끔 한국 일용어에 침투한 오타쿠 용어가 있다. [[신의 한 수]] 같은 것.
          * 배틀물 남캐의 경우, 역시 일생활에서 쓰지 않는 거친 말투를 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배틀물에서 대화 대방은 대개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적이거나, 배틀물 남캐 자신이 폭력에 가까운 --막장-- 인생을 사는 사람을 강조하므로 이러한 말투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런 말투를 함부로 사용하면 매우 무례하게 보인다. 고 [[은혼]]의 작가 소라치 선생이 단행본에 쓰기도 했다.
          * "키사마!" "테메에!" : 애니에서는 들을 수 있는 빈도가 높지만, 사실 일생활에서 맞부딪치는 대에게 사용할 필요성은 거의 없다.
         보통 대학교의 일본어과의 경우 일물이나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은 그럭저럭 추천하고 있다.
         일본 여자는 사실 없다는 것이다.
  • 원피스/872화 . . . . 20회 일치
          * 옥갑은 개봉하면 대폭발을 일으키는 장치가 있었는데, 그걸 모르는 태로 루피에게 주어졌던 것. 그게 빅맘에게까지 간 것이다.
          * 무사히 성을 벗어난 해적동맹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출발. 사실 이제부터가 진짜 탈출극이다.
          *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해적단이 아직 어인섬에 체류하고 있을 무렵. [[넵튠(원피스)|넵튠왕]]은 어인섬을 구해준 답례도 성의 갖은 재보를 하사했다. 그런데 우대신이 오더니 그 재화 중 옥갑만은 회수해야 한다고 간청한다. 넵튠은 이미 준 것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냐고 거절한다. 그러나 대신이 좀 더 소히 사정을 밝히자 생각이 달라진다.
          * 그렇게해서 현재. 다과회와 암금왕 루 펠드와 스튜시 등이 얽혀서 복잡한 경로로 개봉된 옥갑은 재기능을 충실히 이행했다. 성 밑으로 떨어진 옥갑이 깨지면서 기폭장치가 작동, 홀 케이크 성 절반을 날리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홀 케이크 아일랜드 바깥에서 관측될 정도의 대폭발. 성 안은 난데없는 폭발음과 성 일부의 소실, 이어지는 기울음으로 아비규환이다. [[타마고 남작]]이 황을 종합해 보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능성이 떠올라 버렸다.
          * 토트랜드 수도이자 성 밑에 형성된 마을 "스위트 시티"의 주민들도 폭음을 듣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들은 기우는 성을 바로 볼 수 있었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한 발 먼저 피난하기 시작했다. 피난하는 와중에도 대체 무엇이 이런 사태를 촉발했는가 의견이 분분했는데 적의 공격은 아무래도 아닐 거 같다. 토트랜드 최심부의 이 섬만을 타격할 수 있는 적이 어딨겠는가? 누군가가 막연하지만 성 옥에서 진행 중인 다과회와 관계된게 아닌지 추측했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은 둘이다. 그 둘,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스튜시와 세계경제신문사 사장 모건즈는 당황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스튜시가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조심스러운 말투로 옥갑이 이 사태를 일으킨 거 같다고 말하자 모건즈가 달리 뭐가 있겠냐고 쏘아붙인다. 성의 붕괴는 다과회장의 구도를 많이 바꿨다. [[샬롯 카타쿠리]]에 제압 당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빈스모크 이치디]]가 해방됐다. 역시 포위됐던 [[빈스모크 레이쥬]], [[디]], 루피도 탈출 성공. 레이쥬는 급변한 황의 원인을 궁금해하지만 디는 그딴건 됐으니 우선 도망치자고 다그친다. 가장 경황이 없는 건 빅맘.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하고 처형할 생각에 부풀어 있던 기분이 급격히 곤두박질친다. 그녀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주위를 둘러보지만 온통 쓰러지고 뒤엎어지는 것들 뿐이다. 그 사이 사로잡혔던 [[빈스모크 니디]], [[빈스모크 욘디]]가 무사히 빠져나와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를 무사히 구출했다. 의식을 잃은 채지만 목숨까지 잃진 않았다. 물론 최종적으론 이 무너지는 성에서 벗어나야 그렇겠지만.
          누가봐도 끝장인 것 같은 이 황. 그러나 돌파구는 있었다. 총요리장인 미식기사 [[슈트로이젠]]이 실력을 발휘한다.
          어느 정도 황이 진정됐다 싶자 주민들이 빅맘 해적단에게 달려온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기 위해서다. [[샬롯 몬도르]]는 그들을 퉁명스럽게 대하며 쫓아버린다. 구사일생한 걸로 끝난게 아니다. 배신자들이 달아났다. 곧 토트랜드 전역에 수배령을 내리고 루피의 밀집모자 해적단, 벳지의 파이어탱크 해적단 전원을 잡아들여야 한다.
          * 천운 덕으로 도망칠 수 있었던 해적동맹군은 홀케이크 아일랜드 북서쪽에 이르러 잠시 휴식했다. 밀집모자 일당의 써니호와, 파이어탱크 해적단 아지트 사이의 중간 쯤 되는 지점이었다. 벳지는 체내의 밀집모자 일당을 바깥으로 쏟았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 선언한다. 나미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벳지는 "좋은 일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니 관둬라"며 말을 가로막았다. 시저는 고생한 건 자기라고 나대는데 나미가 독설을 퍼부어 조용히 시킨다.
          벳지는 한숨 돌리게 되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되짚어 본다. 괴총 비트가 성이 케이크가 됐다고 보고한다. 그 얘기를 들어보니 탈출 이후의 황은 추측이 갔다. 우선 성을 케이크로 바꾼 건 슈트로이젠의 솜씨일 거다. 벳지는 그의 능력은 몰랐지만 반대로 나머지 녀석들의 능력은 전부 알았다. 그들 중에 저런 묘기를 부릴 능력자가 없으니 저건 슈트로이젠이 한 짓이 된다. 벳지는 전부터 슈트로이젠의 능력은 몰라도 꽤 강자일 거라고 추측하던 터였다. 그리고 아마 빅맘 해적단은 전멸을 면했을 것이다. 다만 성이 날아갔으니 이럭저럭 속이 후련하긴 하다.
          * 루피가 이제 탈출할 일만 남은 거냐고 묻는다. 벳지는 처음부터 그랬는데, 시작부분이 너무 난관이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제 서두르는게 좋을 거라고 충고한다. 추격대는 금방 올 거고 배에 도착하더라도 토트랜드의 해에서 빠져나가려면 하루는 걸릴 거다.
          벳지는 그렇게 말하고 "캐슬 탱크"라는 캐터필더 모드로 변신해 부하들을 데리고 사라진다. 이렇게 보면 쿨하게 헤어지는 것 같지만 밀집모자가 저쪽으로 갔다는 펫말을 세우며 달아나서 폼이 구겨진다. 디가 항의하자 이것도 서바이벌 전략이라고 대꾸한다.
          이제 루피 측도 본격적인 탈출계획을 세운다. 우선 맨 처음 륙했던 해안으로 가야한다. 거기서 샤크 서브 머신을 회수해 써니호까지 직행하는 계획이다.
          * 벳지의 우려대로 빅맘 해적단은 빠르게 재정비를 마쳤다. 카타쿠리의 지시로 다이후쿠 등이 추격대를 둘 편성했다. 한쪽은 파이어탱크 해적단, 다른 한쪽은 밀집모자 해적단을 쫓는다. [[샬롯 스무디]]는 어머니 옆에서 한 놈도 놓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그런데 어머니의 태가 이하다. 빅맘의 눈이 뱅글뱅글 돌고 있다.
  • 윤휘 . . . . 20회 일치
         '''윤휘'''(尹暉, [[1571년]] - [[1644년]])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조선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호종, [[조선 인조]]를 도와 적진인 [[청나라]] 진을 왕래, 교섭하며 설득과 화의를 추진하였고,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과거 급제 후 삼사의 요직을 거쳐 1613년(광해군 5) 계축화옥에 관련, 삭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1618년 동지겸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광해군]]이 [[명나라]]에 구원군을 보낼 때는 광해군의 중립외교론을 지지했다가 [[인조반정]] 직후 파면되었다. [[1626년]] 복관되고, 성주목사, 청주목사 등을 지냈다. 그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어가를 [[남한산성]]까지 호종하였고, 주화론에 참여하여 [[조선]]측 대표로 [[청나라]]군과의 사이를 오가며 타협을 주관, [[강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뒤에 [[형조]][[판서]]를 거쳐 [[의정부]][[우찬성]] 등을 지냈다. 사후 아들 [[윤면지]]의 공로로 [[의정부]][[의정]]이 [[추증]]되었다. [[윤두수]]의 셋째 아들이다. [[윤흔]]의 동생이며 [[윤훤]]의 형이다. 당색으로는 [[서인]]이었으나 [[광해군]]의 조정에 참여했다. 본관은 해평(海平)으로 자는 정춘(靜春), 호는 장주(長洲) 또는 천(川上), 시호는 장익(章翼)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윤휘는 [[1577년]](선조 11년) [[의정부]][[의정]] [[윤두수]](尹斗壽)와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 황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용]]으로 [[증직|증]] [[좌찬성]]에 추증된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증직|증]] [[의정부]][[의정]] [[윤변]](尹忭)이다. [[윤근수]]는 그의 숙부였고, [[윤방]], [[윤흔]]은 그의 형이며, [[윤훤]]은 그의 동생이었다. 일찍이 우계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3년]] [[좌부승지]], [[참찬관]]을 지냈다. 한편 [[선조]]의 특명으로 돈피 사모 이엄(獤皮紗帽耳掩) 1부(部)을 하사받기도 했다. [[1604년]] [[승지]], [[호조]][[참의]]를 거쳐 [[1605년]] [[해주]][[목사]](海州牧使), 그뒤 [[전라도]] [[관찰사]]·[[경도]] [[관찰사]]로 나가 치적을 올렸다. 당색으로는 [[서인]]이었으나 [[광해군]]의 조정에 참여하였다.
         [[1609년]](광해군 1년) [[좌승지]]가 되고, [[장례원]][[판결사]]를 거쳐 [[1610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 그해 호패(號牌) 사용으로 민심이 혼란함을 들어 호패제에 대한 무마책과 대책을 건의하였다. 그해 겨울 병을 이유로 여러번 사직소를 올려 체직되었다. [[12월]] 행 부호군(行副護軍)을 거쳐 [[1611년]] [[호조]][[참의]]가 되었다. [[1611년]] 다시 [[전라도]][[관찰사]]로 나갔고, 녕전 이안청 건청(永寧殿移安廳營建廳) 건립에 참여한 공로로 아마 1필을 하사받았다. [[1612년]] [[경도]][[관찰사]]로 재직 중 [[가선대부]]로 승진하였다.
         [[1613년]](광해군 5년) [[경도]][[관찰사]]로 재직 중 지역 유림들의 [[조목]]의 [[월천서원]] 배향 건의를 받아들여 시행하였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에 형 [[윤흔]]의 첩 서씨의 남동생 서양갑과 관련, 연좌되어 벼슬에서 쫓겨났고, [[서양갑]]에게 군관 직위와 월급을 준 일이 문제되어 양사의 공격을 당하다가 뒤에 다시 기용되었고, [[인목대비]] 폐모론 때는 불참하였다.
         한편 [[광해군]]이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적인 외교를 펼칠 때, [[강홍립]], 임연(任兗) 등과 함께 [[광해군]]의 중립 외교를 적극 지지하였다.
         [[1618년]] 궁궐 건 도감 제조가 되고, [[1621년]] [[승문원]]제조의 한사람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공조 참판, [[1622년]] [[의금부]]당, [[비변사]]의 유사당, [[예조]][[참판]]이 되었다. [[1623년]] 초, 차언심(車彦諶) 등과 함께 역적으로 몰려 죽은 [[허균]]의 노비들을 차지하여 자신의 노비로 부리다가 [[박홍도]] 등의 공격을 받고 스스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광해군]]이 이를 듣지 않았다.
         반정 초반 같은 [[서인]] 당원임에도 버림받았으나 반정 공신인 훈신들의 특별 사면 건의로 [[1625년]] 사면되었다. 그러나 계속 서인 간관들은 그를 처벌하거나 [[문외출송]]시킬 것을 소하였다. 사면된 후 [[1626년]] [[용양위]][[부호군]]이 되고, 그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러나 그가 [[광해군]] 조정에 참여한 일로 탄핵 소와 비난이 계속되었다.
         죽은 뒤 아들 [[윤면지]](尹勉之)의 공훈으로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장익(章翼)이다.
         [[분류:1571년 태어남]][[분류:1544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외교관]][[분류:서예가]][[분류:조선 광해군]][[분류:조선 인조]][[분류:병자호란 관련자]][[분류:정묘호란 관련자]][[분류:해평 윤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
  • 은혼/603화 . . . . 20회 일치
          * 지의 해방군 주둔지는 우츠로에게 전멸. 추적해온 사카타 긴토키와 대면한다.
          * 원 황자는 도쿠가와 사다사다 일행과 대면. 사카모토 다츠마의 패기를 높이 사나 해방군 본대를 진격시키며 황에 기름을 끼얹는다.
          * 단순히 해방군이 진정된 이후 민중이 봉기했다고만 알고 있으니 황을 타개할 계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
          * 서로 할복이나 하라고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 젠조는 이러한 황을 모두 보고있다.
          * 노부메는 이 황이야 말로 우츠로가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 신파치는 도쿠가와 노부노부의 교섭도 의미가 없는 거냐고 묻는데, 노부메는 이런 황을 사전에 인지한거 같다.
          * 바로 해방군의 지 주둔지다.
          * 해방군의 시체더미 사이로 나락으로 보이는 시체도 끼어있다.
          * 둘이 실갱이 하는 사이 모모치가 당구 모모치 랏파가 나타난다.
          * 그가 친구를 위해 속죄하며 사는 것은 관없지만 그 때문에 싸우고 있는 친구들을 져버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 해방군 지기에서 원을 만날 채비 중이던 노부노부 일행은 전격 체포.
          * 당황하는 노부노부 앞에 나타나는 원 황자. 노부노부는 무슨 짓이냐고 따진다.
          * 그는 황파악이 안 되는 우둔한 군주라면 나라가 망하는 것도 당연하다 비웃는다.
          * 원이 내린 처분은 "천도중과 함께 지구를 멸한다"는 것.
          * 원은 자작에게 들은 대로 배짱도 입담도 있다며 다츠마의 패기를 높이 평가한다.
          * 지구인들이 땅바닥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사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이 모든 것이 끝날 거라는데.
          * 원의 말처럼 긴토키의 칼끝은 우츠로에게 닿지 못한다.
          * "도망자 고타로"인 만큼 지구 측에서 우츠로를 대하게 될 듯.
  • 은혼/638화 . . . . 20회 일치
          * 히노카구츠치를 두려워하는 해방군. 그 최후의 발악을 저지하기 위해 [[진선조]]를 이끌고 싸우는 [[곤도 이사오]]. 그러나 한 밤 중의 결전은 수한 땅울림으로 중지된다. 해방군은 히노카구츠치가 발사된 거라고 여겨 전의를 실하나 곤도는 막연히나마 그런게 아님을 직감한다. 땅울임은 어느덧 지진으로 바뀌고 진선조가 싸우던 바닥까지 갈라진다. 곤도는 서둘러 대원들을 대피시키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은 에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각지에서 흩어져 싸우던 가부키쵸 연합군이 퇴각한다. [[츠쿠요]], [[사루토비 아야메]]가 백화와 오니와반슈를 수습하고 [[도로미즈 지로쵸]], [[도로미즈 피라코]] 부녀와 [[사이고 다카모리]]도 병력과 함께 퇴각하나 어디로 가야할까? 폭발은 빠른 속도로 뒤따라온다. 가부키쵸의 고지대에서 이 황을 지켜보는 [[오토세]] 여사. 그녀와 함께 전황을 지켜보던 가부키쵸 주민들 사이에서 [[시무라 타에]]가 조심스럽게 걸어나온다. 그녀의 눈은 믿기지 않는 광경으로 향하고 있었다.
          * 허둥대던 해방군의 지부대는 폭발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 모든 황을 대기권 밖에서 지켜보던 해방군 본대가 지구 지표의 고에너지 반응을 감지했다. 아직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이 양은 그들이 한 번 씩 겪었던 "그 일"을 연시킨다. 보고를 받는 [[엔죠]] 황자가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 해방군 본대는 [[천도중]]이 해방군을 전멸시키고자 본진인 지구 조차 버리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추측한다. 틀린 말이다. 엔죠 황자는 안다. 이미 천도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부하들에게 그걸 묻고 있을 순 없다. 천도중의 죽음을 숨기고 이 전쟁을 아득바득 고집한 이유가 사라지니까. 엔죠 황자는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자신들의 모성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는지 자문하길 되풀이했다. 한 가지가 걸린다. 저 현은 모성에서 일어난 것과 완전히 같은건 아니라는 것. 단 번에 대폭발을 일으켰던 모성과 지표 전역이 들끓듯이 연쇄폭발하는 저 현은 다르다. 애초에 천도중은 죽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천도중이 아니었던 건가? 그들의 모성을 파괴하고 지금 지구를 파괴하려는 자. 그리고 천도중을 죽인 자. 이 전쟁을 계속하는 자.
          * 긴토키는 발 밑을 울리는 심치 않은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우츠로에게 외친다. 우츠로는 다소 친절할 정도로 자세하게 대답했다. 우선 다행한 점은 [[히라가 겐가이]]의 나노머신이 터미널 지하 깊숙한 곳까진 미처 닿지 않았다는 것. 거기서 우츠로가 계획한 최후의 계획이 무사히 시작했다. 그는 손에 넣은 "열쇠"를 이용해 터미널 지하의 "문"을 열엇다. 문이란 "용혈"을 봉하고 있는 터미널의 중추 장치다. 아르타나의 흐름이 "용맥"이며 그 원천이 "용혈". 그걸 제어하기 위해 설치된 "문"을 잘만 다룬다면 단숨해 폭주시켜 나라 하나를 멸망시킬만한 대폭발을 일으킬 수도, 지금처럼 혈관 각지를 부수어 폭주를 확산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우츠로는 가부키쵸 연합군 따윈 언제든 처리할 수 있었다. 긴토키와 그들은 단지 우츠로의 손 위에서 춤을 췄을 뿐이다.
          * 아쉽게도 이 막대한 에너지의 폭주도 우츠로를 죽일 수는 없다. 그 아르타나의 화신이 자신인 이 폭주를 하거나 말거나 무의미하다. 지구 그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우주적 규모의 전쟁을 일으켜 해방군의 화력을 지구로 집중시킨다, 그 힘이 자신에게 원한 죽음을 부여할 수 있도록...
          천만에 말씀. 우츠로는 그런 단순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 시각 터미널의 지하에선 열쇠를 넘겨받은 우츠로의 부하가 용혈을 조작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연쇄 폭주가 지의 거추장스러운 군대를 밀어버렸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용도다. 지구의 전 아르타나가 터미널로 몰렸다. 이윽고 터미널은 우주로 향해진 거대한 아르타나 캐논이 되었다. 이게 진짜 계획.
          >다 같이 사이좋게 죽기 위해서입니다.
          * 아르타나의 비정적인 집중은 해방군 본대에서도 관찰했다. 엔죠는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진 걸 확인했다. 우츠로는 천연덕스럽게도 "지구를 파괴할 힘"을 준 답례로 "이쪽의 선물"도 준비한 거라 말한다. 전 지구의 힘을 긁어 모아서 선물을 보낼 거다.
          해결사들이 질겁한 표정으로 우츠로를 바라보듯, 해방군도 마찬가지. 지구가 히노카구츠치의 포격을 아르타나의 힘으로 격하려 한다 생각한다. 맞는 추리다.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이 부딪혀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그 자신들도 몰랐다. 점점 어두워지는 엔죠 황자의 표정. 이제와서 초조해진 걸까? 하지만 우츠로는 그들이 발을 빼진 못할 거라고 예견한다. 이미 해방군은 자기들 자신의 과오로 다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미 그들이 짊어질 만한 크기의 업보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죗값과 증오를 적 한 명에게 맡기고 그걸 지워버려야 할 일이다. 적어도 엔죠 황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리고 또 한 마리의 해결사가 이 위기를, 지구와 동료들의 위기를 감지한다. [[사다하루]]는 [[소요 공주]]와 [[이마이 노부메]]를 경호하고 있었다.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는 어떤 육감이었는지 에도의 모처로 소요 공주를 피신시켜 두었다. 지금 위치에서도 에도에서 일어나는 천재지변이 똑똑히 보였다. 소요 공주가 사색이 되어 마츠다이라에게 저 빛은 무엇이고 에도 사람들은 어찌되는 건지 물었다. 담배를 문 마츠다이라는 대답을 피하며 그녀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한다. 그것을 노부메가 무의미한 짓이라 말한다. 이 지구 위에 안전한 곳이 있을리가 있나? 그녀는 솔직히 말하라며 그들의 별이 1초 뒤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지금은 멀리서 당장의 참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 여기서 저곳의 일행이 무사하기까지 바란다면 과욕이다. 말을 잊는 소요 공주.
          마츠다이라는 너무 노골적으로 말한다고 씁쓸해하면서도 하늘에는 뇌신, 지에는 용신이 도사리고 있는 마당에 숨을 곳도 없다며 노부메의 말에 동의한다. 동료들이 싸우고 있는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건 사다하루의 고민이기도 했다.
  • 이상호 (1989년) . . . . 20회 일치
         |선수명 = 이
         |문 표기 = Lee Sang-Ho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2015년 ~ 2016년)
         '''이호'''(李相浩, [[1989년]] [[2월 5일]] ~ )는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내야수]], [[외야수]], [[지명타자]]이다.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당한 후 곧바로 [[NC 다이노스]]의 캠프에서 테스트를 받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군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결과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2013년]] [[4월 2일]] 개막전에서 [[모창민]]이 안타를 친 후 근육통을 호소하자 [[대주자]]로 출장하며 첫 1군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도루를 성공하며 대주자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5065708 이호, '운이 따르네~'] - 뉴시스</ref> 이후에는 주로 대주자로 나왔으며 [[지석훈]]과 [[노진혁]]의 부진으로 종종 선발출전도 했다. [[8월 2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노진혁]]의 땅볼 때 [[서동욱]]의 태그를 절묘하게 피하며 병살을 피하였고<ref>[http://osen.mt.co.kr/article/G1109668015 이호, '태그를 피하는 방법' ] - OSEN</ref>, 타격에서도 4타수 2안타 1타점(결승타) 2도루로 경기의 MVP가 되었다.
         [[10월 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삼성 라이온즈|삼성]]전에서 [[차우찬]]을 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977238 NC 이호, 차우찬에게서 데뷔 첫 홈런] - OSEN</ref>
         준플레이오프에서부터 2경기에 대주자로 출장하였으나 도루실패를 2회 기록하였다.<ref>[http://www.sportsseoul.com/?c=v&m=n&i=126252 준플레이오프 2차전, NC 이호 뼈아픈 도루 실패] - 스포츠서울</ref>
         ==[[무 야구단]] 시절==
         [[12월 22일]] [[무 야구단]]에 [[김희원 (야구 선수)|김희원]], [[권희동]]과 함께 2015년에 입대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7257485 무 야구단, 이용찬 등 17명 합격자 발표 ] - 연합뉴스</ref>
         ! style="color:white;background-color:#408080;" |'''인율(%)'''
         * [[대구원고등학교]]
         * [[강릉동대학교]]
         * [http://www.ncdinos.com/player/person?pid=47 이호] - [[NC 다이노스]]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강릉동대학교 동문]][[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무 야구단 선수]]
  • 이정호 (1982년) . . . . 20회 일치
         |문 표기 = Lee Jeong-Ho
         |사진 사이즈 =
         *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0년 ~ 2011년)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시절 에이스로 활동하여 기대를 모은 [[투수]]였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계약금 5억 3,000만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해 고향 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부까지 겹쳐서 [[2004년]]까지 19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5.55에 그쳤다. 설으로 [[2004년]]에는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그 해 9월에 시즌 아웃되었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26815.htm 프로야구, 역대 1순위 지명 선수 실패 사례는?] - 스포츠서울</ref>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에 패해 준우승에 그친 [[삼성 라이온즈]]는 시즌이 끝나고 그 해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게 된 [[박진만]]과 [[심정수]]를 잡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정호가 보 선수로 지명되어 그는 고향 팀을 떠나게 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2545786 히어로즈 이정호 힘찬 부활의 날갯짓] - 뉴시스</ref> 현대에 이적한 후에도 병역을 이행해야 했기 때문에, 팔꿈치와 어깨 수술 등으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와 재활을 병행하여 현대에서의 활동은 없었다.
         소집 해제 이후 바뀐 팀에 복귀했다. [[2008년]] [[8월 26일]] [[목동 야구장]]에서 친정 팀과 맞붙었을 때 [[마일]]의 뒤를 이어 등판, 1군에 복귀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8271130302225&ext=na '잊혀졌던 유망주' 이정호의 반가운 복귀] - 마이데일리</ref> 이 날은 [[삼성 라이온즈]] 투수 [[이목]]이 100승을 거둔 날이기도 했다. 복귀 후 주로 불펜으로 활동했다. 2010년에도 부으로 4경기에만 등판하여 1홀드만 기록했다.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되자 시즌 후 해외 진출에 도전하겠다고 선언, 구단에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하여 현재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임의탈퇴된 태이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270006 '해외도전' 이정호, "추신수에 자극받은 것 아니다"] - OSEN</ref>
         이후 잠시 모교인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생활을 이어가다가, [[2011년]] 말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프런트로 입사하였다. 프런트로 꾸준히 활동하던 중 [[2014년]] [[9월 11일]] 구단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KBO에 의해 구단 해체를 선언한 후, 그 날 프런트직에서 물러났다.
         [[2014년]] [[12월 16일]] [[한화 이글스]]의 3군 투수코치로 부임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548544&date=20141216&page=1 '비운의 천재' 이정호, 한화 코치로 제2의 야구인생 개척] - 마이데일리 2014년 12월 16일 확인.</ref> 하지만 2015 시즌 후 사임하고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0&aid=0000000943 그 신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1> 고졸 최고 대우, 삼성 이정호] - 이미 칼럼</ref>
         * [[경중학교]]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분류:우리 히어로즈 선수]][[분류:히어로즈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
  • 장강명 . . . . 20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s://twitter.com/tesomiom 트위터]<br>[https://www.facebook.com/kangmyoung.chang 페이스북]
         1975년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와 잡지사 기자이자 문학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4년 PC 통신 하이텔에 SF 소설을 연재하고, 군 복무 중에는 장편소설을 투고하는 등 일찍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였으나 전업 소설가가 되겠다는 일념을 갖고 퇴사하였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을 수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을,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E%A5%EA%B0%95%EB%AA%85&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14607|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신문기자 관두고 2년만에 소설 6권, 문학賞 휩쓸어… 글만 써 먹고살고 싶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3&aid=0003112580|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조선닷컴 인물검색|url=http://cdb.chosun.com/search/db-people/i_service/manDisAllXml.jsp?uci=G010+1-02142006092000380346|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ref>{{뉴스 인용|제목=YES24 《한국이 싫어서》 소개|url=http://www.yes24.co.kr/24/goods/17972275|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26일}}</ref>
         == 훈 ==
         * 제158회 이달의 기자<ref>2003.12/한국기자협회</ref>
         * 제22회 관훈언론<ref>2005.1/관훈클럽</ref>
         * 대특종<ref>2006.3/동아일보</ref>
         * 씨티대한민국언론인
         * 제16회 한겨레문학<ref>(표백)/2011.6</ref>
         * 제2회 수림문학<ref>(열광금지, 에바로드)/2014.10</ref>
         * 제3회 제주4·3평화문학<ref>(2세대 댓글부대)/2015/제주4·3평화문학위원회</ref>
         * 제20회 문학동네작가
         * 제7회 젊은작가
         * 제40회 [[오늘의작가]]
  • 장원준 (야구선수) . . . . 20회 일치
         |문 표기 = Chang Won-Jun
         |사진 사이즈 = 270px
         * [[2016년]] [[최동원]]
         4시즌 동안의 꾸준한 노력 끝에 팀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1군 무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하며 처음으로 '10승 투수'라는 훈장을 취득했다. 140km 이의 묵직한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가 그의 이름을 빛냈다.
         2011 시즌 후 입대하였다. 입대 후 [[봉중근]]의 부으로 좌완 투수 자원이 부족하여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2014년]] [[11월 26일]], 소속 구단 우선 협 만기일에 FA 시장에 나올 것을 선언하였다.
         [[2014년]] [[11월 29일]] FA 타 구단 협 셋째 날 [[두산 베어스]]와 4시즌 동안 계약금 40억원, 연봉 10억원, 옵션 4억원 등 총 84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2015년]] [[10월 29일]] [[한국시리즈]] 데뷔 첫 등판이었던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 KS]] 3차전에서 7.2이닝 동안 1점만을 내주며 승리 투수가 되었고, 그 경기의 MVP에 선정되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팀은 4승 1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는 팀으로서는 14년만의 우승, 그로서는 데뷔 첫 우승팀 소속이자, 이적하자마자 우승을 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두산 베어스]]에 이적할 당시 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는 그의 보 선수로 투수 [[정재훈]]을 지명했는데, 1년 뒤 [[두산 베어스]]가 2차 드래프트에서 마지막 순위에 [[정재훈]]을 지명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로 FA 계약 선수와 보 선수가 1년만에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챙겼으며, 이는 좌완 투수 최초의 기록이다. 팀 내에서 그와 [[더스틴 니퍼트]], [[마이클 보우덴]], [[유희관]] 등 4명의 선발 투수가 70승을 합작했고 일명 '판타스틱 4'로 불렸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8.1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적 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뒀고 역대 최고의 모범 FA로 꼽혔다. 시즌 후 3번째로 [[최동원]]자로 선정되었다.
         * 부산 [[수초등학교 (부산)|수초등학교]]
         * [[사이버대학교]]
         {{최동원자 명단}}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수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대동중학교 (부산) 동문]][[분류:부산고등학교 동문]][[분류:사이버대학교 동문]]
  • 진격의 거인/98화 . . . . 20회 일치
          * 마레의 전사들은 작전실에서 쫓겨나 연병장을 바라보며 조국과 엘디아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데, 마침 연병장에선 전사 후보생들이 훈련 중이었다. [[가비 브라운]], [[파르코 그라이스]], 조피아, 우도는 완전군장 태로 구보를 하던 중인데 잘 보니 뒤쳐져 있던 파르코가 기어이 가비를 추월해 1등으로 골인한다. 파르코가 가비를 이긴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훈련생들은 엄청나게 환호하며 즐거워하는데 그 형인 [[콜트 그라이스]]는 문득 "한 번 정도 이긴 걸로 가비의 우위가 흔들리진 않는다"며 미심쩍은 발언을 한다. 자신이 짐승 거인의 계승자인 이 동생까지 굳이 갑옷을 계승할 필요가 없다는 요지였는데, 듣고 있던 [[지크 예거]]가 "명예를 업신 여기는 거냐"고 꾸중한 뒤 "하긴 그게 형의 마음이다"고 다독이며 콜트를 데리고 캐치볼을 하러 간다. 포르코는 "그런게 형"이라는 지크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 후보생들은 수용구 출입통제소를 지날 때까지 떠들썩하게 파르코의 승리를 축하해준다. 파르코는 각오를 다진 탓인지 가비가 도발을 해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할 일을 할 뿐"이라며 흔들리지 않는다. 가비가 "어차피 너희 형이 있어서 명예마레인 확정인 주제에 왜 그렇게 기를 쓰냐"고 안달하자 마침내 "널 위해서"라고 고백하지만 가비는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낙담한 파르코는 병원으로 향하는데 요즘은 거의 항 가고 있다고 한다.
          * 수용구 안에서는 "축제"가 준비 중. 실제로는 타이버가가 팔라디섬 침공을 선언하는 "선전포고" 연설이 메인이벤트다. 가비는 타이버가의 연설이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도는 마레인 이으로 엘디아인을 증오하는 세계의 사람들이 협조해줄리 없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마가트와 [[빌리 타이버]]도 준비 중인 무대를 살펴보고 있다. 빌리가 한 달 전 본부를 방문했을 때 둘은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빌리는 마가트에게 군의 전권을 넘기기로 한 태다. 마가트는 이 나라가 "빌리 타이버의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빌리는 그런 의식이 없다. 그는 자신을 "나라는 마레인과 엘디아인 모두의 것이고 자신은 그저 조타수일 뿐"이라 여기는 데다, 그 역할을 버거워하고 있다. 마가트는 "집안"이 무너질 위기지만 쓸만한 자들도 있고, 그들이 "집안에 생쥐가 들어왔다"는 정보를 전했다고 귀띔하는데.
          * 파르코는 자신을 "크루거"라 밝힌 남자와 매일 만나고 있다. 파르코가 가비를 이길 일을 말하며 "크루거의 덕"이라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크루거는 몇 번이나 편지 배달을 부탁한 자신이 감사할 일이라고 사양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야구공과 글러브를 받았는데, 자신도 그걸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때 의사가 다가오는 걸 보고 파르코는 자리를 뜨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군의 진료의로 일하는 "예거"씨였다. 크루거는 그를 한 눈에 알아본다. 노인이 같이 앉아도 되겠냐 묻자 크루거가 허락하고 둘은 통성명을 한다. 크루거는 "크루거"라는 이름을 그대로 댄다. 노인은 크루거가 기억실에 걸린 것이나, 파르코가 자주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대화 대를 찾아온 거란 말과는 달리, 파르코의 세한 내력에 대해서 읊기 시작한다. 파르코의 숙부가 엘디아 복권파 조직의 간부였다 숙청 당한 것, 연좌를 당하고 살아남은 가족들은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던 것. 콜트가 마레의 전사가 된 걸로 겨우 그라이스가에도 안정이 왔다는 설명 뒤에 아마 "짐승 거인"을 계승하는 문제 때문에 자신을 만나기 껄끄러울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진의는 이랬다.
          노인은 파르코와 크루거 사이의 거래도 알고 있었고 사실 크루거가 정이라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니 의심살 짓은 그만두고 어서 가족에게 돌아가라고 권하는데. 크루거는 떠보듯이 "혹시 가족일로 후회할 짓을 했냐"고 묻자, 그는 처를 찔린 표정이 된다. 그가 바로 [[그리샤 예거]]의 아버지이자 지크의 할아버지. [[엘런 예거]]에게도 할아버지가 된다. 그는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리샤가 여동생을 데리고 벽을 나서게 놔둔 일이나 아들에게 의사를 강요했던 일 등. 그 모든게 자신 탓이라고 자책하던 그는 마침내 오열하듯이 비명을 지른다. 그때 병원에서 진짜 의사가 달려나오는데, 사실 그도 이 병원의 환자였던 것이다. 크루거는 병실로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다가 가족에게서 받은 야구공을 허공 위로 던져 본다.
         == 세 ==
          파르코에게 처음으로 추월당하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파르코가 "널 위해서 갑옷을 계승하려 한다"고 사실 고백했지만 "나를 방해하는 걸로 나를 위한다는 거냐"고 반응하며 전혀 의미를 읽지 못한다. 이후 우도, 조피아와 수용구 안에서 준비 중인 무대 건설 현장을 보는데, 가비는 타이버가의 선전포고 선언가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도나 조피아가 회의적인 의견을 어필하자 "그럴 수록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인다. 전야제에선 급사로 차출되었다가 우도가 히즐국 부인에게 실수를 저지르는 걸 보고 식겁한다. 가비가 그 부인을 보고 동양의 히즐국 사람이라는걸 알아차린다. 다음날 축제에선 완전 별천지를 본 것처럼 즐거워한다. 요즘엔 "처음 있는 일" 뿐이라며, 앞으론 뭔가가 변할 것 같다는 말을 라이너에게 하고 동감을 받는다.
          에피소드 초반에 라이너가 참모들에게 의견을 피력하는 자리에 동석. 하지만 진행 중인 이야기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라이너가 조금 이하게 여길 정도. 그의
          축제 준비 현장에 나타나서 무대 건설 황 등을 체크. 이때 마가트가 나타나 무대는 순조롭냐고 묻자 순조롭고 "나에게 연출가에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너스레를 떤다. 마가트와 협력관계를 구축했으며 그가 군의 개혁 방안을 보고하자 만족하며 원수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마가트가 "이 나라는 당신의 것"이라 말하는데에는 난색을 표한다. 의외로 그는 나라는 누구의 것도 아닌 국민의 것, 마레인과 엘디아인 모두의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신은 단지 조타수인데 그것도 우연히 그 역할을 계승하게 된 남자라며 부담감을 피로한다. 은연중에 "선대 중 누구도 이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고 말하는데 타이버가에는 아직도 비밀이 많은 듯.
          역시나 그 정체는 엘런 예거. 파르코에겐 여전히 가족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명목으로 여러번 심부름을 시켰다. 개인적인 조언도 해준 모양인데 파르코는 그 덕분에 가비를 이겼다고 굉장히 고마워한다. 그런데 파르코와 만나는 자리에 야구공과 글러브를 가지고 나왔는데, 일단 가족에게서 받은 거라고 설명했다. 파르코가 돌아간 뒤에는 병원을 방문한 예거 박사와 만나는데, 첫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모습을 보인다. 예거박사가 파르코에게 심부름 시키는 거나 사실 그가 멀쩡하다는 걸 간파하고 가족에게 돌아가라 권하자 "혹시 가족에게 후회할 짓을 했냐"고 떠본다. 예대로 예거 박사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늘어놓으며 오열하게 되고, 착잡한 표정이 된다.
          그리샤 예거의 부친이자 지크 예거의 할아버지인 그 예거 박사. 병원을 방문했다가 크루거에게 동석하기를 청한다. 사실 그가 파르코에게 수한 심부름을 시키는 것과 실제론 병이 없는걸 눈치채고 경고하러 왔던 것. 그라이스가의 속사정이나 콜트가 짐승거인을 계승하게 된 이후 예거가 사람을 불편하게 대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소히 알고 있다. 자신이 대화하는 크루거가 실제론 손자라는걸 눈치채진 못한 듯 하다. 처음에는 자신을 군의이며 가끔 이 병원을 방문한다고 밝혔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크루거에게 "슬슬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경고하는데, 크루거가 "당신은 가족에게 후회할 만한 일을 했는가"라고 반문하자 태가 안 좋아진다. 그리샤가 여동생과 벽을 넘어간 날, 딸이 죽은 날로부터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토로하고 그리샤 가족의 운명도 다 자신이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기어이 비명을 지르며 정신이 무너지는데, 직후에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병실로 데려가는걸 보면 오래 전부터 입원 태였던 듯 하다. 그가 자신의 할아버지인걸 아는 크루거는 매우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 창작:무동군 . . . . 20회 일치
         설정 대한민국 강원도 산기슭(해안면과 서화면 사이로 추정됨)에 있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몇몇 기업이 계획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신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자동차는 물론 버스도 손쉽게 드나들 수 있으며, 한때 터널과 지하철까지 공사된 적이 있었으나 여러가지 착오[* 휴전선 바로 아래쪽이라 북한군이 땅굴을 파면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반대가 심했다.]로 인해 중단되었다. 현재는 도로와 터널을 통해 무동군으로 올라올 수 있다.
          '그림을 꾸미는 동네'라는 뜻. 그래서인지 조선 후기 때부터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고 그만큼 예술 작품들이 많이 제작 및 거래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대부분 이런저런 사건으로 사라졌지만, 남은 것들을 긁어모아 무동박물관을 경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옛날처럼 창작열을 불태우는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예술가촌이 있다.
         >(전략) 강원도의 설악산 근방에 예로부터 오동나무를 팔았다는 무동군이라 하는 동네가 있다. 사시 사철을 가리지 않고 안개가 자주 끼며, 여름이 되면 그 안개가 매우 짙어져 눈에 보이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농담삼아 무동군(無動郡)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안개가 자욱할 때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졌기에 사람들은 안개가 끼면 모두들 문을 닫아 걸고 돌아다니기를 삼갔다. 그러나 옅은 안개가 마을과 숲을 감싸는 모습이 어떤 면에선 도원경처럼 보였기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줄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이 수고치 않아도 저절로 재물이 모여드니 여러 모로 괴이하였다. 물론 사악한 자들도 안개를 틈타 마을 안으로 숨어들었기 때문에 요행과 불행이 함께 늘어났다. 동네 사람들이 이를 두려워하여 덕망 있는 선비에게 부탁해 소를 올리자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단속하였으나, 안개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실패하기가 일쑤였다.
         결국 현재는 화려했던 시절을 증명하는 수많은 폐건물만 남긴 채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러나 싼 물가와 조용한 환경, 그리고 '설명하기 묘한 분위기' 때문에 전국, 심지어 해외에서도 관광이나 거주를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간간히 있다. 이런 부분들은 주민들도 환했지만, 소위 폐허덕후나 밀덕후처럼 취향과 민폐를 오가는 사람들도 찾아오기 때문에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한다.
          * 구운카지노 - 현재 무동군에 마지막까지 업 중인 카지노들 중 하나. 이래뵈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락시설이지만, 개발 붐이 꺼짐에 따라 파리만 날리게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시설이 작고 변변찮았기 때문에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 [[창작:RECORD]] : 무동고등학교 화동아리. 처음에는 단순히 화에 대해 토론만 하다가 직접 촬에 나서기로 한다.
         언제부턴가 무동군의 징이 되어버린 것. 평소에는 그냥 흐릿하다 싶을 정도이고 생기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지만, 가끔가다 마치 '사람이 부른 것처럼' 아주 짙고 오랫동안 퍼져 있기도 한다. 외지인들은 지금은 없어진 소독차를 연하며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이를 체험하고 또 사진이나 으로 남기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현지인들 사이엔 하나의 '전설'같은 게 있는데, 바로 "짙은 안개가 끼면 집 밖으로 나가지 마라"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안개는 사실 '''과거와 현재의 원혼들'''이 나타난 것이라고 하며, 자주 나타나는 이유는 마을 사람들과 외지인들에게 원한을 풀기 위해서라고 한다. 평소엔 단순히 길을 가던 사람의 방향감각을 앗아가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특정 지역에서는 아예 그 사람을 어디론가 데려가 버린다는 것이다.
         다만 정확한 이유는 안개 때문에 길을 잃거나 실족하기 쉽기 때문에, 그저 '안전을 위해서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설이라기보단 하나의 캠페인처럼 받아들여져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외지인들이 위급한 황에 빠졌을 경우 등을 대비해 마을 사람들이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고, 통신기기가 발달하면서 어느새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이 전설을 믿고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은 얼마 없고 마을 사람들도 크게 귀담아듣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안개 전설의 출처가 찌라시에 가까운 동네 잡지였기 때문에 더욱 무시당했다.
          일본의 게임회사인 코나미에서 만든 게임 시리즈. 가끔 안개가 자욱하다는 기후와 그 때마다 마을의 모습이 변하는 것 같다는 지형 묘사 등 많은 부분에 향을 주었다. 사실 무동리의 원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을의 곳곳마다 존재하는 크고 작은 '비밀'에 향을 주었다. 이 중에는 건물 하나를 차지한 것도 있다.
          레메디 엔터테인먼트가 만든 게임. 사일런트 힐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의 분위기(안개나 어둠에 휩싸여 왜곡된 모습)에 향을 주었다.
          윤태호 작가의 만화. 무동리의 '탄생'에 향을 주었다.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20회 일치
         아무 문제 없다. '''계획은 완벽하다'''. 아니, 결점은 없다. 음……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수한 점은 없다는 게 어떨까? 뇌내에서 보내는 많고 많은 가능성과 가정 중에 가장 그럴듯하고 수한 구석이 없게 들린다. 응, 그렇고 말고.
         현관문 틈으로 발등을 밀어넣으면서 수만 번도 넘게 최악의 가능성이 떠올랐다가 구체적인 이 되기도 전에 사라진다. 그만큼 너무나 유혹적인 이름이다.
         예했듯이 집안의 구조는 우리 집과 별 차이가 없다. 좁은 현관은 거실 겸 응접실로 이어지고 그 뒤에 주방이 있다. 거실과 구분되는 벽 같은 건 없으므로 한 눈에 주방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나는 토트넘이 꽤 이른 시기에 당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집 안에서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실 쪽이 어수선하게 떨어진 물건들이 많은 데 비해 주방 쪽은 깨끗하다. 사용감을 느낄 만한 흔적이 없다. 그야 녀석들은 주방을 쓸 줄 모를 테니까. 반대로 토트넘이 오래 버텼다면 주방에 흔적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그 생존자가 이 놈의 반신을 잘라을 거란 얘기가 된다.'''
         나는 그제서야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들에 주목했다. 다양한 종류의 알약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찾다 보니 약봉지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근처 약국에서 제조한 것이었다. 몸살약이라고 적혀 있는데 제조한 날짜가…… 세이 이렇게 되기 얼마 전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이렇게 되고 나서 제조할 수 있을리 없으니까.
         몸살약이라……. 그런걸 제조해서 먹는 경우가 있을까? 물론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은 몸살약이라고 쓰여있긴 하되, 증이 꽤 특이했던게 아닐까? 누가 이런걸 먹고 있었을까?
         자 보자. 좀비 아포칼립스가 일어나기 바로 얼마 전에 옆집 아줌마는 수한 병으로 한 달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 집 아저씨만 수한 약을 지어다 먹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에 사단이 일어나고 우연히 옆집의 생존자가 탐색하러 왔는데…… 죽은지 오래된 녀석의 하반신이 덩그러니 있다.
         잠깐 중단하자. 얘기가 맞물리지 않는다. 물론 그 정체불명의 병의 정체가 좀비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설마 그런 증일 거라고는 몰랐을 아저씨는, 혹은 알았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는 아저씨는 아내는 숨긴 채로 어떻게든 되돌릴 방법을 고심했을 것이다. 약국 아저씨도 열광적인 조기축구회 멤버였던 걸 생각하면 처방전 없이 특제 몸살약을 제조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아니다. 그렇게 지내던 한달여 만에 결국 아줌마가 빠져나오고 안방에서 악몽 같은 일전 끝에 장롱으로 깔아뭉게는 걸로 결론이 났다면 아주 말이 안 되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체를 잘라낸 이유는? 그건 어떤 설명도 되지 않는다.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잘라냈다면 체는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체를 내버려둔 이유는? 말도 안 되는 부분이 오히려 늘어난다. 젠장, 정적인 추론이 되질 않는다. 사고를 되돌려라. 난 엿같은 '''다이너스티 키'''만 찾으면 된다고!
         최악의 기분으로 수색을 이어나갔다. 논리적 오류와 헛점 투성이인 추론은 이성적 판단과 관없이 강렬한 설득력으로 나를 괴롭혔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짜맞춘 이야기다. 지금도 나의 이성은 이 바보같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빈정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쳐낼 수가 없다. 뭐니뭐니해도……. '''아저씨는 토트넘이 되었다.''' 살아있는 채로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엉성한 부분이야 어쨌든 아저씨가 토트넘이 되어버린 결과로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다. 그가 아줌마를 깔아뭉게고 잘라내는 과정에서 처 하나 입지 않았을 거라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면 이미 "아줌마"라고 무의식적으로 부르고 있는 저것은 왜 반신이 사라진 걸까? 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점점 더 확인된 사실처럼 여겨지는 걸까?
         이런 정신태에서도 다이너스티 키를 찾기 위한 수색은 계속되었다. 나는 혹시라도 반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며 작은 방도 살펴봤고 화장실까지 열어놨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열쇠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 때려치고 돌아가 버릴까? 몸에 엉겨붙은 토트넘의 체액이 너무 역겹다. 돌아가서 샤워와 함께 오늘의 기억도 말끔히 흘려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 물론 식량도 챙기고.
         확인하고 싶다. 다이너스티의 키만큼 해답을 찾고 싶다. 하지만 키는 결국 발견되지 않겠지. 토트넘이 그걸 가지고 다니다 흘렸을 가능성을 무시한게 잘못이었다. 만약 내가 추론대로라면 그는 제일 먼저 병원으로 가고 싶었을 거고 자신의 애마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지. 하지만 예보다 감염은 빨랐고 그가 미처 차에 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차키를 손에 들고 어디로든 돌아다녔을 것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슬픔을 나누고 다녔겠지. 아내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20회 일치
         호기심이라지만 나는 무엇이 있을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 열고 있다. 화로 치면 어떻게 끝날지 다 알면서 굳이 보는 거랑 비슷하려나? 젠장 비유가 마음에 안 드네.
         황은 그렇게 극적이지 않았다. 문이 슬로우모션으로 열리면서 지옥의 아가리가 벌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한 여름에 하드나 꺼내 먹으려고 하는 것처럼 평범하게 열렸다. 그리고 내가 보려고 했던 내용물은 너무 일사물처럼 태연히 놓여져 있었다.
         '''아줌마.''' 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다. 이렇게 있으니까 '''평범한 시체'''같군. 바글거리는 파마머리는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반신에는…… 또 '''토트넘'''이냐? 이놈의 집구석은 토트넘 유니폼을 일복으로 입고 있었어? '''그만 좀 해라!''' 좌우간 이게 이 집 아줌마였다는건 분명한 사실이군.
         아줌마는 그렇게 기억에 남는 타입이 아니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아줌마니까. 내가 어디에서 살든 어떤 거리를 걷든 한 명 정도를 보일 정도로 흔한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도 냉동실에서 보기에되면 꽤나 인적이군.
         냉기는 없었다. 식재료를 담은 봉지가 녹아서 흐물흐물해졌다. 문이 열리면서 몇 가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철퍽하는 소리가 듣기에도 부패의 느낌이 났다. 다만 아줌마의 태는 체만 남은 걸 빼면 양호했다. 그야 부패의 기미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지만 매일 햇볕에 노출되었던 토트넘에 비하면야. 잘 됐군요 아줌마. 처음으로 아저씨보다 동안이란 말을 듣게 됐어요. 냉동실에서 들은 거긴 하지만.
         왜 바로 머리를 내려치지 않았냐는 의문이 남지만…… 그거야 '''자기 마누라잖아.''' 아줌마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는 아저씨가 머리를 날려야 끝난다는 걸 알리는 없었겠지. 그리고 다 끝낸 다음에…… 머리가 없는 시신을 수습하고 싶지도 않았을 거고. 그래서 생각해낸 절충안이 허리였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척추는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게 절단되는 충격은 당연히 뇌에도 향을 줬을 것이고, 원하는 결과로 이어졌겠지.
         결국 아저씨가 고를 수 있는 납골당은 여기 한 군데였다. 그렇게 아내를 보내고 나서 몸에 난 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것이고 다이너스티를 몰고 병원까지 가려고 했겠지. 이미 몸이 이해지기 시작했겠지만 설마 늦었을 거라곤 도 안 했고. 그렇게 차로 향하던 사이에…… 그는 '''토트넘'''이 되었다.
         나는 잠시 동안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부질없는 퍼즐 맞추기를 계속한 결과, 한때나마 원래는 인간이었고 이웃이었고, 내가 말을 주고 받던 대이었음이 떠오르고 말았다. 한 명은 내가 마무리를 지어줬는데 어떤 면으론 장례식을 치뤄준 셈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내는 지금 냉동실에서 썩은 고기가 되어 있는걸 발굴해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썩어빠진 인간관계'''가 돼버렸네
         이건 좋지 않다. 지금 나의 태에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생활에도 악향을 미칠 것이다. 가벼운 울렁증에서 이윽고 '''죄책감'''이라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감정으로 발전할 거라고, 그런 예감이 든다. 수수깨끼. 수수깨끼로 눈을 돌리자.
         아줌마가 절단된 장소는 안방이다. 그럼 아저씨는 어느 시점에 도끼를 갖다 놨을까? 왜 하필 여기에? 이렇게 수한 액체가 묻어 있는 도끼는, 설사 누가 보지 않더라도 꺼림직한 물건이다. 이런걸 주방처럼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은 이유가 뭘까?
         아줌마가 '''튀어 나왔다.''' 팔 밖에 없는 주제에! 내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누런 이빨이 '''목젖을 물어 뜯었다.''' 나는 뒤로 벌렁 넘어지면서 마치 아줌마와 얼싸안은 것처럼 돼버렸다. 씨발! 무슨 감격적인 이웃봉인가!
         '''결코 처없이 모든 일을 처리하진 못했을 테니까.'''
  • 최덕희 . . . . 20회 일치
         * [[검정 고무신]] (KBS) (1~2기) - '''이기'''
         * [[체포하겠어!]] ([[투니버스]]) - '''민호'''(<small>코바야카와 미유키</small>)
         * [[개미 (화)|개미]] (MOVIE) - 아즈테카
         * [[어린 왕자 (2015년 화)|어린 왕자]] - 엄마
         * [[발레리나 (2016년 화)|발레리나]] - 오데뜨
         ==== 화 ====
         * [[그랑블루 (화)|그랑 블루]] ([[KBS]]) - 조애나 ([[로재나 아켓]]) / 어린 작크
         * [[금지옥엽]] ([[KBS]]) - 임자 ([[원의]])
         * [[딜리버리 (화)|딜리버리]] ([[KBS]]) - 룰루 ([[오렐리 메리엘]])
         * [[사이코 4]] ([[KBS]])
         * [[세븐 (화)|세븐]] ([[KBS]]) - 트레이시 밀스 ([[귀네스 팰트로]])
         * [[심플 플랜 (화)|심플 플랜]] ([[KBS]]) - 사라 ([[브리짓 폰다]])
         * [[에드 우드 (화)|에드 우드]] ([[KBS]]) - 캐시 오하라 ([[퍼트리샤 아켓]])
         * [[컬러 퍼플 (화)|컬러 퍼플]] ([[KBS]]) - 소피아([[오프라 윈프리]])
         * [[타이타닉 (1997년 화)|타이타닉]] ([[KBS]]) - 로즈 도슨 ([[케이트 윈즐릿]])
         * [[패딩턴 (화)|패딩턴]]([[KBS]]) - 밀리센트([[니콜 키드먼]]) 2015.09.28
         *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KBS]]) - 일사([[레베카 퍼거슨]]) <ref>{{뉴스 인용|url=http://www.munh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7044|제목='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더빙 방…톰 크루즈·레베카 퍼거슨 성우는 누구?|출판사=문화뉴스|날짜=2017-01-30}}</ref>
         * [[EBS 라디오 문학관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EBS) -
         * [[I&I Reading Club]](튼튼어)
  • 최성관 (1925년) . . . . 20회 일치
         | 직업 = [[화 배우]], [[화 감독]], [[화 편집자]]
         '''최성관'''(崔聖寬. [[1925년]] [[9월 5일]] ~ [[1999년]] [[7월 19일]])은 [[대한민국]]의 [[화 배우]], [[화 감독]], [[화 편집자]]이다.
         [[1925년]] [[9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국학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선화 공주》를 감독하였다. 감독활동은 1959년 《남의 속도 모르고》, 1962년 <태양(太陽)을 등진 사람들>로 이어졌다. 김근자, 박귀희 주연의 <선화공주>는 흑백화로 일관되다시피한 당시에 16미리이기는 했으나 모처럼 천연색 필름으로 촬하여 큰 관심을 끌었다. 이는 홍성기 감독이 <여성의 일기>(1949)로 색채 화면을 선보인 이후 두 번째의 시도였다. 그는 배우로도 활동했다. [[1999년]] [[7월 19일]] 별세하였다.
         == 화작품 ==
         * 월남에서 돌아온 김사 (1971년)
         * [[황토 (화)|황토]] (1975년)
         * 비내리는 동교 (1986년)
         * [[기쁜 우리 젊은 날 (화)|기쁜 우리 젊은 날]] (1987년)
         * [[보릿고개 (화)|보릿고개]] (1988년) - 아버지
         * 처 (1989년)
         * 젊은 날의 초 (1991년) - 정산선생
         * [[태백산맥 (화)|태백산맥]] (1994년)
         [[분류:1925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화 편집가]][[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1999년 죽음]][[분류:국학대학 동문]]
  • 최승자 . . . . 20회 일치
         지금은 황이 많이 나아졌는지 2014년 퇴원해 [[경주시]]에 정착했다. 2016년 새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를 발표했다.
         1980년대에서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인으로서 황지우, 이성복과 함께 아주 큰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2010년 대산문학을 수하였다.
         한바탕 난장이 훓고 지나간 후의 권태와 념에 대한 뒤돌아봄,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과 허무를 담은 시로, 우리나라 현대시인들 중에서는 아주 드물게 인기 작가가 됐다. 작품세계가 끔찍할 정도로 어둡고, 자기 과거에 대한 노출이 적나라하다. 비극적 사랑에 의한 슬픔 혹은 인생의 덧없음에 의한 공허감, 자기연민 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이를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찢어발기며 냉소한다. 그런데 그러한 어둠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게 반전이다.
         ('자화' 전문)
         하늘에서 푸른 물의 처가 내린다.
         꽃. 처. 스물 넷.
         ('비 꽃 처' 전문)
         내 사산(死産)의 침에 낮게 가라앉아,
         내 의 게는 머릿속 개펄을 가로지르고
         그해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우리의 노쇠한 혈관을 타고 그리움의 피는 흘렀다. 그리움의 어머니는 마른 강줄기, 술과 불이 우리를 불렀다. 향유 고래 울음 소리 같은 밤 기적이 울려 퍼지고 개처럼 우리는 제기동 빈 거리를 헤맸다. 눈알을 한없이 굴리면서 꿈속에서도 행진해 나갔다. 때로 골목마다에서 진짜 개들이 기총소사하듯 짖어대곤 했다. [...]
         어느덧 방학이 오고 잠이 오고 깊은 눈이 왔을 때 제기동 거리는 “미안해, 사랑해”라는 말로 진흙탕을 이루었고 [...] 그때마다 마른번개 사이로 그리움의 어머니는 야윈 팔을 치켜들고 나직이 말씀하셨다. “세의 아들아 내 손이 비었구나, 너희에게 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나는 이 지에 흰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에 떨어지면
         지금 흔들리는 이파리는 원히 흔들린다.
         그것은 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더 이 흐르지 않는 바다에 눕는다.
         원히 눈먼 항구.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20회 일치
         플레이어는 한 노인이 들려주는 서부 이야기 속 [[총잡이]] "사일러스 그리브스"가 되어 [[무법자]]들을 대로 총격전을 벌인다.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쏴 맞출수록 경험치가 오른다. 경험치가 일정량 오르면 레벨이 오른다. 레벨이 오르면 플레이어의 능력을 향시킬 수 있는 스킬을 하나 해금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적을 죽일수록 화면 왼쪽 위에 위치한 리볼버 모양 게이지가 차오른다. 이 게이지를 소모해 집중 태에 들어갈 수 있다.
         집중 태에 들어가면 시간이 느려지며, 적이 붉게 빛난다.
         죽음의 감각은 플레이어의 체력이 없어 최후의 한발로 죽을 황일 때 강제적으로 발동된다. 죽음의 감각이 발동 되면 시간이 느려지는 동시에 몸을 좌우로 움직여 총알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총알을 피하는데 성공하면 모든 체력이 회복된다.
         사다리를 타다가 공격당했다던가, 개틀링에 공격당했다던가 하는 등, 식적으로 총알을 피할 수 없는 황에서는 발동되지 않는다. 또한 죽음의 감각을 발동한 후 죽어도 게이지가 다시 차있거나 하지도 않는다.
         마주본 태에서 서로 총을 뽑아 쏘는 그거. 보통 1 Vs. 1 결투지만 1 Vs. 2 결투나 [[1 Vs. 1 Vs. 1 결투]]도 있다.
          * 집중은 사일러스가 대에게 집중하는 정도다. 대의 얼굴에 커서를 두면 집중 수치가 오른다. 커서는 계속 하좌우로 흔들린다.
         총을 뽑는데 성공했다면 대를 쏘아 승리하는 일이 남았다. 이때, 몸을 좌우로 움직여 대의 총알을 피할 수 있다. 대는 피하는 일이 없으므로 안심하자.
         심장 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총을 뽑을 수 있지만, 명예로운 결투로 기록되려면 대가 총을 뽑은 직후 총을 뽑아야한다.
         1910년, [[아칸소]] 주 애빌린에 위치한 한 술집에 판초를 입은 노인이 들어온다. 그 노인은 자신이 전설적인 현금 사냥꾼 "사일러스 그리브즈"라고 주장하며 사실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게임의 화자. 자신을 전설적인 현금사냥꾼 사일러스 그리브스라 주장하는 노인. 자신이 겪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게임의 주인공. 플레이어. 전설적인 현금사냥꾼. 모종의 사유로 로스코 "밥" 브라이언트, 조니 링고, 짐 리드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 제임스 거 갱
          권총 사이즈로 짧게 자른 산탄총. 근거리에서 좋다고 한다. 버려버려.
  • 하동부대부인 . . . . 20회 일치
         |웹사이트 =
         '''하동부대부인 정씨'''(河東府大夫人 鄭氏, [[1522년]] [[9월 23일]] - [[1567년]] [[6월 24일]])는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정인지]]의 후손이며 [[조선]] 제14대 [[선조]]의 사친이자 [[덕흥대원군]]의 부인이다. [[조선 중종|중종]]의 서자 [[덕흥군]]과 가례를 올려 군부인이 되었으며, [[1567년]] 셋째 아들 [[조선 선조|선조]] 즉위 직전에 사망하였다. 사후 임금의 사가 생모로서 '''하동부부인'''으로 추증됐으나 정의의 오류로 인해 '''하동부대부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본관은 [[하동 정씨|하동]](河東)이다.
         하동부대부인은 의정 하동부원군 [[정인지]]의 증손녀이며, 판중추부사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 [[정세호]]의 딸로 1522년(중종 17) [[9월 23일(음력 9월 4일)]]에 태어났다. [[조선 중종|중종]]의 서자<ref>창빈 안씨 소생으로 중종의 서9남</ref> [[덕흥대원군|덕흥군]]과 가례를 올리고 하동군부인(河東郡夫人)으로 제수되었다. 자녀로는 3남 1녀를 두었고, [[1567년]](명종 22) [[6월 24일(음력 5월 18일)]] 향년 46세 일기로 별세하니 [[왕비]] 부모를 장사지내는 예로 장사지냈으며, 같은 해 [[8월 9일]] 신주를 대원군 옆 이실(異室)에 모셨다.
         셋째 아들 [[조선 선조|하성군]](河城君) 균(鈞)이 [[조선 명종|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그 뒤를 이어 [[조선 선조|선조]]로 즉위하였다. 선조는 생부와 생모를 [[1569년]](선조 2)에 송(宋)나라 [[북송 종|종]](英宗)의 생부 [[복안의황|복왕]](濮王)을 [[추존]]하는 고사(故事)를 따라 생부 [[덕흥군]]을 추숭하여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으로 하고, 생모 [[하동군부인]]은 하동부부인(河東府夫人)으로 추존하였다.
         [[조선 명종|명종]] 부부의 양자로 입적하여 왕으로 즉위한 [[조선 선조|선조]]는 [[조선 예종|예종]]부부의 양자로 입적하여 즉위하였다가 즉위 직후 스스로를 파양하고 친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한 [[조선 성종|성종]]과는 달리 강력한 배경도 없었으며 생부 [[덕흥군]]이 후궁 소생 왕자에 불과하여 부모를 왕과 왕후로 격할 수 없었다. 이에 절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작위가 공신 정1품의 작위로 왕비의 아버지의 작위로도 쓰여진 부원군(府院君)의 부(府)를 대(大)로 교체한 대원군(大院君)이다. [[조선 선조|선조]]는 생부 덕흥군을 조선 최초의 대원군인 [[덕흥대원군]]으로 추증하였고, 생모 군부인(郡夫人) 정씨는 외명부 소속 왕실 여성의 최고 품작인 부부인으로 추증하였다.
         {{인용문|중종 공희 대왕의 손자이며,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岧)의 셋째 아드님이다. 어머니은 하동 부부인 정씨(河東府夫人鄭氏)로 증 의정 정세호(鄭世虎)의 따님이다.|《조선왕조실록》선조 총서}}
         하동부부인이 하동부대부인으로 오인된 것은 [[조선 조|조]] 즉위년에 [[조선 조|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추보를 논의할 때 예조판서 [[이진검]]이 "선조(宣祖) 때에 덕흥군(德興君)을 높여서 ‘대원군(大院君)’이라고 하였고, 군부인(群夫人)을 ‘부대부인(府大夫人)’이라고 하였다."고 잘못 진달하였기 때문인데<ref>《조선왕조실록》조 1권, 즉위년(1724 갑진 / 청 옹정(雍正) 2년) 9월 21일(신유) 2번째기사</ref>, 사실 이는 [[이진검]]의 잘못이라기보다 [[조선 경종|경종]]2년에 부제학 이명헌이 [[조선 경종|경종]]의 사친인 [[희빈 장씨]]를 추보할 것을 소하며 "선조조(宣祖朝)에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을 추숭(追崇)하였을 때에 선정신(先正臣) 이황(李滉)의 의논을 인용하여, 빈(嬪)자 위에 특별히 하나의 대(大)자를 더하고, 이어서 본관(本貫)을 취하여 모부대빈(某府大嬪)으로 삼을 것"을 시초로 한다.<ref>《조선왕조실록》경종 9권, 2년(1722 임인 / 청 강희(康熙) 61년) 7월 17일(경자) 1번째기사</ref> 당시 동석했던 [[이진검]]이 이명헌의 말을 잘못 기억하여 조 즉위년에 잘못 진달하였을 가능성도 없진 않으나 예조판서인 [[이진검]]이 사실을 전혀 확인하지 않고 진달하였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만큼 [[조선 경종|경종]]의 각별한 충신이었던 [[이진검]]이 부대빈(府大嬪) 작호의 유지를 위해 고의적으로 잘못 진달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로 인해 이후 정씨의 작위는 다시 본래의 작호인 하동부부인으로 정정되어 불리기도 하다가 하동부대부인·하동부인·대원군부인으로 섞여서 일컬어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아들의 지위에 따라 어머니의 작호에 대(大)를 더할 수 있다는 세종14년 때의 법령과 이미 부대부인의 작호를 쓴 여성이 있었던 전례에 의거해 마땅히 부대부인으로 삼았어야 할 정씨를 부부인으로 삼은 것은 잘못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탓으로 짐작된다.<ref>《승정원일기》[http://sjw.history.go.kr/inspection/search_result_list.jsp?oflag=0&M=0&query=%E6%B2%B3%E6%9D%B1%E5%BA%9C%E5%A4%AB%E4%BA%BA&set_id=-1&selK=1&selT=1&query_im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B2%B3%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9D%B1%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BA%9C%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A4%AB%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4%BA%BA%3C%2Fspan%3E 하동부부인], [http://sjw.history.go.kr/inspection/search_result_list.jsp?oflag=0&M=0&query=%E6%B2%B3%E6%9D%B1%E5%BA%9C%E5%A4%A7%E5%A4%AB%E4%BA%BA&set_id=596421&selK=1&selT=1&query_im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B2%B3%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9D%B1%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BA%9C%E5%A4%A7%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A4%AB%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4%BA%BA%3C%2Fspan%3E 하동부대부인], [http://sjw.history.go.kr/inspection/insp_result_s.jsp?M=0&oflag=0&set_id=596427&selK=1&selT=1&query=%E5%A4%A7%E9%99%A2%E5%90%9B%E5%A4%AB%E4%BA%BA&query_Result=&sinfo=&list_per_page=10&chkID=0&opAll=0&opP=0&opA=0&opB=0&opR=0&opT=0&opG=0&opW=0&qAll=&qP=&qA=&qB=&qR=&qT=&qG=&qW=&idS=&idE=&tc=2&pc=2&cp=1&startpos=0&pos=0 대원군부인]</ref><ref>《조선왕조실록》조 117권, 47년(1771 신묘 / 청 건륭(乾隆) 36년) 8월 9일(정축) 1번째기사 中 "그 사체에 있어서 창빈(昌嬪)·대원군(大院君)·하동 부인(河東夫人)을 대진한 후에 어떻게 합제(合祭)할 수 있겠는가?"</ref>
         * 조부 : 증 좌찬성 정조(贈 左贊成 鄭尙祖, 1459~1491)
         ** '''아버지''' : 이조판서 증 의정 하동부원군 [[정세호]](吏曹判書 贈 領議政 河東府院君 鄭世虎, 1486~1563)
         **** 며느리 : 의정 [[강녕군]] [[홍섬]](江寧君 洪暹, 1504~1585)의 딸 [[남양군부인]] 남양 홍씨(南陽郡夫人 南陽 洪氏, 1544~1569)
         ***** 손자 : [[창대군]] 의(永昌大君 李㼁, 1606~1614)
  • 하이큐/262화 . . . . 20회 일치
          * 하지만 [[이나리자키 고교]]를 맞이한 봄고 대회 2회전에서는 불운이 잇따른데다 대팀 에이스 [[스나 린타로]]에게 발목이 잡히며 좋은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
          * 카라스노의 세트 포인트 황. 타나카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회심의 공격을 시도하나 이마저 아깝게 사이드 라인을 벗어나며 실점하고 만다.
          * 오지츠 중학교 출신으로 막 [[카라스노 고교]]에 입학한 [[타나카 류노스케]]는 인부터가 존재감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1학년인데도 반삭 금발. 제법 험악한 인에 목소리마저 우렁차서 자기소개 시간엔 옆의 [[엔노시타 치카라]]나 [[나리타 카즈히토]]가 눈에 안 띌 정도였다. 당시 2학년이었던 [[사와무라 다이치]], [[아즈마네 아사히]], [[스가와라 코시]]는 이 신입에 강한 인을 받은 듯 했다. 아즈마네는 거의 겁 먹었고 스가와라는 언제나처럼 속을 알기 힘들었다. 그리고 사와무라는 간단하게 표현했다.
          냉정히 말해 카라스노 배구부 신입생 타나카는 썩 좋은 첫인을 주진 못했다.
          타나카가 봤을 때, 당시의 카라스노도 썩 나쁘지 않았다. 3학년에 히사 중학교 출신의 "쿠로카와"가 있었고 사이코다이 중학교 출신인 아즈마네는 꽤 인지도가 있었다. 둘 다 대회에서도 얼굴을 보였던 스파이커들. 동년배 중에선 [[니시노야 유]]처럼 두각을 드러낸 유망주도 있었다. 면면만 보면 강호를 칭해도 괜찮은 학교였다.
          그런 타나카가 보기에도 카라스노의 경기성적은 좋지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빴다. 인근 학교와 연습시합에서도 번번히 패했다. 3학년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은퇴했다. 남겨진 입장이 된 타나카는 "수수한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말로 심정을 표현했다. 이 시기 카라스노는 전용 체육관은 커녕 체육관을 쓰게나 해주면 감사해야 하는 처지였다. 타나카는 이런 대우에 반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주장을 물려받은 사와무라는 "작년보단 낫다"거나 "밖에서도 할 수 있는게 있다"면서 말을 돌렸다. 타나카에겐 "느슨"하게 보였다.
          * 얼마 뒤에도 또 졌다. 오기미나미 고교였다. 꽤 큰 차이로 져서 마지막 세트는 19 대 25로 내줬다. 이땐 이미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돌아가던 길, 오기미나미 고교 선수들이 떠드는 날이 타나카의 귀를 괴롭혔다. 다음주에도 카라스노랑 연습시합한다는 대화였는데, 그들은 대가 카라스노여서 실망이라는 반응이었다.
          명치를 찍어누르는 세 문장. 타나카는 곧바로 보복을 결심했다. 사와무라가 일찌감치 눈치챘다. 타나카는 외모 만큼이나 살벌하게 "인적 드문 곳에서 퍽하고" 하는 보복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와무라가 좋은 말로 타일렀다. 대해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실제로 오늘 우리팀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말들이었다. 타나카가 사와무라를 따라가며 따지듯 물었다. 저렇게 얕보이는게 정말 괜찮은 일이냐고, 좀 아닌게 아니냐고.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지만, 타나카가 들은 대답은 예을 한참 벗어났다.
          다시 사와무라의 웃는 얼굴은 돌아왔지만 타나카가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스가와라와 아즈마네도 거든다. 스가와라가 지는건 일 다반사니 익숙해지라고, 아즈마네가 공식전에서도 이러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사와무라도 무슨 얘긴지 알았다. 셋이 입을 모아 말했다.
          아즈마네의 서브. 중앙의 아카기에게. 무난하게 받아서 [[미야 아츠무]]에게 보낸다. 그리고 아츠무가 세트업, 그러나 실수다. 괴짜 속공을 노렸지만 [[미야 오사무]]의 위치보다 한참 앞으로 향하는 공. 이나리자키 벤치에서 "멍청아!"라는 일침이 튀어나온다. 그래도 오사무가 어떻게든 커버한다. 아슬아슬하게 네트를 넘겼다. 하지만 그 뿐이다. 카라스노에겐 완벽한 찬스볼. [[히바리다 후키]] 감독과 동행한 스텝은 대의 세트 포인트에서 익숙하지도 않은 괴짜 속공을 또 시도했다는 점에 황당해한다. 히바리다 감독은 그저 웃음을 터뜨리며 "하고 싶은거 다 해라"라고 말했다.
          * 공이 크게 떠서 다시 이나리자키 진으로. 아츠무가 다시 세트업. 이번엔 실수하지 않는다. 공은 린타로에게. C속공. 이번에는 카라스노의 블록도 빨랐다. 타나카가 일찌감치 달려온다. 적절한 리드블록. 츠키시마도 코트 밖의 히나타도 직감할 수 있었다. 막는다. 블록 두 장이 여유롭게 뛰어오른다. 결과는 실패. 공에 스치지도 못했다. 타나카와 함께 블록을 뛴 츠키시마 케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코스를 틀어막았다. 공이 블록을 통과한 것처럼 뻗아나가 우측 후방의 [[사와무라 다이치]]를 노렸다. 사실 스나 린타로가 노린 건 정확히 그 위치는 아니었다. "힘이 너무 들어가 버렷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공은 블록을 돌파했고 카라스노 진으로 돌아왔다. 사와무라가 엉겁결에 리시브한 바람에 공이 불안하게 떠올랐다. 아즈마네가 사이드라인 밖에서 걷어올리면서 타나카에게 잇는다.
          * 아츠무가 역전을 면한 대가로, 타나카가 독박을 쓴다. 그의 심정이 누구보다 공감되는지 [[보쿠토 코타로]]가 얼굴을 감싸며 탄식했다. [[아카아시 케이지]]도 모르지 않았다. 방금 플레이는 딱히 무리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오늘 타나카는 실수를 많이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나리자키의 집요한 블록과 점수를 벌어야 한다는 부담은 어태커에겐 치명적인 향을 준다. 게다가 자신을 노리는 서브를 계속 받아왔으니 그 스트레스는 을 초월할 것. 아카아시가 짐작하는 바를, 보쿠토가 한 줄로 요약했다.
  • 하주석 . . . . 20회 일치
         |문 표기 = Ha Joo-Suk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2014년 ~ 2015년)
         [[덕수중학교]]를 졸업하고 [[신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신일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 재능을 보이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제64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소속 팀을 12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었고, 16타수 11안타, 타율 0.688을 기록하여 타격을 수했다.<ref>[http://news.donga.com/3//20090527/8736794/1 신일고, 12년 만에 청룡기 야구 우승] 《동아일보》, 2009년 9월 22일</ref> 그 해 참가한 전국 대회에서 총 58타수 25안타, 타율 0.431을 기록하면서 [[이민 타격]]을 수했다.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201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라운드 1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었다.
         ==[[무 야구단]] 시절==
         [[2013년]] [[12월 23일]] [[육군훈련소]]에 입소하여 [[2015년]]까지 [[무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ranking_news&mod=read&ranking_type=popular_day&date=&rank_id=&office_id=109&article_id=0002660802 정일-고원준 등 19명, 무 신병 합격] - OSEN</ref>
         제대를 앞두고 [[타이완]] [[타이중 시]]에서 열린 [[201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제29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처음 성인 대표팀에 발탁된 이 대회에서 중심 타자로서의 활약이 기대되었으나 대회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여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4차전 일본전에서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1점차로 지고 있던 9회말에 [[윤환]] 감독에 의해 [[오선진]]의 대타로 출전해 대 투수 [[콘도 히로시]]를 대로 끝내기 투런 홈런을 기록하였다. 일본전 승리와 함께 대한민국은 드림팀 2기가 활약했던 1999년 제 20회 대회 이후 16년 만에 아시아 정 자리를 되찾았으며, 그는 이 홈런 한 방으로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강남초등학교 동문]][[분류:덕수중학교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이민 타격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무 야구단 선수]]
  • 한성식 . . . . 20회 일치
         {{화인 정보
         |직업 = 연극배우, 화배우, 뮤지컬 배우,<br />텔레비전 연기자
         |웹사이트 = {{트위터|chitoss9}}
         === 화 ===
         * [[1997년]] 《[[지만가]]》 ... 비디오가게 주인 역
         * [[1997년]] 《[[나쁜 화]]》 ... 사까시맨 역
         * [[1998년]] 《[[남자이야기 (화)|남자이야기]]》 ... 취객 역
         * [[2003년]] 《[[와일드카드 (화)|와일드 카드]]》 ... 중국집 배달원 역
         * [[2003년]] 《[[남남북녀 (2003년 화)|남남북녀]]》 ... 사회자 역
         * [[2004년]] 《[[내 사랑 싸가지 (화)|내사랑 싸가지]]》 ... 담임 역
         * [[2008년]] 《[[신기전 (화)|신기전]]》 ... 홍만 집사 역
         * [[2012년]] 《[[페이스 메이커 (화)|페이스 메이커]]》 ... 한 감독 역
         * [[2014년]] 《[[열애 (2014년 화)|열애]]》 ... 약사 역
         * [[2014년]] 《[[환 (화)|환]]》 ... 김 의사 역
         * [[2015년]] 《[[연애의 맛]]》 ... 김철 역
         * [[2015년]] 《[[음란한 가족]]》 ... 구 역
         * [[2016년]] 《[[트릭 (2016년 화)|트릭]]》 ... 해관 역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19회 일치
         K리그는 1983년 발족한 이래 늘 가지고 있던 고민이 흥행이었고, 이 흥행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각종 리그운을 포함한 제도적인 변경을 꾸준히 시도해 왔었다. 과거 [[리그컵(K리그)]]시절에 있었던 규정변경은 물론이고, K리그도 리그운이 최초의 풀리그체제에서 스플릿제도로의 변화까지 있었던 운변경점을 봐도 K리그의 흥행을 고려한 변경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변경은 여타 스포츠 종목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던 대회운방식과 동일하였기에 딱히 큰 문제는 되지 않았으나[* 가령 전/후반기 통합우승결정전이나 플레이오프는 미국에 향을 받은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행하고 있다. 이는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에서도 그대로 적용하여 행하고 있을 정도.] 문제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행하고 있지 않는 '''다득점을 승점 다음가는 순위결정 요인'''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 세 ==
         K리그 역사를 살펴보면 승점이 같아 결정적인 향을 받은 사례가 매우 드물 뿐더러 결국에는 매 경기 승점 3점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비를 신경쓰지 않고 경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K리그 말고 유럽의 리그만 봐도 리그 1위팀은 승점을 잘 쌓기 위해 공격도 공격이지만 승리를 굳히기 위해 수비를 신경쓰고, 이에 따라 대량실점을 막고자 노력한다. 이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적용한다 해도 무의미한 조항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만약 이로 인해 순위가 갈리더라도 스플릿 라운드의 A/B여부를 가른다거나 승강에 직접적인 향을 줄 만큼 결정적인 요인이 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발표에 따르면 "공격축구"가 관중을 끌어모은다는 판단 하에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22&aid=0000168424|"타 리그와 비교해도 골 수가 적으니 관중이 잘 안 모이고 흥행이 되지 않는다"]며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웃긴 이야기는 여기에서 예시로 든 분데스리가와 J리그를 보면 골 수와 관중 사이에는 의미있는 데이터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주장대로, 공격축구를 통해 골이 많이 터질수록 흥행이 이루어진다면 골이 많이 나온 시즌은 관중이 많아야 정일 것이다. 그러나,
         [* 자료출처: [http://www.bundesliga.com/en/stats/history/|독일 분데스리가 문페이지]]
         분데스리가의 10-11시즌부터 14-15시즌까지 과거 5시즌동안의 평균 골 수와 골당 관중 수의 변화추이를 확인하면 위의 링크한 기사와는 달리 연맹의 주장은 말도 안된다는 걸 알 수 있다. 13-14시즌을 제외하면 '''골 수가 줄어들었는데 전년보다 관중이 늘어나고, 골이 늘었는데 관중이 직전년도보다 줄어드는''' 황이며, 이 13시즌조차도 증감폭에 의미를 두기 어렵다. 14-15시즌은 골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평균관중은 수십명 수준의 변화폭만 보여 여기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황.[* 그마저도 그래프를 그려보면 반대방향을 그린다.] J리그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2012시즌부터 2015시즌까지는 골이 얼마가 되었든지간에 평균관중은 17000명에서 500여명 정도의 변화밖에 없고, 오히려 2011시즌에는 경기당 2.8골이 넘었지만 평균관중은 15000명 수준이었던 것이 2012시즌에 2.8골 미만으로 줄어들었음에도 17000명까지 평균관중이 증가한 것은 연맹의 주장이 뭘 어떻게 봐도 틀렸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K리그도 분데스리가와 마찬가지로 2012시즌부터 2015시즌까지 오히려 '''골 수는 줄었는데 관중이 늘고, 골 수가 늘었는데 관중이 줄어드는''' 황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연맹은 그 어떤 명확한 해답을 내 놓을 수 없는 황이다. 근거라고 내 놓은 분데스리가와 J리그 모두 연맹의 주장을 뒷받침할 사례를 제시할 수 없다. 한마디로 2016년 한국프로축구연맹 활동중에 최대의 뻘짓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
         K리그가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전두환 시절의 3S정책과 맞닿아 있던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으나, 박정희 시절부터 내려온 스포츠 지원정책의 기치는 '''"(저 북괴놈들에게 절대 꿇리지 않는) 국제적인 스포츠 업적을 거두어 세계만방에 걸친 명성을 쌓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국제 스포츠계에서 업적을 쌓는다는 명분이 대한축구협회 시절에 세운 기치이며 이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설립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프로축구협회 정관: 제1조 목적, 이 법인은 한국프로축구의 수준향과 저변확대는 물론 국제교류 등 축구를 통해 국민의 건 전한 여가 선용을 도모하고, 스포츠 활성화와 지역사회를 비롯한 '''국가 발전 및 국제친선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국제축구의 흐름과는 명백히 다른 형태로 운하는 부분에서 이 사항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승자승 원칙]]을 우선 적용한다면 AFC 아시안 컵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그 명분을 가져올 수도 있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사례처럼 "양학을 막고 라이벌전의 관심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흥행목표를 가져오면 그나마 할 말이라도 있겠지만... 기 공격축구 만능론에 대한 비판처럼 오히려 K리그는 골 수와 관중의 증가추이가 역방향 관계를 보이고 있는 황에선 연맹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MC메타 . . . . 19회 일치
         == 세 ==
         예명인 메타는 원래 은유를 의미하는 단어 Metaphor를 줄인 뜻이었다가, 2000년부터는 항 새로움을 추구하겠단 뜻의 '매타(每他, 매양 매 다를 타)'로 바꾸었다고 한다. 가리온이 한국어로만 랩을 하겠다는 방향성을 잡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어로 예명을 지었던 것이라고.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라이브에서 박자를 약간씩 저는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2집 이후 곡들중엔 목에 힘주고 숨쉴 틈도 없이 몇마디를 불러야 하는 곡들이 좀 있어서 그런 듯 하다(특히, 2집 최고의 인기곡이던 [[순위]]가 그렇다). 힘빼고 부르는 곡들은 굉장히 라이브를 잘한다.
         실제 한국힙합씬에서 MC메타가 끼친 향력은 대단하다. [[타이거 JK]]는 가장 존경하는 래퍼로 mc메타를 꼽고 있으며, [[허클베리피]]는 mc메타의 프리스타일 을 보고 래퍼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더 콰이엇]]역시 엄청난 MC 메타의 추종자(?)로, 그가 속해 있던 레이블 소울컴퍼니의 멤버들 역시 메타를 정신적 지주로 여겼다.
         2015년 여성 래퍼 최삼과 같이 뉴스타파 설파에 출연하여 힙합씬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문화를 꼬집는 '쇼미더힙합'을 불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P_UN-Zrj8&feature=youtu.be&app=desktop|]] 여기서 블랙넛을 간접적으로 디스한다. 이 곡은 이후 [[블랙넛]]이 인디고 차일드에서 그를 디스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11월 17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와 박근혜정권을 비판하는 벙개곡을 냈다. [[http://board.rhythmer.net/src/go.php?n=17340&m=view&s=news|MC 메타 - 퇴진의 순위와 도둑놈패]][* 순위와 '불한당가' mc 메타 파트의 비트를 썼다.]
          * 술자리에서 친한 사람들을 엄청 때린다고 한다. 빡센 사투리와 함께 --[[정수|마 시x로마 이게 힙합이나 아나?]]--. 근데 [[키비]]는 안 때린다 한다.
         그리고 굉장히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무까끼하이[* 대구 사투리, 대구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희귀한 사투리라 한다. 뜻은 뭔가 고지식하고 뭔가 무식해 보이는 어떤 사람 혹은 황이라 한다.]처럼 [[경도 사투리]]로 랩을 한다든지 심지어는 다큐멘터리 <사투리의 눈물>에서는 21분간 랩으로 사투리 나레이션을 시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재즈와 힙합을 합친 개념인 재즈합이라는 프로젝트 밴드 활동도 하고, 프로듀서 [[돕플라밍고]]의 'Hellevator'에서도 새 스타일을 시도 하였고, 2016년 최근에 발표된 Heritage 싱글에서는 끝말잇기 랩을 시도하기도 했다.
         프리스타일에서도 일가견이 있다. [[허클베리피]]가 티비에서 MC 메타의 프리스타일을 보고 래퍼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도 한다. [* 여담으로 [[마이크 스웨거]]에서 한 헉피의 프리스타일을 보고 [[올티]]가 래퍼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실제 마스터플랜 클럽 시절 당시, 예정공연이 전부 끝나고 MC 메타의 프리스타일 타임이 관객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고 한다. 2014년 총 세 편의 [[싸이퍼]]를 기획하고 참여하기도 하였다.--[[치타]] 학살-- 그리고 프리스타일을 할 때마다 '연결고리'를 많이 외치기로 유명하다. [[https://youtu.be/r4h1cHTOCJI|증거자료]] 일리네어레코즈에서 본인이 피쳐링한 '연결고리'라는 곡의 유래도 엄밀히 따지면 저 멘트이다.
         명곡으론 가리온 1집의 '나이테'나 엄청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가리온 2집의 '12월 16일', [[순위]] 등이 있다. 명가사에는 '소문의 거리'에서 '그저 우리는 우리를 부리는 무리라 불리는 돌부리를 뚫을 뿌리를 내리는 것 뿐임을' 라인. [[에픽하이]] 4집 참여곡 Still Life에서 '너는 날 수 없는 것이 아닌 날지 않는 것뿐/ 너가 날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오직 너뿐' 수많은 [[레퍼런스]]를 낳은 '옛이야기'에 '홍대에서 신촌까지 깔아놓은 힙합 리듬' 등이 있다.
         VA - 2000 대한민국/ 비(飛上)
         채 - Mr.Park/ Mr.Park (feat. MC Meta)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상업 . . . . 19회 일치
         [[Victoria II]]의 기술과 발명 중 업 탭에 있는 것들을 정리한 페이지.
         === Business Banks(업 은행) ===
         == Economic Thought and Critique(경제 사과 비평) ==
          * 외교 향력 +10%
          * 외교 향력 +10%
          * 외교 향력 +20%
          * Trademark(표)
          * 외교 향력 +20%
          * 외교 향력 +20%
          * 외교 향력 +20%
          * 공장 품 생산 효율 수준 +1%
          * 공장 품 생산 효율 수준 +1%
         === Scientific Management(과학적 경) ===
          * 공장 품 생산 효율 수준 +1%
          * 공장 품 생산 효율 수준 +1%
         === Management Strategy(경 전략) ===
          * 공장 품 생산 효율 수준 +1%
          * 공장 품 생산 효율 수준 +1%
          * Scientific Management(과학적 경)
  • 광주 FC . . . . 19회 일치
         2010년 12월 16일에 창단한 구단[* 창단식 기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승인은 10월에 이미 나 있던 태였다.]으로 2011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프로구단이다. K리그의 16번째 구단이며, 순서 6번째 [[시민구단]]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두고 활동한다. 정식명칭은 "광주시민프로축구단".
         문제는 지은 뒤, 활용방안에 대해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광주광역시의회에서는 경기장의 1년 유지비가 40억 이이라고 보고, 이 경기장 유지비를 논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활용방안이 나오게 된다.
         일단 종합운동장으로 활용하는 건, 사용처를 바꾸기 위해 또 추가로 목돈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안건은 사실 폐기가 되고, 프로축구단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가장 유력했던 방법은 경기장을 짓기 위해 당시 금호건설을 포함한 지역기업에 축구단 창단을 종용하는 일이었으나 이 역시 1년 운비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게 되어 전남 드래곤즈를 광주에 공동연고지로 제의하였다. 그러나 이 방법까지도 최종적으로 좌절된다.
         이에 당시 [[무 축구단]]이 프로화를 고려하고, 이걸 감지한 각 지역은 무 축구단을 유치하고자 하였는데 여기에 광주광역시도 유치흐름에 참가하여 광주 무 불사조가 탄생하게 된다. 단, 여기에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한시적 연고협약으로 맺어졌고, 광주광역시는 위 대안중에서 2번과 4번을 혼합하는 방안으로 월드컵경기장을 활용하게 된다.
         그러나 광주광역시의 신생구단 창단은 당히 지지부진하여 2008년 연고협약 종료시점까지 광주로 오려는 팀은 없어 창단이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았고, 2009년에 마지막으로 믿고 있던 울산 현대미포조선 축구단을 K리그 참가조건으로 유치하려 했으나 이 역시도 울산미포조선은 애초에 K리그에 참가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았기에 2번과 4번을 혼용하는 대안 역시 폐기된다.[* 기업구단을 유치하려 했던 이유는 2001년에 광주시가 파악했던 금액과는 달리 K리그 1년 운비가 120억 수준이라는 것에 기겁(...)한 감이 있다. 2001년 시점에 광주시가 파악했던 K리그 구단의 1년 운비는 40억 수준이었는데 지금와서 보면 택도 없이 낮은 금액.] 또한 이 무와의 연고협약 과정에서 광주광역시는 이미 한국프로축구연맹에 K리그 참가를 전제로 이미 회원가입비 + 축구발전금으로 40억원을 납부한 황이었는데... '''만약 팀 창단을 하지 않으면 이 40억이 공중분해되는 마술이 펼쳐질 황'''이라 결국 시에서 직접 나서는 5번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무와 연고협약이 연장된 2년의 유예기간 안에 창단을 안 할시에는 그대로 돈이 날아가는 조건이었다.]
         광주는 지금까지 플레이오프나 위스플릿, FA컵 결승 등, 위권 성적 경험이 단 한번도 없다. 전통적으로 하위권을 맴돌았던 팀이며 아예 2012시즌에는 K리그 참가 2년차에 강등이라는 불명예딱지도 붙었을 정도. 제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은 셈이다. 그러나 딱 하나 주목할 만한 성적을 보자면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초대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두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드라마를 씀으로써 시민구단의 저력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2015시즌에는 승격하자마자 강등당했던 2014시즌의 무와는 달리, 승격팀이 강등당하지 않는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챌린지에 있는 팀들도 충분히 클래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 김상기 . . . . 19회 일치
         '''김기'''는 다음 사람을 가리킨다.
         * [[김기 (고려)|김기]](金上琦, [[1031년]] ~ ?)는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 [[김기 (1901년)|김기]](金庠基, [[1901년]] ~ [[1977년]])는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역사학자이다.
         * [[김기 (1918년)|김기]](金相琪, [[1918년]] ~ [[2011년]])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언론인으로 [[김성수 (1891년)|김성수]]의 둘째 아들이다.
         * [[김기 (법조인)|김기]](金相基, [[1945년]] ~ )는 [[청주지방법원]]과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 [[김기 (1952년)|김기]](金相基, [[1952년]] ~ )는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 [[김기 (야구 선수)|김기]]([[1961년]] ~ )는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다.
         * [[김기 (1980년)|김기]]([[1980년]] ~ )는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이다.
         * [[김기 (축구 선수)|김기]]([[1982년]]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 [[김기 (골프 선수)|김기]]([[1984년]] ~ )는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이다.
  • 김성곤 . . . . 19회 일치
         1922년에 현풍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5년 대구로 이사하여 달성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다. 1928년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대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였으며, 4학년 때 교내 항일운동의 주동으로 퇴학당하여 다시 경, [[보성고등학교(서울)|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7년 보성전문학교 과[* 지금의 [[고려대학교]]의 전신. 김성곤은 나중에 고려대학교 교우회장을 맡기도 했다.]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엔 [[유도(스포츠)|유도]] 선수로 활동했고 정계에 있을 때 대한유도회 회장을 역임한 체육인이기도 하다. 그의 호를 딴 '성곡컵 국제유도대회'가 있다.
         1940년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1948년에는 고려화재해보험과 자본금 1억 원의 금성방직을 설립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이 불탄 뒤, 1952년 동양통신을 창간하고 1953년 연합신문을 인수하였다. 1956년 태평방직과 아주방직을 인수하였다. 1959년 [[국민대학교|국민대학]]을 인수[* 보성전문학교 과 시절 인촌 [[김성수(1891)|김성수]]가 보성전문학교 교정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교정에서 풀을 뽑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때부터 육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국민대에서는 김성곤을 학교 설립자인 해공 [[신익희]]와 함께 양대 건학 공로자로 기념, 추모하고 있다.]하고, 1962년 [[쌍용양회]]를 설립하였다.
         [[8.15 광복]]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북지부에서 활동하였으며, [[1946년]], 미군정의 친일경찰의 횡포에 의해 일어난 [[대구 10.1 사건]]에서 친구 [[박희]],황태성과 같이 주요 역할로 활동하였다. 이후 사업가로 활동하다 1958년 달성군에서 [[자유당]]소속으로 제4대 민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4.19 혁명]] 후에는 한때 정계를 은퇴하였으나 [[5.16 군사정변]] 후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다.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 6대, 제7대, 제8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민주공화당 내에서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김종필]]과는 껄끄러운 사이로 4대 [[중앙정보부]]장 [[김형욱]]과 함께 김종필을 견제하였다.
         박정희의 친위대를 자처하면서 3선개헌에 회의적이던 김종필계와 대다수 공화당 인사들을 강하게 압박해서 [[3선 개헌]]을 성사시켰다.[* 3선개헌이 처음 불거졌을때 김종필을 선두로 해서 대다수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를 반대했다. 장기집권한 이승만의 최후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9년부터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화당 국회의원들을 회유, 협박해서 결국 모두 찬성으로 돌려놨다. 당내에 막강한 독자계보를 가지고 있던 김종필을 압박하는데 선봉에 선게 김성곤,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 4인방][* 한때 60명이 넘던 공화당내 개헌반대파 국회의원은 결국 3명 [[정구]], [[예춘호]], [[이만섭]]만이 남았고, 결국 정구-강제 정계은퇴, 예춘호-제명, 이만섭-낙선으로 모두 숙청되었다. 예춘호는 야당으로 넘어가서 1980년대 [[재야]]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이만섭은 야인으로 지내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그리고 [[전두환]]의 집권 이후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총재로 재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남억]], [[길재호]]와 함께 소위 4인체제로 박정희를 대리해서 공화당을 관리하였다. 특히 [[재벌]]에게 해외차관과 정부발주공사의 10%를 무조건 자신을 통해서 납하게 하면서 ~~[[뇌물]]의 제도화~~ 정권의 정치자금 창구를 단일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재벌, 언론에 막강한 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그가 [[쌍용그룹]] 회장(재벌총수), 동양통신 사장(언론인)이면서 공화당 재정위원장(정치인)이자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김성곤은 학창시절 박정희의 큰형인 박희와 절친이었기 떄문에, 어린 시절부터 박정희를 보아왔으며 사석에서는 박정희와 자녀의 결혼 문제를 의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박정희는 김성곤한테 정치자금을 모으라고 시켰다.
         그러나 자신의 향력을 과신한 나머지 1971년 민주공화당의 김진만, 백남억, 길재호 등과 함께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을 가결시킨 '''[[10.2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박정희 분노를 산 김성곤 회장은 [[길재호]]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랑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범죄)|고문]]을 당하고, 정계에서 쫓겨났다. 당시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이 뽑힐 정도로 수모를 당했고, 심지어 시중에는 개처럼 두들겨 맞아서 생으로 변을 지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오죽했으면 신민당에서 문제삼으며 정권이 이들을 정치적으로 살해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3선 개헌 이후에 소위 4인체제의 힘이 커지자 기회만 보고 있던 박정희가 항명파동을 계기로 싸그리 숙청해버린 것이다. 집권당 국회의원도 박정희한테 반대하면 잡혀가서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는 것을 본 이후에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과 정권내에는 박정희한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완벽한 1인 독주체제가 된다. 이 때문에 노골적인 종신집권 의욕을 보인 [[10월 유신]] 때는 집권세력 내에선 전혀 반대가 없었다.
         1973년 [[대한공회의소]] 제8대 회장에 취임하였고 1974년 대한양회를 인수, 한국신문연구소 회장에 취임하는 등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1975년 [[고려대학교]] 교우회장 자격으로 졸업식 축사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타계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으며, 그의 묘는 원래 가족장으로 [[국민대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군]]에 이장되었고, 2014년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재이장되었다.
         || 1963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도) ||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 - || '''당선''' || ||
         || 1967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도) ||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 - || '''당선''' || ||
         || 1971 || [[제8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도) ||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 - || '''당선''' || ||
  • 김승관 . . . . 19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옥산초-경복중-[[대구 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
         || '''지도자''' ||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원고등학교]] 코치 [br] 롯데 자이언츠 3군 타격코치 (2015~2017) [br]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보조코치 (2017) [br]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17~ ) ||
         || [[김광현(1971)|김광현]](삼성 라이온즈 2군) || → || '''김승관'''(삼성 라이온즈 2군)[br]김무성·이동욱([[롯데 자이언츠 2군]]) || → || [[조효]] [br] 이현([[한화 이글스 2군]]) ||
         || 이현(한화 이글스 2군) || → || '''김승관'''(삼성 라이온즈 2군) || → || 곽용섭(삼성 라이온즈 2군) ||
         || 권희석([[KIA 타이거즈 2군]]) || → || '''김승관'''(롯데 자이언츠 2군) || → || [[모기]](삼성 라이온즈 2군) ||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대구고 시절에는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던 라이벌이었다. 당시 투수였던 [[이승엽]]이 팔꿈치 부과 어깨 혹사로 인해 타자로 전향하자, 그가 "승엽이는 방망이도 잘 쳐요"라고 말을 했을 뿐인데…
         [[삼성 라이온즈]]에 오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따라다니던 딱지는 [[2군 본즈|2군 홈런왕]]이었다. 그럼에도 본인이 좋아해 온 팀이자 고향 팀에 몸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텨 왔지만, 2004년 7월 12일 투수 [[노장진]]과 함께 외야수 [[김대익]], 투수 [[박석진]]을 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2006년 7월 16일에는 친정 팀 삼성을 대로 [[투수]] [[임동규(야구)|임동규]]에게 선제 결승 쓰리런 홈런을 작렬시키며 롯데의 스코어 14:0의 대승을 이끌기도 했다.
         은퇴 후 [[박진(야구)|박진]] 감독의 부름을 받아 모교인 [[대구 원고등학교 야구부|원고등학교]]의 타격코치로 부임했으며, 잠시 투수코치를 겸하기도 했다.
         항 [[이승엽]]을 따라다니다가 본인이 스스로 무덤을 파 버린 비운의 천재. 당시 고교 코치들 말에 따르면, 이승엽은 부드러운 스윙을 휘두르는 반면, 김승관은 뻗어나오는 거친 스윙이라서 절대 프로에서 성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KBO 퓨처스리그|2군]] 통산 커리어를 능가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고 하는데 2군 통산 557경기에 출전하여 87홈런, 377타점, 571안타, 353사사구, 타율 3할 3리를 마크해 [[KBO 퓨처스리그]]에 큰 획을 그었던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KBO 퓨처스리그 역사 가장 많은 타이틀(타율 1위 1번, 타점 1위 4번, 홈런 1위 4번으로 총 9번)을 획득한 선수다.
  • 김재한(축구) . . . . 19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축구감독/목록/대한민국)]
         ||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금릉군]][* 현재의 [[김천시]]] ||
         김재한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싸카(SSAKA)스포츠 사장. 대한축구협회의 근 부회장.
         경북 김천 출신의 김재한은 어려서부터 신체 조건이 좋았을 뿐 아니라 운동도 좋아해서 축구를 비롯한 여러 종목을 섭렵했다고 한다. 야구, 배구, 육의 높이뛰기 등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다양한 종목의 대회 출장을 하던 김재한은 대구고 시절 야구 선수로 진로를 잡았다고 한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이던 서무가 대구고의 감독이었다고 한다. 2학년 말에 대구고 야구부가 해체되면서 고3에는 축구로 진로를 틀고 성광고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그러나 대구는 축구로는 딱히 좋은 지역이 아니어서 고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당대 유스의 팀인 제일모직에서 대구로 전지훈련을 왔다가 김재한의 피지컬을 높이 봤는지 제일모직 코치였던 안종수에 의해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한다. 거기서 1년 가량 연습생 생활을 했으나 그라운드에서 뛰지 못하던 김재한은, 마침 건국대 장경환 감독의 눈에 띄어 건국대에 입학하게 된다.
         제일모직에 돌아갔으나 제일모직 축구팀은 김재한이 돌아온 후 2년만에 해체한다. 이에 주택은행으로 적을 옮기게 되어 주택은행이 4관왕을 차지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25살인 1972년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김재한은 [[이회택]], [[박이천]], [[차범근]], [[김진국]], [[이차만]], [[허정무]] 등과 공격수로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1979년까지 활약한다. 실제로 1972년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에 주어진 단 한 장의 월드컵 진출 티켓을 놓고 벌인 3번의 혈투를 벌였던 당시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과 2007년에 대면할 일이 생겼는데, 기억나는 것은 김재한과 차범근 뿐이었다고 한다.[* 립서비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35년이나 지난 후에 회고하는 것인 만큼 당히 진솔할 수 있다. 립서비스를 감안하더라도 그만큼 부담스러웠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적당할 듯하다.]
         현역 은퇴 이후 주택은행 축구단 코치로 지도자를 시작하여 이후 감독으로 1989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이후 주택은행 업부 부장으로 부임하여 본격적인 은행업무를 보았고, 2005년 싸카스포츠로 이직해 부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2007년부터 사장에 올랐다. 같은해 대한축구협회 근 부회장에 선임되면서 축구 행정가로 들어오게 되었다. 행정인으로서도 당한 자질이 있다는 평이다.
         주로 190cm가 넘는 키를 활용하여 포스트 플레이에 능했다.[* 김재한의 은퇴 이후 국가대표에 피지컬이 좋은 장신 공격수가 등장하면 "포스트 김재한"으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 [[우성용]]이 그랬고 현재는 [[김신욱]]이 그 계보를 잇는 중이다.][* 국가대표와 주택은행의 감독을 하던 민병대의 향을 받아 에우제비우와 짝을 이뤘던 포르투갈의 장신 스트라이커 호세 아우구스토 토레스의 플레이를 본받으려 많이 노력했다고 한다. 포스트 플레이를 통해 주위 선수들에게 공을 떨궈주는 움직임이 인적이었다고 한다.] 차범근과 나누던 사담에 의하면 헤딩은 김재한이 낫지만 기술이나 움직임은 김신욱이 나은 듯하다.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당대 대표선수들 중 농구선수들까지 능가하는 최장신인데 점프력까지 나쁘지 않아 높이로는 아시아에 적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아시아에 속해서 겨루던 호주나 이스라엘에서는 비슷한 신장의 적수들이 있었지만 김재한 본인은 그들을 점프력에서 능가했다고 한다. 또한 공의 낙하지점 찾는 것에도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등지는 플레이와 등진 태에서 돌아서면서 슛을 때리는 것도 자신 있었다고.
         장신스트라이커라 많은 견제를 받았으며 옛날이라 플레이가 거칠어서 그런지 선수생활을 하면서 부이 많았던 편이다. 3번이나 코뼈가 부러졌으며 그 가운데에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부도 있었다. 헤딩 경합을 하다 넘어진 김재한의 다리 위에 대 골키퍼가 쓰러지면서 다리뼈가 세 조각으로 부숴지는 부을 당하기도 했다. 국가대표 청백전에서는 주전 골키퍼인 이세연이 김재한에게 한 골을 먹은 후 한 손으로는 공을 향해 한 손으로는 김재한의 얼굴을 향해 펀칭을 하는 바람에 김재한의 어금니가 부러지자, 김재한이 자신의 부러진 어금니를 주워들고 이세연을 노려보자 이세연이 움찔하더니 그 이후로는 김재한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세연은 당시 한국의 주전 골키퍼로, 신체적 조건이 부족해 독기로 메운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의 성격으로 대표팀 내에서도 가장 거친 사람이었다고 한다. 김재한보다 선배기도 하다.]
         부인으로는 전직 국가대표 농구선수인 재일대표 출신 조순을 맞이했다. 조순은 원래 일본에서 일본명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일본으로의 귀화를 거부한 후 일본 농구계에서 퇴출당하고 한국 국가대표팀 주장을 역임하던 선수였다. 태릉에서 친분을 쌓은 후 일본에서 펼쳐진 한일정기전을 대패한 김재한을 마침 일본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조순이 위로해 주다가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 김효기 . . . . 19회 일치
          * 위 문서: [[경남 FC]], [[축구 관련 인물]]
         ||<:> '''학력''' ||<:> 충주 교현초등학교 (1993~1999)[br] 충주 중앙중학교(1999~2002)[br] [[충주업고등학교]] (2003~2006) [* 중학교 졸업이후 도르트문트 유스팀에서 뛰면서 1년 유예하였다.][br] [[조선대학교]] (2006~2009) ||
         ||<width=30%><:> [[김태호(1989)|김태호]][br][[정재용(축구선수)|정재용]][BR] (2016) ||<:> {{{+1 →}}} ||<width=30%><#cda55f><:> [[김태호(1989)|{{{#1f0419 김태호}}}]][br] '''{{{#1f0419 김효기}}}'''[br]'''{{{#1f0149 (2016)}}}''' ||<:> {{{+1 →}}} ||<width=30%><:> [[구대(축구선수)|구대]][br](2017) ||
         ||<width=30%><:> [[구대(축구선수)|구대]][BR] (2017) ||<:> {{{+1 →}}} ||<width=30%><#cda55f><:> '''{{{#1f0419 김효기}}}'''[br]'''{{{#1f0149 (2017)}}}''' ||<:> {{{+1 →}}} ||<width=30%><:> [[정재희]][br](2018~) ||
         충주 중앙중학교 3학년 때 독일 유소년 프로젝트 연습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독일 에이전트에 눈에 띄게되었고, 독일 클럽 유소년팀을 오퍼받았다. 그 당시에 고등학교 진학과 독일 진출 고민을 하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하였지만 재차 독일에서 오퍼가 와서 독일로 진출하였다. 독일에서 [[하노버 96]], [[샬케 04]], [[바이어 레버쿠젠]] 등에서 테스트를 받았으며 최종적으로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소년 팀으로 들어갔다. 도르트문트 유소년팀에서 7~8개월 활동하다가 사업 문제로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귀국하고나서 또래보다 1년 늦게 충주고로 진학한 김효기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약체로 평가받던 [[충주업고등학교|충주고]]의 미드필더로 나서 강호 [[문일고등학교]]를 격파하는 결승골을 뽑아내기도 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7년, 전국 1, 2학년대학축구대회에서 도움을 수했고, 2008년부터는 대학 선발로 발탁되어 덴소컵 등에 참가하였다.
         2010년 드래프트에서 울산 현대에 4순위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드래프트를 1년 미루었다.] 대학 시절 대적으로 작은 체구에도 불구, 좋은 집중력으로 골을 뽑아냈던 선수라 울산에서도 활약할 것을 기대받았는데, 데뷔 시즌은 주로 2군에서 시간을 보내며 1경기 교체 출장에 그쳤으며, 이후 2011년에도 역시 2군을 벗어나지 못하자 [[울산 현대미포조선]]의 [[조민국]] 감독이 [[김호곤]] 당시 울산 감독을 설득해 김효기를 6개월동안 미포조선에 임대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2012시즌을 앞두고 울산 현대에 복귀하였지만. 좀처럼 기회를 받지 못했고, 가끔 나오는 경기마다 김선수도 인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공익 2년차를 맞이한 2014년에는, [[포천 시민축구단]]과의 K3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2골을 몰아치며 팀에게 우승을 안겼고, 대회 최우수선수을 받는 등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2015년 전역 후 [[FC 안양]]으로 임대 이적하였고, FC 안양에서는 15시즌 전반기를 부으로 날렸지만, 후반기 부에서 복귀한 후 15경기에서 8득점 2도움이라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면서 후반기 FC 안양의 승세에 일조했다.
          * 1년을 미룬 2010 드래프트를 앞두고 고향에서 친구들과 족구를 하다가 피로골절을 당하는 웃지못한 사정도 있다.~~당시 대학 감독님에게는 개인훈련 도중에 부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9화 . . . . 19회 일치
          * 사걸고교의 털복숭이 학생이 와서 바쿠고 카즈키에게 시시쿠라의 일을 사과하며 "웅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하는데.
          * 드디어 시작되는 2회전. 그런데 현장에 있는 "프로 요구조자"들은 구조대이자 시험관이기도 했다.
          * 으로 까다로운 시험이 되어 가는데.
          * 이들은 통친 "Help Us Company"(줄여서 HUC)라 불리는데 이런 훈련에서 전문적으로 요구조자 역할을 하는 프로들. 당한 인기직이라 한다.
          * 바로 이들을 구조하는 걸로 포인트가 책정되며 종료 시점에서 기준치 이 포인트를 획득하면 합격으로 간주한다.
          * 시험은 10분 후 시작되며 그 사이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다.
          * 1회전 당시 교전 황을 "알몸으로 미도리야랑 바위 그늘 아래 있었다"는 얘기로 퍼뜨리고 있다.
          * 미도리야는 문을 모르겠다고 항변하는데 미네타가 케미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랑 뭘하고 있었냐"고 추궁한다.
          * 왠지 냥하게 눈인사를 건네는데, 이것 때문에 빼도 박도 할 수 없게 된다.
          * 의미는 불분명하지만 "웅하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 그러다 미도리야에게 뭔가 말을 걸려고 하는데 갑작스럽게 사이렌이 울린다.
          * 우선 요구조자가 걸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머리의 출혈과 호흡이 정이 아닌 것도 놓치고 있다.
          * 임시면허 소지자는 우선 피해자의 태를 확인하는 거라며 일침을 가한다.
          * 역할도 착착 나눠서 구조활동에 들어가는데, 관객석의 아이자와 쇼타는 역시 이런 부분에선 훈련이 부족한 웅고 학생들이 떨어진다고 본다.
          * 요구조자는 무섭고 아프고 불안한 태에 처해있다. 그런데 히어로가 와서 제일 먼저하는 말이 "큰일났다!"면 안 된다는 것.
          * 미도리야는 HUC를 안심시키고 지적받은 대로 이을 체크한 후 동료들을 선행시키고 자신은 피해자를 구호소로 옮긴다.
          * 우라라카 오챠코는 미도리야의 모습을 보고 중요한 황임에도 개인적 감정으로 멍때리고 있던 자신을 반성한다.
  • 마기/330화 . . . . 19회 일치
          * [[샤를르칸]]과 [[야무라이하]]마저 신드바드의 이에 경도되어 [[알리바바 사르쟈]]와 [[알라딘(마기)|알라딘]]을 설득하려 든다.
          * 심지어 신드바드는 이 모든 황을 전세계에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 중엔 각국의 지도자들돠 [[유난]]같은 마기도 끼어있다.
          * 신드바드는 국민들에게 자신의 이을 어떻게 생각하냐 묻고, 사람들은 대찬성하며 "함께 루프로"가자며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린다.
          * 미치광이들 사이에 유일한 정인처럼 된 알리바바와 알라딘. 그리고 방송으로 그들을 보고 있는 [[모르지아나]].
          * 세을 재창조하기 위해 루프를 완전히 재창조하겠다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그러나 그 말은 결국 지금 세을 완전히 멸망시킨다는 이야기다. [[알리바바 사르쟈]]와 [[알라딘(마기)|알라딘]]은 그런 폭거에 도저히 동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신드바드는 자기 혼자의 의견이 아니라며 전 [[팔인장]]을 소환한다. 그들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듯 방문이 열리자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
          샤를르칸은 국왕인 자신이 당장의 평화만 지키는 걸로 만족해도 좋은지 반문한다. 분명 자신들이 죽고 나면 세은 다시 혼란스러워질 거라면서. 그러면서 자신이 왕이 된 후엔 그런 "미래"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씁쓸하게 자조한다. 또 "미래를 생각한다"는 말, 알리바바는 그 말을 이미 여러번 듣었다.
          * 야무라이하는 현재와 미래를 다 지키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알라딘은 진심이냐고 묻는데 야무라이하는 자신은 진심이며 그들의 루프가 신들의 노예취급 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런건 과거 매그노슈타트가 비마도사들의 마고이를 착취한 것과 다를바 없다고 말한다. 알라딘이 그래서 어쩌자는 얘기냐고 하자...
          * 신드바드의 미치광이 행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이 모든 황이 저세계로 중계되고 있었다고 밝힌다. 스크린에는 알라딘과 알리바바가 신드바드와 벌인 논쟁이 고스란히 비추고 있다. 황제국의 [[연홍옥]]이나 뢰엠의 [[티토스 알렉키우스]] 등 각국 지도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과 유배된 마기인 [[유난]]까지 모두가 이것을 지켜보고 있다.
          >더 좋은 세을 쟁취하기 위해 다 함께 루프로 돌아가자!
          * 시민들은 더이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대환호. 전세계, 기계적으로 맞춘 것처럼 동시에 환호성이 번져간다. 그들은 "다 함께 루프로 돌아가자", "더 좋은 세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는 신드바드의 말을 찬양하듯 따라하며 박수를 치고 축하하며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린다.
          * 기분 나쁘도록 한결같은 환호 속에서 알리바바와 알라딘만 고립돼있다. 정신병자 사이에 유일한 정인처럼 돼버린 알리바바와 알라딘. 알리바바는 이 [[성궁]]의 힘에 치를 떨며 정말 신드바드에 향을 받지 않은건 자기들 뿐이냐고 한탄한다.
          * 황제국의 처소. [[모르지아나]]도 이 방송을 보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신드바드의 의견에 찬동했던 그녀. 그러나 무슨 일인지 지금 모르지아나는 세과 함께 환호하지 않는 것 같은데.
         절정에 달한 신드바드의 광기. 온세이 신드바드의 광기에 편승하고 있다.
         한편 커플링에 민감한 팬덤에선 나름 만족하는 부분도 있는데 샤를르칸X야무라이하가 실현, 스파르토스X피스티도 실현. 신드바드가 루프를 조작한 향인지 갑자기 커플이 탄생했다.
  • 마기/342화 . . . . 19회 일치
          * [[알라딘(마기)|알라딘]]은 부조리한 세이기 때문에 더욱 남과 맞부딪히며 조금씩 변화하며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 알라딘은 신드바드의 말을 듣고 그가 세에 절망한 진짜 이유를 깨닫는데, 그건 사회적 모순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모순" 때문이었다.
          * 알라딘은 자신이 겪은 비극도 본질적으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신념의 싸움이었음을 깨닫고 신드바드가 세의 루프를 다시 쓰려는 이유도 깨닫는다.
          * 던전 제파르에 나타난 17세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 그는 [[알라딘(마기)|알라딘]]이라면 대화대가 될 수 있겠다고 말한다. 알라딘은 신드바드가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단지 대화라면 지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 점을 신드바드가 인정한다. 알라딘은 그가 자신들과 힘을 겨뤄 자신이 이 세의 신이 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걸 증명하고 싶은 거였냐고 묻는다.
          알라딘으 눈을 휘둥그레하게 뜨는걸 보며 신드바드는 "나보다 세을 올바르게 이끌 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신 자리를 줄 생각"이라며, 알라딘 일행을 불러온 것은 그들이 가망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 지금껏 말이 없던 [[세렌디네 파르테비아]]가 나서 다시 한 번 던전 제파르의 질문을 던진다. 부조리한 세에서 인간은 자기 의지로 살아야 하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끌어져야 하나?
          >부조리한 세이니까 더더욱
          * 마침내 입을 연 신드바드는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사실 그는 성궁에 오기 직전 알라딘과 같은 걸 느꼈다. 세이 부조리하고 전란이 계속되더라도 다들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다. [[아르바(마기)|아르바]]가 성궁으로 가는 문을 열기 직전 그걸 깨달았다. 알라딘은 그렇다면 왜 세을 바꾸려 하냐고 묻는다.
          알라딘이 했던 말, "아무 데도 못가고 아무 것도 변치 않는 것만큼 괴로운건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신드바드는 누구보다도 그걸 견딜 수 없어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현실의 사람들은 아무도 현실이 바뀌길 바라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심지어 그의 동료였던 인물들 조차도 그가 더이 혁신가로 살길 바라지 않았다.
          * 팔인장들은 그의 가장 절친하고 가까운 동료였다. 그들은 세의 부조리에 함께 분노했고 세을 바꾸고자 힘을 합쳤다. 나라를 만들고 동맹을 만들고 분쟁을 없애길 바랬던 그들은 분명 혁신가였다. 그리고 혁신은 성공했다. 그들이 바라던 분쟁이 사라진 세을 만들었을 때, 동료들은 더이 혁신가이기를 거부했다.
          알라딘은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이 풀린다. "왜 각각 세을 좋게 만들고자 하는데 일이 꼬이는 걸까?" 그는 자신이 지나왔던 많은 여정, 사람과 사건들을 돌이켜 본다. 누군가는 좋은 사람이었고 누군가는 악했다. 그러나 그들이 싸워야 했던 이유는 근원의 선악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 그것은 한 가지였다.
          신드바드가 그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전쟁이란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을 동력으로 삼는다는 것, 그리고 그건 세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인간이란 본래 그런 거라는 평범한 진리였다.
          * 알라딘은 슬픈 사실이라고 조용히 동의한다. 그리고 신드바드의 진짜 마음은 아주 슬프다는것도 알게 됐다. 그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이 전쟁과 부조리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루프를 다시 쓰려고 했던 것이다. 인간의 마음 그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
  • 박윤경(가수) . . . . 19회 일치
         | 가족 = 어머니 심
         | 웹사이트 =
         박윤경은 [[1970년]] [[8월 28일]]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광여자고등학교]]에 재학 당시 모친 [[심진]]과 친분이 두터웠던 작곡가 [[임종수]]와의 만남으로 4년간 연습생으로 지내게 되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1989년]], 제10회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하여 입하고 그 다음해 [[1990년]]에 제4회 MBC 신인가요제에 출전하여 가창과 대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이를 계기로 [[1991년]]에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 [[군산광여자고등학교]] 졸업
         * [[청주대학교]] 연극화과 졸업
         == 수 ==
         * [[1989년]] 제10회 [[MBC 강변가요제]] 입
         * [[1990년]] [[MBC]] 신인가요제 대, 가창
         * [[1991년]] [[고복수]]가요제 신인
         * [[1996년]] [[남인수]]가요제 모범 가수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9년 데뷔]][[분류:군산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청주대학교 동문]][[분류:군산광여자고등학교 동문]]
  • 박진옥 . . . . 19회 일치
          * 위 문서: [[축구 관련 인물]], [[제주 유나이티드]]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학력 || [[포항제철중학교]] - [[덕고등학교]] - [[경희대학교]] ||
         || 소속팀 ||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 (2005~2012)''' [br] [[무|광주 무]] (군 복무) (2009~2010) [br] [[대전 시티즌]] (2013) [br] [[광주 FC]] (2014) [br] [[용인시청 축구단]] (2015~2016) [br] [[FC 의정부]] (2017) ||
         [[포항제철중학교]], [[덕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축구부에 진학하였다.
         [[경희대학교]] 대학교 졸업 후 2005 [[K리그]] 자유선발로 [[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당시 부천 SK의 [[정해성]] 감독은 박진옥 선수의 킥력과 수비 센스를 눈여겨보고, 로테이션 자원으로 요긴하게 사용하였으며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의 수비 전술에서도 항 중요 자원으로 분류되었으며 2005년에서 2012년까지 8년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였다.
         ==== [[무|광주 무]] ====
         [[무|광주 무]] 시절
         2008 시즌을 마치고 군 복무를 위해서 [[무|광주 무]]에 입대하였고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2010년 10월 26일 팀에 복귀하면서 [[제주 유나이티드]]의 '''준우승''' 달성 광을 함께하였다.
         [[분류:1982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제주 유나이티드/은퇴, 이적]] [[분류:무 축구단/전역]] [[분류:대전 시티즌/은퇴, 이적]] [[분류:광주 FC/은퇴, 이적]] [[분류:용인시청 축구단/은퇴, 이적]]
  • 백상원 . . . . 19회 일치
         |선수명 = 백
         |문 표기 = Baek Sang-Won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2011년 ~ 2012년)
         '''백원'''(白相元, [[1988년]] [[1월 2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이다.
         ==[[무 야구단]] 시절==
         시즌 후 곧바로 [[무 야구단]]에 입대하여<ref>조이 뉴스 24 - 2010년 10월 26일 기사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523983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퓨처스 남부 리그 수위 타자 백원, 삼성 내야의 미래"]</ref> 복무를 마치고 [[2012년]]에 제대했다.
         [[2013년]] [[4월 27일]] [[KIA 타이거즈|KIA]]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어 그 날 경기에서 대수비로 출전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1군에서 안타를 기록하지 못해 2군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 [[김수 (1990년)|김수]]의 부으로 다시 1군에 올라와 [[2013년]] [[10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김성배 (야구 선수)|김성배]]를 대로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올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29325 '백원을 아시나요' 삼성의 화수분 야구는 계속 된다] - OSEN</ref>
         이름에 '백'이 들어가 '백아리'라고 불린다.
         * [[경중학교]]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수원 백씨]][[분류:무 야구단 선수]]
  • 블랙 클로버/110화 . . . . 19회 일치
          * "올라가주겠다"고 외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지만 사실 마땅히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한 태.
          * 아스타는 궁리를 거듭하다 [[라드로스]]와 싸울 때 발동했던 태를 다시금 끌어내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방법이 없다.
          * 반마법의 검에서 나오는 기를 자신의 몸에 수용해 다시 한 번 반마법 태가 된 아스타는 유트림 화산에 퍼져있는 천연의 마나를 따라서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 결국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근소한 차이로 정에 도착하는데 성공하나, 컨트롤이 안 돼서 마그마에 처박힐 뻔한다.
          * "돌아가도 좋다"는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의 포기선언.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의 활약도 반마법의 검에 의존한 "운"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린다. 여기에 자극 받은 아스타는 거의 포기할 뻔 했던 마음을 다잡고 "절대로 정에 오르겠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그 다음. 큰소릴 친 건 좋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근성만으로 올라갈 수 없는건 자명. 아스타는 [[라드로스]]와 싸울 때 발동했던 반마법 태말고는 수단이 안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끌어내지?
          * 혼자 남은 아스타는 어떻게든 반마법 태를 끌어내려고 궁리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는 단지 "죽기 직전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힘을 끌어낸 거였다.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그럼 마그마에 무작정 뛰어들어보면 어떨까?"같은 말도 안 되는 발도 나왔다. 하긴 그는 샐러맨더의 폭탄 속에도 뛰어든 적이 있으니 마그마 정도는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 결과 대성공. 기를 더 많이 받아들일 수록 반마법의 기는 뚜렷한 형이 되어갔다. 마침내 라드로스전에서 나타났던 반마법을 두른 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 태가 된 것은 좋은데, 마법의 흐름을 타고 날아가는 특성 때문인지 아스타 자신이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의 몸은 유트림 화산의 마나의 흐름을 따라서 무작정 날아가기 시작했다.
          * 한편 아스타를 앞서간 일행들은 의외의 변수에 발목이 잡혔다. 유트림 화산에 자생하는 마법생물의 존재였다. 마그마로 만든 골렘같은 존재였는데 당히 강해서 적당히 공격해선 쓰러뜨릴 수가 없었다. [[레오폴드 버버밀리온]]는 이정도는 쓰러뜨려야 마법기사라며 포지티브한 소릴 하지만 [[노엘 실버]]가 "그러니 빨리 해치워라"고 부추기자 "물속성인 넌 뭐하고 있냐"고 쏘아붙인다. 노엘은 물속성이긴 해도 마나스킨을 유지하는 데만도 고생하고 있어서 공격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 바로 그 순간 그저 날아가던 아스타가 마법생물을 뺑소니치고 지나간다. 아스타가 다시금 그 태를 하자 노엘이 경악한다. 레오폴드는 아스타가 익힌 신필살기라고 생각하고 "블랙 아스타"라는 센스없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아스타는 폭주자동차 같은 태가 돼서 날아가는 중이라 듣지도 못한다.
          *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던 아스타는 정에 가까워진 [[유노(블랙 클로버)|유노]]까지 따라잡는다. 아스타의 접근을 느끼고 뒤돌아보는 유노. 아스타는 따라잡은 걸 좋아하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 마나의 흐름은 화산분출구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이대로 가면 그대로 마그마 속에 처박힐 판이었다. 그때 정에 기다리고 있던 메레오레오나가 나타난다. 그녀가 마력을 방출하자 반마법의 검은 강한 마력을 감지하고 그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거라면 아스타가 마그마에 처박히진 않지만 메레오레오나를 찌르고 만다. 아스타가 도망쳐달라고 외치자 그녀는 코웃음을 친다.
          이미 정에 도착해서 그들의 행태를 목격한 야미는 "저 바이올런스 암컷 라이온은 여전히 엉망진창"이라며 공중에서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냐고 질색한다. 그 옆의 [[샬롯 로즈레이]]는 오히려 그녀의 모습이야 말로 자신의 이형인 듯 하다.
          메레오레오나는 아스타가 조금은 자기 자신을 알게 된 모양이지만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그래도 정에 올랐으니 온천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다고 하는데... 바로 옷을 벗으라고 성추행 멘트를 날린다.
  • 원피스/828화 . . . . 19회 일치
          * 밀집모자 일행은 푸딩이 디의 결혼 대라는걸 알게 된다.
          * 어떻게든 대화는 계속되고 디가 합의 하에 온 게 아니라는 것과 일행이 여기까지 온 이유도 알게 된다.
          * 쵸파는 디와 만났냐고 묻는데,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 초콜릿의 레시피를 알려준 것도 디인 듯.
          * 하지만 나미가 "디를 좋아하게 됐냐"고 묻자 빅맘의 의지를 앞세우며 대답을 얼버무린다.
          * 그러자 푸딩은 간단한 약도를 그리면서 "아직 잊을 수 있어. 디씨를..."이라고 말한다.
          * 푸딩은 디와 만났을 때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결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난 동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 일행은 디가 여자를 찼다고 경악한다.
          * 푸딩은 아무리 빅맘의 명령이어도 디의 의사를 무시하고 싶진 않고 일행에게서 동료를 빼앗을 수도 없다며 협조하기로 한다.
          * 그녀는 이 루트로 항해해 내일 홀케이크 아일랜드의 "남서쪽 해안"에서 만나자고 한다. 자신이 직접 디를 데려오기로 한다.
          * 그러면서 "아쉽지만 다음 결혼대는 더 근사할지도 모르고"라고 웃는다.
          * 그는 "(전투가)4시간이나 걸렸다"면서 동생(디)의 결혼식에 가야 한다며 남자를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 전보벌레로 본대와 연락하고 있는 제르마1은 디가 이미 도착했냐고 묻고 "서둘로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옆에 있는 제르마2는 "거짓말"이라고 잘라말한다.
         - 디. 약혼자 푸딩과 결혼을 거부하며. 푸딩에게 한 말을 그녀가 동료들에게 전해줬다.
          * 조로는 디가 결혼 때문에 불려갔다고 했을 때 "냅둬라"며 매몰차게 말했는데, 디는 동료들에게 돌아오려고 하고 있는 점 때문에 조로의 인성을 의심하는 팬들이 많다.
          * 초콜릿 섬에는 초콜릿 햄버거나 초콜릿 튀김 같은 음식이 잔득 있다.--국이었냐 여기--
          * 페콤즈가 납치당한 것,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남은 것, 그리고 빅맘이 이미 밀집모자 일행의 륙을 알고 있는 건 모두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 원피스/865화 . . . . 19회 일치
          * [[시저 크라운]]은 일행을 탈출시키기 위해 거울을 준비하고 대기한다. 안쪽의 황을 살펴보니 원래 계획을 당히 빗나갔다.
          * [[디]]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달려오지만 [[샬롯 다이후쿠]]의 마인에게 붙잡힌다.
          * [[빈스모크 레이쥬]]는 이런 가족이라도 살리려 하는 디의 "냥함"을 보며 "나는 구원받았다"고 여기며 죽음을 받아들인다.
          * 이틈을 타서 디는 [[쵸파]]와 함께 빈스모크 일가를 구하고 [[나미(원피스)|나미]]와 [[캐롯(원피스)|캐롯]]은 레이드 슈트를 탈환해 전달한다.
          * 한편 정신을 잃은 빅맘은 어린 시절, "마더"와 함께 했던 시절을 회한다. 모든 것의 시작은 63년 전, 신세계의 엘바브섬.
          * 그런데 기다리던 "괴성"이 들리지 않았다. 시저는 문 위로 고개를 내밀고 안쪽 황을 살핀다. 난장판. 작전이 계획대로 진행된 증거였다. 웨딩 케이크가 엉망이 됐고 밀집모자일당이 준비한 가짜 루피들이 날뛰는 통에 혼란이 가중된다. 게다가 [[몽키 D. 루피]]가 마더 카르멜의 사진을 깨뜨린 것도 보였다. 여기까지는 작전 성공. 하지만 정작 터져야 할 빅맘 [[샬롯 링링]]의 괴성이 아직이다.
          * [[샬롯 다이후쿠]]와 대치 중이던 [[디]]는 가족의 목숨이 풍전등화가 되자 그 자리를 이탈했다. 당장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빈스모크 일가의 테이블로 달려오지만 무감정한 빈스모크 형제들은 그 조차도 "허둥지둥 뭐하는 짓이냐"고 비웃음의 대으로 삼는다. [[빈스모크 레이쥬]]도 그의 모습을 보았다. 디는 정신없이 달려오자 다이후쿠의 마인에게 붙잡혀 넘어졌다. 레이쥬 또한 그의 구조를 바라지도, 살고자 바라지도 않았지만 느끼는 감정은 형제들과 전혀 달랐다. 그녀는 가족들도 놔두고 도망치지 않는 디에게 "너의 냥함을 얕봤다"고 독백한다. 그녀는 평생을 빈스모크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원망하며 살아왔다.
          >고마워, 디.
          레이쥬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디에게 미소지었다.
          * 빅맘이 패왕색 패기를 섞여 날리는 괴성은 홀 케이크 성을 무너뜨릴 기세다. 게다가 잠깐 나는 소리가 아니라 사이렌처럼 길게 이어지는 비명이었다. 하객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빅맘 해적단과 샬롯가의 자식들도 귀를 부여잡은 채 쓰러진다.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루피는 너무 가까워서 그런지 귀마개를 깜빡해서 그런지 엄청난 타격을 받으며 나뒹군다. 강화인간 빈스모크 일가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공격이었지만 샬롯가 형제들이 죄다 쓰러져 버려서 목숨 만은 부지하게 됐다.
          예이 적중했다. 그는 두 부하들과 함께 KX런처를 들고 빅맘에게 다가갔다.
          * 레이쥬는 갑자기 나타난 괴한 사슴, [[쵸파]]가 귀마개를 채워주자 놀란다. 그녀 뿐만 아니라 빈스모크 일가 모두에게 귀마개가 끼워진다. 디는 디아블 잠브로 가족들을 구속하던 사탕을 깨뜨린다. 저지와 형제들은 뜻밖의 구조를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 윤다영(영화배우) . . . . 19회 일치
         {{화인 정보
         |이름 = 윤다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 남산동 (호랑이길)
         |직업 = [[배우]] <ref>[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2040432 윤다-다음인물정보]</ref>
         |수 =
         |웹사이트 = [http://www.thequeenamc.com/artists/artists.asp?idx=9&bbs_code=8&etc=윤다 공식사이트]
         '''윤다'''([[1992년]] [[1월 14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9C%A4%EB%8B%A4%EC%98%8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3476180 윤다-네이버인물정보]</ref>
         |2016||OCN||[[동네의 웅]]||윤주임||
         == 화 ==
         |2016||[[인천륙작전 (2016년 화)|인천륙작전]]||계은숙||
         == 수 ==
         |2009||제17회 젊은 연극제 전국 청소년 독백연기 경연대회 특별
         * {{인스타그램|daye0ng|윤다}}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은혼/646화 . . . . 19회 일치
          * [[바토우]]를 앗아간 폭발에서 몸을 피한 [[사루가쿠]]는 [[다케치 헨페이타]]가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를 파괴하러 올 것을 예, 내부에서 먼저 손을 쓴다.
          * 사루가쿠의 사전 작업 덕에 처없이 아메노토리후네에 입성한 다케치는 동료들의 원수를 갚게 해달라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 [[가츠라 고타로]]와 [[사카모토 다츠마]]는 부을 무릎쓰고 엔쇼와 대결을 이어가고 중을 입으나 엔쇼를 전투불능 태까지 몰고간다.
          * 죽음을 불사하고 히노카구츠치의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로 돌격했던 [[다케치 헨페이타]]. 그러나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살아남고 말았다. 내친 김에 아메노토리후네의 내부에 내려선 다케치와 부하들 앞에 바라지도 않았던 배웅자가 있었다. 전 하루사메 삼흉성 [[사루가쿠]]. 부하들과 함께 건재한 모습이었다. 넉살좋게 다케치 일행의 특공이 실패했으니 수훈은 자신들 몫이라고 말하며 나타났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바토우]]의 목숨을 앗아간 그 폭발. 사루가쿠는 가까스로 폭발을 피했다. 살아남은 그는 그대로 숨어있기 보단 작전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 나섰고 다케치 측의 통신을 엿들었다. 히노카구츠치의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 파괴. 다케치의 예과 달리 그건 폭발 한두 번으로 어쩔 수 있는 대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루가쿠 부대가 내부에서 그 장비를 한 발 먼저 파괴했고 그래서 다케치 일행의 특공은 불발로 끝날 수 있었다.
          * 어떻게 보면 그저 동맹일 뿐인 사루가쿠가 이렇게까지 헌신한 건 이한 일이다. 그건 어떤 약속 때문이었다. 바토우. 죽어간 해적들. 그들은 죽더라도 누가 뼈라도 주워줄 이도 없는 인생들이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둘 중 한 명이 먼저 죽는다면, 살아남은 쪽이 그 뼈 위에 적들의 두개골을 장식해 주기로. 그게 해적의 긍지였다. 사루가쿠가 여기에 있는건 그 긍지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사루가쿠는 바보였다. 거대한 원수를 대로 어떻게 해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동료의 원수를 갚아줄 수 있을지 궁리할 수가 없었다. 동료의 빚을 갚는건 해적들만의 자존심은 아닐 것이다. 귀병대도 비싼 희생을 치르지 않았던가. [[카와카미 반사이]]라는 희생. 그래서 다케치가 죽어선 안 되는 것이다. 사루가쿠는 자신과 부하들을 써 승리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다케치에게 부탁했다.
          * 쉬운 말이라도 실제로 구현하기는 어려운 법. 다케치의 말은 구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폭발하고 무너져 가는 해방군 모선의 잔해 속에서 생존한 병력을 모으고 다시 싸우게 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한카이도 그것을 지적했다. 병력이 얼마나 남았을지, 그리고 그들에게 싸울 기력이 있을지. 그러나 그들은 계속 나아갔다. 폭발에 삼켜지는 통로를 뚫고. 도저히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도 샅샅이 뒤졌다. 그들은 곧 두 갈래로 나눠 각기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그것이 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웅 아래로.
          다케치와 사루가쿠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성과를 올렸다. 사루가쿠가 파괴된 중추 시스템의 하부에서 잔해에 걸린 그 남자를 발견할 무렵, 다케치도 막 추락하려던 [[키지마 마타코]]를 구출했다. 다케치가 그녀를 옮기는 동안 사루가쿠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웅을 데리고.
          * 가츠라와 다츠마와 격전으로 부을 입은 엔쇼 황자는 부하들을 쓰러뜨리며 다가오는 다카스기의 일격을 힘겹게 받아냈다. 이미 망가져 언제 끊길지 모르는 라이트 세이버의 빛이 신스케의 칼날을 가까스로 쳐냈다. 그러나 라이트 세이버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출력이 저하됐다. 그런 엔쇼를 원호하기 위해 다카스기의 후방에서 부하들이 총구를 겨눴다.
          * 녀석들은 정작 자기 등 뒤는 챙기지 못했다. 다츠마와 가츠라가 다카스기의 후방을 청소했다. 마침내 나란히 선 세 사람. 피투성이의 세 남자. 엔쇼와 격전을 치른 다츠마와 가츠라는 말할 것도 없었고 다카스기의 태도 심각했다. 그는 멀쩡히 서있는 것 같았지만 발아래로 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엔쇼의 라이트 세이버는 막 회복됐다. 일시적인 출력 저하가 반복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걸 점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다. 그가 라이트 세이버를 광탄의 형태로 바꾸자 부하들이 후방에 늘어서 원호사격 진형을 취했다. 엔쇼가 광탄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일렬로 늘어선 해방군이 일제 사격을 취한다.
          * 엔쇼는 다츠마의 사격에 굴하지 않고 라이트 세이버의 찔러들었다. 그 끝이 다츠마의 복부에 박히는 순간, 엔쇼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다츠마의 자세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눈은 흔들림없이 표적을 노려보고 있었고 방아쇠를 당기는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격발. 총알이 엔쇼의 오른팔 완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엔쇼가 라이트 세이버를 놓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 엔쇼가 발견했을 땐 이미 유폭을 일으키려는 참이었다. 엔쇼와 가츠라 사이에서 터진 폭탄. 가츠라가 후폭풍에 떠밀려 뒤쪽 벽까지 나가떨어진다. 그래나 그는 사지가 멀쩡하다는 점에서 양호한 편이었다. 엔쇼는 그렇지 못했다. 라이트 세이버를 쥐고 있던 왼쪽 팔이 완부까지 휘말려 사라졌다. 분노와 고통으로 이를 가는 엔쇼. 그리고 승리를 눈 앞에 둔 가츠라와 다츠마.
  • 은혼/647화 . . . . 19회 일치
          * 그의 몸은 [[사루가쿠]]가 발견했을 당시 시체나 다름 없었으나 [[키지마 마타코]], [[카와카미 반사이]], [[다케치 헨페이타]]를 생각하며 무리를 했던 것.
          * 신스케는 동료들이 자신에게 걸고 있는 웅이라는 꿈에 부합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왔으나 그럴 기력 조차 바닥나고 다가오는 엔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그때 그를 구한 것은 동료들. 웅이라는 "꿈 너머"의 보통 사람 신스케를 쫓아왔던 마타코와 헨페이타였다.
          * 해방군 최후의 격전.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를 대로 분전했던 [[엔쇼]] 황자도 여기까지다. 치열한 접전 끝에 왼팔을 잃은 엔쇼 앞에 [[다카스기 신스케]]가 우뚝 선다. 엔쇼의 비통한 호령과는 관없이 신스케의 칼이 곧게 올라간다. 이제 해방군도 전쟁도 앞으로 한 칼이다.
          그는 시체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다른 폐품들처럼 시설물 잔해에 간신히 걸려있던 그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가 흘린 피만 봐도 황은 일목요연했다. 그게 문제였다. 무전으로 화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눈으로 보면 자명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을 골라야 했다. 헨페이타가 절망하지 않을 형태로. 그게 어려웠다. 그때 신스케가 손을 들어 어려움을 끝내준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그가 통신으로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도.
          신스케는 몸태를 걱정하는 헨페이타에게 너스레로 대답했다. 그에게 걱정을 끼치는 걸 보면 자신도 참 망가졌다면서. 그는 다른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키지마 마타코]]의 구조와 보호를 부탁했다. 그녀는 자신이나 헨페이타 같은 악당이 아니라 악운만으론 살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귀병대를 탄생시킨 장본인이 죽으면 [[카와카미 반사이]]가 반드시 화를 낼 테니까. 그 외의 지시는 없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할 뿐이었다.
          * 사루가쿠는 아직도 그쪽으로 갈 수 없었다. 그는 적들을 쓰러뜨리면서 신스케의 대답을 곱씹었다. 알려줄 필요도 알 필요도 없다. 존재만으로 전장을 바꾸는 웅이 실은 이미 서있을 수도 없는 중인데 알 필요가 없다. 신스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몸으로라도 여전히 서있는, 서있으려는 웅들이 그렇게 말했다. 가츠라, 다츠마, 그리고 신스케. 그 자신들은 실제로는 웅도 뭣도 아닌 보통 사람에 불과하면서. 단지 그들을 믿고 싸워주는 이들을 위해 웅으로서 다시 일어나야만 했던 자들.
          >웅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엔쇼는 신스케보다 한 발 먼저 일어났다. 원히 매꿔지지 않을 한 발이 될 수도 있었다. 그의 오른팔이 제대로 움직여준다면. 아직 라이트 세이버를 쥘 정도는 됐다. 앞으로 얼마나 버텨줄 지 알 수 없지만 한 번은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꿈을 깨뜨리러 가기에는.
          한 발의 총성이었다. 엔쇼의 미간으로 정확히 향하는 총알. 그가 고개를 꺾자 머리채를 끊으며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작은 틈. 신스케의 목숨을 살린 틈. 엔쇼의 시야에 젖혀지는 신스케의 체와 자신의 꿈을 깨뜨린 한 발이 날아온 곳, 그걸 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마타코가 헨페이타와 함께 도착해 있었다.
          * 신스케는 엔쇼 보다 한 발 늦게 일어났다. 그는 움직이는게 신기한 중이었고 어디에나 있는 보통 사람이었다. 그정도면 충분했다. 꿈 너머로 가기에는.
          >웅 같은 건 더는 필요 없잖아.
  • 이장훈(배우) . . . . 19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 교동 (부거리길)
         | 활동 역 = [[배우]], [[교수]]
         | 대표작(곡) = 화《물고기》, TV《[[푸른거탑]]》, 뮤지컬《아가씨와 건달들》,《명성황후》, 《맘마미아》,등 다수
         1972년 경북도 김천시 교동 부거리길에서 태어난 이장훈은 연극, 뮤지컬, 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관객을 압도하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이다. 가족 뮤지컬《피노키오》부터 미스터리 화《물고기》, 그리고 코믹적인 요소가 가득 담긴 드라마《푸른거탑》까지, 탁월한 집중력과 진짜인지 연기인지 모를만큼 훌륭한 연기력으로 어떤 배역이든 맛있게 소화해 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현재는 서울호서예술전문학교 연기예술학부의 교수직을 맡고 있으며, 기절 전문 대대장 이장훈 역할로 [[tvN]] 《[[푸른거탑]]》에서도 맹활약하였다.
         * 연극 《[[수한 궁녀]]》 - 도승지 역
         *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화감독 역 (특별출연)
         === 화 ===
         * 《나에게오라》 (조연) -김빈 감독
         * 《보스륙작전》 (주조연’작두’역) –김성덕 감독
         * 《[[아랑 (화)|아랑]]》 (형사2 역) -안훈 감독
         * 《[[물고기 (화)|물고기]]》 (주인공 전혁 역) -박홍민 감독
         ※2011 부산국제 화제 초청작, 시민평론가(레드파인들리)수
         * 압구정 연극화 입시학원 강사
         * TMF 연극화 입시 강사
  • 이정훈 (1963년) . . . . 19회 일치
         |문 표기 = Lee Jeong-Hun
         |사진 사이즈 =
         [[한화 이글스|빙그레]] 입단 첫 해였던 [[1987년]] 22게임 연속 안타 기록과 0.335의 타율을 기록해 신인왕을 수하였다.<ref>[http://news.naver.com/sports/new/expertContents/read.nhn?category=baseball&expert_name=pdh&page=1&id=263 야구가 내게로 왔다, 빙그레 이글스 외야수 이정훈] 《박동희의 Mr.베이스볼》, 2009년 5월 14일 작성</ref>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 그리고 근성 있는 플레이 스타일로 '''악바리'''란 별명을 얻었고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 진학했다.
         [[198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7년 신인 지명]]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내야수]] [[강기웅]]과 [[류중일]]을 1차 지명해, 연고 팀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신인 첫 해 가장 많은 안타를 때려냈고, 신인을 받았다. [[1991년]]과 [[1992년]] 2년 연속 타격왕에 올랐다.
         은퇴 후 도미하여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후 [[한화 이글스]]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코치로 활동했고,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2005년]] 시즌 후 [[LG 트윈스]]에 입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048264 한화 이정훈 주루코치 LG로] - 대전일보</ref> [[2008년]]까지 [[LG 트윈스]] 코치를 역임한 후,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KBO 신인}}
         {{KBO 타율}}
         {{KBO 안타}}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KBO 신인자]][[분류:KBO 타율자]][[분류:KBO 안타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자]][[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19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70th sense. '''속 (2)'''
          * 일본 정부도 에스퍼관리 및 규제 법안을 정했고, BABEL의 [[키리츠보 타이조]]국장과 [[카시와키 오보로]] 대위는 다시 세뇌되어 찬동.
          * 이러한 추세에 [[츠쿠시 미오]]는 격분하지만 그 외의 일행들은 지금은 나서봤자 황만 악화될 뿐임을 자각하고 있다.
          * 작전은 세뇌된 이들을 관리하는 블랙 팬텀의 감응 네트워크 포털을 탈취, 붕괴 것. 그러자면 포털의 3분의 1 이을 탈취해야 하나 아직 포털의 위치조차 모른다.
          * 다른 이들이 회의중인 사이에, 미오가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만 데리고 독단으로 미나모토가 있다고 알려진 형무소로 향한다.
          * [[J.D.그리섬]]을 비롯한 코메리카 소속 에스퍼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크게 우려하지만 손쓸 방도가 없다. [[찰스 해밀턴]]과 [[아담 해밀턴]]의 아버지 해밀턴 원 의원은 친 에스퍼 정치가로 낙인찍혀 지지를 잃었다. 특히 코메리카 내의 기업들은 노골적으로 반 에스퍼 정서에 찬동하고 있다. [[켄 마크가이어]]와 [[메어리 포드]]의 "리버티 벨"도 현장에서 제외돼서 서류 작업만 떠맡는 중.
          문제는 이런 정세 속에선 에스퍼의 능력을 활용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에스퍼 개개인의 손해일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그리섬은 시대으로 보면 에스퍼 능력을 제약하고 격리시킬 수록 사회의 능률은 떨어진다. 그는 반대로 이런 황을 자신의 이익으로 만들려는 자들은 없는가 자문한다. 그건 에스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해 에스퍼 자원을 독점하려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 판도라의 [[츠쿠시 미오]], [[타마키 카즈라]], [[히노 카가리]]도 함께 시청 중. 미오는 이 모든 황이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의도대로가 아니냐고 분개한다. 카오루와 시호는 [[미나모토 코이치]]와 [[효부 쿄스케]]가 애먹은 대인 마당에 자신들이 반격하려 해봐야 황만 악화될 거라며 그녀를 진정시킨다.
          * 카오루는 효부의 말을 인용해 "화는 나지만 황은 우리에게 있던 선택지 중 그나마 최선"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때 효부도 그녀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온다. [[파티 크루]]가 함께다.
          그는 카오루의 말을 이어받아 자신이 지금 형태가 된 것까지 포함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카오루는 그가 소년 "쿄스케"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현재 효부는 여전히 혼수태지만 파티의 도움으로 입자를 조종해 작은 분신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입자는 소맥분. 파티가 당히 특훈을 시켜줘서 선내라면 이런 식으로라도 돌아다닐 수 있다. 소년의 모습인 건 체형이 작은 쪽이 컨트롤이 편해서. 나름대로 잘 터득했다는 자부심인지 자신을 다빈치 같은 천재라도 창피한 표현도 마다하지 않는다. 파티는 어쨌든 효부의 쇼타 모드를 볼 수 있어서 대만족 태.
          * 카가리는 어쨌든 일본에서도 에스퍼에 대한 차별과 이지메가 시작되었다며 뭔가 손을 써야 한다고 건의한다. 효부는 친구가 걱정되는 거냐고 묻는데, 아닌게 아니라 [[하나이 치사토]]와 [[토오노 마사루]]가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텔레파시스트인 하나이는 말할 것도 없고, 토오노는 그런 그녀를 지키겠다고 무모한 짓을 할 수도 있다. 꽤 진지한 걱정이지만 파티는 둘이 모에로운 황에 놓여있다고 흥분해서 카즈라의 태클을 당한다.
          효부는 현재 길리엄이 득의양양해서 아무런 불만도 없는 태라고 말한다. 때문에 다음 효부와 충돌할 때까지 [[츠보미 후지코]]나 [[마기 시로]]를 온존해놓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쪽이 헛점을 드러낸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끝장을 내려 할 것이다. 효부는 이미 자기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말하려다, 미나모토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말을 바꾼다. 아무튼 그런 황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 효부는 지금부터 작전 회의에 참가하자며 칠드런 일행을 데리고 도서실로 향한다. 그곳에선 [[쿠모이 유리]]의 정보를 기반으로 [[마츠카제 코우이치]]와 [[우츠미 세이시로]]가 작전을 구하고 있다. 작전이 정해지면 곧 판도라의 젊은 에스퍼들에게도 전달될 예정이다.
  • 창작:헤이즈 . . . . 19회 일치
         NTX에서 제작되는 선택지 소설. 구NTX에서 나린위키로 설정위키를 운할 시절 시도했었으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다. 그러다 사이트 개편을 통해 ~~나린위키보다 훨씬 간편하고 유용하며~~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었기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구NTX 시절에 연재되었던 "담력시험"을 계속하지 않고 '''리부트'''되었다. 먼저 "담력시험"이라는 제목으로 계속할 경우 초점이 어디까지나 '학생, 담력시험, 청소년물' 등으로 소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또 대략적인 세계관 설정이 없이 무작정 연재되었기 때문에, 선택지마다 내용이 충되거나 진행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담력시험"의 경우 주인공급 캐릭터만 5명이었기 때문에 캐릭터 하나하나 행동과 대사를 부여하고 주인공들간의 대화를 마련해야 했다. 차라리 아래에서 언급한 "언틸 던"처럼 2명씩 다니는 걸로 설정해 두는 게 좋았을 것이다.] 뚜렷한 핵심 없이 선택지가 양산되기도 했다. 결국 수습이 되지 못한 채 말이 방치지 사실 중단되었다.
         이후 현 사이트로 옮겨 "헤이즈(Haze)"라는 이름으로 재개되었다. Haze는 '''아지랑이'''라는 뜻으로, 무동군의 마스코트이자 미스테리의 징이기도 한 안개를 뜻한다. 동시에 동사로 쓸 경우 '''신고식을 시키다'''라는 뜻인데, 주어와 목적어가 각각 누구일지는 각자의 에 맡긴다. 또한 '''미로(Maze)'''와도 철자가 비슷하다.[* 사실 제목의 후보군에 올라 있었고 많이 고민했지만 분위기가 안 산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탈락했다.]
         무동고등학교의 화동아리인 RECORD의 일원들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정식 화 촬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원일기처럼 동네 소개 에 불과했지만, 시나리오에 살이 점점 붙어가자 아예 스릴러 화를 찍자는 쪽으로 계획을 고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의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인 [[창작:세정종합병원|세정종합병원]]의 별관에 숨어들어 촬을 하기로 한다. 촬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갑자기 계획이 이해진다...
          클로즈드 서클, 젊은 주인공들 등의 컨셉에 향을 주었다. 아예 패러디 물로도 나가볼까 생각중.
          소설의 무대인 무동군의 밑바탕이 된 만큼 선택지 소설에도 향을 주었다.
  • 채동욱 . . . . 19회 일치
         * 1982년 : 제24회 사법시험 합격<ref>[http://news1.kr/articles/1076395 채동욱 신임 검찰총장 프로필] 《뉴스1》 2013년 4월 4일 민지형·진동 기자</ref>
         * 2006년 :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맡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고발사건과 관련해 당시 사장이던 허태학씨 등을 기소했고 남국 대우건설 사장 로비사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사건 등도 지휘.)
         * 2010년 : '스폰서 검사' 관련 진규명위원회 위원과 진조사단장
         * 4월 16일 : 서울중앙지검장 독대보고제 21년만에 폐지<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4/h2013041621120521950.htm 채동욱 검찰총장 "중앙지검장 독대 보고 폐지 검찰개혁 5월 말까지 완결"] 《한국일보》 2013년 4월 16일 남욱 기자</ref>
         * 4월 23일 : [[대한민국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현판 강하식<ref>[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4/h2013042320060576070.htm 대검 중앙수사부, 욕의 역사를 덮으며] 《한국일보》 2013년 4월 28일</ref>
         [[군법무관]] 시절 고등학교 동창인 양경옥과 결혼했고, 사이에 2녀를 두었으나 장녀는 어릴 때 앓은 패혈증으로 뇌성마비 장애를 얻게 된 후 [[2009년]] 23세로 세을 떠났다. 장녀의 간호를 위해 아내는 [[중학교]] 교사를 그만뒀고, 채동욱은 장녀에게 소홀할까봐 장녀를 얻은 지 10년 만에 차녀를 얻었다고 한다.<ref>[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16/2013031600201.html 與대표(2003년 당시 정대철 민주당 대표) 구속 후 좌천… 작년 檢亂때 총장(한대) '비토(veto)'] 조선일보(2013년 3월 16일), 류정 기자</ref>
         [[조선일보]]가 혼외자식을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법무부에서 감찰을 발표하자 감찰 발표 당일, 취임으로부터는 5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소수 의견이 있다. [[조선일보]]의 혼외자식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할 예정이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140600055&code=940301 채동욱 "지난주부터 청와대에서 메시지 받았다…의혹 사실 아니라 해도 나가라는데 어떡하겠나"]《경향신문》</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13/2013091300178.html?related_all 蔡총장, 오늘 本紙 대 정정보도 소송 제기]《조선일보》</ref>[[청와대]]는 진규명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며 검찰과의 갈등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채동욱은 유전자검사를 하지 않으면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정정보도 청구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혼외 아들로 지목된 아이가 미국에 체류중이고 혼외자로 지목된 아이의 어머니인 임모 씨가 잠적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검찰 수사 결과 혼외자로 지목된 아동이 채동욱의 아들이라 볼 수 있는 당한 근거가 있음을 확인했다. 2016년 법원은 혼외자 의혹은 결국 의혹을 구실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는 모종의 음모라 짐작되며, 국정원 부 내지 그 배후세력의 지시에 따라 (개인 정보 조회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tvh&oid=437&aid=0000104506&sid1=291 "채동욱 뒷조사…법원, 판결문에 '배후·음모' 18번 언급"]</ref>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가 사춘기여서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유전자 검사를 해서 친자로 확인되면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기로 아이 어머니와 합의한 태라고 해명하였다.<ref>[http://www.etnews.com/20170705000358 채동욱 “혼외자 논란, 가슴아프고 다시 한 번 죄송하다”]</ref> <ref>인용:“2013년 9월 보도 이후 친자 여부에 대해 진행이 됐고 그쪽과 이야기해서 아이가 사춘기니 성인이 된 뒤에 DNA검사를 해서 확정을 짓고, 사실로 알려지면 당연한 책임을 지기로 합의를 했다”</ref>
         == 수 ==
         |전임자 = [[한대 (검사)|한대]]
         |전임자 = [[한대 (검사)|한대]]
  • 최다빈 . . . . 19회 일치
         | 웹사이트 =
         2015-2016 시즌에 마지막으로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 최다빈은 생애 처음으로 모두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보였다. 처음 출전한 라트비아 리가 그랑프리에서 3위, 이어 출전한 오스트리아 린츠 그랑프리에서 역시 3위를 차지했다. 특히 4차 대회는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두각을 나타낼만한 선수가 많아 메달 입성이 사실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무너지지 않는 멘탈과 정신력, 안정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시니어 첫 데뷔 무대에선 극심한 긴장감으로 8위(탈린 트로피)를 차지했으나 회장배 랭킹전에서 다시 1위를 차지하며 자신감을 높였고 2016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서 8위, 그리고 2016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보스턴)에서 14위를 차지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박소연]]의 부으로 대체 출전하게 된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선 쇼트는 개인 최고에 조금 못미치는 61.30을 받았으나 클린했고 프리스케이팅에선 트리플 살코의 언더 판정을 제외하곤 모두 완벽한 경기를 선보여 프리 기록 126.24점 합계 187.54라는 개인 최고기록을 또 한 번 경신시켰다. 또한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 여자싱글에서 우승한 선수가 되었다. 이 대회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던 선수는 2011년 [[곽민정]]이 동메달을 딴 것이다.
         이어 [[김나현]]의 부이 심해져 또 한번 대체 출전하게 된 2017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헬싱키)에선 쇼트에서 클린 연기를 선보여 62.66을 받았고 또 한번 쇼트 개인 최고를 경신했다. 쇼트 11위로 한 순위만 끌어올리면 올림픽 티켓 2장을 확보하는 황에서 프리 클린으로 128.45를 받아 프리 역시 개인 최고를 경신하였으며 종합 191.11을 기록해 종합 점수도 갈아치움과 동시에 [[김연아]] 이후 프리, 종합 점수 최고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했던 종합 순위에서 당당히 10위를 차지해 올림픽 여자싱글 티켓 2장을 가져오는 굉장한 성과를 거두었다.
         올림픽 시즌 시작 전 부츠 문제와 모친을 당한 최다빈은 어려운 황에도 불구하고 <피겨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구성은 다소 낮췄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휘,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고 1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월 초 예정되어있던 <아시안 트로피>에는 출전 직전 기권하였으며 그랑프리 전 챌린저 대회로 출전한 첫 대회 <온드라이 네펠라 메모리얼>에선 종합 4위를 기록, 두 번째 출전한 <핀란디아 트로피>에선 종합 9위를 차지하며 다소 부진한 출발을 알렸다. 올림픽 시즌 첫 그랑프리 대회인 중국 대회(<[[컵 오브 차이나]]>)에 출전해선 총점 165.99점으로 종합 9위를 차지했다. 6차 대회인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 출전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과 불과 1주 밖에 차이가 안나는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미국 대회는 출전 직전 기권했다. 12월 초 출전한 <피겨 2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쇼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국내 비공인 개인 최고점을 올렸으나, 프리에서는 잦은 실수를 범해 8위로 추락 종합 4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1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 72회 <한국피겨종합선수권>에선 쇼트에서 64.11점을 받아 4위, 프리에서 126.01점을 받아 2위에 오르며 종합 2위를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2,3차 총합 540.28점으로 평창행 올림픽 티켓을 1위로 따내면서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올림픽 출전 직전 프로그램 점검 차 출전한 피겨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선, 쇼트 5위와 프리 4위, 종합 4위(190.23)에 랭크되며 자신의 4대륙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또한 종합 점수는 개인 최고점에 불과 0.8정도 모자란 성적이었다. 4대륙에서 자신감을 얻고 출전한 올림픽에선 단체전 무대에서 65.73을 받아 쇼트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진 개인전 여자 싱글에서 불과 열흘만에 67.77로 다시 한 번 개인 최고를 갈아치우며 전체 30명의 선수 중 8위에 올랐다. 이어진 프리스케이팅에선 131.49를 받아 개인 최고점을 3.05점 끌어 올렸고 개인 최고 점수는 무려 8.15점 높인 199.26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쇼트와 프리에선 각각 8위에 올랐지만 종합 점수에서 7위에 오르며 [[김연아]] 이후 대한민국 선수 최고 등수를 마크했다. 한 달 후 열린 피겨 세계선수권에선 무너진 부츠로 인해 쇼트 21위로 부진했고, 공식연습 중 발목 부이 염려되어 결국 프리스케이팅에는 기권했다. 하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무대 2장의 티켓을 가져온 장본인이고, [[김연아]] 이후 ISU 공인 최고점수와 올림픽 최고 순위(7위)를 마크하는 등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점은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성과였다.
         8월 1일, 소속사를 통해 쇼트프로그램은 화 [[에비타]]의 OST <Don't cry for me Argentina>로, 프리스케이팅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으로 선곡했음을 밝혔다. 9월 중순 온드레이 네펠라 트로피에 출전할 예정이고, 전후 사정에 따라 다른 한 개의 챌린저 대회도 나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올 시즌 그랑프리 두 개 대회에 초청 받았다. 첫 대회는 2차 <스케이트 캐나다>이며, 두 번째 대회는 4차 <NHK 트로피>이다. 두 대회는 시니어 첫 데뷔 시즌에 나간 적이 있었으며 각각 7위와 9위를 한 경험이 있다.
         * Don't cry for me Argentina (Vocal.Madonna)<br>{{small| (from ''[[에비타 (화)|에비타]]'') <br> choreo. by 미야모토 겐지}}
         * Sparkling Diamonds <br>{{small| (from ''[[물랑루즈 (화)|물랑루즈]]'') <br> choreo. by 미야모토 겐지}}
         * 화 [[대부]]&[[여인의 향기]] ost (with.[[이준형]]) <br>{{small|choreo. by 미야모토 겐지}}
         * Papa, Can you hear me? <br>{{small| (from ''[[옌틀 (화)|옌틀]]'') <br> choreo. by 미야모토 겐지}}
         * [[닥터 지바고 (화)|닥터 지바고]] <br>{{small| by [[모리스 자레]] <br> choreo. by 파스퀘일 카멜렝고 }}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small| <br> by [[레너드 번스타인]] <br> choreo. by 니키타 미하일로프}}
         * Someone in the Crowd <br>{{small| (from ''[[라라랜드 (화)|라라랜드]]'') <br> by [[저스틴 휴이츠]] <br> choreo. by 나카지마 테츠야, 파스퀘일 카멜렝고}}
         * Someone in the Crowd <br>{{small| (from ''[[라라랜드 (화)|라라랜드]]'') <br> by [[저스틴 휴이츠]] <br> choreo. by 나카지마 테츠야, 파스퀘일 카멜렝고}}
         * [[닥터 지바고 (화)|닥터 지바고]] <br>{{small| by [[모리스 자레]] <br> choreo. by 파스퀘일 카멜렝고 }}
         * Mama, I'm a Big Girl Now <br>{{small| (from ''[[헤어스프레이 (2007 화)|헤어스프레이]]'') <br> by [[마크 셰이만]] <br> choreo. by 파스퀘일 카멜렝고 }}
  • 페어리 테일/521화 . . . . 19회 일치
          * [[브랜디쉬]]는 [[디마리아]]를 미니 사이즈로 만들어서 데리고 다니고 있는데 디마리아는 나츠만 보면 경기를 한다.
          * 오거스트가 대성당 위에서 광범위한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자 공에서 [[길다트 클라이브]]가 날아와 대치한다.
          * 나츠의 예대로 그레이는 단독으로 제레프를 대하기 위해 길드에 도착해 있었다.
          * [[아질 라무르]]는 [[엘프먼 스트라우스]], [[리사나 스트라우스]] 남매에게 패배. 둘의 콤비네이션에 패배한 듯하다. 아질은 아직도 계속 싸우려 하지만 그때 아질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 더이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린다. 할아버지는 "이 전쟁에선 소중한걸 너무 많이 잃었다"고 말하는데 엘프먼은 이 전쟁만 그런게 아니라 전쟁은 항 그래왔다고 대꾸한다. 리사나는 그들이 항 이기는 전쟁만 했기 때문에 그 점을 늦게 깨달은 것이며, 그동안 제국에게 졌던 나라들은 얼마나 많은 걸 잃었을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아질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테니 손주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리사나는 자기도 오빠도 대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거절한다. 아질은 새삼스럽게 둘이 가족이었냐고 놀라며 "전혀 안 닮았다"고 디스한다.
          * [[브랜디쉬]]와 [[디마리아]]였다. 둘도 별다른 이없이 무사했지만, 디마리아는 여전히 태가 좋지 않아. 브랜디쉬가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서 데리고 다니는데 아주 유아 퇴행을 했는지 여전히 오들오들 떠는 것이 엄청 위축된 태. 그 태로 나츠를 만나자 경기를 일으킨다. 나츠는 그녀를 공격했던 기억 자체는 있기 때문에 사과를 하는데 듣지 않고 브랜디쉬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그때 주위를 가득채우는 이한 소음이 들린다. 그 심치 않은 소리의 진원지는 매그놀리아의 대성당. 그 위에 누군가가 있다. 그것은 최후의 스프리건이자 최강의 스프리건 12 [[오거스트]]였다.
          * 아직 부이 회복되지도 않은 그레이가, 누구보다 먼저 제레프를 대하기 위해 길드에 도착해 있었다. 제레프는 "가장 나츠를 슬프게 하는 황이 돼버렸다"며 씁쓸해한다.
          그리고 그레이의 행동을 누구보다 나츠가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나츠는 그레이가 분명 제레프를 대하러 갔을 거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 페어리 테일/523화 . . . . 19회 일치
          * 그레이는 마법을 완성하기 직전 [[울(페어리 테일)|울]]의 혼과 만나지만 그만두라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다.
          * [[나츠 드래그닐]]은 마법이 완성되기 직전에 도착해 자신의 열기로 아이스드 셸을 쇄한다.
          * 한편 [[아이린 베르세리온]]에게 승리한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은 돌아오는 길에 예치 못한 인물의 공격을 받는다.
          * 바로 [[아크놀로기아]]. 인간체의 모습으로 나타나 "흑마법사"에게 이 세은 질렸다고 말하는데.
          * 대원히 가두는 마법 "아이스드 셸". [[그레이 풀버스터]]는 과거 "아바타르"에 잠입했던 시절 익혔던 "로스트 속성"을 더해 위력을 증폭시킨다. 로스트 속성은 마법의 위력을 수십 배로 배가하지만 사용자를 세에서 지워버리는 무서운 대가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아예 사라지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면 차라리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테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 로스트 속성으로 강화된 아이스드 셸은 [[제레프 드래그닐]] 조차 저항하지 못한다. 그는 이런 마법을 써봤자 자신을 멸할 수는 없다고 도발한다. 그레이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츠를 죽이지 않고 제레프를 쓰러뜨리려면 이 방법 뿐이라고 강변한다. 제레프는 아이스드 셸이 대원히 가둔다고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자신이 부활할 거라고 경고하는데, 그레이의 결심은 꺾을 수 없다.
          * 그레이는 로스트 아이스드 셸의 완성을 눈 앞에 두고 스승 [[울(페어리 테일)|울]]의 혼과 만난다. 그저 그레이가 본 환인지, 진짜 울의 혼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사는 걸 포기해선 안 된다며 말린다. 하지만 그레이는 방법은 이것 뿐이라며, 마지막까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데.
          * 뒤따라 도착한 [[루시 하트필리아]]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둘과 그레이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눈물로 호소하는 나츠의 모습을 보고 당혹하고 숙연해진다. 그레이는 더이 아이스드 셸을 사용할 의지가 사라진 것 같지만, 이대로 제레프를 쓰러뜨리면 나츠가 죽는거 아니냐고 우려한다. 제레프는 거기에 맞장구치며 이기든 지든 죽는 잔혹한 운명이라 말한다.
          * 심세계를 거친 나츠는 더이 아무런 망설임도 고민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해피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야 나츠니까"라며 그가 살아남을 거라 믿는다. 루시도 아무 말 없이 그의 결정을 존중하고 믿기로 한다.
          * 한편 [[아이린 베르세리온]]을 힘겹게 이긴 [[엘자 스칼렛]]과 [[웬디 마벨]]은 처를 치료하고 길드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웬디는 아직도 [[마카로프 드레아]]가 죽음을 결심했을 때 옆에 자신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지만, 엘자는 그건 마카로프가 죽음을 각오한 결과였으므로 차이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 아이린이 그런 것처럼.
          * 인간체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크놀로기아]]. 아이린의 유니버스 원이 해제된 향으로 예보다 빨리 돌아왔다. 그는 "흑마법사" 제레프를 언급하며 "이 세에 너무나 질렸다"는 뜻모를 말을 중얼거리는데.
  • 피서영 . . . . 19회 일치
         |이름 = 피서
         |친척 = 오빠 피세, 오빠 [[피수]]
         |웹사이트 = [http://physics.bu.edu/people/show/soyoung 보스턴 대학교 물리학]
         '''피서'''(皮瑞英, 1946년 ~ )은 [[보스턴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수필가 [[피천득]](皮千得)이고, 남편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로먼 재키브(Roman Jackiw)이며, 아들은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Stefan Pi Jackiw)이다.
         피서은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토니브룩 대학교]](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로 유학을 갔다. 유학 시절에 [[이휘소]]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Spires에 등록된 피서의 논문 수는 총 66편으로 3800번이 넘는 피인용을 얻었으며, 특히 Alan Guth와의 인플레이션 초기 우주의 양자역학적 요동에 관한 연구는 1000여번의 피인용수를 받은 중요한 업적이다. 양자 요동이 밀도 요동(density perturbation)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 낸 사람 중에 한 명이다.
         피서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막내 딸로 수필 '서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수필 '서이'에는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이다. 서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털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 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라는 내용이 있다. 이외에도 '서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서이와 난이' 등의 작품에서 여러 차례 딸에 관한 글을 남겼다.
         [[피천득]]은 딸 피서에게 “[[퀴리 부인]]처럼 되어라.”, “[[아인슈타인]]같이 공부해라”라는 말을 자주 들려주며 인생의 멘토역할에도 최선을 다했다. [[피천득]]의 믿음, 기대, 격려로 딸 피서은 훗날 저명한 과학자가 되었다.
         피서의 남편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로먼 재키브(Roman Jackiw)이고, 아들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Stefan Pi Jackiw)이다.<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407215 스테판 피 재키브 "난 아이돌 아닌 바이올리니스트"], 《매일경제》, 2011년 6월 27일</ref><ref>[http://news.donga.com/3/all/20080522/8580956/1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축복이었습니다], 《동아일보》, 2008년 5월 22일</ref>
  • 하이큐!!/등장인물 . . . . 19회 일치
          * 위 항목: [[하이큐!!]]
         ※단행본화가 되지 않은 최신 연재본의 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니 열람 시 주의할 것.[* 스포일러 틀 → 정발/원서/잡지에 관없이 중요한 반전이 있을 경우]
         == [[아오바죠사이 고교]](青葉城西 高校) ==
         [[아오바죠사이 고교]] 항목 참고.
         기본적으로 전국 8강에는 들어간다고 언급될 정도의 강호 학교. 전국대회 단골 출장 학교로 [[아오바죠사이 고교]]와 [[다테 공업 고교]]를 원한 [[콩라인]]으로 밀어냈다. 다만 작중 시점에서 5년 전, [[카라스노 고교]]에게 밀려 딱 한 번 전국대회 진출을 못 했던 모양.
          일본 고교 선수들 중 베스트 3 안에 들고, 미야기 현에선 혼자서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었다. 관동의 선수들도 '우시와카'의 이름은 알고 있을 정도. 카라스노가 봄 배구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대다. [[오이카와 토오루]]에게는 중등부 시절 부터 악연의 대였다. 라이트 자리에서 각도 내기에 적합한 왼손잡이 공격수.
          기본적으로 진중한 성격이나, 말을 생각하고 하는 편이 아니라서 우시와카 본인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 속을 긁는 때가 있다.[* 봄 배구 선발전 직전 화장실에서 만난 오이카와에게 "너에겐 고교 마지막 대회겠네 건투를 빈다."라고 말한다. 빈정이 한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전국대회 갈거니까 마지막이 아니다!"라고 받아치자. "? 전국에 갈 수 있는 건 한 팀인데.(우리 팀이 나가는데 너희가 어떻게...?)"라고 말하며 또 다시 속을 긁어댄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왈 "비꼬려고 말하는게 아니라서 더 열받아...."] 쉽게 말해서 엘리트의 길만 걸어왔기 때문에 언더독의 기분을 이해 못하는 [[눈새]]다. 이런 성향은 우연히 만난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게 오이카와를 평가하며 은연 중에 드러나는데 '''"우수한 모종에는 그에 알맞은 토양이 있으며, 메마른 땅에서는 훌륭한 열매가 자라지 않는다."'''고 말하며 ~~농부?~~콘크리트 출신 두명을 자극했었다.
         봄고 대회 카라스노의 1회전 대. 25-16, 25-13의 스트레이트로 카라스노에게 패했다.
         봄고 대회 카라스노의 2회전 대. 무려 201cm나 되는 1학년 햐쿠자와의 존재로 인해 떠들썩했던 팀이다. 25-22, 25-19의 스트레이트로 카라스노에게 패했다.
         = 사이타마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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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호쿠 업대학 3학년, 키 : 183.5cm
          - 배구팀 아저씨들이 항 억지로 술을 먹여서 고민.
          본명 불명. 카라스노 고교 배구부 OB로 주전당시 배번은 히나타와 같은 10번이었다. 봄의 고교 배구 전국 대회에서 미야기 현 대표로 활약했으며 해당 경기는 주인공 [[히나타 쇼요]]가 배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타나카 사에코와는 같은 학년이었고 츠키시마 아키테루보다는 한 학년 아래인 점에서 나이는 1권 기준 21세. 작은 신체(170cm 안팍)에 비해 엄청난 점프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대단한 박력과 카리스마를 가져[* 타나카 사에코의 회으로는 컨디션 난조로 연습 때 교체 되었는데, 락커룸 관물함을 머리로 들이받으며 분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의 눈매와 포스가 엄청나서 좀 놀던 언니로 추정되는 사에코마저 움찔할 정도.] 에이스로서의 자부심과 실력으로 팀과 동료의 사기를 북돋으며 카라스노 배구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 다만 현재까지 작중 직접적으로 묘사된 일이 적어서 베일에 싸여 있다.
          본명 불명. 카라스노 고교의 교감이다. 카게야마의 서브를 히나타가 엉뚱하게 받아 그의 가발을 날려버린 적이 있다. 3권에서 아즈마네의 과거 회 장면에서도 등장했다.
  • 하이큐/268화 . . . . 19회 일치
          * 대가 코즈메 자신을 무너뜨리는게 목적이라면, 역으로 자신에게 부하를 더 많이 거는 척하며 "흔들린 리시브"로 적을 속이자는 것.
          * 작전은 성공하고 사루카와 진은 혼란에 빠지지만 [[시시오 아리타카]] 감독은 금방 선수들을 다잡으며 쉽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다.
          * 마침내 네코마의 매치 포인트. 코즈메는 지칠대로 지친 태였지만 기회가 주어지자 "자신에겐 있을리 없는 필살기", "근성"을 발휘해 최고의 세트업을 올린다.
          * 1세트 중반. [[네코마 고교]]는 [[사루카와 공고]]의 부자연스러운 플레이를 눈치챘다. 첫 번째 TO는 그 위화감의 정체가 뭔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것. 우선 정체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적은 네코마의 뇌이자 심장인 [[코즈메 켄마]]를 지치게 만들 심산이었다. [[야마모토 타케토라]]가 그렇게 황을 정리했는데 [[하이바 리에프]]가 이해하지 못했다. [[시바야마 유우키]]가 적당히 설명. 그래도 그의 머리로는 알기 어려운 얘기였다.
          표적이 된 코즈메는 "비책이 떠올라 전혀 안 피곤하게 이기고 싶다"는 택도 없는 말을 했다. [[쿠로오 테츠로]]와 야마모토가 "멍청한 소리"라고 입을 모았다.[[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이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대가 끈기와 인내를 무기로 나온다면 이쪽도 그렇게 나가야 한다는 것. 정공법. 주장의 견해도 같았다.
          * 코즈메의 작전은 바보같은 리에프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만큼 위험했다. 일부러 리시브를 흔든다. 전례가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을까? 코즈메는 유효한 국면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야쿠는 코즈메의 의향이 그렇다면 따를 테지만, 이미 휘청거리는 태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물론 코즈메는 매번 엔드라인까지 뛰어가기는 싫었다. 하지만 못 움직일 태인 것도 아니고, 진짜 부담이 많아가는건 후위라고 했다. 사루카와의 공격에 익숙해져야 하는 데다 자신이 지정한 위치로 넘기기까지 해야 하니까.
          리에프는 어느 시점부터는 역시 못 알아들었는지 아무튼 블록을 열심히 하겠다고 했고 그 이을 바라는 사람도 없었다. 이렇게 첫 번째 TO 종료.
          * 이후는 코즈메가 생각한 대로였다. 사루카와의 움직임은 그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쿠로오와 리에프의 존재 때문에 대측은 센터선을 경계하고 있으므로 블록은 MB 쪽에 집중될 것이다. 그들은 코즈메를 무너뜨리는게 목적이므로 적당한 신호를 준다면 "흔들린 리시브"라고 철썩 같이 믿을 것이다. 그때가 기회. 블록을 공과 MB 위치로 끌어들은 뒤에 멀리 돌리는 토스. 혹시 사루카와가 눈치를 챈다면 "반대편"을 활용한다. 그렇게 그려져 있던 그림이 2세트 후반, 지금 작렬했다.
          * 시시오 감독에겐 황을 타개할 만한 명쾌한 해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그런건 처음부터 필요가 없었다.
          그는 주위를 환기시켰다. 사루카와의 전략은 잘 먹혀들고 있다. 코즈메가 진이 빠진 지경이 된건 변함없다. 대는 전통의 강호 네코마. 어려운 적인게 확실하지만 비등한 황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 객관적인 사실들을 새삼 강조하며 선수들을 다잡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밀어붙이자, 시시오 감독의 정론이 먹혀들었다. 다시 안정을 되찾아가는 사루카와 진을 곁눈질하며, 코즈메는 매우 성가셔했다.
          * 시합재개. 돌아온 사루카와 선수들은 "시합이 길어질 수록 힘든 건 네코마 쪽"이란 대전제를 확실히 되새긴 태였다. 코즈메가 굳이 이 시점에 "흔들었"던 건 모두가 사루카와의 공격에 익숙해지는 시점, 그리고 사루카와가 승리를 목전에 두고 성급해지는 시점을 동시에 노린 것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그대로 연속 득점하는 걸로 게임을 끝낼 생각이었는데, 시시오 감독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 야마모토의 리시브는 언제나 한 가지 원칙에 출실했다. 반걸음 빨리 공에 도달하는 것. 그 반걸음 만큼 공을 조작할 여유가 늘어난다. 그 차이는 코트 바깥의, 다른 학교 선수들이 봐도 알 수 있었다. 선수들은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저런 정성스런 리시브가 가능한지 감탄했다. 코즈메의 주문 대로다. 높게 네트 앞으로 띄워진 공. 정확히 코즈메의 머리 위. 대는 코즈메의 유도와 양 사이드의 공격에 모두 유의하고 있었다. 들어갈 구멍이 있을까? 그렇다면 정중앙. 심플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쿠로오가 스파이크. 이것이 허를 찔렀다. 네코마의 득점. 스코어 29 대 28. 네코마가 마침내 역전. 매치 포인트에 도달한다.
          얼마나 파김치가 되든, 뒤쳐졌든 관없었다. 결국엔 해낸다. 코즈메가 포기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게 야마모토가 코즈메를 다시 보게된 이유. 코즈메 켄마 식 근성론이었다.
          * 쿠로오와 카이의 블록을 뚫고 시가의 스파이크가 꽂혔다. 야마모토의 리시브. 흔들렸다. 하지만 그런 황에서도 공은 정확히 네트 앞으로, 코즈메에게 날아갔다. 코즈메가 그 공을 보며 레프트에 있는 [[후쿠나가 쇼헤이]]를 바라봤다. 재주가 많은 데다 블록이 있는 황에서도 좋은 위치로 때리는 녀석. 언제나 [[히나타 쇼요]]는 이렇게 물었다.
  • 한보배 . . . . 19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경북]] [[구미시|구미]] 고아읍 (선산대로) (현,[[경북도]] [[구미시]] 고아읍 (선산대로))
         | 웹사이트 = [http://www.broomstick.co.kr/board/gallery/read.html?no=32&board_no=8 브룸스틱 한보배]<br>{{트위터|pink_rabbit_}}<br />{{싸이월드|21853400}}<br/>{{인스타그램|1.treasure}}
         | 수 =
         * [[2008년]] [[SBS]] 창사특집극 《[[압록강은 흐른다]]》 ... 15세 무던 역 ([[신진]] 아역)
         * [[2011년]] [[MBC]] 대하드라마 《[[계백 (드라마)|계백]]》 ... 어린 초 ([[효민]] 아역)
         === 화 ===
         * [[2002년]] 《[[복수는 나의 것 (2002년 화)|복수는 나의 것]]》 ... 유선 역
         * [[2002년]] 《[[폰 (화)|폰]]》 ... 아이 환자 역
         * [[2002년]] 《[[연애소설 (화)|연애소설]]》 ... 경희 요양지 아이들 역
         * [[2006년]] 《[[조용한 세]]》 ... 박수연 역
         * [[2012년]] 《[[회사원 (화)|회사원]]》 ... 라보슬 역
         * [[2018년]] 《[[동화 (화)|동화]]》 ... 은정 역
         == 수 및 후보 ==
         ! 시
         | [[KBS 연기대]]
         | 청소년 연기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구미시 출신]][[분류:200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청주 한씨]][[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한상대 (검사) . . . . 19회 일치
         '''한대'''(韓相大, 1959년 1월 28일 ~ )는 대한민국의 제38대 검찰총장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 2011년 8월 ~ 2012년 11월 [[검찰총장]]<ref>[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107/e2011071517292593130.htm 한대 검찰총장 내정자 프로필]《서울경제》2011년 7월 15일 김현수 기자</ref>
         * 2015년 한대 법률사무소 변호사
         고려대 법대 재학시절인 1980년 5월 ‘1을종 현역병 입’으로 판정을 받았다가 1981년 5월에 대학원 진학을 이유로 입기일과 징병검사를 연기했으며, 사법시험 합격 뒤인 1982년 5월 ‘수핵탈출증(디스크) 수술’을 이유로 ‘병종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
         한 후보자의 부인과 두 자녀는 각각 1998년 5월, 2002년 9월에 용산구 서빙고동에서 용산구 이촌동으로 주소지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88181.html 한대 검찰총장 후보 ‘재산 25억’]《한겨레》2011년 7월 19일 석진환 기자</ref> 위장전입 덕에 큰 딸은 이촌1동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모 외고에 진학한 뒤 아버지와 같은 고려대를 나왔다. 둘째 딸은 그러나 성악을 희망, 일반중학교가 아닌 예술계중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위장전입 두 달 만인 같은 해 11월 주소를 다시 서빙고동으로 옮겼다. 한 내정자는 이같은 사실을 시인하며 "딸이 친한 친구와 함께, 같은 이웃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해서 아내가 주소를 이전했던 것"이라고 군색한 변명을 했다. 그는 그러나 "부동산 투기 등 다른 사유는 전혀 없다"며 자녀 진학을 위한 위장전입은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면서도 "결과적으로 위장전입을 한 것이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7147 "딸이 친구와 학교 다니고 싶어해", MB지명 총장 '전원 불법']《뷰스앤뉴스》2011년 7월 18일 김동현 기자</ref>
         김학재 의원은 한 후보자가 서울 행당동 대지를 2006년 공시지가의 4분의 1 수준으로 매각한 것을 두고 ‘다운 계약서’ 의혹을 제기했다. 한 후보자는 “모친이 관리한 땅이라 계약서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고교 동창이 운하는 벤처회사의 비장주식 1000주를 500만원에 매입했다가 2000만원에 팔아 수익을 냈다는 주장에 대해선 “실제론 주식을 2000만원에 구입했다. 500만원에 산 것으로 돼 있는 것은 해당 회사에서 회계편의 액면가로 세무신고를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땅 매도 당시 부동산 매매계약서, 토지측량 도면, 토지 매수자의 사실확인서를 공개했다.<ref>[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955222 인사청문회 앞둔 한대·권재진 '의혹 백화점']《SBS》2011년 7월 22일 정혜진 기자</ref>
         조선일보는 2011년 7월 21일자 6면 <권재진·한대, 같은 시점에 제주 한동네 오피스텔 샀었다>는 기사를 통해 한대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경향신문은 2011년 7월 21일자 1면 <한대 후보 양도세 탈루 의혹>이라는 기사에서 "한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서울시내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된 땅을 다운계약으로 헐값에 팔아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이 20일 제기됐다"고 보도했다.<ref>[http://www.injournal.net/sub_read.html?uid=22642§ion=section3 MB와 끈끈한 한대 양파 검찰총장?]《인터넷저널》2011년 8월 5일</ref>
         한인대는 사찰총장 취임사에서 "오늘 검찰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이 땅에 3대 전쟁을 선포하고자 한다"며 "하나는 부정부패와의 전쟁이고, 둘째는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이며, 마지막으로는 우리 내부의 적과의 전쟁"이라고 '전쟁'이란 표현을 연거푸 사용했다. 또한 "이 땅에 북한 추종세력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통일 기반을 마련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공안역량을 정비하고, 일사불란한 수사체제를 구축하여 적극적인 수사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종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는 결코 외면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북한을 추종하며 찬양하고 이롭게 하는 집단을 방치하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라고 덧붙였다.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0657 "한대의 '전쟁 선포'... 박선이 옳았다"] 《오마이뉴스》 2011년 8월 13일 박주현 기자</ref> 경향신문은 칼럼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했습니다. 반 총장은 종북좌익세력인가요, 아닌가요. 노동, 경제, 반(反)복지 정책 등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고 감시하면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종북세력입니까"라며 한대의 발언을 비판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151805021&code=940301 검찰과의 전쟁] 경향신문 2011년 8월</ref>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8회 일치
         위항목: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역사 두번째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이며, 사 최초로 [[K리그 클래식]]에서 시즌을 보낸 적이 없는 팀이 최종 승자가 된 대회이다.
         운 변경사항으로 작년 2014시즌과는 달리 2위팀에게 다소의 어드밴티지를 주기 위한 조정의 흔적이 있다. 이에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경기 사이에 있던 휴식기가 1주일에서 3일로 줄어들었다.
         || 김광(55)[* 자책골] || || 전민광(49) ||
         2015시즌 양 팀의 대전적은 2승 2패로 팽팽한 수준이었던데다가 무승부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홈팀에게 유리한 "무승부시에는 홈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이라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예측이 많았었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무승부가 나왔고, 이에 3위팀(홈)인 수원 FC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광의 실책으로 발생한 자책골이 가장 큰 패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김광은 전후반 90분동안 21개의 슈팅중에 15개나 유효슈팅이었던 수원 FC의 날카로운 공격을 잘 막아냈을 정도로 활약은 준수했다. 자책골에 묻혀버렸을 뿐.
         ||<|2> 득점선수 || 노병준(17) || || 배신(13) ||
         대구는 [[K리그 챌린지]]에서 후반기 부진으로 [[K리그 클래식]] 자동진출권을 놓쳤기 때문에 사기가 당히 저하된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2015시즌 대구는 수원을 대로 1승 1무 2패로 성마저 최악이었는데다가 대구가 챌린지에 합류했던 2014년부터 수원 FC와의 홈경기는 '''단 1승도 없었다.''' 이런 황에서 반전을 믿을 수 있는건 무승부로 시합을 종료하여 승강 플레이오프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으나...
         자파가 역전골을 넣으며 대구는 급격히 무너졌고, 수원FC는 특유의 적절한 반칙으로 대구의 흐름을 끊는 경기운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날 나온 총 반칙수는 오프사이드를 제외하고 48개였고, 이 중 31개가 수원FC가 저지른 반칙이었다. 오프사이드까지 포함하면 총 50개가 넘는 반칙수를 기록한 경기였다.
          * 사 처음으로 준PO와 PO의 MOM(자파)이 같은 대회였다.
  • 강세정 . . . . 18회 일치
         {{화인 정보
         | 학력 = [[경기대학교]] 연극화학과 [[학사]]
         | 수 = [[2009년]] [[MBC 연기대]] 여자 우수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sejung_kang|강세정}}
         * [[경기대학교]] 연극화학 학사
         |2008||MBC||[[환의 짝꿍 사랑의 교실]]||진행||
         === 화 ===
         |2008||환기담||||
         |2011||[[너는 펫 (화)|너는 펫]]||김진아||
         * 2007년 [[유리자]] - 기억력
         == 수 ==
         * 2009년 [[MBC 연기대]] 우수
         * 2012년 제20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 드라마부문 우수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
  • 강재형 (아나운서) . . . . 18회 일치
         |종교 = [[천주교]]([[세명]] : [[사도 요한]])
         |웹사이트 = [http://blog.imbc.com/blog.main.index.screen?p_club_id=happysky MBC 아나운서 강재형] <br/> [https://twitter.com/happysky87 트위터 강재형 아나운서]
         * [[1978년]] ~ [[1981년]] : [[동고등학교 (서울)|동고등학교]] 졸업
         * [[1982년]] ~ [[1986년]] : [[고려대학교]] 문학과 학사
         == 수 ==
         * [[2014년]] 12월 제26회 한국어문
         * [[2013년]] 12월 아나운서연합회 아나운서대식 대
         * [[2000년]] 한국어문대 특별
         * [[1996년]] 아나운서클럽 회장
         == 화 ==
         * [[2005년]] [[10월 22일]] : 《카레이싱 이야기》, 《세에서 가장 재미있는 스포츠》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62년 태어남]][[분류:1987년 데뷔]][[분류:동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경준(축구선수) . . . . 18회 일치
          * 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 출신학교 || 반야월초등학교(2006~2008) [br] 백암중학교 (2009~2011) [br] [[신갈고등학교]](2012~2014) [br] [[남대학교]] (2015~2016) ||
         [[박주]]이 졸업한 반야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백암중학교를 거쳐서, 축구 명문 [[신갈고등학교]]를 거쳐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이끄는 남대로 진학했다.
         신갈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처음 진학한 학교는 백암고등학교였다. 하지만, 입학 후 1년만에 팀이 해체되었고, 용인축구센터를 떠나기 싫었던 김경준은 신갈고등학교로 전학갔다. 김진 감독 덕분에 일찍 적응했다고 한다. 신갈고 시절에는 [[http://www.football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1|4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는 등, 신갈고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수아레즈]]라고 불리었다. 3경기 7골을 득점하는 등 엄청난 골 결정력을 선보였으며, 고교 무대에서 주목받는 스트라이커였다. 결국 9경기 연속 골 기록을 세웠고, 14골을 넣었다. 이 때,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김경준을 보고 갔었고, 결국 김경준은 남대로 진학하게 된다.
         남대학교 시절 처음에는 조금 자만했던 듯 하다. 수비수는 수비를, 공격수는 공격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속한 팀은 [[남대]]였다. 포항의 패스 축구를 남대에 이식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은 김경준에게 포인트를 집어주며 포지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부족했던 피지컬을 채우기 위해서 팀메이트 전오와 함께 훈련하며, 대학 1년을 보내었다. 이당시 [[남대]]는 2015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을 시작으로, U리그 권역 우승을 차지했다.
         2학년이 되면서, 김경준은 달라졌다. 김경준을 앞세운 남대는 대학 리그를 호령했다. 2016년에는 추계 1,2 학년 대학대회를 우승했으며, U리그 권역에선 다시 우승했다. 전국체전 우승과 작년 준우승한 전국추계대학연맹전에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016년 추계 1,2 학년 대회 득점왕, 추계대학연맹전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대학 리그를 2년동안 평정하다시피 했다.
         5월 6일 토요일 [[전북 현대]]와의 [[K리그 클래식]] 10라운드 [[http://www.daegufc.co.kr/board_story_clubnews01/view.php?tn=board_story_clubnews01&list_count_s=6&G_state=Y&pm=4.2.1&part_part_s=&subject_s=&content_s=Y&name_s=&writedate_s=&search_word_s=%EA%B9%80%EA%B2%BD%EC%A4%80&sid=2981&gid=&cpage=1&spage=1|홈 경기에 교체 출장]]했다. 전반 15분에 에반드로의 부으로 최전방 공격수로 교체되어 들어갔다. 최전방 공격수로서 활발히 움직이며 슛을 날리고, 돌파를 시도했지만, 골은 기록하지 못하고 0:3으로 패배했다.
         2018년 4월 27일,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8라운드 [[FC서울]]과의 경기에서 후반 43분경 [[고요한]]의 정강이를 스터드로 가격하는 과격한 행위를 하여 퇴장 당했다. 이 일로 한국프로축구연맹 벌위로부터 제재금 300만원 징계를 부과받았다.[[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90150|#]]
         신갈고 수아레즈라고 불릴만큼 골 결정력이 우수하다. 개인기도 좋은 편으로 대학 시절에 대 수비수를 개인기로 따돌리고 골을 기록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득점에 있어서도 꾸준함을 과시한다. 신갈고 9경기 연속골 기록이 이를 증명하며, 남대에선 U리그 권역 득점왕, 추계대학연맹전 득점왕을 기록했었다.
         축구 선수와 대학생, 두 가지를 하면서 대학생 생활을 거의 못해봐서 엠티나 과팅에 대한 환이 있는 듯 하다. [[http://www.football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26|엠티 가고 과팅을 해보고 싶다]]라는 인터뷰를 했었다. 결국 프로로 도전하면서 못해본 듯 하다.
         고등학교 시절이나 대학 시절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이하게 청소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승우(축구선수)|이승우]], [[황희찬]] 등 해외파나 전국구 유명세를 지닌 유망주들에게 밀렸다고 밖에 할 수 없을만큼 안타깝다
  • 김처선 . . . . 18회 일치
         [[세종대왕|세종]]부터 [[연산군]]까지 일곱 왕을 섬겼으며 최고위 내시인 판내시부사 겸 선을 역임한 인물. [[충청남도]]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1914년 전의현이 [[연기군]]으로 편입되어 전의면이 되었다.] 사람이다.
         사실 김처선은 젊었을 때만 해도 당히 '''노는''' 내시였던 모양으로, 세종 때 내시가 된 이후 [[문종(조선)|문종]] 때 해로 유배되었다가 1453년(단종 1년) 귀양이 풀리고 이듬해 직첩이 되돌려졌으나, 1455년(단종 3년) 금성 대군의 옥사에 연루되어 삭탈 관직 당하고 유배되어 본향의 관노가 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505년에 연산군이 음란한 춤인 처용희를 추며 방탕하게 놀던 자리에서도 김처선은 곧은 성품에서 우러난 직언을 서슴치 않았다. 당시 김처선은 연산군에게 '''"이 늙은 신(臣)이 4분의 [[임금]]을 섬겨왔으나 [[고금]]을 돌이켜도 이토록 음란한 왕도 없었사옵니다."'''라고 간하였는데, 그 정도가 당히 심한 편이었다.
         아래는 연산군이 그의 다리를 벤 후의 황.
         이 말을 듣고 격분한 [[연산군]]이 김처선의 [[혀]]를 잘라버렸다.[* [[어쩌다 어른]]에서 [[설민석]]은 김처선이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시점을 김처선의 혀가 걸레짝이 된 태라고 설명 했는데, 사람은 혀가 잘린다 해도 죽는 것은 아니지만 혀가 잘리면 자음을 제외한 공명음만 낼 수 있으므로 이런 태에서 말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설민석이 자신의 여타 강의에서도 그러하듯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이러한 표현을 대동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 김처선의 발언이 은근히 [[연산군]]을 비꼬는 듯이 들리지만, '다리'를 임금의 신하라고 해석하면서, '''"충직한 신하들을 마구 잡아 죽이는데, 어찌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겠느냐?"'''는 뜻으로 본다면 뼈대가 있는 일침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김처선의 죽음에 대한 서술이 [[연산군]] 문서의 흥청망청 문단의 내용과 충된다.
         사실 세간에 알려진 김처선의 최후는 대부분 야사에 의존한 것이다. 일단 실록에는 연산군이 죽였다 정도로 살해 당일의 기록이 간략하다. 활에 맞아 죽었다는 것도 의문인데 중종 때 베어 죽었다는(주살) 구절이 나오고, 한참 시간이 흘러 200년 뒤 조가 김처선을 복권하면서 그제서야 활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이 바뀐다.
         게다가 김처선 부모의 묘까지 헐어 버리고 집은 밀어버린 후에 터를 연못으로 만들었다. 또한 전국의 김처선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개명'''을 명하고 과거 시험에 처(處)자를 사용하였다고 합격자의 '''합격이 취소'''된 사례에 소에 처(處)자를 써서 국문을 당하다가 천만다행히도 법 제정 이전에 썼다고 국문을 취소한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그의 본관인 전의(全義)도 없애버렸다.'''
         그가 세을 떠난 지 1년 후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다시 복권되기에 이르지만 [[중종(조선)|중종]]은 그를 썩 좋게 보지 않았던 듯 싶다. "김처선은 술처먹고 주정부리다가 죽은 건데 무슨 놈의 [[공신]]?"이라고 반문했다는 기록이 있어서인지 중종은 김처선의 행적을 기리고자 하는 사림들의 소를 모두 무시한다. [* 《중종 실록》 권17 7년 12월 4일 갑진 2번째 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712004_002]] ]
         어쨌든 그의 최후는 '''진정한 [[왕의 남자]]'''로서 왕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충신]]답다 할 수 있어서 중종 반정 직후부터 그의 재평가가 이루어졌으며 240년 뒤 조에 이르러 그의 고향에 공적을 기리는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사극 [[장녹수]]에서는 [[고인]]이 된 배우 [[이낙훈]] 씨가 김처선을 맡았으며 불멸의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최후는 야사의 기록을 반해 화살을 여러 발 맞으면서도 연산군에게 끝까지 목숨을 바쳐 직언과 충언을 던지다가 죽음을 맞는다.
         [[화]] [[왕의 남자]]에서는 [[장항선(배우)|장항선]] 씨가 연기하였으며, 연산군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몇 되지 않는 충실한 심복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인 장생과 [[공길]] 일당이 왕에게 풍자극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자 왕을 정신 차리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들을 궁중에 스카웃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되려 연산군의 광기만을 돋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에 역사에서처럼 [[연산군]]에게 직언했으나 분노를 사서 쫓겨났으며, 후반부에 반정 세력들이 그를 포섭하기 위해 접근을 시도했으나 거절했고 [[반정]]이 일어나기 직전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 이때 연산군은 처선이 어디 있냐며 술마시고 꼬장을 부리고 있다가 결국… [[더 이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SBS [[사극]] [[왕과 나(드라마)|왕과 나]]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며 각색이 심하게 되어 실제 김처선의 일생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려진다. 당장 활동 연대부터 실제 역사와는 크게 달라 성종 즉위 이후부터 내관을 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실제론 손녀 뻘인 [[폐비 윤씨]]와 비슷한 나이로 설정되어, 그녀를 평생 동안 사모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폐비 윤씨의 자식인 연산군을 어려서부터 돌봐준 인물로 중종 반정으로 귀양가 있던 연산군이 어린 시절 김처선과의 추억을 회하며 후회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참고로, [[배우]]는 [[오만석]].
         [[JTBC]] [[드라마]] [[인수대비(드라마)]]에서는 [[맹훈]] 씨가 김처선 역을 맡았는데 마지막에 연산군에게 연산군의 잘못을 말했을 때 화살을 3발 ~ 4발을 맞고도 살아 있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18회 일치
          * 본래 시에핫사이카이의 두목은 더는 야쿠자 활동으론 생존할 수 없다고 보고 탈피를 추진했으나 그 점이 오버홀의 심기를 건드려 제거 당했다.
          * 그러나 패트껌과 키리시마가 아이자와 대신 함정에 빠지는데, 거기엔 철포옥 핫사이슈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 여기서 나타난 핫사이슈는 맨몸으로 승부하는 무투가 타입과 왜소하지만 배리어를 치는 개성을 가진 이인조.
          * "랏슈"라는 무투가의 공격력은 키리시마의 레드 라이오트 언브레이커블을 아득히 회, 심지어 패트껌의 지방층으로도 충격을 쇄할 수 없다.
          * 둘에겐 철포옥을 공략할 공격수단이 전무, 왜소한 남자의 말대로 "창과 방패 대 방패와 방패"의 이한 대결이 되고 말았다.
          * 선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혼자서 셋을 완봉하겠다"는 맹세를 달성한다. 철포옥 핫사이슈 세츠노, 호죠, 타베를 포박, 문어의 신경독으로 잠재우고 마스크를 뺏는다. 그는 곧 먼저 간 일행을 따라가려고 했으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힘이 다해 넘어진다.
          마침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이자와 쇼타]]가 의혹을 표시한다. 이 지하시설과 융합된 자, [[이리나카]]가 왜 잠자코 있을까?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런 방해도 없었다. 벽이 꿈틀거리지 않는 걸 보면 융합된 태도 아니다. 아이자와는 이 점을 들어서 "지하 전체와 융합하거나 컨트롤이 가능한건 아니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렇다면 지금은 위에 남은 타마키나 경찰의 동향을 보러갔을 지도 모른다. 녀석은 지하에 "들어가서" 조작하는 타입이고 완전히 동화하는게 아닐 것이다. 벽면 내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자기 눈과 귀로 "보거나 듣거나"해야 한다는 얘기. 따라서 이쪽을 방해하러 온다면 아주 가까운 곳에 본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 벽에 귀나 눈이 있는게 보일 것이다.
          아이자와의 가설이 들어맞았다. 이리나카는 타마키에게 제압된 철포옥의 태를 보러갔던 참이다. 물론 그들을 쓰레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셋이서 고작 한 사람 막는게 끝이라니. 이리나카는 뭔가 있다고 생각하다가 "그녀석이다"고 결론을 내린다.
          * 1층에선 [[버블걸]]과 [[센티피더]]가 경찰과 협조해 시에핫사이카이 조직원을 거의 체포했다. 버블걸은 설마 전원이 방해하러 올 줄은 몰랐다며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난한다. 이래서는 잡히러 온 것 밖에 안 되니까. 조직원들은 "제정신이라 잡히러 왔다"고 반박한다. 얌전히 있으면 오버홀에게 반드시 죽었을 거라며. 그들은 오버홀, 아니 치사키가 권력을 잡으면서 모든게 변했다고 털어놨다. 원래 지금의 두목은 야쿠자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시에핫사이카이도 빌런집단과 선을 긋고 어디까지나 "협객"으로서 양지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그런 두목의 뜻을 따랐다. 반기를 든 것은 두목의 아들이었던 치사키. 그가 오버홀이란 이름을 걸고 조직을 장악했다. 그러고 나서는 빌런 같은 이름을 대고 행동을 했으며 빌런과 힘을 합쳤다. 개성 관련 금지 약품을 유통한 것도 치사키. 반항은 할 수 없었다. 조직원들은 현두목이 와병생활을 하게 된 것도 분명 오버홀의 짓이라고 수군댔다. 버블걸은 그렇게 치사키를 싫어하면서도 그가 잡힐 거라고, 실패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 거냐고 반문한다. 조직원은 그렇다고 답했다.
          * 키리시마가 먼저 반응했다. 그가 본 것은 주먹. 키리시마는 곧바로 "레드 라이오트 언브레이커블"을 발동한다. 적의 주먹 따윈 맞아서 부러뜨릴 각오였다. 패트껌과 키리시마에게 폭풍처럼 떨어지는 러쉬. 패트껌은 문제 없다. 두터운 지방층 덕이다. 그렇지만 당한 충격. 일순 움직이지 못한다. 새로 나타난 철포옥 핫사이슈는 그렇게 놀라워하지도 않는다. 주먹을 거둔 그는 당한 무투파로 보인다. 패트껌 정도는 아니지만 당한 덩치다. 무투파답게 총이나 칼을 쓰는 싸움은 "멋모르는 짓"이라고 입을 연다.
          * 폭격을 맞은 것처럼 날아간 키리시마. 무적의 방패였던 언브레이커블이 깨졌다. 두 팔의 피부가 깨져서 피가 흘러나온다. 적의 공격력은 언브레이커블 조차 회하고 있다.
          * 유감스럽지만 남자의 지적이 맞았다. 키리시마는 몸에도 처가 컸지만 멘탈도 가루가 됐다. 경화가 깨졌다, 다 받아내지 못했다. [[바쿠고 카츠키]]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건 더럽게 강하다는 것"이라 말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히어로가 생각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오사카에서 활약했을 땐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 그를 괴롭히는건 과거의 기억. 좌절했던 기억이다.
          이번에도 패트껌이 눈치가 빨랐다. 그가 "마음이 꺾이는게 진짜 지는 것"이라 호통쳤다. 오사카에서 말했던 대로 "빌런 퇴치는 전의를 실시키는 것"인데 이쪽이 먼저 꺾여서 어쩌자는 거냐고 야단혔다. 남자가 다시 배리어를 친다. 그러면서 "저쪽은 아직 이길 생각"이라 말하자 랏파가 참 갸륵하게 여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7화 . . . . 18회 일치
          * 미도리야의 어머니는 "웅고가 아니어도 히어로과는 있다"라고 극단적인 발언까지 하고, 미도리야는 방을 뛰쳐나간다.
          * 그러나 돌아온 미도리야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며 "꼭 웅고가 아니어도 좋다. 난 꼭 히어로가 될 것이다"라고 다짐한다.
          * 미도리야의 어머니는 단호한 태도로 웅고의 정책에 반대한다.
          * 그녀는 "빌런에게 습격당해 수업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학생이 부 당하는걸 막지 못하는 그런 학교에는 더이 다니게 하고 싶지 않다"고 전학 의사를 밝힌다.
          * 미도리야는 자신의 부은 학교의 정책과 무관하며 그들은 언제나 말려왔지만 자신이 잘못돼서 다치게 된거라고 변호한다.
          * 그러나 어머니는 "그 결과가 이 황이라면 더더욱 학교 책임"이라고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 어머니는 스스로를 [[몬스터 페어런트]]일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히어로가 되고 싶은 거라면 웅말고도 히어로과는 있다고 말한다.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가 자신을 얼마나 동경했는지와 그래서 웅고를 고집한걸 생각한다.
          * 미도리야에겐 웅에서 배운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인 것.
          * 미도리야는 눈물을 참으며 "웅고가 아니라도 괜찮다. 나는 꼭 히어로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 올마이트는 그것을 보면서 미도리야가 동경 이으로 진지하게 히어로를 지망하고 있다는걸 깨닫게 된다.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며 장차 "평화의 징"이 될 인재라고 말한다.
          * 분명 자신의 길은 피비린내가 나는 길이었지만 그렇기에 옆에서 함께 걸어가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의 웅고"에 불안을 품는건 당연한 일이지만 바뀌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지금의" 웅고가 아니라 "앞으로의" 웅고를 봐달라고 진정한다.
          * 어머니는 "역시 싫다"고 말하며, 딱히 웅고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미도리야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 어머니는 "웅고에서 생활할 거라면, 알지?"라고 묻고 미도리야는 "절대로 걱정끼치지 않을게"라고 답한다.
  • 디도(성우) . . . . 18회 일치
          * 위 문서: [[성우/한국]], [[대원방송 성우극회]]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대원 재더빙판에서 [[치바 마모루|턱시도 가면]] 역을 맡게 되었다. 사실 첫 주역 데뷔작이지만 '''평가가 좋지 않았다.''' 본인도 그 점을 알고 더 정진하겠다는 ~~[[대인배]]~~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하지만 [[하트 캐치 프리큐어!]]에서 [[최종보스]]인 [[듄(하트 캐치 프리큐어!)|듄]]을 연기할 때 캐릭터성을 잘 살리지 못한 반면 쿠루미 류노스케([[쿠루미 에리카]] 아빠), [[묘도인 사츠키]]([[묘도인 이츠키]] 오빠)는 무난하게 소화한 걸 감안하면 과묵한 캐릭터와는 다소 성이 안 맞는 듯.[* 반대로 [[파워레인저 캡틴포스]]의 [[제라싯트]]나 [[가면라이더 W]]의 [[마쿠라 슌]] 같은 [[개그 캐릭터]]에는 강점이 있다는 평. 목소리 특색은 부드러운 미남톤인데, 디도 본인이 워낙 밝고 개성있는 역에서 강점을 보이니 진지한 캐릭터보다는 밝은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하는 듯 하다.] 하지만 3기인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S]]에서는 많이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여전히 원판 성우인 [[후루야 토오루]]에 비하면 아쉽다, [[김일(성우)|김일]]이 더 낫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등 비판적인 의견이 있는 걸 보면 아직은 진지한 배역보다 밝고 가벼운 배역을 더 잘 소화하는 듯. 그리고 의외로 발성이 좋아 [[잔크로우|열혈 캐릭터]]도 잘 소화하는 걸 보면 과거의 [[최재호(성우)|최재호]]와는 반대로 소리지르는 연기엔 강하나 진지하고 과묵한 배역엔 약한 것 같다.]
         다만 턱시도 가면은 본인이 노력해서 매 시리즈마다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등 현재는 어느 정도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 하지만 온화하게 말하는 장면에서의 연기 톤이 내향적인 캐릭터마냥 다소 힘이 빠지고 여려지는 문제점은 끝까지 개선되지 않은 것[* 이 때문에 [[이지현(성우)|이지현]]의 완전히 안정된 [[츠키노 우사기|세일러문]] 연기에 비하면 호평이 덜하다. 이지현의 경우 밝은 소녀 캐릭터에 특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완전히 안정된 세일러문 연기는 [[최덕희|추억 보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보면 혼연일체 수준이었다.]과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트 캐치 프리큐어!]]의 [[묘도인 사츠키]][* 이 쪽은 병약 속성이라서 여린 톤의 목소리가 어울린다.]는 무난하게 소화한 걸 보면 차분한 캐릭터 중에서도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캐릭터보다는 여리고 내향적인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하는 것 같다.[* 사실 이는 디도 본인이 진지한 캐릭터에 완전히 적합한 성우가 되었다기보다 비록 디도 본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레온(턱시도 가면)의 캐릭터성이 대적으로 디도가 맡기에 적합하게 바뀌어간 게 크다.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1기|1기]]의 레온은 쿨시크한 성격과 장난기가 공존하는 캐릭터였는데 디도는 비슷한 시기에 맡은 듄 또한 혹평을 들은 것처럼 쿨시크한 캐릭터에서 좋은 평을 들은 적이 없었으며 그 때문에 1기에서 디도의 레온 연기는 장난기만 살아있고 쿨시크함과는 거리가 먼 가벼운 느낌이라서 대차게 까였다. 그러다가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R|2기]]를 기점으로 점차 레온의 성격이 부드럽게 바뀌어가고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3기]] 이후로는 개그로 망가지는 일도 많아지면서 대적으로 디도가 소화하기에 편한 캐릭터성이 되었던 것. 부드럽고 온화하거나 소심한 캐릭터 내지는 밝고 활발한 개그캐릭터에 특화된 디도의 입장에선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드러워지고 개그로 망가지기도 한 캐릭터성도 어디까지나 1기 때에 비해 그럴 뿐이지 기본적으로 레온은 시종일관 온화한 캐릭터도, 시종일관 코믹스러운 캐릭터도 아니고 1기 때의 성격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지라 온화하게 말하는 장면에서의 연기가 KBS판 성우인 [[김일(성우)|김일]]처럼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간 톤이 되어야 하는데 다소 여리고 힘빠지는 느낌이 된 건 아쉬운 부분. 김일이 1기에서의 쿨시크한 레온과 2, 3기 이후로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개그로 망가지기도 하는 레온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는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준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아쉬움이 더해진다.] 그 이후로 비슷한 캐릭터는 [[키즈 CSI 과학수사대]]의 [[키즈 CSI 과학수사대/등장인물#s-3.1|고진]]을 한번 더 맡았는데 1기 때의 레온 연기에 비하면 평가는 나았지만[* 하지만 디도가 진지한 배역을 맡을 때마다 나오는 여리고 힘빠지는 느낌이 어느 정도 남아있어서 그렇게까지 큰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레온과 고진 이후로는 진지한 배역에 많이 캐스팅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후에 [[가면라이더 고스트]]에서 맡은 [[이고르(가면라이더 고스트)|이고르]]의 경우 처음에는 나름 진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28화를 기점으로 점차 개그형 악역으로 변해갔으니[* 애초에 이고르를 연기한 배우인 야마모토 히로시의 외모도 중후한 카리스마 악역보다는 가볍고 얍삽한 3류 악역에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특촬물을 포함한 외화 더빙의 특성 담당 배우의 외모까지 고려한 캐스팅을 해야 했으니 가벼운 인인 야마모토 히로시의 외모에 맞춰 가벼운 배역에 특화된 디도가 캐스팅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재까지도 더빙 업계에서는 그를 진지한 배역에 그다지 적합한 성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원판 세일러문이 종된 후에는 더 이 애니메이션에서 새롭게 주연을 맡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크리스탈]]이 대원방송에서 더빙되었다면 턱시도 가면 역할로 계속 출연할 수 있었겠지만 투니버스에서 자막으로 방하는 바람에 그나마 맡고 있던 주연 캐릭터에서도 강제로 하차하게 되었다. 물론 게임인 [[화이트데이 2: 스완송]]의 주인공 송진우를 맡게 된 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대원판 세일러문에서 주연급 캐릭터를 맡은 다른 성우들([[치비우사|꼬마 세라]] 역의 [[이유리(성우)|이유리]] 제외) 및 [[김일(성우)|김일]]의 또다른 대표배역인 [[원피스(만화)/애니메이션|원피스]]의 [[디]] 역할을 이어받은 [[박성태(성우)|박성태]]와 비교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커리어도 초라하다 보니 디도의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보통 특정 배역을 맡았을 때 처음에 심하게 혹평을 듣더라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연기가 많이 나아지면 해당 성우의 커리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며 경우에 따라 [[이용신]]의 [[코야마 미츠키|루나]]나 [[서유리]]의 [[엔비(강철의 연금술사)|엔비]]처럼 해당 성우를 대표하는 배역으로 자리잡아 그 성우가 스타 성우로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디도는 세일러 문 시리즈에서의 레온 연기가 후반에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성우와 같은 인기는 얻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세일러 문은 디도의 출세작이 되지 못했다. 위의 각주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아진 레온 연기조차 KBS판의 김일과 같은 큰 호평은 끝내 못 받았던 점이 한 몫한 셈. 결국 하트 캐치 프리큐어와 대원판 세일러문이 크게 작용 한 듯하다.
         본인이 더빙할 작품은 미리 다운로드 받아서 감하는 듯하다.
         2014년 8월 22일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하였다. 정재헌이 처음 시작했던 릴레이 라인과는 별개의 릴레이 라인을 시작했으며, 다음 타자로는 [[이동훈(성우)|이동훈]]과 [[백경훈]], 그리고 자신와 이름이 비슷한(...) 국 팝 가수 [[다이도]]를 지목했는데 백경훈은 몸 태가 좋지 않아 불참의 뜻을 밝혔다.
          * [[가면라이더 W]] - [[마쿠라 슌|박지만]], [[산타클로스#s-3.4|산타]], [[아이스에이지 도펀트|최준]], [[올드 도펀트|조로술사]], [[버드 도펀트|유성]]
          * [[화이트데이 2: 스완송]] - [[화이트데이 2: 스완송#s-41.1.|송진우]][* 게임에서의 첫 주인공인 셈]
          * [[다큐멘터리|MBC 다큐스페셜]] - 180일간의 기록 '그들만의 세'
          * 생활건강TV - 치유밥
  • 랑그릿사 . . . . 18회 일치
         문명: Langrisser
         [[메사이어]]에서 나온 게임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게임과 그 시리즈를 가리킨다.
         첫 시리즈가 나왔던 시기에는 당시 [[메가드라이브]]를 이끌어가는 [[킬러 타이틀]]이었으며, 이 인기는 2에서 절정을 맞게 된다. 이 시점부터 사실 랑그릿사라는 타이틀이 메사이어를 먹여 살리는 중심 소프트가 되었으며 각종 기기로 컨버전되어 발매하게 되는 등 최고의 절정을 맞게 된다.
         그러나 3에서 기존의 2와는 당한 괴리감을 보여주는 것과 더불어 최초 개발 기기였던 세가새턴의 몰락과 함께 랑그릿사라는 브랜드는 크나큰 위기를 겪게 되고, 4와 5의 흥행에도 향을 끼치면서 사실 시리즈의 종언을 고하게 된다.
         랑그릿사의 실패는 사실사이어의 운명과도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리즈의 종언과 함께 메사이어도 천천히 사라지면서 이제는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 회사가 되었다.
         랑그릿사가 암흑룡과 빛의 검에 대항하는 게임이라는 점은, 판타지 세계관을 소재로 한 시뮬레이션 RPG라는 점만이 아니라, 줄거리 역시 단순히 '빛과 어둠의 대결'이라는 판타지적 선악대결의 관점 만이 아니라, '제국에 대항하는 저항군'이라는 요소를 더해서 국가간의 전쟁이 복합된 전개가 들어가는 등. 양자 간의 유사성이 많다.(물론 넓게 보면 '스타워즈'의 향이겠지만.)
         반대로 파이어 엠블렘 역시 랑그릿사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전의 계보(1996)에서는 먼저 나온 랑그릿사 2[* 정확히는 멀티엔딩 요소와 더불어 분기에 따른 연애까지 갈라지게 만드는 [[슈퍼패미컴]] 이식작 데어 랑그릿사를 가리킨다. 메가드라이브판 랑그릿사 2는 빛의 후예 엔딩 하나만 있는 리아나 일직선이다.]를 연케 하는 '연애 요소'를 도입한데 더해서, 단순히 엔딩에서 맺어지는 대를 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2대에 걸치는 싸움을 묘사하는 등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한글화와 PC판 발매,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 덕분에 훨씬 높은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지만,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인기 측면에서는 하드 자체가 마이너한 하드(메가드라이브, 세가 새턴)을 주로 나왔고 시리즈의 명맥이 아예 끊겨버린 황이라, 현재는 인지도와 인기가 파이어 엠블렘에 훨씬 뒤쳐진 황이다.
         [[그로우랜서]][* 스토리 연관성은 거의 없으나 개발진이라든가 기존 메사이어의 컨셉들을 당수 가져왔기 때문에 관련이 있는 게임이다.]
  • 마기/348화 . . . . 18회 일치
          * 알리바바의 "새로운 계획"이란 신드바드와 알라딘의 안을 합친 것으로 하좌우로 둘러싸인 차원의 벽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 알리바바는 자신이 저세에서 돌아올 때 사용한 "대마법"이라면 아주 작은 힘으로 모두를 죽일 필요 없이 위계와 루프의 구분을 모두 없앨 수 있다 장담한다.
          * 이 주장은 신드바드를 따르는 진들도 예 밖이라고 여기는데, 뜻밖에도 [[우고(마기)|우고]]만은 그런 마법이 있어서도 안 되며 불가능하다 단언한다.
          * [[알리바바 사르쟈]]가 본 그동안의 싸움,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은 모두 세을 개혁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알라딘은 흰 루프와 검은 루프의 구분을 없애는 것으로, 신드바드는 보다 위의 신들을 모두 무찌르는 것으로 그걸 달성하려 했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둘 모두와 다른, 그리고 누가 희생할 필요도 없는 전혀 "새로운 작전"이 있다고 말한다.
          자기 개인의 힘만이라면 신드바드는 커녕 아르바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대단한 일을 달성하는 것, 이것은 그만이 가진 능력이다. 아르바는 그의 말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모두가 함께 하면 결국 네 힘이 아니다"고 하는데, 그의 말은 자신이 개입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휘말리게 하고 보통을 능가하는 결과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드바드와 아르바 조차 알리바바에게 휘말린 인간이다. FANFAN회 때도 그렇다. 신드바드는 그때 왜 알리바바를 도왔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알리바바는 신드바드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끌어냈고 "운명" 조차 초월하는 성공을 거뒀다. 신드바드 조차 모르는 것을 알고 운명을 초월하는 알리바바. 그렇기에 그는 "나도 대단한 인간"이라 자부한다.
          * 신드바드와 알라딘이 바라보는 세계, 그리고 그 개혁안은 어떤 것일까? 알리바바는 둘의 차이부터 지목한다. 우선 신드바드는 세을 수직 구조로 보고 "세로로 연결하는 작전"이다. 계속 천장을 뚫고 올라가 거기서 운명을 쥐고 있는 신을 쳐부순다, 더이 쳐부술 신이 없을 때까지 그걸 반복한다. 결과적으론 "운명"을 쥐고 있는 존재가 사라지지만 모든 생명이 루프로 환원된다. 알라딘이 맞장구치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는데, 알리바바는 일단 제지하고 자신의 설명을 이어간다.
          그답지 않게 잘난척하는 발언. 그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가로와 세로의 벽을 전부 박살내자"고 제안한다. 그건 알라딘도 금방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발이다.
          알리바바는 다시 자신이 죽었다 살아난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가 저 세에서 이 세으로 온 것은 문자 그대로 "차원의 벽"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차원의 벽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즉 그가 돌아올 때 사용한 "대마법"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설명을 듣던 알라딘이 드디어 감을 잡는다. 신드바드의 꿈은 모두를 죽이지 않아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알리바바는 이 힘을 "루프의 구분", "가로의 벽"을 없애는 데도 적용할 것이다. 알라딘이 말하지 않았는가? 루프의 구분은 좋지 않다. 알마트란의 사람들, 검은 루프에 동화된 사람들, 알 사멘. 이들과는 죽어서 조차 만나지 못한다. 죽음 조차 각각으로 단절된 세. 이런 비극이 세의 절대적인 섭리여야 할까?
          알리바바는 자신의 대마법이라면 세을 구분하는 모든 벽, 가로든 세로든 관없이 모두 부수고 연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 신드바드를 따르는 일곱 진들도 이 대화를 경청한다. 알리바바의 작전이 "예 밖"인 건 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과연 신드바드는 어떻게 대응할까? 진들이 다시 귀를 기울인다.
          * 그런데 그들의 곁에는 [[우고(마기)|우고]]도 함께 있었다. 그 또한 신드바드에 포섭된 이후 행동을 같이했고 이 대화도 모두 들었다. 우고의 태가 이해진 것도 이 대화 탓이었다. 그는 두려워하는 것인지, 화를 내는 것인지 모르지만 심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 박재옥 . . . . 18회 일치
         [[박정희]]의 첫번째 부인 [[김호남]]과의 사이에서 얻은 첫딸.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에게는 이복언니/이복누나가 되고, [[육수]]에게는 의붓딸이 된다.
         박정희와 김호남이 결혼한 이듬해인 1937년에 경북도 구미에서 태어났다. 현재 [age(1937-01-01)]살.
         박정희가 [[쿠데타]]를 하기 이전에 딸 박재옥은 이미 결혼하여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청와대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청와대 내 박정희의 가족들에 대해 많은 취재를 하던 시절에도 주목 받은 적이 없었다. 당시 [[청와대]] 측에서도 부인인 [[육수]]가 낳지 않은 자식이 주목받는 일을 막기 위해, 박재옥에 대해 홍보하는 일을 최대한 안 했다는 설이 많았다. 지금도 대선주자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후보마저도 [[이혼]] 경력이 있으면 사생활에 대한 보도로 대중 이미지에서 마이너스 되는 일이 많고, 혼외자 논란 같은 일들과 별개로 공식적인 이혼경력이 있는 대통령마저 하나도 없는 곳이 한국 정계이다.
         박재옥은 이복동생들보다 넘사벽으로 많은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육수]]의 장녀인 박근혜보다 15년 연이다.] 불구하고 큰 말썽없이 무난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년 시절부터 청와대에서 공주, 왕자처럼 생활하였던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등 이복동생들과 달리, 박재옥은 남편 [[한병기]]와 결혼하기 전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김호남의 이혼으로 인해 가정해체를 겪고 유년 시절부터 여러 친척 집들을 전전하며 불안정한 가정생활을 거쳐오며 성장했던 인물이라, 이복동생들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 세 ==
         남편은 [[한병기]](1931~2017)이다. 한병기는 [[대한민국 육군]]의 [[어]] 통역[[장교]]로 [[대한민국 육군]] [[제5보병사단]]에 배속되었다가, 당시 [[사단장]]이던 [[박정희]] [[장군]]의 [[전속부관]]이 되었다. 군 전역 후에는 제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과 캐나다, UN 대사로 근무했다. 이외에도 박재옥의 사촌언니 박옥의 남편인 [[김종필]] 곁에서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한병기와 박재옥의 자녀들로는 아들 태준·태현, 그리고 딸 유진이 있다.
         [[박정희]]는 1936년에 [[김호남]]과 결혼했는데, 스스로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령으로 억지로 결혼한 탓에 아내에게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래서 1940년대 후반에는 [[이현란]]과 불륜관계로 동거하기도 했다. 이후 박정희가 김호남과 이혼하면서, 박재옥은 한병기와 결혼하기 전까지 여러 친적집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한다. 친가, 외가는 물론이고 사촌오빠 박재석,[*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아들.] 사촌언니 박옥[* 아버지 박정희의 셋째 형 [[박희]]의 큰딸.이 여인 역시 박재옥과 더불어 박정희의 일가족들중 비판을 덜 받는 사람들중 하나이다.]과 사촌형부 [[김종필]] 등. 계모인 [[육수]]와도 같이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대중에게 후처인 [[육수]], [[박근혜]]&[[박근령]]&[[박지만]] 3남매만 알려져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김호남과 박재옥 모녀는 남의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살았다. 그리고 박재옥 본인은 어떤 감투나 일체의 공직에도 나서지도 않았다. 아버지 사후 정치계에 들어갔던 이복 여동생 박근혜와 달리 정치와도 거리를 뒀다.
         다만 어쨌거나 [[박정희]]의 장녀라서 박재옥도 나름대로 경제적 혜택은 받고 살았다. [[박정희]]가 1969년 사위 한병기 전 의원에게 케이블카에 대한 국가 사업권을 준 뒤, 1971년 이후부터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계속 독점 운하고 있다. 덕분에 경제적인 면에서는 불편함 없이 살았다고.
         사실 박재옥-한병기 부부도 굳이 파헤쳐보면 위에 언급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등에 대한 특혜 의혹이 있지만, 그 외에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구설수는 특별히 없다. 언론에서도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박재옥에 대해선 박근혜 친인척들의 행적을 파헤치면서 위의 케이블카 사업 특혜의 의혹 등에 대해 몇 차례 가볍게 다룬 것 외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다. 그 외에 박재옥의 사위인 박우 회장의 대유그룹의 성장세가 굉장히 빨라서 [[김어준]]이 [[이명박]]의 [[다스 실소유주 논란|다스 논란]]과 [[http://www.tbs.seoul.kr/news/bunya.do?method=daum_html2&typ_800=11&seq_800=10248913|비교한 사례가 있었으나]] 다스 논란과는 달리 이 역시 흐지부지 묻혔다.
         한편 박재옥은 다른 공식 행사는 물론이고 [[박정희]] 일가와 직접 관련된 대외 행사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이복 남동생인 [[박지만]]의 결혼식에 참석한 게 전부다. 심지어 박정희, [[육수]]의 추모 행사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혜와 박근령, 박지만의 관계도 앙숙이지만 이런 추모 행사에는 함께 참석하던 것을 감안하면, 박재옥은 박근혜를 비롯한 아버지와 후처이자 계모 육수 소생의 이복 남매들과는 교류를 거의 끊고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 박진주 . . . . 18회 일치
         {{화인 정보
         |웹사이트 = [http://www.and-ent.com/bbs/board.php?bo_table=21&wr_id=23 매니지먼트 AND 박진주]<br>{{인스타그램|jinjoo1224/}}<br>{{트위터|qkrwlswl}}
         === 화 ===
         | 《[[써니 (화)|써니]]》
         | 《[[코알라 (화)|코알라]]》
         | 《[[궁합 (화)|궁합]]》
         | rowspan=2 | 고소
         | 이수
         | 한
         | 《[[당신이 잠든 사이에 (드라마)|당신이 잠든 사이에]]》
         * 《[[막돼먹은 애씨]]》 (2012년)
         * 화 《[[두 개의 달]]》 OST - 너에게 화가 나 (Feat.Yuri) (2012년)
         == 수 및 후보 ==
         ! 시
         | [[SBS 연기대]]
         | 여자 조연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2008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상주시 . . . . 18회 일치
         {{다른 뜻 넘어옴|[[주 (동음이의)|주]]}}
         |이름 = 주시
          주시행정구역
         중동면 (주시)''' || 中東面 || 57.37 || 771 || 1,506
         화북면 (주시)''' || 化北面 || 99.41 || 839 || 1,616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ko/thumb/c/c7/Sangjusine-map.png/301px-Sangjusine-map.png
         외서면 (주시)''' || 外西面 || 88.08 || 1,458 || 2,847
         화남면 (주시)|''' || 化南面 || 54.39 || 490 || 843
         북문동 (주시)''' || 北門洞 || 14.44 || 4,201 || 9,635
         계림동 (주시)''' || 溪林洞 || 11.76 || 3,536 || 7,803
         동문동 (주시)''' || 東門洞 || 18.14 || 3,718 || 8,513
         동성동 (주시)''' || 東城洞 || 11.78 || 1,750 || 3,979
         신흥동 (주시)''' || 新興洞 || 25.77 || 3,719 || 9,226
         주시 || 尙州市 || 1,254.78 || 47,048 || 100,947
         주의 특산물 곶감
         [[분류:주시 출신|주 출신 인물]][[분류:경북도의 도시]][[분류:1986년 설치]][[분류:1995년 폐지]][[분류:1995년 설치]]
  • 서영무 . . . . 18회 일치
         '''서무'''(徐永武, [[1934년]] [[5월 18일]] ~ [[1987년]] [[5월 26일]])은 전 [[대한민국]]의 야구 감독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원고등학교|대구고]]와 [[경북대학교|경북대]]를 졸업했다. 이후 공군 등 실업 야구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지만, 선수 시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모교 [[대구원고등학교|대구고]]의 감독을 맡았다가 [[일본]]에 야구 연수를 다녀왔고, [[1967년]]부터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명성을 쌓았다. [[1971년]]에는 전국 고교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위력을 보여 주며 고교 야구계에서는 '''"우승 제조기"'''로 불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22&article_id=0000100831 한국 야구 100주년 ⑬ 우승 제조기 서무] - 세계일보</ref> 이후 [[한양대학교]], [[서울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일하다가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에 임명되었다.
         당시에는 전·후기 리그로 연간 리그가 분리되어 있었는데, 전기리그는 [[두산 베어스|OB 베어스]]가, 후기리그는 [[삼성 라이온즈]]가 각각 우승하였다.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두 팀은 첫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2번째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이겼으나 이후 내리 게임을 내주면서 4승 1무 1패로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1983년]]에는 조감독으로 입된 [[재일 한국인]] 출신 [[이충남]]과의 지휘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건강의 이유를 들어 생일을 일 주일 지난 그 해 [[5월 25일]]에 감독직에서 전격 사임하고 팀을 떠났다.
         삼성의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대구에 1급 차량 정비공장을 차려 운하였다. [[1984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초대 감독이었던 [[김덕 (야구인)|김덕]]을 [[삼성 라이온즈]]에서 나은 조건으로 스카웃하여 차기 감독으로 입하게 되자, [[두산 베어스|OB 베어스]]는 이에 맞서 그 해 [[4월 13일]] 서무를 자문역 역할인 관리 이사로 입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 분석을 맡기기도 하였다.
         [[경북고등학교|경북고]] 출신의 명 선수인 [[이선희 (야구인)|이선희]], [[황규봉]], [[배대웅]], [[조창수]], [[임신근]], [[강문길]] 등이 그의 제자였기 때문에 '''대구 야구의 대부'''라고 불리며, 엄격한 훈련과 함께 선수들의 책임과 품위를 철저히 강조한 감독이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99354 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⑩‘대부’의 쓸쓸한 퇴장, 원년 감독 서무] - 매일신문</ref>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34년 태어남]][[분류:1987년 죽음]][[분류:뇌졸중으로 죽은 사람]]
  • 식극의 소마/197화 . . . . 18회 일치
         [[식극의 소마]] 197화. '''처투성이'''
          * 황금기를 맞이한 쿄쿠세이 기숙사. [[도지마 긴]]이나 [[나키리 아자미]]도 선망의 대이지만 중심은 [[사이바 죠이치로]]였다.
          * 하지만 도지마는 그런 모습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으며 어딘지 화풀이하는 듯한 인을 받는다.
          * THE BLUE 대회를 하루 앞둔 날. 죠이치로는 자신이 광스런 개척자가 아니라 그저 처투성이의 넝마같은 몰골이란걸 깨닫는다.
          * [[사이바 죠이치로]]가 고3이 되던 해, 쿄쿠세이 기숙사는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도지마 긴]]은 마침내 십걸 1석에 올라 인품과 실무능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나키리 아자미|아자미]]는 1학년인데도 3석에 오른 재능과 가을 선발 우승 경력으로 크게 주목 받았다. 그리고 아직 중학생이었던 [[시오미 준]]은 어린 나이에도 연구자로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 해외에서도 파견을 부탁할 정도의 인재였다. 다만 항 요리책만 끼고 다니느라 겉으로 보기엔 엇나간 [[부녀자]] 모양이었다.
          * 웅의 귀환. 죠이치로는 많은 학생들의 환대를 받으며 기숙사로 돌아온다. 건성으로 이들의 환을 받은 죠이치로는 어느새 조리대 앞에 서있다. 문득 시오미가 나타나 요즘 괴식요리를 만들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죠이치로는 대답 대신 "그렇게 탐을 내는 거냐"고 놀려먹는다. 옆에 있던 도지마가 그 말을 듣고 식극에도 낼 정도로 좋아하더니 왜 관뒀냐고 묻는다. 하지만 죠이치로는 자세한 설명보다는 "너도 먹을 걸로 장난친다고 화내지 않았냐"고 답할 뿐이다.
          지금 그의 대를 해주는건 도지마나 아자미, 그리고 당시 2학년이자 십걸 4석의 [[에비사와 리코]] 정도였다. 그 밖에는 전부 학원 밖 콩쿠르 등에서 날뛰는 것 정도.
          그의 태를 걱정하던 도지마도 이렇게 나올 때는 그저 기우인 것처럼,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도지마 자신 조차 죠이치로는 어떤 풍파에도 맞서 싸워 이겨낼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죠이치로 자신은 조금 달랐다. 그는 별거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 개척의 여정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처에 조금씩 민감해지고 있었다.
          * TV에서 조차도 그는 칭송의 대이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어 요리관련 채널이라면 어디든 그의 이름을 들을 수있다. 그럴 수록 학교 내에서 그를 숭하는 발언은 수위가 높아지지만, 이 또한 죠이치로 본인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는 무감동한 얼굴로 바라볼 뿐, 다시 그의 여정으로 돌아간다.
          * 그렇게 시간은 흘러 대망의 THE BLUE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모두의 기대와 기대가 모여서 터무니없는 높이가 되어 있다. 모두가 그를 격려하고 내일의 선전을 기대하는 말들 뿐이다. 그 중에서도 현재 죠이치로의 태를 정확하게 보는 것은 후미오 여사 뿐이다. 그녀는 긴말 없이 일단 푹 쉬고 THE BLUE 이후엔 쉬는 걸 고려하라고 말한다. 평소 그를 걱정했던 도지마 조차도 석연치 않은 부분을 감지한 것 같지만 결국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함께 돌아간다. 그를 우러러 보기만 하는 아자미는 "당신의 진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기쁘다"라는, 가혹할 정도의 기대를 떠넘기고 간다.
          * 결국 그날도 늦게까지 조리대 앞을 지킨 죠이치로. 조리대 위에는 한 장의 접시만 올려져 있다. 그 위엔 아무런 요리도 담기지 않고, 비치는건 그 자신의 얼굴 뿐이다. 아무런 명성도 광도 재능도 비치지 않는, 그저 처투성이의 떠돌이. 그게 그의 얼굴이었다.
  • 식극의 소마/213화 . . . . 18회 일치
          * "구운 야키소바"는 향을 다 날려버리는 기괴한 조리법이지만 막 맛을 본 심사의원 말로는 "향은 제대로 잘 살아있다"고 한다.
          * [[나키리 아리스]]는 이제서야 "뭔지 알겠다"고 하는데 막 이야기를 꺼내보니 "외견에서 소바란 느낌이 안 든다"같은 한 박자 늦은 감이다. 어쨋든 동료들의 주된 의견은 철냄비로 볶아버린 소바엔 메밀 특유의 풍미가 남지 않았을 거란 것이다. 그런데 향기의 스페셜리스트 [[하야마 아키라]]는 조금 의견이 다른 것 같다. 동료들과 다른 표정으로 소마의 시식을 지켜본다. 그리고 [[잇시키 사토시]] 또한 소마에게 "그게 네 대답이구나"라는 선문답 같은 말을 한다. 소마도 알아들은 건지 "네. 잘 되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옆에서 보는 네네는 뜻모를 대화다.
          * 자신의 식을 뒤집은 평이 나오자 네네는 문을 몰라하면서도 소마의 조리대에서 답을 찾아나선다. 그녀는 곧 남은 소바를 살펴보고 소마가 "3번 가루"로 소바를 만들었음을 간파한다. 아리나처럼 일식 문외한들은 잘 모르는 표현. 안이 부연설명에 들어간다.
          설명해놓고 보면 간단하지만, 매우 대담하고 실험적인 발이다. 반역자팀은 환호하고 센트럴측 학생들은 풀이 죽는다. 십걸이지만 [[코바야시 린도]]는 소마의 선전에 솔직하게 감탄한다.
          * 네네는 소마가 어떻게 그런 발이 가능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설사 3번 가루를 쓴다고 해도 야부소바나 시골소바처럼 좀 더 식적인 요리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소바를 굽는다는 발을 했을까? 여기에 대해서 소마의 답은 명쾌하다.
          컵 야키소바라면 안도 들어본 적이 있다. 소마는 그게 맞다고 답하며 심사의원들에 작은 종지를 나눠준다. 이스트와르가 보니 양념 같은데 소마는 이게 양념보다는 "고명"이라고 설명한다. 시즈닝 스파이스에 간 깨를 첨가한 것으로 취향에 따라 넣어먹는 것이다. 이것도 컵 야키소바, 컵라면류에서 따온 발이다.
          소마는 어려서부터 컵라면 종류를 좋아했다. 그 자체로 기능성을 가진데다 여러가지 맛과 소재의 바리에이션도 탁월한 요리였다. 소마는 이걸 다른 요리에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으로 기성 컵라면이나 컵 야키소바를 다양하게 어레인지하는 시도를 했었다. 기본적으로 컵 야키소바의 구성은 면, 기름, 조미료 혹은 양념이다. 소마에게 인을 남겼던 컵 야키소바 중에는 면 자체에 소스를 가미해서 맛을 강하게 한 것도 있었고, 기름을 별첨해서 구운 풍미를 내는 종류도 있었다. 또 소마는 나름대로 조리법을 바꾼다고 컵야키소바를 진짜로 구워보기도 했는데, 이것 자체는 "그냥 야키소바"에 지나지 않았지만 좋은 참고가 됐다.
          * 이스트와르는 일본의 컵 야키소바 또한 급속도로 진화를 계속해왔고 그것 역시 하나의 역사와 전통이라고 발언한다. 안은 거기에 더해서 "에도 소바에 들인 시간과 노고는 네네를 이길 사람이 없지만 소마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다."고 평한다. 소마는 컵 야키소바라는 것으로 새로운 발을 더해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걸 만들어냈다. 이는 "소바라는 요리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까지 극찬한다.
          예외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는 소마. 방금 감탄했던 린도와 달리 십걸의 1석 [[츠카사 에이지]]는 속모를 표정으로 그를 주시한다. 옆 조리대의 잇시키는 이런 황을 예견했듯 아주 당연한 듯이 여기고 있다.
          사실 그는 특훈 기간 동안 소마를 방문했었다. 소마가 착안한 "정식점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조언을 해줬다. 잇시키가 보기에 그건 현 십걸에게도 없는, 매일매일 손님을 대해본 소마만이 가지는 특기였다. 그런 점에서 [[사이바 죠이치로]]가 좋은 조언을 했다고 말한다. 잇시키는 여기에 "십걸들은 모두 자신만의 특기분야가 있다"고 귀띔해주며 거기에 대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권한다. 설사 적의 특기가 나오더라도 대응할 수 있게 말이다. 이때 처음으로 네네의 특기가 소바라는 걸 알려주는데, 그때만 해도 설마 어지간히 운이 나쁘지 않은 이 적의 특기에 딱 걸릴가? 이렇게 생각했지만, 전화위복이 됐다.
  • 식극의 소마/214화 . . . . 18회 일치
          * 네네는 문을 몰라하면서도 일단 맛을 보는데, 놀랍게도 자신이 평소 만들던 소바보다 현저히 풍미가 떨어졌다.
          * 소바의 향은 휘발성 알데히드에 기반하는데, 현재 경기장은 당히 추워서 휘발성 알데히드가 반응이 적어지면서 향이 줄어버린 것.
          * 잇시키는 네네는 배운 기술을 반복할 뿐이지만 소마는 매일 손님을 대하며 황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웠고 이것이야 말로 그의 강점이라 지적한다.
          * 네네는 소마에게 "진검 승부에서 어떻게 그런 발이 가능했냐"고 묻는데, 소마는 "손님 대는 매일매일 진검승부니 이런 것도 당연"이라 대꾸한다.
          * 심사의원 이스트와르가 그렇게 외쳤다. [[유키히라 소마]]와 [[키노쿠니 네네]]의 대결. 양측 소바의 심사까지 끝난 황에서 그는 한쪽 요리가 현저히 향이 뛰어나다고 발언한다. 반역자들이 술렁거린다. [[아라토 히사코]]와 [[이사미 알디니]]는 어느 쪽을 지칭한 건지 몰라 혼란스럽다. [[사카키 료코]]는 "소바를 더 잘 다루는 쪽은 네네 선배"라며 [[키노쿠니 네네]]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사실 그녀의 9할소바가 이끌어낸 리액션이 워낙 뛰어났다. 아직도 정신없이 먹던 심사의원들의 모습이 선하다.
          십걸 네네가 흔들리자 관중들은 더이 야유 조차 퍼붓지 못한다.
          >실온이야. 유키히라 군은 실온에 의한 향을 알아차린 거야.
          * 여기서부터는 향기의 스페셜리스트인 [[하야마 아키라]]에게 넘어간다. 그도 아리스의 설명에 동의하며 그런 요소는 요리의 향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며 특히 소바처럼 풍미를 즐기는 요리에선 결정적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온도가 소바의 향을 결정한다"는 것은 가설의 역으로, 누구도 데이터로 검증해본 적이 없는 역이다. 하야마는 온도 외에도 이 대회장 자체가 소바의 향을 살리기 어려운 환경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그는 소마가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요리를 했던 거라고 단언한다. 네네가 낭패한 얼굴이 된다. 잇시키는 확인사살처럼 소마에게 그렇지 않냐고 묻고, 소마가 그렇다고 답한다. 그가 온도의 변화까지 눈치챈 건 아니었지만, 시합 시작 시점에서 이한 점을 느꼈다. 주어진 소바가루는 바깥에서 다뤄봤던 것에 비하면 향기가 부족했다. 그러다 "기름에 구워서 소바의 풍미를 더욱 강화하는게 어떨까?"라는 착이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굽는 공정을 견딜 수 없는 1번 가루는 자연히 배제, 향이 강한 3번을 골랐다.
          >그렇게 하면 향이 나기 힘든 황이더라도
          * 소마는 오히려 당혹해하는 이들을 이하게 여기며 넉살 좋게 "나도 선배의 소바를 맛 볼 테니 내 것도 더 드셔도 좋다"며 그릇을 내민다. 네네가 탐탁지 않게 그릇을 받는 동안, 뒤에서는 잇시키가 비수처럼 독설을 꽂아넣었다.
          네네가 놓친건 대회장의 환경 만이 아니었다. 얼빠진 그녀에게 잇시키는 쉴 틈도 주지 않고 쏘아붙인다. 네네가 수많은 기술을 그대로 흡수하는 재능가이긴 하나 바르게 말하면 "현의 본질은 보지 않고 가르쳐주는 것을 그저 반복하는"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부터 만드는 소바가 손님이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풍미가 제대로 전해질지, 기술에서 알려주지 않는 부분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잇시키가 [[식극의 소마/210화|"너는 소마에게 진다"]]고 했던 발언은 이 걸 꼬집은 말이었다.
          * 결과는 이제 나온 거나 다름없었다. 네네에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지금까지 "최고의 소바"를 만들기 위해 완벽한 수행을 해왔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십걸의 지위도 잊고 얕봐왔던 소마에게 "어떻게 그런 요리가 가능한 거냐"고 묻기에 이른다. 지금같은 식극 황은 평소 기량을 다 짜내는 것만 신경써도 부족할 텐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머리를 굴릴 수 있는가? 소마는 오히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손님을 대하면 매일이 진검승부잖아요.
  • 식극의 소마/219화 . . . . 18회 일치
          * 예과 달리 쿠가는 시작과 동시에 곧바로 조리에 들어가며 자신감을 피력한다. 츠카사가 이런 점을 칭찬하며 "십걸에서 빠져서 아쉽다"고 하자 쿠가가 코웃음친다.
          * 자존심에 심각한 처를 입은 쿠가는 지금까지도 원한을 품고 "나는 지나가던 남학생 1"같은게 아니라며 설욕을 바라온 것이다.
          * [[쿠가 테루노리]]는 스스로 "모든 걸 다 갖췄다"고 말하는 재수없는 부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집은 부자고 요리도 잘하고 생긴 것도 이럭저럭. 키는 못 받았지만 당사자가 애써 관없다고 부정하는 부분이니 재쳐놓고. 어쨌든 부모의 애정도 듬뿍 받고 그만큼 여자애들의 애정도 듬뿍 받으며 무탈하게 성공가도를 걸어온 쿠가. 식극에 있어서도 다를 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은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주지 않는다"는 말의 주인공은 자신이라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도 키는 별도 문제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자신감을 전부 태워먹을 정도로 역사적은 대패배"에 대한 것이었다.
          * 연대식극 대회장. 예대로 센트럴측은 가지고 있는 최강의 카드를 꺼냈다. [[츠카사 에이시]], [[코바야시 린도]], [[사이토 소메이]]. 십걸 1석, 2석, 4석으로 이어지는 클린업. 반역자측도 쿠가, [[메기시마 토스케]], [[미마사카 스바루]]로 결코 만만치 않은 강자를 준비했지만 이목이 쏠리는 걸 어쩌진 못했다. 이 대결의 주역인 [[유키히라 소마]]와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잠자코 승부의 동향을 지켜본다.
          * 대결 대가 정해졌으니 이제 주제를 정해야 할 때. 사이토가 뽑기 차례를 반역자측에 양보하자 린도가 정색한다. 왠지 이게 꼭 하고 싶다고. 하도 적극적이라 별 수 없이 메기시마의 양해를 구해 이쪽만 린도가 뽑기로 합의한다. 그동안 사이토는 메기시마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다. 얼마 전까지 같은 십걸이던 자신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것. 메기시마는 요리사로서 내세우는 마음가짐이 다 다르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대꾸한다. 사이토는 거기에 동의하지만, 언제나 자기 길을 걷던 메기시마가 "저 하급생" 편을 드는 건 의외였다고 말한다. 메기시마도 동감이다.
          * 쿠가 대 츠카사, 메기시마 대 린도, 미마사카 대 사이토. 어느 것 하나 반역자 측에 유리한 대결은 없다. 감옥에 갇힌 후배들은 특히 츠카사와 싸우는 쿠가의 승산이 낮은 걸로 본다. 하지만 소마는 의외로 쿠가가 "집념의 미라클 펀치"를 먹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최종적으로 엔트리를 만든 [[나키리 에리나]]는 말이 없다.
          * 그런데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엔 적의 것도 있었다. 대결 대인 츠카사다. 뜻밖에도 그는 쿠가의 실력과 중화요리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빠른 출발도 "방대한 조리법을 구사하는 중화요리인에게만 가능한 센스"라며 칭찬한 뒤 역시 십걸에서 물러나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적이지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데, 쿠가는 차가운 비아냥으로 받아쳤다.
          * 쿠가가 츠카사에 가진 반감은 1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패배". 그 패배가 있은 뒤 쿠가는 넋 나간 태로 뒹굴거렸다. 10일이 넘도록 그 태가 이어지자 동급생인 [[에이잔 에츠야]]가 빈정거렸다. 애초에 1석한테 식극을 거는 거 자체가 무리였다는 것. "건방떨지 마라 꼬맹이"라고 까지 도발했는데 쿠가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이렇게 되자 에이잔도, 옆에 있던 네네도 황의 심각성을 인식한다.
          * 2학년 선배가 츠카사에게 "하급생과 식극한 일"에 대해서 말을 꺼낸다. 쿠가의 일이었다. 이 또한 "급생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해 우쭐거리는 쿠가. 실제 그 선배의 생각이 어쨌는진 모르지만, 아무튼 츠카사에게 쿠가에 대해 물은건 사실이다. 그는 무슨 바람이 들어서 쿠가가의 장남이랑 식극했냐고 묻는데. 그의 대답은 쿠가에게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그 날의 승부 같은 건 이미 아무런 인도 남아있지 않아.
          쿠가가 묵은 원한을 원료삼아 타오르고 있을 때, 츠카사는 매우 차분하고 정돈된 태로 요리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생각에 잠겨있던게 아니었는지 "슬슬 집중하자"고 중얼 거린다. 그 손에는 찻잎이 들려있다. 그는 그것을 흩뿌리며 마치 말을 거는 듯 한데.
          * 츠카사가 조용히 준비를 마쳤을 때, 옆 조리대는 다소 시끌벅적하게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린도가 이한 의욕을 보인다. 거의 위협적인 태도로 칼을 뽑는다.
  • 여회현 . . . . 18회 일치
         | 수 =
         | 웹사이트 = [https://www.elefunent.co.kr/blank-4 엘리펀엔터테인먼트 여회현]<br>{{인스타그램|hoihyuny/}}
         | 대하드라마 《[[장실 (드라마)|장실]]》
         | 최
         | 드라마스페셜 《[[당신이 잠든 사이에 (드라마)|당신이 잠든 사이에]]》
         | ([[이엽]] 아역)
         === 화 ===
         |
         | 《[[덕혜옹주 (화)|덕혜옹주]]》
         | 《[[안시성 (화)|안시성]]》
         == 수 및 후보 ==
         ! 시
         | [[KBS 연기대]]
         | 남자 연작 · 단막극
         | 남자 신인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염재욱 . . . . 18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 웹사이트 = [http://cafe.daum.net/wooklove 염재욱 팬카페]
         * [[서울예술대학교]] 연극화학과 졸업
         * [[2002년]] [[MBC]] 월화드라마 《[[도 (드라마)|도]]》
         * [[2002년]] [[MBC]] 특집드라마 《[[막막하]]》
         * [[2005년]] [[MBC]] 수목미니시리즈 《[[재의 전성시대]]》
         * [[2010년]] 《국물있사옵니다》 ... 김범 역
         * 월드컵홍보물메인촬-jsa패러디 신하균역
         * cf-버터와풀(과자)-의장대대장역 촬
         * 중근 홍보광고촬-안중근 기념관 (남산)-안중근역
         * 코오롱 기업홍보화촬
         * "문지방" 전위예술 홍신자외4명 촬-예술의전당10월시사회-00년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
  • 오대석 . . . . 18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남도초 - 경구중 - [[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 [[한양대학교|한양대]] ||
         || '''지도자''' || [[태평양 돌핀스]] 수비코치 (1992~1995)[br][[현대 유니콘스]] 1군 수비코치(1996)[br][[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1997~1998)[br][[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등학교]] 감독 (2000~2001)[br][[롯데 자이언츠]] 1군 주루·작전코치(2002)[br][[대구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원고등학교]] 감독 (2004~2008)[br][[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등학교]] 감독 (2011)[br][[한화 이글스]] 1군 수비·작전코치 (2013)[br][[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 (2013)[br][[한화 이글스]] 육성군 수비코치 (2014) ||
         ||<:><-5><#151B54>'''[[한국프로야구/1982년|{{{#ffffff 1982년}}}]] [[KBO 리그|{{{#ffffff 한국프로야구}}}]] [[유격수|{{{#ffffff 유격수}}}]] [[KBO 골든글러브|{{{#B8860B 골든글러브}}}]] [[KBO 리그 골든글러브 역대 수자|{{{#ffffff 수자}}}]]''' ||
         '''[[KBO|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기록자'''
         1982년 삼성의 원년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했음에도 [[김재박]] 다음 가는 유격수 2인자 [[함학수]], 업은행의 주전 유격수 [[장태수(1957)|장태수]], 포철의 주전 유격수 [[서정환]]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 유격수를 차지하며[* [[함학수]]는 타격을 살리기 위해 1루수로 기용되었고, 장태수는 빠른 발을 살려 외야수로 전향해 주전 중견수로 기용되었고, [[서정환]]은 경쟁에 밀려 백업 내야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1년 뒤 해태로 트레이드되며 한국 프로야구 트레이드史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준 국가대표 수준이던 삼성의 위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삼성의 대표 유격수로 활약했다. 1982년 6월 12일에는 구덕 삼미전에서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고, 그 해 유격수 부분 [[KBO 골든글러브]] 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몇 년간 유격수를 거의 혼자서 도맡다시피 해서 였는지 성적에 기복이 있었다. ~~[[서정환|아무래도 괜히 보낸 거 아닌가 싶다.]]~~
         [[김덕]] 감독의 삼성 이적으로 촉발된 [[OB 베어스]]와 삼성간의 신경전이 한창이던 1984년 전기리그 때 OB와의 경기 도중, 병살타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OB의 1루주자 이홍범이 과격한 [[슬라이딩]]으로 유격수 오대석의 허벅지를 걷어찼고, 이때 큰 부을 당한 오대석은 이후 기량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1987년 [[류중일]]이 입단한 후엔 1985년부터 주전 3루수였던 [[김용국]]과 3루 자리를 번갈아 맡았다.
         하지만, [[류중일]]이 1988년 팔꿈치 부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들자 유격수로 돌아왔으나 1989년 시즌 종료 뒤 롯데로 트레이드 되어 이듬해인 1991년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는데 1990년 부으로 출전 기회가 줄었으며 1991년 3루수로 돌아왔다.
         선수 은퇴 이후로는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롯데 자이언츠]]에서 코치를 했고 2000년부터 2년간 포철공고에서, 2004년부터 4년간 [[대구 원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으로 재직했다. 2011년에 다시 포철공고 야구부의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2011년 말 포철공고의 마이스터고 전환[* 마이스터 고등학교에서는 운동부 운을 할 수 없다.]으로 야구부 해체가 불가피해지며 계약이 해지되었다.[* 그러나 포철공고 야구부는 다행히 해체되지 않고,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인계되어 현재는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다. 참고로 경주고, 구미전자공고의 야구부의 잇따른 해체로 2011년 부로 대구 소재의 고교야구팀을 제외하고 [[경북도]] 소재의 고교야구팀은 포철공고가 유일하며, [[경주고등학교 야구부]]도 2013년 12월에 재창단했다. 구미전자공고 야구부도 포철공고처럼 마이스터고 전환 때문에 해체된 것.]
  • 원 포 올 . . . . 18회 일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체능력을 쓸 수 있는 증강계 개성. 한손으로 냉장고를 짜부로 만들고,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스피드를 낼 수 있으며 [[헐크|하늘을 나는 것을 방불케 하는 점프]]를 하는데다가 고유 기술인 힘의 충격파 '''"SMAASH!!"'''의 위력은 주먹을 땅에 매다꽂아서 '''승기류로 맑은 하늘에 비가 오게 만들 수 있다.''' 특성 하나하나가 능력자 배틀물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사기적인 개성이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명실부한 최강의 육체강화 개성.
         [[올마이트]]는 이 원 포 올의 계승자 중 한명으로 장기까지 적출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부을 입어 다음 계승자를 찾다가 [[미도리야 이즈쿠]]와 만나고, 그를 다음 계승자로 선택해 넘겨줬다.
         타인에게 계승시킨다는 점에서 고유의 능력으로 확립되는 개성이란 개념에 크게 반하는 매우 이질적인 개성. 물론 엄청나게 강력한 힘인지라 아무나 계승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쓰려면 사용자의 그릇, 즉 육체가 관건인데 개성을 넘겨받을 수 있을 정도, 원 포 올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육체가 아니면 '''사지가 찢겨 터져나가 죽는다!'''[* 이즈쿠는 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10개월 동안 하드한 트레이닝과 쓰레기장 해변의 대형쓰레기와 사투했다. 그사이 보인 노력은 오기의 레벨을 넘어선 순수함 그 자체.~~[[사이타마(원펀맨)|이 분]]이 생각난다.~~] --ㅎㄷㄷ-- 그리고 설사 겨우 개성을 받아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내도 어디까지나 급조된 그릇인데다 담을 수 있다는 것과 쓸수 있는 것은 다르기에 이러한 태에서 쓰면 몸이 못버티고 파열한다. 사용자의 육체가 더 강해지거나 사용자 스스로가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물론 올마이트는 출력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단, 뭐가 됐건 혈연에 관없이 타인에게 넘겨줄수 있는 힘이란 점에서 공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특성 알려지는 것 자체가 사회에 큰 위협이 되기에[* 원포올의 특성이 알려지면 원포올을 양도 받기 위한 빌런들의 암약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일 실수로라도 빌런에게 양도 되면...] 올마이트는 괴력이나 부스트 등으로 얼버무리고, 포장하는 식으로 넘겨왔으며 이 덕에 올마이트의 개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되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선 원 포 올 자체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이는 후술.]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계승자인 미도리야도 이 원 포 올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 엄청난 힘을 올마이트는 무리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해왔으며 미도리야는 힘을 넘겨받은지 얼마 안된 입장이라 큰 힘을 쓰면 항을 입었다. 이 약점에 대처하기 위해 원 포 올을 손가락 하나에 집중시켜 쓰는 방식으로 피해를 줄이고 있다.[* 그렇다 해서 미도리야가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USJ편에서 힘을 사용하고도 반동이 없는 등 점차 성장하고 있다.[* 일단 힘의 일부만 발휘되었을 수도 있으며 USJ편의 경우는 '사람에게 쓴다'는 점에서 마음 속으로 브레이크가 작동된 듯.] 일단 체육제편까지를 기준으로 미도리야가 쓸수 있는 힘의 안전선은 전체의 5% 정도. 그러나 이후 미도리야의 성장 덕에 8%까지 향되었다.
         웅제편에서 올마이트의 언급을 보면 이미 개성을 타고난 사람이 물려받을 경우, 그 개성과 원 포 올이 별도로 존재하는 모양.[* 토도로키 쇼토를 예시로 들며 그가 원 포 올을 계승하면 반랭반연에 원 포 올을 발휘하는 슈퍼히어로가 되었을 것이라 한다.]
         초능력자가 절대 다수인 히로아카 세계인 만큼 다양한 개성이 있고, 그중에는 정말 강력한 힘도 있는데 그런 힘 중에서도 최위권에 기입될만한 힘이다. 미도리야의 스승이자 이전 계승자인 올마이트부터가 평화의 징. 물론 올마이트가 힘만 가지고 최고의 히어로가 된것은 아니나 그걸 고려해도 굉장하다. 거기다 그 특성 계승을 거칠 수록 더 강해질수 있다. 다만 그렇기에 오히려 조심해야하기도 하는 것이 너무 강한 힘 탓에 미도리야는 그 힘을 완전히 다루지 못하고, 오히려 힘이 원인이 되어 부을 입을 때가 자주 있다.
          * 올마이트 스승인 시무라 나나의 맹우이자 웅고에서 1년 동안 교사로 재직한 [[그랜 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 토리노]][* 그의 경우 훈련도 시켜줬다. 다만 올마이트는 실습 일로 지명이 오고나서야 알려줬는데 오래 전에 은거해서 카운트 안했다고.]
          * 올마이트의 사이드킥이었던 [[Sir. 나이트아이]]
  • 원피스/847화 . . . . 18회 일치
          * 쵸파는 일부러 거대화된 태로 잡혀서 묶여 있다. 기회를 봐서 원래 사이즈로 돌아가 쇠사슬을 빠져나가고 "몬스터 포인트"로 브륄레를 때려잡을 작정이다.
          * 빅맘은 어인섬에서 납한 국보 "옥갑"을 내일 다과회에서 개봉한다고 말한다.
          * 루피는 결혼"하지 않은건" 로라고 해적왕이 "못 된건" 빅맘이라며 꼭 디를 돌려받겠다고 선전포고. 빅맘의 격노에 기름을 붓는다.
          * 한편 [[디]]는 그저 일행이 무사하기만을 빌고 [[페드로]]와 [[브룩]]은 [[타마고 남작]]의 이목을 끌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 사실 이들이 잡힌건 작전의 일환이다. 쵸파는 일부러 "해비 포인트"로 거대화된 태로 잡혔는데 변신만 풀으면 바로 쇠사슬을 풀 수 있다. 게다가 어제로부터 시간도 많이 지나서 "몬스터 포인트"를 다시 쓸 수 있게 됐다. 잘만되면 브륄레를 때려잡을 수도 있는 것. 쵸파는 침착한 태도로 조용히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인간까지 컬렉션으로 책 속에 보관하는 모습에 그 비정한 빈스모크의 형제들 조차도 인을 찡그린다. 빈스모크 저지는 자신이 이곳에 와서 다양한 종족과 생물을 봤지만 딱 하나 "거인족"만은 보이지 않는다고 묻는다. 그러자 한순간이지만 빅맘이 발끈해서 인을 구긴다. 하지만 곧 안색을 바꾸며 "어쩌다 보지 못했을 것"이라 얼버무린다.
          * 때마침 빅맘의 아들이 밀집모자 일당 두 명을 연행해왔다고 보고한다. 빅맘은 오늘은 바쁘다며 빈스모크 일가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뜬다. 그런데 보고하러 온 아들이 안절부절못하는 태도가 이해서 왜그러냐고 묻는데, 알고 보니 아들은 제르마66, 그 중에서도 이치디와 레이쥬의 광적인 팬이었다. 팬심으로 흥분하고 있었던 것. 빅맘은 한심하다고 핀잔하며 "필요한건 겉모습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그때 빅맘의 전보벌레가 도착한다. 빅맘이 전보벌레를 통해 인사하자 조용하던 루피가 격분한다. 빅맘은 기개가 제법 남았다고 웃으며 일당이 전부 오지 않았길래 어인섬에서 한 약속을 잊은 줄 알았다고 빈정댄다. 루피는 언젠가는 날려주겠다며, 오늘은 단지 디를 데리러 왔을 뿐이라 대꾸한다.
          * 루피는 싸우고 싶다면 지금 대해주겠다고 큰소리치지만 빅맘은 비웃을 뿐 전혀 응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디만 두고 가면 살려보내준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이걸 무시하고 자신의 "즐거움"을 방해했다간 그냥 끝나지 않을 줄 알라며 엄포를 놓는다.
          * 빅맘은 뜬금없이 루피가 어인섬에서 가로챈 과자값으로 준 어인섬의 보물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 루피가 줬던 보물 중에는 어인섬의 국보인 "옥갑"이 섞여 있었다. 넵튠이 왜 이런 것까지 루피한테 줬는지 모르겠다며 웃으며 내일 다과회에서 개봉하겠다고 선언한다. 이 이야기는 루피를 도발하기 위해서 한 말 같지만, 정작 루피는 거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전히 디의 결혼 문제에 화를 내는데, 급기야 샬롯 푸딩을 언급하며 그녀가 자신들의 친구니 만나게 해달라고 발언한다. 나미는 그 발언을 막으려 하는데 빅맘은 그저 둘러대는 말이려니 하고 귀담아 듣지 않는다.
          뜻밖에 격노하는 빅맘. 나미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빅맘은 어디있는지 당장 불라며 킬러를 보내겠다고 한다. 심지어 "아직도 부모자식인줄 알다니 기가막히다"는 발언도 한다. 빅맘은 자식은 부모맘을 모른다며 로라를 "역대 최고의 결혼 대를 걷어차고 도망친 멍청한 딸년"이라 매도한다.
          >디는 반드시 돌려받겠어.
          * 객실에선 디가 초조한 기색으로 일행이 무사히 돌아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 한편 성안에선 침입자를 발견하고 소란이 일어난다. 경비병들이 "호랑이" 밍크족을 발견했다며 타마고 남작에게 보고한다. 타마고 남작은 "재규어"라고 정정해주며 예대로 페드로가 왔다고 경계한다.
          그렇게 이목이 끌린 사이 [[브룩]]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또다른 작전을 수행한다.
  • 원피스/863화 . . . . 18회 일치
          * 격분한 빅맘 [[샬롯 링링]]은 요리사들에게 새로운 웨딩 케이크를 대령하라며 닥달, 무리라고 하자 "소울 보커스"의 힘으로 혼을 빼앗아 버린다.
          * 소울 보카스는 대의 "삶에 대한 집착"에 말을 걸어 조금이라도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는 자의 혼을 빼앗는 기술이다.
          * 작전 개시로부터 세 시간 반 전. 그러니까 일행이 아직 [[카포네 갱 벳지]]의 아지트에 있을 때의 일이다. [[몽키 D. 루피]] 자신이 자신하던 [[원피스/859화|재미있는 등장법]]을 벳지에게 설명한다. 그는 웨딩 케이크 안에 커다란 거울을 넣어뒀다가 거울 세계를 통해 케이크 안에서 튀어나오는 연출을 구했던 것이다. 벳지는 당장 좋다 아니다 말은 안 하지만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는지 거절하지도 않는다. 그 자리엔 [[샬롯 브륄레]]도 있었는데, 빅맘 [[샬롯 링링]]이 케이크가 박살나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기 때문에 절대해선 안 된다고 성화를 부린다. 하지만 루피는 브륄레가 하는 말 보다는 그녀의 능력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근처 숲에서 동물들을 잔뜩 잡아온 다음, 유혹의 숲에서 한 것처럼 자기 모습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다. 브륄레는 당연히 질색하지만 결과적으론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거대한 케이크는 하객들 위로 무너져 내린다. 케이크의 단, 장식 위에 있던 [[디]]는 정신을 잃은 [[샬롯 푸딩]]을 안고 밑으로 뛰어내리며 루피에게 뒤를 부탁한다.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소울 보커스". 소울소울 열매의 기술이다. 모간즈는 누구더러 들어라는 건지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시작한다. 그 기술은 생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집착"에 말을 건다. 조금이라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대로 목숨을 빼앗기는 흉악한 질문. 요리사들은 말도 안 된다고 억울해하면서도 속절없이 혼을 빼앗긴다.
          * 미러 월드의 밀집모자 일당은 작전이 기대 이의 성과를 거두자 신이 났다. [[징베]]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거울 입구에서 브륄레가 루피 모습으로 변신시킨 동물들을 바깥으로 내던진다. 뒤에선 [[나미(원피스)|나미]], [[쵸파]], [[캐럿(원피스)|캐럿]], [[시저 크라운]]가 거들고 있다. 브륄레는 빅맘이 두려워 징징대고 있지만 시키는대로 순순히 따른다. 동물들을 모두 내보내자 페드로와 징베도 다과회장으로 뛰어내린다.
          * 곧이어 나미, 캐럿, 쵸파도 회장으로 돌입. 시저는 그대로 남아있는데 나미는 그에게 "뒷정리를 부탁해 인간쓰레기"라며 빈정 하는 소릴 한다. 캐럿이 그 말을 듣고 그렇게 글러먹은 사람이냐고 놀라자 쵸파가 나미에게 맞장구치며 "저 자식은 최악"이라고 매도한다. 시저는 딱히 반박할 기회도 없이 그저 눈물을 삼킨다. 그리고 나미 일행도 미러 월드 바깥으로 나간다.
          * 요리사들을 대로 분풀이를 한 빅맘은 곧 사건의 주모자 루피를 찾아 눈을 번뜩인다. 하지만 그와 전보 벌레로 통화한 적은 있어도 얼굴을 보진 못했다. 죄수 도서관에서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그가 말했다.
          >디는 반드시 되찾아가겠어!
          하지만 징베도 식적인 사람에 불과했다. 그리고 루피는 식적이지 못했다. 루피는 케이크를 퍼먹으며 "나다!"라고 대답한다. 징베는 소울 보커스에 걸린 것도 아닌데 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이 된다. 빅맘은 루피를 짓뭉게버리겠다며 달려든다.
          * 루피는 엉망진창이 된 황에서도 용케 진짜 목적인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든 액자를 발견하고 노린다. 작전이 잘 굴러가자 벳지는 부하 괴총 비트와 고티에게 KX런처의 준비를 지시한다. 이미 둘은 준비를 마치고 언제든 뛰어나갈 태세다. 나미, 쵸파, 캐럿은 아직 케이크 내부에 남아서 루피가 목표를 달성하면 3초 안에 튀어나갈 준비를 하며 기다린다.
          빅맘은 루피의 진짜 목적을 모르고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로 그를 공격할 생각만한다. 루피는 여유롭게 액자를 공격하려 하는데, 그때 측면으로 정체불명의 뭉터기가 날아온다. 그건 [[샬롯 카타쿠리]]의 "다리"였다. 루피의 고무고무 기술처럼 다리를 늘려서 공격했는데 거기에 맞은 루피는 튕겨 나가지도 않고 그대로 달라붙어 있다. 루피는 몸을 빼내려고 하지만 달라붙어서 전혀 떨어지질 않는다. 그 사이 카타쿠리는 자신이 붙잡은게 진짜 루피고 나머지는 브륄레의 능력으로 변신시킨 동물들이라며 무시하라고 지시한다.
          * 모간즈 조차도 여기서 징베가 죽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징베에게선 혼이 빠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빅맘이 당황한다. 그녀의 능력을 아는 하객들도 술렁거린다. 결국 누군가가 "저건 빅맘을 1mm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해버린다. 그 말대로다. 징베는 자신이 빅맘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선언한다.
          징베는 자신이 밝힌 대로 정정당당하게 빅맘의 산하를 떠났다. 현장은 빅맘이 수명을 빼앗지 못했다, 그 이변에 술렁이기 시작한다. 케이크 속에 숨어 황을 보고 있던 나미 일행은 이런 난전 중에 저렇게 깔끔하게 입장을 정리한 징베의 모습에 감동한다. 그리고 징베가 죽지 않고 무사히 빅맘 산하를 나오게 되자 루피도 환호하며 좋아한다.
          뒷끝을 부리는 것은 빅맘. 그녀는 징베가 내려놓은 술잔을 밟아 부수며 "축하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곧바로 귀신을 하며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적!"이라며 가차없이 징베를 공격한다. 어지간한 건 넘어가는 루피도 "구질구질하다"고 내뱉을 만큼 지저분한 뒷풀이다.
  • 원피스/866화 . . . . 18회 일치
          * 링링의 비정적인 힘과 식탐은 큰 소동을 일으켜 "국외추방"형을 받고 거인족 전사들의 섬 "엘바프"섬에 버려지기에 이른다.
          * 당시 엘바프 섬에는 "성모"로 추앙받는 수녀 [[마더 카르멜]]이 "양의 집"이란 고아원을 운하며 다양한 종족의 고아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 그녀는 해군을 대로 "이들을 죽이면 엘바프 전사들이 전쟁을 일으켜 더 큰 화를 불러올 것이다"고 설득, 이후 인간과 거인의 중재자를 자처한다.
          * 현대로부터 63년 전. 거인족 "엘바프족"이 사는 엘바프 섬에 묘한 배가 륙한다. 그들은 한 아이를 해안에 내려놓는데 인간의 아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몸집이 거대했다. 그 아이가 바로 [[샬롯 링링]]. 지금의 빅맘이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그녀는 신장이 벌써 5m를 훌쩍 넘을 정도로 덩치가 컸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인간의 자식이었으며 사고방식도 보통의 어린 소녀였다.
          부모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들은 링링을 버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비정적인 힘과 식탐을 지닌 그녀는 큰 소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내려진 벌이 "국외추방". 부모는 링링을 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워낙 큰 사고를 친데다 도저히 자신들이 기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의 결정에 따랐다.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건 이 땅에 "성모"가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녀가 링링도 구원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그들은 돌아간다.
          * 당시 엘바프는 "거병 해적단"의 잔당들이 살고 있었다. 거병해적단은 현대를 기준으로 약 100년 이 전에 활동했던 공포의 해적단이었다. 전세계가 두려워했던 세력이었으나 두 선장 [[도리(원피스)|도리]], [[브로기]]가 우연한 계기로 해적단을 이탈, 이후 활동을 접으면서 전설적인 존재가 됐다.
          >이 세의 수많은 종족들이 손을 맞잡고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세으로!
          링링은 양의 집이 마음에 들었다. 우선 양의 집은 거인족 마을에 있었는데 그녀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자기보다 큰 사람들, 그리고 자기와 비슷한 눈 높이의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마을이나 건물들도, 그녀는 자기 몸집에 맞는 사이즈를 처음 접해봤다. 그래서 오히려 양의 집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 그로부터 얼마 후, 카르멜은 울고 있는 링링을 발견한다. 링링은 "이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울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녀는 늑대와 곰이 숲에서 싸우고 있길래 화해시키려고 한 우리에 넣어주었다. 그런데 곰은 늑대를 먹어버렸고 링링은 곰이 나쁜 짓을 해서 한 대 때려주려고 살짝 손을 댔는데... 그래고 즉사해 버린 것이다. 바보같은 일이긴 했지만 카르멜은 링링이 둘을 친구로 만들어주려다 난 사고라고 생각하고 그 착한 심성을 칭찬한다. 링링은 이전까지는 이렇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곧 카르멜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게 된다.
          여기서도 링링의 괴력은 경계의 대이었지만 카르멜은 링링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길렀다. 링링은 항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어린아이 특유의 경솔함과 괴력 때문에 사고를 일으켰다. 거인족 아이 에일리에게 모기가 붙어서 잡아주려가 골절을 시키기도 했고, 수장족 아이는 관절이 너무 많아 보인다며 뽑아주려 들거나, 어인족 아이인걸 모르고 지느러미가 붙은걸 제거해주려고 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카르멜은 꾸짖고 타일러 가르치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는 링링이 나쁜 뜻이 없고 남을 배려하다가 그렇게 된 거라 설득했다.
          링링에겐 거인족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하이루딘]]. 훗날 [[드레스로자]]에서 [[몽키 D. 루피]]와 만나는 그 거인족이다. 그도 링링, 게르즈와 친구사이였는데 이 시기에는 도리와 브로기가 돌아와 거병해적단이 부활할 때를 기다리며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링링과 게르즈는 동지제 이야기를 하며 그의 훈련을 구경했다.
          * 마침 거인족 마을의 어른인 "폭포수염" [[요를]]와 "산수염" [[야를]]가 행차한다. 둘은 거병해적단의 전 선장이었으며 거인족의 웅이자 "전세계 최고령 전사"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다. 요를가 344세, 야를가 345세. 이들은 하이루딘의 수련을 보고 만족해한다. 그들은 카르멜이 "약탈보다는 교역이 좋다"고 한 말을 언급하는데 그 말은 좋지만 그래도 엘바프족이 전사라는 정체성을 잃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 이들이 외출한 것은 양의 집 아이들을 마을로 부르기 위해서였다. 이것도 동지제를 위한 행사 중 하나였다. 두 노병은 링링에게 "셈라를 먹으러 와라"고 하는데, 행사가 처음인 링링은 셈라가 뭔지 모른다. 게르즈가 설명해주는데, 동지제까지 12일이나 금식하기 위해서 미리 양가 많은 음식을 먹어둬야 하는데, 그것이 셈라.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로 과자라면 환장하는 링링이 눈을 빛낸다.
          그날 마을에서 먹은 셈라는 링링이 기대한 것 이으로 맛이 좋았다. 링링이 맛에 취해 흡입하기 시작하자 거인족 어른들이 와서 뜯어말릴 지경이었다. 단식 대비용이므로 양을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링링이 먹어대는 속도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 그렇게 셈라를 먹고 시작된 단식. 링링은 삼일 째부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카르멜은 태양제를 "죽음과 부활의 축제"라며 괴로움만큼 태양에 대한 감사가 깊어지는 거라고 타이른다. 그렇게 카르멜이 달래고 타일러가며 6일째까지 버틴 링링. 링링은 정말로 카르멜을 좋아했기 때문에 배고픔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셈라가 자꾸 생각났다. 그 환적인 맛.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7일 째를 맞이하던 링링. 그리고 그날 사건이 생겼다.
          게르즈가 양의 집에 있던 카르멜을 급히 찾는다. 마을에서 링링이 난동을 부린다는 소식이었다. 카르멜이 갔을 땐 이미 마을이 괴멸 태. 거병 해적단 출신 전사들이 단 한 사람의 소녀에게 패했다. 그 파국의 한 가운데에는 세무라를 목놓아 부르는 링링이 있었다. 식탐이 폭주해서 셈라를 내놓으라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아연해하는 카르멜.
  • 은혼/618화 . . . . 18회 일치
          * 기세를 올리던 [[니시노 츠카무]]가 인지 조차 못하고 리타이어. 오른팔을 잃는다. 야규가의 사무라이들은 허수아비처럼 쓰러지고 [[오우가이]]는 [[야규 빈보쿠사이]]의 말을 받아치며 이들을 빈정거린다.
          * [[미나모토 스이]]가 격분해서 뛰쳐나간다. 미나모토는 흥분한 와중에도 냉정하게 황을 분석하는데 제아무리 괴력을 지녔더라도 야규류의 쾌검을 받아칠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이었다. 오우가이는 정교한 움직임은 없지만 속도 또한 힘 못지 않았다. 사각을 파고 들던 공격도 오우가이의 주먹 한 방에 막힐 뿐더러 미나모토의 팔이 부러지고 만다.
          * 사천왕의 필두 [[토죠 아유무]]가 과감하게 돌격, 오우가이의 머리를 꿰뚫는 듯 했으나 그는 진검을 이쑤시개 씹듯이 씹어 먹으며 흉흉하게 웃는다. 오우가이는 토죠를 붙잡아 키타오오지, 미나모토와 함께 패대기 친다. 오우가이는 구태여 추격하지 않지만 다키니의 병사들이 둘러싼다. 토죠는 처는 없지만 검을 잃었고 미나모토는 치명. 키타오오지도 충격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채로 적들에게 노출된다.
          * 빈보쿠사이는 정신을 잃은 니시노를 수습하는 중. 빈보쿠사이처를 묶으며 이정도로 죽을 만큼 연약하게 키운 기억이 없다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다키니 병사들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벽을 무너뜨리며 빈보쿠사이를 추격해온 병사들. 빈보쿠사이는 작은 몸으로 니시노를 짊어지며 절대 버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긴토키는 운 좋게 쿠션이 있어서 처를 입지 않았지만 암놈 냄새를 재탕하다 큐베에게 집어던져진다. 이걸로 오우가이에게 날려진 것보다 더 큰 데미지를 입는다.
         >네놈이 걸 명예는 더이 어디에도 없다.
          >와라. 네놈의 대는 여자와 애송이들로 충분하다!
          적의 병력이 골목으로 들어서자 여자들은 옥에서 통나무 더미를 투하한다. 하지만 다키니 병력들에겐 큰 위협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우가이에겐 더더욱 타격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오우가이는 통나무를 옥으로 집어 던지며 아가씨들을 위협한다. 오우가이는 이런 잔꾀나 쓰니 여자들은 짜증난다며 병력을 옥으로 보내 고깃덩어리로 만들라고 말한다. 그 명령을 받은 다키니 병사들이 좁은 계단을 통해 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 오우가이는 그런 잔꾀로 이 일격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엄포를 놓지만 긴토키는 그런건 정한 바고 "네놈의 일격을 막진 못해도 네놈한테 일격을 먹여줄 방법은 있다"고 받아친다. 해결사 일행은 세 방향에서 오우가이를 동시에 덮치지만 오우가이는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모든 공격을 차단한다. 사실 이쪽으로 유인을 걸었을 때 이미 그 계책은 짐작한 바였다. 이곳이라면 기동성을 무기로 다방면에서 공격을 가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정도로는 오우가이의 철통같은 가드를 뚫어낼 수 없었다.
          *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떨어지는 통나무 사이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큐베가 오우가이의 빈틈을 파고 든다.
  • 은혼/645화 . . . . 18회 일치
          * 엔쇼는 두 사람을 대로도 압도적인 전투력을 과시하나 라이트 세이버 자체를 노리고 사격한 다츠마의 기지와 가츠라의 결정타로 패배한다.
          * 초연의 황자 [[엔쇼]]는 다 끝장난 것 같았던 해방군의 전세를 회복시킨다. 뿐만 아니라 양이지사들의 두 축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에 역공을 가해 [[무츠(은혼)|무츠]]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라는 두 동료를 희생시킨다. 병력은 대부분 소실, 히노카구츠치 발사 저지, 해방군 모선 아메노토리후네는 침몰 중, 자신은 양이지사들에게 포위된 황에서도 그의 안에서 타들어가는 불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양이지사들이 치른 희생이야 말로 무의미하다고 평가절하했다.
          그 불꽃이 남아있는 이 아무 것도 변한건 없다. 단지 그 불꽃을 직접, 지구에 박아주면 그만이다. 그는 아메노토리후네를 지구에 낙하시켜 히노카구츠치를 발사한 것과 같은 결말을 만들려 한다.
          >우리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싸운다. 그 혼이 정화될 때까지.
          * 자작은 정말로 죽어간 동지들이, 그의 아내가 이런 결말을 원하는 것 같냐고 일갈하며 창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엔쇼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모선을 휩쓸고 있는 유폭 현이 통제실까지 들이닥쳤다. 자작이 본 것은 폭발 사이로 모습을 감추는 엔쇼의 등이었다.
          * 하지만 엔쇼는 예이나 한 것처럼 양손의 라이트 세이버를 교차해 후방을 찌른다. 빛의 칼끝이 가츠라와 다츠마의 복부와 어깨를 찌른다. 칼날은 그대로 둘을 밀쳐낸다. 적당히 거리가 벌어지자 엔쇼가 돌아서며 역공을 가한다. 둘은 피하는데 급급하다. 엔쇼의 불이 다츠마와 가츠라의 불을 끌 수 없다면 그 반대로 마찬가지.
          * 여전히 엔쇼는 양이지사들의, 지금 여기서 싸우는 웅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니까. 그는 양이지사들에게 자신이 밉냐고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그들의 동료와 사랑히는 이들을 앗아가지 않았는가. 그 뻔한 질문엔 대답도 필요 없었다.
          * 개방된 공간이었던 통제실과 달리 좁은 통로에서는 엔쇼의 라이트 세이버가 더욱 유리했다. 신축자재에 광탄으로 전환까지 가능했기에 다츠마와 가츠라에겐 피할 공간이 부족했다. 다츠마가 공격을 피해 몸을 날리며 총을 갈겼다. 엔쇼는 라이트 세이버를 광탄으로 변환해서 대응사격한다. 치명은 주지 못했지만 왼쪽 허벅지에 부을 입힌다. 가츠라는 엔쇼가 다츠마를 공격하는 동안 도약해 있었다. 엔쇼는 머리로 떨어지는 가츠라의 내려치기를 오른손 라이트 세이버로 막았지만 무기를 놓친다. 엔쇼가 주춤했다. 가츠라에겐 더할나위 없는 기회였다. 엔쇼의 우측에 착지한 가츠라는 재빨리 우단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무너진 자세로 무방비해진 엔쇼의 목으로 곧바로 칼날이 닿았다. 이제 긴 싸움의 끝인가? 안심하기는 일렀다. 엔쇼의 왼손에는 여전히 라이트 세이버가 들려있었다. 엔쇼는 그 라이트 세이버로 가츠라의 칼날을 쏘아맞춘다. 방해가 되는 자기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빛의 경로가 꺽어지게 해서 겨우 가츠라의 칼날을 저지한다. 부러지는 가츠라의 칼. 엔쇼는 그대로 가츠라의 왼쪽 어깨를 찔러 반대편으로 밀어낸다.
          다츠마는 부, 가츠라는 무기가 없다. 엔쇼는 라이트세이버를 오른손에 바꿔들고 광탄의 형태로 전환했다. 그는 무기를 높이 치켜들었다. 쓰러져 있는 가츠라와 다츠마는 더이 저항의지가 없는 듯 했다. 하긴 그럴 수단도 없었다. 이제 긴 싸움의 끝인가? 안심하기는 일렀다. 라이트 세이버의 출력이 떨어지더니 이윽고 고장을 일으킨다. 엔쇼는 그제서야 온전한 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다츠마가 쏜 총알. 그건 라이트 세이버를 노리던 거였고 정확하게 명중했다. 거기에 생각이 닿은 순간, 가츠라가 마침내 마무리를 지었다. 떨어뜨렸던 라이트 세이버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 빛의 끝은 엔쇼의 복부를 지르고 있었다.
          * 승부가 났다. 엔쇼는 가츠라의 공격으로 복도 반대편까지 나가떨어졌다. 게이트를 화려하게 박살내며 떨어진 곳은 탈출용 소형정이 대비 중인 도크였다. 엔쇼를 지나쳐갔던 병력들은 엔쇼가 패하고 가츠라, 다츠마가 추격해오자 경악한다. 병력들은 둘이 다가오는 복도를 향해 총구를 모았다. 그들이 오게 두어서는 안 된다. 탈출을 저지 당하면 자신들도 이 배와 함께 침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탈출하려는 배 위에서, 예치 못했던 병단이 나타난다. 마타코가 막 구조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마타코는 어떻게 헨페이타가 무사할 수 있었는지 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간단한 문제였다.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를 향해 돌격했던 헨페이타의 소형정. 소형정이 목표를 들이받은 순간, 헨페이타의 예은 빗나갔다. 원인은 모선의 외벽이 생각보다 날림이었거나, 소형정이 너무 튼튼했기 때문이다. 장치를 박살낸 소형정은 계속 돌진해서 외벽을 뚫고 내부까지 진입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헨페이타와 부하들은 자신들도 뻘쭘해하며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가운데 자신들만큼 뻘쭘하게 살아남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삼흉성의 생존자 [[사루가쿠]]. [[바토우]]와 함께 폭발에 휩쓸려 죽은 줄 알았던 그들은 무사히 몸을 피해있었다.
  • 이상무(만화가) . . . . 18회 일치
         한국의 만화가이다. 이무는 필명으로, 본명은 박노철. 경북 [[김천시]] 출신이다.
         1946년 김천 출신으로 1963년 고교 재학시절, 대구 [[남일보]]의 어린이 지면에 주 1회 네칸 만화를 연재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경, [[박기준]] 화백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1965년 월간 "여학생"의 "[[로미오와 줄리엣|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하였다. 이무라는 예명도 이때 얻었다. 이후 70~80년대에는 축구, 야구 등의 스포츠 만화를 주로 연재했고, 1980년대 성인 만화 잡지가 탄생하자 성인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골프만화를 연달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가 유명해 진 계기는 바로 스포츠만화였다. 특히 1970년대 [[고교야구]]붐을 탄 야구만화에서 그는 독보적이었다. 1980년대 [[이현세]]가 나오기 전까지 그는 야구만화의 독보적 일인자였다. 하지만 야구만화만 거의 그리던 허만이나 이현세랑 달리 [[축구]]도 좋아해서인지 독고탁이 나오는 축구만화도 제법 여럿 그렸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 [[독고탁]]은 그의 이름보다도 더 유명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그야말로 [[허만]]을 콩라인으로 만든 만화가였다. 허만 스스로도 자신이 늘 편집장에게 이무 씨에게 밀려요라는 말을 지겹게 들어서 타도 이무! 라고 그림을 그렸더니만 나중에는 이현세가 나와서 또 2인자 신세더라며 두 이씨(물론 보시다시피 이무는 필명)에게 진다고 한탄했다고...
         이무는 데뷔작이 고교생이 주인공인 청춘 개그물이었고 스포츠 만화나 가족 드라마를 주로 그렸지만, 주 독자층인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성인 취향의 주제를 자주 다루었다. 예를 들어, 재일교포 형제를 주인공으로 그린 [[현해탄 너머]]에서 동시대 만화가들처럼 단순히 일본인들의 재일교포 차별만 넣는 대신 두 나라 사이에서 갈등하는 2세대 교포의 모습도 다루었다. 독고 탁이 투수로 나오는 한국인 시리즈가 그 극이라 할수 있다. [[비둘기 합창]]에서 소아마비 장애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버림 받는 여자를 그렸는가 하면, [[달려라 꼴찌]]에서 일본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한국의 흑인 혼혈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묘사하였다. 밝은 그림에 비해서는 주제가 무거운 편.
         [[유작]]은 바로 [[전인권]] 신곡 눈눈눈눈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그림. 그래서 전인권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웹툰]] 진출도 기획하며 차기작을 기획 중이던 터였다고 한다. 결국 웹툰은 그리지 못하고 세을 떴다.
         == 수 경력 ==
          * 1980년 한국도서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 한국만화 아동만화 부문 우수(유대철 화백과 공동수)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무, version=21)]
  • 이장우 (1871년) . . . . 18회 일치
         |태어난 곳=[[경북도]] [[대구부]]
         '''이장우'''(李章雨, <small>일본식 이름:</small> 岩村章雨, [[1871년]] [[9월 15일]] ~ [[1944년]] [[1월 16일]])은 [[대한제국]]의 군인 겸 [[일제 강점기]]의 관료, 기업인으로, 본적은 [[경북도]] [[대구부]] 하서정이다.
         [[1898년]] [[7월 10일]]부터 [[7월 11일]]까지 봉사 주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1899년]] [[7월 30일]] 대구지방대에서 대한제국 육군 보병 참위로 근무했으며 [[1903년]] [[3월 21일]] 진위(鎭衛) 제3연대 제1대대에서 복무했다. [[1903년]] [[4월 6일]]부터 [[1907년]] [[9월 3일]]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전까지 육군 보병 부위(副尉)로 복무했다.
         [[1909년]] 경농공은행 감사역으로 임명되었으며 [[대구은행]] 창립 발기인(1912년 12월)과 대구지주조합 창립위원(1913년 5월), 대구자제단 발기인(1919년 4월 7일)으로 참여했다. 대구은행 감사역(1915년)과 경일은행 감사역(1918년, 1925년 ~ 1927년), 대구주조주식회사 취체역(1919년 10월 3일 ~ 1921년), 대구업회의소 무위원(1919년 12월 16일)으로 근무했고 대구부 도시계획 위원회 제6부 위원(1923년 1월 30일)과 대구업회의소 특별위원(1926년)을 역임했다. [[1918년]] 7월과 [[1920년]] 12월 대구부 협의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6년]] 10월과 [[1930년]] 7월 대구소년보호소에 5,000원을 기부했다.
         [[1926년]] [[9월 4일]] 경북도 관선 도평의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8년]] [[8월 31일]]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1933년]] 11월 [[고려대학교|보성전문학교]] 창립 30주년 기념사업회 실행위원을 지냈으며 남명덕회(嶺南明德會) 대구지부 부지부장(1933년), 조선농회 통의원(1934년, 1938년 5월 18일), 경북도농회 부회장(1934년 4월 20일, 1938년 4월 13일), 경북미곡통제연합회 부회장(1936년 11월 18일), 조선나예방협회 평의원(1938년)을 역임했다. [[1941년]] [[9월 11일]]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43년]] [[8월 3일]]부터 [[1944년]] [[1월 16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1933년]] 3월 조선나예방협회(朝鮮癩豫防協會)에 기금 6,000원을 기부했으며 [[1933년]] [[10월 19일]]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포을 받았다. [[1936년]] 5월 대일본무덕회(大日本武德會) 조선지방본부 무덕전(武德殿) 건축비 10,000원을 기부했고 [[1937년]] [[1월 26일]] 일본 정부로부터 감수포장(紺綏褒章)을 받았다. [[1927년]] 3월 당시 경북도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설립비 4,816원을 기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38년]] [[8월 4일]] 일본 정부로부터 포을 받았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관료, 중추원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
         |제목=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 보고서 Ⅳ-13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18회 일치
         2001년 6월 8일, 오사카 교육대학부속 이케다 초등학교(大阪教育大学附属池田小学校)에 37세 남성 타쿠마 마모루(宅間守)가 난입하고 칼을 휘둘러, 아동 8명이 사망하고 [[교사]]를 포함한 15명이 중경을 입은 사건이다.
         == 세 ==
         사건이 시작된 것은 2001년 6월 8일 오전 10시, 오사카 교육대학부속 이케다 초등학교는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들어가기 직전의 시간이었다. 학교 앞에서 타쿠마 마모루는 자동차 전용 게이트로 침입하여, 체육관 앞을 지나갔다. 이 때 아이들과 화단으로 가던 교사 1명과 엇갈려 지나갔지만, 교사는 [[학부모]]라고 생각하여 수하게 여기지 않고 인사를 했다.
         범인은 [[부엌칼]]을 가지고 2학년 남쪽반(2年南組)에 들어가서, 여자아이 5명을 말 없이 찔러죽이고, 테라스를 통하여 서쪽반(西組)에서 어린이들을 습격, 다음에는 복도로 동쪽반(東組)에 들어가서 4명을 습격했다. 동쪽반에서 밖으로 나와서 태클을 걸어온 교사(1학년 남쪽반 담임)의 가슴을 찔러서 중을 입혔다. 교사는 "도망쳐라!"고 소리쳤으며,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뜰 쪽으로 달아났다. 남자는 도망치는 아이들을 쫓아가다가 발길을 돌려서 1학년 남쪽반 칠판 옆에 있는 4명의 아이들을 찔렀다. 그리고 겨우 부교장, 그리고 밖에서 엇갈렸던 2학년 남쪽반 담임이 달려와서 붙잡혔다.
         단 5분~10분 정도 사이의 짧은 시간에, 타쿠마 마모루는 8명의 아이들을 살해하고, 13명의 아이와 2명의 교사에게 중경을 입혔다. 피해자는 처음 들어간 2학년 남쪽반에서 5명, 그 옆의 2학년 서쪽반에서 2명 사망 6명 부, 2학년 동쪽반에서 4명 부, 붙잡힌 1학년 남쪽반에서는 1명 사망 3명 부이다.
         체포 직후 타쿠마는 "한큐이케다역(阪急池田駅)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100명 정도 난도질해왔다.", "요즘 계속 잠을 못 잤다. 초등학교에는 가지마."같은 이한 발언을 반복했다. 타쿠마의 집에서는 진정제 등 10여 종류 200정 가량의 약품이 발견됐다. 체포되고 얼마쯤 지나서, "정신장애가 무거운 것처럼 위장했다."고 인정했다. 두 차례의 정신감정 결과 '인격장애'로 진단 받았으나, 책임 능력이 있음이 인정되었다.
         2003년 5월에 검찰은 "이 사건의 피해 참과 많은 가족의 비통한 모습을 볼 때, 사형폐지론이 피해자나 유족의 입장과 심정을 무시하는 공허한 것인지 실감할 수 밖에 없다."고 사형을 구형했다. 변호인단은 정신이과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타쿠마는 최종변론 후에는 "죽는들 전혀 겁먹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실컷 불쾌한 경험을 겪었습니다.","어쩔 수 없는 가난뱅이 인생이었으니, 이런 패턴 쪽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사형수는 대부분의 경우 구치소에서 [[다비]]를 하고 유골이 전달되지만, 타쿠마의 시신은 유족의 희망에 따라서 시신 태로 넘겨졌다. 교도관은 시신과 대면한 아내에게 "고맙다.고 내가 말했다고 전해주세요."라는 유언을 아내에게 남겼다고 전했다. 마지막까지 피해자 유족에게 사죄를 하지 않았다.
         사건 직후에 오사카 교육대학, 오사카 대학, 부립 마음의 건강 종합센터, 오사카 피해자 담실 등 전문가로 구성된 '멘탈 지원 팀'이 발족하였다. 교장은 기자 회견에서 대학부속 초등학교의 합동 장례식을 할 의향임을 밝혔다. 2002년 정신지원팀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아동 680명 가운데 [[외 후 스트레스 장애]] 증을 가진 아동이 2학년을 중심으로 10명에서 20명 정도였으며, 학부모와 교직원 가운데도 고통 받는 사람이 있었다. 무서워서 교실에 들어갈 수 없고, 원인 불명의 두통을 일으키는 아동이 1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케다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하여, 전국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교내에 수한 사람이 침입하여 난동을 벌이는 것을 가장한 훈련을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이케다 초등학교에서는 추모비가 세워지고 「기도와 맹세의 모임(祈りと誓いの集い)」이 발족하여, 매년 6월 8일 유족을 중심으로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정부는 학교의 안전관리가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총 4억엔을 배했다.
  • 일곱개의 대죄/199화 . . . . 18회 일치
          * 할리퀸과 디안느는 각자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을 대로 맹공을 펼치지만 어느 것 하나 유효타를 내지 못한다.
          * 두 명의 십계를 맞아 열세에 놓인 할리퀸과 디안느. 처음부터 죽기살기로 덤벼보기로 한다. 할리퀸은 진 창 샤스티폴을 개방하여 2형태 "가디안"으로 변환시킨다. 그로키시니아는 정답이라며 죽을 각오로 덤비지 않는 한 3초도 즐길 수 없을 거라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창 바스키어스를 던진다. 가디안은 가까스로 이 공격을 막는데 추진력이 너무 강해 그대로 벽까지 처박힐 기세다. 할리퀸은 이대로 벽을 뚫게 되면 탈출구가 될 거라고 생각하며 다행이라 여기는데.
          * 할리퀸이 벽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로키시니아의 두 번째 공격이 다가온다. 그도 창을 2형태 가디안으로 변화시키는데 거대한 말벌 같은 형태다.
          * 가까스로 피한 할리퀸은 급격한 체력저하를 보인다. 그 태에서도 진 창 샤스티폴을 제 5형태 인크리즈로 변환해 반격하지만 전혀 맞추지 못한다. 게다가 체력도 한계라 그로키시니아가 접근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 디안느는 신기 기데온을 휘두르며 맹공을 퍼붓는다. 드롤 측은 어떠한 방어 행동도 없이 공격을 받는데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는다. 쏟아지는 공격 사이로 단 한 방의 장타를 날리는데 디안느가 멀리 나가 떨어진다.
          * 벽이 휠 정도로 날아간다. 할리퀸은 이미 당한 태로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디안느를 전투불능으로 만든 드롤. 거인 족의 힘은 자기 근육의 힘이 아니라 대지의 힘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 설교한다. 그로키시니아도 할리퀸을 대로 "고작 피라미나 대할 수 있지 십계 대로는 무리"라고 혹평한다. 게다가 할리퀸은 날개도 없으니 전대미문이라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그게 바로 진 창을 제대로 발동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하는데.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의 급격한 아군화. 완전히 아군이 된다는 건지 다른 목적 때문에 일시적으로 수행을 돕는다는 건지 불분명. 할리퀸과 디안느의 파워업 에피소드가 될 거라고 예하고 있었으나 이런 형태가 될 거라곤 아무도 예하지 못했다. 스포일러에서는 할리퀸이 디안느가 쓰러지는 걸 보고 날개가 뻗어나온다는 등의 내용도 있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둘이 정말로 십계를 배신한게 맞다면 현재 남은 십계는 리타이어가 확인되지 않은 몬스피드, 데리엘, 에스타롯사, 젤드리스 4인이다. 문제는 죄다 심각하게 관광탄 태라 제대로 전투가 가능한 태일지 미지수. 이렇게 되면 십계 중 유효한 전력이 한 명도 남지 않는 웃기는 황이 된다.
  • 장남교 . . . . 18회 일치
         장남 중시는 구시대의 관습으로, 기본적으로 메이지 시대의 가독속 제도의 흔적이다.
         따라서 호주는 가족 구성원에 대해서 당히 강력한 통솔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호주의 권리와 가문의 재산을 가독(家督)이라고 불렀는데 가독의 승계권은 장남이 최우선 되었다.
         가독 속 순위는 '법정추정가독속인'이 최우선이다.
         법정추정가독속인의 조건은 일단 호주의 가족으로 직계비속이다. 먼 사람 보다 가까운 사람, 여자보다 남자, 사생아보다 적자, 연소자보다 연장자를 우선하는 규정이 있어 결국 장남이 가장 우선시 된다. 또 여성 적출자보다 인지된 남성 비적출자가 우선된다.
         그 다음 순위는 '지정가독속인'이라 하여 호주가 생전, 또는 유언에 의하여 지정한 사람, 1순위와 2순위가 없으면 호주의 부모나 친족회 등이 같은 호적 내의 가족 가운데 지정을 한 사람이 승계한다. 대충 이렇게 된다.
         이 시기 가독이 속되면 장남(속자)은 새로운 호주가 되고, 호주를 중심으로 호적이 재편되며, 가문의 전 재산과 조을 모실 권리를 얻도록 되어 있었다.
         또 호주의 사망 만이 아니라, 남성의 경우 60세, 여성의 경우 자신이 바라는 언제든지 호주가 '은거'를 결정하고 속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사망, 은거 이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거나, 호주가 국적을 실하는 황에도 가독승계가 발생한다.
         설사 정처가 아무리 남편과 오랫동안 함께 부부생활을 하면서 자식을 많이 낳았다고 해도 낳은 자식들이 전부 딸이라면, 남편이 첩이나 애인이 사귀다가 사생아라고 해도 아들을 낳아버리면, 사생아는 '비적출자 장남'으로서 가독속을 받을 최우선 권리를 얻게 된다.
         정처 입장에서는 가독속을 최우선적으로 받을 권리를 가지고 호주 사망시에 가독을 확실하게 속해줄 '적출자 장남'이 없으면 한 순간에 거의 인생 게임오버(…)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호주 사망시에 비적출자이 나타나면 한 순간에 모든 가산이 그쪽으로 넘어가고, 호주의 각종 처분권까지 비적출자에게 가게 되므로 매우 불편한 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한없이 높아진다.
         1947년 5월 3일, 평등속 제도가 실행되면서, 이러한 가독속 제도는 없어지게 되었지만 사회적 관습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18회 일치
          * 이들은 더 칠드런의 작전에 따라 바벨의 수뇌부를 따돌리고 여기까지 온 것. 아키라가 더 칠드런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 그때 관측소에 있는 사카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블랙팬텀의 세뇌가 발동하려 하는데.
          * 모호츠쿠 연구소로 보내졌던 미나모토 코이치 일행은 각고의 노력 끝에 감시시스템을 따돌리는데 성공한다. 본부에서는 정적으로 감시 을 받아보고 있으나 그건 미나모토 일행이 만든 대체 . 그들의 진짜 행적은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
          사카키 슈지는 미나모토와 타니자키 이치로가 외부에서 탈출 계획을 실행하는 사이 관측소에 남아 돌발 황에 대처하고 있다. 그가 우회 시스템을 잘 유지하는 동안 미나모토와 타니자키가 인근 도시에 잠입해 두 번째 작전으로 넘어가는 계획인데.
          미나모토는 큰소리쳐서 믿었더니 그게 잘못이었다며 푸념한다. 타니자키는 지형이 낯설어 생긴 일이지 자기 탓은 아니라고 변명한다. 미나모토는 서바이벌 훈련도 안 받았냐면서 이런 황에서 강가에 머무는건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고 지적한다. 조난 시 가장 좋은 대응책은 자기 발자국을 따라 돌아가는 것. 결국 시간만 버린 셈이다.
          * 황은 진정되었지만 미나모토는 이들을 반가워하는 한편 은근히 경계한다. 바벨이 보낸 추격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츠네는 바벨에서 보낸게 아니라고 안심시킨다. 나오미는 자신들이 수뇌부 몰래 왔다고 밝힌다. 타니자키는 바벨을 배신해서라도 자길 구하러 온 거냐고 날뛰가 제재 당한다.
          아키라는 이미 바벨 수뇌부의 이한 낌새를 감지하고 있었고 그들의 "보스" 또한 수뇌부를 피해서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그 보스란 물론 더 칠드런. 아키라는 칠드런이 전하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모두 건강한 모습인데 쿠모이 유리는 길리엄 때문인지 연신 사과하고 있다. 칠드런은 그동안 어디 있었냐고 성토하는데 마츠카제 코우이치가 "통화가 아니라 메시지"라고 통제해서 어떻게든 본론으로 넘어간다.
          * 아카시 카오루가 말하길 미나모토와 헤어진 이후 칠드런은 그의 지시대로 노력해 봤지만 황은 악화일로에 있었다. 그런데 어떤 협력자를 얻어서 황이 급변했다. 지금은 그의 작전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미나모토 일행과 접촉한 것도 그 계획의 일환. 그런데 이 협력자는 효부 쿄스케가 아니며 효부는 만나지 못한지 꽤 됐다고 한다.
          산노미야 시호는 어떤 조사를 위해 타니자키를 두고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데려오라고 말하며 현장에 있는 더 하운드와 나오미도 따라달라고 말한다. 협력자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카키는 블랙 팬텀에게 "백도어"로 이용당해 왔고 그쪽에선 다시 사카키를 지배하려 들 가능성이 매우 높은 태. 그 말을 들은 미나모토는 사카키를 혼자 두고 온 걸 후회한다. 본래는 ESP 감지기에 사카키가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관측소에 두고 온 건데 이런 식으로 악수가 됐다. 나오미는 자신이 먼저 관측소에 가보겠다고 하는데 미나모토는 혼자 움직이는건 위험할 거라 판단해서 전원이 돌아가기로 한다. 미나모토는 이 작전에 대해선 모든 것이 자신의 판단미스라고 후회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9화 . . . . 18회 일치
          * 모호츠쿠 관측소에서 대기 중이던 사카키 슈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나모토 코이치 일행의 탈출을 알리려 했다 제지 당한다.
          * 여기는 모호츠쿠 관측소. 사카키 슈지는 미나모토 코이치 일행이 탈출 루트를 찾는 사이 관측소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바벨 본부 시스템의 갱신에 맞춰 감시 카메라의 대체 을 셋팅한다. 사카키는 초시계를 보며 정확한 시간에 을 전송하려고 타이밍을 재는데.
          사카키 자신은 감시 을 교체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미나모토 일행의 탈출 사실을 전달하는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경악하는 사카키. 나오미와 하츠네의 경계 아래 전에 블랙 팬텀의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왼팔을 조사하게 된다.
          * 아니나 다를까 왼팔에선 세뇌의 잔재가 발견된다. 잔재일 뿐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아무런 향이 없지만 특정한 황에서 일시적으로 인식을 교란시켰던 것 같다.
          * 미나모토는 ESP록을 사카키의 왼팔에 채운다. 이것으로 무의식 수준에서도 세뇌의 향을 차단할 수 있다. 사카키의 세뇌는 이걸로 일단락된 셈이지만 본인은 큰 충격을 받는다. 사카키는 관리관 츠보미 후지코를 감염시키고 미나모토에게 뒷공작을 한 것도 자신이었던 거냐며 좌절한다. 미나모토는 다 적의 계략일 뿐이라며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누군가의 정보"로 사태의 확산을 막았으니 제대로된 반격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직 사정을 듣지 못했던 사카키는 그 "누군가"나 "정보"가 뭐냐고 묻는데 미나모토도 사실 그 이은 잘 모른다. 이 문제를 정보를 아네 모르네 잠시 옥신 각신.
          * 황이 정리된 이후 나오미는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데리고 도쿄로 향한다. 떠나기 전 타니자키를 때려눕히고 남아있는 더 하운드에게 "주기적으로 두들겨패서 혼수태로 만들어라"는 지시를 남긴다.
          * 덤으로 지박령도 있는데, 좌절모드가 된 사카키였다. 붙박이장에 틀어박혀서 찌질대고 있다. 그는 아직도 블랙 팬텀의 세뇌가 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에 분개하며 설사 팔을 잘라내는 한이 있어도 복수하겠다고 과격한 발언을 한다. 그런데 정작 미나모토는 찬장에서 차나 찾으며 딴청을 부리고 있다.
          * 미나모토는 사실 자신도 화가 난다며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신도 받은 것 이으로 길리엄에데 되돌려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가 행한 무수한 범죄를 일일히 열거하며 이젠 사카키와 관리관까지 이용했다며 조용히 분노한다. 그러나 너무 힘을 줘서 찬장을 망가뜨릴 정도로 속으로 흥분하고 있다. 사카키는 그가 대신 분노해주는 것에 감격.
         미나모토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 중에 가장 분노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맨손으로 물건을 부수기도 하는걸 보면 당히 과격한데, 이게 블랙 팬텀의 세뇌 향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65화 . . . . 18회 일치
          * 일행이 설득을 시도하지만, 후지코는 정신오염물질의 향으로 에스퍼를 적대시하는 현재의 세에 질려 있다.
          * 현재 그녀가 생각하는 미래는, 이대로 에스퍼에 대한 적대나 탄압이 강화된 결과 반발한 에스퍼들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이 지금의 세을 파괴하는 것.
          * 이 때 '츠보미 문서'가 나타나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을 추구하려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려달라고 하고, 후지코는 흔들린다.
          *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이 으로 나타나 자신이 생각한 대로 됐다면서 일행을 비웃는다.
          * [[효부 쿄스케]]는 앞장서서 [[츠보미 후지코]]의 방으로 들어간다. 예대로 후지코는 일행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기대고 있다가 일어나며 일행이 너무 늦장을 부려서 기껏 차려입은게 쓸모없어졌나 생각했다고 말한다. 일행은 그녀의 차림세를 보고 기겁한다.
          효부는 반사적으로 이마의 흉터를 누르며 당혹해한다. 그의 동요에 미나모토는 냉정을 찾으라고 말한다. [[후지우라 요우]]와 [[아카시 카오루]]도 효부의 태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효부는 평정을 되찾는다.
          * 카오루가 나서서 블랙팬텀의 음모라는걸 안다며 하지만 어째서 후지코를 비롯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묻는다. 후지코는 블랙팬텀의 세뇌는 본심을 거스르게 하는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동료"가 되면 알 거라며 오히려 칠드런 일행도 함께 세뇌 당하자고 제안한다.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가 반발한다. [[쿠모이 유리]]는 힙노를 전개하며 본심이었다면 후지코가 그렇게 말할 리가 없다며 "원래 자신"을 떠올려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후지코는 "본래의 자식"이란게 뭐냐는 식으로 반문하고 미나모토가 "세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한다.
          그녀는 국민의 의지를 반해 조직을 재편한 거라며 초능력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에스퍼에게 관용적인 지휘관을 경질한다, 이것이 모두의 바람대로가 아니냐고 묻는다. 지금의 그녀에겐 소수 에스퍼의 안녕보다는 사회 전체의 평화가 중요한 문제다. 만약 그녀가 이대로 블랙 팬텀이나 "보통 사람들"같은 조직을 분쇄하면 그걸로 끝날까? 인간은 배타적인 생물이다. 설사 그들이 사라져도 또다른 조직이 나타나 에스퍼를 배척할 것이다. 교육이나 홍보로 그걸 극복할 수 없고 그런데 연연하는건 시간낭비다. 그럼 차라리 그들이 원하는 대로 둬버리면, 반대로 에스퍼도 "원하는 대로" 해버릴 명분이 생긴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면 결국 이기는 건 에스퍼. 세은 한 번 망하겠지만 에스퍼의 주도로 재건될 것이다.
          * 왜곡돼 버린 후지코의 목표는 사실 판도라의 이과 큰 차이는 없기 때문에 "에스퍼 주도의 재건"이란 부분에선 적당히 찬성한다. 게다가 가만히 있던 [[사카키 슈지]] 조차 "기분은 이해하겠다"며 편승하고 나선다. 하지만 그가 하려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을 추구하는게 당신 아닌가"라고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걸 넘어 이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잖아?
          * 그때 빔 프로젝트가 전개되면서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의 이 나타난다. 그는 이 황이야 말로 자신이 원하던 것이라며 기분 나쁜 웃음을 띈다. 그는 지금부터가 특히 재미있는 장면이고 효부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 길리엄의 목적이 단순히 '후지코의 죽음'을 통한 일행의 좌절인지, 아니면 이 동작으로 대의 평정심을 무너뜨려 다른 술책을 시도하려는 것인지 불명.
  • 차준환 . . . . 18회 일치
         | 어이름 = Jun Hwan CHA
         | 웹사이트 =
         | 종합 입 = 주니어: 동 1(2016-17)
         '''차준환'''(車俊煥, [[2001년]] [[10월 21일]] ~ )은 대한민국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어린 시절 CF모델과 아역배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ref>[http://news.donga.com/3/all/20151208/75250655/1 국내 男피겨 ‘역대 최고점’ 차준환 “연기활동 위해 배운건데…”]</ref> 발레를 배우기도 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9403 피겨 프린스 차준환, 내일은 피겨왕!]</ref> 2011년 SBS TV의 피겨스케이팅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진지희]]와 짝을 이루어 출연했다. 2013년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 주니어 부문에서 우승, 2018년 ISU 어텀클래식 내셔널 시니어 부문에서 은메달을 차지 하여, 한국 남자싱글 역사 250점을 넘기며, 베이징 올림픽의 금메달에 희망을 안겼다.
         2010 랭킹대회 5급 이 만 13세 미만의 2그룹 주니어 부문에 출전 우승한다. 출전 선수는 차준환 선수 한 명이다.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선수를 대으로 하는 제12회 전국남녀 꿈나무 대회 5급 부문에 출전 우승한다. 출전 선수는 차준환 선수 한 명이다.
         시즌 첫 대회인 제6회 서울시 교육감배 겸 제31회 서울시빙경기연맹 회장배 대회에서 홀로 출전하여 우승한다.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트리플 루프를 실전에서 성공하여 인정받는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을 실전 경기에서 처음 시도하여 성공한다.'''
         제69회 종합선수권 대회에 시니어로 출전하여 3위에 입한다.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이 유력시되었으나 선발전 경기에서 부이 있는 태로 무리한 경기 운을 하여 선발에 탈락한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09/0200000000AKR20151209196700007.HTML?input=1179m '남자 피겨의 미래' 차준환 "점수보다 클린 연기가 목표!"]</ref>
         제70회 종합 선수권 대회에 시니어 그룹으로 출전하여 3위에 입한다. 이 대회에서 귀의 통증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500&g_serial=937555&rrf=nv 이준형, '男 피겨 역대 최고점' 종합선수권 2연패]</ref>
         시니어 데뷔 후 2018년 1월 한국 선수권 대회에서 부과 부츠 문제를 극복하고 은메달을 차지했다. 3개 예선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하여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됐으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단식 최연소 출전자로
         |2015–2016||생 [[죽음의 무도 (생스)|죽음의 무도]]
         |2014–2015||생 죽음의 무도
         |2012–2013||즉흥환
         |2011–2012||즉흥환
  • 창작:존 휘태커 . . . . 18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인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그럼 회색분자란 얘기네. 적당히 때묻고 적당히 더럽고. 욕하는 게 아니야. 어느 한 쪽에 쏠려서 돌머리가 되는 것보단 낫거든. 이 세에선 바람직한 자세이기도 하고. 믿을 놈은 못 되겠지만.
         [[창작:코스모폴리턴|코스모폴리턴]]의 '''공동 주인공''' 중 한 명. 여러가지 의미로 힘쓰는 일이 관련된 장면에서 등장한다. 별명은 리퍼(Reaper). ~~오버워치의 웅과는 이름만 같다~~
         = 신정보 =
         평시에는 길거리의 흔한 청년처럼 입고 다니지만 일을 위해 여러가지 복장을 하기도 한다. 단, 코스프레 같은 '해괴한(?)' 복장과 턱시도 같은 '숨막히는' 복장은 죽어도 못 입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레스터가 떠맡는다.~~
         범죄 세계에서 굴러다닌 사람답게 기본적으로 50%는 비관적이고 50%는 냉소적이다. 하지만 '일'을 할 때만큼에는 그런 태도를 버리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건 의뢰인, 특히 범죄와는 관련이 없는 의뢰인을 대할 때만 그렇고 범죄와 관련된 일이면 늘 하던 대로 행동한다. 비록 여자에겐 기본적으로 '사업적 미소'를 곁들여 친절하게 대하지만, 그렇다고 그 이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본인 왈, "그런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마음의 소리'를 내뱉어서 사건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지식의 범주는 당히 제한된 편. 총싸움과 범죄세계에 대해선 엄청나게 해박하지만 그 외의 것은 잘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의뢰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익혔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세 물정을 잘 아는 모습을 보이고, 이걸로 레스터를 먹여살리기도(!) 한다.
         의리는 당히 깊은 편이지만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법은 없다. 본인 왈, '의리가 강한 사람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레스터가 그 얘기를 못 알아듣자 의리없는 놈이라고 까댄다~~ 어쨌든 말이나 행동으로 의리를 표현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그런지 오해를 사거나 배신을 당한 적도 있다.
         '''혼돈. (편의 D&D의 분류를 사용)''' ~~혼돈! 파괴! 망가!~~
         터득한 기술이 기술인지라 남을 해치고 빼앗는 데에는 도사이지만, 한편으로는 모종의 사유 때문에 그 기술을 좋은 쪽으로 발휘하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자기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위선이나 자신보다 거대한 악을 보면 제압하려고 하면서도, 그렇다고 평시에 남을 돕는 일에는 무심한 등 앞뒤를 종잡을 수 없는 구석이 많다.
          * 전투능력은 순위를 매기자면 ~~주인공이니까~~ 격투와 총싸움 둘 다 최위권. 하지만 별다른 계획 없이 닥치고 돌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력에 비해 얻는 소득은 적다. 그래서 과거에는 몇몇 지인들이 계획을 짜 줬지만, 레스터와 같이 살게 된 이후로는 그가 ~~가격도 싸고~~ 이해하기 쉽게 짜 주기 때문에 큰 도움을 얻게 된다.
          * 류층을 혐오한다. 면전에서 대놓고 욕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래저래 돌려까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에 류층과 기나긴 악연이 있어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자세한 것은 본인이 말을 안 해서 알려지지 않았다.
          * 이래뵈도 국에서 건너온 미국인, 즉 독립전쟁 시절 미국인의 피가 섞여 있다. 게다가 정재계에서 유명한 휘태커 가문과도 관련이 있다고는 하는데, 자세한 것은 불명이며 존 본인도 거기에 대해선 절대 얘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 전반적인 모티브는 '''머리가 은근히 딸리는 셜록 홈즈'''이다. 그래서 주로 폭력과 무기를 비롯한 범죄와 관련된 장면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싸움은 잘 하고 그 쪽의 지식은 해박하다. 다만 일반식 등 그 외의 분야에는 약간 부족하다.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18회 일치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런 진실과 마주하고 싶은 생각도 용기도 들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좀비가 득실거리는 서울시 한 복판에 남겨진 생존자다. 이 이…… 우울해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토트넘이 죽기 전에, 아니 녀석이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든 중요하지 않다. 다이너스티의 키는 구하지 못했고 나는 지쳐가고 있으며 은혜로운 햇볕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햇볕. 해가 넘어가고 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녀석들이 벽 하나 사이로 득실대는 기분'''이 어떤 건지 체험하게 되겠지. 그러고 싶지 않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커튼을 쳤다. 아마 녀석들이 우리집 앞마당을 활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걸 확인하고 잠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됐다. 나는 오늘의 격무에 대한 '''포'''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꿈에 토트넘이 나왔다. 녀석은 여전히 거무죽죽한 면을 한 주제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에 서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간신히 거실로 나와서 햇볕을 받으니 약간은 증세가 나아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눈도 뜰 수 없는 태에서 눈은 떠지는 태로 호전이다. 눈물 나게 좋은 징조군.
         병이 나는건 예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예을 따라가는 일이 얼마나 되던가? 그 예이란건 해열제나 소화제로 처리되는 병에 대한 것이고 이토록 격렬한 발열과 의식의 끈이 끊기는 황을 정한게 아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손발이 남의 것 같고 신체 어느 것 하나 맘대로 움직이는게 없는 황에 처했는데, 우연히 그게 전멸한 도시 한 복판에서다. 이런 기막힌 황이 있나!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우선은 뭔가 먹어야한다. 다행히 어제 먹고 남은 죽이 있다. 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나는 주방으로 기어갔다. 아마 식탁위에 그대로 뒀을 것이다. 힘을 내서 다가가 보자…… 좋아. 그릇이 보이는 것 같아.
         이제 황은 더 좋지 않다. 아니, 정정하지.
         지금은 내 의지하고 아무런 관도 없이, 움직이고 있다. 무언가를 향해서. 지금은 손 뿐이지만…… 손에서 끝날까?
         우려하던 대로, 더이 팔다리는 내 것이 아니다. 지 스스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젠 목 아래로 뻣뻣한게, '''내 것'''이라곤 고작 턱 위에 붙은 것 뿐이다.
         토트넘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부인도. 십중팔구 그들도 같은 과정을 거쳐서 돌아다니게 되었을 것이다. 그게 어쨌다는 걸까? 그들은 이미 죽었다. 다시 죽은 것이다. 설사 내가 녀석들이 되고 나서도, 인사라도 주고 받을 대은 남아있지 않잖아…….
  • 창작:치킨교 . . . . 18회 일치
         치킨교는 기성종교의 혹세무민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고 [[치킨]]으로 지에 오신 [[치느님]]의 희생정신과 만민평등의 정신을 전파하기 위한 [[한국]]의 종교이다.
         본래 [[미국]]에서 [[노예]]로 착취 당하던 흑인 노동자들에게 평화와 양을 전하시던 것이, 흑인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선지자 샌더슨의 입을 통해 증거되시어 [[KFC]]란 교단을 일으켜 한국에 전해지게 되었다.
         치킨교의 위은 매우 높아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장래 치킨교의 사제가 되어 치킨을 튀기는 일에 종사하는 것을 꿈으로 여기고 있다. 치킨과 함께 먹는 것으로는 [[맥주]] 등을 선호하며, 한국에서는 특히 '치킨무'라 불리는 특수한 [[무]] 요리를 함께 먹는다.
         모두 근본이 되는 닭의 튀긴 형을 숭배하고 먹는 것을 종교활동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신앙구조를 갖고 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각종 양념을 통한 이념화가 진행되면서 치킨의 "특정형태"를 주로 신앙생활의 근본으로 삼는 종파로 분열되게 된다. 이들은 서로가 똑같이 "치킨"을 숭배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고 있으나, 어떤 형태의 치느님이 신앙적으로 우월한지 끝없이 논쟁을 일삼으며 오늘도 주문하기 전에 서로를 비방하며 "이걸 주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싸운다. 이는 마치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가 똑같은 신을 섬기면서도 싸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하나의 종교전쟁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킨교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선지자가 누군지 경전이 없는 치킨교의 특성 알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근원이 되는 종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치킨교를 믿는지에 관없이 후라이드 치킨교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후라이드 치킨교도들이 흔히 "제1차 외식전쟁"에서 죽을 쑤자 나타난 종파였다. 제1차 외식전쟁은 미국의 위대한 선지자 맥도날드와 피자헛이 한반도에 선교를 하러 오고, 한국인지 일본인지 애매한 하이브리드인 롯데리아가 참전하면서 시장통을 지배하던 후라이드 치킨교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 결과로 치킨교는 제법 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 피해로 인해 후라이드 교는 일종의 종교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내부에서도 별도의 총대주교(소스) 세력에 불과하면 양념파가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
         그러나 "가장 우월한 형태의 치느님"이란 구호가 기존 후라이드 교도들과의 분쟁을 낳게 만들었다는 점은 이 종파의 가장 큰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다. 어쨌든 이런 분쟁이 있었음에도 후라이드 치킨교황은 양념 치킨교 역시 하나의 "치킨교"임을 천명하였고, 이 발표에 양념 치킨교도 후라이드 치킨교를 "역사의 원점"임을 인정하면서 가장 큰 분란은 종점을 찍게 된다.
         후라이드 치킨교와 양념 치킨교의 분쟁이 정리된 이후에도 신도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후라이드 치킨교와 양념 치킨교 중 어느 쪽이 대세를 타는지에 대한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이는 중화요리교의 짜장교와 짬뽕교의 분쟁을 방불케하는 희대의 예송논쟁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에 이름 없는 선지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전능하신 치느님은 그 몸을 나누시어 한 몸에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실현하사 분쟁을 멈추셨다"는 주장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가르침은 "양념 치느님을 접한 혀로 후라이드 치느님의 미묘한 은사를 접할 수 있을리 없다"는 반박이 부딪혔다. 쓰러져가는 반반파를 구제한 것이 성자 무마니였다. 무마니는 치킨무의 묵묵한 헌신을 가르치며 "양념 치느님을 접했으면 치킨무로 혀를 씻고 후라이드 치느님을 접하라"는 신묘한 가르침을 창시하였다.
         반면에 이 순살 치킨교는 기존의 교리를 거의 완전히 뒤엎으며 "치느님은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보다 순수하도록 노력하시며 뼈 없는 형이야말로 극진한 모습으로 화하신 것이다"는 아예 새로운 교리를 들고 온 종파였다. 이들은 무기를 거의 들지 않는 후라이드든, 양념이란 무기를 든 양념 치느님이든 관없이 치느님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뼈 없는 형"으로 규정지었으며, 이는 치킨교도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오게 되었다.
         후라이드든 양념이든 관없이 뼈만 없으면 된다는 이들의 주장은 매우 급진적이었지만 후라이드교와 양념교 양측의 교도들이 일부 여기에 합세하게 되었고, 그 수가 적지 않자 후라이드 교황과 양념 총대주교는 회합을 갖고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이단으로 규정된 사유는,
          1. 순수한 치느님을 접한다는 미명하에 보다 너무나도 많은 헌금을 내야 한다는 점은 애당초 순수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
  • 최영희 (1921년) . . . . 18회 일치
         |이름 = 최
         '''최희'''(崔榮喜, [[1921년]] [[3월 1일]] ~ [[2006년]] [[1월 11일]]<ref>{{뉴스 인용
          |제목 = 4선 의원 최희씨 별세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우 (1954년)|김우]]는 그의 사위이다.
         * 1946년 : [[군사어학교]] 1기
         * 1945년 9월 : [[조선학병동맹]](朝鮮學兵同盟)에 가입. [[동경제대]] [[법과]][[대학]] 출신인 왕익권(王益權)이 제국주의 타도, 신조선의 건설, 치안유지의 협력 등을 내세우고 학병 출신들로 결성한 ‘조선학병동맹 ’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왕익권]] 일파의 선동적이며 노골적인 [[공산주의]]적 편향에 회의를 갖게 된 학병 출신 3,000여 명은 학병동맹의 탈퇴를 선언하고, 이 중 일부는 ‘학병단(學兵團)’을 결성하여 학병동맹에 대항하였다. 학병단원 중 최희를 비롯한 김종갑(金鍾甲), 민기식(閔機植), 강훈(姜英勳), 이치업(李致業) 등은 열성적으로 좌파와 대립했던 단원들이었다.
         * 1945년말 미 군정청이 군사어학교를 설치하고 통역장교요원을 모집하자 최희는 학병단원 일부와 함께 [[군사어학교]] 입교
         * 1946년 01월 [[군사어학교]] 졸업
         == 훈 ==
         * {{헌정회|972|최희}}
         * {{웹 인용 | url=http://museum.kma.ac.kr/kor/dis/pre/html/amp044014.html | 제목=제12대 참모총장 중장 최희 | 웹사이트=육군박물관 | 확인날짜=2016-09-09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908150500/http://museum.kma.ac.kr/kor/dis/pre/html/amp044014.html | 보존날짜=2016-09-08 | 깨진링크=아니오 }}
         |후임자 = (평택·용인·안성)[[서린]]·[[유치송]]
         [[분류:1921년 태어남]][[분류:200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참전유공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법학자]][[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육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연합참모총장 직무대리]][[분류: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장]][[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군사어학교 동문]][[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통위부 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센슈 대학 동문]][[분류:미국 육군지휘참모대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터키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수성 최씨]][[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최재환(배우) . . . . 18회 일치
         || '''출생''' ||[[1983년]] [[7월 15일]], [[전라북도]] [[고창군]] 하면 (하로)||
         || '''학력''' ||하주유소||
         ||<rowbgcolor=#fd5a1e> {{{#ffffff '''방 연도'''}}} || {{{#ffffff '''방송사'''}}} || {{{#ffffff '''제목'''}}} || {{{#ffffff '''배역 이름'''}}} || {{{#ffffff '''비고'''}}} ||
         || [[2003년]] || [[KBS2]] || 두야 학교가자 || || ||
         || [[아이 엠 샘(드라마)|아이 엠 샘]] || 한태 || ||
         ||<|2> [[2014년]] || [[KBS2]] || [[조선 총잡이]] || 추 || ||
         || [[KBS2]] || [[다 잘될 거야]] || 오태 || ||
         === 화 ===
         ||<|3> [[2005년]] || [[레드 아이(화)|레드 아이]] || 이병 || ||
         || [[각설탕(화)|각설탕]] || || ||
         || [[숙명(화)|숙명]] || 장삼 || ||
         || [[비스티 보이즈(한국 화)|비스티 보이즈]] || || ||
         || [[아기와 나(한국 화)|아기와 나]] || 춘성 || ||
         || [[트럭(화)|트럭]] || 주유소 직원 || ||
         || [[국가대표(화)|국가대표]] || 마재복 || ||
         || [[2011년]] || [[위험한 견례]] || 전라도 고참 || ||
  • 최태원 (야구인) . . . . 18회 일치
         |문 표기 = Choi Tae-Won
         |사진 사이즈 =
         [[서울미성초등학교|서울미성초]], [[성남중학교|성남중]]을 거쳐 그는 [[성남고등학교 (서울)|성남고]]-[[경희대학교|경희대]] 체육대학 시절 내내 국가대표 [[2루수]]로 활동하며 연고 팀 [[OB 베어스]]의 1차 지명 대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하지만 [[OB 베어스]]는 [[건국대학교|건국대]] 출신의 [[내야수]] [[추성건]]을 지명했고, 그는 당시 꼴찌 팀이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로 밀렸다.
         신인 시절만 해도 [[롯데 자이언츠]]에서 트레이드로 입한 [[2루수]] [[송태일]]에 밀려서 주로 [[우익수]]로 활동했으나, [[송태일]]이 이적 2년째인 [[1995년]] 슬럼프에 빠지자 그는 특유의 날카로운 타격을 앞세워 [[1995년]] 최다 안타을 수하며 주전 [[2루수]]를 차지했다.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는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을 감독으로 입하면서 6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에 들어갔고, 그는 이 때부터 붙박이 [[2루수]]로 활약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1995년]] [[4월 16일]] [[해태 타이거즈|해태]]와의 시즌 2차전에 대타로 출장한 이후, [[2002년]]까지 기록적인 1014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쌓아 갔고, 이것이 팀의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과 맞물리면서 [[1997년]] [[12월 11일]]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골든 글러브]]를 수했다. 그는 연속 출장 기록을 쌓아 가면서 '철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1997년]] 겨울부터 그는 시련을 맞이했다.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이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IMF]]의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재정난을 겪게 되었고, 모기업 [[쌍방울 (기업)|쌍방울]]이 법정 관리를 신청하면서 [[김현욱 (야구인)|김현욱]], [[조규제]], [[박경완]], [[박성기]], [[김실]] 등의 동료들이 현금 트레이드되어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팀의 4번 타자였던 [[외야수]] [[심성보]]는 [[당뇨병]]으로 인한 체력 저하로 장타력을 실하면서 그는 타선에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 타 구단 투수들은 그를 타깃으로 두고 [[빈볼]], [[고의 사구]] 작전을 펼쳤고 그는 힘겹게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갔다. [[김원형]], [[오민]], [[장재중]] 등과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의 끝까지 함께하였다.
         은퇴 후 [[SK 와이번스]] 주루코치로 코치 생활을 시작했고 팀의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후 [[조범현]]이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새로 선임되자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804658& KIA, 최태원·장재중 코치 입] - 연합뉴스</ref>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이후 [[2009년]]에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 대팀
         ! 대 투수
         {{KBO 안타}}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미성초등학교 동문]][[분류:성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남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자]][[분류:KBO 안타자]]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18회 일치
         참고로 오카모토 요시키가 '게임 비평'의 칼럼에서 "원작의 반짝 인기처럼 애니메이션도 반짝 인기 후 본국에서 조기 종 되었던 것처럼, 게임 버전도 '''사업적인 면에서(게임성이 아니라)''' 말아 먹었다."는 식의 술회를 한적이 있다.
         서기 2513년 미국 동부,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 환경 오염 등의 문제로 지구에서 생존이 불가능해진 인류는 지하 주거시설을 만들고 600여년 동안 틀어박혀 지냈었다. 그 후 600여년의 세월 후 다시 지으로 돌아왔을 때, 인간이 없어진 지은 자정 능력 덕분에 예전처럼 맑고 건강해져 있었다. ~~본격 인류 해충설 인증 성공~~
         그런데 문제는 지구의 환경이 말 그대로 중생대 수준으로 돌아온지라 공룡,익룡,수장룡등 중생대 시대의 생명체들이 다시 살아서 돌아온 것! 결국 공룡과 인간이 공존하는 태가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블랙 마켓'이라는 암흑 조직의 악당들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공룡을 마구잡이로 사냥했던 것. 그들은 이렇게 포획한 공룡을 업적으로 이용할 뿐 아니라, 세계 정복에 이용하기 위해 유전자 개조를 행하기까지 했다. 이에 4인의 정의의 용사들이 악의 무리들을 소탕하기 위해 나서게 되었다.
         각 스테이지를 시작할 때마다 지도가 나오는데, 아무리 봐도 [[wiki:"미국"이 동네]]가 틀림없다. 덧붙여 각 지형의 명칭들 중엔 가칭도 있으므로 주의. ~~어짜피 중요성은 없지만.~~
          * 1스테이지(이름 표시 없음) - 해 도시[* 지도의 위치나 뒷배경 등을 보더라도 [[wiki:"뉴욕"이 도시]]인 것으로 짐작된다.]
          * 7스테이지(지하로) - 해 도시→엘리베이터→도서관→연구소
         따라서 [[스코어링]]을 하지 않는 이 그냥 차를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스코어링의 경우에도 3스테이지의 난이도가 난이도인지라 [[전일]]을 찍을게 아니라면 어느정도 벌어먹다가 타협을 보는 걸 추천한다.
         요약하면 차를 타고 진행할 경우 보너스 성격이 강한 스테이지지만, 스코어링 혹은 [wiki:"전일" 극한의 플레이]를 추구할 시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스테이지를 차로 적들을 치면서 진행할 것을 정해서, '''적들을 바글바글, 길게 배치해 놓았기 때문.''' 이걸 정면으로 돌파하려면 정말 미친다.] 비약해서 말하면 [死ぬがよい]급.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서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크게 달라지는 사례가 되시겠다.
         [[와리가리]]는 힘들지만 [[무기]]를 이용한 다양한 플레이는 [[파이널 파이트]] 이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로 [[총기]] 위주인데다 다 쓴 총기도 적에게 던지거나 둔기로 쓸 수 있다.(...)
         또 2스테이지의 보스를 대할 때, 맨 처음 보스가 쥐고 있던 대검을 주웠을 경우, 보스는 대검을 주운 캐릭터만 집중적으로 때리며, 총기 중에서는 운 좋으면 M-16이 나타나곤 한다.(4 스테이지에선 운 좋으면 드럼통을 부수면 각목 대신에 소총이 나올 때가 있다.)
         참고로 [[투니버스]] 개국 초기에 '캐딜락을 탄 전사'라는 작명으로 애니판을 방해주기도 했다.여주인공 한나역의 [[서혜정]]씨 목소리를 기억할만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주인공 잭 역에 [[최원형]],잭,한나와 대립하는 공룡 밀렵꾼 우두머리 역에 [[장광]]이 맡는 등 나름 초호화 성우진이었다.]
         == 사건의 진 ==
         불타는 마을에서 모건이 공룡으로 변해버린 걸 본 주인공 일행은 그 바로 윗동네인 광산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페센덴 박사가 개발한 3단변신 괴물을 보고, 이에 따라 단순한 껄렁이 조직인줄 알았던 블랙 마켓은 알고보니 천재 과학자 시몬 페센덴이 거느린 거대 조직임이 드러났고 페센덴의 진짜 목적인 '모든 이들에게 공룡 바이러스를 주입하여 공룡이 세을 지배하는 세계'를 막기 위해 모든 것이 시작된 해 도시로 돌아와서 적들을 물리치며 지하의 기지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박사가 없었고 거기에는 슬라이스를 개조한 슬라이사우르스 2마리(혹은 3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주인공 일행은 더욱 깊숙이 내려가서 동굴 끝에 있는 페센덴 박사의 숨겨진 연구실에서 공룡으로 변한 페센덴 박사와 대결해 이기게 되었으나 박사는 자기 몸에 공룡 머리 두 개가 붙은 무려 삼두룡으로 진화하며, "세계는 내 것이다!"라며 공격해온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의 다구리(…)를 못 이기고 패배한다. 이 때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있다고 외치며 저항하지만 결국 쓰러지고 연구실과 자폭하여 온 몸이 터진다. ~~수류탄과 바주카 맞아서 흩어진 애들은?~~.
         이후 연구실이 무너지자 주인공 일행은 수류탄으로 비구를 부수고 도망간다. 통로를 따라 뛰어가던 도중 한나가 갑자기 쓰러지고, 잭이 그녀를 구하느라 뒤에 남자 무스타파와 메스만 탈출하게 된다. 그 둘은 뒤를 돌아보지만 이미 연구실은 이미 폭파된 뒤였고, 그들은 쓸쓸히 스테이지3의 데스 밸리를 걸어가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리고...
  • 킹덤/519화 . . . . 18회 일치
          * [[환의(킹덤)|환의]]는 업성으로 모이는 조군 병력을 잘 막아내고 있지만 속속 몰려드는 수가 많아지면서 쉽지 않은 싸움이 예된다.
          * 더군다나 배치 몽념이 대할 이들은 지난 흑양구에서의 수모 때문에 분노해 있을 기수와 마정의 군대.
          * 한단과 업의 사이에는 묘한 땅이 있다. 한단에서 서쪽으로 50리, 업에서 북쪽으로 75리인 위치다. 그곳은 광대한 평야가 펼쳐져 있는가 하면 진군에 방해가 되는 혼잡한 산림도 뒤섞여 있다. 이름이 매우 묘했는데, 과거 큰 전쟁이 있던 건지, 혹은 이제부터 일어날 전쟁을 염두한 건지 "주해평야"라는 흉흉한 이름이다. 여기서 남하하는 조군과 북하는 진군이 격돌한다.
          * [[이목(킹덤)|이목]]과 [[왕전(킹덤)|왕전]]. 양 진의 총지휘관은 이미 이 땅에 도착해 있다. 척후만 데리고 빠르게 현장에 도착한 두 장군은 지형을 머리에 새겨넣고 그 위에 속의 군대를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어떤 포진을 해야 할지, 어떤 작전으로 싸워야 할지를 치열하게 계산하고 있다.
          * 업성의 황은 대단히 좋지 못했다. 난민들이 당장은 통제에 따르고 있지만 얼마나 유지될지 모를 일이다. 한시 바삐 포위를 풀어야겠으나 좀처럼 되지 않는다. 조군의 원군은 계속 도착하고 있다. 그러나 [[환의(킹덤)|환의]]군은 다가오는 병력을 각개격파하며 성에는 조금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특히 업 주위의 넓은 평원 지대는 [[이옥]]이 이끄는 기마대의 독무대였다.
          * 왕전이 머리 속의 반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마침내 진군 전원이 도착했다. 왕전은 곧바로 장교들을 불러 자신의 구을 실현코자 한다.
          * 진군의 지휘관들은 총사령관의 기천외한 명령을 하달받고 안색이 흐려진다. 우선은 포진부터가 이하다. [[비신대]]의 [[이신(킹덤)|이신]], [[하료초]], [[강외(킹덤)|강외]]가 모두 어처구니 없어한다. 정말로 이게 왕전이 지정한 자기들의 위치인가? 그보다 더 기가 막힌건 [[몽념]]의 낙화대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배치. 신은 몽념과 낙화대를 걱정하지만 몽념은 호들갑떨기 보다는 잠자코 포진을 살핀다. 깊이 생각을 마친 그는 일언반구도 없이 "알겠습니다"라 대답하고 부대로 돌아간다. 오히려 웃음마저 보이는데. [[왕분]]도 몽념처럼 지도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공교롭게도 총지휘관의 지시에 귀를 의심하는건 이목 진도 마찬가지였다. [[기수]], [[마정]], [[금모]]가 정말 이 지시가 맞냐고 재차 확인한다. [[카이네]]와 [[부저]]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 그러나 이목은 확신한다.
          * 이렇게 해서 두 진의 포진이 완성된다. 조군부터 보면 총 전력 12만을 2:1:1 비율로 비교적 균일하게 나눴다. 중앙에 6만, 양익에 3만씩. 장교 또한 중앙의 이목 본진에 카이네, 부저, 금모, [[요운]]으로 다섯. 우익에 마정, 기수로 둘. 좌익에 [[조아룡]], [[마남자]], [[악]]으로 셋. 비교적 고르게 분배했다.
          그에 비해 진군은 극단적이라고 할 만한 배치. 총 전력 8만 8천을 중앙와 우익에 몰아넣고 좌익에는 고작 5천을 배정했다. 우선 중앙에 5만 8천 병력에 왕전 자신과 [[마광]], 그리고 비신대의 이신과 강외를 배치. 우익은 옥봉대에 병력을 추가해 총 2만 5천. 왕분과 [[아광]]이 있다. 문제는 좌익. 병력 5천으로 사실 낙화대 단독 배치다.
          그렇다. 낙화대의 이 5천 병력이 조군에 선제공격을 가해야 한다. 게다가 그 대는 마정과 기수가 있는 조군의 우익. 흑양전에서 잔뜩 열이 받았던 그들이다. 몽념은 그저 체념하고 임무를 받은 것일까? 아니면 왕전의 작전에서 가능성을 본 것일까? 낙화대의 진군이 시작된다.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18회 일치
         >모든 것은 현명한 장군의 전투 전후황을 예측하는 것에 대한 일부분이다.
          * 야지(Encampment)를 건설할 수 있게 됨
          * 도매회(Warehouses)를 슈인회(Red Seal Company)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 장군의 향력 범위 +20%
         >유일한 비밀이 있다. 바로 말이 사람보다 더 리하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 해 지배력(Mastery of the Waves) ===
         >화살이 어디로 날아갈 진 마음에 두지 않는다. 오직 광만 마음속에 둘 뿐이다!
         >화살이 어디로 날아갈 진 마음에 두지 않는다. 오직 광만 마음속에 둘 뿐이다!
         >한 손을 펼쳐 환을 나타내고 있으나 남은 한 손은 주먹으로 꽉 쥐고 있다.
         >신체는 정화된 혼에서 힘을 뽑아낸다.
         >신체는 정화된 혼에서 힘을 뽑아낸다.
         >그들이 재미나게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비극, 웃음, 웅적 자질에 감을 불어넣는다.
         >완벽한 순간은 사람의 의연한 평온 태에서 나타난다.
          * 미두장(Rice Exchange)을 인조합(Merchant Guild)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비록 날을 잡을 순 없을지라도, 황금은 사람의 혼을 자를 수 있다.
          * 인조합(Merchant Guild)을 카부나카마(Kabunakama)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됨
  • 페어리 테일/510화 . . . . 18회 일치
          * 정신을 잃은 나츠 드래그닐은 몸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이한 증세를 보인다.
          * 제레프의 환은 그가 곧 죽을 거라 말하며 그 전에 과거의 기억을 보여준다.
          * 라케이드의 마법은 "하얀 것"을 먹는 스팅에겐 극성. 스팅은 단숨에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 아이린으로부터 달아난 루시 하트필리아 일행은 정신을 잃은 나츠 드래그닐, 그레이 풀버스터, 쥬비아 록서를 데리고 디마리아가 포박돼 있는 지하실로 돌아온다. 그레이와 쥬비아는 외은 심하지만 그레이는 브랜디쉬가 처를 작게 만들고 쥬비아는 웬디 마벨의 치료 덕에 생명에 지장은 없다. 문제는 나츠. 그의 안에 있는 END의 힘은 폴류시카도 브랜디쉬가 어찌할 수 없다. 해피는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갑자기 나츠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폴류시카는 그 안의 "덩어리"가 이런 현을 일으킨다고 본다. 루시가 확인해 보니 연기가 나는데도 몸은 차갑다. 루시는 나츠를 깨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가 나츠를 이그닐에게 맡긴 이후의 기억도 있다. 여기서부터는 혼룡 의식의 향으로 매우 훼손된 기억. 사실 이그닐과 함께 있던 시절부터 나츠와 다른 멸룡마도사들은 인연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가질 레드폭스는 항 티격태격하던 사이. 웬디는 둘을 말리러 오곤 했는데 항 울고 있었다. 제레프는 잠시 "그 애"도 곧 웬디랑 만나게 될 거라며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고 하는데.
          * 한편 현실의 진짜 스팅은 프리드 저스틴의 도움으로 전장으로 복귀 중. 중간에 프리드는 렉서스 드레아를 찾으러 갈라졌다. 스팅은 세이버투스의 동료들을 찾아 정신없이 달리는데 문득 이한 냄새를 맡고 그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 라케이드 드래그닐은 유키노 아그리아와 카구라 미카즈치를 완전히 제압했다. 그의 쾌락 마법에 당한 유키노는 특히 태가 좋지 않은데 완전히 탈진해서 정신이 혼미한 태다. 렉터와 프로시도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데, 렉터는 스팅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외친다.
          * 라케이드는 그의 공격 따윈 먹히지 않는다며 유키노에게 사용했던 쾌락 주입 마법을 건다. 그런데 스팅은 이 마법을 먹어치워 버린다. 라케이드도 이건 생각 못했는지 동요한다. 스팅은 이한 맛이라고 하면서도 "뭔가 기분이 좋다"면서 꾸역꾸역 먹는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하얀 것"은 통하지 않는다고 선언.
         라케이드가 빛 속성 마법을 구사하고 스팅이 뜬금없이 행방불명 태여서 스팅이 라케이드의 카운터로 등장하지 않냐는 설이 있었는데 성사됐다.
         디마리아는 일단은 얌전히 잡혀 있는데, 포박된 태에서 시간 정지를 걸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서 그런 듯 하다. 하지만 매우 도발적인 쩍벌 포즈를 고수하고 있는데 정신이 온전한 태는 아닌 듯.
  • 페이데이 갱 . . . . 18회 일치
          [[스웨덴]]인. 삶의 대부분을 모범시민으로 살아왔으나 2000년대 세계 경제공황으로 경하던 회사가 망해버렸다. 이후 범죄자가 되었다고.
          [[잉글랜드]]인. 본명은 제임스 혹스워스().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와 [[페이데이 2]] 사이의 기간에 체포당해 [[교도소]]에 들어가 있었다. 페이데이 2에서 재심을 위해 호송되던 중 페이데이 갱에 의해 구출된다.
          [[아일랜드]]인. 페이데이 갱이 세력을 불리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입된 멤버. 맥켄드릭 박물관에서 다이아몬드를 훔쳐낼 때 참가했다고 한다.
          화 [[존 윅]]과의 콜라보로 등장한 인물. 전직 [[살인청부업자|히트맨]]. 체인스와는 군대에서 알고 지낸 사이다.
          [[러시아]]인. 전에는 [[트페테르부르크]]의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화 [[포인트 브레이크]]와의 콜라보로 등장한 인물. 전직 대통령(Ex-President) 범죄조직의 창설자로 범죄계의 전설 중 하나.
          화 [[하드코어 헨리]]와의 콜라보로 등장한 인물.
          켈리 킹(Kelli King)이라는 이름의 [[오스트레일리아]]인. 어렸을 때는 [[멜버른]]에 있는 "딩고즈"(Dingos)라는 갱단 소속으로 깽판을 치고 다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페이데이 갱이 벌이던 [[은행강도]]에 난입, 돈가방을 들고 튄 적이 있다. 이 겁없는 미친 짓에 감명받은 베인이 페이데이 갱에 입했다.
          화 [[스카페이스]]와의 콜라보로 등장한 인물. 토니 몬타나다.
          * 그레스(Sangres)
          범죄 청부 웹사이트인 크라임넷의 운자. 페이데이 갱의 오퍼레이터. 페이데이 갱 중 누구도 베인을 직접 만나본적은 없다고한다.
          미국 동부에서 활동하는 마약.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러스트 입에 관여했다.
          치과의사. 평범한 치과의사라기엔 수한 구석이 많다.
          무기.
          화 [[존 윅: 리로드]]와의 콜라보로 등장한 기관. 음지에서 일하는 자들의 비밀 천국.
  • 하기룡 . . . . 18회 일치
         |문 표기 = Ha Ki-ryong
         |사진 사이즈 =
         '''하기룡'''(河基龍, [[1955년]] [[5월 8일]] ~ )은 전 [[KBO 리그]] [[MBC 청룡]]의 선수이다.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인 업은행(현 우리은행) 야구단에 입단한다. 1982년 한국 프로 야구의 출범에 따라 MBC 청룡의 원년 선수로 참가하여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9년 MBC에서 은퇴한 이후, 초창기의 [[LG 트윈스]] 코치, [[삼성 라이온즈]], [[현대 유니콘스]], [[두산 베어스]]의 코치를 지냈다. [[타카피]]의 3집 앨범에 실린 노래 〈MBC 청룡〉에 [[김재박]], [[이종도]], [[유승안]]과 함께 이름이 실리기도 했다.<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008061818293&sec_id=540301&pt=nv 타카피, "한국 야구는 축구계의 브라질 급이잖아요!"], [[한국일보]], 2010년 8월 6일.</ref>
         [[부산고등학교]]에서 선발 투수로 활동하다가, [[경주효성고등학교]]를 거쳐 [[배재고등학교]]로 전학하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063000209208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2-06-30&officeId=00020&pageNo=8&printNo=15612&publishType=00020 황금사자기를 노린다 (8) - 부산],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2년 6월 30일.</ref> [[1973년]]에는 배재고등학교의 에이스로 활동하며 한국 고교 야구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뽑히기도 했으나<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83000209208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8-30&officeId=00020&pageNo=8&printNo=15973&publishType=00020 한국 고교야구 대표선수 16명 엔트리 확정],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3년 8월 30일.</ref>, 같은 해에 "배재고로 전학하는 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있었다"는 부정 선수 논란이 일어나는 등 물의에 휩싸여 한동안 잠적을 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61900209208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6-19&officeId=00020&pageNo=8&printNo=15911&publishType=00020 "부정선수" 낙인도 아리송한채, 배재고 하기룡, 홈런친뒤 잠적],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3년 6월 19일.</ref>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4년]] [[업은행]] 실업 야구단에 들어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401230032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4-01-23&officeId=00032&pageNo=8&printNo=8714&publishType=00020 전열 다시 가다듬은 실업 야구팀, 육·공군 제외 71개 팀…],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4년 1월 23일.</ref> [[1976년]]에는 병역을 치르기 위하여 [[김준환]] 등과 함께 육군 야구단에 입단하여<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10900209208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1-09&officeId=00020&pageNo=8&printNo=16697&publishType=00020 하기룡·김준환 등 육군 팀에 입단],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6년 1월 9일.</ref>, [[1977년]] 육군 팀의 우승 멤버가 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072900209208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07-29&officeId=00020&pageNo=8&printNo=17175&publishType=00020 실업야구, 육군, 롯데 꺾고 우승],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7년 7월 29일.</ref> 제대 후 업은행 야구단으로 돌아와, [[1980년]] 백호기에서 업은행 야구단이 우승할 때 우수 투수로 뽑혔고<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5200032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5-20&officeId=00032&pageNo=8&printNo=10657&publishType=00020 은, 16년 만에 정 복귀],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0년 5월 20일.</ref>, [[1981년]] 실업야구에서도 업은행이 롯데와 공동 우승을 거둘 때 우수 투수로 다시 뽑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52300329208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967&publishType=00020 실업야구 폐막… 롯데·은 공동 우승],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1년 5월 23일.</ref>
         [[1981년]] [[12월 29일]]에 치러진 MBC 청룡의 진출 희망 선수 추첨에서 [[이길환]], [[유승안]], [[이종도]] 등과 함께 뽑혀<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123000329208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12-30&officeId=00032&pageNo=8&printNo=11156&publishType=00020 정순명·이광은 등 MBC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1년 12월 30일.</ref> [[1982년]] [[1월 26일]] 구단 창단과 함께 정식 선수가 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12600329208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1-26&officeId=00032&pageNo=8&printNo=11177&publishType=00020 MBC 청룡 창단식],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2년 1월 26일.</ref> 그 후, 같은 해에 처음으로 열린 [[1982년 한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올스타전]]에서는 같은 팀의 [[유종겸]], 투수를 겸임하고 있던 [[해태 타이거즈|해태]]의 [[김성한]] 등과 함께 서군의 첫 올스타 투수로 뽑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70500099212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7-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5025&publishType=00020 프로 야구 올스타전 동군, 또 서군 울려…], [[매일경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2년 7월 5일.</ref> 또한 한국 프로 야구 최초의 3연속 완봉승 기록을 세웠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907/h2009071102371091800.htm 송승준 3경기 연속 완봉승], 한국일보, 2009년 7월 11일</ref> 이 때문에 연말 연봉 조정 과정에서 같은 팀의 이종도를 비롯한 다른 네 선수들과 더불어 연봉이 2,000만원을 넘겼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12250032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12-25&officeId=00032&pageNo=8&printNo=11460&publishType=00020 연봉 조정에 열병 앓는 프로 야구계…],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2년 12월 25일.</ref> [[1983년]]에는 [[8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 때부터 [[9월 16일]] 해태의 [[김준환]]이 안타를 칠 때까지 41이닝 동안 무실점 기록을 세웠으며<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91700329209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9-17&officeId=00032&pageNo=9&printNo=11684&publishType=00020 하기룡 무실점기록 41이닝서 깨져…],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3년 9월 17일.</ref>, 후기 리그에서 7승 4패를 기록하며 팀을 후기 우승으로 이끌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92700209209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9-27&officeId=00020&pageNo=9&printNo=19071&publishType=00020 행운을 타고 청운 이룬 청룡…, MBC 후기 우승 확정],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3년 9월 27일.</ref> 또한 같은 해에는 30승을 거둔, [[삼미 슈퍼스타즈|삼미]]의 [[장명부]]를 제치고 평균 자책점 1위 기록을 세웠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00400209209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10-04&officeId=00020&pageNo=9&printNo=19077&publishType=00020 프로 야구 하기룡 방어율 1위],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3년 10월 4일.</ref> [[1984년]]에는 [[롯데 자이언츠|롯데]]의 [[최동원]],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김시진]]과 경쟁하면서<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72600209209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7-26&officeId=00020&pageNo=9&printNo=19327&publishType=00020 프로야구 최동원 '다승' 대열에…, '13승' 투수 모두 3명],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4년 7월 26일.</ref> 10승을 거두며 [[오일]]과 함께 MBC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결국 27승을 거둔 최동원에게 밀려 다승왕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8210032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8-21&officeId=00032&pageNo=8&printNo=11969&publishType=00020 프로야구, 예측할 수 없는 혼전],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4년 8월 21일.</ref> [[1985년]] 오일과 함께 MBC와 재계약했으나<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118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1-18&officeId=00032&pageNo=8&printNo=12095&publishType=00020 하기룡·오일 재계약… 삼미 백인천은 사표 제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5년 1월 18일.</ref> 그 뒤로 신인왕 [[김건우 (1963년)|김건우]], [[김태원 (야구인)|김태원]], [[정삼흠]], [[김용수 (야구인)|김용수]] 등의 등장으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며 입지가 줄어들다가<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1700329208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17&officeId=00032&pageNo=8&printNo=12478&publishType=00020 '3김' 태풍 몰려온다],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6년 4월 17일.</ref>, [[1989년]] 트레이드 시장으로 나오고, [[1990년]]에는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되며 방출당했다가<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11300209211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9-11-13&officeId=00020&pageNo=11&printNo=20959&publishType=00020 청룡, 하기룡 등 6명 트레이드],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9년 11월 13일.</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10600329211012&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1-06&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625&publishType=00020 MBC, 하기룡 등 8명 자유계약선수 공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0년 1월 6일.</ref>, 같은 해 2월 2일, MBC 청룡을 인수한 럭키금성의 [[LG 트윈스]]에서 투수 코치로 계약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20200329211005&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2-02&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647&publishType=00020 럭금도 하기룡과 계약],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0년 2월 2일.</ref>
         [[1993년]] [[이종도]] 등과 함께 LG의 코치직에서 물러난 하기룡은 같은 해 11월 삼성과 다시 코치 자리를 계약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11000329118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11-10&officeId=00032&pageNo=18&printNo=14913&publishType=00010 이종도 수석코치 등 일방해임… LG 파행],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3년 11월 10일.</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11800329119016&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11-18&officeId=00032&pageNo=19&printNo=14920&publishType=00010 프로야구소식],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3년 11월 18일.</ref> 그 후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가 되었으나 1997년 다시 해임당했고<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1030032911401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1-03&officeId=00032&pageNo=14&printNo=16263&publishType=00010 코치 '혹한기' 방출바람],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7년 11월 3일.</ref>, [[OB 베어스|OB]]-[[두산 베어스]]의 투수 코치를 지내다 이후 물러났다. [[2001년]] [[7월 16일]], [[KBO (야구)|KBO]]가 주도한 "프로야구 출범 20주년 기념 올드스타전"에서 같은 MBC 청룡·LG 트윈스 출신의 김용수, 정삼흠 등과 함께 투수로 뽑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081334 최동원-선동열, 14년 만에 그라운드에서 재대결], 연합뉴스, 2001년 6월 19일.</ref> [[배명고등학교]]에서 감독을 지낸 뒤, 현재는 [[원광대학교]] 야구단의 투수 코치를 거쳐 감독으로 지내고 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31201072433008004 프로 안간다했는데, 제안오면 나도 모르겠네], 문화일보, 2010년 3월 12일.</ref><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01501033633008002 “김덕 감독이 혹사시켜 허리 망가졌다?… 완전 오해”], 문화일보, 2010년 10월 15일.</ref>
         * [[오일]]
         {{KBO 평균자책점}}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MBC 청룡 선수]][[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KBO 평균자책점자]]
  • 하이큐/247화 . . . . 18회 일치
          * 한편 쓰레기장 결전을 성립시키려면 양팀 모두 3회전까지 가야하는데, [[카라스노 고교]]의 2회전 대인 이나리자키 고교가 엄청난 난관이다.
          * 이나리자키 고교에서도 특히 요주의는 [[미야 아츠무]]. 그는 단순한 세터 이의 존재로 세터로서도 놀랍지만 서버로서도 대단한 실력자다.
          * 지난 10월. [[카라스노 고교]]가 봄고 미야기현 대표로 결정된 직후의 일이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간만에 본가에서 할아버지 [[우카이 잇케]] 감독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우카이 코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쓰레기장 결전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웃는다. 그 말을 들은 잇케 감독은 자신이 배구부를 맡고 얼마 되지 않던 시절을 회한다. 잇케 감독은 그때 자신을 "남을 가르치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고 표현한다. 그 시절의 그는 선수에게 "나랑 똑같은 것" 내지는 "내가 하려다 못했던 것들"만을 시키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느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옛 인연의 대가 아니게 된 거지.
          * 그리고 봄고 1일차가 끝난 밤. 2회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우카이 코치는 잠시 집에 연락해서 할아버지의 태를 확인한다. 사실 그는 할아버지가 현장에서 쓰레기장 결전을 봐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진 잇케 감독은 도저히 도쿄까지 올 태가 아니었다. 우카이 코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가올 2회전 대책에 골몰한다.
          쓰레기장 결전은 카라스노와 네코마가 3회전까지 올라가야 성립한다. 그러기엔 2회전 대가 워낙에 난관이다. 선수들을 불러모은 우카이 코치가 "이제와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며 내일의 대 "이나리자키 고교"를 정식으로 소개한다. 인터하이 준우승에 빛나는 이 대회 시드교이자 우승 후보다. 말이 필요없는 강호.
          우카이 코치는 우선 팀의 주력 두 명을 소개한다. 우측에서 두 번째, 미야 아츠무 좌측에 있는 인물이 4번 [[마지로 알랭]]. 팀의 득점왕이다. 높이와 파워를 겸비한 스파이커로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와 마찬가지로 "전국 세 손가락"에 가까운 우수한 선수. 사실 컨디션이 좋을 때라면 그 이가는 기량을 보여준다. 리시버들에게 우시와카 때랑 마찬가지로 "막는 것"과 "줍는 것"을 구분하지 말고 토탈 디펜스로 대응하라고 주문한다.
          리시버인 [[니시노야 유]]가 바로 눈치챈다. 실제로 어떻게 칠지는 공격이 시작되기 전까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타나카도 리시브 진형 짜기 힘들겠다고 투덜댄다. 여기에 카게야마는 중학생 때, 인터하이 때 모두 베스트 서버 을 탔다고 정보를 추가한다. 아즈마네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다고 좌절한다.
          * 이 아츠무의 서브 탓에 우카치 코치는 로테이션 컨셉도 바꿀 계획을 짰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자 [[야치 히토카]]는 막 승리의 기쁨을 맛봤던 그들이 어느 새 무서운 표정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대진표를 확인한 야치는 이 많은 대 중 두 번째로 강한 대와 싸우는 거라며 긴장한다.
          1학년 콤비 덕에 난색 일이던 표정들이 사라진다. 둘이 승리를 의심치 않는, 재패를 추구하는 마음가짐이 자연스럽게 팀에 옮겨진다. 우카이 코치는 선수들을 보며 새삼 느낀다. 어찌됐든 승리를 갈망하는 마음은 모두가 하나라는 것. 지도자로서 자신이 하려는 것과 선수들이 지향하는게 따로 있는게 아니라는 것도.
          * 1월 6일. 2회전 당일이다. 체육관이 문을 여는건 8시. 시합 개시는 8시 30분이다. 그 사이의 30분은 2회전 제 2 시합 팀들이 워밍업으로 사용한다. 카라스노가 제 2시합. 그런데 이건 개장과 동시에 카운트 된다. 첫 출전인 팀들은 이 사이에 짐을 옮기는 등 잡일을 하다 날려먹기 십이다. 물론 시드교에 베테랑인 이나리자키가 그러리라고 바랄 수도 없다. 30분을 귀중하게 쓰기 위해 카라스노는 7시 20분 부터 구보로 이동을 개시, 동선과 역할 분달을 스무스하게 배치해 시간 손실을 최소화했다.
          뭣보다 지금 본 자료화면에는 결점이 있다. 이 시합 당시에는 세터와 짝을 이루는 주전 라이트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불참, 후보가 땜빵을 한 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주전 라이트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 하이큐/257화 . . . . 18회 일치
          * [[히나타 쇼요]]가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특명을 받고 코트로 복귀하고 [[키노시타 히사시]]가 서버로 기용. 그러나 대가 강적이라 부담스러워한다.
          * 키노시타는 대가 유명인사들이란 점도 신경쓰고 있다. [[이나리자키 고교]]의 선수들은 방송 인터뷰도 하는 선수들이지만 자기는 센다이 역에서 일기예보 촬할 때 조차 찍힌 적이 없는 무명 중의 무명. 불안한 마음가짐으로 코트로 향한다. 이때 우카이 코치가 그를 불러세운다.
          >이!
          키노시타는 곧 코치의 의도를 이해한다. 어쨌거나 대는 대학생도 사회인도 아니며, 하물며 외계인은 아니다. 같은 고등학생.
          * 어느 정도는 부담감을 떨쳐냈을까? 키노시타의 서브가 좋은 궤도를 그린다. 긴지마의 리시브. 공은 아츠무에게. 뒤에서 오사무가 달려오며 또다시 괴짜 속공으로 나온다. 그런데 카라스노 진이 이하다.
          * 히나타를 따로 불렸던 우카이 코치는 그에게 "쌍둥이 하나를 맡기마"라는 말을 건냈다. 즉 미야 오사무를 전담마크하라는 얘기. 솔직히 히나타에게 츠키시마 수준의 블록을 요구하는건 완전 무리. 반사신경이 좋긴 하지만 대의 페이크에 화려하게 걸리는게 단점. 리드블록에 열심히 참가하는 건 좋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팩트폭력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지는 히나타. 하지만 그렇기에 기대할 수 있는 역할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블록에서 빠져야 하는 츠키시마는 "어찌어찌 해볼만"이라고 애매하게 평하는데 이할 정도로 텐션이 높은 히나타가 "나를 질투하는 거냐"고 으스댄다. 츠키시마는 귀찮아서 태클도 안 걸자 보다못한 타나카가 "태클을 제대로 걸라"고 갈군다.
          츠키시마의 지적처럼 우카이 코치도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다. 이적인 블록은 [[다테 공업 고교]]의 그것처럼 어떤 공격이든 두 장 이의 리드 블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카라스노는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이런 황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미야 형제의 속공에 휘말려 블록이 분산되는 것. 즉 이 작전은 미야 아츠무가 후위로 내려갈 때까지 최대한 실점을 줄이는데 역점을 두었다.
          * 그리고 이 작전의 첫 시험대. 아츠무는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괴짜 속공으로 나온다. 카라스노 진의 수한 움직임. 오사무가 뒤에서 달려나오자 마자 히나타도 뛴다. 커밋 블록.[* 블로커가 스파이커의 움직임에 맞춰서 뛰는 블록을 뜻한다.] 이 예 외의 움직임이 먹힌다. 정확하게 괴짜 속공을 셧아웃. 공을 이나리자키 진으로 돌려보낸다. 그대로 카라스노의 득점 인정. 의외의 실적에 카게야마, 츠키시마, 우카이 코치의 눈이 번쩍 뜨인다. 하지만 가장 놀란건 성공한 히나타 자신.
          * 이제 코트 밖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입장이 된 키노시타는 다시 한 번 "기회는 동등하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대도 결국 고교생. 하지만 똑같은 고교생이 아니다. 자신보다 몇 배의 노력과 경험을 쌓은 고교생. 기회는 결코 동등하지 않다.
          >그래도 그 이도 이하도 아니지.
  • 하이큐/260화 . . . . 18회 일치
          * 시마다는 가려진 비구 대신 시마다 마트 봉투를 들고 옆에 서있는데 야마구치가 그걸 보고 항 연습하던 공터를 연하고 "리셋"을 시작한다.
          * 스코어는 다시 동점이 된 황에서 또다시 카라스노의 리시브 실패, 공이 이나리자키 측 관중석으로 날아간다.
          * 이에 [[카게야마 토비오]]가 대 진까지 달려가 커버하는 투혼을 보이자 미카도 "포기할 여유 자체가 없다"는 말의 진짜 의미임을 깨닫는다.
          * 봄고 대회 첫날. [[야마구치 타다시]]가 츠바키하라전에서 원포인트 서버로 기용돼 좋은 활약을 했다. 야마구치의 개인코치였던 [[시마다 마코토]]가 그를 찾았다. 야마구치는 자랑스럽게 3층 비등을 "리셋포인트"로 삼았다고 말하고 시마다는 내일도 그렇게만 하라고 격려해줬다. 그게 복선이었던 걸까? 오늘도 그 비등을 리셋포인트로 삼으려뎐 야마구치의 예정은 뜻밖의 적재물이 비등을 가리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은 그 사실을 응원석에 있던 시마다가 알아차렸다는 것. 그런 사소한 차이 조차 플레이에 향을 준다는 걸 아는 그는 필사적으로 3층 비등을 향해 뛴다.
          * 그때 야마구치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온다. 3층 비등. 시마다였다. 카라스노 고교 응원석에서 완전 반대편인 [[이나리자키 고교]] 응원석까지 한 걸음에 달려갔다. 그는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무언가를 흔들고 있다. 야마구치는 그걸 보기 위해 자연스럽게 집중했다. 그건 시마다 마트의 비닐 봉투. 마스코트인 돼지 캐릭터가 선명하게 보였다. 시마다가 처음 리셋포인트를 전수할 때 표지로 삼았던 그 봉투였다. 이나리자키 응원단이 그 묘한 꼴을 보고 수근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마다의 의도는 명백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나리자키 진. [[미야 아츠무]]가 촐싹 맞게 "당했다!"고 탄식한다. 그 소리에 리시브를 실수한 오지로가 급 시무룩해졌다. 긴지마가 거 보라며 아츠무를 쪼아댄다.
          * 카라스노의 역전으로 경기의 흐름이 반전됐다. 과연 카라스노는 이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야마구치에게 달렸다. 야마구치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공은 오지로에게. 하지만 그도 두 번은 실패하지 않는다. 정확힌 리시브. 아츠무가 방금 전 무안준 것을 보하듯 "나이스 리시브!"라고 힘차게 외친다. 그와 동시에 세트업, 강렬한 스파이크로 카라스노 진에 돌아온다. 이번엔 야마구치의 리시브. 공인 야마구치를 날려보내다 시피하며 멀리 튕겨나간다.
          거기서 공을 받는 카게야마. 이게 이어진다. 공이 무사히 카라스노 진으로 돌아온다. 미카가 당황해서 이런 플레이가 되는 거냐고 묻는다. 물론 가능하다. 공도 선수도 대측 코트를 밟은 게 아니기 때문에. 스구루는 당황하는 미카가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참 성실하게 이런 해설을 해준다.
          * 문외한인 미카도 이제는 알 것 같다. "포기할 여유가 없다"는 것. 선수들에겐 눈 앞의 모든 황이 전부고, 그래서 필사적이다. 그저 공이 떠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일 뿐.
  • 한규철 (수영선수) . . . . 18회 일치
         '''한규철'''([[1981년]] [[1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수]] 선수이다. 현재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아시안 게임|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아시안 게임|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아시안 게임|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모두 합쳐 11개의 동메달을 땄다.
         여섯 살 때 처음 수을 배웠고, 서울 가동초등학교 3학년 때 선수 등록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1400209114018&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0-14&officeId=00020&pageNo=14&printNo=23679&publishType=00010 '자타공인 한국 접 1인자'], 《동아일보》1997,10,14</ref> [[아주중학교]] 3학년이던 [[1996년]] 처음으로 국가 대표로 뽑혔고, 1997년 3월 회장기 대회 남자 접 100m에서 56초 65로 자신의 첫 [[수 100m 대한민국 기록 추이|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웠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1400289118011&editNo=7&printCount=1&publishDate=1997-10-14&officeId=00028&pageNo=18&printNo=3008&publishType=00010 '수 한국신 2개 한규철'], 《한겨레》1997,10,14</ref> [[1998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 [[퍼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퍼스]]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접]] 200m 경기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결선에 올라 7위를 차지하였다. [[2002년]] 월드컵 시리즈 [[자유형 (수)|자유형]] 1500m 경기에서 금메달 두 개를 따기도 하였다.
         {{토막글|수인}}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수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수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수 참가 선수]][[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아주중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수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수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수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수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수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한영이 . . . . 18회 일치
         |이름 = 한이 막달레나
         |징 =
         '''한이'''(韓榮伊, [[1784년]] ~ [[1839년]] [[12월 29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막달레나'''(Magdalena)이다.
         한이는 이른 나이에 한 [[양반]] 집안의 권 [[진사]]라는 남성의 후처로 들어갔다. 권 진사는 중년에 들어 [[천주교]]에 입교 하였는데, [[임종]] 직전에 비 [[세례]]를 받았고, 부인에게 입교하여 원히 신자로서 살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이는 딸과 함께 입교하였고, 매우 가난했지만, 불평 한 마디 없이 [[하느님]]께 감사하며 독실한 삶을 살았다.
         한이의 딸 [[권진이]]가 친구 [[이경이 아가타]]를 데려와서 함께 살았다. 그 세 명의 여성은 모두 신앙생활과 고행에 열심하며 살았다.
         한이는 한 배교자의 고발로 [[1839년]] [[7월 17일]]에 그녀의 딸 권진이와 딸의 친구 이경이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런데, 한이만 따로 수감 되었고, 딸 권진이를 포함한 세 명의 여성은 포졸들의 감시 하에 이웃 집에 수감되었다. 배신자 [[김여]]이 [[권진이]]를 첩으로 들이려 유혹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젊음과 미모를 동정한 포졸들에 의해서 풀려났다. [[조정 (정치)|조정]]에서 그 사건을 알고 김여에게 협조한 관리 및 포졸들을 처벌했다. 권진이를 포함한 그 세 명의 여성은 나중에 다시 체포되었다.
         한편, 한이는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녀는 [[주뢰형]]과 [[장형 (형벌)|장형]]을 받았지만, 그녀의 신앙과 용기는 꺾일 줄 몰랐다. 그녀는 침착하고 평온하게 [[순교]]의 관을 쓸 때만을 기다렸다.
         한이 막달레나는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백과사전 인용
         | 저자 = 이
         *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3919&keyword=%C7%D1%BF%B5%C0%CC&gubun=01 가톨릭 사전: 한이]
         * {{언어링크|en}} [http://english.cbck.or.kr/Saints103/309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103 Martryr Saints: 한이 막달레나 Magdalena Han Yong-i]
  • 허화평 . . . . 18회 일치
         1937년 [[경북도]] [[포항시|일군]]에서 태어났다. [[포항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17기 출신이다.
         육군사관학교 동기 [[김진(군인)|김진]], [[허삼수]] 등과 [[하나회]]에 가입하였다. 특히 허삼수와는 단짝이었다. 1979년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대령]])이었다. 말하자면 개국 공신 중의 공신인 셈이다. 1980년 9월 [[준장]] 진급 및 동시 예편하였다.
         좌천된 태에서도 저 정도의 위이라면 실세로서 잘나가던 시절에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82년 5월 [[장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에 대한 견제 기회로 인식하고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하였다. 이러한 행동이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항명으로 비춰져 1982년 12월 정무제1수석비서관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허삼수와 함께 청와대를 나와 [[미국]]에 체류하며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으로 일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 포항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김삼]] 지지를 선언하며 [[제14대 대통령 선거]] 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1995년 김삼의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 관련 사법처리 조치로 기소되었다. 이에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옥중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2.12 군사반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유죄 판결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실하였다. 이후 사면되었다.
         하지만 암호지령이 급증한 게 사실이라 해도 북한이 5.18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런 황이 벌어지면 당연히 북한 간첩을 통해 남한 황을 체크해 볼 것이 아니겠는가? 만에 하나 북한 개입이 사실이라면 왜 본인이 재판받을 때는 말하지 않다 2012년에서야 말한 것인가라는 점에서 그 회고의 신빙성은 없다.
         '''그렇다면 왜 최태민을 잡아넣거나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느냐'''는 사회자의 반문에, 허화평은 [[박정희]] 대통령과 [[10월 유신]]의 결과물인 산업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발언했다. 제5공화국의 첫 번째 과업이 박근혜와 최태민을 청산하는 일이었다는 말이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1051768&iid=1140067&oid=449&aid=0000114843&ptype=052|#]]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를 제대로 수사해서 청산하지 않고 놔둔 것이다. 이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와 비리의 온이 [[새마음봉사단]]이라고 보았으며, 그 결과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제대로 드러내서 수습하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개인적인 관계를 끊어 달라는 수준에서 처리하고 묻어버린 것.
         2005년 방된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 드라마]]에서는 [[이진우]]가 허화평을 연기했는데, '''허화평 본인이 실제 자신보다 더 멋지게 나왔다면서 극찬했다고 한다.''' 단 이것과는 별개로 드라마 내용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5공 정치인답지 않게 나름의 정치철학과 논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1996년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구속기소되었을 때 이 면모가 잘 드러나는데, 법정에서 다른 피고인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와중에도 허화평만은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96년 총선에서 무려 '''옥중 당선'''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물론 당선 여부와는 별개로 대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의원직을 실했다.] 이후에도 보수성향 논객으로 활동하면서 종편채널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데 말빨이 기가 막혀서 진보성향 PD들이 애를 먹는다는 후문도 존재한다.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북) || '''무소속''' || '''48,251 (44.2%)''' || '''당선 (1위)''' || '''옥중출마 당선'''[br]1997년 의원직 실[br](12.12 군사반란 재판) ||
  • 헤이즈 (가수) . . . . 18회 일치
         | 학력 = [[부경대학교]] 경학과
         '''헤이즈'''({{llang|en|Heize}}, {{본명|장다혜}}, [[1991년]] [[8월 9일]] ~ )는 [[대한민국]]의 힙합 가수이다.<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ppn&query=%ED%97%A4%EC%9D%B4%EC%A6%88&os=2916098&ie=utf8&key=PeopleService 네이버 인물]</ref> 헤이즈라는 이름은 본인이 외국 여성 래퍼 엔젤 헤이즈(Angel Haze)를 좋아해서 어 철자만 바꾸고 지은 이름이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208830|제목='V앱' 헤이즈, 이름 뜻 설명 "독일어로 달아오르게 하다"|언어=ko|확인날짜=2017-06-26}}</ref>
         2015년 [[언프리티 랩스타 2]]를 통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후 2016년에 발매한 싱글 《돌아오지마》와 《And July》의 음원 차트 순위권 진입이후 《저 별》이 주요 음원사이트 차트 1위<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217896|제목=[SS차트] 헤이즈 '저 별', 1위 장기집권 예고…新 음원 강자 등극|언어=ko|확인날짜=2017-06-26}}</ref>를 기록하였다.
         어린 시절 [[첼로]]를 배웠고 [[클래식]]과 [[발라드]]를 좋아했던 그녀는 미니홈피를 통해 랩을 듣게 된 이후 직접 랩 가사를 쓰고 랩 음악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부경대학교]] 경학과에 진학하였으나 공부를 멀리하고 랩 가사를 써왔다.<ref name="s">{{뉴스 인용|제목=[인터뷰] 대구소녀 헤이즈의 파란만장 랩퍼 성공기|url=http://sports.donga.com/3/02/20160204/76324120/2|날짜=2016-02-04|뉴스=스포츠동아}}</ref>
         학과 내에서 1등을 하면 서울로의 경을 허락 해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과 수석을 하게 된 그는<ref>{{뉴스 인용|제목=‘여자 도끼’ 헤이즈, 친오빠 재조명...“세에서 제일 친한 남자”|url=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3265032&page=1|날짜=2017-06-27|뉴스=MBN 뉴스}}</ref> 대구에서 경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음원깡패★헤이즈, 하루에 알바 3건+종이가방 스타일링...털털4차원 인성甲|url=http://star.mk.co.kr/v2/view.php?sc=40900002&cm=%EC%97%B0%EC%98%88%20%EC%A2%85%ED%95%A9&year=2017&no=428641&relatedcode=|날짜=2017-06-27|뉴스=스타투데이}}</ref>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 싫어 그는 한 번에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ref>{{뉴스 인용|제목='최파타' 챈슬러X헤이즈가 밝힌 음악열정·공개연애(종합)|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66599|날짜=2016-11-29|뉴스=JTBC}}</ref> [[언프리티 랩스타2]]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음악에 전념하게 되었다.<ref name="s" /> [[크루셜스타]]와 교제하기도 했으나 [[2015년]] 헤어졌다. 헤이즈는 라디오방송에서 크루셜스타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평가했고 아직 잊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디오쇼' 헤이즈 전 남친 언급, '이별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91114132351596|날짜=2016-09-11|뉴스=아시아경제}}</ref> 헤이즈가 겪었던 이별의 경험은 그녀가 미니 앨범 《/// (너 먹구름 비)》를 제작하는 데 향을 줬다.
         * 2017년 10월 16일 - 《후회해》 (With [[박진]])
         * 《[[박진의 파티피플]]》 (2017년)
         * 2016년 [[SC제일은행]] (with 박)
         == 수 ==
         ! 수 내역 (총 2회)
         === 시식 ===
         ! 수 내역 (총 3회)
         *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 베스트 힙합 어반 뮤직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언프리티 랩스타 참가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CJ ENM 음악가]][[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 음악가]][[분류:무학초등학교 (경남) 동문]][[분류:마산제일여자중학교 동문]]
  • 현재현 . . . . 18회 일치
         '''현재현'''(玄在賢, [[1949년]] [[2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2013년|2018년]] 기준으로 [[동양그룹]]의 전 회장이며 고대 총장을 지낸 고 [[현윤]] 총장이 조부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고 현인섭씨가 부친이다. 동양그룹 창업주 고 [[이양구]] 회장의 첫째 사위다.
         * '''학력''' 1971년 서울대학교 법학과 1981년 스탠퍼드대학교 경대학원
         * '''직업''' 기업인, 경
         * 1979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1981년 경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 1983년 동양시멘트 사장에 취임해, 경 일선에 나섰으며, 1984년 일국증권(현 동양종합금융증권)을 인수 1986년 동양증권 회장에 취임했다.
         * 1998년 기획예산위원회 비임위원
         * 1998년 외교통부 정책자문위원
         * 2011년 Van Fleet. 현재현 회장은 한미재계회의를 이끌며 한미FTA체결과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 한미간 특허심사 하이웨이제도 도입 등 한미 양국의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2011 밴 플리트’을 수했다. 밴 플리트 은 한미 우호증진과 양국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한 공이 큰 사람에게 주어지는 으로 한국인 중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최종현 SK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받았고, 미국인으로는 조지 W. 부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대사, 헨리 키신저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이 수했다.
         == 경실적 ==
         현재현 회장은 1980년대 금융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에 선물•벤처투자 등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해 21세기 국가기간산업인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기여하며 제조업 중심의 동양그룹을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인해 종금, 보험, 투신업계에 무려 약 34조 9천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지만, 동양그룹의 모든 금융계열사는 공적자금 지원 없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특히, 동양오리온투자신탁(현 동양증권)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대우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약 5,000억 원의 고객 손실을 전액 보전해주었다. 사회공헌차원에서 금융업을 제2의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해온 현재현 회장의 경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동양생명은 부실한 태평양생명을 인수 합병하여 생명보험사 구조조정에 힘을 보탰다. 2007년 한일합섬 인수 이후 현재현 회장은 레저사업을 동양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존의 골프장 사업에 리조트사업을 추가하고 강원도 삼척시와 연계한 레저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현재현 회장은 시멘트사업 중심의 그룹 제조부문을 친환경 에너지•자원 개발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현 회장은 1989년 그룹 회장 취임 당시 매출 6,000억 원의 동양그룹을 제조•금융•서비스 부문 33개 계열사에 연 매출 9조 2,211억 원 규모로 성장시켰다.
  • 홍순언 (1530년) . . . . 18회 일치
         기방에서 석방된 류씨 소녀는 홍순언이 준 3천냥으로 빚을 청산하고 부모의 장례를 치룬 뒤 아버지의 친구였던 [[예부]][[시랑]] [[석성]](石星)의 집에 하직인사차 들렸다. 오갈데 없던 그는 당시 [[석성]]의 본부인이 병환을 앓고 있었으므로, 석성 부인의 병구완과 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류씨 소녀의 지극정성의 간호에도 석부인은 병환의 차도 없이 세을 떠났다. 그러나 자신의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에 감격한 [[석성]]은 류씨 소녀를 자신의 계비로 맞이하였다.
         석성은 [[예부]][[시랑]]으로 있다가 뒤에 [[병부]][[시랑]]을 거쳐 [[예부]][[서]]로 승진했다. 류씨 소녀는 하루하루 황금 비단을 손수 짰는데, 병부시랑 석성의 후처가 된 뒤에도 류씨부인은 밤마다 직접 비단을 계속해서 짰다. 비단에는 보(報)와 은(恩)이 쓰여 있었는데, 이를 이하게 여긴 [[석성]]이 류씨 부인에게 사연을 묻자 류씨부인은 아버지 류모의 빚과 장례비 마련이 어려워 기방에 갔던 일과 홍순언을 만난 일을 고백하였다. 석성은 동이족 중에도 의인이 있다며 그 기을 칭찬하였다.
         이후 [[조선]]에서 종계변무사신이 파견될 때마다 담당인사 였던 석성은 사신을 만나주지 않으면서 이하게 홍역관이 왔느냐는 질문을 계속 했다고 한다.
         이를 이하게 여긴 사신들은 귀국 후 이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변무사절이 [[북경]]에 도착했을 때 명나라 예부서 [[석성 (명나라)|석성]]이 [[요동]]의 국경까지 접 나와 홍역관이 왔느냐고 물었다. 그가 자신임을 밝히자 석성은 장인어른 큰절을 받으라며 그를 친히 모셔갔다. 이하게 여기던 중 장안의 관사에 도착하자 귀부인이 나와 그에게 큰절을 올렸는데 이는 그가 명종 때 구해준, 이제는 석성의 계비가 된 류씨 소녀였다.
         석성은 동방에도 그대와 같은 의인이 있었다며 후히 대접하였고, 황정욱과 그가 《대명회통》과 명나라 《태조실록》에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로 기록된 내용이 잘못이고,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임을 황제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명나라의 대소관리들은 당대에 수정하지 않고 이제 와서 계속 번거롭게 구느냐며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당시 예부서였던 석성의 적극 건의로 개정되었다.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사절단은 귀국하였는데, 류씨 부인은 손수 짠, 보은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 비단 1백 필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일은 장사치나 하는 것이라며 비단을 거절하고 귀국했다.
         그의 이야기는 [[조선 효종|효종]]의 부마인 동평위 [[정재륜]]의 동평위공사견문록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옥갑야화 편, [[이익]]의 [[성호사설]] 17권 임진재조 편 등에 기록되어 후대에 전하게 되었다. 첫째 아들 [[홍건]]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당관]]을 지냈고, 넷째 아들 [[홍운]](洪運)은 [[광해군]] 때인 [[1612년]]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홍건의 아들인 손자 [[홍효손]]은 숙천부사를 지냈다.
         [[조선]] 멸망 후 [[1928년]] 위당 [[정인보]]는 그의 방계후손 [[홍정구]]의 부탁을 받고 당릉군유사징(唐陵君遺事徵)을 찬하였다. [[정인보]]는 당릉군유사징의 '唐陵君遺事徵引文'에서 홍순언 동생 [[홍덕린]]의 후손인 [[홍정구]](洪正求)가 자신([[정인보]])을 찾아와 선조 당릉군의 행적이 너무 미약하니 선조의 행적을 기술한 유사(遺事) 편찬을 부탁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홍정구]]는 여러 번 [[정인보]]를 찾아와 거듭 부탁하였고, [[정인보]]는 시대가 바뀌어 가족도 몰라보는 시대에 [[홍정구]]의 조을 추모하는 의리에 감동하여 결국 이를 수락했는데, [[정인보]]는 자료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동평위공견사문록, 열하일기의 옥갑야화편 외에도 직접 여러가지 사적을 조사하여 [[1928년]] 당릉군유사징 제1권《당릉군유사 (唐陵君遺事)》를 집필하였다.
         * 어머니(적모) : 미
         * 생모 : 미, 홍겸의 소실
         [[허봉]]은 그가 말을 잘 한다고 평가하였다. '홍순언의 말은 조리가 있어서 기록할 만하고, 들어도 싫증나지 않으며 오래 들으면 피로도 잊었다<ref>허봉, 《조천기 》()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연행록선집 1》 (경인문화사, 1976) pp.86-169</ref>'고 높게 평가하였다.<ref>김숙, 〈역관 홍순언과 조명외교〉,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제70집 (2011년 02월호)》 (중국사학회, 2011) pp 195</ref>
         * 김숙, 〈역관 홍순언과 조명외교〉,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제70집 (2011년 02월호)》 (중국사학회, 2011) pp195~222
         * 허봉, 《조천기 》() (민족문화추진회)
  • 황병기 . . . . 18회 일치
         |웹사이트 = [http://www.bkhwang.com/ 국악인 황병기 홈페이지]
         가야금은 중학교 3학년 때인 1951년 부산 피난시절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경기고등학교 시절에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 명인인 김윤, 김윤덕, 심건을 사사하였다. 당시 서울대 법대 학생이며 남학생으로는 특별하게 대학 2학년 때 KBS 주최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1959년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1963년까지 서울대학교 음대 국악과에서 가야금을 가르쳤다. 2000년 2월에는 [[단국대학교]]에서 명예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부터 2001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교수로 활동하면서 배출한 제자로 동국대학교 교수 윤소희, 단국대학교 교수 서원숙, 숙명여대 교수 김일륜, 이화여대 교수 곽은아, 서울대학교 교수 이지, 서울대학교 강사 지애리, 목원대학교 겸임교수 이정자, 이화여대 강사 조윤정, 정순희, 대구예술대학 강사 이미경, 숙명여대 강사 이신, 수원여대 강사 박지 등이 있다. 이화여대 재직시 개인적으로 지도한 제자로는 준인간문화재 양승희, 이화여대 교수 문재숙, 서원대학교 교수 박현숙, 추계예술대학 교수 이효분, 전남대학교 교수 성애순 등이 있다.
         1965년 공보부 제정 '국악'과 '문화표창장'을 받았다.
         == 수 ==
         * [[2001년]] 예술평론가 협회
         * [[2001년]] 제15회 예총 예술문화 음악부문 대
         * [[2003년]] 제10회 방일국악
         * [[2004년]] 호암 예술
         * [[2006년]] 제51회 대한민국예술원 음악부문
         * [[2006년]] 제4회 타워 전통예술부문
         * [[1962년]] 5년 연의 [[소설|소설가]] [[한말숙]]과 결혼했다. 한말숙은 소설가 [[박완서]]와 [[숙명여자고등학교|경성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동창이며 박완서와 한말숙의 숙명여고보 시절 은사는 소설가 [[박노갑]](朴魯甲, [[1905년]] ~ [[1951년]], 아호는 도촌(島村))이다.
  • 황상경 . . . . 18회 일치
         {{화인 정보
         | 이름 = 황
         | 직업 = [[배우]] & [[연극 배우]] <ref>[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542072 황경-다음인물정보]</ref>
         | 웹사이트 = [http://piument.com/portfolio/1411-2/ 더피움이엔티 황경]
         '''황경'''([[1982년]] [[9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99%A9%EC%83%81%EA%B2%BD&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584538 황경-네이버인물정보]</ref>
         * [[한양대학교]] 연극화학과 학사
         === 화 ===
         * [[2018년]] 《[[챔피언 (2018년 화)|챔피언]]》 - 부산커플남 역 (우정출연)
         * [[2017년]] 《[[그리다]]》 - 경 역
         * [[2017년]] 《[[루시드 드림 (화)|루시드 드림]]》 - 남기자 역
         * [[2016년]] 《[[오빠생각 (화)|오빠생각]]》 - 춘호 역 <ref>{{뉴스 인용|제목= '오빠생각' 욕과 주먹을 부르는 배우 황경|url=http://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2240 |출판사=국제뉴스 |날짜=2016-01-20}}</ref>
         * [[2015년]] 《[[돌연변이 (화)|돌연변이]]》 - 기자 2 역
         * 《[[뱀파이어 탐정]]》 (2016년, OCN) - 젊은 시절 주광 역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
  • 히나타 쇼요 . . . . 18회 일치
          * 위 항목 : [[하이큐!!]], [[하이큐!!/등장인물]], [[카라스노 고교]]
         == 세 ==
         키와 몸집이 작아 배구선수로서는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특유의 민첩성과 스피드로 커버해낸다. 성격은 [[외유내강]]으로, 가끔 대방의 겉모습만 보고 겁먹을 때도 많지만 본능적으로 야성적인 육식계 포스를 발휘할 때가 많다. 특히 이럴 때는 작중의 인물들이 전부 움찔거리면서 땀을 흘리는 모습이 나온다. 작중에서는 '''승리에 굶주린 작은 짐승'''으로 묘사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으로 본 카라스노 고교의 에이스 '작은 거인'을 동경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유키가오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들어간 배구부에 부원은 자신 혼자였다.[* 실제로도 인원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부'가 아니라 동호회였다. 배구부가 된 것은 차후 1학년들이 입학한 다음 일.] 친구들에게는 여자 배구부라고/예쁜 여자 선배 때문에 들어간 거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원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근성으로 홀로 연습하기를 3년.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신입생이 세 명 들어와, 친구 2명[* 세키무카이 코우지(원래 축구부), 이즈미 유키타카(원래 농구부).히나타의 끈질긴 설득으로 대회에 참여.]을 포함해 경기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수가 갖춰졌다. 그리하여 나간 생애 첫 공식전 1회전 시합 대가 대회 우승 후보였던 키타가와 제1중학교였다. [[지못미]]. 시합 전 화장실 앞에서 대팀 선수인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나지만 ~~징크스의 시작~~ 그는 '배구에서 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히나타를 도발한다. 히나타는 '나는 작지만 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선배들 앞에서 카라스노의 에이스가 되겠다며 목표를 밝혔으나, 그 말을 전면 부정하던 카게야마와 티격태격하다가 나란히 배구부 입부를 거절당했다. 그 후, 3대 3 경기를 통해 카게야마와의 협력을 보여주고 배구부에 입부한다. 히나타는 실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배구에 관한 기술은 초보티를 간신히 벗은 정도. 서브나 리시브도 제대로 못하고, 자그마한 키와 몸집 등 불리한 면이 많지만, 경이적인 반사 신경과 순발력을 갖고 카게야마를 비롯한 동료들을 놀라게 한다. 오히려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를 하지 못하는 점이 카게야마가 세터로서 본래의 능력을 개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카게야마와는 호흡을 맞춰 '괴짜속공' 이라는 이한 속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괴짜속공으로 대에게 압박감을 주어 히나타를 경계 시키게 만듦으로서 다른 선수가 득점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그래서 현재 경기 중 히나타의 임무는 '최강의 미끼'가 되었다. '미끼'라는 자신의 포지션이 '에이스'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껴 기죽기도 하지만 이를 꿰뚫어본 카게야마에게 한소리를 듣고 자신의 역할을 긍정하게 된다.
          * 여타 다른 소년만화의 열혈계 주인공들과 다르게 의외로 겁이 많다. 특히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키 큰 사람 앞에만 서면 잔뜩 위축되서 겁을 집어먹고 다른 키 큰 사람 뒤에 숨는다.~~모에~~ 그랬던 놈이 시합에만 들어가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져서 자신이 겁먹었었던 그 큰 놈들을 대로 언제 그랬냐는 듯 눈 희번뜩이고 달려드는 것이 포인트. 이 때의 기백과 기세가 굉장해서 대팀의 강자들조차 살짝 움찔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오바죠사이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런 그를 보고 '워밍업 존에서 갈망을 가득 쌓고 올라 온 작은 짐승'이라 표현하며 잔뜩 의식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 작은 키와 어린애 같은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가끔 정말 대의 기를 눌러버릴 만큼 위압감을 내보일 때가 있다.~~패기?~~ 평소의 생글거리는 얼굴과 대조되는 정색한 표정, [wiki:"죽은 눈" 동공이 열린 눈], 얼굴에 그늘진 음 등 [[wiki:"얀데레" 똘기]]가 엿보이는 분위기를 자아내어 대~~와 독자~~로 하여금 오싹한 느낌이 들게 한다. 덕분에 [[wiki:"마나미 산가쿠" 싸이클패스]]에 이은 ~~[[하이패스]]~~하이큐패스 드립까지 나오고 있다(...).
          * 경기 시작 전에 화장실을 가면 꼭 화장실 앞에서 중요 인물을 만난다는 [[징크스]]가 있다. 여담으로 이 징크스가 시작된 것은, 중학생 때 대회날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난 것이 시초이다. ~~그리고 시작되는 복통~~ 사실 히나타 본인도 화장실은 위험인물과 마주치는 장소라는 걸 알고 있다! 결국 봄고 미야기현 대표 결정전 대회 날, 화장실 앞에서 [[아오바죠사이 고교]]의 [wiki:"오이카와 토오루" 오이카와]와 [wiki:"이와이즈미 하지메" 이와이즈미], 시라토리자와학원의 우시와카, [[다테 공업 고교]]의 아오네와 한꺼번에 ~~강제~~[[정모]]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트리플플레이~~ ~~올스타전 총출동~~
          * 살면서 본 가장 무서운 장면이 '''뒤통수를 맞은 카게야마의 얼굴'''이다. [[아오바죠사이 고교]]와의 연습시합에서, 히나타가 서브 미스로 카게야마의 뒤통수를 때린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카게야마의 표정이 [[충격과 공포]]. ~~이 만화가 왜 호러배구라고 불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인하이 시합 직전 긴장을 풀기 위해 지금까지 있었던 가장 무서운 일을 생각할 때, 히나타는 그 날의 카게야마를 떠올리더니 바로 [[해탈]]했다. ~~카게야마가 [[사다코]]를 이겼다~~
          * 한국 팬 한정으로 [[카게야마 토비오]]가 산이로 불리는 것처럼, 히나타는 일향이로 불린다.~~겁나 예쁘다.~~
          *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동생 히나타 나츠와 사이가 굉장히 좋다. 항 놀아달라고 보채는 모양.[* 소설판 1권에서 볼 수 있다.]
  • Crusader Kings 2/DLC . . . . 17회 일치
         비군 시스템과 비잔티움 제국 전용 디시전, 이벤트가 추가된다.
         가역사인 [[아즈텍 제국]]의 서유럽 침공을 다룬 DLC. 이 DLC를 구매할 경우 게임 중반 아즈텍 제국의 대군이 등장해 모로코,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에 륙한다.
         876년 시작하는 시나리오인 "태고의 신들"이 해금된다. 또한 반란 시스템이 개편되어 농노 반란, 종교 반란, 해방 반란, 이단 반란 중 하나의 형태로 일어나게 되었다. 가끔씩 어디서 굴러들어온 모험가가 지를 요구하며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는 이벤트도 추가되었다.
         기독교의 경우 이슬람만 가능했던 성지 순례를 할 수 있게되었다. 가톨릭의 경우 추기경단을 통해 교황청을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교황에게서 돈과 같은 이익을 부탁할 수 있게되었다. 마음에 안 드는 가신을 수도승/수녀로 만들어서 속계에서 내쫓아버릴수도 있게 되었고, 기사단과 호작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가족과의 관계도를 향시켜주는 가족(Family).
          * 개인의 전투 능력을 향시키는 전쟁(War). 자신의 경쟁자에게 결투를 걸 수도 있다.
          *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관리력을 향시키는 통치(Rulership)
          * 다른 이를 미행하며 약점을 캐내거나 중모략을 할 수 있는 음모(Intrigue)
          * 천문대를 지어서 천체를 연구하는 등의 활동으로 자신의 학력을 향시키는 학문(Scholarship)
         또한 관심사에 따른 이벤트들이나 불륜 대와 손잡고 잠시 사랑의 도피를 하는 이벤트 등이 추가되었다.
         질병에 걸리면 질병 특성이 바로 붙지 않고 증 특성들이 전조로 오게 바뀌었다. 또한 역병이 발생해 주변 지로 퍼지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물론 캐릭터가 거기 있다면 높은 확률로 병에 걸린다. 역병 중 보스몹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 [[흑사병]]도 있는데, 인도에서 나타나 "흑사병으로 황폐해진 XXX" 따위의 이벤트 창을 띄우며 서유럽으로 빠르게 다가온다.
         궁정의사를 고용할 수 있다. 병에 걸렸을 시 궁정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성공적인 치료를 받았을 경우에는 능력치와 체력 수치에 버프를 받아 생존 확률이 증가하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역으로 페널티가 붙는다. 이놈들은 "실험적인 치료"로 몸 한구석을 잘라내 '''암'''을 치료할 수도 있다. 실험적인 치료는 사실 로또라는게 문제지만. 신비주의자 의사의 경우에는 환자의 자식을 제물로 바치거나 자신을 제물로 바쳐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또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혀주는 건물인 병원을 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역병에 죽을까 노심초사하시는 분을 위해 성문에 못질하고 가신들과 함께 [[히키코모리|히키짓]]하는 디시전도 생겼다.
         오랫동안 역병이 돌지도 않고 포위당하지도 않은 지는 번도라는 수치가 오르게 되었다. 번도가 높을 수록 세금 수입과 해당 지역 징집병 징병률이 늘어난다.
  • DC 확장 유니버스 . . . . 17회 일치
         [[DC 코믹스]] 기반 [[화]] 시리즈. 화는 물론 [[드라마]], [[코믹스]] 등도 포함되어 있다.
         DC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며 DC의 유명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슈퍼맨 주연 화인 맨 오브 스틸이 첫 화이며 그 이전에 나온 DC 화들과는 무관한 세계관이다. 즉,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 시리즈,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등과는 세계를 공유하지 않아 설정과 내용에서 아무 관계 없다.
         화는 [[워너 브라더스]]에서 만들고 있다. 다만 현재에는 DC 필름스가 만들어졌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지닌 유명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DC 히어로들이 그 동안처럼 따로 등장해온 것이 아니라 각 작품이 연동되는 시리즈에서 등장하게 되기에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켰으나..... 그 태가 '''많이''' 안좋다. 그래도 원더우먼 화가 준수한 완성도를 지니면서 그 입지를 어느정도나마 회복시켜줬고, 이후 아쿠아맨도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
         == 화 ==
          * [[수어사이드 스쿼드(화)|수어사이드 스쿼드]]
          * [[원더우먼(화)|원더우먼]]
          * [[저스티스 리그(화)|저스티스 리그]]
          * [[아쿠아맨(화)|아쿠아맨]]
          * [[샤잠(화)|샤잠]]
          * [[사이보그]]
  • 강원 FC . . . . 17회 일치
         원래 강원도는 축구 열기가 정말로 높은 지역으로 이름이 높았다. 강릉시에 위치한 강릉제일고와 강릉중앙고와의 대결인 [[강릉 축구 정기전]]이 고등학교 축구경기임에도 강릉시의 단오제 행사 중,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366890|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K3리그]]에 참가하는 [[춘천시민구단]]의 개막전 3000명 관중 사례만 봐도 강원도의 축구열기는 분명 전국적으로도 대단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역적으로 산세가 험해 원정을 가기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어 팀 유치가 쉽지 않은 황이었다.[* 과거 천안 일화가 천안시의 미온적인 지원 때문에 강릉으로 연고를 옮기려고 했는데, 당시 타 팀들이 "연고 이전은 관 없는데, 강원도는 불편해서 안된다. 다시 생각해 봐라"는 요청이 들어왔었던 사실은 제법 유명하다. 결국 일화가 강릉이 아닌 성남으로 옮기자 이를 반기는 타 구단들의 입장이 신문에 나왔을 정도.]
         일화가 한때 강원도로 연고를 옮기는 것이 사실 확실시 된 것으로 보이자 이를 환한다는 현수막이 강릉시에 걸렸을 정도면 강원도가 축구를 얼마나 절실하게 바래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일화는 성남으로 연고를 옮기게 되고, 강릉시의 환 현수막 대신 기독교 단체의 "일화 OUT" 현수막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1999년 8월 22일에 강릉에서 있었던 K리그 야간경기에서 천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조명탑 문제로 경기가 취소되고 기물이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일화 입장에선 오히려 강릉을 선택하면 그게 이황이 될 정도.
         이런 황에서 강원도민들은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창단한 [[대구 FC]]에 주목하게 된다. 그 이전부터 몇번 창단 준비를 했었는데[* 2005년도에 잠깐 논의는 있었으나 실제 참가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01&aid=0001156686|참고기사]] 딱히 성과가 나지 않았으나 대구에 이어서 인천, 경남이 차례대로 창단과정을 거듭함은 물론이고, 컨소시엄의 붕괴로 팀이 해체할 뻔한 대전이 시민구단으로 전환하는 장면까지 본 강원도는 '''"오려는 축구단이 없으면 시민구단으로 만들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실제 창단의 시발점은 2008년 4월 28일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2064010|"강원도민프로축구단 창단추진"]을 발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몽준 前 축협회장이 참가하여 "창단을 축하한다"는 발언을 생각하면 이 시기를 구단 역사의 첫 페이지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q=33646|참고기사]]] 당시 도지사였던 김진선 이외에도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이광재(태백, 월, 평창, 정선), 최욱철(강릉)도 여기에 대해서는 당선공약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여야를 막론한 창단의 동의는 사실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초기 선수단 구성에 이을용, 정경호가 포함되어 당한 이슈를 끌기도 했다. 이 둘은 강릉고[* 現 강릉제일고] 출신으로 널리 퍼진 명성뿐만 아니라 농전으로 강원도민에게 친숙한 선수들이었기에 초반 리그 흥행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강원의 초기 돌풍을 일으켰던 공격수 [[김후]]는 [[MBC]]에서 방했던 [[맨땅에 헤딩]]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내셔널 리그의 공격수에서 K리그의 득점왕 후보에 이르기까지 그 활약이 당히 인깊었기에 그 이야기가 모티브를 제공했던 건 유명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드라마의 흥행은 망했다고 전해진다.
  • 경산시 . . . . 17회 일치
         * [[김지 (1938년)|김지]] - 화배우, 탤런트
         * [[송승헌]] - 탤런트, 화배우
         * [[이창훈 (1966년)|이창훈]] - 탤런트, 화배우
         * [[윤직]] - 현 부산 기장군 국회의원, 전 산업통자원부 장관
         * [[정석]] - 현 41대 부산 동구청장(민선,[[새누리당]])
         * [[김기 (1962년)|김기]] -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
         * [[송선 (1953년)|송선]] - 전 국회의원
         * [[엄민]] - 전 공무원, 전 정치인.
         * [[윤탁]] - 전 국회의원
         * [[이센스]] - 래퍼. [https://www.youtube.com/watch?v=XrNkKdXQ3fM Back In Time]의 뮤직비디오를 경산에서 촬했다.
         * [[최조]] - 현직 경산시장
         [[분류:경산시 출신|경산 출신 인물]][[분류:경북도의 도시]][[분류:1989년 설치]][[분류:1995년 폐지]][[분류:1995년 설치]]
  • 고원희 . . . . 17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 모암동 (모암행복1길) (모암길)
         | 학력 = 굴마을낙지촌 김천점, 경북도 김천의료원
         | 수 =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go_wonhee/}}<br>{{페이스북|angelina.kim.585}}
         * 굴마을낙지촌 김천점, 경북도 김천의료원
         * 2018년 [[KBS2]] 수목드라마 《[[당신의 하우스헬퍼]]》 ... 윤아 역
         === 화 ===
         * 2012년 《[[미확인 동: 절대클릭금지]]》
         * 2012년 《[[수목장 (화)|수목장]]》 ... 어린 청아 역
         == 수 및 후보==
         ! 시
         | [[KBS 연기대]]
         | 일일극부문 여자 우수연기
         | 여자 신인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11년 데뷔]][[분류:김천시 출신]][[분류:제주 고씨]]
  • 김부식 . . . . 17회 일치
         |웹사이트=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증조부인 김위을 [[고려 태조]]가 경주(慶州)의 주장으로 임명하였다고 한다.<ref>《[[고려사]]》 권97, 열전10, 김부일전.</ref> 부친 김근이 좌간의대부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나 일찍 세을 떠나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지위가 높은 가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부식과 그의 형제들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였다.
         [[고려 인종|인종]]이 즉위하면서 외척인 [[이자겸]]은 국정을 농단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이자겸의 전횡에 비례(非禮)를 이유로 반대한 일<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고려사》 권98, 열전11, 김부식전.</ref> 이 있으나 직접적으로 대항하지는 않고 묵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자겸 집권기에 순탄하게 승진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정구복, 《한국중세사학사(Ⅰ)》, 집문당, 1999년.</ref> 또한 [[1126년]]과 [[1127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행차하여 송나라가 몰락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박승중(朴昇中)·정극(鄭克永)과 함께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쌓았다. 어사대인(御史大人)·호부서(戶部尙書)·한림원학사 등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승진하였고, 수사공(守司空)을 더하였다.
         [[1126년]](인종 4년) 이자겸이 피살됨으로써 그의 전횡은 끝났으나 이로 인한 혼란과 궁궐의 소실 등을 이유로 서경파가 득세하였다. 이 시기 김부식은 추밀원사(樞密院使)로 승진하여 재추(宰樞)의 반열에 오르는 등 정치적 지위가 급성장하였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묘청]] 등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서경천도운동]]은 [[1129년]](인종 7년) 무렵부터 대두되기 시작하여 서경에 궁궐을 축조하고 인종도 자주 행차하였다. 서경파의 [[정지]] 등은 묘청과 [[백수한]]이 성인이니 모든 정치를 그들에게 물어서 행하자고 하면서 연판장을 돌렸다. 조정 신료 가운데 오직 평장사 김부식, 참지정사 임원애(任元敱), 승선(承宣) 이지저(李之氐)만이 이를 거부하였다.<ref>《고려사》 권127, 열전40, 묘청전.</ref> 그러나 서경의 서기(瑞氣)를 조작한 일이 탄로나고, 행차 때의 악천후 등이 잇따름에 따라 김부식 등의 반대파 의견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부식 일파는 [[1134년]](인종 12년) 인종의 서경 행차를 막는 데 성공하였다.<ref name="고려사 김부식전"/>
         서경 천도가 불가능해지자 묘청·조광·유담 등은 [[1135년]](인종 13년)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김부식은 토벌군의 원수가 되어 일단 개경에 머물고 있던 서경파 정지, 김안(金安), 백수한을 처형하고 출전하였다. 김부식은 중군장으로서 좌군장으로 [[김부의]](金副儀)<ref>김부식의 동생</ref>, 우군장으로 이주연(李周衍)을 거느리고 서경으로 향했다. 서인들은 묘청·유담들을 죽이고 항복하였으나, 조광(趙匡)이 또 반하므로 서경을 포위하고, 그 이듬해인 [[1136년]]에 잔당을 소탕하였다. 반란을 진압한 김부식은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 칭호와 검교태보수태위[[문하시중]]판서이부사감수국사주국 겸 태자태보(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監脩國史上柱國兼太子太保)로 임명되었다. 김부식은 이 전공을 이용하여 정적(政敵)인 [[윤언이]](尹彦頥)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ref name="한국중세사학사"/>
         이후 [[고려 인종|인종]]의 명을 받들어 [[정습명]], [[김효충]](金孝忠) 등 10인과 함께 [[삼국사기]]의 편찬을 지휘하였으며, 최산보(崔山甫)·이온문(李溫文)·허홍재(許洪材)·서안정(徐安貞)·박동계(朴東桂)·이황중(李黃中)·최우보(崔祐甫)·김온(金永溫) 등이 편수에 참여하였다. 그 후 집현전 태학사·태자태사(太子太師)의 벼슬과 동덕찬화공신(同德贊化功臣)의 칭호를 더하였다.
         송나라의 사신 노윤적(路允迪)이 왔을 때 관반사(館伴使)로서 그를 맞아들였고, 같이 왔던 [[서긍]](徐兢)이 그의 《[[고려도경]]》에 김부식의 집안을 실어 송나라 황제에게 진함으로써 김부식의 이름은 송나라에도 유명하였다.
         [[1151년]]([[고려 의종|의종]]) 5년 77세의 일기로 세을 떠났다. 세을 떠난 지 19년 후 [[무신정변]]이 일어나 [[정중부]]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한다. [[대각국사]]의 비문을 지었고, 죽은 뒤 인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문집 20권을 지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인용문|고려부터 조선까지 1천 년간 ‘[[묘청의 난]]’보다 지나친 대사건이 없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역사가들은 왕의 군사가 반역자를 친 전쟁으로 알았을 뿐이었으니….(중략)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이며 진취적으로 진전했을 것이다.|{{서적 인용|저자=[[신채호]]|장=조선역사(朝鮮歷史上) 일천년래(一千年來) 제일대사건(第一大事件)|제목=《[[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연도=[[1929년]]}}}}
         * 증조부 : 김위(金魏英, ? ~ ?)
         * [[정지]]
         [[분류:고려의 시인]][[분류:고려의 서예가]][[분류:고려의 역사가]][[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주 김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
  • 김진웅 . . . . 17회 일치
         |문 표기 = Kim Jin-Woong
         |사진 사이즈 =
         '''김진웅'''(金珍雄<ref>한국야구위원회, 2010 가이드북</ref>, [[1980년]] [[2월 20일]] ~ )은 [[KBO 리그]] 전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1990년대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투수]] [[김엽 (야구인)|김엽]]을 잇는 우완 강속구 [[투수]]로서 2000년대 초반 [[임창용]], [[배수]] 등과 함께 에이스 선발 [[투수]]로 일컬어졌었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10월 [[박동희 (기자)|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112 "김엽 “파워 커브처럼 낙차 컸던 내 인생”"]</ref> 신인 당시 입단 체격 184 cm 84kg의 균형잡힌 몸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잇달은 음주와 무릎 부, 군 복무 후유증으로 몸무게가 무려 122kg까지 불어났고 2010년 말 삼성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옥산초등학교와 경운중학교를 거쳐 [[대구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진웅은 [[1997년]] 3학년 시절, 제19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대구고등학교]]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대회 최우수 선수도 수하였다.
         [[1998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8년]] 강속구를 자랑하던 유망주로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고, 첫 해에는 별다른 성적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해 [[1999년 한국프로야구|1999 시즌]]에는 평균 자책점이 5.40으로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11승 13패를 기록하면서 가능성 있는 [[투수]]로 평가받으며 성장하였고,150킬로의 공을 던질 수 있는 몇 안되는 국내투수로 차세대 삼성 에이스로 기대받았다. 이후 프로 입단 3~4년차 [[2000년 한국프로야구|2000 시즌]]과 [[2001년 한국프로야구|2001 시즌]]에 자신의 프로 야구 최고 기록을 세우면서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였다.<ref>[[마이 데일리]] - 2009년 2월 기사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2111413402223 "프로 야구 27년, 10승 투수들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ref><ref name="osen1">''[[OSEN]]'' - 2009년 9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909130033 "김진웅, 내년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ref><ref name="osen2">''OSEN'' - 2010년 4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1004170003 "'왕년의 에이스' 김진웅, 잃어버린 자존심 되찾을까"]</ref><ref name="hankooki1">[[한국일보]] - 2010년 2월 기사 [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1002/h2010020806284491670.htm "김진웅, 올 반드시 1군 컴백"]</ref><ref name="hankooki2">한국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1008/h2010082517175191670.htm "삼성 김진웅 1군 복귀가 보인다"]</ref> 특히 [[2001년]]에는 [[임창용]], [[배수]]와 함께 삼성 선발 [[투수]] 3인방으로 활약하며 팀이 [[KBO 리그 연도별 팀 순위|정규 시즌 1위]]를 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ref>''OSEN'' - 2010년 2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1002060004 "삼성, 올 시즌 10승 투수 5명 배출 도전"]</ref> 그러나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두산 베어스]]를 대로 삼성이 앞서던 와중에 끝내 역전을 당하며 11:18 이라는 점수로 대패하는 등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ref>마이 데일리 - 2009년 2월 기사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2100947112224 "삼성 김진웅과 한국시리즈의 남다른 악연"]</ref><ref>[[일간 스포츠]] - 2010년 8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473660 "승리를 원하는가, 외국인 선수를 길들여라"]</ref> [[2002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2년]]부터 조금씩 하향세를 보이다가<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32&aid=0000088727 김진웅 ‘깜짝 선발’삼성 승부수] - 경향신문</ref> [[2005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5 시즌]] 도중 [[팔꿈치]] 부을 당하며 시즌을 마감했고, 재활군에 머무르다가 도미하여 [[2005년]] [[10월 13일]] 조브 클리닉에서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ref name="osen1" /><ref name="hankooki1"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130428 심정수, 어깨 부으로 아시아 시리즈 불참] - 연합뉴스</ref>
         팔꿈치 수술 후 [[2005년]] 11월에 입대하여 [[대구광역시|대구]] [[북구 (대구광역시)|북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군복무]]를 하였는데, 복무 기간 동안 자기관리 실패로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 또 다른 부이 찾아왔다. 소집 해제 후 [[2008년]] 소속 구단에 복귀했으나 [[무릎]] 통증으로 인해 다시 재활군에 머무르며 힘든 훈련 생활을 하였다.<ref name="hankooki1"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21581 지승민·김진웅 등 '흘러간(?) 삼성 투수들' 재활 안간힘] - 매일신문</ref> [[2009년]] 시즌 후 연봉 협 때는 1억 3,500만 원에서 3,500만 원으로 74.1% 대폭 삭감되었다.<ref name="osen2" /><ref>[[데일리 노컷 뉴스|노컷 뉴스]] - 2009년 1월 기사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029677 "삼성 왕년 에이스 김진웅, 연봉 1억 원 삭감"]</ref>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10 시즌]]부터 [[한국 프로 야구 퓨처스 리그|퓨처스 리그]]에서 꾸준히 선발로 등판하며 부활을 노렸지만<ref name="hankooki2" /><ref>[[박동희 (기자)|박동희]]의 라디오볼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447 2010년 8월 기사]</ref> [[2010년]] 시즌 후 결국 방출 통보를 받았다.<ref>[http://sports.chosun.com/news/utype.htm?id=201010220100221710010858&ServiceDate=20101022 삼성 김진웅, 끝내 자리 못 잡고 방출] - 스포츠조선</ref>
         |1999 ||30 ||11 ||13 ||0 ||171 2/3 ||173 ||89 ||144 ||115 ||103||5.40 ||<ref name="era">마이 데일리 - 2009년 5월 기사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5071222422223 "공 하나에 웃고 울고… 승리 투수, 행운과 불운 사이"]</ref>
         * [[배수]]
  • 나씨 . . . . 17회 일치
         |관향 = [[경북도]] [[의성군]]
         '''안정 나씨'''(安定 羅氏)는 [[경북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국운이 다함에 나천서는 아들 합문지후(閤門祗候) 나직경(羅直卿)과 함께 식읍지(食邑地)이며 고향(故鄕)인 안정(安定)으로 퇴거하여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고려의 [[재]](宰相)으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節義)를 지키다 졸(卒)하고 [[해망산]](海望山) 계좌(癸坐)에 묻혔다.
         안정(安定)은 [[경북도]] [[의성군]] 지명이다. 신라시대에 아시혜(阿尸兮) 또는 아을혜(阿乙兮)로 불렸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안현현(安賢縣)으로 고쳤으며, 940년(고려 태조 23)에 안정현(安定縣 : 安貞縣)으로 개칭하였다. 1390년(공양왕 2)에 감무를 두고 비옥현도 함께 관할하였다. 1421년(세종 3) 안정과 비옥을 합쳐서 안비현(安比縣)으로 개칭하였다가, 1423년(세종 5) 비안(比安)으로 고쳤다.
         * 나식(羅湜, 1498년 ~ 1546년) : 자는 정원(正源), 호는 장음정(長吟亭). 아버지는 창릉참봉(昌陵參奉) 세걸(世傑)이며, 어머니는 풍양조씨(豐壤趙氏)로 대사헌 익정(益貞)의 딸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다. 1534년(중종 29) 사마시에 합격하여 선릉참봉(宣陵參奉)이 되었다가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 때 윤임(尹任)의 일파로서 이휘(李煇)의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 흥양(興陽)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강계(江界)로 이배된 뒤 사사(賜死)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49세였다. 1568년(선조 1) 의정 이준경(李浚慶)의 소로 신원(伸寃)되었다. 저서로는 『장음정집』 3권이 있다.
         * [[나급]](羅級, 1552년 ∼ 1602년) : 1585년에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한성부참군·병조좌랑·성균관전적·한산군수·공주목사로 난중의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였고, 1600년 평산부사로 나갔는데 마침 관하(管下) 서리의 죄를 심하게 다스린 것이 월권행위로 고발되어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사후 임진왜란 때의 공로로 도승지에 추증되었고, 아들 나만갑(萬甲)의 공훈에 의하여 의정에 추증되었다.
         * [[나만갑]](羅萬甲, 1592년 ∼ 1642년) : 조선 자는 몽뢰(夢賚), 호는 구포(鷗浦). 나급의 아들. 인조반정 후 순릉참봉(順陵參奉)이 되고 통덕랑으로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수찬을 지내고,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종사관이 되어 왕을 따라 강화도에 가서 풍기를 바르게 하고 도민을 서로 경계하게 해 범죄를 엄하게 다스렸다. 이듬해 환도해 병조정랑·수찬·지평 등을 역임하고, 1631년 부수찬·헌납, 1634년 홍주목사를 역임하고, 이듬해 형조참의에 올랐으나 시폐(時弊)에 대한 소를 하다가 파직당하고 고향에서 은거 생활을 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공조참의·병조참지로서 관향사(管餉使)가 되어 군량 공급에 큰 공을 세웠다. 저서로는 『병자록(丙子錄)』과 『구포집』이 있다.
         * [[나홍좌]](羅弘佐, 1649년 ∼ 1709년) : 1699년 어대장을 거쳐 한성좌윤에 임명되고 이듬해 포도대장이 되었다. 외직으로는 중화부사(中和府使)·서흥현감·봉산군수·여산토포사(礪山討捕使)·숙천부사·춘천방어사·정주목사·해미현감·흥부사·함경남도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삼도통제사에 제수되었다.
         * [[나원찬]] : 외교통부 본부 대사
         * [[나천]](羅尙天) : SK텔레콤 임고문
         * 나동현(대도서관) : 'Google' 소속 플랫폼인 'Youtube(유튜브)' 와 'KAKAO' 회사에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인 'KAKAO TV' 에서 활동하며 개인 법인 회사 '엉클대도' 의 CEO이자, CJ E&M 과 DIA TV 의 대표 크리에이터이다.
         나급(羅級) 나만기(羅萬紀) 나만섭(羅萬葉) 나만(羅萬盈) 나성록(羅星祿)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17회 일치
          * 오버홀은 이들이 [[서 나이트아이]]의 인턴들이란건 모르나 에리의 존재가 노출된 탓인지 그들의 신에 대해 파악하려고 탐색적인 태도를 취한다.
          * 에리는 오버홀이 준비하고 있는 "계획"의 "핵"으로 수한 실험실 같은 곳에 갇힌다.
          * [[토오가타 밀리오]]는 패트롤에 들어가기 앞서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원래 패트롤은 직장체험에서도 실습하는데 미도리야는 [[빌런연합]]의 개입으로 그럴 기회가 없었다. 밀리오는 [[서 나이트아이]]가 오버홀에 대해서 경고하긴 했지만 실제 용의자를 추적하는건 나이트아이의 몫이고 그들은 통 패트롤 활동만 하는 거라며 긴장을 풀어준다.
          밀리오는 히어로 코스튬을 입고 마을에 나온 이 자신들은 히어로라는 점을 강조하며 패트롤 활동을 시작한다.
          * 그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분명 나이트아이가 추적중일 요주의인물, "핫사이카이"의 "치사키"라는 남자, [[오버홀]]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는 "에리"에 대해서는 자신의 딸이라고 소개하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 그녀의 부에 대해서는 "한창 놀 나이라 자주 다친다"며 사람 좋게 웃기까지 하는데. 그와 대조적으로 미도리야는 경악한 표정을 감추질 못한다.
          * 밀리오는 곧바로 황을 파악한다. 그는 미도리야의 히어로 마스크를 고쳐씌워주는 척하며 표정을 가린다. 그가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짓고 있으면 오버홀이 쓸데없이 경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리오는 오버홀의 "좋은 사람" 연기에 맞춰준다. 그의 마스크를 칭찬하며 핫사이카이 사람인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오버홀은 핫사이카이 사람이 맞다며 마스크에 대해선 더러움에 민감해서 쓴 것 뿐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 혼낸 직후라서도, 오버홀은 틈도 주지않고 곧바로 대답한다. 밀리오는 다시 한 번 미도리야에게 쓸데없이 떠보려 하지 말라고 작게 말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움직이지 않는다. 오버홀이 "놀다가 다쳤다"고 말한 붕대에 대해서도 "놀다가 다친 수준이 아니다"고 걸고 넘어진다. 오버홀은 그것도 자주 넘어진다고 다시 억지를 쓴다. 미도리야는 순순히 소녀를 보내줄 생각이 사라졌다. 에리는 분명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황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웃음기가 사라진 오버홀은 "자신의 평범을 남의 가정에 강요하지 마라"고 쏘아붙인다. 밀리오는 의도와 다른 미도리야의 행동에 곤란해한다. 이대로 경계심을 늘리면 더욱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고 나이트아이의 수사에 지장이 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무난하게 넘기는 쪽"이 더 의심받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미 너무 부자연스러운 황이다.
          * 팽팽하게 긴장된 황은 오버홀의 한숨과 함께 종료된다. 그는 자기가 졌다는 듯이 "히어로는 정말 남의 사정에 민감하다"고 물러난다. 그는 부끄러운 이야기라며 보는 눈을 피하고 싶으니 이쪽으로 와달라며 골목으로 들어선다. 황이 이렇게 되자 밀리오도 그냥 가는건 포기한다. 그는 미도리야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자신이 대처하겠다고 신호한다. 어차피 이제와서 에리를 놓고 갈 수도, 데리고 갈 수도 없는 황이니까. 미도리야는 에리를 안은 채 오버홀을 따라 들어간다.
          * 에리는 그토록 놓지 않았던 미도리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그녀는 막 화가 풀린 꼬마처럼 금방 아버지, 오버홀 옆으로 달려간다. 미도리야가 당황하는 사이 오버홀은 평범한 부녀처럼 "이제 고집 부리는 건 끝났냐"고 말을 건다. 에리가 끄덕이자 오버홀은 "폐를 끼쳤다"는 말을 남긴 채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진다. 미도리야는 말없이 사라지는 에리를 따라 쫓아갈 것 같지만, 밀리오가 말린다.
          >웅증후군에 걸린 놈들.
          >부탁이니 이 이 내 손을 더럽히게 하지 말아주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17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41. '''핫사이슈:비하인드'''
          * 선 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자신의 개성을 십분 발휘해 철포옥 핫사이슈을 몰아붙인다.
          * 타마키가 전황을 바꾸려 할 때마다 세츠노가 "절도"로 맥을 끊으며 황은 완전히 역전, 타마키가 제압 당하는 흐름으로 간다.
          * 이들은 각자 인생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고 완전히 절망했으나 [[오버홀]] 치사키가 내민 손길로 완전히 세뇌된 태.
          * 타마키는 이들의 연계를 역으로 이용, 세츠노를 무력화시키고 호죠의 결정까지 씹어먹어 쇄한다.
          * "태양 조차 먹는 자". 선 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먹은 것을 재현하는 개성"을 최대로 활용한다. 호죠의 "결정"은 조개 껍질로도 막기 어려운 강력한 공격. 그러나 문어 다리의 강한 근육으로 팔을 강화, 그 끝을 조개껍질로 감싸서 호죠의 주먹을 틀어막는다. 호죠가 대단한 활용이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라며 뿌리친다. 타마키도 그저 저지할 생각만은 아니다. 그가 웅에서 2년 반 동안 쌓은 건 그정도가 아니다. 사이즈 변화, 복수동시 재현, 특징 자유선택. 그가 익힌 모든 기능. 그 모든 것을 아우른 필살기.
          그 목소리에 반응해 타베가 일어난다. 타베의 개성 "식". 문자 그대로 모든걸 먹는 개성. 어떤 것이든 씹을 수 있는 턱과 이, 먹자마자 소화시키는 위장. 타마키의 강화된 문어 다리 조차도. 타베는 "맛있다"면서 삶은 문어처럼 씹어삼킨다. 세츠노가 그 꼴을 보며 "타베의 배가 차는 일은 없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의 말처럼 타베와 타마키, 둘의 "성"이 아주 좋았다.
          * 타베의 개성은 예 밖이었고 그가 먹어치운 문어다리도 아팠다. 이레이저 헤드가 이 녀석을 쓰러뜨린 것도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다. 움직임을 회하는 걸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한 순간 세츠노의 "절도"가 방해한다. 얼굴을 감싸고 잇던 조개껍질을 뜯겼다.
          * 그대로 넋 놓고 쓰러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타베가 문어다리를 밑동만 남기고 먹어치웠다. 놀라운 속도다. 여기서 타마키는 생각을 바꾼다. 그렇게 먹고 싶다면 놔두기로. 문어의 타액엔 신경독이 있다. 신경독이 듬뿍들어간 문어다리를 먹인다면... 타마키는 문어다리에 신경독을 재현하고 물어뜯기를 기다렸다. 먹으면 그대로 끝. 하지만 이마저 실패. 또 세츠노다. 문어다리가 작아진 만큼 그가 "절도"하기엔 충분한 사이즈였다. 작전은 실패하고 호죠가 거대하게 경화시킨 팔로 타마키를 벽에 처박는다.
          * 이제 전세가 뒤집혔다. 타마키를 몰아넣은 철포옥 핫사이슈. 붙잡힌 마당이지만 타마키도 "물 흐르는 듯한 연계"였다며 그들의 전술을 인정한다. 호죠는 이를 "쓰레기 나름의 굳건한 유대"라고 말한다. 타마키는 설사 자신에게 이겨도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고 경고한다. 설사 [[오버홀]] 치사키가 도주해도 남겨진 그들은 구속될게 뻔하다.
          이들은 오버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뇌에 가까운 경애다. 이들은 써먹히고 버림받길 바란다. 타마키가 그 점을 지적하자 호죠는 어차피 히어로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대화를 끊는다. 그리고 벽과 자신의 결정 사이에 낀 타마키를 향해 결정타를 가한다.
          * 호죠의 결정타는 타마키에게 닿지 않았다. 자기 자신의 결정에 쇄돼서. 타마키가 그의 결정을 삼켰던 것이다.
          >그저 서로 이용할 뿐인 사이가 아닌...
         한 주 휴재 후 정연재. 작가 건강 의 문제였다고.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17회 일치
          * 위항목: [[대한민국 FA컵]]
         || 금 || 3억원 ||
         = 대회세 =
         예선라운드는 [[K리그 클래식]]을 제외한 71개 팀을 대으로 진행되었다. 세는 소항목을 참고.
         1라운드는 총 28개 팀에게 참가자격을 부여하였으며, 그 세는 아래와 같다. 참고로 대학이름 앞에 붙은 지역명은 해당 캠퍼스가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 K3리그팀: 양평FC, FC 의정부, 부여FC, 전남 광FC, 고양시민축구단
          * 대학팀: 서울숭실대, 강원한라대, 서울연세대, 강원지대, 대전한남대, 충북건국대, 충북청주대,
          * 대학팀: 경북남대, 경기용인대, 경기성균관대, 인천인천대, 충북건국대, 강원한라대, 강원지대, 충남단국대, 서울연세대, 대전한남대, 서울고려대, 경기경희대(남)
         경기는 각 팀이 속한 리그의 사정을 고려하여 4월 23일부터 5월 3일 사이에 치뤄졌으며, 본선 티켓을 확보한 팀은 다음과 같다.
          * 대학팀: 충남단국대, 충북건국대, 경기성균관대, 경북남대
         || 58 || 2016년 05월 11일 || [[성남FC]] || : || 경북남대 || 1:0 ||
         || 63 || 2016년 05월 11일 || [[무]] || : || 충남단국대 || 1:2 ||
         대략적인 평가는 늘 그래왔듯이 이변이 속출하였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K리그 클래식 팀 중에 절반에 가까운 5개팀이 탈락하였으며, 총 16경기 중에 하위리그팀이 위리그팀을 잡아먹은 경기가 4경기가 나옴에 따라 하극 비율이 25%나 되었기 때문. 다만, 대진운 때문에 내셔널리그팀은 본선에 진출한 5개 팀들 중 리그 1위인 용인시청만 살아남게 된 반면에 K3리그팀인 경주시민축구단은 같은 K3리그팀인 포천시민구단을 이기고 올라오는 등 선전을 보였다.
  • 마기/303화 . . . . 17회 일치
         알리바바는 신드바드와 회로서 첫대결에서 완패를 당한다.
          * 알리바바는 자신이 신드바드와 회로서 라이벌이라는 말에 당황한다.
          * 그러면서 회의 미래는 세 가지 밖에 없다고 일러주는데
          * 첫째는 남들만큼 벌지 못하고 무너져 사라지거나, 다른 회에 흡수 당하면서 살아남거나
          * 신드바드는 장사치의 세은 냉혹한 것이며 자신은 한 번의 실패로 노예신분까지 떨어져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 2형 팔괘찰을 써서 냉기로 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1형 팔괘찰은 배의 연료로 쓴다.
          * 황제국 내부에서는 전송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생산지에서 항구나 국경지대로 전송마법진을 사용한 다음, 거기서부터는 배나 육로를 통해 통의 무역거래를 하는 것이다.
          * 홍명은 알리바바가 교섭하고 다니던 사이에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알리바바가 이런 황을 예측했냐는 질문에, '''과거 역사에 비추어 봐서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 싶었다'''고 답한다.
          * 그 자리에 일던 일동은 자신들이 불과 3년 전 침략국으로서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은 사실을 인정하며 대국들의 반응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 알리바바는 황제국이 더이 침략 의사가 없고 업국가로서 활동한다는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 잠시 후 홍명과 알리바바는 독대하는데, 침울해하는 듯한 알리바바에게 홍명은 신드바드가 만든 세의 이치에 대해서 설명한다.
          * 이런 대와 싸워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키며 이번의 정보 유포도 신드바드를 탓할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 그때까지 풀이 죽은 것처럼 보였던 알리바바는 "재미있는 세이다"라고 말하며 '''"정보가 무기가 된다면 황제국에 좋은 정보를 뿌리는 걸로 단숨에 역전할 수 있다"'''는 발을 해낸다.
          * 알리바바는 오히려 '''지금 세에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예감한다.
  • 마기/312화 . . . . 17회 일치
          * 알라딘은 물리법칙을 조작하는 마법을 구사하는데 연백(아르바)는 "제 아비와 같다"고 경악.
          * 아르바는 소용없다는걸 알면서도 알라딘에게 돌진, 이 세 조차도 솔로몬의 오만의 산물이라고 악담한다.
          * 알라딘은 아르바를 압도하고 제압, "연금마법"으로 백의 육체를 아르바의 자식이 아닌 새로운 육체로 치환시켜 아르바의 정신을 쫓아낸다.
          * 이제 이세엔 아르바가 갈아탈 육체가 없고 이세계에 있는 본체만 제거하면 되는데, 아르바는 전갈의 모습이 되어 연백룡의 육체를 빼앗으려 한다.
          * 백룡은 이 태의 알라딘은 누구도 건드릴 수 조차 없다고 하는데 그 말대로 알 사멘의 모든 공격이 닿지도 않는다.
          * 아르바는 믿기지 않지만 일단 이 태의 알라딘은 누구도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한다.
          * 그녀는 "솔로몬의 오만을 원히 간하겠다"고 맹세하는데 알라딘은 솔로몬은 죽었고 솔로몬이 만든 세이라 해서 솔로몬 자신이나 아르바의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 알라딘은 백을 돌려받겠다는 말과 함께 아르바의 몸을 붙든다.
          * 현재 백은 겉보기엔 변화가 없지만 실제론 완전히 다른 인체로 치환된 태. 루프는 그 안에 잠들어 있다.
          * 백룡은 시스콤끼가 발동해서,백을 껴안고 있는 알라딘을 견제. 아르바의 정신체의 본체를 처리하고 누님을 맞이하러 가겠다고 다짐한다.
          * 하지만 이제 백의 몸을 치환시켜서 아르바가 갈아탈 몸이 사라진 것.
          * 백룡과 알라딘은 이에 안도하지만 알라딘이 백의 가슴을 성추행하려고 하자 제지당한다.
          * 이들이 티격대는 사이한 전갈이 백룡에게 접근하는데.
          * 가슴을 만지는 나쁜 버릇은 고쳐지지않은듯(..) 백의 가슴을 성추행하려고 하자 백룡이 견제한다.
  • 마기/341화 . . . . 17회 일치
          * 알라딘은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신드바드는 그가 실제론 다른 사람들의 향을 받아 그들의 뜻대로 행동한다고 지적한다.
          * 알라딘은 솔로몬이나 우고, 시바여왕의 향을 받은 점을 인정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향도 받았고 그건 자신을 조종한게 아니라 "진화"시켰다고 주장한다.
          * 혼자서 두 마장을 대해야 하는 알라딘. 제파르는 소리마법을 사용하는데 이것을 사용해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걸기도 한다. 알라딘은 신드바드의 마법은 힘마법 "조르프"로 받아내지만 세렌디네 쪽에 당한다. 신드바드와 세렌디네의 마법이 공명하며 울려퍼진다.
          >부조리한 세에서 인간은 자기 의지로 살아야 하는가? 남을 따라야 하는가?
          신드바드의 말대로 알라딘은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는 그것을 매그노슈타트에서 배웠다. [[마타르 모가메트]] 학장은 절대적으로 옳은 인간은 있을 수 없다며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더라도 모든 걸 맡기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신드바드는 매그노슈타트 사건을 회하며 잠시 그리움을 느끼지만 곧 안색을 바꿔 "정작 너는 남에게 내맡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 마기로서 사는 알라딘의 삶은 자신의 의지하고는 무관하다. 그건 솔로몬 왕, 그리고 [[우고(마기)|우고]]가 정한 일이다. 알라딘이 지키고자 하는 세도 결국 솔로몬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매달리는 것, 결국 남의 삶과 남의 의지에 따르고 있을 뿐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의지"로 살라고 말하는 알라딘은 철저하게 남의 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신드바드가 는 소리마법으로 그 사실을 신랄하게 전달한다. 알라딘은 소리마법에, 신드바드의 허를 찌르는 지적에 찍어눌러진다.
          * 하지만 신드바드의 예과 달리, 알라딘은 그런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은 솔로몬, 우고는 물론 알리바바, 모가메트,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 그리고 신드바드에게 많은 향을 받아왔다고 말한다. 신드바드는 예했던 것과 다른 반응이 나오자 잠시 당황하지만 곧 코웃음을 친다.
          알라딘의 말은 이어진다. 그는 "내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고 인정하며 처음엔 루프의 인도에 따라 주어지는 대로만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의 향을 받으며 그는 변했다. 사고방식은 변한다. "다른 누군가"와 만날 때마다. 신드바드는 "그럼 결국 누군가에게 끌려가야만 한다고 말하는 거냐"고 반박한다.
          알라딘은 세을 모른 채 우고와 성궁에서 지내던 시절을 떠올린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기계 같은 대답만 하는 우고를 대로 살았다. 그 삶은 얼마 가지 못해 한계에 부딪혔고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지금 알라딘은 그게 왜 그토록 괴로웠는지 분명히 안다.
          >그 누구의 향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 대답 속에는 알라딘이 지에서 만났던 모든 인연, 모든 사건이 녹아들어 있다. 신드바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지만 그 또한 지난 생애에서 만났던 모든 인연과 소중한 것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그가 신이 된 다음엔? 아무도 없고 그의 예을 벗어난 일 조차 일어나지 않는 이런 곳에서, 그야말로 무한한 시간을... 알라딘은 그런 걸 아무도 버틸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냐고 질문한다.
  • 마기/350화 . . . . 17회 일치
          * 우고는 세을 하나로 만들 정도의 연결이라면 거대한 마고이가 소모되나 교류하는 정도의 규모라면 적은 마고이로 가능할지 모른다고 의견을 정정한다.
          * 신드바드는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완전히 정지시키고 알리바바 일행은 세을 구하는데 성공한다.
          * 지금까지 신이라고 여겨온 일 일라, 그 존재와 동맹을 맺는다. [[알리바바 사르쟈]]가 내놓은 "새로운 작전"에서 시작된 논의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더한 아이디어로 맺음된다. [[우고(마기)|우고]]는 지금껏 신적 존재들은 숭배의 대이거나 타도의 대, 둘 중 하나에 불과했다고 말하고 [[알라딘(마기)|알라딘]]은 어째서 아무도 이런 발의 전환을 못했던 거냐고 의문시한다. 알리바바는 신드바드가 이런 생각을 해낸 거라며 굉장하다고 칭송한다.
          * 그런데 아이디어를 낸 신드바드는 암담한 기분이다. 그는 해결책을 제시하고도 크게 낙담하는데, 지금껏 자신이 진행하던 작업은 그토록 증오했던 "군국주의적 방법론"이었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운명을 쥐고 있는 존재들은 적이고 타도해야 한다. 그는 세이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게 싫어서 칠해연합을 만들었고 국제동맹으로 전쟁이 없는 세을 만들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작 지금에 와서는 어떤가? 입으로는 혁신가를 자처해왔지만 결국 그도 알마트란 때부터 이어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서 벗어난 것은 타인의 의지, 알리바바 덕분이다. 그는 지금껏 운명을 꿰뚫어보고 만인을 이끄는게 "특이점"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사고가 타의에 의해 변했다면? 오히려 자신이 그에게 끌려가는게 당연해지는게 아닐까?
          그런데 우고는 이제와서 세삼 발언을 번복한다.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가 불가능하다고 했던건 규모 때문이었다. 알리바바가 주장한대로 모든 벽을 부수고 세을 통합하려면 엄청난 마고이가 필요한게 필연. 그러나 작은 구멍을 뚫어서 교류하는 정도라면 적은 마고이만 가지고도 그럭저럭 가능할지도 모른다. 알라딘 일행은 깜짝 놀라며 "그럼 왜 지금껏 하지 않았었냐"고 묻는다. 우고로선 억울한 지적이다. 생각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일 일라 같은 존재와 대화를 시도하는걸 어떻게 떠올릴 수 있을까? 게다가 이런 방법은 지금껏 실험해본 적도 없으니,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의 역일 따름이다.
          그는 이 자리에 모인 다섯 사람, 각기 세을 좋게 만들기 위해 살으나 따로따로 흩어져 있던 이들이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지금 도출된 "불가능한 대사업" 때문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 대사업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야 말로 필연, "운명"이라 불러야 한다.
          * 신드바드는 우선 할 일이 있다며 손을 뻣자 미궁이 심치 않게 진동한다. 알라딘이 뭘하는 거냐고 묻자 그가 답한다.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이다.
          알라딘과 알리바바가 경악해서 그만두라고 외치는데 사실 이건 세이 루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태양은 먼 산 위에 걸린 채로 멈춘다. 신드바드가 알리바바의 제안을 타당하다 여기고 작동시키고 있던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정지시킨 것이다.
          그 말은 이제 세이 멸망하는 것을 피했다는 것이 된다. 알라딘과 알리바바가 환호한다.
          * 이런데 분명 마법은 멈췄을 터인데, 주변의 루프가 심치 않다. 이변은 계속되는 건가? 이것은 신드바드도 알 수 없는 반응이다. 바깥에선 먼산에 걸려 있던 해가 그대로 저물어 버린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깜깜한 밤으로 변하는데,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백룡과 쥬다르는 그저 아연한 표정으로 성궁이 바뀌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 문문 . . . . 17회 일치
         ||<:><#ace5ee> '''문명''' ||<rowbgcolor=#ffffff><(> MoonMoon ||
         ||<:><#ace5ee> '''본명''' ||<rowbgcolor=#ffffff><(> 김신 ||
         대한민국의 前 [[싱어송라이터]]이자 [[성범죄자]]. 본명은 김신.
         '비행운'이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을 하며 인기를 얻게 되면서 2017년 12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 하우스 오브 뮤직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화장실]] [[몰카]]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의 명성에 먹칠을 하면서 경력이 사실 끝났으며 소속사인 하우스 오브 뮤직과도 계약 해지되었다.
         비행운의 가사 중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이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의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과 비슷하다며 표절 시비가 붙었었다. 제목도 똑같은 데다, 노래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반박의 여지가 적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가사 전체나 노래 자체가 표절된 것은 아니고 한 소절을 변형한지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오마주]]나 [[패러디]]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소설이나 인문학계에서는 존경하는 이의 글에서 이름을 따온 뒤 구절이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의 단어 위치를 재배열하거나 변경함으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문장 구성은 같지만 주로 [[주어]]를 바꾼다. 하지만 존경의 의미로 인용했다면 허락을 구하는 건 당연한 자세다. 진정으로 존경해서 인용한 건지 의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774327|인터뷰]]에서 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음원 발매 사전에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황이였고 문제가 된 후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구했다고 답했다. 논란이 터지기 전엔 인스타로 악플러의 덧글을 캡쳐해서 저격했다가 논란이 되고나서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디스패치 취재 결과 지난 2016년 8월 몰카 촬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확인되었다. 강남의 한 공용 화장실에서 여성을 몰래 촬하다 적발 되었으며, 혐의를 일부 인정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하우스오브뮤직과의 전속 계약 당시 이 사실을 숨기고 계약을 맺었으며, 소속사는 2018년 5월 24일 문문과의 전속 계약을 해지했음을 밝혔다. [[https://www.dispatch.co.kr/1314350|기사]]
         기존의 팬들조차 대다수가 ‘실망이다,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문문의 팬카페 또한 폐쇄된 황이다.
         전 여자친구를 많이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애월'만 해도 가사에 여자친구와 제주도 애월에 여행갔던 기억이 담겨있고, '아침'은 여자친구와 아침산책 하면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 그의 대표곡인 '비행운'도 전 여자친구가 해준 말에서 감을 받아 만든 노래라고 하니 말 다했다. 심지어 'Roach' 후렴구 부분은 문문의 전 여자친구가 피쳐링도 해주었다.
         사실의 은퇴곡 이름이 에덴인데 얼마 뒤 몰카 사건이 터지면서 음악인생이 정말 에덴동산으로 갔다.
         ||<rowbgcolor=white> 01 || 하 || 3분 19초 ||<|10><-2> 문문 || 문문 ||
         ||<rowbgcolor=white> 02 || '''인디''' || 3분 26초 ||<|2> 문문, 잇 ||
         ||<rowbgcolor=white> 06 || '''사람없인 사람으로 못 살아요''' || 3분 7초 || 문문, 잇 ||
         ||<rowbgcolor=white> 10 || 파랑새 || 2분 55초 || 문문, 잇, 주보링 ||
         ||<rowbgcolor=white> 01 || '''애월''' || 4분 37초 ||<|5><-2> 문문 ||<|5> 문문, 김철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width=50%><#9370DB><-2> {{{#FFF '''곡 제목'''}}} ||<width=25%><#FF7F00> '''[[TJ미디어|{{{#ffffff 태진}}}]]''' ||<width=25%><#DC143C> '''[[금노래방|{{{#ffffff 금}}}]]''' ||
  • 박옥수 . . . . 17회 일치
         [[대한민국]]의 [[종교인]]. [[개신교]] 계통 [[신흥종교]]인 [[기쁜소식선교회]]를 운하고 있으며, 산하 단체로 국제청소년연합(IYF)을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음력]] [[1944년]] [[6월 2일]] 출생이며, 출생지는 [[경북도]] [[구미시]].
         기쁜소식강남교회[* [[경부고속도로]]에서 [[서울특별시]]로 올라올 때 보이는 그 [[교회]]이다. 참고로, 이 교회 건물은 불법건축물이라고 한다. [[그린벨트]] 내에 건축제한이 있는데, 그걸 큼하게 씹어먹은 것. 서초구청에서 강제 집행을 하려고 했었으나, 교인들이 죄다 나와서 막았다고...] 담임[[목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나, 국내외 기성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적도 없고, 한국에 구원파 [[신앙]]을 들여왔다고 불리는 미국인 [[선교사]] 딕 욕에게 안수를 받았다는데, 이에 대해서조차 논란이 있다.[* 문제는 이 선교사가 공식 선교사거나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도 아닌 등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자세한 것은 [[구원파]] 참조. 게다가 딕 욕 본인은 안수를 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목사안수 논란 문단을 볼 것.] 물론 어디까지나 [[신흥종교]]인 만큼 해당 교단 내에서 쓰는 직급으로 볼 수는 있다.
         핵심교리의 해석 차이만 있는 경우라면 일단 [[개신교]]부터 먼저 [[가톨릭]]으로부터 그런 식으로 갈라져 나온 교파이기에 도찐개찐이다. 문제는 박옥수측이 주류 개신교단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은 교회라 홍보하는 것. 구원파 신도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이비 종교]]라고는 하기 어렵고 주류 개신교단과는 다른 [[이단]]이라 보면 된다. 하지만 아래의 또별 사건에서 볼 수 있듯 내부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예수교장로회연합회라는 단체에서 발표한 [[정통과 이단]]이라는 책자에서는 이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만든 사람이 친이단인사로 유명한 사람이고, 주류 개신교단 입장에서는 정적인 비평으로 볼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8592|참조]].] 결국 교단 측에서 이단 옹호책자로 완전히 털리고 책 자체가 완전 폐기되었고 예장연 측에서도 이 책의 내용을 공식 부정하고 있다.
         박옥수는 지난 45년간 딕욕 선교사를 통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딕욕 선교사는 “박씨에게 안수를 준 적 없으며 목사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이라 답했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는‘Shield of Faith Mission’ 선교학교에 입학(1962~1964년) - 딕욕, 말론 베이커 등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하는 신학교 졸업, 딕욕(Dick York) 선교사로부터 목사 안수(1971년)라고 게시되어 있다. 하지만 딕욕 측이 운하는 ‘믿음의 형제들’ 홈페이지에는 박씨에게 “안수를 준 적이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자신(박옥수)이 자신에게 안수를 준 것”이라 덧붙였다.
         >제가 박옥수에게 ‘목사’안수를 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웹사이트에도 게시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목사’라는 직위는 제가 반대의 권면을 했음에도 그 자신이 붙인 것입니다.''' 그의 직위에 대한 신임장은 없으며 그러니까 '''그 자신이 자신에게 안수를 준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교회와 교회의 체계는 그와는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목사에 대한 관점은 그와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 질문에 대한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그 주제는 나중에 언제 더 얘기하기로 하겠습니다.
         [[http://www.cbs.co.kr/cbsplayer/2011/live.asp?xnum=NOCUT_MOVIE&xkey=2011/07/06134514609_61200040.wmv&url=http%3A//christian.nocutnews.co.kr/show.asp%3Fidx%3D1850923|관련 뉴스 동]]
         박옥수의 교회인 기쁜소식선교회에서는 신도가 운하는 기업 운화의 제품인 또별~~[[무안단물]]~~이라는 식품을 마치 의약품이자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홍보하였다. [[산삼]]배양근 등에서 추출한 식물 [[줄기세포]]를 함유했다는 이 제품은 허가조차도 건강기능식품이나, 음료(차류)로 받은 제품이다. 박옥수는 이를 직접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약품처럼 과대 광고를 했던 것이다.[* 의약품이 아니므로 구체적인 질병 치료기능 선전은 건강기능식품이어도 금지된다.]
         결국 암치료를 받지 않고 또별만 먹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문제가 되었다. [[http://christian.nocutnews.co.kr/show.asp?idx=1850923|관련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4777|또 다른 기사.]] 또한 [[한국방송공사|KBS]] 추적 60분 2012년 3월 21일자 방분에서도 또별 사건을 취재한 바 있다. 추적 60분 보도 이후 KBS와 신동아에서 반론 보도를 냈다. [[http://m.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11450|기사 전문]] [[https://youtu.be/hNhIUwPlWKk|반론 보도 ]] 결국 박옥수는 식품위생법 위반으로만 벌금을 받았다고 한다. [[http://www.newsmission.com/news/news_view.asp?seq=52944|기사]]
         또별을 개발한 후 주식으로 ~~장~~[* 장한 적 없다. 주식회사로 설립하는 과정 주주로 참여했거나 비장 장외 거래로 구주 매출을 했을 것.]하여 870명의 교인들에게 주식 200억치를 판매하였다. 또별이 만병통치약으로 선전되면서 또별 개발사인 운화의 주식이 유망한 줄 알고 산 사기피해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7/11/0200000000AKR20170711109100004.HTML|관련 기사]] 피해자 측에서 [[줄기세포]]에서 추출한 기적의 약이라는 '또별'이 알고보면 그냥 ~~[[나주 성모동산|율신액]]~~녹차가루라며 사기죄로 고소하자, 박옥수 측에서는 "해당 제품에 항암효과가 있다고 홍보한 적은 없었다."라며 발뺌하였다.
  • 박홍우 . . . . 17회 일치
         대전고등법원으로 재직하던 2015년 2월 대전고등법원 제3행정부 재판장으로서 행정본안재판의 일부를 직접 맡았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서울고등법원 배석판사 시절인 1995년 시위 진압과정에서 최루탄에 도망가다가 넘어져 질식사 사망한 성균관대 학생의 유족이 국가를 대로 제기한 손해배청구사건에서 국가의 손해배책임을 인정하고 망인의 위자료를 5000만원 인정한 것과 2004년 [[세녹스]]의 석유사업법 위반 사건에서 1심에서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한 것을 들었다.<ref>[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509100056]</ref>
         * 연차유급휴가권, 재판자료 제39집: 근로관계소송의 제문제(), 법원행정처 (1987)
         *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의 기준, 헌법재판의 이론과 실제: 금랑 김철수 교수 화갑기념논문집, 박사 (1993)
         * 헌법심판절차진행중 청구인 등의 사망과 관련되는 문제점 검토, 법과 인간의 존엄: 청암 정경식 박사 화갑기념논문집, 박사 (1997)
         * 헌법 제23조 3항에 따른 보규정이 없는 경우의 문제해결방안, 한국헌법학의 현황과 과제: 금랑 김철수 교수 정년기념논문집, 박사 (1998)
         * 국회의원선거구획정과 선거권의 평등, 재판의 한 길: 김용준 헌법재판소장 화갑기념논문집, 박사 (1998)
         * 정리채권 등의 신고·조사·확정에 있어서의 문제점, 재판자료 제86집: 회사정리법·화의법의 제문제, 법원도서관 (2000)
         * 환경권의 법적 성질, 재판자료 제94집: 환경법의 제문제(), 법원도서관 (2002)
         * 미국헌법의 국교설립금지 원칙, 헌법논총 제13집, 헌법재판소 (2002)
         * 공판중심주의적 심리진행 방법, 재판자료 제104집 : 바람직한 민·형사소송 실무운방안, 법원도서관 (2004)
         * 국회의원지역선거구간 인구편차의 헌법 한계, 현대 공법의 이론과 판례의 동향, 세계헌법학회 한국학회 편, 도서출판 관악사 (2014)
         2007년 서울고등법원 재판장 시절 [[김명호 (1957년)|김명호]] [[성균관대학교]] 전 조교수의 재임용 불복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을 했다가 결과에 불만을 품은 [[김명호 (1957년)|김명호]] 전 교수로부터 집 앞에서 석궁 테러를 당했다. 이 사건을 소재로 [[2011년]] 화 《[[부러진 화살 (2012년 화)|부러진 화살]]》이 제작되었다.
  • 블랙 클로버/128화 . . . . 17회 일치
          * 선수가 모이자 마법제가 바로 시합을 셋팅한다. 각 진의 크리스탈을 스타팅 위치에, B팀의 경우 바로 이 자리, G팀의 것은 반대편에 놓았다. 시합 규칙은 "먼저 대방 크리스탈을 파괴한다"를 유지. 이의 설명을 마치고 시간 구속 마법이 해제된다. 시합 돌입.
          * 열이 오를 데로 오른 아스타와 랜길스였지만 그대로 맞부딪히지는 않았다. 둘은 동료들이 소환된 깨닫고 바로 각자 동료들에게 접근해 황을 전달한다. 아스타는 먼저 잭스와 미모사에게 이런 일을 벌여 미안하지만 랜길스를 이기고 싶으니 힘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둘은 지켜보고 있던 참이었으나 곧바로 승락. 미모사는 랜길스의 태가 이하다고 여기면서도 일단 임전태세에 돌입한다. 잭스는 명색이 마법기사들이 사적인 감정으로 다투냐고 비난했지만 "지금은 단연코 랜길스가 글러먹었으니 협력해준다"고 역시 임전태세를 취한다.
          * G팀의 프라길은 자기 거점을 지키다 불려오던 참이라 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녀가 설명을 요구했지만 랜길스는 다짜고짜 "잠자코 있어라"고 물러서게 한다. 셋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군까지 포함해 전부 쓰레기 뿐이라며 자기 혼자 힘으로 자기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겠다고 선언한다.
          * 바깥에서 관전하던 이들은 누구도 랜길스의 행동을 수긍하지 못했다. [[네르슈 버밀리온]]도 "보드가는 대체 어찌된 건가"며 개탄했다. [[릴 부아모르티에]는 아예 이해가 가지 않아 어리벙벙하다. 하지만 마르크스만은 짐작가는 구석이 있었다. 시합이 있기 얼마 전. 백야의 마안의 뒷공작을 감지한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마법제는 "무의식의 배신"이라는 추론을 냈다. 지금까지 황을 종합해 보면 백야의 마안에 협력하는 "배신자"는, 사실 자신이 백야의 마안에 협조한다는 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마법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역시 마법이 아니겠는가 의견을 냈지만 마법제는 마법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헤맸다. 어쨌든 그는 로열 나이츠 시험에서 그걸 확인하려 했다. 전장에서 강한 마력을 대로 싸우다 보면 무의식 중에 꼬리를 드러낼 거라면서. 마르크스는 마법제의 감은 잘 맞는 편이라며 "무의식의 배신자"에 대해선 납득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확인하는건 위험하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하지만 마법제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리고 지금와서 보니 어쩌면 랜길스가 그 무의식의 배신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스타는 선두에서 서서 날아오는 공간마법을 베어냈다. 그 공격 자체는 단순해서 [[매그너 스윙]]의 마구에 비하면 간단했지만 숫자가 압도적이라 조금씩 처를 입었다. 그때마다 미모사가 식물 치유마법 "희유의 꽃옷"으로 회복. 일단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랜길스는 아무리 회복마법을 걸어도 한계는 올 거라고 단언한다. 그러니 비참한 꼴을 당하기 전에 아스타가 발언을 정정하라고 강요한다.
          * 랜길스의 공세가 격해지고 아스타의 움직임으로도 전부 떨궈내는건 불가능했다. 아스타가 처를 입은 속도가 빨라지고 크리스탈에도 손이 갔다. 미모사의 회복마법은 한계에 달해 다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아스타는 거기에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랜길스는 "승자는 뭘하든 옳다"고 했다. 아스타는 핀랄이 했던 말, 언제나 구해줘서 감사하다는 아스타의 말에 "오히려 내가 구해졌다. 아스타는 반드시 마법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던 일을 떠올렸다.
          * 마르크스는 양팀의 감정대립이 더이 시합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이 싸움이 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마법제의 의중을 어떤지 짐작하지 못했다.
         == 세 ==
          랜길스의 행태에 매우 분노한 듯 보이지만 당장 아스타와 시합하겠다는 요청은 선선히 수락한다. 마르크스는 마법제가 랜길스를 "무의식의 배신자"로 의심하고 진을 확인하려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 그냥 랜길스가 개인적으로 띠껍고 아스타가 충분히 랜길스를 참교육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합을 시킨 걸로도 보인다.
          백야의 마안이 심은 스파이는 스스로 자각없이 백야의 마안에 협력하는 "무의식의 배신자"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그게 마법인지 다른 어떤 수단에 의한 건지는 확신이 없다. 로열 나이츠 시합에서는 뭔가 꼬투리를 드러낼 거라고 생각하던게 마르크스의 회으로 드러났다.
          처음 아스타의 협조 요청을 받았을 땐 "마법기사 주제에 사적인 감정으로 싸운다"고 깠지만 자기가 봐도 랜길스가 너무 막장이어서 시원하게 협조하기로 한다. 1회전처럼 아스타와 미모사가 돌격하고 자신은 후방 원호를 맡았는데 랜길스의 공세를 대로 아스타, 미모사 페어가 고전하는 동안 딱히 행동이 없다.
  • 식극의 소마/195화 . . . . 17회 일치
          * 일찍이 [[사이바 죠이치로]]는 그 천재성으로 높게 평가되었으나 워낙 기행과 임무방기가 판쳐서 실력에도 불구하고 십걸의 2석에 머물렀다.
          * 항 만들던 고급 요리를 때려치우고 괴식이나 대중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 학생들은 죠이치로가 항 하던 악취미라고 생각하고 넘겼지만 도지마와 아자미는 이변을 감지하고 있었다.
          * 우리세대 최강의 요리사는 [[사이바 죠이치로]]였다, [[도지마 긴]]의 폭탄발언에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분명 그들이 아는 당시의 십걸 1석은 도지마였고 죠이치로는 2석. 도지마는 십걸 서열은 요리실력도 보지만 학업과 공헌도 등을 두루두루 평가해 결정된다며 요리실력이야 죠이치로가 최강이었지만 정작 하는 행동거지가 막장이고 지금의 [[유키히라 소마]]를 좀 더 사악하게 업그레이드한 듯한 기행가였다. 소마의 기행을 익히 아는 두 사람은 "역시 부자는 닮는다"고 쓴웃음을 짓는데 도지마는 그 말을 듣고 "닮았다... 이건가..."라며 중얼거린다.
          >사이바 죠이치로란 요리인을 말이야.
          어쨌든 이 셋이 쿄쿠세이 기숙사의 유망주 삼인이자 여학생들의 인기도도 가장 높은 삼인조. 셋은 일과가 끝나면 따로 모여 식극을 하며 서로의 실력을 향시키고 있다. 전반적으론 죠이치로가 언제나 우위.
          * 도지마는 그 시절의 죠이치로를 비유하길 "태풍이 날뛰는 황야의 개척자"였다. 항 도전하고 있는 도지마와 아자미지만, 죠이치로의 요리를 볼때마다 항 경이와 감탄으로 충만하다. 죠이치로는 그런 두 사람을 언제까지나, 어디로나 끌고 갈 거라는 얼굴이다. 도지마는 그때까지 "은"(긴)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만년 2인자라는 표식 같아 탐탁지 않아했지만, 죠이치로와 함께라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까지 생각한다.
          >설령 두 번째라도 관없으니 계속해서 이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싶다.
          그것은 아자미도 똑같았다. 그런 미식의 탐구와 모험이야 말로 그들의 일이고 즐거움이었다.
          그들을 보는 죠이치로의 눈은 싸늘하다. 그러나 금방 웃는 얼굴로 돌아와 맡겨만 달라며 능숙하게 대처한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차가운 얼굴로 홀로 조리대에 선다. 항 친구들과 함께 하던 그 황야로 향하면서.
          * 그날 밤. 죠이치로가 신작을 시험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학생들은 너도 나도 조리실로 몰려간다. 그들은 이번엔 또 어떤 발을 가미했을지 기대하며 죠이치로의 신작을 맛 보는데, 그 리액션이 뜻밖이다.
          * 우렁찬 구토소리 때문인지 도지마와 아자미가 심치 않은 직감을 느끼고 조리실로 달려온다. 그 사이 학생들은 죠이치로가 내놓은 황당무계한 요리를 놓고 당혹한 표정이다. 마치 도마뱀 말린 것을 태워서 플레이팅한 듯한 비쥬얼. 하지만 당황하던 학생들 사이에 웃음이 번져간다.
          하지만 기숙사장 후미오 여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 소동을 지켜본다. 뒤늦게 도착한 도지마와 아자미 또한 분위기가 이하다. 그들이 보기에 이것은 대이변이다.
         도지마는 죠이치로의 기행을 언급하며 마치 자기는 정인인양 굴지만 이 인간은 시식 리액션으로 세라복 차림으로 유원지에 놀러가는 기분을 만끽하거나 대중탕에서 당당히 나체요가를 하거나 하는 등 숨은 변태임을 잊지 말자.
  • 식극의 소마/209화 . . . . 17회 일치
          * 잇시키는 소마를 칭찬하는데 정신이 팔리는데 정작 대인 [[시라츠 쥬리오]]에 대해선 무신경했다.
          * 시라츠 가문은 대대로 이탈리아 사관의 전속 요리사 자리를 맡아온 명가. 특히 남 이탈리아에선 장어를 크리스마스 특식으로 먹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 반면 잇시키는 느긋한걸 넘어 겨우 준비만 끝내놓고 "진다면 애들하고 장어양식을 하자"같은 망이나 즐기고 있다.
          * 따지고 보면 대측으로선 불쾌할 수밖에 없는 태도. 당연히 잇시키의 대결 대가 반발한다. 그는 더이 한눈팔지 말라며 타당한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이쪽도 당히 태가 좋지 않은지 요리에 대한 예술론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 말에 따르면 요리란 식탁 위에 놓여진 것만이 아니라 요리 중 요리사의 행동, 즉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예술인 것이다. 이같은 예술론은 잇시키와 자신이라면 서로 마주해 하나의 예술을 만들 수가 있다며 꽤 오글거리는 소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왠지 조리 초반인 주제에 "필살기"라는걸 사용하는데, 센트럴 측 학생들은 세뇌된 향인지 이짓도 좋다고 환호하고 있다. 필살 "페퍼밀의 론도".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필살기랜다.
          *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 후추 뿌리기 장인은 꽤나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잇시키에게 말을 걸었지만, 정작 대방은 그를 모르고 있다. 같은 학년일 텐데 이름 조차 기억을 못하고 있다. 그 사실에 충격에 빠진 후추 뿌리기. 그러는 동안 이들의 대결 주제가 공개된다. 주제는 "장어".
          * [[카와시마 우라라]]는 쥬리오가 이탈리아 요리의 달인이라고 소개한다. 쥬리오는 시작부터 의욕적으로 조리에 들어간다. 큼직하게 자른 장어에 소금을 쳐서 기름 두른 팬에 넣고 양파와 마늘,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볶는다. 이때 와인을 뱅뱅 돌리면서 춤추는 듯한 모습으로 넣는게 포인트. 꼴은 우스꽝스럽지만 실력은 대단하다. [[나카리 에리나]]도 그의 내력과 실력에 대해선 자세히 안다. 에리나는 시라츠 일가는 대대로 이탈리아 사관의 전속 요리사를 했던 유서깊은 가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실력은 일본과 이탈리아 양국에서 소문이 자자하고 특히 선대는 공적을 인정받아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 오히려 정보가 부족한 것은 잇시키 쪽이다. 특히 같은 기숙자가 아닌 [[나키리 아리스]]는 그가 어떤 타입의 요리사이고 어떤 분야 담당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에리나에게 아는게 없냐고 묻는다. 에리나도 같은 기숙사가 아니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같은 십걸 평의회에 있었으니 어느 정도 알지 않겠냐는 것. 그런데 그녀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알려진게 없다.
          >장어 양식장을 운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닐하우스에 연못을 만들어 장어 치어를 키우는 둥 제법 구체적인 망. [[요시노 유키]]는 경어까지 잊고 딴죽을 넣을 정도로 흥분해 버린다.
          * 이한 언쟁이 끝날 때가 됐다. 미묘하게 입가의 웃음이 사라진 잇시키는 도마 위에 장어 머리를 고정시킨다. 그 소리가 쿵하고 울린다.
          * 잇시키는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든 관없지만 설마 기숙사 후배들까지 그런 식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그의 웃는 얼굴은 돌아왔지만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 식극의 소마/230화 . . . . 17회 일치
          * 도지마 자신이 [[타쿠미 알디니]], [[사이바 죠이치로]]는 [[유키히라 소마]], 메구미는 시노미야가 교육한다는 인선. 그러나 뜻밖의 난관이 있었다.
          * 그걸 계기로 각성한 메구미는 그림체가 변할 정도로 적극적인 태도로 특훈에 매진, 십걸을 대로도 지지않고 승부에 임하게 됐다.
          * 월광호에서 연대식극 대비 특훈에 돌입하려던 [[유키히라 소마]] 일행은 뜻밖의 방문자를 발견하고 경악했다. 전 십걸출신 셰프 [[시노미야 코지로]]였다. 소마가 "시모니야 사부"라 부르며 반가움을 표했다. 여전히 당사자는 아니라고 질색했다. 소마는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에게도 그를 소개했다. 꽤 흥미롭게 그를 살펴보는데. 반면 시노미야는 같은 세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죠이치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타쿠미도 풀스포르 훈장 수여자인 그가 도움을 준다는 자체에 경악했다. 소마는 물론 대환. 자기 가게도 있는데 그들을 위해 헌신해준다고 감동에 겨워한다. 시노미야는 "잠깐의 변덕"이라고 말하지만 소마가 제대로 들을 리 없다. 이렇게 잘 풀려가는 것 같은데, 도지마는 뭔가 걸리는 듯 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마가 "잘 됐다"고 축하하면서 보니, 메구미는 사색이 된 채 오돌오돌 떨고 있다. 합숙 시절 시노미야에게 당했던 트라우마가 한꺼번에 플래시백하고 있던 것이다. 이래서는 특훈은 커녕 정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도 무리 같은데. 과연 이 난관을 메구미와 시노미야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연대식극 2일차. 3rd Bout의 시작. 대결 제 3카드 메구미 vs [[아카네가쿠보 모모]]의 대결주제를 선정한다. 메구미가 추첨용지를 집었다. 결정된 주제는 "사과". 반역자 팀에서 탄식을 내뱉었다. 본래 사과라면 요리에도 많이 쓰는 만큼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가 초일류 파티셰 모모. 사과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특기 중의 특기 분야. 하다못해 채소였더라면 메구미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실망이 우세했다.
          모모는 주제가 결정된 순간부터 임전태세였다. 자신의 인 "붓치"를 대로 말을 걸며 무엇을 만들지 구에 들어갔다.
          그래서 제일 먼저 특훈에 돌입한 것은 메구미조. 시노미야는 일단 뭔가 만들어서 현재 실력을 보여달라고 했다. 메구미는 대답은 씩씩하게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막 조리를 시작하자 실수연발. 소금과 설탕을 헛갈리고 재료를 태워먹는 초보적인 실수를 반복했다. 원래 풍부하지도 않은 시노미야의 인내심이 삽시간에 바닥났다.
          모든 건 긴장 때문, 정확히 말하면 시노미야의 존재 자체 때문이다. 아예 주방까지 들어와서 구경하던 소마가 "시노미야 사부가 온 게 문제였다"고 가차없는 돌직구를 날리다 시노미야한테 욕을 먹는다. 같이 구경하러 온 타쿠미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같은 생각. 은근슬쩍 끼어있던 에리나는 슬슬 돌아가서 각자 특훈을 시작하자며, 메구미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황을 수습한다.
          * 몇 시간 뒤. 결국 황은 수습되지 않았다. 시노미야는 반쯤 좌절했고 메구미는 사람 인자를 써서 삼키는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느라 특훈은 진전이 없었다. 덤으로 타쿠미와 소마는 휴식시간마다 메구미조를 기웃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진전은 요원했다.
          도지마도 메구미조의 주방을 찾았다. 그는 특훈과는 관없는 화제를 들고 왔다. 시노미야가 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게 의외였다는 얘기였다. 혹시 시노미야도 나름대로 토오츠키 학원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묻자 그는 또 "그냥 변덕"이라고 얼버무렸다. 애초에 아자미 정권 따윈 알바가 아니라면서. 시노미야는 일본 전국의 식당을 "진정한 미식"으로 통일한다는 그 사은 퍽 대단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자기 가게는 그런 것과 얽힐 생각도 합할 생각도 없다 했다. 오히려 센트럴의 지시를 받는 식당들이 망하게 되더라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와서 근성론. 지켜보던 타쿠미와 소마 모두 글러먹었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 구닥다리 일갈이 메구미의 내부에서 예치 못한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소마는 마침내 메구미가 시노미야의 가르침을 받게 되자, 자신과 메구미가 "선후배 사이"가 된 셈이고 메구미가 후배가 됐다며 감동한다. 시노미야는 여전히 소마의 "사부"드립을 질색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식극의 소마/234화 . . . . 17회 일치
          * 반역자진은 분하지만 에이잔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에이잔은 이미 한 번 쿄쿠세이 기숙사를 없애려 했던 원한이 있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반역자들은 에이잔의 대 타쿠미에게 저 "인텔리 야쿠자"를 무찔러 달라고 혼신의 응원을 보냈다. 그것은 에이잔에게도 들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 녀석들 기숙사에 몹쓸 짓을 하긴 했다"며 선선히 인정한다. 원래 자기는 여기저기 원한을 산 적이 많고, 생각해 보면 타쿠미한테도 그렇다며 말을 걸었다. [[미마사카 스바루]]와 타쿠미의 대결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그 건으로 타쿠미가 원한을 품었을 거라고 말하는 한편 [[잇시키 사토시]]를 보증인으로 내세워서 "그건 미마사카가 신청한 식극이었고 나의 개인적인 의사는 없었다"고 변명한다. 타쿠미가 에이잔에게 원한이 있는 걸 전제로 한 소리였는데, 정작 타쿠미는 "그런 말로는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며 무시한다.
          [[사이토 소메이]]는 에이잔이 타쿠미를 동요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타쿠미는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자세가 앞으로 기울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이다.
          * 타쿠미는 모두의 예대로 시구레니를 얹은 피자를 만든다. 펼친 반죽 표면에 가볍게 소스를 바르고 시구레니와 흰파, 모짜렐라 치즈를 뿌린다. [[이사미 알디니]]가 보기에도 완벽한 작업. 이제 오븐에서 240도로 12분 간 구우면 끝이다. 그리고 순조롭게 오븐에 투입. 이제 시간 문제다. 이렇게 대가 완벽한 마무리에 돌입했으나 에이잔은 시종 여유롭다. 그는 문득 타쿠미에게 "네 피자는 아주 섬세한 요리 아니냐"고 물었다. 특히 오븐에서 꺼낸 뒤엔 맛을 조정하는게 어렵지 않냐고. 타쿠미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에이잔이 대뜸 말했다.
          모두의 예을 깬 에이잔의 승리선언. 아니, 타쿠미의 패배선언이었다.
          * 에이잔이 그렇게 장담한 이유는 자신의 크림소스 때문이다. 에이잔은 모든 공정을 끝낸 뒤, 방금 전 시점에 한 가지 재료를 추가했다. 아티초크. 특별할건 없는 재료다. 여기에 에이잔이 설명을 더한다. 그가 노린 것은 아티초크에 들어있는 "시나린". 쓴맛을 내는 성분인데 사람의 미각을 저하해 맛을 착각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아티초크를 먹은 뒤에 다른 음식을 먹으면 정보다 훨씬 달게 느껴진다. 관중들 중에선 정말 그런지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키리 아리스]]는 틀림없는 사실이라 단언한다. 실제로 아티초크를 디저트 전에 내서 디저트의 단맛을 극대화하는 기법은 많은 레스토랑에서 쓰고 있다.
          * 반역자팀에선 당연히 성토했다. 그런데 심사의원 안은 이번만큼은 반역자의 편을 들지 않았다. 승부의 조건은 "내놓는 요리"와 자신들의 "혀". 한정된 시간 안에 적의 요리를 간파해 맞춤 전략을 펼친 거라면 아무 문제도 없다. 심사의원의 재개까지 받은 이 거칠 건 없다. 에이잔은 여기서 아티초크를 더욱 추가한다. 이제 조리의 마무리. 에이잔은 타쿠미가 근시안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때"도 "지금"도. 적에 대한 분노로 시야가 좁아진 것이다. 그가 "메짜루나"를 미마사카에게 뺏긴 일도 만일 미마사카의 대가 소마였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조롱했다.
         == 세 ==
          에이잔이 타쿠미를 도발하기 위해 마구 띄워주고 있다. 타쿠미가 미마사카 스바루에게 패배한 것도 대가 소마였으면 이겼을 거라고 본의 아니게 고평가를 남발했다. 타쿠미 본인이 크게 신경쓰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지만 소마는 조금 신경 썼던 듯 하다.
          지난 회에 가지러 간다던 식재료는 아티초크. 타쿠미가 단맛이 강한 피자를 만들 걸로 예하고 미각을 조작하는 식재료를 고르러 간 것이다. 아티초크의 시나린 성분이 미각을 조작해 단맛을 더욱 달게 느끼게 하므로, 자신이 요리를 먼저 먹인다면 타쿠미의 피자맛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반역자들은 당연히 비겁하고 자존심도 없다고 극딜하는데 어차피 이기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놈이라 노데미지. 어쩐지 심사의원 안도 그래도 관없다고 허락해줘서 완전히 기세등등하다. 자신잇게 화이트 소스가 들어간 로스트비프를 내놓고 승리를 자신한다.
          시작부터 에이잔이 "미마사카에게 진 그 식극은 내 책임이 없다"는 둥 도발을 늘어놓는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사이토는 명백하게 분노한 티가 난다고 한다. 순조롭게 조리를 마치고 최종공정에 들어갔을 때 에이잔이 아티초크를 이용한 함정을 공개하는데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이후에 에이잔이 "미마사카와 첫 승부 때 소마가 대였으면 너와는 달리 극복했을 것"이라 모욕을 퍼붓지만 역시 무반응. 돌부처가 다 됐다.
          한동안 반역자팀에게 유리한 듯한 황을 조성해줬는데 에이잔이 대놓고 함정을 팠다고 선언하는데도 문제될 게 없다고 판정한다. 판정기준은 완성된 요리와 자신들의 미각 뿐이므로, 그 조건 안에서 어떤 전술을 펼치든 관없다는 것. 요시노 유키가 반발했을 때 이렇게 말하는데 표정이 얼음마녀같다.
  • 완벽한 공산주의 . . . . 17회 일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 '''SF 창작 설정'''.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카를 마르크스가 자신이 갖춘 과학적 지식과 따라서 한 것을 뜻하므로, 현실에 있었던 공산주의 체제와의 '명확한 대비'를 위하여 이 문서에서는 'SF 창작 설정'이라는 표현을 떄떄로 사용하고 있다. 소설로서 써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히 SF적으로 창작된 이론이라고 봐도 좋다.
         카를 마르크스의 '''설정'''에 따르면 공산주의란, '''자본주의를 거쳐서''' 생산력이 극도로 발달하여,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가 없어져서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이다. '이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일종의 '특이점'이 와서 인류의 노동력이 더 이 불필요하게 될 경우, '불필요한 인류'가 단지 '숙청'당하게 될 것인지, '완벽한 공산주의'에 도달하여 이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될지 알 수 없다. 존재가치를 잃은 인간이 존엄성까지 박탈당하는 디스토피아적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완벽한 공산주의를 이룩하는 조건이 곧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지게 될 수도 있다.
         [[소련]]은 사회주의를 실현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체제를 '현실 사회주의'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전부터 소련에 비판적이던 일부 좌파 세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라고 외면하며 소련과 같은 형태가 아닌 '완벽한 공산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소련의 향력이 워낙 막강하여 이 당시는 비주류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
         [[소련]]을 시작으로 하여 냉전 시기에 역사 나타났던 '공산주의 국가'들은 소련의 붕괴와 함께 대부분 정권교체로 공산주의가 폐기되는 운명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소련을 추종하던 각국의 공산주의,사회주의 세력은 이러한 '현실'에 대응해야 하는 문제점을 실감하게 되었고, "공산주의 망했잖아. 그거"에 대항하기 위한 "완벽한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나타나게 된다.
         "완벽한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1) 망했잖아 그거"라는 사람을 일단 "무식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소련은 사실 공산주의(2)'''가 아니고''', 공산주의란 내가 말하는 '완벽한 공산주의'가 맞는 거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는 대방의 무지를 깨우쳐주는 활동이 아니라, 단지 언어의 개념정의에서 오는 혼란에 불과하다.
         "머릿 속에서만 구하는 이적인 체계"가 "망했다"고 표현되는 것은 현실에서는 있기 어렵다. 왜냐하면 '''망한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실존하는 체제'''에만 쓰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실존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도 않는 것'''은 망할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인증'해줄 카를 마르크스가 죽어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히 비슷한 사회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 때 쯤에는 공산주의라는 이름 자체가 잊혀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로 불리지 않게 될 것이다.
         사실 현실에서 사례가 존재하지 않고, SF장르에나 나올 법한 개념에 가깝다. 일부 SF장르에서 제시되기는 했다. 원래부터 창작컨텐츠이므로, 창작물에서 쓰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 매트릭스 시리즈 : 매트릭스에 들어간 인간들은 양 공급 받고, 체온만 제공해주면 의식주를 모두 기계가 제공해주므로 일단은 완전한 공산주의에 가깝다.
          * 자신의 설정을 현실이라고 주장하며 조직을 만들고, 사회에 충격을 준 인물로서, 카를 마르크스와 비슷한 인물로는 '[[사이언톨로지]]'를 만든 SF작가 '론 허버드'가 있다.
  • 운명의 붉은 실 . . . . 17회 일치
         어에서는 비슷한 말로 소울 메이트(Soul mate)가 있다.
         붉은 실의 전승(赤い糸の伝承) 미카도만게츠의 음앙점술(土御門萬月の陰陽占術)이라는 지금은 없어진 사이트에 의하면, 서양에서는 붉은 실 이외에도 다양한 색의 실이 있다고 주장한 듯 하다.
         흰색 - 남녀를 넘어 깨끗한 관계 사이에 맺어지는 것.
         장미색 - 놀이 대인 남녀 사이에 맺어지는 것.
         금은 - 돈만으로 맺어진 사이라는 것.
         검정 -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이라는 것.
         …뭔가 수하다.
         오행사주추명술(五行四柱推命術)이라는 점술 사이트에서는 운명을 잇는 다섯 개의 색의 실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료로 생년월일을 받아 대와 점술을 쳐주고 있다.
         붉은 실 - 운명의 사랑의
         파란 실 - 마음을 치유해주는
         노란 실 - 자신을 향시켜주는
         녹색 실 - 트윈소울인 대(트윈소울?)
         검은 실 - 나쁜 인연이 있는
  • 원피스/848화 . . . . 17회 일치
          * [[디]]는 밀집모자 일당과 발라티에를 걱정하면서도 이게 최선이라 믿고 있다.
          * 브룩은 자신이 "소울킹"이기 때문에 어설픈 혼은 자기 앞에선 통하지 않는다고 호언한다.
          * 푸딩은 디에게 프로포즈 받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 알려주며 루피와 나미의 귓가에 "어떤 결심"을 속삭인다.
          * [[디]]는 객딜에서 고민에 빠져있다. 방을 서성거리며 자신의 결정이 잘못된건 아닌지 고민한다. 물론 머리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알고 있지만 심정만은 도저히 어쩌지 못한다. 결혼만 하면 루피 일행도 발라티에도 모두 무사할 것테지만 역시 동료들과 헤어지는건 괴롭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어봐야 [[샬롯 푸딩]]을 몰아붙이는 일 밖에 되지 않으며 그건 스스로도 원치 않는다. 디는 자기 자신을 설득하고 푸딩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사랑에 빠진 요리사를 연기한다.
          빅맘은 줄곧 그렇게 말해왔다. 그녀의 말처럼 인형같은 삶이었다. 푸딩은 오래전 자유를 찾아, 자기 자신이 결정한 결혼을 찾아 떠나간 언니 [[샬롯 로라]]를 떠올린다. 그때도 빅맘의 살해위협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갔다. 그때 언니를 마중했던 푸딩. 그녀는 발코니 밖 세을 바라본다.
          * 그때 [[샬롯 스무디]]가 연락한다. 그녀는 타마고 남작의 예대로라면 페드로 쪽은 미끼에 불과하다고 전한다. 진짜는 바로 보물전. 또다른 침입자가 보물전 내부로 진입, 안에서 문을 잠그고 있다고 알린다. 비록 보물전이 뚫렸지만 그곳의 출입구는 하나. 거기만 잘 지키면 된다고 문제없다고 본다. 그리고 거기 있을 침입자는 분명 "뼈"일 거라며, 빅맘이 좋아할 만한 소재니까 생포해달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모두 타마고 남작의 손바닥 위.
          * 보물 전 안의 [[브룩]]은 빅맘의 자식들과 체스병들에게 포위 당해있다. 그래도 아까보단 줄은 숫자. 페드로가 이목을 끌어준 덕이다. 빅맘의 자식들은 브룩을 "별난 생물" 취급하며 꼭 잡아서 빅맘에게 바치고자 한다. 체스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브룩은 태연하게 기타를 꺼낸다. 페드로가 사전에 체스병에 대한 정보를 준 건데 그들은 "사람의 혼"이 물건에 들어가 있는 병사. 즉 "소울"로 움직이는 것들이다.
          >억지로 붙인 소울은... 내 집념이 불타는 "혼의 외침" 앞에
          * 한편 죄수도서실은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푸딩이다. 푸딩은 루피의 감옥을 지키고 있던 형제들에게 루피와 이야기할 수 없겠냐고 청한다. 의외로 형제들은 순순히 루피의 감옥을 열어준다. "책갈피"를 감옥 사이에 끼우자 엿가락처럼 옆으로 휘어져 버린다. 그 사이로 들어가는 푸딩. 루피는 푸딩을 반가워하며 해안에 갔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미는 다른 녀석들이 들으면 푸딩이 곤란해지니 그만하라고 진정시킨다.
          푸딩은 엉망인 두 사람의 몰골을 보고 가족들을 대신해 사과한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사과한다. 그렇게 대화하고 있자 바깥의 형제들도 수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 디씨에게 프로포즈 받았어.
          푸딩은 디가 프로포즈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결혼하겠다는건 진심이었다, 루피와 나미는 충격을 받는다. 같은 시각 디는 푸딩에게 주기 위해 꽃다발을 만들고 있다. 자신을 설득시키는 연기를 계속하며.
         푸딩이 말하는 "결심"이란 로라처럼 결혼식을 거부하고 떠나는 걸로 보인다. 사실 그렇게 되면 더이 디를 속박할 명분도 없어지고 빅맘이 밀집모자일당을 적대할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 원피스/849화 . . . . 17회 일치
          * 솥에서 나온 뜨거운 물에 브륄레가 화을 입고 적들이 허둥대는 틈을 타 캐럿이 전기쇼크로 감전시켜 적들을 무력화시킨다.
          * [[디]]는 [[몽키 D. 루피]] 일행의 소식을 듣지만 귀를 닫고 [[샬롯 푸딩]]을 위해 요리하는데 여념이 없다.
          * 객실의 빈스모크 일가는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다. [[빈스모크 레이쥬]]가 보이지 않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빈스모크 욘디]]가 [[빈스모크 저지]]에게 결혼 후 [[디]] 부부가 어디서 지낼 거냐고 묻자, 저지는 당연히 제르마 왕국이라고 답한다. 그는 [[샬롯 푸딩]]을 볼모로 잡을 생각이며 그래야지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빈스모크 니디]]가 빅맘 측에서도 인질을 원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빈스모크 이치디]]는 헛소리 말라며 "디를 죽인다고 해봐야 우리가 눈하나 깜짝하겠냐"고 말하고 욘디가 웃음을 터뜨린다. 니디는 아무튼 디와 생활이 기대된다고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 미러월드의 [[샬롯 브륄레]]의 집. 아직도 [[캐럿(원피스)|캐럿]]을 요리하고 있다. 캐럿은 부글부글 끓는 솥 위에 매달려 있는 태. 브륄레가 솥을 젓고 있고 학기사 랜돌프를 비롯한 부하들이 솥 주위에 모여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잡힌 척하고 있는 [[쵸파]는 캐럿을 죽이지 말라고 연기하고 있지만 사실 잡혀있는 캐럿은 진짜가 아니다. 그건 브륄레가 만든 가짜. 자신의 능력으로 개구리를 캐럿의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아마 쵸파를 혼란시키려고 한 짓같지만 이번엔 자기 무덤을 판 짓이 됐다.
          * 진짜 캐럿의 위치는 지붕 위. 솥 바로 위에 있다. 갈라진 틈으로 아래 황을 엿보며 가짜 캐럿이 들키지 않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성우냐-- 아직 주위에는 적이 16명이 있고 그 중 성가신 인물은 네 명. 브륄레 자신과 [[학기사 랜돌프]], [[귀족 악어]], [[디젤(원피스)|디젤]]. 쵸파는 이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 소란이 벌어지자 쵸파는 브레인 포인트를 써서 몸집을 작게 줄인다. 큰 몸집에 맞춰졌던 포승이 저절로 풀리자 쵸파는 럼블볼을 복용한다. 그 사이 캐럿은 가짜 캐럿, 개구리까지 구해내고 안전하게 지에 착지. 부하들이 브륄레를 도우러 달려들자 젖은 바닥으로 전기충격인 "일렉트리컬 루나"를 사용해 전부 감전시킨다.
          * 디는 자기 방에서 꽃다발을 다듬고 있다. 그때 빅맘의 부하가 와서 밀집모자 일당의 행방에 대해 소식을 전한다. [[몽키 D. 루피]]와 [[나미(원피스)|나미]]는 체포, [[페드로(원피스)|페드로]]와 [[브룩]]은 난동 중. 디는 꽃다발을 매만지면서도 심각한 표정으로 소식을 듣다가, 결국 이젠 됐다며 귀를 닫아버린다. 그 대신 부탁한 식재료는 사왔냐고 하는데.
          부하는 재료를 건네며 배가 고프다면 뭐든 드릴 수 있다고 하는데, 디는 자기가 먹을 요리를 하는게 아니다. 그가 준비하는건 푸딩을 위한 요리. 그녀가 식사시간에 자리를 비워서 걱정된다며 손수 요리를 하려는 것이다. 그 마음씀씀이에 빅맘의 부하도 감동한다.
          * 브룩은 보물전을 제압하는데 성공. [[포네그리프]]에 접근하기 위한 열쇠를 손에 넣는다. 그는 파트너에게 죽음을 각오하라고 부탁한 이 가져갈 건 다 가져가야 한다며 보물전의 병사들을 쓸어버리고 포네그리프를 찾아 전진한다.
          브룩은 예치 못한 강적의 등장에 당황하지만 빅맘은 왠지 브룩을 보고 "진귀한 생물"이라며 마음에 들어한다.
          * 병력을 끌고 다니던 페드로는 마침내 안뜰까지 쫓겨온다. 그를 추격한 [[타마고 남작]]이 기다리고 있다. 타마고 남작이 밝힌 그의 전 직함은 "녹스 해적단 선장 캡틴 페드로". 그는 비록 적이라도 페드로를 "너른 자"라 인정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오랜만에 숙적을 마주하니 "왼쪽 눈의 처"가 쑤신다고 말하는데. 그는 빅맘에게 사로잡혔던 "5년 전"엔 그토록 삶에 집착했던 페드로가 어째서 똑같은 짓을 반복하냐고 묻는다. 하긴, 그는 이미 "제대로 살아있을 수도" 없는 몸이다. 5년 전 그날 페드로는 50년 치 수명을 바치는 대가로 살아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며 선글라스를 벗는 타마고 남작. 그는 왼쪽 눈이 없는 애꾸였다.
         네타와 함께 오다 에이치로의 인터뷰 내용도 공개. 다과회편은 이미 중반부에 돌입. 팬들의 예보다 빨리 끝날 거라고 한다. 앞으로 전개속도도 대폭 빨라진다고.
         내년부터 "와노쿠니편"이 시작된다. 오다는 20년 전부터 와노쿠니편을 그리고 싶어서 구을 거듭해왔다.
  • 원피스/860화 . . . . 17회 일치
          * 징베는 [[몽키 D. 루피]]와 동료들은 [[디]를 구하러 갈거라고 판단하고 구하려 했다.
          * 다과회 장소는 홀케이크 성 옥. 각계의 요인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 빈스모크 일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다과회 장소로 이동 중. 진실을 아는 [[빈스모크 레이쥬]]는 [[디]]가 도망치지 않은 걸 알고 내심 당황한다.
          * 저격수의 정체는 3장성 중 하나인 [[샬롯 카타쿠리]]. 현금 10억 5700만 베리. 젤리빈즈를 탄환처럼 날린다.
          * 이런 행동은 모두 징베의 안배였다. 징베는 페콤즈에게 빅맘 암살 작전과 제르마 암살 작전을 듣게된 건 기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몽키 D. 루피]]는 반드시 [[디]]를 구하려고 무리를 할 것이며 밀집모자 일당은 위기에 처할 거라고 내다본다. 그걸 두고 볼 수 없는 징베는 그들을 돕기로 결정한다. 그 말은 그저 빅맘 해적단 산하에서 빠지는 걸 넘어 "모반"을 꾀하는 것에 해당한다.
          징베의 각오를 엿본 알라딘은 순순히 물러나며 징베 자신의 목숨도 소중히 지키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인섬"으로 가겠다고 하는데, 알라딘은 징베가 용궁 왕국을 지킬 사람을 필요로 하는걸 눈치챈 것이다. 뜻을 알아주는 오랜 친구에게, 징베는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알라딘은 그들 사이엔 그런건 필요없다며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다짐한다.
          * 홀케이크 성에서는 빈스모크 일가가 아무 것도 모른채 다과회 장소로 향하고 있다. [[빈스모크 레이쥬]]는 도중에 합류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 [[빈스모크 욘디]]가 어젯밤엔 어디 있었냐고 묻자 레이쥬는 "늦게까지 소란을 부릴게 뻔해서 다른 방에 있었다"고 둘러댄다. [[빈스모크 니디]]는 가던 중에 급사에게 [[디]]가 도망치지 않고 잘 있는지 묻는데 급사는 준비 완료라고 대답한다. 디가 도망치지 않았다는걸 알게된 레이쥬는 대체 어쩔 셈이냐고 걱정한다.
          * [[샬롯 페로스페로]]가 이들을 직접 마중한다. 페로스페로는 이들을 "뒷사회의 제왕들"이라 부른다. 그는 귀빈들을 환하지만 이대로 성내로 가면 다과회에 늦을지도 모른다면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한다.
          그는 사탕으로 옥으로 가는 "캔디 에스컬레이터"를 만든다. 그의 사탕 공예는 귀빈들은 물론 몰려든 일반 시민들에게도 인기만점이다. 페로스페로를 빅맘은 지각을 싫어한다며 귀빈들을 에스컬레이터로 모신다. 그리고 몰려든 꼬마들에게는 직접 만든 사탕을 나눠주고 3분 쯤 지난 다음에는 캔디 에스컬레이터도 먹어도 된다고 허락한다.
          * 한편 다과회장 정문에서는 실갱이가 벌어졌다. 경비 총책임자 [[카포네 갱 벳지]]는 난감한 손님을 대하고 있는데 장기매매업자 지그라다. 그는 다짜고짜 문을 열라면서 몸수색에도 응하지 않는다. 초대장은 가져오지 않았지만 대는 거물이자 빅맘의 손님. 벳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다. 지그라는 자신은 지난번에도 초대장을 받았었다며 옛날 이야기를 한다. 허세라도 부리려는 줄 알았는데 이야기의 방향이 이하게 흐른다.
          벳지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다. 3장성 [[샬롯 카타쿠리]]. 샬롯가의 차남이자 현금 10억 5700만 베리가 걸린 괴물. 그는 지그라가 빅맘에게 복수하러 온 "미래"를 보고 그를 쐈다.
          벳지는 회장에서 가장 성가신 인물이라고 여긴다. 카타쿠리는 견문색 패기를 극한으로 단련해서 조금 앞의 미래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거라면 빅맘에게 보고하라며, 벳지는 곧 "알았다. 그렇다면 됐어."라고 말할 거라고 장담한다. 그 말대로 벳지는 "알았다. 그렇다면 됐어."라고 말하며 황을 종료한다.
          * 드디어 초대장을 가진 진짜 게스트들이 도착한다. 벳지는 정문을 개방하고 손님들을 안으로 안내한다. 역시 3장성 중 하나인 [[샬롯 스무디]]는 게스트들에게 손수 짠 쥬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녀의 능력 때문인지 하나같이 기이하고 희귀한 것들만 쥬스로 만든다. "마우리 화산의 용암", "남자 100명을 찌른 미녀", "괴한 목소리로 우는 기린" 같은 것들이다. 게스트들이 기린을 청하자 스무디는 바로 기린을 짜내서 주스를 만들어준다.
          * 그녀는 보이는건 전부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며 먹고 마시면서 오늘 여기서 일어날 "모든 일"을 즐겨달라고 개회를 선언한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디.
  • 원피스/874화 . . . . 17회 일치
          * 빅맘 해적단은 [[샬롯 브륄레]]에게 미러 월드에 1만 병력을 대기시켜 어디든 급습할 수 있게 하고 각 섬에서 차출된 해병력으로 남서쪽 해안도 봉쇄한다.
          * 써니호는 [[샬롯 카타쿠리]]가 점거해 매복하는데, 그는 굳이 매복까지 한 이유를 "만약을 위해서"라 얼버무리나 낌새가 이하다.
          * 그러나 푸딩은 눈물과 함께 자신은 빅맘을 위해서 행동하는게 아니라 [[디]]와 그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 연극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다과회와 결혼식이 엉망이 되고 빈스모크 일가 암살도 실패, 고대해 마지 않았던 웨딩 케이크까지 엉망이 되어 먹을 수 없다. 숨가쁘게 이어진 기막힌 사건들 때문에 빅맘 [[샬롯 링링]]의 식탐이 폭주한다. 한때를 모면하기 위해 [[샬롯 페로스페로]]는 웨딩 케이크는 밀집모자 일당이 가져갔다는 거짓말을 하고, 빅맘은 그 말에 따라 직접 밀집모자 일당을 뒤쫓는다. 뇌운 "제우스"에 탄 빅맘은 놀라운 속도로 돌아와 "킹밤"을 타고 도주하던 밀집모자 일당을 따라잡았다. 역시 밀집모자 일당을 추격하던 빅맘 해적단의 병력들은 빅맘이 하늘에서 나타나 자신들을 앞질러가자 이하게 여기나 곧 그녀의 먹부림이 도진 것임을 알아차린다.
          나미의 판단이 정확했다. 느긋한 얼굴로 빅맘을 태우고 다니던 제우스는 근처에 떠다니는 작고 검은 뇌운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빅맘이 다시 한 번 위국을 쓰려고 나폴레옹을 치켜들었던 그때, 제우스는 임무도 팽개치고 블랙볼을 따라 방향을 돌렸다. 빅맘은 발 밑이 흔들리면서 땅바닥에 위국을 꽂았고 자신도 중심을 잃고 추락했다. 주인을 닮아도 너무 닮은 제우스는 빅맘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 줄로 늘어선 블랙볼을 차례로 맛보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그때까지 공에서 지켜보던 "프로메테우스"가 이 어이없는 실수에 뜨악해한다. 나폴레옹도 황당해한다. 둘이서 질책해도 간식에 정신 팔린 제우스는 들은 척도 없었다. 그 사이 킹밤은 반토막난 몸으로도 바람 같이 달려서 유혹의 숲으로 향했다.
          * 나미는 유혹의 숲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쪽이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맞는 판단이었다. 유혹의 숲의 나무들, 지형들은 그들의 주인인 킹밤이 나타나자 경례를 붙이며 길을 텄다. 그들이 열어준 길 끝에 해안에 정박 중인 사우전드 써니호가 보였다. 이제 해안까지 일직선. [[캐럿(원피스)|캐럿]]이 역시 나미는 대단하다며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디]]도 눈이 하트가 돼서 나미를 찬양하는데 여념없다. [[징베]]는 달리 칭찬하진 않았지만 "빅맘이 제우스를 타지 못하면 떨쳐낼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나미의 작전에 감탄한 듯 하다. 나미는 징베의 말에서 방금 자신이 농락한 구름이 "제우스"란 이름인 걸 알았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불려서일까? 제우스가 일행을 쫓아왔다. 징베는 벅찬 대라며 경계했지만 이 구름에겐 싸울 의사가 없었다. 먹을 걸 구걸하러 왔기 때문이다. 제우스가 자기가 먹은 "작은 먹구름"에 극찬을 늘어놨다. 그런 음식은 처음 먹어 본다며 더 달라고 청했다. 아주 농후하고 목넘김이 훌륭한 구름이라나. 루피는 대뜸 "그런것 보단 태워달라"고 요구하는데 제우스도 썩 싫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나한테 혼을 준 마마 밖에 못 태우니까 무리"라고 대답한다. 루피는 "단순한 구름"이라고 실망. 하지만 쭉 듣고 있던 나미는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반짝인다.
          이 황당한 요구에 응답한 것은 디. 징베가 폭주 태의 그를 점잖게 말린다. 하지만 제우스의 태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나미가 "매일 블랙 볼을 먹여주겠다"고 꼬시자 진지하게 "어쩌지 어쩌지"하며 고민에 빠진다. 충성심이고 뭐고 찾아볼 수 없는 모습. 나미가 "하늘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큰 먹구름이 되게 멋있다"고 칭찬해주자 그런 칭찬 받아본게 처음이라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이러다 정말 이적 시장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빅맘의 진노가 담긴 외침. 방금까지 킹밤을 향해 경례를 올리던 나무들이 태도를 바꿨다. 보스보다는 보스의 보스가 훨씬 무서우니까. 제우스도 그 노성을 듣고 나서야 "마마가 진짜 화났다"며 얌전히 꽁무니를 뺀다. 이제 유혹의 숲은 적의 소굴이다. 곧 닿을 거만 같았던 써니호로 향하는 길이 사라지고 유혹의 숲의 살아있는 지형지물들이 막아선다. 디는 유혹의 숲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적당히 걷어차주고 뚫고 가자"고 했다. 숲의 무서움을 아는 루피는 머리를 감싸며 골치아파했다. 싸우더라도 나무들이 방해하면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 처지였다. 제일 큰 문제는 킹밤. 그 역시 빅맘의 피조물인 만큼 그녀가 진지하게 호령하면 견디기 어렵다.
          * 킹밤의 눈물겨운 돌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공으로부터 프로메테우스가 내려왔다. 킹밤을 진지하게 "배신자"로 간주한 프로메테우스에게 종전같은 온화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진짜 태양만큼 팽창하며 킹밤의 머리 위를 덮쳤다. 밀집모자 일당은 그 열기에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를 뛰쳐나온다. 하지만 킹밤은 그럴 수 없었다. 프로메테우스가 비대해짐 몸집으로 킹밤을 찍어눌렀다. 일행은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킹밤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잘 마른 장작처럼 타들어갔다. 루피는 도망치면서도 킹밤을 걱정해 돌아보는데, 그의 타버린 잿더미 사이로 눈이 돌아간 빅맘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웨딩 케이크를 찾으며.
          밀집모자 추격을 맡은 [[샬롯 브륄레]]는 미러 월드로 1만의 병력을 이동시켰다. 이제 거울이 설치된 곳이라면 어디든 기습할 수 있다. 거울 밖의 몬도르에게 그런 내용을 전하자 적당한 때를 알려주겠다고 대답한다. 이어서 몬도르는 해방병력도 점검한다. 토트랜드의 초콜릿섬, 치즈섬, 너트섬에서 출동한 군함들로 남서쪽 해안을 봉쇄했다. 써니호의 출항을 허용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들은 포위망의 제 1관문일 뿐. 그 뒤에는 플레버섬과 리큐르 섬에서 출동한 "타르트 쉽"이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항구에서 대기하면서 정찰용인 "역 해우"를 풀어서 감시망을 조였다.
          * 탱크모드로 변형해 도주하던 벳지의 파이어 탱크 해적단도 추격대에게 따라잡혔다. "타르트 탱크"였다. 정말로 파이 같이 생긴 전차들이 포격을 가하며 벳지의 꽁무니를 따라왔다. 하지만 벳지는 곧 해안가가 나올 테니 탈출은 성공할 거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도 마법의 양탄자에 탄 [[샬롯 푸딩]]이 갑자기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벳지는 설사 "아가씨", [[샬롯 시폰]]의 여동생이라 해도 용서하지 않겠다며 총을 들이댄다. 푸딩은 거기에 대해선 대도 않고 "시폰 언니를 만나게 해달라, 당장 꺼내라"고 청했다.
          푸딩이 말하는 "그 분"은 분명 디. 어찌된 일일까? 도다시 연극을 시작하는 걸까?
  • 유승옥 . . . . 17회 일치
         2013년 [[미스코리아]] 충북 선발대회에 출전하여 와인피부과성형외과을 수했으나 진선미에 들지 못해 본선 대회에 진출하진 못했다.
         굵은 허벅지가 개인적인 콤플렉스여서 허벅지 살을 줄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다 결국 지방흡입까지 해봤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부작용 때문에 고생만 하고 허벅지에 처가 남았다고. 후에 운동으로 지금의 몸매를 완성했다고 한다. 워낙 몸에 지방이 많은 타입이라 운동을 조금만 쉬면 바로 육덕이 된다고 스스로 말했다.
         2015년에 SBS의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하고, 게임 [[철권 7]] 런칭쇼에서는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신 캐릭터 [[카타리나 아우베스]]의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나와 유명해졌다. --하지만 신캐 반응이 썰렁해서 묻혔다.[* 실제로 그녀의 소속사 사이트를 가보면 다른건 다 기록되있어도 철권 런칭에대한건 나와있지 않았다(....)].-- 롯데월드에서 열린 대회에서 철권 7 이벤트 매치를 벌이기도 했다. 플레이 당시 유승옥이 선택한 캐릭터는 홍보할 때 코스프레했던 캐릭터인 카타리나였고, 대전 대는 한국의 여성 철권 고수로 유명한 카니스 (본명 양이섭)의 [[스티브 폭스]].
         2월경 소속사 고소 문제로 인기가 땅에 떨어진 이전의 섹시 심볼이었던 배우 ]의 뒤를 이어 2015년 초에 인터넷에서 차세대 섹시 심볼로써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얼굴이 [[노안]]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러나 딸의 유명세가 단지 몸매에 대한 관심으로 기울어지는 황 때문에, 유승옥의 아버지는 심적으로 괴롭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7월 15일 모 온라인 매체의 '''기승전유승옥'''이라 불리는 기사 시리즈가 화제가 됐다. 인터넷의 화제에 대해 서술한 후 유승옥의 반응을 덧붙이는 식으로 기사를 무한 생산한 것이다. [[http://me2.do/xzIctqPl|이런 기사가 뜬 이유]] ~~만물의 전문가 유승옥~~ 소속사는 "기자가 물어오면 코멘트를 전달하는 식으로 응대한 적은 있다"며 홍보 목적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http://m.mt.co.kr/renew/view.html?no=2015071516054343015&ca=society|해명기사]]
         가슴 성형에 대한 왈가왈부가 계속되자, 소속사에서 가슴 보형물이 없다는 진단서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8610&yy=2015|공개]][[http://www.ajji.net/home/data/file/talent/3542621288_OdPZC6qo_1440746427_201508281515322510_1.jpg|했다.]] 광고주 쪽에서도 진 확인을 요구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인증하게 됐다고 한다.
         2017년 [[소사이어티 게임 2]]에 플레이어로써 참가했다.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순수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 2013년 [[미스코리아]] 충북 와인피부과성형외과
          * 2014년 [[JTBC]] 웅들
          * 2015년 [[웹드라마]] 소녀연애사[* TV에서는 SBS Plus에서 방되었다.]
          * 2017년 [[tvN]] [[소사이어티 게임 2]] - [[유승옥/소사이어티 게임]]
         === 화 ===
          * 2017년 [[조작된 도시]] - 작중 게임 속 캐릭터 '은폐'역[* 특별출연인 듯 했으나 네이버 화에서는 조연으로 분류되어있다. 참고로 해당 캐릭터를 플레이 하는 '은폐' 역은 [[김슬기]]가 맡았다.]
  • 윤석용 . . . . 17회 일치
         |출생지=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현 [[대구광역시]])
         |웹사이트=[http://www.yoonsy.co.kr/ 공식사이트]
         '''윤석용'''(尹碩鎔, [[1951년]] [[11월 16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18대) 국회의원([[새누리당]] 서울 강동구 을)이자 한의사이다.<ref>{{웹 인용|제목= 대한민국 대표 인명록 - 한국의 인물
         [[1951년]]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에서 출생하여 1971년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어릴 때 얻은 소아마비로 장애등급 2등급을 받아 병역이 면제되었다.
         1981년 [[경희대학교]] 한의학과(28회)를 졸업하고, 1991년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직 18대 국회의원으로, 천호한의원을 운하면서,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 대한사회복지 개발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2012년]] [[2월 14일]]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후원받은 8275만원 당의 옥매트 250개를 횡령해 지역 복지단체와 동료의원 사무실 등에 임의로 전달한 혐의, 자신의 지역구(서울 강동을) 선거구민과 연관된 단체에 축구공 100개와 30여만원 당의 김ㆍ빵을 기부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 2011년 8월 [[서울시 무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장애인체육회 직원 20여명을 동원해 단계적 무급식을 찬성하는 내용의 투표 운동을 시켜 주민투표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횡령혐의는 무죄,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확정되었다.<ref>{{웹 인용|제목=옥매트 횡령 윤석용 의원 불구속 기소(종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12434.html|저자=[[연합뉴스]]|확인날짜=2012-02-14}}</ref>
         == 수내역 ==
         * 1993년 자랑스런 서울시민
         * 1994년 자랑스런 시한국인
         * 복지르네스를 지향하며, 윤석용의 복지인생스토리, 2020년대 사회복지정책을 위한 제헌, 그대도 곧! 지금! 다시(시집), 내가할래요(언어치료)-절판, 사계절의 울음(시집), 찾아가는 개인 맞춤형 복지시대, 캐롤라이나 교육과정(장애유아교육), 한약 목욕치료
         * [http://www.yoonsy.co.kr/ 윤석용 의원 공식사이트]
         |전임자 = [[김충환]](강동구 갑)<br />[[이경 (1964년)|이경]](강동구 을)
  • 은혼/625화 . . . . 17회 일치
          * [[오우가이]]의 기억. 과거에도 [[다키니]]의 리더로 이름을 떨치던 그도 굴욕적인 패배를 겪는다. 그 패배로 자랑하던 세 뿔 중 왼쪽 뿔이 부러지고 만다. 형편없이 완패를 당한 오우가이는 바닥에 쓰러진 채 패배를 안긴 대에게 묻는다.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거냐고. 그를 패배시킨 사나이도 역시 다키니 족. 그 중에서도 누구보다 용맹하고 흉폭해 다키니의 신 이고르가 내린 "최고 걸작" 혹은 "신의 뿔"이란 별명을 가진 전사였다. 주위에는 오우가이 말고도 많은 다키니 전사들이 쓰러져 있다. 모두 신의 뿔이 한 짓이다.
          오우가이는 그런 감정이 조금도 공감되지 않는다. 다른 동료들이 말했듯 신의 뿔은 코하쿠 행성의 기생종에 당해 머리가 이해진 거라고 빈정거린다. 항간에서 말하는 코하쿠 행성의 기생종은 뇌에 기생하는 식물로 숙주의 행동에 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 가부키쵸의 골목에서 눈을 뜬 오우가이는 새삼 그때의 공포와 절망감, 굴욕감이 되살아난다. 뿔이 부러진 것도, 이런 씁쓸한 감에 잠기는 것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째서 뿔이 또 부러진 것인가? 그리고 왜 그들 부족은 그때와 같이...
          대로로 돌아오자 참담한 풍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전장을 고향으로 삼고 있던 다키니의 용병부대가 얕보던 한낱 지구인들에게 쫓겨 대열도 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야규 빈보쿠사이]]와 [[토죠 아유무]]가 선봉에 서고 있다.
          * [[사카타 긴토키]]를 중심으로 반격을 펼쳐온 가부키쵸 주민들은 전황이 차츰 바뀌어감을 체감한다. [[도로미즈 지로쵸]]는 적들이 지휘계통을 잃고 사기가 꺾여 도주하기 시작했다고 논평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황은 좋지 않다. 당장 전투에서는 이기고 포위를 풀었지만, 지구가 우주 전체에 의해 포위된 황은 변함이 없다. 이 가부키쵸 하나만 놓고 봐도 마을 내부로 진입한 적들이 후퇴하는 것일 뿐, 이들이 다시 마을 밖의 본대와 합류한다면 원태로 돌아갈 뿐이다. 여전히 마을은 포위되어 있고 코끼리한테 바늘을 찔러넣은 정도의 반격을 한 것 밖에 안 된다.
          마을 입구에서 분전을 이어가던 [[사이고 토쿠모리]]와 오카마 부대들. 사이고는 인왕처럼 버티고 있지만 시야가 흐려지고 있다. 그에비해 몰려드는 적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 그때 입구를 휘저어 놓으며 나타나는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 이들이 마을에 진입했던 전위 부대를 뒤흔들며 쫓아내는 모습에 사이고와 대치하던 해방군 본대도 동요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들은 각기 3대 용병 부족으로 유명한 다키니와 신라 부대. 이들이 정신없이 후퇴하는 모습은 해방군에 파문을 일으킨다. 긴토키의 말처럼 "공포는 전염"되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서문에서 빈보쿠사이가, 남문에서 지로쵸가 날뛰며 적들을 밀어내기 시작하자 동요는 더욱 커진다.
          빈보쿠사이도 비슷한 의견이다. 자신 같은 역전의 늙은이도 불알이 쪼그라 들 것 같은 도박. 원래 세계를 구하는 바보같은 일은 삐끗하면 진자 세계를 파멸시킬 진짜 멍청이들한테는 버거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번만은 그 멍청이들, 긴토키 일행에게 걸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남자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 긴토키는 선봉에서 적진을 누비며 더 기세 좋게, 더 난폭하게 날뛰라고 동료들을 부추긴다. 어차피 지면 멸망 밖에 당하지 않으니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질러버리라며 마구잡이로 적들을 도륙한다. 그러자 도박이 먹혀들어간다. 3대 용병부족 조차 적이 되지 못했다면 자기들이 어떻게 대하겠냐며, 해방군 병사들이 등을 보인 채 도망친다. 그렇게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하자 전체의 붕괴는 빠르게 시작되었다. 신파치는 이대로 전부 무너져 버리기를 비는데.
          >내가 네놈들을 대해주겠다.
          * 그런데 그 모습이 어딘지 익숙하다. 오우가이는 분명 그를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짓밟인 꽃에 가슴아파하는 덩치 큰 사내의 머리 위에는, 수한 꽃이 피어있다. 그것은 분명 수 년전, 그의 뿔이 꺾였을 당시의... 기생종의 식물이 뇌에 박혀 태가 바뀌었던...
  • 은혼/630화 . . . . 17회 일치
          * 다츠마는 노부노부가 소요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가신들과 연락하려던가 아니었나"라고 재촉한다. 노부노부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무전기를 다츠마에게 넘긴다. 다츠마는 노부노부를 대신해 소요에게 황을 전달한다. 그들이 협 실패로 [[엔죠 황자]]에 의해 감옥에 갇혔으나 황이 급변해 풀려나게 되었다는 것, 해방군 간부 자작 제독과 제독의 모국 오오고쿠성의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사실도 전한다.
          가츠라는 오오고쿠의 우주선에서 바보 황태자... 아니 [[하타 황태자]]와 그들의 큰형님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와 함께 모함 "아메노토리후네"를 공략할 지원 병력을 기다리고 있다. 오오고쿠성 황태자들의 협조로 그들 모성에서 지원병력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하타 황태자와 네스 감이야 자기네 배니까 함께 있다고 치지만, 왠지 마다오 [[하세가와 다이조]]까지 그럴 듯한 폼으로 타고 있다.
          자작 제독은 구속이 풀린 직후 자신을 따르던 병사들을 포섭한다. 자작 제독은 그들에게 반란에 휘말리게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부하들은 자신들은 처음부터 자작 제독을 따르던 자들이니 관없다고 대답한다. 그것보다 현재의 해방군이, 엔죠 제독이 큰 문제라고 하는데.
          * 다츠마는 병력차는 있을 지언정 자신들은 이미 모함 내부에 있고 현재 황을 잘만 이용하면 모함을 제압해서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전한다. 무엇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러면서 이러한 정황과 자신들의 메시지를 지구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다츠마는 이 말을 끝으로 통신을 종료한다. 다츠마는 이걸로 됐냐고 노부노부에게 말을 붙이는데, 그는 아직도 생각에 잠겨있다. 그런데 부하들에게서 황 보고를 받은 자작 제독이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자작 제독은 방금 전 다츠마가 전했던 희소식이 무색하게 최악의 소식을 알린다.
          * 스크린 너머로 [[히라가 겐가이]] 감을 바라보는 [[엔죠 황자]].
          >그대들의 나라는 날이 밝기 전에 원히 우주에서 사라진다.
          같은 시각 자작 제독 또한 다츠마 일행에게 정확히 같은 사실을 전달한다. 겐가이 감은 엔죠의 말이 "협박치곤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허세를 부려본다. 이미 전쟁으로 치른 희생이 크다. 지구엔 해방군의 동지도 있다. 그 전부를 이제와서 다 지워버린다?
          [[천도중]]으로부터 사람과 별을 해방한다, 하지만 현실의 전쟁은 그들의 대외와 전혀 달랐다. 병사들 조차 그걸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싸우는 대은 천도중이 아니다. 그런 싸움을 위해서 동료들을 희생한다니? 그것은 천도중이 한 짓과 같은 짓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총구를 겨눈 자든, 그저 당황한 자들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엔죠가 팬던트를 닫는 순간 숨겨져 있던 화기가 불을 뿜는다. 사령실의 각 벽면마다 설치된 비장치였다. 반란을 도모했던 자들은 방아쇠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쓰러진다. 엔죠는 죽어버린 반역자와 살아남은 방관자들, 그리고 화면 속의 겐가이 감에게 말한다. 증오와 슬픔을 치유할 길도 없어진 자신들은 전쟁이란 불길로 그걸 태워버릴 수밖에 없다고. 증오도 슬픔도 전부 타서 재만 남을 때까지. 그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언제 망해도 이하지 않던 별이
          가츠라는 도착한 병력을 해방군의 레이더망의 경계선에 포진시키고 적 함대를 끌어내 모함으로부터 떨어지게 만들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스텔스 함으로 허를 찔러 모함에 접근, 기습을 가하기로 하는데...
          가츠라의 정치적 위이야 어쨌든, 우연인지 그도 다츠마와 같은 싯구를 떠올리고 있다. "무사도란 1초 후에 죽고자 하는 것이다"라는 싯구를. 가츠라는 바쁘게 함대를 지휘하면서 다른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 한다. 해야 할 일은 같다. 눈 앞의 일 만을 생각한다.
          * 같은 시각 지구에서 싸우는 자들, [[사카타 긴토키]]와 그 일행들은 [[가구라]]의 뒤를 따라 겐가이 감을 추적하고 있다. 과음의 여파로 [[시무라 신파치]]에게 업혀가던 긴토키는 신파치를 멈추게 하고 스스로의 다리로 일어선다. 동료들이 무사도를 생각하며 다가올 파멸과 싸우는 동안, 그도 같은 것을 떠올린 것일까?
  • 은혼/643화 . . . . 17회 일치
          * [[카와카미 반사이]]와 [[다케치 헨페이타]]의 희생을 딛고 [[다카스기 신스케]]와 [[키지마 마타코]]는 마침내 중추 제어실에 침투한다.
          * [[엔죠]] 황자는 이것을 곧 진압될 무의미한 저항으로 생각하지만, 모함의 황을 파악해보자 그게 아니라는게 드러난다.
          * 거기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역시 신스케를 쫓는 남자가 있었다. [[카와카미 반사이]]는 생사를 넘은 책략으로 추격대의 발을 묶었다. 적들은 불사신 같은 저력에 경이를 표했다. 그러나 반사이가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면서까지 감췄던 최후의 수가 드러나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반사이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치있는 남자를 쫓고 있다고 믿었다.
          >그 사람은 더이 뒤돌아 보지 않았다.
          * 제어 시스템을 호위하던 병력들은 난데없는 폭발이 일어나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제 3게이트였다. 방금 전 단 한 명의 적을 막으려고 부대 하나가 간 방향이다. 거기서 일어난 폭발로 부대는 전멸, 게이트마저 파괴됐다. 남은 부대들은 신속하게 화제를 진압하고 방어를 강화했다. 동시에 제어 시스템에 방어인력을 충원했다. 총알 하나라도 잘못 맞았다간 이 배가 어떻게 될지 하기도 싫었다. 증원병력이 막 도착했을 때였다. 신스케와 마타코가 제 3 게이트와 제어 시스템으로 양단된 병력 위로 뛰어내렸다.
          * 크게 베어 내리는 일섬. 성난 야수가 그들 사이로 떨어졌다.
          * 히노카구츠치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시스템이 파괴됐다.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이 정지되고 선내의 에너지 회로도 하나둘 정지. 긴급 복구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선내가 휴면에 들어갔다. [[엔죠]] 황다는 별다른 당황없이 선내에서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려던 자들의 현황을 확인한다. 허나 에너지 태가 저렇게 된데다 대부분의 구역이 일시정전 태가 되면서 파악이 불가능했다. 복구까지 최대 15분. 그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엔죠 황자는 그 많은 인원이 목숨을 버려서 고작 15분을 벌었다고 비웃었다. "가느다란 실". 그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받을 이도 없다. 그는 부하들의 호들갑을 진정시키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곧 모니터가 복구됐다. 순조로웠다. 모니터는 선내의 각 구역을 비췄고 거기엔 아무 깨끗하게 비어있는 통로나 괴멸한 적들의 시체가 쌓여 있어야 했다. 하지만 카메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았다. 대신 통신이 끊어진 몇 분 만에 각 구역에 있던 방어부대가 도륙난 모습이 비췄다. 대체 무슨 일인가? 황이 채 파악되지도 않았는데, 통제실의 출입구에서 폭발이 일었다. 거기에 대답이 도착해 있었다.
          * 이들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해방군에겐 충격이었다. 해방군들 사이에서 그러한 경악와 탄식의 말이 터져나온다. 가츠라는 그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받아친다.
          >희망을 남기고 사라진 이들의 혼도
          >희망을 받아서 살아남은 이들의 혼도
          * 중추 제어 시스템에 배치된 방어병력은 통제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이쪽은 단 두 명의 적이 나타났을 뿐이지만 통제실 이의 혼란으로 치달았다. 짐승처럼 날뛰는 신스케를 저지할 수가 없다. 그가 뛰어드는 곳마다 높게 피보라가 치솟았다. 병사들의 살점이 튀기고 뼈가 썰려 나갔다. 신스케가 가는 곳에 시체로 된 길이 열렸다. 신스케는 또 달렸다. 목표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 적들은 안중에 없었다. 그가 궁금한 것은 앞으로 얼마나 더 시체를 쌓아야 하는가였다. 발 아래 놓여있는 이 시체들. 그리고 밟고 지나왔던 시체들.
          >나에게는 더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17회 일치
          * [[디안느]]는 [[드롤]]의 몸에 빠르게 적응하며 거인족 여럿이 덤벼도 대가 되지 않을 만큼 성장한다.
          *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킹]]은 스티그마와 현시대의 황을 냉정하게 파악하지만 디안느는 생활에 적응해서 별 관심이 없다.
          * 스티그마 내에서는 마신족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이 돌고 있다. 각지에서 마신족에게 희생자가 나오고 있는데 "십계"는 물론 "흑의 육기사"라는 조직에게도 당히 고전하고 있다. 모여있던 스티그마의 병사들은 이같은 소식들을 공유하며 마신족에 대해 증오를 숨기지 않는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마신족을 섬멸하고 멸종시키겠다는 발언을 한다.
          * 스티그마의 본부에서는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여신족 지도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그녀는 [[뤼드셀]]이 마신족을 근절할 때라고 선언한 것에 크게 반발한다. 그녀는 으로 지위가 높은지 그녀는 뤼드셀과 [[네로바스타]]를 하대하지만 그들은 경칭을 쓴다.
          뤼드셀의 공손했던 태도가 한순간 사라진다. 그는 "모든 종족이 바라던 평화"를 주창해왔지만 그 안에 마신족은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스티그마인 멜리오다스 조차 예외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엘리자베스가 눈을 떠야 한다며 멜리오다스와 갈라지라고 강요한다. 그에게 있어선 멜리오다스는 마신왕의 후계자일 뿐 이도 이하도 아니다. 필요하면 엘리자베스에게 더 어울리는 사내도 준비할 수 있다고 하는데.
          * 디안느는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킹]]에게 승리를 자랑하듯 어떻게 봤냐고 의견을 구한다. 킹은 건성으로 대답하는데 실은 방금 전에 본 뤼드셀이란 남자를 의식하고 있다. 잠깐 봤을 뿐이지만 그 마력은 십계와 동등하거나 그 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숲 깊숙한 곳에서도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데 그 기색은 뤼드셀과 같은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킹은 이런 의문점에 대해 디안느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지만 디안느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짧은 시간만에 이곳 생활에 적응한 건지 거인족들을 따라다니며 "한 번 더 승부하자"고 조르고 있다.
          >여동생이 오빠의 걱정을 하는게 그렇게 이한 일인가요?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킹의 표정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게라이드는 오빠의 태가 평소와 다르다고 이하게 여기는데 킹은 얼버무리기 바쁘다. 킹은 생각해 보니 그녀가 초대 요정왕 때부터 섬겨왔단 얘기를 해준 걸 떠올린다. 하지만 설마 자신과 [[엘레인]]처럼 남매 관계일 줄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모습과 분위기는 그가 알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 현대의 게라이드는 속이 검고 요정왕의 안위만 맹목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 킹은 화제도 돌릴 겸 숲에서 감지되는 마력에 대해서 게라이드에게 묻는다. 그러자 게라이드가 잊어버린 거냐면서 그것의 정체를 알려준다. 그것은 요정왕의 마력으로 보호받는 숲을 한 번 더 보호하기 위해 그로키니시아가 없는 사이 뤼드셀이 펼친 결계이다. 이런 사실이야 킹이 알리 없으니 그는 "그랬던가"하고 적당히 대꾸한다. 하지만 비밀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게라이드는 좀 더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는데.
          * 그때 숲의 공으로 거대하고 분노한 마력이 다가오고 있다. 수많은 십계의 군세가 그곳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선봉엔 "십계"의 [[몬스피드]], [[데리엘]], [[프라우드린]], [[갈란]], [[메라스큐라]] 등이 있다.
          스티그마의 병사들은 누구나 숲에 준동하는 불길한 마력과 흑운을 목격한다. 킹은 이거야 말로 "시련"인 거냐고 중얼거린다. 디안느도 어느 새 진지한 얼굴로 황을 주시하고 있다. 로우, 멜리오다스, 엘리자베스도 불길한 황을 감지했다.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17회 일치
          * 일곱 개의 대죄 앞에 모습을 드러낸 메라스큐라는 그들을 직접 쓸어버리기 위해 거대한 뱀의 형을 드러낸다. 맨 처음 노린 것은 [[반(일곱 개의 대죄)|반]].
          * 한편 혼자 남겨진 멜리오다스는 쌓이고 쌓인 분노가 마신왕의 힘을 끌어내 암담의 고치를 찢고 바깥으로 나오니, 보통 태가 아니게 된다.
          * 모두 당황하는 가운데 [[에스카노르]]만이 신부 릿타를 들고 마신왕의 힘에 잠식된 멜리오다스를 대하러 나선다.
          * [[디안느]]에게 씌워진 주박을 벗겨낸 [[엘리자베스 리오네스]]. 이제 여신족의 힘에 완전히 각성했다. 그녀의 등장에 가장 경악한 것은 [[메라스큐라]]. 일곱 개의 대죄 일행이 난처해하는 것을 보고 즐기며 승리를 확신했으나 엘리자베스의 등장으로 일거에 황이 뒤집혔다. 그녀가 당혹해 해서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그녀의 "암담의 고치"에 갖혀 있던 [[멜리오다스]]가 엘리자베스가 눈을 뜬 거냐고 묻는다. 메라스큐라는 그 말을 들은 척도 없이 어차피 엘리자베스는 이제 3일 후에 죽겠지만 자신이 직접 죽여주는 것도 좋겠다며 전장에 나서려 한다. 멜리오다스는 자신을 당장 꺼내주는게 좋을 거라고 다시금 경고하나 그녀는 무시한 채 암담의 고치를 나선다. 혼자 남겨진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읊조리며 격렬한 분노를 쌓아가는데.
          * 엘리자베스는 디안느를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신족의 치유의 힘을 발휘해 일행의 처를 치유해준다. 쾌한 바람 같은 기운이 훑고 지나가다 중을 입었던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가 깨끗히 치유된다.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엘리자베스를 따라온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을 질책했다. 그녀가 좋지 않은 몸태로 무리를 한 게 가슴 아팠다. 엘레인은 반과 모두가 걱정돼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반은 이제 그 문제를 묻어두고 지금이라도 빨리 돼지의 모자 정으로 돌아가라고 하지만 엘레인이 대답을 피했다.
          전생의 기억이 깨어난 것이 어떤 향을 준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전의 착란 같은 증세와는 차이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지극히 정이었고 대신 멀린 쪽이 어색하게 머뭇거리고 있었다. 동료들이 그걸 이하게 여길 때 쯤 엘리자베스는 충격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멀린하고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단어가, 엘리자베스의 증언에서 튀어나왔다. 동료들이 수군거리고 십계가 부활했을 때조차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던 멀린이 사색이 된다. 엘리자베스는 거침없이 자신이 아는 멀린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자신을 진짜 언니처럼 따랐던 12살 시절의 멀린이었다. 멀린이 당황해서 "언제적 얘기냐"고 하는 걸 보면 거짓 없는 사실. 할리퀸과 디안느는 저 멀린이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신기해했다. 그리고 [[에스카노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엘리자베스에게 요구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멀린은 더이의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쓸데없는 캐묻기라고 정색했다.
          메라스큐라가 자신의 증오스러운 적들을 직접 대하려 하는 건 분명했다. 그녀의 몸이 묘하게 꿈틀거리더니 서서히 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녀의 본질적인 모습으로.
          * 형태가 무너지던 그녀의 몸은 팽창을 거듭해 거대한 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 쌍의 뿔이 달린 사악한 뱀. 그것이 그녀의 진짜 모습이었다. 메라스큐라는 이 형태를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반은 지금까지 모습보단 이쪽이 낫다고 빈정거렸다. 그 때문인진 모르지만 메라스큐라가 제일 먼저 노린 것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반이었다. 메라스큐라의 주둥이가 반을 덮쳤다. 멀린은 고서와 엘레인을 퍼펙트 큐브로 보호하며 공으로 날아올랐고 에스카노르가 호크가 휘날려가지 않게 붙들었다.
          * 사냥감을 어이없이 빼앗긴 메라스큐라가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녀가 놀라는 건 이제부터다. 코란도 중심부에 있던 거대한 건물이 알 수 없는 폭발을 일으켰다. 아니, 그게 무슨 의미인지 메라스큐라는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멜리오다스를 암담의 고치에 가둬 숨겨놓은 곳. 거기서 이변이 생겼다는 건 한 가지 이유 밖에 없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거대하고도 사악한 파동. 그 기는 분명 그 사람의 힘이었다. 이젠 일곱 개의 대죄 일행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멜리오다스. 그가 결국 자력으로 암담의 고치를 파괴했다. 메라스큐라만이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한 암담의 고치는 십계 중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는 술법이었다. [[젤드리스]] 조차도 마신왕의 마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럴 순 없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멜리오다스는 흉흉한 기운을 날개의 형으로 뻗으며 일어나고 있었다. 마신왕의 마력 없이는 젤드리스도 깨뜨릴 수 없다. 그렇다면 멜리오다스에 내뿜은 사악한 힘의 정체는 분명했다. 마신왕의 힘. 그는 그 힘에 잠식된 듯 보였다.
          >지금의 단장공은 너에게도 벅찬 대다!
  • 장남석 . . . . 17회 일치
         |클럽=[[대구 FC]] <br/> → [[무 축구단|무 피닉스]] (군 복무)
         [[2009년]]엔 잦은 부에 시달리며 정적인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해 정규리그 14경기에 출전하는 동안 한 골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K리그 2011|2011 시즌]]을 앞두고 입대하여 [[무 축구단|무]]에서 활동했으나, 그 해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구제명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팀 동료였던 [[온병훈]]까지 승부조작을 했다고 증언했으나, 신빙성이 없고 경기 을 봐도 승부조작의 정황을 포착할 수가 없다는 이유로 거짓 증언으로 드러났으며 온병훈은 완전히 무죄 판결을 받았다.
         == 수 ==
         * [[2006년]] [[스포츠토토]] 한국축구대 신인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
  • 장다경 (영화배우) . . . . 17회 일치
         | 출생지 = [[경북도]]
         | 국적 = {{국기나라|일제감정기}} [[경북도]] [[칠곡군]]
         | 활동기간 = 자신의토지 보금에대한불만
         | 수 =
         | 웹사이트 = [http://dalkomenm.com/jang-da-kyung/ 공식사이트]
         * [[중앙대학교]] 연극화과 휴학
         === 화 ===
         * 《[[너의 결혼식 (화)|너의 결혼식]]》 (2018년) - 포토그래퍼 역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4년 화)|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4년) - 은정 역
         * 《[[회사원 (화)|회사원]]》 (2012년) - 서민희 대리 역
         * 《[[너는 펫 (화)|너는 펫]]》 (2011년) - 뮤지컬배우 1 역
         * 《[[글러브 (화)|글러브]]》 (2010년) - 정희 역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화)|눈에는 눈 이에는 이]]》 (2008년) - 관광객들 역
         * 《오당사이잠든사이에》 (2015년)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 장문석 (배우) . . . . 17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관 (화)|관]]》 (2013년) - 이몽가 역
         * 《[[님은 먼 곳에 (화)|님은 먼 곳에]]》 (2008년)
         * 《[[좋은 놈, 나쁜 놈, 이한 놈]]》 (2008년) - 귀시장파 야채인 역
         * 《[[뜨거운 것이 좋아 (2007년 화)|뜨거운 것이 좋아]]》 (2007년)
         * 《[[어 (드라마)|어]]》 (KBS2, 2013년)
         * 《[[내 딸 서이]]》 (KBS2, 2012년)
         * 《[[거 김만덕]]》 (KBS1, 2010년)
         * 《[[막돼먹은 애씨|막돼먹은 애씨 시즌 6]]》 (tvN, 2009년)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민희 . . . . 17회 일치
         | 향 받은 인물 =
         | 향 준 인물 =
         | 수 =
         | 웹사이트 = [http://blog.naver.com/enjolas 개인블로그]
         휘경여고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ref>{{웹 인용|웹사이트=http://fairytale.pe.kr/profile/profile.html}}</ref> 특유의 미려한 문체가 특징이다. [[세월의 돌]] 후속작인 [[태양의 탑]]을 연재하던 중, 표지를 만든 일러스터가 표절했음이 밝혀져 그 때문에 계약이 파기되어 한동안 [[태양의 탑]]은 집필을 중단하게 된다. 그 후 제우미디어 출판사와 계약한 후 소프트맥스와 함께 기획한 [[룬의 아이들]] 시리즈를 새로이 집필했고, 2015년 현재 1부 윈터러와 2부 데모닉까지 완간된 태. 데모닉 집필 중간인 2004년부터 첫 작품 [[세월의 돌]]을 개정해서 출간하기도 했다.
         드라마틱 MMORPG [[테일즈위버]] 홈페이지에 한 때 게재되었던 동 인터뷰에서는, “3부가 예정되어 있으며, 3부는 윈터러와 데모닉에 출연했던 인물들과 수년 뒤 겪게될 공화정과 왕정의 대립구도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할 것으로 구하고 있다.”는 언급이 있었다.
         *《[[속자들()]]》
         *《[[속자들(하)]]》
         * 《[[아키에이지]]》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종족 중 '누이안'의 조인 '키프로사 데이어(Cyprusa Daeior)'가 주인공이다.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에 걸쳐 '패러렐'과 유사한 구조가 등장한다. [[세월의 돌]]에서는 200년 전과 현재의 사건이 비슷한 양을 보이며 전개되고 있고, [[룬의 아이들: 데모닉]]에서는 주인공의 조과 주인공의 이야기가 그렇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의 조과 밀접하게 관련된다(세월의 돌-에제키엘 나르시냐크, 룬의 아이들 데모닉-초대 아르님 공작). 이런 구조가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 {{언어링크|ko}} [http://jeonminhee.com 공식 웹사이트]
  • 전예용 . . . . 17회 일치
         }}</ref>)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관료이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총독부 사회과장, 황해도청 산업부 농업과장, 경성세무서 서무과속, 개성세무서속 등을 거쳐 경기도 광주군수를 지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 학무국장 보좌관으로 근무했으며 고려대 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외무부 통국장이 되었다가 [[서울특별시 부시장]]이었고 [[6.25 전쟁]] 중 [[서울특별시장]] 직무대리를 역임했다.
         그밖에 한국은행 부총재와 총재, 건설부장관, 부흥부 장관, [[서울대학교]] 과대학 강사 등을 지냈다. [[서대문]]출신.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391-1번지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은행원이자 기업인이었던 아버지 전성욱과 어머니 이성원의 셋째 아들이었다. 형 인용, 의용은 일본 유학 후 고베고를 졸업했으며, 동생 전지용은 경성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했다. 그밖에 2명의 누이가 있었다.
         [[1944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과장이 되고 [[1945년]] [[조선총독부]] 재무부장으로 재직 중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5년]] [[9월 2일]] [[미 군정]]이 설치되자 학무국장 보좌관에 임명되었고, [[조선주택단]] 이사를 겸임하였다. [[1946년]] [[조선주택단]]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1946년]] [[미군정]] 림국 총무과장에 임명되었다.
         [[1947년]] [[고려대학교]] 강사가 되었다가 [[1948년]] [[8월 15일]][[외무부]] 통국장에 임명되었다. 1949년 [[서울특별시 부시장]]에 임명되었으며 [[6.25 전쟁]] 중인 [[1951년]] [[5월]]부터 [[6월]]에는 [[서울특별시장]]직무대리를 역임하였다.
         |쪽=550~567쪽}}</ref> 이후 문교부 총무과장, 서울대학교 과대학 강사 등을 역임했다. [[1960년]] 부흥부 장관을 거쳐 [[한국은행]] 총재가 되었다. [[1967년]] [[건설부]]장관이 되었다.
         * 1945년 : [[조선주택단]] 이사(해방 후)
         * 1946년 : [[조선주택단]] 이사장
         * 1948년 : [[대한민국 외교통부|외무부]] 통국장
         * 1967년 : 민주공화당 총재 의역
         * 1970년 : [[대한공일보]] 회장
         * 1987년 : [[신민주공화당]] 임고문
         * 1930년 : [[경성고등업학교]] 졸업
         ** 누나 : 이름 미, 육군 대위에게 시집감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17회 일치
          * 바벨의 전 에스퍼를 대로 격전을 치른 효부 쿄스케. 간신히 도망쳐 회복하고 있는데 소년시절의 사카키 슈지와 만난다.
          * 그러나 블랙팬텀은 치밀한 함정을 설치해 판도라를 노리고 마기도 블랙팬텀에 완전히 사로잡힌 태.
          * 결국 마기는 이젠 길리엄을 섬긴다면서 블랙팬텀에 합류해버리고 효부는 최악의 황을 선언하며 도움을 필요로한다.
          * 효부 쿄스케는 바벨의 전 에스퍼를 태로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도심지의 격전 끝에 어떻게든 몸을 피하지만 당한 피해를 받았다.
          * 효부는 카오루가 태어난 병원까지 돌아가는데 성공했지만 몸도 가누지 못한다. 어떤 소년이 그에게 친절을 배푸는데, 소년시절의 사카키 슈지였다. 사카키는 효부에게 마실 물을 주고 쉬어갈 장소를 마련해주는데 이때 이미 힙노에 각성한 태라 효부의 정체와 황을 간파한다. 사카키는 자기도 나중에 당신 조직에 들어갈지 모르겠다며 못 본척 해주겠다고 말한 뒤 사라진다. 효부는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사카키를 마기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안심한다.
          * 이때 효부는 힙노를 발생시켜서 간단한 정신간섭도 병행하고 있지만 간절한 마음과 달리 효과는 미지수. 설으로 블랙팬텀의 새로운 함정이 접근한다. 잠수함 언터쳐블 엠프렌스에 탑승 중이던 쿠구츠 타카시가 잠수함에서 긴급하게 무전하는데 블랙팬텀이 발사한 미사일이 접근 중이다. 공에는 폭격기까지 대기 중. 사면초가의 황이다.
          * 마기는 효부를 공격한다. 효부가 목숨을 빼앗아서라도 막겠다고 한 말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이라고 절하하며 자신은 효부를 죽이는데 아무런 망설임이 그를 죽일 수 있다며 살의를 드러낸다. 카노 모미지가 효부를 휘감은 탄소섬유를 끊어버리며 말리자 이번엔 모미지를 공격, 손에 관통을 입힌다. 후지우라 요우는 모미지의 부에 충격을 받는다.
          * 효부는 이번에야 말로 마기를 쏴버리려고 염력을 집중하지만 결국 발사하지 못한다. 마기는 그 괴로워하는 얼굴 조차 비웃으며 이별을 선언한다. 때맞춰 블랙팬텀의 미사일이 폭발하며 물기둥이 치솟는다. 마기는 이것을 틈타 공의 폭격기와 접촉, 이제부턴 길리엄을 섬길 거라는 말과 함께 사라진다.
          * 효부일행은 언터쳐블 엠프렌스로 이동한다. 결과적으론 큰 피해는 없이 끝났지만 이들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은 크다. 특히 요우는 마기가 모미지를 공격한 일로 이를 간다. 한편 치료 중인 모미지는 설득실패를 자기탓으로 돌린다. 효부는 애초부터 힘든 일이었다고 말하지만 내심 최악의 황이라 여긴다. 같은 황이 반복된다면 길리엄과 싸우는건 불가능하다. 효부는 뭔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효부가 도움을 청할 대은 결국 미나모토 일행이 될 듯.
  • 조해현 . . . . 17회 일치
         1960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하고 1988년에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민사지방법원, [[대구지방법원]] 주지원, [[대구지방법원]], [[대구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1998년에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내다가 2001년에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되었다. 이후 [[서울행정법원]], [[부산고등법원]], [[인천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로 재판장을 하였으며 2014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대구지방법원]]장으로 승진해 제21대 대구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과 겸직하였다. 2년동안 법원장을 하다가 2016년 2월에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하였으나 2018년 2월에 대전고등법원장에 임명되었다.
         대법원 행정조 조장 재판연구관을 역임하고 행정소송법 개정에 참여하여 법원 내에서 대표적인 행정법 전문가이며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계약기간을 정한 것이 형식에 불과하다면 갱신계약 체결 거부는 무효라는 판결했고<ref>서울고등법원 2013. 3. 13. 선고 2012나59376</ref> 쌍용차 해고노동자 해고무효확인소송 항소심에서 "쌍용차 정리해고의 출발점이 된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 내용 중 유형자산의 손실액이 과다 계됐고, 회사가 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을 하면서<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40208.010070805250001 쌍용차 해고자 153명 해고무효소송 항소심 승소]</ref> "이 재판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마지막 인내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 시간이 길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9799 쌍용차 노동자들, 대법원 앞에서 절하는 이유]</ref> 이 판결이 있은 직후 법조인들로부터 감동적이고 정의로운 판결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ref>[http://ccnews.lawissue.co.kr/view.php?ud=16464 법조계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감동적인 정의로운 판결"]</ref> 대법원 3부(주심 [[박보 (법조인)|박보]] 대법관)가 고심에서 "해고는 유효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하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의해 2014년 걸림돌 판결에 선정되면서 대적으로 조해현 재판장의 판결이 돋보이게 됐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2080600065&code=940301 민변 “대법원 ‘쌍용차 정리해고 적법’… 올 최악의 판결”]</ref>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직하던 2010년 8월 26일에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주도적으로 결성하고 한국민권연구소 소장으로 기관지 ‘정세동향’ 등을 통해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이적 문건을 작성해 전파하여 기소된 김승교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임대표에게 "[[천안함 사건]] 등 북한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우리와 대처하면서 대한민국의 존립 등에 명백한 위협을 가하고 있는 황에서 김 대표 등의 행위는 체제를 위협하고 국론의 분열과 사회 혼란을 초래할 위험성이 커서 그 죄질 및 범정이 가볍하고 할 수 없다"며 원심과 같이 징역2년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고<ref>[http://www.fnnews.com/news/201008261426418319?t=y]</ref> 2011년 6월 19일에는 납북어부 간첩 사건으로 기소됐다가 재판중 사망한 강경하의 재심 사건에서 "형사소송법 420조에서 재심 대을 유죄 확정 판결로 규정하는 이유는 통적인 불복절차를 통해서는 더이 다툴 수 없다는 점에 근거할 뿐"이라며 "피고인의 사망으로 공소기각 결정된 사건도 무고할 수 있는 시민의 법적 구제수단인 재심이 허용된다"고 하면서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3528.html 유죄확정 안됐어도 ‘재심’ 길 열려]</ref> 2017년 2월 2일 당내 경선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허위사실을 문자메시지로 발송한 혐의에 대해 불기소처분하자 춘천시 선거관리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재정신청]]된 [[김진태 (1964년)|김진태]] 의원에 대해 공소제기를 결정하자 [[김진태 (1964년)|김진태]] 의원으로부터 "담당 법관이 좌성향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 설마했는데 역시나"라는 평가를 받았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1100.html 검찰이 불기소한 김진태, 선거법 위반 재판받는다]</ref> 2007년 6월 제주도에 면역세포 치료제 개발ㆍ시술을 할 수 있는 일본계 리 의료법인 설립 및 부대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공무원에게 청탁해주는 대가로 업체로부터 3억원을 받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알선수재 혐의로 1심에서 징역1년6월에 추징금 3억원이 선고된 [[김재윤]] 의원에 대해 "관련자 진술과 당시 황 등을 종합해보면 리 의료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이 있었던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 대가로 3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충분한 입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율이나 변제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점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차용증과 수증까지 작성된 점, 쉽게 자금 추적이 가능한 수표를 받은 점 등으로 미뤄 김 의원의 주장대로 차용금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1101281427040760?t=y 한승철, 김재윤 잇단 무죄선고.."대가성 불인정"]</ref>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실시한 2011년 법관에 대한 평가에서 우수 법관 위 10명에 선정되었다.<ref>[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fs=1&ss=3&news_idx=201201180923041021 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fs=1&ss=3&news_idx=201201180923041021]</ref>
  • 존 딜린저 . . . . 17회 일치
         사춘기에 접어든 딜린저는 학교를 중퇴하고 공작소에서 일을 하게된다.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본 딜린저의 아버지는 식료품점을 팔아치우고 인디애나 주 무어스빌로 이사해 농장을 경한다.
         1923년, 딜린저는 미 해군에 입대한다. 그는 전함 USS 유타에서 복무하게 되었지만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유타가 보스턴에 정박했을 당시 탈해버린다. 무어스빌로 돌아온 딜린저는 1924년 베릴 호비어스(Beryl Hovius)라는 3살 연하의 여자와 결혼한다.
         딜린저는 인디애나 주 크라운포인트의 감옥에 갇힌다. 이스트시카고에서 벌인 은행강도 도중 경찰관을 살해한 죄를 재판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딜린저는 나무를 깎아 총 모형을 만든 다음 그걸로 간수들을 위협해 감방에 가둔 다음 자동화기을 가지고 탈출한다. 그 후에는 보안관의 차를 훔쳐타고 일리노이 주 시카고까지 도망친다. 이로 인해 훔친 차량을 다른 주로 밀수했다는 혐의가 추가로 붙게 되며 FBI가 딜린저를 쫓기 시작한다. 한편 함께 붙잡힌 동료 세명은 딜린저의 탈옥을 도와주며 보안관을 살해한 일로 재판을 받게된다. 재판 결과 피어몬트와 마클리는 사형을, 클라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사형을 선고받은 둘은 탈옥을 시도했으나 마클리는 탈옥 시도 중 사살되고 피어폰트는 부을 입은채로 붙잡혀 한 달 후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친다.
         1934년 3월 30일, 세인트폴의 링컨코트 아파트 관리인이 자신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헬만 부부를 수하다고 신고했다. 헬만 부부가 수하게 행동하며. 관리인을 집 안으로 들이기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헬만 부부의 정체는 딜린저와 프래쳇이었다. 다음날 FBI는 경찰과 함께 그들의 은신처 문을 두들긴다. 문을 연 프래쳇은 이들을 본 즉시 문을 닫아버렸고, 즉시 증원 경력이 추가로 투입되어 링컨코트 아파트를 포위한다. 하지만 밴 미터가 나타나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사이 딜린저와 프래쳇은 뒷문으로 탈출한다. 이들은 그린의 은신처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린 역시 4월 3일 역시 FBI의 습격을 받고 총을 뽑다가 사살된다.
         딜린저와 프래쳇은 다시 무어스빌로 도망간다. 딜린저는 그곳에서 링컨코트 아파트 탈출 당시 입었던 부을 치료하는데 시간을 보냈지만 프래쳇은 친구를 만나러 시카고에 갔다가 FBI에게 체포당한다. 그녀는 범인 은닉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는다. 완치된 딜린저는 밴 미터와 함께 인디애나 주 바르샤바의 경찰서를 털어 총과 방탄조끼를 습득한다.
         같은 달, 리틀 보헤미아라는 산장에서 FBI에 신고 전화를 건다. 수한 사람들이 호텔에 묵고 있다는 내용의 신고였다. 이들은 휴가를 즐기러 온 딜린저 갱단원들이었다. FBI와 경찰은 리틀 보헤미아 산장을 습격했지만 인명 피해만 내고 딜린저 갱을 놓치게 된다.
         7월 21일, 안나 세이지(Anna Sage)라고 자칭하는 여성이 경찰에게 연락해온다. 그녀의 정체는 인디애나 주 게리에서 포주일을 하던 아나 쿰파나슈(Ana Cumpănaș)였다. 이민 귀화국에서는 이 루마니아 출신 포주를 국외추방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에 위기감을 느낀 쿰파나슈는 보금을 주고 미국에 남게 해준다면 존 딜린저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연락한 것이었다. FBI는 보금은 약속할 수 있지만 국외추방에 관한건 노동부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쿰파나슈는 이를 받아들였다.
         쿰파나슈는 자신의 친구인 폴리 해밀턴(Polly Hamilton)이 딜린저의 애인이라고 밝히며, 딜린저가 해밀턴과 함께 시카고에서 화를 볼 수 있다고 밀고했다. 둘이 갈 가능성이 있는 극장은 바이오그래프 극장(Biograph)과 마르브로 극장(Marbro) 둘 중 하나였다. 그녀는 둘이 갈 극장이 어떤 극장인지를 알리고, 둘을 따라가면서 주황색 드레스를 입겠다고 말하였다.
         7월 22일 오후. 딜린저, 해밀턴, 그리고 쿰파나슈는 화를 보러 길을 나선다. 쿰파나스가 어떤 극장에 갈지 아직도 몰랐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FBI와 경찰은 두 극장 모두 경찰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FBI 요원들은 세 명이 바이오그래프 극장으로 들어가는걸 목격하지만 사람들이 몰린 극장에서 딜린저가 저항할 위험을 피해 대기했다.
         밤 10시 30분. 화를 보고 난 딜린저는 두 여자를 데리고 극장 밖으로 나선다. 극장 문 앞에 서있던 멜빈 퍼비스(Melvin Purvis) 특별 수사관이 시가에 불을 붙이는 것을 신호로, FBI 요원들과 경찰들이 딜린저에게 접근했다. 위기에 처했다는 걸 깨달은 딜린저는 바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골목길로 도망갔지만 그곳에는 FBI 요원들이 매복해 있었다. 세 발의 총알을 몸에 맞은 딜린저는 그대로 쓰러졌다. 20분 후, "공공의 적" 존 딜린저가 알렉시안 브라더즈 병원(Aliexian Brothers Hospital)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존 딜린저를 주인공으로 한 화로 2009년 개봉한 [[퍼블릭 에너미]]가 있다.
         [[https://www.fbi.gov/history/famous-cases/john-dillinger|FBI 홈페이지의 존 딜린저 소개 페이지(문)]]
         [[http://www.history.com/topics/john-dillinger|히스토리 채널의 존 딜린저 소개 페이지(문)]]
         [[http://www.chicagotribune.com/news/nationworld/politics/chi-chicagodays-johndillinger-story-story.html|시카고 트리뷴 - John Dillinger's death(문)]]
  • 창작:레스터 리 . . . . 17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인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솔직히 말하자면, 또 다른 세을 보고 싶어. 이런 세도 괜찮구나, 하고 느껴보는 거지. 네 말대로 여러가지 험한 꼴을 당하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 '''아마도.'''
         = 신정보 =
         20대 한국인 남성. 본명은 불명이며 일부러 얘기하지 않는다. [[창작:존 휘태커|존 휘태커]]보다 나이가 4살 가량 어리다. 중키에 마른 체질이며 머리카락은 적당한 검은색 비대칭 머리. 존은 '사이비 종교나 사기꾼들이 사랑하게 생겼다'고 표현했다. 안경을 껴서 그런지 지적인 이미지가 있고, 실제로도 지적이다(아래 '내적' 참고).
         '''중립 선 ~ 중립. (편의 D&D의 분류를 사용)'''
         ~~가방끈이 길어서~~ 세의 부조리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또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평화적이지만 성과가 별로 없는' 합법적 운동에 내심 반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불법적인 행동을 적극 지지하지도 않는다.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딱히 수단과 방법에 개의치 않는, '자칭' 흑묘백묘론자. 물론 그렇기 때문에 잠재적으로는 범죄자 기질이 있다는 얘기를 자신이나 남들에게 자주 듣는다. 혹자는 지식과 인간관계를 통해 '무언가'를 억눌러두고 있는 게 아니냐고 평가했다.
          * 근접 전투능력은 순위를 매기자면 하위권. "Love Thy Neighbors" 에피소드에서 [[창작:바트 캘리코|바트 캘리코]]가 '''술 먹고 춤추는 것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이다. 정확히는 체력과 힘이 딸려서 오래가지 못하는 스타일.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시끌벅적한 일은 맡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작가와 황 때문에 어김없이 말려든다.~~
          * 그러나 사격술은 의외로 당한 편이다. 본인 왈 '''게임으로 다져진 실력'''이라고(…). ~~과연 게임의 본고장 한국~~ 하지만 존 휘태커와 달리 죽이는 것이 아닌 '''무력화'''를 목적으로 삼기에 주로 어깨나 배, 다리를 노린다. 그러다 보니 명중률에 비해 큰 도움은 안 되는 편. 존도 '그럴 거면 총 버리고 따라다니기만 해'라고 핀잔을 준다.
          * 운전은 존에 비하면 당히 잘 하는 편.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남아 있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나중에는 지인들의 운전사나 도주책(!), 스트리트 레이싱(!!)까지 하게 된다. ~~쉽게 말해 전천후 셔틀.~~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트와일라이트 시티]]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도착하자마자 사기를 당하게 되지만, [[창작:존 휘태커|존 휘태커]]의 도움으로 돈을 되찾는다. 이후 한국인 공동체를 찾아갔지만 예 외로 조건이 빡쎄서 결국 공동체 구성원이 추천한 집을 구한다. 그런데 그 곳은 존의 집인 [[창작:릴리퍼트 아파트|릴리퍼트 아파트]]였고, 다행스럽게도 공동 관리인 [[창작:앨프레드 박|앨프레드 박]]이 존을 설득한 덕분에 "길가의 버려진 강아지" 취급을 받으며 같이 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존이 "일" 때문에 아침 일찍 나가느라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고, 또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파트 주민들을 비롯해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며 점차 적응해 나간다. 그리고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만의 인맥을 쌓아 나간다. 하지만 긍정적인 인맥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쪽으로도 인간관계를 쌓아 나가게 된다. 급기야 "The Street Sweeper: Act 2" 에피소드에서는 연쇄살인범으로 몰려 구치소에 가기도 하지만, 존이 와서 황을 설명하고 처리해 준 덕분에 무사히 풀려난다.
          * 국적을 필요 이으로 자랑하다가 바보 취급당한 적이 있기에 그냥 동양인이라고만 하고 다닌다. 그 편이 의뢰인에게 더 편하기도 하거니와 의뢰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단서가 되어서 그렇다고. 물론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엄청 반가워한다. 그렇다고 일본인이나 중국인을 만났다고 불쾌해하진 않는다. ~~다만 한일전만큼은 용납하지 못한다~~
          * 존에 비해 류층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존처럼 '돈벌레'라며 혐오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막연하게나마 부유한 일을 꿈꾸고 있다. 그러면 존이 '꿈 깨라'고 핀잔을 주는 게 일.
  • 창작:연합 택시회사 . . . . 17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건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80년대 즈음 중국계(정확히는 홍콩 출신) 미국인들이 설립했으며, 그 때문에 흔히 하는 노란색 미국 택시와 달리 빨간색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 홍콩 택시는 빨간색과 흰색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80년대 이후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다가 한국인이나 일본인 등이 합류하여 이름에 걸맞게 아시아인들의 연합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뿌리가 깊은 국적 간의 갈등이나 본토의 문제 때문에 이래저래 말도 많다고 한다.
         = 세 =
         ㄷ자 형태의 2층 건물로, 높이보단 넓이가 당한 건물이다. 벽은 ~~빨간 걸 좋아하는 중국인들 때문인지~~ 짙은 빨간색, 정확히는 벽돌색이다.
         == 운 ==
         택시의 색깔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홍콩 택시와 비슷하게 빨간색과 하얀색을 섞어 쓰고 있다. 하지만 경자와 주요 직원들이 중국인이고 본토 중국에 아직도 공산당이 남아 있는 것을 빌미삼아 속칭 '빨갱이 택시(Commies Taxi)'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 소속된 직원들은 당연히 이 멸칭을 증오하지만 작게는 개인의 생계부터, 크게는 중국교포들간의 인간관계 등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묶여 지낸다.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중국계 회사답게 파급력은 가장 큰 편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는 법인지 몇몇 기사들의 태도에 문제가 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회사의 운에 삼합회 등의 구린 자본이 사용된다는 이유로 몇몇 언론이나 집단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구린 자본' 때문에 경쟁력은 잘 떨어지지 않고 있다.
          모델은 화 "웅본색"의 견숙.
          모델은 화 "웅본색"의 송자호.
          모델은 화 "웅본색"의 마크 리.
          * 이름과 컨셉은 화 '''웅본색'''에서 주인공 송자호가 출소 후 근무하는 택시회사에서 따왔다. 뜬금없이 삼합회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
  • 최문식 . . . . 17회 일치
         |클럽=[[포항 스틸러스|포항 아톰즈 / 포항 스틸러스]]<br />→ [[국군체육부대|무]] (군복무)<br />[[전남 드래곤즈]]<br />[[오이타 트리니타]]<br />[[수원 삼성 블루윙즈]]<br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
         '''최문식'''([[1971년]] [[1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지도자이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미드필더|공격형 미드필더]]였으며 한국축구 역사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명으로 꼽힌다.
         동대부고를 졸업한뒤 대학진학 대신 [[1989년]] [[포항 아톰즈|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한국 축구 역사 최초 고졸신인 최문식은 [[포항 스틸야드]] 개장 경기에서 첫골을 기록하였고, [[1989년]] [[성남 FC|일화]]와의 경기서 경기 종료 10초전 극적인 오버헤드킥 동점골을 기록한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군대를 갔다온 2년을 제외하고 [[1998년]]까지 포항에서 뛰었음은 물론이고 기술력 있는 축구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스위주의 축구와 정확한 골결정력을 바탕으로 포항의 공격진을 책임졌으며,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 FIFA 월드컵|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4년 아시안 게임|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였고, 월드컵 출전 직후 합류한 첫경시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포항의 [[아디다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2015년]] [[5월 27일]] 올림픽대표팀 코치직에서 물러나 [[조진호 (축구인)|조진호]] 감독의 후임으로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전득배 사장 혼자서 일방적으로 입 한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최문식은 K리그 클래식 잔류라는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축구철학을 토대로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 전술을 구사함으서 팀컬러를 맞추고 선수 개개인의 기술력을 끓어올리는 등의 장기적인 미래를 보는 축구를 펼치겠다고 밝혔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476883/최문식, 대전 9대 감독 취임 "대전의 색 만든다"] </ref> [[6월 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서 감독으로서 데뷔전을 치루었으나 1:2로 패했다. [[8월 15일]] [[성남 FC]]전 패배로 대전은 14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고, [[8월 19일]] [[광주 FC]]와의 26라운드 원정 경기서 2:1 승리를 거두며, 겨우 최문식의 데뷔 이후 첫 승과 시즌 2승을 거두었다. [[10월 4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K리그에 스플릿 라운드 제도 도입 이후 최초 스플릿 라운드 이전 홈 무승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0월 18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1:0 승을 거두며 리그 개막 7개월만에 홈 첫승을 거두었으며, 이후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 경기서도 승리하며 2연승을 거두었지만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서 패해 사실 강등이 확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과의 홈 폐막전서 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었다. 이에 분노한 대전팬들이 경기 종료 후 선수단 버스 앞에서 최문식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2015시즌이 끝난 뒤에도 최문식 감독은 유임되었고 최문식은 2016시즌을 앞두고 선수단을 무려 20명 이을 바꾸는 등의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 작업에 나섰으며, 2016 시즌도 2015시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축구 철학을 토대로 한 FC 바르셀로나식 패스 위주의 축구를 통한 팀 컬러를 맞추는데 주력할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3월 26일]] [[대구 FC]]와의 리그 개막전서 2:0 패한것을 시작으로 [[4월 9일]] [[안산 무궁화 FC]]전까지 개막 이후 3경기 연속 무득점 패배에 그쳤으며, [[4월 23일]] [[부천 FC 1995]]와의 경기마저 1:3 역전패하며 리그 4연패를 기록했고, 최문식 감독은 경기 직후 인터뷰를 통해 4연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음을 밝히며 사퇴를 암시하였다.<ref> [http://sportAlkorea.mt.co.kr/news/view.php?gisa_uniq=2016041716184350§ion_code=10&cp=se&gomb=1/V/ '4연패' 최문식 감독, ''연패에 대해 책임지겠다''] </ref>이후 대전 구단이 후임 감독을 물색하고 있다는 보도가 전해지자, 윤정섭 대표이사는 후임 감독 물색설을 일축하며 <ref>[http://www.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604180400// 윤정섭 대전시티즌 대표, 감독 교체설 일축] </ref> 최문식 감독을 재신임 할 것을 밝혔다.<ref>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382595/ 대전, 감독교체 없다…윤정섭 사장 "최문식 감독 믿는다"] </ref>
         1990년대 이후 [[김병수 (축구인)|김병수]], [[윤정환]], [[고종수]]와 같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로 이름을 날렸으며, 기술력 있는 축구에 능하다는 의미의 '''테크니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으며, 포항팬들 사이에서는 골결정력이 정확하는 의미로 '''믿을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최문식은 대전 시티즌의 감독 당시 현실과 이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대전 감독을 역임하면서 대전 구단의 사정을 전혀 모르채 현실을 외면하였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가난한 시민 구단인 대전의 현실을 외면하고 2014년의 우승 및 승격 주역들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을 내보내고 입하는 대대적인 리빌딩을 반복하며 팀의 조직력을 약화시키였으며, 특히 그는 대전은 당시 강등 위기에 몰려있었던 터라 당장의 성적과 승리에 신경써야하는 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위권에 있는 팀이 경기력에 신경쓰는 듯한 행보를 선보였으며 지금 당장의 경기의 승리를 위해 수비 위주의 역습 위주의 경기보다는 당장의 성적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자신 특유의 바르셀로나식 패스 위주의 축구를 선보이며 자신만의 축구철학만을 고집하며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펼치겠다는 개인적인 욕심만을 채우려 했었다.
         최문식은 선수들, 팬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당히 부족했다. 2016시즌 중반에는 [[서동현 (축구 선수)|서동현]]이 최문식과의 불화로 반년만에 팀을 떠나기도 하였었고, 선수들은 최문식의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 2016시즌 중반 이후 간담회에서의 팬의 요구에 따라 경기 결과에 관없이 경기 종료 후 서포터즈석을 앞을 찾아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팬들과의 퍼포먼스에 같이 참여하는 등 팬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였다.
         최문식은 앞선 소통 부재나 책임 회피 등의 문제들 탓에 팬들이나 선수들로부터 신뢰를 잃었으며, 팬들과 선수들로부터의 지지기반이 당히 취약했었고, 팬들과의 관계가 당히 좋지 못하였었다. 그로 인해 재임 기간 내내 많은 팬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야만 했다.
         == 수 ==
         |후임자 = {{국기그림|KOR}} [[이익]]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2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17회 일치
          해 유닛이 생산되는 건물. 조선소가 많을수록 해 유닛 생산이 빨라진다. 해 유닛을 수리할수도 있다.
          적 지 유닛에게 광선을 발사하는 탑. 근처에 아군 프리즘 탑이 있으면 공격력이 증가한다.
          * 기 조절기
          연합군의 기본 보병 유닛. 배치시키면 모래주머니를 쌓고 기관총을 거치한다. 이 태에서는 움직이지 못하지만 전투력이 향된다.
          * 국 전용
          * 광물정제소: 대의 자금을 일정량 뺏어옴
          * 공군 사령부, 레이더: 대의 지도를 초기화시킴
          쌍권총과 폭발물로 무장한 특수요원. 보병을 일격사시키고, 건물도 폭발물을 설치해 한번에 파괴하며, 수도 할 수 있지만 차량 유닛에게는 무력하므로 컨트롤이 필요하다.
          웅 유닛일 것 같지만 양산이 가능하다.
          공군사령부에 주둔하는 유닛. 지정한 지 목표로 날아가 미사일을 쏘고 돌아온다. 미사일은 공군사령부에 착륙하고나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달린다.
          잠수한 적을 탐지할 수 있는 군함. 해/지의 적은 함포로 공격하며 잠수한 적은 오스프리로 공격한다.
          구축함 뒷부분에 탑재된 수직이착륙기. 잠수한 적에게 날아가 폭뢰를 투하하고 돌아온다. 내구성이 약해 대 방공망에 쉽게 격추된다. 격추된 오스프리는 시간이 지나면 리스폰된다.
          항공모함에 탑재된 소형 수직이착륙기. 적에게 날아가 폭탄을 투하하고 돌아온다. 내구성이 매우 약해 대 방공망에 쉽게 격추된다. 격추된 호넷은 시간이 지나면 채워진다.
  • 크립토나이트 . . . . 17회 일치
         [[DC 코믹스]] 세계관에 존재하는 가의 물질.
         [[슈퍼맨]]의 대표적인 약점. 본래는 1943년도 슈퍼맨의 라디오 드라마 '슈퍼맨의 모험(The Adventures of Superman)'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슈퍼맨을 맡은 배우가 쉬고 싶을때를 위해 만든 물질로 배우가 휴가를 간 사이엔 대역이 크립토나이트 때문에 슈퍼맨이 끙끙대는 것만 연기하면 되었기 때문. 사실 원작자인 제리 시겔이 K-메탈이라는 이름으로 속성이 완전히 같은 물질이 나오는 이야기를 썼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기각되고 시겔이 아이디어를 라디오에 대신 썼다.
         가장 흔하고 유명한 녹색의 크립토나이트. 녹색 방사능이 뿜어져 나온다. 슈퍼맨의 힘을 약화시키고 1시간 이 노출되면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다만 이 방사능은 납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납으로 된 용기에 넣으면 안전해진다.
         화 슈퍼맨 3에서 이 레드 크립토나이트와 동일한 효과를 내는 인조 크립토나이트가 나왔는데 정작 원래 노린건 그린 크립토나이트의 슈퍼맨 약화였는데 그대신 이성 실&난폭화가 돼서 슈퍼맨이 한참동안 날뛰게 되었다.[* 만들어진 계기가 걸작인데 슈퍼맨을 제거하려던 재벌 회장이 인공위성을 이용해 크립토나이트의 성분을 분석해 재현하려고 했는데 얼간이 컴퓨터 --천재-- 거스 골먼이 "슈퍼맨은 [[담배]]는 안 필 테니까"라며 (아무도 모르게) 분석 데이터에 '성분 불명'이라고 돼있는 것을 '''[[타르]]'''로 바꿔 버렸다. 그 데이터 그대로 만든 인조 크립토나이트 때문에 정신줄 놓은 슈퍼맨은 여기저기 다니며 깽판...;]
         그린 크립토나이트나 레드 크립토나이트에 핵 방사능을 쬐어서 만든다. 슈퍼맨의 초능력을 구히 없앤다고 한다. 그런데 [[메탈로]]는 '[[루터]]의 이론에 따르면 일시적으로 능력을 없앤다더군'이라고 했다. 아마 코믹스 버전에 따라서 다르던가 [[루터]]가 약간 잘못 해석한듯. 아무튼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확실하고, 메탈로는 황금색 크립토나이트를 이용해 빌딩 옥으로 날아오는 크립톤 범죄자들에게 비췄다. 그리고 날개가 없는 크립톤 범죄자들에 대한 [[더 이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Superman's Pal Jimmy Olsen 70화에 등장했고 지미 올슨을 늑대와 양치기소년으로 만들었다. 이후 Superman/ Batman 49화에서는 망에 빠지는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드라마 [[스몰빌]]에 서도 등장했는데 누군가가 클락에게 보냈으며 여기에 손을 베였다. 이후 의심암귀에 걸려 폭주하는걸로 보아 크립톤인을 망에 빠지게 하는 효과가 있는듯.
          그리고 사람들이 착각하는것 중 하나가 크립토나이트에 의해 슈퍼맨이 인간처럼 변하는 줄 알고 있지만 그건 잘못 알고있는 것. 일단 약해지는 건 맞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 태에서 힘이 들어가지 않고 능력도 사용할 수 없으며 맞을 경우 피해를 배 이 입기는 하지만 몸의 피부, 근육의 단단함이라던가는 그대로이다. 쉽게 말해서 크립토 나이트를 가지고 있다고 개기며 슈퍼맨을 때릴 경우에는 슈퍼맨도 피해를 입지만 자기 손도 '''박살'''난다는 것. 실제로 배트맨도 슈퍼맨과 싸울때 크립토나이트 반지를 끼고 약화시켜서 일방적으로 때린 적이 있었지만 중간에 그만뒀다. 이유는 더이 때리면 오히려 자기 손이 박살날것 같아서...
          화판 슈퍼맨에서는 그냥 인간보다 약해지는 것으로 바뀌었다.
          * 참고로 크립토나이트는 실존하는 물질이다. DC설정에서 크립토나이트에 가의 화학식을 붙여놨는데, 똑같은 화학식을 가진 물건이 발견된 것. 력이 현실을 때려맞춘격.
  • 킹덤/502화 . . . . 17회 일치
          * [[이목(킹덤)|이목]]은 [[오르도]]의 진군에 큰 위협을 느끼나 청가의 [[사마]]이 오르도를 요격하러 나서자 한시름 놓는다.
          * 그러나 금안에서 보고된 진군의 수한 동향과 [[순수수]]가 복귀하지 않는걸 보고 진군의 진의를 파악한다.
          * 이목은 탁을 내리칠 정도로 격분해서 진군이 대체 제정신이냐고 고함을 치는데.
          * 비신대는 늦은 시간이 돼서야 금안성에 당도한다. 그런데 선두에서 보니 야을 준비하는 흔적이 없다. 먼저 도착한 부대들이 있고 금안에서 하루 묵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말이다.
          드디어 연합종군의 진짜 목적이 하달된다. 지휘관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인다. 하지만 [[몽념]]과 [[왕분]]은 이미 아는 사실이니 동요하지 않는다. 신은 이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드디어 왔다"고 웃는다.
          * [[벽(킹덤)|벽]]을 비롯해서 당혹하지 않는 지휘관이 없다. 이들은 이번 전쟁은 흑양 공략이고 또 업이라면 우리가 아는 그 업이 맞냐고 재차 묻는다. 왕전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는 하급 지휘관들이 의문을 표할 틈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황을 전달한다. 준비는 이미 끝났다는 그의 말처럼, 같은 시각 각 부대에는 금안에 축적되었던 병량이 지급되고 있다. 각 부대에선 뭔지도 모르면서 일단 병량을 수령 중.
          * 무백에서는 이목이 [[오르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벌서 간위성, 현성이 함락되었으며 거침없이 치고들어오고 있다. 한단으로 향한 [[호섭]] 장군을 동쪽으로 보내자는 안건이 나온다. 이대로 오르도를 막지 못하면 동쪽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목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 호섭이 거기까지 가버리면 서부 전선의 전략이 크게 수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쪽 방어선의 붕괴도 좌시할 수는 없는 일. 이목은 할 수 없다치며 [[카이네]]에게 호섭의 이동을 명령하려 한다.
          *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생긴다. [[마남자]]는 오르도의 진로를 확인하는데 오르도는 무슨 일인지 남쪽의 중도시 "청가"를 향해 진군 중이라 한다. 이목과 마남자의 눈이 번쩍 뜨인다. 부하들은 어리둥절한다. 이목은 청가엔 "사마"이 있다며 반색한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도 사마의 이름도 잘 모른다. 한 사람이 "청가성 성주로 병이 있어서 은둔하고 있다. 죽었다는 소문도 있다"며 말하는데 이목은 그건 전부 거짓말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건강하며 그저 중앙에서 오는 명령을 무시하기 위해 그런 명분을 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남자는 충격적인 말도 더한다.
          그가 삼대천에 천거된 인물이란 것, 그럼에도 그걸 거절했다는 것에서 파문이 인다. 설마 세 번때 삼대천이 될 법한 인물이, 그것도 그런 변경에 은둔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카이네는 그럼 그 사마이 어느 정도 인물이냐고 묻는데 이목은 자기 자신이 그를 천거햇던 장본인이라 밝힌다. 그는 자신의 청가성이 연관되지 않는한 전혀 움직이지 않는 성미로, 그를 삼대천으로 만들면 좀 더 큰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물론 실력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
          이때 이목 진에는 낭보다 도착한다. 그 사마이 마침내 청가에서 5천의 병력을 거병해 오르도를 요격하러 나선 것이다. 그 말만 듣고도 마남자는 다 된 일이라며 "오르도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렸다"고 비꼰다. 이목은 그만큼 단정하진 않지만 호첩에게 보낼 이동 명령을 거둬들이고 기존 동쪽 방어선의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한다. 사마이 오르도를 막는다면 조박이 동군을 이끌어 연군을 밀어낼 거라 본다.
          * 다시 문제는 서부가 됐다. 그는 진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기에 앞서 어째서 [[순수수]]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는지 묻는다. 전령은 순수수가 명한 대로 "진군 측에 수한 움직임이 있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고한다. 진군이 금안에서 진로를 변경할지 모른다는 보고가, 드디어 이목에게 전달된다. 이목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지도를 펼치고 다시 한 번 진군의 진로를 확인해 본다. 순수수의 직감이 맞았다면 그가 속은 것이 된다. 지금 흑양까지 이어지는 병량의 흐름이 가짜라면, 진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진짜 병량이 금안까지 간 것은 맞으므로 거기에 축적됐을 것으로 보는게 맞다. 진군이 여기에 도착했으니 이 병량을 들고 어디론가 간다는 것인데. 진군이 흑양으로 오지 않는다면 갈 곳은 한 군데 밖에 없다.
          이목은 지도를 살피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살펴도 답은 하나 밖에 없다. 그걸 확인한 이목은 탁을 내려치며 고함친다.
          * 여기에서 등장한 '사마'은 실제로 기원전 243년에 연나라 군대를 대파한 인물이다.
  • 킹덤/531화 . . . . 17회 일치
          * [[왕전(킹덤)|왕전]]의 명으로 기수의 목을 취하러 왔던 [[이신(킹덤)|이신]]과 [[비신대]]는 우선을 난전에서 몸을 피해 황을 관망하나 답이 나오지 않는다.
          * [[마광]]이 [[이목(킹덤)|이목]]의 얼굴을 알아차리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가 왜 여기 있는가? 한참 [[기수(킹덤)|기수]]를 몰아붙이고 있던 자군의 후방에서, 자신의 바로 후방에서 어떻게 적의 총지휘관이 나타날 수 있는가? 그런 의문을 해결할 겨를도 없이 칼날이 목에 박혔다. 마광의 부관은 그보다도 한 발 먼저 이목의 등장을 눈치챘다. 그러나 거리가 떨어져 있었고 설 마광의 창은 자신의 손에 있었다. 이목이 일을 끝마치고 나서야 그가 목소리를 냈지만 닿을 일은 없었다. [[부저(킹덤)|부저]]가 뒤에서 부관을 처리했다.
          * 목을 찔린 마광이 말 위에서 거꾸러졌다. 일이 무사히 끝나자 [[카이네]]가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달아날 일만 남았다. 마광군은 최후미가 겨우 이변을 눈치채기 시작했으며 명확히 황을 파악하고 있지도 못했다. 탈출은 쉬워보였다. 하지만 마광에게 이변이 일어난다면 이목에게도 일어나지 않을까? 마광이 쓰러지지 않았다. 초인적인 의지였다. 목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을 본 카이네의 안도감은 금방 위기감으로 바뀌었다.
          기어이 칼은 뽑혔고 날이 번뜩였다. 마광의 단말마처럼 한맺힌 칼질이었다. 카이네가 외목에게 경고했지만 한 발 늦었고 이목의 칼은 거두어진 태였다.
          * 기수는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 작전을 통보받았다. 조군 총대장이 별동대를 직전 운용하겠다고 했을 땐 미친 소리처럼 들렸다. 그 자리에 있던 기수나 [[마정]]은 물론 이목의 측근 [[금모]]까지. 카이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직한 마정도 "총대장이 갑자기 본진에서 없어지는건 좀 그렇다"며 난색을 표했다. 금모가 맞장구치며 개전 첫날엔 이목이 반드시 본진을 지켜야하고, 하물며 그 왕전이 대인 이 더욱 그렇다 강변했다. 그러면서 굳이 별동대를 쓴다면 자신이 나서겠다고 말했다. 누가봐도 이치에 맞는 반론이었지만 돌아온 건 비웃음이었다.
          * 장군들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렇다는 것은, 이 국면에서 굳이 그런 방책을 쓰겠다는 것은 "처음이 아니라는 것". 몇 번이나 검증해본 책략이란 말이었다. 부저가 가장 고참격인 카이네에게 정말 그렇냐고 물었다. 카이네도 굳은 표정이긴 마찬가지였지만 대답은 솔직했다.
          말을 아끼고 있던 이목이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주해평원의 싸움은 "양익의 싸움"이라 정의하고 좌우에서 싸우는 동안 "틈"이 생기면 이목 자신이 직접 개입하리라 알아두면 된다고 단언했다. 이 그가 하달한 작전은 거의 무계획으로 들렸다. 세한 세부내용을 결정한 것 없이 자신은 독립유군을 이끌며 "틈"이 열리길 기다린다. 금모가 굳이 첫날부터 그래야 하는 거냐고 묻자 이목은 그렇다고 단언했다. 왕전은 분명 첫날부터 좌우 어느 쪽이든 수작을 부릴 생각일게 분명하니까.
          마남자의 말이 맞았다. 이목은 안심하지 못하는 카이네의 의중을 정확히 읽었다. 그녀에게 대가 "그런 수"를 쓴다는걸 모르는 이 반드시 성공할 거라 장담했다.
          * 진군에 마침내 마광이 죽었다는 말이 퍼져나갔다. 조군은 현실을 인정하는 환호성이 퍼져나갔다. 기수는 이쪽을 향해 포권을 하고 말을 돌리는 이목을, 조나라의 삼대천을 보며 그 역량에 감탄했다. 이제 그가 할 일을 할 차례다. 기수가 기름처럼 끓기 시작한 병력에 불을 질렀다. 전부대, 전병력을 향해 조군 총대장 삼대천 이목이 직접 적장의 목을 쳤음을 선언했다. 그는 목이 터져라 외치고 전령을 통해 모든 하급부대에 급파했다. 마광의 목이 떨어졌다. 그 이의 지시는 필요가 없었다. 위축을 거듭하던 군대가 단숨에 살아났다. 반면 진군은 대혼란. 마광이 죽었다는 말과 거짓선동이란 말이 뒤섞였다. 최전방은 마광의 안위를 확인할 수 없었고 백 배 기세로 돌격하는 조군을 대하면서 후방의 진위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그럴 수록 조군이 외치는 "이목이 마광의 목을 쳤다"는 구호는 섬뜩했다.
          * 마침내 기수의 목을 치러 가던 [[이신(킹덤)|이신]]과 [[몽념(킹덤)|몽념]], 두 장수에게도 그 외침이 들렸다. 신은 무엇보다 "이목"이란 이름에 눈이 뜨였다. 그와 칼을 맡대고 있던 조군 병사가 "그러니 너희는 끝장"이라고 빈정거렸다. 신은 단칼에 대를 베어넘기고 뛰쳐나갔다.
          몽념은 조군이 떠드는 말들을 전부 거짓정보라고 단정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만큼 난데없는 소식이었지만 조군의 사기가 이하게 올라간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진 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몽념은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지 섬뜩하기만했다.
          * 전황의 변화는 역류라고 할만 했고 조수가 바뀌는 것처럼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신과 비신대는 그 흐름에서 벗어나 언덕으로 몸을 빼냈다. 그 위치에서 보이는 전장은 뛰어들기 직전과는 정반대의 양. 조군의 압도적인 파도가 진군을 들이치고 있었다. 이신은 그 장면을 노려보며 이목의 이름을 곱씹었다.
  • 페어리 테일/507화 . . . . 17회 일치
          * 엘자는 그들이 함께 자란 시간을 떠올려 보라고 호소하며 마카로프 드레아가 항 하던 길드의 이념을 들려준다.
          * 오거스트는 그 어떤 마법으로 공격 당해도 대와 같지만 더 강력한 마법으로 되받아치며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는데.
          * 나츠 드래그닐과 그레이 풀버스터의 싸움에 끼어든 엘자. 처투성이가 됐음에도 과감히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선다. 그런데 엘자는 언제나처럼 강단있는 모습이 아니다.
          * 나츠와 그레이는 지금까지 지내온 일, 길드에서 형제나 다름없이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때도 싸웠던 적은 있지만 그 이으로 함께 놀고 협력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쌓여있다.
         하지만 그건 마땅히 혼을 부딪혀야 할 대에게 경의를 가지고 대한다는 것. 원망이나 분함에 폭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
          * 엘자는 마카로프가 항 그랬듯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두 사람을 끌어안는다.
          * 그때 그레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쥬비아 록서가 웬디 마벨과 샤를의 부축을 받으며 그레이를 찾아온 것이다. 쥬비아는 자신은 무사하다고 알리는데 샤를이 "무사하다고 할 만한 처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작은 처는 아니다. 어쨌든 생명엔 지장이 없이 돌아온 쥬비아. 그레이는 놀란 탓인지 안심한 탓인지 그대로 무릎이 풀리며 정신을 잃는다. 쥬비아는 급하게 달려와 스러지는 그레이를 붙드는데 역시 몸태가 나빠서 그런지 함께 기절해 버린다.
          * 그 시각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 어떻게 된 일인지 오라시온 세이스의 멤버들이 널부러져 있다. 핫아이, 레이서가 쓰러져 있고 코브라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있다. 미드나잇은 멀쩡히 서있지만 당히 타격을 받은 태다. 그리고 이들을 통솔하는 제라르 페르난데스 조차 고전을 금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은 바로 스프리건 12 최강의 마도사 오거스트를 대하고 있었다. 제라르 조차 전혀 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차.
          * 한편 엘자 측에서는 나츠와 그레이를 폴류시카에게 데려가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엘자가 심치 않은 기색을 감지하는데 곧 커다란 폭발이 덮쳐온다. 폭발의 연기가 가시고 나타난 것은, 스프리건 12 최강의 여성 마도사 아이린. 엘자에게 "다시 만나게 됐다"고 말하며 등장. 구면인 것처럼 군다.
         엘자가 두 사람을 타이르면서 끌어안는 장면 때문에 가슴만질래 드립을 떠올리는 사람도 꽤 있다. 사실 기존에는 쥬비아와 루시가 나타나서 두 사람이 무사한걸 보고 싸움을 멈춘다는 설이 대부분이었는데, 결국 두 사람이 나타나긴 했지만 싸움을 말린건 어디까지나 엘자.--다시 고개드는 엘자 진히로인설-- 엘자가 나온게 의외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따지고 보면 나츠와 그레이가 길드 안에서 가장 가깝고 깊은 관계가 있는 대는 바로 엘자다. 어렸을 때부터 형제처럼 자란데다 엘자는 언제나 누나역할을 해왔기 때문. 특히 둘은 길드=가족이라는 관념이 가장 강한 멤버들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싸울 때 말린다면 엘자가 나서는 것도 당연하다.
         오거스트 VS 제라르가 스포로 전파됐을 땐 제라르가 오거스트와 맞먹는거 아니냐, 제라르가 오거스트를 단독으로 이겨버리는거 아니냐는 예측도 나왔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제라르 단독으론 당연히 대가 안 되고 오라시온 세이스와 협공을 해도 여전히 열세.
         오거스트는 대방의 마법을 똑같은 방식으로 받아치는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데 위력이 차원이 다르다. 여기에 오거스트의 마법이 사실은 반사&배가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떡밥이 나온다.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 . . . . 17회 일치
         아머는 플레이어가 피해를 입으면 처음으로 줄어드는 수치다. 아머는 좌측 하단 캐릭터 초화의 흰 테두리로 표현되며 일정 시간 동안 피해를 입지 않으면 회복된다.
         아머가 다 줄어들고 난 후에는 초화 뒷배경으로 표시되는 체력이 줄어든다. 이 체력은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으며 이것마저 다 줄어들면 해당 플레이어는 다운되어 권총으로 겨우 저항하는 태가 된다. 이 태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해당 플레이어가 구속되지만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른 플레이어가 구하면 플레이어는 다시 활동할 수 있는 태가 된다.
         일정 주기로 시작되는 경찰의 공세. 시작되기 일정 시간 전에 페이데이 갱의 오퍼레이터인 베인이 알려준다. 어썰트 기간 중에는 경찰들이 떼거지로 몰려오며 항복하지 않는다. 이 태로 무리하게 이동하려 했다가는 벌집이 되어서 드러눕기 좋으니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처음 사용하게되는 5.56mm 돌격소총. 중간치의 반동을 가지고있다. 샤프슈터 트리의 명중률 강화를 몇번 하면 도트사이트가 달린다. 모델은 [[콜트 M4 카빈|콜트 M4A1]].
          드릴이나 톱을 설치하는 등의 호작용이 빨라진다.
          팀원들의 공격력이 승한다.
          팀원들의 명중률이 승한다.
          팀원들의 체력이 승한다.
          운 나쁘게 하이스트에 말려든 시민들. 쏘면 인질 교환 협이 느려진다. 하이스트 클리어 후 들어오는 돈도 적어지니 쏘지 않는게 좋다.
          패닉룸 하이스트 초반에 대하게 되는 적. 패닉룸 하이스트가 실내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놈들은 기관단총을 난사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기관단총, 돌격소총, 산탄총을 든 SWAT 요원. 전형적인 SWAT의 의을 하고있다.
          도살장 하이스트 초반에 대하게 되는 적. 돌격소총으로 무장했다.
          우주복 같이 생긴 방호복을 입고 산탄총을 든 특수요원. 얼굴에 총알을 박아주자. 너무 가까이에서 대하면 두방에 드러눕는 대참사가 일어나니 주의.
         [[http://store.steampowered.com/app/24240/|페이데이: 더 하이스트 스팀 점 페이지]]
  • 하이큐/253화 . . . . 17회 일치
          *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시미즈 키요코]]와 "대의 강함을 너무 과신했을지도 모른다"는 대화를 나눈다.
          * 멋진 페이크로 [[이나리자키 고교]]의 블록을 따돌리며 경기의 균형을 맞춘 [[카게야마 토비오]]. 득점에 솔직하게 환호하는 [[사와무라 다이치]]와 달리 사령탑 카게야마는 생각이 복잡하다. 사실 그가 노린 페이크 대는 맞은 편의 오미미. [[히나타 쇼요]]가 튀어나가면 당연히 따라붙을 줄 알았는데, 잘도 간파하고 히나테에 붙지 않았다. 오미미도 방금 전 카게야마가 "의도적으로 낚으려 했다"며 눈을 흘긴다.
          생각이 복잡한건 코트 바깥의 세터도 그랬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아카아시 케이지]]가 그랬다. 옆의 [[보쿠토 코타로]]는 완전히 히나타한테 올리는 건 줄 알았다며 카게야마를 칭찬하지만, 아카아시는 차라리 소름이 돋았다. 단순한 미끼를 던져 봐야 이나리자키의 블록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방금 전 세트업은 퍼스트 터치가 코트 중앙으로 올라가서 각도으로 보면 완전히 히나타한테 가는 흐름이었다. 그걸 교묘하게 라이트로 보낸게 성공의 이유. 이는 카게야마가 시야가 넓기만 한게 아니라 대에게 어떻게 보일지까지 파악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남은 요소는...
          * 본의 아니게 카게야마의 연기에 어울려준 히나타는 속으로 "완전히 나한테 오는 줄 알았다"고 그를 원망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외부에서 보기는 호흡이 척척 맞은 페이크였다. 응원단은 새삼 "카라스노 고교가 이렇게 강했구나"하고 감탄한다. 벤치의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이나리자키가 인터하이 2위에 으리으리한 응원단까지 갖춘 강호이긴 해도 필요이으로 강대하게 보지 않았나 되짚어 본다. 옅에 앉은 [[시미즈 키요코]]는 열기를 더해가는 [[타나카 사요코]]의 태고팀의 응원을 들으며 담담히 대답한다.
          * 다음 플레이는 이나리자키의 득점. 추격에도 흔들리는 기색은 없다. 스코어 9 대 7. 이나리자키의 2점 리드 황에서는 서브는 다시 [[미야 아츠무]]. 그가 서브 위치에 서는 것만으로도 카라스노 응원단의 시마다와 타키노우에는 "이도류"라며 이를 간다. 사요코는 "그건 공을 두 개 쓰기라도 하냐"고 문외한다운 이야기를 하자 시마다가 설명에 들어간다.
          * 아츠무가 엔드라인을 지나 서브 위치로 향한다. 그 사이 카라스노 고교의 리시버 사와무라, [[니시노야 유]], [[타나카 류노스케]]는 그의 "걸음걸이"에 집중한다. 이게 그들이 세운 나름의 대책. 지난 밤에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찾아낸 공략 포인트다.
          우카이 코치가 찾아낸 구분법은 엔드라인에서 서브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걸음걸이의 차이. 아마 그게 아츠무 나름의 "루틴"일 것이다. 엔드라인 기준으로 네 걸음은 점프 플로터, 여섯 걸음은 스파이크 서브다. 아즈마네가 눈을 번쩍 뜬다. 뭐가 올지 안다면 대응이 빨라진다. 하지만 서브 때 동작 전체를 찍은 은 구하기 어렵다. 타케다 고문은 용캐 그걸 찾아냈다고 감탄한다. 이걸 찾기 위해 우카이 코치는 엄청나게 헤맸으며 인터넷 부터 지인이 구한 까지 보지 않은게 없었다.
          * 우카이 코치의 분석은 헛되지 않았다. 아츠무의 걸음은 정확히 네 걸음. 점프 플로터다. 카라스노의 리시버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대비한다. 그런데 이 대응법은 공격측인 이나리자키도 어느 정도는 예했던 바였다. 특히 [[미야 오사무]]는 설사 아츠무의 버릇을 간파했다고 해도 별 건 아니라고 여긴다.
          * 스코어는 10 대 7. 아츠무의 2회차 서브. 이번에도 네 걸음. 점프 플로터다. 카라스노의 리시버들이 한층 긴장한다. 이번에도 서브는 니시노야에게. 그렇지만 니시노야는 두 번 실패하지 않았다. 당히 버거운 공이었지만 잘 받아낸 니시노야. 공은 카게야마에게. 카게야마가 아즈마네에게 올려서 스파이크, 하지만 아카기가 받는다. 그 순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달려나가는 오사무. 그리고 이어지는 플레이에서, 카게야마는 눈을 의심한다.
          * 아츠무의 세트업을 받는 오사무. 그런데 이 플레이의 위치, 타이밍, 각도, 이 모든 것이 낯설지 않다. 결정적으로 "핀포인트 세트업". 카라스노가 너무나 잘 아는 그림이 대진에서 그려진다.
  • 한국진 . . . . 17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스플릿 (2016년 화)|스플릿]]》 - 금목걸이 일행 1 역
         * 《[[타투 (화)|타투]]》 (2015년) - 튜닝샵주인 1 역
         * 《[[돌연변이 (화)|돌연변이]]》 (2015년) - 화장실남 역
         * 《[[서부전선 (화)|서부전선]]》 - 남복소대원 2 역
         * 《[[사도 (화)|사도]]》 (2015년) - 나내관 역
         * 《[[레드카펫 (화)|레드카펫]]》 (2014년) - 청년회장 역
         * 《[[스톤 (2014년 화)|스톤]]》 (2014년) - 포기각서채무남 역
         * 《[[스파이 (2013년 화)|스파이]]》 (2013년) - 수방사 헬기 조종사 역
         * 《[[꼭두각시 (화)|꼭두각시]]》 (2013년) - 남자 대학생 역
         * 《[[백야행 (화)|백야행]]》 (2009년) - 오 형사 역
         * 《[[오감도 (화)|오감도]]》 (2009년) - 연출부 역
         * 《[[미인도 (화)|미인도]]》 (2008년) - 방사 스님 역
         * 《[[로드 넘버원]]》 (MBC, 2010년) - 김국 역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
  • 홍은빈 . . . . 17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동국대학교]] 연극화과
         * 2016 서울 국제 사진 기자재전 소니 모델
         * 2014 서울 국제 사진 기자재전 시그마 모델
         == [[홍은빈]]과 [[이효]] ==
         둘은 절친한 레이싱모델 동료 사이 이고 언니 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다.
         [[레이싱모델]] 동료 [[이효]]의 증언의 의하면 홍은빈과 [[이효]] 본인은 1살 차이라고 말하였다. [[이효]]은 [[1983]]년생.
         == 수 ==
         2014 제9회 아시아 모델식 레이싱모델 인기
  • 황석하 . . . . 17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공연∙ 박사과정
         === 화 ===
         * 《[[인천륙작전 (2016년 화)|인천륙작전]]》 (2016년) - 통역병 역
         * 《[[스피드 (2015년 화)|스피드]]》 (2015년) - 작곡가 역
         * 《[[베일 (화)|베일]]》 (2013년) - 심부름직원 1 역
         * 《[[회사원 (화)|회사원]]》 (2012년) - 임 실장 역
         * 《인비트위너스 시즌 2》 (2009년, E4) (국드라마) -Angry Man 역
         * 《티브이 버프》 (2009년, ITV) (국코메디)- Translator 역
         * 《홀비 시티》 (2008년, BBC One) (국드라마) - Mr. Tan 역
         * 《체홉적 - 갈매기 5막 1장》 (2013년) - 도른 역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황인숙 . . . . 17회 일치
         == 수 ==
         * 1999년 제12회 [[동서문학]]
         * 2004년 제23회 [[김수 문학|김수문학]]
         * 2018년 제63회 [[현대문학]]<ref>{{뉴스 인용|성1=백승찬 |제목=김성중 소설가·황인숙 시인 현대문학자로 선정|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11202144025 |날짜=2017-11-20 |확인날짜=2018-08-09 |뉴스=경향신문}}</ref>
         *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br/>유심히 보면, 유령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든 누군가가 '외롭다'고 중얼거린다. 그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스며들어 합쳐지고 변화하고 따뜻해지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것은 이기적인 욕망일까?<br/>바로 지금, 나는 원한다. 어떤 혼도 제어할 수 없는, 아니 혼이 주동이 되어 세포·원형질, 그 뭐랄까, 그 엄연한 물질이 되어……. 그런데 별수없이……이것은 치유될 수 없고, 내가 아무도 치유할 수 없고, 이 깨달음은 비통한 노릇이다.
         * 《슬픔이 나를 깨운다》<br/>얼마 전인가, 내 머리에 떠오른 문장이 산문이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즈음은 항 그랬던 것 같다. 전에는 무슨 문장이 떠오르면 당연히, 저절로 싯귀로서였는데.<br/>좀 정나미가 떨어지고 충격적인 일이다.<br/>나의 리듬은 어디로 가버렸는가?<br/>그것을 찾는 것이 내 당면 과제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김수 문학자]][[분류:현대문학자]][[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ute . . . . 16회 일치
         2016년 8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해산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 [[야지마 마이미]](矢島舞美) : 1992년 2월 7일 생, O형, 출신지 [[사이타마현]]
          * [[나카지마 사키]](中島早貴) : 1994년 2월 5일 생, O형, 출신지 [[사이타마현]]
          * [[오카이 치사토]](岡井千聖) : 1994년 6월 21일 생, A형, 출신지 [[사이타마현]]
          * [[하기와라 마이]](萩原舞) : 1996년 2월 7일 생, AB형, 출신지 [[사이타마현]]
         베스트 가요제 2007 신인 아티스트
         제40회 일본 유선대 유선음악
         제49회 일본 레코드 대 최우수신인
         제50회 일본 레코드 대 우수작품
  • 가린(ELRIS) . . . . 16회 일치
          * 위 문서: [[ELRIS]]
         ||<:><#b59bc8>'''{{{#f8d0db 학력}}}''' ||<(><#ffffff> 대구초등학교[br][[대구중학교]][br][[대구고등학교]] 연극화과 (재학) ||
         ||<:><#b59bc8>'''{{{#f8d0db 팬사이트}}}''' ||<(><#ffffff> [[https://twitter.com/20020105_net|린가린가린]] ||
          * 2라운드 (랭킹 오디션)에서 이수민 등과 함께 연습생 B조에 배정되었고 5명 중 4위로 간신히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경연곡은 [[에이핑크]]의 '몰라요' [[http://tv.naver.com/v/1315371|]]
          * 3라운드 (팀 미션)에서 김가민가 팀으로 나이수미츄 팀에 승리하였다. 대 팀인 [[이수민(1999)|이수민]]/[[크리샤 츄]]는 패배했으나 이수민은 캐스팅 크리샤 츄는 심사위원 와일드 카드로 기사회생 결국 모두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경연곡은 [[15&]] 'Somebody' [[http://tv.naver.com/v/1345595|]]
          * 4라운드 (캐스팅 오디션) 에서 김가민가 팀으로 크게 호평을 받았으나 같은 팀원인 김혜림만 캐스팅 받아 캐스팅 오디션에서 탈락하였다. 경연곡은 ‘Uptown Funk’ [[http://tv.naver.com/v/1395172|]]
          * 잡지 Ceci China 2017년 12월호에 Cover Star 촬을 했다
         ||<table align=center> 단독 출연만 기록합니다. 2인 이 [[ELRIS]] 멤버들과 함께 출연한 목록은 [[ELRIS]] 문서에 기록해 주세요. ||
          * 멤버들 중에서 신장이나 발 사이즈가 커서 언니들에게 키와 발크기 때문에 몰이를 잘 당한다. 발이커서 구두도 제일 큰 사이즈를 신어서 본인은 굉장히 싫어하는 눈치이다. 이유로는 발이 크면 예쁜 구두를 맘대로 못신어서 그렇다고..[[https://youtu.be/qzyc_QdBczM?t=5m5s|#]]
          * [[아이돌스타 육 선수권대회/2018년|2018 추석 아육대]] 육 60m에 출전했으나, 예선에서 광탈했다.
  • 고성국 . . . . 16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 언어 = [[한국어]], [[어]]
         '''고성국'''(高成國, [[1958년]]<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A%B3%A0%EC%84%B1%EA%B5%AD&os=517736</ref> ~ )은 [[대한민국]]의 정치평론가이다.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학위 후 동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추적 60분]] 진행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여러 권의 정치서적을 펴냈다.
         [[고려대학교]] 정외과 강사 시절인 1986년 9월 27일 [[대한민국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형사지법으로부터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92700329211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9-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2617&publishType=00020</ref> 당시 공안당국은 다산기획 대표이던 고씨가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좌익]] 서적 100여 권을 들여와 번역한 뒤, 이를 [[백산서당]] 대표 이범(현 [[흥사단]] 일본특별위원장)에 넘겨 대학가와 시중에 판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1400209201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14&officeId=00020&pageNo=1&printNo=19855&publishType=00020</ref> [[1988년]] [[2월 27일]] [[노태우]]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단행된 사면복권에서 특별사면복권 대자가 되어 풀려났다.
         이후에는 [[나라정책연구회]] 정책실장 등을 지냈으며, [[1994년]]에는 서울경찰청의 민간인 사찰대으로 거론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01100289101001&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4-10-11&officeId=00028&pageNo=1&printNo=2034&publishType=00010</ref> 같은 해 5월에는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던 진보적 월간지 《사회평론 길》에서 《[[월간조선]]》과 논쟁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5260028911401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5-26&officeId=00028&pageNo=14&printNo=1907&publishType=00010</ref> 1995년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일간지의 '이승만 재평가'에 대해 "분단과 독재를 정당화하고 [[박정희]] 시대와 그 이후까지 미화하려는 시도의 시작"이라 비판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21800289101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02-18&officeId=00028&pageNo=1&printNo=2153&publishType=00010</ref>
          1997년 5월 17일, 고성국은 추적 60분에서 하차했는데, 이는 KBS 노조 측에서 고성국을 [[김삼]]의 아들인 [[김현철 (1959년)|김현철]]의 인맥이라고 사측에 교체를 요구했고, 사측이 이를 수용한 결과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52000289121003&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5-20&officeId=00028&pageNo=21&printNo=2883&publishType=00010</ref> 2012년 5월 고성국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1997년 추적 60분 하차에 대해 "김현철과 (내가) 친구인 것은 사실이고, 당시에도 숨기지 않았다. KBS 노조가 저를 낙하산 인사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KBS한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그만뒀다)"고 말했다.<ref name="mediatoday.co.kr">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142</ref>
         당시 검찰의 중간수사발표에 따르면, 고성국 등 4명의 이회창 비선참모조직은 1997년 11월 초에 서울 평창동의 한 사무실에서의 회의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전달할 보고서에 대해 논의하다가, 총풍 사건 3인방 중 하나인 한성기로부터 이회창의 친동생 [[이회성]]을 통해 이 보고서를 이회창에게 직보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이후 한성기는 비선참모조직이 작성한 총 18건의 보고서를 이회창에게 전달했다. 검찰은 고성국과 총풍 사건 사이에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중간수사발표를 내놓았다.
         2011년 들어 고성국은 친[[박근혜]] 정치평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디어오늘은 고성국의 친박 성향과 그의 동생이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을 대으로 한 정치기획사를 운했다는 점을 연결지었다. 고성국은 자신의 동생이 설립한 정치기획사에 대해 "동생과 다른 사람이 합쳐 만든 회사로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ref name="mediatoday.co.kr"/>
         2012년 12월 8일 [[한겨레]]는 토요판을 통해 정치평론가 5명의 대선정국 시나리오 분석을 보도했다. 이 분석에서 고성국은 2012년 대선 투표율이 65~67%일 것이며, 박근혜가 150만~200만표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 전망했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4337.html</ref> 다른 4명의 평론가([[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김종배]] 평론가, [[김형준]] 명지대 교수, [[한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들은 [[문재인]] 당선을 예측하거나 구체적인 당선자 예측을 하지 않았다.
         2013년부터는 여러 방송에 다수 출연해 뉴스해설, 정치평론 등을 맡았다. 이후엔 역을 넓혔다. tvn 오마이갓의 경우 기독교, 불교, 천주교의 성직자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고, tvn 빨간의자는 시사 보다는 일반적인 토크쇼에 가까웠다. 한편으로는 친박근혜에 가깝다는 논란 때문에 KBS '글로벌 대한민국', '시사 진단'의 진행자로 섭외되었다가 자진 하차하는 일도 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128|제목=KBS, '친박평론' 고성국 MC 기용 철회 - 미디어스|언어=ko|확인날짜=2018-04-10}}</ref> 2017년 들어서는 출연하던 대부분의 방송을 그만두게 된다. 특히 고성국 라이브쇼는 [[방통심의위]]의 지적을 받고 TV조선에서 자체 폐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5916|제목=방통심의위에서 ‘변화’ 약속한 TV조선, 얼마나 변할까|성=미디어오늘|날짜=2017-03-29|뉴스=미디어오늘|언어=ko|확인날짜=2018-04-10}}</ref>
         * 《10대와 통하는 정치학》, 철수와희, 2007 {{ISBN|9788995833858}}
         * 《10대와 만나는 정치와 민주주의》, 철수와희, 2011 {{ISBN|9788993463132}}
         * 《덤벼라 인생》(공저), 철수와희, 2012 {{ISBN|9788993463224}}
         *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 철수와 희, 2015
         * 《세을 바꾸는 정치평론》, 국커뮤니케이션, 2015
  • 곽상도 . . . . 16회 일치
         | 이름 = 곽
         | 사진설명 = 곽도, 그는 누구?…‘검사,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
         | 출생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시]]
         | 소속임위 = [[대한민국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 웹사이트 =
         '''곽도'''(郭尙道, [[1959년]] [[12월 23일]] ~ [[대구광역시|대구]])는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법조인, 정치인이다.
         [[조선일보]]와 [[서울대학교|서울대]] 폴랩의 20대 국회의원 이념성향 분석 결과, 곽도 의원은 +50점으로 당시 20대 국회의원 296명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의원으로 꼽혔다. 임기 시작부터 2017년 12월까지 법안 1,202건에 대한 국회 투표를 분석해 수치를 도출했으며, 가장 진보적은 -50점, 가장 보수적은 +50점으로 평가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8/2018010801043.html|제목=[20대 국회 이념지도] 17~20대 국회 이념성향 비교했더니|성=|이름=|날짜=|뉴스=|출판사=}}</ref>
         * [[2009년]] [[2월]] : 곽도법률사무소 변호사
         * 곽도는 검사시절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의 조사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강압수사, 고문의혹이 제기되었으나 곽도는 고문, 가혹행위는 없었고 밤샘조사는 당시 허용되던 황이라고 해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307926 곽도, 강기훈씨 강압 조사 관련 "야간조사 허용됐다"],경향신문, 2013년 2월 21일</ref> 이후 재심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이 무죄로 판명되었으며 검찰은 국가배 청구사건 항소를 포기했다.
         *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검찰 수사에 압박을 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ref>임혜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101140301&code=910402 신경민 "곽도, 검사들 회식 자리 전화해 '니들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말해"], 한겨레, 2013년 6월 10일</ref>
         * 변호사 시절 선임계를 내지 않고 '불법 변론'을 한 것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28/2016062803507.html|제목=[TV조선 단독] 청와대 전 민정수석 곽도, 불법변론 정황|확인날짜=2016-12-18}}</ref>
         *[[노회찬]] 의원 사망과 관련하여 페이스북에 "진보정치의 이중성을 본 것 같다"는 취지의 글을 일어 논란이 일자 이후 페이스북 글을 삭제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80725/91217511/2|제목=곽도 “진보 정치인의 이중성 애잔” 노회찬 비난 글 슬그머니 삭제, 왜?|날짜=2018-07-25|뉴스=news.donga.com|언어=ko|확인날짜=2018-07-26}}</ref>
  • 김광석 . . . . 16회 일치
         | 웹사이트 =
         '''김광석'''(金光石<ref>[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11220915531&code=900307 '대중음악 100대 명반'25위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경향신문》, 2007년 11월 22일 작성, 2011년 2월 14일 확인.</ref>, [[1964년]] [[1월 22일]]<ref>{{저널 인용|제목=[추억의 LP 여행] 김광석(上) 시대의 감성을 일깨운 우울의 미학 해맑은 미소로 기억될 '거리에서'|저널=주간한국|이름=|url=http://weekly.hankooki.com/lpage/enter/200407/wk2004070211320337570.htm|날짜=2004-07-02|출판사=|저자=최규성|확인날짜=2010-03-12}}</ref> ~ [[1996년]] [[1월 6일]])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다.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대통령표창장이 추서되었다.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나 [[부산광역시|부산]]로 경하여 1982년에 경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가요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김민기 (1951년)|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동물원 (밴드)|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96년 1월 6일 사망하였으나 사인 관련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김광석 거리의 김광석
         [[1982년]]에 경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85년 1월 입대하였으나 군 생활 중 큰형(김광동)이 사망함으로 인해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 (밴드)|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밴드)|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
         1996년 1월 6일 새벽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죽은 채 발견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가수金光石 숨져|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0700209130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07&officeId=00020&pageNo=30&printNo=23074&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쪽=30|날짜=1996-01-07|확인날짜=2013-08-20}}</ref> 향년 31세. 자살로 알려졌다.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사리 나온 가수 김광석 불교신행 화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140020912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3081&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허엽 기자|쪽=22|날짜=1996-01-14|확인날짜=2011-02-13}}(PC 버전)</ref>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순,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 있는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는 2004년 별세했다. 딸 김서연은 1991년에 태어났고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의 2016년 1월 23일, 1월 30일 방송분에서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다시 김광석 편을 하였다.
         부인 [[서해순]]은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가족 및 지인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세간에 알려진 김광석의 자살설에 대해 가족들은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김광석의 누나들은 "광석이는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고 항 말했다.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 역시 "활발하고 마음이 약한 아이다.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 착하고 남한테 해코지할 사람도 아니다" 라며 아들의 자살을 믿지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故 김광석 타살의혹 재점화… 가족들 입 모아 “자살 아니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2269614|출판사=한국일보|저자=최인경 기자|날짜=2012-06-19|확인날짜=2013-12-29}}</ref> 또,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은 "돌아가시기 한 6개월 전쯤부터는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며 "자살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개인적으로 타살이라고 생각하는데 의문점들이 지금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밝혀져 김광석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된 것인지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총 3가지 주요 의문점이 있었는데 1.김광석이 목을 스스로 맸냐는것, 2.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 3. 정말로 우울증이 있었냐는것이다. 1번 의문의 근거는 목을 매달 전깃줄을 묶기 위해 쓰였어야 했을 의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달 위치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살을 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또 지인은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처럼 해서 발견됐다. 줄이 늘어나야 사람이 서있을거다. 근데 전깃줄이 늘어나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고 김광석 자택은 현재 내부 공사가 이루어져 확인할 수 없는 태였다. 2번 의문은 고 김광석씨는 메모광으로 유명하였는데, 아무런 유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 김광석 첫째 자형은 "(김광석은) 메모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습관이 있다. 틀림없이 유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3번째 이유가 된 고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순씨가 주장한 우울증 역시 지인 말에 따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음악 동호회 지인은 "분명 말씀 드릴 수 있다. 김광석 씨가 우울증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며 "적어도 1년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라이브 1,000회 공연 할때 매일 봤었고 그동안 병원 가는걸 본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ref>{{뉴스 인용|제목=故김광석 타살의혹 제기 이유 3가지 들어보니..|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6191535352210|출판사=뉴스엔|저자=허설희 기자|날짜=2012-06-19|확인날짜=2013-12-29}}</ref>
         또한, 부인 서해순의 말의 신뢰도는 떨어지는데, 첫번째. 사후 얼마 안되어 딸과 미국으로 간 점 두번째. 고 김광석씨 가족과 재산 다툼을 한 점, 세번째. 고 김광석씨 아버지와 합의한 내용을 어긴 점이다.<ref>{{뉴스 인용|제목=고 김광석씨 부인 ‘저작인접권 침해’ 7,800여만원 배 판결
         2017년 의문스러운 죽음을 다룬 화가 제작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이 김광석의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딸이 2007년에 사망한 사실이 은폐되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광석의 사인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한 김광석의 딸인 김서연이 어머니에게 피살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다만 김광석 본인의 의문사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이에 김광석의 유족과 일부 정치인은 김광석의 처 서해순을 딸에 대한 살인과 소송사기로 고발하여, 수사가 진행 중이다.<ref>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228</ref>
         # 이름없는 들풀로 피어/김
         # 일어나 /엄태환+이정열+서우
         == 수 내역 ==
         * [[2014년]]《[[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대통령 표창
  • 김장섭 . . . . 16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관료, [[정치인]]이다. 1909년 [[경북도]] 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1958년부터 1959년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을, 1959년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60년 1월 [[김익노]]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북도 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참의원]](경북도)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1961년 초 [[3.15 부정선거]]를 이유로 반민주주의자로 결정되었다. 이에 공민권 제한 대자가 되어 국회의원직이 실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69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 1960 || [[1960년 재보궐선거]] (경북도 일군 을) || [[자유당]] || - || '''당선''' || ||
         || 1960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참의원]](경북도)) || [[무소속]] || - || - || ||
         || 1963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도 포항시-일군-[[울릉군]]) ||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 - || '''당선''' || ||
         || 1967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도 포항시-일군-[[울릉군]]) ||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 - || '''당선''' || ||
  • 김홍미 . . . . 16회 일치
         김홍미(金弘微, [[1557년]] ~ [[1605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 관료, [[성리학]]자이다. 자(字)는 창원(昌遠)으로, 호는 성극당(省克堂), 성극(省克)이고, 본관은 주(尙州)이다. [[경북도]] 출신.
         [[1557년]](명종 12년) [[경도]] [[주]]에서 태어났다.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을 지낸 김직(金尙直)의 6대손으로, 증조부는 김예강(金禮康)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 김윤검(金允儉)이며, 아버지는 옥과현감(玉果縣監) 김범(金範)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자는 창원(昌遠), 호는 성극당(省克堂), 성극(省克)이다.
         관례(冠禮)를 치르기 이전에 그는 향시(鄕試)에 응시하였는데, 향시의 응제 "사마온공(司馬溫公) 염중론(念中論)"으로 향시에서 장원하였다. 그 문장이 정미롭고 아름다웠으므로 합격자 발표 후에는 그의 글을 돌려가면서 암송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한다. 남명 [[조식]]이 세을 떠나자 그는 제문을 지었다. 그는 향시에 장원으로 급제했지만, 바로 대과를 응시하지 않고 사마시에 응시한다. [[1579년]](선조 12) [[과거 제도|식년진사시]]에 제2등으로 입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589년]]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누군가 그가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지목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파면되었다. 이후 [[주]]에 내려가 몇년 간 집에서 칩거하였다. 그 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뉠 때에는 그는 [[남인]](南人)이 되었다. [[1589년]] 그에 대한 복권 여론이 나타나자 [[사헌부]]가 이를 지적하며 그가 이진길(李震吉)의 집에서 유숙한 일을 들었고,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뒤 복관되어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그해 [[7월]] [[경좌도]][[도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어머니 창녕조씨의 을 당해 사직하였다. 그러나 중으로 내려간 뒤에도 선조는 [[정경세]]를 시켜 그와 그의 형의 안부를 묻고, 그의 학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기도 했다.
         탈 후 [[1595년]] [[9월]]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다가,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교리 겸 [[시강원]]문학(校理兼侍講院文學)을 거쳐 그 다음해 [[경연관]]에 임명되었으며, [[경연관]]으로 《[[주역]]》의 [[경연]]을 맡아보았다. 그때 마침 [[조선 선조|선조]]가 《주역 (周易)》을 강론하기 앞서 경학(經學)에 정통한 선비를 선발하여 경연의 강관(講官)을 충원하라고 명하였는데, 이때 그가 경연에서의 강론에 고전의 의리를 인용하여 정밀하게 분석하였으며, 가끔 경전(經傳)과 사서(史書)를 예로 들어 10여 줄을 연달아 외웠으므로, 임금이 싫증내지 않고 경청하면서 그가 박식하다고 거듭 칭찬하였다.
         [[1598년]] [[1월]] 경좌도 해안가의 전선을 제작하고 격군(格軍)을 충당하는 일과, 황해도 역시 솜씨좋은 목수로 하여금 판옥선(板屋船)이나 거북선을 많이 제작하는 등의 일을 신속히 조치하게 할 것을 지시받았다. 다시 돌아온 뒤 1598년 다시 형조참의가 되었다가, 그해 가을에 이르러 조정이 갑자기 변하자 마음이 맞지 않아 병환을 이유로 관직을 사퇴하였다. 그 뒤로 [[대사간]], 승지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1599년]](선조 31) 다시 [[청송군|청송]][[부사]](靑松府使)로 부임했다가 [[1601년]](선조 34년) 봄에 병환으로 관직을 사퇴하고 [[주군|주]]로 되돌아갔다. [[1602년]](선조 35) [[여주군|여주]][[목사]]가 되었으며, [[1604년]](선조 37) [[강릉시|강릉]][[부사]]로 임명되자 와병중인데도 부임하였다. [[1605년]] 강릉부사로 재직 중 큰 비가 내려 백성이 많은 수재(水災) 재난을 당하였다. 당시 그는 병이 들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수재로 죽은 자의 조문과, 수재로 재산을 잃거나 굶주린 자의 진휼(賑恤)과 구제에 힘써 직무에 충실하다가, 병이 악화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묘비명은 장유(張維)가 썼다. 주 봉산서원(鳳山書院)에 배향되었다.
         [[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성리학]][[분류:조선의 작가]][[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순직한 사람]][[분류:조선 선조]][[분류:임진왜란 관련자]]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16회 일치
         [[어]]: Clean Wehrmacht
         [[전간기]]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독일방위군은 구 독일제국군의 직계로서, 독일제국군의 인적 자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제국군 당시 독일군의 장교단은 주로 [[프로이센]] 귀족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군국주의]]를 추구하는 한편 "[[황제]]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기사도적 충성 사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또한[[반유대주의]]나 [[슬라브 민족]]에 대한 [[인종차별]] 같은 사도 널리 퍼져 있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독일 정부와 독일군의 관계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았다. 독일군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나 에리히 루덴도르프 같은 이들이 주장한, 그리고 전간기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믿어지게 된 [[내부중설]]에 따라서 '''자신들은 아무 것도 잘못 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자들의 반란으로 독일이 멸망했다'''고 굳게 주장했다. 그리고 황제를 몰아낸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독일 사회민주당]]을 배척했다.
         실은 이미 독일은 11월 혁명으로 거의 국가 체계가 붕괴할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빌헬름 2세]]는 방금 전까지 전쟁하던 [[네덜란드]]로 망명해서 내빼버리고(…), 독일 사회민주당은 이 무렵 독일 내의 정당들 가운데 많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군부에 의하여 패전과 혁명이 겹쳐 거의 다 망하게 생긴 나라에 등떠밀리듯이 올려가서 수습하게 된 거나 다름 없는 황(…)[* 물론 독일 사회민주당 역시 애국주의에 따라서 1차 대전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완전히 책임이 없는건 아니다.]이었다. 사실 '''군부가 싸놓은 똥을 치우는 황'''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군부는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이 국가적 위기를 사민당과 좌파 세력이 만든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려 한 것이다.
         사민당이 주도한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는 군부의 지지를 크게 받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군주제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던 독일군은 새롭게 들어선 공화국 정부에 제대로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 주요 장성들은 빌헬름 2세의 퇴위와 군주제 폐지를 일시적, 잠정적인 황으로 여겼으며, 장기적으로는 군주제의 복귀를 바라고 있었다. 독일 장교단은 기본적으로 군국주의를 추종하여 민주주의와 공화제 정치를 멸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결국 공화정 내에서 연합국 측의 압력으로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지자 이를 굴욕으로 받아들이고, 조약의 군비제한을 벗어나 과거의 독일제국군이 복귀되기를 바랬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국가'와 '헌법'에 대하여, 히틀러가 수이 되자 '민족'과 '조국'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했으나, 독일국방군으로 개편되기 직전에 있었던 이 충성 맹세는 '독일 민족의 지도자', '국방군 최고사령관'인 '''아돌프 히틀러 개인'''에게 맹세한 것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독일국방군은 (선입견과는 달리) '독일 국가의 군대'라기보다는 (이론적으로는)'히틀러 개인의 군대'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 시대가 기독교적 윤리가 아직 강하던 사회였고, 특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독일군에서는 '충성 맹세'가 지닌 사회적 가치는 매우 컷다.]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가 나타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냉전]]이다. [[미국]]과 [[국]]은 [[소련]], 그리고 소련의 위성국 [[동독]]에 맞서서 [[서독]]을 재건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독일군을 전쟁범죄로 단죄하면 독일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었다. 또한 실용적 관점에서도 독일군이 해체하는 것은 공산 세력과 맞서는데 큰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었다. 독일국방군 출신의 장성들 역시 자신들이 전쟁범죄자로 받게 될 비난을 두려워하여, 모든 죄과를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 [[나치 친위대]]에게 몰아놓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1945년 [[카를 되니츠]]는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온 힘을 다해 웅적으로 명예롭게 싸웠다.”는 내용으로 마지막 국방군 보고서를 제출했다. 1945년 11월 미군 장성 윌리엄 도너번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독일 국방군 장성들이 [[각서]]를 제출하게 하였는데, 이는 “육군이 나치당 및 나치친위대와 대립했고, 히틀러의 중요한 결정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전쟁 범죄에 대한 명령에 반대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는 국방군 최고사령부나 참모부는 [[범죄 조직]]으로 선고되지 않았고, 나치당과 친위대 등 나치당 휘하의 직계 조직만이 '''범죄 조직'''으로서 단죄되었다.
         독일군 장교들은 1950년대에는 대중을 대로 [[회고록]]을 출판하였는데, 이들은 당연히 자신의 전쟁 범죄 가담을 부인하고 축소, 은폐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당시 역사가들은 원자료를 구하기 어려웠고, 독일군 장교들이 주도하여 저술한 역사 기록과 회고록은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졌다.
         == 향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의 향은 [[소련군]]에 대한 폄하로도 나타난다. 독일군 장성들은 패전 이후에도 슬라브인을 멸시하는 인종주의를 버리지 못하여, [[독소전쟁]]에서 소련군이 단지 물량을 바탕으로 한 막무가내 [[우랴돌격]]에만 의존한 군대였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 같은 관점을 전쟁사 계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소련군을 폄하하는 잘못된 관점이 오랫동안 독소전쟁 역사에서 뿌리깊게 남게 된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 측 역시 실증이 될만한 자료 공개를 하지 않고 [[프로파간다]]에만 집중하여 냉전이 끝날 때까지는 이런 관점이 오랫동안 바로잡히지 못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16회 일치
          * 타마키는 치명을 당하진 않았지만 "개성을 억제하는 총알"에 맞아서 당분간 개성이 발휘되지 않는다.
          * 평화로운 저녁시간이던 "에스하"시. 빌런의 난동과 함께 평화가 깨진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인턴활동으로 이곳에 파견돼 있었다. 웅고 선배이자 사무실 선배인 "선이터" [[아마지키 타마키]]는 놀라운 실력으로 빌런을 제압했지만 군중 속에 숨어있던 빌런의 쫄따구가 저격, 총격에 당해 쓰러진다. 대활약하던 히어로가 쓰러지자 군중은 경악한다. 시민들이 총성이 울린 곳으로부터 일제히 몸을 피한다. 그 한 가운데 총을 들고 있는 빌런 쫄따구가 보인다. 키리시마도 총격을 당했지만 자신의 개성으로 방어, 타격을 입지 않았다.
          * 타마키도 다행히 별다른 처는 없다. 그가 무사하지 총을 쐈던 빌런도 당황, 기껏 받은 "물건"이 거지같은 것이었다며 짜증을 낸다. 타마키는 아까 했듯이 "문어"를 써서 당황한 적을 포획하려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개성이 발동되지 않는다. 그 사이 키리시마가 추격을 시작하고 빌런은 겁에 질린 채 군중 속을 헤치며 달아난다. 이들의 책임자인 BMI히어로 [[패트껌]]은 키리시마에게 어설프게 추격하다간 당한다고 충고하며 현장은 아마지키에게 맡긴 채 달아난 빌런을 쫓으려 한다. 그러나 타마키가 개성이 발동하지 않는다고 보고하자 "이레이저([[아이자와 쇼타]])라도 있나?"라고 황당해한다.
          * 궁지에 몰린 빌런은 팔뚝에서 칼날을 뽑아 공격을 가한다. 하지만 키리시마의 경도를 이길 수 없었다. 칼날이 깨져나가고 키리시마가 "레드 카운터"로 손쉽게 때려눕힌다. 키리시마는 다소 경멸적인 어조로 "얌전히 잡혀라 권총자식"라고 내뱉는다. 그런데 널부러진 빌런이 일어날 생각도, 다시 도망칠 생각도 않고 그대로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대의 반응이 예과 다르자 키리시마는 금방 당황한다.
          * 키리시마가 한 발 늦게 약의 존재를 눈치챘지만 대는 늦었다. 빌런의 태가 이했다. 눈이 뒤집히고 몸을 비튼다. 키리시마가 무슨 약을 놓은 거냐고 묻지만 대답이 없다. 비명이 이어지더니 한순간 반응이 멈춘다. 정으로 돌아온 걸까?
          그 짧은 순간이 지나며 빌런은 전신에서 무수한 칼날을 뽑아낸다. "10cm 이하의 칼날"만 뽑아낼 수 있다던 그의 개성이, 갑자기 폭주해버렸다. 칼날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면서 키리시마의 경화된 피부에 처를 낸다.
          * 패트껌이 키리시마를 따라간 이후 타마키는 검거한 빌런을 경찰에게 인계하고 있다. 이들은 진작부터 위법적인 품을 유통시키던 녀석들로 경찰도 주시하던 문제아들이었다. 타마키는 이송되기 전, 빌런조직의 두목을 대로 간단한 심문을 한다. 자신의 개성이 발동하지 않은 건 그 불법 "품" 중 하나의 효과냐는 것. 빌런은 "죽어라"고 욕이나 하지만 그걸로 충분히 대답이 됐다.
          인계가 끝나자 타마키는 곧 네거티브 태에 빠진다. 벽에 머리를 기댄 그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며 패트와 키리시마를 걱정한다.
          * 빌런의 개성은 믿기 어려운 수준으로 강화됐다. 길이만이 아니라 강도도 향돼서 인근 주점의 간판들이 간단하게 썰려나간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것이 전새역전. 이제는 골목으로부터 키리시마를 압박하며 전진하고 있다. 키리시마는 뉴스에서 "개성을 부스트하는 약물"에 대해 들은 기억이 났다. 뒤에는 주점가, 목격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 뒤는 번화가. 이대로 빌런을 저지하지 못하면 참극이 불보듯 뻔하다. 키리시마는 우선 골목 쪽의 시민들에게 피난권고를 한다. 그때 빌런이 새로운 칼날을 뽑아낸다. 새로운 칼날은 키리시마의 피부 경도를 훨씬 웃돈다. 이대로는 접근할 수 없다, 키리시마는 그렇게 판단했다.
          임시면허시험 직전의 특훈 기간 동안 키리시마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할 뾰족할 방법을 발견하지 못한 태였다. 그는 올마이트에게 들은 조언을 친구 [[바쿠고 카츠키]]와 [[카미나리 덴키]]에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조언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도 너희와 맞설만한 방법이 없었다"라는 푸념이 뒤따른다. 옆에는 [[토코야미 후미카게]]와 [[세로 한타]]도 있다. 키리시마가 분석하기로 이들은 모두 중,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단이 있고 기동력도 괜찮다. 단 키리시마만 빼고. 키리시마는 자신에겐 그들이 가진 무기가 전혀 없다며 우는 소리를 한다. 카미나리는 친구들에 대한 고평가에서 자식만 쏙 빠지자 핸드폰 공짜 충전 안 해준다고 협박한다.
  • 노해 . . . . 16회 일치
          * 본래 의미는 조직(정당이나 기업 등)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이 [[고령화]]하고, 조직이 구태화, 조직 혁신이 저해되는 황을 뜻하는 말이었다.
          * 이 경우는 "창작 업종에서 노해가 일어나고 있다.", "[[한화 이글스]]는 노해를 겪고 있다."처럼 어떤 현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 멸칭으로서 노해는 의미가 확장되어, 이미 쇠약하고 무능해진 노인이 단지 권위 만을 내세우며 사회, 조직에서 활동을 저해하는 황을 뜻한다.
          * 이 경우는 "○○은 노해다.","저 감은 노해다."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개인을 가리키면서 쓰인다.
         본래 노해는 조직 중심 인물의 고령화 현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것이 멸칭화 되면서 "노해 현을 불러오고 있다고 여겨지는 노인"에게 쓰이게 되었다.
         조직의 노해 현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스포츠 팀의 경우, '[[베테랑]]'을 중시하고 이들에게만 의존하여 '[[신인]]'을 육성하지 않거나 여건 육성이 어려운 팀에서 이러한 현이 나타나기 쉽다.
          * [[프로레슬링]] 같은 경우는 종목 특성 유명 선수가 오래 뛸 수 있으며, 집객능력 면에서 베테랑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몇몇 유명 선수가 '챔피언병'(…)에 걸려서 장기집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결과 신인데뷔가 줄어들고 단체나 종목 전체 에서 고령화 현이 일어나서 심각한 문제를 겪기도 한다.
         조직에서 노해 현이 위험한 이유
         멸칭으로서의 노해는 다음과 같은 황에서 쓰인다.
          * 노인이 현재의 황이 바뀌었음에도, "과거의 경험"만을 절대시 하여 피해를 일으키는 경우.
         본래 [[유교]]의 향으로 경로 사이 강한 한국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말이었으나, 2010년대에는 세대간 갈등이 격화되며 온라인에서는 "틀딱충", "나일리지" 같이 이와 유사한 멸칭이 나타나게 되었다.
  • 노현정 . . . . 16회 일치
         | 유명 = [[2005년]] [[KBS]] [[플러스]]
         | 수 = [[2005년]] [[KBS 연예대]] MC부문 신인
         '''노현정'''(盧賢貞,<ref>{{저널 인용 |저자= 李根美|날짜= 2006-02|제목= [화제의 인물] 20, 30代 남성들의 우 盧賢貞 KBS 아나운서|url=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602100048|저널= 월간조선|출판사= 월간조선사|권= 311|호= |issn= 1228-2197|확인날짜= 2016-02-08}}</ref> [[1979년]] [[1월 14일]] ~ )은 [[KBS]]의 전 아나운서이다.
         * [[2005년]] : [[KBS1]] 《[[전국노래자랑]]》 반기 결선
         * [[2005년]] : [[KBS2]] 《[[더하기]]》
         == 수 ==
         * [[2005년]] [[KBS 연예대]] MC부문 신인
         * [[2006년]] 제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 TV 진행자
         | 제목 = [[KBS 연예대]] 《쇼,오락 MC 부문 신인
  • 박근영 (야구인) . . . . 16회 일치
         |선수명 = 박근
         |문 표기 = Park Geun-Young
         |사진 사이즈 =
         '''박근'''(朴根永<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73년]] [[8월 2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자, 현 [[KBO 리그]] 소속 [[심판 (스포츠)|심판]]이다.
         [[2010년]] [[4월 25일]] [[넥센 히어로즈]] 대 [[기아 타이거즈]] 경기에서 박근 심판의 오심 논란이 제기되었다.
         [[2011년]] [[6월 8일]] [[한화 이글스]] 대 [[LG 트윈스]] 경기에서 박근 심판이 주심으로 경기를 진행하였다. 9회초 2아웃 주자 3루로 5:6으로 LG가 앞서고 있는 황에서 3루 주자가 [[홈스틸]]을 시도하자 당황한 [[투수]] [[임찬규]]는 홈에 송구하여 주자를 아웃시켜 경기를 종료시켰으나 이는 [[보크]]에 해당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보크 선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근은 9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는다.
         [[2012년]] [[10월 6일]] [[롯데 자이언츠]] 대 [[SK 와이번스]] 경기에선 [[박정권]]이 2루로 [[도루]]를 시도하는 황에서 2루심 박근은 공이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아웃'을 선언하였다. 박근은 다시 정정하여 '세이프'를 선언했지만, [[박정권]]은 태그 아웃 처리가 되면서 오심 논란이 재개되었다.
         [[2013년]] [[6월 15일]] [[넥센 히어로즈]] 대 [[LG 트윈스]] 경기에선 5회 말 2사 만루 황에서 아웃이 되어야 하는데 세이프로 판정하여 해당 타석을 포함하여 넥센이 8실점을 하는 사건이 일어나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 야구 위원회]]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그를 2군 심판으로 강등하였다.
         [[2013년]] [[9월 12일]]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도 [[손시헌]]의 내야안타 타구를 아웃으로 판정하였다. 3루 깊숙한 타구를 [[최정 (야구 선수)|최정]]이 잡아서 송구하였으나 송구가 빗나가면서 1루수 박정권의 발이 베이스에서 떨어졌다. 내야안타가 될 황이었지만 1루심 박근은 아웃을 선언하며 또다시 오심을 일으켰다. KBO는 그를 또다시 2군으로 강등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374984&redirect=true</ref>
         [[2015년]] [[5월 12일]]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9회초 2사 3루 한화 이글스의 공격 황에서 타자 [[김회성]]이 친 3루 땅볼을 3루수 [[박석민]]이 잡아 홈으로 송구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자 [[강경학]]의 발이 홈을 먼저 태그했음에도 아웃으로 판정하여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2015년]] [[5월 31일]]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5회말 2사 1루, 3루의 [[LG 트윈스]] 공격 황에서 4번 타자 [[잭 한나한]]이 3볼 2스트라이크에서 6구째 헛스윙을 하지 않은 것을 스윙으로 판정하여,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 박성원 (소설가) . . . . 16회 일치
         |주요 작품 = 이異常 이李箱 이理想<br /> 나를 훔쳐라<br /> 얼룩
         |수 = 2010년 현대문학
         1994년 [[문학과 사회]]에 단편 "유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남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계명대학교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수 ==
         * 2003년 제11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
         * 2010년 제55회 [[현대문학]] - 《얼룩》
         * 2012년 제17회 현대불교문학
         * 소설집《이異常 이李箱 이理想》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계명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현대문학자]]
  • 박승임 . . . . 16회 일치
         제1차, 제2차 왕자의 난 때 [[조선 태종|태종 이방원]]을 도운 공로로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된 [[박은 (1370년)|박은]]의 5대손이다. 아버지 박형은 원래 안동 출신으로,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으며 뒤에 안동을 떠나 처가가 있던 천(榮川)으로 이주해서 살게 됐다. 어머니는 천 지역의 명문가인 예안김씨 출신으로, 김만일(金萬鎰)의 딸이다. 박승임은 7형제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558년(명종 13) 풍기 군수에 제수된 박승임은 기쁜 마음으로 풍기에 부임하여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경감해 주어 민생을 안정시키고, [[소수서원]]에 자주 들러 유생들과 강학하며 회헌(晦軒) [[안향]]의 정을 새로 제작하는 등 치적을 남기고 5년 만에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힘쓰며 취향정(翠香亭)과 동리서재(東里書齋)·소고대(嘯皐臺) 등을 짓고 은자(隱者)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박승임은 1570년(선조 3) 승정원 좌승지에 오른 뒤 을사사화의 거짓 공훈을 없앨 것을 청하는 소를 올리며 명종 연간의 권신들과 척신들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간하였다. 이후 권신, 척신들의 비난 여론에 직면했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병조 참의와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거쳐 1571년(선조 4)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하였다가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홍문관 부제학과 도승지를 지냈다.
         대사간 재직 중 [[서인]]의 수이던 [[이이]]와 [[박순 (조선)|박순]]의 당론을 비난하는 소를 올렸다가 창원 부사(昌原府使)로 좌천당하였다.
         만년에 장남 박어와 셋째 아들 박조를 잃었다. 1585년(선조 18)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낙향한 뒤 1586년 병을 얻어 세을 떠났다. 당시 나이 70세였다. 사후 경주의 [[구강서원]], 주 향현사(鄕賢祠) 등에 배향되었다.
         * 고조부 : 박규(朴葵, 음직(蔭職)으로 황해도·평안도·경도의 관찰사 역임)
         ****** 삼남 박조(朴澡) - 진사였는데, 박승임보다 1년 앞서 세을 떠났다.
         퇴계의 제자였던 그는 임흘(任屹), 권문해(權文海), [[김개국]], [[김륵]], [[이여빈]], 오운(吳澐)·배응경(裵應褧)·김중청(金中淸) 등의 제자를 배출하여 이황학파의 학맥을 이어갔으며, 일부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동인-남인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하기도 했다.<ref>그의 문하생들은 대부분 북인 이이첨, 정인홍의 인목대비 폐모론, 창대군 사사론에 반발하여 남인으로 들어갔다.</ref>
         === 사적 측면 ===
         [[분류:1517년 태어남]][[분류:158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사가]][[분류:조선의 유학자]]
         [[분류:조선의 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조선의 시인]][[분류:경북도 출신]][[분류:병사한 사람]][[분류:반남 박씨]]
  • 블랙 클로버/105화 . . . . 16회 일치
          * 그리고 2위는 예을 뒤엎고 만년 꼴찌 검은 폭우단이 차지했다. 이들도 유망한 신인을 소개해야 하는데... 막장 기사단이라 단에 올라있지도 않았다.
          * 단원들은 당연히 이 녀석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야미가 냉큼 당사자를 단까지 집어던진다. 그렇게 해서 단에 올라간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단장 [[야미 스케히로]]를 비롯해 글러먹은 사람들의 모임인 검은 폭우는 전원이 노는데 정신이 팔려 단에 올라가기는 커녕 뒤쳐져서 시민들보다 먼 곳으로 밀려나있다. 아스타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가보려 하지만 인파에 밀려서 발만 동동 구른다. 야미는 딴짓하다가 지각한데다 동행한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꽐라가 되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푸른 들장미단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까지 이들에 휘말려 역시 꽐라가 되어 누워있고 동행한 [[솔 마론]]이 안절부절하지만 깨어날 줄을 모른다.
          * 올해 공적 발표는 [[마법제]] 율리우스가 몸소 행차해 거행한다. 마법제는 시민들의 환호를 잠재우며 잠시 기념사를 한다. 올해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던 만큼 공적발표는 마법제 자신이 직접 맡고 잠시 뒤에는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참석, 간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법제의 발언들은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을씨년스럽다. 번하는 듯 보이는 클로버 왕국은 내외 양면에서 많은 악재에 처해있다. 외교적으로는 다이아몬드 왕국과 스페이드 왕국의 침략을 받고 있고 내부에선 "백야의 마안"이란 테러조직의 횡행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싸움이 계속되면서 국민들 중에서도 희생자가 생기는 등 민생과 치안, 안보가 악화일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성과제를 개최하는게 바람직한가 하는 의견도 있었다.
          * 그러나 위기에는 용감히 맞서 싸우는 자들도 있으며 이러한 자들을 칭송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기리는 축제는 열려야 했다. 마법제는 그 말을 끝으로 싸우는 자들의 대표, 아홉 마법기사단 단장들을 단 위로 불러온다. 일전에 사고가 생긴 홍련의 사자단과 자줏빛 범고래단은 새로운 얼굴들이 단장으로 올라왔다. 특히 홍련의 사자단은 여성이 단장이 되어서 화제가 된다. 그런데 단에 오른 사람은 모두 일곱 명. 푸른 들장미단과 검은 폭우단이 빠져있다. 마법제는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기어이 늦었다고 내심 화를 내는데 야미는 그렇다쳐도 샬롯까지 늦은걸 이하게 여긴다.
          마법제는 곧 본론인 실적발표를 진행한다. 근처에 있던 [[락 볼티어]]와 [[매그너 스윙]]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군중들은 당연히 금색의 여명이 1위를 할 걸로 예하는데, 매그너는 어차피 꼴찌는 자기네들일 거라며 관계없다고 자학적인 개그를 한다.
          * 예대로 1위는 금색의 여명이 가져갔다. [[윌리엄 벤전스]]는 마법제의 발표를 들으며 자신있는 미소를 짓는다. 은익의 참수리의 단장 [[노젤 실버]]는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눈길로 그를 흘깃 바라본다. 올해 금색의 여명은 작년 스코어인 별 96개를 크게 회하는 별 125개를 기록.
          * 이어서 2위의 발표. 이번 2위는 경쟁자가 많다. 작년엔 홍련의 사자단이 차지했지만 올해는 전단장 [[푸에고레온 버밀리온]]이 사고를 당하면서 기세가 주춤했다. 대신 은익의 참수리가 푸른 들장미단이 언급되는데 쉽게 누구라고 확신할 수가 없다. [[핀랄 룰러케이스]]는 단원 중에서도 가장 프리하게, 정말로 실적발표엔 1g의 신경도 안 쓰고 헌팅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검은 폭우인데 너무 쉽게 들통나서 실적이 오르질 않는다.
          이런 와중에 발표된 올해의 2위는 충격적이게도 검은 폭우. 별의 갯수는 101개. 작년 1위의 득점을 능가한 수치다. 그 누구도 예하지 못한 결과.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누구보다 경악하는건 단원들 자신이다. 매그너는 눈이 튀어나와서 선글라스를 깨먹을 정도로 경악. 챠미는 자기 덕이냐고 김칫국을 마신다. 그리고 좀체 놀라는 법이 없는 노젤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아스타는 "우리가 2위라니 무슨 일이야!"라며 소리를 지른다. 단장 야미는 심드렁하지만 "쩐다"고 자평한다.
          야미는 아스타를 들어서 단을 향해 냅다 집어던진다.
          * 군집한 군중의 맨 뒤쪽으로부터, 한참을 날아서 단까지 날아간 아스타. 공중에서 반마법의 검을 뽑아서 착지한다. 그가 떨어진 위치는 마침 딱 적당한 자리였다. 그의 친구 앞이다.
  • 블랙 클로버/122화 . . . . 16회 일치
          * 대는 [[네르슈 버밀리온]], [[매그너 스윙]], [[솔 마론]]의 C팀. 잭스는 왕족이 대로 나오자 남몰래 승부욕을 드러낸다.
          * 그런데 아스타는 반마법의 마력을 몸에 흡수한 태로 변신, 그 마력으로 스테이지를 휘젓으면서 네르슈의 벚꽃마법과 잭스의 함정마법 모두를 분쇄한다.
          * [[챠미 퍼밋슨]]도 유노의 귀환을 반겼다. 전투 후의 디저트를 받치는 최고의 예후였다. 그녀로서는 먹을 걸 양보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지만 충분한 보이 주어졌다. 에너지 보급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유노는 "소중히 받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 순간 심정지를 일으킨 챠미는 불가사의한 각도로 약 1미터 후방으로 날아가 움직이지 않게 됐다. 여한이 없는 최후였다.
          * 아스타는 노엘의 설욕도 축하했다. 그가 보기에도 어지간히 열받는 오빠였다. 노엘은 특유의 세침한 태도로 제대로 했으면 반신이 날아갔을 거라고 잘난 척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마나 스킨 특훈 이후 그녀의 마력 컨트롤은 당히 향됐다. 마력 용량도 늘어서 "해룡의 포효"도 앞으로 두 번 정도는 너끈히 쓸 수 있었다. 이대로 계속 활약해서 로얄 나이츠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니다.
          * [[마법제]] 율리우스는 다양한 마법의 각축전을 보며 대만족했다. 더 만족스러운건 아직도 2회전이 남아있다는 것.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2회전 시작을 선언하려 했으나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실행요원들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시합 스테이지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스테이지 중앙의 폐허 지역에서 융기가 시작되더니 어느새 당한 높이의 언덕 지형이 새로 생겼다. 양팀 크리스탈의 위치는 평원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거리가 줄었고 전체적으로 스테이지가 좁아졌다. 이같은 변화는 다양한 지형에서 싸우는 편이 모든 역량을 살펴볼 수 있다는 마법제의 방침 탓이었다. 이렇게 순조롭게 2회전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클로버 국왕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좀 더 짐을 즐겁게"해라는 기분 나쁜 말이나 궁시렁대고 있었다. 아스타는 스테이지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지만 [[잭스 류그너]]가 작은 동요를 보이는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 왕족 씨가 대다.
          왕족이 대, 거기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결코 표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건들거리는 태도로 돌아가 1회전처럼 "이번에도 팀플레이로 힘내자"고 말했다. 하지만 아스타는 1회전과 달리 전혀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잭스에게 제법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건 다른 함정도 설치했었다는 것. 정확한 추론이었다. 잭스는 새삼 아스타가 "기"를 읽을 수 있다는 걸 기하며 성가셔했다. 하지만 여기서 숨기거나 얼버무리는 건 무리수. 그는 깔끔하게 그렇다고 인정했다. 사전에 정보를 긁어모아서 이 장소를 찾아냈고 어제 미리 함정을 설치해놨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미모사는 거기서 또다른 의문점을 찾아냈다. 로얄 나이츠 시합 장소는 극비 중의 극비. 어떻게 잭스가 그걸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걸 추궁할 기회를 놓쳤다. 아스타가 "그건 반칙"이라며 반발했던 것이다. 잭스는 정보전도 실력의 일부라 우기며 비난을 일축했다. 애초에 그런게 안 된다는 룰이 있지도 않고 실제로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는 논리. 궤변이지만 아스타에게 반박을 바라기는 힘들었다. 미모사는 순식간에 논파되고 분개하는 아스타가 귀여웠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미모사는 오빠를 지독하게 싫어하긴 했지만 실력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당장 이 마법을 타개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잭스도 그건 마찬가지. 함정 마법은 스테이지가 바뀐 이후에도 유효했지만 그것 뿐이다. 여기서는 적이 함정을 밟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동료 둘이 발이 묶인 동안 아스타는 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냈다.
          반마법 모드였다. 미모사와 잭스가 전혀 정하지 못했던 아스타의 힘. 그는 전보다 이 태의 힘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 아스타는 반마법의 힘을 전신에 휘감고 벚꽃의 홍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벚꽃도 결국은 마력. 마력을 추격하는 반마법 모드라면 결과는 한 가지 뿐이었다. "블랙 허리케인". 작은 폭풍이 된 아스타가 벚꽃 마법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벚꽃이 바람에 날려가듯 벚꽃마법의 흔적이 사라져갔다. 그런데 지워지는건 벚꽃마법 만이 아니다. 잭스는 성가신 벚꽃마법이 사라지는데도 조금도 웃을 수가 없었다. 그가 설치한 함정마법까지 한꺼번에 지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르슈는 자신이 아름다운 마법이 시커먼 덩어리에 무력화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아스타가 반마법 모드를 풀었을 땐 대부분의 벚꽃 마법이 지워진 뒤였다. 그리고 잭스의 함정마법도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의 두꺼운 마스크로도 더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사실 숨길 생각도 없어보였다.
  • 서명선 . . . . 16회 일치
          | 출생지 = [[조선]] [[경도]] [[달성군]]
         [[서명응]](徐命膺)의 아우이기도 한 그는 [[경도]] [[달성군]]에서 출생하였고 [[한성부]]에서 성장하였으며 [[조선 조|조]] 때인 [[1753년]]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63년]] 증광문과에 을과 급제하였다. 이후 겸사서, 부교리, 교리, 지평, 수찬, 헌납 등을 거쳐 부교리, 사간, 응교 등을 지냈다.
         조 후반기 [[동부승지]]로 당관에 오르고 의주부윤으로 나갔다가 이후 강원도관찰사와 [[이조참의]]를 거쳐 [[대사성]], [[대사헌]], [[이조참판]], [[도승지]] 등을 지낸다. 이어 강원도[[Javascript:hplink('18365')|관찰사]] 등을 거쳐 [[Javascript:hplink('78690')|부제학]](副提學)에 오르고 1774년 [[Javascript:hplink('127923')|이조]]참판 때, 세손(世孫: 正祖)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던 재 [[Javascript:hplink('172387')|홍인한]](洪麟漢)을 탄핵, 파직시키고 [[Javascript:hplink('136845')|정조]]를 즉위하게 했다.
         조 말기 [[예조판서]], [[도총관]], [[병조판서]], 수어사, [[이조판서]]를 지내며 세손(뒷날의 정조)을 지켜서 정조의 신임을 얻는다.
         정조 때 [[우의정]], [[좌의정]], [[의정]]을 지내고 [[좌의정]]과 [[의정]]을 또 한 차례 지냈다. 그리고 나중에 판중추부사와 중추부사로 물러난다.
         [[의정]]과 중추부사를 지낸 그는 [[조선 조|조]] 임금 때와 [[조선 정조|정조]] 임금 때의 원로대신 가운데 한 사람이며 [[시 (문학)|시인]]으로도 활약하였다.
         [[분류:1728년 태어남]][[분류:1791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대구 서씨]][[분류:과거 급제자]][[분류:의정]][[분류:조선의 시인]]
  • 서현진 (방송인) . . . . 16회 일치
         |웹사이트 = {{싸이월드|22691259|서현진}} <br/> [https://www.instagram.com/itsme_seohyunjin/ 공식 인스타그램] <br/>{{인스타그램|itsme_hyunjin|서현진}} <br/> {{트위터|hyunjin_seo|서현진}}
         * 《[[공감 특별한 세|공감! 특별한 세]]》 섹션 다큐멘터리 진행
         * 《[[세을 여는 아침|세을 여는 아침 서현진입니다]]》 ([[MBC FM4U]])
         == 수 ==
         |2001||[[2001년 미스코리아|제45회 미스코리아]] 선(善) 하이트, 포토제닉
         |2007||제8회 대한민국 대전 포토제닉
         |2007||[[MBC 방송연예대]] 아나운서
         * [[2008년]] [[1월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고교 동창생의 차량에 탑승했다가 다른 차량과 부딪혀 차량이 완파되는 사고를 당했으나 큰 외은 입지 않았으며, 교통사고 직후 병원 치료를 받았다.<ref>[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1894890§ion_id=106&menu_id=106 서현진 교통사고] 《연합뉴스》</ref>
         | 제목 = [[MBC 방송연예대]] 《아나운서
         | 현재명 = [[오진]], 서현진
  • 송호창 (1967년) . . . . 16회 일치
          | 출생지 =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 웹사이트 = [http://www.hochang21.com/ 공식 사이트] <br /> [https://www.twitter.com/HOwindow 공식 트위터] <br /> [http://blog.naver.com/shochang 공식 블로그]
         '''송호창'''(宋皓彰, [[1967년]] [[2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제19대 국회의원이자 인권 변호사이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228110317 민주당, 송호창·이학·백혜련 전략공천] 프레시안 2012-02-28</ref>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당시 TV토론에 출연해 촛불 정국으로 대변되는 촛불민심을 지지하여, '촛불 변호사' 로 활약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20662 '촛불 변호사' 송호창, 안수 16년 아성 '탈환'] 오마이뉴스 2012.04.12</ref>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로 나선 [[박원순]]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ref>[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165 ‘박원순 대변인’ 송호창, ‘보온병’ 안수에 도전장] 미디어오늘 2012-02-06</ref>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의왕·과천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ref>[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깨진 링크|url=http://info.nec.go.kr/main/showDocument.xhtml?electionId=0020120411 }}</ref>
         == 화 ==
         * [[2013년]] 《[[경주 (화)|경주]]》 ... 술남 일행1 역
         * [[2015년]] 《[[남과 여 (2016년 화)|남과 여]]》 ... 부산 브랜치 회의 참석자 역
         * [[2016년]] 《[[춘몽 (2016년 화)|춘몽]]》 ... 동물원 남자 역
         * [http://www.hochang21.com/ 송호창 공식 사이트]
         |전임자 = [[안수 (1946년 2월)|안수]]
         [[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7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친문]][[분류:문재인]][[분류:박원순]][[분류:안철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196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법률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화 평론가]][[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여산 송씨]]
  • 신동호 (아나운서) . . . . 16회 일치
         |학력 = [[경희대학교]] 문학과
         |웹사이트 = [http://withmbc.imbc.com/announcer/anna09/introduce/introduce_01/1471247_32516.html MBC 아나운서 홈페이지]
         |수 =
         '''신동호'''([[1965년]] [[1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아나운서이다. [[경희대학교]] 문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문화방송]]에 입사하였다.
         * [[경희대학교]] 문학과 학사
         MBC 아나운서국의 8월 성명에 따르면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마이크를 잡지 못하게 하고, 다른 부서로 발령시키는 등 동료, 후배 아나운서들의 정치적 발언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탄압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ref>{{뉴스 인용|제목=MBC 아나운서들이 직접 밝힌 “우리가 TV에서 사라진 이유”|url=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60882|뉴스=PD저널}}</ref> [[2017년]] [[10월 16일]]에는 [[문화방송]] 노조에 소속된 아나운서들이 부당노동행위를 하였고, 구성원들을 대으로 한 사찰을 진행하여 신동호를 고소한다는 성명을 냈다.<ref>{{뉴스 인용|제목=[공식입장 종합] 파업 아나운서들 "MBC 신동호, 부당인사+비식 사찰..고소"|url=http://www.osen.co.kr/article/G1110752639|뉴스=OSEN}}</ref>
         * 《와 e 멋진세
         == 수 경력 ==
         * 2001년 한국방송대 아나운서
         * 2006년 [[MBC 연기대]] TV 진행자 부문 특별
  • 연경흠 . . . . 16회 일치
          * 위 문서: [[야구 관련 인물(KBO)]]
         2001년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야구부|청주기공]]의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봉황대기]] 돌풍 주역으로, [[노병오]], [[박정규]], [[신주(야구선수)|신주]]과 함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수비에서도 별 좋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발이 느려서 수비 범위가 좁았던 데다가 타구 판단도 좋은 편이 아니었으며 어깨조차 좋은 편이 아니었다. 쉽게 말해 [[이우]]의 몇단계 다운그레이드. 하지만 좌익수라는 포지션이 수비력이 좋지 않은 선수가 맡아도 별 문제는 없는 포지션이었기에 꾸준히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주로 백업요원으로 출전했다. 4경기에 출전했으나 안타 없이 1득점만을 기록하고 2군으로 내려갔다. 타격 능력에서 컨택 능력이 늘어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힘들어 보였고,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좌익수 자리에는 이미 [[최진행]]이 자리잡고 있는 황이었으니..
         결국 선수로서 은퇴 수순에 들어가서 한화 이글스 3군에서 코치 수업을 받았다가 2013년 6월 19일자로 정식 은퇴했다. 만 29세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던 고질적인 무릎 통증과 팔꿈치 부 때문이었다고... 계속해서 재활에 매달렸지만 회복이 힘들다는 판단 하에 은퇴를 결심했고, 구단에서도 이를 수용했다고 한다. 한화의 좌타 외야수 요원 가운데에서는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던 적도 있을 정도로 젊고 가능성이 있던 그였기에 적지 않은 팬들이 그의 이른 은퇴 선언에 아쉬움을 표했다.
         은퇴 후에는 한화의 육성군 스카우트로 활동하다가 2015년 4월 퇴직했다. 이후 [[안진]]과 함께 사회인야구 레슨을 하고 있다는 목격담이 들린다.
         이후엔 2018년 대전서구유소년 야구단의 감독으로 한화에서 활약했던 외야수이자 현재 코치인 [[박규(야구선수)|박규]] 와 함께 창단 3년차에 불과하지만 양구대회에서 4강 진출, 인제군수배에서는 준우승을 거두는 등 유소년야구대회에서 굵직한 성과를 냈다고 한다..[[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7501|관련기사]]
          * 야수로써는 체격이 작은 편이었으며 외야수이긴 했지만 '''[[좌익수]]'''밖에 못 본다는 게 흠이었다. '''게다가 리그 전체로 볼 땐 평균 이하의 수비력'''이었다. 빠른 뱃스피드로 공을 날려버리는 스타일이었으며 실제 그의 타구는 라인드라이브로 자주 날아갔다. 2009년 당시 SK전에서 [[정대현(1978)|정대현]]을 대하기 위해 대타로 나왔을때 --대전적 1타수 1안타 1홈런-- 중계하던 캐스터가 배트 스피드를 [[김재현(1975)|김재현]]에 이은 2위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 타석에서 폭풍삼진--진정한 선풍기가 아닐까 싶다.
          * [[올림픽 브레이크]] 덕분에 야구 경기가 없던 2008년 8월 3일, 해운대로 놀러갔다가 같이 간 [[이여]]이 뜬금 뉴스 인터뷰를 따냈는데, ~~이?????~~그 옆에 같이 있던 사람이 바로 연경흠이다. 그러나 이 임팩트가 워낙 강렬해서 연경흠이 옆에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 원피스/858화 . . . . 16회 일치
          * [[카포네 갱 벳지]]의 아지트에 도착한 [[몽키 D. 루피]]와 [[디]]. 벳지의 부하 "괴총" 비트가 마중나온다.
          * [[쵸파]] 일행은 모두 목욕을 한 태. 벳지는 결벽증이 있어서 지저분한 인물을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 징베가 "빅맘을 좋아하냐"는 한 마디를 던지자 루피, 벳지, 시저가 일제히 "싫다"고 입을 모으며 황이 정돈된다.
          부선장 [[알라딘(원피스)|알라딘]]과 그의 아내 [[샬롯 플라리네]]는 징베가 대신 보고를 하러 갔도 벳지는 응징 당하고 있을 거란 감언이설로 그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페콤즈는 눈치가 빨라서 그런 거짓말로는 설득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난 밤 섬에서 소란이 일어난 걸 이미 알고 있는데다 태양 해적단의 행동도 수하다는 걸 간파한다. 그는 구해준 건 고맙지만 가야겠다며 억지로 자리를 일어나려고 한다. 태양 해적단은 어떻게든 그를 저지하기 위해 식은땀을 흘린다.
          * 미러월드의 징베는 [[쵸파]] 일행과 함께 먼저 벳지의 아지트에 가있겠다고 말했다. 뒤따라 도착한 [[몽키 D. 루피]]와 [[디]]. 그들이 파이어 탱크 아지트의 정문에 도착했을 땐 다과회 개최까지 4시간 15분이 남은 시점이었다. 루피는 벳지가 어떤 녀석이냐고 묻는데 디는 "마피아 보스 같은 녀석"이라고 짧지만 정확하게 대답한다.
          * 누군가 정문에 나타나자 루피는 그가 벳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건 부하인 "괴총" 비트였다. 그는 디와도 구면. 제르마의 팬인 만큼 디를 "빈스모크 디"라고 부르며 반가워한다. 비트는 다른 일행도 이미 도착해 있다며 일행을 안내한다. 비트 뒤에서 쵸파도 나타나는데 목욕을 해서 뽀송뽀송해졌다. 태평하게 루피한테도 목욕을 하라고 해서 루피가 "시간도 없는데 뭔 짓이냐"고 한 마디 한다. 하지만 비트도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파더(벳지)는 결벽증이 있는 건지 "지저분한 인간"과는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 시폰은 로라가 어째서 결혼대를 찾아 바다로 나갔는지 경위를 설명해준다. 빅맘은 어떤 이유 때문에 전세계 거인족들과 적대하고 있었다. 지금도 토트랜드에 거인족은 없는건 그때의 일 때문이다. 콜렉터인 빅맘에겐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딱 한 번 관계를 개선할 기회가 있었다. 엘바프 족의 왕자 "로키"가 로라를 보고 한 눈에 반해서 청혼했기 때문이다. 이 결혼이 성사된다면 빅맘과 거인족 간의 원한은 단숨에 해소되는 데다 빅맘은 세계 최강국 엘바프의 강력한 군사력과 거인족 가족이 생긴다.
          문제는 로라의 의향. 로라는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았고 자유를 찾아 바다로 떠났다. 이후 로라와 똑닮은 시폰이 대신 약혼자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로라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절, 오히려 사이는 이전보다 악화됐다. 빅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진짜 거인족을 가족에 넣는건 포기, 인간을 거인화시키는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로라는 "배신자"로 간주되어 분노가 날로 증폭, 지금 토트랜드에선 그녀가 범죄자로 취급되고 있다.
          빅맘의 분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폰까지 학대하기에 이른다. 만날 때마다 로라가 생각난다는 이유로 그녀를 때려서 벳지와 결혼하기 전까진 처가 끊이지 않는 나날이었다. 시폰은 정말로 빅맘에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지금은 그녀를 그저 괴물이라 여긴다. 물론 로라는 설마 빅맘이 이렇게까지 하리라곤 생각도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미는 로라가 비브르 카드를 준 일이나 빅맘의 반응 등이 모두 이해가 된다.
          * 회의장소로 벳지가 나타난다. 벳지는 밀집모자일당에게 제대로 씻었냐며 묻는다. 그의 신조는 "옷이 사람을 만든다.". 몸가짐이 되먹지 못한 대는 대화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루피 일행은 그럴 듯한 옷도 한 벌씩 제공 받는다. 징베만 특유의 야쿠자 스타일을 고수.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은 양측의 패밀리. 하지만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수는 없다.
          벳지는 시작부터 위협적으로 나온다. 부하들과 이야기할 때보다 더 위협적이고 딱딱한 태도다. 디는 거기에 딴죽을 건다. 자신이 죽었다간 식 자체가 없어지니 찬스가 제로라는 것. 게다가 그는 개시 2시간 전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의심을 살 것이다. 벳지는 유감이라며 그 말에 동의한다. 징베는 그렇게 밀당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끼어든다. 그는 루피에게 직감적으로 이들과 손을 잡을 수 있을지 어떻지 의향을 묻는다.
          루피가 지적하자 쵸파가 시저가 어디있냐며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디나 나미는 벌써부터 알고 있어서 새삼스러운 이야기나 한다고 투덜거린다. 그 말대로, 행색은 달라졌지만 그는 시저가 맞다. 시저는 토트랜드로 끌려온 이후 줄곧 빅맘의 감시 하에 있었다. 하지만 "룩"의 칭호를 받고 전권을 위임 받은 벳지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시저의 심장까지 입수해서 문자 그대로 생사를 쥐고 있다. 벳지는 빅맘에게서 도망치게 해주는 대가로 협력을 강요했다. 시저는 거절하려고 해봤지만 밀집모자일당까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만큼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서 벳지에게 협력한다. 그렇게하고도 결국 만나게 됐지만.
          그러나 웃음소리도 그대로라 전혀 의미없는 위장이다. 디는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쵸파는 기껏 바꾼 이름이 "가스티노"여서 두 번 놀란다. 그런데 이런 성의없는 변장에도 루피는 한 번 속는다. 나미가 "시저가 맞다"고 지적해주고 나서야 다시 발끈한다. 루피 조차 속지 않자 시저도 위장은 때려치우고 루피일행 탓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라고 원망한다. 그러면서 [[트라팔가 로]]에게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고 전하라며 아우성을 친다.
  • 원피스/875화 . . . . 16회 일치
          * [[브룩]]과 [[쵸파]]는 [[몽키 D. 루피]] 일행과 달리 잠수정을 이용해 써니호에 접근 중. 그런데 가던 도중 수한 행동을 하는 남자 인어를 발견한다.
          * 푸딩은 마침내 유혹의 숲에서 빠져나오는 밀집모자 일당과 디를 발견하고 소녀처럼 좋아라 하더니, 갑자기 표변해 "디 녀석"이라며 사악한 얼굴을 드러낸다.
          * 써니호가 정박한 남서쪽 해안. 마지막 관문인 유혹의 숲. 루피 일행은 간신히 여기까지 도착했지만 빅맘 [[샬롯 링링]]의 추격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탈것(?)이었던 킹 밤이 당했다. 먹부림에 눈이 뒤집힌 빅맘은 유혹의 숲이 불타는 것도 아랑곳 없이 무차별 파괴행위를 거듭하며 루피 일행을 압박했다. 루피가 이 먹부림 태에 대해서 궁금해하자 [[징베]]가 답을 줬다. 그는 그게 일종의 지병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먹고 싶은 걸 실컷 먹기 전까진 모든 걸 파괴하는 병. 원인은 "웨딩 케이크"일 것이다. [[나미(원피스)|나미]]가 새삼 "케이크를 부순 루피 탓이다"고 원망했지만 루피는 그 덕에 작전이 잘 풀리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데다, 실은 자신은 케이크를 맛 봤다. 도망치는 중인데도 그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흔치 않을 거라고 감까지 남겼다. 정작 그토록 원하던 빅맘은 입에 대보지도 못했건만. [[디]]가 작정 와중에도 먹은 거냐고 한심하다는 듯이 질책하자 [[캐럿(원피스)|캐럿]]도 "사실 나도 먹었다"며 슬쩍 고백했다. 아무튼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뒤에는 미쳐버린 빅맘. 앞에는 방해꾼인 유혹의 숲인 호미즈들. 써니호는 멀지 않은 위치였지만 제때 이 숲을 돌파할 수 있을지, 제대로된 방향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 페드로를 공격한 호박 머리. 뭔가 수한 녀석이었다. 녀석은 페드로를 "페드로군"이란 호칭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를 대한 페드로의 태도도 이했다. 녀석이 그 호칭을 쓰는 걸 듣고 무슨 생각이 든 건지 도망치는 것도 잊고 적극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징베는 그것을 제지하며 아예 직접 그의 목덜미를 끌어당겼다. 루피에게도 캐럿을 멈추게 하라고 했다. 루피가 팔을 뻗어서 캐럿을 회수했다. 징베가 본 적들의 목적은 일행의 분산. 각개격파하려는 속셈이다. 징베가 최대한 모여서 방어진을 굳히라고 지시했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면서. 일행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 제우스가 크리마텍트를 빨대처럼 빨아먹은게 그때였다. 나미가 거절할 틈도 없었다. 제우스는 원액을 빨아먹은 셈인데 그 여파인지 녀석의 덩치가 삽시간에 불어났다. 숲의 공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래진 제우스. 몸체가 검고 방전이 흘러나오는 초거대 뇌운으로 성장해 버렸다. 나미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멈출 정도로 놀랐다. 디가 잽싸게 그녀를 붙들고 뛰었다. 적이 코 앞이라면서. 그 말대로 빅맘과 합세한 추격대의 대병력이 물딜 듯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미는 불현듯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 때문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지금 제우스 안에는 크리마텍트로 뿌린 웨더 에그가 가득 차있다. 나미는 일행에게 적과 최대한 거리를 벌리라고 말하고 자신은 크리마텍트를 치켜든다. 좋은 아이디어는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굳이 제우스를 복종시키지 않아도 써먹을 수 있는 아이디어. 적당한 거리가 되자 나미가 크리마텍트를 내리쳤다.
          그 자리에는 빅맘 해적단만 있는게 아니었다. 잠수정으로 일행을 앞질러온 브룩과 쵸파도 그 광경을 보았다. 잠수정 위로 올라와 있었다. 사실 그들은 써니호 앞에서 부했다가 매복한 페로스페로 일당과 딱 마주쳤던 참이었다. 그런 순간에 유혹의 숲에서 일어난 이변. 둘은 숲에 있을 일행을 걱정했다. 빅맘이 한 짓이기 아니긴 했지만 워낙 어마어마한 범위의 벼락이라 과연 일행이 무사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페로스페로는 아예 그들이 들으란 듯이 "일행이 죽은 모야이다"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둘에게 이제 어쩔 테냐고 물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배를 탈취하게 되더라도, 그 배에 태울 일행은 이제 없다. 페로스페로는 큰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지금 그 잠수정으로 달아난다면 둘은 봐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휘하의 체스병사들은 활로 브룩과 쵸파를 겨누고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해안의 맞은 편, 섬의 정반대편에서 [[샬롯 푸딩]]과 [[샬롯 시폰]] 자매가 마법의 양탄자로 날아오고 있었다. 공에서 유혹의 숲을 발견한 둘은 제우스가 날뛰는 모습을 보고 과연 루피 일행이 무사할지 장담하지 못했다. 푸딩이 시폰에게 자신이 억지를 부렸다고 사과했다. 시폰이 푸딩의 설득에 넘어간 것이다. 시폰은 괜찮다며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건 오랜만이라고 대답했다. 남편 [[카포네 갱 벳지]]는 마지막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시폰은 친자매인 로라를 져버릴 수 없었고, 그들의 은인도 져버릴 수 없었다. 벳지는 위험하고 걱정된다며 결사반대했지만 결국 이긴건 그녀였다.
          * 그녀가 결사의 각오로 발휘한 의리가 헛되지 않았다. 비록 그 소감에 대해서 푸딩은 전혀 듣지 않았지만. 푸딩은 밀집모자 일당을 찾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결국 발견했다. 그녀가 소녀처럼 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언니 찾았어! 사... 사... 디 씨가...
          >디 녀석을 찾았어!
  • 유미(가수) . . . . 16회 일치
          * 위 문서: [[가수/한국]]
         [[대한민국]]의 [[가수]], [[보컬 트레이너]]. 2001년 데뷔. 현재 활동명은 유미([[Youme]])[* 2001년 데뷔 당시 활동명도 지금과 같은 '유미'였지만 어 스펠링이 달랐다. '''Yumie''']. [[본명]]은 오유미.
         2006년에는 [[김아중]], [[주진모(1974)|주진모]] 주연의 화 [[미녀는 괴로워]]에서는 주연배우 [[김아중]]의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화에서 김아중이 직접 노래를 소화하는 설정이었기 때문인데 그 가창력이 웬만한 가수들 뺨칠 정도로 엄청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OST에도 참여했는데, 화와 함께 OST도 대박을 치면서 화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유미가 부른 곡인 '별' 또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2년 12월 10일 녹화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엄정화]] 편[* 무대의 방은 2013년 1월 12일.] 2부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녀의 사연이 알려졌고[* 당시 함께 출연한 [[손호]]은 방송에서 "실력이 좋은데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배반의 장미'를 강렬한 사운드로 편곡해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를 그리워하는 애틋함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첫 출전으로 우승은 못 했지만 그녀를 향한 관심은 방송이 끝나도 식을 줄 몰랐고,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하루종일 주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고 불후의 명곡 시청자 게시판이 폭주할 정도로 그녀의 재출연 요청이 쇄도하였다. 그리고 2월 16일 방된 불후의 명곡 [[김민종]] 편에서 다시 그녀의 모습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가수 활동 역은 점차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불후의 명곡 [[임재범]] 편, [[들국화(밴드)|들국화]] 편, [[설운도]] 편, [[장미화]]&임희숙 편, [[최진희]] 편에 출연하였고, 그 이후에도 종종 출연 중이다. 또한 '눈물나는 얘기(나인 OST)', 'Last One([[주군의 태양]] OST)' 그리고 2013년 10월에는 디지털 싱글 '싸구려 반지'를 발표하면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 수 ==
          * 2002년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MKMF) 여자 신인
         가수로서 공백 기간 동안에는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했는데, 대표적으로 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배우 [[김아중]], 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에 배우 [[김정은(배우)|김정은]]의 노래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특히 2세 아래의 배우 [[김아중]]과는 화를 통한 보컬 트레이닝을 인연으로 친분이 두텁다. 불후의 명곡 첫 출연 섭외 전화를 받을 때에도 함께 있었다고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에서 김아중이 직접 언급하였으며, 불후의 명곡 [[김민종]]편 녹화날에는 유미의 초대에 [[김아중]]이 기꺼이 응원하러 와 주기도 하였다.
         학창 시절 별명이 '고음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노래에 자신이 있었고, 당시 어린 나이에 [[충주시]]에서 열린 규모 있는 가요제에서 우승할 정도로 노래 실력도 탁월하였다. 감정 표현도 훌륭하여 특히 슬픈 발라드 노래가 인적이다.
  • 의천도룡기(영화) . . . . 16회 일치
         [[이연걸]]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의천도룡기]]의 화판.
         각색이 당히 많이 되서 원작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또 의천도룡기 원작을 모르면 줄거리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초반부 스토리는 [[그림]]과 [[나레이션]]으로 때운다. 장면은 장취산과 은소소 부부가 무당산에 도착하고, 육대문파가 무당산에 결집하여 도룡도와 사손의 정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은소소가 소림사 장문을 낚아서 도룡도에 대한 정보를 준 척 하면서, 소림사 장문이 비난받는 사이에 자결하는 장면은 원작과 똑같지만 그 살벌함 때문에 설득력 발군. 이후 어린 장무기는 빠른 속도로 노화 하여 청년기(이연걸)로 간다. 장무기는 은소소가 사준 사탕을 말라 비틀어질 떄까지 가지고 있다.
         주요 무공은 구양신공, 건곤대나이. 그리고 태극권. 원작에서 마냥 착하기만 한 장무기와는 달리 다소 뻔뻔스럽고 악랄한 느낌이 있다. 사실 '''성격이 거의 정 반대'''라고 봐도 좋다.
         어린 시절의 스토리는 그림으로 설명되고 넘어간다. 현명이로에게 당하여 내을 입게 되고,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몸이 된다. 주지약, 송청서의 계략에 넘어가서 분노하여 돌을 들고 달려들다가 두드려 맞고, 소소와 함께 무당산의 계곡으로 추락. 계곡 밑에서 화공두타를 만나게 된다. 화공두타는 장무기에게 구양신공을 전수해주지만, 구양신공을 습득한 장무기에게 당해서 오히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만다. 장무기는 구양신공을 전수해준 은혜가 있으니 화공두타를 죽이지는 않겠다고 하고 떠난다.
         무당산을 공격했을 때 장무기와 대결, 일단 형식으로는 이 화의 최종보스 격. 조민은 장무기에게 3가지 조건으로서 구양신공과 건곤대나이를 쓰지 못하게 하여, 장무기는 장삼봉에게 즉석에서 태극권을 전수받으면서 싸우게 된다. 싸우면서 장삼봉의 시범을 보면서 즉석에서 태극권을 마스터하는 묘사가 굉장히 재미있다. (장삼봉) "네 이름이 뭐냐?" (장무기) "모르겠습니다!" (장삼봉) "됐다" 이러는 대사가 나온다.
         원작에서도 찌질캐였지만, 화에서는 더욱 형편없는 찌질캐로 전락. 주지약과 공모하여 장무기를 속여넘기겨 놀리고, 제자들을 시켜서 구타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장무기가 절벽에 떨어졌는데도 사고로 죽었다고 둘러댄다. 조민, 현명이로와 협력하여 장삼봉을 암습했다가 실패하고, 현명이로가 장무기에게 패해서 조민이 물러간 뒤에는 무당산에 남겨진다. 장무기가 죽이려고 하자 필사적으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빈다. 장무기는 송원교 사숙이 대를 이어야 한다며 무공만 폐하고 목숨은 살려주는데, 송청서는 "고맙다 무기야 고맙다"하면서 비굴하게 웃으면서 거듭해서 절을 해대는 비참하고 찌질한 모습으로 전락한다. 원작과는 달리 죽지 않지만 그 대신에 찌질도가 미친듯이 늘어났다.
         당히 재미있고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속편은 제작되지 않았다.--광명정에 언제 도착하지.--
         전체적으로 장무기의 인격(…)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는데, 원작에서 착하고 우유부단하던 장무기가 화에서는 굉장히 '악랄'해졌다. 하지만 원작에서 갑갑함을 느꼈던 사람들은 이 화를 보면서 '''[[사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뭔가 정말로 레알 마교 교주에 걸맞는 언행.
          * 원작에서는 장무기가 멸절사태와의 대결에서 공격을 무방비로 맞아주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 화에서는 장무기가 멸절사태를 욕하면서 뺨을 미친듯이 때린다.
         [[분류:무협 화]]
  • 이광호 . . . . 16회 일치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의문학]]》 편집위원(1992~1999), 《포에티카》 편집위원, 《[[문학과사회]]》 편집동인(1999~2010)을 역임했다. [[2001년]] 제13회 「[[소천비평문학]]」, [[2003년]] 제48회 「[[현대문학]]」, [[2007년]] 제18회 「[[팔봉비평문학]]」, [[2009년]] 제17회 「[[대산문학]]」을 수했다. [[1996년]]부터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수 ==
         * 2001년 제13회 「소천비평문학
         * 2003년 제48회 「[[현대문학]]」
         * 2007년 제18회 「[[팔봉비평문학]]」
         * 2009년 제17회 「[[대산문학]]」
         [[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현대문학자]][[분류:팔봉비평문학자]][[분류:대산문학자]]
  • 이금서 . . . . 16회 일치
         |출생지= [[신라]] [[경북도]]
         |웹사이트=
         일설에는 아버지로 알려진 이금현과 형제 관계라고 전한다. 이금현(李金現), 이금서(李金書) 부자의 이름의 '금(金)'자가 같이 쓰인 점에서 비롯된 오해인 것 같다. 그러나, 신라와 고려의 옛 풍습에 아들의 이름에 아버지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니, 권행(權幸, 안동권씨 시조)의 아들 인행(仁幸), 공직(龔直, ?~939, 연산공씨 시조)의 아들 직달(直達)이 그 예이다.
         [[이제현]](李齊賢)의 묘지명(墓誌銘)에 의하면 "신라왕 김부(金溥 : 敬順王)가 국토를 바치고 고려 조정에 들어와 태조(太祖)의 딸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樂浪公主)에게 장가들어 딸<ref>신란궁부인 김씨이다.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는 출가 후 신란궁부인으로 불렸는데, 그 딸인 김씨가 다시 신란궁부인에 봉작되었다.</ref>을 낳았으니 금서의 아내가 되어 윤홍을 낳았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 이윤홍이 '신라말' 병정(兵正)을 했다는 기록을 들어 연대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ref>이에 대해 경주이씨 대종보 총편에 '고려 초 관제에 병부령(兵部令)을 설치할 때 병정(兵正)을 두었고 품계는 재(宰相)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ref> 그러나 이금서가 중원태수(中原太守) 호부랑중(戶部郞中)으로 고려에서 처음 벼슬을 시작했고, 그 아들 이윤홍의 병정(兵正) 벼슬과 관련하여 고려 초 관제에 병부령(兵部令)을 설치하면서 병정(兵正)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윤홍의 병정(兵正) 벼슬은 고려 초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경순왕]] 3녀 김씨와 연대 모순 ===
         경주이씨 세보에 의하면, 이금서는 [[고려]]조정에 처음 출사하였다 한다. 또한 [[고려 태조|태조]] 때 [[고려]]의 삼한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런데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면서 [[고려 태조]]의 장녀인 [[낙랑공주 (고려)|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 일명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와 혼인한 것을 고려할 때, 여기서 태어난 [[경순왕]] 3녀 김씨가 이금서와 혼인할 연령이 되려면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한 이후 15여 년 이의 시간이 필요하고, 여기서 태어난 이금서의 아들들이 활약할 연령이 되려면 15여 년 이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이금서의 아들들이 [[경순왕]]의 [[고려]] 귀부 이전에 활약했다는 기록들은 이러한 사실과 30여 년 이의 연대 오차가 생기게 된다.
         1남 이윤홍이 신라말 병정(兵正)을 지냈다는 기록은 [[경순왕]] 3녀 김씨의 연대와 맞지 않을 뿐더러 [[이색]]이 [[이제현]]의 묘지명에서 이금서와 [[경순왕]] 3녀 김씨 사이에 이윤홍을 낳았다는 기록과도 모순이 발생한다.
         대학자인 [[이색]]의 인품과 그가 지은 [[이제현]]의 묘지명의 기록연대를 고려할 때, 기록 연대가 뒤처지고 위조나 오기가 발생하기 쉬운 족보의 기록보다는 [[이색]]이 찬한 [[이제현]] 묘지명의 신빙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에 근거하여 모순점들을 생각해볼 때, [[경순왕]] 3녀 김씨의 높은 신분을 고려하여 그 소생인 이윤홍을 이복형들인 이윤장, 이윤원에 앞서 1남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할 수 있다. 또한, '신라말' 병정을 역임했다는 부분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고려초'의 오기로 보인다.
         ****** 증손 : [[이주좌]](李周佐) - [[고려 목종|목종]](穆宗) 때의 형부서(刑部尙書)
         **** 2남 : 이윤원(李潤遠)<ref>[[가평 이씨]]의 시조라고 하나, [[가평 이씨]] 족보 그 시조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밝혀져, [[가평 이씨]]는 [[경주 이씨]]의 분적종에서 제외되었다.</ref>
         [[분류:생몰년 미]][[분류:신라의 문신]][[분류:고려의 문신]][[분류:경주 이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고려의 공신]]
  • 이종배(국회의원) . . . . 16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불교/인물]]
         ||<bgcolor=#C9151E> '''{{{#FFFFFF 소속위원회}}}''' ||<(> [[산업통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
         ||<bgcolor=#C9151E> '''{{{#FFFFFF 현직}}}''' ||<(> [[제20대 국회의원]][br][[자유한국당]] 대외협력위원장[br]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부의장[br][[산업통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 ||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19~20대 국회의원[br]제35대 [[충청북도]] [[충주시]]장(민선5기)[br][[행정안전부]] 제2차관[br]행정자치부 차관보[br]소청심사위원회 임위원[br][[충청북도]] 행정부지사[br]충청북도청 기획관리실장[br][[충청북도]] 청주시 부시장[br][[대통령비서실]] 행정비서관[br][[충청북도]] [[음성군]]수(관선)[br]제23회 행정고시 합격 ||
         민주당 [[우건도]] 시장의 시장직 실 판결로 인해 치뤄진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입되어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당시 충주시는 절대적인 향력을 갖고 있던 이시종이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한 이후로 후임 시장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하는 헬게이트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시종 사퇴 이후 재보궐에서 당선된 [[한창희]]가 겨우 2년(...), 그나마 후임 김호복이 재보궐로 당선되었지만 다음 선거에서 패하여 낙선. 그리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우건도가 당선되었으나 1년여만에 또 당선무효.(...)
         당시 한나라당이 충주에서 낼 수 있는 강력한 카드인 [[윤진식]]은 [[2010년 재보궐선거#s-2|2010년 반기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태였고, 김호복은 2010년 선거의 패배로 경쟁력이 의심되던 황이었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충주 출신 고위관료 테크를 탄 이종배를 적극적으로 입한 것. 이후 재선 국회의원 출신의 [[민주당(2008년)|민주당]] [[박규(정치인)|박규]] 후보, 그리고 이종배 입에 반발하여 미래연합 후보로 출마한 김호복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당선, 민선 5기 충주시장이 되었다.
         임기가 다 끝나가던 2014년 3월 31일, 시장직을 사퇴한다. 이는 지역구 국회의원 윤진식이 충북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그 자리를 대신하여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2014년 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 옛 한나라당 출신 시장인 [[새정치민주연합]] 한창희 후보에게 승리하고 당선되었다. 정작 이종배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물려준 윤진식은 도지사 선거에서 석패했다.[* 전국에서 제일 박빙이어서. 다음날 새벽4시까지 개표가 진행됐다.].(...) 이후 [[친박]]계에 속하였다. [[정우택]]의 최측근이며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 2014 || [[2014년 반기 재보궐선거]][br](19대 국회 충북 충주시)[* 전임자 윤진식 충청북도지사 선거 출마로 사퇴] || '''[[새누리당]]''' || '''35,699 (64.08%)''' || '''당선 (1위)''' || '''초선''' ||
  • 이현보 . . . . 16회 일치
         이현보의 초
         '''이현보'''(李賢輔, [[1467년]] [[8월 28일]]([[음력 7월 29일]])~ [[1555년]] [[7월 1일]]([[음력 6월 13일]]))는 조선 연산군, 중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자는 비중, 호는 농암(聾巖)·설빈옹(雪賓翁), 본관은 [[천 이씨|천]](永川)이다. 시호는 효절(孝節)이다.
         이후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경주부윤·경도관찰사·형조참판·호조참판을 지냈다.
         고을의 80이 노인들을 초대해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어 부모님을 즐겁게 하였다.
         그는 특히 문장에 뛰어나 자연을 노래한 시조가 많이 있는데, 10장으로 전하던 <어부가>를 그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이 <[[청구언]]>에 실려 있다. <효빈가(效嚬歌)> <농악가> <농암가(聾巖歌)> 등이 그의 저서인 <농암(聾巖)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ref name="이현보">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고려-조선의 문학/조선 전기 문학/시조 문학#이현보|이현보]]〉</ref>
         * 고조부 : 이헌(李軒) - 고려말에 군기감소윤을 지냈다. [[천이씨]] 소윤공파의 파조이다.
         중종 때 이현보는 연시조인 어부단가(漁父短歌)를 지었는데, 이는 고려 때부터 전해 오던 어부 단가 10수를 고쳐 지은 것이다. 모두 5장으로 내용은 어부의 생활을 읊은 것이며 본래의 어부 단가 10수는 전하지 않는다. 그 가사가<청구언><해동가요>에 전해 온다. <ref name="어부사">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고려-조선의 문학/조선 전기 문학/시조 문학#어부사(漁父詞)|어부사(漁父詞)]]〉</ref>
         * 해제: 자연을 벗하며 고기잡이를 하는 한가한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부는 "가어옹(假漁翁)"으로, 실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어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가어옹"이란 속세를 떠나 강호에서 낚시하면서 시나 읊고 술잔을 기울이던 양반을 이르는 말로, 작품에서도 실제 어부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천심녹수(千尋錄水)", "만첩청산(萬疊靑山)"과 같이 투적인 용어를 구사하여 관념적으로 어부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의 어부의 삶이란 곧 자연 속에서의 은둔 생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5수의 초장과 중장에서 볼 수 있듯이 세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있다.
         * [[이현보 초]] - 보물 제872호
         * [[농암 정 후사본 및 금서대]] -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
         파일:농암 이현보.jpg|농암 정 후사본
         [[분류:1467년 태어남]][[분류:155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시인]][[분류:천 이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
  • 일곱개의 대죄/211화 . . . . 16회 일치
          * 그러는 사이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를 비롯한 인간 전사들은 스티그마의 병력을 인정사정없이 유린한다.
          * 메라스큐라는 의식을 마치고 마계로 통하는 문을 완성하지만 그녀가 예한것 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타난다.
          * 성전 같은 것에도 관심이 사라진 그는 자유를 되찾기 위해 메라스큐라를 조종해 지금과 같은 황을 만든 것이다.
          *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 세에 작별을 고하겠다며 인사를 하는데.
          디안느와 할리퀸은 고서가 십계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나서야 경계한다. 고서는 자신이 십계인걸 모르냐고 오히려 이해한다. 할리퀸은 그가 "십계가 아니라 일곱개의 대죄 멤버"라며 항변하지만 디안느가 그런 언쟁보다는 은총의 빛으로 향해야 한다고 가로막는다.
          * 디안느는 그러는 사이에도 엄청나게 많은 마력이 사라지는걸 감지한다.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를 비롯한 인간 전사들은 스티그마의 병사들을 도륙하며 은총의 빛을 사수한다. 마침내 할리퀸은 [[그로키시니아]]의 여동생 [[게라이드]]가 부르는 소리를 감지하고 고서를 내버려둔 채 은총의 빛으로 향한다.
          할리퀸은 그건 성전시대 일이 아니라 3천년뒤 현대의 일이라고 설명해주지만 고서가 이야기를 들어버려서 황이 꼬인다. 고서는 요정왕과 거인왕을 만난건 지금이 처음이라고 말하는데, 황을 전달하기 위해서 결국 진실을 밝히게 된다. 할리퀸은 자신들이 진자 거인왕, 요정왕이 아닌, 그들의 몸을 빌린 존재이며 3000년 뒤 미래에서 왔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믿을지 말지는 그에게 맡기는데, 고서는 뜻밖에도 "재밌다"고 엄청나게 흥미를 보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면 좋겠다고 하는데.
          * 은총의 빛 내부에선 메라스큐라의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네로바스타]]는 그녀를 저지할 방법도 없고 스티그마의 지원도 오지 않자 전전긍긍한다. 그러는 사이에 마계로 가는 문은 완성되어 버리고... 그런데 정작 메라스큐라의 태가 이하다.
          * 마침내 감옥을 나서게 된 고서. 그러나 메라스큐라가 알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녀는 더이 소리지르고 화낼 수도 없다. 고서의 손이 닿는 순간 몸의 "자유"를 빼앗긴 것이다. 고서는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만나는건 처음일 거라며 다시금 자신을 소개한다.
          * 진짜 고서의 움직임은 할리퀸, 디안느와 대치하고 있는 "가짜" 고서와 연결되어 있었다. 할리퀸 입장에선 고서가 갑자기 아무 것도 없는 데다 대로 혼자 떠드는 걸로 보였다. 그건 은총의 빛 쪽에서 메라스큐라를 대로 말하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바깥세을 직접 겪은 고서는 거기서 들려오는 살육과 광란, 거기에 담긴 온갖 격한 감정이 흐드러지는 것을 느낀다. 바로 로우 일행과 스티그마의 혈투였다. 그렇게 광기어린 싸움도 그에게는 감동적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 메라스큐라는 구속된 태로 간신히 입을 놀린다. 성전이 한창일 때 무단으로 이런 짓을 저지르면 마신왕에게 결코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하는데.
          >나는 이 세에 이별을 고하겠어.
  • 자시키로우 . . . . 16회 일치
         에도 시대부터 일본의 주택에 한시적으로 설치된 시설로서, 대을 사적으로 연금, 감금하기 위한 일종의 감옥이다.
         감금된 대은 일반적으로 장애인, 미치광이 같은 정신질환자, 행실이 불량한 자, 그 외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바깥으로 내보내기 부적절하다고 생각된 자 등이다. 하지만 기준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한 것도 많으며, 후계자가 아닌 아들,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이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연애를 한 자 등도 자시키로우에 감금될 때도 있다.
         정신병원이 아닌 사택이므로 제대로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정으로 치료되는 경우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신적인 문제가 더욱 악화되는 일도 흔히 있다. 일평생 자시키로우에 갇혀 살다가 죽는 사례도 있다.
         [[에도 시대]]에 다이묘(大名)와 하타모토(旗本)에 응하는 직책에 있는 주들은 엄격한 무가제법도에 따라서 행동에 제약을 받았다. 이러한 자들 가운데 미치광이 같은 난폭한 행동을 하거나, 문란하고 분방한 행동을 하는 자가 나타나면 그 부하인 가신(家臣)들은 지극히 곤란해졌다. 왜냐하면, 이러한 법도를 어긴 주는 막부로부터 지를 빼앗기는 등의 개역 처분을 당할 수 있었는데 주가 쫓겨난 다음에는 가신들 역시 벼슬자리를 잃고 낭인 무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는 유교 윤리가 확립되어 하극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므로 주를 마음대로 쉽게 내쫓을 수도 없었다. 가신들은 간언을 하다가 안 되면 부적절한 주를 붙잡아 자시키로우에 몇달간 가둔 다음 선정을 베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도 주의 행실이 나아지지 않으면 강제로 은거를 시켜서 축출하게 되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 부터는 화족(華族, 귀족)이나 대인 등 자산을 가진 집안에서, 가족 내에 소행이 불량한 자, 정신 태에 이이 있는 자를 감금하기 위하여 이러한 시설을 만들었다.
         법률적으로는 1950년대 무렵에 폐지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정신병원 시설이 부족하거나 주변의 시선을 걱정하여 자시키로우에 가두는 관습이 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 장우혁 . . . . 16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구미시]]
         |웹사이트 =
         '''장우혁'''(張祐赫,[[1978년]] [[5월 8일]] ~ )은 [[대한민국]] [[보이 그룹]] [[H.O.T.]]의 멤버이다.[[H.O.T.]]의 멤버로써 활동하다가, 해체 이후 [[jtL]]을 거쳐 솔로 활동 중이며, WH CREATIVE 대표, 댄스스쿨 뉴웨스트를 운하고 있다. [[2005년]] 9월에 솔로 1집 《No More Drama》를 발표했으며, 대표 곡으로 '지지 않는 태양', 'Flip Reverse', '폭풍 속으로' 등이 있다.
         * [[2011년]] [[문화방송|MBC]] 《[[세을 바꾸는 퀴즈|세바퀴]]》
         == 수 ==
         * [[2005년]] : 대한민국 대전 포토제닉
         * [[2005년]] : 제20회 골든디스크 인기가수
         * [[2010년]] : [[중국]] [[중국중앙방송]] 풍운음악 CCTV 풍운대
         ! 수 내역 (총 1회)
         *[http://www.whworld.org 장우혁] - 공식 웹사이
         [[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자]][[분류:골든디스크 인기 음악가]]
  • 장윤성 . . . . 16회 일치
         '''장윤성'''(張允聖, [[1963년]] [[12월 9일]] ~ , [[서울특별시]] 출생)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 창악회와 동아콩쿨, 중앙콩쿨 작곡 부문에서 입하기도 했고, 아르스 실내 관현악단 연주회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졸업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지휘 석사과정을 이수했고, 이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로 유학해 빈 국립 음악원과 트 페테르부르크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원에서 지휘를 배웠다.
         러시아 유학 중이던 1993년에 프로코피에프 국제 지휘자 콩쿨에 2위로 입했고, 입 특전으로 1년간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발레리 게르기에프]]에게 배우기도 했다. 1995년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제 5번 '한국' 을 유럽 초연하기도 했고, 1997년에는 도쿄 국제 지휘 콩쿨에 참가해 1위 없는 2위에 입했다.
         1997년에 귀국해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조교수로 부임했고,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와 [[서울시 청소년 교향악단]](현 서울시 유스 오케스트라)의 단장 겸 음악 감독으로 활동했다. 2000년에는 [[울산 시립 교향악단]]의 임 지휘자로 부임했고, 후기 낭만파에서 현대음악에 이르는 대곡들의 연주회로 호평을 받았다.
         2003년 [[창원 시립 교향악단]]의 임 지휘자로 임명되어 2007년까지 재직했다. 2004년에는 [[쇤베르크]]의 초대형 오라토리오 '구레의 노래' 를 통과 서울에서 한국 초연해 화제가 되었다. 2008년 4월부터 [[오사카 음악 대학]]의 더 컬리지 오페라하우스 관현악단 수석 지휘자로 활동 중이며, 2009년 8월에는 [[대전 시립 교향악단]]의 예술 감독 겸 임 지휘자로 발탁되었다.
         직책=[[울산 시립 교향악단]] 임 지휘자|
         직책=[[창원 시립 교향악단]] 임 지휘자|
         후임자=[[박태 (지휘자)|박태]]
         직책=[[서울시 유스 오케스트라]] 단장 겸 임 지휘자|
         후임자=[[금노]]
         직책=[[대전 시립 교향악단]] 임 지휘자|
  • 절대가련 칠드런/473화 . . . . 16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73th sense. '''속 (5)'''
          * 현장에 도착한 칠드런은 신속히 황을 파악하고 적이 된 특무 에스퍼 다섯을 제압, 부스트로 되돌릴 생각을 한다.
          * 자신의 입자가 폭발한 셈이 된 파티 크루. 치명을 입은 것 같진 않지만 미오나 카즈라보단 타격이 있어 보인다.
          * 문제는 블랙 팬텀 측도 분진폭발에 휘말렸다는 것. [[우메가에 나오미]]는 중파지만 [[팀 토이]]와 [[바렛 실버]]는 대파 태. 나오미는 이런 태로도 "벌써 승부가 났다"며 자신하지만 그리 좋기만 한 황은 아니다.
          * 카즈라는 "비열한 능력, 처음부터 블랙 팬텀이 되기 위해 태어난게 아니냐"고 매도하면서 틈을 만들려 한다. 하지만 아키라가 쉽게 넘어가지 않고 투항을 제촉하는데, 잠깐 동안 낌새가 이하더니 카가리의 정신으로 돌아온다.
          * 리플레이스 링크가 끊긴건 더 하운드의 [[이누카미 하츠네]]가 이변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작전을 일시중단하고 일단 아키라의 몸을 들고 튄다. 링크는 섬세해서 본체를 갑자기 이동시키는 것만으로 끊길 수 있다. 아키라는 잘 돼가고 있었는데 무슨 짓이냐고 투덜대는데, 하츠네는 그럴 황이 아니라고 다그친다.
          * 본래 계획에선 [[효부 쿄스케]]나 판도라의 동료들을 유인하려 했던 건데, 온 건 정한 것보다 훨씬 큰 사냥감이었다.
          더 칠드런 등장. [[아카시 카오루]], [[노가미 아오이]], [[산노미야 시호]] 도착. 아키라는 어차피 [[미나모토 코이치]]도 없고 그들도 효부의 동료이긴 마찬가지, 아무리 레벨7이라도 못 이길 황이 아니라며 작전 속행을 주장한다. 하츠네는 "본능이 뭔가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다"며 완강히 거부한다.
          * 더 하운드와 엇갈리듯 도착한 칠드런팀. 뒤이어 [[쿠모이 유리]]와 [[마츠카제 코우이치]]도 도착한다. 마츠카제는 레이더로 근처에 블랙 팬텀의 전투 헬기가 접근하고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시호는 곧바로 근처의 정보를 읽어서 더 하운드 팀이 방금 전 도주한 것, 그리고 와일드 캣과 섀도우 오브 더 칠드런 팀이 정신 오염 태로 교전 중이라는 것까지 파악한다.
          * 아오이는 단숨에 부스트해서 전부 되찾자고 제안한다. 유리도 거기에 동의하지만 마츠카제는 다섯 명이나 되는 특무 에스퍼 대로 현실성 없는 작전이라며 만류한다. 게다가 헬기 부대까지 고려하면 부스트는 비장의 수로 남겨놓는게 좋다는 것이다. 그러자 시호가 주축이 돼서 "그걸 어떻게든 하는게 지휘관"이라며 아오이와 유리까지 가세해서 "되는 작전을 짜내라"고 스킨십 공격으로 농락한다. 마츠카제는 갈 수록 M에 개화하는지 "좀 더 부탁받고 싶어진다!"며 곤란해한다.
          카오루가 왠일로 식적인 얘기로 마츠카제의 편을 들어준다. 지금 우선해야 할 건 미오일행의 구출이라는 것. 오염된 멤버의 구출은 제 2순위다. 최종적으로 승리하면 모두를 되돌릴 수 있지만, 지금은 판도라가 최종 방어선. 미나모토가 뒤를 맡기고 효부가 판도라의 지휘관을 일임한 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
          카오루가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자 시호와 아오이도 한 발 물러선다. 둘은 각각 "카오루가 파괴의 여왕이라면 "금단의 여제"(언터쳐블 엠프레스), "신속의 여신"(라이트스피드 가디스)인가"라고 중얼거린다. 이 말을 들은 유리가 흥분해서 "그런 나는 뭐야"라고 끼어드는데, 마츠카제가 "넌 그냥 "팬텀 도터"잖아"라고 대충 정해준다. 하지만 유리는 세트가 좋다며 "현혹의 여교황"(다즐링 하이프리스너스)같은 급조한 명칭을 제안한다. 여기서 마츠카제가 대항심을 느껴 "지옥의 타천사"같은 되도 안 되는 명칭을 들이밀어서 사이좋게 둘 다 츳코미 당한다.
          * 일행이 만담을 하는 동안 황은 블랙 팬텀에게 착실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인근의 카메라가 일행의 모습을 담는다. 모니터 너머로 지켜보고 있던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은 카오루가 말한 "판도라의 대리"나 "파괴의 여왕"이란 이름을 듣고 뭔가 마음에 걸리는 모습이다.
  • 창작:RECORD . . . . 16회 일치
         [[창작:무동군|무동군]]의 무동고등학교에 있는 화동아리이다. 무동고등학교 자체는 역사가 오래되었으나, 신문물(?)이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아리의 역사는 짧다. 그렇기에 말이 화동아리지 사실은 여러 취미를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있으며, 이는 다른 동아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RECORD는 다른 동아리에 비해서 규모가 큰 편인데, 무동군이 쇠퇴함에 따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서 전교생의 숫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동아리 회장. 유일하게 다른 회원들과 동갑임에도 사실은 1년 꿇었다(…). 하지만 덕분에(?) 경험이 풍부해서인지 동아리 내에서는 감독을 맡고 있다. 집에 온갖 화를 보관해 두고서 시간이 날 때마다 다른 회원들에게 같이 보자고 하는데, 그게 죄다 옛날 화들이라 회원들은 대부분 기피한다. 그나마 구현익과는 취향이 맞기에 동성애 드립이 나올 정도로 잘 어울리는 편.
         시나리오 담당. 자기가 쓴 시나리오를 돌려 읽는 것까진 괜찮지만 수정하는 것만큼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장난삼아 인터넷에 올린 걸 실제 화사에서 보고 연락을 했으나 시나리오를 수정해야 된다고 하자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격이 성격인지라 확인할 방도가 없다는 게 문제.
         === 김열 ===
         촬 담당. 동아리의 공식 촬 외에도 맨날 캠코더만 들고 이것저것 찍으러 다닌다. 그러다 보니 여러가지 '색다른' 것도 찍은 모양이지만, 그걸 몰래 인터넷에 올려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동아리 부원들과 공유하지는 않는다.
         분장 및 의 담당. 시골 동네다 보니 의은 거기서 거기고, 분장 쪽에 치중하고 있다.
         === 박현 ===
          * 오우성과 구현익은 각각 홍콩 화 감독 오우삼, 미국 화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이름을 변형한 것이다. 나머지는 그냥(…) 임의로 만든 것.
          클로즈드 서클, 젊은 주인공들 등의 컨셉에 향을 주었다.
          소설의 무대인 무동군의 밑바탕이 된 만큼 선택지 소설에도 향을 주었다.
          공포화. 버려진 병원을 무대삼아 활동한다는 컨셉을 빌렸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2편은 관계 없다. 1편 얘기다.~~
  • 창작:세대륙 이야기 . . . . 16회 일치
         최초 창작자가 동생과 놀아주다보니(....) 짜게 된 기묘한 세계관.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설정변경이 당히 많았던 편. 기본적으론 설정덕후인(...) 필자가 만든 세계관이기에 세계관만 적당히 짜두고 그걸 통해 스토리를 진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나름대로 스토리를 몇개짜두고 있긴 하다만, 언제 연재로 이어질지는 미정.
          *워크래프트-알게모르게 당히 향을 받은 편이다. 몇몇 종족들은 아예 여기서 따오다 싶이 한거도 있을 정도.
          *워해머 판타지-거대한 인간들의 '제국'인 아발론 제국을 구하는데 당히 많은 향을 주었다.
         보통 대륙의 생김새가 곰을 닮아 '곰'이라고 호칭한다.[* 그러다보니 지명의 당수가 '곰'과 관련되어 있다. '곰의 등뼈'라던가 '곰의 머리뼈'라던가....] 기본적으로 티겔 왕국, 아라스 제국, 레이먼 제국의 세개의 열강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각열강마다 다른쪽 열강외 기타문제때문에 본인들의 역이의 확장은 무리인 황.
         [[창작:인연합|인연합]]
         이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사는 곳''' [* 다만, 단순 인간형 종족이라면 다른 대륙에서도 살고 있다.] 안덴산맥을 통해 남부와 북부가 구별되며, 남부 해안가에는 수많은 섬들이 있다. 큰섬들은 대강 하와이 정도의 크기이지만, 예외는 있다. 보통 섬에서는 거들이 근처 주와 협업해 그들만의 공화국들을 세우는 편이 흔하다.
         살고있는 종족들마저 '''마계'''라 표현할정도로 생태계가 그리 좋지는 못한곳. 그나마 농사짓기좋은곳이 남부에 몰려있긴 한데, 여기도 내륙쪽은 '판'이라 불리는 유목민족들이 여행자들을 약탈하러 돌아다니는 곳이라 여러모로 흉흉하다. 농사지으면 작물에선 왠지 모르지만 매운맛이 미친듯이 나며, 길가다가 목이 말라 근처 오아시스에 물을 마셨더만 송곳니가 자라나고 흉포해지는(...) 요한 대륙이다. 그것때문인지 이곳에 살고 있는 종족들은 거의다 전투민족or매드 사이언티스트(...)
  • 창작:좀비탈출/0-1-2 . . . . 16회 일치
         이건 화가 아니다. 보통 사람이 좀비들 사이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리 없다.
         나는 굶주렸고 갈증에 허덕이고 있다. 그 사이 저 놈들은 배불리 처먹고 다니니 살이 통통하게 올랐을지도 모르겠다.
         그 소음은 노크처럼 이어졌다. 현관에서 나는 소리다. 나는 비몽사몽한 태에서도 집중했다. '''쿵 쿵……'''
         방어선이 깨지는 최악의 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그런 면에서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우리집 담벼락은 다름 집보다는 한 뼘 이이 더 높고 그 위엔 뾰족하게 휘어진 창살도 박아놨다. 이 녀석은 실제로 한 번 도둑을 막기도 했는데, 그 무모한 양반은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했는지 뛰어넘지 못하고 좋지 않은 곳이 걸려서 병원으로 후송됐다. 뭐, 감옥에 가는건 차라리 별 일이 아니었겠지.
         담을 넘어도 문제다. 현관문은 엄청 두껍고 고급 아파트에나 쓰는 소재로 된 걸 달아놨다. 아버지는 이걸 달면서 "대전차 미사일이 날아와도 끄떡없어"라고 했는데, 나는 다 쓰러지고 허물어진 잔해 위에 문만 굳건히 서있는 장면을 했었다.
         대신 낮술 취한 감들처럼 돌아다니는 그놈들. 동네 바보들처럼 콘크리트가 나올 때까지 땅이나 파고 앉은 그놈들.
         괜히 전신주를 타고 오르는 그놈들. 담을 넘다가 철창에 찔려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 그놈들. 아무튼 할 수 있는 온갖 그놈들. 드라마 세트를 점령한 그놈들.
         이런 관찰의 결과 나름 생태란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태양빛에 향을 받는다는 것.'''
         그런 호기심은 다른 일기태에 대한 관찰욕구도 자극했다. 가령 눈이나 비같은 것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날씨가 춥거나 더워지는게 향을 줄지. 하지만 그런걸 관찰할 수 있을 정도면 계절이 바뀌도록 구조되지 못한다는 얘기니까 우울한 기분이 들어버린다.
         나는 다이제스트를 반쪽씩 나눠 가며 먹고 있다. 남기로 한 이은 졸라 맬 수 있는데까지 졸라 매야지.
  • 최윤 (소설가) . . . . 16회 일치
         본명은 최현무(崔賢茂)이며, 1953년 7월 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여고 졸업 후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학부와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1978년 프랑스 [[엑프로방스]]의 프로방스대학교에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저자 = 권
         1978년, 《문학사》에 평론 〈소설의 의미구조분석〉을 발표했으며,<ref>{{웹 인용
         == 수 ==
         * 1990년 대한민국 문학 번역 부문
         * 1992년 〈회색 눈사람〉 - 제23회 [[동인문학]]
         * 1994년 〈하나코는 없다〉 - 제18회 [[이문학]], 제2회 [[대산문학]]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강대학교 동문]][[분류:이문학자]][[분류:동인문학자]][[분류:대산문학자]][[분류:한국어-프랑스어 번역가]][[분류:프랑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최은석 (배우) . . . . 16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1992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1999년]] [[뮤지컬 배우]] 데뷔하였으며 [[2001년]] [[대한민국 화|화]] 《[[인디안 썸머]]》의 단역 출연을 통하여 [[화 배우|화배우]] 데뷔히였다.
         * [[1994년]] 《[[록수 (소설)|록수]]》 ... 갑산이 역(단역)
         === 화 ===
         * 《[[변호인 (화)|변호인]]》 (2013년) - 형사 2 역
         * 《[[공범 (화)|공범]]》 (2013년) - 김 형사 역
         * 《[[가족시네마 (2012년 화)|가족시네마]]》 (2012년) - 선희 아빠 역
         * 《[[부러진 화살 (2012년 화)|부러진 화살]]》 (2012년) - 구급대원 역
         * 《[[블라인드 (2011년 화)|블라인드]]》 (2011년) - 형사 2 역
         * 《[[광의 재인]]》 (2011년, KBS2)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코만단테 카펠리니 . . . . 16회 일치
         1940년 7월 1일, 이탈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든 이후 [[대서양]]에서 통 파괴 작전을 수행한다.
         1942년 9월 12일, [[독일]] 잠수함 U-156이 [[국]] 병력수송선 라코니아(Laconia)를 격침시킨다. 징발된 민간 여객선이었던 이 선박에는 국 군인, [[자유 폴란드군]] 군인, 이탈리아군 포로들이 타고있었다. U-156은 구조 지원을 요청한다. 코만단테 카펠리니는 구조를 위해 이동한다. 카펠리니는 15일에 현장에 도착, U-156, U-506, U-507과 함께 생존자들을 주렁주렁 태우고, 구명보트를 끌며 구조작업을 돕는다. 그와중에 [[미육군항공대]] 소속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에게 공격당했고, 이에 잠수함들은 견인하던 구명보트 줄을 끊고 잠항해버린다.
         1942년 9월 18일, 프랑스령 [[기니]] 소속 선박 뒤몽 뒤르빌(Dumont d'Urville)을 만나 이탈리아인 6명과 국인 포로 2명을 제외한 생존자를 넘겨준다.
         1943년 5월 11일 [[보르도]], 아퀼라 III는 일본에 보급할 물자를 싣고 [[싱가포르]]로 출항한다. 7월 13일, 두달간의 항해 끝에 아퀼라는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륙한 황이었다. 결국 9월 8일, 이탈리아는 연합군에 항복했다. 그때도 아퀼라 III는 싱가포르에 정박해 있었다.
         이탈리아 항복 다음날, [[일본군]]은 아퀼라 III의 승무원들을 포로수용소에 던져넣고 아퀼라 III를 독일에 넘겼다. 독일은 아퀼라 III를 UIT-24라는 이름으로 편입시켰다. 협조적인 이탈리아 승무원을 태운 UIT-24는 보르도로 돌아오기 위한 항해를 떠났으나 중간에 연료 보급을 해줄 [[유조선]]이 국군 구축함에 잡혀 자침당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이후 동남아와 일본 본토를 왕복하며 보급 임무를 수행한다.
         || 1940년 10월 15일 || 카발로(Kabalo) || 무장선 || [[벨기에]] || 5,051t || 1명 || ||
         || 1941년 1월 5일 || 셰익스피어(Shakespeare) || 선 || [[국]] || 5,029t || 20명 || [https://books.google.co.kr/books?id=7bSQAAAAQBAJ&pg=RA1-PT15&lpg=RA1-PT15&dq=british+shakespeare+cappellini&source=bl&ots=JB4q-WdlGw&sig=2jZ2s5w2895O0glfb7rEiebsWZU&hl=ko&sa=X&ved=0ahUKEwiq_fC68KvMAhWBSpQKHfGPDVwQ6AEIJTAB#v=onepage&q=british%20shakespeare%20cappellini&f=false|배수량 출처] ||
         || 1941년 1월 14일 || 에우마이오스(Eumaeus) || 무장선 || [[국]] || 7,472t || 23명 || [[http://www.wrecksite.eu/wreck.aspx?101179|배수량 출처]] ||
         || 1942년 5월 18일 || 티스나렌(Tisnaren) || 선 || [[스웨덴]] || 9,450t || 0명 || [http://tisnaren.blogspot.kr/2007/09/cargo-ship.html|배수량 출처] ||
         || 1942년 5월 31일 || 딘스데일(Dinsdlae) || 유조선 || [[국]] || 8,214t || 13명 || [[http://www.wrecksite.eu/wreck.aspx?137277|배수량 및 사망자 출처]] ||
         이외에 일부는 [[국]] 선 미구엘 데 라링가(Miguel de Larringa)를 격침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자료가 맞지 않는다.
  • 판타스틱 포 . . . . 16회 일치
         때에 따라 구성원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4명의 후천적 초인- 리드 리처즈([[미스터 판타스틱]]), 수전 스톰([[인비저블 우먼]], 후에 리드와 결혼하여 수전 리처즈가 된다.), 조니 스톰([[휴먼 토치]] II), 벤 그림([[씽(마블 코믹스)|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나의 가족과도 같은 4명의 인물들의 인간 군과 가족 드라마를 주제로 한다.
         당시 리는 코믹스 업계가 너무 갑갑하다고 느낀 나머지 전직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결국 이 작품 하나만 마무리짓고 마블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태였다. 리는 [[잭 커비]]와 함께 머리를 짜낸 끝에,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4명의 평범한 인간들이 우연히 [[초능력]]을 얻은 뒤 한 팀을 이루어 적과 싸운다'는 취지의 신작을 창안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코믹스에서 활약하던 히어로들과는 달리 매우 세속적이고 약점투성이라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당시 어린 독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현실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뒤 《판타스틱 포》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시리즈는 예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고 마블 코믹스의 전성기를 열어젖히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스탠 리가 그 뒤로도 이 업계에 남아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들을 배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단순 마블 코믹스뿐 아니라 다른 코믹스에서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판타스틱 포》가 나오기 전부터 여러 작품의 스토리를 다루었지만 리는 이게 마음에 안들어서 만화책을 더 이 쓰지 않으려고 했고 《판타스틱 포》의 제작에 참가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리의 아내가 "그럼 당신이 쓰고 싶은 얘기를 써보세요"라고 얘기했고 리는 아내의 말에 따라 《판타스틱 포》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썼는데 그게 대성공했다. 이때 처음 사용한 방식이 바로 리가 대략적인 개요와 플롯을 작화 담당에게 주면 작화 담당이 여기에 따라 원고를 완성하고 리가 대사를 쓰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작화 담당들의 끼가 폭발할 수 있었으며 리 본인도 여러 아이디어를 내는 동시에 더 편하게 작업할수 있었다.
         그 전에도 [[네이머]]나 [[캡틴 아메리카]] 등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마블 코믹스에 있었지만, 《판타스틱 포》는 마블 코믹스의 고유의 특징을 처음으로 보인 작품이었다. 바로 '''완벽하지 않은 웅들'''이라는 요소였다. 늘 서로 다투기도 하고 협력도 잘 안되지만 결국 서로를 [[가족]]처럼 사랑한다는 구성은 그 당시 혁명적인 요소였다. 판타스틱 포의 구성원들은 별거 아닌 이유로 싸우고 원한을 품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결국 화해하는 인간 드라마를 보여준다.
          * 연재 시작할 때만 해도 마블의 슈퍼히어로물이 성공할지 회의적이었기에 [[스탠 리]]는 [[잭 커비]]에게 부탁해서 판타스틱 포를 슈퍼히어로물처럼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실제로 판타스틱 포 1, 2화의 표지를 보면 주인공들은 다 평복을 입고 있으며 표지의 중심은 괴물들이기에 슈퍼 히어로보단 호러/괴수물처럼 보이게 디자인되어 있다. 3화쯤 돼서 판타스틱 포가 인기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제서야 코스튬을 입히게 된다.
         2011년 3월 연재분에서 [[휴먼 토치]]의 사망으로 인해 그의 자리를 구 결번으로 하고 그의 유언에 따라 [[스파이더맨]]을 정규 멤버로 입했다. 명칭도 '퓨처 파운데이션(Future Foundation, FF)'으로 변경하였고 유니폼 색도 흑백으로 변경하였다.하지만 휴먼 토치의 생존&복귀로 다시 이전의 판타스틱 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퓨처 파운데이션은 판타스틱 포와 별개로 분리되었다. 새로운 구성원은 2대 앤트맨인 스콧 랭, 메두사, 미스 씽, 쉬헐크.
         4번에 걸쳐 애니화되었고(1967년판, 1978년판, 1994년판, 2006년판) 1979년에는 더 싱을 주연으로 한 스핀오프 애니판도 나온바 있었다. 그 중 맨 처음에 나온 버전(1967년판)은 후에 [[일본]]에서 1960년대에 '''우주닌자 고무즈'''라는 요한 제목으로 번안되어 방되었다.
         이외에 마블 코믹스 애니메이션에 게스트 출연하기도 했다. 예시가 국내에서도 방한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 실사화 ===
          * [[판타스틱 포(1994년 실사화)]]
          *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화)]]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화)]]
  • 페어리 테일/543화 . . . . 16회 일치
          * 나츠는 멸룡마도사들도 인간이며 진짜 드래곤은 냥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드래곤들에게 가족이 몰살 당한 아크놀로기아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 한편 지에선 그레이와 리온의 합작으로 배가 준비되고 페어리 스피어 발동을 위한 포진도 완성된다.
          * 루시는 모든 유대의 힘이 나츠에게 이어지기를 바라고, 그 마음을 반한듯 시간의 틈새 속 나츠에게까지 닿는다.
          * [[엘자 스칼렛]]과 [[미라젠 스트라우스]]은 아크놀로기아를 저지하고 배가 준비되는 대로 유인할 준비를 한다.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마력을 가진 두 사람이라면 분명 마룡이 따라붙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비전투 인원들은 한데 모여서 손을 잡고 마력을 높인다. 페어리 스피어 발동법을 찾아낸 [[루시 하트필리아]]가 도착하는 대로 일행의 전마력을 개방할 것이다.
          루시가 도착해 보니 동료들은 벌써 방진을 이루고 손을 잡은 채 기다리고 있다. 루시는 그들에게 날아가며 나츠와 그와 만났던 그 날을 회한다.
          * 그러나 시간의 틈새에 있는 나츠는 절채절명의 위기다. 멸룡마도사들이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를 향해 무수한 공격을 시도했으나 단 한 번의 유효타도 내지 못했다. 이미 [[가질 레드폭스]], [[렉서스 드레아]], [[웬디 마벨]], [[스팅 유클리프]], [[로그 체니]],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는 의식을 잃은 태. 나츠가 간신히 쓰러지지 않았으나 심하게 피를 흘린다. 아크놀로기아는 몹시 만족해한다. 그가 바라던 광경이다.
          >이 세에 드래곤은 한 마리도 남겨둬선 안 된다.
          아크놀로기아가 읊조리는 소리를 듣고 나츠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걸 재미있는 농담 취급한다. 아크놀로기아가 남는 이 용이 한 마리 남는 셈이다. 어쨌든 그도 멸룡마도사이자 드래곤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여긴 건지,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마룡이 입을 다문다. 나츠는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팩트를 던진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것. 모든 멸룡마도사들, 아크놀로기아 조차도 그저 드래곤의 힘을 받은 인간일 뿐이지 "자만"하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진짜 드래곤"들은 강하고 품위있으며 "냥하다"고 말한다. 시종 여유로운 웃음을 띄었던 아크놀로기아가 이를 간다. "드래곤은 냥하다"는 말이 그의 성질을 긁었다. 그가 아는 드래곤은 모든 걸 빼앗는 존재다. 그의 가족을 먹어치웠고 마을을 불 살랐고, 어린 소녀까지 잔인하게 죽였다. 그게 아크놀로기아가 멸룡에 집착하는 이유였다.
          >그 드래곤의 어디에 냥함이 있다는 거냐?
          나츠를 공격했던 아크놀로기아의 마력이 나츠에게 흡수 당한다. 마룡도 이해할 수 없는 황. 그 해답은 웬디에게 있었다. 의식을 잃은 줄 알았던 그녀는 나츠에게 자신의 인챈트 마법을 부여했다. 그 힘이 마룡의 힘마저 나츠에게 주입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웬디는 곧 모든 멸룡마도사들의 힘을 끌어온다. 정신을 차린 멸룡마도사들은 최후의 힘을 쥐어짜 나츠에게 전한다. 곧 마룡의 힘에 더해 그 자리에 있던 일곱 멸룡마도사의 힘 전부가 나츠에게 축적된다. 이제 나츠에게서 전에 없던 새로운 힘이 탄생했다.
          * 그레이와 리온이 힘을 합친 범선 조형은 대성공했다. 알바레스 제국이 끌고온 함선보다 훨씬 크고 튼튼한 얼음의 배가 바다 위로 솟아올랐다. 이런 황에서도 리온은 이것이 자기의 최대 걸작이라 자신했다. 그레이가 엘자와 미라젠에게 준비가 끝났다 신호한다.
          * 힘을 합쳐 마룡을 묶어놨던 엘자와 미라젠은 페어리 스피어의 준비 태를 확인한다. 루시를 중심으로 짜여진 거대한 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손과 손을 맞잡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루시가 준비 완료 신호를 보내고 드디어 작전 시작이다.
          엘자는 마룡의 머리 위에서 자신이 소유한 모든 무장을 개방한다. 한도 없이 쏟아지는 검에 떠밀려 아크놀로기아가 균형을 잃는다. 마룡이 추락하는 위치에 쥬비아가 정확하게 배를 가져다 댄다. 그대로 배 위로 떨어지는 마룡. 작전의 1단계 성공. 예대로 아무리 마룡이라도 배에 올라갔을 땐 멀미를 일으켰다. 지금이 기회다.
  • 한주완 . . . . 16회 일치
         | 웹사이트 =
         | 수 = 2013년 KBS 연기대 남자 신인연기
         * [[2013년]] [[KBS2]] 주말연속극 《[[왕가네 식구들]]》 ... 최남 역
         * [[2016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평양까지 이만원》 ... 박정 역
         === 화 ===
         * [[2012년]] 《지난 여름, 갑자기》 ... 이우 역
         * [[2013년]] 《비구》
         * [[2013년]] 《[[소설, 화와 만나다]]》 ... 우현 역
         * [[2019년]] 《[[돈 (2019년 화)|돈]]》 ... 백종필 역
         == 수 ==
         * 2013년 [[KBS 연기대]] 남자 신인
         * 2014년 미스아시아퍼시픽월드 슈퍼탤런트 서치 쇼 비즈 아시아 뉴스타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2009년 데뷔]][[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청주 한씨]]
  • 한지상 . . . . 16회 일치
         | 이름 = 한지
         | 웹사이트 = [https://www.cyworld.com/js0194]한지
         | 종교 = [[천주교]]([[세명]] : 베네딕토)
         '''한지'''([[1982년]] [[7월 25일]] ~ )은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출신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이다.
         === 화 ===
         * 《[http://www.playdb.co.kr/playdb/playdbDetail.asp?sReqPlayno=37358 환의 커플]》-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관 (2012년7월19일부터 2012년8월26일) ... 장철수 역
         * 《[http://www.playdb.co.kr/playdb/playdbDetail.asp?sReqPlayno=60368 인순이, 한지 뮤지컬 콘서트 - 대구]》- 대구 오페라하우스 (2014년4월24일)
         * 《[http://www.playdb.co.kr/playdb/playdbDetail.asp?sReqPlayno=55550 뮤지컬토크콘서트 Who Am I 8 I ]》-올림푸스홀 (2013년11월21일) ... 한지
         * 《[http://www.playdb.co.kr/playdb/playdbDetail.asp?sReqPlayno=60368 인순이, 한지 뮤지컬 콘서트 - 대구 ]》-대구오페라하우스 (2005년10월1일부터 2014년4월24일) ... 출연 : 인순이, 한지, 더 뮤즈
         * 《[http://www.playdb.co.kr/playdb/PlaydbDetail.asp?sReqPlayNo=66682 삼성카드 스테이지 2 ]》-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2014년09월26일) ... 한지
         == 수 및 후보 ==
         ! style="width:250px;"| 시
         | align="center" | 예그린어워드 스태프가 뽑은 배우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호루라기 연극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200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창수 . . . . 16회 일치
         '''한창수'''(韓昌洙, [[1862년]] [[1월 19일]] ~ [[1933년]] [[10월 7일]])는 [[조선]] 말기의 관료 겸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으로,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이며 자는 경문(景文), 호는 애(穎愛)이다.
         한창수는 거침 없이 친일적 언행에 더하여, 이왕직 장관을 지내면서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를 어린 나이에 일본에 유학 보내고 일본인과 강제로 결혼하게 하여 결국 정신병을 앓게 한 일로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한창수가 이왕직 장시국장 재직 중 고종이 사망했는데, [[고종 독살설]]에 [[이완용]], [[이기용]], [[윤덕]], [[한학]], 그리고 어의 [[안호]] 등과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제목=日帝韓人貴族의 近況|저널 = 진
         ***** 장남 : [[한억 (1898년)|한억]](韓相億)
         ***** 양자 : [[한기 (조선귀족)|한기]](韓相琦)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신의 [[남작]] 작위를 물려받은 아들 [[한기 (조선귀족)|한기]], 서자 [[한억 (1898년)|한억]]과 함께 선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제목=왕족 이해승 등 친일파 재산 410억 국가귀속 - 이해승ㆍ이지용ㆍ유정수ㆍ고희경ㆍ민휘ㆍ민병석ㆍ송병준ㆍ한창수 등
  • 허건엽 . . . . 16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구미시]] ||
         직구 평균 구속이 140km대 후반이고, 볼넷 비율이 낮아 대 타자의 출루를 막는데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시절 65회 [[청룡기]]에서 [[순천 효천고등학교 야구부|효천고등학교]]를 대로 완봉승을 거둔 적이 있다. 또, 63회 황금사자기에서 임찬규를 대로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에서 SK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그리고 2014 시즌 종료 이후 [[무 피닉스 야구단]]에 지원했으며 11월 20일 최종 합격했다.
         5월 9일, [[임치]]과 함께 1군에 콜업되었다.
         11월 20일 [[질롱 코리아]]에 [[우동균]], [[최준석]]과 같이 추가 멤버로 합류했다. 현재 질롱 선발진 중 [[김진우(1983)|김진우]]는 컨디션 폭망, [[이재곤]]은 답이 없는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고 그나마 [[장진용]]과 선발겸업인 [[길나온]]만 나름 선방하고 있는 황이기도 하고 포수 중에는 같은 [[SK 와이번스|SK]] 소속이었던 [[임태준]]이 있기에 아마 선발로 기용될 듯.
         ...으로 보였으나 불펜으로 등장해 팀의 창단 첫 세이브를 따냈다. 이후 질롱의 사실 마무리투수로 뛰고 있으나 팀의 부진으로 세이브 기회가 거의 오지 않는 황. 주축 불펜 투수로 등판 중이나 7라운드 종료 시점 8경기 2세이브 8.71로 부진하다. 다만 원래부터 구위가 빼어난 투수였던지라 10.1이닝동안 삼진 10개를 잡아내는 등 탈삼진 능력은 여전하다.
         1월 4일 [[애들레이드 바이트]]전 10회말 4-1로 앞선 승부치기 황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안타 2개, 볼넷 1개를 내주며 누 주자를 모두 들여보내고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는데 세 타자를 KKK로 잡아내며 터프 세이브로 경기를 매조지었다. 시즌 3세이브째. 1월 13일 [[퍼스 히트]]전에는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팀의 극적인 역전승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었다.
         시즌 최종 13경기에 등판해 1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9.17을 기록했다. 17.2이닝동안 탈삼진 19개를 잡아내는 등 탈삼진 능력은 입증했으나 무너지는 경기에서는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등 기복이 심했다. [* 4실점 경기 4번, 2실점 경기 2번] 다만 세이브 성공률이 100%로 세이브 찬스나 타이트한 황에서는 귀신같이 호투하며 경기를 날린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질롱에서 가장 접전인 황에 많이 올라온 투수였다. 참고로 2018시즌 본인의 퓨처스리그 기록과 놀랍도록 비슷한 성적을 냈다. [* 12경기 평균자책점 9.28 10.2이닝 8탈삼진. 퓨처스에서는 6실점 경기가 두 번 있었다.]
         || 2015 ||<-13><|2> 군복무([[무 피닉스 야구단]]) ||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93년 출생]][[분류:투수]][[분류:우완 투수]][[분류:우투우타]][[분류:무 피닉스 야구단/전역]]
  • 홍영주 . . . . 16회 일치
         |이름 = 홍주 바오로
         |징 =
         '''홍주'''(洪永周, [[1801년]] ~ [[1840년]] [[1월 31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명이다. [[세례명]]은 '''바오로'''(Paulus)이다.
         그의 형 [[홍병주 베드로]] 또한 [[순교자]]이다. 그들은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홍낙민 루카]]의 손자들이며, [[1839년]] 말에 순교한 [[홍재 프로타시오]]의 조카들이다. 그들은 모두 명문 [[양반]]의 후손이며, 그 가문 사람들 중 여럿이 [[한국 천주교]]에 기여한 바가 크다. 홍병주 홍주 형제는 신심 깊은 부모로부터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았다.
         홍주는 [[한양]]의 한 명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홍낙민]]이 [[순교]]하자, 그는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의 [[여사울]]로 이사하였고, 대대로 이어온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자로서 살았다.
         [[홍병주]]와 그의 동생 홍주는 모두 [[교리]] [[교사]]로 임명되었고, 예비 신자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열의와 충실함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예비신자를 가르치며 병자들을 돌보는 것과 자선사업에 매진하였다. 그러므로, [[모방 베드로|모방]] [[사제|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그들의 재능과 열정에 감복하였고, 그들에게 여러 중요한 책임을 맡겼다.
         [[1839년]] [[기해박해]] 동안에,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었다. 따라서, 배교자 [[김여]]이 [[체포]]되어야 할 명단에 그들의 이름을 기록해 놓았다.
         [[홍병주]] 홍주 형제는 9월에 [[체포]]되었다. [[포도청]]에서 [[형리들]]은 그 형제에게 동료 교우들의 위치를 발설할 것과 배교할 것을 강요했지만, 형제는 결코 그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형조]]로 이송되었는데, 형조 [[판서]]가 그들의 친척이었다. 그는 그들을 직접 [[고문]]하지 않았고, 그의 부하들을 시켜 형제가 배교하도록 극심히 고문케 하였다. [[절도범]]과 [[살인범]] 등의 다른 수감자들도 형리들을 따라 홍병주와 홍주 형제를 구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절대 꺾이지 않았다.
         [[홍병주]]와 홍주는 [[당고개역|당고개]]에 있는 사형장으로 압송되어 [[참수]]되었다. 홍병주는 [[1840년]] [[1월 31일]]에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었고, 홍주는 다음날인 [[2월 1일]]에 두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었다. 그렇게 홍병주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43세였고, 홍주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40세였다.
         [[홍병주 베드로]]와 홍주 바오로 형제는 [[1925년]] [[7월 5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백과사전 인용
         | 저자 = 이
         *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4030&keyword=%C8%AB%BF%B5%C1%D6&gubun=01 가톨릭 사전: 홍주]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기술 . . . . 15회 일치
          연구진은 최대 여섯가지의 전공을 가지고 있다. 연구 대 기술 또한 다섯-여섯개의 전공(겹칠 수 있음)을 요구하는데, 해당 전공이 연구진이 가지고 있는 전공이라면 연구 속도가 빨라진다.
          산업 테크에서 계산기를 연구하거나 비밀무기 테크에서 컴퓨터를 연구해 연구 속도를 몇% 단위로 늘릴 수 있다. 디시전이나 이벤트의 향도 받는다.
         연구는 강대국들이 유리하다. 강대국(특히 독일, 국, 미국)의 연구진이 우수한데다가, 공업력도 좋아 많은 기술을 동시에 연구할 수 있는 반면 약소국 연구진은 레벨도 별로고 공업력도 딸리기 때문. 솔직히 이 게임은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기에 약소국이 여러모로 불리하다. 하지만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모든 연구를 하는건 무리이다. 그러므로 필요하다 싶은 연구를 중심으로 하고, 게임 끝날 때 까지 안 쓸 것 같은 연구의 경우에는 적당히 하고 내다 버리는게 권장된다.
          운송력 보정, 전력 회복 보정, 전략적 재배치 효율, 공군기지 건설 보너스 등등에 관련된 연구. 당히 복잡한 테크 구성을 띄고 있다. 전략적 재배치 명령을 내리기 위해 이곳에서 Mobilization 연구를 해야한다.
          어뢰포함부터 미사일 구축함까지의 구축함에 대한 연구. 선대에 배속되는 호위함의 효율도 올려준다.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수기모함부터 개선된 호위항공모함까지의 호위항모, 초기 경항공모함부터 준현대형 경항공모함까지의 경항모에 대한 연구.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수기 부속에 대한 연구. Early Fighters 트리의 Unarmed Reconnaissance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업 효율, 레이더, 비밀무기 해금 등 다방면으로 향을 주는 기술들. 보통은 이것 먼저 연구한다.
          인력의 증가율과 부병의 회복 확률에 보너스를 더해주는 연구들. 처음부터 연구할 수 있다.
          1936년 기준으로 국이 선택한 테크. Assault Concentration Doctrine 연구를 마지막으로 기본적인 현대 교리 밖에 연구할 수 없게된다.
         이외에 병력 소모율을 감소시키고 부병 회복 확률을 올려주는 Hospital System 테크와, 기갑 사단과 경전차 사단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Armored Division Formation 연구가 있다. Armored Division Formation의 경우에는 각 제2차 세계대전 교리의 특정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Mobility Focus Doctrine과 Manpower Focus의 경우 1937년 연구지만 나머지 교리의 경우에는 1940년이다.
          잠수함의 능력과 통파괴활동의 효율을 중점으로 한 연구들. Engagement Theories의 Geo-Strategic Theories - Mahanian Theory 연구와 Naval Logistics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륙작전과 해양수송의 패널티를 줄여주고 패널티 없이 륙 가능한 사단수를 늘려주는 연구들. Engagement Theories의 Naval Logistics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투기로 적 토를 휩쓸기 위한 Off Air Superiority와 요격기&로켓 요격기&대공포로 국토를 수호하기 위한 Defensive Air Superiority가 두 테크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두 테크가 공유하는 연구는 Flexible Response Doctrine 하나 뿐이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연구진 . . . . 15회 일치
          * Management(경): 아이콘은 별.
          * Munitions(군수품): 아이콘은 총알 네개와 자 세개.
         대부분의 연구진은 원히 존재하지만. 일부 연구진은 특수한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일정 년도가 되면 그대로 사라진다. 이는 실제 역사에서 해당 연구진이 사망/해체/파산된 것을 구현한 것이다. 반대로 새로 생겨나는 연구진도 있다. 그런데 이거 좀 어거지로 되어있어서 1950년대 일본 제국은 겨우겨우 살아서 제국주의짓 해도 일본군 관련 연구진들은 싹 쓸려나가고 해자위대와 항공자위대가 그 자리를 메꾼다.
          대숙청으로 처형당한 것을 반해 대숙청 이벤트가 발동하는 즉시 사라진다. 만약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면 그대로 취소된다.
          * Hisaichi Terauchi(데라우치 히사이치)
         === 국 ===
          * British Westinghouse(국 웨스팅하우스)
          잉글랜드 출신 컴퓨터 공학자이자 수학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튜링 기계와 튜링 테스트를 고안했다. 하지만 전후 당시 국에서 불법이었던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여성호르몬을 투여받았고 그 결과 1954년 자살하였다.
          국의 유일한 계산기 관련 연구진. 그런데 레벨이 9라 계산기/암호 관련해서는 만능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준다.
          이미지에 있는 Mk.IV 전차가 인적이다.
          미국으로 망명한 행적을 반해서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사라진다.
          퀴리 부부의 딸인 이렌 퀴리와 마리 퀴리의 조수인 프레데리크 졸리오가 결혼해서 만든 부부. 1935년 노벨화학 공동수자들이다. 이 가문 뭐냐.
  • 광주광역시/인물 . . . . 15회 일치
         * [[김진(1977)|김진]] - 북구(광주)
         * [[김균(JBJ)|김균]] - 서구(광주)
         * [[강석우(화배우)|강석우]] - 광산구
         * [[권우]] - 광산구
         * [[기태]] - 광산구
         * [[김호]] - 남구(광주)
         * [[박민(배우)|박민]] - 광산구
         * [[오종(프로게이머)|오종]] - 북구(광주)
         * [[조기(배우)|조기]] - 동구(광주)
         * [[주훈]] - 북구(광주)
  • 권민중 . . . . 1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 '''수''' || [[1996년]] [[미스코리아]] 충북 진[br][[1996년]] [[미스코리아]] 한국일보 ||
         || '''데뷔''' || [[1997년]] 화 '투캅스 3' ||
         신장은 170cm이고 체중은 51kg인 그녀는 [[화]]감과 [[골프]]와 [[수(스포츠)|수]]에 취미가 있고 한국 무용과 재즈 댄스, [[발레]]와 [[청소|실내 청소]]와 [[노래]]에 특기가 있으며 [[1996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한국일보'로 입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2003년도에 [[성현아]]에 이어 [[누드]] 화보 촬을 한 바 있었다. 덕분에 인지도를 높였고 누드 화보로 수입도 짭짤하게 올렸으나 오래가진 못했다.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3D414D><rowbgcolor=#708090> '''{{{#white 방 연도}}}''' || '''{{{#white 방송사}}}''' || '''{{{#white 제목}}}''' || '''{{{#white 배역}}}''' || '''{{{#white 비고}}}''' ||
         ||<|2> 2002년 ||<|4> MBC || [[내 이름은 공주]] || 최목 || ||
         === 화 ===
         || [[자카르타(화)|자카르타]] || || 우정출연 ||
          * [[2000년]] [[경인방송]] 연예세 - MC
         [[2011년]] [[12월 7일]]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가 교통사고를 낸 혐의(도로교통법 음주운전 등)로 불구속 입건됐다.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15회 일치
         {{메달 경기|[[월드 사이버 게임즈|월드 사이버 게임즈 (WCG)]]}}
         2006년 반기 드래프트에서 SouL(현 STX SouL)의 3차 지명으로 입단해 그 해 프로리그에서 신인을 수했다.
         처음으로 진출한 개인리그인 곰TV MSL 시즌4에서 결승까지 파죽지세로 올라가며 선보인 아찔한 셔틀리버 플레이로 스타덤에 올랐다. 김구현의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셔틀곡예 플레이는 그에게 '붉은 셔틀의 곡예사'라는 별명을 얻어주었다. 붉은 셔틀이란 체력이 빨간색으로 매우 낮은 태인, 곧 터져버릴 것 같아 보는 이들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셔틀을 의미한다. 김구현은 세 종족전에서 고른 승률을 보이는 만능 플레이어이나 뛰어난 셔틀리버 플레이로 각인된 이미지 때문에 특히 저그전에 특화된 선수로 평가된다.
         현존하는 프로토스 유저들 중 전략적인 플레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2008년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여섯 명의 프로토스 선수들을 가리키는 '육룡'의 일원이다 (김구현, [[송병구]], [[김택용]], [[도재욱]], [[허무]], [[윤용태]]). 2009년 후반기에 저그의 강세로 인한 육룡의 총체적인 부진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MSL에서는 김구현, 도재욱 스타리그에서는 송병구 등이 활약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리쌍에게는 매우 약하나 택뱅을 대로는 강한 면을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4,5R에서 연패를 하며 부진에 빠져있다가 6R에서 김구현 자신만의 플레이로 [[차명환]]을 잡아내고 환적인 셔틀리버 플레이로 대전적에서 0:6으로 밀리는 [[김명운]]을 잡아내며 부진을 털어내는듯 했으나 그 후 연패는 계속되었고, 김구현은 6강 PO에서까지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며 [[STX Soul]]의 준PO 진출은 다시 좌절되었다.
         * [[2005년]] 제16회 커리지 매치 입
         * [[2010년]] WCG 2010 그랜드 파이널 스타크래프트 부문 준우승 (은메달) (0:2 [[이호 (1992년)|이호]])
         * [[2010년]] 2010 대한민국 e-스포츠 대 프로토스 최우수 선수
  • 김동한 (1919년) . . . . 15회 일치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 부모 = 김석(부), 서중하(모)
          | 기타 이력 = 1940년 [[대구가톨릭대학교|경북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전문학사 출신 <br /> 1956년 [[국방대학교|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출신 <br/> [[성직자]], [[천주교]] [[사제]], [[수필|수필가]], [[군인]] <br/> [[신민당 (1967년)|신민당]] 국가보건행정특보위원(1975년) <br /> [[한국가톨릭결핵시설연합회]] 회장
         [[1978년]]부터는 결핵환자 요양시설을 설립, 경하였다. 그의 세례명은 '''가롤로'''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 태생으로 [[추기경]] [[김수환]]의 넷째 형이었다. [[본관]]은 [[광산 김씨|광산(光山)]]이며 [[대구광역시]] 출신.
         그의 가계는 천주교 순교자 집안이었다. 할아버지 김보현 요한은 조선 후기였던 1868년 무진박해 때 체포되어 [[한성부]]에서 순교하였다.<ref name="한경1">[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21957741 우리 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은 어떤 분이었나 ] 한국경제 2009-02-20 </ref> 옹기장수인 아버지를 여의고 포목행으로 살림을 꾸리는 어머니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ref name="한경1"/> 이후 [[대구가톨릭대학교|경북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들어가 졸업 후 사제가 된다. 이후 그의 동생 [[김수환]]도 그의 향을 받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로 진학하게 된다.<ref name="한경1"/>
         [[1945년]] [[12월 15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뒤 [[1948년]] [[8월]] [[경북도]] [[주시|주군 함창읍]] 소재 함창동성당에서 본당 사제로 부임하여<ref>[http://www.catholicimage.org/comm/board/view.php?tid=church&division=&cate=&cate1=&schf=&schv=&lskin=list&idxNo=3434&refresh=true Catholic Image - Catholic Image<!-- 봇이 붙인 제목 -->]</ref> 1949년 6월까지 사목하였다.
         그 뒤 김동한 가롤로 사제는 [[1949년]] [[6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창원시|경남도 창원]]에서 사목하다가 [[1951년]] [[대한민국 해군|해군]]의 첫 [[군종장교|군종사관]](군종 신부)로 [[대한민국 해군|해군]] [[대위]] 임관하였다.<ref name="가톨1">[http://www.catholictimes.org/news/news_view.cath?seq=36413 (한국교회사 인물 80) (하)]{{깨진 링크|url=http://www.catholictimes.org/news/news_view.cath?seq=36413 }} 가톨릭뉴스</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528492 김동환 신부와 함께하는 故 김수환 추기경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1953년 4월 진해 및 인근 본당들과 함께 ‘군민 합동 성체대회’ 개최했으며 이 대회는 진해 지역의 천주교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ref name="가톨1"/> 그 이후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계산성당]] 등에서 사목하였다.
         그 뒤 [[1983년]] 부산 범일성당으로 부임하였다.<ref>[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90219004252&subctg1=&subctg2= 김추기경, 서품前 프러포즈 받아 한때 고민 - 세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봇이 붙인 제목 -->]</ref>
         [[1978년]] ‘한국 가톨릭 결핵 시설 연합회’ 조직하고 초대 회장에 피선되어 결핵환자 요양원을 맡았다.<ref name="가톨1"/><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7738&yy=2009 남권 대표 인터넷 신문 "매일신문"<!-- 봇이 붙인 제목 -->]</ref> [[1983년]] [[9월 28일]] 선종하였다.
         * 아버지 : 김석 요셉(1866 - 1930)
  • 김민수 (1983년) . . . . 15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mistermin21|김민수}}
         |2014||KBS2||[[천여자]]||허기진||
         |2016||SBS||[[사랑은 방울방울]]||강철||
         == 화 ==
         |2007||[[M (2007년 화)|M]]||||
         |2009||[[여자 없는 세]]||조한철||
         == 수 및 후보 ==
         ! 시
         | [[KBS 연기대]]
         | 일일극부문 남자 우수연기
         | [[SBS 연기대]]
         | 일일&주말드라마부문 남자 우수연기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8년 데뷔]][[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민수 (1991년) . . . . 15회 일치
         |문 표기 = Kim Min-Su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2015년 ~ 2016년)
         [[남대학교]]를 졸업하고 [[2014년]] [[한화 이글스]]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시즌 후 [[무 야구단]]에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무 야구단]] 시절==
         [[무 야구단]] 입대를 앞두고 [[2014년]] [[12월 5일]] [[권혁]]이 FA를 통해 이적하며 그가 보선수로 지명되어 이적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11&article_id=0000415691 삼성, FA 권혁 보선수로 포수 김민수 선택] - 엑스포츠뉴스</ref> [[무 야구단]] 전역 후 합류하였다.
         * [[대구원고등학교]]
         * [[남대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무 야구단 선수]]
  • 김용국 (야구인) . . . . 15회 일치
         |문 표기 = Kim Yong-Kook
         |사진 사이즈 =
         [[한양대학교]] 재학 시절 뛰어난 활약으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84년 하계 올림픽|1984년 LA 올림픽]]에 참가하였다.<ref name="imaeil">[[매일신문]] - 2007년 7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9528&yy=2007 "최종문의 펀펀 야구 - 어가 뭐기에"]</ref>
         그러나, [[류중일]]이 다음 해인 [[1988년 한국프로야구]] 때 팔꿈치 수술로 출장 입지가 줄어들어 [[오대석]]이 [[류중일]]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1988년 한국프로야구]]부터 [[1993년 한국프로야구]]까지 줄곧 팀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또한 1991~1992년, 2년간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다.<ref name="imaeil" /> [[1루수]] [[김성래]], [[2루수]] [[강기웅]], [[유격수]] [[류중일]], [[3루수]] 그로 이어지는 내야 수비진은 리그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그는 뛰어난 수비 실력에 비해 타격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아쉽게도 매번 [[해태 타이거즈]] [[3루수]] [[한대화]]에게 밀려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자 (3루수)|3루수 골든 글러브]]는 단 한 차례도 수하지 못했다.
         [[1997년]] 그는 무보수 방문 코치로서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의 루키 리그 야구단 [[헬레나 브루어스]] ([[:en:Helena Brewers|Helena Brewers]])에서 코치로 있다가 그해 9월 마이너 리그 내의 교육 리그, [[애리조나 폴 리그]] ([[:en:Arizona Fall League|Arizona Fall League]])에 속해 있던 야구단 [[메사 솔라 삭스|선 시티즈 솔라 삭스]] (Sun Cities Solar Sox; 現 메사 솔라 삭스 [[:en:Mesa Solar Sox|Mesa Solar Sox]])에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255979 <프로야구>김용국, 애리조나 폴리그 코치 광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한 달간 경험을 쌓은 뒤 다시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의 싱글A 야구단 [[스탁턴 포츠]] ([[:en:Stockton Ports|Stockton Ports]])에서 수비 및 주로 코치로 일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294321 <프로야구> 김용국, 미국 프로야구 지도자로 데뷔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1998년 말, 1년간 그를 지켜본 [[스탁턴 포츠]]는 그에게 연봉 3만 달러를 제안함과 동시에 1999 시즌부터 정규 시즌 코치로 일할 것을 제안하였다. 1999 시즌이 끝난 뒤엔 연봉이 3만 5천 달러로 오르면서 트리플A 야구단 [[인디애나 인디언스]] ([[:en:Indianapolis Indians|Indianapolis Indians]])의 코치로 승격되었다. 2000 시즌 도중에는 [[스카우트]] 자격으로 한국에 2주 동안 출장을 오기도 했는데, 그때 한국의 4개 프로 구단으로부터 코치 제의를 받았다. 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코치에 도전해 볼 생각도 있었으나 [[LG 트윈스]]의 강력한 러브콜로 인해 국내 복귀를 택했다.<ref name="imaeil" />
         [[대한민국]]에서 연봉 5천만원에 [[LG 트윈스]]의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551908 <프로야구소식> LG, 김대진, 김용국코치 입]</ref> 그는 추후 자리를 옮겨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부터 [[2009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9 시즌]]까지 친정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서 수비 코치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20171 삼성, 김용국·강성우 코치 입]</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65 [사진]김용국 코치,'아픈 데는 괜찮나?'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76 [사진]김용국,'글러브 가볍고 괜찮네!'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9년]] 친정 팀의 코치 재계약에 실패한 후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10 시즌]]엔 [[넥센 히어로즈]]에 자리를 옮겨 2군 수비·작전·주루 코치로 활동하다가<ref>''OSEN'' - 2009년 11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911190106 "히어로즈, 김용국 전 삼성 코치 입"]</ref> [[류중일]]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부름을 받아 친정 팀의 코치로 복귀했다.
         * [[대구경중학교]]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둘러보기 자 묶음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태평양 돌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김해 김씨]][[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김충섭 . . . . 1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정치인/목록)]
         ||<bgcolor=#808080> '''{{{#FFFFFF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 ||
         ||<bgcolor=#808080> '''{{{#FFFFFF 학력}}}''' ||<(> [[김천고등학교]] {{{-1 ([[졸업]])}}}[br][[진전문대학교]] {{{-1 (행정학 / [[학사]])}}} ||
         ||<bgcolor=#808080> '''{{{#FFFFFF 약력}}}''' ||<(> 제21대 김천시장[br]경북도 구미시 부시장[br]경북도청소년수련원 원장[br]경북도 김천시 부시장[br]경북도청 문화관광체육국 국장[br]경북도 청도군 부군수||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15A38><-5><bgcolor=#FFFFFF><:>[[김천시|[[파일:김천시 심벌마크.jpg|width=50px]]]] '''[[경북도|{{{#005BAB 경북도}}}]] [[김천시|{{{#005BAB 김천시장}}}]]'''||
         1954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봉곡초등학교, 김천중학교, [[김천고등학교]], [[진전문대학]] 행정과를 졸업[* 여기에는 사연이 있는데 김 시장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큰 병이 걸려 3번이나 큰 수술을 하였고 이로인해 1년 늦게 졸업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천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대학을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이 공직에 진출하였다. 대학은 이후 공직에 있으며 [[진전문대학]]을 졸업하였다.]하였으며. [[청도군]] 부군수, [[김천시]] 부시장, [[구미시]]의 부시장, 경북도청 문화관광체육국장과 경북청소년수련원 원장직을 역임했었다.
         공직을 퇴직한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김천시장에 출마하게된다. 김천시장직은 박보생 시장이 3선 연임제한에 걸려 출마할 수 없었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TK지역 여당인 [[자유한국당]] 공천을 바라며 경선에 참여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공천을 정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여론조사와 당원투표 등 여러 문제로 공천 잡음 들이 생겨나게된다. 이러한 문제 들로 인해 이에 불복한 [[최대원|시장 후보 중 한명]]은 아예 탈당하고 체급을 올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나가게 되었다. 공천 문제로 분열된 자유한국당은 원래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더불어 민주당|친여 세력]]의 지원사격까지 받으며 진보층 세력까지 흡수한 김충섭 후보에게 시장직을 내주고 [[이철우(1955)|전직 의원]]이 경북도지사 후보로 전함에도 불구하고 후계자 격인 [[송언석]] 후보는 최대원 후보에게 1%정도 차이로 초박빙 승부를 벌이는 모습을 보이며 국회의원직도 겨우 당선되는 등 옆동네인 구미와 함께 자유한국당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김현정 (1979년) . . . . 15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김천]]
         | 학력 = [[한국방송통신대학교|방통대 문과]] [[학사]]
         | 웹사이트 = [http://www.kimhyunjungtalk.com/ 네이버 블로그]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학과<ref>[https://news.knou.ac.kr/news/article.html?no=18562 "연기만큼 학업도 열심히!
         * [[2012년]]부터 [[세계일보]] 미술[[칼럼]] '''''배우화가 김현정의 그림 토크'''''를 연재했다. 이 칼럼은 작가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평론하며 미술이론, 미술사 등에 관한 작가의 의견을 반하고 있다.
         * [[2017년]]부터 가톨릭평화신문 문화[[칼럼]] '''''배우화가 김현정의 화 & 명화'''''를 매주 연재 중이다.
         2009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나비'를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활동을 마치고 '가톨릭담봉사자과정'에서 1년 넘게 심리담 교육을 받은 후 화가가 되었다. 이를 통해 2014년 6월에는 첫 개인전인 <묘사와 연기>가 열렸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965311 화폭으로 옮긴 심리 치유…배우겸 화가 김현정 개인전], 연합뉴스, 2014년 6월 17일 작성.</ref>, 2014년 11월 9일 부터 11월 19일까지 [[백남준]], [[이왈종]]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하나에서 셋으로:한국 예술가 3인전>에 작품전을 열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18578 ‘동양화로 그린 장서희는?’ 화가 김현정, 中진르미술관 초청], 뉴데일리, 2014년 10월 7일 작성.</ref>
         |align="center"| 장자 역
         |align="center"| [[MBC 베스트극장|너네 호이]]
         === 화 ===
         :대표작 : 《랄라 독립도》, 《잠자리 천국》, 《랄라와 소녀》, 《바게뜨 십자가》
         *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13948&keyword=김현정 한국 화 데이터베이스]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배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김천시 출신]]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0화 . . . . 15회 일치
          * 당히 까다로운 채점 기준 덕에 여기저기서 감점이 속출한다.
          * 대체로 무난하게 구조활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려했던 웅고 A반도 야오요로즈 모모의 지휘 아래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 교사는 이걸 반성의 기회로 삼으라며 "너무 향을 받는다"고 디스한다.
          * 교사는 시시쿠라가 "스테인"의 향을 받았다고 보는데, 시시쿠라 본인은 부정하지만 그 말고도 향을 받은 사람은 꽤 많이 있다.
          * 웅고 A반은 야오요로즈 모모의 지휘 아래 구조활동을 펼치는 중.
          * 그런데 왠지 이건 감점대. 이때 야오요로즈가 오챠코를 말린다.
          * 요구조자가 깔린 곳은 잔해들끼리 미묘하게 떠받쳐서 밸런스가 유지되는 황. 어느 것을 치워버리면 그대로 무너져서 요구조자가 다칠 수 있다.
          * A반은 완벽하진 않지만 당히 잘 적응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아직 시험에 합격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 가차없이 감점 당할 것 같았는데, HUC는 "우리는 경자이므로 우선도가 낮다. 그걸 간파하고 스스로 이동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좋게 생각해준다.
          * 주최측에선 "예보다 HUC의 감점이 적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 어둠 속의 누군가가 주최측과 교신하며 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그는 히어로에겐 "복합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아이자와 쇼타는 프로 히어로라도 이런 황은 어렵다며 시험에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시한다.
          * 갱 오르카도 시험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흥미를 보이는데, 각자 위치에서 황을 주시하는 요아라시, 도토로키 쇼토, 미도리야.
         갱 오르카는 히어로 랭킹 10위. 참고로 "빌런 같이 생긴 히어로 3위".--이 위로 2명이나 있다-- 작가의 전작에서 실제로 빌런으로 나왔던 캐릭터인데 어째 그때보다 더 빌런 같은 면으로 돌아왔다. 바쿠고 탈환전에서도 모습을 보였는데 큰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15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는 [[올마이트]]에게 그의 사이드킥이었던 [[서 나이트아이]]의 인턴으로 추천해줄 수 없냐고 부탁하지만 거절 당한다.
          * 밀리오는 예대로 미도리야 이전에 후계자 후보. 올마이트는 그 점을 아직도 의식하고 있는데.
          * 밀리오가 미도리야를 데리고 사무실에 방문했을 땐 뜬금없이 사이드킥 [[버블걸]]이 "유머가 없었다"는 이유 간지럽히는 벌을 내리고 있었다.
          * [[올마이트]]는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그의 사이드킥 출신 [[서 나이트아이]]의 소개를 부탁받는다. 올마이트는 미도리야가 갑자기 왜 그 이름을 꺼내나 의아해하지만 인턴 제도와 [[그랜토리노]]와 나눈 대화에 대해서 전해듣고 납득한다. 미도리야는 다시 한 번 서 나이트아이의 인턴자리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올마이트는 의외로 단호히 거절한다.
          이유는 세 가지. 우선 올마이트는 회의에서 반대파였다. 작금의 사회을 볼 때 1학년의 참가는 이르다는게 그의 뜻. 지나가던 [[미드나잇(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미드나잇]], [[13호]]도 같은 입장.
          그는 [[토오가타 밀리오]]를 호출했다. 그를 부른건 그가 나이트아이 밑에서 인턴생활 중이기 때문. 미도리야는 처음에는 이 셋이 함께 앉아 있는데 어색함을 느꼈지만 밀리오와 대화하면서 금방 친해진다. 올마이트는 밀리오에게 "미도리야가 나이트아이 밑에서 인턴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 묻는다. 밀리오는 잠시 생각하지만 대답보다는 "나를 불러온 건 미도리야를 서에게 소개해주라는 얘기"였다고 깨닫는다. 하지만 그도 나이트아이가 올마이트의 사이드킥 출신인건 알고 있었고, 굳이 자신을 끼워서 소개해주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밀리오는 나이트아이는 언제나 올마이트의 활약을 동으로 지켜보며 기뻐하고 있다며, 직접 말하는게 좋겠다고 권한다.
          미도리야는 의아해하지만 올마이트는 그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다시 한 번 미도리야가 나이트아이 밑에서 인턴을 할 수 있을지 묻는 올마이트. 밀리오는 이번엔 미도리야에게 "어떤 히어로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 미도리야는 항 대답하던 대로, 올마이트가 추구하던 대로 "아무리 곤란한 사람이라도 웃으면서 구하는 히어로"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지금 자신이 추구해야 할 히어로이 정확하게 정리된다. 어머니, 올마이트, 그리고 바쿠고를 거쳐서 얻어낸 해답.
          * 이야기는 급진전 끝에 잘 풀리지만, 올마이트는 밀리오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다. 당초 네즈가 추천했던 그의 후계자는 밀리오였다. 네즈는 그가 성적은 좋지 않지만 존재감이 있고 항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인물이라 소개했다.
          * 웅에서 전차로 약 한 시간. 이곳에 서 나이트아이의 사무소가 있다. 밀리오의 안내로 도착한 미도리야는 바짝 긴장해있다. 밀리오는 긴장하는건 좋지 않다며 나이트아이에 대해서 "아주 엄한 사람"이라 경고한다. 물론 히어로 덕후인 미도리야가 모를 리 없다. 그는 자타에 모두 엄하며 "스토익"한 일 처리로 유명하다. 미도리야에겐 매우 날카로운 눈빛 때문에 소름이 돋은 걸로 기억에 남아있다.
          * 한편 사무실에서는 나이트아이가 사이드킥 [[버블걸]]에게 사건을 보고받고 있다. 그 보고는 [[빌런연합]]과 [[오버홀]]의 접촉에 대한 것. 버블걸은 전모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교섭의 결렬과 유혈사태 등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나이트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었지만, 문득 이런 말을 꺼낸다.
          * 들어서자마자 사이드킥 여성이 아헤가오를 지으며 자지러지는 모습에 미도리야는 경악과 충격으로 혼란에 빠진다. 물론 밀리오는 대략 어떤 황인지 눈치채고 또 버블걸이 유머를 잊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짐작한다. 어쨌든 한창 즐거운 순간을 방해받았기 때문인지, 나이트아이가 유독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본다. 미도리야는 그 박력에 쫄지만 밀리오의 조언을 참고해서 "한 번은 웃기는" 걸 시도한다. 이미 강해지겠다고 다짐한 그는 유머에서도 그렇게 돼주겠다고 독한 마음을 먹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2화 . . . . 15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를 찾아온 빌런연합의 [[시가라키 토무라]]. 그는 서로 대등한 "제휴"를 주장한다.
          * 시에핫사이카이 본거지에 들어온 빌런연합의 [[시라가키 토무라]]. 그는 살풍경한 장면이라며 첫인을 밝힌다. 인테리어는 철저하게 [[오버홀]] 치사키의 취향. 사실 시라가키가 불만인 점은 인테리어 보다도 "안내"였다. 그는 이 지하 응접실까지 오기 위해 30분이나 지하를 빙글빙글 돌았다. 개미가 된 기분이라며 야쿠자의 집은 어떻게 돼먹은 거냐고 불평을 쏟아낸다.
          시라가키는 자리에 앉으면서 테이블에 발을 올려놓는다. 시라가키는 그건 오버홀 측이 멋대로 해석한 거라고 부정한다. 빌런연합은 세력확장, 시에핫사이카이는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서로 니즈가 맞는다고 말한다.
          * 빌런집단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날 생각이었지만 그 직점에 패트껌에게 잡힌다. 그의 개성은 포동포동한 몸집에 대를 빨아들이는 능력. 일명 "빨아들이는 패트씨". 그런데 빌런 중 한 녀석은 개성이 극성이었다. 몸을 고무처럼 늘여서 패트껌의 포획을 빠져나간다.
          * 하지만 그 뒤에 기다리고 있던건 타마키였다. 타마키가 손에서 문어다리 같은 촉수를 뻗어 빌런을 포획한다. 빌런이 "이 문어는 뭐야!"라고 소리치는데 일하는 중에도 그런 사소한 말에 처를 입는다. 그 분풀이인듯 이번엔 다른 손에 바지락 껍질을 만들어서 빌런의 얼굴을 후려친다. 빌런이 쓰러지면서 황 종료. 이번엔 발을 닭발처럼 만들어서 빌런이 도망치지 못하게 찍어누른다.
          * 패트껌은 자신의 미스를 잘 처리해준 타마키를 대중들 앞에 소개한다. 모여든 시민들을 향해 "기량이라면 프로 이"이라고 추켜세운다. 그 뒤에 "멘탈은 성장하지 않았다"고 꼬리를 달지만. 시민들의 환호를 받은 타마키는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그런데 그 군중 사이엔 선량한 시민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진작에 흩어져 있던 빌런조직의 쫄따구가 있었던 것이다. 녀석은 잡힌 형님들을 구해야 된다며 총을 겨눈다. 패트껌이 수한 기척을 눈치챘지만 한 발 늦었다. 벌써 총알이 발사되었는데, 그 총알이 아주 수하다. 이 수한 총알이 무방비한 태의 타마키를 맞춘다.
          그는 [[올 포 원]]이 개성을 뺏는다는 걸 알고 있다. 이 총알은 거기에 감을 받은 발명품이다. 이미 전국에 보급이 진행 중이고 조금씩, 계획적으로 준비가 끝나가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6화 . . . . 15회 일치
          * 웅고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부터 고려하고 있던 기숙사제 전환을 진행한다.
          * 베스트 지니스트는 가까스로 생환했지만 치명을 입어 언제 복귀할지 불투명
          * 래그돌은 건강엔 이이 없지만 개성이 돌아오지 않았다.
          * 웅고 교장 네즈는 그간 올마이트의 노고를 치하한다.
          * 웅고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검토하고 있던 계획을 실행코자 학부모들을 만나기로 한다.
          * 쿄카의 아버지는 "록하지 않다"는 말과 함께 최근 웅고의 사건을 언급하며 "이런 마당에 기숙사제 전환이라니"라고 혀를 찬다.
          * 하지만 예과 달리 아주 시원스럽게 동의해줬다.
          * 어머니는 대사건 조차 "바쿠고가 약해서 폐를 끼친 것"이라고 할 정도로 강인한 성격. 반대로 아버지는 미도리야가 연될 정도로 유약하다.
          * 하지만 "개성"이 발현한 이후 웅고에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언제나 처투성이가 되었다. 이미 팔은 더이 처가 늘어나면 못 쓰는 수준까지 악화.
          * "부모로서 지금의 웅고에 아들을 맡길 정도로 대담하진 않아요."
         미도리야의 부모로서, 지금의 웅고에 아들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저는 대담하지 않아요. ||
          * 미도리야 어머니의 입장은 이세 모든 부모님들의 입장이 아닐까 싶다.
  • 마기/328화 . . . . 15회 일치
          * 뢰엠 제국이 국제동맹에 정식가입하고 귀왜국과 황제국이 복귀했다. 화으로 소식을 접한 알라딘과 알리바바 사르쟈.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 뢰엠 제국을 방문한다.
          * 티토스는 그 결정은 뢰엠의 토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장기적으로 그게 정말로 뢰엠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봤다고 말한다. 이미 신드바드와 국제동맹으로 세은 하나가 되려 하는데 뢰엠만 역행하는 것은 무의미한 불씨가 되는게 아닌가? 그렇게 고민한 결과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국제동맹 가입. 티토스는 셰헤라자드의 유언인 "일국에 얽매이지 말고 세에 눈을 돌려야 한다"를 언급하며 그녀의 유지를 잇는 길이라고 말한다.
          * 뢰엠을 떠나며 알라딘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알리바바에게 전한다. 범인은 신드바드. 그가 성궁의 루프를 덮어쓰기 해 모두의 사고를 조종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알라딘은 그가 모든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고 얻은 해답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고 분개한다. 알리바바는 그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 묻지만 당연히 안되는 일. 알라딘은 서둘러 신드리아 회로 향하는데 알리바바는 동행하는 중에도 설마 신드바드가 그렇게까지 했을까 의문을 가진다.
          * 신드바드는 이거야말로 잔혹한 세이 아니냐며 이런 부조리한 세을 지지하는 거냐고 반문한다. 알리바바는 오가는 설전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 알라딘은 반박은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신드바드의 의견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둘 사이의 평행선이 계속되고 알리바바는 그 사이에서 어쩌지 못한다. 신드바드는 주저하는 그에게 의견을 묻는다. 알라딘도 말은 하지 않지만 그의 입을 주시한다. 갑자기 의견을 요구받은 알리바바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알리바바에게도 비슷한데 그의 사고에는 신드바드와 알라딘, 두 사람이 모두 지대한 향을 미쳤다. 그 둘이 대대적으로 반목하게 된다면 알리바바는 쉽게 입장을 정리할 수가 없다.
         신드바드는 자기가 한 일이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한게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실은 수사학적으로 우회했을 뿐이다. 타전을 예로 든 것도 궤변에 지나지 않는데 현실에서도 각자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타인의 자유를 빼앗는 행동이 자유의 이름으로 합리화되진 않는다. 마기에서 타전이 일어나는 이유는 솔로몬이 전제한 최소한의 한도를 어겼을 때 발생하는 일종의 안전장치. 그런데 신드바드는 아예 사람들이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우러르고 칭송하게 세을 조작했다. 경찰이 도둑을 잡는 것도 폭력이니 자신이 연쇄살인을 해도 경찰과 똑같은 폭력을 행사했다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타전을 단순한 배제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그가 아르바와 대화하며 "약자도 배제하지 않겠다"라고 했던 말의 의도도 파악할 수 있다. 결국 그가 구하는 세계는 자기가 설정한 한도 안에서 애초에 벗어날 수 없는 조작된 세인 것.
  • 마기/332화 . . . . 15회 일치
          >몇 백, 몇 천, 몇 억년 후의 세이 행복한게 신드바드씨의 꿈이라면
          * 그날 밤 알리바바는 [[알라딘(마기)|알라딘]]과 합류해 자신의 결의를 전달한다. 더이의 정의가 아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결정한 것을 믿겠다는 것이다. 알라딘은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네 마기니까 네 대답을 듣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알리바바에겐 속시원한 대답이 아니었다.
          >남 얘기하는게 아니잖아? 너도 이 세의 일원이야!
          * 황제국에 아침이 찾아온다.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공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알리바바가 그랬듯 알라딘도 자신이 생각한 결론을 밝힌다.
          지금 처한 황은 누구 한 사람이 나빠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성궁"이라는 시스템의 한계. 성궁이 관리하기 때문에 "검은 루프"나 "타전"이 구분되는 것이다. 게다가 성궁이 존재한다는건 누군가는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게 신드바드든, 솔로몬 왕이든, 자신이나 [[우고]]든 합당한 자리가 아니다. 그 누구라도 "평범한 인간"인 이 완벽한 관리자는 될 수 없으니까.
          * 알리바바는 공감하면서도 성궁이 무너지면 세의 순환체계가 망가져 새로운 생명도 태어나지 않는거 아니냐고 질문한다. 하지만 알라딘은 그럴 우려가 없다며, 전세계가 "암흑대륙"처럼되는 거라고 말한다.
          성궁을 파괴한다는건 세을 "위대한 힘"이 향을 미치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알라딘은 검은 루프를 되돌릴 방법만 연구했지만 이젠 아예 검은 루프든 흰 루프든 차이를 두지 않는 세을 만들려는 것이다. 알리바바는 그거야 말로 좋다고 맞장구치지만, 알라딘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걸 원하는건 이 세에서 우리 뿐"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는 두 사람. 하지만 연백룡과 쥬다르는 신드바드의 루프에 향을 받지 않았다. 백룡은 자신들은 완전히 타전한 존재라 루프의 흐름에서 벗어났기에, 신드바드의 루프 조작에도 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쥬다르는 역시 타전하길 잘하지 않았냐고 실없는 소릴 해댄다.
          쥬다르는 이 기분 나쁜 세을 부수러 가는거 아니냐며 자기들을 끼워주지 않으면 못 간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적어도 자기들 말고 두 명은 같은 생각을 한다는걸 알게 된 알리바바와 알라딘은 기쁘게 받아들인다.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15회 일치
          다이스 선장이 담당한 배. 원양항해가 가능한 기범선이다. 동력기관으로는 돛과 함께 증기기관을 사용하며, 증기기관의 연료로는 불타는 것은 다 된다고 하는 것을 볼때 혼소가 가능한 보일러라고 보면 된다. 선체 부에는 2개의 마스트와 2개의 굴뚝이 있으며, 수선(首線)부분이 부풀어 오른 텀블홈형 선체를 갖고 있다.
          [[비행정]]. 기간트를 제외하면 작품에 등장하는 유일하게 전투가 가능한 비행기다. 전체적으로 기체는 둥글며, 주익은 있지만 수평꼬리날개가 없고, 수직꼬리날개 단 후방에 수소가스터빈엔진으로 구동하는 프로펠러 1기가 장착된다. 최고속도는 360km/h 이며, 최저속도는 60km/h 까지 가능하다. 기수에 고정된 기관총과 선회식 기관총으로 무장한다.
          작품에 약방의 감초처럼 자주 등장하며, 최종적으로는 기간트와 싸우다가 만신창이가 된 채 기간트 위에 추락한 끝에 간신히 활강비행으로 삼각탑에 귀환한다. 이후 수리되지 않은 태로 방치되다가 삼각탑과 함께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인더스트리아의 작업용 [[로봇]]. 로봇이지만 조작원 1명이 탑승해서 조작해야 하는 물건이다. 일반적인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며, 3개의 레버와 4개의 스위치로 조작이 가능하다. 형태는 자 모양의 본체에 양팔과 양다리가 붙은 모양이며, 머리가 있어야 할 지점에는 조작원이 탑승하는 좌석이 오픈형으로 설치된다.
          반중력장치로 비행하는 보라색 도토리 같은 비행물체. 멀리서 보면 물을 담는 잔 같이 생겼다. 수직이착륙이 가능하고 기본적인 방탄성능이 있다. 착륙 시에는 3기의 수납 가능한 다리가 나온다. 매우 유용한 물건이지만, 과거의 유산이라서 양산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손에 취약한 문제점이 있어서, 일단 약간이라도 손되면 제대로 된 조종이 불가능하다는 약점도 있다.
          현대의 시각에서 본다면, 무장을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저속으로 항행(航行)하는 연안 순시선 정도에 불과하지만, 작품 시기에서는 사실 [[전함]] 취급을 받는 당당한 1급 전력이다. 당장 인더스트리아에서도 운항 시 다량의 석유가 필요한 이유 등으로 인해, 원로위원회의 허가가 없으면 출격할 수 없는 물건이며, 이 배의 침공을 받은 하이하버에서는 코난이 결사적으로 폭탄을 설치하는 개고생을 한 끝에야 격침이 가능했다.
          인더스트리아에서 침몰한 여객선을 인양하는 데 사용하는 선박. 현대의 동종선박과는 달리 자력항해가 불가능하다. 선박에는 크레인과 각종 작업도구가 있으며, [[잠수복]]은 외부에서 인력펌프로 공기를 넣어주는 공기 호스가 달린 구식 물건이다. 작품에서는 간신히 여객선을 인양하는 데 성공했으며, 해당 여객선은 인더스트리아 주민들의 피난선으로 사용되었다.
          대참사 당시 지구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우주선이 불시착하여 우주선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이 정착하게 된 곳으로 여기서 코난이 태어났으며 코난의 부모를 비롯한 코난의 할아버지 동료들이 차례대로 세을 떠났기 때문에 1화 시점에서는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 두 사람만이 거주하고 있었다. [[라나(미래소년 코난)|라나]]라는 여자아이를 통해 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는 자신들만 살아남은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고 코난의 할아버지가 라나를 잡으러 온 몬스리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군인 2명에게 저항하다가 죽은 뒤, 코난은 이 곳을 떠나게 된다. 마지막화에서 남겨진 섬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대륙이 되면서 코난이 살던 집은 산 정에 위치하게 되었는 데 대륙이 된 홀로 남은 섬(남겨진 섬)에 다이스, 몬스리, 류케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피난민과 테라를 비롯한 하이하버의 일부 주민이 코난 일행과 함께 이주하게 된다. 홀로 남은 섬(남겨진 섬)은 작 중에서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지역이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등장하는 국가로 공업시설이 대부분이고 작 중에서 유일하게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실적에 따라 1등시민, 2등시민, 3등시민으로 나뉘어 지는 데 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레프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레프카에 의해 정치범[* 작 중에서 레프카 본인은 지하거주민들을 반역자, 쓰레기라고 부른다.]으로 규정되어 있다.[* 지하거주민들의 이마에 정치범이라는 것을 징하는 사각별 형태의 낙인이 찍혀있다.] 참고로 이 지역은 대참사 이전의 유산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지각변동으로 가라 앉게 될 징조가 보이면서[* 때문에 지하도시의 정치범들이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레프카는 답없는 행보를 바꾸지 않는다.] 25화에서 침몰하게 된다. 작 중에서 인더스트리아는 옛 시대의 마지막 지역이었음을 의미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침몰은 옛 시대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한다. 자세한 내용은 [[삼각탑]] 문서 참조. 여담으로 시민과 정치범 간의 괴리감은 심한데 시민은 정치범을 마구잡이로 대해 함부로 총질하기도 한다. 결국 나중에 레프카가 쫓겨날때 같이 쫓겨난다.
          * 하이하버 (ハイハーバー) [* 어표기로는 '높은 항구 (High Harbor)'가 된다. 더빙판에서는 '하이하바'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불렸다.]
  • 미이라(2017년 영화) . . . . 15회 일치
         [[유니버설 픽처스]]의 화. [[다크 유니버스]]의 첫번째 화이며 유니버설의 대표적인 클래식 몬스터 중 하나인 [[미이라(화)|미이라]](Mummy)[* Mummy는 '투탕카멘의 저주'와 마찬가지로 서구인들의 환이 빚어낸 존재로, 원래의 미이라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를 다룬다. 감독은 알렉스 커츠만.
         과거 30년대에 유니버설에서 만든 화 미이라, 총 3편의 미이라 화 시리즈와는 별개의 화이다. 정확히는 30년대에 미이라가 나오고 이후 리메이크해서 3편의 미이라 시리즈, 이후 다크 유니버스를 준비하면서 새 미이라 화가 나온 것.
         '''심각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실제 화 완성도도 안 좋은 의미에서 심각하다'''. 다음 화의 스토리나 설정에 방해가 될법한 요소가 있는지 관없이 화의 수준이 처참하다.
          * [[다크 유니버스]]의 스타트를 알리는 화인데 원래는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해당 화는 다크 유니버스에서 제외되었고, 미이라가 시리즈 스타트 화가 된 것이다.
  • 박기환(정치인) . . . . 15회 일치
         [include(틀:경북도 포항시장)]
         1948년 [[경북도]] 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동지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과대학 경학과, [[남대학교]] 경[[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경북도 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 때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에 잔류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허화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후신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에 흡수되어 [[한나라당]]이 되자 한나라당에 속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승호(정치인)|박승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박준규(1925) . . . . 15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대구광역시/인물]]
         '''대한민국 역사 유일한 순수 지역구 9선의원.'''
         [[1925년]] 9월 12일 [[경북도]] 달성군 하빈면 묘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출생하였다[* 일명 '묘골마을' 이라하는 순천박씨 집성촌. 현재 묘골에 있는 [[박팽년]] 등 [[사육신]]을 모신 육신사 앞에 그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경북고등학교|경북중학교]] 및 구제 마쓰야마[[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구마모토 [[의과대학]] 재학 중에 [[8.15 광복]]을 맞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로 편입하였으나, 동 대학 법문학부 정치학과로 전과하였고 이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 [[달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조재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성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외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신민당(1967년)|신민당]] [[정운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 해 [[10.2 항명 파동]]으로 [[중앙정보부]]에서 [[고문]]당한 [[김성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직을 사퇴하여 치러진 경북도 달성군-[[고령군]] 선거구 재보궐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북도 달성군-고령군-[[경산시|경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박주현(1923)|박주현]]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79년까지 민주공화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김종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민주공화당 당의장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대구)|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일민주당]] [[목요]]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89년 1월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에 임명되어 1년 동안 재임하였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13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4대 국회가 개원하자 13대 후반기에 이어 다시 [[국회의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93년 [[김삼]] 정권이 출범하여 공직자 재산 공개를 할 때 재산이 문제가 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이후 1995년 [[김종필]]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자 그와 손을 잡고 자민련에 합류하여 당 최고고문이 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국당]] [[유성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박철언]]과 함께 자민련 내 대구경북세력을 대표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DJP 연합을 성사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는데, 이는 박준규가 1공화국과 2공화국 시절 [[김대중]]과 함께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몸을 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 기인한다.~~하지만 김대중은 신파, 박준규는 구파~~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박준규는 여당으로, 김대중은 야당으로 진로를 달리 했지만 인간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박준규의 활약은 대구경북에서 [[김대중]]의 득표율이 승하는 데(8.7%에서 13.1%로 승)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에다 김대중과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공동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국회의장 단일후보로 지명되었고, [[경선]]에서 무려 3차 투표까지 간끝에 당시 [[한나라당]]의 반란표가 쏟아져 나오며 국회의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박준규는 이로써 의정 사 최초로 국회의장 3선의 고지에 올랐다. 반면 [[한나라당]]은 [[오세응]]이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패배하고 [[조순(1928)|조순]] 총재 이하 지도부 전원이 국회의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15대 국회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2014년]] [[5월 3일]] [[http://dkbnews.donga.com/3/all/20140503/63238866/2|세을 떠났다.]]
         [[김삼]], [[김종필]]과 함께 2016년 현재 단 3명뿐인 최다선 의원 타이기록(9선)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3명 중 유일하게 지역구로만 9선을 한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YS는 14대 전국구를, JP는 8대 전국구, 9대 유정회, 16대 전국구 의원을 지냈다.]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 || '''[[민주자유당]]''' || '''35,083 (50.07%)''' || '''당선 (1위)''' || '''8선''' 반기 국회의장[br]1993.6.30 사퇴[br](고위공직자[br]재산공개 파동)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중) || '''[[자유민주연합]]''' || '''17,631 (33.26%)''' || '''당선 (1위)''' || '''9선''' 하반기 국회의장, [[김삼]], [[김종필]]과 더불어 국회의원 '''최다선 기록 달성''' ||
  • 북한의 역사왜곡 . . . . 15회 일치
         평양지역에 살았던 구석기 시대 인류가 '조선민족'의 기원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조선민족의 고향은 [[평양]]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세계고대문명 가운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과 함께 '대동강 문명'이 고대 문명의 발지라고 주장한다.[[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korean_history/history-01262010172151.html (참조)]]
         삼국이 애초에 자주 전쟁을 벌이는 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사왜곡에 가깝다.
         [[제네럴 셔먼호]]를 '미국의 군함'이라고 주장하며,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가 결사대를 이끌고 공격하여 공적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제네럴 셔먼호는 [[무장선]]이었으며,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는 당시 어떤 기록에서도 제네럴 셔먼호 사건에 참여했음이 언급되지 않는다.[[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korean_history/sherman_ship-08032010161025.html (참조)]]
         === 인천륙작전은 북한의 승리 ===
         >이른바 《인천륙작전》이라고 하면 세사람들이 제일먼저 생각하는 것이 월미도이다. 월미도에서 우리 인민군대의 1개 해안포병중대가 단 4문의 해안포로 약 1 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척의 함선을 가지고 달려드는 맥아더 5만대군의 인천륙기도를 3일간이나 좌절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우리의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맥아더자신도 《인천륙작전》에 대해 《실패한 작전》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완전한 패전이였다.
         >- 북한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북에서는 [[인천륙작전]]은 [[북한]]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월미도에서 리대훈 해안포 중대장이 단 4문의 포, 1,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천의 함선의 함선을 이끌고 공격하는 맥아더의 5만 대군을 3일간 좌절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위 내용은 1983년에 북한에서 "월미도"라는 화를 제작하여 홍보하였으며 북한의 공식적인 역사관으로 보인다.
         2016년에 화 인천륙작전이 개봉하고 [[우리민족끼리]] 웹사이트에서, 반박문을 올리며 인천륙작전에서 북한이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15회 일치
          *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도 애매한데 안달복달해도 국민들 대부분은 "마법제가 언젠가 국왕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국왕은 당당한 걸음 걸이에 한 눈에 봐도 남을 내려다 보는 눈빛을 가진... 뭔가 모자라게 생긴 아저씨다. 별 건 없는데 오만한 낯짝이 기분 나쁜 아저씨다. 그의 이름은 "A 킬러 클로버 13세". 명실부한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맞지만 어딘지 격이 떨어지고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가 없다. 그리고 마법제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그가 곁에 서있는 것도 불편해 한다. 하긴 키 차이가 머리 하나 정도로 나니 더욱 그럴 것이다.
          * 국왕의 등장은 열기가 오른 청중 사이에 찬물을 뿌린 격이다. 달아오른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떨떠름한 분위기가 팽배하다. 국왕이 청중을 향해 "나의 국민들"이란 표현을 쓰며 안부를 묻지만 호응은 시들하다. 그리고 국왕은 유감스러운 인물이긴 해도 그정도 눈치가 없진 않았다.
          바보국왕이 하는 말이지만 빅뉴스였다. 청중들이 탄성을 자아내자 국왕이 바쁘게 이어간다. 지금까지 백야의 마안의 테러에 당하기만 했지만 이번엔 역공을 취할 기회라는 것. 그리고 그걸 위해서 마법기사단에서 엄선된 인재를 모아 "최강의 선발대"를 조직하기로 했다. 그것도 국왕 자신이 직접. 그 이름은 "로열 나이츠".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뒤 모든 기사단 단원들을 대로 시험을 볼 것이다. 시험을 통과하는 자만이 로열 나이츠가 된다.
          그는 자기가 기획한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사실 백야의 마안의 아지트를 조사하고 작전을 구한건 마법제였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부분만 홀랑 먹어치운 셈.
          눈치없는 아스타가 입바른 소리를 내뱉기 시작하자 좋았던 국왕의 기분도 잡친다. 아스타는 국왕이 뭐라도 굉장한 일을 하는걸 본적이 없다며, 필요이으로 팩트를 휘두른다. 그리고 옆의 유노에게 "넌 본적이 있냐"고 묻는데, 유노도 말을 많이 하는건 아니지만 맞장구는 쳐준다. 아스타는 또 마력은 굉장하지만 국민들을 위해 딱히 좋은 일을 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하자, 유노는 역시 "그렇다"고 수긍한다. 유노가 잘 받아줘서 그런지 아스타의 직설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카리스마가 없고 그릇이 작아 보이는 부분까지 적나라하게 파해친다. 이쯤에서 유노가 제지를 하긴 하는데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리는 발언이다.
          새파란 신입들이 국왕을 물고 뜯는 말도 안 되는 황이지만, 단장들 조차 아무 말참견을 안 하는데다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 같은 경우는 재밌다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 약이 오를 데로 오른 국왕은 성미대로 두 사람을 당장 처형히라고 길길이 날뛴다. 따지고 보면 이럴게 될게 뻔했지만 아스타는 막 닥치자 뜨악한 표정으로 당황한다. 민중들은 동요하고 그 사이의 청동마법의 [[셋케]]는 아스타를 비웃는다. 황은 마법제가 나서면서 정리된다. 그는 정중한 태도로 국왕을 달래고 자신을 봐서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청한다. 그리고 은근히 "이런 걸로 아무렇게나 행동하면 국왕의 권위가 실추된다"는, 말투만 정중하지 위압감 마저 느껴지는 일침을 곁들인다. 열폭이나 해대는 국왕으로서는 거스를 도리가 없다.
          * 마법제는 다시 민중들을 향해 "로열 나이츠는 나도 기대하고 있다!"며 화제를 돌린다. 청중들은 어느 새 마법제를 연호하며 마치 처음부터 그가 발표를 한 것처럼 따른다. 국왕이 나섰을 때는 아무 반응도 없었던 기사단장들이 눈빛을 빛낸다. [[노젤 실버]]나 잭처럼 기대이하의 성적을 거둔 단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최하위의 오명을 쓴 [[릴 부아모르티에]] 설욕을 다짐하며 의욕을 낸다. 국왕도 이런 황을 뻔히 보고 있으니 속이 터져도 어쩔 수 없다.
          * 잠시 뒤 마법제는 아스타와 유노, 두 사람을 잠시 뒤쪽으로 불러낸다. 아스타는 방금 전에 있었던 꽁트 같은 사건에 대해 힘차게 사과하지만 마법제는 애당초 그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두 사람에게 로열 나이츠 건에 대해 조언한다. 이건 지금까지 이으로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찬스다. 그는 두 사람을 격려하면서 아울러 "그래도 아직 신인"이라고 선을 긋는다. 다음주 선발시합에선 많은 강자들이 나올 터. 자만하지 말고 정진하라며 자신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다.
          * 마법제의 격려까지 받고 사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이 높아진 아스타. 그는 벌써부터 전부 해치워버리겠다고 방방 뛴다. 유노가 "나만 붙어도 울지마라"고 디스해도 흥분하지 않고 꼭 합격해서 백야의 마안을 무찌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이전에 경험했던 [[블랙 클로버/97화|그 이한 힘]], 그것을 꼭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되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대로 나란히 돌아가던 두 사람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괴성을 듣고 발길을 멈춘다. 어떤 여자가 "레오!"라는 이름을 험악하게 불러대고 있다. 그러고 보니 홍련의 사자단 소속이고 일전에 함께 싸운 적이 있던 [[레오폴트 버밀리온]]의 모습이 보인다. 전 단장 [[푸에고리온 버밀리온]]의 아우이기도 하다. 이름이 불린 그는 매우 난처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대답하는데 그 얼굴에 다짜고짜 주먹이 박힌다. 이어서 매우 원색적인 욕설이 쏟아지는데, 대는 홍련의 사자단의 새로운 단장이었다.
          뭔가 엄청나지만 하등 쓸데없는 수라장에 직면한 아스타와 유노. 오도가도 못하는 황에 처한다.
  • 블랙 클로버/116화 . . . . 15회 일치
          * 이렇게 변변찮은 인물같지만, 실제론 단장이 부재 태나 다름 없는 산호의 공작의 부단장을 맡아 실질적으로 마법기사단을 운용 중인 재원이었다.
          * [[미모사 버밀리온]]이 부끄러워 마지 않는 오라버니 [[키르슈 버밀리온]] 등장. 산호의 공작 소속 일등 급 마법기사다.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 만연한 세에 아름답게 태어나고 말아서 괴롭다는 인물이다. 미모사는 가족에 대한 변호를 포기했고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경악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순간 가장 미치고 팔짝 뛰는 사람들은 이 인물과 한 팀을 이룬 [[매그너 스윙]]과 [[솔 마론]]이었다.
          * 1회전을 치르기도 전부터 팀은 붕괴 태. 그 원흉은 전혀 자각이 없을 뿐더러 황에 박차를 가한다. 자기들도 만만찮은 막장 팀이건만, 아스타는 이 팀이 정말 괜찮은 건지 진심으로 우려했다. 그러는 동안 키르슈는 여동생에게 아는 채 한다. 그는 여동생이 자기 아름다움을 보러 왔고 그 아름다움에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여동생 건강까지 챙겨준다. 미모사가 화답한다.
          오물 취급 당한다. 키르슈는 아스타가 분위기도 거동도 존재 자체도 아름답지 않다고 신랄하게 평한다. 그리고 패션 센스는 물론 근육을 키운 것마저 추악하다고 말하는데, 그의 미학 몸이란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둬야하는데, 아스타처럼 단련하는 것을 "약한 자들의 행위"라며 경멸한다.
          키르슈의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과 극성이지만 자기 좋을 대로 살기는 마찬가지인 아스타에겐 통하지 않았다. 어차피 약하다거나 못 생겼다는 말에는 이골이 난 아스타였다. 덤덤하게 인정하고 "이제는 강해졌다"고 자신하는 아스타에게 키르슈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다. 어차피 사람마다 날 때부터 마력의 그릇 크기가 정해져 있어서 아스타처럼 발버둥쳐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면서.
          * 이렇게 개판으로 시작된 2회전. 매그너, 마론, 키르슈의 C팀 대 D팀의 대결이다. 키르슈의 튀는 언행은 시합이 시작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가 저 별종에 대해서 묻자 [[노엘 실버]]가 "미모사의 오빠인 기분 나쁜 사람"이라고 정확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의외로 [[클라우스 류넷]]이 그를 변호한다. 저래봬도 산호의 공작에서 부단장을 맡고 있는 강자라는 것. 거기 단장이 맨날 잠들어 있는 황이라 실질적으로 기사단을 이끄는 실무자는 키르슈였다.
          * 키르슈와 같이 있는거 자체가 고통인 매그너는 일단 무조건 공격하고 돌격하고 본다. 한 시라도 빨리 끝나야 이 고통이 끝날테니까. 하지만 적측의 견제가 거세다. 적동마법 "체인스 자칼"이란 마법으로 매그너의 돌격을 방해한다. 매그너가 성가셔하며 일단 적동으로 만들어진 자칼을 때려잡고 본다. 그때 키르슈가 반짝거리며 다가온다. 매그너에게 조언해주기 위해서였다. 말투는 여전히 니글거리지만, 의외로 식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선 매그너는 근원거리를 가리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데 무작정 돌격하는건 합당치 않다. 적의 마나의 흐름을 읽고 자연스럽게 마나를 운용하고 근원거리를 적절히 나눠서 공격할 필요가 있다.
          * 솔 마론도 생각없이 뛰쳐나가기는 똑같았다. 그녀가 흙 창조마법 "날뛰는 대지모신"으로 거대한 고렘을 만들어내자 적은 진흙 구속마법 "프레쉬 보그"로 늪을 생성해 발을 묶었다. 귀찮게도 마론에겐 밀리는 마법이다. 그녀가 애를 먹자 어김없이 키르슈가 달려왔다. 괴악한 포즈와 함께. 그는 하나같이 단세포적인 인간들 뿐이라 매도한 뒤 명령을 내릴 정도의 골렘을 만들 수 있다면 쓸데없이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딱히 양동을 거는 황도 아니니 차라리 작은 골렘 다섯을 만들어 분산시키면 적을 혼란하게 할 수 있다. 지면에 숨겨 복병으로 삼는 것도 고려할 법하다.
          이윽고 시합장소를 가득 매우는 꽃잎의 홍수가 일어났다. 그의 마법은 벚꽃 마법. "마앵의 맹렬한 꽃바람" 이었다. "아름다운 나의 환을 곁들여서"란 기묘한 부제가 달려 있었다. 이 이름도 스케일도 거창한 마법은 적의 시야를 완전히 봉쇄했다. 적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아군에게는 적의 크리스탈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엄청 기분 나쁘지만 아무튼 빠르고 강하다. 그게 아스타의 솔직한 감이었다. 지금으로선 저걸 어떻게 공략해야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게다가 키르슈는 화려한 승리를 양분삼아 정신적 공격력까지 고양되고 있었다.
  • 서병조 . . . . 15회 일치
         '''서병조'''(徐丙朝, <small>일본식 이름:</small> 大峯丙朝, [[1882년]] [[7월 28일]] ~ [[1952년]] [[2월 29일]])는 [[일제 강점기]]의 [[대구광역시|대구]] 지역 유지이자 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본관은 대구이며 본적은 [[경북도]] [[대구부]] 계산동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국채보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서돈]]의 둘째아들이다. 서돈은 대구의 부호였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4년]]에 통신국 전화과 주사를 지내기도 했으나, 지역 유지로서의 이력이 더욱 두드러진다. [[1909년]]에는 대구잠업전습소 소장과 조선중앙농회 경북지부장을 맡았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인 [[1914년]]에 대구부협의회가 설치될 때 초대 협의회원에 임명된 것을 비롯하여 [[경북도]] 도평의원, 대구업회의소 특별위원 등의 공직을 지냈고, 농회 부회장, [[조선식산은행]] 담역, 경북도 고아구제회장을 지내고 지역 교육계에 사재를 희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대구제사 감사를 맡는 등 기업인으로도 활동했으며 1919년 9월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의 각 도 대표 소집에 응하여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시국강연에서 경북도 대표로 참석했다.
          |제목 =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당수
         }}</ref> 사범 감시와 전향 공작을 위해 조직된 [[시국대응전선사보국연맹]]에서는 대구지부장을 맡았고, 조선인은 임명되기 쉽지 않은 대구보호관찰소 촉탁보호사로도 활동했다. 광복 이후인 [[1949년]] [[3월 21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기도 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과 기타 부문,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과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수록되었다.
  • 서수민 . . . . 15회 일치
          * 위 문서: [[PD(방송)|PD]]
         ||<rowbgcolor=#C0C0C0> [[이창명]] || → || '''서수민''' || → || [[유민(개그맨)|유민]] ||
         || '''출생''' ||<(> [[1972년]] [[2월 26일]] ([age(1972-02-26)]세), [[대구광역시]]→[[경북도]] [[포항시]] ||
         [[경북도]] [[포항시]] 출생[* 1박 2일 2016년 1월 31일 방송에서 [[유호진]] PD를 통해 언급됐다.]으로, [[한국방송공사|KBS]] 예능국 소속 PD다. [[1995년]]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를 졸업한 다음 KBS에 입사했다.
         유명 사진작가 조선희와는 같은 [[경북도]] 출신[* 조선희는 [[칠곡군]] 출신이다.]에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 동기라고 하며 연대 입학 후 만난 두 사람은 반지하방에서 자취하면서 룸메이트 생활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기획을 맡은 KBS2 드라마 '최고의 한방'의 포스터를 촬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청률]] 추이로만 보면 서수민이 PD를 맡은 기간의 순위가 개콘의 최전성기인 2003~2004년을 제외한 기간에 비해 대적으로 높았고,[* 실제 시청률은 조금 높아진 수준이지만 그 동안 [[지파]] 시청률이 하락하다 보니 시청률 순위만으로는 전성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CP를 맡은 이후 [[해피 선데이]]도 승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명한]] PD처럼 매니악한 팬들 성향에 맞지 않는 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실, 서수민이 2012년 11월에 승진할 수 있었던 근원이 개그 콘서트 덕분이기도 했고.--그리고 말아먹은 근원까지 제공해버렸지..--
         물론 단발적으로 호응이 좋은 코너를 가지고 성공했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호응을 얻기 힘든 것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시청자들이 질리게 만들었으니 매니악한 팬들만 질리게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다만 PD로서의 역량은 높지만 개그를 보는 눈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개그는 본디 "개그맨이 짜고 개그맨이 연기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개그를 선별하여 방송에 내보내는 개그 프로그램 감독으로서의 [[무능력한 사|역량은 무능하다 보는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은 역시 미디어 노출이 너무 잦다는 점. 용감한 녀석들에서 매주 박성광이 그녀를 디스하면서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데 이게 딱히 재미있는 드립들도 아니었어서 많은 비판을 들었다. 대개 개콘 연출자의 이름은 연말 시식에서 개그맨들이 수소감으로 OOO감독님께 감사하다는 정도로 듣게 되는데 매주 들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기에 나온 비판. 무한도전의 김태호, 1박 2일부터 지금까지의 나석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 얼굴이나 목소리가 공개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서수민은 그 과정조차 부자연스러웠다.
  • 식극의 소마/194화 . . . . 15회 일치
          * 연대식극(레짐 드 퀴진)은 양 진이 한 명씩 선수를 내 대결, 승자가 계속 싸워 먼저 선수가 떨어지는 쪽이 패배하는 룰.
          * [[사이바 죠이치로]]는 자신이 지면 정식집 유키히라를 폐업하고 [[나키리 아자미]]의 부하가 되기로 약속. 아자미는 기뻐하며 받아들인다.
          * 죠이치로는 이대로면 [[유키히라 소마]] 진의 완패라며 긴급 특훈에 들어간다.
          * 연대식극(레짐 드 퀴진). 학생 집단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식극 룰이다. 두 진으로 나뉘어 각자 선수를 내보내고 생존한 자들끼리 승부를 반복, 한 쪽 진이 전멸할 때까지 계속한다.
          [[사이바 죠이치로]]는 "거래재료"는 있다며 [[나키리 아자미]]에게 연대식극을 제안한다. [[타쿠미 알디니]]와 [[타도코로 메구미]]는 그런 룰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편 [[유키히라 소마]]는 대체 아버지가 말한 "거래재료"란게 무엇인지 신경쓴다.
          * 하지만 아자미는 차갑다. 이미 [[나키리 센자에몬]]에게서 총수 자리를 빼앗고 계획의 90%를 완료한 황. 그런 거래에 응할 "메리트"가 전혀 없다. 지금 반역자들을 처리하는 것도 "뒷처리"일 뿐, 계획의 완성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러자 죠이치로는 뜻밖의 미끼를 던진다.
          아자미는 이미 이긴 것처럼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선언한다. 고작 정식집에서 썩고 있던 죠이치로를 구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쿠미가 "이겼다는 듯이 말하지 마시죠. 우리들이 이길 테니까!"라고 찬물을 끼얹는다. 타도코로도 패배한 동료들을 떠올리며 "모두를 구하고 싶다"고 필승의 의지를 다진다. 기세가 오른 타쿠미가 소마에게도 "우린 하나가 되어 싸울 것, 그렇지 않냐"고 한 마디 권한다. 하지만 소마는 무언가 생각에 골몰해 있어 어 답한다.
          그것이 소마가 느낀 감이었다. 죠이치로는 아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자리에 앉으라며 예전 이야기를 시작한다.
          * [[도지마 긴]]은 타쿠미와 타도코로에게 연대식극 소식을 듣는다. 사실 도지마는 모든 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애초에 센자에몬과 죠이치로가 만나도록 주선한 것도 그이며 그 둘이 아자미에게 연대식극을 제안한 것도 그의 복안이었다. 죠이치로가 나서면 아자미도 승부에 응할 거라고 본 그의 계획. 십걸의 과반을 따내서 정권을 뒤엎는 것도 그가 구한 대로다. 사실 그들의 진급시험 자체도 계획 안에 있던 것.
          >그게 사이바 죠이치로다.
          * 그들이 아직 2학년 시절. 죠이치로가 또 바깥에서 일어난 분쟁 이야기를 끌고 온다. 죠이치로는 다른 연구회에서 일어난 분쟁에 은근슬쩍 끼어들어 식극에 참여, 최종적으론 자기들의 역을 넓히는 괴팍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지마는 그가 그런 결과적인 것 보단 승부에 끼어드는 거 자체를 즐긴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신도 승부를 즐기는 편이어서 결국 또 식극이 일어나게 된다. 후배이자 같은 기숙사였던 [[시오미 준]]도 거절하는데도 얼렁뚱땅 끌어 들인다.
          * 소마와 죠이치로 사이에서도 그 시절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죠이치로는 그때가 가장 즐거웠던 나날이라 말하면서도, 결국 고3 시기에 스스로 중퇴하고 학교를 나오게 된다. 소마는 그 이유를 묻는다.
  • 식극의 소마/205화 . . . . 15회 일치
          * 그렇게 센트럴 측과 헤어지고, 에리나는 처음 해본 반항의 향으로 대흥분 태. 다른 학생들을 종자취급하며 "내가 진정한 여왕이 되는데 협조해라"고 말한다.
          * [[도지마 긴]]은 [[사이바 죠이치로]]가 사라진 직후 침울해져서 대외활동을 중단하고 있었다.
          * 센트럴 측의 기차가 떠난 뒤 소마는 에리나에게 "드디어 말했구나"라고 말을 붙이는데, 에리나의 태가 이하다. 생애 첫 반항이 지나치게 자극이 됐는지 뭔가 폭주하고 있다. 에리나는 아드레날린 과잉 태가 돼서 "내가 현 십걸을 쓰러뜨리고 1석에 앉아 진정한 여왕이 되는 싸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소마를 포함한 학생들은 자신의 종자인 셈이니 광인줄 알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해댄다.
          * 하지만 소마는 불만이 많은데 정을 차지하는건 자신이라며 에리나와 티격태격한다. 소마는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를 동원해 뭔가 한 마디 해주라고 하는데 의외로 죠이치로는 평범하게 "에리나가 벽창호 아버지에게 대들 줄은 몰랐다"며 칭찬하는 투로 말한다. 에리나는 그제서야 진짜로 이 부자에게 감화된 걸지도 모르겠다고 마음 속으로 인정한다.
          * 소마는 이렇게 된 이 에리나에게 목숨을 거는 수밖에 없겠다며, 다른 학생들의 수첩을 모은다. 그 수첩을 에리나에게 넘겨주며 "우리들의 목숨, 너에게 맡긴다"고 말한다.
          * [[도지마 긴]]은 [[나키리 센자에몬]]에게, 이런 긍정적인 승효과까지 노리고 홍백전 팀을 짠 거냐고 묻는다. 센자에몬은 그런 신통력까진 없었다며 단지 에리나가 저 부자를 통해 뭔가 배우길 원했다고 말한다. 도지마는 그 말에 유키히라 부자를 다시금 돌아본다.
          * 도지마는 학생들에게 언급하진 않았지만, 죠이치로가 사라진 이후 그도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다. 항 괴식메뉴의 괴롭힘 대이던 [[시오미 준]] 조차 죠이치로가 사라진 충격을 받을 정도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도지마도 일류 요리인이었던 만큼 여러 레스토랑에서 초청을 받지만 어느 것 하나 응하지 않는다. 이러다간 도지마 또한 폐인이 될 것 같았는데, 그때 그를 일깨운 것이 센자에몬이었다.
          * 그로부터 몇 년 뒤. 토오츠키 리조트에서 근무하던 비서가 뜬금없이 "웬 남자가 도지마 씨를 찾는다"며 전화를 연결한다. 문도 모른 채 전화를 받는 도지마. 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소식이 두절됐던 죠이치로였다.
          * 그리고 시간은 흘러 한 달 뒤. 일반 학생들의 4, 5차 시험이 진행된다. 그 사이 눈 등으로 열차 운행정지가 다섯 번 정도 있었지만 일정은 차질없이 진행됐다. 소마 일행은 그러는 중에도 특훈에 전념했고 이윽고 최종시험,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센트럴과 반역자팀은 모두 레분토 섬에 도착.
  • 식극의 소마/221화 . . . . 15회 일치
          * [[메기시마 토스케]]의 컨셉은 "아프리칸 라면". 후배들은 혼란에 빠지나 심사의원들은 "세 어디에도 없는 라면을 만들려 한다"고 경탄한다.
          * [[안(식극의 소마)|안]]은 [[사카키 료코]]의 술을 먹고 만취할 정도로 술이 약했으나 "취할 수록 미각과 신경이 향되는 특이체질"이라 심사엔 향이 없다.
          * [[잇시키 사토시]]는 처음부터 흑막이고 [[사이바 죠이치로]]와 한 패라 당연히 합류, [[쿠가 테루노리]]도 그의 연줄로 참전이 결정.
          * [[유키히라 소마]]를 비롯한 반역자 후배들은 드디어 그의 실력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한다. 사실 1라운드에서도 기회는 있었지만 소마와 [[키노쿠니 네네]]의 격전에 주목하는 사이 볼 것도 없이 끝나있었다. [[요시노 유키]]와 [[미토 이쿠미]]는 어떤 라면을 보게될지를 놓고 고조된다.
          * 그렇게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결정된 메기시마의 2라운드 작품은... '''아프리칸 라면'''. 소마,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는 자신들이 들은게 맞는지 의심하며 서로 확인해 보지만 틀림없이 "아프리칸 라면"이라 말했다. 그게 대체 뭔가? 아프리카에 라면이 있긴 한가? 하긴 적인 린도는 악어가 주재료다. 이래서야 악어와 코끼리가 자웅을 겨루는 동물의 왕국스런 장면 밖에 연되지 않는다.
          * 후배들의 빈궁한 력은 심사의원들이 책임진다. 이스트와르와 샤름은 고추와 아프리카라는 키워드를 조합해 "이 세 어디에도 없는 라면을 창작할 생각"이라고 추측한다. 메구미가 어떤 요리가 될지 알거 같냐고 묻는데, 그들을 대신해 책임자인 [[안(식극의 소마)|안]]이 나서는데... 형편없이 비틀거린다. 주정을 부린다고 하는게 맞겠다. 헤롱거리면서 쓸데없이 "알려주길 바라냐"며 성가시게 군다. 샤름이 아까 마신 [[사카키 료코]]의 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심사의원 주제에 술에 터무니없이 약하다. 다행히 안은 특수체질이라 취할 수록 미각과 신경이 예민해져 심사에는 향이 없다고... 고 이스트와르가 주장한다. 말같지 않은 소리라 소마가 쉽게 믿지 않는다
          * 메기시마는 그녀의 조리가 예한 대로라고 중얼거린다. 그 말을 들은 린도가 발끈한다. 메기시마는 린도가 깔끔하게 잘 차려진 고추요리를 할리가 없으니 당연히 문답무용으로 대량 투입할 걸로 예했고 그래서 이쪽도 같은 "파워플레이"로 맞서는 거라고 말한다. 린도는 "나에 대해 다 안 다는 듯이 말한다"고 성을 내지만 곧 히죽거리며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인정하고 만다. 곧 그녀는 놀라운 박력으로 철냄비를 휘두르며 기름에 고추를 볶는다. 한편 메기시마는 준비한 고추를 절구로 빻아 페이스트 태로 준비. 모두 혼신의 힘을 쏟아붓는데 느껴진다. 소마는 이들의 싸움을 "초중량급의 싸움"이라 묘사한다.
          >사실 [[사이바 죠이치로|죠이치로]]씨와 [[도지마 긴|도지마]] 셰프하곤 나도 한패였거든.
  • 신경림(대학교수) . . . . 15회 일치
         1936년 4월 6일, [[충청북도]] 중원군(現 [[충주시]])에서 태어났으며 1960년 [[동국대학교]] 문과를 졸업하였고 1955년에 문단에 데뷔하여 '낮달', '갈대', '석'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데뷔한 이래로 10여년 동안 시를 쓰지 않았으나, 1965년 겨울에 동료 시인이자 절친이었던 [[김관식]]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로 경하면서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생활 형편이 어려워 동네 학원에서 어 강사 일을 하면서 끼니를 이어야 할 지경이었다고도 한다.
         1973년 만해문학, 1981년 한국문학작가을 수하였다.
         한국 문학계의 원로인지라 과거 한국 문단에서 활동했던 여러 유명한 시인과 작가들과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그 중에서는 [[천병]]이나 [[김관식]], [[조태일]], [[민병산]], [[황석]] 등이 있다. 특히 천병이나 김관식 등은 서로 ~~육두문자~~구수한 말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했으며 세 사람이 하나같이 알아주는 주당들이라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여러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전에 [[일제강점기]] 시기에 겪었던 어린 시절의 일화나 문단에서 사귀었던 여러 문학가들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오늘날의 시점으로 봐도 심히 기이한 각종 [[기행]](...) 등을 재미난 입담으로 다룬 수필집을 내어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수필집과 회고록을 종합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자신의 시 중 하나인 <파장>의 한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다.]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하기도 하였는데 신경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특히 기행에 있어서는 당대 문단의 1,2위를 다투던 천병이나 김관식의 일화는 배꼽을 잡게 할정도로 웃기고도 기이하다(...). 한편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학창시절을 다룬 파트에서는 당시의 어수선한 사회은 물론이고, 자신이 저질렀던 비행이나 창피스러운 일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소개하고 있어 이 역시 재미있다. 중학생때는 [[백석]]의 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시인 [[고은]]과 절친한 사이다. 고은이 만든 진보 문학 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고은을 보좌하며 행동대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1989년에는 고은과 함께 방북을 추진하여 판문점으로 가다가 경찰에게 저지당하여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또 '고은 문학의 세계' 등의 저서를 통해 고은의 업적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작업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빼도박도 못 하는 신경림의 흑역사.
  • 원피스/824화 . . . . 15회 일치
          * 불이 채 꺼지지도 않은 태에서 태풍에 휘말린다.
          * '''그 대는 캡틴 키드. 걸레처럼 박살나서 감옥에 갖혀 있다.'''
          * 며칠 후, 빅맘 해적선에 있는 디는 빅맘의 부하 타마도 남작의 회유를 듣는다.
          * 디의 아버지는 "제르마 66"과 함께 빅맘해적단 산하로 들어가길 희망하고 있다.
          * 디는 아버지를 "개자식"이라 부른다.
          * 빅맘은 디의 요리실력을 높이 사고 있는데, 정작 디는 '''"이 손은 동료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한 것"'''이라며 정색한다.
          * '''디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환호한다.'''
          * 결혼 대 "샬롯 푸딩"
         - 디. 타마고 남작의 회유를 거절하며... 근데 이렇게 멋진 대사를 해놓고 샬롯 푸딩의 사진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좋아한다.
          * 카이도는 일종의 조울증 태인 걸로 보인다.
          * 디는 의외로 정중히 대우받고 있다.
          * 예대로 디는 아버지와 사이가 아주 안 좋다.
  • 은혼/624화 . . . . 15회 일치
          * 그러나 [[사카타 긴토키]]와 협력해 순식간에 황을 반전, 신라 부대를 뿌리치고 역으로 베어버린다. 그와동시에 긴토키는 소타츠를 처리.
          * 예에 없던 반격에 신라 부대는 싱겁게 쓰러지기 시작한다. [[도로미즈 지로쵸]]는 선봉을 날리며 다가오는 적들을 쓸어버린다. 그런데 연거푸 베어나가는 와중, 신라의 지휘관 [[소타츠]]는 동포의 시체를 방패막으로 삼으며 지로쵸를 노린다.
          * 그때 소타츠의 칼날이 깨진다. 완전히 묶였다고 생각했을 지로쵸의 사지가,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지로쵸는 달려드는 신라 대원 둘을 찔러 죽인다. 지로쵸를 묶고 있는 시체 사이에서 뻗어나온 팔이, 목검으로 시체들을 꿰뚫고 소타츠의 칼을 깨뜨린다. 신라 부대 사이엔 [[사카타 긴토키]]가 끼어들어 있었고 둘은 힘을 합쳐 포위를 풀고 소타츠에게 중까지 입힌다.
          * 대열이 흐트러지고 신라 부대가 당황하는 사이 지로쵸는 신라의 부대원들을 일거에, 그리고 긴토키는 비틀거리는 소타츠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인다.
          * 지휘관이 쓰러지자 신라 부대는 원통해하면서도 퇴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승리의 일각을 담당한 카츠오는 "우주제일의 야쿠자" 지로쵸의 힘을 잘 보았냐고 과시하며 자신도 은근슬쩍 "우주 제일의 7 대 3 가르마"라고 포장하지만 가구라가 가차없이 태클을 건다. 가구라는 이한 대항심을 발휘해 소타츠를 쓰러뜨린게 자기네 대장이니 해결사는 곧 "우주제일 야쿠자 해결사"라고 주장한다. 신파치는 언제 야쿠자가 됐냐고 태클에 태클을 거는 직업정신을 발휘한다.
          카츠오가 격하게 반발하지만 지로춍은 지로춍이라 부르지 말라고 할 뿐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카츠오는 이런 취급에도 굴하지 않고 레귤러나 되는 양 회 파트로 진입한다. 원래 그도 가부키쵸에서 설치던 애송이였던 모양이지만 지로쵸에게 박살나고 그 휘하로 들어간 과거가 있었다.
          >'''네놈의 회, 필요해?'''
          질질 늘어질게 뻔한 회을 단칼에 쳐낸 지로쵸. 회 속에서 회을 잘라내는 신기술을 보여준다. 카츠오는 지난 주에 두목은 잔뜩 회해 놓고 너무하다고 투덜댄다. 아무튼 그가 그날부터 지로쵸를 위해 충성을 바치고 그의 부재기간 동안 조직을 이끌어온 것이 사실인데 부두목 자리를 양보하라는 거냐고 반발한다. 그러자 지로쵸도 "애초에 그런 약속 안 했다"고 진실을 밝힌다. 하지만 피라코는 쉽게 물러서지 않고 언젠가 지로쵸가 "너라면 부두목 노릇도 충분히 한다"고 한 말을 끄집어 내서 물고 늘어진다. 지로쵸는 딸을 야쿠자 시키는 아버지가 어딨냐며 만약에 그렇다는 말이었다고 발뺌한다.
          * 이 개판을 지켜보던 긴토키는 식인이나 된 것처럼 "해방군을 몰아내도 꼬라지가 이래서야 마을은 평화롭지 못하겠다"고 입바른 소릴한다. 지로쵸는 자신이 죽으면 이 마을이 얌전해진다는 말이냐며 비웃는다.
          * 다음 전장을 향해 달려가며, 지로쵸는 [[테라다 타츠고로]]의 유언을 떠올린다. 오토세와 마을을 부탁하는 타츠고로를, 지로쵸는 꿎꿎이 데리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도 부이 심했고 둘의 무게를 지탱할 수는 없었다. 타츠고로는 부축되면서도 그 느린 발걸음에 농담을 던진다.
  • 은혼/644화 . . . . 15회 일치
          * [[다카스기 신스케]]는 [[귀병대]] 동지 [[다케치 헨페이타]]와 [[카와카미 반사이]]의 희생으로 히노카구츠치의 중추 시스템을 파괴한다.
          * 시스템이 파괴되자 히노카구츠치에 축적됐던 에너지가 역류하며 해방군 모선에 치명적인 손을 야기하고 곧 폭발할 지경에 이른다.
          * [[무츠(은혼)|무츠]]가 몸을 날려 다츠마를 구하고 치명을 입는다. 가츠라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는 엔쇼와 격돌하나 엔쇼는 뜻밖에 강자.
          * 엔쇼는 자신이 있는 이 해방군이 전멸한다 한들 달라지는건 없으며, 히노카구츠치 발사가 불가능하다면 모선을 지구에 처박아 같은 결말을 낼 거라 선언한다.
          * 해방군 모선 아메노토리후네에 돌입한 [[귀병데]]가 전멸하고 동지였던 [[다케치 헨페이타]]와 [[카와카미 반사이]] 마저 희생시킨 [[다카스기 신스케]]는 그들의 유지를 받드는 일념으로 [[키지마 마타코]]와 결사의 돌격을 감행, 히노카구츠치의 시스템룸에 진입한다. 신스케가 시스템 유닛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고 있을때, 방어병력들은 발악하는 심정으로 다리를 파괴하고 신스케도 추락한다. 그러나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 적 병사의 바주카를 무너지는 잔해에 쏘고 그 후폭풍으로 중추 시스템에 접근한 신스케. 병사들은 중추 시스템이 파괴되면 해방군만이 아니라 이 배 자체와 귀병대, 양이지사 일행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소리친다.
          * 신스케가 시스템 유닛에 칼을 꽂았다. 낙하하는 힘을 그대로 실어 유닛에 세로로 거대한 자을 새긴다. 시스템이 파괴되자 히노카구츠치의 막대한 에너지는 갈 곳을 잃고 열려진 틈새로 뿜어어져 나갔다. 그 빛을 방어병력들과 마타코도 볼 수 있었다. 그 빛에 감싸지면서.
          이미 양이지사 일행의 습격으로 괴멸 지경에 이른 모선의 통제실에서는 뜻밖의 대폭발마저 감지되면서 공황태에 빠졌다. 히노카구츠치에 있던 에너지가 폭주, 역류를 거듭하면서 함 전체의 구석구석을 파괴했다. 이미 함내는 파악할 수도 없이 많은 유폭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게 뜻하는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 보고는 스피커를 통해 통제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의 귀에도 들렸다. 신스케의 성공을 뜻하는 낭보. 그러나 동시에 비보이기도 했다. 다츠마는 아무리 악운이 강한 그들이라도 무사히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그런 각오가 없인 베지 못할 대였기에, 신스케는 자진해서 그 역할을 맡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 기분을 부딪힐 수 있다면 누구든 관없어.
          * 엔쇼가 무기를 숨기고 있다. 양이지사들의 통한의 실수였다. 엔쇼의 라이트세이버는 사정거리가 당했고 고지를 잡고 있는 다츠마를 저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너무 방심했을까? 엔쇼의 기습이 너무 유효적절했던 걸까? 그의 칼날이 다츠마를 꿰뚫는다. 가츠라가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한 사람이 희생된 후였다.
          * 엔쇼의 무기가 통적인 라이트 세이버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양이지사 부대의 집중공격이 이어졌지만 엔쇼가 무기를 넓게 휘둘러 총알을 튕겨냈다. 엔쇼가 조작하자 빛의 칼날이 여러 개의 탄환으로 분산되면서 양이지사 부대로 쏟아졌다. 엔쇼는 이 기술로 혼자서 부대의 집중사격과 같은 화력을 내고 있었다. 최후의 진격만 앞두고 있었던 양이지사 부대가 탄환을 피해 엄폐했다.
          * 엔쇼의 공격이 끝남과 동시에 가츠라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가 뛰어들었다. 엔쇼는 라이트 세이버를 두 자루로 나눠서 대응했다. 2 대 1의 황도 그를 위축시킬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가츠라, 드라고니아의 파공세를 가볍게 막고 역으로 두 사람을 수세로 몰아붙였다. 그는 양이지사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 엔쇼는 가츠라와 드라고니아의 사이에서 양쪽을 대하다가 칼날을 타고 가츠라의 머리 위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가츠라를 공격해 두 사람을 벽으로 몰아세우고 칼날을 탄환으로 전환, 두 사람에게 쏟아부웠다. 탄환이 일으킨 먼지가 걷히고 나자 드라고니아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그는 기꺼이 방패가 되었다. 여섯발이나 되는 흉탄을 견뎌내고 가츠라의 안전이 확보된 뒤에 서서히 무너졌다.
  • 이동찬(기업인) . . . . 1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기업인/목록)]
         1922년 4월 1일 [[경북도]] [[포항시|일군]]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코오롱그룹]] 창업주이자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원만(1904)|이원만]](1904년~1994년)이다. [[와세다대학]] 전문부에 입학하고 1944년 1월 조선학도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하였다.
         이 무렵, 이동찬은 코오롱그룹을 기업공개(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주식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코오롱그룹의 주주가 된 장자와 친분을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장자와 식사도 자주 하고 골동품 구경도 하였다. 참고로 이동찬의 취미는 골동품 수집이었다. 장자와 친해지면서 1982년 5월경 이동찬은 장자에게 코오롱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코오롱건설을 팔려고 하였다. 그런데 팔기 직전 장자가 검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바람에 다행히 이동찬은 [[장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기소되는 화를 면하였다.
         수 경력으로는 1984년 제16회 한국의 경, 2003년 제3회 서 등이 있다.
  • 이동흡 . . . . 15회 일치
         '''이동흡'''(李東洽, [[1951년]] [[1월 27일]] [[경북도]] [[대구시]] ~ )는 [[대한민국의 헌법재판관]]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경북도]] [[대구시]]의 [[고성 이씨|고성]](固城) 집안에서 [[1951년]] [[1월 27일]]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합격하여 5기 [[사법연수원]]과 군 법무관을 마친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종교는 [[불교]]이다.<ref>허신열,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701495&sid=E&tid=1 박근혜 인사에 불교계 민감반응], 내일신문</ref>
         * [[대전고등법원]] 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9년 7월 30일에 1994년 2월부터 1998년 2월까지 퇴출된 [[충청은행]] 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경이 부실한 서우주택건에 368억원, 경원건설에 40억원을 부당하게 대출하고 대지 200평과 현금 2000만원 등 1억 6천여만원을 사례금으로 받아 구속된 전 충청은행 은행장 윤은중에 대해 징역 3년 추징금 6천만원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징역2년 6월 추징금 60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7월 31일자</ref>
         * [[대전고등법원]] 특별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9년 12월 13일에 시아파트를 분양받고 3년이 넘도록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지 않아 과징금을 부과받은 이모씨 사건에서 1995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부동산 실명제법 제10조 제1항에 대해 "법률은 탈세 행위를 막아 부동산 거래를 정화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음에도 탈법의 의도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까지 과중한 금전적 부담을 주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121400329126006&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9-12-14&officeId=00032&pageNo=26&printNo=16930&publishType=00010 경향신문 1999년 12월 14일자</ref>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1년 5월 31일에 합헌 결정했다.(99헌가18)
         * [[서울고등법원]] 특별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7일에 무학이 [[공정거래위원회]]를 대로 낸 대선주조 지분에 대한 매도를 요구하는 시정조치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7702]</ref> 10월 28일에 돈을 주고 청소년과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신공개 처분을 받은 정모씨(29)가 "범죄사실이 알려지면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다"며 [[청소년보호위원회]]를 대로 낸 신공개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0091305]</ref> 2005년 1월 5일에 2002년 6월 29일 발생한 [[서해교전]] 직전에 대북정보를 지나치게 변형 보고하고 "기무사가 표적 조사했다"고 주장하여 비밀누설과 명예훼손, 품위유지위반 등을 이유로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린 것이 부당하다"며 한철용 소장(예비역)이 국방부장관을 대로 낸 정직처분취소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4&aid=0000015524]</ref>
         * [[서울고등법원]] 선거 전담 재판부인 형사10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3월 22일에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03년 9월 선거구 아파트 조기축구회 창단식에 참석해 고사에 현금 20만원을 기부하고 같은해 12월 제주도에서 열린 이장단 단합대회에 두차례 참석해 1100만여원 당의 음식값과 술값을 후배를 통해 지급하여 기소된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이장단 단합대회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하여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19344]</ref> [[민주노동당]]을 공개 지지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2년이 선고된 정용천 전국공무원노조 수석부위원장에 대해 징역6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51]</ref> [[열린우리당]]을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시스템클럽]]에 게시하여 1심에서 벌금 50만원이 선고된 군사평론가 [[지만원]]에 대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519374]</ref> 3월 29일에 [[백원우]] [[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해 "경선 당시 인쇄물을 배부한 대은 입당 원서가 지구당이나 중앙당에 제출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진정한 의미의 당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521828]</ref>
         *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BBK 사건' 진규명을 위한 '이명박 특검법' 헌법소원에 대해 참고인 동행명령제를 제외한 나머지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김희옥 재판관과 이동흡 재판관 2명만 법 전체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다.<ref>미디어오늘 2009년 10월28일자 '재판관 성향으로 본 미디어법 위헌판결'</ref>
  • 이수빈 . . . . 15회 일치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경북도]] [[성주군|성주]]
         |배우자 = 정
         |웹사이트 =
         그는 [[이건희]] 그룹 회장이 폐암수술 후 정밀진단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2006년]] [[1월]] [[삼성그룹]] 신년하례식 등 공식 행사에서 부재중인 이건희를 대신해 행사를 주관하는 등 그룹을 대표하는 역할을 해 왔다.<ref name="gidae0">[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407534&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삼성의 새 얼굴'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은 누구?] SBS 뉴스 2008.04.22.</ref> 2014년 이건희의 입원과 2017년 이재용의 구속 등으로 삼성생명의 회장으로서 공석 중인 삼성그룹 총수 대행과 삼성전자 회장 직무대리를 맡아보았다. [[경북도|경북]] [[성주군]] [[월항면]] 출신.
         * [[미국]] [[하버드 경대학원]] 최고경자과정 수료
         == 수 경력 ==
         * [[1996년]] 대한민국기업문화
         * [[1998년]]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
         [[제조]]와 [[금융]] 분야를 두루 경험한 [[삼성]]의 간판 경인으로 입사한 지 17년 만에 대표이사가 되는 등 초고속 승진의 신화라는 평이 있다.<ref name="gidae0"/>
         |후임자 = [[이건희]]<br/>[[이재용 (기업인)|이재용]](사실)
         [[분류:삼성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이병철]][[분류:하버드 대학교 경대학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성주군 출신]][[분류:이건희]][[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성주중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억만장자]]
  • 장윤정 (미스코리아) . . . . 15회 일치
          | 출생지 = {{KOR}}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시]]
          | 배우자 = 김
          | 웹사이트 =
         1987년 18살의 나이로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힌 후 1988년 [[미스 유니버스]] 2위에 오르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90년대 각종 방송 프로그램의 MC로 활약하다 1999년 모든 방송 활동을 접고 연예계를 떠났고, [[미국]]으로 건너가 두 딸을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16년 만인 2016년 화 《[[트릭 (2016년 화)|트릭]]》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82667 ‘87년 전설의 미스코리아’ 장윤정, 잠정 은퇴 후 16년 만에 화 ‘트릭’으로 돌아오다] 스포츠동아. 2016년 06월 22일</ref>
         1994년 은행원과 [[결혼]]했지만 3년만에 [[이혼]]하였고, 그 후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15살 연의 [[재미교포]] [[사업가]] 김훈과 [[재혼]]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2976972 미스코리아 장윤정 15년만 화 '트릭' 으로복귀] 세계일보. 2015년 12월 17일</ref> 장윤정은 2016년 9월 27일 [[TV조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사업으로 미국을 자주 왕래하는 남편이 미국에 가자고하여 미국에서 살게 되었고 살다보니까 10년 정도 거주를 하게 됐다"고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이 남자가 언제까지 나한테 못되게 구나 두고보자라는 생각으로 오기로 결혼을 했다”라며 무뚝뚝한 남편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1&aid=0002891291 미스코리아 장윤정 “15살 연 남편 김훈, 나한테 무심해 매력 느꼈다”] 서울경제. 2016년 09월 28일</ref>
         === 화 ===
         * [[2016년]] 《[[트릭 (2016년 화)|트릭]]》... 원장(지) 역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7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진]][[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
  • 장헌식 . . . . 15회 일치
         |장=장헌식 : 중추원 칙임참의를 20년 간 역임한 일제의 충견 (장세윤)|인용문=이 직책은 3·1 운동 후 한국인들을 감시하고 민심의 동향을 정탐하기 위해 총독 사이토 마고로(齋藤實)가 특설한 직책으로 일종의 특무요원이라 할 수 있었다.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사회주의]] 사이 널리 퍼지고 노동 운동이 활발해지자 이를 탄압하기 위해 설립된 친일 자본가 단체인 [[동민회]]에 가담했으며, 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또다른 친일 단체 [[대화동맹]] 결성을 조종했다는 증언이 있다.<ref>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 반민특위 조병 공판조서 (제1회) 중 조병의 수기 (1949).</ref> [[1924년]] [[12월 1일]] [[전라남도지사]]로 부임하였다. 전남 지사직에서 물러난 1926년부터 1945년까지 중추원 칙임참의를 7회에 걸쳐 중임하였다.<ref name="실록친일파" />
         [[1930년]]대 [[청주]]에 개교 예정인 청주업고등학교(淸州商業高等學校)의 건립과 개교에 관련하여 건립, 시설비용이 부족하여 개교가 지연되었다. 그는 학교 개교비용을 부담하고 자신의 토지를 기증하였다. 1935년 청주고는 사립 학교로 개교가 확정되고, [[청주]]시민 대표 방인혁(龎寅赫), 민은(閔泳殷) 등은 2월 20일 그를 찾아가 교장에 취임해줄 것을 부탁하여 승낙했다. [[1935년]] [[3월 1일]] 청주업고등학교(淸州商業高等學校) 교장에 취임하고 그해 [[5월 7일]] 개교식과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1935년 9월 27일 경성도시계획연구회 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피선되었다.
         1935년 11월 27일 김천의 김천고등보통학교의 설립자 [[최송설당]] 기념 동을 건립할 때 3원을 기부하였다.
          |제목 =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당수
         [[1946년]] [[1월 3일]] 이왕직 재산 관련 공금횡령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이때까지도 출국하지 못한 [[일본]]인 이왕직 회계과장 사이토 치로(齋藤治郎)와 함께 체포,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ref name="jigga">"전 李王職 장관인 張憲植 수감명령", 자유신문 1946년 01월 03일자, 2면 10단</ref> 그는 반성의 기미가 없었고, 과거 일본 정치하에서 있었지만 그래도 고관대작으로 있었는데 어찌하겠느냐고 대응하였다. 검찰관들은 분노했고 방청석을 분노하게 했다.<ref name="jigga"/> [[1월 16일]] [[보석금]]을 내고 보석출감하였다.<ref>"張憲植 보석출감", 자유신문 1946년 01월 16일자, 2면 5단</ref>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으며 부인인 [[임정재]]도 친일 여성 단체인 [[애국금차회]]에서 활동했다.
         ** 사위 : 이름 미, [[민대식]]의 아들
         |전임자 = [[원응]]
  • 절대가련 칠드런/456화 . . . . 15회 일치
          * 마기의 계획은 바벨을 도심지로 유인해서 지나치게 위험한 행동을 못하게 막고 병력이 쿄스케에게 집중될 사이 돈될 만한 물건들을 털어가는 것.
          * 현장에 도착한 바벨 요원들. 고렌쟈 분위기가 나는 팀입니다. 리더로 보이는 에스퍼가 자기 소개를 하려고 하지만 인정사정 없는 빅 매그넘이 날아온다. 머슬은 비겁하단 말을 듣지만 요원들을 엑스트라 취급하며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그래도 이들은 당시 바벨에선 가장 강한 레벨6 에스퍼인데 판도라에겐 전혀 대가 되지 않았다.
          * 현장의 황을 보고 열받은 키리츠보 타이조. 나라에 "레벨7"이 없는걸 한탄하며 울부짖는다. 언제쯤이나 레벨7이 태어나겠냐며 태어나기만 하면 보물처럼 예뻐해주겠다고 사무치는 말투로 외친다. 이때부터 국장의 레벨7 사랑이 시작된 듯.[* 사실 그 당시 레벨7이 존재하긴 했다. 갓 태어난 신생아이거나 태아 태였을 뿐. 아카시 카오루가 생후 2일,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는 아직 모친 뱃속에 있던(각각 5개월과 3개월 째) 태아 태였다.]
          * 바벨의 에스퍼들이 속속 모여든다. 여기까지도 판도라 일행이 예한 바.
          * 모든 것은 마기 시로의 작전이었다. 마기는 효부 쿄스케를 데리고 현장에 도착. 효부는 곧장 바벨의 에스퍼들 한 가운데로 뛰어든다. 바벨은 당연히 효부의 얼굴을 알아보고 이목이 그에게 집중된다. 효부는 황 돌아가는 것만으로 어떤 계획인지 간파하고 감탄한다.
          * 그때 효부와 마기를 따라오고 있었던 신형 ECM이 현장에 나타난다. 이를 예치 못했던 바벨의 요원들은 무력화. 판도라측은 연막탄을 뿌리고 잠시 모습을 숨긴다.
          * 마기의 작전은 이렇다. 장소를 도심지로 옮긴 이 아무리 츠보미 후지코라도 과격한 조치는 할 수 없을 것이고 적당히 싸우다 안전하게 잡혀주면 되는 것. 그리고 바벨의 전 병력이 이곳에 집중된 동안 나머지 판도라 일행은 박물관 등 돈 될만한 물건이 있을 곳을 털어서 앞으로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다. 일단 효부가 잡혀간 동안은 판도라에 대한 감시도 소홀해질 테니 이후 판도라의 활동은 아주 여유로워 지게 되는 것.
          * 효부는 이의 계획을 "머슬이나 스모키도 떠올리지 못한 대담한 계획"이라고 칭찬한다. 효부는 판도라를 마기에게 맡기며 지금까지 "시로"라고 불렀던 호칭을 "마기"로 고친다. 마기는 호칭 같은건 아무래도 좋다고 하지만 이것은 효부가 그를 파트너이자 오른팔로 인정한다는 중요한 증거다. 효부는 그의 성장을 대견해하며 머리를 쓰다듬는데 마기는 조직을 맡길 거면 이런 짓 좀 하지 말라고 반발한다. 그러면서도 효부가 호칭을 고쳐준 탓인지 자신도 "효부"라고 부르던 호칭을 "소령"으로 고치고 깍듯한 존댓말을 쓰기 시작한다.
          * 일단 현장의 황은 역전, 다수의 에스퍼에 효부가 포위되었다. 후지코는 이정도 인원이면 효부라도 절대 도망칠 수 없다고 장담하며 포위망을 좁힌다.
          * 그러는 사이 마기일행은 차량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효부는 헤어지기 전 "네 덕에 내게 집이라 부를 곳이 남아있다"고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 바로 마기 덕에 안심하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됐으니 반대로 마기가 방황하는 순간이 되면 언제든 "시로"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한다. 그 자신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겠다며.
         표지는 유년기의 사카키 슈지. 서플리먼트 4컷 내용을 의식한 것 같다. 4컷 에서 소개된 효부의 검거황은 "아카시의 탄생을 보러 갔다가 의사로 오인 당해 신나게 과로하고 지친 채로 후지코와 싸우다 도주, 숨어있다가 사카키에게 노출되는데 사카키가 그대로 후지코에게 신고했다"라는 황.
  • 절대가련 칠드런/464화 . . . . 15회 일치
          * [[미나모토 코이치]]는 [[츠보미 후지코]]가 이런 황을 예측 못했을리 없다고 보는데 실제로 바벨 내부는 텔레포트만 방해되고 있는 등 수한 점이 많다.
          * [[아카시 카오루]]는 자신에게 예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하게 불길한 예감을 받는다고 긴장한다.
          이것은 [[쿠모이 유리]]가 보여준 환. 이들은 모두 블랙 팬텀 산하의 경비업체에 소속된 용병들이다. [[효부 쿄스케]]는 신념도 뭣도 없이 황이나 이득에만 관심있는 녀석들은 최면에 걸리기 쉽다고 비아냥 댄다. 그러자 유리는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나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오빠]]도 세력을 키웠다."고 자조한다.
          * 이에 [[미나모토 코이치]]는 언제까지고 그렇게 두지 않는다고 한 뒤 후지코가 이렇게 쉽게 침입을 허용한 것을 두고 미심쩍어 한다. 아무래도 그녀는 이 황을 이미 예측하고 기다리고 있던 것 같은데. [[아카시 카오루]]가 [[노가미 아오이]]에게 공간파악 능력으로 문 너머를 살펴볼 수 없냐고 하지만, [[마츠카제 코우이치]]가 ECCM 장치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텔레포트 능력이나 공간파악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태. 효부도 재확인한 뒤, 의도적으로 일행의 퇴로를 막으려는 의도임을 짐작한다. [[후지우라 요우]]는 황이 어떻든 꼭 이기겠다고 다짐하면 퇴로 따윈 필요없다고 강경하게 말한다.
          * 일행이 잠시 정체된 그때 갑자기 후지코의 방이 열린다. 하지만 거기서 나타난건 관리관이 아니었다. 세뇌된 [[키리츠보 타이조]] 국장과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 미나모토의 예대로 관리관은 이 황을 예측한 건지 두 사람은 일행을 환하며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데.
          * 하지만 카시와기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느닷없는 전기충격으로 국장을 제압. 카오루가 재빨리 카시와기의 움직임을 멈춘다. 카시와기 본인은 세뇌를 이기지 못했지만 이 황에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유리가 최면으로 카시와기를 진정시키는 사이에 효부가 두 사람이 최면 외에도 레어 메탈에 의해 오염당했다고 판단하고 사카키가 혈청을 주사한다.
          * 일행은 두 사람을 방 안으로 옮기고 [[산노미야 시호]]가 혈청이 정적으로 레어 메탈을 정화시키는걸 확인한다. 하지만 두 사람을 여기에 방치할 수는 없다. 후지코가 오면 다시 감염될 것이기 때문. 하지만 텔레포트도 봉인된 태라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건 무리다. 효부는 여기서 이대로 후지코와 대결하자고 재촉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9화 . . . . 15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69th sense. '''속 (1)'''
          * [[카노 모미지]]는 [[효부 쿄스케]]가 [[마기 시로]]의 탈환에 실패하고 중까지 입은 것 때문에 [[후지우라 요우]]에게 화풀이를 하려다 소령에게 제지당한다.
          * 효부는 의식은 또렷하지만 마기에게 입은 치명 때문에 심장이 박살나 인공심폐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효부는 생각보다 큰 부을 입어 여전히 심장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 호의 의무실에서 제세동기를 끼고 누워있는 황.
          * [[마기 시로]]를 대신해 판도라를 추스르고 있는 [[카노 모미지]]는 어처구니 없는 참패에 분노한다. 마기의 탈환은 커녕 효부가 중을 입고 무력화된 최악의 황. [[후지우라 요우]]는 사과하며 한 대 정도는 맞아줄 생각이었지만, 모미지가 너무 진지하게 후려치는 바람에 죽을 뻔한다.
          효부는 모미지를 진정시키며 원래부터 자기는 유령같은 존재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농담을 던진다. 모미지는 열불이 터져서 그런지 블랙 팬텀이 운하는 블랙마켓에서 이식용 심장 같은건 당일배송이 없는지 알아본다.
          * [[머슬 오오카마]]가 효부의 부 소식에 사색이 돼서 달려온다. 효부에게 자신의 심장을 바칠 테니 써달라는 참 갸륵한 말을 하지만 역시 머슬이 하는 소리라 그런지 효부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거절한다. 머슬은 로비에트 정부가 블랙팬텀에 넘어갔는지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절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제 대사직도 없어진 자신이 조직에 헌신하는건 그런 것 정도라고 말하지만, 효부는 그 제안에 심전도가 떨어질 정도로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결국 보류된다.
          * 잠시 뒤, 모미지로부터 이황을 전달받은 [[아카시 카오루]]는 어떻게 초조하지 않을 수 있냐고 방방 날뛴다. 그녀와 칠드런 일행은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의 [[도서관]]에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산노미야 시호]]나 [[노가미 아오이]], [[쿠모이 유리]], [[마츠카제 코우이치]]는 비교적 침착한 모습이다. 하지만 카오루는 고함을 치면서 이렇게 된 이 힘으로 바벨을 습격하자는 과격한 말을 하다가 시호가 쏜 바람총을 맞고 다운된다. 시호는 그런 결단은 블랙팬텀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라고 정론을 펼친다.
          * 그래도 카오루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하는데, 츠보미 문서와 [[우츠미 세이시로]]의 사념이 그녀를 다독인다. 츠보미 문서는 이럴 때를 대비해 자신이 있는 거라며 카오루를 진정시킨다. 하지만 황이 막막한건 사실이다. 마츠카제는 미나모토가 "판도라의 전력을 써라"고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 우츠미는 효부가 이런 황에서 너무 몸을 사리는게 아닌가 의문스러워한다. 그가 기억하는 효부는 적에게 당하고 얌전히 있을 타입이 아니기 때문. 그러자 츠보미 문서는 길리엄의 정신이 "어떤 의식"에 닿지 않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현재의 효부는 가족이나 원한 이으로 어떤 존재에 의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효부는 자신과 링크된 길리엄이 그 존재를 눈치채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 존재는 물론 파괴의 여왕, 아카시 카오루의 미래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카오루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고 "그게 누구냐"고 묻고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74화 . . . . 15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74th sense. '''속 (6)'''
          * [[츠쿠시 미오]]가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를 데리고 [[미나모토 코이치]]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무단이탈, 그 미오 일행을 쫓아 [[히노 카가리]], [[타마키 카즈라]], [[파티 크루]]도 이탈. 이들이 위기에 처하자 더 칠드런 일행까지 적의 함정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효부 쿄스케]]에게까지 전해진다. 사념체 형태로 겨우 운신만 하던 효부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본체의 인공심폐가 일시 정지한다. 황을 보고한 것은 [[쿠구츠 타카시]]. [[우츠미 세이시로]]는 효부의 태에 악향이 갈 줄 알고 전달을 반대했지만 쿠구츠는 "어떻게 그러겠냐"며 강행한다.
          효부의 태가 나빠진 것도 잠시, 그는 곧 일행의 황을 점검한다. 현장에 도착한 더 칠드런이 구조활동을 시작했고 혹시 모를 황에 대비하기 위해 인근에 [[카노 모미지]] 일행도 대기하고 있다.
          * 모미지, [[머슬 오오카마]], [[후지우라 요우]] 등이 백업팀으로 구성. 모미지는 여기까지 온 이 반드시 일행을 무사히 데려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현장의 황을 파악한 더 칠드런은 곧바로 미오가 싸우고 있는 현장으로 텔레포트 한다.
          * 파티는 겉 보기엔 멀쩡하지만 카가리의 발화 능력으로 인해 능력을 엄청나게 소모한 태. 카즈라는 모든 면에서 양호했지만 카가리는 아직도 가랑이의 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리타이어 태다. 일행 중에선 [[마츠카제 코우이치]]만 그 심정을 이해한다. 마츠카제는 원래 목적이었던 미나모토와 [[사카키 슈지]]에 대해서도 확인하면서 이 시설의 모든 전말을 전달받는다.
          * 한편 카오루는 갓로봇에서 팀을 끄집어 내기 위해 접근한다. 그런데 콕핏을 개방해 보니 텅 비어있다. 이것도 속임수. 그때 마츠카제의 무전이 들어온다. 적측의 특무 에스퍼는 더 칠드런 일행의 도착과 함께 전원 철수했다. 이제 ESP전을 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 마츠카제의 예측대로 곧바로 형무소의 ECM이 풀가동되면서 카오루의 능력 조차 완전히 억제된다. 그 바람에 카오루가 추락하는데 비용 ECCM을 가동해도 출력에서 밀리는 황. 간신히 다치지 않게 착지하는 정도로 끝났다.
          * 도주한 [[블랙 팬텀]]의 특무 에스퍼들은 전투헬기를 타고 공으로 이동했다. 팀과 [[바렛 실버]], [[우메가에 나오미]], 더 하운드의 [[야도리기 아키라]], [[이누카미 하츠네]] 전원 탑승.
          * 팀은 그렇다쳐도 칠드런 일행이 부스트를 쓰는걸 허용할 수 없고 갓로봇의 원수도 갚아야 한다며 바렛에게 마무리를 맡긴다. 아키라가 ECM이 켜진 황에서도 가능하겠냐고 묻는데 바렛의 저격은 초능력과 무관한 재능. 바렛은 저격총으로 카오루를 겨누며 맡겨만 달라고 말한다.
  • 정대훈 (배우) . . . . 15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챔피언 (2018년 화)|챔피언]]》 (2018년) - 담배학생 역
         * 《[[연인들 (2008년 화)|연인들]]》 (2008년) - 소년 역
         * 《[[방과후 옥]]》 (2006년) - 버스 학생 역
         * 《엄마 찾아 삼만리》 (2005년) - 수 역
         * 《[[초승달과 밤배]]》 (2005년) - 민 역
         * 《[[웰컴 투 동막골]]》 (2005년) - 어린 부자 역
         * 《[[몽정기]]》 (2002년) - 민 역
         == 수 ==
         * [[2007년]] 제1회 공주 신옥 청년화제 남자우수연기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도복 (고려) . . . . 15회 일치
         '''정도복'''(鄭道復)은 [[고려]]시대 말기, [[조선]]초기의 문신이다. [[고려]] 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선, 시 등을 지내고 [[조선]] 건국에 참여하였으며 밀직제학, 한성부우윤,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으며 형 [[정도전]]이 암살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성주 유학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뒤 인녕부사윤에 이르렀다. 본관은 [[봉화 정씨|봉화]](奉化)이고 자(字)는 내지(來之)이고 호(號)는 일봉(逸峯)이다. 형부서(刑部尙書) [[정운경]](鄭云敬)의 아들이며, [[정도전]](鄭道傳)의 친 아우이다.
         고려 충정왕 3년(1351년) 주 삼판서 고택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선생의 나이 16세에 양친 부모님을 모두 잃고, 큰형인 삼봉 [[정도전]]이 묘막에서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우연히 처음으로 [[성리학]]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20세 때까지 4년여간 [[성리학]]을 수학하였다. 이후 진사시(進士試)에 올랐으며, 우왕 11년에 지공거 염국보(廉國寶)와 동지공거 포은 [[정몽주]]가 주관한 과거에 제11위로 입격하였다.<ref>당시 우현보의 아들 우홍명(禹洪命)이 장원급제하고 함부림(咸傅霖), 변계량(卞季良), 한덕(韓尙德), 박석명(朴錫命), 권원(權遠), 김자지(金自知), 이맹균(李孟畇) 등 기라성 같은 인물 33인이 급제한 과거에서 그는 제11위였다.</ref>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공양왕 2년(1390년)에 승정원 좌승선이 되었다. 그 뒤 [[고려]]에서 시(常侍)에 이르렀다. [[1392년]] 형 [[정도전]] 등과 함께 조선 건국에 참여하였다. 조선이 개국 되면서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하는 정책을 폈으나, 아직 초창기여서 불교를 숭하는 구습이 그대로 성하고 있어, 선생은 유생들에게 큰형 삼봉선생이 지은 『심문·천답』과 『심기리』3편을 강석하는 등 불교의 폐단을 바로잡음에 양촌(陽村) 권근(權近)과 더불어 힘썼으며, 유학(儒學)을 진흥시키고 사회 기강을 잡는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다시 유배되는데 태종실록 태종 13년(1413) 7월 12일조에, “사헌부에서 2품 이으로서 외방(外方)에 있는 자의 죄를 청하는 계청(啓請)에, “2품은 외방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법이 있습니다. 검교(檢校) 한성 윤(漢城尹) 손가흥(孫可興)·박경(朴尙絅)·박후식(朴厚植)·고도관(高都琯)·윤사혁(尹思奕)·최함(崔咸)·여극해(呂克諧)·정도복(鄭道復)·전이성, 병마사(泥城兵馬使) 정과(鄭過) 등은 항 외방에 거주하니 심히 미편합니다. 청컨대, 고신(告身)을 거두고 다른 도(道)에 이치(移置)하소서.”라고 비난하였다.
         그 뒤 향리 주에 물러나 어버이 묘소아래 집을 마련하고 여년을 지냈으며 이후 그가 살던 곳을 한성부 판윤을 지낸 이가 살았다 하여 한성동(漢城洞, 현 주시 이산면 원리)이라 이름붙였다. 주에 신도비가 있으며, 모현사(慕賢祠)에서 향사(享祀)가 이어지고 있다.
         * 충정왕 3년(1351) 천(榮川)에서 태어나다.
         [[분류:봉화 정씨]][[분류:조선의 공신]][[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정세진 . . . . 15회 일치
         |학력 = [[성균관대학교]] 경대학원 경학 석사
         |훈 =
         |웹사이트 = {{트위터|saejinee|정세진}}
         |1992~1996||[[연세대학교]] 문학 학사
         |2009~2011||[[성균관대학교]] 경대학원 경학 석사
         |2017||KBS1||[[KBS 스페셜]] 오래된 기억, 6.15 남북정회담 ||내레이션||
         == 수 ==
         * 2009년 제10회 대한민국대전 MC부문 포토제닉
         * 2013년 제25회 [[한국PD대]] TV진행자부문 출연자
  • 정채진 . . . . 15회 일치
         '''정채진'''(鄭埰鎭, [[1932년]] [[4월 27일]] ~ [[2008년]] [[7월 26일]] , [[대구광역시|대구]])은 공무원이자, 시민사회 운동가이다. 검정고시 출신 관료로 일반 공무원 공채에 합격, 공무원 재직 중 다시 보통고시에 합격하였다. [[박정희]] 정권에서 [[대구직할시장]], [[경북도지사]], [[부산직할시장]]을 역임하였다.
         * 경북도 지방공무원 공개채용시험에 합격
         * 1958 : 경북도 내무국 지방과
         * 1976.10 ~ 1979.01 : 경북도 대구시장
         * 1982.05 ~ 1985.02 : 경북도지사
         * 1995 : 지방행정연구원 비임 연구지도위원
         * 2001.03 :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근위원
         최초의 고졸 검정고시 출신 장관, 도지사이기도 하다.
         |직책 = [[대구광역시장|경북도 대구시장]]
         |후임자 = [[이희 (1932년)|이희]]
         |후임자 = [[이희 (1932년)|이희]]
         |직책 = [[경북도지사]]
         {{경북도지사}}
  • 진격의 거인/83화 . . . . 15회 일치
          * 엘런은 불탄 아르민의 시체를 놓고 그때를 회한다.
          * 인간태지만 눈 주위의 거인화 흔적을 보고 그가 바로 짐승거인의 인간체임을 간파한다.
          * 짐승거인도 설마 이렇게까지 하리라곤 예 못했는지 괴물놈이라 중얼거리며 "무승부인 걸로 하자"며 퇴각한다.
          * 엘빈은 가능하다면 거인의 힘을 빼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중을 입은 자도 거인화를 통해 회복할 수 있으므로 유사시 히든카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 쟝이 이 사실을 언급한 것인데 한지는 적절한 황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 현재는 다른 일행의 황도 전혀 알 수 없고 다른 여유도 없는데다 그걸 노리고 시간을 지체할 경우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다는 이유.
          * 고민 끝에 한지는 미카사에게 시켜서 엘런과 아르민의 황을 확인하게 하고 리바이에게 약물을 받아오게 한다.
          * 그렇게 해서 엘런 쪽에 온 미카사는 밖의 황에 당황한다.
          * 코니가 추격하려 하지만 어차피 가스도 없는 황이라 한지가 제지한다.
          * 하지만 내장이 짓이겨지고 피도 부족해서 죽음이 확정적인 황.
          * 팬덤의 예대로 아르민과 엘빈 둘 중 하나만 살릴 수 있는 황이 됐다.
          * 코니는 무사. 사샤는 중이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다.
  • 진격의 거인/85화 . . . . 15회 일치
          * 그 옆에는 사샤 브라우스가 중을 입고 누워있다.
          * 사샤의 부을 알리 없었던 아르민은 놀라서 사샤의 태를 살핀다.
          * 기억이 왜곡된 아르민은 문을 모른다.
          * 그리고 엘렌에게 직접 황을 전달하도록 지시한다.
          * 어쨌든 황은 그렇게 정리되었다.
          * 자물쇠를 열려는 엘런. 하지만 뜻밖의 황이 이어진다.
          * 뜻밖의 황에 엘런과 미카사는 멍 때리고 있는데, 리바이는 "엘빈의 감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며 샅샅이 조사하라고 지시한다.
          * 미카사가 책에서 "열쇠 구멍"을 찾아낸다.
          * 나일은 그때는 그냥 비약적인 생각이라 웃어 넘겼지만, 레이스 왕가의 진실이 밝혀지고 나서는 그럴 수가 없는 황이 되었다.
          * 그 안에서는 한 장의 "초화"가 나온다. 이 초화는 사람이 손으로 그린 거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며 뒷면엔 그리샤 예거의 글씨로 메시지가 적혀 있다.
          * 짐승거인 일행과 그리샤 때문에 벽 밖에도 인류가 살고 있다는 것 자체는 확인 되었지만 벽 안보다 발달된 문명을 유하며 "우아"하게 살고 있다는건 뜻밖의 전개.
          * 거인에 대해서도 보다 폭넓은 추론이 가능해지는데, 레이스 왕가의 거인화 활용이나 일반 거인 조종이 어설픈 수준인데 비해 짐승거인은 거인화 태에서도 언어를 구사하며 거인을 조종하는 능력도 훨씬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 과거에 두 인류 진이 거인을 가지고 전쟁을 했고, 거기서 패한 쪽이 거인을 조종해 벽을 쌓고 그 안에 틀어박혔을 거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 진격의 거인/90화 . . . . 15회 일치
          * 그것은 그리샤가 [[프리다 레이스]] 앞에 나타난 당시의 황. 엘런은 왠지 분노한 표정을 짓는데.
          * [[엘런 예거]]와 [[미카사 아커만]]은 프록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엘런이 대체 아르민의 뭘 아냐고 묻자 프록은 이번에도 거침없이 대답한다. 비록 자기 소꿉친구도 아니고 친한 사이도 아니라 그 개인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아르민이 왜 살아남았는지는 안다는 것이다.
          프록은 더이 제지 받지도 않고 마음껏 떠든다. 앞으로는 자기 같은 겁쟁이가 실수로 들어오지 않도록 신병들에게 사실을 말하라고 빈정거린다. 그리고 이제 엘빈 단장도 없는데 뭘 어떻게 할 거냐고, 잔인할 정도로 날카롭게 지적한다. 자기는 비록 피래미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피래미라도 평가할 권리는 있다면서.
          항 달변가였던 장도 말문이 막힌다.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아르민이 프록의 말이 맞다고 입을 연다.
          >황을 바꿀 수 있는건... 내가 아니야.
          * 어떻게 보면 이 황을 만든 장본인인 엘런은 단호하게 "그런걸 어떻게 아냐"고 부정한다. 올바른 선택이 뭔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엘런은 아르민에게 애초에 벽 밖에 뭐가 있는지 보긴 했냐고 묻는다.
          * 대화가 단절된 사이 리바이가 다가와서 의전이 시작될 시간이라고 알려온다. 일행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왕 앞으로 나가 의식을 거행한다. 히스토리아는 여왕으로서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훈장을 걸어준다. 처음으로 한지에게 목에 훈장을 걸어주고 한지가 여왕의 손에 입을 맞춘다. 다음은 리바이, 엘런의 순서다.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엘런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다.
          과연 지하실에 있던 것은 무엇인가? 희망인가, 아니면 절망인가? 적은 강대하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 참"은 반복된다. 엘런은 뭔가를 바꿀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신에겐 히스토리아를 희생할 각오가 없다고 자조한다. 그러는 사이 히스토리아가 그에게 훈장을 걸어주고 손을 내민다. 엘런은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는데.
          엘런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 담할 수도 없는 일이고...
          *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동안 월 마리아 내의 거인은 모두 소탕되었다. 곧 복구공사가 시작되었고 시간시나구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입주가 재개되었을 때는 트로스트구의 습격으로부터 1년이 지나있었다. 그날 조사병단은 6년 만에 월 마리아 밖의 벽외조사를 개시했다. 한지는 그동안의 전쟁으로 섬 안의 거인 대부분이 사멸했을 것으로 추측했고 정확히 들어맞았다. 조사병단은 매우 평화로운 태로 벽 바깥을 달려나갔다.
          한참을 달려나갔을 때 최초로 거인 발견 신호가 뜬다. 발견된 거인은 기형으로 팔다리가 비정적으로 짧아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태로도 조금씩 팔다리를 움직여 벽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엘런은 그를 보고 "낙원행을 당한 우리 동포"라며, 여기서 부터는 아주 가까울 거라고 말한다. 마레인들이 엘디아인을 거인으로 만들던 "벽"에.
          >인이 평생을 들여도 다 못 쓸 정도의 거대한 소금물 호수가 있다고.
          엘런이 바다에서 느낀 것은 행복도, 기쁨도 아니었다. 그가 지하실에서 찾아낸 것은 한 없이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엘런은 꿈이 꺾인 것처럼, 실망에 가득차게 말했고 예과 다른 대답에 아르민과 미카사는 충격을 받는다.
  • 창작:바벨 코스트 . . . . 15회 일치
         > * [[창작:Project NA|Project NA]]를 구하면서 파생된 설정이지만, 분류 으로는 이쪽이 위입니다.
         1940~1950년대, 미국 서부 해안에 위치한 가의 도시인 바벨 코스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설정이다. 시대 배경과 인구 분포는 게임 '마피아 2'의 주요 활동지인 '엠파이어 시티'에서 감을 얻었고 대체적인 분위기는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 시,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 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항구를 바탕으로 성장했으나 공업은 발달하지 않아 도시 성장은 더딘 편이다. 주요 산업은 관광으로, 대공황 시절에 꽃핀 다다이즘과 유사한 성향의 문학과 미술, 연극을 중심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했고 이러한 문화 수준에 맞게 교육 수준도 꽤 높은 편에 속한다. 인구 분포는 주로 동유럽계 이민자들과 유색인종의 비중이 많고, 서유럽·국계 백인들과 북미 원주민들은 그에 비해 적은 편이다.
         18세기 경, 제정 러시아가 폴란드를 위협해 오던 황에서 몇몇 폴란드인이 국을 거쳐 미대륙으로 건너가 서부 해안의 이름없는 땅에 자리를 잡은 것이 시작이였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모국의 황이 나아지길 바라며 폴란드 역사 최고의 성군인 카지미에시 3세를 떠올렸고, 크라쿠프의 바벨(Wavel) 성에서 이름을 따와 'Nowy Wavel'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국계 백인들의 향이 컸던 탓에 바벨(Babel) 코스트로 이름이 지어지게 되는 굴욕을 겪었다. Wavel을 어로 읽으면 웨이블에 가까운 발음이 나지만, Babel이라 이름지은 것은 그저 발음나는대로 쓰다보니 이렇게 됐다고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유럽계 이민자들에 대한 경계와 멸시에서 비롯되어 바벨탑을 연시키는 이름을 지었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의 국력이 커져가고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음에도 유색인종 비율이 많은 탓에 거점 도시로의 역할이 주어지지는 못했다. 공업이 발달하기는 커녕 해군 부대가 들어서는 일도 없었다. 그저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한 경유지로의 역할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어업이나 소규모 업 정도가 도시의 주요 산업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사람들의 재정 수준이 높아지자 고급 주택이 세워지고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이 생겨나며 휴양도시로의 이미지가 잠시 생겨났다. 공해도 적고 교통도 그리 나쁘지 않은 곳에서 휴양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지라 수많은 부유층들이 들어오면서 경기가 활성화되었다.
  • 창작:아멜리아 디아즈 . . . . 15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인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창작:코스모폴리턴|코스모폴리턴]]의 조연 캐릭터. 직업은 마약. 자매로 같은 나이대의 쌍둥이 [[창작:우다네 디아즈|우다네 디아즈]]와 동생 [[창작:필로메나 디아즈|필로메나 디아즈]]가 있다.
         = 신정보 =
         트와일라이트 시티를 비롯한 미국 남부의 여러 도시에서 활약하는 마약이다. 정확히는 마약 산업 중 유통을 담당하는 '배달부'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마약 산업과 관계된 분쟁을 해결하는 '해결사' 내지 '집행자'[* 원문은 Enforcer. '''범죄세계의 행위를 강요'''하는 사람을 뜻한다. 보호세 납이라거나 물적 및 인적 협력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로서도 활약한다. 그래서 지방 '출장(…)'이 잦지만, 정작 본인은 그걸 핑계삼아 여행을 자주 다니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표면의 직업은 남미 향신료 업체 외판원이다.
         마약에 대해서는 '막장 세의 돌파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남미인이라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이래저래 차별을 받아오다가 생계 유지를 위해 자잘한 마약 심부름부터 시작하며 마약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마약은 남녀노소와 국적을 따지지 않는 만국공통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승시키기 위해 마약을 팔고 있다. 이 점은 주요 거래처인 키메라 카르텔도 같지만, 저 쪽은 '''마약을 판매하여 대규모 자산가 위주의 경제를 무너뜨린다'''라는 안드로메다적인(…) 플랜을 가진 집단이다. 아멜리아가 배달부로 남은 이유도 바로 저런 '미친 놈들'과 엮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은 적당한 시점까지만 돈을 모아 필로메나와 함께 남미로 돌아가 살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엿같은 세에서 같은 나라 사람들이 미국에서 차별받고 살아가는데, 나만 잘 살아도 되는 걸까'하는 마음이 들었고, 또 카르텔 내부의 사람들에게 설득당해 결국 귀향할 생각을 접고 미국에 계속 남아 마약 노릇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쌍둥이 언니이자 '''마약단속반'''인 [[창작:우다네 디아즈|우다네 디아즈]]는 위선자라며 신나게 까댔고, 동생 [[창작:필로메나 디아즈|필로메나 디아즈]]는 언니가 자신을 위해 고생한 걸 알기 때문에 쉽사리 자기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카르텔 내에서 사귀게 된 [[창작:크루즈 벨몬테|크루즈 벨몬테]]는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금방 망가진다'며 그만두자고 설득하고 있다.
         동생 [[창작:필로메나 디아즈|필로메나 디아즈]]와의 관계는 매우 좋지만, 쌍둥이 언니 [[창작:우다네 디아즈|우다네 디아즈]]와는 사이가 불구대천의 원수급이다. 물론 진짜로 원수는 아니지만, 마약에 관한 견해와 입장이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아멜리아 본인은 마약인데 언니 우다네는 '''마약단속반'''이기 때문. ~~콩가루 자매?~~
          * 초기 구 단계에서는 ~~망작~~ "그레이 스트리트(Gray Street)"의 DLC격 에피소드를 담당할 주인공이었고 이름도 아'''말'''리아(Am'''a'''lia)였다. 그러나 적었듯이 해당 작품은 분위기가 너무 침체되어 망했고(…), 이름도 독일계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에 당수가 갈아엎어졌다.
  • 최공웅 . . . . 15회 일치
         |전임2 = [[이범 (법조인)|이범]]
         |웹사이트 =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3부 재판부 판사로 재직하던 1971년 7월 27일 밤에 같은 재판부 구성원인 이범렬 부장판사와 동부서기 이남과 함께 "1심에서 징역3년 자격정지3년이 선고된 제주 김녕중학교 교장 이방택의 [[국가보안법]], [[반공법]]위반 피고사건의 항소심 증인 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갈 때 피고인의 하경철 변호사로부터 왕복 항공료 3만3천원과 향응 비용 등 9만7천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법조 사 최초로 현직 판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장이 신청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800099203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1-07-28&officeId=00009&pageNo=3&printNo=1657&publishType=00020 매일경제 1971년 7월 28일자]</ref> 이후 해당 피고인의 재판은 원심이 파기되어 징역1년6월 자격정지1년6월이 선고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900209207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07-29&officeId=00020&pageNo=7&printNo=15326&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1년 7월 29일자]</ref> 관행으로 이루어진 변호사의 경비 부담에 대해 구속장을 청구한 사건은 1차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721000060]</ref>
         * 2000년 ~ 2003년: [[경찰위원회]] 위원장,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 한국일보 총선보도자문위원회 위원장, 법무부 섭외사법개정 분과의원, 이화여대 겸임교수 (지적재산권,국제사법 담당), 일본 오사카대학 비근강사 (아시아법 담당)
         * 2000년 ~ 2007년: 한국국제사법학회 회장, [[대한사중재원]] 이사·중재인, [[엠네스티]] 법률가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가족보건복지협회 이사, 무역중재인포럼 대표, 아시아변리사회(APPA) 한국협회 고문, 대한변리사회 회장단 자문위원, 인터넷주소 분쟁위원회 고문
         * 2005년 ~ 2008년: 한국산업재산권법학회 회장, 일본 데쯔까야마대학 외부평가 위원, 남북사중재위원회 위원
         * 2007년 ~ 현재: 대한사중재원 중재 CEO아카데미 원장,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초빙교수 (국제사법,지적재산권), 한국중재학회 고문,한국국제사법학회 명예회장, 국산업재산권법학회 명예회장, 대한중재인협회 고문
         * 대구지방법원 민사합의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1년 1월 29일에 [[남대학교]]를 대로 불합격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1.5cm 짧다는 이유만으로 커트라인보다 24점이나 더 받은 학생을 불합격한 것은 공정성과 합리성에 어긋난다"며 "1980년도 약학 대학 신입생 선발 불합격 처분은 무효"라고 판결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1290032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1-29&officeId=00032&pageNo=7&printNo=10871&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1년 1월 29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2월 5일에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유세 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구 집권을 위해 총통제를 기도하고 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1971년 7월 26일에 기소된 사건에 대해 "재판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했다.<ref>동아일보 1988년 2월 5일자</ref> 3월 4일에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 법정모욕 등으로 1,2심 군법회의에서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이 선고됐다가 대법원 고심에서 이미 폐지된 [[긴급조치]] 면소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파기환송된 [[강신옥]]에게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형사 피고인에 대한 자유로운 방어권 행사없이 형식적인 변론만 인정한다면 사법권읜 근본적으로 파괴되고 말 것"이며 "공개재판에서 변론은 재판 방해를 하려는 폭력이 없는 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30400329211003&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3-04&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056&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3월 4일자]</ref> 5월 27일에 내란 예비죄 피고인인 [[박형규]] 목사에게 "10여명의 선동만으로 국가 전복을 우려한다는 것은 전혀 합리성이 없다"며 징역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2700329211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5-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126&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5월 27일자]</ref> 5월 31일에 1974년 세검정 동굴에서 북한방송을 듣고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에 대해 "똑똑한 학생이 왜 나쁜 짓을 하겠느냐"고 말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위반으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을 선고받은 박규신 피고인에게 대법원에서 파기된지 13년만에 반공법위반 무죄, 긴급조치 위반은 면소 판결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3100289107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5-31&officeId=00028&pageNo=7&printNo=14&publishType=00010 한겨레 1988년 5월 31일자]</ref>
  • 콜 오브 듀티 . . . . 15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FPS [[게임]]. 플레이어는 [[미군]] 마틴, [[국군]] 에반스, [[소련군]] 이바노비치를 차례대로 이끌어 전투를 벌인다.
         === 국군 ===
          국군 주인공. 공수부대원이다.
          국군 장교. 마틴으로 플레이할때 구조 대으로 첫 등장한다.
          국군 장교. 프라이스와 함께 독일군에게 붙잡혔다. 구하러 갔을때는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독일군 초병 하나를 목졸라 죽이고 있다.
          >국 공수부대도 애용해는 미 공수부대의 제식 권총입니다. 7발이라는 적은 장탄수를 가지고 있지만 .45 구경 대형탄은 콜트를 위급시 쓸만한 무기로 만들어줍니다.
          미국 권총. 국 공수부대도 애용한다는 설명처럼 국도 이 권총을 사용한다.
         === 국 ===
          >1907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처음 등장한 리엔필드는 국 보병의 제식 소총입니다. 강력하고 장거리 사격에 적합한 볼트액션 소총입니다. 10발을 장전할 수 있으며, 두개의 5발들이 스트리퍼 클립으로 장전됩니다.
          >브렌은 분대지원용으로 뛰어난 기관총입니다. 큰 크기가 운용성을 깎아먹지만, 포복한 태에서 정확한 자동사격을 먹여줄 수 있습니다.
          보통은 파괴 대으로 등장하지만 휘트르겐 임무에서 독일군 전차를 조지는데 사용된다. 독일군 전차에게 파괴당할 수 있는데, 파괴당하면 근처 벙커에서 판처파우스트를 가져와야 대항해야한다.
         플레이어가 이한 곳으로 가지 않게 진행 방향 외의 지역은 지뢰를 깔아뒀다. 이 구역에 들어가면 "틱"하는 소리가 난 후 지뢰가 폭발해서 죽는다. 그리고 뜨는 "지뢰밭에 들어가서 죽었습니다. 붉은색과 하얀색의 경고 표시를 조심하세요!"는 덤. 가끔씩 인공지능들도 여기 들어가서 죽는다. 보통 스크립트로 들어가게 만든 경우.
  • 킹덤/516화 . . . . 15회 일치
          * 이목은 그제서야 왕전은 난민들을 "함락의 무기"로 삼아 조나라를 대로 역으로 "병량공세"를 펼치는 것임을 깨닫는다.
          * 쾌속진격한 [[이목(킹덤)|이목]]은 순조롭게 수도 한단에 도착했다. 전 삼대천 [[인여]]의 부하들이 그를 맞이한다. 이들은 이목이 처음 지시했던 한단군 출병을 이루지 못했으나 자신들과 사병의 출병은 허가를 받아냈다. 그 병력은 북쪽 염 성에서 1만, 문 성에서 1만씩 총 2만이다. 이목으로선 뜻밖의 희소식이었다.
          * 이목의 도착 소식을 접한 [[호주(킹덤)|호주]]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진작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목은 그동안 자신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것에 감사를 표하는데 호주에겐 그보다 다급한 용건이 있었다. 그렇잖아도 알현 뒤엔 그를 찾아가려 했던 이목이었다. 호주는 지금 왕도권에서 속속 들어오는 최신첩보를 정리해왔다. 진군은 병력을 세 가래로 나눠 왕도권의 소도시 아홉을 정복하고 업으로 향하고 있다. [[공손룡]] 장군의 9만 병력은 [[양단화]]군의 산민족 5만과 대치하느라 발이 묶인 황. 그런데 그 전선이 조금씩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왕도권 남부로 방출된 난민 무리는 북쪽으로 가지 못하고 쫓기듯 동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 업의 성주 [[조이백]]은 좋은 사람이었다. 아니면 업성의 부양능력을 그만큼 믿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장에서는 이제 난민을 그만 받자는 소가 올라오는데 그는 일언지하에 각하한다. 아직 진군이 당도하지도 않았는데 나라의 근간인 백성을 버릴 수 없다는 논리였다. 결국 "진군이 도달하기 전까진 난민을 받아라"란 지시가 내려간다. 자비롭고 관대한 명령이지만, 이 전시에 타당한 것일까? 가신들이 난색을 표하는데다 난민의 수가 늘 수록 식량창고가 비어가는 속도도 빨라진다. 얼마 안 가 제 3 창고가 텅 비었다는 보고가 올라오는데, 조이백은 놀라기는 하지만 "창고는 얼마든지 있다"며 제 4, 5 창고까지 개방한다.
          * 업성의 서쪽 대망루. 서벽장인 [[진리간]] 장군은 어째서 소를 올렸는데도 성문을 닫지 않느냐고 울화통을 터뜨린다. 그가 보기엔 업성의 수용능력으로도 난민을 전부 감당할 순 없다. 그는 모든 난민을 수용하라는 성주의 판단을 "멍청한 판단"이라 불평한다. 그리고 발디딜틈도 없이 들어찬 성 내의 황을 성주가 보고 있긴 하냐고 투덜댄다.
          * 한단의 이목 진은 예치 못한 일격을 맞고 고심 중이다. [[순수수]]는 지금이라도 업성에 전서구를 보내자고 하지만 이목은 벌써 늦었을 걸로 본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카이네]]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묻는데 이목은 지금이라면 [[왕전(킹덤)|왕전]]이 그린 그림을 알아볼 것 같았다. 분명 그는 열미성의 실체를 파악하고 나서 업성에 갔다. 곧 업성은 난공불락의 성임을 깨닫고 곧장 업을 치기 보다는 업성을 무너뜨린 "함락의 무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아홉 소도시를 공격한 것이다. 이제 카이네도 왕전의 속셈을 눈치챘다.
          같은 시각 진군에서 제일 먼저 업성에 당도한 환의군은 "공성전은 정하지 않는다"는 지시와 함께 "업성의 각 성문을 막아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이목은 한단에 있으면서도 이같은 전개를 눈으로 보는 것처럼 훤히 파악한다. 단지 손을 쓸 수 없을 뿐이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이 심각한 변수의 등장이 의미하는 바에 입을 모은다.
          * 적군만 왕전의 기천외한 발에 경악한 건 아니었다. 환의는 병량공세를 받는 군단이 대 백성을 써서 역으로 병량 공세를 거는 말도 안 되는 황에 크게 감탄한다.
          왕전은 어느 새 업성을 봉쇄한 환의군 진에 도착했다. 그는 환의의 감탄에도 아랑곳없이 업성의 황을 면밀히 살피더니 업은 환의에게 맡기겠다고 말한다.
  • 킹덤/526화 . . . . 15회 일치
          * [[왕분]]은 [[마남자]]를 대로도 놀라운 기량을 펼치며 그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 그의 창술은 이미 위화룡 [[자백(킹덤)|자백]]에 필적, 그 이의 경지.
          * 아광은 마남자가 도망도 치지 못할 거라 하나 전황이 급변, 마남자군의 2진이 합류하고 [[악]]군이 전열을 정비하며 황이 크게 변한다.
          * 마침내 왕분이 크게 지르자 마남자의 거구가 휘청이며 크게 물러난다. 진군 진을 무인지경으로 휘저어왔던 마남자의 무예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 옥봉대의 장교들은 눈 앞의 적도 잊어버리고 왕분의 눈부신 기량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에 한 번 왕분을 사경으로 몰고갔던 위화룡 [[자백(킹덤)|자백]]. 왕분은 본래 자신의 기교와 속도에 더해 이제 파괴력은 그 자백을 연시키게 했다. 그런 파괴력까지 습득한 지금의 왕분은 분명 자백 조차 능가했을 거라고 장교들이 입을 모은다. 함께 있던 왕분의 부장 [[반양]] 또한 의견을 같이 했다. 자백을 꺾고 더욱 성장한 왕분의 창술은 분명 중화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경지다.
          * 왕분이 그정도로 당황할 장수는 아니었다. 침착하게 창을 쳐내는 순간, 마남자가 그때를 노렸다. 그의 손이 왕분의 팔을 낚아챘다. 예 밖의 실책. 반양이 경악하고 왕분 또한 당황한 기색이다.
          * 왕분도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았다. 땅바닥을 때린 마남자의 팔을 휘감아 부러뜨리려 했지만 마남자가 금새 뿌리쳤다. 멀찍이 밀쳐진 왕분. 마남자는 예치 못한 반격에도 대응한데다 자신의 주먹까지 피한 것에 감탄한다.
          >아무래도 네놈 쪽이 성이 좋을 거 같구나.
          * 마남자의 부하들이 서둘러 그를 둘러쌌다. 이젠 정말 물러나야 할 시간이다. 마남자 또한 강자 둘을 대로 데려온 병력이 너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퇴각할 기색을 보이자 아광은 이 황에서 그게 가능할 거 같냐고 쏘아붙였다. 그 동안 왕분은 반양의 도움으로 다시 말에 올랐다.
          아광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마남자는 이 황을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데서 자신의 목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받아쳤다. 그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왕분은 곧 아군의 후방을 들이치는 조군의 대병력을 발견했다. 마남자는 사전에 군을 두 갈래로 나눴다. 자신과 함께 아광군의 측면을 요격한 1진과 아광군 2진을 견제하러 보낸 2진. 그 2진이 지금 돌아오고 있었다.
          * 여전히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전장을 관망하던 [[조아룡]]은 그 흐름을 짐작하고 있었다. 마남자는 약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아광과 왕분에게 "지나치게 뭉쳤다"고 훈수하며 조군에 장수가 자신만 있는게 아니라고 말했다. 조군이 다시 힘을 받고 있었다. 마남자를 잡자고 아광과 왕분이라는 두 지휘관이 모두 집중된 게 틈이 됐다. 시간을 번 [[악]]이 성공적으로 자군을 수습, 다시 대형을 갖춰 아광군에 들이쳤다. 그런데 정작 아광은 일선에 있지 않았으니 힘의 균형이 맞을 리 없었다. 전열이 위태로운 와중에 뒤에서는 마남자 2진까지 몰려오는 황. 위기는 진군 쪽이었다.
          * 거기까지 지시만 해도 충분히 식 밖이었지만, 왕전의 다음 발언은 더욱 뜻모를 것이었다.
  • 킹덤/534화 . . . . 15회 일치
          * [[몽념(킹덤)]]은 [[마광]]군의 지휘권을 빠르게 인수하고 사기를 북돋는다. 마정의 부관 [[정양]]은 군이 승세로 돌아서자 기뻐하나 몽념은 이제 겨우 최저한의 준비가 끝났을 뿐이고 위기는 계속 된다 단언한다. 그는 정양에게 중앙에서 움직일 수 있는 부대를 파악해 좌우거점으로 원군을 보내게 하고 특히 우측 [[비신대]] 진엔 기마 위주로 편성해 보내라고 지시한다. 몽념은 마정군이 일몰 후에도 살아있을지 어떨지는 전적으로 군략에 달렸다며 지금부터 진정한 본진의 싸움이 시작된다고 선언한다. 한편 조군 최전선에 있던 [[마정]]은 진군의 기세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있다가 그 사이에 세 무리의 깃발이 움직이는 걸 발견하고 주시한다.
          * 몽념의 예대로 마정은 본대로 오지 않았다. 조군의 우세를 타고 군을 정비한 마정군은 비신대를 치러 간다. 마정은 이미 마광이 없는 본진 따윈 무가치하고 반격의 거점인 비신대를 치는게 먼저라고 본 것이다. 조군 본진에서도 이 움직임을 두고 좋은 판단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기수(킹덤)|기수]]만은 석연치 않은 듯한 얼굴이다.
          * 비신대는 마정군의 접근을 인지하고 응전할 태세를 취한다. [[이신(킹덤)|이신]]은 자신이 마정을 대하겠다고 벼르나 [[강외(킹덤)|강외]]가 제지한다. 마정과 정면승부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것. 그녀는 몽념이 "마정과 맞생다하지 마라"고 지시한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비신대의 진짜 역할은 진군의 사기진작이며 지금 전력으로 마정군 본대를 당해낼 수도 없다. 강외는 원군으로 기마대가 온 걸 들어서 이동하면서 마정을 더욱 끌어들이는게 합당하다고 한다. 이신은 그 말에 따른다.
          * 기수의 본대가 움직이는걸 확인한 몽념은 자신과 낙화대를 방패막으로 세워 기수와 맞대로 하기로 한다. 여기까진 사전에 예측한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과연 이 마지막 힘싸움을 버텨낼지 확신은 여전히 없었다.
          * 그날밤 조군 중앙 본진에 비보가 날아든다. 진형도를 펼치고 이틀 째의 전술을 구하던 이목은 금모가 가져온 급보를 받는다. 지금까지 구한 이틀째의 전략을 전부 다시 짜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 조군이 물러난 자리. 시체들이 적도 아군도 없이 뒤엉켜 있다. 이신이 그 사이에서 몽념을 찾아냈다. 숨이 붙어있었고 곧 정신을 차렸다. 몽념은 맨 처음 기수군의 동향을 물었고 이신은 방금 전 막 물러났다고 대답했다. 이신은 그밖에 좋은 소식도 가지고 있었다.
         == 세 ==
          마광군을 하드캐리해 전선을 지켜냈다. 중앙에서 회복을 마친 마정군을 비신대를 미끼로 삼아 끌어내고 육선이 점거한 좌측을 기점으로 군을 재정비했다. 하료초는 전장 전체를 꿰뚫어 보고 이 같은 전략을 수립한 것도 대단하지만 한순간에 마광군의 지휘권을 장악한 점이야 말로 진짜 대단한 점이라고 감탄한다. 몽념도 자신의 구을 간파한 하료초의 재능에 감탄.
          후반에는 기수 본대의 역습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과 낙화대를 앞세워 마광군을 보호한다. 여기까지는 다 작전대로 잘됐지만 이 공습을 막아낼지는 확신이 없는 듯했다. 실제로 난전 중에 낙마해 시체들 사이에 쓰러져 있던걸 이신이 발견한다. 다행히 무사히 생환. 전에 장담한 대로 진군 좌익의 싸움의 주역이 되었다.
          몽념 옆에 남아서 그가 마광군을 인계하고 대응책을 펼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빠른 시점에서 그의 구을 간파해 몽념이 감탄하기도 했으나 그녀 자신은 간단히 마광군을 인수하고 이런 전략을 펼치는 그에게 경악한다. 새삼스럽게 스승 창평군이 "재능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극찬했던 일을 떠올리며 몽념을 빤히 쳐다보다 "그만 봐라"고 몽념이 한소리한다.
          마정이 중앙을 방치했을 때 미심쩍어 했지만 결국 다른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다. 마정보단 낫지만 결국 손을 쓰지 않았으니 유명무실하다. 낙화대 본진이 합류하고 우측에서 강한 저항이 일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조금 늦었다. 물론 전세가 기울어있는 황이었으므로, 기수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승기를 내줬다고 볼 순 없었지만, 결국 진군을 섬멸하지 못한 채 이틀째를 맞이했다.
          중앙군에 잘 복귀한 모습으로 등장. 그러나 진군 좌익을 쓸어버린 걸 전제로 다음날 작전을 구하다 금모의 급보로 전세가 어그러졌음을 확인한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15회 일치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서양인들을 환대했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덴노 지지자들은 잘못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무너진 질서는 회복되어야만 합니다. 쇼군은 현 황을 좀 더 개선하고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살필 것이고 알지 못했던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덴노 주변의 얼간이들을 무너뜨리고 일본에 대한 명예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쇼군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 파괴: 파괴 공작 및 교란 사용시 사자 수 +10%
          * 임기응변: 군대가 적 토에서 재보충 가능, 단 겨울 땐 제외
          * 병참: 모든 지 유닛의 유지비 -10%
         >센고쿠 지다이(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약 200년간 평화가 도래했습니다. 덴노는 교토에서 국가의 신성한 군대로 계속 군림해왔습니다…그러나 실권은 도쿠가와 막부가 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세기 동안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일본은 번했고, 백성들은 만족했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은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쇼군은 백성들을 저버리고 화친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일본의 문호가 개방된 것입니다.
         >무역 관계는 수립되었지만, 화친조약은 서구열강들에게 유리한 협정이었습니다. 경제는 흔들거렸고, 백성들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1863년, 덴노는 쇼군의 결정을 뒤엎었습니다. 모든 서구 세력을 축출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일본은 더이 서구화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반격할 때가 왔습니다. 서구 세력들은 이러한 반격에 대해 보복을 감행했습니다. 기만적인 서양인은 우리 백성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쇼군은 더 이 존경이나 충성을 받지 못합니다. 우린 덴노 중심의 왕정복고를 성공시켜야만 합니다. 덴노는 현 황을 좀 더 개선하고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국과 화해했습니다.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살필 것이고 알지 못했던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쇼군을 무너뜨리고 일본에 대한 명예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덴노는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 지휘력: 장군의 향력 범위 +15%
         다이묘는 시마즈 히사미츠, 후계자로 시마즈 타다요시가 있다. 장군은 사이고 다카모리. 게임 시작시 국인 외국 베테랑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모리 가문이 다스리는 번. 나가토를 본거지로 두고있다. 모리 가문은 도쿠가와 가문이 도요토미 가문과 일본의 지배자 자리를 놓고 싸우던 당시 도요토미 가문의 편에 섰었다. 하지만 오사카 성 전투 당시 싸우지 않고 후퇴하며 도쿠가와 가문이 승리를 거두도록 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 막부는 모리 가문을 형편없게 대했고, 이로 인해 모리 가문은 막부에 반감을 가지게 된다. 막부가 서구에게 개항하자 이를 빌미로 막부를 대로 들고 일어났다.
         다이묘는 나베시마 모치즈루, 장군은 오키 다카토. 게임 시작시 국인 외국 베테랑 한명이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 특촬물 . . . . 15회 일치
         단어 그 자체의 의미로는 '''특수촬물'''(特殊撮影物)의 약자. 넓은 의미로는 특수촬기법이 사용된 모든 물을 말하지만,[* 오죽하면 [[닥터후]]나 [[히어로즈]]와 같이 특수효과로 점철된 [[드라마]]들도 특촬물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크게 보자면 틀린말도 아니긴 하다)--한 술 더 떠서 [[텔레토비]]도...--][* 대표적으로 몇 년 전 [[루리웹]]의 애니 게시판에서(여기선 특촬물 관련 글도 같이 취급한다) 일부 회원들이 저 두 작품을 두고 '이것도 특촬이다'라며 도배하면서 논쟁이 일어났다가 잠시 동안 특촬 관련 게시글이 금지가 됐었다.] 일반적으로 '특촬물'이라고 하면 전대물, [[괴수]]화 같은 일부 장르의 물에 한정된다. 특수효과를 뜻하는 약어인 SFX(Special Effect)가 물 전반의 이름으로 통칭되기도 한다. [[SF]]와 헷갈리지 말자! [[디워]]의 경우가 --애초에 이 화 자체가 여러가지로 까이지만-- SF와 SFX를 구별 못한 대표적 사례로, SF화라고 홍보했다가 엄청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말은 특수촬이지만 [[디지털]] 특수효과([[컴퓨터]] 그래픽 등)는 별도로 생각되는 경향이 강하며, 보통은 [[아날로그]]적인 특수효과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통적인 역의 특촬물에도 [[CG]]가 많이 사용되고 있어 그 경계가 꽤 흐려진 편이다.
         하나 알아 둘 것이, 특촬물은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하는 히어로물이기 때문에 만화와 같은 카테고리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앞에 각주에서 언급한 루리웹의 애니 게시판도 그렇고 [[이글루스]]에서도 특촬 포스팅은 대개 [[애니메이션 밸리]]로 보내는 경우가 많은 등, 유독 애니 관련 커뮤니티에서 이 두 장르를 같이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특촬물을 특수 촬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기는 하지만 특촬물은 엄연히 '''실사이자 드라마'''이다. 특촬물 더빙도 외화 더빙에 해당된다.
  • 페어리 테일/504화 . . . . 15회 일치
          * 브랜디쉬는 처를 축소시켜서 응급처치를 하지만 데미지는 그대로여서 이대로 리타이어.
          * 아이린은 공에 거대한 눈을 만들어서 메이비스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 메이비스는 거대한 환을 만들어 나타나 전장의 동료들에게 "함께 싸웁시다"라고 격려한다.
          * 나츠에게 END인게 맞냐고 묻는데 반쯤 폭주태인 나츠는 제레프를 쓰러뜨리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 지하실에서는 폴류시카가 브랜디쉬의 처를 다시 한 번 진찰하는데 생각보다 경인 듯.
          * 원래는 중이지만 브랜디쉬가 마법으로 처를 줄였다. 하지만 데미지는 남아 있기 때문에 더이 전투는 불가능.
          * 엘자는 모두 함께 길드로 돌아가자고 다짐하는데 그때 공에서 정체불명의 눈동자가 나타난다.
          * 메이비스는 거대한 환으로 공에 모습을 드러낸다.
         END는 각성할 시 제레프를 쓰러뜨릴 수 있는 전력으로 평가되었고 염룡왕 모드의 나츠는 분명 제레프를 위협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레이의 멸악 마법이 과연 거기에 맞먹는 수준일지는 미지수. 현재 으로는 호각으로 맞서는 듯 한데 나츠의 각성이 덜 된 것이라면 장기적으론 그레이가 밀릴 수밖에 없다.
         디마리아는 나츠에게 당한게 충격이었는지 넋이 나간 태.
  • 페어리 테일/512화 . . . . 15회 일치
         [[페어리 테일]] 제 512화. '''백룡의 스팅'''
          * [[스팅 유클리프]]는 백룡의 힘으로 [[라케이드 드래그닐]]에게 공세를 펼친다.
          * 라케이드는 원한 잠을 내리는 마법 RIP(Rest In Peace)을 사용한다.
          * 면의 저주에 당할 위기에 처하자 [[로그 체니]]가 스팅에게 "그림자 안으로 녹아 들어가라"고 조언한다.
          * 스팅은 "백룡의 아시기누"(명주실)로 라케이드를 패배시킨다.
          * 현실에선 폴류시카가 돌보고 있으나 나츠의 태는 계속 나빠진다.
          * [[로그 체니]]의 그림자를 먹고 모드 백룡에 각성한 [[스팅 유클리프]]. 스팅은 자신은 항 [[나츠 드래그닐]]의 등을 쫓아왔으며 [[라케이드 드래그닐]]은 방해물이라고 말한다. 라케이드는 자신이야 말로 직접 나츠의 혼을 정화할 거라며 애초에 스팅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받아친다. 스팅은 자신과 로그의 힘이 합쳐진 세이버투스의 진수를 시험해 보라며 주먹을 날린다.
          * 백룡의 힘은 라케이드에게도 당한 타격을 준다. 스팅은 백룡의 힘과 룡의 힘을 번갈아 사용하며 라케이드를 몰아붙인다. 라케이드가 사용하는 백색 마력은 백룡의 힘으로 지우고 그림자의 힘은 어떤 공격도 무시하던 라케이드에게 유효타를 낸다. 두 힘을 합쳐서 내뿜자 라케이드는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멀리 밀려난다.
          * 라케이드는 몇 명의 힘을 합치든 "최후의 욕망"에는 저항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최후의 마법 R.I.P(Rest In Peace)를 사용한다. 사방으로 빛과 부적이 흩날리자 거부할 수 없는 졸음이 몰아닥친다. 스팅은 처를 후벼파며 저항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 '''백룡의 아시기누'''(명주실)
          * 로그는 발걸음을 멈춘 김에 나츠의 머플러에 대해서 말을 꺼낸다. 그 머플러는 이그닐의 비늘로 만들어진 건데 어째서 하얀 색인가? 나츠는 지금까지 실컷 이그닐의 비늘로 만든 거라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정작 색이 다르다는 건 지금에야 깨달았다. 로그는 용의 비늘이란 몸에서 떨어지면 색이 바래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과연 이 머플러를 "누가" 짰느냔 것. 나츠는 막연히 이그닐이 만들었다고 생각해 왔지만, 용인 그가 인간 사이즈의 머플러를 짤 수 있을리 없다.
         "안나"라는 여성이 등장했는데 생김새가 루시와 닮아있는걸 보면 그녀의 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루시의 어머니도 용들이 사라진 떡밥과 관련인물이므로 여러모로 루시가 얽힐 떡밥이 많다.
  • 페어리 테일/517화 . . . . 15회 일치
          * [[아이린 베르세리온]]은 [[웬디 마벨]]의 몸을 완전히 장악한다. 웬디의 잠재력이 높아 본래 아이린의 강대한 마법을 무리없이 사용한다.
          * [[아이린 베르세리온]]은 [[웬디 마벨]]의 몸을 장악하고 새로운 몸을 얻었다고 환호한다. 부도 입었고 본래 몸에 비하면 마력도 부족하지만 새로운 몸을 얻었다는 것에 만족해한다. 심지어 본래보다 빈약한 가슴도 귀엽다고 나름대로 마음에 들어한다. 본래 아이린의 몸은 힘없이 쓰러진다. 아이린은 "이제 그건 단순한 고깃덩어리"라고 잘라말한다.
          아이린은 엘자를 비웃으며 웬디의 몸으로 강력한 공격 마법을 사용해 본다. 으로 위력이 강력한데 웬디 자신이 가진 잠재력이 높아 아이린이 기대한 것 보다 훨씬 강한 힘도 낼 수 있었다. 모든 면에서 새 몸이 만족스러워진 아이린은 장난은 여기까지라고 말한다.
          아이린이 웬디의 몸을 가로챘듯이 웬디도 아이린의 몸으로 자아를 옮겼던 것이다. 아이린은 설마 웬디가 그런게 가능할리 없다고 경악한다. 웬디는 일단 일어났지만 막 인챈트한 향에 가슴이 너무 무겁다며 비틀거린다.
          * 궁지에 몰린 아이린은 지저분한 짓을 시작한다. 웬디의 몸을 자해하며 이래도 돌아올 수 있겠냐고 시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웬디는 그녀의 예보다 훨씬 올곧은 정신의 소유자였다.
          >온몸의 처는 제가 살아온 증거예요.
          >처는 몇 개가 늘어도 관없어요.
          * 강렬한 빛과 함께, 아이린의 발악도 보람없이 웬디의 분리 인챈트는 정적으로 그들의 몸을 되돌렸다. 하지만 웬디는 아이린이 남긴 처 때문에 돌아오자 마자 뒤를 부탁하고 쓰러진다.
         아이린은 웬디의 몸으로 마법을 쓰면서 "생각보다 마력이 내려가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이린 본체 정도는 아니어도 당히 높은 수치를 가지고 있는건 분명하다.
  • 하이큐/232화 . . . . 15회 일치
          * 키요코는 원래 육부 활동 이후 공허감을 지우기 위해 매니저일을 시작했지만 점점 애착을 가져간다.
          * 왕년의 육실력으로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 도착한 키요코. 히토카를 통해 짐을 전달한다.
          * 무사히 경기에 투입된 카라스노 고교. 시합대는 카나가와의 츠바키하라 학원이다.
          *이것의 [[시미즈 키요코]]의 기억. 육에 실패했던 그때의 기억이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그때 짐을 맡고 있었는데 [[나리타 카즈히토]]에게 남기면서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그런 것 같다. 야마구치가 죄송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히나타도 야마구치 탓이 아니라며 시끄럽게 군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서둘러 역의 분실물 센터로 연락한다. 최악의 황이라면 사러 가야한다. 그때 [[카게야마 토비오]가 폰은 어디에 뒀냐고 묻는다. 생각해 보니 그 가방 안에 있었던 것. 서둘러 전화를 해보니 가방을 바꿔간 사람이 받는다. 어린애로 착각해서 바꿔갔던 것 같다.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우선 선수들을 데리고 코트로 내려간다. 이제 문제는 가방 쪽. 키요코가 직접 다녀오겠다고 나선다. [[야치 히토카]]가 그런 일이라면 자신이 하겟다고 하지만 키요코가 "달리기도 체력도 자신있다"고 하며 납득시킨다.[* [[하이큐/231화|전 회]]에서 히토카는 키요코가 육부 출신이란걸 알았다.] 키요코는 자신은 금방 돌아오겠지만 혼자 있는 동안 불안할 거라며 히토카의 마음을 읽는다.
          * 달리면서 처음 매니저 일을 시작할 때를 회하는 키요코. 시작은 [[사와무라 다이치]]의 권유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는 줄곧 해온 육을 그만두었다. 연습을 거듭해 쌓아온 것은 보다 훨씬 허무하게 끝난다. 그 실감과 허무함을 잊기 위해 시작한 일. 그녀는 육을 잊기 위해 배구부 매니저일에 몰두한다.
          * 그러는 사이 키요코는 무사히 당사자를 만나 가방을 수령해 돌아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시작했던 일. 자신이 사라지면 그저 "원래대로" 돌아갈 뿐이라고 생각했던 일. 그러나 동료들이 있다. 자신의 일은 누군가가가 이어야 한다. 도맡아야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일이니까. 그리고 만나게 된 히토카.
          * 신발을 되찾은 히나타. 야마구치와 함께 키요코에게 연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5m는 뛸 수 있겠다며 방방 뛰어다닌다. 사와무라가 선수들을 정렬시키는데 그때 사와무라의 목소리까지 덮어버릴 정도로 큰 목소리가 들린다. C코트 제 3시합. 카라스노 고교의 첫 대 카나가와현의 "츠바키하라" 학원 등장.
  • 하이큐/245화 . . . . 15회 일치
          * [[카라스노 고교]]의 선수들은 히나타와 비슷하지만 위호환격인 그의 플레이를 보며 히나타가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 "작은 거인" [[호시우미 코라이]]와 마주친 [[히나타 쇼요]]. 물론 서로 초면에 알지도 못하는 사이지만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동행 중이던 [[야마구치 타다시]]는 혹시 둘이 아는 사이냐고 묻는데 히나타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대방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 황을 종결시킨 것은 마침 매점에 들른 [[카게야마 토비오]]다. 카게야마는 전일본 유스에서 만났던 호시우미를 알아본다. 카게야마가 먼저 아는 척을 하자 호시우미도 인사하며 시합결과를 묻는다. 카게야마가 이겼다고 하자 축하해준다.
          카게야마는 정직으로 호시우미를 소개한다. 카모메다이 학원 2학년인 호시우미 코라이. 등번호 5번에 포지션은 WS고 키는 불과 169cm. 전일본 유스에선 카게야마 앞에서 놀라운 기량을 선보여 히나타의 성장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다. 대를 의식한건 히나타 뿐이 아니었다. 호시우미는 소개를 끝내자마자 히나타에게 포지션과 키에 대해 묻는다. 히나타는 경쟁의식 때문인지 포지션은 제대로 MB라고 대지만 키에 대해서는 165cm라고 살작 반올림해서 대답한다. 원래는 아직도 164cm. 호시우미는 최고도달점도 묻는데 현재 히나타는 333cm다. 호시우미는 그 대답을 듣고 이겼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 그리고 카모메다이 학원의 시합 시작. 카라스노 고교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주의깊게 경기를 지켜본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우카이 감독의 지인에게 붙들려서 아직도 이런저런 잔소리 듣는 중. 관중들 대부분은 눈에 띄게 키가 작은 호시우미에게 이목이 모인다. 히나타와 카게야마 역시 그의 활약에 집중한다. 카게야마는 전 일본 유스 직후 히나타에게 "정말 잘 뛰는 점프"에 대해서, 호시우미의 요령을 히나타에게 전달했던 적이 있다. 히나타가 그 점프의 주인공이 호시우미라는걸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의 점프가 범치 않다는건 눈치 챈 것 같다.
          카게야마의 묘사처럼 "동", 하고 뛰어 오른 호시우미가 대측 블록의 위에서 스파이크를 꽂아넣는다. 야마구치는 그 점이 대단하다며 혹시 잡지 같은데 실린 적은 없냐고 묻는다. 옆에 있던 카게야마는 그가 취재받는걸 싫어해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해준다. 히나타는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난다.
          >히나타는 2m 대로도 지지 않고 싸웠지만
          >대는 평균 신장 180cm를 넘어서 전부 호시우미 선수보다 큰 대였는데 어땠나요?
          * 호시우미의 동료는 이쯤에서 인터뷰를 끊는다. 그는 호시우미 대신 "말이 꼬인 것 같다. 죄송하다"고 기자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호시우미에겐 "칭찬하는 사람은 사심없이 칭찬하는 거고 실제로 너 자신이 불리한 것도 자각하고 있고 그런데도 활약했으니 대단하다고 말하는 거다. 넌 자의식 과잉이다"라고 속사포로 제재를 가한다. 동료가 호시우미를 달랑달랑 들어올리며 사과드리라고 하자 호시우미가 싫어하면서도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하면서 황은 종료된다.
          그러는 동안 호시우미는 바로 옆에서 히나타가 황을 보고 있던걸 눈치챈다. 둘은 매점에서 그랬던 것처럼 눈이 마주친다. 하지만 떨떠름한 표정의 호시우미와 달리 히나타는 꾸벅 인사를 하고 후다닥 도망쳐 버린다. 그 모습을 찡그린 표정으로 호시우미가 바라본다.
          팀으로 돌아온 히나타. 우카이 코치가 돌아와서 막 짐을 꾸리는 중이다. 야마구치가 왔느냐고 말을 거는데 그는 심치 않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다. 히나타가 호시우미를 의식하게 된 걸 눈치챈 3학년들은 그의 반응을 주의깊게 살핀다.
  • 하이큐/265화 . . . . 15회 일치
          * [[카라스노 고교]]가 [[이나리자키 고교]]를 대로 1세트 승리를 거두기 30분 즘. B코트에선 네코마 고교가 사루카와 공고를 대로 승부 중이었다.
          * 그의 진짜 목적은 대의 멘탈보다는 피지컬을 소모시키는 것. 그러기 위해서 "네코마의 뇌", 코즈메를 가장 먼저 지치게 만들 생각이었다.
          야쿠는 쿠로오가 묘한 감에 젖을 틈을 주지 않고 "정작 켄마는 그런 생각 안 하는거 아니냐"고 돌직구를 날렸다. 쿠로오는 새삼 정말 이런 돌직구를 날리는 놈이구나 하고 감탄한다.
          쿠로오의 쇼크. 본인이 정말 그렇다고 말하니 꽤 충격이다. 하지만 코즈메는 다시 "조금 그렇다는 얘기"라며 소꿉친구의 호들갑을 차단했다. 단지 신경 쓴다는 이유만으로 몇 시간씩이나 연습할 수는 없고 애초에 배구가 싫었다면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세에는 [[히나타 쇼요]]처럼 100%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동기로 배구를 하는 선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쪽이 오히려 드물고, 그건 일종의 병이다.
          *야쿠는 그 말을 곱씹어 봤다. 돌이켜 보니 코즈메는 확실히 체력은 없지만 실제 연습에선 어지간하면 다 따라왔다. 가끔 땡땡이를 치는 정도로. 마침 쿠로오가 전에 했던 이야기도 생각났다. 빨리 일어나기 사건. 코즈메는 게임 때문에 맨날 늦게 잤는데, 쿠로오가 런닝하려고 일찍 일어나 보면 그때도 코즈메 방에 불이 들어와 있는 일이 많았다. 그때가 대략 오전 5시 경. 처음엔 철야로 게임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철야가 아니라 "일찍 일어난" 거였다. 무려 오전 2시 기. 철야를 하면 부모님이 게임을 죄다 버려버리니까, 반대로 아주 일찍 일어나서 게임하는건 참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그러나 카이는 코즈메가 최근 더 의욕이 생긴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카라스노 고교]]과 연습시합을 하면서부터다. 야쿠도 "거기 꼬맹이"랑 죽이 맞아서 같이 다니더라고 맞장구 쳤다. [[히나타 쇼요]]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둘이서 완전 정반대 타입이면서 잘도 죽이 맞는다고 했다. 쿠로오는 희안하게 생긴 친구라 그렇다 했다. 코즈메 입장에선 "실존하는, 귀중한 공략 대"일 거라고 추측했다. 히나타도 코즈메는 꼭 쓰러뜨리고 싶은 라이벌 중에 하나일 테고. 비록 야쿠는 "켄마는 져도 신경 안 쓰니 이겨도 보람이 없을 거다"고 반쯤 빈정거리긴 했지만, 히나타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것이다.
          두 소년은 공을 들고 공터로 갔다. 둘이서 시작한 레벨 노가다. 코즈메가 레벨 업이라고 말하게 된 계기였다. 이 그리운 시절을 회하는 쿠로오에게, 야쿠가 가차없이 분위기를 깼다.
          쿠로오는 야쿠가 정서란 말을 알기는 할지 궁금했다. 야쿠가 현재 최대로 신경 쓰는건 팀의 승리도 보람찬 플레이도 아니라 남은 봄고 4일차 동안 자신이 가장 튀어야 한다는 쇼맨십이었다. 여기에선 쿠로오도 지지 않았다. 자기는 벌써 여자 아나운서하고 인터뷰할 구까지 해놨다고 대항했다. 이렇게 둘이서 투닥거리며 소란이 일었다. 아까 자판기를 선점하고 있던 타학교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렸다. 소란을 사과하고 황을 수습하는 사람은 카이 뿐이었다. 이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네코마의 봄고 1일차가 끝난다.
          * 중계진은 수비전으로 전개되는 경기 양을 양팀 감독에게서 찾았다. 사루카와의 [[시시오 오리타카]]는 젊은 감독이었다. 그는 네코마의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제자 출신이었다. 사제간이라 닮은 플레이를 펼치는 걸까? 중계진의 분석이 맞는 지는 몰라도 경기 양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미카에겐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녀가 보기엔 사루카와도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을 퍼붓는 중이었다. 하지만 선수 출신인 다이쇼가 보기엔 달랐다. 공격이 약하단 이야기가 아니다. 네코마 고교니까 이정도 점수 차로 막고 있지만 보통 대였다면 훨씬 점수를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플레이 양은 득점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네코마 측의 리듬을 무너뜨리는데 주안하는 인이었다. 물론 그걸로는 결정타를 줄 수 없다. 아마도 진짜로 노리는 건 이것이었다.
  • 하지영 . . . . 15회 일치
         | 이름 = 하지
         | 사진설명 = <한밤의 TV연예> 하지 BNT와 함께한 인터뷰화보 18P
         | 본명 = 서지
         | 다른이름 = 지
         | 수 =
         | 웹사이트 = [http://www.cyworld.com/gagjy 싸이월드 미니홈피]
         '''하지'''([[1982년]] [[10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방송인]]이다. [[2003년]] [[KBS]] 18기 공채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2012년]] 예명을 지에서 하지으로 개명하였다.
         * [[서일대학교]] 연극화과
         *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과학실험 사이펀]]》 - 사회자
         === 화 ===
         * 《[[비열한 거리 (2006년 화)|비열한 거리]]》 (2006년) - 서점 여직원 1 역
         * 《[[구세주 (화)|구세주]]》 (2006년) - 교무과 여학생 1 역
         * [http://www.cyworld.com/gagjy 하지 싸이월드 미니홈피]
  • 한비야 . . . . 15회 일치
         | 학력 = [[숭의여자고등학교]]<br />[[홍익대학교]] 문학과<br />[[유타대학교]] 대학원 국제홍보학과<br />[[터프츠대학교]] 플레처스쿨 인도적 지원학 석사
         | 훈 =
         | 웹사이트 = [http://cafe.daum.net/hanviya 한비야 팬카페] [http://cafe.daum.net/lovebiya 한비야를 사랑하는 모임]
         한비야는 1986년 홍익대 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 유타 주에 있는 유타대학 대학원에서 국제홍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구호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는 2008년 현직 구호활동가들을 재교육하는 IDHA 과정을 수료했고, 2010년에는 미국 터프츠대학(Tufts University) 플레처스쿨(Fletcher School)에서 인도적 지원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아아
         == 향 ==
         == 수 ==
         * 2004년 [[한국YWCA]] 선정 젊은 지도자 <ref>{{웹 인용|url=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41101072239742&p=kukminilbo|제목=소비자운동 정광모씨 ‘여성지도자’…YWCA,한비야씨 ‘젊은 지도자’|저자=민태원|날짜=2004-11-01|출판사=국민일보|언어=ko|확인날짜=2009-08-15}}</ref>
         * 2005년 [[환경재단]]이 선정한 세을 밝게 만든 100인<ref>{{웹 인용|url=http://economy.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industry/200512/e2005122717551447580.htm&ver=v002|제목='2005년 세을 밝게 만든 100인' 선정|날짜=2005-12-27|출판사=서울경제|언어=ko|확인날짜=2009-08-15}}</ref>
         * 2008년 [[대법원]] 세계시민의식 고취
         * 2009년 [[한국일보]] 한국에서 가장 향력 있는 여성 3위
         * 2011, 2012년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NGO 분야 3위<ref>{{웹 인용|url=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10812114744228|제목=[2011한국, 누가 움직이는가 - NGO 지도자] NGO도 이제 글로벌 시대|저자=조해수|날짜=2011-08-12|출판사=시사저널|언어=ko|확인날짜=2013-09-02}}</ref><ref>{{웹 인용|url=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821142629416|제목=[2012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NGO 떠나도 향력 그대로
         ** 지난 10년간 가장 향력 있는 책 10 (2010)
  • 한성호 . . . . 15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등포구]] 도림동 (서울) (도로)
         |웹사이트 = http://www.fncent.com
         '''한성호'''([[1974년]] [[1월 20일]] ~ )는 [[대한민국]]의 전 가수로, 현재 [[FNC 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 겸 [[대표이사]] [[회장]]이다. 프로필엔, [[1973년]]생이라 나와있지만 한성호 [[FNC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회장]]의 원래 생년월일은 [[FNC 엔터테인먼트]]의 주식 등의 대량소유황보고서 공시에 표기되어 있는 생년월일 기준으로 [[1974년]] [[1월 20일]]생이다.
         * 서울등포정제약국
         - 자신의 회사(구 F&C뮤직)에 소속되어 있는 FT아일랜드(이홍기), 씨엔블루(정용화)가 출연하고 있는 SBS 《[[미남이시네요]]》 7회에서 까메오로 출연했다. 유일하게 버즈에 이어서 아이돌밴드를 만든 FT아일랜드, 씨엔블루를 무서운 신인으로 만들어 각종 1위, 위권 차트를 휩쓸었다.
         *# 추 (Title)
         *# 내가 세에 없을때 (Title)
         *# 추 (Bonus Track)
         ** [[2002년]] [[11월 23일]] [[MBC]] 《[[생방송 음악캠프]]》: 한성호 - 내가 세에 없을때
         ** [[2015년]], [[2016년]] [[SBS]] [[예능 프로그램|예능]] 《[[동이몽, 괜찮아 괜찮아]]》 게스트 출연
         == 수 ==
         * [[2011년]] 제1회 [[한국음악저작권대]] [[록 음악|락]]부문 [[작사가]]
         * [[2013년]] 제27회 [[골든디스크]] 어워즈 [[음반]]부문 [[제작자]]
  • 한승조 . . . . 15회 일치
         일본 보수언론인 [[산케이 신문]]의 자매지인 세이론(正論) [[2005년]]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사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 조약|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글의 내용 중에 "[[식민지 근대화론|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구절 등이 문제되어 대한민국 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ref>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503/h2005030411490221950.htm 한국일보 - 한승조 "일본 식민지 지배는 축복"]</ref>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친일파|신친일파]]<ref>[http://www.hani.co.kr/section-007100002/2005/03/007100002200503132126035.html 한겨레신문 - 한-일 우익 ‘역사왜곡’ 연대조짐] : 한승조 전 고려대 명예교수의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발언을 지지하는 국내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우익 잡지에 등장하는 한국 우익들의 입에서 한반도 강점이 부당하다는 논조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이들의 반북 논리는 그동안 암약하던 한국 내 ‘신친일파’의 본격적인 커밍아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ref>라고 부르기도 한다.
         * 《남북한의 인성 사교육:아산재단연구총서 제42집》 (1998)
         * <평화통일을 위한정치사>
         == 훈 경력 ==
         * [[사의 자유]]
         * [[윤이]]
         * [[윤치]]
         * 유익, 수정주의와 한국현대사(현대한국학 연구소 학술총서 1) (연세대학교출판부, 1998)
         * 한승조 외, 남북한의 인성 사교육(아산재단연구총서 제42집) (집문당, 1998)
         * 윤세원, 동양사과 한국의 비전 (일념, 1989)
         * 강준만 , 한국 논쟁 100 (인물과사사, 2005)
         * 성일권,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미디어에 비친 지식인의 일그러진 초 (성일권, 고즈윈, 2006)
         * 인물과사사, 인물과 사 2005년 4월호 (편집부 지음, 인물과사사, 2005)
  • Crusader Kings 2/종교 . . . . 14회 일치
          * 추기경은 주가 아닌 교황에게 세금을 냄
          * 주는 대립 교황을 세울 수 있음
          * 주는 작위와 배우자가 없는 가신을 수도원으로 보낼 수 있음 - '''Sons of Abraham DLC 필요'''
          * 교황 작위는 지가 없어도 항 존재함
          * 주는 작위와 배우자가 없는 가신을 수도원으로 보낼 수 있음 - '''Sons of Abraham DLC 필요'''
          * 세계 총대주교 작위는 지가 없어도 항 존재함
          * 성파괴주의(Iconoclast)
          * 주는 작위와 배우자가 없는 가신을 수도원으로 보낼 수 있음 - '''Sons of Abraham DLC 필요'''
          * 오리엔트 정교황 작위는 지가 없어도 항 존재함
          * 고위 사제 작위는 지가 없어도 항 존재함
  • USS 뷰캐넌 . . . . 14회 일치
         USS Buchanan.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미국-국 [[구축함]]. 인깊은 최후로 인해 원래 이름인 "USS 뷰캐넌"보다 국식 이름인 "HMS 캠벨타운"이 더 유명하다.
         취역한지 1년도 안 된 뷰캐넌은 대서양을 떠나 태평양에서 활동한다. 이후 뷰캐넌은 퇴역과 재취역을 반복했다. 1922년 7월 7일 퇴역했지만 1930년 4월 10일 USS 소머즈(USS Somers)가 퇴역하며 재취역했다. 이렇게 태평양에서 활동하던 뷰캐넌은 1937년 4월 9일 다시 퇴역한다. 1939년 9월 1일,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미 해군은 해군력을 불리기 시작한다. 1939년 9월 9일, 뷰캐넌은 3번째 취역을 맞는다. 이후 뷰캐넌은 대서양에서 활동하다 1940년 9월 9일, 미국과 국이 맺은 조약[* Destroyer for Bases Deal. 국이 미국에게 기지를 대여해주는 대신 미국은 국에게 구축함을 지원하는 조약.]에 의해 국 해군에게 넘겨진다.
         국에게 넘겨진 뷰캐넌은 타운급 구축함 HMS 캠벨타운(Campbeltown)으로 개명된다. 9월 29일 잉글랜드 데본포트에 도착, 국 해군에 맞게 개장된다. 이후 제17호위대(17th Escort Group)에 배속, 국의 서해안을 지키는 임무를 맡는다. 1941년에는 대서양의 수송함대 호위를 맡았으며, 1942년에는 마지막 임무인 "채리엇 작전"(Operation Chariot)에 참가한다.
         1942년 3월 28일 새벽, 캠벨타운은 국군 어뢰정의 호위를 받으며 생나제르 앞바다에 도착한다. 독일군에게 발각된 캠벨타운은 수문에 돌진, 들이박는다. 10시간 후, 캠벨타운에 탑재된 폭뢰가 폭발, 약 300명의 사망자를 내며 수문을 파괴한다. 이로인해 노르망디 독은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게임 [[월드 오브 워쉽]]에서 국 프리미엄 선박으로 등장한다.
         [[https://www.history.navy.mil/research/histories/ship-histories/danfs/b/buchanan-i.html|미해군역사유산사령부 홈페이지의 뷰캐넌 페이지(어)]]
         [[http://www.naval-history.net/xGM-Chrono-11US-Campbeltown.htm|naval-history.net의 HMS 캠벨타운 페이지(어)]]
  • 강기웅 . . . . 14회 일치
         |문 표기 = Kang Ki-Woong
         |사진 사이즈 =
         |출신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
         [[1988년]] [[10월 25일]]에 [[우리은행|업은행]]과의 대구에서 세계 최초 5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자 (2루수)|골든 글러브]]를 세 차례(1989, 1990, 1993) 차지했다. [[유격수]] [[류중일]] - 2루수 강기웅의 키스톤 콤비는 [[KBO 리그]] 역사 가장 좋았던 콤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거꾸로 쳐도 3할이라는 천재적 타격을 자랑했으나, 약한 체력이 단점이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6872 5연타석 홈런의 천재 2루수 강기웅] - 오마이뉴스</ref> 통산 타율 0.292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1988년]] [[10월 25일]]에 [[우리은행|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세계 최초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1995년]] [[5월 13일]]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대구에서 1루수 [[이승엽]]과 충돌하여 입은 발목부이 악화되어 내리막길을 걸었고, 부 등의 이유로 [[백인천]] 감독과 불화를 일으켜 [[백인천]] 감독이 그를 [[1996년]] 시즌 후 외야수 이희성, 투수 최광훈을 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했으나, 그는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는 뛸 이유가 없다고 의사를 밝혀 트레이드를 전격 거부하고 [[1997년]] 2월에 현역에서 물러났다.<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SH.php?url=baseball/201102/sp2011020917031657360.htm&cd=2101&ver=v002 명품 2루수 강기웅] - 한국일보</ref> 은퇴 후 유통업에 종사했다. 은퇴 때 그는 “심장에 푸른 피가 도는데 어떻게 유니콘스 옷을 입을 수 있었겠느냐”라는 말을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56 천재 강기웅의 인생 유전] - 박동희 칼럼</ref> [[2011년]] [[8월 10일]]에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친정 팀에 돌아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5206016 삼성, 2군 타격코치로 강기웅 씨 입] - 연합뉴스</ref>
         * [[남대학교]]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자]]
         [[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4회 일치
         == 세 ==
         그 존재가 최초로 확인된 경우는 중국 케이케시에서 태어난 빛이 나는 아기인 모양이며 뉴스로도 보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각지에서 개성이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이때를 초여명기라 부른다. 이 시대에는 초능력을 각성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대립이 일어나는 등 혼란이 극심해서 문명까지 정지해버렸으나 미도리야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히어로는 개성이 없으면 안된다고 못이 박힌 듯한 인마저 있을 정도로 현 인류 사회에서 존재감이 크다. 다만 극중에서 개성이 어째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현재로선 묘사가 없다.
         술했듯이 최고 인기 직종인 히어로는 개성이 필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회에서 개성의 존재감이 크며 개성에 따른 생활이나 히어로 활동 보조를 위한 아이템도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다.
         개성과 관련된 법률도 당연히 이미 제정되어 있는 태인데 세한 면은 나오지 않았으나 일단 자격이 없는 태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한도 이 사용할 수 없는 모양.[* 극중에서 뭐가 됐건 억눌린 시대라는 말이 이것과 관련이 잇을 듯하다.]
         개개인마다 차이점이 있다보니 매우 강력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맥빠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으나 뭐가 됐건 개성 자체는 단련해서 승시키는 것이 가능한 듯 하다. 게다가 개성에 따라서는 별도의 단련이 필요하다.
         개성 발현 2~3세대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구시대의 악습. 강한 개성의 소유자들끼리 결혼시켜 더 강한 개성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결혼이다. 사실 인간 품종 개량이라 봐도 무방한 것. 개성 사회의 씁쓸한 부분이며 현 시대에서는 술한 대로 구시대의 악습이라 인식되는 듯 하다. 그런데 극중에서 한 히어로가 이를 현대사회에서 실행했다.
          * 기본적으로 한명에 한능력같지만 타고난 개성에 따라 만능적인 특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스이 츠유]]의 <개구리>가 좋은 예시. 토도로키 쇼토의 경우 아예 반되는 힘을 타고 났다. 그래도 아스이의 개성은 결국 다방면에서 활약이 가능할 뿐이지 하나의 개성이며 토도로키도 부모의 유전으로 두가지 특성을 가진 하나의 개성을 타고난 것이다. 이와 구별되는 복수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기본적으로는 없는 듯 하다.
          * 개성의 향 탓인지 보편적인 인간과 다른 이형적인 외모를 볼 수 있는데 조금 특이한 외모인가 하면 아예 이종족으로 보일 정도로 동떨어진 경우도 존재한다. 개성이 일반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문자 그대로 별일 아닌 듯하나 이형계를 혐오하는 세력도 나오고, 차별의 대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빌런 연합의 스피너가 이런 경우.]
  • 고인범 . . . . 14회 일치
         || '''수''' ||<(> 2012년 제30회 부산연극제 우수연기 ||
         2008년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명나라 사신 황엄 역을 맡으면서 유창한 중국어 구사로 시청자들이나 업계들의 눈도장을 받아 이후 수많은 드라마나 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180cm 훤칠한 키에 흔히 등장할때마다 백발머리 또는 은발머리이다.[* 단 사극은 제외][* 사실 카리스마 이미지와 부합하여 은발과 백발은 트레이드 마크이자 징이다. 근데 새치염색하면 사람들은 그를 못 알아본다고...]
          * 2006년 KBS 1TV 대하드라마 [[대조(드라마)|대조]] - 부복애
          * 2010년 KBS 1TV 대하드라마 [[자유인 이회]]
          * 2012년 KBS 2TV 수목드라마 [[각시탈(드라마)|각시탈]] - [[조근]]
          * 2013년 SBS 대기획 [[황금의 제국]] - 가 건물주 사장
          * 2015년 SBS 월화드라마 [[미세스 캅]] - 최익 (특별출연)
          * 2016년 OCN 주말드라마 [[동네의 웅]]
          * 2016년 KBS2 주말연속극 [[아이가 다섯]] - 민과 태민의 아버지
         === 화 ===
          * 2008년 [[쌍화점(화)|쌍화점]]
  • 김대륙 . . . . 14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롯데 자이언츠/선수단, top2=야구 관련 인물(KBO))]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6월 7일 [[KIA 타이거즈|KIA]]를 대로 2-1로 뒤진 9회 안타를 친 [[최준석]]의 대주자로 1군경기에 첫 선을 보였다.
         6월 11일 [[kt wiz|kt]]를 대로 6회초에 대수비로 들어온 후 6회말에 프로 첫 타석, 초구를 받아 쳐 좌전안타를 만들어냈다.
         6월 12일 [[SK 와이번스|SK]]를 대로 데뷔 첫 선발 출장을 했지만 결과는 2타수 무안타. 이름이 이름이다보니 방송사에서도 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U_0DjYducY|#깔끔한 반도의 수비, 김대륙]]
         7월 14일 청주구장에서 있었던 한화와의 경기에서 1아웃에서 나온 [[짐 아두치]]의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에 2아웃처럼 전력 질주하는 예술적인 뇌주루를 보여주면서 한화의 역전승에 큰 도움이 되었다.~~ 대륙의 기. 대륙횡단.~~ 후에 집중해야 한다고 허구연이 한소리 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수비하다가 이용규를 내야안타로 내보냈고 이게 결국은 끝내기가 되었다. 한화의 끝내기 승리가 결정된 이후 카메라가 김대륙을 클로즈업 했을 정도. 한마디로 나쁜 의미로 경기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5월 18일에는 무려 데뷔 첫번째 3루타를 기록하였는데, 3루타를 친 대투수가 '''김광현'''이다. 심지어 2스트라이크 황에서의 2타점 3루타였다!-- 세에… 이제 홈런만 보면 되는 건가?-- 두 번째 타석에서는 2루타까지 기록하며, 올 시즌 첫번째, 개인 통산 첫번째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세 번째 타석에서는 풀카운트 끝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8월 20일 SK전에서 대수비로 나와 1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10회초 1사 1,2루 황에서 타자가 때린 공이 직선타처럼 날아오자 재치있게 원바운드 처리해서 병살을 잡았다. 그러나 심판들의 환적인 오심 때문에 인필드 플라이로 처리되고 말았다.
         시즌 후 무 야구단에 [[김준태(야구선수)|김준태]]와 함께 지원했지만 최종 합격한 김준태와 달리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
         백업으로 간간히 나오고는 있다. 주로 3루나 유격쪽으로 많이 들어가는 편인데, [[신본기]]가 초반 타격 부진이 심각할 때 잠깐 주전으로 나왔지만 타격을 그 신본기보다 못해서 원히 백업으로 남아있다. 향후 타격 발전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까지 1군에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 수비는 당히 잘하지만 그 절반을 공격이 못 받쳐주니 문제. 수비는 왠만한 사람들이 다 인정하지만 공격 툴은 주루 빼고는 많이 안 좋은 편이다
  • 김상훈 (1963년) . . . . 14회 일치
         |이름 = 김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서구 (대구광역시)|서구]] [[비산동 (대구)|비산동]]<br />(現 [[대구광역시]] [[서구 (대구광역시)|서구]] [[비산동 (대구)|비산동]])
         |학력 = [[남대학교]] 법학 학사<br />[[오리건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소속임위 =
         |웹사이트 = http://kimsh.or.kr/ps/
         '''김훈'''(金相勳, [[1963년]] [[1월 25일]] [[대구광역시|대구]] ~ )은 [[대한민국]] 전 공무원이자 정치인이다.
         * 1990년 : [[남대학교]] 법학과 졸업
         * [[2009년]] ~ [[2011년]] [[12월]] : 대구시청 경제통국장
         * [[2013년]] [[4월]] ~ [[2016년]] [[5월]] : 제19대 국회 전, 후반기 산업통자원위원회 위원
         * [[2014년]] [[6월]] ~ [[2015년]] [[2월]] : 제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운위원회 위원
         * [[2018년 8월]] ~ : 자유한국당 비대책위원회 정당개혁위원회 위원
         |후임자 = 김
         |전임자 = 김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우중 . . . . 14회 일치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br>(現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수 = [[1999년]] 20세기 한국을 빛낸 30대 기업인
         |웹사이트 =
         광산김씨 김우중은 [[1936년]] [[12월 19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김용하와 전인항 사이의 6남매 중 4남으로 태어났다.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납북되자 15세에 홀어머니 아래서 소년가장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게 된다. 휴전 후 경해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 진학하고 1956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창생활을 보냈다.
         [[1989년]]에 펴낸 자서전인《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2년]]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출마하려 했으나 [[김삼]]의 압박으로 불발되었다. [[1993년]] [[대우그룹]]은 세계경을 선포하였고 또한 김우중은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축구협회]]의 회장을 맡았다. 하지만 [[1990년]] 장남 선재를 잃고,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위기를 잘 넘기며 [[대우그룹]]을 [[1998년]]에 재계 2위로 이끌며 성장시켰다.
         그러나 [[1997년]] [[IMF 구제금융사건|IMF 구제금융]]으로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고, 그로 인한 여파로 부채비율이 400% 이이었던 [[대우그룹]]은 쌍용을 인수하는등 확장정책을 이어나갔지만 [[일본]] 노무라 증권이 [[1998년]] [[10월 25일]]에 발표한 '[[대우인터내셔널|대우]]에 비벨이 울린다'는 보고서 1장으로 사실 [[대우그룹]]이 위기를 맞게 된다. 후에 계열사를 41개에서 4개업종 10개 회사로 구조조정 단행과 [[삼성그룹]]과의 빅딜도 추진하나 둘다 실패했다. [[1999년]] [[8월 26일]] 이미 구조조정으로 회사 41개중 16개가 매각되었고 남은 25개 회사중 12개가 워크아웃을 신청하였다. 당시 부채는 500억 달러였다. 당시 [[대우그룹]]은 금융부문을 중점으로두고 사업확장을 하여 내부적으로 부채가 많았다. 사실의 그룹 해체였다. [[1999년]] [[11월 1일]] 김우중은 13명의 [[대우그룹]] 사장단들과 함께 경포기 및 회장직을 사퇴하였다.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국한 후 도피생활을 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호화롭게 생활을 했다는 주장과, 반대로 [[유럽]] 등지의 3류 호텔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어렵게 생활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대우그룹]]은 당시 [[김대중 정부]]가 정치적으로 탄압했다는 설과 단순한 [[구조조정]] 실패라는 의혹이 있다.
         5년 8개월 간의 해외로 도피 생활을 지속하다가, [[2005년]] [[6월 14일]] 입국하여 [[대한민국 검찰|검찰]]의 조사를 받았으며,<ref>[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61640 관련기사]</ref>[[2006년]] [[11월 3일]] 열린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천 253억원의 형을 구형받았고, 항소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2007년]] [[12월 31일]] [[사면|대통령 특사]]로 사면되었다.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추징금의 0.5%정도인 약 887억원을 납부하였다. [[2013년]] 김우중법에 대해 논란이 일었고, 여전히 17조 8000여억에 달하는 추징금을 미납한 태이다. [[2014년]] [[대우그룹]] 창립 기념일에 추징금 문제가 불거져 참석하지 못했다. 그해 [[8월 26일]]에 [[대우그룹]] 해체 15주기를 맞아《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분류:193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연세대학교 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분류:대우그룹]][[분류: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수훈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2화 . . . . 14회 일치
          * 대는 웅고 수석 입학도 마다한 유망주인데...
          * 미도리야는 임시변통이라고 표현했지만 올마이트는 그 이의 이점이 있을 거라고 평해주는데.
          * 결국 타교학생들과 자격을 놓고 다퉈야 하는 황.
          * A반은 통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 불리한데다 훨씬 많은 훈련을 받은 학생들을 대로 싸워야 한다.
          * 이들은 "동쪽엔 웅 서쪽엔 사걸"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명문 히어로 학교 "사걸 고교".
          * 이나사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면서 웅고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 머리가 깨져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웅고와 경쟁할 수 있어서 광이다"같이 텐션 높은 말만 늘어 놓는다.
          * 게다가 피에 대해서 지적 받아도 "괜찮다. 피는 좋아한다"같은 문 모를 소리나 하고 있다.
          * 아이자와는 그를 잘 알고 있는데, 그는 한때 웅고의 유망주였던 "요아라시 이나사"
          * 사실 실력만으론 토도로키 이이라고 할 만큼 강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3화 . . . . 14회 일치
          * 유명세만큼 전력이 노출돼 있는 웅고는 시합 개시와 동시에 타학교의 집중 공격을 당하나 미도리야의 지휘 아래 돌파해나간다.
          * 웅고를 좋아하지만 웅고를 차버린 요아라시 이나사.
          * 신도라는 학생은 올해 이어진 웅고의 트러블에 대해 위로하며 A반 학생들과 하나하나 악수를 나눈다.
          * 바쿠고 카즈키에게도 악수를 청하는데 그는 "말이랑 면이란 안 맞는다"며 손을 쳐낸다.
          * 신도 외에 다른 학생들도 웅고 학생들을 연예인 보듯 좋아라한다.
          * 공무원 같은 인인데 정작 잠자는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이다. 이쪽도 정은 아닌 듯
          * 웅고 입학 시험과 비슷하지만 대인전이란 점에서 전혀 다르며 다른 사람이 공략하던 수험자의 세 번째 타깃만 스틸하는 책략을 권장하는 룰.
          * 토도로키 쇼토는 개성의 성질 뭉쳐 있으면 쓰기 어렵다며 단독행동에 나선다.
          * 사실 학교 단위 대항전 성격이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개성은 물론 약점, 스타일까지 알려진 톱학교"가 집중 공격의 대이 되는 것.
          * "웅 무너뜨리기"
          * 시합 개시와 함께 모든 학교가 웅고를 집중 공격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14회 일치
          * 올 포 원은 그는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다고 시치미를 뗀다. 그러면서 올마이트의 은퇴가 세의 혼란만 야기했다고 야유한다.
          * 웅고 학생들은 기숙사로 복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바쿠고 카츠키]]가 미도리야의 "개성"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 이을 품고 체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
         원히 이 속에서 살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한 노력은 아끼지 않아. ||
          * 올마이트는 그렇다면 어째서 후계자를 기른 거냐고 묻는다. 올 포 원은 어째서 네가 그런걸 묻냐며 "네가 모든걸 빼앗았기 때문"이라 답한다. 분명 그의 썩어가는 몸도, 갇힌 신세도 올마이트가 한 짓이다. 무한하다고 생각했던 올 포 원의 이이 올마이트에 의해 저지되고 "유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깨달았다. 끝이 오면 사람은 누군가에게 그걸 맡긴다. 그러면서 발전한다. 올 포 원은 모두가 하려는건 자신도 하는 거라고 정리한다.
          * 대화가 한창이지만 형무소 측에선 3분 남았다고 통보한다. 올 포 원은 정말로 즐거운 듯 조금만 더 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올마이트의 은퇴로 세이 동요하고 있을 거라며 세의 동향을 묻는다. 그는 세과 교류가 단절돼 있고 이 순간 조차 올마이트에게 바깥 일에 대해선 함구하라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올 포 원은 바깥의 사정을 매우 정확하게 추정하고 있다. 올마이트의 은퇴가 야기한 혼란들. [[엔데버]]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하지만 세은 불안해지기만 하고 억지력이 사라진 그늘 속의 인생들이 할거한다. 시가라키는 잠시 동안 잠복할 것이며 대두하는 세력들을 파악하고 세력을 키우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빌런들 간의 경쟁, 대립도 심화.
          올마이트는 더이 참기 어려운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 올마이트를 타르타로스로 안내한건 [[츠카우치 나오마사]]였다. 돌아가는 길고 그의 차를 이용한다. 츠카우치는 하필 임시면허 시험일자와 날짜가 겹쳤다고 사과한다. 그러면서 어땠냐고 묻는데 올마이트는 유감스럽지만 정보는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도 예했는지 "장기전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츠카우치는 또 수속 관계로 정리를 못했다며 "스팅"과 면회는 어쩔 거냐고 묻는데 그때 전화가 울린다.
          * 기숙사로 돌아온 웅고 학생들.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미도리야는 메시지를 보내놓고 친구들과 잡담을 나눈다. 그런데[[ 바쿠고 카즈키]]가 나타나 그를 불러낸다.
          * 그 말투와 행동이 심치 않은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14회 일치
          * 어쨌거나 [[시가라키 토무라]]의 결단에 따른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 시에핫사이카이의 사무실에 신고하러 온다.
          * [[시가라키 토무라]]가 진심을 보였다.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가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지만, 그들은 시가라키의 결단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시에핫사이카이의 사무실에 갔다. 토가는 시가라키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트와이스는 용서 못한다, 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개성넘치게 입단인사를 마쳤다. 어차피 핫사이카이측에서도 랏파 정도나 이들을 환하고 환인사로 싸우려 들었다. 나머지는 모두 시큰둥.
          [[오버홀]]은 이들의 신고를 받으며 심심한 유감을 표시했다. [[마그네]]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죽음에 대해서]]. 오버홀도 "그"를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고 이젠 지나간 일이니 한 식구가 된 이 잘 해보자는 말이었다. 그 말이 트와이스의 신경을 긁었다. 우선 마그네의 아이덴티티는 "그녀". 트와이스가 그걸 가차없이 지적하며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포장만 잘했다"고 빈정거렸다. 하지만 그 오락가락하는 성격대로 곧바로 태도를 바꿔 "그래서 뭘하면 되냐"고 적극 협조적으로 나온다. 어지간히 어처구니 없는 녀석들은 철포옥 핫사이슈들 조차도 그 성격에는 어이가 없다고 평한다.
          * 토가와 트와이스, 그리고 이리나카 사이의 짧은 신경전. 먼저 "돼먹지 않았다"고 고개를 저은건 트와이스 쪽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며 절대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강경모드로 들어가는데, 역시 그 성격답게 1초도 지나지 않아 자기 개성을 외판원처럼 자질구레한 것까지 선전해대고 있다. 그의 개성 "카피". 온갖 물건을 두 개로 늘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명확한 "이미지"를 확보하는게 중요하고, 그의 코스튬에는 그걸 위한 아이템이 내장돼 있다. 가령 손목 부위에 내장된 줄자라던가. 인간을 카피한다면 구체적인 신세 사이즈 등이 필요하다.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쓰레기 같은 불완전한 카피가 생길 뿐. 이미지를 완벽하게 재현해도 딱 한 가지는 원본과 다르다. 내구력이다. 뭘 카피하느냐 나름이지만 일정 이 데미지를 받으면 형태가 무너진다. 한 번에 늘릴 수 있는 숫자는 최대 두 개. 하지만 두 번째 카피부터는 내구력이 몹시 약해진다. 덤으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일신 의 사정]]"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카피하는 건 불가능.
          대답은 당연히 No. 토가와 트와이스 모두 망설임없이 답했다. 하지만 믿을 수 있는 대답일지? 적어도 오버홀은 그걸로 만족했다. 그들을 시에핫사이카이의 새 식구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것 뿐. 수배범인 그들을 자유롭게 둘 수 없으니 지시가 있을 때까지 지하의 거주 공간에서 생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둘이 연금이 아니냐고 반발하지만 오버홀은 "신용할 수 있게 되면 좀 더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공수표 같은 말로 대꾸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이리나카가 우쭐거린다. "언제까지 그런 태도면 안 된다는 말"이라며 으스댄다.
          * 이리나카가 이제 원망해봐야 늦은 일. 쉽게 도발에 넘어간 자신의 실책이다. 그의 비통한 외침은 [[서 나이트아이]]가 던진 특제 날인이 끊었다. 날인이 정확히 턱을 강타하자 이라나카가 정신을 잃었다. 미도리야는 그를 낚아채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 황을 종결시킨다.
          나이트아이는 황을 종합해보곤 빌런 연합에게 이용 당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로인해 성가신 미궁도 끝났다. 일장일단. 이제 그들을 막을 장애물은 얼마 없다. 미도리야는 자연 에리쨩과, 그들을 앞서간 선배 [[토오가타 밀리오]]를 떠올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14회 일치
          * [[오버홀]]은 에리의 "인자"를 사용해서 마침내 구적으로 개성을 제거하는 "개성파괴탄"을 완성한 태였다.
          * [[토오가타 밀리오]]를 대로 열세에 놓이자, 그는 [[네모토 신]]이 아직 싸울 수 있는걸 발견하고 그 탄환을 넘겼다.
          * 밀리오는 에리가 더이 고통스럽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 함정에 걸려 에리를 감싸고 대신 개성파괴탄을 맞는다.
          * 밀리오가 자기가 지키려던 아이의 개성으로 모든 걸 잃게 됐다며 오버홀이 비웃지만, 그의 신념은 꺾이지 않고 무개성인 태로도 오버홀을 압도한다.
          * 밀리오는 무개성이 되고도 5분 이 에리를 지키며 싸웠지만 오버홀이 다시 에리를 노리고 공격을 가하자 그걸 막기 위해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겨우 기어다니는 처지였지만 한 발 쏘는 정도라면 충분. 네모토는 놀라운 속도로 탄환의 수령부터 장전까지 마쳤다. 의외로 시간을 허비한 것은 조준이었다. 누구를 노리나? 철포옥 핫사이슈는 쓰고 버리는 장기말이었지만 네모토는 조금 달랐다. 지금 오버홀이 넘겨준 탄환이 무엇인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발이라도 낭비할 수는 없다. 이 황에서 노려야할 건 당연 밀리오로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통과"하는 개성. 일반적인 방법으론 맞출 수 없다. 몰래 노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오버홀이 탄환을 넘기는 시점에서 눈치채버렸다. 쿠로노는 기절한 태.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저 투과 개성을 무력화할 수 있을까?
          * 밀리오는 황을 파악하는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버홀이 넘긴 탄환, 네모토의 장전, 그리고 에리를 향한 조준. 함정이다. 분명 자신이 막으러 갈 거라는 계산.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에리는 자신을 겨누는 총구를 보고도 소리지르지도 달아나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다물었다. 살의를 마주할 때마다 언제나 그랬다. 이 아이는 피할 수 없는 아픔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걸 참고 받아들이는데 너무나 익숙했다. 아픔과 공포를 통해 깊숙히 새겨진 절망. 오버홀이 말했었다.
          그 말이 맞았다. 밀리오는 망설이지 않았다. 총구와 에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이제 더는 아이가 슬퍼하게 두지 않을 거니까.
          * 오버홀은 비참하게 무릎 꿇은 밀리오를 볼 수 없었다. 그가 고개를 든 순간 날아온 쿠로노가 시야를 가렸다. 밀리오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전황은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었다. 그는 쿠로노를 걷어차서 오버홀에게 날리고 동시에 빠르게 접근했다. 쿠로노의 몸에 떠밀리면서 오버홀은 방어할 기회를 놓쳤다. 묵직한 주먹이 몸통으로 들어왔다. 오버홀은 오른팔을 갖다대서 가까스로 클린 히트를 피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몸이 후둘거리는 충격이었다. 그러고도 밀리오가 멈출 기색은 없었다. 대의 움직임을 잘 보고 예측하는 것. 그리고 대응하는 것. 언제나 해오던 일이었다. 아무 것도 바뀐 건 없었다.
          * 밀리오가 오버홀을 따라잡은지 15분. 그중 개성파괴탄을 맞은 5분. 2 대 1의 불리한 황에서도 그는 싸웠다. 그 중 3분의 1은 개성 조차 없어진 태였지만, 전황은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61화 . . . . 14회 일치
          * [[오버홀]] 치사키와 [[미도리야 이즈쿠]]의 대결 여파로 지의 가옥 네 채가 파손되고 경자 세 명이 발. 그 외에는 경미한 피해로 끝났다. [[하도 네지레]]는 미도리야가 주변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싸운 덕이라며 그를 치하한다.
          * 병원으로 후송된 히어로들은 중자가 많지만 대부분 생명에 지장은 없다. 미도리야는 오른팔에 설명하기 어려운 흉터가 남았지만 기능에 이은 없다. 에리는 고열이 내리지 않은 채로 격리된 태. [[아이자와 쇼타]]는 "되돌리는" 개성의 특성 이렇게 하는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이 개성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발동하며 훈련도 제어도 어려운 특이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에리의 개성에는 의존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데, 그건 [[서 나이트아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 마침 [[올마이트]]도 도착해 있는데, 나이트아이의 태가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오는 길이다. 나이트아이는 태가 너무 나빠 리버커리걸의 치료도 먹히지 않는다. 나이트아이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태로 병에서 올마이트와 재회, 올마이트가 "네게 끔찍한 짓을 했다"고 사과하자 그저 올마이트가 행복해지길 바랐고 그가 저항하기로 결심한 거라면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올마이트는 그도 저항하라며, 자신에게 속죄할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남에게 폐를 끼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며 그동안 올마이트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오늘 미래를 바꾸는걸 보여줬고 그건 모든 사람들이 각자 바라는 미래를 바라는 힘이 "에너지"의 형태로 모여서 미도리야에게 전해진 결과라고 추측한다. 원 포 올 100%가 해방된건 그 덕. 그렇게 미래가 바뀌는 걸 봤으니 만족하지만, 한 가지 미련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 그때 [[토오가타 밀리오]]가 간호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병실로 들어선다. 밀리오는 자신도 중인 것도 잊고 나이트아이에게 살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나이트아이는 그저 "그릇"으로 받아들였을 뿐인데 밀리오가 자신을 믿고 존경해주면서 차츰 자신의 긍지로 변해갔다며 유언을 남긴다.
          활기와 유머가 없는 사회엔 "밝은 미래"가 오지 않는단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제자와 스승의 곁에서 나이트아이는 면에 든다.
         == 세 ==
  • 대한민국 FA컵 . . . . 14회 일치
         물론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는 프로팀도 참가가 가능했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의 FA컵으로 규정할 수도 있으나 실제 운에서 프로팀이 별로 신경도 안 쓸 뿐더러 구단의 역사에 특별히 기록하지도 않을 정도로 권위가 없는 대회이기도 했다. 또한 FA컵이 운되고 있음에도 별도로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열렸었다는 점은 사실 전신이라고 말하기에도 곤란한 부분이 있다.
         = 대회운 =
         대회운에 있어 가장 희비가 갈리는 행사다. 추첨을 통해 조를 편성하고, 또 이 결과에 따라 팀이 홈에서 치루냐 원정에서 치루냐가 갈린다.
         2라운드는 1라운드를 돌파한 팀에 전년도 K3리그에서 위권에 있던 팀들을 포함하여 라운드가 구성되며, 단판승부로 3라운드에 진출한다.
         3라운드는 2라운드를 돌파한 팀에 K리그 챌린지, 내셔널리그, K3 최위 순위에 있는 팀이 단판승부를 겨룬다.
         본선부터는 32강체제로 가게되며, 32강부터는 최위 리그인 K리그 클래식에 속한 팀들이 참여한다. 이 때문에 본선은 32강을 짤 때, 1부리그에 속한 팀이 몇개냐에 따라서 한동안 예선 라운드가 제법 복잡했던 역사가 있다.
         FA컵 우승팀은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자격을 갖는다. 이 때문에 모든 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FA컵은 금규모와 대회 진행에 따른 보이 너무나도 초라했던 관계로 초창기에는 리그컵 내지는 그보다 못한 대회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대회라는 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AFC에서 차기 ACL티켓을 부여하고부터는 K리그 클래식 다음가는 권위있는 대회로 탈바꿈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 올라가면 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국제 무대에서 팀의 이름을 알려서 팀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특별히 보을 줄 수 없었던 리그컵 대회는 점차 인기가 떨어지다가 폐지되는 수순을 밟으면서 FA컵과 명암이 교차하였다.
         단, 이 규정은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된 완전한 프로팀'''이라지만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즉, 아직까지 K리그 이외 팀이 우승한 적은 없지만 만에 하나 실업팀과 같은 세미프로나 대학팀 같은 아마추어가 우승하게 되면 우승팀일지라도 ACL 참가는 불가능하다. 또한 프로화를 했다고는 하나 팀이 사업자등록 및 법인화까지는 AFC의 규정에 적합해도 '''"팀의 선수 전부가 본질적으로 군인 내지는 경찰"'''인 무와 안산 경찰청은 세미프로팀과 마찬가지로 ACL진출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는 법인화가 완벽하게 진행되었지만 선수들의 신분문제로 완전한 프로팀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
         과거 포항이 더블을 달성했을 때는 3.5장이 아니라 4장을 부여하였기에 '''어차피 똑같은 1장'''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FA컵 우승팀이 들어가야 할 F조의 자리를 당시 리그 4위였던 서울에게 바로 넘겨줬기 때문에 서울이 F조 자리로 갔었다. 그리고 0.5장이란 개념이 없던 미비했던 동아시아 조추첨의 경우는 각 국가별로 조별단계에서 겹치지 않도록 국가별 조추첨을 통해 조편성이 이루어졌기에 한때는 리그 2위였던 성남이 E조에 들어가고 우승팀인 전북이 F조 들어가는 등의 황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동아시아 조편성에 0.5장이라는 특수성이 과거에 비해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조편성이 난감해질 우려가 생겼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복잡한 구조가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K리그 뿐만이 아니라 똑같이 3.5장을 부여받는 J리그와 중국 슈퍼리그도 비슷한 논리로 조편성을 위한 티켓부여가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 마기/326화 . . . . 14회 일치
          * 알라딘과 유난은 "세계의 구멍"을 살펴보며 수한 낌세를 감지한다.
          * 그때 유난이 이하게 반응하는데 몸이 덜 회복된 탓으로 여기고 조사를 마친다.
          * 알라딘은 천산산맥을 조사한 결과 세이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위화감"이 든다고 말하는데.
          * 알리바바는 사건에 대해 문의할 겸 신드바드에게 전화를 거는데 신드바드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회에 복귀, 일로 바쁜 듯하다.
          * 천산산맥 공. 알라딘과 유난이 세계의 구멍을 조사하고 있다. 수한 현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보기에는 구멍이 확장된 흔적만 있을 뿐, 구체적인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유난은 구멍 자체는 제대로 막혀있고 일 일라가 내려올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 그러다 문득 유난이 잠시 의식을 놓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곧 아무렇지 않다고 알라딘을 안심시킨다. 알라딘은 부향일 거라고 생각하고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데 유난은 자기는 일단 은신처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알라딘도 황제국으로 돌아가기로 하면서 조사는 종료.
          * 황제국으로 돌아온 알라딘은 쥬다르가 있는걸 보고 놀란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듯하다가 곧 울이 되어서 그에게 추방마법을 걸었던걸 후회했었다는 발언을 한다. 쥬다르는 알라딘이 너무 성장해 버려서 누구냐고 물어본다. 루프의 기척은 알라딘이지만 워낙 외형이 바뀌었으니. 역시 알라딘이란걸 확인하고 기분 나빠한다.
          * 듣고 있던 쥬다르는 자기는 그런 위화감 못 느꼈다고 빈정거리다 연백룡에게 "넌 마법사가 맞긴 하냐"고 디스 당한다. 알리바바는 매그노슈타르 때 같은 이변은 없다는걸 재확인하고 일단 안심한다. 그런데 연홍옥이 기운이 없는 것 같은데. 알리바바가 말을 걸자 홍옥은 국제동맹을 이탈한 문제로 아직도 고심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파장이 예한 것 이이라서 과연 잘한 짓인지, 앞으로 어찌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알리바바는 여러 사람과 토론해서 결정한 일이고 뢰엠과 귀왜국도 동조해준 걸 들어서 자신을 가지라고 격려한다. 쥬다르는 그런 홍옥이 칠칠맞지 못하다며 역시 황제는 백룡이 돼야했다고 투덜거리다 나가버린다.
          * 아무튼 세계의 구멍에 대해선 아직도 의심을 지울 수 없는데, 알리바바가 근처에 국제동맹의 본부가 있으니 신드바드에게 연락해보자고 한다. 그런데 신드바드가 정말로 연락을 받는다. 어찌된 일인지 평소처럼 회에서 눈코 뜰 새없이 일하는 중. 알리바바가 낙뢰에 대해서 보고받은게 없냐고 묻자 그런건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의 결혼 건을 언급하며 "아무리 바빠도 거기엔 꼭 참석할 거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누가 청한 적도 없는데 보호자로서 스피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일전에 알리바바가 "난 신드바드씨의 아들 격"이라고 말했던걸 되갚아준 것이다. 알리바바는 바르카크에게 변명하게 생겼다고 웃으면서 넘긴다.
         모르지아나의 변심은 신드바드가 운명을 주무른 향으로 보이는데, 운명 차원에서 알리바바는 솔로로 살 거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 마기/338화 . . . . 14회 일치
          * [[쥬다르]]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를 쓰러뜨리지만 그는 곧 허공에서 거대한 형으로 나타난다.
          * 신드바드는 쥬다르가 말한 "동료와 역할을 나눈다"는 말에 납득하지만 이론일 뿐이 아닌지 의문시하며 사라진다.
          * 신드바드는 세은 의심으로 가득차 있다며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던지며 전신마장 바레포르를 사용한다.
          * 신드바드는 해답에 만족하는지 "신드바드는 꿈도 못 꿀 일"이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음에도 그런 이론을 주장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표하며 사라진다. 진 바알은 신드바드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다가 그가 사라진 후 제 1 던전은 이것으로 공량이 됐다 선언하고 사라진다.
          쥬다르는 예 외의 전개에 어리둥절하다. 그는 신드바드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여기고 과연 자신들에게 무엇을 시키고 싶은 건지 고심한다.
          알라딘은 즉답을 피한 채 신드바드는 자기 신념대로 움직이고 자기 힘으로 세의 정점에 섰는데도 알라딘 일행에게 뭔가 더 얻고 싶은게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뭔가 보이지 않느냐고 말한다.
          황을 보던 아르바는 난데없이 "백룡도 친구 같은데 생겼다"고 말하는데, 백룡은 유독 정색한다. 알라딘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아르바는 말 그대로의 의미라며 뭐가 이하다는 태도다. 백룡은 그런 행동 하나하나를 수하게 여기며 아르바의 꿍꿍이를 추측한다.
          * 그들 앞에 나타난 을 초월한 거인. 알리바바가 저게 뭐냐고 중얼거리자 하늘에서 대답이 들린다.
          * 이번에 나타난 것은 15세의 신드바드. 그는 "운명"이라는 괴물과 맞서 싸운다. 그가 설명하길 이 던전 바레포르는 15세의 그가 공략한 던전이다. 그때 신드바드는 새로운 나라를 새우기 위해 동료들과 여행했으며 던전을 공략하고 타국과 동맹을 맺었으며 회를 세웠다. 그때 "운명"이 앞길을 막았다. 운명은 죄없는 이에게 조차도 부조리를 쏟아부웠다. 전쟁, 공작, 노예, 고문. 이런 일은 모두 솔로몬 왕이 운명을 조각냈기 때문이다. 이런 세에서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부조리한 세에선 뭘 의심하고 뭘 믿어야 하는가?
  • 마누엘 고도이 . . . . 14회 일치
         [[스페인]]의 정치가, 재. 하급 귀족 출신으로 근위병이 되었다가,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아 왕비의 애인이 되고 그 뒷빽으로 재의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무능하고 실정을 거듭하여 평가는 매우 나쁘다.
         1767년, 스페인 남서부 바다호스(Badajoz)에서 출생. 1784년에 근위대 장교가 되었다. 평범한 하급 귀족이었으나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에게 총애를 받아, 왕비의 [[애인]]이 되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국정을 장악하고 있던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게 된 마누엘 고도이는 하급 귀족으로스는 이례적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1792년에 재으로 임명되었다. 고작 25세의 젊은 나이의 청년이 스페인의 실권자가 된 것이다.
         이후에는 유럽대륙의 패권을 잡아가는 프랑스 제국에 접근하였고, 스페인 해외 식민지를 노리는 국과 대립하게 된다. 1801년에는 프랑스와 동맹하여 국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1805년에 [[트라팔가 해전]]에서 대패하고 스페인 함대는 전멸하고 만다. 이로서 스페인은 18세기에 걸쳐서 건설한 함대를 모두 잃어버리고, 중남미 교역 항로를 국에게 빼앗겨서 제해권을 실한다.
         1807년에 고도이는 [[포르투갈]] 정복을 노리는 나폴레옹과 [[퐁텐블로 조약]]을 체결했다. 이 때 나폴레옹이 점령한 포르투갈 남부 알가르브(Algarve) 지역의 유를 인정받았는데, 고도이는 황태자 페르난도(후의 [[페르난도 7세]])와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황태자가 즉위하면 파면될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파면 이후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알가르브를 유하는 대신 스페인에 프랑스 군의 침공을 허용하는 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베리아 반도에 프랑스 군이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책이라, [[프랑스 혁명]]의 향으로 내셔널리즘이 고양되던 스페인 국민의 반발을 불렀다.
         결국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 일어나 [[카를로스 4세]]는 실각하고 황태자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 고도이 역시 재 자리에서 해임되고 알가르브 위 역시 인정받지 못해 프랑스의 [[마르세유]]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고도이와 맺은 퐁텐블로 조약이 파기된 것을 명분으로 침공해오게 된다.
          * 당시 기준에서 당히 호색한이었던 모양으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명작 [[나체의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를 주문제작했던 본래 소유주였다.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역시 고도이가 주문제작한 작품이다. 본래 종교적으로 엄격했던 스페인에서 나체의 마하 같은 작품은 너무나 선정적이라서 제작되기 어려웠는데, 권력자인 고도이였기 때문에 그 같은 작품을 주문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14회 일치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는 야마가타 현 출신으로, 친가는 니시카와쵸(西川町内)에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부]]로 활동하여,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요네자와 시(米沢市)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배구부]]로 활동하여 현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고교 졸업 이후 미야기 현에 있는 사립대학에 진학하여 사회복지론을 배웠으며, 2014년 4월 부터 오사카 시내의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평소 업무 시작 30분 전에 출근하고 무단 결근도 한 번 없었던 성실한 사원으로서, 동료와 환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의료 사무원이었다.
         그러나 미즈우치는 경찰관 신분이나 오사카에서 온 것을 밝혔으나, 후에 아내가 될 여성과 간사이에서 이미 교제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즈우치는 반년도 되지 않아 시라타 히카루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이 해 가을 무렵 시라타 히카루는 친구에게 미즈우치가 연락을 무시하고 데이트도 자주 취소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라타 히카루는 "어차피 나는 '센다이의 여자'일까", "(미즈우치가) 스노 보드만 하고 있다. 나에게 관심이 없어진걸까."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미즈우치는 교제에 불성실해져서 시라타 히카루는 12월에 생일을 맞았지만, 미즈우치는 생일인데도 만나주지 않고, 놀아주거나 선물을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에 시라타 히카루는 "괴롭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 세 ==
         미즈우치는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 또 새로운 여성과 교제를 시작햇다. 1월 21일 밤, 마침내 시라타 히카루는 "사회적 제제를 받게 하겠다"고 기입하였으며, 그제서야 대처를 시작했다. 이 무렵 시라타 히카루는 주변에 이 황을 해결할 방법에 대하여 담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병원 사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3일 전에 다른 직원에게 페이스북으로 미즈우치가 기혼자라는 것을 알았고 담을 했었다고 한다. 시라타는 미즈우치가 LINE으로 보낸 메시지에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즈우치는 1월 23일 A에게 담하였다.
         >A : 당히
         1월 24일,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의 근무처에서는 항 업무 시작 45분 전에 출근하는 피해자가 출근을 해오지 않자, 경찰에 통보를 하였다. 피해자의 자택과 근무처인 병원은 [[자전거]]로 1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 때, 히가시스미요시 경찰서의 경찰관이 시라타 히카루가 거주하는 오사카 시 히가시스미요시 구에 있는 독신자 아파트를 방문했다.
         또한 방의 텔레비전과 헤어 드라이어가 켜져 있는 태였으며,
         아파트의 방범용 CCTV를 조사한 결과, 오전 7시 45분 쯤 얼굴을 숨기듯이 검은 두건과 마스크를 한 남자가 아파트를 방문하여 엘리베이터에 탑승, 오전 8시 45분 쯤 비계단으로 아파트로 내려와서 아파트 입구를 지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겉옷은 밝은 갈색 점퍼로 바뀌었지만, 1시간 전의 남자와 비슷하여 동일 인물로 추정되었다.
          * [[마치콘]]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범인이 피해자를 만난 계기가 마치콘이었기 때문에 마치콘에서 만난 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위험성이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 오사카 부경 현직 경찰관이 살인 혐의로 체포된 것은 이것이 통산 4번째. 이전의 사건은 1983년 순사부장이 교제 대를 [[사살]]한 사건이다.
  • 박기혁 . . . . 14회 일치
         |문 표기 = Park Ki-Hyuk
         |사진 사이즈 =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동했다. [[2008년]] 시즌 113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1홈런, 36타점, 47득점, 16도루로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박계원]] 이후 14년 만에 [[롯데 자이언츠]]에 [[유격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골든 글러브 ]]을 안겼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110172 박기혁, 데뷔 첫 황금장갑 수] 《Osen》, 2008년 12월 11일</ref> [[2006년 아시안 게임|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동메달에 그쳤고,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9년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하여 [[박진만]]을 대신해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으나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2010년]]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본격적인 시즌 개막 이후 무릎 부과 경기력 저하로 [[강정호]]와 [[손시헌]]에게 밀려 야심차게 노렸던 목표인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엔트리 진입에 실패하였다. 시즌 종료 후 입대를 1주 앞두고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결국 [[2010년]]을 쓸쓸히 마무리하고 그 해 [[11월 15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2012년]] 소집 해제하였다. [[2013년]]에 복귀한 뒤 [[문규현 (야구 선수)|문규현]]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자리잡으려 했으나 부으로 인해 결국 프로 2년차인 [[신본기]]에 밀리고 말았다.
         2014년 11월 26일 FA 우선 협 마지막날 [[롯데 자이언츠]]의 3년 10억의 제시액을 거절하면서 팀을 떠났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3126422 롯데, FA 선수 모두 협 결렬..] - 이데일리</ref>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 수 ==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자]][[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박부남 (1931년) . . . . 14회 일치
         '''박부남'''(朴富南, [[1931년]] ?월 ?일 ~ [[2018년]] [[1월 11일]])은 [[대한민국]]의 [[소아과|소아]][[내과]] [[의사]], 대학 교수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와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구한 말의 관료 [[박중양]]의 손녀이며, [[청도군|청도]], [[주군|주]], [[청송군|청송]][[군수]]를 지낸 [[박문웅 (1890년)|박문웅]]의 딸이다. [[대구광역시]] [[북구 (대구광역시)|북구]] [[침산동]] 출신.
         * 대구 ??초등학교 입학, 6학년때 주국민학교로 전학
         * [[주국민학교]] 졸업
         ** 언니 : 박씨, 이름 미
         ** 형부 : 노달(盧榮達, 본관은 주(尙州))
         ** 딸 : 이재
         * 시종조부 : 이시우(李時雨, ? ~ [[1907년]]), 독립운동가 [[이정]], 시인 [[이화]], 체육인 [[이백]]의 아버지
         * [[이화]]
         * [[이백]]
         * [[이정]]
  • 박상돈(정치인) . . . . 14회 일치
         ||<width=30%><:> 창당 ||<width=5%><:> → ||<width=30%><:> 제1대 [br] ''' 박돈 ''' ||<width=5%><:> → ||<width=30%><:> 제2대 [br] [[권선택]] ||
         1949년 [[충청남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에서 태어났다. 연기소정초등학교, 천안중학교, [[대전고등학교]][* [[송무]] 국방부장관과는 동창생이다. 송무는 해군사관학교를 재수로 들어갔다.], [[육군사관학교]] 제28기[* 동기생으로 [[김관진(군인)|김관진]], [[김병관(군인)|김병관]], [[박흥렬]]이 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대천시장 재직 당시에 박돈 시장의 아이디어로 보령의 머드를 품화하고 머드 축제를 창시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24&aid=0000009832|관련 기사]]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의 후신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을 탈당하여 [[자유선진당]]에 입당하였다. 원래 박돈 의원은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의원이라 평가받고 있었다. 자유선진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선진당에서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또 다른 천안시의 국회의원인 [[양승조]] 의원과 함께 국무총리실 관리관 출신의 [[구본]]을 열린우리당으로 입하는데 큰 업적을 세운 인물이다. 현재 자신은 [[자유한국당]]에 있지만, 남은 두 사람은 각각 충남도지사 후보를 노리고 있고, [[천안시]]장을 역임하고 있다. --어쩌면 천안시를 민주당의 텃밭으로 만들려는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육사2기수 절친후배인 [[구본]] 현직시장과 대결하게 되었다. --[[구본]]의 선거책자 뒷면에는 ''[[문재인]] [[양승조]] 구본 VS [[홍준표]] [[이인제]] 박돈' 이라고 적혀있다(...)--
         선거기간 중에 재보궐 발생비용을 부담하라며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충남지사에 출마한 양승조를 공격했다가, 그럼 8년 전 재보궐비용부터 물어내라는 반박에 데꿀멍했다.(...) 8년 전에는 역으로 자신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충남지사에 출마했던 터라. 사실 이건 양승조를 공격하기보단 시장 경쟁자인 구본을 공격하려는 의도였는데, 구본이 비리혐의로 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 낙마할 경우 천안시장 재보궐을 치룬다!로 연결하려 했던 것.
  • 박세직 . . . . 14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대한민국 국군/인물, top2=정치인/목록)]
         1933년 [[경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종교]]는 [[개신교]]([[침례회]])이다.
         [[외국어]]에 능통하였으며, [[어]]를 비롯해 [[불어]]와 [[일어]]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뛰어난 어 실력을 바탕으로, [[채명신]] 초대 파월사령관이 미군들과 파병 관련 한국 지원 및 작전 구역 설정, 그리고 지휘체계 설정 협하는 과정을 지원하며 활약하였다. 이후 1976년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고, 1979년 군사정보 참모를 지냈다. 박희도나 박준병과는 달리 하나회였음에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지 않아서 [[김삼]] 정권 때 화를 겪지 않았다.
         그러나, 1981년 8월 '''박세직 사건'''으로 [[소장(계급)|소장]] 계급으로 예편하였다. 겉으로는 박세직이 육군사관학교 동기의 사업을 도와 준다는 이유로 비리를 저릴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두환과 [[허화평]], [[허삼수]] 등 측근 세력이 '하나회 출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박세직을 예편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사건은 1973년 일어난 [[윤필용 사건]]에서처럼 수도경비사령관의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 보안사령관인 태에서 보안사령관이 동기생을 수사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박세직은 박준병 국군보안사령관에 의해 조사를 받고 예편하였다. 후에 박준병은 조사 결과 박세직이 여기저기 “차기 대통령은 나”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그러나 곧 다시 [[전두환]]에게 중용되어 1982년 [[한국전력공사]] 부사장을 지냈다. 그러다가 1983년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에 임명되어 [[노신]]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보좌하였다. 그러면서 노신과 함께 그 해 5월에 일어난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을 해결하였다.
         1985년 2월 노신 내각이 출범하자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장관 등을 지냈다. 1986년 제4대 체육부 장관으로 취임하고, '''제24회 [[1988 서울 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후부터, 민주정의당 내에서는 대권주자로 발돋움 할 뻔 했으나 조직을 모으는데 서툴렀기 때문에 [[3당 합당]] 이후에는 더이 정치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1992년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전국구]]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신한국당]] 공천후보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민주연합 [[박재홍(1941)|박재홍]] 후보를 꺾고 재선되었다.
         본의 아니게 2017년 10월 10일, 다시 큰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박세직의 손녀와 수선수 [[박태환]]의 교제 사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 축하한다는 반응도 많지만 교제 대의 조부가 [[하나회]] 출신 주요인사라는 것이 주목받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 배재철 . . . . 14회 일치
         [[1996년]] 시미오니토에서 1등 없는 2등, [[1998년]] 도밍고 오페아리타 특별, [[1999년]] 하오메 아라갈 1등, [[2000년]] 프란체스카 화뜨르 1등에 오르는 등 유럽 각지의 콩쿨을 휩쓸었다.
         '아시아 오페라 사 최고의 테너'라는 평을 받으면서 유럽에서 활동하던 중 2005년 10월 [[갑선암]]으로 판명돼 [[성대 (기관)|성대]]와 [[횡격막]] 신경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로 목소리와 오른쪽 폐의 기능을 실했다. [[2006년]] [[4월 25일]] [[교토]]에서 [[잇시키 노부히코]] 교수의 수술을 받고 [[2008년]] 12월 무대에 복귀했다.
         == 관련 화 ==
         [[2014년]] 12월 31일 배재철을 모델로 한 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가 개봉했다. 2016년 3월 29일 일본 국회에서 [[일본]] [[국회의원]]과 보좌관 등이 자리한 가운데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의 회가 열렸고, [[배재철]]은 후 일본 [[엔카]]의 여왕 [[미소라 히바리]]의 대표곡 '가나시이 사케'(슬픈 술)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08290861 ‘한일 우정의 하모니…화 '더 테너' 日국회서 ] 동아일보. 2016년 05월 16일</ref>
  • 백남순 (1929년) . . . . 14회 일치
         |웹사이트=
         [[경기도]] [[수원시]] 출신이고<ref>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출신이라 한다.</ref>,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인민회의]] 9, 10, 11기 대의원과 [[외무]]을 역임했다.
         [[조선로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지낸 후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시 직업총동맹 부위원장으로서 북측 자문위원으로 처음 남한을 방문하였고, 이후 [[남북회담]]에서 수차 모습을 나타내는 등 대남협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과 외국문출판사 사장 등을 지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103MW200805158998 백남순 북한 외무 사망 - munhwa.com<!-- 봇이 따온 제목 -->]</ref> [[폴란드]]주재 대사를 역임하고, [[1989년]]에 [[조선로동당]]의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과 [[1991년]]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부의장을, [[1992년]]에 [[남북회담|남북고위급회담]] 정치분과위원회 위원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서기국장 등의 요직을 역임했으며, [[1998년]] [[9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무부|외무]]으로 취임했다.<ref name="autogenerated1" />
         [[2004년]] [[2월 2일]] [[외무성]] 부 [[김일]]과 함께 [[평양시|평양]]을 방문한 [[오스트레일리아]] [[알리스태어 머레이 맥클린]] 외무특사를 단장으로 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외무성 대표단을 만나 면담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kcna.co.jp/calendar/2004/02/02-03/2004-02-03-001.html |제목=보관된 사본 |확인날짜=2009-10-2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60107061721/http://www.kcna.co.jp/calendar/2004/02/02-03/2004-02-03-001.html |보존날짜=2006-01-07 |깨진링크=예 }}</ref>
         [[2006년]]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지역포럼에서도 회의에 출석하면서 사적으로는 요양을 계속하고 있었다. [[2007년]] [[1월 3일]]에 사망하였으며, 사인은 만성 신부전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으로 재임하던 중에 사망하였으므로, 사에 해당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헌화를 받았다. 사망 당시 실질적인 외교 책임자는 [[강석주]] 제1 외무차관이었으므로, 사망 후의 외교 정책에 향은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 [[김남]]
         |전임자= [[김남]]
         |직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외무]]<br />(임기 중 사망)
  • 블랙 클로버/109화 . . . . 14회 일치
          * 외견으로는 할 수도 없으나 정엔 자양강장에 좋은 온천이 있다 하며 산 꼭데기까지 가는게 오늘의 코스.
          * 세 번째 선보이는 강마지대는 유트림 화산. 거기에 난 등산로다. 유르팀 화산은 지중에 있는 강대한 마나가 화산의 형태로 분출되는 매우 살벌하고 지옥같은 지역이다. 일행의 눈 앞에는 쉴새 없이 용암을 분출하는 거대한 산이 있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사람이 다가가면 안 되는 위험지대지만, 홍련의 사자단의 새 단장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은 바로 이곳 정에 자양강장에 특효인 온천이 있다고 소개한다.
          * [[레오폴트 버밀리온]]은 특유의 포지티브한 마인드 덕에 금방 마음을 다잡고 아스타에게 "정까지 누가 먼저 가나 승부"라고 선언한다. 아스타도 일단은 의욕을 내본다. 레오폴트는 아스타와 함께 유노에게도 선전포고를 하는데 아스타에게 "나의 라이벌"이란 소개를 받고 "그렇다면 나의 라이벌이기도 하다!"는 이한 비약으로 전개, 유노한테도 정까지 승부하자고 제안하지만 "멋대로 하라"는 매우 심심한 반응이 돌아오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아스타가 "너도 곧 익숙해진다"고 어 놀고 있자 성질 급한 메레오레오나가 엉덩이를 걷어차며 빨랑빨랑 가라고 성화다.
          * 아스타와 레오폴트가 1등으로 등산로에 뛰어든다. 그런데 발을 내딛고 나서야 이 지역의 가혹함이 실감됐다. 일행은 "마법으로 어떻게든 된다"고 믿었지만 천만에 말씀. 대기에 열기를 머금은 마나가 날뛰고 있었다. 땀샘이 폭발할 지경이고 숨을 쉴 때마다 목이 타들어갈 것 같아 호흡도 어렵다. 사방에선 마그마가 펑펑 터져나오는, 문자 그대로 지옥도. 이런 곳을 돌파해 정까지 가는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곳으로 달려드는 대책없는 인간들도 있었다. 검은 폭우단 단장 야미와 푸른 들장미단 단장 샬롯이었다.
          * 하지만 레오폴트는 이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비결을 파악했다. 단장들은 마력을 시 몸에 두르고 있었다. 강마지대라 마나가 안정되지 않는 곳임에도 일사분란하게 마력을 방출하고 있다. 사실 마법기사들에겐 기본기와 같은 마법이다. 이른바 "마나 스킨". 어떤 타입이든 간에 조금씩은 마나를 방출, 몸에 둘러서 여러가지로 응용한다. 하지만 그 경우는 일시적으로 쓰는 것이며 이런 험난한 환경에서 장시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원들은 레오폴트의 분석에 감탄하면서도 그렇게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레오폴트는 "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조금씩 감각을 익혀가면서 마나를 순응시킨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레오폴트가 먼저 마나스킨을 방출하며 의욕을 표출한다. 그의를 따라서 단원들도 의욕을 보이며 각자 마나스킨을 펼친다.
          이런 전개는 한참 앞에 가는 야미도 짐작하는 바였다. "땡땡이 친 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두 단장이 구사하는 고급 기술을 자기네 단원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려는게 목적이었다. 특히 샬롯은 이 장소에서 최악이므로 마나스킨 활용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딱 좋은 교보제인 셈이다. 그리고 넘버 1 루키인 "금색의 쿨" 녀석도 동세대의 신인들을 고무시키기엔 안성맞춤. 보기보다 빈틈없는 누님이다.
          * 성만으로 본다면 노엘은 이 지역에선 최적의 인재지만 별 힘을 쓰지 못했다. 마나스킨을 활용하자면 결국 마나 컨트롤이 문제였는데, 알다시피 그녀에겐 그 기술이 부족했다. 노엘은 이 마나스킨을 "극악한 난제"라 여기며 메레오레오나가 "간만에 만났는데 괜히 이런데나 데려왔다"며 투덜댄다. 그 말을 들었는지 어느새 메레오레오나가 다가왔있다. 노엘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동안, 메레오레오나가 그녀를 지긋이 관찰한다. 그녀의 마나를 보면 여러가지를 알 수 있다는데.
  • 블랙 클로버/112화 . . . . 14회 일치
          *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미모사 버밀리온]]과 "잭스 류그너"와 한 팀이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람은 괴한에게 당해 빈사 태.
          * 그런데 시작으로부터 수 십 분 전. 아무도 예치 못한 이변이 발생한다. 전장에서 돌아오던 길인 자줏빛 범고래단의 부단장 "잭스 류그너"가 수한 인물과 마주친 것이다. 수도의 뒷골목에서 괴한과 시비가 붙는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으나 괴한이 물고 늘어지자 공무집행 방해죄를 적용해 대하기로 한다. 점잖은 성품의 잭스와 달리 그의 종자는 호들갑스러운 인물로 그의 직함과 범고래단을 부흥시킨 업적을 떠들고 "여빙의 성자"라는 별칭까지 과시한다. 그렇지만 대는 겁을 먹는 인이 아니다.
          잠시 뒤의 황은 그야말로 이변. 여빙의 성자라 불린 잭스가 형편없이 당해버렸다. 괴한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기절하고 말았는데. 괴한은 "여빙의 성자"라는 이름을 비웃고 "나따위" 한테도 지면서 부단장 소릴 듣는다며 어이없어 한다. 그리고 그의 마법기사단 로브를 빼앗아가는데. 그는 "풀죽일 보람이 있는 녀석"을 찾아 어딘가로 향하는데, 로열 나이츠 시험장 방향이다.
          * 같은 금색의 여명단의 선배 [[클라우스 류넷]]도 자리에 있었다. 그는 미모사가 쓸데없이 다른 참가자와 트러블을 만든다고 지적하는데 괜한 지적질을 했다가 "괜히 진지하고 걱정많고 안경이다"는 반격을 당한다. 그 역시 최근 실력이 급승한데다 무슨 이유인지 근육단련까지 해서 인지도를 쌓았다.
          * 그러나 이들의 인지도는 올해 넘버 1 루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에 비하면 약소했다. 설명이 필요없는 유망주로 경계의 대. 그 외에도 금색의 여명 출신의 강자들이 눈에 띈다.
          * 이 대결에는 신예들만 참가한게 아니라 고참 단원들도 제법 참여했는데 검은 폭우에서는 [[핀랄 룰러케이트]]와 [[락 볼티어]], [[매그너 스윙]]이 참가했다. 근데 핀랄이 마음가짐을 정돈한다며 헤어스타일을 바꿨는데 너무 인물이 달라져서 매그너와 락이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다. 그래도 아스타는 그를 알아봐주긴 하는데 "그런데 인이 얄팍하다"고 스타일에 독설을 날린다.
          * [[노엘 실버]]도 물론 참가. 하지만 시끄럽게 구는 단원들이 부끄럽다며 좀 떨어진 위치에 있다. 그런데 그 근처에는 자신의 오빠, 은익의 참수리의 [[솔리드 실버]]가 있었다. 노엘을 혹독하게 대했던 남매 중 하나. 노엘이 그를 발견하고 겁을 먹지만 곧 떨쳐낸다. 유트림 화산에서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이 "그러니 뛰어넘어라"고 했던 격려를 기한다. 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이미 각오를 다졌기 때문이다.
          한 판 30분 짜리 대결. 팀경기로 진행되며 제한 시간 안의 대팀의 크리스탈을 파괴하는 쪽의 승리다. 국왕 머리 위에 있는게 그 크리스탈. 각 에리어에 할당된 자군의 크리스탈을 지키며 적의 크리스탈을 많이 파괴해야 한다. 국왕이 여기까지 설명하다 말주변 부족으로 버벅대자 율리우스가 가로채서 시험에서 보는 것은 협조성과 전략성이며, 이는 앞으로 대 백야의 마안 전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이 때문에 팀도 다른 기사단의 멤버와 짜게 되는데.
          * 이어서 마법제가 팀 배정도 발표한다. 공언한 대로 여러 기사단 인원을 섞어서 배치했고 안면도 없는 사이끼리도 배정했다. 아스타는 "잭스 류그너"와 미모사와 한 팀. 아스타는 잭스에 대해 모른다. 미모사는 아스타와 같은 팀이 된게 기쁘긴 한데 배로 긴장돼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잭스는 괴한에게 당해서 초죽음 태. 당연히 이 자리에 오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 콜로세움 벽 위에서 뛰어내려왔다.
  • 블랙 클로버/114화 . . . . 14회 일치
          * 설 적의 함정타입 마법이 발동해 아스타가 적에게 접근도 못해보고 무력화, 미모사는 적에 포위 당한 채 저항할 방법이 없다.
          * 적이라고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A팀은 B팀 이으로 분노했다. "산호의 공작"단 삼등 중급 마법기사 [[릭 코넬]]. 그는 수정마법으로 조형한 "크리스탈 스코프"로 B진을 염탐 중이다. 잭스의 행태는 그의 입을 통해 A팀 전원에게 전달됐다. A팀은 처음에는 무슨 작전으로 저러는게 아닐까 했지만 릭의 스코프는 신체 태도 파악할 수 있다. 거기엔 완전한 "수면 태"로 표시됐다.
          "은익의 참수리"단 삼등 급 마법기사 [[카타스 워른]]도 동감했다. 저쪽이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움직이지 못하면 이길 방도가 없을 터. 그는 포르티가 만든 불꽃의 화살을 자신이 암석 마법으로 만든 "스톤 롱보우"에 재웠다. 이걸로 B팀을 일찌감치 집에 보내줄 작정이다.
          * 어디서 어떤 공격이 오는지 파악한 이 당하고만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날아오는게 마법인 이 아스타가 베지 못할 리 없었다. 화살이 B팀의 크리스탈을 노리고 날아왔다. 통은 피하기도 어려운 빠른 속도였지만 아스타가 단번에 베어버렸다. 미모사는 잭스는 그냥 빠진대로 두고 둘 만으로 역공을 취하자 제안한다. 자신이 적의 탐지와 견제, 아스타가 크리스탈을 지키며 전진해 적의 크리스탈을 직접 파괴한다. 미모사가 즉석에서 이런 전술을 고안하자 아스타는 그녀가 벌써 많은 전장을 넘어왔음을 짐작하고 감탄한다.
          * 미모사가 식물마법으로 크리스탈을 감싸 보호하며 전진한다. 아스타는 앞장서서 날아오는 공격을 족족 떨어뜨린다. 잭스의 이탈로 수가 부족해 크리스탈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적을 공격하기에 어려운 B팀의 난점을 잘 극복한 전술이었다. 궁여지책에 가까웠지만 당히 유효했다. 이제 B팀은 속도를 붙이기 시작, 시작지점을 벗어나 중간지대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 한편 A팀은 의외의 파훼법이 발견되자 당황한다. 릭이 대편도 감지타입 마법 구사자가 있다고 판단하고 적의 접근을 경고한다. 이제 두 팀은 서로의 크리스탈이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까지 좁혀졌다. 카타스는 팀원들을 진정시킨다. 이미 B팀의 크리스탈은 너덜너덜한 태. 반면 자신들은 노 데미지. 적이 원거리 공격을 쓰지 못하는 한 우위가 바뀌진 않는다.
          * A팀으로선 전략 수정이 불가피했다. 카타스가 셋이 동시에 덮쳐 포위할 것을 제안하지만 포르티가 반대한다. 그는 아스타가 반마법 검을 구사한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가까이서 직접 본 적도 있는데 접근전에서는 대가 안 되는 수준이다. 섣부른 접근은 패배. 그들은 그것까지 고안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 서상기 (1946년) . . . . 14회 일치
         |이름 = 서기 <br/> 徐相箕
         |출생지 = 미 군정 조선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br />(現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웹사이트 = [http://www.sks.or.kr 공식 사이트]
         '''서기'''(徐相箕, [[1946년]] [[1월 29일]] ~ , [[대구광역시|대구]])는 [[대한민국]] 정치가이다.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제17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새누리당]]으로 [[대구 북구]]에 출마하여 제18대, 제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8년]] [[한나라당]] 대구시당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8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간사이자, 국회 디지털포럼 회장을 맡았다.
         [[2012년]] [[7월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19대 전반기 정보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2070918443765916&outlink=1 서기 국회정보위원장 프로필], 머니투데이, 2012년 7월 9일 변휘 기자</ref>
         ==수==
         * [[2013년]] 대한민국우수국회의원대
         * [[2015년]] 제3회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
         * [http://www.sks.or.kr/ 서기 홈페이지]
         |후임자 = (대구 북구 갑)[[권은희 (1959년)|권은희]]<br />(대구 북구 을)서
         |전임자 = (대구 북구 갑)[[이명규 (1956년)|이명규]]<br />(대구 북구 을)서
  • 슈퍼걸(드라마)/1시즌 7화 . . . . 14회 일치
         카라는 힘의 근원이 되는 지구의 노란 태양 에너지 방사능을 레드 토네이도와의 싸움에서 크게 소진하여, 힘을 잃어버린 태가 되었다. 알렉스는 행크를 불신하고 조사해보려고 한다. 힘을 잃어버린 카라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에도 걸려버린다. 그랜트는 세균이 퍼진다고 호들갑을 떨며 카라를 휴직시킨다. 행크는 사이킥을 사용하는 외계인 젬을 심문하는데, 젬은 행크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네가 사랑하는 자들을 죽이겠다는 말도 한다. 행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젠 없다는 말을 내뱉는다.
         지진의 피해가 심각한 황에서 맥스웰은 TV인터뷰에서 슈퍼걸이나 정부를 믿을게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라와 제임스는 맥스웰을 찾아가는데, 맥스는 슈퍼맨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면서 레드 토네이도와의 전투로 소모가 된 태일 거라고 정확하게 추정한다. 그리고 능력을 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알렉스는 젬을 대하러 나가려 하는데, 행크가 돌아와서 알렉스는 황실에 있으라고 하고 젬을 대하러 혼자서 다시 떠난다.
         지진으로 부당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카라는 힘이 소진되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좌절감을 느낀다. 모든 것을 잃고 무기함을 느끼고, 카라는 힘을 되찾지 못할지 걱정한다. 그 때 폭동이 일어나고, 카라는 슈퍼걸 의을 입고 폭도들 앞에 나타난다. 카라는 능력을 잃은 태임에도 폭도를 설득해서 진정시키고, 폭도에게서 총을 돌려받는다.
         알렉스는 행크에게 의혹을 드러내며, 행크의 지시를 어기고 젬과 대하러 나가려고 한다. 알렉스는 젬의 능력에 대항할 수 있는 신경 차단기가 행크의 말과는 달리 아직 작동하는 것을 발견한다. 도노반 대원이 젬에게 조종당하여 알렉스를 쏘려고 한다.
         알렉스는 행크와 마주친다. 젬은 DEO에 갇힌 죄수들을 풀어서 지으로 나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알렉스는 행크에게 총을 겨누면서 무기를 버리라고 한다. 알렉스는 행크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추궁하고, 수갑을 채운 다음 젬과 싸우러 간다.
         카라는 제임스가 찍은 폭도들을 설득하여 진압하는 자신의 사진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제임스는 웅이 되는데 능력만은 필요없다고 한다. 윈은 DEO의 슈퍼맨에 대한 파일을 가져와서, 능력이 되돌아올 거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카라와 제임스와의 연애 문제에 대해서 말다툼을 벌이는데…. 그 때 가스 폭발이 일어나고 윗층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알렉스는 젬과 전투를 벌인다. 하지만 총기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는 젬과 대하는데 고전하고 위기를 겪는데, 행크가 나타나서 젬을 쓰러뜨린다.
  • 식극의 소마/201화 . . . . 14회 일치
          * 그러나 팀 [[사이바 죠이치로|사이바]]는 개판에 리더인 죠이치로가 궤변을 늘어놓는 통에 [[나키리 센자에몬]]의 설교를 듣는다.
          * 팀 사이바는 간신히 실격을 면하고 [[나키리 에리나]]는 [[유키히라 소마]]에게 자신들이 잘 서포트해보자고 제안하지만 소마는 폭소를 터뜨린다.
          * 타쿠미는 스타지엘 당시의 일을 회하는데, 그가 가기로 한 요리정 "후지사메"는 그가 오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 홍백전이 한창인 조리실. 팀 [[도지마 긴|도지마]]는 정말로 무언인 황에서도 능숙하게 조리를 이어나간다.
          * 하지만 대편인 팀 [[사이바 죠이치로|사이바]]는 개판 오분 전. 실격 당할 뻔해서 센자에몬에게 설교듣는다. 죠이치로와 [[유키히라 소마]]가 싸우다 "대화하지 않는다"는 룰을 어긴데다 죠이치로는 그걸 "조리도구를 손에놓고 있었으니 조리 중이 아니었다"는 궤변으로 때우려 한다. 물론 [[나키리 센자에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 어쨌든 팀 사이바도 조리를 시작하는데 정작 죠이치로는 아쉬 파르망티에를 제대로 시작하지 않고 있다. 소마는 그 점을 지적하는데 에리나도 그걸 신경 쓰고 있었다. 아쉬 파르망티에는 미트소스가 메인이 되는 요리로 미트소스를 만드는데 조리시간의 대부분이 쓰인다. 당연히 제일 먼저 착수해야 할 텐데, 죠이치로는 그건 내버려 둔 채 다른 부수적인 조리를 하고 있다.
          에리나는 죠이치로가 팀 도지마처럼 왕도적 노선을 택하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하는데, 그때 도지마 측에서도 색다른 시도를 시작한다. 본래 레시피에서는 쓰지 않던 앤초비와 바질을 참가한 것. 같은 팀의 [[타도코로 메구미]]와 [[타쿠미 알디니]]도 이하게 여긴다. 게다가 담는 그릇도 보통 가정에서 쓰는 그라탕 접시가 아닌 평범한 접시. 에리나는 그걸 통해 가정식으로서 아쉬 파르망티에가 아니라 레스토랑의 정찬으로서 아쉬 파르망티에를 만드는 거라고 유추한다.
          * 관객들은 두 팀의 행보를 보고 "승부고 뭐고 두 팀 모두 완성 조차 못 시킨다"고 수군거린다. 하지만 타쿠미는 그 말을 들으며 스타지엘 시절을 떠올린다. 그가 일하러 갔던 요정 "후지사메"는 전통있는 요리정이었지만 딱히 스타지엘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센자에몬이 사정해온 탓에 12대 점장 "후지이 토모나리"도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허락이야 했지만 못마땅한건 마찬가지고, 이력서로 본 타쿠미의 인도 좋지 않아서 적당히 청소나 시키다 돌려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그런데 타쿠미가 막 나타나자 그렇게 가볍게 여기지 못한다. 타쿠미는 찰랑찰랑했던 머리카락도 짧게 깍고 눈빛에 묘한 기백이 깃들어 있었다. 타쿠미가 정중하게 가르침을 부탁하자 점장 토모나리는 생각을 바꿔 첫날부터 주방보조로 전격 기용한다.
          * 도지마가 갑자기 애드립을 첨가한 레시피로 전환하자 타쿠미도 거기에 응수한다. 그는 화이트와인 비네거와 올리브 오일을 준비한다. 도지마가 앤초비와 바질을 선택한건 소스를 만들기 때문. 넓은 접시에 담기는 이 소스를 추가하는게 식이다. 에리나의 짐작대로 타쿠미도 그걸 간파하고 있었고 곧 도지마는 바질과 앤초비를 메인으로 한 "앙쇼야드 소스"를 만들 준비를 한다. 여기에 대항해 타쿠미는 이탈리안 요리에서 자주 쓰는 "소프리토"를 만들고 있다. 이것은 본래 양파나 마늘처럼 향이 강한 채소를 다져서 튀기듯 오래 볶아 페스토로 만드는 것이다. 카레 등을 만들 때 양파를 오래 볶아 카라멜라이즈 시키는 것과 유사한 조리법. 여기에 이탈리안의 소프리토는 파프리카나 피망을 더해 도지마의 앙쇼야드 소스와 잘 어울리는 요리다. 소프리토도 원래 아쉬 파르망티에에선 사용하지 않는 조리법인데, 타쿠미는 도지마가 양쇼야드 소스를 준비하는 걸 간파, 거기에 어울리는 조리를 즉석에서 떠올린 것이다.
  • 식극의 소마/232화 . . . . 14회 일치
          * [[사이토 소메이]]는 대량의 오렌지로 쥬스를 짜내며 알쏭달쏭한 행보를 보이는데, 소마는 한술 더 떠서 과자인 "네모떡"으로 급조형 화이트 소스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그런 사전 작업이 끝나자 둘은 거의 같은 타이밍에 팬에 버터를 던져넣는데. 이렇게 본승부가 시작된 것 같지만 사이토는 소마가 다른 냄비로 뭔가를 삶고 있는 걸 간파하고 소마측은 아직 승부에 나선게 아니라는 걸 눈치챈다.
         == 세 ==
          대형 식량창고에 돌입해서 쇼핑하는 기분으로 이것저것 마구 챙겨댄다. 언제나 그렇듯 매우 부산스러워서 타쿠미 알디니가 이렇게 쇼핑 기분 낼 때냐고 마음 속으로 츳코미한다. 대인 사이토 소메이는 조용히 오렌지 같은 감귤계 재료를 챙기는데 이를 유심히 지켜본다.
          바깥의 동료들에겐 과연 버터 요리 같은 애매모호한 주제를 소마가 처리할 수 있겠냐고 우려를 사고 있는데 유일하게 나키리 에리나만은 그를 믿는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해준 특훈을 잘 받았으니 틀림없이 버터에도 전문가가 됐을 것"이란 추정에서 여겼는데, 정작 그는 수업 때 자기만 해서 제대로 들었을리가 없다는게 동료들의 중론. 막 조리에 들어가니 그 많고 많은 쇼핑품목 중 과자의 일종인 "네모 떡"을 녹여서 화이트 소스를 만드는 기행을 벌인다. 예대로 에리나의 특강은 제대로 안 들은 모양.
          사이토와 비슷한 타이밍에 버터를 팬에 녹이기 시작해서 본격적인 승부로 돌입한 듯 보였지만 실제론 설명하지 않고 따로 끓이고 있는 냄비가 있어서 여전히 모든 수를 다 쓴건 아니다. 조림 뚜껑으로 덮어서 뭔가를 삶는 듯 한데, 사이토는 그걸 간파하고 그거야 말로 소마의 승부수임을 직감한다.
          * 사이토 소메이
          초밥장인이라 어떻게 버터를 다룰지 예이 안 되는 가운데 뜬금없이 감귤계 재료를 긁어모아 오렌지 쥬스를 만든다. 다들 이해못할 행보라고 하지만 나키리 에리나만큼은 뭘 하려는지 짐작을 하는데. 이후에는 기름에 볶은 마늘에 버터를 넣고 간장, 오징어, 오징어의 간을 넣고 볶는다.
          별로 설명할게 없었는지 잠자코 있다가 소마와 사이토가 버터를 쓰기 시작하자 양측의 사용을 설명하면서 등장. 양측의 조리를 모두 호평했지만 사이토 측을 좀 더 고져스하다고 표현하는걸 보면 일단은 사이토 쪽에 점수를 준 듯 하다.
  • 심판 토토하지 말라고 . . . . 14회 일치
         == 세 ==
         == 해당 ==
         당시 황을 설명하자면 처음 판정은 공이 터치라인 아웃 황이었을 때, 주심은 성남의 스로인을 선언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부심의 판정을 보고 광주의 스로인으로 번복한 것. 문제는 번복해서 잘못을 바로잡았으면 모를까 번복한게 오심이 되었고, 한 성남팬[* 음성이 켜져있는 중계카메라는 중앙쪽 중계본부석과 1층 및 2층 서포터석에만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남 쪽으로 예된다.]의 비난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좀 이하게 들릴 수 있으나 K리그는 다른 리그와 비교했을 때, '''특별히 [[오심]]이 많은 건 아니다.''' 당장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사례와 비교해봐도 전체적으로는 준수한 경기운을 보여주고 있다. 칼카나마의 쑥덕축덕만 봐도 라 리가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오심으로 [https://twitter.com/Kalkanama/status/727232395842187265|강등을 당하는 팀도 있고], 소위 [http://www.kfa.or.kr/news/news_column_view.asp?BoardNo=1086&Page=1&Query=|유령골이라고 불리는 옆그물 골]이 발생한 경우도 있으며, [http://http://www.teamtalk.com/news/ref-review-the-incorrect-decisions-from-week-31|한국인 선수가 뛰는 리그]도 예외없이 이런 이슈에 대해 아주 잘 소개된 바 있다. 농담 안 하고 세계 어디를 가든 심판의 수준은 사실 도찐개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 '''EPL, 분데스리가, 라 리가, 세리에 등과 달리 K리그는 팬들의 희망과는 달리 심판의 징계에 대해 대대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당히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지만, 연맹과 KFA의 반응은 사실 팬들의 기준으론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 아마 이 에서 음성 리소스를 추출하면 어떤 경기든지 합성해서 쓸 수 있을 것이다. 편집에 일가견이 있다면 시도해보자.
  • 아웃워드 작전 . . . . 14회 일치
         Operation Outward.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국]]이 벌였던 작전. [[독일]]과 그 점령지에 풍선을 날려보내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에 피해를 입히는 작전이었다. 비슷한 시기 일본군이 사용한 [[풍선 폭탄]]과 비슷한 무기였지만 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당시 국은 독일의 폭격을 방해하기 위해 [[방공기구]]를 띄우고 있었다. 가끔씩 방공기구를 매단 케이블이 끊기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경우 방공기구가 자기 멋대로 날아다니다가 전선과 같은 시설물에 걸려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1940년, 대규모 돌풍이 불어서 많은 양의 방공기구가 해방(?)되었다. 이 방공기구들은 동쪽으로 날아가버렸는데, [[북해]]를 건너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날아가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의 전선과 라디오 방송국 안테나를 덮쳤다. 스웨덴 정부는 국 정부에게 이 사태에 대해 항의했다.
         당시 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이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는 이를 응용한 무기를 제안한다. 이에 국 공군은 가격 대 효율이 별로일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국 해군은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1942년부터 국 해군은 약 10만개의 풍선을 독일로 날려보낸다. 풍선은 두 종류가 있었다. 독일군의 전선을 합선시키기 위해 전선을 매단 버전과 불을 지르기 위해 급조된 소이탄을 매단 버전이었다.
         이들은 가격에 비해 당한 효과를 냈다. 풍선 중 일부는 [[라이프치히]] 인근 전선망을 합선시켜 발전소를 전소시킬 뻔했다. 가디언지의 기사에 따르면, 발전소 화재로 인한 독일의 피해 금액은 국이 아웃워드 작전에 사용한 모든 자금의 다섯 배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http://www.nww2m.com/2017/03/scitech-tuesday-operation-outward/|뉴올리언스 제2차 세계 대전 박물관 블로그의 기사(문)]]
         [[https://www.theguardian.com/news/2016/sep/15/weather-balloons-britains-secret-weapon-weatherwatch|가디언-어떻게 10만개의 기 관측 기구가 국의 비밀 병기가 되었는가(문)]]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14회 일치
         >후세에 '빅뱅'라는 현이다 ... 이렇게 시간과 공간이 탄생했다.
         >행성은 사고없이 평화롭게 번하는 듯했지만 ── !?
         이타카 왕은 도시를 기계 도시로 바꾼다. 아요도야의 왕자 밀란이 여동생 리리아를 걱정하여 데리러 오자, 기계들은 밀란을 공격한다. 리리아의 아들 황태자 지무사는 이 때 신비한 초능력을 발휘하어 대항하고, 여검사 이루(イル)의 도움을 받아서 도망친다. 이루는 기계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행성 로도리안 출신의 사이보그 전사였다.
         로도리안 행성 출신의 전사. 반 인간 반 기계의 사이보그. [[일본도]] 같은 검을 사용하여 싸우는 여검사이다. 고향 행성이 멸망한 뒤에도 기계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으며, 지무사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 기계들과의 싸움에서 궁지에 몰린 인간들을 위하여 최후까지 싸우게 된다.
         --만악의 근원-- 오래전 멸망한 행성 뮤라토의 자손. 사실 기계군단을 만들어낸 근원으로서, 기계들을 조종하는 마더 머신을 만들어 "인간을 행복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마더 머신은 이를 극단적으로 해석하여, 인간을 모두 기계로 개조하고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여 정신만을 행복한 가세계에서 살도록 만들게 된다. 이에 저항하는 것은 모두 파괴하도록 되어 있어 지금까지 몇개의 문명을 멸망시켜 왔다.
         노사 쿠푸는 과거 아스투리아스로 사람들이 이민해 올 때 사용했던 소행성 키시로코파(キシロコーパ)를 근거지로 하여 마더 머신에 대항하는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그 징으로서 지무사를 이용하려고 한다. 기계에 대한 증오심이 강하여 지무사에 따르는 아크와 베스 역시 혐오하는 모습을 보인다.
         곡목 : 永遠の1秒(원한 1초)
          * 일단 명목 남녀 쌍둥이 간의 애정이지만, 아푸루가 거의 작중 내내 미소년으로 묘사되고 있어 거의 BL 작품 분위기(…)이다.--생각해보니까 애초에 어느 쪽이든 위험하다.--
          * 운명의 아이를 데리고 어머니가 [[사막]]으로 도피하는 묘사 등은 [[듄]]의 향이 느껴진다.
          * 정신을 분리하여 가 세계에서 행복을 누리게 하는 기계의 묘사는 후에 나온 [[매트릭스]]와 흡사하다.
          * '행복'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문명이 폭주하여 침략자로 돌변하는 것은 [[용자왕 가오가이가]]가 연되기도.
          * 매년 24시간 테레비의 특집 애니메이션은 거의 다 [[데즈카 오사무]] 작품의 화였는데, 안드로메다 스토리는 여기에서 특이하게 예외였다.
  • 요괴:선풍기 . . . . 14회 일치
         기괴한 형의 요괴로서, 납짝한 발 하나에 길쭉한 몸통이 붙어 있다. 머리는 큰데, 철망으로 덮혀 있으며, 철망 안에 팔랑거리는 부채가 3~4개 달려 있다. [[여름]]에서 집 안에 자주 출몰한다. 다른 때는 대개 창고 같은 곳에 숨어 있다. 기계가 저 스스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일본]]의 [[츠쿠모가미]]와 유사한 종류이다.
         잠든 사이에 조용하게 사람을 죽여버리는, 무서운 요괴이다.
         이 요괴는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으나, 저 무서운 능력에 대해서는 주로 [[한국]]에만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이 요괴에게 봉인을 걸어, 일정 시간 이 움직이면 저절로 음직임이 멈추게 하는 주박술을 걸어놓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한국에서도 여름에 선풍기에게 살해당했다는 안타까운 설화가 자주 전해진다.
         || "그거"야 현장에 언제나 있는 거죠. 여름철이지 않습니까? 거실이나 안방할 거 없이 사람이 누워있는데면 하나씩은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가보면 방마다 하나씩이 아니라 사람 수대로 하나씩 있어요. 이거 없이 열대야를 넘기라면 못할 짓입니다. 부엌에 식칼이 있다고 이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듯이 현장에 이게 놓여 있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어요. 그건 당연한 겁니다.
         그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죠. 그 여관방에서만 세 명이 죽어나갔습니다. 하나같이 밀실이었고 CCTV를 아무리 돌려봐도 누가 침입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딱 하나 수한 점이 있다면 방에 있는 창문이 고장나서 열리지 않았다는 거 뿐인데, 그야 그렇게 낡은 여관이니까 수하다고 할 것도 못 되죠.
         성과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짓을 하게 된 거죠. 누가 그러더군요. "방"에 범인이 있다고... 아니 웃지 마세요.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내 말을 들어요. 난 평생 그런 얘길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도 그랬고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이 사건 하나에 매달려 있는 동안 내 담당이었던 사건 용의자 두 명이 공소시효를 넘겼어요. 부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뱉어대는 말이 험해지고 일주일 쯤 집에 못 들어갔더니 마누라가 전화로 이혼 얘기를 꺼내더군요. 그 밤이 되기 하루 전에는 내 아들이 대회에서 첫 우승트로피를 받았는데 나는 걔가 무슨 대회에 나가는 건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황이 그렇게 돌아가면 무슨 개소리를 듣던지 간에 까짓것 해보지, 이런 생각 안 하게 생겼어요?
         감식반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찝찝했어요. 현장은 내집보다 자주 들락거리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먹고 자는건 아니니까요. 화장실에서 밥먹고 식당에서 세수하는건 어색하잖아요. 현장은 아직도 우리가 그어 놓은 표시가 남아있었어요. 며칠 내로 치워줘야겠지만 그때까진 살인현장이라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죠.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그저 사무적으로 바라봤던 그 공간이 거슬리기 시작하더군요. 뭐랄까, 그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느낌... 비유가 이했군요. 그건 일종의 냄새였을지도 모르겠어요. 혼자 있는데 내가 뛰지 않은 방귀를 맡는 기분. 이것도 이한 비유군요. 어쨌든 그랬어요. 이한 긴장감 속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죠.
         나는 피해자들의 마지막 표시를 보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세 사람 분의 하얀 선들. 막 그렇게 들어앉아 있다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더군요. 뭘 기대한 거야? 당연히 아무 것도 없지, 뭐하러 이런데 왔어...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시간은 벌써 3시가 가까웠고 침대에서 자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더군요. 그런데 마침 있더란 말입니다. 피해자가 쓰던 거지만. 그건 더운 바람을 토해내면서 돌아가고 있고 저는 멍청하게 방 가운데 앉아 있었죠. 아무 변화도 없는 방에서 아무 생각도 행동도 안 하면서. 졸린건 억지로 참으면서 말이죠. 미친 짓 같지만 이건 수사활동이다, 수사활동이다 하면서 어느 정도 버텼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자야 돼. 자면 어때 이런 생각으로 바뀌는데 오래 걸리진 않았습니다. 언제라고 할 것도 없이 몸은 침대 위로 올라갔고 그대로 한동안 푹 잤습니다. 그건 순찰차에서 자는 쪽잠 같은 거하곤 비교도 할 수 없는 거죠.
         지금도 왜 눈을 떴는지, 얼마만에 의식을 찾은 건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뜨뜻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르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해요. 바로 그 바람. 그게 눈 앞에 있었죠. 이했어요. 분명히 꽤 떨어진 자리에 그게 있었는데. 손을 뻗으면 정확히 닿는 거리까지 가까워져 있더군요. 게다가 회전시켜봤던 목이 똑바로 나를 향해 고정돼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가까워졌다는 표현... 이건 정확하지 않군요. 가까이 왔다고 다시 말하겠습니다. 그건 가까이 와있었어요. 실내 온도는 더 올라간 것 같았고 그놈이 토해놓는 바람은 이제 드라이기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비몽사몽한 가운데에도 그걸 꺼야겠다는 생각만은 또렷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예감이었죠.
         그때까지도 나는 그게 문제를 일으킨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그저 이 답답한 공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침대에서 기어나왔습니다. 문까지 불과 한 평도 안 되는 거리를 기어가는데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그 바람. 뜨거운 바람이 계속 얼굴에 닿고 있는 거에요. 나는 침대에서 반대방향으로 기어가고 있었는데. 그리고 번쩍 생각이 났어요. 잠들기 전까지는 회전시켜 놨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는 침대를 향해 고정돼 있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벼락에 맞은 것 같았어요. 탈출도 잊어버리고 고개를 들었죠. 그래요 그놈은 또 거기에 있었어요. 마치 지키고 있는 것처럼 문 앞에요. 시야에는 돌아가는 날개만 보였지만, 나는 그걸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어요. 이쪽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는게 가물거리는 시야에서는 마치 커다란 눈알처럼 보이더군요. 숨이 점점 막혀오는 데도 눈을 뗄 수 없더군요. 못으로 박아놓은 것처럼 멈춰서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황인지 짜맞춰보려고 별별 가정을 다해봤어요. 하지만 침대 앞에 있던 선풍기가 문으로 가있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저렇게 노려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이 될 리가 없었죠.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놈이 "행동"을 보여준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산통 다 깨졌다"고 본게 아니었을지 모르겠네요. 내가 깨어났다는걸 좀 늦게 알아차린 거에요. 그러고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범한 기계로 돌아간 척 했던 거죠.
  • 원피스/826화 . . . . 14회 일치
          * 일행은 그 배에 타고 있는걸 디라고 착각한다.
          * 하지만 그는 "빈스모크 욘디"(윈치 그린). 본인은 "디와 관계성은 비밀"이라고 말하지만 누가 봐도 동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 역시 디의 핏줄이라 그런지 나미와 캐롯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좋아한다.
          * 레이라의 설명에 따르면 제르마는 지금도 왕족이며 비록 토는 없지만 "레벨리"에 참가를 허락 받을 정도로 권력을 인정받고 있다.
          * 레이라는 디에게도 누나.
          * 디는 어린 시절 생이별한 동생으로 그들의 아버지는 디를 늘 찾고 있었다.
          * 2년 전 수배서가 배포된 걸 계기로 그를 찾고 있었는데, 막 찾아갔더니 나타난건 듀발.
          * 듀발이 디에게 원한을 품고 덤볐던건 바로 제르마의 추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최근 밀집모자일당이 재결성하면서 디의 정보도 다시 얻었고, 아버지는 수배서를 "생포할 것"으로 고치고 현금도 올려서 재배포했다.
          * 그래서 디의 수배서만 조금 달랐던 것.
          * 나미는 디는 지금 어디있냐고 묻는데 레이라는 자기들도 마중을 나온 거지만 길이 엇갈려서 모르겠다고 한다.
          * 루피는 구해준건 고맙디만 디는 자신의 동료라며 돌라뎔라고 소리친다.
  • 원피스/871화 . . . . 14회 일치
          * 루 펠드를 저격한 것은 환락가의 여왕 스튜시. 그녀의 진짜 정체는 스튜시의 진짜 정체는 세계정부의 첩보기관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 이치디는 여전히 남아서 카타쿠리를 대하고 시저는 겨우 빠져나오나 싶었는데 이번엔 시저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앞길을 막는다.
          * 빅맘 [[샬롯 링링]] 암살작전 대실패. 해적동맹이 퇴각하기 시작한다. 빈스모크 일가가 호위하는 동안 일행 전원이 [[카포네 갱 벳지]]의 체내에 탑승, [[시저 클라운]]이 하늘로 날아 도망치는 퇴각작전. 그러나 적들의 추격기세가 무섭고 [[몽키 D. 루피]]와 [[디]]가 [[빈스모크 레이쥬]]의 위기를 보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등 넘어야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 옥갑을 빼돌리려고 했던 루 펠드는 난감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성 밑으로 옥갑을 떨어뜨려 버린 것. 다행히 그리 멀리 떨어지진 않았다. 옥 바로 밑의 넓은 지붕 부분. 그 처마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었다. 루 펠드는 저걸 어찌해야 좋을까 고민한다. 뛰어내려야 좋을까? 그 고민은 환락가의 여왕 스튜시가 해결해준다. 그녀가 불쑥 튀어나오자 당황한 루 펠드가 중심을 잃고 난간 너머로 떨어진다. 그도 마침 지붕 부분으로, 딱 옥갑 앞에 떨어진다. 루 펠드가 잘 됐다치고 옥갑을 열어보려 하는데, 어디선가 저격이 날아온다. 탄환없는 총, "지건"이다.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던 스튜시. 그녀가 범인이다. 환락가의 여왕은 표면 의 얼굴. 진짜 정체는 세계정부 첩보기관 "사이퍼 폴 이지스 제로"의 요원. "날으는 지건"이란 기술로 루 펠드를 조용히 처리했다. 그녀의 목적, 아니 세계정부의 목적도 옥갑이었다. 그녀는 옥갑을 빼돌리고 그 죄를 루펠드에게 뒤집어 씌울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
          * 빅맘과 전면전은 계획에 없던 일. 그러나 레이쥬가 당할 것 같자 디와 루피가 앞뒤 없이 뛰쳐나갔다. 그걸로 레이쥬를 구했으니 다시 퇴각 대열에 합류해야 할 일. 그러나 깔끔하게 돌아선 디와 달리 루피는 돌아가려 하질 않아 억지로 끌고 가고 있다. 빅맘의 도발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인섬 때와 죄수도서관 때의 일을 운운하며 "너를 날려주마! 마지막에 이기는 건 우리다!"고 떠든 주제에 도망치는 거냐며 "겁쟁이"라고 조롱했다. 디가 저런 뻔한 도발에 응하지 말라고 타이름 반, 꾸짖음 반으로 설득했지만 루피는 성미를 누르지 못하고 디의 손을 뿌리친다. 그리고 "한 방만!"이라 약속하고 빅맘에게 달려든다.
          루피가 기어4로 주먹을 날리자 빅맘도 팔에 무장색 패기를 둘러 맞부딪힌다. 패기와 패기의 격돌. 그 여파로 주위를 번잡스럽게 하던 샬롯가의 조무라기들이 쓸려간다. 루피는 약속대로 딱 한 방만 주먹을 날린 뒤 디에게 회수된다. 어차피 저 한 방에 기어4의 힘을 다 써버려 늘어진 태다. 레이쥬가 이들의 호위로 따라붙는다.
          * 그러나 오늘 빅맘은 원하는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팔자다. 그녀가 처형을 하며 히죽거리는 동안 루 펠드가 옥갑을 떨어뜨렸고, 그것이 바닥에 처박혔다. 박살난 옥갑은 내용물이 뭔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홀 케이스 성 한 측이 완전히 붕괴, 성이 쓰러지고 성 아랫마을이 휘말릴 정도의 대폭발이다. 이런 정황을 모르는 빅맘은 기우는 성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다.
  • 월드 인 컨플릭트/유닛 . . . . 14회 일치
          * 공격능력: HEAT탄 - 대전차고폭탄을 발사한다. 경장갑 차량에게 쥐약이지만 IFV 이의 장갑만 되어도 피해가 감소한다. 중형전차 이의 적들에게는 주포를 사용하는게 더 낫다.
          미국은 M60A3, 소련은 T-62, NATO는 국군 치프틴 Mk.5.
          미국은 M551A1 셰리던, 소련은 PT-76, NATO는 국군 FV101 스콜피온. 빠르지만 나약한 전차. 경전차 TA로 공수받을 수도 있다.
          미국은 M2A2 브래들리, 소련은 BMP-2, NATO는 국군 FV510 워리어. 기관포로 무장한 장갑차. 보병 분대 하나를 탑승시킬 수 있다.
          * 공격능력: 사이드와인더 미사일(미국)/빔펠 R-73 미사일(소련)/미스트랄 미사일(NATO) - 적 헬리콥터에게 강력한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한다. 플레어로 피할 수 있다.
          * 공격능력: 철갑탄 - 일정 시간동안 철갑탄을 사용한다. 공격력과 중장갑 차량에 대한 공격 효율이 승한다.
          미국은 [[HMMWV]], 소련은 UAZ-469, NATO는 국군 D-90. 기관총으로 무장한 고기동 차량. 보병 분대 하나를 탑승시킬 수 있으며, 손된 차량을 수리할수도 있다.
          * 공격능력: 지지원 - 일정 시간동안 지 유닛을 공격하게 된다. 중장갑 차량에게는 효과가 떨어진다.
          미국은 M125, 소련은 2S1 그보즈디카, NATO는 국군 FV432. 자주박격포.
          * 공격능력: 긴급수리 - 대 차량의 많은 내구도를 순식간에 수리한다.
          미국은 M88A1 ARV, 소련은 VT-55, NATO는 국군 치프틴 AAVR. 다른 차량을 수리할 수 있다.
  • 율리우스 네포스 . . . . 14회 일치
         네포스의 출신은 일치하지 않는 사료가 많아서 확실하지 않은데, 달마티아 지역의 로마 귀족 출신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의 삼촌은 달마티아 총독 마르케리누스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스트라테고스|서로마 제국의 군사장관]]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부하로서 아에티우스가 발렌티아누스 3세에게 암살된 뒤 반란을 일으켜, 달마티아 지방[* 이탈리아 반대편에 있는 아드리아 해 해안 북부.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일대.]을 지로 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마르케리누스의 통치는 여러 황제들에게 승인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네포스는 동로마 황제 레오 1세의 조카와 결혼하여, 동로마 제국의 권력 중심부에 들어가게 된다.
         네포스는 훈 족의 아틸라를 모시던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를 [[스트라테고스|제국의 군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이는 크나큰 실책이었는데, 475년 8월 28일, 오레스테스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어린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 황제로 옹립했으며, 네포스는 자신의 고향이자 삼촌의 지였던 달마티아로 도주할 수 밖에 없었다.
         오도아케르는 충성의 증거로서, 자신의 지배역에서 발행되는 금화에서 네포스 황제의 이름과 초화를 각인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조치였으며 네포스의 통치는 달마티아에 밖에 미치지 못했다. 네포스는 오도아케르를 명목으로는 부하로 만들게 되었는데,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탈리아 지배를 되찾기 위한 군사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480년, 네포스는 궁전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당시 사료에서 이 사건은 네포스의 장군 오비다가 배신했거나, 네포스의 신하가 되어 있던 글리케리우스(Glycerius)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아무튼 이 사건은 오도아케르에게는 희소식으로서, 명목이라고는 해도 주군인 네포스가 '다른 부하'에게 시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오도아케르는 이를 명분으로 하여 달마티아를 공격하고, 달마티아를 지배하던 오비다는 패배하고 사망했다. 달마티아 지역은 오도아케르의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당한다. 여담으로 글리케리우스는 이후로도 오도아케르의 신하로서 살아서 음모론의 소재가 됐다.
         네포스의 사망 이후 동로마는 서로마 제위를 더 이 유지하지 않고 폐지하였다.
         || 율리우스 네포스 || 재위 474년-480년, 실질지배 474년-475년 8월 / 명목 475년-480년 ||
         재미있는 것은 흔히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알려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와, 율리우스 네포스 사이에서는 서로 '마지막 서로마 황제'로서 어느 쪽이 정당성이 강하냐는 논쟁이 있다는 것이다.--쓸데없는 경쟁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일단 당대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다른 갈리아의 로마 장군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참칭자'로 여겨졌으며, 네포스가 실질적으로 이탈리아의 통치권을 잃은 태였음에도 네포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간주했다. 로물루스를 합법적인 황제로 인정한 것은 로마 원로원, 아버지 오레스테스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폐위한 오도아케르[* 오도아케르는 네포스가 있는데도, '서로마 황제 제위 반납'을 행했으므로 일단 당시 시점에서는 로물루스의 제위를 합법적으로 봤다는 것이다.] 정도였다. 그리고 로물루스 폐위 이후로는 당대에는 동로마 황제 제논이나, 오도아케르 조차도 일단 '합법적인 서로마 황제'는 네포스라고 여겼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당대 시점에서 단 1년도 재위하지 못했고 대립황제로서도 거의 의미가 없었던 로물루스[* 심지어 이 소년은 폐위된 뒤에 살해당하지도 않았다.]보다는 동로마에 인정 받고 달마티아라는 지를 보유한 네포스의 정치적 향력이 훨씬 컷던 것은 분명하다.
         다만 로물루스는 일단 --난장판이긴 해도-- 즉위가 로마 원로원에서 인정을 받았으며, 네포스는 결국 이탈리아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사망했다는 점[* 다만 말기에는 로마 황제들 가운데 당수가 이탈리아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즉위하고 활동한 사례도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에서 감점. 이런 관점에서 보면 474년 이후의 네포스는 서로마 황제의 지위를 명목으로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 은혼/621화 . . . . 14회 일치
          * [[오토세]] 여사는 항복하는 듯 순순히 [[히라가 겐가이]] 감을 내놓는다.
          * 그런데 갑자기 건물 옥이 무너지면서 소타츠를 비롯한 신라 병사들이 추락한다.
          * 신라 부대의 [[소타츠]]는 옥을 점거하고 [[시무라 타에]]를 비롯한 스마일 아가씨들을 인질로 잡는다. 소타츠는 다키니 대장 [[오우가이]]의 지휘는 전략적 목적을 도외시한 전쟁놀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쓴소릴 한다. 그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네오암스트롱사이클론제트사이클론 겐가이포'''를 저지하고 나노머신 병기를 무력화해 본대와 통신을 회복하는데 있었다.
          * [[사카타 긴토키]]를 비롯해 지에서 싸우던 일행들은 분하지만 어쩔 방법이 없다. 그때 옥에서 난데없이 [[오토세 여사]]가 [[히라가 겐가이]] 감을 데리고 나타난다.
          오토세 여사는 에도를 지키기 위해 만든 기계 때문에 사람이 죽어서야 본말전도라고 말하며 앞으로 어머니가 될 여자들의 목숨과 늙어 빠진 노인네들의 목숨을 저울질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행들은 지금까지 잘해줬다며 마치 전쟁을 포기하는 듯이 말한다. 겐가이 감을 넘겨주는 대신 이 마을에는 손을 떼달라고 하는데.
          주민들은 너도 나도 손을 들고 앞으로 나온다. [[캐서린(은혼)|캐서린]]이 앞장서서 이들을 이끌고 옥으로 나타난다. 그들 중엔 [[무라타 테츠코]], 타츠미도 있다.
          * 다른 인질들도 건물 아래로 떨궈진다. 소타츠는 "앞으로 아이들의 엄마가 될 여자들"이란 말을 비웃으며 "앞으로"가 어디있냐고 비꼰다. 망해가는 별에는 여자도 남자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미래가 없는 자들과 거래할 생각이 없었으며 그들의 "거래처"는 해방군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옥 위에 모인 주민들을 몰살하기 위해 달려드는데. 오토세 여사는 자신에게 쇄도하는 소타츠의 칼을 무심히 쳐다보며 말한다.
          * 그대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던 타에와 해결사 일행, 스마일의 아가씨들도 모두 무사하다. 그들은 건물 사이에 쳐진 그물에 걸려서 무사할 수 있었다. 양 건물 안에서 그물을 잡아 당기고 있는 남자들. 그 사이에서 [[도로미즈 피라코|익숙한 목소리의 소녀]]가 나타난다.
          * 옥이 무너지면서 건물 안으로 떨어진 소타츠와 신라 병사들. 그들 앞에 삿갓을 쓴 협객의 모습이 나타난다. 누구냐고 묻자 그는 삿갓을 벗어던진다. 그는 본래 에도의 가부키쵸 사람으로 속죄를 위해 여행하고 있었으나 고향이 그립고 친구의 약속이 마음에 걸려 돌아왔다.
  • 은혼/637화 . . . . 14회 일치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전사로서의 수명도 남자로서의 수명도 끝장이 나고 만다. 마지막까지 꽂꽂해던 그의 금수슬이 수그러들면서 ED의 길로 접어들어 버린다. 부하들은 그의 금구슬을 보고 전장의 전설이 단지 애송이들의 손에 끝장났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구라만이 이 중에선 유일하게 확인 방식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비교적 온유한 경고가 나오자 [[아부토]]를 비롯한 7사단은 "독감이라도 걸렸냐"고 놀린다. 하지만 카무이는 딱히 바뀐 건 없고 그저 송사리들에겐 볼 일이 없으니 얼른 보스랑 싸우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가 가구라가 "송사리 좀 늘어도 관없다"며 적의를 드러낸다. 카무이 또한 "네가 보스인 줄 아나 본데 정리해버리고 싶은 송사리일 뿐"이라며 남매싸움 2라운드를 속행하려 든다.
          그때, 익숙한 목검이 남매의 사이를 갈라놓는다.
          둘은 그대로 서로를 지나쳐 적들을 덮친다. 아부토는 설마 이런 황이 오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 "아무도 죽게하지 마라", 이런 명령을 저 대장이 할 줄이야. 그러면서 슬그머니 적 부대에게 철수를 권유한다.
          >저들을 회했다고 말하는게 맞을까요?
          * 히노카쿠츠치의 존재가 촉발한 해방군 지부대의 발악은 에도 전지역으로 확산됐다. 승전의 기쁨이 하루도 채가기 전에 가부키쵸 연합군은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다. [[곤도 이사오]]가 이들을 통솔하고 있다. 우츠로는 이렇게 폭주하는 지군은 그저 오합지졸의 세때일 뿐이라고 평한다. 그 말대로 가부키쵸 연합군은 낮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대선전, 지군을 압도한다. 그저 두려워서 날뛰는 자들이 적을 끝장낼 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자신이 노린 바였다고 우츠로가 말한다.
          우츠로가 감사를 표한 해방군의 아둔함, 아무 것도 끝장내지 못하는 무능함이야 말로 우츠로에겐 필요했다. 그것이 마지막 방아쇠이며 이로써 주사위가 던져졌다. 그러니 이젠 필요가 없다. 우츠로는 더이 그걸 보고 있기 힘들어서 나타났다. 피할 수 없는 것을 끝끝내 두려워하는 태도, 삶에 연연하는 집착. 그것은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세을 떠도는 망령과도 같이 추악하다. 이 되다만 불사인들 처럼. 우츠로의 미학에 따르면 끝이란 아름답고 정밀해야 한다.
          >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같은 시각. 지군을 분쇄하던 가부키쵸 연합군은 이한 느낌을 받는다. 해방군과 다른 어떤 위험을 직감한다. 그 불길함 움직임이 곤도의 발 밑에서부터 폭발한다.
  • 이주현(배우) . . . . 14회 일치
          * 학력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전]][* 탤런트 [[차태현]]과 동기(방송연예과)이다] - [[동국대학교]] 연극화과(편입)
          * 수 1996년 KBS 슈퍼탤런트 금[* 당시 대은 [[박선]]이다. 금 김미성/이주현, 은 유지연/안성민, 동 박현숙/유원일]
          * [[결혼의 여신]] - 남
          * [[내 인생의 콩깍지]] - [[은의 남친]]
          * [[도(드라마)|도]] - 장명국
          * [[하늘만큼 땅만큼]] - 김
         === 화 ===
  • 이준승 . . . . 14회 일치
         '''이준승'''(1934년 ~ 2012년 1월 15일)은 전두환 대통령에 의하여 대법원 판사에 임명된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부인 권렬과 사이에 4남1녀의 자녀가 있다.
         1934년에 [[경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56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이듬해 졸업한 이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61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처음으로 검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1963년 [[청주지방검찰청]]과 1966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를 하였으며 1969년 [[국회사무처]]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파견되었다가 1971년 [[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 검찰에 복귀하였다. 이후 1973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1977년 [[서울지방검찰청]] 1978년 [[청주지방검찰청]]에서 부장검사로 재직하였으며 1978년에 차장검사로 승진하여 [[청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에 임명되어 1979년에 [[대구지방검찰청]]으로 전보되어 차장검사로 재직하였다.
         대검찰청 공판부장, 1980년 서울지검 북부지청장과 1981년 법무부 법무실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1982년 대전지검, 1983년 마산지검에서 검사장을 지내고 광주지검 검사장 재직 중인 1986년 4월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1986년 4월 17일에 2년 임기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고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취임이후 대법관 재임명 과정에서 탈락하여 대법원 판사 퇴임이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1991년에 국회 추천 몫으로 여당인 [[민자당]]이 추천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에 추천되어 1997년까지 임기를 마쳤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7027020]</ref>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시절에는 [[동백림 사건]]을 맡아 처리했으며 <국제분쟁에 있어서의 국가배 문제> 등의 저서가 있고 테니스와 등산을 즐겼다.<ref>경향신문 1986년 4월 3일자</ref> 대구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1980년 7월 3일 소속 검사와 직원들에게 "공사간 언행을 조심하고 사건처리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이해와 설득으로 승복하여 신뢰받는 검찰을 구현해달라"고 하면서 "공보관은 엄연히 검사장이므로 검사나 일반직원들이 함부로 수사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검찰청 출입자의 신분을 가릴 것 없이 수위실에서 출입증을 받아 패용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고<ref>경향신문
          1980년 7월 4일자</ref> 대검찰청 공판부장에 재직할 때 "검사들이 피고인에게 무죄만 선고되면 무조건 소하는 것은 고질적인 폐단이다"고 하면서 개선책을 마련했다.<ref>동아일보 1983년 7월 23일자</ref>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4년 1월 27일에 불온 유인물 소지로 신고된 사람에 대해 장없이 압수수색하고 연행하여 6일동안 불법 구금한 진주경찰서 정보계장 김태진(64) 등 3명을 대로 낸 불법구금 등 불기소처분 기각에 대한 [[재정신청]] 사건 항고심(주심 [[이회창]])에서 인용되어 환송된 사건의 재항고심 주심을 맡아 "경찰의 불법구금 사실은 인정되나 경찰관들이 수사업무에 과잉의욕을 보이다 위법행위를 저질렀고 오랜 정보업무에 종사하며 국가에 공헌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타당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12800209210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1-28&officeId=00020&pageNo=10&printNo=20099&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7년 1월 28일자]</ref>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6년 11월 24일에 남성전기 주식회사 대표가 중앙노동위원회를 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청구 소송 고심에서 "학력을 속여 취업을 했더라도 신뢰관계나 기업질서유지에 향을 주지않고 특별한 학력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직일 경우 이를 이유로 해고한 것은 위법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는 위장취업을 이유로 노조간부 등에 대해 해고를 하는 것에 제동을 건 최초의 판결이다.<ref>동아일보1986년 11월 25일</ref>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7년 5월 8일에 택시회사가 교통사고를 낸 운전기사를 대로 청구한 손해배청구소송 고심에서 "단체협약은 근로자의 권익보호와 복리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돼서는 안된다"며 "이 사고는 근로자의 잘잘못을 따질 것이 없이 업무수행 중 발생한 사고이므로 회사측이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대전지방법원 합의부로 환송했다.<ref>매일경제신문 1987년 5월 9일자</ref>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14회 일치
          * 멀린은 하룻밤만에 엉망이 됐던 리오네스 왕국을 복원한다. 그러나 처입은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
          * 툴툴 거리며 거리로 나선 하우저. 그런데 그의 눈 앞엔 깨끗하게 복구된 리오네스 왕국이 나타난다. 하우저는 눈을 의심해 보지만 틀림없이 원복구되었다.
          * 성에서 목욕을 즐기는 멀린. 에스카노르는 하인처럼 목욕시중을 들고 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안마에 열중하는 중. 멀린도 대만족. 멀린은 멜리오다스 일행에게 왕국이 원복구된 일에 대해 질문을 들은 모양인데 "원래대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녀가 복원한건 어디까지나 "건물"이라는 것. 사실 애초에 반 정도는 멀린이 부순 셈이니 고쳐주는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물이 돌아왔다고 해서 마신족 치하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처까지 낫는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계금에 걸린 성기사들와 백성들이 카멜롯으로 달아났는데 그 말은 카멜롯이 잔존한 십계의 근거지가 된다는 말이다. 싸움은 이제부터라 말하는 멀린. 그래도 이번 싸움의 승자는 일단 일곱개의 대죄임에 틀림없다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멜리오다스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
          * 한편 왕궁에서는 국왕 바토라가 성기사들을 소집한 태. 바토라는 일곱개의 대죄의 활약으로 십계의 위협은 벗어났지만 아직도 안심할 수 없는 태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성기사들을 통솔할 성기사장 자리를 비워둘 수 없어 새로히 임명한다고 선언한다.
          * 목욕을 마친 멀린은 이 다음 수를 구하겠다고 우선은 일곱개의 대죄가 전부 모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인지 데스피어스는 멀린과 바토라의 명의로 지하감옥에 갇혀 있던 고서를 석방한다. 그런데 고서는 태가 다소 이하다. 무슨 말을 들어도 "나는 일곱개의 대죄 색욕의 죄 고서."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데스피어스는 미심쩍어 하지만 어쨌든 명령은 명령. 고서를 풀어주며 그가 십계의 일원이라는 혐의가 완전히 풀린건 아니라고 경고하는데. 그렇게 구속이 풀린 고서. 자유롭게 움직이라고 말하자 어쩐지 고서의 기색이 달라진다.
          * 그때 숲속에서 누군가 나타나는데 "왜 춤을 잘 추지 못하지"라고 투덜거리고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디안느. 디안느도 목욕을 하러 왔는지 알몸 태다. 할리퀸과 디안느가 엉뚱한 곳에서 태어난 모습 그대로 만난 두 사람.
         하우저 인생역전. 위 성기사에서 성기사장으로 클래스업. 하지만 대리라는 단서가 붙은 걸 보면 길선더의 복귀와 함께 원복귀할 듯.
         고서는 그냥 있을 때도 태가 이한데 갑자기 무욕의 고서라고 십계의 이름을 댄다. 고서가 멜리오다스의 과거 시절 나오던 무욕의 십계라는건 팬덤에서도 추측하고 있던 내용인데, 이번 화로 거의 확실시 되었다. 다만 고서는 멀린이 조작하는 인형이었으며 멜리오다스의 십계 시절 동료인 "무욕의 고서" 그대로는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14회 일치
         [[일곱 개의 대죄]] 제 220화. '''웅들의 연회'''
          * 시가 무시당하는 거야 하루이틀도 아니니 곧 털어버리는 에스카노르. 그런데 이 경사로운 자리에 한 사람이 빠져있다. 연회가 시작한지 꽤 됐는데도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자리만 비어있다. [[멜리오다스]]는 "수한 실험"이라도 하느라 틀어박혔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에스카노르는 걱정된다며 보고오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에스카노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빈 의자로 순간이동해 나타나는 멀린.
          >아마 수한 실험에 몰두해서 늦는거 아닐까 생각했나?
          겉보기에는 평소와 같다. 엘리자베스가 그녀를 반기며 술을 따라준다. 이때 방금 전엔 밉쌀맞은 소릴내뱉었던 멜리오다스가 그녀의 안색을 살핀다. 뭔가 이한 점이 있는게 아닐까?
          이중 고서만은 분명히 진실을 알고 있겠지만 무슨 이유인지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다"고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서 "이야기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고 이야기해도 납득해줄지 모르겠다"는 묘한 꼬릿말을 다는데. 어찌됐건 고서의 반응이 생각 이으로 침울해서 디안느가 질문을 철회하고 사과한다. 답변은 나중에 때가 되면 해줘도 좋다면서.
          * 그런데 멜리오다스의 성희롱 버릇이 멍하니 고민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술기운 탓인지 평소보다 한층 격렬한 성희롱. 할리퀸이 진지하게 감하다 디안느에게 응징 당한다. 그래도 멜리오다스는 나름대로 엘리자베스의 고민을 풀어주려는 의도였는지, 고민이 있다면 말해보라며 넌지시 말을 꺼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나중에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자 별 수 없이 그러겠다며 떨어진다. 엘리자베스는 술을 더 가져오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뜬다. 의도와 다른 결말이 나와서 멜리오다스가 멋쩍게 머리를 긁는데, 호크가 옆에서 "드디어 엘리자베스를 화나게 했다"고 뼈아픈 일침을 가한다.
          * 에스카노르는 멀린에게 자작시를 들려주려고 기회를 보지만 멀린은 "취한 것 같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뜨려한다. 하지만 그녀는 한두 잔 밖에 마시지 않았고 멜리오다스에 필적하는 주당이라 그걸로 취할리가 없다. 그런 점을 들어 반이 농담조로 트집을 잡는데 멀린은 "술만 들어가면 트집을 잡는다"고 꽤 날 선 반응을 보인다. 그녀는 연회가 못마땅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직 십계를 다 토벌한 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기시킨다. 현재 남은 십계는 "경신"의 [[젤드리스]]. 카멜롯을 비롯한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딱딱한 얘기다.
          * 호크가 평소 성격대로 "그래도 대죄가 다 모였고 이 호크님도 있으니 문제는 없다"고 허세를 떠는데 멀린은 위협에 가까울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생각없이 손을 대면 확실히 당한다"고 경고한다. 호크가 기겁할 정도로 멀린의 반응이 날카롭다. 연회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성전 시대에서 젤드리스의 무서움을 경험한 바 있는 디안느도 멀린의 말에 동조한다. 성전 시대에서 만난 젤드리스는 자신을 "마신왕의 마력을 빌려 행사하는 자"라 표현했다. 직함은 "마신왕의 대리". 멀린의 말대로 무서운 대다. 디안느까지 이렇게 나오자 다른 멤버들도 겁을 먹는다. 언제나 뺀질거리던 반이 "거의 최강의 마신"이라는 소리냐겨 긴장된 모습이다.
          그때 멜리오다스가 주위를 환기킨다. 그들이 당면한 목적은 젤드리스의 계금으로 포로가 된 백성들과 성기사들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최종적으론 카멜롯의 해방. 젤드리스와 승부를 보는건 그 다음이다. 멀린이 그의 말대로이며 만전을 기한 뒤에야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 말한 뒤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자러 간다. 엘레인은 그녀의 태도에서 이한 점을 느끼지만 그걸 바로 짚어내진 못했다. 멀린이 식당을 나서기 전, 에스카노르가 안녕히 주무시라 인사를 건네는데도 멀린은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 분위기가 이해졌지만 그래도 연회는 다시 이어졌다. 호크는 잔반을 먹다지쳐 거기에 처박혀 잠이 들었다. 지금은 카드게임이 진행 중인데 반이 또 에스카노르한테 졌다. 술기운에 열까지 받은 반이 에스카노르가 사기를 친다고 주사를 부린다. 그러자 엘레인이 "술은 즐겁게 마셔라!"며 야단. 반이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해지자 에스카노르가 "엘레인씨는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엘레인은 에스카노르에게 부탁하고 싶은게 있었다. 아까 멀린에게서 느낀 위화감.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에스카노르에게 가서 멀린의 태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한다. 직접 가보고 싶지만 아직 멀린과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망설여진다는 것.
          * 엘레인의 걱정이 적중했다. 멀린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방에 들어왔지만, 방문을 열자마자 무너지듯이 비틀거린다. 그땐 누군가 그녀를 부축하는데, 멜리오다스다. 멜리오다스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찾다가 젤드리스에게 당했다는 걸. 멀린이 "무슨 이야기냐"고 모른척 하지만 멜리오다스와 그녀는 일행 중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이. 멜리오다스는 그런 탓에 뻔히 알 수 있다고 대꾸한다. 그는 멀린을 침대에 눕히며 한 가지 더 뻔히 아는 걸 말한다. 그건 멀린의 진짜 목적에 대한 것이다. 같은 대죄이자 멀린의 목적은 왕국을 구하는 것도, 카멜롯을 해방하는 것도, 심지어 젤드리스를 쓰러뜨리는 것도 아니다.
          멜리오다스의 짐작이 거기까지 이르자 멀린도 더이 부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대화는 엘레인의 부탁을 받고 따라온 에스카노르가 뜻하지 않게 엿듣게 된다.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14회 일치
          *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태가 날이 갈 수록 악화되고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치료하는 것으로 간신히 버텨간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는 전날 [[반(일곱 개의 대죄)|반]]에게 부탁 받은대로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태를 돌본다. 시름시름 앓던 엘레인이 엘리자베스의 힘을 쐬이자 조금 기운을 되찾는다. 여행은 계속되고, 정신을 차린 엘레인과 [[디안느]], 엘리자베스 셋이서 티타임을 가진다. 이날은 엘리자베스가 사실 윤회를 거듭하며 [[멜리오다스]]와 인연을 쌓아왔다는 이야기가 화제다. 엘레인은 참 기묘한 이야기라 말하며 디안느는 3천년 전 성전시대에서 목격했던 엘리자베스가 지금 눈 앞의 당사자였을 줄은 몰랐다고 호들갑 떤다. 정작 엘리자베스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태. 디안느는 그래도 믿고 싶은 것 아니냐고 떠본다.
          * 돼지의 모자정 옥. 반과 멜리오다스과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그때 반이 조금 별난 부탁을 한다. 이번 임무에서 빼달라는 부탁. 의외로 멜리오다스는 "알았다"고 단박에 승락한다. 반이 놀라운 눈으로 그를 돌아본다. 멜리오다스는 그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도 짐작하고 있었다. 엘레인 때문이다. 그녀를 이 세에 되돌린 "차원의 비틀림"은 분명 [[메라스큐라]]의 짓이다. 그녀는 마신왕을 신앙의 대으로 삼는, 어찌보면 별종. 그래서 교섭이 통하는 대가 아니다. 그녀가 살아있는 이 반드시 다시 싸우게 될 텐데, 메라스큐라를 죽인다는건 곧 엘레인 또한 이 세에 더 있을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 사건이 발생한 것은 그때였다. 식당에서 소음이 들리더니 [[호크]]가 달려와 엘리자베스에게 큰 일이 났다고 알린다. 전원이 식당으로 달려간다. 엘리자베스와 디안느는 티타임을 마치고 식당으로 나오던 참이었다. 그때 엘리자베스가 발작을 일으켰다. 아니, 착란이라 말하는게 좋을 것이다. 그녀는 "할자드"란 인물이 웨어울프에게 물렸다면서 빨리 멜리오다스에게 알려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문을 모르는 디안느가 그녀를 붙잡고 있었지만 엘리자베스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멜리오다스가 나타나자 그녀는 "할자드가 중이라고 기사단에서 연락이 왔다"며 뜻모를 소릴 해댄다. 그 말을 들은 멜리오다스가 가슴이 철렁한다.
          * 잠시 후 일행이 모두 모여서 엘리자베스를 방에 눕혔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아는 사람은 없다. 반이 멀린에게 원인을 묻지만 그녀도 막연하기만 하다. 아마 젤드리스의 저주를 풀기 위해 그 마력에 접촉한 향이 아닐까 추정한다. 디안느는 그럼 이번엔 엘리자베스가 저주에 당한게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멜리오다스가 그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굳이 말하면 저주가 풀려가고 있는 쪽. 전생의 기억이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 디안느가 그 말에 환호한다. 할리퀸이 어리둥절해하자 그녀는 기뻐하며 엘리자베스와 나눴던 이야기를 해준다. 3천년 전부터 시작된 인연, 윤회, 기억의 실 등. 신나게 떠들어대자 멀린이 "입조심해라"고 강한 어조로 꾸짖었다. 디안느는 움찔하지만 진짜 너무한건 멜리오다스라며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무시했던 태도를 질책한다. 그때까지 말이 없이 엘리자베스의 손을 붙잡고 있던 멜리오다스는 담담하게 입을 연다.
          * 그동안 멜리오다스가 숨기려 한 것, 엘리자베스에게 조차 말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각오"가 필요했던 이야기. 멜리오다스는 이거야 말로 자신들의 운명이며 더는 숨길 필요도 없게 되었다며 모둔 진을 밝히기 시작한다. 그것은 멜리오다스의 삼천년에 걸친 여행의 목적이었다.
  • 임기영 . . . . 14회 일치
         |선수명 = 임기
         |문 표기 = Lim Ki-Yeong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2015년 ~ 2016년)
         '''임기'''(林起映<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93년]] [[4월 16일]] ~ )은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투수]]이다.
         2012년에 입단하였다. 2014 시즌 후 [[송은범]]의 FA 보 선수로 지명되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였다. [[무 야구단]] 제대 후 합류할 예정이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11&article_id=0000417696 KIA, FA 보선수로 투수 임기 지명] - 엑스포츠 뉴스</ref>
         ==[[무 야구단]] 시절==
         | 제목 = '선발 3연승·QS 세 차례' KIA 임기, 믿음직한 4선발
         | 제목 = [카스포인트] '완봉승' 임기, 한화 대로 16이닝 1실점 '호투'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무 야구단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전재용 . . . . 14회 일치
         |친척 = [[전경환]](숙부)<br />[[전재국]](형)<br />전수현(조카딸)<br />전우석(조카아들)<br />전창규(사촌동생)<br />이원근(외사촌동생)<br />[[정숙]](형수)
         |배우자 = [[연예인 박아]]
         |기타 이력 = 비엘에셋 대표 <br /> [[연세대학교]] [[정치학|정치외교학]]과 [[학사]] 중퇴 <br />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졸업 <br /> [[게이오기주쿠 대학교]] 대학원 경회계학 석사 졸업 <br/> [[군인]], [[기업가]]
         포항제철 명예회장 [[박태준 (1927년)|박태준]]의 넷째 막내딸 [[박경아]]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1992년]]에 공무원 출신의 최성대씨 딸 최정애와 재혼하였으나, [[2007년]] 2월 부인 최씨와 이혼하였다. 연기자 [[박아]]와 결혼했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 전재용-박아, 2003년 이미 결혼...재산 차압 대비?
         }}</ref> 사이에 딸이 하나 있다.
         [[2012년]] 전직 대통령이 묻어둔 비자금의 일부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골프장 회원권 142개(약 355억원)가 매물로 나왔다. 매물로 나온 회원권 142개의 소유자는 에스더블유디씨라는 법인인데, 이 업체 임원으로 전두환의 차남인 전재용, 전재용의 부인 박아, 전두환의 처남 이창석, 이창석의 부인 홍정녀 등 4명이 있다. 전두환 일가가 골프장 회원권을 구입한 경위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2322266 골프장 회원권이 전두환 비자금?] 동아일보 2012년 3월 23일</ref>
         * 조부: [[전우]](全相禹, [[1893년]] ~ [[1967년]])
         *** 형수: [[정숙]](鄭都瓊, [[1961년]] [[5월 30일]] ~)
         *** 처: [[박아]](朴相兒, [[1972년]] ~)
         * 숙조부 : 전기(? ~ ?)
         * 숙조모 : [[정숙]](? ~ ?)
         * 숙조부 : 전희(? ~ ?)
         *{{뉴스 인용|url=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10/0415/20100415101040100000000_8206194827.html |제목=전재용-박아 - LA세무국, 뉴포트비치집 압류|출판사=[[스포츠서울]]|날짜=[[2010년]] [[4월 15일]]|확인날짜=[[2010년]] [[4월 15일]]}}
  • 절대가련 칠드런/467화 . . . . 14회 일치
          * 마기는 방 전체를 탄소 섬유로 장악했고 0.2초 만에 일행에게 치명을 줄 수 있다.
          * [[미나모토 코이치]]는 누군가 한 명은 치명을 입어야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여기고 주저하고, 카오루가 공격을 강행하려고 한다.
          * 그때 효부가 자신의 심장을 궤뚫리는 치명을 감수하면서까지 마기의 공격을 묶고, 그의 중에 충격을 받은 마기는 세뇌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 탄소섬유는 일행이 있는 [[츠보미 후지코]]의 방을 촘촘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후지우라 요우]]는 대처할 틈도 없이 부을 당한다. [[효부 쿄스케]]는 이것 또한 [[길리엄(절대가련 칠드런)|길리엄]]이 사전에 기획한 함정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함정을 치고 있는 당사자는 블랙 팬텀에 세뇌된 [[마기 시로]], 그의 오른팔이다.
          * 마기는 쓸데없는 말은 필요없다며 오늘은 "수확의 날"이라고 말한다. 바로 소령의 "절망"을 수확하는 날. 그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엄청난 수의 블랙 팬텀의 레어메탈 버그가 기어나온다. 모두를 세뇌하는게 길리엄의 목적이라는 걸까?
          * 효부와 카오루가 막아보려 하지만 그들이 염동력을 발동하기도 전에 황은 끝날 것이다. 미나모토는 차라리 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효부나 카오루가 일제히 덮치는건 마기도 예하고 있을 것이고 황은 난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군 중 누군가는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사카키 슈지]]가 있다지만 츠보미 후지코를 조치하고 있는 중이라 그 이을 대처할 수는 없다. [[마츠카제 코우이치]] 또한 같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뛰어들어서 칠드런이 다치는 것도 안 될 말이다. 이 황은 아무리 계산해도 처음부터 길리엄이 짠 함정이 너무나 철저하게 걸려든 것이다.
          * 카오루는 자신이 어떻게든 할 테니 쏘라고 소리친다. 미나모토는 더이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블래스터를 들어올린다. 하지만 그때 효부가 제지한다. 그는 마기가 정신을 잃긴 했지만 로봇이 된 건 아니라며 어떤 행동을 저지른다. 그가 저지른 행동에 일행은 물론 마기 조차 한순간 얼어붙는다.
          * 마기는 분명 그의 심장이 관통된 걸 확인하고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효부는 자신의 의도대로 되자 짖궂은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분명 치명을 입고 있고, 효부의 치명에 마기의 세뇌가 흔들린다.
  • 정기성 . . . . 14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실미도 (화)|실미도]]》 (2003년) - 원희 담당 기간병 동진 역
         * 《[[내 딸 서이]]》 (2012년, KBS2) - 미경 선배 역
         * 《[[기적 (드라마)|기적]]》 (2006년, MBC) - 장진
         * 《[[웅시대 (2004년 드라마)|웅시대]]》 (2004년, MBC) - 야학선생님 역
         * 《[[도 (드라마)|도]]》 (2001년, MBC) - 김삿갓 역
         == 수 ==
         * [[1997년]] MBC 신인탤런트 선발대회 남자대
         * [[1997년]] MBC 신인탤런트 선발대회 성원한마음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명환 . . . . 14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 신음동 (시청6길)
         [[1980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후 1982년 6월에서 1985년 6월까지 [[국방의 의무|대한민국 육군 사병 복무]]한 그는 [[1986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공채 18기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으며 [[1988년]] [[화]] 《둥지 속의 철새》의 단역으로 [[화 배우|화배우]]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9년]] 화 《모래성》에 단역 출연하였으며 이후 [[배우|텔레비전 연기자]]로서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서울방송|SBS 서울방송]], [[한국교육방송공사|EBS 한국교육방송공사]]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과 단역을 두루 배역하였다.
         배우 [[김진화 (배우)|김진화]]와는 [[안양예술고등학교|안양예고]] 연극화학과 동기이다.
         * 2001년 MBC 《[[도 (드라마)|도]]》 ... 의주 [[만]] 본전 대행수 → 본전 도방 김두관 역
         * 2005년 MBC 《[[제5공화국 (드라마)|제5공화국]]》 ... [[신민당]] [[김삼]] 총재 비서실장 [[김덕룡]] 역
         === [[화]] ===
         * [http://www.kmdb.or.kr/vod/mm_basic.asp?person_id=00009925 한국화데이터베이스]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0년 데뷔]][[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
  • 정충원 . . . . 14회 일치
         '''정충원'''(鄭忠源, <small>일본식 이름:</small> 烏川忠源, [[1896년]] [[5월 22일]] ~ [[1977년]] [[3월 12일]]<ref>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 보고서에는 정충원의 출생일이 [[1893년]] [[5월 22일]]로 표기되어 있으며 사망일은 미으로 표기되어 있다.</ref>)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겸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금융인으로 본관은 연일이며 다른 이름으로 '''정종원'''(鄭宗源, 1949년 10월 개명한 이후부터 사용한 이름)이 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정재학 (1856년)|정재학]]의 셋째 아들이며 [[경북도]] [[대구부]](현재의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1918년]] [[일본]] [[니혼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경북도 경무과 경시(1922년), 경북도 경무과 경부(1923년 ~ 1928년), 경북도 고등경찰과 경부(1928년), 경북도 위생과 경부(1929년), 경북도 포항경찰서 경부(1930년 ~ 1936년), 경남도 순사교습소 경시(1937년)를 역임했으며 [[1937년]] [[8월 6일]]부터 [[1941년]] [[3월 31일]]까지 평안남도 보안과 경시로 근무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적극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공로 을(功勞 乙)과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1년 3월 31일 평안남도 성천군수, [[1943년]] [[3월 29일]] 평안남도 순천군수로 각각 임명되었고 [[1942년]] [[4월 8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광복 이후인 [[1947년]] [[조흥은행]] 취체역을 역임했으며 [[1956년]] 10월부터 [[1961년]] 4월까지 조흥은행 은행장, [[1958년]] [[금융통화위원회]] 정위원을 역임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경시‎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찰 부문과 관료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
         |제목=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 보고서 Ⅳ-16
  • 차엽 . . . . 14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수원대학교]] 연극화학부 학사
         === 화 ===
         * 《[[너의 결혼식 (화)|너의 결혼식]]》 (2018년) - 이택기 역
         * 《[[더 킹 (화)|더 킹]]》 (2017년) - 유도남 역
         * 《[[럭키 (2016년 화)|럭키]]》 (2016년) - 조감독 역
         * 《[[설인 (2013년 화)|설인]]》 (2013년) - 조 역
         * 《[[의형제 (2010년 화)|의형제]]》 (2010년) - 재환 역
         * 《[[소녀X소녀]]》 (2007년) - 남 역
         * 《[[연애 (화)|연애]]》 (2005년) - 단란주점 남자 역
         * 《[[스위치 - 세을 바꿔라]]》 (2018년, SBS) - 고기봉 계장 역
         * 《[[이혼 변호사는 연애중]]》 (2015년, SBS) - 조유 / 조민국 역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착각 영국인 기사도 사건 . . . . 14회 일치
         1980년대 [[일본]]에서 있었던 사건. 간단하게 설명하면, [[가라테]] 3단의 [[국인]]이 오해로 사람을 과실치사 해버린 사건이다.
         착각 기사도 사건(勘違い騎士道事件) 혹은 국 기사도 사건(英国騎士道事件)이라고 불린다. 어로 하면 'Karate Knight'(…).
         사건의 피고인은 [[가라테]] 3단의 재일 국인이었다.
         == 세 ==
         이 사건의 피고인은 재일국인으로, 밤중에 귀가를 하다가 거리에서 음주를 한 여성 A와 피해자인 남성 B와 마주쳤다. 이 때 B는 A를 달래려고 하고 있었는데, A는 창고의 철제 셔터에 부딪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여성 A는 피고인을 보고 '''"헬프 미!"'''라고 소리쳤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여성의 도움 요청을 받고 피고인은 B가 A를 폭행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여성을 돕기 위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B는 오른쪽 얼굴에 정타를 맞고 길거리에 쓰러져, [[두개골]] 골절 등의 중을 입었다. 그리고 8일 뒤 뇌출혈 및 뇌좌으로 [[사망]]하고 말았다.--안습--
         피고인은 1심에서는 오(誤想) 방위[* [[정당방위]]가 아닌데 정당방위로 착각한 황]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는 오과잉방위[* 정당방위황이 아닌데 정당방위로 착각하여 과잉방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 카라테의 살력을 증명했다(…).
  • 창작:좀비탈출/4-1-2-1 . . . . 14회 일치
         하긴 생각해 보면 놈들에게 "소리"가 감지되는지는 알 수 없다. 관찰에 따르면 놈들은 개인차가 당하다. 그야 부패 정도나 생전의 몸 태가 향을 줄 거란건 명백하다. 하지만 고막은 어떨까? 안구나 피부는 썩어 버린다. 고막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야 호되게 싸다귀라도 맞으면 터지겠지만 놈들이 그럴 일이 있을까? 설사 고막이 있더라도 자극을 느낄 뇌가 녹아 버린 놈들이 소리를 들을 수는 있을까?
         이런 처지가 돼서 말하긴 뭣하지만 이렇게 극도로 얇고 허약한 막대기에 목숨을 맡기는건 멍청한 짓이다. 이걸로 머리통을 후려치면 똑 부러져도 이할게 없겠지. 왜 이걸 보강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껌테이프로 칭칭 감기만 해도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야. 물론 집 안에 껌테이프가 있을 때 얘기지만. 그럼 일단 집안으로 돌아갈까? 아니지 아니야. 이건 직감이지만 다시 들어갔다간 '''다시는 못 나올 거야.''' 두 번 다시는.
         초조함은 나의 모든 선택에 회의감을 던졌다.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단 다섯걸음이 이렇게 길고 고통스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 발씩 옮길 때마다 모퉁이에서 튀어나오는 손톱과 이빨이 3D 입체처럼 생생하게 재생됐다. 아직가지 들린 적이 없는 그르렁대는 소리도, 내 머릿 속에서는 정지버튼 없이 자동재생 된다. 모퉁이에 다 도달해서는 갑자기 현관문 쪽에서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쿵 쿵……'''
         이럴 땐 문을 닫아둬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덕분에 그게 환청일 뿐이라는 자각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엉거주춤 멈춰서서 오줌이나 지리고 있겠지. 아니, 사실 지리는건 관없어. 지금 이미 '''축축해져 버렸으니까.'''
         그렇게 바라본 뒷마당은 터무니없이 낯설다. 한 번도 올라본 적 없는 산을 본 기분이다. 집안에서 독을 할 때만 해도 조감도라도 그릴 수 있을 것처럼 생생했는데, 여기에 오니 남의 집을 털러 간 초보 도둑처럼 깜깜하다.
         먹통이 된 기억을 더듬어 가며 뒷마당으로 진입했다. 시야에는 놈들이 보이지 않는다. 토트넘이 있을 거라는 예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행복한 예실패.
         나는 골프채를 내려 놓고 가방을 벗었다. 이제 내용물이 하지만 않았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내가 돌덩이에 막 손을 올릴던 그때,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소리가 들렸다.
         토트넘이 나를 봤다. 눈깔이 남아 있다면 봤을 거다. 어쨌든 녀석은 나에게 똑바로 다가오고 있다. 담장을 넘는게 향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만 죽어라 차대더니 죽어서도 하체는 튼튼한가 보다. 보통의 놈들에 비해서 빠르고 정확한 걸음을 하고 있으니까. 그 썩어 문드러진 면만 아니었다면 프로 입단이라도 권해야겠어.
  • 창작:좀비탈출/5-1-1-1 . . . . 14회 일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허무맹랑한 말에 설득 당했다. 세이 멸망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멸망했을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산더미 같은 보증과 떠안은 옥장판 때문에 동맥을 긋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보다 단순명쾌한 전개로 이어졌겠지.
         그럼 나는 지금 탄피를 주으러 가는 건가? 이웃집 마당에 내려서며 중얼거렸다. 마당은 우리집보다는 어수선했고 누군가의 손을 탄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예대로 이곳도 대문이 열려있다. 이 모양이니 온동네에 도둑이 들끓었지. 부족한 방범의식 덕에 녀석들의 식사시간이 더 편리해졌겠군.
         물론 토트넘의 집은 우리집처럼 대대적인 공사를 거치지 않았다. 그래서 담벼락은 적당히 넘기 좋을 정도로 낮았고 쇠창살도 달려있지 않다. 마당의 구조도 약간 다른데 뒷마당 쪽에 대문이 있고 앞마당으로는 차고가 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뒷문이고 차고쪽 문이 대문이려나? 아무튼 우리 집에 비해서 약간은 옵션이 더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집보다는 이쪽이 항 조금 더 비쌌다.
         주인의 애정이 가호가 된 것일까? 다이너스티의 외견은 깨끗했다. 어쩌면 토트넘이 죽어서도 이 근처를 배회하던 것은 이 차를 떠날 수가 없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지. 가까이 가서 보니 그저 깨끗한게 아니었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된 태였다. 혹시 탈출을 준비하다가 녀석들에게 당해버린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토트넘의 행운의 아이템은 소용이 없었던 셈이겠지.
         화였으면 당장 창문을 깨고 들어가서 전선을 딱딱 튕겨서 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에서나 하는 짓이다. 나에겐 그런 재주가 없다.
         처음 정오가 비교적 안전하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곧장 떠나는 모습을 했다. 식량을 가득 채운 가방을 바리바리 들고 정오의 따가운 햇볕을 방패 삼아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어떻게든 큰 길까지만 가면, 운이 좋아서 거기서 자전거라도 하나 주워 탈 수 있다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서울 외곽까지 충분히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없고 적어도 녀석들이 오지 않을 법한 곳을 찾아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거라고, 나의 력이 그림을 그렸다. 자유를 찾아가는 위대한 여정
         서울을 떠난다는 앤딩은 더 웃기다. 녀석들도 오지 않을 법한 곳이 대체 어딘데? 내가 서울에서 벗어난 적이라곤 수학여행 때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서울 바깥이란건 논하고 밭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다가 대전 쯤이나 돼야 초가집이 몇 채 나오는 수준이다. 그런 내가 서울을 떠나 어디로 가겠는가? 고속도로 휴게소? 가서 우동이라도 한 그릇 할까?
         이 모든 문제가 차의 존재로 달라진다. 단순한 망이 매우 현실적인 탈출 플렌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나는 차창으로 운전석을 확인했다. 아날로그식 계기판은 분명 휘발유가 만땅으로 차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좋았어! 정말 좋은 징조다.
         단 한 발 앞에, 망에서 현실을 끄집어낼 열쇠가 존재한다. 토트넘은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토트넘은 아끼는 차키를 어디에 흘리고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설사 죽어서도 걷는 몸이 되었다 해도. 그러니 키는 집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건 아주아주아주 설득력이 있고 이성적인 결론이다.
  • 채형석 . . . . 14회 일치
         |학력 = [[성균관대학교]] 경학 학사<br />[[보스턴 대학교]] 경대학원 경학 석사
         |부모 = [[채몽인]], [[장신]]
         |웹사이트 =
         1960년 서울에서 애경그룹 창업주 [[채몽인]](蔡夢印)과 [[장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조선]]시대 제주판관을 역임한 [[채구석]](蔡龜錫)이다.
         1982년 [[성균관대학교]] 경학과 4학년 재학 당시 같은 학교 미술교육과에 다니고 있던 홍미경을 소개받아 교제 1년 만에 결혼했다. 홍미경의 아버지는 인천교육대학 음대 교수를 지낸 음악가다.
         [[성균관대학교]] 경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보스턴 대학교]] 경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2002년]] 1월부터 [[애경그룹]] 부회장이 되었고, 2006년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올라 사실 [[애경그룹]]을 이끌고 있다.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에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룹의 구조개편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애경백화점]]을 세워 유통업에 진출했고, [[애경개발]]을 세워 레저와 부동산개발업을 시작했다. 제주지역 항공사 설립 파트너 자격을 따내며 [[제주항공]]으로 항공사업을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Who Is ?]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url=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71|날짜=2016-01-12|뉴스=비즈니스포스트}}</ref>
         *1983년 [[성균관대학교]] 경학 학사
         *1985년 [[보스턴 대학교]] 경대학원 경학 석사
         ** 어머니 : [[장신]] - 애경그룹 회장
  • 최영이 (종교인) . . . . 14회 일치
         |이름 = 최이 아가타
         |징 =
         '''최이'''(崔榮伊, [[1818년]] ~ [[1840년]] [[2월 1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바르바라'''(Barbara)이다.
         최이는 [[한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본받아 매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혼담을 정할 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는 매우 독실한 교우여야 하지만, [[양반]]이나 부자는 싫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20세의 나이에 44세의 늙은 홀아비인 [[조신철 카롤로]]와 결혼했다. 이듬해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그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며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최이는 남편과 함께 피신했지만, [[6월]]에 그녀의 친정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녀는 체포될 때,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감옥에 들어갔다. 그러나 감옥은 혼탁한 공기에 어둡고 음식도 부족했으므로, 유아가 지내기에는 매우 어려운 곳이었다. 또한 그녀는 아들 때문에 확고한 신앙이 흔들릴 수 있음을 염려하였으므로, 최이는 아들을 밖의 한 친척에게 맡겼다.
         포장은 그녀가 배교하고 동료 [[천주교]]인들과 그녀의 집에서 발견된 [[종교]] 물품들의 주인의 이름을 대라고 강요하였다. 최이는 배교치 않았고, 교우들과 알고 지내기에 자신은 너무 젊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녀는 2 차례의 [[주뢰형]]을 260 여대의 [[태형]]을 받았다. 그녀는 [[형조]]에서도 3 차례의 [[형벌]]과 [[고문]]을 견뎌내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1840년]] [[2월 1일]], 최이는 [[한양]] 근교의 [[당고개역|당고개]]로 압송되어 [[이문우 요한]]과 [[홍주 바오로]]와 함께 [[참수형]]을 받았다. 그렇게 그녀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23세였다. 그 전날에는 최이의 어머니가 처형 받아 순교하였는데, 모녀가 같이 순교하지 못한 까닭은 당시 [[조선]]의 [[형법]]에 따르면 친족을 같은 날에 처형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이 바르바라는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백과사전 인용
         | 저자 = 이
         *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3510&keyword=%C3%D6%BF%B5%C0%CC&gubun=01 가톨릭 사전: 최이]
         * [http://english.cbck.or.kr/Saints103/345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103 Martryr Saints: 최이 바르바라 Barbara Choe Yong-i]
  • 최희준 (가수) . . . . 14회 일치
         1936년 [[경성부]]에서 태어나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때였던 1957년에 [[황병기]]와 함께 참가한 서울대학교 축제에서 [[샹송]] 《고엽》을 불러 입한 뒤, 1959년 졸업과 함께 파피 김(본명 김안)을 통해 미8군 무대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1964년 2월 제대 후 《맨발의 청춘》<ref>1964년 화 《[[맨발의 청춘 (1964년 화)|맨발의 청춘]]》의 주제가였다.</ref>, 《하숙생》<ref>1965년, 작사가 김석야 원작의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이며 1966년 [[신성일]], [[김지미]] 주연으로 화화됐다.</ref> 등을 발표해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1964년에는 명문대 출신 가수들의 밴드인 "포 클로버즈"의 보컬로 활동했다.
         1974년 앨범 《길》을 발표한 뒤 사업가로 변신했다가 1982년 화 《겨울여자 2부》의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이 후 [[한국문예진흥원]] 임감사(2001년 ~ 2003년),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소장(2003년 ~ 2006년)을 지낸 뒤 가수 활동을 재개했다. 2018년 8월 24일에 향년 82세의 나이로 노환으로 별세했다.
         * 2001.4 ~ 2004.3 문예진흥원 임감사
         == 수 ==
         *1995년 제2회 가요대 특별공로
         *2007년 제14회 대한민국연예예술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195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킹덤/514화 . . . . 14회 일치
          * [[사마]]은 침공한 [[오르도(킹덤)|오르도]]가 "잠자던 대호"라고 평할 정도로 뛰어난 장수. [[조박]]과 양동을 벌여 오르도를 패퇴시킨다.
          * 장수들은 이 민간인들 피난시킨 행동이야 말로 왕전의 진짜 노림수라 생각하지만 까닭을 알 수 없고, 왕전은 그 대로 또다른 소도시를 공략하러 출발한다.
          * 조나라를 침공해 벌써 여러 성을 떨어뜨리고 "청가"성으로 향하던 [[오르도(킹덤)|오르도]]는 뜻밖의 적과 마주쳤다. 그야말로 "잠자던 대호"와 같은 인물로 그는 내심 [[이목(킹덤)|이목]]에게 왜 이런 인물이 연나라 전선에 배치돼 있다고 일러주지 않았냐고 농담을 한다. 그 사내는 [[사마]]. 단 5천의 병력으로 2만 연군의 발을 묶고 있다.
          오르도는 단번에 저 사내, 사마의 전략임을 간파한다. 우둔한 조박이 구사할 만한 책략이 아니다. 사마 자신이 오르도의 본진을 묶고 있는 사이 조박이 움직여 그들의 퇴로를 끊어버리는 것. 이렇게 되면 오르도가 군대를 물릴 수밖에 없게 됐다. 오르도는 자신이 크게 오판을 했으며 그건 바로 저 사내의 존재였다. 오르도는 이와 양을 탈환하고 조박의 목을 취하기 위해 퇴각을 결정, 그러면서 사마의 이름을 기억하고 꼭 돌아올 것을 맹세한다.
          한편 오르도의 퇴각을 확인한 사마은 추격은 포기하고 자신의 청가성으로 복귀한다.
          * 조의 총사령관 이목은 바람같이 행군을 거듭해 벌써 "난"성까지 도착했다. 예정보다 하루 가량 빠른 속도였다. 그는 여기서도 잠시 쉬기만 할 뿐 곧 출발할 거라며 급히 보급을 행한다. 난성에 도착해 보니 그 앞에 들어온 보고가 두 건 있었다. 하나는 사마이 오르도를 격퇴했다는 것. 이로써 연군을 걱정할 필요 없이 진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다른 소식은 진군의 동향. 그런데 보고하던 성주는 자신도 미심쩍다는 듯이 양해를 구하며 그 내용을 전달한다.
          천하의 이목 조차도 식을 초월하는 이 같은 소식에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민간인인 너희를 다치게 하는 것은 이 군의 총대장인 왕전이 용서치 않겠다. 백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너그러운 처우에 깜짝 놀란다. 이신도 그렇게까지 공언하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왕전은 엄청나게 정의로운 장군인가?"하고 의문스러워 했다. 몽념의 경우 정의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설사 그런 의도라 해도 총대장이 직접 나서서 선언하는 행동은 충분히 이하다. [[왕분]] 측에서도 과연 왕전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환의 측에서도 이런 "촌극"이 뭐하는 짓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데, 환의만은 "닥치고 보고만 있어라"고 주의시킨다.
          왕전이 계속해서 하는 말은 더더욱 예 밖의 것이다. 그는 전쟁인 이 "마음은 괴롭지만" 그들로부터 식량과 성을 뺏을 수밖에 없다며 식량을 잃은 백성들은 어떻게든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근처 성까지" 이동하길 바란다며, 자신을 "용서해달라"고까지 말한다.
          진군의 장수들은 어느 정도 왕전이 그리는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노리는 건 병량이 아니라 저 민간인들이다. 저렇게 바깥으로 내보낸 민간인들 자체가 왕전이 구한 전략의 핵심임은 분명한데, 그게 정확히 뭘 노리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 킹덤/521화 . . . . 14회 일치
          * 마정이 계속 따라붙자 잘만 하면 더 먼 곳까지 끌어내 처리할 수 있겠다는 계산도 섰는데, 하필이면 부 당한 [[오]], [[개전]]이 마정에게 노출된다.
          * 기수의 본진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유인책에 걸려 황각의 기마대가 괴멸할 판이 되자 속이 터진다. 심지어 퇴각 중에도 뒤를 잡혀 일방적으로 학살 당하자 다혈질인 [[마정]]이 더이 참지 못한다. 기수도 답답하고 분통 터지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성급한 짓을 허용할 순 없었다. 하지만 마정은 말릴 틈도 없이 기병 500기를 데리고 몽념에게 달려든다.
          * 그러나 전투는 생각대로만 풀리지 않는 일. 조군을 유리한 낙화대였으나 아군의 피해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부당했던 [[오]]과 [[개전]]이 처지면서 마정에게 따라잡힌다. 몽념이 분발시켜 보지만 이미 부이 심해 어려운 황. 마정은 소용없다고 잘라말하며 거대한 도끼를 들어올린다. 최후를 직감한 두 장교가 몽념에게 작별의 예를 올린다.
          * 생각대로 풀리지 않기는 마정도 마찬가지. 좌측에서 새로운 병력이 나타났다. 할아범, [[호점]] 부장이었다. 자기로선 도저히 몽념의 기마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하더니, 용케 여기까지 따라와 있었다. 호점의 기마대가 오, 개전을 구하고 마정의 진로를 막는다. 그에게 몽념을 부탁 받았던 [[육주]]는 그가 올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늦었다고 한 소리한다.
          * 호점의 원군이 호신호였다. 몽념은 여기서 승부를 보기로 한다. 그대로 부대를 선회시켜 마정을 포위한다. 절호의 기회였지만 딱 한가지, 몽념이 오판한 것이 있다. 마정의 용력. 마정은 수세에 몰린 황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눈 앞의 낙화대 병력을 장작처럼 두쪽낸다. 마정의 목을 따자는 몽념의 말에도 코웃음친다.
          몽념은 자신이 들은 이의 무력임을 인정했지만 그럴 수록 여기서 마정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 마정이 포위. 적 복병의 등장. 기수군에 좋지 않은 소식만 줄을 이었다. 낙화대 병력이 이제 몽념의 별동대로 모여들면서 총 5천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 반명 황각과 마정이 이끄는 기마대가 합류해도 병력차는 두 배 이. 마정을 잃을게 불 보듯 뻔하다며 부관들이 원군을 보내자고 아우성친다. 기수는 그 심각성을 모르지 않았으나 조용히, 냉정하게 황을 다시 되짚는다. 벌써 1천이 넘는 병력을 잃었다. 적의 수가 적다고 얕본게 문제였다. 분명 몽념은 수많은 전략을 능수능락하게 구사하는 인물일 것이다. 지금 펼치는 전술도 기마대의 기동력으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 조군의 병력을 갉아먹는 것이다. 방치하면 외측의 보병대의 출혈을 피할 수 없고 어중간하게 기마대를 써도 덫에 걸린다. 뛰어난 전략적 안목을 옅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기수의 선택지는 하나. 압도적인 병력을 동원해 초장에 끝을 내는 방법이다. 그는 자신의 3만 병력 전체를 전개해 낙화대를 포위섬멸하고자 결심한다. 기수 또한 용병술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 대군을 일사분란하게 추스러 몽념이 마정에게 시간을 들이는 사이 그대로 잡아먹을 수 있게 움직였다. 딱 하나의 변수만 없었다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 병력의 정체는 진군 본진, [[왕전(킹덤)|왕전]]의 오른팔 [[마광]]의 부대였다. 마광군 5천이 급격한 선회로 무방비하게 드러난 좌익을 빠르게 찔러들어왔다. 기수가 오판한데는 중앙과 이곳의 거리차가 큰 점도 있었다. 설마 이렇게 빠르게 진군할 줄이야. 하지만 놀랄 일은 지금부터다. 마정의 뒤로 새로운 병력이 다가왔다. 기병 약 5천. 기수가 2파의 도착에 대비해 좌측으로 방어진형 구축을 명령한다. 또 급보. 2파는 기마 5천이 끝이 아니다. 5천에서 1만까지 추정되는 보병 병력까지 따라온다. 최대 2만 병력. 이대로라면 단순 병력 차이로는 여전히 유리하지만 정황 기수 측이 수세에 몰리기에 기수는 당황하고 만다.
  • 킹덤/522화 . . . . 14회 일치
          * [[기수(킹덤)|기수]]군을 위협하는 "파공세"는 처음부터 [[왕전(킹덤)|왕전]]이 구한 덫이었다.
          * 조군의 우익을 맡고 있는 기수군. 치고 빠지길 반복하며 외곽을 괴롭히던 [[몽념(킹덤)|몽념]]에 정신이 팔린 사이 마광의 5천 병력이 좌측을 깊게 찔렀다. 그 공격을 수습하기도 전에 그 뒤에 다시 5천 병력. 적은 1군을 굳이 두 부대로 나누어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치고 있다. 파공세. 마치 적이 끝없이 몰려오는 듯하다.
          * 솔직히 말하면 마광은 몽념을 우습게 봤다. 그가 가문의 위광을 등에 엎은 애송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왕전이 작전에 앞서 몽념을 따로 불러냈을 때도 그런 태도였다. 그는 왕전을 대신해 이 "양동작전"의 개요를 세히 설명했다. 몽념의 낙화대는 미끼로서 중대한 역할이라 추켜세웠지만, 실은 그들이 실패해도 마광군이 지는 일은 없을 거라며 깎아내리고 있었다. 그 말뜻 때문이었는지 몽념은 유독 독기가 서린 눈으로 마광과 눈을 마주쳤다. 마광은 그런 눈빛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본인 면전임에도 "집안 명성 밖에 내세울게 없는 애송"이라 부르며 왕전에게 달리 미끼가 될 책략이나 내려주는게 어떻겠내고 건의하려 했다.
          몽념은 당돌하게도 그 말을 자르고 그러지 않아서 자기들 힘만으로 반드시 "파공세"를 이룰 수 있게 돕겠다고 말했다.
          * 그의 입에서 "파공세"란 말이 나올 줄은 왕전도 마광도 몰랐다. 그런 언질을 내린 적이 없고 달리 암시한 사실도 없었다. 그렇다면 몽념은 자군의 배치만을 가지고 왕전의 전략을 간파했다는 말이 됐다. 마광이 위협하듯이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묻지만 몽념은 그저 미소 지을 뿐. 그리곤 "최고의 형태"를 만들고 기다릴 테니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만 남긴다. 그리고 꾸물대면 자기들이 "주역" 자리를 뺏어갈지 모른다고 농담처럼 덧붙였다. 그러나 두 장군 중 그걸 농담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 마광군의 2파가 도달한 시점에서 이미 기수군 병사들은 전의를 실했다. 게다가 그 뒤에는 3파, 4파까지 다가오고 있으니 누가봐도 조군 우익이 괴멸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대장인 기수가 손놓고 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기수는 전의를 잃으려는 부대를 질타하고 발빠른 대처로 추스렀다. 우선 [[여극]]의 기마 1천을 좌측으로 보내고 이미 전선에서 벌어진 난전은 무시했다. 노려야 할 것은 뒤따라 오는 적의 3파의 좌전방. [[마정]]을 구하러 간 1만은 그대로 속행하게 하고, 마정을 구해내면 그대로 마정의 지휘 아래 적 3파의 우전방을 치게 했다.
          부관들은 여기서는 물러나서 재정비를 할 때라고 진언하나 단칼에 거절한다. 물러난다면 적은 그만큼 철저하게 뒤따라올 것이다. 기수는 이 자리에서 결사항전할 것을 지시하며 적이 소수 부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달하게 한다. 적이 부대를 나눠 파공세를 취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5천 씩 4파로 나눈 총 2만 병력. 기수군이 총 3만이니 병력면에서 압도하고 남는다는 논리였다. 계산 자체는 맞았다. 부관들 눈빛에 희망이 돌아온다.
          이 호령은 완전히 붕괴할 뻔했던 군의 전의를 되살렸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기수는 거짓말을 했다. 분명 처음에는 3만대 2만의 싸움이었을지 모르나, 낙화대의 유인책에 놀아나고 마광의 기습을 허용한 바람에 병력차는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제 양군의 총전력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역전된 황. 기수도 그 점을 모르진 않았다. 그럼에도 이같은 선동까지 하면서 군을 물리지 않은건 "오른쪽"에 있는 존재가 너무나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몽념의 낙화대다. 기수는 그들이야 말로 지금 가장 위험한 요소라고 판단했다.
          * 낙화대는 아슬아슬하게 마정을 놓쳤다. 마정을 구출하자 기수군은 빠르게 퇴각했다. 적이 1만이나 되는 병력이니 추격하기엔 마땅치 않다. 부관들은 다음 행동에 대해 물었다. 몽념은 마정이 가는 방향으로 황을 판단했다. 마정이 전방으로 간다는건 본진이 무사하다는 말이고 파공세의 후방을 요격하러 간다는 말이었다. 기수는 분명 이대로 공세를 버티는 길을 택했다. 이건 왕전이 예견한 그대로의 전개였다. 왕전이 따로 설명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몽념은 그가 그린 그림을 함께 보고 있던 것이다.
          * 기수는 부관들을 모아놓고 이게 "미끼"에 불과했던 낙화대가 5천 병력의 "유격대"로 바뀌었음을 설명한다. 좌측에 들이닥친 마광군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이, 낙화대 5천은 이제 유격대가 돼서 언제든 아군의 배후에 결정타를 먹일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이다. 게다가 그 지휘관인 몽념은 필시 평범한 장교가 아니다. 이 병력의 존재가 너무 크다. 이제와서 요격하려 해도 병력을 빼면 그만큼 본진이 파공세에 밀릴 공산이 크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미끼로 끝날 거라면 5천은 많았다. 기수는 여기까지는 내다보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도발, 양동을 위한 5천 병력이 끝내 자군의 목숨을 노릴 수 있는 "주역"의 위치까지 발돋움했다. 이건 우연도 뭣도 아니다. 철저한 계산에 따른 배치. 왕전히 그린 밑그림이었다. 기수는 새삼 이것이 진군 총대장 왕전이라며 좌절감을 느낀다.
  • 킹덤/529화 . . . . 14회 일치
          * 본래 간단히 양단화를 제압하리라 여겼던 견융왕 [[로조]]는 생각을 달리해 만만찮은 대임을 인정한다.
          * 견융족의 등장으로 요양의 싸움이 크게 바뀐다. 조군에겐 악몽 같았던 산민족 병사들이 먼 친척 대로는 별 힘을 쓰지 못했다. 밀려드는 견융족 병사들 앞에 진이 무너진다. [[벽(킹덤)|벽]]은 전열을 유지하길 포기하고 [[양단화]]에게 퇴각을 권했다. 일단 한 발 빼서 재정비해야 했다. 양단화로선 불쾌하지만 구너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전군퇴각.
          * 견융왕 [[로조]]는 황을 아주 쉽게 봤다. 산민족 진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고 그의 병사들은 거침없이 그들을 분쇄했다. 견융의 역을 침범한 벌, 로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조군 지휘관 [[순수수]]를 향해 이제부터 산민족군 후미를 쳐서 절반을 몰살시키겠다고 장담했다.
          * 양단화가 고지를 취하는 모습은 조군 진에서도 보였다. 그녀가 고지를 쟁취한 것도 그랬지만 퇴각 중인 군대가 구태여 그 위치를 따내는 것도 식이 어긋났다. 그래봐야 작은 산. 저런 데로 가봐야 퇴로가 막혀 전멸당하기 십이다. 조군 장교들이 그렇게 수군대자 견융왕은 조금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 벽은 그녀의 활약을 지켜보며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그것은 산민족의 족장들도 마찬가지였다. 휘고왕은 산민족 말로 "양단화의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백 번이라도 죽겠다"고 이죽거렸다. 아마 벽이 듣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통역으로 팜이 붙어 있어서 그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벽이 얼굴 붉히는 꼴을 보고 휘고왕은 그런 것까지 번역하지 말라고 꾸중했다.
          하지만 곧 팜에게 일거리가 주어진다. 휘고왕은 양단화가 거점을 마련했으니 자신들도 백보 후퇴 뒤 전선을 새로 정비할 거라고 "평지의 범장"에게 전하라 했다. 팜은 그 말대로 전했다. 백보후퇴 뒤 전선 정비. 팜은 왜 그래야 하는지도 설명하려 했지만 벽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잘라 말했다. 이제 전장이 돌아가는 것쯤은 읽을 수 있었다. 저 거점의 등장으로 견융의 추격세는 눈에 띄게 저하됐다. 그 사이 전열을 다시 세워 양단화의 거점과 평지의 산민족이 적에게 협공을 거는 작전. 결코 실패해선 안 되는 작전이었다.
          로조가 까불지 말라며 양단화는 자신의 먹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순수수는 관하지 않았다. 중요한건 승리. 조군은 요양에서도 이기고 주해평원에서도 이겨야 한다. 자신과 [[이목(킹덤)|이목]]이 모두 이기면 역사는 바뀔 것이다.
          * 좌익의 싸움이 무르익었다. 작고 높은 언덕을 낀 [[기수(킹덤)|기수]]군과 그걸 밀어내려는 [[마광]]군의 싸움. 마광은 하료초의 예보다도 더 강한 기세로 적을 밀어냈다. 마광은 기수의 본군을 함락시킬 때까지 병사들을 쉬지 않고 몰아붙였다. 이신은 그 기세를 보고 과연 왕전 장군의 2장을 맡을 만하다고 감탄했다.
          * 이신과 비신대의 위치에서 보면 이미 기수군은 몰릴데까지 몰린 태. 어쩌면 비신대가 개입하지 않아도 기수군은 끝일지도 몰랐다. 이신은 흑양에서는 그토록 고전했던 기수를, 압도하는 몽념을 보고 거듭 감탄했다. 하지만 하료초는 저것이 결정타가 될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분명 왕전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비신대를 파견한 것이다. 강외는 지금 같은 호기는 다시 없을 거라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신은 중간에 끼어드는 모양세가 찜찜했지만 그것도 왕전의 작전이라 여겼다.
  • 판타스틱 포(1994년 실사영화) . . . . 14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판타스틱 포]]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실사 [[화]]. 1994년에 나왔다. 제작은 저예산 화의 대가인 [[로저 코먼]]의 [[콩고드 픽처스]].
         이 90년대의 화《판타스틱 포》는 화화 판권을 쥐고 있던 [[독일]] [[콘스탄틴 필름]]이 기간을 연장하고자 저예산 화의 대가인 [[로저 코먼]]에게 제작을 맡긴 미공개용 견본이다. 이후 사본 등을 통해 외부에도 알려졌다.
         당시 웬만한 드라마 1회 제작비보다도 적은 예산인 100만 달러에 3주 촬이란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존의 1분 길이의 짧은 견본이 아닌 장편 화로 완성시켜냈다. 초저예산 화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있지만 저예산 화 제작 경험이 풍부한 코먼 사단답게 열악한 조건에서도 효율적으로 만들어져 오히려 다른 초대예산을 들인 화들 이의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극장 개봉은 못했다. 이후 콘스탄틴 필름은 2000년대 실사화 2편의 제작에 관여하고 독일 내 배급권도 쥐고 있었는데, 2015년 리부트 제작사 명단에서 빠진 걸 보면... 그래도 2015년판의 독일 배급도 콘스탄틴에서 맡았다.
         2015년에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화)|판타스틱 포]]가 나오고, 화 평에 종종 언급되었다. 이러면서 90년대판에 대한 평가가 어긋나기도 하나 어찌되었건 결론은 2015년판은 구리다는 것이다.(...) 확실히 평이 어떻건 판타스틱 포를 원작에 가깝게 그려낸 점은 90년대판이 압도적이라 봐도 좋다.
  • 페어리 테일/511화 . . . . 14회 일치
          * 스팅 유클리프는 혈연간이라도 냄새는 서로 다른데 나츠 드래그닐과 라케이드 드래그닐의 냄새가 같다고 이해한다.
          * 라케이드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마법은 모두 스팅에게 먹힌다. 하지만 스팅의 공격은 라케이드에게 유효. 황은 역전된다.
          * 하지만 공복감에 시달리는 스팅은 라케이드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치명을 입는다.
          * 로그는 이미 파김치가 된 태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스팅에게 먹여서 "모드 백룡"으로 만들어주고 리타이어.
          스팅은 그걸 사실이라 쳐도 본래 사람의 냄새는 형제든 부자든 다 다르다 말한다. 실제로 나츠와 제레프 드래그닐도 서로 냄새가 다른데, 유독 라케이드는 나츠와 같은 냄새라며 이하게 여긴다. 그러자 라케이드는 "나츠도 어떤 의미론 제레프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며 빛의 참격을 날린다. 하지만 "하얀 것"이 먹이인 스팅에겐 간식거리가 날아오는 거나 다름 없다.
          * 라케이드가 공복을 참아봐야 어쩔 거냐고 빈정거리자 스팅은 라케이드를 먹어서 해결하겠다며 달려들지만 이미 힘이 떨어진 태라 농락만 당한다. "그래도 나는 세이버투스의 마스터니까"라고 외치며 덤비만 라케이드의 십자가가 가차없이 어깨에 박힌다.
          * 그때 유키노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로그 체니가 나타난다. 미네르바의 테리터리. 드디어 세이버투스의 쌍룡이 모였지만 로그도 싸우느라 힘을 소진한 태. 그는 미네르바의 배달이라며 "나를 먹어라"라고 말한다. 로그는 남은 마력을 그림자로 바꿔서 방출한다. 스팅은 처음엔 어떻게 다른 속성을 먹냐고 거부하지만 이런 황이라 "먹을 수밖에 없다"며 무작정 그림자를 흡입한다.
          그 사이 라케이드는 새로운 빛과 부적으로 몸을 감싼다. 인간의 삼대 욕구 성욕, 식욕, 수면욕 중 자신이 마지막으로 부여할 것은 "수면욕"이라며 그것이 곧 원한 수면이 될 거라 말한다.
          * 스팅의 새로운 힘. "모드 백룡". 로그는 모든 힘을 전달하고 쓰러지면서 스팅을 응원한다.
         스팅이 라케이드의 냄새가 나츠와 같다는걸 이하게 여기는 부분은 그가 제레프서의 악마라는 증거일 수 있다. 정황으로 볼때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친아들일리는 없는데다 이번 스팅의 냄새 떡밥이 더해져서 라케이드는 제레프 서의 악마로 확정되는 분위기.
         스팅이 백룡의 힘을 얻어서 압도할 수도 있지만, 일단 나츠가 라케이드와 만나긴 해야 할 거 같으므로 라케이드의 승리를 점치는 쪽이 많다.
  • 페어리 테일/531화 . . . . 14회 일치
          * [[블루 페가수스]]의 크리스티나호는 [[아크놀로기아]]를 대로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이어가고 있다.
          * 크리스티나의 조종을 담당하는 [[히비키 레이티스]], [[이브 티름]], [[렌 아카츠키]], [[제니 리아라이트]]. 이브는 아크놀로기아를 계속 유인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렌은 츤데레 성향이 이하게 발현해서 "딱히 따라오길 바라는건 아니다"라고 작전으 근본부터 뒤흔드는 헛소릴 한다. 제니도 태가 이해서 아크놀로기아를 대로 미인계를 감행하려 하다 히비키의 제지를 받는다.
          * [[안나 하트필리아]]의 설명 후, [[웬디 마벨]]은 그녀와 단둘이 이야기한다. 웬디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는데 안나는 그것도 이클립스의 향으로 추정하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웬디는 뭐라도 떠올리려고 애쓰나 안나는 무리하지 말라는 투로 자제시킨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떠올릴 거라면서 입버릇대로 "일에는 순서라는게 있으니까"란 말을 반복한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시간의 틈새가 가깝다는 소식을 전한다. 히비키, 이브, 렌, 제니는 조종에 총력을 다한다. 자신들도 시간의 틈새와 접촉하는 일이 있으면 모두 끝장이다. 시간의 틈새는 육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안나가 지정해준 좌표를 기준으로 시간을 재며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히비키의 계산에 따라서 시간의 틈새 쪽으로 계속해서 전진한다. 아크놀로기아가 턱 밑까지 따라붙고 시간의 틈새가 바로 직전에 나타난 황. 크리스티나호는 불과 몇 m를 남겨두고 선체를 급격히 비틀어 시간의 틈새를 피한다.
          * 그러나 아크놀로기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간의 틈새를 지나쳐 크리스티나호를 덮친다. 회피기동 때문에 속도가 떨어진 크리스티나호는 간단하게 아크놀로기아에게 잡힌다. 누구보다 놀란 것은 안나다. 그녀는 이럴리가 없다며 시간의 틈새를 조작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태로 되돌린다. 그리고 그녀는 경악스러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그 안에서 도 못할 정도로 방대한 "시간의 마력"을 찾아냈다. 물론 그것들은 모두 네오 이클립스를 위해 사용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시간의 틈새에 조치를 해놨다.
          * 결국 제레프의 농간이 작전을 망친 셈이지만, 안나가 그걸 알 턱이 없다. 그녀는 황을 해석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여유가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아크놀로기아가 일행을 끝장낼 판이다. 엘자가 기지를 발휘한다. 그녀는 이치야에게 멸룡마도사 탑승용 리크리마를 파괴하라고 지시한다. 그렇게 하면 아크놀로기아도 멸룡마도사인 이 멀미를 유발할 테니까. 그 예이 적중해서 아크놀로기아가 구토를 하며 배에서 떨어져 나간다. 웬디까지 눕게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 나츠는 제레프의 마법에 휘감겨서 옴짝달삭도 못하는 태. 제레프는 "너로는 날 못 막는다"고 자신있게 단언한다. 그때 누군가가 길드로 들어서며 반박한다.
  • 하이큐/231화 . . . . 14회 일치
          * 히나타 쇼요는 대회 직전 마지막으로 태를 체크하는데...
          * 개막식을 앞두고 선수들이 대기실에 모여든다. 카라스노 고교의 사와무라 다이치와 네코마 고교의 쿠로오 테츠로는 서로 긴장했냐고 디스하며 압박감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쿠로오가 "너네 10번(히나타 쇼요) 미아같은 태인데 괜찮냐"고 하는데 정말로 태가 좋지 않다. 완전 길잃은 고양이 모드. 위축돼서 서성거리다 다른 선수에게 부딪혀서 비틀거린다.
          히나타는 전에 타나카가 "여왕"[* 니야마 여고는 여자배구계의 여왕으로 통한다.]이랑 아는 사이라고 자랑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때 타나카는 "니야마 여고의 차기 에이스는 내가 키웠다"고 허풍을 떨었는데 반은 맞는 말이었다. 타나카의 소꿉친구로 초등학교 동창. 4학년 때까지 같이 놀았던 모양이다. 그때도 타나카보단 훨씬 컸다.
          그런데 소꿉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한 향인지 타나카는 달라진 아마나이의 모습 때문에 얼어버린다. 카라스노 3학년들은(특히 스가와라 코시) 이 꼴을 보고 "여자한테 말을 쉽게 거는걸 보고 이하다 했다." "여자임을 인식해 버렸다."같은 말을 하며 수근댄다.
          * 이타치야마 학원의 코모리 토모도 얼굴을 비춘다. 합숙에서 만난 사이인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아는 척을 하는데. 스가와라 코시는 그가 월간 배구에서 "고교 N0.1 리베로"로 호평된 걸 본 적이 있다. 니시노야가 특히 촉각을 곤두세운다.
          * 왁자지껄하게 있던 사이 드디어 봄철 고교 배구 전국 고교 선수권이 개막한다. 개회식이 시작하자 각 현을 대표하는 학교들이 차례로 정렬한다. 카라스노의 학년들은 처음 와는 오렌지색 코트에 감격한다.
          개회가 끝나고 곧바로 시합에 들어가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 1, 2시합이 배정된 학교들은 바로 코트로 들어가고 나머지 학교들은 워밍업할 장소를 찾아 바쁘게 이동한다. 정신없이 이동하는 사이 시미즈 키요코는 야치 히토카를 잘 챙겨서 데리고 다닌다.
          카라스노는 일전에 빌린 체육관에서 워밍업에 들어가고 그 사이 1, 2시합은 타키노우에 유스케와 시마다 마코토에게 맡기는데 정작 타키노우에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 한편 체육관까지 전철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전철이 멈춘다. 카라스노는 잠깐이지만 패닉 태에 빠질 뻔하지만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사전이 대체 이동수단을 확인해 놨고 재반시설을 달달 외워놓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없이 체육관으로 이동한다.
          * 무사히 체육관에 도착한 카라스노. 사와무라는 평심을 중얼거리고 있고 스가와라는 그걸 지적하며 놀린다. 시미즈는 아즈마네 아사히가 출입증을 놓고 간걸 챙겨준다. 우카이 코치는 다들 딱딱해 보이지만 정한 범위라며 오히려 자신이 긴장을 떨치려고 애쓴다. 그런데 히나타가 시합 직전 짐을 뒤적거리는데 뭔가 이하다고 한다. 모양은 같지만 자기 가방이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러다 소름 돋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 하이큐/251화 . . . . 14회 일치
          * 카라스노, 카게야마의 서브.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은 지금까지 전략이 잘 먹히지 않는다고 자체 평가한다. 카라스노의 선수들은 예보다 압박을 느끼는 걸로 보이지도 않고 특히 [[츠키시마 케이]] 같은 경우는 비웃는 양 풋하고 웃기까지 했다. 응원단은 템포를 조금 더 빠르게 해보자고 하는데.
          체육관을 가득 채우는, 종전보다 빠르고 높아진 야유. 다른 관객들은 품위가 없다고 투덜거리지만 높고 빠른 소리가 다른 소리를 묻어버린다. 그런데 방금 전 우연찮게 파인 플레이를 선보인 주인공, 히나타는 묘한 희열을 느끼느라 그런 소리에 일일히 반응할 틈도 없다. 아니, 오히려 저쪽 응원단의 안달난 반응이 기쁘기까지 하다. 그는 전국 2위의 이나리자키 고교가 전력을 다해 카라스노 고교를 무찌르고자 하는 황에 도취된다.
          히나타는 이대로 자신의 서브 차례가 오는걸 한다.
          * 북소리를 들으며 카게야마가 서브 시도. 하지만 북소리 때문일까, 카게야마는 뭔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가 서브가 평균 이하라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서브는 네트에 걸리면서 대 코트로 넘어간다. 네트 인. 코스가 빗나간 탓에 대편 리시브도 흔들린다. 악재가 호재로. 하지만 아츠무가 악재를 다시 호재로 바꾼다. 그가 흔들린 리시브를 커버하려고 "첫 디딤"을 하는 순간, 같은 세터인 카게야마는 "완벽한 첫 디딤"이라고 느낀다.
          카게야마의 서브 때 그랬듯, 이번에도 이나리자키의 응원석은 떠들썩하게 박자를 맞춘다. 큰 북과 각종 타악기를 이용한 빠른 템포의 연주. 그런데 이 연주 때문인지 카라스노를 응원하는 관중들도 템포에 맞춰서 박수와 구호를 연호한다. 이것은 육 경기 같은데서 선수가 객석의 응원을 유도하는 행동과 비슷하다. 문제는 그건 선수가 자기 컨디션을 위해 유도하는 거지만, 이번 적측이 카라스노의 템포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하는 행동. 이나리자키 응원단은 관객의 호의를 끌어내는 척하며 실제론 방해행동을 하고 있다.
          * 우카이 코치도 황을 인지하고 있다. 타케다 고문은 선수들이 저정도 야유에 연연하는 것 같진 않다고 하는데, 그것과 다른 성격의 문제다. 야유가 주는 압박과 별개로 이나리자키 응원단이 유도하는 박자가 선수들의 플레이 "리듬"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그들이 조성하는 리듬은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이렇게 타의로 형성되는 리듬은 좋은 향을 주지 않는다. 우카이 코치는 이쪽도 당히 성가시다고 생각한다. 일단 서브로 호각을 이룰 필요가 있는데, 그걸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이나리자키는 오히려 승세를 타고 성장 중인 팀의 모습을 보인다. 이런 기세를 후반까지 허용하면 매우 힘들어진다. 하지만 대 응원에 대항해야할 카라스노 응원단은 벌써 기가 죽었다. 대편 응원을 응원이라기 보다도 "원호사격"에 가깝다고 평하고 코트 안팎의 요소들, 시간과 소리까지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팀을 부양하고 있다.
         어린이날 특집 페이지는 [[사와무라 다이치]]와 [[아즈마네 아사히]]가 카게야마, 히나타, [[야치 히토카]], [[니시노야 유]]의 초등학생 시절 사진을 감하는 것. 단연 눈에 띄는건 니시노야. 초2 때 사진인데 키나 차림새가 거의 변한게 없는 느낌이다. 사와무라는 "니시노야는 초2때 완전체"라는 놀라운 표현력을 과시한다. 아즈마네는 "저렇게 나뭇가지 들고 있는게 잘 어울리는 애가 있나?"라고 감탄한다.
  • 하이큐/267화 . . . . 14회 일치
          * 네코마는 이런 황 속에서도 추격을 늦추지 않고 동점까지 따라붙으나 사루카와 측은 경기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여전히 우위를 점한다.
          * [[네코마 고교]]의 2회전 대 사루카와 공고는 정면승부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네코마의 뇌" [[코즈메 켄마]]를 자멸시킨다는 전술로 나왔고 의도적으로 코즈메를 혹사시키는 플레이를 펼친다. 경기시간이 길어지면서 이 전술이 효과를 발휘했다. 코즈메의 체력이 눈에 띄게 저하됐다. 네코마 측은 이 작전을 인지했으나 어떠한 동요도 없이 네코마다운 플레이를 펼쳤다.
          * [[다이쇼 스구루]]의 여친 "미카"는 세터를 소모시킨다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게 가능하다면 노헤비 학원도 같은 방법으로 쓸 수 있지 않았냐는 얘기였다. 다이쇼는 그 질문에 두 가지로 답했다. 첫째, 일반적으로 세터는 두 번째로 공을 받는다. 따라서 세터의 체력소모를 노린다면 간접적인 수단을 써야하는데 그건 당한 끈기와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둘째, 네코마의 카운터 어택을 견딜 수비력이 필요하다. 네코마는 톱 클래스의 수비력과 랠리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제일 핵심적인 요소다. 사루카와는 어쩌면 둘 모두를 겸비했을 지도 모른다.
          쿠로오의 2회차 서브. 사루카와 진 우측을 파고들었다. 2학년 "야마시로"가 리시브. 공은 무난하게 3학년 "시가"에게 연결, 강렬한 스파이크가 네코마 우측을 가른다. 다시 한 점 달아나는 사루카와. 쿠로오는 로테이션으로 [[야쿠 모리스케]]와 교대하면서 잊을만 하면 시가의 공격이 튀어나온다고 투덜댔다.
          * 코즈메가 [[야마모토 타케토라]]에게 세트업, 야마모토의 스파이크는 사루카와의 블록에 막혔다. 튕겨나온 공은 네코마 진을 가르며 코트 중앙으로 떨어졌다. 리에프와 코즈메의 가운데. 리에프가 달려나오지만 닿을 것 같지 않다. 코즈메 쪽이 조금 더 가까웠다. 후방으로 달려가는 코즈메. 그리고 거기서 한계가 왔다. 휘청거리는 코즈메. 경기장에 있던 모두가 그가 쓰러지는 모습에 주목했다. 공에서 한 발짝 거리. [[카이 노부유키]]가 가까스로 몸을 날려 리시브해 보지만 공은 높이 뜨지 않았다. 네트에 맞은 공, 기어이 네코마 진에 떨어진다. 스코어 23 대 21. 중계진도 코즈메의 체력 저하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연습 후 늘어선 선수들 앞에서 네코마타 감독은 자신의 경기론을 펼쳤다. 한 번 셧다운을 먹여주는 것보다 다섯 번의 원터치가, 열 번의 압박이 더 낫다. 한 번 완벽한 A패스를 구현하는 것 보다 반드시 올리는 다섯 번의 B패스[* 세터 정위치에서 1, 2m 이내로 보내는 패스], 열 번의 C패스[* 1st템포 공격이 어려운 리시브]가 훨씬 낫다. 대가 강할 수록 시합 전체의 흐름을 보는 눈이 중요하다. 하나같이 지금의 시시오 감독이 있게 한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한 줄로 요약됐다.
          시시오 감독이 쌓은 수수학 100개는 생각보다 일찍 살아나고 있었다. 코즈메는 야마모토의 부축으로 일어나며 스스로 꼴사납다고 투덜거렸다. 아직 2세트일 뿐이라며. 다행히 별다른 부은 없었고 손이 살짝 까진 정도였다. 옆에서 불평을 들은 쿠로오가 대꾸했다.
          다이쇼는 이 시점에서 세터를 교체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어차피 이번 세트는 사루카와의 우세. 마지막 세트를 고려하면 체력을 보존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마침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코마 진에서도 교체선수를 준비했다. 다이쇼는 1학년 세터일거라 예측했다. 교체를 준비하는 선수는 [[테시로 타마히로]]. 1학년 세터.
          * 매치 포인트 직전에서 동점. 주장 시라미네는 이 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대가 자신들에게 익숙해졌지만 "완벽하진 않다"는 말로 독려했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동의했다. 다만 코트 밖의 시시오 감독은 조금 달랐다. 뭔가가 석연치 않다. 분명 불안요소가 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짚을 수가 없을 뿐. 이런 태에서 플레이가 재개됐다. 야마모토의 2회차 서브. 네트에 걸리며 실점. 서브권이 다시 사루카와에 돌아왔다. "와쿠치"의 서브. 느리고 앞쪽에 떨어지는 서브였다. 야쿠가 있는 위치였다. 무난하게 받을 수 있는 공이었지만, 실수가 생겼다. 어중간하게 흘리는 리시브. 다이쇼는 이 어이없는 실책이라 쓴소릴 했지만 눈을 의심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시시오 감독도, 황을 낙관하던 시라미네도 같은 걸 보았다. 들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했다. 마치 친절하게 안내하는 코즈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코즈메는 숨을 고르면서도 눈초리는 사루카와 진을 훑고 있었다.
  • 한동근 . . . . 14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구미시]]
         | 웹사이트 = http://www.pledis.co.kr/html/artist/handongguen
         [[1993년]] [[5월 9일]]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데뷔하기 전까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4년 동안 공부했다.<ref>{{뉴스 인용 |저자=손수 |제목=한동근, 데뷔 전 무슨 일 했나?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url=http://news.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609092113433115096_1 |뉴스=헤럴드경제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9 |확인날짜= }}</ref> 한동근은 미국 유학 도중 성가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합창을 하면서 희열을 느꼈고 피아노로 노래를 하기도 했는데 그는 이때의 경험으로 가수를 꿈꾸게 되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저자=김민서 |제목=‘가요광장’ 한동근 “美 유학 중 성가대 활동, 가수 된 계기” |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0545114&cloc=rss%7Cisplus%7Centertainment |뉴스=일간스포츠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3 |확인날짜= }}</ref> [[2014년]] [[8월]] 데뷔 앨범을 준비하며 앨범에 들어갈 노래를 선정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 소설의 끝을 써보려 해》를 부르게 되었다. 데뷔 곡을 정하기 위해서 시험 삼아 노래를 부르는 자리였던 만큼 힘을 빼고 편안하게 노래했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를 "자연스럽다"며 마음에 들어한 소속사 사장의 권유에 《이 소설의 끝을 써보려 해》는 그 다음 달 발표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양승준 |제목=카메라 없어도 노래 자처…열정이 만든 ‘역주행 신화’ |url=http://www.hankookilbo.com/v/31eb3a7aa65e4987a1b22f33592d79a6 |뉴스=한국일보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1 |확인날짜= }}</ref>
         == 수 ==
         * 2016년 제1회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라이징 스타
         * 2016년 《[[MBC 방송연예대]]》 뮤직토크쇼부문 남자 신인<ref>{{뉴스 인용 |저자=류재용 |제목=한동근, 2016 MBC 방송연예대 뮤직토크쇼부문 남자 신인 주인공으로 선정 |url=http://www.acrofan.com/ko-kr/detail.php?number=27608&thread=BD03 |뉴스=acrofan |출판사= |위치= |날짜=2016-12-30 |확인날짜= }}</ref>
         * 2017년 제26회 《[[하이원 서울가요대]]》 올해의 발견
         * 2017년 제6회 《[[가온 차트 K-POP 어워드]]》 올해의 발견
         [[2018년]] [[8월 30일]] 밤 11시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동덕여자고등학교 인근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실이 드러났다.<ref>{{뉴스 인용 |저자=황미 |제목=[단독] 가수 한동근, 음주운전 적발…오늘(5일) 조사 |url=https://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421&aid=0003572860 |뉴스=뉴스1 |출판사= |위치= |날짜=2018-09-05 |확인날짜=2018-09-05}}</ref>
         * {{공식 웹사이트|http://www.pledis.co.kr/html/artist/handongguen}}
  • 한상훈 (야구선수) . . . . 14회 일치
         |선수명 = 한
         |문 표기 = Han Sang-Hun
         |사진 사이즈 =
         '''한훈'''(韓尙勳<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878 |날짜=2009-03-10 }}</ref>, [[1980년]] [[6월 3일]] ~ )은 [[KBO 리그]] 전 [[한화 이글스]]의 [[내야수]]이다.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과(99학번)를 졸업하고 [[2003년]]에 입단하였다. 민첩한 풋워크와 손놀림, 타구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은 때론 메이저 리그급 [[2루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ref>《스포츠 2.0》 2007년 프로야구 Complete Guide</ref> 뛰어난 수비 실력을 보여 주지만, 타격이 약한 편이다. [[2004년 한국 프로 야구 병역 비리 사건|2004년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되었고, 2008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1995101 '한훈 입대' 한화, '2루수 고민' 해소할까] 《Osen》, 2008년 12월 7일</ref>
         2010 시즌 후 소집 해제로 팀에 복귀하였고, [[2011년]] 131경기에 나와 398타수 107안타 타율 2할6푼9리 3홈런 39타점 49득점 16도루로 공격력이 향되었다. [[안치홍]]에게 밀려 수에는 실패했지만 골든 글러브 [[2루수]] 후보에도 올랐다. 시즌 후 [[신경현]]을 이어 주장이 되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9265 첫 골든 글러브 후보 된 한훈의 남다른 각오] 《OSEN》</ref> 2013 시즌 후 FA를 선언하여 4년 총액 13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2억 원, 옵션 2억 원)의 조건으로 [[한화 이글스]]에 잔류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59141 한화, 내부 FA 3인방 전원 재계약 '이대수 4년 20억'] - OSEN</ref> 시즌 후 [[강동우 (1974년)|강동우]]가 현역 은퇴를 선언하자, 입대하기 전 자신이 썼던 등번호 3번을 되찾았다.2015년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되면서 한화에서 방출되었다.
         하지만 [[이양기]],[[지성준]]과 같이 [[신고선수]]로 복귀하였다. 선수등록 마감일인 2016년 1월 31일까지 타 구단의 입제의를 받지 못했고 소속구단과의 협도 결렬됨으로써 사실 팀에서 방출되었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60219/76546617/1 한훈, 13년간 몸담았던 한화 떠난다] -스포츠동아</ref>
         * {{KBO 타자|73703|한훈}}
         * [http://www.statiz.co.kr/player.php?opt=1&name=%ED%95%9C%EC%83%81%ED%9B%88&birth=1980-06-03 한훈 - 스탯티즈]
  • 허범욱 . . . . 14회 일치
         | 학력 = [[숭문고등학교]]<br>한국화아카데미
         | 훈 = 제18회 홀랜드 애니메이션화제 대
         | 웹사이트 = [https://www.facebook.com/yiyi1983 페이스북]<br>[http://blog.naver.com/yiyi1983 블로그]
         2009년 첫 단편 애니메이션 《평범한 식사》를 자력으로 제작하였다. 2010년 한국화아카데미 정규교육과정에 애니메이션연출 전공으로 입학하였으며 2011년 12월부터 교내에서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연구과정을 시작하였다. 2015년 《창백한 얼굴들》로 제18회 홀랜드 애니메이션화제 대을 수하였다. [[김민섭 (1983년)|김민섭]]과 유년시절 친구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삽화를 그려주었다.<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필모그래피|url=http://movie.naver.com/movie/bi/pi/filmo.nhn?code=241358&v=i|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네이버 인물검색|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97%88%EB%B2%94%EC%9A%B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943766|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140&aid=0000028389|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창백한 얼굴들’, ‘사이비’ 이어 세계 4대 애니 화제 대 쾌거|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130704|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백한 얼굴들', HAFF 그랑프리 수|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461935|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ref>{{뉴스 인용|제목=허범욱 '창백한 얼굴들', 홀랜드애니페스티벌 장편 대|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482651|출판사=|작성일자=|확인날짜 =2015년 12월 30일}}</ref>
  • 홍광호 . . . . 14회 일치
         * 2006년 《미스사이공》- 아시안 앙블, 크리스/투이 1st 커버
         * 2002년 《명성황후》- 신하 앙
         === 화 ===
         * 2016년 《[[미스사이공:25주년 특별 공연]]》- Thuy 역
         * 2013년 [[무한도전]] 무한사 8주년 기념 뮤지컬 특집
         == 수내역 ==
         * 2015년 국 제15회 왓츠 온 스테이지 어워즈(Whats On Stage Awards) – 뮤지컬 부문 남우조연(Best Supporting Actor in a Musical)
         * 2014년 국 2014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월드닷컴 어워즈(BWW UK Awards) – 새로운 프러덕션 뮤지컬 조연 남자배우(Best Featured Actor in a New Production of a Musical)
         * 2009년 제15회 한국뮤지컬대 인기스타
         * 2018년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
         * 계원예술고등학교 연극화과
  • 홍기(영부인) . . . . 14회 일치
         [[분류:대한민국 부인]] [[분류:1916년 출생]] [[분류:2004년 사망]][[분류:충주시 출신 인물]]
         [include(틀:역대 대한민국 부인)]
         [[충청북도]] [[충주시]] 출신이며, [[최규하]]의 아내이다. 부인 중 유일하게 [[외자]]다.
         할아버지가 한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웃어른으로부터 한문을 배우며 교양을 쌓았으나 정규 교육기관에는 다니지 않았다. 다만 남편인 최규하 전대통령이 주일대표부에 근무하던 8년간 일본어를 공부해 능숙하게 구사하였다고 하며, 주말레이시아 대사 부인으로 있을때 어를 익혔다고 한다.
         만 8개월 10일간 재임하여 역대 부인들 중 재임기간이 가장 짧았다(대통령이 최단기간 재임이니 당연한 거지만). 대외활동에서 가장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부인으로, 전통적인 한국 여인의 부덕을 지녔다는 평을 들었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풍모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화로 최규하 권한대행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향후 부인 활동 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홍기여사가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보다 못한 청와대 관계자가 화제를 전환시켜 여사께서 청와대 김장을 직접 모두 담갔다고 소개하자, 그제서야 본인도 '김장 30포기를 직접 담갔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기자들도 화제를 돌려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TV나 보지요'라고 답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부인치고 너무 생각 없어 보일 수 있으나, 바로 앞 뒤 부인이 좋든 나쁘든 워낙 말이 많았던지라, 대적으로 (공무원 아내다운) 홍기 여사의 소박하고 다소곳하며 서민적인 분위기가 당시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인을 남겼다.
         [[최규하]] 대통령의 사저인 서교동 집은 홍기 여사가 “살 만하면 그만”이라며 못 고치게 해 남루한 편이라고 한다. 실제 홍 여사가 사망할 당시 홍 여사가 10년 이 사용하던 그릇장, [[외교관]] 시절 사용하던 유리잔들, 생전에 사용하던 돌절구와 오이지 누르는 돌, 연탄보일러, 빨래 물을 긷는 펌프가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말년에 알츠하이머 병을 앓았으며 2004년 사망하여 고향에 안장되었다가, 2006년 남편인 [[최규하]]가 사망하자 남편과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겨 합장되었다.[* 남편과 더불어 21세기에 사망한 최초이자 유일한 대통령 부부가 되었다. 후임대통령들의 부인들은 2018년 현재 모두 생존.]
  • AFC 회원 랭킹 . . . . 13회 일치
         [[아시아축구연맹]]에 소속된 협회에서 일정기간동안 거둔 업적을 평가하여 산정한 순위자료다. AFC에서는 AFC MA Ranking이라 표기하고 있으며, 한국 언론에선 보통 AFC 랭킹으로 표기하고 있다. AFC 회원 순위는 AFC에서 주관하는 각종 클럽대항전 참가에 향을 미친다. 여기에서 말하는 회원이란 특정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축구협회를 가리키며, AFC에서는 특정한 황이 아닌 한 1국가 1회원이라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다소 정치적인 문제와 역사 때문에 중국 본토와 마카오, 홍콩에 있는 축구협회는 중국이라는 하나로 보지 않고 별개로 인정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회원순위를 산정할 때는 해당 회원이 운하는 클럽과 리그에서 거둔 "클럽 점수"와 국가대표팀이 거둔 "국가대표팀 점수"(=National Team points, 이하 국대 점수)를 구해 이 둘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한다. 클럽 점수와 국대 점수를 합산하면 최대 100점을 부여받을 수 있다. 2016년 기준, 클럽과 국대간의 가중치는 7:3으로 클럽 점수는 70점 만점에 국대 점수는 30점 만점으로 책정되어 있다.
         보다 세한 점수 집계방식은 아래 소목차에 따로 소개한다.
          1. 단, 플레이오프(=예선전)의 승무패는 점수에 반할 수 없다.
          1. 만약 해당 대회에 참가한 클럽이 2팀 이일 때, 기 조건에 의해 얻은 점수들은 최종 획득 점수에 참가한 클럽팀의 수로 나눈다.
         이는 AFC 챔피언스 리그와 AFC 컵의 대회진행방식이 갖고 있는 한계점 때문으로 해당 대회들은 이 순위에 엄청난 향을 끼치지만 결승전을 제외하면 이 동아시아와 서아시아가 맞붙을 일은 전혀 없다. 동아시아든 서아시아든 획득하는 클럽점수의 당부분은 같은 지역끼리의 대결을 통해 얻으므로 아시아 지역 전체를 총평하는 설득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
         여기에 대해 동아시아쪽이 서아시아보다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는게, 2016년 시점에서 바라보면 명백히 서아시아는 동아시아보다 ACL 우승횟수가 떨어진다.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ACC)이 ACL로 개편된 이후의 역사를 통틀어 살펴보면 서아시아는 2015년까지 4번 우승, 동아시아는 9번 우승이다. 누가봐도 명백히 클럽 성과가 동아시아쪽이 더 치열하고 강한데다가 2013시즌부터는 자꾸 서아시아가 우승을 못해 흥행이 저하될 우려가 보이는지 토너먼트전에서 동서의 대결이 이루어지는 기존 방식을 결승전에서만 동서끼리 교류가 가능한 구조로 바꿔버린다. 이러다보니 2015시즌 AFC 회원 순위를 보면 1위가 대한민국인 건 그간의 성적을 미뤄 봤을 때 논란이 적을 수 있으나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중국이 사우디, 이란, 아랍에미레이트보다 점수가 낮게 나오는 황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여기에서 나오는 점수를 통해 ACL 티켓을 부여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건 좋으나,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ACL 티켓 부여는 서아시아와 동아시아가 따로 돌아가는 황을 막을 수 없으며, AFC 컵에 참가하는, 일명 축구 개발도국은 만약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이 좋아 포인트를 당히 축적해도 ACL 참가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7화 . . . . 13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57화. '''우마루와 보물자'''
          * 우마루(코마루)는 키리에와 서로 보물자를 보여주며 논다.
          * 키리에의 보물자에서 어린시절 사진이 잔뜩 나오는데 오빠(봄바)와 찍은 사진이 가장 많다.
          * 키리에는 예전에는 사이좋은 남매였지만 자라면서 사이가 틀어졌다고 씁쓸하게 이야기한다.
          * 키리에는 벽장 높은 곳에 있는 자를 꺼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 그건 우마루에게 보여줄 보물자.
          * 서로 보물자를 보여주기로 했던 것이다.
          * 우마루의 보물자는 아마존 박스로 만든 굿즈 저장소나 다름 없다.
          * 안에는 작은 자가 들어가 있는데 키리에는 [[흑역사]]를 직감하면서도 우마루의 의향대로 열기로 한다.
          * 우마루는 봄바와 사이가 좋다고 말하는데 키리에는 예전 일이고 이때 이후로는 사진이 없다며 씁쓸해한다.
          * 키리에는 어린시절 다쳤을 때를 회한다.
          * 사진은 바로 그때 보물자에 들어가게 된다.
  • 고종(조선) . . . . 13회 일치
         [[철종]]이 사망한 뒤 조대비에게 옹립되었고, 생부인 [[흥선대원군]]가 [[섭정]]을 보았다. 그러나 대원군은 고종이 20살을 넘어 22살이 될때까지도 친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대원군의 권력에 대한 집착이 고종의 왕권에 대한 집착에 향을 주었을지도...?) 그러나 고종이 성인이 된지 한참된 태에서 대원군이 계속 섭정을 할 수는 없었고 결국 [[최익현]]의 소를 계기로 친정을 하게 된다.
         친정 초기에는 박규수 같은 통개화파를 주로 중용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한편으로는, 대원군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외척들을 중용하기도 했다.[* 흔히 중전 민씨([[명성황후]])덕에 여흥 민씨가 네임드화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원군파를 견제하기 위해 고종이 직접 중용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 때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고 박규수 등의 개화파를 중용해 개방을 서두른 걸 보면 기본적으로 전근대 군주로서의 능력은 있었던 듯.
         그럴 때 운요호 사건이 터지는데 사실 이 과정에서 신미양요 때 멀쩡했던 종도가 맥없이 당했다고 고종을 까는 건 조금 부당하다. 이미 대원군이 당백전이나 청전으로 재정태가 개판이라 사기가 말이 아니었던 것(...). 아무튼 박규수같은 개화파들은 개방을 할 좋은 기회라 여겼고 이에 고종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다.
         그러고 난 뒤 임오군란이 일어나게 되고 이를 통해 청의 향력이 강해진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김옥균]]과 [[박효]] 등은 --희대의 병크-- [[갑신정변]]을 일으키게 되고 이로 인해 조선에서의 일본의 향력이 강화되는 바람에[* 아이러니하게도 이로 인해 그 당시 조선 조정 내부에서 가장 친일적이었던 급진개화파는 세력이 엄청나게 쪼그라들어 구성원들 모두가 죽거나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에 위협을 느낀 민씨와 고종은 청과 일본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 이후 10여년동안 조선은 청이 주류로, 그리고 일본이 보조로 마지막으로 미국등의 열강이 찔끔찔끔 이권을 뺏어먹는 형편이 되고(...), 결국 이는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전쟁)으로 이어진다. 처음에 동학의 교주였던 최시형의 탄원시도로 시작한 이 운동은 결국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분노한 농민들이 황토현에서 관군을 박살내고 전주성을 점령하자 놀란 조정은 청군에게 병력을 급파해주길 요청한다. 그런데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은 홍계훈의 대포에 밀려 더이의 북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청과 미리 텐진조약을 맺은 일본은 청이 조선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조선에 병력을 륙시킨다. 어찌됐든 '''일본이 개입하자''' 놀란 농민군과 조정은 전주화약을 맺어 일단 농민군의 요구를 어느정도 수용해주는걸로 끝난다.
  • 김상희 (가수) . . . . 13회 일치
         | 이름 = 김
         | 설명 = 2016년 8월 7일 부산 현인가요제에서 김
         | 출생지 = {{국기|일제 강점기}} [[경도]] <br /> (現 {{국기나라|대한민국}} [[대구광역시]])
         '''김희'''(金相姬, 본명 : 최순강(崔順江), [[1943년]] [[3월 29일]]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ref>김희는 예명이고, 본명은 최순강이다.</ref>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고려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1년]] 가수로 데뷔, [[1965년]]부터 활동하였다.<ref>처음 리사이틀 갖는 金相姬, 《경향신문》, 1970.1.17.</ref> [[1971년]] [[동양방송|TBC]] 가요대, 1973년 제1회 대한민국방송가요대 여자가수부문, [[1977년]]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동경 국제 가요제에서 "즐거운 아리랑"을 부르며 특별을 수했다. 현재는 [[한국방송예술진흥원]]의 학장 및 [[한국교통방송]]의 DJ로 활동 중이다.
         히트곡으로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울산 큰애기〉, 〈대머리 총각〉, 〈경도 청년〉, 〈금산 아가씨〉 등이 있다.
         * [http://media.daum.net/society/people/newsview?newsid=20090505141403841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57〉언제나 그모습 - 가수 김희], 《한국일보》, 2009.5.5.
         [[분류:194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경주 최씨]]
  • 김성현 (1989년) . . . . 13회 일치
         |문 표기 = Kim Seong-Hyeon
         |사진 사이즈 =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초등학교와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 활동했고, 대구고 1학년 재학 중이던 2005년, 대구고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으로 이끌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맞대가 프로 야구를 주름 잡는 괴물 투수 [[류현진]]이 이끌던 [[동산고등학교|인천 동산 고등학교]]. 결승전에서 대구고는 먼저 8점을 내지만, 경험 부족으로 9점을 내주면서 대역전패하게 되어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1차 지명이 있던 시기라 오랜만에 나온 유망주에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 팬들도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대구고 1학년을 마치고 전격적으로 제주 관광 산업 고등학교(현 [[제주고등학교|제주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당시 제주관산고의 감독인 [[성낙수]] 감독의 스카웃 및 설득으로 옮겨갔다고 하는데, 후에 고등학교 스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제주특별자치도]]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학생 출전 정지 규정에 묶여 1년을 쉬게 된다.<ref>[[빠른 생일]]이지만 다른 1989년생들과 같은 년도에 입단한 이유.</ref> 그리고 이때 [[경남도]] [[김해시|김해]]에서 같이 제주관산고로 건너와 친하게 된 친구가 바로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김수완 (야구 선수)|김수완]]. 그 뒤 2년 동안 제주관산고에서 공을 던지지만 특별히 대구고 1학년 시절처럼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2군에서 [[정명원]], [[조규제]] 같은 뛰어난 코치의 지도 및 1군에서 [[정민태]]의 조련을 받으면서 기량이 승, 2010년에는 1군에서 어느 정도 자기 몫을 다했다. 90이닝을 던지면서 7승 8패 방어율 4.9로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인 것. 당시에는 어린 축에 속하는 투수였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주무기는 시속 15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빠른 공. 여기에 스플리터를 정민태 코치로부터 전수받았다. 넥센의 젊은 투수들이 그렇듯이 제구력의 향이 큰 숙제. 오죽하면 별명이 '볼크(볼질+보크)'였을 정도였고, 선수 본인도 당시에 이 별명을 알고 있었다. 거기다 볼질로 주자를 내보낸 이후 여지없이 무너지는 새가슴도 고쳐야 할 부분이었다.
         2011년 7월 31일, LG의 투수 자원 보강을 위해 [[내야수]] [[박병호 (1986년)|박병호]]와 투수 [[심수창]]을 대로 투수 [[송신]]과 같이 트레이드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김성현은 [[KIA 타이거즈]] 전에서 선발로 나와 승을 챙겨서 MVP로 인터뷰까지 했다. 그리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서자마자 트레이드 사실을 통보받았다.
         2012년 초,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과 함께 [[2012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승부 조작 사건]]의 당사자로 밝혀졌다. 박현준과 마찬가지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2012년 2월 28일, 국민 체육 진흥법 위반으로 [[대구지방검찰청|대구 지방 검찰청]]에 체포되었고, 3월 1일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구속 장이 발부되었다. 김성현은 8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고, 넥센 시절이던 2011년 시즌 4~5월 브로커와 짜고 두 차례에 걸쳐 일부로 '1회 첫 볼넷'을 던져 승부를 조작하고 이에 따른 사례금 1,0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2012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대구 지방 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집행 유예]] 2년, 추징금 700만 원을 선고하고 사회 봉사 활동 120시간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6일, 박현준과 함께 같이 LG 구단에서 웨이버 공시되고 [[KBO (단체)|한국 야구 위원회]](KBO) 벌 위원회는 4월 18일자 재판 결과를 근거로 김성현을 구 제명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588057</ref>
         어째 이하게도 컴투스 프로 야구 2011에서는 업데이트가 되어 있는데도 본명으로 존재하는 이 선수가 아직도 남아있다.
         [[스포츠동아]]에서 구 제명된 김성현의 사진을 승부 조작과 전혀 관련이 없는 [[SK 와이번스]] 내야수 [[김성현 (1987년)|김성현]]의 사진으로 잘못 게재하는 바람에 비난을 받았다. 다만 지적을 받고 바로 진짜 김성현의 사진으로 교체한 걸 보면 편집 과정에서의 실수인 듯하다.<ref>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439632</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4화 . . . . 13회 일치
          * 웅고 A반은 무난하게 시험을 통과한다. 그러나 바쿠고 카즈키, 토도로키 쇼토는 고배를 마신다.
          * 게다가 케미라는 학생은 먼저 귀가했고 얼마 전부터 행동이 이해졌다고 하는데.
          * 고대하던 결과발표. 웅고 A반 인원들도 하나둘 합격이 확인된다. 미네타 미노루 조차도 명단에 들어가 있어 거진 다 합격한 듯 한데, 정작 A반 투탑 중 하나인 바쿠고 카즈키는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 A반 사이에서 토도로키의 탈락 소식도 전파된다. 하필이면 A반 투톱이 전부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황. 카미나리 덴키는 바쿠고에게 폭언 때문이라며 깐죽거려서 화를 돋군다. 미네타는 둘다 "자기 본위의 플레이가 발목을 잡았다"는, 밥맛없지만 정확한 팩트폭력을 시전하다 이이다 텐야에게 치워진다. 야오요로즈 모모와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마음을 신경써 주지만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한다.
          * 미도리야는 사걸고교의 리더에게 질문할 것이 있다며 수첩을 꺼내든다. 그리고 다짜고짜 "기척을 지우는 훈련"이란걸 묻는데 케미를 대하면서 들은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런데 이하게도 사걸의 리더는 그런 훈련같은건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애초에 그런게 뭔지도 모른다는 반응. 미도리야는 케미가 그런 말을 했다며 그녀를 찾는데 왠지 몸이 안 좋다며 한 발 먼저 귀가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사걸의 리더도 한 3일 전부터 그녀의 행동이 묘하게 평소와 달랐다고 찜찜하게 여기는데
          * 한편 케미는 사걸의 리더가 한 말과는 달리 뒷골목을 돌아다니고 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얼굴이 서서히 녹아내린다. 그 통화대는 그녀를 이렇게 부른다.
          * 그녀는 사걸고교의 케미가 아니라 빌런연합의 멤버 토가 히미코였다. 토가는 멋진 놀이를 하고 있었다도 답하는데 그 놀음에 정기연락까지 빼먹고 있었던 것이다. 연락하는 대는 Mr.컴프레스. 그녀의 단독행동을 우려하지만 토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킨 적이 없는데다 매우 유익한 결과를 얻었다고 자랑한다.
         예대로 토도로키와 요아라시는 탈락. 바쿠고도 점수를 따는 듯 하더니 결국 실패했다. 그래도 재시험이 있으니 재시험에서 당락이 확실히될 듯하다.
         잠입에 최적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본인도 제법 연기력이 있는 편이라서 사걸고교 학생들에게도 특별한 의심을 사지 않았다. 토가의 존재로 인해 웅고 내부의 "배신자"에 대한 예측을 완전히 다시 해야하는데, 처음부터 특정한 인물이 배신한게 아니라 토가가 특정인물로 변장하고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특히 사걸고교는 웅고에 비견되는 명문인데, 그곳의 보안을 뚫고 학생으로 변장했다는건 웅고에서도 당연히 통한다는 얘기로 봐야할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1화 . . . . 13회 일치
          * 올마이트에겐 사실 후계자를 찾던 시절 또다른 후보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웅고의 재학생.
          * 그리고 잠시 뒤. 담인 [[아이자와 쇼타]]의 호된 훈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자와는 둘을 꽁꽁 포박해서 압박한다. 사실 둘의 싸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호출받았을 때 나타난건 올마이트였기 때문. 이번에도 올마이트는 아이자와를 진정시키며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쿠고의 심리 태를 언급하며 자신이 교사들이 멘탈 케어를 맡아줘야 했던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그 말을 듣고 아이자와는 어느 정도 수긍한다.
          그러나 기숙사 생활이고 담임인 이 이들을 그냥 둘 수도 없는 일. 아이자와는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 확인한 다음 바쿠고에겐 4일간, 미도리야는 3일간 근신과 기숙사 공동구역 청소 및 반성문 제출을 구형한다. 그 밖에 처가 심해지면 [[리커버리 걸]]에게 가라는 둥 잔소리를 해대는 걸로 이날의 싸움은 완전히 종결 되었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화해는 한 거냐고 하는데 사실 화해인지 아닌지 애매한 무언가라서 미도리야가 대충 얼버린다. [[이이다 텐야]]는 어쨌든 둘은 시업식에 빠질 수밖에 없겠다며 나머지 학생들을 인솔해 기숙사를 나선다. 나가면서 [[토도로키 쇼토]]는 임시면허 보충수업 어쩔 거냐고 하는데 바쿠고는 퉁명스럽게 관하지 말라고 대꾸할 뿐이다.
          * 사실 B반 학생 중에 시비를 거는건 모노마 뿐이다. [[츠노토리 포니]]는 일본어가 서툰데도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모노마가 이한 일본어를 가르쳐줘서 실언을 하고 만다. [[켄도 이츠카]]가 모노마를 제재.
          * 잠시 뒤 전교 학생이 운동장에 모이고 교장 [[네즈]]가 단에 오른다. 네즈는 보통 교장들이 그렇듯 시시콜콜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절대더니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본론으로 들어간다.
          올마이트의 은퇴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뒤따르겠지만 무엇보다 히어로 학과 학생들에게 현저하게 향을 끼치고 있다. 네즈는 2, 3학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히어로 인턴" 참가자들도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1학년 A반 학생들은 아직 히어로 인턴제도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다.
          >경과도 보통과도 서포트과도 히어로과도
          * 네즈가 말한 "후계자"란 말. 올마이트는 그 말과 어제 밤에 들은 "선택받은 너"라는 표현 사이에서 과거의 기억을 끌어낸다. 그것은 아직 올마이트가 후계자를 정하기 이전. 막 후계자를 찾고 있을 때 교장 네즈가 웅의 교사직을 권하며 했던 말이다. 당시 네즈는 웅고야 말로 후계자를 찾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이라며 그에게 교직을 맡긴다. 게다가 네즈는 구체적인 후보도 골라두고 있었는데.
          그는 지금도 재학생들 사이에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13회 일치
          * 철포옥 핫사이슈 "랏파"와 "텐가이"가 이들을 습격한다. 랏파가 공격적인 러쉬, 텐가이가 강한 배리어를 치는 "창과 방패"의 조합.
          * 반명 키리시마와 패트껌은 모두 방어적인 능력으로 조합된 "방패와 방패"라서 성면에서 불리한 싸움을 강요받는다.
          * 랏파는 시간을 끄는 텐가이를 공격할 정도로 싸움에 환장한 성미로 키리시마의 경화를 깨뜨리고 패트껌의 지방으로도 쇄할 수 없는 러쉬로 공격한다.
          * 그러나 그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패트껌은 그 사이 랏파가 준 충격을 흡착해 응축, 지방을 태운 에너지까지 더해 하나의 "창"으로 바꾸는데 성공한다.
          * [[오버홀]] 치사키를 추적하는 [[서 나이트아이]]와 히어로 연합군. 그러나 [[이리나카]]가 판 함정에 빠져 [[아이자와 쇼타]]가 고립될 뻔한 걸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지키고 대신 희생한다. 함정에 빠진 이들 앞에 나타난 철포옥 핫사이슈는 "랏파"와 "텐가이". 랏파는 저돌적인 격투가로 개성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큰 덩치와 파워, 강력한 펀치연타가 특기다. 텐가이는 차분해 보이는 남자인데 굉장한 강력한 배리어를 치는 개성.
          패트껌이 랏파의 러쉬를 버티고 반격을 가하자 배리어로 막는다. 랏파는 자기 성미에 맞지 않는다며 배리어를 치워달라고 하지만 텐가이가 오버홀의 명령은 그런게 아니라고 거절한다. 이쪽은 "창과 방패"의 조합, 저쪽은 "방패와 방패"의 조합이라 유리하니 이 콤비네이션으로 처리하자고 말한다.
          * 그런데 랏파가 황당하게도 텐가이를 공격한다.일단 작은 배리어를 쳐서 그걸 막는 텐가이. 랏파에겐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적도 아군도 없는 모양이다. 극는 오버홀은 "오바호"란 자기만의 애칭으로 부르는데, 이 콤비도 "오바호"가 멋대로 정한 거니 관없고 자신은 누구든 패죽일 수만 있으면 만족이라고 말한다. 텐가이는 질렸다는 듯이 배리어를 해제해주며 그렇게 해서 처리할 수 있으면 맘대로 해라고 허락해주며 "오바호가 아니라 오버홀님"이라 정정한다. 랏파는 "좋은 히키코모리"라고 응수.
          * 배리어가 걷히자 다시 속사포같은 러쉬가 쏟아진다. 패트껌은 크게 밀려나면서도 활을 냉철하게 파악한다. 우선 랏파와 정면승부는 무리. 공격도 보고 피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사정거리 안이라면 무조건 맞는다고 보는게 좋겠다. 위력도 자신의 지방으로 쇄가 불가능할 지경. 소모전으로 흘러간다면 도저히 방법이 없다. 방금 전 랏파와 텐가이가 다툰 듯 보이는게 돌파구가 될까? 어려워 보인다. 지금은 물러났지만 위험해지면 다시 배리어를 칠게 뻔하다. 그 강도는 아까 때려본 바로는 철벽. 불행하게도 현재 패트껌의 파워로는 뚫을 수 없다. 결국 텐가이를 어쩌지 못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 랏파의 러쉬가 더욱 빠르고 강해진다. 거기에 얻어맞는 패트껌은 마치 찢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예보다 너무 아프다. 기세가 오르고 있다. 아무래도 "늦은거 아닌가"하고 불안해진다. 랏파가 이제야 겨우 어깨에 열이 오른다며 "쓰러지지 마라"고 빈정거린다.
          * 패트껌이 이런 계산으로 견디고 또 견디는 와중에, 텐가이가 그의 모습에서 뭔가를 포착했다. 육감같은 것인가? 아무튼 랏파에게 소리쳐서 "뭔가 꾸미고 있으니 빨리 처리해라"고 주문한다. 좋지 않았다. 이미 패트껌은 한계였다. 충격은 잘 모으고 있지만, 예보다 방패가 사라지는 속도가 빨랐고 충격을 내뿜을 자세를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텐가이의 외침에 호응하듯 랏파의 러쉬가 기세를 더올린다. 그리고 그때. 키리시마가 나타났다.
          바라마지 않던 유형의 대. 랏파가 쾌재를 부른다. 파고드는 주먹을 향해, 키리시마도 주먹을 뻗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13회 일치
          * 랏파는 본래 지하격투장 출신으로 조직이나 [[오버홀]]의 목적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싸우고 싶은 대와 마음껏 싸우는게 목적.
          * 오버홀은 이 두 가지와 자신, 그리고 두목만 있으면 시에핫사이카이는 얼마든 되살릴 수 있다며 지금 아지트를 미련없이 버리는데.
          * [[아마지키 타마키]]의 소개로 패트껌의 사무소를 찾아온 키리시마. 그는 타마키가 사람을 소개하는 것에도 놀랐고 그게 웅제 때 활약했던 소년인 것에도 놀랐다. 그리고 타마키는 긴장하는 버릇 때문에 매년 꼴찌를 했던 아픈 처를 후비기도 했다.
          * 감에 젖고 있는 패트껌을 어떤 목소리가 흔들어 깨웠다. 랏파가 지옥에서 기어나오듯이 일어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터프한. 방패는 텐가이였지 않나? 배리어를 완충제로 썼다고 해도 정을 한참 넘어선 강인함이다. 이제 손 쓸 방법이 없다. 지방은 다 태워버렸고 체력도 바닥. 패트껌은 정말로 어찌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그는 다음에 이어지는 랏파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랏파에게도 있느냐는 별개 문제. 랏파는 그를 가볍게 즈려밟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역시 텐가이가 회복한 여력은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가벼운 한 발로 의식이 다시 날아갔다. 랏파가 배리어를 칠 여력도 없는 주제라고 빈정댔다. 하지만 그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다. 여기저기 뼈가 부러져 도저히 싸울 태가 아니다. 패트껌은 그 묘한 대화를 보고 있다가 대체 뭘하고 싶은 거냐고 물었다. 정말로 함정이 아닌 건가? 랏파의 답은 이번에도 단순했다.
          >처를 치료해! 다음에는 확실히 죽여주마!
          * 여전히 머리가 이한 녀석이지만, 지금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통했다. 히어로로선 조금 이한 질문이 되겠지만, 랏파에게 왜 이런 조직에 속해 있냐고 물었다. 그의 성향을 보면 조직생활하곤 전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아까 일의 교훈인지 조용히 있던 랏파가 다시 입을 나불거렸다. 묶여있는 태였다. 적에게 그런 걸 알려주겠냐고 떠들어댔지만, 랏파는 이번에도 그의 기대를 져버렸다.
          * 히어로들이 들이닥친 직후. 오버홀은 이때 이미 지하통로에 들어와 있었다. 자신의 심복과 에리쨩과 함께였다. 그는 위에서 들려오는 소란을 들으며 "그 녀석들", 잔류한 조직원들이 발목이나 제대로 잡을지 의문스러워했다. 부하는 이제 시에핫사이카이는 끝이라고 말했다. 벌써 몇 번이나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젊은 두목은 한사코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과 "두목"이 있으면 핫사이카이는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그걸 모른다. 그들은 대부분 두목파. 누구보다 두목의 의지를 존중하는 자신을 잘 따르지 않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9화 . . . . 13회 일치
          * [[쿠로노 하리]]는 싸움이 길어지는데다 방 바깥의 인기척이 수하자 미심쩍어 하지만 설마 그 [[오버홀]]이 패할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가 조직을 위해서 어릴 적부터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알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 그가 패한다면, 그런 황을 정한다면 적어도 완성품과 혈청만큼은 확보해야 한다. 그러자면 [[아이자와 쇼타]]를 묶어둘 여유는 없다. 그는 즉시 아이자와를 처분해버리려고 한다. [[아마지키 타마키]]가 도착한건 그때였다. 경찰과 합류해 [[토오가타 밀리오]]를 구조한 타마키는 때맞춰 나타나 쿠로노의 공격을 제지한다. 이것으로 마지막 멤버인 쿠로노까지 제압된다.
          * 바깥에선 쿠로노가 우려한 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에리의 힘으로 무한한 원 포 올 100%를 발동한 [[미도리야 이즈쿠]]가 융합해서 거대해진 오버홀을 매쳐버린다. 오버홀은 이번만큼은 정말로 기력이 다한 듯이 뻗어버린다. 이렇게 미도리야와 에리의 승리로 싸움이 끝난 것 같았지만, 에리의 능력은 계속 폭주한다. 점점 강해지는 그 능력은 미도리야마저 "되돌려" 버릴 판이었다.
          * 오버홀은 의식이 거의 날아간 태에서도 조직의 부흥과 위신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어렸을 적부터 야쿠자가, 두목이 바보나 빌런취급 당하는 황에 놓여있었다. 그런 황을 끊고 싶다는 일념이 평생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도 그의 팔은 미도리야에게, 에리에게 뻗쳤다. 그러나 에리의 능력은 한도를 넘어서 폭주하고 있었다. 그의 팔이 닿은 것만으로 오버홀의 융합이 "되돌려"져서 무방비하게 내쳐진다. 그때 류큐 등과 함께 히어로 연합군이 지으로 올라왔다. [[우라라카 오챠코]]가 재빠르게 오버홀을 제압. 하지만 에리의 폭주와 거기에 휘말린 미도리야에겐 손을 쓸 수 없었다. 이대로는 미도리야가 되감겨 사라질지도 모른다.
          * [[아스이 츠유]]는 만신창이의 아이자와를 부축하고 있었다. 아이자와가 때마침 정신을 찾는다. 아이자와는 곧바로 무효화 개성으로 에리의 폭주를 제압, 긴장의 끈이 끊어진 탓인지 미도리야와 함께 에리도 쓰러지고 만다. 이로써 시에핫사이카이 급습 작전은 완전히 종료. 피해자의 확인과 뒷수습으로 이행한다. 우선 본래 목표였던 에리의 구출은 무사히 완료. 부자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의무실에 있던 [[키리시마 에지로]], [[패트껌]]도 구조된다. 랏파도 이때 같이 있다가 어이없이 제압. 오버홀이 감추고 있던 두목도 발견된다. 미도리야는 먼저 정신을 수습해 에리를 구급반에게 넘기는데 마침 들것에 실려가던 [[서 나이트아이]]와 마주친다. 그는 호흡기를 단 와중에도 미도리야를 불러세우고 그가 자신이 예지한 것과 다른 미래를 만드는데 성공했음을 인정한다.
          * 시에핫사이카이의 조직원 11명은 구속, 전원 중이라 타코다나의 빌런병원으로 이송 중이다. 호송 차량은 이들과 이들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 문제의 탄환들과 아직 보고에 없는 캡슐을 전부 싣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렇게 작전은 끝나는 듯 했지만, 한 가지 사건이 남아있었다. [[빌런 연합]]과 [[시가라키 토무라]]. 그가 호송차량을 급습한다.
         == 세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13회 일치
          * 도망친 빌런연합의 개인정보도 확보되지 않은 태. 때문에 원흉인 올 포 원을 잡았다 한들 실행범을 전부 놓쳐서 잘쳐줘 봐야 무승부인거 같다고 얘기한다.
          * 하지만 한 경찰간부는 "평화의 징을 내주었다"는 말로 사실 패배했음을 피력한다.
          * 과거와 같은 "평화의 징"은 이제 없는 거나 다름 없고 그동안 올마이트 한 사람에게 의지해 온 후폭풍이 오고 있다.
          * 시가라키 토무라는 프로파일링에 따르면 "아이의 발작"같은 태. 그의 범죄는 갈 수록 정교하고 복잡해졌으며 "세간에 향을 주는 것"을 목표로 발전했다.
          * 그는 병에서 일어나 자신 안의 원 포 올이 완전히 사라졌고 "평화의 징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 그리고 웅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는데, 비록 평화의 징으로 있을 순 없다 하더라도 "올마이트는 아직 살아있다"고 말한다.
          * 귀가한 토도로키는 누나로부터 아버지가 "계속 저런" 태라고 듣는다.
          * 그리고 미도리야에게 정식으로 "은퇴다. 정적으로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니다."고 고백한다.
          * 바쿠고는 묘하게 침울한 태로 경찰에 넘겨졌는데 어쩌면 크게 심경이 변화할지도?
  • 네드 켈리 . . . . 13회 일치
         Ned Kelly. [[호주]]의 [[산적]][* 호주의 산적은 부시레인저(Bushranger)라고 불린다.]이다. 풀네임은 에드워드 켈리(Edward Kelly)로, 현재는 위대한 "의적"으로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다. 중세 기사가 연되는 육중한 철제 갑옷이 특징.
         1887년 10월, 경찰은 켈리 갱을 체포하기 위해 무장한 경찰관 네명을 보냈다. 하지만 캘리 갱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경찰 팀이 야지를 차린 스트링이바크 크리크(Stringybark Creek)를 습격했다. 이들은 경찰관들을 습격해 세명[* 로니건 순경(Constable Lonigan), 스캔론 순경(Constable Scanlon), 케네디 경사(Sergeant Kennedy).]을 살해하고 한명[* 매킨타이어 순경(Constabel McIntyre).]을 붙잡았다. 이후 켈리 갱은 호주의 [[은행강도|은행을 털었다]]. 1889년 2월에 네드 켈리에게 걸린 현금은 8,000 파운드로 올라갔지만 켈리 갱은 잡히지 않았다. 켈리 갱이 최후를 맞은건 1880년 6월이 되어서였다.
         네드 켈리는 제릴더리(Jerilderie)의 은행을 털며 편지 하나를 남겼다. "제릴더리 편지[* Jerilderie Letter]"라고 불리는 이 편지는 1870년부터의 켈리 갱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당시 호주의 경찰이 부패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이 편지는 경매에 나와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이 사들였다. [[http://search.slv.vic.gov.au/primo_library/libweb/action/dlDisplay.do?vid=MAIN&search_scope=default_scope&docId=SLV_VOYAGER1636991&fn=permalink|전자책으로도 보게 해 주는 것 같으니 관심 있으면 클릭.]] 오른쪽의 View Online을 누르면 된다. 흘려쓴 문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9세기에는 사형된 범죄자의 얼굴로 [[데스마스크]]를 만들었다. [[골학]]에 근거해 분석하기 위한 용도였는데, 그 이유로 네드 켈리의 데스마스크도 만들어졌다. 현재 이 데스마스크는 [[http://www.nma.gov.au/collections-search/display?app=tlf&irn=76705|국립 호주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2003년 개봉된 화 "네드 켈리"(Ned Kelly)는 네드 켈리를 주인공으로 삼고있다. 네드 켈리 역은 [[히스 레저]]. 그전에 나왔던 1970년작도 있다. 1906년에 나온 켈리 갱 이야기"(The Story of the Kelly Gang)이라는 화도 있다!
         호주의 소설가 피터 캐리(Peter Carey)는 "True History of Kelly Gang"이라는 소설을 썼다. [[맨부커]]을 받았다고.
         [[http://www.australia.gov.au/about-australia/australian-story/ned-kelly|호주 홈페이지 - 호주에 대해 - 호주 이야기 - 네드 켈리(어)]]
         [[https://www.slv.vic.gov.au/search-discover/explore-collections-theme/australian-history/ned-kelly/ned-kelly-fact-sheet|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홈페이지- 네드 켈리 자료표(어)]]
         [[http://www.nma.gov.au/exhibitions/irish_in_australia/bushrangers|호주 국립 박물관 홈페이지 - 호주의 아일랜드인 전시관 페이지(어)]]
         [[http://ergo.slv.vic.gov.au/explore-history/rebels-outlaws/bushrangers/capture-kelly-gang|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산하 ergo 웹사이트 - 켈리 갱의 체포(어)]] - 켈리 갱 단원의 소사체 사진이 있으니 주의.
  • 대구광역시/인물 . . . . 13회 일치
         * [[강식]] - 북구(대구)
         * [[강문]] - 남구(대구)
         * [[박주]] - 동구(대구)
         * [[배수]] - 북구(대구)
         * [[박원(배우)|박원]] - 중구(대구)
         * [[서지(가수배우)|서지]] - 달서구
         * [[이정길(화배우)|이정길]] - 달성군
         * [[주철]] - 중구(대구)
         * [[정진(배우)|정진]] - 동구(대구)
         * [[주욱]] - 서구(대구)
  • 레오(워저드) . . . . 13회 일치
         게임의 특징인 레벨업이 성능만이 아니라 외형=장비에도 향을 주는 유일한 캐릭터. 레벨이 올라가면 새로운 검과 방패를 입수한다. 다만 레벨업 전의 구 장비는 당연히 쓸 수 없으며 조건을 만족하면 3종류의 속성검과 전설의 검을 입수할 수 있는데 이 4종류의 장비에 한해서만 특수 커맨드 무기 교체로 바뀌다는게 가능하다. 다만 그 대신인지 모든 속성이 약점이고 동시에 강점 송성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풀 업 태의 패스워드는 4146644463로 커맨드 입력은 Lk Lp Lk Sk Sk Lk Lk Lk Sk Sp 순이다.
          대를 잡고 뛰어오른뒤 몸에 칼을 박아넣고 스크류 파일드라이버 마냥 회전하면서 찍어버리는 레버 한바퀴 커맨드 잡기.
         골때리게도 레벨업이 기 한 칸 사용하면서 데미지를 올리는 전용 시스템으로 탑재되어 있다[* 카드 파이터즈 DS에서도 이 능력은 재연되어 있다고 함.]. 레벨업할 때마다 체력을 미미하게 회복하며 공격력이 승하는데 특히 만렙인 6렙까지 땡겼을 경우 공격력이 총 27% 승하지만 문제는 기게이지 다섯 줄을 모을 새가 없다.
         칼을 쓰는 통기들은 밀착해서 맞출시 데미지와 스턴치가 반토막나는 페널티가 있으므로 거리 조절이 관건. 엄청난 리치의 점프 약K과 앉아 중K으로 견제하며 서서 중K이나 앉아 강P로 대공을 처리하는 식의 싸움이 주가 된다.
         크로노스 러시와 아킬레스 러시가 좀 이하게 바뀌었다. 일단 공통된 커맨드로 몸통박치기를 발동한 뒤 이후 추가 입력에 따라 크로노스나 아킬레스로 갈리는 방식. 추가 입력을 넣지 않으면 맞추고도 대보다 늦게 경직이 풀리는데다가, 둘 다 몸통박치기에서 연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 술 더 떠 사이에 살짝 딜레이가 있기 때문에 대가 몸통박치기를 맞은 직후 승룡권처럼 발동이 빠른 기술을 썼다면 아무짓도 안 했건, 크로노스를 썼건, 아킬레스를 썼건 무조건 처맞는다. 두말할 나위 없는 No.1 봉인기.
         전반적으로 필살기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가끔 앉아 강P에서 약 마즈 슬래시를 연속기로 써주는 정도. 철저하게 견제 플레이 위주로 운해야하다보니 커맨드 잡기인 가이아 드라이버도 쓸 일이 별로 없다.
         그나마 헤라클레스 러시는 발동이 빨라서 연속기로 잘 들어가니 다행. 기가스 드라이버는 레벨 2 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데 가끔 허를 찌를 때 쓴다면 몰라도 앉아 강P - 헤라클레스 러시로 이미 기가스급 데미지가 나오니 굳이 무방비 태의 적에게 이 쪽을 쓸 필요는 없다.
  • 마기/304화 . . . . 13회 일치
          * 그리고 연백(아르바)의 목소리가 끼어드는데...
          * 신드바드는 전송마법진이 일화되면 비공정을 못 팔게 된다는 핑계를 댄다.
          * 신드바드는 백에게 "우리도 전송마법진을 만들 순 없냐"고 묻는데, 원래 기술담당이 아니던 그녀는 불가능한 일이다.
          * 그 밖에도 백에게 맡긴 일이 있지만 진행은 지지부진하고, 신드바드는 "솔로몬"의 지혜가 있으면 이럴 필요가 없다고 한탄한다.
          * 그러면서 알라딘을 놓쳤던 일을 후회하는데, 이때 백이 알라딘이 있는 곳을 찾았다고 알려준다.
          * 알라딘은 알리바바와 통신 중에 백이 끼어든걸 느꼈지만 "설사 알더라도 이곳엔 못 온다"고 말한다.
          * 알라딘은 백이라면 언젠가는 이곳에 올 거라고 우려한다.
          * 그리고 2년 전을 회하는데.
          * 알라딘과 백은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 알라인은 백에게 밀리는데 백은 "우고가 공들여 기른 너도 솔로몬엔 못 미친다"다며 "한때 나는 솔로몬이 신이라고 믿었다"고 도발한다.
          * 알라딘은 백에게 아르바가 들어갔음을 간파한다.
          * 그러나 알라딘은 그런건 관없다며, "신드바드가 하려는 짓에 찬성할 수 없다"고 쏘아붙인다.
  • 마기/336화 . . . . 13회 일치
          * 바알은 이 던전은 신드바드가 14살 때 공략한 던전이며 지금은 그의 신념을 반해 재창조되었다.
          * 세이 루프로 환원되는걸 막으려면 이 일곱 개의 던전에서 일곱 명의 신드바드를 쓰러뜨려야 한다.
          * 던전의 신드바드는 4:1로 싸우는 데다 마장을 교체할 수도 없어서 그리 어려운 대가 아니다.
          * 바알을 비롯한 일곱 진들은 각각이 신드바드가 지닌 일곱 개의 신념을 인정해 왕의 그릇으로 선택했다. 이들 앞에 나타난 일곱 던전은 각기 신념에 따라 재구성된 것이며 역시 일곱 명의 신드바드가 지키고 있다. 알라딘은 바알의 의도를 알아차린다. 세이 루프로 환원되는 걸 막고 싶다면 일곱 던전의 일곱 신드바드를 쓰러뜨리라는 것이다. 쥬다르는 이쪽이 네 명인데 7회전이냐 할 거냐고 디스한다.
          * 이러는 사이 아르바가 지닌 모래시계는 착실히 시간이 가고 있다. 아르바는 이러다 해가 지겠다며 모래시계의 모래가 전부 떨어지면 세이 루프로 환원된다고 경고한다.
          알리바바가 "아모르 사이카"로 공격하자 "바라라크 사이카"로 방어한다. 둘의 마법이 부딪혀 시야가 가려지자 신드바드는 원거리에서 참격을 날려 기습을 가한다.
          * 신드바드는 자신의 고향이 전쟁을 일삼는 지옥도였고 그걸 바꾸기 위해 던전 공략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솔로몬 왕의 세은 인간의 선의만으론 바꿀 수 없는 부조리함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부조리한 운명에 굴복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힘으로 파괴하는게 옳은지 묻는다. 이것이 바알이 신드바드에게서 본 "분노와 걸의 신념"이다. 바알은 이것이 단순한 살육전이 아니라 "신을 결정하는 시련"이므로 납득할 만한 답이 나오지 않는 이 결판이 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 일행은 난처해진다. 시간이 촉박한데 그저 힘으로 쓰러뜨리는 것 이으로 신드바드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패널티가 크다. 그때 쥬다르가 코웃음을 치며 나선다. 그는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말한 뒤 홀로 신드바드를 대하겠다고 선언한다. 쥬다르는 지금의 신드바드가 "열받아서 정신 못차리는 핏덩이"라며 그 입을 다물게 하는데엔 자신이 제격이라고 하는데.
  • 마기/337화 . . . . 13회 일치
         [[마기]] 337번째 밤. '''분노의 걸의 신념'''
          * 쥬다르는 혼자 힘이지만 신드바드와 호각 이으로 싸운다. 신드바드가 전신마장 바알로 날리는 번개 마법을 같은 번개 마법으로 받아치며 "분노와 걸의 신념이 아니라 그냥 미쳐 날뛰는 꼬맹이"라 조롱한다. 신드바드는 너도 마찬가지 아니라며 쥬다르에게 어떤 을 보여준다.
          * 쥬다르 앞에 나타난 은 그가 바르다르에서 난동을 부리다 알라딘의 "솔로몬의 지혜"에 의해 쫓겨난 직후의 자신이었다. 쥬다르는 이때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자신의 출생과 고향의 일, 그리고 알 사멘에 의해 납치됐던 일 등을 떠올리고 충격에 빠진 태였다.
          쥬다르는 자유롭고 정적인 마기로서 신드바드를 왕으로 고르고 광과 미래를 손에 넣은 자신을 그려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누군가 그를 찾아온다. 그의 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억압하는 당사자였다.
          * 옥염은 그때와 같은 뻔뻔한 얼굴로 쥬다르에게 다가온다. 쥬다르의 내면을 반한 듯 파괴와 굴복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주위를 멤돈다. 신드바드는 그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어린 쥬다르는 당장 죽이라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마침내 옥염이 그의 몸에 손을 대자 쥬다르는 자신의 결론을 내보이는데.
  • 막부 . . . . 13회 일치
         고대 중국에서 장군은 [[황제]]에게 여러 권한을 위임받게 되는데, 실질적으로 독자적인 군사행정조직을 운용할 수 있게 된다. 부(府)를 설치하게 되면 독자적으로 장군의 부(府)에서 근무하게 될 속관을 뽑아서 임명할 수 있고, 부(府)를 통하여 군사, 사법, 행정을 처리할 수 있었으며, 이를 징하는 부월(생살여탈권) 같은 징물을 받았다. 막부는 현대로 치면 [[계엄령]] 하의 '계엄사령부'처럼 일정 지역, 시기 동안 제한적으로 전권 통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일본이 중국에서 들여온 [[율령제]] 체계에서 [[조정]]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막부를 근거로 하여, 이를 설 통치 조직으로 바꿔서 운용하였던 것이다. 현대에 비유하자면 정부가 있기는 한데 계엄령이 내려져 있고, 계엄령은 무기한이고 범위는 전국(…)이라서 계엄사령관이 사실 국가의 실권자인 태가 된 것과 같다.
         중국에서 막부라는 단어는 [[전국시대]]부터 나타난다. [[전한]]의 이광, 위청 등도 흉노를 정벌하며 전선에 막부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막부라는 단어가 관서를 나타나게 된 것은 [[후한]] 시기로서, [[후한 명제]] 시기에 동평왕 유창이 [[표기장군]]이 되어, 자신의 정청을 설치하고 천자를 보좌하였을 때 부터라고 한다. 기록을 보면 막부를 설치할 권한이 있는 것은 사방장군 이(좌 / 우 / 전 / 후 의 4장군, 4평장군, 4진장군, 4정장군 등)의 장군들이었다.
         일본의 막부는 원래 동쪽으로 토를 확대[* 본래 일본 조정은 지금의 긴키 지방에서 큐슈 일대만을 지배하고 있었고, 지금의 간토 지방이나 도호쿠 지방은 이민족이 살고 있었다.]하면서 해당 지역 선주민과 싸워 이를 정복하는 군대의 지휘관을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으로 삼아 그에게 막부를 열고 해당 지역의 독자적인 군사와 사법권을 부여하던 것이 시초였다. 하지만 이 당시는 중국의 사례와 같이 일시적인 군정권에 불과하여 특수한 정권 체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고대의 군대는 [[경찰]]의 역할도 겸비하는 것이었으므로 '군사력 해체'는 곧 '경찰력 해체'와도 같은 것이었다. 국군이 해체되자 일본의 국내 치안은 악화 일로를 걷게 되었는데, 각지에서 크고 작은 [[도적]]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헤이안 말기에 각지에서 보이는 [[슈텐동자]] 같은 오니 전설은 이러한 도적의 등장을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각지의 [[호족]]들은 새로 개척된 농지의 속권, 소유권이나 농업 용수의 사용 같은 것을 놓고 사적인 다툼을 벌였는데, 이러한 분쟁 역시 치안 악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일본 국내에서 '거의' 유일[* 사무라이와 다른 경우로는 사원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한 [[승병]] 같은 사례가 있다.]하게 무력을 보유하게 된 사무라이들이 점차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결국 이 사무라이들 가운데 유력해진 겐지(原氏) 일족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헤이케|헤이지(平氏) 일족]]과의 항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덴노에게 정이대장군 칭호를 받고 가마쿠라에 막부를 열면서 조정을 제치고 일본 전역에 할거하고 있던 무사들을 통솔하는 것으로 사실의 통치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것이 [[가마쿠라 막부]]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막부라는 체계는 일본 특유의 독특한 '정권'이 되었는데, 명목으로는 천황의 조정이 일본의 주권자였으나 막부는 '정이대장군'으로서 사무라이들을 통솔하면서 사법권과 지방의 치안 유지, 재산권 분쟁에 대한 해결 등 실질적인 통치권을 발휘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조정과 막부가 분리되어 있으나, 당시 일본의 지방 호족들은 대부분 사무라이 신분이었으며 이들이 사회의 주축이었으니 전국의 인구 가운데서는 '극소수'에 불과한 천황가와 귀족을 제외하면 일본 전체가 막부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마쿠라 막부의 실권은 당초에는 동일본 지방이 중심이었으나 [[고토바 덴노]]가 토벌을 시도하였다가 대실패(…)하여 서일본 지방까지 완전히 막부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일본 전국이 막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로 조정은 거의 귀족들이 놀고 먹는 태가 되었는데, 원래 헤이안 시대부터 일본 조정에는 별다른 실질적인 업무는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가마쿠라 막부에 귀찮은 실무를 맡기면서 조정은 거의 완전히 실무능력을 실하며, 이후 조정이 실권을 되찾는 [[겐무 신정]] 시기가 되었을 때 무능함을 드러내며 정권을 도로 무로마치 막부에 빼앗기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이 당시의 일본 귀족이란 태어날 때부터의 혈통으로만 앞으로의 출세가 모두 결정되며, 귀족 이하는 인간으로 보지도 않는 폐기물 급 인성(^^)에다가, 실무는 천하게 보고 시나 서예 같은 예술 활동만을 고하게 보는 좋게 말해서 문화적, 나쁘게 말해서 놀자판인 놈들이었으므로 이런 놈들에게 실권을 맡겨서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 배대윤 . . . . 13회 일치
         '''배대윤'''(裵大潤, [[1948년]] [[12월 5일]] ~ ,[[충청북도]])은 [[대한민국]]의 제43대 경북도 청송군수이다.
         * 1995 경북도청 민방위국 국장
         * 1995 ~ 1997 경북도 양군 부군수
         * 행정자치부 민방위운과 과장
         * 2002.07 ~ 2006.06 제43대 경북도 청송군 군수
         * 2007 경북도 청송군수 후보
         == 수 ==
         |[[대한민국 제3회 지방 선거|제3회 지방 선거]]||[[청송군|경북도 청송군수]]||43대 (민선 3기)||[[한나라당]]||{{막대|한|4|9|9|9}} 49.99%||10,211표||1위||[[파일:경북당선.png|25px|경북도 청송군수 당선]]
         |[[대한민국 제4회 지방 선거|제4회 지방 선거]]||[[청송군|경북도 청송군수]]||44대 (민선 4기)||[[무소속]]||{{막대|무|4|8|8|0}} 48.80%||8,958표||2위||낙선
         |[[2007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12·19 재보궐선거]]||[[청송군|경북도 청송군수]]||45대 (민선 4기)||[[무소속]]||{{막대|무|4|5|8|4}} 45.84%||8,076표||2위||낙선
         |직책 = [[청송군|경북도 청송군수]](민선)
  • 백승주(정치인) . . . . 13회 일치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70000B><-5><bgcolor=#FFFFFF><:>[[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징.png|width=30px]]]] {{{#70000B '''[[대한민국|{{{#70000B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국회의원}}}]] ([[경북도|{{{#70000B 경북}}}]] [[구미시 갑|{{{#70000B 구미시 갑}}}]])'''}}}||
         ||<bgcolor=#C9151E> '''{{{#FFFFFF 출생지}}}''' ||<(> 경북도 구미시 ||
         ||<bgcolor=#C9151E> '''{{{#FFFFFF 지역구}}}''' ||<(> 경북도 [[구미시]] 갑 ||
         [[1961년]] [[3월 20일]] [[경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에서 태어났다. 구미 오로초, 대구 성광중, 대구 [[심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근무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 산하의 [[북한]]연구실장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지냈다. [[2013년]] [[3월]]에 국방차관으로 선임되었다. 보통 국방차관은 예비역 [[중장]]이나 드물게 재정 전문가가 보임되는데 비해서 순수하게 안보 연구(북한군사 전문)를 해온 [[민간인]]이 선임된 사례는 처음이라 주목을 받았다.역대 최연소 차관이며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거의 독점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몇 안 되는 민간인[* 여기서 민간인은 비장성 출신.] 출신이다. 참고로 병역은 [[중위]]로 마쳤다.[* 아무래도 보직이 보직이다 보니 예비역 병장을 그 자리에 앉히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직업군인 출신이라는 점이 파격적이다.]
         [[카운터파트]]가 누구인지로 국방 차관의 위을 짐작해볼 수 있는데, [[미국]]에 방문했을 때는 국방부장관[* United States Deputy Secretary of Defense. 국방부 장관이 아니라 국방 부장관이다.]인 [[로버트 워크]]와 군수차관[* Under Secretary of Defense for Acquisition, Technology and Logistics. 언론에서는 획득차관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인 [[프랭크 켄달]]을 만났다. 일본 [[방위성]]과 만날 때는 [[카운터파트]]로 사무차관[* [[의원내각제]]라 국회의원이 임명되는 방위대신, 방위부대신, 대신정무관과 달리 방위성 [[내부승진]].] [[니시 마사노리]]를 만난다.
         2016년 국감에서 [[김제동]]이 7월경 방송에서 "사모님을 아주머니 불러 13일 창을 갔다왔다"라는 말을 했다며 "군 이미지를 실추하고 있다"해 증인 요청을 했다. 하지만 [[국정감사]]라는 좀 더 시급한 문제를 다뤄야 하는 곳에서 이런 말을 한 것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완]] MK2--
         2. 한국국방연구원 소속 연구자인 동시에 국방부 차관을 엮임하였기에 차관 임기를 마친 후에는 곧바로 조기퇴직과 함께 국회의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주변인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전(前) 국방부 차관은 예비역 중장에 준하는 대우를 해줘야하는데, 한국국방연구원장도 예비역 중장이기에 모양새가 이해져서 그냥 국회의원을 하기로 했다고...--한 하늘에 두 개의 4스타는 있을 수 없다!--
         4. 국방연구원 출신이 사석에서 밝힌 카더라에 따르면, 백승주가 처음 국방연구원에 입사했을 당시 관을 좀 본다던 임원급 연구원이 백승주를 보고는 '당한 또라이'이라 평하며 '옳은 길로 걷거든 최소 국회의원, 잘하면 차관은 찍고 내려올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include(틀:제20대 국회의원/경북도)]
  • 블랙 클로버/104화 . . . . 13회 일치
          * 바네사의 제안으로 술 많이 마시기 경쟁이 되는데 바네사는 애초부터 취한 태라 금방 다운, 샬롯은 초월적으로 술에 약해 한 잔만에 비틀거린다.
          * 취한 샬롯은 어떤 마도사에게 저주를 받은 기억을 회하는데, 18세가 되면 발동해서 그녀와 주변 사람들 모두를 시간의 감옥에 가두는 무서운 저주다.
          * 자신의 가문과 지의 주민들까지 휩쓸리게 되어 절망하고 있던 차에 그녀를 구하러 온게 야미였다.
          솔 마론은 신수훈편에서 아스타를 본 기억을 떠올리는데 "그때 본 꼬맹이"라고 불러서 아스타의 신경을 긁는다. 아스타도 지지 않고 "덩치녀"라고 받아치지만 대는 아스타를 달랑달랑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로 [[괴력녀]]. 아예 생쥐 취급하며 밟아놓으려 든다.
          * 샬롯이 이런 꼴은 다른 단장들에겐 못 보여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소란이 일어난 걸 듣고 [[야미 스케히로]]가 찾아온다. 일전에 드러났다시피 사실 야미에게 반해있는 샬롯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어떻게든 감추려고 애쓴다. 야미는 샬롯이 평소에 안 하던 드레스 차림을 한 걸 보고 "반짝거리는걸 다 입었다"라며 웃는데 샬롯은 가까스로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며 야미 쪽이야 말로 묘한 의이라고 지적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냥 훈도시 차림이다.
          * 그때 야미를 찾아다니던 [[바네사 에노테이커]]가 나타난다. 역시 평소 습관대로 진탕 마시고 헤롱거리는 태다. 그녀는 야미를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오다가, 그 옆에 있는 샬롯과 눈이 마주친다. 여자의 육감 탓일까? 두 여자는 무의식 중에 대를 연적으로 간주한다. 바네사는 누군지도 모르면서 "져선 안 된다"고 막연히 직감하고 샬롯은 "묘하게 야미한테 친하게 구는 여자"라며 질투한다.
          * 샬롯은 야미를 의식해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한탄한다. 자신이 뭘하고 있는 건지 한심해하던 그녀는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어떤 "저주"에 관해 회한다.
          이후 그 말대로 샬롯은 끊임없이 강해져서 푸른 들장미단에 들어갔을 땐 이미 명성을 얻은 태였다. 그 강함과 미모 때문에 구혼자가 줄을 이었지만 샬롯은 자기를 이길 수도 없는 구혼자 따위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자기도 이길 수 없는데 앞으로 발동할 저주를 이겨낼리가 없기 때문이다. 약해 빠진 구혼자들에게 실망한 샬롯은 오직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저주를 이겨내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저주는 샬롯의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저주가 발동하자 그녀의 장미 덩쿨 마법이 폭주한다. 저주는 그녀를 삼키고 그녀의 가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삼킨다. 그것도 모자라 덩쿨은 지민들이 살고 있는 민가까지 들이닥쳤고 이대로라면 엄청난 규모의 재앙이 될 판이었다.
          * 결국 저주에 굴복한 샬롯은 부모님에게 죄송하다는 생각만 있을 뿐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났던게 당시의 야미였다. 야미는 재앙이 닥치는 판에 엉뚱하게도 "너 때문에 수프 파스타"를 엎질렀다고 투덜거린다. 당시 샬롯은 야미를 당히 싫어했다. 그래서 자신을 구하러 온 걸 보고도 "이딴 남자에게 추한 꼴을 보였다"며 굴욕적으로 여긴다. 야미는 임무에서는 언제나 자기가 먼저라며 날뛰던 그녀가 꼴 좋게 됐다며 신랄한 소릴 한다. 하지만 단지 그런 말만 한건 아니다.
          * 아스타는 이 쓰잘데기 없는 싸움이 뭐였는지 아직도 문을 몰라한다. 그런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어떤 곳으로 몰려가고 있는걸 본다. 사람들 입에서 "공적발표"란 말이 나온다. 이 축제는 마법기사단들의 성과를 발표하는 "성과제". 잊고 있엇지만 그 메인 이벤트가 지금 시작됐다. 이번엔 모든 마법기사단 단장들이 모이는 걸로 되어 있고 단장이 공석된 "홍련의 사자단"과 "자줏빛 범고래단"도 새 얼굴이 나온다고 해서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다.
  • 블랙 클로버/89화 . . . . 13회 일치
          * [[판젤 크루거]](젤)는 다이아몬드 왕국 시절 지휘관이자 교관. 당한 유명인이었다.
          * 젤은 지원을 받아 다이아몬드 왕국의 병력을 당히 줄여놓는다.
          * 젤은 더이 도망치지 않겠다고 외치며 라드로스를 베어버린다.
          * 젤은 더이의 대화를 멈추고 전투에 나선다. 라드로스는 굉장히 기대하지만 젤은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가 노리는건 뒤쪽의 병력들. 병사들은 그가 멍청한 짓을 한다며 마법을 날린다.
          하지만 젤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바람 마법이 다이아몬드 병사들의 마법을 쇄, 자신은 놀라운 속도로 적진을 헤집어 놓는다. 사실 그는 다이아몬드 왕국 시절 지휘관이자 교관으로 유명한 인물. 그러나 지금은 나라를 배신했다고 해서 배신자 취급이다. 그의 목에는 현금도 걸려있는지 막대한 포금이 나올 거라며 죽이려 든다.
          * 젤이 무모하게 달려든 것 같지만 사실은 고도로 계산된 작전이다. 아군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는 쉽게 반격하기 어려운 법. 마르스와 라드로스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젤의 예대로 둘은 황을 관망하고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혼자서 이 대병력을 대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자신의 반려자와 제자에게 기대하고 있다. 거기에 부응하듯 다이아몬드 측이 전열을 재정비하려 할 때, 아래 쪽 숲에서 일제히 마법의 사격이 가해진다.
          * 젤의 제자 [[마리엘라]]가 마녀들을 이끌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기습을 하려면 대의 3배의 병력을 준비해라", 그녀는 스승 젤의 가르침대로 많은 병력을 모아왔다. 젤의 움직이도 마구잡이가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숲으로 유인하기 위한 것. 다이아몬드 측에서 대응하려 해도 그들의 진형과 움직임이 너무나 쉽게 간파 당한다.
          * 마르스와 라드로스는 아직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전세가 당히 기울었는데도 둘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라드로스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쾌활한 말투로 밑에 덫이 있으니 함부로 날아가면 안 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어 보이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혼자서 돌격한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도 젤이 예한 바였다. 바람 구속 마법 "참풍황 돌개바람". 젤의 마법이 라드로스의 사지를 구속한다.
  • 삼감의 난 . . . . 13회 일치
         [[나라]]의 왕족으로 [[주왕]]의 아들인 무경(武庚)은 [[주나라]]에 항복하여 옛 나라 토에 봉해지고, 이를 [[주문왕]]의 아들들([[주무왕]]의 동생들)이 감시하게 되었다. 감시를 맡은 주나라 왕자들을 삼감(三監)이라고 한다. 무경은 덕(德)이 있어 옛 나라 토를 부흥시켰고, 본래 감시를 맡은 주나라 왕자들은 오히려 무경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반면 주나라는 주무왕이 젊은 나이에 병사하고, 어린 [[주성왕]]이 즉위하며 [[주공단]]이 섭정을 맡아 보좌하는 태가 되었다.
         == 세 ==
         본래 주공단의 동생인 삼감은 주공단이 정권을 잡고 섭정을 하는데 반발한다. 삼감 가운데 관숙선(菅叔鮮) 등 2인이 무경을 옹립하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명분은 주공단이 주성왕이 어린 것을 이용하여 자의적으로 국정을 운용한다는 것이며, 주나라를 대신하여 나라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나라 제후로 봉해진 태공망 여이 토벌에 나섯으나 3년에 걸쳐 싸워도 승리를 얻지 못했다. 이에 주공단은 제후들을 모아 친정에 나서게 된다. 본래 '친정'이라면 천자인 주성왕이 전장에 나서야 하지만, 어린 나이였던 주성왕은 나서지 않고 섭정인 주공단이 사령관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주공단이 왕위에 올랐다는 설도 있다.
         삼감의 난이 진압된 뒤, 주공단은 나라 세력을 분할하게 된다. 나라의 제사는 주왕의 남동생 미자계(微子啓)가 이어받게 되며, 그는 [[송나라]](宋)에 봉해진다.
         나라의 옛 토와 백성들은 주공단의 동생 강숙봉(康叔封)이 봉해지고, 이를 위나라(衛)라고 하였다.
  • 소냐(가수) . . . . 13회 일치
          * 위 문서: [[가수/한국]],
         ||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 ||
         [[대한민국]]의 여성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주한미군]]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김천시|김천]]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고 어머니를 8세 때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김천시|김천]]에 있는 외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장에서 일하며 고학을 했고, 1998년 5월 <박원의 아름다운 TV-얼굴>을 통해 사연이 소개된 뒤 1999년 5월에 가수로 데뷔했다.
          *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2012년]] [[KBS 2TV]] [[불후의 명곡 2]] - 제35, 36회 [[송창식(가수)|송창식]] 편 우승 '아의 노래'
         == 수 내역 ==
          * 2004년 제10회 한국뮤지컬대 여자신인
         컨셉은 여고생인 듯 하며 가면 이름은 [[전록]]의 곡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에서 땄다. 연필을 꽃은 하트 모양 가면을 쓰고 교복을 입었다. 특히 양갈래로 땋은 머리는 귀여움을 증폭시켰다.
         3라운드에서는 햇빛촌의 '유리창엔 비'를 선곡해 [[남자 터프가이]]를 이긴 뒤, [[네가 가라 하와이]]를 꺾고 새 가왕이 되었다.
          * 3조 엔트리인 [[딸랑딸랑 종달새]]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60표 이 득표를 한 번 씩 했으며, 이들 모두 [[황금락카 두통썼네|4번 엔트리에서 2연승한 여자]] [[네가 가라 하와이|가수]]들을 이긴 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4연승을 한]]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나는 가수다]] 출신에게 완패했다는 점이며 새 가왕 모두 예명을 사용했다.
  • 스틸오션/일본 . . . . 13회 일치
         >해대3형(海大三形, Kaidai IIIa) 잠수함은 1922년 당시 워싱턴 해군 조약 하에서 진행되던 8-8 함대 계획의 일부였다. 프로젝트 번호는 S26였다. 해대2형(海大二形, Kaidai II)에 기반을 둔 이 함급은 더 깊은 잠수한계와 추가적인 그물 절단기를 가지고 있었다. 해대3형은 제18전대와 제19전대 소속으로 자바해 전역에 배치되어 일곱척의 선을 격침시켰다. 모든 해대3형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순잠3형(巡潛三形, Junsen III)을 기반으로 여덟척의 병형(丙形, Type-C)이 건조되었다. 어뢰 발사관과 어뢰 탑재량은 증가했지만 일본 잠수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수정찰기가 제거되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갑표적(甲標的, Ko-hyoteki) 모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왕립해군의 아레투사(Arethusa)급의 향을 받은 텐류급 경순양함은 당시 제일 빠른 순양함이었다. 구축함을 대하기 위해 140mm 함포와 어뢰발사관으로 무장했다. 텐류급 순양함 두척 모두 중일전쟁에 참가했다. 텐류는 1941년의 사보섬 해전에도 참가했다. 전쟁 후반기에는 훈련 및 수송 용도로 사용되었다.
         >국 순양함의 향을 받은 쿠마급 순양함은 일본제국해군이 처음으로 운용한 5,500톤급 경순양함이었다. 텐류급에 기반하여 무장과 속도를 향시켰으며 수뢰전대의 기함을 맡기도 했다. 태평양전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했으며, 키타카미와 오오이는 추가적인 어뢰발사관을 장비하고 고속 수송선으로 개장되기도 했다.
         >콩고급 구축함은 전함 역사 초기 함급에 속한다. 이 함급은 원래 HMS 에린(HMS Erin)같은 장갑순양함으로 설계되었다. 유틀란트 해전 이후 콩고급 전함으로 개장되었다.
         >순수히 일본제국해군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함급이다. 그 당시 제일 큰 구경이었던 410mm 주포를 장비한 나가토급 두척은 미국의 콜로라도급 세척, 국의 넬슨급 두척과 함께 "빅 7"이라고 불렸다. 1930년대 전면적인 현대화 개수를 거쳤다. 야마토급이 취역하기 전까지 나가토급은 연합함대 기함을 맡았다. 나가토급 두 척은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가했다. 1943년 6월, 하시라지마에 정박해있던 무츠가 후방 탄약고 폭발로 침몰했다. 나가토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미육군에게 나포되어 교차로 작전(Operation Crossroads)의 표적함으로 함생을 마쳤다.
         >유바리급은 히라가 유즈루가 설계한 실험용 경순양함이었다. 오로지 한척만이 건조되었다. 연장 포탑의 사용과 연장 어뢰 발사관 두개를 중심선에 배치하는 걸로 갑판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유바리의 설계는 이후 일본 군함 설계에 큰 향을 끼쳤다. 제1차 하이 사변에 참가하였고, 1937년 광저우에서 중국 순양함 차오호에게 피해를 입혔다. 제1차 솔로몬 해전에서는 미국 순양함 빈센스(Vincennes)를 뇌격했다. 1944년 초반 대규모 개장 이후 뛰어난 대공 성능을 보였다. 1944년 4월 26일, 수송임무를 수행하던 중 미국 잠수함 블루길(Bluegill)에게 격침되었다.
         >카가는 토사급 전함이었다. 워싱턴 해군 조약 체결 이후, 카가는 관동대지진으로 파손된 아마기를 대신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발진의 용이함을 위해 삼단 비행갑판으로 설계되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1935년, 다시 개장된 카가는 비행갑판을 하나로 감소시켰다. 카가는 제1차 하이 사변 당시 일본제국육군을 지원했다.
         >카가는 토사급 전함이었다. 워싱턴 해군 조약 체결 이후, 카가는 관동대지진으로 파손된 아마기를 대신해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발진의 용이함을 위해 삼단 비행갑판으로 설계되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1935년, 다시 개장된 카가는 비행갑판을 하나로 감소시켰다. 카가는 제1차 하이 사변 당시 일본제국육군을 지원했다.
  • 식극의 소마/202화 . . . . 13회 일치
          * 그러나 에리나는 [[사이바 죠이치로]]의 의중을 읽기 위해 노심초사하지만 그는 본조리는 안 하고 뜬금없이 [[크레페]]를 굽는 둥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 [[나키리 아자미]] 진은 마찬가지로 열차로 이동 중. 십걸들은 반역자들을 일소할 기회라며 즐거워한다.
          * 에리나는 점점 더 의미불명이라 혼란해하지만 쿄쿠세이 기숙사 첫날 "엄청난 발끼리 부딪혀 생각하지 못한 해답이 태어난다"는 말을 떠올린다.
          * [[타쿠미 알디니]]가 보여준 투지는 어 승부에 임하던 [[유키히라 소마]]와 개인적인 불안 때문에 집중하지 못했던 [[나키리 에리나]]를 각성시킨다. 둘은 진지하게 승부게 임하기로 하는데, 특히 에리나는 우선 리더인 [[사이바 죠이치로]]의 의향을 정확히 파악하는데서 시작하려 한다.
          * 문제는 죠이치로는 [[도지마 긴]]처럼 식적인 조리를 해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죠이치로는 만들라는 아쉬 파르망티에는 안 만들고 크레이프를 굽고 자빠졌다. 주변에선 갑자기 디저트라도 만드는 거냐고 난색. 에리나도 눈알이 뱅뱅 돌 정도로 고민해 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 에리나는 이 모양이면 제대로된 요리가 나올리가 없다며 번뇌한다. 이젠 소마의 생각도 전혀 읽을 수가 없어서 에리나는 반쯤 포기 태에 이른다. 그 순간 에리나는 발을 전환한다.
          그녀는 쿄쿠세이 기숙사에서 접했던, 소마와 동료들이 보여준 "엉망진창인 발끼리 부딪히는 걸로 생각지도 못했던 답이 나타난다"는 교훈을 되새긴다. 지금 소마와 죠이치로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막연히 서로를 배려하거나 보충해주는걸 넘어서 각자의 발을 일단 부딪혀보는 것으로 새로운 답을 만들려는 행동들인 것이다. 그것이 도지마와 다른, 사이바가 에리나와 죠이치로에게 부과한 "시험"인 것이다.
          * 이러는 사이 센트럴 측에서는 아자미가 연대식극의 세부 룰에 대해서 조율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한다. 그는 그들의 열차와 다른 열차들이 교차하는 어떤 지점에서 세부룰을 확정하고 딸 에리나에게서 자신이 바라던 대답을 듣겠다고 기대하고 있다.
  • 식극의 소마/227화 . . . . 13회 일치
          * 둘은 각기 다른 음식을 먹었고도 "소재의 에너지가 노도의 기세로 연속사출" 이라는 인적인 평을 같이하며 대단한 호평을 내린다.
          * 초반에 [[쿠가 테루노리]]의 탕수육을 아리송해 했던 [[안(식극의 소마)|안]]은 막 맛을 보고는 "너무 맛있어서 술에 더 취했다"는 정체불명의 평을 남긴다.
          * 샤름은 메기시마의 초밥을 먹기 전부터 당히 만족스러워 보인다. 불로 구운 초밥이 그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 메기시마의 라멘은 겉으로는 고추라는 주제를 어떻게 살린 건지 알기 어렵다. 이스트와르는 별첨된 빨간 테이스트가 고추 요소가 아닌지 짐작하며 신중하게 관찰한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짐작이 가능한 둘의 요리와 달리 쿠가의 요리는 문자 그대로 미지수. 앤은 취중에도 그 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중화 냄비로 튀기고 볶은 고기를 다시 훈재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 맛이나 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했는지는 먹어보지 않으면 전혀 예측이 불가능. 이제 이걸로 플레이팅에 대한 평가는 정리가 됐다.
          쿠가는 조용히 눈을 떴다. 그의 안에서 2년의 세월 동안 응어리쳐 있던 념이, [[츠카사 에이시]]에 대한 분노가 어떤 식으로든 끝날 때가 다가왔다.
          군함말이를 집어든 샤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함말이에 올라간 네기토로는, 사실 머렝이었던 것이다. 맛을 본 샤름은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를 발견했다. 훈제 간장이었다. 단지 쿠가에게 조력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게 아니었다. 최후의 어레인지를 위한 회심의 카드. 미마사카가 내놓은 어레인지 초밥은 "메추리살 노른자와 훈제 간장을 섞은 나카오치 군함말이"였다. 나카오치란 참치의 양쪽 살을 발라내고 남은 등뼈 부분의 살을 의미한다. 훈제 간장이 첨가된 밥과 김이 나카오치의 기름기와 만나 절묘한 향을 내고 그 위에 올려진 머렝, 메추리알 노른자, 파가 네기토로를 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식감을 연출한다. 샤름은 이것을 "궁극의 네키토로 메추라기밥 군함"이라 이름붙이고 싶다고 평했다. 예을 뛰어넘는 대호평. [[카와시마 우라라]]가 이를 갈면서 분해했지만 그녀 또한 미마사카의 초밥을 맛 봤기 때문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 이번엔 메기시마의 아프리칸 라면. 겉 보기엔 면에도 스프에도 주제인 고추의 요소는 커녕, 이름은 아프리카의 요소가 어디있는지도 알 수 없다. 짐작하자면 가운데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붉은 조미료. 과연 저것이 주제를 살리는 키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 메기시마는 그렇다고 자신했다. 그 조미료는 "하리사"라는 아프리카 특유의 조미료였다. 그가 직접 나서서 설명하길, 그 재료는 파프리카 파우더, 캐러웨이씨, 레몬 즙과 마늘 등 자극적이고 강렬한 소재들. 그리고 여기에 중심이 되는 것이 "대량의 고추"를 휘저어 페이스트 태로 만든 것이다. 여기까지 듣고나자 소마도 짚이는 데가 있었다. 분명 아버지 [[사이바 죠이치로]]가 쿄쿠세이 기숙사를 방문했을 때 같은 것을 만든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조리묘"라고 짤막하게 설명했을 뿐이지만.
          >이 세에 없던 라면을! 멋지게 만들어냈다!
          * 반론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호평 행진. 이제 관건은 안이 담당한 쿠가의 탕수육이었다. 시식 전에 안이 내키지 않아했던 인이 마음에 걸리는데.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절정에 도달한 안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런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안은 그렇게 주장했다. 좌우간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격찬이었다. 그건 말하자면 "흑초 탕수육"이었다. 흑초 소스가 발라져 장식물처럼 반짝이는 탕수육. 그걸 먹는 순간 숨겨져 있던 녹차의 강렬한 향이 시야를 신록으로 물들이는 극의 맛. 관건은 흑초 소스다. 발사믹 소스에 미마사카가 준 훈제 간장을 함께 졸여 향을 극대화했다. 쿠가는 기존 탕수육의 틀을 철저히 파괴하고 돼지고기 특유의 텁텁한 뒷막과 기름기를 신맛과 감칠맛으로 잡았다. 그 자리를 녹차의 향으로 채우면서 돋보이게 만들어 단연 요리의 주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 쿠가의 파격행보는 적과 아군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센트럴 측의 [[코바야시 린도]]는 "그 쿠가가 프렌치"라며 [[츠카사 에이시]]에게 놀라운을 표현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황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반역자 측에선 [[미토 이쿠미]]가 해볼만하게 됐다고 환호했다. 반역자 측에서도 한결같이 중화요리 전문인줄 알았던 쿠가가 이렇게까지 폭넓은 아이디어와 테크닉을 구사한 것에 감탄했다. 그건 전적으로 츠카사 에이시 때문이었다.
          >지금...... 이 이의 자극을 받았다간...
          단 위에서 소마를 내려다 보는 츠카사. 그를 노려보는 소마. 전광판에는 3 대 0, 반역자 측 선수 전원이 3 대 0으로 패한 처참한 스코어가 떠올라 있었다.
  • 식극의 소마/233화 . . . . 13회 일치
          * 숙소에 남아있던 [[쿠가 테루노리]]와 [[키노쿠니 네네]]가 로비에서 마주친다. 약간 껄끄러워하다가 쿠가가 입을 열고 네네는 쿠가에게 대회장에 안 가냐고 묻는다. 쿠가는 자기가 할 일은 다 했고 지금은 "뒷일은 젊은 애들끼리"라고 말하는데 네네는 그 말투가 중매쟁이 아줌마 같다고 생각한다. 쿠가가 그러는 네네야 말로 왜 호텔에 있냐고 멘탈이 두부라서 그러냐고 쏘아붙이고 네네는 "[[미마사카 스바루]]랑 같이 덤벼놓고 진 쪽이 더 불쌍"하다며 디스를 주고 받는다. 쿠가는 으르렁거리다 대가 [[유키히라 소마]]였던걸 후회하라며 그가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1학년이라고 추켜세운다. 네네는 의외로 그 말에 수긍하고 소마의 강함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패배 이후 뭔가 위화감을 느낀다면서 정말 소마는 보통 1학년인 거냐고 반문하는데, 진지한 네네와 달리 쿠가는 "이 땋은 머리가 뭔 소리야" 정도로 성가셔하고 있다.
          * [[나키리 아자미]]가 [[나키리 센자에몬]]을 대로 "토오츠키 92기는 센자에몬이 선별한 옥의 세대"라고 꼬집고 있는 동안, 식극회장에선 격전이 이어진다. [[타도코로 메구미]], [[타쿠미 알디니]] 그리고 소마는 환적인 호흡으로 호의 서포트와 자신의 조리를 완벽하게 양립해간다. 그 모습에는 대인 십걸 측도 꽤 인적인 듯, 심사의원 샤름, 이스트와르, 안도 오래 함께 한 숙련된 주방 같고 이정도 연계라면 십걸 측이 패널티를 진 걸 수도 있다고 극찬한다.
          * 타쿠미가 주재료인 소고기 조리에 들어가는데 얇게 채친 쇠고기를 참기름에 볶으며 물과 간장, 설탕과 채친 성강을 투입한다. 그건 일식의 조리법인데 [[사이토 소메이]]가 알아보고 [[시구레니]]를 만드는 거라고 설명한다. 생강을 더한 조림의 일종으로 농후하고 달면서도 생강의 강렬한 악센트가 포인트. 동생인 [[이사미 알디니]]는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관건일 거라고 첨언한다.
          * 타쿠미의 대인 [[에이잔 에츠야]]는 시구레니 조리부터 피자 도우 반죽에 이르는 타쿠미의 행보를 지켜 본 뒤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갑자기 회장을 빠져나가는데 필요한 재료를 늦었다며 다시 대형창고로 향한다. 하지만 그의 속뜻은 따로 있었다. 그는 타쿠미가 가을 선발에서 굴욕을 딛고 일어나서 훌륭히 "성장의 증명"을 보였다고 생각했다. 그 답지 않게 "요리사의 귀감"이라고 내심 칭찬하는데. 그 칭찬은 또 다시 패배할 타쿠미에 대한 유감의 표시였다.
         == 세 ==
          숙소에서 쉬고 있다가 카페가 가려고 로비로 나왔더니 쿠가 테루노리랑 마주쳤다. 본래 친분이 있었지만 적이 된 사이고, 전날 사이좋게 패배한 판이라 꽤 어색해한다. 쿠가하고는 서로 멘탈이 약하다고 디스를 퍼붓는데 쿠가가 문득 유키히라의 강함에 대해 입에 올리자 그걸 인정한다. 그런데 그의 강함에는 위화감이 있다며 그가 정말 보통 1학년이냐고 반문하는데, 진지한 태도의 네네와 달리 쿠가는 되게 성가시게 여긴다.
          태평하게 목욕하고 마사지 기계 위에서 뒹굴다 네네와 마주쳤다. 서로 대회장에 못 간걸 멘탈이 무너져서 그렇냐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쿠가가 먼저 "소마가 대였던걸 후회해라"며 소마를 추켜세우는 발언을 한다. 의외로 네네가 거기에 수긍하면서 소마의 강함에 대한 걸로 화제가 넘어가는데, 그녀가 정말로 보통 1학년일 뿐이냐고 묻자 "이 땋은 머리가 뭐래는 거냐" 정도로 가볍게 반응한다.
          타쿠미가 놀라운 성장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는 동안 수한 음모를 꾸며냈다. 잊은 재료가 있다며 대형창고로 돌아가는데 뭔가 공작을 펼치려는 의도인 듯. 그러면서 타쿠미의 성장은 자신도 인정하며 요리사의 귀감이라고 극찬하지만 그 긍지가 또다시 무너질 거라며 그의 패배를 자신한다.
  • 신년선물연하장엽서 . . . . 13회 일치
         연하장 엽서와 [[복권]]을 결합한 것과 비슷하다. 엽서에 일련번호가 붙어 있어, 당첨이 발표되면 일련번호에 맞는 엽서를 소지한 사람이 소정의 품을 받을 수 있다.
         1949년 교토에 거주하는 민간인 하야시 쇼지(林正治, 당시 42세)가 "연하장이 전쟁 전처럼 부활한다면 좋겠다. 품추첨을 더하면 연하장을 활발하게 보내서 서로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좌절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도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연하장에 품추첨을 더하고, 요금에는 기부금을 추가하여 사회복지에 공헌한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하야시 쇼지는 스스로 견본 엽서와 선전용 포스터를 만들어서, 우정성(郵政省)에 가지고 갔으며, 우정성 내에서 회의를 거쳐 채용이 결정되었다. 우정성에서 발매한 이 연하장 엽서는 매우 크게 히트하여 수십년동안 이어지는 전통 품이 되었다.
         연하장의 품은 매년 조금씩 바뀌었는데, 제1회 신년선물연하장엽서의 품은 특등으로 [[재봉틀]], 1등으로는 순모옷감, 2등으로는 학생용 장갑, 3등으로는 학생용 우산이었다. 1966년에 특등이 폐지되고 1등이 최고으로 바뀌었으며, 1956년에는 전기세탁기, 1960년에는 발포 고무 매트리스, 1965년 이후로는 휴대용TV나 8밀리 촬기, 사기 세트, 1984년에는 전자레인지, 1986년에는 비디오테이프레코더 같이 서민들이 손에 넣기에 약간 어려운 품들이 주류였다. [[헤이세이]] 이후로는 해외여행, 최신식 TV, PC 등 몇가지 가운데 1가지를 선택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또 2등 역시 고향소포(ふるさと小包)라 하여, 각 지방의 여러가지 특산품 가운데 1가지를 고르는 것이 되었다.
  • 알천 . . . . 13회 일치
         [[신라]] [[선덕여왕]]·[[진덕여왕]], [[태종무열왕]] 때의 진골 귀족으로 [[화백회의]] 의장인 [[대등]](上大等)을 역임하였다. 진덕여왕 사후에는 [[대리청정]]([[섭정]])으로 추대되었으나 [[태종 무열왕]] [[김춘추]](金春秋)에게 양보하였다. [[진주 소씨]]는 알천을 자신들의 조으로 보고 있다.
         진덕여왕이 즉위한 647년 2월에는 [[비담]]의 뒤를 이어 대등에 올라 국정을 담당하였다.
         654년 [[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대소신료들은 [[대등]] 알천에게 섭정을 청하였다. 이에 알천은 "저는 늙고 이렇다 할 덕행이 없습니다. 지금 덕망이 높은 이는 춘추공이니, 세을 다스릴 뛰어난 인물입니다."라 답하며, 김유신과 논의하여 [[김춘추]]를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ref>[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yoljunDetail?url=yoljundetail&sn=946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bonkiDetail?url=bonkidetail&sn=476 삼국사기 태종무열왕조] </ref>
         족보는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한 이후, 알천의 공로를 가히 여겨 소벌도리를 문열왕(文烈王)에 봉했다고 전한다. 태종무열왕 3년에 알천은 선조 소벌도리가 꿈에서 지목한 진주 도사곡((塗斯谷, 현재 진주시 [[대동 (진주시)|대동]])으로 이주해 일가를 이뤘다. [[조선]]시대 중기 홍문관, 예문관의 [[대제학]]을 역임한 문신 양곡 [[소세양]]과 사간원 [[대사간]]을 지낸 문신 곤암 [[소세량]]은 그의 먼 후손이었다. 묘소는 [[경남도]] [[진주시]] 대동 선학산록(仙鶴山麓)에 안장되었고, 사후 대각간(大角干)을 지낸 [[김인문]](金仁問)이 그의 비문을 찬하였으나 실전되었다. 그 뒤 1977년 전국 소씨 종친회에서 비석을 재건하였다.
         [[분류:삼국 시대]][[분류:신라의 왕족]][[분류:신라의 귀족]][[분류:신라의 군인]][[분류:신라의 문신]][[분류:신라의 무신]][[분류:한국의 섭정]][[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각간]][[분류:생몰년 미]][[분류:경주 김씨]] <!-- 대등은 진골귀족만 가능 -->[[분류:진주 소씨|*]] <!-- 진주 소씨 측 주장 -->[[분류:신라의 불교 신자]]
  • 앙주 제국 . . . . 13회 일치
         플랜태저넷 왕조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그 자식들은 [[리처드 1세]], [[존 왕]]이 다스린 토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 토는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 [[노르망디]], 그리고 프랑스 서부 아퀴텐 지방을 거쳐서, [[피레네 산맥]]에 도달하는 방대한 토였다. 앙주 제국이라는 표현은 당대에는 쓰이지 않았으며, 근대에 이 시기 플랜태저넷 왕조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앙주 제국은 잉글랜드 왕령과 프랑스 내의 여러 공작령, 백작령이 속과 혼인을 통하여 [[동군연합]]을 이룬 것으로서, 각 지역의 통치체계는 당히 달랐고 한 명의 군주 아래 동군연합일 뿐, 실제로 하나의 '제국'이라는 명칭을 쓰지는 않았고 '제국'이기는 커녕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지도 않았다.
         흥미롭게도 이 당시 앙주 제국의 군주들은 프랑스 역 내에서 [[프랑스 왕]]을 압도할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프랑스 왕에게는 봉신이라는 입장이었다. 이는 대체로 "국 왕은 프랑스 왕의 신하였지만, 프랑스 왕보다 세력이 컷다."고 간단하게 정리된다.
         다만, 엄밀히 말하면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 왕'과 '동격'인 왕이다. 단지 그 '잉글랜드 왕'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프랑스 내 작위'에 따라서 프랑스 왕의 권위에 대한 의무를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프랑스 내부'에만 국한되는 것이며, '프랑스 외부'에 해당하는 잉글랜드 토에 대해서는 프랑스 왕은 간섭할 권리가 없었다.
         헨리 2세 시기에 성립. 헨리 2세 사후에는 후계자 분쟁을 겪었으며, 리처드 1세, 존 왕을 거치게 된다. 존 왕이 필리프 2세에게 공격받아 대부분의 토를 빼앗기고, 앙주 제국은 해체된다.
         앙주 제국은 한 명의 군주 아래에서 통치되었으나, 각 토의 정치나 행정은 분리되어 있었으며 그 양은 지방에 따라서 여러모로 다르게 나타났다. 군주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높고 대표적인 지위는 '잉글랜드 왕'이었지만, 실제로 왕실에는 문화적으로 국화된 측면은 거의 없어 여러모로 '잉글랜드 왕'이라기 보다는 '프랑스 귀족'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앙주 제국의 군주들은 왕실 용어로서 [[프랑스어]]를 썻으며, 통치시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프랑스]]에 주로 머물렀고, [[국]]을 방문한 기간은 극히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
  • 애로우 . . . . 13회 일치
         주인공. 도시를 지키는 웅이다. 본래 방탕한 생활을 보내던 부자집 아들이었으나 아버지를 잃고, 중국 모처의 섬 --군대 갔다오고-- 리안 유에서 가혹한 생활을 보낸 뒤 각성하여 아버지의 수첩을 따라 도시의 부패한 자들을 처단하면서 웅으로서의 활약을 시작한다.
         무기는 [[활]]과 [[화살]]이며 화살의 경우 통의 화살 외에도 코믹스에서만큼은 아니나 트릭 화살을 쓴다. 궁술 외에도 전투실력이 뛰어나다.
         초기에는 웅이라기보다는 복수자에 가까운 인물을 보이지만, 점차 자신만의 정의감을 찾아가게 된다. 로럴, 사라, 팰리시티 등 연애전선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전처럼 난봉꾼은 아니지만 약간 썸만 타다보면 뿅뿅씬이 나와주는(…) 매력남.
         어머니가 집에 돌아온 올리버의 경호원으로 붙여준 전직 특수부대 출신 경호원. 시즌 초창기에는 올리버가 자신의 비밀 활동을 위해서 따돌리고 다니는 대이었지만, 나중에 비밀을 알게 되고 팀 애로우에 가담한다. 특수부대 출신 답게 무술과 사격이 뛰어나며,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 올리버의 오른팔로 활동한다. 내연녀였던 아내는 아르거스에 근무하고 있어서 인맥도 출중. 처음에는 특별히 코드네임이 없었지만, 헬멧을 쓰게 되고 스파르탄이라는 코드네임을 쓰게 된다.
         올리버의 여동생. 올리버와 아버지가 실종된 뒤, 미성년이면서도 음주와 마약에 빠져서 방황하는 나날을 보냈으며 올리버가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사고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가 나이트 클럽 경을 시작하고, 점차 철들고 강인한 여자로 성장한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사실 올리버와는 씨다른 남매로서 그 아버지는 무려 말콤 멀린(…). 3시즌에서 말콤에게 단련을 받게 되며, 올리버의 정체를 알게 되고, 팀에 들어오게 된다.
         배우는 [[슈퍼맨 리턴즈]]에서 슈퍼맨 역할을 맡았던 브래던 라우스.--슈퍼맨에서 아톰으로 강등.--[* 배우 개그로, 플래시에서 크로스오버 출연 했을 때, 날아다니는 아톰을 보면서 "새인가? 비행기인가?"하는 슈퍼맨 패러디 대사가 나온다. 슈퍼걸이 애로우버스에 끼어들고 그쪽 슈퍼맨도 같은 세계관에 들어오게 되면서 뭔가 난처해졌다(…).] 스스로 개발한 아톰 아머를 입고 다니며, 당히 뛰어난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아톰 아머는 이후 확대, 축소 기능도 얻는다.
         퀸 코퍼레이션을 인수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팔머 테크의 사장. 뛰어난 과학기술력을 자랑하는 천재 미남 사업가. 가볍고 밝으며 허당스러운 성격이다. 3시즌에서 팰리시티를 사이에 두고 올리버와 삼각관계를 연출하지만, 이미 올리버는 팰리시티에게 마음이 있어서 성공하지 못한다. 라스 알 굴의 음모 때문에 애로우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여 적대시 하며, 자신이 개발한 아톰 아머를 입고 애로우와 대결하지만 팰리시티의 설득으로 올리버가 누명을 썻다는 것을 알게 되고, 팀 애로우에 합류하여 아톰으로서 올리버를 돕게 된다. 팰리시티와 잠시 연인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팰리시티는 올리버와 맺어지게 되면서 차인다.
         3시즌에서는 폭발 사고로 사망한 줄 알았으나, 4시즌에서 연구하던 기술의 부작용으로 몸이 축소되어 악당들에게 납치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올리버 일행에게 구출된다. 자신이 사망하고 돌아왔으나 별로 세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 때문에 자신의 이제까지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웅으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뭔가 큰 일을 해보고자 결심하고 타임마스터 립 헌터를 따라 시간여행에 나서면서, 레전드 오브 토모로우로 전출되었다.
         레전드 오브 토모로우에서도 어째 고난의 연속이다. 미래 세계에서 아톰 기술이 반달 새비지가 후원하는 독재자에게 접수되어 아톰형 로봇이 독재자의 경찰로봇으로 쓰이질 않나, 자신의 업적이 몽땅 자신의 형편없는 동생이 이룬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질 않나(…), 호크맨이 사망한 뒤 과거 세에서 고립되었을 때 호크걸과 연인이 되지만 호크맨이 부활[* 엄밀히 말하면 미래에 환생한 호크맨]하면서 좌절(…)하질 않나.
         말콤의 아들. 올리버의 베프. 1시즌에서 사망. 그러나 이후로도 가끔 과거회 등에서 나온다.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13회 일치
         임무를 플레이 할 때, 노란색으로 표시된 타겟을 볼 수 있다. 이 타겟들은 중립 타겟이다. 전투 능력을 실하고 도망가는 적기, 적이 보급품을 보관한 창고 등이 중립 타겟으로 표시된다.
         스타일 미터 왼쪽 부분은 용병(Mercenery) 스타일, 오른쪽 부분은 기사(Knight) 스타일, 용병과 기사 사이의 중간 부분은 병사(Soldier) 스타일로 칭해진다.
         벨카 공국은 경제적 파산으로 인해 우스티오 공국 같은 몇몇 국가를 독립시켰다. 그럼에도 벨카의 경제 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극우파가 집권한 벨카는 우스티오에서 발견된 천연자원을 자국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우스티오를 침공했다. 이것이 "벨카 전쟁"의 시작이었다.
          * 사이퍼(Cipher)
          이 게임의 플레이어이자 주인공. 사이퍼는 TAC 네임이며, 이름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TAC 네임 픽시. 사이퍼의 윙맨으로 [[F-15|F-15C]]를 사용한다. 날개 하나를 잃은 채로 기지로 귀환한 전적이 있기에 "편익"(Solo Wing)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우스티오에 고용되어 벨카 공군을 대로 싸우지만 폴크 자신은 벨카 출신.
          벨카 공군 제13야간전투항공사단 6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MiG-31]]로 이루어진 슈바르체 편대의 편대장으로 "[[독수리]]"[* Vulture. 간지나는 독수리가 아니라 시체나 파먹는 이미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유크토바니아인이면서도 벨카군에 소속되어 있다. [[탈]]한 아군 조종사를 쫓아가 격추시키는 일을 맡았기에 악명이 자자했다.
          벨카 공군의 에이스 조종사. 부의 명령에 불복종해 [[MiG-21|MiG-21bis]]을 타고 B7R로 도망친다.
          오시아 방공군[* 사실 공군. 오시아의 군대 정식 명칭에는 Defence가 붙어있다.] 제8항공사단 32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YF-23]]과 [[F-16|F-16XL]]로 이루어진 위자드 편대의 편대장.
          오시아 방공군[* 사실 공군. 오시아의 군대 정식 명칭에는 Defence가 붙어있다.] 제8항공사단 32전술전투비행대대 소속. [[F-15|F-15S/MTD]]로 이루어진 소서러 편대의 편대장. 적에게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자.
          이 게임의 화자. 벨카 전쟁 당시 기록을 뒤져보다가 사이퍼에게 흥미가 생겨 당시의 조종사들을 인터뷰하게 된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이 사람이 찍은 다큐멘터리라는 설정.
          우스티오의 수도. 스토리 시작 당시에는 벨카군에게 점령된 태다.
  • 오유나 . . . . 13회 일치
         {{화인 정보
         | 배우자 = 한
         | 수 =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vyulha_oh}}<br>{{싸이월드|62259015|오수민}}<br>{{트위터|ssumin2|오수민}}
         * [[2006년]] [[SBS]] 아침연속극 《[[맨발의 사랑]]》 ... 이화
         * [[2013년]] [[tvN]] 판디컬 드라마 《[[환거탑]]》 ... 이윤희 역
         * [[2015년]] [[SBS]] 특집드라마 《[[에이스 (드라마)|에이스]]》 ... 오아
         === 화 ===
         * [[2002년]] 《[[가문의 광 시리즈|가문의 광]]》 ... 연수 역
         * [[2012년]] 《[[반창꼬]]》 ... 지
         * [[2014년]] 《[[열애 (2014년 화)|열애]]》 ... 윤서 역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욕창 . . . . 13회 일치
         압박 때문에 피부에 혈액이 흐르지 않게 되어, 그 부분에 [[궤양]]이 일어나서 손되는 태. 스스로 몸의 방향이나 위치를 바꿀 수 없는 사람에게 자주 생기며, 특히 [[노인]]에게 많이 일어난다. 뼈가 돌출되어 피부에 압박이 가기 쉬운, 허리, 엉덩이, 발 뒷꿈치, 발목, 팔꿈치 등이 욕창이 생기기 쉬우며, 침대, 휠체어, 깁스, 부목 등이 피부에 압박을 가하는 지점에도 발생하기 쉽다.
         피부의 혈류가 줄어들거나 멈추면, 피부가 가장 바깥쪽 표피부터 죽어가게 된다. 죽은 피부 조직이 터져서 처가 생겨 [[궤양]]이 발생한다. 가려움과 통증을 동반하지만 신경이 둔해졌거나 마비된 사람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붉게 염증이 생기다가, 피부가 손실되어 표피가 떨어지거나 물집이 잡힌다. 다음 단계에서는 피부 전층이 손되어 [[피하지방]]에 도달하고, 최종저으로 그 아래에 있는 [[근육]], [[힘줄]], [[뼈]]까지 노출된다.
         정인은 자고 있는 동안에도 무의식중에 몸의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욕창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비]] 태, [[혼수]] 태에 있거나, 매우 쇠약한 사람, 구속된 태에 있는 사람은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욕창이 생기기 쉽다. 피부가 당겨지거나, 마찰을 일으키거나, 습기에 장기간 노출되는 경우도 나타나기 쉽다.
         [[양실조]] 역시 욕창의 원인이 되는데, 쿠션이 될 수 있는 [[지방]] 층이 줄어들고, 양이 부족해서 피부의 재생 기능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노인은 피부가 얇아지고, 지방과 근육이 줄어들며, 혈관은 찢어지기 쉬워져서 욕창이 생기기 쉽다. 또 처의 치료 속도가 느린 것도 욕창이 발생하기 쉬운 원인이 된다.
         매일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서 몸의 위치나 방향을 바꿔주고, 피부가 압박되어 변색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경우에는 체위를 1,2시간에 한 번 정도 바꿔줘야 한다. 습기가 있으면 욕창이 생기기 쉬우므로 깨끗하고 건조한 태를 유지해줘야 한다. 특정한 도구나 쿠션으로 압박을 줄여주는 방법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압박을 없애면 자연 치유가 된다. 처 부위에는 드레싱을 하며, 죽은 조직을 제거하고 소독한다. 깊은 욕창은 치료가 어려워서 수술을 하기도 한다. 감염이 일어나면 [[항생제]]를 투입한다.
  • 원피스/869화 . . . . 13회 일치
          * 벳지는 빅 파더 태에서도 대포를 쏘며 빅맘을 노리나 [[샬롯 페로스페로]]가 만든 사탕 배리어에 막혀 실패.
          * 카타쿠리가 젤리빈즈를 난사한다. 기관총 세례를 받은 것처럼 쓰러지는 벳지의 부하들. [[샬롯 스무디]]는 뒤처져 있던 [[나미(원피스)|나미]]를 붙든다. [[캐럿(원피스)|캐럿]]과 [[쵸파]]가 나미에게 눈을 돌린 사이 [[샬롯 다이후쿠]]가 마신으로 캐럿을, [[샬롯 오븐]]이 쵸파를 잡는다. 루피가 그걸 인지했을 땐 이미 너무 먼 거리였다.
          * 구속에서 해방된 빈스모크 일가. 그리고 [[디]]. 아직 그들이 묶였던 테이블이다. [[샬롯 페로스페로]]가 이들과 대치. 그는 다시 한 번 모조리 사탕으로 묶어버리려는 모양이다. 디는 테이블 위에서 아버지 [[빈스모크 저지]]를 내려보며 말 없이 가보라고 손짓 한다. 자존심이 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저지. [[빈스모크 이치디]]는 나미 일행이 갖다 준 레이드 슈츠를 들여다보다 [[빈스모크 니디]]와 고개짓을 주고받는다. 빅맘 해적단이 빈스모크 일가에게 다시 총구를 들이 댈 때, 그들은 레이드 슈츠가 담긴 캡슐을 벨트에 장착한다. 변신.
          레이드 슈츠를 장착한 빈스모크 일가에겐 아무 공격도 먹히지 않았다. 빅맘 해적단의 열매 능력자가 불꽃세례를 퍼부었지만 조금의 타격도 없이 건재. 레이드 슈츠는 제르마 왕국의 과학 기술력 결집체인 형기억합금 아머. 페로스페로도 그 가공할 방어력에 감탄한다. 더 늦게 전에 사탕으로 굳히려 들지만 속도에서 따라갈 수가 없다. 이치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와 반격한다. 니디는 오븐을 요격해 쵸파를 해방, 레이쥬가 스무디에게 독공격을 퍼부어 나미를 놓치게 한다. 욘디는 다이후쿠의 마인을 간단하게 제압, 그 틈에 캐럿도 풀려난다.
          * 디는 스무디가 떨어뜨린 나미를 안전하게 캐치. 그대로 빅 파더를 향해 달린다. [[샬롯 푸딩]]은 그가 활짝 웃는 얼굴로 동료들과 합류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본다. 제르마도 추격을 저지하며 일단 빅 파더로 향한다.
          * 이제 해적동맹은 빅맘 해적단에 둘러싸인 채 괴로운 "농성전" 태로 돌입했다. 빅맘 측은 느긋해졌다. 어차피 퇴로의 퇴로까지 차단해버린 마당이니 서두를게 없다. 한숨 돌리며 황을 정비한다 페로스페로는 나오는 순서대로 처리할 생각으로 즐거워한다. 카타쿠리는 브륄레를 풀어주며 이제껏 이용당한 부분을 질책한다. 브륄레는 억울하다고 항변. 스무디는 레이쥬에게 당한 독을 짜낸다. 잠깐 교전했지만 성가신 대라 생각한다.
          * 빅 파더 안, 해적동맹은 절망적인 황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황의 심각성을 이해한 인물이 없다. 벳지의 부하 비트 조차도 레이드 슈츠를 착용한 제르마에 정신이 팔려있다. 루피와 쵸파는 빅 파더에 꽂혀서 환호, 시저는 KX런처의 유폭에 대해 변명하기 급급하다. 벳지가 보기엔 속이 터진다. 벳지는 빅 파더에 환호하는 루피를 쏘아붙인 뒤 작전은 실패했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토로한다. [[브룩]]은 "과연 사황은 격이 다르다"고 감탄, 한가하게 차나 홀짝인다. [[징베]]가 앞으로 대책을 붙지만 솔직히 그런건 없다. 벳지는 빅 파더는 자기 자신이며 충분히 튼튼하지만 무적은 아니라고 선언한다. 성이 파괴되면 당연히 벳지도 죽고 일행은 바깥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 뒤는 그저 학살.
          겁많은 나미와 쵸파가 당장 울먹거린다. 디는 말없이 담배를 태우는데 전념한다.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 시저가 또 자기 탓이 아니라 지루한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벳지가 피를 토한다.
  • 위의공 . . . . 13회 일치
         학을 과도하게 애호하였던 황당한 일화 때문에 암군(暗君)으로 평가받는 인물. 스스로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나라도 멸망시켰으니 암군이라 불릴 만 하다. 다만 절망적인 황에 몰려도 적족과의 전투에서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죽은 것 때문에 그나마 마지막 용기는 있었다고 평가된다.
         위(衛)는 [[삼감의 난]] 이후 구 나라 토를 반분하여, 송(宋)과 함께 은의 유민을 나눠서 지배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본래 나라의 수도였던 조가(朝歌)를 수도로 하였으며, 주 무왕의 동생 당숙(康叔)이 백(伯)으로 봉해져 유력 희성 제후국[* 주 왕실의 인물이 분봉된 국가. 주왕실의 성이 희(姬)였기 때문에 희성(姬性)의 제후국이라 한다.]으로 출발하였다.
         건국부터가 구 나라+주왕실 유력왕족으로서, 당히 권위가 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실제로 위는 춘추시대 초기는 주요 유력국가로서 공(公)을 칭할 정도[* 후대에는 아무나 공을 칭하지만, 본래는 공(公)도 매우 권위 있는 칭호였다.]의 강국이었다. 비록 위의공 시대에는 그 위세가 좀 쇠퇴하였으나, 그렇다고 해도 제후국들 가운데서 중급, 급 이의 국력[* 춘추시대 초기에는 100개가 넘는 제후국이 있어 후대에는 이름도 모르고 역사도 불명한 작은 제후국도 많았다. 이 당시는 위나라는 크고 강력한 국가 축에 들었음은 분명하다.]을 가진 유력 제후국이었던 위나라가 '''이민족에게 갈려나가버리고 군주가 시체도 못 챙길 정도'''로 처참하게 패망했다는 것은 당대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민족인 적(狄)에 의한 위나라의 멸망은 이 당시 다른 어떤 제후국 또한 단독으로 대항해서는 이민족의 침공을 이기지 못하고 위나라와 같이 비참하게 멸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걸 보여주고 있다.[* 위의공이 도가 지나친 암군이었다는걸 감안한다고 해도, 다른 제후국들 역시 그 같은 암군이 집권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고(…)] 잘못하면 중원 문명국들이 이민족에게 각개격파-병탄 당하여 [[황하 문명]]이 [[인더스 문명]]처럼 땅 속에 묻히는(…) 황이 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황을 방지하기 위한 회맹-제후연합군을 구성하여 이민족과 대항하는 집단안보체계는, 과거 [[주나라]]가 주도하였으나 춘추시대가 개막하고 주나라의 권위가 실하면서 붕괴하였다. 따라서 새로운 권위로 제후국들의 '연합군'을 만들어서 질서를 바로 잡을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황에서 부국강병 정책을 펼치던 제나라의 [[제환공]]이 주도하여 위나라를 재건해줌으로서, 주 천자의 권위를 대신하여 이러한 집단안보체계를 주도하는 '패자'의 시대가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결국 제환공의 패업의 발판일 뿐이라는 뜻인데 장대하게 썼다.--
  • 유태웅(탤런트) . . . . 13회 일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귀국한 이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로) 에서 성장했다. [[1993년]] [[SBS]]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에 단역 출연해서 연기자 첫 데뷔를 했고 이듬해인 [[1994년]] [[문화방송|MBC]] 23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다.[* MBC 23기 공채탤런트 동기로 [[이현경]], [[최지우]], [[이민]], [[윤용현]], [[안재욱]]이 있다.] 2003년에는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유지광(야인시대)|유지광]] 역으로 열연했다.
         || [[1998년]] || [[KBS1]] || 일요베스트[br]아파트에 비이 걸렸다 || || ||
         || [[1999년]] || [[MBC]] || [[아름다운 선택]] || 허 || ||
         || [[2005년]] || [[KBS1]] || [[불멸의 이순신]] || [[이남]] || ||
         || [[2006년]] || [[KBS2]] || 그 여자의 선택 || 나규 || 주연 ||
         || [[2007년]] || [[KBS2]] || [[KBS 드라마 스페셜|드라마시티]][br]기억실증에[br]걸린 저승사자 || 웨딩 매니저 || ||
         || [[2008년]] || [[KBS2]] || 살아가는 동안 후회할 줄[br]알면서 저지르는 일들 || 김호 || ||
         === 화 ===
         || [[2017년]] || [[마차 타고 고래고래]] || 모터사이클 남 || 우정출연 ||
         == 수 ==
          * [[1997년]] [[MBC]] 연기대 신인
          * 골프와 스키와 수과 검도에 취미가 있으며, 카레이싱도 수준급이고 아마추어 복싱 헤비급 신인왕을 차지했다. 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한다.
  • 은혼/599화 . . . . 13회 일치
          * 이러한 위기 황 속에서 양이지사의 저항책은
          * 긴토키가 자기 식판을 가지고 "지구가 고로케고 그 주위에 뿌려진 메이플 시럽이 해방군이며 중앙에 꽂힌 빼빼로가 우츠로"라는 식판도 황도 정신나간 비유를 들면서 혼란으로 치닫는다.
          * 무츠는 일견 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고로케에 대한 얘기다.'''
          * 이 개판을 벌인 당사자인 다츠마와 가츠라는 마치 제정신인양 황을 정돈한다.
          * 그 사이 가구라는 그의 고로케에 타바스코와 마요네즈 세례를 끼얹는데
          * 이이 기념할 만한 해방군과 장군 노부노부 측의 첫 대면이다.
          * 가츠라는 지구의 황을 묻고 신파치는 "이쪽이야 말로 진짜 스타워즈"라며 소식을 전한다.
          * 사이고는 과거 양이전쟁 시절의 경험으로 만만찮은 싸움이 될 것임을 예견한다.
          * 이의 사실을 전하며 결코 지지않겠다는 의지를 해방군에게 전해달라고 말하는 신파치.
          * 노부노부의 모델은 도쿠가와 요시노부. 실제 역사으로도 도쿠가와 정권을 끝내고 메이지 정부로 권력을 이양한 인물이다. 대세를 잘 읽은 인물이라는 평과 정권을 말아먹은 인물이라는 평이 혼재된 편.
          * 노부노부의 선역화는 이런 반된 평가를 절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사이고가 양이전쟁 시절 지로쵸를 언급. 역시 재등장 떡밥으로 보인다.
          * 야토족이 전부 가구라처럼 폭식을 하는지는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었는데 무츠가 가구라 이으로 폭식을 해대면서 "야토족 자체가 폭식을 한다"는 쪽으로 확인됐다.
  • 은혼/607화 . . . . 13회 일치
         [[은혼]] 607훈. '''티셔츠의 T는 타마시(혼)의 T'''
          * 공에서는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가 이끄는 구 막부파 병력과 해방군이 대치 중
          * 바주카로 해방군 지군을 날려버리는 야마자키 사가루.
          * 그가 말하길 모든건 보이는 데로라며, 진선조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에도를 지키고자 하는 혼도 의지도도 그대로.
          * 이 와중에 오키타는 히지카타의 금연을 방해하며 괴롭히고 가구라는 여기에 "세이 멸망할 판인데 혼자 오래 살겠다고 금연하냐"고 디스를 날린다.
          * 황이 고릴라판이 되었는데도 진선조 대원들 얼굴에선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 히지카타는 뭘 실실 웃고 자빠졌냐며 황 파악이 됐냐고 갈군다.
          * 황 파악은 진작 끝났다고 대원들이 답한다.
          * 터미널이 무너졌고 마을도 파괴됐지만 이 거리엔 처 하나도 없다.
          * 공에선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의 구막부군 함대와 해방군 함대가 대치 중.
          * 같은 시각 지에서도 어떤 남자가 이들의 대치를 지켜보고 있는데.
          * 에도의 빌딩 옥 곳곳에선 닌자들이 연막을 피워올리고 있다.
          * 사루토비 아야메는 누군가에게 황을 보고 하고 있는데.
  • 은혼/620화 . . . . 13회 일치
          * 설으로 신라의 부대가 옥에 있던 [[시무라 타에]]와 스마일 아가씨들을 제압, 인질로 삼는다.
          * 근데 그들의 뒤에서 [[오토세]]여사가 [[히라가 겐가이]] 감을 데리고 나타나는데.
         >세계가 어찌되든 관없다.
          * 츠쿠요는 이 싸움이 끝나면 "사신유녀"와 "야규가 차기당주"가 사이좋게 "브띠끄"에 가지 않겠냐고 하는데 큐베는 "그런것 보다 핫케이크를 먹으러 가고 싶다"고 대대답한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우가이의 철괴가 큐베를 덮친다.
          * 쓰러진 것 같았던 오우가이가 어느 새 기력을 되찾고 있다. 그는 "나의 뿔을 부러뜨리는 녀석이 또 나올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리검이 뿔을 꺾으면서 날이 해 버렸고 그 탓에 두개골을 관통하지 못했다.
          * [[시무라 신파치]]는 터무니없는 괴물이라며 경악하는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옥에서 통나무를 떨어뜨리던 스마일의 아가씨들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시무라 타에]]를 포함해 옥에서 항전하던 여자들은 신라의 [[소타츠]]가 인질로 잡았다. 신라 부대는 다키니가 적과 교전하는 사이 가부키쵸에 잠입, 이미 네오암스트롱제트사이클론암스트롱 겐가이포를 정지시켰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주요 기능은 정지된 태였으며 통신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이걸 만든 기술자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소타츠는 여자들을 인질로 내세워 전쟁은 끝났고 겐가이포를 만든 개발자를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오우가이는 잘난듯이 떠들지만 결국 여자를 대로 뒤에서 기습이나 한 꼬라지다.
  • 이나경(배우) . . . . 13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 평화동 (평화시장1길)
         | 수 =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nayanayalee|나야}}
         |2016||SBS||[[아임 쏘리 강남구]]||차화||
         === 화 ===
         |2009||[[전우치 (화)|전우치]]||선녀들||
         |2016||[[인천륙작전 (2016년 화)|인천륙작전]]||여가수||
         |2018||[[검객 (화)|검객]]||화선||
         [[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모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생년 미]][[분류:살아있는 사람]]
  • 이만섭 . . . . 13회 일치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하지만 [[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은 [[1987년]] [[10월]]부터 소속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여 [[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며 점차 와해되기 시작했고 다음 해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제13대 총선]]에서 본인을 비롯하여 모두 낙마하였다. 이후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였고 이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그 후 [[민주자유당|민자당]]의 임고문을 거쳐 [[신한국당]]의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다시 당선되었다.
         8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이 중 4번은 [[비례대표제|전국구]]로 당선되었고, 3번은 2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 제도로 당선되었으며, 3번의 중대선거구 당선 중 2번은 2위로 당선되었다. 즉 8번의 국회의원 당선 중 대부분은 유권자의 직접적인 정치적 의사를 반하지 않은 결과로, 전국구 및 중대선거구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만섭의 사례가 인용되기도 하였다.<ref name="신동아_01_9">[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109/politic04.html 비사·全國區 39년], 《신동아》, 2001.9.</ref>
         == 훈 ==
         * [[2011년]] 제3회 대한민국 법률대 입법부문 수
         * [[2011년]] 제6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 [[오협]] - [[2005년]] ([[웅시대]]), [[MBC]] 드라마
         |전임자 = [[김배 (1932년)|김배]]
         |후임자 = (중구·서구)이만섭·[[한병채]]<br />(동구·북구)[[김용태 (1936년)|김용태]]·[[목요]]
         [[분류:대한민국의 국회의장]][[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최규하 정부]][[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분류:김삼 정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김대중 정부]][[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륜중학교 동문]][[분류:한국국민당 (1981년) 당원]][[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국민신당]][[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윤치]][[분류:김종필]][[분류:동아일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1932년 태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합천 이씨]]
  • 이영은(1982) . . . . 13회 일치
          * [[배우/한국]], [[불교/인물]], [[경북도/인물]]
         ||<:> 이름 ||<(> 이은 ||
         ||<:> 출생 ||<(> 1982년 8월 9일 0시 20분 [[경북도]] [[김천시]] 다수동 (새동네길) ||
         특이하게도 연예계 엄친아, 뇌섹남으로 통하는 송중기(산부인과). 이윤(미우나 고우나). 하석진(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과 대역으로 호흡을 다 맞춰본 유일한 여배우다.
          * [[논스톱4]] - 이은 역
          * [[미우나 고우나]] - 황지
          * [[산부인과(드라마)|산부인과]] - 김미 역
          * [[당신이 잠든 사이]] - 오신
          * [[더 이은 못 참아]] - 황선주 역
         === 화 ===
          * 여름,속삭임 - 조 역
  • 일곱개의 대죄/189화 . . . . 13회 일치
         [[일곱개의 대죄]] 제 189화. '''웅, 서다'''
          * 부활한 멜리오다스. 이전과 바뀐 것은 없어 보이는데. 엘리자베스를 대로 섹드립을 치다 자라트라스가 끼어든다.
          * 하지만 이것은 협공으로 그녀가 시간을 끄는 사이 몬스피드가 "회신룡"으로 공격한다.
          *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생각해도 이했는지 허둥댄다.
          * 데리엘은 의식은 돌아오지만 복부에 치명을 입었다. "어둠"으로 치료하지만 체력은 많이 떨어진 태.
          * 그러나 호크를 대한 탓인지 멜리오다스에게 빈틈을 허용하고 반격 당한다.
          * 자신이 멜리오다스의 주위를 끌고 있는 사이 자신과 멜리오다스 위로 "네걸(공격)"을 때려박으라는 얘기. 자신은 멜리오다스보다 튼튼하니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장담한다.
          * 멜리오다스는 이전과 같은 태로 보였지만 팬덤의 예대로 전과는 조금 다른 인격으로 부활했다. 어느 정도로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살의를 담은 공격을 가하고 있다.
          * 십계 두 명이 갑작스럽게 리타이어? 이미 젤드리스와 에스타롯사가 리타이어한 황이라 십계와 일곱개의 대죄 간의 파워 밸런스가 턱없이 붕괴해버린 셈이다.
          * 이렇게 줄줄이 박살나는 것도 이하기 때문에, 몬스피드 정도만 리타이어할 거란 예이 있다. 물론 젤드리스와 에스타롯사는 복귀. 이렇게 되면 일곱개의 대죄와 십계가 7대7로 숫자가 정확히 맞아, 앞으로 1대1 대결로 전환시켜도 짝이 맞기 때문.
  • 장대환 . . . . 13회 일치
         [[로체스터 대학교]]에서 1973년 정치학으로 학사를 받았으며 1987년 [[뉴욕 대학교]]에서 국제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비역 대한민국 공군 대위이다.
         * 1985년 2월 : 뉴욕대학교 대학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학 석사
         * 1987년 6월 : 뉴욕대학교 대학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학 박사
         * 1977년 9월 :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학 연구조교
         * 1979년 3월 ~ 1983년 3월 : 공군대위.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정치학, 경학 교관, 생도전대 담교관 전임강사
         * 1986년 4월 : 매일경제신문사 기획실장, 이사, 무이사, 전무이사
         * 1988년 3월 ~ 97년 3월 : 서울대학교 경대학 강사(국제경학)
         * 1997년 11월 : 김삼 대통령 비경제대책자문위원회 위원
         * 2003년 3월 : 이화여자대학교 경대학 겸임교수
         |전임자 = [[장]]<br />(서리)
  • 장은숙 (성우) . . . . 13회 일치
         * 《[[극학생회]]》 ([[챔프]]) - 이치카와 마유라, 오다 하즈키
         * 《매기와 환의 나라로》 ([[EBS]]) - 젤리3
         * 《[[베르사이유의 장미]]》 ([[EBS]]) - 니콜
         * 《[[스모모모모모모 ~지최강의 신부~]]》 ([[애니박스]]) - 미야모토 이로하
         * 《[[아이들의 장난감]]》 ([[애니원]]) - 송선생, 아, 박수련, 범재, 소지아
         * 《올란도 웅전》 ([[EBS]])
         * 《[[요술자]]》 ([[EBS]])
         * 《어린이 어》
         ===화===
         * 《[[신혼여행 (화)|신혼여행]]》 - 다큐 아나운서(배우로 출연)
         * 화 《[[러브레터 (화)|러브레터]]》 예고
         * 화 《어린신부》 예고
  • 전순옥 . . . . 13회 일치
         | 배우자 = 크리스 조엘(국인)
         | 소속임위 = [[산업통자원위원회]]
         | 웹사이트 = [http://blog.naver.com/sparksoon 블로그]<br />{{페이스북|spark.soonok}}
         * 2013.04 ~ 2016.05 : 제19대 국회 [[산업통자원위원회]] 위원
         * 2014.02 ~ 2015.12 : 새정치민주연합 민주정책연구원 소공인정책연구소 소장
         * 2015.03 ~ 2015.12 : 새정치민주연합 소공인특별위원회 위원장
         * 2015.12 ~ : 더불어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소공인정책연구소 소장
         * 2015.12 ~ : 더불어민주당 소공인특별위원회 위원장
         == 수 ==
         * 2014.06.27 : 국회헌정대
         * 부: 전
  • 전형필 . . . . 13회 일치
         | 자녀 = 전성우(장남), 전우(차남)
         | 수 =
         [[1906년]] [[서울특별시|서울]]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6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에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32년]] [[서울특별시|서울]] [[관훈동]]의 한남서림(고서, 고서화를 취급하던 서점)을 인수하고, 우리민족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재]]들을 구입하기 시작한다. [[문화재]]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스승이었던 춘곡 [[고희동]]과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의 향이 컸다고 한다.
         [[1934년]]에 서울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매입하여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수집했으며, 33세가 되던 [[1938년]]에는 자신의 소장품으로 북단장 안에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세웠다. [[1940년]] 보성고보를 인수하였으며, [[1945년]]에는 1년 동안 보성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1960년]]에는 이전부터 그를 돕던 김기, 김원룡, 최순우, 진홍섭 등과 함께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고 《고고미술(考古美術)》이란 동인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의 전신인 고고미술동인회는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회이다.
         [[1962년]] 57세의 나이로 세을 떠났다. [[문화포장]] 과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66년]]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의 수집품들을 연구정리하기 위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로 개편되었고 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의 이름으로 봄과 가을 일년에 두차례 일반공개를 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관한 일화와 존 개츠비의 소장품인 [[고려청자]]의 수집에 대한 일화가 유명하다. [[1942년]] [[경북도]] [[안동시|안동]]에서 소재되어있던 [[훈민정음 해례본]]은 원래 광산 김씨 종가의 긍구당 서고에 보관되어 오던 광산김씨 문중의 가보였다고 한다. [[세종]]이 광산김씨 문중에 여진정벌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로 내린 서책이라는 것이다.
         당시 천원이면 좋은 기와집 한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학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던 [[한글 창제]] 원리가 이 [[훈민정음 해례본]]에 의해 밝혀졌다. 후에 이 [[훈민정음 해례본]]은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 70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1997년]] 10월에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기도 하였다. 거간 노릇은 한 김태준과 이용준은 사회주의자로, 판매한 돈을 사회주의 운동에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광복 후 김태준은 일련의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되었고, 이용준은 월북하였다고 한다.
         존 개츠비로부터 사들인 [[국보]]급 [[고려청자]] 20점은 모두 사십만원에 사들였는데 원래 제시한 가격은 오십만원 이이었으나 전형필 선생의 [[문화재]] 사랑에 감동하여 판매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중 인민군들이 전형필의 소장품들을 모두 가져가려하자 포장을 맡아하던 소전 [[손재형]]과 혜곡 [[최순우]]가 이 핑계 저 핑계로 못가져가도록 하였고 뜻대로 되지 않자 일부러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부러뜨리기 까지 하였다고 한다. 전형필 또한 피난을 가지 않고 보화각 근처 빈 집에 숨어 소장품이 훼손될까 노심초사하였다 한다.
         * 1906년 7월 2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가 112번지에서 중추원의관 전기와 밀양 박씨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 본관은 정선
         == 수 ==
         * 천재 배원, 송현준 저, 현준사
         * 천재 배원을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 샘터
  • 차오루 . . . . 13회 일치
         |학력 = [[중앙대학교]] 연극화학과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better_me_caolu|차오루}}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출신으로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내 소수민족 중 하나인 [[먀오족]](묘족)이며, 2004년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시]]에서 솔로로 데뷔하여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서 10대 신인을 받은 이력이 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404436 ‘라디오스타’ 피에스타 차오루, 중국 CCTV서 10대 신인 받았다고?] - 스포츠경향</ref>
         [[대구광역시|대구]]에서는 [[장나라]]와 같은 기획사에서 활동했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555331 차오루 "중국 활동당시 장나라와 같은 소속사"] - 엑스포츠뉴스</ref> 장나라가 [[대한민국]]에서 중문 에디션 음반인 《비》을 발매할 당시 홍보 활동을 도우면서 [[대한민국]]과 인연을 맺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3&aid=0000067007 장나라, 이번엔 합류 대사?] - 쿠키뉴스</ref>
         * [[중앙대학교]] 연극화학과 (2008학번)<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976276 '라디오스타' 차오루, 학교 동기 “박신혜 롤모델 삼아"] - 세계일보</ref>
         | 《[[동이몽, 괜찮아 괜찮아]]》
         | 《[[세모방 : 세의 모든 방송]]》
         == 수 ==
         * 2016년 [[MBC 방송연예대]] 인기
  • 창작:코스모폴리턴 . . . . 13회 일치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동명의 옴니버스 범죄물 소설[* 단 제목은 ~~있어보이려고~~ 어로 표기하여 COSMOPOLITAN이다.]이자 그 세계관의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 비중은 프로젝트가 더 크다. ~~그래서 소설은 연재속도가 겁나게 늦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공동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으나 세계관에 대한 이해 및 해설 부족을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개인 프로젝트로 전환되었다.
         '''오픈월드 게임의 소설화'''를 베이스로 삼고 있기 때문에, 소설에 필요한 3요소(인물, 사건, 배경) 외에도 등장할 확률이 낮거나 없는 요소들도 다소 기록되어 있다. 이 역시 프로젝트의 비중이 크다 보니 생겨난 ~~악~~향.
         주인공 [[창작:레스터 리|레스터 리]]는 [[창작:존 휘태커|존 휘태커]]를 통해 뒷세계에 대해 깨달아 가면서, '악'이 사회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 공헌한다는 순기능(?!)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레스터도 서서히 악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악'이었고, 그것 때문에 레스터를 비롯한 지인들은 세으로부터 냉대받고 추적을 당한다. 하지만 '합법적인 악'에 대항할 방법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존을 비롯한 사람들은 '악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렇게 악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황에서, 레스터는 필요악을 저지르더라도 그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소설 판권이고 나발이고(…)를 따지기 전에, 원작을 보존해야 한다는 ~~누가 명령하지도 않은~~ 원칙 때문에 스토리의 비중이 크게 흔들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래서 결국 작가의 력이 쉽게 개입할 수 있는, 즉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기 좋도록~~ '''배경이나 스토리가 적당한 정도만 존재하는 작품'''을 고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두 가지이다.
          ~~완결을 정하지 않은 온라인 게임 특성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패러디를 포기했다 카더라~~
         다만 기본 세계관부터가 제작되지 않은데다 스토리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본편에서는 일종의 "떡밥"이나 "도시전설" 등으로만 치부되며 큰 향을 끼치지 않는다.
         소설 "코스모폴리턴"의 '첫 번째' 도시[* 계획으로는 둘, 세 번째 등도 존재하므로 이렇게 작성한다. ~~이뤄질 지는 미지수이지만~~]이다. 아래의 추가 설명은 '게임이었을 경우' 사용되는 기능들에 대해 적은 것이다.
          세이브 포인트와 의점, 잡화점, 무기점~~?!~~은 이 항목에 기재된다.
          에피소드, 작전, 사이드 미션, 랜덤 이벤트, 수집요소는 이 항목에 기재된다.
  • 최동 . . . . 13회 일치
         어머니가 세을 떠난 뒤 아버지는 관직을 내놓고 [[일본]]에 망명 중인 [[박효]]를 만나러 도일했다. 최동은 [[가톨릭]] 계열인 [[도쿄]]의 [[교세이학교]](曉星學校)에서 수학했다. 이때 아버지는 이미 [[미국]]으로 떠나 [[안창호]]와 함께 활동하던 시기라 고학을 하며 공부했다. 중등 과정을 마친 뒤 [[미국]]으로 가서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약 1년간 수학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38년]]에 [[조선기독교연합회]] 평의원을 지냈고 [[1941년]]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을 맡았다. 1941년에 [[동양지광]]이 주최한 '[[미타도좌담회]]'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자격으로 참석해 [[황인종]]의 시각에서 [[미국]]과 [[국]]을 비난하는 내용의 강연을 한 일도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제4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으며,1947년 12월 4일 Severance 의과대학으로 승격시켜 6년제를 만들었고, [[1955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최동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교분이 있던 [[개화파]]의 [[박효]], [[서재필]], 계몽운동 계열의 [[안창호]] 등의 향을 받았으며, 성장해서는 [[최남선]], [[정인보]], [[이광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특히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관에 크게 향 받아 본업인 의학 연구 외에 역사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 사 ==
         [[황인종]]의 우수성을 논하고 [[한민족]]의 시원을 먼 곳에서 찾는 최동의 논리는 《[[조선]]문제를 통하여 본 만몽(滿蒙) 문제》(1932)에서와 같이 일제의 [[만주]] 침략이나 [[대동아공권]]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오랜 집필 작업 끝에 은퇴 후인 [[1966년]]에 《[[조선고민족사]]》를 탈고했고, 이 업적으로 [[1968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 [[안호]]
         |전임자 = [[이준 (1896년)|이준]]
  • 최동수 (야구인) . . . . 13회 일치
         |문 표기 = Choi Dong-Soo
         |사진 사이즈 =
         [[1994년]] 2차 4순위 지명을 받아 [[포수]]로 입단했으나, 이후 [[내야수]]로 전향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주전 자리를 잡지 못했고, 데뷔 첫 해에는 1군에서 1경기에 그쳤다. 방위 복무를 마친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서용빈]], [[유지현 (야구인)|유지현]] 등의 걸출한 [[내야수]]들에 밀려서 주목받지 못하였다. [[2001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한 이후 그는 뒤늦게 중용되기 시작하였고, 2군에서 훈련하였을 때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옥 훈련을 많이 소화한 결과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2549603 야구, 야구, 야구밖에 모르는 '야구바보'… "동네 게임도 작전 짤 사람"] - 조선일보</ref> 당시 그가 훈련이 끝나고 손이 펴지지 않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그의 손을 펴 주었다고 할 정도였고,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훈련을 멈추도록 했던 유일한 선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2855814 12년 전, 잊혀질 뻔했던 한 선수의 은퇴식] - 이데일리</ref> [[2002년]] 시즌 중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서용빈]]의 자리를 이어받아 주전 [[1루수]]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준 플레이오프 MVP를 수하기도 하였다. [[2007년]]에는 최초로 풀 타임 출장에 3할대 타율을 기록하여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2010년]]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그리 많은 출장 기회를 얻지 못했고, 29경기에 출전해 1할대 타율에 그쳤다.
         [[2010년]] 시즌 좀처럼 주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그는 그 해 [[7월 28일]] 4:3 대형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다. 주전 [[내야수]] [[박정권]], [[나주환]]이 부으로 이탈하여 [[내야수]]가 필요하였던 [[SK 와이번스]]와 [[투수]]가 필요하였던 [[LG 트윈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그는 [[권용관]], [[안치용]], [[이재 (야구 선수)|이재]]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 [[LG 트윈스]]는 [[SK 와이번스]]로부터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 [[김선규 (야구 선수)|김선규]], [[포수]] [[윤요섭]]을 받았다. 그 때 [[SK 와이번스|SK]]와 [[LG 트윈스|LG]]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3연전 중이어서, 트레이드 된 선수들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에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트레이드가 성사된 [[7월 28일]] 당일, 트레이드 당사자인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가 맞대결하게 되었는데 그는 같이 이적한 [[안치용]]과 함께 선발 출장하였고 [[권용관]]은 도중에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전하였다. 그리고 이적한 선수 중 [[윤요섭]]이 대타로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SK 와이번스]] 이적 첫 경기에서 그는 3점 홈런을 쳐 내는 등 4타점을 쓸어담아 맹활약하였다. 그 날 [[SK 와이번스]]는 연장전에서 [[권용관]]이 [[정성훈 (1980년)|정성훈]]의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범해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여 패했다. 특히 그에겐 프로에서 눈을 뜨게 해 준 [[김성근 (야구인)|김성근]]과의 재회여서 더 의미가 컸으며, 2차 드래프트가 있기 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감독직에서 경질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 해 시즌 후 32번을 쓰고 있었던 [[외야수]] [[박윤]]이 보류 선수에서 빠져 [[신고선수]]로 전환되자, 자신의 번호였던 '32'번을 되찾았다. [[2011년]]에는 [[박경완]]의 재활이 장기화되어서 10년 만에 그의 본업인 [[포수]]로 출전하기도 하였으며, [[2002년]] 이후 9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복귀하여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도 출전했다.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한 후 [[2011년]] [[11월 22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친정 팀 [[LG 트윈스]]로 1년여 만에 복귀했다. 1차 드래프트인 신인 지명회의와 2차 드래프트를 통틀어 최연장자로 지명된 선수였다. [[2013년]] 개막전 명단에 올라 시즌 개막전을 통해 2경기에 출장하였으나 무안타에 그친 후, [[SK 와이번스]]와의 2연전이 끝나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에는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사실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3년]] [[10월 5일]] [[두산 베어스]]전이 끝난 후 공식 은퇴식을 가졌으며, 이 경기에서 [[LG 트윈스]]가 [[두산 베어스]]를 이기고 정규 시즌 2위를 확정해,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의미있는 경기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30892 '은퇴' 최동수,'정든 그라운드를 떠납니다'] - OSEN</ref>
         [[2009년]] [[5월 12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그는 프로 데뷔 15년 만에 [[투수]]로 첫 등판하였다. 이와 더불어 팀 동료이자 [[포수]]인 [[김정민 (1970년)|김정민]]은 [[좌익수]]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 황은 역할 분담이 철저하고 [[지명타자]]제를 채택하고 있는 [[KBO 리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는 데뷔한 후 [[포수]]에서 [[내야수]]로 전향했고, 이 날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장했으나 연장 12회 초에 마무리 [[투수]] [[우규민]]이 대량 실점으로 인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창민]]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몸에 맞는 볼|빈볼]]성 투구를 던지고 퇴장당했다. 남아 있는 [[투수]]가 선발로 등판해야 할 [[심수창]] 외에는 없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궁여지책으로 [[지명타자]]로 나선 그를 [[투수]]로 내보냈다.<ref>[http://www.siminilbo.co.kr/news/news.php?id=news&mode=view&no=60005 무박 2일 잠실 혈투 진기록 양산] 《시민일보》 2009년 5월 15일 9:25, 2009년 5월 16일 23:55 확인</ref><br>마운드에 오른 그는 대 타자 [[박경완]]을 공 2개(1구 128 km, 2구 131km로 스피드 건에 찍힘)로 플라이 아웃 처리했는데, 당시 [[박경완]]은 경기 후 "차마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대충 휘둘러서 아웃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 와중에 외야에서 그의 등판을 지켜본 [[이진]]은 "본래는 내가 등판하려 했다. 내가 아무래도 동수 형보다는 구속이 빠르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1992073 (어젯밤 이야기) 박경완 "'투수 최동수' 공 솔직히 칠 수 없더라"] 《스포츠조선》 2009년 5월 14일 10:18,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그의 공에 대해 "[[오승환]]인 줄 알았다. 돌직구를 던지더라" 라며 감탄하기도 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5140203 (베이스볼 브레이크) SK-LG 대혈투…'무박 2일' 뒷담화] 《동아일보》2009년 5월 14일 8:01,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 [[광고등학교 (서울)|광고등학교]]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봉천초등학교 동문]][[분류:강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광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츠츠모타세 . . . . 13회 일치
         에도 시대의 라쿠고 코마쵸우의 내용은 이러하다. 가난하고 빚이 많은 쵸하치(長八)라는 남자는 빚쟁이 타케하치(丈八)를 대로 츠츠모타세를 걸려고 한다. 과거 쵸하치의 아내 오코마(お駒)는 타케하치와 사귀었으나, 쵸하치가 빼앗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쵸하치는 타케하치가 아직 자신의 아내에게 미련이 있다고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츠츠모타세는 데이트 사이트나 전화방, [[SNS]]를 통하여 먹이감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흔히 있다. 과거에는 성관계를 가지기 직전이나 직후에 [[호텔]]에 나타나서 "[[불륜]]에 [[위자료]]를 청구하겠다." 등의 [[협박]]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현대에는 [[호텔]]에서 [[피해자]]의 [[신분증]]이나 [[휴대폰]]의 번호를 알아내서 이를 차후 연락 수단으로 사용하며, 성관계 장면은 [[몰래 카메라]] 등으로 촬하여 확보한다.
         [[원조교제]], [[아저씨 사냥]]과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미성년자 여성을 18세 이으로 속여서 만남을 가지게 하는 등 츠츠모타세에 이용하고, 피해자에게 "원조교제로 [[경찰]]에 신고한다.", "[[회사]]에서 [[해고]]당하게 하고, [[부인]]에게 알려 [[가정]]을 파괴하고,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준다." 등의 [[협박]]을 가하여 금품을 갈취하는 것이다. 피해자 본인이 법률을 위반한 범죄자이기 때문에 경찰에 보호를 요청하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트 사이트와 츠츠모타세가 결합하기도 하는데, 데이트 사이트에서 젊은 여성이 제안을 해오고 그걸 받아들이면, 웹사이트 운자를 자칭하는 사람이 전화를 하여 그 사람은 18세 미만이었다고 연락하고, 경찰서에서 [[IP]]와 로그 제출을 요구하고 있으며 당신이 체포될 가능성이 있다고 협박을 가한다. 그리고 비용을 부담해주면 IP와 로그를 [[위조]]해서 경찰에 제출하겠다고 하여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 비금을 [[신발]] 속 등에 숨기고, 휴대전화는 락을 건다.
          인기가 많은 여성은 데이트 사이트 같은 것을 이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쉽게 만날 수 있다. 또 그런 사이트에 올릴 사진을 일부러 전문가에게 찍어달라고 할 이유도 없다.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자신이 지정한 포즈로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방법이 알려져 있다.
          이 경우는 거의 확실하다고 여겨지는데, 돈을 내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여성도 아닌 이 일반적으로 여성은 돈을 받는 쪽이며,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남성도 적지 않으므로 외모가 그리 좋지 않은 여자도 돈을 쓰면서 까지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려 할 가능성은 낮다.
          * 공갈협박담센터 : http://www.entrap.info/tutumotase.html
  • 킹덤/515화 . . . . 13회 일치
          * 진군이 조의 왕도권에 진입한 이후 황은 급변하고 있었고 진의 수도 함양에선 최전방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던 [[진시황(킹덤)|진왕 정]]과 [[창평군]], [[창문군]] 등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보고가 잇따르자 크게 당혹한다. 열미를 따내는 것까지는 모든 것이 작전대로. 그러나 총사령관 [[왕전(킹덤)|왕전]]은 곧바로 열미를 버린 채 왕도권으로 진입했다. 심지어 왕전이 직접 보낸 보고에는 "열미는 곧 조군이 수복할 것이므로 보급을 보내지 마라"는 황당한 소리가 적혀 있었다.
          [[아광]]은 묵묵히 왕전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었으나 왕전이 직접 "흐름"이란 말을 입에 올리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그 이의 말은 나오지 않는다.
          * 왕전이 어떤 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부하 장수들의 인내는 한계에 달했다. 아무도 왕전의 면전에서 그 사실을 발설하려 하지 않았지만 [[이신(킹덤)|이신]]만은 달랐다. 그가 대놓고 "이딴 짓"을 할게 아니라 당장 업으로 가야 할게 아니냐고 악을 쓰자 장수들은 그의 무례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수긍이 갔다. 이신의 말대로 하는게
          식적이다. 특히 지금 양단화군이 본대의 방패막이 되기 위해 공손룡의 9만 병력과 싸우고 있다. 이신은 그들을 봐서라도 빨리 진군하자고 성화다. 낙화대의 [[몽념]]은 저렇게 직설을 퍼붓는게 "바보의 특권"이라면서도 모두가 묻고 싶어하던 말임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저 무시할 줄 알았던 왕전이 움직인다. 성질대로 막말을 해댄 이신이었으나, 막 대장군이 직접 말머리를 돌려 다가오자 위압감을 느낀다. 왕전의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은 이신을, 그가 든 [[왕의(킹덤)|왕의]] 장군의 창에 가있다. 이신 자신은 몰랐으나 몽념과 [[왕분]]은 놓치지 않았다.
          단편적이나마 그의 전략적 구을 읽어낼 수 있는 설명. 특히 [[하료초]]는 그가 언급한 "동쪽"이란 단서에 주목한다.
          * 그때 열미로부터 급보가 날아온다. 열미는 진군의 깃발만 올려뒀을 뿐 병력은 남기지 않은 태였다. 태향산맥을 타고 내려온 조군 5만은 열미로 무혈입성, 진군의 퇴로를 틀어막았다.
          뻔한 전개였지만 막 현실로 일어나자 이신과 장수들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정말로 군단의 활로는 "동쪽" 밖에 남지 않았다. 동쪽. 그러고 보니 방금 왕전도 동쪽을 언급했다. 그곳에 뭐가 있는 걸까? 왕전은 거기까진 말하지 않은 채 양단화군에 전령을 보내 본대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라 지시한다. 그리고 이미 설명한 대로 다음 성을 함락하기 위해 군단을 움직인다.
          * 공손룡군을 막으러 간 양단화군은 마평평야에서 그들과 맞선다. 그러나 진을 펼친 채 특별히 움직이지 않았다. 공손룡군이 꾀어낼 요량으로 자극해 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격렬하게 반응하긴 했으나 전면적인 접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단지 공손룡군의 발을 묶겠다는 전략일 수도 있었으나, 황은 반대다. 오히려 공손룡이 그들을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열미를 막은 시점에서 진군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다. 뭘할 생각이든, 지금부터는 한 시 한 시가 목을 죄어온다. 공손룡은 이런 사실을 들어 곧 생각없이 왕도권에 들어온 걸 뼈져리게 후회하게 될 거라 장담한다. 그때 부하가 새로운 보고를 가져온다. 적들이 "동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다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인가? 공손룡은 잠시 헤아려 봤으나 곧 "황은 변한게 없다"는 답을 내고 그쪽이 조금씩 움직이면 이쪽도 조금씩 따라가면 그뿐이라 여긴다.
          * 왕전이 구한 진군로는 크게 세 개. 현재 "정성"에서 군은 세 갈래로 나눠 출발해 왕전의 본대는 적성, 평성을 함락시키며 동쪽으로 진군. 환의군은 그 아래 신성, 석성, 허성을 거쳐 역시 동쪽으로 진군. 비신대, 옥봉대, 낙화대의 연합군은 크게 몰아 최남단의 두 성을 함락시키고 동쪽으로 진군.
          이러는 과정에서 백성들 또한 동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맨 처음 오다성을 떠난 백성들은 적성으로 갔으나 왕전군이 거기를 공략하면서 다시 동쪽으로 출발, 다른 성에서도 비슷한 양이다. 마치 군대는 양치기 개들이 양을 모는 것처럼 백성들을 동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 그러는 사이 동쪽으로 향하는 피난민 행렬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불어난다. 이 대행렬이 왕도권 남쪽에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이목이 왕도 함단에 진입한다.
  • 킹덤/527화 . . . . 13회 일치
          * 주해평원에서 [[이목(킹덤)|이목]]와 [[왕전(킹덤)|왕전]]이 총력전을 펼쳐지는 동안 [[양단화]]군은 [[공손룡]]군이 이끄는 요양군을 대로 연합군의 명운을 가를 싸움을 시작했다. 본래 양단화군의 임무는 본대가 업성 공략에 나서는 동안 공손룡군의 발을 묶는 것. 그러나 전장의 판도가 뒤바뀌면서 양단화군 의 승패가 곧 전쟁의 승패가 될 수도 있었다. 주해평원으로부터 남서쪽. 약 300리 거리의 싸움이었다.
          * 총대장 왕전의 명으로 양단화군에 조력하러 온 [[벽(킹덤)|벽]]은 감탄이라기 보단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1만의 병력을 증원으로 끌고 왔으나 양단화의 산민족은 5만의 병력으로 적의 9만 병력을 철통같이 막아내고 있었다. 이는 전황이 전면전으로 바뀐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보병전에서, 기마전에서, 난전에서. 어떤 전장에서든 산민족 병사의 위용은 눈부셨다. 자신이 힘이 되지 못하는걸 알고 벽이 씁쓸해하자 옆에 있던 "톳지"라는 산민족 간부가 산민족말로 "평지의 장군이 괜히 왔다"며 조롱했다. 벽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양단화는 알아들었다. 그에게 놀리지 말라고 주의를 준 양단화는 벽에게도 임무를 부여했다. 현재 전황이 산민족에 유리한건 사실이나, 적의 움직임은 수하기 그지없다. 전술이 너무 단조로운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벽과 그 병력에겐 이 돌발황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를 갖춰두라는 것이었다. 벽이 기꺼이 그 임무를 받았다.
          * 그때 산민족군 우익으로부터 불협화음이 일었다. 소수의 기마대가 격전이 벌어진 뒤쪽과 양단화군 본진 사이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벽은 그 수와 구성을 보고 전령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이목의 지시로 공손룡군의 대장으로 부임한 [[순수수]]의 등장이었다. 순수수의 기마대는 산민족 병사를 목 매달고 달리고 있었다. 순수수는 양단화에게 잘 보이는 자리를 일부러 골라 말을 세웠다. 그가 신호를 주자 부하들이 병사들의 숨통을 끊었다.
          * 순수수는 산민족 1진이 미처 혼란을 감지하기도 전에 돌파를 감행했다. 그는 맨 선두에 서서 적진을 무인지경처럼 빠르게 돌파했다. 양단화의 맞은 편, 공손룡군 본진에서도 적진을 가로지르는 순수수를 볼 수 있었다. 공손룡은 그가 전장에 나타난 이후의 행동을 빠짐없이 목격했다. 새로운 지휘관은 여러모로 자기 을 뛰어넘은 인물이었다.
          * 조군의 수뇌부 또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새로운 총대장의 지시가 당혹스러웠다. 순수수는 지휘권을 넘겨 받고 제일 처음 전군 후퇴를 명했다. 부하장교들은 난처해하며 혹시 현재 전황이 정체된 탓인지 물었다. 이 전황은 순수수의 도착을 기다리느라 그런 거라며 변명을 하기도 했다. 순수수가 부하들의 채근에 입을 열었다. 그는 현재 황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왜 이런 황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후퇴를 결정한 건 그게 필승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진군을 보다 깊은 곳까지 끌어들여 단 한 놈의 생존자도 없이 몰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수는 요양에서 그저 이기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여기서 진군이 여기서 패한다면 그 병력은 필시 주해평원으로 향할 것이다. 요양에서의 패잔병이 주해평원에선 이목의 부담을 가중시킬 증원군이 되는 것이다. 그런 황을 막고 완전한 승리를 위해, 왕도권 수호를 위한 전략이었다.
          * 진군 진은 한창 싸우던 조군이 꽁무니를 빼자 술렁거렸다. 톳지는 대번에 부자연스러운 후퇴임을 알아차렸다. 그가 양단화에게 물었다. 이대로 추격해야 좋을
          것인가? 양단화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들을 시야에서 놓친다면 어떤 황이 될 것인가? 퇴각하는 척 업성으로 향한다면, 혹은 주해평원으로 간다면 말이다. 그들의 대화를 산민족의 언어로 이루어졌다. 벽은 그 대화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지금 형세를 바탕으로 제시할 수 있는 의견은 한 가지였다.
          * "요양의 엄니", 언덕 위의 병력을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조군과 다른 인종" 그것도 알만했다. 마치 개나 늑대를 본뜬 그들의 무장 태는 한 눈에 봐도 중원과 달랐다. 하지만 아직도 조군 장수들은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양군의 포진이 끝나자 순수수가 직접, 이들을 소개했다.
          한때 천자의 나라 주나라를 몰락시킨 이민족의 후예. 지금은 요양성을 자치하고 있는 자들. 순수수가 이들을 전장에 끌어들였다. 이민족 대 이민족이라는 [[이이제이]]나 다름없는 황. 지금껏 볼 수 없전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 토리코/390화 . . . . 13회 일치
          * 블루 니트로 페어는 아카시아의 모습을 보고 과거를 회하는데, 그는 그의 세포 안에서 "동포들의 목소리"를 느꼈다고 한다.
          * 한편 혼세계의 이치류는 블루 니트로들의 시체가 뒤엉켜 있는 것을 발견한다.
          * 미도라는 혀를 우주까지 뚫고 나갈 정도로 늘이는데 그 길이가 사왕 마더 스네이크를 연시킨다.
          * 이 세에 존재하는 생물은 단 두 종류 뿐인데 "먹는 쪽"과 "먹히는 쪽".
          * 소리도 기척도 없이 아카시아와 미도라 사이에 끼어들어 "나이프"로 꼬리를 잘라 버린다.
          * 한숨 돌린 미도라는 몸을 회복시키며 통적인 물리 공격이라면 괜찮지만 직접 먹히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토리코의 설명을 들은 미도라는 "공포"라면 자신이 "전율"했던 유일한 대은 토리코 안에 있는 "정체불명의 식욕"이라고 말해준다.
          * 아카시아는 피를 토하며 일어서는데 "바로 그거다. 강한 분노가 깃든 환적인 공격이었다"고 말한다.
          * 한편 혼세계.
          * 이치류는 돈슬라임과 블루 그릴에서 함께 보았던 이한 덩어리를 조사하고 있다.
          * 마치 불완전한 태의 네오를 연시키는 덩어리. 거대할 뿐만 아니라 내부가 미궁과 같은 구조다.
         미도라는 이번 화에서 남은 오른손까지 먹히면서 양손이 모두 먹힌 태.
  • 토리코/395화 . . . . 13회 일치
          * 코마츠는 오오타케, 나카우메와 결혼식 피로연 음식을 준비하며 그간의 모험을 회한다.
          * 토라코와 코마츠는 미도라의 묘를 정한다. 작고 이름도 없는 비석 앞에 토리코가 가져온 식재가 놓여있다. 원래는 이치류와 지로가 묻힌 식몰의 곶으로 정했지만 미도라의 식혼의 의향에 따라 삼형제가 수행하던 땅에 묻힌다.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지만 "형제가 같이 묻혀봐야 저세에서 싸우기 밖에 더 하냐"는 말을 했다. 미도라는 아예 무덤도 필요없다고 했지만 토리코가 매주 풀코스를 가져다 주겠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이곳을 지명한 것이다. 항 가족과 함께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 둘 만 참석한 장례식이 끝나고. 때마침 인간계에서 호출이 온다. 토리코와 린의 결혼식이 임박했다는 호출이다. 두 사람은 서둘로 코마츠가 일하는 구르메 호텔로 달려간다. 결혼식 준비는 이미 끝나있고 린도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다. 토리코도 턱시도로 갈아있고 합류. 린은 토리코가 예쁘다고 하는 말에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도매 톰을 비롯한 인연있는 요리사, 미식가들은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결혼식과 더불어 오늘 피로연의 음식, 토리코의 "풀코스"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 풀코스의 "전채", BB콘이 등장. 하지만 통의 BB콘이 아니라 치킨 키슈와 비장의 조미료 "멜크의 별가루"가 토핑돼 있다. 하객들이 대호평하자 초대 멜크와 2대 멜크도 만족스럽게 미소짓는다. 치킨 키슈도 공들인 작품. 다양한 재료로 만든 페이스트리 안에 커스타드 크림을 넣은 음식인데 코마츠가 토리코와 처음 만났을 때, 토리코가 낚시로 잡았던 가재피시와 오미 독수리를 넣었다. 코마츠는 풀코스 안에 자신과 토리코의 인연과 여정을 새겨넣은 것이다.
          * 두 번째 요리는 "수프" 센츄리 스프. 아이스헬에서 죽을 고생을 해 손에 넣은 식재다. 당시 토리코와 동행했던 멤버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그때 구르메 쇼윈도의 붕괴를 막지 못하고 끝내 센츄리 스프는 실전되지만 마지막 한 방울을 마신 코마츠가 천부적인 재능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미도라도 감탄했을 정도의 식재로 인간계의 재료지만 구르메계의 주민들도 만족스럽게 먹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요리. 바게트 대신 함께 나간 약선떡도 에코김을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유다는 사수가 침공했을 당시 코마츠의 천부적인 재능에 놀랐던 일을 회한다.
          * 그러는 사이 토리코는 낡은 테이블에 기다리고 있던 식혼들이 도착한걸 눈치챈다. 이치류와 지로. 어느새 도착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네 번째 "고기요리", 엔드 매머드(완)의 스테이크. 사실 네오의 고기라고도 할 수 있다. 놀랍게도 네오도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최종보스인 네오의 고기"라고 해설하자 제브라가 옆에 앉은 네오에게 "너보고 최종보스랜다"라고 놀린다. 네오는 쑥스러운 듯 웃는다. 스테이크엔 라이브베아라가 제공했던 메테오 갈릭이 토핑. 고명으로 고대의 식보 보석고기와 가라라 악어 고기가 올라갔다. 이 또한 토리코와 코마츠가 함께 포획한 고기요리의 총집성 같은 것. 코마츠는 특히 가라라 악어를 감명 깊게 기억하고 있다. 스타준은 보석고기를 맛보며 리갈 매머드 안에서 토리코에게 패하고 "나도 언젠간 먹고 싶었다"고 말하던 일을 떠올리고 미소짓는다.
         지금까지 작중에서 코마츠, 토리코와 인연있는 식재가 총망라되어 등장. 몇몇 식재료는 토리코의 풀코스나 아카시아의 풀코스 이으로 의미가 있는 것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2부에서 등장한 식재 보단 1부에서 나왔던 식재가 비중있게 묘사되었는데, 2부 부터는 식재 자체에 대한 묘사는 슬렁슬렁 넘어간 것도 향이 있는 듯 하다.
         네오는 갱생된 탓인지 옷까지 한 벌 빼입고 일행 사이에 섞여 있다. 사회자가 "최종보스 네오"라고 언급하는데 아무도 네오가 참석한 것을 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 토리코/396화 . . . . 13회 일치
          * 이 자이언트 셸은 백채널을 써서 빛의 속도를 초월해서 비행하기 때문에 물리법칙 으론 아무리 오래 여행을 해도 지구로 돌아오면 고작 며칠이 흘렀을 뿐.
          나카우메는 나카우메 요리학원을 설립해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GOD를 조리한 전설의 요리사가 직접 가르치는 학원이라 인기가 높다. 하얗게 샜던 머리도 원복구.
          * 토리코는 괴물이 태양을 집어삼킨다는 동화의 내용을 언급하며 그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구루메 천문연구팀이 연구해본 결과 구르메 빅뱅 직후의 에너지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분석해 보니 놀라운 이 드러난다. 직경 10광년짜리 "은하"를 밥처럼 놓고 둘러앉아 있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가족들도 빅뱅의 여파에 휩쓸려 뿔뿔히 흩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구루메 에너지가 향을 미쳐 각자의 취향에 맞춰 흑, 백, 적, 녹, 청의 다섯 색의 우주를 형성한다. 그렇게 되서도 신들은 각 우주의 풀코스를 지키며 언젠가는 풀코스가 그들을 모아줄 거라고 믿고 있다 한다.
          * 마침 그때 찌가 흔들린다. 낚아 올려보니 작은 사이즈의 자이언트 셸이었다. 6대륙의 그 녀석의 새끼. 토리코는 작으니까 미니멈 셸이라고 부르자고 한다. 이것은 구루메 천문학자들이 품종개량으로 우주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이 호수에서 양식 중이다. 토리코는 이걸 타고 곧 출발하자고 한다. 코마츠는 우주로 떠나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모될 텐데 린에게는 이야기 했냐고 하는데, 황당하게도 토리코는 "잠깐 사냥다녀 온다"고 밖에 하지 않았다.
          * 현세대의 팔왕은 비록 생환하긴 했지만 한 번 패배한 이 은퇴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 패배한 왕은 왕이 아닌게 구르메계의 규칙. 그에 따라 새로운 팔왕을 선출하기 위해 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테리는 그 싸움에 참가하러 구르메계로 돌아갔다. 이번 싸움에는 인간계의 맹수들도 참가하는데 트롤콩이나 데빌 구렁이, 리갈 매머드 같은 녀석들도 엄청나게 강해져 구르메계의 맹수들과 겨룰만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천왕 중 코코와 제브라는 이미 우주로 떠났다. 아직 못 채운 풀코스 하나씩을 우주의 식재로 채우기 위해서. 토리코는 어 있다만 제브라에게 선수를 빼앗길 거라고 출발을 서두른다.
         식욕만이 들어갈 수 있는 우주의 식납고 "스페이스 팬트리"에는 아직까지도 미지의 식재가 잠자고 있으며 항 새로운 식재가 태어나 자라고 있다고.
         거기에는 을 불허하는 신의 식재가 무한히 넘쳐나고 있다고.
  • 페어리 테일/534화 . . . . 13회 일치
          * 그 틈에 [[안나 하트필리아]]가 시간의 틈새를 열려 하지만 [[제레프 드래그닐]]의 향으로 열리지 않는다.
          * 새로운 사냥감이 아크놀로기아의 흥미를 끌었다. 그가 용의 포효를 쏘자 바다가 갈라지고 지형이 바뀌는 파괴력이 나온다. 그 여파만으로 공의 크리스티나호가 요동친다. [[엘자 스칼렛]]은 제랄의 생사를 걱정하나 그는 건재하다. 하지만 공격을 피하면서 시간을 끌려던 작전은 오래 쓸 수 없을 것 같다. 이대로 계속했다간 대지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 [[나츠 드래그닐]]은 드래곤 포스까지 해방하며 덤볐지만 백마도사 제레프에겐 대가 되지 않았다. [[메이비스 버밀리온]]도 페어리 하트를 빼앗긴 채 빈사. 제레프를 저지할 수단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제레프는 지금 이 세계는 곧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고 독백한다.
          * 그는 페어리 테일의 정문을 "신세계의 입구"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시간의 틈새를 자유자재로 여닫을 수 있게 되어 그 입구를 페어리 테일 길드의 출입구와 접속시킨다. 이제 페어리 테일의 문은 문자 그대로 새로운 세으로 가는, 시간의 문이 되었다. 제레프는 자신이 만든 네오 이클립스의 문을 바라보며 말한다.
          제레프가 그 문을 향해 걸어간다. 그의 마음은 새로운 세을 맞이할 다짐과 희망으로 가득하다.
          * 제레프가 이 세의 종말을 고하는 사이, 공원의 [[루시 하트필리아]]와 [[그레이 풀버스터]],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일행은 다시금 END의 서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대한 문자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이한 현이 나타난다. 유전자의 고리처럼 길게 이어지던 문자열에서 몇 개의 문자가 튕기듯 사라진다. 그레이는 나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 때문일 거라고 직감한다. 그것이 단서가 되었는지 루시는 몸의 어딘가에 큰 처를 입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마법 팬을 들어 문서를 수정하려고 한다.
          * 안간힘을 써도 움직이지 않던 시간의 틈새가 다시 움직였다. 이 역시 제레프의 향이지만 안나에겐 갑자기 시간의 틈새가 다시 열린 걸로 보였다. 그녀도 곧 자신의 힘이 아닌 제 3의 힘에 의해 움직였다는걸 깨닫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요점은 다시 시간의 틈새가 열렸다는 것. 작전은 계속될 수 있을까?
          * 루시는 장담한 대로 END의 서를 수복했다. 나츠의 부활도 분명 그 향일 것이다. 그레이와 해피는 글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놀란 채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루시가 이하다. 책을 수정한 직후부터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뭔가 잠식 당하는 듯 의식을 잃어가고 있다.
  • 페이데이 2 . . . . 13회 일치
          * 체력이 전부 소진된 플레이어는 다운된다. 이 태에서 일정 시간 방치되면 플레이어는 구속당해 게임해 참가 할 수 없는 태가 된다.
          * 네번째 다운은 바로 구속으로 이어진다. 세번째로 다운되었을 때 화면이 흑백이 된다. 구급 자를 사용하던가 하자.
          * 플레이어가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은 경찰은 붉고 작은 탄약 자를 드랍한다. 이 탄약 자에서 탄약을 획득할 수 있다.
          킹갓 DLC. 하이스트 중 획득 가능한 소포 자들을 모아 전용 무기 부품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전직 아이스하키 선수 소콜과 경장갑 태에서 자힐할 수 있게 해주는 Grinder 퍽 덱, 돌격소총(Valkyria), 하키스틱이 들어있는 DLC.
          화 [[포인트 브레이크]]와의 콜라보 DLC. 산 지하의 PMC 기지를 털어먹는 Beneath the Mountain 하이스트와 수송기로 운송중인 현금을 털어먹는 Birth of Sky
          화 [[존 윅]]과의 콜라보 DLC. 저격소총(Desertfox), 아킴보(Akimbo Contractor), 기관단총(Jackal), 권총(Contractor), 투척용 단검이 들어있다.
          화 [[스카페이스]]와의 콜라보 DLC. 토니 몬타나 aka 스카페이스와 약물 주사를 통해 체력을 회복하는 Kingpin 퍽 덱, 유탄발사기가 달린 돌격소총인 Little Friend 7.62, 전기톱이 들어있다.
          화 [[스카페이스]]와의 콜라보 DLC. 소사 카르텔의 두목 에르네스토 소사를 조지는 내용의 Scarface Mansion 하이스트와 4연장 로켓발사기인 Commando 101, 그리고 근접공격용 구식 휴대전화가 들어있다.
          화 [[존 윅: 리로드]]와의 콜라보 DLC. 위기에 빠진 컨티넨탈 호텔의 인물을 구출하는 Brooklyn 10-10 하이스트와 연회가 벌어지는 요트에 숨어들어가 돈을 훔치는 Yacht Heist 하이스트, 저격소총(Contractor .308), 갈고리가 들어있다.
          트레일러나 웹사이트 등에서 사용된 브금 모음집.
  • 페이데이 2/적 . . . . 13회 일치
         이들을 살해하면 ~~프로는 불필요한 살인은 안한다는 베인의 꾸중과 함께~~뒷처리 비용을 뜯기게 되며, 구금되었을 시 어썰트 중간 쉬는시간 때 인질 교환 협 시간도 30초 씩 길어진다. 인질 한명만 죽여도 다음 쉬는시간 때 교환될 생각은 접어야 한다. 다만 이것은 라우드 때 얘기고, 스텔스의 경우에는 스텔스를 유지하기 위해 민간인을 쏴죽이는 경우도 있다.
         Chimano 88 권총과 Compact-5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경비원. 뭔가 수한 것을 발견하면 느낌표를 띄운 후 신고를 한다.
         Heavy Force Responder. 매우 어려움~오버킬 난이도의 주력으로 나오는 적들. 대다수가 경찰에서 10년 이을 복무한 베테랑들이다. 녹색 복장을 입고있다.
         GenSec Elite. 메이헴~데스위시 난이도의 주력 적들. 보안기업 GenSec에서 운하는 SWAT으로, 대부분이 베테랑 군인 출신이다. 회색 위장복을 입고 있다.
         원다운 난이도에서 등장하는 적들. 설정 최후의 수단으로 파견되는 국토안보부의 일급 기밀 특수부대다.
         GenSec Security. 일부 하이스트에서 스크립트 으로만 등장하는 적들. 붉은 옷과 베레모를 착용하고 있다. 별로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Taser. 노란색 포인트가 들어간 어두운 색의 복장을 하고 있는 특수경찰.
         감전당한 플레이어는 자신의 의지와 관 없이 무기를 난사하게 된다. 감전은 테이저가 공격을 받고 휘청거려야만 중지된다. 만약 아무도 감전을 중단시키지 못하면, 감전당한 플레이어는 오랜 시간 동안 지져진 후 다운된다.
         기본 체력이 겁나 높아서 헤드샷을 노려야 하는데, 안면을 몇겹의 장갑으로 보호받고 있다. 안면의 장갑판에 공격을 가해 떼어낸 후, 바이저를 깨부순 다음에야 면에 총알을 박을 수 있다.
         할로윈 이벤트 맵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불도저. 아랫턱 위로는 다 잘려나간 태의 흰색 불도저다.
         Cloaker. 어두운 옷을 입고 야시경을 장비한 특수 경찰. 유저들 사이에서는 cl이라는 약자로 표시된다.
         설정 대부분이 특수부대 출신으로 단독 작전을 벌이던 이들이었다. 가렛 청장은 이들이 미친 놈들인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붉고 하얀 의을 입은 특수 경찰.
  • 페이데이 2/하이스트 . . . . 13회 일치
         최대 네명까지의 경비원을 죽이거나 제압할 수 있으며, 그 후에는 관제실에서 해당 경비원을 호출하는 것에 응답해야 한다. 관제실에서 이을 감지하고 황을 물어보는걸 경비원인 척 하며 속여넘긴다는 설정. 일정시간 내에 페이저 응답을 하지 않거나 페이저 응답을 하던 중 중단하면 바로 신고가 들어간다. 이후 다른 사람들이 시체를 볼 만한 위치인가 아닌가 판단한 다음, 볼 만한 위치라면 바디백에 넣어서 못 볼만한 위치(쓰레기통, 숲 속, 방구석 어딘가 등등)로 옮기자.
         님들이 생각하는 무장강도. 미국 화 같은데 나오는 은행털이를 생각하면 된다. 총들고 들이닥쳐서 죄다 제압하고 요구 아이템 가지고 빠져나오는 방식.
         페이데이 갱의 총 지도자이자 범죄 의뢰 사이트 Crime.Net의 운자인 베인이 의뢰하는 하이스트들.
         화 [[하드코어 헨리]]와의 콜라보로 추가된 하이스트들.
         도축 회사 경자로 위장한 무기이 의뢰하는 하이스트들.
         음지에서 일하는 자들의 비밀 천국, 컨티넨탈 호텔에서 의뢰하는 하이스트들. 화 [[존 윅: 리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원의원 "코끼리"가 의뢰하는 하이스트들.
         3일에 한번 등장하는 하이스트. 안전가옥을 습격한 경찰들이 안전가옥 어딘가에 쌓아둔 돈더미를 훔쳐가지 못하게 하는 하이스트이다. 경찰들이 일정량 이 현금 가방을 가져가면 실패. 일정량의 수준은 선택한 난이도 마다 달라진다. 반면 현금을 뺏기지 않고 경찰의 어썰트를 세번 막아내면 성공한다.
         세이프 하우스 밖으로 나올 때 옥을 조심하자. 지붕 위에도 경찰들이 기어올라오는데, 테이저가 당히 자주 있다.
  • 폴리스 . . . . 13회 일치
         라틴어에서는 폴리스의 번역어로 키비타스(civitas)라는 표현을 썻다. 키비타스에는 [[도시]]와 [[국가]]라는 의미가 있으며, [[어]]의 시티(city)의 어원이 된다.
         폴리스는 구조적 특징이 있는데, 시내 지역과 농촌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시내 중심부에는 성채나 산성의 역할을 하는 아크로폴리스(Acropolis)가 위치한다. 아크로폴리스는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피난처 역할을 하며, 폴리스의 정치적 징이 된다. 아크로폴리스 주변에는 신전, 공공건물, 광장(Agora), 노천극장, 성화로 등 도시에 필요한 시설이 갖추어진다.
         농촌 지역은 코라(Chora)라고 불린다. 토 내에 예속된 촌락(Kome)이 있는 경우도 있다. 폴리으스는 도시와 농촌이 한 단위로 연결되어, 시민들은 농촌에 경제 기반을 두고 자급자족(Autarkeia)를 실현하는 것을 지향하였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폴리스는 완전한 자급자족은 불가능하여 외국과의 업거래가 필요했으나, 자급자족은 하나의 이으로 여겨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를 각자 주권의 결사체로 보았다. 폴리스마다 체제와 법률을 가지고 있었기 떄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각 폴리스는 자유를 누리는 삶을 이으로 여겨졌다.
         폴리스의 특징은 시민 계급이다. 폴리스에서 [[시민]]은 곧 [[전사]]이며, 이들은 [[호플리테스]]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식 중장보병의 구성원으로서, 폴리스가 보유하고 있는 '군사력'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중장보병이 되기 위하여 무장을 갖출 경제력을 보유한 토지 보유자([[지주]])이기도 했다. 이러한 구조는 중세 유럽의 도시 시민들이 [[인]]이나 [[수공업자]] 계층이었던 것과는 대비를 이루는 점이다.
         폴리스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중장보병과 자산 시민 계급은 동일시 되었다. [[스파르타]]는 이러한 체계에 극단적으로 집중하였으며, [[아테네]]는 [[해군]]의 발달과 향력의 확대로 해군의 노잡이로 복무하는 무산 계급의 향력이 커졌다.
         폴리스의 형성은 각지의 사정에 따라서 달랐다. 아테네는 신오이키스모스(Synoikismos)라는 현에 따라서 폴리스가 형성되었다고 여겨졌는데, 신오이키스모스는 집주(集住)라고 번역된다. 가문 단위로 분산되어 살던 그리스 인들이 제사 공동체를 만들면서 요새나 성채 중심으로 결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토지를 가진 --[[금수저]]-- 고위 귀족, --[[은수저]]-- 중간계급의 자농, --[[흙수저]]-- 토지를 가지지 못한 무산자들이 계층 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마케도니아는 에트노스(Ethnos)라는 태의 국가 체계를 유지했다. 이는 지역마다 자치를 하는 체계로서, 폴리스보다 후진적인 형태라고 여겨졌다.
         고전기 그리스 시대의 폴리스는 정치적 주권을 가지고 자치와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대부분의 폴리스는 자치권을 실하여 단순한 지방자치단체나 행정구역으로 전락했다.
  • 한국영 . . . . 13회 일치
         |이름=한국
         '''한국''' (韓國榮, [[1990년]] [[4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며 포지션은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이다. 현재 [[K리그1]]의 [[강원 FC]] 소속이다.
         [[2013년]] [[유럽]] [[프라이부르크]]와 [[셀틱]], [[클럽 브뤼헤]] 등이 한국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이적이 성사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한국은 [[김창수 (축구 선수)|김창수]]가 뛰고있는 [[일본]]의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였다. [[2015년]] [[카타르 스타스 리그]] [[카타르 SC]]로 이적하였다.
         2018시즌을 앞두고 군복무를 위해 [[무]] 입대를 추진했으나, 무릎 수술로 입단이 무산되었다.
         [[2011년]]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U-23 대표팀]] [[홍명보]] 감독의 눈에 들어 다시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러나 부으로 [[2012년 하계 올림픽]] 대표팀에서 낙마하였고 [[정우 (축구 선수)|정우]]이 그를 대신하였다.
         == 수 ==
         * [[숭실대학교]] 중퇴<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ctg=news&mod=read&office_id=452&article_id=0000000305 혼신의 태클엔 한국의 인생이 담겨 있다]</ref>
         * [http://www.kfa.or.kr/record/playeramatch.asp?Page=1&Query=Gender%3DM%26Name%3D%ED%95%9C%EA%B5%AD%EC%98%81 한국 국가대표팀 기록 - 대한축구협회]
         {{둘러보기 자 묶음
  • 함영준 . . . . 13회 일치
         |이름 = 함
         |학력 = [[한양대학교]] 경학 학사<br>[[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학 석사
         |훈 = 2006 [[석탑산업훈장]]
         |웹사이트 =
         '''함준'''(咸泳俊, [[1959년]] ~ )은 [[오뚜기]]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오뚜기]] 창업자인 [[함태호]] 명예회장의 장남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함준 오뚜기 회장, 2세 경체계 시동 |url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0&no=188603|출판사 = 한국경제 |저자 = |날짜 = 2010-04-14}}</ref>
         [[한양대학교]] 경학과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경학 석사를 마친 뒤 오뚜기에 입사했다. 2000년 3월부터 2010년 오뚜기 사장이 되고 2010년부터는 회장이 되었다.
         * [[한양대학교]] 경학 학사
         *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학 석사
         == 수 ==
  • 함익병 . . . . 13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 자녀 = 함은(딸) <br/> 함윤철(아들)
          | 서훈 내역 = [[2013년|2013]] [[SBS 연예대]] 버라이어티 부문 신인
          | 기타 이력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학사|사]] 출신 <br/> [[피부과]] [[의사]] 겸 [[저술가]] <br/> 1995년 [[자유민주연합]] 보건행정특보위원(前)<br/> 1996년 [[자유민주연합]] 임위원(前) <br/> 서울 이지함 피부과 차석부원장(前) <br/> 서울 함익병 피부과 클리닉 원장(現)
         본관은 [[강릉 함씨|강릉]](江陵)이며,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하였다. [[경남도]] [[의령군]], [[부산광역시|부산직할시]], [[의창군]], [[창원시]]<ref>현재의 {통합}창원시</ref> 등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이후 [[마산시]]에서 성장하였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학사|사]] 출신이며, [[석사]] 및 [[박사]] 학위 없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피부과]] [[스케일링]]이라는 아이템을 창안하였다. 한때 1996년에는 [[자유민주연합]] 임위원 직위를 잠시 지낸 전력이 있기도 한 그는 동료 피부과 의사 이유득, 지혜구 등과 동반 개업하여 서울 이지함 피부과 차석부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서울 함익병 피부과 클리닉 원장으로 재임 중이다.
         * 1987년 육군 공중보건의 복무 당시 강미형과 결혼하여 이후 그녀와의 사이에서 슬하 1남 1녀를 둠.
         * 1996년 [[자유민주연합]] 임위원.
         * 1996년 [[자유민주연합]] 임위원 직위 퇴임과 함께 [[자유민주연합]] 탈당.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강릉 함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김삼 정부]]
         [[분류:정일권]][[분류:정주]][[분류:백선엽]][[분류:김종필]][[분류:심대평]][[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이회창]][[분류:오세훈]][[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
  • 현재윤 . . . . 13회 일치
         |문 표기 = Hyun Jae-Yun
         |사진 사이즈 = 220px
         [[2004년]]에 기록한 최다 경기 출장(77경기), 타수(210), 안타(45안타)(2할1푼4리) 기록을 [[2009년]](99경기 245타수 53안타, 2할4푼1리)에 경신했다. [[진갑용]]의 시즌 아웃으로 [[2009년]]에는 출장이 더 많았지만, 그도 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2년]]에는 백업 경쟁자인 [[이지 (야구 선수)|이지]]에게 완벽히 밀리며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그 해 [[12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 간의 3:3 트레이드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하였다. 이는 양 구단 간 최초의 트레이드이다.
         트레이드 후 1군에 복귀했으며, [[2013년]] 데뷔 첫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나 [[7월 9일]] 잠실 NC전에서 [[찰스 쉬렉|찰리]]의 투구를 맞고 왼 손목 골절을 당해 올스타전 출전권을 [[김태군 (야구 선수)|김태군]]에게 넘겼고, 주전포수는 [[KIA 타이거즈]] 포수 [[차일목]]이 나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14&article_id=0002930096 NC 김태군, 현재윤 부으로 올스타전 합류] - 파이낸셜뉴스</ref> 이후 고질적인 왼손 엄지손가락 통증으로 [[2014년]] [[12월 29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300457 LG 포수 현재윤 ‘현역 은퇴’] - 스포츠동아</ref>
         * 2013년 3월 31일 문학구장 SK 전 :2013 시즌 첫 홈런(이적후 첫 홈런, 2013시즌 팀(LG트윈스) 2호 홈런, 대투수 : [[크리스 세든]], 948일만의 홈런)
         =====대팀별 기록(09시즌)=====
         !대!!경기!!타수!!득점!!안타!!타점!!타율!!장타율!!출루율
         ===수 경력===
         * 1997년 황금사자기 [[타격]](5할3푼8리)
         * 1997년 황금사자기 [[수훈]]
  • 홍병주 . . . . 13회 일치
         |징 =
         그의 동생 [[홍주 바오로]] 역시 [[순교자]]이다. 그들은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홍낙민 루카]]의 손자들이며, [[1839년]] 말에 순교한 [[홍재 프로타시오]]의 조카들이다. 그들은 모두 명문 [[양반]]의 후손이며, 그 가문 사람들 중 여럿이 [[한국 천주교]]에 기여한 바가 크다.
         홍병주와 홍주 형제는 [[한양]]의 한 명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홍낙민]]이 [[순교]]하자, 그들은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의 [[여사울]]로 이사하였고, 대대로 이어온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자로서 살았다.
         홍병주와 [[홍주]]는 모두 [[교리]] [[교사]]로 임명되었고, 예비 신자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열의와 충실함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예비신자를 가르치며 병자들을 돌보는 것과 자선사업에 매진하였다. 그러므로, [[모방 베드로|모방]] [[사제|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그들의 재능과 열정에 감복하였고, 그들에게 여러 중요한 책임을 맡겼다.
         [[1839년]] [[기해박해|기해년의 박해]] 동안에,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었다. 따라서, 배교자 [[김여]]이 [[체포]]되어야 할 명단에 그들의 이름을 기록해 놓았다.
         홍병주 [[홍주]] 형제는 9월에 [[체포]]되었다. [[포도청]]에서 형리들은 그 형제에게 동료 교우들의 위치를 발설할 것과 배교할 것을 강요했지만, 형제는 결코 그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형조]]로 이송되었는데, 형조 [[판서]]가 그들의 친척이었다. 그는 그들을 직접 [[고문]]하지 않았고, 그의 부하들을 시켜 형제가 배교하도록 극심히 고문케 하였다. [[도둑|절도범]]과 [[살인자|살인범]] 등의 다른 수감자들도 형리들을 따라 홍병주와 홍주 형제를 구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절대 꺾이지 않았다.
         홍병주와 [[홍주]]는 [[당고개역|당고개]]에 있는 사형장으로 압송되어 [[참수]]되었다. 홍병주는 [[1840년]] [[1월 31일]]에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었고, 홍주는 다음날인 [[2월 1일]]에 두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었다. 그렇게 홍병주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43세였고, 홍주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40세였다.
         홍병주 베드로와 [[홍주 바오로]] 형제는 [[1925년]] [[7월 5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ref name=103saints_britannica>{{백과사전 인용
         | 저자 = 이
  • 홍혜경 . . . . 13회 일치
         |웹사이트 =
         '''홍혜경'''([[1959년]] 7월 4일 ~ )은 [[대한민국]]의 [[소프라노]] [[성악가]]이다.리릭 레제로 소프라노로 경력을 시작해 현재는 리릭-리릭 스핀토 소프라노까지를 아우르는 역을 개척하였으며,[[조수미]]와 [[신옥]]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3대 소프라노로 손꼽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134148 <2006 신년특집-한국이 낳은 글로벌 리더들>“세계로 뻗는 한국문화 내가 이끈다” 기사 내용중 대한민국의 3대 소프라노부분 게재되어 있음 《문화일보》2006-01-02 작성 : 김순환 기자]</ref>
         [[줄리아드 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메트로폴리탄 콩쿠르 우승, 1983년 미국을 대표하는 4인의 젊은 성악가 선정, 1986년 워싱턴 오페라 가이드 선정 올해의 예술가, 2007년 노만빈센트필어워드를 수하였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신옥, 조수미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소프라노로 자리잡고 있다.
         == 수 ==
         * [[1986년]] 워싱턴 오페라 가이드 선정 올해의 예술가
         * [[2007년]] 노만빈센트필어워드 수
         * [[2011년]] 제4회 대한민국오페라대 이인선
  • 황선희 . . . . 13회 일치
         {{화인 정보
         | 학력 = [[명대학교]] 연기전공
         | 웹사이트 = [http://www.praintpc.com/bbs/board.php?bo_table=hwangsunhee_info&wr_id=1 프레인TPC 황선희]
         * [[명대학교]] 연극화학 학사
         | 오수
         === 화 ===
         == 수 및 후보 ==
         ! 시
         | [[SBS 연기대]]
         | 드라마스페셜부문 여자 특별연기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명대학교 동문]][[분류:프레인TPC 소속]][[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2회 일치
         위항목: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사 처음으로 '''각종 기록이 난무한 대회'''였으며,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가 승강전에 유리하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다지게 된 대회라는 점에서 대회종료 후 많은 이슈를 낳았다.
         양 팀은 단 한번도 대결을 펼친 적이 없었기에 클래식에서 쌓은 내공이 있었던 부산 아이파크가 이길 것으로 예한 사람이 많았었다. 게다가 수원 FC는 후반 6분경에 수비수 임하람이 거친 백태클로 경고 없이 레드카드를 받아 나가는 황까지 겹쳤지만 경기는 단 1골로 승패가 가려졌고, 수원 FC가 선승을 가져가면서 2차전까지 이 분위기를 이어가게 된다.
         부산은 1차전의 패배 때문에 반드시 2골 이을 넣어야지만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는 반면에, 수원FC는 1차전(홈)에서 1골을 넣었기 때문에 역으로 1골만 넣어도 3실점 이 먹이지만 않는다면 승격이 눈앞에 있던 황.
         하지만 조덕제 감독이 구한 반칙을 통한 흐름을 끊어주는 전략이 유효했고,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해 경기 종료 즈음하여 2골이 터지면서 수원의 승격이 확정된다.
         [[오프사이드]]를 제외하고도 양 팀 합계 반칙이 43개나 나올만큼 승강이 갖는 '''생존'''이란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경기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1. '''사 첫 기업구단이 강등을 당한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
          1. 수원 FC가 승격함으로써 [[K리그 클래식]] 사 최초로 지역더비가 완성된 점.[* 축구역사에서 더비라는 용어는 '''지역라이벌'''을 가리키는 것이 확장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축구사에 당한 의미를 부여한 셈]
  • Q.E.D. 증명종료 . . . . 12회 일치
         [[일본]]의 작가 [[카토 모토히로]]가 [[코단샤]]의 [[계간]]지 '월간 소년 매거진 플러스'[* 원래는 매거진 GREAT라는 이름이었으나, 2009년 매거진 Z라는 잡지가 폐간, GREAT에 흡수되면서 '매거진 이노'라는 잡지가 되었다가 이마저도 2011년에 폐간. 이노에서의 연재작들을 모아 새로 창간한 잡지가 매거진 플러스.]에 연재 중인 [[추리]]만화. 작가는 전에 일하던 출판사([[에닉스]])에서 정리해고당하고 이 만화까지 망하면 만화가를 그만두겠다는 각오로 그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왕창 팔린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판매 부수는 권당 4만부 정도. 잡지가 워낙 마이너하다 보니... ] 97년부터 2015년까지 장장 18년 동안 장수하며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격월간지 장기연재 만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돼있는 태로, 실시간 갱신중이다.] [[date]] 기준으로 48권까지 정발되었다.
         사람이 팍팍 죽어나가지도 않고[*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엔 페이지가 부족해서 그랬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살인 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도 만들게 되었다고. 35권처럼 살인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로만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뭔가 성적인 소재가 사용되지도 않으며, 사건이 끝난 뒤에 깔끔하게 해결되는 편. 그러나 문헌 오염, 증명에 실패한 위 수학자, 지쳐버린 작화감독, 환자와 의사로 비유하여 자신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라는 등 씁쓸함과 여운을 남기는 해결도 당히 많다. 해결추리 만화에 흔히 나오는 '불가능 트릭'도 그리 많지 않으며(가끔 나오기는 한다) 다음 권으로 사건의 답 등을 넘기는 경우도 없다.
         그래도 고정팬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추리만화다. 다만 작가가 소재가 겹치는 [[C.M.B. 박물관 사건목록]]을 연재하면서 Q.E.D.를 다소 소홀히 하는 듯한 경향이 보이며 또 팬들의 애탄 바람과는 관없이 [[토마 소|토마]]와 [[미즈하라 가나|가나]]의 ~~연애질~~연애노선이 진전될 가망이 안보인다는 점(...)[* 주인공들이 아직도 서로를 토마군-미즈하라씨 로 부르고 있다...]
         같은 작가의 [[C.M.B. 박물관 사건목록]]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극중에서 토마가 언급한 괴짜 사촌이 바로 박물관 사건목록의 주인공인 [[사카키 신라]]. 콜라보레이션 기획으로 두 작품의 주인공이 만나는 편도 있다. 이제까지 총 2번의 기획이 진행되었으며, 해당 단행본은 첫번째가 QED 28/CMB 6권[* 이 때는 서로 다른 사건을 쫓다가 마주하게 되었다. 사건이 성격이 각각 다르기에 둘의 지능에 우열을 매길 수는 없겠지만, 자기가 쫓는 사건이 아님에도 신라보다 진 파악이 빨랐던 것으로 보이는 토마의 판정승이라 보는 의견이 많다.], 두번째가 최근의 QED 41/CMB 19권.[* 전편을 의식한 것인지, 이번엔 아예 각자의 두뇌를 한껏 활용하면서 말 그대로 정면충돌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예고편 동이 올라오면서 뭇 팬들을 설레게 했었다. 밝혀진 결과물은 정면 충돌.
          * 작품 초반부에는 주인공들이 어느정도 정적인 시간 흐름을 보였지만 그 이후로는 자연스래 여타 추리 계열 만화들과 처럼 [[사자에 시공]]에 접어들었다.
          * 작품 자체의 소재가 일반인들은 접해보지 않은 개념들이 많아. 당히 식적인 면에서 읽어볼만하나 원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많기도 하고, 일본어 특유의 외국어 표기법(ex, 마구도나루도)으로 번역자가 그대로 해석해서 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연속체 가설에서 만화책에서는 '아레후'라고 나오지만 제대로 된 명칭은 [[알레프]].
          * [[NHK]]에서 드라마로 제작, 2009년 01월부터 방되어서 10화로 완결. 여주인공 가나역에는 모닝구무스메의 멤버([[다카하시 아이]])가 캐스팅되어 화제...였다고는 하지만...아~[[망했어요]][* CMB 14권에 따르면 작가의 부인이 이 드라마 덕분에 다카하시의 팬이 되었다고는 하는데 과연...] 다행히 실사판의 흥행여부와는 관계없이 만화는 계속 사랑받고 있다.
  • Victoria II/디시전 . . . . 12회 일치
         >우리 학계의 대다수는 현재 학계가 지나치게 편향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는 좀 더 전통적인 태로 되돌아가야한다.
          * 위신 '''45''' 이
         ==== Sea power & The Merchant Marine(해군력과 선대) ====
          * '''Balboa(발보아)''' 프로빈스를 소유하거나 소유국을 향권 내에 두고있음
          * '''Suez(수에즈)''' 프로빈스를 소유하거나 소유국을 향권 내에 두고있음
         === 국 ===
         >무굴 제국과 국 동인도 회사가 폐지된 후, 빅토리아 여왕은 1857년에 인도 여제 작위를 수여받았다. 해당 작위는 본래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에게 수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도에 국령 인도 제국을 세우면, 대제국을 위한 양지 바른 곳을 보장받을 수 있다!
          * 위신 '''40''' 이
         >비공식적인 아루스투크 전쟁에 이후, 1842년 웹스터-애슈버튼 조약이 국과 미국 간에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메인과 브런즈윅 사이 경계선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 결정안에는 오대호의 공동 사용과 49도선의 재확인, 대서양 노예 무역의 종결에 대한 약속이 담겨있었다.
  • head to head . . . . 12회 일치
         일반적인 의미로는 맞대면, 스포츠용어로는 "직접 경쟁"을 의미한다. 축구에 한정하면 "승자승 원칙"이라는 용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대부분은 대전적 그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로 흔히 쓰이기도 한다.
         사전적인 쓰임으론 face to face와 거의 같은 용어로 쓰이지만, 스포츠계로 넘어오면 제1순위결정기준으로 순위를 정할 수 없을 때 적용하는 동점간 직접비교를 통한 순위결정방식을 가리키는 단어다. 애초에 이 용어 자체가 대전적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걸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만약 AFC 챔피언스 리그를 예로 든다면, 조별단계에 참가한 A, B, C, D라는 팀중에 승점이 같은 팀이 A와 B 2개팀이 있다면 이 승점이 같은 2팀끼리 붙었던 대전적을 비교하여 평가한다. 즉, ACL 기준으로 헤드 투 헤드에 따르면 순위산정에 향을 미치는 경기결과는,
         이 되는 것이다. 나머지 2팀과 붙었던 전적은 철저히 배제하고 평가하는 셈. 사실 토너먼트의 [[누적득점 집계방식]]과 동일하다.
         이 여섯 경기를 바탕으로 평가하게 된다. 누적득점 집계방식에선 사실 승무패로 갈리기보다는 득점과 원정골 여부만 생각하면 되는 반면에 3팀 이을 고려해야 하는 헤드 투 헤드는 득점과 원정골보다 원정승의 여부가 정말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규정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대회이며, 매 시즌마다 이 규정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는 팀이 꼭 생길 정도로 대회의 흥행을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2016시즌만 봐도 A조의 [[알 이티하드]], G조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각조 2위에 비해 골득실이 높았지만 이 원칙에 의해 순위에 밀려나는 황을 맞이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승자승이라는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단순히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황까지도 고려해 평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번역 자체가 난감한 경우이기도 하다. 대전적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번역하기 까다로우므로 오히려 마케팅이나 라디오처럼 발음 그대로 쓰는 편이 나은 용어로 보인다. 대전적을 가리키는 헤드 투 헤드일 때는 "대전적"으로 번역하고,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한 우위비교일 때는 헤드 투 헤드로 부르는 게 낫다는 이야기.
  • 강대식 . . . . 12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대구광역시/인물]]
         ||<bgcolor=#00B4B4> '''{{{#FFFFFF 최종 학력}}}''' ||<(>[[남대학교]] 경학 박사 ||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현직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청장으로 당적은 바른미래당이며 계보으로는 [[친유]]계이다. [[노총각|미혼]]이다.
         1959년 [[경북도]] [[경산시|경산군]] 안심면(현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대구송정초등학교, [[안심중학교]],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남대학교]] 경[[대학원]] 경학 [[석사]], 남대학교 대학원 경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그런데 2012년 11월 20일 [[음주운전]] 태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4837775|경찰에 적발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2017년 2월 [[윤순]]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청장과 함께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바른정당]]에 입당하였다.
  • 건포인트 . . . . 12회 일치
         이를 수행하기 위해 여러 장비들이 준비되어 있다. 처음에는 불프로그 하이퍼트라우저 밖에 쓸 수 없지만, 임무를 수행하며 돈을 벌어 점에서 장비를 구매할 수 있다.
         임무가 끝난 후 폭력성, 목격자, 소음, 시간에 따라 등급이 부여된다. 이는 게임에 별 향이 안 가지만 등급이 마음에 안 든다면 해당 임무를 시작할 수 있다.
          $80. 건물 내의 전선망을 재배열 할 수 있게 해주는 장비. 설정 20년 내에 지어진 건물들은 전력망 하나를 사용하고 있다. 이걸 해킹해 스위치나 금속 탐지기, 그외 여러가지 사물들의 호작용을 바꿀 수 있게 해주는 것. 마우스휠을 굴리거나 왼쪽 알트를 누르는 걸로 전선 재배열 모드로 들어갈 수 있다.
          $130. 회로 자를 해킹해 붉은 색 외의 전선을 해킹할 수 있게 한다,
          $1,000. 왼쪽 시프트키나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꾹 눌러서 권총을 꺼내든다. 대다수의 경비원들은 권총으로 겨누고 있으면 총을 못 쏘며, 천천히 다가가면 뒤로 물러난다. 그래도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쏴버리니 주의. 권총을 꺼낸 태에서 마우스 왼쪽 클릭으로 권총을 쏠 수 있지만, 소음을 발생시키는 데다가 총이 발사되고 나서 15초 내에 못 빠져나가면 경찰이 지하철 입구에 저격수를 배치해 콘웨이를 쏴죽여버린다. 그런데 저격수도 쏴죽여버리면 된다는건 안비밀. 장탄수 여섯발.
         건포인트 초기 버전과 개발에 대한 40분 분량의 동, 특전 음악, 제작자들이 차후에 만들 게임의 비밀 베타 버전을 플레이 할 권한 등이 포함된 DLC.
          루크 파이어암즈의 CEO. 자신의 친구인 델가도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려 한다. 경찰에 의해 델가도 살인범으로 지목된 콘웨이를 시켜 콘웨이가 촬된 감시카메라 기록을 지우게 한다.
          루크 파이어암즈의 분석가. 루크의 의뢰에 따라 델가도 살인 현장의 감시카메라 기록을 전부 지우면 연락해온다. 루크의 남편인 잭슨이 델가도 살인 현장에서 그녀를 보았다고 증언하며 유력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거기 없었다는 증거를 대려고 해도 누가 현장의 감시카메라 기록을 지워버려서 증거도 없는 황. 콘웨이에게 잭슨의 사무실로 잠입해 단서를 찾아낼 것을 의뢰한다.
          루크의 남편. 따로 회사를 경하고 있다. 델가도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 중 하나. 살인 현장에서 콜린스를 봤다고 말해 그녀가 유력 용의자가 되게 만들었다.
          루크 파이어암즈의 경쟁사인 인텍스의 CEO. 입이 당히 험해서 Fuck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콘웨이와 접선할 때 처음 한말이 "씨발 넌 뭐하는 놈이냐?"[* Who the fuck are you?]일 정도. 콘웨이에게 루크가 진행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훔쳐올 것을 의뢰한다. 목격자를 살려두지 말라는 말은 덤.
  • 권민경 . . . . 1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br/> (現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 자녀 = 1남 2녀(막내아들 조우)
          | 웹사이트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5515770953&fref=ufi&rc=p 歷代 Miss 大邱 - 001]<br/>[https://www.facebook.com/표투리-조우-363102183894896/ 歷代 Miss 大邱 - 002]
         1986년 [[미스코리아 대구]] 진(眞)에 입을 하였으며 신장은 165cm이고 체중은 43kg인 그녀는 미스 대구 진(眞) 입을 한 이후 잠시 패션 모델로도 활동을 하였다.
         미스코리아 대구 입 후 모델 활동을 잠시 한 이후 그녀는 1990년 대구 출신의 변호사 조재원과 결혼하여 그와의 사이에 1남 2녀(1991년생 장녀, 1993년생 차녀, 1998년생 막내아들)를 두었고 자녀들 중 막내아들 조우({{출생일과 만나이|1998|5|23}} [[대구광역시|대구]] 출생) 君은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한림예고]] 출신인데 지난 2015년 TvN TV 프로그램 《[[고교10대천왕]]》에 10대천왕 패널 주인공 중 일원으로 출연한 전력이 있다.
         그에 아울러 그녀는 프리 랜서 아나운서 출신 수필가 겸 연기자 [[김경화]]와 화배우 겸 연기자 [[손예진]]의 [[정화여자고등학교|정화여고]] 선배이기도 하고 그녀의 막내아들 조우 君은 가수 [[송유빈]] 君, 가수 [[태하 (1998년)|김태하]] 羊, 연기자 [[신동우 (배우)|신동우]] 君, 연기자 [[박종혁]] 君 등과 한림예고 동기이기도 하다.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1986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입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명여자중학교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김성조 . . . . 12회 일치
         || '''출생''' || 1958년 11월 15일, [[경북도]] [[구미시]] ||
         || '''학력''' || [[남대학교]] 화학공학 학사[br][[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br][[금오공과대학교]] 명예경학박사 ||
         1958년 [[경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대구 [[대륜고등학교]], [[남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동양전자화학에서 근무하다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윤환]]을 제치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 그리하여 한나라당 후보로 경북도 구미시 선거구에 출마하였고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김윤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화제가 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6년까지 한나라당 사립학교법 재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한나라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 1995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도의회 의원) || [[무소속]] || - || '''당선''' ||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도 구미시) || [[한나라당]] || - || '''당선''' ||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도 구미시 갑) || [[한나라당]] || - || '''당선''' ||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도 구미시 갑) || [[한나라당]] || - || '''당선''' || ||
  • 김익노 . . . . 12회 일치
         1905년 [[경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북도 일군(현 [[포항시]])으로 이주하여 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농업대학 실과를 수료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일제강점기]] 삼우공업주식회사 사장, 남선민보사 사장, [[한국독립당(1930년)|한국독립당]] 경북도당 선전부장, [[독립신문]] 경북도 지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 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개편으로 무소속으로 경북도 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징계자격위원회 [[주사]]에 임명되었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징계자격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정선거를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고 같은 해 6월 선거무효 판결이 내려져서 9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대 후보의 표를 절취했다는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어 1959년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직을 실하였다.
  • 나가 . . . . 12회 일치
         인간형의 비늘을 가진 냉혈동물로, 네 선민종족중 하나. 네신중 '물'을 징하는 '발자국없는 여신'이란 신을 섬기며, 말을 할 수 도 있지만, 대부분 '니름'[* 마음속으로 말하는것. 프로토스의 소통방식을 생각해보면 쉽다.]으로 서로 소통하며,[* 물론 나가가 아닌 다른 종족과는 평범하게 말로 소통한다.] 이때문에 청력이 그리 좋지는 못한 편이다.[* 이때문에 음악을 즐기지 못한다.] 특이하게도 열을 볼 수 있지만 그때문에 그림을 즐기지 못한다. 그외에 냉혈동물이라 그런지 허물을 벗기기도 하고, 일정 수준이의 온도가 제공되지 않으면 활동할 수 없다.[*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역의 한계를 '한계선'이라고 하는데, 가장 짧은 간격이 200km라는듯(...)] '소드락'이란 약물을 투여하는것으로 일정시간동안 엄청난 속력과 민첩성을 보여줄 수 있다.
         이들은 22세 이의 성인 여성들이 중심인 가문으로 뭉치는데, 이 성인 여성들중 한명을 가주로 한다. 작중에선 가주에 대한 투쟁은 반쯤 전쟁수준으로 묘사되는데,[* 현실의 작위계승 관련을 생각해보면 쉬울듯.] 나이와 딸이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인덕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듯 하다.
         이들은 22세가 되는해에 '심장적출'이란 의식을 가지는데, 일종의 성인식으로, 심장을 말그대로 '빼서' 심장탑에 보관하는 식이다. 이태의 나가는 사실 불사로, 목이 잘려도 어느정도의 시간과 양공급만 있으면 목이 다시 붙는듯. 심장을 뽑지 않은 나가는 '비에나가'라 부르는데, 이들은 말그대로 '가짜 나가'취급을 받는다. 만약 어쩌다 사정이 생겨 심장을 뽑지 못했을경우엔, 여성은 그 다음해에 심장적출이 벌어지는때까지 가문에서 보호해주지만, 남성은 무조건 끔살이라는듯(....)
         철저한 모계사회이며, 남자 나가는 성인이 되기전엔 그의 가문에 머물며 성장하며, 성인이 되고 난뒤에는 가문을 떠나 떠돌아다니면서 도시를 방문해 가임기의 여성 나가들이 있는 가문에 씨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외에 미성년 남자 나가들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작중에서는 이러한 경호역할로 외출한 남자 나가가 다른 가문으로 내빼는경우도 서술하고 있다(...)] 일부 남성 나가들은 '수호자'라 불리며 여신의 '신랑'이 되는데, 원시종교에서 여사제들이 순결을 지키는것과 비슷하게 결혼을 하지 않으며, 심장을 적출하는 역할을 한다. 사제로서 당한 권력을 가지기에 어지간한 여자 나가들도 이들을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
         모계 사회라 그런건지, 남성 나가는 당히 여성적인걸로 묘사되는데, 작중에서 남성 나가가 자신의 허물을 벗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것에 수치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성행위에서 있어도 남성이 여성에 비해서 당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냉혈동물이란 한계로 인해 자신들이 한계선 이북으로 활동할 수 없는것에 당히 거부감을 보이며, 이때문에 작중 시도떄도 없이 북쪽으로 확장하려는 야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야욕으로 인해 멸종된 생물이 흑사자. 작중에서 털을 보온용으로 쓰기 위해 멸종에 이르기까지 사냥했다고...] 결국 작중 시간대에서 당히 지난 시점에서 [[전령자]]를 이용해서 반쯤은 성공한듯.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8화 . . . . 12회 일치
          *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흩어져 있던 A반 생존자들을 집결시켰고, 네빌 레이저를 보고 온 적들에게서 포인트를 따내 웅고 전원이 합격하게 된다.
          * 현재의 황은 모두 신도가 의도한 것. 막무가내로 부수고 본 것 같지만 책략이었다.
          * 예했던 것보다 더 난장판이 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플러스 요인.
          * 그러면서 썩소를 짓는데 이미 걸물고교 학생들에겐 유명한 모양. 쾌한 미소는 위장이었다.
          * 현재 A반은 11명이 통과하고 9명이 남은 황. 남은 자리는 18개 뿐이다.
          * 원래 아오야마는 눈에 잘 띄어서 벌써 포인트를 두 개나 빼앗긴 태.
          * 코다 코지가 비둘기를 조종해 공을 장악하고 거기에 숨어 토코야미가 접근한 것이다.
          * 황은 일소되어 웅이 타학교를 대로 무쌍을 벌인다.
          * 이이다는 "뭘 가지고 대등하다는 거냐. 기준이 달라서 모르겠다"며 어쨌든 이 황은 "아오야마의 덕. 고맙다"고 말한다.
          * 이 폭파된 태가 2차 시험장.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2화 . . . . 12회 일치
          * 인턴제도는 직업 체험과 비슷한 제도로 임시면허 취득자를 대으로 졸업 전에 "정식 히어로 활동"을 행하는 제도.
          * 교장 [[네즈]]가 내려간 후 이어서 생활지도를 맡고 있는 [[하운드 독]]이 단에 오른다. 하운드 독은 여러가지로 격렬해서 개짖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설교를 마치고 내려간다. 도저히 전달이 안 되기 때문에 블러드 킹이 흥분한 그를 진정시키고 번역해서 학생들에게 전파한다. 그 내용은 어제 싸움한 학생이 있었다는 걸로 [[미도리야 이즈쿠]]와 [[바쿠고 카츠키]]에 대한 것. [[야오요로즈 모모]]는 둘이 문제아로 찍힌거 아닌가 우려한다. [[미네타 미노루]]는 하운드 독은 흥분하면 사람말도 못하게 되는 거냐고 두려움에 떤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그럼 웅제 때 고생한건 의미가 없는거 아니냐고 아우성친다. 너무 격한 반응이라 [[사토 리키도]]가 진정시킨다. [[이이다 텐야]]도 그런 제도가 있으면 웅제 때 스카웃을 받기 위해 아득바득 고생할 필요가 없었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자와의 설명으론 바로 그 웅제에게 쌓은 인맥에 기반한게 인턴제도다. 게다가 이건 수업도 직업 체험도 아니라 "진짜 히어로 활동"이기 때문에 미리 지명을 받지 않은 학생은 인턴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 본래 사무실 별로 인턴을 모집하는 제도였지만 웅고 학생들은 수요가 많기 때문에 다소 편법적인 형태가 된 것이다. 아이자와의 설명을 들은 우라라카는 흥분해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앉는다.
          이런 설명을 하다 보니 수업이 시작돼 버렸다. 다음은 [[프레젠트 마이크]]의 어 시간. 아이자와와 180도 차이나는 하이텐션으로 수업이 시작된다.
          * 기숙사에서는 [[미도리야 이즈쿠]]가 청소를 마치고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다. 어제 싸움에서 팔을 써버렸기 때문에 혹시 이은 없나 엄청 신경 쓴다. 어제는 잘 컨트롤 했지만 격전 중에도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 당분간은 슛 스타일에 전념하기로 한다.
          저녁이 돼서 학생들이 돌아오자 근신 태의 미도리야와 바쿠고를 놀려대기 시작한다. 미도리야는 쓰레기 처리를 자청하는데 [[키리시마 에지로]]가 마이크의 수업이 따라가기 힘들다고 투덜대거나 [[지로 쿄카]]와 [[오지로 마시라오]]와 인턴 제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걸 보고 뒤쳐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벽에 나타난 얼굴은 태연하게 분리 수거에 대해 조언한다. 웅에 들어와서 별별 희안한 건 다 본 미도리야지만 그저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얼굴은 곧바로 사라져 버리는데.
          * 그런 일과 초조함을 품은 채로, 바쿠고보다 한 발 먼저 교실에 복귀한다. 미도리야는 3일의 격차를 따라잡겠다고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마침 아이자와는 미도리야도 돌아왔으니 인턴 제도에 대해서 세한 설명을 하겠다고 한다.
          * 오늘은 인턴 제도가 직업 체험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현재 참가하고 있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다. 아이자와는 바쁜 사람들을 일부러 초청했다며 새겨들으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불려온 선배들은 현 웅고 내에서 "톱3"로 군림하고 있는 유망주들. 이른바 "빅3"다. 아이자와가 부르자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는 세 명의 선배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4화 . . . . 12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는 그동안 시에핫사이카이에 대해 여러 사무소를 모아 공동대응하고 있었고 이 자리는 그들의 목적을 파악하기 위한 회의장소였다.
          * [[키리시마 에지로]]의 새로운 형태, "레드 라이오트 언리미티드". 키리시마의 경화를 가뿐히 능가하던 빌런의 칼날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키리시마가 이 태를 유지할 수 있는건 길어야 3, 40초. 그러나 일단 이 태가 되면 그 자신의 말대로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빌런의 칼날은 더이 키리시마에게 통하지 않았다. 묵묵히 칼날을 뚫고 달려온 키리시마는 빌런의 보디에 "레드 건틀릿"으로 묵직한 한 방을 꽂아넣는다. 빌런이 나가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언리미티드도 종료.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 빌런은 쓰러지자 다시 울보 태로 돌아간다. 키리시마는 무심코 약의 효과가 끝났다고 생각해 버린다. 빌런은 "나는 강해지고 싶었을 뿐인 불쌍한 인간.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는데 키리시마는 안된다고 거절하면서도 "마음은 이해한다"고 태도가 누그러진다. 그게 빌런이 노린 바였다.
          하지만 키리시마를 뒤쫓아온 [[패트껌]]과 맞주쳤다. 패트껌은 곧바로 빌런을 포획한다. 그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은 "지방흡착". 몸에 뭐든지 흡착시키고 집어넣을 수 없다. 키리시마의 경화도 뚫었던 칼날이지만 그의 두터운 몸에는 무용하다. 패트껌은 빌런의 승리조건은 "살해", "도주", "쓰러뜨린다" 등등 다양하지만 히어로는 "피해자 없이 붙잡는다" 단 한 가지이며 빌런을 얼마나 빨리 전의실 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조언한다.
          키리시마는 자신이 고전한 대를 간단하게 포획하는 걸 보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망쳤던 시민이 키리시마의 노고를 치하한다. 그 노인은 키리시마가 일부러 빌런의 칼날을 자신에게 집중 시킨 것도 눈여겨 보고 있었다. 패트껌 또한 "나와는 다른 화려한 데뷔"라며 높게 평가한다. 시민은 키리시마가 대단한 히어로가 될 거라고 칭찬하고 키리시마는 보람을 느낀다.
          키리시마는 타마키에게 괜찮냐고 묻는데, 타마키는 개성을 발동할 수 없어서 히어로로서 괴롭다고 네거티브 태다. 코스튬에 달린 후드를 푹 뒤집어 써서 아예 얼굴을 가려버렸다. 타마키는 자신을 감싸준 키리시마가 [[토오가타 밀리오]]와 같은 "태양 같은 인간"이라고 말한다. 키리시마는 "선배도 날 사무소에 소개시켜줬으니 태양같은 인물"이라고 답례하는데 그런 점이 타마키를 더 곤란하게 한다.
          * 이튿날 키리시마가 등교했을 땐 화제의 인물이 되어있었다. [[카미나리 덴키]]가 키리시마의 활약이 매스컴을 탔다고 호들갑을 떤다. [[바쿠고 카츠키]]는 자격지심을 느껴서인지 이를 간다. [[아시도 미나]]도 [[우라라카 오챠코]]와 [[아스이 츠유]]의 활약을 기사로 읽었다. 이들은 반친구들의 부러움이 대이 된다. [[이이다 텐야]]는 그래도 학업엔 충실해야 한다며 졸지 않고 수업을 들으라고 반장같이 설교한다.
          * 며칠 뒤. 미도리야는 귀갓길에 키리시마와 오챠코, 츠유와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모두 인턴활동을 하러 가는 길이다. 한동안 호출이 없었는데 오늘 네 명이 동시에 호출이 왔다. 그런데 가다보니 칸사이 지방 사무소인 키리시마도 계속 그들과 같은 방향이다. 이번엔 집합장소가 다르게 지정되었다는데. 이 우연한 것 같은 동행은 전철을 타고 전철에서 내리고 심지어 모퉁이를 도는 동안까지 계속된다. 심지어 가던 방향인 빅쓰리 밀리오, [[하도 네지레]], 타마키까지 합류한다.
          * 그 중에는 [[아이자와 쇼타]]나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 같이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나이트아이 사무소의 [[버블걸]]도 보인다. 미도리야와 친구들은 어리둥절한 채 주위를 둘러보는데 네지레는 그들 사이에서 [[류큐]]를 발견하고 달려가서 질문을 세례를 퍼붓는다. 류큐는 곧 알게 될 거라면서 나이트아이에게 "그 안건"에 대해 슬슬 시작하자고 말하는데.
          * 이들을 불러모은 것은 다름아닌 서 나이트아이. 그는 여러 사무소의 협조를 받아 "시에핫사이카이"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해서 그들이 뭘 꾸미고 있는지 추정해보는 자리. 나이트아이는 회의 시작을 선언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9화 . . . . 12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가 이끄는 히어로&경찰 연합군은 신속하게 시에핫사이카이의 아지트를 급습했으나 [[오버홀]] 치사키는 부하들을 장기말 삼아 도주한다.
          * 항 치사키 곁에 있던 작은 부하 [[이리나카]]는 개성 "의태"로 일행이 돌입한 복도 자체를 장악해 살아있는 미궁으로 바꾼다.
          * 나머지 일행은 한층 밑의 공간으로 떨어지는데, 그곳엔 "철포옥 핫사이슈"가 배치돼있었다.
          * 시에핫사이카이의 음모에 이용되는 소녀 "에리쨩"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서 나이트아이]]와 히어로&경찰 연합군. 조직원들이 몰려나와 방해하지만 현지 히어로들의 적극적인 마크로 어떻게든 건물 내부까지 진입한다. 조직원 전체가 나서서 시간 끌기를 하는 이러한 행태가 혐의를 더욱 짙게 만든다. [[패트껌]]은 "수한 정도가 아니다"고 날을 세운다.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진행되는 황이 불안하다며 투덜거린다. [[아마지키 타마키]]는 정보가 샜음을 짐작하고 적들이 한덩이가 된 것처럼 군다고 소감을 밝힌다. [[아이자와 쇼타]]는 이들이 떳떳하지 못한 만큼 결속을 중요시하는 거라고 혹평하고 간부나 [[오버홀]] 치사키가 보이지 않는 걸 들어 수뇌부는 이미 지하에서 은폐 중이거나 도주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우직함 심성의 [[키리시마 에지로]]는 "그딴건 충의도 뭣도 아니다"고 버럭하며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도망치는건 사나이답지 않다고 말한다.
          * 나이트아이의 두 사이드킥이 나선다. [[센티피더]]가 개성 "지네"를 발동, 맨 앞의 조직원 둘을 묶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버블걸]]에게 맡긴다.
          * 일행이 추적을 속행하려 하자 비밀통로 전체가 파도치듯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조직원들을 구속하던 버블걸과 센티피더도 괴이하게 변모하는 통로를 보고 당황한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일행. 변하는 형태로 보아 치사키의 개성은 아니다. 형사는 아마도 본부장 [[이리나카]]의 개성일 걸로 추측한다. 항 오버홀 옆에 따라다니는 작은 부하가 그다. 그의 개성은 "의태". 특정한 물건에 들어가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 지금은 건물의 콘크리트에 들어가 지하통로를 살아있는 미궁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정보에 따르면 그에겐 이정도 규모를 조종할 힘은 없다. 기껏해야 냉장고 하나 정도가 한계. 패트껌은 부스트 약물을 쓴 거라면 불가능하진 않을 거라고 추측한다. 허를 찌르는 함정이지만 분명 몸에 무리가 갈 텐데. 패트껌은 아이자와에게 무효화를 요청하나 본체를 정확하게 잡는게 아니라면 그에게도 무리다.
          * 일행이 떨어진 높이는 약 1층 높이. 낙사를 노릴 만한 높이는 아니다. 아이자와는 급변한 지형을 주시하며 본체를 찾아봤지만 허사. 일행이 떨어진 곳은 넓은 방이었다. 다친 사람은 없지만 목표와 떨어져 버려서 이미 적의 의중대로 굴러가는 황. 그때 방 한 켠에서 적이 등장한다. 오버홀이 "더러운 짓"을 시키려고 준비한 장기말들, 철포옥 핫사이슈 중 3인이었다.
          * 친구의 말을 되새기며 웅고 No. 2, 타마키가 실력행사에 들어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12회 일치
          * 처음으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깨달은 "에리". 에리의 도움으로 마침내 [[미도리야 이즈쿠]]는 에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접촉하는 순간 이한 느낌이 관통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인지할 틈도 없이 [[오버홀]] 치사키가 다시 한 번 흉수를 뻗쳐온다. 미도리야는 아직 공중이라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황. 그 순간 [[토오가타 밀리오]]가 물었던 "어떤 히어로가 되고 싶냐"던 물음이 떠오르고 "반드시 이기고 반드시 구하는 히어로"라는 대답이 떠올랐다.
          * 오버홀이 변화시킨 지면이 손가락처럼 뻗어오는 순간, 미도리야는 그것들을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모습은 사라진다. 어리둥절해하는 오버홀 위로, 천장이 폭발하듯이 무너지고 미도리야는 어느새 지으로,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있었다. 자신은 그저 오버홀의 공격을 차내려 했을 뿐인데, 힘 조절이 안 돼 여기까지 날아온 것. 그런 거라면 자신의 다리가 멀쩡할리 없다고 서둘러 확인해보는데.
          * 한편 지하에서는 [[류큐]]가 드래곤 폼으로 일행을 지킨 덕에 사자는 생기지 않았다. 오버홀은 쏟아지는 잔해에 휩쓸렸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몸을 재구성해 무사하다. 여전히 에리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며 의식을 잃은 "카츠카메 리키야"를 흡수해 다시 한 번, 이번엔 완전히 미도리야를 죽이려 든다.
          * 류큐 팀은 오버홀을 저지해보려고 하지만 온전한 태가 아니다. 그때 [[서 나이트아이]]는 류큐팀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고 이 다음 오버홀은 다른 누구도 건드리지 않고 곧바로 미도리야를 쫓아가 그를 죽일 거라고, 그런 미래를 "봤다"고 고백한다. 류큐팀은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하나 나이트아이는 어차피 그녀들 몸으로는 무리라고 잠자코 있으라 말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크게 반발하며 "미래는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일갈하고 나이트아이는 그녀의 대답에서 "미래를 비틀겠어"라던 [[올마이트]]의 말을 떠올린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인 것일까? [[아스이 츠유]]에겐 근처에 있을 밀리오의 구조를 요청하고 류큐, 우라라카에겐 자신을 데리고 위로 올라가 달라 부탁한다.
          * 미도리야는 멀쩡한 다리로 착지한다. 에리도 무사히 품에 안고 있다. 원 포 올의 힘을 100% 끌어냈는데도 그의 몸은 골절은 커녕 기존에 입었던 처까지 나았다. 막연히 에리의 힘, 그녀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 아닌가 추측하는 순간 몸 속에서 잡아 당기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오버홀이 지으로 몸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 오버홀은 에리의 개성이 어쩌다 발동하긴 했지만 여전히 컨트롤은 못하는 거라고 지적한다.
          오버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원 포 올 100%의 여파가 몸에 미치는 순간, 에리가 개성으로 "되돌려"준게 분명하다.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미도리야는 에리의 개성은 "매우 냥한 개성"이라며 반대로 "돌아가는 이의 속도로 몸이 처입는 태를 유지"하기로 한다. 원 포 올 풀 카울 100%. 미도리야는 힘을 개방하며 에리에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 세 ==
  • 데미안(드라마) . . . . 12회 일치
         [[화]] [[오멘 시리즈]]의 드라마 판. [[A&E]] 네트워크에서 방송되고 있다.
         화 오멘에서 시간이 흐르고, 데미안이 30세가 되어 악마의 아들이란 운명에 맞부딪치게 된 황을 그리고 있다.
         과거 스토리는 오멘 1편이 주로 인용되고, 2편 이후와는 거의 별개. 2편 이후 스토리에서는 부겐하겐의 죽음이나 므깃도의 단검의 행방 정도 밖에 인용되지 않는다. 화 시리즈에서 데미안은 2편에서 이미 [[적 그리스도]]로 각성하고 3편에서는 신과의 대결을 벌이게 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30세에 겨우 각성하게 되므로 거의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이다. 다만 바티칸에서 므깃도의 단검을 빼돌려서 보유하고 있는 것이나, 부겐하겐이 죽었다는 언급이 나온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설정은 공유되는듯.
         머리에 666 자국이 있는 우리의 [[적 그리스도]] [[주인공]]. 직업은 [[종군기자]]. 어린 시절의 일은 --후속 시리즈가 [[흑역사]]가 되서-- [[기억실]]이 되었다가 1편에서 각성하게 된다.
         [[적 그리스도]]라고는 하지만 본래 인격은 정의롭고 좋은 사람(…). 그래서 자신의 숙명을 알고 고뇌에 빠지게 된다. 기억이 없었을 때는 [[무신론자]]로서 기독교 교리에는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그야 그렇겠지.--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본인은 별 생각이 없는데 주변에서 자꾸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고와 죽음이 일어나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제조기(…). 적 그리스도로서의 운명에 따라서 죽어서는 안되는 몸이기 때문인지 주변에서 어지간한 사건이 일어나도 처 하나 입지 않는다. 종군기자로서 온갖 전쟁터를 돌아다니는데도 처하나 없는 것은 이 때문인듯.
          * 도미네이트 : 대를 자살시킨다. "데미안 이건 널 위해서 하는 거야~!"라면서 주로 투신자살을 벌인다. 오멘 1편에서 나온, 유모가 자살하는 장면에서 따온듯.
         1편의 베이룩 부인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데미안에게 굴절된 [[모성애]]를 지니고 있는 인물. 악마 숭배자 조직에서 데미안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그냥 유모였던 베이룩 부인과는 달리 악마숭배자들이 운하는 아미티지 재단의 거물 인사. 악마숭배자 조직도 여성의 지위 향이 이루어지나보다(…).
         '''고 평범하게 훈훈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 악마숭배자 조직 아미티지 재단의 우두머리'''(…). 데미안 앞에서는 훈훈한 모습만 보이지만 뒤에서 앤 러틀리지와 데미안을 놓고 마찰을 빚거나, 협을 하거나, 온갖 능구렁이 짓을 벌이고 있다.
         여담으로 배우 스콧 윌슨은 [[워킹 데드]]에서 허셸 그린을 맡은 그 할아버지.--당신이 세을 멸망시켰나 허셸!--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12회 일치
         === 주인공 진 ===
          * 나가 : 주인공. 용신이 산다는 호수를 들여다보다 물에 빠진 뒤 이세계인 해리건 일족이 목욕중이던 [[온천]](...)에 떨어졌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렸으나 단편적인 기억은 이따금 떠오른다. 이 세계의 마녀들의 외모 때문에 지나치게 솔직한 반응(...)을 보여주는 못미더운 모습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에 임해 냉철한 판단력과 장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과감한 행동력을 보여주는 범치 않은 인물. '나가'란 이름은 자신의 이름 중 일부밖에 기억나지 않아 쓰게 된 이름인데, 공교롭게도 이것이 마녀들 사이에선 '전설의 용왕'의 이름이라 마녀들이 이것을 매우 흥미로워 한다. 2권에서 그 정체가 드러나는데, 그 정체는 [[오다 노부나가|짐작하다시피]]...[* 작가는 후기에서 한 동료작가가 "뒷이름만 비슷한 다른 인물은 아니겠죠?" 하고 물어본 것 때문에 이걸 써먹을까 했다가 '''실패하면 뒷감당이 안될, 작가 인생을 건 한방 개그'''가 될 것이라서 포기했다고 한다.]
          * 해리건 해리웨이 하인드라 : 주인공이 떨어져내린 곳인 하인드라 일족의 마녀들을 통솔하는 인물. 주인공이 감탄했을 정도의 폭유(...)다. 젊은 나이(20대 초반 즈음으로 추정)에도 마녀들을 통솔하는 지도자답게 진중하고 침착한 성격. 머리카락을 이용해 대을 직접 타격하거나, 혹은 마력을 담은 머리카락을 심은 물건(목각인형 등)을 조종하는 등의 마법을 구사한다.
          * 레라 라이라 하인드라 : 하인드라 일족의 일원. 이성적이고 냉정한 성격으로 어미를 뚝뚝 끊어서 말하는 특이한 말투를 사용한다(혼잣말 때도 동일). 몸에 부착해 마력을 주입한 부적을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는데, 이 때문에 원래 노출이 심한 마녀들의 복장 특성[* 쇠붙이가 몸에 접촉할 경우 마력이 쇄되어 감소하며, 원활한 마법 사용을 위해 대체로 얇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다.]도 있고 해서 사용하다 보면 심하게 헐벗은(...) 모습이 된다. 주인공이 이세계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하게 해 주는 통역마법도 그녀의 부적 중 하나.
          * 엘레오노자 에류슈 하인드라 : 일부 자연현(비를 내리게 하는 등)을 조작할 수 있다. 준비 시간이 긴 탓에 평소에는 농사 등에나 쓰인다며 자조하고 있지만, 나가에 의해 전투에 응용하는 방법을 터득한 마녀 중 하나.
          * 익시느 에레노 하인드라 : 몸에 그려진 문장을 조작해 대의 움직임을 제압할 수 있다. 나가에게 승마술을 배워서 마녀들 중에는 드물게 말을 탈 줄 안다.
          * 비타 솔샤르 슬레이마야 : 해리건의 역과 인접한 슬레이마야 일족의 지도자. 로리한 외모와는 달리 나이는 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를 조종하는 마법을 구사하며, 마녀들에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제시하는 나가에게 흥미를 느끼고 해리건 일족과 연합한다. 본인도 나이를 의식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나가가 맘에 들어서인지 나가가 그녀를 보고 귀엽다느니, 나이가 많은 게 믿겨지지 않는다느니 하니까 기분좋은 반응을 보여준다.
         === 인간 진 ===
          * 귀스카르 : 마녀의 역과 인접한 카산드라 왕국의 왕족으로 선왕의 아들이자 현왕의 조카. 자중하면서 왕위를 되찾을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에, 나가 일행의 활약으로 에인 요새가 탈취당하고 군대가 큰 타격을 입는 바람에 왕이 그를 국왕 전권 대리로 임명한다. 야심만만하면서도 자신의 한계 또한 파악하고 있지만, 갑자기 얻은 권력으로 인해 마녀 토벌을 종용하는 구교회에 대해 의심을 품어 대립하게 된다.
          * 아이유브 : 구교회의 추기경 중 한 명. 머리가 좋지만 그 이으로 맹목적인 광신도. 마녀를 최후의 한 명까지 박멸하려고 하며, 또한 최대한 괴롭혀 죽이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새디스트.
          * 마녀 : 이능력을 가진 여자들을 일컫는 말로, 과거엔 인간들과 공존했으나 마녀들을 배척하는 유일신 신앙의 확대와 마녀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질투한 인간들에게 박해를 받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제각각 인간들을 훨씬 회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인간들에게 숫자로 밀려서 점차 밀려나고 있으며, 또한 아이를 낳게 되면 마력이 약해지는데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전부 마력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능력을 용이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란 이유로 다들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이 부분 또한 편견에 일조하고 있다.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12회 일치
         | 웹사이트 = {{트위터|ladyjane_}}
         2010년 10월 첫 솔로앨범 《이별 뭐 별거야》를 발표하였다. 인디 밴드를 벗어나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서는 만큼,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적인 노래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2&aid=0002197578 '홍대여신' 레이디제인, 솔로 데뷔 선언], 《세계일보》, 2010년 10월 27일</ref> 2011년 11월 미니앨범 《Jane, another Jane》을 발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복고풍의 경쾌한 댄스 곡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2012년 前 남자친구인 [[사이먼 도미닉]]과 ‘여섯시 반’을 발매했으며, 이어 8월에 [[닥터심슨]]과 ‘Clinic 12.5%’를 합작, 발매하였다. 2013년 1월 9일 ‘Hello’의 발매에 이어 2월 15일 [[원써겐]]과 ‘New Story Part 5’의 발매, 9월 5일에는 싱글 음원 ‘일기 (Diary)’를 발매하였다.
         * 2011. 《친한 사이
         * 2012. 《여섯시 반》 (with [[사이먼 도미닉]])
         * [[tvN]] 《환의 커플》
         * [[MBC]] 《[[세을 바꾸는 퀴즈]]》
         * 쿠키건강TV 《보약밥
         * [[JTBC]] 《이론 완벽한 남자》
         * [[SBS 파워FM]] 《[[스트리트 (라디오 프로그램)|김희철의 스트리트]]》
         * [[SBS 파워FM]] 《[[스트리트 (라디오 프로그램)|붐의 스트리트]]》
  • 마기/317화 . . . . 12회 일치
          * 다윗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지만 신경쓰지 않고 일을 계속하는 신드바드.
          * 그때 생존한 동료들과 기억을 공유하며 죽은 이들을 위해 "행복한 세"을 만들겠다는 결의를 재확인하는 신드바드.
          * 다윗의 목소리가 사라졌지면 "조용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업무와 일으로 바쁘게 보내는 신드바드.
          * 다양한 위치에서 강연화 회담 등으로 신드리아 회 총수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알리바바는 그래도 "믿을만한 사람"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신드바드는 진지하게 "망하는 회도 나온다"며 충고한다.
          * 알리바바는 한사코 "아직 부델 회는 망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는데 신드바드는 알리바바가 보지 못하는 곳에선 망하는 회도 속출하고 있다며 여럿이서 경쟁하는건 전쟁이든 회든 큰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알리바바에게 그런 것까지 예측하고 있냐고 묻는데.
          * 신드리아 회와 FANFAN회 간 회담을 위한 방문. 하지만 과거의 앙금이 남아있는 연홍옥은 하황문에게 회담을 맡긴 채 빠져나가려 한다.
          * 그 날의 참을 되새기는 일행들.
          * 형인 미스토라스가 이때 죽었던 것이다. 그가 죽었을 땐 그 애통함이 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름다웠던 추억만이 떠오른다며, 그런 자신을 용납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 마기/320화 . . . . 12회 일치
          * "솔로몬의 지혜"를 대신할 성궁으로 가는 열쇠는 "금속기". 매그노슈타르 공의 "세의 구멍"과 특이점 신드바드, 아르바의 마고이면 성궁으로 갈 수 있다.
          * 오랜 동료의 충고를 들은 신드바드는 눈이 떠졌다며, 자신은 신이 아니라 왕이고 회장이라고 수긍하는 듯 했다.
          * 그녀가 구한 "열쇠"란 바로 "금속기".
          * 현재 매그노슈타르 공엔 "세의 구멍"이 열려 있고 다윗과 동조한 "특이점" 신드바드, 그리고 자신이 모아온 막대한 마고이가 있다.
          * 쟈파르는 "이 세의 결속"을 되찾아달라고 간언한다.
          * 쟈파르가 납득하지 못하고 황제국에 국민투표를 유도하거나 새로운 통조례 발표 전에 손을 쓰는 방안을 건의한다.
          * 그리고 백 년, 천 년이 지나면 세은 다시 전쟁을 시작할 거라고 말한다.
          *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세을 근본적으로 다시 만들기 위해" 성궁에 가겠다고 털어놓는다.
          * 그리고 눈이 멀었다면 가르쳐주겠다며 신드바드는 단지 "왕의 그릇"이며 나라와 회의 장이 가장 적절하다.
          * 오랜 동료에게 그렇게까지 들으니 눈이 뜨였다며, 자신은 "신의 그릇"이 아니라 끽해야 왕의 그릇, 회장의 그릇이라고 인정한다.
  • 마기/347화 . . . . 12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와 [[알리바바 사르쟈]]의 대결이 시작됐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무의미한 싸움이며 알리바바가 했던 말, "솔로몬의 세이 계속되는 것도, 신드바드가 세을 루프로 환원한 것고 아닌 '''전혀 다른 미래'''가 온다"고 한 말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애초에 그가 이길 리도 없고 말이다.
          * 신드바드의 마장 후루후루는 다양한 마공을 폭격처럼 퍼붓는 타입. 알리바바는 다양한 각도로 날아오는 마법을 베어내거나 사이로 피해다닌다. 그러면서도 "운명"이나 "신에게 대항하기 위해" 세을 루프로 돌린다는 신드바드의 정책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신드바드는 그가 결국 [[알라딘(마기)|알라딘]]과 똑같은 인간이며 애초부터 그들이 이해하는게 무리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동안은 알리바바가 자격을 갖춘 인간일지 모른다 생각했다. 뭣보다 그가 현세로 돌아왔을 땐 운명이 보이지 않게 됐고 계획대로 돌아가던 일들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동료로 삼는 것도 간단했는데 왜 알리바바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그 점만은 지금도 미스테리다.
          * 알리바바가 그렇게 나오자 신드바드는 지금이라도 "대화"란 것에 응하겠다며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가 보는 이 싸움의 진은 "운명의 지배", 나아가서는 "운명을 가지고 노는 신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전쟁이다. [[일 일라]]는 한때 이 세의 신이었으나 그 뒤에 더 강한 신이 있었다. 이런 신들의 변덕과 독선이 인간의 운명을 뒤흔든다. [[우고(마기)|우고]]는 자신의 마법으로 일 일라를 끌어내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려면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신드바드는 "누군가 내 운명을 쥐고 있다"는 절망감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위해 알마트란의 사례를 끌어들인다.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우리는 운명의 노예"라는 자괴감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운명"의 실체를 봤고 자유의지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붕괴했다. 이 허무감, 절망감이 운명과 그것이 지배하는 세 자체를 부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이러한 허무감은 신이라고 피해가지 못한다. 우고 조차도 허무감을 이기지 못하고 미쳤으며 이는 새로운 목적 없이 타성적으로 세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드바드는 "허무"를 쌓으며 끝없이 위로 올라가는 "운명이라는 지배 구조" 자체를 붕괴시키고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신드바드는 단순히 "언젠가 전쟁으로 세이 망할지도 몰라서" 이런 짓을 하려는게 아니다. 인류가 언젠가 "운명"을 이해하고 그 허무감에 사로잡히는건 필연이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운명을 관장하는 자를 무찌르자, 이게 신드바드의 결론이다. 결국 그또한 "모두를 지키기 위한 싸움"의 연장이며 "대의명분"이라 할 만하다. 단지 누가 이해하지 못할 뿐인데, 다름아닌 알리바바가 그것을 이해한 것이다.
          알리바바는 분쟁의 본질은 "뭔가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란 점을, 인간의 습성이 그렇다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것은 신드바드가 깨달은 바와 일치하며 알라딘도 놓치고 있던 세의 진실이다. 그것을 한수 아래라고 여겼던 알리바바가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신드바드는 그것만은 거절한다.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뀐단 말인가? 솔로몬이 만든 세의 모순은 여전히 그대로다. 언젠가 인류는 운명을 이해하고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 뻔한 결말을 보고도 모른척해야 한단 말인가?
          * 알리바바는 "과거의 답"을 부정하는, 신드바드의 예을 초월한 답을 내놓기 시작한다.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12회 일치
         전편 [[맥스 페인]]에서의 사건으로 삶이 망가진 [[뉴욕]] 형사 맥스 페인이 살인 용의자인 지인 [[모나 색스]]와 함께 음모를 밝혀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편을 하지 않은, 혹은 못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편의 간략한 스토리를 알려주는 기능도 있다. 그런데 사실 전편 스포일러.
         어느 한 쪽으로 움직이며 [[불릿 타임]]을 쓰면 슛닷지가 되던 전작과는 달리 슛닷지와 불릿 타임이 분리되었다. 기본설정 슛닷지는 쉬프트, 불릿타임은 마우스 오른쪽 클릭.
          * 왼쪽 아래의 사람 모양으로 생긴 것은 캐릭터의 체력이다. 체력이 붉게 차버리면 캐릭터는 죽는다. 화염과 접촉하면 체력 관 없이 불춤을 추며 죽으니 주의.돌아다니다가 주울 수 있는 진통제[* 최대 8개 까지 소지 가능]로 체력을 천천히, 약간씩 회복할 수 있다. 진통제의 소지 유무와 수는 체력 옆에 표시된다. 총 8개 까지의 진통제를 소지 가능.
          Max Payne. 이 게임의 주인공. 뉴욕의 형사. 전편의 사건으로 웅이 되었지만 그걸 즐기지는 않는다.
          본래는 맥스의 동료 형사로,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게이트 원의원을 죽인 혐의가 있는 모나를 뒤쫓고 있었다. 결국 코코런을 만나러 그가 살던 아파트에 갔던 모나와 맥스를 붙잡는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전화를 통해 정보를 흘린다던가, 목격자의 진술을 취사선택 한다던가 하는 수쩍은 모습을 보인다. 결국 두번째로 모나를 붙잡으려고 할 때 모나가 이에 불응하며 서로 총을 뽑아들고, 맥스가 윈터슨을 쏴죽여버린다.
          Sebastian Gate. 언급된 시점에서 이미 살해당한 원의원. 주력 용의자는 모나로, 해당 인물의 살해사건은 윈터슨 형사가 맡기로 했다. 코코런의 방에서 그를 포함한 이너서클 멤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발견되어 이너서클 멤버라는게 확정된다. 모나가 체포된 후, 목격자는 점프슈트를 입은 청소부들이 게이트 의원을 죽인 것 같다고 말하나 윈터슨은 말을 듣지 않는다.
          Annie Finn. 총기제작자 겸 총포으로 블라드의 애인. 맥스가 발견 했을 때에는 [[스쿼키 청소회사]] 직원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하기 직전이었다. 맥스는 그녀를 구하려고 했지만 결국 청소부들에게 살해당한다. 그런데 블라드는 윈터슨이라는 또다른 애인이 있었다.
          Address Unknown. 90년대 방했다는 설정의 극중극. 존이라는 남자가 느와르욕(Noir York)라는 도시에서 연쇄살인범 존 미라(John Mirra)를 쫓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라를 쫓던 존은 정신병원에 수감되지만 의사와 환자들을 드릴로 죽이고 도망친다. 그제서야 존은 자신이 존 미라였다는걸 깨닫는다는 그런 내용. 이걸 배경으로 한 테마파크도 있었던 것 같지만 원작 드라마가 방 중단 먹으며 망한 듯. 솔직히 테마파크 겁나 기분 나빠서 방 중단 안 되었어도 망했을 것 같다.
         [[http://store.steampowered.com/app/12150/|스팀 점 페이지]]
  • 박남현 . . . . 12회 일치
         {{화인 정보
          | 국적 = {{KOR}} [[경북도]] [[포항시]]
          | 웹사이트 =
         === 화 ===
         * 《[[복수혈전 (화)|복수혈전]]》 (1992년)
         * 《[[작은거인 (1994년 화)|작은거인]]》 (1994년) - 사나이 1 역
         * 《[[바리케이드 (화)|바리케이드]]》 (1997년) - 고달식 역
         * 《[[가문의 광 (시트콤)|가문의 광]]》 (2000년, MBC)
         * 《[[주 (드라마)|주]]》 (2016년, SBS) - 오봉 역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분류:포항시 출신]]
  • 박성우 (정치인) . . . . 12회 일치
         *[[주대학교|주공립농잠학교]] 졸업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1948년 5월 10일]] :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 경북도#주군 갑 (제27선거구)|제헌 국회의원(경북 주갑) 낙선]]
         *[http://www.yynews.co.kr/news/article.html?no=14&theme= 〈"고향술 한잔 바치면 여한이 없겠다"〉《양신문》(2005.8.20.)]
         |전임자 = (주군 갑)[[한암회]]<br/> (주군 을)[[전진한]]
         |직책 = [[주군의 국회의원|국회의원(주군 갑)]]
         |같은 지역구 의원 = (주군 을)[[백남식 (1901년)|백남식]]
         [[분류:1914년 태어남]][[분류:1954년 죽음]][[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박순석 . . . . 12회 일치
         1904년 [[경북도]] 흥해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대구광역시|대구]] [[계성고등학교|계성중학교]], [[경성부]]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 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개편으로 무소속으로 경북도 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청년당]] 김판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6.25 전쟁]] 중인 1951년 전시원호대책중앙위원회에서 피난민 구호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서 원내부총무, 경북도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대 후보의 표를 절취했다는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어 1959년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실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북도 [[참의원]] 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설으로 1961년 [[3.15 부정선거]] 연루를 이유로 반민주행위자로 결정되어 공민권이 제한되고 피선거권이 실되었다.
  • 박승호(정치인) . . . . 12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include(틀:경북도 포항시장)]
         || '''출생지''' ||<(> [[경북도]] [[포항시]] ||
         1957년 (현 경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달전초등학교, 동지중학교, [[포항고등학교]], [[용인대학교]] 체육학과,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도시행정학 석사,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이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용인대학교 졸업 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1기 공채로 입사하여 [[노태우]] 조직위원장의 비서관으로 활동하다가 1985년 [[민주정의당]] [[총재]]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다가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국가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다. [[김삼]] 정부 때 관선 [[봉화군]]수를 지냈다. 이후 내무부, 행정자치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5년 경북도공무원교육원 [[원장]]을 지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친이]]계에 속하였다. 2008년 [[이득]]의 국정개입 논란이 있었을 때 포회 회원이라는 것이 거론되어 논란이 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에 경북도지사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으나 경선에서 현직 도지사인 [[김관용]]에 밀려 탈락하였다. 이때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개칭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27528.html|#]]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김정재]]에 밀렸다.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경북도 포항시 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김정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바른정당에 합류하여 2017년 3월 [[바른정당]]의 경북도 포항시 북구 당협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다시 탈당하여 자유한국당에 복당을 신청하였다.
  • 박창달 . . . . 12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70000B><-5><bgcolor=#FFFFFF><:>[[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징.png|width=30px]]]] {{{#70000B '''[[대한민국|{{{#70000B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국회의원}}}]] ([[대구광역시|{{{#70000B 대구}}}]] [[동구 을|{{{#70000B 동구 을}}}]])'''}}}||
         ||<width=30%><:>''선거구 통합''[br][[강신성일]][* [[동구(대구)|동구]]]||<width=5%><:>→||<width=30%><:>'''제17대[br]박창달'''[* 의원직 실]||<width=5%><:>→||<width=30%><:>제17~20대[br][[유승민]]||
         || '''출생지''' ||[[경북도]] [[포항시]] ||
         ||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 학사[br][[남대학교]] 행정학 석사||
         [[대한민국]]의 [[정치인]]. [[포항시]] 출신. [[계성고등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남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5대 총선에서 전국구 26번으로 출마하였지만 너무 순번이 뒤쪽에 있어서 당연히 낙선...했는데 임기 다 끝나가는 2000년 3월에 현역 [[윤원중]] 전국구 의원이 탈당하면서 의원직을 승계, 3달짜리 국회의원직을 수행했다. 물론 15대 국회 막바지여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 문제는 16대 국회에서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의원이 '''2004년 5월'''에 사퇴하여 '''임기가 1달도 안되는 의원'''이 탄생하여 다시 문제제기되었고, 이후 잔여임기가 얼마 안남은 비례대표 의원이 자격을 실 혹은 사퇴할 경우에는 승계하지 않도록 법이 바뀐다.] 대신 16대 총선에서 안정권인 15번을 받고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탄핵역풍 속에서도 자신이 입한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텃밭 대구 동 을 지역구 공천을 받아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년 반여만에 의원직 실 크리.(...) 그리고 그의 지역구는 바로 [[유승민]]이 차지하게 된다. 이후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8.15 특사로 사면복권되었지만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미 지났다.(...) 사면복권되기 전에는 당원이 될 수 없기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원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후보 및 유세단 경호 등에 참여했다.
         사실 박근혜 입을 주도했다곤 하지만 정작 박근혜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친박계보에 속하지 않고 친이계에 속했다. 이명박의 중학교 4년 후배기도 하고 이재오와 친밀하게 지냈다. 19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대구 동 을에 유승민이 버티고 있었기에 대신 대구 중/남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이계라고 [[김희국]]에 밀라 탈락,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으나 느닷없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맡게 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위(청와대, 즉 이명박 대통령)에서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제안해 어쩔 수 없었다고.''' 실제로 이념적 성향은 [[극우]]가 아니라고 한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공천 신청을 했으나 탈락, 불복하고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였으나 새누리당 [[곽도]]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동열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 || ~~'''[[한나라당]]'''~~ || ~~'''45,245 (55.09%)'''~~ || ~~'''당선 (1위)'''~~ || 2005.9.15 의원직 실[BR](공직선거법 위반) ||
  • 박학기 . . . . 1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br/>(現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 종교 =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ref>[http://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5812 아름다운 세 꿈꾸는 박학기 집사]</ref>
          | 웹사이트 =
         박학기는 [[경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렸을 때 [[부산광역시]] [[부산진구]]로 이사하여 학창시절을 보냈다. 1983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포크 팝 가수 첫 데뷔한 그는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응용미술학과를 나오고 1988년 옴니버스 앨범 《우리 노래 전시회》3집에서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라는 곡으로 정식 가수 데뷔하였다. 이듬해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 〈이미 그댄〉, 〈향기로운 추억〉 등을 히트시키며 골든디스크 신인을 수하였다. 그리고 [[김광석]]의 친구로서 <김광석 추모 콘서트>를 주최하고 있다.
         ** 아름다운 세
         {{골든디스크 신인자}}
         [[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198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골든디스크 신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밀양 박씨]]
  • 박희광 . . . . 12회 일치
         || 예명 ||<(> 만(相萬) ||
         || 출생지 ||<(> 경북도 구미시 ||
         박희광은 만주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통의부, 참의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일본 사관 습격, 친일파 정갑주와 가족 암살, 독립운동가 체포를 위해 활동한 스파이 배정자(裵貞子, 일본식 이름: 다야마 사다코) , 이용구, 최정규 암살임무 등 항일 독립운동단체와 임시정부에 무기와 군자금을 조달 했었다.
         당한 향력을 주었으며, 친일파들에게는 두려움의 사건이었다.
         박희광은 1924년6월7일 해임시정부(김구 선생)의 지령으로 김광추, 김병현과 함께 봉천 일본총사관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이날 저녁 대서관(大西關)에서 군자금을 탈취하고, 금정관(金井館)에서 다시 군자금 300엔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일본, 중국 경찰과 총격전끝에 현장에서 김병현과 함께 체포되었다. 김광추는 총격전을 벌이다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일본의 물가승 등을 고려하면 300엔은 2011년 가치로 31만 1천엔 정도 되는 돈이다.[* [[https://www.measuringworth.com/japancompare/]] 에서 300엔, 초기년도 1922년, 환산년도 2011년으로 하면 나온다]
         박희광선생은 뤼순지방법원 1심에서 사형, 뤼순지방고등법원 2심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1924년부터 1943년까지 뤼순형무소(중국 뤼순지역)에서 신채호, 이회, 우덕순, 김병현 등과 함께 수감생활을 했었다. 선생은 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받았으며, 출옥후에도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렸다고 한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애국지사 박희광선생지(愛國志士朴喜光先生之像)"이라는 친필휘호를 내렸으며, 1983년 구미문화원, 구미시, 각계 인사들의 힘으로 경북 구미시 금오산 도립공원에 동이 세워졌으며, 대구광역시 두류공원 내 조각 공원에 흉이 세워졌다.
  • 백결 선생 . . . . 12회 일치
         '''백결'''(百結, [[414년]]<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1971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ref> ~ ?) 또는 '''백결 선생'''(百結 先生)은 [[신라]] 전기의 [[거문고]] 명수이다.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해 박씨 족보》에 따르면 [[눌지 마립간]]대의 문신 [[박제]]의 아들이라고 한다. 또한 그의 형 또는 동생인 박효원(朴孝元)은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왕건의 측근인 [[박술희]]의 15대 선조가 된다. 다른 이름은 '''문량'''(文良)이다.
         《[[삼국사기]]》에는 가문의 이력을 알수가 없다고 나와 있으나 《[[부도지]]》,《해 박씨 족보》 등에 따르면, 그의 본명은 '''박문량'''(朴文良)이며, 414년(실성마립간 13)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제]]의 아들이며, [[자비왕]] 때 [[경주시|금성]] 낭산 기슭에서 살았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그의 생애에 대해 별다른 기록이 나와있지 않으며, 몹시 가난하여 옷을 백 군데나 끼워 입었기 때문에 백결 선생(百結 先生)이라 불리었다. 계기를 존경해 거믐고로 세의 모든 것을 잊고자 했다고 한다. [[섣달그믐날]] 아내가 이웃집 떡방아 소리를 부러워하자, 떡방아 대신에 아내에게 들려준 떡방아 소리인 〈대악〉(碓樂)이 유명했다고 한다.
         《해 박씨 족보》등에만 나와있는 기록으로는 관직을 떠날 때 귀향곡인 〈낙천악〉(樂天樂)이 있다고 한다. 청렴하고 결백했으며 궁중으로부터의 일체의 후원을 거절하고 스스로 궁색한 생활을 즐기다가 말년에는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 아버지 : [[박제]]
         ** [[박아]] (朴阿榮)
         [[분류:414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5세기 한국 사람]][[분류:신라의 작가]][[분류:신라의 음악가]][[분류:신라의 시인]][[분류:신라의 문신]]
         [[분류:한국의 작곡가]][[분류:신라의 작곡가]][[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해 박씨]]
  • 서정환 . . . . 12회 일치
         |문 표기 = Seo Jeong-Hwan
         |사진 사이즈 =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포스코|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오대석]], [[장태수]] 등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하였던 [[해태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것은 [[KBO 리그]] 역사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에 모두 도움이 된 win-win 케이스로 꼽힌다. 서정환의 트레이드는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이고, 최초의 선수 간 트레이드는 [[1983년]] [[6월 27일]] [[MBC 청룡|MBC]] [[내야수]] [[정기 (야구인)|정기]]와 [[롯데 자이언츠|롯데]] [[포수]] [[차동열]] 간의 트레이드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585648&rrf=nv 트레이드, 그라운드 밖의 승부수] - 조이뉴스24</ref> 이후 서정환은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1989년]]에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진의 결정으로 [[해태 타이거즈|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태 타이거즈|해태]]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남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2006년]] 정규 시즌을 4위로 마감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 [[해태 타이거즈|해태]]의 광을 되살리는 듯했지만 [[한화 이글스]]와 맞붙었던 준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탈락했다. [[2007년]] [[KIA 타이거즈]]가 최하위로 전락하자 그 해 시즌 중 입한 배터리 코치 [[조범현]]에게 감독 자리를 넘기고 총감독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191144463&sec_id=510201&pt=nv 감독 대이동? 조범현 배터리 코치 KIA 새 사령탑] - 스포츠칸</ref>
         {{둘러보기 자 묶음
         {{KBO 도루}}
         [[분류:KIA 타이거즈 감독]][[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도루자]][[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 서씨]]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12회 일치
         A Clockwork Orange.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화. 1971년 개봉되었다.
         그 프로그램은 루드비코 요법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약물을 주입당한 알렉스는 불량배들이 폭력을 저지르는 , 불량배들이 여자를 윤간하는 , 한희의 송가를 배경음악으로 한 전쟁 기록 등을 강제적으로, 긴 시간 동안 보게된다. 그 결과 알렉스는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생각만 해도 구역질을 하는 몸이 된다.
         루드비코 요법을 마친 알렉스는 교도소에서 출소한다. 하지만 알렉스의 방은 다른 누군가가 차지한 태였고, 알렉스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부모님이 팔아치운 태였다. 알렉스는 집에서 나와 떠돌다가 한 주정뱅이를 만난다. 알렉스와 동료들이 린치했던 주정뱅이였다. 알렉스는 주정뱅이와 그 동료들에게 구타당하고 소지품을 빼앗겼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 경찰관들은 과거 그의 부하이던 딤과 조지였다. 결국 알렉스는 그들에게 물고문을 당하게 된다.
         알렉스는 기진맥진한 태로 어떤 집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과거에 구타하고 윤간했던 작가 부부의 집이었다. 반정부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작가, 알렉산더는 알렉스에게 루드비코 요법에 대한 경험담을 듣고 이를 받아 적는다. 하지만 알렉스가 목욕하면서 부르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듣고 그가 자신의 아내를 강간해 죽이고 자신을 반신불수로 만든 자인걸 깨닫는다. 알렉스가 그의 아내를 강간할 때 "사랑은 비를 타고"를 불렀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알렉스를 그를 모르는 척 하며 식사를 대접한다. 그러고는 알렉스에게 술을 계속 먹여 기절시킨 후, 그를 방 안에 가두고 환희의 송가를 크게 틀어놓는다. 루드비코 요법의 향으로 환희의 송가를 버티지 못하게 된 알렉스는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다.
         이 일은 크나큰 파장을 불러온다. 정부는 혼수태에 빠진 알렉스의 루드비코 요법을 치료한다. 그러고는 깨어난 알렉스에게 정부의 편을 들 것을 권하며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는 오디오를 선물한다. 기자들이 병실로 몰려들어와 정부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는 알렉스의 사진을 찍는 와중, 알렉스는 섹스를 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자신은 치유되었다고 독백한다.
  • 식극의 소마/189화 . . . . 12회 일치
          * 또 한 번 유키히라 소마의 패배로 끝나는 듯 했지만 꿀과 발사믹 식초를 쓴 소스는 곰고기 멘치까스의 맛을 몇 배로 배가시켜 하야마 이의 평을 받는다.
          * 하야마 아키라의 압승으로 끝나려던 식극은 "소스를 찍은 맛"을 아직 보지 않아서 승패는 가려지지 않는다. 나키리 소우에는 이 점을 지적했지만 베르타와 실라는 아무 생각없이 --처묵--먹기만 해서 정말로 승부가 끝나버릴 지도 몰랐던 황. 아무튼 유키히라 소마의 투지는 아직도 꺾이지 않았다.
          * 프라이드 베어 자체는 야생고기와 케이준 스파이시가 조화된 자극적인 맛과 매운 맛의 조화. 그레이비 소스는 거기에 부드러움과 달달함을 추가시킨다. 자극과 부드러움, 매콤함과 달달함의 환적인 대비로 굉장히 입체적인 맛이 연출된다. 소우에는 이것이 하야마의 재능과 연구성과가 있기에 낼 수 있는 것이라 격찬하며 그 맛을 철벽같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난공불락의 성벽에 비유한다.
          * 베르타와 실라가 다시 소스를 찍은 멘치까스를 시식하는 순간, 소스를 더했을 뿐인데 맛의 표정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 소마의 소스 또한 요리의 맛을 끌어 올리는데 단순히 완성도를 더한다기 보단 전혀 다른,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는 듯한 향이다. 매우 복잡미묘하면서도 곰고기의 달콤한 풍미를 배가시키는 신기한 소스다. 베르타와 실라는 소스를 다루는 것만큼은 소마가 한 수 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시식을 마치는데
          * 왠지 정말로 벗고 있다. 지금껏 잠자코 있던 도지마 긴은 하라는 음식 설명은 안 하고 왜 저 리액션이 나왔는가 설명하고 앉았다. 이것은 "터지기"의 위 기술로 나키리의 피에 흐르는 특유의 정신력이 극의 맛에 의해 공기 중에 해방되어 나키리 가문이 아닌 사람도 풀어헤치기나 터지기가 발동하는 "전수"라는 기술인데 참 쓸데없고 어이없는 설정이다.
          * 어쨌거나 프라이드 베어를 맛본 이후 계속 벗고 있는 소우에가 소스의 비밀은 "꿀과 발사믹 식초"임을 간파한다. 소마는 옅은 단맛으로 소스에 깊이를 주고 식초의 신맛으로 맛을 꽉 묶어서 매우 정돈되면서도 깊고 진한, 동시에 산뜻한 맛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구은 사냥꾼 아저씨에게 "곰은 꿈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하고 있던 것. "곰의 특성을 배운다"는 발이 빛을 발햇던 것이다.
          * 하야마는 단지 그것만으로 저렇게 극적인 맛이 날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카라멜리제"에 생각이 닿는다. 그것이 정답. 당류를 가열하면 나타나는 산화현으로 소마는 벌꿀의 카라멜리제를 핵심으로 삼았다. 벌꿀을 카라멜리제 시키고 발사믹 식초를 넣어 점성을 만들고 잘게 썬 마늘과 양파, 오미자를 더해 곰육수를 붓고 간을 맞추는 것으로 소스가 완성. 그 맛은 리액션으로 본대로다. 참고로 이걸 만들고 있을때 쿠가는 옆에서 차나 마시며 빈둥대고 있던 모양.--결국 별 도움은 되지 않는 놈이다.--
          * 도지마는 이제야 음식에 대해서도 해설을 하는데 곰고기와 꿀의 궁합은 워낙에 유명하다. 최고급 곰고기 요리인 "곰발바닥 요리"의 맛의 비결도 곰이 발로 꿀을 발라먹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도지마는 이러한 발을 "완화와 강조"라는 말로 정의한다.
          * 이 완화와 강조는 하야마가 선발 시합에서 승리했을 때 심사의원에서 했던 말이다. "완화와 강조, 반된 조리를 이 한 그릇 위에 동시에 보여드린 것입니다." 소마는 그때의 앙갚음을 완벽하게 이뤄냈다. 쿠가는 그런 승부에 끈질긴 면을 "싫지 않다"며 웃는다.
          * 소우에는 소스까지 맛을 본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감평을 하는데 튀김 자체의 맛은 하야마 쪽이 압도적이었지만 소스에 한해선 소마의 압승이 틀림없다고 선언한다. 이렇게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 식극의 소마/192화 . . . . 12회 일치
          * 설 코바야시 린도가 나타나 위협을 가하자 에리나는 곧바로 타도코로 메구미와 타쿠미 알디니의 시험장으로 향한다.
          * 어쨌든 친구들 대부분이 탈락의 고배를 마신 황. 고작 소마일행 넷만 남아 사실 전멸이나 다름없다.
          * 절망에 빠져있는데 소마는 오히려 간단한 황이라며 "우리들이 십걸의 과반수를 이겨버리면 된다"는 무지막지한 발언을 하는데.
          * 그는 나키리 아자미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 에리나와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다. 특히 에리나가 가출했을 때 수습하고 다닌게 이 사람. 에리나를 보자마자 그때 일을 거론하며 설교를 하는데 시오미는 무슨 볼일이냐며 말을 끊는다.
          * 예을 뛰어넘는 탈락의 연속. 아라토 히사코를 시작으로 누구 하나 십걸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배. 가장 강한 멤버라 할 수 있었던 쿠로키바 료와 나키리 아리스 조차 패배하고 퇴학처분을 받는다.
          * 그런 이들에게 코바야시 린도가 나타난다. 다른 루트 애들이나 걱정하고 있어도 되겠냐며, 타도코로 메구미와 타쿠미 알디니의 대는 자신이라고 무서운 얼굴을 한다. 에리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서둘러 시험장소로 달려가는데, 왠지 두 사람은 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리나가 결과를 묻자 둘은 어이없는 말투로 황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 방금 전 시식 황. 린도는 뱀처럼 사악한 얼굴로 타쿠미의 요리를 시식하는데... 의외로 간단히 "맛있다"고 해준다. 이어서 타도코로의 음식도 먹더니 적당히 맛있다고 해주고 합격을 선언한다. 원래 시험 과제 자체가 "내가 맛있게 먹는 음식"이었고 대결도 딱히 요리실력을 대결하는건 아니었다. 십걸 대로 빡쎄게 싸우고 깨져나간 다른 루트 학생들관 달리 완전 날림 시험.
          * 에리나는 아무튼 두 명은 살아남았다고 안도하는데 눈치 빠른 타쿠미는 "두 명은"이란 말을 듣고 무슨 얘기냐고 묻는다. 결국 에리나가 황을 설명한다. 다른 루트의 반역자들은 전멸. 타쿠미는 이런걸 보고만 있어야 하나며 분노를 터뜨린다.
  • 식극의 소마/193화 . . . . 12회 일치
          * 일행은 에리나를 앞세워 그같은 제안을 전달하는데 예대로 센트럴 측에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관계로 거절 당한다.
          * 황당하기까지한 유키히라 소마의 제안. 소마는 하야마 아키라가 퇴학됐으니 남은 십걸 자리는 9. 나키리 에리나가 이미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앞으로 네 자리만 차지하면 십걸의 과반 이을 점거하는 거라고 설명한다. 살아남은 자신들이 말이다.
          * 이 단순무식한 제안에 에리나는 말을 잊는다. 타도고로 메구미는 자기들이 어떻게 십걸을 쓰러뜨리냐며 우는 소릴하지만 소마는 타도고로 정도면 충분하다고 근거없는 자신감을 불언허는다. 타쿠미 알디니는 그러자면 식극을 해야 하는데 그쪽에서 안 받아주면 그만이지 않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그 부분은 소마도 "어떻게든 될 거다" 정도로 대충 구하고 있다. 게다가 왠지 타쿠미도 "우리가 이길 수 있지만 저쪽에서 안 받아줄 거다"라고 근자감이 하늘을 찌르는 태다.
          * 이런저런 하자가 있는 걸로 판명나자 소마는 일단 담을 받겠다고 코바야시 린도를 찾아가 말한다.
          * 에리나는 애초부터 소마의 구은 현실성이 없었다고 디스하며 이렇게 된 이 자존심 같은건 내려놔야 할 때라고 말한다. 혹시 자신이 아버지 나키리 아자미에게 애원하면 퇴학이 취소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가려하는데 정작 어디있는지 모른다. 린도는 무슨 생각인지 사실 아자미 총수가 여기 와 있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진급시험장을 돌면서 황을 시찰하고 다니는데, 때마침 이 회장에 들른 태이며 꾸물거리면 다음 장소로 갈 테니 빨리 헬기 착륙장으로 가라고 말한다.
          * 옥으로 뛰어와 보니 정말 아자미가 헬기에 오르려는 참이다. 에리나는 가까스로 아버지를 따라잡았지만 아자미는 그녀가 소마 일행과 같이 있는걸 보고 "그녀석들도 곧 퇴학 당할 것. 아직도 그런 애들하고 같이 다니냐"고 꼰대같은 말이나 한다. 그리고 두 명이나 합격자를 낸게 불만인지 린도에게 근신을 명한다.
          * 사이바 죠이치로, 나키리 센자에몬 등장. 이들의 등장에 그 자리에 있던 인물들 모두 눈이 휘둥그래 진다. 죠이치로는 우선 소마에게 "시오미 준의 제자에게 복수했다며?"라며 기특해한다. 하지만 소마는 머리를 마구 헝클이는 과격한 스킨십에 불평한다.
          * 죠이치로는 아자미를 여전히 "나카무라"라 부르며 후배취급 한다. 그러면서 소마의 제안도 못 쓸만한건 아니지 않냐며, 그보다 한술 더 뜬 제안을 내거는데.
  • 신종령 . . . . 1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http://www.cyworld.com/tlswhdfud 신종령 미니홈피]
         :〈세아 덤벼라〉
         :〈민토론〉
         :〈이.개.세 ('''이''' '''개'''그맨들이 사는 '''세''')〉
         :〈환의 커플〉
         == 수 ==
         * [[2011년]] [[KBS 연예대]] 코미디부문 최우수코너
         [[2017년]] [[9월]], 두 차례에 걸친 취중 태에서의 묻지마 폭행을 벌이고 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물의를 빚었으며, 구속장이 발부되어 현재 구치소에 수감된 태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96&aid=0000457793</ref>
  • 알케이 . . . . 12회 일치
          * 위 문서: [[에스하우 엔터테인먼트]], [[오프로드(아이돌)|오프로드]], [[AA(그룹)|AA]]
         ||<#000000><:>'''{{{#white 학력}}}'''||<#ffffff>[[범일중학교]] - 성화중학교[br][[경고등학교(대구)|경고등학교]][br][[세한대학교]]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오프로드(아이돌))]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AA(그룹))]
         이
         이
         이
         [include(틀:세 내용, 문서명=알케이/프로듀스 101 시즌2)]
         알케이가 AA [[V LIVE]]로 진행하고 있는 보이는 라디오. 라디오 진행을 예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부르는 곳이 없어서 직접 하기로 했다고 한다. 촬하는 곳은 스튜디오 딜라이트(studio DELYTE)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9시에 진행한다. 초반엔 사연을 읽고 후반엔 게스트를 불러 대화한다.
          * 고등학교 때 부터 가수의 꿈을 키워왔는데,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쭉 연습을 해오다 [[대구광역시|대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20살에 [[서울특별시|서울]]로 경했다.
          *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서공예]] 교복을 입은 사진이 인터넷에서 돌아다녀, 알케이가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서공예]]를 나왔다는 잘못된 소문이 돌고 있지만, 이 사진은 지난 2013년, 수험생 팬들에게 수능을 격려하기 위해 올린 사진이다. 당시 알케이는 23살이었다.
  • 오병희 . . . . 12회 일치
         |출생지 = {{KOR}} [[경북도]] [[대구시]]<br>(現 {{KOR}} [[대구광역시]])
         |훈 = 2015년 [[국민훈장]] 목련장
         |웹사이트 =
         '''오병희'''(吳秉熙, [[1953년]] [[2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며, [[서울대학교병원|서울대학교병원장]]을 역임하였다.
         오병희는 심장질환과 고혈압 분야의 권위자다. 심부전·고혈압의 다양한 국제 임시험 연구에 국가대표 연구자로 참여했다. 특히 2005년 국내 연구진으로서는 처음으로 고혈압 신약 다국가 3시험 총괄연구책임자로 선임됐다. 새로운 고혈압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 받을 수 있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국내 임시험 수준의 국제 신뢰도를 높였다.
         1994년 3월 국내 첫 원거리 심장이식에 성공했다. 이후 서울대병원 심장이식 프로그램 책임자로 심장이식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고혈압·심부전 관련 200여 편 이의 SCI(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급 논문을 발표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장,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강남센터 원장,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진료부원장 등 병원 경과 관련된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포커스] 신임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박수 받는 이유|URL = http://jhealthmedia.joins.com/news/articleView.html?idxno=9886|출판사 = 중앙일보|날짜 = 2013-06-10}}</ref>
         == 수 ==
         * 2014년 자랑스런한국인대 의료발전부문
  • 오사충 . . . . 12회 일치
         '''오사충'''(吳思忠, [[1327년]]~[[1406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며,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본관은 [[원 오씨|원]](寧遠). 시호는 공희(恭僖)다.
         선조는 [[경북도]] [[포항시]] (延日縣) 출신이나 나중에 [[평안도]] [[녕원군|원진]](寧遠鎭)으로 이사했다. [[1355년]](고려 [[공민왕]] 4) 문과에 급제하여 감찰규정·헌납(獻納)·집의(執義)를 역임하고, 창왕 때에는 좌사의대부로서 사전(私田)의 폐단을 소하였다. 이해 공양왕이 즉위하자, 사인(舍人) 조박(趙璞) 등과 함께 소하여 우왕과 창왕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 것을 주장하고, [[이색]](李穡)·[[조민수]](曺敏修)·[[이인임]](李仁任)이 [[우왕]]·[[창왕]]을 옹립한 것을 탄핵하였다. 이와 같은 과격한 소로 인하여 한때 관직을 삭탈당하였으나, 다시 복직되어 대사성을 거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었다. 1392년(태조 1) [[정몽주]](鄭夢周)가 [[이성계]](李成桂) 일파를 몰아내려 할 때 그도 삭직되어 유배되었으나, 정몽주가 살해되자 풀려나와 좌시(左常侍)가 되었다.
         [[1392년]] [[음력 7월 17일|7월 17일]]에 이성계 추대에 참여하여 조선 개국공신 3등으로 [[호조]][[전서]]가 되고 성군(寧城君)에 봉해졌다. 1394년 중추원부사에 오르고, 교주강릉도관찰사(交州江陵道觀察使)로 있으면서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과 가까운 수령·군인들이 직책을 소홀히 하거나 차례를 뛰어넘어 승진한 것 등을 엄하게 조사, 처리하였다. 1395년에 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가 되고, 이듬해 정당문학(政堂文學)·경기좌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404년(태종 4)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로 재직하다가 성군(寧城君)에 봉군되었다. 1406년 졸하였고 시호는 공희(恭僖)이다. 아들은 [[서자]]인 오계종(吳繼宗) 하나가 있다.
         [[분류:1327년 태어남]][[분류:1406년 죽음]][[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연일 오씨]][[분류:원 오씨]][[분류:고려의 문신]][[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고려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개국공신]]
  • 오재희 . . . . 12회 일치
         |출생지 = [[경북도]] [[대구시]]<br />(현 [[대구광역시]])
         |훈 =
         |웹사이트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주미·주일 공사, 주 파키스탄 대사,<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1070009920101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3-11-07&officeId=00009&pageNo=1&printNo=5439&publishType=00020 | 제목 = 韓國, 파키스탄과 修交 | 날짜 = 1983-11-07 |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 | 인용문 = 政府는 7일 파키스탄 정부와 공식외교관계를 수립했다고 외무부가 발표했다. 外務部는 이날 발표에서 韓․파키스탄 국교수립으로 양국 주재 총사관이 각각 대사관으로 승격되고 양국 주재 대사 임명에 앞선 잠정조치로서 吳在熙 駐파키스탄총사와 자베드․마수드 駐韓파키스탄 총사가 각각 대사대리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ref> [[대한민국의 외교통부 차관|외무부 차관]], 주일 대사를 역임하였다.
         1991년 2월 19일, [[노태우 정부]]에 의해 주일 대사에 임명되었다. 오재희 대사의 기용은 그의 직업외교관 경력으로 미루어 자연스런 인사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가 [[노태우]] 대통령과 [[경북고등학교]] 동기동창이고 [[노재봉]] 총리의 매형, [[이옥]] [[대한민국의 외교통부 장관|외무부 장관]]과는 대학 동기 사이라는 학연, 혈연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었다. 성격이 꼼꼼하고 일처리가 치밀하며 빈틈없어 부하 직원들로부터 오검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외무고시]] 출신으로 첫 주일 대사이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2190032920100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1-02-19&officeId=00032&pageNo=1&printNo=13971&publishType=00020 | 제목 =大使7명 이동 | 날짜 = 1991-02-19 | 출판사 = 경향신문}}</ref>
         |전임자 = [[이옥]]
  • 요괴:냉장고 . . . . 12회 일치
         문을 열면 그 뱃속이 차가워서 얼음을 만들거나 먹을 것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언듯 편리하게 여겨져서 좋은 요괴라고 여기지만, [[요괴:선풍기|선풍기]]처럼 친근하게 다가갔다가 마각을 드러내는 무서운 요괴이다. 주로 냉기로 사람을 유혹해서 집안에 들여놓게 하지만 그 집의 전기를 한없이 퍼먹어 집주인에게 재액을 끼치는 흉흉한 요괴이다. 여름철 이하게 많이 나오는 전기세의 원인이 이 요괴이며 집주인은 문도 모른채 쓸데없이 [[요괴:에어컨|에어컨]]만 탓하게 한다. 아종으로 [[요괴:김치냉장고|김치냉장고]]가 있다.
         || 엄마가 밥먹듯이 해주던 말이 혼자서 냉장고 근처에 가지 말라는 거였어요. 그건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계속됐는데 사이다나 아이스크림 꺼내먹으려고 냉장고에 기웃거리자면 어김 없었죠. 엄마는 내가 문을 열고 멍청하게 서있는다고, 그러면 전기세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고 핑계를 댔는데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 말은 믿지 않았어요. 엄마도 간장병을 찾는다고 5분씩 문을 열어놓기가 일쑤였거든요. 또 엄마는 자기가 보는 앞에서는 내가 아무리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해도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 얘기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눈치 챌 수 밖에 없죠.
         얘기를 좀 바꿔야겠는데, 나는 첫남친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생겼어요. 이거 우리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엠바고에요 엠바고. 내가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었어요. 남친이래 봐야 둘이서 자전거타고 공원까지 갔다 돌아오는 사이 정도였죠.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니까 만든 거지 그 이 관심은 없었어요. 오히려 진지하게 나온건 그쪽이었죠. 점심시간에 부르더니 그러더군요. "오늘 우리 집에 엄마아빠 없어"라고요.
         나는 그애의 조금 징그러운 을 알아차렸죠. 우린 아직 초등학생이었지만, 어른 커플들이 그런 말을 주고 받는다는 거나 그러고 나서 뭘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그애도 그런 짓까지 생각했는진 모르지만, 어쨋든 조금 더 친밀한 일을 하고 싶었던 거겠죠. 나는 솔직히 그런게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해서 어색해지고 싶지도 않았아요. 그래서 핑곗거리를 만들어냈죠.
         대답은 없었어요. 인기척도 없었죠. 집안이 갑자기 텅 빈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느낌만이 아닐 거란 이한 확신이 생기더군요. 동생은 여전히 햄스터에 빠져 있었어요. 나는 의식을 주방 쪽으로 집중했죠... 거기서는 아무 것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곳에서만 온기가 쏙 빠져나가고 액자 속으로 박제되어 버린 것 같았죠.
         나는 이한 예감을 느끼면서 방 밖을 쳐다봤어요. 달라질 만한건 당연히 없었죠. 우리는 줄곧 그 애 방에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찜찜한 이물감 같은게 공기 속을 날아 다니고 있었어요. 방에서 나와봤죠. 마찬가지였어요. 거실이 보이고, 그 옆에는 주방이... 그런데 거기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죠. 평소라면 화장실에 갔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거에요. 그 애는 장이 약했으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거기서 그 냉장고가 딱 마주 보이더군요. 그때 이미 양문으로 벌어지는 커다란 냉장고가 유행하고 있었어요. 우리 집도 그런걸 썼죠. 그런데 그 애 집의 냉장고는 위 아래로 열리는 탱크처럼 생겼었어요. 꽃무늬도 없고 와인 컬러도 안 들어간 회색 물탱크처럼 냉장고.
         냉장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나는 속지 않았어요. 내가 처음 냉장고를 보고 생각한 것, 그애가 화장실에 갔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건 근거가 있었어요.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들리는 소음이었죠. 누가 음악이라도 틀었더라면 들리지 않았을 소리에요. 누가 기침만 해도 들리지 않았을 거라구요. 문을 몰라하는 동생을 데리고 나는 냉장고로 갔어요. 한 발짝 씩 다가갈 때마다 그 소리는 더 뚜렷하게 들려왔죠. 콩콩콩콩. 규칙적인 네 박자.
         냉장고 손잡이로 향하는 내 손이 독한 감기약에 취한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어요. 그리고 현실을 비집어 넣는 싸늘한 플라스틱의 감촉. 머릿 속에서 안 된다고 되뇌이는데도 손은 멈추지 않았어요. 텅하고 열리는 문짝이 아주 서서히, 서서히. 그러는 사이에도 콩콩콩콩 규칙적인 네 박자는 멈출 줄을 몰랐죠. 냉장고 안에 주황색 등이 켜지고 나는 냉장고 안이 보이도록 문을 활짝 열어젖혔죠. 그리고...
  • 월드 인 컨플릭트 . . . . 12회 일치
         World in Conflict.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제3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실시간전술게임.
         유닛은 전투를 치뤄 경험을 쌓으면 승급된다. 승급된 유닛은 전투, 혹은 수리시 효율이 승한다.
         [[냉전]]이 막바지에 달한 1980년대 말, 경제적 위기에 몰린 소련은 서방과의 군비경쟁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 원조를 요청한다. 이를 두고 소련과 서방간 협이 지지부진해지자 소련은 서베를린을 침공,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이로부터 몇개월 후, 선으로 위장한 소련군 수송선단이 워싱턴 주 시애틀에 소련군을 륙시킨다. 유럽전선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던 미국은 주방위군을 동원해 소련의 침공을 막아내야 하는 황에 처한다.
         세한 줄거리는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페이지 참조. 스포일러 주의.
          시애틀에 거주하던 워싱턴 주방위군 병사. 미군이 시애틀에서 후퇴하며 정규군에 편입되었다. 안톤과는 친구 사이. 아내가 있었지만 현재는 이혼했다.
          시애틀에 거주하던 워싱턴 주방위군 병사. 정규군에 편입되었다. 마이클과는 친구 사이. 가족으로 딸과 아내가 있다.
         과거 회에서 등장하는 세력.
          로마노프와 말라셴코의 대대를 지휘하는 소련군 장교. 계급은 대령.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활약한 전설격 되는 인물. 강경하며 과격한 말라셴코와는 달리 대적으로 온화한 성격이다.
          [[KGB]]가 올로프스키의 대대에 파견한 정치장교. 올로프스키와는 전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 정치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의에 대해 회의적이다. 하지만 대대 정치장교를 맡고 있기에 자신만의 의견을 내는 것을 꺼린다.
  • 유열 (가수) . . . . 12회 일치
         |수 =
         |웹사이트 = yooyeol.kr
         [[대구초등학교]], [[대구중학교 (대구)|대구중학교]], [[대구고등학교 (대구)|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 [[고려대학교 문화예술 최고위과정수료]] [[1986년]] [[12월 19일]] [[MBC 대학가요제|제10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라는 노래로 대을 수하면서 음악계에 데뷔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chosun.com/se/news/200601/200601190193.html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 [브라보~! 7080] '데뷔 20주년' 유열<!-- 봇이 붙인 제목 -->]</ref> 그 후 [[1989년]]까지 매년 [[한국방송]]·[[문화방송]]의 연말 10대가수로 선정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ref name=autogenerated2>[http://www.izm.co.kr/news_view.asp?key=1&s_idx=1700 * IZM - New Stream *<!-- 봇이 붙인 제목 -->]</ref> 1996년 대한민국 동요대,동요를 사랑한 가수
         직접 제작한 어린이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는 현재까지 70만명 관객돌파 흥행뮤지컬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2009년에는 [[독일]] [[브레멘]]주정부 초청공연,2011년 8월[[중국 해]] [[국제 아동극 페스티벌]]에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2014년 [[제3회 예그린어워드]]에서 한해 가장 우수한 아동 청소년 창작뮤지컬 작품인'아시테지'을 수하였다.
         2010년 제 1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한국콘텐츠진흥원장 표창을 받았다.
  • 윤덕홍 . . . . 12회 일치
         | 웹사이트 =
         민주진보진 서울시교육감 후보 단일화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던 윤덕홍은 단일화 불참 이유에 대해 "경선을 몰랐고,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갑자기 출마하게 됐기 때문에 그때는 경선에 관심도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서울 교육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태에서 출마를 했다'는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서울교육감 민주진보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던 '서울 좋은 교육감 시민추진위'는 "시민경선에 참가하시길 권유했음에도 참가하지 않았는데, 지금와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단일화 경선을 요구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과 식에 맞는 진보적 행동인가?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을 뽑는 선거인데, 이렇게 규칙을 어기고서라도 자신이 어떤 지위를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행동은 교육적이지 않다"고 비판하였다.<ref>[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4285 "윤덕홍 탈당 시점은?"] 참세 2014년 5월 9일</ref>
         윤덕홍은 2013년 4월 3일자 민주당 대구시당에 탈당계를 제출하였다고 하였고, 2013년 4월 당시 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이었던 이승천은 "2013년 4월 3일 윤덕홍이 직접 탈당계를 제출했다는 보고를 받고, 당의 원로이므로 함부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해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업무가 폭주하던 황이어서 탈당처리를 잊어버리고 못했었고, 후에 위원장에서 물러나면서 명확하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새정치연합(구 민주당) 대구시당은 "윤덕홍의 당적과 관련해서 더 이 대구시당에서 답변하지 않기로 했다. 중앙당으로 문의하라"고 답변을 회피했고, 새정치연합(구 민주당) 중앙당은 "당적과 관련되어서는 본인이 아니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는 등 새정치연합 중앙당과 대구시당이 윤덕홍의 탈당시점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며 의혹이 증폭되었다.
         === '수한 여론조사' 논란 ===
         《한국인텔리서치》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에 등록한 조사대 및 표본크기에 의하면, 응답률이 3.0%에 60대 이이 530명으로 전체 표본의 52.4%를 차지하고 있고, 20~30대는 116명, 40대 130명, 50대 23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6191"뒤늦게 서울교육감 출마 선언한 윤덕홍, 이건 아니다"]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30일</ref>
         |전임자 = [[이주]]
         |후임자 = [[안병]]
  • 윤민수 (가수) . . . . 12회 일치
         | 문명 = Yoon Min soo
         [[1998년]] [[R&B]] [[보컬]] 그룹 [[포맨]](1기)으로 데뷔했으며, [[포맨]] 1기 해체 이후 [[2002년]] [[류재현]], [[노블레스 (가수)|유성규]]([[노블레스 (가수)|노블레스]])와 함께 [[바이브 (음악 그룹)|바이브]]를 결성했다. 1집 〈미워도 다시 한 번〉, 〈Promise U〉([[2006년]] [[씨야]] 1집에서 리메이크) 등의 곡으로 [[바이브 (음악 그룹)|바이브]]라는 이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후<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0498 '브라운 아이드 소울' , '바이브' 전성 시대] 《뉴시스》, 2003년 12월 5일</ref>, [[2003년]] 2집 〈오래 오래〉, 〈사진을 보다가〉에 이어 [[2006년]]에 발표한 3집 〈술이야〉와 〈그 남자 그 여자〉는 방송 활동 없이 10만 장 이의 앨범 판매와 각종 음반 차트에서 1위 및 각종 수을 받는 등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3집 활동을 끝내고 [[2006년]] 말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시작하여 [[2009년]]에 끝내고 잠시 공백 기간을 가졌으며, 가수 활동을 하며 경험할 수 없었던 ‘직장 생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곡을 만들어 복무를 끝낸 후 발표한 4집 수록곡에 싣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9&aid=0002161570 바이브 "예능에서 망가질 자신 없다"] 《노컷뉴스》, 2010년 6월 16일</ref> [[2010년]] 4집 《Vibe in Praha》를 발매해 다시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현재 [[바이브 (음악 그룹)|바이브]]의 멤버이면서 그룹 [[포맨]]([[신용재]], [[김원주 (가수)|김원주]])이 소속된 와이후엔터프라이즈의 대표이자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2011년]] [[MBC TV|MBC]]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명예 졸업했으며, [[2013년]] 1월부터 장남 윤후와 함께 [[MBCTV|MBC]]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 [[아빠! 어디가?]]에 출연했었다. 그가 출연한 [[2011년]]의 "[[나는 가수다]]" 코너가 대을 받았고, [[2013년]]에는 "[[아빠! 어디가?]]" 코너가 대을 받아 가수로는 드물게 방송연예대을 2회 수하였다.<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12300054041210 MBC연예대 진짜 승자는 윤민수 ‘3년간 대 2연패’] - 뉴스엔</ref>
         윤민수는 1살 연의 김민지씨와 지인의 생일파티에서 처음 만나 [[2006년]] [[6월 4일]] 결혼식을 올렸다. 같은해 [[11월 28일]] 외아들 윤후가 태어났다.
         * [[2015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 |SBS]] 《[[동이몽, 괜찮아 괜찮아]]》
         * [[2014년]] 베스티안 화후원재단 홍보대사
  • 은혼/600화 . . . . 12회 일치
          * 화장실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필사적으로 협을 진행하나 오해가 오해를 부르는 협 테이블. 결국 노부노부는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
          * 노부노부 측이 미지의 병기로 옥쇄할 작정이라고 판단한 주작 제독은 노부노부를 대등한 교섭 대로 인정, 같은 자세로 힘겨루기에 나서는데
          * 도움을 청하긴 커녕 협을 깨려는 모습에 주작은 감탄한다. 그가 무언가를 겁내고는 있지만 해방군이 아닌 무언가를 겁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 노부노부는 히스테릭하게 반응하며 이이 자기를 묶어두면 "발사해 버린다"고 협박한다.
          * 게다가 노부노부는 "이제와서 멈출 수 없다"는 말까지 해서 완전히 미사일이나 폭탄 따위가 숨겨져 있다고 믿어버리게 된다. 파란이 일어나는 중에 그 진
          * 주작 제독은 혼란해진 황을 정돈시키며 직접 나선다. 그는 이거야 말로 노부노부가 두려워하던 일이라고 짐작한다. 그는 노부노부에게 "이것이 비장의 수"였냐고 묻는다.
          * 하지만 지구는 이미 점령 태. 그런 무기는 없으며 노부노부 일행이 타고 온 배도 감시하고 있는데 그런 병기는 찾지 못했다.
          * 이런 황이 되자 주작은 모든 인원을 피신토록하는데.
          * 할복과 같은 원리로 힘을 분출해 대의 할복을 막아보겠다는거 같은데.
          * 수습하기엔 너무 늦은 듯 보이는 황. 그러나 부하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는걸 안 주작제독은
          * 이의 소식을 전하는 가츠라와 다츠마. 자신들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무전으로 그걸 듣고 있는 신파치.
  • 은혼/617화 . . . . 12회 일치
          * 그러나 다키니의 수장 오우가이의 위용 앞에 사천왕 [[니시노 츠카무]]가 빈사의 중을 입고 야규가의 무사들도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 큐베는 스마일 아가씨들과 타에를 데리고 다키니의 추격에서 도망친다. 타에는 큐베에게 반드시 와줄 거라 믿었다고 말한다. 큐베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며 한때는 그저 타에를 데리고 지구를 떠날 생각까지 했지만 "너만이 아니라 너의 미소도 다른 모두도 데려갈 수 있는 강한 남자, 냥한 여자가 되자고" 다짐했고 고백한다.
          * 일행의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 하지만 [[야규 빈보쿠사이]]가 이들을 순식간에 베어버린다.
          * [[사이고 토쿠모리]]는 여전히 분전 중. 이들이 생각보다 잘 버티자 해방군은 병력을 분산시켜 가부키쵸의 모든 문을 공격하기로 한다. 이렇게 되면 병력이 열세인 가부키쵸 방위군도 병력을 나눠야 하므로 방어벽이 얇아지는 것이다. 수에 의존한 전략이지만 현시점에선 가장 확실하고 치명적인 전략.
          * 의용군의 규모는 당한 수준으로 긴토키가 잘도 이만큼 모아왔다고 야규가의 위광이냐고 하자 큐베는 "망할 바엔 싸우다가 망하는걸 선택한 녀석들이 많을 뿐"이라고 받아친다.
          하지만 규모야 어쨌든 면면은 문제가 당히 많은데 구체적으로 야규 사천왕이 가장 문제다. [[토죠 아유무]]는 여전히 큐베를 도촬하는데 여념이 없고 [[미나미토 스이]]는 계속 여자타령에 [[키타오오지 이츠키]]는 전신 남성기 드립으로 응수한다. 그나마 [[니시노 츠카무]]는 평범하게 열심히 싸우며 "승패야 어떻듯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게 중요"하다고 바른 말을 한다. 그는 긴토키 일행이 야규 일가에 처들어왔던 일을 회하며 그때 이후로 가장 즐거운 싸움이라 말한다.
          * 빈보쿠사이가 그 말을 받아 긴토키에게 "정말 즐거운 싸움 아니었느냐"고 말하자 긴토키는 그때 빈보쿠사이에게 당해 골절 당한 일을 들며 학을 뗀다.
          빈보쿠사이는 적진을 누비면서 한탄한다. 야규가가 쇼군가의 검술사범으로 번한 듯 보이지만 평화의 시대가 오고 심지어 이젠 배가 하늘을 나는 시대가 되면서 검은 필요가 없어졌다고 자조한다. 그렇지만 하늘은 검의 마지막 순간에 빛이 들게 해줬다며, 이기든 지든 이게 검의 마지막 전장일 테지만 곧 이 별을 구할 수 있는건 검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동안 검에 목숨을 바쳐왔던 젊은 검사들에게 "지금까지 단련해온 건 지금을 위해서"라고 격려한다.
          >지금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면 알고 있어.
  • 은혼/648화 . . . . 12회 일치
          * 그리고 그 총알은 노부노부도 맞았다. 다시금 일촉즉발의 황이 이어졌으며 노부노부는 피를 흘리면서도 조금 더 참을 것을 주문했다.
          * 신스케가 쓰러지면서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였다. 마타코의 오열과 함께 전장의 소란스러운 소리도 돌아왔다. 군홧발소리가 두 남자의 주위를 애워쌌다. 양측의 병사들이 적의 대장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다시 시간은 얼어붙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대치가 원히 이어질 것 같았다. 그만두자고 할 때까지는. [[도쿠가와 노부노부]]가 그 말을 꺼냈다.
          * 권유처럼 들리는 노부노부의 말에 수긍하는 이는 없었지만 부정하는 이도 없었다. 대의를 짊어지고 사람들을 이끌어온 남자들, 다츠마와 가츠라가 그랬고 신스케가 그랬다. 신스케는 지금껏 밟아온 시체를 생각했다. [[카와카미 반사이]]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 시체들이 발 밑에 있는데 참으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아직 손에 칼이 들려있었다. 그때 엔쇼가 한 말은 신스케의 심정을 대변했을지도 모른다.
          엔쇼는 의식이 남아있었다. 그는 몸의 고통따윈 잊은 것처럼 노부노부의 권유를 조소했다. 거기에 반박하는데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오래 전에 한 번 떠올린 말이었고, 이미 한 번 했던 말이었다. 이젠 세에 없는 사람에게 했던 말.
          아내에겐 그 아픔이야말로 무덤의 주인이 이 세을 살았던 증거이자 그가 자기 안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증거였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엔쇼였고 또 뱃속에 있는 그의 아이였다. 엔쇼가 먼저 자리를 떴다. 새로운 전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다만 짖궂은 말로 그가 무사하기를 빌었다.
          머지 않아 형은 전쟁을 멈추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어떤 나라와 동맹을 체결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아직 형수였던 시절엔 남편을 초연하게 배웅하는 법을 몰랐다. 형은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전쟁을 하러 가는게 아니며 웅 초연의 황자가 지켜줄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엔쇼는 형의 곁에 있었다. 아무 것도 내색하지 않았다. 적당한 위치에 도달한 형의 함선이 기습을 당하고 동생에게 구원을 요청할 때조차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형을 내버려둔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슬픔을 가장했다.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형이 누워있는 관 앞에서 형수를 위로한 일이었다.
          어떤 웅도 싸움이 끝나면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는 법. 신스케는 검을 돌려 땅에 꽂았다. 그는 손에서 검을 놓고 말을 이었다.
          먼저 결단을 내린 것은 양이지사 측이었다. 양이지사 소속 병력들은 대치 황에서 스스로 총을 포기했다. 해방군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경악했지만 방아쇠를 당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다음 노부노부는 누구든 도울 수 있는 자라면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돕도록 하고 해방군 모선의 추락을 최대한 저지하도록 지시했다. 엔쇼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노부노부를 바라봤고 자신이 싸웠던 웅들을 바라봤으며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같은 눈이었다. 그의 아내를 닮은 눈.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눈. 엔쇼는 그런 눈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같은 눈을 한 남자들에게 이길 가능성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인정했다.
          >도와주지 않겠는가?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 이 부하들을 죽일 순 없거든.
          자작의 호통과 함께 그 병사는 금밭 붙잡혔지만 사태의 파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작은 엔쇼의 시체를 추스르면서 맞은 편에, 또 한 사람이 쓰러지는 걸 보았다. 피를 흘리고 있었다. 노부노부였다. 노부노부가 총에 맞았다. 피가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입가에서 한줄이 선혈이 비져나왔다. 그 황이 전파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고 병사들이 다시 총을 집기까지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황은 다시 일촉즉발. 언제라도 총성이 울릴 것만 같았다. 그때 노부노부의 입에서 그만두라는 호통이 튀어나왔다.
  • 이관섭 (1961년) . . . . 12회 일치
         |직책 = [[산업통자원부 차관]]
         |학력 = [[서울대학교]] 경학 학사 <br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석사
         * [[서울대학교]] 경학 학사
         * 1984년 : [[공부]] 행정사무관
         * 2007년 4월 ~ 2008년 3월 : [[기획예산처]] 공공혁신본부 경지원단장(고위공무원 나급)
         * 2013년 3월 ~ 2013년 4월 : [[산업통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 2013년 4월 ~ 2014년 7월 : [[산업통자원부]] 산업정책실장
         * 2014년 7월 ~ 2016년 8월 : [[산업통자원부]] 제1차관
         |직책 = [[대한민국의 산업통자원부 차관|산업통자원부 제1차관]]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자원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설주 . . . . 12회 일치
         | 출생지 = {{국기나라|대한제국}} [[경북도]] [[대구군]]
         | 웹사이트 =
         대구수창국민학교(현재의 [[대구수창초등학교]])와 대구고등보통학교(현재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으로 유학하면서 [[니혼 대학]] 경제학과에 재학했지만 사범으로 체포되고 만다. [[1932년]]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의 문학 잡지 《신일본민요(新日本民謠)》에 시 〈고소(古巢)〉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그 뒤 [[만주]]와 [[중국]] 등지를 방랑했고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광복 이후인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대구여자업학교(현재의 [[대구제일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으며 문고판형 전집 《설주문학(雪舟文學)》을 비롯한 여러 시집을 출간했다. [[2011년]] [[3월 24일]] [[한국문인협회]]는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한국 현대 시문학과 시조문학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설주문학을 제정했다.
         * 시집 《불모(不毛)의 토(領土)》 (1960년)
         * 시집 《이승과 저승 사이》 (1977년)
         == 수 ==
         * [[1959년]] 경북문학
         * [[1986년]] 화시인
         * [[1989년]] 한국문학
  • 이승현 (1985년 7월) . . . . 12회 일치
         |클럽=[[부산 아이파크]] <br> [[전북 현대 모터스]] <br> → [[무 축구단|무]] (군 복무)<br>[[수원 FC]]
         [[2006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데뷔하여, 좋은 활약을 펼치며 주전 자리를 차지하였다. [[2007년]] 십자인대 파열 부을 당한 후 슬럼프를 겪기도 하였지만,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하였다. [[2007년]] [[터키 수페르리그]]의 [[베식타시 JK]]로부터 이적설이 떠돌기도 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41406 박병규-조용형-이승현, 터키 무대서 '러브콜' ]</ref>
         == 수 ==
         ==== {{국기그림|대한민국}} [[무]] ====
         {{2013년 무 선수 명단}}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5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반야월초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윙어]]
  • 일곱개의 대죄/202화 . . . . 12회 일치
          * 그로키시니아도 요정왕이기 때문에 파장이 비슷해 헬브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로키시니아는 헬브람에 대해선 모르지만 "할리퀸의 지인"이라 부르며 그들이 제대로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 절대로 깨어나지 않을 거라고 설명한다. 이걸로 보아 두 사람은 진짜로 성전 시대로 이동한건 아닌 것 같은데.
          * 성전 시대의 킹은 그로키시니아의 창 바스키어스를 능란하게 다룬다. 제 2형태 가디안으로 "네크로시스"란 기술을 사용, 십계 배신의 [[카르마디오스]]의 팔에 바람 구멍을 낸다. 팔 여기저기를 꿰뚫린 카르마디오스는 무기를 놓치며 틈을 보인다.
          * 그것을 가로 막으며 나타난 [[멜리오다스]]. 카르마디오스는 그의 등장에 동요하는데 멜리오다스는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말과 함게 풀카운터로 이블 브레스를 날려보낸다. 때를 맞춰 킹이 창 10형태 "에메랄드 옥토"로, 디안느가 "기가 크래쉬"로 협공을 펼쳐 카르마디오스를 쓰러뜨린다. 카르마디오스는 쓰러지면서도 어째서 멜리오다스가 여기에 있는지, 어째서 그를 공격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그는 비록 지금은 쓰러지지만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반드시 동포들을..."이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데.
          * 마침내 일행은 스티그마의 거점 요정왕의 숲에 당도한다. 인간들은 그 장엄한 모습에 위축된다. 요정왕의 숲은 요정왕의 마력에 향을 받는다. 현세의 숲과는 비교도 안 되게 거대한 규모를 보고 킹이 자격지심을 느낀다.
          그 숲 한가운데에 희고 높은 탑이 보인다. 디안느가 저게 뭐냐고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킹도 현세엔 없는 구조물이라 모르긴 마찬가지다. 그때 멜리오다스가 "우리 거점을 보고 무슨 소리냐"며 이하게 여긴다. 이 탑에는 요정족과 거인족 병사들의 모습이 모인다. 물론 여기엔 여신족도 있다.
          * 탑의 입구에서 여신족 여성이 나타난다. 대단히 거만해보이는 인으로 고생하고 돌아온 일행에게 "셋이나 십계 하나를 처리하는게 고작"이라고 면박을 준다.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 [[네로바스타]]를 부르며 그만두게 한다. 그를 본 킹과 디안느는 긴장하낟. 로우를 비롯한 인간들도 범치 않은 마력을 느낄 수 있다.
          뤼드셀은 그녀와 달리 거만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인간들에게 "처입은 우리 아이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정중히 예를 표하고 합류를 환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멜리오다스는 어딘지 불신하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는데.
          * 뤼드셀은 환의 말 끝에 "낭보가 있다"고 말을 잇는다. 모두가 기다리던 성전의 종결이 다가왔다는 말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드디어 마신족과 평화가 성립한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돌아온 말은 뜻밖이다.
          그는 방금 전의 온화한 인물과 같은 사람이라는걸 도 할 수 없는 얼굴로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12회 일치
          * 인듀라화한 [[데리엘]]은 압도적인 힘으로 [[뤼드셀]]을 공격한다. 그전까지 십계 전원을 대로 압도하던 뤼드셀이지만 그 공격에 지면으로 처박힌다.
          * [[갈란]]은 [[프라우드린]]을 데리고 급하게 도망친다. 인듀라화한 마신들은 이성을 잃어 자신들까지 휩쓸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라우드린은 인듀라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지 데리엘과 [[몬스피드]]가 왜 저런 모습이 됐는지 문을 몰라한다. 갈란은 그들을 "파괴의 화신"이라 칭한다.
          본래 마계에서만 존재하며 마신들조차도 두려워하는 전설 의 존재다. 그 실체는 일곱 개 이의 심장을 가진 마신이 자신의 여섯 심장을 바치고 계약을 맺어 본성을 드러낸 형태다. 전투력이 최소 5만이 되지 않으면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죽는, 자폭과도 같은 기술이다. 갈란은 십계 두 명이 인듀라화를 결심하게 만들 만큼 뤼드셀이 강한 거라며 감탄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젠 "끝"이라고 말한다.
          * 뤼드셀은 갑자기 변한 황에 당혹하지만 다시금 날아오른다. 그는 데리엘을 향해 강력한 에너지를 조사한다. 그것이 데리엘을 직격하지만 처 하나 내지 못한다.
          * 뤼드셀은 물론이고 재생을 마치고 황을 관망하던 [[사리엘]]과 [[타르미엘]]까지 모두 경악한다. 뤼드셀은 정말로 다급해졌는지 호통을 쳐서 사리엘과 타르미엘을 부른다. 자신을 도우라고 하는데, 두 천사는 머뭇거리면서도 그 명을 거역하지 못한다.
          * 그 사이 데리엘은 뤼드셀을 꼬리로 공격하나 간발의 차이로 빗나간다. 하지만 그 공격은 요정왕의 숲에 떨어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 뤼드셀은 반격을 시도하나 전혀 먹히지 않고 점점 궁지에 몰린다. 몬스피드의 공격을 받은 사리엘과 타르미엘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게 처를 입고 재생도 시작되지 않는다. 뤼드셀은 말도 안 되는 황이라고 내뱉는다.
          * 엘리자베스는 평범한 아크로 뒤덮여 있는 것 같았지만 드롤의 몸으로도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고 배타적인 에너지로 뒤덮여 있다. 마신족인 멜리오다스는 말할 것도 없이 치명적이지만, 엘리자베스를 구하기 위해 처를 무릎쓰며 그 안으로 들어가 엘리자베스를 안아올린다.
          그러는 동안 정신을 차린 엘리자베스. 멜리오다스는 그녀를 진정시키지만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아무 것도 막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멜리오다스만 처입게 둘 수 없다며 혼자 전장을 향해 날아간다.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12회 일치
          * 네로바스타가 어찌할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사이 작업은 착착 진행되고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스티그마의 병력에게 텔레파시를 보낸다.
          * [[게라이드]]는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네로바스타의 호출이 전달되면서 황이 급변한다.
          * 그런데 그러던 중에 이한 녀석과 부딪히는데, 놀랍게도 지금 시대에 존재할리 없는 [[고서]]였다.
          * 이 시대의 고서는 감정변화가 극심하고 어딘지 정이 아닌데, 그를 관찰하던 할리퀸은 그가 진짜 고서가 아니라고 느낀다.
          * 대체 왜 이 "은총의 빛"에 십계가 있는가? 무엇을 하는 건가? 네로바스타는 그런 의문을 해결할 시간이 없다. 메라스큐라는 천계로 이어진 문을 마계로 이어진 문으로 바꾸고 있다. 네로바스타는 당황한 나머지 눈이 휘둥그레 진다. 그러나 막을 방법이 없다. 그녀로선 두 십계를 대할 힘이 없고 침식되는 문을 복구할 능력도 없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쩌지"라는 고민으로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러나 진을 아는 [[게라이드]]는 어두은 얼굴이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불편한 얼굴로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그로키시니아]], 그 몸을 가진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에게 경호를 부탁받았던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혹시 인간인 자신이 호위라 불안한 거냐고 묻는다. 게라이드는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느라 그런 거라며 당치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로우는 그녀의 오빠가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지 않느냐며 자신을 의식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빠로서 그로키시니아는 어떤 인물이냐고 묻기도 한다. 게라이드가 다정하고 자기가 곤란해하면 언제든 달려와준다고 말하자 로우는 아주 흐뭇하게 웃는다. 그런데 게라이드는 그 웃음을 보면서 무언가 미심쩍은 점을 느끼는데.
          그때 네로바스타의 긴급 텔레파시가 전원에게 전달되면서 황이 급박해진다.
          * 네로바스타가 십계 두 명이 침입했다며 지원을 요청하는 텔레파시를 보내자 스티그마 병력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물론 큰일이지만 그들만으로 십계 두 명을 대로 승산이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네로바스타는 현장에 있는 십계는 전투형이 아니라 전부 덤비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하며 당장 은총의 빛 안으로 돌입해달라고 요청한다. 근거가 없는 말이지만 스티그마 병력들은 신병장이 하는 말이라며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스티그마는 그가 마신족과 한패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건 적당한 표현이 아니다. 그와 마신족은 그저 목적이 일치했을 뿐, 그 이의 관계는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날고 있는데, 수풀 사이에서 이한 녀석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 그 이한 녀석과 부딪힌 할리퀸. 잠시 이동을 멈춘다. 할리퀸은 자신과 부딪힌 사람을 보고 눈을 의심한다. 이 시대에 있을리 없는 인물이기 때문. 그를 알아보지 못한 디안느는 누구냐고 정체를 묻는다. 그는 놀랍게도 [[고서]]. 그는 고우셀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지만 사악한 웃음을 띄운다. 그는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을 알아보고 그들의 정보는 자신들도 모르는 부분까지 전부 알고 있다고 협박조로 떠들기 시작한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12회 일치
          * 그런 식으로 원히 헤매고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엘리자베스와 멜리오다스의 운명.
          * 경직된 일곱 개의 대죄 단원들 사이에서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조심스럽게 대체 누가 둘을 벌했냐고 묻는다. 그건 물론 주 진의 최고 지배자였다.
          * 멜리오다스는 홀로 방황의 길에 오랐다. 그가 아는 거라곤 자신이 잠들어 있던 동안 성전이 끝났다는 것과, 왠지 더는 나이를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렇게 된 원인도 모르는 채 멜리오다스는 성전의 흔이 지워지지 않은 브리타니아를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 같은 재회가 찾아왔다.
          그저 많이 닮은 타인이 아니었다. 멜리오다스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다시 태어난 엘리자베스라는 걸 알았다. 어찌된 일인지 인간의 모습이었고 멜리오다스를 알아보지도 못했지만 관 없었다. 그는 무수히 걷어차이고 거부 당하기를 반복하며 그녀의 곁을 따랐다. 결국 그의 열성에 엘리자베스가 항복했다. 여전히 그를 기억하진 못했지만, 둘은 친구가 되었다.
          * 엘리자베스는 그들이 어떤 저주를 받은 건지 쉽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걸 말하기 앞서 멜리오다스에게 맹세를 요구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설사 자신이 다시 죽더라도 언젠간 이 저주를 풀겠다는 맹세를. 멜리오다스는 문도 모르는 채 간절한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보고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주를 풀 것을 약속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가 눈물 맺힌 웃음과 함께 모든 진실을 밝혔다. 그리고 3일 뒤. 엘리자베스가 죽었다. 멜리오다스의 눈 앞에서. 무너진 축대에 찔리는 사고였다.
          * 마신왕과 최고신은 힘을 합쳐 무서운 저주를 내렸다. 원의 삶과 겁의 윤회. 멜리오다스는 죽음 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그는 더는 자라지도 않게 된 그 육신으로 원히 살 것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인간으로 되살아나 극히 짧은 삶을 반복하며 그때마다 모든 기억을 잃는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는 순간 그 누가 어떻게 보호해도 그녀는 3일 후 반드시 죽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저주가 정말 잔인한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 그들의 진실을 알게 된 단원들은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못했다.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는 소리를 죽여가며 눈물을 철철 흘렸다. 멜리오다스는 담담하게 지난 3천년 동안 107명의 엘리자베스를 만나 106번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봤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며칠 안으로 107번 째의 마지막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몇 번을 반복해도 이것 만큼은 적응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엘리자베스가 그토록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이 고통을 끊어야 한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마신왕이나 최고신에 필적하는 힘이 필요하다. 앞으로 대할 [[젤드리스]]가 마신왕에게 빌린 힘도 적당하겠다. [[바트라 리오네스]]가 예견했던 십계의 부활과 대죄의 집결도, 멜리오다스의 입장에서는 이 저주를 끊기 위한 포석들의 하나였다. 그게 결과적으로 단원들을 속이는 게 돼버렸다며 그가 사과했다.
          * [[디안느]]는 지금껏 울음을 참고 있었지만 더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울면서 저주가 풀리면 두 사람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답은 그녀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멜리오다스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원한 삶과 겁의 윤회를 끝내는 것, 그게 여행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그 예정된 비극 앞에 모두가 침울함을 감추지 못한다.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12회 일치
          * 마신족이 브리타니아를 점령하고, 그 압제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그들이 시키는 짓이라면 무엇이든 해야했다. 인간의 혼을 먹고 사는 마신들은 마을 주민들을 살려두는 조건으로 그만큼의 인간 혼을 요구했고, 각 마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당량을 채우려 들었다. 한때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아만드"란 이름으로 은거했던 마을에서도 그랬다. 이 마을 촌장은 여행객들을 속여 마신족에게 바쳐왔다. 그렇게 생긴 시체가 쌓이고 쌓여 마을 공동묘지는 묘비가 빼곡하게 박혀있다. 촌장의 어린 아들 "페리오"는 그런 아버지의 방식에 반발했다. 촌장으로선 마을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선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아들은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며, 아버지나 어른들은 모두 겁쟁이고 자신이 마신족들을 다 물리치고 말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촌장은 자식의 뺨을 때리면서까지 그런 말을 틀어막으려 했다. 그 말이 누구 귀에 들어갔다간...
          * 페리오는 어린애가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을 당하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작은 막대기에 의지해 몸을 가누며 아버지를,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신족의 악행을 꾸짖었다. 그는 언제나 성기사가 되길 꿈꿨다. 그런 자신이 괴물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고,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저급한 존재에겐 고결한 신념이 향을 줄 수 없었다. 하급 마신이 꼬리로 페리오의 목을 졸라 들어올렸다. 이젠 질렸으니 죽이겠다면서 말이다. 이런 족속에게는 보다 직접적이고 무자비한 방식으로만 행동을 고칠 수 있다.
          하급 마신이 고서에게 뻗으려던 주먹이 모조리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마신은 페리오에게 한 것 이으로 무자비한 공격을 자신에게 퍼부었다. 쓰러지기 전까지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러기는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경악과 두려움 속에 지켜보는 사람들. 그러나 페리오의 친구인 메라는 이변을 일으킨 저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 덩치가 큰 마신이 포효했다. 혼을 먹고 싶다는 아우성이었다. 작은 지 친구보다도 훨씬 멍청했던 그 마신은 황파악 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그에게 그런 능력은 필요가 없었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의 파워업한 진 창 샤스티폴이 "인 크리스"의 형태로 마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날개가 돋기 전보다 한층 정교하고 강력해진 위력. [[헬브람]]이 그 성장을 축하하지만 할리퀸은 아직 온전하게 역량을 시험하기엔 대가 너무 약했다고 투덜거렸다.
          마을 사람들은 광장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며 저들이 자기들을 구한게 맞는 건지, 황이 어떻게 변해가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일대를 점거하고 있던 마신족은 하나도 남김 없이 일곱 개의 대죄가 처리했지만, 그들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을 언덕 위에서 굽어 보며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멜리오다스]]에게 이런 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원래 그들은 성채도시 코란도로 가야했다. 멜리오다스는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고서가 강력하게 희망하기도 했지만, 마신족의 위협에서 백성을 구하고 피폐해진 그들의 삶을 되돌리는 것도 성기사가 해야 할 일이다.
          * 그렇게해서 고서의 볼 일이 끝났다. 이제 진짜 목적지로 향할 시간이다. 페리오와 친구들은 고서가 떠나갈 때까지 한참이나 따라와 마중했다. 그들은 멀어지는 돼지의 모자정을 향해 언제까지나 손을 흔들었다. 고서는 옥에서 그들의 배웅인사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떠나기 전 어린 친구와 나눈 문답을 곱씹었다. 코서가 "친구에게 남이 간단히 해결해 줄 수 없는, 목숨이 걸린 고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페리오는 그 질문을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가장 적당한 대답을 해주었다.
          * 다시 며칠이 흘렀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호크엄마는 열심히 발을 옮겨 목적지까지 당도했다. 곧 무너질 것 같은 다리를 사이에두고 성채도시 코란도가 눈 앞에 나타났다.
          * 멜리오다스가 단원 전원을 정렬시키고 빨리 차원의 비틀림을 처리하기로 한다. 그런데 에스카노르가 성문 앞에 누군가 서있는걸 발견한다. 그 그림자는 아주 익숙한 모습이다. 게다가 일행이 여기에 왜 왔는지, 엘리자베스가 어떤 태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림자는 여기엔 엘리자베스 때문에 온 거냐며, 아직 살아있다면 참 끈질긴 여자라고 빈정거렸다. 그를 알아본게 멜리오다스 만은 아니었다. 멀린이 이것이 함정임을 간파하고 멜리오다스에게 경고했다.
  • 장은숙 (가수) . . . . 12회 일치
         | 관련활동 = 산청군 홍보대사<br />한일문화교류대사<br />대한가수협회 임이사
         | 웹사이트 = [http://www.chang-suu.com/ 장은숙 일본 공식 홈페이지]<br />[http://cafe.naver.com/sookjjang 장은숙 한국 팬 카페]
         1977년 [[동양방송]](TBC)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최초의 오디션프로그램인 《[[스타탄생]]》에서 대을 수한 뒤 《맷돌》이란 곡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대표곡으로 《춤을 추어요》, 《당신의 첫사랑》, 《사랑》, 《원한 사랑》, 《이별의 손짓》, 《못 잊어》등이 있다.
         어릴 때 국악을 배웠으며, 득음을 위해 절에 들어가서 2년간 목소리 훈련을 하기도 했다. 데뷔 후 스타킹모델을 했었고, 1981년에는 코미디언 [[이주일]]과 공동주연으로 《[[리빠똥사장]]》 이라는 화를 찍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활동 후 1995년 일본 [[토라스레코드]]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로 일본 무대로 진출하였고, 그 후부터 '장수(チャン・スー)'라는 예명을 사용하였다.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 첫해 일본 유선 방송 신인을 받았고, 2000년 발표한 '[[운명의 주인공]]' 으로 방송 및 각종 차트에서 12주 이 1위를 차지하며 총 25만장의 앨범 판매 기록도 세우기도 했다. 지금까지 20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2015년 5월에 발표한 "눈물의 공항 대합실"을 포함해 총 14곡이 유선방송 1위에 랭크되었다.
         * 4집 《원한 사랑/이대로 떠나지만》([[1979년]])
         * 《하 52도 (零下52度)》([[2008년]])
         * [[2015년]] [[대한가수협회]] 임이사
         * [[2011년]] [[경남도]] [[산청군]] 홍보대사, 서울관광대사
  • 전상렬 . . . . 12회 일치
         |선수명 = 전
         |문 표기 = Jeon Sang-Yeol
         |사진 사이즈 =
         '''전렬''' (全商烈, [[1972년]] [[6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로, 현재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2군 작전·주루코치다.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한화 이글스]]로 옮겼고, 한화 시절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알렸다. [[1999년]]에 [[투수]] [[김경원 (야구인)|김경원]]을 대로 [[내야수]] [[홍원기 (야구인)|홍원기]]와 함께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늘 백업으로 뛰었지만 발이 빨라 [[2004년]]에는 [[도루]] 8위를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2004년]] 병역비리 사건으로 주축들이 대거 빠지게 되어 최하위를 예하였던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6년]]에는 FA 계약으로 2년에 총 4억원에 계약을 맺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24857&|저자=박선양|출판사=OSEN|제목='늦깎이 스타' 전렬, 두산과 2년 4억원에 FA 계약|날짜=2006-01-15}}</ref> [[200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091029005501&subctg1=05&subctg2=00 두산, 이승학·정원석 등 방출] - 세계일보</ref> 보기보다 조숙한 얼굴로 '할매'라는 별명이 있어서,<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91182 최고참 전렬, "은퇴는 사절, 불혹까지 뛴다"] - 조이뉴스24</ref> 김인식 감독이 "대타 할매" 라고 심판에게 대타 기용 사인을 전달할 때 심판들이 바로 그를 대타로 낸다고 알아차릴 정도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9190045 '신할매' 정수빈, 이틀 연속 불 뿜은 본능] - OSEN</ref>
         * [[대구업고등학교]]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천안 전씨]]
  • 전진옥 . . . . 12회 일치
         | 출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경북도]]
         | 모교 = [[한국외국어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학]] 학사<br />[[조지아주립대학교|조지아주립대학교 정보시스템]] 석사<br />[[한국외국어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정보학]] 박사
         | 수 = 산업포장 수훈(2007년) 등
         | 웹사이트 = http://www.bit.kr/
         | 자너비 =
         [[경북도]] 출신으로 우리나라 벤처 1호기업이자 의료정보업체인 [[비트컴퓨터]]의 대표이사인 기업인이다.
         미국 INTEC연구소 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소프트웨어공학연구실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실시간텀퓨팅연구부장을 거쳐 2000년 벤처기업인 비트컴퓨터에 합류했다. 비트컴퓨터 기술연구소 소장 / 무이사를 역임, 2005년부터 창업자인 조현정 대표와 함께 비트컴퓨터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포으로는 산업포장, 대통령표창, 정보통신부장관 표창,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등이 있다.
         *198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정보학 박사
         *2010~2004 [[(주)비트컴퓨터]] 기술연구소장 무이사
         == 수 경력 ==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주나라 . . . . 12회 일치
         [[중국]] 역사의 통일 왕조. '주왕조'라고 한다. [[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의 주도권을 잡은 주왕조는 전국시대 말기에 멸망할 때까지 약 800여년 동안 존속한다. [[갑골문]]의 발견으로 나라의 역사가 해명될 때 까지는 주왕조를 거의 중국의 '역사시대'로 보았다.
         약 기원전 1100년 전후, (商)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이 패망하고, 서백(西伯) 희창(姬昌)의 차남 무왕(武王) 희발(姬發)은 호경(鎬京)을 도읍으로 하여 왕으로 즉위한다.
         유왕의 태자가 정(鄭)의 후원을 얻어 낙읍(洛邑)에 재건되었다. 낙읍은 후대의 뤄양(洛陽,낙양)이다. 그러나 동주는 재건 당초부터 취약한 정권으로서, 정(鄭)나라와의 전쟁에서 참패하면서 사실 실권을 실, 각국의 제후들이 패자(覇者)로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고 주왕조는 천자(天子)로서 명분의 권위만을 가진 정권이 된다.
         춘추시대에는 제후들은 실질적으로 주나라 이의 실력이 있었으나, 명분 주나라의 신하를 자처하였으므로 군주의 지위는 공(公), 후(侯)에 머물렀다. 단지 초(楚), 오(吳), 월(越) 같은 주나라 외부의 국가들만이 왕(王)을 자칭하였다.
         주나라의 권위는 시대가 갈수록 저하하였다. 전국시대에 이르면 각국이 왕(王)을 칭하는 등 주나라의 권위는 더 이 존재하지 않게 되어 일개 약소국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결국 전국시대 말기에 진(秦)나라에게 항복하여 멸망하고 만다.
          * 주공(周公) : 무왕의 동생 주공 단(旦)에서 시작된 지위. 천자(天子)인 주나라의 왕(王)과는 별도로 지속되었는데, 주공 단의 전례에 따라서 재-섭정 격인 역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나라에서는 청동기 제조 기술이 발달하였는데, 천자의 권위를 징하는 [[구정]](九鼎)에 대한 전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나라는 청동기로 만들어진 정(鼎, 솥) 같은 제례도구를 제조하여 제후국에 하사하였는데, 이는 주나라의 높은 기술력과 문화를 징하는 것이었다. 또한 주나라의 청동기에서는 그 연혁을 기록한 금문(金文)이 새겨져 있어, 후대에 역사를 탐색하는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 진격의 거인/89화 . . . . 12회 일치
          * 아무튼 억울해진 엘런이 대체 뭐하러 왔냐고 소리치자 리바이는 감옥 문을 열어준다. 사실 그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리바이와 한지가 [[다리스 작클레]]와 협해서 "갑옷 거인과 초대형 거인을 쓰러뜨린 웅들을 처벌하는건 말도 안 된다"는 명분으로 이런 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거역한 지휘관은 결과적으론 갑옷과 짐승거인을 놓친 실책을 범한 점도 고려되었다.
          그러나 파국은 오래가지 않아 찾아왔다. 유미르를 숭배하던 이들은 엘디아 복권파에 속한 종파였던 듯 하다. 그들은 마레 당국에 검거되었으며 그녀에게 "유미르" 역할을 맡겼던 남자는 그녀에게 속았다며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악마로 몰린 황에서도 유미르는 자신이 연기를 계속해야지만 모두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유미르"를 자칭했지만, 결국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세은 그저 고깃덩어리들이 떠들거나 걸어다니는 의미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던 유미르. 그러나 그녀가 다시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됐을 땐, 그건 전혀 다른 의미였다.
          편지를 다 읽은 크리스타는 몇 번이나 다시 읽고 혹시 종이 사이에 숨겨진게 있을까 해서 살펴본다. 하지만 그녀가 보낸건 이것 뿐이다. 크리스타가 정말 이것 뿐이냐고 묻자 오히려 [[쟝 키르슈타인]]이 "너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 같은건 없냐"고 되묻는 지경이다. 크리스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창 밖을 바라본다.
          한지는 비록 초대형 거인을 손에 넣었지만 여전히 벽안의 황은 위태롭다고 말한다. 한지는 적은 단지 거인 뿐만 아니라 인간이자 문명, 즉 "세계"라는 점을 밝힌다.
          * 한지가 그리샤의 수기에서 얻은 정보대로 "엘디아 인", 그리고 "유미르의 백성"에 대해서 발표하는 동안 엘런은 또다시 그리샤의 기억으로 불려간다. 기억 속의 [[엘런 크루거]]는 마레 당국이 계획대로 시조의 거인을 손에 넣는다면 더이 수용소도 유지하지 않을 거라고 밝힌다. 그는 그로스가 말했던건 전부 사실이라며 엘디아가 무지성의 거인을 병기로 이용했던 사실을 밝힌다. 이들은 시조의 거인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단순히 살육을 반복할 뿐인 짐승들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자체로 두려움도 멈춤도 모르는 자동살병기인 것이다. 과거 엘디아에서는 이것을 양산해 값싼 전력으로 이용했지만, 지금은 엘디아인들을 팔라디섬에 가두는 용도로 쓰고 있는 것이다. 단지 지금에 와선 마레 측에서도 이 방생한 거인들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섬에 접근하는건 제한되고 있다.
          하지만 마레의 입장도 두 가지로 나뉜다. 지금은 이런 괴물들이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니 과학병기로 몰살시켜 버리자는 것이다. 크루거는 언젠가 이 섬의 자원을 노리고 마레 당국이 륙을 시도할 텐데, 그때는 무지성 거인들을 전부 처리해야 한다. 그러자면 "시조의 거인"이 필요하다는 것. 현재는 엘디아 인의 처분에 대해서는 보류 중이지만, 시조 거인을 얻고 팔라디섬을 청소하게 되면 분명 논쟁은 다시 시작된다.
          >더이 백성을 지키지 못하는 왕은 왕이 아니다.
         수면으로 가라앉았던 루프설이 강력하게 재등장. 엘런 크루거가 미사카나 아르민을 언급함하면서 사실 확정됐다.
         '거인'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면서도 어떤 '약속' 때문에 엘디아(파라디 섬) 측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걸 묘사하는 이 부분은 일본의 '[[평화헌법]]' 논란이 연된다.
  • 진희규 . . . . 12회 일치
         '''진희규'''(秦喜葵, [[1878년]] [[9월 3일]] ~ [[1959년]] [[11월 25일]])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경북도]] [[대구부]] 동이며 경북도 달성군(현재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이다.
         [[1911년]] 10월부터 1920년까지 경북도 참사를 역임했으며 [[1915년]] [[10월 28일]] 도로부지로 토지를 기부하여 목배 1개를 받았다. [[1918년]] 대구은행 감사역, [[1919년]] 계림농림주식회사 취체역, [[1920년]] 대동사, 대구주조주식회사 취체역으로 근무했으며 1920년 4월부터 1933년까지 경일은행 이사, 1923년부터 1927년까지 대구은행 대주주를 역임했다.
         [[1924년]] [[4월 1일]]과 1927년 4월 1일 경북도 관선 도평의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4년 경북도 달성군 수성수리조합 조합장, 수성공립보통학교 학부형장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927년]] [[1월 20일]]부터 [[1938년]] 6월까지 달성동부금융조합 조합장, 1928년 경합동은행 대주주를 역임했으며 [[1928년]] [[11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1930년]] [[6월 3일]]부터 [[1933년]] [[6월 2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1935년]]부터 [[1939년]]까지 대구공은행 이사를 역임했으며 [[1937년]] [[7월 1일]] [[조선총독부]] 시정 25년 기념 박물관 건설비 1,000원, [[1938년]] [[8월 4일]]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설립비 1,000원을 각각 기부하여 일본 정부로부터 포장을 받았으며 광복 이후인 [[1949년]] [[3월 18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자수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
         |제목=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 보고서 Ⅳ-17
  • 창작:릴리퍼트 아파트 . . . . 12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프라임 시티/건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창작:프라임 시티|프라임 시티]]의 [[창작:블루클레이|블루클레이]]에 있는 건물. [[창작:존 휘태커|존 휘태커]]와 [[창작:레스터 리|레스터 리]]의 집이다. 레스터에겐 첫 번째 집이지만, 존에겐 수많은 은신처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흔히 오픈월드 게임에서 숱하게 등장하는 세이브 포인트를 연하면 쉬울 것이다. 물론 소설에서는 그 모든 걸 묘사할 수 없으므로 생략될 수밖에 없지만. ~~사실 묘사할 수는 있는데 분량이 문제라더라~~]
         주거지구와 항만지구 사이에 있기 때문에 뱃고동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도 한다. 본래 "호텔 릴리프트"였으나 위치와 시설 문제 때문에 금세 부도가 나서 폐쇄되었고, 이후 내부 구조를 살려 아파트로 변신했으나 구역의 분위기와 함께 점점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러다 [[창작:앨프레드 박|앨프레드 박]]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인수하면서 현재 시점에 이르게 된다.
         = 세 =
         위로 4층, 지하로 1층이 있으며 건물 뒤편에 주차장이 있다. 벽은 황토색인데 본래 아색이나 때가 엄청 많이 묻는 바람에 변했다는 얘기가 있다.
         1층에는 관리실과 아파트 주인의 집, 바텐더 [[창작:트레버 맥베어|트레버 맥베어]]가 취미삼아 운하는 '[[창작:바 비르투|바 비르투]](Bar Virtue)'가 있다. 비르투의 경우 도로 쪽으로 나 있기 때문에 열려 있을 때에는 아파트 정문을 통하지 않고도 바로 입장할 수 있다. 그리고 맞은편, 즉 뒤편 절반에는 아파트 관리인 [[창작:빈디 셰클턴|빈디 셰클턴]](Bindy Shekleton)의 집이 있으며, 여기를 쪼개서 관리실로 쓰고 있다. 뒤편의 나머지 절반에는 아파트 주인 앨프레드 박의 집과 창고들이 있다. 쉽게 말해 1층에는 입주자가 없다.
         2층부터 3층까지는 입주자들이 빈틈없이 살고 있으나, 입주자라기보단 숙박객에 가까울 정도로 자주 비어 있다. 어디까지나 싼 집세 때문에 거주하다 보니, 밖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입주자들끼리 마주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른 척하고 지내지는 않는다. 서로 필요할 때만 만날 뿐, 평시에는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여 만나지 않을 뿐이다.
         == 운 ==
         썩어도 준치라고, 예전에 호텔이었다 보니 엘리베이터나 기본적인 시설은 다 갖춰져 있다. 허나 유지보수 공사를 안 했기에 몇몇 곳은 부실했고, 복도와 지하실의 경우 전기가 잘 안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러다 존이 입주하면서 앨프레드와 공동으로 아파트를 운하게 됐고, [[창작:토비 쿠로사키|토비 쿠로사키]]란 청년이 입주하면서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하지만 작중 초반부에 토비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아파트의 보존이 다시 부실해지고, 더구나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아파트로서의 기능은 더 이 하지 못하게 된다.
          * 고작 이 정도의 건물로 과거에 호텔을 경했다고는 하지만 미국 문화에 대해선 잘 모르므로 적당히 넘어간다. 어쩌면 '모텔'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12회 일치
         우선 내가 찾아낸 작은 물건들에 감사부터 해야겠다. 꽃삽이다. 아마 어머니가 화단을 정리하면서 썼던 물건이리라. 앞으로 시작될 농사에 혁혁한 기여를 기대한다. 본격적인 농사용구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그러면 어때. '''맨손'''보단 백배는 낫지. 벌써부터 파헤칠 수 있는 면적이 배로 늘어난 기분이다. 그리고 내가 또 뭘 찾아냈을까? 바로 비료 푸대다. 솔직히 농업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어떻게 뿌려줘야 할런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우리 어머니는 분명 어 까막눈일 텐데 어째서 포장지에 어만 잔뜩 써져 있는 비료를 샀을까? 그 사정을 물어볼 날이 올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다. 좌우간 지금은 도움되는 물건이 발견된 것 자체가 기뻐하자.
         다시 내가 찾아낸 물건 얘기로 돌아가자. 우리 집에는 생각보다 정원 용품이 많다. 날이 좀 나갔지만 전지가위도 하나 찾았고 어디에나 써먹을 수 있는 목공장갑도 몇 벌 찾았다. 그리고 두툼하고 투명한 비닐 시트도 발견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겨울에 방한 목적으로 창문에 치던게 기억이 났다. 이게 또 요긴할 것이다. 같이 쓸 수 있는 굵은 철사도 있다. 녹 하나 나지 않은 새것이다. 나는 백지를 받아든 어린애처럼 온갖 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분명 재료가 부족할게 뻔하지만 작은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서 겨울에 대비하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래 지금은 부족하지만 나에게 제일 풍족한건 시간이 아닌가? 시간이 많다는 것,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만으로 근거도 없이 낙관적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생존이란 거겠지.
         그리고 어디에 써야할지는 알 수 없지만 콘크리트 못 한 세트도 찾았다. 못이라…… 살고자 하는 이엔 어딘가엔 쓰게 될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챙겨두자. 그런데 못은 있으면서 망치는 없다는게 황당하다. 못이 들어있던 서랍에서 전동드릴도 찾긴 했지만, 정작 날부분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고 결정적으로 지금은 전기가 끊긴 태다. 이거야 말로 있으나 마나한 물건이군. 대신이랄까, 전에 찾았던 아령의 사용처가 생겼다. 실험은 해보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못을 박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뭐에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생각할 수 있는건 많다. 당구대, 야구방망이, 삽, 곡괭이, 죽창 등등. 좀비 화의 주인공들이 그토록 쉽게 줍는 물건이 내게는 하나도 없다. 나는 배란다 문을 닫아놓고 거실에 주저 앉았다. 어느덧 정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당은 태풍의 한 가운데처럼 한산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놓고 여전히 녀석들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조금 시끄러운 행인들이라고 생각하면 5분 정도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머리를 식혔다.
         나는 비닐시트와 철사를 바로 써먹기로 했다. 불과 10분 만에 뚝딱 구한 아이디어가 겨울 철에 비닐 하우스를 만든다는 거 보다 훨씬 유용한 아이디어라는게 입증되었다.
         물론 매번 외출할 때마다 완전무장을 할 수는 없다. 뭣보다 이 방치복은 혼자 입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당장 돌아다니는데는 지장이 없지만 장차 농삿일을 비롯해 작업을 시작하면 애로사항이 꽃필 것이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이꼴로 작업을 하다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찜구이가 되겠지. 녀석들에겐 포장도 못 뜯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고.
         이제 마지막 고민이 남아 있다. 애당초 집 밖에서 활동하는건 정한 바였다. 문제는 지금이 적절한 때이냐는 것. 이미 각오한 바지만 그렇다고 개죽음할 생각은 없다. 거실에서 보이는 앞마당은 고요하고 새로 만든 방치복은 그럴듯해 보인다. 지금이야 말로 적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의 한편에선 보이지 않는 뒷마당과 그 너머 토트넘의 집안 풍경이 그려진다. 담장을 막 넘는 녀석들과 토트넘의 다시 한 번 죽은 시체를 목도하는 11명의 조기 축구 회원들. 죽어서도 함께하는 그 친구들이 나를 발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알고 있다. 어느 쪽도 확실한건 없다. 지금 어느 쪽의 가능성이 높은지를 따진다는건 순전히 내 심리가 얼마나 낙천성을 회복하고 있는지에 따를 뿐 객관적인 어떤 지표도 반하고 있지 않다.
  • 최원홍 . . . . 12회 일치
         {{화인 정보
         | 학력 = [[단국대학교]] 연극화학과
         | 웹사이트 = [http://6oceans.co.kr/artist_board/494#0 식스오션스 최원홍]<br>{{싸이월드|50316077}}<br/>{{인스타그램|choi.wonhong}}
         2006년 [[SBS]] 드라마 《[[사랑도 미움도]]》를 통해 데뷔했으며, 이후 화와 드라마 등에 출연하고 있다.
         * [[단국대학교]] 연극화학과 (재학)
         * 2010년 [[KBS1]] 《[[거 김만덕]]》
         * 2011년 [[MBC]] 《[[마이 프린세스]]》 - 어린 박해 ([[송승헌]] 아역)
         * 2017년 [[OCN (방송)|OCN]] 《[[블랙 (드라마)|블랙]]》 - 오민 역
         === 화 ===
         * 2008년 《[[아내가 결혼했다 (화)|아내가 결혼했다]]》 - 준서 역
         * [https://web.archive.org/web/20111205203150/http://www.ini2008.co.kr/ 소속사 사이트]
         [[분류:200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2006년 데뷔]][[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최진순 . . . . 12회 일치
         '''최진순'''(崔軫淳, [[1969년]] [[3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기자 (직업)|기자]]이다.<ref>김달아·최승.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127&aid=0000024679 중앙, 기어 바꾼 디지털 혁신…구성원 힘 모아 속도 낼까]. 기자협회보. 2017년 4월 5일.</ref>
         [[1969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했으며, [[1998년]] [[교수신문]]을 거쳐 [[2000년]] [[서울신문]]에서 본격적인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사)한국온라인신문협회 기획분과위원, 뉴스분과위원 및 운위원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2004년]]에는 [[한국언론재단]] [[KINDS]] 태스크포스(TF) 팀장, 운위원 등을 지냈다. 또 한국언론재단 [[뉴스ML]] 포럼 운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미국언론연구원(API) [[온라인저널리즘]] 디플로마 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부터 [[중앙대학교]] 미디어공연대학 [[신문방송학부]] 겸임[[교수]]를 맡기 시작한 최진순은 저서 《한국 신문의 뉴 미디어 혁신》(2006)을 비롯 《온라인 신문, 경쟁과 생존》, 《신문도 TV도 죽었다》, 《뉴스의 혁명, NewsML》, 《혁신 저널리즘》 등의 책을 잇따라 펴냈다. [[2008년]]에는 방송·통신 융합 시대 [[인터넷]] 정책현황분석 및 주요 이슈 (한국인터넷진흥원) 연구보고서(공저)를 냈다.
         [[2005년]] [[한국경제신문]]으로 이직해 [[2016년]] 9월 현재 편집국 기자로 재직 중이며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신문협회]] 기조협의회 포털팀(TFT) 등 신문업계 기구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2005년]]부터 블로그 [[최진순 기자의 온라인저널리즘의 산실]]을 운 중이다. [[2013년]]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강의 과목은 온라인저널리즘, 디지털스토리텔링, 블로그저널리즘 등이다.
         대학 출강 외에도 법무부, 보건복지가족부 등 정부부처는 물론 국내 대다수 언론사에서 특강과 자문을 맡고 있다. 또 [[MBC]] TV속의TV, 다큐멘터리 [[KBS]] 미디어인사이드 등에 출연하였다. 2013년 [[연합뉴스]]는 뉴미디어를 이끄는 사람들 연재물에서 최진순을 소개했다.
         == 수 경력 ==
         * [[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온라인저널리즘 기여 공로(2013년)
         * [[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온라인저널리즘 데이터저널리즘 부문 최우수(2015년)
         * [[네트에서 세 읽기]] http://www.saenon.min.or.kr/17
  • 킹덤/501화 . . . . 12회 일치
          * 왕전은 어떤 극비보고를 받은 후 행군 속도를 올리는데 같은 시각 [[이목(킹덤)|이목]] 진에도 같은 첩보가 도착한다.
          * 이목이 오르도를 의식하는 사이 진군이 금안에 도착한다.
          그 예대로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진다. 기세도 금방 그칠 것 같지 않다. 산민족들은 평지의 병사들은 이만한 비에도 행군을 못 하냐고 빈정거리는데 [[양단화]]는 그런건 아니지만 지금은 그래서 득이 될게 없다고 설명한다. [[환의]]도 비슷한 의견인데 빗속의 행군은 지나치게 지치기 마련이니 체력을 보존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몽념]]도 그 의미를 깨닫고 옳은 판단이라 생각하지만 대체 어떻게 왕전이 기을 미리 알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시한다. [[왕분]]은 조용히 술을 마시며 대기 중. 하료초도 이때는 휴식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왕전이 생각보다 치밀하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이미 왕전에겐 전쟁이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 한편 조 서부의 십화에선 [[순수수]]가 [[이목(킹덤)|이목]]의 지시대로 최대한 첩보를 끌어모으고 있다. 이미 진군의 목표는 흑양이고 금안에서 군령을 수령할 거라는 줄거리가 만들어진 황. 순수수는 무백으로 복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령들을 모아놓고 달리 더 보고할건 없냐고 점검한다. 달리 보고는 없는데 한 명이 약간 미심쩍은 이야기를 한다.
          확인한 결과 금안 외에 다른 곳의 밀정들은 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순수수는 이는 금안이 유독 경비가 엄중하단 의미로 받아들인다. 허나 단순한 중계지인 금안이 그토록 경비가 삼엄한가? 순수수가 정답에 도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건 금안에 단순한 중계지가 아니며 뭔가 숨기는게 있기 때문. 그건 바로 20만 대군이 먹을 군량. 흑양으로 간 군량은 모두 가짜일 것으로 추측한다.
          * 진군의 진짜 의도가 들통나려 할 때, 왕전은 자신이 심은 첩자에게 어떤 첩보를 받는다. 그런데 이 첩자는 조군 진에서 오는게 아니었다. 첩보를 입수한 왕전은 부하들에게 확인시킨 후 전군의 행군 속도를 올리도록 지시한다.
          * 왕전이 받은 것과 같은 첩보가 이목 진에도 도착한다. 순수수가 보낸 급보보다 한 발 앞서서다. 이 새로운 첩보는 이목 진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언제나 침착하기 이를데 없던 이목이 이번만큼 주먹을 불끈 쥐며 분통을 터뜨린다.
          예을 뛰어넘은 오르도의 등장. 이목 진은 동쪽으로 정신이 쏠린다. 그러는 사이 진군은 군의 명운이 달린 금안이 육안으로 보이는 지점까지 진출해 있다.
  • 킹덤/518화 . . . . 12회 일치
          둘째, 곧 [[순수수]]가 도착할 테니 대장직을 이임하라는 것이다. 이 지시는 공손룡의 부관들 사이에선 이견이 나오는데, 그가 장군이긴 하지만 내세울법한 전공을 세웠다고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 대장직을 내놓게 된 공손룡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순수수를 "그 북쪽의 고아"라고 부르는데 무언가 아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 양단화군에 도착한 전령도 비슷한 소식을 전했다. 업성의 황과 왕전이 그리는 큰 그림. 그리고 [[벽(킹덤)|벽]]이 1만의 증원과 10일치 병량을 가지고 온다는 사실. 전령은 왕전이 공손룡의 9만이 더 늘어날 거라고 예측했다는 것과 그럼에도 어떻게든 요양군을 저지해 업성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한 사항을 가감없이 전달했다. 들으면서도 적진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양단화는 전령의 이야기가 끝나자 고개를 돌려 냥하게 치하의 말을 전한다. 뜻밖의 친절에 전령이 감사를 표하고 언제든 필요하면 불러만 달라고 고한다.
          * 황을 파악한 양단화. 그렇다면 산민족군은 버티는 진형을 취할 법도 하다. 그런데 양단화가 내린 명령을 정반대. 그녀는 처음부터 이것말고는 없었다는 듯이 전군을 향해 "시작한다!"고 호령한다. 그녀의 호령을 들은 산민족들이 들끓어 오른다. 마치 당장이라도 적진에 처들어갈 것처럼. 이 황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전령은 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당황한다.
          못알아듣는 바지오를 향해, 양단화가 너무 괴물이라 억지로 취할 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 밑에서 전과를 올려 멋진 모습을 보이면 양단화가 반해서 결혼해주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폭소를 터뜨리는 휘고왕. 바지오는 그 말을 흘려버리며 "인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휘고왕은 카푸로를 멀리 날려보낸다.
          * 양단화군 진에 왔던 전령은 이 식을 무시한 공격에 당황한다. 그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양단화는 "다나이"라고 답한다. 양단화는 막 깨지기 시작한 적의 좌익과 우익을 바라보며 "다나이란 평지 말로는 조공"이란 말을 덧붙인다. 벌서 적의 전열을 다 깨부수고 있는데 그게 "조공"이라니. 양단화의 설명이 이어진다.
          * 이것이 공손룡군이 놓친 두 번째. 산민족의 파괴력이 그들의 예을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것. 조공을 막아내기에도 급급하던 조군 진이 주공의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 와해된다. 그저 실력이나 보자고 생각하고 있던 공손룡은 크게 낭패해서 "진군이 이런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다니"하고 탄식한다.
  • 테헤페로 . . . . 12회 일치
         개그 개인기의 하나; 머리를 옆으로 비스듬이 기울이고, [[윙크]]를 하면서 혀를 살짝 내민다. 대가 울컥 했을 때 개인기를 발휘하여 귀여움으로 대를 진정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성우]] 히카사 요우코(日笠陽子)이다. 히가시 요우코(日笠陽子)와 나카무라 에리코(中村繪里子)가 진행하던 라디오 간사이의 방송 프로그램 「놀라움 전대 모모노키 파이브(おどろき戦隊モモノキファイブ) 」에서 처음으로 나온 것으로, 2009년 6월 방송된 제12화에서 나왔다.
         히카사 "유행어 대을 잡딴다 테헤페로"
          * 「성우 그라 web이 마음대로 선정하는 유행어 2009(声グラwebが勝手に選ぶ流行語2009)」 수.
          * 2011년 12월 「여고생 휴대폰 유행어 대 2011(女子中高生ケータイ流行語大賞2011)」은을 수.
          * 「GRP AWARD 2011」에서 2011년도 「[[갸루]]의 유행어(ギャルの流行語)」에서 제2위를 수.
          * 2012년 12월 5일, 2012년도 여고생 휴대폰 유행어 대(女子中高生ケータイ流行語大賞)에서 금을 수.
  • 토리코/383화 . . . . 12회 일치
          * 치치는 빈사 태의 사천왕에게 자신의 몸을 요리해 먹이고 산화, 사천왕들은 다시금 눈을 뜬다.
          * 인간계는 심치 않은 지진이 일고 있다.
          * 세츠노는 지로의 기척이 사라진걸 알고 있고 치치의 기력도 다해간다고 느낀다. 이런 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건 토리코와 또다른 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 그리고 살려둔 것은 "서로 잡아먹었던 사이"라서 베푼 자비라며 페어를 그대로 둔다.
          * 그리고 그 남자는 언제나 남과 나눌 줄 아는 자인데 바로 스타준 자신이 이 세에서 처음으로 그와 "나눠가진" 자라고 말한다.
          * 치치는 자신의 몸을 조리해서 토리코에게 먹인다. 이미 다른 사천왕들에게도 자신의 몸을 먹인 태.
          * 토리코는 목에 난 처가 완벽하게 치료. 하지만 치치는 너덜너덜해진 데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다.
          * 니트로 사이에서도 동족 포식은 금기였지만 그렇게 해서 세포의 힘을 끌어낼 수 있었고 그 힘으로 방금 전과 같은 "암기"를 쓸 수 있었다.
          * 치치는 휘청거리는 태에서도 존게가 네오에게 측정빔을 맞추려고 무리한 걸 들며 오히려 그를 걱정한다.
          * 그는 밍기적 거리는 사이에 "비"가 올 거라고 말한다.
          * 치치는 동족포식을 거듭해서 힘을 얻었음이 밝혀졌다. 정황으로 보면 맛의 선인들은 모두 이러한 과정으로 보통 레드 니트로 이의 힘을 얻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 하지만 완전체가 된 아카시아가 대라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 토리코/387화 . . . . 12회 일치
          * 미도라는 아카시아를 쳐내지만 왼손을 먹혀버리고 이것은 재생되지 않는다. 설 노킹까지 당해 움직일 수 없다.
          * 미도라와 아카시아는 놀라고 토리코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 적귀가 나와서 토리코와 함께 과거를 회한다.
          * 스타준은 겨우 숨만 붙어 있는 황. 토리코는 브란치에게 요수가 있다며 가져오겠다고 하지만 스타준은 사양한다.
          * 설사 그의 적합식재인 식운을 다시 먹는다 해도 더이 회복은 불가능. 네오에게 먹힌면서 세포가 패배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 그 백채널엔 막대한 식운과 양분으로 가득차 있었고 거의 정지돼 있던 시간 속에서 약 500년이 흘러가버린다.
          * 스타준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식혼으로 보이는 혼들이 토리코를 끌어낸다.
          * 토리코는 그게 항 자신을 지켜보면 악마임을 깨닫는다.
          * 스타준의 사망. 예대로 스타준과 토리코는 형제였으나 플로제와 아카시아의 자식이었다.
          * 아카시아의 예처럼 GOD를 먹고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분리되고 그 태에서 센터를 먹고 거듭나는 과정을 거친다.
          * 센터는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내면에 있는 태에서는 먹을 수 없는 식재로 보이는데, 문제는 토리코 내면엔 청귀와 제 3의 악마가 아직 있다는 것.
          * 이 때문에 원래 적귀가 토리코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고, 청귀나 제 3의 악마는 다른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어서 향을 덜 받는게 아니냐는 설이 나오고 있다.
  • 토리코/391화 . . . . 12회 일치
          * 그 사이에서 이치류는 플로제와 만나는데..
          * 사천왕과 코마츠 일행은 공격이 당해 빈사의 태에 처한다.
          * 그때 텟페이는 갈라지는 지면에서 이한 빛을 목격한다.
          * 지에선 토리코와 아카시아의 결전이 막을 올렸다.
          * 그는 모두에게 도망치라고 외치지만, 토리코가 나타나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말라고 했다."고 기시킨다.
          * 절망적인 황임에도 토리코는 아카시아의 몸에서 점점 더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다며 "한 고비 남았다"고 강조한다.
          * 이때 텟페이는 지면이 갈라지며 이하게 빛나는 것을 발견한다.
         이치류가 발견한 시체들과 식재의 산은 네오가 먹어치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디로 소멸된게 아니라 혼세계에 봉인되어 버렸던 걸로 보인다. 플로제가 이곳에 있는 것은 의외라는 의견이 많은데, 원래 혼세계에 플로제가 있었고 어나더를 조리할 때도 조력했으니 이한 일은 아니다.
         일설엔 돈슬라임도 먹혔으니 혼세계에서 이치류와 합류, 이치류+돈슬라임의 파워로 현실세계로 복귀한다는 추측도 있지만 지금 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
  • 토이 솔져스: 콜드 워 . . . . 12회 일치
         후속작으로 [[토이 솔져스: 워 체스트]]가 있다. 네개의 오리지널 진(?)과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우주의 왕자 히맨]], [[G.I. 조]]와 그와 대적하는 악의 무리 [[코브라]] 장난감 진이 나오는 라이센스비로 얼마를 썼을까 궁금해지는 게임.
         플레이어는 포탑을 건설해 적군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적군의 목표는 장난감 자로, 장난감 자에 20명의 적이 들어가거나 보스가 들어가면 실패한다. 반대로, 적의 모든 공세를 막아냈다면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기관총. 보병을 대하는데 최적화 된 포탑이다.
          박격포. 넓은 범위의 적에게 광역딜을 먹이는 포탑. 공격한 적에게 태이도 준다.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시에는 장탄수가 3발이 된다.
          대전차포. 차량을 대하는데 최적화 된 포탑.
          대공포. 적 비행기를 대하는데 최적화 된 포탑. 그 대신 밑으로 조준을 못한다.
          임시 병기. 다수의 적 보병을 한번에 대할 수 있는 포탑. 다른 포탑들이 정품 모형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임시 병기들은 DDT, 간이 화염방사기, 폭죽 등 주변 기물을 대충 조합해서 만든 모양새다. 그래서인지 내구력도 약하다.
          특수부대. 주무장으로 기관총을 부무장으로 로켓 발사기를 장비한 보병. 일반적으로 볼 수는 없고 Barrage에서 Spec Ops가 나오면 일정 시간 동안 쓸 수 있게 해준다. 매우 강해서 왠만한 지 유닛은 한큐에 썰어버린다. 미군 스펙 옵스는 [[존 람보]]의 패러디인 듯 보이며, 소련군 스펙 옵스는 "암호명: 이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날아가며 적 보병과 장갑차를 투하하는 적. 투하하는 위치는 붉은색 연막으로 표시된다. 장난감 자를 노리지는 않지만 격추시킬수는 있기 때문에 격추시켜서 자금 확보용으로 쓸 수 있다. 적 유닛을 투하하기 전까지는 체력이 뻥튀기되어 잘 안죽는다.
  • 트로피코 4/인물 . . . . 12회 일치
         게임 [[트로피코 4]]의 등장 인물을 소개하는 페이지. 캠페인 스토리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으니 알아서 걸러라.
         낙타를 싫어해서 낙타라는 말만 들어도 놀란다. 캠페인 설정 건설할 수 없는 건물들은 페눌티모가 설계도를 잃어버려서 건설이 불가능하다고 뜬다.
         모던 타임즈 캠페인에서는 대통령 각하가 휴가가면서 맡긴 트로피코를 말아먹는다. 반란군을 없앤다고 농장을 죄다 불태웠고, 그 결과 식량 부족 현이 일어난 것.
         Sunny Flowers. 히피같은 의을 하고 있는 여자. 페눌티모와 함께 "트로피코 뉴스 투데이"라는 방송을 진행한다.
         Lord Chuffney. 국인 노인네. 겁나 고리짝같은 외양을 하고있다. 재수없는 언행이 특징.
         캠페인에서 국 정부가 반대하는데도 무명의 섬을 냅다 국 식민지로 만드는 걸 보면 한가닥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막장 블랙코미디물이라 그런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Nick Richard. 미합중국 네브래스카 주 원의원.
         튜토리얼에서 대통령 각하에게 통치 방법을 가르쳤다. 이후 대통령 각하를 몰락시킨 음모에 가담해 대통령 각하가 통치하던 나라를 빼앗는다. 다시 돌아온 대통령 각하에게 이런저런 협박을 하며 가지고 놀았지만 대통령 각하는 미끼였을 뿐이고, 그 사이 각하에게 감화된 모레노에 의해 푸에르토 가토를 빼앗긴다. 이후 자신들의 지지자를 데리고 게릴라 활동을 벌이지만 그것마저 실패하자 각하한테 항복한다.
         대통령 각하의 사업 파트너였지만 대통령 각하가 몰락하자 "난 당신 모르오"라며 내쳐버린다. 결국 각하의 첫번째 복수 대이 되어 프루타스 주식의 과반수를 빼앗기고 해고당한다. 마지막 발악으로 올림픽 개최지 후보 세곳을 후원했으나 트로피코가 올림픽 개최지가 되며 알거지가 된다.
         Marco Moreno. [[체 게바라]]처럼 생긴 남자. 바스퀘즈 동무와 달리 장발이다. 미국에서도 수배중이 반란군의 수장으로 이주의자, 몽가다.
  •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 . . . . 12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판타스틱 포]]의 실사화. 90년대에 나온 [[판타스틱 포(1994년 실사화)|판타스틱 포]] 이후에 나온 두번째 화화다. 제작은 [[엑스맨 실사화 시리즈]]를 만든 [[20세기 폭스]]이며 이후 2007년에 속편인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위협]]>이 만들어졌다.
         평은 그리 좋지 않다. 오락적인 면이 강조됐음에도 액션신마저 지루하고 형편 없는 화라는 평론가들의 평이 주를 이루며, 팬들 사이에서조차 평가가 안좋다. 90년대판이 차라리 낫다는 의견도 나올 정도. 일단 손익분기점은 넘겼으며 이후 폭스는 2007년에 속편을 내놓았다.
         해당 화에서 휴먼토치를 연기한 크리스 에반스는 후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에서 휴먼토치와 정반대의 성격인 [[캡틴 아메리카(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했다. 참고로 휴먼토치는 국내에서 이름이 '파이어'가 되었다.
         참고로 국내 개봉하면서 제목을 <판타스틱 4>라 했다. 그러다보니 몇몇 사람들은 저 4를 '4번째 작품'이란 뜻의 4로 착각하여서 이 화가 전편이 있는 물건인 줄 알고 '''판타스틱 3, 판타스틱 2''' 등을 찾아보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벌어졌었다. 사실 원제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라 'Fantasrtic Four'라고 표기되니 딱히 헷갈릴 일이 없는데 굳이 4라고 써놔서...
         술한 대로 그리 좋은 소리 못듣는 판이나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화)|2015년에 나온 판타스틱 포 화]]가 매우 심각한 태라서 재평가(?) 받았다.
  • 페어리 테일/514화 . . . . 12회 일치
          * 이야기는 400년 전 "드래그노프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즈음 서쪽 나라에서는 드래곤이 인간을 습격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린다. 이 나라를 통치하는 현룡 "베르세리온"은 몸소 서쪽을 시찰하고 돌아오며 "서쪽 드래곤들은 지성이란게 없다"고 투덜댄다. 서쪽은 으로 황이 악화되고 있다. 왕국으로 돌아온 베르세리온은 용의 여왕 [[아이린 베르세리온]]을 찾는다.
          * 드래그노프는 드래곤과 인간이 화합해서 공존하는 나라였다. 아이린은 안뜰에 있다가 돌아온 베르세리온을 반긴다. 그녀는 베르세리온의 안색이 좋지 않은걸 눈치 챈다. 그가 털어놓길 서쪽에선 이미 드래곤들이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했고 곧 동쪽, 이슈갈로 침공할 것이다. 베르세리온은 이슈갈에선 그런 사 자체가 통용될 수 없다고 말하며 이곳에선 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해왔음을 강조한다. 아이린은 서쪽 드래곤들이 침공하면 그들의 사으로 이슈갈 지역의 공존이 일그러지는게 아닐까 우려하는데 베르세리온은 그렇게 두지 않겠다며 인간은 자신들이 지키겠다고 선포한다.
          * 이게 아이린이 밝힌 "용왕제"의 진이다. 인간을 학살하는 사악한 서쪽의 드래곤과 인간을 지키려는 동쪽의 드래곤들의 전쟁.
         서쪽의 드래곤은 수가 훨씬 많았고 예 외로 이슈갈 내에서도 인간과 공존을 거부하며 이탈, 적대하는 노선을 탔다. 황은 날로 악화돼서 어느날 베르세리온은 아이린과 독대한 자리에서 "진다"고 명언하기에 이른다.
          나츠는 아직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태가 나빠져만 간다. [[루시 하트필리아]]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폴류시카]]의 지시대로 체온을 높이기 위해 살을 맞대고 있다. 그들은 나츠가 어서 눈을 뜨길 바라지만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 아이린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멸룡마법은 대성공을 거둬 많은 멸룡마도사가 탄생했고 전황은 단숨에 역전된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는건 아니었다. 드래곤의 강대한 힘을 이식한 탓에 부작용에 시달리는 멸룡마도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강대한 힘에 휘둘려 흉포화하거나 드래곤의 감각과 인간의 감각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망가져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부작용. 멸룡마법을 받은 인간은 그 체내에서 성장하는 '''용의 싹'''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곧 '''사람을 용으로 바뀌는 것.''' 이것이야 말로 멸룡마도사의 최후였다.
         아크놀로기아와 아이린이 모르는 사이로 보였다는 점 때문에 아크놀로기아는 아아린과 별개 루트로 멸룡마도사가 된게 아니냐는 설도 나온다.
  • 페어리 테일/540화 . . . . 12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는 지에 남은 멸룡마도사를 시간의 틈새로 불러들여 완전한 멸룡을 이루려 한다.
          * 나츠 또한 이 기둥에 갇힐 뻔 했으나 지의 동료들의 응원을 들은 멸룡마도사들이 깨어나면서 황이 반전된다.
          * 나츠는 그런 설명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가 알 수 있는건 아크놀로기아가 친구들을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 [[이그닐(페어리 테일)|이그닐]]을 죽인 장본인. 이그닐의 최후가 되살아났다. 분노하는 나츠에게 아크놀로기아는 그도 원한 기둥이 될 거라고 말한다.
          * 안나는 자신들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웬디를 찾는데 엘자가 다가와 아크놀로기아에게 빨려가듯 사라졌다고 알려준다. 이는 안나가 예한 바였다. 자신들이 돌아온건 기뻐할 일이 아니다. 설마 아크놀로기아가 시간의 틈새를 먹어치울 줄은 몰랐다. 게다가 아크놀로기아는 강대한 힘을 얻은 대가로 제어능력을 잃어버렸다. 현재 마룡은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육체는 이 세에서 폭주, 정신은 시간의 틈새에서 "조화"를 유지하려고 한다. 자신과 이치야는 그 "조화"에 부적합해 현세로 쫓겨난 거고.
          * 조화란 어떤 마도사들의 마력을 시간의 틈새에 순환시켜 자신의 마력을 안정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쓰일 마력은 바로 멸룡마도사들의 마력. 웬디를 데려간 것도 그 목적이다. 분명 지에 남은 멸룡마도사는 모두 시간의 틈새로 끌려갔을 것이다. 안나의 예측이 맞아서 이미 나츠를 제외한 말룡마도사들은 모두 구속된 태. 나츠도 시간 문제였다.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그 정신나간 황에 경악하고 엘자는 그들을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고 안나에게 방법을 묻는다. 하지만 안나도 그런 방법은 알지 못했다.
          * 한편 시간의 틈새에서는 수정에 뒤덮이기 시작한 나츠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크놀로기아는 그 꼴이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며 "조화와 멸룡" 중얼거린다. 그는 그게 참 재밌다고 말하는데. 나츠는 움직여보려 하지만 벌써 오른팔이 수정이 파묻혔다. [[제레프 드래그닐]]과 격전으로 부 당한 오른팔이었다.
          * 현세에서는 나츠를 비롯한 멸룡마도사들이 시간의 틈새로 납치된 것, 거기에 마룡의 정신체가 있고 여기엔 육체가 있다는 정보도 페어리 테일 전원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다. 그레이는 "거기서 정신체만 처치하면 끝"일 거라고 추측하지만 애당초 대가 아크놀로기아인 데다 거기서 멸룡마도사들이 어떤 태로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문제는 그 뿐만 아니다. 현세에서 날뛰는 육체가 세계멸망을 노리고 매그놀리아로 오고 있다. 이 세계의 절망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시작일지도 모른다.
  • 하석 . . . . 12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서울예술대학교 화과
         === 화 ===
         == 수 ==
         * 2015년 제2회 LMBA 스타 시식 화인TV한중스타
         * 2015년 럭셔리 브랜드 모델 어워즈 아시아 뉴 스타
         * 2013년 제8회 아시아모델식 CF모델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하이큐/226화 . . . . 12회 일치
          * 카게야마는 다양한 황과 패턴으로 히나타를 활용, 대측 블록이 히나타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 이는 초속공을 위한 배치지만 초속공에도 휘말리지 않는 다테의 블록을 대론 효율적이지 못하다.
          * 오히려 다테가 노리는건 히나타가 지치는 것이고 그때 셧다운을 걸어 카라스노가 승리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것. 이것이 다테의 초이적인 스토리다.
          * 그것 자체로 대 블록을 희롱하는 무기지만 아주 능숙한 리드 블록이 대라면 단지 "가능성에서 가장 빨리 배제될 뿐"이라 평한다.
          * 우카이 코치는 히나타가 이런 점을 눈치채고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에 감탄한다. 지금껏 속공을 무기로 삼았기 때문에 설사 이런 황을 파악해도 쉽게 속공 외의 대안을 내놓을 생각을 하기 어렵기 때문.
          * 전 세트와 비슷한 찬스볼 황에서 히나타는 마이너스 템포로 나오지 않고 다른 선수들과 "뒤섞여" 싱크로 공격에 참여한다.
          * 최종적으론 이 정보들 사이에서 배제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솎아 내는데, 숙련이 될 수록 이 과정은 매우 빨라진다.
          * 하지만 이 한 방이 다테의 이목을 히나타에게 집중시키고 그만큼 카라스노의 사이드는 여유로워진다.
          * 이런 역학관계가 쌓이다 보면 대의 블록은 망설이기 시작하고 엉뚱한데로 뛰기 마련이다.
          * 이렇게 되면 다테의 블록은 붕괴. 카라스노의 초이적인 스토리 성립이다.
  • 하이큐/248화 . . . . 12회 일치
          * [[히나타 쇼요]]는 [[호시우미 코라이]]의 점프를 회하며 빨리 점프해보고 싶다고 벼르고 있다.
          * [[미야 아츠무]]는 굳이 카라스노 진에 찾아와 "약한 놈들하고 시합하고 싶지 않다"고 도발하다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일침을 당한다.
          * 1회전부터 감초처럼 등장하던 바보커플이 2회전 관람 일정을 짜고 있다. 남자 쪽은 배구 지식이 당한지 남녀 강호팀에 대해서 자세히 안다. 그들은 이나리자키 고교의 미야 형제를 보려고 대진표를 확인하는데 대팀이 [[카라스노 고교]]인걸 발견한다. 그들은 꽤 인깊은 팀이었는데 탈락확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나리자키는 그만큼 강호로 작년 봄고와 인터하이에선 각각 3위를, 이번 인터하이에선 또다른 강호 "키류"를 누르고 2위를 기록했다. 결승에서도 패하긴 했으나 그 왕자 "이타치야마"에게 한 세트를 뺏어왔을 정도로 승세. 지금 가장 주목 받는 팀이다. 여자 쪽은 개인적으로 미야형제팬인지 멋있다고 호들갑을 떨자 남자 쪽이 인을 구긴다.
          *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지만 양팀이 그걸 쓰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워밍업 생각만 하며 안절부절하는 카라스노와 달리, 이나리자키 측은 주장이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등 당히 여유롭다. 주장 3학년 [[키타 신스케]]. 포지션은 Ws이고 키는 175cm로 배구선수 치고 크진 않다. 인터뷰하는 대도 마치노 아나운서라는 유명한 언론인.
          * 마침 타나카와 마주친다. 동료는 눈치껏 잽싸게 자리를 피해준다. 타나카 쪽에서 먼저 "어제는 이한 이야기를 했다"면서 사과하는데 카노카는 그건 오빠였다며 자기야말로 미안하다고 말해 오해를 푼다. 그렇게 해서 뭐가 꼬였던 건지는 자명해졌지만, 그럼 착각한게 착각이었던게 되기 때문에 다시 타나카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때 카노카가 말한다.
          * 스가와라는 관중석에서 미야 아츠무의 극성팬을 본 일을 이야기한다. 부채에 커다랗게 아츠무의 이름을 써서 가지고 다니는게 마치 아이돌 팬덤같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실제로 그들은 아이돌 같다며 1위팀 이타치야마하곤 다른 의미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말한다. 실력과 화려함을 겸비한 "최강의 도전자"라는 캐릭터. TV에서도 이걸 살려서 자주 취재 대으로 삼고 있다.
          * 관중석은 아직 1시합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이 기분 나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음악단은 물론이고 치어리더의 안무와 시라토리자와 학교를 연시키는 전교 응원. 엄청난 규모의 "대악단" 응원단이다. 카라스노의 보통 규모 응원단은 소리가 파묻힐 지경이다. 사실 이나리자키는 배구 말고 취주악부로도 엄청 유명하다고 한다. 그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그게 낭비가 아닌지 야마구치처럼 기가 약한 선수들은 응원전 만으로 벌써 위가 쑤시다며 위축된다. 히나타같은 단세포는 "커다란 나팔이 멋지다"며 정작 응원에는 무신경하다.
  • 하이큐/254화 . . . . 12회 일치
          * [[미야 아츠무]], [[미야 오사무]] 형제가 선보인 "괴짜속공"은 [[카라스노 고교]] 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 카라스노는 전열을 수습하며 [[아즈마네 아사히]]의 향된 서브를 내세워 추격태세를 이어가지만 조금씩 밀려나는 분위기.
          * [[미야 아츠무]]&[[미야 오사무]] 형제가 선보인 "괴짜 속공". 중계진은 "지금까지 보여준 적이 없는 속공"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카라스노 벤치의 [[시미즈 키요코]]와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분명히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괴짜 속공이다. [[카라스노 고교]]의 징과도 같은 기술인데 그걸 즉석에서 따라할 줄이야?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별다른 코멘트는 없지만 표정이 좋지만은 않다.
          * 관중석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방금 전 카게야마가 놀라운 페이크 플레이를 선보였을 때처럼 아츠무의 플레이를 섬뜩하게 여긴다. 대의 특기를 굳이 따라해서 정신적 압박을 가하는 것, 그걸 해내고자 하는 센스와 하고자하는 결단력이 질투심이 들 정도다. 반면 [[보쿠토 코타로]]는 "아아" 정도로 대꾸하고 말 뿐이라서 정말로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무관심한건지 모를 일이다.
          * 카라스노 아즈마네의 서브. 위치에 선 아즈마네는 이전에 우카이 코치가 알려준 요령을 되새긴다. 사실 연습 때는 그도 좋은 서브를 친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어깨에 힘이 들어서 컨트롤이 좋지 않다. 그런 사정을 들은 우카이 코치는 주먹을 꾹 쥐었다 펼치는 근이완법을 조언한다. 이런 동작을 반복하는 것으로 쓸데없는 힘을 빼낼 수 있다. 수선수들도 어깨를 추켜올렸다 내리는 동작을 하는데 마찬가지 원리.
          조언에 따라 주먹을 쥐었다펴는 아즈마네. 그리고 곧바로 1회차 서브에 들어간다. 서브는 아카기와 마지로 사이로 뚝 떨어진다. 마지로가 리시브해보지만 엉성했다. 손에 맞고 코트 밖으로 나가는 공. 아즈마네의 첫 서브 에이스, 동시에 카라스노의 오늘 첫 서브 에이스였다. 스코어는 11 대 9. 다시 2점차.
          * 연거푸 괴짜 속공을 따라하자 오사무는 "기분 나쁘다"고 투덜대지만 아츠무는 그저 좋은 기색. 입장이 난처해진 우카이 코치. 하지만 얻어맞는 선수들만큼 뼈아픈 기분은 아닐 것이다. 코트 바깥의 히나타는 이제 한계에 달했다. 그런데 츠키시마는 낌새가 수한게 뭔가를 느낀거 같은데?
          * 이어지는 경기. 이번엔 타나카의 스파이크로 카라스노의 득저. 응원단의 [[타나카 사에코]]가 동생의 활약에 환호한다. 스코어는 12 대 10. 여전히 2점차. 이 시점에서 로테이션으로 니시노야가 빠지고 히나타가 투입된다. 의욕이 넘쳐서 투입되자마자 오사무 쪽을 노려보는 히나타. 이때 이나리자키 진은 아츠무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있는데.
          * 츠키시마의 서브로 경기 재개. 아카기가 리시브한다.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는 이나리자키의 공격진. 오사무가 네트 앞으로 다가오자 히나타가 섣불리 블로킹을 뛰지만 페이크, 아츠무의 세트업은 스나 쪽으로 향한다. 그러나 스나의 스파이크는 사와무라가 받아내고 흔들린다. 불안하게 떠오르는 공. 카게야마가 따라간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몰랐지만, 여기서부터는 아츠무가 시뮬레이션한 그대로의 황이 펼쳐진다.
          그는 시라토리자와전과 봄고 1회전의 데이터를 근거로 그렇게 분석했다. 그건 카게야마 자신이 대단한 정신력과 높은 기술적 숙련도를 가졌기에 가능한 플레이. 여기서에 아츠무는 두 개의 계산을 끼워넣는다. 하나는 "흐트러졌을 땐 사이드에서 에이스"라는 정석을 벗어난 것, 다른 하나는 "방금 전 우리의 속공을 카게야마가 봤다는 것"이었다.
          그 예이 적중. 히나타는 아츠무가 준비한 블록 앞으로 정확히 뛰어오른다.
          * 속절없이 막히는 속공. 선수들 사이에, 응원단에, 벤치에 낭패한 얼굴이 스쳐간다. 반면 얄미울 정도로 회심의 미소를 짓는 아츠무. 중계진의 멘트가 카라스노를 잔인하게 찔렀다.
  • 하이큐/256화 . . . . 12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는 츠키시마의 잠재력을 끌어내 대편 블록 위에서 내리꽂는 스파이크를 세트업, 아츠무의 감탄을 받는다.
          * 숨겨진 "괴짜 속공 킬러"로 [[미야 아츠무]], [[미야 오사무]] 형제의 괴짜 속공을 칼같이 차단한 [[츠키시마 케이]]. 중계진은 그를 [[카라스노 고교]] 최장신이라 소개하며 대 코트를 끝까지 잘 살핀 냉정한 플레이를 칭찬한다. 관중석에서 보고 있던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도 방금 전 블록을 호평하며 자신이었으면 놓쳤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의 여친은 어떻게 된 황인지 알아채지 못한다. 다이쇼의 설명이 이어진다.
          우선 방금 전 플레이를 되짚어 보자. 아츠무의 서브가 네트에 걸린 데서부터 시작. 이때 [[사와무라 다이치]]가 네트 근처에서 리시브하느라 공이 네트를 넘겨서 [[이나리자키 고교]] 진으로 넘어온다. 이나리자키도 네트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공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공격에 들어갈 타이밍이 흔들린다.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 츠키시마는 대편이 좌익에서 공을 받았으므로 레프트의 공격루트는 사전에 배제했다. 따라서 "우익에서 괴짜 속공이 온다"는 예이 가능했다. 다이쇼는 그걸 알더라도 그 속공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역이 아니라 로봇같다는 평을 남긴다.
          * 카라스노의 벤치에서도 비슷한 황이 진행 중이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츠키시마가 저렇게 대단하지만 언제나 전열에 있는 건 아니며 그 자리에 들어갈 [[히나타 쇼요]]는 반응만 좋지 쓸데없는 데서 뛰어오르곤 한다고 가열찬 지적을 가한다. 찔린 히나타가 과민반응. 그때 [[엔노시타 치카라]]가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히나타를 찾는다며 부른다.
          * 우승후보인 강호를 대로 선전을 펼쳐가는 카라스노. 관중석에서는 이 다크호스를 대단히 우효적으로 평가한다. 1학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리베로인 [[니시노야 유]], "사무라이"란 별명을 얻은 아즈마네 또한 "강하다"는 평이다. 주장 사와무라도 리시브가 뛰어난 걸로 고평가. 그런데 5번, 빡빡머리 [[타나카 류노스케]]가 어정쩡하다. 관중석에서는 "그냥 활발"하다는 걸로 평하며 놀림거리로 삼는다. 그 말을 듣고 있는 관계자 [[아마나이 카노카]]가 싸늘한 눈으로 키득거리는 관중을 쳐다본다. 당사자들은 원한을 샀다는 것도 모른다.
          당연히 이나리자키 진에선 이런 세세한 다툼까지는 파악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츠키시마에 주목하고 있지만 아츠무는 카게야마 쪽에 비중을 둔다. 방금 전 츠키시마의 기량을 끌어낸건 분명 카게야마다. 아츠무는 지난 합숙에서 본 카게야마는 이런게 가능한 세터가 아니었다고 봤기 때문에, 이 변화에 적잖히 놀란다.
          * 18 대 17. 다시 1점차. 우카이 코치가 여기서 승부수를 띄운다. 로테이션이 돌아 니시노야가 들어가고 히나타가 들어온다. 간만에 얼굴을 비춘 바보 커플이 "블록 잘하는 애", 츠키시마가 후위로 내려가고 히나타가 올라온 황을 "10번이 다시 필살기를 날릴 수 있게 된 황"이라고 간략하게 요약한다.
  • 하이큐/261화 . . . . 12회 일치
          * [[타나카 류노스케]]는 [[스나 린타로]]에게 번번히 플레이를 저지 당하며 활약하지 못한다.
          * 24 대 24로 양팀이 매치 포인트를 목전에 둔 황. [[이나리자키 고교]]는 활약이 저조한 타나카를 핀포인트로 노리기 시작한다.
          * 코사쿠의 서브가 [[사와무라 다이치]]의 리시브를 튕겨내고 높이 치솟는다. 그대로 [[이나리자키 고교]] 진의 외야로 날아가는 공. 그러나 아직 공은 살아있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대편 코트를 가로지르면서까지 쫓아가 받아낸다. 아슬아슬하게 [[카라스노 고교]] 진으로 돌아오는 공. 여기서 [[아즈마네 아사히]]가 과감히 날아오른다. 강렬한 스파이크가 이나리자키의 블록에 맞고 아웃되면서 카라스노의 득점. 스코어는 23 대 24. 카라스노의 1점 리드를 지켜내고 세트포인트에 도달한다. 꼼짝없이 재역전이라 생각했던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한숨 돌린다. [[니시노야 유]]는 "에이스 같았다"고 격찬, [[츠키시마 케이]]는 "아즈마네 선배는 에이스가 맞다"며 새삼스러울게 뭐냐는 반응. [[타나카 류노스케]]는 동료 선수들이 "물이 올랐다"고 감탄하며 자신도 분발한다.
          *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는 여자친구 미카에게 해설자 모드. 참고로 방금 전 황에서 공이 네트에 세워진 안테나 "안쪽"으로 지나갔었다면 이나리자키의 득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이 바깥으로 나갔기 때문에 카게야마가 필사적으로 뛰었던 것. 미카도 이제 감을 잡으면서 "배구는 입체적"이라는 인적인 평을 남긴다.
          * 이어지는 공방전. 아즈마네의 공격을 아카기가 리시브, 산지마의 스파이크로 잇는다. 츠키시마, 카게야마가 블록. 카게야마의 팔에 맞고 뒤로 밀린 공을 사와무라가 커버한다. [[히나타 쇼요]]가 빠져있고 쓸만한 공격 자원들이 빠진 황. 그래도 [[스가와라 코시]]는 기회는 있다고 희망을 놓지 않는다. 카게야마에게 이어진 공, 츠키시마가 뛰어오르나 진짜는 타나카다. 이 시간차가 먹힐까?
          아쉽게도 [[스나 린타로]]의 눈치가 빨랐다. 여지없는 셧다운. 공이 카라스노 진의 코트를 찍는다. 카게야마가 세트업이 살짝 짧았다고 사과하지만 타나카는 그를 탓하지 않는다. 자신도 될 줄 알았던 스파이크였다. 오늘 타나카는 묘하게 풀리지 않는다. 반면 번번히 타나카를 방해하는 스나 린타로는 이제 발동이 걸린 것처럼 펄펄 뛴다. 반면 타나카는 실책이든 불운이든 좋은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관중석에선 그럴 "활발 빡빡이"라 칭하고 구멍 취급이다. 어떤 선수든 안 풀리는 날이 있기 마련이지만...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코타로]]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라면 열 받아서 로우 텐션 모드가 됐다"고 중얼거린다. 옆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그걸 본인이 알긴 알았던 건가 하며 충격을 받는다.
          * 24 대 24. [[야치 히토카]]가 스코어 보드 옆에서 결국 이런 황이 왔다고 부르르 떤다. 우카이 코치도 바라지 않던 황이다. 여기서 끊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과연 어떨지? 서브 위치에 아츠무가 들어서고 만다. 관중석의 바보 커플은 또 티격태격한다. 여자 쪽이 "아츠무군"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나타내자 남자 쪽이 "아츠무랑 친하냐"고 빈정거려서 치고받는다. 이러다 헤어지는거 아닌가?
          팀이 해냈으면 된거 아닌가? 아츠무의 서브를 깨끗하게 저지, 이걸로 한 고비 넘겼다. 이제 아카아시의 생각처럼 히나타가 없는 황에서 카게야마가 누구로 치고 들어갈지가 관건이다.
  • 하이큐/263화 . . . . 12회 일치
          * 동료들은 언제나 타나카의 성격 금방 털어낼 거라 생각하지만, 타나카에게 세트업이 와야할 황에서 조차 차례를 양보하게 되자 견디기 어려워한다.
          * 꼭 넣어야 했던 1점. [[타나카 류노스케]]가 혼신을 담은 스파이크는 [[이나리자키 고교]]의 빈틈없는 블록을 넘지 못하고 사이드 라인을 넘긴다. 이나리자키의 득점. 스코어는 25 대 25 듀스. 흐름이 끊기는 듯한 실점. 동료 선수들의 얼굴도 관중들도 타나카를 응원하는 [[아마나이 카노카]]도 낭패한 빛이 떠오른다.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는 방금 플레이가 단지 동점을 허용한게 아니라 더 위험한게 있다고 봤다. 그것은 "이나리자키의 블록이 순조롭게 압박을 쌓고 있다"는 것. 그점이 노출된 것이다. 이는 양팀 모두에게 큰 향을 준다.
          * 좋은 유명세는 아니지만, 관중석에서 "빡빡머리"라는 이름으로 타나카가 자주 오르내렸다. 바보 커플 중 남자 쪽은 결정적으로 컨디션이 망가지기 전에 타나카를 빼야 한다고 말했다. 가차없는 말 같지만 여자 쪽은 더 했다. 이미 망했으니 당장 빼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잔인한 것에 가까운데다 현 황에서는 교체도 어렵다.
          * 하지만 [[카라스노 고교]]의 벤치는 타나카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의 멘탈을 믿었다. [[키노시타 히사시]]가 맨 처음 "타나카니까 괜찮다"고 입을 열었다. [[엔노시타 치카라]]도 같은 의견이었다. 시합에서 언제나 튼튼한 타나카. 팀이 어떤 태이든 팀에 남아주었던 건 타나카 뿐이다. 적어도 2학년 중에선. 3학년 [[아즈마네 아사히]] 조차 한 번은 팀을 등진 적이 있고, [[니시노야 유]]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잠시 팀을 떠나있었다. 도중에 열정이 식었던 엔노시타나 키노시타, [[나리타 카즈히토]]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다시 불러모은 것도 어찌보면 타나카였다.
          * 다이쇼는 이걸 못 넣으면 "빡빡머리"가 진짜로 멘탈이 깨질 거라고 말한다. 여친 미카는 어떻게 빡빡머리한테 갈 걸 아냐고 물었다. 그것이 정석. 전위에 온 WS는 "공격의 마지노선"으로 이런 황에선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 그러나 츠키시마는 냉철하게 판단했다. 그가 택한건 아즈마네. 백 어택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았다. 관중석의 [[보쿠토 코타로]]와 [[아카아시 케이지]]도, 다이쇼와 미카, 그리고 적측인 린타로도. 벤치에서 타나카의 건재를 자신하던 2학년들도. [[우카이 케이신]] 코치, [[타케다 잇테츠]] 고문도 이 황이 의미하는 바를 입에 올릴 필요도 없었다.
          * 아즈마네의 백어택은 정석을 무시했지만 한 점을 벌어들인다. 이번에도 오사무, 린타로, 긴지마의 3중 블록. 스파이크는 오사무의 팔에 맞으면서 그대로 뚝 떨어졌다. 블록과 네트 사이로 떨어지는 공. 카라스노의 득점, 26 대 25로 카라스노가 달아난다. 타나카는 이 공격에서 들러리 밖에 서지 못했다. 그래도 아즈마네의 득점을 기뻐하며 적어도 팀원들 앞에서 실망을 내색하진 않는다.
          * 한 바퀴 돈 로테이션. 니시노야가 나가고 [[히나타 쇼요]]가 들어온다. 츠키시마는 서브 위치로. 히나타는 들어오자 마자 타나카를 찾는다. 히나타는 "방금 그" 플레이에 할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실패한 스파이크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스파이크를 말하는게 아니었다. 그가 "이나리자키의 10번"을 압박한 블록을 말하는 거였다. 린타로가 중앙에서 솟아올랐을 때 히나타 혼자 블록을 뛰었던 황. 그때 잽싸게 타나카가 따라붙었다. 히나타가 그게 엄청 멋진 플레이였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사이드에서 누가 오면 엄청 든든해요.
          문득 두 사람이 떠오른다, 한 사람은 카노카, 한 사람은 [[시미즈 키요코]]. 타나카 입장에선 둘 다 차인 대. 왜 지금 떠오를까? 어쨌든 그는 평범하다.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절감하게 된다.
  • 한길로 (영화감독) . . . . 12회 일치
         {{화인 정보
         | 직업 = [[화 감독]]
         | 수 =
         | 웹사이트 =
         '''한길로'''(洪尙秀, [[1977년]] [[10월 27일]] ~)는 [[대한민국]]의 [[화 감독]]이다.
         * [[한양대학교]] 연극화과
         == 수 ==
         * 2009년 제17회 [[춘사]] 프로듀서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한상원 . . . . 12회 일치
         | 이름 = 한
         | 가족 = 아버지 [[한운사]](화 각본가) <br /> 아내와 슬하 2녀
         | 소속팀 = 한원밴드
         | 웹사이트 =
         '''한원'''([[1960년]] [[11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기타|기타리스트]],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이다.
         ;한원, [[전인권]]
         * 1998년 1집 《전인권 한원 #01》
         ;한원, [[이현도]]
         ;한원, [[크러쉬 (음악가)|크러쉬]]
         * {{트위터|drfunkmaster|한원}}
         {{한원}}
         [[분류:한원|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재즈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197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청주 한씨]][[분류:대한민국의 펑크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펑크 록 음악가]][[분류:버클리 음악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승택 . . . . 12회 일치
         |문 표기 = Han Seung-Taek
         |사진 사이즈 =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조지훈 (야구 선수)|조지훈]], 2라운드 [[김강래]]에 이어 [[한화 이글스]]의 3라운드(전체 2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스프링캠프 때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눈에 들어와 좋은 전력으로 평가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93628 김응용 감독의 이례적 칭찬…“한승택, 물건이네”] - 경향신문</ref>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출장하는 등 유망주로 꼽혔지만 시즌 중 왼쪽 무릎 인대 부분 파열을 당해 1군과 2군을 오갔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65331 KIA, 이용규 보선수로 한승택 지명 이유는?] - OSEN</ref> 시즌 중반 이후에는 [[엄태용]] 등에 밀려 별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고, 데뷔 첫 시즌 후 일찌감치 군 복무를 결정하여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328015 한화 한승택, '포수 양성학교' 경찰청 지원, 제 2의 최재훈 되나?] - 스포츠서울</ref> 2013 시즌 24경기에 출전해 1안타, 0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입대가 확정된 후 전역한 뒤 FA를 선언하여 [[한화 이글스]]에 이적한 [[이용규]]의 보 선수 자격으로 [[KIA 타이거즈]]에 이적하게 되었다.
         [[2016년]]에 합류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401660 'KIA행' 한승택, "2년 뒤 안방 주전 경쟁하겠다"] - 마이데일리</ref> 비슷한 시기에 [[정근우]]도 [[한화 이글스]]에 이적했고 야구규약 163조 '한 구단이 계약서 동일한 날짜에 2명 이의 타 구단 선수와 계약하는 경우 보 선수를 선택하는 구단의 순서는 직전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하고, 계약 선순위 구단의 보이 종료된 후 후순위 구단이 보을 개시한다'는 내용에 따라 8위에 그친 [[KIA 타이거즈]]가 6위를 기록한 [[SK 와이번스]]보다 먼저 그를 FA 보 선수로 지명할 수 있었다. [[SK 와이번스]]에서도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으나, [[KIA 타이거즈]]가 먼저 지명하게 되어 결국 [[정근우]]의 보 선수를 지명하지 못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38&article_id=0002447722 한승택으로 재조명 되는 한화 안방 싸움] - 한국일보</ref>
  • 함신영 . . . . 12회 일치
         {{화인 정보
         |이름 = 함신
         |직업 = [[배우]] & [[모델]] <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95%A8%EC%8B%A0%EC%98%8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05992 함신-네이버인물정보]</ref>
         | 웹사이트 = [http://iboxmedia.co.kr/sub/business/artist.php?no=234&type=starbox#starbox_list 공식사이트]
         '''함신'''([[1975년]] [[5월 11일]]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ref>[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X37479 함신-다음인물정보]</ref> 1998년 MBC 27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되었다.
         === 화 ===
         * 《[[열애 (2014년 화)|열애]]》 (2014년) - 슈퍼 주인 역
         * 《[[클레멘타인 (화)|클레멘타인]]》 (2004년) - 왕 코치 역
         * 《[[청춘 (화)|청춘]]》 (2000년) - 하정태 역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핫라인 마이애미 . . . . 12회 일치
         고어도가 당하다.
          엔딩에 향을 미치는 요소인 퍼즐을 찾기 쉽게 해준다.
          주먹 한방으로 대를 패 죽일 수 있다. 주먹을 사용한 처형도 한방.
          목을 뜯어 죽인 대의 무기를 자동으로 빼앗는다.
          특정 무기로 시작하는 가면이 아닌 이 이걸로 시작한다. 말 그대로 주먹질을 한다. 맞은 적은 잠시 기절한다. 기절한 적을 처형할 때는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서있는 대의 정면에서 처형 버튼을 누르면 목 핏줄을 잡아 뜯어 죽여버리지만 성공률이 희박하다.
          리치가 짧지만 빠르게 휘두를 수 있다. 투척 무기로도 쓸 수 있다. 이 경우 대에게 박히므로 회수할 수 없다.
          대가 맞아야만 효력을 발휘하는 무기.
          대에게 맞췄을 시 재사용 불가.
          이회용 근접무기. 적 하나를 후려치면 부러지며, 이 태로 다른 적을 공격하면 당구대를 박아버린다.
          칼을 착용하면 들고 나오는 근접무기.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대를 기절시킬 수 밖에 없다. 처형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
         [[http://store.steampowered.com/app/219150/|핫라인 마이애미 스팀 점 페이지]]
  • 허대만 . . . . 12회 일치
         1969년 [[경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포항흥초등학교, [[포항중학교]], [[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 포항시의회 [[지방의회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경북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한나라당]] [[이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전직 시장인 한나라당 [[박승호(정치인)|박승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김형태(정치인)|김형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김형태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치러진 [[2013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2013년)|민주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박명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7년 7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에 임명되었다. 2018년 3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도 포항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보좌관직을 사임하였지만 본선에서 현직 시장인 [[자유한국당]] [[이강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러나 42%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 1995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 포항시의회 송도동) || 무소속 || '''1,849 (15.36%)''' || '''당선 (2위)''' || [* 대한민국 지방선거 기초의회에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된 것은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처음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대선거정보시스템에는 명백히 당선인 명부에 포함되어 있다. 내용 아시는 분 추가바람] ||
         || 1998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도의회 포항 2선거구) || [[자유민주연합]] || 18,757 (36.82%) || 낙선 (2위) || ||
  • 홍명희 . . . . 12회 일치
         [[한국]]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월북 [[북한]] 정치인. 호는 벽초(碧初)[* 뜻은 "[[에스페란토|푸른빛(碧)의 말]]을 처음으로(初) 배운 [[한국인]]". 에스페란토을 징하는 색이 초록색이라 그렇다.]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참고로 말하는데, 이 3대 천재라는 것은 대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홍명회, 이광수, 최남선은 같은 시기에 동경유학을 하였고, 양건식과 신형철들이 이들을 동경삼재라고 불렀다.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잡지 소년에 함께 글을 기고하면서 동경삼재라는 이름은 (일제시대하) 조선삼재로 변했다. 이들은 모두 문인으로, 문학계에서 칭찬 삼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명칭이 이런 식이라서 그럼 왜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대신에 이런 인물들이 있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 3대천재 드립은 전부 다 홍명희 관련으로 나왔다. 현대에 이 언급을 한 것도 홍명희 평전이었고, 조선삼재 이야기도 홍명희와 [[현윤]]이 나눈 1940년대 인터뷰에서 나왔다.] 인물로 실제로 이 셋은 죽마고우였으나 앞의 둘은 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데 비해서 홍명희는 변절하지 않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한국전쟁]] 당시 춘원이 납북되자 그의 신변을 보호했으며 그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이광수가 친일파로 변절하자 홍명희는 이광수의 집 대문 앞에 음식을 차리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이광수가 나와서 연유를 묻자 홍명희는 "내 친구 춘원(이광수의 호)이 그만 죽고 말아서 이렇게 곡을 하며 슬퍼하고 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비슷한 이야기가 꽤 많다. [[최남선]]과 [[정인보]], 최남선과 정인보의 스승인 승려 석전 박한 간에도 있다. 최남선이 변절한 뒤 정인보(또는 스승 박한)를 만나자 "나에게 최남선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하고 헤어졌다는 야사.]
         그리고 1919년 괴산에서 [[3.1 운동]]에 참가. [[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수립을 보고 왔으며[* 이 당시 이광수와 친해졌다. 이때 벽초는 이광수에게 톨스토이의 책을 권했다고 한다.] 1927년 [[신간회]] 창설에 참가하여 부회장직을 맡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우리에게는 소설 <[[임꺽정]]>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단 한편의 소설 《임꺽정》(林巨正)이 1928년부터 13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된 것을 비롯해 1930년대 그가 쓴 거의 모든 글은 조선일보와 자매지 '조광'에 발표됐다. 여담으로 일제치하에서 수감된 문인들중 유일하게 옥중집필이 허용된 작가가 홍명희 였다. 홍명희가 수감된이후 임꺽정이 연재중단되자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총독부 관리들조차 임꺽정에 맛들려서 제정신을 못차렸던 황. 옥중에서 임꺽정 집필이 완료되면 총독부 관리들이 먼저 읽고 조선일보에 넘겼다고 한다.
         이후 노동당 군사위원회 위원, 내각 부수 등으로 주요정치활동을 하였으며, 한국전쟁에 반대한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북한 부총리에 선출되었고, 1968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최고인민회의 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대부분 월북 인사들이 숙청당한 것에 비해 홍명희는 성공한 삶을 누렸다고 볼 수 있으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와도 개인적으로 친하였다. 실제로 김일성은 벽초를 극진히 존경하고 예우했다. 홍명희의 계모는 홍명희를 따라가지 않고 괴산의 집을 지키다가 6.25 전쟁 중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는데 북한군이 후퇴하는 급박한 와중에도 그 시신의 수습을 명령했을 정도였다.
         '''[[김정일]]이 직찍[* [[김정일]]은 [[사진]]이나 [[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관련 이론에 대한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한''' [[김일성]]과 홍명희. 1958년 국제노동자절 행사가 끝난 후 함께 뱃놀이를 하다가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북한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홍명희 선생과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라고 하는데 56년 [[8월 종파사건]] 직후 이기에 벽초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 나 떨고 있니? ~~ 그런데 홍기문이 김덕홍에게[* 북한의 군 출신 정치가로 [[황장엽]]과 같이 망명한 탈북인사.]귀띔한 바로는 꽤 추악한 이면이 있다 한다. 1956년 김성애의 비서로 일하던 홍명희의 딸인 홍귀원이 김일성과 간통을 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는데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고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으며 아버지를 끝내 찾아보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던 중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홍명희가 딸을 잃은 충격으로 맛이 가자 김일성이 홍명희를 위로해주겠다고 석암호수[* [[평안남도]] [[평원군]]에 있는 저수지, 지금은 견룡저수지라고 불린다고 한다.]로 데리고 나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죽은 김일성이나 홍명희에게 물을 수도 없고 진실은 홍기문에게 전해들었다는 김덕홍이 알고 있다.
         그의 아들 홍기문은 [[조선왕조실록]]을 완역[* 북한에서는이를 “리조실록”이라고 부른다.]한 사람이자 북한 [[향가]] 연구의 대가인[* 북한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향가 전체를 해독한 사람이다. 어찌나 해독을 잘 했는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향가를 해독한 [[양주동]] 선생도 홍기문의 향가 해독을 칭찬했었다고.]유명 국학자로 최고인민회의 설회의 부의장, 조평통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손자인 석형은 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겸 함경북도당 책임비서를 역임하다 2011년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형의 동생 석중은 <[[황진이]]>를 쓴 유명 소설가다.
         [[한용운]]과도 사이가 돈독하여 이광수, 최린, 최남선 등의 창씨개명 소식을 듣자 한용운을 찾아가 "여보게, 만해. 이런 개같은 놈들을 봤는가?"하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한용운은 "이보게, 벽초. 그놈들은 개같은 놈들이 아닐세."라고 대답했고 무슨 소리냐고 따져묻는 홍명희에게 "개는 절대 주인을 배신하지 않으니 '''저놈들은 개만도 못한 놈들이 아닌가? 개가 자네 말을 들었으면 무척이나 섭섭해했을 걸세."'''라고 했다. 이에 벽초도 수긍하고 '''개에게''' 사과를 읊조렸다고.
  • 황광희 . . . . 12회 일치
         | 웹사이트 = {{트위터|hwangkwanghee|황광희}}
         *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연극화과 (학사)
         | 천현수 역
         === 화 ===
         | [[글래디에이터: 로마 웅 탄생의 비밀]]
         | 근무중 이
         == 수 ==
         ! 시
         | [[MBC 방송연예대]]
         | 쇼/버라이어티 부문 남자신인
         | [[SBS 연예대]]
         | 베스트 엔터테이너
  • Crusader Kings 2/궁정 . . . . 11회 일치
         이 직책에 임명된 이들은 군주에 대해 음모 보너스가 들어간다는 것에 유의하자. 만약 당신을 암살하려는 놈들이 주요 직책에 있는 인물을 입하면 음모 세력이 확확 늘어난다.
         === 재 ===
          * 외교 관계 향시키기
          재을 지목한 백작령으로 파견시켜 군주를 선전하게한다. 일정 확률로 지방 귀족과의 우호도가 증가하지만 낮은 확률로 지방 귀족을 분노하게 만든다.
          재을 지목한 백작령으로 파견시켜 명분을 날조하게한다. 성공한 경우에는 군주가 해당 백작령에 대한 소유 명분이 생겨 땅을 내놓으라며 전쟁을 걸 수 있다. 해당 군주에게만 명분이 생기지 그 후계자에게는 안 생긴다는 것에 주의. 운이 나쁜 경우에는 명분을 날조하고 있다는 것을 들켜 해당 지역 주들이 화를 내거나 암살자를 시켜 재을 죽여버리기도 한다. 운이 좋다면 공작령 단위 날조에 성공할 수도 있으며, 만약 군주가 해당 지역의 왕이 되는 야망을 가졌다면 왕국령 단위 날조에 성공할 수도 있다.
          재을 지목한 백작령으로 찌라시를 돌리게한다. 성공할 경우 해당 백작령의 가신들과 군주들의 서로에 대한 의견을 감소시킨다. 낮은 확률로 들켜서 해당 지역의 군주들이 분노한다.
         세금을 걷고 지를 관리하는 직책. 자신의 관리력을 국가 능력치에 보태준다.
          재무관을 지목한 백작령으로 파견해 세금을 거두게한다. 해당 백작령의 세금 수입이 증가한다. 일정 확률로 짭잘한 특별 소작료를 징수해 보내오지만 낮은 확률로 성난 소작농들에게 폭행당해 부을 입거나 죽어버린다.
          * 종교 관계 향시키기
  • HelpOnEditing . . . . 11회 일치
         '''등호(=)'''를 써서 나타냅니다. 단, 제목의 내용과 등호 사이에는 공백이 최소 한 칸 들어가야 합니다.
         글자 색은 다음과 같이 사용합니다.
          * [[WikiPedia:Web_colors|웹컬러]]: HTML에서 정의한 16가지 색 이름 및 [[WikiPedia:List_of_colors|색코드]] : 확장 색 이름 (X11 컬러 이름)
          * `#aabbcc` 형식의 RGB 색 코드
          * 예시1) '''{{{#630031 RGB HEX 형식의 색}}}'''({{{{{{#630031 RGB HEX 형식의 색}}}}}})
          * 예시2) '''{{{#65000b 로즈우드 색}}}'''({{{{{{#65000b 로즈우드 색}}}}}})
         ||예시 : {{{#green 이 글자는 대사를 표현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br]] 개행되지 않았습니다.}}}[[br]]{{{#orange 그러나 녹색 글씨 효과를 끝낸 직후 강제개행을 시도했기 때문에 개행이 되었습니다.}}}||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11회 일치
         2012년 방한 미국의 다큐드라마. [[코넬리어스 밴더빌트]], [[존 D. 록펠러]], [[앤드류 카네기]] 등 19세기 후반~20세기 중반 미국의 거물 사업가를 다룬 전기물이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는 OBS가 '''부(富)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틀어주는 중. 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총 4화짜리 물건의 분량을 8화 쯤 되게 뻥튀기 해놨다. 한 화를 여러 화로 쪼개놓은 듯. [[방송대학 TV]]에서는 '''거(巨商)'''이라는 이름으로 방 중. 2013년 경에는 [[TV조선]]에서 '''미국을 일으킨 거인들'''이라는 이름으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9/2013112903497.html|한 것 같기도 하다.]]
          석유 사업가. 파산 직전에 태에서 뭔가 가치있는 운송 대[* 당시 개나소나 철도를 지어서 철도의 가치는 별로 없었다. 그로인해 가치있는 운송 대을 찾던 것.]을 찾던 밴더빌트와 계약하며 성장한다.
          효율 향을 위해 카네기가 입한 인물. 효율적이지만 냉혹한 정책을 벌인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할 뻔 하기도.
          발명가. 연구하고 있던 전구와 직류 전기가 J.P. 모건의 관심을 끌어 지원을 받게 된다. 새로운 경쟁자인 테슬라와 교류를 대로 "전류 전쟁"을 치른다.
          공화당 정치인. 전쟁 웅. 뉴욕 주지사 시절 기업을 엿먹이는 법안을 내놓는 반 독점론자였다. 이에 기업가들은 잉여로운 자리인 부통령에 앉혀 무력화시켰으나 대통령이었던 매킨리가 무정부주의자에게 총맞고 죽으며 대통령으로 승격. 반 트러스트 법안으로 기업가들을 엿먹인다.
          자동차 사업가. 서민들의 경제력에 맞춘 자동차를 개발해 자동차를 사치품에서 일용품으로 만들었다.
  • 강덕수(기업인) . . . . 1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기업인/목록)]
         경북도 [[구미시|선산군]] 출신이다. 쌍용중공업이 망한 후 사재를 털어 지분을 확보, 경권을 획득한다. 선박용 엔진을 만드는 쌍용중공업은 사명을 바꾸면서 (주)STX와 STX엔진으로 분리시키고, 대동선박을 인수한 뒤 STX조선을 출범. 열병합 발전소를 운하는 산단에너지를 인수해서 현재의 STX에너지를 만들었다. 조선기자재를 생산하는 ENPACO와 항법장치 제조업체 STX레이다스를 계열사로 만들고, 범양선을 인수해 현 STX팬오션으로 바꾸었다. 이후 아파트, 해양플랜트, 해양자원개발, 크루즈선, 태양광 전지, 풍력발전까지 역을 넓혔고,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의 사정이 어렵자 인수를 고려하기도 하였다. 프로게임단 [[STX SouL]]을 운한적도 있고, [[경남 FC]] 메인 스폰서를 맡는 등 단기간에 엄청난 인수 합병으로 덩치를 키웠고 이는 셀러리맨 신화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언론에서 다뤄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리한 확장과 인수로 인해 커지는 덩치만큼이나 우려의 목소리도 항 따라다녔다. 2000년대 초중반의 조선업 호황과 더불어 관련 사업 수직계열화를 이루어 성장했으나 조선, 해운 장기 불황이 찾아오자 성공의 원인이었던 수직계열화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014년 초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동대문업고등학교]]
         [[명지대학교]] 경학 학사
         2012. 02. 서울공회의소 부회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 강성호 (1966년) . . . . 11회 일치
         |출생지 = [[경북도]] [[대구시]] [[서구 (대구광역시)|서구]] [[중이동|리동]]<br />(현.[[대구광역시]] [[서구 (대구광역시)|서구]] [[중이동]])
         |웹사이트 = [http://cafe.daum.net/008kang/ 소신과 의리의 젊은 일꾼... 강성호와 함께 갑니다...!]
         '''강성호'''(姜聲浩<ref name=nec>{{웹 인용 |url=http://info.nec.go.kr/electioninfo/electionInfo_report.xhtml?electionId=0020111026&requestURI=%2Felectioninfo%2F0020111026%2Fep%2Fepei01.jsp&topMenuId=EP&secondMenuId=EPEI01&menuId=EPEI01&statementId=EPEI01_%234&electionCode=4&cityCode=0&x=17&y=10 |제목=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대선거정보시스템 |확인날짜=2011-10-26 |형식=html |출판사=중앙선거관리위원회}}</ref>, [[1966년]] [[10월 11일]] ~ , [[대구광역시|대구]] [[서구 (대구광역시)|서구]] [[중이동]])은 [[대한민국]]의 전직 대구 서구청장이었다.
         * 지방자치 연구소 임연구원
         * 1995.07.01 ~ 1998.03:제2대 대구 서구의원[리동](민선,[[무소속]],제1회지방선거 대구의 최연소(30세) 기초의원)
         * 대구광역시의회 삼성용차 관련 특별위원회 위원장
         2014년 6회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대구 서구청장 후보로 내정되었으나 여기자를 성추행 했다는 의혹이 퍼지면서 공천 철회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06904645|제목=새누리당 대구경북 단체장 공천 '삐거덕'|확인날짜=2016-12-18}}</ref><ref>{{뉴스 인용|url=http://www.weekly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9980|제목=[6·4지방선거] 새누리당, 대구 서구청장 후보 류한국 공천 - 위클리오늘|확인날짜=2016-12-18}}</ref> 이에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당시 선거공보물에 본인이 저지른 잘못을 최대한 오래전의 일로 포장하기 위해 '1년 11개월' 전의 사건을 '2년 6개월'로 표기하였으며<ref>{{뉴스 인용|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5117&yy=2014|제목=성범죄, 가십거리도 안되는 일? '강성호 선거공보물 거짓' 문제 제기|성=매일신문|이름=|날짜=2014-05-28|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피해여성이 먼저 술을 사달라고 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는 거짓으로 드러났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3876&yy=2014|제목="피해여성이 먼저 술 사달라 전화" 강성호 또 거짓말|성=매일신문|이름=|날짜=2014-05-21|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기자회견에서 “시간도 늦었고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피해여성을 집 앞까지 바래다줬다”며 “집에 들어가기 전에 피해여성과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지며 어깨를 포옹하고 머리에 입을 맞추고 작별 인사를 했다”고 밝혀 행위자체가 있음은 인정하였다. 이 사건은 향후 새누리당 윤리위원에 내정되면서 다시 화제가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nocutnews.co.kr/news/4701668|제목='성추행 의혹' 인사가 새누리 윤리위원? "정신 나갔다" - 노컷뉴스|웹사이트=www.nocutnews.co.kr|확인날짜=2016-12-18}}</ref>
         |[[대한민국 제1회 지방 선거|제1회 지방 선거]]||대구광역시 서구의원(리동 선거구)||2대 (민선 1기)||[[무소속]]||{{막대|무|5|1|1|0}} 51.10%||1,088표||1위||[[파일:지방의원당선.png|25px|대구광역시 서구의원 당선]]
  • 경상북도 . . . . 11회 일치
         |이름 = 경북도
         [[주시]]''' || 榮州市 || 669 || 114,374 || 47,908
         [[천시]]''' || 永川市 || 920 || 103,969 || 45,328
         [[주시]]''' || 尙州市 || 1,255 || 104,992 || 45,174
         [[양군]]''' || 英陽郡 || 815 || 18,383 || 8,725
         [[덕군]]''' || 盈德郡 || 741 || 40,795 || 19,919
         경북도 ! ! 慶尙北道 ! ! 19,026.06 ! ! 2,715,085 ! ! 1,125,091
         경북도 행정구역도
         덕 대게
         주 곶감
         [[분류:경북도 출신|경북 출신 인물]][[분류:1896년 설치]]
  • 금춘수 . . . . 11회 일치
         '''금춘수'''(琴春洙, [[1953년]] [[9월 1일]] [[경북도]] [[안동시]] ~ )는 [[한화그룹]]의 전문경인, 기업인이다.<ref>[http://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142847 한화의 ‘금춘수’ 카드, 구관이 명관임을 입증할까]</ref>
         * 한화그룹 본부 경지원팀 담당
         * 한화 유럽법인 대표
         *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경지원팀 팀장,
         * 대한생명보험(현 한화생명) 경지원실 실장, 전무
         * 대한생명보험 경지원실 실장, 부사장
         * 한화그룹 경기획실 실장, 사장
         * 한화그룹 경기획실 실장, 부회장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안동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안동대학교 과대학 동문]]
  • 김다현 (배우) . . . . 11회 일치
         {{화인 정보
         | 학력 = [[단국대학교]] 연극화학과
         | 수 =
         | 웹사이트 = {{트위터|flower_kdh|김다현}}
         * [[단국대학교]] 연극화과
         * 2013년 [[문화방송|MBC]] 주말연속극 《[[금 나와라, 뚝딱!]]》 ... 진철 역
         === 화 ===
         == 수 ==
         * 2006년 제12회 [[한국]][[뮤지컬]]대 남우신인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
  • 김명신 (야구선수) . . . . 11회 일치
         |문 표기 = Kim Myeong-Sin
         |사진 사이즈 =
         [[2017년]]에 입단하였다. 2차 1라운드에 지명된 [[박치국]]과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였으며, 신인 투수가 캠프에 참가한 것은 5년 만이다. [[박치국]], [[함덕주]]와 5선발 경쟁을 하였으나, [[함덕주]]가 5선발로 낙점되었다. 그래서 불펜으로 나와 배짱투로 신인답지 않은 투구를 펼쳤다. [[4월 15일]]에 데뷔 첫 선발 등판을 하였다. [[4월 25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김민성 (1988년)|김민성]]이 친 타구가 그의 안면을 강타하여 안면 광대뼈가 골절되면서 선발진에서 하차하였다.<ref>[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9187 두산베어스 김명신, 넥센히어로즈 김민성 타구에 '부'… 야구팬 "빨리 완쾌되길"] -이뉴스투데이</ref>
         [[2018년]] 스프링캠프 도중에 부으로 하차하고 팔꿈치 수술을 했다.
         == 수 내역 ==
         * 2016년 전국 대학 왕중왕 야구 대회 최우수 선수
         * 2016년 전국 대학 야구 춘계 리그전 최우수 선수
         * 2015년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최우수 선수
         * 2015년 전국 대학 야구 추계 리그전 수훈
         * 2012년 [[고교야구]] 광역 리그(경권) 우수 투수
  • 김성겸(탤런트) . . . . 11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가톨릭/인물]]
         || '''신체''' ||'''183cm, 98kg'''[*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던 당시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중학교 때 키가 다 커서 중학생 때 180을 이미 넘었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중학교 때 짝사랑하던 이웃 여학생을 찾았는데, 정작 그분은 김성겸을 기억 못했다. [[MC]] [[이벽]]이 김성겸이 동네에서 제일 체격이 컸다는데 외모라도 기억이 안 나냐고 하자, 그 여성분의 아버지도 키가 180이었기 때문에 [[본인]]은 살면서 키 큰 사람들에 대해 특별한 인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게다가 그녀는 김성겸을 방송에서 본 모습으로만 기억했는데 그가 주로 맡던 역할 때문인지 그냥 좀 무섭다는 인밖에 없었다고.. --간단히 말해 어렸을때 동네에 살았건 말건 TV에 나오건 말건 별 관심없었다는 이야기(...)-- 몸무게는 90년대 말에 KBS 모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밝힌 것.]||
         시트콤 [[세친구]]에서 [[정웅인]]과 [[윤다훈]],[[박면(배우)|박면]]의 고등학교 담임으로 나왔다. --간이없딴니!--
          * [[마이더스(드라마)]] - 유필
          * [[사로잡힌 혼]] - [[장승업]]
          * [[하늘아 하늘아]] - [[조]]
         === 화 ===
          * [[육식동물(화)|육식동물]] - 동식
  • 김수자 . . . . 11회 일치
         | 수 =
         | 향줌 =
         | 향받음 =
         | 웹사이트 = http://www.kimsooja.com
         '''김수자''' ([[1957년]] ~ )는 [[뉴욕]], [[파리]],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개념 미술|개념 미술가]]이다. 24회 파울루 비엔날레와 55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특별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출품하였다.<ref name="biography">Kimsooja Biography: http://www.kimsooja.com/biography.html</ref>그의 작업은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를 넘나들며 가장 첨예한 회화적 질문으로부터 예술과 삶의 조건들을 연계하여 다루어 왔고 이 시대를 치열하게 직면해 왔다. 구겐하임 빌바오(2015),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13), 밴쿠버 아트 갤러리(2013), 국제 갤러리(2012), 뉴욕PS1/현대미술관(2001)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30여 회의 주요 국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에 참여했다.<ref>{{웹 인용|url=http://www.vmspace.com/2008_re/kor/sub_emagazine_view.asp?category=artndesign&idx=11956&pageNum=3|제목=SPACE Magazine|웹사이트=www.vmspace.com|확인날짜=2016-11-18}}</ref>
         김수자(Kimsooja)는 [[웹사이트]] [[도메인 네임]]을 선정할 때 자신의 성과 이름을 하나의 단어로 합쳐 그것이 개념적으로 암시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한 단어로 된 이름은 성과 이름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성정체성이나 결혼 여부,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어 원 워드 네임 이스 언 애너키스트스 네임》(''A One-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이라는 개념 미술 작품에서 이 행위를 기념하였다.<ref><span class="citation web" contenteditable="false">[https://www.artsy.net/artist/kimsooja "Kimsooja"]. </span></ref>
         김수자는 1957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김수자의 화가로서의 근본은 그녀의 예술 발전에서 중요한 시작점이다.<ref>Arum Sok, Christina, Kimsooja: A Modern Day Global Nomad Transcending boundaries, re-constructing a global identity 2014, paper Abstract, in Kimsooja’s official website: http://www.kimsooja.com/texts/sok_2014.html</ref> 김수자의 "꿰매기" 시리즈는 세계의 뒤엉퀸 모습을 수평면과 수직면의 체계에 합성하여 십자형의 구조를 형성하는 천의 아블라주를 만든다.<ref name="Contemplating">Suh Young–hee, Contemplating a System of Horizontals and Verticals, Vancouver Art Museum, 2013.</ref> [[루초 폰타나]]가 하나의 색으로 칠해진 캔버스를 날이 선 단도로 꽤뚫었던 것과 같이 김수자 또한 작품의 표면을 꿰매어 더 이의 화면이 이닌 3차원 구조의 예술을 창조하였다.<ref name="Contemplating">Suh Young–hee, Contemplating a System of Horizontals and Verticals, Vancouver Art Museum, 2013.</ref>
         * {{언어링크|en}} [http://www.kimsooja.com 공식 웹사이트]
  • 김인철 . . . . 1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2005년에는 10홈런을 기록하는 등 '''김성한 이후 10홈런-10승을 달성할뻔 했던 장본인'''. 어깨부으로 인해 2000년 타자로 전향했다.
         2004 시즌 후 기아에서 방출되지만, 그를 눈여겨 보고 있던 한화의 [[김인식]] 감독이 그를 입했다.
         2005 시즌은 대타요원으로 시즌을 시작하였는데 1호포를 대타홈런으로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개막 후 4월 한달동안 6홈런을 때리며 잠깐 홈런 1위를 한 적도 있을 정도. 이 활약으로 톱타자로 선발출장하기도 했는데 이후 페이스가 떨어져서 두 자리수 홈런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이땐 철밥통 소리 들을 정도로 썼던 것도 아니고 대타요원으로 시작했다가 자기가 잘해서 주전을 꿰찼던 거라 그리 욕 먹지도 않았는데 이 때 이후로 성적이 하락하여 2006년~2007년에는 신인 외야수들의 앞길을 막는 존재로 인식되어 이도형 등과 함께 한화팬들에게 김인식의 양아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었다. 그 와중에 문학서 끝내기패의 원흉이 되기도 했는데 연장전에 들어가고 SK의 공격때 주자 1루에서 히트앤드런이 걸렸고 1사 1,3루의 위기가 될 황이었는데 좌익수이던 김인철이 포구후 바로 송구를 하지 않고 머뭇거리던 틈을 타 3루주자인 정근우가 홈을 파고 어이없게 끝내기 패배(즉 1사 1루에서 힛앤런이 걸렸는데 단타로 1루주자가 홈까지 접전황도 만들지 않고 홈으로 들어와 경기가 끝나버린 황이다)를 당해버렸었다. 그거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국 2007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었다.
         현역 은퇴 후에도 자신의 마지막 현역 팀인 [[한화 이글스]]와의 관계를 유지했고, 한화의 원정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다가 스카우트팀 과장으로 인사이동되었다. 그 후 2017년 선수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장 모 감독과 심 모 감독의 뒤를 이어 [[한화 이글스]]의 연고지역 야구부인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
          * 현역 시절에는 항 익살스러운 행동이 주특기. 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듯 [[삼성 라이온즈|삼성]] 시절 '''삭발을 한 적이 있다.''' 우승경력은 없으며 [[1993년]], [[2001년]], [[2006년]] 준우승으로 [[콩라인]] 가입.
          *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인 [[김성근]] 감독과는 1991~92년 삼성 1군에서, 2000년 삼성 2군에서 함께한 바 있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로 복귀하면서 15년 만에 재회하게 되었는데, 김성근 감독 부임 후로 일은 많아졌지만 팀 성적 향에 확신을 갖고 본인 포함 전 스태프들이 성실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931220|해당 기사]]
          * 2017년 7월 청주고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장정순은 습 폭행건으로, 경질되고, 심정진이 새로 부임했는데, 과거 폭력전과가 있어서 해임되었다.]나온 기사에 따르면 은퇴 후 한화의 전력분석원, 스카우트를 맡을 때도 틈틈이 공부를 하는 '공부하는 야구인'이었으며, 현재 대학원 입학을 위해 공부 중이라고 한다. 나중에 꿈은 대학 강단에 올라서 제대로 된 야구인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또한 심판, 기록원, 스카우트 등 야구계 전반에서 활동할 이들에게 체계적인 야구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필곤 . . . . 11회 일치
         |전임 = [[안철]]
         |웹사이트 =
         김필곤은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할 때 해고된 시내버스 기사가 회사를 대로 제기한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3천만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에서 "위자료 금액이 너무 많다"며 회사가 제기한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위자료 액수를 1000만 원으로 대폭 감액했다.<ref>[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2238 서울북부지방법원 2010. 5. 19. 선고 2009나7791]</ref>
         * 대구지방법원 형사1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7월 29일에 [[대구 지하철 화재]] 현장을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대구지하철공사 사장 윤진태에게 징역 3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98906]</ref>11월 28일에 [[한총련]] 중앙위원으로 활동한 [[계명대]] 총학생회장에 대해 "11기 [[한총련]]은 10기 한총련의 기본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이적단체인 [[범청학련]] 남측본부의 집행부를 장악해 [[범청학련]]의 기본 대오로 활동하고 있다”며 처음으로 11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면서 "11기 한총련이 범청학련을 통해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의 사실 지휘·조정을 받아 북한의 적화통일 노선을 수용하고 있고, 북한 쪽과 빈번하게 불법 접촉 및 서신교환을 하면서 하달받은 투쟁지침에 따라 11기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의 사업계획을 수립·시행했다"며 [[국가보안법]] 이적단체 가입죄 등을 적용해 징역2년6월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36082]</ref> 2004년 2월 6일에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하 직원 2명으로부터 "당선되면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2000만원, 아들 축의금으로 1000만원을 받은 [[박진규]] 천시장에 대해 "시장에 당선된 후에 받은 1천만원은 대가성이 인정된다"면서도 2000만원에 대해서는 "범죄 입증이 어렵다"고 하면서 수뢰액이 1천만원이 5천만원 미만 일 때는 5년이 징역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징역2년6월 집행유예4년 추징금10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0026584]</ref>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3월 31일에 모텔에 투숙한 손님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나무 판자로 가려줘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모텔 종업원에게 항소심에서 "해당 조항에서 처벌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처벌 근거 조항에 대해서는 행정형벌의 일반적인 특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며 "자동차 관리와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일반적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모두 처벌 대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면서 원심을 깨고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7248.html]</ref> 7월 8일에 "지하철에서 장갑을 팔았다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한다"며 강제연행하려는 서울메트로 질서기동팀 소속 공익근무요원을 폭행한 홍모씨에게 "임의동행을 거부한 피고인을 강제 연행하려 하거나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체포한 행위는 공익근무요원의 정당한 직무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피고인이 이에 대항해 폭행을 가했다 해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0907080856516671?t=y]</ref> 12월 9일에 비자발급 심사를 부실하게 한 혐의로 기소되어 "일부러 직무를 포기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전 사 황모씨에 대해 "중국 현지 한인회의 부탁으로 서류가 보완되지 않은 중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것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하면서도 "자의적인 비자 발급으로 불법 체류자가 생긴 만큼 죄질이 나쁘지만 그동안 국가에 헌신해 왔고 나태한 마음으로 범행을 하게 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09120911405515959&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2010년 2월 11일에 면허정지 기간에 운전을 하다 적발돼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되자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무면허 운전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무면허 운전은 면허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차를 몰아야 성립하는데 최씨가 정지처분 통지를 받지 못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비록 경찰 당국이 통지를 대신하는 공고를 거쳤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그가 면허 정지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에 부족하다”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www.fnnews.com/news/201002110848419738?t=y]</ref>
         *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8월 25일에 두차례에 걸쳐 이통사에 통신자료를 요청해 이름·주민번호·이동전화번호·주소·가입일·해지일 등 통신자료를 수집한 [[서울지방경찰청]]을 대으로 제기한 통신자료 요청서에 대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기각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ref>[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915_0000096846&cID=10201&pID=10200]</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4화 . . . . 11회 일치
          * 당히 까다로운 룰의 1회전 시합.
          * 라이벌 고교 틈바구니에서 고립된 웅고 학생들.
          * 라이벌 고교의 학생들은 각자의 개성을 조합한 공격으로 웅고를 밀어붙인다.
          * 토코야미 후미카게는 기존 필살기를 좀 더 실용적으로 다듬어서 사용, 대를 노린다.
          * 하지만 대도 체를 하체 속으로 접어넣는 기묘한 개성으로 회피, 아직까지 웅고가 있는 구역엔 탈락자도 합격자도 나오지 않는다.
          * 지면을 흔들어 대지진을 발생, 밀집해 있던 웅고 학생들을 양단시킨다.
          * 그때 재빠른 몸놀림으로 미도리야의 패널을 따내는 대.
          * 이쪽도 요아라시 만큼 별종인지 "위기인데 웃는다. 이한 사람"이라면서도, 여전히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미도리야를 보고 "멋지다"고 감탄한다.
          * 당히 정교하게 바람을 조작하는데 학생들이 가진 공만 빼앗아 오거나 마구잡이로 몰아치는 것 같아도 정확히 탈락자를 만드는걸 보면 보시와 달리 섬세할지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7화 . . . . 11회 일치
          * 타학교의 집중마크에도 불구하고 웅고 학생들은 모두 생존 중.
          * 이 덩어리는 닿으면 그대로 끝. 대을 고기반죽처럼 뭉쳐버린다.
          * 떠다니는 고깃덩어리도 자신의 신체를 변형해서 만든 것. 접촉시키는 것으로 대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 카미나리는 시험 치는 와중에 이한 짓이라고 비꼬는데 시시쿠라는 "평범한 자가 날뛰는게 더 이"하다고 받아친다.
          * 동시에 고깃덩어리가 됐던 타학교 학생들도 일제히 원태로 돌아온다.
          * 미도리야 이즈쿠, 우라라카 오챠코, 세로 한타 삼인조는 능력을 조합해 황을 타개한다.
          * 세로와 미도리야가 시선을 끄는 사이, 우라라카가 가볍게 만든 바위에 세로의 테이프를 붙여서 광범위하게 투척.
          * 주최측은 항 집중 마크 당하던 웅고가, 올해는 한 명의 탈락자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감탄한다.
          * 근데 2회전에 동원되는 사람들이 뭔가 좀 이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11회 일치
          * 진심으로 싸우기로 작정한 [[미도리야 이즈쿠]]는 문득 [[바쿠고 카츠키]]와 오래 안 사이지만 한 번도 진심을 나눈 적은 없다고 깨닫는다.
          * 바쿠고가 폭발력을 이용해 높이 도약한다. 미도리야가 움직임을 포착하지만 그는 공중에서 다시 폭발력을 일으켜 급강하한다. 미도리야가 아슬아슬한 차이로 피하지만 다시 폭발을 일으키고 그 추진력으로 속공을 퍼붓는다. 쉴 새 없는 연속공격으로 미도리야가 전술을 구하지 못하게 할 속셈이다.
          * 미도리야가 원 포 올 풀카울 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같은 변칙적인 움직임엔 따라갈 수가 없다. 뒤에서 내리꽂히는 깨끗한 보디 블로우. 미도리야가 가드레일 쪽으로 몰린다. 충분히 충격을 줬을 텐데 바쿠고는 한 치의 여유도 주지 않고 다시 추격한다. 미도리야는 문자 그대로 숨 쉴 틈도 없다. 코앞까지 따라온 바쿠고. 미도리야는 난간을 붙잡고 뒤로 넘어가려고 하지만 바쿠고가 짐승같은 반응속도로 잡아채서 내동댕이친다. 그러다가 본인도 난간에 몸을 부딪히며 잠깐이나마 공격에 틈이 생긴다.
          * 미도리야는 겨우 한숨 돌리며 바쿠고가 으로 기술이 향됐음을 깨닫는다. 바쿠고는 움직임을 보고 바로 대응하는 동물적인 피지컬을 가지고 있다. 그건 움직임을 예측해서 싸우는 자신의 방식으론 대응하기 매우 어렵다고 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심코 웃고 마는데, 그것이 바쿠고의 눈에 거슬린다.
          * 미도리야는 설마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며 자신의 진심도 내보인다. 물론 바쿠고처럼 심하게 대하는 대는 누구라도 싫어할 것이다. 그러나 미도리야에겐 정말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싫다는 감정과 똑같을 정도로, 바쿠고의 "굉장함"이 강렬했고, 이끌렸다.
          * 미도리야는 감정이 고조되고 있음을 느낀다. 평소보다 더욱 빠르고, 컨트롤이 틀어진다. 하지만 좋은 감각이다. 지금까지 그는 풀 카울 태를 5%로 제한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단련되었는지 그 자신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전신 시 신체 허용 한 8%. 그 순간 미도리야가 한계를 넘었다.
  • 대구광역시 . . . . 11회 일치
         대구시의 로고는 「팔공산과 낙동강」의 이미지를 형화 한 것으로 미래지향적 진취성과 세계지향적 개방성을 추구하는 활기에 가득찬 도시적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대구 2011 세계육선수권대회 개막식
         대구광역시가 선정한 대구 12경으로 팔공산, 비슬산, 강정고령보(디아크), 신천, 수성못, 달성토성, 경공원, 국채보기념공원, 동성로, 서문시장, 83타워 그리고 대구스타디움이 있다. <gallery widths="200" heights="180">
         파일:7경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d/d4/7%EA%B2%BD_%EA%B2%BD%EC%83%81%EA%B0%90%EC%98%81.jpg/200px-7%EA%B2%BD_%EA%B2%BD%EC%83%81%EA%B0%90%EC%98%81.jpg|alt=7경 경공원|7경 경공원
         파일:8경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d/8%EA%B2%BD_%EA%B5%AD%EC%B1%84%EB%B3%B4%EC%83%81%EA%B8%B0%EB%85%90%EA%B3%B5%EC%9B%90.jpg/200px-8%EA%B2%BD_%EA%B5%AD%EC%B1%84%EB%B3%B4%EC%83%81%EA%B8%B0%EB%85%90%EA%B3%B5%EC%9B%90.jpg|alt=8경 국채보기념공원|8경 국채보기념공원
  • 도모세 . . . . 11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사춘기 여동생》 (2018년) - 철역
         * 《[[누나 친구 2]]》 (2017년) - 우 역
         * 《내 여자의 엄마》 (2016년) - 석오 역
         * 《[[암살 (2015년 화)|암살]]》 (2015년) <ref>{{뉴스 인용|제목= UCC 스타청년 도모세, 세에 나오다 |url=http://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848837&g_menu=023130&rrf=nv |출판사=아이뉴스24 |날짜=2014-09-16}}</ref>
         * 《[[스물 (화)|스물]]》 (2015년)
         == 수 ==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92년 태어남]]
  • 돌비 . . . . 11회 일치
         조용하게 가열되어 비등점 이으로 과열태가 된 액체가, 돌발적으로 비등하는(끓어오르는) 현. 비등석(沸騰石) 같은 물건을 미리 넣어두면 돌비를 방지할 수 있다.
         과열태지만 안정되어 있던 액체가 외부에서 이물질이 혼입되거나, 충격을 받아서 액체 내부에 기포가 생기면서 급속도로 끓어오르는 현이다.
         일반적으로 액체를 데우면 온도가 끓는 점에 도달했을 때, 거품이 나오며서 점차 부글부글 격렬하게 끓어오르게 된다. 그러나, 액체가 끓는 점에 도달했음에도 드물게 거품이 일지 않고 끓지 않는 과열 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과열된 액체는 진동이나 이물질을 혼입하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게 된다.
         돌비는 매우 위험한 현인데, 끓지 않는 태의 국물 등이라고 생각해서 방심하고 접근하여 조미료 등을 넣다가 갑자기 끓어오르는 액체에 [[화]]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나 두유 등의 음료는 기포발생의 핵이 될 수 있는, 그릇 안쪽의 요철이나 액체 내부의 고형물이 없을 경우 과열 태가 될 수 있으며, 된장국 같은 걸죽한 식품 역시 대류가 일어나기 어려워 부분적으로 과열태가 되고 돌비가 발생할 수 있다.
  • 마기/306화 . . . . 11회 일치
         백룡은 연백(아르바)에게 패하고...
          * 백룡은 혼신의 힘을 다해 아르바에 맞서지만 쥬다르도 절연결계도 없는 황에서 일방적으로 당한다.
          * 아르바는 "백웅, 백연" 두 황자를 낳은 뒤라고 밝힌다. 그 뒤 옥염의 육체를 빼앗고 백과 백룡을 낳았다.
          * 아르바가 방심한 사이 백룡은 자간의 힘으로 부유섬으로 합류, 거기엔 먼저 탈출한 알라딘, 모르지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 덤으로 자신의 전생방식을 알려준 탓에 "지금 백의 육신이 죽으면 부활하지 못한다"는 약점까지 노출해 버리고 만다.
          * 그 사이에 귀왜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연백룡 등장 이래 최고 사이다 에피소드
          * 원수인 아르바마저 "아르바공"이라 부르며 비웃을 정도로 성장. 특히 그 아르바를 대로 통수를 쳐서 정보를 빼돌렸다.
          * 백, 혹은 백룡남매의 어머니 "연옥염"의 자아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생겼다.
          * 반대로 마지막 페이지의 편집자 멘트가 "복수를 극복한 아들 백룡에게 끓어오르는 애증"이라고 되어 있는 점, 백룡 백만큼은 자신이 낳은 친자식이라고 인증한 점 때문에 억누르고 있던 "모성애"가 발현된 것은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아르바의 마지막 대사(그 분만이 소중하다. 그것 뿐이다)의 의미도 자연스러워진다.
          * 설사 2년 후 애를 만들었더라고 갓난애일 것이고 백의 몸으로 죽는다면 갓난애의 몸으로 들어가 봐야 의미가 없으니 결국 아르바가 끝장나는건 마찬가지.
  • 마기/316화 . . . . 11회 일치
          * 신드바드는 표면적으론 알라딘 일행과 우호관계를 되살리는 듯 했지만 실 그들의 의견을 폄하하고 있다.
          * 그는 지금까지 일군 성과를 만족스럽게 지켜보는데 한편으론 신드리아 회 이외의 마법도구가 늘어나는걸 우려한다.
          * 그는 자신이 세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동안은 전쟁도 기아도 일어나지 않게 제어하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그 힘이 분산되기 시작하면 어찌해야 좋을지 알지 못한다.
          * 그래도 다윗은 그를 설득하려고 안간힘 쓴다. 오로지 그만이 세을 파멸에서 구할 수 있으며 솔로몬의 지혜 말고 "다른 열쇠"도 있다고 하는데.
          * 이미 솔로몬왕이 운명을 흩어놨기 때문에 "정해진 운명"이란건 없다. 그럼 이 세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란 무엇인가?
          * 그것은 바로 "희망"이다. 개개인이 내일이 어떨 것인지,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하게 해주는 힘이다.
          * 그 희망의 힘들이 다발이 되어 세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 바로 이것이 운명이며 사람들이 내일을 꿈꾸는 이, 모두에게 조금씩 "운명"이 보이는 것이다.
          * 신드바드는 알리바바가 자신의 예을 뒤엎고 전송마법진으로 실적을 일궈낸 것을 들며 알라딘의 의견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동조한다.
          * 알라딘의 견해를 헛소리로 일축하며 마기인 그 조차 통찰력이 무르기 짝이 없고 오로지 자신만 세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다고 자만한다.
  • 마기/333화 . . . . 11회 일치
          * 누구도 남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에 다섯 번째 동료를 입하기로 하는데 [[연백룡]]은 처음엔 누나 [[연백]]을 추천하나 아직도 깨어나지 않아 보류.
          * 백룡은 그밖에도 권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이동, 그 사이 [[쥬다르]]가 다섯 번째 동료 후보라고 새로운 얼굴을 데려온다.
          * 병림픽 끝에 알라딘이 마고이 전송을 담당할 다섯 번째 동료를 입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신드바드의 향을 받지 않은 인물이여야 해서 인선이 어려운 문제. 그때 백룡과 쥬다르가 동시에 "짚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알리바바가 잠시 자리를 지키고 쥬다르는 혼자, 백룡은 알라딘의 전송마법진으로 각자 동료 후보를 데려오기로 한다.
          * 백룡이 간 곳은 황제국.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연백]]이었다. 분명 그녀는 알라딘의 연금마법으로 재구축된 채 잠들어 있으니 신드바드의 향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연금마법은 원래 시간이 걸리는 마법이고 언제 깨어나게 될지는 알라딘 자신도 모른다. 백룡은 아쉬워하며 가져왔던 백의 금속기는 일단 그녀의 품에 안겨준다.
          백룡은 백 말고도 향을 받지 않았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추천을 하는데.
         연백은 당장은 깨어나지 않았지만 금속기를 돌려받은 점등을 보면 나중에 동료로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 마기/340화 . . . . 11회 일치
          그러자 연백룡은 "왕의 정의 자체가 잘못되었다면?"이라고 반문한다. 옳고 그름은 불변하는 가치가 아니다. 백룡은 황제국의 예를 들며 한때는 군사력에 의한 세력 확장이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 시대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황제이던 시기엔 복수가 대의였지만 대이 사라지자 한계가 드러났다. 백룡은 이제 신드바드에게 다시 묻는다. 정말로 그의 정의가 흔들리지 않을 것인지를. 혹시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선건 아닌가 하는 불안은? 신이 된 그는 그런 불안감에서 해방된 것인가? 백룡은 오히려 자신이 묻고 싶다며 신드바드에게 대답을 요구한다.
          * 묵묵부답인 채 고심하던 신드바드는 결국 대답을 회피한다. 그는 "내가 물어보려고 너흴 부른 거다"면서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백룡이 불손하다고 탓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단언한다. 근거는 실적이다. 그는 전쟁이 없는 세을 목표로 활동했고 이뤄냈다. 그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걸 해낸다는 자신감과, 누구도 보지 못하는 "운명"을 볼 수 있다.
          신드바드는 그 실패의 대가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국경을 없애고 인류의, 세의 힘을 신드바드 자신에게 집약시킨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신의 힘을 나눌 대이 없다고 단언한다. 자신 외에는 세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란 확증을 주는 인물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그럴 확증을 주는 유일한 인물, 신드바드가 신이 되는 것이 필연이라는 것이다. 그의 힘을 아는 백룡은 거기에 대해서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말로 힘을 나눌만한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인지, 인간 신드바드 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하게 겨룰 만한 인물이 전혀 없다는 건지 묻는다.
          예과 다른 대답이 나오자 백룡이 의아해한다. 하지만 그는 [[알라딘(마기)|알라딘]]이 말했던 "신드바드의 유일한 미련"에 대해서 떠올린다.
         >신드바드 아저씨는 자기가 정말로 세에서 유일하게
          알라딘은 그가 일행과 싸움을 통해 자신이 정말 신이 돼도 좋은지를 확인하려는 거라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가 결벽증일 정도로 성실하다고 말한다. 그때 2던전 바레포르가 무너진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백룡이 신드바드를 납득 시킨 거라고 설명하며 쥬다르나 백룡이 신드바드를 논파할 수 있을 거라곤 도 못했다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왜 이리 쉽게 공략이 가능한건지 의아해한다.
          신드바드는 세렌디네와 손을 맞잡고 던전 제파르의 이력을 설명한다. 이곳은 그가 17세 때 공략한 던전이며 그는 마침내 자신의 나라를 손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파르테비아로부터 어떤 섬을 사들였고 거기가 1차 신드리아 왕국이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세렌디네는 거래 대인 파르테비아의 1황녀.
          >부조리한 세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11회 일치
         1751년 12월 9일 [[파르마]]에서 출생, 1819년 1월 2일 [[로마]]에서 사망.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의 [[왕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사실 스페인의 국정을 통솔하였으나, 하급귀족 출신의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총애하여 25살 청년 고도이를 재으로 임명하는 등 정치적 실책을 여러 차례 저질러, 결국 폭동이 일어나 카를로스 4세와 망명하는 신세가 됐다.
         1792년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재으로 임명했다. 마누엘 고도이가 실정을 거듭하였으며 [[절대주의]]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1808년 3월, 마드리드 남부 아랑후에즈(Aranjuez)에서 카를로스 4세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난 것이 계기로 카를로스 4세가 퇴위하고 황태자 페르난도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면서 고도이는 해임,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역시 추방되어 스페인을 떠나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에게 침략을 받고 점령당하게 된다.
          * 소녀 시절의 초화는 당히 미인인 편이지만, 아이를 많이 낳은 탓인지 미모가 쇠퇴하여 중년 이후에는 당히 심술궃은 아줌마(…) 같은 외모의 초화가 많다. 1765년 작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 초화[* http://www.ozmall.co.jp/art/list_mitsubishi.aspx]와 1800년 쯤에 그려진 카를로스 4세 가족[* http://www.salvastyle.com/menu_romantic/goya_familia.html]의 그녀의 모습은 당히 대조적.
          * [[프란시스코 드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4세 가족(Familia de Carlos IV, 1800-1801)」에서, 제목이 된 국왕을 제치고 중앙에 당당한 포즈로 배치되어 있어 그녀의 정치적 위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리아 루이사 자신도 고야의 초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 메탈멘 . . . . 11회 일치
         [[DC 코믹스]]의 웅 팀. 첫 등장은 Showcase #37(March-April 1962).
         전체적인 인지도로 봤을 때는 그닥이긴 하지만 워낙 매력적이라 DC 팬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엄청나다.
          * 코퍼 (구리)[* New 52 시점에서는 멤버가 아닌 태.]
         젊은 천재 박사 '윌 매그너스'는 인간이 드나들 수 없는 곳에서의 구조 임무를 위한 로봇을 말들어달라는 미 국방부에 명령에 따라 '리스폰스미터'라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낸다. 그 인공지능을 각자 다른 액화된 금속 안에 담가 창조해낸 것이 바로 '메탈멘'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그런 로봇을 만드려는 목적은 구조 임무 뿐 아니라 적이 되는 대을 암살하기 위해서였고, 그 사실을 안 메탈멘은 살인을 거부하며 도망간다.
         매그너스 박사는 아파트로 돌아가나, 메탈멘은 사실 갈 곳이 없어 그 곳에 숨어있었다. 그 순간 케모가 매그너스의 집에 들이 닥치지만, 메탈멘이 자신들의 육체를 희생해 케모를 박살낸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인 리스폰스미터는 무사한 태.
         이후 [[저스티스 리그]]가 신입 멤버를 뽑을 때 매그너스 박사는 플래티넘을 부활시키고 저스티스 리그에게 보내나, 오작동으로 난동을 부려서 결국 다시 액화 태로 돌려버렸다.
         이후 [[포에버 이블]]이 일어나자, [[크라임 신디케이트]]를 막으려는 [[사이보그]]는 플래티넘이 그리드와 연결되지 않은 로봇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매그너스 박사를 찾아가나 매그너스 박사는 메탈멘은 실패작이고 자신은 사이보그를 도울 수 없다고 한다.[* 사실 매그너스 박사는 자기가 봤던 감정을 지닌 존재들 중 메탈멘이 가장 착한 존재들이였기에 또 위험하게 만들기 싫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이보그의 설득 끝에 매그너스 박사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메탈멘을 다시 가동시킨다.
          * [[카툰 네트워크]]에서 단편 개그 애니메이션이 방.
          * [[저스티스 리그]], [[아쿠아맨]], [[THE SANDMAN]] 등과 함께 워너 브라더스와 DC에서 화화를 호시탐탐 노리는듯 하다.
  • 무협/용어 . . . . 11회 일치
          * [[중국어]]의 향 : 무협 장르에서 쓰이는 용어들은 때때로 중국어의 향을 받는다. 이는 불필요한 중국어 남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초창기 무협 번역에서는 '장풍'을 '손바람'으로 번역하는 등, 고유어 번역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이는 '정협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고유어 번역은 오히려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이는 무협 번역에서 전문적인 작가의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줄 아는 [[화교]] 등 아마추어의 개입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 출판사가 세화 되면서 번역의 품질이 나빠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어의 향이 과도하게 들어간 일종의 '중국어 번역체'가 남발되게 되었고, 이를 무협 장르의 독자나 후발 작가들이 학습하면서 중국어 번역체의 향을 받은 장르 고유의 문체가 형성되었다.
         === 중국어 향 ===
         한국어에서는 쓰이지 않고, 중국어에서 쓰이는 단어가 그대로 유입된 단어들이다.(대부분 한국어 사전에서는 뜻을 찾아볼 수 없거나 일용례가 지극히 드물며, 중국어 사전을 검색해야 나오는 단어들)
          * 사이(邪異) : 사악하고 기이하다.
          * 관후(寬厚) : 너그럽다는 뜻. 일단 한국어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으나, 일적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어이다.
          * 요(療傷) : 처를 치료한다는 의미. 흔히 내공력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 문연주 . . . . 11회 일치
         | 웹사이트 =
         == 수 ==
         * [[2013년]] 대한민국 향토가요제 인기가수
         * [[2014년]] 한국대중가요발전협회 인기가수
         * [[2014년]] [[KBS 트로트 대축제]] 10대 가수
         * [[2016년]] 2016 KOCIA 전국 노래교실 회원의 날 시식 10대 가수
         * [[2016년]] [[MBC가요베스트]] 대제전 인기
  • 바키도/121화 . . . . 11회 일치
          * 최종형태로 변한 피클을 눈 앞에 두고 과거 히다국에서 야차원숭이를 베었던 것을 회하는 무사시
          * 그는 "위험한 곳에서 생환한 인물을 웅시한다"는 지론을 펼친다.
          *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어떤 인물도 웅이라 부를만하다는데.
          * 웅이란 티라노를 대로 싸운 피클을 말하는 것이었다.
          * 과거 히다국에서 괴물원숭이, 지금의 야차 원숭이의 조을 베었던 일을 회하며 덤비라고 도발한다.
          * 그러나 이번엔 한층 단단해진 근육 덕에 치명을 입지 않았고 처에서 흐르던 피도 저절로 멈춘다.
          * 사실 공격이 먹히지 않는 황인데도, 무사시는 "마음껏 벨 수 있겠다"며 좋아한다.
  • 박경석 (1960년) . . . . 1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 훈 =
         | 웹사이트 =
         [[경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남대학교]] 재학중이던 [[1980년]]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에 입대, [[대한민국 해병대 수색대|수색대]]로 복무하였고 복무 당시에도 스킨스쿠버, 수, 낙하산을 매우 즐겼다고 한다.<ref name=park>[http://na-dle.hani.co.kr/arti/issue/501.html 니들의 잣대로 구별짓지 마라 - 손아람이 본 박경석], 《[[한겨레]]》, 2013년 11월 4일</ref> 전역 후 대학교 행글라이더 동호회에 들어가 활동 중이던 [[1983년]] 8월, [[경북도]] [[경주시]]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던 중 추락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ref name=park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6992 하루 '5억원짜리' 삶, 이 사람 부럽다],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6일</ref>
         [[2001년]] [[1월 21일]]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하여 이를 이용하던 장애인 부부가 사망 및 중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는 5개 관련 단체들과 공동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민운동을 시작하였고, 이를 계기로 그 해 4월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 [[2012년]] [[10월 26일]] 장애인 당사자 인권운동가 김주이 화재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하여, 광화문에서 장례식 노제를 치르다 폴리스라인을 넘어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은 장애인 활동가 18명에게 총 1500여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였고, 박경석은 이를 대신하여 스스로 노역형을 자처, [[서울구치소]]에서 5일간 노역형을 복역하고 출소하였다.<ref name=park /><ref name=pressian />
         《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 2013년, 책으로여는세, {{ISBN|9788993834185}}<ref name=pressian /><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333653 네이버 책정보]</ref>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지체 장애인]][[분류:밀양 박씨]]
  • 박녹주 . . . . 11회 일치
         성악가([[판소리]]). 판소리 명창. 중요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제5호 판소리([[흥보가]]) 예능보유자.[*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흥보가'의 예능보유자로 변경, 지정되었다.] 경북도 선산(善山) 출생. 본명은 박명이(朴命伊). 예명은 박녹주. 호는 춘미(春眉).
         == 세 ==
         [[송만갑]]과 그 제자 김정문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그녀가 주장한 예술적인 기반 자체가 동편제였기 때문에 계보으로 동편제 명창에 속하며, 20세기에 들어서 송만갑제 판소리의 전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64년]]에 처음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될 때 남긴 녹음자료에도 송만갑제의 더늠[* 일종의 '마스터피스'와 같은 의미로 명창들이 새로 짜거나 과거의 것을 이어받아 방창한 대목을 말한다.]을 중심으로 하는 대목을 맡아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송미경, 「판소리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및 지정자료 <춘향가>(1964)의 성격」, 『구비문학연구』 41, 2015 참조.] 그러나 실제로는 송만갑이나 김정문 이외에도 서편제의 김창환, 정정렬에게서도 소리를 배우는 등 사승 자체는 동편제나 서편제를 가리지 않고 배웠으며, 동편제 흥보가를 부르면서도 제비노정기 만큼은 서편제인 김창환의 소릿제로 부르고 있는 등, 동시대 여러 명창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유파를 겸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다만 [[송만갑]]이나 정정렬 이외에도 동편제 명창인 박기홍, 유성준에게서도 배웠던 만큼 동편제의 소리 지향에 가까운 소릿제를 부르긴 하였다.
         23세인 [[1928년]]부터 음반을 취입[* 콜럼비아에서 취입한 것으로 단가 대관강산과 심청가 중 선인 따라가는 대목을 취입하였다.]하기 시작하였고, 조선성악연구회에도 참여하여 춘향전, 흥보전, 심청전, 숙낭자전, 배비장전 등 창극의 여주인공으로 자주 무대에 서기도 하였다. 44세가 되던 [[1948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만들어 당시 창극 활동을 했던 여성 명창의 처우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고, 국극의 연출에도 참여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나 1948년 눈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고, 해방 이전부터 접했던 [[아편]] 중독 증세로 인해 병고와 옥고를 겪기도 하였다.
         [[1960년대]]부터는 본인이 보유하고 있었던 바탕소리 녹음을 많이 남겼다. [[1963년]] 기독교방송에서 춘향가를 녹음하고, [[1972년]] 자택에서 기록보존용으로 심청가를 녹음하였다 흥보가는 총 4차례나 전판을 녹음하였는데 이 가운데 [[1967년]] 녹음(고수 : 정권진)과 [[1973년]] 녹음(고수 : 김동준)은 음반화 되었다. 전자는 [[지구레코드]]에서 출반되었으며, 이후 CD로도 복각되었고, 후자의 경우에는 문화재보호협회 소장 녹음으로 여러차례 음반으로 제작되었으나 CD로는 제작되지 않아 지금은 듣기 어렵다. 그 외에 출반되지 않은 녹음으로는 [[1976년]] 문예진흥원 판소리 조사 사업당시에 녹음한 것(고수 미)과 녹음시기 미의 기독교 방송 소장의 녹음(고수 : 정철호)이 있다.
         제자로는 김소희, 박송희, 조순애, 장찬, 박초선, 성창순, 성우향, 한농선, 이일주, 조현, 이옥천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박송희와 한농선이 그의 뒤를 이어 흥보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김소희, 성창순, 성우향, 조현 등은 중요무형문화재 춘향가 및 심청가의 예능보유자로, 이일주, 이옥천 등은 각기 시도지정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는 등 굵직한 명창들을 길러냈다.
         이처럼 판소리, 그 가운데에도 흥보가 전승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자 당대의 슈퍼스타였는데 일반 대중들에게는 [[김유정(소설가)|김유정]]의 스토킹 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시대가 시대였고 김유정이 훗날 소설가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한동안 짝사랑으로 포장되었으나, 사실 김유정의 행동거지는 악질 스토커의 그것이었다. 김유정은 박녹주가 자신의 마음을 안 받아준단 이유로 그녀에게 혈서를 보내는가 하면, 박녹주가 가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노려 사람을 납치하려고도 들었다.[* 심지어 명목이지만 박녹주는 그때 유부녀였다. 임자가 있는 몸인데도 저랬다는 소리다!] 그러다보니 박녹주는 김유정이라면 질색을 했다. 특히 김유정 때문에 박녹주가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가 한 행동은 사랑을 핑계로 극심한 민폐를 끼쳤을 뿐이다. 그래도 결국 김유정에게 동정심이 없진 않았는지 김유정의 친구인 안회남이 김유정이 죽고 난 뒤 오히려 자신더러 김유정을 죽인 살인자라며 매도하는 안회남에게 그때 손 한번 잡아주기만 했더라면 그렇게 죽지 않았을거라고 동정했다고 한다. 스토커에 시달리다 못해 그의 친구마저 되려 자신을 매도하려 했음에도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어찌보면 정말 대인배다.
  • 박동진 (1922년) . . . . 11회 일치
         1951년 외무부에 들어와, 의전국장, 주 국 참사관, 외무부차관, 주 월남 대사, 주 브라질 대사(1962년 10월~1968 2월)<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82100329201006&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62-08-21&officeId=00032&pageNo=1&printNo=5173&publishType=00020 브라질 大使에 朴東鎭氏] 《경향신문》1962년 8월 21일, 1면. <!--“最高會議 第63次 常任委員會는 21日 越南共和國駐箚大使 朴東鎭氏를 「브라질」合衆國特命全權大使로,...”--></ref><ref>{{서적 인용 |저자 = 외교통부 |제목 = 한국 외교 60년 |url = 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장 = 부록 |확인날짜 = 2015년 2월 21일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60303211841/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보존날짜 = 2016년 3월 3일 |깨진링크 = 예 }}</ref>{{Rp|496}}, 페루 겸임대사<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4042900209201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4-04-29&officeId=00020&pageNo=1&printNo=13079&publishType=00020 朴東鎭브라질大使 駐『페루』大使兼任]〉 《동아일보》(1964년 4월 29일) 1면 <!--“政府는 駐「브라질」大使朴東鎭씨를 駐「페루」大使도 겸임토록 28일하오 國務會議에서 議決했다.”--></ref>, 주 제네바 대사, 주 유엔 대사,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11대.12대), [[대한민국 통일부|국토통일원]] 장관을 역임했다. 외무부장관으로서, 1976년 3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리타우딘 말레이시아 외무부 장관과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31900329201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3-19&officeId=00032&pageNo=1&printNo=9377&publishType=00020 |제목= 貿易強化에 합의...韓․말聯 공동성명 |출판사 = 경향신문 | 날짜 = 1976-03-19 |인용문=<!--朴東鎭외무부장관과 리타우딘 말레이시아외은 19일 공동성명을 발표, 평화․자유․번이라는 공동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아시아 제국간의 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朴장관은 지난 17일부터 3일간 말레이시아를 공식 방문한 후 발표한 이 성명에서...--> }}</ref> 1988년 4월 22일 한국 정부는 박동진을 주미대사에 임명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4220020920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4-22&officeId=00020&pageNo=1&printNo=20477&publishType=00020| 제목 = 駐美大使 朴東鎭씨| 날짜 = 1988-04-22| 출판사 = 동아일보}}</ref> 박동진은 당시 민정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었으나, 주미대사로 부임함에 따라 의원직을 사퇴하였고, 민정당 전국구 예비후보 11번인 김종열이 5월 13일자로 의원직을 승계하였다.
         * [http://www.mofat.go.kr/mofat/mk_a007/mk_b041/mk_c90/1172571_27881.html 외교통부]{{깨진 링크|url=http://www.mofat.go.kr/mofat/mk_a007/mk_b041/mk_c90/1172571_27881.html }}
         |전임자 = [[김재순 (정치인)|김재순]](10대 정무차관)<br/>[[이수 (1921년)|이수]](10대 사무차관)
         |후임자 = [[신철 (1924년)|신철]]
         |후임자 = [[노신]]
         {{국가보위비대책위원회 위원}}
  • 박정수(정치인) . . . . 11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3478><#FFFFFF><-5><:> {{{#003478 ''' 대한민국 ''' }}} {{{#003478 ''' 외교통부 ''' }}} {{{#003478 ''' 장관 ''' }}} ||
         ||<width=30%> 제26대 [br] [[유종하]] ||<width=5%><:> → ||<width=30%> 제27대 [br] ''' 박정수''' ||<width=5%><:> → ||<width=30%><:> 제28대 [br] [[홍순]]||
         1932년 2월 9일 [[경북도]] [[김천시|김천군]]에서 태어났다. [[김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이던 195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958년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65년에는 부인 [[이범준(동명이인)|이범준]]과 함께 미국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1968년 무임소장관 보좌관을, 1973년 [[국민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시-금릉군-주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의 [[백남억]] 후보를 누르는 한편 무소속 [[정휘동]] 후보와 동반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참고로 부인 [[이범준(동명이인)|이범준]]은 1973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 되어 남편 박정수보다 일찍 정계에 입문하였다. 1979년 6월 [[이후락]], [[최치환]],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변정일]], [[김수(정치인)|김수]], [[박용기]], [[함종빈]], [[윤재명]], [[정휘동]], [[임호(정치인)|임호]], [[임득]], [[한갑수(정치인)|한갑수]], [[홍성우(1941)|홍성우]], [[권오태]] 등과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고 나서도 정치규제를 당하지 않아서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시-금릉군-주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정휘동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정의당 [[김구]] 후보와 [[신한민주당]] 이재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국제의원연맹 집행위원에 임명된 이듬해인 1996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월드컵]] 유치에 전념하겠다는 이유로 [[신한국당]] 전국구 의원직을 요구했다가 신한국당 수뇌부에 의해 거절당하였다. 이 황에서 외교전문가 입에 몰두하던 [[새정치국민회의]]에 전국구 의원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입당해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의원이 되고 부총재를 역임한다.[* 이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박정수를 포함한 보수적 인사들을 입하려 노력하였고, 그 결과 [[오유방]], 정희경 등 민주정의당 출신 인사들이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의 초대 외교통부(현 [[외교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해 5월의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문화 개방 및 '''천황'''의 방한을 원하신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리고 그 해 7월에는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원의 강제추방 사건에 맞대응해 서울 주재 러시아대사관원인 올레그 아브람킨 참사관을 강제추방한 것이 화근이 되어 5개월 만에 장관직에서 경질된다. 이후 1998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에 복귀했다.
  • 배상면 . . . . 11회 일치
         '''배면'''(裵商冕, [[1924년]] [[9월 22일]] ~ [[2013년]] [[6월 7일]])은 [[대한민국]]의 기업가이다. 호는 우곡(又麯, 또 누룩을 생각한다는 의미).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대한민국 전통주 시장을 개척했다.<ref>[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07/2013060703105.html 전통주 외길 '배면' 국순당 창업자 별세] 조선비즈, 2013년 6월 7일</ref> 본관은 [[달성 배씨|달성]].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농예화학과 졸업하고 1952년부터 대구에서 기린 주조장을 경하며 1960년 기린 소주를 개발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303181 연합뉴스, 국순당 창업자 배면씨 별세]</ref> 1983년 [[국순당]]의 전신이 된 배한산업을 설립하고, 1991년 [[백세주]]를 개발했다. 2002년에는 배면 주류연구소 설립했다.
         * [[배중호]](장남): [[국순당]] 운
         * [[배혜정]](장녀): [[배혜정도가]] 운
         * [[배호]](차남): [[배면주가]] 창업
         * 《과실 및 약용식물을 이용한 가양주 만들기》(홍선천, 배면)
         * 《도전 없는 삶은 향기 없는 술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5194161 뉴시스, 60년 전통주 외길 '배면' 국순당 창업자 별세]</ref>
  • 북유럽 신화 . . . . 11회 일치
         [[북유럽]] 일대에서 [[게르만 민족]]을 중심으로 전해진 신화를 뜻한다. 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나 [[독일]] 등 게르만 계열 민족이 활동했던 역에 전파되었다. 북구신화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북구'는 '북 [[구라파]](=유럽)'의 준말이다. 사실 북유럽에는 게르만 민족 말고도 다른 민족도 살았지만 게르만 계열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체계적인 내용이라 '북유럽 신화'라고 하면 곧 게르만 계열의 신화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좋게 말해서 무적, 나쁘게 말해서 야만적인 게르만 민족의 신화인 만큼 당히 폭력적이고 과격한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북유럽신화는 크게 창세신화와 라그나로크로 대표되는 종말신화로 나누어진다. 창세신화와 라그나로크를 사이에 두고 신들이 벌였던 여러가지 행적이 일화적으로 신화로 남아 있다. 또 여러 인간 웅들의 사적들도 신화로서 남아 있다.
          * [[토르]] : 가장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실질적인 [[주인공]]. 웅적인 업적을 가장 많이 보여주기도 했다.
         === 웅, 인간 ===
          * [[지크프리드]] = [[시구르드]] : 북유럽 신화의 대표적인 웅. 생각보다 딱히 제대로 한 건 없는 것 같다.
          * 에인헤야르 : 오딘이 모은 전사. 오딘은 전쟁에서 승리를 약속하지만, 어느 순간 때가 되었다 싶으면 [[발키리]]를 보내서 강제로 [[전사]]시켜 버리고 혼을 끌고 오는데 이것이 에인헤야르이다. 발할라라는 [[무간지옥]]에서 매일매일 싸우다 죽고 싸우다 죽는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라그나로크가 오면 순삭당할 운명이지만 자신들은 싸움을 실컷 하고 저녁에 술과 고기와 여자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으며 '[[오늘만 산다|오늘만 사는]]' 가치관의 사람들.
          * 발할라 : 오딘이 모은 전사 '에인헤야르'들이 가는 곳. 일단 [[천국]] 취급이지만 [[무간지옥]]과 비슷하여 매일매일 싸우다 죽고 강제 부활하여 다음날 다시 싸우다 죽기를 반복한다. 대신 일반 지옥과는 달리 [[술]]과 [[고기]]가 제공되며 [[발키리]]가 시중을 들어준다는 점에서 100% 나쁜 곳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정인들은 도저히 천국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괴이한 곳이다.
          * 묘르닐 : 토르가 쓰는 [[망치]]. "뮬니르"라고도 한다. 토르의 [[번개]]를 징한다고 볼 수 있다. 신화 내내 '''궁극최악살육병기'''로서 온갖 괴물과 적들 (주로 요툰의) 골통을 부수는데 사용된다. 정타를 맞으면 어떤 괴물이라도 일격에 헬님 곁으로 퇴장하는 무시무시한 병기. 본래 손잡이가 짧다는 결함이 있어 셋트가 되는 쇠장갑이 없으면 토르도 제대로 쓸 수 없지만 이 점은 많은 대중문화에서 폼이 안 난다고 생각했는지 무시된다.
  • 블랙 클로버/111화 . . . . 11회 일치
          * 샬롯은 남탕 쪽에서 [[야미 스케히로]]가 알몸 태로 어슬렁거리는걸 하고 모에사 당한다.
          * 우여곡절 끝에 참가자 전원 무사히 유트림 화산 정을 정복했다. 유트림 화산은 밤이 되면 분화를 멈추고 휴면에 들어간다.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은 일행 중에 낮 동안 다 올라오지 못했던 인원은 추려내서 내일 추가 등정을 시키고 일단 전원 온천욕을 하자고 한다. 그런데 어디에도 새까만 화산바위만 있을 뿐 온천은 보이지 않는다.
          * 샬롯이 메레오레오나에게 잡힌 사이 마론은 [[노엘 실버]]의 머리를 감겨주며 포교활동에 들어갔다. 노엘의 근성을 높이 사면서 푸른 들장미단으로 이적하기를 권하는데 푸른 들장미단은 성비가 좀 비정이라 대부분 여성 단원이고 남자는 극소수. 대체로 비실거리는 놈들이라 잡일꾼이다. 마론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끌어들여 잡일꾼으로 써먹으려고 했는데 생각외로 강해졌다고 아쉬워한다. 노엘은 자기는 검은 폭우단이라고 사양하지만 그래도 남자들이 잡일꾼이란 말에 "나쁘지 않겠다"고 솔깃해한다.
          * 한편 메레오레오나의 술권유를 어떻게든 뿌리친 샤론은 문득 칸막이 너머를 하는데, 거기서 [[야미 스케히로]]가 알몸으로 어슬렁거릴 생각을 하자 열이 올라서 그대로 리타이어. 마론이 식혀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한다. 탕에는 메레오레오나와 노엘만 남는데, 메레오레오나 측이 노엘에게 할 말이 있었다. 그녀는 넌지시 "점점 더 어머니를 닮아간다"고 말을 건다. 마치 그녀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격려를 얻은 노엘은 밝게 대답한다. 그런데 어쩐지 물온도가 갑작스럽게 승해서 깜짝 놀라는데.
          * 남탕 쪽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레오폴트 버밀리온]]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를 대로 시시한 경쟁심을 발동했다. 그의 쿨한 태도를 무너뜨려 주겠다고 물온도를 올려대기 시작한 것. 레오폴트가 나름대로 용을 쓰는데 유노는 빰을 뻘뻘 흘리면서도 "완전 괜찮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끼어들어서 그 허세를 폭로한다. 쿨한게 아니라 단순히 지는게 싫은 성격. 그렇게 까발린 주제에 자기도 지고 싶지 않다며 참기 대결에 끼어든다. 정작 유노는 바람 마법으로 물을 식히다가 적발, 자기도 마법의 힘을 쓰는 건데 뭐가 잘못됐냐고 뻔뻔하게 나온다.
          * 젊은 애들을 파멸로 몰아넣고 만족해하는 야미. 왠일인지 조용히 있는 아스타에게도 "따라갔다 오라"며 껄껄 웃는다. 언제나 야미에게 선동 당했던 아스타. 그런데 이번에는 "나는 시스터를 소중한 사람으로 정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는 선비스러운 일갈과 함께 거절한다. 마치 찬물을 뿌린 것 같이 된 남탕. 이한 열기를 식혀버린 탓인지 결국 파국은 없이 온천합숙이 종료된다.
  • 블랙 클로버/127화 . . . . 11회 일치
          * 비장의 기술을 꺼낸 [[랜길스 보드]]. 공교롭게도 형 [[핀랄 룰러케이트]]이 구사하는 구체형태의 공간마법과 유사한 형태였다. 하지만 한 번에 만들어내는 구체의 숫자가 대가 되지 않는 수준. 흉흉한 기운을 드러내며 공격을 태세를 취한다. 그런데 핀랄 또한 그 기술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핀랄도 사실 구체의 공간마법을 다수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핀랄은 "어머니는 다르지만 역시 우리는 형제"라며 이대로 두면 랜길스가 랜길스가 아닌 무언가가 될지 모른다며 승부에 나선다.
          * 핀랄은 몰랐지만 보드가의 모두 사람이 랜길스를 지지했던건 아니다. 고용인들 사이에선 재능은 뒤쳐져도 냥하고 대인관계가 좋은 핀랄을 높이 평가하는 여론도 있었다. 랜길스는 그걸 의식하고 있었고 자신도 형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피네스" 양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식을 떨쳐낼 수도 없던 것이, 누구보다 자신이 핀랄을 냥한 형이라 인정했기 때문이다. 핀랄은 부모의 냉대를 받으면서도 랜길스를 챙겨주는 좋은 형이었다. 하지만 그런 배려가 랜길스를 더욱 자극했고 비뚫어지게 만들어 "내가 우수하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므로 무엇 하나 형에게 져선 안 된다"는 아집을 키우고 말았다.
          * 이미 승부가 났음에도 랜길스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는 핀랄이 사라져야 한다며 의식도 차리지 못하는 형을 공격하려 했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 [[매그너 스윙]], [[락 볼티어]]가 저지하고 나선다. 관중석에 있던 이들이 어느 새 날아와 랜길스의 목을 겨눴다. 비록 대회장에 난입하진 않았지만 [[챠미 퍼밋슨]]도 그리모어를 펼쳐들고 요격할 태세였으며 [[노엘 실버]]는 제일 먼저 핀랄의 태를 확인하러 달려갔다.
          * 아스타, 매그너, 락은 더이 손을 대면 시합이고 뭐고 날려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나 랜길스는 "검은 폭우가 금색의 여명 부단장에게 무슨 소리냐"며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때 마법제 율리우스까지 개입하면서 랜길스도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마법제는 동료에게 실력을 숨기는 사람을 신용할 수 없긴 하지만, 동료를 죽이려 드는 녀석은 신용 이전의 문제라고 비난했다.
          * 핀랄이 치료를 받는 사이, 아스타가 랜길스에게 말했다. 키텐에서 마주쳤을 때도 핀랄은 랜길스를 탓하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랜길스는 본래 냥한 성격인데 자신의 존재로 인해 압박을 받아 날카로운 성격이 된거라고 자신을 탓했다. 아스타는 그 일을 밝히며 "누구보다 냥한 핀랄 선배야 말로 진짜 마법기사고 랜길스는 아무리 강해도 진정한 마법기사가 아니다"고 단언한다.
          * 랜길스는 아스타의 비난을 듣고도 "검은 폭우의 신입 주제에 입만 살았다"고 비웃는다. 그러면서 마법제 면전에서 "먼저 이놈들하고 시합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듯 했는데, 성난 표정으로 돌변해 허락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아스타를 공격한다. 하지만 아스타도 그런 수작을 예이라도 한 것처럼 랜길스가 던진 공간마법을 단칼에 잘라내고 칼끝을 겨눈다.
         == 세 ==
  • 블리치/675화 . . . . 11회 일치
          * 이건 사실 폭주 태로 정신 태도 고양이처럼 변한다
          * 이 태가 되면 요루이치의 기분에 따라 압이 1초에 48번까지 변한다
          * 이 태를 제어할 수 있는건 우라하라 키스케 뿐. 요루이치가 마구 달라붙는다
          * 우라하라가 주입한 "면역제"는 약 5분 정도 지속. 시간이 흐르자 고양이 태의 요루이치도 괴로워한다.
          * 우라하라는 충분히 이겼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스킨은 "하스하인"(신의 독견) 태로 부활한다
          * 순홍으로 전신을 감싼 태기 때문에 '''올누드'''
          * 이 태에서는 뭔가 고삐가 풀리는 건지 '''우라하라에게 만은 메가데레''' 태가 된다.
  • 선조 . . . . 11회 일치
         ~~[[인조]]와 함께 조선 최악의 왕 투톱 / 연산군이나, 망국의 군주 고종까지 합해서 '조선조 암군 F4'라는 사람도 있다 카더라~~[* 다만 고종의 경우에는 앞의 세 사람과 동급으로 비교할 정도는 아니고, 일제강점기를 막지 못한 부분이 이미지향을 미쳤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천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 한 몸 살겠다고 요동 너머로 도망치려 들고[* 결국 명나라가 우회적으로 거절하여 무산됐지만... ~~스탈린도 그런 짓은 안 했다!~~], 조정으로부터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한 태에서 분조를 이끌면서 왕조의 권위를 어떻게든 살리려한 세자에게 격려를 못할 망정 양위소동을 일으키지 않나[* 다만 이건 당시 선조가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왕권이 최약이던 때이기도 했다.], 이순신을 견제하기 위해 원균을 밀어주지 않나(...)...
         왜란 이후에도 그의 삽질은 계속되어, 당시 세자인 '''광해군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인목왕후를 들이지 않나[* 사실 이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충공깽이지만, 관례적으로 중전의 지위를 공석으로 놔둘 수 없었던 조선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중전은 궁녀들의 모임인 내명부를 통솔하는 안주인 역할을 맡고 있다. 중전은 단순히 사적인 '왕의 배우자'가 아니라, 업무를 통솔하는 직책이기도 하므로 중전이 부재하면 궁궐의 기능에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중전은 정치적으로 왕권과 후계의 안정에 큰 기여를 한다. 문종 때 새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단종이 '수렴청정'을 통한 왕권 수호를 받지 못한 것이 세조의 쿠데타를 쉽게 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인목왕후는 오히려 불안정만 불러왔지만--], 심지어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인 [[창대군]]을 [[유경]]등과 합해 나중에 창대군이 좀더 장성할 때 왕위에 오르게 하려고 했다! 그것때문에 광해군은 비정적으로 보일 정도로 왕위에 집착하게 되고, 창대군의 최후와 [[인조반정]]의 원인에 어느 정도 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11회 일치
         도시 공을 비행하던 카라는 자신을 쫓던 비행 드론을 발견하고 격추시킨다. 자신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행크를 추궁하지만 DEO의 것이 아니었다.
         캣 그랜트는 시겔 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 카터를 돌볼 수 없게 되어 시식에 갈 수 없었는 황이었다. 카라는 자신이 카터를 돌봐주겠다고 나서서 그랜트에게 호감을 산다.
         행크와 알렉스는 맥스웰 로드를 추궁하지만 맥스웰은 관계를 부인한다. 카터는 슈퍼걸 뉴스를 보자 엄청나게 흥분하여 슈퍼걸의 팬심을 드러낸다. 카라는 제임스와 대화를 하는데 루시 레인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매우 떨떠름한 황에 놓인다.
         알렉스는 호위를 명목으로 맥스웰 곁에 붙어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맥스웰이 연구소에서 폭탄이 발견되고, 맥스웰은 해체를 시도하지만 실패하여 오히려 카운트가 더 빨리 돌아간다. 알렉스가 전화를 해오자 카라는 윈에게 카터를 돌보는걸 맡기고 알렉스에게 날아간다. 폭탄을 가지고 날아간 카라는 공에서 폭발시킨 다음 충격을 받고 바다에 떨어진다.
         공항이냐 열차냐 하는 황에서 카라는 윈의 말을 믿고 열차로 향한다. 카라는 열차에 나타나서 카터와 맥스웰에게 승객들을 대피시키라고 부탁한다.
         제임스는 공항에서 루시와 재회하여 감격의 포옹을 나눈다. 행크는 알렉스를 내보내고 혼자서 폭탄을 대한다. 카라는 에단을 쫓아가는데 에단은 폭탄을 몸에 두르고 고도계가 장착되어 있어 열차를 벗어나면 폭발한다고 외친다.
         알렉스와 카라는 이 사건의 수함을 느낀다. 하지만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카라는 카터를 방치해두고 있었다는걸 깨닫는다. 카터는 슈퍼걸을 만난 경험을 그랜트에게 열렬하게 말하는데, 그랜트는 카라가 방치했다는걸 알고 다시는 안 맡길 것이라고 단언한다.
         제임스는 루시와 다시 맺어졌고 카라는 심한다. 카라는 맥스웰 로드의 인터뷰를 보고 수함을 느끼고, 윈에게 조사를 해보라고 한 다음 맥스웰 로드가 에단의 딸에게 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다는걸 알려준다. 카라는 맥스웰 로드를 찾아가서 추궁하고 맥스웰 로드는 자신이 카라를 감시하고 있었다는걸 밝힌다.
  • 식극의 소마/179화 . . . . 11회 일치
          * 소마는 린도를 대로 생각했지만 사실 아니었다. 다른 십걸이 올 거라는데.
          * 린도는 일행을 목적지의 호텔로 안내하며 진짜 대는 다음날 나타날 거라고 말한다.
          * 시오미 세미나는 그냥 "망했다"고 일축. 자신은 정의 자리를 손에 넣었다며 소마에게 퇴학이 걸린 식극을 시작하자고 말한다.
          * 린도는 십걸이 대임을 말한 이후에 소마로부터 "린도 선배가 대라던가"라는 말을 듣는다.
          * 여기까지는 정했던 전개지만 설마 십걸이 나올지는 예치 못했다.
          * 린도는 그건 시험관들이 멋대로 한 짓이지 자기들하곤 관없다고 선을 긋는다.
          * 그때 린도에게 연락이 오는데 소마 일행의 대전 대가 결정되었다.
          * 소마는 지금까지 만났던 십걸을 세어보며 "만난 적이 없는 십걸"이 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데.
          * 그는 소마와 기숙사생들의 투쟁을 비하하며 소마가 어물대는 사이 자신은 정점에 올랐다고 으스댄다.
  • 식극의 소마/199화 . . . . 11회 일치
          * [[도지마 긴]]과 [[사이바 죠이치로]]는 아자미의 대두를 직감한 시점부터 전략을 짜고 있었다.
          * 츠카사는 레분토 섬에서 연대식극을 벌인다는 소식을 처음 듣는다. 그것을 전한 [[나키리 아자미]]는 어쩐지 들떠서 기분 나쁘다. 아자미는 십걸 멤버들을 레분토 섬으로 집결시키도록 지시하고 거기서 모든걸 마무리 짓겠다고 말한다. 츠카사의 방을 나온 아자미는 [[사이바 죠이치로]], [[도지마 긴]]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며 죠이치로가 떠나던 모습과 그걸 지켜보던 자신의 비뚫어진 애정을 회한다.
          그 죠이치로가 자신의 항복을 조건으로 식극을 제안하고 있다. 아자미는 "요리인이 길을 잃는 일이 없는 세"을 만들어 토오츠키 학원과 요리계를 구원하겠다고 중얼거린다.
          * 아자미의 대두와 토오츠키의 위기는 도지마 긴이 사전에 감지한 바였다. 그는 죠이치로에게 이런 사실을 담했으며 원인은 두말할 필요없이 죠이치로임에 의견이 일치했다. 두 사람은 그런 야망이 이루어지도록 둘 수 없다고 보고 만약 아자미가 내세운 명분의 발단인 죠이치로가 자신을 걸고 식극을 청하면 반드시 넘어올 거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 도지마와 죠이치로는 이러한 합의에 대해서 각각 털어놓고 있다. 죠이치로는 아들 [[유키히라 소마]]에게 관도 없는 그들 세대의 승부를 이용하게 된 점을 사과한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문득 소마를 쳐다보니, 코방울까지 달고 신나게 졸고 있다. 물론 아들에게 "적당히 흘려들어라"곤 했지만 너무 흘려들어 버렸다. 그래도 핵심은 전달됐다. 소마는 자기 아버지가 아자미에게 지독한 짓을 한게 원인이지 않나 우려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소마는 그 점을 다행으로 여긴다.
          하지만 타쿠미 쪽에서 단호한 태도로 사과를 거절한다. 오히려 이들의 작전이 없었다면 이번 식극이 성립하지도 않았을 테니 도움을 받은 거라며 말이다. 타쿠미는 타도코로와 함께 아자미 정권을 반드시 타도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타도코로도 여느 때와 다르게 적극적인 태도로 동참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참을 인자를 손바닥에 새기는게 불안하다.
          소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며 심리전이라면 간단히 넘어가지 않는다고 받아친다. 자신과 다른 아들의 강함. 그게 소마의 강함이라고 죠이치로는 생각한다. 그저 장애물을 극복하고 고통스럽게만 여겼던 자신과 달리, 고난 자체를 즐기고 받아들이는 것. 죠이치로는 아들이 그때 자신의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해 보지만,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 같은 시각, [[나키리 에리나]]는 자기 방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 조부 [[나키리 센자에몬]]이 방문하는데 손녀를 걱정한 듯 하다. 그 걱정대로 에리나는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 아니, 확실히 두려움에 경직돼 있다. 아버지에게 맞선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움츠러들고 식은땀을 흘릴 지경이다. 센자에몬은 손녀의 심치 않은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 그때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나머지 일행이 우르르 몰려온다. 죠이치로는 훈련에 대한 공지사항이 있다며 가볍게 말하는데 도지마는 "그렇게 가볍게 할 말이 아니다"라며 버럭한다. 학생 때랑 달라진게 없는 모습이다. 에리나는 이들이 왜 티격태격하는지, 자신이 혼자 있는 사이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사실 같이 있던 타쿠미와 타도코로도 애들처럼 구는 어른들 모습에 기가 질려하고 있다. 소마만 낄낄거리며 즐기고 있다.
  • 식극의 소마/207화 . . . . 11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의 대 [[키노쿠니 네네]]는 주전공은 일식. 하지만 메뉴가 뭐든 소마를 쳐부순다고 소마에게 메뉴를 선택하게 한다.
          * 한편 아주 수한 사람들이 이 경기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 반역자 군단의 최후의 카드는 놀랍게도 [[잇시키 사토시]]. 십걸의 자리를 잃었다곤 하나 여전히 고학년으로서 이런 자리에 나올 필요가 없는 그였다. 하지만 후배들을 돕기 위해 매우 정적인 차림으로 레분토까지 날아왔다. [[요시노 유키]]를 비롯한 쿄쿠세이 기숙사 학생들은 잇시키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표현한다. [[사카키 료코]]는 이 승부에서 지면 잇시키까지 퇴학처리 되는거 아니냐고 우려하는데 잇시키는 귀여운 후배들을 위해 그런건 싸우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일동을 감동시킨다.
          * 각 대결은 메뉴가 적혀진 제비를 뽑아서 결정한다. [[유키히라 소마]]는 첫 대결의 메뉴선택을 대인 [[키노쿠니 네네]]에게 양보한다. 하지만 그녀는 공정한 승부를 원한다며 소마 쪽에게 우선권을 준다. 그녀는 속임수를 싫어하는 성격으로 같은 십걸인 에이잔도 부정한 짓을 저지른 녀석이라며 경멸한다. 관중석에서 반역자를 야유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것도 "더러운 야유는 싫다"고 차갑게 노려보는데 어쩐지 관중석의 남학생들은 그 차가운 시선이 더 좋다며 심쿵한다. 그리고 쿠가는 왠지 구경하는 주제에 "저 땋은 머리는 언제나 날이 서 있고 오늘은 아마도 생리"일 거라고 도발해댄다.
          * 소마는 우리에 갇힌 친구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운이 없냐"고 원망을 듣는다. 하지만 소마가 신경 쓰는건 네네 쪽. "내가 일식만 하는 요리인이라고 생각하지 마라"같은 소리를 해놓고 이런 결과가 나와버린 탓에 당히 민망해하고 있다. 그래도 일단 재료준비는 착실하게 하고 있다.
          소마의 악운에 울짓던 반역자들은 곧 네네의 탁월한 기술에 정신이 팔린다. 네네의 손이 반죽그릇 안을 춤추는 것처럼 화려하게 휘젓자 메밀가루가 빠르게 모양이 잡히면서 이적인 반죽으로 변해간다. 아자미는 이거야 말로 기술이라고 중얼거리며 승부에 자신감을 내비친다.
          * 이렇게 동료들은 물론 자신들의 목숨줄까지 쥐고 승부에 임하는 소마. 그런데 그 소마가 소바의 달인을 대로 선택한 메뉴는 '''컵 야키소바'''였다. 그 황당한 선택에 화낼 기력도 없어진 동료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뭔 소리야"는 태클을 날린다.
          한편 네네는 대인 소마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옆 조리대의 잇시키를 더 의식하는 것 같은데.
          * 그리고 이 대결은 토오츠키 학생들만이 아닌 외부인에게도 보여지고 있다. 엄청 수한 모습의 세 사람이 중계를 지켜보며 수한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데.
  • 식극의 소마/215화 . . . . 11회 일치
          * 레분토 결전 1라운드 세 번째 스테이지의 승자는 [[유키히라 소마]]. 모두의 예을 뒤엎은 승리. 십걸 6석 [[키노쿠니 네네]]는 패배를 인정하고 조용히 안경을 벗는다. 소마의 동료 쿄쿠세이 기숙사 학생들이 대환호. [[요시노 유키]]는 소마의 행보에 계속 불평만 해놓고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고 개드립을 친다. 어쨌든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로 승리를 축하하는 소마.
          * 네네는 우두커니 서서 적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쳐다보고 있다. 그때 십걸 진에선 유일하게 [[코바야시 린도]]가 그녀를 챙기러 온다. 그녀는 좀 소란스럽게 네네를 위로하며 수건으로 얼굴을 덮어준다. 그러면서 "아무 말도 안 해도 좋다"고 자꾸 말하는데 애초에 네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잇시키를 대할 요리에 전념하던 쥬리오는 자신이 네네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며 기세를 올린다. 그런데 승부의 대인 잇시키는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조리 중에도 다시금 소마와 네네에게 시선을 던진다. 소마와 네네 모두 그 눈짓을 눈치챘다. 린도는 그가 바라보는 의미를 파악한 것 같다. 그는 이 시합에서 대인 쥬리오만이 아니라 소마나 네네, 그리고 센트럴을 포함한 전언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려 한다고 추측한다.
          * 그때 먼저 음식을 완성한 쥬리오가 심사의원 앞으로 나아간다. 그가 자신있게 내놓은 요리는 "카피토네 인 우미드". 토마토의 큼한 향과 장어의 농후한 맛이 응축된 이탈리아 요리다. 소마는 외견과 향기는 대단한 임팩트라고 평하지만 이탈리아 요리에 조예가 없어서인지 그 이은 파악하지 못한다. 알디니가 설명하길 "인 우미드"는 "찜요리"를 뜻하고 "카피토네"는 장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저 요리는 단지 그것만이 아닐거라는 늬앙스를 풍기는데.
          마침 맛 첫 한 입을 맛본 [[안(식극의 소마)|안]]에게서 탄성이 나온다. 장어의 맛과 기름이 올리브 오일과 토마토의 향으로 더욱 끌어올려졌다. 그녀는 "카피토네를 완벽하게 조리했다"고 평한다. 타쿠미의 예대로 "카피토네"란 그냥 장어가 아니었다. "암컷 대형 장어"를 뜻하는 말로 크리스마스 식탁에 오르는 재료. 사이즈가 크고 두꺼우며 기름기가 많아 고급품으로 취급한다. 일반적으로 쓰는 장어는 "앙길라"라 지칭.
          * 기세가 등등한 대를 앞에두고도 잇시키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호언에 맞서 "물론 그럴 생각"이었다고 받아친 잇시키는 마침 "비장의 재료"도 썼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그의 조리대에는 후배들에게 익숙한 물건들이 있었는데. 그건 후배들이 기숙사에서 평소 사용하던 평범한 재료를 그대로 가져온 것들이었다.
          위풍당당한 잇시키의 모습과 달리, 후배들은 그가 미덥지 않다.
  • 신혼부부 함정구멍추락 사망사고 . . . . 11회 일치
         || 사건을 편집한 CG ||
         == 세 ==
         본래는 남편 유우키만 떨어뜨리려는 계획이었으나,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 불빛에만 의존해서 걸어가던 황이라 리사도 함께 빠져버렸다. 이 해변은 과거에는 해수욕장이 있었으나, 현재 업을 하지 않아 야간에는 어두운 곳이었다.
         || 추락황 ||
         데무라 부부는 머리부터 추락. 그런데 공교롭게도 시트에 뿌려둔 모래 만이 아니라 구멍 주위도 무너져서 대량의 모래에 묻혀버렸다. 부부가 떨어질 때 비명을 듣고 유우키가 함정에 빠지는걸 기다리고 있었던 리사의 친구들이 달려왔으나, 역시 해안이 어두워서 발견에 시간이 걸렸고 발견했을 때 이 부부는 구멍 바닥에서 모래에 묻혀 발만 모래 밖으로 나와있는 태였다. 부부는 모래에 묻혀 질식사 하고 말았다.
         친구들은 일단 자기들 스스로 구조 작업을 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는지 나중에야 소방서에 연락했다. 결국 구출할 때까지는 2시간 이의 시간이 걸렸다. 구급대원 2명이 끌어내서 병원에 이송됐지만 이미 늦었다. 부검 결과, 부부의 사인은 모래에 묻혔을 때 흉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였다.
         불행한 사망자 데무라 유우키의 부모는, 아내 리사의 부모와 구멍을 파는걸 도왔던 친구들 총 8인에게 약 9100만의 손해배을 요구하여 민사소송을 했다. 2014년 카나자와 지방재판소가 청구의 일부를 인정하여 8명에게 4133만엔의 지불을 명령했다.
         여담으로 일본 해안법에 따르면, 해안에서 깊이 1.5미터 이의 구멍을 파려면 지사의 허가가 필요하다. 해안의 땅을 1.5미터 이 굴착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만엔 이하의 벌금이 부가된다.
  • 야설록 . . . . 11회 일치
         | 주요 작품 = 《[[불꽃처럼 나비처럼]]》<ref>소설《불꽃처럼 나비처럼》은 화《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원작이기도 하다.</ref><ref>{{뉴스 인용 |제목 = '소설에나 나올 법한' 명성황후의 뜨거운 사랑 「 불꽃처럼 나비처럼」1, 2 (야설록/형설라이프) |url = http://www.unionpress.co.kr/detail.php?number=40521&thread=01r04r02r02 |출판사 = 유니온프레스 |저자 = 방송연예팀 기자 |쪽 = |날짜 = 2009-09-03 |확인날짜 = 2009-09-05}}</ref>
         | 향 받은 인물 =
         | 향 준 인물 =
         | 수 =
         | 웹 사이트 =
         * 前 [[와이디온라인]] 임 고문
         * [[2003년]] 《곤륜애사》<br />《검후일랑》<br />《환특급》<br />《몽유도원경》<br />《강호구룡행》
         * [[1999년]] 《동풍》{{ISBN|978-89-339-0049-9}}<br />《역천기행》4<br />《북경야》<br />《혈한록》<br />《웅풍진중원》<br />《파천무》<br />《비익조》<br />《광생록》<br />《백야고검》<br />《웅전기》<br />《질풍강호 생사주》<br />《만등칠일》<br />《패륜검》<br />《귀수》<br />《살수전기》
         * [[1987년]] 《구대문파의 웅들》
         == 수 ==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만화 스토리 작가]][[분류:무협 작가]][[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영생 . . . . 11회 일치
         생,永生
         원한 삶이라는 뜻. 그 자체로는 [[불로불사]]와 같은 뜻이지만, 이 말은 주로 [[기독교]]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교리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기독교]]에서는 [[불사]]라는 말보다 생이라는 말을 선호하며, 기독교에서는 교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은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며, 그에 걸맞게 생의 형태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존재한다.
         다소 사이비 스러운 [[간증]]에서는 천국에서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크고 아름다운]] 집에서 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등 당히 세속적인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묘사가 흔히 있는 반면, 엄격한 종파에서는 극도로 경건하고 종교적인 모습의 이향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이 단어에서 이름을 따온 [[사이비 종교]]로서 [[생교]]가 있다. 그러나, 교주가 사망(…)하면서 거의 와해되고 말았다.
  • 오국영 . . . . 11회 일치
         '''오국'''(吳國泳, <small>일본식 이름: </small>大原國泳, [[1889년]] [[10월 26일]]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출신 기업인으로, [[대한민국]]에서도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출신지는 [[경북도]]이다. 경성학당을 졸업하고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일제 강점기 초기에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했다. [[함경남도]] 내무부에서 근무하던 중 [[1910년대]] 후반에 총독부 군수로 발탁되었다. [[이원군]] 군수로 수년 동안 재직했다가 병으로 퇴관했다. 이때 정8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이후 [[경성부]]에서 잡지 《천민》을 발행하면서 청년 지도에 뜻을 두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의성양조주식회사 전무취체역과 사장을 지내고 의성군주조조합장을 맡는 등 의성군에서 양조업 기업을 운했다.
         경북도 평의원, 군농회의원, 금융조합장, 연초경작조합장, 관선 도회의원 등 지역 유지들이 맡는 직함을 두루 맡으며 활동했다. 경북도 도평의원이던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353명의 공로자 중 한 명으로 기재되어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당수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도 경북도자동차협회 이사를 지내고 [[남선전기주식회사]] 감사역으로 재직했다. [[1954년]]까지 남선전기 감사로 현직에 있었다.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8_10163|오국|吳國泳}}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8_30191|오국|吳國泳}}
         [[분류:1889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오영실 . . . . 11회 일치
         || '''이름''' ||<(> 오실(吳英實) ||
         || '''출생''' ||<(> [[1965년]] [[1월 30일]]([age(1965-01-30)]살)[* 프로필 으로는 [[1월 1일]]로 되어있다.][br][[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두길) ||
         || '''수''' ||<(> 2009년 SBS 연기대 뉴스타 ||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군인이었으며 오실이 7살 때 [[베트남 전쟁/한국군|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하셨다.
         2008년 [[아내의 유혹]]에서 [[정하늘]] 역을 연기하면서부터는 사실 연기자로 전업했다. 따라서 그 시점부터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정하늘이 연기 첫데뷔 캐릭터였는데 지적장애캐릭터여서 처음연기하기엔 부담스러운 캐릭터를 완벽하게 초월급연기력으로 잘 소화해내어 당시 큰 화제와 호평을 샀다.
         2010년 [[갑선암]]으로 수술을 받고 완치되었으며 이후에도 조연으로 꾸준히 활동중.
          * [[천의 약속]] - [[오만정(천의 약속)|오만정]] 역
          * [[더 이은 못 참아]] - 황선애 역
  • 우의형 . . . . 11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경력 = 청주지방법원장<br/>인천지방법원장<br/>[[남대학교]] 재단 이사장
         |웹사이트 =
         1948년 태어난 우의형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7년 [[서울가정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서울고등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법원행정처에서 조사심의관으로 지냈으며 2003년에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장, [[청주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퇴직한 2005년에 변호사 우의형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2009년 7월 22일에 제17대 남대 재단 이사장,<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7375.html]</ref> 2011년 11월 10일에 주식회사 화진 사외이사에 선임되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11111017081381674&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2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4년 5월 17일에 [[문고등학교]] 교장으로부터 1500만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된 국립교육평가원장 박병용에게 "유죄는 인정되나 큰 과오없이 30년간 공직생활에 충실했다"며 [[특가법]] 뇌물죄를 적용해 징역2년6월 집행유예3년 추징금15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4년 5월 18일자</ref> 1994년 6월 10일에 무대 사업과 관련하여 공사대금 189억여원을 유용한 혐의로 구속된 청우종합건설 전 회장 조기현에게 [[특가법]] 횡령, 사기죄 등을 적용해 징역5년을 선고했다.<ref>매일경제 1994년 6월 11일자</ref> 6월 14일에 접착테이프로 암달러의 입을 막고 금품을 빼앗으려다 전치2주 처를 입혀 구속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4년 6월 15일자</ref> 7월 15일에 [[범청학련]] 결성식에서 인공기를 게양하여 구속된 [[중앙대학교]] 총학생회장 김하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징역2년 자격정지2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4년 7월 16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특별1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1년 3월 22일에 이우자 [[문고등학교]] 재단인 동인학원 이사장 등 민선이사 6명이 서울시 교육감을 대로 낸 임원승인 취소처분 취소청구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0102350]</ref>
  • 원피스/825화 . . . . 11회 일치
         샬롯 패밀리의 디는 생각보다 정중이 대접받고 있다.
          * 비트는 거기에 빠져들었는데, 히어로 보다는 권모술수에 능한 제르마66의 팬이었다. 항 그쪽을 응원했다고.
          * 그래서 비트는 "진짜"를 만나서 흥분하고 있는데, 디는 그런 얘기는 "당사자"들한테 해주라며 자신은 빼달라고 한다.
          * 같이 잡혀온 시저 크라운은 "구속"돼 온 거라서 철창 신세. 그래도 일단은 디와 같은 방에 있다.
          * 디는 비트가 친근하게 굴 때마다 독설을 날리는데 그걸 들은 "고티"라는 살인 청부업자는 화를 낸다.
          * 디는 "닮았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듯--저렇게 생긴 애들이 더 있다고?--
          * 쵸파가 디가 남긴 도감을 보고 독이 있다는걸 알아내지만 성질 급한 루피는 먼저 처묵했다가 빈사에 빠진다.
          * 나머지 인원은 나미가 디의 메모를 토대로 안전하게 조리해서 포식--누가 코마츠 좀 데려와라--
          * 어느덧 "솜사탕눈"이 내리는 지역에 돌입했는데 이곳은 빅맘의 역이란 뜻이다.
          * 배에는 디와 닮은 듯한 얼굴의 사나이가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 어떻게 봐도 스릴러바크의 로라같은 얼굴이 나타나는데, 그쪽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디도 닮았다고만 생각하는걸 보면 확실히 본인인지는 아직 미지수.
  • 은혼/622화 . . . . 11회 일치
         * [[소타츠]]는 기껏 시간을 끌어서 이런 감이나 기다리고 있었냐 비웃는다.
          * [[시무라 타에]] 구출에 실패하고 함께 건물 밑으로 떨어지던 [[사카타 긴토키]]와 해결사 일행들. 하지만 건물 사이에 쳐져 있던 그물망에 걸려 위험을 면한다. 긴토키가 문을 모르는 채로 주위를 살피니 건물 안에서 야쿠자들과 어떤 소녀가 그물이 걸린 줄을 당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소녀는 "집 보느라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이제 괜찮다고 하는데.
          소녀는 [[도로미즈 피라코]]였다. 옥에선 [[도로미즈 지로쵸]]가 [[소타츠]]의 신라 부대와 대치중.
          * 소타츠는 "가부키쵸의 수호자"라는 지로쵸의 표현을 듣고 코웃음을 친다. [[오토세 여사]] 등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시간을 벌어서 고작 이런 감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냐고 하는데. 지로쵸는 지로쵸에게 혼자 나타난다고 전황이 바뀔 거라 보냐고 묻는다.
          옥에서 뛰어내린 지로쵸와 소타츠는 공중에서도 칼을 겨룬다. 둘은 떨어지면서 그물을 꿰뚫고 바닥에 착지한다. 소타츠는 지로쵸의 전력이 예을 웃도는지 당황한다. 지로쵸는 여유롭게 "사무라이에게 한 번 본 기술은 통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미 두 사람은 한 번 신라의 대병을 대로 무쌍을 펼친 바가 있다.
          * 소타츠는 이들이 과거 가부키쵸 사천왕이자 [[하루사메]]의 일원이었던 [[카다]]를 처치한 장본인이라는걸 깨닫는다. 그렇잖아도 일족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며 병력들을 더 불러낸다. 지로쵸는 자신이 처리하려 하지만 이번엔 피라코가 자신의 대라며 나선다. 자신은 이 마을과 해결사에게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그걸 전혀 갚지 못했으며 그대로는 지로쵸의 딸도 해결사의 막내도 되지 못한다며 "모두가 선물해준 이 이름을 걸고 의리를 관철해 보이겠다"고 선언한다.
          * 지로쵸는 긴토키를 먼저 죽은 친구 [[테라다 타츠고로]]와 겹쳐본다. 그는 비록 죽었지만 의지와 혼은 마을로 이어지고 긴토키에게 이어지고 있다. 비록 오토세는 할망구가 되고 자신은 감이 됐지만, 이 마을은 여전히 타츠고로가 사랑한 모습 그대로이다.
  • 은혼/635화 . . . . 11회 일치
          * 야토족 용병부대의 대장 "노사"는 일족 내에선 "장로"라 불리며 기공으로 가사태를 반복해 200년 이 살고 있는 괴물.
          * [[히라가 겐가이]]를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야토족 용병 부대 사이로 뛰어들었던 [[가구라]].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위기에 처하고 위험한 순간 [[카무이(은혼)|카무이]]가 나타난다. 용병부대의 지휘관 "노사"는 가구라가 지구인을 위해 헌신하는 걸 보고 "바보"라 비하하자 카무이는 적들을 날려보내고 "바보는 혼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조그만 별을 위해 전 우주를 대로 설칠 정도는 돼야
          * 카무이의 말처럼 전우주를 대로 싸우러 온 하루사메 함대. 전 삼흉성 [[바토우]]와 [[사루가쿠]]가 카무이의 동지로서 하루사메 잔당을 규합, 귀병대를 지원하러 온 것이다. 이들의 도착 소식에 [[다카스기 신스케]]는 "꽤 늦었다"며 쓴소릴 날리지만 바토우는 늦은 만큼 매꿔주겠다고 대꾸한다. 작전방침 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늦었다는데. 그들의 대장이 총대장인 주제에 곧 날아가버릴 지구로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어지간히 단세포인 사루가쿠도 두 손 들었다며 "대장이 당하기 전에 해방군을 처리한다"고 최종적으로 결정. 무엇보다 카무이는 그 지구에 해방군 전체보다 위험한 놈이 있다고 강변했다 한다. 신스케가 그 말을 듣고 "해방군은 그냥 시작에 불과하다"고 카무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자 사루가쿠는 자기도 내려가 볼걸 그랬다고 투덜거린다.
          하루사메 함대의 참가로 우주전의 양은 더욱 모를 일이 되었다.
          * 남매 간의 대화에 끼어드는 노사. 노사는 야토와 야토가 싸우게 된 이 어떻게 될지는 잘 알 거라고 말을 시작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겐가이가 쓸모없어진 이 타계책은 하나. 새벽이 되기 전에 이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 노사는 이제 야토가 적으로 나타났으니 시간이 좀 부족할 거 같다고 말한다. 아부토는 "우리가 없다면 손쉬웠다는 얘기냐"고 받아치는데, 노사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그렇지 않냐"며 7사단은 별도 멸망시키는 최강 부대라더니, 그것도 전대 [[야왕 호우센]] 시절 얘기에 지나지 않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자기한테는 "나보다 젊은 세대는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고 호우센 조차 "애송이"라고 부른다. 그는 호우센의 강함을 인정하긴 하지만, 자기가 태어났을 땐 그정도의 강자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고 말한다. 야토는 모성 황안에 있을 때는 분명 최강이었으나, 그 별을 떠나면서 점차 피는 옅어졌고 힘은 약해졌다. 그래서 노사의 입장에서 보면 현세대의 야토는 "부정한 피가 섞인" 세대에 불과하며 야토로 취급할 수도 없는 결격품이다.
          * 그런 변신은 평범한 야토에게는 없는 기술이다. 단원들이 당황하자 아부토는 오래 전 들었던 정보를 언급하는데, 그 또한 야토의 전설적인 용병으로 일명 "장로"라 불리는 자다. 기공의 달인으로 육체를 자유자재로 가사태로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긴 수명을 손에 넣은 그는 무려 200년 이 전장에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야토의 산신령 같은 존재. 아부토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노사가 달려든다. 그의 공격에 여러 야토가 단 번에 날아간다. 그는 젊고 강한 육체를 가지고도 거기엔 썩은 피가 흐르고 있다며 한탄한다.
  • 이시형 (1934년) . . . . 11회 일치
          | 출생지 = [[대구광역시|일제 강점기 경북도 대구부]]
          | 서훈 내역 = [[1995년]] 대한신경정신학회 벽봉학술
          | 기타 이력 = [[경북대학교|경북대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출신 <br />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br />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br />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br /> [[삼성의료원|삼성의료원 서울강북삼성병원]] 원장 <br /> [[차의과학대학교]] 석좌교수 <br />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 <br/> [[원광디지털대학교]] 석좌교수
         '''이시형'''(李時炯, [[1934년]] [[4월 30일]] ~ )은 [[대한민국]]의 [[교수|의과대학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의사]]·前 [[군의관]]이다. [[경북대학교]]·[[성균관대학교]] 교수와 [[서울대학교]] 외래교수를 역임하였으나 사실 [[서울대학교]]와는 별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
         === 훈 ===
         * 1995 대한신경정신학회 벽봉학술
         * 1999 환태평양정신의학회(Pacific Rim College of Psychiatrists) 학술논문
         * 2002 신경정신의학회 환인정신의학
         * 이시형의 세 바꿔보기(2001)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심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신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차의과학대학교 교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원광디지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이영수 (야구인) . . . . 11회 일치
         |선수명 = 이
         |문 표기 = Lee Yeong-Su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타격코치 (2014년 ~ 2017년)
         '''이수'''(李永守<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81년]] [[5월 9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이다.
         팬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1군에서 모습을 잘 보이지 못했으며 1군에서는 외야수나 대타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냈다. 2011 시즌에는 부으로 1군과 2군에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재활군(3군)에서 시즌을 마쳤고 결국 [[2011년]] 시즌 후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방출됐다.
         [[무 야구단]]에서 타격코치로 활동하다가 2018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로 활동했다.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 [http://www.koreabaseball.com/Record/Retire/Hitter.aspx?playerId=74650 이수] - KBO 기록실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광산 이씨]]
  • 이장경 . . . . 11회 일치
         '''이장경'''(李長庚, ? ~ ?)은 [[고려]]시대 중기의 호족으로 [[이백년]], [[이천년]], [[이만년]], [[이억년]], [[이조년]] 5형제의 아버지이자 [[이인기]], [[이승경]]의 할아버지였다. [[이인임]]의 증조부, [[이숭인]]의 고조부였다. 아들 5형제의 출세로 거듭 증직되고 광산부원군(廣山府院君)에 추봉되었다가 손자 [[이승경]]의 출세로 [[원나라]]로부터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되었다. 본관은 [[성주 이씨|성주]]이며 [[성주 이씨]]의 중시조로 본다. [[경북도]] 출신.
         성주의 호족으로 [[신라]] 말의 재 이순유(李純由)의 12대손이며<ref>순유(純由)→광연(光演)→정신(正身)→견수(堅壽)→범(凡)→정거(廷居)→중경(仲京)→(瑩)→효삼(孝參)→돈문(敦文)→득희(得禧)→이장경(李長庚)</ref> 이득희(李得禧)의 아들로 [[경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이장경의 아버지인 이득희는 태몽에서 문창성(文昌星)이 경산(京山)에 떨어지는 것을 본 후 이장경이 출생한 까닭에 이름을 장경(長庚)이라 하였다고 한다. 장경은 문창, 태백성의 다른 칭호였다. 그 뒤 성주군수로 부임한 [[합천이씨]] 이약(李若)은 이장경의 재능을 간파하고 후세에 반드시 창성할 것이라 예, 자신의 딸과 혼인하게 하였다. 부인 합천이씨에게서 아들 5명이 태어났다.
         생전에 호장(上戶長)과 안일호장을 지냈고 사후 아들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조년]](李兆年) 5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이백년은 밀직사사(密直司事), 이천년은 참지정사, 이만년은 문하시중, 이조년은 대제학을 지냈으므로 아들들의 출세로 고려조로부터는 삼중대광 문하좌시중(三重大匡 門下左侍中) 흥안부원군에 추증되었다가 다시 도첨의정승 지전리사사 호군(都僉議政丞 知典理司事 上濩軍)에 추증된 뒤 원나라 황제로부터는 농서군공에 추봉되었다.
         흥양 성산사(星山祠), 단성 안곡사(安谷祠), 울곡 보본사(報本祠), 정평 보덕사(報德祠) 및 김천 친사(尙親祠), 옥천 평산사(坪山祠) 등에 제향되었다.
         * 어머니 : 미
         [[분류:고려의 문신]][[분류:원나라]][[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성주 이씨]][[분류:생몰년 미]][[분류:이인임]]
  • 이판석 . . . . 11회 일치
         [include(틀:역대 경북도지사)]
         1934년 [[경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 석우동(現 칠곡군 가산면 석우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북도 대구부(현 [[대구광역시]])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대구업고등학교(현 [[대구원고등학교]]), 대구대학교 학과(현 [[남대학교]] 경학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2년 1월부터 1993년 3월까지 관선 [[경북도지사]]를 지냈다. 1993년 3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농촌진흥청]] 청장을 지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이의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경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한나라당]] 이의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이하늘 . . . . 11회 일치
         | 웹사이트 =
         [[철이와 미애]]<ref>싸이월드 BGM - [http://music.cyworld.com/artist.asp?aid=3002 "철이와 미애"]</ref> 이후 현역 [[가수]] 생활을 마치고 음반 제작자로 도전하기 위해 준비를 해 나가던 [[신철 (1964년)|신철]]이<ref>싸이월드 BGM - [http://music.cyworld.com/artist.asp?aid=2542 "디제이 처리"]</ref> 1993년 이하늘이 일하던 [[나이트클럽]]을 방문했다가 그가 아주 열정적으로 [[랩 (음악)|랩]]을 잘 하던 모습을 보고 강렬한 인을 받았다. 이하늘은 신철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뒤로부터 오버그라운드 대중 음악 그룹을 결성하는 데에 참여해 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으며, [[박정환 (1973년)|박정환]]과 [[김창열 (가수)|김창열]]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DJ DOC]]가 탄생되기에 이르렀다. 이하늘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역시 클럽 DJ였기에 그룹 이름을 짓는 데 '''DJ'''란 단어를 넣었다. 그는 '''이하늘'''이란 이름을 예명으로 지었으며, 그룹의 리더와 메인래퍼 역할을 맡았다.
         그가 음반 제작에 자생력을 갖춘 뒤에는 신철로부터 독립하여 2003년 자신의 힙합 레이블 [[부다 사운드]]를 설립하였다. 이하늘은 [[부다 사운드]] 대표로서 회사를 운해 오면서 힙합 그룹 [[45RPM]] 등의 후배 음악인을 양성하는 데에 힘쓰기도 했다.
         그는 케이블 TV에선 MBC Drama 《[[DOC, 가족의 탄생]]》, M.net 《[[음악 퀴즈 쇼 난 알아Yo]]》, 지파 방송에선 MBC 《[[명랑 히어로]]》,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KBS 《[[천하무적 야구단]]》 등등, 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음악 활동을 쉬는 동안 계속 인지도를 높여 갔다. 한편으론 그의 주수입원이 음악 활동에서 TV 방송 활동으로 옮겨 가기도 했다.
         2011년에는 화 《[[체포왕]]》에 특별출연을 하기도 하였고, 2013년에 《[[슈퍼스타 K5]]》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날짜=2011년 11월 22일}}</ref> 결국 이하늘은 [[12월 2일]] 서울등포경찰서로 출두하여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제목=명예훼손 혐의 이하늘, 경찰 출두|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1177807
         |날짜=2011년 12월 2일}}</ref> 12월 6일에는 [[박정환 (1973년)|박정환]]이 이하늘을 대로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추가로 고소를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DJ DOC 前 멤버 박정환, 이하늘을 대로 추가 고소|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1177807
         |날짜=2011년 12월 6일}}</ref> 이렇게 해서 이하늘은 [[12월 22일]], 다시 서울등포경찰서로 출두하여 경찰 조사를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명예훼손 혐의 이하늘, 또 경찰 출두|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1177807
         클론 멤버인 [[강원래]]와 [[구준엽]]과 전 [[듀스 (음악 그룹)|듀스]] 멤버 [[이현도]]와 방송인 [[이탁 (가수)|이탁]]과 [[홍록기]]와 여자 문제로 사이가 매우 안 좋다.
         [[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1971년 태어남]]
  • 일곱개의 대죄/205화 . . . . 11회 일치
          * 모든 음모를 꾸민 [[뤼드셀]]은 십계 다섯을 대로는 불리하다며 자신도 전장으로 향한다.
          * 그런데 네로바스타는 이미 십계의 [[고서]]에게 지배당하는 태였다.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데리엘]]에게 당해 추락하자 공에 나타난 두 사대천사는 "잘도 무례한 짓을 했다"고 말하지만 별로 심각한 기색도 없다. 그들에게도 엘리자베스는 "당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혼나는 귀찮은 것" 정도에 지나지 않는 늬앙스다. 둘은 또 과연 "산 미끼"를 가지고 십계가 낚일지 어떨지 내기를 한 모양인데, 시종 존댓말을 쓰는 쪽은 자기 승리라고 주장하지만 반대쪽은 "전원이 모이지 않았으니 무효"라고 우긴다.
          * 사리엘과 타르미엘은 걸러든 마신족을 일소했다고 자신한다. 타르미엘은 5초 만에 전멸시켰으니 자기 승리라고 하는데, 갈란과 메라스큐라는 건재하다. 메라스큐라는 아직도 황 판단이 안 됐는지 갑자기 잡아 끈 갈란한테 무슨 짓이냐고 따지고 있다. 사리엘은 저 "두 마리"가 남았으니 타르미엘의 승리가 아니라고 하는데.
          * 사리엘은 일견 무대책으로 몬스피드에게 달려들지만, 일단 몬스피드는 피한다. 그런데 분명 피했음에도 몬스피드의 왼팔에 처가 생긴다. 몬스피드는 "재미있다"면서 자신의 처를 들여다 본다. 사리엘은 "죽을 때까지 즐겁게 해달라며" 다시 몬스피드에게 돌격하는데, 그때 몸집을 불린 프라우드린이 파리 때려잡듯이 사리엘을 내리친다.
          사리엘은 큰 나무 밑둥으로 처박히고 프라우드린은 자신이 사리엘을 처리하겠다고 나서는데, 잘 보니 프라우드린의 커다란 팔에도 처가 생겼다. 그리고 사리엘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고 다시금 일어서는데.
          네로바스타는 떠나는 뤼드셀에게 자신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완수하겠다고 답한다. 뤼드셀이 떠나자 그녀는 뤼드셀의 무운을 빌며 몸을 돌리는데, 갑자기 뤼드셀이 다시 나타나자 화들짝 놀란다. 네로바스타는 좀 필요이으로 놀라면서 "뭐가 더 남았냐"고 묻는다. 뤼드셀은 만일을 위해 미리 원군을 불러 대기시키라고 지시하려고 왔던 것이다. 아무리 사대천사라도 십계를 대라면 힘들기 때문이다.
          * 그런데 네로바스타가 이하다. 갑자기 텅 빈 눈으로, 무감각한 목소리로 곧바로 원군을 부르겠다고 대답한다. 그녀의 목뒷덜미에는 수한 마력의 꼬투리가 삐져나와있다.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11회 일치
          * [[메라스큐라]]는 고서 쪽에 합류했는데 고서는 메라스큐라의 기억을 읽고 현재 십계가 처한 황을 파악한 뒤 전황이 어렵다고 판단한다.
          * 그러나 십계의 끊임없는 공격에 조금씩 타격을 입어가고 있는데, 사리엘은 [[데리엘]]에게, 타르미엘은 [[몬스피드]]에게 치명을 입는다.
          * 천계로 통하는 문은 스티그마가 마신족을 멸절하고 지을 손에 넣었을 때 천계의 여신족들을 부르기 위한 통로였다. 마침내 고서 앞에 모습이 드러난 천계로 통하는 문. 그때 또다른 인물이 그들의 뒤를 따라왔다.
          * 사대천사 [[타르미엘]]과 [[사리엘]]은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십계를 대로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타르미엘은 세 개의 머리가 사방을 주시하며 사각이 없다. 그가 강력한 마법을 준비하는 동안 [[갈란]]이 덤벼들자 왼쪽의 노인의 얼굴에서 또다른 마법을 발사해 갈란을 밀어낸다. 반대편에서 데리엘이 달려들자 이번엔 오른쪽의 젊은이의 얼굴이 마법을 발사해 데리엘을 격추한다. 그리고 본체가 준비하던 강력한 마법탄은 그대로 바닥에 추락해 있는 갈란에게 날아간다.
          * 갈란이 마법탄에 짓뭉개지고 있을 때 [[몬스피드]]는 옥염조로 타르미엘의 세 머리를 한 번에 꿰뚫는다. 어떤 처든 순식간에 복구하던 타르미엘이지만 이 공격에는 한동안 회복을 못한다. 타르미엘을 처리한 순간 몬스피드도 사리엘의 공격을 맞고 몸 여기저기가 잘려나간다.
          * 데리엘은 사리엘을 공격한다. 하지만 사리엘이 두르고 있는 미지의 장막에 가로막혀 데리엘의 몸이 갈려나간다. 그럼에도 데리엘은 뜯어져 나간 팔을 그대로 내지른다. 완의 일부 뼈밖에 남지 않은 왼팔이 기어이 장벽을 뚫고 사리엘에게 최초의 처를 입히는데 성공한다.
          * 그때 갈란의 몸을 빛줄기가 관통한다. 갈란이 저항하기도 전에 빛줄기는 두 번 세 번 공격을 거듭해 갈란을 쓰러뜨린다. 마침내 사대천사 최강자 뤼드셀이 전장에 도착. 어느새 [[프라우드린]]을 쓰러뜨린 태다. 그는 갈란을 비웃듯 만남 인사와 작별인사를 동시에 한다.
          둘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신들의 내장을 휘젓는다. 프라우드린은 그것이 무슨 행동인지 문을 몰라하지만 갈란은 알고 있다. 그는 위험하게 됐다며 프라우드린을 챙겨 퇴각할 준비를 한다.
          겨우 재생하고 있던 사리엘과 타르미엘은 무섭게 변화한 두 십계의 모습에 할 말을 잃는다. 인듀라로 변한 데리엘과 몬스피드는 인간에 가까웠던 모습이 사라지고 괴물의 형이 된다. 이들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지만 정작 눈 앞에서 그들을 대하고 있는 뤼드셀은 "웃긴다"고 절하하며 별것 아니라고 취급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11회 일치
          이 시대의 젤드리스는 [[고서]]의 감시자이자 "처형인"이다. 그는 십계 고서에게 마신왕의 노여움을 전하며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배반자로 간주해 처리하겠다고 엄포한다. 고서도 그렇게 협조적인 태도는 아니다. 그는 다소 날선 태도를 내보이는데 최대한 마력을 온존하고 싶었지만 젤드리스 대로는 그럴 수 없겠다고 말한다. 분명 싸울 태세다.
          * 하지만 고서가 싸울 필요는 없었다. [[디안느]]가 대지를 변화시키며 젤드리스를 위협한다. 그가 잠시 물러서자 디안느는 두 고서를 도주 시킨다. 십계 고서는 너무 위험하고 대가 노리는건 자신이라고 거절하지만 디안느는 현재 자신은 거인왕이니 위험할 것이 없고 고서는 성전을 멈춰야 하니 어서 가라고 재촉한다. 결국 고서는 그녀의 뜻에 따라 그 자리를 피한다. 인형 고서는 십계 고서를 따라가면서 "다시 만나자 디안느"란 인사를 남긴다.
          * 젤드리스는 곧 다시 돌아와 디안느와 대치한다. 디안드는 거인왕 [[드롤]]로서 "전투의 춤"을 펼치며 젤드리스와 싸울 자세를 보인다. 드롤의 춤에 따라 대지가 요동치고 흘러가며 장관을 이룬다. 젤드리스는 잠시 그 춤을 감하며 감탄한다. 엄청난 마력이 대지를 따라 드롤에게 모여들고 있다. 마신족 사이에서도 드롤의 강함과 명성은 유명한 모양인지 "이게 그 유명한 드롤의 춤인가?"라고 중얼거린다.
          * 그리고 다음 순간, 디안느는 방어할 틈도 없이 젤드리스의 일격을 허용한다. 젤드리스는 화살처럼 날아와서 드롤의 가슴을 과녘처럼 파고든다. 디안느는 쓰러지면서도 지금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다. [[일곱개의 대죄/201화|십계의 공격에도 끄떡 없던]] 드롤의 몸이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렇게 치명을 입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우선은 방어다. 쓰러진 채로 "가이아폼"을 사용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몸에서 마력이 발동하지 않는다. 젤드리스가 그를 쓰러뜨리면서 마력까지 봉해서 아무런 기술도 쓸 수 없는 것이다. 디안느는 그가 다른 십계와도 다른, 믿기지 않는 강자라는 걸 실감한다.
          젤드리스는 드롤과 그의 동료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의 용맹은 마계에서도 유명하다고 추켜세우고 동료가 된다면 지금 이으로 큰 힘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디안느는 갑자기 적에게 그런 제안을 할리 없다고 믿기지 않아하지만, 젤드리스의 차가운 눈빛은 거짓이나 농담을 하는게 아니다.
          * 성전 시대의 젤드리스는 거듭 드롤을, 아니 디안느를 설득한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드롤의 출신성분에 대한 것. 지금은 거인왕인 그도 원래는 거인족 사이에서 따돌려지던 과거가 있다. 보통 거인족을 능가하는 체구, 사파이어처럼 파란 피부, "마를 머금은" 척안과 기암과도 같은 네 개의 팔. 그는 외형이 "이물"이라는 이유로 동족에게서도 기피됐었다.
          그런 면에서 젤드리스는 예리하게 파고든 셈이다. 젤드리스는 비록 거인족이 강함을 숭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론 가장 강한 드롤이 거인왕 자리에 오른 거지만 진심으로 그를 따르고 경애하는 동족은 없었을 거라 지적한다.
          도저히 드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발. 마력까지 봉인된 몸으로 어떻게 했는진 모르지만, 아무튼 그녀가 드롤의 선택을 초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녀가 살아난 거야 말로 그 증거다.
          * 할리퀸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디안느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말을 잇지 못한다. 돌아온 디안느는 매우 행복하고 즐거워보이기까지 하는데, 그녀는 울먹거리는 할리퀸을 두 손으로 감싸며 하지도 못했던 일을 벌인다.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11회 일치
          * 고서는 춤을 출 수록 디안느의 전투력이 15000이으로 치솟는 것을 확인, 디안느 자신의 말로는 계속 춤을 출 수록 더 올라갈 거라고.
          * 고서는 도주하려 하지만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에게 가로막히는데 그의 전투력은 총 4만 이.
          *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나쟈 리오네스]]의 기억이 떠오르려 할 수록 부정하며 또다시 기억을 수정하려 했다. 때마침 나타난 [[디안느]]가 그것을 저지하고 "기억을 지우려 했다는건 뭔가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고서가 "단지 노이즈일 뿐"이라고 대꾸하지만 디안느는 "그거야 말로 네 마음일 수 있지 않냐"고 거듭 지적한다. 고서는 디안느의 방해를 뿌리치기 위해 공격하는데 디안느는 춤을 추며 간단하게 피한다. 고서는 그녀가 춤을 출 수록 전투력이 급승하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 수치가 무려 15100에 달했기 때문. 그녀의 마력이 급격히 올라가는건 인근에서 수색 중이던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도 감지할 수 있었고 곧 고성 쪽으로 향한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한 발 먼저 고서의 퇴로를 차단했다. 고서가 측정한 요정왕의 전투력은 41600. 고서는 도망치던 것도 잊고 단기간에 이토록 전투력이 급승한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킹은 그런 질문을 듣는거 자체로 만족하지만 곧이어 고서가 "그 조그마한 날개 때문이냐"고 날개 크기를 걸고 넘어지자 분개한다.
          * 이렇게 잠깐 틈이 생긴 사이 인근 주민이 소란을 듣고 "무슨 소란이냐"며 바깥으로 나온다. 고서는 그를 인질로 잡아 황을 타개할 생각으로 달려드는데, 뜻밖에도 그건 [[베로니카 리오네스]]. 소란을 멈추기 위해 나왔다가 고서가 나타나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나 진짜 충격을 받은 쪽은 고서. 베로니카으 모습에서 그녀의 고모인 [[나쟈 리오네스]]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 나쟈의 모습은 더이 단편적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그녀의 음성까지 떠오를 지경이 되자 고서는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로스트 월드를 발동시킨다. 디안느는 다시 술법이 발동하는 걸 막는다. 할리퀸은 그동안 베로니카를 피신시킨다.
          디안느의 호된 목소리는 더 많은 기억을, 추억을 일깨웠다. 그가 거부했던 기억 속에는 냥했던 나쟈와의 즐거운 생활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폭발적으로 흘러나오는 기억들, 그리고 더욱 깊은 곳에서 나타나는 또다른 소중한 사람. 바로 그의 아버지.
          * 멀린은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밝힌다. 지금까지 "마음의 마법"이 담겨있다고 여겼던 마음의 심장은, 사실 빈 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전에 "마음의 마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단언하자 할리퀸이 "그럼 고서의 마음은 어디에 있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멀린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 할리퀸은 고서의 마력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감지했다. 멀린은 본래의 기억과 인격이 돌아오면서 본래의 마력도 돌아오는 거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원래 고서는 위대한 마술사가 만든 생애 최고의 걸작이니 마음을 갖고 있는게 전혀 이하지 않다고 말한다.
          * 사건이 일단락된 후, 디안느는 그럼 "마법의 심장"은 뭐였던 거냐고 멀린에게 물었다. 그녀는 십계 고서가 자신을 인형이라 한탄하는 아들을 위해 준비한 부적 같은 거였을 거라고 답변한다. 그러는 동안 멜리오다스와 반이 도착한다. 하지만 황이 끝나서 그들의 차례는 없었다. 이들의 뒤를 이어서 [[에스카노르]]도 도착. 지쳐서 다죽어가는 판이다.
  • 일장청 호삼랑 . . . . 11회 일치
         수호전의 대표적인 미녀 여검사. 수호전이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군담물이 되어, 두령 개개인들의 활약 묘사가 줄어드는 시점이라 인물을 알기 어렵다.
         양산박과의 대결에서 축가장과 호씨 가문이 몰살당한 뒤, 키가 작은데다 [[추남]]에 [[여색]]을 밝히는 왜각호 왕과 결혼하게 된다(…). 하필 왕과 결혼하게 된 이유는 [[송강]]이 이전에 왕이 노리던 여자가 죽었을 때, 나중에 좋은 여자를 소개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복선을 여기서 회수했기 때문.
         포로로 잡히고, 가족은 몰살당하고, 반강제로 결혼하게 된 신세지만 왕사이는 좋았던 듯. 후반부에는 왕과 함께 출진하는 장면이 많고, 왕이 쓰러졌을 때는 분노하여 돌격하는 묘사도 나온다.
          * 미남, 미녀를 뜻한다는 설. 수호전의 원형 가운데 하나인 「[[송36인찬]](宋江三十六人賛)」에서 [[연청]]을 묘사할 때, '일장청'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연청 역시 수호전 굴지의 미남이므로 미남을 뜻하는 것일 거라는 주장이다.
          * '일장'이라는 표현에서 나와서 키가 크다는 뜻. 키가 작은 [[왕]]과의 대비로 설정된 별명이라는 것이다.
         [[남송]] 시대 '일장청'이라는 별명을 가진 도적 출신의 여장군이 있어, 그녀가 호삼랑의 모델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장청의 남편은 왕왜호(王矮虎)라는 이름으로서, 왕의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장윤희 (미스코리아) . . . . 11회 일치
         |학력= [[연세대학교]] 문학과
         | 신체사이즈 = 가슴: {{convert|34|in|cm|sigfig=3|abbr=on}}<br>허리: {{convert|23|in|cm|sigfig=3|abbr=on}}<br>엉덩이: {{convert|34|in|cm|sigfig=3|abbr=on}}
         | 드레스사이즈 =
         |웹사이트= {{싸이월드|47415875|장윤희}}
         |수= [[2008년 미스코리아]] 미(美)
         * 학력: [[연세대학교]] 문학과
         * 수: [[2008년 미스코리아]] 미(美) & 포토제닉, [[2008년]] [[미스코리아 서울]] 진(眞)
         * 특기: 스킨스쿠버,
  • 장호 (1920년) . . . . 11회 일치
         |제목=김정일총비서 비전향장기수 장호, 우용각동지에게 생일 여든돐, 일흔돐
         당시 [[경성부]]였던 현재 [[서울 마포구]]에서 태어났다. [[정미소]]를 운하는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공산주의|공산주의사]]을 공부하면서 [[1935년]]에 집을 나왔다. 이때부터 토목 노동자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일제 강점기]]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 등지를 오가면서 생활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4
         |제목=비전향 장기수 장호, 우용각씨 김정일 총비서에게 생일 받아
         [[1958년]]에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남파되었다. 남파 후 체포되었으나 전향하지 않고 비전향 장기수가 되어 [[대구교도소]]를 위시한 여러 교도소에서 약 30여 년간 수감 생활을 하였다. [[1991년]]에 30년 이 수감된 70세 이 고령자로 분류되어 석방되었다.
         출감한 뒤 [[경기도]] [[과천시]]에서 [[안기 (1929년)|안기]]를 위시한 다른 장기수들과 헌책방을 함께 운하면서 생활하였다.<ref>{{저널 인용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거해 비전향 장기수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될 수 있게 되었다. 장호에게는 부유하게 사는 여동생이 있는 등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과 달리 생계 걱정이 없는 유복한 환경이었으나 스스로 송환을 택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약혼녀가 혼인하지 않고 장호를 기다리면서 생존해 있어 다시 만났고 [[조국통일]]을 받았다.
         |저자=안기 외 13인
  • 전성군 (1488년) . . . . 11회 일치
         생전 관직은 [[함열읍|함열]][[현감]](咸悅縣監), 용강 [[현령]](龍岡縣令), [[평양]][[진관]] 병마첨절제 도위, [[돈녕부]][[주부]] 등이었지만 후손들의 거듭된 출세로 [[증직|증]]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증직|증]] [[호조]][[판서]]와 [[증직|증]] [[이조]][[판서]]를 거쳐 [[증직|증]] [[의정부]][[의정]]에 추증되는 등 거듭 증직이 [[추증]]되었다. [[대한민국]] 초기의 정치인 만송 [[이기붕]]은 그의 13대손이다.
         약관의 나이에 독서를 하였으며 [[참례도]]찰방(參禮道察訪)에 제수되어 관직에 나갔다가 광산김씨 혹은 대흥현부인 광신씨으 건의로 내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다. 이후 [[활인서]]별좌(活人署別坐)를 거쳐 [[사재감|사재]]직장(司宰直長)에 올랐다가 이무망좌(以無妄坐)를 이유로 파직되었다. 수개월이 지나 복직하여 [[의고]]직장(義盈庫直長), [[군자감|군자]]주부(軍資主簿),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역임했다.
         [[1527년]](중종 22) [[7월]] [[함열읍|함열]][[현감]](咸悅縣監)에 임명되었다가 얼마 뒤 면직되었다. 이후 좌익찬(左翊贊), [[사복시]]주부, 겸[[한성부]][[참군]](兼漢城府參軍), [[장예원|장예]][[사평]](掌隷司評), [[종부시]]주부를 거쳐 다시 사헌부감찰이 되었다가 용강 [[현령]](龍岡縣令), [[평양]][[진관]] 병마첨절제 도위, [[돈녕부]] 주부(敦寧府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541년]](중종 36) 부정(副正) 이공장(李公檣)의 천거를 받았다가 [[사헌부]]로부터 성품이 본래 침착하지 못하고 소행도 탐욕스럽고 간특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ref>중종실록 94권, 1541년(중종 36년, 명 가정 20년) 2월 17일 갑술 1번째기사, "헌부가 천거하는 자들이 사적으로 천거를 함으로 폐단이 심하다고 아뢰다"</ref> [[내자시]]정(內資寺正)을 지낸 정종보(鄭宗輔)의 딸 동래정씨와의 사이에서 8남 1녀를 두었는데, 일곱째 아들이 권신 [[이량 (조선)|이량]]이고, 고명딸은 [[청송 심씨]] [[의정부]][[의정]][[심연원]]의 아들이자 [[좌의정]] [[심통원]]의 조카 [[심강]]에게 출가했다.
         사후 여섯째 아들 [[이량 (조선)|이량]]의 귀로 [[증직|증]]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증직|증]] 자헌대부 호조판서에 추증되고 다시 [[증직|증]]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가 다른 후손들의 출세로 [[증직|증]]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의정]]에 추증되었다. 전성군(全城君)에 추봉되었다. 후일 [[대한민국]]의 초기 정치인인 [[이기붕]]은 그의 아들 [[이량]]의 직계 후손이었다.
         * 어머니 : 신인(慎人) 증 대흥현부인 [[광 신씨]](贈 大興縣夫人 靈光辛氏, ? ~ ?), 장(上將) 신윤조(辛胤祖)의 딸
         * 첩 : 이름 미
         ** 서자 : 1명 이름 미
  • 전용덕 . . . . 11회 일치
         {{화인 정보
         | 직업 = 애니메이터, 촬 감독
         | 수 =
         | 웹사이트 =
         '''전용덕'''(1971년 ~ )은 대한민국의 애니메이터이자 촬 감독이다.
         * 《[[헷지]]》 (2006) - 촬, 레이아웃 아티스트
         * 《[[쿵푸 팬더]]》 (2008) - 촬 감독, 레이아웃 아티스트
         * 《[[슈렉 포에버]]》 (2010) - 촬 감독
         * 《[[트롤 (2016년 화)|트롤]]》 (2016) - 촬 감독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촬 감독]][[분류: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사람]][[분류:서울시립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정희 (배우) . . . . 11회 일치
         | 훈 =
         | 웹사이트 = [http://jeonjh.multion.kr/ 전정희의 나눔샵]
         *2002~2004 서울 한국예술고등학교 연극화과 교사
         ===수===
         1996 자랑스러운 시민-미풍양속부문(조 순 시장)
         **《토지》 ... 일본사부인
         ===화===
         *화 《아부지》... 어머니 역 (조연)
         *연극 《감마선은 달무늬 얼룩진 금잔화에 어떤 향을 주었는가》... 비어트리스 역 (주연)
         * {{공식 웹사이트|http://jeonjh.multion.kr|전정희의 나눔샵}}
  • 전진영 (아나운서) . . . . 11회 일치
         |이름 = 전진
         |웹사이트 = [http://radio.ytn.co.kr/anchor/anchor.php YTN NEWS FM 전진 아나운서] <br/> [http://cy.cyworld.com/home/20264620 미니홈피 YTN NEWS FM 전진 아나운서]
         '''전진'''([[1982년]] [[9월 1일]]~)은 [[대한민국]]의 [[YTN라디오|YTN NEWS FM]] 아나운서이다.
         * [[YTN 사이언스]] : (2010년) 과학향기진행
         * [[2009년|20]]0[[2009년|9년]] [[5월 30일]] ~ [[2010년]] [[4월 4일]] [[YTN라디오|YTN NEWS FM]] : 전진과 함께 떠나는 음악여행 진행
         * [[2011년]] [[11월 14일]] ~ [[2014년]] [[4월 25일]] [[YTN라디오|YTN NEWS FM]] : 뉴스&뮤직 전진입니다 진행
         * [[2014년]] ~ [[2015년]] [[YTN라디오|YTN NEWS FM]] : 전진의 아침풍경 진행
         * [[2017년]] ~ '''현재''' [[YTN라디오|YTN NEWS FM]] : 뉴스FM, 전진입니다 DJ 진행
         * [http://radio.ytn.co.kr/anchor/anchor.php YTN NEWS FM 전진 아나운서]
  • 정기선 . . . . 11회 일치
          | 부모 = [[정몽준]](부), 김명(모)
         | 학력 = 스탠퍼드대학교 경대학원 MBA
         [[1982년]] [[정주]]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준]] [[현대중공업]] 사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일외고]] 졸업 후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은 뒤 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에는 언론사([[동아일보]])에서 근무하다 아버지의 기업에 입사했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스탠퍼드 대학교]]대학원에서 MBA수업을 받았으며 잠시 컨설팅그룹에서 일한 뒤 다시 귀국하였다. [[2013년]] [[현대중공업]] 수석부장으로 재입사 후 [[2014년]] 무 및 [[2016년]] 전무, [[2018년]] 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스탠포드대학교 경대학원]] MBA
         * 2015년 ~ 2016년 : [[현대중공업]] 기획실
         * 2016년 ~ 2018년 : [[현대중공업]] 안전-경지원본부 전무
         * 할아버지 : [[정주]] (1915 ~ 2001)
         ** 어머니 : [[김명]] (1956 ~ )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하동 정씨]][[분류:정주]][[분류:현대가]][[분류:현대 그룹]][[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대학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
  • 정병오 . . . . 11회 일치
         [[2002년]] 《월간순수문학》에 신인으로 〈순례하는 바람〉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 수 ==
         *《제11회 랑문학(2006년)》
         *《순례하는 바람》([[하]], 2002) | ISBN 10-0004447131
         *《순례하는 바람》아름다운 산천을 보고 즐기며 내일의 꿈을 가꾸고, 나날이 살아가는 인생 속의 아픔과 그리움 속에 옛날의 젊음을 회하고 오늘을 투시하며 삶의 길을 가다듬는 시이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필(筆)동인]][[분류:랑문학자]]
  • 정봉수(역사) . . . . 11회 일치
         경북도 김천시 출신의 체육인.
         정봉수(鄭奉守)는 1935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옥동마을에서 부유한 농가의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증산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육을 시작해 경북도 내 크고 작은 육 대회에 출전해 입하고 시온중학교에 진학한 후 16세에 경북도 단거리 육 대표로 선발되었다. 1950년 육군에 입대해 육군 육 대표가 되었고 3군 대항 체육 대회에서 우승하고 육군 육부 감독, 3군 대항 체육 대회 총감독, 88올림픽 꿈나무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군대를 전역한 후 1987년 코오롱 마라톤 팀의 창단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선수들에게 소식(小食)과 풍부한 단백질 식단을 집중 공급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과학적인 선수 관리로 1990년과 1992년에 김완기가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 1992년 황조가 2시간 10분벽을 넘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이봉주 선수와 김이용, 권은주를 발굴해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키우면서 한국 마라톤을 육성, 발전시켜 세계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훈과 추모]
  • 정소림 . . . . 11회 일치
         |그림설명 = 2013 대한민국 e스포츠 대식에서
         1973년 8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ref>{{웹 인용 |url=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A0%95%EC%86%8C%EB%A6%BC&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00806|제목= 네이버 인물정보 - 정소림|저자= 네이버|날짜= 2011-05-19|웹사이트= 네이버|확인날짜= 2016-02-22|인용문= 출생 1971년 8월 20일}}</ref><ref>{{뉴스 인용 |저자= 조한대|제목= 정소림 게임 캐스터, "매일 30분? 차라리 하루만 몰아서 하게 해줘야"|url= http://news.joins.com/article/15332527|뉴스= 중앙일보|날짜= 2014-07-23|확인날짜= 2016-02-22}}</ref> [[2000년 7월]], 당시 [[경인방송]] 《게임스페셜》을 진행하던 [[정일훈]]이 방송 회수를 줄여가며 빈자리가 생겼을때, 정소림 캐스터가 《게임스페셜》의 오디션에 지원해 《게임스페셜》을 통해 데뷔하였다.
         * 《게임쇼 즐거운 세
         * 《기사님올라잇:사이퍼즈》
         *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 그랜드 파이널》
         *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 한국대표 선발전》
         * 액션토너먼트 (사이퍼즈 부문)
         == 수 ==
         * [[2014년]] 2013 대한민국 e-스포츠 대 e스포츠 방송
  • 정정아 . . . . 11회 일치
         |출생지= [[대한민국]] [[경북도]] [[포항시]]
         |학력= [[세종대학교]] 대학원 화연기예술학과 예술학 석사
         |웹사이트= {{인스타그램|jung_jung_ah_/}}
         [[대한민국]] [[경북도]] [[포항시]]에서 출생한 그녀는 [[1995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96년]] [[뮤지컬 배우]] 데뷔하였으며 그녀의 현재 거주지는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이다.
         * [[2009년]] [[세종대학교]] 대학원 화연기예술학과 예술학 석사
         === 화 ===
         * 2015년 <어울림> - 진녀 역
         * 2013년 미개봉 <공사중> - 진녀 역
         * 2013년 <미운 남자> - 과학교사이자 아내 역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95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항시 출신]][[분류:세종대학교 대학원 동문]]
  • 조무근 . . . . 11회 일치
         |문 표기 = Cho Moo-Keun
         |사진 사이즈 =
         [[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입단을 제안한 프로 구단이 없어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6라운드로 [[kt 위즈]]의 지명을 받았다. 2015년에는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WBSC 프리미어 12]] 참가를 비롯해 많은 이닝을 소화한 여파 때문인지 2016 시즌부터는 부진했다.
         2017년 11월에 FA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에서 [[kt 위즈]]로 이적한 [[황재균]]의 보 선수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다.
         2015년에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해 좋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던 황과 더불어 원래 이름을 거꾸로 했을 때의 이름을 징하는 '근무조'로 불린다.
         * [[경중학교]]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참가 선수]]
  • 존 헨리 . . . . 11회 일치
         19세기 당시 살았던 흑인으로, 직업은 철도 노동자이다.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했던 [[노동자]]의 긍지와, 기계문명에 밀려나는 노동자의 비애를 동시에 반하는 인물이다.
         민담에 나오는 인물이기 때문에 특별히 고정된 줄거리가 존재하지 않지만, 기계와 대결을 벌이고 웅적인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배경은 공사 현장에서 가장 뛰어난 노동자 존 헨리가 있었는데, 건설 현장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게 되자 존 헨리가 동료들을 위하여 기계와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에 대한 민요인 "존 헨리의 발라드"가 존재한다. 당히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V]]에서도 강철 연구를 끝내면 해당 민요의 가사 일부가 나온다.
         >작자 미: 강철말뚝 박이 조 헨리의 발라드[* 출처: [[시드 마이어의 문명 V]]. 한글판 기준.]
         이와 비슷하게 반기계운동을 반한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단편소설로는 [[코르니유 감의 비밀]]이 있고, SF에서는 듄의 버틀레티안 지하드. 현대에는 비슷한 이야기로 이세돌과 알파고 등이 있다.
         민담에서 비슷한 인물로 벌목꾼의 웅적인 인물인 '폴 버니언' 같은 것이 있다. 다만 폴 버니언은 미국 서부 개척사를 대변하는 징인 반면에 존 헨리는 산업화의 여파로 희생당하는 하층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존 헨리이즘(John Henryism)이라는 연구가 있다. 이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 중년 이후에 그 간 무리한 탓에 건강이 손되어 고통을 받는 현을 뜻하는 말로서, 80년대, 셔먼 제임스라는 청년 연구가가 소작농 출신 존 헨리 마틴이라는 사람의 사례를 기초로 하여 “존 헨리 척도”를 제안했다. 이는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한다”, “인생은 내가 노력하기 나름이다” 는 등의 문항에 얼마나 동의하느냐 하는 것으로 측정된다.([[http://newspeppermint.com/2017/01/31/john-henryism/ 참조]]) 특히 미국에서는 사회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는 흑인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던 현인데, 기계와 싸우다가 죽음을 맞은 이야기 속의 존 헨리처럼 존 헨리이즘은 현실과 싸우다가 스스로 피폐해진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 진격의 거인/96화 . . . . 11회 일치
          * 리더를 잃은 이 작전은 시작도 못 해본 채로 실패, 애니가 귀환을 결정하나 라이너는 어머니 [[카리나 브라운]]의 당부를 떠올리며 그럴 순 없다고 주장한다.
          라이너는 그 장면으로부터, 현실로 부터 달아났다. 웅이 되겠다던 맹세로부터 달아났는지도 모른다. 뻥 뚫린 벌판을 향해 그저 달리던 그는 어느 나무 아래에서 멈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베르톨트 후버]]도, [[애니 레온하트]]도 없었다. 섬의 악마들도 없고 거인들도 없었다. 라이너는 혼자였다. 마르셀은? 죽었다. 그가 두고 오려고 했던 현실은 한치의 거리도 없이 따라와 있었다. 무서운 고통이었다. 라이너가 머리를 감싸며 엎드렸다. 절규가 터져나오지 않고 목구멍에서 멤돌았다.
          * 애니는 라이너에게 등을 돌리며 돌아가자고 했다. 라이너는 이해하지 못했다. 애니는 마르셀을 먹은 거인을 찾아서, 턱의 거인을 탈환해 돌아가자고 했다. 지금쯤 인간으로 돌아와 있을 터였다.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겠지. 지휘관인 마르셀을 잃은 이 작전의 속행은 불가능하고, 턱의 거인이라도 되찾아 가야했다.
          이곳도 언제든 거인이 나타나도 이하지 않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애니가 걷기 시작했다.베르톨토도 일어나 애니를 따랐다. 라이너는 아직 나무 아래 있었다. 현실은 그를 따라올 뿐만 아니라 추월해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불쌍한 [[카리나 브라운]]. 그녀는 자신을 져버린 남자들을 너무 믿었다. 라이너가 임무를 완수할 거라고, 남편은 아들을 자랑스러워 할 거라고 믿었다. 절대로 보답 받을리 없는 믿음.
          * 애니가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한 덕에 예보다 많은 무지성 거인이 몰려왔다. 라이너는 갑옷의 거인으로 변해 거인화를 푼 애니를 보호했다. 그리고 베르톨트를 벽 앞에 내려주었다. 이제 베르톨트의 차례다. 벽을 부수고 빠져나와야 한다. 하지만 처음 마주한 벽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기가 약한 베르톨트는 금방 "내가 이런걸 파괴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었다. 그의 눈 앞에 있는건 윌 마리아의 본체가 아니라 미끼 구역의 장벽, 방어선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그에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일행은 두 개의 벽을 전부 돌파할 수 잇을까? 그러는 동안에도 무지성 거인들이 산사태처럼 쏟아져오고 있었다. 여기서 벽을 파괴하지 못하면 작전은 시작도 못한다. 일행은 벽과 무지성 거인 사이에 끼어 죽을 것이다.
          * 사정은 몰랐지만 베르톨트는 위기를 넘겼다. 갑옷의 거인이 베르톨트를 낚아채고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초대형의 거대한 몸체가 완전히 사라지자 수챗구멍으로 물이 빠지는 것처럼 무지성 거인들이 흘러들어갔다. 라이너는 벽 위에 베르톨트를 내려놓고 탈진한 애니를 맡겼다. 그리고 벽 너머로 내려갔다. 자신의 차례였다. 벽 밑은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이 지옥을 좀 더 안에 있는 녀석들에게 전하자, 갑옷의 거인이 마을을 가로질러 갔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어머니의 바람을 이루어주고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건 거짓된 희망이다. 어머니의 꿈은 원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은 선택 받을 리가 없는 전사에 불과했고 원래는 오늘 죽었어야 했다. 마르셀이 아니었다면.
          왜 사과하느냐는 물음에, 왜 자신 같은 것을 구했냐는 물음이 더해졌다. 대답을 들을 일은 원히 없겠지. 라이너는 윌 마리아의 본체를 향해 달렸다. 맹세나 해답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보다 뚜렷한 생각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라이너가 벽에 격돌했다.
          * 라이너 일행은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구제 조치를 받았다. 난민들은 공동농장으로 보내졌다. 라이너 일행은 어떤 노인과 함께였다. 그 노인은 곧잘 자기 고향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가 살던 마을은 윌 마리아 남동쪽 산의 정말 작은 마을. 지도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산간마을이었기에 벽이 파괴되고 재앙이 내려와도 거기까지 알리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여느 때와 달리 가축들이 날뛰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땅울림이 계쇡되던 아침. 무심코 창문을 열었을 때, 사람을 앞지른 그 녀석들이 모든 황을 명료하게 알렸다. 거인들. 노인이 기억하는건 거기서 말을 타고 도망쳤다는 것 뿐이었다. 거기에 딱 라이너 또래의 아이들 셋이 남아 있었다는 건 나중에 생각났다. 어쩌면 라이너 일행이 그 일의 죄책감을 자극하는지도 몰랐다.
          해결책은 라이너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2년 동안 몰라보게 든든한 남자가 되어있었다. 마르셀 같이. 몸은 다부져졌고 징징거리지도 않았으며 항 냉정했다. 베르톨트와 애니가 별 건설성 없는 이야기나 주고 받는 동안 어느 새 해답을 찾아냈다.
          라이너는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갔다. 윌 마리아를 파괴했지만 진짜 왕은 움직이지 않았다. "타이버 가"에서 나온 정보가 정확하다면 벽의 왕은 "부전의 맹세"에 묶여 있다. 애니가 맞장구치며 "그러니 바로 결판을 내자"고 말했다. 라이너도 무슨 말인지 안다. 윌 로제와 윌 시나까지 전부 파괴하는 것. 그래서 벽의 왕을 끌어내자는 것. 하지만 그 방법은 애초에 틀렸다. 그런 식으로 시조의 거인을 끌어낸다면 전혀 승산이 없다. 그 시조의 거인이 한 번 소리치는 걸로 모든 것이 뒤집힐 것이다. 거인을 조종하는 힘이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최후를 맞이할 것이고, 그 분노의 반격은 섬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후 우리에게 간섭하면 벽에 숨은 몇 천만의 거인이 지을 전부 평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프리츠 왕이 대륙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
  • 차명진 . . . . 11회 일치
         |경력 = [[한나라당]] 대변인<br/>[[한나라당]] 비대책위원
         |웹사이트 =
         * ~ [[2017년 2월]] : 새누리당 경기도당 부천소사 당원협의회 운위원장
         * [[2017년 2월]] ~ [[2018년 9월]] : 자유한국당 경기도당 부천소사 당원협의회 운위원장
         * 국회 운위원회 위원
         * [[2011년 5월]] : 한나라당 비 대책위원회 위원
         * 2011년 [[10월 11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서울시장 박원순 후보를 "양아치", "삥" 등의 적절한을 총동원해 원색적이 비난해서 논란이 됐다. "박씨는 한 손으로 채찍을 들어 재벌들의 썩은 처를 내리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삥을 뜯는 식으로 사업을 운해왔다. 이는 악어와 악어새의 동거"라며 "시민운동이 아니라 저잣거리 양아치의 사업방식"이라고 박원순 후보를 양아치로 규다했에 대해 투명하게 재정태를 공개해온 시민운동단체의 활동을 양아치로 묘사한 것에 많은 공가이 어다
         |후임자 = [[김희 (1954년)|김희]]
  • 창작:맹수인 . . . . 11회 일치
         위항목:[[창작:세대륙 이야기]]
         맹수인은 동부대륙 북부~중남부까지 넓은 역을 지배하는, 사실 동부대륙 거의 전체를 지배하는 종족이다.
         각 맹수인은 서로의 생김새에 따라 호랑이족,사자족,곰족,하이에나족,늑대족으로 나뉘며, 서로간의 교배는 가능한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서로의 혼혈들은 대개 배척받으며, 혼혈들은 보통 고산지등 '순혈'들에게 핍박받기 힘든 곳에서 자기들끼리의 소규모 마을을 이루고 산다. [* 단, 사자족과 호랑이족간의 혼혈인 '라이거일족'은 티겔의 레잉정복과 적극적인 혼합,동화정책으로 인해 당한 규모를 이루고 있었고, 이들은 이후 티겔을 멸망시키고 그곳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레이먼의 탄압정책과, (하)티겔 왕국의 새로운 정착지를 줄테니 대신 복속해 달라는 제유에 의해 '라이겐프름 대공국'이라는, 하티겔의 새로운 봉신국이 된다.]
         호랑이족은 사자족, 곰족과 함께 동부대륙의 패권을 양분하는 종족이다. 본래 동부대륙 중남부의 거대한 삼림지대에서 틀어박혀 역사의 일면으로 잘 나오질 않던 종족이었으나, '피의 왕'달수시기 일부가 중북부로 올라온뒤, '무적여왕'달순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종족이 된다. 한때 레잉을 정복하고 동부대륙 패권을 쥐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자족들에게 내준 태. 현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줄무늬가 나있다.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남부와, 중북부 일부, 그리고 무릉 반도.
         눈늑대족은 대륙 역사의 중심이 중북부일때부터 유명했는데, 이는 그때부터 대륙 북부에 '곰의 턱뼈'라 불리는 터그퍼산맥 인근에 살면서 약탈을 해왔기때문이다. (보통 피해국은 인근 해안을 장악한 펭공국과 티겔 왕국.)한때 라이엘기스를 정복하려 시도해봤으나, 라이엘기스의 첫대공인 '불꽃갈기' 로베르에게 격퇴당하고 이후 해안가 일대를 약탈하는 소규모 해적때로 전락했다. 아라스 제국이 동부대륙 북부를 장악하면서 이들의 운명은 둘로 나뉘는데, 아라스 제국에 저항하면서 북쪽으로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아라스제국과 북부 거인족들 사이에 끼여 전멸하거나, 아라스 제국에 자발적으로 복속하거나, 그들을 피해 '눈늑대섬'이라 이름붙여진 섬으로 숨다가 복속되거나. 이세가지로 나뉜다. 이중 두번째 길을 택한 자들중 '게트롬'이란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이자가 아라스제국의 지원을 받고 아프반 반도 북부를 장악. '게트롬 왕국'을 세운다.
         하이에나족은 '하이엔'지방에 서식하는 족속들로, 등에 갈기가 있다. 이들은 한때 중북부에 '하이엔 왕국'이란 당히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레이먼 제국의 창시자인 샤를 대제에 의해 멸망당하고 레이먼제국의 피지배민족으로 있게된다. 이후 이들은 수많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모두 실패하고, '유일황제'샤를이 아라스 제국에 패배하면서 하이엔등 ' 하이엔'지방은 아라스 제국에게, 그외 ''하 하이엔'지방은 레이먼 제국에게로 분열된다.
  • 창작:세정종합병원 . . . . 11회 일치
         [[창작:무동군|무동군]]에 소재한 종합병원. 이름을 풀이하면 '깨끗이 씻는 종합병원'이란 뜻으로 소독을 강조하고 있다. ~~세뇌가 연되는 이름이다.~~ ~~그런데 하단의 내용을 보면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후 방치된 시설을 재활용하려고 했으나, 이한 사건들이 발생함에 따라 다시 방치되었다.
         황청읍에 본관이 있고 산과 숲이 가까운 은죽면에 기본적인 분야들을 중복으로 운하는 A별관과 장기입원 및 요양을 위한 B별관이 있다. 또한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관리비가 과도하게 지출되었기 때문에 A별과 B별관은 거의 방치되었다.
         현재 정적으로 업하는 곳은 내과, 외과, 안과, 치과 등 기초적인 분야이며, 나머지 관련 시설들은 모두 철수하여 사실 방치되어 있다. 다만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 보수공사를 통해 가는 길을 막아놓았다.
         본관과 마찬가지로 안과나 치과 등이 사소하게 운되고 있으며 다른 부분들은 방치되었다는 점까지 동일하다.
         세정종합병원의 설립을 두고 생겨난 괴담이자 스캔들. 본래는 대부분의 병원에 있을법한 '저녁마다 귀신들이 수술을 한다더라' 수준의 괴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병원과 달리 '의사만이 아니라 군인 귀신도 있었다', '귀신이 우리말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한 부분에서 현실적(?)이라는 점이 달랐다.
         A별관에서 목격된 귀신. 과거에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었던 (추가바람)이/가 자신의 뇌를 사후 표본 및 전시 목적으로 기증했다. 그런데 그 알코올 통에 담가진 뇌가 저녁만 되면 통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육체로 삼을 사람에게 들러붙는다고 한다. 그 뇌에게 지배당한 사람은 겉으로는 아무 이이 없지만, 그 뇌를 받아들이지 못해 이한 행동을 보이다가 며칠 만에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NTX에서 제작되(는 걸로 예되)는 선택지 소설 [[창작:헤이즈|헤이즈]]의 [[창작:헤이즈/시즌 1]]의 무대이기도 하다. 일단은 담력시험 자체가 리부트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미정이며, 일단은 소설의 바탕이 될 만한 사건들(주로 괴담)을 구체화하는 데에 치중하기로 한다.
  • 창작:앨프레드 박 . . . . 11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인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하하, 뭐 그렇게도 볼 수 있지. 세은 보는 방향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지거든. 그러니까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는 얘기야.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건 다들 동의하잖아, 안 그래?
         = 신정보 =
         20대 한국인 남성. [[창작:레스터 리|레스터 리]]보다 나이가 4살(존보다는 2살) 정도 더 많기 때문에, [[창작:리 올드포드|중장년급 입주자]]를 제외하면 거의 최고령 수준이다. 한국식 본명은 박재동이지만 다른 아시아계 거주민들처럼 본명은 잘 얘기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나는 한국이란 나라가 싫다는' 비정적인 수준의 국까부터 시작해서, 이름이 촌스러워서 언급하기 싫다는 사소한 이유까지 다양하다.] 앨프레드의 경우는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라고 한다.
         아파트 관리인이라서 주로 집에 있기 때문인지 패션감각은 당히 단조로운 편이다. 단벌신사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하지만 소매가 긴 옷을 자주, 아니 항 입고 다니는데 이유는 '''한쪽 팔이 의수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의수는 장갑으로 가리고 다니지만 그것도 눈에 띌까봐 아예 긴팔로 가리고 다닌다. 게다가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는 사람들은 언급을 아예 하지 않거나 그냥 농담조로 얘기한다. 애초에 앨프레드 본인부터 농담 소재로 삼고 있고, 이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 단점인 장애를 가지고 스스럼없이 농담을 한다는 점에서 당한 대인배. 존이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아파트에 누가 들어오든 관하지 않고 따뜻하게 맞이해 준다. 이것에 [[창작:존 휘태커|맛이 들려서(?!) 머무르는 사람]]도 있다는 모양. 이런 따뜻한 마음씨 때문인지 지역 사회에서도 유명하며, '정치에 나가면 성공할 사람'으로 불릴 정도이다.
         다만 장애인이라 일생활이 불편한데, 이것 때문에 답이 없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혼자 있을 때에만 그러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내적 갈등을 모르지만, 존과 레스터를 비롯한 몇몇 인물들은 알고 있다.
          * 어 발음대로라면 '앨프러드' 정도 되지만, 원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독자들에게 익숙하도록 위의 표기를 선택했다. 그렇다고 '알프레드'라고 적지 않은 이유는 프랑스어나 독일어 등 다른 언어권과 헷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창작:츠키노 아스카 . . . . 11회 일치
         작중 기억을 절반이나 잃어버리고 눈을 뜨니 이한 동굴에서 눈을 뜬 탓에 공허함을 느끼며, 자칭 동굴의 130대 수호용이라는 타츠카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로 맞이했다. 이후 자신의 기억을 찾기로 맹세하며 모험의 길에 오른다. 또한 여러 모험과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게 된다.
         = 신정보 =
         나이 : 17세(하지만 선녀의 혈통을 타고난 탓에 표면으로 보이는 연령보단 더 많다.)
         개인 신 : 과거의 기억의 절반 정도를 잃어버렸으나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보구인 천경원양포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집안에서 물려준 드레스인 홍염의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게다가 어째선지 원치않게 라이벌과 엮이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고군분투와 파란만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종족은 인간과 선녀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 반선녀이다.
         월천극도(月影天極刀) : 원래는 아스카가 소지하고 있던 보구는 아니었으나, 어째선지 아스카가 소지하게 되면서 아스카가 그 능력을 100% 다 이끌어내 사용중인 보구이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뻔 한 전력이 있었던 요도로써 불려왔었고, 그 덕분에 원래 요도를 수호하고 있던 타치바나 가문에서 보관되어있었다가 자의로 그 가문에서 탈출하다시피 나가게 되어 현재는 아스카에게 의탁하고 있다.
         아스카가 사용할 시 사용하는 기술은 아스카류 월천극파쇄참(月影天極破碎斬)과 아스카류 월천격참(月影天擊斬)의 2가지 기술이 있다.
         홍염의-흑혁형(紅炎衣-黑赫形) : 츠키노 가문의 가보이며 전설급 보구 중 하나, 츠키노 가문의 여성들이 대대로 물려 입는 장착형 보구로써, 사용자가 성장해 나갈수록 사이즈가 사용자에 맞게 점점 커지게 되며 사용자의 기력 증가에 따라 감춰져있는 능력이 하나씩 개방되지만 그 능력을 전부 다 개방한 장착자가 없을 정도로 장착자들의 수명 소모 속도가 유달리 빠르다. 게다가 어째선지 아스카가 입었을때 유달리 색이 완전히 붉었던 색이 흑혁색(黑赫色 : 검고 붉은 색)이 되어버려, 많은 의구심을 품게 만들고 있다.
         홍염의-진홍(眞紅) : 제 1 각성 태로 아스카가 돌입하게 되면서 홍염의-흑혁형(黑赫形)의 형태가 서양의 드레스 같이 변한 형태, 기존의 흑혁형 형태보다 기동성에 좀더 촛점에 맞춘 형태로 변화하였다.
         혁우(赫羽) : 제 1각성 태가 되었을때 등장하게 되는 보구이면서 각성 한정으로 장착되는 유일한 보구, 능력은 천경원양포의 부족한 공중 비행 능력을 완벽하게 이끌어내는 장착형 보구이며 2쌍의 날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속성은 염화(炎火) 속성이며, 단순한 비행 능력 증가 뿐만 아니라 공격시 깃털을 불꽃 조각으로 바꿔 적한테 쏘아낸다.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사건 . . . . 11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트와일라이트 시티]]와 그 주변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목록. 핵심 스토리에 관계된 사건부터 시중에는 잘 알려져 있으나 진이 불분명한 사건사고 및 도시전설은 물론, 게임이었다면 주인공이 실행했을 법한 사이드 미션과 수집요소 등을 수록한다.
         == 사이드 미션 ==
         사실 대부분의 오픈월드 게임에 있는 랜덤 인카운터.
          감시, 도청, 촬, 제보 등 적발해야 하는 불법적인 사업을 벌이는 범죄조직들의 현장.
          * 대부분의 오픈월드 게임(GTA 시리즈, 세인츠 로우 시리즈, 슬리핑 독스, 데드 라이징 시리즈)에 있을 법한 사이드 미션들과 랜덤 인카운터들을 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소설이기 때문에 게임처럼 간단히 만나고 마는 것들은 분량이 당히 애매해졌다. 결국 게임에서 대여섯번 만나야 할 황을 한 번으로 줄이는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되면 NPC들이 처음 보는 주인공한테 이것저것 다 시키고 주인공은 그걸 또 ~~호구같이~~ 다 들어주는 황이 되는지라 그것대로 곤란하다(…).
  • 채현국 . . . . 11회 일치
         채기엽은 이후 무역·목축·임산·조선·해운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늘렸고, 경남대학교의 전신인 옛 해인대학이 기틀을 마련하도록 지원했다. 그후 양산시 웅에 현재의 효암학원을 설립했다. '효암'은 채기엽의 호다.<ref> http://media.daum.net/culture/book/newsview?newsid=20150112191904563 </ref>
         실재 언론인 임재경은 2008년 한겨레에 당시 황을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수많은 민주인사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수십채 이의 집을 후원하였다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뒤에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활동자금을 지원했다. 1988년부터 효암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해 효암고등학교와 개운중학교를 뒤에서 돌보고 있다. <ref>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557825 ‘꼰대’ 거부하는 채현국·신복·호세 무히카 이런 ‘단호박 할배’들은 처음이다</ref>
         이 시대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멘토 중 하나로서 강의를 통해 세과 만나고 있다.
         <ref> http://www.up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50340 365일 36.5도의 따뜻한 세 만들기 '북레터 365 운동’ 업코리아 2015.08.24. </ref>
         * "재산은 세 것이다. 이 세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 줄 게 아니다."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학교법인인]][[분류: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분류:대산문학자]]
  • 철인 28호 . . . . 11회 일치
         == ==
          흑백 시절에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에 방되었다.
          80년대에 방. 국내에서도 더빙되어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다만 다른 철인 시리즈와는 거리감이 생겼다.
          90년대에 방. 초대 철인 이후의 시대라는 설정이며 새롭게 만들어진 철인들이 등장. 초대 철인도 등장한다. 이쪽도 국내 방.
          50주년 기념으로 '철인 28호 가오!'가 방. 국내에서도 [[카툰 네트워크]]에서 방했다고 한다.
         2005년이 되면서 실사화가 개봉. 연기력 있는 배우들이 등장하고, 한국에서도 관심을 가졌으나 아쉽게도 평가는 좋지못했다. 이후 오시이 버전인 연극판도 비슷한 평.
          * 원작자인 요코야마 미츠테루 선생의 고향인 고베에는 실물 크기의 철인 28호 동이 만들어져 있다.
          * '철인'이라는 만화가 있다. 전 4권이며 배경은 중국에 고릴라를 닮은 철인이 등장. 아톰스러운 요소도 연되는 만화다. 기존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는다. 글은 야하기 토시히코, 그림은 오치아이 나오유키.
  • 최민호(유도선수) . . . . 11회 일치
         ||<#131230> '''{{{#white 출생}}}''' ||<#ffffff> [[1980년]] [[8월 18일]], [[경북도]] [[김천시]] ||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대인 [[오스트리아]] 파이셔 선수의 고간을 잡아 들어 업어 메치는 명장면[* 속된 말로 '''그냥 잡아 뽑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는 딱지치기라고도 했다.][* 다만 현재 룰에서 이는 반칙이다. 띠 아래쪽을 잡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파이셔 선수는 패배 후 최민호 선수가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을 때 가 일으켜 안아주고 마지막엔 최민호의 손을 번쩍 들어주며 축하해주는 매너에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으로 금메달을 땄고, 국내 60kg급에선 2003년서부터 쭉 본좌 자리를 유지하고, 오로지 유도만 바라보며 사는 자타공인 유도 바보.
         2003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시작으로 일약 동 체급 최고의 선수로 부했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체중 감량을 하다가 컨디션 난조에 빠지면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다시 말하지만 '''컨디션 난조'''로 올림픽 동메달이다-- 사실 대회 개막 직전 일주일 동안 -7kg을 뺀 것을 감안하면 동메달이라도 딴 것이 기적일 정도다.[* 일반인이 이런 페이스로 다이어트를 하면 급격한 에너지 부족으로 일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평생 한 번 나가보기도 어려운 올림픽을 앞두고 운동선수로서 막바지 훈련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어마어마한 정도의 체력 손실을 감내한 것이다.] 그 뒤로 한 때 66kg급으로 증량을 검토하다가 결국 60kg에 남았지만 2003년 무렵처럼 세계 강호가 아니라 3위권 선수가 되었다. 스스로도 동메달만 따서 지겹다고 할 정도였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4년 전 아테네와 달리 체중 조절에 성공하며 쾌조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올림픽에서의 한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2008년 이후 진짜로 체급을 -66kg으로 올렸지만, 여기서는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가락은 있어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조준호(유도)|조준호]]를 누르고 우승에 성공했지만, 워낙 국제대회에서 좋지 않았던 탓에 세계랭킹 순위에 앞선 조준호에게 올림픽 출전권이 밀리며 런던행에 실패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대한유도회의 병크라고 까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연맹에서 랭킹 위주의 올림픽 출전권 부여를 천명했고, 랭킹에 미달한 선수는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랭킹이 20위권이었던 최민호는 출전권을 얻어도 시드에서 현저히 밀릴 수 밖에 없던 황이었다. 경쟁자인 조준호는 당시 랭킹 9위였다. 실제로 2008년에 치열했던 유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대표적인 사례가 -73kg의 이원희 vs 왕기춘, -81kg의 김재범 vs 송대남]은 랭킹 우선주의가 선언되면서 2012년에는 -90kg를 제외하고는 그냥 요식행위가 되었다.[* -90kg만 비슷한 랭킹권의 선수가 2명이 있어서 선발전이 열렸고, 나머지 종목은 랭킹 차이가 심하게 나면서 하나마나한 선발전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90kg의 선발전의 승자가 바로 2012년 동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송대남]]이다.]
         == 수 기록 ==
          * 유도선수치고는 다소 순박해 보이는 인에 163cm인 [[단신|작은 체구]]의 소유자이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14121592|'''3개월 복싱 배운 185cm 내 남자친구가 최민호 정도는 이긴다''']]고 말하는 한 [[여자]]의 [[짤방]]이 떠돌아 다닌 적이 있다. ~~국대를 어떻게 이기냐~~ 그러나, 어떤 무술이든 해당 무술을 좀 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진짜 최소 한도로 잡으면 1년, 적어도 3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복싱]]을 3개월 배웠다는 거로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국가대표]]와 일반 사회체육인은 체력차가 크다. 특히 유도는 [[레슬링]]과 [[올림픽]] 그래플링계를 양분하는 무술 중 하나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도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이고, 최민호는 그런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인데다가 술했듯이 동 체급 내에서도 어마무시한 [[괴력]]의 소유자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한 '''세계 챔피언'''이다.
          * 시그니처 기술로는 속칭 말아업어치기로 불리는 변형 업어치기가 유명하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외국에서는 Korean Seoi-nage, 혹은 Reverse Seoi-nage로 불리고 있다. 현역시절의 을 보면 동체급대비 압도적인 힘으로 일단 말리기만 하면 넘어가는 호쾌한 장면을 연출하는 기술.
  • 최연제 . . . . 11회 일치
         | 웹사이트 =
         * [[이은 (가수)|이은]]
         | 제목 = [[KBS 가요대]] 《신인
         {{하이원 서울가요대 신인자}}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 신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최태영 . . . . 11회 일치
         '''최태'''(崔泰永, [[1900년]] [[3월 28일]] ~ [[2005년]] [[11월 30일]])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이다. 한국인 최초로 [[1925년]]에 법학 정교수가 되어 한국 근대 법학의 초기에 [[보성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법·민법·헌법·국제법·행정법·법제사·법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며 법학 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대사]]에 관심을 두고 여러 저서를 출간하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1919년]] [[메이지 대학교|메이지대학]] 예과에 입학하였고, [[1921년]]부터 [[1924년]]까지 법학부에서 수학하여 법철학 및 법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보성전문학교]]에서 교수 및 강사로 일하면서 경신학교의 교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학술활동에도 열의를 보여 [[1954년]]부터는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57년]]부터 [[1972년]]까지는 한국사법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술로 국내 최초로 법과 관련된 《현행 어음·수표법》을 집필하였고,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1977년]]에 출간한 《서양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은 학술원 저작을 수하기도 했다.
         [[고대사]] 연구에도 관심을 가져, [[단군]]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하였다. {{출처|날짜=2014-2-3|《[[삼국유사]]》의 ‘[[환인]](桓因)’은 ‘[[환국 (의사 역사학)|환국]](桓國)’의 조작이라는 주장을 통해 잘 알려졌다.}} [[1989년]]에는 《한국 고사 입문》을 출간하였는데, 이 책이 [[이병도]]와 공저한 것이라 주장하였으나 정작 해당 책에는 이병도가 저술한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90세 이의 고령일 때도 활발한 저작 활동을 펼쳤다.
         * [http://www.nas.go.kr/member/member_detail_basis.asp?num=40 대한민국학술원 최태]
         [[분류:1900년 태어남]][[분류:200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학술원 회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메이지 대학 동문]][[분류:법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백세인]][[분류:법학자]][[분류:부산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
  • 킹덤/506화 . . . . 11회 일치
          * [[산민족]]은 을 뛰어넘는 속도로 성문 근처까지 접근해 기병 중 일부를 처치했으나 성문 안으로 진입하는 데에는 실패.
          * 산민족 진에서 유독 빠른 한 무리가 튀어나온다. 이들은 비마족. 일반 기마의 몇 배에 달하는 속도로 미적미적 성 안으로 들어가던 열미의 기마대를 급습한다.
          예보다 너무 빠른 이들의 진격은 성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비를 간발의 차로 뚫는다. 끄뜨머리의 한 명이 화살에 맞았을 뿐.
          * [[환의(킹덤)|환의]]군, [[왕분]]대에 파발이 온다. 이들은 도중에 마주쳤던 조군을 성공적으로 격멸하고 막 휴식에 들어가던 참이다. 파발은 열미성 공략이 시작되었고 산민족과 [[비신대]]만이 투입되었다고 알린다. 왕분은 예과 다른 인선에 움찔한다. 부하 장수들은 자기들이 맡은 역할 때문에 비신대에게 선수를 뺏겼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 사이에 왕분은 조용히 자리를 뜬다. 관이 어딜 가시냐고 묻자 중요한 전투에서 총대장 [[왕전(킹덤)|왕전]]이 이같은 지시를 내린 의도를 물으러 간다며 본대는 부자 조치를 마친 뒤에 따라 오라고 지시한다. 한모대가 호위를 자청. 관은 왕분의 핑계가 솔직하지 못하다며 그냥 비신대가 신경쓰여서 간다고 하시면 된다고 하지만 왕분은 대답없이 그대로 출발한다.
          곧 관도 "나도 비신대가 보고 싶다"며 본대를 부장 번양에게 떠넘기고 빠져나간다. 번양은 노발대발.
          * 양단화는 공략지점을 찾았고 오가족의 엄호 속에 바지오 부대를 성벽에 올린다고 한다. 신도 바지오만 돌입하면 이긴거나 다름 없다고 맞장구 친다. 문제는 엄호할 인원이다. 오가족만으론 부족. 양단화는 비신대에 실력좋은 궁병이 있냐고 묻는다. 신은 웃으며 "무지막지한 놈들"이 있다고 답하는데. 그 "무지막지한 놈들", [[창인]]과 [[창염]] 형제는 얼어붙다시피한 신병들 사이에서 대기하고 있다.
  • 토리코/384화 . . . . 11회 일치
          * 아카시아는 풀로제가 GOD를 조리할 당시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태였다고 폭로한다. 죠아는 그 아이가 요수의 힘으로 성장한 것
          * 두 사람 사이에 전운이 고조되고 마침내 엄청난 규모의 엠페러 링이 하늘을 뒤덮는다.
          * 미도라는 동요하지 않고 "처음부터 불가능한 임무를 떠맡기고 처입은 날 최후의 힘으로 구하게 만든 것은 바로 네놈"이라고 말한다.
          * 아카시아는 "거기까지 이치류에게 들었냐"고 말하며 사실 인정한다.
          * 그에게 필요한건 플로제의 식운 뿐이며 그것만 있으면 죠아가 누구인지 따위는 아무 관도 없는 문제.
          * 그리고 미도라가 오해를 하고 있다며, 플로제가 계획에 동조하지 않았던 것은 아무런 관도 없다고 말한다.
          * 예을 들어엎고 토리코와 스타준의 아버지는 아카시아일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아졌다.
          * 죠아가 플로제 본인의 환생이라는건 다소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코마츠가 혼세계에 갔을 때 플로제 본인으로 추정되는 혼과 만났기 때문.
          * 미도라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풀코스를 거의 완식한 태라 그런지 진화한 아카시아와 거의 대등한 태. 엠페러 링이 증거다.
  • 토리코/388화 . . . . 11회 일치
          * 토리코는 아카시아를 너무나도 쉽게 대하며 아카시아를 당황하게 한다.
          * 형세가 역전된 것처럼 보였지만 아카시아는 일행에게 식욕에 대한 철학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끌고 그 사이 지구 전체를 움켜쥐는 기술을 사용한다.
          * 토리코는 적귀를 먹고 눈물에서 조차 극의 맛이 났다며 여운에 빠져있다.
          * 토리코가 GOD를 먼저 먹인 대는 바로 팔왕들이었다.
          * 다른 팔왕들의 태는 아직까진 미지수.
          * 이렇게 합류한 일행들. 황은 반전되어 토리코 일행에게 유리해졌다.
          * 식욕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며 종의 번이나 애정 같은건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 토리코는 예치 못한 전개에 당황하는데 그때 블루 니트로 페어가 나타나 "시작된 거다"라고 말한다.
          * 한편 에리어 0으로 진입했던 아카마루는 을 초월한 압력과 에너지로 몸이 버티지 못할 지경이 된다.
          * 아카시아의 반응으로 보면 이건 당히 중요한 차이인 듯.
  • 페어리 테일/532화 . . . . 11회 일치
          * [[메이비스 버밀리온]]은 제레프의 고통을 끝낼 방법을 찾았다며 그를 설득하려 하나 제레프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태다.
          * 제레프는 자신도 [[아크놀로기아]]는 이길 수 없고, 인류가 멸망하면 그와 메이비스는 원히 아크놀로기아의 장난감이 된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다.
          * 비장의 수, 드래곤 포스를 해방한 [[나츠 드래그닐]]. 그것으로 [[제레프 드래그닐]]의 마법은 끊어버릴 수 있었으나 제레프를 대로 얼마나 통할 지는 미지수다. 제레프 본인은 "그럴로는 역부족"이라며 차라리 나츠도 [[아크놀로기아]]처럼 용화할 수 있엇다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한다. 나츠는 자신은 인간이고 아크놀로기아처럼 되지 않겠다며 그것이야 말로 아버지 [[이그닐]]의 의지라고 일갈한다. 제레프의 빈정거리는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아크놀로기아는 어떻게 할까? 죽지 않고 원히 부활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을까? 그것이 제레프가 가진 공포의 근원이었다. 메이비스와 나란히, 아크놀로기아의 원히 사는 장난감이 되는 운명.
          메이비스는 그 원을 끝낼 방법이 있다며 마지막까지 설득을 시도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방법은 제레프도 찾아냈다.
          * 아크놀로기아는 크리스티나 호 안의 [[웬디 마벨]]을 추격하고 있는게 명백하다. 웬디는 배의 멸룡마도사용 리크리마가 파괴돼서 멀미에 시달리며 리타이어. 하긴 멀쩡한 태여도 황이 이래서는 해볼 일이 없다. [[안나 하트필리아]]는 일행들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도 성령마도사. "문을 억지로 여는 건 특기"라며 시간의 틈새를 다시 열겠다고 장담한다.
          *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엘자 스칼렛]]에게 자신이 시간을 벌어 보겠다고 말한다. 이런 황에서 시간을 끌만한 방법이 있을까?
          * 메이비스 입장에선 황당하기만 한 원망이다. 제레프는 그래도 다시 시작한 인생에선 꼭 나츠와 함께, 아크놀로기아가 지금처럼 강해지기 전에 끝을 내겠다며 "인류의 미래는 내가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지금 세계와 아무 관도 없는 세계에서 말이다.
         표지는 사실 공식 커플들 투샷.
  • 표민수 . . . . 11회 일치
         |웹사이트 = [http://www.campent.co.kr 씨에이엠피]
         [[본관]]은 [[신창 표씨|신창(新昌)]]이며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학사]] 졸업하였고,<ref>[http://people.nate.com/people/info/py/om/pyominsoo 네이트 인물검색]</ref> [[1991년]] 공채를 통해 [[KBS]] 드라마 제작국 PD로 입사하였다.<ref>[http://movie.daum.net/movieperson/Biography.do?personId=117442&t__nil_main_introduce=more 다음 화 인물 정보]</ref> 1991년부터 2001년까지 KBS 드라마 제작국 프로듀서로 근무하였고, 퇴사 이후 프리랜서 PD로 활동하고 있다.
         * [[1996년]] [[KBS2]] 《드라마게임 - 깊은 바다》 (극본 : [[문남]]) # 첫 연출작
         * [[2008년]] [[KBS2]] 《[[그들이 사는 세]]》 (극본 : [[노희경]])
         * [[2018년]] [[JTBC]] [[제3의 매력]] (극본 : 박희권, 박은)
         * [[1992년]] [[KBS1]] 《[[당신이 그리워질 때]]》 (연출 : 이희)
         * [[1995년]] [[KBS1]] 《[[바람은 불어도]]》 (연출 : 이희)
         == 수 경력 ==
         * [[1998년]] 제35회 [[백예술대]] 신인연출 《[[거짓말 (드라마)|거짓말]]》
  • 피우진 . . . . 11회 일치
         || '''학력''' ||<(> 충주여자중학교[br][[청주여자업고등학교]][br][[청주대학교]] [[체육대학|체육학 학사]][br][[건국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 [[http://ko.pokr.kr/person/1956211|#]]] ||
         매우 모범적인 군인이었다. 피우진과 같이 군 생활을 한 장병들은 모두 그녀를 '''"매우 훌륭하고 인성도 당히 좋은 참 군인"'''이라며 칭송했을 정도. 그런데 피우진이 군 생활을 할 당시 [[소령]]이었는데, 하필 자신은 [[소대장]]이 되었다.[* 보통 [[소대장]]은 [[소위]]~[[중위]]가 배치된다.] 게다가 [[중대장]]이라는 사람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남군 [[대위]]였는데 '''이는 명백한 [[성차별]]이다!''' 그나마 해당 남군 대위가 개념이 있어서, 자기보다 직급은 낮아도 계급이 높기 때문에 피우진을 존중해주고 서로 호존대를 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넘어가기는 했다만.
         2006년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수술로 인한 유방 절제를 이유로 장애 판정을 받고 전역 조치되자,[* 참고로 유방절제로는 장애인복지법 기준으로는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피우진 중령이 받은 장애 판정은 군 내부 규정에 따른 것.] 복직 소송을 진행하여 승소 후 2008년 5월에 복직하였다. 암 수술을 받았다지만 군 생활은 물론 일생활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건강한 군인을 강제로 장애 판정을 받게 하고 전역시킨 군 내부의 문제가 이때 알려진다. 강제 전역당했던 기간인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3번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당시 1심에서 승소했고 2심이 진행 중이었다. 어쨌건 강제로 민간인이 된 태라서 출마가 가능했다.] 당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2.9%에 머물러 비례대표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다. 피 보훈처장이 비례대표로 당선되려면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약 5.56%를 넘었어야 하는데, 그건 둘째치고 애초에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조건인 정당득표율 3%에 0.1% 차이로 아깝게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1명도 나오지 못 한 것.
         2008년 5월에 복직한 뒤 육군항공학교 교리발전처장이라는 보직을 받고, 복무하다가 2009년 9월 29일에 육군항공학교에서 만기전역하였다.[* 참고로 구글링해 보면 관련 사진이 나온다. 거기서 어떤 [[준장]]이 피 중령에게 감사장 같은 것을 수여하는데, 그 준장은 [[육군사관학교]] 34기 배명헌 장군이다. 배 장군은 당시 육군항공학교장이었고, 그 후 전하여 육군항공작전사령관을 거쳐 소장으로 전역한다. 현재 그는 성우회 소속 안보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중령]]의 [[연령정년]](53세)이 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육군]]의 최초 [[여군]] 헬리콥터 조종사'라는 설이 있으나, 이는 언론의 실수이다. 최초 [[여군]] 헬기 조종사는 [[http://news.joins.com/article/1684845|김복선 예비역 대위이다.]] 보다 정확히는 김복선 예비역 [[대위]]가 12기이고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14기인데, 수료년도으로는 둘 다 1981년이었기에 언론 등에서 혼동한 것. 사실 이 문제는 이미 2006년에도 언론들이 혼동해서, 직접 김복선과 피우진 양측에서 해명 인터뷰까지 다 마친 바 있다.
         취임 이후 '사후 약방문식'의 보훈업무 일처리를 지양하고, 보훈복지의 사각지대를 선제적으로 찾아 문제점을 미리 제거하는 등 보훈복지 강화에 조직운용의 역점을 뒀다. 피 처장 부임이후 다양한 조직운용의 변화 시도가 결국 성과로 연결되면서 보훈처는 국정운평가에서 '매우 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4&aid=0004085797|*]]
         이를 통해 피우진이 얼마나 대쪽 같은 인물인지를 깨닫게 되었기에 더 이 비슷한 성격의 요구가 하달되는 일은 없게 되었으나, 높으신 분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피우진은 결국 중령에서 군 생활을 접게 된다. ~~안 돼~~ 한때는 이것이 루머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실제 실탄 지급을 한 것에 대해 징계를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오호라, 그럼 기록에 남은 그 사람이 관련자로구나!~~이때가 1988년 무렵이고, 피우진은 [[제1야전군사령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1987년 6월부터 89년 4월까지가 [[정호근(군인)|정호근]](後 합참의장 역임)이 1군사령관이고 다음이 [[이진삼]]이다. 또한 88년 7월 소령으로 진급했기 때문에, 88년 대위 시절 사령관은 [[정호근(군인)|정호근]]으로 추측된다.
          * 앞서 말한 대로 2006년 건강검진 때 [[유방암]] 절제수술 건으로 강제 전역 당했다가 2년 뒤 소송을 통해 복귀한 경력이 있는데 [[카라 헐트그린]]의 동료였던 [[F-14]] 여성 파일럿 캐리 로런츠(Carey Lohrenz) [[미합중국 해군]] 대위의 행적과 비슷하다. 두 사람 다 [[여군]] 1세대 파일럿[* 캐리의 경우 정확히는 카라 헐트그린과 함께 여성 최초의 전투기 F-14 파일럿이다.]이며 억울하게 자리에서 쫒겨나[* 피우진의 경우 유방암 절제수술의 장애 판정으로 강제 전역, 캐리 로런츠의 경우 최소한의 재심사도 없이 강제 [[그라운딩]]을 당했다.] 2년간의 법정 소송을 통해 그 보직과 자격을 회복했다. 다만 피우진의 경우 소송에서 이기고 육군항공학교에서 중령으로 전역할 때까지(정년까지) 커리어를 이어갔던 반면[* 대신 앞전의 술자리에 여군을 보내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등의 일로 미운털이 박혀서 진급이 막혔다.] 캐리 로런츠의 경우는 소송에서 이겼음에도 높으신 분들 때문에 끝내 함 근무로 복귀하지 못하고 1999년 [[미 해군]]을 떠났다.
          * [[소위]]로 임관한 피우진의 첫 보직은, 여군 부사관 후보생들을 지휘하는 중대장이었다. 이때 훈련소에는 후보생들 외에 문 타자 주특기 교육을 받는 병사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손석희]]도 있었다고 한다.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에서, 피우진은 [[손석희]]를 "똑똑하고 예의 바른 병사"였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이 분위기가 비슷했는지, 한번은 피우진이 [[손석희]]를 꾸짖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소령]]이 "똑같은 녀석들끼리 교육 시키고 교육 받네"라며 웃은 적도 있었다고.
  • 하이큐/225화 . . . . 11회 일치
          * 카게야마는 그렇게 불러도 관 없다고 받아친다.
          * 그리고 시합의 "황"과 선수의 "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 사와무라는 "타나카의 체력도 남았으니 이 황에서 가능한걸 이것저것 실험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
          * 카게야마가 받아들이고 "공을 줄여가면서 황을 본다"고 하는데 타나카는 여기에 발끈해서 "그런 얘긴 남 모르게 해라"라고 일갈한다.
          * 서로 다투듯 사과하는 웃기는 황. 사와무라가 스무스하게 풀어주고 각자의 과실을 정확하게 따지고 넘어간다.
          * 그리고 왠지 아즈마네도 "뭐 하나 실수할 때마다 세 멸망한 듯한 표정 짓지마라"는 디스를 듣는다.
          * 환호하는 다테 진.
          * 카라스노는 아슬아슬하게 1점 차 우위를 지키는 황. 스코어는 16대15
          * 우카이 코치는 내년 가장 성가신 대는 다테 공고일지 모른다고 평한다.
          * 스코어는 23대21. 카라스노의 2점 차 우위. 카라스노는 결정타가 필요한 황.
  • 하이큐/264화 . . . . 11회 일치
          * 하루 전. 봄고 1일차를 마친 [[카라스노 고교]]의 숙소에선 타나카의 소꿉친구인 [[아마나이 카노카]]가 화제에 올랐다. 2학년 [[엔노시타 치카라]], [[나리타 카즈히토]], [[키노시타 히사시]]는 "그린 라이트"라며 이대로 타나카에게 여친이 생기겠다고 수다를 떨었다. 정작 당사자인 타나카는 왜 그렇게 되냐며 "이기지도 못할 대에겐 덤비지 말아야 하냐"고 항변한다. 자신에겐 [[시미즈 키요코]]라는 반한 대가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동기들은 하나같이 회의적이다. 그보단 애초에 타나카가 진심으로 키요코를 좋아하는 건지도 처음 알았다는 반응. 타나카는 카노카가 그린라이트라고 갑자기 그쪽으로 갈아타냐는 말이냐고 따진다. 그것도 이하긴 하지만 동기들의 여론은 대체로 그런 편. 나리타는 "고백 받고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인다. 잠자코 있던 [[니시노야 유]] 조차 "차려진 밥을 안 먹으면 남자도 아니다"고 드립을 치며 타나카를 압박한다. 타나카로서도 그걸 모르는건 아니었다. 그도 착하고 예쁜 누님들이 놀자고 하면 얼씨구나 따라나서겠지만, 이건 문제가 좀 다르다, 그렇게 절규했다.
          날카로운 일침이었다. 하지만 타나카에겐 그 말이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좋아한다를 자제한다"는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는 타나카. 엔노시타는 아예 설명을 포기했고 키노시타 또한 "입부한 첫날부터 이런 사람이란걸 알았다"고 씁쓸하게 회한다.
          언제나처럼 체육관으로 달려오던 키요코. 교복에 실내화 차림으로, 운동화는 두 손에 들고 있었다. 항 제일 먼저 체육관에 도착하는게 그녀의 일과였고 그날도 그런 줄로만 알고 멋지게 체육관으로 뛰어들었다. 그때가 타나카와 처음 마주친 순간이었다. 약간 민망해하는 키요코에게, 타나카는 인적인 첫마디를 던졌다.
          이 재미난 볼거리 이후 부원들 사이의 타나카에 대한 인식은 싹 달라졌다. 키노시타의 소감처럼.
          훗날까지 "초면 프로포즈 사건"이라 회자되는 이 사건. 동기들은 세삼 그때를 떠올리며 "원래 저런 녀석"이라 납득하게 되었다. 타나카는 내일 시합을 앞둔 긴장감을 핑계대고 자리를 뜬다. 남은 동기들은 혹시 저러다 스토커가 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지만 키요코가 정말로 거절하면 그렇게까진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타나카를 바보취급하는 분위기였지만 엔노시타가 좋은 얘길 해준다. 늘 바보같아 보여도 언제나 한결 같은건 대단한 일이라면서.
          * 타나카는 눈 앞으로 뻗어오는 손들을 어떻게 피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항 실패했지만, 어쩐지 겁이 나지 않았다.
          2세트를 앞두고 코트를 바꾸면서 [[타케다 잇테츠]] 고문과 키요코도 자리를 정리한다. 타케다 고문은 "한때는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고 하는데 키요코는 대뜸 "타나카는 항 대체로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녀도 타나카의 부진을 신경 쓰고 있던 걸까?
  • 하이큐/273화 . . . . 11회 일치
          * 카게야마의 4회차 서브. 이번에도 역시 강력하다. 긴지마가 받은 공은 크게 떠올라 다시 카라스노 진이로. 여기서 카게야마가 또 묘기를 부린다. 서브 이후 "직결 셋업". 바보커플의 여자 쪽은 카라스노의 9번 카게야마를 보면서 "봄이 한 번에 돌아왔다"는게 무슨 말인지 실감했다. 그리고 10번, 히나타도 그랬다. 카게야마의 신속한 세트업 만큼이나 히나타가 날아오른 것도 빨랐다. 이나리자키 블록은 미처 따라붙지 못했고 완전 노마크로 스파이크. 하지만 득점하지 못한다. [[미야 아츠무]]가 귀신같이 루트를 꿰뚫어보고 리시브해낸다. 공은 오사무를 거쳐서 다시 오지로에게. 오지로는 방금 전 꺼림직함을 떨쳐내려는 듯 강렬한 스파이크로 1점을 되찾아 간다. 카게야마의 득점 행진은 여기서 멈췄지만 분위기는 충분히 변했다. 카라스노의 괴짜 콤비와 미야 아츠무 간의 신경전. 그대로 고조된다.
          * 이나리자키의 서브. 오사무의 차례. 아츠무는 카게야마를 의식했는지 신경질스럽다. 오사무를 대로 2세트를 마무리 지으라고 말하면서 왠지 또 "오늘 서브 에이스는 내 압승"이라고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다. 오사무도 그못지 않게 신경질적이다. 그게 향을 줬는지 오사무의 서브는 크게 뜨면서 아웃. 코트를 한참 벗어나 스코어보드를 맞추는 홈런이다. 옆에 있던 [[야치 히토카]]가 화들짝 놀란다. 중계진은 원래 이나리자키는 가끔 이런게 나온다며 웃어넘긴다. 아츠무에게 "누가 홈런 경쟁을 하랬냐"고 갈구다가 "네가 쓸데없는 소릴해서 그렇다"며 오지로에게 쥐어박힌다. 사실 오사무는 대범한 척해도 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있다. [[스나 린타로]]는 자기랑 동류라고 표현한다.
          * 바로 이 시점에서 선수교체. 오지로 대신 이나리자키의 주장 [[키타 신스케]]가 등판한다. [[타나카 사에코]]는 주장이 이런 시점에서 에이스를 쉬게 하는 거냐고 경악했다. 시마다도 비슷하게 봤는데 아마도 이번 세트를 이미 딴 걸로 생각하고 마지막 세트에서 에이스인 오지로를 풀로 활용하기 위해 잠깐 휴식시키는 걸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지금이 찬스일수도 있지만, 막 교체로 들어온건 팀의 주장. 그냥 "대역"은 아닐 공산도 있었다. 카라스노의 벤치도 그 점을 경계하고 있었다. 특히 [[타케다 잇테츠]]는 기어코 자료로 접하지 못했던 선수가 나왔다고 우려했다. 우카이 코치는 거기에다 오지로를 조금 더 흔들어 놓고 싶었던 참이라 아쉬워한다.
          그것과 별개로, 막 주장을 맞이한 이나리자키의 선수들도 경직된 기색이 완연하다. 그 미야 형제 조차도 기합이 잔뜩 든 모습이다. 후배들의 "나이스 서브" 응원을 받으며, 버티는 역할의 키타가 서브 위치에 선다.
         == 세 ==
          블록에 빠릿빠릿하게 참가하고 카게야마가 4회차 서브 직후 직결 세트업을 올릴 때 쏜살같이 달려나와 스파이크를 날렸다. 이쪽도 카게야마 온화모드 못지 않게 팔팔한 태지만 아쉽게도 득점은 하지 못했다.
          미야 아츠무는 카게야마가 서브로 대활약하자 엄청나게 경계하기 시작했다. 우카이 코치의 의도는 주포 오지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전술인데, 본의 아니게 아츠무 쪽에도 엄청 스트레스를 선사했다. 그리고 아츠무는 그 성질을 괜히 형제 오사무에게 풀면서 오사무의 컨디션까지 향을 주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팀 전체의 분위기까지 흔들린다.
          비록 2세트에서 크게 뒤쳐진 태지만 대편 에이스 오지로 아란에게 스트레스를 누적시키고 경기 흐름을 뒤집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예보다 빨리 오지로를 교체하자 조금 더 흔들어 놔야 했다며 아쉬워한다. "대역"으로 들어온 키타 신스케를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 한무숙 . . . . 11회 일치
         | 학력 = [[경남여자고등학교|경남도 부산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 자녀 = 슬하 2남 2녀 <br /> 장녀 김기(金榮起) <br /> 장남 김호기(金虎起) <br /> 차녀 김현기(金賢起) <br /> 차남 김용기(金龍起)
         | 웹사이트 = [http://www.hahnmoosook.com/ 한무숙문학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과 [[한국여류문학인회]] 중앙위원 등을 맡았다. [[1958년]]에 단편 〈감정이 있는 심연〉으로 [[자유문학]]을 수했고, 신사임당(1973)과 [[3·1문화]](1989) , 예술원(1991) 등을 차례로 수했다.
         }}</ref> 한무숙을 기념한 한무숙문학도 제정되었다.
         ** 장녀: 김기(金榮起, [[1941년]] [[2월 24일]] ~ )
  • 한성우 . . . . 11회 일치
         | 수 =
         '''한성우'''([[1992년]] [[11월 19일]] - )는 [[대한민국]]의 [[발레]] [[무용수]]이다. 한국인 남성 최초로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에서 입하였다.
         한성우는 남동생(한진우)이 운동 삼아 발레를 배우게 되자, 곧 자신도 배우기를 희망하면서 발레를 시작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발레학원을 다니기 시작하여 이듬해 한국예술재교육원을 드나들며 발레의 기초를 배웠다. 선화예술중학교 입시 콩쿠르에 입하면서 입학하였고, [[선화예술고등학교]]를 2년간 다니다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재 입학하였다.<ref>{{뉴스 인용
         * 2011년 8월 국 [[로열 발레]]단 연수단원
         == 수 ==
         * 2011년 제11회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남자 솔로부문 금
         * 2011년 제11회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발레 파드되부문 금
         * 2011년 제39회 스위스 로잔국제발레콩쿠르 준우승 Beau-Rivage Palace
         * 2010년 제9회 로마국제무용콩쿠르 주니어부문 공동금
  • 한용덕 . . . . 11회 일치
         |문 표기 = Han Yong-deok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으나 [[대전광역시|대전]]으로 이주하였다. 대전천동초등학교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하여 충남중학교를 거쳐 [[북일고등학교]]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김덕 (야구인)|김덕]]과 인연을 맺게 된다. [[북일고등학교]]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로 [[북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 때 어려워진 가정 환경과 무릎 관절염으로 인해 [[야구]]를 포기하고 대학도 자퇴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101109 사회인 선수 → 프로 무대‘연습생 신화’] 《대전일보》, 2007년 4월 23일 작성</ref>
         [[동아대학교]] 중퇴 이후 병역을 마쳤으나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선수로서의 꿈을 이어 가던 중 [[북일고등학교]] 시절 은사이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덕 (야구인)|김덕]]의 주선으로 [[1987년]] 9월 [[빙그레 이글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2553 무관의 투수왕 '한용덕'] 《오마이뉴스》, 2006년 9월 27일</ref>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져 주는 힘겨운 [[신고선수]] 시절을 보내고 2년 뒤에서야 비로소 정식 선수로 승격되었다.
         아주 빼어난 선수였으나 수 경력이 전무해서 무관의 투수왕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2006년]] 시즌 중반 당시 플레잉 코치였던 [[지연규]]의 1군 합류와 함께 1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41623& 한화, 우완 조성민 1군 올리고 최동원 코치 2군행] 《Osen》, 2006년 7월 24일 작성</ref> [[2006년]] 시즌 종료 후 열린 전지 훈련에서 [[류현진]]에게 [[슬라이더]] 투구법을 전수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249270 신인 삼총사, '신무기 장착으로 2년차 징크스 넘는다'] 《조이뉴스》, 2007년 2월 21일 작성</ref> [[2007년]] 시즌 중반 [[이군]]이 1군 [[투수]] 코치로 승격됨에 따라 재활군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733318& 한화, 1군 투수코치에 이군]《연합뉴스》, 2007년 8월 22일 작성</ref>
         [[2014년]] [[12월 4일]] [[두산 베어스]]에 2군 총괄 코치로 입되었다. [[2015년]] [[김태형 (야구인)|김태형]]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1군 투수코치로 승격하였다. 2018년부터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활동한다.
         |전임자 = [[이군]] 감독대행
  • 한지우(배우) . . . . 11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배우/한국)]
         || [[한]] || '''김보람''' || 없음 ||
         ||<#3D414D> {{{#ffffff '''출생'''}}} ||<(> [[1987년]] [[3월 26일]]([age(1987-03-26)]세) [[경북도]] [[포항시]] ||
         ||<#3D414D> {{{#ffffff '''수'''}}} ||<(> 2007년 [[미스코리아]] 중국 진[*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0233142|관련기사]] ] ||
         2007년 [[미스코리아]] 중국 진 출신으로, 본선대회에서는 입하지 못했다.
         통칭 '''리틀 [[송혜교]]'''. 송혜교를 연시키는 부드러운 외모와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중국에서 당한 인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뜨거운 형제들]] 출연을 통해 유명해졌다. KBS 8부작 청춘드라마 '[[정글피쉬 2]]'의 주연으로 발탁돼 [[엄친딸]] '백효안' 역을 연기했다. [[무한걸스]] 시즌 3에 참여하였다.
         정글피쉬 2를 촬하면서 교복을 입은 장면의 사진이 공개되면서[[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2110168|#]] 소위 말하는 [[베이글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1년, [[문화방송|MBC]] [[주말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드라마)]]에서 금란이의 [[무개념|개념없는]] 여동생 미란이로 출연하며 많은 욕을 먹었다. 짜증을 유발하는 악역 특성, 배우의 실명까지 거론되며 여러가지로 까였다.
         [[2017년]] [[11월 11일]], 3살 연의 대기업 연구원과 결혼하였다.[[http://osen.mt.co.kr/article/G1110755388|#]]
         ||<rowbgcolor=#fb5a1e> {{{#white '''방 연도'''}}} || {{{#white '''방송사'''}}} || {{{#white '''제목'''}}} || {{{#white '''배역'''}}} || {{{#white '''비고'''}}} ||
  • 한혜은 . . . . 1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
         | 학력 = [[남대학교]] 국제통학부
         | 웹사이트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8623277609&fref=ts 한혜은 페이스북]
         | 수 =
         '''한혜은'''([[1990년]] [[11월 9일]]~)은 [[대한민국]]의 [[모델 (직업)|모델]]이다.<ref>[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725249 SBS CNBC 온라인뉴스 "치명적 눈웃음이 매력적인 신인 레이싱모델 한혜은"]</ref> [[2014년]]에 사진동호회에서 모델 활동을 시작한 이후, [[2015년]]에 전문 [[레이싱 모델]]로 데뷔하였다. 대표적으로는 [[2015년]] [[서울 모터쇼]]에서 활동하였으며, 현재에도 모델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이전에 이미 [[SNS]]을 통해서, 당히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504120433453&sec_id=540101&pt=nv 스포츠 경향 "레이싱모델 한혜은, 매력적인 미소"]</ref><ref>[http://car.tvreport.co.kr/?c=news&m=newsview&idx=654163 TV리포트 "[[시트로엥]]의 섹시한 눈웃음이 매력적인 신인모델 한혜은"]</ref>
         * [[남대학교]] 국제통학부
         * 뷰파인더스(전문 모델 화보 촬 스튜디오)
         * Damodel(전문 모델 화보 촬 스튜디오)
         [[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4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남대학교 동문]]
  • 함준호 (교수) . . . . 11회 일치
         '''함준호'''(咸駿浩, 1964년 2월 11일 ~ )은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다.<ref>{{뉴스 인용 |제목=한은 떠나는 함준호 금통위원 "더 편하게 시장과 소통할 것"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3936133 |날짜=2018-05-09 |뉴스=한국경제}}</ref> 본관은 [[양근 함씨|양근]]이다.<ref>{{웹 인용 |제목=함준호 인물정보 |url=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01.jsp?id=54450 |웹사이트=조선일보}}</ref>
         * [[문고등학교]] 졸업
         *1982 ~ 1986 [[서울대학교]] 문학 학사
         *1986 ~ 1988 [[컬럼비아 대학교]] 경대학원 경학 석사
         *1988 ~ 1993 [[컬럼비아 대학교]] 경대학원 경학 박사
         *2008 ~ 2010 예금보험공사 비임이사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근 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
  • 함중아 . . . . 1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 웹사이트 = [https://www.facebook.com/pages/%ED%95%A8%EC%A4%91%EC%95%847080/280969319027801 경북도 포항 함중아 7080 페이스북]
         경북도 대구(지금의 대구광역시) 출생이며 한때 [[경북도]] [[포항시|포항]]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경북도]] [[안동시|안동]]에서 성장한 그는 1971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 가수 첫 데뷔하였으며 이후 1977년 [[함정필]], [[정동권|최동권]] 등과 함께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도 입을 한 바 있고 이후 1978년 1집 발표하는 등 록 음악 밴드 활동도 병행을 하였는데 그 후로도 1988년 시절까지 [[윤수일]], [[조경수]], [[유현]], [[박일준]] 등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록]] [[가수]] 활동으로 인기를 구가한 그는 《내게도 사랑이》, 《풍문으로 들었소》 등의 작품이 공전 히트를 기록하였다.
         *1983년 11월 함중아 《이 밤이 새면 / 사이좋게 살겠니》
         * 1981년 MBC 《 일레븐》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사이키델릭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피아노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키보드 연주자]][[분류:김현식]][[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7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명지전문대학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허미영 . . . . 11회 일치
         | 이름 = 허미
         | 수 =
         | 웹사이트 = {{싸이월드|23810346|허미}}
         '''허미'''(許美英, [[1982년]] [[2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개그우먼]]이다. [[2015년]] [[2월]] 남편 국회의원 보좌관 박모씨와 결혼했다.
         * [[유무]]
         * [[이민 (희극인)|이민]]
         * [[이호 (희극인)|이호]]
         * {{싸이월드|23810346|허미}}
  • 형불상대부 예불하서인 . . . . 11회 일치
         형불대부는 형벌은 대부(大夫)[* [[왕]](王)이나 [[제후]] 귀족 휘하의 고위직 신하들.]에 이르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예불하서인은 예(禮)가 서인[* 귀족 계급이 아니며, 관직이 없는 일반인.]에게 이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형불대부라는 원칙이 사대부 계급을 [[면책특권]]이나 [[치외법권]]의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고대의 예(禮)는 엄격한 의식으로서, 이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사대부로서 대우를 받을 수 없고 같은 사대부 계급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거나, 신분을 박탈 당하고 서인으로 전락할 수 있었다. 또한 사대부로서 법을 어겨 형벌을 받을 황에 놓이게 되면, 형벌을 받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치욕을 피해야 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었다.
         『예기(禮記)』 곡례제일(曲禮上第一)에서 [[공자]]의 발언으로 나온다.
         물론 실제 현실에서는 이러한 가혹한 형벌도 사대부 계층에게 까지 미쳤는데, 공자의 제자 [[자로]]가 살해당하고 육젖이 되버린 것에서 알 수 있다. 이 개념은 [[법가]]에서는 비판의 대이었는데 유가를 비판하고 [[법가]]를 내세운 [[진나라]]에서는 [[앙]], [[이사]] 같은 재들 역시 [[요참]] 같은 혹형에 처해졌다.
         예외적으로 형벌에 처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진나라]]의 [[이사]], [[한경제]] 시기의 조조 등이 저자거리에서 처해지는 혹형에 처해진 것, [[한무제]] 시기에 [[사마천]]이 [[궁형]]에 처해진 것이 그 사례이다. 이사와 조조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치욕을 주려는 뜻에서 형벌이 가해진 것으로 보이며, 사마천은 본래 이 같은 황에서는 자결을 해야 하지만 [[사기]]를 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궁형을 받아들였다.
         [[조선왕조]]에서 널리 쓰인 [[사약]]은 형식으로는 '자결'로서, 형불대부의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하는 [[할복]] 역시 형불대부의 원칙에 의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 홍이주 . . . . 11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소시민 (화)|소시민]]》 (2017년) - 명은 역
         * 《[[이웃집 남자 (2010년 화)|이웃집 남자]]》 (2010년) - 미스 김 역
         * 《[[비스티 보이즈 (화)|비스티 보이즈]]》 (2008년) - 주희 역
         * 《[[아버지가 이해]]》 (KBS2, 2017년)
         == 수 ==
         * [[2012년]] 제30회 미스아시아 선발대회 아시아여성매력
         * [[2012년]] 제30회 미스아시아 선발대회 포토제닉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황대봉 . . . . 11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호는 암(嶺岩)이다.
         1930년 [[경북도]] 일군 창주면 대보리(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 호미곶면 대보리)에서 태어났다. 동지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이은]](다스 회장), [[이득]](前 13~18대 국회의원), [[이명박]](前 대통령) 삼 형제의 모교로 유명하다.], 포항수산초급대학(현 [[포항대학교]])을 졸업하였다.
         1967년 [[포항버스]][* 이후 1990년대에 성원여객으로 통합되었고, 신안여객을 거쳐 現 코리아와이드 포항이다.]를 설립하여 현재의 대아그룹을 창업하였다. 이후 해운([[대아고속해운]]), 금융(대아호신용금고), 건설, 관광레저(대아여행사), 문화사업, 지역언론사업([[경북일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1983년 포항에 [[세명고등학교]](학교법인 암학원)를 설립하였다. [* 여담으로 세명고등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 가끔씩 이사장이 오셨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황대봉 이사장과 악수를 하면 수능을 대박 친다는 일종의 카더라가 있었다 그래서 항 이사장이 등장하시면 3학년들이 악수한다고 난리였다고 한다.]해당 과정을 통하여 포항시에서는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함께 지역 경제계에서 큰 인물로 인식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제8번)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당선 직후 [[김일윤]]과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였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효]], 김일윤 등과 같이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에 입당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국민당을 탈당하였으나 [[민주정의당]]에는 입당하지 않았다.
  • 황병승 . . . . 11회 일치
         '''황병승'''([[1970년]]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10년 제11회 「[[박인환문학]]」, 2013년 제13회「[[미당문학]]」을 수했다.
         [[2003년]] 《파라21》 신인문학 시 부문에 〈주치의h〉 외 5편이 당선되어 등단했고, [[2010년]] 제11회 「[[박인환문학]]」, 2013년 제13회「[[미당문학]]」을 수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추계예술대학교 동문]][[분류:박인환문학자]][[분류:미당문학자]][[분류:21세기 시인]]
  • 회원군 (1464년) . . . . 11회 일치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순군]] 사저
          | 친인척 = [[조선 세종|조선 세종대왕 이도]](증조부) <br /> [[임대군|임대군 이구]](양조부) <br /> [[광평대군|광평대군 이여]](친조부) <br /> [[조선 문종|문종 이향]](종조부) <br /> [[조선 세조|세조 이유]](종조부) <br /> [[조선 덕종|의경세자 이장]](종숙부) <br /> [[조선 단종|단종 이홍위]](종숙부) <br /> [[조선 예종|예종 이황]](종숙부) <br /> [[월산대군|월산대군 이정]](6촌 형) <br /> [[조선 성종|성종 이혈]](6촌 형) [[클라라(배우)|회라라]](6촌여동생)
          | 아버지 = [[귀성군 이준]](양부) <br /> [[순군|순군 이부]](생부)
         [[조선 세종|조선 세종대왕 이도]]의 적손자(嫡孫子)이자 [[광평대군]]의 외아들인 [[순군|순군 이부]]의 삼남(三男)으로 출생한 그는 [[1470년]] '''회원군'''(會原君)에 책봉되었고 이어 같은 해 [[1470년]] 친아버지 [[순군]]의 (喪)을 치렀는데 그 당시 그는 7세였으며 그로부터 3년 후 [[1473년]]부터 [[한시]]를 짓기 시작하였고 [[1477년]]에는 14세로 [[결혼|혼례]]를 치렀으며 3년 후 17세 시절이던 [[1480년]]에는 5촌 종숙부 [[귀성군 이준]]의 양자(養子)로 출계하였다.
         * 양조부: [[임대군|임대군 이구]]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10회 일치
         K리그는 2011시즌까지 당한 잡음이 일어왔었는데, 그 잡음 중 하나가 바로 관중 수 집계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 K리그에서 성적은 좋지만 인기가 정말 없기로 유명했던 구단으로 성남 일화 천마를 꼽을 수 있었는데, 이 성남의 홈 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의 수용 가능 인원은 2만여명이 넘지만, 실제로 경기를 관람하러 들어온 관중은 2000여명이 채 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헌데 경기장 전광판에서는 전반전이 끝나고 관중 수를 발표하는 걸 보면 4,000 ~ 5,000명을 발표하는데... 이건 경기장에 최소한 20~25%는 채워져야 가능한 이야기임에도 방문한 팬들조차 갸웃거릴 정도였다.[* 가령 2010시즌 경남과의 홈 경기에서 당시 발표로는 5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왔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결코 그 정도로는 아니었다.]
         이게 성남만의 문제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성남이 성적과 흥행이 거의 완벽하게 반비례곡선을 그려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빈도가 가장 많아 그렇지 다른 구단들도 경우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나 실 집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남을 예시로 든 것 뿐이지만, 이는 서울이나 수원, 전북과 같은 당시 강호들도 껴안고 있는 문제였다. 자체적으로 실 관중 집계를 한다고 했으나, 엄밀성을 따졌을 때 정확한 집계라고 한다면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도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 구단들이 집계하여 통보한 결과를 바탕으로 K리그 관중 수를 발표했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와 같이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76&aid=0002051148|"허수가 많다"]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일부 구단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였다.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실 집계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링크한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겉으로는 실 검표를 한다고 했으나 모든 경기를 실 집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실 집계에 대한 시행기준도 구단마다 제각각이라 통일성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잘못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지극히 높고, 또 이런 자료를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니 구단의 어떠한 활동이나 연맹의 정책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을 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지표인 "관중 수"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을 드러내는 황이었다.
         == 당한 허수 ==
         경기장에서 직접 구매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 경우에는 거의 100% 해당 경기장을 찾았다고 간주할 수 있겠으나 시즌권을 구매했다고, 혹은 무료티켓을 얻었다고 매번 경기장을 찾는 것은 아님에도 이를 합산시켰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시즌권을 구매했어도 어떤 개인사정으로 인해 경기장을 찾을 수 없는 황이 있을지도 모르고, 또 무료티켓을 가졌다고 반드시 자신의 시간을 경기장에서 보내야 하는 필연성도 없기 때문이다.
         결과가 당히 처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K리그 팬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정말로 '''간만에''' 연맹이 제대로 된 일을 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특히 직관을 나가는 팬들의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점철되는 걸 바라보느니 차라리 까발릴 건 까발리고 제대로 된 마케팅 활동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
         특히 무료티켓을 어느 정도 뿌렸는지 팬들이 어림으로나마 짐작이 가능할 수 있었기에 팬들이 구단에게 공평함과 내실을 요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로 자리매김했다. 2016시즌 기준, 수원 삼성의 경우는 무료티켓을 거의 발행하고 있지 않아 실제 관객수 당 지불비용이 가장 높은 "객단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는 오히려 평균관중이 줄었음에도 입장 수익이 올라가는 대표적인 신기한 사례로 남을 수 있었다.[* 무료티켓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연맹의 요청으로 군경활동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구단은 무료티켓을 발행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각 연고지에서 지원하는 유소년 클럽의 경험 향차원에서도 매 경기마다 무료티켓을 일정 이 발행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 거의 각 구단마다 경기당 최소한 수백장 정도 무료티켓을 발행할 수 밖에 없다. 팬들도 이런 구단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해명이 있을 경우에는 큰 문제 없이 수긍하고 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의 인구 수를 매년 잘못 파악한다고 치면 해당 도시의 인구가 왜 늘어났는지, 혹은 반대로 왜 줄어들었는지에 대한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지게 된다. 여초현이 발생했으면 왜 여초현이 발생했는지, 여기에 대한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없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다. 헌데 2011시즌까지의 K리그는 사실 이게 불가능한 정도를 넘어 구단들이 알아서 뻥튀기를 했고, 또 K리그를 주관하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걸 공식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K리그가 지금 흥행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대대적인 실패를 하고 있는건지 진단조차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 관중 집계를 통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정책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본지표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축구팬들 사이에선 아주 높은 평가가 다수를 이룬다.
  • NTX . . . . 10회 일치
         당신이 보고 있는 이 사이트의 이름. 운자는 함장.
          * 메모 : 메모를 쓰는 곳. 창작과 관련하지 않아도 된다. 소량의 모니위키 문법이 적용된다. 현재는 사실 정전.
          * 창작 : 창작 관련 논의를 하는 게시판...이지만 사실 옛날에 있었던 창작 위키용 위키게시판 취급. 창작 위키가 사라진 지금은 정전.
          * 포인트 베팅(베타): 포인트를 가지고 스포츠 도박을 하는 곳. 아직 베타라서 포인트가 빠지거나 들어오지는 않는다. 8월 이후로 정전 태.
          * 링크 : 유용한 사이트의 링크가 걸려있는 곳.
         === 운 ===
          * 공지 : 공지라고 하지만 별로 대단한 공지는 하지 않는 곳. 사이트 리뉴얼과 함께 사라졌다.
          * 위키 : 창작 위키. 내부에는 엔하위키라는 명칭이 조금씩 남아 있지만, 정식은 아니다. 사이트 리뉴얼과 함께 사라졌다. 현재는 임시로 NTX 위키에 세들어있다. 그런데 과거 설정 위키의 데이터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분류:웹사이트]]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해군 . . . . 10회 일치
         === Post-Nelsonian Thought(넬슨 이후 사) ===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6.2.1|작업 관리와 계층제]]''' 발명 발견시 '''{{{#green +2%}}}'''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6.2.1|작업 전문화]]''' 발명 발견시 '''{{{#green +2%}}}'''
          * '''Commerce Raiders(통파괴선)'''
          * '''통파괴함'''을 건조 가능하게 함
          * 통파괴함의 선체 능력치 '''{{{#green +2}}}'''
          * 통파괴함의 어뢰 공격력 능력치 '''{{{#green +4}}}'''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s-6.2|조직화된 공장]]''' 기술 연구시 '''{{{#green +2%}}}'''
          * '''On-Board Recon Aircraft(함 정찰기)'''
          * '''Amphibious Warfare Training(륙전 훈련)'''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7화 . . . . 10회 일치
          * 도마 우마루와 친구들은 학부모 참석 하에 진로 담을 받는다.
          * 학생 별로 진학담이 시작된다.
          * 일단 진학 희망이고 어머니는 "수이 강한 학교"가 좋겠다고 한다. 들어가서 키리에가 다 쓰러뜨릴 거라는 것.
          * 하지만 키리에는 그림책 작가를 희망하고 있고 벌써 출판사에 들어간 태. 키리에는 아직도 그 얘길 하지 못했다.
          * 지금이라도 말을 꺼내려고 우물쭈물하는데, 어머니는 "하지만 이 아이는 수만 생각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한다.
          * 수만이 인생이 아니라고 말하는 어머니에게 용기를 내서 고백하려 하는데, 어머니가 생각한 수 외의 자유란 "멋진 캠퍼스 라이프"
          * 이한 남자 말고 도마 타이헤이 같이 건실한 남자가 있는 대학을 추천해 달라고 말한다.
          * 담이 끝나고 타이헤이가 그런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이번엔 "아무 생각없다"고 대답한다.
          * 좋은 일이란 타이헤이가 담에 와준 것,
  • 국가원수 . . . . 10회 일치
         한 [[국가]]의 대표자. [[국제법]] 에서 해당 국가의 대외적인 대표권을 가진 인물 혹은 직위. 각국의 [[헌법]]에 의하여 규정되지만, [[관습법]]으로 국가원수의 지위를 맡는 경우도 있다.
         의원내각제 국가의 의례적인 국가원수는, 총리나 내각 각료에 대한 임명권[* 사실 의회의 선출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형식적.], 외국 사절에 대한 신임장 및 소환장을 발행, 접수 등의 의례를 실시한다.
         [[소련]]의 경우, '최고 소비에트 임간부회 주석'이 국가원수로서 지위를 가졌다. 하지만 이는 의전의 지위에 불과하며, 실권은 거의 없었다. 실권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쥐고 있었으며, 1977 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겸임하게 된 이후로는 서기장이 겸임하는 지위로 전락했다. 1990년에 고르바초프가 대통령 직위를 만들고 대통령제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그리고 소련은 멸망했다.'''
         북한의 경우는, 매우 복잡한데, [[김일성]]이 '원한 주석'으로서 헌법 구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은 죽었으므로, 일단 최고인민회의 임위원회 위원장이 대외적으로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방위원장 지위의 김정일, 국무위원장 지위의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 리비아 : 무하마르 알 카다피는 형식 공직에서 물러났으나, '혁명지도자'라는 비공식적인 직함으로 사실 국가원수로 활동했다.
  • 권혁세 . . . . 10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학력 = [[서울대학교]] 경학 학사<br>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경력 = 제8대 금융감독원장<br>새누리당 임위원
         |웹사이트 =
         1956년 11월 12일 경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75년 2월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서울대학교 경학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인 1979년에 행정고시에 합격(23회)하였고 1980년 대학을 졸업하였다. 1998년 2월 미국 밴더빌트대학(경제학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ref>[http://www.fsc.go.kr/downManager?bbsid=BBS0030&no=74162 금감원장 임명제청의결 보도자료]</ref><ref>[http://www.fss.or.kr/fss/kr/about/ceo/ceohistory08.jsp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원장소개→역대원장]</ref>
         1980년 총무처 수습행정관으로 공직업무를 시작한 이후 국세청, 재무부 세제국, 보험국, 이재국, 재무정책국, 재무부 세제실 조세정책과,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에서 행정경험을 쌓았으며 재경부 금융정책과장, 재경부 세제실 재산소비세제심의관, 재경부 세제실 재산소비세제국장(고위공무원) 등을 역임하였다. 2007년 이후부터 금융정책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2007년 금융감독위원회<ref>2008. 2. 29. ‘금융위원회의설치등에관한법률’ 개정을 통해 (구)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기능과 (구)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정책기능을 통합하여 ‘금융위원회’로 설립</ref> 감독정책1국장, 2008년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임위원, 2009년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및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 시절 은행과 카드업계에 만연한 과당경쟁을 줄이는데 일조했고 부채환비율(LTV, Loan to Value) 규제 등 부동산시장 안정 대책을 주로 했다. 증권선물위원회 임위원 재직 당시에는 자본시장 개혁과제를 추진, 자본시장법 도입여건을 조성하는데 기여하였다. 세제, 거시경제 정책 분야에서의 폭넓은 지식과 실무경험 뿐 아니라 금융정책 및 감독분야에 정통한 것으로 평가가 나 있다.<ref>{{뉴스 인용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분류:서울대학교 경대학 동문]][[분류:밴더빌트 대학교 동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친박]][[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봉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
  • 길미 . . . . 10회 일치
         길미는 [[대구광역시]]에서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AFKN]]을 통해 처음 흑인 음악을 접하고 매력을 느낀 그녀는 중학교때부터 공원에서 춤을 추는 등 가수가 될 꿈을 키워왔으며 고등학교 때는 흑인 음악 동아리를 조직해 활동하면서 스스로 가사를 적기도 하였다.<ref name="interview">[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07191921423&sec_id=540301&pt=nv "은지원이 만든 레이블 1호 가수 길미, “탐나네~”", 강수진 기자, 스포츠경향, 2009년 7월 19일]</ref> 2000년에는 오디션을 통해 기획사에 들어가 크레이지덕, 로빈, [[솔비]]와 함께 “크레이지덕 군단”이라는 그룹을 준비하였으나 이는 남성 멤버들의 군입대로 무산되었다.<ref>[http://www2.mhj21.com/sub_read.html?uid=42750§ion=section3 "솔비 11년 전 연습생 시절 모습 공개 '풋풋한 느낌' 길미랑 친구사이", 박현수 기자, 문화저널21, 2011년 6월 22일]</ref> [[대구가톨릭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고향 대구로 내려온 그녀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힙합 동아리에 속해 활동하였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주 무대를 언더그라운드로 옮겼다. 이 당시 그녀는 길미와 '''Killme'''라는 예명을 번갈아가며 썼으며, 대학동아리 '''B.O.F.'''을 거쳐 '''[[미스에스|192]] & Killme'''라는 듀오의 멤버로 3년간 활동, 클럽 Slug.er의 무대에 올랐다.<ref name="interview" /><ref>[http://www.hiphopplaya.com/mp3/view.html?num=107&page=1&category=&pid=&keyfield=&key=slug&sortupdate Slug.er Digital Compliation Album 소개글]</ref> 한편, 2007년에는 [[양동근]]의 섭외로 연극 《[[관객모독]]》의 무대에 올라 열연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263586 “길미, ′관객모독′ 주인공 출신 화제”, 문연배 기자, 아시아투데이, 2009년 7월 3일]</ref>
         이러한 인연으로 길미는 은지원이 세운 레이블 GYM 엔터테인먼트의 제1호 가수가 되었고, 준비 끝에 2009년 6월 첫 싱글 앨범을 발표하였다. 데뷔 타이틀곡이었던 ''Love Cuts''는 그녀가 보컬은 물론 그동안 많이 드러나지 않았던 랩을 전면에 들고 나온 곡이기도 하였으며, 특히 은지원과의 관계가 잘 알려져있지 않던 태에서 뮤직비디오에 은지원이 출연하면서 그녀가 누구인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261999 “은지원 피처링 참여 ′길미′ 관심 집중”, 문연배 기자, 아시아투데이, 2009년 6월 30일]</ref> 데뷔 이후 그녀는 신인가수로써는 유일하게 [[DJ DOC]] 풀사이드 파티에 초대 가수로 초청받아 또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264950 "길미, DJ DOC 풀사이드 파티 게스트 참여", 문연배 기자, 아시아투데이, 2009년 7월 8일]</ref> 한편, 그녀가 소속된 GYM 엔터테인먼트가 은지원의 회사이고, 길미의 싱글 앨범이 은지원이 처음으로 제작한 앨범인 것도 뒤늦게 며칠 지나 알려졌다.
         데뷔 후 랩과 노래를 병행하면서 “제2의 [[윤미래]]”란 찬사를 받은 그녀는 2009년 12월 [[정엽 (가수)|정엽]]과 함께 〈넌 나를 왜〉로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2010년에는 [[아웃사이더 (가수)|아웃사이더]]가 참여한 〈사랑은 전쟁이다〉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 활동의 결과물로 2010년 7월 첫 정규 앨범 ''Love Actually''가 발매되었다.
         2011년 3월, 길미는 은지원, [[미스터 타이푼|Mr. Tyfoon]]과 함께 그룹 [[클로버 (음악 그룹)|클로버]]를 결성, 앨범을 발표하였다.<ref>[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21&newsid=01213606596185944&DCD=A10202 "은지원, 젝키 해체 후 10년 만에 그룹 결성", 김은구 기자, 이데일리 SPN, 2011년 3월 22일]</ref> 이는 은지원이 10년 만에 결성하는 그룹이라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들의 첫 싱글이었던 ''La Vida Loca''는 과거 은지원과 Mr. Tyfoon이 해왔던 라틴 스타일의 힙합곡이었으며,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고 미국 케이팝 사이트에 소개되는 등 호평을 받았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4150100154000010706&servicedate=20110415 "은지원 클로버, 차트 1위 역주행! '1박2일' 효과?", 백지은 기자, 스포츠조선, 2011년 4월 15일]</ref> 은지원은 현재로써는 솔로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 없고 클로버 활동에 활동에 전념을 하겠다고 밝혀 클로버가 일시적인 그룹이 아님을 암시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30822.htm |제목="은지원 "현재로서는 솔로음반 낼 마음 없다" 입장표명 왜", 김호 기자, 스포츠서울, 2011년 4월 6일 |확인날짜=2011년 9월 13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104050430/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30822.htm |보존날짜=2013년 11월 4일 |깨진링크=예 }}</ref> 클로버에서 길미는 머리를 붉게 염색하고 네티즌들로부터 “불호령 랩”이라는 별명을 얻은 강한 플로우로 또 한 번 좋은 인을 남겼다. 이후 클로버는 오랫동안 휴식기를 가지다가 2012년 8월, 11개월 만에 컴백하여 활동을 재개하였다. 2013년에는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 김경태 (배우) . . . . 10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럭키 (2016년 화)|럭키]]》 (2016년) - 촬장 무술팀 역
         * 《[[페이스 메이커 (화)|페이스 메이커]]》 (2012년) - 과거 체육선생 역
         * 《[[퍼펙트 게임 (2011년 화)|퍼펙트 게임]]》 (2011년) - 포장마차손님 1 역
         * 《[[마마 (2011년 화)|마마]]》 (2011년) - 마트 조폭 역
         * 《[[내딸 서이]]》 (2012년, MBC)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남조 . . . . 10회 일치
         | 출생지 = [[대구광역시|일제 강점기 경북도 대구]]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했으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서 여학교를 마치고 1944년 돌아와 경성여자전문학교(이화전문)에 입학하였다.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마산고등학교와 여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성균관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4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ref>이은,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49 예술가 위한 공간 ‘예술의 기쁨’ 개관하는 원로시인 김남조], 서울문화투데이</ref>
         [[1950년]] [[연합신문]]에 《성숙》, 《잔》으로 등단하였고, [[1953년]] 첫시집 《목숨》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다. 초기에는 인간성과 생명력을 표현하는 시풍을, 이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마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사랑의 세계와 윤리 의식을 표현하였다.
         === 수 내역 ===
         * 자유문인협회(1958년)
         * 오월문예(1963년)
         * 서울시문화(1985년)
         * 대한민국문화예술(1988년)
         * 만해대(2007년)
  • 김대호(축구선수) . . . . 10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이 해 리그 13경기에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인 그는 다음 시즌, 2012년 4월 3일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와의 2012 ACL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6월 17일 FC 서울과의 리그 경기에서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10월 7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는 멀티골을 넣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실제로 2012시즌 김대호는 서울, 수원, 전북, 울산 등 강팀만을 대로 5골을 기록하며 강팀 킬러로서 주목을 받았다. 시즌 기록은 23경기 5골[* 챔피언스리그 제외]. 2013시즌에는 28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풀백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고 골은 없으나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비록 [[아디]]에 밀려 수에는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K리그 대 베스트일레븐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개인적으로도 뜻깊은 시즌이었다.
         그러나 2014 시즌 들어서는 [[박희철]], [[박선주(축구선수)|박선주]]가 대적으로 자주 모습을 보이는 중.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게, 수비적인 능력이 그리 깔끔하지 못하다. 센터백으로 실패한 게 이 때문. --공격도 그리 매끄럽진 않잖아-- 풀백으로 뛰면서 공격적인 재능이 꽃핀 덕분에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수비 쪽에서 단점은 여전. 피지컬로 비벼서 뺏어내는 스타일이라 카드수집이 엄청나다. 사실 2013년도 이런 단점 때문에 박희철과 번갈아가며 나오다가 그가 부으로 빠지는 바람에 --얼떨결에-- 주전이 된 경우. 이전에는 [[황지수]]가 이 부분을 잘 메꾸어줬지만 2014년 초 황지수가 부으로 빠진 사이 수비에만 치중하지 않는 [[김태수(축구선수)|김태수]], [[김재성(축구선수)|김재성]], [[손준호]] 등이 주전으로 뛰는 바람에 그의 단점이 극대화, 수비가 좋은 [[박희철]]과 5월부터 급성장한 [[박선주(축구선수)|박선주]]에게 밀렸고 2015년에도 초반에 주전으로 출전하다가 7월 이후에는 여름 이적 시장에 이적한 [[최재수]]가 대신하면서 사실 주전에서 밀려버렸다.
         이후 경찰에서는 7경기 1도움을 기록했으나, 부으로 인해 [[의병 제대]] 판정을 받으면서 예정보다 빨리 포항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http://naver.me/G4Ab803O|#]] 다만 제대 사유가 사유이다보니, 전역 후인 17시즌은 1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 김만수(정치인) . . . . 10회 일치
         1964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특별시]]로 경하였다. [[충암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석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1992년 [[민주당(1991년)|민주당]] [[원혜]]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 부천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춘추관장을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문수 대 만수'''라는 드립을 쳤다.(...) 원래 시의원일 때도 지역구가 오정구에 속한 원종2동이었지만, 오정구는 자신이 모신 [[원혜]]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어서 결국 김문수가 지키고 있는 소사 지역구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이때는 김문수가 아직 개념잡고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 성실히 하고 지역구 관리 아주 제대로 하던 때였으니 탄핵풍을 등에 업었음에도 도저히 대가 안되었다.
         2005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지냈다. 김문수가 ~~[[도지삽니다]]~~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생긴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집권여당의 인기가 최악이어서 낙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2008년은 뉴타운 광풍으로 인해 민주당계 정당이 역대 최악의 패배를 당한 선거여서 김만수 역시도 그 광풍을 빗겨가지 못했다. 2006년과 2008년 모두 김문수의 보좌관 출신으로써 지역구를 물려받은 한나라당 [[차명진(정치인)|차명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다만 실제로는 차명진 전 국회의원과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2010년에 부천시장으로 당선되었을때 당이 다름에도 차명진 당시 의원이 축하 연설을 해 주기도 했다.
         본인이 보좌관으로 모셨던 분은 부천시의 국회의원 4명 중 [[원혜|1명]]인데 자신은 시장이 되었다.(...)--그 분도 부천에서 시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기도지사 출마 혹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부천 지역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다만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려면 3월까지 시장직을 사퇴하여야 하는데, 본인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고 중도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번 공헌했고, 실제로 공직자 사퇴시한까지 시장직을 유지하면서 차기 총선 출마 쪽으로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본래 지역구였던 소사구의 현직 국회의원인 김희나, 자신의 선임이었던 오정구 국회의원 원혜, 서울에서 부천 원미구 을로 옮겨온 동교동계 중진 설훈 의원 모두 고령이라 다음 총선 공천이 불투명한 황이라, 일찌감치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네 번째 국회의원 도전을 준비하는 것. 아마도 본래 지역구가 소사구였던 지라 차명진 전 의원과의 3번째 대결이 유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인이 시장직을 재임하면서 2016년 일반구를 폐지했기 때문에 갑을병정식으로 선거구 명칭 변경은 물론 선거구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 2006 || [[2006년 재보궐선거|반기 재보궐선거]] (경기 부천 소사 국회의원) || [[열린우리당]] || 11,712 (30.32%) || 낙선 (2위) || [* 전임자 김문수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출마로 사퇴] ||
  • 김보미(1958) . . . . 10회 일치
         |align="center"|
         |align="center"|임
         |align="center"|홍
         |align="center"|한
         |align="center"|
         |align="center"|[[천의 약속]]
         |align="center"|
         === 화 ===
         |align="center"|박숙 / 할머니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1977년 데뷔]][[분류:남원시 출신 인물]]
  • 김성민 (1991년) . . . . 10회 일치
          | 학력 = [[수원대학교]] 연극화학과 [[학사]]
         [[1994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 《[[짝 (드라마)|짝]]》의 단역으로 아역 [[배우|연기자]] 첫 데뷔하였다. 이후 [[1996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드라마 《[[슈팅 (드라마)|슈팅]]》에서 유년기 김웅 역으로 출연하였고 [[1998년]]에는 여성 아역 연기자 [[김성은 (1991년)|김성은]]이 출연한 [[서울방송|SBS 서울방송]]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김의찬 역을 맡았으며, [[2001년]]에는 여성 아역 연기자 [[전성초]]가 출연한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드라마 《[[요정 컴미]]》에 출연하였고, [[2002년]] 《[[태양인 이제마]]》에 아역 출연하였다. 1994년 데뷔한 이후 최근까지 간간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어린 김
         * 2002년 《장보고 장군과 해 제국》 ... [[김안 (신라)|왕태자 김안]] 역(조연)
         * 2003년 《세종대왕》 ... [[응대군|응대군 이염]] 역(조연)
         * [[수원대학교]] 연극화학과 (2009학번) 졸업 (학사)
         == 수 ==
         * [[1998년]] [[SBS 연기대]] 아역
  • 김종직 . . . . 10회 일치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선산. 생애에는 정계에서 그다지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세조(조선)|세조]] 대에 출사했으나, 실무를 위해 [[잡학]]을 익히라는 세조의 권유를 까다가 크게 질책을 당하기도 했고, 《[[조의제문]]》으로 세조를 ~~당시의 대역죄 수준으로 뒷담화하면서~~ 비판하기도 하는 등 근본적으로 세조를 좋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럼 관직에 왜 나갔냐?--[* 좀 이한 게 김종직은 [[성종(조선)|성종]] 앞에서 대놓고 [[성삼문]]을 찬양한 적도 있는데 성삼문은 [[사육신]] 중 하나이며 성종은 [[세조(조선)|세조]]의 [[손자]]이다. 따라서 김종직의 말은 성종의 입장에서는 [[할아버지]]가 모욕당한 셈이다. 근데 정작 [[본인]]은 세조와 성종을 섬겼으니 [[이뭐병]].]
         [[좌천]] 당시 관이었던 [[유자광]]과 특히 사이가 안 좋았는데, [[서얼]]이라는 이유로 그를 멸시했다.[* [[남이]]를 모함해 죽게 한 간신이기 때문에 싫어했다고도 한다.] 이와 관련된 일화 역시 유명하다. 유자광이 경관찰사, 그러니까 지금의 도지사 정도의 직위일 때, 함양에 군수로 부임한 김종직은 유자광이 쓴 시를 현판으로 만들어 걸어놓은 것을 보고는, 그것을 떼어 불에 태워버리게 명했다고 한다. 비유를 들면, 경도지사가 내린 시문이나 그림을 태워버린 것이다. 전하는 말로는 김종직 자신보다 8살 어리고, 출사 시기도 9년이나 늦었으면서도, 게다가 '''서자 주제에 빠른 출세를 한''' [[유자광]]을 김종직이 평소 고까워했기 때문이라는 것.[* 성학(聖學)으로 심신을 수양한다는 선비를 자처한 사람의 태도라고 하기에는 좀 곤란하다. 뭐 원래 사림파 보면 내로남불이 좀 심하긴 하다만(...).] 또한 하루는 어느 모임에서 제자들이 자신들보다 관직이 높고 나이도 많은 유자광을 대놓고 서출인 것을 비웃는 등 알아서 화를 좌초한 면이 있다.
         수많은 [[시(문학)|시]]를 남긴 뛰어난 문인이었고, [[정몽주]]에게서부터 내려오는 도학의 계승자였다. 그의 스승은 아버지인 강호 김숙자(1389년 ~ 1456년)로 야은 [[길재]]의 제자이다. [[김굉필]] (이후 김종직과 갈라섬)과 [[김일손]]. [[정여창]], [[남효온]], [[남곤]] 등 많은 제자를 육성했다. 그런데 다만 제자 교육에서는 좀 애매하다. 이들이 이후 사림의 기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오사화]]의 배경이 된 김일손의 야사 드립치기나, 남효온의 전기 소설 《[[육신전]](六臣傳)》 등은 유교의 '''술이부작(述而不作)'''[* [[공자]]의 말, “나는 전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을 기술할 따름이지 새로운 것을 지어내는 것은 아니다. 옛 것을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음 깊이 은(殷)의 현인 팽(彭)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子曰 述而不作(술이부작) 信而好古(신이호고) 竊比於我老彭(절비어아노팽)에서 유래한 말이다. 없는 사실이나 불명확한 사실은 배제하고, 사실 그대로만 기술한다는 뜻과도 통한다.]과는 안드로메다 차이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걍 깽판친 것으로 후대에 사림이 집권하면서 스승이라고 높이지 않았으면, 오히려 사림의 존재 자체를 없앨 뻔한 위기 황을 초래한 원흉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김굉필은 스승이 현실 타협적인 면을 보인다고 비판하여 사이가 나빠졌다(...). 김종직이 죽었을 때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아무튼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이른바 '[[남학파]]'의 시초가 되는 인물이다. 당대에는 [[경도]] [[사당]]([[선비]]당)이라고 불렸다. 초기 [[유학]]에서는 [[붕당]], [[당]]이라는 단어가 별로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었지만 송대 이후 성리학 체제에서는 오히려 이익을 탐해 모인 소인당에 맞서 도학을 중심으로 군자당이 결집해야한다는 논리로 전환되었고, 성리학을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주자는 임금까지도 군자당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인군위당(引君爲黨)을 주장했다. 사당이라고 불린 것 자체가 이미 훈구척신들과는 구별되는 사림의 정체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도 현대에서는 사림의 계보표에서 정몽주와 길재의 학풍을 이어받은 사림의 조격으로 인정하는 인물이다. 김종직의 아버지 김숙자가 길재의 제자였고, 김숙자는 김종직의 아버지이자 스승이었기 때문.
  • 김현철(교수) . . . . 10회 일치
         ||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 ||
         || '''학력''' ||<(> [[심인고등학교]] {{{-1 ([[졸업]])}}}[br][[서울대학교]] {{{-1 (경학 / [[학사]])}}}[br][[서울대학교]] {{{-1 (경학 / [[석사]])}}}[br][[게이오기주쿠대학]] {{{-1 (경학 / [[박사]])}}} ||
         1962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대구 [[심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에서 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11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최고위 경제분석과정 강의에서 “수출 부진과 가계부채 증가로 한국 경제는 파국에 접어들고 있다”며 지금의 [[대한민국/경제]]가 1990년대 중반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일본경제와 닮았다고 평가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소니가 삼성 때문에 쓰러졌다고 생각하지만 소니는 삼성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무너뜨린 것"[* 소니가 안 무너졌다는 반론은 있다. 오히려 반등에 성공했다는 지표도 있다. [[http://it.chosun.com/news/article.html?no=2819018|링크참조]] 그러나 맥락 포인트는 소니가 무너졌다 안무너졌다의 단순 팩트 체크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법인세율 인 정책 때문에 소니가 피해를 입었다는 맥락이다.]이라며, 법인세율 인은 기업을 망가뜨리게 되고 나아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효원 . . . . 10회 일치
         김효원은 [[1542년]]에 태어났다. 증조부는 원서 직장 수현(秀賢)이며, 할아버지는 전생서 직장 덕유(德裕)이다. 아버지는 유 [[현령]](永柔 縣令) 홍우(弘遇)이며, 어머니는 윤은좌(尹殷佐)의 딸 [[해평 윤씨]]이다. 아래로는 동생 [[김이원]] 등이 있었다. 일찍이 [[한성]]에 올라와 한성부 남부 건천동(乾川洞)에서 살았는데 이때 [[류성룡]] 등을 만나 알게 되었다.
         생원시를 거쳐 [[1565년]] 알성 [[과거 제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wa-bu.net/bbs/zboard.php?id=news&page=11&sn1=&divpage=1&category=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45 윤종일교수의 남양주역사기행(26)- 동인(東人) 김효원(金孝元)(남양주타임즈, 2007.01.26자] </ref> 그는 퇴계 [[이황]]의 문하와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황]]의 제자들 중의 한사람이며 [[김종직]]의 학통으로, 남명 [[조식]]의 문하에도 찾아가서 배웠다. 스승 중 한사람인 조식이 죽었을 때는 "방향 모르는 날 가르쳐주셨고(誘掖回迷走)/ 날 채워서 옳은 사람 되게 했다네(充盈見實歸)/ 인문이 이제는 끝나고 말았구나(人文今已矣)/ 이제 우리 도를 누구에게 의지할꼬(五道竟何依)?"라는 만사를 짓기도 했다. 그는 학문으로는 [[김종직]]-[[이황]]의 학맥과 [[조식]]의 학맥을 두루 계승하였다.
         그는 문을 닫고 봄에 직접 꼬은 신발 한 켤레로 십여 년 이 신었다 한다. [[이황]]과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윤원형]]의 사위 [[이조민]]의 친구인 탓에 한때 [[윤원형]]가의 식객으로 있기도 했다. 그 뒤 [[조선 명종|명종]]말엽 [[윤원형]](훈구파)일파가 몰락하고 사림파가 크게 진출할 때 [[이황]]과 [[조식]]의 문인인 덕에 신진사류의 한사람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1564년(명종 19)의 진사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바로 [[성균관]]에 들어가 유생으로 수학하였다. [[1565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뒤 병조좌랑·[[정언]]·지평을 지냈으며 사헌부 지평으로 재직 중 김효원은 [[문정왕후 윤씨]]가 죽고 [[척신계]]가 정계에서 몰락하면서 새로이 정계에 진출한 신진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부하게 되었다. [[1574년]](선조 7년) 이조전랑으로 있던 오건(吳健)이 자리를 옮기면서 이조전랑으로 [[오건]]이 그를 추천하였으나<ref>1575년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이조 전랑의 임명은 전임자의 후임자 천거로 임명되었다.</ref> 과거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의 문객이었다는 이유로 이조참의 [[심의겸]](沈義謙)이 강하게 반대하여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는 외척도 아니고 [[이황]]과 [[조식]]의 문인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므로 [[심의겸]]의 반대를 견뎌내고 [[이조]][[전랑]]이 되었다. 또한 그는 [[심의겸]]이 외척으로 그의 집안이 [[윤원형]]의 집안과 인척이고 가까이 왕래한 것과, [[심통원]]의 부패, 비리를 지적하며 공격하였다.
         청의(淸議)를 주장하여 사림으로부터 선명성을 인정받고 [[동인 (정치)|동인]]의 수로 추대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2 /> 그러나 10여년간 지방관 생활을 하며 서원과 서당 설립을 장려, 권장하는 등의 문교 진흥 정책에 힘썼다. 또한 당쟁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고 정치와 시사(時事)에 대해서는 되도록 입을 열지 않았다. 또한 지방관으로 재임하며 사사로운 일로는 한 번도 도성을 밟지 않았다.
         [[안악군수]], [[흥부사]]로 승진하여 재직 중 사망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주을천 옆 묘소 입구에 신도비가 세워졌으며 이준(李埈)이 짓고 [[김세렴]](金世濂)이 글씨를, [[허목]](許穆)이 전액하여 [[1743년]]에 설립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2 /> [[안악군수]], [[흥부사]]로 승진하여 재직 중 사망하여<ref name=autogenerated1 /> 묘갈명은 갈암 [[이현일]]이 썼으며 '(조정에 있을 때 정색(正色)과 직언(直言)으로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서 일시의 권간들이 모두 다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2 /> 저서로는 《성암집》 등이 있다.
         [[분류:조선의 작가]][[분류:사가]][[분류:허균]][[분류:성리학]][[분류:이황]][[분류:선산 김씨]][[분류:경북도 출신]][[분류:병사한 사람]][[분류:사림파]][[분류:동인]][[분류:16세기 한국 사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7화 . . . . 10회 일치
          * 나이트아이의 개성은 "예지". 일정한 조건 하에 대방의 1시간 이내 행동을 예지할 수 있다.
          * [[미도리야 이즈쿠]]의 [[올마이트]] 흉내는 오히려 [[서 나이트아이]]의 분노를 샀다. 경직된 표정으로 다가오는 나이트아이. 그는 미도리야의 개인기가 무슨 올마이트랑 닮았냐며 자신이 전 사이드 킥이라는걸 알고 행패를 부리는 거냐고 분노한다. 그리고 직접 미도리야의 얼굴을 뜯어고쳐가며 어디가 잘못됐는지 지적한다. 그의 데이터에 따르면 올마이트의 굿즈에 그런 주름이 들어간 적은 없으며 정확한 규격을 지키라고 한다.
          미도리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비니거스 사이드 사건". 올마이트가 해결한 사건 중 하나로 수질을 바꾸는 개성을 바꾼 소년이 물에 빠져 생긴 일이다. 별로 중요한 사건도, 빌런이 나왔던 것도 아니라 묻혀진 사건이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어 골수팬덤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사건이다.
          * 나이트아이는 실컷 이야기하고 나서 미도리야가 방문한 목적, "인턴 채용" 건에 대해서 듣는다. 미도리야가 가져온 서류에 나이트아이가 도장을 찍음으로 성립한다는데, 나이트아이는 일반적인 기업에서 하는 인턴과는 다르다며 학교 수업에도 향을 미쳐 출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도리야는 "발을 맞추고 있는 것만으론 톱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당당히 서류를 제출한다.
          * 그러나 간단히 찍어줄 것 같았던 나이트아이는 도장을 찍지 않는다. 그는 애꿎은 책으로 도장을 내리 꽂으며 일부러 빗맞추는 거라고 강조한다.
          그는 대체 자신이 미도리야를 고용해서 어떤 메리트가 있냐고 질문한다. 그러면서 올마이트는 그 강함과 유머로 세에 희망을 주고 범죄로 겁게 질린 사람들을 도왔다. 그렇다면 미도리야는 사회에, 나이트아이의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 그의 능력은 "예지". 대의 일부에 닿고 시선을 맞추는 걸로 약 한 시간 사이 그의 행동을 "예지"할 수 있게 된다. 조건에 대해서는 사외비로 취급 중. 미도리야는 그걸 돌파할 방법을 고민해 보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 미도리야의 움직임이 정체되자 나이트아이는 미도리야에게 충격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징적인 힘을 계승받고도 몹시 범용한 인물이며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도리야는 원래 밀리오가 후계자 후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는다. 나이트아이는 지금도 올마이트를 경애하지만 후계자 건에 대해서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투덜거린다. 미도리야는 갑자기 듣게된 사실 때문에 혼란을 겪고 그 사이 시간을 흘러간다. 나이트아이는 다시 오래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있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4화 . . . . 10회 일치
         학생들끼리 구하는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탈환 계획에 [[이이다 텐야]]는 적극 반대한다.
          * 미도리야의 처는 [[리커버리 걸]]이 강력한 치료를 해서 겨우 나았지만 아슬아슬한 황. 이정도의 부을 계속 입는다면 힘을 쓰는건 앞으로 두세 번이 한계이며, 이후에는 팔을 쓸 수 없게 될지 모른다.
          * 한편 웅에선 [[올마이트]], [[엔데버]], [[베스트 지니스트]](No.4 히어로), [[엣지 쇼트]](No.5 히어로)가 소집되어 작전 회의에 들어간다.
         내 걱정은 어찌되든 관없다는 거냐?
         나의 마음은... 어찌되든 관없다는 거냐? ||
          * 미도리야의 몸태가 한계에 달했다.
          * 바쿠고 탈환작전이 [[유우에이 고등학교|웅고]]와 미도리야의 행보에 지대한 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도균 . . . . 10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노르웨이의 숲 (화)|노르웨이의 숲]]》 (2010년) - 재훈 역
         * 《[[슬리핑 뷰티]]》 (2008년) - 담원 역
         * 《[[두야, 학교가자]]》 (2003년, KBS2)
         == 수 ==
         * 2010년 창원국제공연예술축제 연기대
         * 2006년 월간 문학21 희곡부문 신인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도예종 . . . . 10회 일치
         '''도예종'''(都禮鍾, [[1924년]] [[12월 25일]] [[대구광역시|대구]] ~ [[1975년]] [[4월 9일]])은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인, 기업인이다. 주고교 교사, 대구대학 경제학과 강사 등으로 활동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여덟 명 중 한 명이다. [[1960년]] 당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여 [[주군]][[교육감]] 선거에 당선되었지만 [[민주당 (1955년)|민주당]] 정권은 발령을 거부하여 교육감(후에 교육장으로 개정)에 부임하지 못했다.
         * 대구대학 경제학과(현 [[남대학교]] 경대학 경제학과) 졸업
         * [[주고등학교]] 교사
         * 주군교육청 교육감 당선(당선되었으나 민주당 정권은 발령을 취소)
         * 민족자주통일협의회 중앙무집행위원회조직부책
         * [[남일보]] 천지사장
         [[분류:1924년 태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인혁당 사건]][[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
  • 동호 (가수) . . . . 10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페이스북|justinshindongho|동호}} <br/> {{트위터|dongho94|동호}}
         ;
         * 2012년 [[돈 크라이 마미 (2012년 화)|돈 크라이 마미]] 윤조한 역
         == 수 ==
         * [[2009년]] 제1회 천하무적야구단 골병든글러브시식 완소
         * [[2010년]] 제4회 [[케이블TV 방송대]] 올해의 스타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4년 태어남]][[분류:200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힙합댄서]][[분류:대한민국의 아이돌]][[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자유 연애]][[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디스크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유키스의 일원]]
  • 듄 2 . . . . 10회 일치
         각 가문이 사용할 수 있는 유닛들의 종류는 비슷하다. 사용할 수 있는 유닛과 사용할 수 없는 유닛이 정해져 있을 뿐이다. 오른쪽 사이드바를 사용하여 생산과 유닛 조종을 한다.
         처음에는 미니맵이 나오지 않는다. 레이더 건물을 건설해야 미니맵이 나온다. 건물을 너무 많이 생산해서 전력이 부족하거나, 레이더가 파괴되면 다시 미니맵이 꺼진다. 미니맵이 없으면 당히 불편하므로 미니맵을 두는 것이 좋다.
         RTS 형식이지만 완전한 RTS라고 하기는 약간 과도기적인 모습이 있다. 유닛의 움직임이 당히 딱딱하고, 반응이 느리기 때문에 생각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초기 버전은 한번에 한 유닛만 조종할 수 있기에 컨트롤이 어렵다. 또 싱글 플레이에서 게임 중에 생산되는 유닛이나 건물을 전환할 때는 일시적으로 건물이나 유닛 일러스트가 큼지막하게 뜨는 큰 화면으로 바뀌면서 게임이 정지된다.
         플레이중에 "멘타트" 메뉴를 클릭하면 멘타트와 대화하여 게임의 세계관이나 정보를 알아볼 수 있다.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이긴 하지만, 문제는 멘타트 메뉴바가 쓸데없이 큼지막한 반면에 정작 게임 내에는 별다른 향을 미치지 않으니 게임 내 로어를 알아볼 용도가 아니면 별로 클릭할 필요가 없다. 근데 하도 버튼이 커서 마우스 클릭을 열심히 하다가 잘못 눌러서 들어가기 쉬운 일종의 트랩 스윗치가 되버린다.(…).
         == 진 ==
          징색은 푸른색. 열대 행성 칼라단을 본거지로 하는 가문으로 성실함과 친절함으로 잘 알려져있다. 듄의 토착민인 프레멘과 우호적인 관계이므로 이들이 적의 기지를 공격하게 유도할 수 있다.
          징색은 붉은색. 기에디 프라임을 본거지로 하는 잔악하고 포악한 가문. 경보병(Light Infantry)을 사용하지 않는다.
          징색은 녹색. 몇몇 부유한 가문이 힘을 얻기위해 뭉친 카르텔이다.
         듄 2의 팬 리메이크 작품인 듄 레가시가 있다. 인터페이스 등의 요소가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에 비슷해 졌다던가, 프레멘 같은 진이 추가되었다던가 하는게 특징.
         웨스트우드 사에서는 이후에 듄 2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여 오리지널 시리즈인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로 발전시킨다. 이 때문에 듄 RTS 시리즈는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와 게임 체계 면에서 유사점이 많다. 건설소에서 건물 테크트리가 시작하며, 사이드바를 사용하여 건물 생산과 유닛을 조종하는 게임 인터페이스, 그리고 자원 채집도 유사하여 듄에서는 빨간색 지형에서 채집하던 스파이스가 커맨드 앤 컨커에서는 녹색 지형에서 채집하는 [[타이베리움]]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게임 인터페이스 가져다 쓰려고 지구가 타이베리움에 침식당하게 되버렸다(…).]
  • 류영수 . . . . 10회 일치
         |선수명 = 류
         |문 표기 = Ryu Yeong-Soo
         |사진 사이즈 =
         * [[마산용마고등학교|마산업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79년 ~ 1982년)
         '''류수'''(柳永洙, [[1945년]] [[5월 25일]] ~ )은 현재 [[넥센 히어로즈]]의 육성군 재활코치이다.
         * 경중학교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분류:194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고흥 류씨]]
  • 마기/310화 . . . . 10회 일치
         수행의 성과로 여유롭게 연백(아르바)을 대하는 알라딘 일행
          * 구출은 했지만 유난은 타전의 저주에 걸린 태.
          * 알라딘은 그의 태가 알리바바가 이스난의 저주에 걸렸을 때와 같다며 치료에 들어간다.
          * 알라딘은 자신이 유난을 치료하는 동안 모르지아나와 연백룡에게 아르바를 대해달라고 한다.
          * 유난은 대가 될리가 없다고 하지만 일행 중 누구도 아르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모르지아나는 "당신이 알마트란 최강이었던건 파나리스와 싸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자존심에 처를 입힌다.
          * 암흑대륙에서 2년 남짓 지내면서 알라딘 일행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승했다.
          * 그런데 더 오래 암흑대륙에서 지낸 유난은 아르바에 미치지 못해서 대적으로 안습이 되어버렸다.
          * 모르지아나는 파나리스 평균 이의 전투력을 손에 넣은 걸로 추정.
  • 마기/344화 . . . . 10회 일치
          그걸 깨닫게 되자 근처에는 보통 인간과 다른 이종족들도 여럿 있는게 보인다. 알리바바는 "전설 의 시대 속 사람들과 만났다"는 흥분에 방금 전의 침울함도 잊어버린다.
          테스는 곧 알리바바에게 관심을 거두고 아버지와 하던 돌맹이 쌓는 놀이로 돌아간다. 부자는 번갈아가며 돌을 쌓아올리는 놀이를 반복하고 있다. 알리바바가 왜 그런 걸 하냐고 묻자 달리 할게 없어서 그렇다고 답한다. 잘 보면 이들 뿐이 아니다. 대부분 돌을 쌓거나, 아니면 도미노처럼 늘어놓거나 자신의 변함없는 기억을 멍하니 감한다. 그저 보기만 해도 무기력하고 지루한 모습들. 그래서인지 이들의 몸에는 버섯같은 것이 마구 피어나고 있다.
          * 다윗은 두말할 것도 없는 원수고 증오해 마땅한 대이건만,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생전의 감정을 급격히 잃었다. 즉 지금 알리바바가 보는 것처럼 무기력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다. 매우 의기양양한데다 쾌활하기까지 했다. 그는 "확신"을 가진 채 "예대로 반타전의 특이점이 연결됐다!"고 환호했다. 그는 종종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이름을 언급했다. 차원에 구멍이 생기면 이 특이점과 일체화하는 것으로 현세로 돌아갈 수 있으며 자신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안다고 했다.
          * 그러던 생활은 마침내 끝났다. 아무 이변도 없느 고요한 공간이 요동치더니 다윗이 입이 닳도록 외치던 차원의 구멍이 생긴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장담한 대로 지으로 돌아갔다. 열려진 차원의 문으로 향하며, 다윗은 "성궁"의 힘을 얻으러 간다고 했다. 열쇠는 "솔로몬의 지혜"라는 말도. 무력하기만 했던 사람들도 이때만은 충격과 두려움 속에 다윗을 올려다 보았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주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던 중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었다. 알리바바는 "신드바드와 일체화해서 돌아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묻는다. 와히드와 셋타는 그게 말 그대로의 의미, 신드바드에서 "씌인다"는 거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알리바바는 실감을 못하는데 셋타는 "너희 세은 알마트란처럼 다윗에 의해 멸망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 셋타는 테스와 놀아주면서도 설명을 계속한다. 다윗은 말하자면 사이코패스. 살육도 그에겐 수단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이곳에 있는 그의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면전에서 "너희는 포석"이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에겐 동료도 가족도 의미가 없다. 그러니 현세로 돌아간 다윗이 성궁에 가기 위해 또 한 번 세을 "포석"으로 삼을 건 말할 것도 없다. 알리바바가 그럴 수는 없다며 막으러 가겠다고 하지만 와히드가 비웃음조로 손사레를 친다. 차원의 벽은 넘을 수 없다면서. 셋타는 어차피 알리바바도 머지않아 과거의 기억과 무한한 시간만 남은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갈 거라 예견한다. 방법이 없다는 말에 알리바바는 크게 낙담한다.
          하지만 그가 포기하는 것 같진 않다. 알리바바는 아직도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와히드는 그런 점을 이하게 여긴다. 자기들은 여기에 오자마자 삶에 대한 집착도 감정도 사라졌는데, 알리바바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알리바바는 버섯도 피지 않았다. 처음 기억을 보고 있을 땐 피어있었지만 테스 일행과 대화를 하는 동안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테스는 이런 점 때문인지 "이한 형이 왔다"고 중얼거린다.
  • 마기/345화 . . . . 10회 일치
          >이하다, 저 형아.
          * 이곳에 있는 것은 모두 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몸을 포함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 루프가 깃들지 않으므로 마고이도 없고, 따라서 마법도 못 쓴다. 알리바바가 현재 쓰고 있는 몸도 그렇다. 알리바바는 조금 낙담한다. 그런데 셋타가 지나가는 말투도 또 유용한 말을 한다.
          그는 돌쌓기 놀이에 쓰는 돌을 가리킨다. 이 돌들은 "차원의 구멍"이 올렸을 때 거기서 떨어진 것이다. 다윗이 현세로 돌아갈 때 열린 구멍. 거기서 나온 것이니 이건 현세에서 온 물건이다. 셋타는 그때 기억을 더듬으며 구멍 저쪽에서 전쟁이 일어난 듯 보였고 "검은 거인"도 봤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게 매그노슈탓트 전쟁에서 나타난 "매개체"였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중요한건 그 문제가 아니다. 차원의 구멍에서 나왔다는 이 돌. 이것만은 환이 아니라 현세에서 온 실제 물질, 루프와 연결된 물체다. 알리바바는 떨리는 손으로 돌맹이를 집어들면서 엄청난 수확이라고 말한다. 이게 현세의 물질이고 마고이가 깃들어 있다면 이걸 써서 마법을 사용하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테스는 신나기 시작한 알리바바에게 "대체 왜 돌아가려 하느냐"고 묻는다. 지금 테스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이대로 돌이나 쌓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곳 주민들 대부분이 느끼는 감이다. 알리바바는 사뭇 진지하게 대답한다.
          * 마법식 연구도 특훈도, 그리고 수인족들의 또 다른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마침내 마법진이 완성된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수인들이 작업하던 것은 돌을 사용한 인공신체다. 거대한 석 형태. 알리바바가 현세로 돌아가려면 몸이 필요한데 이게 그걸 대신해줄 것이다.
          * 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곳엔 시간이 없으니 그저 알리바바의 체감 그럴 뿐이다. 출발하는 날이 되자 와히드는 테스, 셋타와 함께 배웅하며 꼭 세의 멸망을 막으면 좋겠다고 격려한다. 그런데 알리바바는 그것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
          지금 세은 죽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지 않고 루프에 따라 격리된다. 알마트란시절 죽은 이들은 이 일 일라와 연결된 차원에, 현세에서 죽은 이들은 하얀 루프로 환원돼 "거대한 흐름"으로, 그리고 알 사멘처럼 타전된 자들은 검은 루프로 돌아간다. 알리바바는 이렇게 죽어서 뿔뿔히 흩어지기 보단 모든 이들을 이을 수 있다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그 말은 곧 이들이 자신의 그리운 사람들, 가족과 친구와 재회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셋타는 자신의 형 [[이스난]]을, 와히드와 테스는 화란을 만날 수 있다고 흥분한다. 와히드는 "은혜를 갚을 거면 빨리 말하는게 나았다"고 핀잔 아닌 핀잔을 한다. 그렇지만 알리바바는 이건 자기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살아가는 것, 세을 구하는 것, 무엇이 됐든 더이 다른 누군가에게 이유를 갈구하지 않을 거라면서.
  • 마치콘 . . . . 10회 일치
         마치콘(街コン)이란 콘파에서 이름을 따온 이벤트로서, 지역 진흥과 만남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 이벤트이다. 마치콘의 형식은 동성 2인 이 1조가 되어, 개최 지역의 정해진 음식점을 순회하는 것이다. 각 점포에서 팔찌 등의 참가증을 제시하면, 이벤트 시간 이내에 동일한 가격으로 식사와 음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참가자는 100명 이, 3000명 가량이 되는 경우도 있다.
         "콘파(コンパ)"란, 주로 학생이나 젊은이가 벌이는 회식 모임을 뜻한다. 독일어 Kompanie , 어 company , 프랑스어 compagnie 등에서 유래하는데, 메이지 시대에 학생들이 돈을 모아 술이나 음식을 모아서 사먹으면서 환담을 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을 "컴퍼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이후 세대의 대학에 계승되면서 "콤파"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마치콘은 여기에 거리를 뜻하는 '마치'를 붙여서 대학이나 학생 중심이 아닌, 지역 중심의 만남의 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치콘은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대방과 얽힌 트러블이 많다.
          * 마치콘에서 만난 대가 기혼자였다. → 기혼자가 신체관계만을 목적으로 참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 마치콘에서 만난 대와 교제하게 되었는데, 가명이었다. → 신분확인을 엄격하지 않아서 가명으로 참가하는 경우가 간단하다.
          * 마치콘에서 만난 대가 [[학력]]이나 [[직업]] 같은 경력을 속였다. 성명, 주소, 근무처 등 개인정보를 모두 거짓말로 대는 경우도 있다. → 신분확인이 엄격하지 않아서 경력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 마치콘에서 만난 대에게 돈을 빌려줬지만 행방을 알 수 없게 됬다. → 대방에게 경계심이 적어서 금전 트러블도 자주 볼 수 있다.
          * 마치콘에서 만난 대와 교제를 시작했지만, 또 다른 마치콘에 참가해서 바람을 피웠다. → 쉽게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관계가 문란한 사람인 경우도 많다.
  • 박경호 (1949년) . . . . 10회 일치
         | 전임 = [[양시 (1944년)|양시]]
         |출생지 = [[경북도]] [[달성군]] 화원면
         * 남대학교(학사)
         * 남대학교 경대학원(수료)
         * 초대경북도 의회 의원
         |전임자 = [[양시 (1944년)|양시]]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중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박보생 . . . . 10회 일치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15A38><-5><bgcolor=#FFFFFF><:>'''[[경북도|{{{#005BAB 경북도}}}]] [[김천시]]{{{#005BAB 김천시장}}}'''||
         ||<bgcolor=#808080> '''{{{#FFFFFF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 ||
         ||<bgcolor=#808080> '''{{{#FFFFFF 경력}}}''' ||<(> 김천시청 기획실장[br]김천시청 행정지원국장[br]김천시청 사회사업국장[br]김천과학대학 책임연구위원[br]국제배드민턴연맹 한국대표단장[br]김천시체육회 회장[br]제18~20대 경북도 김천시장[br]전국혁신도시지구 협의회 회장 ||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전직 [[경북도]] [[김천시]]장으로 당적은 [[자유한국당]]이다.
         1951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농공(농림/공업)고등학교(현 [[김천생명과학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북도 김천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북도 김천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북도 김천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박홍 (신부) . . . . 10회 일치
         |웹사이트 =
         [[1991년]] [[예수회]] 박홍 신부(당시 서강대 총장)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성경위에 손을 올리고 기자회견을 벌이기도 했다.<ref name=gg/><ref>{{웹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26968.html|제목=안실서 김귀정 주검 지키며 경찰 침탈 맞서 / 박정기|출판사=한겨레|저자=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구술작가 송기역|날짜=2012-04-05|확인날짜=2012-04-29}}</ref> 박홍 신부의 기자회견 이후 부터 김기설 학생의 분신 자살에 배후가 있다는 보도가 언론에 도배질을 하기 시작했고, 강기훈 전민련 총무부장의 이름이 등장했다. 검찰과 경찰은 합동으로 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공안몰이 수사를 벌여 "강기훈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며 강 씨를 구속기소했다.
         이에 검찰이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고하였고 2015년 5월14일 대법원은 검찰의 고를 기각하고 재심에서 강기훈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제목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씨 무죄…대법원, 고 기각
         }}</ref> 그 때 [[예수회]] 박홍 신부(당시 서강대 총장)가 7월 18일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시위 배후에 [[주사파]]가 있고 주사파 배후는 김정일이다"는 발언으로 세을 놀라게 했다.<ref>{{뉴스 인용
         박홍 총장의 발언 이후 공안정국이 조성되며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시위는 소강태에 접어들고 그해 12월 국회에서 [[WTO]]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 [[이돈 (1951년)|이돈]]
         * [[주체사파]]
  • 반지닦이 . . . . 10회 일치
         2011년에 개봉한 [[미국]] 화 <[[그린 랜턴 : 반지의 선택]]>(이건 한국 개봉 당시 제목이며 원제는 그냥 Green Lantern.)의 오역이 넘치는 팬자막.
         정확하게는 그냥 화 그린 랜턴의 팬자막으로 반지닦이라는 제목이 없었으나 자막중 "모든 랜턴들은 반지를 착용했고, 그중 반지를 닦는 자도 있었다." 라는 오역 때문에 반지닦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원래 자막은 "모든 랜턴들은 반지를 착용했고, 그중 가장 빛나는 자도 있었다."
         "괜찮아"를 "괸찮아"라고 쓰는 등 당히 막장이다. 가장 유명한 대사로는 "일기가 좋은 날, 진흙같이 어두운 밤. 아니다 이 악마야, 내 앞에서 사라지지. 누가 사악한 수도 악마를 숭배하는지 볼까. 나의 힘을 조심하여라, 그린랜턴 빛!" 으로 원래 대사는 "가장 밝은 날에도, 가장 어두운 밤에도. 그 어떠한 악도 내 시야를 벗어날 수 없다. 악의 힘을 숭배하는 자들이여. 내 힘을 경계하라, 그린 랜턴의 빛을!" 이다.
         화가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다면 한번 웃고 넘어갈 퀄리티였으나 사실 화부터가 병맛이며 사실 나올 때부터 망작취급 받았다. 덕분에 이 오역 자막은 한국의 DC 코믹스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부터 망한 화에는 'OO닦이'라는 별명이 붙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 망작 화 때문에 그린랜턴 : 리버스, 시네스트로 군단의 역습 등, 코믹스 명작 시리즈의 흥행으로 인기가 치솟던 그린랜턴 프랜차일즈의 인기는 찬물을 뒤집어 썻으며, 화 폭망의 악향으로 잘 만들어서 평가도 좋던 그린랜턴 The Animated Series 마저 1시즌으로 취소 당하는 등 악재를 거듭 겪게 되었다..(…)
  • 백계영 . . . . 10회 일치
         '''백계'''(白桂英, ? ~ ?)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청도 지역의 향리(鄕吏)다. 호는 운암(雲菴), 본관은 [[청도 백씨|청도]](淸道)다
         백계은 고려 후기 청도 [[호장]](戶長) 출신<ref>『연조귀감(掾曹龜鑑)』</ref>으로 청도 5대 토성 중의 하나였던 [[청도 백씨]](淸道白氏) 가문 사람이다.<ref>『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ref> <ref>『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ref>
         1270년(원종 11) 고려 정부가 원나라에 항복하여 개경으로 환도하고 삼별초를 해산하려 하자 [[배중손]]을 필두로 한 [[삼별초]]가 저항하였는데, 이때 몽고군에 항복을 원치 않던 군사들과 백성들이 [[진도]]의 [[삼별초]]에 가담하여 그 세력이 켜졌다. [[1271년]]([[고려 원종|원종]] 12) 1월 [[경도]] [[밀성]](密城), [[금주]](金州) 등지의 농민들도 [[삼별초]] 군에 호응하여 폭동을 일으켰고, [[밀성]] 출신의 동정(同正) [[박경순]](朴慶純) 등 항쟁군들이 [[청도]]로 쳐들어와 병마사를 참칭하며 [[청도]] 감무(監務) [[임종]](林宗)을 죽이고 거병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였다. 이에 [[청도]] 호장 백계은 투항하는 척 이들을 환대하고 주연을 베풀어 안심시킨 뒤 아우인 급제 [[백이장]](白利章)과 함께 청도 군민을 동원하여 적수 [[박경순]]과 급제 [[조홍기]](趙弘祺), 진사(進士) [[박정서]](朴貞瑞)를 비롯한 일당 200여 명을 주살하고 폭동을 진압하였다.<ref>『동국통감』 권 36 고려기</ref> <ref>《청도군지》</ref>
         백계의 지략으로 [[밀양|밀성]].[[청도]] 지역의 민란은 진압되었다. 이 공적으로 백계직{{#tag:ref|혹은 오산군(鰲山君)에 봉해졌다 하나 려사(麗史)에 기록이 없어 고증할 길이 없다. 오산은 청도의 옛 이름이다.|group="주"}}되었고, [[청도]]는 현치에서 지군사로 승격되었으며, [[밀성]]은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강등되어 동경(경주)에 편입되었다.
         * 《[[탁집]]》(濯纓集), [[김일손]](金馹孫)
         [[분류:생몰년 미]][[분류:고려 사람]][[분류:13세기 한국 사람]][[분류:백씨]][[분류:청도 백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고려 백씨]][[분류:무신정권]]
  • 백기만 . . . . 10회 일치
          | 출생지 = {{국기나라|대한제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출생으로 [[1923년]] 문예지 〈[[금성 (잡지)|금성]]〉에 《꿈의 예찬》, 《내 살림》, 《기쁨》 등의 시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1926년]] 이후 [[문학 평론|문학평론가]]로도 병행 활동하였다.
         * [[대구초등학교 (대구)|경북도 대구보통학교]] 졸업
         * [[경북고등학교|경북도 대구고등보통학교]] 졸업
         * [[시 (문학)|시인]] [[이화 (시인)|이화]](李相和, [[1901년]] [[5월 9일]] 출생 ~ [[1943년]] [[4월 25일]] 사망. 아호는 화(尙火, 想華), 무량(無量), 백아(白啞). [[소설|소설가]], [[수필|수필가]], [[번역|번역문학가]], [[문학 평론|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였다.)
         [[분류:1902년 태어남]][[분류:1966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염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
  • 백남억 . . . . 10회 일치
         1914년 11월 11일 [[경북도]] [[김천시|김천군]]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를 1936년에 졸업하였다. 그리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1939년 [[큐슈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였다.
         1939년 조선총독부 철도국(鐵道國)에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 후 1946년 대구대학교(청구대학교와 통합된 현 [[남대학교]]) 법학과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14년 동안 법학교수로 활동하며 [[형법]] 과목을 담당하였고,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다가 [[4.19]] 이후 치러진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참의원]](경북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던 박준규, [[김재순]], [[민관식]] 등과 함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북도 김천시-금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내리 당선되었다. 이때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당무의원을 지냈다.
         항명파동으로 박정희의 분노를 사면서 자연스레 4인체제는 무너졌고, 백남억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쫓겨나지는 않았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북도 김천시-금릉군-[[주시|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김윤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박정수(정치인)|박정수]] 후보와 정휘동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자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그 후 1988년부터 1996년까지 [[동부화재|동부화재해보험]]의 전신인 한국자동차보험 회장을, 1991년부터 5년간 (재)성균관대학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2001년 1월 15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유족으로는 백종현(白種玹) 국민대 경대학장 등 3남 1녀가 있다.
         [[허경]]의 저서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의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 보루토/3화 . . . . 10회 일치
          *중급닌자 시험이 시작되고 사이가 시험관이 되어 재치와 끈기를 보는 시험을 진행한다.
          * 사이가 시험관으로 나서 문제를 출제한다. "닌자 군사 기록첩"의 5권을 가지고 문제를 내는데, 그 책은 사라다 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책.
          * 사이는 정답을 발표하면서 오답자는 까맣게 되어 실격할 거라고 하는데.
          * 사이는 합격자들에게 "선택을 받아들이고 그냥 떨어지는 녀석은 필요없다"고 단언한다.
          * 그런데 감독관들 사이에서 그런 보루토의 행동을 보고하는 녀석이 있다?
          * 그러자 사스케는 보루토보다 훨씬 많은 환분신을 만들면서 "이제 할 말 없지? 나루토는 천명은 만들 수 있다"고 말해 입을 다물게 한다.
          * 보루토는 깃발 수비를 맡았는데 환분신을 만들어서 수비한다.
          * 메탈 리가 깃발을 수비하며 신키를 대로 선전하는데 싸우는데 정신이 팔려 신키의 양동작전에 당해 실격된다.
          * 하지만 환분신술을 쓰는 보루토는 "이쪽은 다섯 쌍둥이"라며 여유를 부리는데, 적측도 환분신술이 특기였다.
  •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 . . . 10회 일치
         1만 4천 톤의 시럽 파도라고 하면 마치 만화 속 코믹한 장면이 연되겠지만, 이 때 발생한 당밀 파도는 해일처럼 인근 주택가와 전철 교량 등을 덮쳐 목조 가옥 14채와 전철 교량이 파손되고 21명의 사망자와 150여 명의 부자를 발생시켰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달달한 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시가지는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이 됐고, 당밀이 만들어낸 웅덩이들은 늪처럼 변해 인명 구조에 어려움을 주었다.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인재(人災)였음이 드러났다. 요약하면, '탱크 부실 시공 + 관리 소홀 + 부실 은폐 시도'. 여기에, 사건 당일에 갑자기 으로 승한 기온으로 인해 부피가 늘어난 당밀 시럽이 가뜩이나 부실한 저장 탱크에 부담을 가중시켜 이와 같은 참사가 벌어진 것이었다.
         문제의 회사는 보스턴 주민들에게 소송 폭탄을 맞고 거액의 배금을 물어주었고, 이후 건축물 전반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 보스턴 시의회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확대 시행되었다. 한편, 끈적한 당밀 시럽은 물로도 잘 씻어지지 않아 완전히 제거하는 데에 총 10년이란 시간이 소요됐고, 그 동안 보스턴 시내는 곳곳에 당밀 냄새가 진동하여 일 생활에 지장을 받았다고 한다.
         [[런던 맥주 홍수 사건]]과 유사한 데가 있지만, 이 쪽은 원인이 뚜렷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국내에서 국 맥주 홍수 사건을 소개하는 포스팅들 중 당수가 이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의 자료 사진들을 국 맥주 홍수 사건의 짤방으로 사용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 브이원 . . . . 10회 일치
         | 본명 = 이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br/> (現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 웹사이트 = [http://cafe.daum.net/KHS 강현수 공식 팬카페]
         '''강현수'''({{본명|이진}}, [[1978년]] [[6월 24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이다.
         1996년 뮤지컬배우 첫 데뷔한 그는 [[대구광역시|대구]] 태생으로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방송예술대학|동아방송대]] 방송연예학과 전문학사와 [[단국대학교]] 연극화학과 학사 학위를 거쳐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대중예술학전공으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브이원'이라는 예명으로 발라드 가수로 데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강현수는 임채홍과 함께 [[2010년]] [[3월 27일]]부터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입시 전문 방송아카데미 '배우&배움'을 열기도 했다. 평소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두 사람은 오랜 준비 끝에 개업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거나, [[2003년]] 방된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복학생 역을 맡는 등 배우로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3/h20100325062909111780.htm|제목=강현수·임채홍 방송아카데미 오픈|성=|이름=스포츠한국 안진용기자|날짜=2010-03-25|출판사=한국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2006년]] 군 입대를 선언했다.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재입대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강현수는 서울 광화문의 병역특례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경난에 부딪힌 회사가 그를 퇴사조치 했다. 다른 병역특례업체를 찾아보던 중, 때마침 연예인 병역비리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강현수도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회사가 어려워 임금을 받지 못했던 것인데, 황이 꼬이다보니 ‘무임금을 조건으로 취업했다’는 혐의를 받게 됐고 재 입대까지 통보 받게 됐다는 강현수의 주장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270147792&cp=nv|제목=‘하고 싶다’ 강현수 “남미와 연기 하고파”|성=|이름=최은화 기자|날짜=2010-04-01|출판사=쿠키뉴스 국민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 수 ==
  • 블랙 클로버/101화 . . . . 10회 일치
          * 마르스와 라드로스는 "괴뢰의 혈조"를 결정으로 만든 약을 가지고 다이아몬드로 돌아가 왕을 조종하는 한이 있어도 정적인 국가로 돌리겠다고 다짐한다.
          칭찬을 받은 어린 바네사는 그렇게 웃었다. 지금이라면 할 수도 없지만 여왕은 "바네사라면 할 수 있다"며 함께 웃어주었다.
          그녀가 바네사에게 달려가 안기는 동안 [[핀랄 룰러케이트]]도 끙끙대며 의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조종이 덜 풀린 건지 아직 얼떨떨한 얼굴이다. [[파나(블랙 클로버)|파나]]는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를 회복시킨다. [[라드로스]]는 앙해진 몰골인 채 그런 둘을 보며 휘파람을 분다. [[판젤 크루거]]는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 궁전으로 돌아가려는 마녀왕은 까마귀들을 불러모은다. 그런데 그 사이엔 한동안 보이지 않던 [[네로(블랙 클로버)|네로]]가 섞여 있다. 대담하게도 마녀왕의 어깨에 내려앉았을 뿐 아니라 그녀에게 무언가 속삭이기까지 하는데. 그걸 들은 마녀왕은 그 속삭인 내용이나 네로 자체에 대해서도 심치 않은 듯이 바라본다.
          * 궁전으로 돌아온 마녀왕은 곧 마녀의 숲과 사자들을 정으로 회복시킨다. 핀랄은 그녀의 어마어마한 마력에 또 한 번 경악한다. 마녀왕은 아스타 일행을 궁전으로 불러들이고 그동안 귀걸이로 차고 다녔던 보석을 던져준다. 그것이 마녀의 숲에 있는 마석이다. 그녀 자신에겐 원래부터 필요없던 물건이라는데.
          아스타는 마석을 챙기면서 이것이 대체 뭔지, 백야의 마안이 어째서 이것을 노리는지 질문한다. 마녀왕은 이것이 원래 "엘프"의 마도구이며 장착자의 마력을 높이는 물건이지만 제대로 쓸 수 있는건 엘프들 뿐이라고 가르쳐준다. 엘프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고대에 살았던, 선천적으로 고 마력을 보유했던 종족이다. 기원은 불명이나 수백 년 전까진 살아 있었고 현재 "해외계"라 불리고 있는 땅이 그들의 역이었다.
          * 마녀왕도 엄청난 마력의 소유자지만, 엘프들은 그 정도가 인간을 훨씬 회해서 마녀왕에 필적하는 마력을 보유한 자들도 흔히 있었다. 그러나 수도 없이 인간과 전쟁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패배, 지금은 멸종된 종족이 되었다. 그리고 파나가 [[증오의 파나]]로서 마안을 각성한 것도 원래는 엘프의 금술이다. 그러나 이 금술은 파나 스스로 사용한게 아니라 누군가 외부에서 발동시킨 것이다. 게다가 금술은 발동하는데만 해도 끊임없이 마나를 소모하며, 어떤 "희생"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 블랙 클로버/132화 . . . . 10회 일치
          * I팀과 P팀의 사실 결승전. [[노엘 실버]]와 [[엔 링가드]]는 I팀의 두 명이 공격해 오자 자군의 크리스탈을 수비한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는 공격을 맡아 돌격. I팀은 [[릴 부아모르티에]]가 크리스탈을 수비하자 유노와 격돌한다.
          * 유노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와 함께 했던 마나스킨 특훈으로 새로운 기술을 습득했다. 정령마법의 막대한 마력을 자신의 몸 안에 가두는 일종의 변신. 아스타의 블랙 모드와 비슷한 성질이다. 유노는 본래 아스타와 결승에서 만났을 때 쓰고 싶었지만 기사단 단장을 대라면 부족함이 없는 대라며 이 태를 해방한다. 마치 왕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유노.
          * "스피릿 다이브"라 이름 붙인 이 태는 좌중을 압도한다. 마법제 율리우스는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자가 이끌어낸 힘이라며 격찬한다. 그러나 가장 놀랍고 기뻐하는 것은 적인 릴. 감탄을 연발하며 "지금이라면 뭐든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최고의 그림을 그려낸다. 유노의 정령마법 "스피릿스톰"과 릴의 그림마법 "환룡 비브르의 외침"이 격돌. 완전한 호각세를 이룬다. 둘은 이토록 전력을 끌어낼 대가 존재한다는데 기뻐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유노와 겨루고 싶었던 아스타는 부으로 누워있는 태. 둘의 싸움을 바라보며 "왜 유노의 대가 내가 아닌 거냐"며 비통해한다.
         == 세 ==
  • 블랙 클로버/80화 . . . . 10회 일치
          * 아스타의 부을 회복하기 위해 마법제 전속 회복사 오벤에게 찾아간다.
          * 그런데 아스타의 거동이 이한데, 핀랄 룰러케이트는 아스타가 다시는 검을 들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말한다.
          * 절망의 베토에게 당한 두 팔은 저주에 걸려서 도저히 치료가 안 되는 태.
          * 야미하고는 친구처럼 대하고 있는데 사실 야미보다 이쪽이 연. 야미의 막돼먹은 부분 덕에 친구가 된거 같다.
          * 오벤은 지독한 처라며 서둘러 처치하는데 어쩐지 표정이 심치 않다.
          * 노엘과 매그너 스윙은 지칠리가 없는 애가 이하다고 생각한다.
          * 일단 뼈 자체도 산산조각 태라 일반적인 처였어도 회복은 어려운 태.
  • 블랙 클로버/84화 . . . . 10회 일치
          * 오랜만에 100%의 태로 싸우게 된 아스타.
          * 마녀의 숲의 공에 나타난 다이아몬드의 침략군. 아스타 일행은 여왕의 마법으로 이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 아스타는 그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아내는데 던전에서 만난 적이 있던 마르스와 "백야의 마안"의 삼마안 "증오의 파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스타는 파나 쪽은 절망의 베토처럼 위험하다고 여기지만 마르스는 살아있었다는 것에 묘하게 안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판젤 크루거(젤)도 다이아 출신이라 그런지 마르스를 알아본다. 핀랄 룰러케이트는 삼마안과 대치했을 때를 떠올리며 치를 떤다. 이런 우려들 속에서도 여왕은 침략군이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니 자신의 힘으로 완벽하게 없애준다고 큰소리친다.
          * 화염정령마법 "샐러맨더의 숨결". 그녀가 타고 있는 비룡이 입에서 거대한 화염구를 쏜다. 단 한 방으로 마녀의 숲을 가려주던 안개가 날아가고 숲이 불타오른다. 불길 속에서 당황한 마녀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여왕은 이 위력을 체감하고 나서야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그녀도 파나가 불의 정령 샐러맨더를 다룬다는걸 눈치채는데 그 태는 비록 불완전한데도 이만한 위력을 내는 것에 놀란다. 이런 내용은 점쳤던 결과를 뛰어넘는 것인데, 여왕은 운명이 어긋나고 있다고 직감한다.
          * 정신을 잃었던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꿈처럼 야미 스케히로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한다. 자신이 "운명"에 묶인 몸이라고 말하지만 야미는 "그 녀석이 싫다"며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말하는데. 서서히 눈 뜨는 바네사의 시야에 그 야미의 등과 닮은 아스타의 등이 보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스타만이 아니라 노엘 실버, 핀랄, 게다가 젤 일행까지 있는걸 보고 당황한다.
          * 아스타는 또 무모한 짓을 되풀이하려 하는데 바네사는 칼을 붙들며 "그렇기에 동료가 있는 것"이라며 사실 여왕을 이용해 저주를 풀고 나면 그 반마법의 검으로 왕을 따돌리고 도망치려 했다고 고백한다. 바네사는 뒤늦게 여왕이 바로 옆에 있는 걸 떠올리고 뜨끔해하는데, 마침 여왕은 그런 말보다는 아스타가 가진 반마법의 검에 흥미를 보이느라 제대로 듣지 않았다.
          * 노엘 실버는 우두커니 있는 여왕에게 협을 제안한다. 다이아몬드의 침략군과 싸우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것. 그녀는 아스타는 강하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니 저주를 풀어달라고 말한다. 게다가 아스타가 침략군과 싸운다면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도 힘을 빌려줄 테니 전력보강이 될 거라고 설득한다. "여왕이라면 이 숲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해." 여왕은 그것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순순히 아스타의 저주를 풀어주고 전보다 튼튼하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바네사는 원래 여왕을 속여먹이고 아스타의 반마법의 검으로 어떻게든 하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자신을 희생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아스타라도 마녀의 숲의 여왕을 대로 얼마나 싸울 수 있을지 의문이며, 애초에 바네사가 숲에 억류된 태에서 아스타와 재접촉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바네사를 숨겨두고 아스타의 저주만 풀어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
         여왕이 쓰는 마법은 "혈액 마법"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용할 때의 모습을 보면 혈액만이 아니라 "혈관" 자체가 생성되어 거기서 혈액이 방출되는 모습이다. 아스타의 처에도 핏줄이 접촉하는 듯한 모습인걸 보면 본체는 이 혈관쪽이라 해도 좋을 듯. 바네사의 실 마법과 연관점일지도 모른다.
  • 블랙 클로버/94화 . . . . 10회 일치
          * [[판젤 크루거]]는 파나와 마르스가 무사해서 기뻐하나 한숨 돌리려는 사이 [[라드로스]]의 마력이 무시무시하게 부활하는걸 파악한다.
          * 라드로스가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기습, 일행이 타격을 입고 마르스는 파나를 감싸다 부을 입는다.
          >인간이란 같은 인간조차 처입히지
          * 바네사는 백야의 마안이 마녀의 숲을 침공한 이유를 묻는다. 파나는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마석을 찾아와라"는 지령이 심어진 걸 떠올린다. 숲에 마석이 있다는걸 알게 된 노엘은 서둘러 마녀의 숲의 여왕에게 가보자고 한다. 젤은 그 전에 부당한 마녀들을 돕는게 먼저고, 또 "그 아이"를 확인해 둬야 한다는데.
          그때 젤과 아스타가 동시에 수한 기운을 감지한다. 젤은 급격히 증가하는 마력을, 아스타는 미심쩍은 기를 숲에서 느낀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전하기도 전에, 숲으로부터 마법공격이 쏟아진다. 젤은 뒤늦게나마 모두에게 도망치라고 외쳐보지만 폭격처럼 쏟아지는 마법공격을 피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 일행은 공격에 휘말려 쓰러진다. 그 뒤에 느물거리는 태도로 나타난 [[라드로스]]. 젤의 우려대로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게다가 샐러맨더의 마력을 흡수해 처 하나 없는 모습이다. 젤은 마력이 전혀 감지되지 않아 그가 전투불능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력감지 능력의 헛점을 이용한 페이크. 샐러맨더의 마력이 너무 거대해 흡수에 시간이 걸렸을 뿐더러 마력을 전부 방출했다 한꺼번에 되돌린 것이다.
          * 마르스는 파나를 감싸다 부을 당한다. 라드로스는 그걸 비웃으며 "그러니까 나한테 죽는 거다"라며 마르스와 파나를 공격한다. 하지만 부을 입은 마르스는 여기에 대응하지 못한다.
          * 바람같이 나타난 아스타가 라드로스의 마법 공격을 베어버린다. 라드로스는 "관없는 녀석은 꺼져라"고 욕하지만 아스타는 물러서지 않는다.
          >이제 관있어!
  • 블랙 클로버/98화 . . . . 10회 일치
          * 전투가 끝난 후 반마법에 빙의했던 태는 풀리고 몸은 처투성이에 엉망. 동료들도 죄다 널부러져 있다.
          >앞으로 네가 처입혔던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아!
          * 라드로스는 어이없어하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한참 웃은 라드로스는 진짜 못이기겠다며 차라리 속이 후련하다고 말한다. 아스타는 원래 그런 성격이었냐고 묻는데 라드로스도 마도석이 깨진 향인지 인격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 것 같다. 어쨌든 라드로스는 아스타가 "더 위로 올라가겠다"고 하던 것을 떠올리며 아스타라면 그럴만도 하겠다고 생각한다.
          * 아스타를 휘감고 있던 반마법 빙의는 곧 풀린다. 아스타는 그 태가 무엇인지 아직도 확신하지 못했고 방금 전 싸움도 "꿈 속에서 싸운 듯" 뭔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신기한 힘을 얻었다는 감각은 있으며 언젠가는 그 힘을 완벽하게 써보이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빙의가 풀리자 전투로 입은 처가 일제히 고통을 호소한다. 아스타는 급히 회복을 요청하지만 동료들도 널부러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나 [[파나(블랙 클로버)|파나]]도 살아는 있지만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스타는 어쩔 수 없이 마녀의 숲으로 모두 데려가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다.
          *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까마귀 떼가 몰려온다. 까마귀들은 곧 뭉쳐서 형을 이루며 지으로 내려온다. [[마녀왕]] 강림. 무슨 꿍꿍이인지 마녀왕이 직접 아스타 일행을 맞이하러 왔다. 이때 [[바네사 에노테이커]]도 정신을 차리지만 여왕이 있는걸 보고 심치 않은 예감을 받는다.
          바네사와 노엘이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구속 당한 뒤로 방법이 없다. 여왕은 아스타를 지배하고 처를 치료해준다. 노엘은 고등 마법 세 가지를 아무렇지 않게 동시에 사용하는 여왕의 힘에 놀란다.
  • 서종렬 . . . . 10회 일치
         1935년 [[경북도]] [[포항시|일군]]에서 태어났다. 남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박경석(1937)|박경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신한민주당 내에서 [[대통령 직선제]] 대신 [[의원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며 신보수회라는 계보에 참여하였다. 1986년 [[유한열]] 등과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중민주당(1986년)|민중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민중민주당에서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1987년 [[통일민주당]] [[분당(정치)|분당]] 이후 민중민주당이 신한민주당에 도로 흡수되자 신한민주당에서 당기위원회 위원장,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그러다가 같은 해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통일민주당]]의 경북도 일군-울릉군 선거구 [[공천]]에서 박기환에 밀려 탈락하였다. 이에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경북매일신문을 경하였다. 1993년 경북매일신문 경 비리로 기소되었다.
  • 서지훈 (1997년) . . . . 10회 일치
         | 사진설명 = 신예 서지훈, 데뷔작 '시그널' 합류 "광스런 기회"
         | 수 =
         | 웹사이트 = [http://www.managementkoo.com/bbs/board.php?bo_table=star_1&wr_id=58&sca=actor 공식사이트]
         | 배준
         | 이한 나라의 특별식사
         == 수 및 후보 ==
         ! 시
         | 제30화 [[KBS 연기대]]
         | 연작 · 단막극 남자
  • 송진현 . . . . 10회 일치
         |소속 = 법무법인 로고스 임고문변호사
         |웹사이트 =
         *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항소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0월 24일에 [[인천역]]에서 다른 승객이 놓고 간 35000원 당의 공구함을 들고가다 붙잡힌 피고인에 대해 "지하철이 종착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점유권이 지하철공사에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한다"며 징역10월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7년 10월 25일자</ref> 1998년 1월 10일에 일반음식점 업 허가없이 통조림, 캔류 등 안주류를 파는 24시간 편의방을 운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1월 11일자</ref> 1999년 1월 10일에 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경찰관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줘 공문서 부정행사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정모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관련 법령에 따라 운전면허증을신분증으로 규정한 조항이 없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99년 1월 11일</ref> 4월 24일에 서울대 캠퍼스에서 집단 농성을 주도한 한국통신 서울본부 위원장에 대해 "서울대 총장이 한국통신 노조의 총파업에 대해 학내 출입을 금지했음에도 무단 진입했다"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4월 26일자</ref> 5월 17일에 [[한총련]] 범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가 [[집시법]]위반과 건조물 침입죄로 1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1년이 선고된 노래패 '희망새에 대해 단장 조모씨(31세)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라고 하더라도 공연의 목적으로 참석했고 구호를 외치거나 연설을 하는 등 집회,시위를 한 것이 아니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집시법]]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5월 18일자</ref> 10월 7일에 폭력배를 동원해 채무 해결사 노릇을 했던 [[홍수환]]에 대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 부탁으로 후배를 연결해준 점은 인정되지만 채권을 회수하기로 후배와 공모한 일은 그 뒤에 이뤄져 피고인이 개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10월 8일자</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월 10일에 성적이 떨어진 학생을 막대기로 뗘 해죄로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체육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7년 11월 11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특별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22일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효순·미선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미군 2명을 소환해 조사했던 [[의정부지방검찰청]]을 대로 "관련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들이 청구한 정보 내역 가운데 피의자 신문 조서 등은 정보공개법 비공개 대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장갑차 운전병과 관제병에 대한 미군측 군사재판 원고 사본 등은 원심대로 한미 관계 등을 감안해 공개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심대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465906]</ref>10월 25일에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집회에서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송모씨가 "단체협약에 정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며 중앙노동위원회를 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노조활동에는 집회참가도 포함되고 따라서 [[집시법]]에 의해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당연해고할 수는 없다”면서도 "집회 도중 자의적인 폭력행위는 조합활동의 일부라고 볼 수 없다"며 "집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당연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83535]</ref>
  • 식극의 소마/185화 . . . . 10회 일치
          * 쿠가 테루노리는 아무리 반역자들이 강해졌어도 대가 십걸인 이 전원 통과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 타도코로 메구미와 알디니 타쿠미는 소마측의 소식을 듣고 걱정하는데, 린도가 나타나 자신이 두 사람의 시험 대라며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 소마는 그쪽도 십걸이 나왔는지 확인하는데 예대로 사실이었다. 아리스와 쿠로키바 료도 곧 대결장소로 가야한다는데.
          * 적이 전원 십걸인 이 반역자들이 모두 살아나가는건 불가능하다는 것.
          * 아리스가 패배해도 개의치 않는다는건 "져도 세에서 제일 귀엽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다.
          * 한 눈에 보기에도 태가 좋은 최급 고기.
          * 두 사람의 3회전 대는 코바야시 린도. 십걸의 2석.
          * 하긴 아자미도 이한 야망 때문에 부정부패를 일삼는 인물이므로 제대로된 인간이 아니다--노답 일가--
  • 식극의 소마/198화 . . . . 10회 일치
          * [[사이바 죠이치로]]가 사라지자 대회장이 발칵 뒤집힌다.
          * 쿄쿠세이 기숙사 학생들은 그의 신변에 이이 생겼다고 여기며 필사적으로 찾아나선다.
          * 죠이치로는 정신적으로 극히 피폐해져 The BULE 대회가 끝난 것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태가 되고 만다.
          * 소문이 자자한 [[사이바 죠이치로]]가 나타나지 않자 The BULE 회장은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 스텝들은 어떻게든 죠이치로를 찾기 위해 허둥대고 해외에서 그를 보러 왔던 요리사들은 어이가 없다며 "겁 먹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토오츠키 학원에선 그의 실종 소식이 전달되면서 "맨날 수업을 빼먹더니 더 블루까지 빼먹은 건가"라며 경악해 한다. [[시오미 준]]은 그렇다쳐도 이유가 뭔지, 왜 참석 조차 하지 않은 건지 의아해한다. [[나키리 아자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급기야 [[에비사와 리코]]는 그가 적어도 새벽에는 모습을 감췄을 거라고 추론하며 "요즘 분위기가 심치 않더니, 더 블루가 귀찮아서 그런게 아니면 괜한 생각을 한게 아니냐"고 불길한 소릴 한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던 학생들도 진지하게 자해나 자살을 떠올리며 우려한다.
          [[도지마 긴]]을 포함한 기숙사 학생들은 죠이치로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닌다. 그가 자주 다녔던 곳을 중심을 수색하지만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학생들은 정말로 그가 "괜한 생각"을 한게 아닌지 무서운 을 하기 시작한다.
          * 도지마는 이렇게 그를 찾는 시점이 돼서야 죠이치로의 행동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되었다. 죠이치로가 괴식요리에 푹 빠졌던 것은 일종의 휴식.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높은 경지에 올라도 만족이란 것을 몰랐으며 더 높고, 더 완벽한 요리를 요구했다. 거기에 응하야 한다는 부담감, 그걸 요리로 이어가는 피나는 노력은 "천재"라는 한 마디로 일축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괴식은 그렇게 평가받는 요리에서 도피처로 이용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 조차 하지 않게 됐을 땐 "도망치는 것 조차 할 수 없이 궁지에 몰린" 태였던 것이다.
          * 그는 죽은 생선 같은 눈으로 가을선발대회 때의 대결을 회하며 즐거웠다고 말한다. 어쩐지 여기 오고 싶었는데 요즘 마음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The BULE를 떠올리며 "거기서도 결과를 내야 하는데"라고 마음에 걸려한다. 그는 "내일" 있을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조리대 앞에 서있었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렇다고 잠도 들 수 없었다. 그저 조리대 앞에 서서 "다음 도착점으로 가야 한다"는 일념만 남아 있었다. 가혹한 폭풍을 헤치고 걷는 죠이치로. 그의 마음 속에서 그 몸은 다리가 부러지고 등불도 꺼뜨린 채 홀로 절망적으로 거대한 폭풍 앞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그냥 문을 모르겠더라.
  • 식극의 소마/200화 . . . . 10회 일치
          * 연대식극은 동료와 힘을 합쳐 조리하는 것도 가능하며 팀워크를 잘 활용한다면 십걸을 대로 대등 이으로 싸우는 것도 가능하다.
          * [[도지마 긴]]은 각 인원의 특성에 맞춘 전문화된 특훈 레시피를 준비했지만 [[사이바 죠이치로]]는 덮어놓고 복불복으로 진행하려한다.
          * [[나키리 에리나]]의 방에 모이기 직전의 황. [[도지마 긴]]과 [[타쿠미 알디니]], [[타도코로 메구미]]는 막 요리 승부를 마친 [[사이바 죠이치로]], [[유키히라 소마]] 부자와 마주친다. 결과는 소마의 패배. 소마의 491 연패가 된다.
          *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싸움은 에리나의 방까지 이어졌고 이게 간밤에 3 vs 3 홍백전을 치르는 이유였다. 타도코로는 쉬고 있는 에리나에게 미안하게 됐다며 그래도 동료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하자고 한다. 에리나는 거기에 동의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키리 아자미]]에게 위축되고 있는 사실에 거듭 심란해 한다. 그런 손녀의 심리를 간파한 [[나키리 센자에몬]]은 더이 인솔자들이 개판을 치고 있으면 안 되겠어서 결단을 내린다. 몸소 심판으로 홍백전을 주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센자에몬의 진행으로 팀부터 정해진다. 죠이치로, 소마, 에리나의 사이바 팀. 도지마, 타쿠미, 타도코로의 도지마 팀. 각각 죠이치로와 도지마가 리더다. 시합 장소는 소마 부자가 대결한 열차 내의 조리실. 차장이 대결장소도 빌려줄 겸 대결을 관전한다. 시작이 치졸한 자존심 싸움이라 그런지 대결이 시작하기 전에 리더들의 신경전이 첨예하다.
          타도코로는 대편에 소마와 에리나가 다 있어서 이쪽이 너무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에리나는 방금 전까지 우울해있던 주제에 죠이치로와 한 팀이 됐다고 소녀모드로 변신했다.
          * 타도코로가 거의 패닉에 빠진 사이 타쿠미는 침착하게 도지마의 조리를 관찰한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 도지마에게 필요한 재료를 정확히 찾아 대령하면서 대화없이도 팀워크를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타도코로도 깨닫는다. 이것도 결국 평소하던 조리와 다를게 없다. 셰프의 움직임을 잘 보고 조리과정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나가면서 움직인다. 그녀는 소마와 노점을 하던 때를 떠올리며 자신이 앞으로 조리를 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확히 맞는 역할을 찾아낸다.
          * 도지마 팀은 정말로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서도 손발이 척척 맞으며 빠르게 조리를 해나가고 있다. 센자에몬은 이 팀을 보면서 첫 번째 장애물을 넘었다고 안심한다. 그럼 사이바팀은 어떨까?
  • 아이네이아스 . . . . 10회 일치
         [[그리스 신화]]의 [[웅]]. [[트로이]]의 왕자이며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으며, 트로이가 멸망한 뒤 [[이탈리아]]로 떠나 후에 [[로마 제국]]의 조이 된다.
         아이네이아스와 같이, 트로이 전쟁의 웅을 자신들의 '조'으로 비정하는 신화는 그리스 계 식민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르고스]]에서 쫓겨난 [[디오메데스]]는 다우니아의 왕 다우누스의 딸과 결혼하여 그 땅을 이어받아 브린디시 등의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하며[* 디오메데스는 똑같이 이탈리아에 표류한 아이네이아스와 대적하던 에트루리아의 투르누스에게 동맹을 요구받지만, 디오메데스는 아이네이아스 개인에게는 원한이 없다는 이유 혹은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받는 것이 두려워 거절하였다고 한다.], 크레타의 지배자였던 이드메니우스 역시 크레타에서 쫓겨나 이탈리아 남부로 도망쳤고, 살라미스 섬의 테우크로스는 키프로스로 떠나[* 테우크로스는 살라미스의 웅 [[아이아스]]의 가족이었지만, 아이아스의 자살을 말리지 않고 복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아스의 아버지 테라몬 왕에게 미움을 받았다.] 살라미스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레스]]의 [[활]]을 가지고 있었던 필로크테이스 역시 이탈리아 남부에, [[트로이의 목마]]를 만든 에페이오스 역시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시온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무렵 이탈리아 그리스 계 도시에서 있었던 유행에 로마 역시 향을 받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네이아스 이전에는 라틴 족의 징적인 조으로서 '[[라티누스]]'가 그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한편, 카르타고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인 '디도 공주'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비중있게 실려 있는데, 이는 시기 '포에니 전쟁'이라는 크나큰 전쟁을 치른 대인 카르타고와의 관계를 운명론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왕당파 . . . . 10회 일치
          * 왕가가 종교적 징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을 경우, 왕당파 역시 종교세력과 강하게 결합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국]]의 경우, [[청교도 혁명]](국 내전)을 시발점으로 하여 의회파와 왕당파가 나타났다. 의회파와 왕당파는 수차례 복권과 혁명을 거듭하며 경쟁하였으나,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기존의 절대주의 왕당파는 [[스튜어트 왕조]]의 복위를 주장하는 [[자코바이트]]로 분리되었고, 명예혁명으로 성립된 국 왕실은 의회를 존중하여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부터 절대주의 왕당파는 더 이 국 정계에서 유의미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미국 독립전쟁]]에서 국 왕실을 지지하느냐, 국 왕실의 권위를 부정하느냐에 따라서, 왕당파와 독립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독립전쟁이 미국의 승리와 독립으로 끝나자, 미국 지역의 왕당파들은 [[캐나다]]로 도망치게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혁명]]을 시발점으로 하여 공화파와 왕당파가 나타났다. 왕당파는 [[부르봉 왕조]]의 복권을 주장하였으며, 혁명을 일으킨 공화파와 피를 피로 씻는 혈투를 벌였다. [[부르봉 왕조]]는 군주의 지위를 실했지만, 수백년간 프랑스를 다스린 왕조였기 때문에 부르봉 왕조의 권위는 여전히 당히 높아서 주로 보수적인 농촌을 중심으로 막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 울산광역시/인물 . . . . 10회 일치
         * [[박록(배우)|박록]] - 남구(울산)
         * [[안세현(수선수)|안세현]] - 남구(울산)
         * [[오진]] - 남구(울산)
         * [[이헌(정치인)|이헌]] - 북구(울산)
         * [[이세(코미디언)|이세]] - 울주군
         * [[이세(배우)|이세]] - 울주군
  • 원피스/837화 . . . . 10회 일치
          * 브륄레는 초신성의 키드, 아푸, 벳지, 우르지 등이 빅맘의 토를 공격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돌아갔다고 말한다.
          * 크래커는 디를 생각한다면 그는 여기서 행복하게 살 테니 냅두라고 말하며, 나중엔 그도 밀집모자 일당 따윈 멀리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 그는 "비크킷 전사 크래커". 그의 검은 "프레첼"이며 스스로 "이 세에 둘도 없는 명검"이라 자랑한다.
          * 나미는 루피마저 사황은 커녕 그 부하에게 제압당하는걸 보고 경악하며 쵸파가 잡혀가기 전 "대는 사황. 얕보는건 오히려 우리"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 최근 2년 동안 캡틴 키드, 스크래치 아푸, 갱 벳지, 괴승 우르지가 차례차례 빅맘의 역을 침번했다.
          * 결국 루피가 먼저 지쳐 쓰러지는데 크래커는 그꼴을 보고 "이제 디를 놓아줘라"고 말한다.
          * 디는 지체 높은 부인을 얻어 부족함 없이 살 것인데, 그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진 못할 망정 "멋대로 동료를 되찾겠다"고 한다며 비난한다.
          * 그는 루피를 짓누르며 결국 디도 기가막혀할 거라며 "꺼져라 꾀죄죄한 하급 해적놈아"라고 말할 거라고 매도한다.
          * 루피는 "디를 무시하지 마! 정말 행복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더라도 그 녀석은 우리에게 그딴 말은 안 해!"라고 일갈한다.
          * 3장성은 원래 4장성이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우르지에게 쓰러진 장성은 격하 당한 걸로 보인다. 하지만 그 자리를 누군가로 대체하지 않은걸 보면 이한 일.
  • 원피스/885화 . . . . 10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가 평정을 되찾자 [[몽키 D. 루피]]는 기어4 태에서도 수세에 몰린다. 그럼에도 루피는 같은 찬스는 반드시 다시 오고 그땐 기어4의 공격이 먹힐 거라 확신한다. 그런데 확신과는 달리 루피의 몸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기어4의 제한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카타쿠리가 그걸 비꼬자 루피가 그걸 자각한다. 루피는 곧바로 퇴각하며 패기를 재충전할 10분을 벌려고 한다. 카타쿠리는 곧바로 추격에 나서는데 지친데다 기어4까지 풀린 루피로선 떨쳐낼 수가 없다.
          * 달아나던 루피는 숨어있던 [[샬롯 브륄레]]를 발견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루피는 브륄레를 붙잡고 무작정 근처 거울로 뛰어드는데 카타쿠리가 주먹을 날려보지만 한 발 늦는다. 그렇게 미러 월드를 탈출한 루피. 하지만 재난의 연속이다. 하필 그곳은 너츠섬. 빅맘 [[샬롯 링링]]이 한창 먹부림을 부리고 있는 섬이었다. [[샬롯 페로스페로]]는 난장판 한 가운데 루피가 나타나자 빅맘의 주위를 그에게 돌린다. 루피는 빅맘이 아직도 써니호를 쫓는 줄 알고 있어서 어리둥절. 빅맘은 루피를 발견하자마자 거대한 너츠 조각을 집어던지며 공격을 가한다.
          * 써니호는 토트랜드 해에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바다 위는 특별한 이도 위협도 없지만 [[나미(원피스)|나미]]와 [[징베]]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결국 관건은 [[디]] 일행이 만드는 케이크. 그게 없으면 모든게 허사다. 그 우려대로 빅맘해적단의 선단이 총출동해 다시금 추격을 시작했다. 밀집모자 일당과 파이어탱크 해적단, 태양해적단이 그 목표다.
          * 카카오섬의 쇼콜라 타운에선 작업이 착착 진행 중이다. [[디]]가 만든 참깨 휘핑 크림이 특히 대성공. 그 맛을 본 부하 요리사가 기절해 버릴 만큼 맛있다. [[샬롯 푸딩]]도 그 맛을 보고 싶어하지만 디가 직접 "너만한 전력을 잃을 순 없다"고 만류할 지경이다. 일부 요리사들은 이 맛있는 크림을 케이크에 데코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승천해버린다. 때를 맞춰 [[샬롯 시폰]]의 특제 스펀지 케이크도 완성. 푸딩도 디의 생크림을 듬뿍 넣은 생초콜릿을 막 완성했다. 시간은 18시 5분 전. 최종 공정에 들어간다. 그런데 디는 모든 재료를 배에 싣도록 한다. 완성은 배 위에서 한다. 써니호를 향해 나아가면서.
         == 세 ==
  • 윤철종 . . . . 10회 일치
         ||<#eee> '''출생''' ||<(> [[1982년]] [[4월 23일]] ([age(1982-04-23)]세), [[경북도]] [[구미시]] ||
         권정열과 윤철종 둘 다 [[구미시]] 출신인데, 알고 보니 구미 [[현일고등학교]] 밴드부 매드펄스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다. [[동아리]] 선후배 사이로 지내다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밴드 '해령'에서도 같이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 권정열은 그대로 보컬이었지만 윤철종은 베이스를 맡았다.] 그런데 멤버들의 군 입대로[* 이 둘도 그때 같이 군대 갔다 왔다] 밴드가 해체되자, 둘은 '''색다른 밴드'''를 만들어 보고 싶어 [[대구광역시|대구]]로 [[경]]하게 된다.
         2010년 3월 28일 자체제작해 발매한 [[EP]]앨범으로 정식 데뷔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냥 보통의 홍대 인디밴드가 될 거라고 예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후 2010년 5월 민트 페이퍼 프로젝트 3집 앨범 <Life>의 수록곡인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로 참여. 이 곡이 그럭저럭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다가, 2010년 8월 발매한 디지털 싱글 ''''아메리카노''''가 제대로 대박을 터뜨려서[* 2010년 [[GMF]]에서는 관중들이 이 곡을 [[떼창]]했다.] 여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열광하는 가수로 급부하게 된다.[* 사실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앨범화가 되지 않은 노래들이 많다. '''녹음하기 귀찮아서.'''] 이때 아메리카노로 [[뮤직뱅크]] 최고 순위 7위에 든 적도 있다.
         2) "책서랍을 치우다 네가 먹던 '''감기약'''을 보고 환절기마다 아프던..."
          - 감기약이 '''[[마약|다른 약물]]'''을 연시키게 한다.
         2017년 7월 4일 소속사 측의 공식적인 입장에 따르면 전속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었던 6월 말, 멤버 윤철종이 개인적인 건강의 이유로 탈퇴 의사를 밝혔고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후부턴 권정열의 1인 체제로 10cm가 유지된다고 한다. 이후 윤철종은 19일 소속사와의 연락에서 본인이 대마초를 흡연했던 문제로 인해 권정열과 소속사에 해가 갈 것을 염려하여 급하게 탈퇴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http://m.huffpost.com/kr/entry/17520376#cb|링크]] 이후 소속사는 10cm를 권정열 1인 팀으로 변경하여 9월 1일 4집 앨범으로 컴백했다.
  • 은혼/590화 . . . . 10회 일치
          * 오보로의 회.
          * 귀병대는 이 지시를 의아해하는데, 오보로는 양이지사가 살아남은게 예 외였을 뿐 우츠로의 목적 자체는 이루어졌다고 대답한다.
          * 단지 땅을 기는 벌레(양이지사)의 생사여부 같은 자잘한 사실은 그의 큰 계획에는 아무런 관도 없는 문제라는 것.
          * 오보로는 쇼요든 우츠로든 어느 쪽이든 관 없다며 그분의 방해를 제거할 뿐이라고 답하고 싸우기 시작한다.
          * 다시 오보로의 회.
          * 그는 처가 나은 이후 우츠로를 따라 나락의 본부에서 지내고 있다.
          * 격렬한 싸움 중에 과거를 회하는 오보로.
          * 오보로의 마지막 회.
          * 불사신이긴 하지만 이미 한계에 달한데다 우츠로와는 달리 구적인 것도 아니다. 아마 이번에 당한 처로 사망할 듯.
  • 은혼/605화 . . . . 10회 일치
          *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하는 에도. 그 모습에는 긴토키 조차 전의를 실할 지경.
          * 해방군의 지군 전차부대까지 나타나 일행을 추격하는데 그때 또다른 전차 부대가 나타나 이들을 쓸어버린다.
          * 긴토키는 "서로 답지 않은 짓을 했다"고 말하는데, 노부메는 승산을 더이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답한다.
          * 그녀는 마음 속으로 이사부로에게 말한다. 그가 없어진 세에서도 그녀가 살아갈 의미는 있었다.
          * 함장은 원 황자에게 "적의 잔존세력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 그러나 원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적은 아직 남아 있다. 모든 것을 불태워라"는 지시를 내린다.
          * 보고를 받은 모모치는 핫토리 젠조가 사라지거 전 했던 말을 회한다.
          * 해방군 함대가 에도성을 포위한다. 원이 명령을 내리자 일제히 포격이 쏟아진다.
          * 그때 긴토키 일행에게 포격이 떨어진다. 이쪽은 해방군 지부대로 전차를 앞세워 진공 중이었다.
          * 양면으로 적이 들이닥친 절망적인 황.
  • 은혼/623화 . . . . 10회 일치
          * [[오토세]] 여사는 그들의 싸움을 보며 자신과 지로쵸, 그리고 남편 [[테라다 타츠고로]]의 젊은 날을 회한다.
          * 이후 오토세 여사가 처음 가게를 열게 되었을 때 누가 그녀의 배우자가 될 것인가를 놓고 서로 대가 더 적합하다고 싸우지만, 결국 지로쵸가 승리한다.
          하지만 오토세는 "예전부터 언제나 그랬지"라며 회에 잠긴다. 그녀가 기억하는건 언제나 싸우고 있는 모습. 유년기에서부터 철이 날 때까지.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그런 지로쵸를 훈계하는 그녀 자신도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는 동안 지로쵸는 적이 쌓이고 쌓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사하듯 주먹을 휘두르며 살았다.
          >혼을 부딪히면서 알게되는 것도, 이어지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 시간이 흘러 둘은 막역한 사이이자 가부키쵸를 지키는 양대 수호자로 자리매김했다. 야쿠자와 경찰이지만 둘은 마을을 위해 언제나 협력했고 타츠고로는 곧 가부키쵸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로 성장했다.
          그는 구경꾼 사이로 지나가다 오토세를 발견한다. 그는 말없이 지나가는 듯 하다가 문득 "가게가 생기면 마시러 가도 되겠냐"고 묻는다.
          * 지로쵸의 바람대로 오토세는 타츠고로와 이어지고, 그렇게 셋의 연결은 더 강해진다. 부딪히고 싸울 때마다 강해진 인연은 부 당해도, 쓰러져도, 끊어지지 않았다. 길을 잃고, 좌절하고, 그래도 손을 놓지 않았다.
          >혼을 맞부딪혔다.
          >처입고 쓰러지고 일어설 때마다 이 마을은 커져왔어.
          가구라 일행을 지나 들이치던 신라 부대는 긴토키와 지로쵸가 아니라 복도를 주파하던 신라 부대를 찌른다. 이들은 애초부터 신라부대가 아니었고, 이는 소타츠도 예하지 못한 전개였다.
  • 이강덕 . . . . 10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include(틀:경북도 포항시장)]
         ||<bgcolor=#C9151E> '''{{{#FFFFFF 출생지}}}''' ||<(> 경북도 일군[* 현 [[경북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의 장기면 산서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
         1962년 [[경북도]] 일군 지행면(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 장기면)에서 태어났다. 포항산서초등학교, 포항장기중학교, 대구[[달성고등학교]], [[경찰대학]] 1기,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공안행정학 [[석사]], [[동국대학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여론조사 으로는 5% 안팎의 치열한 접전이 예되었고, 실제로도 불과 7.7% 차이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include(틀:경북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이경영(1958) . . . . 10회 일치
         백예술대 신인연기(연극부문)(1985년)|}}
         성우 출신 배우로서 각종 TV 드라마에서는 조연으로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 [[이경(1960)|동명이인의 1960년생 배우]]보다 데뷔도 빠르고 나이도 많지만 배우로서의 인지도는 안습수준. --얼굴은 훨씬 동안이니 그걸로 된건가...--
          * KBS [[보통사람들]] - 조용원 대역 (1983년)
          * SBS [[야인시대]] - [[장도]] 역 (2002~2003년)
          * MBC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 - 남식 싱가포르 대사관 부이사관 역 (2005년)
          * MBC [[전설의 마녀]] - 박준 재무이사 역 (2015년)
          * KBS [[우리집 꿀단지]] - 오호 역(2015년)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경, version=197)]
  • 이덕진 (가수) . . . . 10회 일치
         | 웹사이트 =
         * [[1994년]] : [[KBS 2TV|KBS2]] 《[[밤과 음악 사이]]》
         | 제목 = [[KBS 가요대]] 《신인
         {{하이원 서울가요대 신인자}}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데뷔]][[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 신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총신대학교 동문]]
  • 이라경 . . . . 10회 일치
         ||<:> '''나이'''|| 26세 [* 2018년 6월 22일자 에서 96년생이라고 밝힘.] ||
         ||<:> '''출생지'''|| [[경북도]] [[구미시]] ||
         유튜브에서 최근 들어 인기 있었던 컨텐츠는 "회사에서 몰래 하기 시리즈". 회사에서 몰래 뿜뿜 추기, 샐러리 먹기, 과자 먹기 등등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는 이다. [* 사실 이 시리즈에 대해 불편하다는 시청자도 있었다. 재탕이 심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돈을 받고 일하는 회사에서 [* 물론 인턴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근무태만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는 것을 비판한 것.] ~~하지만 결국 회사에서 잘렸다.~~ 최근에는 회사를 그만둔 듯. 이라경의 초창기 컨텐츠는 공감을 유도하는 위주였으며, 본인 특유의 말투와 과장된 표정, 표현으로 인기를 끌었다.
          * KBS 노래가 좋아 반기 결산편에서 --노총각-- 삼촌과 함께 [[아모르파티]]를 열창한 결과 우승하여 200만원을 얻었다... [[https://youtu.be/MgJ-8MC_NKM|#]]
  • 이민아 (축구선수) . . . . 10회 일치
         |청소년 클럽 =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br /> [[진전문대학]]
         * [[대구인초등학교]] 졸업
         * [[원중학교 (대구)|원중학교]] 졸업
         * [[진전문대학]] 졸업
         == 수 경력 ==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여자 선수}}
         [[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동문]][[분류:진전문대학 동문]][[분류:대구인초등학교 동문]][[분류:원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
  • 이진주 (1678년) . . . . 10회 일치
         [[1678년]] [[경북도]] 에서 태어났으며 도촌 [[이수형]](李秀亨)의 8대손으로, 고조부는 여암(汝香+唵)이고, 증조부는 생원 이성간(李成幹)이며, 조부는 이최(李火+崔)이며, 아버지는 사후 증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이기효(李基孝)이며 어머니는 예안김씨로, 통덕랑 김종해(金宗海)의 딸이다. 그는 청렴한 문사였다. 취사 [[이여빈]]의 종4대손이 된다.
         [[1726년]](조 2) [[12월 28일]] [[성균관]]박사, 1727년 3월 양현고직장, 8월 7일 전적,1728년(조 4) [[2월 3일]] [[양현고]]주부, [[6월]] 직강, [[1729년]] [[11월 25일]] 병조좌랑이 되었으며 겸춘추(兼春秋)직을 겸하여 입직하였다. [[1730년]] [[2월 10일]] 성균관직강, 3월 25일 사예 등을 역임했다. [[1730년]] [[3월]] 진보현감(眞寶縣監)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조선 조|조]] 조정에서 입시한 신하가 아뢰기를, '이진주는 조용히 자신을 지켜 성균관에서 공부한 10여 년 동안 재신(宰臣)과 명사(名士)가 그의 얼굴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조가 수령을 선발할 때는 마땅히 조용히 자신을 지키는 자를 취해야 한다 하고, 곧이어 다시 진보현감에 재임명되었으나 얼마 뒤에 사망하였다. 1737년
         묘는 [[경북도]] [[풍군]] [[부석면]] 화감리 유좌에 있다.
         ** 형 : 이진(李鎭商, 1675 ~ ?)
         [[분류:1678년 태어남]][[분류:1737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작가]][[분류:과거 급제자]][[분류:우계 이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10회 일치
          * 분노에 찬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는 이미 죽음을 받아들였기에 [[게라이드]]의 만류를 사양하고 그녀를 바닥에 내려준다. 그리고 날아오는 창을 향해 떳떳하게 고개를 든다.
          할리퀸은 순간적으로 어떤 위화감을 떠올린다. 뭔가 이하다.
          >... 뭔가 이해?
          * 그러나 창은 이미 로우의 몸을 관통하고 난 뒤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창은 분명 그가 멈췄다. 그럼 도대체 누가?
          *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본 그 자리에는 할리퀸 자신, 아니 역사 속의 진짜 [[그로키시니아]]가 귀신 같은 형으로 창을 던지고 있었다.
          * 할리퀸은 긴 악몽을 꾼 것처럼 비명과 함께 정신을 차린다. 그는 더이 3000년 전 성전 시대에 있지 않았다. [[디안느]]와 그로키시니아, [[드롤]]에게 끌려온 나무 속이었다. 할리퀸은 아직도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자기 몸을 만져보며 원래대로 돌아온 걸 깨닫는다. 그때 진짜 그로키시니아가 말을 건다.
          할리퀸이 위로하려는 건지 어쩌려는 건지 "최악의 오빠라면 나도 지지 않는다"고 이한 경쟁심을 내세운다. 그로키시니아는 그런 게 경쟁할 부분이냐고 태클을 걸면서도, 자신과 같은 입장인 그가 왜 로우를 죽이지 않았냐고 묻는다.
          * 이로써 할리퀸의 시련은 끝났다.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할리퀸이 본 것은 전부 환일 뿐인가? 아니면 진짜인가? 그로키시니아는 전부 진짜였다고 대답한다. 그 안의 인물들과 대화가 가능했던게 증거다. 만약 거기서 할리퀸이 죽었더라면 여기서도 죽는다.
          * 그때 할리퀸은 등에서 원인 모를 통증을 느낀다. 당히 심한 통증이라 식은땀이 흐른다. 그로키시니아가 심치 않게 바라보는데 드롤은 이것이 시간회귀술법의 부작용이거나, 어쩌면 다른 "징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10회 일치
          하지만 멜리오다스는 그의 사과를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데다, 할리퀸의 날개에 더 관심을 뺏겼다. 반과 같이 다가와서 그의 날개를 보고 "이제 너도 어른이 됐구나"라는 둥 애송이 취급을 해대는데다 반도 "작다. 어린애 사이즈"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결국 분개하는 할리퀸. 하지만 디안느가 "두 사람도 나름대로 기뻐하는 것이니 화내지 말라"고 타이르자 고분고분해진다. 멜리오다스와 반이 그걸 지켜보다 "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하는데, 할리퀸은 "연인 같아졌다"고 지례짐작해서 으스대지만 곧 "너 말고 디안느가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무안해진다. 디안느는 그게 맞다고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려준다.
          지금의 고서는 자신이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 조차 잊어버린 태. 그래서 디안느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멜리오다스와 멀린은 디안느가 무심코 말한 "3천 년 전"이란 단어에 움찔했다. 반은 "꿈이라도 꾼 거겠지"라고 별거 아니라 여기지만 멀린은 진지하게 가능성을 점쳐 본다. 그녀도 여신족의 시간회귀술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디안느가 정말 3천 년 전으로 갔었을 거라 추정한다.
          >이걸 찾는데 당히 시간이 걸렸다만... 드디어 찾았다. 기억하나 고서?
          * 고서는 기억해냈다. 소중한 약속과 [[나자 리오네스]]. 단편적인 기억들이 스쳐갔다. 그러나 고서의 다음 행동은 누구도 예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그대로 고성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도망쳐 버렸다. 바트라가 기다리라고 말해도 전혀 듣지 않았다. 일행은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멜리오다스와 반은 오줌이나 똥이 아닐까 하는 한심한 추리나 하고 있었다. 디안느는 바트라가 보여준 물건이 그를 도망치게 했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건 고서 자신의 물건이었다. 정확히는 [[일곱 개의 대죄/고서 외전|그가 바트라의 누나 나자에게 주었던 물건]]. 원래 고서의 가슴 속에 있어서 마법의 마음을 주었던 물건이다. 에스카노르는 "마법의 마음"이란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을 떠올린다. 멀린은 그보다는 실용적인 착이 떠올랐는지 바트라에게 그 물건을 잠시 보여달라 한다.
          * 멜리오다스와 반은 같은 방향을 수색했다. 반은 가던 중 과일장수의 사과를 하나 슬쩍하며 단장에게 "고서가 인형이란걸 알았냐"고 묻는다. 물론 멜리오다스는 알고 있었고 진짜 십계 고서와도 아는 사이였다. 십계 고서는 마신왕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 실력으로 "무욕"의 계금을 받고 십계로 발탁됐다. 무욕의 계금은 욕심을 품는 자의 기억이나 감정을 빼앗는다. 이걸 부여해준 마신왕도 예외는 없어서 그를 감옥에 가둬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서는 자신의 분신인 인형 고서를 만들었다. 그 용모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쏙 빼닮게 만들었지만... 정욕을 품는 일이 없어야 했기에 남자로 만든 것이다.
          * 그런데 다른 방향으로 갔던 에스카노르는 정말로 고서를 불러가면서 찾아다니고 있었다. 하필 시간대도 안 맞아서 약골 태. 금방 목이 쉬어서 기침을 해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근처에 고서가 있기는 했다. 그는 금발의 여인으로 변신한 채 일행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에스카노르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서가 자리를 옮긴다.
          * 정처없이 걷던 고서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자, 그 앞은 "마음의 거처"라 할 만한 곳이었다. 자신이 처음 세으로 나왔던, 나자와 만났던 고성. 왜 자신이 여기로 돌아왔을까? 또다시 단편적인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느 소녀. 나자의 기억. 그는 이런 "노이즈"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장소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원인을 알아낸 이...
  • 일곱개의 대죄/226화 . . . . 10회 일치
          * 그러나 이 젤드리스는 해골에 환을 씌워 만든 가짜. [[메라스큐라]]의 계략이었다. 걸려든 멜리오다스는 다른 공간으로 격리된다.
          * 나머지 일행은 "원반혼의 법"으로 만들어진 해골병과 싸우게 되나 허약한 몬스터라 전혀 대가 되지 못한다.
          * 젤드리스를 쓰러뜨린 멜리오다스는 그 동강난 시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당연하지만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곧 환이 벗겨지며 해골로 만들어진 육체가 드러났다. 멜리오다스도 함정이라는 걸 짐작했으나 몸이 먼저 움직였던 모양이다. 그때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메라스큐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젤드리스에게 당히 화가 났나 보네, 멜리오다스님?
          멜리오다스는 이따금 드러나는 메라스큐라의 허을 베었다. 그러나 연기를 베는 것처럼 감촉이 없다. 곧 허은 희석되는 것처럼 사라진다. 메라스큐라가 모처럼 단둘이니 수수깨끼를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지금 멜리오다스의 전신에 충만한 파괴충공, 그가 가진 부의 에너지는 모두 "암담의 고치"로 흡수된다. 이렇게 흡수된 에너지는 무엇으로 바뀔까?
          >만일 맞추면 으로...
          * 귀찮게 몰려드는 적들을 쓰러뜨리던 대죄 일행. 해골의 머리통을 후려친 반이 이함을 느낀다. 이제 부서지지 않는다. 심지어 반격의 제법 매섭다. 다른 일행도 느낄 수 있었다. 해골병들이 강화되고 있다. 이제는 통적인 공격에 처를 입지 않는다. 멀린은 이들의 공격, 방어, 대마법 능력이 눈에 띄게 올라가는 걸 확인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것이 메라스큐라가 던진 수수깨끼의 답이었다.
  • 자본통제 . . . . 10회 일치
         자본통제를 푸는 자본자유화는 개발도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 신흥국과 개발도국에 과도한 단기자금이 유입되면, 통화가 절되어 수출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
          * 선진국의 금리 인, 국제금융시장의 격변으로 단기자금이 사라지면, 자산버블이 붕괴되어 통화위기, 경제위기를 겪을 수 있다.
         미국이 자본통제를 강화하자, 미국게 다국적기업들은 수출 대금으로 얻은 달러를 미국으로 가져가지 않고, 런던의 은행에 예금하여 마음대로 자금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로달러'이다. 유로달러가 크게 증대하고 이를 다루는 은행들은 큰 이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국제금융업무에서 이익을 얻기 위하여, 미국, 국, 일본 등이 자본통제를 철폐하기 시작한다.
         1974년, 미국은 자본자유화가 국제무역을 증가시킨다는 견해로 자본통제 정책을 폐지했다. 선진국들은 자본자유화 정책을 대세로 삼았으며, 우리나라는 1995년 OECD 가입을 계기로 하여 자본통제를 풀기 시작했다. 1997~1998년에 IMF 사태를 겪으면서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채권, 금리, 외환, 주식 등의 금융자산을 기초로 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파생금융품'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를 노리는 [[헤지펀드]]가 크게 성장하여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대한 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 토빈세 : 노벨을 받은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이 1997년 제안한 것이다. 외환거래에 세금을 물리자는 것으로서, 단기외환거래를 억제하여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 "개인적인 견해로는 지금처럼 모순적인 황에서는 자본통제가 환율을 관리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세계경제포럼 연례회의에서
          * "글로벌 자금 흐름의 단기적인 속성과 내재한 변동성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신흥 시장과 미국 등 국제 자본 흐름에 큰 향을 주는 국가들은 새로운 규칙과 과세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 -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 장성원 (배우) . . . . 10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경북]] [[국가 조선. png]]
         |웹사이트 = [http://www.jangsungwon.com/ 장성원 공식 홈페이지]<br>{{싸이월드|24519437}}
         | rowspan=2 | [[박정희]]대통령의 식 [[박지만]]
         | 최기
         === 화 ===
         | 《[[체인지 (화)|체인지]]》
         | 《[[썸머타임 (화)|썸머타임]]》
         | 《[[스승의 은혜 (화)|스승의 은혜]]》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경북도 출신]][[분류:1995년 데뷔]]
  • 장세현 (배우) . . . . 10회 일치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tntn57877}}
         《[[성균관 스캔들]]》에서 '성균관 유 3인방' 중의 하나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서 주목을 받은<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5&aid=0002315234 성스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지" 감초 3인방은 누구?]</ref> 장세현은 《[[내일도 칸타빌레]]》에서 마수민을 맡아 유진([[주원]])에 첫눈에 반한 '유진바라기'로 설내일([[심은경]])과 경쟁관계에 놓이는 역할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532683 신예 장세현, '내일도 칸타빌레' 캐스팅…심은경과 천적관계]</ref>
         === 화 ===
         | 《[[바람 (화)|바람]]》
         | 《[[위험한 견례 2]]》
         | 《[[덕혜옹주 (화)|덕혜옹주]]》
         * 코카콜라 부르르(수장 편)
         * 후시딘 - 네티즌 유현승의 처 편
         * {{공식 웹사이트|http://cafe.daum.net/jang-baby|장세현 팬카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
  • 장윤진 . . . . 10회 일치
         |경력 = [[2010년 미스코리아]] 선(善) & 포토제닉
         |소속 = 라이프사이트 (대표)
         | 신체사이즈 = 가슴: {{convert|34|in|cm|sigfig=3|abbr=on}}<br>허리: {{convert|23|in|cm|sigfig=3|abbr=on}}<br>엉덩이: {{convert|36|in|cm|sigfig=3|abbr=on}}
         |학력 = [[이화여자대학교]] 문학과 학사
         |웹사이트 = {{페이스북|yoonjinchang}}
         *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문학과 학사, Evanston Township High school
         | 현재명 = 장윤진{{·}}[[김혜 (미스코리아)|김혜]]
  • 전덕기 . . . . 10회 일치
         [[동감리교회]]의 전도사와 목사를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정선 전씨|정선]](旌善)이다. [[신민회]]와 [[동청년회]]의 조직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성부]] 출생이다. 동감리교회의 전도사가 되었으며, [[독립협회]]의 서무부에 속하여 일하였다. [[이동녕]], 이승만, [[박용만 (1881년)|박용만]] 등과 함께 함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였다.
         [[1906년]] 동감리교회에서 설립한 [[공옥학교]]에서 교사로 일했으며, 1907년에 교감 [[이회]], 교사 이동녕 등과 함께 신민회를 결성하였다. 같은 해, [[이준 (1859년)|이준]]과 동감리교회 지하실에서 [[헤이그 특사 사건|헤이그 거사 계획]]을 성사시켰다. 역시 같은 해, 감리교 연회(年會)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동감리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105인사건]]으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났다가 면했다.
         그의 위패가 [[국립묘지]] 무후선열 모각에 모셔져 있다.
         [[분류:1875년 태어남]][[분류:1914년 죽음]][[분류:정선 전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목회자]][[분류:고문 피해자]][[분류:감리교신학대학교 동문]][[분류:범죄 피해자]][[분류:한국의 기독교운동가]][[분류:병사한 사람]][[분류:이회]][[분류:신민회]]
  • 전락원 . . . . 10회 일치
         '''전락원'''(田樂園, [[1927년]] [[5월 16일]] ~ [[2004년]] [[11월 3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겸 교육가, 관광업자이다. '카지노의 대부'라는 별칭도 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1451.html ‘카지노 대부’ 전락원씨 유족, 증여 · 속세 430억원 신고 : 경제일반 : 경제 : 뉴스 : 한겨레<!-- 봇이 따온 제목 -->]</ref>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장로교]] 목사 [[전주부 (목회자)|전주부]]의 아들이며, 수필가 [[전숙희]]의 남동생이었다. [[파라다이스그룹|파라다이스 그룹]]의 창업주이며, 카지노업과 교육 사업을 하였다. 본관은 [[담양 전씨|담양]]. 호는 우경(宇耕)이며 [[서울특별시]] 출신. 종교는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이다.<ref>[http://news.joins.com/article/2028144 '파라디이스 그룹 창업주' 전락원 회장 별세], [[중앙일보]], 2004년 11월 3일.</ref>
         이후 사업역을 면세점, 건설, 소방용스프링클러 제조, 미디어 분야로 확대하며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부산, 파라다이스건설, 파라다이스미디어아트 등 11개 리법인과 학교법인 계원학원 등 5개 비리법인을 거느린 [[파라다이스 (기업)|파라다이스]] 그룹을 키워냈다.<ref name="카지노"/>
         워커힐 카지노 사업을 맡고 있는 [[파라다이스 (기업)|파라다이스]]는 지난 2002년 11월 코스닥에 등록했으며 파라다이스 호텔체인은 파라다이스호텔 제주, 케냐의 파라다이스 사파라파크호텔,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도고, 파라다이스호텔 인천 등 국내 토종 호텔 브랜드로 유명하게 되었다. 이후 계열사별로 전문 CEO체제를 구축, 그룹 경에서 한발 물러섰으며 2004년 계원학원 이사장을 맡으면서 그룹경에서 물러난 후 같은해 11월 3일 향년 78세로 사망했다.
         생존시 수년간에 걸쳐 주요 지분을 아들인 전필립 [[파라다이스 (기업)|파라다이스]] 부회장과 비리법인에 넘기는 등 후계 체제를 준비해 왔다.<ref name="카지노"/> 전 회장은 사망당시 그룹 주력사인 [[파라다이스 (기업)|파라다이스]]에 대해 6%정도의 지분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f name="카지노"/>
         *1978년 11월 - 1980년 11월 대한올림픽위원회 (KOC) 임위원
         *1989년 9월 주한 케냐공화국 명예총
         *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1451.html ‘카지노 대부’ 전락원씨 유족, 증여 · 속세 430억원 신고-한겨레]
  • 전민제 . . . . 10회 일치
          | 언어 = [[한국어]], [[중국어]], [[어]], [[일본어]]
          | 수 = 서울특별시 문화 <br/> 국민훈장 동백장 <br/> 석탑산업훈장 <br/> 2006년 서울대 공대.한국공학한림원 공동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선정(화학분야)
          | 배우자 = [[나균]](羅英均)
         신장은 175cm이고 체중은 75kg인 그는 [[1950년]] [[8월 1일]]에 여성 문학자 [[나균]]과 결혼하여 그녀와의 사이에서 슬하 1남 3녀를 두었다.
         * 1959년 한국석유 무이사
         [[분류:김종필]][[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분류:심대평]][[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
  • 전상욱 (축구선수) . . . . 10회 일치
         |이름 = 전욱<br/>(全相昱)
         '''전욱'''(全相昱, [[1979년]] [[9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현재 [[성남 FC]]의 유소년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이후 [[부산 아이파크|부산]]을 거쳐, [[2013년]] 다시 전 소속팀 성남으로 복귀하였고,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2014년]] 새로 입된 [[박준혁 (축구 선수)|박준혁]]에 위해 주전에서 밀리며, 2년간 9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6 시즌 중 성남은 전욱이 건강의 문제로 갑작스럽게 그라운드를 잠시 떠나게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전욱은 5월 1일 광주전에 [[김동준 (축구 선수)|김동준]]과 교체 투입되어 3분간 골문을 지켜 팀의 2-0 승리를 함께하였고, 광주전을 끝으로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2017년 1월, 치료를 마친 전욱은 성남 FC 유소년 코치로 현장에 복귀하였고, 성남 유소년 육성반 U-12팀에 합류해 U-10 전담 코치를 맡게 되었다. 이후 전욱은 본인의 병명이 [[암|비인두암]]이었음을 밝혔다.
         == 수 ==
         * {{K리그 선수|20050032|전욱}}
  • 절대가련 칠드런/440화 . . . . 10회 일치
          * 출세길 막힌 명예퇴직 대자가 간다는 전설적인 부서다.
          * 타니자키의 설명에 의하면 모호츠쿠 관측소는 "자연태에서 무기물에서 발생하는 ESP나 유사전파를 연구하기 위한 기관"으로 외딴 곳에 있는 이유는 에스퍼의 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 극비기관인 것은 냉전시대의 향인데 이 관측소의 관측기가 성능이 너무 좋다 보니 국경 너머 타국의 에스퍼까지 감지해서 국제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
          * 타니자키가 이곳에 온 것은 반년 전 일 때문인데, 평시와 같이 나오미에게 "결혼하자"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 타니자키는 드디어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고 생각하는데, 나오미는 "그래도 너무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이라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며 신선한 위치에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며 인사이동을 권유하는데
          * 넙죽 승인하고 보니 바로 타니자키 자신의 인사이동 신청이었던 것이다.
          * 일련의 부자연스러운 황들을 놓고 봤을 때 흑막은 츠보미 관리관이며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좌천시키는 거 자체가 목표임은 명백했다.
          * 미나모토는 관리관을 구속해 검사를 강행하자고 정하고 연락이 두절된 관측소의 황을 역이용하자고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5화 . . . . 10회 일치
          * 궁지에 몰린척 했던 츠보미 후지코는 최신 ECM과 원격조종용 액탄환을 이용해 역전한다.
          * 당히 강력한 물건인지 효부 조차 일시적으로 능력이 저하됐던 것.
          * 원격조종용 액 탄환. 이것이 효부의 몸에 맞자 그대로 굳어서 움직임을 막아버린다.
          * 효부는 어째서 후지코만 ECM의 향권에서 자유로운지 묻는다.
          * 후지코는 여기서 "이 ECM은 효부를 대로 어디까지 통할까"를 고려했고 통하는 척하다 슬쩍 빠져나가는 전개까지 예했다.
          * 하지만 후지코는 "너무 순순한게 오히려 수하다"며 달려든다.
          * 후지코는 설마 이런 장소에 조력자가 올 거라고 예하지 못하고 방심해 버렸다.
          * 후지코는 그 방법 외엔 없고 녀석만 잡을 수 있다면 죽어도 관없다고 극단적인 말을 한다.
          * 바벨의 신형 ECM을 이용해서 조직의 돈줄로 만들 구이라는데 효부를 구한건 그 과정에서 어쩌다 그렇게 된 덤같은 거라고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1화 . . . . 10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71th sense. '''속 (3)'''
          * 일행은 뒤늦게 형무소 내에 ECM이 작동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등 수한 점을 눈치채나 탈출하기도 전에 정신오염된 [[우메가에 나오미 ]]가 습격한다.
          * [[미나모토 코이치]]가 테러리스트 혐의로 에스퍼 형무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츠쿠시 미오]]는 격분해서 판도라의 거처에서 뛰쳐나온다. 그러나 기세 좋게 나온 것 치곤 아무런 계획도 전략도 없는 황. 미오는 일단 형무소 담벼락은 초능력으로 통과할 수 있다는걸 알고 희희낙락한다. 차라리 [[모모타로(절대가련 칠드런)|모모타로]] 쪽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데, 외벽 쯤에서는 초능력이 통해도 형무소 내부는 ECM으로 무장하고 있을 거라며 무작정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설치류도 알 만큼 뻔한 사실이지만 미오는 "그런건 들어가 보기 전엔 모른다"며 ECCM도 가져왔으니 어떻게든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
          * 바로 그때 [[타마키 카즈라]], [[히노 카가리]], [[파티 크루]] 일행이 뒤쫓아와 문자 그대로 미오를 밟아버린다. 지성이라곤 없는 그녀의 계획을 대차게 까면서. 미오가 어떻게 알고 따라왔냐고 하자 카즈라는 "설치류 둘이 사라져서 할 법한 일을 추리해봤다"고 당당히 밝힌다. 방금 전까지 설치류의 명예를 걸고 장류를 뜯어말리던 모모타로는 억울해하며 "설치류에게 사과해라"고 항변한다.
          * 카가리와 파티는 에스퍼 형무소의 특성에 대해서 설명하며 미오의 억지를 논파해 버린다. 그녀의 초능력이 통한건 "외벽에는 ECM이 향을 주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 내부에는 철저하게 내향성 ECM으로 봉쇄돼있고 텔로포트로 뚫으려고 사도하다간 벽에 걸린 채로 저지 당한다. 게다가 미오가 넘어가려 한 것은 그냥 외벽이고 내부에 따로 격벽이 존재한다. 그 안이 본체이며 보다 강력한 ECM이 작동하고 있다.
          미오는 그럼 어떻게 하냐고 버럭하는데, 카즈라가 "그래서 아무 것도 못하는 거다"라고 맞버럭질을 지르자 겨우 황을 이해한다. 하지만 카즈라 일행이 그저 미오를 말리려고 온 것만은 아니었다. 카즈라 일행은 판도라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한 탈옥 장비를 몰래 빼돌려서 가져왔다. 판도라는 일단 범죄조직이니 이런 황에서 탈출하는 것도 염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뻔히 함정일게 분명해서 장비를 과신하기도 힘들다. 이번은 여왕 [[아카시 카오루]]를 위해 정찰만 하기로 하고 그것도 낌새가 나쁘면 바로 철수하기로 하고 형무소 진입을 시도한다.
          *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카가리와 카즈라는 모모타로의 텔레파시를 수신하고 작전대로 폭발물을 작동시키고 탈출하려고 한다. 바깥의 파티는 폭발로 안에서 이변이 생겼음을 확인한다. 그런데 카즈라는 모모타로가 무전이 아니라 텔라파시를 보낸 점을 주목한다. 그러고 보니 ECM이 작동하지 않는다. 에스퍼 형무소에서는 말도 안 되는 황. 이제보니 주위에 수형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디코이 만이 아니라, 이 형무소 자체가 함정이었던 것이다.
          *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잠들어 있던 칠드런 일행. [[아카시 카오루]]는 이한 예감을 받고 깨어난다. 그 바람에 [[노가미 아오이]]와 [[산노미야 시호]]도 눈을 뜬다. 카오루는 잘 모르겠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뭔가를 감지한 듯 하다.
         ECM도 작동하지 않고 사람도 없이 텅 빈 형무소 내부 황을 보면 앞서 예측한 대로 의도된 함정. 일행을 함정에 빠뜨려 역시 정신오염시켜도 좋고, 만약 놓치더라도 이 일을 에스퍼들에 대한 경각심과 반감을 부추길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72화 . . . . 10회 일치
         [[절대가련 칠드런]] 472th sense. '''속 (4)'''
          * [[파티 크루]]가 셋의 허를 찌르고 도주하려 하나, 대도 복병을 감추고 있었다. 더 하운드의 [[야도리기 아키라]], [[이누카미 하츠네]] 난입.
          * [[히노 카가리]]와 [[타마키 카즈라]]는 와일드 캣 나오미를 대하고 있다. 카가리가 싸울 이유가 없다며 나오미를 말려보려 하지만 허사. 카즈라는 그들에겐 백신도 있고 적이 파고들만한 "마음의 틈" 같은건 없는게 아니었냐고 묻는다. 나오미는 의외로 순순히 모든걸 대답하는데 우선 백신이란건 체내에 주입된 입자를 무력화할 뿐이다. 하지만 레어메탈 입자는 매개체일 뿐. "네트워크"에 "통합"시키는 거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타니자키 이치로]]가 입힌 심각한 트라우마는 그녀가 아저씨라는 인종 자체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지금 그녀는 아재개그도, 성희롱도, 아재냄새도 없는 크린한 세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 진지하고 격렬한 반응으로 보아 정말로 블랙 팬텀에 세뇌된 건지, 평소 태랑 어떻게 다른 건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그녀만 의이 바뀌지 않은건 본질이 드러났다는 표시일지도 모른다.
          * 나오미는 아재타도를 위해 카가리와 카즈라도 블랙 팬텀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스턴 서브젝션에 뭔가가 간섭한다. [[파티 크루]]의 입자 조작이었다. 일행이 너무 늦어지자 와본 건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파티는 나오미의 공격을 막고 빨리 이탈하다고 재촉한다. 하지만 미오와 모모타로는 아직도 다른 위치에 있다. 파티는 모모타로의 텔레파시로 파악해 보니 대는 자신의 동류들이었다.
          * 파티의 동류, 팀은 한층 강화된 갓로보로 미오를 압박하고 있다. 이것은 신장비 TUEE필드란 걸 장비했다는 설정인데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내는 텔레포트를 차단한다. 모모타로 쪽은 바렛과 싸우는데 모모타로의 에어 미사일은 초탄도결계를 펼치는 바렛하고는 좋지 않다.
          * 파티가 이때 기습을 가한다. TUEE필드도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하는건 막지 못하니 파티의 입자 조작이 충분히 먹혔다. 결국 파티의 활약으로 세 사람은 벽에 처박히는 신세. 완전히 제압됐다고 생각한 카가리는 이왕이니 이들도 데리고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그 직후 카가리의 낌새가 이하다. 뭔가 눈치챈 팀이 "해버려 아키라!"라고 외치는데 그와 동시에 일행이 있던 곳에서 갑작스런 폭발이 일어난다.
  • 정대철 . . . . 10회 일치
         |부모 = 아버지 [[정일형]], 어머니 [[이태]]
         |경력 = [[한양대학교]] 조교수<br/>[[신민당 (1967년)|신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br />[[민주화추진협의회]] 통일문제특별위원회 위원장<br/>[[평화민주당]] 대변인<br />[[평화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br/>[[민주당 (1991년)|민주당]] 최고위원<br/>[[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br/>[[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br/>[[열린우리당]] 임고문<br/>[[대통합민주신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br/>민주당 특임고문<br/>[[민주통합당]] 임고문<br/>[[더불어민주당]] 임고문<br/>[[국민의당]] 전임고문<br/>민주평화당 고문 겸 대표최고위원
         |소속임위 =
         * 어머니 : [[이태]] (李兌榮, [[1914년]] [[8월 10일]] ~ [[1998년]] [[12월 17일]])
         |후임자 = [[박천]]
         |전임자 = [[장기 (1916년)|장기]]·[[정일형]]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미시간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법률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KBO 총재]][[분류:진주 정씨]][[분류:신민당]][[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김대중]][[분류:김삼]][[분류:노무현]][[분류:이명박]][[분류:박근혜]][[분류:문재인]][[분류:안철수]][[분류:박지원 (1942년)]][[분류:국민의당 당원]][[분류:민주평화당 당원]]
  • 정몽원 . . . . 10회 일치
         '''정몽원'''(鄭夢元, [[1955년]] [[8월 4일]] ~ )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한라그룹]]을 창업한 [[정인 (기업인)|정인]]의 아들이다. [[한라그룹]]의 회장으로 한라건설과 [[만도]]의 경권을 가지고 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의 동생이자 한라그룹 명예회장을 지낸 정인의 2남이다. 고려대학교 대를 졸업하고 197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경수업을 받았다. 1985년 만도기계 전무, 1989년 같은 회사 사장, 1992년 한라그룹 부회장을 거친 후 1997년 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무리하게 추진했던 조선사업이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그룹 회장 취임 1년 만에 '그룹 해체'라는 비극적인 황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은 계열사인 한라건설 회장으로 물러나기도 했다. 이후 1999년 만도를 매각한 뒤 8년 만에 되찾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주식배당을 두고 정몽국 전 한라건설 부회장과 법정다툼을 벌인 바 있으며, 한라중공업 불법지원과 관련해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 부 [[정인 (기업인)|정인]]([[1920년]] - [[2006년]]) : [[한라그룹]] 명예회장
  • 정장식 . . . . 10회 일치
         [include(틀:경북도 포항시장)]
         1950년 [[경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포항중앙초등학교, [[포항중학교]],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과대학 경제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킬크리스티안알브레히트대학교 대학원 석사, [[대구대학교]] 경제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1972년 제2회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에합격하여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관선 경남도 [[거창군]]수, 경북도 [[주시]]장 등을 지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인 [[자유민주연합]] [[박기환(정치인)|박기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4년 개신교계의 포항 성시화 운동에 몰두하여 종교편향 논란이 있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경북도지사 후보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김관용]] [[구미시]]장에 밀려 탈락하였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중앙공무원교육원(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을 지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경북도지사 후보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현직 도지사인 김관용에 밀려 탈락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공천]]에서 [[김형태(정치인)|김형태]]에 밀려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경북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김형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정재호 (1964년) . . . . 10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소속임위 = [[대한민국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원회]]
         |웹사이트 = [http://wewin.kr/ 공식홈페이지]
         * 2017.06 ~ 더불어민주당 100일 민생황실 민생신문고팀 의원
         == 수내역 ==
         * [http://nice929ho.kr/221029760532 대한민국 유권자 대], 2017년 ([http://vdd.or.kr/ 유권자시민행동])
         * [http://nice929ho.kr/221079715869 초정], 2017년 (소공인연합회)
         |전임자 = (고양시 덕양구 갑)[[심정]]<br />(고양시 덕양구 을)[[김태원 (1951년)|김태원]]<br />(고양시 일산동구)[[유은혜]]<br />(고양시 일산서구)[[김현미 (정치인)|김현미]]
         |같은 지역구 의원 = (고양시 갑)[[심정]]<br />(고양시 병)[[유은혜]]<br />(고양시 정)[[김현미 (정치인)|김현미]]
  • 정진호(1956) . . . . 10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학력''' || 포항초-[[경중학교|경중]]-[[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연세대]] ||
         [[삼성 라이온즈]]와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그리고 범죄자. '''~~[[양승호]], [[이광은]]~~과 같은 입시비리의 대표주자'''. 현역 시절에는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고 주로 백업으로 활동하다[* [[1985년]]에는 부으로 결장한 [[오대석]] 대신 2루수 [[김성래]]와 플래툰으로 유격수를 맡았지만(만약 김성래가 유격수를 맡으면 2루수는 [[배대웅]]이 대신했다.) 다음 해인 [[1986년]] [[4월 19일]] [[이승엽 야구장|대구]] [[빙그레 이글스|빙그레]]전에서 5회말 대타로 나섰다가 손문곤이 던진 공에 오른쪽 엄지손가락 부을 당해 결국 그 해 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유격수]] 자리는 부에서 돌아온 오대석과 김성래가 번갈아 맡았다.] 청보로 이적한 다음 해인 1987년 주전 2루수를 맡았지만 그 이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1990년 은퇴했다.
         그런데 [[양승호]]와 함께 입시 비리로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본인 수사를 하면서 같이 곁다리로 걸린 [[이광은]]처럼 3천만 원을 청탁받았다나. 하지만 사람들은 양승호에 대한 신경을 쓰는지라 대적으로 묻혔다. 1심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후 항소·고하면서 대법원까지 갔지만, 2013년 말 대법원은 정진호의 고를 기각하면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 원 등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역시 양승호보다 적게 해먹고 항소를 해서 그런지 추징금은 이광은과 같고 집유를 받았다.
  • 지수원 . . . . 10회 일치
         출생 [[1967년]] [[6월 18일]] ([age(1967-06-18)]세) [[전라북도]] [[부안군]][* 프로필 69년으로 되어있으나 실제 나이는 67년생.]
         학력 [[경원대학교]] 의학과 [[학사]] [[졸업]]
         [[대한민국]]의 [[배우]]. [[2002년]]부터 [[2003년]]까지 1년간은 지서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었다.
          * [[1994년]] [[MBC]] 화 만들기
          * [[1995년]] [[MBC 베스트극장]] - 신데렐라는 더 이 여기에 살지 않는다
          * [[2003년]] SBS [[압구정 종갓집]] ... 종갓집 매니저, 서
          * 2006년 MBC [[있을 때 잘해]] ... 배조 역
          * [[2014년]] [[JTBC]] [[12년만의 재회 : 달래 된, 장국]] ... 김희 역
         === 화 ===
          * [[2008년]] [[트럭(화)|트럭]] ... 오가원 역
  • 진격의 거인/88화 . . . . 10회 일치
          * 작업을 마친 크루거는 몹시 지키고 몸에서 증기가 오르는 태로 벽 위로 돌아온다. 그의 눈 주위에는 거인화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코피를 흘린다. 그는 코피를 막으며 그리샤의 포박을 풀어준다. 일련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그리샤는 불안과 초조함, 혼란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적국, 아버지, 자신. 네 눈에 비치는 증오는 세을 불태우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여동생의 사인을 통보하러 간 날, 그가 그리샤를 관찰하고 내린 평가다. 크루거가 오늘에 이르는 계획을 구한건 그때부터 일지 모른다. 크루거는 "예전의 자신"도 그랬다고 털어놓는다.
          기억 속의 크루거는 모든 거인과 유미르의 백성이 그 좌표로 이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마레 당국의 "거인화학 연구협회"의 최신 연구결과다. 마레는 이미 당한 수준의 연구를 쌓아놓고 엘디아인 이으로 거인의 힘을 잘 알고 있다.
          크루거는 유미르를 "유기생물의 기원"과 접촉한 소녀라 부르는 자도 있다는 말과 함게 진실 같은건 없다고 일축한다. 그것이 현실이며 누구든 악마이자 신일 수 있다. 마레 측에서 말하는 1700년에 달하는 민족정화도 사실이라 볼 수 없다. 그랬다면 지금의 마레인은 존재할 수도 없으니까. 반대로 거인의 힘이 오로지 번만 주었다는 엘디아 측의 기록도 믿을 수 없다. 그건 "그가 아는 인간"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다. 이미 한 번 섣부른 해석을 내린 적이 있던 그리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네가 네 부하들을 쥐어터뜨린 것도 같은 감이야. 나는 그저... 무서웠다.
          * 생각에 잠겨있던 크루거는 그리샤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뜻밖에도 "똑똑한 남자"였다고 평한다. 어린 그리샤의 눈엔 비굴과 굴종의 표으로 비췄던 아버지가, 크루거에겐 어떻게든 남은 가족을 지키려고 필사적이었던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가 어떻게든 잘못된 길을 고르지 않게 하려고 했던 아들은, 거기서 아무 것도 못 배웠을 뿐 아니라 아내와 아들을 지옥길의 길동무로 삼고 말았지만.
          >그 행동이 보 받는 날까지 계속해서 나아가는 거다.
         단순히 거인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알려졌던 "좌표"가 실제론 거대한 네트워크와 유사한 핵심적인 떡밥으로 부했다.
  • 차르 . . . . 10회 일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따온 '카이사르'가 기원이다. [[로마 제국]]에서 카이사르라는 이름은 [[로마 황제]]의 권위를 가부장제의 징적인 '세습'으로서 전승하는 의미에서 역대 로마 황제에서 대대로 이어져 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가 되어 그 권위를 '속'하였던 전례에 따라서, 후대 황제들은 '카이사르'의 이름을 계승함으로서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권력과 권위를 속하는 선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로마 황제는 그 권력과 권위를 계승하는데 '카이사르'의 이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후기의 로마 제국에서 '카이사르'는 칭호화 되어, 공동 황제나 차기 황제(사실 [[황태자]])가 사용하는 제2위 칭호가 되었다. '카이사르' 칭호에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서 이어지는 '로마 황제'의 권위와 권력을 '가부장제'의 부자속에 따라서 계승하는 속자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앞으로 '황제권'을 세습하게 될 차기 황제의 칭호로서 적합한 것이다.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서 로마 황제들은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카이사르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비잔티움 제국]]에서 카이사르 칭호는 점차 위이 하락하였다. 이는 고대세계의 가부장제에 따른 속 계승보다, 종교적 권위가 중요하게 된 비잔티움 시대의 사회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알렉시오스 1세가 황제의 부칭으로 세바스토크라토르(Sebastokratōr)를 제정하면서 제3위격의 칭호가 되었고, 데스포테스(Despotēs,[[전제공]])가 지정되면서 제4위격까지 떨어졌다. 황제가 보유하는 칭호의 위격순은 바실레우스->데스포테스->세바스토크라토르->카이사르 순서가 된 것이다. 이렇게 격식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고위의 칭호로 여겨졌다.
         슬라브인들은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을 차르그라드라고도 하는데, 차르의 뜻을 생각해보면 황제의 땅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이 황제의 역일때 그들이 차르칭호를 사용한걸 보면 어찌보면 그건도 맞다고 할 수 있다.
  • 창작:리넷 블랙번 . . . . 10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인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 신정보 =
         10대 중후반의 백인 여성. [[창작:존 휘태커|존 휘태커]]와 [[창작:레스터 리|레스터 리]]의 지인들 중 가장 나이가 적은 편에 속한다. 그마저도 어리다며 장난으로 개무시하는 존과 달리 실질적으로 대해 주는 건 레스터 뿐이라 사실 레스터의 지인들 중 하나. ~~그래서 툭하면 만만하다며 까인다. 위에 인용된 대사를 보자.~~
         [[창작:레볼루션 고등학교|레볼루션 고등학교]] 1학년이다. 우등생 리그에 속하며 자기가 속한 반에서 성적이 위권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그러나 우등생일 뿐, 모범생은 아니기에 속된 말로 약간 '까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까진 양아치도 아니며 자신만의 기준을 지키고 있다. 머리를 하늘색으로 염색한 것으로 보아 그것이 자신이 넘을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인 듯. ~~레스터한테 퍼붓는 폭력은 선 안쪽이라 넘을 일이 없다 카더라~~
         단순하고 직관적인 것을 좋아하는 삼촌 클린트와 달리 사건을 파고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장래희망을 '탐정'으로 정할 정도. 그리고 꼭 "아, 형사 아니고 탐정이라고!"라는 소리를 덧붙인다.[* 어로 쓰면 둘 다 Detective가 된다. 이것은 Private Detective가 일본어를 거쳐 중역될 때 '사립 탐정'으로 잘못 번역된 향이다. 정확히 번역하면 '민간수사관' 정도가 된다.] 어쨌든 사건을 수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내에서 탐정 동아리에 가입했고 거기서 최고로 활약하고 있다. 동아리 내에서는 의외의 강적들[* 다들 예했던 대로(?) 쿠도 신이치(에도가와 코난)와 김전일의 패러디. 그러나 얘네들까지 수입하면 밸런스 붕괴인 것 같아서 제외할 생각이다.]과 추리 대결을 벌여서 이길 정도이나, 동아리 구성원들이 학교에만 안주하여 현실엔 관심이 없는지라 동아리 No.1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 삼촌이 경찰이기도 하고 학생 신분이라서 범죄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러나 학교 안팎에서 범죄나 사건에 대한 소식을 알게 되면 항 먼저 나선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로 해결하는 것은 무리이기에 레스터를 비롯한 어른들의 도움을 청한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 . . . . 10회 일치
         내가 이 화를 본 것은 우연히 시사회표가 들어왔고 우연히 '''같이 가고 싶은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시간 가량 펼쳐지는 전문용어 난무와 벌건 황무지 밖에 볼 게 없는 미장센 때문에 드물게 숙면을 취해버렸고 그 애하고 썸씽도 그날로 끝나버렸다. 이후 리들리 스콧과 맷 데이먼은 꼴도 보기 싫었고 암암리에 사이트에 별점 테러를 가하는 걸로 복수했다.
         바깥 황은 내 예보다 훨씬 낙관적이다. 무엇보다 행운은 이 집이 건재하다는 것. 담도 대문도 제기능을 다하고 있다. 깊게 생각하고 한 일은 아니지만 대문을 닫아버려서 정말 다행이다. 이제 이웃집 쪽의 담벼락만 대비하면 녀석들이 마당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그때 푹 자지 않았더라면 와트니가 하던 일들을 좀 더 자세히 봐둘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나도 안다. 별점 테러를 하려다 보면 화 내용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하고 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스토리보드 정도는 읽어봐야 하니까. 그때는, 예를 들어서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는 이야기를 "무슨 화성에서 농사나 짓고 있어? 전원일기냐?"같은 멘트를(물론 실제로는 이것보단 스러웠다) 쓰기 위해 읽어야 했다. 그러니까 대충 마션의 스토리와 와트니의 업적은 숙지하고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른건 '''빗물탱크'''였다. 와트니처럼 나도 물은 충분히 있지만 사정이 좀 다르다. 아직은 수도가 끊기지 않았지만 공급이 얼마나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도 외에 식수를 찾아야 하고 제일 먼저 생각난게 빗물이다. 그건 옥의 물탱크를 쓰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정수 문제나 물탱크의 물을 수도로 연결하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일단 그건 미뤄두자.
         이제 그 집의 고정게스트는 죽어서 우리집 뒷마당에 있다. 그럼 다른 다른 집보다는 주하는 녀석들이 적다고 볼 수 있고 비교적 안전하다는 얘기가 아닐까?
  • 창작:좀비탈출/학교 . . . . 10회 일치
         학교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예 밖의 것을 발견했다.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철 울타리 너머에 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교복을 입고 있는 그가 눈을 빛내며 나를 향하여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다. 생존자였다.
         뒷쪽에서 교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자전거를 탄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교문을 닫고 돌아선 녀석은, 약간 초췌하고 더러워진 인이긴 했지만 익숙한 얼굴이었다.
         사태가 심치 않은걸 눈치챈 가족들은 등교하지 않거나, 등교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황이 되어 등교하는 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고작 1/10 정도 밖에 되지 않게 되었는데도 교감은 열성적이었다. 심지어 선생들 까지도 학교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교감은 "감독을 쉽게 하겠다."는 이유를 대며 마지막 야간자율학습 때는 딱 1개 교실에 등교한 모든 학생을 모아놓고 자신이 직접 감독을 했다.
         그러다가 저녁 10시 쯤, 학교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막 들려왔다. 아마 사태가 겉잡을 수 없는 황에 이르게 되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좀비에게 습격당하는 것이 빈발하게 되었을 황일 것이다. 교감은 얼굴이 새하얗게 되더니, 벌떡 일어서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교에는 수십명 가량의 학생만 남겨졌는데, 이 지경이 되서도 야간자율학습에 보내는 부모를 둔 녀석들인 만큼 다들 조금 무기력한 데가 있어서 다음날 대낮이 되도록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황이 심치 않다는걸 깨닫고 하나 둘 무단으로(?) 학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들도 물론 돌아오지 않았다. 얘들도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그런 공부벌레들이 이런 좀비가 우글거리는 거리를 헤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리가 없고, 돌아갔다고 해도 집은 이미 안전한 곳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남아 있던 녀석들 가운데 반 이이 조용히 학교를 나가기를 선택한 다음,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소식도 없자 나머지 녀석들도 나가는 것은 포기했다.
         다만 민구는 애초에 나가기를 거부한 쪽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가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 소리를 듣고 겁이 나서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학교 자체는 작년에 야자탈출에 신경질적이었던 교감의 지시로 담벼락이 2미터 가까운 높이의 콘크리트 블록담으로 개수되어 있어 되려 어지간한 주택 보다도 안전했다. 넓은 학교에 평소에도 음울하고 조용한 공부벌레들만 몇명 있다보니까 소음도 크게 나지 않고, 벽이 높고 보안이 튼튼하다보니 피난처로는 당히 좋은 곳이었다.
  • 채호기 . . . . 10회 일치
         == 수 ==
         * 2002년, 제21회 [[김수 문학]] 시집 《수련》
         * 2007년, 제8회 [[현대시작품]] 시 《소나기 온 뒤》
         * [http://www.artinculture.kr/content/view/255/32/ 화감독 이명세, 김학제, 채호기 세 사람 인터뷰]{{깨진 링크|url=http://www.artinculture.kr/content/view/255/32/ }}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김수 문학자]][[분류:현대시작품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전대학교 동문]][[분류:인천 채씨]][[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천보영 . . . . 10회 일치
         | 이름 = 천보
         | 활동 역 =
         | 웹사이트 =
         '''천보'''([[1987년]] [[10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 출신 게임캐스터이다.
         == 수 ==
         * 2013 - 제2회 한국레이싱모델 어워즈 베스트 엔터테이너
         * 2015 - 제4회 한국레이싱모델 어워즈 최우수 방송엔터테이너
         * [http://cafe.daum.net/love-bbo 천보 다음 팬카페]
         *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B2%9C%EB%B3%B4%EC%98%8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91656 천보 네이버 인물]
         * [https://www.instagram.com/boyoung333/ 천보 인스타그램]
  • 최고은 (영화감독) . . . . 10회 일치
         | 직업 = [[화 감독]]
         | 수 =
         | 웹사이트 =
         '''최고은'''([[1979년]] ~ [[2011년]] [[1월 29일]])은 [[대한민국]]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화 감독]]이다. [[2002년]]에 개봉된 [[화|단편 화]] 《연애의 기초》로 데뷔했다. [[빈곤]] 속에서 [[갑선암|갑선 항진증]]과 [[췌장암|췌장염]]을 앓다가 2011년 [[1월]]에 사망했다 향년 33세<ref>{{뉴스 인용
         *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화과]] 졸업(시나리오 전공)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201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극작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
  • 최광식 . . . . 10회 일치
         | 웹사이트 =
         2011년 [[대한민국의 문화재청장|문화재청장]]을 역임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30/2011083002044.html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조선일보》2011년 8월 30일</ref><ref>[http://media.paran.com/news/view.kth?dirnews=3065334&year=2011 최광식 후보자, "남·소망교회 출신 아니다"]《머니투데이》2011년 9월 15일</ref>
         * 고구려연구재단 임이사
         이에 대해 최 후보자는 “인용부호를 하지 않은 것은 불찰이지만 30여 페이지 중 한 페이지를 인용한 것은 자기표절이 아니다”라고 해명하였다.<ref>[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1105891 임채민·최광식 인사청문회…도덕성·'낙하산' 논란]《MBN뉴스》2011년 9월 15일 이민 기자</ref><ref>[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781046596380448&SCD=&DCD=A01503 최광식, 논문 이중게재.."불찰이지만 이중게재는 아냐"]《이데일리》2011년 9월 15일 나원식 기자</ref><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5546.html 최광식 장관후보 ‘논문 이중게재’ 의혹]《한겨레》2011년 9월 8일 최성진 기자</ref><ref>[http://imnews.imbc.com/replay/nw1200/article/2926338_5786.html 임채민·최광식 인사청문회‥도덕성 집중 검증]《MBC뉴스》2011년 9월 15일 박찬정 기자</ref>
         김재윤 민주당 의원은 최 후보자가 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구려재단 임이사로 재직시 입길에 올랐던 부실 강의를 지적했다. 후보자는 2005년 1학기부터 2007년 2학기까지의 당시 학생들이 매기는 강의평가에서도 낙제점(F)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9월 아들 최 씨는 신체검사 결과 근시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정 판정을 받아 현역 입인 1급 판정을 받았으나 대학 재학 중이라는 사유로 입연기를 했다.
         |후임자 = [[김나]]
  • 최두선 . . . . 10회 일치
         |거주지 = {{KOR}} [[서울특별시]] <br/> {{국기|일제 강점기}} [[철원군 (남)|강원도 철원]](前) <br/> {{국기|일제 강점기}} [[창원시|경남도 창원]](前)
         본관은 [[동주 최씨|동주]]. 호(號)는 각천(覺泉)이다. [[한성부]] 출생이고 한때 [[철원군 (남)|강원도 철원]]과 [[창원시|경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제8대 [[대한민국의 총리|국무총리]]를 지냈으며 [[유엔]]총회 한국대표,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육당 최남선]]의 동생이다.
         휘문의숙을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 [[1917년]] [[와세다 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18년]] [[김성수 (1891년)|김성수]]를 알게 되어 그가 운하던 [[중앙학원]]의 학감으로 초빙되었다. [[1919년]]에는 [[송진우 (정치인)|송진우]] 등이 피체되면서 중앙학교의 학교장직을 맡아보게 되었다.
         [[1922년]]부터 [[독일]]로 건너가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 예나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등에서 수학했다. [[1932년]] [[고려대학교|보성전문학교]] 이사회 무이사에 취임했다.
         [[1955년]]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사망하자 [[신익희]], [[함태]] 등과 함께 그의 국민장 장의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성수의 사망 직후 [[인촌 김성수 기념사업회]]의 창립 발기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60년]] [[김포공항|인천비행장]]으로 환국하는 [[조병옥]]의 시신을 맞이하기도 했다.
         [[1971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되었다. 같은 해 적십자사 총재로서 이산가족 봉을 건의하여 성사시켰고, 북측의 적십자사를 설득하여 [[1972년]]의 남북적십자회담을 이끌어 냈다.
         * [[게이오기주쿠 대학|일본 게이오 대학교 대학원 문학과]] [[문학]][[석사]] 졸업
         == 훈 ==
         [[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국무총리]][[분류:대한민국의 문학자]][[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한문학자]][[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김성수 (1891년)]][[분류:윤보선]][[분류:박정희]][[분류:게이오기주쿠 대학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유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주 최씨]][[분류:마르부르크 대학교 동문]][[분류:예나 대학교 동문]][[분류: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동문]][[분류:대한적십자사 대표]][[분류:인촌기념회]]
  • 최석기 . . . . 10회 일치
         | 문 표기 = Choi Seog-Ki
         최석기는 [[대전중앙중학교]] 3학년때부터 배구를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선수에 비하면 늦은 편이지만 키가 크고 블로킹 타이밍이 좋은 선수로 성장하였다. 대전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박준범]], [[진헌]]과 함께 장신벽을 구축하며 철벽 블로킹을 과시하기도 했다.<ref>[http://sports.media.daum.net/nms/basket_volleyball/news/vb/view.do?cate=23794&newsid=209416 -대학배구 최강전- 한양대, 인하대와 결승 대결] 《연합뉴스》 2007년 11월 7일 16:18, 2009년 3월 19일 《미디어다음》에서 확인</ref>
         그는 [[NH농협 2008~2009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수원 KEPCO 45]]의 지명을 받으며 입단하였다. 그러나 팀은 단 한 번의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연패를 당하게 되었고, 이는 [[공정배]] 감독(현재[[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단장) 이 경질되는 빌미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소속팀이 무를 이기고 기나긴 25연패를 끊으며 첫 승을 기록하였을 때에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2009년]] [[3월 5일]]에 열린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의 경기에서 12득점, 5블로킹을 올리는 활약으로 이변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70908 〈프로배구〉KEPCO 45, 현대캐피탈 제압 '대이변'] 《제주투데이》 2009년 3월 5일 23:54, 2009년 3월 19일 1:37 확인</ref>
         최석기는 신인으로는 유일하게 개인기록 주요 부문인 블로킹 부문에서 5위 안에 들면서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의 [[세터 (배구)|세터]] [[황동일]]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오를 만큼 활약을 펼쳤으나<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ports/volleyball/2009/0317/20090317101030400000000_6732676814.html 지금은'석기시대' KEPCO45 최석기 신인 맹추격] 《스포츠서울》2009년 3월 17일 12:23, 2009년 3월 19일 1:42 확인</ref> 전 경기를 소화한 황동일에 밀려 신인에 실패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ketball/Article.asp?aid=20090416004415&subctg1=05&subctg2=00 프로배구 정규리그 MVP 박철우?데라크루즈, 공격남녀 최후의 승자] 《스포츠월드》 2009년 4월 16일 22:53, 2009년 4월 19일 23:01 확인</ref> 하지만 그는 팀내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NH농협 2008~2009 V-리그 올스타전]]에는 [[한국 배구 연맹]]의 추천으로 [[수원 KEPCO 45]]의 유일한 올스타 선수로 참가하였다.
         ==수 경력==
         * [[NH농협 2008~2009 V-리그]] 페어플레이
         * [http://minihp.cyworld.com/pims/main/pims_main.asp?tid=46405604 최석기 선수의 사이월드 미니 홈페이지]
  • 최우제 . . . . 10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http://feelboy.co.kr/main/sub02_01_1.asp?idx=167 공식사이트]
         * 서울예술대학교 화과
         === 화 ===
         * 《[[폰 (화)|폰]]》 (2002년) - 이장훈 역
         * 《[[물고기자리 (화)|물고기자리]]》 (2000년) - 동석 역
         * 《[[여우야 뭐하니]]》 (MBC, 2006년) - 병희의 선배 역 <ref>{{뉴스 인용|제목= '여우야' 최우제 "톱스타 대역 단골" |url=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newsview?newsid=20061002141907239 |출판사=마이데일리 |날짜=2006-10-02}}</ref>
         * 《[[드라마시티]] - 날개잃은 천사》 (KBS2, 2004년) - 호 역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윤영(1986) . . . . 10회 일치
         || '''이름''' ||<(> '''최윤''' ||
         || '''출생''' ||<(> [[1986년]] [[9월 25일]][* [[류준열]]과 생년월일이 같다.] (만 [age(1986-09-25)]살) [[경북도]] [[김천시]] 부곡동 (송설로) ||
          * [[2009년]] [[KBS 2TV]] 《[[결혼 못하는 남자]]》 : 유수 역.
          * [[2012년]] [[KBS 2TV]] 《[[내 딸 서이]]》 : [[최호정]] 역.
          * [[2013년]] [[문화방송|MBC]] 《세에서 가장 위대한 일》: 우선 역.
         === 화 ===
          * [[2011년]]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 : 미 역.
          * [[2012년]] 《[[코리아(화)|코리아]]》 : 최연정 역.
         • 31살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당히 동안이다.귀엽게 생긴 외모가 돋보이는 배우.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최윤, version=19)]
  • 최항석 . . . . 10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br/> ({{KOR}} [[대구광역시]])
          | 직업 = 연극배우 <br /> 연기자 <br /> 화배우 <br /> 기업가
         [[1981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2년]] [[MBC]]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으며 그 후 [[1986년]] [[화]] 《입을 연 석류》의 주연으로 [[화 배우|화배우]] 데뷔하였다. 이후 [[문화방송|MBC]], [[KBS]], [[SBS]], [[EBS]]의 공중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과 단역을 두루 배역하였다. 그는 [[2002년]] [[MBC]] [[텔레비전 드라마]] 《[[리멤버 (드라마)|리멤버]]》의 오 주임 역과 [[2002년]] [[SBS]] 텔레비전 드라마 《[[야인시대]]》의 임동호 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2002년]] [[MBC]] [[시트콤]] 《[[연인들 (시트콤)|연인들]]》에서는 극중에서 [[연극]] [[배우]]인 [[김형자]]와 함께 [[배우]]와 [[연출가]]들의 사이로서의 호흡을 오래도록 동반한 [[연극]] [[연출가]] 최항석 역, 연극연출가 이주헌 역, 연극연출가 김세호 역으로 각각 몇회간을 단역하였다.
         === 화 ===
         * [http://www.kmdb.or.kr/vod/mm_basic.asp?person_id=00000636 한국화데이터베이스]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오산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최호중 (배우) . . . . 10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http://www.thequeenamc.com/artists/artists.asp?idx=11&bbs_code=8&etc=최호중 공식사이트]
         * 수원대학교 연극화학과
         === 화 ===
         * 《[[레나 (화)|레나]]》 (2016년) - 강한성 역
         * 《[[서부전선 (화)|서부전선]]》 (2015년) - 연대본부 병사 1 역
         * 《[[연평해전 (화)|연평해전]]》 (2015년)
         * 《[[픽업 아티스트 (화)|픽업 아티스트]]》 (2014년) - 강승호 역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최훈재 . . . . 10회 일치
         |문 표기 = Choi Hun-Jae
         |사진 사이즈 =
         * [[서울일초등학교]]
         !기록 !!날짜 !!소속팀 !!대팀 !!장소 !!경기 황 !!대투수 !!종전 기록 !!기타 !!출처
         |끝내기 만루홈런 ||1993.7.22 ||[[LG 트윈스|LG]] ||[[삼성 라이온즈|삼성]]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 9회말 1사 만루 3-3 ||[[김엽 (야구인)|김엽]] || [[김직]] ||역대 5번째 기록 ||<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3671447 LG,최훈재 끝내기만루홈런] - 연합뉴스</ref>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MBC 청룡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서울일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중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강릉 최씨]][[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소련군 . . . . 10회 일치
          보병 유닛이 훈련되는 건물. 막사의 수가 많을수록 보병 훈련이 빨라진다. 아무리봐도 병사의 동으로 보인다.
          해 유닛이 생산되는 건물. 조선소가 많을수록 해 유닛 생산이 빨라진다. 해 유닛을 수리할수도 있다.
          * 사이킥 센서
          범위 내 적의 공격 대을 알려주는 건물.
          소련의 기본 보병 유닛. 군견보다 싸다. 어 명칭이 Conscript인걸로 보아 징집병인 듯.
          소련군이 사용하는 자원 채취 유닛. 자원을 채취해 제련소에 밀어넣는다. 기관총이 달려서 보병 한둘은 대할 수 있다. 제련소를 건설할 때 하나 주지만 필요하면 군수공장에서 더 생산할 수 있다.
          대공포를 장비한 고속정. 대가 연합군일 경우 해방공망 구축에 필수적이다.
  • 콘도 마코토 . . . . 10회 일치
         1995년 문예춘추 지에서 10회에 걸쳐, 암에 대하여 연재.「문예춘추독자(文藝春秋読者賞)」을 수. 의료사고에 대한 감정서 작성을 목적으로 「의료사고조사회(医療事故調査会)」를 설립.
         제60화 키쿠치 간(菊池寛賞) 수. 유방보전요요법의 개척자로서, 항암제의 독성등에 대하여 계몽을 계속한 것이 수이유.
         「콘도 마코토 세컨드 오피니언 외래(近藤誠セカンドオピニオン外来)」담 1000건에 달하다
         「콘도 마코토 세컨드 오피니언 외래(近藤誠セカンドオピニオン外来)」담 2000건에 달하다
         「콘도 마코토 세컨드 오피니언 외래(近藤誠セカンドオピニオン外来)」담 4천건 달성
         「콘도 마코토 세컨드 오피니언 외래(近藤誠セカンドオピニオン外来)」담 5000건에 도달.
         * 차녀[[윤수]]
  • 킹덤/507화 . . . . 10회 일치
          * 창담도 용기를 내서 사격을 시도하지만 결국 대를 맞추지 못한다.
          * 이러는 사이 마침내 [[바지오]]는 열미성 성벽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여기선 대방 얼굴이 너무 분명하게 보여요!
          창담은 얼굴을 맞대고 있는 대를 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모질지 못했다. 물론 고참 병사인 원각과 이귀는 이들의 이런 마음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때 창인이 말을 한다. 이런 황이 오리라는 건 이미 예했고 각오했던 바였다. 단지 두가지가 예을 빗나갔다.
          * 그때 열미군의 이목이 조가족 쪽으로 향한다. 급 궁병들은 여전히 사다리를 저격하고 있지만 조가족의 엄호를 허트러뜨리기 위해 일부러 이쪽을 노리는 것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응사에 창인, 창담은 방패 밑으로 숨는다. 창인은 동생에게 화살비 속에서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아군을 보여준다. 자기들이 망설이는 동안 아군이 저렇게 죽어가고 있다며 그걸 막는게 지금은 전부라고 말한다.
          그 뒤는 실로 창인의 독무대. 열미군이 성벽 위에 방패를 대도 소용이 없다. 화살이 들어갈 만한 틈만 있으면 그 사이로 적중시키는 신기를 선보인다.
          * 창인의 불 붙은 저격 덕인지 예보다 빨리, [[바지오]]의 보병부대가 성벽 위에 도달한다.
  • 킹덤/517화 . . . . 10회 일치
          * [[카이네]]를 데리고 어전을 나선 이목은 말 없이 업 방위전에 임할 채비를 하러 간다. 카이네는 방금 전 일이 도저히 참아넘길 수 없는지 이목에게 "저희 임금은..."하고 말을 건다. 이목도 속이 없어서 참고 있는게 아니었다. 그녀 이으로 조왕의, 나라의 문젯거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말한 그는 나라 주왕, 주나라 여왕의 사례를 들며 도양왕이 그 부류에 들지는 않기를 바래야겠다고 말한다. 모두 나라를 망친 암군으로 유명한 자들이었다.
          태자는 도양왕에 비하면 정치적 식견도 대국을 보는 눈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곧 진나라도 여기까지 온 이 침공이 실패하면 국운이 흔들릴 거라 말한다. 그렇다면 자신도 진왕 [[진시황(킹덤)|정]]이 "최"성에서 그랬듯 직접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며 사기를 북돋으면 어떻겠냐고 이목의 의견을 묻는다. 이목은 명심해두겠다면서도 "그런 일이 필요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하지만 태자 가는 "지금이 그 필요한 시기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목도 거기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못한다.
          * 드디어 업을 포위한 진군. 총사령관 [[왕전(킹덤)|왕전]]은 마지막 작전을 실행하기 앞서 장교들을 불러놓고 현재의 황과 앞으로의 작전에 대해 세히 설명한다. [[이신(킹덤)|이신]]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귀를 기울인다. 우선 왕전이 가장 처음 정의한 전황은 진군이 포위한 업을 중심으로 왕도권의 모든 조군이 진군을 요격하러 온다는 것이다. 듣기에도 진땀이 나는 설명이지만, 왕전은 그 중에서 진정으로 진군을 저지할 수 있는 병력은 단 둘 뿐이라 일축한다. 바로 북서의 대도시 "알여"와 태향산맥 일대의 세력을 규합한 "요양"이다. 오직 이 두 군만이 업에 당도해 진군을 격멸할 힘이 있다.
          그래서 그가 짠 작전은 이랬다. [[환의(킹덤)|환의]]군 6만은 이대로 업성을 포위한 채 대기한다. 이 6만이 알여, 요양군을 제외한 모든 조나라 병력을 대한다. 듣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같지만 당사자인 환의는 태연했다.
          다음은 요양군. 요양군은 이미 대처하고 있다. [[양단화]]군 5만이 대치하고 있는 [[공손룡]]군이 바로 그 요양군이다. 지금은 견제만 하고 있었지만 황이 알려졌을 테니 곧 큰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공손룡이 요양성에서 본격적으로 병력을 끌어오면 그 군세는 약 10만에 달할 걸로 보인다. [[벽(킹덤)|벽]]이 기겁하며 "지금 양단화군은 5만 밖에 없다"고 발언한다. 물론 왕전은 그것도 계산하고 있다. 그는 벽에게 그가 이끄는 8천 병력에 환의군에서 2천을 빌려 총 1만의 원군을 이끌고 가라고 지시한다. 벽은 자신이 일만장이 되어서 양단화를 구하러 가게 됐다는 사실에 들뜬다. 그런데 은근슬쩍 병력 2천을 떼어먹히게 된 환의군의 [[마론(킹덤)|마론]]은 속이 쓰리다.
          * 한단에서 출격을 준비하던 이목 진에 "진군이 군단을 나눠 알여와 요양을 요격하러 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진군이 이목의 움직임을 읽고 있다는 말이지만 이목은 당황하지 않고 [[순수수]]에게 요양군에 가 공손룡의 부장이 되라고 지시한다. 또한 요양성주는 괴짜지만 잘 조율해 보라 당부한다. 이 인사는 이목진의 인물들에겐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는데, 무명이나 다름없는데다 다른 인물들과 친분도 없는 그를 단번에 십만 대군의 부장으로 기용했기 때문이다.
          >누가 대하는 적을 박살내느냐 못하느냐에 달렸어요.
  • 킹덤/520화 . . . . 10회 일치
          [[강외]]는 좀 더 전장 전체를 보고 있다. 그녀가 이번 전투는 좌익부터 시작할게 명백하다며 좌측에 주의를 하라고 조언한다. 하료초가 그 말에 동감하며 진짜 심각한 황에 놓인건 비신대가 아닌 좌측의 낙화대라고 말한다.
          * 진군의 포진은 조군 진에서도 많은 추측을 낳았다. 우선 중앙의 포진. 비신대를 뒤로 빼서 앞뒤로 긴 배치는 중앙의 전체 병력수를 파악하기 어렵게 했다. 약 5만 이이라는 애매한 수치가 보고됐다. 그리고 역시나 이해불가한 좌측.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 5천이 있을 뿐이다. 장교들은 잘못된 보고가 아닌지 거듭 확인한다. [[요운]]은 별다른 의심없이 첩보를 믿는다. 그러면서 왕전이 신중한 남자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담하다고 평한다. 이목도 같은 의견이다. 지금 왕전은 명백히 수작을 부리고 있다. 왕전의 의도는 이렇다. 전쟁에서 각자 싸우기 쉬운 국면을 고르는게 필연. 좌익에 고작 5천을 뒀다는건 도발에 가깝다. 즉 "우익으로 여길 치면 된다"고 권하는 거나 마찬가지. 따라서 이목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그 도발에 응해 조군 우익 [[기수]]의 3만 병력으로 진 좌익을 칠 것인가, 아니면 뻔한 함정을 피해서 다른 곳부터 시작할 것인가.
          * 불리한 싸움을 시작하려는 몽념에게 할아범이 무운을 빈다. 역시 몽념은 "평소랑 똑같다"고 대답하며 나중에 보자고 답례한다. 당사자가 태평할 지경인데 역시 할아범은 걱정을 떨칠 수 없다. 그가 몽념을 따라나서는 [[육주]]를 불러세운다. 어찌나 다급한지 창까지 들이대서 육주가 기겁한다. 할아범의 당부는 늙은 자신이 주력기마대를 따라갈 도리가 없으니, 힘쎄고 소심하지만 욕심은 없고 화낼 땐 화낼 줄도 아는 육주가 자신을 대신해 달라는 것이다. 마침 육주는 창술이 그 [[왕분]]에 버금갈 정도니 부디 도련님, 몽념의 안위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육주는 자신의 창술이 왕분에 비할 정도는 아니나 할아범의 마음을 익히 이해해 그러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할아범이 몽념을 "도련님"이라 부르며 걱정하는건 이제 과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황에서도 총대장 왕전의 지시를 동요없이 수용한 걸 보면, 이미 그는 대장군과 같은 안목으로 전장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언제까지 어린애 대하듯 해선 안 될 일. 할아범도 그 의도는 맞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몽념은 위험한 나무에 올라가 장난이나 치던 "도련님"의 모습 그대로다.
          * 기수가 이끄는 조군 우익은 진격이 딸라서 어느덧 예정의 절반 이을 왔다. 그런데 진군은 초기 배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보고된다. 장교들 사이에선 왕전이 멍청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 기세라면 좌익은 고사하고 본진까지 순식간에 쓸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수는 신중하게 판단했다. 우선은 현재 위치에서 군을 멈추고 한동안 태를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주]]의 기마대 1천을 내보내 정찰을 맡긴다.
          * 이때 새로운 첩보가 도착했다. 당연히 적이 움직였다는 보고일 줄 알았으나 엉뚱하게도 낙화대의 절반이 모습을 감췄다는 내용이다. 수하다. 마정의 말처럼 이제 사라진 절반이 어디로 갔느냐가 중요해졌다.
          * 몽념의 기마대였다. 몽념은 선두에서 직접 조군 보병대를 친다. 예측하지 못한 기습으로 보병대 당수가 무방비하게 도륙난다. 기수의 대응은 빨랐다. [[황각]]에게 기마 2천을 줘서 요격하게 보낸다. 조군의 기마대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자 몽념은 공격을 멈추고 미련없이 돌아선다.
          * 조군 기마대가 우왕좌왕하며 선회하는 사이 몽념의 부대도 뒤로 돌아서 조군 기마대를 포위한다.
  • 토리코/394화 . . . . 10회 일치
          * 토리코가 먹었던 네오의 고기는 사실 네오 자신의 고기가 아니라 그 안에 있던 "완"이란 고대의 매머드 종류의 고기 인 것이였다.
          * 토리코는 완을 고기요리에 추가하며 풀코스를 완성하고 코마츠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한다.
          * GOD는 완전히 조리가 완성되 먹기 좋은 태이고 모두 함께 먹기로 정한다.
         * 블루 니트로 페어도 이 생물에 대해 알고 있어서 이름과 내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고대 미식가들 사이에선 매우 유명했던 식재로 맛만을 놓고 보면 미식세계를 평정할 만한 식재. 네오의 안에서 맛이 더욱 숙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청귀는 블루 유니버스의 식재가 아닌 탓인지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데 제 3의 악마는 유심히 쳐다보더니 "저 식재가 토리코의 여정의 마침표가 되진 않을 것 같다"고 평한다.
         * 코마츠는 눈물을 글썽이며 토리코 이으로 감동에 겨워한다. 그때 대지에서 무언가 솟구쳐나오는걸 발견한다. 미지의 식재가 대지로부터 왈칵 쏟아져 나온다. 엄청난 양이 뿜어지는데 그 사이에서 텟페이와 아이마루가 나타난다. 이 식재는 바로 센터의 원액으로 무슨 원인인지 제 2대륙 전체에 걸쳐 샘솟고 있다.
         * 센터의 원액과 접촉한 토리코는 단숨에 모든 처가 치료되고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을 "심장이 몇 개나 있는 듯한" 에너지라고 비유하는데 미도라는 이것이야 말로 생명창조까지 가능하다는 궁극의 재생식재라 말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센터는 격전이 일어난 2대륙을 가득 채울 정도로 솟아난다. 아슬아슬하게 숨만 붙어 있던 사천왕, 브란치, 스타준, 팔왕 등 아군들이 센터의 힘으로 무사히 생환한다. 페어는 이렇게 딱 맞춰 센터가 나타난 걸 기적이라 표현하는데 미도라는 이것도 식운의 힘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행은 모든 식운을 다 써버린 뒤라 누구의 힘인지 알 수가 없다.
         * 미도라는 자신의 힘을 속죄하는데 쓰겠다고 말하고 토리코와 스타준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들에게 "사이좋게 같은 식탁에 앉아라"라고 충고해주는데 토리코는 그가 기뻐 보인다고 말하고 미도라도 딱히 부정은 하지 않는다. 미도라는 자신의 에너지를 맛으로 바꿔서 지구 전체를 향해 발사한다. "구르메 스파이스". 한때 인간계를 괴멸시켰던 미티어 스파이스에 반대되는 힘이다. 지구 곳곳으로 뻗어나간 미도라의 에너지는 식재로 전환되고 스파이스가 닿는 곳마자 울창한 숲이 생기고 새로운 식재가 풍족하게 피어난다.
         미도라의 최후. 이것으로 인해 3형제가 모두 혼세계에서 함께 밥을먹을수있게됬다.
         죽은 것 같았던 팔왕도 대부분 소생했는데 낭왕 기네스와 사왕 마더스네이크의 생사는 불분명. 사왕은 경왕 문의 뱃속에 있어서 향을 못 받은 걸 수도 있다. 기네스는 네오에게 당했을 때 즉사해 버린 건지 등장이 없는데, 어차피 네오가 식재를 토해냈으므로 분명 기네스도 다시 나왔을 것이다.
  •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위협 . . . . 10회 일치
         화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화)|판타스틱 포]]의 속편. 감독은 전작과 동일하게 팀 스토리. [[판타스틱 포]]와 [[닥터 둠]]의 배우도 전작과 동일하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등장한 [[실버 서퍼]]가 등장하며 배우는 더그 존스가 맡았다. 다만 목소리는 로렌스 피시번이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갤럭투스]]가 등장했다. 스탠 리도 등장. 리드 리처드와 수 스톰의 결혼식에서 하객으로 참석했다가 명단에 없다고 거절당한다.(...) ~~내가 이 만화 그린 스탠 리라니까!~~
         평가는 전작처럼 안좋다. 갤럭투스 각색도 비판의 대. 그래도 손익분기점은 넘겨서 이후 리붓되어 2015년에 새로운 판타스틱 포 화가 나왔으나.. 이 화의 처참한 실패 탓에 본 화의 평이 좋아졌다. 그래도 화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안좋은 것은 사실이라 어디까지나 2015년판에 비해서다.
         수 스톰의 제시카 알바의 미모에 대한 호평은 전작과 마찬가지인데 아예 나오는 장면마다 수잔의 옷과 머리 스타일이 다르며, 카메라가 수잔을 중심으로 이동하며, 아예 모든 장면의 구도가 수잔을 중심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본격 '수잔 스톰 모에 화'라는 설이 [[미국]] 현지의 만화 포럼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하지만 속편에서는 수수하게 나왔으니 [[안습]]).
         가만 보면 좀 어이없는 장면이 있는데, 엄연한 [[러시아]] 토인 [[시베리아]]에 '''미군'''기지가 있는다거나 [* 왜 그런지 이해가 잘 안 간다면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 때 어떤 관계였는지, 그리고 러시아가 동구권 내의 [[친미]]세력을 견제하는 걸 생각해 보자.] 마지막 결판을 치른 데는 [[홍콩]]인데 수잔과 리드의 결혼은 [[자포네스크|일본에서 기모노 입고]] 한다거나(...) 하는 장면들이 있다.
         여담으로 이 화도 제목의 포 부분이 4가 되어서 국내 개봉했다.
  • 팽정광 . . . . 10회 일치
         '''팽정광'''(彭正光, 1955년 ~ )은 [[대한민국 철도청]]에서 근무하고 [[한국철도공사]] 부사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관료]], [[기업인]]이다. 현재는 [[의정부경전철]] 대표이사이다. 본관은 [[용강 팽씨|용강]]
         * 2010년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철도전문대학원 경학 박사 (철도경)
         * 2011년 12월 : 한국철도공사 제4대 사장 허준의 직무대행
         * 2013년 6월 : 한국철도공사 제5대 사장 정창의 직무대행
         |전임자 = [[허준]]
         |후임자 = [[정창 (공무원)|정창]]
         |전임자 = [[정창 (공무원)|정창]]
  • 페어리 테일/493화 . . . . 10회 일치
          * 미라젠이 돌아오지 않자 리사나가 찾아오는데 치명인 것 같았던 미라젠의 처는 브랜디쉬의 힘으로 경으로 조절되어 있다.
          * 오거스트는 허가도 없이 유니버스 원을 사용한 것을 두고 쓴소릴하는데 아이린도 아크놀로기아 대로 여유가 없었다며 변명한다.
          * 유키노는 언니가 틀림없다며 어렸을적 잡혀간 언니를 항 찾고 있었다고 말한다.
          * 자매의 눈물겨운 봉을 보며 엘프먼은 미라젠, 리사나에게 살아있어달라고 독백한다.
          * 치명을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브랜디쉬가 처를 축소시켜서 경에 그쳤던 것.
          * 전력차는 당연히 있겠지만 미라젠이 아이린이나 오거스트를 대로 너무 겁을 먹어서 밸런스 붕괴 논란도 있다.
  • 페어리 테일/500화 . . . . 10회 일치
          * 그러자 브랜디쉬는 "자신도 마찬가지"라 말하며 보통 사이즈로 돌아온다.
          * 동맹군도 스프리건 12을 대로 수세에 몰리면서 전반적인 전황은 좋지 않다.
          * 아이린의 인챈트 마법으로 그는 한계 이의 마력을 부여받았다.
          * 나인하르트는 브랜디쉬의 마법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화된 태.
          * 잉벨이 스프리건 12내에선 꽤 고평가받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스프리건12가 페어리 테일의 위 랭커들을 압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가 돼버렸다.
          * 오거스트와 아이린은 열외로 치더라고, 이쪽도 염룡왕 모드 나츠와 길다트가 있는 황.
          * 나인하르트는 아이린의 힘을 받은 것 같은데 싱겁게 리타이어. 결국 아이린이 직접 나서야 하는 황이 되었다.
          * 미라젠은 의외로 제이콥을 대로 고전 중. 만전의 태가 아니라곤 하나 제이콥도 미라젠의 노출도 때문에 핸디가 있던 황이라 변호가 안 된다.
  • 페어리 테일/502화 . . . . 10회 일치
          * 하지만 이 제레프는 가짜. 아이린이 마법을 걸고 있던 것도 환이었다.
          * 진짜 메이비스는 환을 만들어 놓고 도주. 메스트에게 구조 받는다.
          * 가질은 드디어 아군과 합류. 레비와 눈물겨운 봉을 한다.
          * 그것은 환이었다.
          * 하지만 절벽을 내려가더라고 일행과 합류하려면 적진을 가로질러야 하는 황. 메이비스 조차 뾰족한 방법은 없다.
          * 가질은 자신도 부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잃을 뻔한 목숨 동료를 위해 방패가 되는건 당연"이라 말하며 격사적으로 싸운다.
          * 그리고 레비와도 감동의 봉... 인데 일단 얻어맞고 시작한다.
          * 제이라의 몸은 희미해지고 있는데 메이비스가 눈을 뜬 향.
          * 그보다 훨씬 심각한 증일지 모른다고 하는데.
          * 나츠의 종양은 오진. 하지만 훨씬 나쁜 증이라는 막장드라마스러운 전개가 됐다.--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 페어리 테일/520화 . . . . 10회 일치
          * 심세계에 있던 [[나츠 드래그닐]]은 [[이그닐]]에게 모든 사정을 듣는데 이그닐은 "용과 악마 중 하나를 택하면 죽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 아이린이 쓰러진 향으로 유니버스 원의 효과는 끝나고 세계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 한편 심세계의 [[나츠 드래그닐]]은 아버지 [[이그닐]]에게 자신의 사망 선고를 듣는다. 그의 안에 있는 END의 싹과 용의 싹이 뒤섞이면 더이 "인간"으로 있을 수도 없게 된다. 나츠는 [[아크놀로기아]]나 [[제레프 드래그닐]]도 쓰러뜨리지 못했다며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고 시무룩해한다. 그러자 이그닐이 한 대 쥐어박으며 "말을 끝까지 들으라"고 다그친다.
          * 이그닐은 "뭐야, 정답을 잘 알고 있잖아"라고 중얼거린다. 나츠 안의 두 싹이 서서히 붕괴된다. 이그닐은 설사 악마의 힘으로 되살아나고 용인 자신이 길렀다 해도 나츠는 "인간"이라며 그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 두 싹을 키웠던 거라고 알려준다.
          심세계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나츠는 아버지의 말에 힘차게 대답하며 꿈이 끝나듯 심세계를 떠난다.
          나츠가 일어난 건 안 [[폴류시카]]가 나타나 나츠의 체온을 유지시켜주던 거라고 칭찬 좀 해주라고 말한다. 나츠는 그말대로 루시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자신은 이제 "개운하다"며 태가 완전히 나았다고 말한다. 루시는 해피에게 들은 대로 "제레프를 쓰러뜨리면 죽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데, 나츠는 "왠지 괜찮을 거 같다"며 웃는다. 그는 심세계에서 "인간으로 있기로 한 일"을 말해준다. 루시는 그정도 말로는 납득하지 못하지만 나츠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기억이 없는 동안 엘자와 [[그레이 풀버스터]]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다며 둘의 안부를 묻는다. 해피는 엘자는 싸우고 있고 그레이는 옆 방에 있다고 알려준다.
          * 그때 주변 풍경이 빛에 휩쌓인다. 아이린이 쓰러진 탓에 "유니버스 원"의 효과가 끝나는 것이다. 처음 유니버스 원이 발동했을 때처럼 주변이 빛에 쌓이며 일그러진다. 전장에서도 같은 현이 목격되며 [[가질 레드폭스]], [[레비 맥거든]] 등도 휩쓸린다. [[메이비스 버밀리온]]은 현장의 인원을 한데 모이게 하며 대비하고 있다.
  • 페어리 테일/527화 . . . . 10회 일치
          * [[카나 알베로나]]의 홀더마법을 응용한 [[길다트 클라이브]]의 공격은 [[오거스트]]에게 당한 타격을 주지만 죽일 수는 없었다.
          * 아르스 마기아는 피오레 왕국 전투에 걸친 향을 끼치는데 페어리 테일 길드로 향하던 [[메이비스 버밀리온]]도 이 마법의 향을 받는다.
          * 차마 어머니를 죽일 수는 없었던 그는 창을 멈추고 그대로 소멸하는 길을 택한다.
          * [[카나 알베로나]]는 [[오거스트]]를 날려버린 [[길다트 클라이브]]를 염려한다. 공격을 꽂아넣은 왼팔은 무사하지 못하지만 길다트 본인은 건재하다. 그런데 오거스트가 처박혔던 건물더미가 수하게 움직이더니 오거스트가 멀쩡하게 다시 일어선다. 그 튼튼함에는 길다트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매그놀리아 전역에 흩어져 싸우고 있던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은 또다시 광범위한 마법 공격에 당황한다. 길드로 향하던 [[메이비스 버밀리온]] 역시 마법의 향으로 무릎 꿇는다. 메이비스는 이것이 고대의 마법 "아르스 마기아"라는걸 눈치챈다. 생물의 피를 증발시키고 대지를 녹여버리는 금지된 마법이다. 메이비스는 즉시 텔레파시로 길드원 전원에게 방어하라고 메시지를 보내지만 오거스트의 방해인지 차단되고 만다.
          이윽고 각혈을 하는 메이비스. 주위는 이미 마법의 향으로 서서히 증발하고 있다. 메이비스는 누가 이토록 강대한 마력을 사용하는지 의문을 가진다. 그때 공에서 마법을 시전 중인 오거스트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니... 무언가를 보고 창을 관뒀어.
          페어리 테일의 길드원 대부분은 마을 남방 쪽에서 싸우고 있다. 이제 적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가 이런 황에서 자리를 비우고 루시 일행과 접촉한 것은 어떤 물건 때문이었다. 그녀가 제레프에게 도망칠 때 가까스로 손에 넣은 물건이었다.
  • 페어리 테일/539화 . . . . 10회 일치
          * 큰 희생에도 불구하고 마룡은 시간의 마력을 손에 넣은 채로 이 세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에 봉하고 크리스티나호의 생존자들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바위섬에 륙해 태를 추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의 틈새가 닫힌 있을 수 없는 균열이 발생한다. [[웬디 마벨]]이 이것을 발견. 웬디가 하늘의 균열이 있다고 말하자 일행이 술렁인다. 저것은 아무리 봐도...
          * 시간의 틈새가 다시 열리고 있다. [[제니 리아라이트]]는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마룡을 봉인했다고 믿기지 않아 한다. 그러나 균열은 눈에 띄게 커졌다. 그 사이로 뚫고 나오는 검은 손. 아크놀로기아의 오른팔이었다. 경악과 공포로 일그러지는 얼굴들.
          *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시간의 틈새 조차 아크놀로기아를 죽이지 못했다. 아크놀로기아가 "이 세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라 말한다. [[제라르 페르난데스]]와 [[엘자 스칼렛]]은 그가 시간의 틈새 조차 먹어치웠다는 걸 직감한다. 마룡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힘을 손에 넣었다. 그는 넘쳐흐르는 시간의 마력에 전율하며 그 자신 조차도 제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원래부터 제어할 의지도 없는지 모르겠다. 그는 이 세 모든 인간들에게 멸망을 고하며 이터널 플레어를 충전한다.
          * 시간의 마력이 더해진 아크놀로기아의 힘은 정말로 세을 멸망시키고 남을 만했다. 무서운 위력이 실린 마법의 빛이 바다를 가로질러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 난사는 끝날 줄 모른다.
          * 엘자는 제랄과도 떨어져 바다로 처박힌다. 강한 의지의 소유자인 그녀도 이번만큼은 정말로 세이 멸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대로 침몰할 순 없었다. 엘자는 그렇게 둘 순 없다고 주먹을 불끈 쥔다.
          엘자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황을 살핀다. 근처에 이터널 플래어가 떨어지며 큰 파도가 일어난다. 엘자는 휩쓸리면서도 다른 일행들이 무사한지 살핀다.
          * 부자연스러운 지형과 끝없는 유성우가 내리는 하늘. 이질적인 공간으로 누군가가 끌려온다. 그건 END의 서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나츠였다. 나츠는 낯설고 이한 풍경을 보고 어리둥절해 한다. 분명 자신은 동료들과 길드로 가고 있었을 텐데.
  • 페어리 테일/542화 . . . . 10회 일치
          * 시간의 틈새로 불려간 멸룡마도사들은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를 대로 공격을 펼치나 단 한 방의 유효타도 맞추지 못한다.
          * 멸룡마도사들은 힘의 차이가 절망적임에도 불구하고 지에서 분투하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투지를 잃지 않는다.
          * 마룡의 공격이 매그놀리아 여기저기를 휩쓸면서 페어리 테일 길드도 휩쓸린다. 거기서 최후의 희망인 "페어리 스피어" 발동법을 찾고 있던 [[루시 하트필리아]] 일행이 무너지는 서가에 깔릴 뻔 한다. [[마카로프 드레아]]는 지의 시설이 파괴됐을 뿐, 지하인 이 도서관은 안전할 거라며 작업을 속행 시킨다.
          더이 매그놀리아에서 날뛰게 두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때 [[유키노 아그리아]]가 한 가지 단서를 짚어낸다. 왜 자아도 없는 아크놀로기아가 유독 매그놀리아에 머무는 걸까? 분명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마룡의 "본능". 미네르바는 마룡이 "마도사가 모이는 곳"으로 본능적으로 향하는 거라고 판단한다. [[카구라 미카즈치]]는 아마 보다 큰 마력을 더듬어서 움직이고 있을 거라고 여긴다.
          * 시간의 틈새. 이곳으로 불려온 멸룡마도사들은 아크놀로기아의 정신체를 대로 총공세를 펼친다. 그러나 [[스팅 유클리프]]와 [[로그 체니]]가 튕겨나가는 걸 시작으로 [[나츠 드래그닐]], [[코브라(페어리 테일)|코브라]], [[가질 레드폭스]], [[웬디 마벨]]이 변변한 공격도 못해보고 한 방에 쓰러진다. 마지막으로 [[렉서스 드레아]]가 배후를 잡지만 번개를 담은 정권도 무용지물, 마룡이 "나에겐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일갈과 함께 렉서스 마저 때려눕힌다.
          * 아크놀로기아를 배에 태운다는 계획을 위해 하루지온으로 급파된 [[그레이 풀버스터]]와 [[쥬비아 록서]].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 등 항구에서 휴식하던 아군의 도움으로 배를 수배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본래 알바레스 제국이 타고온 군선. 거대한 갤리온 함선이다. 그동안 [[엘자 스칼렛]]과 [[카나 알베로나]]를 비롯한 페어리 테일 길드원들도 도착. 작전 실행을 위한 준비 하나가 끝났다. 이제 문제는 이 배에 어떻게 아크놀로기아를 태우냐는 것. 엘자가 그 부분은 자신이 맡겠다고 자청한다. 어떻게든 공에서 아크놀로기아를 떨어뜨리겠다고 하는데. [[미라젠 스트라우스]]는 마법도 물리공격도 안 통하는 대에게 그게 가능할지 의심했다. 엘자는 반드시 해보이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코브라의 소중한 동료들, 오라시온 세이스도 지의 아크놀로기아를 무찌르기 위한 작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미네르바의 추론대로였다. 오라시온 세이스의 멤버들은 마력을 숨긴 채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서 차례로 마력을 해방했다. 순차적으로 해방되는 마력을 따라서 아크놀로기아가 반응, 그들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렉서스, 가질, 웬디. 페어리 테일 멤버들의 뜻도 한결 같았다. 마룡의 전설은 오늘로 끝날 거라고 말하는 웬디. 그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지의 동료들도 마찬가지. 루시 일행이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샤를(페어리 테일)|샤를]], [[팬서 리리]]의 도움으로 하루지온으로 향한다. 날아가는 동안 래비가 문헌의 해석을 서두른다.
          * 하루지온 공으로 아크놀로기아의 그림자가 보인다. 이제 모든 조각이 모이고 있다. 미라젠이 루시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자고 한다. [[길다트 클라이브]]는 젊은 멤버들에게 페어리 스피어 발동을 준비시킨다. 아직 어떻게 발동하는지도 모르는데 준비라니? 어쩐지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엘프먼 스트라우스]]의 손을 잡으며 모두 함께 하자고 말한다.
  • 하이큐/228화 . . . . 10회 일치
          * 카게야마도 어색한대로 말을 붙이보려 하는데 이름을 "카네코가와"라고 잘못 불러서 지나가던 츠키시마 케이에게 디스 당한다. 아무튼 카게야마는 코가네가와의 점프 최고도달점을 묻는데 무려 340cm. 카게야마의 337cm보다 더 높다. 게다가 이건 작년 수치라 지금은 더 높이도 올라간다고 하는데. 센터의 이적인 세트 업은 "높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최단거리로 올리는 세트. 당연히 높은 점프는 센터의 덕목이다. 카게야마 또한 개선할 점을 깨닫고 생각에 잠긴다.
          * 귀가 중 다테 공고 3학년 3인방과 마주치는 카라스노 3학년 3인방. 긴장된 분위기가 감돈다. 특히 아즈마네 아사히는 엄청 굳은 표정. 저쪽도 카마사키 야스시가 만만치 않은 표정이다. 모니와 카나메는 봄고 대회 열심히 하라고 격려의 말을 한다. 카라스노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가 점잖게 "감사합니다"하고 화답하고 돌아서는데 막 갈라진 뒤에는 각자 일행끼리 실없는 대화나 주고 받는다.
          * 그날 저녁. 자율연습은 최대한 간단하게 하라는 주장지시가 있었지만 선수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키노시타 히사시는 니시노야 유에게 언제나처럼 서브 연습을 청한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연습을 청한거 치곤 수십분 만에 페이스를 따라가기 버거워서 헉헉 거린다. 니시노야는 서브 연습은 심박수가 높은 태에서 하는게 이적이라며 페이스를 늦추지 않는다. 실제로 경기에선 심박수가 높아진 태에서 때리기 마련이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 키노시타는 니시노야에게 "오버로 받는게 약하면 언더로 받으면 그만 아니냐"고 하는데, 니시노야도 그런 생각은 하지만 더 수준 높은 플레이어들이 있는 이 선택지가 늘어나는데 안 할 수가 없다고 답한다. 키노시타는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실패할 바엔 성공을 포기한다"는 소심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서브 때문에 카라스노는 고전하고 있다고 자각한다. 키노시타는 "니시노야가 못 잡을 서브를 치겠다"는 각오로 다시 연습에 임한다.
          * 마지막까지 공을 떨구지 않고 연습을 마친 히나타. 나츠는 "오빠는 공하고 친해졌다"고 말한다. 나츠는 예전부터 오빠가 연습하는걸 봐왔지만 그때는 "공이랑 모르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사이가 좋아 보인다고 하는데, 그 말대로 히나타의 손도 공도 무수한 훈련의 흔적이 남아있다.
          * 한편 우카이 케이신은 점가 사람들하고 식사를 하다가 전화를 받는다. 매우 좋은 소식을 받은 것 같은데, 바로 봄고 대회 첫 대결대의 시합 녹화본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봄고 대회.
         양팀 3학년들이 돌아선 뒤 잡담 내용이 웃기다. 사사야 타케히토는 의외로 핑크취향. "카라스노는 유니폼이 검은 색이라 인이 나쁘지 핑크가 좋겠다"는 발언을 한다. 카마사키는 아마 아사히를 의식했는지 수염을 길러보려고 고민한다. 카라스노 3학년들은 다테 공고에 쓴맛을 본 트라우마가 아직도 있는지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라며 호들갑 떤다. 일단 모니와는 착한 사람으로 인식되나 본데 그래도 그 2학년 군단을 통솔한걸 보면 모르는 일이라고 흑막 취급을 당하고 있다.
  • 하이큐/246화 . . . . 10회 일치
          * 엔노시타의 추측대로 카노카는 전부터 타나카를 좋아하던 태. 조만간 고백하려는 참이었다.
          * 힘겹게 봄고 1일차를 버텨낸 [[카라스노 고교]]. 돌아가는 길에 원한 라이벌 [[네코마 고교]]와 조우한다. 네코마 측에서 "기껏 왔는데 금방 돌아가지 않아서 잘 됐다"고 도발 섞인 축하를 하자 [[스기와라 코시]]는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고 받아친다. 이렇게 악담에 섞인 격려를 주고 받은 양팀 선수들.
          * 그렇게 민박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떤 소녀가 [[타나카 류노스케]]를 불러세운다. [[하이큐/231화|오전에]] 만났던 타나카의 지인 [[아마나이 카노카]]였다. 팀에서 잠깐 빠져나와서 타나카를 보러온 것이다. 오전에도 좀 어색해했던 타나카는 얼어서 딱딱하게 대답한다. 그녀는 카라스노의 승리를 축하하고 "열심히 해"라는 격려를 남긴채 돌아간다. 그런데 얼굴이 새빨개진게 분위기가 요하다.
          히나타와 니시노야는 일찌감치 골아 떨어졌다. 특히 히나타는 목욕탕에서 갑자기 잠들어서 야마구치가 당황한다. 스가와라는 언제나 혈기왕성한 니시노야까지 뻗은걸 보고 "배터리가 나갔다"며 신기해하는데 엔노시타는 무리도 아니라며 다들 평소보다 훨씬 체력소모가 심하니 부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 원래도 몰라보게 자라버린 카노카를 어색해했는데 낮에 엔노시타가 "썸이다"라고 했던 얘기가 의식돼 엄청나게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버린다. 둘은 쮸뻣거리며 양가 없는 이야기나 주고 받으며 변죽만 울린다. 그러다 갑자기 카노카가 속도위반을 한다.
          고백타임 같은 분위기. 그러나 이런 부분으로 내성이 전무한 타나카는 머리가 폭발할 것처럼 복잡해진다. 그런 향일까? 타나카는 무슨 근자감인지 일단 거절하고 보기로 하는데... 불청객이 끼어든다.
          * 왠 청년이 나타나는데 카노카와 잘 아는 사이인지 "안에서 기다리라니까"하고 말을 걸고 있다. 타나카는 자연스럽게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미녀로 자란 카노카, 도시의 밤. 연의 시티보이.
          수치심에 사무친 타나카는 잊어달라고 외치며 육부를 방불케하는 속도로 도망친다.
          * 사실 그 청년은 카노카의 사촌오빠인 테라다 코지였다. 날도 추워서 내키지도 않는데 어머니의 성화 때문에 사촌동생에게 부적을 전달하러 왔다가 참을 목격하고 말았다. 눈치가 없었던 죄로 카노카의 원망을 듣게 되었으나 카노카는 곧 극복한다. 여기에 온건 연애하러 온게 아니니까.
  • 하이큐/272화 . . . . 10회 일치
          * [[사나타 사에코]]는 응원도 멈추고 [[이나리자키 고교]]의 4번, 오지로를 "시라토리자와 고교"의 "우시카와" 같다고 비유한다. 그 말을 들은 [[시마다 마코토]]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답했다. 비슷하긴 해도 우시와카랑 다르게 서브 리시브에 참가하고 서브로 공략할 여지도 있다. 실제로 오지로를 대로 제법 서브 에이스를 따기도 했다. 이는 오지로로서도 꽤 스트레스였을 테고, 저렇게 훨훨 나는 것 같아도 계속 어려운 공이 올라온 데다 블로킹도 성가시게 따라붙으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당한 피로가 누적됐으리라 추측한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 긴지마의 2회차 서브. [[아즈마네 아사히]]의 리시브로 공은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카게야마는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세트업. 타나카는 좌측에서 이나리자키의 [[미야 오사무]], [[스나 린타로]]의 블로킹을 따돌리며 우측으로 꽂아넣는다. 네트에 바짝 붙은 스파이크. 한동안의 침채를 씻어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중계진도 1세트 이후부터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고 호평. [[츠키시마 케이]]의 서브 순서에서 선수교체. 츠키시마가 빠지고 [[스가와라 코시]]가 투입된다. 로테이션으로 [[니시노야 유]]가 빠지고 히나타가 진입. 스가와라는 실컷 두들겨 맞은 니시노야에게 "원수를 갚아준다"고 농담했지만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라는 신경질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엔노시타 치카라]]는 스가와라가 빠르게 투입된 이 [[키노시타 히사시]]가 나갈 차롄 없겠다며 내심 아쉬워했으나 정작 키노시타는 머릿속으로 25 번째 서브 에이스를 따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멈추지 않는다. 투입 여부와 관없이 준비는 완료.
          당연히 이나리자키의 싸늘한 시선이 꽂혀온다. 하지만 이것도 전날 우카이 코치가 지시한 내용이다. 오지로에게 계속 압박을 주라는 것. 블로킹이나 서브를 활용해야 한다. 서브 에이스를 내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래도 이적인 건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 스가와라는 최대한 실행해볼 생각이다.
          * 비록 자신이 코트에 있는건 10초, 혹은 20초 남짓이겠지만 단 5초라도 이나리자키를 열받게 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 각오로 스가와라의 1회차 서브. 역시 아슬아슬한 코스로 오지로를 노렸다. 네트에 가깝게 떨어지는 공. 오지로가 달려와서 받는다. 타이밍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리시브하는 오지로. 리시브는 성공했지만 일어서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공은 [[미야 아츠무]]에게. 아츠무는 [[미야 오사무]]에게 세트업. 우측의 스파이크를 히나타가 블록. 손에 받고 뒤로 튕겨나온 공을 스가와라가 잡아낸다. 공은 산 채로 카라스노 진으로. [[아즈마네 아사히]]가 이어서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돌린다. 카게야마는 우측 네트 앞에서 공을 받음과 동시에 몸을 돌려 오지로 쪽으로 밀어넣는다. 오지로는 이것도 받아내긴 했지만 역시 성가셔하는 느낌. 공은 이나리자키 좌측에서 높이 뜬다. 오지로가 신경질적으로 "레프트"라고 외치자 아츠무가 허겁지겁 달려오는데, 세트업이 조금 낮다. 그대로 오지로 뛰어올라 스파이크, 하지만 낮은 만큼 블록을 뚫지 못한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손에 맞은 공이 라인을 벗어나면서 아웃. 오지로나 아츠무에겐 가슴이 철렁한 플레이였다. 스코어는 20 대 9. 스가와라와 츠키시마가 다시 교대한다.
          * 모두가 깜짝 놀란 가운데, 히나타만은 조금 다르게 놀랬다. 서브 보다는 지금 카게야마의 태. "카게야마 온화 모드" 발동이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헛소리로 치부했지만 히나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카게야마는 문자 그대로 온화한 태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눈을 안 감는 속공에 성공했을 때, 츠키시마가 타점을 올렸을 때가 지금과 같은 온화 모드였다. 설명할게 많지만 히나타의 열등한 어휘력 때문인지 매우 애매한 설명이 되고 말았다.
          >뭔가 여러모로 빠릿빠릿한 태를 말합니다.
         == 세 ==
  • 한가은 . . . . 10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한가은은 [[1990년]] [[10월 9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가수 활동 때에는 한가은에서 예명 우리를 바뀐 뒤, 그룹 '레이티'에 정식적으로 가수 데뷔 하였으나, 사실 소재 고갈 이유로 탈퇴하였다. 레이싱모델이 된 후에 한가은으로 다시 개명하였다. 모터쇼와 오토살롱에서는 포즈와 화보를 찍었는데도 일화가 유명하다. 아이돌 그룹 [[애프터스쿨]] [[이 (가수)|이]], [[티아라 (음악 그룹)|티아라]] [[보람]] 닮은꼴로 화제가 있었다.
         == 수 ==
         * [[2015년]] - 제4회 한국 레이싱모델 어워즈 대
         * [[2014년]] - 제3회 한국 레이싱모델 어워즈 최우수 인기모델
         * [[2009년]] 서울오토살롱 카앤모델 레이싱모델 어워드 대
         * [[2008년]] 베스트 레이싱모델 헬스원
  • 한민영 . . . . 10회 일치
         | 이름 = 한민
         | 활동 역 =
         | 웹사이트 =
         '''한민'''([[1988년|1988년]] [[1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이다.
         == 수 ==
         * [[2014년]] - 제3회 한국 레이싱모델 어워즈 베스트 포토제닉
         * [[2015년]] - 제4회 한국 레이싱모델 어워즈 올해의 모터쇼 우수모델
         * [http://cafe.daum.net/minyoung-han 한민 다음 팬카페]
         *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95%9C%EB%AF%BC%EC%98%8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973599 한민 네이버 인물]
         * [https://www.instagram.com/minyoung.han.4158/ 한민 인스타그램]
  • 한지은 (레이싱모델) . . . . 10회 일치
         | 본명 = 김민
         | 활동 역 =
         | 웹사이트 =
         '''한지은'''('''본명 : 김민''', [[1986년]] [[1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이다.
         == 수 ==
         * [[2014년]] - 제3회 한국 레이싱모델 어워즈 최우수 글로벌스타
         * [[2013년]] - 한국레이싱모델 어워즈 올해의 모터스포츠 베스트모델
         * [[2009년]] - 서울 오토살롱 CAR&Model Award 금
         * [[2009년]] - 베스트 레이싱모델 비엘챠퍼스
         * [[2008년]] - 디카모델어워드 스투닷컴
  • 허위 . . . . 10회 일치
         ||<#ffd700> 출생지 ||[[조선]] [[경도|경북도]] [[구미시|선산군]] 하고면 임은동 ||
         ||<#ffd700> 가족 ||허윤(조부) 허조(부) [br] 허훈(백형) 허신(중형) 허겸(계형) [br]허학(장남) 허(차남) 허준(삼남) 허국(사남) ||
         호는 왕산(旺山)이다. 1855년 [[경도]] [[구미시|선산군]] 하고면 임은동(현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허씨|김해]].
         1907년 [[고종(조선)|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정미 7조약]]으로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으로 선봉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하였으나[* 허위가 이끌던 13도 창의군이 최종적으로 머물었던 길을 그의 호를 따 명명하게 됐는데, 그게 현재의 [[왕산로]]이다.] 준비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격퇴당하고, 총대장인 [[이인]]이 부친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후임 총대장이 되어 2차 진격을 계획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김구]]의 [[백범일지]]에서는 허위가 순국하자 그곳에 있던 식수로 쓰는 우물이 빨갛게 물들어 더이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 라는 말이 쓰여있다. [* 출처. 백범일지. 치하포 사건 후]
         여담으로 그의 증조카가 [[일제강점기]] 시기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 무장 투쟁 활동을 했던 [[허형식]]이다.[[http://gumi.grandculture.net/Contents?local=gumi&dataType=01&contents_id=GC01201509|#]] 또한 당조카인 허길의 아들이 바로 시인 [[이육사]]이다. 직계 제자로는 대한 광복회 총사령인 [[박진]]이 있다. 박진은 허위가 순국한 후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루기도 했다.
         SBS의 드라마 [[제중원(드라마)|제중원]]에서도 후반부에 중요 조연으로서 등장한다. [[손현주]]가 연기하였고, 외유내강형의 인자한 인물로 그려진다. 총을 마취 없이 치료하는데도 버텨냈으며 그 대가로 주인공 황정의 호를 지어준다. 주인공이 독립 운동가로 각성하도록 돕는 인물 중 하나.
  • 현재덕 . . . . 10회 일치
         | 수 =
         | 기타 = 절친한 친구로는 [[극작가]] 겸 [[연극]][[연출가]] [[주섭 (1912년)|주섭]]이 있었다.
         광복 후 좌익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동맹]]의 아동미술분과와 [[동지사아동원]]에 가담했다. 동지사아동원에서는 필명이 박두루미인 [[박인범 (작가)|박인범]]과 함께 어린이들 대의 구연 동화 활동을 했다. [[한국 전쟁]] 기간 중 현덕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월북했으며, 서울에는 부인과 딸을 남겨두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아동문학가로 일했다는 사실만 단편적으로 전해졌을 뿐, 활동에 대해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 [[연극]][[연출가]] [[주섭 (1912년)|주섭]](朱永涉, [[1912년]] ~ ?)과 오랜 친구 관계를 맺었다.
         * 김순, [http://dongsim.net/gnu4/bbs/board.php?bo_table=hyundek&wr_id=4&page= 아동문학 선구자 현덕 - 생애와 업적] (동심넷 - 아동문학선구자기념관)
         [[분류:191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20세기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삽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동화작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삽화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화작가]][[분류:아동미술가]][[분류:박헌]][[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분류:월북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연주 현씨]]
  • 혐저 . . . . 10회 일치
         좁은 의미에서는 [[2채널]]에서 스레드를 [[복붙]]하여 이득을 얻는 [[마토메 사이트]]를 증오하는 경향에서 시작된다. 자신들이 쓴 레스를 사용해서, 단지 정리했을 뿐인 타인이 돈을 번다는 것에 불만을 느낀 것이 시작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확대되어, 광고적인 내용을 많이 넣어서 [[스팸]] 같은 경향이 나타나는 [[블로그]], 2채널에서 인용한 글을 주로 만든 서적류에 대한 불만, 거기에서 더 나가가 동 사이트([[니코니코 동화]] 등) 같은 곳에서 공개된 음악([[보컬로이드]] 등)이 업적으로 전개되는 것, 동 사이트에서 게임 플레이 중개, 나아가서 '''"다른 사람이 인터넷을 통하여 돈을 버는 것 자체"'''에 불만을 느끼는 분위기를 뜻하게 되었다.
  • 홍예은 . . . . 10회 일치
         {{화인 정보
         | 사진설명 = 홍예은 1995년생 당찬 여배우~ 가캐스팅으로 땡겨오려고 알게돼쪄
         | 수 =
         | 웹사이트 =
         * [[2015년]] [[KBS2]] TV소설 《[[그래도 푸르른 날에]]》 ... 서혜
         === 화 ===
         * [[2011년]] 《[[링크 (2011년 화)|링크]]》 ... 어린 아이 역
         * [[2012년]] 《[[천국의 아이들 (2012년 화)|천국의 아이들]]》 ... 고은 역
         * [[2016년]] 《[[혼숨 (화)|혼숨]]》 ... 혜진 역
         [[분류:199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화정고등학교 동문]][[분류:동덕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분류:2004년 데뷔]]
  • 홍준표 (1949년) . . . . 10회 일치
         == 수 ==
         * 2001년 대한금속재료학회 학술
         * 1998년 한국주조공학회 논문
         * 1997년 오암
         * 1997년 한국주조공학회 논문
         * 1995년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논문
         * 1993년 한국주조공학회 논문
         * 1992년 대한금속학회 논문
         * 1990년 한국주조공학회 논문
         * 1985년 대한금속학회 청웅
  • 홍현희 . . . . 10회 일치
         | 수 = [[2007년]] SBS 신인개그맨 선발대회 동 <br /> [[2011년]] SBS 연예대 코미디부문 우수
         | 웹사이트 = [http://minihp.cyworld.com/pims/main/pims_main.asp?tid=22317521 홍현희 미니홈피]
         == 수 ==
         * 2007년 - SBS 신인개그맨 선발대회 동
         * 2011년 - SBS 연예대 코미디부문 우수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01년 데뷔]][[분류:동일여자업고등학교 동문]]
  • 황성준 . . . . 10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http://jerrygogo.com/wordpress/hwang-sung-joon 공식사이트]
         === 화 ===
         * 《[[1987 (화)|1987]]》 (2017년) - 신발가게 백골단 역
         * 《[[리얼 (화)|리얼]]》 (2017년) - 밀실클럽 중독자 역
         * 《[[미운오리새끼 (화)|미운오리새끼]]》 (2012년) - 취사병 역
         * 《[[통증 (화)|통증]]》 (2011년) - 형사 역 <ref>{{뉴스 인용|제목= 곽경택 감독의 진정한 페르소나 누구?|url=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602916&code=61181111&sid1=ent |출판사=MBN |날짜=2015-06-30}}</ref>
         * 《[[나청렴의원 납치사건]]》 (2016년, SBS) - 철 역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황준국 . . . . 10회 일치
         '''황준국'''(黃浚局), [[1960년]] [[12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외교관]]이다. <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08220815 |제목=<프로필> 황준국 주국 대사|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6년 2월 29일}}</ref>
         * 주국대한민국대사관 2등서기관
         * 외교통부 의전1담당관
         * 외교통부 국제연합과 과장
         * 외교통부 국제기구협력관
         * 외교부 한미방위비분담협 대사
         * 주 국 대사
         |직책 = [[한 관계#외교관 목록|주 국 대사]]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 2016년 남양주 폭발사고 . . . . 9회 일치
         사고 당시 다리 아래에는 가로 10미터, 세로 2미터, 깊이 15미터의 공간에 작업자 10명이 양쪽으로 나뉘어서 작업 중이었으며, 2명은 부에서 일을 하고, 부자 2명은 현장 바깥 사무실 근처에 있었다.
         현장에서는 부자와 사망자를 포함하여 모두 17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3명은 다치지 않았다. 작업은 오전 7시에 시작되었는데, 30분도 되지 않아서 참변이 일어났다.
         == 세 ==
         폭발과 함께 현장이 붕괴되었으며, 4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을 입었다. 사고로 52세 서모 씨, 50세 김모 씨, 60세 정모 씨, 62세 윤모 씨 등 4명이 숨졌으며, 60세 안모씨와 51세 심모씨(중국인) 등 10여명이 부을 입고 병원 4곳으로 옮겨졌다.
         폭발 충격으로 부에 있던 사망자 1명이 바깥으로 튕견가ㅏ 숨졌으며, 3명은 15미터 아래의 지하에 고립되었다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심모씨 등 3명은 중을 입어 전신 3도 화이 되었고, 안씨 등 5명은 오전 동안 치료를 받고 귀가했다고 한다.
  • GLA . . . . 9회 일치
         정면 힘싸움보다는 게릴라전 중심이라는 점에서 구 C&C의 Nod와 다소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테러리스트 진을 본격적으로 구현하다보니 다른 진에 비해서 여러모로 특이한 점이 많이 나타났다.
          GLA의 기본 보병 유닛. 다른 진 기본 보병에 비해 특별한건 없다. 대사에서 투지가 느껴진다.
          돌, 권총, 화염병으로 무장한 군중들. 떼로 몰려다녀서 차량이나 건물에 쑤셔박을 수 없지만 모든 지유닛에 강하다. AK 소총을 나눠줘 공격력을 향시킬 수 있다. 사망한 군중은 시간이 지나면 보충된다.
          적의 차량을 탈취할 수 있는 보병. 공격을 할 수 없는 대신 정지시 스텔스 태가 된다. 탈취한 차량이 파괴되면 탈출한다.
          웅 유닛. 모든 보병을 일격에 제거할 수 있는 저격수다. 차량의 조종수를 저격해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보병을 수송할 수 있는 버스. 탑승한 보병은 밖의 유닛을 공격할 수 있다. 보병이 들어있는 태에서 파괴되면 벙커가 된다. 잔해를 먹어 방어력을 강화할 수 있다.
         [[분류:가의 조직]] [[분류:악의 조직]] [[분류:커맨드 앤 컨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문화 . . . . 9회 일치
         === Impressionism(인주의) ===
         === Enlightenment Philosophy(계몽사) ===
         === Idealism(이주의) ===
         === Phenomenology & Hermeneutic(현학 & 해석학) ===
         == Social Thought(사회 사) ==
         === Malthusian Thought(맬서스 사) ===
         == Political Thought(정치 사) ==
         === Ideological Thought(이데올로기적 사) ===
         === Phenomenalism(현주의) ===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1화 . . . . 9회 일치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161화. '''우마루와 실내수장'''
          * 더위를 피해 실핀네 "전세수장"에 놀러간 우마루(UMR모드)
          * 우마루가 수장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실핀이 "그럼 가자"고 말한다.
          *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실핀네의 전세 수장.
          * 마침 실핀의 어머니도 수을 즐기고 있다.
          * 우마루는 이런 커다란 수장을 둘이서만 써도 되는 걸까, 하고 죄책감을 느낄 정도.
          * 어머니는 실핀에겐 엄격한 태도로 조금 더 향시키라고 조언한다.
          * 실핀은 어머니가 언제나 1등을 노린다고 말하는데, 그걸 듣고 우마루가 "실핀이 언제나 1등을 노리는건 어머니의 향"이라고 말한다.
          * 이후 또 50m 레이스를 하며 즐겁게 수한다.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9회 일치
         SS. 럭키가 떠그타운에 정박하려는 무렵, 얼굴에 물린 처가 있는 사람들의 무리가 SS. 럭키에 올라가 선교의 선원들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객실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선교의 선원들이 몰살당하는 소리를 들은 카놀리는 황이 이하게 돌아감을 깨닫고 권총을 꺼내든다.
         떠그타운은 이미 좀비들의 소굴이 되어있었다. 좀비들을 해치우며 가던 카놀리는 좀비들에게 포위당한 생존자를 구하게 된다. 떠그타운에서 전당포를 경하고 있던 그 생존자는 카놀리에게 떠그타운의 절반을 지배하던 보니노 마피아들이 프랭키를 잡아갔다고 알려준다.
         카놀리는 보니노 마피아들이 경하던 스트립클럽으로 가 그곳에 있던 모두를 족치고 프랭키를 구한다. 이제 둘은 떠그타운에서 탈출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프랭키는 강 건너편 벨루치오 마피아 빌딩에 비행선이 있으니 그걸 타고 떠그타운에서 탈출하자는 의견을 낸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조종사로 복무했다는 이야기는 덤. 하지만 비행선에 가려면 군대의 봉쇄를 뚫어야 했다. 카놀리는 프랭키와 함께 군대의 방어선을 돌파해 군대가 폭파시키려던 도개교에 도착한다.
         카놀리가 도개교를 내리자, 비니는 더이 카놀리는 필요 없고, 벨루치오한테 일 잘해줬다고 전해주겠다며 자기 혼자 다리를 건너가버린다. 이에 카놀리는 성을 내지만 군대가 다리를 폭파하며 그대로 다리에서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카놀리는 살아남아 하수구로 도망친다. 하수구에는 돌연변이 쥐들이 살고 있었다. 카놀리는 이들을 처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수구의 끝은 정체 모를 연구소로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 있던 연구원이 온갖 함정을 작동시키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카놀리는 그를 붙잡아 이야기를 듣는다.
         카놀리가 벨루치오 빌딩 옥에 도착했을 때는 독가스가 건물 높이까지 퍼진 태였다. 비행선에 벨루치오의 돈을 전부 싣고 떠날 준비를 하는 프랭키를 목격한 카놀리는 벨루치오의 행방을 묻는다. 프랭키가 벨루치오를 죽였다는걸 깨달은 카놀리는 프랭키를 욕한다. 프랭키는 목격자를 남기지 않겠다며 카놀리에게 덤벼들지만 오히려 자신이 밀리자 비행선에 올라 타 카놀리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카놀리 역시 비행선에 올라 타서 프랭키를 두들겨 패고는 비행선 밖으로 던져버리려고 한다. 프랭키는 자기만이 비행선을 조종할 수 있다며 목숨을 구걸하지만 카놀리는 설명서를 읽어봤다며 프랭키를 비행선에서 내던져버린다. 이후 카놀리는 비행선을 몰고 떠그타운을 빠져나간다. 프랭키가 빼돌릴려고 했던 벨루치오의 돈과 함께.
         선택 가능한 언어 도중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가 언어인 [[클링온어]]가 있다.
  • 경대수 . . . . 9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3, top1=정치인/목록, top2=법조인/목록, top3=가톨릭/인물)]
         ||<width=30%><:>제18대[br][[정범구]]||<width=5%><:>→||<width=30%><:>'''제19대[br]경대수'''||<width=5%><:>→||<width=30%><:>''선거구 개편''[br]'''경대수'''[*A [[증평군]]·[[진천군]]·[[괴산군]]·[[음성군]] 선거구 [[제19대 국회의원]] → [[증평군]]·[[진천군]]·[[음성군]] 선거구 [[제20대 국회의원]]][br][[박덕흠]][* [[보은군]]·[[옥천군]]·[[동군]]·[[괴산군]] 선거구의 [[제20대 국회의원]]이다.]||
         [[2009년 재보궐선거]] 당시 김종률의 피선거권 실로 치뤄진 고향 충북 진천, 음성, 괴산, 증평 선거구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정범구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하였다. 정범구 후보는 음성 출신이라 음성쪽의 지원을 받았고, 경대수는 괴산 출신이라 괴산의 지원을 받았는데 그만 공천에 탈락한 진천군수 출신 김경회가 무소속 출마하여 진천쪽의 표심을 잠식하고 나아가 여권 성향의 표를 분산한 것이 원인이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 개편 과정에서 고향 괴산이 떨어져나가는 악재를 만나며 고향이 붙은 보은, 옥천, 동, 괴산 선거구와 현재의 진천, 음성, 증평 선거구를 두고 고민하다가 현재의 선거구를 지키기로 결심하였고 재선되었다.[* 여담으로 소지역주의로 인해 진천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이기기도 하였다.]
         새누리당에서는 비박으로 분류되었다. [[2016년]]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새누리당/비시국위원회|비시국위원회]]에 참여하였다. 다만 [[바른정당]] 창당에는 합류하지 않은 태.
         [[2017년]] [[8월 10일]]에는 [[문재인 정부]]의 군복무기간 단축 정책에 대응하여 대통령이 군 복무기간을 조정할 때에는 [[국회]] 임위에서 공론화를 거치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위의 내용과 대비해서 보면 묘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 2009 || [[2009년 재보궐선거|2009년 하반기 재보궐선거]][br](18대 국회 충북 진천/음성/괴산/증평)[* 전임자 [[김종률]] 피선거권 실] || [[한나라당]] || 22,077 (29.64%) || 낙선 (2위) || ||
  • 공산당 지도 원리 . . . . 9회 일치
         [[공산주의]]의 정치사. [[블라디미르 레닌]]이 주창한 것으로서, 레닌주의의 특징적인 요소이다. 북한에서는 '당의 도'라고도 번역한다.
         [[공산당]]이 [[혁명]]의 '전위'가 되어, 국가, 정부, 군대, 사법, 종교, 사회단체 등 사회의 모든 요소를 '지도'해야 한다는 사이다.
         1936년, 소련에서 헌법이 제정되면서 공산당(볼셰비키)의 지도적 역할이 헌법에 명시되었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이 같은 체제를 도입했으며, 다른 정당이 존재한다고 해도 [[위성정당]]으로 전락하여 사실 [[일당독재]]로 변질되었다.
         현재에도 북한, 베트남, 쿠바, 라오스 등의 헌법에는 공산당의 지도 원리가 명시되어 있다. 중국의 경우는 헌법에는 '노농연맹'으로 되어 있어, 공산당이 아닌 중국인민정치협회의(中国人民政治协商会议)가 지도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이 중국인민정치협회의를 공산당이 지도하고 있으므로 사실 마찬가지이다.
         이 공산당 지도 원리는 [[지도자 원리]]로 변형되어 [[파시즘]]에도 유입되었다. [[나치 독일]]에서 나치당의 경우 역시 공산주의 국가의 공산당과 유사한 지도적 정당이었다. 다만 나치 독일의 경우는 법률적 정의보다는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의지'를 우선시하는 성향 탓에, 나치당의 지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사실 비슷한 지위라고 볼 수 있었다.
         공산주의의 결정적인 반민주적 요소이다. 소련의 향을 받은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 지도 원리를 강하게 밀어붙였으나, 몇몇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이에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펼친 인물로는 [[카를 카우츠키]]나 [[로자 룩셈부르크]], --소련에서 쫓겨난 이후의-- [[레프 트로츠키]] 등이 있다.
  • 권영해 (1888년) . . . . 9회 일치
          | 이름 = 권해 <br/> 權永海
          | 출생지 = [[조선]] [[대구광역시|경도 대구]]
          | 거주지 = {{국기나라|대한제국}} [[경북도]] [[선산군|선산]] <br/> {{국기|일제 강점기}} [[경북도]] [[칠곡군|칠곡]] <br/> {{KOR}} [[서울특별시]]
          | 학력 = 경북도 [[대륜고등학교|대구 우현고등보통학교]]
         '''권해'''(權永海, [[1888년]] [[8월 12일]] ~ [[1949년]] [[6월 23일]])는 [[대한민국]]의 [[한국의 독립 운동|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1919년 경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 진평교회(眞坪敎會) 목사로 재직 당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이 대대적으로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교회 집사 이백(李相柏)·이내성(李乃成) 등과 함께 1919년 3월 12일에 동민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하기로전격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12일이 되자 그와 일행들은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太極旗)와 조선독립선언서(朝鮮獨立宣言書)를 동리 주민들에게 배포하고 동리 곳곳에 횃불을 붙였으며 끝끝내 동리 야산에서 300여명의 동민을 규합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들과 일본 헌병들에게 제압이 되며 끝내 강제로 해산되었지만 이후 이곳 민중들의 항일 저항의식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만세 시위 운동 관련 계획을 다시 협의하여 1919년 3월 14일 21시경을 기하여 2백 명의 동민과 아울러 동리 야산에서 다시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등 만세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결국 일경에 피체되었다.
         * [http://www.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466&ipp=10000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권해 先生 공훈록]
  • 권재진 . . . . 9회 일치
         |출생지 = {{KOR}}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br/>(現 {{KOR}} [[대구광역시]])
         |웹사이트 =
         '''권재진'''(權在珍, [[1953년]] [[7월 27일]] ~ )은 [[대구]]에서 출생한 [[대한민국]]의 [[법조인]] 및 검사이다. 대검차장, 서울고검장,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했으며, [[2011년]] [[8월 12일]]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장관을 맡아서, [[2013년]] [[3월 11일]] 법무부 장관 퇴임을 했다.<ref>[http://media.daum.net/economic/stock/others/newsview?newsid=20130311184903997 권재진 법무부 장관 퇴임], 뉴스토마토, 2013년 3월 12일</ref>
         * [[1992년]]~[[1993년]] 대구지방검찰청 주지청 지청장
         * [[2000년]]~[[2000년]] 창원지방검찰청 통지청 지청장
         아들이 서울대 공익요원으로 배정을 받기위해 어머니와 봉천동으로 위장전입까지 한 황에서 돌연 친구가 운하는 포천의 회사로 근무지를 옮긴 것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었다. <ref>[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10808163942816&p=nocut&RIGHT_COMM=R11 권재진, 아들 감싸려 제출한 계좌가 되레 '화근']《노컷뉴스》2011년 8월 8일</ref>
         |후임자 = [[정진 (1959년)|정진]]
  • 권혁 (기업인) . . . . 9회 일치
         '''권혁'''(1950년생)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출신<ref>[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4910 탈세범이냐 정 기업가냐 판정대 오른‘선박왕’]</ref>의 일본 시도선 회장이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려해운]] 출신으로써 국내 해운업계의 독보적인 존재이며, 시도선은 보유척수 175대, 매출액 2조 1700억원, 자산 5조원의 거대 선박임대회사이다.<ref>[http://news.donga.com/Society/New/3/03/20110412/36340407/1 국세청 4101억 세금 추징 ‘시도선’ 권혁회장은 누구]</ref> 이는 국내 1위 선박업체로 알려진 [[한진해운]]보다 높은 수치이다. 2011년 4월에는 탈세 혐의로 4101억을 추징당한 바 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72718.html 해운업 호황의 ‘대박’ 유령회사에 숨겼나]</ref>[[2012년]] [[11월 29일]], 징역 7년과 벌금 2284억원의 중형이 구형되었다.<ref>[http://news1.kr/articles/915172 검찰, '선박왕' 권혁 시도선 회장에 징역 7년 구형]</ref> 그 뒤 2013년 2월 12일엔 징역 4년에 벌금 234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ref>[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766800 ′횡령 혐의′ 시도선 권혁 회장, 징역 4년·법정구속]</ref> 그러나 2013년 10월 14일, 보석으로 석방됐다.<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986489 `선박왕` 권혁 회장 보석 석방]</ref> 그리고 2014년 2월 21일 항소심에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선고되면서 감형됐다.<ref>[http://news.newsway.co.kr/view.php?tp=1&ud=2014022120413661939&md=20140221204249_AO 조세포탈 혐의 ‘선박왕’ 권혁 회장, 항소심서 집행유예 감형]</ref>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경대학 동문]]
  • 김가을 (수영선수) . . . . 9회 일치
         |직업 = 수선수
         |웹사이트 =
         '''김가을'''([[1997년]] [[1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여자 [[수]] 선수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38&aid=0002158762 <nowiki>[라운지] 역대 최연소 수 국가대표 김가을</nowiki>]</ref>
         [[분류:1997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수 선수]][[분류:자유형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수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수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수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수 참가 선수]]
  • 김성민 (1994년) . . . . 9회 일치
         |문 표기 = Kim Sung-Min
         |사진 사이즈 =
         [[대구옥산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거쳐 [[대구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제6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2011년 청룡기]]에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3승,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239733 청룡기 MVP 김성민, "류현진 같은 선수 되고 싶다"], 《OSEN》, 2011년 8월 1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고교야구 아시아 시리즈 대표에 선정되었고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 선수로도 거론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8&aid=0002694959 성탄절, 고교야구아시아시리즈와 함께...일본·대만과 격돌],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2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국외 스카우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2012년]] [[1월 31일]] 계약금 55만 달러를 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5489936 고교 2학년 선수, 미국프로야구 입단 논란], 《연합뉴스》, 2012년 1월 31일.</ref>
         이 과정에서 엄청난 논란이 발생하였는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KBO (야구)|KBO]]에 신분조회를 요청하지 않아 [[KBO (야구)|KBO]]에서도 그의 계약을 몰랐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계약은 금지였기 때문이었다. 2001년 7월에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서에는 메이저 리그 구단이 선수를 입할 때는 신분 조회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접촉도 불가능했다. 이러한 비난 속에서 [[일구회]]는 [[2월 2일]]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행동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3523 일구회, MLB 무분별 스카우트 규탄 성명], 《이데일리》, 2012년 2월 2일.</ref> [[2월 8일]]에는 [[대한야구협회]]에서 벌위원회를 열고 그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이어 [[2월 9일]]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스카우트의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96&aid=0000007832 야구협회, MLB 볼티모어 입단 김성민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 《스포츠월드》, 2012년 2월 8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7063 대한야구협회, 볼티모어 스카우트 출입금지 조치], 《이데일리》, 2012년 2월 9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볼티모어의 단장인 [[댄 듀켓]]은 그와의 계약이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였고 그도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인생을 건 선택'이라고 언급하며 실력으로 모든 걸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268235 볼티모어 단장 "김성민 계약 뭐가 문제냐?"], 《조이뉴스24》, 2012년 2월 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031009 <nowiki>[단독인터뷰]</nowiki> 미국 진출 논란 김성민 “내 인생을 건 선택”],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9일.</ref>
         이후 [[KBO (야구)|KBO]]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측에 공식적인 항의 서신을 보내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도 이러한 규정 위반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2월 15일]]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사무국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벌금 징계를 부과하였고 그와의 계약을 30일 간 잠정적으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031426 美볼티모어 부사장 “김성민 계약 파문 공식 사과”],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12&aid=0002272362 MLB 사무국, 김성민 입 볼티모어에 벌금 징계], 《해럴드POP》, 2012년 2월 16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계약은 미루어졌고 결국 [[6월 1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의 계약 불발을 보도하면서 [[7월 7일]]에 공식적인 계약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그는 국제 미아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196271 볼티모어, 김성민 계약 위해 MLB 승인 기다려], 《스포츠조선》, 2012년 3월 2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64872 '스카우트 파동' 김성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재계약 실패], 《OSEN》, 2012년 6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7999 댄 듀켓, “김성민과 계약하고 싶지 않다”], 《OSEN》, 2012년 7월 8일.</ref> 결국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진 그는 2013년 초에 일본의 [[후쿠오카 경제대학]]에 입학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14&aid=0000227125 고교야구 유망주 김성민 일본 대학 입학 왜?], 《MBC》, 2013년 1월 11일.</ref>
         2016년에 대학교 4학년 때 [[KBO (야구)|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8월 2일]]에 실시한 트라이 아웃에 참여하였다. 트라이 아웃에서 좋지 않은 몸 태에도 불구하고 [[SK 와이번스]]에 2차 1라운드 전체 6순위라는 높은 순위에 지명되었고 1억 3,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다.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SK 와이번스 선수]]
  • 김정재 . . . . 9회 일치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70000B><-5><bgcolor=#FFFFFF><:>{{{#70000B '''[[대한민국|{{{#70000B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국회의원}}}]] ([[경북도|{{{#70000B 경북}}}]] [[포항시 북구(선거구)|{{{#70000B 포항시 북구}}}]])'''}}}||
         ||<bgcolor=pink> '''{{{#0C0C0C 출생지}}}''' ||<(><bgcolor=#F6EDF8>[[경북도]] [[포항시]] ||
         ||<bgcolor=pink> '''{{{#0C0C0C 지역구}}}''' ||<(><bgcolor=#F6EDF8> [[경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
         1966년 [[경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포항중앙초등학교, 동지여자중학교, [[포항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5회 지방선거 및 19대 총선으로 서울, 그것도 자신의 활동역이던 서대문 지역에서는 보수정당으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듯 고향인 포항으로 지역기반을 바꾼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장(공무원)|시장]] 선거에 출마하려 하였으나 [[컷오프]]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5년까지 새누리당 부대변인을 역임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전직 포항시장 출신인 친여 [[무소속]] [[박승호(정치인)|박승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경북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다.[* 심지어 20대 총선 기준 남권의 유일한 여성 국회의원이다.] 같은 해 5월 8일 [[김명연]]([[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갑)과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에 임명되었다. [[정우택]] 원내대표 체제 하에서도 유임되었다.
         [include(틀:제20대 국회의원/경북도)]
  • 김태환(1943) . . . . 9회 일치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이다. 5선 국회의원과 정무제1장관을 역임한 허주 [[김윤환]]의 친동생으로 아버지 [[김동석]]도 제4대 국회의원(경북도 선산군. [[무소속]]-[[자유당]])을 역임하였다.
         1943년 [[경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경복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그룹]]에서 임원으로 근무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북도 구미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5년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에 임명되었다. 2005년 골프장에서 시비가 붙어서 건방지다면서 골프장 경비원을 폭행했는데 비슷한 시기 맥주병 폭행을 일으킨 당시 같은 당적의 [[곽성문]]의원 등과 더불어 진보 네티즌들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더 가관이었던건 이때 사용한 도구가 건어물(...)이어서 '오징어 의원'이라는 비아냥이 돌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내 [[친이]]계 수뇌부의 공천학살에 따라 공천을 받지 못하자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후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그리고 한나라당 경북도지부 수석부위원장, 경북도당 운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0년 12월 5일 일왕 축하파티가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소공동에서 열렸는데 거기에 참석하였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었다.
         한번도 당을 버린 적은 없으나, 당으로부터 2번이나 버림받은 비운의 정치인이다. 2008년 총선 당시에야 친박계여서 친이계 당 지도부가 공천을 안줬다지만, 친박 중진이 된 2016년에 '''친박 지도부가 공천을 안주는 사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이에 대해, 비박계를 대대적으로 공천에서 떨어트리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티 안나는 친박 몇 명'''을 미리 낙천시켜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라는 관측이 많았다. 김태환이 친박 중진이기는 했어도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친박 핵심부는 또 아니었기에 그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똑같은 케이스로는 [[서기(정치인)|서기]] 의원이 있는데, 서기가 떠난 지역구는 결국 '''친 야 무소속의 [[홍의락]]'''이 당선되었다.]
  • 김품일 . . . . 9회 일치
         이 때 그는 좌장군(左將軍)의 직을 맡고 있으면서 아들 [[관창]]을 불러 오늘 싸움에서 네가 능히 3군의 모범이 되겠는가 하고 묻고 그렇게 하겠다는 그를 단신으로 나가 싸우게 하였다. 그러나 [[관창]]은 마침내 [[계백]]에게 사로잡혀 죽음을 당하고 베어진 그의 머리만 [[계백]]의 선처에 따라 말안장에 매달려 [[신라]]군에게로 되돌아왔다. 김품일은 [[관창]]의 머리를 잡고 흐르는 피로 옷깃을 적시며 말하기를, “우리 아이의 면목이 살아 있을 때와 다름이 없다. 나랏일을 위하여 죽었으니 다행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본 [[신라]]의 3군은 비분강개하여 백제군으로 진격하여 [[계백]]을 전사시키고 좌평(佐平) 충(忠常) [[]](常永) 등 30여 인을 포로로 잡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다.
         [[661년]]에 이미 멸망한 [[백제]]의 남은 군사들이 다시 [[사비성]]을 탈환하기 위해 침공하자 왕으로부터 대당장군(大幢將軍)에 임명되어 주장군(上州將軍)문충(文忠) 하주장군(下州將軍)의복(義服) 등과 함께 [[백제]]군을 토벌하기 위해 출전하였다. 그러나 군사를 나누어 먼저 가서 두량윤성(豆良尹城)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남쪽에서 주둔할 장소를 살피던 중에 [[백제]]군의 불의의 습격을 받아 패퇴하였다.
         ==== 화 ====
         * '''[[전기광]]''' - 《[[황산벌 (화)|황산벌]]》 <small>(2003년)</small>, 《[[평양성 (화)|평양성]]》 <small>(2011년)</small>
         [[분류:생몰년 미]][[분류:가야의 왕족]][[분류:화랑]][[분류:신라의 정치인]][[분류:신라의 군인]][[분류:육군 장군]][[분류:한국의 장군]][[분류:가족 살해자]][[분류:김해 김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2화 . . . . 9회 일치
          * 웅 입학 시험 당시 요아라시 이나사와 토도로키 쇼토는 묘한 악연.
          * 시간은 흘러 웅고 입학시험.
          * 요아라시는 시험 중 토도로키의 뛰어난 실력을 보고 비록 첫인은 좋지 않았지만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이미 크게 감점을 당한 황.
          * 그러는 사이 갱 오르카는 무자비한 공격으로 토도로키와 요아라시를 리타이어 시킨다.
          * 부하들이 몰려오는 걸 보고 미도리야는 직접 대하려고 한다.
          * 말은 그렇게 하지만 쾌한 캐릭터를 유지하지 못하는게 역시 타격이 큰 듯하다.
          * 토도로키는 쓸데없이 다툰데다 개성의 성도 나쁘도 연계도 최악, 이런 태로 톱 히어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9회 일치
          나이트아이는 미도리야의 시도를 평가절하하며 예지가 성립한 이 미도리야의 움직임은 전부 그에게 보인다고 한다.
          * 나이트아이는 여전히 그가 실패하고 웅크려앉은 모습이 보인다고 도발한다. 미도리야는 초초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나이트아이에겐 그것도 감정대. 위에서는 인간은 쉽게 불안한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되며 알고있는 자는 언제나 비전을 가지고 행동한다, 이미 말해줬던 이 같은 마음가짐을 지금 실현하지 못하는 거냐면서, 나이트아이는 볼 수록 그가 원 포 올을 계승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빈정거린다.
          * 이번엔 미도리야가 사무실의 집기를 마구잡이로 집어던진다. 이런 공격을 맞추려는 의도는 아니다. 만약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미래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 대의 앞으로 행동"을 보는 거라면, 무작위로 날아드는 잡동사니 전부를 예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도리야는 마지막 동작에서 그대로 벽을 박차고 움직일 수도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올마이트]]의 태피스트리를 발견하기 전까진 그러려고 했다. 미도리야는 거기에 처를 입히느니 차라리 벽에 부딪히는걸 선택한 것이다. 나이트아이는 그가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줄 알았지만 지금보니 올마이트 굿즈를 최대한 피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집기를 집어던질 때도 이것들만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 썼다.
          나이트아이의 예지대로 미도리야는 시험에 실패하고 웅크려 앉았다. 그러나 미도리야가 자신의 도발에 격분한 것만이 아니라 냉정하게 황과 대책을 고민하고 있었던걸 눈치챈다. 나이트아이는 그 점에 왠지 조금 웃고 만다.
          >징이 없는 지금의 사람들은 "희미한 빛"이 아니라 "눈부신 빛"을 원하고 있다.
          * 다음날 미도리야는 인턴으로서 첫 일을 받는다. 임무는 패트롤과 "감시". 팀은 나이트아이와 버블걸, 밀리오와 미도리야로 나뉜다. 현재 나이트아이는 "시에핫사이카이"라는 과거의 야쿠자, 현재의 "지정 빌런 단체"를 비밀조사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차기 보스 "치사키", 통칭 [[오버홀]]은 요주의 인물. 나이트아이는 밀리오와 미도리야에게 그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가 묘한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전달한다.
          * 이마에 뿔이 있는 소녀. 소녀는 미도리야와 부딪히고 넘어진다. 미도리야는 아무 생각없이 쓰러진 소녀를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소녀는 이할 정도로 울을 짓고 있다. 난처해진 미도리야 앞으로, 소녀의 뒤로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히어로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소녀에게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9회 일치
          * 류큐는 나이트아이의 요청으로 "시에핫사이카이"의 조사 및 포획에 착수하는데 거기에 우라라카와 아스이도 참가시키기로 한다.
          * [[올마이트]]의 죽음.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그것은 낯설거나 할 수도 없던 것이 아니다. 그저 한동안 잊고 있었을 뿐. [[올 포 원]]과 격전에서 그 가능성을 뼈져리게 체감했다. 그 이전에도 올마이트가 처음으로 그의 처를 보여주었을 때부터 예감은 있었다. 오히려 올마이트의 죽음을 암시하는 단서들이 너무 많아서 한동안 무감각했던 걸지도 모른다.
          * 그러나 미도리야는 이미 그 이야기에 관심을 잃었다. 그는 올마이트가 죽는다는, 나이트아이의 예지가 더 신경 쓰였다. 그 예지가 언제 일이고 절대로 바뀌지 않는 거냐고 묻자 올마이트는 태연한 태도로 당시 기준으로 6, 7년 후라면서 먼 미래일 수록 오차는 생기긴 하지만 예지로 본 장면 자체가 바뀌는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 계산해 보니 예지가 실현되는 시기는 올해나 내년 정도. 미도리야는 현실을 부정하며 올마이트에게 살라고 애원한다. 미도리야는 웅제 때 한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고 말한다.
          >네가 왔다! 라는걸, 세에 알렸으면 좋겠구나.
          * 미도리야가 올마이트에게 진실을 확인할 무렵 "시에핫사이카이"와 [[오버홀]]이 얽힌 사건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에스퍼 거리에서는 빌런단체들 간의 항쟁으로 거대화 빌런 둘이 싸우고 있다.
          * 류큐는 두 사람이 추가돼 전력도 보강됐으니 나이트아이가 요청한 "그 안건"에 응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나이트아이는 시에핫사이카이와 오버홀에 대한 수사에 다른 사무소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그 중에는 현재 [[키리시마 에지로]]가 인턴 활동을 시작한 사무소도 있다. 나이트아이는 여러 사무소의 인원을 팀업해 오버홀 일당을 일거에 처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 수사는 [[빌런연합]]과 연결될지도 몰라 더욱 중요한 일이라 하는데.
          * 그 대는 바로 빌런연합의 [[시라가키 토무라]]. 과연 그가 가져온 "답변"은 어떤 것일까?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9회 일치
         피격당하면 출혈 태에 빠지게 된다. 이때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장탄수가 표시되지 않는다. 재장전 키를 꾹 눌러서 장탄수를 확인 할 수 있지만 "꽉 참/반 이 참/거의 빔"으로만 표시된다.
          지휘관. 소대장이다. 각 진마다 한명 밖에 할 수 없다. 기관단총, 맵 곳곳에 설치된 무전기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강제 리스폰. 죽은 태의 아군 병사들을 즉시 리스폰시킨다.
          야포 요청. 지정한 좌표에 야포 지원을 요청한다. 당히 긴 시간 동안 포탄이 떨어진다.
         대다수 총기의 경우 조준 태에서 마우스 휠을 돌려 점을 조준할 수 있다.
          Marksman의 주무장. 소총과 반자동 소총에 조준경을 달아놓은거다. 조준 태에서 6을 눌러 기계식 조준기로 전환할 수 있다. 볼트액션 방식의 경우 클립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한발씩 장전하므로 장전 속도가 느리다.
          주축군이 공격, 연합군이 방어인 맵. 시가지다. 최초의 두 포인트는 시가지가 아니지만 광속으로 돌파되니 사실 시가지. 연합군의 방어가 거센 곳은 중간의 강과 마지막 포인트인 레닌 광장. 주축군 측은 4호 전차를 사용할 수 있다.
  • 레이프 . . . . 9회 일치
         [[어]]로 [[강간]]이라는 뜻. 일본에서는 직접적으로 '강간'이라는 표현을 꺼리는지, 어로 레이프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뭐 결국 강간이지만.
         [[라틴어]] rapere 에서 왔다. 이 단어는 제압하다, 유괴하다, 뭔가를 강제로 끌고 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드물게 현재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다만 라틴어에서는 이러한 의미로는 stuprare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였다. 원시 프랑스어(Old French) rapir를 거쳐서, 국식 프랑스어(Anglo-French) raper 를 거쳐, 중세 어에서는 rapen, rappen으로 쓰였고, 현대 어로 rape가 된다. 노르만어, 스웨덴어, 저지 독일어 등에도 유사한 단어가 있어 이들과의 연관관계도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 [[크라우저 2세]]의 특기. 초당 10회 이 레이프를 연속으로 발음할 수 있다.
          * 서양권에서는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Rape가 아니라 Leif. 발음 의 차이가 있으니 헷갈릴 일은 없다.
          * 레이프를 하는 사람은 레이피스트(Rapist) 혹은 레이퍼(Raper) 라고 한다. 어권에서는 전자가 널리 쓰인다. 일본에서는 어쩐지 후자를 많이 쓴다.
         [[분류:어]][[분류:일본어]]
  • 마기/319화 . . . . 9회 일치
          * FANFAN회의 "전송마법진"은 그대로 유지해달라는 것.
          * 뢰엠은 황제국과 협력하여 새로운 업권을 형성하겠다 선언.
          * 사건의 진에 대해서는 신드바드에게 물어보라고 하는데, 당연히 그는 반박할 수 없다.
          * 타케루히코는 신드바드측의 반격을 예하는데, 무는 괜한 걱정이라고 선을 긋는다.
          * 그러나 신드바드의 황이 심치 않다.
          * 그에겐 더이 운명이 보이지 않게 된다. 마치 파도에 실려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
          * 항 다윗의 목소리 따윈 자신에게 아무런 향도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지금에 와서는 "의존하고 있었다"고 실토하고 있다.
  • 마기/321화 . . . . 9회 일치
          * 우고의 형이 나타나 신드바드에게 "너는 신의 그릇이 아니다"라고 경고한다.
          * 신드바드 또한 죽을지도 모르는 황에서 "왜 속이 시원한지" 자신을 의아해한다.
          * 그는 "성궁에 가서 세을 구해야 한다"는 것에만 급급해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 한때 그는 자신이 정말로 신의 그릇으로 세의 구세주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 그는 알라딘 일행을 얕봤던 것과, 그들이 자신의 예을 뛰어넘는 것을 보았다.
          * 그리고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과 나 사이엔 차이가 없다"는 것까지 인정하게 된다.
          * 이미 신드바드와 아르바의 몸에는 금같은 것이 나타나며 이징후가 나타난다.
          * 그러나 신드바드는 첫 번째 던전을 공략하고 바알을 얻던 때는 만 명 중 하나의 확률을 돌파했다고 회한다.
          * 아르바는 어떻게 이런 황에서 웃을 수 있냐고 경악한다.
  • 마기/327화 . . . . 9회 일치
          *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전혀 예치 못한 사태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 국제동맹 탈퇴를 선언했던 홍옥이 불현듯 번복을 결정한다. 이야기를 들은 알라딘과 알라비바는 한참이나 이해를 못하다가 귀를 의심하게 된다. 알라딘은 그렇게 숙고해서 결정했던걸 뒤집어도 되겠냐고 묻는데 홍옥은 모두가 의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한다. 이번엔 연홍명이 나서서 말하는데 동맹을 탈퇴하면 당장은 좋을 수 있지만 장기적, 백 년 천 년 뒤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자기들 사후의 먼 미래, "백 년 뒤 천 년 뒤의 평화"까지 지키기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홍명. 홍옥도 거기에 동의하며 황의 내전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누군가 한 명"이 힘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게 신드바드냐고 반문한다.
          너무 일변한 태도 때문에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어리둥절하다. 홍옥도 너무 입장이 바뀌어서 이하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원래 황제국은 "하나의 세계"를 표방하던 나라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수긍하려 한다. 알라딘도 적당히 동의하고 어차피 나라의 일은 자기들이 관여할게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문득 알라딘이 같이 국제동맹을 등진 뢰엠과 귀왜국의 황을 궁금해한다. 사실 이들 나라의 지도자 무 알렉키우스나 야마토 타케루히코는 신드바드를 매우 경계하는 인물들.
          * 귀왜국과 뢰엠의 협력 서약, 혹은 충성 서약을 받으며 흡족해하는 신드바드. 하지만 알라딘과 알리바바에겐 문모를 일일 뿐이다.
         신드바드가 노린 세계의 재구축은 자기 자신의 사을 모든 사람에게 심는 것. 그야말로 물샐틈 없는 사의 지배다. 이는 연홍염이 시도했던 지배보다 훨씬 심각한 독재.
         알라딘은 아직도 그의 성궁 정복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유난 조차 향을 받고 있는데 알라딘이 감지를 못하고 알리바바 또한 향을 받지 않는걸 보면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신드바드는 세계의 대적자이자 희생양으로 알라딘과 알리바바를 골랐을 수도 있다.
  • 마기/331화 . . . . 9회 일치
          * 하지만 모르지아나는 "루프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고 남을 위해 행동하는 알리바바 성격 그 길을 택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 모르지아나는 새삼 지난 일을 회하며 감사와 사랑을 고백한다. 알리바바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루프로 돌아가자고 하지 말아줘"라고 설득한다.
          * 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잘못되었음을 실감한 알리바바. 신드바드와 싸움을 결단한다.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가 루프로 돌아가자고 선언하고 세 사람들은 한결 같이 칭송하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환희가 넘치는 세에서 [[알라딘(마기)|알라딘]]과 [[알리바바 사르쟈]]만이 어울리지 못한다.
          * 알리바바는 어렵사리 "옳다"고 대답하지만, 그것도 잠시.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말한다. 물론 정적인 황이었다면 신드바드의 미치광이 주장에 동조하지 않을 거라고 보지만, 그것 자체가 자신의 바람을 담은 이야기일지 모르겠다고 한다. 알리바바는 혼란스러워하지만 알라딘은 꼭 그의 대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왕의 그릇이 나라를 만드는 자만을 칭하는건 아니라고 말하면서 "괴로울 때 모두를 이끄는 사람", 바르다르 사건 때의 알리바바 같은 인물이 그렇다고 말한다.
          >이 세에서 너를 왕으로 선택했어. 그러니까 나는 네 생각이 듣고 싶어.
          신드바드의 중계는 전세계로 전파됐다. 당연히 모르지아나도 알고 있다. 모르지아나는 알리바바가 자신의 바람과 세의 바람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선택할 거라는 걸 꿰뚫어 본다. 알리바바는 낭패한 표정을 짓지만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한다.
  • 마기/339화 . . . . 9회 일치
          * 백룡은 환 속의 자신을 여러조각내서 그 힘을 황제국의 동료들에게 나눠준다.
          * [[연백룡]]은 자신의 공언대로 혼자 15세의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와 맞선다. [[알라딘(마기)|알라딘]] 일행은 다음 던전으로 출발. 신드바드의 바레포르는 마치 [[구미호]]와 같은 형으로 여러 꼬리가 백룡을 공격한다.
          * 신드바드는 그가 겪은 불행은 곧 솔로몬 왕의 부조리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솔로몬 왕은 죄없는 많은 사람들까지 불행과 고통으로 떨게 했다. 신드바드는 바로 이런 세을 바꾸려 한다. 정의에 행복을, 악에 불행을 주는 마땅한 세계. 그런 "올바른 세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낟.
          >부조리한 세에서 무얼 의심하고 무얼 믿어야 하는가?
          * 신드바드의 질문을 받은 백룡은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속에서 비탄에 빠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다 씩 웃으며 거리낌없이 그 형을 난도질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백룡은 신드바드의 맹점도 꼬집는다. 바로 "주변 사람을 믿지 않는 점".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던전에서 조차 오로지 자신만이 강대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그런 신드바드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다. 백룡 자신도 누님 [[연백]]은 그저 연약하고 지켜주야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다르게 생각한다. 적어도 백에게 만큼은 모든 것을 밝히고 힘과 위험과 책임을 나눠가질 "동료"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것이 지금 백룡의 답이다.
  • 마기/352화 . . . . 9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를 배신하고 다시금 적으로 등장한 [[다윗(마기)|다윗]]. 신드바드가 포기한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작동시킨다.
          * 일행은 힘을 합쳐 다윗 분신체를 파괴하고 지으로 돌아온다.
          * [[알리바바 사르쟈]], [[알라딘(마기)|마기]], [[연백룡]], [[쥬다르]]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를 배신하고 적으로 나타난 [[다윗(마기)|다윗]]을 집중 공격한다. 그러나 어떤 공격으로도 신이 된 다윗을 파괴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윗은 자신이야 말로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마법"을 완성해 보다 위의 신들을 계속 타도해나가겠다 선언한다. 만일 그걸 막고 싶거든 여기서 자신을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알리바바 일행은 반드시 그를 타도하겠다고 말한다.
          * 다윗은 처를 입어도 금방 복구되며 성궁 시스템을 이용해 공격해 온다. 성궁의 방어시스템 특유의 격자 무늬가 떠오르더니 강력한 에너지 공격이 쏟아진다. 이미
          >내 대로 걸맞는 자들이야.
          백룡이 가장 먼저 그 의미를 깨닫는다. 아르바가 [[연옥염]]으로써 벌인 짓과 같다. 결국 진짜 적, 진짜 다윗은 성궁을 떠나 지으로 갔다는 말. 알리바바도 이제야 알라딘을 노렸던 이유를 알았다. 알라딘이 솔로몬의 지혜로 지으로 돌아오는 걸 막기 위해서. 결국 이곳의 싸움은 일행을 묶어두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않았다.
          * 이때를 놓칠 순 없다. 백룡과 알리바바도 엄호한다. 셋의 집중 공격을 받자 다윗도 산산히 조각난다. 우고가 빨리 지으로 가라고 외치고 알라딘이 솔로몬의 지혜를 발동한다.
  • 문성주 . . . . 9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와 [[강릉동대학교|강릉동대]]를 졸업하고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KBO리그 2018년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해 2차 10라운드에서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엠엘비파크]]의 2군 경기 목격담에 의하면 10라운드 지명임에도 불구하고 퓨처스에서 1번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 중이라고 했다. 성적도 시즌 초반이지만 3할 이의 고타율에 홈런도 3개나 쳤다. 하위라운더 지명자이지만 의외로 잠재력이 있는 듯했다. [[류중일]] 감독도 인터뷰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6월 23일 1군 데뷔 첫 번째 타석에서 [[박시]]을 대로 초구를 공략하여 안타를 치며 기대감을 높였다. 연이어 터진 김현수의 쓰리런으로 데뷔 첫 득점까지 기록한 것은 덤.
         시즌후 무에 지원했으나 떨어지고 [[2019년]] [[1월 10일]] 현역 입대가 확정되었다.
          * 대졸선수이지만 동갑인 1997년생인데, 대학교를 2년제 대학인 강릉동대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같은 팀 선배(9년 선배)인 [[김지용]]도 강릉동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김지용은 대학을 1년 더 다녔다.]
  • 박승호 (야구인) . . . . 9회 일치
         |문 표기 = Park Seung-Ho
         |사진 사이즈 =
         |출신지 =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시]]
         * [[1990년]]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골든 글러브 지명타자]]
         군 복무를 마친 뒤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83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0 시즌]]에는 [[지명 타자]]로서 110경기에 출전하여 0.307의 [[타율]], 75 [[타점]], [[홈런]] 20개, 0.505의 [[장타율]]을 기록하였고,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자 (지명 타자)|골든 글러브 지명 타자 부문]]을 수하며 자신의 선수 경력에 있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하지만 [[1990년]]을 제외한 나머지 시즌에선 대체로 2할 중후반대의 타율과 4할대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아주 뛰어난 선수로 기억될 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그는 비록 1980년대 함께 뛰었던 팀 동료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와 같은 커다란 업적을 남긴 수퍼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한 선수로서 통산 11시즌을 보내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매일신문]] - 2009년 8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060&yy=2009 "삼성 ‘골고루 한방’이 4강권 이끈다"]</ref>
         [[200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0 시즌]]부터 박승호는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겨 4년간 타격코치로서의 일을 계속 이어 나갔고, [[2004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4 시즌]]부터는 팀을 옮겨 [[KIA 타이거즈]] [[김성한 (1958년)|김성한]] 감독, [[서정환]] 수석코치의 지휘 아래 타격코치 생활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8&aid=0000027357 기아 김성한 감독 재계약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481897 <프로야구소식> 박관용 국회의장, KS 1차전 시구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09800 KIA, 서정환 2군감독 1군코치 임명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09720 최하위 기아 코칭스태프 개편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KIA 타이거즈]] 코칭 스태프 개편을 통해 [[서정환]]이 감독으로, 박승호가 수석 코치로 승격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190864 <프로야구소식> KIA, 코칭스태프 보직 확정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7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7 시즌]] 전반기에는 팀 성적이 최하위에 머물면서 6월에 대대적인 코칭 스태프 개편이 있었고, 수석 코치로 있었던 박승호는 2군 감독으로 보직이 이동되었다.<ref>[[마이 데일리]] - 2007년 6월 기사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6181438192229 "KIA, 조범현 전 SK 감독 입 등 코칭 스태프 개편"]</ref><ref>[[한겨레]] - 2007년 6월 기사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216991.html "기아 1·2군 코치진 맞교체… “분위기 쇄신” 효과 관심"]</ref> 2007 시즌이 끝날 때까지 끝내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KIA 타이거즈]]는 시즌 후 [[서정환]] 감독을 경질하였고, [[2007년]] 시즌 중 배터리 코치로 입했다가 새로 선임한 [[조범현]] 감독이 코칭 스태프를 새로 구성하면서 그는 구단과 재계약하지 못했다.<ref>[[스포츠 칸]] - 2007년 10월 기사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212230173&sec_id=510201 "조범현 감독 KIA 코치진 물갈이"]</ref> 하지만 그가 키워냈던 [[이용규]]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우뚝섰다.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
  • 박승효 . . . . 9회 일치
         박승효(朴勝孝, [[1933년]] ~ )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전문 경인이다. [[1969년]] [[선경합섬]]의 창립 초기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무, 이사, 전무이사와 [[선경그룹]] 계열사인 [[요트]][[제조]]부문 [[선경머린]]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그밖에 신풍제지 대표이사, [[동국무역]] 전자사업부문([[동국전자|동국종합전자]]) 대표이사, [[엔씨에스시스템]] 공동대표 등 전문 경인으로 활동했다.
         * [[1971년]] [[선경합섬]] 업담당 이사<ref name="daeghanj"/>
         * [[1973년]] [[선경합섬]]
         * [[1974년]] [[7월 2일 [[선경합섬]] 무<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4070300209202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4-07-03&officeId=00020&pageNo=2&printNo=16232&publishType=00020 ]</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4070200099204010&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4-07-02&officeId=00009&pageNo=4&printNo=2563&publishType=00020 ]</ref>
         * [[1976년]] [[4월 1일]] [[선경합섬]] 무, 폴리에스테르원사, [[원면]] 판매및 판촉담당<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3300020920202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3-30&officeId=00020&pageNo=2&printNo=16766&publishType=00020 ]</ref>
         * [[고려대학교]] 과대학<ref name="daeghanj"/>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최고 경자]][[분류:SK그룹]][[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칠용 . . . . 9회 일치
         {{화인 정보
         * [[1985년]] [[연성대학교|안양공업전문대학]] 연극화학과 전문학사
         * [[1992년]] [[명지대학교]] 대학원 연극화학과 예술학 석사<ref>[[1990년]]에 입학하여 [[1992년]] [[1992년 2월|2월]]에 석사 학위</ref>
         * [[1997년]] [[MBC]] 《[[웅신화]]》
         * [[2010년]] [[KBS2]] 《[[공부의 신]]》 ... 하길 역
         * [[2015년]] [[MBN]] 《[[기막힌 이야기 실제황]]》 ... 각종 단역
         === 화 ===
         * [[2001년]] 《선의 편지》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69년 데뷔]][[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조치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성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대학원 동문]]
  • 박화랑 . . . . 9회 일치
         |문 표기 = Park Hwa-Rang
         |사진 사이즈 =
         2009년 [[제4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을 비롯 [[제31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제90회 전국체육대회|제90회 전국체전]] 우승을 이끌며 우수 투수 등의 개인 및 청소년 대표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180568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청대' 출신 박화랑, 와신담 끝에 삼성 '신고선수' 출발!] 《조이뉴스》 2010년 3월 9일</ref>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브로포스 . . . . 9회 일치
         Broforce. 2015년 10월 15일 발매된 [[런앤건]] 슈팅게임. 액션 화 주인공을 패러디한 집단인 "브로포스"가 세계 각지에서 테러리스트에 맞서 싸우는 게임이다.
         [[코만도]]와 같은 "붕붕펑쾅"스러운 액션물의 향을 받은 게임이라 곳곳에서 폭발물이 난무한다. 거기에 브로가 휩쓸려 죽을수도 있으니 주의.
          6번째 임무의 보스. 화 [[유니버설 솔져]]의 앤드류 스콧/GR13을 패러디한 캐릭터. 로켓 난사, 수류탄 던지기라는 두 종류의 패턴을 번갈아 사용하며, 가끔씩 공중으로 뛰어올라 플레이어를 내려찍으려고 한다. 체력을 전부 깎아도 잠시 쓰러져있다가 부활하므로 낙사시켜야만 한다.
          추가 생명 1을 얻고 다른 브로를 해금하기 위해 구해야 할 녀석들. 그냥 부딪히면 구해진다. 인질이 죽어도 구할 수 있지만 시체 자체가 으깨지는 황이 되면 구할 수 없으니 주의.
          밑에 아무것도 없는 황에서 건드리면 흔들흔들거리다가 떨어진다. 깔리면 뒈짓.
          * 무기
          성조기가 그려진 자에 들어있다. 특수공격 소지량을 최대로 채워준다.
          알통 포즈를 한 팔이 그려진 자에 들어있다. 사용하면 일정 시간동안 적들이 브로를 피해다닌다. 획득시 컷신을 보면 아무리봐도 [[스테로이드]]다.
          람브로를 이용해 테러리스트의 소굴을 소탕하고 보급품을 되찾아야한다. 수류탄의 활용 방법을 익힐 수 있다. 클리어하면 무기자가 해금된다.
  • 블랙 클로버/100화 . . . . 9회 일치
          * 바네사는 절망한 마녀왕에게 이 마법은 자신과 인연이 맺어진 가족 편만 들어주며 "나와 당신 사이엔 인연은 없다"고 선언한다.
          * [[바네사 에노테이커]]로부터 뿜어져 나온 "운명의 붉은 실"은 한데 뭉쳐 고양이의 형으로 변한다. 바네사는 이런 형태로 이미지하지 않았는데 고양이가 나타나자 의아해한다.
          * [[마녀왕]]은 바네사에게 기대하고 있던 "운명을 조종하는 힘"이 각성한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걸 시험하기 위해 조종하던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게 [[노엘 실버]]를 죽이게 한다. 바네사가 안 된다고 외치자 고양이는 그 목소리에 반응한 것처럼 뛰어올라 아스타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저 아스타를 만진 것 뿐, 어떤 향을 준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마녀왕은 딱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이해하면서도 그대로 아스타가 노엘의 목을 치도록 조종한다.
          * 그런데 황은 다시 되풀이된다. 아스타는 아직 검을 휘두르지 않았고 노엘은 무사하다. 마녀왕이 기시감을 느끼려는 찰나, 자신도 모르게 말하고 있다.
          자신이 그 말을 했었다는걸 알고 있다. 그 순간 아스타는 아까와는 달리 십자가의 밑둥을 잘라서 노엘을 해방시킨다. 마녀왕은 뭔가 잘못됐다는걸 느끼기 시작했지만 아스타는 여전히 조종당하는 태.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노엘을 다시금 공격한다. 그때 또 한 번 고양이가 달려와 아스타에게 닿는다.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아스타의 검은 노엘의 가슴을 관통하고, 마녀왕은 이번에야 말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이번에도 황은 몇 초 전으로 되돌아간다. 마녀왕이 봤던 장면은 환처럼 사라져버린다. 아스타는 노엘을 찌르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의식으로 마녀왕의 조종에 필사적으로 저항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마녀왕이 [[핀랄 룰러케이트]]를 공격하게 하지만 마찬가지 결과였다. 마녀왕은 한 번 그가 죽임 당하는걸 보지만 그 현실은 금방 사라지고 공격이 실패한 장면으로 대체된다.
          >나와 당신 사이에 인연 따윈 없었어.
  • 블랙 클로버/108화 . . . . 9회 일치
          * 매우 호걸스러운 성격의 누님으로 언제나 위권에 랭크하던 사자단이 이번엔 5위밖에 하지 못했다고 단원들을 엉망진창으로 매도한다.
          * 성격 심드렁한 유노와 달리 아스타는 감동적인 장면이라도 인 깊게 보고 있다. 과연 새 단장은 이들을 어떻게 맹훈련시킬까? 그런데 그 난리를 쳐놓고 새 단장의 입에서 나온 첫 훈련은 "온천합숙"이었다. 단워들이 문을 몰라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 한편 성과발표회를 땡땡이 쳐버린 [[야미 스케히로]]는 단장들이 모여있는 장사에 희희낙락한 면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행사를 날려먹었다는 죄책감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같이 땡땡이를 친 [[샬롯 로즈레이]]는 숙취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비실거리면서 따라들어온다.
          야미는 들어오자마자 "검은 폭우보다 밑에 있는 단장들"이라고 어그로를 시전한다. 올해는 검은 폭우가 2위를 했으니 사실 금색의 여명의 [[윌리엄 벤전스]] 외에는 전원이 대. 은익의 참수리의 [[노젤 실버]], 자줏빛 범고래의 새 단장, 취록의 당랑의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는 유독 아니꼬와한다. 잭이 "만년 꼴찌 주제에"라고 받아쳐보지만 "그 꼴찌한테 졌다"는 반격엔 할 말이 없다. 자줏빛 범고래의 단장은 그보단 지각한 것을 지적해 보지만 딱히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
          * 결국 다른 단장들은 씁쓸하게 돌아가고 야미만 남들을 실컷 놀려먹었다. 야미는 혼자서 급승 기념주를 마셔야겠다고 히죽거리는데 바라지 않던 불청객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다. 막 아스타와 유노를 포획한 레오나가 야미한테까지 온 것이다. 야미는 그녀와도 구면이어서 "누님레온"이라 부르는데, 레오나는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야미는 붙잡힌 아스타를 보고 낄낄거리는데 곧 같은 신세가 된다. 레오나가 "공적 발표에 지각은 커녕 아예 결석을 했으니 기합을 넣어주겠다"는 명목으로 그도 온천합숙에 강제합류시킨다. 야미는 "이제 나는 단장이다. 부끄러우니 그만둬라"고 저항해보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 하는 말로 보면 이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
          * 그렇게 해서 시작된 "엄청 편한" 온천 합숙. 그 합숙지는 세의 멸망이 시작된 듯한 등산로, 강마지대 중 하나인 "유르팀 화산"이었다. 화산인 주제에 등산로도 있는 걸 보면 관광객이 있긴 하나 보다. 온천이란 이름에서 억만년 정도 동떨어진 풍경을 마주하고 굳어버린 일행. 의욕을 내는건 레오나 뿐이다.
  • 블랙 클로버/117화 . . . . 9회 일치
          * 오빠가 한 없이 부끄럽기만 한 [[미모사 버밀리온]]과 달리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경탄을 금치 못하며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면 예의으로라도 좋게 대꾸할 법도 한데, 키르슈는 아스타에게만은 가차없었다.
          * 그렇게 해서 시작된 시합. 핀랄은 자신이 장담한 것 이의 대활약을 펼친다. 레오와 하몬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뿐만 아니라 적의 약점을 꿰고 있어 두 사람을 적당한 대와 대전시켰고 지형도 정확히 파악해 예측하기 어려운 위치에서 공격할 수 있게 해줬다. 적은 물론이거니와 평소 검은 폭우를 얕보고 있던 하몬 조차도 대단한 공간 마도사이며 왜 지금껏 무명이었는지 몰라한다.
          * 외곽에서 적 마법기사를 처리한 레오가 곧 적 크리스탈의 공으로 옮겨진다. 레오도 핀랄의 공간 마법에 대만족했다. 기회가 주어지자 전력을 다한 마법으로 크리스탈을 파괴, 승리를 거머쥔다.
          핀랄의 활약은 그간 평가절하 당했던 검은 폭우에 대한 인마저 뒤바꿔놓았다. 앞선 두 시합에서 아스타, 매그너가 연이어 활약한 이후여서 올해의 검은 폭우는 확실히 다르다는 평가가 늘었다. 지극히 온당한 여론이었지만 금색의 여명 소속인 어떤 마법기사에겐 신경에 거슬렸다.
          * 이제 시합은 4시합으로 넘어간다. H팀과 G팀의 대결. G팀에는 아스타하곤 악연으로 얽힌 청동 마법의 [[셋케 브론자차]]가 있었다. 취록의 당랑 소속 5등 하급 마법기사. 대부분 튀고 싶어서 안달난 기사들 가운데, 셋케만은 여기에 와서 대후회, 못 올 곳에 왔다는 기분이다. 시합에서 예을 뛰어넘는 강자들이 난무하자 자신감을 실해 버린 것. 그가 참가한 것도 단장인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가 권한 걸 넙죽 받은 탓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다. 물빛의 환록 소속 [[프라길 토르멘타]]란 여기사와 한팀이었던 것이다. 3등 중급 마법기사. 조용해 보이는 여성으로 검은 폭우의 하급 기사들이 저토록 활약했으니, 같은 하급인 셋케도 사실은 강한 축이이지 않냐며 지레 짐작을 해왔다. 여자라면 물불 안 가리는 셋케가 언제 쫄았냐는 듯 허세를 떤다. 그런 것치곤 내놓는 전술이 허무맹랑하다. 자신의 마법인 "셋케 슈팅스타"로 폭주를 감행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전술. 그런데 여기서 세 번재 인물, 금색의 여명 1등 급 마법기사 [[란길스 포드]]가 괜찮은 전략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 블랙 클로버/61화 . . . . 9회 일치
          * 아스타를 대하던 문어 가면은 자신은 연체마법을 사용해서 모든 타격을 흘려보낼 텐데 어째서 당한건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 매그너, 고슈, 락은 각자 전의가 충천해서 다음 대를 찾아 떠난다.
          * 특히 그중 셋은 급 마법기사에 해당하는 실력을 가졌다는데.
          * 맛있는 걸 먹고 기분이 좋아진 챠미는 예외로 의욕이 발동해 대해주겠다고 한다
          * 사실 대사제가 자신의 할아버지인데, 승부에서 이기면 지에 올라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 그건 바로 지에서 마력컨트롤 특훈을 도와주었던 카호노였다!
          * 예대로 노엘의 적은 카호노. 해저신전에는 간단히 지으로 올라갈 수 있는 수단이 있을지 모른다.
  • 블랙 클로버/63화 . . . . 9회 일치
          * 그 시각 지.
          * 그 마법기사단은 급마도사도 포함된 50여명이었으나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패했다.
          * 하지만 마음에는 들었는지 "을 주마"라며 짐승마법 "치타 차지"와 짐승마법 "베어 클로"로 지오를 공격
          * 락과 매그너가 심기일전한 태로 일어선다.
          * 일종의 창성마법처럼 동물의 신체나 특징을 그대로 구현하는 것. 신전에 침입할 때 나타난 고래의 형도 그의 마법으로 보인다.
          * 베토의 부하도 당히 강력한 마도사. 야미가 베지 못하는 수준의 공간마법을 구사한다.
          * 핀랄을 여전히 의욕이 없고 도망칠 궁리나 하는 듯 하며 바네사는 그 사이에 술을 더 마셨는지 태가 좋지 않다. 챠미는 여전히 자는 중. 그레이는 마법의 속성 전투에 유리하지 않을 거 같다.
  • 블리치/691화 . . . . 9회 일치
          * 우류는 "안티서시스", 두 지점의 모든 황을 역전시키는 능력으로 하쉬발트에게 타격을 준다.
          * 하쉬발트는 우류의 능력이 유하바하에게 카운터가 될 거라고 말하지만 하필 더 밸런스는 안티서시스의 극성이라 다시 우류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
          * 이치고가 눈앞의 찰나의 앞날에 향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유하바하는 올마이티로 볼 수 있는 모든 미래에 간섭할 수 있는 것.
          * 지정한 두 지점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을 "역전"시키는 능력이다.
          * 발동과 함께 지금까지 우류가 입은 부이 전부 하쉬발트에게 전가된다.
          * 하지만 하쉬발트는 "나와는 성이 안 좋다"며 더 밸런스를 발동, 자신의 "불운"을 우류에게 되돌린다.
          * 우류가 하쉬발트에게 부을 입히는 "행운"은 동량의 "불운"으로 되돌아가고 거기에 하쉬발트 본인이 받은 불운이 프로인트 실드로 다시 한 번 돌아가므로, 결국 우류는 능력을 쓸 수록 배가되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 그러한 황에서도 우류는 이치고에게 향하려 필사적이고, 하쉬발트는 그걸 비웃으며 "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철회한다"고 말한다.
          * 이치고는 전의를 실하고 유하바하에게 일방적으로 당한다.
  • 블리치/698화 . . . . 9회 일치
          * 1층에서 이러는 사이 2층에선 이치고의 아들 쿠로사키 카즈이(黒崎一勇(かずい))가 이한 구멍이 있는걸 발견한다.
          * 카즈이가 그 구멍에 손을 집어넣자 소울 소사이어티에 있던 유하바하의 기운이 사라진다.
          * 이시다도 가업을 이었으며 병원 옥에서 혼자 차드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소울 소사이어티에서 준동하는 유하바하의 힘이 흘러나오고 있다.
          * 유하바하가 소멸하던 때를 회하는 아이젠.
          * 그는 현세는 물론 소울소사이어티나 웨코문드도 하나의 세계로 만들려고 했다.
          * 삶과 죽음 조차도 경계를 없애서 필멸자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는 세을 만들려 한 것이다.
          * 아이젠은 그 세계엔 분명 공포는 없겠지만 희망도 없는 세이라 말한다.
  • 사회 . . . . 9회 일치
         본래 '소사이어티'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임]]에 가까운 단어였다. 지금도 어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가 어쨰서인지(…) 서로간에 특정한 이해관계나 안면조차도 없는 일반인들의 광범위한 호작용까지도 소사이어티라고 부르면서 그러한 의미로 확장되었는데, 이러한 의미의 소사이어티는 사실 본래 뜻과는 거의 아무 관도 없는 단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체 애덤 스미스는 왜 이한 용도로 단어를 썻는지 모르겠다.
         === 악의 조직 '소사이어티' ===
  • 서석구 . . . . 9회 일치
         |출생지 =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소속기관 = 법무법인 남 대표 변호사
         |직책 = 대한민국 경남도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예하 판사
         [[1982년]]에 판사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98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7년]]에는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발표한 [[4·13 호헌 조치]] 규탄 성명에 참여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대표, 대구YMCA 이사, 낙동강살리기운동협의회 집행위원장, 대구사회연구소 이사장 등 대구광역시, [[경북도]]의 여러 시민 단체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다.
         1980년대에는 대구광역시, 경북도에서 활동하던 운동권 인사의 변론을 도맡았을 정도로 [[진보주의]] 성향의 법조인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운동권과 결별하면서 [[보수주의]] 성향으로 전향하게 된다. 그 외에 대구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 대구지방변호사회 부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총무이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본부 대표, 대한민국정체성수호포럼 공동대표, 미래포럼 임대표 등을 역임했다.
         [[2013년]]에는 자신의 SNS에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이재명 (1964년)|이재명]] 성남시장, [[김성환 (1965년)|김성환]] 노원구청장을 [[종북주의]] 성향의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비난하여 [[2014년]] 지방 선거([[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에서 퇴출시켜야한다는 글을 올려 명예훼손, 모욕 등의 혐의로 인한 민·형사 고소를 당했던 [[정미홍]]의 소송을 담당했다. 정미홍은 서석구, [[전원책]] 등 8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변호인단을 통해 재판에 나섰지만 패소했고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게 된다.
         [[2015년]]에는 사단법인 대한민국사랑회로부터 제8회 우남 이승만 애국을 수했다.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법률고문으로 재직 중이던 2016년에는 어버이연합에 대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자금 지원 의혹, [[청와대]]의 어버이연합 개입 의혹을 적극 반박했다.
  • 서울특별시장 . . . . 9회 일치
         === 법률적 위 ===
         수도라는 특성과 국가의 최대도시로서 행정적 특수성을 반하여, 서울특별시장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장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1962년 1월 27일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1988년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이를 개정한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서울특별시는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 정치적 위 ===
         법률적 위에 더해서, 지방자치제 부활과 민선 이후 서울특별시장의 정치적 위은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에 더욱 커진다.
          * [[서울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인구, 경제 측면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서울시를 운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비전과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
          * 선출직 최고위 [[대통령]]과 장관급인 서울시장 사이에는 총리, 부총리 등 많은 지위가 있으나, 이는 임명직이기 때문에 '선출직'만 따지면 서울시장은 '대통령 바로 다음'에 오게 된다.
         제2공화국 시기에 최초의 민선시장 김돈 시장이 선출되었으나, 5.16 쿠데타로 별다른 개혁 활동을 하지 못하고 은퇴하였다.
         1962년 「서울특별시행정에관한특별조치법」에 따라서 서울시와 서울시장의 법적 대우가 향되어, 종래의 내무부 소속에서 국무총리 직속이 되었다. 서울특별장은 별정직이 되었고, 국무회의 출석권을 얻게 된다.
  • 성격 . . . . 9회 일치
         각 개인이 지닌 특유한 성질이나 품성. 현실에서건 가에서건 '그 인물(경우에 따라서는 생물)'을 규정짓기 때문에 각 인물(생물)이 반드시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해당 없다 카더라.~~ 개성(Character)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성격이 사회적 향이나 입장 등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변형되는 것과 달리 개성은 선천적인 것이라서 그러한 경우가 거의 없다([[http://wp.chch.kr/marry1219/?p=4637|참고]]).
         창작물에서는 캐릭터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현대로 올수록 사건이 자연의 변화가 아닌 인물간의 호작용(주로 대립과 분쟁)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캐릭터가 확고할수록 줄거리를 풀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캐릭터가 부정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며, 장르에 따라 등장인물들에게 주로 권장(?)되는 성격이 달라진다.
         사실 성격의 분류라는 것은 심리학적인 측면이 크지만 인간에 대한 탐구란 끝이 없기 때문에 쉽게 정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편의 간단히 다루기로 한다.
         ||<:>세의 소금||<:>수호자||<:>예언자||<:>과학자||
         자세한 것은 [[https://www.16personalities.com/ko/%EC%84%B1%EA%B2%A9-%EC%9C%A0%ED%98%95|16Personalities]]를 참고. 단 마이어스-브릭스 검사도 인간의 성격을 16가지로 단정할 수 없다고 비판을 받는데다, 해당 사이트는 이해를 위해 더욱 간략히 작성되어 있으므로 주의할 것.
         또한 위의 8가지 기본 감정들이 3단계에 걸쳐 간격이 달라질수록 24가지로 달라진다고도 표현했다. 원문(어)은 각각 단어가 다르지만 번역 똑같아진 부분들이 있으니, 자세한 것은 위의 링크를 참고.
          9. 신뢰 + 슬픔 = 감
  • 송언석 . . . . 9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 ||
         ||<bgcolor=#C9151E> '''{{{#FFFFFF 지역구}}}''' ||<(> 경북도 [[김천시(선거구)|김천시]] ||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20대 국회의원[br]기획재정부 제2차관[br]기획재정부 예산실 실장[br]자유한국당 경북도 김천시 당협위원장[br]국민대학교 특임교수[br]제29회 행정고시합격 ||
         1963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대구[[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 시스템|뉴욕 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계파는 [[친홍]]계로 분류된다.[* 송언석 의원이 [[박근혜정부]] 시절에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일하면서 친박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아시다시피 송언석 의원은 [[배현진]], [[길환]]과 같이 [[홍준표]]에 의해 자유한국당에 입되면서 친홍 인사로 분류된다.]
         [[이철우(1955)|이철우]]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당협위원장직을 사퇴하자 2018년 2월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여 김천시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질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경북도 김천시 [[선거구]]에 출마할 후보로 [[공천]]되었다.
         || 2018 || [[2018년 재보궐선거|재보궐선거]] (경북 김천 국회의원) || [[자유한국당]] || '''39,323 (50.32%)''' || '''당선 (1위)''' || '''초선'''[* 전임자 [[이철우(1955)|이철우]] 경북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 ||
         [include(틀:제20대 국회의원/경북도)]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9회 일치
         반 인간, 반 기계로 된 --짝퉁 아이언맨 같은-- 적이 나타나, 슈퍼맨에게 실의 고통을 알려주고 싶다고 소리치며 카라에게 도전을 한다. 카라와 대결하던 적은 아머가 손되자 도주한다.
         맥스웰 로드는 자기 소유의 연구소에서 시속 500km까지 나올 수 있는 새로운 자기부열차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리액트론이 연구소에 난입해와서 핵분열 기술자를 찾는다. 리액트론은 기술자를 한 명 납치가려고 하는데, 맥스웰 로드는 자신이 나서서 잡혀간다.
         맥스웰 로드는 리액트론에게 자신의 회사에 오면 치료를 해주겠다고 협을 걸지만, 리액트론은 받아들이지 않고 맥스웰 로드에게 자신의 기계를 고치라고 강요한다.
         카라는 제임스에게 어떻게 슈퍼맨이 자신을 이렇게 빨리 도와줬냐고 추궁보는데, 제임스는 슈퍼맨이 자신에게 준 연락용 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이 연락을 했다는걸 밝히는데, 카라는 자신을 믿지 않았다면서 화를 내고 이렇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진정한 웅이 될 수 있겠냐며 심한다. 알렉스는 카라를 위로해준다.
         카라는 제임스를 만나러 가는데, 로이스의 여동생 루시 레인이 제임스를 만나러 왔다. 루시는 제임스에게 관계를 끝내기는 싫었다면서 저녁 식사를 제안하고 제임스는 그걸 받아들여, 카라는 심한다.
         심해있던 카라에게 클락이 메시지를 보내오며, 리액트론을 물리친 것을 칭찬해준다. 다시 기운을 되찾은 카라는 알렉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사이렌을 듣고 날아간다.
  • 스틸오션 . . . . 9회 일치
          연돌을 맞으면 손된다. 박살나면 기동성이 개판이된다.
          함체의 측면을 처맞으면 손된다.
          사람들 대로 하는 모드.
          봇들을 대로 싸우는 모드.
         === 국 ===
         구축함, 전함, 항공모함 밖에 없는걸로 보아 아직 미완성으로 보인다. [[스틸오션/국]] 페이지 참조.
         제작사가 중국 회사라 그런지 등장. 현재로는 7티어 프리미엄 구축함 Anshan 과 7일 연속 접속 보인 Ning Hai 밖에 없다.
         로비의 전체채팅방 놈들이 어가 아니라 자국어로 떠든다. 가끔 싸우기도 한다.
         [[http://store.steampowered.com/app/390670/|스팀 점페이지]]
  • 스틸오션/영국 . . . . 9회 일치
         >왕립해군은 1916년 부터 1917년 까지 55척의 R-클래스 구축함을 건조했다. 이 숫자에는 이중 굴뚝을 장비한 개량형도 포함되어있었다. R-클래스 구축함은 초기 M-클래스 구축함의 개량형이었다. 두척을 제외한 대다수의 R-클래스 구축함이 1930년대 퇴역하였다. 레이디언트(Radiant)는 왕립태국해군에 넘겨져 1957년까지 현역이었으며, 스케이트(Skate)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기뢰부설함으로 개장되어 제2차 세계대전까지 살아남았다. 스케이트는 노르망디 륙작전 호위선단에 참가하기도 했다.
         >A/B-클래스 구축함의 설계는 국 구축함사(史)의 이정표다. 소해임무에 중점을 둔 A-클래스와 대잠임무에 중점을 둔 B-클래스의 가장 큰 개선점은 파슨즈 기어드 증기 터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A/B-클래스 구축함은 활동적이었다. 1940년, 여섯척의 A/B-클래스가 노르웨이 전역에 참전해 훌룡한 성과를 거뒀다. 코드링턴(Codrington)은 됭케르크 철수작전에 참가해 네덜란드 왕가를 구출했다. 아카스타(Acasta)와 아던트(Ardent)는 항공모함 글로리어스(Glorious)를 호위하던 중 독일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를 격침시켰지만 독일군 어뢰에 피해를 입었다. 대서양 전역에서 불독(Bulldog)은 독일 잠수함 U-110을 나포해 처음으로 에니그마 암호 작성기를 확보하였다. A/B급에 의해 U-110외에도 7척의 주축군 잠수함이 최후를 맞았다.
         >Q-클래스는 전시비계획 구축함의 한 함급이다. Q-클래스와 R-클래스는 보다 큰 선체와 사각형 함미를 채용하였다. 이 함급의 대공포에는 4연장 2파운드 대공포 "폼폼포"와 오렐리콘 대공포가 포함되어 있었다. Q-클래스와 R-클래스의 순항거리는 약 6,000해리였다.
         >알미란테 코치라네(Almirante Cochrane)는 칠레 해군이 국에게서 구매한 선박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이 함선은 국왕립해군이 사용하게 되었다. 여러번의 재설계 끝에 항공모함 "이글"(Eagle)로 개장되었다. 1930년대에는 홍콩에 배치되어 해당 지역의 많은 해적을 소탕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지중해로 옮겨가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Admiral Graf Spee)를 쫓는 임무를 맡았다. 1940년 7월, 토브룩에서 세척의 이탈리아 구축함과 한척의 잠수함에 의해 함재기가 파괴되었다. 고장으로 타란토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942년 8월, 몰타로 가는 네번째 수송선단을 호위하던 중 독일 잠수함 U-73에 의해 스페인 마요르카 근처에서 격침되었다.
         >HMS 허미즈는 원래 장갑순양함으로 건조되었으나, 1942년에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적은 배수량과 지나친 무장으로 내항성은 보잘것 없었으며 대형기를 탑재하지도 못했다. 1939년, HMS 허미즈는 국해안에 배치되었다. 프랑스가 항복한 후, 허미즈는 다카르에 정박하고 있던 프랑스 전함 리슐리외(Richelieu)를 공격했다. 1942년, HMS 허미즈는 아시아의 일본 육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동양함대에 배치되었다. 1942년 4월 9일, 실론 섬의 트링코말리 항 근처에서 일본군에게 발견된 허미즈는 함재기 85대의 공격을 받았다. 15분 만에 37발의 직격탄을 맞고 격침된 허미즈는 함재기에 의해 격침된 최초의 항공모함이 되었다.
         >HMS 유니콘은 정비실이 설치된 항공기 수리함 겸 경항공모함이었다. 1943년 3월에 건조된 후, 대잠임무와 훈련임무에 주력해왔다. 1943년 12월, HMS 유니콘과 다른 호위항모 4척으로 구성된 V기동함대는 아발란체 작전(Operation Avalanche)에 투입되었다. 1944년, 태평양으로 보내져 MONAB(Mobile Naval Air Bases)의 창설을 도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잠시 예비역으로 있다 싱가포르에 배치되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항공기 수송과 연방 항모 보급 임무를 맡았다. 1953년에는 북한 해안에서 포격 당하기도 했다. 1959년 6월 퇴역하여 해체되었다.
         >워싱턴 해군 조약 이후, 국은 두척의 대형 경순양함 HMS 뱅가드(HMS Vanguard)와 HMS 커레이져스(HMS Courageous)를 항공모함으로 개장시켰다. 이는 1920년대 있었던 HMS 퓨리어스(HMS Furious)의 개장에 기반을 두고있었다. 우현에 연돌을 추가한 두 선박은 당시에는 최신 항공모함이었다. 2차대전이 발발한 후, HMS 커레이져스는 아일랜드 해안 초계 중 독일 U-보트 U-29에게 공격받았다. 어뢰 두개가 좌현에 명중했고, 커레이져스는 침몰했다. 글로리어스(Glorious)는 그라프슈페(Graf Spee) 수색을 위해 지중해에 파견되었다. 1940년 4월에는 노르웨이 해전을 도왔다. 1940년 6월 8일, 나르비크에서 귀환하던 중 독일 순양함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와 그나이제나우(Gneisenau)에게 격침되었다.
         >넵튠의 성능에 실망한 왕립해군은 오리온급 전함의 주포탑 전부를 중심선에 배치했다. 독일 전함을 대하기 위해 더 큰 343mm 주포를 장비하였다. 훗날 이 특징은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특성이 되었다. 오리온급 전함 네척 모두 1915년에 현대화 개수를 받았다. 유틀란트 해전 당시 제2전함전대에 배치되었다. 퇴역 후, 모나크(Monarch)는 표적함이 되어 리벤지(Revenge)에게 격침되었다. 썬더러(Thunderer)는 원양항해 훈련함으로 사용되다 1926년 매각, 해체되었다.
  • 식극의 소마/178화 . . . . 9회 일치
          * 에리나는 유년시절 비지니스로 바쁘기만 했던 시절을 회한다.
          * 소마, 타도코로와 어울리며 세을 보는 눈이 달라진 에리나.
          * 소마 일행의 다음 대는 십걸의 린도?
          *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사업적인 시각으로 세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던게 아닌가 회의감에 젖는다.
          * 둘이서 괜찮은 맛집을 찾았는데 메뉴가 너무 많아서 둘만 가지고는 소화가 안 되는 황이 돼버렸다.
          * 친구들과 평범하게 교류하고 사귀면서 세삼 세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에리나.
          * 반역자팀의 3차 시험은 전원 십걸이 대.
          * 소마 일행의 다음 대는 린도.
          * 객관적으로 십걸을 대로 정면승부를 할 수 있는 기숙사 인원이 별로 없기 때문에 3차 시험에서 대량으로 탈락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식극의 소마/191화 . . . . 9회 일치
          * 아라토 히사코, 십걸 사이토와 대결에서 패배.
          * 십걸 네네는 이의 3인 퇴학을 확정한다.
          * 하야마는 멘치까스를 먹자 소마가 겪었던 시행착오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흘러들어온다. 도지마 긴의 지적처럼 그가 홀로 틀어박혀 있는 사이 소마는 승부할 대, 하야마에게 눈을 떼지 않고 요리의 완성도를 높여왔던 것이다. 그저 자신을 지우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하야마와 달리 말이다.
          * 정신을 차려 보니 놀랍게도 그의 눈 앞엔 시오미 준이 나타난다. 하야마가 어리둥절해있는 사이 도지마는 그녀에겐 볼권리가 있어 초대했다는 설명을 듣는다. 하야마는 퉁명스럽게 뭐하러 왔냐고 투덜거리는데 시오미는 단호한 태도로 하야마의 뺨을 때린다. 그런데 생각보다 파워풀해서 하야마가 일시적인 뇌진탕 증세를 보인다. 하야마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처음으로 시오미에게 맞은 거라 정신적 충격이 더 강했다. 시오미는 자신이 하야마의 부모 역할도 하고 있으니 훈육의 차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야마는 아직 애니까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하야마는 거기에 반발해서 자기가 없으면 업무 진행도 안 되면서 애취급을 하냐고 대든다.
          * 예대로 소우에는 소마에게 투표하고 2대1로 식극은 소마의 승리로 돌아간다. 오랜 시간 복수전을 준비해왔던 소마는 기쁨을 만끽한다.
          하지만 하야마는 대답 대신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답 받았다"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데. 그 모습이 뭔가 심치 않다.
          이들이 대한 것은 십걸의 모모, 츠카사, 사이토. 단 한 명도 십걸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배. 전원 퇴학이 결정되고 말았다.
  • 식극의 소마/204화 . . . . 9회 일치
          * 에리나는 중등부 십걸이 처음 되었을 때를 비롯, 아자미의 교육과 세뇌가 있던 나날을 회한다.
          *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회하고 마침내 아버지에게 결심을 고백한다.
          소마는 그 사이에 에이잔의 얼굴을 발견하고 속도 없이 반가운 기색을 보이지만 지쩍은 완전히 임전태세다. 아자미는 키노쿠니에게 센트럴 측에서 검토한 세사항을 발표하도록 한다.
          * 최종시험인 6차 시험이 결행되는건 한 달 뒤. 레분 섬 남단에 특설회장을 설치하고 연대식극을 거행한다. 현재 진급시험을 받고 있는 학생들도 최종적으로는 여기에서 식극을 관전하게 된다. 언뜻 평범한 것 같지만 결국 반역자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거리로 삼겠다는 악의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회장에서 승리를 거두는 쪽이 십걸 자리를 전부 가져가는 심플한 결론. 그리고 대전에 참가할 인원은 딱히 규정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아자미 측에서 먼저 [[사이바 죠이치로]]의 1대50 연대식극을 예로 들며 제안한다. 정말로 쿄쿠세이측에 가세하려는 인물이 있다면 얼마든지 데려와도 좋다는 호기.
          >돌려받고 싶으면 덤벼라. 전력으로 대하지.
          * 만족스럽게 황을 지켜보던 아자미는 들떠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며 말한다. 에리나는 당연히 센트럴 측의 선수라는 것. 소마가 반발하자 오히려 이쪽이 할 말이라고 받아친다. 원래 십걸의 10석인 그녀는 센트럴의 일원이니 여기서 싸우는게 당연하지 않냐는 논리다.
          >이 이의 억지는 허용할 수 없다.
          * 하지만 소마의 걱정과는 달리 에리나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다. 그녀는 잠깐동안 그녀가 중학시절 처음 십걸의 자리를 따냈을 때로부터, 더 어렸을 적 아버지의 세뇌교육을 받던 시절을 빠르게 회한다. 그리고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그녀를 지탱해주고 있는 동료들과의 추억. 에리나는 그 모든 것을 가슴에 품고 있다.
  • 식극의 소마/220화 . . . . 9회 일치
          * 3카드 [[미마사카 스바루]] 대 [[사이토 소메이]]의 주제는 참치
          * 1라운드가 센트럴의 전폐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끝나자 센트럴의 개가 된 [[카와시마 우라라]]가 안절부절 못한다. 오로지 센트럴의 승리만을 바라며 2라운드 대결 카드를 소개한다. 1카드는 [[쿠가 테루노리]] 대 [[츠카사 에이시]. 주제는 녹차다. 2카드는 [[메기시마 토스케]] 대 [[코바야시 린도]]. 주제는 고추. 3카드는 [[미마사카 스바루]] 대 [[사이토 소메이]]. 주제는 참치.
          * 외부의 주목도가 어떻든 메기시마는 느긋하다. 그는 주제를 적은 카드를 만지작 거리며 고추로 뭘 만들지 고민해 본다. 반면 린도는 거침이 없다. 벌써 주재료를 정하고 메기시마에게는 "고민할 틈이 있냐"고 도발한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악어]]. 일본에선 매우 희귀한 재료다. 린도가 살아있는 악어를 고르자 지켜보던 이들이 술렁거린다. 물론 구하지 못할 재료는 아니지만 식극이란 무대에서 이런 특수한 소재를 고른다는건 대단히 자신이 있다는 얘기. 감옥에 갇힌 반역자들이 수군대자 카와시마가 괜히 기세등등하다. 그녀는 린도가 토오츠키 학원 역사에서도 드문 "희소식재료 마스터"라고 소개한다. 희소식재료란 말에 [[유키히라 소마]]가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그렇게 소개하던 와중에 린도가 악어를 놓친다. 새끼 악어지만 당히 빠른 몸놀림으로 카와시마에게 돌격, 작은 소란이 벌어진다. 어찌됐든 악어는 린도에게 다시 포획.
          * 이래가지고 정말 악어를 써먹을 수는 있나? 그런 의혹이 퍼진다. 그러나 걱정할 필욘 없었다. 다시 악어를 손에 넣은 린도는 해체용 칼을 능숙하게 돌리며 메기시마에게 승부욕을 어필한다. 함께 십걸이었을 때도 즐거웠지만 적대하기로 한 이 용서없이 쳐부수겠다는 것. 메기시마도 그럴 생각이라며 전력으로 나오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린도는 "네 목숨을 감사히 받아가겠다"고 선언한 뒤 악어 해체에 들어간다. 그리고 린도가 보여주는 솜씨는 반역자팀이 보기에도 놀라운 것이었다.
          * 린도는 평소의 장난기로는 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악귀같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악어의 단단한 껍질이 떨어져나가고 탄탄한 육질이 아름답게 드러난다. 다양한 칼을 바꿔가며 악어의 껍질을 벗기는 솜씨는 눈으로 따라가기고 어렵다. 손질에서 피뽑기까지. 조금의 시간 낭비도 없이 마쳤다. 반역자들은 그 속도는 물론 모든 부위에 가장 적합한 칼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솜씨에 경악한다.
          * [[츠카사 에이시]]는 새삼스럽게 감탄하지도 않는다. 그는 린도의 실력을 익히 알았고 진짜 대단한건 칼솜씨 보단 식재료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맛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십걸의 2석을 차지하게 만든 힘. 그녀는 십걸에 들자마자 그 권력을 십분 활용, 전세계를 들쑤시고 다녔다. 중국 고산지대부터 사막지대, 북극권, 아마존의 오지까지. 1학년 때 이미 일본 국내의 희소 식재에 대해서 정통해 있었으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전세계,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식재를 두루 섭렵하고 다녔다. 그 여정 중에는 린도와 현지 스태프의 협력으로 새롭게 발견된 종도 있었다. 그녀는 생태계에 향을 주지 않는 선 안에서 모든 것을 식재료로 만들었고 손수 맛을 보았다.
          * 대인 린도가 놀라운 호조를 보이며 좌중의 이목을 쓸어간다. 반면 메기시마는 묵묵하다고 할 정도로 움직임이 없다. 관중석은 메기시마가 린도에게 쫄은거 아니냐고 야유를 퍼붓는다. 그때 카와시마가 무언가를 발견한다.
          * 그 신뢰를 한 몸에 받는 메기시마는 실제로 "라면 마스터"라는 직함을 가진 요리사. 바깥의 시끄러운 지저귐 따위는 아무런 향도 주지 않았다.
  • 식극의 소마/222화 . . . . 9회 일치
          * 예대로 메기시마의 일방적인 승리. 그러나 소마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몇 번이나 거듭해서 도전한다.
          에리나는 메기시마가 강한 요리사이며 필요한 전력이지만 그를 포섭하는건 대단히 어려운 미션일 거라고 예측한다. 뭣보다 그는 라면 마스터라는 이름 말고도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아사히카와 시내. 이곳에 메기시마가 머물고 있는 라면가게가 있다. 소마와 메구미가 도착했을 땐 사람들이 몰려 식당 입구까지 미어터졌다. 그런데 이들은 보통 손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친 그 사람들도 두 사람을 발견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토오츠키 학원 교복. 이게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 같다. 곧 두 남자가 험궂은 얼굴을 들이밀며 "적이 보낸 놈들"이 아니냐고 위협했다. 문도 모른 채 죄송해요를 연발하는 메구미. 소마가 그녀 앞으로 나서서 대처한다. 그들이 말하는 "적"이란 누구인가? 남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 라면장인들이 도련님이라 부르며 우러러 보는 남자, 홋카이도 라면 장인들의 요청을 받고 한 걸음에 날아온 메기시마 토스케였다. 그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일단 자신의 독자적인 인맥으로 유통루트를 다시 뚫고 가게를 지키는데 최대한 협조하기로 약조한다. 장인들이 그것만으로도 마치 만사가 해결된 것처럼 기뻐한다. 무리도 아닌 것이, 메기시마는 이미 라면계에서는 명성이 자자하고 인망이 두터웠다. 일찍이 자신의 "라면도"를 갈고 닦기 위해, 홀몸으로 호장마차만 달랑 끌고 전국을 누볐던 메기시마. 그러던 과정에서 여러 라면 가게를 접했고 그들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의 이름은 라면 장인들의 네트워크를 타고 전국으로 뻗어나갔고 그들 사이에서 "도련님"이나 "두목"으로 불리며, 어느 새 라면계의 젊은 왕으로 우뚝 서 있었다.
          감격으로 넘치는 장인들. 메구미와 소마는 그의 초고교급 인망을 실감하는 한편 덮밥연의 얼굴만 겉늙은 누구와는 참 다르다고 여기고 있었다. 헌데 장인들 사이에서 메구미와 소마를 발견한 메기시마의 표정이 굳는다.
          * 메기시마는 한 번 분명히 거절한 이야기를 다시 끌고 온 소마 일행이 못 마땅했다. 그는 연대식극이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 못박았다. 메구미가 그도 무관한 일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도 3석 자리를 뺏기지 않았던가? 여기서 이기면 그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메기시마의 태도는 시큰둥. 그는 본래부터 자신은 승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토로했다. 토오츠키에 들어간건 그저 최고의 요리학원이라 해서 그랬던 건데, 막 들어가니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승부 타령. 그의 적성이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거절했지만, 몇몇 끈질기게 달라붙는 녀석들과 식극을 하긴 했다. 3석이란 결과는 그래서 얻은 것. 자신이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런 지위가 부여된 것이다. 소마는 그것도 굉장하다 여겼지만 정작 당사자는 번잡스러워했다. 이제 그런 건 질색인 데다, 요리사가 승패를 논한다면, 그건 손님을 얼마나 기쁘게 했냐로 쳐야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으로... 일단 마음에 안 들어요.
  • 식극의 소마/235화 . . . . 9회 일치
          * [[에이잔 에츠야]]가 아티초크, 그 성분인 "시나린"을 앞세워 [[타쿠미 알디니]]의 피자를 원천적으로 망가뜨린다. 의외로 심사의원의 제지도 받지 않고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내 심사에 향을 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걸로 끝. 그런데 에이잔은 이 불평에 대해선 "괜찮아. 시나린의 성질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느냐"고 받아친다.
          * 그렇게 해서 심사에 오른 에이잔의 로스트 비프는 대호평. 이스트와르는 "역사에 남을 맛"이란 전에 없는 극찬을 남겼고 안은 "이렇게까지 아티초크를 들이부운 요리는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마음에 들어한다. [[유키히라 소마]]도 안의 배려로 맛을 보는데 크림소스의 감칠맛이 아티초크의 쓴맛과 어울려 강렬한 인을 남기고 로스트비프의 농후한 맛을 잘 감싸고 있다. 육즙이 아주 묵직한 인을 주면서도 한도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이 질리지 않는 맛. 고기요리임에도 채소 특유의 쓴맛과 감칠맛이 돋보이는 요리다. 안은 이것도 에이잔의 실력이며 아티초크를 넣음으로써 요리에 쓸데없는 단맛을 없앤 덕이라고 설명한다.
          * 반역자들은 시나린의 효능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키리 아리스]]가 설명에 나선다. 시나린 성분은 미각수용체, 즉 혀의 미뢰에 직접 작용하는 성질을 가진다. 이 성분이 입안에 들어가면 혀에서 단맛에 대한 반응을 억눌러서 쓴맛이 부각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이 효과는 일시적이라 곧 정으로 돌아오는데, 문제는 이때 억눌렸던 미뢰가 예민해져 단맛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즉 시나린 성분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쓴맛을 느꼈다가, 다음에 오는 요리에 대해서는 단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아자미가 갓 신임 총수가 됐을 무렵이었다. 에이잔은 어느 백화점에 입점한 케이크 가게를 프로듀스했다. 본래 경쟁에서 패할 위기에 처해있던 가게는 그와 손을 잡자마자 매출이 수직승, 위기를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경쟁업체를 말려죽이고 있었다. 이때도 에이잔은 시음용 주스에 경쟁업체 주력품의 맛을 지우는 성분을 대량으로 함유시켰다. 그렇게 대방을 몰락시킨 뒤에는 다시 그쪽에 접촉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한다는 빌미로 자신의 고객으로 삼았다. 아자미는 이런 면모를 만족해 그를 포섭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확신. 동생 [[이사미 알디니]]만이 뭔가를 직감한 듯 하다. 그렇게 해서 오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타쿠미의 피자는, 모두의 예을 뒤엎는 모습이었다.
         == 세 ==
  • 식극의 소마/236화 . . . . 9회 일치
          * 쇠고기 시구레니가 메인인 [[타쿠미 알디니]]의 피자. 그런데 그건 반만 맞는 표현이었다. 피자의 절반은 시구레니가 듬뿍 올라가 있지만 나머지 반쪽은 치즈 온리. 즉 치즈와 쇠고기 시구레니 하프 앤 하프 피자였다. [[에이잔 에츠야]]도 이런 부분은 의외였던 모양이지만 심드렁하다. 과연 이것만으로 타쿠미가 공언한 대로 시나린 성분과 관없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걸까?
          * 심사위원 샤름이 이 피자는 어떻게 먹는 거냐고 묻는데 타쿠미는 어떻게 해도 좋지만 "시구레니가 올라간 오른쪽부터" 먹으라고 조언한다. 그건 에이잔이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는 행동. 반역자들 사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에이잔은 아예 자포자기한 거라 폄하한다. 심사위원들도 원래는 맛있었을 피자인데 애석하게 됐다며 시식에 들어가는데... 반전이 일어난다.
          타쿠미의 계산은 이랬다. 에이잔이 대의 음식맛을 방해하는 요리를 하는건 필연. 그렇다면 어떤 재료를 선택할 것인가? 우선 그는 자신이 쇠고기 시구레니를 들고 나오면 반드시 단맛에 장난을 칠거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지금 재료창고엔 어떤 재료가 있는가? 단맛을 방해하는 식재료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다른 대결에 향을 주지 않고 단기간에 쓰일 재료는 아티초크 뿐이었다. 가령 미라클 후르츠도 단맛에 향을 주지만 지속시간이 몇 시간에 달해 다른 십걸의 요리까지 방해할 것이 뻔하다. 고로 선택지는 처음부터 아티초크 하나 뿐. 타쿠미는 이같은 결론은 에이잔을 유심히 관찰해 "트레이스"한 결과라고 말한다. 결국 트레이스대로 움직여준 에이잔이야 말로 타쿠미의 "노림수"에 걸린셈.
          * 심사위원들은 대의 함정을 역이용한 타쿠미의 수완을 격찬하며 "탈출불가의 일루전"이란 표현으로 에이잔과 동급 이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승부를 이걸로 끝내기엔 부족하다. 에이잔의 로스트 비프도 극의 맛이긴 마찬가지. 이스트와르는 심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푸념한다. 거기서 타쿠미의 다음 비장의 수, "제 3의 요리"가 공개된다. 사실 [[유키히라 소마]]는 그의 피자를 봤을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던것 같다. [[타도고로 메구미]]에게 타쿠미의 피자가 "반달 두 개를 겹쳐놓은 듯한 모습"이라 하는데. "메짜루나"(반달). 타쿠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요리, "도피오 메짜루나 피자"(두 개의 달이 빛나는 피자"를 소개하며 진정한 맛을 보라고 하는데.
         == 세 ==
  • 씽(마블 코믹스) . . . . 9회 일치
         온몸이 바위와 같이 단단해졌기에 당한 내구력이 있고 힘도 그에 걸맞게 세다. 마블 히어로즈의 파워 기믹 캐릭터들 중에선 [[헐크]] 같이 초강력 푸시를 받는 [[캐사기]]급은 못 되더라도, 메이저들 중에선 급에 속하는 방어력 및 괴력에 지력도 어느 정도 겸비한 캐릭터.
          * 판타스틱 포 멤버들 중 가장 고생을 하면서도, 팀의 궂은 [[마당쇠]] 역할까지도 맡아주는 등 좋은 이미지 덕에, 국내의 [[제시카 알바]] 하악하악(…)인 형편과 달리 [[미국]]에선 팬들도 당히 많은 편. [[판타스틱 포]] 멤버들 중 단독 주연극인 [[스핀오프]]들도 가장 많이 제작되고, 그 인기 덕에 아예 애니메이션으로 《프레드와 바니, 싱을 만나다》에서 주역 코너도 별도로 만들어질 정도이며, 특히 여기선 자기 의지로 [[인간]]으로도, 싱으로도 변할 수 있는 등 다 좋은데, 문제는 여기선 더 씽이 [[인간]]일 때는 빈약 고딩으로 나오는 게 안습.(…)
          * 판타스틱 4 이슈 중에서는, 리드의 아버지 너새니얼 리처즈가 리드를 데리고 먼 미래로 데려가면서 그 시대의 황을 보여주는데, 거기서 나온 바로는 씽은 위의 언급된 능력 이외에도, [[노화]]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져서 수백 년이 지나도 살아있고, 판타스틱 4의 다른 멤버가 죽은 이후에도 판타스틱 4로 프랭클린과 같이 싸워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엄청나게 느린 노화속도[* 대략 1,000년당 보통사람이 19살 먹는 속도이다.]가 결국에는 씽을 오랜 고독 속에 버려지게 했고, 4천년 후에는 그저 노망든 노인 취급 받다가 프랭클린이 보는 앞에서 노환으로 사망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후 리드가 현실로 돌아와서 씽을 쳐다보자, 리드가 [[리모컨]] 뺏는 줄 알고 경계하는 모습이랑 대비가(...)
          * 별명인 싱(Thing)은 말그대로 사람이 아닌 '물건' 같다 해서 붙은 것인데 여기에는 공포와 혐오를 주는 물체를 가리키는 의미도 있다. 보통 구분을 위해 [[더]](The)를 붙이며 동명의 화가 국내개봉했을 때 '[[괴물]]'로 번역되었다.
          * [[헐크]]와는 [[라이벌]] 기믹인지 여러 차례 대결했으며, 애니메이션에서도 헐크가 등장하면 이 구도가 재현된다. 다만 대체로 헐크가 더 [[강캐]]라서 결국 발리고 자존심에 처를 입기도 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의 묘사를 보면, 헐크는 괴물 취급인데 그는 사람들에게 웅으로 환받는다. 2006년에 나온 애니판에선 똑같은 괴물이니 잘 지내보자는 싱의 말에, 배너 박사가 "당신은 웅이지만 [[헐크]]는 괴물일 뿐이오."라고 답했다.] 헐크 말고도 다른 괴력 캐릭터에 비하면 힘에 있어서는 뒤떨어지기 때문에, 일단 만나면 시험 삼아 처발리고 보는 신세가...(…)
  • 아데랑스 . . . . 9회 일치
         [[일본]]의 종합모발기업. 1968년 설립, 2007년 무렵 13개국 2백 50여 곳에 지점을 운하고 있는, 대규모 종합모발기업이다. 가발 품 이외에 증모, 육모 분야에서도 다각도로 탈모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남성용 브랜드 아데랑스 이외에, 여성용 맞춤가발 레디스 아데랑스, 여성용 레디메이드 가발 브랜드 폰티누(FONTAINE), 해외에서 모발이식클리닉을 전문으로 하는 보즈레(BOSLEY), 해외용 판매 브랜드 헤어클럽(HAIRCLUB)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2009년 5월, 아데랑스에 투자했던 미국계 투자회사 스틸 파트너스는 사외이사로서 오오츠키 타다오(大槻忠男)를 진출시켰다. 그는 일본 펩시콜라 등에서 활동한 전문경인이다. 그리고 오오츠키 타다오는 2009년 10월 CEO로서 사장 취임, 다양한 새로운 경 방침을 발표했다. 2010년 10월에는 사명을 "유니헤어(ユニヘアー)"로 변경, 아데랑스는 남성용 브랜드로 남기고, 가발 이외에 증모, 육모 분야로 사업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https://facta.co.jp/article/201109066.html (참조)]]
         이후 2011년, 해임된 오오츠키 타다오는 "허위의 해임 이유의 공표에 명예를 손했다"는 이유로 아데랑스 사에 2300 만엔의 손해배을 청구했다.[[https://facta.co.jp/article/201109066.html (참조)]]
         2017년 2월 10일, 가발 업계의 경쟁 심화와 수익 악화에 대처하기 위하여 경진에 의한 인수를 통하여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장폐지]]하고, 비장화와 사업기반 강화를 하게 되었다.[[http://www.nikkei.com/article/DGXLASFL09HEH_Z00C17A2000000/ (참조)]]
  • 아이유 . . . . 9회 일치
         == 화 ==
         ! scope="col" |
         | [[더빙 ()|한국어 더빙]]
         ! scope="row" | [[리얼 (화)|리얼]]
         | 미
         ! scope="row" | [[페르소나 (2019년 화)|페르소나]]
         ! scope="row" | [[웅호걸]]
         | style="text-align:center;"| <ref>{{뉴스 인용|url=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2285438|script-title=ko:아이유 '웅호걸' 예능 첫도전 "막내답게, 야무지게"|trans-title=IU Hero girl, the youngest first entertainment challenge|via=Naver|date=July 5, 2010|work=MK|language=ko|accessdate=October 26, 2019}}</ref>
  • 안홍진(배우) . . . . 9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https://twitter.com/anong74 트위터] [https://www.facebook.com/honginactor 페이스북]
         | 수 =
         === 화 ===
         * [[2010년]], 《[[엄마도 예쁘다]]》 - 최무 신부 역
         * [[2006년]], 《[[대조 (드라마)|대조]]》 - [[연남건]] 역
         * [[2000년]], 《[[학교 3 (드라마)|학교 3]]》 - 윤리교사 안진 역 (18회~)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9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
  • 오경훈 . . . . 9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br>(현 [[대구광역시]])
         | 소속임위 =
         | 웹사이트 =
         * [[동중학교 (서울)|동중학교]] 졸업
         * [[2008년]] ~ [[2012년]] : LG디스플레이 임고문
         |전임자 = [[김배 (1932년)|김배]]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
  • 오은석 . . . . 9회 일치
         | 거주지 = [[경북도]] [[천시]]<ref>[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592656&news_area=110&news_divide=&news_local=12&effect=4 "'金' 획득 오은석 선수, 천시민의 자랑"], [[경북일보]], 2012년 8월 9일.</ref>
         | 웹사이트 =
         {{동메달|[[2007년 세계 펜싱 선수권|2007 트페테르부르크]]|[[사브르]]}}
         '''오은석'''(吳恩錫, [[1983년]] [[4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이다. [[런던]]에서 열린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 [[구본길]], [[김정환 (펜싱 선수)|김정환]], [[원우]]과 함께 단체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대한민국 펜싱 역사 처음으로 나온 단체전 금메달이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392494 '14초의 찌르기' 오은석, 金 찌른 비장의 '히든카드'], OSEN, 2012년 8월 4일.</ref> [[한국방송공사|KBS]]의 리듬체조 해설가인 [[김윤희 (체조 선수)|김윤희]]와는 부부관계이다.
         * [[선초등학교]]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펜싱 선수]][[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오성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선초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요시다 세이지 . . . . 9회 일치
         [[일본]]의 저술가, 활동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중대한 악향을 끼친 인물'''.
         요시다 세이지는 1943년 부터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전남, 경남, 제주 등에서 끌고간 한국인 징용자의 숫자는 종군위안부 1000명을 포함하여 6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의 저술에서는 "종군위안부 징용은 한 마디로 노예사냥이었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여자들을 후려갈겨 트럭에 강제로 태우고, 울며 매달리는 젖먹이를 억지로 떼어냈던 당시의 참혹했던 황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되어 있다.
         1989년 8월 14일, 제주도의 향토 사학자는 요시다가 진술한 지역에 가서, 해당 지역 현지 주민들에게 증언을 들었으나 이를 입증할 수 없었으며 이를 제주신문에 발표했다. 주민들은 그러한 사건은 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제주일보는 이를 요시다가 "술"로 엉터리 체험 수기를 출판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제주일보가 마이너 해서 그런지 이 조사는 묻혀버렸다(…).
         아사히 신문은 2014년 4~5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70대 후반에서 90대까지 약 40여명을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의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건어물 제조 공장에서 수십명의 여성이 사라졌다"고 기록한 제주도 북서부의 마을에서는, 생선을 다루는 공장이 1개 박에 없었고 경자의 아들은 "통조림 밖에 만들지 않았다. 여자 종업원이 사라진 일은 없다."고 증언했으며, 요시다 세이지가 '초가지붕'이라고 썻던 공장의 지붕은 한국에서 당시 수산산업을 연구했던 리츠메이칸대학 역사지리학 전공 가와하라 노리후마 교수에 따르면 함석판과 기와로 되어 있었다.[* 원래 제주도는 바람이 강하고, 벼농사가 되지 않아 초가집이 적었다.]
         === 요시다 증언의 향과 한계 ===
         사실, 요시다 증언의 향은 한정적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증거는 요시다 증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을 참조하지 않았으며, 이는 1991년 1월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동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일본 정부의 내부 문서를 아사히 신문이 공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1991년 8월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첫 공개 증언을 하면서, 한국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피해자 증언이 잇따르게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위안소 제도를 운했다는 것 " 자체에 제기되는 인권 문제이며, 강제연행의 유무나 피해자들 증언에 관한 세부 논란은 '각론'에 불과하다.
         요시다 세이지의 장남(2016년 당시 66세)는 일본 월간지 '신쵸 45' 9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소녀을 크레인으로 철거하고 싶다."는 발언까지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저지른 위안부 강제연행 날조에 대해, 요시다 가문의 장남으로서, 일본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가능하다면, 전세계에 있는 소녀을 크레인으로 철거해버리고 싶습니다.(중략) 나 자신도 아버지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또한 "아버지는 한 번도 제주도에 간 적이 없다. 이는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아버지는 제주도 지도를 보면서, '나의 전쟁범죄' 원고를 썼다"고 주장했다.
  • 우찬양 . . . . 9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ed0000> '''{{{#ffff00 출신학교}}}''' || 포철동초 - [[포항제철중학교|포철중]] - [[포항제철고등학교|포철고]] - [[남대학교|남대]] ||
         [[포항 스틸러스]] 유스 출신으로 차세대 풀백 자원으로 주목받는 선수다. 곧바로 리그 데뷔전을 치른 2016 시즌에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같은 팀의 [[이승모]]와 같이 2017 U-20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 정도로 동년배 선수들 중에서는 이미 검증을 마친 기대주다. [[신태용호]]에서는 풀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출전하는 편이었다가 U-20 월드컵에서는 센터백은 [[정태욱]], 이민 주전에 [[이정문(축구선수)|이정문]] 백업으로 굳어지고 풀백 두 자리를 놓고 [[이유현]], [[윤종규]], 우찬양 세 선수가 경합하는 판도가 되었다.
         U-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치른 4경기 중 아르헨티나전을 제외하고 3경기에 출전하였고 포르투갈전에서는 [[이헌]]의 득점을 돕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팬들에게나 선수 본인에게나 만족스러울 대회는 아니었지 싶다.
         K리그 클래식 20라운드 서울전에서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강우를 대신해서 시즌 2번째 선발출장을 했다. 그러나 공수 양면에서 모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성인무대의 쓴맛을 톡톡히 봤다. 특히 이호가 중앙으로 내려올 때 그대로 끌려갔는데 이는 결국 실점의 발단이 되는 주세종의 크로스로 연결되었다.
         ||<#00703c> '''{{{#eee156 2015.01.09}}}''' ||<#00703c> '''{{{#eee156 2015 발렌틴 그라나트킨 U-18 친선대회}}}''' ||<#00703c> '''{{{#eee156 대한민국 1 : 0 트페테르부르크}}}''' ||<#00703c> '''{{{#eee156 2위}}}''' ||
          *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는 육 선수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 원피스/835화 . . . . 9회 일치
         [[원피스]] 835화. '''혼의 나라'''
          * 쵸파가 시간을 끄는 사이 나미는 도주했고 쵸파는 결국 잡혀갔다.
          * 디는 물론 푸딩까지 있는데 하나같이 짐승같은 소리를 질러댄다.
          * 브륄레는 얼굴에 난 처에 컴플렉스가 심했다. 그래서 멀쩡한 여자의 얼굴을 보면 찢어버리고 싶어하는 새디스트.
          * "미러 월드" 대를 거울 속에 가두는 능력이다.
          * 빅맘은 일행이 멋대로 하게 둬도 좋지만 "디와는 만나게하지 말 것. 그리고 반기를 든 사실을 후회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지시했다.
          * 빅맘 샬롯 링링은 "소르소르 열매"(소울소울 열매)의 능력자. 문자 그대로 소울(혼)을 부여하고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이다.
          * 우누는 거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덩치가 굉장히 크다. 단 거인족들에 비할 정도는 아니고 몸 자체는 쿠마 정도의 사이즈. 하지만 머리가 몸보다 큰 기이한 신체비율.
          * 스포일러 단계에서는 디 형제의 이름에 대한 해석도 있었지만 구라스포였다.
  • 원피스/836화 . . . . 9회 일치
          * 크래커는 빅맘 해적단 "스위트 3장성" 천수의 크래커라 불린다. 현금 8억 6천만 베리에 달하는 거물.
          * 나미는 로라에게 받았던 비블 카드를 파운드에게 보여준다. 킹 바움은 그 비블 카드에서 빅맘의 혼이 느껴진다며 공격하지 못하고 있다.
          * 나미는 진짜 목적을 위해 적당히 싸우다 퇴각할 것을 요청하지만 루피는 "나는 진심으로 싸우는거 말곤 모른다"고 말하며 전력으로 대한다.
          * 루피는 돈키호테 도플라밍고를 쓰러뜨린 자이므로 브륄레 혼자선 고전할 거라 예해서 그를 보낸 것이다.
          * 킹 바움도 자기 팀은 단 한 번도 표적을 살려보낸 적이 없다며 루피가 버거운 대라는 말에 반박한다.
          * 그 사이 크래커와 싸우던 루피가 나가떨어진다.
          * 그는 사황 빅맘 해적단의 "스위트 3장성" "천수의 크래커"였다. 현금은 8억 6천 베리
          * 나미는 원래 목적과 관없이 싸울 필요 없다며 적당히 도망치자고 하는데
          * 크래커도 열매 능력자로 보이는데 당히 독특한 능력. 니코 로빈의 꽃꽃열매와 비슷하지만 원격으로 팔을 피워내지는 못하는 것 같고 자기 팔을 두드려서 늘린다. 다른 신체부위도 가능한지는 불명.
  • 원피스/838화 . . . . 9회 일치
          * 루피를 대한 크래커는 진짜가 만들어낸 가짜. 진짜 크래커는 "비스킷비스킷 열매" 능력자로 비스켓으로 뭐든 만들 수 있다.
          * 가짜와 전혀 다른 인이며 커다란 검을 휘두른다.
          * 그러면서 "디를 만들 수 없다는 이유를 알겠냐"고 비꼰다.
          * 캐럿은 쵸파와 오빠를 합친 "쵸빠"라는 요한 호칭을 만들어낸다.
          * 그녀는 루피일행의 현황을 묻는데 부하들은 "디가 입성한다면 접촉할 가능성은 없다"는 보고를 한다.
          * 욘디는 "둘과 디의 재회과 기대된다"고 음흉하게 웃는다.
          * 디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지만 저 둘과 재회하는 것이 긴장되는 듯하다.
          * 니디는 디가 마중나오지 않았다고 투덜대고 이치디는 "됐다"고 진정시킨다.
          * 크래커는 단순 비교으론 칠무해급의 강자. 물론 빅맘은 이보다 강할 것이다.
  • 원피스/886화 . . . . 9회 일치
          * [[디]]와 [[샬롯 시폰]], [[샬롯 푸딩]]은 완성된 재료들을 배로 옮기려 하는데 [[샬롯 오븐]]이 훼방한다. 푸딩은 가도 좋지만 시폰은 배신자이니 처단해야 한다는 것. 디는 숨어있는 태라 구해주지 못한다. 시폰은 오픈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나미(원피스)|나미]] 일행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 오븐은 진심으로 시폰을 처단하려 드는데 보다못한 "파운드"가 달려들어 오븐을 막으려 든다. 시폰은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순간 어리둥절하는데. 모두의 이목이 파운드에게 몰린 사이, 디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동, 마치 파운드가 후려친 것처럼 꾸며 오븐을 날려버리고 시폰을 구한다. 오븐은 잠시 어리둥절해하지만 "파운드 이외 누군가가 공격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인식한다.
          * 다시 일어선 오븐은 곧바로 일행을 추격해 재료를 옮기던 마차에 올라탄다. 시폰을 다시 사로잡았을 때, 마침 전보벌레가 울리는데 파이어탱크 해적단의 [[카포네 갱 벳지]]가 카카오섬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내를 버릴 수 없었던 벳지는 결국 카카오섬으로 시폰을 마중하러 온 것. 오븐은 곧바로 벳지의 배에 연락해서 시폰을 인질로 잡고 카카오섬 항구에 정박할 것을 명령한다. 시폰은 자기 때문에 "진짜 가족"을 희생시킬 수 없고 꼭 살아남아 언젠가 복수해달라고 외치지만 벳지는 끝내 륙을 받아들인다.
          * 텅 빈 바다를 가로질러 써니호도 어느새 카카오섬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작전 돌입으로 분주한데 문득 [[캐럿(원피스)|캐럿]]이 [[쵸파]]에게 뜬금없는 걸 묻는다. 오늘 밤 만월이 되지 않느냐고. 한편 빅맘 [[샬롯 링링]]에게서 도망친 [[몽키 D. 루피]]는 어느 민가에 숨어있다. 붙잡혀있는 [[샬롯 브륄레]]는 도망치고 싶으면 카카오섬으로 가면 될거 아니냐고 묻는데 루피는 다시 한 번 [[샬롯 카타쿠리]]와 승부를 낼 작정이다. 그의 견문색 패기도 패기인 이 장기전으로 가면 소모될 거란 것. 하지만 루피 자신이 생각해도 그것만으론 충분한 전략이 못된다. 그는 [[실버즈 레일리]]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패기는 실전의 극한 황에서 더욱 개화하며 더 강한 적과 싸울 수록 루피도 강해질 거란 것. 루피는 자신에게도 "가까운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중얼거리는데 브륄레는 허세부리지 말라고 일침한다. 루피는 그 말을 듣고 "전력을 내는 카타쿠리에게 이기고 싶다"고 승부욕을 드러낸다.
         == 세 ==
  • 원한해결사무소/4화 . . . . 9회 일치
         원한해결사는 정보원에게 원한대 '마사토 이치로'의 정보를 찾는다. 하지만 가족[* 부모는 이혼하고 5년 이 행방불명]도 직업도 없고 빚도 지고 있는, '잃을 게 없는 남자'이므로 사회적으로 말살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대였다.
         원한해결사는 [[만남계 사이트]]를 이용하다는 척 하면서 마사토 이치로에게 접근한다. 마침 돈이 궁하던 그는 쉽게 접근했다가 약을 먹고 기절한다. 깨어난 마사토는 야쿠자 사무실[* 유한회사 '이타우에 무역坂上貿易'이라고 써있다.]에 버려져 있었다.
         마사토는 돈문치와 마약봉지를 발견했다가 들어온 야쿠자들에게 걸린다. 마사토의 가방에는 피킹 도구나 면허증이 들어 있고, 게다가 들어오기 전에 원한해결사가 야쿠자의 차에 송곳으로 낙서를 해놔서 완전히 누명을 쓰게 된 것이었다. 야쿠자는 차 수리와 손해배으로 '3천'을 요구하고, 마사토는 차용증을 쓰고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여자가 있다고 말하며 집으로 가게 된다.
         테이프를 돌려받고 원한해결사에게 감사하는 의뢰인. 그리고 정보원은 원한해결사에게 100만 이 경비를 썻으니 적자가 아니냐고 질문을 던지는데, 원한해결사는 마사토는 23명 이의 여성을 과거 협박했고, 녹화한 고화질 몰카 테이프가 100개 이 있으므로 이것으로 천만 이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답변한다.
  • 유니버설 픽처스 . . . . 9회 일치
         [[미국]]의 [[화]] 회사.
         유명한 메이저 사이당한 [[역사]]를 자랑한다. 이에 어울리게 많은 화를 내놨으며 지금도 만들고 있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 [[분노의 질주 시리즈]]도 이 유니버설에서 만든 화 시리즈.
         [[괴물]]화도 많이 만들었으며 어 위키에는 '유니버설 몬스터즈(Universal Monsters)'라는 항목도 있다. [[드라큘라]],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미이라]] 등 이름있는 고전 괴물 캐릭터들의 화를 만들었으며 현재 [[다크 유니버스]]도 준비하고 있다.
  • 은혼/578화 . . . . 9회 일치
         드디어 정면대결하게 된 두 최강의 존재. [[우츠로]]를 앞에 두고 [[우미보즈]]는 과거를 회한다.
         회
         * [[무츠(은혼)]]와 우미보즈는 아는 사이다. 어린시절 무츠는 우미보즈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 우미보즈는 스승이 되길 거절하지만 무츠는 "당신의 제자가 되기엔 너무 분에 넘친다"면서도 새장 속의 새에게 세에서 본 것을 이야기해달라고 청한다
         회
         * 황안은 과거 대전쟁에서 행성연합의 집중공격을 당해 [[용맥]](아르타나)이 폭주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 때문에 야토는 모성을 버려야했고, 용맥의 향으로 황안은 돌연변이 생물의 세계가 되어 버린다.
         회
         * 우츠로는 한 팔이 날아가는 중을 입지만 순식간에 재생한다.
         * 무츠와 우미보즈가 사실 아는 사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 은혼/598화 . . . . 9회 일치
          * 긴토키는 해결사 사무실 앞을 점거한 천인 부대를 대로 선전포고한다.
          * 그때 등장하는 겐카이 감. 탱크를 몰고 왔다.
          * 오토세 아줌마는 즐겁게 탱크를 모는 겐카이 감을 보고 "오래 기다리던 사람이 돌아온 것 같다"고 말한다.
          * 겐카이 감은 "이 녀석(긴토키)은 내 아들이 아니다"고 대꾸하지만 아무도 아들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 감은 오토세 아줌마에게 "너희 집이 무너졌는데 그 표정은 뭐냐"고 받아치는데, 오토세 아줌마는 "내 남편도 저런 얼굴(긴토키)이 아니다"고 받는다.
          * 그녀의 남편이나, 감의 아들이나 살아있었다면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거라고 말하는데.
          * 마드모아젤 사이고 참전.
          * 저항자들의 분위기는 좋아지지만 객관적으로 우주에서 모여든 연합군을 대로 전지구가 힘을 합친들 충분치 않은게 사실.
          * 사이고와 카츠오는 타개책이 있는지 묻는다.
  • 은혼/626화 . . . . 9회 일치
          * 헤도로가 해방군 전원을 꽃을 짓밟은 장본인으로 간주하고 꿀밤을 때려주기 시작하자 해방군 진은 패닉에 빠진다.
          * 전의를 완전히 실한 해방군은 전면 후퇴, 가부키쵸는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게츠노 아나운서는 원래 게츠노슈는 에도 막부로부터 에도를 수호하도록 명을 받은 집단으로 꼭 귀신이나 요괴만 대하는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대해야하는건 또 하나, "친구"도 있다. 게도마루는 원래 더 빨리 오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마계에서 사탄과 누라리횬이 손잡고 3차 마계대전을 일으키는 바람에 진압하느라 늦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오는 동안 오컬트에서 SF로 바뀔 각오는 마쳤다.
          * 게도마루는 게츠노슈의 식신으로서가 아닌, 해결사의 친구로서 이 자리에 왔다고 말하며 그들에겐 자신이 붙어 있으니 긴토키에게 더이 꼴사납게 도망치지 말라고 한다.
          * 그렇게 달아나다 보니 헤도로가 꿀밤을 먹이고 있는 그 장소로 돌아와 버렸다. 긴토키는 어째서 이꼴이냐며 괴물과 괴물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겠다고 절규한다. 게도마루는 됐으니까 팍팍 앞으로 가라며 긴토키를 걷어찬다. 긴토키는 떠밀리다가 누군가와 부딪히는데, 부딪힌 인물과 위치가 좋지 않다.
          * 게츠노 아나운서의 오빠 [[게츠노 세이메이]]와 전남편 [[시리노 도만]]도 건물 옥에서 준비를 마쳤다. 둘은 서로 사기꾼이라고 디스하면서도 이 사기꾼들의 힘이라도 보탤 때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리고 함께 거대한 규모의 환혹의 술을 실행하는데.
          * 숫적 우위는 변함없는 해방군 쪽에는 아직도 싸우고자 하는 자들이 남아있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전선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곧 지구측에서 엄청난 수의 원군이 도착하는 걸 보고 마지막 저항의사를 꺾고 만다. 이것들은 모두 환혹의 술이 보여주는 환이지만 그걸 알리 없는 해방군은 최후의 보루였던 숫적 열세까지 뒤집혔다고 보고 완전히 와해, 병력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 은혼/633화 . . . . 9회 일치
          * [[다카스기 신스케]]가 "반란군이면 어떠냐"고 해서 동료들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가츠라는 "나라가 뒤집혀도 우린 여전히 반란군"이란 자조적인 발언을 한다.
          가츠라는 어쨌든 나라에 적대하고 정부에 반하는 자들은 모두 "반란군" 취급이며 최종적으론 막부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지 않으면 "정부군"은 될 수 없다고 지금은 도 할 수 없는 이성적인 대답을 한다. 긴토키는 이때나 그때나 드퀘빠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그럴 바엔 차라리 마왕 바라모스로 전직하고 만다"고 빈정거린다. 다츠마는 이때도 뭔가 핀트가 빗나간 놈이라 놀이꾼으로 전직하면 레벨 20에 정부군으로 전직할 수 있다고 헛소릴 한다. 그건 현자라고 얼간아.[* 원래 드퀘3의 현자는 "놀이꾼"이 레벨 20에서 무료로 전직할 수 있는데 놀이꾼이 막장스런 직업이라 레벨 20을 달성하는게 꽤 어려웠다. 그래서 리메이크판에선 "깨달음의 서"를 추가해서 난이도를 낮춘 것.]
          그 말에 긴토키는 "양이전쟁의 절반은 냥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밥통아"라고 디스한다. 적어도 그는 꽤 나라를 중히 여기고 있어서 인기 많아지고 싶다, 화풀이하고 싶다의 다음 정도로 여길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결국 양이전쟁은 잡동사니로 이루어져 있다는 교훈이다.
          이때만 해도 식가의 탈을 뒤집어 쓰고 있던 가츠라는 한숨을 쉬며 달을 쳐다본다.
          * 다츠마는 그들이 우주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환한다. 적어도 그만은 신스케가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가츠라는 겁먹고 우주 구석탱이에서 떨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기한테 베이고 싶어서 돌아왔냐고 험악한 말을 한다. 신스케가 돌격을 멈추지 않으며 "해방군 말고 네놈들이랑 먼저 한 판 해도 관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어차피 온 우주와 거하게 한 판 해야 할 참이니까. 가츠라는 그 뒤를 따르며 나라를 뺏은 다음엔 우주를 뺏을 심산이냐며 그놈의 허풍은 우주에 나와서도 못 고쳤다고 비꼰다. 다츠마가 따라와 "이참에 그 허풍을 현실로 만들어 보자"고 끼어든다. 해방군한테 몰살 당하는 것 보단 낫지 않은가?
          * 신스케는 멋대로 지껄이라고 하면서 나라를 빼앗는 거나 우주를 빼앗는거나 별반 차이가 없는 거라고 말한다. 뭐가 됐든 "그 녀석"이 막아서고 있을 테니까. 지구의 긴토키가 있는 이 나라든 우주든 뺏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덤으로 "이쪽 대장"도 맡긴다. [[도쿠가와 노부노부]]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는 노부노부의 목이 붙어 있는걸 보고 안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말도 안 되는 때에 대장 자리를 떠맡겨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와 노부노부는 배신하고 배신 당했던 사이. 하지만 이번에 그를 맡는 사람들은 다르다. 신스케는 그들을 "나라"에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다.
  • 이대근 (조선) . . . . 9회 일치
         아버지는 도촌 [[이수형]]이고 어머니는 문절공 무송헌 [[김담]](金淡)의 딸 예안김씨이다. 연산 2년(1496)에 진사하고 음직으로 감찰과 홍천현감을 역임하였다. 그가 선길에 순흥 청다리를 지날 때마다 말이 피해가기에 살펴보니 금성대군이 화를 당한 곳이었다. 그날 밤 [[금성대군]]이 그의 꿈에 현몽하여 봉축하고 단을 쌓았다.
         [[음서 제도|음보]](蔭補)로 출사하여 선교랑 관감 주부(觀象監主簿)가 되었으며, 연산(燕山)2년 병진(丙辰1496)년에 [[생원시]]에 입격하여 [[성균관]] [[생원]](生員)이 되었다. 그 뒤 통훈대부로 승진, 사헌부 감찰을 거쳐 홍천현감으로 나갔다.
         《순흥읍지(順興邑誌)》에 의하면 그는 선을 다녀오던 중 순흥 청달리를 지날 때 그가 탄 말이 길을 피하여 비껴가는 곳이 있으므로 이를 이하게 여겨 하마 후 살펴본 뒤 이곳이 금성대군이 피흘린 곳이라 생각하여 의심을 품은 채 지나갔다. 그날 밤 이대근의 꿈에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나타나 그 곳은 자신이 피흘린 곳임을 말함으로써 곧 府事와 함께 사람을 시켜 조사한 후 이 곳을 봉축하고 단을 쌓았다. 이를 [[금성단]](錦城壇)이라 부른다.
         [[경북도]]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 사제동 후곡 아도유좌 하연봉 고비하 제사가 있고 10월12일에 시제를 지낸다.
         [[분류:생몰년 미]][[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우계 이씨]]
  • 이사강 . . . . 9회 일치
         '''이사강'''([[1980년]] [[10월 7일]] ~ )은 [[대한민국]]의 [[뮤직비디오]] 감독이자, CF 감독이다. 생산 회사 [[쟈니브로스|ZANYBROS (쟈니브로스)]] 소속이다. 2002년 단편 화 《스푸트니크》 촬으로 참여.
         수능 279점으로 중앙대학교 연극과 98학번 특차로 들어가서 1학년을 다니다가 언니가 있는 런던으로 유학 필름스쿨 화학 학위를 받았다.
         * 런던필름스쿨 화학
         * 2013년 [[허생]] - 몸이 약한 아이
         * 2013년 [[정준]] - 병이에요
         * 2013년 정준 - 이별 10분 전
         {{토막글|화 감독}}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뮤직 비디오 감독]][[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선아 . . . . 9회 일치
         {{화인 정보
         |출생지 = 경북도 대구시
         |학력 = [[한양대학교]] 연극화학과 [[학사]] 졸업
         |웹사이트 =
         '''이선아'''는 [[1985년]] [[7월 22일]]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에서 태어났고 [[1998년]]를 거쳐 [[2001년]]에를 거쳐
         [[2004년]]에를 졸업하고, [[2010년]]에 [[한양대학교]] 연극화학과를 졸업했다.
         * [[한양대학교]] 연극화학과 (05학번)
         * [[2014년]] [[드라마]] 《[[응급남녀]]》 - 허지 역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09년 데뷔]][[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전의 이씨]]
  • 이시종 . . . . 9회 일치
         |경력 = 제35대 [[월군|월군수]]<br/>제22, 28·29·30대 [[충주시|충주시장]]<br/>제17,18대 [[국회의원]]<br/>[[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br>[[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부의장<br/>[[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민주당 충청북도당]] 위원장</br>제8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역대 회장|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br/>제33·34·35대 [[충청북도지사]]
         |웹사이트 = [https://www.facebook.com/oklsj 이시종 페이스북]
         * 제35대 [[월군|월군수]]
         * 국회 [[산업통자원위원회|산업자원위원회]] 위원
         * 한국하수도협회 수질관리과장(선출직)
         |직책 = [[월군|강원도 월군수]]
  • 이은수(육군) . . . . 9회 일치
         ||<bgcolor=#808080> '''{{{#FFFFFF 출생지}}}''' ||<(> 경북도 선산군
         (現 경북도 구미시) ||
         ||<bgcolor=#808080> '''{{{#FFFFFF 학력}}}''' ||<(> [[오고등학교]] {{{-1 ([[졸업]])}}}[br][[경북대학교]] {{{-1 (법학 / [[학사]])}}} ||
         1965년에 [[구미시]]에서 태어났으며(당시에는 선산군이었음) 4남매(2남2녀) 중 맏이였다. 오고를 졸업하였으며[* 이 장군은 원래 의사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당시 오고 여자반에 이과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문과를 선택했고, 법대를 나온 고모부의 향으로 경북대 법대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1989년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이 장군은 대학 4학년 때 사시 1차와 군법무관 1차에 합격하였으나 사시 2차에 떨어지고, 집안형편 더 이 고시공부를 할 수 없어 취직을 했다고 한다.] 군법무관 시험에 최종합격하여 1991년에 법무사관 9기로 임관(중위로 임관)했다.[* 대개 임관을 하면 사단 법무참모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군이라 바로 발령받지 못했는데 당시 36사단장이 이은수 중위를 참모로 썼다. 36사단장의 사모님이 간호병과 대령이었기 때문에 여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법무사관 가운데 첫 여군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는 군법무관 560명 가운데 52명이 여성이었다.] 당시 임관한 뒤로 10년을 법무사관 중 홍일점으로 지내야 했다고. 2011년에 [[여군]] [[군법무관]]으로는 처음으로 [[준장]]에 올랐다.[* 여군 최초의 [[장성급 장교|장관급 장교]]는 간호 병과 출신 [[양승숙]] 준장이었다. 2014년까지 여군 [[장군]], [[제독]]은 간호 7명, 보병 1명, 법무 1명 등 총 9명(전원 육군)이다.] 법무 병과장인 [[육군본부]] 법무실장에 올랐다.[* 본래는 법무관리관이 병과장으로 육군 소장이 임명되었으나 여러 문제가 일어나 예비역 법무장교 출신 군무원을 임명하는 걸로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에 [[고등군사법원|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옮긴 후 2014년 퇴임하였다.
         현재는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이다.
  • 이장섭 . . . . 9회 일치
         '''이장섭'''([[1963년]] ~ )은 [[대한민국]]의 시민사회 운동가 출신 정치인, 공무원이다. [[1986년]] [[민주화운동협의회]] 충북지회 임위원으로 활동한 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국회의원 [[노민]]의 보좌관, 국회의장 비서실 비서관 등을 역임했고,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자 캠프에서 활동하였다. [[2017년]] [[5월 11일]] [[문재인]]이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산업정책비서관실 선임행정관(2급 [[이사관]]급 당)에 임명되었다.
         * [[1986년]] [[민주화운동협의회]] 충북지회 임위원
         * 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낙선한 노민의 측근이 되다.<ref>[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1027_0000130537&cID=10806&pID=10800 충북도 새 정무부지사에 이장섭 청와대 행정관] 뉴시스 2017-10-27</ref>
         * [[국회의원]] [[노민]] 보좌관, 3선(16~19대)
         * [[2011년]] [[7월 4일]] ~ [[2012년]] [[5월]] [[대한민국 국회|국회]] 정책연구위원회 위원<ref name="ssss">[http://www.cb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898 충북 첫 국회 2급 비서관 탄생:이장섭 노민 의원 보좌관 국회정책연구위원]</ref>
         * [[2011년]] 겸 [[노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정무 특보<ref name="ssss"/>
         * [[노민]]
  • 이제석 . . . . 9회 일치
         == 수 ==
         * 2009 세을 밝게 만든 사람들 올해의 인물 부문
         * 2011 올해의 광고인<ref>[http://news.donga.com/3/all/20111130/42267981/1 올해의 광고인 이제석 소장… 올해의 홍보인 조현민 무]정재윤《동아일보》2011-12-01</ref>
         * 2011 서울AP클럽 올해의 광고<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1129029031 서울AP클럽 ‘올해의 광고’ 이제석·조현민·이의자씨]류지《서울신문》2011-11-29</ref>
         * 뉴욕 원쇼 페스티벌 최우수
         * 클리오 어워드 동
         * 미국 애디 어워드 금
  • 일곱개의 대죄/188화 . . . . 9회 일치
          * 몬스피드는 약속대로 데리엘의 머리를 다듬어주다가 멀리서 수한 기운을 느낀다.
          * 사실 리오네스 왕국의 함락.
          * 이의 설명과 함께, 몬스피드는 데리엘의 머리를 다듬어주고 있다.
          * 그때 수한 기운이 감지된다.
          * 자라트라스는 어쨌든 십계는 괴물 중의 괴물이며 정면에서 이길 수 있는 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 자라트라스는 대응하려 하지만 이미 몬스피드에게 뒤를 잡힌 황.
          * 단 1격만으로 빈사 태가 된 자라트라스.
          * 호크는 갑자기 마신족화. 그런데 보통 트랜스 포크 태에선 호크의 자아가 유지되는데, 마신족을 먹어서 그런지 정신줄을 놔버렸다.
          * 연옥에서 나눈 대화 때문에 기억이나 자아를 잃어버린 태로 부활하는거 아니냐는 설이 있었는데, 일단은 아닌 걸로 보인다.
  • 일곱개의 대죄/190화 . . . . 9회 일치
          * 창천의 육연성과 현장에 도착한 헨드릭슨이 드레퓌스(프라우드린)을 대하기 위해 나서는데, 그는 끔찍한 것을 보여준다.
          * 그레이로드의 계금 "불살" 때문에 변변한 교전도 불가능한 황.
          * 이런 황에서 길프로스트로 위장하고 있던 비비안이 정체를 드러내며 길선더를 데리고 도주.
          * 절체절명의 황, 어디선가 얼음마법이 날아와 알로 변한 사람들을 얼려버린다.
          * 그때 창천의 육연성이 프라우드린을 대하기 위해 나선다.
          * 원래 암수 구분 조차 없는 하급 마신족이었다가 갑작스런 변이로 위급으로 성장했다.
          * 이러는 사이에 제리코가 담긴 알이 떨어져 부화하려 한다.
          * 시전자는 "단순한 얼음"마법이지만 자기가 거둘 때까지 원히 얼어있는 마법이라고 하는데.
          * 하지만 구빙결 마법에다 십계를 모르모트로 쓰겠다는 패기로운 선언까지 하는걸 보면 극적인 파워업에 성공한 모양.
  • 일곱개의 대죄/194화 . . . . 9회 일치
          * 자라트라스는 사라지기 전 잠시 동안 드레퓌스와 핸드릭슨에게 인사하고 길선더에게 항 지켜보고 있겠다고 전해달라 한 뒤 모습이 사라진다.
          * 프라우드린은 큰 처를 입었지만 자신의 마력 거대화(풀 사이즈)를 사용해 부활한다.
          * 드레퓌스의 귀환을 환하는 핸드릭슨.
          * 그리아몰은 원래 제리코 일행과 함께 있었지만 소변보러 나온 사이 그레이로드에게 당했던 모양이다.
          * "길선더에게... 항 지켜보겠다고 말이야..."
          * 거대화 "풀 사이즈". 프라우드린이 가진 본래의 마력이다.
          * 본체가 나타나 "내 분신의 대로는 딱"이라고 말하며 분신을 거둬들인다.
          * 황을 파악한 프라우드린은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다.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9회 일치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자신의 출생과 과거 [[멜리오다스]] 곁에는 항 "엘리자베스"라는 자신과 닮은 소녀가 있었던 것에 대해 추궁한다.
          * 한동안 조용했던 리오네스 성에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하녀들이 절절매며 리오네스 왕가의 장녀 [[마가렛 리오네스]]를 쫓아다닌다. 하녀들이 지금 마가렛이 하려는 행동은 "[[바트라 리오네스|폐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고 설득하지만 마가렛은 "아버지를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고 대꾸하며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보다 일전에 내린 명령에 대해 확인한다. 납치된 성기사 [[길선더]]의 수색과 구출. 그리고 그를 범인 마녀 [[비비안]]을 토벌하라는 명령이었다. 하녀들이 주저하며 밝힐 바로는 진전이 없다. 리오네스 왕국은 한 차례 위기를 넘겼으나 아직 십계 토벌이 완료되지 않았고 언제 재차 침공당할지 모르는 황. 국왕 바트라 리오네스의 명령으로 현역 성기사들은 모두 성의 수비로 투입되어 도저히 차출할 병력이 없었다. 마가렛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녀들은 끝내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그 얌전했던 마가렛이 성을 박차고 마신족이 우글거리는 세으로 나아가다니.
          * 그리고 그걸 맞으면 죽는다고 엄살부리는 킹에겐 관대하게 딱밤을 먹인 뒤 사이좋게 둘 모두 언덕 아래로 내던져 버린다.
          * 대지의 모자정 옥에선 낮잠에서 깬 디안느가 기지개를 켰다. 느긋한 옥과 달리 식당 안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의 방은 심각한 분위기. 지난 밤 연회 이후로 멀린이 무섭게 앓았다. [[핸드릭슨]]이 용태를 보러와 있다. [[에스카노르]]가 그저 안절부절. 핸드릭슨의 주위에서 알짱대면서 태를 묻는다. 핸드릭슨은 이것이 무서운 저주라고 진단한다. 그는 대체 멀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에스카노르가 아는 거라곤 어젯밤부터 그녀의 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 걱정돼서 아침에 와보니 이렇게 악화되었다. 열도 엄청나고 의식을 차릴 기력 조차 없다. 핸드릭스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아무 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쩔 수준의 문제가 아니고 드루이드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할 거라고 말한다. 갑자기 드루이드를 어디서 모셔올 건가? 에스카노르가 절망한다.
          난데없이 나타난 어떤 남자. 엘리자베스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십계의 [[젤드리스]]. 분명 멜리오다스를 죽이는데 일조했던 남자. 자신의 마력에 개입하는 존재를 느끼고 나타난 것이다. 엘리자베스를 손님이라 부르더니 정말로 반갑다는 양 "오랜만이다"라고 인사한다. 엘리자베스는 십계가 나타난 것도 그랬지만 그가 구면인 것처럼 구는 것이 더 당황스러웠다. 그런 반응을 보더니 젤드리스가 "소문은 사실이었다"며 불쌍한 여자라고 빈정거린다. 무엇두고 하는 말일까? 엘리자베스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해달라 소리치자 젤드리스의 태도가 험궂게 바뀐다. 그리고 그의 발설하는 엘리자베스의 비밀.
  • 임혁주 . . . . 9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 학력 = [[동국대학교]] 연극화학과 [[학사]] 졸업
         | 웹사이트 =
         * 1988년 [[문화방송|MBC]] - 《[[마지막 우]]》
         * 1988년 [[한국방송공사|KBS]] - 《[[조선백자 마리아]]》
         * 2000년 [[한국방송공사|KBS]] - 《[[태조 왕건 (드라마)|태조 왕건]]》 - [[박규 (후백제)|박규]] 역
         * 2003년 [[서울방송|SBS]] - 《[[야인시대]]》 - [[장택]] 역
         * 《세종대왕》 ... [[장실]] 역(주연)
  • 임효성 . . . . 9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농구 관련 인물(한국))]
         || 신체 사이즈 || 180Cm, 78Kg ||
         [[충주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2004년]] [[서울 SK 나이츠]]에 입단하여 프로에 데뷔했다. 전체 3번이라는 드래프트 순번에서 알 수 있듯이 데뷔 당시에는 제법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데뷔 후 SK에서 ~~벤치워머로~~ 한 시즌을 뛰고, 2번째 시즌 도중 [[문경은]]의 맞트레이드 대로 지목되어 [[김일두]]와 함께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후 2번째 경기에서 23득점을 몰아치는 등 기대를 모았으나 그 이후 활약은 미비했다.
         그리고 그 시즌 종료 후 다시 [[신선우]] 감독의 유명한 시간차 트레이드의 일원이 되어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하며 ~~이적 돌림빵~~ 저니맨 취급을 받다가 06-07시즌 종료 후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다. 전역 후 다시 [[한정원]]과 맞트레이드 되면서 전자랜드로 컴백. 전자랜드에서도 역할은 주로 백업 가드다. 그것도 [[강혁(농구)|강혁]]이 팀에 합류하고, [[정병국(농구선수)|정병국]]이 제대하면서 제 4의 가드. 2012-2013시즌 도중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실 은퇴했고 시즌 종료 후 공식적으로 은퇴함으로써 조용히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무에서 활동하던 2008년, 지인의 소개로 유진를 만나게 된 후 가을부터 관계가 급격히 진전되었다고 하며, 실제로 임효성은 [[S.E.S]]의 팬이었다고 한다. ~~이러니 관계가 안 좋을래야 안 좋아질 수가 없지....~~ 실제로 슈가 무 경기가 있을 때 [[슈|유수]]과 함께 임효성을 응원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현재 아들 하나와 두 임로희임로린 딸의 아빠로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한다. ~~그리고 아내가 넷째를 갖고 싶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밤마다 공포에 떨고 있다~~ [[카더라]]. '''그러다가......''' 아내의 도박 혐의가 만 천하에 공개되면서 인생의 실패자가 될지도 모르는 황에 놓여있는 황이다.[* 때문에 부부간의 이혼, 불화 의혹도 돌았지만 임효성이 아내가 물의를 빚은것에 대해 사과함과 동시에 불화설은 루머임을 밝혔다.]
  • 임효준 . . . . 9회 일치
         | 웹사이트 =
         | 종합 입 =
         <!-- 수 -->
         [[1996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계성초등학교]]를 졸업, [[경신중학교]]에 진학했다가 [[오륜중학교]]으로 전학한 뒤, [[동북고등학교]]를 거쳤다. 현재는 [[한국체육대학교]]에 재학 중에 있다.<ref name="대구일보">https://www.idaegu.co.kr/news.php?mode=view&num=242141</ref> 어린 시절에는 [[수]]을 좋아했으나, 초등학교 2학년 때 [[고막]]이 터지는 바람에 수술대에 올랐고 이후 수을 포기해야 했다.<ref name="스포츠조선">http://sports.chosun.com/news/pcnews.htm?id=201802110100090830006597&servicedate=20180210</ref> 이후 초2때 종목을 바꾸어 빙부에 들어갔고, 4학년 때부터는 종별대회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ref name="스포츠조선"/>
         임효준은 중학교 1학년 때 오른발 [[정강이뼈]]가 부러졌지만<ref name="스포츠조선"/> 재활 치료 이후 중학교 3학년 때 [[2012년 동계 청소년 올림픽]]에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출전하였고, 1000m 금메달과 500m 은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스포츠조선"/> 고등학교 때에는 허리, 발목, 정강이, 손목 등에 부을 입어 7번의 수술을 겪어야 했다.<ref name="대구일보"/><ref name="스포츠조선"/>
         [[2018년]] [[2월 10일]]에 열린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쇼트트랙 남자 1500m]] 예선과 준결승에서 무난히 통과했고, 결승에서는 2분 10초 485의 [[올림픽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2018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자 금메달이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831734.html#csidxc20cd80bba1b97989951bed5ea919c0</ref> 또한 이번 기록으로 [[2010년 동계 올림픽|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이정수]]가 세웠던 2:10.949의 기록도 경신하게 되었다.<ref name="2018olympics-final">{{웹 인용|title=Short Track Speed Skating Results - Men's 1,500m Final A|url=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website=[[2018년 동계 올림픽|2018평창올림픽 공식사이트]]|publisher=[[국제올림픽위원회]]|accessdate=10 February 201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0210130015/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archivedate=10 February 2018|language=en|date=10 February 2018}}</ref>
         * {{언어링크|en}} [http://www.isu.html.infostradasports.com/cache/TheASP.asp@PageID%3D302037&SportID%3D302&Personid%3D1023295&TaalCode%3D2&StyleID%3D0&Cache%3D2.html?387081 임효준] - [[국제 빙 연맹]]
  • 장동윤 . . . . 9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www.clovercompany.co.kr/artists/jang.asp 공식사이트]
         | 준
         === 화 ===
         | [[뷰티풀 데이즈 (화)|뷰티풀 데이즈]]
         == 수 및 후보 ==
         ! 시
         | [[KBS 연기대]]
         | 남자 연작 단막극
  • 장문규 . . . . 9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청춘예찬 (화)|청춘예찬]]》 (2014년) - 팀장 역
         * 《[[제보자 (화)|제보자]]》 (2014년) - 대합실 남자 2 역
         * 《[[장수회]]》 (2015년) - 택시기사 역
         == 수 ==
         * 2010년 액터 VS 디렉터 오디션 리그 우수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장민호 (1962년) . . . . 9회 일치
         공안 당국은 북한과 그가 386 인사들과 접촉해 국내 정치 현안에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ref name="dd11">[http://www.ytn.co.kr/_ln/0103_200610301602410348 24 HOUR NEWS CHANNEL ::::: YTN (와이티엔)<!-- 봇이 따온 제목 -->]</ref> 5.31지방선거와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처리과정 등이 포함돼 있고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자의 동향과 6자회담에 대한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의 입장 등도 보고 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f name="dd11"/> 이후 대한민국 검찰에 USB 메모리 칩과 이메일이 가압류되었고, 그는 [[대한민국]] 검찰에 의해 구속되었다.
         * [[1999년]]~[[2003년]] 벤처기업 사장(유명 S기업 계열사 N사 및 게임전문 위성방송 경)
         * [[2003년]]~[[2006년]] K사에서 지파DMB사업 등 추진
         == 훈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ref name="dd11" />
         * [[주체사파]]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간첩 사건]][[분류:대한민국의 학생 운동]][[분류:반전 운동]][[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자]]
  • 장준휘 . . . . 9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한양대학교 연극화과
         === 화 ===
         * 《[[오빠생각 (화)|오빠생각]]》 (2016년) - 인민장교 역
         * 《[[돌연변이 (화)|돌연변이]]》 (2015년) - 기자 3 역
         * 《[[가문의 부활|가문의 광 3 - 가문의 부활]]》 (2006년) - 취재기자 역
         * 《[[9회말 2아웃]]》 (2007년, MBC) - 박훈 역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전명운 . . . . 9회 일치
         |직업= 독립운동가, 노동자,
         |자녀= 딸 전경숙, 전경
         이곳에서 [[안창호]] 등이 조직한 [[공립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08년]] [[친일파]] [[미국인]]으로 [[대한제국]]의 외부 고문을 맡고 있던 [[더럼 스티븐스|더럼 화이트 스티븐스]]가 귀국하여 [[일본]]의 보호가 한국에게 유익하며 [[한국인]]들도 환하고 있다는 망언을 늘어놓자, 이 사실에 매우 격분하였다. 스티븐스의 망언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고, 공립협회는 [[대동보국회]]와 공동으로 항의를 위한 4인 대표단을 구성했으나, 스티븐스는 대표들의 항의에도 극언을 계속하다가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분노한 그는 스티븐스의 친일 발언 이틀 후인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의 여객선 선착장에서 [[일본인]] 총사와 함께 있는 스티븐스를 공격했고, 격투가 벌어지자 같은 목적에서 별도로 대기하던 [[장인환]]이 [[권총]]으로 스티븐스를 저격, 이틀 후인 [[3월 25일]] 절명하게 하는 중을 입혔다. 그는 이때 장인환의 총격에 총을 입고 장인환과 함께 구속되었으나, 공범 관계가 아님이 드러나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당시 교민들은 성금을 모아 [[네이던 코플란]]을 변호사로 선임했다. 이때 통역은 [[이승만]]에게 요청했으나 자신은 기독교인이라 살인범의 변호를 통역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함에 따라 유학생이던 [[신흥우]]가 맡았다.
         그는 장인환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블라디보스토크]]로 잠시 이주했다가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귀환, 그 곳에서 '''맥 필즈'''(Mack Fields)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1920년 결혼, 귀화하였다. 말년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세탁소를 운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다.<ref>《미국의소리》 (2007.6.18) [http://www.voanews.com/korean/2007-06-18-voa18.cfm 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 미국서 독립의거 - 전명운, 장인환 의사]</ref>
         * 딸 : 전경(田敬英, 1924~)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33448/http://narasarang.mpva.go.kr/data/downloadFile.asp?filename=monthhero%5C199612.hwp 이 달의 독립 운동가 세자료 - 전명운], 1996년
  • 전상현 (야구선수) . . . . 9회 일치
         |선수명 = 전
         |문 표기 = Jeon Sang-Hyun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2017년 ~ 2018년)
         '''전현'''([[1996년]] [[4월 18일]] ~ )은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투수]]이다.
         ==[[무 야구단]] 시절==
         2016년 시즌 후 바로 [[무 야구단]]에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2016년 12월 12일에 입대하였다.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무 야구단 선수]]
  • 정범균 . . . . 9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www.cyworld.com/jbkzzang 정범균 미니홈피]<br />[http://cafe.daum.net/bk.zzang 정범균 다음 팬카페]
         **〈하극
         **〈세아 덤벼라〉
         **〈'''이''' '''개'''그맨들이 사는 '''세'''〉진행자 역
         * 《[[스트리트]]》[[SBS 파워FM]]
         == 화 ==
         * 왜 이렇게들 싸워? 가진 거라곤 OO 밖에 없는 형들이(하극)
         * ~라곤 안했다. 여기까지! 나머지는 알아서 찾아와(하극)
         * 인질범 말로 합시다! (세아 덤벼라)
  • 정성룡(야구선수) . . . . 9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박진(야구)|박진]](1982~1983) || → || '''정성룡(1984)''' || → || [[이해창(1953)|이해창]](1985~1986) ||
         || || → || '''정성룡(1985~1986)''' || → || [[손득]](1987~1988)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재학 시절 김성범[* 1982년 [[이민 타격]] 수자.], [[류명선]], 염창무, [[정윤수]], 최해명 등의 동기들과 팀의 첫 전국대회 진출을 이끌었지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만 3번 하는 데 그쳤다. 이들 중 정성룡은 '''제2의 [[장효조]]'''라 불릴 정도로 타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매서운 타격으로 정평난 포철공고 타선의 선두에 있었다. 이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삼성에 1차 지명되어, 바로 프로에 입단했다. 이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고졸신인 3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다른 두 명은 해태의 [[문희수]]와 롯데의 [[조용호]]. 84년 이들이 지명되기 전까지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지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 잡은 태였기에 결국 백업이나 2군[* 당시 [[KBO 퓨처스리그|2군 리그]]가 있기 전이었지만 삼성에서는 이미 2군을 운용하고 있었다.]을 전전해야 했다. [[장효조]]가 1989년 롯데로 이적한 후 그의 10번을 물려받을 정도로 여전히 기대받는 유망주였으나, 그동안 정성룡은 오랜 2군 생활 속에 제2의 장효조가 아닌 제2의 [[정동진]]이라 불릴 정도로 살이 쪘다.
         1992년 시즌 종료 뒤 ~~왼손 유망주라면 사족을 못쓰는 [[김응용|코감독]]에 의해~~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는데, 그해 해태가 삼성에게 완봉을 당한 경기가 있었는데 그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쳤기 때문인 것이 유력하다. 즉 그 시즌 홈런 3개중 2개를 코감독 앞에서 그것도 연타석으로 쳤으니 [[인생경기]]를 한 셈.[* 다음 해에 김성래와 양준혁이 괴물활약을 한 것을 보면.. 프로생활을 3년이나 연장하고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도 꼈으니 광이라고 할 수 있다.] 1993~1995년까지 해태의 몇 안되는 좌타자로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원조 10번이었던 [[장효조]]에 대한 올드 삼빠들의 대한 그리움과 그 이후 10번을 단 [[양준혁]]의 인기에 의해 지금은 거의 잊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해태에서 10번을 물려받은 선수는 당시 신인이였던 [[장성호]]였지만 1년만에 1번으로 갈아탔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 10번을 단 선수가 [[최훈재]] 그리고 [[양준혁]].
  • 정재안 . . . . 9회 일치
         |웹사이트 =
         전국고물연합회 정책위원장직도 함께 맡고 있다. 올바른 재활용정책 방향에 대해 경향신문에 폐기물 운반차량 규제 강화 ‘탁행정’
         세 고물까지 세금 인해야 하나
         *2014.04 ~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 설위원회 직능위원회 부위원장
         *2014.03 ~ 전국고물연합회 중앙회 정책위원장
         *2014.03 ~ 전국고물연합회 중앙회 기획총괄본부장
  • 진격의 거인/80화 . . . . 9회 일치
         절망적인 황 속에서 조사병단은 최후가 될지 모를 작전을 수행한다.
         * 쟝은 초대형거인이 아직 "뇌창"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코니, 샤샤를 데리고 시선을 끌기로 하고 그사이 미카사가 공격하도록 지시한다.
         * 코니는 접근하다 숨을 들이마시는 바람에 목에 화을 입었다.
         * 미카사는 근거리에서 뇌창을 발사한 여파로 파편에 맞아 부.
         * 한편 짐슴 거인과 대 중인 병단은 일방적인 공격 앞에 속수무책
         * 하지만 "말이 있어도 말에 타고 돌아갈 사람이 없는데 무슨 관이냐"며 절규한다.
         * 모든 것이 자신의 망에 지나지 않았던 건지, 엘빈은 자문하지만, 리바이는 "너는 잘 싸웠다"라면서 "꿈을 버리고 죽어줘."라고 말한다.
         * 엘빈의 작전은 조사병단 전원이 산개하여 돌격하면서 투석을 분산시키고 그 사이 리바이가 입체기동으로 접근해 짐승거인을 처치하는 것이다.
         * 물론 절망적인 황에서 인명피해를 각오하고 작전을 수행하는건 모든 전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엘빈은 너무 노골적으로 죽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서 일제의 옥쇄논리를 답습하는 듯한 느낌이다.
  • 진격의 거인/82화 . . . . 9회 일치
          * 아르민과 엘렌이 초대형거인과 대치하는 사이 나머지 일행이 갑옷거인에게 접근한다.
          * 아르민은 작전을 설명하는데, 그걸 들은 엘렌의 표정이 심치 않다.
          * 하지만 라이너는 후방을 버리고 전방의 샤샤와 코니를 공격하고, 샤샤는 부으로 명중시키지 못하고 코니만 왼쪽 턱을 부순다.
          * 코니가 부당한 샤샤를 확보하지만 생사는 불분명. 쟝도 부을 입었다.
          * 엘렌의 거인은 쓰러져 있는게 아니라 경질화된 태였다.
          * 엘렌은 거인을 경질화시켜 미끼로 쓰고 그 사이 입체기동으로 초대형 거인의 목덜미를 노렸던 것이다.
          * 아르민은 거의 타죽은 시체같은 태. 사실 죽었다고 봐야 한다.
  • 차재욱 . . . . 9회 일치
         | 웹사이트 =
         [[2008년]]까지 [[하이트 스파키즈]]소속으로 프로게이머 활동을 하다가 [[2009년|2008년 11월]]공군에 입대, [[공군 ACE]]에서 활약 하였다. [[2009년]] [[11월 29일]] 에서 [[정종현]]을 대로 1254일 만에 승리를 했다.
         2011년 7월, 부친을 당한 이후 8월 말에 사업을 물려받는다며 코치직을 그만두고, 등포구에서 오리고깃집을 운하고 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결승전에서 온게임넷 스파키즈와 [[삼성전자 칸]]이 맞붙게되었는데 대구 전 차재욱이 대 팀 삼성전자 칸 소속 프로게이머인 [[이성은]]에게 '''x밥'''이라는 발언을 하게된다. 이후 대구에서 승리한 이성은이 대 팀 부스를 향해 공깃밥을 던지고 빠삐놈 병神 디스코 믹스를 배경음악으로 춤을 추면서 빠삐코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세레모니를 선보였다.
         * [[2002년]] 청소년 사이버 게임대전 우승 (문화부장관)
  • 창작:Project NA . . . . 9회 일치
         ||<#8B0000> '''{{{#white 장르}}}''' || 복합[* 기본적으로 일, 미스터리 정도가 포함되지만, 특정 장르에 편중되지 않은 창작을 지향한다.] ||
         > * 반응이 시원찮아서(...) 이대로 이름을 쓰기로 했습니다. 대신에 [[창작:바벨 코스트|바벨 코스트]]라는 위 설정을 쓰고 있습니다.
         NTX(가칭)이라는 이름의 골동품 가게에서 벌어지는 일, 그리고 그곳에 있는 골동품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다소 가벼운 느낌의 설정. 자유로운 참가와 창작 활동, 최대한의 적은 제약을 지향한다.
         일명 '함장'이라고 불린다. 혹자는 수많은 해전을 거쳐온 웅이자 수많은 탐험가들을 지원한 '바다의 전설' 따위로 부르기도 하지만, 매번 이런 혼없는 찬양을 듣는 것이 지겨운 것인지 다 옛 일이라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를 보인다.
         간단히 위 설정과 관련된 작품을 작성하면 된다. 가게를 바탕으로 한 일물도 좋고, 골동품이 갖고 있는 사연을 작성해도 된다.
          * 특정 국가나 국가의 역사를 연시키는 물건은 주의할 것. 단, 물건의 특성 특정 시대를 지칭할 수 밖에 없다면 예외.
          * 입수에 있어 도굴이나 해 등의 범죄에 의해 입수된 물건 금지. 단, 제조/사용 목적 자체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무구류는 제외된다.
  • 창작:왕국 . . . . 9회 일치
         || 국어 || 해안왕국어(=어) ||
         남부에서는 가끔씩 모래폭풍이 불어 재산 및 인명 피해를 입히기도한다. 이를 예측하기 위해 "폭풍 감시원"이라는 직업이 있는데 모래폭풍을 관측해 방향, 규모, 속도 등등을 무전으로 보고하는 직업이다. 정부는 이들을 웅으로 선전하지만, 실제 대우는 좋지 못한 편이다.
         헌법에서는 왕국을 입헌군주국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국왕에게 군대 지휘권, 총리 임명권, 국회 해산권 등이 부여되어 있는 등 완벽한 입헌군주국은 아니다. 해외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나 국내의 왕실에 대한 지지율은 당히 높으므로 별 관은 없다.
         여러가지 이유로 국왕의 통치에 반대하는 자가 소수 존재한다. "반국가주의자"라고 불리는 이들 중에는 과격한 행동 양을 보이는 자들도 있기 때문에 국가의 적으로 여겨진다. 그렇기때문에 "반국가주의자"로써의 의견을 내는 자는 방첩기관과 경찰, 국가헌병대에 의해 제재된다.
         심각한 인구 부족 현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노동력을 어떻게든 수입해오려고 하는 편. 이 때문에 다민족 국가의 면모를 보인다. 이에 반대하는 왕국인들도 존재하며, 과격파의 경우에는 총기를 들고 이민족을 사냥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방첩기관과 경찰, 국가헌병대에 의해 제재된다.
         수세기 전부터 유명했던 조선업과 철강, 원유 가공 등이 특기. 열차 분야에서도 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18세 이의 남녀가 징집된다. 군복무 기간은 3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면 군복무에서 면제된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외인부대나 용병의 비율이 높다. 사발타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댓가로 사발타 정규군을 대여중이며, 망한세계 사람들 대로도 여러가지 혜택을 언급하며 외인부대 입대를 권유하고 있다.
  • 창작:제러마이어 쿨리지 . . . . 9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인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창작:코스모폴리턴|코스모폴리턴]]의 조연 캐릭터. 작중에서는 '쿨리지 감(님)', 혹은 더 줄여서 '감(님)' 정도로 불리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애칭으로 '제레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창작:나폴레옹 레스토랑|나폴레옹 레스토랑]]의 사장.
         = 신정보 =
         중년 미국인 남성. 작은 키와 백발이 인적인 미중년이다. 목에 돋보기용 안경을 걸고 있는데 신문이나 컴퓨터 등을 다룰 때 낀다.
         과거에는 사장 겸 매니저로서 레스토랑 홀에 직접 나와 서빙을 거들기까지 했고, 특유의 입담과 서비스 덕분에 손님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결국 별도로 고용한 매니저에게 모든 경을 맡기고 자신은 뒷방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손님이나 매스컴으로부터 점점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새로운 면모를 보이면서 다시 유명해지는데, 바로 '''VIP의 비밀 연락망'''으로서 활동하기 때문이었다. 원래 좋은 입지와 호화롭고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한 곳이라 평시에도 VIP들[* 시장을 포함하여 공무원들도 종종 다녀갔다고 한다.]이 자주 찾아오긴 했지만, 폐점하기 직전 1시간 즈음처럼 특정한 시간대에 VIP들이 와서 그들만의 회담을 열기도 한다. 이는 레스토랑이 거대하고 칸막이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자세한 것은 [[창작:나폴레옹 레스토랑|나폴레옹 레스토랑]] 항목 참고).
         [[창작:앨프레드 박|앨프레드 박]]과는 함께 도박을 즐기는 사이이기도 하다. 가끔은 둘이서 승부도 하는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앨프레드의 승률이 높지만 재미삼아 하는 거라서 둘 다 개의치 않고 있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 . . . . 9회 일치
         얼른 생각나는건 토트넘의 집이었다. 그야 거기가 안전할지 어떨지는 나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집주인이 우리 집 뒷마당에서 원히 인사불성이 됐으니 빈집이 된거 아닌가? 좋았어. 빈집털이 시작이다.
         마당을 나서면서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어쩌면 모험'''. 어쩌면 모퉁이를 돌아서면 녀석들이 있을지도 몰라. …… 좋아. 아니군. 토트넘이 보인다. 순간 나도 뭔지 모를 감정이 위장을 들쑤신다. 감정…… 보다는 '''구토감'''이라는게 맞을 것이다. 항 보던 얼굴도 이렇게 눕혀놓고 보니 터무니없이 혐오감을 자극한다. 나는 아예 그쪽을 외면해 버렸다. 어쩌면 모험 정신엔 위배되지만…… 저게 '''다시 일어날 일'''은 없겠지.
         나는 다시 어쩌면 모험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마당을 가로지르는 동안 담을 넘는 녀석들이 나올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담을 넘는 동안엔 녀석들이 몰려들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잘못 착지하면서 비틀거리는 사이 녀석들이 그늘에서 기어나오고 있을지도 몰라……. 일단 지금까지는 오케이다.
         나는 한 발을 옮길 때마다 부정적인 전제를 깔며 움직였다. 최악의 황을 미리 하는 걸로 경계심을 다잡고 언제든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바보같다는 것 안다. 누가 보면 클래식 시트콤 매니아인줄 알겠네. 와트니와 다르게 나는 시트콤에 빠질 기회가 없었다. 전기가 끝장난 이래 내게 주어진 오락거리라곤 초라한 소장도서 몇 권과 잠 밖에 없었다.
         나는 양손으로 우습지도 않은 철퇴를 들고 언제든 휘두를 준비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어쩌면"의 대책은 대개 이걸 휘두르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없어진다. 5kg에 불과한 아령이 생각보다 무겁다. 어쩌면이 '''역시나'''가 되었을 때 원없이 휘둘러 볼 수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이 역시나가 되는 황은 결국 오고야 말았다. 토트넘네 앞마당으로 넘어가는 때였다. 그르릉 소리와 함께 나는 발을 멈췄다. 한 마리…… 있다.
  • 천호선 . . . . 9회 일치
         |경력 = 국민참여당 임위원 <br /> 통합진보당 전임위원 <br /> 정의당 최고위원<br /> 정의당 당대표 <br /> 정의당 교육연수원 원장
         |웹사이트 =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국정황실장, 대변인, 홍보수석비서관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한 바 있으며, [[2015년 7월]] 까지 [[정의당 (대한민국)|정의당]] 대표직을 맡았다.
         * 1999년: 한국의미래 제3의힘 운위원
         * 2005년 1월 ~ 2005년 8월: 대통령비서실 국정황실 실장
         * 2012년 10월 ~ : [[진보정의당]] 대선기획단장 / 진보정의당 중앙운위원
         학생운동시절 활동을 함께했던 [[권태홍]]의 설득으로 [[국민참여당]] 창당기획에 참여하게 되었다. 창당 후 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10년]] [[7월 28일]] [[2010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재보선]]에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지역에 공천되어 출마하였으나 [[민주당]]과의 야권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에서 [[장]]후보에 패해 사퇴하였다.
         |[[2014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7·30 재보궐선거]]||[[수원시 통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경기 수원시 정)]]||19대||[[정의당 (대한민국)|정의당]]||-||-||-||사퇴
         [[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국민참여당]][[분류:통합진보당 당원]][[분류:정의당 (대한민국) 당원]][[분류:환일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양 천씨]][[분류:대한민국의 무신론자]]
  • 최란(배우) . . . . 9회 일치
         ||<#878787> '''{{{#EEE156 출생}}}''' ||<(> [[1960년]] [[11월 30일]], [[경북도]] [[김천시]] ||
         ||<#878787> '''{{{#EEE156 웹사이트}}}''' ||<(> [[https://twitter.com/#!/kasac1317|트위터]] ||
         [[김가연]]과 더불어 연예계 고소의 끝판왕으로 유명하다. 전 농구선수 [[이충희]]의 아내이기도 하기에 이충희에 대한 악플이 달리는걸 늘 모니터링 한다고 하고 변호사 자문도 구한다고 한다. 실제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에서는 이 명성이 워낙 높아 최란이라면 벌벌 떨 정도다. 더불어 경중 안따지고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고 한다.
          *계백 (묘 역)
          *[[빅(드라마)|빅]] (김옥 역)
          *광의 재인 (간호부장 역)
          *[[쾌도 홍길동]] (노궁 역)
          *포세이돈 (란 역)
         ==== 화 ====
  • 최만린 . . . . 9회 일치
          | 수 = [[2014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최만린'''(崔滿麟, [[1935년]] [[10월 3일]] ~ )은 [[대한민국]] 현대 추조각의 대표적인 1세대 [[조각|조각가]]이다.
         [[1935년]] 아버지 최춘빈(崔春彬)과 지석모(池錫模)의 외동딸인 어머니 지명순(池明淳) 사이에 2대독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 최씨|수원]]. 부친은 [[동아일보]] 만주 지국장이었고 어머니는 모더니스트였다. 양친 모두 [[본적]]이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종로]]이며 모두 서울 토박이 중에서도 골수 서울 토박이였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외가에서 외조부의 사랑을 받으면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나, 경기중학교 3학년 때인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부모님과 형제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1961년]] 27세에 국전 추천작가, [[1967년]]부터 서울대에 출강, [[1972년]]부터 국전 심사위원, 운위원을 거쳤다.
         [[1997년]] 대한민국 환경문화, [[2014년]]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수했다.
         * [[2014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조각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수원 최씨]][[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삼]][[분류:이회창]][[분류:김종필]][[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분류:프랫 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 최승민 (1996년) . . . . 9회 일치
         |문 표기 = Choi Seung-Min
         |사진 사이즈 =
         * [[무 피닉스 (야구)|무 피닉스]] (2017년 ~ 현재)
         ==[[무 피닉스 (야구)|무 피닉스]] 시절==
         !연도||연봉||인률(%)
         {{무 야구단 명단}}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대치중학교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무 야구단 선수]]
  • 최원권 . . . . 9회 일치
         |클럽=[[FC 서울|안양 LG 치타스 / FC 서울]] <br />→ [[광주 무 축구단|광주 무]] (군 복무)<br /> [[제주 유나이티드]] <br />→ [[대구 FC]] (임대) <br />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수원]] <br /> [[대구 FC]]
         === 광주 무 불사조 ===
         [[2008.12.22]] 군 복무를 위해 [[광주 무 축구단|광주 무]]에 입대하여,<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81210091454 최성국·최원권, 무 입대 확정…22명 선발자 발표]</ref> 주 포지션인 [[수비수|풀백]] 역할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며 멀티 플레이어로서 활약하였다.
         * [[2009년]] ~ [[2010년]] {{국기그림|대한민국}} [[광주 무 불사조]] (군복무)
         == 수 ==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
  • 최혁 (1992년 3월) . . . . 9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궁합 (화)|궁합]]》 (2018년) - 시경 동료 3 역
         * 《[[위험한 견례 2]]》 (2014년) - 감식반 팀원 4 역
         * 《[[또! 오해]]》 (tvN, 2016년) - 이준 역 - 음향기사 <ref>{{뉴스 인용|제목= 최준호, 화 이어 드라마 '또 오해' 캐스팅 |url=http://news1.kr/articles/?2628240 |출판사=뉴스1 |날짜=2016-04-08}}</ref>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코난(미래소년 코난) . . . . 9회 일치
         [[미래소년 코난]]의 주인공. 성우는 [[오하라 노리코]]. 국내 더빙은 KBS는 손정아, MBC는 박남.
         대변동 후, 남겨진 섬(残され島)[* 한국판에서는 '홀로 남은 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12살 소년. 문명이 멸망할 때에 추락한 로켓의 탑승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쟁과 대변동 끝에 멸망 직전까지 몰린 지구를 보아온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의 소유자로 성장했다. 또한 풍성한 자연 속에서 자란 덕분에 살아남기 위한 여러가지 지혜와 놀라운 강함,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해변에 떠밀려온 소녀 [[라나(미래소년 코난)|라나]]와의 만남을 계기로, 바깥 세을 알게 된 코난은 모험을 떠나게 되며, 도중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욱 크게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그의 존재로 인해 주변인물들도 성장. 모험을 끝낸 후, 고향인 남겨진 섬으로 돌아가는데 그 동안 섬은 신대륙이 되어 있었다.[* 극중에서 언급되어온 지각변동의 향이었다.] 이 신대륙에 라나와 같이 정착할 듯.
         발가락 힘이 인적이나 코난의 신체능력은 발가락 힘 말고도 '''전체적으로 매우 우수하다'''. 1화에서 혼자 자기보다 큰 [[어]]를 잡은데다 이후 곳곳에서 코난이 가진 놀라운 강함을 확인할수 있다. 다만 발가락 힘이 좀 더 자주 나온 트레이드 마크일 뿐이다. 어찌되었건 굉장한 강함을 지녀서 대가 어른이라도 공평한 황에서 붙으면 이기며 작살 던지기는 뛰어난 정밀성을 자랑한다.[* 눈에 안보일 정도로 높이 던졌다가 발가락으로 받아냈다.] 머리도 좋으며 정신적으로도 강하고, 절망적인 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줄거리 . . . . 9회 일치
         1910년, [[캔자스]] 주 애블린에 말을 탄 노인 한명이 찾아온다. 불스 헤드(Bull's Head)라는 주점 안으로 들어선 노인은 그곳의 사람들에게 자신은 사일러스 그리브스라고 소개한다. 이에 젊은 남자가 현금 사냥꾼인 사일러스 그리브스 맞냐고 물어보자 사일러스는 자신이 현금 사냥꾼 일을 했던 적이 있다며 인정한다.
         사일러스는 자신이 볼 일이 있어서 왔다고 말하지만, 흥분한 젊은이는 사일러스에게 맥주를 한 잔 사주며 현금 사냥꾼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일러스 그리브스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싸구려 소설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사일러스는 젊은 남자 "드와이트", 그곳에 있는 유일한 여자 "몰리", 냉소적인 남자 "잭", 할아버지 "스티브", 주점 점장 "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링컨 카운티 전쟁[* Lincoln County War. 1870년대 말 [[뉴멕시코]]에서 벌어졌던 분쟁. 인들 간의 권 분쟁이 지역 단위 총격전으로 번져버렸다.] 당시, 빌리는 자신의 지인이였던 존 턴스톨의 복수를 하기 위해 분쟁에 뛰어들었다. 그 곳에는 사일러스 그리브스 또한 있었다.
         사일러스는 빌리가 숨어사는 스팅키스프링스 근처 버려진 농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편에 속해있었던 보안관, 팻 가렛의 추격대가 빌리의 은신처를 습격한 것이었다. 멀리서 나는 총소리를 들은 사일러스는 서둘러 빌리의 은신처로 달려간다. 팻 가렛의 수많은 부하들이 빌리가 있는 농가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 포위망을 정면돌파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 사일러스는 농가 뒷쪽으로 돌아가서 그곳의 적들을 기습한다. 실력이 형편 없었던 적들은 기습을 당하자 마자 순식간에 무너진다. 사일러스는 빌리 일당의 엄호를 받으며 농가 뒷문으로 들어간다. 그는 계단에서 소총을 쏘던 [[https://en.wikipedia.org/wiki/Dave_Rudabaugh|더티 데이브]]를 지나 빌리와 [[https://en.wikipedia.org/wiki/Charlie_Bowdre|찰리 보우드레]]가 있는 방에 들어섰다.
         사일러스를 본 빌리는 그를 "아미고"라고 부르며 소총을 건네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잭이 사일러스(현재)에게 빌리 더 키드랑 친구였던 거냐고 물어보자, 사일러스는 "응…그런 셈이지…."라고 대답한다. 어쨌든 사일러스는 소총을 받아 인해전술을 시전하는 가렛의 부하들을 쏴죽인다. 하지만 반대편을 담당하던 보우드레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가렛의 부하들이 개틀링을 가지고 와 농가에 쏴갈기는 황까지 되자 빌리는 도망쳐야 하니 마구간에 가서 말을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사일러스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왜 니 명령에 따라야하는데ㅅㅂ"같은 생각을 했지만 일단 빌리의 말을 듣기로 했다. 사일러스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데이브를 지나, 농가 뒷문을 박차고 나와 마구간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가렛의 부하들을 해치운다. 결국 마구간에 도착한 사일러스, 하지만 그곳에서 가렛을 만나게 된다.
         갑자기 이야기에 끼어 든 드와이트. 드와이트는 자신이 소설에서 읽은 이야기를 말한다. 사일러스는 가렛을 대로 결투를 벌여 정정당당하게 그를 죽인다.
         가렛에게 처맞고 체포된 사일러스. 농가에서 농성하던 빌리 역시 더이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여겨 항복, 그대로 체포된다. 둘은 링컨 감옥에 수감되어 사형 선고를 받는다.
  • 키라키라 네임 . . . . 9회 일치
         비식적이고 특이한 이름을 뜻하는 일본의 속어.
          * DQN네임 : DQN네임(DQNネーム, 도큥 네임)이란, 2ch 용어이다. 「DQN인 부모가 아이에게 붙일 듯한 이름・DQN인 부모가 아이에게 붙이는 이름」을 뜻한다. 「DQN」이란 「식을 일탈한 사람・비식적인 사람」을 뜻하므로, DQN네임은 식에서 일탈한, 몰식하고 기묘한 이름을 놀리는 의미로 쓰인다.
          * 키라키라 네임 : 키라키라 네임(キラキラネーム, 키라키라=반짝반짝)은 DQN네임과 같은 뜻이다. DQN네임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이름을 붙인 부모에 대한 비하적인 의미는 들어있지 않고, 특이한 이름이라는 뜻에 가깝지만 사실 같은 의미로 쓰인다. 공공 보도에서 DQN네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이 같은 이름을 부모를 일률적으로 DQN으로 비하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이러한 대체 용어를 사용한다.
          * 이한 뜻이나 음란한 뜻을 가지게 되는 이름¨아나루(亜成), 레즈(麗澄) 운코우(雲広, 운코=똥)
         특이한 이름을 가지게 되어 개인적으로 당히 괴롭게 된다.
          * DQN네임 정리 사이트(http://dqname.jp/)
  • 킹덤/497화 . . . . 9회 일치
          * 그러나 왕분의 의견은 정반대. 그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게 아니냐고 딴죽건다. 몽념이 예한대로 왕분은 비관적인 입장이다. 업 자체도 한단에 버금가는 대도시에 강력한 군사도시가 즐비한 왕도원 안에 위치한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이 작전은 자살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하료초도 속으로는 그 평에 맞장구친다.
          * 몽의는 그렇게 될 작전을 짜지 않았다며 자신들을 믿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자 왕분은 "조의 눈을 서쪽으로 돌리고 그 사이 업까지 진격한다"는 전제 자체는 성립한다고 치더라도 거기서 병참이 분단되고 퇴로가 막히게 된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한단, 알여, 요양 등에서 오는 대규모 원군에 업에서 생길 각종 최악의 황들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이러한 악조건을 모두 고려한 책략이 나온 거냐고 묻는다.
          * 이번엔 창평군이 직접 나서 발언한다. 이들 셋을 부른 이유는 작전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차 전략 이들 셋의 부대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업은 한단의 수비망에 속하고 아무리 미리 대비해도 이목이 존재하는 한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전력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정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중요한 점이 현장의 적확한 판단.
          * 일찍히 세 사람들의 부대가 "독립유군"이란 특수한 권한을 받은 것은 이런 역할을 수행할 부대를 기르기 위함이다. 창평군은 그 점을 강조하면서 오늘 전체 전략을 알려주는 것도 큰 그림을 아는 태에서 독립유군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창문군도 그의 말을 거들며 셋은 아직 오천인장이나 장군 이의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참모들도 그런 전제가 없다면 이 작전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오천인장들이 들떠 있는 사이 하료초는 냉정하게 황을 판단하고 있다. 이제 이들 부대의 중요성은 잘 알겠지만 정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전권을 휘두를 "총대장". 하료초는 창평군에게 이 어려운 중책을 맡을 장군이 누구냐고 묻는다. 그런데 창평군은 즉답을 하지 않고 창문군과 정도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 창평군은 뜸을 들인 뒤에야 그 이름을 말하려 하는데.
  • 킹덤/499화 . . . . 9회 일치
          * [[하료초]]는 남쪽에서 징집된 [[벽(킹덤)|벽]]과 재회한다. 간만에 인사를 나눈 둘은 이번 작전에 투입된 "연합군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하료초는 그 규모가 20만에 이르며 근 10년 동안 합종군을 제외하곤 최대 규모라고 말한다. 그런데 벽은 그것 보다 이질적인 세 군단이 혼성된 점에 대해 더 놀라워한다. 하료초는 육장 시대에 가끔 있었다고 얘기할 뿐 특별한 감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수뇌부와 가까운 벽은 좀 더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본 층부의 긴장된 분위기를 언급하며 "이 조 서부공략전은 훨씬 큰 전투가 된다"고 추측한다.
          * 그때 근처에서 [[창평군]]과 함께 [[왕전]]의 모습이 나타난다. 최고사령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병사들 사이에서 드높은 함성이 터져나온다. 그를 바라보던 벽은 하료초에게 그가 대장군을 맞는 것에 대해 어떻게 여기냐고 의견을 묻는다. 아무래도 벽은 그를 신뢰하지 못한다. 산양전에서 미끼로 쓰였던 전례도 있지만, 그 속 모를 눈빛은 아군 조차 불안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 과거 육대장군의 일각이자 군사로서 "지력 하나만으로 육장에 올랐다"고 평해지던 호양. 다른 육장들이 무용을 자랑할 때 그는 오로지 군략만으로 싸웠고 전쟁의 자유를 받가 각개전투했다는 인이 강한 육장들이 실제론 그가 그려놓은 큰 그림 하에서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 병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창평군과 왕전은 한가로워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자리엔 [[창문군]]을 비롯한 참모진이 전부 자리하고 있었는데, 창평군은 이들을 대포하는 입장이면서도 "업 공략이 전황 여의치 않으면 포기해도 좋다"는 발언을 한다. 업 공략이야 말로 작전의 진짜 목표이며 이것이 좌절되었을 땐 진나라의 명운도 좌절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발언. 창문군은 그렇기 때문에 창평군의 발언에 내심 경악한다. 하지만 개억은 진짜 버리란 것이 아니라 그정도로 유연하게 대처할 것을 당부하는 것이며 그만큼 업공략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전장이라 그렇다고 이해한다.
          >뭐 늦든 빠르든 이런 승부를 걸 대전은 몇 번인가 있을 거라고 예했었으니까.
          * [[미평]]은 그 모습을 보고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린다. 마침내 신이 왕의 장군의 창을 쥐고 전장에 나서는 날이 온 것이다. 정은 이 창을 쥔 느낌이 어떻냐고 소감을 묻는다. 신은 처음 이 창을 쥐었을 땐 너무 많은 황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창에는 신경도 쓰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 다시 쥐어본 창은 무척 무겁고 뜨겁다고 말한다. 신은 자연스럽게 왕의 장군의 유언을 떠올린다.
          * 신은 그걸 휘두룰 수 있겠냐고 묻자 오히려 자기가 휘둘릴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쓰면서 익숙해지겠다고 다짐한다. 이러는 사이 행렬이 꽤 정체돼 뒤에서 불평이 도착한다. 다시 행렬로 돌아가는 신에게 정은 "언제나처럼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격려하고 신은 반드시 이 창으로 이목의 목을 날려버리겠다고 장담한다.
  • 킹덤/510화 . . . . 9회 일치
          * 열미성이 진군에게 떨어졌다. 경사스러운 밤이었지만 [[비신대]]의 신병들에겐 꼭 그렇지도 않았다. 이들 대부분은 패잔병처럼 침울하다. [[간두]]는 고개도 들지 못할 정도로 기가 죽은 동료들 사이에서 분통을 터뜨린다. 기껏 선발시험을 통과하고 그토록 어려운 훈련을 거쳤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며 자기 자신의 무능에 화를 내는 것이다. 다른 신병들도 비슷한 마음이다. 전투 전만 해도 자신감에 넘쳤으나 지금은 패배감이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신(킹덤)|이신]]은 원래 삼천장 이 급에게만 나가는 술을 따로 빼돌려 신병들에게 하사했다. 송좌는 이 사실을 알려주며 손수 술을 따라준다. 간두는 좋은 술이 있어도 이 첫 출진에서 죽고 다친 녀석들이 너무 많아서 마실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송좌는 그럴 수록 마시면서 "나는 살아남았다"고 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건 평생 한 번 밖에 없는 첫 출진 날 밤의 술이다. 무슨 맛인지 확실히 봐두라는 말에 신병들은 하나 둘 술잔을 집어든다.
          숭원의 이야기는 신병들에게 격려가 되었다. 그런데 돈 형제는 첫 출진에서 활약한 자신들은 숭원보다도 뛰어난 병사가 되지 않겠다고 설레발을 치는데 송좌는 첫 출진에서 너무 잘 나간 녀석들이 설치다 죽기 십이라고 말해서 기를 죽인다. 간두는 문득 대장 이신도 처음엔 수치를 당했냐고 묻는다.
          * 그를 잘 아는 미평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은 첫 출진부터 대단한 공을 세웠다. 사감 평원에서 미평과 동료들이 포위되었을 땐 혼자 적진에 돌격, 20명을 베어넘기면서 활로를 뚫었다. 그 직후엔 어디서 말을 구해다 타고 적 대군 사이로 달려가 아군을 구해냈고 곧이어 처음 본 장갑전차를 날려버렸다. 마지막엔 [[표공]] 장군의 돌격으로 생긴 틈으로 파고들어 적장의 목을 취해, 이 첫 출진의 전공으로 단숨에 백인장 자리를 받았다.
          신병들은 식을 초월하는 대활약에 입이 딱 벌어진다. 송좌도 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함께 싸우면 그 이으로 대단한 일 투성이다. 송좌와 숭원은 그보다 열 살은 많아 평소엔 신을 꼬마 취급하지만, 그래도 전장에선 그 누구보다 멋진 남자가 신이라며 추켜세운다.
          하료초는 첫 출진부터 중임을 떠맡겨 미안하다고 위로하는데 창인은 그 점은 오히려 기뻤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이, 했던 것과 너무 달랐던게 문제였다. 하료초는 그가 아직도 손을 떠는걸 발견한다. 창인은 그저 너무 세게 연사를 한 탓이라고 말하다가 "게다가 처음으로 사람을 쐈다"고 덧붙인다. 하료초는 후자 쪽이 떨림의 진짜 원인일 거라고 추측한다. 그게 사실이었다. 창인은 이런 나약한 자가 부대에 들어와서 죄송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료초는 이번 전투에서 비신대의 제 1공은 창인이라며 격려한다.
          하료초는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양단화는 자신도 왕전을 보러왔는데 막 와보니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 킹덤/513화 . . . . 9회 일치
          * 와린도 진의 전략을 간파하고 봉명이 진나라를 칠 것도 예, 거기에 맞춰 초나라가 북하면 초나라가 중화를 손에 넣는다고 생각한다.
          * 초의 재 [[와린]]은 [[이원]]과 함께 그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바뮤와 옥죽이란 남자 하인에게 팔을 주무르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도착한 소식을 허투루 들은게 아닌지 "진이 진심으로 조를 치려 한다"며 진지하게 의견을 밝힌다.
          와린은 진의 진짜 노림수가 한단 밑의 업이라는걸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이원은 "그렇다면 진은 업을 치지 못하는가?"라고 질문을 고친다. 와린이 보기엔 치지 못한다. 와린은 바뮤를 단 밑으로 내던지고 설명을 이어간다. 그녀는 조 왕도권의 지리와 방어체제를 잘 알고 있다. 적이 쉽게 들어와도 산맥과 대하로 둘러싸인 입구, 열미만 수복하면 적은 그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질식해 죽는다.
          * 다시 초나라. 이원은 와린의 설명을 듣고 곧 "그렇다면 우리가 진을 쳐야할 때"가 아니냐고 묻는다. 와린은 그도 전쟁에 안목이 생겨간다고 감탄한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녀는 위군이 제일 먼저 움직일 것이고 진은 초군과 대치 중인 [[몽무]]군을 쪼개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단숨에 북해 함양까지 진격한다. 초는 이미 진나라에 장군수를 둔 셈이고 결국 천하는 초의 것이 될 것이다.
          몽념도 더이 아무 말하지 않는다.
          * 부하들 간의 설전이 지겨워졌는지 환의가 마론에게 자기가 아는건 한 가지 뿐이니 그걸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그는 사실 백로 밑에서 부장 생활을 할 때부터 왕전과 알던 사이다. 그래서 딱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 아무 말 없이 말을 달릴 뿐이었던 왕전은 마침내 열미에서 출병한 이후 최초의 지시를 내린다. 그는 [[양단화]]의 산민족 군단을 분리했다. 현재 진군의 위치 북동쪽 양토에는 [[공손룡]]이 전선을 펼치고 있다. 왕전은 양단화의 산민군 5만으로 공손룡의 9만 병력을 요격하게 지시한 것이다. 이신은 이게 좋은 판단인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우선 공손룡군이 4만이나 많고 자군 병력은 분단됐기 때문이다. 하료초는 현시점에선 책이라고 보는데 진군이 업으로 가는데 최대 장애물이 공손룡의 9만 병력이었다. 양단화가 공손룡을 막는 동안 진군은 추격 당할 걱정없이 업까지 도착할 수 있다. 이신은 또 아군을 방패로 삼는 거냐고 달갑지 않아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는 하료초에 말에 반박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진군이 도달한 곳은 업 공략과는 하등의 관도 없는 소도시 오다. 그저 따를 뿐이라 했던 왕분 조차 당황하고 지휘관들이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입을 모으는 작전이었다.
  • 타쿠마 마모루 . . . . 9회 일치
         타쿠마 마모루는 중학교에서 공업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야구부]]에 소속되었지만, 연습 태도가 나빠 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고등학교 2학년에 [[중퇴]]했다. 중퇴 이후에는 이타미 시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1984년 11월, 부동산회사 업무 중 관리하던 오사카 시내의 아파트에, 수금을 빌미로 하여 여성의 집에 들어가서 폭행하고 [[강간]]을 저질렀다. 체포를 당하지 않으려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환청이 들린다."고 호소하여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오사카 지검에서는 성격 이이 있으나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있다고 진단하여 기소하였다. 그리고 1986년 7월 31일, 오사카 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으로 실형 판결을 받고 나라 소년 교도소에 들어간다. 1989년 8월에 교도소를 나왔다.
         1990년 6월에 [[의사]]라고 거짓말을 하여, 18세 연의 여성과 결혼했으나, 거짓말이 들켜서 3개월 만에 이혼했다. 그 다음에는 초등학교 시절 은사였던 19세 연의 여성(오사카 교육대학 출신)과 결혼했다. 1993년에 이타미시 교통국에 노선 버스 운전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동료와 싸움을 벌이거나, 버스에서 운전석 뒤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향수 냄새가 나니까 뒷자리로 가달라"고 말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1994년 9월 21일에 아내와 이혼한다.
         1998년 부터 이타미 시내 초등학교에 기술자로 근무했다. 1999년 3월에 교사 4명에게 정신안정제를 넣은 차를 먹여서 해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간이감정에서 "정신분열증 의심"이라고 진단을 받고, 니시노미야 시(西宮市)의 정신병원에 입원조치 된다. 사건은 불기소가 되었다.
         여자친척으로는 [[오소 (살인조각가)|오소]]
         {{구별:[[오소 (조각가)|오소|살인조각가]]}}
  • 토리코/375화 . . . . 9회 일치
          * GOD의 세포에는 지구 모든 "음식의 기억"이 누적된다. 결국 GOD의 조리는 그 모든 음식을 처리하는 것이 되는데, 식재의 목소리를 따라 올바른 경로를 파악해서 그 끝에서 빛나고 있는 맛을 포획하는 것이다.
          * 약 0.1 초의 시간 동안 무방비해지는데 "눈을 떴을 땐 저세"이라며 일억참을 날린다.
          * 스타준의 제 3의 눈에는 죠아의 눈속임이 통하지 않았다. 스타준은 여유롭게 "여기가 저세 같진 않은데"라고 빈정거린다.
          * 블루 니트로 아톰과 싸우고 있는 청귀는 대를 확실히 앞서는 듯 하다.
          * 두 악마를 꺼낸 토리코는 탈진한 태. 머리 색이 검게 변해있다.
          * GOD에 지구의 모든 식재의 맛이 누적되어 있는지 설명은 되지 않지만 GOD가 지구의 모든 생물을 포식->다시 동면에 들어가고 지에 새로운 생태계가 번창->또 깨어난 GOD가 싹쓸이 하는 식으로 식재의 맛이 누적되어온 듯하다.
          * 청귀는 지금까지 적귀와는 달리 아카시아의 풀코스를 탐내거나 먹고 강해지는 묘사가 없었는데, 어쩌면 청귀는 이미 블루 유니버스에서 그 우주의 풀코스를 먹고 강해진 태일지 모른다. 실제로 블루 니트로를 대로 훨씬 선전하고 있다.
  • 토리코/393화 . . . . 9회 일치
          * 그는 이치류와 플로제의 협조를 받아 장대한 계획을 구하고 그것이 지금의 황이다.
          * 그로부터 얼마 후. 아카시아는 페어의 협조요청을 받아들이고 네오의 봉인을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페어에게 이것저것 지식을 얻던 아카시아는 문득 "식욕의 악마에게 잠식 당하지 않는 법"에 대해 묻는다. 아카시아는 그것이 네오에게 먹힌 식혼들을 구하는 열쇠가 될지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만약 그 식혼들이 네오 안에서 살아 있는 거라면 반드시 꺼내줄 방법도 있을 거라고 역설하는데 페어는 쓸데없는 소리라 일축하며 혹시 네오 때문에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거냐고 묻는다. 페어는 과거 네오의 소행은 악행도 뭣도 아닌 그저 식사이며 지금와서 아카시아가 책임을 느낄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아카시아는 그저 자신 안의 식욕에 대한 수수깨끼를 해결하고 싶은 거라고 항변하지만 페어는 귀담아 듣지 않고 풀코스의 출연이 가까웠으니 플로제의 설득이나 신경쓰라고 말한다.
          * 페어에겐 무시 당했지만 아카시아의 의문은 씻겨지지 않는다. 그는 달을 바라보며 네오가 왜 자신에게 깃들었는지 자문해 본다. 네오는 이미 수십억년을 먹고 먹기를 반복했다. 할 수 없는 세월을 그저 먹고만 있는 것이다. 생각을 거듭하던 아카시아는 마침내 "네오는 사실 이미 배가 부른게 아닌가?"라는 발에 도달한다.
          * 다시 시간이 흘렀다. 아카시아는 엄청난 발견을 알린다. "네오가 싫어하는 맛"에 대한 것. 아카시아는 이것이야 말로 네오 안의 동포를 구할 단서라고 말한다. 페어는 또 그딴게 집착하냐고 쏘아붙이지만 아카시아는 확고한 자세로 "그럴 방법이 있다"고 강조한다. 식욕의 에너지가 무한한 것은 만고의 법칙이고 구르메 세포가 이 세에서 완전히 사라지는건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에너지의 절대량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며 끝없는 순환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네오에 먹힌 식혼들 또한 사라진게 아니라 어딘가에 갇혀 있는게 맞다는 것.
          * 그때 누군가가 망설이는 텟페이의 손을 붙잡는다. 바로 노킹 마스터 지로의 식혼이다. 홀연히 나타난 지로는 지구를 노킹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짚어주는데. 텟페이와 아이마루는 깜짝 놀라는데 지로는 태연하게 혼세계에서 이치류가 보냈다고 말한다. 지로는 죽었던 할아버지와 재회한 것에 감동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다. 지로는 "지구 노킹 정도야 별 것도 아니다"라며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자신의 칭호 "노킹 마스터"를 텟페이가 계승하라고 말한다.
         지로를 죽였어야 했는지도 의문으로 남는데 물론 지로는 아카시아를 구적으로 노킹하려고 했으니 경계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과연 이치류도 따라준 계획을 지로라도 이해하지 못했을까? 계획을 오로지 이치류에게만 전한 것도 부자연스럽다.
  • 페어리 테일/513화 . . . . 9회 일치
          * [[미네르바 올랜드]]와 [[유키노 아그리아]]가 조력하러 오나 황 종료.
          * 엘자는 웬디의 부가술을 섞어서 맹공을 펼치나 아이린은 그 공격을 꽃모양(꽃표)으로 늘어놓으며 여유롭게 대한다.
          * [[스팅 유클리프]] 대 [[라케이드 드래그닐]]의 싸움은 스팅의 승리로 끝났다. [[미네르바 올랜드]]와 [[유키노 아그리아]]가 조력하러 오지만 이미 끝난 황. 프로시와 렉터가 [[로그 체니]]와 스팅에게 달려들어 기쁨을 표현한다. 프로시는 다짐한 대로 로그와 함께 밥을 먹자고 하는데 황을 알리 없는 로그는 어리둥절.
          * 엘자는 폭발을 뚫고 공에서 "요란의 검"으로 무수한 검격을 날려 반격을 가한다. 폭발과 참격의 난무로 어마어마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웬디는 섣불리 해치웠다고 생각하지만 엘자는 이정도로 당할 대가 아니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 엘자의 예대로 아이린은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연기기 걷히면서 그녀의 모습이 드러난다. 아이린은 엘자의 기술이 뛰어나다고 칭찬하며 박수까지 쳐준다. 그리고 그녀가 날렸던 검을 꽃모양 마크(꽃표)[*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찍어주는 참 잘했어요 마크]를 만들어준다.
          꽤나 무정한 말이지만, 어차피 아이린도 별 신경쓰지 않는다. 그녀는 딸이 줄곧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살아있든 어떻든 관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났으니 퍽 기구한 일이 아니냐고 묻는다. 엘자는 단호하게 "누가 됐든 길드를 공격한다면 적"이라고 잘라 말한다. 여기에 아이린도 "나의 알바레스 제국에 이를 드러내는 자도 적일 뿐"이라 응수하며 모전녀전을 보여준다.
         의견이 분분했던 아이린의 정체는 "어머니"로 일단락. 아이린도 400년 전 인물일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는데 정작 [[아크놀로기아]]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점은 뭔가의 복선으로 취급된다. 아이린까지 과거의 인물이라면 [[제레프 드래그닐]]과도 과거부터 알던 사이일 가능성이 높으며 [[오거스트]] 보다 인연이 오래됐을 수도 있다.
  • 페어리 테일/516화 . . . . 9회 일치
          * 한편 나츠는 자신의 심세계에서 아버지 [[이그닐]]을 만나는데 이그닐은 그의 안에서 "용의 싹"과 "악마의 싹"이 융합해 자신이 더는 막을 수 없다고 밝힌다.
          * 아이린은 웬디가 멸룡마도사이며 젊고 용화를 막았고 고도의 인챈트 재능까지 겸비한걸 눈여겨 본다.
          엘자의 말과 함께 [[웬디 마벨]]이 천룡의 익격으로 공격한다. 치명적인 처를 주진 못했지만 아이린이 틈을 보였고 엘자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둘의 연속 공격으로 아이린은 처음으로 처를 입는다.
          * 문제의 나츠는 여전히 심세계를 헤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여정도 거의 끝나서 웬디나 [[가질 레드폭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 엘자는 자신이 편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외치고 웬디에게 신호를 준다. 웬디는 신체 강화마법 "데우스 에퀘스"로 엘자의 힘을 향시킨다. 하지만 인챈트라면 아이린의 전문분야다. 아이린은 곧 데우스 제로로 데우스 에퀘스의 효과를 쇄하는데 웬디도 지지 않고 같은 데우스 제로로 아이린이 건 데우스 제로를 제거한다. 아이린은 웬디가 그정도로 고도의 인챈트 마법을 사용하는걸 보고 내심 놀란다. 하지만 그때 엘자의 공격이 덮쳐온다. 그걸 보고도 히죽 웃는 아이린.
          * 그녀가 태아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인간에게 인챈트하는건 불가능했던 것인지. 그녀는 줄곧 그걸 생각해왔다. 하지만 전부 정답이 아니었다. 정답은 "성". 같은 멸룡마도사이며 인챈터, 게다가 용화를 극복한 젊은 육체. 아이린은 오로지 이때만을 기다렸다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26화 . . . . 9회 일치
          * [[길다트 클라이브]]는 [[카나 알베로나]]를 지키기 위해 부을 무릎쓰고 [[오거스트]]와 동귀어진할 기세로 돌격한다.
          * 오거스트가 바로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태어난 친자. 제레프는 그가 친자인줄 모르는 채로 만나 "오거스트"란 이름을 붙여주고 거두게 된다.
          * [[길다트 클라이브]], [[카나 알베로나]] 부녀는 합심해서 [[오거스트]]에게 공격을 퍼붓지만 어떤 마법으로도 오거스트의 몸에 처를 낼 수가 없었다. 카나의 카드를 오거스트가 피하면서 빈틈이 생기고 길다트가 "올크래쉬"를 명중시키지만 이또한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 채 반격까지 허용하고 만다. 길다트는 자신의 마법은 물론 페어리 글리터 조차 통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지만 해답을 낼 틈도 없이 오거스트의 공격이 카나에게 향한다.
          항 이름으로 부르던 카나가 자기도 모르고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길다트는 멈추지 않는다. 오거스트가 제정신이냐고 묻자 그게 부모라고 대꾸한다.
          * 과거 [[마스터 하데스|프레히트 게이볼그]]가 [[메이비스 버밀리온]]에게서 적출한 "생명"은 골치 아픈 존재였다. 아이는 건강한 신생아였지만 프레히트는 곧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생긴 아이임을 알게 된다. 메이비스에게 아이가 생긴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 아이는 빛도 어둠도 아닌 강대한 마력의 소유자였다. 살려뒀다면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예한 프레히트. 그러나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일 수는 없었는지 외딴 곳에 아이를 버리는 걸로 문제를 묻어버린다.
          길다트의 설명을 들은 카나도 빠르게 황을 파악한다. 카나는 방금 전에 길다트가 "길동무" 운운했던 걸로 성을 내며 카드를 날린다. 잠시 무방비 태였던 오거스트를 맞추는데 성공하지만 큰 타격은 주지 못한다. 그런데 카드 중 하나가 길다트의 왼쪽 어깨에 꽂힌다. "LOVE"라고 적혀진 카드. 이 카드는 공격용이 아니다.
          바로 그가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 페어리 테일/537화 . . . . 9회 일치
          * 이때부터 메이비스는 제레프를 우시했고 사랑했고 끝내 원망했던 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 무적인 것 같았던 백마도사 [[제레프 드래그닐]]은 동생 [[나츠 드래그닐]]의 불꽃에 패해 쓰러졌다. 나츠는 친구들을 찾아 길드를 나서고 정신을 되찾은 [[메이비스 버밀리온]]에게 제레프의 뒤처리를 맡긴다. 페어리 테일 길드에 단 둘이 남은 옛 인연. 제레프는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며 나츠의 강함에 감탄하나 마무리가 무르다며 이래서는 몇 분 이내로 원복구될 거라고 조소한다.
          메이비스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페어리 테일 길드의 초대 마스터로서 동료들을 괴롭히고 처입힌 것을 용서할 수 없고 당장 이 세에서 말소해버리고 싶다고 냉정히 말한다. 제레프가 뜻모를 미소와 함께 "너에게 죽는다면 나쁘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메이비스 또한 뜻모를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의 옆에 앉더니 "이제 편히 잠들어도 된다"고 말하는데.
          >당신은 저의 우이었습니다.
          * 하지만 제레프는 고난도 함께 주었다. 그는 죽음을 옮기고 다녔고 메이비스에게도 같은 운명을 부여했다. 그녀의 동료를 처 입혔으며 그녀를 이용해 페어리테일을 파괴하려했다. 그래서 제레프가 밉다. 미운 동시에 사랑스럽다. 제레프가 가진 고독과 딜레마는 같은 저주를 받은 메이비스만 공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비스는 사고가 모순된다고 토로한다. 그에 대해서만은 아무 것도 계산할 수 없다.
          * 제레프가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안, 메이비스는 감정의 절제를 놔버린다. 그녀는 제레프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를 밉다고, 동료를 처입히고 길드를 부순 그에게 죽어버리라고 욕한다. 메이비스가 원망하고 때리며 눈물흘리면서 쓰러져간다. 역설적이지만 제레프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빛으로 화하는 순간은 부드러게 미소짓고 있었다. 제레프는 빛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메이비스는 여기가 페어리 테일 안이니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제레프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그토록 바라던 것을 얻게 되었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그의 유언이 들렸다.
          * 깨어난 마카로프는 정말로 자고 있었던 것처럼 의식이 없던 시간 동안 본 "꿈"에 대해 들려준다. 그건 참 이한 꿈이어서 꾸고 있는 동안 자신의 안에서 따뜻한 생명의 힘이 내달리는 듯 했다. 그리고...
  • 페이퍼 컴퍼니 . . . . 9회 일치
         [[어]]와 일본식 어에서 의미가 당히 다른 단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일본식 어의 의미가 널리 쓰이고 있다.
          * [[어]]에서는 [[종이]]를 만드는 '제지 회사'를 뜻한다.
          * 등기가 되어 있어 서류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사업 활동은 존재하지 않는 [[회사]]를 뜻하는 '[[일본]]식 어'다. 어로 이러한 회사는 껍데기 기업(shell corporation), 더미 회사(dummy company), 우편함 회사(mailbox company)라고 불린다. 주로 조세 회피 및 [[탈세]]를 목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법체계가 다른 제3국 국적으로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분류:기업]][[분류:어]][[분류:일본어]]
  • 하이큐/222화 . . . . 9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는 다테 공고의 블록을 뚫기 위한 전술을 구한다.
          * 카게야마 본인은 틀림없이 히나타 쇼요에 신경써서 뚫릴 거라고 예했는지 아쉬워한다.
          * 반대로 블로커가 산개한 태에서 네트 전반을 지키는 것이 "스플렛 시프트".
          * 카라스노가 대한 팀은 "스플렛 시프트"인 경우가 많았는데, 번치 시프트는 사이드가 비게 되므로 공격지점을 파악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 그말처럼 카게야마와 다테의 블로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돈다.
          * 카라스노는 대적으로 블록이 잘 뚫리고 니시노야 유가 받아내고 있다.
          * 올릴 때 느낌은 좋았지만 막 아즈마네의 스파이크는 블록을 뚫지 못한다.
          * 예치 못한 독설에 어안이 벙벙하다.
  • 하이큐/244화 . . . . 9회 일치
          * 매점에는 봄고 관련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히나타는 눈을 반짝이며 "에이스의 마음가짐"을 담은 티셔츠를 S사이즈로 구매, 야마구치도 연습용 티셔츠를 산다.
          * [[후쿠로다니 학원]] 대 에이와 고교. 후쿠로다니는 1회전부터 예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 있다. 스코어는 10 대 7. 첫번째 TO를 사용한다. 에이스 [[보쿠토 코타로]]가 컨디션 난조. 관중석에서 보쿠토의 저조한 경기력을 비웃을 정도다. [[코미 하루키]]가 텐션 좀 올리라고 격려하는데, 보쿠토의 풀죽음 원인은 완전히 엉뚱한 것이었다.
          * 보쿠토는 쇼맨십이 강한 성격으로 관중의 태에도 크게 향을 받는다. 가령 지난 전국대회에선 8회전에 비슷하게 난조를 보였는데, 이때도 저녁 시간에 시합이 잡혀 관객이 적었고 보쿠토는 보는 사람이 적다고 풀죽어버렸다. 올해는 낮시간이라서 방심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경기장이 메인 아레나가 아니라 서브 아레나라는 걸로 삐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방금 전 [[네코마 고교]]의 경기를 보러 메인 아레나에 갔던게 결정적. 관객 수가 너무 차이가 나는 걸 자각해 버린 것이다.
          감독은 왜 쓸데없는 걸로 난리냐고 있는데로 갈구지만 그걸로는 보쿠토의 멘탈을 되돌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 이골이 난 동료들은 신경끄고 경기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코노하 아키노리]]는 흔한 일이라며 빈축. [[오나가 와타루]]는 "메인 아레나가 부럽다"는 감을 솔직히 말할 필요 있었나 의문시한다.
          어차피 보쿠토가 항 컨디션이 좋은 적은 거의 없다. 사실 이런 풀죽음도 그의 배구에 대한 열정, 성실성에 기반한 것이지만, 반대로 긴장이나 압박감 때문에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일은 없다.
          * 그 말처럼 여기서부터 후쿠로다니의 반격이 시작된다. 보쿠토는 여전히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지만 다른 동료들이 분발하면서 한 점씩 따라잡기 시작, 어느새 스코어는 15 대 14로 한 점차까지 따라온다. 중계석에선 에이스가 저조한데도 착실하게 점수를 버는 후쿠로다니를 칭찬한다. 반대로 에이와 고교는 에이스가 봉인됐는데도 선전하자 혼란스러운 양.
          센터 코트란 준결승 이부터 특설 코트. 메인 아레나의 가운데 한 면만 설치되는 코트다. 국제시합 등이 이 규격에서 시행된다. 아카아시는 메인 아레나가 더 크고 사람도 많지만 그래봐야 그 중에서 보쿠토를 봐줄 사람은 4분의 1이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곳 서브 아레나는 후쿠로다니가 독점하고 있으니 모든 관객이 보쿠토를 주목하고 있다. 즉, 실질 봐주는 관객이 더 많다는 얘기.
          * 경기를 보고 돌아가는 히나타와 야마구치. 후쿠로다니의 저력을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 매점 앞을 지나갈 때, 누군가 히나타와 같은 티셔츠를 S사이즈로 주문하고 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히나타. 그는 전일본 유스에서 카게야마와 한솥밥을 먹었던 [[호시우미 코라이]]였다. 카게야마가 "작은 거인"이라 생각했던 그 선수.
  • 하이큐/249화 . . . . 9회 일치
          * 이나리자키의 응원단은 선수들 이으로 잘 훈련돼서 아군의 플레이 때는 집중하게 해주고 카라스노의 플레이 때는 훼방한다.
          * 공식 워밍업 시간 중에도 [[미야 아츠무]], [[미야 오사무]] 형제는 주목의 대이다. [[오오미 타로]] 감독은 마지막 공을 미야 형제에게 띄운다. 그런데 둘은 동시에 뛰어 올라서 "유체이탈 시간차" 같은 장난이나 친다. 둘이 쌍둥이란 걸 이용한 장난. 딱히 시간차도 뭣도 아니지만 객석에는 멋지다고 호평한다.
          이나리자키 고교 정도는 아니지만 [[카라스노 고교]]도 관중의 시선을 모으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괴짜 콤비는 카라스노를 잘 모르는 사람도 주목할 정도로 별나 보인다. 특히 히나타의 점프력은 이나리자키도 체크하는 요소. 이나리자키의 [[오지로 알랭]]은 특히 눈여겨 본다. [[스나 린타로]]도 표현은 하지 않지만 눈을 돌리지 않는다. 사실 히나타의 점프는 어제를 기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호시우미 코라이]]의 점프를 연하며 자세를 바꿔보고 있다. 히나타는 방금 전 점프는 괜찮은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흘러가는 느낌"이 난다고 아쉬워한다. 다시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하지만 팀이 서브 연습으로 바꾸면서 기회를 놓친다.
          * 이제 본게임의 막이 오른다. 어제도 객석에 자주 보였던 커플이 이번에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양팀 선수들이 코트 위에 정렬한다. 심판의 호각과 함께 힘차게 "ㅈ잘 부탁드립니다!"고 인사한다. 효고현 대표인 이나리자키 고교는 3년 연속 봄고 진출에 31회차 참석이란 성적. 그에 비해 미야기현 대표 카라스노 고교는 5년만에 9회차라는, 당히 차이나는 성적이다.
          * 서브는 성공. 니시노야와 타나카 사이를 깔끔하게 가르며 정확히 라인 앞에 떨어진다. 그러자 응원단은 방금 전 정적이 없었던 일처럼 뜨겁게 달아오른다. 우카이 코치는 선수들에게 "칼날 날라오는거 아니니 굳어있지 마라"고 격려한다.
          다소 뒤숭숭한 채로 들어가는 2회차 서브. 이 작은 소동이 향을 준 탓일까? 서브는 여전히 카라스노의 반응보다 한 박자 빨랐지만 라인을 벗어난다. 서브 실패. [[스가와라 코시]], [[야마구치 타다시]] 등은 안도의 한숨. 아츠무가 낙담하며 "이런"이라고 고함친다. 오사무가 "허접하다"고 디스하자 아츠무가 신경질을 낸다.
          * 경기가 초반부터 신경전이 거세자 중계석도 바빠졌다. 해설자는 이 경기는 고교 No.1 세터 아츠무와, 역시 전일본 유스 출신의 유망주 카게야마의 "동서 세터 대결"로 정의한다. 그러는 사이 양 진을 오가던 공이 이나리자키에서 카라스노 쪽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랠리에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힘차게 뛰어오르는 히나타. 한눈에 보기에도 뛰어난 점프다. 히나타 자신도 "좀 괜찮은 느낌!"이 오고 카게야마와 중계석 모두 놀랄 정도로 눈에 띄는 점프.
          >우승후보인 우릴 대로 "실험"했단 말이야?
  • 하준영 . . . . 9회 일치
         |선수명 = 하준
         |문 표기 = Ha Jun-Young
         |사진 사이즈 =
         '''하준'''([[1999년]] [[9월 6일]] ~ )은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투수]]이다.
         == 수 ==
         * 2013년 전국 중학 야구 선수권 대회 최우수 선수
         * 2015년 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감투
         * 2016년 대통령배 전국 고교 야구 대회 감투
         * 2016년 고교 주말 리그 전반기(서울권 A) 최우수 선수
  • 하준임 . . . . 9회 일치
          * 위 문서 : [[배구 관련 인물]]
         || 출신지 || [[경북도]] [[구미시]] ||
         |||||||||||| '''2008-09 KOVO [[V-리그]] 여자부 기량발전''' ||
         '배구계의 [[이나]]' 이라는 별명으로 주목 받았고,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와 동료 선수들과의 재미있는 모습으로 스포츠 채널에서 방한 [[경북 김천 하이패스|도로공사]] 관련 프로그램에 당히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경기중에 몸개그성 플레이도 가끔씩 나와 '팡팡 퍼레이드'[* 코트위에서의 실수나 재미있는 황을 편집한 짤막한 프로그램]에도 꽤 많이 등장했다.
         그나마 이전에는 꾸준히 주전이었지만, 허리 부으로 2015 - 2016 시즌에 많이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주로 원포인트 블로커로 나오고 있는데, 유독 하준임이 교체로 나올 때마다 도로공사 선수들의 서브가 아웃되는 경우가 많아 해보지도 못하고 교체되는 경우들도 많다.
         리그 3위 경쟁에서 밀린 이후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박종익 감독대행은 하준임보다 오히려 2015 신인 드래프트 5순위로 입단한 장혜진에게 기회를 주면서 하준임의 주전경쟁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예된다.
  • 하태환 . . . . 9회 일치
         1913년 [[경북도]] 연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을 졸업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 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익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경북도 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인 무소속 김익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포항동지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60년 5월 초 자유당에서 [[조경규(1904)|조경규]] 원내총무 체제가 출범하자 부총무에 임명되었으나, 같은 달 말 사퇴하였다. 이후 자유당을 탈당하였고, 같은 해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55년)|민주당]] 이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게다가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정치정화법에 묶여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가 1963년 말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야 해금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에 경북도 포항시-일군-[[울릉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 [[김장섭]]에 밀려 탈락하였다. 이에 [[민중당(1967년)|민중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장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하현정 . . . . 9회 일치
         | 신체사이즈 = 가슴: {{convert|34|in|cm|sigfig=3|abbr=on}}<br>허리: {{convert|25|in|cm|sigfig=3|abbr=on}}<br>엉덩이: {{convert|34|in|cm|sigfig=3|abbr=on}}
         | 드레스사이즈 =
         | 웹사이트 = [http://www.cyworld.com/hyunjungha 싸이월드 미니홈피]
         | 수 = [[2010년 미스코리아]] 미(美)
         * 수 : [[2010년 미스코리아]] 미(美), [[2010년]] [[미스코리아 서울]] 미(美), 2010년 미스 투어리즘 퀸 오브 더 이어 인터내셔널 1위 & 미스 매력
         * 취미 : 화 감, 독서
         | 현재명 = [[고현]], [[이귀주]], 하현정, 안다혜
  • 한동욱 . . . . 9회 일치
         2008년 8월 22일, 한동욱은 [[박정석]], [[오종]]과 함께 공군 e스포츠병 모집에 최종 합격하였다. 합격자들은 9월 22일에 진주 공군교육사령부로 입대했으며, 2010년까지 [[공군 ACE]] 소속으로 활동 하였다.
         2009년 5월 1일, [[스타리그#박카스 스타리그 2009|박카스 스타리그 2009]] 오프라인 예선에 참가한 한동욱은 박재([[KT 롤스터]]), 공민창([[MBC게임 히어로]]) 등을 꺾고 36강에 진출, [[EVER 스타리그 2008]] 이후 3시즌만에 스타리그 본선에 복귀 하였지만, [[한봉 (프로게이머)|한봉]]에게 2:0으로 져서 16강 진출은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 [[2007년]] [[5월 13일]] vs [[허무]] (몬티홀)
         * [[2009년]] [[3월 2일]] vs [[박민]] (신청풍명월)
         * [[2009년]] [[5월 20일]] vs [[김승현 (프로게이머)|김승현]] (아웃사이더)
         순수 스타리그 우승자 선수들 중에서는 [[김준 (프로게이머)|김준]]과 함께 MSL 진출 기록이 전무하다. (마이너리그 진출 기록이 최고 기록)
  • 한운사 . . . . 9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각본가, top2=불교/인물)]
         [[대한민국]]의 [[작가]], [[방송작가]]. [[충청북도]] [[괴산군]] 출생. [[본명]]은 한간남이다. [[종교]]는 [[불교]]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니만큼 징집 당해 [[학도병]]이 되었다. [[운전병]]을 거쳤으며 해방될때까지 계속 운전병을 했다. 이때의 경험이 아로운 3부작에 그대로 반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대학을 다니던 때에 방송 극작가가 되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아로운 3부작인 '현해탄은 알고 있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 '승자와 패자' 등을 썼으며 이 중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김기(1919)|김기]] 감독이 화로 연출하기도 했고 후에 TV [[드라마]]로도 나왔다. [[빨간 마후라]]의 시나리오도 한운사가 썼다. 후엔 자전적 에세이 '구름의 역사''를 썼다.
         특히 아로운 3부작은 작가 자신의 군경험이 녹아있는 자전적 작품으로 아로운(阿魯雲, [[어]]로 alone) 자체가 한운사 [[본인]]이나 다름 없으며, 13부대 자동차 중대 제6내무반에서의 군생활을 다루었다. 참고로 같은 [[내무반]]의 동료 지하라(千原) [[이등병]]의 경우 실제 모델이 천응렬로 후에 한운사 작가의 자서전 '구름의 역사'에선 실명으로 등장한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모리 지로(森次郞) 일등병도 실존 인물이며 원래 실제 인물의 이름도 모리.
         [[http://www2.ktrwa.or.kr/new/?doc=bbs/gnuboard.php&bo_table=han_story|구름의 역사]]와 [[http://www2.ktrwa.or.kr/new/?doc=bbs/gnuboard.php&bo_table=hans_life|인생만유기]]는 한국방송작가협회 공식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슬하에 [[아들]]만 넷을 두었는데, 그 중 막내가 바로 [[기타리스트]] [[한원(기타리스트)|한원]]이다.
  • 한호문 . . . . 9회 일치
         [[음서 제도|음보]](蔭補)로 관직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1598년]](선조 31년) 선전관(宣傳官)<ref>황여일 (黃汝一), 《해월집 권9》, 사신일기, 1598년 무술 11월 13일 갑오(甲午) </ref>, [[1599년]](선조 32년) 하양 현감(河陽縣監)으로 부임하였다.<ref>선조실록 113권, 1599년(선조 32년, 명 만력 27년) 5월 3일 경술 6번째기사, "조정·조희보·변이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ref> [[1602년]] [[9월 14일]] 군기판관(軍器判官)을 거쳐<ref>竹溪日記卷之六, 九月初十日戊辰</ref>, [[12월 16일]] 흥판관으로 나갔다.<ref>竹溪日記卷之六, 十二月十六日</ref> [[1603년]](선조 36년) [[11월 29일]] 서산(瑞山)으로 부임하였고<ref>조익(趙翊), 《가휴선생문집권 10》, 공산일기(公山日記), 계묘 1603년 11월 29일자</ref>, 그가 서산군수로 부임한 내용은 서산군읍지(충청남도)(瑞山郡邑誌(忠淸南道))의 선생안에도 수록되었다. [[1607년]] [[9월 4일]] 도총경력에 임명되었다.<ref>竹溪日記卷之十, 九月初四日</ref> [[1615년]](광해군 7년) [[화기도감]]에 낭청으로 참여한 공로로, 그해 [[12월 29일]] 화기도감 도제조 이하 관원을 시할 때 승급되었다.<ref> 광해군일기 98권, 1615년(광해군 7년, 명 만력 43년) 12월 29일 신미 3번째기사 1615년 명 만력(萬曆) 43년 화기 도감 도제조·제조 유근 등에게 포하다</ref>
         [[1623년]](인조 1년) [[9월 19일]] 밀양부사(密陽府使)로 부임하였다가 '경원부사(慶源府使)에 제수되었을 때는 부모의 나이가 70세임을 들어 소하여 사직하더니, 본직에 제수되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부임하였다'는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년 계해(1623) 9월 19일(병오)자 4번째기사, "사천 현감 이장형을 사판에서 삭제할 것 등을 청하는 사간원의 계"</ref> 그러나 그해 [[9월 20일]] 죄인 명단에서 특별히 정계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년 계해(1623) 9월 20일(정미)자 6번째기사, "사간원이 아뢴 한호문 등의 일은 정계하였다"</ref> 명단에서 정계된 사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1626년]] [[4월 13일]] 겸[[내금위]]장(兼內禁衛將)<ref>승정원일기 인조 4년 병인(1626) 4월 13일(을유)자 29번째기사, "병조가 남이웅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였다"</ref> [[1627년]] [[1월]] [[정묘호란]] 당시 [[소현세자]]를 배종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5년 정묘(1627) 1월 24일(임진)자 7번째기사, "세자 배종인의 명단"</ref> 그해 [[4월 5일]] 현궁(上弦弓) 1장(張)을 사급(賜給)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5년 정묘(1627) 4월 5일(신축)자 2번째기사, "부사 이원익 등에게 시하라는 전교"</ref>
         그의 동생 한의문의 부인이 도적에게 살해당한 일이 인조실록에 등장한다.<ref>인조실록 47권, 1646년(인조 24년, 청 순치 3년) 7월 3일 정미 2번째기사, 대신 및 비국 당과 양사 장관을 인견하다</ref>
         ** 제수 : ?(? ~ [[1646년]] [[7월 3일]]<ref>인조실록 47권, 1646년(인조 24년, 청 순치 3년) 7월 3일 정미 2번째기사, 대신 및 비국 당과 양사 장관을 인견하다</ref>)
  • 허가윤 . . . . 9회 일치
         | 직업 = [[화배우]], [[모델 (직업)|모델]] , 前 [[가수]]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gayoon_heo/}}<br>{{싸이월드|39075225}}
         '''허가윤'''(許嘉允,<ref>[http://tw.weibo.com/cubeent/3823525469463236 큐브 공식웨이보]</ref> [[1990년]] [[5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전 [[가수]], [[화배우]]이다. 과거 걸 그룹 [[포미닛]]의 메인보컬을 맡았었다.
         * 2010년 [[써니사이드]] 《나쁜남자 착한여자》 (피처링)
         === 화 ===
         * 《[[배반의 장미 (화)|배반의 장미]]》 (2018년) - 배반의장미 역
         == 수 ==
         * 2013년 2013 설특집 아이돌스타 육 양궁 선수권대회 양궁 여자 단체 은메달
         * [http://www.cubeent.co.kr/fourminute 포미닛 공식 웹사이트]
  • 허용석 . . . . 9회 일치
         * 1975년 : [[덕수고등학교|덕수업고등학교]] 졸업
         * 1980년 : [[연세대학교]] 경학 학사
         * 1988년 : [[서울대학교]] 경대학원 경학 석사
         == 수 ==
         |후임자 = [[윤선 (1956년)|윤선]]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관세청장]][[분류:덕수업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밴더빌트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양 허씨]]
  • 허준영 . . . . 9회 일치
         '''허준'''(許准榮, [[1952년]] [[10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제12대 [[경찰청장]]을 역임한 공무원으로 제4대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김해 허씨|김해]]이며,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 1989 ~ 1991 : 주홍콩 총사관
         * 1993.3 ~ 1994.6 : 경북도지방경찰청 양경찰서 서장
         * 2015.02~ 2016.2 :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ref> {{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2/26/2016022600239.html|저자=곽래건|제목=자유총연맹 회장선거… 親朴 김경재, 허준 꺾었다|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6-02-26|확인날짜=2016-03-16}} </ref>
         용산역세권 개발사업과 관련해 뒷돈을 챙긴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허준은 현직 코레일 사장으로 재임하던 2011년 11월 용산역세권 개발과 관련해 업무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용산역세권개발 손모 전 고문에게서 뇌물 2000만원을 받고, 이후 3년여 동안 1억 3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4월 구속 기소되었으며 2017년 3월 16일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고심에서 불법 정치자금 1억원 수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1억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317011002&wlog_tag3=naver|제목=‘용산 개발 뒷돈’ 허준 징역형 확정|뉴스=서울신문|언어=ko|확인날짜=2017-05-26}}</ref>
  • 현실문화사 . . . . 9회 일치
         1980년대 말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잡지 회사. [[보안사령부]]에 의해 운되었다.
         1989년 11월 17일[*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90년 10월 9일자 - 보안사 잡지사 운], [[문화공보부]]에 등록하였다.
         이후 "현실초점"이라는 이름의 계간지를 발간했다. 해당 잡지는 창간호에서 "우리 사회 내부의 무질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욕구 분출과 과격행동들이 빚어낸 민족의 재난을 경계하고 올바른 국가관·가치관을 뿌리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잡지 창간 목적을 밝혔다.[*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90년 10월 9일자 - 보안사 잡지사 운] 해당 잡지의 내용은 재야와 [[운동권]]의 논리를 반박하는게 주를 이루었다.
         이후 1990년 10월, 보안사에서 탈한 윤석양 이병(당시 24세)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해 버렸다. 이 과정에서 보안사가 현실문화사를 운하던게 드러난다.
         [[http://news.joins.com/article/2502319|중앙일보 - 보안사서 잡지사도 경/「현실초점」/재야ㆍ운동권논리 비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090032921500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10-09&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859&publishType=0002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경향신문 1990년 10월 9일자 - 정보수집 위해 잡지사 도 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090020921100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10-09&officeId=00020&pageNo=11&printNo=21263&publishType=0002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90년 10월 9일자 - 보안사 잡지사 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0900289115001&ed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0-09&officeId=00028&pageNo=15&printNo=743&publishType=0001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한겨례 1990년 10월 9일자 - 보안사서 잡지사도 경]
  • 홍수환 . . . . 9회 일치
         |직업 = 前 [[권투|복싱]] 선수 <br/> 前 [[화배우]] (한때 화 1편에 각각 조연)
         * [[락고등학교|서울 락고등학교]] [[졸업]]
         * [[1969년]] [[5월 10일]] 김일과 프로복싱 데뷔전(4R 무승부)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권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 평론가]][[분류:자유 연애]][[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자]][[분류:WBA 챔피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중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락고등학교 동문]][[분류:인천전문대학 동문]][[분류:남양 홍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황병일(1960) . . . . 9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김휘욱(1982) || → || '''황병일(1983 ~ 1985)''' || → || 최무(1986~1989) ||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때부터 타격 재능이 뛰어나고 정평났으나,[* 한국 야구 사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 보유자이다. 1980년 대학야구 춘계연맹전 원광대전] 워낙 두터웠던 당시 삼성 선수진 때문에 대개 백업으로 출전했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에 전력보강선수로 이적한 후 1990년에 은퇴하고 빙그레의 타격코치를 맡으며 일찌감치 지도자로 전향했다.
         프로필 포지션은 외야수였지만 내야수로도 활약했었다. ~~나름대로 전천후 선수?~~ 눈이 나빠서 야간 경기에는 거의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니우라 히사오|김일융]]과 극과 극--
         은퇴하자마자 빙그레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에도 2002년까지 12년 간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로 재임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우]], [[김태균(1982)|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의 [[박흥식(야구)|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 SK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8년부터 SK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조범현]] 감독을 따라 KIA에 타격코치로 부임해 2009년 우승의 공로로[* 무엇보다도 [[김현(1980)|김현]]의 포텐을 터뜨리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2010 시즌부터는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 2010 시즌 20홈런 타자 5명을 배출하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KIA 타선의 성적이 하락하자 그에 대한 비난이 증가했다. ~~이 때 황붕어라는 별명도 생겼다~~ 수석코치가 된 후로는 [[조범현]] 감독을 보좌하는데 전념했다지만, 타격 쪽에 아예 손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2010 시즌에는 경험이 부족한 [[최경환(야구)|최경환]]이 타격코치를 맡아 실질적으로는 황병일이 타격코치도 겸했다고 보는 쪽이 많다.[*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김한수]] 타격코치의 경험이 부족해 [[김성래]]가 수석코치로 승격된 첫 해에는 타격을 겸임한 바 있다.]
         [[2012년]] [[11월 4일]] [[두산 베어스]]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애초에 삼성의 마무리훈련 명단에서 제외된 걸 보면 보다 전에 팀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다든가, 스스로 사의를 표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진욱(야구)|김진욱]] 감독에 대한 [[두산 베어스]] 팬들의 평가가 안 좋으면서, 대적으로 황병일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 한 때는 [[김진욱(야구)|김진욱]]을 경질하고 황병일을 감독 대행으로 앉히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후반기 두산의 성적이 좋아지고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게 되어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 MoniWikiTutorial . . . . 8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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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ject:Union . . . . 8회 일치
         서기 2269년경, 인류는 너무 많아진 인구에 의해 과포화 태가되어있었다. 이제 방주 계획이라는 신은하 개척 및 대규모 이주 계획이 창안되었고, 곧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인류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그러나 당초의 예과는 달리 예기치못한 사고로 궤도를 벗어나 원래 계획과는 다른 항로로 향하게되었고 결국 불샃ㄱ하게 된곳이 [[레시마스 은하]]이다.
         이러한 불운한 사고에도 인류는 살아기기로 마음먹었고. 결국 레시마스에서의 새정착 생활을 시작햇다.허나 인류는 다시 [[전이 현]]이라는 새로운 시련을 맞이햇고 차원 넘어에서 넘어온 존재들은 인류를 위협햇다. 이에 [[행성 연합]]은 전이현에 대항하기위해 전우주의 뛰어난 웅으로 이뤄진 대전이현 특수작전팀 [[오퍼레이션 발할라]]를 창설하게 된다.
         [[전이 현]]
         [[핵무기 및 대량살무기 제한조약]]
  • Y2K 버그 . . . . 8회 일치
         1990년대 말 예되었던 버그. 밀레니엄 버그라고 불리기도 했다.
         연도를 두글자로 기억하는 컴퓨터들이 2000년이 되면 연도를 1900년으로 인식, 오작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버그. 당시 1990년대만 해도 컴퓨터가 당히 많은 곳에 퍼져 있었기에 이 버그는 회사나 국가의 전산 시스템, 병원의 의료기기 등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것이라고 예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22900099118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8-12-29&officeId=00009&pageNo=18&printNo=10254&publishType=00010|매일경제 1998년 12월 29일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미국 연방준비의사회는 [[ATM]]이 작동하지 않을것을 우려하는 시민들이 99년 말에 대량으로 현금을 인출할 것이라 예, 500억 달러를 추가 발행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12200209101007&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11-22&officeId=00020&pageNo=1&printNo=24046&publishType=00010|동아일보 1998년 11월 22일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미국의 컴퓨터 관련 기업들은 Y2K에 대해 설명하는 사이트를 공동으로 개설하였으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51000099107012&ed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9-05-10&officeId=00009&pageNo=7&printNo=10363&publishType=00010|매일경제 1999년 5월 10일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국내 컴퓨터 업계 또한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였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60800329109001&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6-08&officeId=00032&pageNo=9&printNo=16453&publishType=00010|경향신문 1998년 6월 8일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실제 황 ==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는 등장인물인 호머가 Y2K 대비를 하지 않아 [[https://youtu.be/NGUNOKREcvs|세이 멸망하는]] 에피소드가 방된 적 있다.
  • 강태정 . . . . 8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주된 수비 위치는 [[내야수]]였다. [[대구원고등학교|대구고]] 졸업 후 실업 야구 팀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제일은행]]에 입단하였고, 이후 [[한국전력공사]]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72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1973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모교 [[대구원고등학교|대구고]]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그동안 야구에서 거의 등한시되어 온 웨이트 트레이닝과 순발력 훈련을 도입하고, 매 경기 타선 변경, 도루를 중시하는 혁신적인 작전을 펼쳐 그해 대통령배, 봉황기,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건국대학교]] 감독으로 부임했고, 재임 시절 이 학교의 체육학과에 만학도로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당시 야구인으로는 드물게 학구파로서 이후 [[동국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대학 강단에 서기도 하였다. 실업 야구 팀 [[한국화장품]]에서 감독 생활을 하다 [[1986년]] [[청보 핀토스]]의 코치로 입되어 경험이 부족한 [[허구연]] 감독을 보좌하였다. 이후 성적 부진으로 [[허구연]]이 물러나자 그의 뒤를 이어 감독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청보 핀토스]]는 [[삼미 슈퍼스타즈]]와 마찬가지로 [[1987년]]에도 최하위를 전전했다. [[1988년]]에는 청보가 매각되어 [[태평양 돌핀스]]로 출발하지만 강태정은 교체되지 않고 계속 감독을 맡았다. 그러나 시즌 초반 연패를 하자 [[임신근]] 감독 대행으로 교체되고 [[일본]]으로 야구 연수를 떠났다.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분류:194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실업 야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청보 핀토스 감독]][[분류:태평양 돌핀스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동문]]
  • 갸루 . . . . 8회 일치
         [[일본어]]에서 1970년대~2000년대 전후하여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패션 경향. [[어]]에서 젊은 여성을 뜻하는 girl(이건 가루ガール)의 속어인 gal(이게 갸루ギャル)에서 온 외래어. 일종의 문화 코드로 여겨져서, 'Gyaru'라는 표현이 어에서도도 쓰이게 되었다.
         속어류가 다 그렇지만 참 분류하기가 애매한 단어이다. 좁게는 야만바 계열의 패션을 뜻하지만 넓게는 그냥 197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젊은 여성들 사이에 유행했던 거의 모든 패션이 갸루라고 불린다.
          * 시로갸루(白ギャル) : 2000년대에 나타난 스타일. 서퍼 패션과 LA패션에 향을 받아 태닝을 좋아하던 이때까지의 갸루 패션과는 반대로, 하얀 피부와 금발에 가까운 염색 등으로 미백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 오갸루(汚ギャル) : 야만바와 함께 유행한 단어. 더러운 갸루라는 뜻이다. 갸루 패션을 하였으면서 [[가출]], [[부등교]] 태에 있어 [[위생]]을 제대로 신경쓰지 않는 사례. [[목욕]]이나 [[세탁]]은 제대로 안 하는 태에서 [[화장]]만 덕지덕지 하다보니 위생이 처참한 태에 이른다.
  • 광해군 . . . . 8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리 순탄치는 못했는데[* 정확히는 임란 이전에도 그리 순탄한 입지는 아니었다. 선조는 임란 이전에는 다른 후궁 소생인 신성군 등을 총애했다.], 우선 명은 시시각각 광해군에 세자 책봉에 딴죽을 걸었으며[* 당시 명은 황제와 관료가 후계 문제로 한참 입씨름을 했던 시기였다. 당시 만력제도 선조와 비슷하게 나이 어린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려 하여 대신들이 반대하고 있었는데, 만약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허용할 경우 만력제가 이걸 빌미로 이용할 수 있어서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 또한 형인 임해군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 선조는 이 틈을 노려 광해군보다 거의 10살 연하인(...) 인목왕후를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새어머니가 아들보다 10살 어리다는 거다. (선조 도둑놈 인증...)~~ 거기다가 [[김희정 (1992년)|인목왕후]]왕후가 아들인 [[창대군]]까지 낳자, 광해군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기까지 했으며, [[유경]]등의 소북들(후대에 탁소북)은 대놓고 창대군 편을 들기도... 그래도 ~~노년에 무리한~~ 선조가 창대군이 3살일 때 죽어 결국 왕이 되는데 성공했으며 유경과 그의 무리들은 사사된다.
         왕이 된 이후에는 이이첨과 정인홍 등의 [[대북]]을 중용했으며[* 다만 유희분과 박승종 등의 [[소북]]도 이 시기에 당한 향력을 가졌다. 또한 반대로 정치적인 중용과는 별개로 이이첨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갖고 있기도 했다.], 강성해가는 후금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당시 사르후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던 강홍립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동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다만 광해군 본인은 세간의 인식과 달리 대동법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 구본길 . . . . 8회 일치
         중학생 시절 그의 중학교 코치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하였다. 이후 [[2006년]], 그가 18세일 때 청소년 세계선수권 대표로 선발되어 출전하였고 [[2008년]]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여담으로, 2009 청소년 세계선수권에서 [[갓세븐]]의 [[잭슨(GOT7)|잭슨]]과 경기하여 승리한 바 있다. [[http://fie.org/fencers/Bongil-GU-18876/head-to-head|관련 링크]]에서 왼쪽의 'Head to Head'를 클릭한 후, 2008/2009 시즌으로 검색하면 'WANG Jackson'으로 표시된 선수가 갓세븐의 잭슨이다. 그 때의 인연이 있어서인지, 국제 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갓세븐의 하드캐리'에 출연하여 잭슨과의 펜싱 대결에 응해주기도 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220751|#]]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868782|#]] ] [[전국체육대회]]에도 활발히 출전하면서 이듬해에는 [[대구광역시]]에서 우수 선수을 받기도 한다. [[2008년]]에는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ffffff> [[2012 런던 올림픽]] 시식[br]왼쪽부터 [[김정환(펜싱)|김정환]], 오은석, [[구본길]], 원우 ||
         팀 동료 [[김정환(펜싱)|김정환]], 오은석, 원우과 함께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본인의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8월 20일]] 무난하게 결승까지 올라와 오욱과의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내어 아시안 게임 개인전 3연패를 달성했다. 단체전도 우승하며 2연패를 달성했다.
         == 수 기록 ==
         ||<#FFD700> 금메달 ||<#ffffff> 2013 하이 ||<#ffffff> 팀 ||
         ||<#FFD700> 금메달 ||<#ffffff> 2013 하이 ||<#ffffff> 개인 ||
  • 규성 진씨 . . . . 8회 일치
         규성 전씨는 순(舜) 임금을 조으로 삼는다. 순 임금의 성씨는 요씨(姚氏)였으나, 순 임금의 후손이 규예(嬀汭)로 이주하면서 규(嬀)를 성으로 삼았다. 나라 말기에 순의 후예 알보가 주나라에 의탁하였고, 주나라 무왕은 알보의 아들 규만을 완구(宛丘)에 봉하였으며 이 나라는 진(陳)으로 불리게 된다. 규만은 사후 호공(胡公)이라는 시호를 받는다. '호공 규만' 이들의 조이 된다.
         [[손씨]](孫氏) 역시 전씨에서 갈라져 나오는데, 전완의 5대손이 군공을 세워 손씨(孫氏)를 하사받았고, 그 손자가 [[손자병법]]을 저술한 병법가 [[손무]](孫武)이다. 『신당서(新唐書)』「재세계삼하(宰相世系三下)」에서는 손무의 아버지를 손빙(孫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손으로 삼국시대에 오나라를 세우는 [[손견]] 등이 있다.
         [[맹군]]이 설 땅에 봉해지고 그 후손들 일부가 설(薛)을 성씨로 삼았다.
         역시 맹군의 후손이다. 맹군의 이름 문(文)에서 따와 성씨로 삼았다.
         차(車). 한나라의 승 전차주가 이름을 차천추로 바꿔서 생겨났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무기 . . . . 8회 일치
          대방 등 뒤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른 태로 왼쪽 버튼을 눌러주면 대를 한방에 보낼 수 있다.
          네가 추돌사고를 냈을 때 대방 차주가 이걸 들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총 한번 겨눠서 주제를 가르쳐주자.
          그냥 쓰면 휘두르고 달리다가 쓰면 가아앙한다. 일반 태는 물론이고 이 태로도 어그로를 안 끌지 않는다. 차 문을 떼어내기 좋다.
          대구경 권총. [[헤드샷]]시 대의 머리를 터뜨려버린다.
          단발식 소총. 당히 먼 거리까지 날아간다.
  • 기은세 . . . . 8회 일치
         | 활동 역 = [[배우]]
         | 배우자 = 12세 연
         | 웹사이트 =
         === 화 ===
         *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한 놈]]》 ... 아편굴 여급 역
         * [[2009년]] 《[[여자 없는 세]]》 ... 제니스 역
         * [http://movie.daum.net/movieperson/Summary.do?personId=101196 기은세] Daum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83년 태어남]][[분류:2006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백석대학교 동문]]
  • 길재 . . . . 8회 일치
         조선이 건국된 후인 [[1400년]]([[조선 정종|정종]] 2년)에,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세자 [[이방원]]이 그에게 태박사의 벼슬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거절하고 고향인 [[경북도]] 선산(善山)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조선 세종|세종]]이 즉위하던 해인 1419년에 67세를 일기로 세을 떠났다.
         == 사향 ==
         비록 그는 [[조선]]의 관직에는 진출하지 않았으나 그의 동문들, 그가 후에 길러낸 제자들을 통해 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분류:1353년 태어남]][[분류:1419년 죽음]][[분류:과거 급제자]][[분류:사가]][[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정치인]][[분류:고려의 유학자]][[분류:고려의 철학자]][[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조선의 철학자]][[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교육인]][[분류:고려의 작가]][[분류:고려의 시인]][[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시인]][[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해평 길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태종]][[분류:14세기 한국 사람]][[분류:15세기 한국 사람]]
  • 김동석 . . . . 8회 일치
         1903년 [[경북도]] [[선산]][[군(행정구역)|군]] 선산면 동부리(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안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협성학교에 재학하다 중퇴하였다. 이후 [[일본]] [[도쿄]] 외국어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에 진학원을 설립하였다. 이후 화원청년회 회장을 역임하고 진우연맹을 조직하였다. 한편 [[무정부주의]] 노선에도 참여하였다. 1926년 7월 진우연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조선으로 압송되었다. 치안유지법 위반이란 죄명으로 1927년 6월 대구재판소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석방 후에 고향인 선산군 장천면으로 돌아와 양조장을 경하였다. 한편 장천금융조합장, 김천청년동맹, 금릉학원 등에 몸담았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송금, 비밀 잡지 근우(槿友)의 간행 등과 같은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8.15 광복]] 직전인 1945년 4월 1일 오중학교를 개교하였으며, 1951년 9월 1일 오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 선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대한국민당]] [[육홍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우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당 [[김우동]] 후보에 밀려 낙선한 것으로 나오자 [[재검표]] 소송을 제기하였다. 재검표 결과 당락이 뒤바뀌어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이후 오중고교 운에 전념하였다.
  • 김병윤 . . . . 8회 일치
         1922년 [[경북도]] 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전문학교(현 [[긴키]]대학교) 법과를 중퇴하고 포항수산대학(현 [[포항대학교]]) 증식학과를 졸업하였다.
         1946년 동지교육재단을 설립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권 때부터 동지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교장]], 포항시의회 의원, 동지교육재단 [[이사장]],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포항[[시장(공무원)|시장]], 포항수산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신설 [[지역구]]인 경북도 포항시-[[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각 경북도 포항시-일군-[[천시|천군]]-울릉군 선거구로 민주공화당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그 때마다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정무식]]에 밀려 탈락하였다.
  • 김양 (1953년) . . . . 8회 일치
          | 출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 [[2005년]] [[8월 9일]] ~ [[2008년]] [[3월 7일]] : [[주하이 대한민국 총사관|중국 하이 대한민국 총사관 총사]]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한 그는 [[백범 김구]]의 손자이며, [[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공군참모총장]]·[[대한민국 건설교통부|건설교통부]] 장관·[[유신정우회]] [[국회의원]]과 [[중화민국|중화민국 타이완]] 주재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대사]] 등을 지낸 [[김신 (1922년)|김신]]의 둘째 아들이고, [[김진 (1949년)|김진]]의 동생이기도 하다. 본관은 [[구 안동 김씨|안동]](安東)이다.
         * 증조부 : 김순 (金淳永, [[1848년]]~ [[1901년]] [[2월]])
  • 김윤동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문 표기 = Kim Yoon-Dong
         |사진 사이즈 =
         * [[2013년]] 퓨처스 올스타전 우수 투수
         * [[무 야구단]] (2014년 ~ 2015년)
         ==[[무 야구단]] 시절==
         * [[경중학교]]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안동 김씨 (신)]][[분류:무 야구단 선수]]
  • 김찬돈 . . . . 8회 일치
         |웹사이트 =
         1959년에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능인고등학교]]와 [[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 판사에 임용되었다. 1990년 [[대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0년 2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2004년 2월에 부장판사에 승진하여 [[대구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대구고등법원]], [[부산고등법원]]에서 재판장을 하다가 법원장으로 승진하였다.
         * 2010년 3월 경북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 [[대구지방법원]] 덕지원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10월 30일에 덕 오십천 제방 공사 등과 관련하여 지역 건설업체 이사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1600만원의 뇌물을 받은데 이어 지역 건설업자 2명한테 예산확보를 위한 중앙부서 방문 경비 명목으로 모두 13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수수)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우연]] 덕군수에 대하여 징역 2년6월 추징금 1600만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29917]</ref>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남]][[분류:능인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남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김창규 (작가) . . . . 8회 일치
         | 제목 = 민주화보법 범위ㆍ대 넓혀야 - 판정근거, 피해내용과 함께 실질적 행위도 고려해야
         | 저자 = 권혁
         {{출처|날짜=2012-04-03|[[1975년]]부터 민주화운동을 시작해 구금, 구속, 연행 등의 고난을 겪었는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였으며 그때 입은 부으로 한쪽 청각을 실하고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출처|날짜=2012-04-03|1981년에는 납치되어 대전 안기부, 경찰서 보안대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했으며, 1987년 [[6월 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구속당하기도 했다.}} {{출처|날짜=2012-04-03|[[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감시대 1호임을 알게 되었다.}} 2008년에는 ‘남북관계 정화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ref>{{뉴스 인용
         | 제목 = <nowiki>각계 650명, 남북관계 정화 촉구 시국선언 발표
  • 김충공 . . . . 8회 일치
         '''김충공'''(金忠恭, ? - [[835년]])은 [[통일 신라]] 하대의 왕손 출신 문신, 정치인, 왕태자로, [[원성왕]]의 손자이자, [[김인겸|혜충태자 인겸]]의 아들이다. [[집사부]] 시중(執事部侍中)과 [[대등]] 등을 역임하였으며, [[823년]](헌덕왕 15년)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였다. [[소성왕]], [[헌덕왕]], [[흥덕왕]]의 동생이며, [[애장왕]]의 숙부였다.<ref>단, 경주김씨 족보에 의하면 그는 소성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이 설을 채택한다면 그는 원성왕의 증손이고 인겸의 손자이며, 헌덕왕과 흥덕왕의 조카가 된다.</ref> 시호는 선강(宣康).
         [[808년]](애장왕 9) [[당나라]]로부터 문극(門戟)을 하사받았다. 그뒤 [[각간]]을 거쳐 [[817년]](헌덕왕 9년) 이찬(伊湌)에서 시중(侍中)으로 승진하였다. [[822년]] 헌덕왕이 동생 수종을 세자로 임명할 땍 [[대등]](上大等)으로서 세자를 도와 정권을 장악했고, 당시 집사시랑(執事侍郞)인 녹진(祿眞) 등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823년]](헌덕왕 15년) 토벌대에 참여하여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은 [[김헌창]](金憲昌)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가담했다. 817년(헌덕왕 9)부터 [[821년]]까지 [[집사부]][[시중]]을 지냈다. [[822년]]부터 [[835년]]까지 [[대등]](上大等)을 역임하였다.
         [[831년]] [[흥덕왕]]의 왕자 김능유(金能儒)가 흥덕왕의 명을 받들어 9명의 승려와 함께 [[당나라]]에 진봉사로 갔다가, 이 해 7월 돌아오던 도중 바다에 빠져 익사하였다. 흥덕왕은 후사가 없었고 그가 태자로 책봉되었다. [[835년]] 여름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출생년대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사망 원인도 역시 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가 817년(헌덕왕 9)부터 821년까지 약 4년간 집사부시중을 역임했고, 822년부터 835년까지 약 13년간 대등을 역임했다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헌덕왕조의 다른 기사에는 그가 헌덕왕 13년에 죽었다고 되어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설에는 [[흥덕왕]]의 비 정목왕후가 그의 딸과 동일인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 [[헌덕왕]]비 귀승부인이 그의 딸 정목왕후와 동일인이라는 설도 있고, 그의 숙부 [[김예]]의 딸이라는 설도 있다.
         [[분류:생년 미]][[분류:835년 죽음]][[분류:신라의 왕족]][[분류:신라의 문신]][[분류:신라의 시중]][[분류:왕세자]][[분류:한국의 추존왕]][[분류:병사한 사람]][[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김태욱 (가수) . . . . 8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 남면 (김천시) (연봉길)
         |배우자 이태임 (화배우,탤런트) 전처[[채시라]] (2021년8월22일) 합의이혼함
         |웹사이트 = {{페이스북|kimtaewook2}}
         [[경남도]] [[부산광역시|부산]] 출신으로, 및 [[인하공업전문대학]] 조선공학과를 졸업하였다.
         [[1991년]]에 '개꿈'이라는 노래로 가수 데뷔를 하였으며, [[1999년]]에 그룹 '노크'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태임]]과 재혼 서비스 업체인 아이웨딩네트웍스 대표이사에 취임하여 현재는 서비스 사업역을 확장해 글로벌 가족 서비스 기업 '아이패밀리SC'의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 수 ==
         * [[2012년]] 제1회 행복나눔인 보건복지부장관
         *[[2013년]] 대한민국 IT 이노베이션 대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표창
  • 김형철 (가수) . . . . 8회 일치
         |출생지 = {{KOR}}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웹사이트 =
         1985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블루스 록 가수 첫 데뷔하였고 [[1988년]] [[신화창조 (음악 그룹)|신화창조]]라는 록 밴드에서 본격 록 음악가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91년]]에는 [[신촌블루스]]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이후 화배우로도 활약을 하였다.
         * [[신고등학교 (대구)|경북도 대구 신고등학교]] [[졸업]](1979년 2월)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200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김현식]][[분류:유재하]][[분류:신해철]][[분류:김성재]][[분류:이승환]][[분류:김광석]][[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85년 데뷔]][[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3화 . . . . 8회 일치
          * 토도로키 쇼토와 요아라시 이나사의 협공은 갱 오르카를 당 시간 잡아둔다.
          * 불꽃 소용돌이에 갇혀버린 갱 오르카. 토도로키 쇼토와 요아라시 이나사의 집념이 담긴 합체공격은 갱 오르카를 효과적으로 붙들어놓는다. 갱 오르카도 방금 전의 감점사항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대처라고 만족해한다. 두 사람이 고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갱 오르카는 범고래의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건조에 약하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공격에는 대처하기 매우 까다로운데. 부하들은 갱 오르카를 구출하기 위해 몰려드나 이것을 예한 토도로키가 얼음벽을 쳐서 방어한다.
          * 그 순간을 노리고 미도리야 이즈쿠가 달려온다. 미도리야는 부하들을 쓰러뜨리며 선전. 피난 작업을 마친 오지로 마사라오도 가세한다. 이미 구조현장에선 조치가 거의 끝나가고 있고 HUC의 수는 약 세 명 정도 남은 황. 2회전도 막바지에 들어가고 있다.
          * 한동안은 얌전히 있었던 갱 오르카. 그러나 프로 히어로답게 약점에 대한 대처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정도로 불꽃의 소용돌이를 만들면 어지간한 빌런도 항복할 거라고 말하면서도 미리 준비했던 생수로 수분을 보충한다. 히어로는 항 "다음 수"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가볍게 열풍감옥을 뚫어버리더니 다음 수는 없느냐고 묻는다. 불행히도 거기까지는 여력이 없는 토도로키.
          * 거기서 미도리야가 날아온다. 갱 오르카를 두 사람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공격한다. 미도리야에 대해선 갱 오르카도 알고 있었던 모양. 토도로키도 기가막힌 타이밍에 나타나자 어디까지 예측한 거냐고 놀란다. 황은 미도리야 대 갱 오르카로 전개될 듯 한 시점, 이때 시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다. 같은 시각 바쿠고 카즈키 일행이 마지막 HUC를 구하면서 임시면허 시험의 전과정이 종료된다. 이후 정산작업을 거쳐 이 자리에서 바로 합격자 발표에 들어간다. 수험생들은 대기실로 돌아가고 부자를 챙긴다.
          * 시험 종료 후, 갱 오르카의 부하들은 예보다 저항이 심했던 건지 자기들이 일처리를 제대로 못했다며 갱 오르카에게 굽실거린다. 사실 이들은 구속용 프로턱터가 착용돼서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황. 하지만 갱 오르카는 그걸 감안해도 최후의 열풍감옥이나 거기서 이어진 미도리야의 기습은 좋은 작전이었고 만약 시험이 계속됐더라면 자기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8회 일치
          * [[토오가타 밀리오]]는 "통과"하는 개성. 신체 전체나 일부를 모든 외부 현에서 "통과"시킬 수 있다.
          * 대신 그랜토리노는 [[올마이트]]의 "사이드킥"이었던 인물을 추천하는데.
          * [[토도로키 쇼토]]는 "No.1에 가장 가까운 남자" [[토오가타 밀리오]]의 위력에 경악한다. 그런데 경쟁심을 보이는 것도 아니라 순수하게 놀라워하는 모습이라 옆에 있던 [[아이자와 쇼타]]가 이하게 여긴다. 아이자와가 "너도 No.1에 관심있는거 아니었냐"고 묻는데 토도로키는 "전 아직 임시면허가 없습니다"라고 태평한 대답을 한다. 아이자와는 토도로키가 둥글어졌다고 생각한다.
          * 잠시 뒤 밀리오는 난데없는 노출에 대해 여학생들에게 사과하며 대련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문도 모른 채 배를 맞았다"고 투덜댄다. 밀리오는 자신의 "개성"이 어땠냐고 질문한다. [[세로 한타]]와 [[아시도 미나]]는 다짜고짜 "너무 강하다, 치사하다"같은 말을 해댄다. 아시도는 혹시 토도로키 같은 하이브리드 타입 개성이냐고 묻는다. 맨날 질문한 하던 네지레는 질문을 받자 자기가 대답하겠다고 나서는데 타마키가 제지해서 밀리오가 대답한다.
          "통과"의 개성은 전신으로 발동할 수 있으며 일단 발동하면 "지면이나 기체를 포함한 온갖 사물을 통과"한다. [[우라라카 오챠코]]는 그가 지면으로 잠수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혹시 통과해서 "떨어지는" 거냐고 묻는다.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이렇게 통과, 떨어지는 중에 개성을 해제하면 신기한 황이 발생하는데, 겹쳐있던 부분끼리 반발하는 것처럼 "튕겨 나가"버리는 것이다. 즉 워프의 원리는 그가 지면 등을 통과하고 있다가 해제하면서 그 반발력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개성을 해제할 때의 자세나 황에 따라 나타날 장소를 조절할 수도 있다.
          * 이들의 생각대로 처음엔 밀리오도 개성을 활용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금방 남들보다 뒤쳐졌으며 옷 조차 제대로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능력으로 "위"를 노리려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개성의 약점을 끊임없는 연구와 "예측"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그 예측이 가능하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가 말로 설명하기 보다 대련을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직업체험에서는 말하자면 "손님"으로서 견학하는 것 뿐이지만, 인턴에 참가하면 한 사람의 "사이드킥"으로서 "프로"로 취급된다. 그건 엄청난 공포와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지만, 반대로 학교에선 절대로 접할 수 없는 "경험"이다.
          아직도 노망기가 좀 있는 그랜토리노는 미도리야의 목소리를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미도리야도 이제 익숙해져서 무시하고 대화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랜토리노는 따로 착수한 일이 있어서 인턴십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 말고는 지명도 못 받은 엉터리 계승자"라고 가열찬 디스를 날린다. 하지만 역시 내성이 생긴 마당이라 가볍게 넘어가고 "엉터리 계승자라 뭐든 하고 싶다"고 대꾸한다. 그랜토리노는 웃으면서 "그런 도움이라면 스승에게"라며 [[올마이트]]의 인맥을 이용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예를 들어 그의 "사이드킥"도 있다고 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3화 . . . . 8회 일치
          * 이리나카를 제압한 히어로 연합군은 미궁을 수복하고 적의 정보를 얻으려 하나 개성 부스트 약물의 부작용으로 그럴 만한 태가 아니다.
          * 이리나카는 경찰의 입에서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의 이름이 나오자 격분, 태가 급속이 나빠진다.
          * [[서 나이트아이]]는 [[빌런 연합]]의 개입은 그 둘만이라고 정하고 자물회 히어로 "록록"은 모진 말투로 일행을 질타해 추격을 속행시킨다.
          * 록록이 쓴소릴 했던건 웅고 재학생들을 걱정했기 때문. 그러나 그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생각을 바꿔 신뢰하게 됐다.
          * [[미도리야 이즈쿠]]가 도착했을 땐 [[토오가카 밀리오]]가 절체절명인 황. 미도리야가 [[오버홀]]을 날려보내고 나이트아이가 밀리오와 에리를 확보한다.
          * [[아이자와 쇼타]]는 오버홀을 무력화시키며 미도리야와 함께 그를 정리하려 했으나, 그때까지 빈사태인줄 알았던 크로노가 공격하는 바람에 무산된다.
          * 개성은 대의 시간 조작, 긴 바늘에 찔린 대의 시간이 느려진다. 미도리야와 아이자와를 동시에 노렸으나 아이자와가 미도리야를 감싸 아이자와만 당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3화 . . . . 8회 일치
         [[미도리야 이즈쿠|미도리야]] 일행은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탈환에 실패하고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은 어려운 황에 처한다.
          * 최종적으로 학생 40명 중 15명이 의식불명의 중, 11명의 중경자, 1명의 행방불명. 무사한건 13명 뿐
          * [[유우에이 고등학교|웅]]에선 심각한 사태로 보고 회의를 소집한다.
          * 메스컴에서 연일 비난하고 있고 기존 웅의 방침인 "굴하지 않는 자세"도 관철할 수 없게 된다. 프로히어로에 대한 신임마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 웅에서는 "내통자"가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고 하나 아직 단서는 없다
          * 한편 [[츠카우치 나오마사]]는 수사황을 전하는데 [[다비]]로 추정되는 남자가 출입한 건물을 확인했다. 츠카우치는 극비사항이라며 토벌 작전에 힘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올마이트는 기꺼이 협력한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1화 . . . . 8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91. '''평화의 징'''
          * 자력의 반발력으로 미도리야 일행을 추적하려 하나 그때까지 쓰러져 있던 마운틴 레이디가 기, 빌런연합을 몸으로 막는다.
          * 빌런 연합도 몇 명 남지 않았고 바쿠고를 빼앗겨서 황은 단숨에 역전, 올 포 원은 "당했다"고 인정한다.
          * 2 : 1의 황이 되지만 워프 능력을 사용해서 그랜토리노를 워프, 올마이트의 공격 앞으로 옮기는 등 황을 유리하게 풀어나가는 올 포 원.
          * 그는 올마이트를 미워하고 있다. 과거 자신의 동료를 몇 명이나 쓰러뜨리고 그 대가로 "평화의 징"이라 불리운게 싫은 것이다.
         - 올마이트. "나의 동료를 쓰러뜨린 대가로 평화의 징이라 불린다"고 비꼬는 올 포 원에게
          * 바쿠고는 탈환했지만 "배신자"의 존재 때문에 안심할 수 없는 황.
  • 남일해 . . . . 8회 일치
         | 웹사이트 =
         == 수 ==
         |2002||[[KBS 가요대축제#KBS 가요대 (1981~2005)|KBS 가요대]] 공로
         |2012||제19회 대한민국연예예술
         |2015||제6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보관문화훈장
  • 노재헌 . . . . 8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친척 = 노수(증조부)<br />노병수(조부)<br />김태향(조모)<br />[[노소]](누나)<br />[[최태원 (기업인)|최태원]](매형)<br />최윤정(조카딸)<br />최민정(조카딸)<br />최인근(조카아들)<br />[[노재우]](숙부)<br />노호준(사촌형)<br />노성준(사촌형)<br />김정숙(이모)<br />[[금진호]](이모부)<br />금한태(이종사촌형)
         |기타 이력 = [[민주자유당]] 임위원 <br/> [[민주자유당]]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 <br /> <br /> [[수원대학교]] 외래교수 <br /> [[강남대학교]] 외부강사
         '''노재헌'''(盧載憲, [[1965년]] [[11월 3일]] ~ )은 [[노태우]] 前 대통령의 아들로 현재 [[법무법인 바른]]의 미국법자문사이다. [[조지타운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경대학 경학 학사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강남대학교 교수]][[분류:수원대학교 교수]][[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노태우 가]][[분류:교하 노씨]]
  • 노진용 . . . . 8회 일치
         |문 표기 = Noh Jin-Yong
         |사진 사이즈 =
         [[2009년]] [[8월 7일]] 1군에 처음 등록되어 다시 정식 선수가 되었고, [[8월 12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 8회 2사 황에서 팀의 4번째 [[투수]]로 등판하면서 처음 1군 경기에 출장하였다.
         [[2009년]] [[8월 13일]] 9회말 5:2로 앞선 황에서 팀의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SK 와이번스]]를 대로 1이닝 무실점을 기록, 생애 첫 [[세이브 (야구)|세이브]]를 기록하였다. 2009 시즌 후 [[무 피닉스 (야구)|무]]에 입대하려고 했으나,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신종 플루]]로 무산되고 말았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11040051 LG 노진용, 신종플루로 무 입대 무산] - OSEN</ref>
  • 노행하 . . . . 8회 일치
         {{화인 정보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 교동 (김천시) (한일길)
         | 웹사이트 =
         '''노행하'''([[1990년]] [[4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ref>[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465665 노행하-다음화정보]</ref>
         === 화 ===
         * 《[[순수의 시대 (2015년 화)|순수의 시대]]》 (2015년) - 취항루 기녀 역
         * 《[[S.O.S 나를 구해줘]]》 (KBS2, 2014년) - 김다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김천시 출신]]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8회 일치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 나름 평화롭던 아스가르드에서 신들의 황혼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스가르드의 신 티넬은 이 황혼을 막기 위해 잠들고 있던 그녀의 언니 니나를 하계(지계)로 내려보낸다. 그것이 신들에게 있어 최후의 희망이었기 때문에...
         = 게임 성능 =
         니나의 성격이 그야말로 제멋대로인데다가 신으로서의 힘도 왕인 오딘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당히 막돼먹은 캐릭터다. 원화가인 키리시마 타쿠토가 담당했던 고쿠도 군 만유기의 주인공 고쿠도의 성별을 바꾼 느낌의 캐릭터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글판 공식메뉴얼에도 당당하게 나와있는 '''"유아체형"'''이며, 빈유다 못해 가슴이 없다. 여기에 콤플렉스가 있는지 나이스 바디를 가진 리젤의 가슴을 가지고 놀려먹는게 일이다.
          1. [[아니에스(이노센트 투어)|아니에스]] - 관계는 최악. 성 자체가 맞지 않는다. 아니에스는 엄청나게 순진해서 니나가 놀려먹어도 반응을 하지 않아 니나 입장에선 최악의 대.
          1. [[티엘(이노센트 투어)|티엘]] - 니나의 동생. 언니와는 다르게 당히 선하다. 같은 자매인지부터 의심해야 할 정도. 사이는 나쁘지 않지만 니나를 하계로 보낸 것이 티엘일 정도로 티엘은 니나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으며 냉정하게 바라보고 대한다.
  • 니쿠쟈가 . . . . 8회 일치
         일본에서는 "어머니의 맛"으로 불리며, 친숙한 가정 요리로 취급된다. 2015년 20대~30대 남성 직장인 200명을 대으로 한 조사에서, 40%의 남성이 지금도 먹고 싶은 "어머니의 맛"이라는 키워드에 니쿠쟈가를 대답했다.
         일본의 해군 제독 도고 헤이이치로(東郷平八郎)가 국에 유학을 하였을 때, 비프 스튜의 맛을 잊을 수 없어 부하에게 비프 스튜를 만들라고 했다. 하지만 비프 스튜에 사용할 데미글라스 소스도 와인도 없었기 때문에, 그 대신에 간장, 설탕, 미림 등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 니쿠쟈가라는 이야기가 있다.
         도고 헤이이치로 발 일화를 기반으로, 니쿠쟈가의 원조를 놓고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쿄토 부 마이즈루 시(舞鶴市)와 히로시마 현 쿠레 시(呉市)의 대결이다.
         마이즈루 시는 1901년, 도고 헤이이치로가 처음으로 사령장관으로서 마이즈루 진수부(舞鶴鎮守府)에 부임한 것을 근거로 삼고 있으며, 마이즈루 해자위대총감부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니쿠자가 레시피로 알려져 있는 1938년 출판된 『해군주방관교과서(海軍厨業管理教科書)』가 남아 있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1995년 마이즈루 시는 「니쿠쟈가 발지(肉じゃが発祥の地)」를 선언했다. 그리고 매년 마이즈루 니쿠쟈가 축제(まいづる肉じゃがまつり)를 열고 있다.
         쿠레시는 도고 헤이이치로가 마이즈루에 부임하기 10년 전에 이미 쿠레 진수부(呉鎮守府)에 참모장으로서 부임했다는 점을 근거로, 니쿠쟈가는 쿠레가 발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데미글라스 소스를 사용한 하야시라이스(하이라이스)가 메이지 시대 초기에 나오고 있었으므로, 정황 이 시대는 이미 서양 요리가 일본 요리사들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독 같은 높으신 분이 비프스튜를 주문했는데 간장이나 설탕으로 소스를 대체하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어디까지나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이다.
         니쿠쟈가 자체가 특별히 발명할 필요가 없는 요리라는 주장도 있다. 고기를 간장, 설탕 양념으로 끓이는 스키야키 류의 요리는 이미 메이지 시대에 널리 퍼졌고, 감자 역시 에도 시대에 많이 보급된 작물이었기 때문에 감자와 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자연발생하는 것도 이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 담철곤 . . . . 8회 일치
         담철곤의 할아버지가 [[중화민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했고, 담철곤은 1955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한의원을 운하던 [[화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80년 장인의 회사인 동양그룹에 입사해 동양시멘트 구매부서에서 일했다. 1년 후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겨 1983년 무, 1984년 전무에 오르고 1985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부사장으로 근무하다가 이 창업주가 타계하자 동양제과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경권을 물려 받았다. 동양제과를 동양그룹과 계열분리하고 사명을 오리온으로 바꾸면서 오리온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후 제과사업뿐 아니라 유통, 미디어, 화, 외식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다 2013년 부인 이화경 부회장과 함께 오리온그룹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담철곤은 1991년 [[경북도]] [[청도군]] [[각북면]] 일대에 모친의 [[묘|분묘]]를 조성했고, 추가로 1999년 부친의 [[묘]]를 만들어 2기의 합장묘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곳은 [[등기부등본]] 농지인 '전(田)'으로 규정되어 있어 묘지가 들어설 수 없는 곳이며, 묘소 부지는 담철곤 회장이 아닌 [[오리온그룹]] 직원이 등기권자로 돼 있어 토지 차명 보유 의혹을 받았다. 묘소의 총 면적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조성된 [[김삼]] 전 대통령의 묘(264m²)의 8배에 달하는 2147m²(649평)으로 장사법에서 규정한 규모를 넘는다.<ref>[http://news.tf.co.kr/read/economy/1668728.htm 담철곤 오리온 회장, 직원 명의로 '호화 분묘' 불법 조성 의혹] 더팩트. 2016년 12월 16일</ref>
         * [[대한공회의소]] 의원
  • 뜨거운 것이 좋아 . . . . 8회 일치
         Some Like It Hot. 1959년 개봉된 미국 화.
         1959년 개봉된 화임에도 흑백 화이다. 이는 등장인물들의 여장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함이다.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대의 시카고, 갱단이 운하던 비밀 술집에서 연주자로 일하던 조와 제리는 경찰이 습격한 술집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다. 체포는 면했지만 실업자가 된 이들은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갱단 보스 스패츠가 자신이 운하던 술집을 밀고한 다른 갱단을 살해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조와 제리 또한 스패츠 일당에게 죽을 뻔했지만 간신히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갱단 보스. 화 극초반에 경찰의 습격으로 운하던 술집 하나를 폐쇄당했다. 이후 밀고자의 갱단을 살해, 그 장면을 목격한 조와 제리가 도망치는 계기가 되었다.
         [[분류:화]]
  • 류지혜 (레이싱모델) . . . . 8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https://www.instagram.com/67s2
         * 2016년 기자재전 코리아프로덕츠관 포즈모델
         * [[2010년]] 화 [[쩨쩨한 로맨스]] 단역 출연
         == 수 ==
         * [[2010년]] 아시아 모델 페스티벌 어워드 [[레이싱 모델]] 부문 인기
         | 제목 = 아시아모델 페스티벌 어워드 《레이싱모델 인기
  • 마기/305화 . . . . 8회 일치
          * 알라딘은 "신드바드 아저씨를 좋아하는건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단지 그가 이루려는 세에 동의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 하지만 알라딘은 "그건 얼버무리는 것"이라면서 "결국 아저씨가 좋다고 생각하는걸 원히 강요하고 나쁘다고 생각하는걸 금지해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일침한다.
          * 신드바드는 "나만이 운명의 흐름을 볼 수 있다"고 말하며 "세이 어떤 이치로 흘러가는지 아는 것은 나뿐이니 내가 이끌어야 맞다"고 주장한다.
          * 그 결과가 증오와 전쟁으로 너덜너덜한 세이라며 유일한 왕이란 필수불가결한데 솔로몬은 무책임하게 굴었고, 자신은 도망치지 않겠다며 의지를 피력한다.
          * 바로 오늘날의 평화로운 세을 만들기 위한 절차였다고 한다.
          * 백(아르바)는 그냥 둬도 되겠냐고 묻는데 "어차피 갈 곳도 없다"며 내버려 둔다.
          * 알라딘은 중을 입고 백룡과 모르지아나의 간호를 받는다.
          * 백룡은 아르바가 백의 몸을 강탈했음을 알라딘을 통해 알게 된다.
  • 마기/308화 . . . . 8회 일치
          * 통신기에는 황제국 회 FANFAN 회의 신제품 광고가 나오고 있다.
          * 뉴스에서는 황제국 회의 희소식이 다뤄지고 있다.
          * 광활한 토를 이용해 싼 값에 공장을 설립해주고 부동산 비용을 받고 있다.--그래 결국 땅이지--
          * 이렇게 회는 대성황을 이루고 있는데 알리바바는 알라딘과 접촉했을 때 개입했던 연백(아르바)의 일을 걱정하고 있다.
          * 아르바의 침입을 예하고 협곡을 미로로 만든게 유난. 아르바는 겨우 빠져나왔다고 한다.
          * 아르바는 "왕을 져버리고 세을 등지고 계곡 아래에서 송곳니가 빠진 너는 절대로 날 이길 수 없다"고 외친다.
  • 마기/335화 . . . . 8회 일치
          * 알리바바는 신드바드의 예과 달리 누구보다 결연하게 그와 싸우기를 맹세한다.
          * 일행이 도착한 제 1던전은 "분노와 걸의 시련" '''바알'''. 전쟁터가 배경인 살벌한 던전이다.
          * 성궁은 위도 아래도 없는 추화같은 풍경이다. 백룡과 알리바바는 너무 예 밖의 모습이라 이곳이 성궁인지 의심하고 쥬다르는 악취미라며 5점을 준다.
          * 알라딘이 "신드바드 왕의 마법"이 뭐냐고 묻자 진들은 신드바드가 이미 세을 루프로 환원시킬 성궁의 마법을 시동시켰다고 알려준다. 일행이 당황하자 또다른 목소리가 허공에 나타나 안심하라고 이른다.
          신드바드는 그 미련이란 것에 대한 설명은 접어두고 알리바바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예 밖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언제나 무슨 이유든 달아 신드바드와 대적하는걸 피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알리바바는 지금까지와 다르다. 신드바드의 말을 듣고는 아몬의 검을 들어 신드바드를 가리키며 "반드시 쓰러뜨리겠다"고 맹세한다. 신드바드는 만족스럽게 "기다리고 있겠다"고 화답한 뒤 진들과 함께 모습을 감춘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어느 새 첫 번재 던전에 이르럿다. 아르바가 그 문을 연다.
          >'''분노와 걸의 시련'''
  • 마츠자카소 . . . . 8회 일치
         === 중국 유사 표 사건 ===
         [[중국]]에서 표권 침해 문제를 겪은 사례가 있다.
          * 2008년 11월에는 소 일러스트와 마츠자카를 조합한 표가 2001년 9월에 등록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 2009년 3월에 마츠자카시 차원의 문제가 되었는데, 2004년 2월 24일 푸젠성의 한 식품회사가 송판(松阪)이라는 표를 신청하여, 2008년 12월 20일 중국 표국이 공고하였다. 마츠자카시에서는 2009년 3월 3일 마츠자카소 연락협의회를 통하여 이의를 제기하였으며 시장이 중국을 직접 방문할 계획도 발표했다.
          * 2010년 5월 12일 발표에 따르면, 2006년에 마츠자카소 연락협의회는 마츠자카육(松阪肉), 마츠자카소(松阪牛) 등으로 중국에서 표 출원을 하였으나, 중국 국가표국에서는 '이미 2001년 9월 마츠자카 문자와 소의 얼굴 일러스트로 표가 등록되어 있음', '마츠자카소는 일반적인 식재료 명칭', '마츠자카는 외국의 지명'이라는 3가지 이유로 출원을 기각하였다.
  • 만남계 사이트 . . . . 8회 일치
         데아이케이 사이트(出会い系サイト)
         흔히 만남계(出会い系)로 줄여서 표현한다. 일본어로 만남(出会い, 데아이)는 기본적으로 만난다는 뜻이 있지만, 남녀의 만남이라는 의미도 있다. 만남계 사이트는 인터넷에서 교제 대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대를 소개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이다.
          * 대가 [[유부남]], [[유부녀]]라서 [[불륜]]의 온이 되기도.
         [[분류:일본 풍속]] [[분류:웹사이트]]
  • 모나 색스 . . . . 8회 일치
         맥스가 잭 루피노를 죽인 이후 등장, 이미 죽은 루피노에게 총을 난사하던 맥스를 제지한다. 그러고는 [[알렉스 볼더]]를 죽이고 맥스에게 누명을 씌운 범인은 루피노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후 맥스와 서로 총을 겨누며 대치태가 되지만 범인이 안젤로 펀치넬로 라는 말을 하고는 그나마 긴장 태를 푼다. 자신도 펀치넬로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는 펀치넬로가 그의 아내이자 모나의 쌍둥이 자매인 리사 펀치넬로를 학대하고 있었기 때문.
         이후 맥스와는 에이저 플라자에 쳐들어갔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재회한다. 이때 모나는 니콜 혼에게 맥스를 죽이기 위해 니콜 혼에게 고용된 태였지만 맥스에게 호감을 느껴 그를 죽이지 않고 동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습격해온 혼의 경호원들에 의해 사망한다. 맥스는 엘레베이터 안에 쓰러진 그녀의 시체를 보며 "솔직히 그녀는 차디찬 킬러가 아니라 좋은 여자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차디찬 시체였다,"[* She was a nice girl, not a stone-cold killer, and now she was stone-cold dead.]라고 독백한다.
         맥스가 [[블라디미르 렘]] 소유의 창고에서 [[스쿼키 청소회사]]와 총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등장. 경찰차 사이렌을 듣고 도망가려던 청소회사 직원들을 데저트이글로 죽여버렸다. 맥스에게는 이런식으로 만나는건 그만해야 한다는 말만 하고 사라진다.
         이후 발레리 윈터슨 형사가 담당한 세바스찬 게이트 원의원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 때문에 폐 놀이공원에서 숨어 살고 있다.
         살인 사건 용의자인 태에서 형사인 맥스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와 자신과 맥스에게 청부업자가 붙었다는걸 알린다. 이후 스쿼키 청소회사가 아파트를 습격하자 도망친다.
         모나는 불길을 뚫고 쓰러진 맥스를 구해준다. 그녀는 맥스가 블라드를 쫓는아 우든의 저택으로 가는걸 만류했지만 맥스는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맥스가 우든의 저택에 갔을때, 모나는 권총으로 맥스의 머리를 후려치고는 자신의 일은 이 황을 정리하는 것이며, 정리 대에 맥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다. 하지만 맥스가 저항하지 않고 총을 버리는 것을 보자 자신도 맥스를 죽이는걸 포기하고 총을 버린다. 그 직후, 뒤에서 나타나 총을 쏜 블라드에 의해 죽는다.
  • 미래소년 코난 . . . . 8회 일치
         SF [[애니메이션]].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감독 작품이다. NHK에서는 처음 방한 셀 애니메이션. 화수는 총 26화. 1978년 방송.
         당히 오래전 시기에 방되었으나 캐릭터면 캐릭터, 스토리면 스토리 등, 그 완성도는 2000년대 이후의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서기 2008년 7월, [[핵무기]] 이의 힘을 지닌 초자력무기가 이용된 대규모 전쟁이 발발해 문명은 멸망하고, 대부분의 대륙이 가라앉았다. 세월이 흐른 이후, 코난은 남겨진 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코난은 라나라는 소녀와 만나게 된다. 라나는 뛰어난 과학자인 라오 박사의 손녀였으며, 박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라나를 쫓는 자들의 습격이 계기가 되어 코난의 할아버지는 목숨을 잃고, 라나는 끌려가버린다. 코난은 라나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데….
          * 인류 문명이 무너진 시기가 서술된 것처럼 2008년이다. 다만 이 애니메이션의 방 시기가 70년대로서 [[냉전]] 시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무리도 아니다.
          * 26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시청자들 중에는 그 이의 장편이었다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과거 KBS에서 몇번이나 재방송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후에 --달랑-- 26화인 것에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
          * <[[미래소년 코난II 타이가 어드벤처]](未来少年コナンII タイガアドベンチャー)>라는 것이 있다. 감독은 미래소년 코난의 연출, 콘티에 참여했던 하야카와 케이지. 1999년에 방했으며 화수는 24화. 내용은 초자력병기 등의 일부 단어는 공통되나 그외에는 미래소년 코난과 아무런 관계 없다.
          * 당연한 말이나 [[명탐정 코난]]과는 아무런 관련 없다. 서양의 소설 [[코난]]과도 무관하다. 다만 명탐정 코난도, 서양의 코난도 애니메이션화되어 국내에서도 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바키도/140화 . . . . 8회 일치
          * 훗날 오오츠카는 당시의 황을 증언하며 "단숨에 덤벼봐야 효과가 없었다"고 혀를 내두른다.
          * 경쳘병력과 대치하게 된 [[미야모토 무사시(그래플러 바키)|무사시]]. 숫자는 경찰이 많지만 무사시의 범치 않은 기세에 위축되어 쉽게 달려들지 못한다.
          * 눈의 처를 지혈한 오오츠카는 정신을 차리고 황을 살펴본다. 이미 무사시가 병력들을 쓰러뜨린 채 오오츠카 앞에 버티고 있다. 훗날 그는 다른 이에게 이 사건을 증언한다. 이때 무사시를 대했던 경찰들은 한결 같이 "목이 날아갔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무사시는 칼 한 번 뽑지 않았다. 그렇게 되는 건 좀 더 뒤의 일.
          * 좌우간 그 뒤에도 "포획"은 계속된다. 그러나 건장한 경찰 여섯이 한 꺼번에 덤비는 것도 전혀 대가 되지 못한다. 분명 단단히 포위한 채 사방에서 달려들었는데, 막 대하게 되면 아군이 시야를 가리고 장애물이 되어 접근할 수 없고 무사시와 대면하게 되면 언제나 1대1. 오오츠카는 자신이 본 사실과 그들의 증언을 모두 전하며 그것이 당대에서 말하던 "병법"이라고 말한다. 이제 경시청에선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데.
  • 박두을 . . . . 8회 일치
         |출생지 = 대한제국 [[경북도]] [[달성군]] [[하빈면]]<br/>(現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웹사이트 =
         {{인용문|처음 본 인은 건강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슬하에 3남 5녀를 두고 반세기여를 서로 도우면서 살아왔다. 내자 역시 유교를 숭하는 가문에서 전통적인 부덕(婦德)을 배우고 성장해서 그런지, 바깥 활동은 되도록 삼가고 집안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해왔다. 예의범절에도 밝아 대소사가 두루 화목하다. 지금까지 몸치장 얼굴치장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처럼 수신제가의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는 내자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박두을은 남편 [[이병철]]이 대학 재학 중인 [[1929년]]에 장녀 [[이인희|인희]]를 낳은 데 이어 3남 5녀를 둔 어머니가 되었다. 호암자전에서 [[이병철]]은 자신의 자녀 수를 4남 6녀라고 적시했다. 이 중 자신과 박두을과의 사이에서 3남 5녀를 두었고,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고향에서 쉬면서 곧 건강을 회복했지만 이번에는 할 일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병철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친구들과 노름에 빠졌다. 노름은 늘 한밤중까지 계속되었고 지칠 대로 지쳐 집으로 돌아오곤 하여 이 무렵 호암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날도 골패노름을 하다가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26세였던 [[이병철]]은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평화롭게 잠든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온갖 념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신이 그동안 너무 허송세월을 했다는 자책이 컸다. '뜻을 세워야 한다. 독립운동도 좋고 관리가 되어도 좋고 사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을 빈곤에서 구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병철]]은 사업에 인생을 걸어보자고 결심하였고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 「여성이여 세의 멘토가 되라」, 창업자 부인 박두을, 허문명 저, 올리브엠앤비(2010.09.30 224~242p)
  • 박술희 . . . . 8회 일치
         '''박술희'''(朴述熙 또는 朴述希, ? ~[[945년]] [[10월 24일]]([[음력 9월 16일]]<ref>『[[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2, [[고려 혜종|혜종]](惠宗) 2년(945) 9월 16일(기유)</ref>))는 [[신라]](新羅) 말기와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 사람이며, [[고려]](高麗) 초기의 [[무신]](武神)이다. [[고려 태조|태조]](太祖)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이다. [[면천 박씨]](沔川朴氏)의 시조로 [[고려]]高麗) 전기의 무신(武神)이자, 개국공신으로 [[호 (이름)|시호]]는 엄의(嚴毅)이다. 대승(大丞) 득의(得宜)의 아들이다. [[눌지 마립간]](訥祗 麻立干)시대의 문신 [[박제]](朴堤上)과 [[백결 선생]](百結 先生)의 후손이다.
         [[신라박씨선원세보]]에 의하면 그는 [[눌지왕]]시대의 문신 [[박제]]과 [[백결 선생]]의 후손이라 한다. 박제의 아들 박효원의 후손인데, 박효원이 아들이 없어 삼촌 박지의 아들 충혼의 아들 등원을 양자로 삼았고, 그로부터 세계가 이어졌다. 아버지는 대승 박득의이고 할아버지는 박기원이다.
         그러나, 이후 호족 세력과 왕권, 그리고 [[왕규의 난]] 사이에 얽힌 복잡한 권력 투쟁은 정치가가 아니라 군인이었던 박술희에게는 버거운 것이었다. [[왕무|혜종]]의 세력 기반은 미약하였고, 이복동생인 [[고려 정종 (3대)|정종]]와 [[고려 광종|광종]]은 외할아버지의 세력인 충주 호족 세력과 [[왕식렴]]을 중심으로 한 [[서경 (고려)|서경]] 세력의 지원을 받아 강력한 세력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외척인 [[왕규의 난]](王規)도 왕위를 탈취하려고 하고 있었다.
         [[고려 태조|태조]]가 아니면 유지되기 힘들었던 [[고려]] 초기의 불안한 정치 황은 박술희에게는 불운이었다.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박술희는 [[고려 정종 (3대)|정종]]와 그를 지지하는 [[서경 (고려)|서경]] 세력에 의해 [[강화군|강화]] 갑곶으로 귀양을 가게 되어 얼마 후 조정의 밀명을 받은 자객에 의해 살해당했다.
         [[분류:암살된 사람]][[분류:생년 미]][[분류:945년 죽음]][[분류:신라의 왕족]][[분류:태봉의 군인]][[분류:고려의 무신]][[분류:고려의 정치인]][[분류:고려 태조]][[분류:고려 혜종]][[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면천 박씨]]
  • 박제균 (1887년) . . . . 8회 일치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직전인 [[1909년]]에 경북도 [[안동군]] 주사가 되어 [[대한제국]] 말기에 관계에 들어섰다.
         이듬해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어 [[조선총독부]] 체제가 들어서면서 총독부 군서기에 임명되었다. 안동군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예안군]], [[비안군]], [[의성군]], [[경주군]] 등 경북도 지역에서 군서기로 일했다. 경북도 재무부 세무과를 거쳐 [[1924년]]에는 총독부 군수로 승진하였다.
         이후 경북 지역에서 [[청송군]], [[덕군]], 의성군 군수를 차례로 지냈고, [[1933년]]에는 [[천군]] 군수가 되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수여받는 등, 천군수로 재직 중이던 [[1934년]]을 기준으로 종6위 훈6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분류:1887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종윤 (1993년) . . . . 8회 일치
         |문 표기 = Park Jong-Yoon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2014년 ~ 2015년)
         대구고 시절에 타자들을 대로 작은 키지만, 좋은 피칭을 보였다.
         ==[[무 야구단]] 시절==
         * [[경중학교]]
         [[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무 야구단 선수]]
  • 박준홍 . . . . 8회 일치
         || [[김윤하]](35대~37대) || → || '''박준홍'''(38대) || → || [[최순(기업인)|최순]](39대~44대) ||
         1947년 경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박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박희는 딸만 다섯을 두고 아이를 아내 뱃속에 남겨두고 대구 10.1 사건 당시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었다가 아들이 태어나면서 대를 잇게되었다.
         [[신민주공화당]], [[자유민주연합]]에서 정치인 생활을 했지만 선거에서는 계속 낙선했다. 특히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선거구인 [[경북도]] [[구미시]] 선거구에서 사촌 형인 [[박재홍(1941)|박재홍]] [[민주정의당]] 후보와 대결하여 낙선하였다.
         그는 이후 [[국가재건친박연합]]의 대표가 되었는데 공천 헌금을 받아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86590]] 그리고 2011년 5월 13일 고 기각 ( 2011도2844 )
         2012년 3월 가석방되어 지지자들이 환식을 열었다. [[http://www.seoulpost.co.kr/paper/news/view.php?newsno=18894]]
  • 박진영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선수명 = 박진
         |문 표기 = Park Jin-Yeong
         |사진 사이즈 =
         '''박진'''(朴晋永<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85년]] [[3월 27일]] ~ )은 [[KBO 리그]] 전 [[고양 원더스]]의 [[내야수]]이다.
         2008년 2차 3순위로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 2008년 포스트시즌 탈락 이후 후반 신예들을 주로 기용한다는 [[조범현]] KIA 감독의 방침에 의해 9월부터 김종국과 함께 주로 2루수로 기용되어, 26타수 8안타 0.308 타율를 기록하였다.<ref>[http://www.koreabaseball.com/record/player.asp?player_id=78606 박진 기록 페이지, 한국야구위원회]</ref>. 무에서 퓨처스리그 등 2군 리그에서 주로 활약하다 2012년 시즌 이후 팀에서 방출당한다.
         * 경중학교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배성룡 . . . . 8회 일치
         '''배성룡'''('''裵成龍''',[[1896년]] [[10월 28일]] [[경북도]] [[청도군]] ~ [[1964년]] [[12월 8일]])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언론인, 경제평론가, 정치인이다. 본관은 [[성주 배씨|성주]](星州). 필명은 수성(秀星)·성산학인(星山學人)·성산생(星山生)·성산인(星山人)·별뫼이다.
         아버지는 운홍(運鴻)이며, 어머니는 유윤이(柳允伊)이다. 1917년 결혼을 전후해 일본의 니혼(日本)대학에 유학해 1923년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사하고 1924년 11월 화요회(火曜會)에 가입했다. 가입 후 사회주의 운동에 관련된 여러 편의 논저를 발표해 김경재(金璟載)와 함께 화요파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했으며 1925년 8월 이후 〈동아일보〉를 주무대로 활발한 평론활동을 했다. 1926년 3월 제2차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1928년 2월 1년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만기 출옥했다. 1929년 조선일보사 경제부장이 되었다. 1931년 11월 새로 창간된 중앙일보사에 경제부장으로 입사하여, 1932년 봄 정치부장, 10월에는 논설반 주필 겸 편집부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3월 〈중앙일보〉가 〈조선중앙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자 편집차장·정치부장을 역임하다가 10월 신문이 정간되자, 절필하고 은둔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글들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조선의 경제 현실에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중층적으로 존재하게 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파악하고 일본인 자본 대 조선 민중의 대립을 기본 모순으로 정했다. 조선인 내부의 부르주아 계급과 노농계급 모두를 일본 자본주의에 의한 공동의 피해자로 파악하면서, 민족협동전선론을 주장했다. 8·15해방 후에는 중도파로서 좌우익의 편향노선을 비판했다.
         1945년 9월 이극로가 주도하는 전국정치운동자후원회에 가입해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권오익(權五翼) 등과 각당통일기성회(各黨統一期成會)를 조직해 좌우익 정당통합에 주력했다. 1946년 1월 이극로·권오익 등과 함께 통일정권촉성회를 결성해 우익의 비국민회의와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7월 도진호(都鎭浩)와 함께 좌우합작촉진회를 결성했다. 1947년 2월 〈세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이극로·조봉암·백남규(白南奎) 등과 함께 민족주의독립전선을 결성하고 임위원 및 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0월에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이 결성되자 권태석(權泰錫) 등과 함께 5인 정강·정책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948년 4월 남북협을 지지하는 ' 문화인 108인 성명'에 서명하고, 권태석과 함께 김규식의 제2차 특사로 평양에 가서 남북협에 참여했다. 7월 김규식과 김구가 연합한 통일독립촉진회에 참여했다. 1950년 이후 〈동아일보〉와 〈사계〉 등에 경제평론을 발표하여, 대외의존체제의 극복과 내포적(內包的) 공업화를 통한 경제자립을 주장했고 서울대학교 과대학에서 동양경제를 강의하기도 했다.
  • 배지환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문 표기 = Bae Ji Hwan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 신입생 시절부터 팀의 주전 유격수를 맡아 활약하였다. 3학년이던 2018년에는 [[이민 타격]]<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80784 경북고 배지환, 2017년 이민 타격자 선정] - OSEN</ref>과 도루을 수하였다.
  • 백낙청 . . . . 8회 일치
         | 직업 = 문학평론가, 문학자
         '''백낙청'''(白樂晴, [[1938년]] [[1월 10일]] ~ )은 [[한국]]의 대학교수, 문학자, 문학평론가, 사회운동가이다. 친일관료 백붕제의 아들로 [[대구]] 출신이다.
         친가는 [[평안남도]] [[정주군]]에 있었지만, 외가가 있는 [[대구]]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백붕제|'''백붕제''']]는 친일관료로 6.25 때 납북되었다. 1955년 [[경기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을 떠나,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유학을 떠나 197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부터 [[서울대학교]] 문과에 부임하였고, 1966년부터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편집인을 맡아 진보적 평론활동으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에 큰 향을 끼쳤다. 1974년 유신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해직되었으나, 1980년 복직되었고, 2003년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이후에도 통일운동의 일선에서 일하며 2005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는 범여권후보 단일화운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 누나 : 백순(白純英, [[1936년]] ~ )
         ** 동생 : [[백미]](白美英), 단국대 교수, 피아니스트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3509&cid=41708&categoryId=41737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백낙청] , 권민 저, 서울대학교출판부, {{ISBN|9788952104618}}
  • 보루토/1화 . . . . 8회 일치
          * 쑥대밭이 된 나뭇잎 마을.--미래에도 부서지는 마을-- 파괴된 역대 호카게의 흉 조각 위에서 우즈마키 보루토가 "카와키"라는 닌자와 싸우고 있다.
          * 보루토의 오른쪽 눈은 애꾸. 큰 처가 보인다.
          * 보루토가 환분신술로 곰판다를 공격해 몰아간다.
          * 보루토는 수행 따윈 관없다며 자기 혼자 여러 술법을 쓸 수 있다고 자랑하는데, 나루토는 코노하마루에게 "뭘 가르치는 거냐"며 한소리 한다.
          * 환분신을 보내서 연기하고 있었던 것. 보루토는 히마와리의 생일을 망쳤다며 분노한다.
          * 처음에 보루토는 오른쪽 눈에 큰 처를 입어서 애꾸가 된 것 같지만, 문신이 떠오르면서 눈은 정적으로 떠진다.
          * 소질은 있는지 아버지가 애를 먹던 환분신술을 아무 리스크 없이 사용한다.
  • 블랙 클로버/106화 . . . . 8회 일치
          * 여론이 다시 좋지 않게 흘러가려 하자 유노는 아스타에게 고아원 시절 둘이 하던 훈련을 기시키고 강력한 정령마법을 가한다.
          * 마법기사단의 실적을 발표하는 현장. 올해 1위 금색의 여명단과 2위 검은 폭우단을 대표하는 신인으로 각각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단에 올라와 있다. 큰 무대지만 둘은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서로 자신이야 말로 마법제가 될 자라고 티격태격한다. 유노의 경우는 그러는 동안에도 성장폭자체는 검은 폭우 쪽이 높다고 의식하고 있다.
          [[마법제]] 율리우스는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소개한다. 두 사람은 올해 신인 중 별획득수가 1, 2위를 다투는 유망주다. 그것도 입단 후 반년 만에 쌓은 성과. 둘은 같은 고향 출신 동기지간으로 불과 16세에 불과하다. 두 사람이 어린 나이에 두각을 보인다고 하자 청중들 사이에서 둘의 평가가 더욱 올라간다.
          * 그런데 청중 사이에 끼어 있던 청동 마법의 [[셋케]]는 야비한 본성이 여전해서 둘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펼친다. 둘이 하층민 출신이고 특히 아스타는 마력도 없는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셋케 자신은 정말로 아스타가 사기꾼이라고 믿고 있었다. 공적을 쌓은 것도 뭔가 치졸한 짓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청중들은 하층민이란 말에 쉽게 선동 당해 다시 여론이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간다.
          * 유노는 잡다한 반론보다는 단순한 해결책을 생객해 낸다. 그는 바람의 정령 벨에게 최대한 힘을 끌어내라고 한다. 그 순간 같은 단의 단장들이 놀랄 만큼 강대한 마력이 방출된다. 마법덕후인 율리우스는 정령마법이 발동하자 눈을 빛낸다.
          * 아스타가 반사적으로 마법을 베어버린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이 작은 격돌의 여파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사람들이 그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스타가 "왜 맨날 느닷없이 이런 짓을 하냐"고 발끈한다. 유노는 살아있으니 됐고 죽으면 그것 뿐인 녀석인게 아니냐고 얼버무린다. 둘에겐 일같은 장난이지만 그걸 지켜 본 시민들은 인식이 바뀐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법이고 그걸 또 간단하게 막아내는 걸 보고 더이 실력을 의심할 여지가 사라졌다. 셋케 또한 자신이 차원이 다른 수준에 이른 둘을 보고 경악한다.
          청중 사이의 노엘은 [[키아토]]와 [[카호노]]의 축하를 받고 있다. 자기 형제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알 턱이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 블랙 클로버/83화 . . . . 8회 일치
          * 그때 여왕은 수한 존재들이 숲 바깥에 나타난걸 감지하는데, 이들은 마르스를 위시한 다이아몬드 왕국의 침략군이었다.
          * 반응이 좋지 않자 농담이고 실은 공짜라고 수습하는 도미나.
          * 아스타는 여기까지 와놓고도 왜 왔는지 문을 모른다.
          * 이것은 경비용 골렘인데 사이즈는 작아도 침입자를 발견하면 마탄을 쏘며 응징하는 무서운 놈들이다.
          * 검은 폭우의 마녀 바네사 에노테이커였다. 여왕에게 당해 의식을 잃은 태.
          * 격분한 아스타는 부 중임에도 거침없이 달려든다.
          * 그리고 아스타에게 바네사는 자신이 노예가 되는 조건으로 아스타의 부을 치유하려 했다고 폭로한다.
          * 그녀는 "어떤 적"의 접근을 예하고 있었는데 하필 이런 타이밍에 왔다고 혀를 찬다.
  • 블랙 클로버/85화 . . . . 8회 일치
          * 아스타는 팔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여왕의 강화마법이 걸려 평소 이의 강력한 신체로 부활했다.
          * 다이아몬드 왕국 측은 증오의 파나를 앞세워 파공세를 펼치는데 여왕의 골렘이나 마녀들의 마법도 속수무책이다.
          * 완전한 태로 부활한 아스타. 두 팔로 두 개의 검을 휘두르며 결전에 나서자고 외친다. 하지만 그동안 걱정했던 동료들은 너무 뻔뻔하게 외치는 꼬라지를 보고 제재를 가한다. 그런데 부활한 향인지 너무 튼튼해져서 동료들의 공격이 먹히지도 않는다. 이것은 여왕이 저주를 풀어주면서 걸어준 강화마법인데 온몸이 쇳덩이처럼 단단해졌다.
          * 마녀의 숲은 침략자를 대로 여왕의 거대 골렘까지 꺼내며 항전하지만 증오의 파나는 가볍게 골렘을 날려버린다. 전력 차가 현격해서 마녀들 만으로는 전혀 대가 되지 않는다.
          * 부관격으로 보이는 변태 같은 마도사가 있는데, 이 녀석은 파마의 힘과 미모를 칭송하며 "한 번 대하고 싶다"고 섹드립이나 날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마녀들을 끌고 가서 노예로 쓰겠다며 부하들을 출동시킨다. 부하들은 포박 계통의 마법으로 마녀들을 잡아간다. 어린 마녀 하나가 적에게 잡히는데 아스타가 바네사 에노테이커, 핀랄 룰러케이트, 노엘 실버와 함께 현장에 도착, 마녀를 포박한 마법을 베어버리며 구출한다. 하지만 마녀의 숲의 마녀들을 남자를 싫어해서 구해준 아스타를 할퀴고 달아나 버린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원래 그런 나라라며 대신 사과한다.
          * 아스타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탄을 베어버리며 적들에게 날아간다. 이미 아스타는 절망의 베토를 쓰러뜨린 걸로 적들 사이에서 이름이 나있다. 적들이 경계하지만 아스타는 적들을 밟고 날아다니며 순식간에 쓸어버린다. 부관은 어떻게든 아스타를 저지해 보려 하지만 거침없이 달려드는 기세를 막을 수 없고 단 한 방에 박살이 나고 만다. 바네사는 그 실력을 칭찬하며 일단 저렇게 기세를 타면 막을 수 없는 아이라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91화 . . . . 8회 일치
          *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는 자신들의 목표는 마녀의 숲이지 쓸데없는 살이 아니라고 말한다. [[라드로스]]는 다이아몬드 왕국을 배신한 배신자들인데 어째서 그걸 못 본척 한다는건 왕국을 배신하는 짓이라고 반박한다.
          마력을 흡수하는 라드로스는 그 마르스 조차 "무적"이라 말할 정도로 강력한 대다. 그러나 쓰러뜨릴 방법이 없진 않다. 그는 허용량 이의 마력을 흡수시켜 자멸하게 만드는 것인데 정령마법이나 마녀들의 여왕 정도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능성도 있다.
          * 숲의 반대편, 검은 폭우 일행은 [[증오의 파나]]를 거의 제압한 태다. 파나는 한 눈에 보기에도 태가 좋지 않은데 주변을 불사르며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아스타는 이미 포위됐으니 그만 좀 하라고 마지막 항복권고를 날린다. 그러면서 "자꾸 그러면 고향의 부모님과 친구들도 슬퍼할 거야"라고 하는데 그것이 파나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 파나는 남아있는 마력을 끌어올린다. [[핀랄 룰러케이트]]는 아직도 저만한 힘이 있다며 경악하고 아스타는 마지막 설득까지 실패하자 실망한다. 바로 그 모습을 젤 일행이 발견한다. 이들은 아스타만이 아니라 정령마법 구사자가 있는걸 보고 곧바로 새로운 발을 떠올린다. 마침 라드로스도 그들을 턱 밑까지 추격한 태.
          * 아스타가 마법을 쳐올리자 젤은 자신의 바람 마법으로 마법을 컨트롤, 자기들을 지나쳐 라드로스에게 직격하게 한다. 흡수하려던 라드로스는 예을 웃도는 강대한 마력에 당황하다가 마법에 직격 당한다.
  • 블리치/674화 . . . . 8회 일치
          * 유시로는 태가 대단히 나빠서 조치가 필요하나 뾰족한 방법이 없다.
          * 갑작스래 우라하라 키스케가 끼어든다. 우라하라는 이런 황에서도 요루이치의 엉덩이를 감(!)하고 만지작(!)거리기까지 한다.
          * 특기 전력은 키스케(수단), 켄파치(전투력), 아이젠(압), 효스베 이치베(지), 이치고(잠재력)
          * 그래서 그냥 순홍 뇌신전형으로 아스킨과 싸우려 하지만, 이미 체력이 많이 저하된 태라 움직이게 된 것만으론 대가 되지 않았다.
          * 표지부터 요루이치의 엉덩이를 강조하고 있다.--그러니까 유독 이 장면을 업로드한건 작성자의 독단이 아니다. 작가의 의지반이다.--
  • 블리치/692화 . . . . 8회 일치
          * 제라드는 초거대화된 태에서 갑자기 힘을 잃고 뼈만 남긴채 쓰러진다.
          * 그때 하늘에서 이한 빛이 내려와 하쉬발트에게 꽂힌다.
          * 제라드와 대치하고 있던 토시로, 뱌쿠야도 제라드에게 이한 빛이 꽂히는걸 목격한다.
          * 빛들은 왕궁, 유하바하에게 향한다.
          * 이제는 너도 슈테른릿터도 필요가 없다며 거기서 현세와 소울소사이어티가 자신에게 짓밟히는걸 보라고 한다.
          * 아버지팀은 도착해서 한 것도 없이 황 종료.
          * 풀브링 삼인방도 결국 아무 것도 못한 채 황 종료.
          * 이치고가 모든 힘을 실한건 이것으로 3번째.--그만해--
  • 블리치/694화 . . . . 8회 일치
          * 나타난 유하바하에게 "나의 소울 소사이어티에 어서와라"고 환하는 아이젠
          * 그를 맞이하는건 아이젠 소스케. 그는 "나의 소울 소사이어티에 잘 왔다"며 환한다.
          * 이치고를 향해 달려가던 우류는 수한 낌세를 느낀다.
          * 부축해주는 렌지에게 오히려 그의 처를 걱정하며 "거기 남아있어도 됐었는데"라고 말하는데 돌아오는건 주먹세례
          * 소울 소사이어티에서는 구속에서 완전히 풀려난 아이젠과 유하바하가 싸우는 중.
          * 그러자 유하바하는 "네 고뇌를 나에게 투하지 마라. 이치고에게 패한것은 너"라고 꼬집는다.
  • 서림 . . . . 8회 일치
         조선 인종 때 문신 박동량(朴東亮)이 저술한 기재잡기(寄齋雜記)에서도 임꺽정의 죽음과 관련되어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만 실록의 기록과는 당히 세부적인 차이가 있으며, 기록된 시기가 명종 시기와는 당한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설화적인 측면이 강한 기록으로 볼 수 있을듯 하다.
         기재잡기에서 서림은 임꺽정의 마지막 죽음에까지도 관여하는데, 관군의 추격을 받아 궁지에 몰린 임꺽정은 한 노파의 집에 들어간다. 임꺽정이 노파를 위협하여 노파가 "도적이야!"하고 외치면서 달아나게 하고, 자신은 관군인 척 하면서 관군에 뒤섞여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슬쩍 진을 빠져나가 도망치려 하는 임꺽정을 보고, 수하게 여긴 기병이 추적한다. 서림이 임꺽정을 보고 "도적이다!"라고 소리치자, 화살에 맞아 중을 입은 임꺽정은 서림이 투항하여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고 분통하게 여기는 말을 내뱉게 된다.
          * 벽초 홍명희의 장편소설 임꺽정에서, 서림은 평안감의 아전으로서, 진품을 빼돌리다가 들켜서 청석골 화적패에 가담하여 모사꾼이 된다. 그러나 나중에는 서울에서 체포되어 관군에 협력하게 되며, 임꺽정 패거리의 몰락을 암시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 실록과 국조보감에서 서림의 체포/투항 시기나 정황이 다르다.(남대문 밖/구월산) 실록에서는 서림이 도적과 다시 연락했다는 기록도 있는 것을 보면, 한 번 체포된 뒤에 남치근에게 포섭되어 한동안 [[이중스파이]]로서 활동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남대문 밖에서 체포되어 남치근의 관리하에 있다가, 구월산으로 돌아가서 정보를 다시 빼내고 재투항 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 서훈 (1942년) . . . . 8회 일치
         경북대학교 법대 재학시 총학생 회장으로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하였고 ROTC 대위로 전역한 이후 신민당 시절 김삼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대구에서 신민당,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번번히 낙선하였다. 남지역 재야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교육에도 관심이 높아 가난한 지역학생들을 위해 팔공 재건학교와 같은 야학을 오랬동안 운하였다. 1990년에 김삼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을때 이를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고 오랜 정치적 후원자였던 김삼 총재와 결별하게 된다.
         가족으로는 처 김리례와의 사이에 2남 1녀(첫째 서정진, 둘째 서정현, 세째 서정봉)를 두었다.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달성 서씨]][[분류:남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분류:남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전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통일민주당 당원]][[분류:통일국민당 (대한민국)]][[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국민당 (2000년)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의 정치인]]
  • 소격서 . . . . 8회 일치
         * 태일전(太一殿) : [[칠성]](七星)을 제사지냈다. 화이 모두 모두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의 모습이었다.
         * 삼청전(三淸殿) : 옥황제(玉皇上帝), 태노군(太上老君), 보화천존(普化天尊), 재동제군(梓潼帝君) 등 10여 위를 제사하였다. 남자의 화으로 모셨다.
         도사를 뽑을 때는 《보경(靈寶經)》ㆍ《과의(科義)》ㆍ《연생경(延生經)》ㆍ《태일경(太一經)》ㆍ《옥추경(玉樞經)》ㆍ《진무경(眞武經)》ㆍ《용왕경(龍王經)》 등을 교제로 사용하였다.
         [[중종]] 재위 시기, 1518년에 [[조광조]] 등의 요청으로 소격서를 일시적으로 혁파하였다. 하지만 중종은 조 때부터 내려온 제도라면서 소격서 혁파 주장에 거부감을 보였고, [[기묘사화]] 이후 대비의 간청이라는 이유로 다시 부활시켰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폐지하였다. 소격서의 근거가 되는 [[도교]]가 [[노자]]를 숭하는 이단이라는 점, 제후국인 조선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명분에 어긋난다는 점, 초제를 지내는 비용이 낭비되며, 소격서는 쓸데없는 관리라는 점 등의 이유이다.
         오주문연전고(한국고전종합DB)
  • 슈퍼걸(드라마)/1시즌 2화 . . . . 8회 일치
         카라는 DEO에서 훈련과 테스트를 받으면서, 동시에 윈과 함께 슈퍼히어로로서 활약한다. 하지만 미사일을 피하는 격렬한 훈련을 벌인 다음, 선박 화재를 진압하다가 오히려 석유 유출을 일으키고 만다. 뉴스에서 슈퍼걸에 대한 비난이 빗발쳐서 매우 심한다.
         뉴스에서는 맥스웰 로드가 비난하는 사람으로 등장, 그랜트는 슈퍼걸과 인터뷰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카라에게 제임스는 인터뷰를 해보라고 권유하며, 실패하여 심해있는 카라를 격려해준다.
         다음날 카라는 그랜트가 자신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은 것을 보게 된다. 울컥거린 카라는 그랜트에게 슈퍼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은근슬쩍 물어보는데, 그랜트는 슈퍼걸은 급하게 웅이 되려고 하는 것보다 좀 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 말이 마음에 와닿게 된 카라는 윈과 제임스를 불러서 도움을 요청한다.
         카라는 아스트라와의 대결에서 접전을 벌이다가, 알렉스가 훈련 시설에서 했던 가르침을 기하여 아스트라를 날려버린다. 아스트라는 곧 일어나서 프리징 브레스로 카라와 알렉스를 날려버린다.
         그 때 행크가 아스트라의 등뒤에서 나타나 총을 겨눈다. 아스트라는 행크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리려 인간의 무기로는 자신을 처입힐 수 없다고 자만하는데, 행크는 크립토나이트 단검을 아스트라에게 찔러 부을 입히고 아스트라는 당황하여 도주한다.
         알렉스는 행크에게 고맙다고 감사를 표한다. 행크는 자신이 슈퍼맨에게 해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이었다고 겸연적어한다. 그런데 한편, 떠나는 행크의 눈이 수하게 붉게 빛난다.
         카라는 캣 그랜트의 차를 들어올려 옥에 올려놓은 다음 그녀와 인터뷰에 나선다.
  • 식극의 소마/170화 . . . . 8회 일치
          * 에리나 조차도 생소한 음식인데다 내용물이 흰지가 살짝 굳고 노른자가 반숙 태인 이적인 태라 놀라워한다.
          * 반숙란에 튀김옷을 입혀 튀겼다고 생각해 보지만, 그러면 이런 반숙 태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
          * 그런데 막 먹은 에리나는 "고급 달걀도 아닌 저급품이 어째서 이렇게 섬세하고 깊은 맛이 날 수 있냐"며 격한 리액션을 취한다.
          * 또 에리나는 어떻게 그런 발을 할 수 있냐며, 요리인은 진귀하고 고급한 식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게 보통이 아니냐고 묻는다.
          * 그런데 사실 "계란 후라이"도 "프라이드 에그"라는 "튀긴 달걀" 요리. 명색히 요리학원 학생이란 놈들이 아무도 그걸 모르고 있는게 이하다.
          * 물론 일본에서는 튀김옷을 입힌 것이 튀김이란 인이 강하겠지만, 계란 후라이가 사실은 튀긴 달걀이라는건 대선배격인 만화 "맛의 달인"에서도 언급한 부분. 게다가 전세계의 다양한 요리를 취급하는 학원에서 "계란을 기름으로 튀겨서 조리하는" 프라이드 에그를 모른다는건 이해할 수 없는 일.(아마 모양이 동그래서 그런거 같은데......)
  • 식극의 소마/184화 . . . . 8회 일치
          * 둘은 도지마와 목욕하며 시오미 세미나가 처했던 황을 듣는다.
          * 그리고 관없는 일이라며 얼른 돌아가라고 내쫓는다.
          * 도지마 긴과 소마는 아무렇지 않게 아는 척 하는데 쿠가는 거시기한 모양.--독자도 거시기합니다--
          * 쿠가는 대 사정 따윈 아무래도 좋지 않냐고 하는데, 소마는 역시 신경쓰인다고 한다.
          * 하야마는 황을 타계하려고 애쓰지만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 그런데 아자미는 어떻게 했는지 시오미 세미나의 연구 자료를 이미 확보해둔 태.
          * 쿠가는 어째서 하야마를 도발하는 건지 문을 몰라서 허둥지둥대는데, 도지마는 뭔가 짐작가는게 있는지 잠자코 있는다.
          * 히로인들의 신체 사이즈와 혈액형이 공개되었다.
  • 식극의 소마/206화 . . . . 8회 일치
          * 아리스는 침울한 일행을 꾸짖으며 소마를 응원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패배한 자신들이 살아남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며 울이다. 특히 히사코는 에리나님을 뵐 면목이 없다, 는 말을 하며 절망한다. 그런 태로도 아리스가 "비서코는 언제나 훌쩍거린다"고 까자 "비서코라고 하지 마라"고 태클건다.
          아리스가 [[쿠로키바 료]]까지 엮어서 그렇게 주장하자 하야마도 더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쿠로키바는 딱히 침울해 보이지는 않지만 멍한 태. 그러다 하야마를 보고 "소마가 너한테 이겼다는건 나도 선발 때랑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라 말을 꺼낸다. 그러니 다음엔 자신과도 재대결하자고 하는데 하야마는 언제든 대해주겠다며 간단하게 승락한다.
          * 원래 이들은 패배한 시점에서 강제송환이 확정돼 있었다. 그러나 아리스 자신이 고집을 부려서 훗카이도에 남는데 성공했다. 에리나 일행에게 연대식극의 정보를 입수한 후로는 다른 루트로 그들을 따라서 북 이 특설무대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리스는 당당하게 결전의 장소로 가자고 일행을 다독인다.
          * 다시 특설회장. 카와시마는 반역자를 구토물에 비유하며 그들의 등장을 알린다. 마침내 등장하는 소마측 요리사들. 소마와 에리나, [[타쿠미 알디니]], [[타도코로 메구미]], [[미마사카 스바루]], [[잇시키 사토시]], [[쿠가 테루노리]], [[메기시마 토스케]]. 이의 8인이다. 현재 비센트럴 생존자 중에선 최고로 신용할 수 있는 실력자들인데다 잇시키, 쿠가, 메기시마는 전십걸 출신. 격으로는 대측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인물들이다.
          마지막 선수는 소마. 센트럴 측에선 [[키노쿠니 네네]]가 대한다.
  • 식극의 소마/211화 . . . . 8회 일치
          * 이 조리는 적아군을 막론하고 "비식적"이라 고개를 저을 정도로 괴악한 행위.
          * WGO는 미식계에서 대단한 향력을 가진 단체로 이들이 내리는 별점평가는 요식업에선 절대적. [[시노미야 코지로]]가 달한 "별을 딴다"는 것도 이것이다.
          * 소마가 달궈진 철냄비에 "어떤 재료"를 넣어서 단숨에 구워 완성하는 사이, [[키노쿠니 네네]]의 요리도 완성. 심사를 앞둔다.
          * 소마는 문자 그대로 면을 굽듯이 볶는다.[[요시노 유키]]와 [[이부사키 슌]]은 그야말로 경악. 일식에 조예가 없는 [[나키리 아리스]]는 원래 야키소바는 철판에 볶는 요리니 잘못된게 아니지 않냐고 의문을 표한다. [[나키리 에리나]]가 설명하길, 원래 야키소바는 소바의 이름만 딴 완전히 다른 요리. 사용하는 면은 평범한 중화면이나 밀가루면이다. [[사카키 료코]]는 야마구치현의 명물 "카와라소바"를 예로 들며 삶아서 굽는 소바도 있긴 하지만 그 또한 "차소바"라고 해서 가루부터 특이한 별개의 요리다. [[타쿠미 알디니]]는 만약 전통있는 에도소바 가게에 일하러 가서 저런 짓을 하면 즉시 쫓겨날 거라고 말할 정도로 소마의 조리는 식에서 벗어났다.
          * [[카와시마 우라라]]도 어쨌든 토오츠키의 학생인 탓인지 소마의 조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 일축한다. 그리고 화제를 돌려서 연대식극의 심사를 맡은 3인의 심사의원을 소개한다. 그동안 심사의원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이사미 알디니]]와 [[아라토 히사코]]도 어떤 사람들이 나올지 주목한다. 그런데 나오라는 심사의원은 안 나오고, 왠 여성이 전화번호부만한 책 뭉치를 낑낑대고 옮긴다. 그녀는 소마의 조리대 옆에 책뭉치를 내려놓고 한숨 돌린다. 소마는 황당해하는데, 그때 관중석에서 여성이 내려놓은 책을 보고 동요를 일으킨다. 반역자가 갇힌 감옥에서도 잡학다식한 이부사키는 그 책이 뭔지 알아보고 거품을 문다. 하지만 소마는 그런 분위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황인지 짐작하지 못한다.
          * 이부사키는 그들이 틀림없이 WGO 집행관이라고 단언한다. WGO란 "월드 그루메 오가니제이션"의 약자. 세계의 모든 맛집에 별 세개로 평가를 남기며 1년에 한 번 이 결과를 모아서 책으로 엮는다. 이들에게 별 하나라도 받는 것은 요리사로서 대단한 광이며 반대로 별을 하나라도 잃게 되면 아무리 장사가 잘 되던 가게라도 망하고 없어진다. 요리사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는 조직이 이들 WGO인 것이다.
          * 안은 소마의 등에 써진 "유키히라"란 호를 보고 자기네 평가서를 뒤적거리는데, 기록이 나오지 않자 무한한 연민이 담긴 눈으로 소마를 위로한다.
  • 식극의 소마/216화 . . . . 8회 일치
          * 그런데 뜻밖에도 이 요리가 엄청난 호평행진. 심사의원 [[안(식극의 소마)|안]] 등은 수복 차림으로 장어에 휘감기는 리액션.
          * 쥬리오는 그의 조리가 식에 벗어났다 지적하지만 잇시키는 "그거야 말로 내 특기"라며 자신은 일식이 아닌 "내 요리"를 만든 거라 선언한다.
          * 그래도 심사는 진행된다. 심사의원들도 그의 음식을 미심쩍어하긴 마찬가지지만 아무튼 젓가락을 든다. 그리고 누구도 예하지 못했던 호평의 향연. 안은 감을 한 줄로 요약했다.
          * 이쯤에서 잇시키가 조리한 장본인으로서 재료 해설에 들어간다. 우선 마늘. 그건 이부사키가 만든 특제 훈연 마늘칩이다. 어패류의 맛을 돋궈주는 호두나무 장작으로 만든 마늘칩. 이걸 가볍게 으깨서 토핑으로 추가하면 아삭한 식감까지 추가한다. 이 마늘칩을 추가할 수 있었던건 장어를 "칸사이풍 장어구이"로 조리했기 때문이다. 관동에서는 장어를 쪄서 조리하기 때문에 부드럽지만 기름은 많이 빠져나간다. 하지만 관서에선 찌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기름기가 있고 향이 강하게 완성되기 때문에 마늘칩 처럼 향이 강한 재료를 첨가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런 요소 이으로 이부사키, 아오키, 사토의 정열과 땀이 베어 있어서 맛있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후배들은 잘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덧붙인 말 때문에 반발.
          * 쥬리오는 일식에서 치즈와 마늘을 쓰는 잇시키의 방식에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그는 "식에 벗어나는 것도 정도가 있다"고 일갈하는데 잇시키는 "이런건 나에겐 시작에 불과"하다며 코웃음친다. 가령 일식에 프랑스식 소스를 더하는 거야 말로 그의 특기다.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재료든 조리법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푸아그라나 트뤼프에 저온 진공조리를 하거나 숙성한 생선에 감귤류 과일을 곁들여 신선한 향을 내는 거나, 그에겐 어느 것이든 필요하면 쓸 수 있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그는 일식을 한다는 관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던 료코의 표정이 풀어진다. 한편 안은 재료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완벽한 조리에 감탄하며 그가 아직도 학생이란 사실이 경악스럽다고 평한다. 이미 승기는 넘어온 황. 잇시키는 한층 더 쥬리오를 압박해 사과를 종용한다. 쥬리오는 심술궂다고 투덜대면서도 그의 강요에도, 요리에도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다. 결국 굴복하는 쥬리오. 장어에 휘감긴 채 리액션으로 사과의 뜻을 밝힌다.
  • 식극의 소마/223화 . . . . 8회 일치
          * 제 1카드 [[쿠가 테루노리]]와 [[츠카사 에이시]]의 대결은 뭐라 말할 수 없는 황. 쿠가는 조리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데도 주재료인 "녹차"를 쓴 흔적이 없다.
          * 반면 츠카사는 엽차, 옥로, 현미차, 찐 엽차, 총 네 가지 찻잎을 최의 현태로 블랜딩하며 맛을 이끌어 내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 사실 미마사카는 [[사이토 소메이]]가 아니라 쿠가를 퍼펙트 트레이스해 어떤 식재료를 준비해준 것이었다.
          * 홋카이도 라면계를 살린다, 이러한 본래의 목적을 잠시 접어두게 된 [[메기시마 토스케]]. 그는 라면장인들에게 미안해하며 [[유키히라 소마]] 진에 힘을 보탠다. 하지만 장인들도 센트럴에 대척하려는 소마여서인지 그의 참전을 매우 달가워하며 환호한다. 그래도 한 장인은 설마 소마에게 메기시마가 넘어갈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데, 그건 당사자도 그랬다. 메기시마는 소마에겐 뭔가 끌리는게 있다며 그의 가능성을 높이 산다.
          * 이제 2라운드 대결도 중반으로 접어든다. "녹차"를 소재로한 1카드 [[쿠가 테루노리]] 대 [[츠카사 에이시]]. "고추"를 소재로한 2카드 [[메기시마 토스케]] 대 [[코바야시 린도]]. "참치"를 소재로한 3카드 [[미마사카 스바루]] 대 [[사이토 소메이]].
          * 츠카사는 우리는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서인지 쿠가 쪽 조리대에 훈수를 둔다. 쿠가는 분명 찻잎에는 손도 대지 않고 중화 철냄비로 고기만 다루고 있었다. 츠카사가 이런 부분을 꼬집으며 "하나에 집중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자기 필드에 틀어박히는건 나쁜 버릇"이라고 충고했다. 지금 쿠가는 녹차, 일본의 식재를 덤으로 여기고 있다. 소재를 살리기 위해선 자기 스타일을 억누르는 것도 필요한데 자기 고집에만 연연하면 새로운 맛의 역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말로는 쿠가가 지닌 열의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나에게는 못이긴다"며 통렬한 도발을 날린다. 쿠가는 이에 대해서 단지 눈을 한 번 흘겼을 뿐, 별다른 반론을 펼치지 않는데.
          쿠가는 그가 이 병을 넘기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미마사카는 자기 조리 말고도 쿠가의 밑준비도 거들고 있었던 것이다. 적인 사이토만이 아니라, 아군인 "쿠가"를 트라이스한 태에서 말이다.
  • 신영식(만화가) . . . . 8회 일치
          * [[강사]]에 대해서는 [[신식]]을, [[짱구는 못말려]]의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노하라 히로시]] 참조.
         신식 [[본인]]이 그린 캐리커쳐.
         2004년 6월, [[부안]] 핵폐기장 유치반대 기자회견을 가진 뒤 식사 도중에 목에 걸린 듯한 통증을 느껴 진단을 해 보니 [[식도암]] 말기라는 판정이 내려져 [[식도]] 절제 수술을 받았고, 이후 [[병원]]에서 방사선 수술을 권했으나 환경운동가인 그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살던 [[강화도]]로 돌아갔다. 이후 [[말라리아]]에 걸리고 [[암]]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자연요법으로 버티며 환경운동 활동과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다가 [[2006년]] [[1월 19일]]에 그간 앓던 식도암과 말라리아 증세로 인해 그토록 어린이들이 원했던 '짱뚱이 시리즈 7권'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만 56세.
         1987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 홍보 만화를 그렸는데 지금 보면 꽤나 엉터리다....노태우가 연대장이던 시절, 야간 보초서던 징집병에게 수고한다면서 뭐라도 사먹으라고 돈주려고 했더니만 지갑을 안가져오자 손목시계를 그 보초병에게 줘서 이거라도 [[전당포]]에 팔아 먹을 거 사먹으라는 게(...) 나온다. 지금 봐도 어이가 없지만 이 만화를 본 당시 어른들도 이건 너무 엉터리라고 어이없어했다.... 문제는 같은 시기에 나온 다른 노태우 홍보만화에서 신식 만화에서만 이게 나왔다는 것.
         == 수 경력 ==
          * 1991년 서울 [[YWCA]] 우수만화작가 특별
          * 2004년 부천만화
  • 아귀 . . . . 8회 일치
         [[인도 신화]], [[불교]]에서 유래한 요괴. 본래 조을 뜻하였으나, 점차 굶주린 귀신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프레타(Preta)는 본래 [[베다 시대]]의 [[리그 베다]] 등의 경전에서는 [[하늘]]에 거주하는 조혼으로 여겨졌다. 이는 저승의 신 [[야마]] 역시 비슷하여, 하늘에 살면서 조혼들을 다스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인과응보와 업보 사이 발전하면서 이들은 업보를 받아 괴롭게 사는 죽은 자의 혼으로 여겨져서, 불교 육도의 하나로서 지하세계에 해당하는 [[아귀도]]에 사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 . . . 8회 일치
         [[고려]] 말기에 한반도 남부를 침공하였던 [[왜구]]의 장군 [[아기발도]]가 대표적인 아기장수 설화의 하나인 [[아기장수 우투리]]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전에는 [[인터넷]] 에서 간간히 주장되던 이야기였으나, 2016년 1월에 이를 다룬 논문이 나온 바 있다.
         아기발도와 우투리 사이의 연관성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공통점이 지적되고 있다.
          * 아기발도는 본명은 불명하며 한 왜구의 장수에 대해서 고려인들이 붙인 별명으로, 아기는 '아이'라는 뜻으로 적이 [[소년]]이라는 것을 뜻하며, 발도는 몽골어 '바토르'를 음차한 것인데 '용사'라는 의미가 있다.[* 고려 말에는 몽골의 향으로 몽골어가 사회에서 흔히 쓰였다. 바토르라는 말은 몽골사에서 자주 등장하며, 현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볼 수 있다.] 즉, '아기발도'는 그 의미가 '아기장수'와 매우 유사하게 된다.
         아기발도 자체는 조선시대 초기에 사대부 계층에서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는데, 이는 조선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의 대적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기발도 이야기는 "왜군 장수 아기발도는 강했다. 하지만 장군 이성계가 물리쳤다. 따라서 이성계의 권력에 정당성이 있다."는 줄거리로서, 전형적인 '외부의 위협'(아기발도)에 대항하는 '내부의 웅'(이성계)을 강조하여 국가의 수호자로서 왕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정치적 바탕이 되었다.
         이 주장은, '왜구 장수 아기발도'가 '민중 웅'으로 여겨지는 '아기장수'의 원형이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므로 매우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 이유는 조선 왕조의 억압이나 소외자, 패배자들의 '반발 심리'로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조선 왕조를 징하는 인물에 이성계를 투하고, 조선왕조 중심의 왕권 정당화 설화에서 이성계('체제')의 대적자로 여겨진 아기발도를 '반체제'의 징으로서 삼게 되었던 것이다는 것이다.
  • 여진(이달의 소녀) . . . . 8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이달의 소녀)]
         ||<#F37020> '''{{{#FFF 소속그룹}}}''' ||<(> [[이달의 소녀]][* 이달의 소녀 멤버들 중 유일하게 유닛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세계관 설정 유닛들을 떠도는 설정이라고 하지만 데뷔 당시 중학생이었기에 유닛의 활동에 참여시 많은 제어가 생기기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수 있다. 팬들은 대부분 [[이달의 소녀 1/3]]의 작대기(/)라고 생각한다.] ||
         ||<#F37020> '''{{{#FFF 학력}}}''' ||<(> 덕화중학교 (전학) → 한성여자중학교 (졸업)[br]정화여자업고등학교 (재학) ||
         ||<#F37020> '''{{{#FFF 징물}}}''' ||<(> [[개구리]], {{{#F37020 '''주황색'''}}} ||
          * 아직 나이가 어려서 유닛 활동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세계관에서는 여진이가 실종태.....로 나온다. --우리 여진이 고등학교는 가야죠 2년 넘게 실종태야--][* 같은 나이인 [[NCT]]의 [[지성(NCT)|지성]]이 10시 이후 방송 출연을 제외하면 문제없이 활동을 한것을 보면 조금 의문이 든다. 여진은 지금, 좋아해 음원도 녹음한 태에서 급하게 빠졌다.]
          * 제일 학생티를 낸다. 마이너갤러리에도 [[이달의 소녀]] 중 가장 목격담이 많고 촬장에서 한자숙제까지 한다. --그걸 지켜보는 [[김립(이달의 소녀)|립]]...-- [[https://mobile.twitter.com/loonatheworld/status/988794728777830401|출처]] 학교에 있는 모습을 유일무이하게 트위터 등 SNS 올리는 멤버는 여진 뿐이라고.
  • 오철환 . . . . 8회 일치
         * 남대학교 경학 (77학번 학사)
         * 경북대학교 대학원 경학 (83학번 석사)
         * [[1988년]] 양 남씨와 결혼
         == 수 ==
         * 2009 대구문학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운제부인 . . . . 8회 일치
         '''운제부인'''(雲帝夫人,雲梯夫人, 생몰년 미) 혹은 '''아루부인'''(阿婁夫人)은 [[신라]] [[남해 차차웅]]의 정비(正妃)이며, 사후 신격화되어 운제산신으로 존숭되었다. [[합천 이씨]] 족보에서 발견되어 [[경주 이씨]] 족보에 참고용으로 실린 '35대 실전세계'에 의하면, 운제부인은 [[경주 이씨]] 시조 [[이알평]]의 손자인 계림후(鷄林侯) 이타(李它)의 딸로 기록되어 있으나, 역사적 고증의 어려움과 용어의 모순 등을 이유로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자료이다.
         운제부인은 [[신라]]의 2대 군주 [[남해 차차웅]]의 부인으로 아루부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해왕과의 사이에서 [[유리 이사금]]과 [[아효부인]]을 낳았다. 사후에는 신격화되어 무속 신앙의 주신 중 하나가 되었다. [[운제산]] 또는 [[선도산]]에 산다 해서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 또는 선도성모(仙桃聖母)로 불리며, [[고려|고려시대]] 일현(지금의 [[포항시]])의 서쪽에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가 있는데 가뭄 때에 여기에 빌면 감응이 있다고 하였다. 운제산은 현재 [[포항시]] 남구 오천읍과 대송면 사이에 있다.
         * 친정어머니 : 박씨 - [[박혁거세]]와 [[알부인]]의 딸
         ** 차녀: 공주(公主) - 장군 김명옥(金嗚玉)에게 하가
         * 시어머니: [[알부인]](閼英夫人)
         [[분류:신라 사람]][[분류:신라의 왕비]][[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한국 신화]][[분류:전설]][[분류:경주 이씨]]
  • 원피스/827화 . . . . 8회 일치
          * 페콤즈는 밀집모자 일행을 포로로 잡았다고 거짓보고하고 빅맘의 역에 돌입한다. 다만 서프라이즈할 생각이니 빅맘에게 전달하지 말라고 한다.
          * 그들이 륙한 곳은 "초콜릿 대신"이 다스리는 카카오섬 쇼콜라타운. 모든 건축물이 초콜릿으로 되어 있다.
          * 카페의 주인은 바로 푸딩. 디의 약혼녀.
          * 하지만 이미 그 말을 들어버린 푸딩. 심치 않은 표정을 짓는다.
          * 그저 결혼식에 정신이 팔려 있는듯 했는데, "밀집모자 일행"이 역에 들어온걸 이미 알고 있었다!
          * 빅맘의 목표는 "평등한 세". 의외로 정의로워 보이는 목표?
          * 페드로는 "캡틴"이라고 불리며 밍크족 사이에선 유명인사. 뭔가 사연이 있는듯 하다.
          * 루피가 또 생각없이 사고를 치고 있다.--츳코미 담당(조로, 디, 우솝)이 다 사라진 폐해--
  • 원피스/829화 . . . . 8회 일치
          * 루피는 푸딩이 그려준 지도를 "이한 지도"라고 하는데 나미는 이걸로도 잘만 길을 찾는다.
          * 그 루트는 섬에 륙하지 않고 빅맘의 감시병들의 눈을 피해 홀 케이크 아일랜드로 직행하는 최적의 루트.
          * 쵸파와 캐롯은 다음엔 어떤 섬이 나올까 기대하지만 륙하지 않는다는 말에 실망한다.
          * 루피는 디를 구하고자 의욕적으로 키를 잡지만 솜씨가 없어서 사고만 친다.
          * 먹히기 싫다던 슈크림들도 막 맛있게 먹어주니 "맛있다면 다행"이라며 삼켜진다.
          * 정이 된 빅맘은 징베에게 "포네그리프"를 줘서 고맙다고 치하하고 수도가 어수선한데 네 짓이냐고 묻는다.
          * 일반적인 황에선 빅맘이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는 듯.
          * 징베가 어인섬의 포네그리프를 진한 걸로 나오는데 빅맘은 "읽지는 못했다"면서도 고맙다고 만족해하는걸 보면 그 가치와 본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 윤문영 . . . . 8회 일치
         |선수명 = 윤문
         |문 표기 = Yoon Moon-Young
         |사진 사이즈 =
         '''윤문'''(尹文永, [[1990년]] [[1월 26일]] ~ )은 [[KBO 리그]] 전 [[NC 다이노스]]의 선수이다. 현 일본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 고치 파이팅 독스의 선수이다.
         * 경중학교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
  • 은혼/582화 . . . . 8회 일치
         [[가구라]] Vs [[카무이]], [[우미보즈]] Vs [[우츠로]]. 두 대결 사이로 가구라 일가의 과거가 드러난다.
         * 결국 우미보즈는 카무이를 쓰러뜨리고 만다. 멀리서 지켜보던 코우카는 각혈하고 태는 더 나빠진다.
         * 카무이는 가구라의 모습에서 어머니 코우카가 연된다며 "그 얼굴도 목소리도 보이지 말라"며 가구라를 묻어버리고 우미보즈에게 향한다
         * 우미보즈는 우츠로를 대하면서 "이 별이 너무 좁고 무기가 따라오지 못하고 전신이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고 경악한다
         * 아무리 유효타를 날려도 우츠로는 되살아나며 목이 꺾였는데도 죽지 않는 걸 보고 "이 자를 대하기엔 살아있는 것 조차 방해다"라고 생각한다.
         * 아부토는 대결을 보고 두 용이 서로 꼬리를 물고 먹어치우는 소모전을 연하는데, 결국 우츠로에겐 의미가 없는 일로 우미보즈가 자기 자신의 꼬리를 먹는 도전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한다.
         * 우츠로의 칼이 우미보즈를 깊게 찌른다. 우츠로조차 그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데, 그는 "매달리는건 그만뒀다. 불사신의 혼을 육체에서 끄집어내는 것이니 이쪽도 맨몸으로 치고 받을 각오를 했다."며 우츠로의 심장을 찔러 움켜쥔다.
         * 정말로 우츠로가 죽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편. 하지만 치명을 입고 적어도 [[사카타 긴토키]]가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고 평가한다.
  • 은혼/585화 . . . . 8회 일치
          * 우미보즈(바다돌이)의 회
          * 호우센의 묘에 성묘하려 갔을 때 긴토키와 나눈 대화를 회한다.
         나는 더이 도망치지 않아. 지킬 것으로부터도 잃을 것으로부터도.
          * 카무이가 호우센 이이라는 평가가 나와서 너무 밸런스 붕괴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원래 소라치는 "인물간의 강함과 우열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편.
          * 간접적이지만 양이전쟁 직후의 긴토키의 심리태가 묘사되었다.
          * 역시 쇼요 사후의 긴토키는 꽤 망가진 태였던 것 같다.
          * 어쩌면 신파치, 가구라와 합류하기 전인 1화의 긴토키도 그 시절의 처를 다 치유하지 못했던 태일 수도 있다.
  • 은혼/608화 . . . . 8회 일치
          * 원 황자는 지구의 전황이 급변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 오니와라번중의 연막으로 공군이 마비되자 대적으로 허술한 지군은 곤도 이사오의 지휘 아래 진선조에게 패배한다.
          * 원은 이들의 선전에 감탄하면서도 그들이 저항이 거셀 수록 손에 박힌 티가 더욱 깊이 파고드는 형국이 될 뿐이라 말한다.
          * 적을 쓰러뜨리며 간지나게 등장했지만 착지지점이 좋지 않았다.
          * 부을 회복 중인 이마이 노부메.
          * 지군도 새로운 전력이 도착하는데 단순한 전차 부대만이 아니다.
          * 겐가이 감은 자기들이 나설 차례라며 "저쪽에서 총공세라면 이쪽도 총출동해서 싸우면 된다"고 말한다.
  • 은혼/619화 . . . . 8회 일치
          * 오우가이는 그 황에서도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 머리로 뿔로 큐베의 공격을 받아낸다.
          * 해결사 삼인방 [[사카타 긴토키]],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가 삼면에서 행한 동시 공격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막힌다. [[오우가이]]는 그정도면 역부족이라 비웃으며 긴토키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 한다. 떨어지는 통나무들 사이로 [[야규 큐베]]가 날카롭게 파고든다. 예치 못한 곳에서 날아온 일섬이 오우가이의 머리를 강타한다.
          * 그런데 오우가이의 눈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들어온다. 긴토키를 찬 다리가 수리검으로 꽃꽃이 되어 있다. 건물의 옥에서 수한 그림자들이 나타난다.
          * 츠쿠요와 백화는 공에서 장마비처럼 수리검을 퍼붓는다. 이들의 공격은 오우가이 휘하 병력들의 발을 묶고 막 일어서려던 오우가이를 고립시킨다. 츠쿠요가 직접 오우가이를 노리고 낙하하며 수리검을 난무하는데 오우가이는 또 한 번 괴력을 발휘해 봉쇄 당한 사지를 풀고 수리검을 막아낸다. 수리검에 벌집 같은 모습이 되지만 치명은 하나도 없다. 머리에 날아온 수리검도 또 뿔에 걸린다.
          * 그렇게 받아치는 긴토키. 여자와 아이들이 개고생하는 사이, 편히 누워있다 일어나던 참이다. 얼굴에 묻은 피는 오우가이의 것이었다. 그는 얼굴을 닦아내며 뻔뻔스런 표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뿔에 걸려있던 수리검을 가볍게 후려친다.
  • 은혼/636화 . . . . 8회 일치
          * 목숨과 금구슬이 함께 위협받는 황에서, 노사는 필사의 의지로 양쪽을 다 구하기로 하고 금구슬을 팽창시키는데
          * 는 무슨. 바로 패대기로 갚아준다. 적아군 관없이 황당해하는 가운데 혼자 이제 비긴 거라고 희희낙락한 카무이. 당연히 노사에게 등뒤를 얻어맞고 가구라가 처박힌 위로 충돌, 천장을 뚫고 바깥까지 나가떨어진다.
          * 사정이 이렇게 됐는데도 이 바보남매는 노사는 재쳐놓고 서로 잘했네 못했네를 따지고 있다. 실수인데 이렇게까지 하냐는 가구라와 발목이나 잡는다고 디스하는 카무이. 서로 "죽거나 물러나라"며 치열한 접전으로 치닫는다. 부관인 아부토만 속이 터지는 황. 이 한심한 작태에 그렇게 혈통드립을 쳤던 노사 조차도 "너무 오래된 혈통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문제의식을 가지게 한다.
          노사가 엄마 패드립을 치는 마당에도 바보남매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노사가 한 가운데 버티고 있는데도 남매는 오로지 대를 디스하고 공격을 가하는데 정신이 팔렸다. 카무이가 "네 안에 흐르는 [[우미보즈(은혼)|대머리]]의 피 때문에 발목을 잡는 것"이라 디스하자 가구라는 "너도 장래에 대머리 확정"이라 뼈아픈 지적을 가한다.
          오가는 남매의 주먹 사이에 끼어있는 노사. 불쌍하지만 신체 일부만 거대화, 축소화를 오가며 여유롭게 공격을 피한다. 노사가 그 점을 과시하려 하지만, 애초에 이 공격들은 노사가 아니라 남매들끼리 주고 받는 공격. 아부토가 "너넨 애초에 딴델 노리고 있다"고 일갈을 가하지만 황은 호전되지 않는다.
          * 오빠의 전술을 이해한 가구라가 곧바로 응용한다. 가구라는 다시 노사의 후방을 향해 뛰어드는데 노사는 이정도의 정직한 기습에는 이골이 난 인물이다. 기공을 오른발로 옮기면서 돌려차기로 반격하는데, 이번엔 가구라도 충분히 예하고 있었다. 그 발을 밟고 반대편으로 넘어간 가구라. 텅 빈 머리통이 목표다.
          * 한도 없이 이어지는 남매 싸움은 이제 노사의 금구슬을 가지고 치는 테니스가 되어 가고 있었다. 너무 알을 두들겨 맞아서 머리가 이해진 건지, 노사는 이 모든 것이 남매가 짠 고도의 책략이며 기공을 금구슬에 집중시키게 해서 허점을 노리려는 거라고 생각한다.
  • 이각종 . . . . 8회 일치
         '''이각종'''(李覺鍾, <small>일본식 이름:</small> 靑山覺鍾, [[1888년]] [[4월 23일]] ~ [[1968년]] [[6월 12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경북도]] [[대구부]] 수정(竪町)이며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1938년]] 조선방공협회 경기도 연합지부 평의원,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를 역임했으며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무이사, 발기인, 참사, [[1940년]] 대동일진회 고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 평의원을 역임했다. [[1941년]] [[8월 25일]]에 열린 [[임전대책협의회]] 좌담회에서 《황도정신과 총력》이라는 주제의 글을 발표했으며 같은 해 [[9월 7일]] 임전대책협의회가 결성한 채권가두봉공대 남대문대원으로 활동했다. 1941년 10월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과 평의원을 역임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대동민우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942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방위지도부 참사, 의례개선조사위원, [[1943년]] 국민총력조선연맹 후생부 후생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인 [[1949년]]에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서울]]에서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일본의 패망 이후에 생긴 충격으로 정신이 태가 된 것으로 판정이 나면서 풀려났다.
         }}</ref>,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
         |제목=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 보고서 Ⅳ-11|연도=2009
  • 이계순 (1927년) . . . . 8회 일치
         '''이계순'''(李季順, [[1927년]] [[3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문학자, 교육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1953년]] [[경남중학교]] 어교사를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교수와 명예교수, 정무제2장관을 역임했다.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개설하였다.
         일본으로 유학, [[1940년]] [[교토]](京都) 제일고녀를 다녔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421094 일본인들이 부러워한 조선인 석주명] 국민일보 2009.09.14</ref> 귀국 후 [[1953년]] [[부산]] [[경남중학교]] [[어]]교사가 되었다. 이후 부산연세실업학교 교수 등을 거쳐 [[1964년]] [[서울대학교]] 사범대 어교육과 교수가 되었다. [[1977년]] [[전문직 여성클럽]] 한국연맹 회장이 되어 여성단체 활동에 뛰어들었고 교수직과 병행하였다. [[1985년]]부터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을 맡았다. 1990년 3월부터 [[1991년]] [[12월]]까지 정무제2장관을 지냈다.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만들었다. 1991년에는 그가 직접 나서서 공무원 연수기관장들과 간담회를 열어 협조를 구했다. 이렇게 해서 개설되기 시작한 ‘여성관련’ 교과목은 ‘국가발전과 여성’ ‘여성문제의 현실과 정책방향’ 등의 과목명으로 1~2시간 특강 형식으로 배정됐다. 그러다가 정규과목으로 개설되고 교육훈련점수에도 반되어 선택과정으로 전환되고 전문과정으로까지 확대됐다. 초창기 교수요원의 확보와 교육자료의 개발 등은 한국여성개발원이 담당했다.<ref>[http://www.womennews.co.kr/news/48170#.VNroPaJFBzo 공무원 양성평등교육이 제도화되기까지]</ref> 1990년 12월 27일의 개각에서 유임되었으며, [[1991년]] 퇴임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에 위촉되었다.
         |전임자 = [[김정 (1929년)|김정]]
         [[분류:192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문학자]][[분류:대한민국의 여성주의자]][[분류:여자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정무제2장관]][[분류:교토 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병규 (1983년) . . . . 8회 일치
         |문 표기 = Lee Byeong-Kyu
         |사진 사이즈 =
         왼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병역이 면제되었으며, 고질적인 무릎 부으로 [[2011년]]에는 재활군에 머무르다가 후반기에 복귀하여 33경기에 출전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95995 LG는 왜 최희섭에 관심이 없을까?] - OSEN</ref>
         [[2014년]] [[LG 트윈스]] 감독이 [[양문]]으로 바뀌면서 세대 교체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혔는데 그가 팀이 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올라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116경기에 출전하여 360타수 110안타, 16홈런, 87타점, 3할대 타율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2014년부터 팀의 4번 타자를 주로 맡았다. 특유의 중장거리포와 깔끔한 스윙을 갖고 있어서 타격에서의 재능이 뛰어났다.
         [[2015년]] 시즌 개막전에 목 담 증으로 출전하지 못하며 부진했다.
         [[2016년]]에는 작년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연봉이 1억 5,600만원으로 감소했지만 2016년에도 당시 감독이었던 [[양문]]의 믿음으로 [[LG 트윈스]]의 4번 타자 자리를 맡았다.<ref>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291199 ‘이병규 끝내기타’ LG, 한화에 재역전승...개막 2연승 질주 ] - OSEN</ref>
         * [[경중학교]]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이병후 . . . . 8회 일치
         경북도 천 출신으로 1957년 [[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58년 12월 17일 대구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되어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야간에만 개표를 했던 대구병구 올빼미 개표사건, 팔공산에서 생포한 대남 간첩사건 등에서 배석판사로 심리하는 등<ref>동아일보 1959년 4월 4일자</ref><ref>동아일보 1958년 12월 17일자</ref>1961년 8월 27일 대구지방법원<ref>동아일보 1961년 8월 27일자 1964년 5월 19일자</ref> 1966년 11월 15일 대구고등법원 196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1969년 3월 31일 서울고등법원 1969년 10월 7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장 1971년 4월 1일 부산민사지방법원 1973년 3월 27일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성동지원장, 1974년 성북지원장을 거쳐 1976년 12월 29일 서울고등법원<ref>동아일보 1976년 12월 30일자</ref> 1977년 11월 5일 서울고등법원<ref>매일경제 1977년 11월5일자</ref> 1980년 등포지원장 1981년 4월 20일 수원지방법원장<ref>매일경제 1981년 4월 21일자</ref> 1982년 3월 12일 대전지방법원장<ref>경향신문 1982년 3월12일자</ref> 1983년 8월 12일 인천지방법원장<ref>경향신문 1983년 8월 12일자</ref><ref>동아일보 1986년 4월 3일자 매일경제 1966년 11월 16일자 경향신문 1969년 3월 31일자 동아일보 1969년10월7일자 매일경제 1971년 3월 26일자 경향신문 1973년 3월 27일자</ref>을 거쳐 1986년 4월 16일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1987년 대법원이 고허가 신청사건의 처리를 전담하는 고허가신청부를 신설하면서 [[정기승]] [[황선당]]과 함께 전담 판사로 구성되었으며<ref>매일경제 1987년 1월 5일자</ref> 1987년 5월 18일에 대법원장 추천으로 [[헌법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ref>동아일보 1987년 5월 16일자 매일경제1986년4월3일자</ref>
         [[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
  • 이상훈 (1971년생 우완 투수) . . . . 8회 일치
         |선수명 = 이
         |문 표기 = Lee Sang-Hoon
         '''이훈'''(李相勳, [[1971년]] [[3월 21일]] ~ )은 [[KBO 리그]]에서 뛰었던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다.
         1990년 고졸우선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어 주로 중간 계투로 뛰었다. 1999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기한에 포수 [[진갑용]]을 대로 현금 4억원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408061|제목=프로야구,진갑용-이훈+4억 트레이드|날짜=1999-07-31|출판사=연합뉴스}}</ref> 2002년에 70경기 동안 133.2이닝을 소화하며 4승 10패 2세이브 6홀드와 93탈삼진 평균자책점 3.91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하였지만 2003년 기량 하락으로 방출되었다. 이후 2004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지만 단 2경기 출장에 그치고 시즌 후 은퇴하였다.
         은퇴 이후 삼성에서 함께 뛰었던 [[신동주 (야구인)|신동주]]와 함께 스크린골프장을 개업하여 티칭 프로로 활동하였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동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0078459|제목=전 프로야구 선수 신동주, 스크린 골프장 오픈|날짜=2007-06-28|출판사=OSEN}}</ref> 2017년에는 삼성에서 함께 뛰었던 [[전병호 (야구인)|전병호]]와 함께 피칭 아카데미를 개설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16&aid=0001187340|제목=전병호-이훈, 피칭 아카데미 개설...'길잡이 되어주고 싶다'|날짜=2017-01-21|출판사=헤럴드경제}}</ref>
         * {{KBO 투수|90851|이훈}}
         * [http://www.statiz.co.kr/player.php?name=%EC%9D%B4%EC%83%81%ED%9B%88&birth=1971-03-21 이훈] - [[스탯티즈]]
  • 이성수(정치인) . . . . 8회 일치
         1928년 [[경북도]] [[포항시|일군]]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역사 과목 [[교사]]로 근무하면서 서울 [[한고등학교]] [[교장]]까지 역임하였다. 대한교육연합회 수석부회장, 대한교원연금공제조합 [[이사장]] 등을 지냈다.
         1963년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경북도지부 부위원장을 지냈다. 범 [[김종필]]계라는 이유로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탈락하였고, 이후 [[제일기획]] 사장을 지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진우(1934)|이진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3년 8월 한국국민당 정책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박경석(1937)|박경석]] 후보와 [[민주한국당]] [[서종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삼성중공업]] 임고문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진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이승효(탤런트) . . . . 8회 일치
         가족 아버지 [[이문]]
         2006년 [[대조(드라마)|대조]]을 통해 데뷔한 후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의 [[알천(선덕여왕)|알천]]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사극 전문 배우까지는 아닌데 사극에 더 많이 나오는 배우이다. 알천으로 유명해지기 전에는 [[대조]]에서 중간 장수 정도의 도협 역할을 맡았고 선덕여왕 이후에도 한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극에 등장한다(...). 최근에 유명작으로는 [[육룡이 나르샤]]의 [[진안대군]] 이방우 역할이 있다.
         아버지 이문은 [[TV쇼 진품명품]]의 [[도자기]] 감정위원으로 출연 중이다. 이문은 막내아들 이승효가 자신의 일을 뒤잇기를 바랐으나 이승효가 [[배우]]를 선택하여 한 때는 실망하기도 하였다.
          * [[대조(드라마)]] - 도협
         === 화 ===
  • 이신학 . . . . 8회 일치
         * 경중학교(1960년 3월)
         * 경희대학교 경학과(학사)(1971년 2월)
         * 경북대학교 경대학원 AMP과정(수료)(1985년)
         * 보금속공업 주식회사 대표이사(1986년 2월 ~ 2002년)
         * 자유총연맹 남구지부 운위원
         * 대구광역시 비실업대책위원회 대책위원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포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이영세 (1947년) . . . . 8회 일치
         '''이세'''([[1947년]] [[6월 15일]] [[경북도]] ~ )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대구사이버대학교]] 총장을 지낸 교육자이다.
         * 2010~ 제3대 대구사이버대학교 총장
         * 2006~2010 제2대 대구사이버대학교 총장
         * 2002.03~2006 대구사이버대학교 초대 총장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이영욱 (1980년) . . . . 8회 일치
         |선수명 = 이
         |문 표기 = Lee Yeong-Wook
         |사진 사이즈 =
         '''이욱'''(李永旭, [[1980년]] [[8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자, 현 경북 [[진성중학교 (경북)|진성중학교]]의 야구부 감독이다.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그가 데뷔 첫 승을 거둔 경기는 [[2005년]] [[5월 29일]]의 [[두산 베어스|두산]]전인데, 첫 승을 따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1회말에 선발 [[헤수스 산체스]]가 1/3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자 1회부터 그가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되었고 3회말에 대 타자 [[장원진]]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 이에 [[장원진]]이 그를 구타하면서 양 팀 간의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4회초 공격에서 1:5로 뒤지던 [[SK 와이번스]]는 무려 6득점하면서 그에게 프로 데뷔 첫 승을 안겨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11178 SK 조범현 감독, "두산 장원진이 우리를 뭉치게 만들었다"] - 조이뉴스24</ref>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
  • 이재영 (뮤지컬배우) . . . . 8회 일치
         || 학력 ||<(> 혜화여자고등학교 [br] 중앙대학교 연극화과 학사 [br]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석사 ||
         1988년 [[MBC 강변가요제]] 본선까지 진출했으나 수은 하지 못했는데 이듬해 1989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동을 수하며 가수가 되었고, 1991년 [[라틴팝]]을 어레인지한 노래인 '유혹'을 발표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C%9D%B4%EC%9E%AC%EC%98%81+%EB%82%98%EB%A5%BC+%EC%9E%8A%EC%A7%80+%EB%A7%88|'유혹' 음반에 수록된 곡들 중에는 좋은 노래들이 꽤 있다.]][* '유혹'은 '풍선', '새벽 기차'로 유명한 그룹 [[다섯손가락]]의 보컬리스트 이두헌이 작곡한 곡이다.] '유혹'으로 그 해 MBC 10대 가수 신인을 수하는등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고 이후 '사랑은 유행이 아니야(1992)' '집시(1993)' '대단한 너(1996)'로 또한번 더 정권 가수가 되었다.
  • 이정명 . . . . 8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
         | 학력 = [[경복중학교]]<br />[[신고등학교 (대구)|신고등학교]]<br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훈 =
         | 웹사이트 =
         * 마지막 소풍, 밝은세, 2002
         * 천년 후에, 밝은세, 1999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태현(씨름) . . . . 8회 일치
         ||<#FF8000> '''{{{#white 출생}}}''' || [[1976년]] [[1월 17일]],[[경북도]] [[김천시]] ||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씨름판을 지배했던 천하장사. [[의성고등학교]]를 거쳐 1993년 청구건설 씨름단에 입단하여 프로 씨름계에 데뷔했다. 1993년 데뷔부터 2006년 1차 은퇴까지의 전적은 630경기 472승 158패(승률 74.9%)를 기록하며 역대 최다 전적, 최다승 기록을 보유했고, 천하장사 3회(1994, 2000, 2002), 지역장사 12회, 백두장사 20회를 기록했다. 특히 백두장사 20회 기록은 [[이만기]]의 백두장사 18회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2006년까지 역대 총 금 역시 5억 9,000여 만원으로 1위. --모래판의 황태자의 위엄. 오오!--
         고교 때부터 그 연령대의 지존으로 통했으며, 1994년 절친이자 라이벌인 [[백승일]][* 백승일은 2004년 LG투자증권 씨름단 해체 사태 후 순천시청에서 잠시 뛰다가 2005년 2월 설날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꺾고 처음으로 천하장사에 올랐다.[* 문제는 당시 5판 3선승제로 치뤄지던 결승전에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선수가 2:2의 황이 되자 5차전에서 서로 섣불리 기술을 못걸고 눈치만 보는 황이 이어지자 연맹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서 경기시간이 계속 길어질경우 두 선수의 몸무게를 측정하여 더 가벼운 쪽에 우승을 준다는 계체승이라는 황당한 규칙을 신설하였고 당시 백승일을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좀 더 가볍게 유지하던 이태현이 결국 계체승을 거두었고 이후 한동안 이태현에게는 저울장사라는 오명이 따라붙었고 제2의 이만기라 불리던 백승일이 의욕을 잃고 하락세를 타면서 프로씨름이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 갔다.] 이후 백승일을 비롯 이태현의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저지했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들소' 김경수, 신봉민 등과 라이벌리를 이루며 1990년대 씨름판의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특히 당대 씨름선수들과는 달리 잘생긴 외모로 '''모래판의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최고 인기 스타로 자리잡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이태현보다 한 뼘 정도 큰 골리앗 [[김현]],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 등의 후배들이 등장했지만, 이들도 이태현 앞에서는 버로우였다.
         그러나 2006년 한국씨름연맹[* 흔히 (프로)씨름을 관장하는 단체가 대한씨름협회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됐다. 쉽게 말하자면, 야구로 치면 대한씨름협회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한국씨름연맹은 [[한국야구위원회]]와 같은 위치의 단체들이다.]의 막장 행정, 세력간 정치다툼으로 흑화가 되고 [[최홍만]]이 [[K-1]]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자, 이태현은 소속팀 현대삼호중공업과 2012년까지 맺었던 계약을 파기하며 [[종합격투기]]에 뛰어든다.[* 이 때 소속 팀인 현대삼호중공업이 이태현에게 계약파기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가 취하했을 정도로 이태현은 종합격투기 진출 선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이태현은 국내 복귀 후 인터뷰에서 "그저 관중이 있는 곳에서 시합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는데, 종합격투기의 화려한 조명과 관중들의 환호, 매스컴의 관심 등을 보면서 엄청난 유혹에 시달렸다"고 당시를 회했다.
         하지만 2006년 9월에 있던 [[PRIDE]] 데뷔전에서 [[브라질]]의 히카르두 모라예스에게 1라운드 8분 8초만에 TKO패를 당했다.(얼굴에 싸커킥 '짝!') 1년 후 10월에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K-1]] 히어로즈 대회에서 일본의 야마모토 요시히사를 1회 TKO로 꺾어 데뷔 첫 승을 거뒀지만 2008년에 네덜란드의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 1라운드 36초만에 KO패를 당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종합격투기에서 거둔 전적은 1승 2패. 이태현의 타고난 힘으로 대를 테이크 다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결국 타격부분에서는 밀릴 수 밖에 없었던게 실패의 요인이었다.
         2011년 2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동년 3월에 모교인 [[용인대학교]] 격기학과의 씨름전공 교수로 정식 임용된 후 씨름 팀 감독으로 재직 중에 있으며, 이와 함께 [[2014년]] 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씨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돌스타 육 선수권대회|아육대]]에도 출연해 여자 씨름 해설을 했으며, 출전자들을 지도해 주기도 했다.
  • 인왕 . . . . 8회 일치
         [[금강역사]]의 별칭. [[절]]로 들어가는 문의 좌우에 서있다. 그림이나 동으로 만들어서 세운다. 일본어로는 '니오우'라고 부르는데, 한자를 인왕이 아니라 이왕(二王)으로 쓰기도 한다. 절의 수호신격 같은 위치에 있다.
         절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다. 2체의 금강역사를 묘사할 때는 한 쪽은 입을 벌리고, 다른 한쪽은 입을 다물고 있다. 입을 "아~!"하고 벌리고 있는 것을 아형(阿形), 입을 "훔~!" 하고 다물고 있는 것을 훔형(吽形)이라고 부른다. 아형은 나라연금강, 훔형은 밀적금강이라고도 부른다. 갑옷을 입은 형으로 묘사되거나, 반신 나체의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오분율에 따르면 석가모니 곁에는 항 500명의 금강역사가 있다고 한다.
         본래 고대 간다라 문명에서 [[불]]이 처음으로 제작됐을 때, 금강역사의 원형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에서 그 모습에서 빌려온 [[석가모니]]와 유사하게,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의 모습으로서 석가모니를 수호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리스 문화의 향을 받은 간다라 문명이 불교와 그리스 신화를 습합하여 신앙체계를 형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헤라클레스가 금강역사가 되어 수호신으로서 불교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고대에 금강역사는 집금금강(執金剛神)이라고 하여, 단 1체로서 [[금강저]]를 들고 갑옷을 두른 신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석가모니를 징하는 [[사리탑]]이 사원의 중심이었으므로 탑을 지키는 신으로서 여겨진 것이다. 사원 건축이 발전하면서 담벼락을 둘러치고 금강역사는 '성문' 밖으로 위치가 옮겨지게 되었는데, 성문의 좌우에 배치되면서 집금금강은 한 쌍의 금강역사로 변화되었다.
         분황사지 9층 석탑 같은 경우, 금강역사 한 쌍에 사자 4쌍으로 석가모니를 징하는 '탑'을 지키는 구조가 되어 있다. 사천왕 등이 나타나면서 금강역사는 점차 밖으로 밀려나서 절의 비교적 바깥 쪽에서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 인종개량 . . . . 8회 일치
         [[일본]]의 작가 타카하시 요시오(高橋義雄)는 1884년 『일본인종개량론(日本人種改良論)』이라는 저술을 발표했다. 이 저술은 "일본인종은 신체적, 육체적으로 서양인종에 비해서 열등하므로, 서양인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일본인과 서양인 사이에 혼혈을 만들어, 서양인의 피를 일본인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다. 물론 어디까지나 매우 극단적인 주장이었고 그 당시 일본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또 호즈미 야츠카는 혼혈을 하게 되면 일본인의 전통이 훼손되고 조숭배가 흔들린다는 점을 들어 비판했다.
         [[후쿠자와 유키치]]와 모리 아리노리는 인터넷에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일본인과 서양인과의 잡혼을 통한 인종개량을 주장한 적이 없다. 문과 일어 어느쪽에서도 관련 근거를 찾을수 없다. 아마 타카하시 요시오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제자란 점과 모리 아리노리가 극단적인 어 공용어화를 주장했다는 점 때문에 루머가 퍼진듯하다. 단, 건강한 일본인끼리의 결혼이나 의식주의 개량을 통한 것은 주장했을 수도 있다.
         이후 일본정부는 야마토 정신을 가진 [[야마토 민족]]이 가장 우월하고 [[귀축미]]는 정신과 사이 썩어빠진 놈들이라는 프로파간다를 펼치며, 일본민족이 가장 우수하므로 귀축미로부터 아시아를 지켜내야 한다는 [[대동아공권]]에 심취한다.
  • 일곱개의 대죄/184화 . . . . 8회 일치
          * 에스카노르의 비식적인 전투력은 십계 조차 경악하는 수준.
          * 젤드리스와 드레퓌스(프라우드린)는 다른 곳에서 리오네스 왕국의 성기사들을 대하고 있다.
          * 드레퓌스는 "그 인간 따위 사이에 엄청난 녀석이"라며 변명하는데, 마침 성쪽에서 엄청난 기척이 느껴진다.
          * 하지만 처를 입은건 그였다?
          * 에스카노르는 대에게 경의를 표하며 전력을 내기 시작한다.
          * "정적으로는 못 죽습니다."
          * 다르게 말하면 이 두 사람이 동시에 풀카운트를 쓰면 대방은 아무 것도 못하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멜리오다스가 배신해서 겨우 밸런스패치가 된 셈
          * "경신"의 계금은 젤드리스의 것. 사실 멜리오다스가 십계에 포위됐을 때 이게 발동했다면 그가 십계로 넘어가는 황이 됐을지도 모른다.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8회 일치
          * 3000년 전 멜리오다스가 배신했던 때를 회하는 프라우드린. 그는 사랑 때문에 종족을 배신했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 "흔적도 남기지 않고 너를 이 세에서 지워줄게."
          * "네놈이 달콤한 꿈에 빠져 있는 사이 우린 여신족에게, 네놈에게 복수할 것만을 기다려왔다."
          * 프라우드린의 몸이 원래 태로 돌아오고 "이 벽을 지우고... 아버지에게 돌아가라" 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그리아몰이 방벽을 푼다.
         프라우드린은 불쌍한 형태로 죽었지만 십계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인물이고 전과도 대단하다. 우선 핸드릭슨과 드래퓌스를 철저히 농락했고 지에 마신족과 십계를 부활시킨 일등공신. 인류로서는 최흉의 십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멜리오다스 사후에 인간들에게 제물로 쓰일 인간을 잡아 바치게 한 것도 드래퓌스가 낸 아이디어로 보이는데 확실히 인간과 오래 살아서 인간의 특성을 이용하는데도 도가 튼 것 같다.
         설명은 되지 않았지만 그 또한 데리엘처럼 여신족 자체에 원한을 가진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데 멜리오다스와 함께 여신족도 기필코 복수해야 할 대이라고 말했다. 데리엘이 여신족이 포로학살, 특히 민간인 여성과 아이들을 학살했다고 했으니 그의 가족 또한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다.
         멜리오다스는 그저 잔인해진 것만이 아니라 대를 농락하다 죽이는, 매우 악역스러운 면모를 보이는데 그와 가장 오래 알고 지냈을 멀린 조차도 예 밖이었던 모양이다.
  • 일곱개의 대죄/198화 . . . . 8회 일치
          * 할리퀸은 디안느와 마트로나 가족들을 요정왕의 숲에서 보호해주고 있었는데 그로키시니아나 드롤의 움직임이 너무 없어 이하게 생각한다.
          * 디안느는 요정왕의 숲에 자신과 마트로나의 가족들을 숨겨준 것을 감사하며 어째서 요정왕의 숲은 안전한 건지 묻는다. 할리퀸이 답하길 원래 요정왕의 숲 전체는 침입자를 선별하는 결계를 치고 있는데 설사 십계라 해도 이걸 뚫는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마신족은 그렇다쳐도 선선대 요정왕 그로키시니아, 거인의 왕 드롤도 아무런 접근이 없는걸 꺼림직하게 여긴다. 그들이라면 요정왕의 숲을 침입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인데, 멜리오다스의 죽음 이후 이할 정도로 움직임이 없다.
          * 그때 요정 게라이드가 할리퀸에게 "수한 시선이 느껴진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자세하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그냥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할리퀸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데, 마침 숲의 모든 이가 즐겁게 춤을 추며
          * 마트로나와 디안느를 중심으로 숲의 모든 이가 춤을 춘다. 게라이드는 그 시선을 경계해서인지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차츰 분위기에 동화되어 어느새 춤을 추고 있다. 그런데 그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끼어드는데.
          * 그 얼굴은 어느 틈엔가 게라이드의 손을 잡고 왈츠를 춘다. 바로 선선대 요정왕 그로키시니아. 항 그래왔다는 듯이 게라이드를 리드한다. 지극히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게라이드는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그의 얼굴을 마주보며 미소짓는데.
          * 즐거운 것도 잠시. 게라이드를 비롯한 모든 이가 위화감을 눈치챈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즐겁게 춤을 춰놓고 기억이 왜곡된 듯 방금 전까지 뭘하고 있었는지, 왜 춤을 췄던 건지도 잊고 있다. 그저 아주 즐겁게 춤을 췄다는 느낌만이 있다. 그러다 오슬로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할리퀸과 디안느가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모두 당황하며 이들을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트로나는 게라이드에게 뭔가 눈치챈게 없다고 묻는데 게라이드의 태도 이하다. 마트로나의 물음에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대답이 없다.
         드롤과 그로키시니아가 마신족에 가담한 이유도 밝혀질 듯 한데 의외로 그로키시니아는 게라이드와 아는 사이였던 듯 하다. 또 게라이드가 들은 말에 따르면 그로키시니아가 마신족에 가담한 것이나 현재 요정왕인 할리퀸과 적대하는 데에도 게라이드의 존재가 개입된 듯 하다.
  • 일곱개의 대죄/201화 . . . . 8회 일치
          * [[드롤]]과 [[그로키시니아]]의 몸에 들어간 [[디안느]]와 [[킹(일곱 개의 대죄)|킹]]. 그들은 자신들의 태 보다도 "[[여신족]]"인 [[엘리자베스 바토라|엘리자베스]]의 등장에 더욱 놀라워한다.
          숲을 빠져나오자 멜리오다스의 말처럼 참이 나타난다. [[마신족]]의 습격이었다.
          * 마신족들은 인간을 대로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다. 숫자도 위력도 압도적이다. 인간들도 나름대로 저항하고 있지만 마신족의 힘 앞에선 무력하다. 킹과 디안느는 치를 떨면서도 마신족의 힘 앞에서는 위축되고 만다.
          * 디안느는 그 모습에 환호하고 킹은 자신들은 짐덩어리일 뿐이라고 자학한다. 그때 그들의 뒤에서 심치 않은 기운이 나타난다. 검은 날개와 함께 나타난 마신족. 킹과 디안느는 그 기척만으로 격이 다른 대임을 감지한다.
          * 디안느가 그 말을 듣고 허둥대는 사이 카르마디오스가 공격한다. 여섯개의 팔로 휘두르는 도끼에 당하는 디안느. 디안느가 나가 떨어지자 이번엔 킹을 향해 마력탄을 토해낸다.
         전 회에 이어 디안느의 향으로 소녀틱해진 드롤의 행동거지가 심하게 눈갱. 이곳은 3천년 전 브리타니아이며 이들은 아직 엘리자베스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는 모르는 것 같다.
         디안느와 킹을 습격한 마신족은 십계 "배신"의 카르마디오스. 하지만 역대 십계 중 가장 안습하다. 초대 요정왕과 거인왕이라지만 처 하나 못 주고 한 방에 리타이어. 계금을 써먹을 기회도 없었다. 물론 카르마디오스가 3천년 후의 십계에 비해 약하진 않겠지만 그로키시니아와 드롤에 비견될 수준은 아닌 걸로 보인다.
  • 일곱개의 대죄/204화 . . . . 8회 일치
          * 하지만 킹은 이 사이에 그로키시니아의 여동생 [[게라이드]]를 방치하게 되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때 숲은 인간들에게 맡겨달라며 로우가 나선다. 로우는 구해준 은혜를 갚겠다고 하는데, 그의 모습이 [[반(일곱 개의 대죄)|반]]을 너무 닮아서, 킹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반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반과 달리 좋은 녀석"이라 말하며 게라이드와 숲을 꼭 지켜달라고 하는데.
          그러는 사이 마신족의 진군이 멈춰있다. 멜리오다스는 그걸 보고 불길한 직감이 드는데.
          * 마신족 대군을 이끌고 나타난 십계 [[데리엘]], [[몬스피드]], [[갈란]], [[메라스큐라]], [[프라우드린]]. 이 무서운 대군 앞을 한 명의 소녀가 가로막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엘리자베스. 그녀는 혈혈단신으로 대군을 가로막고 자신을 밝힌다. 갈란과 메라스큐라는 자진해서 죽으러 왔다고 비웃는데 몬스피드는 어디선가 들은 이름이라고 곰곰히 생각한다. 그런데 프라우드린은 자신들이 끌고 온 병사들이 엘리자베스를 보고 동요하고 있는걸 발견하고 이하게 여긴다.
          >이 이 나아가서는 안 돼!
         >역할을 충분히 다한 이다.
          혈육이 눈 앞에서 죽은 데리엘은 걷잡을 수 없이 분노해 엘리자베스를 공격한다. 공격을 받은 엘리자베스는 그대로 지으로 추락해 버린다. 다른 십계들도 정도는 다르지만 엄연힌 선전포로도 받아들이며 분노한다.
          * 그때 십계가 있는 공으로 뤼드셀과 두 명의 사대천사가 강림한다. 뤼드셀은 곧 동료들 곁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하는데 진심으로 십계를 전멸시킬 생각 같다. 눈 앞의 학살극으로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십계들은 그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는 사대천사보다 직위 높은게 확실해 보이고 데리엘 또한 십계 내에선 리더격으로 보인다. 그녀가 엘리자베스와 교섭을 하고 멋대로 교섭 성립을 결정했는데 다른 십계가 전혀 이론을 펼치지 않는걸 보면 그렇다.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8회 일치
          * 나자는 죽기 전 작별인사처럼 고서와 사랑을 잠들 듯이 세을 뜬다.
          * 혼자 남겨진 고서는 자신이 있는 "공동"을 살펴본다.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그에겐 리오네스도 다나폴도 모르는 이름이다. 그가 있는 곳은 거목과 바위가 뒤섞여 만들어진 이한 공간이었다. 고서가 쓰러진 거목을 조사해 보니 적어도 3000년 전에 무너진 것이었다. 탐색을 마친 그가 결론에 다다른다.
          * 고서는 마침내 "진짜 고서"에 대해서도 기억해낸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누군가 발에 채인다. 그건 고서가 항 타고 다니던 휠체어의, 시계 모양 바퀴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망가져 버린 시계. 그리고 그 앞에 그의 유체가 있다. 형편없이 말랐지만 분명 고서의 얼굴이었다.
          화제는 다시 선물로 돌아간다. 나자는 그녀가 즐겨 읽는 "멜도르" 이야기 시리즈를 가져왔다. 나자는 자기가 몸이 약해서 이런 모험이야기 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멜도르는 특히 그녀가 좋아하는 시리즈인데 주인공 멜도르가 그녀의 이형인 모양이다. 고서는 책은 커녕 "이야기"라는 것도 잘 몰라서 나자가 "글을 모르면 대신 읽어주겠다"고 하는데, 그녀가 잠시 말하는 동안 고서는 엄청난 속도로 독서를 마친다. 나자는 당연히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진짜였다. 고서는 멜도르가 공주를 데리고 사신의 추격을 피하는 4장의 내용이 재밌었다고 정확한 소감을 밝히기까지 한다. 나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남아있었다.
          나자가 그렇게 말하자 바트라는 커튼을 향해서 "그렇다고 합니다"라고 신호를 준다. 그러자 커튼 뒤에 숨어있던 고서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메이드차림이다. 바트라는 병사들 눈도 있으니 이렇게 하는 쪽이 눈에 덜 뛰고 좋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나자는 고서에게 이한 버릇이 들면 어쩔 거냐고 따진다. 아무튼 고서는 나자를 끌어안으며 미움 받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기뻐한다. 이건 멜도르 이야기에서 공주가 일어났을 때 멜도르가 껴안아 준 것을 따라한 것이다. 나자는 동생의 눈을 의식해서 얼른 떼어놓지만 어쨌든 자신이 고서를 싫어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확언해준다.
          * 나자는 낮부터 기력이 없어서 방에 누워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고서는 걱정말고 푹 쉬라면서 다음에는 페네스의 호반까지 가보자고 말한다. 그런데 나자는 화제를 돌려 고서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한다. 그때 고서는 갓 태어난 산양 같았다고 한다. 지금은 누구도 그를 "인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서는 자신은 인간이 아니며 몸도 마음도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몇 백년이든 몇 천년이든 그저 존재할 뿐이라고 하는데.
          나자는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잠들듯이 세을 뜬다.
          고서의 고함소리는 방 바깥까지 울러펴진다. 경비병들이 공주의 방에서 수한 소음이 발생한걸 감지한다. 그들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고서는 모르는지, 아는데 무시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한 가지다.
  • 임현준 . . . . 8회 일치
         |문 표기 = Lim Hyeon-Jun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2011년 ~ 2013년)
         [[대구고등학교]] 시절에는 [[1루수]]로 주로 활동했지만 제28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당시 선수가 부족하여 깜짝 선발로 등판하였다. 경기에서 6⅓이닝을 4안타 무실점으로 막으며 [[북일고등학교]]를 대로 승리하여 모교의 우승을 이끌었다.
         [[2007년]] [[경성대학교]] 진학하여 윤환 감독으로부터 체계적인 [[투수]] 수업을 받은 뒤 입학하자마자 당시 4학년이었던 [[고창성]]과 함께 [[경성대학교]]의 간판 [[투수]]로 떠올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213906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삼성 새내기 좌완 임현준 "선동열 감독께 눈도장 받고 왔어요"] 《조이뉴스》 2010년 12월 5일</ref>
         ==[[무 야구단]] 시절==
         [[2011년]] [[4월 2일]] 시즌을 마치고 곧바로 입대하여 복무를 마쳤으나, 제대를 앞두고 팔꿈치 부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 장석조 (판사) . . . . 8회 일치
         |웹사이트 =
         1961년 [[서울시]]에서 태어나 [[휘문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대전고등법원]] 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는 등 민사, 형사, 행정, 헌법재판소 근무 등 주요 분야를 두루 거쳤으며, 집행절차에 있어서의 채무자 보호, 판결의 편취와 절차적 기본권, 우리 헌법 절차적 기본권, 조세법 실질과세원칙의 적용한계, 헌법과 민사소송법, 민사재판과 헌법적 판단, 재판받을 권리의 헌법 보장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여 2008년에 한국법학원 법학논문을 받았다.
         *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9월 28일에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제기한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강남세무서장 등 15개 관서장이 고지한 각 증여세 139억원의 부과를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판결했다.<ref>[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4/09/20140926234304.html]</ref> 12월에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6곳이 서울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대로 낸 업시간제한 등 처분 취소소송에서 "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는 방법으로 달성되는 전통시장 보호 효과가 뚜렷하지 않고 아직까지 논란이 있다"고 하면서 원고 승소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1심 판결을 인정하여 파기하여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ref>[http://www.ajunews.com/view/20151119130813012]</ref>
  • 장성집 . . . . 8회 일치
         |징 =
         장성집은 [[한양]]의 한 이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약]]에서 일했고, 두 번 결혼했지만 부인들이 일찍 죽어 홀아비가 되었다.
         그는 30세에 [[천주교]]의 [[교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성육신]]과 [[동정 (성 문화)|동정]] [[탄생]]의 교리를 믿지 못하였다. 그는 [[하느님]]이 스스로 겸손하게 [[인간]] [[사랑]]을 위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의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그는 천주교의 교리 공부를 단념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 중에 천주교 신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에게 [[하느님]]께로 돌아오도록 설득하였다. 장성집은 과거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기도]]와 [[묵]] 그리고 [[성경]] 읽기에 빠져 살았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마다하고 혼자 지내는 삶을 살았다.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왜 [[장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속세에서 부유함을 누리고 살기보다는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고 원한 행복을 위해서 춥고 배고프게 지내는 것이 더 낫다고 대답했다. 그는 [[1838년]] [[4월]]의 같은 날에 [[성체]]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가 용감한 [[순교자]]들의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그는 조정에 직접 항거하려 하였으나, 그의 [[대부모|대부]]는 그의 결단을 말렸다. 마침내 그는 [[5월 18일]]에 체포되었고, 이웃들과 그를 잡아가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의 종교를 부정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기 신앙을 거듭 확고히 다졌다. 그는 "나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한 사람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좋은 사람은 [[천당]]으로, 나쁜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신다."고 말했다.
         포도대장은 그를 급 [[재판소]]로 이송했다. 장성집은 관청의 아치들이 왜 자신을 아무런 [[심문]]이나 [[고문]]도 없이 내버려 두는지 알려달라고 외쳤다. 이미 그는 정신병자로 오해받고 있었고,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포장은 끊임없이 배교하라고 충고하였으나, 그는 포장의 충고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는 곤봉으로 수차례 맞고,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 결국 그는 [[1839년]] [[5월 26일]], 54세의 나이로 [[한양]]에 있는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 저자 = 이
  • 장순왕후 . . . . 8회 일치
         |배우자 = [[유민]]
         |아버지 = 당부원군 [[한명회]]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1445년]] [[2월 22일]]([[음력 1월 16일]]) ~ [[1462년]] [[1월 5일]]([[1461년]] [[음력 12월 5일]]))는 [[조선]] [[조선 예종|예종]](睿宗)의 정비이다. [[시호]]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이며, 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와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의 셋째 딸로,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이다. 세자빈 시절 [[인성대군]]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요절하였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저주의 첫 대자로 알려진 [[조선 덕종|덕종]]의 경우 [[조선 단종|단종]]보다도 먼저 사망했으며, 따라서 [[조선 세조|세조]]가 [[조선 덕종|덕종]]의 죽음에 분노해 [[현덕왕후]]의 능묘를 파헤치고 폐서인했다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 증조부 : 대제학 증 좌찬성 문렬공 [[한질]](大提學 贈 左贊成 文烈公 韓尙質, 1350?~1400)
         *** 조부 : 사헌부감찰 증 의정 [[한기]](司憲府監察 贈 領議政 韓起, 1393~1429)
         **** '''아버지''' : 의정 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領議政 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 1415~1487)
  • 장운호 . . . . 8회 일치
         |문 표기 = Jang Woon-Ho
         |사진 사이즈 =
         * [[무 피닉스 (야구)|무 피닉스]] (2017년 ~ 2018년)
         ==[[무 피닉스 (야구)|무 피닉스]] 시절==
         {{무 야구단 명단}}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중대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무 야구단 선수]]
  • 전경협 . . . . 8회 일치
         |징 =
         전경협은 [[한양]]의 한 이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세을 떠난 이래로, 그녀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안형광]]이라는 이름의 [[궁녀]]의 도움으로 그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나서 전경협의 친오빠가 그녀를 결혼시키려 했지만, 궁녀 안형광은 그녀를 보내주지 않았는데, 그녀도 이미 궁녀 명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박희순 루치아]]를 비롯한 [[천주교]]인 궁녀들의 향을 받아 천주교인이 되었다. 박희순이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위하고자 출궁한 후에, 전경협도 꽤병을 부려 궁궐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궁궐의 호사스러운 생활이 신앙생활을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전경협은 박희순과 함께 살며 [[기도]]와 종교서적의 독서 그리고 선행에 전념했다. 그녀 주위 사람들이 그녀에게 감복했고, 그녀는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는데 일조했다. 그녀는 극도의 가난과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번 없었다. 그녀는 그저 [[체포]]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전경협의 친오빠는 이교도였으며, [[조정 (정치)|조정]]의 고위 관리였다. 그는 [[왕|임금]]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그녀를 배교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그녀는 오빠의 간청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죽이려 했다. 그는 독이 든 계란 과자를 [[감옥]]에 있는 그녀에게 보냈던 것이다. 수스럽게 생각한 전경협은 과자를 비녀로 찔러 보았는데, 그 비녀의 색쌀이 금새 변했으므로 그 과자를 먹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오빠는 형리장을 매수하여 그녀를 몽둥이로 때려 죽이도록 시켰다. 하지만 형리장은 여러 차례 그녀를 때리되 죽이지는 않았다. 전경협의 조카 즉 오빠의 딸이 그녀의 처가 하루만에 다 낫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전경협은 그녀의 오빠가 그녀가 감옥에 원히 갖혀 있도록 요청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앙을 위하여 [[참수]]되기를 [[기도]]했고, 마침내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 저자 = 이
  • 전성우 (배우) . . . . 8회 일치
         {{화인 정보
         | 학력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화과,<br>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 웹사이트 =
         *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화과
         === 화 ===
         * 《내게만 보이는 남자》 (2017년) - 재 역
         * 《온스테이지 시즌2》 정원, 전성우, 윤소호 편 (2014년)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전숙희 . . . . 8회 일치
         1970년대 이후에는 '삶은 즐거워라', '해는 날마다 새롭다' 등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 일생활의 행복, 가족과 벗들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
         1983-1991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을 지낸 고인은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리고자 노력해왔으며, 1988년에는 동서 진의 작가들을 초청해 서울에서 국제펜대회를 개최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펜중앙위원회에서 국제 종신 부회장으로 선임됐으며, 대한민국 예술원, 독일 괴테문화훈장, 러시아 푸슈킨 문화훈장 등 국내외에서 많은 을 받았다. 2005년에는 정부로부터 [[대한민국의 훈장|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 《혼의 뜨락에 내리는 비》
         **** 자녀 : 강국(재미 사업가), 진(한국현대문학관 관장)씨, 딸 은엽(미술가), 은(미술가)
  • 전혜진(1970) . . . . 8회 일치
         ||<:> [[김태화]], 김현숙, [[서정민]], [[양정아]], [[윤제선]], [[이승은]], [[이종희]] ||<:> '''[[서연정]], [[신경애]], 이미, [[이현]], [[염정아]], [[전혜진(1970)|전혜진]], [[조정희]]''' ||<:> [[구교현]], 이미나, [[유하]], [[이승연]], [[장은]], [[장혜숙]], [[황은숙]] ||
         ||<:> '''출생''' || [[1970년]] [[8월 9일]], [[경북도]] [[김천시]] ||
         본인이 출연했던 드라마의 제목처럼 실제로 4명의 딸이 있는 딸 부잣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3990919|국민일보 기사]] 1991년 미스코리아에서 당선되었으며 배우와 MC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9월에 개신교식 예배로 4살 연의 회사원과 결혼했다.
         ||<table align=center> '''방 연도''' || '''방송사''' || '''제목''' || '''배역''' ||
         || || [[가족 환곡]] ||
  • 절대가련 칠드런/445화 . . . . 8회 일치
          * 황을 눈치챈 한조가 '조사관 A'의 전언이라 강조하며 자신의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 왠지 정사진 같은 느낌이 되고 만다.
          * 뭔가 진지한 질문을 시작하려는게 아닐까 했는데, 지적하고 싶은건 '''대의 센스'''
          * 합성능력자는 이미지를 투해서 능력을 만드는데, 왜 그 이미지를 멋있어 보이는걸 선택하지 않았고 문어 같은 걸로 택했냐고 격렬하게 디스한다.
          * 테오도르는 시호와 유리의 주의를 돌린 사이에 BABEL의 중추에 대한 공격을 거의 완료, 국가도 길리엄의 새로운 장난감이 되었다면서 다음 타겟은 효부임을 밝힌다.
          * 테오도르의 말대로라면 이미 바벨의 층부는 전원 블랙 팬텀의 손아귀에 떨어진 걸로 볼 수 있다.
          * 즉 기존 동료 에스퍼들이 대거 적으로 돌변하는 황이 등장할 수도 있다.
          * 시호가 사카키의 근황을 의식하는 듯한 묘사가 나오는데 마츠카제는 "츤데레라기엔 츤의 살력이 너무 높다"고 꼬집는다.
  • 절대가련 칠드런/461화 . . . . 8회 일치
          * 한편 아파트에 있는 [[미나모토 코이치]]는 전략적 대기 태에 들어가지만 까놓고 말하면 그냥 빈둥대고 있다. 미나모토는 가만히 기다리는 쪽이 오히려 진정이 안 된다고 투덜댄다.
          * 미나모토는 자신이 항 칠드런을 조력하는 입장이었으나 이번엔 할 일이 없이 가만히 있으면서 조력을 받는 입장. 이러한 입장 변화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 자기도 모르게 "너희가 컸다는건 알지만..."이라고 답하는 미나모토. 묘하게 사실감 있는 회이라고 생각했더니 카오루 본인이 어느새 방에 들어와 있었다.
          * 미나모토는 이런 왕래가 당국에 발각되지 않을까 염려하는데 칠드런이 짜놓은 동선은 의외로 치밀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노가미 아오이]]의 텔레포트지만 매번 아오이가 올 수는 없으므로 자택에서 지하의 비밀 통로 등으로 단거리 텔레포트, 이후 이 근처 지하철 역까지 이동해서 감시의 눈을 피한다. 이건 [[산노미야 시호]]가 정해준 원칙에 따라 마츠카제가 구한 이동방법이다. 텔레포터의 부담도 줄일 수 있어서 당히 합리적인 방법. 미나모토도 마츠카제를 칭찬한다. 카오루는 자신들도 마츠카제를 신뢰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가 미나모토가 정한 후임이기 때문이란 말은 접어둔다.
          * 카오루는 "애인이라기엔 좀. 이런 이불도 가구도 없는 방에"라고 말했다가 "이불"에서 에로한 을 하며 폭주한다. 이런 사태를 예견한 아오이와 시호가 경고를 해놨지만 카오루는 오히려 그런 말 때문에 의식된다며 몸부림 친다.
          어쨌든 황이 진정된 이후 미나모토는 간단하게 음식이라도 해주겠다며 외출하자고 한자. 혹시 시간이 늦어지면 곤란하냐고 묻는데, 카오루는 미리 [[스에츠무 하나에]]씨에게 말해뒀다고 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66화 . . . . 8회 일치
          * 가까스로 주파수를 재조정해 총알이 관통하는건 막았지만 여전히 위험한 태. [[사카키 슈지]]가 필사적으로 응급조치를 한다.
          * 진정한 효부는 냉정하게 길리엄의 의도를 추정해 [[마기 시로]]가 잠복하고 있을 거라 예한다.
          * 그때 마츠카제가 ECCM이 자동재조정되었다며 초능력이 작동한다고 외친다. 길리엄은 너무 늦었다고 비웃으며 말을 이으려하는데 카오루가 길리엄의 을 전송하던 프로젝트를 박살내 버린다.
          * [[사카키 슈지]]가 효부를 대신해 조치를 취한다. 그의 진단으론 중이긴 해도 생명에 지장이 있진 않다. 효부가 총알을 막았기 때문에 피질의 손은 아주 작고 이대로 응급처치를 하면 충분히 살 수 있다. 여전히 텔레포트는 쓸 수 없지만 마츠카제가 최단거리로 도달할 수 있는 의무실을 확보한다. 하지만 응급처치가 끝나지 않은 태라 옮길 수 있게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 아무튼 효부는 방금 전보단 이성을 되찾았다. 그는 차분해진 머리로 황을 정리한다. 후지코는 즉사를 면했으며, 사실 이렇게 될 건 길리엄도 알았을 것이다. 그의 앞에서 실행하면 막힐 수 밖에 없을 테니. 따라서 이건 단지 효부를 동요시키고 모욕하기 위한 시위다. 후지코를 볼모로 그의 "과거"를 모욕했으니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될까?
  • 절연금 . . . . 8회 일치
         엄밀하게 따지면 절연금이라 할 수 없는 경우라도, 언론 등에서 사실 관계청산을 댓가로 돈을 지불하는 경우, 비유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예시.
         >AOL이 Netscape의 역사에 사실 막을 내리다, 200만 달러의 「절연금(手切れ金)」으로 Mozilla를 해산
         위자료는 법률적에서 정의된 손해배의 일종으며, 민사의 불법행위, 정신적 손해에 대하여 배을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절연금은 인간 관계의 청산에 따라서 임의로 지급하는 금전을 뜻한다. 따라서 위자료를 절연금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강제적인 지불 의무의 유무이다. 위자료는 대방이 청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지불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반면, 절연금은 지불의무가 없으므로 강제력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대방이 임의로 손해보 요구에 부응하여 지급하는 것이다.
  • 정다정 . . . . 8회 일치
         |수 =
         |공식 웹사이트 =
         * 《[[세을 여는 아침|세을 여는 아침 강다솜입니다]]》- 매주 월요일 '냉장고와 열정 사이'코너 고정 게스트(2012년 10월 22일~12월 24일)
         이광낙(<small>인터넷 아이디:</small> Lv7.벌레)은 2012년 9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24인용 군용 텐트 혼자 치기(T24 소셜 페스티벌 또는 T24 행사)를 성공시켜 화제가 된 인물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혼자서 24인용 군용텐트 칠수 있을까|url = http://news.donga.com/3/all/20120910/49262459/1|출판사 = 동아일보|저자1 = 박훈 | 저자2 = 김진우 | 저자3 = 윤호|쪽 = |날짜 = 2012-09-10|확인날짜 = 2012-10-27}}</ref> 그는 당시 자신이 활동하던 인터넷 커뮤니티 [[SLR클럽]]에서 24인용 군용 텐트를 혼자 칠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되자 “되는데요”라고 답글을 단 바 있는데, 이 말은 그가 텐트를 실제로 혼자 칠 수 있음을 보이자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ref>{{뉴스 인용 |제목 = 유행어가 되리 시즌 2 - 제 14장│되는데요. .|url = http://10.asiae.co.kr/Articles/new_view.htm?a_id=2012091021072828319|출판사 = 10asia|저자 = 최지은|쪽 = |날짜 = 2012-09-11|확인날짜 = 2012-10-27}}</ref>
  • 정무식(정치인) . . . . 8회 일치
         1924년 [[경북도]] 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 8기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근무하며 [[육군정보학교]] [[교수]]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자 [[중앙정보부]]에서 대구[[대공분실]]장, 제3국장, 정보부장 특별보좌역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경북도 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일군-[[울릉군]]-[[천시|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권오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초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22400329201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2-24&officeId=00032&pageNo=1&printNo=9921&publishType=00020|뇌물수수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지종걸]] [[유신정우회]]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회]] 농수산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에 임명되었다.
  • 정미남 . . . . 8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 웹사이트 = {{싸이월드|27012098}}
         === 화 ===
         * 2004년 《[[어깨동무]]》 ... 마약밀매
         *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한 놈]]》 ... 삼국파 역
         * 2016년 《[[밀정 (화)|밀정]]》 ... 확성기경찰 역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
  • 정수아 . . . . 8회 일치
         | 웹사이트 =
         == 수 ==
         * [[2012년]] [[한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 사회봉사발전 공로
         * [[2013년]] [[한국]]을 빛낸 사람들 대 가요발전봉사 공로
  • 정승원 (야구인) . . . . 8회 일치
         |문 표기 = Jeong Seung-Won
         |소속 구단 = 무 피닉스 야구단
         |사진 사이즈 =
         * [[무 피닉스 (야구)|무 피닉스]] (2012년 ~ 현재)
         '''정승원'''(鄭承源, [[1982년]] [[8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이다. [[2010년]] 시즌 후 방출되었고 [[NC 다이노스]]의 트라이아웃 때 "정승원"으로 개명했다. 아쉽게도 트라이아웃에서 탈락한 그는 2012 시즌부터 예전에 복무하였던 [[무 피닉스 (야구)|무]]의 주루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본명은 '''정희'''(鄭熙相)이다.
  • 정환덕 . . . . 8회 일치
         [[고려]]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이며,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정종소]](鄭從昭)의 12세손이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자 월 환고사에 배향된 현령 증 병조판서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의 10세손이며, 대구부의 청호서원(淸湖書院)에 배향된 진주목사 [[정호인]](鄭好仁)의 8세손이다. 증 통훈대부(通訓大夫) 예식원좌장례(禮式院左掌禮) [[정하형]](鄭夏亨)의 증손이며, 증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감승(秘書監丞) [[정윤휴]](鄭胤休)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선략장군(宣略將軍) 행 선전관(宣傳官) 증 가선대부(嘉善大夫) 군부협판(軍部協辦) [[정의채]](鄭義采)이며, 어머니는 증 정부인 이씨(貞夫人 李氏)와 증 정부인 주씨(貞夫人 周氏)이다.
         군부협판 의채의 아들로 [[1857년]] 탄생하였다. 소년시절부터 태을노인(太乙老人)에게 역학을 수학 받았으며, [[경북]] [[천]]에서 거주하였다. 어느 날 천 황학사의 한 암자에서 역학(주역)을 공부하다가 잠깐 졸았는데 꿈에 하얀 도포를 입고 손에는 청령장을 짚은 산신령이 나타나더니 “자네가 역학을 공부한지 7년이 되었다. 그러나 너는 글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글만 줄줄 읽었다. 그러니 말짱 헛공부를 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글의 행간을 읽으라. 행간에 숨은 뜻을 찾아서 읽도록 하라. 아무리 공부해도 너에게 큰 행운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행운은 있을 것이니 여기서 꾸물댈 것이 아니라 [[서울]]로 올라 가보아라.” 꿈에 나타난 산신령의 말을 믿고 [[1897년]] 가을, 나이 40세이 되던 해에 서울로 경하였다. 경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동부승지 [[윤명구]](尹鳴九)를 만나 윤명구가 역학을 할 줄 안다고 하여 고종황제의 측근 경운궁 전화과장(電話課長) 이재찬(李在纘)을 소개 해주었다. 이재찬이 [[고종황제]]에게 소개하여 특명으로 [[1901년]](광무 5) 음12월 5일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되었다가 그 다음날 면직되었다.
         [[1906년]](광무 10) 음2월 27일 시종원 부경(侍從院副卿)에 제수되었으나 음2월 29일 사직 소를 올려 운운하였는데, 비지에, “소를 보고 잘 알았다. 청한 바는 그대로 시행하겠다.”하였다. 이해 음3월 12일 법전에 따라 아버지, 조부, 증조부 등에게 벼슬을 추증되었다. [[1944년]] 향년 88세로 별세하였다.
         [[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분류:연일 정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제임스 웡 . . . . 8회 일치
         | 웹사이트 =
         '''제임스 웡'''(James Wong)은 [[미국]]의 화 제작자다.
         1959년 4월 20일 [[홍콩]]에서 태어났으며 10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로 거주지를 옮겼다. 엘카존밸리고등학교(El Cajon Valley High School)에서 [[글렌 모르간]](Glen Morgan)을 처음 만났으며 이후 제임스 왕은 로욜라마리모운트 대학교(Loyola Marymount University)에 진학했으며 코미디 진흥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원래 제임스 왕은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있었으나 [[시네라마 돔]](Cinerama Dome)에서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을 본 뒤부터 전공을 화로 바꾸었다. 졸업한 뒤에는 [[샌디 하워드]](Sandy Howard)의 조수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그동안 제임스 웡은 글렌 모르간과 함께 화 각본을 만들었다.
         제임스 웡과 글렌 모르간은 [[크리스 카르테르]](Chris Carter)와 함께 공과학드라마 [[X파일]](The X-Files)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동안 둘은 잠시 X파일(당시 4기) 제작에 다시 참여해 에피소드 Home(4기 2화)의 각본을 만들었다. 제임스 우옹은 글렌 모르간이 각본을 만든 에피소드 Musings of a Cigarette Smoking Man(4기 7화)을 통해 감독 경력도 시작했으며 둘은 크리스 카르테르의 새 드라마 Millennium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얼마 뒤 둘은 [[NBC]](National Broadcasting Company)의 초자연 현 드라마 The Others의 진행 프로듀싱을 담당하게 되었다.
         {{토막글|화}}
         [[분류:미국의 화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주서은 . . . . 8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 웹사이트 =
         === 화 ===
         * [[2014년]] 《[[레볼루션 (화)|레볼루션]]》 ... 전 선생 역
         == 수 ==
         * [[2011년]] 슈퍼걸콘테스트 뉴페이스부분 대
  • 지증왕 . . . . 8회 일치
         제도와 체제를 개편, 정비하여 [[504년]] 복법을 제정하였으며, [[505년]] 주, 군, 현을 정하고 각 주에 군주를 두었다. [[509년]] 서울에 동시(東市)를 두었고, 512년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였다. 또한 [[한국]]의 [[고대 사회]]에서부터 전해지던 [[순장]] 풍습을 최초로 폐지한 군주이기도 하다. 시호는 지증인데, 신라 최초의 [[시호]]이기도 하다.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智度路)이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智證麻立干立 姓金氏 諱智大路 或云智度路 又云智哲老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ref> 그는 6촌 형제간인 [[소지 마립간]]과 사돈이었고 즉위 전 [[갈문왕]]에 봉해진 것이 [[일냉수리신라비]]를 통해 확인되었다.
         국보 제264호로 지정된 [[일냉수리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에 의하면 그를 지도로갈문왕(至都盧葛文王)이라 불렀다. 그는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갈문왕]]에 제수되었다. 그가 왕위에 오른 배경은 그의 장남 원종(元宗, 뒤에 [[법흥왕]]으로 즉위)이 [[소지 마립간]]의 사위인 점이 작용했다. 서자 산종만이 있었던 소지 마립간은 사위인 [[법흥왕|원종]]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사촌들을 제치고, 6촌이자 사돈인 그를 왕위 계승자로 내정했던 것이다. [[소지 마립간]]의 서자인 산종은 후일 [[진평왕]]의 왕비 [[마야부인 (신라)|마야부인]]의 할아버지이며 [[복승 갈문왕]]의 아버지가 된다.
         [[502년]] [[순장]]을 금하고, 신궁에서 직접 제사를 지냈다. 음력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三年 春二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 親祀神宮 三月 分命州郡主勸農 始用牛耕(3년(502) 봄 2월에 (令)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하였다.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때 이르러 금한 것이다. 왕이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냈다.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 )}}</ref> [[503년]]에 국호를 신로(新盧)·사라(斯羅)·서나(徐那)·서야(徐耶)·서라(徐羅)·서벌(徐伐) 등에서 “신라”(新羅)로 통일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四年 冬十月 羣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 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羣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년(503)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나(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또 살펴 보건대 예부터 국가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나 왕(王)을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지 지금 22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만을 칭하고 높이는 호칭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이제 뭇 신하가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왕이 이에 따랐다. )}}</ref>
         즉위 초부터 그는 제도와 체제 개편을 추진하였다. [[504년]] 음력 4월 복법을 제정하고, 음력 9월에 파리, 미실, 진덕, 골화 등 12성을 쌓는 등 고대 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五年 夏四月 制喪服法頒行 秋九月 徵役夫築波里 彌實 珍德 骨火等十二城(5년(504) 여름 4월에 복(喪服)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시행하였다. 가을 9월에 인부를 징발하여 파리성(波里城), 미실성(彌實城), 진덕성(珍德城), 골화성(骨火城) 등 12성을 쌓았다.)}}</ref>
         [[509년]]에는 시사(市肆, 혹은 [[시전]])를 관리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東市典)을 설치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十年 春正月 置京都東市(10년(509) 봄 정월에 서울에 동시(東市)를 설치하였다. )}}</ref> 이리하여 무역과 인들의 거래를 단속, 통제하였다.
         [[분류:신라의 왕|지증 마립간]][[분류:437년 태어남|지증 마립간]][[분류:514년 죽음|지증 마립간]][[분류:신라의 군인|지증 마립간]][[분류:마립간]][[분류:한국의 전설]][[분류:불교도 군주|김지대로]][[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지증왕| ]]
  • 차성훈 . . . . 8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중앙대학교]] 연극화과 학사
         === 화 ===
         * 《[[해피엔드 (1999년 화)|해피엔드]]》 (1999년) - 순경 1 역
         *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1998년) - 이경 역
         * 《[[개과천선 (드라마)|개과천선]]》 (2014년, MBC) - 우비서 역 <ref>{{뉴스 인용|제목= 김성훈, 차성훈으로 개명 |url=http://media.daum.net/entertain/star/newsview?newsid=20140522181705403 |출판사=세계일보 |날짜=2014-05-22}}</ref>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창작:미키 그리지오 . . . . 8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인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 신정보 =
         조직 내에서는 두목의 아들이라 재미가 쏠쏠한 매춘업과 나이트클럽 경, 자동차 거래 등을 맡고 있지만 막 실력은 별로라는 모양. 오히려 적자가 안 나는 게 다행이란다. 미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경호원, 여자 비서 등등만 죽어나는 중(…). 게다가 두목의 아들이기 때문에 단물을 빨기 위해 들러붙는 간신배들이 엄청 많다. 정작 미키 본인은 이름은 누가 누군지 까먹지만 어쨌든 떠받들어 주는 게 좋아서 넘어가고 있다.
         모든 금수저가 그렇듯이(?) 응석받이로 자랐기 때문에 뭐든지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심통을 부린다. 그것도 단순히 심통을 부리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름 모를 조의 잔인한 성격을 물려받아 필요 이으로 잔인한 보복을 하길 좋아한다. 물론 조직 내에서는 자신보다 훨씬 잔인하고 음험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별 수 없이 조용히 지내지만, 대신 사회에 나가 자신보다 약자들을 괴롭힌다. 본인 왈 '개미떼를 가지고 노는 느낌'이라고.
         다만 이러한 성격 조직을 물려주면 딱 말아먹기 좋은 개차반이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후계자 후보가 없는지라 아버지 첼레스테는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
  • 창작:좀비탈출/5-1 . . . . 8회 일치
         토트넘이 다가오는 순간 그 속도와 무기의 위치와 내가 손을 뻗는 속도의 차이에 대해서 계산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풀리지 않는 방정식이 머리를 괴롭히는 사이 몸은 직관적인 행동을 취했다. 자세를 낮추고 팔을 뻗어 손아귀에 싸늘한 손잡이가 잡히는 동안, 토트넘은 '''정확히 2m 앞'''에 있었다.
         녀석으로선 기적적으로 느긋하게 움직여준 셈이다. 담장을 넘은 운동능력과 이 늦은 걸음걸이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 것인가? 그런건 생각해 봤자다. 죽은 놈의 머리통을 무슨 수로 알아맞추겠는가. 녀석의 손톱이 살갗에 박히기 전에 휘둘러버리는게 중요하지.
         헤드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옆구리에 박혔다. 머리가 떨어지고 앙한 부지깽이가 된 골프채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분명 내 평생 최대로 쥐어짠 힘이었다. 하지만 토트넘은 오른쪽으로 갸우뚱했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 옆구리가 찰흙 덩어리처럼 움푹 패이고 분명 척추가 무너진 탓에 체가 건들거렸지만 쓰러지진 않는다. 기분 나쁜 슬로우모션처럼 놈이 덮쳐오고 기울어진 대가리와 눈이 마주친다. 알맹이는 햇볕에 내놓은 푸딩처럼 느물느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꼴은 마치 눈깔이 녹아버릴 정도로 웃고 있는 것 같아. '''꺼져 토트넘!''' 너넨 올해도 우승 못해!
         나는 부들거리는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긴장탓일까 굳어 버린 무릎은 만화같이 삐걱대는 소릴 냈다. 나는 일어나면서 몸 이곳 저곳을 더듬었다. 내가 모르는 처가 생기진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나…… 녀석의 이빨이 스친 곳은 없을까?
         무섭게 부어오른 오른쪽 뺨을 제외하면 어디에도 처는 없었다. '''기적 같은 일이다.''' 처음으로 보는 잡아먹히는 인간이 나 자신이 아닐 수 있게 됐다. 뭐, 기회가 지나간 건 아니겠지만.
  • 창작:좀비탈출/5-1-1 . . . . 8회 일치
         그건 농담만은 아니었다. 토트넘은 지금까지 본 녀석들 중 압도적으로 '''신선했다.''' 아직도 신체 일부는 분홍빛을 띄고 있고 단련된 하체는 근육이 뭉그러지지도 않았다. 대적으로 체는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지방의 부패가 시작되었지만…… 의식할 수록 그게 사람이었던 시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내가 한 일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 감에 젖어있기엔 처해진 황은 급박하다. 토트넘은 담을 넘었다. 이 동네에 내가 보지 못한 녀석들 중에 토트넘만큼 신선하고 하체가 발달한 녀석은 몇이나 더 있을까? 토트넘의 조기축구 동료는 적어도 10명은 있겠지. 그리고 경기할 대팀도 11명은 있겠지. 그럼 적어도 20명 안팎의 신선하고 하체가 튼튼한 녀석들이 있는 걸까?
         하지만 토트넘은 적어도 90kg는 될 것 같다. 굶고 지친 내가 쉽게 들어옮길 대이 아니다. 그렇다면 편히 옮기기 위해서는…… '''잘라낼 수 밖에 없군.'''
         잠시 뒤 나는 필요할 법한 공구는 전부 챙겨서 뒷마당으로 돌아왔다. 혹시 그 사이에 뭔가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경계했지만 다행히도 다른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것 같지만 아직도 태양은 정점에 있었다. 그러고 보면 토트넘은 이렇게 햇볕이 쨍쨍한데 왜 움직이고 있었던 걸까? 혹시 녀석이 숨기 위해 뒷마당으로 오다 마주친 걸지도 모른다. 그런 거라면 조금만 늦게 나왔더라면 안전한 타이밍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토막낸 사체는 묻어버릴 생각도 했지만 그만큼 깊게 파야 하니 수고스럽다. 나는 담장 너머 이웃집으로 조각을 집어던졌다. 한 고기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철퍽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마치 내가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아니, '''원래 저 집 사람'''이잖아. 비난 당할 일이 아니다. 이건 있던 곳에 돌려보내 주는 거야.
  • 창작:좀비탈출/5-2 . . . . 8회 일치
         돌아보지 않았지만 토트넘은 쫓아오고 있을 것이다. 담을 넘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보존되어 있다면 달리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그러니까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한 건 내 망 때문이 아니다. 고개만 돌리면 목덜미로 뻗어오는 시커먼 손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무모한 모험은 최악의 황을 초례했다. 엄청나게 몰려든 놈들 때문에 시장바닥처럼 좁아졌다. 이것으로 적어도 여기에 있는 놈들만은 소리를 감지한다는게 밝혀졌지만 조금도 유쾌하지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놈들은 불가사이한 학습능력을 지녔다. 뇌라면 여드름에서 짜낸 고름 만큼도 안 들어있을 녀석이 내가 여기로 들어갔다는걸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문은 끄떡도 없었다. 하지만 소리가 집합신호처럼 놈들을 끌어들였다. 처음엔 담장에 막혀 있던 녀석들이 앞사람을 밟고 넘오오기 시작했다. 물론 토트넘처럼 운동신경 좋은 녀석은 거의 없었다. 처음엔 어설프게 담장에 걸쳐 있다 떨어지거나 창살에 걸려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렇게 떨어진 녀석이 쌓이니 발판 구실을 했다. 얼마 안 가 제법 태가 깨끗한 녀석들이 넘어오게 되면서 이젠 만원 태다.
         좋은 점은 두 가지다. 토트넘이 더이 문에 부딪히지 못하게 됐다는 것. 지들끼리 얽혀서 움직이기 힘들어진 탓이다.
         그리고 녀석들이 햇볕에 오래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냈다. 정답은 '''팽창'''이었다. 마당에 있는 녀석들은 장시간 햇볕에 노출된 끝에 폭발하기 시작했다. 태가 나쁜 녀석부터. 과학지식이 짧아 정확한 설명은 무리지만, 아마도 체내에 축적된 부패가스가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펑, 폭발해 버리는 거겠지.
         식량이 떨어진지 벌써 일주일 째다. 결국 타협해서 수돗물을 마시게 됐지만 이것만 가지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집안에 보이는 거울이란 거울은 다 깨뜨리거나 뒤로 돌려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앙해지는 내 몰골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나다가 바지가 헐렁하게 벗겨져 버리는걸 보고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최병철 . . . . 8회 일치
         | 웹사이트 =
         {{동메달|[[2007년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2007 트페테르부르크]]|플뢰레 단체전}}
         '''최병철'''(崔炳哲, [[1981년]] [[10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펜싱]] 선수이다. [[2012년 하계 올림픽]] 남자 [[플뢰레]] 종목으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올림픽에 출전한 남자 펜싱선수로는 [[2000년 하계 올림픽|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김호 (펜싱 선수)|김호]]에 이어 12년만에 메달을 건 선수가 되었다. 재치있는 입담과 특이한 경기운방식으로 인하여 '''괴짜검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ref>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8&idxno=616081 기천외한 공격펜싱 '최병철', 괴짜검객 등극] 《이투데이》, 2012년 8월 2일</ref>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방송공사|KBS]]의 해설위원을 담당하게 된다. [[2016년]] [[8월 10일]]에 있었던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박]]이 역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획득하자, '''그 어려운 걸 해냈지 말입니다'''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 최선 (정치인) . . . . 8회 일치
         '''최선'''(崔善, [[1974년]] [[1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서울시 강북구 삼양동에서 태어났으며 [[서경대학교]] 일어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시 강북구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민주통합당]] 소속이다. 2005년 어린이집 [[꿀꿀이죽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2006년 5월 31일 기초의회선거의 강북구 구의원에 출마하여 당선하였으며 이후 '보육조례개정안'제정 활동등을 하였다. 최근 강북구 의회의 의정비 인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여 주목을 받고 있다. 2009년에는 강북구청장이 공공근로 인력을 동원하여 부인 땅을 경작했다는 사실을 폭로해 MBC 뉴스데스크 등 언론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서울시 강북구 기초 의회는 총 14명의 구의원을 위한 2007년 의정활동비를 3천284만원에서 5천495만원으로 67%인하였다. 이때 반대의 압력과 강북구청정의 재의 요청에 따라 월 10만을 삭감하고 인안을 기권1, 찬성11표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최선은 이를 주민들의 동의를 얻지못하였으며 과도한 금액이라고 주장하고 1월치 의정비 중 인분을 구청에 반납하였다. 하지만 구청은 수령할 이유가 없다고 수납을 거부하였으며 민주노동당은 이 인분을 [[법무법인공탁]]처리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2008년 2월 5일 서울시 강북구 의회의 의장 윤석및 다른 의원들은 의정비 인이 정당했으며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행위라고 비판하고 MBC 라디오등의 인터뷰에서 동료의원의 명예를 실추 시켰다는 이유로 임시회 본의회를 열어 최선 의원을 징계하기 위한 윤리특별위 구성결의안을 처리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반대의견이 거세어 회의는 무산되었다. 최선은 과다하다는 이유로 서울시 강북구의 재정자립도가 30%이며 서울의 25개 자치구중 22번째로 하위권임을 들고 있다.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경대학교 동문]][[분류:민주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노무현]][[분류:박근혜]][[분류:이명박]][[분류:문재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인]][[분류:노회찬]][[분류:심정]][[분류:김규항]][[분류:진중권]][[분류:통합민주당 (2016년)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최성원 (배우) . . . . 8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 웹사이트 =
         * [[국민대학교]] 연극화과 학사
         === 화 ===
         * [[2016년]] 《[[아수라 (화)|아수라]]》 ... 담당의사 역
         * [[2018년]] 《[[탐정: 리턴즈]]》 ... 조철 형사 역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
  • 최수범 . . . . 8회 일치
         | 웹사이트 =
         [[2007년]] [[10월 13일]] 사실 은퇴를 선언하고, [[삼성전자 칸]]의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2014년 11월 [[KSV e스포츠|젠지 e스포츠]]의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 감독이었던 최윤이 [[KSV e스포츠|젠지 e스포츠]]와 결별, 기존에 코치를 맡았던 최우범이 감독으로 승격했다.
         * [[1월 3일]] 태어남. (이는 그레고리력으로 평년, 윤년 관없이 3번째 날이다.)
         * 9월3일 현재 감독을하고있는 삼성이 롤드컵예선을 kt에 19대0 의 대전적에도 불구 3:2로 승리함으로써 롤드컵행 확정
         * [[2003년]] [[4월 19일]] KTF EVER컵 프로리그에서 [[성학승]]을 대로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이는 방송경기 사 최초 무승부이다.
         == 수 경력 ==
  • 최수환 . . . . 8회 일치
         1933년 [[경북도]] [[포항시|일군]]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및 경대학원 [[최고위과정|최고경자 과정]]을 수료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제13번)으로 당선되었다. 1984년 말 [[홍사덕]], [[김현규]], [[서석재]], [[허경만]], [[박관용]], 손정혁, [[김찬우(1933)|김찬우]] 등과 민주한국당 탈당 선언을 하고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정의당]] [[박경석(1937)|박경석]] 후보와 민주한국당 [[서종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진우(1934)|이진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91년)|민주당]] [[박기환(정치인)|박기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최우석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문 표기 = Choi Woo-seok
         |사진 사이즈 =
         |투구 = 양<ref>[http://www.hanwhaeagles.co.kr/html/players/player/hPlayer_view.asp?sGubunCd=PLGB2P&sMSId=P203 한화 이글스 육성군 프로필] 언론에 알려진 바로는 스위치 투수이나, 공식 등록으로는 우완 투수이다.</ref>
         [[장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 3라운드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중간계투로 등판했고, [[2012년]] [[5월 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삼성 라이온즈|삼성]]전에서는 [[오승환]]을 대로 대타 타석에 들어선 적도 있었으나, 3루수 앞 땅볼로 아웃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9&article_id=0002708974 ‘완벽부활’ 오승환, 2경기 연속 무실점 호투] - 매일경제</ref>
         이후 [[최익성 (1972년)|최익성]]이 운하는 훈련장에서 복귀를 위해 개인 훈련에 매진하였으며, [[정민철]] 코치도 그의 훈련을 지켜보았다.
         2015년까지는 [[한화 이글스]] 육성군(3군)에서 훈련 중이었으며, [[KBO (야구)|KBO]]에 등록된 공식 프로필 으로는 우투우타다.
         2015년 [[한화 이글스]]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는데, 그 이유로는 허리 부으로 알려져 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41&aid=0002502223 한화 "오윤 은퇴, 보류 제외 12명 모두 수술 또는 재활중"] - 일간스포츠</ref>
         구단 측에서 먼저 제외하겠다고 나선게 아니라, 본인이 먼저 제외해달라는 루머가 있다. 항간에는 더 이 야구를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두고 탈단을 했다고 한다.
  • 최재우 . . . . 8회 일치
         | 사진설명 = 2014년 제19회 코카콜라 체육대식 당시의 최재우
         | 웹사이트 =
         '''최재우'''(崔載遇<ref>{{웹 인용|url=http://docsplayer.org/20586236-2014%EC%86%8C%EC%B9%98%EB%8F%99%EA%B3%84%EC%98%AC%EB%A6%BC%ED%94%BD_%EA%B2%B0%EA%B3%BC%EB%B3%B4%EA%B3%A0%EC%84%9C-hwp.html|제목=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결과 보고서|출판사=[[대한체육회]]|확인날짜=2017-08-17}}</ref>, [[1994년]] [[2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로 주 종목은 모굴이다. 2009년부터 제명될 때 까지인 2018년까지 국가대표로 활동했으며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모굴, 듀얼 모굴 모두 4위를 기록했으며, 2012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고 2013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5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올림픽에 두 번 참가하였으며(2014, 2018), 2017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평창 올림픽 이후 대회 도중 음주 및 추행, 폭행을 저질러 [[대한스키협회]]에서 구제명되었다.
         7세 때 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했으며, 2004년에 모굴 스키에 입문하였다. [[서울유현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6년에 캐나다 블랙콤에서 열린 스피릿 시리즈 하프파이프 경기와 슬로프스타일 경기에서 1위를 했고, 같은 해에 실버스타 스키장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모굴 1위, 듀얼 모굴 2위를 기록했다. [[2007년]]에 캐나다 사이프러스에서 열린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청소년 모굴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였으며, 2009년 1월 31일에 대한민국 대표로 발탁되어 [[일본]]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46위를 기록하였다. 2월에도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 참가하여 모굴 부문 20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이나와시로에서 열린 [[2009년 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모굴 부문에서 26위, 듀얼 모굴 부문에서 22위를 기록하였다. 그 해 8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위치한 페리셔 스키 리조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컵에 참가하여 21일에 진행된 모굴 경기에서는 35위, 다음 날에 열린 경기에서는 13위에 올랐다.
         이듬 해인 2010년 1월에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생애 첫 [[FIS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월드컵]]에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38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12월에 캐나다 퀘벡 주의 발생콤 리조트에서 열린 FIS 레이스에서 캐나다의 [[마르크앙투안 가뇽]]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하였다. 2011년에는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와 [[알마티]]에서 열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아시안 게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모굴 부문과 듀얼 모굴 부문에 출전했다. 모굴 부문에서는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레이헤르트]]와 일본의 [[우에노 오사무]], 카자흐스탄의 [[드미트리 바르마쇼프]]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듀얼 모굴 종목에서도 카자흐스탄의 바르마쇼프와 일본의 우에노, [[쓰키타 유고]]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이후 2012년에 [[캘거리]], [[나에바]] 등지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가하였고 같은 해에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손드리오 현|손드리오]]의 마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2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미국의 [[브래들리 윌슨 (스키 선수)|브래들리 윌슨]], 스웨덴의 [[루드비그 피엘스트룀]]의 뒤를 이어 3위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 대회의 듀얼 모굴 종목은 11위를 기록했다. 그 해 8월 16일에는 페리셔 스키 리조트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이듬 해인 2013년에는 [[노르웨이]] [[보스 (노르웨이)|보스]]에서 열린 [[2013년 세계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모굴 경기에서 450.00점을 획득하여 캐나다의 [[미카엘 킹즈버리]], [[알렉드르 빌로도]], 미국의 [[패트릭 데닌]], 오스트레일리아의 [[맷 그레이엄 (스키 선수)|맷 그레이엄]]의 뒤를 이어 5위에 올라 주목을 받았으며, 듀얼 모굴 종목에서는 14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발말렌코에서 열린 [[2013년 세계 주니어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권 대회|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는 모굴 부문 29위, 듀얼 모굴 부문 5위를 기록했다.
         2018년 3월 12일 [[일본]] [[아키타현]] [[센보쿠시]]의 [[다자와호]]에서 열린 FIS 월드컵 참가 도중 동료 선수 [[김지헌 (스키 선수)|김지헌]]과 함께 음주를 하고 동료 여자 선수들에게 음주 강요를 하였고, 이 과정에서 추행 및 폭행을 한 것이 발각되어 [[대한스키협회]]로부터 구제명 되었다.<ref>{{뉴스 인용 | 제목=모굴 스키 국가대표 최재우·김지헌, 동료 여선수들 성추행 ‘구제명’ |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57671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윤승민 | 쪽= | 날짜=12018-03-14 | 확인날짜=2018-09-17}}</ref>
  • 최정화 . . . . 8회 일치
         | 훈 =
         | 웹사이트 = [http://www.coreaimage.org/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CICI 홈페이지]
         == 훈 ==
         *2018년 산 외교인
         *2000년 다니카 세레스코비치
         * 《한국인이 가장 오해하기 쉬운 현지어표현》 (2004)
         * 《실수로 배우는 어》(1997)
  • 최호중 . . . . 8회 일치
         | 경력 = 공부 차관<br />[[대한민국 외무부|외무부]] 장관
         | 훈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한 뒤 [[1956년]] 외무부에 들어갔다. 국제경제국장, 통국장, 주유엔 유럽사무소 및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제네바대표부]] 공사, 말레이시아·[[주 벨기에 대한민국 대사관|벨기에 대사]] 등을 역임했다. [[1984년]] 공부 차관을 지낸 뒤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등을 거쳐 [[1988년]] 12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1989년]] 2월 [[헝가리]]와의 수교 합의 의정서에 서명, 북방외교의 첫 성과를 대외에 알렸다. [[1990년]] 9월 30일 유엔에서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부 장관과 '한·소 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재임 중 동구권 국가를 비롯해 18개국과 수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048101], [[한국일보]] 2015년 2월 20일, [부고]‘북방 장관’ 최호중 전 부총리 별세</ref> 1990년 12월부터 1992년 6월까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지냈다. 당시 남북은 1991년 9월에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잇단 고위급 회담을 통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이후 통일원 통일고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한국외교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후임자 = [[이옥]]
         |후임자 = [[최철 (1935년)|최철]]
  • 츠키시마 케이 . . . . 8회 일치
         * 위 항목 : [하이큐!!], [하이큐!!/등장인물], [카라스노 고교]
         '''리한 블로커'''
         月島 蛍. [[하이큐!!]]의 등장인물. 성우는 [우치야마 코우키]. [* 재미있게도 우치야마는 동분기에 방한 [[핑퐁]]의 [[츠키모토 마코토]] 성우를 맡았는데 서로 공통점이 많다. 성에 달 월月이 들어간다는 점, 안경을 쓰고 있다는 점, 표정 변화가 없고 독설가 기질을 보인다는 점, 쓸데없이 노력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는 점.] 카라스노 고교 1학년이다. 카라스노 배구부에는 없었던 장신의 선수.
         == 세 ==
         독설가에 냉소적이며 남을 비꼬는 데에 꽤나 거리낌이 없는 성격이다. 또한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경기에는 매우 냉정하게 임하고 블로킹 실력도 좋지만 리시브가 약하다.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 [[wiki:"히나타 쇼요" 히나타]]의 입부 경기 때 대팀이었다. 저 둘이 입부 경기를 위해 한창 연습하고 있을 때 나타나, 히나타를 '초등학생', 카게야마를 '제왕'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이후 [wiki:"야마구치 타다시" 야마구치]와의 대화에서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쓸데없이 열 내는 녀석들'이라 부르며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종종 카게야마를 '제왕' 혹은 '엘리트'로, 본인을 포함한 평범한 배구부 부원들을 '서민'으로 칭하곤 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연습이나 시합 중 카게야마와 자주 부딪치지만 그때마다 [[wiki:"사와무라 다이치" 사와무라]]가 --웃으면서-- 말린다.
         인터하이 3차 예선, 아오바죠사이와의 시합에서 [wiki:"스가와라 코시" 스가] 및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 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가는 카게야마와 교체되면서 카게야마에게 '츠키시마는 '''정면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 직접적으로 생각을 물어보아야 한다'는 뉘앙스의 조언을 했다. 이 조언을 들은 카게야마가 경기 중 츠키시마 본인에게 방금 토스는 어땠냐고 정면으로 물어오자 처음에는 '닥치고 이 공을 때려, 서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짜증난다고 답했다. 이후 카게야마가 무슨 뜻이냐고 되묻자, '생각을 하는 것은 너뿐만이 아니다, 내게도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으니 균일한 토스를 달라'고 --웬일로 짜증을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카게야마는 그 말을 듣고 고분고분하게 츠키시마가 본인의 생각대로 공을 칠 수 있도록 보다 유연한 토스를 올려준다. 이 토스를 활용하여 츠키시마는 수준급의 페이크를 여러 번 보여주었고, 마지막에는 대방의 허를 찌르는 스파이크로 결국 점수를 따낸다. ~~장하다 츳키~~
         중학교 때만 해도 주전으로 활동하던 아키테루는 카라스노고등학교 배구부에 입부하면서 주전에서 떨어졌다. 당시의 카라스노는 우카이 전감독과 [[히나타 쇼요]]가 동경하는 '작은 거인'이 활동하던 시기로(아키테루와 작은 거인은 아키테루쪽이 한 학년 위), 카라스노가 현내 톱의 강호였던 시절.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츠키시마는 카라스노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코트도, 벤치도 아닌 응원석에 있는 형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형의 실력을 '에이스'라고 믿고 있던 어린 아이에게는 당한 트라우마로 남았던 모양. 그 이후부터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는 마인드가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렸고, '목숨 걸 필요도 없는 일에 쓸데없이 힘을 쓰는 사람'에게 회의감과 혐오감을 갖게 된 것이다. 노력이 배신당하는 순간의 목격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셈.
  • 캡틴 아톰 . . . . 8회 일치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 애니메이션에서 슈퍼맨과 붙어서 슈퍼맨의 약점인 붉은 태양광선을 손에 두르고 최선을 다해서 싸우며 '''[[나름]]대로''' 잘 싸우나 대가...강강캐인 것은 분명한데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일이 적다.
         <[[킹덤 컴]]>에서는 마곡을 포함한 몇 명의 초인들과 함께 [[패러사이트]]를 쫓다가, 패러사이트의 공격으로 제어복이 찢겨져 폭발, 방사능으로 미국 중부지방을 살균(...)해 버린다. 그 결과로 전세계 식량부족크리...
         [[리부트]] 이후의 [[NEW 52]]부터 개인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능력 때문에 뇌가 버티지 못하고 인간성을 실해 버린다. 또한 능력이 '''엄청나게 강화'''되어 거의 전능한 능력을 보여준다. 암을 치료하고 화산 폭발을 막아내며, 탱크의 분자를 수소와 산소로 바꿔서 소멸시키는데다가 방사능을 흡수하여 소멸시킨다. ~~그냥 닥터 맨하탄~~[* 참고로 리붓 이후의 DC 유니버스에도 닥터 맨하탄같은 캐릭터가 하나 더 있다. 파란색인 맨하탄과 달리 붉은색.] 하지만 판매량이 나빠서 2012년 9월에 폐간된다. ~~결국 안습.~~ 개인 시리즈가 부활하지 않는한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지 않으면 얼굴 볼 일이 없어지는 황.
         [[그랜트 모리슨]]의 <멀티버시티> 이야기중 하나인 <팍스 아메리카나> 편에서 등장한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캐릭터만 DC 코믹스 캐릭터이고 실제로는 왓치맨이나 다름없는 작품인지라 캡틴 아톰은 문자 그대로 닥터 맨하탄.[*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캡틴 아톰은 유일한 초능력자이자 거의 신급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죽은 개를 살리는 것이 가능하며 과거에 있는 태에서 미래의 인물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저스티스]] 프리퀄 32화에선 '''놀랍게도 슈퍼맨을 두들겨 팬다!''' 캡틴 아톰이 유리한 황이었으나 [[원더우먼]]이 검으로 캡틴 아톰의 목에 흠집을 낸다. 이 때문에 캡틴 아톰은 '''또다시 폭발해야할 운명'''에 처하고(...) 슈퍼맨을 데리고 우주로 가서 자폭한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대활약을 했으니 당히 취급이 좋았던 셈.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 . . . . 8회 일치
         194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타임머신을 만들어 [[아돌프 히틀러|히틀러]]가 정권을 잡기전에 제거한다. 그러자 [[제2차 세계대전]]은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이 유럽을 침공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국을 중심으로한 연합군이 소련군을 물리치고 스탈린을 제거한 후, 러시아 왕족이었던 알렉산더 로마노프를 소련의 서기장으로 세웠다. 로마노프는 공산당원이었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처럼 보였고, 연합군에게 협조적인 인물로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북미방공사령부가 소련군의 대부대를 감지한다. 소련군 함대가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오고 있었으며 소련의 지군은 멕시코를 통해 북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에대한 보복 핵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했지만 유리가 미사일 사일로 장교를 세뇌시키며 실패한다. 그뒤 얼마 되지 않아 뉴욕, 샌프란시스코, 텍사스와 같은 미국 땅에 소련군이 륙하기 시작한다.
          플레이어의 관. 항 이쑤시개를 물고 있다.
          로마노프의 보좌관. 사이킥을 쓸 수 있다.
          소련군 장군. 연합군 캠페인에서는 강력한 대로 묘사되지만 소련군 캠페인에서는 무능한 새끼.
  • 킹덤/505화 . . . . 8회 일치
          * 특히 산민족 쪽은 2년 전 위나라의 대도시를 함락시킨 전과가 있으나, 정확히 어떤 황인지 알려지지 않아 능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 양단화는 그저 "성벽을 넘어서 성문을 열고 성 안을 도륙낸다"는 정도의 단순한 정공법만 구한다.
          * 열미군의 드높은 사기는 성벽 너머 진군 진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그들이 수시로 내지르는 함성 소리가 성벽을 뒤흔들고 [[몽념]]의 낙봉대가 있는 지역까지 들렸다. 진군의 숫자가 오히려 그들을 격동하게 하는 듯했다. 낙봉대 내부에서는 [[왕전(킹덤)|왕전]]이 정말로 [[양단화]]군과 [[비신대]]만 가지고 열미를 따낼 생각인지 의심하고 있다. 비신대야 어떻든 양단화의 산민족은 공성전에 대한 이해가 없어 보인다. 지금도 이들이 하는 준비라곤 사다리를 만드는 것 정도인데 별다른 긴장도 열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료초는 이런 점들 보다도 적들의 이할 정도로 높은 사기야 말로 장애물이라고 말한다. 이것이야 말로 적이 수성을 잘 안다는 증거이니 자신들도 작전을 잘 짜야만 한다고 말하는데, 이런 말을 듣고도 양단화는 딱히 고민하지 않는다.
          현재 이 곳에는 수많은 산민족의 일파가 집결해 있다. 그 수는 백여 부족에 이르며 수백 년에 걸쳐 싸워온 사이가 나쁜 부족들도 참가하고 있다. 그런 이들이 산민족이란 이름으로 한데 모이는게 가능한 것은 전적으로 양단화의 능력이다. 그녀는 "산계의 사왕(死王)"이란 이름으로 경외의 대이며 모든 산민족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 그녀가 있어 산민족은 하나로 뭉쳤다고 할 수 있다.
          * 그녀의 모습이 나타나자 산민족들은 "사왕"이란 칭호를 연호하며 그녀를 부른다. 단지 그녀가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 산민족들은 크게 흥분해서 지금까지 일대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열미군의 함성 소리까지 집어삼켜 버린다. 진군 진에서 이같은 함성 소리가 들려오자 열미군은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고 망루에 오른다.
          * 양단화의 연설은 단순하고 단호하지만 모든 산민족을 끝없이 고조시켰다. 그녀의 등장 전까진 헤이한 태로 사다리나 만들고 있던 그들이 갑자기 용맹하고 무자비한 전사로 각성한 것이다. 이들이 사왕을 연호하는 목소리는 적들은 물론 아군들 조차도 기가 질리게 만든다.
  • 킹덤/530화 . . . . 8회 일치
          * 기수의 본진이 고지에 있다. [[이신(킹덤)|이신]]은 [[비신대]]의 선두에 서서 말달렸다. 적은 정면의 [[마광]]군과 후방을 파고드는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에 정신이 팔려 있다. 비신대는 그 사이를 뚫고 본진을 노린다. 목표는 조장 [[기수(킹덤)|기수]]의 목. 신은 [[하료초]]에게 깃발을 내걸게 했다. 난전이라도 이만한 규모의 습격을 기수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럴 바엔 당당하게. 또다른 이유도 있었다. 비신대의 힘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 기수는 새로운 적이 전장에 나타나자 마자 보고를 받았다. 전령이 동쪽 측면에서 적의 새로운 기마대 출현을 알렸다. 숫자는 약 600에서 1천. 기수와 부장들은 최악의 황을 정했다. 이 황에서 1천의 기마 추가. 수뇌부는 낙담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건 두 번째 보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 언덕의 뒤를 오르던 낙화대는 소식이 조금 늦었다. 몽념은 비신대가 전장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듣고 몇 번이나 확인했다. 보고는 달라지지 않았다. 비신대가 마광과 낙화대 사이를 뚫고 기수에게 향하고 있다. 몽념은 왕전이 이 그림을 그리려고 비신대를 중앙군 뒤에 빼둔 것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한 일이다. 그보다 그렇게 좋은 부분만 빼먹는건 언제나 낙화대의 담당 아니었나? 몽념은 부대의 기세를 끌어올렸다. 이쪽이야 말로 비신대를 "이용해서" 기수를 칠 심산이다.
          * 고지의 정에서, 기수는 진군 전체가 전개하며 총력전으로 바뀌는 흐름을 읽었다. 기수는 직감했다.
          * 기수의 뜻모를 말은 마광군 후방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문득 이한 기운을 느낀 마광이 고개를 돌렸다.거기에 필살의 기동대가 있었다. [[이목(킹덤)|이목]]. 마광이 그 이름을 부를 틈도 없이 이목의 칼이 목을 찔렀다.
  • 타루 . . . . 8회 일치
         | 본명 = 김민
         | 웹사이트 = {{페이스북|official.taru}}
         '''타루'''(墮淚, {{본명|김민}}, [[1982년]] [[7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여성 [[가수]]이다.
         일본 팝밴드 [[스윙잉 팝시클]]이 보너스 트랙 제외 전곡을 프로듀싱했다<ref>{{뉴스 인용|제목=타루, 28일 정규 1집 ‘TARU’ 발매|url=http://www.dipts.com/news/index.html?mode=view&top_id=A&page=1&cate1_id=15&cate2_id=126&issue_id=&number=17282&text=|출판사=DIP 뉴스|저자=류진 기자|쪽=|날짜=2009-08-28|확인날짜=2009-12-11}}</ref>.
         * [[Maximilian Hecker]] 《3rd Story Of 사랑의 단 Chapter 2》- 〈Love Box〉
         * [[화]] 《[[도마뱀 (화)|도마뱀]] OST》- 〈연인〉
         * [[화]] 《[[러브픽션]] [[OST]]》- <Inside Of Me>
  • 태종학 . . . . 8회 일치
         |본관 = [[순 태씨|순]]
         * 1959년 8월 ~ 1960년 5월 제12대 경북도 [[청도군|청도군 군수]]
         * 경북도 [[군위군|군위군 군수]]
         * 1966년 5월 25일 ~ 1969년 10월 24일 제11대 [[대구광역시장|경북도 대구시장]]
         |직책 = [[대구광역시장|경북도 대구시장]]
         [[분류:1922년 태어남]][[분류:1997년 죽음]][[분류:순 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구대학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토리코/372화 . . . . 8회 일치
         * 심치 않은 조짐의 GOD
         * 그러나 양분이 필요하던 GOD에겐 식사를 제공한 격이었다.
         * GOD는 혀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자기 등에 닿을 정도로 길게 내뻗어서 직선의 모든 맹수를 깨끗히 먹어치운다.
         * GOD의 태를 보고 있던 죠아는 "설마 요리되고 있는 건가"라고 우려한다.
         * 죠아는 "버러지를 대할 시간은 없다"며 토카게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 그린패치 등장이 너무 뜬금없고 만화 의 묘사도 애매해서 코코가 포이즌돌로 그린패치를 만든 것처럼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코코는 단지 중독성이 강력한 독을 내뱉은 거고, 그 냄새를 맡고 중독된 그린패치가 이끌려 왔던 것. 자세히 보면 맹수들 사이로 날아오는 그린패치가 보인다.
          * 왠지 토리코가 싱겁게 이겨있는 태이다 싶었더니 토리코를 백채널로 끌어들이기 위한 계략이었다.
  • 토리코/377화 . . . . 8회 일치
          * 현재의 황과 토리코의 모습을 보고 도박은 성공했다고 만족한다.
          * 밤비나는 껍질을 벗어버리고 돌아와 자신이 당한 것이의 파워로 아카시아를 쳐날린다.
          * 아카시아는 신체를 휴면태로 만들고 스카이디어의 백채널에 대항하는 백채널을 쳐서 도주하려고 한다.
          * 아카시아는 최악의 황에 처하지만 "만찬엔 준비가 필요하다는 건가?"라고 호기롭게 내뱉고는 "모두 입가심에 불과"하다며 투지를 불사른다.
          * 그러나 블루 니트로 페어는 황을 심각하게 보고 당장 구하려고 달려간다.
          * 아톰은 페어를 제지하며 네오는 어차피 몇 분 안에 돌아올 거라며, 그 사이에 이놈들을 철저히 분쇄하다고 한다.
          * 그밖에 록왕이 끌고 온 맹수 중엔 왕륙어처럼 경왕에 딸린 칠수도 있다. --왕륙 어가 언제부터 칠수였죠...?--
  • 토리코/382화 . . . . 8회 일치
          * 네오를 대하는 팔왕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 아카시아는 드디어 풀코스 센터를 먹으며 풀코스를 완성한다. 젤리같은 태의 센터.
          * 센터의 효능은 극의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감각이 살아나 숨만 쉬어도 절정의 쾌감이 느껴진다.
          * 블루 니트로 페어는 네오는 지금까지 없던 최고 태지만 "완전한 생명"을 갖춘 형태는 아니라고 말한다.
          * 그리고 "숙주를 먹어서" 완전한 태로 부활할 수 있다고 하는데.
          * 그는 죠아에게 "머나먼 땅", 그들의 이향으로 출발하자고 한다.
          * 또 아카시아를 충동질한 것이 네오였다고 밝혀졌기 때문에 네오의 의지=아카시아의 의지인 황이었지만, 이번 화로는 아카시아가 오히려 네오의 의지를 이용하고 있던 걸로 볼 수 있다.
          * 센터를 먹은 직후의 태로 볼때 500년 전 아카시아는 풀코스를 다 먹는데 실패했던 걸로 보인다.
  • 트로피코 4/외교 . . . . 8회 일치
         대외원조를 해주는 국가 중 하나. 사이가 안 좋으면 트로피코를 침공해 당신을 끌어내린다.
          * 자본주의 진과 좋은 관계
         대외원조를 해주는 국가 중 하나. 사이가 안 좋으면 트로피코를 침공해 당신을 끌어내린다.
          * 공산주의 진과 좋은 관계
          * 지식인 진과 좋은 관계
          * 환경주의 진과 좋은 관계
          * 통조림 수출 가격
          * 석유 생산물 수출 가격
  • 티나 (1980년) . . . . 8회 일치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singertinamusic|티나}}<br/>{{페이스북|tina.kim.3511|티나}}<br/>{{트위터|TINAcu2nite|티나}}
         티나는 해외 팬이 많다. 그녀는 21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과 춤 접하면서 성장했었다. 2004년 한국에서 "설레임"이라는 앨범을 발매하였으나, 이와 관련하여 일절 홍보활동을 하지 않고 한달 만에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원 순위는24위에 올랐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도 꾸준한 음악활동을 하였고, 그녀의 음악적으로 묘한 매력과 놀라운 춤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에서도 러브 콜을 여러 번 제의 받았었다. 리키마틴, 켈리클락슨의 프로듀서인 Suren과 함께 2008 C U 2nite 타이틀"Catch me” 앨범을 미국에서 제작 하였고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발표했었다. C U 2nite 앨범은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이 노래 역시 활동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는 도중 티나는 EDM 전설이며 보컬 겸 그래미수 경험이 있는 유명 프로듀서 Kevin Irving에게서 오디션 제안을 받았고, 케빈은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인 Dr Dre, Beyonce, 50cent. Pink, Janet Jackson과 같은 수많은 뮤지션과 작업을 해왔었다. 케빈 프 로듀서는 티나의 재능을 보고 어 앨범을 제작 했고, 대표 곡” Come Mr. DJ”를 작업했다. 케빈은 티나에게 마돈나한테 느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가수라며 극찬하였다. 그녀는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고,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면 2014년 귀국했고 트로트 장르로 변경 2016년 7월20일 콩 앨범 발표하고 현재 활동 중이다.
         * 2013년 Come on Mr. DJ (어앨범)
         == 수 ==
         * 2018년 제26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 신인가수
         제5회 대한민국 베스트 인물 대 가수부문
  • 페어리 테일/494화 . . . . 8회 일치
          * 메이비스는 제레프를 쓰러뜨릴 방법이 있지만 "이론" 그렇다고 하는데.
          * 그 첫 번재 조건이 자신의 본체. 그리고 또다른 조건이 있는데 이론으론 가능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 더이 틱틱거리지 않을 테니 함께 놈들(페어리테일)을 처치하자고 한다.
          * 평소에도 사이가 좋지 않은 듯 한데 잉벨은 "라케이드가 소집에 안 따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다른 원인이 있을지도?
          * 잉벨이 팬덤의 예보다 훨씬 강력. 메이비스를 저항도 못하고 구속시킬 수준이다.
          * 디마리아는 브랜디쉬와 적대할 거란 예을 깨고 동병련이라도 느꼈는지 엄청 달라붙는다.
          * 하지만 스프리건 최강의 오거스트와 아이린으로 공언된 태인데, 그들도 아크놀로기아에는 미치지 못한다.
  • 페어리 테일/496화 . . . . 8회 일치
          * 살아있었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마도사였을 거라고 평하지만, 지금 태론 피라미라고 얕본다.
          * 로메오는 을 초월하는 적의 군세와 강함을 보고 겁을 먹는다.
          * 전장에 복귀한 제이콥. 이번 대는 미라젠.
          * 블러드맨과 월은 로그, 미네르바가 대한다.
          * 갓세레나의 마법은 길다트에게 줄줄이 깨지고 무방비 태가 된다.
          * 로메오도 더이 떨지 않고 함께 진격한다.
          * 히스토리아는 설정으론 원본의 힘을 그대로 사용하는게 가능한데 길다트 입장에선 그렇지도 않은 듯.
  • 페어리 테일/522화 . . . . 8회 일치
          * 의외로 제레프는 [[나츠 드래그닐]]의 주변인물에 대해서 소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레이가 제레프 자신이 만든 악마 데리오라에 의해 양친을 잃고 마침내 스승 [[울(페어리 테일)|울]]조차 잃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원한이 있다는걸 정확히 알았다. 그레이는 그런 것도 아는건 의외라고 말하는데, 제레프는 "적의 정보를 파악하는게 전쟁의 기본"이라 대답한다.
          그 뿐만 아니라 [[루시 하트필리아]]도 루시 자신이 아는 것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녀의 조이고 나츠의 심세계에서도 나타났던 "안나"라는 여인은 제레프의 친구였다. 안나가 갓난아기였던 나츠를 키우는데 일조했듯 후손인 루시도 지금의 나츠를 성장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언제나 함께하는 친구 [[해피(페어리 테일)|해피]], [[엘자 스칼렛]], [[가질 레드폭스]], [[웬디 마벨]] 등등. 제레프는 나츠와 관련된 주요 인물은 전부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 승리를 확신했던 길다트. 그러나 오거스트는 역시 쉬운 대가 아니었다. 산산조각난 채로 여유로운 말을 내뱉는 오거스트. 한때 아크놀로기아와도 싸웠던 길다트지만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나 알베로나]] 등장. 길다트는 딸을 걱정하는 건지 오지말라고 외친다. 오거스트는 둘이 부녀사이인걸 알고 기분 나쁘게 미소짓는데.
          그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양친과 스승의 죽음으로 원망할 대을 찾고 있었고, 그게 END였다.
          제레프는 그 친구를 잃는 거라며 걸어온다. 하지만 그레이는 그렇게 두지 않을 거니까 제레프를 쓰러뜨리겠다고 선언한다. 게다가 그에겐 "죽이지 않고 쓰러뜨릴 방법"도 잘 알고 있다. 어차피 여기에 온 이 그도 비장의 수 정도는 준비해온 터였다.
          제레프는 그레이 주변에 넘쳐나는 심치 않은 마력의 정체를 알고 있다. "로스트 속성". 그레이는 자신의 생명에 자신의 운명과 존재 그 자체까지 버릴 각오로 이 마법을 준비한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8회 일치
          * X777년. [[피오레 왕국]]의 왕도 크로커스. 시민들은 월식이 일어나자 불길한 징조라고 여겨 꺼려한다. 왕궁의 [[히스이 E. 피오레]] 공주는 어두운 달 옆으로 다섯 개의 유성이 지나가는 걸 목격한다. 그런데 이한 유성이다. 함께 목격한 [[아르카디오스]]는 유성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법인데, 저건 "아래에서 위로" 솓구친다고 별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공주를 데리고 국왕을 찾으러 간다. 국왕이 갑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아 찾던 참이다.
          그건 이클립스를 사용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뛰어넘은 여파로 시간이 뒤틀렸는데, 시간 자체에 이것을 바로잡으려는 "수정력"이 존재하는 듯 하다. 그것이 작동하면서 시간의 틈새와 그 안에 있는 무의 마력이 이 세에 나타났다. 시간의 틈새 속은 완전한 "무" 자체이며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아크놀로기아]]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제랄은 그녀의 계획이 "아크놀로기아를 유인해 시간의 틈새에 가둔다"는 것임을 눈치챈다. 그리고 그런 힘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것을 이하게 여긴다. 안나는 자신이 그걸 숨겨놨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웬디는 정말로 그 공간이 시간의 틈새냐는 질문을 한다. 안나는 1년 전 [[대마투연무]] 때 이클립스가 다시 열리고 그 "구멍"이 반응했었다고 대답한다.
          시간의 틈새는 귤 정도 사이즈의 구멍이다. 그래서 평소엔 볼 수가 없지만 실수로 만지기라도 하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고 한다.
          * 폭염마법과 유사한 마법이었다. 그런데 곧 소용돌이같은 형으로 바뀌면서 나츠의 몸을 얽어맨다. 마치 나츠의 몸으로 침투하는 것 같다. 나츠의 혈관이 도드라지면서 고통스러워한다. 마법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나츠를 묶어놓는다. 제레프는 누구한테 말하는 건지 모르지만 "괜찮다"고 말한다. 자신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메이비스의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갑자기 그의 입에서 이클립스의 이름이 나온다. 하지만 통적인 이클립스를 말하는게 아닌 듯하다.
          >그 누구도 처 입지 않아!
          >이 이 없을 해피앤딩이잖아!
  • 페어리 테일/535화 . . . . 8회 일치
          * 루시는 엄청나게 열이 나면서 태가 나빠지는데, 나츠를 구하기 위해 그걸 감수하기로 한다.
          * 그러나 아크놀로기아에게 마력을 흡수 당하고 손아귀에 잡히고 만자, 크리스티나호도 더이 비행하지 못하고 추락.
          * END의 서를 복구해 [[나츠 드래그닐]]을 구해낸 [[루시 하트필리아]]의 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그녀가 책을 수정한 펜으로부터 정체불명의 얼룩이 퍼져나와 마치 몸이 침식당하는 것 같다. [[그레이 풀버스터]]와 [[해피(페어리 테일)|해피]]는 갑자기 악화된 그녀의 태에 당황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윽고 루시는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수구린다. 그레이가 부축하려 손을 뻗는데 루시의 몸이 엄청나게 뜨겁다. 루시가 겨우 "무언가 뜨거운 것이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나츠의 불꽃. END로서 가지고 있는 불꽃의 힘이 그녀에게 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기 위해 분전 중인 크리스티나호. 그러나 시간의 틈새는 닫혀있었고 일시적으로 열렸지만 아크놀로기아가 그 수한 구멍을 눈치채고 말았다.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무렵, 마룡을 대로 시간벌이를 하던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에 처박기로 결심했다.
          제레프는 세에 거부당해온 자, 자신의 고통은 알지도 못한다고 분노한다.
  • 평론을 쉽게 쓰는 법 . . . . 8회 일치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서 향을 받았다고 무작정 가정하고 이야기 한다. 사실 많은 작가는 향을 받아서 썼다고 말하지 않으므로, 딱히 향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입증할 수는 없지만, 솔직히 딱히 향 안 받았다고 해도 입증하기는 어려우므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용구
         == 화 평론을 위한 용구 ==
          → "미국적인 가치관을 주입하는…", "미 제국주의적인…", "헐리우드 특유의 업적인…"
  • 하야시 선생님 . . . . 8회 일치
         하야시 키미카즈(林公一)라는 닉네임으로, 『Dr 하야시의 마음과 뇌의 담실(Dr林のこころと脳の相談室)』이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를 운하고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
         일단 이러한 이름의 정신과 의사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하야시 키미카즈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동명의 산부인과 의사는 실존이 확인) 물론 사이트의 운자가 실제 정신과 의사가 아닐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아무튼 이 사이트에서는 정신과 관련의 질문을 메일로 받아들이고, 그 질문과 답변을 게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답변이 묘하게 친절한가 하면, 너무 단견을 내리거나,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초 전개로 나아가거나 해서, 가끔 엄청 재미있는게 나타난다.
         [[http://storyis.blogspot.jp/2014/03/2ch_6362.html 설마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이 「남동생」이란, 당신의 (想像) 속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 하야시 선생님을 대표하는 문구. 너무 임팩트가 커서 다양한 꾸준글이 만들어질 정도이다.
  • 하이큐/233화 . . . . 8회 일치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다른 무엇보다 코트와 천장이 달라진 것이 플레이에 향을 줄 거라 예측한다.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전일본 유스 합숙이 시작되던 겨울 무렵부터 봄고 대비 훈련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야마가타의 니시키야마 고교는 감독이 대학 선배라는 인연 덕에 성립. 니시고가 봄고에 갔을 때도 어떤 느낌이었는지 확인해봤다. 그 결과 우카이 코치가 걱정하는 의외의 난관은 "천장"과 "바닥". [[타케다 잇테츠]] 고문과 우카이 코치는 막판까지도 너무 높아진 천장, 감촉이 다른 코트 때문에 적응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한다.
          츠바키하라 측에선 이들이 시라토리자와를 꺾고 올라왔다고 긴장하고 있는데 주장인 [[에치고 사키에]]는 "시라토리자와랑 붙는게 나았겠냐"고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렇다고 하는 선수는 없다. 에치고는 경기 내용 저들이 시라토리자와를 압도한 것도 아니며 세엔 "우연"이란 것도 존재한다고 분위기를 바꾼다. 마루야마는 좀 팔랑귀인지 그런 설명을 듣고 나자 "우시와카랑 안 붙게 돼서 럭키"라고 태세전환한다. 사실 주장인 에치고는 "이긴건 이긴 것"이니 만큼 카라스노의 실력을 얕보지 않는다. 단지 "작년의 반복"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격려한 것이다.
          오오사도 감독도 비슷하게 여기고 있다. 어차피 여기에 올라온 이 각지의 강호를 꺾고 올라온 학교들이다. 그리고 봄고에선 그런 강자들도 또다른 강자에게 쓰러지며 "이 회장에 먹히는 쪽"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 테라도마리는 190cm에 이르는 장신. 다소 흐트러진 황에서도 칠 수 있고 후위에서도 공격적이다. 우카이 코치는 사전에 "블록 위로 맞는 황을 피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첫 공격부터 블록 위로 쳐대는 테라도마리. [[니시노야 유]]가 아슬아슬하게 막아낸다. [[아즈마네 아사히]]가 타나카에게 토스를 올리지만 평소보다 길게 올라갔다. 공은 츠바키하라에게 넘어가고 반격이 스파이크를 막아내지 못한다. 츠바키하라의 연속득점. 스코어는 0대2.
          * 타케다 고문은 배구는 공간 인식 능력이 필수불가결한 경기이니만큼 긴장감과 낯선 체육관 탓에 경기감각이 크게 향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현재 선수들의 공간 인식 능력은 평소보다 현저한 듯 한데, 그건 특히 초정밀 세트를 올리는 카게야마에게 치명적일 것이다.
  • 하이큐/234화 . . . . 8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의 초정밀 토스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심한 향을 받는다. 카게야마는 [[사와무라 다이치]]에게 컨트롤을 맞출 시간이 필요하다고 요청한다. 다시 속공을 시도하지만 여전히 토스가 길다. 또다시 흘러나가는 공. 그러나 [[타나카 류노스케]]가 끼어들어 어거지로 대방 코트로 밀어넣는다. 스코어는 3대1. 모두 카게야마가 준비가 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각오다.
          * 츠바키하라는 테라도마리를 앞세워 다시 득점, 다시 점수를 벌린다. 츠바키하라의 아테마는 카라스노의 센터가 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 도발하려고 일부러 카게야마 근처에서 지시하는 척 "속공은 없다!"고 외친다. 그런데 옆에 있던 히나타가 대꾸한다.
          그를 코치한 시마다 마코토는 한 가지 요령을 전수한다. "마음이 진정되길 기다리지 말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연습을 하라"는 것. 중요한건 "리셋하는 시점"이다. 워밍업 단계에서 시선을 진정시킬 지점을 하나 정한다. 그게 표식이든 비구든 뭐든 관은 없다. 이 이야기를 할 때 리셋지점은 전봇대에 걸린 시마다 마트 봉지. 여기에 집중하는 걸 신호로 삼는 것이다.
          * 야마구치는 경기장의 비구 표지를 보며 "리셋"한다. 그리고 침착하게 조준할 곳을 찾는다.
          * 귀신 같은 핀 포인트 세트. 봄고 대회 최초의 괴짜 속공 작렬. 을 능가한 초속공의 위력에 장내가 경악. 츠바키하라는 물론 객석에서 카게야마를 비웃던 커플과 관객들까지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한다.
  • 하이큐/250화 . . . . 8회 일치
          * 절호의 속공 찬스를 어이없이 놓친 [[히나타 쇼요]]. 중계석에서는 [[카라스노 고교]]의 경기 초반을 좋지 않게 평가한다. 그런데 히나타가 답지 않게 죽을 만큼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타나카 류노스케]]는 물론 대편 [[미야 아츠무]] 조차 "너무 풀죽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코트 바깥의 [[스가와라 코시]]는 히나타가 실수했다고 저렇게까지 좌절한 적이 있던가? 의문을 표시한다.
          * 히나타를 갈군 카게야마지만 돌아서서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가 [[호시우미 코라이]] 향을 받고 "쾅" 점프를 뛰기 시작한 것은 좋은 흐름이다. 하지만 설마 점프의 최고 도달점이 갑자기 변할 줄은 몰랐다. 이대로는 이전에 맞추전 세트업으론 호흡이 안 맞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씩 웃는다. 흡족한 미소다.
          * [[이나리자키 고교]]의 서브. 서버는 [[스나 린타로]]. 아츠무와 달리 이나리자키 응원단은 시끄럽게 응원한다. 스나는 시끄러워도 향을 안 받는 타입. 1회차 서브는 우측 구석, [[사와무라 다이치]] 쪽으로 뚝 떨어지는 서브. 받기 힘든 코스지만 사와무라가 어떻게든 리시브한다. 하지만 공이 흔들리고 히나타가 살려서 그대로 타나카의 스파이크. 그러나 [[미야 오사무]]의 블록에 걸린다. 그대로 찬스볼. 응원단이 "찬스볼"을 합창하듯 입을 맞춰 외친다. 스나가 받으러 오는데 여기서 아츠무가 묘기를 부린다.
          아츠무는 퍼스트 터치와 동시에 그대로 새트업, 약속이라 한 것 처럼 [[오지로 아란]]이 총알같은 스파이크로 점수를 벌어간다. 카게야마가 블록을 뛰어 보지만 무리. 그외 카라스노의 다른 선수들은 반응하지도 못했다. 오지로는 성공해 놓고도 아츠무에게 "놀라게 한다"고 신경질을 부린다. 응원단은 선수들 이으로 기세가 오른다. 중계석은 이나리자키에 칭찬 일색.
          * 카라스노가 순식간에 밀려나는 황. 문득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우카이 케이신]] 코치가 시작 직전에 언급했던 [[하이큐/248화|최강의 도전자]]라는 별명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 스나의 2회차 서브. 스나는 의도적으로 주심이 호각을 부는 타이밍을 잰다. 그리고 호각이 떨어지는 순간에 맞춰 곧바로 서브. 카라스노 측에 서브를 예측할 여유도 주지 않을 속셈이다. 이번에도 사와무라를 노리고 오는 서브. 또다시 리시브가 흔들린다. 공은 네트 쪽으로. 살리는건 카게야마. 중계석은 카라스노 측이 "휘말린다"고 표현한다. 그 말대로 카라스노는 페이스를 잃은 황.
          >대는 "최강의 도전자"
          * 아츠무가 보여준 묘시를 그대로 갚아준 셈. 그런데 호시우미는 딱 한 번 봤을 뿐인데도 히나타의 점프를 보고 불편함을 어필한다. 히나타가 그의 점프를 표절한 걸 눈치챘기 때문일까? 그 밖의 강호교들도 방금 전 플레이에 후한 평가를 내린다. 보쿠토는 당연히 호들갑을 떠는데, 아카아시는 아츠무의 플레이 때와는 반되게 단순명쾌하게 정의한다.
  • 하이큐/258화 . . . . 8회 일치
          * 마침내 떠오른 "1 대 1에서 가장 꺼림직한 블록", [[아오바죠사이 고교]]의 [[마츠카와 잇세이]]의 블록이었다는 해답을 얻는다.
          * [[이나리자키 고교]]의 [[미야 아츠무]], [[미야 오사무]] 형제가 뺏아간 괴짜 속공.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히나타 쇼요]]를 블록에 적극 기용하는 것으로 대항해 보려 하나 아직 소득이 없다. 번번히 농락 당하는 히나타의 블록. 히나타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오사무의 볼을 저지하는데까지는 갔으나 힘에서 밀려 "밀어넣기"에 당해버린다. 그래서 더 열불이 터진다. [[야마구치 타다시]]가 옆에서 보기에도 확연할 정도. [[츠키시마 케이]]가 그 심정은 정확히 안다. "경험치"가 너무 다르다. 방금 전 밀어넣기는 그렇다쳐도 계속 1 대 1 황에서 블록이 뚫리면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다.
          * [[카라스노 고교]]의 두 번째 TO. 전황이 좋지 않다. 우카이 코치는 이나리자키의 블록이 자군이 괴짜 속공에 적응해 가는 황을 우려했다. 그 대안으로 "섞음"을 해금한다. 근데 잠깐 어리둥절해하는 히나타. 알아들은 척 하지만 츠키시마의 눈썰미를 벗어나지 못했다.
          * 두 번째 TO 이후론 공격도 풀리지 않는다. 이나리자키의 서브를 [[사와무라 다이치]]가 리시브, 그대로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세트업. 가로막힌다. 카라스노 진으로 흘러오는 공을 히나타가 캐치. 다시 살려서 [[타나카 류노스케]]에게, 하지만 좌측에서 산지마에게 리시브 당한다.
          * 스코어는 20 대 19. 1점 차를 유지했지만 안심할 황이 아니다. 두 번째 TO를 전후로 명백히 기세가 꺾였다. 이런데다 이나리자키의 사령탑은 채찍질을 그치지 않았다. 아츠무가 오사무의 플레이에 트집을 잡았다. "꾀를 부린다"는 것. 방금 전 아츠무의 눈에 걸린게 그거였다. 오사무가 "일단 미끼할게요" 식의 불성실하게 들어왔다. 오사무도 그걸 부정하진 못하고 "전력으로 뛰면 어떻게 끝까지 뛰냐"고 투덜댄다. 그러다 아츠무는 "치면 들어간다"며 일단 전력을 다하라고 질책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작은 블록"이 두렵냐는 것.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오사무. 그런데 이 논쟁은 뜻밖의 대에게 처를 준다.
          * 니시노야는 방금 전의 "꺼림직한 블록"을 일부러 한 거냐고 물었다. 히나타는 그렇다며 "엄청 꺼림직한 블록"이었다고 말한다. 이 블록의 주인공은 [[아오바죠사이 고교]]의 3학년 [[마츠카와 잇세이]]. 그 또한 어지간히 히나타를 괴롭혔던 블로커다. 마침 전철에 타고 있었는데 히나타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재채기를 한다.
  • 한규식 . . . . 8회 일치
         |문 표기 = Han Kyu-Sik
         |사진 사이즈 =
         [[2005년]] [[11월 2일]]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3:3 트레이드([[마해]], [[최덕]], [[서동욱 (야구 선수)|서동욱]] ↔ [[장문석]], [[손정]], 한규식)로 [[KIA 타이거즈]]에 이적하게 된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0019774 마해, 장문석 등과 3대3 트레이드로 LG행] - OSEN</ref>
         ===수===
         * [[1994년]] [[제48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최우수 선수
  • 한상권 (방송인) . . . . 8회 일치
         |이름 = 한
         |훈 =
         |웹사이트 =
         '''한권'''([[1970년]] [[11월 14일]] ~ )은 [[대한민국]] [[한국방송공사|KBS]]의 [[아나운서]]다.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 [[동국대학교]] 경학 학사 졸업
         == 수 ==
         * 2014년 제41회 [[한국방송대]] 아나운서
  • 한송이 (레이싱모델) . . . . 8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복여자고등학교]]
         * [[2012년]] - 서울국제사진기자재전 소니 모델
         == 수 ==
         * [[2013년]] - CJ헬로비전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종합시식 레이싱모델
  • 한승원 (만화가) . . . . 8회 일치
         | 향 받은 인물 = 김동화
         | 향 준 인물 =
         | 수 =
         | 웹 사이트 =
         | 《우정이 사랑이하》 || || 1998년 대원 단권 || 단편집, 수록작품: 〈학교가 보이는 풍경〉, 〈이런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우정이 사랑이하〉, 〈사랑해요〉, 〈느낌이 겨울인 그대〉, 〈사월의 카네이션〉
         | 《우정이 사랑이하》 || || 1998년 대원 단권 || 단편집, 수록작품: 〈학교가 보이는 풍경〉, 〈이런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우정이 사랑이하〉, 〈사랑해요〉, 〈느낌이 겨울인 그대〉, 〈사월의 카네이션〉
  • 한준희 . . . . 8회 일치
         | 경력 = 축구 웹진 사커라인 운
         | 웹사이트 =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준희는 7살이던 [[1976년]] [[차범근]]이 출전한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전을 본 것을 계기로 축구광이 되었다. 학창시절 [[할렐루야 축구단]]과 [[대우 로얄스]]의 팬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챙겨보았고, TV에서 가끔 방송해주었던 [[분데스리가]]와 [[인터콘티넨털컵 (축구)|인터콘티넨탈컵]]을 빠짐없이 시청하며 해외축구를 섭렵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 과학철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 교수를 꿈꾸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틈틈이 [[폭스 방송]]을 통해 해외 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취미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에 칼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2년]] 귀국 후 [[MBC 스포츠+|MBC ESPN]]의 축구해설가로 입문하게 된다. [[MBC 스포츠+|MBC ESPN]]에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 해설을 맡으며 화면에 비친 사람 대부분의 신정보를 읊는 신통한 정보력과 전문적인 전술 해설, 거기에 감초같은 샤우팅 중계가 더해져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각 지파 방송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충원하였는데,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외 축구를 중계하던 3인방 중 한준희는 [[KBS]]로, [[서형욱]]은 [[MBC|MBC 지파]]로, [[박문성]]은 [[SBS]]로 각각 스카웃되었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 몸담은 한준희는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유소년 축구, 대학 축구, 실업 축구, 여자 축구 등 다양한 축구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어렸을적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었다. 당시 롯데가 실업야구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K리그]] 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이기도 하다.
         * [[축구]] 웹진 [[사커라인]] 운
         * 스포츠 종합 정보 사이트 [[브이토토]] 애널리스트
         == 수 ==
  • 한현규 . . . . 8회 일치
         * 서울 출생, 뒤에 수원시 통동으로 이주하였다.
         * 2004년 2월 ~ 4월 4.15 국회의원 총선거 수원 통에 [[한나라당]] 후보자로 출마하였으나, 낙선
         == 수 경력 ==
         * 1995년 12월 25일 홍조[[근정훈장]] 수
         * [[1973년]] [[3월]] ~ [[1977년]] [[2월]] [[연세대학교]] 경학과 졸업(경학 학사)
         * [http://news.joins.com/article/322716 경기 수원통 한나라당 한현규 후보]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기도 부지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시러큐스 대학교 동문]]
  • 허만하 . . . . 8회 일치
         == 수 ==
         * 2009년 제2회 [[동리·목월문학|목월문학]]
         * 2006년 제3회 육사시문학
         * 2004년 제5회 [[청마문학]]
         * 1999년 제1회 [[박용래 문학]]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195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박용래 문학자]]
  • 홍나영 . . . . 8회 일치
         | 이름 = 홍나
         | 활동 역 = [[희극인]]
         | 학력 = 명지전문대학교 연극학과
         | 웹사이
         '''홍나'''([[1991년]] [[9월 14일]] ~)은 대한민국의 개그우먼이며 2011년 KBS 공채 26기 개그맨으로 데뷔하였다. 대표작으로는 KBS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과 〈남자가 필요없는 이유〉 등이 있다.
         **〈민토론〉
         * 웹드라마 《신입사원 홍나
  • 홍세완 . . . . 8회 일치
         |문 표기 = Hong Seoi-Wan
         |사진 사이즈 =
         [[장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해태 타이거즈]]의 2차 11라운드 지명을 받은 뒤 [[성균관대학교]] 체육학과(1996학번)에 입학했고, 졸업 후 2000년에 입단하였다. 2001년부터 팀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다. 2003년에는 유격수로서 [[KBO (야구)|KBO]]에는 유례가 없는 100타점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잦은 부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가 2010년에 32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하였다.
         == 수 경력 ==
         == 부 경력 ==
         * [[2006년]] 오른쪽 무릎 부
         * [[2006년]] 오른쪽 어깨 부
         * [[2007년]] 왼쪽 무릎 부
  • 홍승목 . . . . 8회 일치
         [[대동학회]] 부회장을 맡았다가 회장 [[신기선 (1851년)|신기선]]이 사망하자 회장직을 물려받았고, 대동학회 후신인 [[공자교회]]의 부회장도 역임했다. [[1908년]]에는 [[민원식]]이 주도한 [[제국실업회]]의 회장을 맡았는데, 이 단체 역시 일본인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친일 성향의 보부 등을 끌어모아 합방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을 벌인 친일 단체였다. 이 무렵 [[윤덕]], [[민기 (1858년)|민기]]가 [[박제순]]을 회장으로 내세워 조직한 [[관진방회]]에 가담했고, [[1909년]] 이완용이 [[일진회]]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민연설회]] 기초위원도 지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으며, [[2006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일제 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아들은 경술국치 때 자결한 [[홍범식]]이며, 손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수을 지낸 소설가 [[홍명희]]이다.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
  • 홍윤기 (1933년) . . . . 8회 일치
         '''홍윤기'''(洪潤基, [[1933년]] [[9월 27일]]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서울 출생의 [[한국외국어대학교|한국외국어대]] 어과를 졸업하고 일본 센슈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호는 구암(龜岩)이다.
         ==수 경력과 저서들==
         『내가 처음 너에게 던진 것은』은 제 24회 한국문학 시부문을 수하였다. 『수수한 꽃이여』 등 다수의 시집과 『한국현대시 해설』 『시창작법』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등 다수의 저서를 발간하였다. 자연이나 일세계의 초점을 잘 포착하여 빈틈없는 구성으로 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활발한 시 창작과 아울러 현대시의 대중적 보급을 위해 힘썼는데, 시 해설집 『한국현대시 이해와 감』(1987) 및 『시 창작법』(1993) 등은 그 결실이다.
         * [[강중]]
  • 홍지호 . . . . 8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www.hjhdent.co.kr/ 홍지호 치과 홈페이지]
         옛 교제녀와 1999년 동거하였다가 2001년에 결별한 전력이 있는 그는 이후 2005년 2월 배우 [[이윤성 (배우)|이윤성]]과 결혼하였다. 그의 첫째형 [[홍명호 (1939년)|홍명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가정의학과 의사이며 둘째형인 홍성호 원장은 성형외과 의사이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겸임교수 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를 지낸 경력이 있[[문화방송|MBC]]《[[타임머신 (MBC)|신]]》 [[한국방송공사|KBS]] 《야! 한밤에》, 《[[스펀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스펀지]] [[서울방송|SBS]] 프로그램 《[[솔로몬의 선택]]결혼 을 제
         * 형: 홍성호<ref>홍성호(洪聖鎬) 의학박사의 [[본관|본관(관향)]]은 [[남양 홍씨|남양(南陽)]]이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학위를 거쳐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의과대학원]]을 의학석사·의학박사 학위하였고 한때 [[화 배우|화여배우]] [[이미숙]]과 결혼하였다가 이혼하였으며 이후 전진숙이라는 일반 여성과 재혼한 그는 한때 [[연세대학교|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 교수|겸임교수]] 겸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대학 교수|전임강사]]를 역임 이후 현재 경기도 용인 홍성호 성형외과 원장을 지내고 있다.</ref> (洪聖鎬, 1947년 ~ ) - [[성형외과]] [[의사]] 및 의학박사
         * 《홍지호 원장의 치아관리만 잘해도 인이 바뀐다》 (팜파스, 2007년)
         * [[김삼 (희극인)|김삼]]
  • 홍효의 . . . . 8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학력 || 포항초-포항중-[[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야구부|구미전자공고]]-강릉동대 ||
         신장 190cm인 장신의 사이드암 투수로 고교 시절 [[우동균]]과 더불어 2008년 1차지명자로 꼽혔지만, 오른쪽 엄지발가락 골절으로 1차지명은 커녕 2차지명 때도 지명받지 못했다. 게다가 대학에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2년제 대학인 강릉동대로 진학, 대학 시절에는 부 때문에 타자(우익수/지명타자)로 나섰다.
         대학 졸업 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009 시즌 마무리훈련에도 참가해 [[선동열]] 감독이 칭찬했었지만, 막 본 시즌에 들어가보니… 21경기 등판해 47⅓이닝 1승 3패 '''72사사구''' 38실점 평균자책 6.08을 기록했다.
         다량의 사사구를 허용한 것은 투구 밸런스 실종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시즌 전 인터뷰에서 본인이 고3 때 발가락부 이후로 투구 밸런스를 잃었다고 얘기했었다. 어쨌든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가 결정되었다.
  • 화표 . . . . 8회 일치
         [[중국]]의 건축물. [[황제]]를 징하는 [[기둥]] 모양의 징물이다.
         [[궁전]]이나 [[능묘]] 같이 황제를 징하는 건축물 앞에 세워졌다.
         [[명나라]] [[락제]] 시기에 세워졌다. 한백옥(漢白玉,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 9.57미터, 직경 98cm, 무게 20여톤에 달하는 거대한 기둥이다.
         화표의 최단 쯤에는 구름을 새겨넣은 운판(雲板)이 횡으로 설치되어 있고, 맨 꼭대기에는 쟁반같은 원형 석판이 있는데 이를 승로반(承露盤)이라고 한다. 승로반은 본래 [[신선]] 사의 도구로서, [[이슬]]을 받아서 마시고 장생불사를 기원하는 도가 양생법에 쓰이는 도구이다.[* [[한무제]], 위명제 조예 등이 승로반을 설치하여 이슬을 받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천안문 화표에는 승로반 위에 '후'라는 작은 동물[* [[용생구자]]의 하나이다.]이 올라타고 있다.
         화표가 황제를 징하는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렇게 화려하고 거대한 화표를 세우는 것은 보시라이의 정치적 야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2012년 6월, 다롄 화표를 디자인한 다롄시의 건설 관계자는 일본의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를 하며, 보시라이가 '''"나는 장래 천자가 될 사람이기 때문에 가장 높은 화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 中, 보시라이 ‘징물’ 밤새 철거..장쩌민 세력 경고? (대기원시보)
  • 황가히 . . . . 8회 일치
         | 웹사이트 =
         황가히는 [[2009년]] [[중앙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했으며, 연극 및 화에서 활동하는 배우이며, 또한[[레이싱 모델]]과 활동하고 있다. 2005년 데뷔하여 모터쇼, 레이싱경기, 방송,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바 있다. 황가히라는 이름은 한글의 첫글자인 "가"와 마지막 글자인 "히"를 따서 할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이름이다.
         * [[2011년]] 하이모터쇼 넥센타이어 모델
         * [[LG텔레콤]] 홍보
         * [[국순당]] [[백세주]] CF 촬
         * [[해태제과]] 자유시간 CF 촬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7회 일치
          * 니카이도는 대진표 [[소야 토지]]와 붙을 가능성이 있어 흥분하며 엄청난 자신을 보인다.
          * 한편 [[하야시다 타카시]] 추태를 부린 일로 진로담하러 온 [[노구치 에이사쿠]]에게 한탄을 해댄다.
          * 니카이도는 뭘 모른다는 식으로 대진표를 일일히 짚어주며 설명한다. 그 내용 으론 니카이도와 [[소야 토지]] 명인이 한 조로 편성, 니카이도가 1승만 거두면 2회전에서 대전한다. 이거야 말로 니카이도가 꿈꾸던 대결. 니카이도는 자기가 키리야마보다 먼저 소야 명인과 공식전을 치르게 됐다고 으스댄다. 키리야마는 공식전은 자기가 먼저 했다고 항변하지만 니카이도가 그건 기념 대국일 뿐이지 공식전도 뭣도 아니라고 반박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그러자 그때까지 떠들썩하게 흥분하던 니카이도가 기세를 잃는다. 민망했는지 너무 흥분했다고 사과하며 "경험은 대가 안 되니 마음만이라도 주눅들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았다"고 털어놓는다.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키리야마가 미안해진다. 니카이도는 정말로 소야 명인과 싸울지 모른다는데 설레고 흥분돼서 주체를 못하고 있다.
          니카이도가 정말로 한 번만 이기면 소야 명인과 불 수 있는 거냐고, 꿈을 꾸는게 아니냐는 투로 묻는다. 항 기운차던 니카이도가 이렇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키리야마는 오히려 자신이 부끄럽고 니카이도가 눈부시게 보인다.
          정곡을 찔리자 아무 말도 못하는 하야시다. 노구치는 느긋하게 피자나 먹자고 한다. 하야시다는 결국 노구치에게 어째야겠냐고 묻지만, 노구치가 해결해줄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날 노구치는 진로담하러 왔던 건데 하야시다의 푸념을 들어주느라 아무 것도 담하지 못했다. 또다시 제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하야시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7회 일치
         위항목: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역사 두번째로 치룬 승강 플레이오프이며,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최종승자가 승격 도전권을 가진 최초의 대회였다.
         두 팀은 광주의 강등 이후 2시즌동안이나 서로 만나지 못했으나 대전적을 생각해보면 2011시즌부터 2012시즌까지 4경기 모두 경남이 승리했었다. 이런 측면에서 광주가 불리하다고 볼 수 있었으나 경남은 당시 2연패로 리그를 마쳤던 반면, 광주는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2014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에서 2연승을 달리고 있었기에 분위기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실제 경기 양도 광주가 동점골을 먹고 전반을 종료했음에도 분위기를 쇄신하여 연달아 2골을 넣으면서 플레이오프 3연승이라는 분위기를 탐과 동시에 2골차라는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창원축구센터 원정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 득점선수 || 송수(65) || || 김호남(70) ||
         경남은 지난 원정에서 원정에서 한골을 넣긴 했지만 2골차 패배를 했기 때문에 최소한 2:0 이으로 승리해야지만 잔류를 할 수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도 아깝게 골을 놓쳤던 송수이 65분경에 골을 터뜨리면서 1골만 따라가면 바로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었으나, 실점이후 5분만에 김호남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잔류의 꿈이 멀어지게 되었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 . . . 7회 일치
         = 대회운 =
         챌린지 플레이오프는 정규 라운드가 끝난 이후 챌린지 2위~4위팀에게 참가기회가 부여된다. 세하게 나눠보면 3위와 4위의 대결은 챌린지 준플레이오프라 칭하고, 챌린지 준플레이오프의 승자와 2위팀의 대결은 챌린지 플레이오프라 부른다.
         단, 개인기록과 팀 기록을 통해 시할 때는 과거 [[K리그 챔피언십]]과 마찬가지로 '''공식기록으로는 인정하나 정규라운드 시과는 별개'''로 본다.
         2015시즌도 리그 3위였던 [[수원 FC]]가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되어 2016시즌에 클래식에 안착하는 등, 2위팀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하는 안습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2015시즌 2위였던 대구는 마지막 한 경기를 놓치면서 무에게 1위자리를 놓치며 2위로 내려왔는데 대구는 수원에게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자동승격권을 놓친것과 더불어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자격마저 놓치는 등 2위 징크스를 K리그 팬들에게 널리 알리는 안타까운 사례로 남게 되었다.
         = 대회세 =
  • Victoria II/상품 . . . . 7회 일치
         attachment:품.png
         [[Victoria II]]에 등장하는 품들을 소개하는 문서.
         특정 프로빈스의 RGO[* Resource gathering operation. 지역 특산물 정도로 이해하면 편하다.]에서 생성되며, 다른 품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품들. 농부와 노동자 POP가 생산한다. 자국에서 나지 않는 원자재의 대부분은 수입하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식민지|원자재가 나는 곳을 토로 만들던가.]]
         원자재를 이용해 만들어지지만 자기들 역시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품들. 장인들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기능공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차를 생산하는 국가들은 풍년으로 발생한 차들을 처리하는 "우리 나라의 모든 차"[* 해당 이벤트 이름은 어 표현인 All the Tea in China에서 따왔다. 매우 값진것을 의미하는 표현. 보통 "중국의 모든 차를 다 준다고 해도 거부하겠다," 같은 식으로 쓰인다.] 이벤트가 발생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차를 비축할 것인지, 해당 프로빈스의 빈민들에게 나눠줘 투쟁성과 의식도를 감소시킬 것인지, 해당 프로빈스의 자본가들에게 나눠줘 소지 자금에 보태게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 강예솔(배우) . . . . 7회 일치
         ||<:><#00324e>'''{{{#white 출생}}}'''||<#ffffff>[[1983년]] [[4월 30일]], [[경북도]] [[구미시]] 형곡동 (형곡로10길) ||
         ||<rowbgcolor=#fb5a1e> {{{#white '''방 연도'''}}} || {{{#white '''방송사'''}}} || {{{#white '''제목'''}}} || {{{#white '''배역'''}}} || {{{#white '''비고'''}}} ||
         || SBS || [[당신이 잠든 사이]] || 오신혜 || 주연 ||
         || 채널A || [[총각네 야채가게(드라마)|총각네 야채가게]] || 강서 || ||
         || 2013 || KBS ||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 동화처럼 || 한서 || 주연 ||
         || 2015 || SBS || [[심야식당(SBS)|심야식당]] || 미 || 특별출연 ||
         === 화 ===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2화 . . . . 7회 일치
          * 우마루는 오빠의 사에게 혼신의 접대를 한다.
          * 망을 폭발시키는 카나우
          * 사실 오빠의 사가 온다고 들은 우마루는 "접대"를 해서 오빠의 사내 지위가 올라가는데 일조하려는 속셈이다.
          * 타이헤이와 일 이야기를 하면서 사가 된 이후엔 일 얘기만 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카나우.
          * 확실히 저 황에서 콜라 원샷은 묘기에 가깝다.
          * 카나우와 우마루 조합은 처음. 일단 성은 괜찮은 것 같다.
  • 경빈 박씨 (중종) . . . . 7회 일치
         본관은 밀양. 중종반정을 주도한 [[정국공신]] [[박원종]]의 수양딸로, 친아버지는 [[경도]] [[주시|주]] 지방의 사족 출신인 박수림(朴秀林)이다. [[조선 연산군|연산군]] 재위 시절에 [[흥청]]으로 선발되어 궁에서 지내다가 진성대군(훗날의 중종)의 눈에 들었고, [[중종반정]] 이후 박원종의 수양딸이 되어 왕으로 즉위한 중종의 정식 후궁이 되었다.
         1527년 동궁전 후원에 불에 태워 마치 돼지와 같은 형을 하게 된 쥐와 방서를 매달아 세자를 저주한, 이른바 '작서(灼鼠)의 변(變)'에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는 경빈이 세자를 밀어내고 복성군을 저위(儲位)에 앉히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경빈 자신과 아들인 복성군은 서인(庶人)으로 강등당한 채 고향인 주로 유배되었으며 경빈의 아버지 박수림 및 박인형(朴仁亨), 박인정(朴仁貞) 또한 파직되었다. 계속해서 복귀의 날만을 소망하였으나 결국 1533년 '목패의 변' 혹은 '가작인두의 변' 이라고 하는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며 사약을 받고 사망했다.<ref>《조선왕조실록》 중종 74권, 28년 1533년 6월 15일 (음력 5월 23일) 2번째기사</ref> 아들 복성군 역시 사사되었으며, 두 옹주도 옹주 작호를 박탈당해 폐서인되었고 맏사위 당천위 김인경은 유배되었다.<ref>《조선왕조실록》 중종 74권, 28년(1533년) 5월 26일 5번째 기사</ref> 이후, 작서의 변괴와 목패의 변이 [[김안로]]와, 그 아들이며 중종의 장녀 [[효혜공주]]의 남편인 연성위(延城尉) [[김희 (조선)|김희]]가 한 짓이 밝혀지며 복권되었다.
         [[분류:생년 미]][[분류:1533년 죽음]][[분류:조선의 후궁]][[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운현궁]][[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기묘사화 관련자]][[분류:사사된 사람]][[분류:밀양 박씨]][[분류:조선 중종]]
  • 권영준 (1952년) . . . . 7회 일치
         '''권준'''([[1952년]] [[5월 15일]]~ ,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경학자인 대학교수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소장과 한국재무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대학원 경학 박사
         * [[한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학과 부교수
         * [[경희대학교]] 국제경학부 교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과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길은혜 . . . . 7회 일치
         {{화인 정보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 신음동
         | 수 =
         | 웹사이트 = http://jump-ent.com//bbs/list.php?bbs_id=star_gileunhye
         * [[2014년]] [[MBC]] 주말드라마 《[[장미빛 연인들]]》 ... 서주
         === 화 ===
         * [[2011년]] 《[[마마 (2011년 화)|마마]]》 ... 응급실 간호사 2 역
  • 김민교 (가수) . . . . 7회 일치
         김민교는 [[1989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록 음악]] [[음악 그룹|밴드]] "옥슨(Oxen)"의 보컬리스트로 참가하여 《청개구리》라는 곡으로 금하여 첫 데뷔하였다.
         == 수 ==
         * 1994년 KBS 10대 가수
         * 1994년 MBC 7대 가수
         * 1989년 MBC 강변가요제 금
         ! 수 내역 (총 5회)
  • 김선궁 . . . . 7회 일치
         > 半是簪纓半刀筆 반은 잠(簪纓)[* 벼슬하는 사람.]이요, 반은 도필리(刀筆吏)[* 아전을 가리키는 단어.]였으니,
         생몰년 미.
         [[고려]] 초기의 호족으로써 선산(善山) 김씨(일선[* 선산의 다른 이름이 일선이다. 선산군은 지금의 [[경북도]] [[구미시]] 선산면.] 김씨)의 시조다.
         김선궁의 신도비에는 그가 신라 [[김알지]]의 28세 손이고 [[문성왕]]의 7세 손이라고 했는데, 15살 때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그의 아버지 체의(體誼)가 고을의 어떤 사람에게 당해 처를 입고 분해서 드러누워 있다가 아들이 들어오자 "아비가 남에게 수치를 당하면 자식이 가만 있을 수 있겠느냐"며 자신이 고을 관리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아들에게 말했고, 김선궁은 당장 아버지에게 모욕을 주었다는 그 고을 사람에게 찾아가 자신의 이름을 밝힌 다음 그 사람의 목을 베고 관에 [[자수]]했는데 관에서는 처음에 선궁을 옥에 가두었다가 선궁의 사연을 알고 효자라며 칭찬하고 방면했다는 일화가 실려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선궁에게 봉술(奉術)과 봉문(奉文)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 봉술은 김선궁의 문하시중 직책을 이어받았다고 하며, 둘째 아들 봉문은 삼사우윤(三司右尹)으로 선산에서 아버지 뒤를 이어 아전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집안이 번창해 선산부의 사족(士族) 및 이족(吏族)은 다 선궁의 후손들이었다고 한다. 일선 김씨로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였던 [[김종직]]은 일선 김씨의 시조 김선궁이라는 인물에 대해 "선산 고을 안의 김씨 성 가진 사람은 모두 선궁의 후손이라고 한다"고 하면서도 김선궁이 정말로 실제 자신의 조인지는 계보가 너무 멀어서 남은 기록이 별로 없어 고할 방법이 없다며 같은 일선 김씨로써 고려 때의 호장이었다는 흥술을 자신의 비조(鼻祖), 즉 자신과의 혈연을 문헌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조으로써 족보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이존록(彝尊錄)》으로 김선궁을 언급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존록》의 현존하는 판본이 [[연산군]] 3년([[1497년]]) 김종직의 조카이자 제자였던 강백진(康伯珍)의 간행본과 [[1528년]] 박승임(朴承任)의 간행본이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완성된 것은 [[1530년]].]
  • 김운용 . . . . 7회 일치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김운용은 연희전문대(현재의 [[연세대학교]]) 학생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고, 미국 보병학교로 세 차례 군사유학을 다녀오며 익힌 어 실력을 인정받아 1군사령관 [[송요찬]]의 부관으로 일했다. [[4·19 혁명]] 당시 계엄사령관인 송요찬의 부관으로 근무하였으며, 경찰의 실탄 요청을 송요찬이 거부하였다고 증언하였다.<ref>이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3473.html “4·19때 경찰이 계엄사령관에 총탄 10만발 빌려달라 요청”], 한겨레신문</ref>
         [[1971년]]부터 [[1991년]]까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 태권도 연맹]]을 역임했다. [[태권도]]의 세계화를 추진했으며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6년]]부터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2년]]에는 부위원장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2001년 IOC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05년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에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2017년 10월 3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 [[연세대학교 의료원|세브란스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세을 떠났다.<ref name="yonhapnews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배진남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한국스포츠 거목'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오전 타계(종합3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204/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news1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정명의 | 위치=서울 | 뉴스=뉴스1 | 제목=거목이 쓰러지다…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걸어온 길 | url=http://news1.kr/articles/?3116999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158/http://news1.kr/articles/?3116999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
         * 1963년 ~ 1968년 : [[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표부 참사관, [[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참사관을 역임함.
         * 1990년 2월 : [[서울평화]]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됨.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메리빌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수감자]][[분류:IOC 위원]][[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동덕여자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한성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교수]][[분류:서일대학교 교수]][[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국민대학교 교수]][[분류:태권도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스포츠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김유현 . . . . 7회 일치
         {{화인 정보
         |학력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연극화과
         |수 =
         |웹사이트 =
         '''김유현'''([[1987년]] [[11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배우 김유현은 2015년 6월 7일 대구에서 9살연 일반인 사업가(건설회사 부사장)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당분간은 신혼생활에 충실할 예정이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507050100050700003393&servicedate=20150704 김유현 결혼, 9살 연 건설회사 부사장과…'전우치' 등서 청순연기]]</ref>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연극화과
  • 김종호(1933) . . . . 7회 일치
         || 15대 [[최화]] || → || 16대 김종호 || → || 17대 [[김종호(1936)|김종호]] ||
         [[1933년]] [[경북도]] 선산(현 [[구미시]]) 출신이다.
         1952년에 [[해군사관학교]] 10기로 입학해 1956년 임관했다. 목성함장과 부산함장을 지냈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함대사령관을 지냈다. 해당 한국함대는 뒤에 명칭이 바뀌어 [[해군작전사령부]]가 되었다.[* 해작사의 어 표기도 Naval Operation Command가 아닌 Korea Fleet Command이다. 일본의 경우 작전사령부에 해당하는 함대가 [[자위함대]]로 [[함대]]급 부대인 [[잠수함대]], [[호위함대]], [[항공집단]]의 위기관이다.] 1986년 2월 1일에 한국함대가 해군작전사령부가 되자 초대 작전사령관을 지냈다.
         게다가 둘 다 '자'와 결혼했다. 16대 총장 김종호 제독의 부인은 김자, 17대 총장 김종호 제독의 부인은 신자.
  • 김준 (배우) . . . . 7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트위터|kj0203|김준}}
         *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부 (편입)
         === 화 ===
         * 2014년 《[[루팡 3세 (화)|루팡 3세]]》 피에르 역 (일본 화)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호루라기 연극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
  • 김준희 (1960년) . . . . 7회 일치
         |문 표기 = Kim Jun-Hui
         |사진 사이즈 =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 [[남대학교]]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
  • 김지훈(1993) . . . . 7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울산공고]] 역사 처음으로 드래프트 지명을 받은 선수로서, 178cm에 75kg의 투수로서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최고 구속 148km, 평균 구속 140km 중반대의 공을 던지면서 위 지명이 예되었으나 예 외로 3라운드까지 밀렸다. 투타 양면에 재능을 보여 2011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대표팀에는 내야수로 선발됐다.
         2012 시즌에는 부이 있었는지 2군 경기에도 등판하지 않았고, 2013년 [[육성선수|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 9월이 되어서야 2군 경기에 나오기 시작해, 계투로 3경기를 등판했다. 2013 시즌 후 군 복무가 결정되었다. 원래 2016년 초에 전역하면서 선수단에 합류해야 했지만, 군 복무 동안 큰 부이라도 당했는지 전역 후 선수단 명단에서 제외됐다.
  • 김형기 (법조인) . . . . 7회 일치
         |웹사이트 =
         [[전두환 정부]]의 간첩 조작 사건으로 밝혀진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재재 고심에서 주심 대법원 판사를 맡은 이유로<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93342.html]</ref>를 맡은 이유로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가 2016년 11월 13일에 발표한 반헌법 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었다.<ref>[http://moneys.mt.co.kr/news/mwView.php?type=1&no=2016071408268072968&outlink=1]</ref>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규명위원회 조사 결과에 의하면 "김형기는 대법원 판사로 임명된 직후인 1984년 8월3일에 [[서울고등법원]] 재파기 환송심 재판이 끝나기 전인데도 [[안기부]] 간부에게서 송씨 일가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ref>[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005000/2007/11/021005000200711010683054.html]</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7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2년 9월 27일에 필화사건으로 기소된 동아일보 의정부 주재기자 장봉진에게 공갈죄를 적용해 징역9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하면서 [[반공법]]위반에 대해서는 "송고 시간이 급박했고 오보된 기사의 정정을 위해 노력한 점으로 보아 이적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9월 27일자</ref> 10월 4일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위반으로 기소된 화배우 [[박노식]]에 대해 "실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연예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반공극에 공헌한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10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2년 10월 4일자</ref> 12월 21일에 북한에서 의약업자를 하다가 귀순하여 국가보건원 직원들에게 국가시험 정답지를 20만원~100만원을 주고 빼낸 피고인 20명 중에서 1명만 무죄를 선고하고 징역1년~벌금5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2년 12월 21일자</ref> 1973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선거구 공화당 후보에게 사전 투표를 하여 구속된 피고인에게 징역1년6월~10월을 각각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5월 16일자</ref> 7월 24일에 일본에서 지내던 중에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2차례 평양에서 밀봉교육을 받고 합작투자로 위장하여 국내 경제계, 군부 등에 침투하려 했던 재일교포 사와모도 산지(한국명 한삼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나 피고인이 일본에 귀화했고 인생의 황혼기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한 점 등을 참작했다"며 [[국가보안법]], [[반공법]], 간첩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7월 24일자</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72400209207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7-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5941&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3년 7월 24일자]</ref>
         *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1월 19일에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때 선거 거부를 주장하다 기소된 전 서울대 학생 등 9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1월 19일자</ref> 2월 9일에 통혁당 재건과 정부 전복을 기도한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15년 자격정지15년을 선고받은 [[지정관]]에게 징역7년 자격정지7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박현채]]와 [[양정규]]에게 각각 징역2년 자격정지2년 집행유예3년과 징역2년6월 자격정지2년6월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2월 9일자</ref> 2월 22일에 '옛 석굴암'이라는 호로 공예품 판매업을 하면서 문공부 장관의 허가없이 자신의 소장품인 유형문화재 청자 등 이조 자기류 10점을 점포에 진열하거나 매매 목적으로 진열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2월 22일자</ref>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1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1년 2월 4일에 문공부 종무과장으로 있으면서 해외여행의 편의, 불교계 분규 수습에 있어 선처 등을 조건으로 불교계 관계자로부터 200여만원을 받아 구속된 한수에게 [[특가법]] 뇌물죄를 적용해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 추징금 217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1년 2월 5일자</ref> 4월 11일에 1965년 8월 남파된 삼촌에게 포섭되어 입북하여 노동당에 입당하고 남파돼종로구청 세무과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국가기밀 수집 등으로 간첩활동을 했던 정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1년 4월 11일자</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7회 일치
          * 히어로 위원회는 올마이트의 대체제를 찾기 보단 그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집단 히어로 체제"를 구하고 있다.
          * 웅에 입학하던 시기엔 토도로키 쇼토를 알아보고 그에게 말을 거는데 마찬가지로 그를 방해라고 무시한다.
          * 구호소 바로 근처에 빌런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수험생들 사이에 퍼진다.
          * 적당히 할 생각이라곤 1g도 없는 갱 오르카. 그의 개성은 "범고래"로 범고래의 특성을 지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 그런데 막 두 사람은 감정의 앙금 때문인지 서로 견제할 뿐 협력하려 들지 않는다.
          * 요아라시의 바람은 토도로키의 불꽃의 향으로 제대로 제어되지 않고 토도로키의 불꽃도 바람에 날려 엇나가고 마는 것이다.
          * 세월이 흘러 그가 웅고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우연히 토도로키 쇼토를 보게 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2화 . . . . 7회 일치
          * 올 포 원은 시무라 나나를 일커러 "이만 앞설 뿐 실력이 되지 않았던 여자"라고 모욕한다.
          * 공엔 방송국의 헬기가 있는데, 아슬아슬하게 히어로폼이 덜 풀린 쪽만 카메라에 담긴다.
          * 그러나 프로 히어로들과 웅고 관계자들은 경악하며 보도를 주시하고 있다.
          * 약해진 태에서 정면으로 공격 받은 올마이트는 히어로폼이 완전히 풀려 버리고 이 모습이 전국의 시청자에게 공개돼 버린다.
          * 시민들은 그 빼빼마른 몰골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올 포 원은 "정의의 징"의 실이 발각됐다며 즐거워한다.
          * 그러나 올마이트는 이런 일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며 설사 어떤 일이 있어도 "나의 마음은 평화의 징. 눈꼽만큼이라도 뺏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 니세코이/216화 . . . . 7회 일치
         [[니세코이]] 216화. '''진'''
          * 치토게는 "자프셰"라는 폴란드 어에 "인 러브"라는 어가 붙어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 사실 그건 번역의 실수였는데, 처음 그림책을 구할 때 폴란드의 "사랑의 다리"라는 연인들의 명소를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폴란드어를 못했기 때문에 컴퓨터 번역기로 "사랑을 원히"라는 말을 폴란드어로 변환했는데, 그 결과 나온게 "자프셰 인 러브"
          * 즉 단순한 번역의 오류였다.
          * 사실 이치죠 어머니도 당한 기인. 중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에게 모든 집안일을 다 맡기다니--아참 야쿠자 마누라였지. 어쩐지--
  • 니세코이/228화 . . . . 7회 일치
          * 그리고 계속되는 일
          * 마리카도 무사히 치료를 재개하고 모두가 일으로 돌아간다.
          * 남은 네 사람의 일은 빠르게 흘러간다.
         '''당히 좋지 않다'''
         탈락한 히로인들의 사후관리가 좋지 않았고 특히 마리카 팬들은 두 번 세 번 대못질을 당하고 오노데라도 만만치 않은 황. 전반적으로 혹평이 줄을 잇고 있다. 완결이 1화 남은 황에서 이 모양이라면...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7회 일치
          * 냉혈동물(Cold-Blooded) : 변온동물(endotherms)이라고도 한다. 내부에서 열을 발생시키는 기능이 없고, 대신 주변 환경에서 열을 얻는다. [[파충류]], [[양서류]], [[어류]], [[곤충]] 등이 있다. 냉혈동물은 의미를 곧바로 연결하면 '차가운 피를 가진 동물'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체온에 변동이 있으므로 몇몇 동물은 인간 이으로 체온이 치솟기도 한다.
          * 중온동물(mesothermic) : 항온동물과 변온동물의 중간. 주변 환경에 따라 체온이 달라지지만, 체내에서 열을 생성하는 기능 또한 갖추고 있다. [[공룡]]이 [http://jjy0501.blogspot.kr/2014/06/Is-Dinosaur-a-mesotherms.html 중온동물이었다]는 학설이 있다. 현존하는 동물 가운데서는 가시두더쥐, 백아리 등이 이로 분류된다.
         온혈동물은 열을 발생하는 능력 덕분에 거의 언제나 활성 태에 있으며, 야간에도 활동이 가능하다. 체온이 낮은 시간이라는 약점을 가지지 않는다.
         냉혈동물은 주변의 온도에 따라서 활성 태가 달라진다. 체온이 낮아진 시간대(주로 밤)에는 활동이 크게 둔해지며, 사냥을 하거나 포식자를 피하기 전에는 체온을 먼저 올려야 한다. 체온이 낮은 태에서는 활동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냉혈동물은 아주 위험해진다.--저 녀석을 잡아. 체온을 낮췄으니 오래가지 못할 거야-- --체온이 없어서.... 힘이 빠진다.--
         또한 몸은 일정한 크기 이이 되어야 한다. 너무 작은 온혈동물은 열을 생성하는 것보다 열을 더 빨리 잃게 되기 때문이다. 작은 온혈동물은 큰 온혈동물보다 더 자주 식사를 섭취해야 한다.
         냉혈동물은 체온 유지에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양의 음식으로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다. 이는 온혈동물보다 훨씬 적은 음식만 먹고도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며,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극한 황에서 생존성이 높아진다. 냉혈동물들은 음식이 부족한 경우, 가능한한 신체 온도를 낮게 유지하려 한다.
  • 라데츠 . . . . 7회 일치
         해당 시점에서 강하기는 하지만, 당히 얼빠진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오공과 베지터가 기를 모아서 전투력을 증폭시키자 매우 놀라서 당황하며, 분노한 손오반이 예외의 파워를 보이는 걸 목격하고도 굉장히 당황한다.
         손오공에게 [[사이어인]]이라는 진실을 알려준다. 손오공은 어린 시절 머리를 부딪치고 기억을 잃어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라데츠의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라데츠는 손오공에게 동료로 들어오라고 강요하며, 손오공이 거부하자 손오반을 납치해간 다음 지구인을 죽여서 쌓아놓으라고 요구하고 떠난다. 하지만 오공은 라데츠의 사악한 모습을 보고 거부감을 느껴 받아들이지 않는다.
         플롯의 개념에서 당히 비중이 큰 캐릭터인데, Z의 도입부에서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충격 효과를 줄 뿐더라, 작품의 무대를 우주로 넓히고 손오공의 과거나 정체 같은 중요한 설정까지 공개. 그리고 엄청난 강함으로 앞으로 있을 사이어인과의 처절한 사투를 예고하고 있는 캐릭터이다.
          * 지구를 접수하기 위해서 : 또한 라데츠에 의해서 손오공은 어린 시절에 사이어인 전사 카카로트로서 지구에 보내졌고, 지구를 정복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오공이 카카로트로서 기억을 잃지 않았더라면 이 시점에서 지구를 점령했을 가능성이 높다.--혹은 그 전에 [[무천도사]]나 [[피콜로 대마왕]]과 싸우다 죽었거나.-- 이 당시 베지터, 내퍼, 라데츠는 사이어인으로서 프리더 군단 밑에서 일하면서 행성(부동산)을 접수하여 판매하고 있었으므로, 라데츠 역시 "카카로트가 접수해놓았을 지구"를 인수하러 왔다고 볼 수 있다.
  • 라이징 스톰 . . . . 7회 일치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웅들]]의 외전격 존재였으나 [[라이징 스톰 2: 베트남]]이 나오며 별개의 시리즈가 되었다.
         피격당하면 출혈 태에 빠지게 된다. 이때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장탄수가 표시되지 않는다. 재장전 키를 꾹 눌러서 장탄수를 확인 할 수 있지만 "꽉 참/반 이 참/거의 빔"으로만 표시된다.
         == 진 ==
          주축국. [[일본군]]으로 징은 만세가 써진 [[욱일기]]. 특수 병과로 Assault와 Light Mortar가 있다. 자살시 증원 포인트가 소모되지 않으며, 페널티도 없다는 특이점이 존재. 근접공격키를 누르면서 전력질주하는 것으로 [[반자이 돌격]]이 가능하다.
          연합국. [[미군]]으로 징은 초록색 바탕에 그려진 흰색 별. 특수 병과로 Automatic Rifleman과 Flamethrower가 있다. 화염방사기 개OP.
          89식중척탄통. 주축군 Light Mortar가 사용할 수 있는 장비. 일종의 박격포로 어딘가에 거치하고 난 후에야 사용할 수 있다. 포탄이 황에 따라 직사도 가능.
  • 마기/313화 . . . . 7회 일치
          * 알리바바는 FNAFAN회에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치샨에서 거래를 성사시키고 돌아오다가 과거 이 도시에서 알라딘을 처음 만난 일을 떠올린다.
          * 백룡은 이제 자신은 순수하게 연가의 사내이지 홍염과는 무관한 자가 되었다고 말하며 "더이 네가 갈아탈 몸은 없다"고 한다.
          * 아르마의 정신체는 신드리아 회 본부로 돌아간다.
          * 2일 뒤 치샨에서는 알리바바가 주를 대로 중요한 거래를 성사시킨다.
          * FANFAN 회 대표로서 바쁘게 지내는 알리바바.
          * 알리바바는 거래를 마치고 시장에 나오면서 처음 여기서 알라딘을 만났던 일을 회한다.
  • 마기/315화 . . . . 7회 일치
          * 백룡의 퇴위하면서 이의 이야기와 알라딘과 신드바드 사이의 대립, 알라딘의 힘이 악용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홍옥에게 전했다.
          * 홍옥은 이런 사실을 숨겼다며 사과하지만 알리바바는 진을 홀로 짊어지고 황제국을 지탱해왔다며 굉장하다고 칭찬한다.
          * 알리바바는 이 기술에 눈독 들이는데 알라딘은 솔로몬의 지혜를 세업을 위해 쓰지 않기로 정했다 한다.
          * 그래야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세을 살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자신을 좋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샤를르칸은 결혼을 축하한다며 축의금을 듬뿍 주겠다고 하는데, 알리바바는 한술 더 떠서 이번에 "알리바바 회"를 세우게 됐으니 투자금 좀 대달라고 한다.
  • 마기/346화 . . . . 7회 일치
          * 알리바바는 패턴이 된 그의 질문을 건너뛰고 곧바로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거 보다 나은 방법은 없는가"라고 되묻는다.
          마치 암흑천지에 홀로 던져진 것 같은 고독. 알리바바가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한다. 그는 아르바 또한 신드바드의 동료가 됐으니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일에 동의하는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아르바의 태도는 무슨 쌩뚱맞은 소리냐는 듯 심드렁하다. 알리바바는 그녀가 딱히 신드바드에 찬동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당황스러운 기분이다.
          * 신드바드는 잠시 그 직전의 황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처음 신드리아 왕국은 파르테비아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그때 희생된 국민들은 검은 루프가 되어 신드바드의 몸에 깃들었다. 다윗의 목소리는 그때부터 들렸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일전에 알리바바에게 설명한 적이 있었다.
          알리바바는 그때를 떠올림과 동시에 다윗이 저세에서 "반타전의 특이점과 이어졌다"고 말한게 바로 이때의 사건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런데 그건 이런 뜻도 된다. 다윗의 "확신"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 이번만큼은 그 규칙이 깨진다. 알리바바는 시간도 없으니 이런 짓은 그만하라며 신드바드의 질문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세을 루프로 환원하는 것도 그만하자. 그보다 나은 길은 없는가?"라고 되묻는다. 이런 전개에 아르바는 패턴을 깼다며 조금 놀라지만 신드바드는 별로 동요하지 않은 채 "없다"고 잘라말한다.
          그는 [[알라딘(마기)|알라딘]]에게 펼친 논리를 재탕 한다. 그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솔로몬 대왕을 비롯한 "보다 높은 곳의 신"들의 의지다. 아울러 그의 "세을 루프로 환원한다"는 정책에 동의하고 추종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신드바드가 두각을 드러낸 것이며, 신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거대한 섭리 앞에 알리바바 개인의 윤리관은 의미가 없다.
          신드바드가 이겨서 세이 루프로 돌아간다. 그리고 알리바바가 이기면 솔로몬의 세계가 그냥 지속될 뿐이다. 어느 쪽이든 메리트는 없다. 그녀는 "이젠 뭐든 질색"이란 심플한 표현으로 정리한다.
  • 맥닐의 법칙 . . . . 7회 일치
         한 지역에서는 특별히 향력을 가지지 않던 질병이, 인구의 이동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다른 지역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현. [[미국]]의 역사학자 맥닐이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맥닐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 집단 A는 특정한 질병 X에 어느 정도 [[면역]]을 가지고 있다. 집단 A의 면역 체계와 질병 X는 적절한 균형 태를 이루고 있어, 집단 A의 사람들은 질병에 감염되지 않거나, 감염되어도 병세가 치명적이지 않다. 혹은 문화적으로 질병 X에 대한 대처법(격리 수용, 증에 맞는 처방)을 알고 있어, 질병에 대처할 수 있다.
         이러한 현이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대항해시대]]이다. 수천년 동안 교류가 거의 없던 구대륙 유라시아에서 신대륙 아메리카로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생물학적 [[판도라의 자]]가 열린 셈이다.
         1518년, 스페인 이주민이 퍼트린 [[천연두]]가 에스파뇰라 섬의 아라와크 원주민의 절반을 살해한다. 천연두는 아메리카 본토에도 륙하여 1530년대부터 팜파스에서 [[오대호]]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초토화시킨다. 16세기 멕시코에서는 천연두로만 1800만명이 사망, 의학사가들은 이 시기에 천연두 사망자를 8천만명에서 1억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무렵 1999년 유엔의 발표에 따르면 1500년대의 인구는 약 5억명으로 추산되므로, 천연두가 세계 인구의 1/5을 죽인 것이다(…).
  • 문호월 . . . . 7회 일치
         |출생지 = {{국기|대한제국}} [[경북도]] [[김천군|김천]]
         |사망지 = {{KOR}}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경북도]] [[김천군]] 출생이나 생년에 [[1905년]]과 [[1908년]] 등 여러 설이 있다. 작곡가 [[손목인]]과는 사촌 간이다.
         1933년 [[윤백단]]의 〈장한가〉, [[서석]]의 〈귀향〉, [[이난]]의 〈고적〉 등을 발표한 데 이어, [[1934년]] 초에 [[박부용]]이 노래한 〈노들강변〉이 크게 히트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같은 해 사촌 동생인 손목인도 [[고복수]] 노래의 〈타향〉으로 단숨에 인기 작곡가가 되었다.
         |출판사=남일보
         |저자=강옥희,이미,이순진,이승희
  • 바키도/123화 . . . . 7회 일치
          * 전의도 식욕도 실한 피클은 무사시를 앞에 두고 등을 보인다.
          * 그러나 모처럼 만난 이적인 대를 놓아줄리 없는 무사시.
          * 완전히 전의를 실한 피클.
          * 이미 승부는 끝났지만 무사시는 놓아줄 생각이 없다. 그로선 평생을 찾던 이적인 대.
          * 그런 모습을 보더니 무사시도 대할 기분이 안 난다고 불평한다.
  • 박경석(1937) . . . . 7회 일치
         1937년 [[경북도]] [[포항시|일군]]에서 태어났다. [[포항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기자(직업)|기자]]로 근무하였다. 정치부 기자를 거쳐 경제부차장, 논설위원, 주일본특파원,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81년 초 민주정의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3월 치러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진우(1934)|이진우]] 대신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서종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통일국민당]] 후보로 경북도 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이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지적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부터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객원[[교수]]로 근무하였다.
  • 박소연 (배우) . . . . 7회 일치
         | 문명 = SoYeon Park
         | 웹사이트 =
         * 경희대학교 연극화과 외래교수 ( 2009년 ~ 2014년 )
         == 수 ==
         * 제9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여우주연 (2015년) <ref>[http://www.xportsnews.com/jenter/?ac=article_view&entry_id=609742 대국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여우주연 관련기사] </ref>
  • 박재홍(1941) . . . . 7회 일치
         1941년 2월 28일 [[경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큰형 [[박동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업고등학교(현 [[대구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백수]]로 있다가 [[박태준]]의 도움으로 [[포스코|포항종합제철]]의 중간간부를 역임하다가, 동양철관(주)의 사장,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북도 구미시-[[선산]]군-[[칠곡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김현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정의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소속]] 김현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북도 구미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 때 숙부 [[박희]]의 아들, 즉 사촌 동생인 [[박준홍]]이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함에 따라 지역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 두 명이 대결하는 게 보기 좋지 않다는 여론이 있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구미시 지역구 공천이 [[박세직]]에게 밀려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통위원장을,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초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치러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준홍 대신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경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박세직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 배재준 . . . . 7회 일치
         |문 표기 = Bae Jae-Jun
         |사진 사이즈 =
         [[대구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에 2라운드로 지명받아 입단했다. [[2018년]] [[4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0이닝 1실점(비자책)을 기록하였다.
         * [[경중학교]]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배씨]]
  • 백승민 (야구선수) . . . . 7회 일치
         |문 표기 = Baek Seung-Min
         * [[경중학교]]
         * [[대구원고등학교]]
         * [[남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수원 백씨]]
  • 변성환 . . . . 7회 일치
         [[2002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하였다. 데뷔 시즌 리그 15경기에 출전하여 무난한 활약을 펼쳤으나 [[K리그 2004|2004 시즌] [[K리그 2005|2005 시즌]]까지 리그 6경기 출전에 그쳤다.2005 시즌 베스트 일레븐으로 개막전부터 뛰었으며 대구와 홈 경기에서 치명적인 무릎 부으로(무릎십자인대,내측인대 파열,반월 연골 파열)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장기 부으로 9개월간 긴재활을 끝내고 복귀를 했음. [[K리그 2006|2006 시즌]] 제 기량을 회복하여 시즌 35경기에 출전하였고 [[AFC 챔피언스리그 2006|AFC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는 프로 데뷔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후 [[앤디 에글리]] 감독이 지휘하던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였고 한 시즌 후 [[정해성]]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이적 직후 정해성 감독의 사임으로 새 팀 제주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워 지는 듯 하였으나 리그 16경기에서 출전하였고 [[K리그컵 2008|컵대회]]에선 도움 랭킹 1위에 오르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16년]] 성남의 U15세 이하 유소년 산하클럽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시즌 중반 [[성남 FC]]의 코치직에 부임하여 [[구범]] 감독 대행을 보좌하였다.
         구범이 건강의 문제로 [[풍생고등학교]] 감독직에 복귀하면서 감독대행으로 [[강원 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경기를 지휘하게 되었다.
         |전임자 = [[구범]] (대행)
  • 보쿠걸/107화 . . . . 7회 일치
          * 야마다 나나타로는 다이카와 타마코와 함께 수한 사진부를 만들어서 매번 교무실 호출 중
          * 이마이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미즈키를 잊으려 했는데, 때마침 꽃꽃이부 일동이 커밍아웃&고백을 해봐 할렘태. 가끔 선배 자격으로 학교에 들른다.
          * 한편 떠나버린 것 같았던 로키는 뻔뻔하게 다시 나타난다. 어쩐지 토르도 동행.
          * 바로 미즈키와 만나진 않지만 "이번엔 어느 녀석을 놀려줄까"라는 걸 보면 지에서 계속 사는 모양.
          * 예대로 로키는 별일 없이 지으로 복귀.
  • 봉석주 . . . . 7회 일치
         1455년 다시 첨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56년(세조 2년)에는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를 거쳐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가 되었고, 1457년 다시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그해 [[8월]] [[길주군|길주]](吉州)의 관노로 속(永屬)된 여종 정비(定非)와 [[유응부]](兪應孚)의 첩의 딸 환생(還生)을 노비로 하사받았다. 그해 도진무(都鎭撫)를 거쳐 [[1460년]] [[10월]] [[호군]](上護軍)으로, [[조선 세조|세조]]와 [[정희왕후]]의 황해도(黃海道)·평안도(平安道) 순행(巡幸)을 호종하고 돌아왔으며, 바로 [[전라도]]처치사(全羅道處置使)로 부임하였다. 전라도 처치사로 부임했을 때 탐욕을 부려 말썽이 되었으며, 그 후 전라도수군절도사로 있을 때 군사들을 시켜 섬에 참깨와 면화를 심게 하여 거두어들인 후 배에 가득 싣고 귀임하여 횡령하였으므로 탄핵을 받아 투옥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너의 배를 남이 가지고 가므로 이를 체포하였다면 어찌하여 관(官)에 맡기지 아니하고 사사로이 스스로 묶고 구타(毆打)하였는가? 형벌(刑罰)과 (賞)은 인군(人君)에게서 나오는데, 네가 형벌과 을 주는 권리를 마음대로 하는가? 이연손(李延孫)의 아내는 중궁(中宮)의 자매(姉妹)인데 어찌하여 사람을 보내어 그 집을 수색 체포하였는가? 또 그 배가 나온 것이 어찌 바르지 아니한가? 너는 나의 공신(功臣)으로서 능히 나라의 법(法)을 따르고 봉행(奉行)하지 못하고, 여러 번 죄망(罪網)에 저촉(抵觸)되어 임금을 욕되게 하는데, 네 마음에도 편안한가? 너는 전에 처치사(處置使)가 되어 장죄(贓罪)를 범(犯)하였다는 더러운 소리가 있었는데, 그때 조정의 논의가 분분(紛紛)하였다.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가? 전자(前者)에 내가 모과(木瓜)의 연구(聯句)를 지어서 너를 경계하였는데 너는 이를 잊어버렸는가?<ref>연구(聯句)에 이르기를, “모과(木瓜)나무는 분(憤)을 머금은 벌을 가졌고[木瓜樹帶含愼蜂] 우매하여 축재(蓄財)를 앎은 부옹(富翁)이 되려 함일세[泥昏智蓄欲富翁]”라고 하였는데, 봉석주가 배우지 아니하고 산업(産業)만을 경함을 비꼰 것이다.</ref> 네가 그 공신(功臣)임을 믿는가? 네가 만약 이와 같이 법(法)을 범(犯)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너를 훈적(勳籍)에서 삭제(削除)하고, 너를 훈부(勳府)에서 쫓아내는 것도 또한 내 처치(處置)에 달려 있는데, 너는 어찌 두려워하지 않는가? 오늘의 일을 내가 유사(有司)에 회부하지 않고 정원(政院)에 불러서 묻는 것은 너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으려 함이다. 너는 곧 내 소년(少年) 시절부터 서로 알았고, 또 공신(功臣)이 되었으니, 네가 비록 죄가 있더라도 내가 무슨 마음으로 너를 죄주겠는가?"
         그해 [[11월]] 왕명으로 그가 점거하여 빼앗은 밭을 원주인들에게 되돌려주었다. 후일 [[1495년]](연산군 1년) 후손들이 소를 올려 신원(伸寃)되고 작위를 돌려받았으며 후에 시호가 내려졌다.
         * [[유원]]
  • 브라우닝 하이파워 . . . . 7회 일치
         보통 "파라벨럼"이라 불리는 9mm 루거 탄을 사용한다. 복열탄창을 사용해 13발의 장탄수를 가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탄수가 10발을 넘는 탄창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기에 10발짜리 탄창도 팔고 있다. 이외에 .40 S&W 탄을 사용하는 모델이 매뉴얼에서 언급되었지만 현재 브라우닝 홈페이지에서 없는걸로 보아 더이 생산되지 않는 듯.
         2016년 12월 기준 신 하이파워의 소비자가격은 $1,100~1,200 정도. 당신이 미국 시민이 아니라면 쓸모없는 정보다.
          * 국군에서 브라우닝 L9A1라는 이름으로 사용했다. 현재는 오스트리아제 자동권총인 글록17이 채용된 태.
         [[http://www.browning.com/products/firearms/pistols/hi-power-pistols.html|브라우닝사의 하이파워 소개 페이지(어)]]
         [[http://www.browning.com/content/dam/browning/support/owners-manuals/2016/12-BFA-323_HiPower%20OM_WEB.pdf|브라우닝 하이파워 매뉴얼 Pdf(어)]]
         [[http://www.browning.com/content/dam/browning/support/print-catalogs/2016/2016-browning-catalog-firearms.pdf|브라우닝사의 2016년 카탈로그 Pdf(어)]]
  • 블랙 클로버/113화 . . . . 7회 일치
          * 잭스가 어그로를 끄는 바람에 대팀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황. 세 명의 마법을 연계해 초장거리에서 저격으로 승부를 걸어온다.
          * 자줏빛 범고래의 부단장은 인격자로 평판이 좋은 인물. 사람들은 그 소문과 다른 실물을 마주하자 정말로 그가 잭스가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래도 잭스는 국경지대에 틀어박혀서 왕도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 인물. 당연히 얼굴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마법제는 진을 간파한 것 같지만 무슨 생각인지 입을 다문다.
          이어서 발표된 팀 별로 인원이 나눠진다.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가 P팀으로 묶였다. 헌데 피차 첫인이 좋지 않은 입장이다. 유노는 노엘을 "아스타를 따라다니는 촐랑대는 여자"로 생각하고, 노엘은 유노를 "아스타의 소꿉친구라는 점잔떠는 인간" 정도로 치부한다. 이외에 "엔 린가드"라는 인물이 한 팀.
          K팀은 [[클라우스 류넷]]이 그 악명 높은 [[락 볼티어]]와 한 팀이 되어 겁을 먹는다. 그런데 막 만나본 락은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잘 부탁한다"고 붙임성 좋게 악수를 청해와 깊은 괴리를 느낀다. 이들과 "브리 엔젤"이란 인물도 한 팀.
          * 마침내 도착한 결전의 무대. 다양한 형태의 지형이 뒤섞여 있다. 자신이 유리한 지형을 택할 수도, 역으로 대가 불리한 지형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곧이어 추첨으로 결정된 대진표도 공개. 아스타 팀이 1회전 제 1경기. 유노팀은 대진표의 맨 끝에 있어서 둘이 대결하려면 모두 결승까지 갈 수밖에 없다. 아스타는 꼭 둘의 대결을 성사시킬 거라고, 나아가서 우승하겠다고 다짐한다.
          * 아스타는 이러다 뭘해보기도 전에 끝장나겠다며 셋이 힘을 합쳐 황을 돌파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 세 명 중 하나인 잭스가 문제다. 아직 마법이 뭔지도 밝히지 않은 그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코를 골고 있다. 표정이 인정사정없이 일그러지는 아스타. 좀처럼 열받는 일이 없는 미모사 조차 깊은 빡침을 느낀다.
  • 블랙 클로버/53화 . . . . 7회 일치
          * 삼마안은 이변에 경악하지만 단장들과 대하는 중이라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다.
          * 쓰러진 리히트가 온몸에서 수한 빛을 내뿜으며 폭주한다.
          * 정보 으론 "그 분"은 곧 백야의 마안의 수괴로 추정되는데, 모두 리히트라고 생각했지만 아닐 가능성이 생겼다.
          * 삼마안은 패배를 인정하며 리히트를 회수해 사라지는데, 단장들은 결과적으론 이겼지만 저들의 힘이 예이라 평한다
          * 리히트가 "그 분"이라고 부르는 대이 언급됨으로써 떡밥이 늘어나고 있다.
          * 확실히 "그 분"은 당연히 리히터일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사실 폐기.
  • 블랙 클로버/58화 . . . . 7회 일치
          * 소녀의 이름은 카호노. 노래하고 춤추며 마법도 쓰는 아이돌이 되는게 꿈인 소녀이다. 최종적으론 아이돌로 한 몫 잡아서 거부가 되는 것. 항 달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훈련을 하고 있다.
          * 노래도 대단하지만 사실 마법 실력도 뛰어나서 한 눈에 아스타의 몸태를 간파하고 노래 회복 마법 "치유의 자장가"를 써서 회복시킨다. 매우 정교한 마력 컨트롤을 사용하는 고급 회복마법.
          * 카호노는 노엘의 마력 컨트롤에 대해 조언해주는데, 너무 억제하려고 의식하는 것은 마이너스. 편안한 태에서 자연스럽게 집중할 때 효과가 있다고 한다.
          * 정작 노엘은 언제나 차갑게 멸시 당한 기억만 떠올라서 기분이 하고 만다.
          *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노엘은 모든 마력을 개방해 마법을 사용하지만 또 폭주태가 되고 만다.
          * 신마법 해룡의 요람은 형태 해룡의 둥지에서 확장된 것 같다.--근데 둥비보단 요람이 작은거 아니냐?--
          * 카호노는 해저신전에서 주요적으로 나올 걸로 예 중.
  • 블랙 클로버/68화 . . . . 7회 일치
          * 베토는 그 마력을 보고 왕족이냐고 묻는데 노엘은 "그런건 지금 관없어. 난 검은 폭우의 노엘 실버!"라고 받아친다.
          * 베토는 우반신이 날아가는 치명을 입는다.
          * 그는 과거를 단편적으로 회하는데, 리히트는 그에게 "절망해야 할 것은 네가 아니라 클로버 왕국의 인간"이라고 말한다.
          * 일반적인 회복마법은 그저 처를 막는거지 재생이 되진 않는다.
          * 베토는 또다시 미지의 언어로 새로운 마수마법을 창한다.
          * 노엘은 해룡의 포효를 쓴 반동으로 마력이 고갈된 태. 무방비한 황에서 그대로 공격을 받는다.
  • 블랙 클로버/74화 . . . . 7회 일치
          * 그런 와중에도 검은 폭우는 사자 없이 임무를 달성하고 백야의 마안을 격파하는 공적을 세웠다며 크게 칭찬한다.
          * 마법제는 야미가 더욱 강해졌음을 감지하고 아직 단장이던 시절 야미를 기사단원으로 발탁하고 훗날 단장으로 승진시킨 일을 회한다.
          * 어린 시절부터 야미는 더러운 눈매에 입도 험해서 썩 좋은 인은 아니었다.
          * 아스타는 흥분한 나머지 싸인을 받을 수 없겠냐고 했다가 면에 야미의 싸인을 받을 위기에 처한다.
          * 일개 부대라지만 당한 숫자이며 키탄을 지키던 아군은 전멸. 공세로 봐서는 통적인 시비를 넘어섰다.
          * 특히 적의 지휘관은 세 명의 "팔휘장". 다이아몬드 왕국 측의 마법기사단장에 해당하는 인물들로 당한 마법을 구사한다.
  • 블랙 클로버/77화 . . . . 7회 일치
          * 유노는 팔휘장을 대로도 압도하며 손쉽게 승리를 따낸다.
          * 벤전스는 광으로 알라며 "네 마력은 클로버 왕국의 양식이 된다"고 말한다.
          * 유노가 팔휘장 라가스를 대로 선전 중.
          * 라가스는 팔휘장인 자신을 대로 이렇게 싸우는 젊은이가 있다고 경악한다.
          * "싸움에 아무 관도 없어"
          * 브로코스는 벤전스와 실력 차이도 있는데다 하필이면 세계수 마법 사용자. 적토 마법인 브로코스에겐 압도적인 성이다.
          * 게다가 리히트는 "클로버 왕국의 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정말로 배신자일지도 미지수.
  • 블랙 클로버/86화 . . . . 7회 일치
          * 아스타는 이렇게 된 이 자신의 "필살기'를 꺼낼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 증오의 파나가 다루는 불의 정령 샐러맨더의 힘은 식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샐러맨더의 갈퀴손이 지나간 자리는 울창했던 숲도 건물도 남아나지 않는다. 정령에 대해 잘하는 바네사 에노테이커도 그 위력에는 경악한다. 원래 샐러맨더는 4대 정령 중에서 가장 공격력이 높고 일국의 군사력에 필적하는 전력으로 평가된다.
          * 하지만 아스타는 강화마법이 걸린 덕인지 공격의 빈틈을 파고 든다. 어느새 잘려나간 나무 줄기를 타고 접근하더니 샐러맨더에게 일격을 먹이는데 성공한다. 가볍게 베인 정도지만 샐러맨더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힌다. 바네사는 정령은 본래 마나의 결정체인 만큼 아스타의 반마법 검이라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다. 아스타도 스피드나 탐지능력이라면 절망의 베토 쪽이 위였다며 충분히 대할 수 있다고 호언한다.
          * 파나는 아스타의 반마법 검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지 어째서 샐러맨더가 타격을 입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바네사는 이때를 노려 반격의 고삐를 죄려 하는데 아스타는 갑자기 칼을 내려놓고 대화를 청한다. 바네사는 뭔 짓이냐고, 대화가 안 통하는 대라고 꾸짖지만 아스타는 아랑곳 없이 말을 건다. 미워죽겠다고 계속 중얼거리는데 대체 뭐가 그리 밉고 클로버왕국을 미워할 이유가 뭔지 묻는다. 맨날 싸우기만 했지 왜 싸우는지, 뭐가 문제인지 서로 너무 모르지 않냐는 얘기.
          * 바네사의 얘기대로 파나는 얘기가 통하는 대가 아니었다. 문답무용으로 불세례를 끼얹어서 바네사가 회수하지 않았다면 아스타가 당할 뻔 한다. 그래도 아스타는 핀랄 룰러케이터에게 청해서 파나의 배후로 접근한다. 파나도 그걸 감지하지만 아스타가 한 발 빨라서 파나의 화염 마법을 지워버리고 다시 한 번 대화를 요청한다.
          * 그리고 얼마 후. 리히트가 살던 마을은 "인간"의 습격을 받는다. 이곳은 본래 인간들이 모르는 땅이었고 유일하게 "그 인간"만이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리히트의 동족들은 그가 배신했다고 원망하며 죽어간다. 그를 친구라 불렀던 리히트도 절망적인 얼굴로 하늘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바라본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며 절규하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이 모습은 절망의 베토가 회하던 그 장면과 같다.
          파나는 한층 격렬한 증오를 앞세워 공격해온다. 아스타는 이렇게 된 이 "그 필살기"를 쓸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 블랙 클로버/90화 . . . . 7회 일치
          * 젤은 지금의 마르스라면 자신이 대할 수 없을 거라 판단, 멀리 떨쳐내고 라드로스를 끝내려 한다.
          * 젤은 라드로스를 바람 마법으로 구속한다. 그러나 그의 기억으론 라드로스는 육체 강화 마법이 전문. 오래 묶어둘 순 없었다. 그대로 전력을 다 한 큰 기술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데.
          * 마르스를 떨쳐낸 젤은 모든 힘을 쏟아부운 바람창성마법 "참풍황 질풍"으로 라드로스를 집중 공격한다. 라드로스는 본래 마력속성이 없는 특이한 타입으로 본인은 그 점 때문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마력 자체는 대단히 강해서 공격력이 뛰어난 원거리 마법을 익혔다면 가장 성가신 대라고 생각한다. 젤은 용서를 구하며 라드로스를 끝장냈다고 여기는 찰나, 라드로스가 괴롭게 소리치기 시작한다.
          라드로스의 마력이 심치 않게 부풀어 오른다. 그는 "이 숲에 소중한 사람을 데려오지 않았냐"며 구하러 가는게 낫지 않겠냐고 조롱한다. 젤은 곧바로 돌아서서 [[도미넌트 코드]]를 지키기 위해 퇴각한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레이저가 마녀의 숲에서 항전하던 마녀들을 덮친다. 잠시 뒤 숲은 폭격으로 엉망이 되고 마녀들 대다수가 사한다. 무차별적인 공격이라 다이아몬드의 병사들까지 휩쓸렸지만 라드로스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젤이 아직 살아있는지 찾아다닌다.
          젤은 가까스로 도미나를 구하는데 성공했지만 치명을 입었다. 그의 바람마법이 지켜줬지만 도미나도 당한 타격을 입었는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라드로스가 젤을 발견하고 내려와 그를 걷어차며 "소중한 사람이 정말 있었는데 당신은 여기 자빠져서 뭘하는 거냐"고 조롱한다. 그리고 젤을 괴롭히기 위해 그의 소중한 사람, 도미나를 잡아 올린다. 라드로스는 도미나의 얼굴도 알고 있었다. "선생님과 같이 도망쳤던 애인" 이라고 알아본다.
  • 블랙 클로버/93화 . . . . 7회 일치
          * 그때 마르스가 파나에게 돌격해 기억을 되살리고 파나는 마안이 사라지며 무사히 황이 종료된다.
          그때 마르스가 자신의 불꽃 회복마법 "불사조의 날개옷"으로 화을 회복시킨다. 그렇다곤 해도 열기를 차단할 방법이 없으므로 처가 낫기 무섭게 다시 몸이 타들어간다. 마르스는 그래도 갈 수 있겠냐고 묻는데 아스타는 "숯덩이가 돼도 가겠다"고 의지를 꺾지 않는다.
          * 마르스는 아스타를 보며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던전에서 아스타와 싸우기 전후로 많은 강자들을 대했지만 이토록 포기를 모르는 인물은 없었다. 또한 신기한 인물이기도 한데 적인지 아군인지 불분명한 대 조차 설득하고 도우려 하는 인물은 클로버 왕국에서도 아스타 정도였다. 끝없는 이타심을 가지고 그걸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아스타야 말로 "진정한 기사"에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바깥 세에서 만나고 말았지만,
          >같이 세을 보러 가자!
  • 블랙 클로버/95화 . . . . 7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95. '''향시키는 존재'''
          *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는 [[파나(블랙 클로버)|파나]]를 지키다 부, 아스타가 라드로스에 대항할 유일한 전력이 된다.
          * 아스타는 "동료란 서로 향시켜 주는 존재"라 일갈하며 라드로스를 압박한다.
          아스타는 일행을 안심시키며 라드로스를 대하러 달려간다.
          * 라드로스는 동료 따위는 없다며 아스타의 동료애를 비하한다. 그는 세엔 이용하는 녀석과 이용 당하는 녀석, 두 종류 뿐이라며 그 "동료"를 이용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자부한다. 물론 마르스나 파나도 그렇게 "이용"할 대이다.
          * 아스타는 자기 혼자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고, 함께 힘을 다루고 싸우는 법을 배웠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라드로스의 "이용"한다는 표현은 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스타는 동료란 "서로를 향시켜주는 존재"라고 일갈하며 라드로스를 압박한다.
  • 블리치/673화 . . . . 7회 일치
         이시다 우류가 하쉬발트를 막는 사이 이치고는 유하바하에게 향한다.
          * 바로 그 순간 석들이 움직여서 일행을 공격한다.
          * 차드가 이치고와 오리히메를 노리는 석들을 쳐내고 둘을 선행시킨다.
          * 차드 홀로 많은 석대하게 됐는데, 때마침 간류가 튀어나온다.
          * 차드는 "재미없는 일을 좋아하냐"며 자신들의 일은 "성안을 정리해 이치고가 돌아올 길을 준비하는 것"이라며 석들과 싸운다.
          * 솔직히 이시다 우류가 하쉬발트를 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 블리치/681화 . . . . 7회 일치
         * 야치루가 전해준 힘을 받은 켄파치는 폭발적인 승을 보인다.
         * 제라드를 날려버려서 궁 밖으로 떨궈 버리는데, 날개를 뽑으며 복귀한다
         * 만해 태의 켄파치는 몸이 붉어지고 야쇄의 형태는 부러진 칼처럼 변한다.
         * 거의 폭주 태나 다름이 없는데, 이것 자체가 만해인지 다른 향인지는 불명.
         * 제라드는 이번에 당한 것과는 달리 만해 켄파치에게 당한 처에게 피를 철철 흘린다. 재생 자체가 늦어지고 있다.
  • 샘 윗위키 . . . . 7회 일치
         Sam Witwicky. 화 [[트랜스포머 시리즈]] 1~3편의 주인공. 배우는 [[샤이아 라보프]].
         고등학생 때 중고차 가게에서 차를 하나 샀는데 그게 하필 [[오토봇]]인 [[범블비]]였다. 그 이후 [[고등학생]] 때 한번, [[대학생]] 때 한번, [[사회인]] 때 한번씩 죽을 위기를 겪고도 살아남는다. 이후 배우인 샤이아 라보프가 트랜스포머 화 시리즈에 하차하며 등장하지 않게된다.
         가족으로는 [[아버지]]인 론 윗위키, [[어머니]]인 주디 윗위키, 애완견인 모조가 있다. [[트랜스포머(2007년 화)|트랜스포머]]의 일로 미카엘라 베인즈와 사귀는 사이가 되었지만 [[트랜스포머 2: 패자의 역습]]과 [[트랜스포머 3]] 사이에 깨진 것 같다. 이는 미카엘라 베인즈를 연기했던 [[메간 폭스]]가 트랜스포머 화 시리즈의 감독이었던 [[마이클 베이]]를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620601007|히틀러 같다고 발언]]해 퇴출되었기 때문.
         [[분류:트랜스포머 화 시리즈]]
  • 서든어택 2/무기 . . . . 7회 일치
         ||돌격소총으로, 지금까지 2억 정 이이 생산,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개량형이 등장했음에도 아직 생산이 유지되고 있을 만큼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총이자 서방의 M16과 원한 라이벌에 속한다. 한발 한발의 위력은 대구경인 만큼 M16에 비해 크게 우세하지만, 그만큼 반동 역시 심하다는 결점이 있다.
         ||M4A1 소총은 베트남전 때부터 제기된 M16의 카빈(단축형 소총) 소요를 맞추기 위해 등장한 M4 소총의 개량형으로, 총열을 굵게 만들어 연사 능력을 높힌 총이다. 1997년에 제식 채용되어 장갑차량 승무원과 기계화보병, 특수부대 중심으로 보급이 시작되었으며, 2001년 대테러 전쟁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다양한 황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어 전군에 지급하기 시작, 이제는 미군의 징 그 자체가 되어버릴 정도로 모든 병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프랑스군의 제식 돌격소총으로 그 독특한 외모 때문에 군용 불펍식 소총으로는 일반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소총이다. 적지 않은 부분에 경화 플라스틱을 적용해서 경량화를 시켰으나 그럼에도 꽤 무거운 편으로, 불펍 특유의 뒤로 치우친 무게중심과 높은 발사속도 때문에 반동 통제가 어렵다는 결점이 있다. 그럼에도 신뢰성과 명중률은 당히 높아 우수한 소총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9년 오스트리아군의 제식 저격소총으로 채용되어 이후 한국의 707특임대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군경에게 널리 사용된 저격소총이다. 그러나 개발된 지 당한 시간이 흐른 소총이고, 주력 탄종인 7.62 NATO 역시 신형 탄약이 다수 등장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저격총 탄약으로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사거리와 살력이 부족한 편이다.||
  • 세미스텔스 . . . . 7회 일치
         흔히 세미스텔스라고 불리는 기종들은, 스텔스를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본격적인 스텔스기와는 달리 기체 설계 전반에 본격적인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지는 않았지만 스텔스 기술을 당히 고려하고 도입하여 RCS를 줄이는 것을 설계 목표에 포함하고 있다. 즉 본격적인 스텔스 전투기가 스텔스를 위하여 어느 정도 전투력 약화도 감수하는 설계 사을 가지고 있다면, 세미스텔스기는 기존의 전투력을 유지하면서 스텔스 기술의 혜택을 얻는 설계 사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수평미익, 수직미익, 공기 흡입구, 랜딩기어, 외부 돌출된 안테나, 무장장착대 등의 형 변경.
          * IFF 장비에 RCS 저감을 목적으로 자형 복합재 구조물 설치
         세미스텔스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밀덕들은, 결국 실전 황에서는 다양한 무장을 하면서 RCS가 늘어나고 결국 스텔스기보다는 비스텔스기와 별 차이 없는 RCS 밖에 나오지 않게 되므로, 세미스텔스는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서 세미스텔스 옹호론자들은 그래도 큰 돈 들여서 여러 회사들이 만든 것이니까, 쓸모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이런 주장은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도박사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본격적인 스텔스만은 못해도 세미스텔스 역시 당한 전술적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 손광업 . . . . 7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레나 (화)|레나]]》 (2016년) - 의사 역
         * 《웅을 기다리며》 (2012년) - 이순신 역
         * 《남한산성》 (2009년) - 김헌 역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손지민 . . . . 7회 일치
         | 학력 = [[연세대학교]] 문학과
         | 훈 =
         | 웹사이트 =
         * [[연세대학교]] 문학과
         * [[2010년]] : [[한국방송공사|KBS]] 남권 아나운서 ([[KBS 부산방송총국]], [[KBS 대구방송총국]] 지역근무)
  • 손치은 . . . . 7회 일치
         }}</ref> 존경을 받았으며, [[김창숙]]이 항일 운동 중 [[하이]]에서 체포되어 압송되었을 때도 김용무와 함께 변론을 자처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세은 그를 잊으라 했다
         [[1932년]]에 [[경북도]] 안동경찰서에서 순사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일본인 경찰관이 살해되고 조선인 청년 5명이 용의자로 체포된 일이 발생했다. 이때 손치은이 무료로 변호를 맡아 이들이 무죄임을 밝혀냈다.<ref>{{저널 인용
         }}</ref>,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일본 제국]]의 사통제 정책에 협조한 행적도 있다. [[조선사범보호관찰령]]에 따라 사범 감시를 위한 보호관찰 제도가 신설되고 지역마다 보호관찰심사회가 출범했을 때 대구보호관찰심사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분류:189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
  • 송종호 (1956년) . . . . 7회 일치
         * 1982년 : [[남대학교]] 전기공학 학사
         * 공부 정책심의관
         * 2013.05 ~ : 경일대학교 경학부 석좌교수
         == 수 ==
         * 2011년 : 한국경교육학회 한국인경여대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중소기업청장]][[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
  • 송진훈 . . . . 7회 일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고등고시 16회에 합격하여 1968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대구지방법원 울산지원장, 대구지법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97년 2월 [[김삼]]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되었으며 2003년 2월 17일 대법관에서 퇴임하면서 변호사 개업 논란이 있자 "아직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인데다 사회에서 할만한 다른 역할이 없다"는 이유로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593845]</ref>
         * [[대구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재직하던 1977년 5월 14일에 양장지 등을 밀수하여 적발된 피고인에 대한 [[특가법]] 위반 사건에서 주심 판사를 맡아 징역1년3월 벌금 691만원을 선고하면서 "벌금의 하한은 원칙적으로 감경되지 않으나 한액 10배를 하한액인 5배로 감경할 수 있음은 하한액 5배도 다시 절반인 2.5배로 낮추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하면서 하한액의 절반까지 벌금을 감경하는 첫 판결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051400209207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05-14&officeId=00020&pageNo=7&printNo=17110&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7년 5월 14일자]</ref>
         * 대구고등법원 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1년 1월 31일에 [[천시]] 폭력조직 소야파와 우정파 30명에 대해 "범죄단체조직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우정파 두목 등 6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1년 1월 31일자</ref>
         * 1991년 1월 28일에 있었던 선고공판에서 대방 폭력조직원에 대해 손목을 자르고 다른 폭력조직과 세력다툼을 벌였던 천시를 거점으로 활동한 폭력조직 우정파 조직원 6명에 대해 "범죄조직단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판결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13100209213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1-31&officeId=00020&pageNo=13&printNo=21374&publishType=00020]</ref>
         * [[노태우]] 대통령이 자신의 비자금 중에서 362억원을 손아랫 동서였던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명의로 실명전환했다가 검찰에 의해 금융기관의 금융실명제 관련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 유죄판결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무죄판결난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 합의체에서 8:5 무죄확정할 때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으로 "차명거래라도 명의가 실명이라면 비실명자산이 아니고 실명전환 대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는 이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차명계좌 실명전환 대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finance/814613.html 대법원96도3377]</ref>
  • 스이츠 . . . . 7회 일치
         국권에서 달콤한 과자를 뜻하는 스위트(sweet)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에서는 어린이용 과자와 구별하여, 고급 양과자 점에서 어른들을 대으로 만드는 과자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티라미스’ 같은 고급 양과자가 잡지 소개 등으로 붐을 타고 널리 퍼지게 되었다.
         스위츠 유행 같은 유행을 주도하는 잡지, TV프로그램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러한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모두 받아들이는 여성을 조롱하는 말. 스위츠가 대이 되는 것은 케이크나 과자라고 하면 좋은데, 굳이 멋을 내려고 스위츠라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표현이 유행했을 당시에는 스위츠 이외에도 런치, 핫요가 등 여성 대의 소비 활동을 강조하는 유행에 대해서 거의 모두 (웃음,笑)을 붙이는 표현이 유행했다.
         2007년에는 넷유행어대 2007에도 선출되었다. 이 무렵 유행한 휴대폰소설을 흉내내서 다음과 같은 복붙 유머글이 널리 돌아다녔기 때문.
         >───나의 이름은 아이(アイ)。마음에 처를 입은 여고생。모테카와스림으로 연애체질의 사랑스러운 걸(ガール)♪
         >노력한 자신에게 포이라는 걸까?자신 다음을 연출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나!
  • 식객 . . . . 7회 일치
         중국사의 식객이란, 귀족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 대신에 자신의 '재주'[* 학문이나 무예는 물론, '계명구도'의 일화에서 나오듯이 개나 닭 소리를 흉내내는 특이한 재주까지 있었다.]를 팔아서 주인에게 도움을 주는 '손님'을 뜻했다. 즉 공식적으로 종속 관계인 하인&고용인과 달리 하관계가 자유로웠다. 본인에게 도움이 되든 안 되든, 자신의 집에 찾아온 '객(손님)'이니만큼 항 대접을 해주었던 걸로 추측된다. 본래 어느 문화권이든 사회 고위층은 '손님'을 우대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문화가 있는데 여기에서 발전하여 손님을 대접한다는 명분으로 세력을 모으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식객을 자처하고 나타나는 사람을 주인이 보호해주고 대접해주는 것이 당연시 되는 문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문화는 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식객은 여러 나라의 귀족 계급의 분쟁에서 주요한 전력으로 이용되었으며, 그 뛰어난 실력을 살려서 일종의 [[사병]](私兵)이 되거나 주인의 참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주인이 살해되면 식객이 [[복수]]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맹군, 신릉군 같은 전국사군자는 수백명의 식객을 육성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식객들은 이 귀족들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 정치적 향력이 매우 커지게 된다. 하지만, 점차 정부에서는 식객들을 위험시 하여 왕족이나 귀족이 식객을 두는 것을 정책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법가]] 사에서는 이러한 식객을 사회 위험분자로 보고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허만 화백의 만화 "식객"은 본래 의미와는 달리 '미식가' 쪽에 가깝다.
  • 식극의 소마/171화 . . . . 7회 일치
          * 소마는 득의양양하게 "맛의 감"을 감을 들으려 하는데
          * 또 한 가지 "방금까지 쓰고 있던 편지"(퇴학하게 된 사정을 설명하는 편지)는 당장 처분해도 관없다는 말도 전하라 한다.
          * 히사코도 에리나의 의중을 모르는 태.
          * 이 태라면 어차피 진급시험 결과도 뻔할 테니 자진해서 학교를 떠나는게 어떻냐고 극언을 한다.
          * 에리나는 자신이 기숙사에 온 뒤로 그들의 요리를 많이 맛 보았고 쓴소리도 했지만 항 자유로운 요리를 했다고 말한다.
          * 하지만 지금처럼 풀이 죽은 태에선 그 장점도 살리지 못한 채 목이 달아날 거라고 선언한다.
  • 식극의 소마/174화 . . . . 7회 일치
          * 이들은 브라인 냉각법으로 태가 좋은 여름 연어를 구해온 것.
          * 시험관은 형편없는 연어나 구해왔을 거라고 예하는데 보기좋게 빗나간다.
          * 이들이 구해온 연어는 여름 연어. 산란기 직전의 연어로서 알이나 이리로 소모되는 양이 몸통에 꽉차 있어 몸통의 맛만 놓고 치면 최의 연어다.
          * 비결은 브라인 냉동법. 아리스가 설명하길 "브라인 용액"이라는 0도 이하에서도 얼지 않는 용액으로 순간 급랭하여 최태로 보존하는 "시간을 멈추는 냉동법"
          * 소마는 한술 더 떠서 "우릴 너무 얕본거 아니냐"며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 시장에서 분투하는건 식당의 일"이라며 도발까지 한다.
  • 식극의 소마/181화 . . . . 7회 일치
          * 소마는 정신없어하며 왜 이제와서 쿠가가 나타난 건지 문을 몰라한다.
          * 린도가 연락을 했으니 전혀 반응이 없었는데, 막 출발할 때가 되자 돌연 나타났다.
          * 이쪽은 예보다 좋은 평을 받는다.
          * 하야마가 "하야마 아키라만이 할 수 있는 요리"를 내놓을게 분명한 이 자신도 그에 걸맞는 요리를 내고 싶다는 것.
          * 그가 곰고기 냄새를 살리지 못하는건 "자신이 곰고기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발을 바꾼다.
          * 그는 하야마가 선발시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성장했다 평하며 지금까지의 소마라면 대 조차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 지금까지 쭉 반역자팀이 반칙을 당했기 때문인지, 이번엔 소마의 반칙타임. 흡사 오픈북 시험 치는데 작년에 과탑했던 선배가 와서 도와주는 격이다. --이놈의 학교는 정적으로는 시험 진행이 안 되나--
  • 식극의 소마/210화 . . . . 7회 일치
          잇시키는 죽은 생선을 손질하듯이 너무 간단히 배가르기를 해냈다. [[요시노 유키]]와 [[미토 이쿠미]]도 히사토의 해설을 듣고 보니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이 난다고 감탄한다. 그러는 한편 평소의 알몸 에이프런 차림에선 도 못했다고 수군거리는데, 그 말을 들은 [[나키리 아리스]]가 비서코, 니쿠미라는 별명을 부르며 "알몸 에이프런"이 뭐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둘 다 별명을 부른 점에만 투덜대고 정작 "알몸 에이프런"에 대해선 노코맨트를 고수한다.
          * 키노쿠니는 잠시 옛일을 떠올린다. 키노쿠니 가문의 애로 보람찬 생활을 하던 그녀. 어느날 아버지는 "잇시키 가문의 아이가 우리 집에서 살게 됐다"고 통보한다. 잇시키 가문엔 후계자가 4살이 되면 먼 곳에 보내 훈련시키는 전통이 있다. 두 가문은 절친한 관계이기 때문에 여러번 잇시키가의 후계자를 맡아줬다. 이번에도 같은 경우. 아버지는 네네에게 잘 대해주라고 당부하며 동갑이니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보내진게 잇시키 사토시.
          * 네네는 그런 과거지사를 숨기지 않고 공개한다. 후배들은 둘이 소꿉친구 사이냐고 놀라길 먼저한다. 하지만 인정하는 잇시키와 달리 네네 쪽은 "우리집에서 식객을 하며 수행한 것 뿐이지 소꿉친구가 아니다"라며 여전히 적개심을 드러낸다. 잇시키는 뭘 그렇게 맨날 자길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핀잔하는데, 네네는 그 이유는 알고 있지 않냐고 응수한다.
          소마는 삶기 까지 마친 소바 면을 망설임없이 펜에 던진다. 이 식 밖의 전개에 관객들 까지도 "기다려 설마"라고 말리다시피한다. 하지만 소마는 분명히 소바를 굽고 있다. 유키와 이쿠미는 온면인지 냉면인지 했더니 아예 구워버린다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네네도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이해불능 태에 빠진다. 기껏 28소바로 안정적인 길을 선택해 놓고서 그걸 굽는다? 소바면은 저런 식으로 구우면 메밀의 향기가 날아가 버린다. "야키소바"라고 하긴 했지만 절대로 해선 안 될 형태인 것이다.
          그러나 소마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오히려 당황하고 초조해진 건 네네다. 그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무슨 요리를 내보이려는 건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러는 사이 지금 이뤄지는 대결 중 소마 대 네네가 제일 먼저 심사에 도달하게 됐다.
  • 십자군 전쟁 . . . . 7회 일치
         [[비잔티움 제국]]이 당시 [[룸 술탄국]]이 점유하고 있던 [[아나톨리아]]를 되찾기 위해 [[교황청]]에게 남이탈리아의 노르만 용병대를 끌어들여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이에 [[교황]] [[우르바노 2세]]가 교황청의 향력 증대를 위해서 서유럽 주들을 성지탈환이라는 명분으로 끌어들인 데서 시작된 전쟁.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망할 두카스 놈들때문에~~[[셀주크 술탄국]]한테 박살난 이후에 폰토스일대의 거점 일부를 제외한 '''아나톨리아 전체'''가 통째로 날아가버린 황이었다. 게다가 이황에서 남이탈리아의 노르만 정복자 [[로베르 기스카르]]가 아들인 [[보에몽]]을 데리고 비잔티움을 두번이나 침략하기도 했다. 당시 황제였던 [[알렉시오스 1세]]가 아풀리아지방에 지방귀족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해 기스카르의 병력을 둘로 나뉜뒤 둘로 나뉜 병력중 비잔티움 원정군을 지휘하던 보에몽의 군대를 라리사에서 격파해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기스카르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다시한번 보에몽을 데리고 원정을 나서게 된다. 알렉시오스에게는 다행히도, 악천후를 뜷고 그리스에 도달한 기스카르는 역병으로 인해서 케팔로니아 섬에 사망하고, 그의 장남이자 그리스일대 기스카르의 정복지를 속받은 보에몽도 역병으로 인해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어렵지않게 그를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한편으로는 당시 교황령은 이탈리아의 패권을 놓고 신성로마 제국과 프랑스 왕국과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었고,[* 대표적으로 [[카노사의 굴욕]]과 프랑스 왕 [[필리프 1세]]의 파문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황에서 십자군을 선포함으로써 세속군주와의 대립으로 위협받고 있던 교황의 권위와 위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교황 우르바노 2세는 1095년에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비잔티움 제국을 도와 성지를 탈환하자고 선포했고, 이에 십자군이 시작하게 된다.
  • 악당 . . . . 7회 일치
         나쁜 짓을 하는 사람. 창작물로 가면 어단어에서 보듯이 빌런이 되며, 그 중에서도 도가 지나친 부류를 초악당(슈퍼빌런)이라고 한다. 반대로 악당 짓거리도 최후도 못났을 경우 소악당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외모만으로도 존재감이 빛나는 유형.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첫인이 중요한 것은 창작물에서도 예외가 아니기에, 대개 미형 악역인 경우는 작품 내외적으로 인기나 옹호가 많다. 특히 성격까지 매력적이면 (다른 의미로) 답이 없다. ~~여기에 성우 더빙까지 된다면...~~ ~~그만해~~ 물론 악당으로서의 행적이 인간말종스러우면 그 외모가 소용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그 외모가 사라질 정도의 최후를 맞이하는 편.
          * '''무능력한 사/게으른 사/자폭하는 악당'''
          답이 없다. 주인공이라는 입장 줄거리의 핵심이 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죽기 전까지는' 극을 이끌어가게 되고, 그만큼 악행도 길어진다. 자신이 악당임을 자각하고 있으면 '안티 히어로'로 발전할 수 있지만, 악당임을 자각하면서도 악행을 계속한다면 진짜로 답이 없다.
          * '''매드 사이언티스트'''
          해당 인물이 악당이라는 말은 반대로 그 친인척들이 (대적으로) 선인이라는 말이 되므로, 그 친인척들은 십중팔구 피해자나 적대자가 된다.
  • 양시영 (1944년) . . . . 7회 일치
         | 이름 = 양시
         '''양시'''(楊始榮, [[1944년]] [[1월 2일]](음.[[1943년]] [[12월 7일]]) ~ ,[[대구광역시|대구]] [[달성군|달성]])은 전직 지방자치공무원이면서,전직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달성군수이다.
         * [[1970년]] [[남대학교]] 토목공학 학사
         * [[1982년]] [[남대학교|남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 천시청 도시과장(1990년)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양시칠리아 왕국 . . . . 7회 일치
         하지만 민족주의, 개혁사을 배척하는 부르봉 왕조의 통치는 불안정하여, 1820년, 1848년에 부르봉 왕조의 통치에 반발하는 혁명이 일어났으며, 결국 1860년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끄는 천 명의 [[붉은 셔츠 부대]]가 시칠리아 왕국에 륙한 것을 시작으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붉은 셔츠 부대가 시칠리아 왕국군에게 승리를 거두자, 이미 불만이 팽배하던 시칠리아 전역에서 호응이 일어나 양 시칠리아 왕국은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실한다.
         붉은 셔츠 부대는 시칠리아에서 남 이탈리아에 륙, 나폴리 왕국군과 본격적으로 교전을 벌여 여러 차례 승리를 거뒀다. 게다가 북쪽에서 사르데냐 왕국군이 남하해오자 결국 나폴리 왕국 마저 항복하여 양시칠리아 왕국은 붕괴하고 만다. 두 지역은 신생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양 시칠리아 왕국은 나폴레옹 시대의 [[헌법]]을 폐기하고, 나폴리에 있는 중앙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치하에 놓였다. 시칠리아에서는 자치를 요구하는 분리 운동이 시작되었다. 역대 왕들은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여, 민족주의나 개혁사을 배척하고 오래된 사회, 정치 구조를 유지하려는 통치를 유지했다.
         구시대적 체계를 유지한 양시칠리아 왕국은 경제적으로 당히 낙후되었는데, 사실 북부의 사르데냐-피에몬타 왕국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남부에 대한 병합을 망설일 정도였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 [[스틸 볼 런]]에 등장하는 네아폴리스 왕국(ネアポリス王国)은 명칭이나 통치 지역 면에서 양시칠리아 왕국에 해당하는 듯 하지만, 작중 시기인 1890년 시점에서 양시칠리아 왕국은 이미 멸망하고 이탈리아 통일이 완료된지 오래되었으므로 현실과는 다르다. 하지만 당히 구시대적이고 불합리하게 보이는 국가 정세나, 결국 혁명으로 왕정이 전복되버린 것은 양시칠리아 왕국과 유사점이 있을지도?
  • 영국 . . . . 7회 일치
         "국"이라는 명칭은 잉글랜드의 한자 음차인 길리(英吉利)에서 따왔다.
         역사 구석구석이 혐성으로 뒤덮여있다.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는 분쟁 대부분은 국이 어떻게든 연루되어있다.
         19세기 초 [[청나라]]에 [[아편]]을 팔다가 몰수&추방 당한 자국 인들을 위해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사실 아편 몰수는 명분이었고 시장 개방이 목표였다.
         20세기 초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 지방 달라고 빼액거리자 줬다. 우리 시대의 평화 ^^. 국을 비롯한 연합국을 믿던 체코슬로바키아는 얼마 못가고 독일에게 완전히 잡아먹혔다.
          * [[국 요리]]
  • 오다 노부나가 . . . . 7회 일치
         그 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대군을 격파하고 미노 지역을 흡수한 뒤 락을 단행하여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고 일본을 자신의 향력 하에 통합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에치젠 지역을 공격하다 매제 [[아자이 나가마사]]의 모반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다이묘들이 '포위망'을 펼쳐 견제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정치 및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이를 차례차례 타개해 나가 일본 제일의 실력자가 된다. 그러나 후에 서쪽의 [[모리]] 가를 공략하던 도중에 혼노지에서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반을 일으키는 바람에 거기에서 사망하고 만다.
         당시 기준으로 여러 방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행보를 보인 인물로, 공업 촉진을 위해 [[관문]]을 철폐하거나 종교의 향력을 억제하는 등 선진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군사적으로 최강은 아니었으나 이를 전략적인 밑그림을 통해 역전시켜 다른 다이묘들을 차근히 압도해 나갔다. 한편 성정이 폭급한 부분이 있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왕]]'과 같은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했으나 사적인 부분에서는 당대 기준으로 오히려 자한 부분도 보인다.
         사실 일본을 지배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부하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는 극적인 모습이나, 인물을 보여주는 다양한 일화가 남아 있어 현대까지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창작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인물이다. 창작물에서도 이미지가 극적이라 무슨 마왕 같은 걸로 나오는 빈도가 매우 높다.
  • 올마이트 . . . . 7회 일치
         평화의 징이라 불리는 최고의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이 말에 어울리게 혼자서 수많은 빌런들을 퇴치했다. 그의 등장으로 범죄율이 급감했을 정도. 평화의 징이란 이명도 그에 대한 찬사로서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생김세의 특징은 큰 체구의 근육질이며 더 큰 특징은 화풍(...). 서구 히어로 만화에 나와도 무리없는 화풍이며 그가 등장하면 정말 화풍이 다르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리고 항 웃는 표정이며 미세한 변화는 가끔 있으나 이외에는 얼굴에서 웃는 표정이 떠나질 않는다.
         이렇듯 완벽한 히어로 그 자체이나 사실 타인에게 털어놓지 못할 사정이 있었는데 사실 그는 몸 태가 정이 아니었다. 과거 강적과의 싸움에서 극심한 부을 입은 나머지 거구의 근육질 체격은 몇시간만 유지할 수 있고, 대부분은 삐쩍 마른 몸집이 되는 것. 은퇴해야 하는 황임에도 빌런에 대한 억제력이 되는 입장이기에 미루고 있다. 그의 특유의 표정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도 있지만 마음 속에서 들끓는 중압감과 공포심에서 달아나기 위함이다. 이러한 판에 미도리야 이즈쿠라는 소년과 만나게 되고, 그를 후계자 삼아 자기가 가진 힘인 [[원 포 올]]을 물려주게 된다. 동시에 그의 스승이 되어 그를 단련시키게 된다.
  • 우용득 . . . . 7회 일치
         |문 표기 = Woo Yong-Deuk
         |사진 사이즈 =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서,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우리은행|한일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포지션은 [[포수]]로서 [[1970년]]대 국가대표 선수였다. [[1981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우리은행|한일은행]] 코치로 있다가 [[1982년]] [[KBO 리그]]의 출범과 함께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진에 합류하였다. 코치라고는 했지만, 그 당시에 워낙 젊었기 때문에 [[1983년]]까지 종종 선수를 겸하여 출전하기도 했다.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분류:롯데 자이언츠 감독]][[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분류:단양 우씨]]
  • 워저드 . . . . 7회 일치
          특이 사항이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루안을 클리어 했을 경우 플레이어중 루안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 유일한 캐릭터이며[* 레오와 타오의 경우는 서로 대화하면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타바사의 경우는 타바사가 찾는 지식은 위험하다고 말하며 타바사도 거기에 대답을 한다. 하지만 무쿠로의 경우는 그냥 아무 말도 없이 하늘로 올라갈 뿐이다. 무쿠로가 대화하는 대는 주군의 또다른 부하.] 두번째로 특수 피니쉬 연출 3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다.[* 세로 쪼개기는 레오, 타바사도 있지만 가로 쪼개기와 심장 뽑기는 무쿠로 전용 피니쉬이다. 반대로 타오는 특수 피니쉬가 존재하지 않는다.]
          파동 승룡계에 충실하며 신발에 불을 점화하여 그것으로 대를 공격하는 스타일이 주가 된다. 기존 스트리트 파이터에 익숙해진 유저들에게는 추천한다.
          포켓 파이터에서는 타바사가 대의 공격을 방어시 일정확률로 타오를 꺼내서 인간 방패로 써먹는 안습한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공룡처럼 생긴 [[드래곤]]. 불을 뿜는 것이 주공격. [[포켓 파이터]]에서는 류가 엔딩에서 대결하게 된다. 결국 류는 하우저에게 개발린다. [[타츠노코 VS 캡콤]]에서는 카라스의 엔딩에 나오지만 류와는 반대로 카라스에게 죽는다.(…) 캡콤 파이팅 잼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로 나오기도 했다. 보스를 정하고 만든 캐릭터를 별다른 수정 없이 넣은 탓에 덩치가 타 캐릭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탓에 피격 판정도 거대해서 보통은 약캐릭터 취급이다.
          오징어 모습을 한 요괴. 성우는 호소이 오사무. 회오리를 날리거나, 자신의 자식을 생산하여 대에게 날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뜻밖에도 캡콤 파이팅 잼에선 타오와 타바사를 제치고 플레이어 캐릭터로 등장했다. 하우저와는 달리 제법 할만한 편.
          [[하피]]족. 성우은 나카 토모코. 여성형 요괴. 요괴(그것도 캡콤제 요괴) 캐릭터 치고는 미형. 날개를 이용해 이리저리 날아다니기 때문에 대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발돌에게 가는 길을 지키는 문지기 석. 성우는 호소이 오사무. 해당 요괴들을 모두 물리친 다음에 만나게되는 '''중간보스'''격이라 할 수 있다. 얼굴과 더불어 네개의 손에 각기 칼이 들려져 있어 기괴한 느낌마저 든다.
  • 원피스/884화 . . . . 7회 일치
          * [[샬롯 카타쿠리]]의 무장색 패기로도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완전 무적의 회피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몽키 D. 루피]]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럴리가 없었다. 그 실체는 "견문색 패기". 패기로 미래를 예지하고 거기에 맞춰 효율적으로 신체를 변형해 회피하고 있던 것이다. 루피는 그 원리를 간파함과 동시에 "카타쿠리가 냉정을 잃으면 유효타를 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성공시킨다. 자신의 본색을 들켜 당황하던 카타쿠리는 루피가 기어4를 앞세워 퍼붓는 공격에 얻어맞으며 밀리는 듯 보였지만 금새 냉정을 되찾고 반격, 루피는 기어4 태에서도 나가떨어진다. 다만 카타쿠리 또한 체력소모가 당한 듯 보이는데.
          * 시폰과 [[샬롯 푸딩]], [[디]]는 바깥 사정을 모르는 채로 작업에 열중. 한편 시폰과 푸딩이 디와 함께있다는걸 모르는 [[샬롯 브륄레]]는 전보벌레로 밀집모자 일당이 곧 카카오섬으로 간다는 정보를 전달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9시간 뒤, 심야 1시에 그들과 그들을 추격하는 [[샬롯 페로스페로]]와 빅맘 [[샬롯 링링]]이 도착할 예정이다. 루피도 그때까지 카카오섬에 가겠다 했지만 카타쿠리에게 패할 테니 어림도 없다고 너스레떠는 브륄레. 살아남은 밀집모자 일당도 추격대가 처리할 거라 안심시키며 꼭 마마를 안심시킬 웨딩 케이크를 완성해달라 당부한다.
          * 연락을 마침 푸딩은 루피에게 큰일이 났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녀도 카타쿠리의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레 루피가 무조건 질거라고 생각한다. "오빠는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다"는 푸딩에게, 디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 한편 빅맘 해적단의 수뇌부는 바다를 감시하던 바다소들이 한 마리도 없이 사라진 걸 파악하고 경악한다. 써니호가 추격받지 않고 도주 중인 것도 그 때문. 일행은 이하게 여기지만 항해를 계속한다. [[징베]]는 자기들 처지도 처지지만 알라딘의 어인해적단이 잘 빠져나갔을지 걱정한다. 사실 바다소가 사라진 건 그들의 덕분이었다. 어인해적단은 인근해역에서 [[샬롯 플라리네]]의 노래로 바다소들을 유인,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 세 ==
  • 월하노인 . . . . 7회 일치
         참고로 원작은 당히 막장이다.
         노인이 웃으며 말하길, "이것은 세의 책이 아니다. 그러니 네가 읽기 어려울 것이다."
         노인이 말하길, "네가 오는 것이 빨랐다. 와서는 안될 것은 아니다. 무릇 저승의 벼슬아치(幽吏)는 모두 사람이 사는 다루고 있는데, 어찌 이 세에 와서는 안되겠는가. 지금 길을 가는 자는, 인귀(人鬼)가 반반. 나눌 수가 없다."
         위고가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묻자, 노인이 말하기를, "붉은 끈(赤縄)뿐이다. 이걸로 부부의 발을 묶어서, 태어났을 때 몰래 서로를 이어주도록 되어있다. 비록 원수의 집안이건, 귀천(貴賎)의 격이 다르건, 하늘 끝에서 관직을 가지고 있건, 오나라와 초나라의 다른 시골에 있건, 한 번 맺어지면 달아날 수 없다. 너의 발에도 이미 맺어져 있는 대가 있으리라. 다른 곳에서 찾아도 이롭지 않다"
         또다시 십사년, 위고는 아버지의 음덕으로 주의 군인(相州軍)이 되었다. 자사(刺史) 왕태(王泰)는 위고를 사호연(司戸掾)에 앉혀 자신을 보좌하게 하였는데, 위고는 송사일에 유능하였다. 그리하여 왕태는 자신의 딸을 위고의 아내로 삼도록 했다. 나이는 열 여섯, 일곱이고, 용모는 아름다웠다. 위고는 아주 행복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언제나 미간을 가리는 한 송이 꽃 비녀를 달고 있어, 목욕할 때도 벗지 않았고, 항 잠시도 떼어놓지 않았다.
         훗날 아들 곤(鯤)을 낳았는데 안문태수(雁門太守)가 되었고, 태원군 태부인(太原郡太夫人)으로 봉해졌다. 저 세에서 몰래 정해진 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송성의 관리가 이를 듣고, 그 점을 「정혼점(定婚店)」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 은혼/594화 . . . . 7회 일치
          * 우츠로는 자신이 죽을 방법을 알 수 있다면 피 한 방울까지 조사해도 좋지만, 그 자신은 "나 이외의 존재를 끝장내는 방법이라면 지구 누구보다 잘 안다"고 경고한다.
          * 그 개패에 쓰는 열쇠가 "각인". 천도중 최위 간부의 증표이자 문의 개패가 가능한 유일한 코드다.
          * 애초에 용맥을 폭주시킬 힘은 그들 천도중에게 밖에 없다. 즉 그들 사이에 배신자가 있다고 밖엔 생각할 수 없다.
          * 우츠로는 그런 자를 따르는 군대는 어디에 있겠냐고 묻고 천도중은 "문이 인질로 잡힌 이 어떤 나라도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군대는 어떨까?"라며 우츠로가 손에 넣은 "하루사메"를 언급한다.
          * 그들은 우츠로가 반란분자 숙청을 위해 원정을 갔음을 지적하며 사실 원정은 실패했다고 말한다.
          * 적합하지 않은 육체에 필요이으로 많은 불사의 피를 흘려넣은 부작용으로 그들은 "그릇에 마그마를 담은 것처럼" 신체가 녹아내린다. 그러나 아무리 팔다리가 떨어지고 머리마저 떨어지더라도 그들은 결코 죽지는 않는다. 몸이 완전히 썩어 없어질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는다.
          * 천도중은 전우주를 대로 전쟁이라도 할 거냐고 묻는데, 우츠로는 태연히 답한다.
  • 은혼/596화 . . . . 7회 일치
          * 가부키쵸의 주민들은 하나둘 저항의 의지를 모아가는데 막 그들의 구심점인 해결사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 오토세 아줌마는 세이 멸망하려는 판에도 가게 문은 꼬박꼬박 열고 있다.
          * 하지만 에도가 멸망하거나 말거나 자기는 언제나 멸망 직전 태라며 "이제야 겨우 나랑 같은 차원에 온 것"이라며 썩은 미소를 짓는다.
          * 그녀가 만났던 겐가이는 20년 전 천인내습 당시를 회한다.
          * 하지만 막 당사자인 천도중은 오리무중 태. 막부도 와해되어 무정부 태가 다름없다.
  • 이갑상 . . . . 7회 일치
         | 이름 = 이갑
         | 출생지 = [[경북도]] [[대구]]
         | 훈 = 대통령표창(1977년)
         | 웹사이트 =
         '''이갑'''(李甲相, [[1924년]] [[3월 16일]] ~ [[2017년]] [[1월 29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22242 "젊은이들, 나라사랑 되새겨 주오" 생존 애국지사 이갑옹] 매일신문 2009-03-02</ref>
         * [http://www.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5144&ipp=10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이갑 공훈록]
  • 이동훈 (1996년) . . . . 7회 일치
         |문 표기 = Lee Dong-Hun
         |사진 사이즈 =
         [[2016년]]에 입단하였다. [[2017년]] [[5월 5일]] [[kt 위즈|KT]]전에서 [[배제성]]을 대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하였다.<ref>[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1953 프로 첫 안타 한화 이동훈 "이제야 웃네요"] - 스포티비뉴스</ref> [[2018년]] [[8월 9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신재 (야구 선수)|신재]]을 대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read/668077 한화 이동훈, 데뷔 첫 홈런 신고] - 스포츠서울</ref>
         * [[대구원고등학교]]
  • 이병석(정치인) . . . . 7회 일치
         ||<:> [[강병석]][br](20대) ||<:> ← ||<:> 이병석[br](21대) || → ||<:> [[박희]][br](22대~) ||
         1952년 [[경북도]] [[포항시|일군]]에서 태어났다. 포항 동지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및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강사]],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객원[[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옥중 출마한 [[무소속]] [[허화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허화평의 [[국회의원]]직 실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도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박태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허나 이런 훈훈한 일화도 얼마 못가 [[포스코]] 비리 연루 의혹을 받으면서 빛이 바랬다.(...) 결국 2016년 1월 25일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청]]에 의해 체포 장이 발부되었으며, 결국 2016년 2월 1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포스코 관련 비리 때문에, 새누리당이 인명진 비대위체제로 넘어간 뒤 2017년 1월 18일에 당에서 '''제명되었다'''.
  • 이상목 (야구선수) . . . . 7회 일치
         |선수명 = 이
         |문 표기 = Lee Sang-Mok
         |사진 사이즈 =
         '''이목'''(李相睦, [[1971년]] [[4월 25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대표적인 [[포크볼]] 투수이며 [[199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지만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해 [[1993년]] 시즌 중에 [[포수]] [[박선일]]을 대로 [[빙그레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빙그레에 이적한 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였고 시속 140km대의 직구와 낙차 큰 [[포크볼]]로 많은 승수를 얻었으며 [[1999년]] [[한화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동했다. [[2003년]]에 15승 7패를 기록하여 한화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후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에 이적하였다. 그러나 [[2006년]]을 제외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2007년]]에 방출되었으며 [[선동열]]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8년]]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
         [[정경훈 (야구인)|정경훈]]의 소개로 현재는 [[서울특별시]]에서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사회인 야구도 병행 중이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20215/44075265/3 이목 “다시 잡은 야구공…마구, 마구 던졌죠] - 동아일보</ref>
         * {{KBO 투수|90853|이목}}
  • 이상민 (야구선수) . . . . 7회 일치
         |선수명 = 이
         |문 표기 = Lee Sang-Min
         |사진 사이즈 =
         '''이민'''(李相旼, [[1990년]] [[11월 4일]] ~ )은 [[KBO 리그]]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이다. 그의 사촌 형은 전 [[KBO 리그]] [[고양 원더스]]의 [[내야수]] [[이성엽]]이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00&article_id=0000000027 信人을 꿈꾸는 新人들 ④ 동의대학교 이민ㆍ강동호ㆍ김성호] - NC 다이노스</ref>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전체 6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퓨처스리그 15경기에 등판해 5홀드, 평균자책점 0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2013년]] [[6월 15일]]에 1군에 올라왔다. 이 날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56327 '아기공룡' 이민의 성공적인 1군 데뷔전] - OSEN</ref>
         [[2015년]]에 2군에서는 당히 뛰어난 피칭과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으나 1군에서는 23경기에 등판해 1패, 10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하였다.
  • 이영 (1494년) . . . . 7회 일치
         '''이'''(李英, [[1494년]] ~ [[1563년]] [[2월 22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 군인이다. 자는 현보(顯父), 호는 괘편, 본관은 천이다. 청렴결백하였으며, 수령 재직시는 선정을 베풀었으며 무관으로 [[청백리]]에 녹선되기도 하였다. 무신으로 드물게 청렴하고 근실했다는 평을 들엇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
         [[조선 중종|중종]] 때인 1514년(중종 9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무관직을 거쳤으며, 절도사, 참판 등을 역임했다. 벼슬에 있으면서 염근(廉謹)하기가 무반(武班)에서 가장 보기 드문 자라는 평을 들었다. 1545년 [[조선 명종|명종]]이 즉위하자 단천 군수를 지냈다. 이듬해 정평 부사에 부임하여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여 명관으로 이름이 높았다. 정평부사 재직시 사적으로도 백성을 범하지 않아 감사가 포장(褒奬)하고 통정대부로 가자(加資)되었다. 1552년 회령부사로 있으면서 훌륭한 정치를 베풀고 청백리에 뽑혔다. 또한 야인을 회유하여 변방을 안정시켰다. 이듬해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군비 확충과 군사훈련에 공을 세워 동지중추 부사가 되었다. 1556년 평안도 절도사가 되었다. 그 후 병조참판과 제주 목사·경우도 병마절도사·부호군·호군 등을 지냈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도민이 그의 업적을 추모하여 그의 초화를 그려서 봉안하고 참배하였으며 그 당을 괘편당(掛鞭堂)이라 하였다. 그의 졸기에 의하면 [[대구]](大丘)의 집에 화재를 당하여 처자가 살 데가 없게 되자, 주이 그 고절(苦節)을 가히 여겨 특별히 집을 지어 내려주고 또 의복과 식량을 이어주게 하였다 한다. 그러나 성질이 편협하고 급하여 형벌이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는 평도 있다. 1563년 2월 호군으로 재직 중 졸하였다.
         [[분류:1494년 태어남]][[분류:조선의 무신]][[분류:1563년 죽음]][[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육군 군인]][[분류:병마절도사]][[분류:병사한 사람]][[분류:천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장군]]
  • 이원만(1904) . . . . 7회 일치
         1904년, [[경북도]] [[포항시|일군]]에서 아버지 이석정과 어머니 이사봉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7세까지 향리에서 한학과 4년제 사립학교에서 신학문을 수학하고 흥해공립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 졸업하였다.
         1930년, 일군 산림기수보로 취직하였다.
         1954년, 코오롱그룹의 전신 개명사를 설립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북도]] 선거구에 [[민주당(1955년)|민주당]]으로 출마하여 [[참의원]](경북도)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가 집권하자 1963년에 [[대구광역시|대구시]] [[동구(대구)|동구]]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신민당(1967년)|신민당]] [[김정두(1918)|김정두]] 후보에 밀려 낙선한 이후로는 기업 경에 전념하였다.
  • 이재율 (1993년) . . . . 7회 일치
         |문 표기 = Lee Jae-Yul
         |사진 사이즈 =
         [[2016년]] [[4월 2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손시헌]]의 안타 후 대주자로 교체되면서 데뷔 첫 경기를 치렀다. 2루 도루에 성공했고 이 도루는 2016년의 팀 내 첫 도루였다.<ref>{{뉴스 인용 |저자= 권태|제목= NC 구창모·박준·이재율 성공적인 데뷔전|url=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76362 |뉴스= 경남신문|출판사= |위치= |날짜= 2016-04-02|확인날짜= 2016-04-09}}</ref>
         ! style="color:white;background-color:#408080;" |'''인율(%)'''
         * [[남대학교]]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
  • 이진만 (1675년) . . . . 7회 일치
         [[1675년]](숙종 1)에 경북도 에서 태어났으며, 도촌 [[이수형 (1435년)|이수형]](李秀亨)의 8대손이고 성균관전적을 지낸 취사 [[이여빈]](李汝香+賓)의 4대손이며, 노인직으로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을 지낸 이기정(李基定)의 아들이다. 동생으로는 이진화(李鎭華), 이진방(李鎭芳), 이진(李鎭英) 등이 있었다.
         [[1699년]](숙종 25) 문과(文科)에 갑과(甲科) 3등으로 급제하였으나 시험 문제에 문제가 있다 하여 합격이 취소, 파방되고, 왕명으로 다시 시험에 응시하게 하니 이것은 선비가 취할 길이 못된다고 거절하였다. 그는 [[과거 제도]]의 폐단을 논하는 소문을 올린 뒤 낙향하였으며, 이때부터 벼슬길을 단념하고 [[성리학]](性理學)과 도학(道學)연구에만 전념하였다. [[1702년]](숙종 28) 식년시 생원 3등에 합격하고 그 해의 진사시에 다시 응시하여 식년시 진사 3등 53위로 합격하였다.
         그는 [[과거 제도]]의 폐단을 비판하는 소 외에도 [[단종]] 때의 충신인 [[금성대군]](錦城大君)의 충절을 설명하며 [[금성대군]]의 사우(祠宇)를 나라에서 창건해 줄 것을 소하였고, 세종 때의 천문학자인 문절공(文節公) [[김담]](金淡)을 모신 단계서원(丹溪書院)을 철폐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단계서원의 철폐를 막아달라는 소문 등을 올리고 낙향하였다.<ref>김담은 그의 외선조인데, 8대조모 이수형의 처 예안김씨의 친정아버지로서 외9대조가 되며, 고조모 이여빈의 처 예안김씨를 통해서는 외10대조가 된다.</ref>
         [[분류:1675년 태어남]][[분류:1752년 죽음]][[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시인]][[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이홍우(1959) . . . . 7회 일치
         || '''출생지''' ||[[경북도]] [[구미시|구미]] ||
         || '''경력''' ||[[민주노총]] 사무총장[br][[진보정의당]] 최고위원[br][[정의당]] 노동위원장[br][[현대자동차]]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br][[심정]] 대통령후보 노동선대본부장[br][[정의당]] 경기도지사 후보 ||
         [[1959년]] [[10월 21일]] 경북도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대구동인초등학교, 대구신중학교, [[경신고등학교(대구)|대구경신고등학교]], 계명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여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고양시]] [[일산구]] 을 선서구에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김선(1960)|김선]]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7년]]에는 [[심정]] [[정의당]] 대통령후보 캠프에서 노동선대본부장으로 선임되었다.
  • 이희근 (1929년) . . . . 7회 일치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이희근'''(李喜根, [[1929년]] [[12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공군 장성을 지낸 국기업가 겸 정치가이다.
         * [[경북고등학교|경북도 대구 경북고등보통학교]] [[졸업]]
         |후임자 = [[김태 (1930년)|김태]]
         {{국가보위비대책위원회 위원}}
         [[분류:192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장]][[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공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국방참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전두환]][[분류:백선엽]][[분류:박정희]][[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분류:심대평]][[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일곱개의 대죄/180화 . . . . 7회 일치
          * 엘리자베스는 호크와 함께 "돼지의 모자"를 운하며 "멜리오다스의 시체"를 보살피고 있다.
          * 엘리자베스는 혼자 힘으로 "돼지의 모자"를 운하며 열심히 지내고 있다.
          * 실수연발에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지만 귀여운 외모와 냥함으로 손님들을 휘어잡는다.
          * 호크는 혼자 술집을 청소하다 수한 발소리를 듣는다.
          * 멜리오다스의 시체는 리벨리온이 뽑혀진 태이고 의외로 때뜻하게 회복된 태. 죽었다면 처가 아물리가 없다.
  • 일곱개의 대죄/186화 . . . . 7회 일치
          * 그러나 에스카노르의 마력은 . 십계 두 사람이 저항도 못하고 밀려나기 시작한다.
          * 그러나 열기를 너무 방출하는 태라 바로 돌아가지 못한다.
          * 에스카노르와 젤드리스의 마력이 단숨에 먼 곳으로 사라졌다고 확인하며 데리엘에게 자신들도 에스카노르를 대하러 갈지 묻는다.
          * 갑옷은 녹아버린데다 십계의 계금 때문에 싸울 수도 없는 황.
          * 마을에 있던 이들은 모두 젤드리스의 "경신"의 계금에 걸려있는 태. 마신왕을 칭송하며 성기사들을 죽이려 든다.
  • 일곱개의 대죄/187화 . . . . 7회 일치
          * 리오네스 방위전은 사실 실패로 돌아가고 길선더 등은 국왕 바트라를 피신시키려 하나 그때 드레퓌스(프라우드린)이 나타난다.
          * 분명 십계는 "원한 어둠의 관"에 봉인되었는데 누가 봉인을 풀었냐고 경악해한다.
          * 몬스피드의 설명으론 "마신족의 어둠과 반된 빛의 힘"이며 빛의 입자로 대을 분해해버리는 마법이라고 한다.
          * 네로바스타는 칼로 데리엘의 목을 치지만 처는 커녕 칼만 부러진다.
          * 단박에 네로바스타를 썰어버리는 데리엘. 체가 그대로 지워져 버린다.
          * 거창한 등장 과정에 비해서 제대로 싸우기는 커녕 도망이나 치는 등 한심한 모습만 보여주다 끔살 당했다. 특히 데리엘에게 대가 안 될 것 같자 구대전을 운운하며 횡설수설하는 모습은 최악. 본체가 아니라 덴젤의 몸에 임한 것이지 네로바스타 자체가 죽은 건 아니겠지만, 덴젤은 고작 이따위 여신을 부르자고 개죽음을 당했다.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7회 일치
          * 그레이로드는 멀린이 "불살"의 계금에 걸리게 유도하지만 멀린은 무한한 마력으로 자신의 시간을 정지시켜 놓아서 아무런 향이 없다.
          * "파이브 로스트". 대의 오감을 빼앗는 마법이다.
          * '''아무 향도 없다.'''
          * 그러나 인간의 목숨은 유한하며 시간도 유한하다. 이대로는 세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는데, 이만한 부조리는 단안컨데 존재하지 않는다.
          * 아무리 막대한 마력이 들어가도 그녀에겐 의미가 없다. 한 번만 발동시킬 수 있으면 "원히 유지할 수 있으니까"
          * 그녀는 마신족 사이에서도 유명한 존재, "베리아리인의 딸"이었던 것이다.
          * 지의 성기사들도 어떻게든 바람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 쓴다.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7회 일치
          * 창 바스키어스 제 7형태 "달의 꽃"(문 로즈). 그로부터 "생명의 물방울"이 흘러나온다. 물방울은 죽어가던 할리퀸과 디안느를 순식간에 소생시키고 기력을 불어넣는다. 이것은 마지막 생명의 물방울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십계인 그로키시니아가 두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한다.
          살아는 났지만 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할리퀸과 디안느. 할리퀸은 대체 무슨 속셈이냐고 묻는다. 거기에 대답하는 그로키시니아.
          드롤이 여기서 빵 터진다. 지금까지는 도 할 수 없었던 모습. 할리퀸은 잠깐 황당해하다 십계인 두 사람이 왜 자기들을 단련시키는 거냐고 더 자세히 캐묻는다.
          * 할리퀸은 3000년 전 성전에서 웅왕으로 칭송 받았던 두 사람이 무슨 일이 있어 브리타니아를 배신한 거냐고 묻는다. 그로키시니아는 대답 대신 킹과 디안느가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 어땠는지를 증명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들이 주려는 시련은 분명 큰 성장으로 이어지지만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라 한다. 강제로 시키진 않겠지만 충분히 숙고한 다음 선택하라고 권하는데.
          * 비명소리가 들린 곳으로 날아가면서 평소와는 비교도할 수도 없는 속도가 나서 깜짝 놀란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그곳엔 매우 소녀틱한 말투와 행동으로 방방 뛰는 거인왕 드롤이 있었다. 할리퀸이 그... 가 아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진정시키는데 정말 디안느인지는 자신이 없는 말투다. 하지만 목소리나 머리카락을 비비 꼬는 행동은 분명 디안느다. 디안느도 모습은 그로키시니아지만 목소리는 할리퀸이었기 때문에 곧 황을 파악한다. 드롤이 사용한 술법으로 그들의 몸이 각각 그로키시니아와 드롤로 바뀐 것이다.
          * 멜리오다스였다. 경악하는 두 사람과 달리 멜리오다스는 친구라도 만나러 온 것처럼 가벼운 모습. 인사까지 한다. 멜리오다스가 부활한걸 모르는 두 사람은 한 달 전에 죽지 않았냐고 하는데 멜리오다스는 농담 취급한다. 게다가 디안느를 "드롤씨"라며 매우 친밀하게 부른다. 이들은 분명 한 달 전 사투를 벌인 사이가 아닌가? 디안느와 할리퀸은 어안이 벙벙하다.
  • 일곱개의 대죄/209화 . . . . 7회 일치
          *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치뤄진 격전이 막을 내린다.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본래의 인간형으로 돌아와 잠든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혼신을 다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너무 지쳐서 두 십계의 태도 확인하지 못한다. [[멜리오다스]]가 대신 그 둘이 원태로 돌아왔다 전하며 감사를 표한다. 엘리자베스는 긴장이 풀려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그대로 실신, 멜리오다스가 보호한다.
          * 디안느는 움직이지 못하는 대를 공격하는 그의 비겁함을 비난한다. 할리퀸은 디안느와는 달리 그 점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전쟁엔 비겁이고 뭐고 없으니까. 뤼드셀은 그가 편들어 준다고 생각해서 반색하지만 결국 그도 뤼드셀의 행동에 찬성하지 않는다. 비록 십계라지만 엘리자베스가 목숨을 걸고 구해냈는데, 지금 뤼드셀의 행동은 그걸 짓밟는 것이다. 그 말에 뤼드셀은 반박도 못하고 표정을 구긴다.
          *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를 안고 드롤과 그로키시니아 옆으로 날아온다. 그는 둘에게 감사를 표한 뒤 공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리엘]]과 [[타르미엘]]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한다. 두 사대천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리엘은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며 선을 긋는다. 타르미엘은 그저 엘리자베스님의 편을 든 것이라며 그 말을 거든다. 여전히 멜리오다스를 적대하는 건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더이의 살생은 피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황이 전혀 달갑지 않은 뤼드셀은 어느 새 고요한 얼굴로 돌아가 멜리오다스를 쳐다보고 있는데.
  • 일곱개의 대죄/227화 . . . . 7회 일치
          *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 [[디안느]]가 반격하고 [[에스카노르]]마저 정오에 가까워지며 힘을 되찾자 강해진 해골병이라도 전혀 대가 되지 않았다.
          * [[젤드리스]]를 미끼로 사용해 [[멜리오다스]]를 함정에 빠뜨린 [[메라스큐라]]. 멜리오다스를 삼킨 "암담의 고치"는 부의 에너지를 빨아들여 메라스큐라가 부리는 사령의 힘을 강화한다. 그 힘이 부여된 해골병들은 점차 강해져 손귑게 대하던 일곱 개의 대죄 일행을 당황케 한다. 강해진 해골병의 힘은 거인인 디안느가 떠밀라나갈 정도가 됐다.
          * 마을 한 복판에 거대한 꽃이 피어났다. 꽃은 덩쿨을 뻗어 땅위를 활보하는 해골들을 하늘로 내던졌다. 잔 창 샤스티폴의 제 4형태 "선 플라워". 할리퀸의 성장에 따라 그 힘과 규모도 무지막지해졌다. 그 크기는 이전과 비교를 거부했고 하늘로 쏘아대는 화력은 강화된 해골병이 잔해 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였다.
          * 일행 중 아직 고전하는 건 호크를 제외하면 [[반(일곱 개의 대죄)|반]] 뿐이었다. 그의 특기는 해골병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데다 하나하나의 힘도 강해져서 대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다 머릿수까지 불어나자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허용하고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그때 호크를 따라 도망치고 있어야 할 [[에스카노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메라스큐라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강해지던 해골병은 비정적으로 비틀리고 팽창했다. 멀린이 단숨에 문제점을 진단했다. 너무 강한게 문제였다. 멜리오다스는 차기 마신왕으로 거론되던 강력한 마력의 소유자. 평범한 소재로 그 힘을 감당할 리가 없었다.
          * 해골병들을 정리한 일행은 여유가 생겼다. 호크는 녀석들의 잔해에 화풀이를 하며 혼자 싸운 것 같은 생색을 냈다. 그때 멀린은 주위에 감도는 수한 기운을 알아차렸다. 정신지배의 징조였다. 일행에게 정신을 최대한 유지하라고 경고했다. 할리퀸도 느낄 수 있었다. 해골에서 빠져나온 원념들이 이제 산 사람에게 달라붙으려 하고 있었다. 그는 곧 디안느의 태를 걱정한다. 그러나.
  • 일본어 단어를 찾아보기 좋은 사이트 . . . . 7회 일치
          아사히 신문, 코단샤, 소학관에서 운하는 사전 사이트. 유용성과 신뢰성이 높다.
          하테나 사이트에서 운하는 키워드 일람. 범위가 넓다.
          동의어를 실어두는 사이트. 이쪽은 동의어를 찾아주기 때문에 의미 만이 아니라 그 말의 뉘양스를 아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다시 돌아와서 구글. '''위의 사이트를 전부 한꺼번에 검색해서 결과를 보여주니까''' 결국 구글이 최강이다.
         [[분류:웹사이트]] [[분류:일본어]]
  • 임윤선(법조인) . . . . 7회 일치
         [[2009년]] [[SBS]] <[[일요일이 좋다]]-[[골드미스가 간다]]>에 방송인 [[노홍철]]의 맞선 대녀로 출연하며 처음으로 얼굴을 알렸다. ~~[[노처녀|아직도 미혼이다]]~~
         2012년에는 [[문화방송|MBC]] <[[최강연승 퀴즈쇼 Q]]> 첫회에서 팀원으로 참여해 예선 광탈했지만, 9회에 다시 참여해서 '''최초이자 유일한 7연승 챔피언이 되면서''' 3억원을 받아 화제가 되었으며 그 금 대부분을 기부하겠다고 밝혀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후 각종 방송 프로그램 진행 등을 맡으며 변호사와 방송 일을 병행하고 있다.
         2013년 12월 7일부터 방된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 출연해서 5회까지 살아 남았고 2015년 6월 27일부터 방되었던 <[[더 지니어스:그랜드 파이널]]>에 출연하여 4회까지 살아 남았다. 자세한 내용은 [[임윤선/더 지니어스]] 문서 참조.
         2015년 6월 24일 [[TV조선]]의 프로그램 <[[강적들]]> 85회 면세점 전쟁편부터 출연하고 있다. 9월 9일에는 [[KBS]] 드라마 <[[어셈블리(드라마)]]> 17회에 깜짝 출연, 주인공 [[진필]]을 심문하는 검사로 열연, [[김서형]]에게도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2016년 11월 [[TV조선]] <박종진 라이브 쇼>에서 반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며, [[채널A]] <신문 이야기 돌직구쇼>에 매일 아침 9시 고정 패널로, 2017년 7월 KBS [[역사저널 그날]]에 고정으로 출연 중이며 2018년 1월 [[JTBC]] [[착하게 살자]]에 출연했다.
          * 2016년 6월 [[새누리당]] 혁신비대책위원이 되었다가 8월 이후로 그만 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혁신비대책위원 시절 [[새누리당]]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과감한 발언을 해서 화제를 모았다.
  • 임현성 . . . . 7회 일치
          * 위 문서 : [[배우/한국]]
         || '''학력''' ||<(> [[중앙대학교]] 연극화학과 ||
         == 화 ==
          *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한국 화)]] [[마수동]] [[병장]] 역
          * 2014년 수한 그녀
          * 2017년 [[보안관(화)]]
          * 2016년 kbs 2 천의 약속
  • 장덕균 . . . . 7회 일치
         '''장덕균 '''([[1965년]] [[12월 20일]]~)은 [[대한민국]]의 화감독 겸 작가, 방송인이다. [[서울특별시]] 출신. [[개그 콘서트]] 작가로 활동하였다.
         == 수 경력 ==
         * 제17회 한국방송작가
         * 2002년 [[KBS 연예대]] 작가 코메디부문 <<[[개그 콘서트]]>>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추계예술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작가]]
  • 장의수 . . . . 7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뷰티 인사이드]]》 (2015년) - 우진 106 역
         * 《[[연평해전 (화)|연평해전]]》 (2015년) - 김면수병 역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장진남 . . . . 7회 일치
         저글링의 컨트롤이 뛰어나 경기 초반 대 진에 몇 기라도 난입하게 되면 [[프로토스]]로서는 악몽과도 같은 황을 만들어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악마 저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프로토스전과 저그전을 바탕으로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랭킹 7위에 오를 정도로 강한 저그 유저로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대적으로 취약한 테란전 실력으로 인해 발목을 잡히는 일이 많았으며, 2001년 하반기 전성기가 지난 후에는 급속도로 실력 저하를 보이면서 연전연패를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2003년 하반기부터 2004년 반기까진 공식전 16연패라는 불명예스런 기록도 세웠다.
         == 수 경력 ==
         * [[2001년]] 게임아이배 다수입
  • 장혁주 . . . . 7회 일치
         | 사망지 = {{국기나라|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 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한 일본인 장수 [[가토 기요마사]]를 다룬 〈가등청정〉(1939)을 시작으로 전시 체제에 협력하는 친일 작품을 집필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수록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광복 후 일본에서 활동하며 일본에 귀화했다. [[사이타마현]] [[히다카 시]]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했다.<ref>{{뉴스 인용
         |저자=권
         |제목=<nowiki>[정진의 대구이야기] (19) 대구의 두 친일 문인</nowiki>
         |저자=정
  • 재신 (배우) . . . . 7회 일치
         {{화인 정보
         |웹사이트 = [http://www.ime.kr/jaesin-kr 공식사이트]
         * [[세종대학교]] 예술대학 화예술학과 학사
         * 2013년 [[MBC]] 《[[황금 무지개]]》 - 서태
         === 화 ===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환규 . . . . 7회 일치
         | 활동 역 = [[개그맨]] & [[가수]] & [[VJ]]
         | 웹사이트 =
         == 수 경력 ==
         * [[2006년]] MBC 방송연예대 코미디시트콤부문 남자 우수
         * [[2008년]] 제16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 드라마방송부문 개그맨
  • 절대가련 칠드런/437화 . . . . 7회 일치
          * 미나모토는 인사이동일 뿐이라지만 적어도 1년은 있어야 하는 듯. 그리고 소령으로 진급했다.
          * 아카시 카오루는 속으로 "결국 미나모토만 격리해 놓는 거니 이득"이라는 시커먼 계산을 한다. 자신은 염동력으로 우주기지까지 방문할 수 있고 우주에 떨어져있는 미나모토를 대로 이런저런 작업을 할 수 있다며 환호한다
          * 결국 증거는 없는 거지만 "우린 만약의 경우 카오루를 위해 목숨 마칠 준비가 되어 있다. 당신은 미나모토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묻는데, 적당히 말을 돌리려다 결국 "설사 떤 황이든 미나모토만은 무사히 돌려 보낸다"는 약속을 한다
          * 시호는 지에서 츠보미의 진의를 파헤친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런 황이라면 최악의 형태로 밝혀질 것이다"고 말한다.
          * 미나모토가 소령으로 진급함으로서 일단 계급으론 효부 쿄스케와 동렬이 됐다.
          * 오랜만에 카오루가 아저씨 망 모드.
  • 절대가련 칠드런/441화 . . . . 7회 일치
         미나모토의 부재로 의욕을 실한 칠드런
          * 그렇지만 지금은 "녀석들의 약점을 쥐는건 생각보다 쾌하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 미나모토의 행방을 찾지 못한 칠드런은 극도의 사기저하 태.
          * 마츠카제 코우이치와 쿠모이 유리는 이 황을 염려한다.
          * 마츠카제는 그런 태라면 "오염을 더 전염시키는" 황이 올 수 밖에 없다고 보는데, 좋지 않은 황이지만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2화 . . . . 7회 일치
          * 하지만 블랙팬텀의 세뇌를 이겨내지 못하고 "진짜 세을 좀 먹는 존재를 밝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한다.
          * 표면으로는 요리나 하면서 한가하게 지내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서는 모호츠쿠 관측소의 시스템을 장악하고 감시카메라엔 가짜 이 흘러가도록 꾸미기 위한 시간벌이.
          * 하지만 미나모토의 요리를 즐긴 거 자체는 맞는지, 미나모토가 요리는 관두겠다고 하자 울이 된다.
          * 칠드런팀은 해 화재사고를 막기 위해 출동해 있다.
          * 후지코 레벨의 에스퍼가 간단히 세뇌될 정도라면 사실 저항할 수 있는 에스퍼는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 정문성 . . . . 7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싸이월드|23733547}}
         * [[순천향대학교]] 연극화학과 졸업
         * [[2013년]] [[SBS]] 《[[수한 가정부]]》 - 이태식 역
         * [[2015년]] [[SBS]] 《[[육룡이 나르샤]]》 - 한구
         === 화 ===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광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순천향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병곤 . . . . 7회 일치
         |문 표기 = Jeong Byeong-Gon
         |사진 사이즈 =
         이적 후 [[2013년]] [[6월 28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첫 안타인 동시에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였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06280100249080019311&servicedate=20130628 삼성, 정병곤 생애 첫 끝내기로 KIA에 대역전승] -스포츠조선</ref> [[김수 (1990년)|김수]]가 부으로 시즌을 마감하자 [[2013년 한국시리즈]]에 [[김수 (1990년)|김수]]를 대신하여 [[유격수]]로 출전하였다. [[2013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유도하여 통합 3연패에 공헌하였다.
  • 정상희(정치인) . . . . 7회 일치
         1907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양정고등학교(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하이]] 자오퉁 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년을 수료하고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74년 메이지 대학 [[대학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9년부터 협신산업사 대표이사, 삼호방직 부사장, 대한방직협회 이사, 삼호무역 부사장, 동화통신사 부사장, 제일화재해보험주식회사 사장, 삼호방직무역주식회사 회장, [[삼성그룹]]에서 [[삼성전자]] 사장, [[삼성물산]] 사장, [[삼성생명|동방생명보험]]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한편 체육계에서도 활동하였다. [[대한체육회]] [[이사장]], [[대한육경기연맹]] 이사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임위원, 대한육경기연맹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정희의 차남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 삼성그룹 초대회장 [[이병철]]의 4녀 [[이명희(기업인)|이명희]]와 결혼 했다. 이병철과 사돈관계이며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시아버지 그리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의 할아버지다.
  • 정서임 . . . . 7회 일치
         | 수 =
         | 웹사이트 =
         * 1984년 KBS2 주간연속극 《[[경도 아가씨]]》
         * 2000년 WKTV 《홈쇼핑》 - 희극인 송길 씨와 진행
         * 칭찬합시다 운동중앙회 2017 방송부문 연기대(한반도 통일위원회 주최)
         * 충효대 2017 방송부문 우수 연기대
  • 정소담 . . . . 7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s://www.facebook.com/sodamjjj 정소담 페이스북]
         *제25회 전국경제인연합 시장경제대 진행
         *탈북자어교육 국제NGO 'TNKR(Teach North Korean Refugees)' Academic Adviser
         #[http://brunch.co.kr/@sodamjjj/28 <칼럼> '김란 법' 백마 탄 초인, 헬조선으로 오다]
         #[https://brunch.co.kr/@sodamjjj/24 <칼럼> 홍수와 김민희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http://www.mediapen.com/news/articleView.html?idxno=74147 <대중문화칼럼> 박진과 '어머님이 누구니']
         #[http://chogabje.com/board/view.asp?C_IDX=59471&C_CC=BB <리뷰> 화 <국제시장> '이 시대 모든 금순이를 위하여]
  • 정승우 (1973년) . . . . 7회 일치
         |웹사이트= [http://www.wtenc.com/artist01.asp 공식사이트]
         === 화 ===
         * 1999년 《[[쉬리 (화)|쉬리]]》 - OP특공 역
         * 《[[자유인 이회]]》 (KBS1, 2010년) - 유기문 역
         * [http://www.kmdb.or.kr/vod/mm_basic.asp?pgGubun=01&tabmov=T&person_id=00044081 한국화데이터베이스]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
  • 정치공학 . . . . 7회 일치
          * 정치학의 분야로서 정치공학은 정치적 의사결정, 규칙제정 또는 제도도입 등에 공학이론을 접목시킨 것이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52859601 (참조,이남대학교 총장)]]
         정치공학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여, 공학전공자들은 이를 불쾌하게 여기기도 한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52859601 (참조,이남대학교 총장)]][[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032114015&code=990304&med_id=khan&rccode=lvRc (홍진 동명대 교수·전기공학과)]]
          * 비교적 '젊잖은 말'이고, 어떤 어젠다 추구나 정략 활용에는 모두 써먹을 수 있다보니 정치권에서 별 생각 없이 거의 '습적인 비판용 단어'가 되어버려서 별다른 충격도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 "정치공학이다!"라는 말이 나오면 다들 그러려니 하는 수준이다(…).
          * 특히 [[지역감정]]을 기반으로 하여, [[남]], [[호남]], [[충청도]]의 표를 이리저리 떼었다가 붙였다 하면서 세력 재편을 시도하는 것이 대표적인 정치공학으로 여겨진다.
  • 존 웨스트 . . . . 7회 일치
         John West. 국, 아일랜드, 호주 등등에서 활동하는 생선 통조림 회사.
         19세기에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존 웨스트"가 설립했다. 초기에는 오리건 주 콜럼비아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절여 통에 담은 후 국으로 수출했다나.
         [[https://www.john-west.co.uk/|존 웨스트 국 홈페이지(문)]]
         [[http://johnwest.com.au/|존 웨스트 호주 홈페이지(문)]]
         [[http://www.john-west.ie/|존 웨스트 아일랜드 홈페이지(문)]] - 솔직히 국하고 구성이 대동소이하다.
  • 존오그로츠 . . . . 7회 일치
         국 본토 최북단으로 알려져있다. [[http://m.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585432.html#cb|던넷헤드가 국 최북단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존오그로츠가 더 유명하다. 존오그로츠에서 국 최남단이라는 랜즈엔드까지 이어진 조글이라는 길을 완주하는 챌린지도 존재한다.
         [[http://johnogroats.scot|존오그로츠 사이트(어)]] - 워낙 작은 동네라 그런지 점 같은 것도 다 알려준다.
         [[https://twitter.com/JohnOGroats_?s=09|존오그로츠 트위터(어)]]
  • 주아브 . . . . 7회 일치
         Zouave. [[제국주의]] 시대 [[프랑스]]의 [[경보병]]들 중 한 종류. 북아프리카에 사는 [[베르베르족]]의 일부였던 Zouaoua를 입한 병사들이다.
         == 향 ==
         이들은 미국에도 향을 끼쳤는지, [[남북전쟁]] 중 남북 양쪽의 몇몇 의용군 부대가 주아브라고 자칭하거나 주아브식 복장을 입었다.
         또한 치마의 종류인 주아브 스커트와 의의 일종인 주아브 자켓은 이들의 복장과 비슷하다고 그런 이름을 얻었다.
         [[파리]]의 [[센강]]에는 주아브 동이 있는데 [[http://media.daum.net/m/channel/view/media/20160602205537606|이 동의 발이 물에 잠기게 되면 비 홍수 대책을 세운다고 한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 . . . . 7회 일치
         엄밀하게 해석하자면, [[국제연합]]의 결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연합]]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중화민국]]'의 지위를 [[중화민국|장개석 정권]]으로부터 [[중화인민공화국]]에게 [[국가승계]]를 시킨다는 결의였다. 이에 따라 중화민국은 한큐에 가입국 지위까지 잃어버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은 반대로 가입은 물론이고 중국의 외교적 정통성, [[임이사국]]까지 한꺼번에 따먹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지위가 완전히 역전된 중대한 사건이다. 또한 공산권의 약진과 [[제3세계]]의 향력 강화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한줌 밖에 안 되는 대만 밖에 토가 없는 중화민국과 중국 전토를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애초에 압도적인 존재감 차이가 있었고, 결국 모든 나라들이 '현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이미 국, 프랑스 등 역시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태였다.
         이 사건을 반환점으로 하여, [[중화민국/외교|중화민국의 외교]]는 그야말로 [[안습]]의 절정에 달하게 된다. 그나마 이 당시는 아직 [[냉전]]과 중화민국의 경제력 덕분에 그럭저럭 많은 수교국을 가지고 있었지만, 개혁개방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력이 승하면서 그마저도….
         [[대한민국]]에도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다. [[6.25 전쟁]]에서 [[적]]으로 여겼던 [[중공]]이 아군으로 여겼던 [[UN군]]에 들어가서 단번에 유엔 임이사국의 자리까지 차지해버렸기 때문. 대한민국은 애초에 유엔가입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반대표를 던지지도 못했다.
  • 지박령 . . . . 7회 일치
         [[한자]]를 풀이하면 땅(地)에 묶인(縛) 혼(霊)이라는 의미이다.
         오컬트 계에서 말하는 혼의 한 종류.
          * 특정한 장소에 애착을 가진 혼. 그 장소는 혼이 생전에 중요한 인연이 있었던 곳이다. 혼은 자신의 의사로 이 장소에서 떠나려 하지 않고 남아 있다.
          * 갑작스럽게 죽어버려서, 자신이 죽은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장소에 묶여버린 혼. 괴담에서는 자신이 죽을 때의 황을 반복하기도 한다. 자박령(自縛霊)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진격의 거인/81화 . . . . 7회 일치
          * 너희들(인간들)의 "이 세의 기억"이 왕에 의해 벗겨진건 비극이라며 "그 때문에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 결국 노인과 어린애도 전쟁터로 몰려서 "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거라며 혐오감을 피력하다 자기는 아버지와 다르다며 "그냥 최대한 즐기겠다"고 말을 바꾼다.
          * 하지만 엘렌이 "빼앗긴 자유를 위해서 싸운다고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라고 말했듯 자신은 "바깥 세을 생각하면 용기가 난다"고 말한다.
         -아르민. "자신이 바다를 볼 수 없게 될" 작전을 구하고 엘렌을 깨우면서.
          * 엘빈이 맞은 자리는 아슬아슬하게 치명을 빗나갔을 법한 위치지만 확실치 않다.
          * 조사병단은 전멸해버렸다. 설사 엘빈이나 리바이가 무사히 귀환해도 더이 세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 이번 화에서 짐승거인이 한 말이 또다른 떡밥을 양산하고 있다. "아버지와는 다르다"는 것도, 늬앙스 으로는 자기와 자기 아버지를 놓고 한 말 같지만 정확하지 않다.
  • 차장섭 . . . . 7회 일치
         | 출생지 = [[경북도]]
         | 훈 =
         | 웹사이트 =
         '''차장섭'''(1959년 3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사진가, 역사가, 대학교수이다.<ref>{{뉴스 인용|제목=한옥 속에 숨은 추화|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5&aid=0003628083|출판사=한국경제|날짜=|확인날짜 =2017년 3월 13일}}</ref><ref>{{뉴스 인용|제목=“삶이 스민 線… 한옥은 따뜻한 추화더라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1&aid=0002282129|출판사=문화일보|날짜=|확인날짜 =2017년 3월 13일}}</ref><ref>{{뉴스 인용|제목=차장섭 교수 "한옥 벽, 몬드리안 추화보다 멋져"|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3769733|출판사=매일경제|날짜=|확인날짜 =2017년 3월 13일}}</ref><ref>{{뉴스 인용|제목=나를 비우는 공간, 한옥의 壁|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2996261|출판사=동아일보|날짜=|확인날짜 =2017년 3월 13일}}</ref><ref>{{뉴스 인용|제목=삼백년 지킨 ‘고택’ 사람 향 가득|url=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507994|출판사=|날짜=|확인날짜 =2017년 3월 13일}}</ref>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의 사진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자]]
  • 창작:좀비탈출/0 . . . . 7회 일치
         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남성이다. 수수하지만 이럭저럭 흠은 없는 외향에 체형도 그리 둔하진 않다. 전문적인 운동을 해본 적은 없지만 체력관리 차원에서 가벼운 조깅 정도는 꾸준히 했다. 게임, 화나 만화를 잡식으로 좋아했고 어딜 가나 있을 법한 남자 대학생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Tv는 잘 안 보지만 걸그룹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내가 마지막까지 Tv로 보고 있던게 [[트와이스]]와 [[AOA]]였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내가 있는 곳의 위치를 남긴다. 여기는 우리집이다. 우리집은 대한민국 서울에 위치한 단독주택이다. '''그 사태'''가 일어났을 때, 나는 마침 방학이라 집에 있었다. 아버지는 지방 출장을 떠난 태였으며, '''그대로 연락이 끊겼다'''. 그게 어떤 부분을 자극한 건지, 어머니는 결연한 태도로 혼자 사는 외할머니를 데려오겠다고 말하며 집을 떠났다.
         전기와 통신이 살아있을 무렵 두 사람이 있는, 그렇게 추정하는 지역이 '''위험구역'''으로 선포되는 뉴스를 봤다. 정부는 이 일대를 통제할 것이고 더이의 '''사태 확산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녀석들은 착실하게 진군해서 그날 저녁 때쯤부터 우리 동네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문을 잠그고 커튼도 쳤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주로 체리필터였고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끄지 않았다. 나는 조명도 끈 태에서 혼자 지냈다. 공복과 수면의 사이클이 몇 차례 지나가고 가끔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나 비명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그게 내가 열어줘야 했을 사람들이 아니었기만을 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내가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다른 가능성은 사라져 버렸을까? 군인들이 탱크를 밀고 와서 녀석들을 전부 쓸어버리거나 천신만고 끝에 살아있는 부모님이 녀석들의 손길을 피해 이곳까지 오지는 않을까? 그때 내가 이 자리에 없다면?
  • 창작:좀비탈출/4-1 . . . . 7회 일치
         유일한 문제는, 사실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당장 생각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거기가 '''음지'''라는 거다. 그건 내 연구으로는 아주아주아주 위험한 지역이란 얘기다.
         옆집에라도 다녀오는 걸 수도 있지만, 최악의 황을 정해두는게 안전하겠지. 적어도 토트넘은 뒷마당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준비는 끝났다. 준비래봐야 두꺼운 겨울 옷을 꺼내서 걸치고 바지는 세 개를 겹쳐 입는 정도의 가벼운 것이다. 누구라도 좀비떼 사이로 들어가라면 최소 이 정도는 갖춰 입겠지. 절대 내가 겁이 많아서가 아니야. 이 정도 갑옷(?)이면 어지간히 제대로 단단히 깨물리지 않는 이은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적게 가져오면 금방 또 마당에 나가야 하겠지만. 일단은 눈 앞의 황만 생각하자.
         그럼 이제 무기다. 어느 녀석이 토트넘에게 치명을 입힐 수 있을까?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건물 . . . . 7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트와일라이트 시티]]와 그 주변에 존재하는 건물들의 목록. '''줄거리 내부 구조나 위치 등이 중요한 집단은 건물에, 계획 및 행위 등이 중요한 집단은 조직에 작성한다. 둘 다 해당될 경우 모두 작성한다.'''
         '''{{{#red ※ 구역 분포 및 위치는 나중에 위문서를 참고할 것.}}}'''
          * [[창작:연합 택시회사|연합 택시회사]](United Taxi Company) - ★(화 "웅본색")
          * [[창작:타겟츠닷컴|타겟츠닷컴]](www.targets.com) - 당연히 실제 사이트하고는 관계가 없다.
  • 채이식 . . . . 7회 일치
         |훈 = 2013 자랑스런 고대법대인
         |웹사이트 =
         고려대학교와 런던대학교 정경학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장을 맡고 있으며 국제유류오염보기금(IOPC Fund)의 한국수석대표 및 집행위 의장, [[국제해사기구]](IMO) 법률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해왔다.<ref>{{뉴스 인용 |제목 = IMO법률위원회 의장에 채이식 교수 선출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989153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날짜 = 2005-04-28}}</ref>
         == 수 ==
         * 2013 자랑스런 고대법대인.<ref>{{뉴스 인용 |제목 = 채이식 로스쿨 교수 등 ‘자랑스런 고대법대인’ |url =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20540 |출판사 = 한국대학신문 |저자 = |날짜 = 2013-02-18}}</ref>
  • 최대원(정치인,국회의원) . . . . 7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 '''출생지''' ||<(> [[경북도]] [* 현 [[김천시]] ||
         || '''약력''' ||<(>[[LG화학]] 선임부장[br]고려장학회 이사장[br]한나라당 경북도당 부위원장[br]대구대 겸임교수[br][[자유한국당]] 임고문 ||
         1956년 3월 10일, [[경북도]] [[김천시]] 에서 태어났다. 김천중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남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했다. 고려장학회 이사장 등을 지낸 경력이 있다.
         [[자유한국당]] [[이철우(1955)|이철우]] 의원이 경북도지사 출마로 국회의원을 사퇴하게 되자, 해당 지역구인 [[경북도]] [[김천시]] 선거구에 도전했다. 당초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도전을 시도했으나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관계로 자유한국당 [[송언석]] 후보와 맞붙게 되는데, 이로 인해 민주당 및 진보 지지자들의 기권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민주당 도의원 후보의 암묵적인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자유한국당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친여무소속 취급을 받았다.
  • 최승환 . . . . 7회 일치
         |문 표기 = Choi Seung-Hwan
         |사진 사이즈 =
         [[LG 트윈스]] 시절에는 [[김정민 (1970년)|김정민]], [[조인성 (야구인)|조인성]]에게 밀려 주전이 되지 못하고 8년간 2군을 전전했다. [[2008년]] [[6월 4일]] [[이성열 (야구 선수)|이성열]]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 [[두산 베어스]]에서 [[LG 트윈스]]로 간 선수들은 [[이재 (야구 선수)|이재]], [[김용의]] 선수이다. 두산 이적 이후에 본격적으로 1군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대 투수인 SK 와이번스의 [[조웅천]]으로부터 솔로 홈런을 뽑아내면서 자신의 한국시리즈 첫 타석에서 홈런을 터뜨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2009년]] 시즌이 개막한 후 [[채병]]을 밀어내고 데뷔 9년 만에 비로소 [[두산 베어스]]의 주전 [[포수]]로 활동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22680 두산 최승환, "이제 야구가 재미있다"] 《오마이뉴스》, 2009년 5월 1일 작성</ref> 목 오른쪽에 큰 점이 있어서 '''"점포"'''라는 별명이 있다.<ref>[http://livepoll.donga.com/view_t.news?f=e_s&n=200907210239&l=30 최승환, 점 빼러 갔다가 포기한 사연은?] - 동아일보</ref> 데뷔 이후 처음으로 붙박이 주전으로 [[2009년]]을 보냈지만 [[2010년]]에는 [[경찰 야구단|경찰청]]에서 제대한 [[양의지]]에게 밀려 2군으로 다시 내려갔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484693 '아직 부족해~' 김경문 감독의 끝없는 진화 의욕] - 조이뉴스24</ref>
         2015 시즌 후 [[kt 위즈]] 배터리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296524 kt, 최승환 배터리·박성기 재활코치 입] - MK스포츠</ref>
  • 최인영 (야구선수) . . . . 7회 일치
         |선수명 = 최인
         |문 표기 = Choi In-Young
         |사진 사이즈 =
         '''최인'''(崔仁永<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89년]] [[7월 29일]] ~ )은 [[KBO 리그]] [[LG 트윈스]]의 선수이다.
         * 동중학교
         * [[동대학교]]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강릉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석촌초등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최지해 . . . . 7회 일치
         |웹사이트 = {{페이스북|sun2622|최지해}}
         * [[고려대학교]] 어교육학과 [[학사]]
         * 2004년 [[KBS2]] 월화드라마 《[[오!필승 봉순]]》
         == 수 ==
         * 2017년 아나운서대 교양부문 TV진행
         신장은 170cm이고 체중은 52kg이며 [[운동]]에 취미가 있고 [[수]]에 특기가 있다.
  • 최창홍 . . . . 7회 일치
         [[1941년]] [[1월 24일]] [[경남도]] 이사관 겸 [[경남도청]] [[내무부]] 학무과장으로 임명된 뒤부터 [[경남도]] 내무부 전무과장(1941년 8월 18일 임명), 도청 전매국 제조과장(1943년 9월 30일 임명)을 역임했고 [[1943년]] [[12월 1일]] [[조선총독부]] 서기관 겸 재무국 전매사업과장, [[1944년]] [[11월 22일]] 재무국 연초과장으로 임명되었다. [[1944년]] [[조선중앙정보위원회]] 간사, [[조선총독부]] 학도동원본부 참사, 조선총독부 근로동원본부 참사, 조선총독부 농업계획위원회 간사, [[조선철도간선긴급증강위원회]] 간사를 역임하는 동안 [[일본]]의 전쟁 수행에 적극 협력했다.
         [[1945년]] [[5월 11일]] [[충청북도]] 참여관 겸 광공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45년 8월 광복 때까지 고등관 3등과 정6위에 서위되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경시 부문, 도 참여관 부문,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찰 부문, 관료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
         |제목=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 보고서 Ⅳ-18|연도=2009
  • 최한경 . . . . 7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에서 활동했다. 1993년 삼성이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로 침체기였던 때에 홀연히 등장했다 사라진 비운의 투수. 별명은 '그라운드의 흑곰', '제2의 [[김엽|만딩고]]'. 특히 만딩고라는 별명을 가졌던 팀 선배 [[김엽]]과는 까무잡잡했던 얼굴과 속구를 던지던 것 때문에 많이 매치가 되곤 했었다.
         당시 150km대를 던지는 투수는 [[선동열]]하고 [[박동희(야구선수)|박동희]] 정도로 많지 않았던 황에서, 쌩 고졸신인이 평균 150km의 공을 던진다는 것은 일약 센세이션에 가까웠다. 마무리 활동 당시 삼성전 중계 방송에서는 최한경까지만 가면 삼성이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자주 나오곤 했는데, 이는 그가 94년 한정 당대 최고의 마무리였음을 입증한다. 공은 가볍다는 소리를 들었을지언정 속도만큼은 엄청났고, 이 때문에 94년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오히려 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5회부터 등판하고, 선발로도 나오는 등 아직 몸이 다 만들어지지 않은 고졸신인에게는 가혹할만치 엄청난 혹사를 당했다.
         1995 시즌부터는 방위복무 때문에 홈경기에만 출전했고 게다가 그나마 선발로 키우려고 시도했던 선수들이 죄다 무너지며 최한경을 선발 기용하는 강수를 뒀다. 갑작스런 선발 전향에도 7승 4패의 성적을 거뒀지만 그간의 혹사를 버티지 못하고 평균자책이 5.70으로 부진했다. 150km/h의 강속구는 130km/h의 속도로 밋밋해졌고 또한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자잘한 부을 얻어 1996년에는 1승 2패를 거두는데 그쳤다. 그것이 최한경의 마지막 1군에서의 모습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동년배들이 이제 막 프로에 진출할 시기에 자취를 감춘 것.
         1997년에는 어깨부을 당했고, 1999년 타자 전향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삼성에서 방출되었다. 방출 후 [[LG 트윈스]]에서 다시 타자로 1군 복귀를 시도했으나 1년만에 방출되며 은퇴했다.
         은퇴 후 LG 트레이너로 있다가 [[대전고등학교 야구부|대전고]], [[홍익대학교|홍익대]] 코치를 거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의 야구 팀인 장쑤 호프스타스의 감독, 광동 레오파드의 코치로 있다가 현재는 귀국해 고향 포항에서 스포츠센터를 운 중이다.
  • 카네다 쇼타로 . . . . 7회 일치
         성우는 1기는 [[타카하시 카즈에]], 2기 태양의 사자 철인 28호는 [[야마다 에이코]]/[[최수민]](대비디오판), 철인 28호 FX는 [[타나카 히데유키]], [[오리카사 아이]](소년시절)/[[김용식]](MBC), 4기는 [[쿠마이 모토코]] 5기는 齋藤智美.
         철인 28호를 조종하는 소년 [[탐정]]. 쾌활하고 기민한 행동력과 어른을 압도하는 추리, 발으로 사건을 해결해서 철인을 조종하기 이전부터 소년 탐정으로서 명성을 날려왔다. 경시청에도 출입하며 수사에 협력할 정도. 뛰어난 사격실력에 자동차 운전, 제트 전투기 탑승, 헬기 조종 및 잠수 작업 등도 해낸다. 철인 28호를 얻은 후부터 철인과 함께 사건을 해쳐나간다. 집은 서양식 저택으로 혼자서 생활. 부친은 [[카네다 박사]]이며 중요한 동료로는 [[오오츠카 서장]], [[시키시마 박사]]가 있다.
         철인 28호 FX에서는 왕년의 웅인 중년 탐정.[* 철인 28호 FX의 배경 세계는 초대 철인 28호 이후의 시대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미인 천재 과학자인 사카키 요코와 결혼했으며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카네다 마사토를 얻었다. 이 마사토가 시리즈 3기인 FX의 주인공. 그런 이유로 주역의 자리는 내줘야 했지만 소년 시절부터의 짬밥은 어디 가지 않는지 활약도 많다. 중반부터는 인터폴의 장관이 되며, 그에 따라 카네다 탐정 사무소 전원이 인터폴 소속이 된다.
         [[제2차 슈퍼로봇대전 Z 재세편]]에 등장해선 모범생의 모습을 보이는데다가 쇼타콘의 어원답게 연들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모습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애쉬포드 학원 이벤트에서 여고생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하악 거린다던가(...).] 나이 대가 비슷한 [[무적로보 트라이더 G7]]의 [[타케오 왓타]]와 [[무적초인 점보트3]]의 [[진 캇페이]]와 친구. 갓마즈의 [[묘진 타케루]]하고도 서로 믿고 지내는 형동생 사이로 나온다. 참고로 왓타 또한 쇼타로처럼 원작에서 악당을 자비심 없이 끔살시켰던 초딩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어리지만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솔레스탈 빙]]이나 [[흑의 기사단]] 같은 전직 테러리스트와 동료로서 같이 싸워야 하는 황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나중엔 그냥 받아들이지만.
  • 크림 전쟁 . . . . 7회 일치
         1853년부터 1856년 까지 벌어졌던 [[전쟁]]. [[오스만 제국]], [[국]], [[프랑스]], [[샤르데냐]] 연합과 [[러시아 제국]]이 벌인 전쟁이다.
         1853년 7월, 러시아는 오스만 토였던 [[몰다비아]]와 [[루마니아|왈라키아]]로 군사를 보냈다. 이에 오스만은 러시아에 선전포고했다.
         1854년 3월, 러시아의 확장 정책에 불만을 느끼던 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의 편으로 참전했다. 연합군의 군대는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해군기지를 공격해 [[세바스토폴 공방전]]을 벌였다.
         [[흑해]] 연안이 아닌 곳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국과 프랑스의 함대가 [[발트해]]의 [[크론슈타트]]를 봉쇄하고 [[백해]]의 [[콜라(도시)|콜라]]를 포격하였다. 국과 프랑스는 [[캄차카 반도]]에 위치한 [[페트로파블롭스크]]를 공격했지만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이들은 러시아군이 철수한 이후에야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점령할 수 있었다.
         [[발라클라바 전투]] 도중 국군 경기병대가 명령 착오로 인해 러시아군 대포 앞으로 돌진, 엄청난 피해를 입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경기병 여단의 돌격]]"[* Charge of the Light Brigade]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국의 나이팅게일이 이 전쟁에서 최초로 근대적인 간호 체계를 세우고 실행하여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후세의 연구에 의해 그녀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면모 등도 같이 재평가받게 되었다.)
  • 킹덤/498화 . . . . 7회 일치
          * 창평군은 몸소 도열한 병사들 앞에 나선다. 그는 직접 조나라 서부 공략전을 천명한다. 병사들은 예한대로 조 서부 공략이라며 흑양 등이 작전지역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보단 창평군이 직접 나타났다는 것이 더 화제가 된다. 하지만 이들 중 진짜 작전은 서부 공략이 아니라는걸 아는 사람은 소수. 이신의 표정이 무겁다.
          * 창평군은 조나라와 총력전에 들어간다고 선언하며 절대 겁먹지 말고 반드시 승리하라고 연설한다. 곧이어 군을 통솔할 장군을 발표하는데, 우선 단에 오른 것은 환의 장군이다. 환의하곤 좋은 추억이 없는 비신대로서는 드러내놓고 싫은 내색을 하는데 환의 측의 부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의 시대가 열린다고 외친다. 이미 정해진 바니 비신대도 떨떠름한 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없다.
          * 그런데 창평군은 곧이어 통솔할 장군은 한 명이 더 있다며 또다른 인물을 단으로 올린다. 산민족의 여왕 양단화다. 양단화를 보자 마자 벽이 심쿵사할 기세로 말에서 떨어진다. 양단화가 정규군으로서 진군에 편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 당연히 산민족 전사들도 양단화를 따라 합류한다.
          * 총대장 왕전 장군. 그가 단에 오르자 고요하던 왕전군단이 일제히 환성을 지른다.
          * 이제 황 파악이 된 병사들은 이번 전투의 규모와 가혹함을 가늠하며 긴장한다. 신은 이번 조 공략전은 왕전, 환의, 양단화 군이 총집결한 "연합군전"임을 밝힌다.
         정치적 차원으로 생각하면 잡음이 많을 법한 에피소드. 우선 종전 전투에서 공을 세운 환의가 총대장이 되지 못했고, 비록 최 공방전의 댓가로 대장군과 동급의 지위를 얻었다곤 하나 출신과 편제가 애매모호하고 환의 군 이으로 이질적인 군세를 이끄는 양단화가 환의와 동격으로 합류했다. 이들을 최종적으로 조율할 총대장 왕전도 공공연하게 흑심이 있는 걸로 비춰지는 인물. 이런데다 이신이나 왕분, 몽념같은 개성적인 하급 지휘관들이 독립부대 노릇까지 하게 됐으니, 지휘관 편재 으론 콩가루 군단이 완성된 거나 다름없다.
  • 킹덤/504화 . . . . 7회 일치
          * 조군의 기병대는 [[환의(킹덤)|환의]]군단이 발을 묶어 본대에 향을 주지 않는다. 숫자는 환의군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조군 또한 4, 5천에 달하는 정예병들. 환의군이라도 아무 희생없이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 그런데 아군이 격전을 펼치는 사이 [[왕전(킹덤)|왕전]]군단은 무시하고 그대로 진군을 계속한다. [[하료초]]는 조군의 목적은 진군의 행군 속도를 늦추는 것이므로 이러고 있을 수록 적에게 이로운 일이라고 해설한다. 그 말처럼 곧 [[양단화]]군단도 무시하고 행군을 서두른다. 그래도 비신대 내에서는 아군을 버리는 듯한 행동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 같은데.
          * 하료초는 이것이야 말로 연합군이 가지는 강점이며 정석적인 운용법이라고 거듭 설명한다. 연합종군에 속한 세 군단은 각기 흑양전 같은 대규모 전투에서 능히 승리할 법한 군단들이다. 그런 세 개의 군단이 같이 움직이고 있으므로 작전 중에 생기는 동시다발적인 황에도 각기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 비신대가 행군 속도를 올리는 사이 본래 환의군 소속이었던 [[나귀(킹덤)|나귀]]는 전장의 움직임을 씁쓸하게 바라보다 [[초수]]의 부름을 받고 부대로 돌아간다.
          * 함양의 수뇌부는 전장에서 날아오는 희소식에 부담을 조금씩 덜어가고 있다. 창평군을 비롯한 참모들은 이들의 행군이 계획보다 하루 이 빠른걸 확인한다. 진군은 현재 낭토에 도달했는데 열미까지 불과 이틀 거리. [[진시황(킹덤)|정]]은 드디어 결전의 때가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 낭토 부근에서 진군은 야에 들어간다. 신은 하로쵸에게 하루이틀이면 열미까지 도착하지 않냐고 확인한다. 하료초는 틀림없다 답한다. 하료초의 설명으로 조의 열미는 진나라의 함곡관에 비견할 수 있는, 조나라의 뚜껑 같은 격이다. [[연(킹덤)|연]]과 부장들이 이제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될 텐에 왕전군에서 지시가 내려온 건 없냐고 묻는다. 그런데 이 시점까지도 왕전은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이제 슬슬 열미에 총공세를 퍼부어야 할 시점인데도 말이다.
          본대를 움직이지 않고, 또다시 별동대 만으로 대응하겠다는 왕전. 부하들 사이에서도 경악한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 킹덤/508화 . . . . 7회 일치
          * 비신대의 신병들은 엄청난 긴장감에 시달리다 흥분, 노평이 돌발행동을 하다 죽는다. 이것을 시장으로 사자가 속출.
          * 성문이 열리고 비신대의 병력이 선두로 나선다. 성 안의 열미군은 당황하지만 화살을 날리며 필사적으로 응전한다. 본대인 [[왕전(킹덤)|왕전]]의 군단에선 벌서 성문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해하는 분위기다. 왕전은 잠자코 있지만 그도 예보다 훨씬 빠른 전개에 놀라는 모양이다. [[몽념]]의 낙화대에서도 이 일로 술렁거린다. 몽념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라며 혀를 내두른다.
          * 지휘부의 감탄이야 어쨌든 전장에서는 치열한 난전으로 전개된다. 열미군은 불리하게 전개되는 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여차하는 순간 역전 당할지도 모를 정도로 기세가 강했다. 비신대의 신병들은 지나친 긴장과 첫전투의 흥분으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간두]]는 노평 등과 함께 황오장 밑에 있었다. 다들 숨쉬기도 버거워할 정도로 첫 전투의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간두는 그들 중에선 오를 유지하라고 강조하며 훈련받은 대로 하자고 부대원들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흥분한 노평이 실수를 저지른다.
          * 노평의 죽음과 함께 그나마 정신을 붙잡고 있던 간두도 겁에 질린다. 주춤거리는 사이 혼자 적을 막던 황오장은 결국 쓰러져서 창을 맞는다. 앗하는 사이에 간두의 분대는 뿔뿔히 흩어졌고 간두 자신도 어느 틈에 그랬는지도 모르게 창을 잃어버린다. 정신을 차려보니 황오장을 죽인 적병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주저 앉은 그를 꼬맹이 취급하며 가차없이 창으로 찌르려 할 때, 그는 정말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는가하며 참담한 심정이다.
          * [[수원]] 보병장이 직접 신병들을 구하러 왔다. 그는 신병들에게 "기대에 못 미치는건 아닌가"라며 오를 유지하라고 하지 않았냐고 야단친다. 간두는 노평 탓이라고 변명하다 걷어차인다. 수원은 간두같이 깝죽거리는 것들이 첫 출진 때 죽기 십이라며 쓴소릴 한다. 간두와 친구는 울을 짓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다. 수원이 돌아서며 말한다.
  • 킹덤/512화 . . . . 7회 일치
          * 경악하는 부하들을 내버려둔 채 갑자기 조 왕도권 성의 모든 지도를 펼치더니 즉석에서 전략 구에 들어간다.
          * 이틀 뒤 돌아온 왕전은 지휘관들 앞에서 [[창평군]]의 업 공략 구을 폐기하고 자기 자신의 책략으로 업을 공략하겠다며 전군 진격을 명하는데.
          * 그건 식적이지도 않고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곳은 조 왕도권의 가장 깊숙한 곳. 이쪽은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소대병력 밖에 갖추지 않았다. 가뜩이나 삼언한 적의 경계속에서 느긋하게 군략을 짠다? 이러다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끝장이다.
          아니나 다를까 적의 경계병력이 나타난다. 수풀 속에 수하게 늘어서 있는 이들을 그냥 지나칠리 없다. 하지만 왕전이 눈에는 동요가 보이지 않는다. 아광이 바람같은 솜씨로 경비병들의 목을 날린다.
          * 그로부터 다시 이틀 뒤. 하릴 없이 열미성에 주둔하던 진군은 총사령관의 복귀를 확인한다. 아광을 비롯한 부하들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왕전은 처 하나 없다. 열미로 돌아온 왕전은 휘하의 지휘관들을 불러모은다. [[환의(킹덤)|환의]]와 [[양단화]] 양대 장군들을 비롯해 [[이신(킹덤)|이신]]을 포함한 장교 전원이 집결했다.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그대로 왕전은 자신이 확인한 사실을 교시한다.
          [[창평군]]이 구한 "열미를 교두보로 업을 친다"는 책략은 열미성 자체의 취약점 때문에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 이 같은 사실은 [[벽(킹덤)|벽]] 등 하급 지휘관들은 금시초문이었으나 이신, [[몽념]], [[왕분]]은 이미 아는 내용이다. 하기야 하급 지휘관들은 이 작전의 진짜 목표를 아직가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들은 그저 어리둥절하고 황당한 얼굴로 왕전의 교시를 듣는다.
          의심의 여지도 없다. 대가 철저히 오판했다. 이목은 그만큼 자신이 짠 전략에 자신이 있다. 그는 술렁거리는 부하들을 정숙시킨다.
  • 토리코/389화 . . . . 7회 일치
          * 미도라는 아카시아를 식운으로 공격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그 사이 토리코는 블루 니트로 페어에 의해 분노의 힘을 일깨운다.
          * 이곳은 지구의 지하 3만 5천 km 지점. 본래 GOD를 먹은 자만이 올 수 있는 곳이며 그렇지 않은 자는 지표를 통과하는 사이에 모든 에너지를 흡수 당해 죽고 만다.
          * 센터가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심치 않은데 아이마루는 지구 자체가 폭발할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 된다.
          * 그 말을 들은 코마츠는 그때를 회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 예치 못한 황에 토리코가 당황하는데, 이것은 토리코의 어떤 힘을 끌어내기 위한 "조리"
          * 식운이 소진되고 무방비 태로 공격에 노출된 미도라는 큰 타격을 입는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 . . . . 7회 일치
         플레이어는 [[보신 전쟁]] 시기 6(+4, DLC 구매시)개 번 중 하나를 이끈다. 이 번들은 두 세력 중 하나에 속해있다. [[도쿠가와 막부]]를 지지하는 막부파와 [[덴노]]를 지지하는 존왕파.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이 일정 이토를 확보해 보신 전쟁에서 승리하고, 자신의 번 또한 일정 토를 확보해 이름을 떨치는게 게임의 목적이다.
          * 200여년의 세월 동안 [[총기]]가 발달하며 전투의 양이 달라졌다. 본편의 전투가 근접 보병들의 힘겨루기와 궁병들의 화살샤워, 기병들의 허점 찌르기로 진행된다면 사무라이의 몰락의 전투는 전열보병들의 힘겨루기를 중심으로 전투가 진행된다. 물론 전열보병에게 근접보병이 붙으면 전열보병이 발린다. 으악.
          * 해전 역시 달라졌다. 재미없는 화살 휙휙이던 해전은 이제 함포 뻥뻥이 되었다. 이제는 [[어뢰]]도 헤엄친다.
          * 해군의 쓸모가 많아졌다. 함대가 적 성, 건물, 군대에 포격을 가해 피해를 입힐 수 있게 되었다. 지전 도중 근처에 아군 함대가 있다면 아군 함대의 함포 사격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
  • 페어리 테일/484화 . . . . 7회 일치
          * 디마리아는 포로로 잡혀있는데다 마력이 봉인된 태.
          * 그러면서 "아이린과 나는 친하지 않지만 오거스트는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니 교섭을 잘하면 물러날지도 모른다"는 제안을 한다.
          * 길드는 믿을 수 없다고 믿겠다로 의견이 나뉘는데, 이때 루시는 "믿겠다"를 선택, 사실 의견이 모아진다.
          * 피오레 북방의 봉 조니아에서는 "최강의 여자" 아이린이 설원을 거닐고 있다.
          * 옛날 검은 천녀와 하얀 천녀와 남자를 놓고 다퉜다는 이야기. 결국 하얀 천녀가 승리하여 원히 눈이 내리는 땅이 되었다 한다.
          * 스팅을 비롯한 포로들을 구하는데, 갑자기 내리던 눈이 그치는 기현을 목격한다.
          * 브랜디쉬의 제안은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만화의 특성 성사될리 없는 제안.
  • 페어리 테일/489화 . . . . 7회 일치
          * 둘은 가벼운 공방을 주고 받는데, 아크놀로기아는 아이린이 흑마법사(제레프) 옆에 있던 "마력"치곤 당하다고 나름 좋게 평가한다.
          * 아이린은 그가 이라고 평하며 제레프가 두려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 아크놀로기아는 다시 "그때까지 인간에 손대지 말라는 얘기라면 들을 생각없다"고 말하는데, 아이린은 그도 원래는 인간이면서 이하다고 대답한다.
          * 하지만 그의 예(인간에게 손대지 말라)는 건 맞고, 방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 아크놀로기아도 당히 동요했는지 그녀의 이름을 묻는다.
  • 페어리 테일/490화 . . . . 7회 일치
          * 메이비스는 먼 옛날을 회한다. 친구 제이라가 사라지던 때의 일이다.
          * 열계열 마법이라 나츠가 쇄한 탓인데, 메스트나 브랜디쉬는 보이지 않는다.
          * 카나는 메이비스의 행방을 찾지만 아는 사람은 없고 자세히 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제국군이 인근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전투준비에 들어간다.
          * 브랜디쉬는 오거스트와 함께 있는데 그녀가 낸 처를 축소시키는 방식으로 치료 중.
          * 이 향으로 대륙 위의 사람들까지 랜덤하게 이동돼 버린 것.
          * 그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눈 앞에 묘한 형이 나타나자 경계한다.
          * 오거스트는 압도적인 마력을 뽐낸거 치고는 브랜디쉬에게 강한 처를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는 듯. 완전히 무적은 아니다.
  • 페어리 테일/541화 . . . . 7회 일치
          * 그러나 마법은 물론 물리적 공격 조차 듣지 않고 멸룡마도사라는 대항수단도 없어 논의는 답소 태. 그때 [[루시 하트필리아]]가 딱 한 가지가 있다고 제안한다.
          * [[웬디 마벨]]이 "데우스 에퀘스"로 일행의 모든 능력을 향시킨다. [[스팅 유클리프]]와 [[로그 체니]]는 그 효능에 감탄하며 [[가질 레드폭스]]와 돌진한다. 가질이 "철룡검"으로 선재공격을 가하나 목표의 옷깃 하나 베지 못한다.
          * 아직 일행이 큰 피해는 받지 않았지만 아크놀로기아는 그 이이다.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리고 반격하는데 고작 손가락 하나 까딱했을 뿐이다. 일행이 새삼 그 위력을 실감하는 동안 마룡은 오만함을 드러낸다.
          * 매그놀리아에는 페어리 테일을 중심으로 생존한 전력들이 속속 집결한다. [[엘자 스칼렛]]에게 지금 황이 전모를 들은 [[마카로프 드레아]]는 병력을 모아놓고 절망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마룡 아크놀로기아의 육체가 지에서 날뛰고 있고, 대항할 수단인 멸룡마도사들은 모두 시간의 틈새로 끌려가 버렸다고. 그들에게 남은 방법은 없다.
          일행의 아연한 시선을 받으며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나츠는 더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이를 악물로 외친다.
          * 종전을 맞이한 할지온 항구는 생존자들이 부을 치유하며 휴식하고 있었다. [[리온 바스티아]]와 [[셰리아 브렌디]]는 누군가 워프로 접근하자 고개를 돌린다. [[메스트 그라이더]]의 도움을 받은 쥬비아와 그레이였다. 그레이는 한 번에 더 많이 옮길 순 없냐고 독촉하는데 메스트가 말도 안 되는 요구하지 말라고 대꾸한다. 쥬비아는 메스트는 안중에도 없는지 그레이와 단 둘이 워프하는게 딱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7회 일치
          * 페어리 스피어는 마침내 마룡의 육체를 봉하는데 성공하고 그것이 시간의 틈새에 있는 정신체에까지 향을 미쳐 움직임을 막는다.
          * 하루지온 공에 시간의 틈새가 열리며 잡혀갔던 멸룡마도사들이 무사히 귀환, 루시는 다시금 나츠와 재회하고 길드로 돌아간다.
          마룡의 저력은 페어리 테일 일행의 예을 훨씬 초월했다. 구속돼서도 마룡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페어리 스피어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시간의 틈새에서는 마룡이 다려드는 나츠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 나츠를 휘감은 칠염룡의 불꽃이 거대한 주먹의 형으로 변해갔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염룡왕의 붕권, 칠염룡의 붕권이었다. 아크놀로기아가 움직일 수 없는 오른팔 대신 왼팔을 치켜들어 보지만, 그 팔은 오래 전 [[이그닐]]이 앗아갔다. 그 처가 이토록 뼈아픈 것이 될 줄이야.
          * 나츠의 말은 지금껏 아크놀로기아에게 쏟아졌던 떤 공격보다 뼈아프게 그를 찔렀다. 그 일격은 아크놀로기아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욕심마저 떨궈버렸다.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아크놀로기아는 자신의 바닥없는 욕심의 해답을 찾아냈다. 나츠의 입을 통해서. 그 집착이 사라진 향일까? 정신체를 구성해 왔던 마력이 타버린 재처럼 흩어져간다.
          아크놀로기아의 패배와 소멸, 그리고 나츠 일행의 승리가 하루지온을 들끓게 했다.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생존자들의 환호소리로 항구가 들썩거릴 지경이었다. 진정한 전쟁의 종결이었다. 그때였다. 하루지온의 공에 균열이 일었다. 아크놀로기아가 돌아올 때와 같은 균열이었다. 안나와 이치야가 시간의 틈새에서 배제된 것처럼, 마룡의 힘이 사라지자 멸룡마도사들도 시간의 틈새에서 밀려나온 것이었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로크 . . . . 7회 일치
         수송기 제일 뒷부분 구석에 숨어들어간 태로 시작한다. 빠르게 가면을 쓰고 뛰쳐나와 용병들을 해치우자. 패널을 조작해 수송기 뒷문을 열면 머키 용병들이 막혀있던 곳을 열고 나타난다. 용병들을 쏴죽이며 그대로 직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용병들이 빼곡한 객실이 나온다. 이 객실을 돌파하면 처음 시작했던 곳의 2층이 나오는데 2층에 있는 조작 장치를 건드려서 돈을 사출시키자. 이후 플레이어들도 낙하산 자에서 낙하산을 하나씩 집은 다음 수송기 뒷문으로 뛰어내린다. 낙하산 없이 뛰어내렸다가는 바로 철장행이니 주의. 착지하고 나면 낙하산은 필요 없으니 내다버리자.
          * 옥
          * 옥
          지붕을 뚫고 창고 안에 처박힌 황. 그냥 옥에 가서 신호탄 터뜨리면 된다.
          * 옥
  • 포리(이노센트 투어) . . . . 7회 일치
         숲에 살고 있던 엘프종족 포리는 어느 날 어떤 남자를 만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에 눈이 먼 포리는 그에게 자신의 『노래』가 담긴 수정을 넘겨주게 되고 원히 사랑하겠노라 맹세하게 된다. 하지만 엘프의 계율은 엘프와 인간과의 사랑을 용납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수옥(水獄)에 갖혀 "달이 세번 뜰때까지" 가둬지는 벌을 받게 된다.
         == 게임 성능 ==
         주인공들 중 유일한 원거리 물리공격이라는 점 때문에 다른 주인공들에 비해 당히 편하게 진행할 수 있다. 보드 에 있는 적들과 조우했을 때 반드시 먼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장비만 잘 갖춰줘도 특별한 전략 없이 배틀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초반에는 공격력과 명중률이 낮아 부각되기 어렵다. 하지만 1-1면만 잘 풀어나가면 이후에는 성장이 당히 빠르게 진행된다.
         관련신화가 켈트이기 때문에 카드사용에 제약이 좀 있다. 켈트신화는 북유럽 신화나 헤브라이 신화에 비해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카드가 있는 게 아니라서 한방에 역전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 없기 때문. 또한 정령력을 충전할 수 있는 카드 역시 켈트 신화에는 없기 때문에 엘프는 이런 면에서 신화보정이 약한 편이다. 이런 이유로 배틀 이외의 황에서는 공격보다는 방어적인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 핑커톤 . . . . 7회 일치
         [[https://www.pinkerton.com/|핑커톤 공식 홈페이지(어)]]
         1861년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밝혀내기도 하였다. [[남북전쟁]] 이후 [[서부개척시대]]에는 [[제시 거 갱]]이나 [[와일드 번치]]같은 갱단을 추적하거나 열차강도를 잡는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를 위해 [[신문]] 기사를 오려내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의 시초가 되었다. 이 외에도 [[시카고 대화재]] 직후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고용되기도 했다.
         1872년, [[제시 거 갱]]의 핵심인물이었던 [[제시 제임스]]와 프랭크 제임스를 잡는답시고 그들의 가족이 사는 집에 폭탄을 던져버렸다. 이로 인해 제임스의 9살 먹은 이부동생 아치 사무엘(Archie Samuel)이 사망했으며 제임스의 모친인 제렐다 새뮤얼(Zerelda Samuel)[* 재혼해서 성이 바뀌었다.]은 한쪽 팔을 잃게되었다. 핑커톤측은 집을 불태워버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앨런 핑커톤이 "집을 불태워버려라"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증언이 있다.
         미국 최초의 여성 탐정인 케이트 와르네(Kate Warne)가 고용된 탐정 회사이기도 하다. 1856년 고용되었다고.
         현재 핑커톤은 미국, [[멕시코]], [[브라질]], [[국]], [[네덜란드]], [[독일]], [[체코]], [[UAE]], [[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중화민국|대만]]에서 활동하고 있다. 많네.
         [[https://www.pinkerton.com/about-us/history|핑커톤 공식 홈페이지의 역사 부분(문)]] - 홈스테드 철강소 파업 같은 치부는 빠져있다. 솔직히 빼는게 당연하겠지만.
         [[http://articles.chicagotribune.com/1993-05-30/travel/9305300394_1_allan-pinkerton-detective-agency-archie-samuel|시카고 트리뷴 - 제임스 저택에 대한 악명 높은 공격(문)]]
  • 하시영 . . . . 7회 일치
         | 이름 = 하시
         | 활동 역 =
         | 웹사이트 =
         '''하시'''([[1988년]] [[4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레이싱모델]]이다.
         * [http://cafe.daum.net/HA-SIYOUNG 하시 다음 팬카페]
         * [https://www.instagram.com/si_young_ha/ 하시 인스타그램]
         *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95%98%EC%8B%9C%EC%98%8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2058300 하시 네이버 인물]
  • 하이큐/216화 . . . . 7회 일치
          * 카라스노의 새로운 연습시합 대는 다테 공고
          * 어쨌든 그의 스파이크가 인적이었는지 "네가 친다면 나도 블록하겠다"고 나서는 선수들이 속출.
          * 히나타가 블록을 보고 때리는 스파이커인 이, 그걸 대로 연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 주변에선 그의 태가 좋지 않아보이자 뒷말이 나온다.
          * 니야마 공고와 연습시합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사정이 생겨 캔슬. 새로운 대가 섭외된다.
          * 그 대는 다테 공고.
  • 하이큐/255화 . . . . 7회 일치
          * 중계로 지켜보고 있는 [[아오바죠사이 고교]]. 카라스노가 경기의 주도권을 쥐지 못한데다 괴짜속공까지 틀어막히자 뭐하는 거냐는 질책과 우려가 쏟아진다.
          그러는 동안 아츠무는 또다시 괴짜 속공을 시도하다 미스, 공이 카라스노 진으로 넘어온다.
          * [[야치 히토카]]도 히나타의 태를 걱정한다. 지금껏 그는 자기보다 큰 대와 싸웠지만 필살기 괴짜 속공을 앞세워 자신감있게 플레이해왔다. 그런데 그걸 대가 똑같이 따라하는데다 자신들 쪽은 봉쇄,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까?
          * 블록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스파이크. 라인을 넘어갔지만 심판의 판정은 터치 아웃. 아츠무의 손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내리꽂혔다. 아츠무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감탄. 열세로 몰려가던 카라스노는 추격의 고삐를 죄었다.
          * 우카이 코치가 미야 형제의 괴짜 속공에 동요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 그것은 괴짜 속공이 가진 약점 "블로커가 익숙해지면 소용없다". 우카이 코치가 [[타케다 잇테츠]] 고문에게 밝힌 이유다. 그는 "괴짜 속공 킬러"를 칭할 수 있는 블로커를 셋 거론한다. [[네코마 고교]]의 이누오카나 [[다테 공고]]의 아오네. 그리고 마지막은 일적으로 괴짜 속공을 봐왔고 그걸 엄청나게 싫어하는, 츠키시마다. 그 말을 입증하듯 츠키시마는 "이걸 엄청 막아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썩소를 짓는다. 그 흉흉한 포스에 미야형제는 물론, 괴짜 속공이 막혔을 때도 동요하지 않던 카게야마, 히나타가 소름 돋아한다.
  • 하이큐/259화 . . . . 7회 일치
          * 예을 뛰어넘은 카라스노의 선전. [[히바리다 후키]] 감독은 싸움의 구도를 "더 높은 차원에 도전하는 새내기"라고 표현했다. 하긴 강호 이나리자키도 어디까지나 도전자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카라스노 라는도전자를 맞아 "대응"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특히 카라스노에 대해선 정보량이 적긴 하지만 계속 새로운걸 시도한다는 걸 알겠다고 말한다. 이런 점은 [[우카이 케이신]]코치가 의도이기도 했다. 그런 시도들을 계속 던지는 것으로 경기의 균형을 잡고 있으며, 멈추게 되면 판도가 단숨에 기울 거라는 걸 안다.
          * 경기는 시소게임을 되풀이하며 22 대 21까지 왔다. 이나리자키가 한 점 차 리드를 지키는 가운데 마지로의 서브. 그는 독특한 동작으로 공을 튕기며 정신을 집중한다. 마지로의 파워풀한 서브는 카라스노에겐 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그 걱정을 입증하듯 무겁고 강렬한 서브가 날아온다. 위치는 정확히 타나카. 하지만 리시브하기도 버겁다. 공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높이 뜬다. 이것을 히나타가 처리한다. 자신도 놀랄 정도로 의외로 깔끔하게 아즈마네에게 향하는 공. 자기 나름은 괜찮은 리시브였다고 들뜨지만 옆에서 본 카게야마는 뽀록이라 일축한다.
          * 아즈마네가 달려나온다. 이나자키는 기다렸다는 듯 블록 세 장이 올라온다. 그런데 아즈마네가 유독 힘차게 뛰어오른다. 그 차이는 관중석의 [[보쿠토 코타로]] 정도가 눈치챈다. 아즈마네가 노리는건 명백했다. 블록 위에서 치는 스파이크. 하지만 그 의욕이 독이 됐을까? 타점이 빗나갔다. 공에 겨우겨우 스친 손. 공은 공중에서 튀어올라서 간신히 블록을 넘기고 떨어진다. 스파이크라고만 생각했던 이나자키의 후위가 황당해하며 달려온다. 하지만 공이 코트에 닿는게 먼저다. 어이없지만 득점 성공. 공격에 성공한 카라스노 측 조차 헛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즈마네는 속으로 왠지 미안하다고 씁슬해한다. 어이없어하는 이나리자키 진.
          득점은 득점이다. 스코어는 22 대 22. 중계석은 오히려 운이 따르니까 이런 황이 나온 것이며 카라스노가 공격하는 자세가 잡힌 증거라고 호평한다.
          * [[보쿠토 코타로]]는 방금 전 플레이에서 꽤 깊은 인을 받았다.아즈마네는 평소에 시도하지 않던 "블록 위에서 때리는 스파이크"를 시도했다. 이런 국면인데도 말이다. 그는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하며 아즈마네 뿐만 아니라 카라스노라는 팀 자체가 마음에 든 것 같다.
          * 야마구치는 서브 위치로 향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모든게 평소대로다. 지금 걷는 보폭, 볼 핸들링. 문제없다. 목표는 에이스. "무릎 꿇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어제, 츠바키하라 전에서 했던대로 "리셋할 시점"을 갖는 것. 야마구치는 눈을 들어 어제 리셋할 시점으로 정했던 비등을 바라본다. 그런데... 가려져 있다. 워밍업 때만 해도 분명히 보였던 그 표시가 깃발로 가려졌다. 야마구치는 애써 자신을 진정시키려 하고 다른 물건을 표지로 "리셋" 하려고 하지만 되질 않는다. 그리고 그 귓가를 쟁쟁하게 채우는 양진의 응원 소리. 소음들. 리셋에 실패한 채로, 플레이 시간이 다가온다.
  • 학대의 연쇄 . . . . 7회 일치
         [[아동학대]]를 받으며 자란 아이가 [[부모]]가 되어 자신의 자식을 학대하게 되어, [[아동학대]]가 부모-자식으로 [[연쇄]]되는 현을 뜻한다.
         학대가 연쇄되는 경우는 학대 경험을 그대로 의심없이 자신의 아이에게 반복하는 것과, 학대 받은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자신의 아이에게 투하는 경우가 있다.
         투하는 경우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어린 시절의 아이에게 투하는 것으로, 자녀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학대한 부모에 대한 분노가 섞여서 복잡한 심리 태가 된다.
         학대를 반복하는 부모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회하지 않으려 하며, 이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언급하기를 거부한다. 학대를 반복하지 않는 부모는 자신의 학대 경험을 회하여 솔직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학대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다.
  • 한기웅 . . . . 7회 일치
         {{화인 정보
         * 《[[막돼먹은 애씨|막돼먹은 애씨 시즌 12]]》 (2013년, tvN) - 한기웅 역
         * 《[[막돼먹은 애씨|막돼먹은 애씨 시즌 13]]》 (2014년, tvN) - 한기웅 역
         * 《[[밥 차리는 남자]]》 (2017년, MBC) - 희철 역
         * 《[[세에서 제일 예쁜 내 딸]]》 (2019년, KBS2) - 피터 박 역
  • 한승주 (공무원) . . . . 7회 일치
         |웹사이트=
         '''한승주'''(韓昇洲, [[1940년]] [[9월 13일]] [[경기도|경기]] [[경성부|경성]] - )는 대한민국의 교육인, 외교학자, 외교관,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외교통부|외무부]] 장관, 주미 대사를 지낸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1978년]]부터 교수로 재직한 외교학자이다.
         청와대는 2003년 4월 한승주를 주미대사로 서둘러 내정하였다. 여기에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진용을 가급적 빨리 구축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당시, 북핵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대두됐으나 양성철 당시 주미대사는 3년의 임기를 거의 마쳐가고 있는 태였고 가능한 한 빨리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런 태에서 한승주가 국내 인사로는 드물게 미국내에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으며,1993년 북핵 위기 때는 외무부 장관으로서 평화적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점도 고려돼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 =북핵해결 위한 美지명도·인맥 고려…한승주 주미대사 내정 배경 |url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18951804&code=11121200 |뉴스 = 국민일보 |날짜 = 2003-03-27 }}</ref> 이리하여 [[2003년]] 4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제19대 주미대사를 지냈다.
         |전임자 = [[이옥]]
         |전임자 = [[이필]]
         [[분류:194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김삼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고려대학교 총장]][[분류:욱일대수장 수훈자]]
  • 한용덕 (시인) . . . . 7회 일치
         [[2005년]] 《계간 문학세》에서 열린 신인문학 공모에서 <빈집>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당시 고등학교 3학년 (19세) 의 나이로 등단했다. 월간 문예사조 문인협회 동인이다.
         == 수 경력 ==
         * [[2005년]] - 계간 문학세 신인문학
         * [[2005년]] - 격월간 신문예 신인문학
         * [[2005년]] - 월간 문예사조 신인
  • 한태균 . . . . 7회 일치
         |문 표기 =
         |사진 사이즈 =
         '''한태균'''(韓太均, [[1971년]] [[3월 22일]] ~ )는 [[KBO 리그]] 전 [[OB 베어스|두산 베어스]]의 [[투수]]이다. [[1994년]] [[4월 16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한화 이글스|한화]]를 태로 첫 무대의 경기에서 등판하여 당시 [[KBS 1TV]]에서 중계방송(캐스터 정도,해설 故 [[하일성]])되며, [[2003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 [[1987년]] ~ [[1990년]] : [[광고등학교 (서울)|광고등학교]]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광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한희 (연출가) . . . . 7회 일치
         === 수 ===
         * [[2000년]] 아산 효행
         | align="left" |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고무신 거꾸로 신은 이유에 대한
         | align="left" | [[MBC 수목드라마|수목드라마]] 《[[재의 전성시대]]》
         [[분류:생년 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문화방송의 직원]]
  • 허지애 . . . . 7회 일치
         | 신체사이즈 = 가슴: {{convert|35|in|cm|sigfig=3|abbr=on}}<br>허리: {{convert|24|in|cm|sigfig=3|abbr=on}}<br>엉덩이: {{convert|36|in|cm|sigfig=3|abbr=on}}
         | 드레스사이즈 =
         | 웹사이트 =
         | 수 = 2011년 [[미스코리아 대구]] 미(美)
         * 수: 2011년 [[미스코리아 대구]] 미(美)
         | 다음명 = [[조서연|조선]]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입자]][[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현재원 . . . . 7회 일치
          | 장르 = 연극평론 <br/> 문화[[평론]] <br/> 뮤지컬 연출 <br /> 연극연출 <br /> 음악평론 <br /> 화평론
          | 언어 = [[한국어]], [[어]]
          | 소속 = [[서울 에이치 와이 스토리넷컴|서울 H.Y. 스토리넷컴]] 대표이사 <br /> 前 [[동국대학교|동국대 연극화과]] 겸임교수 <br/> 前 [[중앙대학교|중앙대 문예창작과]] 강사
         * 1996년 화평론가 등단.
         * 1996년 《[[구인회 (문학 단체)|구인회]]의 동이몽》
         ==== 화 평론 ====
         [[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화 평론가]][[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홍대광 . . . . 7회 일치
         | 문명 =
         | 웹사이트 =
         '''홍대광'''([[1985년]] [[1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슈퍼스타K 4]]》에 출연을 하여 4위를 하였다. 슈퍼스타K 4에 나오기 전에는 거리 공연자, 보컬 선생님이자, 명지대학교 건축학과를 다니던 건축학도였다. 본격적으로 음악에 꿈을 두게 된 것은 군 시절이다. 군 제대 후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음악계열을 전공하게 된다. 제2회 씨씨엠루키 선발 경연대회에서 금을 받은 경험이 있다. '피에로'라는 이름으로 낸 '그대는'이라는 노래도 있다. 《[[슈퍼스타K 4]]》의 방송이 끝나고 [[MMO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여 [[2013년]] [[4월 5일]] '멀어진다' 앨범 수록곡인 '굿바이'를 선공개 한 후 19일 첫 번째 미니앨범인 '멀어진다'을 발매하여 데뷔를 하였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음악계열 보컬성악학과 졸업
  • 홍성유 . . . . 7회 일치
         |자녀= 홍다(딸)
         |웹사이트=
         == 훈 ==
         * 1980년 대한민국예술
         * 1984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 1990년 예술문화대
         * 2001년 대한민국 예술원
  • 홍연아 . . . . 7회 일치
         * 안산여성인력개발센터 운위원
         * (가)록고등학교설립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 수 ==
         * 2010.01 제2회 매니페스토 약속대 기초지방의원분야 우수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제20대 총선]]||[[안산시 록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경기 안산시 록구 갑)]]||20대||[[민중연합당]]||{{막대|민노|0|2|0|1}} 2.01%||1,846표||5위||낙선
  • 홍예서 . . . . 7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대군 - 사랑을 그리다]]》 (2018년, TV조선) - 대전궁 역
         * 《[[엽기적인 그녀 (2017년 드라마)|엽기적인 그녀]]》 (2017년, SBS) - 방궁 역 <ref>{{뉴스 인용|제목= 홍예서,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 캐스팅..오연서 괴롭히는 방궁役 |url=http://media.daum.net/entertain/star/newsview?newsid=20160831210303828 |출판사=한국경제 |날짜=2016-08-31}}</ref>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198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홍예슬 . . . . 7회 일치
         | 본명 = 9월 13일 개그우먼 홍예슬 프로필 촬
         | 활동 역 = 희극인(개그우먼, 코미디언)
         | 웹사이트 =
         2017년 3월 25일 8살 연 회사원 남성과 결혼하였다.<ref>물론 개그콘서트 동료 개그맨 송왕호도 같은 날에 결혼한다.</ref> 같은 해 12월 8일에 아들을 출산하였다.
         * [[선일여자업고등학교]] 졸업
         **〈민토론〉
         [[분류:개그콘서트]][[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인덕대학 동문]][[분류:연서중학교 동문]][[분류:선일여자업고등학교 동문]]
  • 홍준표 (마술사) . . . . 7회 일치
         | 훈 =
         | 웹사이트 =
         == 수 ==
         * 2005년 제1회 하이서울 매직페스티벌 대
         * 2005년 제15회 일본 세계마술심포지엄 우수연기
         * 2005년 제15회 일본 세계마술심포지엄 타케오구도 특별
         * 2006년 대만 TMA국제마술대회 대
  • 홍진기 . . . . 7회 일치
         | 훈 =
         | 웹사이트 =
         해방 이후 홍진기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ref>{{서적 인용|url=|제목=한일회담-제1차 회담을 회고하면서|성=유진오|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이는 일본의 부당한 외교적 침탈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일간 협약에서 일본측으로 귀속되는 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으며 이후 독도에 접안시설과 태극기 계양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법무부 차관이던 1954년 4월부터 7월까지 제네바에서 열린 [[제네바 정치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2/12/200802120500004/200802120500004_1.html | 제목=6·25 참전국 모두 모여 만든 ‘유일한 국제공인 통일원칙’| 저자=최운 | 뉴스=신동아 | 출판사=동아일보 | 날짜=2008-02-01 | 보존url=http://archive.is/DTdrZ | 보존날짜=2016-08-18 }}</ref>
         | 차녀 || [[홍라]] || [[1960년]] [[1월 10일]] || || 삼성문화재단
         | 사위 || [[노철수]] || [[1956년]] [[7월 27일]] || || 애미커스 회장, 아버지 前 국무총리 [[노신]]
  • 홍해성 . . . . 7회 일치
         | 설명 = 한국 근대극 최초 연출가 홍해성 흉 제막식
         | 출생지 =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다. [[계성고등학교]] 전신인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도쿄]]에서 극예술협회를 결성하고 연극 운동에 뛰어들었다. [[마해송]], [[홍난파]], [[최승일 (1901년)|최승일]] 등이 회원이었다.
         [[1935년]]에 업연극 전문 극장인 [[동양극장]]이 개관하자, 동양극장 연출부로 이동했다. [[1943년]]에 지병으로 사임할 때까지 동양극장에서 총 400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승방비곡》, 《검사와 사형수》, 《어머니의 힘》 등이 대표적인 흥행작이다. 본격적인 전문 연출가로서 한국에 근대극을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데 이어, 동양극장 이적 후에는 세련된 업 연극으로 대중극의 수준을 격시켰다는 평이 있다.
         |저자=강옥희,이미,이순진,이승희
  • 홍화리 . . . . 7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수 ==
         * 2014년 [[KBS 연기대]] 청소년 연기《[[참 좋은 시절]]》
         [[분류:200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4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
  • 황옥 (1885년) . . . . 7회 일치
         1923년 [[김옥 (1890년)|김옥]]이 일으킨 [[종로경찰서 투폭사건]] 이후에 사건 관련자를 색출한다는 구실로 중국으로 출장을 가서 [[톈진]]에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만났고,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을 수령, 김시현, 김재진, [[권동산]] 등과 함께 물건을 [[단둥]], [[신의주]]를 거쳐 [[경성]]까지 밀수했다.
         경기도 경찰부장 [[시로가미 유키치]]는 황옥이 자신의 재가를 받은 작전에 따라 활동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김원봉과 김시현은 황옥이 의열단원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호 증언이 엇갈리고 있기에 황옥이 의열단원이었는지, 일본 경찰의 프락치였는지, 또는 양자에 모두 발을 걸친 [[이중간첩]]이었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논쟁의 대이 되고 있다. 1983년 [[서울대학교]] 도서관 건물에서 추락사한 민주화운동가 [[황정하]]가 황옥의 손자이다.
         * 화 [[밀정 (화)|밀정]]
         [[분류:1885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의열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납북자]][[분류:이중간첩]]
  • 황용식 . . . . 7회 일치
         |출생지 = [[경북도 (일제 강점기)|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ref name="사전"/>
         |웹사이트 =
         * 1998 : 외교통부 정책기획관<ref name="사전"/>
         * 1999 : 외교통부 조약국장<ref>{{서적 인용|title=대한민국외교연표 |publisher=[[대한민국 외교통부]] |date=1999 |page=118, 124}}</ref>
         * 2000 : 제 13대 주 튀니지 대사<ref name="60년">{{인용|title=헌국외교 60년 |url=http://www.mofa.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archiveurl=http://web.archive.org/web/20160304094536/http://www.mofa.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archivedate=2016-03-04 |publisher=[[대한민국 외교통부]] |editor=외교안보연구원 교학과 }}</ref>{{rp|515쪽}}
  • 황은진 . . . . 7회 일치
          | 수 = [[한국방송대]] 대통령
         * [[1997년]] [[6월 1일]], 만성 [[갑선]]비대증으로 인하여 향년 64세로 별세.
         * [[1994년]] 《[[테너]] [[성악가]] 및 [[친일파|친일]] [[공산주의|공산주의자]] [[김길 (성악가)|김길]] [[예비역]] [[조선인민군|조선인민군 지]][[조선인민군 육군|군]] [[준위]]의 기회주의 행보》
  • 황정미 . . . . 7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수 =
         * [[경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 [[2000년]] [[KBS2]] 미니시리즈 《[[RNA (드라마)|RNA]]》 … 박세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경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7회 일치
         피해자와 범인은 특별히 관련성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피해자가 스토커 담 등을 했던 적은 없고, 같은 예비교의 동급생 이으로는 볼 수 없는 관계였던 것으로 같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남학생의 발언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는 잘 모르지만 예비교에서는 평범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고, 데이트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평소 폭력적이거나 흉폭한 성격은 아니었다고 한다.
         == 세 ==
         피해자 키타카와 히카루는 얼굴, 목, 머리 등 20곳 이을 찔렸으며, 병원으로 옮겨지고 사망이 확인됐다. 현장에는 흉기로 보이는 대형 나이프 2개와 작은 [[도끼]]가 떨어져 있었다.
         15분 뒤, 현장 부근의 경찰서에 19세 소년이 출두하여 「내가 했습니다. (키타카와 씨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어서요」라고 말했다. 소년은 손에 중을 입고 입원했다.
         안타깝게도, 3월 9일에 피해자가 제1지망으로 하고 있던 [[오사카 대학]] 법학부의 합격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살해당한 피해자는 법학부에 합격한 것이 밝혀졌다. 또 오사카 외 도쿄와 간사이의 3개 사립대학에도 합격하였다.
         피해자의 아버지 키타카와 요우지(洋二)는 2월 29일, 후쿠오카 현경을 통하여 "가족에게 보물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로 매우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라고 코멘트를 했다. 딸에 대하여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노력을 많이 하고,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하고 참을성 많은 딸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솔선하여 공부나 스포츠에 남다른 노력가였습니다. 고집도 부리지 않고 부모와 형제를 소중하게 하는 냥한 딸이었습니다."라고 자필로 코멘트 하였다.
  • 히키코모리 . . . . 7회 일치
         스스로 일이나 공부, 인간 관계 등 일 생활을 피하면서, 장기간에 걸쳐서 집이나 자신의 방에 틀어 박혀서 사회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태, 혹은 그런 태에 있는 사람. 거의 히키코모리 태에 있지만 드물게 외출을 하는 사례는 준 히키코모리(準ひきこもり)라 한다. 줄여서 히키.
         옥스포드 어 사전 2010년 8월 제3판에 "hikikomori"로 등재되었다.
         집이나 자신의 방이라는 ‘안심할 수 있는 태’에 집착하는 것이다. 안심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하는 것이지만, 히키코모리는 매우 극단적으로 이것을 추구하여 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있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6회 일치
         위항목: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광주는 강원에 밀려 4위였지만 2014시즌에 한정해서 기록을 고려해 보면 두 팀의 대전적은 강원 기준으로 1승 1무 2패로 다소 광주가 앞서는 황이었다. 하지만 무승부만 거둬도 된다고 생각하면 강원은 1무를 1승으로 충분히 여길 수 있었으므로 두 팀의 경기력은 팽팽하다고 봐도 될 정도. 하지만 끝내 "호남의 아들" 김호남이 후반 8분(53분)에 임선의 어시스트로 골을 넣으면서 광주가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자격을 받게 되었다.
         안산은 2014시즌에 광주를 대로 패배 자체가 없었다.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규정을 생각하면 무승부만 되어도 안산의 진출이 확실했는데 광주의 돌풍이 매서웠다. 여름과 후반 20분경에 교체되어 들어간 파비오가 2골 1어시스트로 3골을 모두 기여함으로써 안산을 대로 대승을 거두며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도전권을 획득하게 된다.
  • MoniWikiOptions . . . . 6회 일치
          * 당수의 옵션은 세밀한 컨트롤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 값을 1로 설정하면 항 테마의 기본 CSS만이 사용되도록 강제 설정.
          * 웹 브라우저에 타이틀에 표시되는 사이트의 이름. 기본값은 {{{UnnamedWiki}}}
          * 문서 저장 후 문서 리프레쉬 하도록 지정. 1 이의 값이면 그 값에 1을 뺀 시간(초)을 기다린 후에 리프레쉬를 한다.
          * MoniWikiOptionsForBigWikis : 1만페이지 이 모니위키 운시 옵션에 대한 설명.
  • This is the Police . . . . 6회 일치
          화자. 프리버그의 경찰조직인 프리버그 PD의 경찰청장. 한때는 웅적인 경찰이었으나 지금은 배 나오고 원형 탈모 생긴 60살 아재. 아내는 집을 뛰쳐나갔다. 난데없이 해임을 통보받은 보이드가 노후자금 50만 달러를 모으는 것이 이 게임의 시작이다.
          보이드의 부관. 보이드와는 30년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마피아가 FPD 안에 심어넣은 내부자로 활동했지만 게임이 시작되기 얼마 전의 시점에 걸려버렸다. 이후 보이드에게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도와주면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쳐 신분 세탁을 하지만 거부하면 가족들과 함께 끔살.
          마피아 두목. 청바지와 니트를 입고다니는 나이에 비해 트렌디한 노인 같지만 실은 굉장히 잔인한 사람. 어떤 무기들이 샌드의 허가 없이 프리버그에서 사업을 벌이자 그 무기들은 물론이고 아내와 어린 자식까지 죄다 죽여버렸다고 한다. 켄드릭이 도망친/끔살당한 이후 보이드를 협박해. 켄드릭이 하던 일을 대신 하게한다.
         만약 시청과 사이가 나빠지면 치안 예산을 삭감한다. 예산이 삭감되면 시청에게 요청해서 했던 업그레이드를 하나 취소해야한다.
         주로 "XX시 XX분에 XX에서 일을 벌일거야. 경찰이 파티를 망치게 하고싶지 않아. XX 달러면 적당한 보인 것 같군."이라는 편지를 보내 특정 범죄를 무시하도록 부탁한다.
  • UR임대 . . . . 6회 일치
         과거에 공단주택(公団住宅)이라고 불렸으며, 도시공단에서 관리했다. 현재는 도시재생기구(都市再生機構)에서 관할하고 있으며, 이 단체의 문명인 Urban Renaissance Agency 에서 UR을 따와서 UR임대주택이라고 불린다. 일본 전국에 약 75만 가구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LH 임대아파트(휴먼시아, 구임대, 행복주택 등)와 비슷한 위치이나, 일본의 UR주택은 구임대이면서 방이 넓고 시설 수준이 좋은 단지도 있다는 점에서 LH 구임대와 큰 차이를 보인다.
         주택이 부족했던 고도성장기에는 공단주택의 건설의미가 있었지만, 임대주택이 많은 현대에는 미분양도 많아 단순히 '적자산업'에 불과하며, 민간 아파트 경자가 분양하는 소규모 아파트와 경쟁이 붙어 아파트 경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또 UR임대로 난개발이 이루어져서 환경을 파괴하는 사례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다. 현대에는 주민들의 노령화 문제와, 유럽마냥 이민자들의 대량 유입으로 슬럼화 문제를 겪고 있는 단지들이 많다.
  • V-22 오스프리 . . . . 6회 일치
         미 해병대는 CH-46E 시나이트를 대체하기 위해 MV-22를 채용하였으며, 미 공군 또한 특수 작전 보급과 장거리 침투, 구조를 위해 CV-22를 도입하였다. 또한 일본 육자위대 역시 V-22 오스프리를 도입하였다.
         [[http://www.boeing.com/defense/v-22-osprey/|보잉 홈페이지의 V-22 오스프리 페이지(문)]]
         [[http://www.af.mil/AboutUs/FactSheets/Display/tabid/224/Article/104531/cv-22-osprey.aspx|미 공군 사이트의 CV-22 오스프리 페이지(문)]]
         [[http://www.marines.com/operating-forces/equipment/aircraft/mv-22-osprey|미 해병대 사이트의 MV-22 오스프리 페이지(문)]]
  • Victoria II/군사와 전투 . . . . 6회 일치
         전투나 보급 부족으로 사자가 발생하면, 해당 사자는 해당 연대가 나온 POP에서 보충된다. 보충이 진행되는 동안은 해당 부대의 아이콘이 노란색으로 빛난다. 만약 해당 POP의 인구수가 연대를 지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면 붉은색으로 빛나게 된다.
          * 통파괴함(Commerce Raider)
         장군이나 제독의 성능은 랜덤이다. 말 그대로 가챠. 아무리 병신같은 똥별이 나오더라도 왠만하면 장군 없는 태에서 처맞는 디버프보다 낫다. 가능한 모든 군대/함대마다 지휘관을 붙이자.
         === 지전 ===
         === 해전 ===
  • 강상재 . . . . 6회 일치
         | 이름 = 강
         | 설명 = 연패를 끊어낸 전자랜드의 에이스 강재 선수를 만나봤습니다!
         | 수 =
         '''강재'''(1994년 12월 31일~ )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포워드이다.
         * 2016년 제 39회 이백배 한*일 대학선발농구대회 국가대표
         {{KBL 신인선수}}
  • 거대로봇 . . . . 6회 일치
         말 그대로 '''거대(巨大)한 로봇'''. 어느 정도 크기가 되야 거대 로봇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인간보다 수배 이 거대하면 거대로봇으로 취급한다. 10m 이하이건, 200m 이이건 일반적인 사람보다 거대하기에 거대로봇의 범주에 든다.
         [[애니메이션]]을 필두로 한 대중매체 장르 중 하나인 [[거대로봇물]]이 대표적. [[슈퍼전대 시리즈]] 등 [[특촬물]]에서도 거대로봇이 등장해왔고, [[퍼시픽 림]] 등 실사화에서도 등장한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극중 분위기의 차이라 볼 수 있다. [[마징가Z]]는 [[슈퍼맨]] 등 [[슈퍼히어로]]가 연케되는 활극, [[기동전사 건담]]은 진지하고, 무거운 전쟁물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정말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 마징가에서도 무겁고, 진지한 연출을 볼 수 있고, 건담에서도 흔히 말하는 리얼리티와는 다른 요소를 볼 수 있다.[* 리얼로봇보다는 슈퍼로봇에 가까운 활약이라던가. 애초에 2족 보행 거대로봇 자체가 리얼리티나 현실성에 부합하지 못한다.] 구분하는 사람 지치게 만든다는 것이 괜한게 아니다.
         당연한 말이나 거대로봇은 만들 수 있나, 없나를 떠나서 현실적이지 못하다. 단골요소인 거대한 인간형 2족 보행 로봇이라면 더 그렇다. 그러다보니 거대로봇물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단순 취향 차이도 있으나 거대로봇물에 대한 과한 추종심이 원인이기도 하다. 물론 가매체에서의 일인데 뭐 어떻냐는 사람들도 있고, 이러한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지 꽤 된 시점에서도 양질의 작품이 나오니 팬이라면 과하게 생각지 말고, 즐기길 권한다.
         거대한 괴수와 싸우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으며 이 경우에 로봇은 괴수에 대한 대항책으로 나온다. 가까운 예시가 퍼시픽 림. 다만 그 이전부터 로봇과 괴수의 격투는 가매체에서 다뤄왔다.
  • 건담 동물원 . . . . 6회 일치
         건담 익스트림 버서스는 2인 1조로 싸우는 4인 대전 게임으로서, 2인 1조의 대방은 아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도 가능하고, 전국에서 게임 플레이 중인 사람들 가운데 랜덤으로 조를 짜는 것도 가능하다.
         >대방 훔쳐보는 원숭이
         >괴한 소리 원숭이
         일부 플레이어가 『우아아아아아아아』『하?방패 내밀었잖아아아아아아』『제기라라아아아알』하는 이한 비명을 질러댄다.
         게임 매너가 나빠서 이한 동작으로 대를 도발[* [[샤아 전용 겔구그]]로 댄스하는 샤게단(シャゲダン)이라는 것이 유명.]하거나, 불리해지면 바로 게임을 포기하거나, 게임 중에 설정할 수 있는 메시지로 폭언을 보내기도 한다.
  • 경상남도 . . . . 6회 일치
         |이름 = 경남도
         [[통시]]'''|| 統營市 || 143,871 || 238.77
         [[고성군 (경남도)|고성군]]'''|| 固城郡 || 58,759 || 517.06
         경남도 ! ! 慶尙南道 ! ! 3,358,189 ! ! 10,521.59
         국립 경대학교
         [[분류:경남도 출신|경남 출신 인물]][[분류:1896년 설치]][[분류:부산광역시]]
  • 고산케 . . . . 6회 일치
         [[도쿠가와 막부]]의 세 분가인 오와리(尾張)·키이(紀伊)·미토(水戸)의 세 가문을 뜻한다. 도쿠가와 친족을 주로 임명한 친번(親藩)의 핵심이며, 도쿠가와 막부를 보좌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고산케의 조은 모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이며, [[쇼군]]의 지위를 계승한 본가와는 별도로 세개의 번에 따로따로 봉해져서 각자 [[다이묘]](대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고산케는 도쿠가와 본가의 혈통이 단절되면 본가에 양자로 들어가서 혈통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실제로 8대에서 14대 까지는 키슈 도쿠가와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尾張) : 다른 이름은 비슈가(尾州家). 시조는 제9남 도쿠가와 요시나오(徳川義直). 오와리번을 지로 [[나고야]]을 거성으로 삼았다.
          * 키이 도쿠가와 가문(紀伊) : 다른 이름은 키슈가(紀州家). 시조는 제10남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頼宣). [[와카야마]]번을 지로 삼고 와카야마성을 거성으로 했다.
          * 일본문화에서 특정 분야에서 강력한 권위와 향력을 가진 대표적인 3명을 손꼽아서 말할 때 고산케라는 표현을 쓴다.
  • 곤조야키 . . . . 6회 일치
         [[일본]]의 불량배 은어. 우리말로는 [[담배빵]]에 해당. 불 붙은 담배를 손목, 손등 같은 피부에 꽉 눌러서 화 흉터를 만드는 행위, 혹은 그렇게 생긴 화 자국. 직접 가져다 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부 가까이에 가져다 대는 것도 포함한다. 우연히 담배불에
         주로 불량배들이 자신의 근성(인내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벌인 행위이다. 주로 선배가 후배의 손목이나 손등에 담배불을 꺼서 후배의 근성과 충성을 얻는 행위였다. 동료의식을 높이고, 집단에 귀속의식을 높이는 목적으로 행해진다. 곤죠야키를 하면 화 흉터가 눈에 뛰게 남게 되는데, 불량배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흉터는 하나의 훈장처럼 다루어지고 있었다.
         1980년대 무렵부터, 지역에 따라서는 다르지만, 대체로 곤조야키는 감소하고 있다. 일설에는 불량배의 하관계가 약화되어, 보스의 권위나 절대성이 없어졌기 때문에 감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 사채꾼 우시지마에서 브래지어 형태로 곤조야키를 하는 구브래지어 형이라는게 나왔다.
  • 공중분해 . . . . 6회 일치
         [[비행기]] 같은게 공중에서 분해되는 현. 주로 [[여객기]]에서 나타난다. 여객기는 내부 승객을 위한 [[여압장치]]가 있는데, 이 때문에 내부 압력이 외부 압력보다 높다. 동체가 손되어 내압이 외압에 버티지 못하게 되면, 내압이 한꺼번에 외부로 터져나오면서 공중에서 산산조각으로 분해되어 버린다. 마치 [[풍선]]이 터지는 것을 연하면 된다. 물론 타고 있던 승객도 여객기의 파편들과 함께 강제로 외부로 사출되며 대개 살아날 수 없다.
         만일 운좋게 [[낙하산]]을 가지고 있어도 공중분해가 일어날 정도의 고도의 공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일복 차림으로는 피가 끓어오르거나 너무 낮은 기온에 얼어죽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살아나기 어렵고, 파편에 부딧치거나 하면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릴 것이다.
         최초로 공중분해된 여객기는 [[국]]의 미티어 여객기로서, 처음에는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파편을 하나하나 주워다가 짜맞춰서 분석하고 겨우 원인을 알아냈다고 한다.
  • 구자춘 . . . . 6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대한민국 국군/인물, top2=정치인/목록)]
         [include(틀:역대 경북도지사)]
         1932년 5월 11일 [[경북도]] [[달성군]] 다사면 세천리(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서 태어났다.
         1963년 [[대령]]으로 예편하여 경찰로 근무하여, 치안국(현 경찰청) 정보과장, 서울시경(현 서울지방경찰청) 국장, 경찰전문학교 교장 등을 지냈다. 뒤이어서 제주도지사, 수산청장, 경북도지사를 차례로 맡았다.
         1974년 9월 2일부터 1978년 12월 21일까지 제16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원래는 등포-왕십리로 계획되어 있던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거대 순환선으로 만든 사람이다. 특히 2호선 계획 당시 지도에 줄 그어서 30분만에 만들었다는 레전설이 나름 유명. 웃긴건 그렇게 날림처럼 노선이 정해졌음에도 정작 공사할 때 [[등포역]] 경유 예정 구간이 [[신도림역]] 경유로 바뀐 것, 딱 한 곳만을 제외하면 딱히 난공사라 할만한 구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구자춘 시장이 포병 출신이어서 지도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기 때문에 이런 레전설 일화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근데 이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 아닌가,--[* [[손정목]] 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다만 이는 좋게 봐줘도 2호선 한 노선 한정이고, 바로 다음 노선인 3호선부터 서울 지하철 노선의 선형은 '''온갖 병크'''가 터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서울/강남|강남]]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그 이외에도 [[강남8학군|서울특별시 강북 지역의 명문고 이전]],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립[* 다만 본인이 기안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고속터미널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지하철 3호선|3호선]]을 무리해서 끌어오느라 3호선의 선형에 '''지랄맞은 ㄷ자 드리프트'''가 생기는 원흉이 된다.], 금화터널 건설 과정에서의 [[독립문]] 이전, [[한양도성]] 일부 복원, 도심부 주차장 확충--당시 도시계획국장 [[손정목]]의 말을 안 듣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을 듯...-- 등을 추진하였다. 이런 그의 별명은 대표적으로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0110020920202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0-11&officeId=00020&pageNo=2&printNo=17237&publishType=00020|황야의 무법자]]'''였다. 그 이외에도 몇 가지 별명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11900329206004&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1-19&officeId=00032&pageNo=6&printNo=9891&publishType=00020|붙었다]].~~관료계의 [[김태균(1982)|김별명]] [[박용택|별명택]]~~
  • 국부펀드 . . . . 6회 일치
         국가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특수한 목적의 국 펀드. 국부펀드는 주로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있으며, 외화(주로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가지고 운용한다. 자금투자운용은 일반적인 투자펀드와 비슷하게 [[채권]], [[주식]], 부동산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 자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미국 텍사스 주, 오레곤 주의 주에서 보유한 펀드는 주정부 소유의 공유지 토지임대수익으로 펀드를 조성하기도 한다.
         자원수출을 바탕으로 한 국부펀드를 품펀드(commodity fund)라고 하며, 그 외의 수익을 종자돈으로 하는 펀드를 비품펀드(non-commodity fund)라고 하여 구분한다.
         이리하여 국부펀드의 향력이 증가하였으나, 이들의 총자산 등 정보가 비공개 태라는 점을 염려하여 [[IMF]]에서는 산티아고 원칙 (Santiago Principles)이라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The International Forum of Sovereign Wealth Funds (IFSWF)가 International Working Group of Sovereign Wealth Funds(IWG)에 의하여 출범했다. 2009년 4월에 쿠웨이트에 설립된 IFSWF는 2009년 10월에 멤버들간 정기회의를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개최하였다. 한국투자공사를 비롯하여 24개 국부펀드가 가입하고 있다.
         펀드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대국에서 반감을 초래하여 보호주의 성향을 드러낼 것이라는 지적도 있으며, 실제로 이 같은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 권성욱 . . . . 6회 일치
         |웹사이트=[http://www.kbsn.co.kr/sports/broadcaster.php?seq=13&page1=1&index=0&menu_code=108411831181&keyfield=&keyword= 권성욱 소개]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1998년]] [[2월]] [[부산광역시]]와 [[경남도]]의 지역방송국인 PSB 부산방송(현재 [[KNN]])으로 입사하여 아나운서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주로 프로야구 중계를 많이 담당하였다. [[2001년]]부터는 스포츠 전문 케이블방송인 [[KBS N 스포츠]]로 소속을 옮겨 [[2013년]]까지 [[KBO 리그]], [[KBL 리그]] 농구 중계를 담당하였다. [[2011년 세계 육 선수권 대회|2011 대구 세계 육 선수권 대회]]때는 일부 필드경기 및 시식 장내해설을 맡은 바 있다. [[2014년]]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마이크를 내려놓았는데, 2015년 5월 2일과 10월 21일 2경기 마이크를 잡았으며, 2016년 4월 1일, [[KT 위즈]]와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 "~에서 ~에서 세잎 되었습니다 또는 아웃!" (1루, 2루, 3루 혹은 홈에서 접전때 판정 결과에 따라 이)
  • 김근백(프로게이머) . . . . 6회 일치
         [[2000년]] 반기부터 활동을 시작해 [[2002년]] 반기, [[CJ 엔투스|GO]]에 합류하였다. [[미남]] 군단으로 유명한 GO의 선수답게 준수한 외모로 인기가 있었다.
         아이옵스 스타리그 16강에서는 [[박정석]]에게 패했지만 [[전욱(프로게이머)|전욱]], [[변은종]]을 잡아내며 8강에 진출한다.
         하지만 8강 대는 당시 물이 오른 [[박성준(1986)|박성준]]이었고 0:2[* 특히 2경기 네오 기요틴에서는 역전패.]로 패하며 결국 탈락하고 만다.
         이후 2005년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에서 [[박지호(프로게이머)|박지호]], [[김준]] 등을 내리 잡아내며 3시즌만에 스타리그 16강에 진출. [[안기효]]를 잡았으나 [[최연성]], [[차재욱]] 등에게 패해 탈락한다.
  • 김덕현 (변호사) . . . . 6회 일치
         '''김덕현'''(金德賢, [[1958년]] [[2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변호사이다.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했을 때 변호인단의 일원이었다.<ref>백기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28&aid=0000051186 노무현 - 변호인단 첫 견례]. 한겨레. 2004년 3월 22일.</ref> 배우 [[최진실]]이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청구소송을 당했을 때 그 변호인단의 일원으로서 활동하였다.<ref>김태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069022 최진실씨 변호인단 매머드급]. 세계일보. 2004년 12월 14일.</ref>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 위원
         *2001.11 ~ 2005.03 국가인권위원회 비임위원
         *2007.05 중앙인사위원회 비임위원
  • 김동욱 (1959년) . . . . 6회 일치
         | 훈 =
         | 웹사이트 =
         | 한국콘텐츠진흥원 비임이사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비임이사
         | 책임운기관평가위원회 위원
         | 정부산하기관 경평가단 위원
  • 김미경(강사) . . . . 6회 일치
         || '''소속''' || 더블유 인사이츠 (대표)[br]김미경의 이클래스 (대표) ||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 20대, 30대의 젊은 청년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이런 얘기를 해요. "원장님 있잖아요, 지금 요즘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요, 내 가슴을 뛰게 하질 않아요. 그래서 이건 내 꿈이 아닌가봐요." (중략) 내 가슴을 뛰게 하질 않는대요, 이 일이. 그래서 이거는 꿈이 아니라서 나는 여기를 떠나서, 가슴 뛰는 일을 계속 찾아다닌대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죽을 때까지 찾아 봐라, 찾아지나!" 절대 여러분 가슴 뛰는 일 같은 건 세에 못 만나십니다. 중요한 건 (저는) 강의라는 일을 만나서 내 가슴이 뛸 때까지 일한 거예요, 20년동안. 여러분, 꿈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거예요.
         >꿈이라고 말해놓고 건드리지 않으면 계속 꿈이야. 꿈이라고 말해놓고 바로 실행하면 꿈은 뭐다? 더 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다. 여러분, '꿈'자를 가슴 속에 오래 두지 마십시오. 바로 현실로 전환시켜 버리세요.
         양장점을 하는 어머니와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부모에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음대를 나와서 광고 음악 등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으나 적성이 맞지 않아 월급을 타는게 미안했다고 한다. 후에 대출금을 받아 피아노 학원을 개설하여 운하였고 여기서 사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29살 때부터 강연을 하고 싶어 강사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공부하는 생활을 7년 동안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보여준 바에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2018년]] [[9월]] 기준 구독자수 33만명 이을 달성할 정도로 흥했다.
  • 김병준(육상) . . . . 6회 일치
         ||<#131230> '''{{{#white 출생}}}''' || [[1991년]] [[8월 15일]],[[경북도]] [[포항시]] ||
         ||<#131230> '''{{{#white 종목}}}''' || [[육]] ||
         [[대한민국]]의 남자 [[육]] 선수이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13초43 한국신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2017 세계육선수권에도 참가하였다.
         = 수 기록 =
         [[분류:육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인물]][[분류:1991년 출생]][[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6회 일치
         [[정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때, [[1992년]] [[미국]] [[덴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다. [[정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때 참가한 [[1994년 동계 올림픽|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전이경]] 등과 함께 여자 3,000m 계주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1,000m 개인전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1994년]] [[국]] [[길퍼드]]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는 종합 2위에 올랐다.
         이후, 고질적인 허리 부으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1997년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153531 쇼트트랙 김소희 은퇴] - 연합뉴스</ref>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일리노이대학(West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스포츠마케팅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2012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위원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소 주임 연구원 및 [[대한체육회]] 국제위원회 위원,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현장 실사에도 나섰다.
         김소희는 [[2003년]] 말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어 그 해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열린 1, 2차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종합 우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2004년]] [[11월 3일]]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최은경]], [[여수연]], [[변천사]], [[허희빈]], [[강윤미 (쇼트트랙 선수)|강윤미]], [[진선유]] 등 여자대표팀 선수 6명이 사생활 간섭<ref>{{뉴스 인용|제목 = "죽도록 두들겨 맞고…" 여자 쇼트트랙 '폭력의 얼음판' | url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0269734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김성규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습적 구타<ref>{{뉴스 인용 | 제목 = 여자 쇼트트랙 구타 쇼크 "매일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국제대회장서도 되풀이 | url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6000000/2004/11/006000000200411101828268.html | 출판사 = 한겨레 | 저자 = 성연철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등 코치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고 [[태릉선수촌]]을 무단 이탈했다가 대한빙연맹의 설득으로 하루 만에 복귀했다. 연맹 측은 [[11월 11일]] 습구타 사건에 연루된 코치진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고, 7명의 부회장단도 총 사퇴했다.<ref>{{뉴스 인용 | 제목 = `선수 매질`파문..빙聯 부회장단 사퇴 |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088254 | 출판사 = 문화일보 | 저자 = 이준호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이후 연맹은 여자대표팀을 선수촌에서 퇴촌시켰으며, 11월 말 열린 3, 4차 월드컵 대회 출전도 정지시켰다.<ref>{{뉴스 인용 | 제목 =여자 쇼트트랙 새 사령탑 선임 | url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0411/sp2004111522171658130.htm | 출판사 = 스포츠한국 | 저자 = 허재원 | 쪽 = | 날짜 = 2004-11-15 | 확인날짜 = 2014-02-17 }}</ref> 이 사건 이후 현장 지도에는 나서지 않고 연구원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 김승목 . . . . 6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가남(佳南)이다. 2015년 [[췌장암]]으로 별세한 1945년생 화배우 [[진도희]]의 사촌 오빠였다.
         1929년 [[경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부산업고등학교(현 부산[[개성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삼]]과 신민당 복수공천을 받아 부산직할시 [[서구(부산)|서구]]-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김삼과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박찬종]]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였다. 1974년 [[정일형]] 등이 화요회라는 계보를 창설하자 화요회에 속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직할시 [[남구(부산)|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재홍(1932)|김재홍]]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임고문을 역임하였다.
  • 김쌍수 . . . . 6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기업인/목록)]
         [[대한민국]]의 [[기업인]]. [[LG그룹]] 부회장[* LG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부회장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윤종용, [[이학수]]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공부잘하는 [[엄친아]], [[엄친딸]]들이 자신의 우이자 롤모델로 삼는 인물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기업 부회장 자리는 게임으로 따지면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클리어한 것이다.], 前 [[한국전력공사]] 사장, 現 [[수원 KEPCO45]] 프로배구단 구단주. 졸업 고교는 [[성의고등학교]]. [[경북도]] [[김천시]] 출신이다.
         이름이 특이해 [[가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텐데, '''[[본명]]'''이라고 한다.--[[쌍꺼풀 수술|그것]]과는 전혀 관이 없다--
          * LG전자 무이사
         == 훈 ==
  • 김우동 . . . . 6회 일치
         1897년 [[경북도]] [[선산]][[군(행정구역)|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니혼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일제강점기]] 후기 대구은행(현 [[DGB금융지주]] 산하 [[대구은행]]과는 별개)에 근무하였다. 대구은행이 경남은행(역시 [[BNK금융지주]] 산하 현 [[경남은행]]과는 별개)과 합병하여 1928년 경합동은행이 되자 계속 경합동은행에 근무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 선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대한국민당 육홍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2년 지방선거]]에서 경북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해당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김동석]]이 재검표 소송을 제기하여 재검표 결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8102400209103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8-10-24&officeId=00020&pageNo=3&printNo=11159&publishType=00010|당락이 뒤바뀌면서 국회의원직을 실하였다]].
  • 김재권 (철학자) . . . . 6회 일치
         김재권은 1934년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여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2년 수료 후,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에 편입하여 불문학 전공 및 철학 [[수학]]을 연계전공하여 학부를 마치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석박사과정) 학위를 취득하였다.
         == 수 ==
         2001년 [[서우철학]]을 수하였다.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다트머스 대학교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철학자]][[분류:21세기 철학자]][[분류:심리철학자]][[분류:경암학술자]][[분류:스와스모어 칼리지 교수]][[분류:노터데임 대학교 교수]][[분류:미시간 대학교 교수]][[분류:브라운 대학교 교수]][[분류:존스 홉킨스 대학교 교수]][[분류:코넬 대학교 교수]]
  • 김정우(1990) . . . . 6회 일치
         == 세 ==
         일부 멤버의 계약 만료로 스피드가 사실 해체된 이후로는 계약 해지 사실이 멤버 중 가장 먼저 알려졌다. 이후 SNS로 근황을 알렸으나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전부 삭제하고 다시 시작하는 등 마음정리가 필요했던 걸로 보인다.
          * 남녀공학이 해체하게 된 원인을 소개하는 에 댓글을 남겼다. 의 내용이 좋지 않은 내용임에도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중국에서 모델활동을 하고 유튜버를 준비하고 있다는 근황을 남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f6SyeyMQp_k|#1]]
  • 김진향 . . . . 6회 일치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고,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담론의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된 연구분야로는 북한 체제, 남북관계, 평화통일 등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객원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제32대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정치인)|이종석]]을 만났다.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인수위원회에서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설계 작업을 했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에서 NSC 한반도 평화체계담당관으로 국정운에 참여하여 남북 평화체계를 다루다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더 폭넓게 남북관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여러 번 교섭과 협을 했다. 학자 입장에서 북한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근무를 자원했고 [[2008년]] 2월부터 4년간 [[개성]]에서 근무했다. 이 때 개성에서 발생하는 신청·세무·회계·세금·임금협 등 북한과의 모든 협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북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고 협하는 경험을 했다.<ref>원희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3&aid=0000032094 (원희복의 인물탐구)카이스트 김진향 교수…종북을 각오하고 ‘북한’을 말하다]. 주간경향. 2016년 1월 16일.</ref>
         * 1985년 ~ [[1988년]]:[[진고등학교]]
  • 김취경전 . . . . 6회 일치
         작자 미 고전소설. 총 260장에 달하는 장편 소설로서, 2권 2책이다. 국립도서관에 한글 필사본이 있으며 유일본이다.
         방황하던 취경은 어느 수수께끼의 백발노인의 인도를 받아, [[흉가]]에 갔는데 그곳에서 괴물을 물리치고 미인 목소저를 구해준다. 목소저는 백제국 태부서의 딸이었다. 취경은 목소저에게 의지하여 병서와 무술을 공부하게 된다. 한편 집을 나온 선애와 설애는 [[남장]]을 하고 다니다가 함흥부의 소년 양화춘과 의형제를 맺고, 함께 오빠 취경을 찾아다니다 취경과 재회한다.
         그런데 이 때, 백제국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고구려왕은 백제군에 패배하고 위기에 바진다. 취경과 양공자는 함께 병법과 무술을 고웁하다가, 양공자가 천문을 보고 왕이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고, 취경이 전장에 나가서 왕을 구하기로 한다. 취경은 장인의 혼[* 백제국 태부서인데 어지간히 백제왕이 싫었나보다(…).]으로부터 삼척보검을 얻고, 도적 천철웅에게 군량미를 지원받으며, 단군에게 갑주와 용마를 받는다.
         취경은 --[[템빨]]로-- 적군을 격파하고 고구려왕을 구출한다. 고구려왕은 기뻐하며 김취경을 도원수로 임명하여 백제군과 싸우게 하고, 취경의 지휘 하에 고구려군은 백제군을 격퇴한다. 마침내 취경의 활약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 끝에 고구려군이 승리하고, 고구려왕은 취경을 의정으로 삼는다.
         한편, 윤도익과 안씨는 복직한 서윤택에게 다시 체포되었다가 전쟁중이라 석방된다. 둘은 도주하려다가 윤도익이 안씨를 겁탈하려다 도적에게 살해당하고, 안씨는 친정이 있는 박천으로 도망간다. 취경은 승이 되어 숙천으로 가서 아버지 김형국을 만나고, 박천의 안씨를 용서해주고 숙천으로 모셔와서 함께 살게 된다.
  • 김형태(정치인) . . . . 6회 일치
          * 위 문서 : [[정치인/목록]]. [[기자(직업)/목록]]
         1952년 [[경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포항[[동지중학교]], 대구[[성광고등학교]],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외교안보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한나라당 [[이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원|여의도연구소]] 정책자문위원회 홍보분과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북도 포항시 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허나 선거 기간부터 과거 [[제수]]씨 [[성폭행]] 미수 의혹으로 곤욕을 치뤘다. 이후 조카에게 사과하는 녹취록이 유포되어서 큰 망신을 당했다. 동생의 아내와 외도를 한 [[라이언 긱스]]를 빗대 '포항긱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하여 당선 직후 출당되어 [[무소속]]으로 지내다가 [[공직선거법]]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169&yy=2013|위반]]으로 2013년 7월 의원직이 실되었다.
  • 나다카 타츠오 . . . . 6회 일치
         좋아하는 화는 [[대부]]. 좋아하는 여배우는 [[오드리 헵번]]이며, 목표로 하는 배우는 [[멜 깁슨]]. 좋아하는 브랜드는 [[랄프로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팬이다.
          * 1978년(당시 27세) : 화「물가의 하얀 집(渚の白い家)」 출연.
          * 1986年(당시 35세) : 화 「사야가 있는 투시도(沙耶のいる透視図)」 출연
         아내와는 공통으로 알고 지내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소개해줘서 만나게 되었다. 아내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여러 번 설득하여 맺어지게 되었다. 아내와 생일이 같으며, 생일에 청혼을 했다. 아내는 결혼 초기에는 요리가 서툴렀지만 점차 향되었다고 한다.
          * 취미는 [[스쿠버 다이빙]]으로서, 세계 각지의 다이빙 포인트를 거의 제패했다. 다이빙 중에 [[어]]와 맞부딪치거나, 공기가 모두 떨어져서 30m 정도 긴급 부을 한 적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0화 . . . . 6회 일치
          * 드디어 시작된 필살기 수업. 필살기는 현재 히어로들에겐 어떤 전투 황에서나 도움이 될 수 있어 시험에서도 어필이 된다.
          * 어떤 황에서든 안정적으로 필살기를 쓸 수 있다면 당락에 큰 향을 주기 때문이다.--마치 졸업하기 전에 토익에 올인하는 듯하다--
          * 시멘터스가 만든 훈련장에서 엑토플라즘이 만든 분신을 대하며 훈련한다.
          * 아직 올마이트의 조언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일단 팔을 보조한 서포터를 만들고 원 포 올의 허용 한을 올리기 위해 몸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 폭발의 원인이고 파워 로더가 투덜댄 대인 누군가가 연기속을 걸어나오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에디슨의 말을 인용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5화 . . . . 6회 일치
          * 설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노출되어 집중 공격을 받는데, 그때 우라라카와 재회한다.
          * 이 여학생은 "웅고는 노리는 사람이 많으니 빨리 떨어질지도 모른다. 모처럼 강호와 겨룰 찬스니까 웅고가 탈락하기 전에 웅고생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보기보다 말이 많고 설명충 타입.
          * 이것은 단순한 "기술". 대의 감각이 딴데로 돌리는 것이다. 요령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사물에 섞이는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7화 . . . . 6회 일치
          * 바쁜 하루를 마치고 단잠에 빠져든 웅고 학생들. 그러나 [[미도리야 이즈쿠]]와 [[바쿠고 카즈키]]만은 기숙사를 빠져나온다.
          그들이 향한 곳은 웅고 입학후 처음으로 미도리야와 싸웠던 그라운드 베타. 여기에 와서야 바쿠고는 입을 연다.
          * 바쿠고는 무개성이었던 미도리야가 갑자기 웅고에 입학하고 개성이 발현된 것이 "기분 나쁘다"고 한다. 게다가 그 미도리야는 "남에게 물려받았다", "언젠가는 내 힘으로 만들어서 내 힘으로 너를 뛰어넘겠다"같은 뜻모를 말을 했었다. 그러고도 미도리야는 계속 활약해서 위로 올라갔다. 기어코 바쿠고를 앞질러 임시면허까지 손에넣기에 이르렀다.
          미도리야는 임시면허는 꼭 실력 순으로 딴게 아니라고 위로하려 하지만 바쿠고는 닥치고 들으라며 폭언한다. 아무튼 그는 계속 기분이 나쁜 태였고 짜증스러웠는데 얼마 전 "대사건"을 통해서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 미도리야는 들어서 어쩔 거냐고 반문한다. 바쿠고는 이미 확신에 찬 태다. 그는 자신도 올마이트를 동경했는데 계속 돌맹이라고 생각했던 미도리야가 모르는 사이에 올마이트에게 인정받았음을 한탄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8화 . . . . 6회 일치
          * 싸우며 유년시절의 기억을 회하는 미도리야와 바쿠고. 이 싸움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미도리야는 최대한 피하려 한다.
          * 미도리야는 그 울분을 받아줄 대는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의미없는 싸움"에 응한다.
          * 통보가 온 이 나가보지 않을 수 없다. 아이자와가 바깥으로 나가는데 누군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 아이자와의 표정이 심치 않다.
          * 미도리야는 바쿠고가 그 이으로 고뇌하고 끌어안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달려드는 바쿠고를 바라보며 이 싸움엔 의미 같은건 없을지 모르고 승자도 패자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진심으로 반격을 가한다.
          미도리야는 드디어 전력으로 대할 것을 선언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0화 . . . . 6회 일치
          * 풀 카울 8%는 단순한 수치 이의 향을 보인다.
          * [[미도리야 이즈쿠]]는 "승리의 이미지"로서 [[바쿠고 카츠키]]를 해왔고 그 승리의 징을 뛰어넘겠다며 필사적으로 싸운다.
          생각이 정리됐는지 바쿠고는 한숨을 쉬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더 있냐고 묻는다. 올마이트는 솔직하게 교장과 리커버리 걸, 그리고 학생 중에선 바쿠고만이 그걸 안다고 알려준다. 바쿠고는 그가 숨기려한 이 미도리야와 달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며 이 날의 사건이 정리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9화 . . . . 6회 일치
          * [[쿠로기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공간을 연다'는 개념이 아니라 "대만을 전송"하는 계통의 능력.
          * 프로히어로 일동이 전원 빈사 태.
          * 간신히 일어난 베스트 지니스트는 사전에 예했던 "빌런 연합의 브레인"이 이 자일 거라고 직감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정 이의 괴물이다.
          * 올 포 원은 동기야 어쨌든 토무라에게 해주는 말이나 행동은 매우 이적인 "스승"의 모습.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6회 일치
          * 기숙사는 웅고 교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 미도리야, 키리시마, 토도로키, 야오요로즈, 이이다. 이 다섯명이 작전에 무단개입했임을 발표한다.
          * 하지만 학생들은 분위기가 다운돼서 신나지 않는다.
          * 수풀 뒤에서 카미나리를 방전시키더니 바보태로 던져놔서 웃음을 유발한다.
          * 너무 예대로로 오히려 평범하다.
          * 미네타는 "남자만 공개하는건 이하다"면서 여자방도 공개하기를 요구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9화 . . . . 6회 일치
          * 왠지 들떠서 계속되는 방투어. 최종적으론 "방의 왕"을 정하는 이한 게임이 되었다.
          * 이야기가 확장돼서 "방의 왕"을 정하는 이한 게임이 된다.
          * 그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한 흑막은 미네타 미노루. 왠지 자존심 해있는 남성진을 대변하는 척 민의를 핑계로 여자방을 들쑤실 작정이다.
          * 남성진의 방은 감 끝. 여성진은 사토의 케이크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 사실 츠유는 일부러 심한 말을 했던 것이다. 결행을 막겠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한 거였는데, 막 탈환팀이 결행을 했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 미도리야는 이제야 "히어로를 목표로 하는" 일으로 돌아왔음을 실감한다.
  • 뇌내 꽃밭 . . . . 6회 일치
         과도하게 이적이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망, 공, 환을 맹신하는 사람을 뜻한다. 멸칭이나 비난에 가까운 표현이다.
         뇌내(脳内)는 뇌의 안쪽, 여기서는 [[정신]]을 뜻하며, 오하나바타케(お花畑)는 [[꽃밭]]이라는 뜻으로, 이적인 사고방식을 뜻한다. 봄의 만발한 꽃밭의 풍경으로 과도하게 이적인 사고방식을 풍자하는 것이다.
  • 대마신 . . . . 6회 일치
         일본의 [[괴수]][[화]]. [[가메라]]를 내놓은 다이에이에서 만들었다.
         총 세편의 화가 만들어졌으며 각 화의 공통되는 특징은 악인에게 고통받는 민중을 구하기 위해 석인 대마신이 움직인다는 것.
         대마신은 평소에는 온화한 얼굴이나 화가 나면 흔히 알려져있는 노한 표정이 되는데 이때 팔로 얼굴을 닦는 듯한 행동 등을 한다.[* 팔이 얼굴을 지나가면 온화했던 얼굴이 분노한 인이 된다.] 칼을 장비하고 있으나 주먹 공격도 구사하며 그 위력은 성문과 망루 등이 부서질 정도다. 이외에도 특수한 능력이 있다.
         당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오마쥬, 혹은 패러디가 나왔는데 예를 들어 [[RPG전설 헤포이]]에서 대마신을 닮은 캐릭터가 등장했고, 만화 [[케로로 중사]]에서도 관련 패러디가 나왔다.
  • 데드 스페이스 . . . . 6회 일치
         '''Dead Space'''. [[미국]]의 [[EA 레드우드 쇼어즈]]에서 제작하고 [[일렉트로닉 아츠|EA]]에서 유통한 [[SF]] [[TPS]]. 정체불명의 황으로 생지옥이 된 우주선 [[USG 이시무라]]를 배경으로 애인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에 자원한 엔지니어 [[아이작 클라크]]의 분투를 다루고 있다.
          탄약이 다 떨어졌을 때 저항수단 B. 자 부수는 용도로만 쓰고 그냥 탄약 관리를 잘 하자.
          사용 대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장비. 위험한 물건을 느리게 만들고 지나가거나 네크로모프에 대처할 시간을 버는데 사용한다. 사용 가능한 양을 다 쓰면 충전 전까지는 사용 못하니 주의.
          무기나 장비를 업그레이드 할 때 소모되는 아이템. 이걸로만 열 수 있는 문도 있다. 점에서 10,000 크레딧에 살 수도 있지만 10,000 크레딧이 뉘집 개새끼 이름인가.
          새로운 무기나 장비를 해금시켜주는 아이템. 얻는 즉시 해금되는게 아니라 이걸 소지한 태로 점에 가야 해금된다.
  • 데모데모닷데 . . . . 6회 일치
         본인에게 문제가 발생하고, 담을 원해서 담을 받아주고, 적절한 어드바이스를 해줘도 「하지만」나한테는 무리. 「하지만」못할 것 같고. 「그래도」 자신 없고. 이런 식의 답변만을 하면서 문제의 해결을 회피하면서 우유부단하게 구는 사람, 혹은 그러한 태도를 뜻한다.
         2채널에서는 주로 가정, 육아 판에서 사용한다. 현실에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 짜증난다고 하거나, 스레드에 담을 하러 온 사람이 이런 발언을 반복하여 뭐하러 담하러 왔냐고 욕을 먹기도 한다.
         넷용어 사전 사이트 넷 왕자 데모데모닷데(デモデモダッテ)
         그 한마디를 말하기 전에 : 「하지만」「그래도」「어차피」――사람이 대해주지 않게 되는 "3D" 발언에 주의
  • 등신대 패널 . . . . 6회 일치
         사람의 몸과 같은 사이즈로 사진을 인쇄한 판넬. 주로 [[연예인]] [[사진]] 같은 것을 인쇄하여, 점 등에 배치해놓고 광고용도로 쓰인다. 오타쿠 관련 가게에서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등신대 패널도 쉽게 볼 수 있다.
         [[등신대 피규어]]처럼 [[키모이]]하지 않은, 일반적인 품. 물론 이 품에 [[키모이]]한 행위를 저지르면 매우 도를 넘은 인간으로 보일 것이다.
         의외로 한국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PC방. 게임 캐릭터나 홍보모델을 본따서 만든 게임 홍보 등신대 패널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편이라 일에서 자주 접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여성용 화장품 가게나 화관에서도 시각효과를 돋보이게 만드는 보조수단으로 널리 퍼지고 있으며, 90년대 포스터가 해준 역할을 대신하는 2000년대의 신규 홍보아이템이 되었다.
  • 런너즈 하이 . . . . 6회 일치
         오랜 시간 동안 달리기를 하면 나타날 수 있는 현. 달려나갈 때 괴로움이 줄어들고 기분이 점점 좋아지는 현이다. [[엔돌핀]]의 분비로 일어난다고 한다.
         장시간 달리면 [[엔돌핀]]이 분비되어, 괴로움이 점차 줄어들어 느껴지지 않게 되고, 달리고 있어도 괴롭지 않게 된다. 오히려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뇌내에서 엔돌핀이 분비되어 괴로움을 잊게 하는 작용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본래 느껴야 할 괴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는 태이므로, 이 태에 빠져서 신체 능력 이으로 달리게 되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 류원기 . . . . 6회 일치
         '''류원기'''([[1947년]] [[2월 6일]] [[경북도]] ~)출신 그는 역도연맹과 대한역도연맹의 회장을 맡은 적이 있다.
         여대생 청부살인사건의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된 윤길자의 남편으로 윤길자의 형집행정지를 돕기 위해 검사와 의사에게 뇌물을 수수하는 등 담합 및 횡령 등으로 징역 4년 6개월을 구형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유호윤|제목=‘여대생 청부살해범’ 남편에 징역 4년 6개월 구형|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2783485|날짜=2014-01-04|확인날짜=2016-02-11|뉴스=KBS}}</ref> 1심 재판부에서 횡령 형의만 적용받아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저자=서재근|제목=法, '여대생 청부살해' 남제분 회장 징역 2년 실형 선고(1보)|url=http://news.tf.co.kr/read/economy/1312481.htm|날짜=2014-02-07|확인날짜=2016-02-11|뉴스=더팩트}}</ref> 2014년 2월 바로 고했다.<ref>{{뉴스 인용|저자=나혜윤|제목=‘여대생 청부살인’ 주치의·남편 모두 항소 네티즌 “뻔뻔의 극치.. 무기징역도 아까워”|url=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02|날짜=2014-02-11|확인날짜=2016-02-11|뉴스=go발뉴스}}</ref> 구치소에 수감된 채 2심 재판을 받던 중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태로 선고 공판에 출석했으며, 같은 해 10월,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여대생 청부살해’ 남편 남제분 회장, 실형→집행유예 ‘감형’…주치의는 벌금형|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30/2014103002297.html|날짜=2014-10-30|확인날짜=2016-02-11|뉴스=조선일보}}</ref>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마기/302화 . . . . 6회 일치
         모든 것이 잘 되기만 할 것 같았던 전송마법진 계획은 예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 이미 황제국은 내수로 소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있었고 팔 곳이 없어진 이 국가는 붕괴할 수 밖에 없다.
         * 자신은 국제동맹의 이사로서 황제국의 국가적 위기는 도울 수 있지만, 황제국 회의 일을 도울 수는 없다며 공사를 구분한다.
         * 또 과거 알리바바가 "장사에 있어선 라이벌"이라고 말한대로, "너와 나는 회의 대표로선 대등한 라이벌"이라고 선언한다.
         "너와 나는 회대표로선 대등한 라이벌 관계야"
         * 사실 황제국의 처지는 일본의 처지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매우 식적인 반응이기도 하고.
  • 마기/307화 . . . . 6회 일치
          * 나나우미는 연백(아르바)에게 알라딘의 신변이 노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려한다.
          * 알라딘 일행이 마더 드래곤과 만난건 그녀가 알리바바와 쥬다르를 지으로 보내준 직후.
          * 그와 지금 그가 만든 세이 나쁜 것은 아니나 원히 군림하는 존재가 되려는 그의 사은 틀렸고 그걸 막기 위해 싸우려는 것.
          * 그런 임금이 함께 할 때 모두 함께 나아가는 세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것이다.
  • 마기/309화 . . . . 6회 일치
          * 유난은 푸른 번개의 마법을 쓰기 시작하는데, 연백(아르바)는 "그런건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비웃는다.
          * 유난은 그 말이 맞다면 지금은 "신드바드의 마법"을 흉내내고 있다며 뇌광검(바라라크 사이카)를 써서 아르바를 공격한다.
          * 핏덩이가 된 몸을 순식간에 재생해서 "이정도 처는 금방 낫는다"며 비웃기까지 한다.
          * 바로 그때 아르바의 앞에 솔로몬의 형이 나타난다.
          * 알라딘 일행이 아르바를 대하기 위해 나타났다.
          * 알라딘은 평범하게 유난과 아르바를 뜯어놓는데 잘 생각해 보면 엄청난 일이다. 원래 알라딘은 그 아르바에게 대가 안 돼서 암흑대륙으로 도망친 건데 그 아르바를 평범하게 밀쳐낼 수 있다면 엄청난 파워업을 했다는 말이 된다.
  • 마기/311화 . . . . 6회 일치
          * 연백(아르바)는 검을 버리고 마법으로 승부한다.
          * 알라딘은 "연백의 몸을 돌려주고 신드바드에게 수작 부리는 것도 관둬라"고 요청하고 아르바는 대답 대신 "네 얼굴은 그 두사람(솔로몬과 시바)과 닮아서 싫다"고 디스한다.
          * 백룡은 이한 수준인 아르바의 회복능력을 보고 "알라딘의 짐작대로 본체는 다른 곳에 있다"고 판단한다.
          * 어차피 죽이지도 못할 거 계속 누나의 몸에 처를 입히기도 그러니 알라딘이 나서서 해결해 달라고 한다.
          * 알라딘은 인사와 함께 "백의 몸을 돌려주고 신드바드에게 찝적거리지 마라"고 요청하는데 아르바는 "많이 컸다. 네 얼굴은 솔로몬과 시바를 닮아서 싫다"고 동문서답한다.
          * 아르바는 알라딘이야 말로 솔로몬의 오만을 징하는 존재라며 공격한다.
  • 마기/318화 . . . . 6회 일치
          * 국제동맹 본부는 천산산맥 정에 세워져 있으며 금속기의 보관과 각국 요인들 간의 회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 본부에선 정례이사회가 한창이며 임이사들이 모두 참석해 있다.
          * 의장인 신드바드는 뢰엠 제국의 국제동맹 가입 여부를 의제로 정한다.
          * 뢰엠이 금속기를 보유하고 있는 점, 군대가 존재하는 점도 공격 대.
          * 그리고 이의 혜택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면책받은 침략 행위에 대한 속죄에 직면한다고 말한다.
          * 신드바드는 홍옥을 결코 성장할 인물이 아닌 걸로 봤기 때문에 예이 빗나가 버린 셈이다.
  • 몬스터버스 . . . . 6회 일치
         2014년에 개봉한 [[괴수]][[화]] 고질라를 포함한 배경 세계 공유 괴수 화 프랜차이즈. 관련 회사는 [[레전더리 픽처스]], [[워너 브라더스]]다.
         레전더리 측에서는 이외에도 다른 [[괴수물]] 화를 만들 것이라 한다.
         == 화 ==
          * [[고질라(2014년 화)|고질라]]
          * 레전더리 픽처스의 화 중에 거대로봇과 괴수의 격투를 다룬 [[퍼시픽 림]]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 미래소년 코난/등장인물 . . . . 6회 일치
          * 위 항목 : [[미래소년 코난]]
          샐비지선의 노동자. 파치처럼 나이 있어보이는 할아버지다. 테리트와 달리 승급에는 무관심하나 그와 달리 품성은 정이라서 테리트에게 한소리 하기도 하고, 코난과 라나에게 냥하게 대해줬다.
          메이잘의 남편이자 라나의 삼촌. 31세. 진료소 운.
          어부. 47세. 폭탄을 좋아하며 그 위력이 당해서 바라쿠다호를 좌초시키고, 건보트도 침콜시켰다.
          코난을 키워온 노인. 이름이 안나와서 본명은 불명이다. 과거 지구에서 탈출하려다 실패한 일행의 일원이며 코난의 부모와는 동료였다. 라나가 떠내려오고, 그런 라나를 쫓아 몬스리 일행이 나타난 것이 계기가 되어 치명을 입어 사망했다. 나이는 64세.
  • 바키도/122화 . . . . 6회 일치
          * 무사시는 자신은 참격중독자이며 베는게 너무 좋아서 베어도 베어도 쓰러지지 않는 대를 꿈꾸왔다 말한다.
          * 그리고 그 대가 지금 눈 앞에 있는 피클
          * 과거 그는 어떤 대를 쓰러뜨리면서, 문득 이렇게 생각한다.
          * 그는 베어도 베어도 쓰러지지 않는 몸이란, 대란 없는지 고민한다.
          * 그는 드디어 만난 베어도 베어도 쓰러지지 않는 대를 눈 앞에 두고 "몇 번이나 베게 해줄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환희한다.
          * 곤충을 대했던 피클은 번번히 패배를 맛보았다.
  • 바키도/125화 . . . . 6회 일치
         [[바키도]] 제 125화. '''환'''
          * 무사시는 모토베를 인정하고 "환한다"는 말로 대결을 승락한다.
          * 그러나 도쿠가와는 또 절차 문제를 거론한다.
          * 무사시는 그 황에서도 낙법을 쳐서 치명을 피한다.
          * "환하지"
  • 바키도/137화 . . . . 6회 일치
          * 호텔에서 그녀를 맞이한 유지로는 놀랍게도 아침발기 태. 그런 태인데도 거리낌없이 힐너리를 맞이한다.
          * 캡틴 [[스트라이덤]]은 헬기로 누군가를 옮기고 있다. 그는 그 대에게 "당신 스스로 정한 일"이고 명령이니까 따르는 거지만 만약 그녀가 자신의 가족이었다면 무슨 짓을 해서든 말렸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고 덧붙이는데. 그 말을 들은 그녀가 무언가 말을 하는데 헬기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는다.
          * 헬기가 호텔 옥에 착륙한다. 힐너리는 선거에서 패했지만 그 자신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트럼프에게서 미국을 구한다"는 일념으로 이곳에 왔다. 그녀는 유지로를 "무력 그 자체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의 방으로 향하는 손엔 성경이 들려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불가침조약"을 "선서"할 때 쓰던 것이다.
          당황했던 힐너리는 금방 평정을 되찾는다. 그녀는 의오로 [[한마 바키]]의 어머니이자 유지로의 아내였던 미스 에미와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힐너리는 그 친분을 근거로 유지로에게 선서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 힐러리 편이 나오는 것이 이. 원래 힐러리 편이 그려져 있었고, 트럼프 편이 급조된 것이 아닐까 싶다.
  • 바키도/138화 . . . . 6회 일치
          * 그런데 뜻밖에도 무사시 본인이 칼을 찬 채 나타나 "나타난 이 베겠다"며 이들을 위협한다.
          *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에어참격" 방송이 나간지 얼마 뒤. 경시청엔 당시의 아나운서가 참고인으로 불려와 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 그는 "베어졌다고 느꼈다"고 증언했고 실제로 그 뒤에 실신해서 병원에서 눈을 뜬다. 그는 "베인 뒤의 뒷일"은 어떻게 됐냐 질문에 조금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한다.
          * 강력범죄반의 두 형사는 이 을 놓고 의견이 갈린다. 타쿠 켄이치는 "역시 무리"라고 고개를 젓고 반장인 히키키 에이이치로는 "쓰러진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결국 결론이 나지 않다 제 3의 의견을 구한다.
          * 그때 무사시가 나타난다. 동향을 알았는지 칼까지 찬 태다.
          >하지만 나타난 이은 베겠다.
  • 박성배 . . . . 6회 일치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현대 다이노스]]<br />[[광주 무 불사조]] <small>(군 복무)</small><br />[[FC 서울]]<br />→ [[부산 아이파크]] <small>(임대)</small><br />[[수원 삼성 블루윙즈]]<br />[[하트 마나와투]]<br />[[이스턴 서버브스 AFC|이스턴 서버브스]]<br />[[용인시청 축구단|용인시청]]
         '''박성배'''(朴成培, [[1975년]] [[11월 28일]] ~ )는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서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청주대성고등학교|청주업고등학교]], [[숭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011 AFC 아시안컵]] 당시 [[MBC]]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98년]] [[11월 13일]]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베이징 시|베이징]]에서 있었던 [[중국 슈퍼리그|중국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였는데<ref>{{뉴스 인용 |제목=한중친선축구|url=http://www.imaeil.com/sub_news/news_print.php?news_id=33673&yy=1998|출판사=매일신문 |date={{날짜한글화|1998-11-14}}}}</ref> 이 경기는 사실 대표팀 간의 경기였지만 프로 선발 팀 명목으로 출전하였기 때문에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골 골 골 '공한증' 중국 완파|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111400329120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11-14&officeId=00032&pageNo=20&printNo=16591&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 |date={{날짜한글화|1998-11-14}}}}</ref> 그 후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대표팀 선수로 활약하였다.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청주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뉴질랜드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용인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박연우 . . . . 6회 일치
         | 학력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졸업<br>[[중앙대학교]] 경학 석사<br>[[중앙대학교]] 대학원 산업경제학과 경제학 박사
         | 자녀 = 박곤, 박혜원
         | 훈 =
         | 웹사이트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233454659 페이스북]
         *유한킴벌리 유통업본부 본부장
         *2007.2 ~ : 풀무원 업본부 본부장 부사장
  • 박태호 (야구인) . . . . 6회 일치
         |문 표기 = Park Tae-Ho
         |사진 사이즈 =
         |출신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시]]
         은퇴 이후 모교인 [[대구고등학교]] 감독과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을 거쳐 현재 [[남대학교]] 감독을 맡고 있다.
         * [[남대학교]]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
  • 박현정 (배우) . . . . 6회 일치
         {{화인 정보
         |웹사이트 =
         === 화 ===
         * 《[[내 사랑 (2007년 화)|내 사랑]]》 (2007년) - 지은 역
         * 《[[KBS 드라마 스페셜]] - 드라마 스페셜 - 모퉁이》 (KBS2, 2012년) - 유자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방실이 . . . . 6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가수/한국)]
         ||<#00AAB5> '''{{{#FFFFFF 본명}}}''' || 방순(方英順) ||
         ||<#00AAB5> '''{{{#FFFFFF 신체사이즈}}}''' || 165cm, 67kg ||
          * 부안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1982년]]에 미8군 부대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 때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방실이와 두 여자》, 《글래머걸스》 등 여러 그룹을 결성하여 화려한 율동과 특유의 시원스런 가창력을 무기로 무명시절을 극복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가수로 활동한 시기는 1986년 박진숙, 양정희와 함께 국내 유일 여성 트리오 《서울 시스터즈》를 결성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리더였던 방실이는 1집 트로트곡《첫차》를 발표하고 공식적인 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다. 타이틀곡 〈첫차〉는 신나는 리듬과 함께 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노래로, 이 노래를 계기로 데뷔 초부터 남성팬들을 사로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정급 가수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2년 뒤 발표한 3집 〈청춘열차〉도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 몇 년 뒤 같은 팀원이던 박진숙, 양정희가 [[결혼]] 때문에 활동을 중단하자 서울 시스터즈는 공식 해체되었고 방실이는 데뷔 4년만인 1990년에 솔로로 전향하였다. 중장년층을 겨냥한 방실이의 솔로 데뷔곡이자 방실이의 1집 앨범의 타이틀곡 〈서울탱고〉는 탱고리듬으로 된 가요였다는 점과 그룹 활동 때 갈고 닦은 그녀의 풍부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낯선 곳을 떠도는 나그네의 쓸쓸한 넋두리를 부질없는 세사에 연관지어 관조하듯 표현해 특히 중장년층과 기성세대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92년, 2집 앨범 〈여자의 마음〉도 유행하여 다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 가요계를 뜨겁게 달궜던 방실이는 1994년에 사업가인 김연국과 결혼하고 한동안 잠정 은퇴하였다.[* 이 결혼은 당시 소속사 때문에 강제로 했다고 한다. 당시의 남편은 [[일본인]]이었다고...] 그러던 1997년, 선행 연예인으로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을 받은 적 있다.
          * 그 후 2000년에 [[가수]]로 복귀하였고 2003년 발표한 트로트 《뭐야 뭐야》로 다시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인가요 분야에서 위권을 석권하였다. 이 [[노래]]는 전 세대에 널리 알려져 노래방 애창곡으로도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빠른 박자와 댄스 리듬의 트로트 〈아! 사루비아〉가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방실이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약간의 댄스 비트와 발라드, 블루스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개성있는 창법과 출중한 [[가창력]],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적 요소들을 섭렵하며 인기를 확보한 실력 있는 가수로 거듭났다. 또한 그녀는 데뷔 때부터 거구한 체중과 단발머리를 주로 선호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이미지로 자신의 이미테이션 가수들(밤실이, 방쉬리 등)의 모티브가 되었다.
  • 배장원 . . . . 6회 일치
         |문 표기 = Bae Jang-Won
         |사진 사이즈 =
         * 대구경중학교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백이소 . . . . 6회 일치
         '''백이소'''(白以昭, [[1557년]] [[경북도]] [[경주시]] ~ [[1597년]])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융원(隆遠), 호는 부암(傅巖)이다. 본관은 [[청도 백씨|청도]](淸道)이나 옛 지명인 오산(鰲山)으로 쓰기도 한다.
         고려 때 [[박경순]](朴慶純) 일당의 난을 진압한 [[청도]] 호장 [[백계]](白桂英)의 후손인 선략장군(宣略將軍) [[백희]](白熹)의 둘째 아들로 [[경주부]] 서면 부산촌(富山村) 출신이다. 풍채가 크고 힘이 출중하였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592년]](선조25) 6월 [[경주]]지역 의병장으로 경주부윤 [[윤인함]], 판관 [[박의장]]과 함께 [[문천회맹]](蚊川會盟)에 참여하였다. 노모와 아내를 산 속에 피신시킨 후 산에서 내려와 가복들을 이끌고 의병장이 되어 왜적을 무찔렀다. [[1594년]]([[선조]] 27)에는 갑오별시 병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봉사에 특제되었다.<ref>《[[부암실기]]》</ref>
         [[1597년]](선조 30)에 왜적이 재차 침입해오자 적을 공격하던 중 탄환에 맞아 부을 입었다. 그러나 부당한 몸으로 고통을 무릅쓰고 다시 출전하자 경주 판관이 만류했으나 '신하된 도리로 죽을 뿐'이라 말하며 [[천]] [[창암]] 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의병장 [[최봉천]](崔奉天)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ref name="dg">《[[동경잡기]]》</ref>
         * 모 : [[천 최씨]](永川崔氏)
  • 베이식 (가수) . . . . 6회 일치
         | 웹사이트 =
         '''베이식'''(Basick, {{본명|이철주}}, [[1986년]] [[8월 12일]] ~ )은 [[이노베이터]]와 같은 [[더블 트러블]] 멤버이자 힙합 가수이다. 본관은 [[광주 이씨|광주(廣州)]]로 베이식은 2007년 2월부터 리드머 스튜디오를 통해 처음 가사를 쓰고 랩을 시작해 꾸준히 활동하다, [[2007년]] 여름 Z-juc 의 앨범을 통해 데뷔를 했다. [[DJ Soulscape]] 창작과 비트 Rap Competition 에서 2위 수한 경력이 있으며<ref>[http://www.openmic.co.kr/bbs/bbs/viewbody.html?code=bbs_3&category=61&page=1&sort=1&number=210813&keyfield=&key= DJ Soulscape 랩컴피티션 발표]</ref>, 2007년 11월, 크루 [[Jiggy Fellaz]]에 입되었다. [[이노베이터]]와 함께 [[더블 트러블]]을 결성했다. Jiggy Fellaz의 Vasco가 설립한 Independent Record로 거처를 옮겼지만 Vasco의 이혼으로 레이블이 와해되며 현재 [[RBW]]와 계약을 맺었다.
         *2007년 DJ Soulscape 랩 컴피티션 수.
         *2007년 [[Vasco]] 《덤벼라 세아》의 〈Upgrade 2K7〉 참여
         *2009년 [[아웃사이더 (가수)|Outsider]] - City Hunter(Feat. Basick, Carry.D Of Swagger)/Maestro
  • 변현제 . . . . 6회 일치
         2010년 반기 드래프트에서 [[STX SouL]]의 4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2012년 4월 Tving 스타리그 8강 진출로 2012년 6월 Kespa 랭킹이 대폭 승하였다. 그러나 스타2에서 부족한 실력과 약점을 많이 보여 한때 KeSPA랭킹이 가장 높았을 때에 비해 10계단 정도 낮았다. 변현제는 패배만 한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때문에 '패배왕 변현제'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2년 10월, GSL 예선을 통과한 뒤 1라운드에서 '나니와' 요한 루세시를, 2라운드에서 [[이호 (1992년)|이호]]를 꺾고 3라운드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3라운드에서 이원표에게 패했고, 승강전에서도 패해 코드S 진출은 실패했다. 그리고 변현제는 이어진 시즌 코드A 1라운드에서 최용화에게 패해 다시 오프라인 예선으로 떨어졌다.
         == 수 경력 ==
         * [[2010년 1월]] 제55회 스타크래프트 준프로게이머 선발전 입
  • 보루토/4화 . . . . 6회 일치
          * 보루토의 대는 구름 마을의 유루이. 풍선껌을 쉴새 없이 부는 건들대는 놈이다.
          * 백병전은 보루토와 막막하지만 풍선껌을 사용한 인술을 쓰면서 우세해진다.
          * 잠깐 사이에 풍선으로 보루토를 포위.
          * 보루토의 준결승 대는 시카다이. 아버지들이 고대하던 자식대결이다.
          * 엄청난 수의 환분신이 나타나자 시카다이는 싱겁게 패배를 선언한다.
          * 사스케가 대했던 오오츠츠키 일족이 날아오고 있다.
  • 보루토/7화 . . . . 6회 일치
          * 오오츠츠키 모모츠키는 다루이와 가아라를 대하나 킨츠키가 당하고 일행에게 포위 당한다.
          우즈마키 보루토는 아버지를 포박하고 있는 목둔의 줄기를 끊어버리고 사스케가 추락하는 나루토를 붙잡아 안전하게 착지한다. 뒤따라온 카게들은 각자 모모츠키와 킨츠키를 대로 대치. 다루이와 카제카게 가아라가 모모츠키를, 쵸쥬로와 츠치카게 쿠로츠치가 킨츠키를 마크. 네 명의 카게는 자신만만하게 "우리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 생각하지 마라"고 도발하고 모모츠키는 "까고 있다"는 원색적인 욕설로 대꾸한다.
          * 구조된 나루토는 사스케와 보루토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가눈다. 나루토는 보루토가 자신의 소년시절 걸치던 재킷을 입고 있는걸 발견한다. 사스케는 그걸 "닌자가 됐다는 것"이라고 심플하게 표현한 뒤 킨츠키를 대하러 간다. 나루토는 "자신의 그림자분신을 보는 것 같다"고 묘한 기분을 표현한다. 보루토는 "전보단 조금 멋지게 보이지?"라고 말하고 나루토는 "그래, 전보다는."이라고 대답한다.
          * 사스케는 킨츠키와 검투를 벌인다. 기술적으론 사스케의 우위지만 킨츠키가 힘은 더 강하다. 킨츠키의 펀치를 허용하는데 막기는 했지만 벽까지 떠밀려 처박힌다. 킨츠키를 승기를 잡으려고 달려든다. 그때 후방에서 거대한 참격이 날아오는걸 감지하고 피한다. 쵸쥬로가 히라메카레이로 공격한 것이다. 킨츠키는 피하긴 했지만 화가 났는지 "잡졸 주제에 나선걸 후회하게 해준다"며 공격대을 쵸쥬로로 바꾼다.
          * 킨츠키는 자세가 무너져 한참 날아가는데 자세를 바로잡았을 때는 한 발 늦었다. 사스케가 치도리를 감은 검으로 찌른다. 사스케의 치도리가 결정타가 되어 킨츠키의 방어태세가 완전히 무너진다. 무사히 착지하긴 했지만 무방비한 태에서 쵸쥬로의 혈무도법 "뼈베기"를 정통으로 맞고 비틀거린다.
          * 모모츠키는 이미 불리한 황인지 다루이의 추격을 따돌리려 한다. 가아라가 모래를 날려 다루이의 발판을 만들어 준다.
  • 불단 . . . . 6회 일치
         불단은 일본의 풍속으로, 일본 [[불교]]에서 가정에 두는 예배 기구이다. 일종의 ‘가정에 배치된 작은 사원’같은 위치이다. 고인을 추모하는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불단을 설치하여 불, 위폐 등이 놓여 있는 방을 불간(仏間)이라고 한다.
         네모난 직육면체 자 같은 형태로 제작되며,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문이 달려 있다. 크기는 장롱 만한 커다란 것에서, 벽에 걸 수 있는 작은 자 만한 비교적 컴팩트한 사이즈까지 다양하다. 주로 나무로 제작된다. 소박한 모양도 있지만, 비싼 불단은 금박으로 장식하거나 옻칠을 하기도 한다.
         불단의 내부에는 불이나 족자, 혹은 만다라 등으로 된 ‘본존’을 모신다. 본존은 신자가 소속된 종파 본산에서 배포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본존의 좌우에는 종파에서 모시는 고승의 초을 놓는다. 이 본존과 고인을 기리는 ‘위폐’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불단의 구조이다.
  • 블라디미르 렘 . . . . 6회 일치
         펀치넬로 패밀리의 언더보스인 잭 루피노의 본거지에 폭탄 테러를 가하며 등장. 루피노의 본거지 외벽에 설치된 비계단을 죄다 박살내버렸다. 이 때문에 맥스는 [[비니 고그니티]]를 잡기 위해 옆 건물에서 루피노의 본거지로 넘어가야 했다.
         그럼에도 맥스는 살아남아 모나와 함께 쫓아온다. 블라드는 모나가 본색을 드러내고 둘이 서로를 죽일걸 기대했지만 일이 예되로 되지 않자 모나를 쏴죽인다. 그러고는 자신을 목졸라 죽이려고 하는 우든을 쏴죽인후, 마지막으로 달려드는 맥스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폭탄 스위치를 눌러 지하로 떨어진다. 블라드는 맥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도망친다.
         맥스가 저택 옥까지 쫓아오자 블라디미르는 옥 구조물에 올라가 맥스에게 다이너마이트를 던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맥스는 구조물의 지지대를 무너뜨린다. 블라드는 그에게 화염병을 던지고 돌격소총을 쏴갈기지만 맥스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맥스, 내 제일 친한 친구여 - 난 웅이 되었어야 했어.
         이후 옥 구조물이 밑으로 추락, 그대로 사망한다.
  • 블랙 클로버/102화 . . . . 6회 일치
          * 언제나 사람을 개처럼 굴리는 [[야미 스케히로]]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있었는지 막 부에서 완쾌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겐 당분간 임무를 맡지 말라고 휴식을 명령한다. 하지만 임무가 없으면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아스타에겐 오히려 고역이었다. 임무를 빼면 자신에게 뭐가 남냐는 아스타에게 야미는 근육이 남는다고 냉정히 말한다. [[핀랄 룰러케이트]]가 시간 때우기 적당한게 있다고 말하려는데, 마침 아스타의 치료법을 찾아 던전으로 떠났던 [[매그너 스윙]]과 [[락 볼티어]]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스타는 고마웠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마법책의 향을 지나치게 받아 [[혼모노]]로 각성해버린 두 사람. 심각한 수준의 마법 [[오타쿠]]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되고도 결국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역시 건재해진 아스타를 보고 제정신을 차린다. 둘은 자기들이 고쳐준댔는데 왜 멋대로 나았냐며 저주를 걸려고 한다. 하지만 이 둘은 제정신으로 돌아와 봐야 중증의 [[시스콘]]과 [[자폐증]]환자라 별 의미가 없다.
          인간의 형을 포기한 [[챠미 퍼밋슨]]. 마법버섯에게 기생 당해 자기 몸에서 자라난 버섯을 자기가 먹는 기이한 마법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챠미의 먹성으로 먹어도 하나 먹으면 세 개가 자라는 미친 번식 속도 때문에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그레이는 차마 이 꼴로는 변하지 못했는데 변신을 똑바로 못했다며 자학하고 있다. 역시 아스타의 치료법은 찾지 못한 채 이한 버섯이나 산열매 따위나 잔뜩 가져왔다. 야미는 챠미만큼은 자리 비운 만큼 급료에서 제한다. 버섯은 매그너가 태워서 없애준다.
          * 사실 아스타가 굳이 이들을 부른 것은 선물이 있어서였다. 그는 키아토에게 잘린 다리를 잘 가져오라고 했는데 키아토는 그 말대로 물마법으로 보존해 잘 간수하고 있었다. 아스타는 [[마녀왕]]의 마법 "멸주의 피고치"를 병에 담아 왔다. 마법을 풀어놓자 순식간에 키아토와 카호노의 처를 치료해 버린다.
          * 다시금 노래를 할 수 있게 된 카호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른다. 그녀의 노래는 지의 주민들고 사로잡아 큰 갈채를 받는다.
  • 블랙 클로버/125화 . . . . 6회 일치
          * [[매그너 스윙]]과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의 동문대결 현장에 난입한 [[네르슈 버밀리온]]. 아스타는 매그너를 대하느라 대응할 겨를이 없다.
          * 때마침 [[잭스 류그너]]의 함정마법이 완성, 그대로 매그너를 놔두고 네르슈를 대하도록 한다.
          * 잭스는 자군 크리스탈 자체에 반사마법을 설치했고 이 마법은 대의 마법 특성까지 반사하기 때문에 크리스탈을 노린 매그너는 자기 마구에 맞아 당하고 만다.
          * 네르슈는 높은 공을 날면서 대량의 마법을 날려 아스타와 크리스탈까지 처리하려 하는데, 잭스는 여기에까지 대응책을 마련해놨다.
          * 잭스는 이번에도 진 팀을 대로 독설과 의외로 적절한 조언을 뒤섞어 쓴소리를 해대고 네르슈는 "네놈이 제일 추잡하다"는 욕설을 듣는다.
          * 미모사는 오빠를 찾아와, 하층민들이 일견 빈곤해 보여도 그들의 "진정한 냥함"은 빼앗을 수 없다고 말하고 마지막까지 건투한 오빠 또한 아름답다고 칭찬한다.
  • 블랙 클로버/130화 . . . . 6회 일치
          * [[잭스 류그너]]는 자해를 감수하며 감행한 작전으로 [[랜길스 보드]]의 공간마법이 반사된다. 반사된 마법은 위력이 배가되어 시전자인 랜길스를 향해 날아가고. 궁지에 몰린 랜길스는 마법제 율리우스 조차 예치 못한 저력을 발휘한다. 튕겨나온 마법을 모조리 공간마법으로 요격해 버린 것. 마력을 지금까지보다 두 배 이 순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말이었다. [[클라우스 류넷]]은 그 저력에 경악하는 한편 그의 마력이 뭔가 이하다고 느끼는데.
          >저희는 같은 팀... 같은 마법기사이니까요.
          아스타는 그대로 공격을 뚫고 랜길스를 강타했다. 랜길스는 공격에 당하는 순간 더이 마력이 나오지 않는 걸 알고 당황했지만 늦었다. 아스타는 그대로 뻗어나가 크리스탈에 랜길스를 처박으며 양단, 승리를 거머쥔다.
         == 세 ==
  • 블랙 클로버/72화 . . . . 6회 일치
          * 그는 과거를 회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아기새를 괴롭히고 죽인 일에 분개하고 있다.
          * 그가 말하는 대는 리히트. 소년시절의 리히트다.
          * 리히트와 싸울 때 마력이 폭주했던 것과 같은 황.
          * 보고 있었던 대신관 감은 "너무 강해서 흥이 식어버렸다"며 카호노와 키아토를 돌보러 이동한다.
          * 야미는 갇혀있던 황에서 새로운 마법을 각성한 것이다.
          * 야미는 네 마력이 얼마나 대단하든 관없고, 이 마법은 "차원 째로 벤다"고 말하는데.
  • 블랙 클로버/76화 . . . . 6회 일치
          * 키텐에서 교전 중인 유노는 금색의 여명 선봉다운 활약을 하며 삼휘장을 대로 꿇리지 않는 기량을 선보인다.
          * 던전에서 마주친 적이 있던 로터스는 부장으로 참가 중인데, 윌리엄 벤전스가 식을 벗어난 마법을 준비하는 걸 보고 아군에게 경고하지만 무시된다.
          * 그때 누군가 나타나 "대하기 힘든 마법"이라고 말하는데.
          * 벤전스는 나무 위에서 "모든 것은 클로버 왕국의 번을 위해"라고 중얼거린다.
          * "공격적인 공간마법"이란건 공간 채로 대를 지워버리는 마법이었던 거 같다.--더 핸드--
          * 벤전스의 세계수 마법은 단일 마법으로선 가장 스케일이 큰 마법. 나루토의 목둔이 연된다.
  • 블랙 클로버/78화 . . . . 6회 일치
          * 유노가 "같이 살던 사이"라고 말하자 충격에 빠져서 비틀거린다.
          * 챠미에게 꼬맹이가 마법을 써서 유노를 농락한다고 디스하자 챠미는 자기가 19살로 연이라고 도발한다.
          * 두 여자가 투닥거리는 사이 핀랄 룰러케이트도 일행과 합류.
          * 아스타는 국민을 버리려는 거냐고 반발, 부 중임에도 챠미, 핀랄과 함께 나선다.
          * 벤전스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직구를 던지자 야미도 더이 말을 돌리지 않는다.
          * 랜길스는 예보다 훨씬 지위가 높다. 금색의 여명 부단장으로 일단 기사들보다 훨씬 높다.
  • 블리치/680화 . . . . 6회 일치
         켄파치는 제라드를 대로 선전하지만 결국 무너진다.
          * 제라드의 몸이 파괴되면 더 크게 부활하는건 민중의 "공포"를 근간으로 하며 검인 호프눙은 "희망"을 근간으로 한 것. 때문에 호프눙이 꺾인다=희망이 꺾여 절망이 된다는 의미이며, 그 절망이 적의 몸에 처로 세겨진다
          * 토시로는 켄파치가 안대를 벗은 걸 보고 "녀석도 안대를 벗지 않으면 못 이기는 대임을 알고 있다"고 지적한다
          * 뱌쿠야는 토시로의 얼음 꽃이 당히 녹은 걸 보고 시간을 끌 수록 불리함을 거듭 느낀다
          * 토시로는 켄파치가 싸우는 사이에 힘을 모아 제라드를 얼려 버리고 뱌쿠야가 천본앵으로 산산히 조각내 버리는 작전을 생각한다
          * 그러나 싸울 수록 호프눙의 날이 나가며 켄파치는 처를 입는다.
  • 빅터 차 . . . . 6회 일치
         아버지 차문은 한국에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뉴욕에서 도자기, 자개, 병풍 등을 판매하는 기프트 가게를 열었으며, 동양 화병에 미국제 갓을 얹고 중국제 나무로 받침대를 한 --기괴한-- 동양램프라는 품을 백화점에 납품하여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차문은 2001년까지 40년간 아시아하우스를 운하고, 2005년 타계했다.
         차문에게는 빅터, 마이클이라는 두 아들이 있으며, 브롱스 리버베일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빅터 차는 아버지와 똑같이 콜럼비아 대학에 진학했고, 정치학 학사와 박사학위를 얻었다. 또한 국 옥스퍼드에서 석사 학위를 얻었다.
  • 서상돈 . . . . 6회 일치
         1851년 [[경북]] [[김천시]]에서 출생한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는데,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대구시]]로 몸을 피한 뒤 정착하였다. 대구에서 몇몇 천주교인의 도움으로 보부을 시작한 그는 대구에서 손꼽히는 거이 되었다.
         1898년 서돈은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의 재무 부장으로 활동하며 [[러시아]]의 내정 간섭을 규탄하였다.
         1907년 서돈은 담배를 끊어 1300만원 가량의 국채를 갚자고 제안하며 [[국채보운동]]을 발의하여 전국으로 확산시켰으나 일제의 방해로 무산된다.
         서돈은 1913년 [[선종(가톨릭)|선종]]한다.
  • 서영택 . . . . 6회 일치
         '''서택'''(徐榮澤, [[1939년]] [[4월 23일]] ~ , [[대구광역시|대구]])은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 수 ==
         |전임자 = [[정의]]
         |후임자 = [[허재 (1934년)|허재]]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 서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국세청장]][[분류:대한민국의 건설부 장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하버드 로스쿨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대한민국의 세무사]]
  • 스페인 제2공화국 망명정부 . . . . 6회 일치
         [[스페인 내전]]에서 스페인 제2공화국 정부가 패배하고, 프랑코 독재정부가 세워지자 스페인에 대한 통치권을 실한 제2공화국의 주요 인사들이 국외로 탈출하여 세워진 [[망명정부]].
         망명정부는 곧바로 [[멕시코]]에서 재건되었다. 이 당시 멕시코는 좌파 정당인 제도혁명당의 라사로 카르데나스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였다. 스페인과 같이 스페인어가 주로 쓰이는 멕시코에는 다수의 공화파 망명자가 있었고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를 여전히 합법적인 정권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또 전쟁 중에 총리 후안 네그린은 [[국]]의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런던에는 나치 독일의 유럽 점령 때문에 이 같은 망명정부가 많이 생겨나서 정말 망명정부 천지였다.
         그리고 스페인 공화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랑코 정권은 전쟁 중에 독일에 의용군을 보내는 등 당히 친나치 성향을 보이고 있었으나, 명목은 [[중립국]]이었고 전쟁 말미에는 의용군을 귀국조치 시키며 망해가는 히틀러와 거리를 두었고 연합국과는 협을 벌였다. 결국 연합국은 스페인까지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코 정권은 전후에도 계속 파시즘 체계를 유지될 수 있었다. 희망이 좌절되자 공화파 망명자와 망명정부는 매우 낙담하였다.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하고,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왕위에 오르고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 1977년에 공화국 망명정부는 왕정복고를 받아들이고 해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화해의 뜻을 보이는 제스쳐로서 망명정부 인사들을 마드리드에서 환해주었다.
  • 식극의 소마/168화 . . . . 6회 일치
          * 그런 에리나를 구원한게 사이바, 소마의 아버지였다.
          * 어느날 사이바가 나키리의 할아버지 센자에몬에게 음식을 대접하러 왔는데, 난생 처음으로 "맛있는 냄새"라고 느끼고 식욕이 생겨서 꼬르륵 거린다.
          * 원래 이 자리는 센자에몬이 개인적으로 마련한 자리라 사이바가 "사람이 없는 자리라고 들고 왔는데"하며 투덜거린다.
          * 지금도 사이바의 요리가 준 감동은 기억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아버지의 이념에 공감하고 있다.
          * 에리나는 사이바의 요리를 먹기 전까지 "맛있다"고 느낀 요리가 없었다고 하는데 1화에서 태어나자마자 모유가 "맛없다"고 한 여자답다.
          * 정작 센자에몬이나 에리나의 어머니는 아자미의 야망이나 이념에 별로 관하지 않는 듯 한데,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걸까?--사위라고 하나 있는게 노답 중2병--
  • 식극의 소마/190화 . . . . 6회 일치
          *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간 황에서 키는 나키리 소우에가 쥐고 있다. 다 잡았던 승리를 놓친 하야마 아키라는 눈에 띄게 초조해한다. 그는 설마 유키히라 소마가 프라이드 베어와 동등한 수준의 요리를 하리라곤 예도 하지 못했고 아직도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는건 자신일 거라고 믿는다. 아니, 믿으려고 발버둥친다.
          * 이 같은 황은 당연히 시오미 준에게도 전해진다. 시오미는 당장 센트럴에서 나오라며 하야마를 타이른다. 하야마는 이 방법 말고는 프로젝트를 존속시킬 방법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시오미는 어차피 아자미가 그런 걸 허용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 반박한다. 그 말은 사실이었지만 어떻게든 세미나를 유지하고 준을 지키고자 하는 하야마는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다그치던 시오미는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길 바라지 않았다"고까지 말하는데, 거기에 처를 입은 하야마는 어떻게든 세미나를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게 된다.
          * 소우에는 평범한 꿀도 곰고기와 궁합이 좋았겠지만 자칫 맛이 강한 멘치까스와 합하면 진득한 맛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쓴맛이 가미된 황벽나무 벌꿀을 써서 곰고기의 맛을 보다 강조하고 깊이 있는 맛을 완성한 것이다. 베르타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어떻게 그런 발을 했을지 의문을 갖는다. 황벽나무 꿀은 워낙 희귀한 물건이라 우연히 선택할 일도 없고 분명 의도한 조합임에는 틀림없다.
          * 대머리 군단은 그제서야 이 꿀을 얼마나 어렵게 얻은 것인지 수군대기 시작한다. 사실 처음엔 황벽나무 꿀을 쓴다는 발도 없었던 모양. 무작정 산을 뒤지며 소재가 될만한건 뭐든 채집하는 하드코어한 수색을 펼쳤다. 쿠가 테루노리는 처음부터 황벽나무 꿀의 가능성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 하지만 자칭 "쉽게 알려주면 소마가 성장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내며 그냥 차만 먹고 놀고 있었던 모양. 산에서 고생한건 소마와 대머리 군단이다.
  • 신수항 (배우) . . . . 6회 일치
         {{화인 정보
         === 화 ===
         * 《[[인천륙작전 (2016년 화)|인천륙작전]]》 (2016년) - 강봉포 역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 아메리카 퍼니스트 홈 비디오 . . . . 6회 일치
         동의 대부분이 가학적인 슬랩스틱 코미디다. 전치 몇주 나올 것 같은 동까지 신나게 나온다.
          대부분에 사회자가 코멘터리인지 나레이션인지 모를 무언가를 하는데 미국식 말장난이 대부분이라 한국인들은 이해 못 한다.
  • 양일환 . . . . 6회 일치
         |문 표기 = Yang Il-Hwan
         |사진 사이즈 =
         [[1983년]]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다. 포지션은 당시에 드문 사이드암 [[투수]]였으며 [[1989년]]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하였다. [[양준혁]] 선수의 사촌 형으로 알려져 있다.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남원 양씨 (梁)]]
  • 양키 . . . . 6회 일치
         어 Yankee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매사추세츠]]에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어 English나 프랑스어 Anglais에서 와전된 말로 국계 식민지 사람들을 부르던 것이 퍼졌던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처음에는 뉴잉글랜드 주민을 뜻하는 말이었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국군이 식민지군을 뜻하는 말로 썻다. [[남북전쟁]] 시기에는 남부 측에서 북부 측을 양키라고 부르며 경멸하였다.
         간사이에서는 1980년대 전반기에 이미 '양키'라고 부르는 사례가 나타났는데, 당시 오사카 남구(南区)(현재의 츄오구(中央区))에는 아메리카 마을(アメリカ村)이라는 지역이 있어서, 이 지역에서 화려한 알로하 셔츠나 폭넓은 바지들을 즐겨 입는 불량소년이 나타나 이들이 ‘양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한다. 같은 무렵에 같은 남구(南区)의 유로파 마을(ヨーロッパ村)이라 불리는 곳에서는 약간 다른 패션을 가진 「유로피(ヨーロピィ)」라는 집단이 나타났지만 양키 족의 융성으로 동화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분류:어]] [[분류:일본어]] [[분류:동음이의어]]
  • 오늘만 산다 . . . . 6회 일치
         [[아저씨(화)|화 아저씨]]에 나오는 대사에서 파생된 표현.
         내일 일어날 일은 생각하지 않고 오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스피노자가 연되는 철학을 보여주는 말이다. 항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에서 내일을 생각하며 사는 각박한 현대인에게 오늘 하루의 일탈의 자유를 추구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나는 오늘만 사는 놈이다. 내일을 걱정하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에게 죽는다."고 하는 대사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 오타쿠 혐오 . . . . 6회 일치
         오타쿠 혐오 계층에서는 오타쿠는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오타쿠들의 징인 특정한 취미 탐닉, 컬렉션 성향은 곧 사회성 부족의 징후로 여겨진다. 종족 이들의 컬렉션 자체가 반사회적 물건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총기]]와 같은 군장류([[밀덕]]), [[로리콘]]이나 [[도촬]] 등의 성적인 물건이 그러하다.
         오타쿠들의 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인에게 볼 수 없는) '과도한' 취미 탐닉은, 그들의 수익[* 어떤 형태로든 수익이 있다면]을 자기 발전, 미래 투자, 사회 활동 같은 건전한 분야에 사용하지 않고, 취미에 탐닉하여 '낭비'하게 되며, 그에 따라서 자기 발전, 미래 투자, 사회 활동에서 정체를 가져온다고 여겨진다. 취미 탐닉은 대적으로 많은 비용을 소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대개 [[일반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소비 행태'로 보이게 된다.
          * 철도적 물건 : 철도적 물건, 즉 철도 매니아(소위 [[철덕]])은 철도적 물건에 대한 관심은, 그 자체로 일단 일반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이며, 이들은 때때로 철도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정적인 철도 운행을 방해하는 등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 [[멸치]] : 비만과는 반대로 과도하게 마르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섭식장애의 한가지 형태로, 건강하지 못한 인을 준다.
          * '''애니메이션 프린트'''나 코스프레 의 등, '오타쿠' 임을 강하게 식별할 수 있는 복장.
  • 우건도 . . . . 6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1949년 충청북도 [[괴산군]] 모면(현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태어났다. 수안보초등학교, 충일중학교, [[충주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교통대학교]] 일반대학원 행정학과의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인 [[한나라당]] 김호복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허위사실 유포([[공직선거법]] 위반)로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2011년 시장직을 실하였다.
         2015년 말 더불어민주당 지방자치행정위원으로 임명되었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충주시장으로 재도전하나 후술할 미투 운동에 휩쓸렸다. 본인도 강력히 부인했고 흐지부지되었지만 최종적으로 1.33% 차의 격차로 패배했다. 그리고 선거운동을 앞두고 사실 미투 파문을 시인함으로서 선거 후 소환조사를 받는 등 사실 정치생명이 끝나버렸다.
         3월 7일, 기자회견을 열어 “게시글에 ‘2005년 6월 우 후보가 총무과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라고 했으나 실제 총무과장 근무기간은 2005년 7월 25일부터 그 해 9월 4일까지였다"며 “폭로 글은 악의적으로 날조된 허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게시자가 성추행을 당한 날 모 식당에서 마셨다는 주류도 판매한 적이 없다고 주류 납품 업체가 확인해줬다”고 부연 설명했다. 현재 우 예비후보 관련 미투 폭로 글은 작성자에 의해 민주당 도당 홈페이지에서 모두 삭제된 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283022|*]]
  • 운전기사 . . . . 6회 일치
         승용차 운전을 대행해주는 직업.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은 당히 부담이 많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보통 [[높으신 분들]]이 고용한다. [[회사]]에서 대리 고용해주거나, 개인적으로 고용하기도 한다.
         [[인건비]]가 만만치 않지만, 일단 직접 운전을 하지 않으면 편리한 점은 당히 많다. 업무 생산성도 크게 향되고.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동 시간 동안 부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다.
         그 특성 높으신 분들 옆에 붙어있는 만큼 중요한 정보를 본의 아니게 알게 되는 경우가 있으며, 비리 사건에서 운전기사의 증언이 결정타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7654.html 참조]
         이 때문에 높으신 분들 역시 운전기사와의 관계를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고. 반대로 그 높으신 분의 성격이 당히 이하거나 안 좋으면 운전기사 역시 고달프다.
  • 원더우먼 . . . . 6회 일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마존의 공주이며 평화의 대사. 오랜 역사를 가진 DC 코믹스에서도 큰 인지도를 가진 슈퍼 웅이며 슈퍼맨, 배트맨과 더불어 빅3. 트리니티라고도 불린다. 본명은 다이애나.
         완벼한 인물. 아마존이 보통 사람은 대도 안되는 괴력을 지닌데다 원더우먼은 이들 중에서도 엄청난 강자다. 어쩌면 슈퍼맨보다 강력할 수도 있으며 슈퍼맨과 달리 약점도 없다. 전투실력도 달인.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아이템을 장비. 유명한 진실의 올가미는 접촉한 자가 진실만 말하게 만들며 슈퍼맨도 끊지 못할 정도로 튼튼한 무기다. 외모까지 완벽해서 남자 동료들에게 사랑받는다. 정말 완벽한 인물.
         관련 캐릭터로는 아마존의 여왕이자 어머니인 히폴리타, 사이드킥인 원더걸이 있다. 주된 빌런은 치타.
         드라마가 만들어져 국내에서도 방.
         화 프랜차이즈 DC 확장 유니버스에서도 등장. 단독 화도 나올 예정이다.
  • 원피스/881화 . . . . 6회 일치
          *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징베]]가 방법을 찾아낸다. 징베는 돛 하나를 밧줄로 연결해 조타수 노릇을 하면서 돛까지 조종한다. 징베의 목적은 "그린룸". 나미는 그게 뭔지 아는 것 같지만 말도 안 되는 발이라 하고 나머지 일행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 징베는 설명보단 과감하게 행동에 돌입, 파도가 들이치는 순간 그 속으로 돌진한다.
          * 미러 월드의 빅맘 해적단 병력들도 그 소식을 접했다. [[샬롯 카타쿠리]]의 전보벌레에서 그 소식이 흘러나오자 루피는 믿기지 않는 듯이 거울조각으로 일행을 부른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다. 밀집모자 일당의 전멸이 기정사실화되고 [[샬롯 브륄레]는 새로운 거울로 진군할 필요도 없겠다며 작전을 중지시킨다. 그런데 부하들은 여전히 거울 너머에 아무런 일도 없다고 이해 하는데, 그때 갑자기 거울이 깨진다. 그리고 미래를 예지하는 카타쿠리 만큼은 페로스페로의 공지에도 아무런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
          * 물론 써니호는 무사했다. 거울을 깨뜨린건 나미. 브룩과 쵸파는 그러면 루피가 돌아올 길도 끊기지 않냐고 하지만 나미는 "카타쿠리에게 집중하고 싶다"던 루피의 말을 기하며 "선장명령"이라며 배 안의 모든 거울을 깨뜨리게 한다. 써니호로 이어지는 모든 거울이 하나둘 깨지자 미러월드의 빅맘 해적단이 술렁인다. 브륄레는 역시 살아있는게 아닌가 의심하지만 다른 부하들은 "수압 때문에 깨지고 있다"며 낙관한다. 그때 루피의 거울 조각으로 나미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 세 ==
          나미가 쓰나미를 보고 다 틀린 것 같다고 말해서 당황하나 무사하다는 응답을 받고 안도한다. 정작 자신 쪽이야 말로 카타쿠리 때문에 대위기. 철저하게 농락 당하면서도 일행을 안심시키기 위해 비명을 참고 억지 웃음까지 보이는 등 눈물겨운 황이다. 일행에게 자신은 벌써 카카오섬에 도착했으니 안심하고 오라고 하기까지 하는데 전황은 좋지 않다. 물론 본인은 "이런 곳에서 죽을 생각은 없다"고 하지만 카타쿠리는 그걸 "유언"취급하며 비웃는다.
          샬롯 페로스페로가 일행을 전멸시켰다고 전달했을 땐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의 예지 으론 일행이 전멸되지 않는 모양. 하지만 루피가 죽거나 죽기 직전까지 몰리는건 봤는지 루피가 "이런데서 죽을 생각이 없다"고 했을 땐 그런 유언으로 괜찮냐고 빈정댔다.
  • 원한해결사무소/1화 . . . . 6회 일치
         이 때, 형사의 부인은 부을 안대를 두르고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데, 원한해결사는 형사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쾌감을 느끼는 사디스트'라고 알려준다. 원한해결사는 형사는 그 외에도 두 명을 더 죽인 것 같지만, 경찰에서는 경찰과 관련된 불사가 많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퇴직 시키고 1년 뒤에 잡으려 하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후쿠자와는 분노하여 당장 죽이라고 원한을 드러내지만, 원한해결사는 증거를 남겨서는 안된다고 화를 내고 제지, 도리어 섣부른 행동을 하면 그에 응하는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후쿠자와를 위협한다.
         경찰에 잡힌 후쿠자와는 웃으면서 형사가 아내를 죽인 범인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경찰은 이미 당신 아내의 옛 애인을 용의자로 확보했으며 DNA 감정이 끝나는 대로 구속장을 발부할 예정이었다고 알려준다. 충격을 받는 후쿠자와.
         사실 원한해결사에게 의뢰한 것은 형사의 아내였다. 형사는 경찰관이면서도 집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최악의 남자로서, 도박을 좋아하고 생활비를 안 주고 애들 교육비에도 손을 대는 등. 죽어 마땅한 남자였기 때문에 5천만엔을 주고 원한해결사에게 살해를 의뢰한 것이었다. 그리고 1억엔의 보보험을 들어놨기 때문에 이미 보은 받았다.
  • 유승민(배우) . . . . 6회 일치
         {{화인 정보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경주시]]
         |수 =
         |웹사이트 =
         [[부모님 전서]] 2004 ~ 2005
         화2건
  • 유태공 . . . . 6회 일치
         [[전한]]을 세운 [[한고조]] 유방의 [[아버지]]. 역사 최초로 살아 있는 태로 [[태황]](太上皇)의 존호를 받았다.
         === 태황 ===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유방은 황제가 되고 나서도 5일에 한 번은 태공을 방문하였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은 서민과 같았기 때문에, 유태공의 가령(家令, 집사)이 아무리 부모 자식이라고 해도 유방은 황제, 태공은 신하이니 이런 태도로는 황제의 위엄이 손된다고 의견을 냈다.
         태공은 이 말을 듣고 스스로 유방을 존경하는 태도를 하여, 유방은 놀라서 태공을 부축했다. 태공이 그 이유를 말하자 유방은 감격하여 태황(太上皇)의 존호를 올렸다.
  • 윤지욱 . . . . 6회 일치
         | 웹사이트 =
         === 화 ===
         * 《[[은밀하게 위대하게 (화)|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년) - 자결 부대원 3 역
         * 《[[폭력의 법칙: 나쁜 피 두 번째 이야기]]》 (2016년) - 김도 역
         * 《[[염력 (화)|염력]]》 (2018년) - 젊은형사 2 역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
  • 은혼/592화 . . . . 6회 일치
          *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엔 깊은 골짜기가 가로막혀 있다.
          * "나에겐 더이 너를 막을 팔도 그쪽에 매달릴 팔도 없다"고 말하면서 "장난꾸러기들한테 꿀밤을 때리지도 끌어안지도 못하는 애비가 대체 뭘 할 수 있겠어. 안 그래 코우카? 가르쳐줘"라고 말하는 사이 코우카는 멀어져 버린다.
          * 삼흉성의 쇼우가쿠. "이몸이 처입은 놈들하고 싸울 리가 있겠냐"라고 나타난다.
          * 하루사메 잔당들이 뜬금없이 미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일각에서는 [[원피스]]가 간판인 잡지에서 더이 해적을 천하의 개쌍놈으로 묘사하도록 둘 수 없었던거 아니냐는 설이 있다.--이제 원피스랑 다를게 없다.--
          * 카무이는 동료입 설도 있었지만 하루사메 잔당의 우두머리가 되는 걸로 결론.
  • 은혼/604화 . . . . 6회 일치
          * 긴토키는 그대로 히츠기를 앞세워 공격을 막아내며 불사신 군단 사이로 밀고 나간다.
          * 이들은 전력을 다 해 응전하나 죽지 않는 불사신을 대로는 역부족.
          * 이러는 사이 해방군 본대가 하늘을 가득 매우며 다가온다.
          * 그녀는 우츠로와 해방군 양쪽을 대할 재간은 없고 우츠로와 불사신 군단은 그들만의 힘으론 쓰러뜨릴 수도 닿을 수도 없다고 말한다.
          *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노부메와 긴토키는 해방군의 폭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달아난다.
          * 예보다 평범한 헌정짤. 사실 은혼은 이전에도 코치카메 헌정 에피소드로 눈좀편을 만든 전적이 있어서 퉁치는 모양이다.
  • 이광훈 (축구선수) . . . . 6회 일치
         [[K리그 클래식 2013|K리그]]에서는 4월 13일 6라운드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K리그 클래식 2014|2014 시즌]]에는 차츰 출전을 늘려가는 듯 보였으나, 햄스트링 부을 당하며 8월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ref>{{뉴스 인용 |제목='대전 임대' 이광훈,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어야죠" |url=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501/sp2015010809201993650.htm |출판사=스포츠한국|date={{날짜한글화|2015-01-08}} }}</ref>
         [[K리그 클래식 2015|2015 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으로 임대되었으나, 부으로 인해 [[FC 서울]]전 한 경기 교체 출전에 그쳤다.
         [[2016년]] 포항 복귀 대신 [[수원 FC]]로 이적했지만, 부 등의 이유로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였다.
         [[2018년]] [[청주 시티 FC]]로 이적했다.<ref>[https://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522962 청주시티FC, '괴물' 김후 품었다]</ref>
         == 수 ==
         {{둘러보기 자 묶음
  • 이근직 . . . . 6회 일치
         [include(틀:역대 경북도지사)]
         1903년 [[경북도]] 김산군(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관가의 조언으로 이근직으로 개명하였다. [[일본]]으로 [[유학]]가서 도쿄고료척식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이후에도 1949년까지 강원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서울특별시청]] 산업국장, 1952년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 제2국장, 1952년 [[함태]] [[대한민국 부통령|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1955년 2월부터 1957년 9월까지 [[경북도지사]]를 지냈다. 경북도지사 재임 중이던 1957년 8월 [[가짜 이강석 사건]]이 일어났다. 1957년 9월부터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행정안전부 장관|장관]]을 지내다가 1958년 6월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자유당]] 당무위원으로 있다가 1959년 3월부터 1960년 5월까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장관]]을 지냈다. 농림부 장관 재임 중 [[3.15 부정선거]]에 관여하였다. 이로 인하여 구속 기소되었다.
  • 이기광 (법조인) . . . . 6회 일치
         |전임 = [[최열]]
         |학력 = [[남대학교]] 법학 학사
         |웹사이트 =
         1955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와 [[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5기를 수료했다. 1986년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1987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1990년 [[대구지방법원]] 1996년 [[대구고등법원]] 1999년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1년에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08년 [[대구고등법원]]을 거쳐 2011년까지 재판장을 하였으며 2012년에는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15년 2월까지 보임하였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된 2012년 2월에 경북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으며 2015년에는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1년동안 재판장을 하였다. 2016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2년동안 제18대 [[울산지방법원]]장에 임명되면서 제20대 울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다. 울산지방법원장을 끝으로 30년이 넘는 공직자 생활을 마치면서 퇴임식에서 "아내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저를 뒷바라지하면서 삼남매를 훌륭히 키워 준 제 아내, 무등 한 번 태워 주지 못했고, 손잡고 봄길 한 번 함께 걸어 보지못했다."며 아쉬워했다.<ref>로이슈 2018년 2월 12일자</ref>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이덕건 . . . . 6회 일치
         |웹사이트 =
         1985년 대학졸업 후 언론사 기자를 목표로 서울로 경, 언론고시를 준비하였으나 신문기자보다는 향후 방송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판단하여 방송기자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사투리를 쓴다는 결정적 핸디캡으로 기자 대신 PD쪽으로 선회하여 [[KBS]] 공채 11기로 방송사에 입사하였다.
         처음 <[[유머 일번지]]>, <[[전국노래자랑]]>의 조연출을 시작으로, 드라마 <[[애정의 조건 (1987년 드라마)|애정의 조건]]>, <[[토지 (1987년 드라마)|토지]]>, <[[달빛가족]]>, <[[서울 뚝배기]]> 등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1993년 [[KBS 드라마게임|드라마 게임]] <쌀>로 입봉하여 이후 <[[아름다운 유혹]]>, <[[별난여자 별난남자]]>, <[[미우나 고우나]]>, <[[바람 불어 좋은 날 (드라마)|바람 불어 좋은 날]]>, <[[사랑은 노래를 타고]]> 등 일일극 연출을 맡아 성공시키며 KBS 일일극의 징인 감독으로 각인됐다.
         | 출판사 = 남일보
         * [[1995년]], KBS 1TV [[인간극장 (드라마)|인간극장]] 6화 '마이더스의 손' 촬 당시 출연진에 속했던 탤런트의 매니저로부터 술자리 향응을 제공받아 1월 28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었으며<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3009220|제목=PD 2명 구속-KBS소속 매니저 2명도 함께|저자=김기평|날짜=1995-01-29|출판사=중앙일보|쪽=|확인날짜=2015-12-26}}</ref> <ref>{{뉴스 인용
         *결국 1997년 7월 12일부터 10월 5일까지 9시에 방된 KBS 2TV [[전설의 고향]] 16화 '걸귀'(8월 31일)와 26화 '초야'(10월 5일, 마지막회)로 복귀하였는데 SBS <[[이웃집 여자]]><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01&aid=0004242490|제목=SBS 주말극 야외 오픈세트 공개|저자=서한기|날짜=1997-06-17|출판사=연합뉴스|쪽=|확인날짜=2016-02-03}}</ref>와 경쟁한 바 있다.
  • 이상휘 . . . . 6회 일치
          * 위문서: [[정치인/목록]], [[친이]]
         || '''이름''' ||<(> 이휘(李相輝) ||
         || '''출생지''' ||<(> [[경북도]] [[포항시]] ||
         [[1971년]] [[경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포항해양과학고등학교, [[용인대학교]]를 졸업 및 학위를 취득했으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이후, [[데일리안]]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위덕대학교]] 부총장까지 지냈다.
         [[2009년]] 3월에 [[이명박정부]]로부터 [[청와대]] 춘추관 관장 및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임명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친이|친이계]]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포항 북 지역구로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박계]]에 의해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후 [[2014년]]에는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아 [[동작구 갑]]으로 출마했지만 국정원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병기(정치인)|김병기]]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같은 해 10월에는 [[이정현(정치인)|이정현]] 대표에 의해 새누리당 원외대변인으로 임명되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대변인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비박]]계 모임인 [[비시국회의]]에 참여했다.
         [[2018년]] 1월에 [[이명박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납 의혹을 수사 중에 [[검찰]]로부터 비공개 소환조사를 받았다.
  • 이숭인 . . . . 6회 일치
         | 그림설명 = 조선 후기에 그려진 작자 미의 이숭인 초
         | 출생지 = [[경북도]]
         | 훈 =
         | 웹사이트 =
         [[분류:1347년 태어남]][[분류:1392년 죽음]][[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시인]][[분류:고려의 유학자]][[분류:문학자]][[분류:맞아 죽은 사람]][[분류:과거 급제자]][[분류:성주 이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이인임]]
  • 이정무 . . . . 6회 일치
         ||<:> 제1대 [br] [[한수]] ||<:> → ||<:> 제2대 [br] ''' 이정무 ''' ||<:> → ||<:> 제3대 [br] [[구천서(정치인)|구천서]] ||
         1941년, [[경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선산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남대학교]] 경[[대학원]] [[경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1978년부터 [[대구백화점]]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에 경북도 군위군-선산군-칠곡군-성주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다가 [[신현확]]에 밀려 탈락하였다.
  • 일곱개의 대죄/173화 . . . . 6회 일치
          * 고우서는 "한 명을 먼저 쓰러뜨려놓고 나머지 한 명을 대해서 1:1 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단장의 기량 덕이라고 분석한다.
          * 킹은 아직 멜리오다스를 경계하는 듯하며 본래의 힘을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싸울수 있는데, 거기에 마신의 힘까지 더했으니 당연한 결과라며, 지금도 적당히 대해주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 킹은 또 "원래 십계랑 아는 사이처럼 보인다"고도 하는데, 반으 그 말을 받아 "십계는 단장이 마신족의 배신자라고 했다"고 말한다.
          * 다이앤은 단장은 "킹 만큼 냥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 멜리오다스가 전력을 다하면 십계라도 단독으로는 대 조차 되지 못함이 입증됐다.
  • 일곱개의 대죄/185화 . . . . 6회 일치
          * 십계는 물론 공격을 당한 에스타롯사 조차 황이 너무 황당해서 따라가질 못한다.
          * 에스타롯사는 죽지는 않았지만 반신이 반쯤 불에 탄 태로 나타난다.
          * "어둠을 전개하는게 늦었으면 큰 데미지였다"고 평하며 몸의 처를 치유한다.
          * 대의 전투력이 지금까지 이으로 부풀어 오르자 에스타롯사 조차 경악한다.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6회 일치
          * [[그로키시니아]]와 [[드롤]], 그 안에 있는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과 [[디안느]]는 자신들 눈 앞의 "인형" [[고서]]가 하는 말을 듣는다. 그는 마신왕에게 무욕의 계금을 받고 500년 동안 자유를 뺏겼다. 그 사이 자신이 만든 인형 고서를 통해 겨우 바깥과 접촉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달했다. 그는 이 세에 이별을 고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꼭 그들, 할리퀸과 디안느를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는 [[메라스큐라]]를 조종해 시공의 틈을 연다. 그리고 진짜 고서, 무욕의 고서가 틈을 통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본체의 모습으로 나타난 고서는 "나도 고서. 하지만 진짜도 가짜도 아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데 인형 쪽과 싱크로된 태라 동시에 같은 포즈로 같은 말을 해서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고서는 헷갈린다면서 "싱크로 오프"란 주문으로 인형 고서와 동조를 단절한다. 그러다 조용히 의식을 잃는다. 무욕의 고서는 인형 쪽도 감옥 안에 있는 자신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준 "동지"라고 말하며 그 또한 고서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잠자코 있던 디안느는 그 말에 뭔가를 느낀다. 반면 할리퀸은 더이 대화해 봐야 쓸데없다고 판단한다.
          * 디안느는 할리퀸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고서는 뜬금없이 "그가 너의 연인이냐"고 묻는다. 디안느가 당황해서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얼버무리지만, 고서의 눈에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듯한 신뢰관계로 보인다. 그리고 고서 자신의 계금이 그들에게 발동하지 않는 것도 증거다. 그들은 서로에게 뭔가 원하기 보단 뭔가를 채워주고 있다. 고서는 그런 점이 부럽다. 모든 종족이 그들 같이 사이가 좋다면 성전 따위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 처참하게 처입은 게라이드.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 그녀를 맡겼던, 징그럽게 미소짓고 있는 로우.
  • 일곱개의 대죄/213화 . . . . 6회 일치
          * 게라이드는 로우에게 살인을 멈추라고 호소하지만 그는 죽기 싫으면 도망치라고 말할 뿐이다. 로우가 칼을 줍는 다시 어디선가 나무 마법이 날아와 다리를 찌른다. 어린 요정족의 전사였다. 이미 겁을 먹은 태지만 로우는 가차없이 칼을 들어올린다. 게라이드는 이 어린 전사라도 보호하려고 로우의 앞을 막아선다.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라고 말하지만 뒤에 올 말을 잇지 못한다. 로우는 자신을 죽일 거라면 해보라며 다가오는걸 멈추지 않는다.
          * 묘한 대치 황은 뜻밖의 형태로 끝났다. 또다른 인간 전사가 게라이드의 뒤에서 칼을 휘둘렀다. 어린 요정은 목이 잘리고 게라이드는 오른족 눈을 잃고 쓰러졌다. 인간 전사는 멍하니 서있는 로우를 돌아보며 가만있지 말고 빨리 죽이라고 닥달하는 듯이 말한다. 그리고 게라이드가 아직 살아있는 걸 발견하자 잔인한 심성을 드러낸다. 로우가 "그만하면 됐다"고 말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게라이드의 날개를, 다음은 다리를 잘라버리며 잔인하게 웃는다. 게라이드는 이 모든 것을, 원한하기 보다는 천벌이라고 생각한다.
          * 로우는 울다가 눈물 조차 나오지 않게 될 무렵 복수를 결심했다. 그는 피와 살이 뿌려진 주위 풍경을 바라본다. 엄청난 수의 시체가 되어 널려있고, 그 사이엔 그의 친구 셋의 모습도 보인다. 하나같이 시체가 돼서 누가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다. 로우는 결국 복수를 달성했다고 말한다.
          >이한 기분이야.
          * 할리퀸은 "또 지키지 못했다"는 자학이 고개를 든다. 숲과 여동생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던 로우, 그리고 여동생이 오빠를 걱정하는게 이한 일이냐고 하던 게라이드. 배신감과 자괴감. 다양한 감정이 섞여 더 큰 분노가 된다. 할리퀸은 그 모든 것을 담아 창 바스키어스를 던진다.
  • 임대윤 . . . . 6회 일치
         |출생지 = {{KOR}} [[경북도]] [[대구시]]
         |학력 = [[남대학교]] 법학 학사<br/>[[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 석사
         |소속임위 =
         |웹사이트 = {{트위터|limdyok}}
         * 1977 ~ 1984 [[남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법학사)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울진 임씨]][[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장발 (화가) . . . . 6회 일치
          | 별칭 = [[아명|초명]](初名)은 '''장지완'''('''張志完''') <br/> [[호 (이름)|아호]](雅號)는 우석(雨石)·우당(宇堂)·누수(樓樹, <small>루수</small>)·산남(山南) <br/> [[어|문]] 이름은 '''토머스 챙'''('''Thomas Chang''')
         장발은 서양화가였지만, 독실한 [[로마 가톨릭교회|로마 가톨릭]] 신자(세례명: 루도비코)로서 [[성화|성화]] 제작과 가톨릭 [[성당]] 건립에 참여한 것 이외에는 창작보다 [[미술]] 이론 연구와 교육 활동에 더 몰두했다.
         장발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단체로 분류되는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으며, 이 사실은 [[전남대학교]] 교수 이태호가 [[1992년]] 발표한〈[[1940년대]] 초반 친일 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이라는 논문에서 알려졌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김민수 (1961년)|김민수]]가 [[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 - 공예 50년사〉라는 논문의 각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한 바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ref>{{뉴스 인용|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5-04-07|확인날짜=2008-03-05|제목=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저자=조호진|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7516}}</ref> 그러나 다른 친일 화가들에 비하여, 장발이 적극적으로 일제를 미화하는 작품을 남겼거나 열성적으로 친일하였다는 증거는 없다.<ref>{{뉴스 인용| url =| 제목 = 서울대미대 장발 교수 흉에 일장기 부착| 저자 = 서울대 인터넷신문 S&U| 날짜 = 2001년 3월 3일| 출판사 = 오마이뉴스}}</ref>
         [[1946년]] [[서울대학교]]에 미술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에 취임했으며, [[1961년]]까지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미술계와 미술 교육계에 큰 향을 미쳤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 총리를 지낸 형 장면이 [[5·16 군사 정변]]으로 실각한 뒤에는 미국에 머무르면서 여생을 보냈다.
         [[1996년]] [[서울대학교 출신 인물#자랑스러운 서울대인|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었고, 교내에 [[흉]]이 설치되어 있으며 미술대학 갤러리 '우석홀'은 그의 호를 딴 것이다.
  • 장소팔 . . . . 6회 일치
         * 장소팔-고춘자의 만담은 [[서춘]]-[[백금녀]] 콤비의 만담에 향을 줬다.
         * 서울 중구 흥인동 성동공고 옆 장소팔의 집터에는 화강암 위에 걸터앉아 오른팔을 들고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모습의 동(좌)이 있다. 2009년 12월에 세워졌다. 장소팔은 1925년부터 1972년까지 중구 황학동과 신당동 일대에 거주했다.<ref>연합뉴스, 2009년 12월 24일, '국민만담가' 장소팔 선생 동 세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040787]</ref>
         [[분류:1923년 태어남]][[분류:200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4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
  • 장솜이 . . . . 6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훈이 (화)|훈이]]》
         == 수 ==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장평도정 . . . . 6회 일치
         아버지는 [[조선 태종|태종 이방원]]의 아들 [[양녕대군]] 이제(讓寧大君 李禔)이고, 어머니는 이름 미의 첩이다. 그의 출생년도와 생일에 대한 기록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선원보략에는 그가 1438년생으로 나타나나 [[세종실록]]에는 1437년 정윤에 봉해진 기록이 나타난다.
         [[파평 윤씨]]와 [[진주 강씨]] [[강위]](姜偉)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파평 윤씨는 딸 둘을 두었고, 진주 강씨에게는 3녀를 두었다. 서자로 부림령(富林令) 이순(李順) · 우성령(牛城令) 이석(李碩) 등의 2남이 있다. 부림령의 시호는 정숙공(靖肅公)이며, [[원주 변씨]] 변처관(邉處寬)의 딸과 혼인하여 수주정(樹州正) 이윤인(李允仁)<ref>이윤인은 이승만의 13대조 할아버지이다.</ref> · 유제도정(楡梯都正) 이윤의(李允義) · 덕풍부령(德豊副令) 이윤례(李允禮) 등의 3남을 두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rfo.co.kr/html/pachong_view.php?No=39&mode3=history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 오신 것을 환합니다<!-- 봇이 따온 제목 -->]</ref>
         *어머니 : 이름 미
         * 첩 : 이름 미
         [[분류:생년 미]][[분류:몰년 미]][[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문신]][[분류:전주 이씨]][[분류:조선 세종]][[분류:이승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재호 (배우) . . . . 6회 일치
         |웹사이트= [https://www.instagram.com/qkdwogh/ 인스타그램]
         2016년 [[중국]]에서 먼저 데뷔했으며 화 《매일개서모도흔우》(每一个徐毛都很忧伤)과 드라마《인간대포》(人间大炮)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재호 "격정 멜로 주인공 욕심 난다"|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210&g_serial=1083921&rrf=nv|날짜=2018-03-21|뉴스=조이뉴스24}}</ref>
         《매일개서모도흔우》에서는 다큐멘터리 촬 차 중국에 왔다가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한국의 인기 배우 역할을 맡았고, 직접 중국어 연기까지 소화하며 현지 스태프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인간대포》에서는 평범한 주인공을 매력적인 남자로 거듭나게 도와주는 인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대군’ 재호, 대륙이 먼저 알아본 라이징★|url=http://sports.donga.com/3/all/20180329/89357445/1|날짜=2018-03-29|뉴스=스포츠동아}}</ref>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
  • 전호영 . . . . 6회 일치
         |선수명 = 전호
         |문 표기 = Jeon Ho-Young
         |사진 사이즈 =
         '''전호'''(全昊瑛, [[1994년]] [[1월 5일]] ~ )은 [[KBO 리그]] [[LG 트윈스]]의 내야수이다. [[전종화]]의 아들이다.
         * 경중학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정선 전씨]]
  • 절대가련 칠드런/438화 . . . . 6회 일치
          * [[아카시 카오루]]는 후지코의 태가 이하다고 전하며 쿄스케에게 조언을 구하려 하지만 효부는 '''원래 이한 여자'''라며 신경쓰지 않는다.
          * 칠드런 일행은 효부가 직접 후지코의 태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효부는 미심쩍어하긴 해도 단칼에 거절한다.
          * 애초에 판도라와 바벨은 적대관계고 임시적으로 휴전하고 있을 뿐인데, 적의 수장이 위기에 처했다면 자신들에게 나쁠게 없는 황이라고 비웃는다.
          * 효부가 비협조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후지코의 이을 제일 먼저 감지한 것도 효부였고 마기를 잠입하게 한 것도 있다. 실제로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내색하지 않는 듯.
  • 절대가련 칠드런/463화 . . . . 6회 일치
          * 당연한 반응이지만, 장관은 당혹해하면서도 에스퍼에 의한 범죄나 부정은 엄연한 사실이고 대다수인 노멀 국민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고 응수한다. 하지만 [[츠보미 후지코]]는 범죄발생률과 능력은 별개 문제라고 정론을 펼치며 "에스퍼는 국민도 아니라는 거냐"고 꼬집는다. 물론 장관으로서는 그렇게까진 말할 수 없는 입장이므로 표면적으론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카시와기 오보로]]가 조용히 자료를 제출한다. 정권의 비위를 조사한 자료로 보이는데 반양 격리법안이 정된다면 이걸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날의 제의는 무효화.
          * 장관의 퇴장 후 척보기에도 수한 무리가 나타난다. 더 칠드런 일행과 판도라의 간부들이 작전에 나선 것이다. [[미나모토 코이치]]는 관리관이 대지만 실패는 용납할 수 없다고 팀원들에게 주의를 준다. [[효부 쿄스케]]가 거기서 리더 인양 굴지 말라고 끼어든다. 미나모토는 판도라는 용병 입장이 아니냐고 따지는데 효부는 자기가 능력, 경험, 기술, 인격 면에서 모두 앞선다고 대꾸한다. 물론 미나모토는 "적어도 인격은 아니다"고 격렬하게 반박.
          리더들이 병림픽을 벌이는 옆에선 [[후지우라 요우]]가 왠일로 어른스럽게 "리더 따윈 누구든 관없고 싸움은 리듬을 타고 타닷하고 접근해 파밧하고 이기면 된다"고 말한다. 진지한 말투와는 달리 내용은 대충. [[사카키 슈지]]는 거기에 태클을 걸며 어차피 용병으로 쓸 거면 [[마기 시로]]가 제일 쓸만할 것 같으니 데려 오라고 한다. 요우는 자세히 밝히지는 않지만 "사정이 있어 못 온다"고 말한다.
          * 이런 답도 없는 싸움 끝에 미나모토가 져주는 걸로 일단락. 어쨌든 후지코를 가장 잘 아는건 효부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자 효부는 [[쿠모이 유리]]와 함께 최면염파를 가동하며 작전을 시작한다. [[산노미야 시호]]가 곧바로 바벨의 경비 시스템을 해킹. 악성 코드를 심어 보안시스템을 무력화 한다. 복구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분이며 그 사이 잠입을 마쳐야 한다.
  • 정근모 . . . . 6회 일치
         * [[한국전력공사]] 원자력 임 고문 (현직)
         |전임자 = [[이희 (1938년)|이희]]
         |후임자 = [[구본 (1947년)|구본]]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분류:대한민국의 과학기술처 장관]][[분류:한국과학기술원]][[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김삼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미래희망연대]][[분류:친박]][[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명지대학교]][[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동래 정씨]][[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정링컨 . . . . 6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cafe.daum.net/Lincoln1001 공식 웹 카페] <br/>{{인스타그램|lincoln1001}} <br/> {{트위터|Angel_Lincoln}}
         '''정링컨'''({{본명|링컨 폴 램버트}} - <small>(Lincoln Paul Lambert)</small>, [[2007년]] [[10월 1일]] ~ )은 [[미국 시민권]]의 아버지와 [[대한민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계와 한국계 [[혼혈|혼혈인]] 아역 [[연기자]]이다.
         * [[SBS]] 《배기완 최아 조형기의 [[좋은아침]]》
         * Story on '[[고소]]의 행복한 파티' 기부 캠페인 (2011)
         * [[기아자동차]] Human-Driven 홍보 (2011)
  • 정만조 . . . . 6회 일치
         [[의정]]을 지낸 [[정원용]]과 가까운 친척으로 [[한성부]]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개화파 학자였던 [[강위]]의 제자로 수학하여 글과 글씨에 뛰어난 재사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1884년]] [[교섭통아문]]에서 주사 벼슬로 관직을 시작하였고, [[1889년]] [[조선의 과거 제도|과거]]에 합격한 뒤 예조참의, 승지, 내부참의 등을 역임했다.
         정만조는 명문가의 자제였지만 개화 사을 익힌 앞서가는 지식인이었다. 당시 세도 세력인 [[여흥 민씨]] 일파와는 대립하다가 정치적인 사건에 말려들어 [[전라남도]] [[진도 (진도군)|진도]]로 유배되었다. 10년이 넘는 유배 생활 끝에 [[1907년]] [[대한제국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에야 사면을 받아 다시 관계로 복귀하였으며, 이후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이익에 따라 활동하는 친일 학자가 되었다.
         뛰어난 학자에 문장가였던 그를 일본은 철저히 이용했고, 정만조 역시 초년에 그와 뜻을 같이 하던 선비들과는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는 일화가 여럿 전해질 정도로 철저한 친일파로 변신했다. 손자의 이름까지도 일본 천황 이름 [[다이쇼 천황]]에서 따와 '대갑(大甲)', '정갑(正甲)'으로 지었다는 설이 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해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동생 [[정병조]]도 세 명단에 들어 있다.
  • 정승빈 . . . . 6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 @s_bbbinn
         :〈'''유'''민 '''장'''가보내기 '''프'''로젝트〉
         :〈민토론〉
         :〈돌아가〉[[이훈 (희극인)|이훈]]의 부하 2 역
  • 정승호(1956년 12월) . . . . 6회 일치
         * 《[[파도야 파도야]]》 (2018, KBS2) ... 김만 역
         === 화 ===
         * 《[[불의 나라 (화)|불의 나라]]》 (1989)
         * 《[[물의 나라 (화)|물의 나라]]》 (1990)
         * 《[[유혹의 강 (1991년 화)|유혹의 강]]》 (1991)
         * 《[[비구가 없다]]》 (1995) ... 나이트클럽 종업원 역
  • 정홍준 . . . . 6회 일치
         |문 표기 = Jeong Hong-Jun
         |사진 사이즈 =
         '''정홍준'''(鄭弘俊, [[1983년]] [[5월 25일]] ~)은 [[KBO 리그]] 전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남대학교]]를 졸업한 후 [[2006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2006년]] 2승 1패 평균자책 2.92로 나름 준수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2007년]]에는 부으로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8년]]에 다시 1군에 올라와 등판했으나 주목받지 못하였으며 [[2010년]]에 방출됐다.
         * [[남대학교]]
         [[분류:KT 위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제303전투비행중대 . . . . 6회 일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활동했던 국 공군의 비행중대. 망명한 [[폴란드]] 공군 조종사들로 이루어졌다.
         [[국 본토 항공전]]이 지속되며, 국 공군은 조종사 부족을 느끼게 되었다. 이들은 독일에 복수하고 싶었던 폴란드 망명 조종사들과 합의를 거쳐 두개의 폴란드인 비행중대를 창설하게 된다. 하나는 제302전투비행중대였고, 나머지 하나는 제303전투비행중대였다.
         국의 방송국 [[채널 4]]는 제303전투비행중대를 다룬 [[플래시 게임]]을 만든 적이 있다. [[http://www.kongregate.com/games/channelfour/battle-of-britain-303-squadron|하러가기]]
         [[https://www.rafmuseum.org.uk/research/online-exhibitions/the-polish-air-force-in-world-war-2/303-squadron.aspx|국공국박물관의 303비행중대 페이지(문)]]
  • 조현근 . . . . 6회 일치
         |문 표기 = Cho Hyeon-Keun
         |사진 사이즈 =
         중간계투로 주로 등판하며, [[2005년]]에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2홀드를 기록했다. [[2006년]] [[7월 12일]] [[두산 베어스]]에서 [[김덕윤]]<ref>[[2008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ref> 을 대로 1:1로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되었고 [[2007년]]에 첫 승을 기록했다.
         별 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6 시즌 후 방출되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10543335 삼성, 조현근 등 보류선수 명단 제외] - OSEN </ref>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
  • 지아(1986) . . . . 6회 일치
         == 세 ==
         2003년 보아짱 콘테스트에서 대을 받았고, [[2007년]] 7월 '물끄러미'로 데뷔했으며 당시 이름없는 가수를 내걸고 뮤직비디오 역시 수많은 스타들이 참여해 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 후 '바이올린'이라는 곡으로 활동했다.
         그 뒤 '터질 것 같아' '문자로 이별하는 일'로 컴백한 후 활동했다가 '''[[두개골]]이 함몰될 정도로 크게 다치는''' 교통 사고를 당해 활동을 조기 중단했으며 회복 후에도 이마에 흉터가 남을 정도로 큰 부이었다.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0603471138&ext=na|#]]
         그 후 아픔을 딛고 '술 한잔 해요'를 발매해 음원 사이트를 휩쓸었고, 정식 앨범 타이틀곡 '그녀처럼'은 큰 호응은 얻지 못했으나 지아 본인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 8월 6일 미니앨범 'difference'로 컴백했다. 타이틀곡은 '웃음만' 지아의 자켓과 티저이 공개되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번 뮤직비디오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abracadabra를 연출한 황수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신하균이 출연하며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 8월 6일 앨범 전곡이 공개 되었는데 타이틀곡이 기존의 지아스러움을 벗어나 신선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나 좋지 못하다는 평도 있다.
  • 진격의 거인/84화 . . . . 6회 일치
          * 엘렌은 엘빈이 살아서 돌아올 거라는건 전혀 예 못한거 아니냐고 반박하자 "어쨋든 엘빈이 살아있는 이 엘빈에게 쓴다"고 번복하지 않는다.
          * 리바이는 "엘빈의 힘이 없으면 거인에게 이길 수 없다"고 대의를 기시킨다.
          * 현장의 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쟝과 코니.
          * 아르민의 시체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는 사이, 갑자기 엘빈이 팔을 휘둘러 약을 뿌리친다. 마치 의식이 있는 것처럼.
          * 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 속에서 환을 보고 있다.
  • 진선유 . . . . 6회 일치
         | 문 표기 =
         | 웹사이트 =
         | 종합 입 =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난 진선유는 경북사대 부속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빙장에 갔다가 스케이트에 빠졌다. 주니어 대회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선수였지만, [[2004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광문고등학교 (서울)|광문고등학교]]에 전학한 진선유는 [[2005년]] [[11월 13일]] 2005-06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1:30.037로 들어오며 한 달 전 중국의 [[왕멍 (쇼트트랙 선수)|왕멍]]이 세운 기록을 0.134초 앞당기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었다. 2006년 겨울, [[2006년 동계 올림픽|토리노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했다.(1500m,1000m,3000m 계주)<ref>{{뉴스 인용
         |저자 = 이준 기자
         2007/2008 6차 월드컵에서 중국 선수의 몸 싸움에 밀려 오른쪽 발목 바깥쪽과 안쪽 인대에 모두 손을 입었다.<ref>{{뉴스 인용
  • 진종채 . . . . 6회 일치
         1925년 [[경북도|경북]] [[포항시|포항]]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졸업한 후 다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 8기로 졸업했다.[* 진종채를 군내 요직에 중용했던 [[박정희]]도 대구사범과 육사를 함께 졸업했다.] [[김종필]], [[김형욱]] 등 [[5.16 군사정변]]의 주역이 동기다. [[서종철]], [[노재현]], [[윤필용]] 등과 함께 [[전두환]] 등 [[하나회]]의 주요 후원자로 꼽힌다.[* 윤필용 사건으로 중간에 숙청된 윤필용과 달리 진종채, 서종철, 노재현은 [[10.26 사건]] 때까지 군에 향력을 행사, 남 군벌 3인방으로 불렸다.]
         전두환의 후원자여서 그런지 12.12 군사 반란 이후 세 명의 야전군 사령관 중 유일하게 유임되었고[* 12.12 군사반란 당시 야전군 사령관은 김학원 제1군사령관(중장), 진종채 제2군사령관(대장), [[이건]] 제3군사령관(중장)이다. 이 중 반란군에게 호의적이었던 진종채 제2군사령관을 제외한 제1, 3군사령관은 반란 이후 보직 해임되었다. 그리고 제1군사령관에는 반란군의 회유에 넘어갔던 [[윤성민]] 당시 육군참모차장이, 제3군사령관에는 반란군의 핵심 맴버였던 [[유학성]] 당시 국방부 군수차관보가 임명되었다. ] [[1980년]] [[대장(계급)|대장]]에 진급하였다. 제2군사령관 임기 중이던 [[1980년]] [[5월]], [[5.18 민주화운동]]의 계엄군의 지휘계통 에 있었지만 발포 명령 여부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유혈 진압에 있어서 진종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1981년]]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예편 이후 진해화학(1987년 [[한일합섬]]에 인수) 사장을 맡은 것 외에는 다른 직책을 맡지는 않았다. [[1995년]] [[김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 의해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검찰 소환조사를 받고 고소되었으나 결국 불기소처분 되었다. 이 때 사위인 조준웅 검사[* 2007년 삼성그룹 특별검사였다.]가 해당 수사팀에 속하였다가 장인이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수사팀에서 제외되었다.
  • 짐 브라부라 . . . . 6회 일치
         맥스는 그를 "수쩍은 식습관과는 별개로 브라부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Apart from his suspicious food habits I figured Bravura to be one of the good guys.]라고 평했다.
         맥스의 관으로 등장. 맥스에게 [[스쿼키 청소회사]]가 애니 핀을 살해한 사건을 맡기고, 발레리 윈터슨 형사에게 세바스찬 게이트 원의원 살인 사건을 맡긴다.
         스쿼키 청소회사에게 집을 습격당한 맥스가 이를 보고하자 이 말도 안되는 황에 어이없어 하며 알약을 집어삼킨다.
         맥스가 게이트 원의원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모나 색스]]와 함께 행동하다 붙잡히자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며 맥스를 꾸짖는다. 맥스가 자신이 맡은 사건과 게이트 원의원 사건이 연관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자, 두 사건 모두 윈터슨이 맡게 한다. 그러고는 맥스의 총을 빼앗고 해당 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다.
  • 차용학 . . . . 6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치즈인더트랩 (화)|치즈인더트랩]]》 (2018년) - 택배기사 역
         * 《[[신세계 (화)|신세계]]》 (2012년) - 수하 3 역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차희식 . . . . 6회 일치
         |웹사이트 =[http://mpva.go.kr/narasarang/month_hero_view.asp?id=360 국가보훈처 - 차희식]
         일제는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과 산림정책을 시행하여 농민들의 권리를 박탈하였고, 간척공사를 비롯해 송충이 잡는데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는 등 노동 착취가 심하였다. 또한 1907년 염업조사를 실시하여 한국인 제염업자의 경 기반을 해체시켰는데 이는 농업과 함께 이 지역의 주요 경제적 기반이었던 염업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일제의 수탈정책은 다른 지역보다 소작농의 비율이 높고 여건이 열악한 이 지역민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지역민들의 경제적 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삶은 점점 피폐해졌다.
         이러한 황으로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점점 높아가는 때에 서울의 3·1만세운동의 소식을 접한 지역의 지도자들은 구장회의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구체화했다. 차희식은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인근 주민들에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우정면 주곡리와 석포리 주민들의 선봉에 서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4월 3일 군중은 점차 늘어나 1천여 명에 이르렀고 시위 행렬은 인근의 쌍봉산으로 이동하여 계속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나자 선생은 차병혁, 차인범과 함께 군중들을 인솔하여 우정면사무소, 화수주재소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일본 순사가 쏜 총에 주민이 피살되자 차희식을 비롯한 군중들은 격분하여 도망가는 일본 순사 가와바다를 추격하여 처단했으며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시위 후 일제는 장안면, 우정읍내 25개 마을을 포위하고 선생을 비롯한 204명을 시위 주모 혐의로 검거하였다. 차희식 선생은 소요 등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5년 형을 언도 받았고 9년 2개월 만에 출옥하였다. 출옥 후 오랜 옥고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69세를 일기로 면에 들었다.
         부인 이씨와의 사이에 5남 1녀를 두었다.
  • 창작:작전 . . . . 6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코스모폴리턴]]'''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 세 =
         작품의 노선이 해결사물 겸 탐정물 겸 다크 히어로물(???)로 결정됨에 따라, 기존의 구대로 범죄 이야기를 늘어놓되 결과적으로 해피 엔딩을 내려면 '잠입수사' 쪽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범죄자와 결탁하여 범죄 활동을 돕다가 막판에 정보를 흘려 범죄자를 넘기고 주인공 일행은 탈주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법집행자들과 협력하여 정보를 넘기는 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연재할 때는 준비 과정들(setup)과 피날레(finale)를 각각의 에피소드로 연재하되, 위키에서는 각 작전의 '피날레'에 해당하는 에피소드의 제목, 혹은 최종 목표물(인물, 건물 등)의 이름이나 별명으로 문서를 개설하여 설명할 예정이다. ~~에피소드 이름 짓는 게 고역이다 뷁~~ ~~화 제목이나 외국 드라마(ex. 심슨가족 등)를 참고하자. 거긴 작명센스가 넘쳐 흐르더라~~
          * Cabmaggedon ★ - GTA: 바이스 시티, 웅본색
  • 창작:좀비도시 . . . . 6회 일치
          * 시정부 : 현재 다른 도시로 대피한 태. 이재민 대표 격이 되었다.
          * 절망형 : 이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남아 있다. 사태의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무너진 태이며,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도시에 나타나는 무법자들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이들은 외부의 사회와 법률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가치와 법률의 압박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어한다. 좀비 이으로 이 도시를 위험하게 만드는 괴물들이다.
          * [[지명수배|지명수배범]] : 이들은 이미 사법기관에 그 죄이 노출된 수배자이다. 이들은 단지 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다는 이유 때문에 좀비도시에 있고 싶어한다.
          * [[연쇄살인|연쇄살인범]] : 이들은 살인에 대한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몇몇은 좀비를 대으로 풀어내며, 생존자를 목표로 노리기도 한다. 이 도시는 그들이 자신의 죄를 은폐하고 목표물을 찾기에 적절한 곳이다.
          * 좀비가 발생했지만, 특정 도시나 지역에 머물고 외부에는 파급되지 않은 태.
  • 창작:좀비탈출/4-1-2-2 . . . . 6회 일치
         또 저 태는 오래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걸까? 아니면 약간의 변수에 의해서도 금방 원래 태로 돌아와 버리고 마는 것일까?
         황에 맞지 않는 호기심들이다. 어쨌든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야 빨리 다가갈 수도 있지만…… '''깨어버린다면?'''
         바로 그놈. '''토트넘 유니폼.''' 아까 그 놈은 분명히 저기에 누워있는데. '''토트넘은 두 놈이었던 것인가.''' 내가 토트넘을 때려 잡는 사이 대문으로 들어온 거야. 젠장, 닫아두는게 좋았는데.
         녀석이 나를 덮친다. 무거운 걸 들고 있는 참이라 엉거주춤한 태로 녀석의 썩은내나는 손아귀가 덮치는 걸 피했다. 그 순간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뚝하고 나만 들리는 소리로 이변을 알렸다. 젠장, 허리가…….
         마치 잠드는 것 처럼…… 명하는 것처럼 조용히. 조용히.
  • 창작:좀비탈출/5-1-2 . . . . 6회 일치
         다시 냉정해질 차례다. 팔자에도 없는 액션 화 촬 탓에 머리에 피가 너무 몰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잊지 말자. 나는 식량이 필요하다. 게다가 토트넘을 보라. 녀석은 90kg는 나갈 것이다. 저 무거운 덩어리를 어디로 치운단 말인가? 애초에 그런게 가능한 체력이 나한테 있는 걸까? 땀을 뻘뻘 흘리고 노동을 한 뒤에 몸살이라도 나서 쓰러져 버리면 토트넘에게 물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가져온 쌀은 밥을 하려다가 포기하고 죽으로 바꿨다. 그편이 양을 늘려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무나 배추같은 야채도 가져올 수 있었지만 막 해먹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씩 잘게 썰어서 죽에 넣고 끓여버렸다. 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엉망진창인 죽이었지만 간만에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나는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보통 생활에 다가간 듯한 기분'''. 마당을 온전히 손에 넣는다면 조금 더 보통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분 만있다면 지옥이 내려앉은 이 세에서도 당분간은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남은 죽으로 아침인지 야식인지 모를 끼니를 때웠다. 졸음이 몰려왔고 나는 침대에 뛰어들었다. 항 같은 침대였는데 오늘만큼은 깃털처럼 부드럽다. 20시간이 조금 못 되는 인간적인 생활의 여파인지 피로와 공복감 밑에 숨어있던 다른 욕구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 미학적 욕구나 지식욕처럼 점잖은 거면 좋겠지만... '''나는 인간이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고 살아가는 실감이 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가끔은…… 아니 '''어차피 혼자 있는데''' 눈치 볼게 뭐가 있어? 나는 졸음을 잠깐 미뤄뒀다.
         신기한 일이지만 눈이 떠지자마자 나는 생각을 전개했다. 그것도 무얼 고민하는 것도 없이. 아니, 설명이 이했는데 그 생각이라는게 앞으로 뭘해야 할지 같은걸 선택을 고민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놀랍게도 그런 과정을 전부 생략해 버렸다. 즉 눈 뜨자마자 하나의 결론이 정해져 있었고 오로지 그걸 어떻게 이룰지만 생각했다.
  • 창작:클린트 블랙번 . . . . 6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인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 신정보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 경찰청|트와일라이트 시티 경찰청]] 휘하 특별수사반(Special Investigation Division)에 소속된 형사로, 주로 현장업무를 맡고 있다. 현장에서 구르는 사람들 특유의 ~~으리~~의리 탓인지 현장에 나가는 사람들과의 인맥이 당하며, 이것을 토대로 내부업무를 맡은 경찰들에게도 신용을 얻었다. 하지만 그렇게 활약을 하는데도 성격과 여러 문제 때문에 일부러 승진과는 먼 길을 택하고 있다.
         ~~무식해서~~ 단순하고 직관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약간 어렵다 싶은 사건은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클린트가 경찰 중에서도 약간 짬이 있기도 하고, 파트너인 [[창작:채드 헤링|채드 헤링]]이 행동력이 딸리는 대신 머리가 좋기 때문에 전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클린트가 채드를 데리고 다니며 짬밥의 힘을 보여주었으나, 세이 점점 디지털화되면서 이제는 채드의 병풍이 되어간다는 모양. 웃기고도 슬픈 점은 클린트 본인이 그걸 즐긴다(…)는 것이다. 본인 왈, 어짜피 잘못돼도 욕을 먹는 건 자기가 아니라서 편하다고.
          * 전투능력은 중위권. 존과 거의 맞먹는다. 그러다 보니 경찰 업무도 약간 과격하게 하는 편이라 아슬아슬하게 징계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 . . . . 6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코스모폴리턴]]'''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 세 =
         미국에서 다문화적인 경향이 가장 강한 도시들 중 하나이다. 그래서 '리틀 아시아(Little Asia)'와 '리틀 아프리카(Little Africa)'라는 구역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품과 문화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트와일라이트 시티의 서쪽 구역. 대부분 공업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노동자들을 위한 약간의 주거 및 업지역이 있다.
         트와일라이트 시티의 남쪽 구역. 해변가라서 그런지 대부분 업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로명이 술이나 칵테일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특징.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 마피아 . . . . 6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조직|트와일라이트 시티/조직]]'''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트와일라이트 시티와 그 인근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들 중 하나로, 인근 마피아들 중에선 가장 강하다. 뉴욕 마피아와 비슷하게 거대한 패밀리 몇 개가 주도권을 쥐고 있고, 그 산하에 수많은 조직들이 늘어서 있다. 5대 패밀리가 대부분 성스러운 이름을 지녔다는 것이 특이사항.[* 모나스테로는 어로 수도원, 사마리아노는 어로 사마리아인(선한 사마리아인), 삽바티니는 안식일(Sabbath)과 비슷하다.]
         = 세 =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마피아와 똑같다. 시대 배경이 현대인지라 소설 '대부' 시리즈 같은 낭만은 더 이 없고 권력암투와 배신이 난립하고 있다. 물론 해당 시리즈 같은 전통과 로망(?)을 간직한 조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착오적인 취급을 받고 있다. 게다가 케이스에 따라 청년급이 조직의 두목이 되다 보니 마피아란 이름을 달고 양아치 집단처럼 보이는 부류도 있다.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조직 . . . . 6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트와일라이트 시티]]와 그 주변에 존재하는 조직들의 목록. '''줄거리 내부 구조나 위치 등이 중요한 집단은 건물에, 계획 및 행위 등이 중요한 집단은 조직에 작성한다. 둘 다 해당될 경우 모두 작성한다.'''
         '''{{{#red ※ 구역 분포 및 위치는 나중에 위문서를 참고할 것.}}}'''
          * [[창작:연합 택시회사|연합 택시회사]](United Taxi Company) - ★(화 "웅본색")
  • 최계훈 . . . . 6회 일치
         |문 표기 = Choi Gye-Hun
         |사진 사이즈 =
         [[2005년]] [[10월 11일]]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입됐다.<ref>{{뉴스 인용 |저자=|제목=LG, 최계훈 코치 입|url=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001&aid=0001120091 |뉴스=연합뉴스|출판사= |위치= |날짜= 2005-10-11 |확인날짜= 2016-06-12}}</ref>
         [[2013년]] [[NC 다이노스]] 잔류군 선임 코치 겸 [[투수]]코치로 입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41&aid=0002132908 NC, 최계훈 코치 잔류군 코치로 입] - 일간스포츠</ref>
  • 최상열 . . . . 6회 일치
         '''최열'''(崔相烈, 1958년 ~ )은 대한민국의 제36대 [[광주고등법원]]장을 맡고 있는 [[법관]]이다.
         김우종 전 경희대 교수와 소설가 이호철씨 등 [[문인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 7명이 국가를 대로 낸 손해배 청구소송에서 "김씨 등이 지난 2003~2008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지정돼 생활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정신적 손해배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는 국가의 주장에 대해 " 민주화운동보법에 따라 지급한 보금이 위자료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며 "국가는 총 6억 96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 최석민 . . . . 6회 일치
         | 훈 =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와 포금 형식의 [[은사공채]](恩賜公債) 2만 5천원을 받았다. 조선귀족 중 남작 작위는 본래 전직 관료에게 주어졌으나, 그는 칙임관 1등 이의 현직에 재직 중인 것을 기준으로 이 작위를 수작했다. 최석민의 작위는 양자 [[최정원 (조선귀족)|최정원]]이 습작했다. [[1911년]] [[8월 29일]]에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1주년을 기념하는 축사를 《[[매일신보]]》에 게재하기도 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2006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
  • 최세창 . . . . 6회 일치
         |출생지 =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1980년]] [[5월 20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3공수특전여단에 실탄 배부와 실탄 사용을 지시했으며 나중에 사단장, 육군 제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의장,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대한민국 국방부]]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장관]] 등을 역임했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 반란 및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 모의 참여 주요 임무 종사·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사면됐다.<ref>{{뉴스 인용
         * [[김일]] - ([[제4공화국 (드라마)|제4공화국]], [[1995년]]) [[MBC]] 드라마
         * [[이기 (배우)|이기]] - ([[제5공화국 (드라마)|제5공화국]], [[2005년]]) [[MBC]] 드라마
         |후임자 = [[권해]]
  • 최영진 (1948년) . . . . 6회 일치
         '''최진'''(崔英鎭, [[1948년]] [[3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외무공무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 2000년 : 외교통부 외교정책실장
         * 2004년 : 외교통부 차관
         |직책 = [[대한민국 외교통부|외교통부 차관]]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오스트리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외교통부 차관]][[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파리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영철 (기자) . . . . 6회 일치
         |이름 = 최
         |훈 =
         |웹사이트 = {{트위터|kbschoi|최철}}
         '''최철'''([[1974년]] [[3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한국방송공사|KBS]] 소속 [[기자 (직업)|기자]]다.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 {{트위터|kbschoi|최철}}
  • 최제훈 . . . . 6회 일치
         '''최제훈'''([[1973년]]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1973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7년]] 제7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연세대학교]] 경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 문학]]」을 수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경대학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
  • 최창흡 . . . . 6회 일치
         |징 =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복자]] [[최창현 요한]]의 이복 동생이며 [[1839년]]의 [[기해박해]]로 인해 [[1840년]]에 순교한 [[성녀]] [[손소벽 막달레나]]의 남편이며, 같은 해에 순교한 [[성녀]] [[최이 바르바라]]의 아버지이다.
         최창흡은 [[1786년]] 경에 [[한양]]에 있는 한 [[중인]] 신분의 관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13살일 때에 세을 떠났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천주교]]의 [[교리]] 수업을 시작했지만, [[세례]]는 받지 않았다. [[박해]]로 인해, 그는 교우들과 멀어진 이래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1815년]]에 그는 한 천주교 공동체에 입회하여 교리를 다시 배웠다. 그는 온화한 성품을 지녔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신유년의 박해]] 동안에, 그의 집안은 파산하였다. 그러한 곤궁한 황 속에서, 그는 [[손소벽]]과 결혼하였고, 열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들 중 아홉 명은 어릴때 운명을 달리했다. [[1821년]]에, [[조선]]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최창흡은 그 무렵에 세례를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천주교]] 신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지켰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했을 때, 최창흡은 가장 독실한 신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는 제가 젊어서 저지른 [[죄]]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것들을 속죄하고 제 [[혼]]을 구원받기 위해서 [[하느님]]을 위해 죽어야만 합니다."
         | 저자 = 이
  • 최충연 . . . . 6회 일치
         |문 표기 = Choi Chung-Yeon
         |사진 사이즈 = 270px
         [[2016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그러나 2016 시즌을 앞두고 옆구리 부으로 재활군에 머물렀고, [[2016년]] [[8월 25일]]이 되어서야 1군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2017 시즌 첫 등판이었던 [[4월 9일]] [[kt 위즈|kt]]전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2실점을 기록하였다. 작년보다 향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타자들의 26이닝 연속 무득점 침묵 속에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17년]] [[6월 2일]] [[KIA 타이거즈|KIA]]전에 [[백정현]]이 타구에 맞아 5회를 다 막지 못하고 강판되자 그가 구원 등판해서 3.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602000278 ‘최충연 프로 데뷔 첫승’ 삼성 라이온즈 3연승 질주... 김수 3안타2타점] - 뉴스핌</ref>
         == 수 ==
  • 최혁권 . . . . 6회 일치
         |문 표기 = Choi Hyuk-Kwon
         |사진 사이즈 =
         * [[사이버대학교]]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사이버대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추일승 . . . . 6회 일치
         | 코치팀1 = {{국기그림|대한민국}} [[신협 무 농구단|무 농구단]]
         | 코치팀2 = {{국기그림|대한민국}} [[신협 무 농구단|무 농구단]](감독)
         |전임자 = [[이윤 (농구인)|이윤]]
  • 킹덤/500화 . . . . 6회 일치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목은 카이네에게 지시를 내려 수도 한단에 있는 호첩 장군을 움직이게 한다. 호첩은 "왕도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장수로 적이 총력전으로 나오는 이 이쪽도 최선의 인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순수수도 회성으로 간 전 이안성주 기수도 불러들여야 한다고 의견을 낸다. 이목이 이를 받아들여 카이네에게 기수에게도 소식을 넣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부저는 곽성에서 1만을 차출해 오도록 한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아직 [[진시황(킹덤)|정]], 이신과 셋이 도움을 청하러 왔을 때를 회한다. 그러면서 지금 이신과 하료초는 "커졌다"고 말하는데. 하료초도 새삼 추억에 잠기다가 "사실 그때 [[벽(킹덤)|벽]]도 있었다"며 정정해주지만 양단화는 벽의 존재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하료초는 그때는 지금같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하지만 양단화는 그때 이미 정이 중원의 패자가 되리라고 예했다 한다. 그때 그의 눈빛이 남달랐기 때문인데.
          *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전방에 앞서가던 환의군의 후미가 보인다. 하료초는 기겁을 하며 "속도가 생명인 승부가 될 텐데 왜 이리 꾸물거리냐"고 성화를 부린다. 양단화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환의군은 전혀 느린게 아니고 오히려 비신대 쪽이 너무 빠르며 하료초가 지나치게 긴장한 태라고 지적한다. 이런 부자연스러운 긴장은 병사에게, 나아가선 적에게 노출된다.
          이번 작전은 고소의 기만전술. 흑양으로 출병하지만 실제 노리는건 업이다. 중간에 진로를 바꿔 단숨에 업으로 처들어가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수한 낌세를 흘리거나해서 적이 알아차린다면 시작해볼 수도 없는 작전이다. 이목은 분명 진군 내부에도 밀정을 심어놨을 것이며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면 분명 그 사실이 이목에게 전달될 것이다. 양단화는 그렇게 말하며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충고한다. 그 의미를 이해한 하료초는 감사를 표한다.
          * 이번 작전에서 진군의 군량 조달의 중계지가 된 금양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군량이 모여든다. 병참은 중요한 만큼 보급부대는 전투부대보다 한 발 먼저 금안으로 향하고 있다. 양단화가 우려한 대로 이 보급부대 사이에도 조군의 밀정이 섞여 있다.
  • 킹덤/509화 . . . . 6회 일치
          * [[이신(킹덤)|이신]]은 [[왕의(킹덤)|왕의]]장군의 창으로 무쌍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전히 창에 휘둘려 자잘한 처를 입고 있다.
          * 잘 싸우고 있는건 맞지만 익숙하지 않은데다 여전히 왕의 장군의 창이 무거워서 되는대로 휘두르는 것에 가까웠다. 평소라면 맞지 않았을 반격에도 맞고 자잘한 처가 늘어가는데 신기할 정도로 치명만은 피하고 있다. 미평이 "여전히 창의 무게에 휘둘리는 건가"라고 중얼거리자 강외는 "호쾌할 정도로 그렇다"고 덧붙인다.
          * [[하료초]]는 다시 바빠졌다. 중자 치료를 지시하고 다시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신, 강외, 초수를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한다. 곧바로 실행하라고 지시하자 미평이 막 싸움이 끝났는데 그럴 필요 있냐고 투덜댄다. 하지만 하료초는 진짜 바빠지는건 "지금부터"라면서 정색한다. 미평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한다.
          * 열미성 공략은 단순한 공성이 아니었다. 이제 열미성은 진의 토로서 업공략의 중요한 발판이 된다. 당연히 적들은 열미를 탈환하려고 할 텐데 제대로 수비하지 못한다면 진짜 목적인 업을 노리는건 불가능하고 연합군이 궤멸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따라서 열미성을 빠르게 파악해 "성의 습성"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료초나 왕전이 구하는게 그것이었다.
  • 킹덤/511화 . . . . 6회 일치
          * [[왕전(킹덤)|왕전]은 어떤 것을 확인하기 위해 몰래 성을 빠져나갔는데, 이 또한 이목이 정한 범위였다.
          한편 본진에서 일어난 이변은 당연히 [[환의(킹덤)|환의]]에게도 전해진다. 환의군의 장군들도 "총대장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문을 몰라하긴 마찬가지. 하지만 환의 만큼은 예했던 바라는 듯 술잔을 기울인다.
          만일 함곡관처럼 난공불락의 요새였다면, 반대로 조나라로서는 업의 코 앞에 적의 전진기지가 생긴 꼴이다. 하지만 쉽게 빼앗겨도 쉽게 되찾을 수 있게 만든다면 이런 황을 만들 수 있다. 적이 열미를 뚫고 왕도에 진입했을 때 조는 그 병력에 대응하는 한편 미리 태행산맥에 잠복시킨 병력을 운용해 열미성을 급습, 열미를 탈환함과 동시에 적이 후퇴할 "출구"를 차단해 버린다. 이것만으로도 적 병력은 포위섬멸되는 형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몽념이 그 이야기를 받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왕전이 없는 지금 이야기하는건 부적절하지만, 진군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예정보다 많은 병력을 열미에 남긴 채로 왕도권에 진입하는 방법이다. 약하더라도 성은 성이니 충분한 병력이 있다면 수비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그만큼 왕도권 진입에는 병력 수가 적어지고 그 병력만 가지고 업을 공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런게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합종군 같은건 필요도 없었을 테니 사실 불가능한 걸로 봐야한다.
          당연히 신은 그럴 수는 없다고 격렬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창평군의 제자인 하료초 조차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할 정도로 황은 좋지 않다. 왕분은 글허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20만 대군이 전멸할 수도 있다며 몽념의 제안에 힘을 더한다. 양단화도 말은 하지 않지만 그에 수긍하는 것 같은데, 문득 그녀는 환의가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걸 발견하고 왜 웃는 거냐고 묻는다.
  • 템포라 . . . . 6회 일치
         Tempora. [[국]]의 [[정보기관]]인 [[GCHQ]]가 진행하던 프로그램.
         [[광케이블]]을 해킹해 전화 통화, 인터넷 접속 내역, 이메일 등을 수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빼낸 정보는 30일 이을 저장된 태로 분류되고 분석되었으며, 미국 정보기관인 [[NSA]]에 공유되기도 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303662|국민일보 - 국 정보기관, 대서양 광케이블 해킹… ‘템포라’ 프로그램 운용(한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061554011&code=970100|경향신문 - 미· 정보기구 ‘암호 무력화’ 기술 개발, 인터넷·스마트폰 정보 실시간 훔쳐봤다(한글)]]
         [[https://www.theguardian.com/uk/2013/jun/21/gchq-cables-secret-world-communications-nsa|The Guardian - GCHQ taps fibre-optic cables for secret access to world's communications(문)]]
  • 토리코/359화 . . . . 6회 일치
          * 돈 슬라임은 네오를 두들겨 패면서 이치류 안에 있던 시절을 회한다
          * 이치류는 왕의 자질을 가진 숙주로 아카시아, 지로와 비교해서도 최고의 식욕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돈 슬라임은 그 자질을 개발하라고 끊임없이 권하지만 항 소박하고 남들이 잘 찾지 않는 식재만을 먹으며 귀 기울이지 않았다
          * 이는 그가 진귀하고 사치스러운 음식을 먹기 보다는 '''남과 나누고 버려지고 잊혀져가는 식재를 되살리는 일이야 말로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 동생이나 아카시아를 먼저 챙기고 자신은 소박한 식재를 먹어온 것이다
          *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돈 슬라임은 끝없이 이치류에게 보다 좋은 것을 먹고 강해지라고 권하지만 '''이치류는 항 남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검소한 콩 같은 것이나 먹는다. IGO를 세우고 세계의 일인자가 되었지만,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한 식탁에서 똑같은 것을 먹고 약자도 강자도 구분 없는 세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거야 말로 자신의 "욕망"이라고 하는데, '''어느덧 돈 슬라임도 이치류가 먹는 검소한 음식들이 맛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 돈 슬라임은 네오에게 "네가 최고의 숙주를 얻었다 믿냐"고 비아냥 거리며 이치류의 사과 추억을 말한다. 그러자 네오 안에 있던 아카시아가 나타나 "그런 부분은 나약함일 뿐이며, 자신은 이치류에게 운명을 부여했지만 나약해서 실패했고 신이 택한건 자신이다"며 조롱한다.
  • 토리코/371화 . . . . 6회 일치
          * 코코는 "교과서에서 배우던 인물로 어떤 권력자보다 큰 명성과 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설마 살아있었을 줄이야"라고 놀라워한다.
          * 자기는 누구이며 이 괴물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기를 되풀이하며 식욕에 휘둘려 왔다. 운명에서 도망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세의 식재를 모두 먹어채운 뒤였다.
          * 이 세엔 아직 아무도 모르는 맛이, 누구도 본 적도 없는 식재가 있다는 귀띔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 아카시아는 토리코나 사천왕이 자신을 앞에 두고도 위축되질 않자 "희망, 그 판에 드리운 감정, 가장 역겨운 맛이다"라며 위협한다. 그리고 "조금 전에 먹은 늙은 니트로(지지)로 그렇고 죽기 직전까지 절망하지 않는다. 왜냐?"고 묻는다.
          * 코코는 죠아는 자신들에게 맡기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죠아는 "너희같은 버러지를 대나 해줄 것 같냐"며 토카게를 써서 누군가를 소환한다.
          * 그리고 GOD를 조리하려고 시선을 돌리는데, GOD의 모습이 심치 않다.
  • 토리코/374화 . . . . 6회 일치
          * 구르메 세포는 원래 배타적이기 때문에 같은 구르메 세포의 악마끼리 먹는다면 호 붕괴하기 때문.
          * 아카시아는 어떻게든 기어올라오는데 태가 매우 좋지 않다.
          * 토리코가 "예회했다는 거냐"고 빈정거리자 "원왕에게도 대가 안 되는 놈이 뭘 믿고 맨몸으로 여기까지 왔냐"고 쏘아붙인다.
          * 그런데 스타준은 죠아를 대로 "내가 누구의 아들인지 아냐"며 제 3의 눈을 뜬다.
  • 토리코/385화 . . . . 6회 일치
          * 항 친절과 배려를 그를 대하던 플로제의 얼굴. 그 "미소"다.
          * 그녀는 항 미도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었다. 눈물을 흘리는 미도라.
          * 이세 무엇이든 나눌 때 가치가 있다던 "가르침". 이것이 미도라의 "디저트"다.
          * 그녀는 항 배고픈 사람들을 채워주기 위해서 요리했다. 그가 누구인가는 그녀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 플로제의 혼을 찾는다면 그의 꿈도 이루어진다는 것.
          * 죠아는 완전히 퇴장하는 듯 보이는데 정작 죠아의 혼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황.
  • 토시코 막스 . . . . 6회 일치
         일본 출생 국인 학자, 저술가. 본명 시무라 토시코(志村寿子).
         1936년 태생, 1971년 런던정치경제대학교를 졸업, 1976년 국 귀족 블로톤 남작 마이클 막스(Baron Marks of Broughton)와 결혼하여 블로톤 백작 부인 마크스 토시코(Honourable Toshiko Marks, Baroness Marks of Broughton)가 되었다.
         저서로는 『국 귀족이 된 나(英国貴族になった私,1986)』, 『어른의 나라 국과 아이의 나라 일본(大人の国イギリスと子どもの国日本,1992)』, 『여유의 나라 국과 졸부의 나라 일본(ゆとりの国イギリスと成金の国日本,1993)』, 등이 있다.
         [[분류:국 인물]][[분류:일본 인물]]
  • 파워 해리스먼트 . . . . 6회 일치
         [[회사]] 등에서 직무의 지위 같은 직장에서 가지는 우위를 배경으로 하여, [[업무]]로서 적정한 범주를 넘어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가하고,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약칭 파와하라(パワハラ).
         [[폭행]], [[협박]], 따돌림 같은 행위, 능력을 초과하거나 수준이 낮은 업무를 강요하는 것, [[사생활]]에 대한 과잉 간섭 등이 있다. 흔히 "사에서 부하"에게 일어난다고 여겨지지만, 동료들 사이에서나 부하에서 사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
         사안에 따라서 가해자는 민법의 불법 행위나 노동계약 위반이 성립할 수 있으며, [[명예훼손]], [[모욕죄]] 같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해리스먼트 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워'''가 들어가서 어감이 당히 파워풀하고 강렬하다.
  • 페어리 테일/503화 . . . . 6회 일치
          * 화을 입은 채 빈사가 된 디마리아.
          * 디마리아는 그 태로 "괴물"이란 말을 중얼거리는데, 루시가 나츠의 행방을 묻자 "그 녀석은 괴물"이라고 말한다.
          * 에버그린이 황이 어찌된 거냐고 묻자 루시도 자세히 모르겠다며 나츠랑 같이 있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디마리아가 당하고 나츠는 사라졌다고 답한다.
          * 폴류시카는 그 말을 듣고 나츠의 종양을 오진했던 것을 알려주며 그 종양을 원래 태로 돌린 바람에 "각성"해 버렸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 지으로 나간 나츠는 시커먼 불길을 내뿜고 있다. 완전히 폭주해서 자기 몸까지 태우는 것처럼 보인다.
          * 그 태로 제레프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마침내 제레프가 있는 페어리 테일 길드를 발견한다.
  • 페어리 테일/518화 . . . . 6회 일치
          * 엘자는 드래곤화된 아이린의 공격으로 전신골절된 황에서도 "요정 여왕"으로서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날아오른다.
          * 엘자는 그녀의 불행은 알겠지만 그래도 자신은 지지 않겠다며 반격한다. 아이린은 네까짓게 뭘 아냐며 발광하지만 엘자에게 치명을 주진 못한다.
          * 아이린이 멸룡마법사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곧 그녀의 육체는 심치 않은 힘을 뿜어내고 육신이 용인 형태로 바뀌어간다. 단 일격으로 엘자를 멀리 떨쳐내더니 더욱더 강한 형태로 변모한다.
          * 완전히 용으로 바뀐 아이린. 현룡 베르세리온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용인의 형태로 한 공격은 엘자가 그럭저럭 막아낼 수 있었지만, 드래곤 형태에서는 앞발을 휘두른 것만으로 전신의 뼈가 부러질 정도로 힘이 강해진다. 이것만으로 엘자는 빈사의 태에 처하지만 아이린는 화가 풀리지 않는지 다음 공격을 준비한다.
          >하이 인챈트의 위, 마스터 인챈트로.
          아이린은 이것이야 말로 땅이나 바다같은 자연물조차 초월해 천체 자체에 인챈트가 가능해진다. 엘자가 꼼짝도 못하는 사이 아이린은 엘자를 흔적도 없이 부숴버릴 인챈트를 준비한다.
  • 페어리 테일/519화 . . . . 6회 일치
          * 엘자의 검으로도 드래곤에게 처입힐 순 없었지만 [[웬디 마벨]]이 최후의 힘으로 멸룡마법 속성을 부여해 아이린을 베어버린다.
          * 아이린은 처를 입고 인간 모드로 돌아오지만 엘자는 빈사. 아이린은 엘자의 칼을 집어들고 엘자를 끝장내려 한다.
          * 하지만 엘자는 쓰러져있으면서도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아이린은 그걸 보고 엘자를 막 낳았을 때 보았던 웃음을 연한다.
          * 아이린이 주저하는 사이 엘자는 칼에 찔리는걸 감수하며 반격하지만 역시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
          * 멸룡속성이 부여된 엘자의 검은 드래곤 형태의 아이린을 베어버린다. 아이린은 목부터 가슴까지 세로로 베이는 큰 처를 입으며 인간형으로 돌아간다.
  • 페어리 테일/525화 . . . . 6회 일치
          * 제레프는 자신의 이을 위해 싸우는 거지만 솔직히 나츠와 대결하는게 즐겁다며 일그러진 감정을 드러낸다.
          * 그러나 아무리 길다트라도 오거스트를 대로 앞뒤 돌보지 않은 공격은 무모한 짓이었다. 오거스트는 가볍게 길다트를 패대기치고 다시 한 번 "아이는 부모를,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는게 당연한가?"라고 질문한다. 길다트는 서둘러 일어서며 "당연하다"고 외친다. 오거스트는 그 대답을 납득하지 못한다.
          같은 시각 페어리 테일 길드로 향하는 길을 누군가가 기어간다. "폐하의 아이", [[라케이드 드래그닐]]이었다. [[스팅 유클리프]]에게 당한 처를 회복하지 못했지만 기어서라도 아버지 [[제레프 드래그닐]]을 지키고자 페어리 테일로 향하고 있다.
          * 나츠는 기분 나빠하며 쏘아붙이려 하지만 갑자기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다. 어느새 라케이드가 페어리 테일 길드에 도착, 수면마법으로 나츠를 공격한다. 제레프에게도 그의 등장은 의외였던 것 같은데, 라케이드는 늦지 않고 아버지를 돕게 됐다며 감격스런 얼굴이다. 나츠는 라케이드를 모르지만 그가 제레프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의아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수면마법의 향으로 금방 잠들어버릴 것만 같다. 나츠는 자기 얼굴을 때리며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 과거, 아직 메이비스가 봉인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페어리 테일의 2대 마스터 [[마스터 하데스|프레히트 게이볼그]]는 연구 도중 메이비스의 체내에서 말도 안 되는 반응이 나타난걸 발견한다. 그는 어처구니없어하지만 데이터 으론 그녀의 몸 속엔 "생명"이 자라고 있다. 프레히트는 곧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그 생명을 내버려 둬야하나? 죽여야 하나, 혹은 살려야 하나? 자문을 거듭하던 그는 겨우 결론을 내린다.
          * 그리고 지금. 그렇게 살린 생명이 아버지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제레프는 자신의 아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해한다. 라케이드는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혹한다. 적인 나츠도 이런 황에 당황한다. 제레프는 라케이드가 나츠와 자신의 대결을 방해했다 여겨서 그를 죽인 것이다. 그리고 "방해하지 마라"고 말할 뿐이다.
  • 페어리 테일/528화 . . . . 6회 일치
          * 엘자는 침묵을 깨고 아크놀로기아의 행동을 제지한다. 더이 시체를 욕보이지 말라는 말에 아크놀로기아가 뒤돌아 본다. 둘을 살펴본 아크놀로기아는 엘자에게선 아이린과 같은 냄새가 나고 웬디는 멸룡마도사인 것을 간파한다. 이제 그의 관심은 아이린에게서 떠났다. 엘자는 그의 정체를 묻지만 대답 없이도 깨닫는다. 웬디도 마찬가지다. 마력이 그가 누구인지 알려준 것이다.
          * 아크놀로기아가 다짜고짜 두 사람에게 공격을 가한다. 엘자와 웬디는 기력이 떨어진 태라 대처하지 못한다.
          * 그때 구세주가 나타난다. [[제라르 페르난데스]]였다. [[오거스트]]에게 당한 처는 회복된 건지 쌩쌩해진 모습으로 아크놀로기아의 공격을 막아낸다.
          * 엘자는 천랑섬에서 마주쳤을 때 이으로 강해진 마력에 위축된다. 제랄도 오거스트 때 이으로 위축되어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고 중얼거린다. 웬디는 두려움에 떨지만 멸룡마도사인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며 드래곤 포스를 해방한다. 웬디와 제랄이 말리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아크놀로기아가 그녀를 타깃으로 잡는다. 그의 무서운 공격이 떨어지려는 찰나였다.
          * 크리스티나호를 몰고온 건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였다. 이치야는 설명은 나중에 하겠다며 곧 엘자 일행을 태우고 부한다. 그런데 이치야는 그저 엘자일행을 구하는게 목적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크놀로기아를 특정 지점으로 유인할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크리스티나호로 주위를 끌어 마그놀리아에서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 페어리 테일/529화 . . . . 6회 일치
          엘자와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휘청거리면서 잠시 러브코미디를 연출하는데 [[웬디 마벨]]이 사이에 끼어서 괴롭다. 그렇지 않아도 멀미로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때 지켜보고 있던 여성이 웬디에게 다가온다. 그녀는 웬디를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보듬으며 "이 배는 멸룡마도사도 탈 수 있게 만들어진 배"이니 진정하고 심호흡을 하라고 말한다. 엘자는 어째서 그녀가 웬디를 아는지 의문스럽다. 웬디가 그녀의 말대로 심호흡을 하자 거짓말처럼 멀미가 멎는다. 정신을 차린 웬디가 여성의 얼굴을 마주본다. 그리고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아!"하고 탄성을 낸다.
          그녀는 [[나츠 드래그닐]]의 [[페어리 테일/512화|심 세계]]에서 모습을 보였던 그 인물이었다. 안나는 자신을 엘자의 동료 [[루시 하트필리아]]의 선조라고 소개한다. 물론 엘자가 갑자기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제랄은 그런 것보다 정말로 아크놀로기아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 안나는 그에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라며 조급해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 웬디는 엘자, 제랄과 그녀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안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안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웬디를 안아주며 잘 컸고 [[그란디네]]를 비롯한 드래곤들의 일은 유감이라고 위로한다.
          * 제레프는 광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는 더이 나츠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END"라고 부른다. 이성을 버리고 폭주하는 그는 자신은 END를 파괴하고 END는 자신을 파괴할 거라는 말을 두서없이 내뱉고 있다. 그런 제레프를 향해, 형을 향해 나츠가 고함쳤다.
          안나는 분명 이 시대로 오는 "문"을 만드는건 성공이었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이 문은 제레프가 만든 것이다. 그 문을 여는 역할은 안나 자신의 몫. 제랄은 제레프가 이 일에 관여했다는 것에 놀라지만 이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제레프는 당시에도 "시간"을 연구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원하는 "과거"로 거슬러가는건 불가능했지만 그가 아직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시절이다. 안나는 "출구"에 있을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아직 어린 멸룡마도사들을 키우는 역할로 선택되어 함께 미래로 오게 된다.
          * 이클립스를 이용한 시간 이동은 언뜻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나면서 다섯 멸룡마도사들은 뿔뿔히 흩어져 버리고 만다. 이들의 위치를 찾아내는데 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막 찾아냈을 땐 이미 나름대로 현대의 삶에 적응한 뒤였기 때문에 안나는 갑작스럽게 접촉하기 보단 그들을 지켜보는 길을 택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으니까.
  • 페어리 테일/533화 . . . . 6회 일치
          * 나츠가 전력을 다한 "염룡왕의 붕권"으로 공격하나 시간을 되돌려 원태로 회복해 나츠의 숨통을 끊는다.
          * 저 여섯 중 루시, 그레이, 해피는 멀지 않은 곳에, 비교적 안전하게 있다. 루시 일행은 공원에서 END의 서를 펼쳐보던 동안 제레프가 방출한 힘에 휩쓸려서 쓰러졌지만 부은 없다. 곧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서로의 안전을 확인한다. 그런데 책에서 튀어나왔던 방대한 문자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해피가 그 점을 묻자 루시는 책이 덮이면서 책 속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레이가 어떻게 그렇게 된 거냐고 묻는자 루시가 나름대로 추론을 설명한다.
          * 나츠는 파괴된 잔해들이 다시 모여드는 것을 목격한다. 잔해들은 되감기되는 같이 모여들어 원래 태로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복구된 자리에, 빛의 조각들이 모여서 제레프의 형을 이룬다. 이제 제레프는 부숴지고 어떻고 하는게 아무 의미도 없는 몸이 되었다.
  • 페어리 테일/538화 . . . . 6회 일치
          * 한편 엘자 일행과 함께 있던 [[웬디 마벨]]은 [[아크놀로기아]]가 사라진 허공에 수한 균열이 생기는 걸 목격한다.
          해피가 와락 달려든다. 루시와 그레이는 "역시 나츠다"고 그의 귀환을 환한다. 해피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얼싸안아서 나츠가 곤란해한다.
          * 길드로 향해가는 나츠 일행. 해피가 나츠 오른 손의 부이 심하다고 하는데 나츠는 나중에 웬디에게 낫게 해달라고 부탁할 거라고 웃어넘긴다. 길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레이가 말하자 나츠는 방금 전까지 저기 있었는데도 그리운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루시는 아련한 듯이 "겨우 끝났다"고 말한다. 이제 당분간은 집에서 느긋하게 있으면서 못 읽은 책도 읽고 원고도 마저 쓸 거라고 말한다. 그레이는 [[쥬비아 록서]]에게 제대로 사과할 거라고 다짐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쉬고, 정리가 끝나고 나면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루시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전부터 아쿠에리어스의 열쇠를 되찾는 여행을 구하고 있었다. 그레이와 해피도 같이 가겠다고 나서는데 뜬금없이 아쿠에리어스가 물고기인지 반어인인지를 놓고 논쟁으로 이어졌다. 정답은 그냥 "인어".
          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해피는 계속 나츠를 찾는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레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루시가 절규처럼 나츠의 이름을 목놓아 부른다. 어디에서도 그의 대답은 없다.
          * 전쟁은 정말 끝인 것일까? 엘자 일행과 함께 몸을 쉬고 있던 웬디는 곧 하늘에서 수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그것은 마치... 하늘이 깨어지는 듯한 새까만 균열이었다.
  • 편의치적 . . . . 6회 일치
         편의치적을 받는 나라들, 편의치적국에서는 편의치적선에 다양한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선원의 국적이나 요건에 대해서도 규제가 적어, 선진국 해운회사는 편의치적을 이용하여 임금이 싼 개발도국의 선원을 많이 고용하여 선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편의치적선의 실질 소유국에서는 세수 감소, 선원 고용 축소, 노동조건 압박 등이 일어나며, 국제적으로는 해난, 해양 오염 확대, 선원 고용의 불안정화 등의 문제가 있다. 개발 도국은 해운에서 압박을 받게 된다. 국제노동기구나 국제해사기구 등에서는 국제적인 규제를 발표하고 협약하여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에서는 편의치적국 근절을 위한 토의를 하였으나 폐기는 좌초되었다.
         라이베리아는 편의치적 제도를 이용하여 1970년대에서 1992년 까지 세계 최대의 선보유국이 될 수 있었으나, 1993년에 [[파나마]]에 역전당했다. 그래도 라이베리아의 편의치적에 의한 세수익은 국가 재정의 약 10%에 달할 정도.
         || 한국, 국, 싱가포르 || 3% ||
         [[내륙국]]인 [[몽골]], [[볼리비아]], [[몰도바]]가 편의치적을 받고 있어, 내륙국임에도 당량의 선적을 얻고 있다. [[북한]]도 편의치적을 받고 있는데, 남한 국적(!) 오너가 가지고 있는 선박이 1척 있다.[[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kn.html#Trans (참조-운송(Transportation)->선(Merchant marine)->외국인 소유(foreign-owned))]]
  • 포스탈 리덕스 . . . . 6회 일치
         플레이어는 정해진 구역 안을 돌아다니며 적들(경찰관, 자경단, SWAT, 군인 등등)을 보이는 대로 죽이면된다. 타조를 포함한 [[민간인]]들은 죽이던 말던 관 없음. 90% 이의 적이 죽으면 다음 스테이지로 갈 수 있다.
         매 스테이지가 시작되기 전 로딩마다 주인공의 일기가 나오는데, 정신 태에 심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광스러운 대학살의 교향곡. 76명의 트럼본 연주자들이 죽음의 행진을 이끈다…
          가끔씩 자에서 나오는 무기. 세가지 모양을 하고있지만 셋 다 지뢰의 역할을 한다.
         게임 메인 화면이 인간 가죽인 등 당히 불쾌한 면을 자극한다. 아니, 게임의 주요 요소 자체가 불쾌함을 자극한다.
  • 프로라 . . . . 6회 일치
         게임 [[시드 마이어의 문명 V]]에서 세계 불가사의[* 게임 에서 모드나 에디터를 쓰지 않는 이 1개만 존재가능]로 등장한다. 전제 이념을 채택해야만 건설할 수 있으며 비행 기술을 요구한다.(1.0.3.279 버전 멋진 신세계 DLC 기준) 정책 2개당 1의 전역 행복[* 도시의 인구수 제한을 받지않는 행복]을 제공해주며. 문화력이 강한 문명일수록(또는 직할도시 개수가 적은 문명일수록)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이 불가사의가 지어진 시점에서 최소한 10개 이의 사회정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을 최소 5 이 기대할 수 있다. 별거 아닌거 같지만, 이거 국민 의료보험 사회정책에 + a 를 가져다 주는 성능이다.
         [[http://www.proradok.de/en/startseite-2/|프로라 정보 센터(문)]]
         [[http://www.telegraph.co.uk/travel/destinations/europe/germany/articles/nazi-relic-set-to-become-luxury-beach-resort/|텔레그래프 - Nazi holiday resort set for luxury makeover(문)]]
  • 하이큐/221화 . . . . 6회 일치
          * 아즈마네 아사이도 "그걸 믿었냐"는 식으로 디스한다.
          * "최고의 대"라는 아즈마네.
          * 코가네가와 칸지는 합숙에서 친해진 향인지 츠키시마와 히나타를 유독 반가워한다.
          * 따라서 지금의 다케공고는 세터 카게야마에게 있어선 시라토리자와 이으로 까다로운 대라는 것.
          * 당한 압박을 느끼는 카게야마.
  • 하이큐/224화 . . . . 6회 일치
          * 다테 공고의 강한 블록에 향심을 자극 당한 카게야마 토비오.
          * 하지만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지금껏 깐깐한 성격의 카게야마가 스파이커에 전적으로 맞춰준게 더 이하다고 말한다.
          * 아즈마네는 "냥하게 말해줘"라고 한다.
          * 아즈마네는 다테 공고의 블록 타이밍과 어긋나게 치려고하는데 아직 적응이 안 돼서 잘 되지 않는 황. 아까의 미스도 그런 시도 중에 나온 것이다.
          * 타나카도 일부러 아슬아슬한 코스를 노리고 있는데, 다테 공고 정도 되는 블록을 대로 이런 훈련을 하는건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 열 받아도 참으라고 한다.
          * 카게야마는 이 공격 직후 "너에겐 안 맞춘다"라고 선언, 츠키시마는 "딱히 그래도 관없다"며 신경전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 하이큐/227화 . . . . 6회 일치
          * 츠키시마는 자기는 히나타같은 괴물도 기계도 아니라고 짜증을 부리는데 카게야마는 우카이 케이신 코치의 "선수 태를 파악해라"는 조언을 떠올린다.
          * 다테 진에선 분명 크로스로 올 거라고 예측하는데 의외로 스트레이트로 온다.
          * 스코어는 18 대 16. 카라스노의 리드 황에서 서브권이 카라스노에게 넘어온다.
          * 공은 다시 카라스노 진으로 떨어지고 모두 1st템포 싱크로 공격으로 이어질 거라고 예한다.
          * 타나카의 서브. 다테 진에서 받아나 카라스노로 공이 넘어온다.
  • 하이큐/235화 . . . . 6회 일치
          * 카라스노 vs 츠바키하라 전은 다케 공고에서도 시청하고 있다. [[후타쿠지 켄지]]는 "쉽게 막을 수 없는 속공"이란 소개에 으로 보는 것과 네트 끼고 눈 앞에서 보는건 전혀 다르다고 코멘트하고 [[아오네 타카노부]]도 그에 수긍한다.
          * 카게야마는 방금 전에 먹은 젤리가 에너지로 전환됐다며 완벽한 컨디션이라고 느낀다. 카게야마의 서브. 어려운 코스를 잘 공략했지만 테라도마리가 받아낸다. 공은 길게 떠서 다시 카라스노 진으로. 이번엔 [[니시노야 유]]가 받는다. 완벽한 찬스볼이지만 세터인 카게야마는 서브를 올린 직후. 세트를 올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던 가운데 이변이 일어난다.
          * 식을 초월한 카게야마의 파인 플레이에 배구를 잘 모르던 관중들까지 들썩인다. 특히 카게야마가 서툴다고 깔봤던 커플은 서로 카게야마를 칭찬하기에 바쁘다. 중계진은 새삼 카게야마가 전일본 유스에 지명될 정도로 유망한 선수라고 추켜세우고 호흡을 맞추는 히나타 또한 "잘 쳤다기 보다도 공중에 있었다"라고 할 정도로 결성한지 1년도 안 된 콤비라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칭찬한다. 이와중에도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방금 플레이에 불만이 있는지 서로 옥신각신하는데.
          >세이 카게야마군을 발견했어요.
          * 전일본 유스에서 한솥밥을 먹은 [[미야 아츠무]]도 카게야마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카게야마가 합숙 때랑 표정이 달라졌다며 놀라워한다. 하지만 그 이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은 히나타 쪽.
  • 하이큐/239화 . . . . 6회 일치
          * 그런데 치는 손맛이 이하더니, 공은 엉뚱하게 같은 팀의 테라도마리의 뒤통수에 작렬한다. 적아군 모두 표정이 얼어붙을 정도로 황당한 실책. 게다가 이 실수로 1세트를 카라스노에게 넘겨주고 만다. 좀 황당하지만 어쨌든 선취는 선취. 카라스노의 응원단에선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관중석에서는 히메카와의 실수가 입방아에 오르며 "평생 꿈에 나오겠다"는 말이 본인에게 들릴 정도였다.
          테라도마리도 "맞추려면 나 빼고 맞춰라"고 웃어넘긴다. 히메카와가 가장 의식했던 2학년 츠키오카도 3학년 마루야마에게 "종반부터 서브가 어설펐다"고 쓴소리를 퍼부울 뿐, 아무도 히메카와의 실책을 문제삼지 않는다. 히메카와는 예과는 다른 반응에 조금 어리둥절하다.
          * 카라스노 진도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우카이 코치는 지금까지의 격전을 "워밍업"이라며 워밍업 잘 끝났냐고 말한다. 이어지는 2세트부터는 처음부터 전력으로 달리라고 지시하는데.
          * 2세트 개시. 2세트에서도 카라스노의 강세는 이어지지만 츠바키하라도 만만치 않게 따라잡는다. 경기를 시청하던 [[다테 공업 고교]]의 [[후타쿠지 켄지]]와 [[아오네 타카노부]]는 츠바키하라의 분발도 당하다고 평가한다.
          히메카와는 조금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코트로 돌아간다. 하지만 오오사도 감독 자신은 터무니없는 조언을 했다고 여기고 있다. "멋진 장면을 따내봐라"니, 그런 큰 무대에서, 이런 긴박한 황에 투입돼서 실패한다면 그걸 용서하지 않을 사람은 팀원이 아니다.
         >이게 당히 먹히거든
  • 하이큐/271화 . . . . 6회 일치
          * [[스나 린타로]]의 비기, 블록을 통과하는 듯한 스파이크의 비결은 대 블록을 "조종"하는 특기 덕이었다. 린타로는 스파이크 시 타점의 가로 폭이 넓어 보통 선수의 약 두 배 정도가 된다. 이는 스파이크를 반신 전체를 활용해 때리는 기술 덕. 팔의 움직임만 보고 블로킹을 하면 블로커가 "분명 맞게 블록했는데 통과해버렸다"고 착각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이나리자키 고교]]의 팬이었고, 스나 린타로 개인의 팬이었던 노인 관객은 일행에게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 린타로가 날아오르는 순간, 츠키시마와 카게야마는 정확한 위치에 블록을 펼쳤다. 일반적인 선수의 경우라면 그랬다. 하지만 린타로의 체 전반을 쓰는 스파이크는 타점이 보통과 다르다. 린타로의 스파이크가 카게야마의 우측을 크게 빗겨 떨어진다. 그 위치에서 [[사와무라 다이치]]가 손을 뻗었지만 팔에 맞고 아웃. [[이나리자키 고교]]의 득점. 아츠무는 수준이 높은 블로커일 수록 린타로에게 유도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스코어는 다시 18 대 9로 더블 스코어.
          * 관전 중인 [[네코마 고교]]의 [[코즈메 켄마]]와 [[쿠로오 테츠로]]도 린타로의 스파이크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쿠로오는 황을 정확히 봤는데 블로커들이 딱히 문제를 범한 건 없었다. 그의 위치에서는 린타로의 "유도"가 좀 더 자세하게 보였다. 그 원리는 납득하면서도 스파이크의 위력을 전혀 떨어뜨리지 않고 구사하는 것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무렵 린타로의 팬인 노인도 같은 설명을 일행에게 하고 있었다. 게다가 보통 MB의 속공은 다른 공격보다 콤팩트하기 마기 마련인데, 린타로는 제대로 토스만 올라오면 언제든 정면승부가 가능하다고 격찬했다.
          * 이제 카라스노에겐 미야 아츠무에 더해 린타로의 속공을 봉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추가됐다. 이나리자키의 긴지마 서브. 이번에도 니시노야에게. 이번엔 놓치지 않았다. 공은 츠키시마에게 이어져 스파이크. 린타로가 블록했다. 공은 이나리자키 진 위로 뜨고 아츠무가 우측으로 빠지는 공을 달려가 살린다. 위치는 레프트. 마지로가 뛰어오른다. 그 앞으로 카게야마, 츠키시마, [[타나카 류노스케]]가 나란히 블록을 깐다. 마지로의 대포같은 스파이크도 세 장의 블록을 뚫진 못한다. 크게 떠오르는 공. 네트 위로 떨어지던 것을 카게야마가 밀어넣는다. 아카기가 네트 바로 아래로 떨어지는 공을 커버. 다시 스파이크를 준비하는 마지로. 카라스노는 다시 블록 세 장으로 막는다. 그러나 더 높게 뛰어오른 마지로가 블록을 넘긴 스파이크로 후방을 노린다. 아즈마네가 가까스로 리시브했으나 공은 튕겨나가 네트 앞으로. 놀랍게도 마지로가 세 번째 점프를 뛴다. 그리고 우겨넣는 듯한 스파이크. 카라스노의 블록도 이 세 번째 만은 대응하지 못했다. 카게야마 혼자 뛴 블록 위로 내리 꽂히는 공격. 마지로가 세 번의 스파이크 끝에 1점을 강탈해 간다.
         == 세 ==
  • 하재숙 . . . . 6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 [[tvN]] [[노란복수초]](2012) - 김
          * [[SBS]] [[브라보 마이 라이프]](2017) - 이
         === 화 ===
          * 미쓰GO(2012) -
          * [[국가대표 2]](2016) - 고
  • 한덕수 (1907년) . . . . 6회 일치
         '''한덕수'''(韓德銖, [[1907년]] [[2월 18일]] ~ [[2001년]] [[2월 21일]])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의 초대 중앙임위원회 의장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경북도]]에서 태어나 [[1927년]] 성악가가 되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니혼 대학]] 중퇴후 노동운동에 참가했다. [[1934년]] 조선인 노동자의 파업을 이끌었다가 체포됐다. [[1945년]] [[10월 15일]]에 결성된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에 참가해 총무부 담당 위원에 선출됐다. [[1955년]] [[5월 25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결성후 의장단 6명에 포함됐다. [[1958년]] 5월 제4회 전체대회에서 의장단이 해체되고 단일 의장, 부의장제가 도입되자 의장에 선출됐다. 2001년 사망할 때까지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있었다. [[196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됐다. [[1972년]]에는 [[노력웅]] 칭호를 받았다.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당시 기준으로 서열 4위였다.
         |직책 = 초대 {{국기그림|PRK}}[[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임위원회 의장
         [[분류:1907년 태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분류:재일 한국인]][[분류:최고인민회의 의장]][[분류:조선로동당]][[분류: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임위원회 의장]]
  • 한서진 (1989년) . . . . 6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 웹사이트 = {{트위터|hanseojin26|한서진}}
         === 화 ===
         * [[2012년]] 《[[아부의 왕]]》 ... 배소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 한창희(전공기업인) . . . . 6회 일치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이원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이시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시종의 충주시장직 사임으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같은 해 9월 충주시장직을 실하였다. [* 한나라에서 [[구제명]]되어 아직까지도 복당이 안된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현:[[더민주]])으로 소속을 바꿨다고 한다.출처:[[http://blog.naver.com/choongjuhan/90195670102]] ]2011년 4월 [[한국농어촌공사]] [[감사]]로 임명되었다.
         [[우건도]]의 충주시장직 실로 치러진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현 한국당)[[이종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현 한국당) [[조길형(1962)|조길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윤진식의 국회의원직 사퇴로 치러진 [[2014년 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이종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2004 || [[2004년 재보궐선거|2004년 반기 재보궐선거]] (민선 3기 충주시장)[* 전임자 이시종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사직]
         || 2014 || [[2014년 반기 재보궐선거]] (19대 국회 충북 충주)[* 전임자 [[윤진식]] 충청북도지사 선거 출마로 사직] || [[새정치민주연합]] || 16,4920 (29.60%) || 낙선 (2위) || ||
  • 허남성 . . . . 6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 《[[설계 (화)|설계]]》 (2014년) - 성진 역
         * 《[[팁 (화)|팁]]》 (1988년)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
  • 허드슨 대학교 . . . . 6회 일치
         현재의 뉴욕 주와 뉴저지 주 사이를 흐르는 허드슨 강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이며, 이름에 걸맞게 흔히 뉴욕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냥 그럴듯하게 있을 법한 이름으로 만든 것이므로 이 명칭 자체에는 저작권이 없는 듯 하다.
         허드슨 대학이 언제 처음으로 가 매체에 언급되었는지, 확실한 증거는 없다.
          * 허드슨 대학 캠퍼스는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다''' http://previously.tv/law-and-order-svu/the-hudson-university-campus-is-the-most-dangerous-place-on-earth/
         그냥 가의 장소를 만들기를 좋아하는 DC코믹스의 특성 언급될 뿐이고, 특별한 사건은 없다.
         [[분류:가의 지명]]
  • 허일상 . . . . 6회 일치
         |선수명 = 허일
         |문 표기 = Heo Il-Sang
         |사진 사이즈 =
         * [[무 피닉스 (야구)|무]] 배터리코치 (2011년 ~ 2014년)
         '''허일'''(許一相, [[1979년]] [[12월 21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포수]]이자, 전 [[SK 와이번스]]의 배터리 코치이다.
  • 허준 (1981년) . . . . 6회 일치
         |문 표기 = Heo Jun
         |사진 사이즈 =
         오랫동안 2군 생활을 하다가 [[2009년]]부터 [[강귀태]]의 백업 포수로서 본격적으로 1군 무대를 밟는다. 그 이후로 많은 기회를 받지만 부으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2011년]] [[허도환]]의 등장으로 1군 경기 출전 횟수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2011년]] [[11월 22일]] [[2012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2차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어 팀 동료 [[조평호]]와 함께 [[NC 다이노스]]로 이적하게 된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45598 NC, 전체 1순위로 넥센 조평호 지명 '총 7명 입' ] - 스타N뉴스</ref>
         ! style="color:white;background-color:#408080;" |'''인율(%)'''
         * [[2013년]] [[12월 8일]] [[경남도]] [[창원시]]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신부 백수진과 1년 열애 끝에 결혼하였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281067.htm NC 포수 허준, 8일 창원서 결혼 ] - 스포츠서울</ref>
  • 헐크 . . . . 6회 일치
         마블 코믹스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캐릭터이며 국내에도 드라마가 방되었다. 이후 화화도 되었으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주요 캐릭터들 중 하나가 되었다.
         외소한 체격을 지닌 브루스 배너가 분노 등에 의해 거대한 녹색 괴물 헐크가 된다. 헐크의 괴력은 강력한 파워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위권에 있는 힘. 그렇기에 적과의 싸움에서는 든든한 아군이나 헐크가 폭주할 위험성이 있다보니 황에 따라서는 싸워야 하는 대가 되기도 한다.
  • 헤소린 가스 . . . . 6회 일치
         여러가지 재난에 시달리는 진구를 위해서 도라에몽이 헤소린 스탠드를 꺼내서 헤소린 가스를 주입해준다. 진구는 기분 좋은 태가 되어 혼나거나 넘어져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퉁퉁이와 비실이에게 맞거나, 개에게 물리거나 차에 치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30분이 지나서 효과가 떨어지자 진구는 다시 헤소린 스탠드를 사용한다.
         여기서 진구가 헤소린 가스를 남용하는 것을 보고 퉁퉁이와 비실이는 헤소린 스탠드를 강탈해간다. 진구는 가스의 향 때문에 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진구는 이렇게 좋은 가스는 모두가 나눠야 한다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가스를 주입해주고, 이걸 본 퉁퉁이와 비실이는 가스 스탠드를 가져다가 유료로 제공한다.
         그 결과, 동네 아이들 전체가 헤소린 가스에 중독되어 황이 당히 심각해지는데, 서로 방망이로 때리면서 놀거나, 지갑을 훔쳐서 가스를 살 돈을 조달하려 하거나, 가스의 효력으로 아픔이 마비된 탓에 "신칸센 히카리 호에 치여도 괜찮아!" "도쿄 타워에서 점프해도 괜찮아!"라고 호언장담하거나, 여자아이가 가스를 주입받느라 [[팬티]]를 다 보여도 태연하게 구는 등(…) 도덕심까지 완전히 마비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퉁퉁이와 비실이는 가스 스탠드에 매달려서 의존을 버리지 못한다. 가스가 다 떨어진 뒤 도라에몽이 일부러 역효과(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태)를 내는 가스를 주입해줘서 겨우 헤소린 가스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실 이 단편이 발표된 1979년은 일본에서 [[각성제]](히로뽕)이 남용되어, 제2차 각성제 남용기라 불리던 시기이다.[* 제1차 각성제 남용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물자로 남은 히로뽕이 남용되던 시기.] 이러한 세태를 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현덕 . . . . 6회 일치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 〈고무신〉을 발표한 뒤, [[김유정 (소설가)|김유정]], [[김기림]], [[이석훈 (1908년)|이석훈]], [[박태원 (1909년)|박태원]], [[안회남]], [[이 (작가)|이]] 등과 교유하는 습작 기간을 거쳐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당선되면서 정식 데뷔했다. 처녀작인〈남생이〉의 화자는 ‘노마’라는 소년이며, 노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소년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소년 (잡지)|소년]]》에 꾸준히 발표하는 등 아동 문학에 관심이 컸다. 이후 〈경칩〉(1938년), 〈두꺼비가 먹은 돈〉(1938년), 〈골목〉(1939년), 〈잣을 까는 집〉(1939년), 〈녹성좌〉(1939년), 〈군맹〉(1940년)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한데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의 어렵던 시절이라 더이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 후 월북을 한 이후에는 [[1961년]]까지 〈싸우는 부두〉 등의 단편소설을 자작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경향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며 사회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데뷔 시기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해체 이후이므로 카프에 직접 가담한 적은 없으나, 카프의 이념적 성향과 대체로 방향이 일치하는 작품을 썼다.
         * 김순, [http://dongsim.net/gnu4/bbs/board.php?bo_table=hyundek&wr_id=4&page= 아동문학 선구자 현덕 - 생애와 업적] (동심넷 - 아동문학선구자기념관)
         [[분류:1909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20세기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일제 강점기의 동화작가]]
         [[분류:박헌]][[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분류:월북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화작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주 현씨]]
  • 현석문 . . . . 6회 일치
         |징 =
         [[앵베르]] [[주교]]와 [[선교사]]들이 체포될 때, 현석문은 [[한양]]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주교는 [[순교]] 전에 [[조선]]의 [[교회]]를 맡겼다. 이 사실은 주교와 교우들이 그를 얼마나 크게 존경했는지를 보여준다. 현석문은 체포를 피하기 위해 이재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그는 새로 입교한 교우들을 격려했고 여러 [[선교]]지들을 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금을 모아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뒷바라지 하였다.
         그는 아내와 누이가 순교한 후에 《[[조선]] [[천주교]] [[순교자]] 열전》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기해박해]]가 끝나자, 그것의 편찬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하이]]까지 피해다니기도 하면서 살아남은 [[최희원]]과 [[모방 베드로|모방]] [[사제|신부]]의 [[복사 (기독교)|복사]] [[최형 베드로]], [[이승훈 베드로]]의 손자 [[이재의 토마스]] 등의 협조를 받아 [[순교]] 자료를 모아서 확인 및 보충 정리하여 3년 만에 단편의 《[[기해일기]]》를 완성하였고 교우들에게 배포하였다.
         ==== 하이 왕래 ====
         그는 빈번히 [[베이징]]으로 전령을 보내 [[선교사]]들과 연락하였다. [[1845년]] 그는 [[부제 (기독교)|부제]] [[김대건]]과 함께 작은 나무배를 타고 [[하이]]로 가는 험란한 항해에 동참하였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조선교구]]의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를 맞아들였다. 현석문은 [[한양]]으로 돌아온 뒤, 위험을 무릅쓰고 김대건 [[사제|신부]]의 집을 자신의 명의로 [[등기]]하였다. [[1846년]]에는 [[병오박해]]가 일어났다. 현석문은 김대건 신부의 [[체포]] 소식을 듣고 새로운 집을 구입하여 교회의 모든 재산을 그곳으로 옮겼으며, 김 신부의 처소에 남아 있던 여성 교우들을 새 집으로 피신시켰다.
         | 저자 = 이
  • 홍가람 . . . . 6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 배우]]
         | 웹사이트 =
         === 화 ===
         == 수 ==
         * 2013년 MBC 방송연예대 코미디부문 남자 우수
  • 홍성우 (1938년) . . . . 6회 일치
          | 총리 = [[강훈 (1922년)|강훈]] <br/> [[노재봉]]
          | 서훈 = 법의 날 국민훈장 무궁화장(2004년) <br/> 재단법인 진실의 힘 인권(2013년) <br/> 산법률문화(2013년)
         엄혹한 독재체제 하에 희생된 이들과 저항한 이들을 위한 변론에 앞장선 인권변호사의 표으로 지금도 널리 인정받고 있다.
  • 홍영철 . . . . 6회 일치
         '''홍철'''([[1955년]] [[9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계명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197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문학사]] 신인 발굴에 각각 시가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 수 ==
         *[[2012년]] 불교문예작품 (시 '파가니니를 위하여')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166486 한겨레-불교문예에 홍철 시인]</ref>
  • 홍준호 (1971년) . . . . 6회 일치
         * [[천고등학교]] 졸업
         * 2009 ~ 2009 오류중학교 운위원회 위원장
         == 수 ==
         * 2003 제1회 시민일보 의정, 행정대
         * 2003 제3회 구로타임즈 모범의정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천고등학교 동문]][[분류:총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민주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정의당 (대한민국)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황교충 . . . . 6회 일치
         황교충은 2006년 [[한양대학교]]에 다닐 당시 춘계대학연맹전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우수 골키퍼 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한양대, 숭실대 꺾고 2006 춘계연맹전 정 등극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39&aid=0000003295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6-4-17}} }}</ref> 이러한 활약으로 2007년에는 덴소컵 한일 대학축구 정기전에 뛸 대표 골키퍼로 뽑혔다.<ref>{{뉴스 인용 |제목=제4회 덴소컵 한일 대학축구, 25일 안양 개최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578214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7-3-19}} }}</ref>
         [[2010 김지혁 선수의 군입대로 인한 공백을 메꾸기 위해 K리그 드래프트|2010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포항 스틸러스]]에 지명되어 입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황교충·김다솔 등 골키퍼 대폭 보강 |url=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461164&news_area=060&news_divide=06002&news_local=10&effect=4 |출판사=경북일보 |date={{날짜한글화|2009-11-18}} }}</ref> 2010년 10월 9일, [[광주 무 축구단|광주 무]]를 대로 데뷔전을 치렀고,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ref>{{뉴스 인용 |제목=‘이진호 결승골’ 포항, 광주 누르고 5경기 만에 승리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01009163719§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0-10-9}} }}</ref>
         {{둘러보기 자 묶음
  • 후카다 쿄코 . . . . 6회 일치
         [[일본]]의 [[여배우]]. 1982년 11월 2일 생, [[도쿄도]] 출신. [[O형]]. 1997년 FIVE(니혼 테리비)로 데뷔했다. [[드라마]], [[화]], [[버라이어티]], [[CM]]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애칭은 후카쿈(深キョン)
         배우자를모르는태에서 아기를출산했다 딸 [[김남주]]가태어났다
         === 화 ===
          * [[2009년]] 실사화판 『[[얏타맨]](ヤッターマン)』에서 [[도론죠]] 역을 맡았다.
         *[[문근(여배우)|문근]]
  • 휴먼 토치 . . . . 6회 일치
         [[스파이더맨]]과는 초창기부터 티격태격하며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스파이더맨 그만둘까 고민하던 피터가 쟈니 스톰의 웅에 대한 연설을 듣고 다시 기운 차려서 스파이더맨이 되는 이야기도 있었고, 자니 스톰도 스파이더맨하곤 스스로가 "친근한 [[라이벌]]" 관계였다고 말하기도... 그래도 가끔씩이 둘이 싸우면 아주 난장판으로 싸우기도 했다. 쟈니가 파티장에서 여자들에게 인기를 끈 것을 보고 질투한 스파이더맨이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고 둘이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나중에 둘이 협력해서 샌드맨과 싸우기도 하는 등 티격태격하는 라이벌 관계라고 보면 된다. 한번은 쟈니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관계가 서먹해지고 여친이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이 아닌 평시의 모습)에게 관심이 있자 질투심에 피터를 찾아와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는 와중에도 샌드맨등의 적을 힘을 합쳐 쓰러뜨렸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수 있는 친구가 되고 나중에 쟈니가 자신이 죽을 경우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란다고 말할 정도의 관계가 된다.
         [[댄 슬롯]]이 스토리를 담당한 "스파이더맨 - 휴먼 토치" 미니 시리즈에선 10대 시절부터 피터가 학교 선생이 되고 불가피하게 휴먼 토치에게 정체를 드러낼때까지의 과정이 나타나있는데 서로 심술부리며 싸우면서도 도와주고[* 일례로 닥터 둠이 휴먼 토치를 얼음속에 가둬두고 없애버리려 하자 스파이더맨은 닥터둠에게 굽실거리며 자신의 숙적인 휴먼 토치를 없애게 해달라고 조아린다. 이를 마음에 들어한 닥터 둠은 스파이더맨에게 휴먼 토치를 끝내라고 얼음 전체를 주지만 스파이더맨은 휴먼 토치를 들고 도망간다(...)] 마지막에 피터가 다니는 학교에서 휴먼 토치와 스파이더맨이 악당들을 물리친뒤에 가면을 벗고 대면하면서 서로에게 부러웠던 점을 얘기한다[* 피터는 쟈니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판타스틱 포와 온갖 모험을 하고 언론의 음해를 당하지 않는 유명인의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했고, 쟈니는 피터에게 자한 숙모가 있고(쟈니는 고아로 자랐기에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친한 미인 여자친구들이 많으며 미스터 판타스틱 못지 않게 머리도 좋고 사진도 잘 찍는 것을 부러워했다. 이러면서 피터처럼 운이 좋은 걸 파커 럭이라고 불렀다는데, 원래 파커 럭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피터의 삶을 얘기하는 단어이다(...)]. 슈피리어 이후 피터가 돌아온 것을 안 쟈니는 옥토퍼스가 몸을 차지한 기간동안 피터가 놓친 화, 드라마, 음악등을 USB에 담아주기도 하며 자기가 죽었다 돌아온 시절을 얘기하며 괜찮아 질 것이라고 격려한다. 스파이더맨에게 데어데블이나 울버린등이 어디까지나 가까운 "동료"라면 휴먼 토치는 몇 안되는 '''친구'''이다.
         570호부터 정신적인 성장을 예고하는 장면들이 잦아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아져 팬들의 불안을 야기했으며 결국 587호에서 백스터 빌딩 안에 [[네거티브 존]]이 어나이얼레이션으로부터 강제로 열려지자 [[인간]]으로 돌아온 [[씽(마블 코믹스)|씽]]과 백스터 빌딩에 거주하는 학생들과 식객 그리고 [[프랭클린 리처즈]]와 [[발레리아 리처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은 네거티브 존에 남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미국]] 만화 특성 결국 언젠가 다시 부활하겠지만.
          * 오래 전에 국내에서 방한 TV 애니메이션(1994년판)에서는 알아듣기 쉬우라고 "[[파이어]]"라고 개명당했다. 튀기 좋아하고 가벼운 젊은이 같은 성격 때문에 진중한 성격인 [[씽(마블 코믹스)|씽]]과 티격거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 2013 K리그 심판매수 . . . . 5회 일치
         == 세 ==
         이 사실을 접한 전북팬들은 2015년 경남팬들이 겪었던 멘붕을 그대로 겪게 되었으며, K리그 팬들은 약팀이었던 경남부터 강팀인 전북에 이르기까지 심판 매수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전북의 스카우터 C모씨는 직위로만 보면 일개 직원처럼 보여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611035|전북의 발표처럼 개인의 잘못으로만 비춰질 수 있으나] 각종 커뮤니티에서 언급되고 있는 저 C모씨는 전북 프론트 유일 15년 경력 최고참으로 전북 내부에서도 당한 위치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경남과 마찬가지로 전북도 고위급 인사가 저지른 범죄인데다가 전북 역시 "단순한 도의적 책임"만이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검찰의 추가조사 결과 전북은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60607.22006223302|경기 하루 전날 심판에게 돈을 건낸것으로 밝혀져] 이 행위가 경기 자체에 향을 미쳤다고 충분히 볼 여지가 생겼다. 참고로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연맹의 규정에 따르면 경기에 배정되는 심판은 대외비라고 적시하고 있는데[* 한국프로축구연맹 규정 제4장 심판(2016년 1월 16일 개정판) 제9조 3항에 따르면 '''"K리그 심판의 배정은 대외비로 하며, 위원회는 거점 숙소제 운 원칙에 따라 해당심판에 게 배정 통보 시기 및 배정 지역을 개별 통보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 대외비가 흘러나온 것에서도 연맹은 비판을 면할 수 없다.
         2016년 6월 16일에 검찰의 추가조사결과 이미 조사를 받고 있던 심판들이 2013시즌 당시 경기배정을 담당하던 심판위원장에게 금품을 주어 경기에 배정받는 행위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2014시즌까지는 심판위원장에게 심판배정의 권한을 줬을 시기다. 컴퓨터로 심판을 랜덤으로 배정하기 시작한 건 2015시즌부터이므로 적어도 2014시즌까지는 조사대이 확실히 되고 있다.]
  • DQN . . . . 5회 일치
         난폭하고 비식적인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인터넷 은어]] .
          * 질서, 식을 지키지 않는다.
          * DQN 네임 : 비정적이고 특이한 이름을 뜻한다.
          * DQN 기업 : 회사 내외에서 비식적이고 폭력적인 일이 만연하는 기업을 뜻한다.
          * DQN 카 : DQN 들이 타고 다니는 차. 차를 화려하게 개조하고 이한 장식을 붙인 경우에 하는 말이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아시아 . . . . 5회 일치
         이게임시작지점에서 가장 많은 땅덩어리를 지니고 있으며, 가장 높은 총개발도(developement)를 지닌 국가. 당히 많은 고유시스템을 들고있는데, 고유 팩션인 천조국 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관료, 사원, 환관이 행정, 군사, 외교를 담당하고 있으며, 각 팩션의 향력이 가장 높을경우 그 팩션이 보너스를 주는 형식이다. 그리고 고유 정부체제인 천조국(Celestial Empire)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기술비용과 안정도 비용을 10%줄여주며, 모든 땅의 수입이 반이된다. 천명이란 시스템으로 반란도를 5줄여준다. 만약에 정통성이 70이하이거나 안정도가 음수가 될경우엔, '천명을 잃음'이 뜨면서 천명의 보너스가 사라지고 반란도가 5승해 최종적으로 반란도 10이 늘어난다(...) 거기다가 중국계 문화권이 엄청 세분화되어 천명한번 터질경우엔 오나라, 촉나라, 연나라, 제나라등 소국들이 죄다 반란일으키고 독립해 춘추전국시대를 만들기도 한다...~~안습~~ 내적 완결성등 명한테 들어있던 수많은 디버프들이 전부 사라져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여전히 천명이란 고유시스템덕에 빵빵터지는 반군들을 맛볼 수 있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서구화를 하도록 하자
         난이도는 당히 쉽다. 실제역사대로라면 조선이 남만주를 먹는 즉시 명나라에서 견제가 들어오겠지만 이게임에서는 그런게 없다보니(...) 초반애 훈춘(hunchun)이나 헤투 알라(Hetu Ala)정복 미션을 받고 남만주를 먹고난뒤, 지린에 클레임을 걸고 먹어둬서 지린노드를 장악하면 된다. 다만, 예전에는 조선과 명에 역사적 친구 보정이 있어서 명과 동맹을 걸고 편하게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을 집어삼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보정이 삭제되어 명과의 관계도를 미리미리 올려둬서 침공의 가능성을 줄여둬야 할것이다. 결국 조선의 난이도는 명이 얼마나 빨리 갈라지느냐에 있다. 명이 초반에 천명이 터져서 조각조각 갈라진다면 게임은 굉장히 쉬워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히 고달픈 난이도가 될것이다.
  • JOY축제 . . . . 5회 일치
         2003년, JOY 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성이 인터넷에 올린 일기 때문에 [[2채널]]을 중심으로 하여 [[염]]이 일어났던 사건이다. 자신이 데려온 아이가 술집에서 손란을 일으키는 [[민폐]]를 입혔는데, 그걸 뒷담하는 점원에게 오히려 폭력을 휘두른 [[DQN]]으로 유명하다.
         == 세 ==
         가게에 [[민폐]]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폭력을 휘두르는 등 다양한 문제가 있어 금세 [[2채널]]의 주목을 받고 [[신털이]] 등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JOY가 자신의 일기에 [[자전거]]를 탄 소년과 [[교통사고]]를 냈으나 오히려 자신보다 소년이 나쁘다고 주장하거나, 남편의 회사에 이름만으로 임원으로 올라가서 [[전업주부]]이지만 월급을 받는 태이거나, 전업주부임에도 불구하고 [[보육원]]에 아이를 집어넣는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JOY는 스스로 [[2채널]]에 나타나서 코멘트를 하는 등, 보다 사건을 북돋아주었으나 결국 일기 사이트를 삭제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이미 완전히 보존되어 있어 여전히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 LORAN . . . . 5회 일치
         간단히 말하자면, [[전파]]를 이용한 [[등대]]. 기지국에서 발산하는 펄스 전자파를 수신하여 전자파의 위차, 시간차 등을 사용하여 위치를 측정한다.
         현재는 용 목적으로는 쓰이지 않는데,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에서 격추된 사건을 계기로 레이건 대통령이 [[GPS]]를 민간에 개방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LORAN 이외에도 [[소련]] 계열의 알파 항법 시스템, [[미국]]의 오메가 항법 시스템, [[국]] 계통의 데카 항법 시스템 같은 다양한 지파 전파 항법 시스템이 GPS의 민간 개방으로 업성을 잃고 '''궤멸'''(…)하였다.
  • OK 본 . . . . 5회 일치
         |웹사이트 =
         '''오케이 본'''(케본)은 [[대한민국]]의 랩퍼다. [[서울]] [[목동 (서울)|목동]]에 거주하며, 친구 [[O.D]]와 함께 힙합 팀 '[[구단지 독서실]]'의 멤버이다. 음악적으론 [[라임]]을 중시한 [[랩]] 스타일이 특이하다. 그리고 이센스와의 디스전이 있었고, 이센스가 랩 정으로 갈 수 있는데 든든한 발 받침대가 되주었다.현재는 모 대기업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 교육 과정을 밟으며, 1996년부터 랩 메이킹을 시작하며 [[힙합]]에 뛰어들었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NOMZ 프로젝트, 개놈 프로젝트 등 비정규 음반에 참여했다. 1집 발매 이전에는 [[힙합플레이야]]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곡을 올리며 활동하였으며, 2005년 라디오 프로그램 Open Mic의 선발자로 출연했고, 이어서 구단지 독서실 1집 앨범을 발매했다. 이후 여러 언더 힙합 앨범에 참여하며, 2008년 구단지 독서실 2집 '라임왕'을 발매했다. [[서울시립대]] 경학부를 졸업하였다.
         [[서울시립대학교]] 경학부 졸
  • T.O. 모로우 . . . . 5회 일치
         52 이벤트에서는 [[사이언스 스쿼드]](Science Squad)에 합류하기도 했다.
         New 52에서는 [[스타 연구소]] 소속이며 [[사이보그]]의 아버지인 스톤 박사의 동료이기도 하다. 뉴52 저스티스 리그의 초반을 다룬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 워에서도 등장.
         애니메이션 [[ 저스티스]]에 등장. 이쪽에서도 레드 토네이도를 만들었으나 결국 그에게 패한다. 한편 극중에 먼저 등장했던 모로우는 진짜가 아니었고 진짜 모로우는 몸 태가 정이 아닌 판.
  • 강동진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문 표기 =
         |사진 사이즈 =
         현재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위치한 강동진베이스볼 (야구교실) 을 운중에 있다.
         * [[한국사이버대학교]]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사이버대학교 동문]]
  • 강사빈 . . . . 5회 일치
         보재이설선생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청소년위원장
         '''강사빈'''(姜士斌, [[2001년]] [[3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이자 [[청소년]] 지역 활동가이다.<ref>{{웹 인용|url=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2141282|제목=강사빈|언어=ko|확인날짜=2018-10-06}}</ref> [[2017년]] 사단법인 한국역사진흥원 창립준비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장이 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청소년]]의 신분으로는 [[전례]] 없는 [[사단법인]]의 설립을 도전하여 6개월여만에 성공하였다. [[2017년]] [[12월]], 그는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에서 [[민법]] 제 32조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및 [[문화재청]]" 소관으로 사단법인 한국역사진흥원의 설립을 허가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86987|제목=고등학교 다니며, 사단법인 경하는 한국 최연소 사회기관단체인 강사빈 - 국제뉴스|날짜=2018-03-09|언어=ko|확인날짜=2018-10-06}}</ref> 이외에도 [[2017년]] [[8월]] [[헤이그 특사 사건]]의 주요 인물이었던 [[독립운동가]] [[이설]] 선생의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에서 청소년위원장으로 위촉되기도 하며 여러 활동들을 펼쳐나간다.
         강사빈은 [[2001년]] [[3월 26일]]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나 [[2014년]]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있는 [[인천대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017년]]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청심국제중학교]]를 졸업하여 현재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있는 [[인천포스코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2017년]]부터 사단법인 한국역사진흥원 원장, 보재이설선생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18년]]에는 함께하구로 프로젝트, 청소년 역사 아카데미 사업 등을 이끌며 [[서울특별시]] [[구로구]]를 중심으로 지역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gjfnews.org/8514|제목=[국제언론인클럽(GJCNEWS)] 강사빈 한국역사진흥원 원장, ˝앞으로 지역 단위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사회의 공헌을 위하여 노력할 것...˝|뉴스=국제언론인클럽(GJCNEWS)|확인날짜=2018-10-26}}</ref>
         * [[2017년]] [[8월]] 보재이설선생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청소년위원장
  • 개밥 . . . . 5회 일치
         말 그대로 "개가 먹는 밥", 혹은 여기에서 따와서 "개한테나 줄 만큼 맛 없는 밥"이나 그 모습이 보기 안 좋은 밥을 뜻한다. 개사료를 개밥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과거 농촌에서는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 찌꺼기를 개에게 먹으라고 줬으며, 현대에도 특별히 개를 신경써서 기르지 않는 경우에는 먹고 남은걸 대충 섞어서 개한테 먹으라고 준다. 음식 찌꺼기이므로 양분은 있지만, 남은 잔반을 마구 섞어버렸으니 사람이 먹기에는 겉모습이 이하고 맛도 좋지 않아서 "개밥"이라고 하면 이러한 음식을 뜻하게 됐다.
          * 보기 안 좋은 요리 : 뭔가 아무렇게나 막 섞은 밥을 개밥이라고 부른다. 겉모양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먹는 음식은 양 밸런스나 염분 측면에서 개의 몸에 그리 좋지 않아, 장기적으로는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0화 . . . . 5회 일치
          * 기한 타이헤이는 우마루가 일찍부터 깨어있는걸 발견한다.
          * 이런 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한 탓에 카나우는 가버린 봄바를 원망한다.
          * 그런데 타이헤이는 카나우 말에 맞장구치며 이렇게 밤샘을 하면 학교 생활에도 향을 줄 거라고 진지하게 말한다.
          * 얘기를 나누던 중 카나우가 "너희 여동생은 그럴거 같지 않은 인이었는데"라고 말하자 타이헤이가 그렇지도 않다고 답한다.
          * 타이헤이는 아무렇지 않게 우마루의 건어물 모드의 실을 말해주려고 하는데 순간 멈칫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4화 . . . . 5회 일치
          * 이 만화에서 아무도 묻지 않았던 터부를 건드린 편집장. 정작 키리에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미팅 후 도마가에서 우마루(코마루모드)와 노는데, 미팅의 일 때문인지 넋이 나간 태. 편집장은 그림책 에서 설명할 필욘 없지만 "작가 본인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정론으로 지적했던 것이다. 키리에도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 키리에의 태가 이한걸 눈치챈 우마루. 키리에는 얼버무리려고 허둥댄다. 그러다 문득 "스승님은 잘하는게 뭔가요"라고 묻는다. 우마루는 FPS에서 헤드샷을 잘 쏘고 맛만 봐서 콜라 브랜드를 구분하고 자려고 하면 언제든 잠드는 것 등을 얘기한다. 키리에는 굉장하다면서 특기를 전수해달라고 한다.
          이것도 저것도 되지 않자 우마루는 어차피 배울 필요도 없는 기술이라고 위로한다. 키리에는 생각 끝에 자신의 고민을 고백한다. 우마루를 쭉 스승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자신도 의미를 알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제자로 받아달라고 한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자신은 이하게 오버하게 돼서 민폐를 끼치는 일이 있고, 지금도 스승님에게 민폐가 아닌지 걱정된다고 한다.
  • 검은 조직 . . . . 5회 일치
         정말 무서운 점은, '''어차피 얘들이 딱히 없어도''' 코난 월드에서 살인은 일사이며, 신이치는 정기적으로 살인범을 잡고 다녔을 것이고, 얘들이 없어진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초에 작중에서 '''검은조직이 죽인 사람보다 그냥 일반인이 빡돌아서 죽인 사람이 훨씬 더 많다.'''--잡든 말든, 딱히 변하는건 없다.--
         오히려 검은 조직은 당히 신중하게 처신&보기에도 수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이 동네의 일반 살인범은 아무리 봐도 멀쩡해보이던 인간이 갑자기 분노하면 트릭을 써서 사람을 쓱싹 해치우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분류:명탐정 코난]] [[분류:악의 조직]] [[분류:가의 조직]]
  • 검은방 시리즈 . . . . 5회 일치
          전 시리즈에 개근한 주인공. 과거 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어린아이와 여승아 둘 중 하나밖에 구할 수 없는 황에 처했고, 결국 여승아를 구했다. 이 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여승아)과 함께 감금당하게 되지만 하무열의 도움과 자신의 추리력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전 시리즈의 개근하는 조력자. 강력반 형사로, 1편의 사건 당시 허강민의 의도와 관없이 납치당했다. 어쩌다가 납치당한 하무열로 인해 몰살로 끝나야 했던 허강민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검은방 당시 부을 입어 사이버수사대로 전근갔으나 계속해서 허강민에 의해 납치 감금당한다.
          검은방 1편의 범인. 스포일러 틀까지 쓰면서 스포일러 경고했다. 두명의 동생을 두고 있었으나 한명은 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다른 한명은 그 충격에 빠진 태로 입대했다가 중대장의 갈굼으로 자살. 두 동생의 죽음에 연관된 이들에게 복수하고자 검은방 1편에서의 사건을 일으켰지만 류태현과 하무열에게 저지당한다.
  • 골든 위크 . . . . 5회 일치
         이 시기에 4월 29일 쇼와의 날(昭和の日), 5월 3일 헌법기념일, 5월 4일 녹색의 날(みどりの日, 식목일과 비슷), 5월 5일 어린이 날, 여기에 더해서 5월 1일 노동절이 있으며, 이 사이에 끼인 휴일이나 일요일이 겹친 대체휴일 등이 있어서 대략 1주일 정도의 연휴가 된다.
         골든 위크라는 이름은 이 시기에 "자유학교"라는 화를 개봉하고 흥행이 정월, 오봉 연휴 이으로 대성공한 것을 기념하여, 다수의 관객 동원을 목적으로 화사 다이에이(大映)가 1952년 무렵에 만든 선전 용어였다. 이 용어가 각계에 퍼지게 되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선전 용어라는 이유로 골든 위크라는 표현은 쓰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 여담으로 이 말은 2004년에 손해보험 재팬이라는 회사가 표등록을 했다.
  • 구천서 (야구인) . . . . 5회 일치
         |문 표기 = Koo Cheon-Seo
         |사진 사이즈 =
         |출신지 = [[경북도]] [[대구시]]
         구천서는 1981년 대통령배 실업 연맹전에서 최우수 신인을 받았다. 이후 쌍둥이 동생 [[구재서]]와 함께 1981년부터 업은행에서 활약했다. [[1982년]] 한국 프로 야구가 출범하면서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원년 멤버로 동생과 함께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 권정열 . . . . 5회 일치
          * 위 문서: [[10cm]]
         ||<#eee> '''출생''' ||<(> [[1983년]] [[3월 1일]] ([age(1983-03-01)]세), [[경북도]] [[구미시]] ||
         ||<#eee> '''배우자''' ||<(> [[옥달빛|김윤주]] ||
         대한민국의 가수로 [[10cm]]의 멤버였으며 2017년 7월부터 원맨밴드로 활동하고 있다. 예전에 [[옥달빛]]의 김윤주와 열애 중인 게 밝혀졌으며, 2014년 6월 14일 부로 결혼했다.
         || [[참 잘했어요! 바른생활소녀 희]] || → || '''[[감성충만 중2병 청개구리 왕자]]''' || → || [[입술 위에 츄~ 내 노래에 츄~ 레드마우스]] ||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 . . . . 5회 일치
         >오 년 전, Carl Johnson은 갱단 간의 마찰과 마약, 부패로 얼룩진 San Andreas의 Los Santos에서 삶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습니다. San Andreas. 그곳은 화 스타나 백만장자들이 마약 거래이나 폭력 패거리와 얽히지 않도록 몸을 사리는 곳입니다.
         >-[[http://store.steampowered.com/app/12120/|스팀 점 페이지]]의 소개문
         Grand Theft Auto: San Andreas. 범죄 샌드박스 게임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의 시리즈 중 하나. [[캘리포니아]]와 [[라스베가스]]를 모티브로 한 가의 지역 "산 안드레아스"를 배경으로, 갱단원 "칼 존슨"이 무너진 자신의 [[갱단]]을 다시 일으키는 내용을 담고있다.
          그로브 스트리트 패밀리즈의 단원. OG록(OG Loc)이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래퍼]]가 되고 싶어하지만 실력은 아니다.
  • 기동전사 건담 실루엣 포뮬러 91 . . . . 5회 일치
         코믹스는 사이버 코믹스(CYBER COMIX)[* 반다이에서 발매한 SF 만화 잡지. 건담계열 작품이 많이 연재되었는데, '''온갖 괴작'''이 넘쳐나는 잡지였다. 건담으로 닌자물이 되어버린 G의 인이나, 마법의 소위 블래스터 마리 등등(…)]와 MS SAGA에서 발표되었다. 이후 단행본으로 출시. 소설은 MJ 지에서 발표되었다.
         토키오가 연방군에 복무하고 있을 시기의 사. [[대머리]]에 투박하게 생긴 외모로서, 건담에서는 보기 드문 '전형적인 악역'.
         네오 사이코뮤 시스템으로 네오 건담 1호기를 조종. 최종전에서는 토키오와 레이라의 협공에 패배하여 사망한다.
         잔당들을 이끄는 지도자. 사실 '촌장' 정도.
  • 김근 (고려) . . . . 5회 일치
         '''김근'''(金覲, ? ~ ?)은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신라]]왕실의 후예이다. [[김부일]], [[김부필 (고려)|김부필]], [[김부식]](金富軾), [[김부의 (고려)|김부의]] 형제의 아버지이자 [[김돈중]], [[김돈시]]의 할아버지이다.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慶州). [[경북도]] 출신.
         본관은 경주로 역사가 김부식의 아버지이다. 신라 왕실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경주]] 주장(州長)에 임명되었던 위(魏英)이고 아버지는 원충(元冲)이다. 그의 생애 초기나 가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며, 아들 4형제가 중앙관료로 진출할 때까지는 경주에서 생활했다 한다.
         [[1080년]](문종 34년) [[호부]][[서]] [[유홍]](柳洪), [[예부]][[시랑]] [[박인량]](朴寅亮) 등과 함께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송나라]]에 갔을 때 그는 [[박인량]]과 함께 시를 지었는데, 그의 시문에 감탄한 송나라 사람들이 직접 그에게 소화집(小華集) 이라는 문집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1086년]](선종 3년) [[예부]][[시랑]]으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이자위(李子威)와 함께 [[성균관]]시(成均館試)를 관장했고, 뒤에 [[국자감 (고려)|국자감]][[좨주]](國子監祭酒左) 겸 좌간의대부(諫議大夫)에 올랐다. 네 아들 [[김부필]]·[[김부일]]·[[김부식]]·[[김부의]] 모두가 글을 잘하고 관직에 올라 문벌을 형성하였다.
         * 할아버지 : 김위(金魏英)
         [[분류:김부식]][[분류:고려 중기의 문신]][[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고려의 외교관]][[분류:고려의 시인]][[분류:경주 김씨]]
  • 김덕 . . . . 5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경기고등학교/졸업생]]
         ||<width=30%><:> 제 20 대[br] ,,,(직무대행 송대),,, ||<width=5%><:> → ||<width=30%><:> 제 21 대[br]''' 김 덕 ''' ||<width=5%><:> → ||<width=30%><:> 제 22 대[br][[나웅배]] ||
         ||<width=30%> 제 19 대[br][[이현우#s-3|이현우]] ||<width=5%><:> → ||<width=30%> 제 20 대[br]''' 김 덕 ''' ||<width=5%><:> → ||<width=30%><:> 제 21 대[br][[권해]] ||
         1935년 [[경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1993년 2월 [[김삼]] 정부가 출범하자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원장|부장]]에 임명되었고, 1994년 12월까지 부임하였다. 1994년 12월 내각 개편으로 통일원(현 [[통일부]]) [[통일부 장관|장관]] 겸 부총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연기 문건이 논란이 되어 같은 해 2월 경질되었다.
  • 김동건 (법조인) . . . . 5회 일치
         1946년에 [[경북도]] 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제1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75년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1997년 서울민사지방법원 1979년 [[대전지방법원]] 1981년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1982년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1985년에 댑덥원 재판연구관을 하다가 1987년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되었다. 1989년 사법연수원 교수 1992년 법원행정처 조사국장을 하였지만 1991년 서울형사지방법원, 1993년 대구고등법원, 1994년 대구지방법원, 1995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장으로서 재판을 심리하였다. 1997년에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하였으며 2000년에 제주지방법원장에 임명되어 2004년 2월 서울고등법원장이 되기 까지 수원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였다. 2005년 2월 서울고등법원장에서 물러난 이후 법무법인 바른 대표 변호사와 학교법인 남학원 이사장, 참여불교재가연대 대표를 맡다가 2007년 11월에 임기 2년의 제11대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09년 9월에는 제3기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하다가 2012년에 법무법인 바른 명예대표 변호사ㄱ, 천고법치문화재단 이사를 지내면서 2017년 2월에 법무법인 천우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 서울형사지방법원은 1992년 5월 4일에 지하철 구내 화장실에서 여성을 강제추행하여 구속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일반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역이 범죄의 온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며 전철역 강제추행 사건으로는 처음으로 실형을 선고하면서 징역2년6월을 선고했다.
         * 서울고등법원은 1995년 9월 21일에 부천시 세금 횡령사건으로 징역10년을 선고받은 부천시 원미구청 세무과 직원에게 업무 횡령을 적용해 징역8년 추징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문집 . . . . 5회 일치
         |url=http://www.artnstudy.com/zineasf/Nowart/penitence/lecture/03.htm}}</ref>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제목=<nowiki>[정진의 대구이야기] (19) 대구의 두 친일 문인</nowiki>
         |저자=정
         [[분류:1907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20세기 일본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일본인]]
  • 김보민 . . . . 5회 일치
         | 훈 =
         | 웹사이트 = {{싸이월드|21687260}}
         * [[홍익대학교]] 경학부
         * [[2004년]] : [[KBS2]] 《[[생방송 세의 아침]]》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회]][[분류:대한민국의화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미술평론가]][[분류:프랫대학교 동문]][[분류:비디오자기]][[분류:대한민국의미술가]][[분류:설치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음악평론가]][[분류:순흥 김씨]][[분류:대한민국의 시사평론가]]
  • 김봉환(1921) . . . . 5회 일치
         1921년 [[경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경북도 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민주당(대한민국)|자유민주당]] [[김현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1967년)|신민당]] [[박만원]]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김현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7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을 역임하였다.
         || 1963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도 선산군-[[군위군]]) ||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 - || '''당선''' || ||
         || 1967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도 선산군-[[군위군]]) ||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 - || '''당선''' || ||
         || 1971 || [[제8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도 선산군-[[군위군]]) ||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 - || '''당선''' || ||
  • 김재홍 (1958년) . . . . 5회 일치
         * 2013년 3월 ~ 2014년 7월 : 산업통자원부 제1차관
         |전임자 = [[윤직]]<br/>(지식경제부 제1차관)
         |직책 = 초대 [[대한민국의 산업통자원부 차관|산업통자원부 제1차관]]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자원부 차관]][[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태한 . . . . 5회 일치
         |문 표기 = Kim Tae-Han
         |사진 사이즈 =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분류:1969년 태어남]][[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
  • 김형렬 (1959년) . . . . 5회 일치
         * 대구선초등학교(1965년 3월 ~ 1971년 2월)
         * 제15대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경북종합황실 실장(1997년)
         * 제16대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경북종합황실 실장(2002년)
         * 한나라당 근 전략 기획위원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선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호근 . . . . 5회 일치
         |학력= [[남대학교]] 경제학 학사
         |웹사이
         * [[남대학교]] 경제학 학사
         == 수 경력 ==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
  • 나고야 대학 여학생 살인사건 . . . . 5회 일치
         범행을 한 것과 같은 해인 2014년 7월 7일에는 이 같은 트윗을 올리는 등. [[살인마]]를 동경하는 이 심리를 보이고 있었다. 사카키바라 세이토 이외에 [[가토 토모히로]], [[아사하라 쇼코]]에 대해서도 동경하는 트윗을 올리고 있었다.
         오오우치 마리아는 [[청소년]] 시기에 이미 각종 흉악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2005년에 어머니에게 [[탈륨]]을 복용시켜서 살해하려고 한 '[[시즈오카 여고생 모친 독살 미수 사건]]'의 향을 받아, [[황산탈륨]]을 가지고 다니면서 [[독살]] 시도를 저질렀다.
         입시를 앞둔 시기에는 [[황산탈륨]]을 [[쥬스]]에 넣어서 동급생 남학생을 살해하려 했다. 이 남학생은 거의 실명에 이를 뻔 했으나 원인 불명의 건강 이으로 처리되었다. 교내에서는 범행을 의심하는 소문이 퍼졌고, 병원에서도 학교 측에 특수한 약물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통보했으나, 학교에서는 입시철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요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안이하게 처리하였다.
         == 세 ==
         오오우치 마리아는 범행 후 센다이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귀성했지만 그 때도 도끼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 [[흉기]]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지만, 오오우치 마리아는 체포된 이후 취조에서 이 "보물"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소중한 물건은 항 가지고 다니는게 당연하다고 단언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6화 . . . . 5회 일치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탈환을 앞두고 프로 히어로, [[유우에이 고등학교|웅고]], 학생들 사이에서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이 감돈다.
          * 웅고의 기자회견 장소에서는 기자들이 인정사정없이 돌직구를 던져대고 있다.
          * 어떤 기자가 학생들에게 전투 허가를 내린 부분을 물고 늘어진다. [[아이자와 쇼타|아이자와]]는 "최악의 황을 피하기 위해 내린 조처"라고 답변하는데, "잡혀간 학생(바쿠고)한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묻는 등 집요하게 도발한다.
          * 히어로들이 움직이는 이 느긋하게 설득할 시간도 없다며 "[[올 포 원|선생]]"에게 힘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8화 . . . . 5회 일치
          * 빌런연합의 구성원은 그 신원 또한 경찰에 의해 밝혀진 태.
          * 이미 뇌무는 엔데버의 커버 범위 조차 넘어선 황.
          * 래그돌은 [[와일드 와일드 푸시 캣츠]]의 동료인 토라에게 구출되지만 어쩐지 폐인같은 태.--쩡같은 일을 당했나--
          * 미도리야 일행은 프로 히어로들이 황을 정리했다고 생각해서 돌아가려고 한다.
          * 현장에 남은 미도리야 일행이 올 포 원을 대하는 전개일 듯 싶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0화 . . . . 5회 일치
         어려운 황에 놓이는 [[올마이트]]와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 올마이트는 바쿠고를 빼내려고 하지만 올 포 원과 겨루는 황에선 여유롭지 못하다.
          * [[미도리야 이즈쿠|미도리야]]는 황을 보고 올마이트가 바쿠고를 구하는 것도, 바쿠고가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도 힘들 거라고 판단한다.
          * [[이이다 텐야|이이다]]는 처음엔 반대했지만 "교전은 하지 않는다"는 미도리야의 설명과 황의 어려움을 보고 결국 동의한다.
          * 그리고 예처럼 바쿠고는 폭발력으로 높이 뛰어 올라 키리시마의 손을 잡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3화 . . . . 5회 일치
          * 과거를 회하는 올마이트.
          * 학생 시절의 그는 모두가 웃으며 살 수 있는 세을 만들기 위해서 "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그랜토리노]]는 젊은 시절 나나가 올마이트(당시 토시노리)를 말하던 것을 회한다.
          * 올 포 원은 머슬폼인 오른팔로 받아칠 거라고 예해서 충격 반전을 치지만 빗나갔다. 그는 올마이트의 속셈을 깨닫고 "오산했다"고 중얼거린다.
  • 날갯죽지 조르기 . . . . 5회 일치
         대의 등뒤에서, 대의 양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집어넣고, 대의 후두부 쪽에서 양 손을 단단히 잡아서 조른다. 하가이(羽交い)란, 새의 날갯죽지(좌우 날개가 만나는 부분)나 날개 자체를 뜻하며, 이 기술의 명칭도 거기에서 유래한다.
         체포술의 하나이며, 대를 체포하거나 싸움을 말리는데 사용한다. 반대로 범죄자가 피해자의 움직임을 봉쇄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레슬링에서는 넬슨 홀드(Nelson hold)라고 부른다. 다양한 응용 기술이 존재하며, 아마추어 레슬링에서는 이 자세로 머리를 압박하여 공격하는 것이 기본이다. 프로레슬링에서는 이 자세를 시작하여 대를 집어던지는 파생 기술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 날조트랩 -NTR- . . . . 5회 일치
         어릴 때 남자들에게 자주 울려졌다. 과거부터 유마 이외의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않아서 주변에서는 고립된 인을 주고 있었다. 유마가 농구부에 들어가면서 함께 보내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자, 빈정거리는 듯이 3학년 선배 남자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사귀게 된 적이 있다. 중1때 남자친구를 만들었고, 이후로도 자주 남자친구를 갈아치워서 주변에서는 [[빗치]]로 여겨지고 있다.
         1화에서 타케다와의 데이트를 앞둔 유마에게 '장난'을 하고, 데이트를 마치고 온 뒤에는 '키스'를 하면서 둘 만의 '비밀'을 만들게 된다. 유마에게 자주 장난을 걸지만 유마는 일선을 넘지 못하고, 호타루는 질투심에 유마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3학년 때는 돈을 벌어서 집을 나가겠다며 네코미미 메이드카페에서 수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유마와의 관계에 불안감을 느끼다가, 유마가 후지와라와 호타루 때문에 데이트 시간에 늦게 되자 잠시 거리를 두자면서 멀어지게 된다. 유마가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불안감을 느낀다. 타케다와 헤어지고 나서 자신이 나쁜 짓을 했다고 후회하는 유마를 본 호타루가 화해를 주선해서 일단 친구 사이로 돌아간다.
         미즈시나 호타루의 남자친구. 얼굴도 미남, 머리도 좋다. 타케다와는 사이가 좋다. 유마에 대한 호타루의 감정을 눈치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마가 호타루와 이한 짓을 하게 되면서 타케다를 은근히 배신하게 되자 유마에게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네마와시 . . . . 5회 일치
          * 사전교섭 : 협, 회의 같은 것을 수행하기 전에, 미리 사전 교섭을 진행해두는 것이다. 비공식적으로 미리 협이나 회의에 나올 사람들에게 교섭을 하여, 실제 협이나 회의를 원할하게 진행하는 것을 뜻한다.
          * 협, 회의의 사전교섭에서 나온 말로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공작활동. 어떤 갈등관계가 예될 때 주변에 자신에게 유리한 소문을 미리 퍼트리거나, 사실을 미리 알려두는 작업이다.
  • 농가 . . . . 5회 일치
          * 농가(農家) : [[농업]]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 [[자농]].
         [[시골]]에 있는 오래된 농가(農家)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전시대적・봉건적・인권을 무시하는 사고 양식・행동 양식을 당연하다는 듯이 타인에게도 강제하는 인간, 또는 그 가정이나, 마을 등의 공동체. 농업 종사자로서의 「농가(農家)」, 또는 현대적으로 식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농가(農家)」와는 구별하기 위해서 태어난 말이다. 고름 농(膿)을 사용한다.
         농가(膿家)적 사고방식을 기와 같은 행동 양식을, 절대지으로 여기며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강제하는 생각. 또는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 「농가뇌(農家脳)」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농가(膿家)」와 같이, 최저한의 식을 가지고 있는 농업 종사자는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 니세코이/222화 . . . . 5회 일치
          * 그 사이 치토게는 모든 것을 단념한 듯 약속의 장소를 떠난다.
          * 클로드는 이치죠와 치토게가 만나서 처 받으면 어쩔 거냐고 하는데
          * 츠구미는 "처를 입을 거라면 마음껏 처를 입으면 될 일" 그러나 "반드시 다시 일어나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어줄 거라 믿는다"고 말한다.
          * 클로드는 치토게에겐 무른 면이 있다며 치유되지 못하는 처를 입으면 어쩔거냐고 하는데
  • 니세코이/224화 . . . . 5회 일치
          * 마리카는 "당신이 산 정에 있다고 이치죠에게 말했다"며 있던 장소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 마리카는 자신이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바꾸지 못한걸 해냈으면서 그렇게 시시한 걸로 포기하지 말라며 치토게에게 산 정으로 가라고 다그친다.
          * 겨우 깨닫게된 치토게는 마리카에게 감사를 전하고 산정으로 향한다.
          * 새벽이 지나고, 이치죠는 산정에 도착한다.
          * 그때 마침 오노데라도 산정에 도달한다.
  • 니세코이/229화 . . . . 5회 일치
          * 유이는 임신중. 마리카는 이치죠보다 좋은 남자를 만나겠다며 맞선을 보고 다닌다. 대는 치바현의 Y씨?
          * 유이는 따로 결혼해서 임신한 태. 남편은 나오지 않는다.
          * 마리카는 맞선 보고 다니는데 여념이 없다. 여전히 혼다가 옆에 있다. 이치죠보다 좋은 남자를 만나는게 목표. 좀처럼 괜찮은 대가 없는 듯.
          * 그리고 이번 맞선 대는 바로 치바현의...
          * 팬덤은 초집 분위기로 승자인 치토게 파벌은 도망쳐서 나오지 않는 느낌.
  • 니시노 카나 . . . . 5회 일치
         4th 앨범 「Love Place」로 「제54회 빛나라! 일본 레콛 대(輝く!日本レコード大賞)」에서 최우수 앨범.
         2013년, 데뷔 5주년 가념으로 첫 베스트 앨범 「Love Collection ~pink~ /~mint~」 2장을 동시에 릴리즈 하여, 85만장 이 판매.
         * [[유혜]]
  • 니트 . . . . 5회 일치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의 약어. 본래 국의 노동정책에서 쓰이던 말이다.
          * 평소 수익이 없는 15세 이, 34세 이하의 개인
         1999년에 국에서 탄생하였다. 당초에는 매우 좁은 범위로서, 16~18세를 대으로만 쓰였으며, 현재는 거의 사어가 되어 있다.
         참고로 [[라틴어]]로 neat는 빛나다는 뜻. 어로 neat는 깔끔하다, 산뜻하다는 의미이다.
  • 닌자 거북이 . . . . 5회 일치
         [[방사능]]에 의해 네마리 [[거북이]]들이 돌연변이화해 사람과 유사한 모습이 되고, [[닌자]]가 되어 악당들과 싸운다는 내용. 세계적인 인기를 가진 시리즈이며 국내에도 80년대의 애니메이션이 방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에도 애니메이션과 게임, 화가 만들어졌다.
          거북이들의 스승이자 사실 양부.
          화 3부작에서 등장하는 괴물들.
         == 화 ==
  • 대군 . . . . 5회 일치
         거대한 규모의 군대라는 뜻.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 '대군'의 기준은 달라지는데, 이는 각 국가마다 인구수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1만명 정도면 대군으로 여겨졌으나, 점차 십만 이은 되어야 대군으로 여겨지게 된다.
         근대에는 국가 총력전 체계가 갖추어지면서 양차대전을 거쳐서 몇백만~몇천만 규모의 인구가 전투에 투입될 지경에 도달하였다. 역사 최대의 대군이 투입된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현대전에서는 첨단 병기가 발전하고 총력전이 없어져 제한전에 국한되면서 군 인원 자체의 규모는 줄어드는 황이다.
          * [[창대군]]
         외교문서에서 '일본국 대군(日本國 大君)'이라는 칭호를 썼다. 이는 명목의 왕인 '[[덴노]]'와 실권자인 '쇼군'이 따로 존재하는 일본 정치의 특수성을 외부에 얼버무리기 위해 사용한 정치적 술책이다. 어떻게보면 [[외왕내제]]의 일종.
  • 데드맨 . . . . 5회 일치
         본명은 보스턴 브랜드(Boston Brand). 본래 [[서커스]]의 곡예사였으나 [[공중그네]] 공연 도중 저격당해 죽었다. 하지만 [[유령]]으로 남은 태.
         능력은 빙의.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태에서 데드맨이 들어온 사람은 잠이 든 것처럼 된다.
         2000년대부터 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데드맨을 화화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http://www.dccomics.com/characters/deadman|DC 코믹스 홈페이지의 데드맨 설명 페이지(문)]]
  • 데일리 야마자키 . . . . 5회 일치
         [[야마자키 제빵 주식회사]]에서 운하는 [[편의점]] 프랜차일즈. 세븐일레븐, 로손, 패밀리 마트 등의 대규모 편의점에 비해서는 보기 드물다.
         본래 개인경 빵집이나, 주점이 가맹점으로 전환한 경우가 많다. 점포 운에 소유자의 자주성을 존중하며, 다른 편의점에 비하여 본부의 간섭이 적다. 이 때문에 서비스의 수준, 품 전개에 격차가 심해서 "싫어하는 편의점 랭킹"에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 편의점들 가운데서는 특이하게 소비 기한의 제한에 가까워진 품을 할인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
  • 독이 든 성배 . . . . 5회 일치
         'Chalice'는 기독교의 미사에서 [[포도주]]를 담는 성배를 뜻한다. 기독교에서 미사에서 쓰이는 축성된 포도주는 예수의 성혈을 의미하며, 이를 마심으로서 예수의 축복을 받아 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어진다. 그런데 여기다가 독을 넣어버리면 생을 얻는다고 미사를 올리다가 [[끔살]](…)당하게 되버린다.
         광스러운 자리지만 동시에 책임이 많은 지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유용성이 높지만 위험도가 높은 기술 등에 사용하는 단어이다.
          * 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3편에서 잘못된 성배를 마시면 끔살 당하는데 마치 이 관용구를 연케 한다.
  • 동왕부 . . . . 5회 일치
         동왕부는 서왕모에서 파생된 신으로, 한나라 시기에 나타났다. 본래 서왕모는 독립적으로 묘사되었으며, [[반인반수]], [[양성구유]]로 묘사되거나, 천제(天帝) 혹은 제(上帝)가 지으로 강림할 때 지에서 그를 맞이하는 여신으로서의 역할을 지니고 있었다.
         서왕모 자체의 양성구유, 혹은 천의 천제-지의 서왕모라는 구도는 한나라 시기에 급격하게 바뀌었는데, 서왕모가 서쪽을 관장하는 신격이 되면서 동쪽을 관장하는 신격의 필요성이 나타난 것이다.[* 시대적으로 보자면, 춘추전국시대 여러 나라로 분리되어 있었던 중국이 하나의 국가([[진제국]], [[한제국]])이 나타나면서 '중앙'(자국)에 대응하는 '사방'(국경,외계)의 개념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 랄프 알거 배그놀드 . . . . 5회 일치
         1915년 가족 전통에 따라 국 육군 왕립 공병대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전쟁이 끝날 때 까지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복무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학을 공부하였다.
         1921년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후 또다시 군대에 입대하였다. [[카이로]]에 배치된 배그놀드는 리비아 사막을 최초로 횡단하는 기록을 세우는 등 여러 탐험을 하다가 1935년에 퇴역하게 된다. 그는 잉글랜드로 돌아와 자신이 사막을 탐사하면서 얻은 경험을 담은 《리비아의 사막: 죽은 세에서의 여행》[* Libyan Sands: Travel in a Dead World. 국내 정발된 책이 아니기에 임의로 번역한 제목이다.]을 집필한다.
         [[https://www.egu.eu/awards-medals/portrait-ralph-alger-bagnold/|(문)유럽 지구과학 협회의 랄프 배그놀드 설명]]
         [[http://www.nytimes.com/1990/06/01/obituaries/ralph-bagnold-94-expert-on-physics-of-sand-in-the-desert.html|(문)뉴욕타임즈의 랄프 배그놀드 사망 기사]]
         [[https://www.iwm.org.uk/collections/item/object/30028094|(문)제국전쟁박물관의 배그놀드 태양 나침반 설명]]
  • 로빈 . . . . 5회 일치
         [[배트맨]]의 [[사이드킥]]. [[알프레드 페니워스]]와 함께 배트맨의 오랜 동료다. 초대 로빈인 딕 그레이슨이 가장 유명한 로빈이며 배트맨에게 있어서는 사실 아들이나 다름없는 존재. 10대 히어로 팀인 [[틴 타이탄스]]에서도 주요 캐릭터다. 그러다보니 현 시점에서는 배트맨의 사이드킥만이 아닌 별도의 히어로 캐릭터이기도 하다.
         배트맨 관련 매체에서 자주 등장해왔으며 국내에서도 방한 [[배트맨 TAS]]에서도 등장. 이후의 배트맨 NBA에서도 등장했다.
         사이드킥으로 등장했으나 점차 젊은 히어로 느낌이 되었다.
  • 류명선(야구선수) . . . . 5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계명대 재학 중인 1988 신인지명 때 삼성에 1차 지명을 받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 참가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실업팀인 [[세일통 야구단]]에 입단해 1989년에 삼성에 입단했다.
         프로 첫해인 1989년 4월 12일에는 첫 완투승을, 5월 24일에는 첫 완봉승을 거두는 등 14승 8패 1세이브의 성적을 기록하며 당시 [[김시진]]의 이적으로 자칫 약화될 수도 있었던 삼성 투수진을 [[김성길]]과 함께 같이 지켰다. 타격 2위를 차지한 강기웅과 함께 그해 삼성의 대표적인 유력 신인이었지만, 신인왕은 19승을 거두며 맹활약한 [[태평양 돌핀스]]의 [[박정현(야구선수)|박정현]]이 차지했다. 이듬해 [[이태일]]이 입단하며, 김성길 등과 함께 1990년대 초 삼성 선발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물론 이 시기에는 [[김엽]]도 있었지만 1990년을 제외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다.] 입단 동기였던 [[정윤수]]가 1990년 선발과 중무리를 오가며 혹사 당한 끝에 1991년 이후에는 위력이 크게 저하된 것을, 생각하면 내구성도 좋았던 편.
         1992년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해 갔는데, 때마침 1993년에 등장한 [[박충식]] - [[김태한]] - [[김엽]] - [[성준(야구선수)|성준]]으로 이어지는 삼성 선발진이 모두 10승 이을 기록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원투수로 나와서 혼자 2패를 당해 당시 삼성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류명선에게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이들 2패는 광주와 잠실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것이었다. 만약 홈인 대구에서 패한 것이었다면, 더욱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잠실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는 해태 김성한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고, 이후 시리즈 전체의 판도가 해태에 기울어지면서 더욱 뼈아픈 장면이 되었다.
  • 마기/298화 . . . . 5회 일치
          * 엘리오합트 왕국은 여성들이 체를 그대로 노출하는게 문화다
          * 샤를르칸이 '''겁나 큰 뱀'''을 감고 있는건 이 나라의 관습. 왕족은 모두 그렇게 하지만 신드바드와 있을 땐 기후 하지 못했다고. 쇠사슬을 감고 다닌 이유는 뱀 대신이었다
          * 이제는 세이 평화로워졌고 전쟁의 위험이 없어져 왕국의 내분도 사라졌기 때문에 돌아와 왕이 되었다.
          * 알리바바는 지금의 신드바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데 여전히 존경하고 "세계를 평화롭게 만든다"는 꿈을 이뤄냈다며 대단하다고 평한다. 그러나 한 편으론 "나라 보다도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은 더이 따라가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힌다
          * 여성의 체 노출을 신경도 쓰지 않는 엘리오합트 왕국의 문화가 매우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감사합니다--
  • 마기/323화 . . . . 5회 일치
          * 행복하게 웃는 신드바드의 혼.
          * 마침내 신드바드의 육신은 재로 변하고 신드바드의 혼은 루프로 돌아간다.
          * 루프에겐 익숙한 목소리가 들여오더니 소용돌이치고 이윽고 형이 나타난다.
          * 신드바드의 완전한 사망. 유력한 최종보스 후보였고, 설사 다윗이 부활해도 신드바드의 육체로 부활할 거란 예측이 우세했기 때문에 당히 충격적.
          * 다윗의 부활과 성궁을 장악하는 것까진 대부분 예했지만, 설마 그것도 훼이크고 우고가 짱짱맨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 매카시즘은 이제 매카시워즘이다 . . . . 5회 일치
         [[공화당]]의 조지프 매카시 원의원이 미국 사회 각계 각층의 수많은 인사들을 공산주의의 주구로 모함하고 다니며 개판을 치다 급기야는 미국 군부까지 공산주의 세력으로 모는 병크를 터뜨렸고, 전쟁웅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한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매카시 의원을 버리고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등 매카시를 정치적으로 거세[* 탄핵소추안 자체는 통과되지 않았으나, 명예를 존중하는 원에서는 탄핵소추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로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인증 당한 것과 같다.]해 버렸다. 위의 발언은 이러한 '매카시즘의 종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발언.
         아이젠하워는 1955년 7월에 있었던 공화당 지도부 모임에서는 "매카시즘은 더 이 없다."(“It’s no longer McCarthyism,”), "매카시워즘일 뿐이다."(“It’s McCarthywasm.”)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 몇번이나 이런 말을 하고 다닌걸 보면 아이젠하워 개인은 당히 마음에 들었던 농담인듯.--캬 각하의 유우머 센스~!--
  • 머라이온 . . . . 5회 일치
         [[싱가포르]]의 징물. [[물고기]] 몸과 [[사자]]의 머리를 가진 환종.
         싱가포르의 징이지만 별로 크거나 한 것은 아니라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기로 이름이 높다.
          * 머라이온 석은 입에서 물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토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어로 쓰인다.
         [[분류:싱가포르]][[분류:환종]]
  • 메일빙 . . . . 5회 일치
         일반 [[택배]]와는 달리, 택배 물품을 수취인의 우편함에 그냥 집어넣고 신경끄는 서비스(…). 배달 일시 지정이나 수취인에게 제대로 갔는지 확인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 대신 요금이 싸다. 주로 [[책]], [[잡지]], [[품 카탈로그]] 등 경량 소형 화물을 대으로 하며, 메일빙으로 보낼 수 있는 물건은 크기나 무게가 제한되어 있다. 쿠로네코 메일빙의 경우 최대 크기 B4, 두께 2센티미터, 무게 1 킬로로 제한되어 있다.
         [[야마토 운수]]가 1997년에 우편 사업 민화를 예하여, 「쿠로네코 메일빙(クロネコメール便)」을 시작한 것이 첫번째 사례이다. 일본 우정은 2007년 [[민화]] 되면서 기존의 책자 소포(冊子小包)를 「유우 메일(ゆうメール)」로 이름을 바꿔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 목소리가 뒤집히다 . . . . 5회 일치
         우라가에테루(裏返ってる)란 사물이 뒤집혀서 뒷면이 드러난 태를 뜻한다. '겉면'에는 일반적이고 정적인 태, '뒷면(우라,裏)'에는 비정적인 태라는 의미가 있어, 목소리에서 뒷면이 드러났다는 것은 곧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가 되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 몬스리 . . . . 5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행정국 차장인 28살의 여성. [[레프카]]의 행동대장이자 부관으로, 항 최전선에 서는 우수한 지휘관이자 여전사. 두뇌가 명석하고 냉정 침착한 성격으로 [[브라이아크 라오|라오 박사]] 추적과 하이하버 급습 같은 중요한 작전의 지휘를 맡았다.
         하이하버를 일시적으로 점령했을 시기, 그녀는 살아있는 개를 보고는 평소와 다른 온화한 모습을 보이고는 과거를 회한다.
         회이 끝나고, 이때의 모습은 그전까지의 냉혹함과 다른 모습이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던 코난이 모습을 보이는데 이때 서로 잠시 침묵하다 코난에게 라나를 구했는지 묻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놀라움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도 봐주지는 않겠다며 권총을 빼들며, 코난은 도주. 그녀의 총알은 한 발도 명중하지 못했지만 이후 나타난 부하들이 코난을 추적하려 하자 소용없다는 말을 남기고 그냥 가버리는 것을 보면 일부러 코난을 놔준 듯도 하다. 그후 하이하버에 들이닥친 해일 탓에 잡히게 되는데 코난에게 라오 박사 구출에 동행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 진심어린 부탁에 당황한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세에 대해 분노가 컸는지 첫등장 시기에 코난의 할아버지에게 너희 세대 때문에 세이 이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분노를 토하기도 했다.
  • 못난 나를 사랑해주세요 . . . . 5회 일치
         무직 30대 여성 미치코를 묘사하는 러브코미디. [[저금]]을 깍아가며 연하의 그이에게 헌신하던 나날을 보내던 미치코가, 싫어했던 예전 사와 마을에서 우연히 재회한다.
         미치코의 옛 직장사. 현재 [[탈 샐러리맨]]을 시작하여 [[찻집]]을 경하고 있다. 본래 불량배 출신. 무섭지만 사람을 잘 돌봐준다.
         쿠로자와 아유무가 마음을 품고 있던 대, 쿠로자와 하지메와 결혼하였다.
         미치코의 첫 애인. [[간사이벤]]을 사용하며 연하남.
  • 문병권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문 표기 = Mun Byeong-Kwon
         |사진 사이즈 =
         |출신지 =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8년]] [[월 일]] <br /> 구장 대 [[대 팀]]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1993년]] [[월 일]] <br /> 구장 대 [[대 팀]]
  • 미스터 판타스틱 . . . . 5회 일치
         능력은 [[고무]]같은 유연성을 가진 육체. 몸과 팔다리를 길게 늘릴 수 있으며, 밧줄 같이 되어 대를 포박하거나 몸을 얇고 넓게 펼쳐 [[날다람쥐]]처럼 하늘을 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른 형태로 위장하는 것도 가능. 종이처럼 얇게 녹을 수 있으며 대부분의 물리적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초능력 외에도 [[지구]]에서 가장 우수한 과학적 지능을 가진 히어로이다. 리드 리처즈는 [[마블 코믹스]]의 지구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중 하나로서 전기,기계 및 항공우주공학,전자공학, 화학, 물리학의 모든 수준,그리고 인간과 외계 생물학에도 숙달한 천재다. [[타임머신]]이나 차원도약장치 정도는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과학자이다.
         현재 일어난 사건이 혹은 일어나게 될 사건이 다른 우주에서 일어났을 경우 해당우주의 주민들이 어떻게 그 황에 대처했는지를 관측하고 그걸 분석해내는데 사용하는 것.
         훗날 정부의 원조로 우주선 발사가 가능해졌을 때 리드는 우주 비행사가 된 벤과 성인이 된 수, 그리고 수의 동생인 자니 스톰(휴먼 토치 II)와 함께 직접 우주선을 타고 시험비행에 나선다. 그러나 리드의 예치 못한 실수로 네 사람은 우주방사선에 노출되고, [[지구]]에 돌아온 뒤 그들의 육체가 변화를 일으킨 것을 알게 된 네 명의 초인들은 자신들의 힘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기로 하고 '판타스틱 포'를 결성하게 된다.
  • 미즈코 . . . . 5회 일치
         일본 오컬트 용어. 본래는 어린 시절에 죽은 아이들의 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1980년대 무렵부터 [[낙태]]로 죽은 아이들의 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미즈코 공양'이라고 하여, 낙태로 죽은 아이들을 공양하는 종교단체(주로 불교사원)이 있다.
         낙태된 아이들에 대한 공양 자체는 에도 시대부터 존재하였는데,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빨간 턱받이를 한 지장보살' 석이 바로 이러한 낙태된 아이나 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망한 아이들을 공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석이다.
         이처럼 지장보살 석을 만들어 공양하는 이유는, 일본에선 태어나기 전에 유산됐거나 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어 '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 유아들은 죽어서도 삼도천을 건너지 못해 강가에서 발만 구르다가 지옥의 나졸들에게 괴롭힘당한다고 믿어졌기 때문으로, 이러한 아이들을 지장보살이 보호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 민생위원 . . . . 5회 일치
         민생위원법에 따라서 지역사회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봉사하는 민간 봉사자로서 법률적으로는 무급 비근 특별직 공무원.
         지역의 실정을 잘 아는 사람을 대으로 하여, 도도부현지사의 추천을 받아 후생노동대신(후생노동성의 장관)에게 위촉되어 임명된다. 민생위원은 후생노동성의 기준에 따라서 교육 훈련을 받는다.
         아동복지법이 만들어지면서 민생위원은 아동위원(児童委員)을 겸하여 아동담소와도 연계하여 활동한다.
         민생위원제도 이전에는 1917년에 오카야마 현에 제세고문(済世顧問), 도쿄에 구제위원(救済委員), 오사카에 방면위원(方面委員)등의 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제도는 지역의 인, 공장주, 의사, 스님 등 지역의 실정을 잘 아는 사람을 명예직 위원으로 위촉하여, 생활담, 생활지도, 호적 정리, 구제품 급부 등을 담당하게 한 것이다. 1936년에 방면위원제도로 전국에 통일되어 실시되었다.
  • 바르나바 복음서 . . . . 5회 일치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사본은 문헌 비평 등으로 미루어보아,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로 된 바르나바 복음서는 대략 14세기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문서의 생활 묘사나 지식으로 미루어보아, 일반적으로 [[중세]] 시기에 만들어진 문헌으로 추정하고 있다.
         20세기에 [[어]]로 번역이 이루어졌고, [[파키스탄]] 등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 출판되어 당히 많은 관심을 끌었다.
          * 지옥의 묘사나, 9단계의 하늘 등이 [[단테]]의 [[신곡]]에서 나온 천국이나 지옥의 묘사와 유사하여, 바르나바의 복음서가 단테의 신곡에 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 [[포도주]]를 보관할 대 나무통을 사용하는 묘사가 있어, 항아리를 사용했던 팔레스타인 지역과 생활이 다르다.
  •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 . . . 5회 일치
          * [[바이오하자드 다크사이드 크로니클즈]] (2010)
          * Resident Evil Degeneration (2008)[* 동명의 화를 베이스로 만든 [[iOS]] 게임이다. 팬이라도 돈이 아까울 듯한 사실 망조게임.]
          * 항 [[Herb|허브]](약초)가 체력회복 아이템으로 등장하는 전통이 있다.
          * 화화도 되었다. 제목은 레지던트 이블. 게임의 해외판 이름이기도 하다.
  • 바키도/117화 . . . . 5회 일치
          * 피클은 일도양단될 듯 보였으나 안면근육과 반신 근육으로 칼날을 잡아 버린다.
          * 피클은 안면근육과 반신 근육 전체를 집중해 날이 닿는 순간 잡아버린 것이다.
          * 피클은 잡고 있던 칼을 놓자 처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 무사시는 아직도 일어서지 못한 태. 그리고 피클은 무사시의 칼을 집어든다.
          * 황이 너무 말같지 않아서 욕할 기분도 안 드는 에피소드.
  • 바키도/134화 . . . . 5회 일치
          * 무사시를 대로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쟁취했지만 모토베 이조는 심각한 부으로 병원행이 된다. 장소는 시노기 쿠레하 선생이 근무하는 병원. 무사한건 오른팔 뿐인데 그나마도 여유롭게 움직이진 못하는 것 같다.
          * 모토베는 그런 것도 "틀린건 아니었다"며 대수롭게 넘어간다. 오히려 "모토베에겐 무리다, 정적인 판단"이라고 자학적인 발언을 한다. 10번 싸우면 10번 다 지는 자신이 괴물같은 투사들을 지키겠다고 했으니, 화낼만도 하다는 것이다.
          * 모토베는 그 사과를 놀라워하는 듯고 기뻐하는 듯도 보인다. 그는 바키의 "지최강의 애송이"란 호칭을 부르더니 그는 "보물"이며 이 시대의 징이라고 말한다. "힘"이란 개념을 바로 그가 계승하고 있다는 것.
  • 박정호 . . . . 5회 일치
         |학력 = [[대구고등학교]]<br />[[고려대학교]] 경학과 학사<br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경학 석사<br />
         |웹사이트 =
         * [[고려대학교]] 경학과 학사
         *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경학 석사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5회 일치
         본명 : 뱌아체슬라브 미하일로비치 스크랴빈(Vyacheslav Mikhailovich Skryabin)[* 대부분의 소련 지도자가 그렇듯이 혁명용 [[가명]]이 사실 본명화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국가방위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국]], [[미국]]과의 동맹 체결, [[국제연합]]을 창설한 샌프란스시코 회의(1945), [[테헤란 회담]](1943), [[얄타 회담]](1945), [[포츠담 회담]](1945) 등 연합국의 각종 굵직한 회담에 모두 이름을 내밀었다.
         이후 몽골대사(1957∼1960년), [[국제원자력기구]] 임대표(1960∼1961년)을 역임, 1962년 은퇴했다. 1964년 6월에 당중앙위원회 총회에서 반당 행위를 비판받아 모든 당적을 박탈당했다고 발표되었다. 이후 조용히 살다가 1984년 명예회복, 복권되었다.
         [[화염병]]을 뜻하는 은어 [[몰로토프 칵테일]]은, [[소련]]과 [[핀란드]] 사이에서 벌어진 [[겨울전쟁]]에서 몰로토프가 소련군이 [[폭격]]을 퍼붓고 있음에도, "우리 군은 핀란드 인민에게 빵을 공수하고 있다."는 [[망언]]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발언에 빡친 핀란드 측에서 "빵을 받았으니 칵테일로 돌려주마!"라면서 화염병에 이름을 붙인 것이 어원이라고 한다.[http://chemistry.about.com/od/firecombustionchemistry/a/molotovcocktail.htm 참조출처]
         어찌된 문인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알려지게 된 화염병의 생산을 명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7m4256a 참조]]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소련의 KS방화수류탄의 별명이 '몰로토프 수류탄'이라서 혼동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는데, 인용 문헌이 없어서 확실하지 않다.[http://ja.wikipedia.org/wiki/%E3%83%A2%E3%83%AD%E3%83%88%E3%83%95%E7%81%AB%E7%82%8E%E6%89%8B%E6%A6%B4%E5%BC%BE 참조]
  • 변질자 . . . . 5회 일치
         성격이나 성질이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사람. 그 때문에 타인에게 폐를 끼친다. 특히 성적으로 이한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흔히 [[변태]]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는데 변태는 특별히 범죄를 저지르거나 폐를 끼치지 않아도 이한 사람, 변질자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에게 주로 사용한다. 즉, 변태가 범죄나 민폐를 저지르면 변질자로 클래스 체인지 한다.
         퇴폐, 변질을 뜻하는 [[프랑스어]] dégénéré에서 나온 말이다. 과거에 [[동성애자]]들이 정이 아닌, '이'으로 간주되었던 것에 기원을 가진다. 성적인 퇴폐, 정신장애를 사회적 병리와 동일시한 [[우생학]]과 연관이 되어 있는 말이다.
          * 일본어에서는 길가에서 뭔가 이한 사람을 만나서 피해를 당했을 경우, 「변질자가 나타났다(変質者が現れた)」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변태가 나타났다(変態が現れた)」고는 하지 않는다.
  • 보루토/5화 . . . . 5회 일치
          * 보루토는 "제대로 설교 당했으면 이런 황은 오지 않았다"고 반발한다.
          * 나루토는 심치 않은 직감을 느끼고 보루토를 보호한다.
          * 신키는 괴한을 대하려 하는데 가아라가 역량을 파악하라며 자중시킨다.
          * 사스케는 당히 구체적인 내용까지 해독에 성공했는데, 이들이 미수를 모아 "단"이라는 약을 연성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 보루토는 자신이 가진 과학닌구을 연하는데, 나루토가 모모츠키를 "도핑에 의지하는 비겁자"라고 비난하자 찔리는 얼굴을 한다.
  • 보루토/6화 . . . . 5회 일치
          * 우즈마키 히나타는 옆 병에서 치료 중. 우치하 사쿠라의 치료를 받고 있다.
          * 히나타는 거기에 맞서다 부을 당해 정신을 잃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듯.
          * 히마와리는 병 곁에서 어머니를 지켜보고 있다.
          * 병실에 있는걸 견디지 못하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는데, 그러다 바닥에 놓인 구급자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 보루토는 아버지의 책을 살펴보는데 거기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입었던 재킷이 놓여있다.
  • 봉화군 . . . . 5회 일치
         운면'''||祥雲面||1,007||1,867|| 58.53
         * [[김기덕 (1960년)|김기덕]] - 화 감독
         * [[변섭]] - 제7대 문화재청장
         * [[홍진]] - 트로트 가수
         [[분류:봉화군 출신|봉화 출신 인물]][[분류:경북도의 군]][[분류:1895년 설치]][[분류:1914년 폐지]][[분류:1914년 설치]]
  • 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 . . 5회 일치
         [[분류:주시 출신 인물]]
         [[분류:덕군 출신 인물]]
         [[분류:양군 출신 인물]]
         [[분류:주시 출신 인물]]
         [[분류:천시 출신 인물]]
  • 블랙 클로버/57화 . . . . 5회 일치
         * 장소는 왕귀계의 해안가 마을 라크에라. 강한 마나의 향으로 언제나 무더운 지방이다.
         * 매그너는 왠지 훈도시차림으로 수한다고 설치는데 락이 전기로 불을 붙여서 소동이 난다.
         * 고슈는 거울 마법으로 마리에게 해안가를 보여주는데, 마리가 아스타랑 수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아스타를 죽이기 위해 쫓아다닌다.
         * 노엘은 아스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새 수복을 샀지만, 아스타는 노는데 정신팔려 노엘에게 신경을 안 쓴다.
         * 아스타는 고자같지만 사실 수복 입은 여자들을 보고 코피도 흘리는 건전한(?) 청소년. 하지만 노엘에겐 반응이 없다.
  • 블랙 클로버/64화 . . . . 5회 일치
         베토를 대로 분투하는 락과 매그너
          * 예대로 매그너는 언제나 전력으로 되갚아주러 왔는데 그러는 사이에 최근에 와서야 "나에게 처음으로 생긴 친구"였음을 자각하게 된다.
          * 키아토는 춤을 추며 무의식의 트랜스 태가 되는 요령이라고 가르쳐주는데, 아스타는 또 즉석에서 해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 둘은 평범하게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는 대임을 인정하고 2인분의 마력을 한 순간에 합쳐서 공격을 가한다.
  • 블랙 클로버/65화 . . . . 5회 일치
          * 대신관은 락 볼티어와 매그너 스윙이 혼신을 다 해 싸웠음에도 처하나 내지 못했다며 경악한다.
          * 강화마법을 써서 자신보다 높은 신체능력을 가진 대에게 약하다.
          *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고 승산도 없는데 무모한 공격을 퍼부으니 쉽게 치명을 입는다고 비난한다.
          * 그 태에서 뭐라고 말을 하는데 베토는 못 알아듣는다.
          * 베토는 육체파치고는 대의 전력과 특기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통찰력을 과시한다.
  • 블랙 클로버/66화 . . . . 5회 일치
          * 이번 적도 함정 타입의 마법을 사용하며 넝쿨에 잡힌 대에게서 마력을 뽑아낼 수 있다.
          * 고슈는 하필 그리모어까지 붙잡혀 마법을 쓸 수 없는 황.
          * 챠미를 깨워보려고 하지만 수면마법의 향인지 좀채 일어나지 않고, 그레이는 변신 마법 뿐이라 공격력을 기대할 수 없다.
          * 적은 급변한 황에 당황해하고 일어난 챠미는 적이 자신의 고기를 가로채려는 걸로 인식한다.
          * 챠미는 나름대로 챙겨주는데 알고보니 그레이는 24살로 연. 참고로 고슈와 챠미는 동갑이다.
  • 블랙 클로버/69화 . . . . 5회 일치
          * 노엘 실버는 제 3의 눈을 뜬 절망의 베토를 보고 전설의 마족을 연한다.
          * 일어선 아스타는 몸태를 염려하는 노엘을 안심시킨다.
          * 카호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그의 태를 회복시켜 준 것.
          * 베토는 아스타의 몸태를 비웃으며 뭘할 수 있겠냐고 한다.
  • 블랙 클로버/82화 . . . . 5회 일치
          * 한편 한 발 앞서 고향으로 돌아간 바네사. 그녀는 마녀들의 여왕을 대로 위험한 거래를 시도한다.
          * 금발 여성은 도미넌트 코드. 도미나란 애칭이 있고 젤의 아내이다. 마도구 장인인 마녀로 바네사 에노테이커와는 지인사이.
          * 흑발의 여성은 마리엘라. 젤의 제자이다. 당한 독설가.
          * 숲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응하는 대가가 필요한데, 특히 바네사는 마녀의 여왕에게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이번에 돌아가면 다시 나오기 힘들거라고 말한다.
          * 검은 폭우 아지트에 있던 아스타는 여전히 부 중인 주제에 스쿼트를 하며 체력단련을 하고 있다.
  • 블랙 클로버/87화 . . . . 5회 일치
          * 노엘이 틈을 만들어서 퇴각하는 검은 폭우. 노엘은 자신만이 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주춤댄다.
          * 필살기를 쓰겠다고 벼르던 아스타지만 증오의 파나가 퍼붓는 맹공에는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공격에 명중한 것도 아니지만 열기에서 오는 압력만으로 몸이 밀려날 정도다. 혼자서는 접근이 불가능한데 너무 강한 마력 탓에 마나 역장이 형성되어 핀랄 룰러케이트의 공간 마법이 제대로 형성되질 않는다. 바네사 에노테이커의 실마법도 실을 내놓는 족족 열기에 타들어가서 무용지물이 된 태.
          * 노엘은 무지막지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물마법 말고는 대처방안이 없다고 판단한다. 자신이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을 되뇌이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 언제나 형제들의 비웃음 거리였던 과거. 그들의 비웃음소리가 생생히 들려온다. 노엘의 의지가 꺾이려는 찰나, 어디선가 "그렇지 않아. 넌 강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지팡이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
          그때 파나가 머리 위에서 공격을 시도한다. 노엘은 "해룡의 포효"를 한 발 정도 밖에 쓸 수 없는 황. 이 한 방에 모든걸 걸어야 한다.
          * 압도적인 위력을 과시했던 파나가 이 마법에는 경악한다. 전방에 거대한 얼음벽을 만들어서 공격을 흘려보내며 가까스로 회피. 노엘은 잠시 의지가 약해질 뻔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해룡의 포효를 조작한다. 빗나갔던 마법이 급격히 방향을 틀어 샐러맨더의 등뒤로 떨어진다. 예치 못한 일격에 당한 파나는 기세가 꺾이고 노엘은 지팡이를 바라보며 "브루스, 내가 해냈어"라고 독백한다.
  • 블랙 클로버/96화 . . . . 5회 일치
          * 하지만 여왕이 어떤 마법을 사용하자 쓰러져 있던 아스타로부터 심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데.
          * 패배를 예감한 [[라드로스]]는 태도를 일변해서 "다시는 사람들을 처입히지 않겠다"며 목숨을 구걸한다. 그는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게 제발 검을 빼달라고 애원한다.
          * 그러나 아스타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항 생각없어 보이는 아스타지만 라드로스가 강하며 혹시라도 뺐다가 반격 당하면 승산이 없을 테니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물론 라드로스는 이대로는 죽을 거라며 징징대는데 아스타는 "그정도로는 안 죽는다"고 확실하게 못박는다. 라드로스는 감정에 호소하면 먹힐 거라고 여겼지만 그게 완전히 오산. 아스타는 여러 수라장을 헤쳐오면서 단련돼서 그정도 심리전은 먹히지 않았다.
          * [[마르스(블랙 클로버)|마르스]]의 치료에 전력하고 있던 [[파나(블랙 클로버)|파나]]는 무방비한 태에서 라드로스에게 사로잡힌다. 그는 파나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파나의 샐러맨더의 힘을 빼앗을 작정이었다. 파나를 위협해서 아까와 같은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 보라고 강요한다.
          * 아직까지 쓰러져 있는 아스타. 라드로스는 그가 완전히 뻗었다고 생각하고 끝장을 내려고 한다. 그런데 아스타가 심치 않은 기운을 휘감으며 일어선다. 오른팔이 검은 불길 같은 것으로 휩쌓이더니, 그가 딛고 일어서는 곳으로부터 풀과 꽃이 급속히 시들어가는데.
  • 블랙 클로버/97화 . . . . 5회 일치
          * 지금 아스타는 반마법의 힘 자체가 빙의한 태로 마력이 없는 "단순한 결함품"으로 태어난 아스타만이 가능하다.
          * 아스타는 아무 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 던져져 있다. 그것은 자신의 정신세계 같은 것이지만 아스타는 이 위도 아래도 없는 공간에 당황해서 자신이 죽은게 아닌가 의심한다. 아직 시스터와 결혼도 못했고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약속을 지키지도 못했다고 허둥대는데, 그때 거대한 그림자와 같은 악마의 형이 나타난다. 당황한 아스타는 해괴한 비명을 지르며 누구냐고 묻는다.
          * [[라드로스]]는 기이한 형태로 다시 일어난 아스타를 보고 불길한 느낌을 받는다. [[노엘 실버]]는 지금 아스타가 휘감고 있는게 "마력이 아닌" 무언가라고 느낀다. 마녀의 여왕은 여전히 수정구슬로 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의 각성을 매우 흥미롭게 여긴다.
          * 여왕은 그냥 의식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스타가 제대로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점에 놀란다. 지금 그를 휘감은 검은 그림자는 "단마의 검"에서 나온 반마법의 힘이다. 본래 단마의 검은 반마법의 에너지가 항 흘러나오고 있다. 그 때문에 그 검을 들 수 있는 이는 극소수. 아스타는 "마력이 없다"는 천성 덕분에 아무런 제약없이 검을 사용해왔다. 그러면서 무의식 중에 반마법의 힘을 제어하는 감각을 익혔다.
          * 경악하는 라드로스. 여왕은 이미 이 태의 아스타에겐 어떠한 마법도 소용없다고 단언한다. 라드로스는 무적이 된 자신의 마법이 질리가 없다며 현실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가 힘을 퍼부울 수록 아스타는 그 힘을 가르며 다가온다.
  • 블랙기업 . . . . 5회 일치
         용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는 [[야쿠자]]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만든 세탁기업들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일본에서 폭력단 대책법이 1992년 제정된 이후 경찰들이 야쿠자를 잡아들이기가 쉬워지자 야쿠자들이 명목으로는 "나 야쿠자 아니요"라고 하기 위해 야쿠자들이 차린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기존의 야쿠자 조직은 '기업' 형태가 아니라 일종의 '결사'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다나카 요시키]]가 지은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사건부]]에 등장하는 가의 기업 '케이텐 흥업'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 케이스. 이를 '프런트 기업'이라고도 부른다.
         = 세 =
         이게 일본에서 당한 이슈를 끌었기에 [[블랙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지금 나는 한계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라는 제목으로 화화 되었다. 한국에서도 개봉되었으며, 원작 소설도 "블랙회사"라는 제목으로 정식 발매되었다.
  • 블리치/685화 . . . . 5회 일치
          * 그때 급격히 승한 이치고 압을 모두가 느낀다.
          * 유하바하는 당당히 걸어들어오는 이치고를 보며 압이 성장했음을 간파한다.
          * 유하바하는 "(너의 부모는) 너를 낳고 나의 양식이 되기 위해 살았는데 무엇이 슬프냐? 이 이의 행복이 있냐?"고 거듭 도발한다.
          * 이치고를 밀쳐낸 유하바하는 올마이티, 왕의 힘을 전개한다.
  • 블리치/687화 . . . . 5회 일치
          * 유하바하는 "네가 죽으면 소울 소사이어티는 끝인데 그래도 되겠냐"고 조롱한다.
          * 퀸시의 압을 받아서 무언가를 깨우려 한다는데.
          * 그러는 사이 이치고의 참백도가 하얗게 변해간다.
          * 또 한 번 유하바하의 공격이 덮치는데, 그 사이에서 이치고가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 과거 아란칼이나 바이저드에 가까운 형에서 가면이 처음부터 없고 뿔이 한쪽만 난 형태.
  • 빈스 맥마흔 . . . . 5회 일치
         그의 게이 성향은 WWE가 WCW에 밀려서 망할 지경이 되자 본격적으로 드러났는데, 궁지에 몰린 빈스는 자기 스스로 링에 올라가 레슬러들에게 "내 엉덩이에 키스를 해라!"고 소리치는 광적인 퍼포먼스를 벌이게 됐다. 이는 평소 빈스가 가지고 있었던 게이로서의 성적 지향성을 드러내는 황이라고 할 수 있다. 식적으로 생각해서, 그가 동성애자가 아닌 이 이런 퍼포먼스가 생각날 리가 없다. 아마도 망하게 생기게 되자 리미터가 풀리면서, 될대로 되라는 심경으로 숨겨진 욕망을 뿜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광적인 퍼포먼스에 일반 팬들은 그냥 쇼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나, 설마 공개적으로 방송되는 WWE에서 공식적으로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드러내는 미친 놈이 있을 리가 없다는 선입견 때문에 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던 숨은 게이들은 이에 열광하였고, WWE의 매은 급승, WCW를 물리치고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 빌리 블랭크스 . . . . 5회 일치
         1970년대부터 각종 드라마, 화에 출연했다. 2006년 부터는 일본에서 얻은 인기 덕분에 일본에서도 CM, 방송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1974년에 [[결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2명의 아들을 두었다. 딸 셰리[* 전처의 딸]는 빌리의 부트캠프에도 출연했다. 아들 빌리 블랭크스 주니어는 에어로빅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에 부인과 [[이혼]]하고, 2009년에 14세 연하로서 자신의 통역을 담당하던 일본인 여성과 재혼했다. 2008년 11월에 일본인 부인과의 사이에서 장녀를 얻었다.
         2009년 6월에 오사카 시내에서 결혼식과 피로연을 열었으며, 7월에 오사카 신사이바시에 트레이닝 스튜디오 빌리 브랭크스 인터내셔널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2009년 4월에 일본에 [[주권]]을 신청했음을 밝혔다.
  • 사택 . . . . 5회 일치
         하지만 2005년에 회계기준이 바뀌어서, 자산가치가 하락한 부동산은 장부에 시가를 공개하도록 되었기 때문에 사택의 노후화로 인한 자산이 손실이 반되었다. 이 때문에 보유하던 사택을 매각하고 임대형태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었다.
         이유는 당연하지만 자산가치의 정확한 평가와 법인세 및 소득세의 확장을 위해서인데, 감가각을 고려하지 않는 건물의 존재는 그것만으로도 장부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잡을 우려가 크다. 또한 직원 복리후생을 통해 법인세를 공제받음에 있어 일본의 적정임대료 책정 방식은,
          * (정가격 - 임대보증금[* 혹은 전세인 경우에는 전세금을 산입할 수 있다.]) * 총리령으로 정한 비율 = 적정임대료
         이다. 이 때문에 감가각이 가해지지 않은 사택은 정가격이 엄청나게 높아진 반면에 회사는 임대보증금을 적절히 조절하면 아주 간편하게 조세회피를 꾀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 적정임대료를 회사가 대신 내 준다고 하면, 여기에 따른 비용은 회사가 직원을 위해 그만큼 지출을 감행한 것이 된다. 부동산 가치가 올랐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정부 입장에선 조세조달이 악화되니(...).
  • 사혈 . . . . 5회 일치
         사실 무려 20세기 초 까지도 사혈은 당히 흔히 있는 치료법이었다. 그 유명한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을 세우는데 공헌한 오슬러(William Osler, 1849~1919)가 “사혈은 폐렴 치료에 좋은 효과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너무 사용을 적게 했다.”는 기술을 남겼을 정도.
          * 동양 전통의학에서는 '어혈'이라는 '죽은 피'가 건강에 나쁜 향을 일으키며, 사혈을 통하여 이를 제거해줌으로서 건강한 신체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 19세기 프랑스의 의학자 브루세(François-Joseph-Victor Broussais, 1772~1838)가 사혈을 위하여 [[거머리]]를 이용하면서 거머리를 이용한 사혈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중세를 다룬 매체에도 거머리를 이용한 사혈법이 나오는데[* 심즈 미디벌 등] 사실 당히 최근에 나타난 것.
          * 의사들이 파를 너무 많이 빼다가 혈액이 부족해서 환자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근데 사혈요법을 맹신하던 의사들은 이를 ‘치료과정에서 생긴 불행한 [[의료사고]]’ 혹은 ‘사혈을 과감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고 판단했다. 사혈 도중에 환자가 의식을 잃으면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 당시 사혈 기록을 보면 정말 사람 잡을 정도로 피를 뽑고, 죽으면 사혈이 부족했다고 애도하는 무섭달지 황당하달지, 싶은 황을 자주 볼 수 있다.
          * 사혈요법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말 그대로 '''잡았으며''', 그냥 내버려둬도 자연치유될 사람이 과도하게 사혈하는 바람에 죽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유명인들 가운데도 사혈 때문에 죽은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 사람은 무척 많다. 사실 사망 직전 기록에 나타나는 미친 사혈질(…)을 보면 병이나 부보다도 오히려 사혈 때문에 죽은 걸로 보이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
  • 생령 . . . . 5회 일치
         [[일본]] [[오컬트]] 심령학계의 용어. 이키료우(いきりょう) 혹은 세이레이(せいれい) 이키스타마(いきすだま)라고 읽는다. 생령이란 살아 있는 사람의 이다. 이와 대조하여 죽은 사람의 을 사령(死霊)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의 혼을 사령이라고 하는 반면, 살아있는 사람이 육체를 떠나서 날아다니는 것을 생령이라고 한다. 생령은 사령과 마찬가지로 어떤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현세에 향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때로는 사람을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생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한 감정에 따라서 날아가기도 하며, 이런 경우 [[도플갱어]]처럼 본래 본인이 있던 곳과 전혀 다른 장소에서 본인이 목격되기도 한다. 증오나 질투 같은 강한 감정을 품고 생령을 날리면, 그 대이 되는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 샤잠 . . . . 5회 일치
         == 화 ==
         드라마화되었다. 다만 통적인 히어로물은 아니고 캡틴 마블이 젊은이들을 돕는 내용.
         [[DC 확장 유니버스]]가 전개되면서 화가 나왔다.
          * DC와 포셋의 법정공방 탓에 캡틴 마블 연재에 지장이 오자 국에선 대체 캐릭터인 마블맨이 나왔다. 이 마블맨은 후에 미라클맨이 되었으며 소속은 마블 코믹스.
  • 소벌도리 . . . . 5회 일치
         [[일연]]의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소벌도리는 하늘에서 형산으로 내려와 돌산고허촌의 촌장이 되었다고 한다.<ref name="연합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447848 <덕천리 유적과 돌산 고허촌과 소벌도리>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기원전 69년]]에 6부의 촌장들이 모여 덕(德)이 있는 자를 찾아 왕으로 삼고 수도를 정해 나라를 열 것을 결의하였는데 나정(蘿井)에서 이한 기운이 비치는 것을 보고 찾아가서 붉은 알을 얻었다고 한다. 그 알에서 나온 아이가 [[박혁거세]]이며, [[기원전 57년]]에 왕으로 옹립하여 [[신라|사로국]]을 건국하였다. 《[[삼국사기]]》는 나정에서 알과 혁거세를 처음 발견하여 양육한 것이 소벌공이라 기록하고 있다. 고허촌은 [[신라 유리왕|유리왕]] 때 사량부(沙梁部)로 개칭되고 최씨(崔氏)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반면 《[[삼국유사]]》에는 정씨(鄭氏)의 조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 부인 : 이름 미
         진주 소씨 족보의 기록에 따르면 25세손 [[최치원]]은 경주 최씨의 시조가 되었고<ref name="연합1" /><ref name="syge1">[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71228001731&subctg1=&subctg2= [대한민국통맥풍수] <57·끝>경주 최부잣집과 자기 풍수 - 세계를 밝히는 신문 - 세계일보<!-- 봇이 붙인 제목 -->]</ref>, 24대손 [[소경 (사람)|소경]]은 진주 소씨의 선조가 되었다.<ref name="hom1">[http://www.hometer.com/search/personalcontent.asp?m_bon=%B5%BF%C1%D6%28%F5%CB%29&m_sung=%C3%D6%28%F5%CB%29 족보나라 - 대한민국 대표 족보 사이트 종친회<!-- 봇이 붙인 제목 -->]</ref> 그 외에 신라 말, 고려시대 초에 살았던 [[최준옹]](崔俊邕) 도 소벌도리의 25세손이다.<ref name="hom1"/>
         [[분류:삼한]][[분류:신라 사람]][[분류:신라의 문신]][[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경주 최씨]][[분류:한국 신화]][[분류:전설]]
  • 송정현 . . . . 5회 일치
         [[1999년]] [[경북 드래곤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발목 부을 입어 재활 치료를 받다가 [[2000년]] 복귀하였다. 하지만 [[2001년]] 다리 부을 입어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고, 이후 1년 간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 [[2003년]] 당시 신생 팀이자 연고 팀인 [[대구 FC]]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2006년]] 친정 팀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하여,<ref>[http://www.dragons.co.kr/news/news.asp?mode=view&category=&boardcode=tb_board_news&idx=6157 송정현, 진순진 입]</ref>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였고,<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061203000144&cid=0101110300000&dataid=200612031710000231 전남, 9년 만에 FA컵 품었다…송정현·김태수 연속골]</ref> [[2007년]] [[포항 스틸러스]]와 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12021657372235 '혼자 2골' 송정현, FA컵 2연패 가능케 한 전남의 웅 ]</ref>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FA]]로 풀린 송정현은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였으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221500532234 울산, FA 송정현 긴급 수혈…전반기 단발 계약]</ref>
         == 수 ==
  • 슈퍼걸(드라마)/1시즌 1화 . . . . 5회 일치
         카라는 윈을 옥으로 불러내서 고백을 하려고 하는데, 윈은 카라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는 건 줄 오해했다가 사실을 고백해도 믿지 않는다. 카라가 투신했다가 날아올라 보이자 겨우 믿는다.
         카라는 윈이 디자인한 의을 입고, 경찰 무선을 해킹해서 얻은 정보로 여러 범죄와 사건들을 해결한다. 그러다가 카라는 DEO 에이전트에게 붙잡힌다.
         에이전트 행크 헨쇼는, 카라가 추락하는 것과 동시에 클립톤의 범죄자들을 모아둔 포트 로즈 역시 지구에 추락했다는걸 알려준다. 행크는 카라의 힘이나 정의의 편이라는 것을 신뢰하지 않고 카라는 심한다.
         포트 로즈에서 뛰쳐나온 많은 악당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으며,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걸 느끼게 된 카라는 크게 심하여 집에 틀어박힌다.
         카라는 발톡스와 대결을 벌이며, 알렉스의 작전에 따라서 히트비전으로 발톡스의 도끼를 파괴한다. 중을 입은 발톡스는 다음에 더 강한 적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며 자결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5화 . . . . 5회 일치
         DEO기지에서 외계인 죄수[* 아무리 봐도 괴물 같은 덩치지만 여자]가 포박을 풀고 날뛰다가 카라에게 제압당한다. 추수감사절이라 카라와 알렉스의 엄마가 찾아오는데, 알렉스는 엄마가 온다면서 엄마[* 배우는 1984년작 슈퍼걸의 여주인공이다.]가 카라가 슈퍼걸이 된 걸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고 있다. 라디오 DJ 레슬리 윌리스는 방송에서 슈퍼걸을 엄청나게 욕해댄다. 윈은 [[추수감사절]]에 함께 지낼 대도 없다는걸 말하고, 카라는 윈을 추수감사절에 초대한다.
         레슬리는 중태에 빠져서 병원에 입원. 번개의 향으로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변하게 된다. 카라와 그랜트는 레슬리를 병문안 오지만 그녀는 꺠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사라지자 레슬리의 주변에서 스파크가 일어난다.
         내셔널 시티는 정전 태에 빠진다. 행크는 번개가 클립톤인 DNA를 통해서 레슬리가 변화하게 된 것이라고 추정하며, DEO에서 체포하고 있는 자로넛을 이용해서 라이브와이어를 잡자고 한다.
         카라는 그랜트에게 가족과 다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카라는 가족에게 가보겠다고 결심한다. 알렉스는 정전이 된 황이라 엄마가 걱정되어 엄마를 찾아온다. 알렉스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앙금을 풀어내는데, 곧 DEO의 호출이 와서 떠나게 된다.
         라이브와이어는 DEO에 포획되어 감금된다. 카라와 알렉스는 DEO와 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내려고 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5회 일치
         루시는 제임스에게 아버지를 만나보자고 한다. 제임스는 루시의 아버지는 슈퍼맨을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는 군인이라며 불편하게 여긴다. 그랜트 사장은 어머니의 방문을 받는데 역시 불편한 황에 놓인다.
         카라는 레드 토네이도와 대결을 벌인다. 카라는 레드 토네이도를 제압하는데 성공하지만, 화가 난 태였기 때문인지 과도하게 타격을 입힌다. 레드 토네이도는 긴급 생존 모드가 발동하여 통제에서 벗어나고 만다. 레인 장군는 슈퍼걸이 과도했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그랜트는 카라가 바로 오지 않자 고함을 지르는데, 카라는 왜 그렇게 못되게 구냐고 분노를 퍼붓는다. 그랜트는 갑자기 어디로 가자고 카라를 끌고 간다. 알렉스는 레드 토네이도의 팔을 맥스웰 로드에게 가져와서, 찾는데 협력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맥스웰은 알렉스의 요청을 거절한다. 제임스는 루시, 레인 장군과 식사를 가진다. 레인 장군은 지미를 파파라치라고 비하하며 딸에게 어울리지 않는 대라고 깍아내린다.
         또 행크의 눈이 수하게 붉게 빛난다.
         회사에서 그랜트의 어머니가 카라를 질책하는데, 그랜트는 카라를 두둔해주고 카라는 그랜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카라가 우연히 유리잔을 떨어뜨리는데, 카라는 유리를 잡으려다가 처를 입고 피가 나는 것을 목격한다.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 . . 5회 일치
         격투 게임의 대표적인 [[게임]]이며 <스트리트 파이터>를 시작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나와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인지도도 남달랐는데 격투가의 전형인 류는 지금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유명세에 어울리게 이후의 격투 게임 중에는 당장 아류라 불러도 이하지 않을 정도로 스파와 비슷한 게임들도 많이 나왔으며 캐릭터도 스파 시리즈와 비슷하거나 그러한 포지션에 있는 캐릭터들도 많았다. 그만큼 이 게임 시리즈의 존재감은 보통이 아니다.
         가매체에서의 격투가 그렇듯 현실적인 격투보다는 가매체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캡콤의 태가 태인지라 많은 프랜차이즈가 뭐한 판에서 유지되고 있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 스틸오션/독일 . . . . 5회 일치
         >필라우는 러시아 제국의 주문으로 단치히에서 건조중인 경순양함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이 순양함을 독일에 의해 몰수되어 독일 해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전시에 필라우는 제2 정찰대에 배속되어 북해와 발트해에서 활동했다. 1915년 리가 만 해전에 참가해 러시아 해군을 대로 전투를 치뤘다. 1916년 5월, 필라우는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해 대구경탄에 맞아 큰 손을 입었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전투순양함 자이들리츠(Seydlitz)가 항구까지 도달하는걸 도왔다. 1917년 헬리골란트 바이트 해전에도 참가했다. 종전후 전쟁보함으로 이탈리아에 양도, 바리(Bari)로 개명되었다. 바리는 제2차 세계대전 초반에 미군의 공습으로 격침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3~4척만의 경순양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자 독일은 각각 6,000톤에 달하는 쾨니히스베르크급 경순양함 세척을 설계했다. 초도함인 쾨니히스베르크는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쾨니히스베르크는 발트해에서 훈련함으로 활동하다 북해의 기뢰 부설 임무를 맡게되었다. 베저위붕 작전 도중, 베르겐 해안포에 의해 쾨니히스베르크가 피해를 입었고, 다음날 최소 다섯대의 국 폭격기에 의해 격침되었다.
         >M급은 독일 해군의 Z 계획 하에 계획된 함급으로, 150mm 주포를 장비한 7,800t 짜리 경순양함이었다. 해 습격과 교란 작전을 위해 비교적 빠른 속도를 가질 예정이었다. 여섯척의 M급 경순양함이 계획되었지만, 건조가 완료된건 하나도 없었다.
  • 스틸오션/미국 . . . . 5회 일치
         >1930년대 발생한 경제 위기는 미국의 조선 공업을 사실 정지시켰다. 1934의 뉴딜 계획에 따라, 신형 디젤-전기식 고속 잠수함인 P급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기술의 발전에더 불구하고 P급 잠수함은 뇌격 능력이 부족했다. 훗날 설계된 많은 잠수함이 P급의 설계에 기반을 두고있다. 10척의 P급 잠수함이 세개의 배치(batch)를 거쳐 건조되었다. 각각의 배치는 이전 배치보다 근소한 성능 향을 보였다.
         >국 구축함에 기반을 두어 건조된 패러것급 구축함은 전간기 설계를 사용한 첫 미국 구축함이다. 대형 선실과 연돌 두개를 장비한 패러것급 구축함은 5인치 함포와 Mk.37 사격통제장치로 무장하였다. 초기 패러것급은 다섯개의 포탑을 장비했다. 모너핸(Monaghan)은 진주만 공습 당시 폭뢰로 일본 잠수함을 격침시켰다.
         >15문의 6인치 함포로 무장한 브루클린급 순양함은 일본 모가미급의 대항마로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이들은 최전선 각지에서 활동했다. 헬레나(Helena)는 쿨라 만 해전에서 어뢰에 맞아 격침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몇몇 브루클린급이 다른 나라로 양도되었다. 그중 하나인 헤네랄 벨그라노(General Belgrano)-예전 이름은 피닉스(Phoenix)-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국 구축함에 의해 격침되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급 전함은 "올-빅-건" 설계를 채용한 첫번째 미국 전함이다. 국의 드레드노트급보다 먼저 설계되었지만, 드레드노트보다 늦게 완성되었다. 화력, 방호 능력, 항해 속도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 오랜 시간 사용되었다. 총 두척의 사우스 캐롤라이나급 전함이 건조되었다. 1921년 말~1922년 초 퇴역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 식극의 소마/188화 . . . . 5회 일치
          * 하야마 아키라가 쓴 스페셜 케이준 스파이시는 곰고기의 냄새를 완벽하게 향시켰다.
          * 대머리 군단은 하야마 또한 냄새와 맛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을 텐데, 여유만만이라는 말을 하고 쿠가 테루노리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 프라이드 베어는 한 눈에 보기에도 최태로 튀겨져 있다.
          * 하야마는 파공세로 소마를 밀어붙이고 있는 격이지만 그 와중에도 소마 일행과 즐거웠던 한때를 추억한다.
  • 신웅 . . . . 5회 일치
         | 출생지 ={{KOR}} [[경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5길)
         | 웹사이트 =
         '''신경식'''(1953년 11월 30일 ~ )은 예명 '''신웅'''으로 잘 알려진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이다. 아들은 가수 [[신유 (1982년)|신유]]이다. 현재는 아들인 신유의 프로듀서 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ref name="신웅">{{웹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495486.html|제목=뽕짝뽕짝~우리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웹사이트=[[한겨레]]|날짜=2011년 9월 8일}}</ref> 비공식 집계로 3,000만장의 음반을 판매하였다.<ref name="신웅"/>
         | 출판사 = 남일보
         데뷔 전에는 [[구미시]]의 건전지 회사 등 회사원으로 일했다.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대구 동명로에서 통기타 공연을 하며 밤업소 무대에서 일했다. 그러다 1979년 경북도 칠곡군 으로 이주하였고, [[1982년]]에 아들 [[신유 (1982년)|신유]]를 얻었다.
  • 싸움 . . . . 5회 일치
         크게는 둘 이의 개체가 물리적으로 대립하는 현 전반을 이를 수 있으나 보통은 둘 이의 인간이 물리적, 사적인 형태로 대립하여 충돌하는 것을 이른다. 이것의 스케일이 일정 수준 이으로 커지고 격화되면 '[[전쟁]]'이라고 하게 된다.
  • 아이박 . . . . 5회 일치
         마찬가지로 샤잠의 빌런인 [[닥터 시바나]]와 협력하기도 했으며 샤잠의 적들이 모인 몬스터 소사이어티 오브 이블에 합류하기도 했다. DC 코믹스 악당들의 대규모 집단인 시크릿 소사이어티 오브 슈퍼 빌런즈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등장 시기는 히 오래된 빌런으로 샤잠의 이름이 [[캡틴 마블]]이던 시절부터 등장해왔다.
         현대의 악당이었으나 뉴52에서는 설정이 변경되어 과거 [[블랙 아담]]이 인간이던 시절에 칸다크를 침공한 폭군이 되었다. 힘을 가지게 된 블랙 아담의 마법에 의해 석이 되었다.
  • 안동시 . . . . 5회 일치
         용동''' || 龍上洞 || 26.10 || 9,300 || 23,449
         2014년 국토교통부에서 확정한 20개 중추도시생활권에서 안동시, [[예천군]], [[의성군]], [[청송군]], [[양군]]을 '''안동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안동의 멀티플렉스 화관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e/Andong_Bridge.jpg/120px-Andong_Bridge.jpg|월
         [[분류:안동시 출신|안동 출신 인물]][[분류:경북도의 도시]][[분류:1963년 설치]][[분류:1995년 폐지]][[분류:1995년 설치]]
  • 안상미 . . . . 5회 일치
         '''안미'''([[1979년]] [[11월 12일]] ~ )는 [[대한민국]]의 전 여자 [[쇼트트랙]] 선수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었고,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정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때,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1998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전이경]], [[원혜경]], [[김윤미 (쇼트트랙 선수)|김윤미]]와 함께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강원도]]에서 열린 [[1999년 동계 아시안 게임]]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0년]] [[국]] [[셰필드]]에서 열린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종합 2위에 올랐다. [[폴란드]] [[자코파네]]에서 열린 [[2001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3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1년 동계 유니버시아드]]까지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강릉시|강릉시청]]에서 실업 선수로 활동하였다. 은퇴한 후, [[대구광역시]] 체육회 총무과에서 근무하다가, 결혼 후 [[서울특별시|서울]]로 이주했다. [[2003년]]부터 잠깐잠깐씩 해설을 맡아 오다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설위원 활동을 시작했다. [[SBS TV|SBS]]를 통해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데뷔했으며, [[2010년 동계 올림픽|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는 [[SBS ESPN]]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온라인 시민기자도 겸했다. [[2014년 동계 올림픽|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도 [[SBS TV|SBS]]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 [https://twitter.com/AnOnIce 안미 트위터]
         * [http://blog.naver.com/tlsel1112 안미 블로그]
         {{토막글|빙인}}
  • 알프레드 우든 . . . . 5회 일치
         Alfred Woden. 게임 [[맥스 페인 시리즈]]의 등장인물. 성인 Woden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 오딘의 고대 어 이름이다.
         비밀조직 "이너 서클"의 일원인 애꾸눈 감. 공식적으로는 미국의 원의원 자리를 맡고있다. 직위가 이런 만큼 집도 대따 크다.
         [[맥스 페인]]에서의 사건이 끝난 후, 자신의 향력을 동원해 맥스를 웅으로 만들었다.
  • . . . . 5회 일치
          * 일단 한번 발생하면 주변의 정 세포들을 침식하여 자신과 같은 암세포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생성된 암세포들은 본연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적인 조직의 활동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 암세포는 폭주하여 증식하는 과정에서 체내의 산소 및 양분과 같은 자원을 무제한적으로 소모한다. 이는 신체 전체를 축내는 것이다. 암의 증 중 하나가 “이유없는 체중 감소”인 이유가 이것이다.
         암은 사실 다세포 동물과 함께 시작된 질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히드라와 같은 원시적인 다세포 동물조차도 암과 유사한 질병을 앓는 경우가 있다.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5회 일치
          * 가게에 들어갔을 때 암살자들의 살의를 느꼈는데, 그 사이엔 한 순간이지만 아즈사씨의 강렬한 살의도 섞여 있었던 것.
          * 제거도 할 수 없는 악성 뇌종양이며 시력을 잃은 건 그 초기 증.
          * 그렇게 하면 적어도 살생님을 죽인 금이나 생명보험, 둘 중 하나는 지급될 거라고 예측했던 것.
          * 살생님은 "당신이 호타루를 위해 죽는다면 호타루는 그걸 본받아 버릴 것. 누굴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게 된다"면서 교육 좋지 않다고 일침한다.
          * 사실 허그했을 때 이미 아즈사씨의 몸태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에이스 컴뱃 5 : 언성 워 . . . . 5회 일치
         쇠락하던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벨카 공국은 세대로 전쟁을 벌였다.]] 벨카 공국은 자국 토에 핵무기를 사용하면서 까지 항전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15년 후, 오시아 연방 샌드 섬 공군기지. 종군 기자 알베르 쥬넷은 훈련 교관의 기체에 동승해 조종사 훈련생들이 훈련받는걸 촬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동쪽에서 국적 불명의 전투기가 습격. 쥬넷을 포함해 단 세명의 생존자만을 남겨버린다.
          우주 궤도 에서 탄환을 발사하는 위성병기.
  • 연분홍 . . . . 5회 일치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tenderpink|연분홍}}<br>{{트위터|tenderpink|연분홍}}
         '''연분홍'''({{본명|곽지은}}, [[1992년]] [[8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2015년 5월에 녹화되어 7월5일에 방송된 전국노래자랑 용인시편에서 장윤정의 애가 타를 불러 최우수을 수하였고 당일 심사위원이자 초대가수였던 정의송의 눈에 띄어 3개월만인 8월4일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 수 ==
         * [[2015년]] [[전국노래자랑]] [[용인시]] 편 최우수
  • 영감상법 . . . . 5회 일치
         [[사기]]의 일종. 조이 노했다든가, 조을 공양해야 한다든가 하는 명목으로 사람의 불안감을 조성하여 운세가 좋아진다는 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 오봉 . . . . 5회 일치
         「쇼로다나(精霊棚-제사단)」: 제단을 차려서 오이에 나무젓가락 같은 것으로 발을 달아서 말처럼 만들고, 가지는 소처럼 만들어 공양을 한다. 혼은 말에, 짐은 소에 실어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무카에비(迎え火)」: 선조의 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13일 저녁 집 앞에서 불을 지피는 것이다.
         「오쿠리비(送り火)」: 16일에 같은 장소에서 불을 지펴서, 혼을 돌려보내는 것이다. 쿄토 에서는 산에다가 큰 대(大) 자로 불을 지르는 풍속으로 유명하다.
         백중은 중원(中元)이라고도 하는데, 음력 7월 15일이다. 도교에서 이 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국의 민속신앙에서는 이 날은 저승의 문이 열리고 조혼이 돌아오므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일본에도 비슷한 민속 신앙이 있다. 대개 비슷한 시기에 행사가 모여 있으므로 불교, 도교, 민속 신앙 등이 습합되어 열린다. 서양에서는 할로윈에 대응하는 것으로 본다.
  • 오이다시베야 . . . . 5회 일치
         일본의 기업 문화에서, 해고 대이 된 직원을 이동시키는 부서.
         일본의 기업 문화에서, 해고 대이 된 직원을 이동시키는 부서를 통칭한다. 정식 명칭은 아니며, 회사마다 부서의 명칭은 다르다.
         기업 측에서 직원을 정당한 이유 없이 지명하여 해고하면 고소당하여 패소당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해고하고 싶은 직원을 특정 부서로 이동시켜서, 잡일이나 단순 작업 같은 의욕이 나지 않는 일을 명령하여 사실 자진 퇴직을 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후지코 A. 후지오]]의 단편만화에서 '업부'에서 '자료실'이라 불리는 한직으로 쫓겨난 남자의 고뇌가 묘사되어 있다.
          * 1990년대에 세가 엔터프라이제스(현재의 [[세가]])가 [[퇴직금]] 지출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회사 내에 『퍼스널 룸(자기연수방)』이라는 ''''창문이 없는 방'''을 설치하고, 정리해고 대 사원을 몰아넣어서 스스로 퇴직하도록 강요한 「[[자시키로우]] 문제(座敷牢問題)」가 있었다.
  • 오퍼레이션 발할라 . . . . 5회 일치
         오퍼레이션 발할라(Operation Valhalla)는 [[행성 연합]]에서 [[이 현]]에 대처하기 위해 조직된 특수 조직이다.
         전이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자 기존의 각국의 군대로 대처하던 황과는 달리 전이 현으로 넘어오는 존재들에 특화된 전문 요원들을 뽑아 대응한다는것이
         
  • 오프라인 . . . . 5회 일치
         컴퓨터, 혹은 주변 장치들이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태를 뜻한다.
         흔히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태를 '오프라인'이라고 말한다.
         본래 20세기만 해도 오프라인 환경이 당연한 것이었으나, 21세기에는 오히려 인터넷에 연결된 온라인 환경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며 오프라인 환경은 매우 불편한 태로 여겨진다.
         본래 온라인 태가 당연한 [[온라인 게임]]을 소재로 하여, 온라인 태 이외에도 즐길 수 있는 매체를 만들 때 제목에 '오프라인'이라는 말을 달기도 한다.
  • 우동균 . . . . 5회 일치
         |문 표기 = Woo Dong-Kyun
         |사진 사이즈 =
         [[200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1차 지명을 받아 [[대구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했다. 신인시절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장효조]]의 총애를 받아 팬들로 부터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2202&yy=2008 아버지 꿈 이룬 우동균] - 매일신문</ref>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
  • 은혼/589화 . . . . 5회 일치
          * 신파치가 간신히 일어나 황을 살핀다.
          * 가구라에게만은 더이 질 수 없다고 말하는 카무이.
          * "더이 오빠로서 지고 있을 수는 없잖아."
          * 가구라는 어머니가 임종하던 그 날을 회한다.
         || 더이 오빠로서 지고 있을 수는 없잖아. ||
  • 은혼/593화 . . . . 5회 일치
          * 마침내 시간이 흘러 그를 가뒀던 자들 조차 사라지고 감옥마저 썩어서 무너져 버리자 그는 세으로 나온다.
          * 새로운 우츠로는 더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자신이 모든걸 끝내주겠다고 한다.
          * 헨페이타를 통해 "괴물"로 취급되던 우츠로의 이야기를 들은 긴토키는 처음 쇼요를 만났을 때 "귀여운 괴물"이라 불린 일을 회한다.
          * 예과 달리 천도중이 우츠로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
          * 오보로가 "결국 하늘에 닿은 까마귀"라고 언급한 것은 이 사실이 밝혀지고 난 이후 우츠로가 천도중으로 격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 은혼/601화 . . . . 5회 일치
          * 인근의 주민들이 수한 기색을 보이더니 긴토키 일행을 습격, 노부메가 나타나 구해준다.
          * 신파치는 자신은 그저 "이한 사무라이"의 등을 쫓아왔을 뿐인데, 어느새 여기까지 와있었다고 말한다.
          * 에도를 지키거나 지구를 지키거나 하는 일은 잘 모르고 오히려 "변하고 싶지 않다. 그 이한 사무라이들과 계속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한다.
          * 하긴 요즘 점프는 블리치랑 니세코이까지 종결되고 마땅한 신작도 없어서 어려운 황이긴 하다.
          * 하지만 낌새가 수한 것이 보통 주민들이 아닌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습격을 걸어온다.
  • 이경석 (배구인) . . . . 5회 일치
         | 문 표기 = Lee Gyung-Seok
         '''이경석'''(李京錫, [[1961년]] [[3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배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의 세터 출신이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모교 [[경기대학교]]에서 감독을 했으며, 2011-12시즌 [[김우 (배구인)|김우]] 감독이 경질된 후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LIG]]의 감독에 부임했다. [[2012년]]에는 KOVO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LIG의 KOVO 주관 대회 첫 우승을 안겼다. 그러나 2012-13시즌 성적이 부진하여 시즌 도중 경질당했다. <ref>{{뉴스 인용
         |전임자 = [[김우 (배구인)|김우]]
  • 이국철 . . . . 5회 일치
         |출생지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br/> (현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웹사이트 =
         '''이국철'''(李國哲, [[경북도]] [[대구시]] [[1962년]] [[3월 17일]] ~ )은 [[SLS그룹]] 회장을 역임하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1981년부터 10여 년간 공무원으로서 생활하였다. [[해태중공업]] 창원 공장 인수, 2005년 [[신아조선]] 인수에 성공하였고 [[SLS중공업]]과 [[SLS조선]]을 운하였다.
         2010년 11월 [[창원지방법원]]은 뇌물 공여와 허위 공시,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된 회장 이국철과 이국철의 형인 대표이사 이 아무개를 대으로 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였다.<ref>《뉴스1》(2011.09.21) [http://news1.kr/articles/124759 이국철 SLS그룹 회장은 누구?]</ref>
  • 이민호(1969) . . . . 5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학력'''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남대학교|남대]] ||
         1993년 빙그레 이글스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993년에는 [[강석천]]의 백업으로 뛰다가 1994년 [[강석천]]의 부진을 기회삼아 암울했던 1994년 한화 타선에 [[박지]]과 더불어 힘을 실어 주었다. 이 때가 커리어 하이로 0.299의 타율과 14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5년 [[방위병]] 복무로 홈 경기 밖에 뛰지 못했으며, 그 이후 주춤하다가 1998년 주전 3루수가 됐으나 1998년 시즌 후 [[동봉철]]과 함께 투수 [[임창식]]을 대로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2000년 [[SK 와이번스]]에 이적하고 1시즌을 뛴 후 은퇴했다. 이후에는 인천에서 유소년 야구 팀을 지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 이산하(시인) . . . . 5회 일치
         [[대한민국]]의 [[시인]]. 본명은 이백. [[운동권]]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시인이다.
         1960년 [[경북]] [[포항시|일]]에서 태어나 [[경남중학교]]와 [[혜광고등학교]]를 다녔다. 학창시절부터 [[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문학]]도 잘해서 고교시절 전국 고교 [[문학]]을 휩쓸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1979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 1982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이륭'이라는 [[필명]]으로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를 써서 [[등단]]하였다. 하지만 그는 문학 외에도 [[운동권]]에서 학생운동을 하며 유인물을 주로 작성하는 활동을 하여서 수배와 구속에 시달려야 했다.
         1987년 3월에는 「녹두비평」이라는 잡지에 [[제주 4.3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한라산>이라는 장편서사시를 발표했다가 [[필화]]를 겪었다. 그는 [[4.3]]을 접하면서 4.3 피해자 증언을 채록한 자료집 <제주도 피의 투쟁사>[* 사실 이 책은 [[좌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김봉현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었다. 사실 4.3에 대한 탄압이 극심했던지라 이런 자료들을 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를 출판사를 통해 비밀리에 접하고 이를 토대로 시를 썼다. 하지만 당히 전위적이고 강력한 표현[* 시에서 드러나는 [[반미]]적 표현과 [[빨치산]]을 미화하는 듯한 표현들로 인해 진보적 성향의 작가와 평론가들도 그를 위해 증언하는 것을 주저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산하는 '진보의 기회주의자'라는 표현을 쓰며 그들에게 섭섭함을 나타냈다.] 때문에 그는 결국 1년 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한편 그는 '''"문학에서 [[표현의 자유]]와 [[반공주의|반공 이데올로기]]와의 [[마지노선]]은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다가 "[[가즈아|던지자]]"고 결론을 내리고는 [[항소이유서]]에 [[김일성 장군의 노래]](...) 1,2절을 그대로 적어냈다고 한다. 그러자 [[변호사]]는 물론이고 [[법원]]과 [[검찰]]마저 발칵 뒤집어져, 당시 담당 [[검사(법조인)|검사]]였던 [[황교안]]은 '''"원히 콩밥 먹게 해주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외면받았지만 국외에서는 이산하에 대한 구명운동이 있었다. 대표적인 관련 인사가 미국 펜클럽 회장이자 <[[타인의 고통]]>의 저자인 [[수전 손택]] 여사였다. 그녀는 1988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투옥시킨 [[노태우]] 정부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결국 이 일로 그는 10여년 동안 절필한다.
  • 이상화(1980) . . . . 5회 일치
         ||<:> '''이름''' ||이화(李相和 / Sang-hwa Lee) ||
         ||<:> '''출신지''' ||[[경북도]] [[포항시]] ||
         || [[오준형]](2007~2010) || → || '''이화(2011)''' || → || [[오준형]](2012~) ||
         2004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 구속은 140km 초중반 정도로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능력이 좋다고 평가되었다. 2006년 무려 121이닝을 소화하며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45경기 121이닝 5승 6패에 평균자책점은 3.87을 기록.], 이 때의 혹사 여파로 인해서인지 이후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금와서는 당시 [[서정환]]감독시절의 혹사로 [[한기주]], [[신용운]] 등만 거론되지만 어찌보면 이 둘보다도 더 심하게 굴려졌다. 2007년 시즌 종료 후 [[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하였고, 2009년 시즌이 끝나면서 제대하였다. 하지만 혹사의 여파로 인한 부으로 전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011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
  • 이상훈 (1987년) . . . . 5회 일치
         |선수명 = 이
         |문 표기 = Lee Sang-Hoon
         |사진 사이즈 =
         '''이훈'''(李相勳<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87년]] [[5월 4일]] ~ )은 전 [[KBO 리그]] [[kt 위즈]]의 [[외야수]]이자, 현재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전력분석원이다.
         2010년에 입단하였다. [[2013년]] [[3월 1일]] [[투수]] [[길태곤]]을 대로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되었다.
  • 이억년 . . . . 5회 일치
         '''이억년'''(李億年, ? - ?)은 고려시대 후기의 문신, 유학자이다. 자는 인여(仁汝), 호는 요산재(樂山齋)이고 본관은 성주이다. [[이조년]]의 형이자 [[이승경]]의 삼촌이고, [[이인임]], [[이인복]], [[이인민]], [[이인립]]의 종조부이며 [[이숭인]]의 종고조부이다. [[경북도]] 출신. 1285년(충렬왕11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벼슬을 거쳐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로 부임했다. 개성부 유수를 지내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는데 당시 원나라가 국정에 간섭, 관여하자 원나라의 개입을 항의하는 시 '천재홍진몽외사(千載紅塵夢外事) 청산하처독엄비(靑山何處獨掩扉)'라는 시를 남기고 치사(致仕), 경남도 함양군 위성(渭城) 엄천리嚴川里)로 들어가 서당인 도정정사(道正精舍)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공맹의 도를 강론하였다. 사후 성주의 안산서원, 금릉의 친사에 제향되었다.
         사위 광평군 이능의 본관은 성주로 기록되었으나, 이억년과는 다른 문중 사람이었다. 이억년의 선조는 신라의 재 이순유였고, 이억년의 사위 이능은 고려 말에 사재감 동정을 지낸 이무재(李茂才)의 증손이었다.<ref>뒤에 이무재를 시조로 하는 이씨는 성산이씨, 광평이씨라 하여 성주이씨와 구별하려 부르고 있다.</ref>
         [[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유학자]][[분류:성주 이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이인임]]
  • 이영 (1492년) . . . . 5회 일치
         이(李榮, [[1492년]] [[2월 10일]] ~ [[1583년]] [[10월 20일]])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은자|은사]]이다. 자(字)는 양수(陽臼+又), 호는 북산(北山), 본관은 [[우계 이씨|우계]](羽溪)이다. 조정의 부름을 거절하고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녹래리로 이주하였다. 뒤에 노인직으로 통정대부와 가선대부를 역임하였다. [[경북도]] 출신.
         그의 초기 행적은 미이다. 후에 유일의 후손으로 조정에서 그를 불렀지만 사양하고 두문불출하였으며, [[천]]][[도촌]](후에 봉화로 편입되었다.)에서 [[예안]] [[녹전]] [[녹전면|녹래리]]로 들어가 외부와 단절하고 은거하였다.
         [[분류:1492년 태어남]][[분류:1593년 죽음]][[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은자]][[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이원형(1951) . . . . 5회 일치
         1951년 [[경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 [[남대학교]] [[대학원]] [[경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계명문화대학교]] 관광어통역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이명박 정부]] 때 [[한국관광공사]] 임[[감사]]를 역임하였다.
  • 이은혜 (레이싱모델) . . . . 5회 일치
         |드레스 사이즈 =
         * 2011년 F1 코리아 그랑프리 그리드걸 선발대회 협찬사
         * [[2013년]] 웹웅전2
         [[분류:경북도 출신]]
  • 이인민 . . . . 5회 일치
         '''이인민'''(李仁敏, [[1330년]] ~ [[1393년]])은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호는 모은(慕隱)이며 본관은 [[성주 이씨|성주]]이다. 대제학 [[이조년]]의 손자이자 [[이인복]], [[이인임]]의 동생이며 [[이숭인]]의 당숙이다. 경북도 출신.
         할아버지는 성산군 이조년(李兆年)이고, 아버지는 성산후 이포(李褒)이다. 22년 연인 [[이인복]]은 그의 친형이고, [[이인임]], 이인립 등도 그의 친형이었다.
         공민왕 9년(1360년) 문과에 급제, 우왕 9년(1383년)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관장하고 문하평리 겸 대제학(門下評理兼大提學)에 올랐다. 1388년 최(崔瑩)ㆍ이성계(李成桂)에 의해 형 [[이인임]](李仁任)이 숙청당하자 이에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1388년 공양왕의 즉위 이후 석방되어 관작이 복구되었다. 그러나 공양왕 2년(1390년) 윤이(尹彛)ㆍ이초(李初)의 옥사(獄事)에 관련, 청주옥(淸州獄)에 갇혔다가 이듬해 국대비 왕씨(國大妃 王氏)의 생일에 사면령이 내려져 특사, 풀려났다. 그 뒤 경외종사관(京外從使官)이 되었다가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를 지냈다.
         [[1392년]] 7월 조선 건국 후 아들 이직(李稷)이 개국공신(開國功臣)ㆍ좌명공신이 되어 태조(太祖) 때에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증 추충익대보조공신(推忠翊戴補助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의정 겸 경연판이조사 감춘추관사(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經筵判吏曹事監春秋館事)에 [[추증]]되었다.
         [[분류:고려 사람]][[분류:고려의 문신]][[분류:조선의 문신]][[분류:이인임]][[분류:성주 이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 태조]]
  • 이정호 (독립운동가) . . . . 5회 일치
         '''이정호'''([[1913년]] [[3월 1일]] ~ [[1990년]] [[7월 10일]])는 [[조선민족혁명당]] 조직부장과 화남지부장으로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ref>[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gs=ws&gd=&cd=&d=&k=&inqr=&indme=&p=1&q=%C0%CC%C1%A4%C8%A3&masterno=783623&contentno=783623 이정호] 엔사이버 두산백과사전</ref>
         1913년 경북도 대구부(현.[[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으며, 중국 광둥성 중산대학을 졸업한 후 1935년 중국 남경에서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였다.
         1941년 5월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여 제1지대 제1전구사령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42년 5월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통합됨에 따라 광복군 제1지대에 편입되어 위로 복무하였다.
         1942년 10월 중경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 경도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43년 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장, 1944년 정보과장에 임명되었으며, 1943년 4월에는 선전부에서 선전위원으로 일하였다.
         * 큰 아들 이지이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
  • 이카르부스 . . . . 5회 일치
         [[http://ikarbus.rs/|링크(세르비아 문자)]][* 문 버전이 있기는 한데, 회사 설명과 AS 부분이 준비중이라며 막혀있다.]
         Ikarbus. [[세르비아]] 버스 제작회사. [[베오그라드]]에 본사가 위치해 있다. 이 회사에서 생산한 버스는 세르비아의 대중교통 회사나 기업에서 업용 및 통근버스로 사간다.
         1935년에는 최초의 국산 설계 군용기인 [[이카루스 IK-1]]을 제작했으며, 1930년대에는 [[국]]제 군용기인 [[호커 퓨리]]와 [[브리스톨 블렌헤임]]을 생산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공산화]]되며 정부에 의해 가압류 당한다. 이와 함께 코노비치 형제를 비롯한 경진도 "나치 독일에 대한 경제적 협조" 혐의로 몰수형을 받게된다. 이 와중에도 이카루스는 [[이카루스 아에로 2B]]의 설계를 끝내지만 결국 국가에 의해 완전히 몰수, 1948년 공기업이 된다. 공기업이 된 이카루스는 폭격기인 [[https://en.wikipedia.org/wiki/Ikarus_214|이카루스 214]]나 단발전투기인 [[https://en.wikipedia.org/wiki/Ikarus_S-49|이카루스 S-49]], 유고슬라비아 최초의 제트기인 [[https://en.wikipedia.org/wiki/Ikarus_451|이카루스 451M]] 등을 설계한다. 이카루스 451의 개량형인 이카루스 W-451MM은 1957년 세계 최고 속도를 달성하기도 했다.
         국가 경 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2]]에서 유고슬라비아의 기술진으로 등장한다.
  • 이헌일 . . . . 5회 일치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 웹사이트 = [http://www.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6437&ipp=10000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이헌일'''(李憲一, [[1917년]] [[3월 25일]] ~ [[1979년]] [[4월 17일]])은 [[한국의 독립 운동|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 호(號)는 창록(蒼綠). 경북도 대구(慶尙北道 大邱) 출생이다.
         * 1930년 2월, [[대륜고등학교|경북도 대구 우현보통학교]] 졸업.
         * 1936년 2월, [[경북고등학교|경북도 대구고등보통학교]] [[졸업]].
  • 이형희 . . . . 5회 일치
         |출생지 = [[경북도]] [[안동시]]
         |학력 =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 학사<br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학과 석사<br />
         |웹사이트 =
         *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학과 석사
         * SK텔레콤 CR전략실장
  • 일곱개의 대죄/181화 . . . . 5회 일치
          * 예보다 얼빠진 성격으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한다.
          * 참고로 검은 고양이의 하품 정은 아직도 있고 거기 피쉬 파이는 국왕 일가도 매우 좋아하는
          * 그의 몸에 있던 처는 엘리자베스가 치유했다.
          * 멜리오다스가 리즈와 함께 하던 시절로 사방에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등 참이 벌어지고 있다.
          * 마침 그 자리에는 젊은 시절의 국왕 바트라와 자라트라스가 참을 지켜보고 있다.
  • 일곱개의 대죄/192화 . . . . 5회 일치
          * 자라트라스 등장. 프라우드린을 대로 핸드릭슨과 공투한다.
          * 그런데 그를 따라온 자도 있었다. 프라우드린은 그가 오는걸 예했다는 듯 "역시 왔군"이라 말한다.
          * 자라트라스가 "뇌신검"으로 공격하자 프라우드린도 대응하지 못하고 처를 입는다.
          * 지난 화에선 멀린하고 대화하면서 개그컷이 많았는데 이번엔 자라트라스 대로도 개그컷을 헌납하며 굴욕을 당했다.
          * 십계 중 프라우드린이 가장 뒤처지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어차피 자라트라스도 십계급의 전투력이 아닌데 핸드릭슨&자라트라스 페어에 밀리는 인이기 때문.
  • 일곱개의 대죄/208화 . . . . 5회 일치
          * [[디안느]]와 [[킹(일곱개의 대죄)|할리퀸]]은 공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눈이 휘둥그래 진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대치하고 있는 괴물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멜리오다스]]가 십계가 계약을 통해 변신한 모습, "인듀라"라고 가르쳐준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파괴를 되풀이하는 존재. 디안느는 이대로는 브라타니아가 멸망할 거라고 걱정한다. 멜리오다스는 저들을 막기 위해선 저들의 남은 심장을 태워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이러는 중에도 엘리자베스의 빛의 힘은 인듀라화한 십계로부터 어둠의 힘을 걷어내고 있다. 하지만 인듀라 안에 있는 어둠의 힘이 발악하며 빛의 힘을 밀어낸다. 데리엘과 몬스피트는 더욱 강해지나 인간의 형을 잃고 기괴하게 변한다. 엘리자베스는 힘의 모자름을 통감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디안느와 킹은 멜리오다스에게 가세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멜리오다스는 자신이 힘을 쓰면 엘리자베스의 빛의 힘이 쇄되기 때문에 끼어들 수가 없다.
          * 곤죽이 됐던 [[사리엘]]과 [[타르미엘]]이 재생을 마치고 황을 관망하고 있다. 뤼드셀은 이런 촌극에 더 어울려줄 수가 없다며 두 사대천사를 불러들여 십계들이 묶여 있는 동안 끝장을 보려 한다. 엘리자베스는 정화의 힘을 유지하느라 뤼드셀을 제지할 수가 없다. 그때 멜리오다스가 뤼드셀의 앞을 가로막는다.
          * 그런데 이들이 가세한 것은 뤼드셀 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엘리자베스에게 보태준다. 뤼드셀이 당황하자 사리엘은 그의 말대로 가세하고 있지 않느냐고 조롱한다. 타르미엘은 자기들은 자기들 의지대로 움직이겠다며 뤼드셀과 선을 긋는다. 디안느와 킹은 이 황에 어리둥절해하는데.
  • 임관빈 . . . . 5회 일치
          * 위 항목 : [[대한민국 국군/인물]]
         美육군보병학교, 美합동참모대학에서 유학했고,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방대 안보대학원과 서울대 경대학원에서 최고경자 과정을 졸업했다.
         軍 사이버사령부의 대통령선거 불법개입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구속되었으나 석연치 않은 구속적부심으로 석방되었다. 이후 불구속 태로 재판을 진행중이다.
  • 장도 (1876년) . . . . 5회 일치
         1908년 문관전고소(文官銓考所) 위원<ref> {{웹 인용 |url= http://db.history.go.kr/url.jsp?ID=jw_1908 |제목= 대한제국 직원록 1908년 (02. 내각 > 문관전고소) |확인날짜=2008-11-18 |형식= |웹사이트=한국사데이터베이스 }} </ref>을 역임하였고, 같은 해 [[변호사]]로 등록했다. 이미 이전부터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분쟁에서 소송을 대리한 일이 있어, 실질적인 의미에서 한국 최초의 변호사로 볼 수 있다. [[조선변호사협회]] 호장을 지냈다.
         |저자=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
         |장=민
         [[분류:1876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교육인]][[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대한제국의 법조인]] <!-- 1908년 변호사 -->[[분류:대한제국의 학자]] <!-- 형법학자 : 1906년 《형법론총칙》 -->[[분류:대한제국의 저술가]] <!-- 형법학자 : 1906년 《형법론총칙》 -->
  • 장미화 (희극인) . . . . 5회 일치
         |웹사이트 =
         == 수 ==
         * [[1993년]] 제9회 KBS 대학개그제 대
         * KBS2 《[[코미디 세만사]]》
         * KBS2 《[[밤과 음악 사이]]》
  • 장민호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문 표기 = Jang Min-Ho
         |사진 사이즈 =
         |투구 = 우(사이드암)
         '''장민호'''(張珉鎬, [[1995년]] [[10월 15일]] ~ )는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우완 사이드암 [[투수]]이다.
         ! style="color:white;background-color:#408080;" |'''인율(%)'''
  • 장서희 (2006년) . . . . 5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및 후보 ==
         ! 시
         | [[KBS 연기대]]
         | 여자 청소년연기
  • 장신애 (연극배우) . . . . 5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shinaejang|장신애}}
         |2001||EBS||학교 이야기||미||
         |2014 ~||MBN||[[기막힌 이야기 실제황]]||각종 단역||
  • 장유환 . . . . 5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코미디언)
         * [[홍익대학교]] 국제경학과 학사
         * 심화과정, (여러분) 결혼도 연애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부부탐구역.(연애능력평가)
         == 수 ==
         * [[2007년]] SBS 신인개그맨 선발대회 대
  • 장후영 . . . . 5회 일치
         '''장후'''(張厚永, [[1909년]] [[3월 6일]]<ref>{{웹 인용
         |제목=장후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9_00336|장후|張厚永}}
         |후임자=[[정구 (1899년)|정구]]
  • 전광우 . . . . 5회 일치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최고경자과정
         * [[인디애나 대학교|인디애나대학교]] 경제학 석사, 경학 석사, 경학 박사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위원장]][[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과대학 동문]][[분류:인디애나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경대학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전국 BASARA . . . . 5회 일치
         일본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재해석된 무장[* 말이 재해석이지 재창조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이 게임을 하며 이런 인물이구나~ 하면 좀 곤란하다.]을 움직여 수많은 적을 대하는 무쌍형 게임이다.
         자를 깨거나 특정 킬수[* 게임 내에서는 人斬이라고 표시된다.]를 달성하면 나오는 아이템.
         성능은 각양각색. 평범한 능력치 버프부터 특정한 적에 대한 공격력 승, 오니기리나 신수의 효율 승 등이 있다.
          발도술을 사용한다. 얼음 속성. 다케다군 캐릭터로 대했을시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
  • 전재국 . . . . 5회 일치
         |배우자 = [[정숙]]
         |기타 이력 = [[연세대학교]] [[경학]]과 [[학사]] 출신 <br/>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행정학]] 박사 출신 <br/> [[군인]], [[출판|출판인]], [[기업가]] <br/> 삼육대학교 초빙교수 <br/> 동국대학교 특임강사
         * [[박아]]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삼육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자]][[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전두환 가]][[분류:연세대학교 경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완산 전씨]]
  • 전희숙 . . . . 5회 일치
         | 웹사이트 =
         {{금메달|[[2013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3 하이]]|플뢰레 개인전}}
         {{금메달|[[2013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3 하이]]|플뢰레 단체전}}
         <ref name="네이버인물검색">{{웹 인용 | 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전희숙&os=202459 | 제목=전희숙 | 저자=네이버 | 웹사이트=네이버 | 날짜=n.d.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1108135657/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A0%84%ED%9D%AC%EC%88%99&os=202459 | 보존날짜=2016-11-08 | 깨진링크=아니오 }}</ref>
         <ref name="코리아타임즈2009">{{웹 인용 | url=http://www.koreatimes.co.kr/www/news/sports/2009/10/136_52967.html | 제목=Jeon Captures Silver in Foil | 저자=Kang Seung-woo | 웹사이트=koreatimes | 날짜=2009-10-05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20907064828/http://www.koreatimes.co.kr/www/news/sports/2009/10/136_52967.html | 보존날짜=2012-09-07 | 깨진링크=아니오 }}</ref>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5회 일치
          * 모미지는 효부의 태가 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보니 우려한 대로 교전의 흔적이 발견된다.
          * 이미 그도 당히 침식이 진행되어 있다.
          * 마기 일행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지만 자신은 망령이기에 함께 싸우고 피 흘릴 수 없고, 지금 자신은 "효부 쿄스케라 불렸던 젊은이의 잔"에 지나지 않는다며 거리를 둔다.
          * 한편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호를 기웃거리는 수한 인부들.
  • 절대가련 칠드런/453화 . . . . 5회 일치
          * 효부 쿄스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기 시로는 여전히 세뇌된 태.
          * 긴 회 끝에 눈을 뜨는 마기 시로.
          * 마기는 여전히 세뇌된 태. 모미지와 요우를 공격한다.
          * 회이 끝났나 싶었는데 다시 회모드로 돌입.
  • 절대가련 칠드런/454화 . . . . 5회 일치
          * 효부는 막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디든 인적이 드문 해안가"라는 막연한 주문을 한다.
          * 한 번 실패하자 불안해진 후지코가 직접 나설 것을 예했고 그대로 적중.
          * 후지코는 그 점은 인정하지만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 세을 만들 미래의 책임이 있다고 반박한다.
          * 두 사람의 사이킥 파워가 충돌하면서 일대에 폭풍이 몰아친다.
          * 효부는 그녀가 아무 준비도 없이 텔레포트를 쓰고 동시에 당한 수준의 염동력 공격을 가하는 것에 감탄한다.
  • 정경식 . . . . 5회 일치
         1937년에 경북도 고령에서 태어난 정경식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송종의 전 대검 차장 등과 함께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박정희 정부]]와 [[5공화국]]에서 <신국가보안법>이라는 책을 저술할 정도로 공안검사로서 최고의 평가를 받다가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재직하던 1979년 10월 27일에 [[10.26 사건]]으로 서울지검 특수부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파견되어<ref>경향신문 1979년 10월 27일자</ref> [[12.12 사태]]로 연행된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조사하는 등 [[5공화국]] 출범 때인 서울지검 특수2부장으로 있던 1980년 5월말 [[국보위]] 사회정화위원회에서 공무원을 정화하는 사회정화위원을 했다. 1983년 8월 12일에 서울지검 3차장 검사를 거쳐 부산지검장에 재직하던 1992년에는 지역감정 조장과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논란을 부른 [[초원복집 사건]]에 연루될 뿐만 아니라 대통령 선거 직후에 "송종의, 최명부 검사와 함께 [[민청학련 사건]]에서 가혹행위를 했다"며 "검찰 요직에 임명해서는 안된다"는 야당인 [[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의 주장<ref>매일경제 1993년 9월 18일자</ref>에 의해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전보되는 등 인사 불이익을 받았으나 서울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청주지검장, 대구고검장 등을 역임하다 검찰 출신으로서 [[김삼]] 대통령에 의해 [[헌법재판관]]에 임명되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7569.html]</ref>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1994년 9월 16일에 "유신체제 아래에서 공안검사로 있으면서 [[김삼]] 신민당 총재의 1979년 7월 23일 국회 본회의 발언을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에 게재한 민주전선 주간인 [[문부식]]<ref>동아일보 1979년 7월 31일자경향신문 1979년 7월 31일자 8월 18일자</ref>과 <어떤 조사>를 쓴 [[한승헌]] 변호사<ref>동아일보 1975년 8월 28일자</ref>, 우도 간첩 사건<ref>동아일보 1973년 7월 3일자</ref>, 교포학생 김승효, 삼천포 간첩단 사건, 예비역 장교 등에 의한 내란음모사건<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13100209201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5-01-31&officeId=00020&pageNo=1&printNo=16410&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5년 1월 31일자</ref>, [[통일혁명당 사건]], [[남민전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민주화운동]]과 인권회복을 위해 노력한 많은 시민과 학생을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구속하고 [[신군부]]의 국보위 산하 사회정화위원회에서 공무원을 정화하는 등의 민권억압을 한 전력이 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02000329201009&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10-20&officeId=00032&pageNo=1&printNo=13253&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10월 20일자]</ref>며 "자진 사퇴하라"는 비판을 받았다.<ref>한겨레 1994년 9월 17일자 경향신문 1995년 11월 28일자</ref> [[박정희 정부]]에서 시국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구속자 가족들이 정경식 검사를 향해 야유를 보내면 검사석에서 벌떡 일어나 매서운 눈초리로 방청석을 노려보곤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61400289105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6-14&officeId=00028&pageNo=5&printNo=1589&publishType=00010 한겨레 1993년 6월 14일자]</ref> 1999년 2월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전년 대비 "8천902만원이 늘었다"고 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418788]</ref> 1980년 [[5·16민족]] 안전보장 부문 후보자로 선정됐다.<ref>동아일보 1980년 5월 9일자</ref>
  • 정광조 (1883년) . . . . 5회 일치
         3·1 운동을 사실 주도한 뒤 곧바로 [[의친왕]] 탈출을 꾀한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나왔으나, 이듬해에도 천도교인 [[신숙]]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하고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임시정부와의 연계를 계속했다. 천도교 기관지 《[[신인간]]》 발행에도 천도교 교무책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손병희 사후 [[최린]] 주도의 신파가 교권 및 사회운동의 방향을 놓고 분파되면서 천도교단은 오랜 내분 사태에 돌입했다. 손병희의 사위로서 교단 내 당한 실력자이던 정광조는 이론가 [[이돈화]]와 함께 최린의 손을 들어주어 신파 세력에 큰 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광조가 천도교 대령에 선임되었다가 구파에 의해 출교 처분되는 등 갈등은 계속되었다.
         }}</ref> 이용구와 [[김옥균]], [[박효]], [[이완용]], [[송병준]]을 비롯해 [[이토 히로부미]]와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을 추도하는 이 행사는 이석규가 [[흑룡회]]와 공동 개최했다.
         }}</ref>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천도교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 정성훈(1977) . . . . 5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전렬]](1991~1995) || → || '''정성훈(1996~2002)''' || → || [[박석민]](2004) ||
         前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사이드암 투수.
         재검 후 현역 판정을 받아 [[의장대]]에서 현역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여 2007년 [[두산 베어스]]에 복귀했다. 그러나 2007년부터는 어깨 부에 시달리며 9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했고, 결국 어깨 수술을 받은 날인 2008년 5월 29일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었다.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재활에 매진한 끝에, 2009년 시즌 후 입단 테스트를 받아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당시에는 [[정성훈]]이 2명이라며, 2명의 [[이병규]][* 라뱅과 [[이병규(1983)|작뱅]]]처럼 다른 동명이인 듀오가 활약할 것으로 보였으나, 어깨 부에서 회복하지 못해 특별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결국 2010년 시즌 중 [[김민기(야구)|김민기]]와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됐다.
  • 정좌관심 . . . . 5회 일치
         송나라 이후 [[유교]]에서 주장하는 수행법이다. 정좌는 조용히 앉아서(정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관심)으로서, 줄여서 정좌(靜坐)라고 하였다. [[주희]]는 특히 이를 강조하고 어떤 황에서도 마음을 안정 태로 두는 거경(居敬)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독서]]와 함께 수행법으로서 중시되었다.
         유교의 정좌는 [[불교]]와의 대립, 향 관계에서 나타난 수행법으로 보인다.--[[좌선]] 퍼가요~-- 실제로 주희는 자신의 저작에서 유교의 '정좌'는 [[불교]]의 [[좌선]]과는 목적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으나, 이후에는 오히려 불교와의 관련성을 지적받게 되었다. [[정약용]]은 주희가 강조한 '본성'과 '명덕'이 『능엄경』의 '여래장'과 동일하며, 주희가 주장한 공부 방법 역시 불교의 [[좌선]]과 사실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는 주희가 불교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반론도 있지만, 불교의 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 정창영 (공무원) . . . . 5회 일치
         | 이름 = 정창
         | 훈 = 2013 창조경제리더 선정(매일경제신문사)
         | 웹사이트 = http://lets-chang.com/
         '''정창'''(鄭昌永, [[1954년]] [[8월 29일]] ~ , [[대구광역시|대구]])<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281626 국회-감사원 첫 인사 교류] 《동아일보》 2005년 1월 20일 정용관 기자</ref>은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A0%95%EC%B0%BD%EC%98%81&os=766969 네이버 인물정보]</ref>
         * 경북도 행정사무관
  • 제령 . . . . 5회 일치
         나쁜 적 존재를 쫓아낸다는 뜻. 일본 오컬트 계통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며, 한국에서는 그리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신토 의식인 [[오하라이]]가 있다.
          * 소금 휴대 : 소금을 항 가지고 다니면서, [[부적]]처럼 사용한다.
          * 심호흡을 하며, 몸 속에 있는 나쁜 것이 물로 녹아들어가는 모습을 한다. 어깨를 지나 팔을 통하여 손바닥에서 물 속으로 녹아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점차 물 색이 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며, 몸에 들어 있던 것이 나쁘면 나쁠수록 물이 까맣게 되어간다.
         * 물을 배수구에 버린다. 물에는 악령이 녹아 있기 때문에, 방치하거나 집 앞에서 뿌리면 위험하다. 한 번 본인에게 쒸었던 이므로, 가까이 두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배수구나 화장실에 흘려버려야 한다.--하수구로 흘러가는 불쌍한 유령--
  • 조소혜 . . . . 5회 일치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나를 졸업한 후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1984년]] [[KBS]] [[드라마게임]] 《선택》으로 데뷔하였다. 이후 《[[젊은이의 양지]]》, 《[[첫사랑 (1996년 드라마)|첫사랑]]》 등의 작품을 집필하였다.
         * 《[[그대의 초]]》(1986년, KBS2)
         == 수 ==
         * 2006년 [[MBC 연기대]] TV부문 공로
  • 진학교 . . . . 5회 일치
         속어이므로 정의가 엄격한 말은 아니다. 인터넷 에는 실적을 근거로 만든 랭킹 사이트 같은 것이 운되기도 했다.
         사실 반댓말은 저변교(底辺校)이다.
         랭킹 사이트 : http://nankandaigakujyuken.web.fc2.com/highschoolinfo.htm
  • 차금봉 . . . . 5회 일치
         '''차금봉'''(車今奉, [[1898년]] [[12월 8일]] ~ [[1929년]] [[3월 10일]])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노동운동가이다. 서울 출신.<ref name="역대">{{웹 인용|성1=김|이름1=혜|제목=차금봉(車今奉)|url=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7HIL_A1898_1_0025739|웹사이트=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출판사=한국학중앙연구원|확인날짜=2015-12-15}}</ref>
         서울 미동보통학교(渼洞普通學校)를 졸업한 뒤 [[1917년]] 용산(龍山) 기관차 화부 견습공으로 일하던 중,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노동자들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식민지 현실의 노동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1920년 2월 조선노동문제연구회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같은해 3월 [[김명식 (1890년)|김명식]]·[[오근]] 등과 함께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를 조직하여 교양부 간사를 맡았다. [[1922년]]에는 최덕 등과 함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조선노동공제회의 쇄신운동을 폈으며, 동년 9월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조선금물직공조합·경성신문배달조합 창립을 지도했으며, 1923년 9월에는 조선노농대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4년 5월 [[조선노농총동맹]]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었으며, 각지의 공장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활동했다. 1926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노동운동 단체와 농민운동 단체를 분리하는 정책을 실행시키기 위해 힘썼다.<ref name="역대"/>
         [[1927년]] 비타협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연대하여 결성한 [[신간회]] 단체가 결성되자, [[1928년]]에는 신간회(新幹會) 경서(京西)지회 설립을 주도하여 간사를 맡았으며, 한편으로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책임비서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3·1운동 기념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 지시하여 선전전단 20만장을 도쿄의 동성사에서 인쇄했는데, 우송 도중 서울우편국에서 발각되고 말았다. 1928년 7월 제4차 조선공산당이 발각되는 황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피신했으나 도쿄에서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당한 뒤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1929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사했다.
  • 차민수 . . . . 5회 일치
         차민수는 1989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세계바둑계에서는 미국 이민 이후 프로기사로서 별다른 대회 참가가 없었던 차민수가 일본 프로바둑에서 활동하던 미국 기사 [[마이클 레드먼드]]를 꺾고 미국의 대표로 선발된 것 자체를 이변으로 여겼다. 하지만 차민수는 대회가 열리자 일본의 두 기사를 연파하고 8강에 오르더니, 8강전에서는 친구이기도 한 [[조훈현]]을 대로 승리 일보 직전까지 가며 바둑계를 경악하게 했다. 비록 대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세계 바둑계에 커다란 인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하여 당시 검토실에 있던 [[고바야시 사토루]] 9단은 "종반 30수 이 실수를 거듭한 것은 일부러 져 준 것이라고 밖에 볼 수없다."라며 격노하였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제목=19*19 인생퍼즐|저자=이홍렬|출판사=명|연도=2002|isbn=9788972323914}}</ref>
         * [[루이나이웨이]] 9단이 미국에 망명중일 때 한국 기원행을 권유하며 조훈현에게 소개시켜 준 이가 차민수이다.<ref name="hani">{{뉴스 인용 |url=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43818.html |제목=‘반’에서 천국을 쫓다 한국에서 행복을 찾다|저자=김창금 기자 |출판사=한겨레 |날짜=2009-03-12}}</ref>
  • 차일목 . . . . 5회 일치
         |문 표기 = Cha Il-Mok
         |사진 사이즈 =
         [[2014년]] [[4월 9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이정훈 (1977년)|이정훈]]을 대로 만루 홈런을 쳐 내 승리를 이끌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827159 차일목, 넥센전서 개인 통산 2호 만루포 폭발] -OSEN</ref>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연안 차씨]]
  • 창작:린다 딩글 . . . . 5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인물]]'''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 신정보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트와일라이트 시티]], [[창작:블루클레이|블루클레이]]에서 옷가게 "린디즈 딩기(Lindy's Dinghy)"를 운하는 아줌마. ~~유독 아줌마를 강조하는 것 같다면 착각이다~~ 부유한 편은 아니라서 주로 평범한 옷들부터 소위 '불량배' 스타일의 옷들을 판다. 젊었을 무렵에는 갱단 활동도 한 모양이다.
          * 옷가게다 보니 '징'을 중요시하는 길거리 갱단에게 무진장 인기가 많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보호세[* Protection. 돈을 내놓지 않으면 두고두고 찾아와서 깽판을 부리겠다는, 일종의 삥뜯기이다. 즉 '업주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세금'이라는 뜻.]를 내진 않는데, 이는 동네 흑인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은 것도 있지만 모두가 이용하는 옷가게다 보니 갱단들끼리 분쟁의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중립지대로 남겨둔 걸로 보인다.
  • 창작:말퓨스 스토리 . . . . 5회 일치
         타치바나 이즈미 : 츠키노 아스카의 라이벌이자, 이 작품의 유일한 메인 악역. 아스카를 격렬히 증오하며, 아스카와는 과거부터 악연으로 점철되어있다 못해 아주 길어져버린 사이이다.
         츠키노 가문 : 츠키노 아스카의 가문이며, 당주는 츠키노 아스카 본인이다. 하지만 아스카가 모종의 사고에 의해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니는 현재 황에선 당주의 자리가 공석이며, 아무도 이 자리를 노리지 않고 있다. 츠키노 아스카의 기억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그 자리를 비워놓는 중이다.
         타치바나 가문 : 타치바나 이즈미의 가문이며, 당주는 타치바나 이즈미 본인이다. 다만 츠키노 가문에게 당한 내적 분노를 가지고 있으며, 이즈미의 명령이라면 언제든지 실행할 준비가 되어있다.
         후노야마 대륙 : 월야편 작중에서 등장하는 가의 대륙이며, 컨셉은 고대 일본+동양풍이 섞인 대륙. 인구의 80%가 농업과 업에 양분되어 종사하고 있을 정도로 다른 대륙보다 부유한 대륙으로 알려져있지만, 과학 기술력은 크게 밀린다. 덕분에 말퓨스 테리토리에 등장하는 다른 대륙의 국가들에게서 과학 기술을 지원받아 그들의 기술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중이다.
  • 창작:좀비탈출/4-1-1 . . . . 5회 일치
         또 저 태는 오래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걸까? 아니면 약간의 변수에 의해서도 금방 원래 태로 돌아와 버리고 마는 것일까?
         황에 맞지 않는 호기심들이다. 어쨌든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야 빨리 다가갈 수도 있지만…… '''깨어버린다면?'''
         녀석이 나를 덮친다. 무거운 걸 들고 있는 참이라 엉거주춤한 태로 녀석의 썩은내나는 손아귀가 덮치는 걸 피했다. 그 순간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뚝하고 나만 들리는 소리로 이변을 알렸다. 젠장, 허리가…….
         마치 잠드는 것 처럼…… 명하는 것처럼 조용히. 조용히.
  • 책표지 . . . . 5회 일치
         고전 시대에는 단순히 제목만 써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현대에 출판이 업화 되고 나서는 주제를 나타내는 그림을 넣는 등. 공들여서 만들어진 책표지가 많이 나타났다.
          * 책표지가 판매에 큰 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지만, 출판사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책표지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06101702441&code=116 주간경향]
          * 색을 도출하는 방법은 2002년, 미 존슨홉킨스 대 천문학팀이 '우주의 색'을 정하는데 사용한 방식을 본떴다. 이 연구팀은 20만개 이의 은하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별들이 내는 빛의 색을 평균으로 만들었다. 이 색의 이름은 ‘코스믹 라떼’(Cosmic Latte)이며, RGB값은 255, 248, 231이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61304.html 기사]
  • 천장호 . . . . 5회 일치
         최근 조무성 전 광운학원 이사장의 자녀 조○○씨 이사 추대를 반대하는 광운대 학생과 동문들 시위로 진통을 겪고 있는 광운대가 최근 실시한 교수평의회 소속 전임교수(전임교수 331명 중 313명 응답) 대 '천장호 총장의 사퇴여부에 대한 찬반'에 대한 설문에서 60.1%가 사퇴해야한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교수대표단(단과대학별 소속교수인원 비례로 선출) 16명중 86%가 천장호 총장 퇴진운동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나타냈다. 교수대표단이 퇴진운동을 해야 한다고 꼽은 이유는 ▲자주적 대학운을 하지 못하는 재단의 종속 ▲조무성 전 이사장의 자녀 이사입 방조 등이었다
         2017년 5월, 광운대는 2016년 2학기 전자재료공학과 중간·기말고사에서 부정행위를 한 학생 12명을 F학점 처리하고, 2017년 1학기의 모든 장학금 수여 대에서 배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8/2017050800022.html|제목='정직시험' 서약해놓고… 광운대생 12명 부정행위|언어=ko|확인날짜=2017-06-08}}</ref>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광운대학교 교수]][[분류:광운대학교 총장]][[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광운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스티븐스 공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총장]][[분류:양 천씨]]
  • 천해성 . . . . 5회 일치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 정책담당관으로 근무했고, 통일부로 돌아와서는 회담기획부장으로 일하면서 2007년 10·4 남북정회담을 비롯한 다수의 남북회담에 깊숙이 관여했다.
         * [[등포고등학교]] 졸업
         * 남북정회담 준비위원회 의제분과장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 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등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분류: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
  • 최경환 (야구인) . . . . 5회 일치
         |문 표기 = Choi Kyeong-Hwan
         |사진 사이즈 =
         [[2002년]] [[LG 트윈스]]에서 방출된 후, [[두산 베어스]]의 감독이던 [[김인식 (1947년)|김인식]]의 눈에 띄어 입단했다. 그 후 팀의 3번타자로 주로 출장했으며, [[2004년]] 몸을 던지는 수비와 양가 있는 타격, 서글서글한 매너로 [[두산 베어스]]의 [[2004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다.<ref>{{뉴스 인용 |저자= 현윤경|제목='허슬 플레이어' 최경환, 두산 승세 앞장|url=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001&aid=0000993745 |뉴스=연합뉴스|출판사= |위치= |날짜= 2005-05-04 |확인날짜= 2016-06-26}}</ref>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멕시코]] 리그도 경험하여 [[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하다.
  • 최경훈 . . . . 5회 일치
         |문 표기 = Choi Gyeong-Hoon
         |사진 사이즈 =
         * [[무 피닉스 (야구)|무 피닉스]] 투수코치 (2006년 ~ 2014년)
         * [[선린인터넷고등학교|선린업고등학교]]
  • 최길성 . . . . 5회 일치
         |문 표기 = Choi Kil-Seong
         |사진 사이즈 =
         [[2000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시즌 후 방출당하였다. [[2001년]] [[LG 트윈스]]에 이적하였으나 별 다른 행보가 없이 무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2006년]]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자신의 커리어 하이였던 83경기에 출장하여 0.256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7년]] 팀 동료인 [[최만호]]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박석진]]과 [[손인호 (야구인)|손인호]]를 대로 트레이드되었고, [[2008년]]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방출되었다. 그 해 [[SK 와이번스]]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였으나, 결국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현재는 ING 생명의 보험 설계사(FC)로 근무하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2786767 국대 출신 30대 야구선수, 보험 업맨 변신해…] 2012년 8월 19일자, 매일경제</ref>
  • 최웅 . . . . 5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수 =
         === 화 ===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1년 데뷔]][[분류:대경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
  • 최원준 (1994년) . . . . 5회 일치
         |문 표기 = Choi Won-Jun
         2013년 대학 춘계 리그에서 수훈, 2014년 대학 춘계 리그에서 최우수 선수을 수하며 [[동국대학교]]의 대회 2연패를 이끌었다.
         [[2016년]] [[10월]] 갑선 암 수술을 받느라 지난 해 5월부터 라이브 피칭을 실시했고 6월 말에 2군 경기에 등판했다. [[2018년]] [[7월 25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3이닝 3실점을 기록하였다.
  • 최유정 (레이싱모델) . . . . 5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2012년]] - 서울국제사진기기전 탐론 모델
         ==수==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5회 일치
         [[1967년]]에 [[경북도]] 금릉에서 태어났다. 1984년 부산 [[내성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89년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학과]]를 졸업하였다(서울법대 84학번). 1996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검찰은 홍만표 변호사의 통화추적 등을 통해 홍 변호사가 최윤수 차장을 두 차례 찾아갔고, 최윤수와 무려 20여 차례나 통화한 사실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결국 최윤수 국정원 제2차장을 소환하지 않고 서면으로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당시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 당시에도 최윤수와 우병우 간의 관계가 입길에 올랐다. 우병우는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이듬해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기용될 때까지 1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고, 이 기간에 홍만표 변호사와 함께 사실 ‘2인 1조’로 움직이면서 정식 선임계도 내지 않고 정운호 대표 등의 ‘몰래 변론’을 맡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홍만표와 우병우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수사기획관과 1과장으로 대검 중수부에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우병우가 변호사 활동을 할 때 사무실을 연 곳이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 빌딩 1111호로, 홍만표의 사무실(1010호)과 같은 건물 아래 위층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홍만표와 최윤수 차장 간의 연결 고리가 우병우 아니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de4c88fecae9760b9b6c86f97f5e042|#]]]
         국정원 제2차장 시절에 '국정원 문화·예술인 배제 보고서'를 수차례 보고 받고 지시하는 등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관여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우병우 전 수석에게 ‘비선 보고’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421.html#csidx24444379242d545ae3e855a102f4499|#]] 그러한 이유로 검찰에 의해 [[구속장]]이 청구되었으나 2017년 12월 2일 [[오민석(법조인)|오민석]] 부장판사에 의해 기각되었다. 물론 검찰 내부에서는 최 전 차장의 구속장이 '가담 정도'를 이유로 기각된 것에 불과하고 범죄 사실 소명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1731.html#csidxe6517123a8063c9aaa12e8244fa6d69|#]]
         검찰은 최윤수를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 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최윤수]]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 카미마치 . . . . 5회 일치
         카미마치란, [[가출]]이나 기타 이유로 주거가 정해지지 않은 젊은 여성이 인터넷의 가출 사이트나 프로필 사이트를 사용하여, 숙박할 장소와 식사를 제공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이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사람을 '카미'='신'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카미마치란 단어를 쓰게 됐다. 다만 대가로서 뭔가를 요구하는 사람은 카미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원조교제]]와는 달리 일단 명목으로는 성관계 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인터넷 의 기록으로 범죄행위가 적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위장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성관계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러한 전문 사이트도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가짜 이용자가 많다.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칼 루이스 . . . . 5회 일치
         [[미국]] 의 유선수. 단거리와 멀리뛰기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빠른 남자의 대표자. 육 선수로서 칼 루이스의 명성은 21세기 초의 [[우사인 볼트]]와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2연속 금메달을 획득, 세계육선수권 대회에서 1983년 헬싱키, 1987년 로마, 1991년 도쿄에서 100미터 3연패를 달성헀다. 서울 올림픽에서는 경기에서는 [[벤 존슨]]에게 밀려서 2위로 떨어졌었으나, 벤 존슨의 스테로이드 약물 복용이 드러나 [[금메달]]이 박탈되고 기록이 삭제되면서 1위로 올라섯다.
         1991년 도쿄 세계육선수권 대회에서 100미터 9초 86으로 세계 기록을 세웠다.
         [[분류:육선수]] [[분류:채식주의자]] [[분류:미국 인물]]
  •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스포일러 . . . . 5회 일치
          * 토니는 이들을 면회하러 가는 도중에 진을 깨닫게 된다.
          * '''윈터 솔저가 하워드 스타크를 암살하는 .'''
          * 기존 시리즈의 인간관계 의 떡밥이 대폭발
          * 사실 어벤저스의 공중분해.
  • 코스트코 . . . . 5회 일치
         [[미국]]에 본사가 있는 회원제 도소매 체인점. 식료품에서 전자제품 등 다양한 품을 폭넓게 취급한다.
          * [[도매점]]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어, 점포 운비와 판매비, 관리비를 절감하고 대신 가격을 낮춘다.
          * 점포가 매장과 창고를 겸하고 있다. 매장이 넓으며, 품은 마치 창고에 그대로 쌓아놓은 듯한 형태가 많다. 또 판매하는 품이 여러 묶음 단위로 되어 있다.
          * [[회원제]]를 실행하고 있어, 기초 구매력을 갖춘 회원에게 저가 품을 제공하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다.
  • 크리스토퍼 라킨 . . . . 5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 웹사이트 =
         * {{공식 웹사이트|http://www.christopherlarkin.com/}}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미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미국의 양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코네티컷주 출신 배우]][[분류:한국계 미국인 배우]][[분류:한국계 미국인]]
  • 킹덤/503화 . . . . 5회 일치
          * 진군 중에 십화에 있던 [[순수수]]가 합류한다. 그 먼 거리에서 여기까지 합류했다고 이목의 부하들 사이에서도 놀라워한다. 순수수는 자기가 전방에 있으면서도 눈치채는게 늦었다며 용서를 구하는데 이목은 오히려 빨리 눈치채 전서구를 날릴 수 있었고 이 차이가 승패를 가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 그때 좌측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군이 들이닥친다. 조나라의 선발 기마대다. 왕전, 환의, [[양단화]]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적의 수는 3천에서 5천 사이로 부대를 둘로 나눠서 아군의 전방과 측면을 뚫으려는 속셈이다.
         곽개는 조나라 멸망에 결정적으로 향을 끼친 간신으로 [[염파]], [[사마]]의 실각에 결정적인 향을 미치고 이목을 모함해 살해한 그야말로 최종보스.
  • 탈북자 망명정부 . . . . 5회 일치
         탈북자 망명정부의 구은 탈북자들이 대량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1990년대 부터 이미 있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황장엽]]을 중심으로 하여 망명정부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황장엽 본인의 거부로 무산되었다는 증언이 있다.
         === 김정남 입 시도 ===
         한명섭 대한변호사협회 통일문제연구위원회 부위원장은 "북한이 유엔에 가입돼 있는 이, 미국 등 다른 국가들도 망명정부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대신 망명정부활동을 묵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제기했다.[[http://news.donga.com/MainTop/3/all/20161006/80664378/1#csidx6390859011994e7a8d6c822b9a35888 (참조)]]
         == 부정적 예 ==
          * 대한민국의 토조항, 자유통일을 갈망하는 국민정서로 볼 때, 북한망명정부는 한국 정부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 텐프레 . . . . 5회 일치
         사전적 의미로 볼 때 어에서의 템플릿(Templet, Templete)은 어떠한 판형을 의미하며, IT쪽에서는 좁게는 플로우차트에서 넓게보면 프로젝트 관리까지 포함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행해지는 관습 및 서식화된 표준을, 디자인에서는 일반화된 패턴과 믹스[* 글렌체크라든가 스프라이트와 같은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등을 가리킨다. 하지만 일본의 속어로는 이런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 애니나 만화에서 투적인 전개를 뜻한다. 예를 들면 "평범한 남자 앞에 어느날 미소녀가 찾아온다."라든가 [[아침 드라마]]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보여줄 때 "이 도둑고양이 같은 년이!"등이 포함된다.[* 특히 도둑고양이 표현은 일본에서 주로 쓰인다.]
          * 니코니코 동 서비스에서는 ここまでテンプレ(여기까지 텐프레)라는 표현으로 자주 쓰이곤 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가령 [[동방프로젝트]]에서 에린이 나오면 흘러가는 코멘트로는 " ( ゚∀゚)o彡"이 뜨고, 마지막 코멘트로는 "ここまでテンプレ"가 뜨는 식. 일종의 암묵의 룰이 적용되는 걸 알리는 텐프레된(?) 코멘트이다.
  • 토니 고 . . . . 5회 일치
         |본명= 고미
         |웹사이트=
         '''토니 고'''(Toni Ko)는 [[대한민국]] 출신 [[미국]]의 사업가로, 화장품 브랜드 닉스(NYX Cosmetics)와 선글라스 브랜드 퍼버스(Perverse)의 창립자이다. 2억 6천 만 달러 이 순수입으로,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자수성가한 미국인 여성 60인' 명단에 들었다.<ref name="포브스">[http://www.forbes.com/self-made-women/#2f767e7f4177 AMERICA'S RICHEST
         브랜드 출시 첫 해, 4백 만 달러 이의 매출을 올렸다.<ref name="포브스 프로필"/> 2000년대 초반 닉스는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화장품 브랜드 중 하나였다. 또 2008 금융 위기 시절, 저가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오히려 불황은 기회가 되었다.<ref name="헤럴드"/> 또 토니는 사람들이 [[미셸 판]] 등 뷰티 유튜버에 향 받는 모습을 보며,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SNS]]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ref name="헤럴드"/> 이후 15년 동안 안정적으로 사업을 키워나간 후, 2014년 [[로레알]]에 닉스를 5억 달러에 매각했다.
  • 토리코/364화 . . . . 5회 일치
          * 돈슬라임은 저세에서 또 이치류와 식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최후를 맞이하려는데...
          * 이치류는 혼세계에서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는데 마치 네오와 닮아있다.''' 그는 "무언가가 태어나려 한다"면서 엄청난 식욕의 에너지를 감지한다.
          * 이치류는 이것을 관찰하면서 "혼세계에 조차 식욕은 존재한다"면서 식욕이란 진화의 촉매이고 생물은 이 식욕을 바톤처럼 이어받으며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소견을 밝힌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저것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라고 하는데, "아카시아님"은 저것이 어디서 온 무엇인지, 그걸 알고 싶어하셨을 거라고 짐작한다.
          * 그런 말을 나누는 사이 어나더의 조리가 끝나고 결국 이치류는 부활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 페어는 GOD를 제공하기 전에 해줄 일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바로 광란의 늑대 지로. '''블루 니트로 전원이 덤벼도 도저히 대할 수가 없었다'''
  • 토리코/366화 . . . . 5회 일치
          * 설명하는 사이 보이지 않는 실 같은 것이 갑자기 지로를 묶는다.
          * 네오를 여기에 가두려는 것도 "죽지 않고 살려서 보존"하면 원히 부활하지 않기 때문.
          * 그리고 지금은 네오와 마찬가지로 "죽일 수가 없는 대"를 조리해서 가두려고 꺼내왔다.
          * 블루 니트로는 숫자를 앞세워서 공격해 오는데, 몇몇은 지로에게도 타격을 주긴 하지만, '''"타임 노킹"'''까지 사용하는 지로의 대는 되지 못한다.
          * '''놀랍게도 지로는 머리가 날아간 태인데도 여유롭게 "아카시아 선생님"이라며 대답한다.'''
  • 토리코/376화 . . . . 5회 일치
          * 네오는 낭왕 기네스의 앞발 한 쪽을 뜯어먹지만 그 이으로 반격 당한다.
          * 기네스는 네오에게 남아 있는 냄새로 지로가 대한 최후의 적이었음을 간파한다.
          * 네오가 공으로 던져지자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던 용왕 데로우스가 "이차원 레이저"로 공격하려 한다.
          * 토리코는 텟페이가 세뇌된 태가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 블루 니트로는 페어편에서 드러났듯 블루 니트로 혼자서는 팔왕급을 대할 수가 없다.
  • 토리코/379화 . . . . 5회 일치
          * 치치는 빈사 태의 사천왕에게 어떤 처치를 하려고 한다.
          * 죠아를 대로 막막하로 겨루는 스타준
          * 아톰은 식물 따위에 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매우 위험해서 휴면 태에 들어가려고 한다.
          * 그와 격전을 치른 맹수들도 당히 타격을 입었지만 건재. 네오의 몸이 소멸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아카시아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 토리코/392화 . . . . 5회 일치
          * 팔왕을 먹고 더욱 파워업하는 아카시아. 더는 인간의 형이 아니다.
          * 현재 토리코는 "진짜 풀코스"를 모아 식욕의 속박을 벗어난 태이기 때문에 아카시아가 어떤 황인지도 알 수 있다.
          * "이 세 모든 식재에 감사를 담아,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플로제는 진작부터 "적합식재로 구성한 풀코스가 있으면 식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 아카시아는 미식신으로서 세에 존재하는 모든 식재를 맛 봤다고 공언되고 있다. 그 중에 적합식재가 전혀 없었다는 걸까? 아카시아는 스스로 자신의 적합식재를 판별하지 못했던 걸까?
  • 트레키 . . . . 5회 일치
         고도의 경지에 도달하면 발칸족의 손인사를 일적으로 사용하며, 클링온어 같은 작중의 가 언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다.[* 좀 웃기는게 높은 확률로 트레키의 징은 클링온어 용가능이다. 왜 굳이 클링온어일까….]
         이들을 전문적으로 다룬 '트레키즈'라는 다큐멘터리 화(...)가 있다.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 . . 5회 일치
         파이널 파이트 정식 속편들은 [[슈퍼패미컴]]으로 2탄과 3탄이 나왔다. 다들 1편만도 못한 함량미달로 묻혔으나 [[슈퍼패미컴]]용 2탄의 여성 캐릭터 '[[겐류사이 마키]]'가 [[CVS2]]에 등장하면서 잠시 재조명될 뻔 하기도 했다. 마키는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 더블 어퍼 등의 이식작에서도 등장하는데, 이식작들 반응이 좋지 않아서 역시 그냥 묻혔다.(...)
          * [[겐류사이 마키]]
          * [[겐류사이 레나]]
         원조 방식의 벨트스크롤 액션 시리즈들은 [[게임 오버]]시에 [[컨티뉴]] 화면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묶인 채로 여러 가지 장치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운 황이 연출되며, 시간이 지날 때까지 발버둥치다 컨티뉴를 안 하면 결국 사망하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되는 조금 잔인한 연출이 들어있는 전통의(...) 특징이 있다.
         [[모탈 컴뱃]] 시리즈에서나 나올 법한 걸[* 당연히 그 쪽처럼 죽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랬다간 당연히 검열 크리~~] 이런 물건에 넣는 캡콤도 어찌보면 당히 용자 집단인듯도 하다..~~3작품이나 용자질을 하는데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 안한 게 더 놀라울지도.~~
  • 페어리 테일/486화 . . . . 5회 일치
          * 게다가 이건 적도 아군도 아니며 아이린 본인이 대해야 한다고 한다.
          * 가질이 우위인 걸로 보였으나 블러드맨은 몸 자체가 마장입자로 되어 있어 가질의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 게다가 가질 자신은 무사해도 주변의 아군은 마장입자의 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크림 소르시엘이 도착했지만 아이린이 고작 부하들을 보내서 대시키는 걸 보면 저 둘의 실력이 굉장한 듯?
  • 페어리 테일/487화 . . . . 5회 일치
          * 나츠와 루시는 오거스트와 브랜디쉬의 마력을 비교하며 놀라워하는데, 매스트는 아예 격이 다른 거라며, 두 사람의 감각이 이하다고 말한다.
          * 블러드맨의 파공세 앞에 가질과 레비도 수세에 처한다.
          * 타르타로스의 주법에는 잘 대처하나 블러드맨이 세 번째 인을 해방하고 고유의 주법 "오버 스켈터"를 사용하자 단숨에 황이 악화된다.
          * 가질은 그동안 멸룡마도사로서 동료들보다 뒤쳐져 있던 걸 신경쓰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은 아무 관도 없다고 한다.
          * 오거스트가 갓세레나를 언급하며 하는 말로 봐서는 갓세레나를 흡수한 태로 추정
  • 페어리 테일/491화 . . . . 5회 일치
          * 가질은 아이린의 유니버스 원의 향을 받아 황천으로 옮겨지기 직전에 다른 장소로 이동됐다.
          * 가질과 제이라가 있는 곳은 천랑섬. 역시 유니버스 원의 향으로 육지와 연결됐다.
          * 가질은 황천으로 끌려가기 직전 유니버스 원의 향으로 다른 장소로 이동된 것.
          * 가질은 다 이해하진 못하지만 "아무튼 초대의 향으로 부활한 존재"라는건 알아들는다.
          * 아이린은 그 사이에서 "비색의 머리"(엘자)를 발견하고 "설마..."라고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린다.
  • 페어리 테일/505화 . . . . 5회 일치
          * 그러나 메이비스 버밀리온은 페어리 로가 생명을 갉아먹는 마법임을 밝히며 이만한 대군을 대로 사용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린다.
          * 아이린이 있는 곳으로부터 전기같은 파장이 일더니 제국군 병사들 사이로 번져간다.
          * 마카로프여도 이만한 대군을 대로 쓰면 절대 무사할 수 없다고 하는데.
          * 메이비스의 대책이라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당장 피 흘리는 아이들을 더이 볼 수 없다.
          * 그는 길드원들이 있어 "유쾌한 여행"이었다며 감사를 전하고 "다들 사이 좋게 지내라"는 말을 끝으로 페어리 로룰 발동시킨다.
  • 페어리 테일/509화 . . . . 5회 일치
          * 오거스트는 제랄이 한 때 제레프 드래그닐을 신봉했던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를 져버리고 다른 길을 걷는지 묻는데 제랄은 "내 마음을 비추는 빛을 손에 넣었다"고 말하며 엘자 스칼렛을 떠올린다. 그런데 대답을 들은 오거스트는 빛은 정의고 어둠은 악이라는 사고방식은 어리석다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제레프 드래그닐에겐 "아들"이 한 명 있다고 말을 꺼낸다. 제랄에겐 놀랄 틈도 없이 오거스트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 아이는 강대한 빛의 힘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고 빛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했으며 어느 쪽도 아닌 무의 경지에 도달했다. 오거스트는 빛과 어둠에 선악은 무관하다며, 굳이 정의가 있다면 그건 "사랑" 뿐이라 말하며 돌아선다. 그러는 사이 제랄은 엘자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다짐하며 몇 번이나 다시 일어서라고 시도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 근접에선 무방비하고 생각했던 라케이드는 손가락 하나만으로 카구라의 검을 막는다. 라케이드는 스프리건12 중 몇 명을 쓰러뜨렸다고 착각에 빠졌다고 빈정댄다. 카구라가 당황해서 연거푸 검을 휘두르지만 어느 것 하나 라케이드에게 처를 내지 못한다. 라케이드는 여유롭게 방어하면서 자신과 오거스트, 아이린은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다. 현격한 전력차에 카구라는 패배를 예감한다. 라케이드는 바로 그 표정이 좋다고 도발하는데 카구라가 크게 내리친다.
         졸지에 최종보스 후보가 페도필리아가 되게 생겼는데, 잘 생각해 보면 메이비스가 정말로 친모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시열대 메이비스와 제레프 사이에서 애가 태어날 법한 타이밍이 없고 어쨌든 본인이 낳은게 맞다면 메이비스 본인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 때문에 에도라스 때처럼 평행세계에서 넘어온 인물이거나 제레프가 마법적으로 두 사람의 유전자를 합쳐 만든 인물이 아닌가 하는 설이 나오고 있다.--그냥 제레프가 사고치고 마법으로 기억을 지운게 아닐까?--
  • 페어리 테일/536화 . . . . 5회 일치
          * [[나츠 드래그닐]]과 [[제레프 드래그닐]]의 혼신의 힘을 다해 격돌한다. 염룡왕의 붕권 vs 암흑폭염진. 두 힘이 충돌한 후폭풍이 페어리 테일 길드를 휩쓸고 퍼져나간다. 백중세인 듯 보였던 두 힘은 점차 나츠 쪽이 우세했다. 제레프는 자신의 마법이, 시간이 나츠의 불꽃에 타들어가는 걸 느낀다. 나츠는 자신의 혼을 불꽃으로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정신을 잃었던 [[메이비스 버밀리온]]이 정신을 회복한다.
          * 엘자가 제랄을 구하러 가려 할 때 침몰하던 크리스티나호가 다시금 부한다. 누군가 배를 움직이고 있다. [[안나 하트필리아]]였다. 무슨 수를 썼는지 폭발 직전이었던 배가 다시 날아오른다. 안나는 이 배를 만든 텐마에게 미안하다고 혼잣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그녀는 이 배로 아크놀로기아를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을 작정이다. 자기 자신과 함께. 웬디는 물론 배를 몰았던 [[히비키 레이티스]], [[렌 아카츠키]]도 무리한 일이라며 그만두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런 말로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 하지만 이미 엉망인 배는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추락한다. 히비키는 다시 무리라며 그 배는 자신들만 몰 수 있다고 소리친다. 안나는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고 다시 키를 잡기 위해 힘을 내는데, 누군가 그녀보다 먼저 키를 붙잡는다.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다. 자신에게 조종을 맡기라고 말한다. [[제니 리아라이트]]과 [[이브 티름]]은 그가 보이지 않는걸 눈치챈다. 그가 이런 형태로 희생하게 될 줄은 누구도 예치 못했다. 뜻밖이라는 얼굴의 안나에게 이치야가 말했다.
          * 바로 그때, 나츠와 제레프의 형제 싸움이 끝나고 있었다. 나츠가 뒷심을 발휘해 밀어붙이자 제레프는 더이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제레프는 쓰러지면서 자신을 태우는 힘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성스러운 불꽃... 아니, 나츠의 "거센 감정의 불꽃"이었다. 불꽃은 제레프의 몸을 태우고 백마도사로 각성하며 얻은 모든 힘도 태워버렸다.
  • 포항시 . . . . 5회 일치
         죽장면''' || 竹長面 || 235.71 || 2,907<!--죽장면 옥출장소 포함--> || 1,595
         대동 (포항시)''' || 上大洞 || 3.44 || 28,595 || 13,256
         일대해수욕장의 밤 풍경
         호미곶의 생의 손
         [[분류:포항시 출신|포항 출신 인물]][[분류:경북도의 도시]][[분류:1949년 설치]][[분류:1995년 폐지]][[분류:1995년 설치]][[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
  • 표현명 . . . . 5회 일치
         * [[고려대학교]] 경대학 기업지배구조 최고위과정 수료
         * [[서울대학교]] 경대학 최고경자과정(AMP) 수료
         == 주요훈 ==
         * [[1997년]] : 정통부장관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5회 일치
         '''프라이머리'''(Primary, {{본명|최동훈}}, 1983년 1월 31일 ~ )는 [[대한민국]]의 DJ 겸 음악 프로듀서이다. 과거 [[다 크루|Da Crew]]의 레이블 [[가라사대]] 소속이었으며, 이후 [[빅딜 레코드]], 타일뮤직을 거쳐 현재는 [[아메바컬쳐]]의 전속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프라이머리 & 마일드 비츠 (Primary & Mild Beats), [[프라이머리 스쿨]] (Primary Skool), 프라이머리 스코어 (Primary Score) 등 여러 프로젝트 그룹으로도 활동하며 밴드 음악을 베이스로 한 힙합 장르를 기본으로 재즈, R&B 등을 섞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빅딜 레코드]]를 동료 뮤지션들과 설립해 [[데드피]]의 《[[Undisputed LP]]》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힙합씬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6년 [[한국대중음악]]에서 올해의 힙합 싱글을 수한 [[가리온]]의 《[[무투 (음반)|무투]]》, [[다이나믹 듀오]]의 《[[Band of Dynamic Brothers|죽일 놈]]》, [[슈프림팀]]의 1집 《[[Supremier]]》 등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MBC]]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인 [[박명수]]와 호흡을 맞춘 바 있었으나 [[카로 에메랄드]]의 곡들을 짜깁기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고 말았고 표절 작곡가라는 불명예를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38610 "프라이머리 표절 논란에 원곡자 화났다…"신용을 지켜라" 트위터에 경고", 스포츠월드, 2013-11-07]</ref> 설으로 [[박지윤 (가수)|박지윤]]의 〈미스터리〉도 표절로 확인되면서 프라이머리와 아메바컬쳐는 이미지 면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2년 뒤인 [[2015년]]에는 록 밴드 [[혁오]]의 오혁과 공동 작업한 싱글 앨범인 ''LUCKY YOU''를 발표하였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24748 “프라이머리, 오늘(24일) 컴백…싱글앨범 '럭키 유' 발매”, OSEN, 2015년 3월 24일.]</ref>이어 곧바로 또 다른 미니음반인 ''2-1''과 ''2-2'',''2-3''을 발표하였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86316 “프라이머리, 9일 새 싱글 ‘2-1’ 공개..BSK(a.k.a. 김범수), 개코 참여”, 텐아시아, 2015년 4월 9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99663 “프라이머리, 5일 정오 새 싱글 '2-2' 공개..빈지노와 꿀조합”, 텐아시아, 2015년 6월 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20270 “프라이머리, 새 앨범 오늘(24일) 공개..초아·팔로알토·아이언 참여”, OSEN, 2015년 7월 24일.]</ref>8월에는 3년만에 정규 앨범 ''2''를 발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42842 “프라이머리, 3년만 정규 앨범 '2(이)' 12일 발매”, 스타뉴스, 2015년 8월 3일.]</ref>
         *{{공식 웹사이트|http://www.amoebaculture.com/business/front/aboutAC/primary.do}}
  • 하이큐/215화 . . . . 5회 일치
          * 히나타정도 키지만 그 이으로 뛸 수 있는 특이한 MB를 발견한다.
          * 코모리는 "어깨 태가 나쁜 듯하지?"하면서 놀리고 기분이 한 사쿠사는 목욕하겠다며 먼저 돌아간다. 코모리도 뒤따라 퇴장.
          * 그는 카게야마의 첫인이 날카로웠지만 "플레이는 착한 어린이 답다"는 말을 하는데
          * 두 사람 사이의 묘한 신경전
  • 하이큐/223화 . . . . 5회 일치
          * 초반엔 사이드에서 올리는 공격 때문에 분산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 수록 익숙해지면서 다테의 블록은 더욱 견고해졌다.
          * 코가네가와 켄지는 적이지만 항 이렇게 일정한 토스가 올라오는걸 보며 "얼마나 연습을 하는 거야"라고 감동한다.
          * 3학년 아즈마네한테까지 이렇게 나오자 카라스노 진은 얼어붙은 듯이 조용해진다.
          * 황을 관망하는 우카이 코치와 히나타 쇼요.
          * 플레이면에선 다테가 당히 강해진 것 뿐이지 카라스노 측에서 심각한 미스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 하이큐/236화 . . . . 5회 일치
          10번을 막을 궁리를 하는 거 자체가 카라스노의 페이스에 말리는 것. 꾹 참고 리드 블록으로 정석적으로 대응하며 대를 압박하는 것이 해법이다. 오오사도 감독은 결국 어떻게 되던지 "줍고서 공격"하는 단순한 것이 배구라며 늘하던 대로 하라고 격려한다.
          * 스코어가 18대 17인 황에서 [[니시노야 유]]가 코트를 나가고 히나타가 후위로 내려간다. 히나타의 서브. 에치고는 히나타가 후위로 내려갔으니 한숨 돌렸다고 여기지만 그 우시와카를 막아낸 블록 [[츠키시마 케이]]가 전위로 올라온다. 오히려 에치고 본인에겐 힘겨운 황.
          * 양측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 공은 수 차레 양 진을 오가며 화려한 랠리가 이어진다. 이쯤에서 츠바키하라가 승부수를 던진다. 높이 공을 띄우며 테라도마리의 스파이크를 준비한다. 카라스노는 츠키시마를 주축으로 세 명이 블록에 나선다. 이미 츠키시마에겐 테라도마리의 특징과 습관에 대한 파악이 끝났다. 높이도 파워도 초고교급이지만 코스는 대각선으로 편중되는 경향이 있다.
          * 그 길목을 지키고 있는 히나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코스를 정확히 꿰뚫어 봤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요행으로 그 자리에 있던게 아니라 정확히 황을 파악하고 "잡으러 간 것"이라고 평한다.
  • 하이큐/237화 . . . . 5회 일치
          * [[츠키시마 케이]]는 합숙의 향으로 약점이었던 약한 토스를 극복, 아즈마네의 강 스파이크로 연결해 역전에 성공한다.
          노마크로 득점을 허용할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히나타가 있다. 여전히 앞으로 너무 나가서 몸으로 공을 받는 모양이 됐지만 어쨌든 공은 살아 있다. [[사와무라 다이치]]가 급하게 공을 올려서 타나카가 츠바키하라 진으로 넘긴다. 삐걱거리는 연계였지만 타나카가 까다로운 코스로 공을 보낸 덕에 츠바키하라가 곤란해 한다.
          * 츠바키하라는 끈질기게 공을 살려서 다시 에치고에게 잇는다. 에치고는 기습적으로 카게야마를 쪽으로 공을 보낸다. 이건 적 세터에게 퍼스트 터치를 유도해서 공격 루트를 한정시켜 버리는 지능적인 플레이다. 카게야마나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그걸 알기 때문에 공을 받고도 표정이 썩는다. 다시 카라스노 진으로 돌아온 공. 카게야마 대신 츠키시마가 아즈마네에게 토스한다.
          한편 히나타는 수비에 기여한 건 사실이지만 자꾸 몸통으로 공을 받아서 관중석에선 "몸으로 받지 말고 손으로 받아라"고 웃음거리가 된다. 본인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부끄러워하는데 사와무라는 전에 "야생의 감"으로 공을 따라가던 것과 달리 대의 플레이를 보고 공이 올 곳을 예해서 움직인 점을 좋게 평가한다. 그 뿐만 아니라 카게야마나 츠키시마 조차도 "경쟁심을 발동시킨" 얼굴로 히나타를 주시한다.
  • 하이큐/238화 . . . . 5회 일치
          * 츠카비하라는 [[카라스노 고교]]의 승세에 수세에 처한다.
          * 그런데 막 나타난 히든카드는 긴장으로 토할거 같은 얼굴이다.
          잡담과는 별개로 카게야마는 히나타에게 "TO 끝난 다음 서브 미스내지 마라"고 경고한다. 히나타는 당연하다고 말했지만, 막 코트에 돌아갔을 땐 보라 듯이 서브 미스를 내고 카게야마의 눈총을 산다. 그리고 히나타가 나가고 니시노야가 들어온다.
          아즈마네의 스파이크는 아쉽게도 블록에 막혀 공이 카라스노 진으로 떨어지는데 니시노야가 다시 몸을 날려 살린다. 그 공을 이번엔 츠키시마가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어 카라스노의 득점으로 연결한다. 다시 벌어지는 점수차.
          * 츠바키하라의 마루야마의 서브로 플레이가 다시 개시. 니시노야가 받아서 타나카가 스파이크를 꽂아넣는다. 점수는 2점차. 24 대 22로 카라스노 고교가 세트 포인트를 달성했다. 그리고 여기서 카게야마의 서브. 츠바키하라 측에선 하필 이 타이밍이냐고 혀를 찬다. 카게야마는 점프 서브로 과감하게 공격하지만 네트에 걸리면서 민망한 황이 되고 말았다. 히나타는 괜히 잘난척하는 태도로 "신경쓰지 마"라고 말했다가 카게야마의 따가운 눈총에 시달린다.
  • 하이큐/242화 . . . . 5회 일치
          * [[스가와라 코시]]는 "결국 왔다"는 감과 함께 첫 봄고 대회 코트로 들어간다.
          스가와라의 서브. 마루야마가 리시브하지만 조금 흔들렸다. 에치고가 이어서 테라도마리에게. 그리고 여기까지가 스가와라가 미리 예측한 황. 테라도마리에 대한 분석도 끝났다. 힘과 높이를 모두 갖췄고 몸 방향과 정확히 맞는 코스로 치는 확률이 높다.
          * [[공]]은 다시 츠바키하라 진으로. 이번엔 이와무로가 떠오른다. 블록이 미처 대응하지 못한 스파이크. [[사와무라 다이치]]가 리시브한다. 공은 카게야마에게 넘어가 [[히나타 쇼요]]에게 세트 업. 그러나 이번 속공은 에치고가 리시브한다. 공은 마루야마에게 넘어가는데.
          3학년들의 활약을 보며 관중석의 카라스노 졸업생들은 그들이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를 회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된 그들이 봄고 대회에서 사활을 걸고 활약하고 있다.
          * 관객석에서는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카라스노의 활약 으로 떠들썩하다. 대부분 1학년 괴짜 속공 콤비나, 레귤러 중 1, 2학년 비중이 높은 점을 화제로 삼는데 아쉽게도 3학년들의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 하이큐/252화 . . . . 5회 일치
          * 규모만 놓고 보면 카라스노의 태고팀은 이나리자키의 취주악부에 밀렸지만 태고의 강한 "박자"로 대가 리듬을 가져가지 못하게 후방지원한다.
          * 하지만 일방적이었던 응원전 양이 바뀌기 시작한다. 카라스노 응원단이 방금 전 도착한 태고팀을 앞세워 격렬한 박자를 연주한다. 이나리자키의 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큰 북에서 퍼지는 묵직한 소리가 대단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 카라스노의 서브. 원래 서브 순간에는 아무 소리도 안 내는게 좋지만, 카라스노 응원단은 이때도 연주를 하기로 한다. 아까부터 이나리자키 응원단이 "박자"를 만들어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꼭 대를 묻어버릴 정도로 대음량일 필요는 없다. 이나리자키가 조성하는 갑자를 흐트러뜨릴 정도면 된다. 응원단이 이런 요청을 하자 사에코는 엄지를 들어보이며 맡겨달라고 제스쳐한다.
          * 이번 경기의 양도 비슷하다. 쇼요가 서브 위치로 가자 이번에도 이나리자키 쪽에서 박자를 가져가려고 연주한다. 사에코는 대항 연주를 준비하며 자기들이 꼭 응원전에서 대를 이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하쿠다 켄 . . . . 5회 일치
         숙부인 [[백남준]]의 도움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유학하여 경제학 학사와 경학 석사(MBA) 학위를 받고 장난감 판매, [[텔레비전]] 프로덕션 등의 사업을 하던 그는 [[1990년대]] 이후 숙부 [[백남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숙부의 작품 활동을 도왔다.
         [[2006년]] 백남준이 타계한 후 그는 [[미국]] [[뉴욕]]의 백남준 스튜디오와 백남준의 모든 작품의 저작권을 물려받아, 현재 뉴욕 백남준 스튜디오의 이사이자 백남준의 법적 대리인으로서 작품 관리와 기념사업 등을 책임지고 있다.
         *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졸업 (경학 석사(M.B.A.))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1972277 백남준 아트센터 2월 완공...저작권 속자 하쿠다씨 방문] , 《[[뉴시스]]》, 2008년 2월 22일자
         [[분류:하버드 대학교 경대학원 동문]][[분류:수원 백씨]]
  • 한다민 . . . . 5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 웹사이트 =
         === 화 ===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한석명 . . . . 5회 일치
         이때 여러 경찰서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한 것을 계기로,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얼마 뒤에는 경찰관으로 전직하였다. [[경남도]] [[창녕군]]과 [[부산부]] 등지를 거쳐 경남 도경찰의 고등과 형사로 재직했다. [[1925년]]에는 경시로 승진하여 정치범이나 사범을 다루는 직책인 경남도 보안과장에 임명되었다.
         |제목=‘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당수
         [[분류:1890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20세기 죽음]][[분류:20세기 한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통역관]][[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유교 신자]][[분류:청주 한씨]]
  • 한유주 . . . . 5회 일치
         [[2003년]] 단편소설 〈달로〉로 제3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 소설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홍익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대학원 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3년 제3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을, 2009년 제42회 [[한국일보 문학]]을 수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등에서 강의했다. 텍스트 실험집단 루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도서출판 [[울리포프레스]]를 운하고 있다.
  • 한이서 . . . . 5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eseo_hann|한이서}}
         * [[세종대학교]] 화예술학과
         === 화 ===
  • 함대 컬렉션 . . . . 5회 일치
         플레이어는 2차대전 당시 군함을 의인화한 미소녀 캐릭터 "칸무스"를 데리고 바다에서 나타난 미지의 적 "심해서함"을 대로 맞서 싸운다.
          군함을 의인화한 미소녀 캐릭터로 이 게임에서 중요한 요소. 이벤트를 뛰어서 얻거나, 심해서함을 잡아서 얻거나, 자원을 쏟아부어 건조하거나 해서 얻는다. 전투 중 굉침시키면 그대로 날아가버리는 것도 특징. 게임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일본제국 해군의 칸무스 밖에 없었지만 게임이 업데이트 되며 나치독일, 일본제국 육군, 이탈리아왕국, 국, 미국의 칸무스가 소량 추가되었다.
         일본에서는 당한 인기를 누리는 중. 물론 양지로 나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음지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얻어 수많은 동인지와 SS, 팬아트, 매드무비 등등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게임"이라며 혐오하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몇몇 웹사이트에서는 칸코레에 대한 언급이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매체 특성 실제로 우익 성향을 가진 이들이 동인 활동에 많이 참여한다. 에로 동인지의 경우 심지어 '위안함'(위안부) 같은 민감한 단어도 사용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 함두영 . . . . 5회 일치
         '''함두'''(咸斗榮, [[1904년]] [[9월 26일]] [[한성부]] ~ [[1979년]] [[11월 7일]])은 제3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 [[독립촉성국민회]] 서울시지부 무위원
         * {{헌정회|448|함두}}
         |후임자 = [[김돈]](마포구)
         |같은 지역구 의원 = (마포구 갑)[[김돈]]
  • 행복회로 . . . . 5회 일치
         행복한 을 하게 만드는 뇌내 신경 회로를 뜻하는 말이다. 불행한 황에서 터무니 없는 망을 돌리는 것을 '행복회로 가동'이라고 부른다.
         실장석은 심장 대신 "위석"이라는 돌을 가슴 속에 가지고 있다. 위석은 실장석의 생명의 근원이자 뇌의 역할을 한다.(일명 '가짜 로자 미스티카') 이것은 고통을 받으면 부서져 버리는데, 완충장치로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행복회로가 발동한다. 행복회로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하고 행복한 망을 보면서 [[현실도피]]를 하게 만드는 기능이다.
  • 현경련 . . . . 5회 일치
         |징 =
         현경련은 [[한양]]의 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주문모]] [[사제|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1811년]]에 [[순교자]] [[최창현 요한]]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3년 후에 세을 떠났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친정]] 어머니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며 평온한 삶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았다. 그녀는 또한 사람들의 성화와 [[문맹]]의 예비 신자를 가르치기, [[냉담자|냉담교우]]를 격려하기,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병자]]들을 돌보기 그리고 죽을 위험에 처한 이교도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등에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선교사]]들이 방문한 동안에, 그녀는 자신의 집에 사람들을 불러들여 [[성사]]를 보도록 해주었다.
         [[1893년]] [[기해박해|기해년의 박해]] 초기에, [[교리]] [[선생]]이 된 현경련은 박해를 피해 숨었지만, [[6월|6]] [[7월]] 경에 [[체포]]되었다. 관리들은 현경련이 [[선교사]]들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던 [[현석문]]의 누나인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숨은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더 가혹하게 그녀를 고문했다. 그녀는 여덟 차례 [[심문]]과 두 차례의 [[주뢰형]] 그리고 300 여대의 [[장형 (형벌)|장형]]을 받았다. 형리들은 선교사들을 체포해서 포을 받고 싶어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더 혹독하게 그녀를 고문했다. 그러나 현경련의 강한 의지로 인해서, 그들의 탐욕적인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그녀는 [[형조]]로 압송된 후에, 다리를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격심하게 매질을 당했다. 그녀의 온몸에 처가 깊어서 피와 [[고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또한 그녀는 [[감옥]]에서 [[콜레라]]에 걸려 앓았다.
         | 저자 = 이
  • 현동완 . . . . 5회 일치
         서울 출신. 1917년 조선중앙[[YMCA]] 학관을 졸업했고, 1918년부터 YMCA 간사가 되어 소년부와 체육부 간사, YMCA 연맹 주임간사, 창학교(英彰․Y학관) 교장, 그리고 서울 YMCA 총무를 지내는 등 거의 전 생애를 YMCA와 더불어 산 YMCA맨이다. [[1920년]] [[3월 30일]] 현동완은 농구 선수 겸 감독원으로서 반하트와 함께 일본 도쿄 원정을 떠났다. YMCA 농구팀은 최초의 해외 원정 경기에서 2승 3패의 전적을 남겼다.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YMCA가 폐쇄 태에 있었던 시기나 8.15 해방 후의 혼란기, [[한국전쟁]]으로 인한 회관 실, 부산 피난과 환도 이후의 혼란기에 YMCA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전쟁 고아와 부녀자를 위한 구호사업에 주력했다. [[1952년]]에는 삼동부녀회관(三同婦女會館)을 설립하여 전쟁 미망인과 윤락 여성을 구호하였고 [[1953년]]에는 100만평이 넘는 [[난지도]]를 사들여 '보이즈 타운'이라고 불린 [[삼동소년촌]](三同少年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들을 데려다가 양육하였다. 소년들이 시장(市長)을 뽑고 자체 은행권을 발행하는 등 유토피아적인 소년 자치도시였다. 난지도의 소년들은 1969년 물난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YMCA 사업의 하나로서 계속 운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보건사회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YMCA 총무이자 '고아의 아버지'로서 전쟁고아 구호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3년]] [[10월 25일]] 삼동소년촌에서 고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
         일제강점기 YMCA 산악회원을 이끌고 백두산 정에 등정했다. 1949 ~ 1954년 [[한국산악회]] 회장을 역임했다. [[브라질]], [[멕시코]] 등 남미 각국을 순방하면서 이민 사업을 추진했다.
  • 현민 . . . . 5회 일치
         ||'''출생'''||[[1991년]] [[7월 22일]] [[경북도]] [[포항시]]||
         ||'''학력'''||[[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br]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아동담치료학과 ||
         2007년 포항 청소년가요제에서 은을 받은 경력이 있고, 이로인해 현 씽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되었다.
          * 가장 향받은 아티스트는 [[보이즈 투 멘]]
          *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라서 음악적으로 많은 향을 받았다고 한다.
  • 홍승규 . . . . 5회 일치
         |문 표기 = Hong Seung-Kyu
         |사진 사이즈 =
         * [[대구원고등학교|대구업고등학교]]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남양 홍씨 (당홍)]][[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
  • 홍유경 . . . . 5회 일치
         | 웹사이트 =
         '''홍유경'''([[1994년]] [[9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걸그룹 [[에이핑크]]의 전 멤버이다. [[대한민국]]의 중견 철강 제조업체인 [[DSR제강]] 창업주였던 홍순모의 손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으나<ref name=hongyk>{{뉴스 인용 | 제목='에이핑크' 홍유경, 1000억대 재력가의 딸 |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9/2012020902006.html | 저자=한혁 기자 | 출판사=조선일보 | 날짜=2012-02-09 | 보존url=http://archive.is/CFdQ | 보존날짜=2012-07-23 }}</ref> [[2013년]] 4월 학업 문제로 [[에이핑크]]에서 탈퇴하였다.<ref>{{뉴스 인용 | 제목='에이핑크' 홍유경 탈퇴..에이큐브 측 "학업 전념" |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3042315233618713&type=1&outlink=1 | 출판사=스타뉴스 | 저자=윤근 기자 | 날짜=2013-04-23 | 보존url=http://archive.is/OkU7D | 보존날짜=2013-05-01 }}</ref>
         * [[중앙대학교]] 연극화과 졸업
         * {{공식 웹사이트|http://www.a-cube.co.kr/|에이큐브}}
  • 황두성 . . . . 5회 일치
         |문 표기 = Hwang Doo-Seong
         |사진 사이즈 = 300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1년]] [[현대 유니콘스]]에 이적하였으나, 1군 1경기에 그쳤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진은 당히 탄탄했었기에 그에게는 기회가 찾아오지 못하고 그의 선수 생활은 주로 2군에 많이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2005년]]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서 [[투수]]들이 부진함에 따라 2군에서 선수 생활을 쭉 해오던 황두성은 비로소 1군에 올라와 기회를 잡게 되는데, 처음에는 불펜으로 자주 등판한 것을 시작으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마당쇠 같은 역할을 하여 [[2005년]] 1군 60경기 11승 9패에 방어율 3점대 초반의 성적을 거두어 두각을 나타낸다. 데뷔 첫 승도 그 해에 기록했다. 그는 140 중후반대의 묵직한 직구와 체인지업 위주로 구사하면서 탈삼진 잡는 능력이 뛰어난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탈삼진 잡는 능력이 뛰어난 점에서 높이 평가받은 그는 [[2006년]] 시즌 처음에 마무리 보직을 맡았으나, [[2005년]]에 지나치게 등판하여 혹사한 탓에 후유증으로 크게 부진하여 2군에서 재활하게 된다. 그 뒤 시즌 중반에 1군으로 올라와 불펜 투수로 뛰면서하면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한다. [[2006년]] 시즌 3.91 평균자책을 기록하였다.
         [[2008년]]에는 선발로 활약하다가 시즌 중반에 소속 팀이 마무리 부재로 불펜진 운에 어려움을 겪자, 자진해서 잠시 마무리로 전향했다. 그러다 [[일본]]인 마무리 [[투수]] [[다카쓰 신고|다카쓰]]의 입단으로 선발 보직으로 다시 옮겼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으로 뽑혔지만 컨디션 난조로 중도 하차하여 [[임태훈 (야구 선수)|임태훈]]과 교체되었다.
         [[2009년]] 시즌에는 처음에 마무리 [[투수]]로 보직으로 활동하다가 구위 난조로 잠시 2군에 잠시 갔었다. 그 후 시즌 중반에 선발 보직으로 활약하여 3.51 방어율에 40게임 등판, 8승 3패 9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2010년]] 스프링 캠프 도중 어깨 통증을 호소하여,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재활하고 있다가 재활에 실패했고 무릎 부까지 겹쳐 1군에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2011년]] [[11월 25일]]에 보류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방출되자마자 곧 은퇴하고 자신이 처음 지명받았던 [[삼성 라이온즈]]의 잔류군 코치로 옮겼다.<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1316335552729 황두성, 삼성에서 지도자로 변신…잔류군 코치 계약] - 아시아경제</ref> [[2014년]] 3월부터 8월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연수하였다.
  • 황선필(1939년) . . . . 5회 일치
         | 출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김천]]
         | 훈 =
         '''황선필'''(黃善必,<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21500329202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2-15&officeId=00032&pageNo=2&printNo=12427&publishType=00020 文化放送 사장에 黃善必씨를 선임] - 경향신문, 1986년 2월 15일</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60400209201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6-04&officeId=00020&pageNo=1&printNo=18666&publishType=00020 靑瓦臺 대변인에 黃善必씨를 任命] - 동아일보, 1982년 6월 4일</ref> [[1939년]] ~ , [[경북도]] [[김천시|김천]])은 [[문화방송]] 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공무원이다.
         |후임자 = [[김수 (1935년)|김수]]
  • 황정립 . . . . 5회 일치
         |문 표기 = Hwang Jung-Lib
         |사진 사이즈 =
         * [[2013년]] 퓨처스 올스타전 우수 타자
         [[2012년]] [[KIA 타이거즈]]의 8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확대 엔트리 시행 후 1군에 올라왔고, 2012년 9월 14일 광주 무등경기장 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8:7로 뒤지고 있던 연장 12회말 2아웃 데뷔 첫 타석에서 [[투수]] [[강식]]을 대로 3구를 받아 쳐 동점 홈런을 날렸다.
  • 황찬호 . . . . 5회 일치
         | 웹사이트 =
         * 《[[장실 (드라마)|장실]]》 (KBS1, 2016년) – 무산 역
         * 《아름다운 세을 위하여》 (2006년)
         * 《유리가면 Episode 5 - 또 하나의 혼》 (2006년)
  •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5회 일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사용해 사람을 구하는 데 사용하는 직업. 개성이라 불리게 되는 초능력이 탄생하고, 이에 비례해 악의 창궐도 활성화되면서 이에 대항해 나타났다. 극 내에서 최고의 인기 직업이라 히어로 포화태라 불릴 만큼 다양한 다수의 히어로가 활동한다. 주인공 [[미도리야 이즈쿠]]도 히어로를 꿈꾼다.
         활동 내용은 범죄와의 싸움이나 재해현장에서 구조 활동 등도 포함되며 심지어 요리 분야에도 히어로가 있는 듯 하다. 이러다보니 활동양에 따라 히어로들의 전문 분야도 달라져서 빌런 진압 전문, 재해 구조 전문 등 차이가 있다.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로부터 각 지구마다 일괄적으로 요청이 오고, 체포 협력이나 인명 구조 등의 공헌을 신고, 전문 기관을 거쳐 조사하고 나서 등급에 해당되는 돈을 받는다.
         경찰이나 소방관처럼 국가에서 내는 돈을 받아서 일종의 준 국가 공무원이라 활 수 있으나 흔히 말하는 부업이 가능해 연예인처럼 광고를 찍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일종의 연예인스러운 느낌도 있어서 돈과 인기를 위해 지망하는 사람도 있으며 덕분에 사회에서 히어로를 비판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일단 이러한 부업에 대한 것은 공무로 정해졌을 때에는 일부에서 당히 다퉜으나 인기와 수요에 의해 무마된 듯 하다.
         이런 판국이나 히어로의 특성 위기 황에서 가장 앞장서야 하기에 그 위험도는 결코 낮지 않다.
  • 3월의 라이온/121화 . . . . 4회 일치
         미카즈키당이 드디어 휴업을 마치고 정업을 시작한다.
          * 공부에 매진하는 키리야마와 달리, 나메리카와는 수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대국을 기대하고 있다.
          * 나메리카와는 수을 즐기는 것 같지만 정작 잘하진 못하는지 걷는 풀에서 둥둥 떠다니다 한소리 듣는다.
  • 3월의 라이온/122화 . . . . 4회 일치
          * 스미스와 요코미조는 "저 사람 키리야마를 엄청 좋아할 것"이라며 수다를 떨면 대국이 길어질 거라고 예한다.
          * 키리야마는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해왔지만 나메리카와는 실전에선 쓰지 않던 수까지 꺼내며 예을 깨부순다.
          * 게다가 대국 중에는 키리야마를 빤히 관찰하는 등 엄청 거북한 대.
          * 요코미조도 같은 수법에 당하면서 고배를 마셨고 거의 트라우마 태.
  • 3월의 라이온/123화 . . . . 4회 일치
          * 키리야마는 대의 기묘한 행동이나 옷차림은 모두 대를 겁주기 위한 허세라고 단정하고 어린애가 아닌 자신은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 그런데 화장실에 간다던 나메리카와는 장지문 사이로 키리야마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걸 눈치챈 키리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서 주의를 당한다.--결국 어린애네--
          * 한편 반 위의 형세는 묘하게 굴러가고 옆에서 지나가던 기사들도 그걸 보고 깜짝 놀란다.
  • EM 드라이브 . . . . 4회 일치
         국의 로저 쇼어(Roger Shawyer) 박사가 개발한 추진기. 전자기파를 이용한 추진장치로서, 2006년 9월 8일 뉴사이언티스트 커버 스토리에 실렸다.
         원불 형태의 밀폐형 챔버에 빛 입자와 극초단파(마이크로웨이브)를 쏘면, 원뿔의 넓은 쪽으로 튕겨 흐르면서 추력이 발생한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인 운동량 보존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며, 당초는 [[온핵융합]] 같은 여러 황당한 가짜 발명 가운데 하나 정도로 여겨졌으나, NASA의 연구 결과, EM 드라이브는 [[진공]]에서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EM 드라이브를 사용하면 기존의 로켓과는 달리 반작용에 필요한 연료 없이 반구적으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으나, 그 원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2006년 처음 개념이 등장해서 일단 실험 결과 실현 가능성은 나타났으나, 구체적인 원리는 수수께끼인 부분이 많다.
  • FN 에르스탈 . . . . 4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하자 FN도 독일 정부에게 징발당한다. 이 때 경진들이 제작공구를 빼돌리는 등의 저항을 했다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가 되어 독일 정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까 싶자마자 독일군의 로켓병기로 보복폭격을 맞았다.
         [[http://www.fnherstal.com/|FN 에르스탈 홈페이지(문)]]
         [[https://fnamerica.com/|FN 아메리카 홈페이지(문)]]
         [[http://www.herstalgroup.be/en/homepage|에르스탈 그룹 홈페이지(문)]]
  • FastSearchMacro . . . . 4회 일치
         인덱싱할 때 `unpack`하고 `sort`하는 부분이 있다. 로직에서 이 부분이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닌데, 이 부분을 빼내면 5천페이지 7분 정도 걸리던 것이 2분 미만으로 단축된다. 또 인덱스 사이즈가 커질수록 느려지게 되는데, `unpack`과 `sort`를 제거하면 전체 페이지가 많아져서 인덱스 사이즈가 커지더라도 큰 속도 저하가 없다.
          * 페이지 ID는 정렬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미리 정렬하는 것은 출력 품질에 향을 미치지 못한다.
          1. 약 1천500 페이지를 가져와서 인덱싱해보니 ~10분 이 걸린다. 자체적 구현의 인덱싱방식이 너무 느린듯.
  • FrontPage . . . . 4회 일치
          * 항목은 관리의 필요에 따라서 삭제될 수 있습니다.
          * 편리한 인터넷 사이
          * [[무료로 책 읽는 사이트]]
          * [[고전을 읽는 사이트]]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4회 일치
         2013시즌은 클래식 팀이 14개팀, 챌린지가 8개팀으로 챌린지의 운일정을 짜기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팀 수가 적었다. 이에 클래식에서는 최하위 2개팀이 무조건 강등되고 차하위 1개팀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 챌린지에서는 리그 우승팀만 승강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수 있었다.
         K리그 클래식에서 챌린지로 떨어지면 천단위 관객이 '''백단위'''로 줄어들고, 반대로 승격되면 백단위가 '''천단위'''로 늘어나는 마술을 지켜보게 된다. 또한 강등되면 보통은 지원금이 뚝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주축선수를 팔아버리는 황도 각오해야 하며 '''팀이 언제 올라갈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실제로 부산 아이파크가 주세종, 이정협, 이범 등 각 포지션의 주요 선수를 팔아버릴 수 밖에 없어서 언제 다시 올라올지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수원 FC는 승격 이래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2016시즌 클래식 리그 개막 이후 4경기 무패행진을 이루면서 제대로 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K리그의 역사가 되는 계기를 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았다.
         = 대회세 =
  • mixi . . . . 4회 일치
          * 과거에는 [[초대제]] 서비스였으며, 18세 이만 가입할 수 있었다.
         여기도 대충 SNS에서 할 수 있는 사건 사고는 다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
         [[분류:웹사이트]]
  • 강연재 . . . . 4회 일치
         | 웹사이트 =
         * [[2007년]] : [[서울중앙지방법원]] 설조정위원회 조정위원
         * [[2009년]] : M&A 컨설팅 무이사
         == 수 ==
  • 강정길 . . . . 4회 일치
         |문 표기 = Kang Jeong-Kil
         |사진 사이즈 =
         * [[남대학교]]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
  • 강중인 . . . . 4회 일치
         [[경북도]] 출신으로 [[1935년]]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38년]]에 경성지방법원 및 경성지방법원검사국 사법관시보가 된 것을 시작으로 법조계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42년]]에 [[조선임전보국단]] 주최로 [[경성중앙방송국]]에서 저명 인사의 시국연설을 방송했을 때, 〈필승사전(必勝思想戰)〉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한 일이 있다.
         [[분류:1908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사회주의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남조선로동당]][[분류:월북자]]
  • 개인용 웹페이지 저장 서비스 . . . . 4회 일치
         === 어 ===
          웹 2.0 사이트까지 지원한다.
          이쪽은 안타깝게도 https를 쓰는 사이트는 잘 지원되지 않는다.
          일본어 사이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3화 . . . . 4회 일치
          * 편집장은 키리에의 그림책을 좋게 평가하지만, 업적으로는 조금 힘들거 같다는 진단을 내린다
          * 항 민폐만 끼치던 우마루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었다.--많이 컸구나--
          * 사실 키리에는 자책하지만 고등학생 신분으로 업작가로 발탁되는 경우는 희귀한다. 그런데 우마루가 변호해줬다곤 해도 명함을 받게 됐으니 엄청난 재능.
          * 이.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8화 . . . . 4회 일치
         정식적으로 담당이 붙은 키리에는 업용 그림책을 새로 그리게 된다.
          * 그러나 몇 분 만에 굳어 버리는데, 키리에는 어두운 숲에 트라우마가 강해서 연할 수가 없었던 것.
          * 아쿠타가와 편집장은 예대로 고정이 됐다.
          * 그런데 코마루가 말릴 때 어렴풋이 우마루의 인을 느끼는걸 보면 슬슬 키리에도 코마루의 정체를 알아가는 것 같은데...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3화 . . . . 4회 일치
          * 선물은 그만 둘까 하다가 타이헤이의 실망하는 모습을 하고 역시 선물을 하려고 고민한다.
          * 에비나에게 의하러 가는데, 동생도 모르는 타이헤이의 생일을 에비나는 기억하고 있다.--오빠 좀 챙겨라 노답 동생아--
          * 우마루는 항 바쁘게 일하는 타이헤이를 생각하다가 "오빠랑 놀고 싶다"는 결론에 이른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3화 . . . . 4회 일치
          * 우마루는 그녀야 말로 자신의 (내숭의)이형이라며 동경하게 된다.
          * 예대로 그녀의 목에는 빠져나간 떡 대신 치고 올라오는 탄산으로 가득하다.
          * 자칫하면 트림이 나와버리는 황. 우마루는 그녀가 초인적인 노력으로 참고 있음을 간파한다.
          * 위기는 지나간 듯 했지만, 우마루는 또 카나우의 이을 감지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특별편 8화 . . . . 4회 일치
          * 동생 히카리는 조금 이하다는 카나우의 독백으로 시작.
          * 히카리는 "언니랑 같은 학교가 아니냐"고 묻는데, 사실 이 시절 카나우는 타이헤이와 거리가 있는 사이였다.
          * 학교는 같아도 카나우는 특진 클래스라 다른 건물에서 생활했기 때문. 그러다 표창식에서 나란히 수하며 만났다.
          * 결국 타이헤이를 데려오지 못한 카나우는 신작 화를 빌려와 히카리와 같이 본다.
  • 고대 그리스 . . . . 4회 일치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라고 하면, 고전기 그리스에서 폴리스 전성기, 헬레니즘 시대를 뜻한다. 이후 [[로마 제국]]에 정복되어 그리스가 정치적 주체성을 실할 때까지를 고대 그리스로 묶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철학, 정치, 과학, 미술 등에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현대 서구 문명으로 이어지는 기반을 만들었기 때문에 서구인들의 고대 그리스에 대한 존경심은 뿌리깊은 것이다. 또한 불교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는 동양에도 향을 미쳤다.
         폴리스들의 자치는 사라졌지만, '그리스 문명'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그리스 문명과 그리스 인이 가장 널리 지배권을 펼쳤던 시기이다. 마케도니아에 정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마케도니아도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어 그리스 인이나 다름없었던 시기이기도 하고. 서쪽으로는 이탈리아, 동으로는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서, 인도까지 그리스 계 폴리스와 왕국이 나타난다.
         중앙아시아 동방의 그리스인들은 [[불교]]로 개종하기도 했으며, [[간다라 미술]]같은 그리스 문화에 향을 받은 불교 예술이 나타나 이후 동양 불교 예술의 근간이 되었다.
  • 고독사 . . . . 4회 일치
         누구에게도 간호를 받지 못하고 혼자서 외롭게 사망하고, 사망한지 몇일 이의 시일이 지나서 발견되는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고립사(孤立死)라고도 한다.
         고독사가 일어나고 일주일 이 지나면 [[시체]]가 부패하여 방 내부의 태가 당히 심각하게 되므로 부동산 회사에서도 문제시 하고 있다.
  • 고독의 요새 . . . . 4회 일치
         [[DC 코믹스]]에 등장하는 가의 시설.
         여기에 설정이 덧붙여지면서 무한 지구 위기 이벤트에서 미치광이 컴퓨터가 지구를 제 2의 [[크립톤]]으로 만들기 위해 전초기지로 만든 것이 고독의 요새이고 슈퍼맨이 [[크립톤]]의 과학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차원으로 관리한다는 설정이 만들어졌다. 요새는 슈퍼맨의 아버지 조 엘이 아들을 걱정해서 백업으로 준비해 놓아다는 설정으로 보인다. 슈퍼맨 화 시리즈도 이렇게 설정을 잡아놓았고 조 엘의 정신을 본딴 AI가 존재해 슈퍼맨에게 조언과 힘을 준다. 또 그 안에 외계무기나 맹수들을 보관하는 케이지도 존재한다. 물론 긴 세월 동안 이런저런 고독의 요새 뒷배경이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에피소드마다 고독의 요새 위치가 시시때때로 바뀌었는데 현재는 북극에 위치해 있다.
         이런 SF틱한 설정과는 반대로 보안은 굉장히 심플한데 그냥 열쇠구멍에 열쇠 넣고 돌리면 들어갈 수 있다. 열쇠도 그냥 문 근처에 존재해서 구하기도 쉽다. 문제는 이 열쇠가 '''슈퍼맨을 제외한 존재는 도저히 들 수가 없다.''' 초창기에는 사이즈도 더럽게 커서 구멍에 넣기도 힘들었다가 근래에 들어서 단순한 열쇠 사이즈가 되었지만 무게가 몇 조(!) 톤이나 되어서 문앞 매트 밑에 넣어놨다.[* 보통 가정집 열쇠 보관하는 그 방식으로.] 슈퍼맨의 인간다움을 부각시키려는 장치의 일종이었는데 아무래도 고독의 요새라는 간지나는 네이밍과는 안 어울려선지 지금은 완전 SF틱한 분위기가 되어 열쇠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NEW 52 이후 부터는 슈퍼맨의 목소리와 DNA 검사로 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공주님 안기 . . . . 4회 일치
         대중문화에서는 이 자세로 안는 쪽이 안기는 쪽을 완전히 품 안에 끌어앉는 형태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인간의 신체비례 이 자세로 대를 품 안에 완전히 끌어 안는 구도가 되려면, 안는 쪽과 안기는 쪽의 신체 크기가 거의 어른과 어린아이 만큼 차이가 있어야 한다. 비슷한 나이 대의 남녀처럼 신장차가 크게 없이 골격 크기가 비슷하고, 신장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라면 완전히 품 속에 끌어안는 모습은 성립하기 어렵다. 다리나 어깨 등, 체 일부를 제외한 몸의 대부분은 안는 쪽의 품 밖으로 이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자세로는 안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버티는 것 만으로는 안정을 얻을 수 없어, 안기는 쪽에서도 목이나 어깨 등을 안아서 단단히 붙어주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정 태가 되지 않는다.
  • 곽대훈 . . . . 4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대구광역시/인물]]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70000B><-5><bgcolor=#FFFFFF><:>[[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징.png|width=30px]]]] {{{#70000B '''[[대한민국|{{{#70000B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국회의원}}}]] ([[대구광역시|{{{#70000B 대구}}}]] [[달서구 갑|{{{#70000B 달서구 갑}}}]])'''}}}||
         1955년 6월 5일 [[경북도]] [[달성군]] [[구지면]](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서 태어났다. 대구초등학교,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행정학과(현 정경대학 행정학과)[* 74학번이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과정을 졸업 또는 수료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2016년 재보궐선거|구청장직을 사임하였다]]. 그리고 현역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이었던 [[홍지만]]과의 [[새누리당]] 경선에서 승리하였다.[* 홍지만 의원은 유승민과 가까운 국회의원으로 분류되었고 이는 홍지만 의원의 경선 컷오프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여론 조사로 후보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이는 구청장 시절 평가가 좋았던 곽대훈 의원이 공천을 받는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리하여 새누리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달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20대 국회에서는 [[산업통자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 곽월 . . . . 4회 일치
         [[1546년]](명종 1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556년]](명종 1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그 뒤 권지, 승문원정자, [[1566년]] 천군수(榮川郡守) 등을 지냈으나 4년 만에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572년]](선조 2년)에 [[선조]]의 여러차례의 간곡한 부름으로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사헌부]]지평, [[1573년]] [[사헌부]]장령, [[1574년]] [[사간원]]사간 등을 지냈다.
         ***** 자부 : [[주 김씨]](尙州金氏), [[조식]]의 외손녀
         * [[고맹]]
         [[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병마절도사]][[분류:수군절도사]][[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현풍 곽씨]][[분류:병사한 사람]]
  • 곽희성 . . . . 4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2013년]] [[KBS1]] 일일연속극 《[[사랑은 노래를 타고]]》 ... 윤현 역
         * [[2017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당신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 하도
  • 구명환 . . . . 4회 일치
         |문 표기 =
         |사진 사이즈 =
         * [[경중학교]]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능성 구씨]][[분류:구씨]][[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
  • 구미시 . . . . 4회 일치
         대동여지도의 ·하구미면 일대로, 우측의 하천이 낙동강이다.
         모사곡동''' || 上毛沙谷洞 || 5.72 || 29,052
         박정희 생가 인근에 세워진 박정희 동
         [[분류:구미시 출신|구미 출신 인물]][[분류:경북도의 도시]][[분류:1978년 설치]][[분류:1995년 폐지]][[분류:1995년 설치]]
  • 구본욱 . . . . 4회 일치
         |문 표기 = KU BON WOOK
         |사진 사이즈 =
         * 경중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
  • 구성윤 . . . . 4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2013년 성인 팀으로 승격하였으나, 일본에서 고등학교 시절 입었던 무릎 부이 재발하면서 전반기를 날렸고, 여름에 재활을 마친 후 다시 엔트리에 복귀했으나 전지훈련을 떠나는 당일에 또 부을 당하며 다시 [[벤치워머]]가 되었다. 이후로도 2009년부터 꾸준히 [[세레소 오사카]]의 골대를 지키고 있던 선배 [[김진현(축구선수)|김진현]]에게 밀리면서 2014년까지 단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였다. 이후 삿포로로 이적한 장면을 보고, 세레소팬들은 구단한테 [[김진현]]선수의 후임이라고 했으면서 육성을 실패한다는게 말이되냐면서 비난이 이어졌다. 물론 그 비난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권기홍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문 표기 = Kwon Ki-Hong
         |사진 사이즈 =
         * [[대구원고등학교]]
         경주고 야구부 교사이자 체육선생
  • 권영진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선수명 = 권
         |문 표기 = Kwon Young-Jin
         |사진 사이즈 =
         '''권진'''(權寧珍, [[1984년]] [[11월 18일]] ~ )은 [[KBO 리그]] 전 [[SK 와이번스]]의 선수이다. [[대구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팀의 좌완 투수로 활약했으나 [[연세대학교]] 입학 후 [[내야수]]겸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연세대학교]] 마운드가 아닌 중심타선에서 맹활약하였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지역 . . . . 4회 일치
         발라스 구역. 갱 전쟁에 관심이 없더라도 스토리 여기서 갱 전쟁을 벌이게 된다.
         고지대에 위치한 지역. 설정 스타들이 사는 곳이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곳 은행은 하도 많이 털려서 경찰도 지키는걸 포기했다고 한다.
         [[http://www.rockstargames.com/sanandreas/|GTA 산 안드레아스 홈페이지(문)]]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 . . 4회 일치
         특징은 일 속의 [[거대로봇]]이란 점. 커봐야 10m 정도이지만 거대한 로봇이 거리에서 어렵지않게 볼 수 있는 건설기계처럼 묘사되고, 그러한 것에 어색함이 없는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먼저 OVA가 나오고, 이후 설정 별개인 TV판이 나왔다. 그리고 이 TV판과 이어지는 새 OVA가 나왔다. 그리고 다시 별도의 설정인 극장판이 나왔다.
         == 실사화 ==
         [[철인 28호]]를 연케하는 요소가 있다. 주역기인 잉그램은 등장 초기만 해도 다른 레이버들보다 앞서는 성능의 신형기체였는데 내용이 진행되면서 잉그램보다 더 우수한 성능의 레이버가 등장하는 묘사는 [[철인 28호(로봇)|철인 28호]]와 닮았다. 심지어 잉그램의 대표적인 라이벌인 그리폰은 블랙 옥스처럼 검은 색에 굉장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적이다.
  • 김대휘 . . . . 4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웹사이트 =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 2월 11일에는 민혁당을 결성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무기징역이 구형된 하피고인에 대해 국보법 반국가단체 구성죄 등을 유죄로 인정,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226118]</ref> 6월 15일에 1994년말 트로츠키의 구혁명론을 추종하는 국제사회주자들이라는 조직에 가입한 뒤 이 조직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노동자연대 등을 소지한 혐의 등으로 4월달에 구속되어 징역 3년이구형된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의 이적단체 가입혐의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는 것으로 보여 보석을 허가한다"고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244671]</ref>
  • 김동호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문 표기 = Kim Dong-Ho
         |사진 사이즈 =
         * [[남대학교]]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
  • 김민수 (1992년) . . . . 4회 일치
         |문 표기 = Kim Min-Su
         * [[무 야구단]] (2017년 ~ 2018년)
         ==[[무 야구단]] 시절==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청원초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청원중학교 동문]][[분류:청원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무 야구단 선수]]
  • 김병찬(아나운서) . . . . 4회 일치
         || '''학력''' || [[충북대학교]] 경학과 학사 [br] 국 웨스트민스터대학교 대학원 방송정책학 석사 ||
         대한민국의 前 아나운서로 충북대학교 경학과를 졸업한 뒤 2000년에 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학원 방송정책학 석사를 마쳤다. 1990년에 한국방송공사 공채 17기 아나운서로 활동한 뒤 2007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 김봉수(1953) . . . . 4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기업인/목록)]
         키움닷컴증권이 이렇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업점이 없어서 저비용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 있다. 물론 이러한 저비용 구조는 수수료를 국내 최저수준으로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온라인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주문의 편리성, 신속한 주문과 체결,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6개월마다 대대적인 시스템 보완을 해온 것도 성공의 원인으로 꼽혔다.
         그 후 2004년에 키움닷컴증권은 [[코스닥]]에 장되었다. 2005년에는 창업 5년 만에 위탁부문 업계 1위로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7년 5월 [[키움증권]]으로 사명이 변경된 후, 2009년에는 [[코스피]]에 장되었다. 그 당시 키움증권의 시가총액은 1조 원을 넘었으며, 1일 거래대금은 4조 원을 넘고 있었다.[* 키움증권은 2005년 이후 11년 연속 주식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 김상훈 (1990년) . . . . 4회 일치
         |선수명 = 김
         |문 표기 = Kim Sang-Hun
         |사진 사이즈 =
         '''김훈'''(金相訓, [[1990년]] [[3월 16일]] ~ )은 [[KBO 리그]]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이다.
  • 김상희 (1951년) . . . . 4회 일치
         '''김희'''(金相喜, [[1951년]] [[1월 25일]] ~ , [[경북도|경북]] [[대구광역시|대구]])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 1979.11 ~ 1982.08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등포지청 검사
         |전임자 = [[정명]]
  • 김새해 . . . . 4회 일치
         * [[명탐정 코난]] - 황유리, 마미, 은채
         * 엠마 - 국사랑이야기 - 아델
         * 데드엔드 99% -
  • 김성곤 (1913년) . . . . 4회 일치
         * [[1937년]] [[보성전문학교]] 과 졸업
         1929년 [[대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지만, 4학년 때 교내 [[항일 운동]]의 주동으로 퇴학당하여 다시 경,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7년]] [[보성전문학교]] 과를 졸업하고 [[1939년]]에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그 뒤 대두유 비축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되어 이후 [[1948년]] 금성방직을 인수한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에 화재가 난다. 그 뒤 [[1952년]]에 [[동양통신]]을 창간하였으며, [[1953년]]에는 연합신문을 인수, [[1956년]]에는 태평방직, 아주방직을 인수하는 등 기업가로서 성공을 이어갔다.
         [[1967년]] 김성곤은 [[길재호]], [[백남억]], [[김진만]]과 함께 [[민주공화당]] 내의 핵심인물이 된다. 그 이후 [[1971년]]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1971년]] [[10월 2일]]에 야당과 동조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고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10.2 항명 파동]]이라 한다. 그 이후 김성곤은 [[10.2 항명 파동]]의 주동인물로 지목받아 경위조사를 받고, 정계를 은퇴하게 된다. 그 뒤 [[1973년]]에는 [[대한공회의소]] 제8대 회장을 지냈으며, [[1974년]]에는 대한양회 인수, 한국신문연구소 회장 취임을 했다. 그 뒤 [[1975년]] [[2월 25일]] 사망하였으며 가족장으로 [[국민대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에 이장되었고, 2014년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재이장되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 김소희 (2000년) . . . . 4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화 ===
         [[분류:200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일엽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문 표기 = Kim Il-Yeob
         |사진 사이즈 =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고졸우선지명<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7260007 해외파들, 어떤 절차로 한국 팀에 입단했나?] - OSEN</ref> 을 받았으나 [[단국대학교]] (1998학번)에 진학했고 [[투수]] [[이승학]]과 함께 [[2001년]] 3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85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01년]] 외에는 제대로 뛰지 못했고 어깨 회전근 부으로 [[2003년]] 5월에 방출당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189169 김일엽 메이저 리그 꿈과 좌절] - 한국일보</ref>
         귀국 이후 수술을 반복하여 재활하였고 방위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며 군 복무를 마쳤다. 복무하던 중에 [[KBO 리그]] 복귀 유예 기간 규정이 지나 [[대한민국]]에서 활동이 가능해졌고 방위산업체 근무를 마친 후 [[2007년]] [[1월 4일]]에 [[롯데 자이언츠]]에 [[신고선수]]로 입단<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3&aid=0000278662 롯데, 마이너 리그 출신 김일엽과 계약] - 뉴시스</ref> 하였으며,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1군에는 [[2008년]]부터 올라오기 시작하여 [[2008년]]에는 2승 1패 1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 3.21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9년]] 시즌에 들어서는 선발 투수들의 잇단 부으로 [[2009년]] [[5월]]부터 한시적으로 선발 보직도 겸하였다. 그러나 성적은 매우 좋지 않아 [[2009년]]에는 승리 없이 5패, 평균자책 7.36을 기록하였으며, 특히 [[2009년]] [[6월 21일]]에 있었던 [[KIA 타이거즈|KIA]]와의 경기에서는 선발로 출장했음에도 단 1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5실점하여 강판되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6210116 ‘데뷔 첫 그랜드 슬램’ 김현수 “만루포 처음이야!”], 《동아일보》 [[2009년]] [[6월 21일]]</ref> [[2012년]]에는 1군 1경기에 그쳤고 그마저도 대량 실점하여 평균자책 40.50을 기록한 후 방출되었다.
  • 김재범(유도) . . . . 4회 일치
         ||<:><#131230>'''{{{#white 출생}}}'''||<#ffffff> [[1985년]] [[1월 25일]], [[경북도]] [[김천시]] ||
         [[2012년 런던 올림픽]] 결승 우승 후 기도하는 세리모니를 할 만큼 '''독실한 [[개신교]]인'''이다. 여기에 흥분한 인터넷 악플러들과 [[일부드립|일부]] 교양 없는 [[반종교]]주의자들이 앞다투어 악플테러를 하여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고 김 선수가 직접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2010년대 초엽에 국내 젊은층에는 여러 모로 신[[무신론]]이 인기를 끌고 있어서, 카이스트에서의 무신론 팟캐스트, 서울대 전도거부 카드, [[자유사가]] 커뮤니티의 운 등을 들 수 있다. 특히나 2012년에는 [[교과서 진화론 삭제사건]]으로 인해 종교계의 비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인 행태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 물론 김재범 선수에 대한 이들의 테러 또한 비이성적이고 반시정적인 행태인건 마찬가지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종교떡밥에 대한 대중적 태도는 어느 정도 침착해진 편.
         == 수 기록 ==
  • 김정수 (1991년) . . . . 4회 일치
         |문 표기 = Kim Jeong-Soo
         |사진 사이즈 =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
  • 김정행 . . . . 4회 일치
         ||<#131230> '''{{{#white 출생}}}''' || [[1943년]] [[12월 7일]],[[경북도]] [[포항시]] ||
         1943년 [[경북도]] [[포항시|일군]]에서 태어났다. 대구 [[대건고등학교(대구)|대건고등학교]], 대한유도학교(현 [[용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72년까지 유도선수로 활동하였다.
         = 수 기록 =
  • 김제남 . . . . 4회 일치
         [[김희정 (1992년)|김희정 (1602년)]]왕후의 아버지, 선조의 장인, [[창대군]]의 외할아버지. 딸을 선조에게 보내고 창대군이 태어난 다음 연흥 부원군(延興府院君)에 봉해졌다.
         광해군 시기에 서자들의 역모 고변에 연루되어 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여 했다는 혐의로 사사되었고, [[인조반정]] 이후에 복권되었다.
         여담으로 이 사람 인목왕후, 창대군 등에게 동정적으로 서술된 광해군일기의 기록에서도, 억울하게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점 이외에는 별로 좋게 써주는 말이 없다.(…)
  • 김태훈 (1987년) . . . . 4회 일치
         |문 표기 = Kim Tae-Hun
         |사진 사이즈 =
         * [[남대학교]]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
  • 김현민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문 표기 = Kim Hyeon-Min
         |사진 사이즈 =
         * 경중학교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제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
  • 김희정 (펜싱선수) . . . . 4회 일치
         | 웹사이트 =
         | 코치 = [[이기 (펜싱 선수)|이기]]
         '''김희정'''(金熙正<ref>{{뉴스 인용 | 제목=<프로필> 펜싱 에폐 금메달 金熙正 | 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013398 | 출판사=연합뉴스 | 저자= | 쪽= | 날짜=1995-04-15 | 확인날짜=2018-09-14}}</ref>, [[1975년]] [[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펜싱]] 선수로 주 종목은 [[에페]]이다.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과 [[2004년 하계 올림픽]]의 출전 경험이 있다.<ref name="sports-reference">{{웹 인용|url=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ki/kim-hui-jeong-1.html |제목=Kim Hui-Jeong Olympic Results |확인날짜=2012년 2월 19일 |웹사이트=sports-reference.com}}</ref> 그녀는 [[2002년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여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0154716 펜싱 이승원-김희정 2관왕 찔렀다]</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4회 일치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웅백서
          공식 소설. 일물 스타일 옴니버스.
          2016년 반기에 진행 중.
          1화를 내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방.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1화 . . . . 4회 일치
          * 게다가 뭔가 이이 있는지 팔은 커녕 허리가 멋대로 돌아가 몸이 두동강 날 뻔 한다.
          * 이이다 텐야도 다리 쪽의 개량을 의뢰 중인데, 그걸 듣고 또 수한 걸 가져다 붙인다.
          *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미도리야가 심치 않다?
          * 토코야미는 다크 섀도우를 몸에 둘러서 근접전 능력을 향시키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름은 "심연암구".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0화 . . . . 4회 일치
          * [[토오가타 밀리오]]는 [[오버홀]]의 예마저 뒤엎고 빠른 시점에 그를 추격하는데 성공한다.
          * 밀리오에 맞서는 철포옥 핫사이슈는 [[사카기 데이도로]]와 [[네모토 신]]. 둘의 공격하는 사이 오버홀은 다시 지하통로를 빠져나간다.
          * 네모토의 개성은 "진실쟁이". 전직 사기꾼으로 그의 개성은 대방의 본심을 강제로 끌어내며 때론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던 진실까지 끌어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5화 . . . . 4회 일치
          * 오후에 [[미도리야 이즈쿠]]는 어머니와 통화한다. 미도리야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퇴원은 내일이라고 거짓말한다. 어머니는 그런 미도리야에게 "웅을 그만두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 거리의 대형스크린에서는 [[유우에이 고등학교|웅]] 관계자들의 사죄방송이 방 중이다.
         * 웅은 원론적인 사죄를 하나 시민들은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한거 아니냐며 질책하는 분위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4화 . . . . 4회 일치
          * 그는 올마이트가 "일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면서 "평화의 징, No.1 히어로로서 최후의..."이라고 독백한다.
          * 대중은 그가 불굴의 정의의 징임을 강조하는 멘트라고 생각하지만, 사정을 아는 미도리야에게는 스승의 은퇴선언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 간수는 이런 태에서도 올마이트와 그렇게 싸웠다는 것에 치를 떤다.
          * 단지 아직도 "배신자"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은 태.
  • 남능미 . . . . 4회 일치
          * 위 문서 : [[배우/한국]], [[불교/인물]]
         거주지 경북도 [[김천시]] 부곡동
         === 화 ===
          * [[내사랑 내곁에(화)|내사랑 내곁에]]
  • 남지현 . . . . 4회 일치
         남지현 탤런트, 화배우
         출생 1995년 9월 17일 경북도 김천시
         사이트 공식사이트, 인스타그램
  • 낭만 주먹 . . . . 4회 일치
         우리나라 조직폭력배는 "낭만주먹"이라고 하여 본래 주먹질만 했으나, [[조양은]]이 사보이 호텔에서 [[신사]]를 회칼로 쑤신 뒤로 칼날과 비열한 습격이 난무하게 되었다는 '''도시전설'''.
         사실, 애초에 우리나라 조직폭력배들이 낭만주먹이었다는 것 자체가 허구로서,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시기의 조직폭력배는 [[칼]]이나 [[도끼]]는 물론, [[권총]]이나 [[폭탄]] 같은 화기 까지 동원할 정도로 과격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야인시대]]에도 묘사된 심 습격사건 등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일반인의 시점에서는 이 무렵 치안 황이 굉장히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황에서도 깡패들이 흉기를 써서 사람을 위협하거나 폭력하는 사건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다. 또 몸을 사리게 된 성인 조폭과는 달리 새롭게 성장하는 청소년 불량배들은 이러한 불문율에 아랑곳하지 않고 흉기를 휘두르면서 막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태촌, 조양은 등은 이렇게 성장한 '신세대 조폭'이었던 것이며, 소위 '낭만주먹'과 비슷한 조폭들이 몸을 사리는 시기는 고작 한 세대도 가지 못한 일시적인 '관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네이버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검색 엔진. 징색은 [[녹색]].
         폭넓은 기능을 지원하고 있는 포털 사이트로, 대한민국의 포털 사이트 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분류:웹사이트]]
  • 노예 . . . . 4회 일치
         같은 [[기독교]]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금기시 되었으나, [[유럽]] 대륙에는 암암리에 사실 노예인 [[농노]]가 존재했다. 근대 시기에 들어서 [[국]], [[프랑스]] 등은 [[노예제|노예 제도]]를 철폐했지만 [[식민지]]에서는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현재 국제사회의 원칙에 따라서 노예는 전 세계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사실 노예 태에 있거나, 관습적으로 여겨지는 노예는 세계 어딘가 존재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암암리에 [[섬노예]]라는게 있다.
  • 뉴 워리어즈 . . . . 4회 일치
         [[DC 코믹스]]의 [[틴 타이탄스]]처럼 10대 웅들의 팀인데 실제 틴 타이탄즈의 대박이 뉴 워리어즈 탄생에 향을 줬다. 10대 히어로 팀이기에 [[어벤저스]]와 달리 젊은 히어로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지구의 [[노바]]도 뉴 워리어즈의 오리지널 멤버였다.
          * 하인드사이트 레드
          * 르네
  • 니세코이/226화 . . . . 4회 일치
          * 오노데라는 고백하지만 이미 이치죠는 마음을 정한 태.
          * 자신은 누가 약속의 아이인지 생각이 났지만, 더이 가지고 있을 자격이 없다고 한다.
          * 오노데라는 이치죠가 치토게를 만나러 갔다고 말하고 루리는 황을 파악한다.
          * 슈는 말 없이 황을 받아들인다.
  • 단종 . . . . 4회 일치
         그러나 즉위한 이듬해에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 등을 비롯한 정치적 반대파들을 숙청하고 실권을 잡으면서 사실 허수아비 신세가 되었고, 그 후 금성대군과 손잡고 수양대군을 견제하려다 실패하고 나머지 친위세력이 모조리 거세된 뒤 이 일을 빌미삼은 수양대군 일파의 압력에 밀려 결국 즉위 3년만에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고 왕으로 밀려난다.
         그 이듬해에 [[사육신]]으로 대표되는 집현전 출신 학사 관료들과 일부 무인 세력이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하려다 발각되어 제거되었고, 이로 인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월로 유배당했다. 그 후 유배중이었던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 계획을 세우다 발각되어 사사당하였고, 이로 인해 결국 단종은 세조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사약으로 사사되었다는 설과 활줄로 교살당했다는 설 등이 있다.) 단종의 시신은 엄홍도란 사람이 몰래 거두어 매장하였다고 전한다.
         '금지옥엽'이란 말이 어울리는 월등한 정통성에도 불구하고 숙부에게 찬탈당하고 끝내 목숨까지 잃은 부분 때문에 민간에서는 그를 동정하는 여론이 강했다. 또한, 보위에 오른 뒤 딱히 실정을 저지른 것도 없었기에 '역사적 재평가'의 대이 될 일이 없기도 했다.
  • 대라신선 . . . . 4회 일치
         신선이라는 만큼 일단 당히 위대한 인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애매한 수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대라신선은 보통 의술과 관련하여 언급된다. 그가 언급되는 장면에서는 보통 중병, 중을 입었을 때 언급된다. 누군가가 중을 입거나 중독되었을 때, 등장인물의 대사나 전지적 지문으로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 없을 것이다."라고 언급되는 것이다. 물론 초월적인 의술을 지닌 몇몇 작중 인물들은 이런 언급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살려내서 대라신선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떻게 손을 못 쓰는 환자가 90% 이. 손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자가 10% 미만이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서사모아 설치계획 . . . . 4회 일치
         == 세 ==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정일권]] 장군의 [[천 전투]] 회고에서 언급된다. [[월튼 워커]] 장군이 자신에게 이런 발언을 했고, 천 전투에서 잘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이 플랜은 없어졌다는 회고. 이 발언에서 60만을 이주시킨다는 설이 나온다.
          * 실제로 사모아로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다면 당히 고난에 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 동북중고등학교 . . . . 4회 일치
         조선소나 산업 단지를 연시키는 컨테이너 박스들로 건설되었다.국 사람이 양사로 근무하는지 김밥볶음밥,떡볶이 스테이크 같은 기괴한 신메뉴들과 굽지 않은 장어구이를 내놓거나 누룽지 속에 김치 덩어리가 발견되는 등 강동구에서 악명높은 급식을 제공한다.
         [[홍위병]] 혹은 [[빨갱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개량 한복을 연시키는 와인색 와이셔츠와 감색 조끼의 투톤으로 구성되있다.
  • 디아스포라 . . . . 4회 일치
         본래 [[고대 그리스어]]로 디아스포라는 '흩어지다'라는 뜻이다. 현대에 디아스포라는 한 [[민족]]이 고향을 떠나서 세계의 다른 곳으로 널리 퍼져나가, 각지에서 [[소수민족]]으로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현을 뜻한다.[http://www.vocabulary.com/dictionary/diaspora 참조]
         어에서 디아스포라는 본래 [[유대인]]과 관련이 밀접하였으며,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가리키는 의미가 강했다. 20세기에는, [[아르메니아인]]이나 [[아프리카]] 출신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나타내는 말로 디아스포라를 인용하면서 디아스포라는 다른 민족에게 대해서도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http://blog.oup.com/2013/06/10-facts-about-diaspora/ 참조]
         분산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오픈소스]]로 개발되는 [[비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디아스포라 재단이라는 단체에서 관리하고 있다.
         [[분류:동음이의어]] [[분류:웹사이트]]
  • 라늬 . . . . 4회 일치
         | 웹사이트 =
         [*[2014년]] ; MBC아이돌육
         2012년 한*일 합작 드라마 레인보우로즈 서
         2022년 우개고 화개봉예정작 출연 라늬역
  • 라오우 . . . . 4회 일치
         [[북두신권]]을 사용하는 인물로, [[켄시로]]의 사형. 동생이자 사제로 [[토키]]가 있으며, [[쌍둥이]] 형으로 [[수라국]]을 다스리는 [[카이오우]]가 있다. 후반부에는 라오우의 아들도 등장한다. 그 외의 혈연으로 여동생 [[사야카]]가 있다. 항 타고 다니는 애마 흑왕호가 있으며, 자신의 사후에 흑왕호는 켄시로에게 물려준다.
         생전에는 공포의 패왕이자 최종보스 역할이었지만, 사후 2부에서는 왠지 이화 되어 웅적인 풍모가 돋보인다. 다만 공포에 의한 지배는 '필요악'적으로 묘사되는 등 왠지 모르게 악행을 설정으로 둘러치고 실드치는 느낌도 있어서 묘하다.
         실제 키는 2미터 남짓인 듯 하지만 가끔 거의 4,5미터에서 10미터 이은 되보이는 [[거인]]으로 그려지기도. 주먹 하나가 사람보다 더 크게 그려질 때도 있다.
  • 령시 . . . . 4회 일치
         [[일본]] [[오컬트]] 용어의 하나. 적인 시각을 뜻하는 말이다.
         령시란, 적인 시각으로서 이를 통하여 대방의 과거, 미래, 적인 간섭 사항 등을 알 수 있다고 여겨진다. [[점술]]과 유사한 면이 있다.
  • 로라 로라 . . . . 4회 일치
         문: Laura Rolla
         아메리아 대륙에 위치한 [[잉그렛샤]]의 주 [[구엔 서드 라인포드]]의 적극적인 스카웃 제의로 잉그렛샤 밀리샤의 에이스 파일럿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녀가 타는 [[기계인형]] "[[화이트돌]]"은 지구인과 [[문레이스]] 모두에게 그녀의 전용기로 인식되고 있으며 지구인들에게는 희망을, 문레이스에겐 최강의 적으로 보이는 듯 하다.
         지구의 에이스였기에 당연히 지구인이라 여겨졌지만, 사실은 달에서 진행하고 있던 귀환계획 당시 파견되었던 문레이스였다. 이 사실이 언론에 공표되고 나서 그녀는 지구와 달 모두에게 백안시 당하는데, 지구인-문레이스 양측에게 배신감을 주기 충분했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행동원칙은 "지구와 달이 싸우지 않는" 미래를 도출하기 위해 지구인을 위해 싸우는 것 뿐이었다. 또한 이미 그녀에게 콩깍지가 겹겹히 씌인 구엔은 배신감은 고사하고 어찌되든 '''"로라와 함께있다"'''는 사실에 만족함은 물론이고 에이스 파일럿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현실적 황과 맞물려 그녀는 구엔의 지지하에 밀리샤에 남게 된다.
         구엔의 정략적 선택은 효과가 발군이라서 지구와 문레이스 일부를 제외하고 일반 병사들에게 수염([화이트돌])의 파일럿 = 로라라는 여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건 구엔의 사심도 들어가 있는 것이 구엔은 로랑을 로라라고 부르며 늘 곁에 두길 바랬던 것이 투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캐릭터의 존재로 구엔은 빼도박도 못하는 ~~[[로리콘]]~~[[쇼타콘]]으로 확실시되었다. ~~잠깐. 첫 만남때가 로라가 15살때잖아?~~
  • 로리타 패션 . . . . 4회 일치
         아마(甘)는 달콤하다는 의미. 백색이나 핑크색을 기본으로 하여, 프릴이나 리본 같은 장식을 많이 사용한다. 동화책 속의 공주님을 이미지 한 듯한 의이다.
         주로 갈색 등 수수한 색조를 기반으로 한다. 과거 서양의 아동복을 이미지 한 의.
         캐쥬얼 의과 로리타 패션을 접목시킨다. 캐쥬얼 의에 부분적으로 로리타 패션을 도입하여 포인트를 내는 방식이다.
  • 류종원 . . . . 4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수 =
         * [[단국대학교]] 공연화학부 연극전공
  • 리스트 컷 . . . . 4회 일치
         리스트 컷은 주로 사춘기에서 20대 젊은이, 그 중에서도 미혼 여성에게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손목에 2,3회 처를 입히는 것이며, 손목 이외에 팔다리, 얼굴, 복부 등에 처를 입히기도 한다. 리스트 컷은 반복되거나, 습관화 하는 일이 많지만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참조링크(일본어)
         손목(wrist)을 벤다(cut)는 뜻으로 만들어진 일본식 어이다.
         어에서는 wrist slash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리스트 컷을 생략하여 리스카(リスカ)라고 부르기도 한다.
  • 마기/295화 . . . . 4회 일치
          * 연백(연옥염, 아르바)은 신드바드와 연락하며 흥분한 듯한 신드바드에게 "왜 그런 녀석을 대로 안절부절 못하냐"고 묻는다.
          * 좀비가 돼서 황제국을 위해 계속 싸울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광이라며 희히덕거린다.
          * 아르바는 꽤나 신드바드랑 들러붙어 있는데, 꽤 끈적한 사이가 된 듯.
  • 마기/334화 . . . . 4회 일치
          방금 전까지도 한창 일하다가 오느라 행색이 요 모양 요 꼴. 네르바가 피눈물을 흘리는 사이 [[알라딘(마기)|알라딘]]과 백룡이 돌아온다. 알아보지 못하는건 이들도 마찬가지고 알라딘도 그저 그의 검은 루프에만 신경 썼다.
          * 그래도 자초지종을 들은 알라딘은 네르바가 매그노슈타트 사건 때도 얼굴을 비춘 일을 기억해준다. 알리바바는 그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왜 인이 안 남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쥬다르는 그게 다 네르바가 약해서 그렇다며 아직도 전신마장을 못하는 신세임을 까발린다. 그래도 알라딘이 게이트를 지키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하자 네르바는 다시 기세등등해져서 큰소리쳐댄다. 하지만 일행 중 누구도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아쉽게나마 준비가 끝나자 알라딘이 성궁으로 가는 게이트를 연다. 알라딘의 마법진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마고이가 방출되더니 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만들어진다. 알라딘은 지금부터 루프의 세으로 돌입한다고 경고한다.
  • 마더콘 . . . . 4회 일치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 과도하게 강한 것을 나타낸다. 젊은 남자가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향 아래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처음 나타난 것은 명확하지 않지만, 1965년대에 이미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었다고 한다. 1973년에 현대 용어 기초 지식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어머니 애착증"이라고 밖에 언급되저 잇지 않다. 1970년의 하세가와 마치코(長谷川町子, 사자에의 작가)의 4컷 만화에서는 효도를 하는 것이 마더콘으로 여겨진다는 풍자 소재가 있다.
         『계속 당신을 좋아했다(ずっとあなたが好きだった)』라는 드라마는 29세 여성 니시다 미와(西田美和, 연기자는 카쿠 치카코賀来千香子)가 도쿄 대학교 출신 엘리트 은행원 카츠라다 후유히코와 맞선 결혼을 하지만, 같은 시기에 옛 남자친구인 오오이와(大岩)와 재회하여 흔들린다는 내용이다. 여담으로 원래는 그다지 마더콘 설정이 아니었으며, 1화에서는 그리 기분 나쁘지 않고 지적이고 냥한 좋은 사람으로 감기에 걸린 미와를 배려하여 샐러드와 죽을 만들어주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미와와 오오이와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아이 카나코(加奈子)와 후유히코가 재혼 후에 낳은 소년 마리오(麻里夫)이 성장하여 사랑을 한다는 데서 시작된다. 참고로 사노 시로우는 마리오 역도 맡았으며 이 작품에서는 진성 스토커다.(...)
  • 마블 코믹스 . . . . 4회 일치
         국내에서도 [[캡콤]] 등의 게임을 통해 이전부터 인지도가 있었으며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 등 캐릭터들이 실사화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만들어지면서 더 큰 인지도를 지니게 되었다.
         미국 만화 회사이기에 내놓는 만화들도 어 실력이 필요하나 몇몇 만화들이 번역되어 국내에도 정발되었다. '시크릿 워'가 그런 경우.
          화 세계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도 등장하나 이쪽은 차이점이 있으며 이름도 [[인피니티 스톤]]이 되었다.
  • 마블 퍼즐퀘스트/1성 . . . . 4회 일치
         레벨 5: {{{{color:#AA00AA}보라색}}} AP도 훔친다.(팀업제외 전색) 발동비용이
         대을 2턴간 기절시킨다.
         레벨 5: 대외 적들도 1턴간 기절시킨다.
         보드에 거미줄 타일이 6개 이이면 거미줄 타일을 모두 제거하며 적을 즉사시킨다.
  • 마치킨 . . . . 4회 일치
         일반적으로 마치킨은 돈을 빌릴 때 특별히 사용처 제한이 없지만, 그 만큼 금리가 높다. 사무실에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로 대출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며, 환 할 때는 사무실에 직접 현금을 가져가거나 계좌이체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샐러리맨을 대으로 하는 사라킨(サラ金,샐러리맨 금융의 약자)보다 약간 금리가 높다.
         2007년 대금업법이 개정되면서, 이자 제한법의 한 금리 이하로만 대출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많은 업체가 경난에 빠지거나 폐업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는 합법적인 업체에 국한되었으며 불법적으로 과도한 이자를 물리던 업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불법사채의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 맨씽 . . . . 4회 일치
         2005년에 화가 나왔으나 이 화에서 맨씽은 주인공이 아니라 크리처물이나 괴수물에서 나오는 괴물 포지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참고로 이 화에서 맨씽의 모습은 코믹스와 달리 그루트 비슷한 나무인간형 괴물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등장할 가능성에 대한 떡밥이 있다. 화 [[아이언맨 3]]에서는 관련인물인 [[엘렌 브란트]]가 등장했고 [[에이전트 오브 쉴드]] 1시즌 20화에 등장한 [[마리아 힐]]의 대화에서 언급되었다. 다만 이것을 등장 떡밥으로 봐야될지는 미지수인 것이 브랜트는 맨씽과 관련없이 AIM 관련으로만 등장했을 수도 있고, 힐의 언급은 그저 서비스적인 측면일 수도 있다.
  • 메타보 . . . . 4회 일치
         메타볼릭 신드롬이란, 대사 증후군을 뜻한다. 내장 지방형 비만 태이며, 혈압, 콜레스트롤, 혈당치 가운데 2개 이의 수치에 이이 있는 태를 뜻한다.
  • 모리오리 족 . . . . 4회 일치
         모리오리 족은 농경민족인 폴리네시아 이주민이지만, 채텀 제도는 기후가 추운 편이라 열대 농작물을 재배하는 폴리네시아 전통 농업에 부적합하여 모리오리 족은 수렵, 채집으로 살아갔다. 이웃한 마오리 족이 농업을 사용하여 10만명 이의 인구를 가지게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모리오리 족의 인구는 약 2,000명 정도였다.
         채텀 제도는 폴리네시아 전통 농업에 부적합하였기 떄문에 집약적인 농업과 전쟁 문화를 가지게 된 마오리 족과는 달리, 모리오리 족은 수렵과 채집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채텀 제도의 환경 집약 농업이 어렵고 인구 조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인구 밀도가 높아 전쟁이 자주 벌어졌던 마오리 족 사회와는 달리 모리오리 족은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공통된 조에서 갈라졌지만 약 500년 동안 모리오리 족과 마오리 족은 전혀 서로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마오리 족이 모리오리 족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바다 표범을 사냥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선박이 우연히 채텀 제도에 들렸다가, 뉴질랜드에 들리면서 채텀 제도와 모리오리 족의 황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 문경시 . . . . 4회 일치
         순면''' || 永順面 || 1,342 || 2,976 ||38.54
         문경 관음리 석조미륵보살반가사유
         문경 관음리 석조미륵보살반가사유
         [[분류:경북도의 도시]]
  • 문석희 . . . . 4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화배우
         | 웹사이트 =
         '''문석희'''([[1980년]] [[12월 21일]])은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이자 [[화 배우]]이다.
  • 문호근 . . . . 4회 일치
         | 출생지 = {{국기|대한민국}} [[경북도]] [[김천시|금릉군 김천읍]]
         [[경북도]] [[김천시|김천]] 출생이며 본관은 [[남평 문씨|남평]](南平)이다. 재야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장남이자 [[화배우]] [[문성근]]의 형이다.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헨 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남평 문씨]][[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독일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뮌헨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문익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미도리야 이즈쿠 . . . . 4회 일치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를 동경하는 소년. 초능력이 일화되어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라 불리고, 만화 속에서나 나오던 히어로가 현실의 직업이 된 세계에서 소수가 된 무개성이다. 비록 무개성인데다 작은 체구에 소심해도 착한데다 위기를 보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등 히어로에 어울리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를 세은 박하게 대하고, 일단은 소꿉친구라 할 수 있는 [[바쿠고 카츠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보통.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최고의 웅이자 어려서부터 동경해온 히어로인 [[올마이트]]와 만나 히어로의 길을 걷게 된다.
         == 세 ==
  • 바레브 라인 . . . . 4회 일치
         견고한 방어선으로 보였지만 당한 문제점이 있었다.
          * [[공군]]의 지원을 정하여 포병의 배치가 적었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군은 2000 문 이의 박격포와 야포를 동원하여, 1분에 1만발 이의 포탄을 쏟아부어 포격전에서 압도하게 된다.
  • 바키도/105화 . . . . 4회 일치
          * 무사시는 피클의 기이한 형과 행동거지를 통해 그가 터무니 없이 강하고 터무니 없이 많은 싸움을 거친 전사임을 알아본다.
          * 피클은 무사시를 대로 사족보행 형태에 돌입한다.
          * 피클은 먼 고대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그 어떤 적도 이 수법은 잘 통했다고 회한다.
          * 피클의 회으로 오랜만에 렛츠 카이오가 나왔다. 그래도 고대의 공룡들에 비견될 정도는 되는 걸 보면 보람찬 인생이었을지도...
  • 바키도/127화 . . . . 4회 일치
          * 무사시에게 큰 처를 준데다 심지어 애도까지 빼앗으며 완전히 농락한다.
          * 모토베는 칼을 돌려주는 척하면서 또 한 번 폭발을 일으키고 무사시의 방어가 무너지자 사슬추로 처난 얼굴을 두드린다.
          * 무사시는 기침을 진정시키고 꺾였던 발목을 살핀 뒤 "이 정면의 처를 어떻게 갚을 건가"라고 묻는다.
          * 이때를 놓치지 않는 모토베. "주의가 부족했다"고 외치며 무사시의 처에 사슬추를 명중시킨다.
  • 바키도/135화 . . . . 4회 일치
          * 전세계의 예을 뒤엎고 백악관에 입성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그는 "오거"라는 이름을 전해듣지만 아는 바는 커녕 관심도 없다. 하지만 그와 불가침선언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어이없어하는데.
          * 트럼프는 전임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몇 번이나 질문한다. "대국이 일개 개인에게 불가친 선언이라니". 사실 트럼프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비식적이라 여길 만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잘못 들은게 아니며 들은 그대로의 내용이라고 확인해준다.
          그의 의중을 짐작한 오바마는 "필부의 용기"란 말을 꺼내며 전략없이 대를 보는 용기를 비웃는 말이라고 한다.
          격한 흥분 속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이 "개똥같은 관례"를 종결지을 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텔 최층에 당도한 순간, "그"를 목격한 순간 확신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바키도/141화 . . . . 4회 일치
          * 무사시는 그 힘만큼이나 '고고'하지만 고독한 존재. 특히 현대 사회에 갑자기 던져진 그의 고독은 할 수도 없는 정도.
          * 그에 대해선 "그 검호"라고만 언급되지만 그가 경찰의 포위를 뚫고 [[도쿠가와 미츠나리]]의 저택에서 도주한 일은 당히 세하게 기사화됐다. 경찰은 여전히 그를 쫓고 있는데.
  • 박강현 . . . . 4회 일치
         | 웹사이트 =
         '''박강현'''([[1990년]] [[2월 27일]] ~ )<ref>{{웹 인용 |제목= 171208 김주택 인스타라이브(미라클라스 단체 등장)|인용문=주민등록 생일, 실제 태어난 날은 1989년 12월 27일이다}}</ref>은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이다. [[2015년]]에 뮤지컬 '라이어타임'으로 데뷔하였다. 크로스오버 남성 사중창 그룹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팬텀싱어]] 시즌2에 출연하여 '''[[미라클라스]]'''의 멤버로 결승에 진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 화 ===
         * 2014년 단편화《러브모텔 잔혹사》
  • 박승욱 . . . . 4회 일치
         |문 표기 = Park Seung-Wook
         |사진 사이즈 =
         * [[대구원고등학교]]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
  • 박영진 . . . . 4회 일치
         박진 코미디언
         출생 1981년 3월 27일, 경북도 김천시
         사이트 공식사이트, 인스타그램
  • 박재현 (야구인) . . . . 4회 일치
         |문 표기 = Park Jae-Hyun
         |사진 사이즈 =
         * [[경중학교]] 야구부 코치 (1997년 ~ 2000년)
         [[경중학교]], [[경북고등학교]], [[계명대학교]] 등 야구부 코치를 거쳐 [[kt 위즈]], [[삼성 라이온즈]] 등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 박정환 (1957년) . . . . 4회 일치
         |문 표기 = Park Jeong-Hwan
         |사진 사이즈 =
         * [[경중학교]]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동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밀양 박씨]]
  • 박지훈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문 표기 = Park Ji-Hoon
         |사진 사이즈 =
         2012년에 입단하였다. 입단한 해에 신인 후보에 올랐으나 7표를 받는데 그쳤다. 신인왕 수은 [[넥센 히어로즈]]의 [[서건창]]이 차지하였다.
  • 박철수 (1960년) . . . . 4회 일치
         '''박철수'''(朴哲秀, [[1960년]] [[경북도]] ~ )는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남대학교]]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
  • 박현진 (음악가) . . . . 4회 일치
         | 학력 = 서초등학교 졸업, 서중학교 재학
         | 웹사이트 =
         * 《[[재발굴단]]》 (2015, 2017) - 36회, 100회, 105회, 106회
  • 배기철(정치인) . . . . 4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출생지}}}''' ||<(> 경북도 김천시 ||
         ||<bgcolor=#C9151E> '''{{{#FFFFFF 약력}}}''' ||<(> 제28대 대구광역시 동구청장[br]대구광역시 동구 부구청장[br]여의도 연구원 정책자문위원회 정치발전분과 부위원장[br]수도사업본부장[br]준공제혁신추진단장[br]7급공채합격 ||
         1957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고등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계명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 백운산 물고기 . . . . 4회 일치
         [[열대어]]로 [[관어]]의 일종. 학명은 Tanichthys. [[일본]]에서는 붉은 지느러미를 특징으로 보아 붉은 지느러미라는 뜻으로, 아카히레(アカヒレ)라고 부른다.
         본래는 열대어지만, 관어로 유통되는 종은 오래 전에 채집되어 양식된 종으로서, 수온 변화나 오염에 강한 변이를 거쳤기 때문에 [[겨울]]에도 기온 10도 정도 온도의 실내라면 버틸 수 있어 사육이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베트남에서 채집된 종류는 변이가 없는 열대어라서 쉽게 얼어죽는다.
         관어로 유통되는 종은 [[알비노]] 변이를 거쳐 금빛을 가진 종류나, 지느러미가 길고 아름다운 종류 등 다양한 변종이 있다.
         [[분류:어류]] [[분류:열대어]] [[분류:관어]]
  • 병거 . . . . 4회 일치
         兵車. 전차(戰車)라고도 한다. [[어]]로는 '채리엇'.
         전투용으로 쓰이는 [[마차]]를 뜻하는 말. 좁은 의미의 병거는 고대의 청동기 문명 시기에 여러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청동기 시대 이후로는 [[기병]]에 밀려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실용성을 거의 실했다.
         청동기 시대에는 직접 탑승하는 [[기병]]의 발달은 미비하였는데, 고대에는 말의 품종 개량이 부족하여 승마에 적합한 말이 적었고 따라서 승마가 불가능하거나 그 효용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보병]]은 병기의 발달이 부족하여 그리 큰 전력이 되지 못했는데, 청동기로 대표되는 청동기 문명이라고 해도 [[청동]]의 제조에는 높은 야금 기술이 필요하여 청동기는 생산성이 낮았다. 대개 청동기는 소수의 귀족 계급만이 무기나 제례 도구로 사용하였고, 보병의 무기나 일 도구는 [[석기]]나 [[나무]], [[구리]]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보병과 기병의 발달이 부족한 황이라, 야전에서 병거는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 . . . 4회 일치
         >돈이 있으면 아이 낳을 녀석이 엄청 있으니까 일단 돈 주거나 아이에 드는 비용 전부 무으로 해라.
         == 세 ==
         [[2016년]] [[2월 15일]], [[하테나 익명 다이어리]]에 해당 익명 게시물이 올라왔으며, 인터넷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고, [[트위터]]에서는 '#보육원 떨어진 것은 나다(#保育園落ちたの私だ)'라는 [[해시태그]]가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현에 대해서 대기아동 문제에 걸린 사람이 많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가족이 많아 [[공감]]을 일으켰다는 분석이 있다.
         2월 29일에는 일본 국회의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마오 시오리(山尾志桜里) 민주당 의원이 이 블로그에 대해서 거론했으나, [[아베 신조]] 총리는 "익명인 이 실제로 진실인지, 내가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하였으며, 의원석에서는 "누가 (블로그에) 쓴거야", "(질문자는) 제대로 (쓴) 본인을 내놔."라는 야유가 날아왔다고 한다.
  • 보쿠걸/102화 . . . . 4회 일치
         [[보쿠걸]] 102화. '''나의 인'''
         미즈키가 이마이선배와 초콜렛을 만드는 사이 후지와라는 타케루와 마주친다.
          * 하지만 "미즈키한테 주는게 어떻냐"는 말을 덧붙여서 후지와라를 심시킨다.
          * 타케루는 "여자같은 얼굴로 항 고민하고 갈등했으니, 차라리 여자애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면서
  • 보통국가 . . . . 4회 일치
         몇몇 일본 [[밀덕]]들은 보통국가화를 통하여 일본을 [[미국]], [[국]], [[프랑스]] 등과 동등한 '세계의 경찰 국가'로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익들이 말하는 '보통국가'는 사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기준이다. 현재 [[국제연합]] 체계의 '보통국가'는 일본의 평화헌법과 마찬가지로,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방어전쟁만을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평화헌법이라고 불리지는 않지만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방어전쟁 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사실 내용으로는 별 차이 없다. 따라서 현재 체계에서 딱히 일본이 다른 나라들보다 국제적 권리에 있어서 더 강한 제약을 받는 것은 '''전혀 없다.'''
         즉,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의 '[[전쟁]]에 대한 [[식]]'이 완전히 바뀌었다는걸 무시하고, 1차대전 이전 기준으로 마음대로 다른 나라에 '침략'(그네들 말로는 '출병')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하는 것이 일본 우익들의 주장인 것이다.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세이 바뀌었다'''는걸 의도적으로 국민들에게 감추고, 1차대전 이전의 질서가 올바르다고 주장하고 있는 어이없는 모습이다.
  • 불심자 . . . . 4회 일치
         수한 사람, 괴한이라는 뜻. 일반적으로 방범 분야에서 쓰인다. [[일본]]의 경우, [[경찰]]과 [[소방서]], [[지자체]] 등에서 이러한 불심자 정보를 수집하여 [[E메일]] 등으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서비스가 있다.
         불심(不審)이란 확실하지 않아, 수스럽게 느껴지는 점이 있는 황을 뜻한다. 방범 분야에서 말하는 불심자는 다음과 같은 사람을 뜻한다.
          * 수하게 보이는 가방을 가지고 있다.
  • 블랙 클로버/103화 . . . . 4회 일치
          * 황을 지켜본 아스타는 사건의 결말도 노엘의 말도 모두 만족스럽다. 그런데 아까 카호노가 "노엘은 어떤 존재냐"고 물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스타는 별 뜻없이 당사자에게 바로 말해버린다.
          미인이 혼자 있으면 불청객이 찾아오는 법. 버밀튼 가문의 바르만 남작이란 자가 나타나 수작을 건다. 취한채로 나타난 바르만 남작은 제멋대로 "오늘밤 대는 그대로 정했다며" 미인에게 추근거린다. 미인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고 꽂꽂한 시선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무시에 더 흥분한 바르만 남작은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팔을 잡아챈다.
          그리고 미인의 일행으로 보이는 여자가 도착하는데 산수훈에서 잠시 본 적이 있는 들장미단의 [[솔 마론]]이었다. 어딜 다녀오느라 테이블에게 일어난 작은 사건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미인을 "언니"라 부르며 뭘하는 거냐고 묻는다.
          항 갑옷차림이던 [[쿨 뷰티]], 푸른 들장미 단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였다.
  • 블랙 클로버/120화 . . . . 4회 일치
          * 드디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와 [[노엘 실버]]의 팀이 시합. 그런데 세 번재 멤버는 곧 죽을 것 같은 관의 묘한 아저씨였다.
          * 시합을 앞두고 주도권 싸움에 들어간 노엘과 유노. 그 앞에 대팀 소속인 [[솔리드 노엘]]이 찾아와 노엘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 딱히 작전도 없이 시작된 8시합. 유노팀이 아직도 의견 조율 중인데 반해 대팀은 시작부터 합체마법으로 재빠르게 속공을 걸어온다.
          * 유노는 남아서 크리스탈을 수비하는데 가운데 알렉드라 또한 대하려 한다. 이런 태도가 알렉드라의 심기를 거스르고 마는데.
  • 블랙 클로버/133화 . . . . 4회 일치
          * 한편 불완전연소로 대회를 마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는 멍한 태로 검은 폭우단 아지트에 방치돼 있다. 유노가 새로운 힘에 각성한 것이나 잭스가 실제론 사칭이었던 것, [[핀랄 룰러케이트]]의 용태 등으로 머리가 복잡해서 결국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 [[챠미 퍼밋슨]]도 유노에 대한 사병이 도져서 멍하지만 밥은 잘 먹고 있다. 노엘이나 [[매그너 스윙]], [[락 볼티어]]는 서로 자기야 말로 로얄 나이츠로 선발될 거라며 티격태격한다. 핀랄은 목숨은 구했지만 여전히 중환자.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랜길드 보드]]는 연행. 노엘은 그가 막판에 발휘했던 수한 마력을 찜찜해한다.
         == 세 ==
  • 블랙 클로버/50화 . . . . 4회 일치
          * 양동작전은 멋지게 승리해서 리히트, 바르토스를 대로 승기를 잡는다.
          * 바르토스는 리타이어, 리히트는 여력은 남아 있지만 야미를 대로는 불리하다.
          * 하지만 자신은 "나을 수 없는 처를 준" 마법제라는 최대 적이 있으니 야미에게 수고를 들일 수가 없다고 한다.
          * 반사된 마법에 맞기 전 리히트가 고슈의 왼쪽 눈을 보고 뭔가 이한 낌새를 흘리는데...
  • 블랙 클로버/60화 . . . . 4회 일치
          * 여성진을 대로 "가슴 주물주물 게임"을 하자고 드립을 치다 노엘에게 쳐맞는다.
          * 야미는 자신이 직접 대하겠다며 게임에 참가한다.
          * 대신관은 검은 폭우 단원들이 하급 마도사라는걸 알고 "우리 쪽은 전원 중급 마도사 이"이라며 당해낼 방도가 없을 거라 호언한다.
          * 각 단원별로 실력발휘를 해야 하니 각각의 특기와 마법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걸로 예된다.
  • 블랙 클로버/67화 . . . . 4회 일치
          * 카호노와 키아토는 지으로 간다는 꿈을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낸다.
          * 모든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유대를 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 그러나 카호노는 최악의 황에서도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
          * 베토가 내뱉은 말이 떡밥. 리히트 등이 클로버 왕국에 원한을 어필했던 것과 일맥통한다.
  • 블랙 클로버/70화 . . . . 4회 일치
          * 절망의 베토는 비록 치명을 당한건 아니지만 처의 재생이 멈춘걸 껄끄럽게 생각한다.
          * 바네사는 베토가 움직임을 따라잡을 듯 하자 한계 이으로 스피드를 올린다.
          * 핀랄은 사용하는 마법의 수준 때문에 명문가 자재로 예되었는데 결국 맞았다.
  • 블랙 클로버/75화 . . . . 4회 일치
          * 유노는 바람의 정령의 힘으로 팔휘장을 대하고 야미 스케히로와 챠미 퍼밋슨도 현장으로 향한다.
          * 거대한 멧돼지 형의 흙인형이 돌격을 가해 성벽을 무너뜨린다.
          * 다이아몬드 측의 파공세로 키텐은 속수무책 유린당한다.
          * 아스타도 가겠다고 나서지만 야미가 중자라며 거부한다.
  • 블랙 클로버/79화 . . . . 4회 일치
          * 윌러엄 밴전스는 의외로 쉽게 가면을 벗는다. 그의 얼굴은 화같은 심한 흉터가 있다.
          * 딱히 친한건 아니었지만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니, 얼굴을 보여달라고 다시 한 번 요구한다.
          * 윌리엄의 맨얼굴은 참혹한 처로 뒤덮여 있다.
          * 이 처는 날 때부터 있던 것으로 이것 때문에 저주받은 아이라고 불렸다.
  • 블랙 클로버/92화 . . . . 4회 일치
          그랬던 마르스는 눈 앞에 파나와 닮은 소녀 "증오의 파나"가 나타나자 이성을 실한다. 친구인 파나가 어쨌든 살아있다고 생각해 버린 마르스는 앞뒤 보지도 않고 일단 파나에게 달려가려다 아스타에게 제지 당한다. 사정을 모르는 아스타는 마르스가 황당한 짓을 한다고 여기다 둘이 아는 사이인 듯 하자 또 놀란다. 그러나 정작 파나는 마르스는 모른다며 공격을 가한다.
          * 증오의 파나가 진짜 "파나"인지, 그런건 알 수 없지만 마르스를 모른다고 했던 그녀는 두통을 호소하며 태가 나빠진다. 파나는 "왜 모두 날 방해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절망의 베토]]가 막판에 사용했던 자폭마법을 발동시킨다. [[핀랄 룰러케이터]]는 그걸 알아차리고 왜 저 녀석들은 죄다 저런걸 달고 있냐고 절규한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침착하지만 저것이 발동할 경우 일대가 날아갈 거라고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 [[노엘 실버]]는 자신의 물마법으로 파나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그러나 핀랄의 공간 마법도, 바네스의 실 마법도 파나의 근처에는 접근할 수가 없고, 노엘의 물 마법으로 직접 공격을 가하면 반발 때문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날 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노엘은 역시 아스타의 반마법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 블리치/676화 . . . . 4회 일치
         아스킨은 요루이치의 압 변화 마저 적응한다.
          * 아스킨 나크 르 바르은 폴슈텐디히의 힘으로 황을 역전 시킨다. 그의 폴슈텐디히 "하스라인"은 독의 성질에 적응하는 것으로 같은 베이스인 이 독성이 어떻게 변화하든 적응해서 무효화한다. 이제 압을 어떻게 변화시켜서 통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 블리치/677화 . . . . 4회 일치
          * 우라하라 키스케의 만해는 "고쳐 만드는 능력". 일정한 역 안에서 무엇이든 고치거나 갈라진 태로 만들어 버린다. 아스킨의 몸을 순식간에 갈라버렸고 자신의 처는 순식간에 고쳤다. 마치 실로 봉합한 듯한 모양.
          * 그림죠의 모습이 아란칼편하고 당히 달라졌다.
  • 블리치/684화 . . . . 4회 일치
          * 토시로는 빙륜환의 진정한 힘을 끌어낸 태에선 오래 활동하지 못한다.
          * 한편 왕궁에 도착한 이치고.
          * 우류는 "밤 사이에 죽이지 못한건 예외겠지"라며 도발해 보지만 이미 만신창이.
  • 블리치/686화 . . . . 4회 일치
          * 그러자 "여기엔 너희의 힘이 필요없다는 얘기"라고 말하며 어서 가보라고 하고, 둘은 감사하다고 말하며 왕궁으로 향한다.
          * 토시로는 저렇게 보내는게 맞다며 "사신은 가족이나 관을 위해 싸우는게 아니라 인간과 벗을 위해 죽는 것"이라 배웠다며
          * 한편 왕궁 어딘가에 쿠로사키 잇신과 이시다 류켄이 도착한다.
          * 하쉬발트는 최종흑막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했는데, 우류 대로 중2 돋는 말이나 늘어놓는걸 보면 글른 듯.
  • 블리치/693화 . . . . 4회 일치
          * 하쉬발트는 우류의 처를 대신 넘겨받고 죽음을 맞이한다.
          * 오리히메는 만해를 수복하려 하나 "모든 미래에서 부러진" 태라 수복하지 못한다.
          * 우류가 떠나기 전 하쉬발트는 그를 불러서 몸에 난 처를 자신에게 옮기도록 한다.
          * 처를 안고 죽어가는 하쉬발트.
  • 블리치/695화 . . . . 4회 일치
          * 유하바하는 렌지를 감싸는걸 보고 "공통의 적을 대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건 네가 싫어하는 패자의 습성"이라고 조롱한다.
          * 그의 저항은 기분 좋았다며, 소울소사이어티와 함께 멸망하라고 말하는데
          * 유하바하가 본 것은 경화수월의 환인 듯.
          * --뒷치기가 사 최초로 성공한 느낌.--
  • 블리치/697화 . . . . 4회 일치
          * 갑자기 유하바하의 압의 흔적이 발견되는데...
          * 천년혈전으로부터 벌써 10년. 소울 소사이어티는 원래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 그 말을 들은 히츠가야 토시로는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투덜대는데, 그 대인 마츠모토 란기쿠는 슈헤이를 지목하며 딴전을 핀다.
          * 바로 유하바하와 닮은 압의 반응이 포착된 것이다.
  • 비둘기 . . . . 4회 일치
         도시의 풍요로워진 삶으로 인해 몸이 비대해진 비둘기들을 부르는 명칭. 비둘기보다는 마치 [[닭]] 같다고 해서 닭둘기라고 한다. 언론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01년도에 나온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5&aid=0000050038|이 기사]로 보이며, 언론에서 신조어를 소개하는 것은 당연히 처음 등장했을 시기에 비해서는 늦을 수 밖에 없으니 2000년대 들어서 내지는 1990년대 말쯤에는 이러한 신조어를 쓰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이렇게 몸이 비대해진 비둘기들은 나는 것보다 걷는 것을 선호한다. 어떻게든 날게 해보려고 달려들어도 10초 이 날지 않는다. 사실 나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활동이기 때문에 날고 싶어도 진짜 못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축제]]나 [[제사]]에 흰 비둘기를 제물로 바치거나 날려보낸 향으로 인해 흰 비둘기는 평화의 징으로 간주된다.
         파리에서 열린 [[1900 하계 올림픽]]에서는 [[http://olympics.time.com/2012/07/16/really-strange-sports-that-are-longer-in-the-olympics/slide/live-pigeon-shooting/|살아있는 비둘기를 쏘는 종목도 있었다.]] 이로인해 300마리 이의 조류가 죽었다고.
  • 빈병 . . . . 4회 일치
         == 세 ==
         마트나 그런데 가져가면 돈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제도는 시행되고 있지만[* 소주병 40원, 맥주병 50원. 2017년자 생산품부터 100원, 130원.] 많은 가게에서 "우린 그런거 안 받아요,"라고 대답한다. 걸리면 과태료를 물게 되는 행동. 신고 보금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니 카운터가 꼴보기 싫었다면 찔러보자.
         공병을 팔러 갈 때 이물질이 들어간 병이나 입구가 손된 병은 가져가지 말자. 재활용의 관점에서 [[재떨이]] 대용으로 쓰는 등, 이물질을 투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생략'되는 물건. 그래픽 으로 병에 담겨 있는 [[포션]] 같은 것도 먹으면 병채로 소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극히 일부의 게임에서만 빈병이 남게 된다.
  • 삿시테쨩 . . . . 4회 일치
         삿시테(察して)의 삿시(察し)는 추찰, 통찰, 이해, 짐작을 뜻하는데, 타인에게 말로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미리 자신이 추찰하여 대방의 의중을 헤아린다는 의미가 있다. "~테(~て)"를 붙여서 뭔가를 해달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쨩(ちゃん)은 애칭이다.
         자기 주장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뜻을 짐작해달라고 하기 때문에 대하기 곤란한 대으로 여겨진다. 동료, 친구일 때라도 어려운데,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가 되면 더욱 힘들게 된다.
  • 서정제 . . . . 4회 일치
         |전임2 = [[이모]]
         |웹사이트 =
         대구고등법원장으로 재직하던 1993년 7월 13일에 대법원이 법관인사위원회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이원배]] 서울민사지방법원장, [[박식 (법조인)|박식]] 광주지방법원장과 함께 위원으로 추가 임명되었다.<ref>동아일보 1993년 7월 14일자</ref>
  • 선원 . . . . 4회 일치
         [[세일러복]]을 입고있다는 이미지가 있다만 이미지와 현실은 당히 다르다.
         과거 국은 군함의 선원을 강제 징집해서 충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19세기 극초반에는 미국 선박을 습격, 선원들을 끌고가 자국 군함에 태우기도 했다고 한다.
          해당 사이트에서 소개된 "선원 직업의 매력"을 인용하려 했으나 반대대는 불편한 점을 찾지 못해서 그냥 포기 함.
          국의 강제징집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가져왔다.
  • 성세현 . . . . 4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한민국/컬링)]
         ||<:><#87CEEB>'''{{{#white 출생}}}'''||<:><#ffffff> [[1990년]] [[12월 2일]]([age(1990-12-02)]세), [[경북도]] [[구미시]] ||
         ||<:><#87CEEB>'''{{{#white 소속}}}'''||<:><#ffffff> [[경북체육회 컬링팀|경북도체육회]] ||
         == 수 기록 ==
  • 세속주의 . . . . 4회 일치
         [[정교분리]]를 통하여 [[종교]] 기관과 [[국가]] 정부 기관을 분리, 종교가 대해서 강력한 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고, 모든 종교가 국가의 법 앞에서 평등해야 취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속주의에 기반을 둔 국가를 [[세속국가]]라고 한다.
         세속주의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특정 종교의 규범이 국가기관을 통하여 사회에 광범위한 향을 미치는 것을 반대한다. 세속주의는 국가기관이 어떤 형태로든 종교 단체와 관련되는 것을 비판한다.
         세속주의 사에서는 특정 종교를 가졌다는 신념의 문제 떄문에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을 반대한다. 이는, 특정 종교의 신자가 특혜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봄과 동시에, 모든 종교의 신자는 물론 [[무신론]] 역시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세속주의는 [[무신론]]과 혼동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무신론과는 달리 세속주의는 개인적인 생각 보다는 정치와 사회 구조에 집중된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믿어도 관없지만, 국가적으로 특정 종교를 지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세이와 겐지 . . . . 4회 일치
         일본의 씨족. 세이와 겐지는 제56대 [[세이와 덴노]](清和天皇,제56대,생몰 850~881,재위 858~876)를 조으로 하는 겐지 일족이다. 세이와 덴노의 여섯번째 아들이 사다즈미 친왕(貞純親王)이고, 이 사다스미 친왕의 아들로서, 미나모토(源) 씨 성을 하사받아 신적강하(황족의 신분에서 성씨를 받아 신하의 신분이 되는 것, 일본 황족은 성씨가 없다.) 한 것이 미나모토노 츠네모토(源経基)이며. 세이와 겐지의 시조이다.
         츠네모토는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난과 관련이 있다. 무사시국(武蔵)을 다스리는 지방관 쿠니시로 부임하게 된 츠네모토는 무사시 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속히 토착 호족들에게 검주(検注)[* 이 무렵 쿠니시가 호족들에게 받는 '''[[뇌물]]''']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호족 무사시노 타케시바(武蔵武芝)가 정식 임관도 하기 전에 검주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반발하였는데, 격노한 츠네모토는 타케시바를 공격하여 약탈을 실시한다. 도주한 타케시바는 이 무렵 무용을 떨치던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중재'를 의뢰하고, 겁을 먹은 츠네모토는 산으로 도주하여 틀어박혔다가 동행하였던 흥세왕(興世王)을 하산시켜 협을 시작했는데 협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케시바의 군대가 츠네모토의 거주지를 포위하자 마사카도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진 츠네모토는 그대로 교토로 도주하고, 흥세왕, 마사카도, 타케시바 등이 결탁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마사카도는 주변의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 무사시(武蔵), 우에노(上野)의 국부(国府)[* 헤이안 시대 지방 행정구역으로서 '국'의 행정기구.]에서 연명으로 모반의 사실이 없다는 증명서를 작성하여 이미 인연이 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에게 보냈다. 이 탓에 오히려 츠네모토가 무고죄로 투옥당하고 만다.--이런 놈이 조이다.-- 그러나 다행히 곧 마사카도가 모반을 일으켰기 때문에 허위 밀고가 현실이 되어 풀려나게 된다.
  • 손민수(희극인) . . . . 4회 일치
          * 위 문서 : [[코미디언/목록]]
         || 출생 || [[1990년]] [[2월 25일]]/[[경북도]] [[포항시]] ||
         || 거주지 || [[경북도]] [[포항시]] ||
         [[대한민국]]의 [[희극인]]으로, 경북도 포항시 출신이자, 그는 tvN 코미디빅리그로 데뷔하였다.
  • 손철주 (1954년) . . . . 4회 일치
         '''손철주'''(孫哲柱<ref name="김달진">{{웹 인용|제목=인명사전 - 손철주|url=http://www.daljin.com/author/4783|웹사이트=김달진 미술연구소|확인날짜=2017-12-15}}</ref>, 1954년<ref name="다음">[https://search.daum.net/search?w=tot&DA=YZR&t__nil_searchbox=btn&sug=&sugo=&q=%EC%86%90%EC%B2%A0%EC%A3%BC 다음 인물백과-손철주]</ref>~ )는 [[대한민국]]의 미술평론가이다.<ref name="네이버">{{네이버 인물|248289|손철주}}</ref><ref name="중부뉴스">{{뉴스 인용|저자=김석희|제목=‘옛 그림에 나타난 사람의 속마음’ 손철주 평론가를 만나다|url=http://www.jungb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271|날짜=2017-11-07|확인날짜=2017-12-15|뉴스=중부뉴스통신}}</ref> 대구 출신이며,<ref name="김달진"/> 2017년 현재 출판사 학고재의 주간이다.<ref name="네이버"/><ref name="중부뉴스"/>
         1997년 미술 교양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를 세에 내면서 평론가로 데뷔했다.<ref name="다음"/> 이 책은 미술교양서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평가받는다.<ref name="중부뉴스"/><ref>{{뉴스 인용|저자=정은선|제목=손철주 평론가 조선시대 미술 특강|url=http://www.leisur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9|날짜=2017-05-17|확인날짜=2017-12-15|뉴스=제주레저신문}}</ref> 유려한 문체로 전통미술 이해를 돕는다.<ref>{{웹 인용|저자=김유리|제목=미술평론가 손철주 “누구나 취향은 태생의 문화적 DNA로 기운다”|url=http://ch.yes24.com/Article/View/23662|웹사이트=채널예스|출판사=예스이십사(주)|확인날짜=2017-12-15}}</ref>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김사, 2016)
  • 손형준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문 표기 = Son Hyeong-Jun
         |사진 사이즈 =
         * [[경중학교]]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송남헌 . . . . 4회 일치
         광복 후 해방정국에는 [[한국민주당]]에 입당했다가 [[1946년]]부터 [[미군정]] 입법의원인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직에 있던 독립운동가 [[김규식]] 비서장을 지내고 우파를 대표하는 김규식, 좌파를 대표하는 [[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우파 진 위원회의 비서로 지냈다.
         이후 [[민중동맹]]의 창당과 [[1946년]] [[12월]] [[민족자주연맹]]의 창당에 참여하였다. [[1948년]] [[김구]],[[김규식]]등의 발의로 [[남북협]]이 시작되자 [[김규식]]을 수행하여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참가하고 돌아왔다.
         [[분류:조병옥]][[분류:장건]][[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대구사범학교 (1923년) 동문]]
  • 송상진 . . . . 4회 일치
         '''송진'''(宋相振, [[1928년]] [[10월 30일]] ~ [[1975년]] [[4월 9일]])은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인민혁명당 사건|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희생자이다.
         * [[1928년]] [[10월 30일]] [[경북도]] [[달성군]] [[공산동|공산면]] 백악리(현재 대구시 동구 백암동) 출생.
         * 대구사범, 대구대학(현.남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분류:1930년 태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사형된 사람]][[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인혁당 사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남대학교 동문]]
  • 슈퍼걸(드라마)/1시즌 8화 . . . . 4회 일치
         아스트라는 크립토나이트 나이프로 카라를 위협한다. 아스트라 일당은 크립토나인트 방사능 방어 장치를 만들어서 크립토나이트 나이프에도 문제가 없었다. 아스트라는 카라에게 힘을 합치라고 권유하지만 카라는 거부하고 달아난다. DEO에서 카라는 당장 아스트라와 싸우려고 하지만, 행크와 알렉스는 싸울 수 있는 태가 아니라며 카라를 말린다. 알렉스는 행크는 아버지의 죽음과는 무관하다고 카라에게 말한다.
         카라는 DEO에서 알렉스와 훈련을 거듭한다. 알렉스는 아스트라와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며, 주저없이 아스트라를 죽이라고 카라의 정신태를 채찍질한다.
         그랜트는 이메일 해킹 사건 때문에 이사회에서 위협을 받는다. 카라는 슈퍼 청각으로 이사들이 그랜트를 몰아내려고 음모를 꾸민다는걸 알게 된다. 카라와 윈, 제임스는 루시와 법률 담을 한다.
         그랜트는 카라에게 매우 감사한다. 그리고 카라와 여태까지 있었던 슈퍼걸과의 기묘한 우연을 회하며, 카라가 슈퍼걸이란 정체를 스스로 알아내서 확인한다.
  • 슈퍼맨 . . . . 4회 일치
          슈퍼맨 하면 떠오르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힘이다. 그 엄청난 [[괴력]]은 히어로, 빌런을 가리지 않고 최위급의 파워를 자랑한다.
         == 실사화 ==
         오랜 역사를 지닌데다 슈퍼히어로의 대명사격인 슈퍼맨이다보니 모티브의 대이 되기도 하고, 보면 슈퍼맨 닮았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캐릭터도 당히 많다.
  • 슈퍼맨 리벤지 스쿼드 . . . . 4회 일치
          * [[패러사이트]]
          원래 과학자였는데 아들을 성공시키려는 아버지로부터 압박을 받아 혼자서는 무리라고 판단해 삼촌인 할의 대변환 장치로 자신의 복제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면서 표면을 통과할 수 있고, 복제 과정에서 초인 유전자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기계 없이 스스로 복제를 만들수 있게 되었으나 얼굴이 해골처럼 되고, 한 사람이 아니게 되면서 잠을 잘수 없게 되어 미쳐버렸다. 결국 아버지에게 쫓겨나고 범죄자 라이엇이 되었다.
          환을 다루며 비행능력 등도 있다. 프로젝트 캐드머스 관련 캐릭터이기도 하다.
          사이보그 여성. 메인프레임(Mainframe)의 멤버이기도 하다.
  • 스쿨 카스트 . . . . 4회 일치
         [[일본]]의 교육현장 용어. 학교 내에서 학생들 사이에 일종의 '계층'이 갈라지는 것을 뜻한다.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카스트 제도]] 같은 현이라고 하여 '스쿨 카스트'라고 부른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것은 있지만, 스쿨 카스트라는 명칭은 주로 일본에서 사용한다.
         이라는 가사에서도 잘 나오듯이 생각보다 이런 인식은 당히 많은 퍼져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현은 일본 외 국가에서도 별반 다르진 않다. 몬스터메탈그룹 Lordi의 Hard Rock Hallelujah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서구권의 스쿨 카스트가 묘사되고 있다.
  • 스탈리늄 . . . . 4회 일치
         [[월드 오브 탱크]]나 [[워 썬더]] 유저들 사이에서 언급되는 미지의 금속.
         이 와중에, 소련 전차&항공기들이 비정적인 방어력을 뽐내는 황이 목격되자 유저들은 저것들의 장갑은 일반적인 금속이 아니라 스탈리늄이라는 새로운 물질로 만들었다고 드립을 치기 시작한다.
         [[https://steamcommunity.com/sharedfiles/filedetails/?id=673069184|워 썬더 커뮤니티 - 스탈리늄 가이드: 비밀스러운 미스터리(문)]]
  • 스파이 스매셔 . . . . 4회 일치
          1대 스파이 스매셔. 당히 오래전의 히어로로 첫등장은 Whiz Comics #1에 등장. 이때가 1940년이었다. 회사는 [[캡틴 마블]]과 같은 포셋.
          흑백화로도 만들어졌으며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서도 등장했다. 단, 웨일링 장군이 나치스의 [[캡틴 나치]]에 관한 서류를 읽으면서 나오는 과거 시점에서였다.[* 과거의 일이라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인지 흑백으로 처리.]
          수중, 지에서도 활동이 가능한 비행기인 자이로서브가 있으며 JLU에도 나왔다.
          [[배트걸]]이었던 [[오라클]]과는 한때 대학 친구였으나 이이 달라 갈라섰다. 이후 배트걸이 오라클이 되었을 때 자신을 위해 일하라 강요하며 [[버즈 오브 프레이]]를 빼았으려 했다. 하지만 대차게 패했다.
  • 스파이더 . . . . 4회 일치
         두편의 화가 만들어졌는데 제목은 <The Spider's Web>(1938년), <The Spider Returns>(1941년)다.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흑백 화. 화에서는 거미줄 문양같은 복면을 쓰고 있다. [[스파이더맨]]과 비슷. 다른 복장은 복면 대신 아이 마스크스러운 가면을 쓴 이미지도 있다.
         DYNAMITE의 만화인 MASKS에서도 등장. [[알렉스 로스]]가 1화의 그림을 맡은 이 만화는 스파이더만이 아니라 [[섀도]], [[그린호넷]]과 [[케이토]], [[조로]]같은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이 만화에서 스파이더의 디자인은 화처럼 거미줄 문양의 복면을 쓰고 있다.
  • 스파이더맨 . . . . 4회 일치
         본명은 피터 파커. 그냥 뛰어난 두뇌의 젊은이였으나 방사능 거미에 물리면서 초능력을 얻었다. 이후 스파이더맨이 되어 다양한 악당들과 싸운다. 주로 대하는 빌런은 [[그린 고블린]], [[닥터 옥토퍼스]], [[베놈]] 등등이 있다.
          몇몇 관련 작품에서는 몸에서 직접 만들어져 발사된다. 정식 시리즈에서는 일시적으로 가졌던 능력이며, 샘 레이미의 화판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묘사로 나왔다. 이런 종류에서는 보통 손목에서 거미줄 발사관이 있는 걸로 나온다. 하지만 올드한 팬들은 이쪽 설정은 징그럽게 느끼는 것 같다(…).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참가하지 못했다. 스파이더맨의 화 판권이 어벤져스 화 시리즈를 만든 [[마블 스튜디오]]가 아니라 [[소니 픽쳐스]]에 있기 때문. 결국 마블과 소니의 합의로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
  • 시장경제지위 . . . . 4회 일치
         특정한 국가의 원자재, 제품 가격, 임금, 환율 등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가 정부의 간섭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성에 의하여 결정되는 경제 체제를 갖추었다고, 교역 대국이 인정해주는 지위를 뜻한다.
         과거 사회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들이 [[덤핑]]으로 수출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하여 도입된 개념. 품을 정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수출하는 덤핑을 막기 위해서이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였다. 이 때 가입 조건을 놓고 회원국들과 협을 거쳤는데, 시장경제지위 부여는 WTO 가입 15년 뒤로 연기되었다. 이후 2016년 까지 한국, 러시아, 브라질, 뉴질랜드, 스위스, 호주 등이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하였으나, 유럽연합, 미국, 일본, 캐나다는 인정하지 않게 된다.
  • 식극의 소마/167화 . . . . 4회 일치
          * 그는 바뀐 진급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본래 이 제도는 대자의 절반가량이 퇴학당할 정도로 가혹한 제도.
          * 하지만 아자미 정권 하에서 바뀌는 진급시험은 평범하게 기존 커리큘럼을 따라오기만 하면 누구나 통과할 수 있게 된다.--요리로 일본정복하겠다는 미친 놈이 이런데서만 식적이야--
          * 사실 아자미 정권이 내놓은 커리큘럼 자체는 극히 식적. 하지만 일본정복을 꿈꾸는 세력치고는 이하게 온건하다.
  • 식극의 소마/177화 . . . . 4회 일치
          * 열악한 황임에도 감자와 전분가루로 면을 만들기 시작하는 반역자 군단
          * 소마를 비롯한 반역자들은 황에도 아랑곳없이 면 만들 채비에 들어간다.
          * 엔도는 이하게 돌아가는 낌새에 경악하고 소마는 태연히 "우릴 떨어뜨리고 싶으면 회장에 이런걸 놔두면 안 됐다"고 하는데.
          * 무려 95%의 감자전분을 이용해 만드는 면요리로 이런 황에선 최적.
  • 식극의 소마/180화 . . . . 4회 일치
          * 하야마는 "당신이 나올 줄은 예 못했다"고 하는데.
          * 당일 사용할 고기는 도지마 측에서 최태로 준비하며 그외에 필요한 것은 각자 조달하는 것으로 한다.
          * 하야마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는 못하겠지?"라고 도발하자 소마는 "리벤지 매치는 나로서도 환"이라며 식극에 응한다.
  • 식극의 소마/238화 . . . . 4회 일치
          * 모모의 과자가 완성. 그 모습은 장미꽃이 가득 잠긴 꽃바구니. 바구니에 담긴 장미꽃들이 그녀가 만든 과자다. 자세히 보면 장미꽃은 타르타 반죽으로 만든 꽃받침 위에 사과로 세공한 장미가 올라가 있다. 즉 이것은 장미꽃 모양으로 만든 사과타르트. 냄새를 맡은 것만으로 매료되는 환적인 과자다.
          * 모모의 타르트가 압도적이지만 소마는 그녀를 대하는 [[타도코로 메구미]]를 걱정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동료들과 함께 노력한 것들, [[시노미야 코지로]]에게 배운걸 전부 쏟아낼 수 있기를 기도하는데. 메구미는 이미 그런 태에 들어가 있었다. 시노미야의 코치를 받은 그녀는 마치 투사와 같은 자세. 시노미야의 가르침을 되뇌이고 있다.
         == 세 ==
  • 신성왕후 . . . . 4회 일치
         |출생지 = 경북도
         신성왕태후 김씨의 소생으로는 안종(安宗)으로 추존된 [[고려 안종|왕욱]](王郁)이 있는데, 그는 제5대 국왕 [[고려 경종|경종]]의 제4왕후 [[헌정왕후]] 황보씨와 정을 통해 제8대 국왕 [[고려 현종|현종]]을 낳았다.<ref>《고려사절요》</ref> [[1008년]] 현종(顯宗)이 즉위하고 [[1010년]] 왕후로 추존하여 시호를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라 하고 능호는 정릉(貞陵)이라고 하였다. 원당은 [[경기도]] [[장풍군]]에 있는 현화사이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1400&content_id=rp070314000001&print=Y 문화콘텐츠닷컴 〈현화사〉]</ref>.
         [[분류:생몰년 미]][[분류:신라의 왕족]][[분류:고려의 왕비]][[분류:고려의 왕태후]][[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경주 김씨]][[분류:고려 태조]]
  • 신현준(군인)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로 [[경북도]] [[김천시|김천]] 출신이며, 최종 계급은 [[해병]] [[중장]]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요아킴이다.
         부모를 따라 일찍 [[만주]]로 이주하여 [[하얼빈]]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이 [[만주]]에 세운 봉천군관학교에 [[1936년]] 4월 [[입학]]하였다. [[졸업]]한 후에는 [[만주군]] [[대위]]로 근무했으며, 이때 [[박정희]]보다 관으로 같은 부대에 있었다. 그는 [[박정희]]를 비롯하여, [[정일권]], [[백선엽]], [[이한림]], [[김석범]], [[원용덕]], [[김창룡]] 등과 함께 국군 내의 대표적인 만주군 인맥이었다.
         해병대 창설의 계기도 신현준의 건의에서 시작됐는데, 1948년 여순 제14연대 반란사건 직후 신현준은 해군본부에 "육전대와 같은 륙부대가 있었으면 진압이 보다 수월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 신현준의 보고내용에 주목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해군본부가 해병대 창설을 결심하게 되었다.
         2007년 10월, [[향년]]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해병대 초창기를 함께 이끌었던 후배 [[김성은(군인)|김성은]] 전 사령관이 세을 떠난지 5개월 후의 일이었다.
  • 신형철 . . . . 4회 일치
         [[2005년]] 《[[문학동네]]》 봄호에 평론 〈당신의 X, 그것은 에티카〉를 발표하면서 평단에 등장했다. [[2007년]]부터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2014년]]부터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평론 〈2000년대 시의 유산과 그 속자들〉으로 제59회 [[현대문학]]을 수했으나, 현대문학의 소설 거부 사태로 인해 을 반려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22015575&code=960100 문학평론가 신형철] 경향신문, 2014-05-02</ref>
  • 심령 스팟 . . . . 4회 일치
         심령 현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를 뜻한다.
         몇몇 심령 스팟은 심령 현에 대한 소문 때문에 관광지화 되는 경우도 있다.
         심령 스팟 탐방은 당히 위험한 행위이다. 일단 심령 스팟이라고 알려진 장소는 인적이 드문 곳이 많으며, 야간에 인적이 드문 곳에 간다는 것은 곧 범죄에 노출될 위험을 높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심]] 스팟이 아니다.--가면 고자가 되는 장소-- --이쪽이 더 무섭다.--
  • 아마조 . . . . 4회 일치
         [[프로페서 아이보]]가 만든 안드로이드. 저스티스 리그를 대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그만큼 강력하다.
         능력은 대의 능력을 복제하는 능력. 즉, 슈퍼맨이 적이라도 그의 힘을 써서 싸울 수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원더우먼의 진실의 올가미처럼 도구를 복제할 수도 있고, 배트맨같이 초능력 없이 싸우는 스타일일지라도 그 기술을 재현할 수 있는 판이라 쉬운 대가 아니다.
         이렇듯 강적이다보니 저스티스 리그도 고전을 면치 못하다 꾀를 내어서 승리했다. 그 꾀는 바로 저스티스 리그의 해산. 저스티스 리그를 대하기 위한 안드로이드라는 것이 독이 되었다. 이후 리그는 재결성.
  • 아마쿠사 키리시탄 진중기 . . . . 4회 일치
         [[아마쿠사 시로]]가 [[시마바라의 난]]에서 징으로서 사용했다고 하는 깃발. 일본의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진중기는 아마쿠사 시로의 징으로서, 아마쿠사 시로가 항 곁에 두고 있었으나 시바마라 성이 함락될 당시 사가번의 무사 나베시마 다이젠(鍋島大膳)이 전리품으로 얻게 된다.
         이 그림을 그린 야마다 우에몬사쿠는 기독교 신자였으나 당시에는 배교한 태였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이 일으킨 봉기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시마바라의 난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시바마라 성에서 농성하던 중에 내부에서 [[화살 편지]]를 날려 막부의 토벌군과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들통나 체포되어 처형당할 뻔 했으나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 아멜리아 윌 테슬라 세일룬 . . . . 4회 일치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성격이 약간 다르다. 원작에서 아멜리아의 성격 묘사는, 사실 왕녀로서 이지적이고, 무녀로서 신비함이 있으며, 거기에 약간 4차원 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원작의 아멜리아 묘사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정의를 외치면서 추락하거나 하는 것은 사실 부분적인 묘사. 그러니까 본래 아멜리아는 "전체적으로 멀쩡한 인간인데 가끔 이한 짓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 원작에서 아멜리아는, 전형적인 판타지에서 나오는 "신비롭고 이지적인 왕녀"에다가 가끔 뭔가 좀 이한 짓을 하는 "약간의 개그"를 넣어놓은 캐릭터였다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약간 망가진 태가 거의 디폴트(…)가 되고 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 리나보다 어린 나이로 설정되면서, 정신적으로도 어리고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묘사가 많아졌다. 제르가디스와 마찬가지로 [[개그 캐릭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본래 어느 정도 개그를 하던 캐릭터니까 그렇게까지 위화감은 없지만.
  • 아워맨 . . . . 4회 일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와 관련있다.
          히어로가 되기 전엔 화학자였으며 소박, 소심, 순한 성격에 시간에 강박관념을 가진 그는 동료들로부터 "똑딱(어로 Tick-Tock)"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멤버이기도 했으며 2대 아워맨의 아버지.
          [[샌드맨 미스테리 씨어터]]에서도 등장. 여기선 그가 쓰는 약이 플라시보 효과를 내는건 아닐까하고 [[웨슬리 도즈]]가 의심한다. 자경단 일을 하며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황이 더 꼬이게 되었고, 웨슬리와 사건을 해결하다가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긴뒤 아직 활약하기엔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판단, 자신의 약을 더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 아이언맨(영화) . . . . 4회 일치
         마블 스튜디오의 화.
         천재이자 재수없는 부자인 토니 스타크는 텐 링즈라는 조직에 의해 큰 부을 입은 체, 납치되었다가 의사 호 인센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아직 납치된 황인데다 자길 납치한 텐 링즈측에서 토니에게 무기를 만들 것을 강요하고, 이에 토니는 인센의 도움을 받아 기계 수트를 만들어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구조되어 생환한 토니는 비서인 페퍼 포츠, 친구인 제임스 로즈, 아버지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오베다이아 스테인과 재회하게 되며 피랍 사건을 계기로 자기 인생을 반성하고, 무기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데..
  • 안종범 . . . . 4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시]]
         |웹사이트 =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 분야 공약을 만들었다. 2014년 6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경제수석비서관]]에 지명되면서 의원직을 사직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정부]] 제2대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에 임용되어 일하다가 [[박근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대통령]]이 '[[최순실]] 비선 실세 파문'과 관련해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하면서 2016년 10월 30일 사임하였고 제3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강석훈]]이 그 직을 임시 대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69333 靑 수석비서관들 일괄 사표제출…朴대통령 인적쇄신 가능할까]. 서울신문. 2016년 10월 30일.</ref>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228904 민정수석·청와대 비서관… 도대체 뭐 하는 자린고?]. 조선일보. 2016년 11월 16일.</ref> <ref>이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3774512 靑 정책조정수석, 강석훈 경제수석이 대행]. 머니투데이. 2016년 11월 16일.</ref>
         2016년 11월 20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안종범을 직권남용, 강요,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하였다.<ref>{{보고서 인용|저자=특별수사본부장 이렬|url=http://www.spo.go.kr/_custom/spo/_common/board/pdfdownload.jsp?attach_no=175537|제목=피고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수사결과발표|출판사=검찰 특별수사본부|날짜=2016년 11월 20일}}</ref>
  • 안효민 . . . . 4회 일치
         * [[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 애니메이션 화 ===
         * [[리그 오브 레전드]] - 킨드레드 (늑대), 워윅 (리메이크), 메카 제로 사이온 스킨, 요릭 (리메이크), 갈리오 (리메이크)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성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남대학교 동문]]
  • 알렉스 볼더 . . . . 4회 일치
         맥스가 마약단속국으로 들어간 후, 맥스, B.B.와 한 팀으로 활동했다. 맥스 페인 3 코믹북에 따르면 서로의 목숨을 구한 적이 한번 이 있었던 듯.[* 1편의 회에서는 볼더가 추락하려는 맥스의 팔을 잡아줬고, 2편의 회에서는 마약 거래 현장을 급습하려다가 붙잡힌 볼더를 구하기 위해 맥스가 난입했었다.] 맥스는 볼더 덕분에 가족이 죽고 나서 3년간을 덜 미친 채로 살았다고 회한다. 그렇지만 맥스가 펀치넬로 패밀리에 들어가 잠입수사를 한 후로부터는 맥스와 만나지 못했다.
  • 알프레드 페니워스 . . . . 4회 일치
         [[배트맨]] 시리즈의 캐릭터. 배트맨의 정체인 [[브루스 웨인]]의 [[집사]]이며 어려서부터 부모 대신 그를 돌봐온 사실의 양부이기도 하다. 본인도 브루스를 아들처럼 아낀다.
         집사의 전형적인 인물. 말이 집사이지 일반적인 집사의 업무에 브루스의 배트맨 활동도 보좌하고, 뒤치닥거리하는 대단한 사람이다. 말솜씨도 뛰어나서 배트맨도 이길 수 있으며 독설적 농담을 쓴다. 딱히 싸움을 잘할 듯한 인은 아니나 박쥐 동굴에 침입자가 발생하면 샷건을 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화에 모두 등장.
  • 얼티밋 에콜로지 . . . . 4회 일치
         여타의 슈팅 게임과는 다르게 봄이 일체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에 암이라는 기체에 장착되어 있는 무기를 360도 회전시켜 싸우게 된다. 이 암을 통해 탄환을 발사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이것이 대의 탄을 소거시키는 기능이 있어서 이것을 방패삼아 진행하는것이 포인트.
         [게메스트]의 제1회 게임 기획 대작품.
         빛나는 우주 개발의 시대. 인류는 은하계 전역에 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 엉클 샘 . . . . 4회 일치
         [[미국]]을 징하는 캐릭터. 포스터에서 보는 이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백발에 흰 수염이 있고,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와 같은 컬러링의 의복을 입은 노인을 봤다면 그 캐릭터가 엉클 샘이다.
         과거 미군 모병 포스터에서부터 등장. 한 인 하는 노인의 눈빛과 삿대질 덕인지 현재에도 패러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엉클 샘과 비슷한 캐릭터는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도 '존 불(John Bull)'이라는 캐릭터가 엉클 샘보다 먼저 등장했다.[* 첫 등장 시점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황소였으며 이후에 지금의 사람 모습이 되었다.] 또한 키치너 원수가 등장하는 모병 포스터의 경우에는 엉클 샘의 모병 포스터에 향을 줬다고 한다.
  • 연하장 . . . . 4회 일치
         15세기 독일에서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하며, 신년을 축복하는 글을 담은 카드를 동판에 인쇄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국]], [[미국]] 등으로 연하장 풍속이 확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세함(歲銜)’이라고 하여, 신년 초에 직접 찾아가 인사하지 못하면 아랫사람을 시켜서 서찰을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관아에 속한 장교나 병졸은 자기 이름을 적은 쪽지를 관의 집으로 찾아가서 세합장에 넣었다.--셀프 우편배달-- 양반 집안 여인들은 바깥 출입이 어려워, 친지에게 덕담을 담은 글을 써서 여종을 시켜 배달하게 했는데, 이를 문안비(問安婢)라고 불렀다.
         우편제도가 등장하자 우정국에서 연하장을 발매하게 되었다. 최초의 연하장은 1900년에 발매되었으며, 전통의을 걸친 우정국 관리들의 모습을 컬러 인쇄하고, '신년을 맞이하여 한국 황실과 우정국의 임직원들은 여러분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로 고향에서 떨어져 새해에 일일이 찾아갈 수 없게 되자, 연하장이 유행하게 되었다. 장수나 복을 징하는 해, 학, 소나무, 십이지, 겨울 풍경 등의 그림을 그린 연하장이 유행했다.
  • 오경태 . . . . 4회 일치
         * [[농림부]] 농업협력통관실 통협력과
         * [[남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 졸업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심인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동문]]
  • 오미코시 . . . . 4회 일치
         이 말은 정치, 군사 활동에서 (실권을 가지지 않는) '징적 인물'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오미코시처럼 여러 사람들이 받들어 올려 징으로서 사용하지만, 특별히 실권은 가지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 징적 인물로서 오미코시 ===
          * '''덴노''' : 실권을 잃고 과거 약 1천년 이 오미코시를 해왔던 오미코시 전문 일족(…). 덴노 본인만이 아니라, 그 자손인 황자, [[겐지]], [[헤이지]] 등의 가문도 오미코시 역할을 이어받고 있다. 일본의 오미코시 전통은 여기에 유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오방낭 . . . . 4회 일치
         한국 무속에 쓰이는 물건. 다섯 방위를 징하는 [[오방색]] 비단으로 만든 복주머니이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등장한 바 있다. 이 때 오방색의 방위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방위가 생이 아니라 극을 징하게 되어 오히려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http://news.joins.com/article/20784391 (중앙일보)]][[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102709342496489 (아시아경제)]]
  • 오석락 . . . . 4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웹사이트 =
         1934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난 오석락은 [[김천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김덕주]] 전 대법원장, [[최재호 (법조인)|최재호]] 대법관, [[이재성 (법조인)|이재성]] 대법관, [[김진우 (법조인)|김진우]] 헌법재판관, [[김태경 (법조인)|김태경]] 경기도지사, 김동환 변호사 등과 함께 30명을 선발한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에 임용되었다.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독교인]][[분류:김천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2014년 죽음]]
  • 오싱 . . . . 4회 일치
         1983년~1984년에 방된 NHK드라마. 평균 시청률 52.6%로 대흥행작이다. 일본 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의 여러 나라에 수출되었다. 물론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이므로 한국에는 수출되지 않았다. 다만 소설판이 출간되기는 했다.
         작중에서 오싱의 인생이 참으로 파란만장한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일꾼으로 쌀도매에 팔려가거나, 어른이 되어 경한 다음 미용사가 되었다가 옷장사를 하는 남편과 만나고 업재능을 그럭저럭 잘 살게 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쑥밭이 되서 망하거나, 그 때문에 시골로 내려나 시집살이를 하는데 학대 당한 탓에 자기 아이는 사산되고 시누이가 낳은 아이의 젖을 물리게 되거나, 2차대전으로 남편과 장남을 잃고 생선 장사를 시작하여 자기 가게를 일으켜 세우지만 성장한 아이들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면서 반발하거나 등등.
  • 와일드캣 . . . . 4회 일치
         [[DC 코믹스]]의 히어로 중 한명. 첫등장은 Sensation Comics #1 (January 1942. 리붓 이전에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의 일원으로서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 제이 게릭과 [[그린 랜턴]] 앨런 스콧과 비슷한 연배다.
         드라마 [[스몰빌]]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관련 에피소드에서도 짧게 등장. 이후 드라마 [[애로우]]에도 등장하는데 거의 카메오 수준인 [[스몰빌(드라마)|스몰빌]]과 달리 확실하게 등장한다. 다만 코스튬은 코믹스와 차이가 많다. 큐트한 고양이 가면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가리는 일반적인 검은 마스크를 쓰게 됐다. 주인공 올리버가 '애로우'로 활동하기 전부터 도시의 빈민가에서 활약하며 악당과 싸우던 가면의 웅이었으나, 애로우가 등장하기 전에 은퇴한 몸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사이드킥'이었던 자가 악당이 되면서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는 줄거리로 등장한다.
  • 왝더독 . . . . 4회 일치
         Wag the Dog. 1998년 개봉한 미국 화.
          스캔들을 덮을 만한 각본을 짜기 위해 브린이 찾아간 [[화 제작자]]. 사실 진주인공. 스탭롤에서도 맨 위에 나온다.
         [[분류:화]]
  • 외도 . . . . 4회 일치
          * (일본어) 낚시를 하면서, 본래 목적하던 것이 아닌 다른 물고기가 잡히는 황.
         본래 불교용어로서, 당대에 불교 이외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을 뜻했다. [[불교]]가 탄생하던 시기는 [[인도]]에서 [[인도철학]]의 발전으로 아리안족의 전통적인 [[바라문교]]에서 벗어난 새로운 종교·사이 많이 탄생하던 시기였다. 불경에서는 불교 이외에 당대의 신흥 종교나 철학을 육사외도(六師外道), 구십오종외도(九十五種外道) 등으로 언급하였으며, 불경은 불교중심적인 관점으로 쓰여졌으므로 다른 가르침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관점으로 서술하였다. [[바라문교]], [[자이나교]] 등이 불경에서 언급되는 대표적인 외도이다.
         외도(外道)란 본래 불교 외의 다른 사가를 뜻하는 말이었으므로, 논쟁의 여지는 있어도 외도 자체가 악(惡)하다는 의미라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불교가 조직화 되면서 불교 중심적 관점에서 외도라는 단어는 비방하는 뜻이 강하게 담기게 되었으며, 불교를 폭력적으로 공격하거나 모욕적으로 비방하는 자들에게도 외도라는 말을 쓰게 되어 매우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게 됐다.
         오타쿠 계열에서는 도베르만 형사 등의 만화의 향으로 과격한 폭력으로 악을 단죄하는 경우에도 외도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악당들이 당하면서 주인공 들에게 '이런 외도!'라고 욕하기 때문)
  • 외척 . . . . 4회 일치
         외척 집안에서 황후를 배출하면서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로 이어서 장기적으로 외척으로서의 권세를 이어가기도 하다. 조사해보면 직접적으로 외척이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황후를 배출하는 집안은 몇몇 가문으로 한정된 경우가 당히 많다. 이러한 가문이 아예 공인되어, 황족에 버금가는 '왕비족'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 전기에는 [[태종]]이 자기의 처가와 아들의 처가를 도륙내는 등(…) 외척을 억제하려 애썼지만, 아무래도 외척의 권위가 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윤원형 등의 외척 권신이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가면 외척의 권세가 아주 강해져서, [[세도정치]] 시기에는 한 가문이 국정을 장악하는 황까지 갈 만큼 외척의 권세가 강했던 시기로 꼽힌다.
         외척 세력으로 [[안동 김씨]][* 정확히는 '장동 김씨'로 재분류되는 한양 장동 일대에 거주하던 안동 김씨 일문으로, 실제 안동 등 남에 거주하던 안동 김씨는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었으며, 당색에 있어서도 장동 김씨는 노론 계열이었던 데 비해 안동 김씨는 남인 색채가 짙었다.], [[풍양 조씨]], [[여흥 민씨]] 등이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후지와라]] 씨, 그 가운데서도 5개의 가문(고노에, 쿠죠, 니죠, 이치죠, 타카츠카사)인 [[고셋케]], 일명 '후지와라 섭관가'가 오랬동안 황후를 배출하면서 외척으로서 권세를 누렸다. 사실 후지와라 가문이 일본의 지배자였다.
  • 용융금속형 . . . . 4회 일치
         처형 대에게 녹인 [[금속]]을 부어서 죽이는 형벌이다.
         사인은 의학적으로 확실하지 않지만 녹인 금속의 온도 때문에 부은 부위에 중화을 입게 되고, 목구멍에 부으면 금속의 연기로 호흡기가 파괴되거나, [[금속]]이 굳어지면서 기도를 막게 되어 [[끔살]] 당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무튼 매우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금속은 희귀한 자원이므로 일적으로 이러한 형벌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매우 특수한 형벌로서, 대개 고위급 전쟁포로에게 대방의 (과도한) '[[욕심]]'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이런 형벌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 우미나리 시 . . . . 4회 일치
          * 위 문서 : [[가공의 도시]],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시리즈]]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와 후속작 A's의 주요 배경이 되는 가의 도시.
         주인공 타카마치 나노하가 사는 고장으로, 우선 나노하의 가문부터가 무력적으로 범치 않은데다(나노하의 부친과 오빠가 익힌 '미카미류'가 먼치킨성 고류 무술) 온갖 종류의 괴기 및 초자연적 존재들이 존재하고~~(이 쪽은 원작 '트라이앵글 하트 3'의 설정까지 포함시킨 경우가 많지만)~~, 나노하 시리즈에 이르면 지구와 우주, 차원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하는 중대한 전투들(1편 - 페이트와의 항쟁 / 2편 - 어둠의 서와의 전투)이 벌어지는 살벌한 동네이다.
         [[분류: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분류:가의 지명]]
  • 우키시마 . . . . 4회 일치
          * 해안에서 떨어져서 섬을 봤을 때, [[신기루]] 현이 일어나서 마치 섬이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 광학적인 현으로, 수면에 가까운 곳에서 기온이 높고, 층부의 공기가 차가울 때, 빛이 왜곡되어 발생한다.
  • 원피스/817화 . . . . 4회 일치
          * 모모노스케는 이누아라시와 네코마무시의 싸움을 말리는 등 어른스럽게 굴지만, 막 루피가 자기 신분을 대우해주지 않자 삐져서 나미에게 응석부린다.
          * 루피 일행은 라이조가 멋진 닌자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 실망한다. 라이조는 일행이 생각하는 닌자은 실제와는 다르고 인술은 구경감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일행이 시무룩해 하자 할 수 없이 인술 몇 가지를 선보였다. 일행은 금세 환호한다
          * 사실 네코마무시와 이누아라시는 사이가 좋았는데 티격태격하는 것 같다.
          * 라이조는 기대와 다르게 우스꽝스럽게 생긴 구닥다리 닌자. 인술을 구경거리 취급하는 일행에게 일갈할 정도로 고지식하지만, 막 시무룩해하니까 리퀘스트에 응해주었다.--나루토가 끝나서 점프에서 사라진 [[닌자]] 분량을 보충하는 걸지도--
  • 원피스/821화 . . . . 4회 일치
         * 일행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 모모노스케에겐 '''"어떤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서둘러"'''라고 하는데...
         * 목소리는 '''"거기에 있다면 명령해 달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모모노스케는 그 목소리를 듣고 괴로워한다. 루피는 "네가 누구냐"고 묻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목소리 따윈 들리지 않아 문을 알 수 없다
         * 조우의 일이 일단락된 루피는 드디어 디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 한편 누군가 전보 벌레로 통화하는데, 대방은 "잭의 통신이 바다에서 갑자기 단절됐다"며 그를 카이도라고 부른다
  • 원피스/830화 . . . . 4회 일치
          * 샬롯사 29녀 "샬롯 플라리네". 빅맘의 딸인 귀어 반어인이다.
          * 몬도르는 움직이는 초콜릿처럼 생긴 부하에게 "알겠지? 단 1초도 남기지 않고다"라는 이한 말을 하며 모스카토를 옮기게 한다.
          * 그래서 이번 작전은 디의 탈환과 함께 "로드 포네그리프의 탈취"로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섬에 도착한 이후 잠시 시간을 준다면 자신이 반드시 가지고 오겠다고 말한다.
          * 함께 하겠다는 루피의 말은 "디를 탈환한 이후에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거절한다. 결국 루피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 원피스/834화 . . . . 4회 일치
          * 디는 빅맘의 수갑이 채워져버린 탓에 의기소침
          * 수갑에 묶인 디.
          * 디는 억지로라도 벗으려고 했으니 레이쥬의 제지로 그만 둔다.
          * 이것을 보고 푸딩이 루피 일행과 합류하지 못한 것, 디에게 사실을 전하지 못한 것을 짐작한다.
  • 원피스/882화 . . . . 4회 일치
         [[원피스]] 882화. '''사황의 예 밖'''
          * 홀케이크 아일랜드의 스위트 시티에선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전사 소식이 알려진다. 의제인 [[페콤즈]]가 오열하고 숙적이었던 [[타마고 남작]]도 애석해하는 동시에, 그렇게까지 해서 살리려던 밀집모자 일당에게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며 크게 경계한다. [[샬롯 몬도르]]는 단지 여러 우연이 겹쳐 일이 커졌을 뿐이라 단정하나 타마고 남작은 "밀집모자가 온 뒤로는 예 밖의 사고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며 만에 하나라도 빅맘의 명성에 흠집이 갈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 그때 [[카포네 갱 벳지]]를 추적 중이던 샬롯 커스터드에게 연락이 온다. 벳지 일행을 놓쳤다는 소식. 무슨 일인지 역 바다소가 위치정보를 보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뜻밖에 손쉽게 포위를 벗어난 벳지는 [[샬롯 시폰]]을 마중하기 위해 카카오섬으로 향한다.
         == 세 ==
  • 원피스/887화 . . . . 4회 일치
          * 항구가 봉쇄된 황이지만 [[카포네 벳지]]는 육지로 진격을 결정한다. 파이어탱크 해적단의 배는 수륙양용이라 육지에선 탱크로 변신, 그대로 항구의 적들을 쓸어 버린다.
          * 벳지는 [[디]]에게 케이크를 건네라고 말하고 디는 그의 작전에 따른다. [[샬롯 오븐]]이 배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능력으로 바닷물의 온도를 올린다. 열이 가해지자 초콜릿이 녹고 크림도 흐물흐물해지는데 그때 파운드가 난입해 오븐을 방해한다.
         == 세 ==
  • 원한해결사무소/2화 . . . . 4회 일치
         이 이야기의 원한대은 보험금 살해범 아지야마. 첫번째 아내는 만취하여 욕조에서 이사, 두번째 아내는 자동차 사고, 세번째 아내는 투신자살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세번 모두 유유히 풀려났고, 거액의 보험금을 손에 넣었다.
         죽은 눈을 하고 있는 미노리카와는 자신은 중소기업을 경하고 있으며, 부채 5억엔을 떠앉고 있어 이달 안으로 마련하지 못하면 회사와 집을 잃고 식구들이 자살해야 할 판이라며, 자신도 '누군가를 죽여서 보험금을 받고 싶다'고 말한다. 기겁한 아지야마는 문을 닫아걸고 미노리카와에게 킬러냐며 화를 낸다. 미노리카와는 '사고는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아지야마는 식은땀을 흘린다.
         미노리카와는 원한해결사에게 잘 처리했다는 칭찬을 듣고 보수를 받는다. 그날 목욕을 하던 아지야마는 갑자기 엄청나게 뜨거운 물이 나오는 바람에 기겁한다. 수리공은 외부에서 주파수 리모컨을 사용해서 조작하는 장난을 친 것 같다고 말하고, 미노리카와가 리모콘을 들고 나와서 음침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위협을 가한다. 다음에 차를 타고 나간 아지야마는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서 사고를 당하게 되며, 브레이크 오일이 새고 있었다는 이유로 정비불량으로 감점을 당한다. 미노리카와는 몽키스패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아지야마 앞에 나타나서 수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어제는 목욕탕, 오늘은 자동차라면서, 마치 죽은 3명의 아내들 같다고 아지야마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연케 한다. 마지막에는 '투신자살'을 언급. 미노리카와의 위협에 완전히 패닉에 빠진 아지야마는 다가오는 미노리카와를 복도 쪽으로 밀치는데, 미노리카와는 그 순간 복도에서 뛰어내리면서 자신은 '죽어주는 역할'이라는 말을 남기고 떨어져 사망한다.
  • 원한해결사무소/6화 . . . . 4회 일치
         의뢰인은 신혼 새댁 여성 마츠자와. 의뢰 대은 맨션 관리조합의 '부이사'라는 아줌마. 결혼과 동시에 맨션을 사서 살기 시작한 마츠자와는 지어진지 6년이 된 맨션을, 리폼을 끝내고 2,200만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옆집 아줌마는 6년 전에 새로 지은 맨션을 6천만에 구입했기 때문에, 40이 되서 겨우 가지게 된 '내 집'을 땅값 하락 때문에 젊은 것들이 쉽게 삿다고 분노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주택융자를 메꿀 수 있었다.]
         원한해결사는 100만으로 의뢰를 받겠다고 하지만, 30만 정도 밖에 낼 수 없다고 해서 그걸로 의뢰를 받는다. 단, 일의 내용도 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3일이 지난 뒤, 우편함의 우편물이 모두 없어지고 새댁의 우편물만 남아 있는 기현이 발생한다. 아줌마는 새댁을 우편물 도둑으로 몰고가고, 게다가 새댁의 집 열쇠나 차 열쇠가 모두 접착제로 붙여져 있었다. 새댁은 거의 미칠 지경.
         다음날 아줌마는 쓰레기를 뒤져서 우편물 도둑을 잡아내자고 한다. 아줌마는 새댁이 우편물 도둑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수수께끼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도둑맞은 우편물과 접착제, 그리고 부이사 아줌마의 집에서 먹었던 과자 자가 모두 한 쓰레기 봉투에서 나타난다. 아줌마는 '개똥' 밖에 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하지만 오히려 모든걸 자백한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이전 에피소드가 매우 범죄적인 것에 비해서, 이번화는 당히 소소하다.
  • 유목민 . . . . 4회 일치
         유목민이라고 하면 [[말]]. 유목민들은 승마 기술을 처음으로 익혔으며, 그들의 생업인 유목의 특징 어린 시절부터 승마를 배워 뛰어난 마술(馬術)을 발휘하였다. 이렇게 평소부터 단련된 유목민들은 거의 모든 부족원이 순식간에 위력적인 기마병이 될 수 있었으며, 이는 유목민족의 높은 전투력의 근원이 되었다.
         말은 유목민의 경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일설에는 말을 타게 되면서 유목민들은 말이 없을 때보다 10배 이 많은 [[양]]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유목민의 대침략을 부르는 원인 가운데 하나. 유목민은 특정한 지역에서 가뭄과 기근이 닥치면 곧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다른 부족을 밀어낸다. 밀려난 부족은 또 다른 부족을 밀어내고, 그 부족은 또 다른 부족을 밀어낸다 이 도미노 현은 최종적으로 농경민족의 정주국가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면서 끝나는데, 농경민은 도망갈 데가 없기 때문(…).
         유목민들은 스스로 남긴 기록이 거의 없어, 주로 농경민족의 기록에 의존하기 때문에 유목민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유목민 도미노 현으로 유목민의 공격을 받는 것이 주로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접촉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목민이 정주생활을 시작한다면 조금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 유한식 . . . . 4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가톨릭/인물]]
         ||<:> 제35대 [br] 최준섭 [br] ,,,(권한대행 박수),,, [br] ,,,(권한대행 남궁주),,, ||<:> → ||<:> 제36대~37대 [br] '''유한식'''[br] ,,,(권한대행 윤호익),,, ||<:> → ||<:> 연기군 소멸 [br],,,(세종특별자치시 출범),,,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학력 ''' }}} ||<(> [[대전고등학교]] {{{-1 ([[졸업]])}}}[br][[충북대학교]] {{{-1 (축산학 / [[학사]])}}}[br][[홍익대학교]] {{{-1 (경정보학 / [[석사]])}}} ||
         || 2012년 || '''[[2012년 반기 재보궐선거 #s-3.1|4·11 재보궐선거]] [BR]세종특별자치시장 1대 (민선 5기)''' || 자유선진당 || '''19,387표 (41.73%)''' || '''당선(1위)''' || '''초선'''[* 초대 세종시장^^[세종시 교육감]^^의 임기는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세종시법)^^''의 부칙 제2조에 따라 2014년 6월 30일까지로 한정하고 있다.(약 2년)] ||
  • 윤진식(국회의원) . . . . 4회 일치
         [[청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대학을 졸업하였다. 청주고등학교 때부터 [[이시종]] 현 충청북도지사와는 절친인 동기생이었다. 단, 나이는 윤진식이 1살 더 많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에는 [[관세청]]장,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 등을 역임하였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자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장관 역임 당시에는 대북송금 특검을 반대할 정도로 꽤 진보적이었다. 기회주의적 면모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서울산업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태이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는 설도 있으나, [[http://m.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87053|#]]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http://www.inews365.com/mobile/article.html?no=486308|#]]
         || 2010 || [[2010년 재보궐선거|2010년 반기 재보궐선거]][br](18대 국회 충북 충주)[* 전임자 [[이시종]] 지방선거 출마로 국회의원 사퇴] || '''[[한나라당]]''' || '''43,367 (63.65%)''' || '''당선 (1위)''' || ||
  • 은혼/575화 . . . . 4회 일치
         부활한 양이지사 사인방은 [[하루사메]]의 군단을 대로 선전한다.
         * [[오보로]]는 각혈을 하는 등 위험한 태지만 우츠로에게 "나도 당신의 제자. 제자들의 일은 제자 선에서 처리하겠다"며 최후의 "충성"을 다하게 해달라 한다.
         * 사단장 시시가 직접 대하러 나오지만, 갑자기 난입한 누군가에게 어이없이 당한다
         * 그 정체는 [[카무이]]. 카무이가 우미보즈를 대하러 나타났다.
  • 은혼/580화 . . . . 4회 일치
         카무이의 회
         * 카무이는 우미보즈에서 "강함이란게 뭔지 모르겠다. 타인을 처입히지 않기 위해 얻어맞는 것인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처 입히는 것인가, 아니면 가족도 외면하고 혼자서 싸우러 다니는 것인가?"하고 털어놓는다.
         * 코우카는 황안의 환경이 만들어낸 돌연변이. 용맥의 향으로 변이한 존재다.
  • 은혼/581화 . . . . 4회 일치
         회
         * 우미보즈는 그런 별에서 홀로 살고 있던 그녀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지만, "사실 지켜지고 있던건 자신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코우카는 일부러 아무 말도 없이 따라와준 것이며 홀로 겁의 세월을 살아가기 보단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택한 것이라고.
         * 아부토는 "악당이 될 소양이 있다"며 비꼬는데 카무이는 "강하진다면 악당이든 뭐든 관없다"고 대꾸한다
         * 호우센은 아부토에게 "진심을 담아 덤비는 대라면 진심으로 보답해라"면서 카무이에게 주먹을 날리는데, 너무 강한 펀치라서 아부토가 순간적으로 막아줬는데도 멀리 날아갈 지경이었다
  • 은혼/583화 . . . . 4회 일치
          * 그는 과거를 회하는데, 결정을 손에 넣고 돌아왔을 때 이미 코우카는 가망이 없는 태였다.
          *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대기에 그렇게 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우미보즈에겐 버릴 목숨이 하나 밖에 없었던 것이다.'''
         * 우츠로가 죽지 않는 건 예된 내용이지만, 설마 지난 주에 잘린 오른팔을 써서 재생할 줄은 몰랐다는 의견이 많다.
  • 은혼/586화 . . . . 4회 일치
          * 강자를 대할 때마다 한계를 뛰어넘어 강해져 왔고, 카무이가 더 높이 막아설 수록 "더 높이 날아오른다".
          * 우미보즈는 "너희 사이에 더이 벽은 없다"며 둘이 동등한 실력으로 겨루고 있다고 평한다.
          * 마무리를 짓기 위해 달려들지만 그 순간 가구라가 사이에 끼어든다.
  • 은혼/588화 . . . . 4회 일치
          * 더이 아무도 죽게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함께 카무이에 맞서는 신파치.
          * 빈사의 아부토는 요시와라에서 폭주한 가구라를 신파치가 뜯어말리며 하던 얘기를 회한다.
          * 신파치와 가구라는 폭주한 카무이를 대로 놀랄만큼 접전을 벌인다.
          * 가구라는 싸우면서 어머니 코우카와 이야기한 것을 회한다.
  • 은혼/591화 . . . . 4회 일치
          * 쇼요는 서둘러 달려가지만 이미 황이 끝나 있었고 오보로가 죽었다고 생각해 발길을 돌린다.
          * 예대로 그는 또다른 모습으로서 돌아온다.
          * 그도 "한 사람은 맹세했다"고 입을 열며 "설령 또다시 스승을 죽이게 될지라도, 원히 스승을 잃게 될지라도, 스승을 되찾을 것을."이라 말을 잇는다.
          * 오보로는 같은 스승을 가진 이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며 "스승으로부터 받은 피가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네 앞을 막는다"고 한다.
  • 이명규(국회의원) . . . . 4회 일치
          * 위 문서: [[정치인/목록]], [[법조인/목록]], [[불교/인물]],
         1956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어릴 때 경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로 이주하여 자랐다. 대구수창초등학교, 대구중학교, [[대구고등학교]], [[남대학교]] 법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이방원 . . . . 4회 일치
         고려 시절에 과거에도 급제한 등 문재(文材)도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훗날 백전노장이던 부친의 군대를 친정하여 제압할 정도로 군사적 재능도 있던 나름 먼치킨으로, 정치적으로 노회한 운을 보여준다. 원경왕후 민씨의 일족이나 세종의 왕후인 소헌왕후 심씨의 일족을 멸족시키는 등 왕권 강화를 위해 진력하였으나, 숙청 대을 확실하게 선을 그어 지나친 옥사는 자제하였으며 또한 사관이나 대간의 역할을 긍정하여 균형추를 맞추는 부분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민생 안정에도 심혈을 기울여 개국 초부터 피바람 불었던 조선 왕조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말년에 세종에게 양위하고 왕이 되었으나 그 후에도 중요한 분야는 여전히 직접 챙겼고[* 대마도 정벌 등을 진두 지휘하였고, 위에서 말한 심씨 일족을 멸문시킨 것도 왕 시기의 일이었다. (여담으로, 이 때 ~~써킹한답시고~~ 소헌왕후도 폐출하자는 논의가 올라왔으나 태종은 이를 일축하여 이것이 사감이 전혀 없는 정치적 숙청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다가 4년 후 서거한다.
  • 이선민 (1988년) . . . . 4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구미시]]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애들의 세을 키우자 (2016.11.30 ~ 2017.03.01)
  • 이성계 . . . . 4회 일치
         한국사의 명장 반열에 반드시 낄 정도로 군사적인 역량과 개인의 무용이 후덜덜했던 인물로, 이러한 업적을 통해 정계의 거물로 성장하였고, 그 후 명과의 외교 마찰로 인해 우왕과 최이 요동 정벌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였으나 묵살당하자 최이 우왕을 달래느라 정벌군을 직접 이끌지 못하는 황을 이용해 국경지대의 하중도(河中島)인 '위화도'에서 군대를 물려 쿠데타를 단행해 최고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그 후 정몽주 등의 저항을 뿌리치고 마침내 조선을 건국한다.
         그러나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전처 소생의 아들들을 외면하고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세우려고 하여 그들의 불만을 사서, 결국 그들의 불만을 등에 업은 이방원(후의 태종)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과 방번, 정도전 등을 참살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어 실권을 탈취한다. 이에 격분하여 자신의 옛 근거지인 함경도 지역에서 조사의 등과 결탁해 군대를 거병하고 태종을 공격하였으나(조사의의 난) 태종의 친정군에 패배한다. 그 후에는 완전히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사냥 등으로 소일하다 서거.
  • 이승경 (1290년) . . . . 4회 일치
         원나라에 들어가 올과(乙科)에 급제하여 태자첨사(太子詹事)가 되었고, 어사(御使)를 제수받아 결단성 있게 일을 처리해 요양성 참지정사(遼陽省參知政事)로 승진, 많은 공적을 쌓았으므로 원나라 조정(朝廷)에서 그의 아버지 천년(千年)과 조부(祖父) 장경(長庚)에게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追封)하였다. 공민왕 6년(1357년) 모친을 당해 귀국, 이듬해 원(元)나라에서 요양성사(遼陽省事) 탑해첩목귀(塔海帖木鬼)를 보내어 불렀으나 가지 않았다. 이에 공민왕은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임명하였으며, 1359년 홍건적(紅巾賊)이 침범하자 도원수(都元帥)로 나가 서경(西京)을 회복하였으나 부하 장수들이 홍건적을 힘껏 쳐부수지 않았음을 분하게 여겨 음식을 폐한 끝에 병을 얻고 집에 돌아와서는 만사를 돌보지 않았다. 공민왕은 여러 재들과 더불어 그의 노고를 칭찬하여 충근경절협모위원공신(忠勤勁節協謀威遠功臣)에 책록하였다. 사후 경북도 성주(星州)의 안산서원(安山書院), 옥천의 보덕사(報德祠)에 제향되었다.
         [[분류:1290년 태어남]][[분류:1360년 죽음]][[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무신]][[분류:원나라]][[분류:과거 급제자]][[분류:이인임]][[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성주 이씨]]
  • 이차강간 . . . . 4회 일치
         어로는 세컨드 레이프.
         성범죄의 피해자가 사건에 관련된 진행에 따라서 정신적으로 더욱 피해를 입게 되는 황을 뜻한다.
         성범죄 피해자가 성범죄의 특성, 사회적으로 입게 되는 2차적 피해를 연구하면서 나타난 용어이다.
          * 언론의 보도. 피해자에게 피해를 기시키고, 주변에 피해 사실이 알려지게 만들어서 고통을 줄 수 있다.
  • 이케멘 . . . . 4회 일치
         "잘나간다=이케테루(イケてる)"라는 말이 1996년대에 유행을 시작. 본래는 간사이 지역의 유행어였지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계기로 전국적인 유행이 되었다.
         이케멘은 "잘나간다(이케테루)+ 얼굴(멘面, メン)"을 합쳐서 나타났다는 설이 있으며, 본래는 게이들 사이의 은어였다는 설이 있다.
         사라진 말들과는 달리 정착되어 현재에도 흔히 쓰이고 있다. 2009년에는 넷 유행어 대으로 "단 이케멘에 한한다(ただしイケメンに限る)"가 수을 했다.
  • 이현 (1983년) . . . . 4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 [[대구대학교]] 문학과 학사 졸업
         * [[2015년]]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감마마 납시오~! <참가자 - 우승>
  • 이호성 (대한제국) . . . . 4회 일치
         [[1842년]] 또는 [[1843년]] [[충청북도]] [[충주부]]에서 가의대부(嘉義大夫) 행승정원도승지(行承政院都承旨)와 정헌대부(正憲大夫) 행용양위대호군(行龍驤衛大護軍)을 지낸 이우(李㘾)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 이호선(李鎬善)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밀양부사(前行密陽府使)를 지낸 이도(李壔)의 양자가 되었으므로, 그가 사실 장남이 되었다.
         [[1864년]](고종 1년) 증광과 진사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음서 제도|음서제]]로 관직에 올라 [[군수]]에 이르렀다. [[1872년]] [[12월]] [[동몽교관]], [[1873년]] [[8월]] 사용, [[1875년]] [[7월]] [[예빈시]]주부와 [[호조]][[좌랑]] 등을 역임했다. 그해 [[12월]] [[세자익위사]]사어, [[1878년]] [[6월]] [[의빈부]]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1879년]] [[1월]] [[토산]][[군수]](兎山郡守)로 부임하였고, [[1880년]] [[8월]] [[양근]][[군수]](楊根郡守)로 발령되었다. 그해 [[8월]] 을 당하여 사퇴한 뒤 3년후 다시 [[양근]][[군수]]로 복직되었다.
         [[군수]] 재직 중 1888년(고종 25년) [[과거 제도|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그 해의 관록(館錄)과 도당록(都堂錄)에 들었으며, [[1889년]]에는 직각권에 들고 시강원문학, 시강원 사서 등을 역임하였다. 1890년(고종 27년) [[1월 15일]] [[시강원]]사서에서 다시 시강원문학이 되었으며, 그해 시강원필선이 되었고, [[성균관]][[대사성]],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1893년]] [[이조]][[참의]]를 지냈으며, [[1900년]](광무 3년)에는 [[가선대부]]로 [[봉사]][[제조]](奉常司提調)를 거쳐 [[태자]][[시강원]]첨사(侍講院詹事), [[1901년]] [[2월]] 부첨사(副詹事), [[9월 21일]] [[궁내부]][[특진관]]을 역임하였다.
         [[분류:1807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19세기 한국 사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대한제국의 정치인]][[분류:음서]][[분류:과거 급제자]][[분류:서재필]][[분류:우봉 이씨]][[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
  • 이호준 (프로게이머) . . . . 4회 일치
         | 웹사이트 =
         2007년 반기 드래프트에서 [[이스트로]]의 5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 수 경력 ==
         * [[2006년 10월]] 제25회 커리지매치 입
  • 이효린 . . . . 4회 일치
         순흥 재향지에 의하면 수식(水息) 석람(石嵐) 동쪽 산 아래 두 시냇물 사이에 정자 아양루(峨洋樓)를 지었으나 뒷날 소실되었다 한다. 묘소는 [[경북도]] 에서 매장되었다.
         * 부인 천 이씨, 생원 이여량의 딸
         [[분류:1540년 태어남]][[분류:1622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 의병장]][[분류:임진왜란]][[분류:우계 이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이희성 (1988년) . . . . 4회 일치
         |문 표기 = Lee Hee-Seong
         |사진 사이즈 =
         * [[경중학교]]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
  • 일곱개의 대죄/170화 . . . . 4회 일치
         정오의 힘을 회복한 에스카노르는 고우서를 대로 전력을 다한다.
          * 에스카노르가 추적인 개념(멀린에 대한 마음)으로 정오의 힘을 발휘하는건 고우서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
          * 이 태의 '''에스카노르의 전투력은 22800'''. 이 자체로 '''십계의 갈란을 능가하는 전투력'''이라고 그로키니시아가 인증한다.
          * 고우서는 그 태가 그리 오래 가진 못할 거라고 하는데, 에스카노르는 "그거면 충분하다"면서 고우서의 안경을 빼앗아 호크에게 줘버린다.
  • 일곱개의 대죄/171화 . . . . 4회 일치
          * 결국 예대로 기회는 생겼다!
          * 그때 그로키니시아가 창 바스키어스를 해방해 멜리오다스를 제지한다.
          * 에스카노르의 일격에 당했다고는 하나, 드롤은 마력 전개도 안 한 멜리오다스에게 일방적으로 처발리며 그로키니시아도 잠깐 부딪힌 것만으로 창이 작살났다.
          * 반 조차도 이런 전개는 예도 못했는지 시종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일곱개의 대죄/174화 . . . . 4회 일치
          * 연격이 성립할 수록 공격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승하는 기술.
          * 몬스피드는 "데리엘의 콤보를 50격 이 버틴건 두 번째"라며 멜리오다스를 칭찬한다.
          * 그러나 그 태로는 풀 카운트는 쓰지 못할 거라며 멜리오다스에게 "연염조"라는 공격을 가한다.
          * 그러나 예과는 달리 멜리오다스는 입에 검을 물고 돌진, 몬스피드의 목을 베어버린다.
  • 일곱개의 대죄/176화 . . . . 4회 일치
          * 제리코는 혼을 뽑는 술법을 쓸 거라고 생각해 반을 찾는데, 이때 반은 엘레인과 포옹하고 있다.
          * 메라스큐라는 역시나 초래혼을 써서 멜리오다스의 혼을 뽑아내려 한다.
          * 마신족 시절 당시엔 마신왕 급으로 평가되었는데, 그렇다면 다수의 십계를 대로 선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 메라스큐라의 목이 꺾이는 장면은 어떻게 봐도 스티븐 시걸화--빙의했나--
  • 일곱개의 대죄/216화 . . . . 4회 일치
          * 그러보니 그로키시니아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요정왕의 숲인 건 분명한데. 할리퀸이 그의 행방을 묻자 디안느가 직접 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할리퀸은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 짓는다. 자신 이으로 오랫동안 어긋난 인연으로 괴로워했던 초대 요정왕. 그도 그 인연을, 여동생 [[게라이드]]를 되찾는 중이었다.
          >지금 왕국이 어떤 황인지는 모르겟지만
          >우리를 왕국의 반역자로 만든 그 성의 정
          예지를 듣던 멜리오다스가 하늘에서 이한걸 발견한다. 예언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늘에는 또다른 달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달이 나타난 것이다. 멜리오다스가 그걸 어디서 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찰나, 무언가가 떨어진다.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4회 일치
          * 돼지의 모자 정이 갑작스럽게 빛을 발한다. 옥에서 자던 [[디안느]]가 그 바람에 깨어난다. 산에서 내려오던 멜리오다스와 [[반(일곱 개의 대죄)|반]],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돼지의 모자정이 발하는 심치 않은 빛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그건 엘리자베스가 발하는 마력의 빛이었다.
          *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의 태를 걱정하지만 그녀 쪽에서 멜리오다스를 피한다. 그녀가 잠시 바람을 쐬고 싶다며 방을 나서자 할리퀸은 대체 멜리오다스가 무슨 짓을 했길래 저러느냐고 은근히 타박하는데, 산에서와 달리 이번엔 멜리오다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회의가 끝난 후. 반은 베란다에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슬쩍 부탁한다. [[엘레인(일곱 개의 대죄)|엘레인]]의 일이었다. 내색하진 않고 있지만, 당히 힘들어하고 있다면서. 엘리자베스에게 그녀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 임신균 . . . . 4회 일치
         임신을 한 사람에게 접근하면, 자신도 임신을 하기 쉬워진다는 속설을 뜻한다. 균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속설으로는 '균'이라기보다는 '기운'에 가까운 이미지로 여겨진다.
         임신균 도시전설의 흥미로운 특징은, 이러한 속설이 단순히 '흥미거리'가 되는 '도시전설'로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미신적인 속설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되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널리 퍼진 [[스마트폰]]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인터넷 프리마켓'과 연결되어, 지극히 활발한 '업활동'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메루카리'라는 인터넷 프리마켓 사이트에서 여성이 임신하기 쉬워지는 "임신균"이 붙어있다고 주장하며, '임신미(妊娠米)'를 고가에 판매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마이니치 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출품한 사람은 실제로 임신한 경험도 없으며 판매하는 임신미는 제품명에 써있는 용량보다 훨씬 적은 양이었다. 전문가는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불임으로 고민하는 여성을 모독하는 사기 행위"라고 단언하였다.[[https://mainichi.jp/articles/20170502/k00/00m/040/105000c (참조)]][[http://archive.is/vrWZ4 (아카이브)]]
         '임신균' 열풍과 함께 유행한 것으로서 다양한 임신균 품(?)을 들 수 있다. 다산을 한다는 토끼똥으로 만든 부적, 임산부가 접했다는 임신미, 임산부가 만들어서 임신균이 들어 있다는 임산부 주먹밥, 진통중에 있는 임산부가 그리는 [[후지산]]을 그린 부적, 임산부가 그리는 '석류 그림' 부적, 이러한 것들이 함께 유행하고 있다.[[https://camily.jp/detail/entry/cp00004/article/26472 (참조)]]
  • 임인배 . . . . 4회 일치
         1954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고등학교]], [[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검찰청]] 수사관으로 근무하였다. 1995년 현직 검찰 수사관 신분으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12800329116014&editNo=20&printCount=1&publishDate=1995-01-28&officeId=00032&pageNo=16&printNo=15325&publishType=00010|"조국을 남기고 님은 가셨습니다"라는 소설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따서 덕천장학회를 설립하여 운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북도 김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신한국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99년 한나라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 임현주 . . . . 4회 일치
         | 훈 =
         | 웹사이트 = {{페이스북|artistry11|임현주}}
         |2015 ~ 2017||MBC 표준FM||[[이 사람이 사는 세]]||[[2015년]] [[11월 23일]] ~ [[2017년]] [[6월 23일]]||내레이션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JTBC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기 캐스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잘츠부르크 . . . . 4회 일치
         잘츠부르크=모차르트 수준으로 모차르트 팔아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모차르트 생가, 모차르트 집은 물론,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았다는 성당, 모차르트 광장, 모차르트 동, 모차르트 초콜렛(!!!), 모차르트 향수(!!!) 까지 팔고 있다.
         그 밖에 유명한 것은 화 사운드 오브 뮤직 정도.
         [[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되었으며, 이 화를 주제로 한 투어 코스가 있다고 한다.
  • 잠버릇 . . . . 4회 일치
          * TV 보면서 자기 : 스트레스가 끊어지지 않는 태일 때 일어날 수 있다.
          * 갑선 기능 저하증 : 12시간 이 깨지 않고 잠들게 된다.
          * 갑선 기능 항진증 : 잠을 깊이 들지 못하고 계속 뒤척거린다.
  • 장동국 (1972년 9월) . . . . 4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화감독
         | 웹사이트 =
         '''장동국'''([[1972년]] [[9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이자 [[화감독]]이다.
  • 장재훈 . . . . 4회 일치
         |문 표기 = Jang Jae-Hun
         |사진 사이즈 =
         <ref name="osen 2013-12-23">{{뉴스 인용 |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749316 | 제목=한화, 미래를 기약한 '조기 군입대' 정책 | 저자=이학 | 뉴스=OSEN | 출판사=머니투데이 | 날짜=2013-12-23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1125061604/http://osen.mt.co.kr/article/G1109749316 | 보존날짜=2016-11-25 | 깨진링크=아니오 }}</ref>
         <ref name="osen 2012-02-09">{{뉴스 인용 | url=http://osen.mt.co.kr/article/G1109350612 | 제목=윤요섭·이지모·전유수 개명, 제2의 손아섭 될까 | 저자=이학 | 뉴스=OSEN | 출판사=머니투데이 | 날짜=2012-02-09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1125060759/http://osen.mt.co.kr/article/G1109350612 | 보존날짜=2016-11-25 | 깨진링크=아니오 }}</ref>
  • 장종덕 . . . . 4회 일치
         |문 표기 = Jang Jong-Deok
         |사진 사이즈 =
         * [[남대학교]]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서울길동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
  • 장지영 . . . . 4회 일치
         {{다른 사람|장지 (배우)||화 배우}}
         '''장지'''(張志暎. [[1889년]] [[서울특별시|서울]] ~ [[1976년]] [[3월 15일]]<ref>[http://artscenter.kcaf.or.kr/zine/artspaper97_10/19971032.htm 10월의 문화인물 열운 장지(張志暎)], [http://www.arko.or.kr/zine/artspaper97_10/index9710.htm 월간 문화예술 통권 219호(1997년 10월호)], 한국문화예술진흥원발행,</ref>)은 한국의 한글학자이다. [[주시경]] 문하에서 [[국어]]를 연구. [[1921년]]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 [[한글]] 운동과 연구에 헌신했다. 주요저서로는 《조선어 철자법 강좌》가 있다.
  • 장진용 . . . . 4회 일치
         |문 표기 = Jang Jin-Yong
         |사진 사이즈 =
         * [[무 야구단]] (2009년 ~ 2010년)
         ===[[무 야구단]] 시절===
  • 장철 (1967년) . . . . 4회 일치
         |배우자 = [[성기 (아나운서)|성기]]
         |웹사이트 =
         * [[중앙대학교]] 대학원 경학 박사 [[졸업]]
  • 장포크 . . . . 4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jangfolk.co-story.net 장포크 공식사이트],[http://bandtardis.com the Tardis 공식사이트]
         * [[2010년]] [[5월 24일]] 장포크 《그대의 함성 광의 그날》
  • 장희주 . . . . 4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수 ==
         * [[2014년]] - 제3회 한국 레이싱모델 어워즈 이브크림 특별
  • 전가의 보도 . . . . 4회 일치
         그러나 이렇게 귀한 가치가 있는 반면, 가치가 너무 높기 때문에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전가의 보도였다. 가문 대대로 물려줄 정도의 보도라면 가치가 매우 높지만, [[일본도]]는 관리하기가 어렵고 실전에서 사용하면 손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가의 보도에는 높은 가치가 있는 만큼 실제로 사용하다가 손을 입히면 그만큼 깍여나가는 피해액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결국 이러한 사정 때문에 높은 가치를 가진 '전가의 보도'는 정말로 어쩔수 없는 황이 아니면 함부로 꺼내서 쓰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군도]]를 대신하여 이런 '전가의 보도'를 가지고 전장에 나가는 사례도 많았는데, 그 탓에 이런 전가의 보도가 손을 입는 사례도 빈발하였다. 아무리 이름 높은 명검이라고 해도 근대 공업제품과는 달리 품질이 일관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근대 기술로 만들어진 칼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전국 BASARA(애니메이션) . . . . 4회 일치
         게임 [[전국 BASARA]]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2008년 쯤에 뉴타입에서 본 것 같다. 2009년에 방했겠지.
         방 당시 당히 흥행했다.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 기세를 타고 2기가 나왔지만 이건 별로 재미 못 본 듯.
          카이의 작은 호랑이. 열혈 바보. 다케다군의 무장으로 다케다 신겐과 서로를 외치며 죽빵을 날리는 사이다. 나름대로의 애정표현이라고. 어부지리를 노리고 다케다군과 우에스기군의 전투에 난입하려는 다테와 일기토를 벌인다. 이후 다테와 라이벌 관계가 된다.
  • 전라북도/인물 . . . . 4회 일치
         김제시 - [[강대풍]] [[강구]] [[이승효(탤런트)|이승효]] [[은지원]] [[이지혜(가수)|이지혜]] [[조선형]]
         남원시 - [[강광배]] [[김보미(탤런트 겸 배우)|김보미]] [[문근]] [[주현미]]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
         무주군 - [[김광수(1925)]] [[권해효]] [[김민희(1982)|김민희]] [[김주환(탤런트)|김주환]] [[서희]] [[차수연]]
         순창군 - [[김동진(프로게이머)|김동진]] [[고경표]] [[고소]] [[성시경]] [[박경림]] [[임현식]]
  • 전자사전 . . . . 4회 일치
         사전의 기능 뿐만 아니라 수첩 등의 기능도 가지고 있던 다용도 기기였다. 2000년대 후반 나온 전자사전은 노래를 듣거나 동을 보거나 게임을 할 수 있었다. 동의 경우 인코딩이 필요했지만 그게 어딘가.
  • 전쟁 . . . . 4회 일치
         [[싸움]]과 기본적인 개념은 같으나, 대개 그 규모가 일정 수준 이의 다수 대 다수로 붙을 경우에 쓰이게 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을 빼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숱하게 일어난 일들이기도 하다.
         학계에서는 [[국가]]간의 무력충돌로 인해 1000명 이의 사자가 발생한 사건을 전쟁의 최소조건으로 본다.
         많은 전쟁이 벌어졌고, 지금도 위기 황이나 가급적이면 벌어져서는 안되는 것이기도 하다.
  • 전종화 . . . . 4회 일치
         |문 표기 = Jeon Jong-hwa
         |사진 사이즈 =
         * [[남대학교]]
         [[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남대학교 동문]]
  • 절대가련 칠드런/436화 . . . . 4회 일치
         깨어난 츠보미의 행동이 수하다.
          * 후지코의 환은 "널 만나지 않았더라면 모두 행복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관자노리를 쏘는데...
          * 그런데 후지코의 낌세가 이하더니 수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6화 . . . . 4회 일치
          * 배를 점거한 효부는 실려있는 화물이 블랙팬텀의 "품"인 에스퍼라는걸 확인한다.
          * 마기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마기'''에서 '''시로'''로 격하된 것은 더이 부하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건가요"라고 말한다.
          * 효부는 부정하며 "너니까 내가 대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 "정해져 있잖아. 너의 혼을 구한다. 육체를 파괴해서라도."
  • 절대가련 칠드런/447화 . . . . 4회 일치
          * 효부는 마기의 혼을 구하기 위해 육체를 파괴하는 것도 불사하겠다고 다짐한다.
          * 이것은 단지 보는 시점이 달라지는 것일 뿐이며 "더이 처입은 소년의 망령으로 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 그러나 이것은 환이고 실체는 배후로 돌아가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48화 . . . . 4회 일치
          * "나는 처받는 일 따위 없다"는 허세로 자기 자신을 세뇌하기 위해서이다.
          * 본래 정부군에 접근했었는데 그쪽은 강대국에 보낼 돈 밖에 없다고 대해주지 않았고 이번엔 반군 쪽에 세일즈를 하러 왔다.
          * 마기는 이전에 나왔던 4컷 만화에서 능력 특성 샤프심 같은걸 비축해두는 습관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연필을 챙겨서 다니고 있다.
          * 사실 효부도 감염. 저항은 하는 것 같지만 시간 문제라고 하는데다 본인도 푸는 방법을 모르니 이대로 감염돼 버릴 가능성이 크다.
  • 절대가련 칠드런/460화 . . . . 4회 일치
          * [[쿠모이 유리]]는 사카키의 태를 검사하기 위해 힙노 능력으로 사카키, [[우메가에 나오미]]를 변장시켜 바벨의 시설에 잠입한다.
          * [[마츠카제 코우이치]]는 [[쿠모이 유리]]와 나오미에게 사카키를 바벨의 시설에서 정밀검진하도록 맡긴다. 미나모토는 바벨의 시설에서는 [[츠보미 후지코]]의 눈에 띌 거라고 우려하지만 마츠카제는 이미 바벨을 드나들 수 있는 보안코드를 확보해둔 태였다. 여기에 유리의 힙노로 위장을 더하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 전쟁이 끝난 직후 후지코는 이 집에 숨어 살았다. 예전 은사님이 내준 집이었는데 전쟁의 향으로 능력이 봉인되고 황국 경찰과 코메리카 군부에게 쫓기던 후지코는 여기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과거의 후지코가 구현된 것도 이곳이 자신의 추억이 깃든 곳이기 때문. 다른 곳에서는 이정도로 구현화할 수 없다.
          하지만 은둔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황국경찰에게 추적 당한다. 능력까지 봉인된 태라 속수무책으로 당할 위기에 처하는데.
  • 접대 . . . . 4회 일치
         [[요정]], [[룸싸롱]], [[골프장]] 등이 접대 장소의 대명사이다. 때때로 고위 공직자들의 호화로운 접대나 접대의 내용 등이 사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향응 제공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뇌물]]이 오가기도 한다.
         [[아부]]를 해서 [[높으신 분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이나 운동도 해야 하기 때문에 접대는 당한 [[감정노동]]이다.
         스포츠 등을 활용하는 접대에서는 을 측이 실력으로는 충분히 이길 수 있어도 대인 갑에게 맞춰주면서 적당히 져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
  • 정광운 . . . . 4회 일치
         |문 표기 = Jeong Kwang-Woon
         |사진 사이즈 =
         * 남중학교
         [[분류:서울응암초등학교 동문]][[분류: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남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동래 정씨]]
  • 정몽근 . . . . 4회 일치
         |부모 = 아버지 [[정주]], 어머니 [[변중석]]
         |웹사이트 =
         ** 아버지 : [[정주]] (1915 ~ 2001)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동 정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현대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정주]][[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현대백화점그룹]]
  • 정상교 . . . . 4회 일치
         |선수명 = 정
         |문 표기 = Jeong Sang-Kyo
         |사진 사이즈 =
         '''정교'''(鄭相敎, [[1991년]] [[10월 1일]] ~ )는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내야수]]이다.
  • 정성현 (배구선수) . . . . 4회 일치
         | 문 표기 = Chung Seong Hyun
         | 현 소속팀 = 무 배구단
         | 소속팀 =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br>-> [[무 배구단]](군복무)
         FA시즌을 앞두고 2017-2018시즌 종료후 무에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 정종 . . . . 4회 일치
         그나마 왕후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기에(후궁에게는 많은 자식을 보았다) 태종도 정치적인 이유로 견제해야 할 직계 혈통이 없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 그런데 사실 왕위 계승은 서자라도 관없다. 왕실은 사가와는 달리 정실 소생과 측실 소생 사이의 적서 차별이 없기 때문. 애초에 다수의 후궁을 두는 이유는 혈통 단절을 막기 위해 '왕위 계승이 가능한' 많은 자손을 얻기 위해서이다. 계승 서열 자체는 적자>서자이므로, 적자가 따로 있는데 서자가 계승한다면 문제가 있지만, 적자>서자이기 때문에 '적자가 없는 황'이라면 바로 다음 순위인 서자가 계승하는데는 어떤 문제도 없다.
  • 정차온 . . . . 4회 일치
         '''정차온'''(鄭次溫, [[1399년]](정종 1) ~ ?)은 [[조선]]시대 전기의 학자,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 정씨|경주]]이고 자(字)는 공후(孔厚)이다. [[경북도]] 출신.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관직이 조산대부(朝散大夫)로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주]][[판관]](尙州判官)에 이르렀다. [[1455년]] [[조선 단종|단종]](端宗)이 강제로 [[조선 세조|세조]](世祖)에게 강제로 선위하고 왕이 되자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세조가 평양판관(平壤判官)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조선의 철학자]][[분류:조선의 교육인]][[분류:경주 정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조선활자본 삼국지통속연의 . . . . 4회 일치
         조선방각본 삼국지연의는 박재연(朴在淵) 교수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권을 수집하여 전권을 인 출판한 것으로, 2008년에 출판되었다. 조선방각본 삼국지통속연의는 중국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에 원각본(原刻本)의 일부분이 소장되어 있는 주왈교본 갑본(周曰校本甲本)과 대조를 거쳐, 주왈교본 갑본과 동일한 판본이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조선방각본 삼국지통속연의를 통해서 주왈교본의 완전한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명종]] 년간(1534~1567)에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금속활자로 간행되었고, 병자자(丙子字)를 썻다. 드문드문 굵기와 크기가 다른 목활자가 끼어 있어 '후기 병자자'로 추정된다. 활자로 볼 때 1552년 이후 1560년대 초중반 사이에 인출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판본은 중국의 주왈교본갑본(周曰校甲本,1552)을 기준으로 하여, 가정임오본(嘉靖壬午本,1522)을 참조하고 교감을 더하여 하권으로 간행한 판본이다. 이 판본의 발견으로 조선에서 읽었던 삼국지는 주로 주왈교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조선방각본 삼국지연의 역시 주왈교본이다.)
          * 현존하는 최고 판본인 '가정본'보다 오래된 텍스트를 반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
  • 주상철 . . . . 4회 일치
          * 위 문서: [[아나운서/목록]], [[가톨릭/인물]]
         || '''이름''' ||주철||
         || '''학력''' ||[[계명대학교]] [[경학과]] 학사 [br] [[대건고등학교(대구)]]||
         '''주철'''([[1956년]] [[10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대구MBC]] 소속의 [[아나운서]]이다.
  • 주장환 . . . . 4회 일치
         '''주장환'''(1957년 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신문기자, [[소설가]]이다. 서울신문(스포츠서울) 세계일보 기자를 거쳐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중소기업사랑 청소년글짓기 공모전 심사위원장, 대한민국장애인예술대 문학부문 심사위원, 충효예실천운동 본부 임위원,부총재 [[731부대]] 한국인 희생자 진규명위원회 대변인을 거쳐 [[극동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다. 하버드대학 Literati China 과정 수료. 월간조선 객원기자
         소설 '사바카' '그 바닷가 헛간은 따스했다' '겨울새 물살털기' '퇴계 이황' 등이 있으며 시집 '내마음 속에 사랑의 집 한 채' 교양서 '논어와의 대화' '참사랑의 길' '레오나르도다빈치와 함께 하는 논술,NIE' '로즈여사에게 배우는 특별한 자녀양육법 26' '노벨문학 소프트' 등과 '배짱으로 살아라' '사랑을 주는데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 줄리아나 도쿄 . . . . 4회 일치
         [[도쿄]]에 있었던 [[버블 시대]]의 '''전설적'''인 [[디스코]] 홀. 1991년 5월에서 1994년 8월까지 도쿄 시바우라에서 업했다. 국의 레코드 회사 줄리아나와 합작하여 만들어졌다.
         1993년에는 경 모체가 바뀌었다. 이 때, 줄리아나의 명물이었던 받침대는 점차 팬티를 보이고 팬티를 보여주는(…) 느낌으로 과격화 되어갔으며, 여기에 [[경찰]]이 클레임을 걸어 받침대는 1993년에 철거되었다. 결국 손님이 줄어들면서 1994년 폐점하게 되었다.
         당시의 패션, 음악이나 디스코 유행 등의 첨단을 달리던 장소로서, [[버블 시대]]의 징이라고 불린다.
  • 지은성 (1991년) . . . . 4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www.sidushq.com/star/jesung 공식사이트]
         === 화 ===
         * 《[[올레 (화)|올레]]》 (2016년) - 어린 중필 역
  • 진유현 . . . . 4회 일치
         | 훈 =
         | 웹사이트 =
         * [[2011년]] : 케이웨더 기캐스터
         * 해피fm [[음악과 음악사이]]
  • 차정아 . . . . 4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2015년]] - [[XTM]] 《남자들의 동 랭크쇼 M16》
  • 착취용 애완용 아이 . . . . 4회 일치
         기본적으로 착취용 아이는 학대당하는 대이다. 독부모는 아이에 대해서 돈을 벌어오게 할 생각이나, 노후는 개호를 시키면서 부려먹을 생각 밖에 하지 않는다.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착취용을 지정하여 학대하는 경우도 있다.
         가정내에서 무조건적으로 인정을 받고, 착취용 아이라는 얕잡아볼 대이 준비되어 정신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노력하는 능력이 결여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응석을 부리는 버릇과 부모의 과도한 컨트롤의 향 , 타인을 얕잡아 보고 대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정신세계를 가지게 된 탓에 사회에 부적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니트가 되기도 하며, 최악의 경우 히키코모리.
         시간이 지나서 애완용 아이가 일하지 않고, 부모가 노화하게 되어 곤란한 태가 되면, 급해진 부모는 착취용 아이에게 부담을 넘기려는 경우도 있다.
  • 창작:블랙리스트 . . . . 4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코스모폴리턴]]'''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창작:코스모폴리턴|코스모폴리턴]]의 설정집. 코스모폴리턴 세계관에서 규모에 관없이 명백히 악당인 범죄자들을 정리한 문서.[* 단, 캐릭터의 배경이나 에피소드의 전개 방향에 따라 선역이 되거나 비교적 좋은 결말을 맞는 경우도 있다.] 각 하위문서는 가나다 순으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순위와는 관계가 없다.
         이들 중 몇몇은 세계관 전체에 향을 끼치고 있는 악역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는 [[창작:레스터 리|레스터]]와 [[창작:존 휘태커|존]]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 창작:좀비탈출/0-1 . . . . 4회 일치
         세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 식량은 착실하게 사라져 갔다.
         저 수를 뚫고 구조대가 온 다면 세이 해방됐다는 소리겠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희망이다.
         처음엔 식량이 한 달은 갈 거라고 예했지만 부족했다.
         더이 미뤄둬서는 안 되겠지.
  • 창작:좀비탈출/3-2 . . . . 4회 일치
         솔직히 학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사실 사건이 이렇게 까지 커지진 않았을 때부터 이미 동네 분위기는 당히 어수선 했기 때문에 나는 일치감치 학교도 빼먹고 있었다. 좀비들의 출현은 처음에는 '한밤중에 아이를 습격해서 물어뜯는 괴한'이니, '길거리에서 습격해오는 취객'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소문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치안 사정에 불안감을 느끼던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학교 역시 이런 분위기에 향을 받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등교하지 않은 아이들도 많았고, 도시가 불안하다며 아예 시골로 피난간 가족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등교하길 그만뒀을 때는 이미 반수 이이 등교를 멈춘 태였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2 . . . . 4회 일치
         이 황에서 최대 위험요소는? 눈 앞에 있잖아. 뭘 고민한단 말인가. 나는 발뒷꿈치를 세우고 자세를 낮췄다. 내가 다가가는 데도 녀석은 모른다. 황이 이렇다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철퇴도 쓸모가 있다. 나는 아령의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아주 낮게, 잠꼬대처럼 그르릉 대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은 코 앞이다. 머리 위치는 딱 내 눈 높이다. 나는 팔에 온힘을 집중했다.
         둔탁한 소리와 손에서 접시가 깨지는 듯한, 유리창을 부순 듯한 섬뜩한 촉감이 괴롭힌다. 정수리 한 복판. 언젠가 Tv에서 명인이 도자기를 깨뜨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갈라진 살갗 사이로 보이는 두개골이 도자기처럼 하얗다. 주의를 기울였지만 도자기 안의 검붉은 내용물이 튀기면서 손과 팔에, 그리고 얼굴까지 더럽혔다. 하나님 저게 입으로 들어가지 않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비록 '''좀비가 득실대는 동네에 처박아 버렸지만'''.
         다시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위험이 사라진 앞마당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일감이 넘쳤다. 한쪽에 줄지어 둔 작은 화분이 그대로 있다. 모종은 시들어 버렸지만, 저것만 봐서는 집주인이 게으르다는 생각만 들 것이다. 텅비어 있는 차고도 주인이 마트라도 가서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현관문이 열리고 남의 집 마당에서 무슨 짓이냐고 외치는 토트넘네 아줌마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 채기영 . . . . 4회 일치
         |선수명 = 채기
         |문 표기 = Chae Gi-Young
         '''채기'''([[1995년]] [[9월 1일]] ~ )은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이다.
         * {{KBO 타자|64085|채기}}
  • 채상현 . . . . 4회 일치
         |선수명 = 채
         |문 표기 = Chae Sang-Hyun
         |사진 사이즈 =
         '''채현'''([[1993년]] [[4월 14일]] ~ )은 전 [[KBO 리그]] [[넥센 히어로즈]]의 [[외야수]]이다.
  • 천세라 . . . . 4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수 ==
         * [[2015년]] - 제1회 코리아 레이싱모델 쇼 & 컨테스트 금
  • 천제훈 . . . . 4회 일치
         |클럽 = [[FC 서울]]<br />→ [[광주 무 불사조|광주 무]] (군 복무)<br /> [[포천 시민축구단]]<br /> [[목포시청 축구단|목포시청]]
         == 수 ==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목포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포천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초공동어뢰 . . . . 4회 일치
         [[어뢰]]의 일종, 초공동현을 이용하여 초고속으로 발사되는 어뢰이다.
         초공동현(Supercavitation)은 물 속에서 기포로 작은 막을 만들어 물체를 완전히 덮어 마찰 저항을 현저하게 줄이는 것이다. 물의 저항은 공기 저항의 1,000배에 달하는데, 초공동현을 이용하면 물의 저항이 공기 저항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어뢰가 공중발사 [[미사일]]처럼 엄청난 속도로 수중에서 날아갈 수 있다.
         1990년 구소련이 초공동어뢰 시크발(Shkval)을 개발하여 배치했다. 속도가 시속 500km 이으로 보통 어뢰 속도의 5배에 달하여 주목을 받았다.
  • 최기영 . . . . 4회 일치
         | 이름 = 최기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최기'''([[1983년]] [[4월 23일]] ~ )는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이다.
  • 최대원 (배우) . . . . 4회 일치
         '''최대원'''([[1974년]] [[3월 14일]] ~ 현재)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났고, [[1975년]] 화 《'''탈출'''》을 데뷔하고, 연극 활동을 시작하였다.
         === 화 ===
         * 2003년 《[[아리랑 (2003년 화)|아리랑]]》- 천기호 역
         [[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5년 데뷔]]
  • 최동석 . . . . 4회 일치
         | 학력 = [[경희대학교]] 의료경학과<br>[[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 훈 =
         | 웹사이트 =
         * [[경희대학교]] 의료경학과 학사
  • 최동익 . . . . 4회 일치
         |웹사이트 = [http://www.hopewings.or.kr/ 최동익 공식웹사이트]
         ;공식 사이
         * [http://www.hopewings.or.kr/ 최동익 공식사이트]
  • 최동환 . . . . 4회 일치
         |문 표기 = Choi Dong-Hwan
         |사진 사이즈 =
         |투구 = 우(입단 당시 사이드암)
         [[2009년]] 등번호 1번을 쓰던 [[우규민]]이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자 [[2010년]]에는 최동환이 1번을 썼다. [[2010년]]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2013년]]에 복귀했다. 원래는 사이드 암스로 투수였으나 오버헨드스로 투수로 전향했다.
  • 최민환 . . . . 4회 일치
         | 웹사이트 =
         == 수 내역 ==
         '''{{참고|FT아일랜드#수 내역|설명=[[FT아일랜드]] 수 목록은}}'''
  • 최선영 (희극인) . . . . 4회 일치
         | 이름 = 최선
         | 활동 역 = [[희극 배우]]
         | 웹사이트 =
         '''최선'''([[1988년]] [[3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개그우먼이다.
  • 최성훈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문 표기 = Choi Seong-Hoon
         |사진 사이즈 =
         [[2012년]] [[5월 2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한화 이글스|한화]]전에서 [[류현진]]을 대로 프로 데뷔 첫 선발승을 거두었다.<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205020100020310001451&servicedate=20120502 LG 신인 최성훈, 류현진과 맞대결서 승리하다] -스포츠조선</ref>
         2012 시즌 신인왕 후보에 올랐으나 3표를 받는데 그쳤다. 신인왕 수은 [[넥센 히어로즈]]의 [[서건창]]이 차지하였다.
  • 최수진 (무용가) . . . . 4회 일치
         |수 = [[2007년]] 제37회 동아무용콩쿠르 일반부 현대무용 여자부문 은
         |웹사이트 = {{페이스북|soojin.choi.587|최수진}}
         * [http://www.soojinchoidance.com 최수진 웹사이트]
  • 최수진 (성우) . . . . 4회 일치
         | 출생지 = {{KOR}} [[경북도]] [[대구시]]<br />(현.[[대구광역시]])
         === 화 ===
         * [[동방불패]] ([[MBC]]) - 임([[관지림]])
  • 최유건 . . . . 4회 일치
         |문 표기 = Choi Yu-Geon
         |사진 사이즈 =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서울화곡초등학교 동문]][[분류:덕수중학교 동문]][[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사이버대학교 동문]]
  • 최윤동 . . . . 4회 일치
         * 대구공주식회사 중역
         * 한국민주당 중앙무위원
         *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1948년 5월 10일]] :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 경북도#대구부 갑구 (제1선거구)|제헌 국회의원(경북 대구갑)]]
         |같은 지역구 의원 = (대구시 을)[[서일]]<br />(대구시 병)[[백남채]]
  • 최윤철 . . . . 4회 일치
         |문 표기 = Choi Yun-Cheol
         |사진 사이즈 =
         * [[군산업고등학교]]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강남초등학교 동문]][[분류:강남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군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송원대학교 동문]]
  • 최현석 . . . . 4회 일치
         * [[2015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 |SBS]] 《[[동이몽, 괜찮아 괜찮아]]》
         == 수 ==
         * 2016년 제10회 [[케이블TV 방송대]] 핫이슈 예능인
  • 최흥철 . . . . 4회 일치
         [include(틀:관련 문서, top1=국가대표(화))]
         == 수 기록 ==
          * 화 [[국가대표(화)|국가대표]]에서는 마약 복용자로 나오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모든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스키에 관심이 있어서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된거지, [[군면제]]를 이유로 나가는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실제로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어 군면제가 되었다.
  • 최희준 (언론인) . . . . 4회 일치
         | 웹사이트 =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법대를 졸업했고,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석사를 취득했다. [[1991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에서 1기 공채 기자로 데뷔하였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뉴욕 특파원을 마치고, 2011년부터 이듬해 2012년까지 SBS CNBC 보도본부 본부장을 지내다가 퇴임한 후 2012년부터 프리랜서 신분으로 [[TV조선]] 취재담당 에디터와 프리랜서 앵커를 시작했다. 2014년 6월 제10회 한국참언론인대에서 앵커 부문 수했다.
         *[[2011년]] [[SBS CNBC]] 《굿이브닝 경제와이드》 - 손옥 앵커와 함께 진행
  • 케모 . . . . 4회 일치
         거대한 몸집을 지닌 괴물인데 사실은 화학물질을 담는데 쓰이는 플라스틱 통이었다. 만든 사람은 괴짜 과학자인 램지 노튼. 인간형체의 거대한 통으로 내부에 대량의 화학물질을 담아왔고, 그것의 향으로 현재의 괴물이 된 것. 이렇게 해서 등장하게된 케모는 날뛰다가 [[메탈멘]]에게 제압되었다.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한 괴물인데 그 특성 고공에서 떨구는 것으로도 강력한 무기가 되어서 악당 조직인 소사이어티가 블러드헤븐에 떨어뜨려 수많은 인명을 학살했는데 이때도 케모는 그리 오래가지 않고 재생했다.
         소아이어티에 소속되어 있으나 이전에는 [[렉스 루터]]의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소속되기도 했다. 이때 [[둠스데이(DC 코믹스)|둠스데이]]를 탈출시키는 임무를 위해 슈퍼맨과 싸우기도 했다.
  • 코난 월드 . . . . 4회 일치
          * 작중의 치안은 안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의 무능함을 보면 실제 살인율은 통 일본의 10배 이.
          * 많은 인간들은 비정적으로 쉽게 증오를 품고 살의를 가진다.
          * 운동 선수들의 능력이 비정적으로 높다. NINJA와 동급.
  • 코미디언(왓치맨) . . . . 4회 일치
         만화 [[왓치맨]]의 등장인물. 코미디언은 히어로로써의 이름이고 본명은 에드워드 모건 블레이크(Edward Morgan Blake). 작중에선 이미 살해된 태이다. 왓치맨의 도입부는 코미디언 살해범을 찾으려는 [[로어셰크]]의 독백과 블레이크 살해현장을 조사하는 두 [[형사]]의 대화로 시작된다.
         한편으로는 예 외의 모습을 보인다. 1966년 캡틴 메트로폴리스가 크라임 버스터즈라는 히어로 조직을 창설하려하자 "늙어서도 카우보이와 인디언 놀이를 하고 싶은"거라고 돌직구를 날리면서 [[냉전|지금과 같은 황]]에서는 그런건 쓸모 없다고 씹는다. 임신한 현지처를 살해한 후에도 닥터 맨해튼이 이를 비판하자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녀를 구하려 하지 않은 것을 언급하면서 그가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역으로 깠다.
         사실 그가 해왔던 망나니짓은 미쳐 돌아가는 세에 대한 일종의 ~~미러링~~패러디였다. 이는 로어셰크와 닥터 맨해튼의 독백에서 암시된다.
  • 키리얼 . . . . 4회 일치
         '''키리얼''' (KeyReal, 본명 하기련, [[1984년]] [[2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힙합]] 래퍼이다. [[소울 커넥션|Soul Connection]] 소속이였으나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한 태다.
         KeyReal은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경부터 '''RapManya'''라는 이름으로 대구 힙합 동호회와 [[소울 커넥션|Soul Connection]]을 통해 음악을 시작하였다.<ref>[http://www.hiphopplaya.com/magazine/article/view.html?category=3&sort=1&num=3026 "The Hypnotize LP, 'DJ Shinin'stone' 과의 인터뷰", 힙합플레이야 인터뷰, 2008년 2월 18일]</ref> 그는 [[힙합플레이야]]나 [[밀림 (웹사이트)|밀림]]을 통해 자작곡을 업로드하곤 하였으며, Soul Connection의 멤버로써 몇 번의 공연을 겸하였다. 이후 이름을 KeyReal로 바꾸고 주로 [[Csp]]와 호흡을 맞추면서 프로젝트 그룹을 '''Ironic Blues PJ'''를 결성, ''Train Trip'', ''Last Impact'' 등의 곡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의 존재는 Csp의 데뷔로 Soul Connection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동시에 더욱 알려지게 되었으며, 특히 Csp의 앨범의 수록곡 인연과 그의 데뷔 앨범《인고 EP》수록곡 <무대를 내려오며>에서는 그의 보컬 실력도 선보였었다. 그의 데뷔 앨범 《인고 EP》는 Soul Connection에서 두 번째로 발매되었으나, 발매 직후 집안 사정으로 인해 그의 부모가 있는 [[창원시]]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고, 앨범 활동은 전면 중단되었다. 대신 Soul Connection 측은 그의 앨범 수록곡 〈무대를 내려오며〉 뮤직비디오를 촬하여 홍보 활동에 사용하였다.<ref>[http://club.cyworld.com/51574015124/37380645 "KeyReal - 무대를 내려오며 뮤비가 완성되었습니다.", 글쓴이 박인엽 (Csp), Soul Connection 공식 클럽 S.C News, 작성일자 2006년 11월 13일, 확인일자 2012년 3월 3일]</ref>
         이후 그의 활동은 대폭 줄어들었으며, 2007년 [[DJ 샤이닝스톤|DJ Shinin'stone]]과 2009년 Soul Connection 컴필레이션, 2010년 [[Still PM]]에 참여한 것을 제외하면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소울 커넥션|Soul Connection]] 컴필레이션 앨범 《Rapsody》수록곡 〈백내장〉이 히트 되어 잠깐 화제가 되었으나 그가 활동을 안하다 보니 곧 잊혀졌다. 현재 그는 고향에서 음악과 무관한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음악 활동은 사실 중단된 것이나 다름 없으나 여전히 Soul Connection의 멤버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Soul Connection이 레이블로 전환된 뒤에도 멤버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타오파이파이 . . . . 4회 일치
         레드리본군 편에서 등장하며, [[블루 대령]]을 [[혀]]를 사용하여 살해하는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레드리본군의 의뢰를 받아 손오공과 대결하여 한 차례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카린탑]]에서 수행하고 내려온 손오공에게 패배. 복수를 노리고 [[사이보그]]가 되어 부활했으나 [[천진반]]에게 패배한다.
         등장 당초에 손오공 이의 강자로서, 손오공을 고전시켰던 블루 대령을 혀만 가지고 살해했다. 또 레드리본군 병사들을 쉽게 제압하던 우파의 아버지 보라를 살해. 손오공과 대결하여 도돔파로 쓰러뜨렸으며, 손오공은 품 속에 넣어둔 드래곤볼이 없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린탑에서 수행한 손오공에게는 패배하고 만다.
         천하제일무도회에 등장했을 때는 사이보그로 개조되면서 스스로 더욱 강해졌다고 자부했으나, [[천진반]]
          * 슈퍼도돔파 - 사이보그로 개조된 뒤 사용했다.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4회 일치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할아버지 타이라노 타카모치(平高望)는 간무 덴노(桓武天皇)의 손자로서, [[신적강하]]하여 카즈사 국(上総国)[* 지금의 치바현 중부]을 다스리는 쿠니시(国司)였다. 그는 카즈사 국에서 임기를 마친 뒤에도 교토에 귀환하지 않고, 아들들과 토착하여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에서 개간을 거듭하여 방대한 장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방대한 장원은 자식들에게 속되었는데, 장남 쿠니카(国香)는 히타치(常陸), 차남 요시카네(良兼)는 카즈사(上総), 삼남 요시마사(良将)는 시모우사(下総)의 지를 나눠받게 된다.
         이 무렵 [[세이와 겐지]]의 시조 미나모토노 츠네모토가 무사시국에 부임한다. 무사시국(武蔵)을 다스리는 지방관 쿠니시로 부임하게 된 츠네모토는 무사시 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속히 토착 호족들에게 검주(検注)[* 이 무렵 쿠니시가 호족들에게 받는 '''[[뇌물]]''']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호족 무사시노 타케시바(武蔵武芝)가 정식 임관도 하기 전에 검주를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반발하였는데, 격노한 츠네모토는 타케시바를 공격하여 약탈을 실시한다. 도주한 타케시바는 이 무렵 무용을 떨치던 [[타이라노 마사카도]]에게 '중재'를 의뢰하고, 겁을 먹은 츠네모토는 산으로 도주하여 틀어박혔다가 동행하였던 흥세왕(興世王)을 하산시켜 협을 시작했는데 협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케시바의 군대가 츠네모토의 거주지를 포위하자 마사카도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진 츠네모토는 그대로 교토로 도주하고, 흥세왕, 마사카도, 타케시바 등이 결탁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 타카하타 유우타 . . . . 4회 일치
         2016년 8월 23일, 군마현 마에바시(群馬県 前橋)의 시내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에서 여성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8월 23일 오전 2시에서 2시 30분 경, 비즈니스 호텔의 객실에서 여성 직원의 손발을 누르고 강간하고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부을 입힌 혐의였다.
         [[이시(일본 여배우)|이시]]
         **[[이시(배우)]]
  • 태학 . . . . 4회 일치
         [[유교]] 경전에서는 고대에 이미 비슷한 성격의 학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예기]]에는 순 임금이 (上庠)이라는 --력이 증진될듯한-- 학교를 만들었다고 하며, [[주나라]] 천자는 벽옹(辟雍)이라는 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학교들을 국학(國學), 태학(太學), 대학(大學)으로 총칭했다.
  • 테란 . . . . 4회 일치
         인류 컨셉 종족. 과거 [[지구]]에서 여러가지 사정으로 퇴출된 자들이 지구에서 떨어진 행성계 [[코프룰루 구역]]에 정착하게 된 것이 시초다. 이들은 [[테란 연합]], [[켈 모리안 연합]], [[우모잔 보호령]] 등 여러가지 거대 세력을 만들었지만 스토리 비중은 테란 연합과 그 후예(?)들에게 몰려있다.
         시리즈의 주요 인물인 [[짐 레이너]]도 테란이란 점에서 스토리 비중이 크다. 그럼에도 다른 종족에게 얕잡아보이는 느낌이 강한데 사실 얕잡아볼만 하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면과 그 규모에서 [[저그]]에게 밀리고, 기술적인 면에서 [[프로토스]]에게 뭐...
         체력의 경우 붉은색 표시에 가까워질 수록 각 부위의 색도 바뀌다 붉은 색이 된다. 건물의 경우 체력 표시가 붉은색에 도달하면 체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부패한 독재 국가인 [[테란 연합]]이 등장. [[저그]]와 [[프로토스]]를 비롯한 [[외계인]]들의 습격을 받는다. 이 틈을 타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이끄는 혁명 조직 [[코랄의 아들들]]이 세를 불리고, 마침내 테란 연합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코랄의 아들들의 일원이었던 [[짐 레이너]]를 포함한 일부는 멩스크가 보였던 끔찍하고 비열한 행위[* 테란 연합의 수도성인 타르소니스로 저그 떼거리를 유인했다. 자신을 따라왔던 [[사라 케리건]]을 저그 떼 사이에 내다버린건 덤.]에 반감을 느껴 코랄의 아들들을 떠난다. 하지만 멩스크는 [[테란 자치령]]을 세우고 자신이 황제 자리에 앉는다.
  • 토리코(토리코) . . . . 4회 일치
         큰 체구에 거친 이미지이고, 확실히 그런 면모가 있으나 근본은 선량한 사람인데다 냥함까지 가지고 있다.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위기 황에서도 식사 목적이 아닌한 살을 자제하는지라 그 굉장한 힘을 쓰지 않고 황을 해결했다.
  • 토리코/358화 . . . . 4회 일치
          * 한편 죠아도 미도라에게 네오의 진실을 알리며 '''"무한한 식의 낙원"을 추구'''하자고 한다. 그러나 미도라는 '''"내 앞에 있는 작은 밥 하나 외엔 흥미가 없다"'''고 말한다.
          * 토리코는 "지구의 풀코스"는 도 못하게 맛있을 거라며 흥분한다. 그리고 '''"네오" 그 자체도 엄청 맛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내 눈앞에 놓인 조그마한 저녁밥 이외엔 관심없어. ||
  • 토리코/367화 . . . . 4회 일치
          * 지로는 아카시아에게 딱 하나만 대답해 달라며 "플로제님이 세을 떠났을 때 보인 눈물은, 그때 그 시절 함께했던 순간들은 진짜였냐"고 묻는다.
          * 놀라고 있는 사이 접근한 아카시아는 "노킹을 가르쳐준 스승은 나"라며 지로의 몸에서 데미지 노킹을 풀어 버린다.
          * 죠아는 "어떤 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며 미도라를 이길 수 있는 생물이 지구에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겠다며 칭찬한다.
         플로제님이 세을 떠났을 때, 그때 흘린 눈물은... 진짜였나?
  • 토리코/368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그런 황조차 미도라에겐 타격이 되지 않았고, 순식간에 재생하며 이번엔 이치류의 기술이던 마이너리티 월드를 발동한다.
          * 비록 승리한 죠아지만, 미도라가 봉인된 직후 다리가 풀릴 정도로 지친 태.
          * 한편 사천왕이 모여있는 자리에는 지면이 갈라지며 어떤 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 GOD가 드디어 등장하는 듯 싶은데, 아무리 봐도 개구리 같은 형이다
  • 토리코/370화 . . . . 4회 일치
          * 그때 지에서는 전세계의 맹수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 이 생물들이 향하는 곳에는 엠페러링이 떠있는데. 브란치도 어떤 황이 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 하지만 코마츠가 없는 이 기댈 것은 오오타케의 "식운" 뿐. 오오타케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다고 한다.
          * 지지는 긴급한 황이나마 GOD의 조리법을 간략하게 전하려고 하는데
  • 토리코/373화 . . . . 4회 일치
          * 아이마루는 아카시아가 구르메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각국 정들에게 먹인 일을 언급하며 "과거 GOD를 먹은 자들은 이곳 에리어0으로 이끌리게 된다"고 한다.
          * 그는 자신에겐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는 것과 이한 용기가 솟아난다는 것을 말하고 GOD를 요리하겠다고 나선다.
          * 그대로 네오를 뜯어먹은 토리코는 "왜 대도 안 되는 자신이 덤벼드는지 아냐며" 그것은 바로 "널 먹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 결국 팬덤의 예대로 NEO를 고기요리로 선언하는 토리코.
  • 토리코/381화 . . . . 4회 일치
          * 스타준은 죠아를 대로 고전하지만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듯한데?
          * 센터는 여전히 배틀 울프 무리를 대하고 있다.
          * 그는 센터를 먹고 다시 네오와 합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네오가 한층 완벽한 태로 부활하는 것이다.
          * 미도라의 부활. 사실 삼제자 중 유일하게 죽지 않았고 단지 봉인만 됐기 때문에 풀려난다는 설이 많았다. 하지만 자력으로 금관두를 박살낸데다 구르메 식운까지 훔쳐올 거라고 예한 사람은 없는 듯
  • 톰 최 . . . . 4회 일치
         {{화인 정보
         |수 =
         |웹사이트 =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미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디모인 출신]]
  • 트위스티 퍼즐 . . . . 4회 일치
         한 면당 9개의 조각이 있는 3x3x3의 루빅스 큐브가 가장 인지도가 높으며 2x2x2, 4x4x4, 5x5x5 등도 있다. 심지어 10개 이에 아예 정육면체가 아닌 모양새의 큐브 퍼즐도 있다.
         이러한 큐브를 완성시키고, 그 시간을 측정하는 스포츠도 있다. 이러한 것을 포함해 유튜브에서도 퍼즐 완성 을 볼 수 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난이도가 높은 퍼즐. 그러다보니 가매체에서는 캐릭터의 두뇌의 우수성을 묘사하는 수단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다만, [[팽킹 라이킹]]에서 루빅스 큐브 모양의 '''우주선'''이 등장했다.
  • 특이한 세금 . . . . 4회 일치
         === 국 ===
          * 군역대납세 : scutage. 국 왕 [[헨리 1세]]가 만든 세금, [[기사]]들이 종군 하는 대신에 세금으로 종군 의무를 대납할 수 있도록 했다. 당초에는 별로 높은 세금이 아니었지만, [[존 왕]]이 이 세금을 임의로 마구잡이로 올려댔는데, 무려 300%(…)나 올려버려서 귀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에서 왕이 임의로 세금을 매기는 것을 금지한 조항이 들어간 이유가 바로 이 세금 때문.
          * 카드세 : 카드, 주사위 등에 물려진 세금. 국에서 16세기에 도입되었고, 1710년에 엄청나게 과세율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세금을 피하려고 카드를 [[위조]]하는 사례가 빈발하였다. 카드세는 1960년 까지 지속되었다.
          * 스포츠 스타세 : 40개 이의 주. 소득세의 일종으로서, 도시나 주를 방문한 사람이 해당 지역에서 수익활동을 했을 경우 그 소득세의 관할권을 주장하는 법률이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행정능력의 한계 때문에 한 경기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스포츠 스타들만 피해를 본다. 1991년 [[시카고 불스]]가 [[LA 레이커스]]를 NBA 파이널에서 꺽고나서, 캘리포니아 주에서 졸렬하게 보복성으로 제정했다(…). 그리고 이 졸렬함을 여러 주들이 앞다퉈서 따라하게 됐다.
  • 페어리 테일/488화 . . . . 4회 일치
         || 네 덕분에 할 수 없던 것들을 하기 시작했어.
  • 페어리 테일/492화 . . . . 4회 일치
          * 전장에 있던 하이네와 줄리엣(아이린의 두 부하)는 미라젠에게 싸움을 걸고 미라젠은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대한다.
          * 마력탄으로 반격하는데 위력과 범위가 과거에 비해 승.
          * 그러자 미라젠이 "비장의 수는 위기 황에 활용하는 것"이라면서 새로운 변신을 한다.
          * 세에 그런 마도사가 있다는 것에 놀라는데
  • 페어리 테일/495화 . . . . 4회 일치
          * 그런데 제국군 사이에서 거대한 팔두룡의 형이 치솟는다.
          * 갓세레나가 아크놀로기아 인간체 모드에서 떡발렸는데, 길다트는 과거 아크놀로기아 대로 패하긴 했어도 살아남았다. 전적 으론 길다트가 유리?
  • 페어리 테일/498화 . . . . 4회 일치
          * 잉벨은 그레이와 쥬비아를 지배해 서로 싸우게 하고 쥬비아는 자아가 유지되는 동안 자결해서 그런 황을 피하려 한다.
          * 그는 그레이의 멸악마법을 두고 "마음을 빼앗는 힘"이라 평하며 정적인 사고를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 의지와는 관없이 서로를 노려보게 되는데.
          * 쥬비아는 죽어도 그레이를 처 입힐 수는 없다며 의식이 남아있을 때 자결하려 한다.
  • 페어리 테일/524화 . . . . 4회 일치
          * 하지만 거기에도 처를 입지 않은 오거스트는 길다트에게 딸이 죽으면 어떤 감정이 들겠냐고 도발한다.
          그러나 카나의 혼신을 다한 페어리 글리터 조차 오거스트 는 폭연을 헤치고 멀쩡한 모습을 보인다. 카나는 당히 기력을 소진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하고조 아무런 처도 줄 수 없다는데 경악한다.
          * 오거스트는 다소 엉뚱한 소리를 꺼낸다. 카나에게 "아버지를 사랑하냐"고 물은 것. 카나는 쑥스러워하며 "딱히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길다트는 교전 중이면서도 그런데 일일히 충격을 받는다. 이번엔 길다트에게 "딸을 사랑하냐"고 묻는데 물론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오거스트는 이 말을 꺼낸 이유가, 자신은 이 세의 온갖 마법을 습득했지만 딱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한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부모 자식 간의 애정".
  • 표양문 . . . . 4회 일치
         * 원산기독교병원 임검사 과장
         |전임자 = (인천시 갑)[[이용설]]<br/>(인천시 을)[[곽훈]]<br/>(인천시 병)[[조봉암]]
         |후임자 = (인천시 갑)[[김재곤 (1912년)|김재곤]]<br/>(인천시 을)[[곽훈]]<br/>(인천시 병)[[김훈 (1909년)|김훈]]
         |같은 지역구 의원 = (인천시 갑: [[김재곤 (1912년)|김재곤]], 인천시 을: [[곽훈]])
  • 프로페서 아이보 . . . . 4회 일치
         [[매드 사이언티스트]]. [[저스티스 리그]]와 싸운 괴로봇인 [[아마조]]를 만든 [[과학자]]다. 죽음을 무서우리만치 두려워하며 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아 불명을 원한다.
         원래는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이었으나 불멸을 위한 혈청을 마셨다가 파충류 인간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이외에도 화 환자처럼 얼굴이 망가진 모습도 있다.
         비슷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T.O. 모로우]]와는 친구. 다투기도 하나 이런 판임에도 일종의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에 등장하긴 하는데.. 이미 죽은 모습만이 등장한다. 용건이 있어서 렉스 루터가 찾아왔을 때는 그의 시체와 그가 만든 아마조만이 있었다. 저스티스에서는 살아서 등장. 멀쩡하게 생겼으며 코믹스에서처럼 모로우와 구면이다.
  • 하나야마 카오루 . . . . 4회 일치
         [[야쿠자]]로서 엄청난 거구에, 등에는 문신, 전신에 흉터가 가득한 매우 험악한 인이 특징인 '''[[소년]]'''. 특별한 [[무술]]은 익히지 않고, 천성적인 완력과 생명력으로만 싸운다. 특기는 완력으로 대방의 사지를 졸라 터트리는 악격.
         특징적인 인과 전투에서의 눈에 뛰는 활약[* 하나야마의 배틀은 대부분 바키에서 명전투로 꼽힌다.] 덕분에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캐릭터. 독립된 외전 스카페이스가 있다.
  • 하이큐/212화 . . . . 4회 일치
          * 하지만 그걸 바로 자신의 플레이에 적용할 수는 없었다. 우시지마의 리시브는 훌륭한 것이지만 히나타의 신체조건 따라할 수가 없는 것.
          * 13번은 뭔가 독특한 모션을 취하는데 이하게 눈에 익다.
          * 히나타는 중학시절 테니스부 친구의 부활동을 도우면서 테니스의 기본 테크닉을 배운걸 기한다.
          * 대방의 볼 임팩트를 본 순간 발을 지면에서 떨어뜨려 움직임을 리셋. 착지 반동으로 한걸음을 내딛는다.
  • 하이큐/214화 . . . . 4회 일치
          * 그리고 우카이 코치가 "여기가 어디든 항 똑같은 자세가 나오도록" 훈련하라는 말도 떠올린다.
          * 또 지금은 이한 버릇 같은 것도 들어있지 않는다는 것도 강점
          * 다른 멤버들은 "이정도는 당연히 들어와야지라고 말하는 듯한 세트업"이란 인을 받아버린다.
          * 그리고 감독은 이 황을 "괜찮네"라고 한다.
  • 하이큐/219화 . . . . 4회 일치
          * 넷 에 돌아다니는 번역본은 이렇게 나와있지만, 어원문("people who can't hit my tosses are nothing but scrubs")을 보면, "내 세트업으로 치지 못하는 녀석들은 죄다 엉터리" 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 자신의 세트업이 실로 뛰어나기 때문에 "이것조차 치지 못하면 정말 못하는 거다", 즉 "너가 잘해서 친 것이 아니다"라는 소리를 돌려 말하는 것. 위에서 코치진이 말한 것과 일맥통한다.
          * 하지만 가장 반짝였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좋은 향을 줬다는 평을 받는다.
  • 하이큐/220화 . . . . 4회 일치
          * 괴짜콤비가 빠진 사이 카라스노에선 네트를 9분할해서 서브를 넣는 "서브강화주간" 훈련을 했다.
          * 이 훈련 덕에 선수들의 서브 실력이 전반적으로 향되었다.
          * 그러나 히나타의 향이야 말로 주변의 이목을 끄는 수준.
          * 단순히 파인 플래이였다기 보단 "평범하게 기량이 향된" 움직이었다.
  • 하이큐/229화 . . . . 4회 일치
          * 사와무라는 꿈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괜히 찜찜한 기분인데 아즈마네 아사히와 스가와라 코시도 비슷한 태다.
          * 설날. 봄고 대회는 1월 5일로 불과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사와무라 다이치. 그런데 어머니가 어딜 가냐고 물어 배구부에 간댔더니 이한 소릴한다.
          * 3학년들은 새해인사를 나누고 스가가 "다같이 첫참배 온 건 처음"이라면서 "진정한 첫참배"라고 말장난을 친다. 하지만 긴장 때문인지 농담을 받아주는 사람도 없고 특히 아즈마네는 숨쉬는게 고작일 정도로 얼어붙은 태다. 시미즈는 봄고 대회가 코앞으로 닥쳤으니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 아즈마네의 표정이 아주 심각한데 뽑기 결과가 무려 흉. 스가는 아예 대흉이면 "뽑기 어려운 거니 오히려 운이 좋다"고 해줄 수 있는게 그렇게도 못하게 미묘하다고 웃어댄다. 시미즈도 "아침운세 11위 같은 것"이라고 일침을 날린다.[* 일본의 아침운세는 1위부터 12위까지 있다.] 한편 스가와 사와무라는 미길이 나왔는데 아즈마네는 그게 더 미묘하다고 길길이 날뛴다. 웃고 떠드는 사이 긴장도 조금 덜어진것 같다.
  • 하이큐/240화 . . . . 4회 일치
          * 카라스노 진에선 동점으로 따라잡히자 TO를 걸어서 견제한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천장서브에 대한 대처법을 신속하게 전달하지만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적응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중계석에선 우카이 코치를 소개하며 그의 할아버지이며 명장이었던 [[우카이 잇케츠]] 감독에 대해 언급한다. 얼굴만큼은 할아버지와 확실히 닮았다는 듯.
          * 히메카와의 2회차 서브. TO로 한 번 흐름이 끊겼지만 히메카와의 감각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본래 천장서브란 천재적인 센터였던 "네코타 카츠토시"란 선수가 창안한 것이다. 리시브 시에 조명의 향을 크게 받으며 낙하 속도가 빨라 정확한 위치를 잡기 까다로운 서브다.
          카라스노에서 [[사와무라 다이치]]와 [[아즈마네 아사히]]가 동시에 공을 보고 마이볼을 외치지만 마주보게 되면서 주저, 공은 둘 사이로 떨어진다. 히메카와의 연속 득점. 점수는 15 대 16으로 츠바키하라가 역전한다.
          * 천장 서브를 앞세워 흐름을 완전히 가져온 츠바키하라. 카라스노는 곧바로 두 번째 TO를 부른다. 1세트 이후 침채됐던 츠바키하라의 응원단이 불붙은 것처럼 살아나고 카라스노 진의 사기는 꺾인다.
  • 하이큐/243화 . . . . 4회 일치
          * [[네코마 고교]]는 코치현의 키요카와 고교를 대로 승리를 거두고 2회전에 진출한다.
          * 카라스노는 도시락을 먹으며 [[네코마 고교]]의 경기를 관전한다. 네코마의 대는 코치현의 키요카와 고교. 3학년 WS 야마자키 료지가 에이스를 맡고 있다. 신장 183cm의 스파이커. 당히 활약하며 네코마의 블록을 공략하고 있다. 아즈마네와 스기와라가 굉장하다고 평할 정도의 기량이지만, 사실 봄고 대회까지 오면 굉장하지 않은 팀도, 굉장하지 않은 선수도 없다.
          * 네코마는 만만히 물러서는 팀이 아니다. 야마자키의 스파이크를 집요하게 방어하며 랠리로 이어간다. 네코마 측에선 결정적인 공격이 나오지 않지만 팀 전원이 끈질기게 수비에 나서고 키요카와 측은 야마자키에게 공격 패턴이 몰리는 황이 되자 야마자키의 체력도 한계를 보인다. 결국 야마자키의 스파이크는 라인 밖으로 나가며 실점한다. 아즈마네는 그 철저한 수비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괴로워한다.
  • 한말숙 . . . . 4회 일치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청주 한씨]][[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한국일보문학자]][[분류:현대문학자]]
  • 한병주 . . . . 4회 일치
          | 직책 = 前 [[대한민국 임시정부|하이 주재 대한 임정 경성지부]] 교통국 국장 대리
          | 거주지 = 조선 [[충청북도|충청도]] [[청원군|청원]] <br/> 조선 [[청주시|충청도 청주]] <br/> [[대한제국]] [[한성부]] <br/> 대한제국 [[시흥시|경기도 시흥]] <br/> [[일제 강점기]] [[경성부]] <br/> 일제 강점기 [[평안북도]] [[신의주시|신의주]] <br/>[[중화민국]] [[장쑤 성]] [[하이 시|하이]] <br/>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br/> 대한민국 [[경기도]] [[시흥시|시흥]] <br/>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수원]]
          | 웹사이트 =
  • 한선교 . . . . 4회 일치
          | 소속임위 = [[대한민국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 웹사이트 =
         * 2007년 :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국가경학과 정치학 석사 (학위논문명 - 여성 국가최고지도자의 등장조건 : 국과 한국의 비교연구)
  • 한승엽 (1985년) . . . . 4회 일치
         | 웹사이트 =
         2009년 9월 29일 군입대 예정이던 한승엽은 102 보충단에서 3일간 전반적인 신체검사과정에서 발가락부분에 뼈이이 발견되어 1차적 귀가조치를 받았다. 그 이후 10월 20일 정밀 검사를 받은 한승엽은 1년의 치료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병무청의 검사결과 및 신체검사 판결로 1년 뒤 재검사를 받게 된다. 이로써 한승엽은 2009년 10월 27일 공식적으로 방송에 복귀하게 되었다.<ref>[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100349&db=issue MBC게임 한승엽 해설 입대 연기로 방송 복귀]《포모스》, 2009년 10월 28일</ref>
         == 수 경력 ==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는 축구 선수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비군에 등록 된 적도 있다. [[정조국]], [[황진성 (축구 선수)|황진성]]과는 서울 갈현초등학교 축구부 동기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29&aid=0000083367 럭비ㆍ권투보다 e게임이 좋아]《디지털타임스》, 2004년 10월 15일</ref>
  • 한현준 . . . . 4회 일치
         |소속 = [[대구텍]] (사장), [[대한공회의소|대구공회의소]] (부회장)
         |웹사이트 =
         *[[2004년]] 대구텍 무이사
  • 핫라인 마이애미/등장인물 . . . . 4회 일치
         이후 자켓과 가까운 사이가 되지만 리히터에 의해 사망한다.
         마이애미에서 활동하는 러시아계 범죄 조직. 가면쓴 사람들의 공격 대이다.
         챕터3의 보스. [[화 제작자]]로 자택에 쳐들어온 자켓에게 살해당한다.
         === 감 ===
  • 헤이안 시대 . . . . 4회 일치
         아스카 시대와 나라 시대, 다이호 율령(大宝律令)가 제정되어 있던 시기에 나라의 토지는 모두 덴노의 것이라는 왕토사 아래, 농민에게는 토지를 빌려주고 있다고 보았다. 이를 구분전(口分田)이라고 하였으며, 개별 농민에게 과사게 이루어졌다. 새롭게 개간한 토지는 사유지로 삼을 수 있었으나, 1대에 한하여 반납하여야 했다. 이를 반전수수법(班田収授法)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개간한 토지를 1대만 소유할 수 있는 것에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이에 반발을 고려하여 3대 까지 소유할 수 있는 삼세일신의 법(三世一身の法)이 만들어진다. 이 역시 불만이 많았으며, 농민들은 개간지를 피해서 유력자에게 도망쳐 숨게 된다. 결국 개간지를 구 보유할 수 있다는 간전년사재법(墾田永年私財法)이 만들어진다.
         도주 농민들은 유력자 아래 모이게 되며, 많은 농토를 보유한 호농(豪農)이 나타나게 된다. 호농이 보유하는 지를 장원(荘園)이라고 부른다.
  • 헥사밀리온 . . . . 4회 일치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어 요새 역할을 했으며, 당대 최대급의 성벽이었으나 결국 오스만의 공세에 무너지고 모레아는 초토화 되어버린다. 헥사밀리온의 돌파로 비잔티움 제국에서 그나마 가장 부유하고 번하던 토 모레아[*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사실 오스만 토 한 가운데 놓인 위요지가 되어버려, 도시 기능의 쇠퇴가 현저했던 것으로 보인다.]가 박살나면서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은 초읽기로 다가온다.
  • 호준석 . . . . 4회 일치
         |웹사이트 =
         * 서울 [[한고등학교 (서울) |한고등학교]]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홍순만 . . . . 4회 일치
          | 경력 = 한국철도공사 사장 <br/> 카이스트 초빙교수 <br/> 새누리당 임행정위원 <br/> 자유한국당 전임행정위원
         * 새누리당 임행정위원
         |후임자 = [[유재]](사장 직무대행)<br/>[[오식]]
  • 홍지운 . . . . 4회 일치
         |문 표기 = Hong Ji-Woon
         |사진 사이즈 =
         [[경남대학교]] 진학 후 어깨 부으로 1년 동안 재활했고,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해 4학년 때에는 팀의 4번 타자로 활약했다.<ref>[http://www.ncdinos.com/board/story/view?articleId=7641 핫코너를 책임질 핫한 신인, 홍지운] - NC 다이노스</ref> 대학 4년간 68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8, 출루율 0.398, 장타율 0.410, 205타수 59안타, 2홈런, 29타점, 32볼넷, 53삼진을 기록하였다.
         ! style="color:white;background-color:#408080;" |'''인율(%)'''
  • 화이트워싱 . . . . 4회 일치
         원작을 화 하는 화나 미디어에서. 원작에서 '유색인종'이나 그로 볼 수 있는 캐릭터에 [[백인]]을 캐스팅 하는 것을 뜻한다.
          * 유색인종 배우의 역할을 조연으로 한정시켜, 유색인종에 대하여 사실 직업차별이 된다.
  • 화장실의 하나코 씨 . . . . 4회 일치
          * 오사카 부 : 하나코 씨라고 부르면서 화장실을 노크하면, 표준어로 「위험하잖아, 그만두세요(危ないわね、やめなさいよ)」라고 말한다.--간사이 방언으로 하면 이한가보다.--
          * 사이타마 현 : 화장실 4번째 칸에서 15번 노크하고 "하나코 씨 놀자"고 말하면 "네"하고 대답한다.
         일설로는, 토오노 소학교(遠野小学校)에서 있었던 사건이 발이라고 한다. [[http://dostoev.exblog.jp/15064163/ (참조)]]
  • 황경태 . . . . 4회 일치
         |문 표기 = Hwang Kyung-Tae
         |사진 사이즈 =
         * [[원고등학교]]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원고등학교 동문]]
  • 황보예 . . . . 4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http://www.jnsent.com/jsent/20348.html 소속사 사이트]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황석두 . . . . 4회 일치
         |징 =
         황석두는 [[1813년]]에 [[충청도]] [[연풍면|연풍]]에서 부유한 [[양반]]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문의 광을 위해서 그가 [[과거 제도|과거 시험]]에 합격토록 그를 공부시켰다.
         황석두의 아버지가 세을 떠나자, 그의 친척들이 그의 재산을 모두 속받았다. [[페롱]] [[사제|신부]]는 황석두를 [[한문학]] [[교사]]이자 [[교리]] [[교사]] 및 회장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그는 [[사제]]들의 [[복사 (기독교)|복사직]]도 수행했다. 황석두는 그 의무들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그는 마침내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주교]]의 복사가 되었다. 그는 [[주교]]들과 함께 여러 권의 [[서적]]을 [[번역]] 및 저술하였다.
  • 황성관 . . . . 4회 일치
         |문 표기 =
         |사진 사이즈 =
         * [[남대학교]]
         [[분류:남대학교 동문]]
  • 황재규 . . . . 4회 일치
         |문 표기 = Hwang Jae-Kyu
         |사진 사이즈 =
         ==수내역==
         *[[2008년]] 야구인의 밤 대학 우수선수
  • 후예 . . . . 4회 일치
         자신의 아들, 딸, 그 손자. 그리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모든 자녀들. 비슷한 말로, 자손(子孫), 후예(後裔) 등이 있다. 반대말을 [[조]], [[선조]].
         * 별 볼일 없는 인물도 조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사실 유명한 사람의 후손인 경우가 흔히 있다.
         * 창작물에서는 등장인물을 특정 역사 인물의 후손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 대개 창작물의 후손은 선조와 닮았다고 묘사된다. 자신이 조과 닮았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 히노쿠니 . . . . 4회 일치
         한자를 불 화(火)에서 살찔 비(肥)로 바꾼 것은 불을 두려워하고, 풍요를 비는 사이 투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 제빌 이 이, 피해가 확대되지 않기를 그리고 불의 나라의 신님, 제빌 제발 이제 그만해주세요. 부탁합니다.
          * 2016년 4월 16일에 여배우 [[후지와라 노리카]]가 자신의 [[블로그]]에 쿠마모토의 지진 뉴스에 마음이 아파하면서 이과 같은 문장을 써서, 쿠마모토 현의 주민들이 [[신]]에게 벌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거냐는 비판이 나와 논란이 되었다.[[http://www.asagei.com/excerpt/56724 (참조)]]
  • 3월의 라이온/124화 . . . . 3회 일치
          * 옆에서 대국 중인 미스미도 그 반을 주시하며 "나메리카와가 푹 빠질만 하다"고 평하는데, 그렇다고 나메리카와가 봐줬으면 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런데 바로 그때 나메리카와가 그의 반도 흥미를 보인다.
          * 미스미는 부담스러워하며 옆 반에만 신경쓰면 자기가 대국하는 타나카씨에게 실례라고 생각하는데
  • 3월의 라이온/125화 . . . . 3회 일치
          * 스미스는 이 대국이 "이하게 인에 남는 승부 100선"에 들어가고 남는다고 평한다.
          * 일정이 끝난 스미스, 타나카, 요코미조는 맥주나 마시면서 감전을 열 생각으로 들떠 있다.
  • 4,000-lbs HC . . . . 3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국 공군이 사용한 항공폭탄. 이름의 뜻은 4,000 파운드 고용량(High Capacity). "블록버스터", "쿠키"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국군은 이 폭탄을 집속 소이탄과 함께 사용했다. 소이탄이 건물에 들어가기 쉽게 길을 터주는 용도였다고.
         게임 [[워썬더]]에서 일부 국 폭격기가 사용할 수 있는 폭탄으로 나온다. 탑재했을 때 폭탄창 밑부분을 아예 들어내고 쿠키를 탑재한다.
  • AC-130 . . . . 3회 일치
         || 승한도 || 7,576 m ||
         AC-130 "Spooky" Gunship. 미국 공군이 운용하는 근접지지원용 항공기이다.
         미국 화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는 [[북한]] [[테러리스트]]들이 조종하는 AC-130이 [[F-22 랩터]] 두대를 박살내고 [[워싱턴 D.C.]]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 AT4 . . . . 3회 일치
          유효사거리 20-400m, 좁은 공간에서 사용 가능. 벽돌벽, 콘크리트 벽, 경장갑차량을 대으로 사용하란다.
         [[https://news.google.com/newspapers?nid=1955&dat=19961008&id=umUlAAAAIBAJ&sjid=8qYFAAAAIBAJ&pg=2805,4669161&hl=ko|1994년 당시 스칸디나비아 폭주족간 항쟁에 사용된 전적이 있다.]] 요약하자면 스웨덴 군사시설에서 훔친 AT-4를 대 폭주족 클럽하우스에 쏴버린 것.
         [[http://saab.com/globalassets/commercial/land/weapon-systems/support-weapons/at4-heat/gcs_brochure.pdf|SAAB사의 지무기체계 광고책자]]
  • ATM . . . . 3회 일치
         [[은행]]이나 [[편의점]] 등지에 배치되어있는 기계. 예금, 출금, 송금, 그외 등등을 할 수 있는 유용한 기계다. 기본적으로 은행이 담당직원이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기계이며, 사실 직원을 대체하기에 서비스 제공자라는 측면에서 보면 서버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는 물건이다.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은행 측에선 비용이 당히 절감될 수 있기에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기이다. 이렇게 대중에 노출이 많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도때도없이 카드복제기나 도촬카메라 같은걸 설치한다. 조금이나마 힘 쓸 생각이 있는 놈들은 이걸 뜯어서 가져간다고한다. 이런 이유로 ATM도 보안에 대한 이슈와 관련하여 끊임없는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보안 업데이트를 꾸준히 실행한다. 자동화기기가 정적으로 업무를 보기 위해선 어쨌거나 현금이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창작물 등지에서는 좀 최신식 [[금고]]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간혹 억지로 뜯으면 잉크가 뿌려지거나 해서 사용할 수 없는 돈이 된다는 설정을 붙이기도 한다.
  • Daisy Bell(Bicycle Built For Two) . . . . 3회 일치
         19세기 국 [[작곡가]] 해리 데이커(Harry Dacre)가 만든 노래. 보통 "데이지 벨"이라는 짧은 이름으로 불린다.
         == 세 ==
         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HAL9000]]이 불렀다. [[https://youtu.be/E7WQ1tdxSqI?t=25s|들으러 가기(유튜브)]].
  • Europa Universalis 4 . . . . 3회 일치
         [[스웨덴]]의 게임 제작사인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에서 만든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인 Europa Universalis 시리즈의 4번째 게임. 보통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Crusader Kings 2]]와 비교되는 편이 많으며, 실제로도 [[인터페이스]]가 당히 유사하다~~당연하지 둘다 같은 제작사니깐.~~[* 엔진이 클라슈비츠로 같은게 가장크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크킹은 유저가 '''통치자'''에 입장에서서 자기 가문원을 늘리면서 확장해가는 방식이라면 유파는 유저가 말그대로 나라하나를 통째로 경해가는 느낌이라는 것정도...?~~그러니깐 크킹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면 유파는 전지적 작가시점이라는 것이다~~
         제작사가 와패니즈로 유명하다(...) 일본의 왠만한 다이묘들은 전부다 있으며, 몇몇 다이묘들은 서양에서 유명한 명군들보다 능력치가 높기도 하다. 거기다가 일본한테 붙어있는 사기 전통인 규율[* 쉽게 말해서 공격력+방어력. 규율이 높을수록 한번의 전투로 더 많은 대군사를 잡을수 있고 더 늦게 패주한다.] 10%는 진짜(...)~~조선하면서 이것때문에 고통을 몇번 받은건지...~~[* 프로이센이 이념을 다열어야 규율 7.5%다. 이쪽은 개신교개종을 반드시 하게되있기에 2.5%추가되서 10%긴 하지만.]
  • GHQ . . . . 3회 일치
         GHQ는 General Headquarters의 약자로서, '총사령부'라는 뜻인데 [[일본]]에서는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군]]--[[연합군]][* 소수의 연방군이 참가하였으나, 대부분은 미군이었으므로 사실 미군.]이 [[일본]]에 --[[막부]]--[[군정]]을 펼치기 위하여 설치한 사령부를 뜻한다. [[맥아더]]를사령관으로 하였으며, GHQ에서 지시하는 점령정책이 일본 정부에 의하여 시행되었다. 1945년에 설치되어, 1952년에 강화조약이 맺어지면서 폐지되었다.
         GHQ 통치 시기는 직접적인 군정이 아니라, GHQ의 지시를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시행하는 간접군정 방식이었다. GHQ의 향력은 경제, 문화, 정치 측면에서 광범위하게 미쳤는데, 정치적 측면에서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이 개정되었으며, 지방자치와 선거제도가 개혁되었다. 교육, 문화 정책으로 [[민주주의]]를 확산시켰으며, 경제 개혁으로 [[재벌]]이 해체되었고, [[농지개혁]]으로 농촌의 [[지주]] 계급이 해체되었다.
  • 거타지 . . . . 3회 일치
         '''거타지'''(居陀知)는 9세기 경 [[신라]]의 무신, 외교관, 궁사이다. [[진성 여왕]]의 왕자 [[양패]]의 수행원으로 [[당나라]]에 다녀왔다.
         [[진성 여왕]] 때 왕자인 [[양패]]가 [[당나라|당]]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진성 여왕은 백제의 해적을 염려하여 활 잘 쏘는 사람 50명을 함께 보냈는데, 거타지도 그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배가 한 섬에 이르렀을 때 풍랑을 만나 더 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자, 섬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 날 밤, 양패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사람 1명을 섬에 남겨두고 가면 풍랑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이에 거타지가 혼자 남아 있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자기 아들을 죽인 중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거타지가 중을 처치하자, 노인은 자기 딸과 결혼해 주기를 바랐다. 노인은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주었다. 거타지는 당으로 가서 양패 일행을 만나 무사히 귀국하였다. 그는 품고 온 꽃을 여자로 변하게 하여 함께 살았다고 한다.
         [[분류:신라의 무신]][[분류:저격수]][[분류:한국의 신화]][[분류:신라 사람]][[분류:외교관]][[분류:한국의 전설]][[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 . . . 3회 일치
         [[점프]] 주간 연재작. 원래 [[미라클 점프]]에서 연재하다 미라클 점프의 휴간으로 옮겨졌다. 작가는 삼각두(サンカクヘッド).
         [[건어물녀]]인 여동생 도마 우마루의 개그스러운 일을 소재로한 치유물이다.
         그 뒤치닥거리를 하는 오빠 도마 타이헤이와 우마루의 코믹한 일.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1화 . . . . 3회 일치
          * 그때. 봄바가 신작 빠칭코 기계에 붙어있는걸 발견한다. 의외로 실핀과 봄바는 아는 사이여서 셋이 합류해 게임을 즐긴다.
          * 실핀은 봄바를 "아프로"라고 부른다. 알렉스를 통해 아는 사이.
          * 봄바는 UMR 태의 우마루를 남자애인줄 안다--가지가지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6화 . . . . 3회 일치
         [[도마 우마루]]는 UMR태로 [[타치바나 실핀포드]]와 [["모토바 타케시"봄바]]를 만나 논다
         * UMR 태로 실핀과 봄바를 만난 우마루
         attachment:연.jpg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0화 . . . . 3회 일치
         우마루와 친구들은 실핀의 지인이 운하는 케이크 뷔페에 초대받는다.
          * 오픈 준비 중인 가게로 주인 아주머니는 실핀과 아는 사이라 초대 받았다.
          * 키리에는 우마루가 가져온 딸기 쇼트 케이크를 보고 우마루네 집에서 코마루와 케이크를 먹던 걸 회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6화 . . . . 3회 일치
          * 중간에서 게임센터도 못 찾고 오도가도 못하게 된 UMR와 실핀은 여러가지 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 그러던 사이 어느 새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떠오른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9화 . . . . 3회 일치
          * 원래 자기 욕심을 채우는 소원을 놓고 고민하다가, 항 자신을 위해주는 오빠를 보고 오빠의 행복을 기원하는 탄자쿠를 쓴다.
          * 훼이크 용도로 "오빠가 건강하게 지내길"같은 투적인 것도 만든다.
          * 우마루가 없어서 이하게 여긴 타이헤이는 우마루를 찾기 시작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5화 . . . . 3회 일치
          * 우마루는 문을 몰라하면서도 그녀 말대로 한다.
          * 실핀이 초 브라콘이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사실 모토베 남매 이으로 어색한 사이였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9화 . . . . 3회 일치
          * 다양한 매체와 콜라보도 진행 중인데 히카리는 투 고양이 콜라보 캐릭을 탐낸다.
          * 공식 사이트의 확률은 5%. 나오지 않을 정도의 확률은 아니지만 매우 낮다.
          *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을 가득 채운 "투 고양이 겟" 게시물들에 현혹되기 시작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5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그것도 우마루 나름의 즐기는 법이었고, 함께 게임하는 사이 두 사람은 매우 친밀한 게임친구가 되어 있다.
          * 막 다음 플레이 때 합류해 보니 히카리 쪽이 레벨이 더 높다. 게다가 우마루가 고전했던 적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어 약점 속성을 찌르며 수월하게 진행한다. 서포트해주려 했던 대에게 서포트를 받게 되자 굴욕감을 느낀 우마루. 다음 번에야 말로 역전해주겠다는 각오로 또다시 게임에 매진하지만 오히려 레벨차는 더 벌어져 버린다. 히카리는 기본적으로 시간도 많이 투자하지만 게임 센스도 있다. 특히 메뉴얼로 시스템을 숙지하고 그 내용을 실전 플레이에서 검토해서 최고로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플레이 방식이라 무작정 닥돌하는 우마루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 경기도 . . . . 3회 일치
         경기감
         [[통구]] || 靈通區 || 130,815 || 345,457 || 2.64 || 27.67
         [[록구]] || 常綠區 || 152,667 || 374,365 || 2.45 || 57.99
  • 경비원 . . . . 3회 일치
         [[건물]]이나 시설에서 경비를 보는 사람. 비황에 나서지만 기본적으로 다양한 잡일도 함께 한다. [[은행]] 같은데서는 거의 의무적으로 배치된다.
         경비원에게 제압당할 정도면 웅이나 수사관이 등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만, 도입부나 중간 전개에서 위기감을 강조하려고 애꿏은 경비원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매우 많다. 경비원이 등장하면 '''일단 죽는다'''고 보면 될 정도. 미국 수사물에서는 대개 경비원을 쓰러드리고 [[경찰]], [[SWAT]], [[FBI]] 순서로 테크가 올라간다.
  • 경제제재 . . . . 3회 일치
         [[나폴레옹 1세]]는 [[국]]에 대해서 대륙봉쇄령을 내려서 경제제재를 가했다. 이로서 대륙국가들과 국 간의 무역을 봉쇄했다. 하지만 대국 수출이 중요했던 [[러시아]]가 이를 어긴 탓에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망했다.'''
  • 고무장갑 . . . . 3회 일치
         [[문자]] 그대로 [[고무]]를 써서 만든 장갑. [[설거지]]와 [[김장]] 등 일 생활에 쓰는 빨강 고무장갑과 실험 및 의료에 사용되는 고무장갑이 있다.
         전자인 빨강 고무장갑은 그 용도 탓에 일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그래서 고무장갑하면 대부분 빨강 고무장갑을 떠올린다.
         어느쪽의 고무장갑이건 착용할 때, 벗을 때에 착용자를 힘겹게 만드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보니 빨강 고무장갑을 구입할 때에 딱 맞춰서 사지 않고 일부러 조금 큰 사이즈를 사기도 한다.
  • 곽결호 . . . . 3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미 군정 남조선 과도정부]]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 1974년 : [[남대학교]] 토목공학과 학사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장관]][[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현풍 곽씨]][[분류:대구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
  • 구광본 . . . . 3회 일치
         [[1986년]]《소설문학》신인에 단편소설 〈검은 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87년]]에 [[오늘의 작가]]을 수하며 시집 《[[강 (시집)|강]]》을 펴냈다.
  • 궁가 . . . . 3회 일치
         궁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왕실과의 친밀도에 의하여 [[토지]]와 [[노비]] 등 당한 재산을 하사받아 보유하였다. 또한 왕실과의 직접적인 연결 때문에 정치적, 법률적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 특권계급이었다. 하지만 중앙의 정치분쟁에 휘말려서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왕실과 연결이 가까운 시기에는 부귀화를 누렸으나, 세대수가 지나면서 왕실과 거리가 멀어지면 점차 낙향하고 자산이 분산되면서 지방의 평범한 서민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도 왕실과 연결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가문은 나름대로 사소한 특전은 누릴 수 있었으나, 생활은 서민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규동 . . . . 3회 일치
         1973년에 요시노야가 체인점으로 확장하면서 널리 퍼져나갔다. 요시노야 이외에 [[마츠야]](松屋), [[스키야]](すき家), [[나가우]](なか卯)[* 주로 칸사이 지방에서 업] 등 다양한 체인점이 존재한다.
         밥의 양이 너무 많아서 규동을 비빔밥처럼 비벼서 먹으면 뭔가 답이 없는 태가 되며(…) 밥과 고기를 조금씩 섞어가며 같이 먹는 것이 일반적인 요령이다.
  • 그랜드 펜윅 공국 . . . . 3회 일치
         Duchy of Grand Fenwick. 소설 [[약소국 그랜드 펜윅 시리즈]]에 등장하는 가의 국가.
         국인 기사에 의해 세워졌다. 이때문에 프랑스와 스위스 근처 위치함에도 어를 쓴다.
  • 근육경련 . . . . 3회 일치
         근육 내의 수분, 전해질 이으로 근육이 과잉 수축하여 발생한다.
          * 준비 운동을 하지 않고 [[수장]]에 뛰어 들었을 때
          * 수분 실 : 설사, 땀을 흘렸을 때 쥐가 난다.
  • 금일봉 . . . . 3회 일치
         [[돈]]을 집어넣은 [[봉투]]. 쉽게 말하면 '돈봉투'. 시식 등에서 점잖게 말할 때 금일봉이라고 한다.
         [[분류:일]][[분류:]]
  • 긴나라 . . . . 3회 일치
         [[자타카]]에서 나오는 인간과 긴나라 공주의 사랑 이야기. 하스티나푸라 왕국의 왕자 수다나(Sudhana)와 카일라사 산봉우리에 사는 긴나라의 공주 마노하라(Manoharā)의 이야기이다. 긴나라왕의 일곱 딸 가운데 가장 어리고 아름다운 마노하라가 언니들과 함께 숲 속 호수에 목욕을 하기 위해 지에 내려 왔을 때, 하스티나푸라의 이웃나라에서는 희생제사를 지내려고 사냥꾼을 시켜서 히말라야의 동물들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긴나라와 긴나리를 잡지 못하자, 마술을 쓸 수 있는 한 사냥꾼이 히말라야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던 마노하라를 포획한다.
          * 진 여신전생 : 인도신화의 비중이 비정적으로 큰 진 여신전생에서는 [[자코]]로 나오는 시리즈가 많이 있다. 여신전생의 특성 길들여서 [[중마]]로 삼을 수 있지만 별로 눈에 뛰게 강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버리자(…).
  • 김동재 . . . . 3회 일치
         |문 표기 = Kim Dong-Jae
         |사진 사이즈 =
         * [[연세대학교]] 경학과(1983년)
  • 김문오 . . . . 3회 일치
         * 1965 경중학교 졸업
         * 대구MBC 경사업국 국장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김병준 (희극인) . . . . 3회 일치
         | 활동 역 = [[개그맨]]
         | 웹사이트 =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2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남대학교 동문]]
  • 김선길(국회의원) . . . . 3회 일치
         이후 [[웨슬리안 대학교]], [[켄터키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하다가 1969년 귀국하여 과학기술처(현 [[미래창조과학부]]) 연구조정관으로 임명되어 공무원 경력을 시작하였다. 과학기술처, 공부(현 [[산업통자원부]]) 등에서 근무하면서 공부 [[차관]], 중소[[기업은행]]장, 대한증권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 김선재 (아나운서) . . . . 3회 일치
         | 훈 =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_sunjaekim|김선재}}
         * 《열린TV - 시청자 세
  • 김성윤 (1991년) . . . . 3회 일치
         |문 표기 = Kim Sung-Yoon
         |사진 사이즈 =
         * [[대구원고등학교]]
  • 김영한 (1900년) . . . . 3회 일치
         '''김한'''(金永漢, [[1900년]] ~ [[1980년]]<ref>《한국일보》 (1987.12.18) [http://www.kinds.or.kr/imgdata8/1987/12/18/19871218HKM07.pdf 알뜰살림 속에 숨은 內助... "보통 부인"]</ref>)은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노태우]]의 장인이다.
         [[경북도]] 지역에서 교직에 근무했다.
         [[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1900년 태어남]][[분류:1980년 죽음]][[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안동 김씨 (신)]][[분류:노태우 가]]
  • 김외숙 . . . . 3회 일치
         || '''출생지''' ||<(> [[경북도]] [[포항시]] ||
         1967년, [[경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포항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포항에서 나고 자랐던터라 [[포항제철]] 노동자들을 보며, 노동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이로써 법무법인 부산은 대통령 [[노무현|2]][[문재인|명]], 차관 1명, 국회의원 [[김해|1명]]이라는 엄청난 아웃풋이 생겼다.
  • 김용준 (1904년) . . . . 3회 일치
         [[경북도|경북]] [[구미시|선산]]에서 태어나 [[경성부]]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화가 [[이종우 (1899년)|이종우]]에게 수학한 뒤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건설이냐? 파괴냐?〉로 입선하면서 화단에 데뷔했다. [[1926년]]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미술학교]]에 입학해 서양화를 공부했다. 이때 같은 도쿄 유학생이던 동갑의 [[이태준]]을 만나 평생 동안 교유했다.
         |저자=조
         |장=김용준 - 자살과 초탈 사이에 선 예술가의 표정}}
  • 김재엽 . . . . 3회 일치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74년 대구 [[남산초등학교]] 4학년때 유도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대구중앙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전국규모대회를 20여차례 석권하였다. 특히 계성고 3학년이던 1982년에는 100연승의 대기록을 세워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1983년 [[계명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였으며, 1982년 6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유도사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88년 [[1988년 하계 올림픽|서울 올림픽]]에서는 전경기에서 대 선수에게 한 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여유있게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경기를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1987년 세계 선수권자 김재엽과 1984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호소가와 신지가 결승전에서 맞붙을 것'이라고 예을 하였으나 호소가와가 준결승에서 미국의 무명 선수 케빈 아사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금메달의 주인공이 손쉽게 판가름났다.
  • 김종호(1935) . . . . 3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정치인/목록, top2=가톨릭/인물)]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1년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대한민국 국회 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3년까지 정무제1장관을 역임하였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민주자유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다시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00년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는 '''탄핵 사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탄핵소추안에 반대하였고[* [[이낙연]]과 함께 탄핵안에 반대한 2명 중 1명이다. 이낙연은 노무현과 매우 가까운 사이라 당연히 탄핵에 반대할만했지만 김종호는 매우 의외인데 이는 단순히 자민련 의원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출신 자체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민정당 계열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을 하면 했지 도저히 반대할만한 성향이 아니었기 때문.] 같은 해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 김주환(탤런트) . . . . 3회 일치
         사이트 [[인스타그램]]
         [[내 딸 서이]]
         화5건
  • 김중로 . . . . 3회 일치
          * 위 문서: [[대한민국 국군/인물]], [[정치인/목록]]
         1950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군 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를 30기로 졸업해 1974년에 임관했다. 동기로는 [[이의]] 합참의장이 있다. [[육군3사관학교]] 교수부장과 [[제70동원사단]](사단장이 준장)의 사단장 등을 지낸 뒤에 준장으로 전역했다. 준장 때 50대의 나이로 [[마라톤]]을 완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국민의당의 지속적인 [[문재인/비판과 논란/아들 고용정보원 취업 논란|문재인 아들 문준용의 고용정보원 취업 논란]] 공세가 계속되던 와중에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당 지지자들에게 포털 사이트에서의 검색어 순위 조작을 지시했다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나용찬 . . . . 3회 일치
         괴산고등학교 졸업 후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하였다. 이후 숭실사이버대학교 경찰교정학과 겸임교수, [[중원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의 괴산군수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전임자 [[임각수]]의 [[군수]]직 실로 치러진 [[2017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18년 4월 군수직을 실하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1화 . . . . 3회 일치
          * 오버홀은 밀리오가 에리를 데리고 있는데도 가차없이 공격하는데 어차피 "망가져도 바로 수복하면 관없고 이미 체험시켜줬었다"며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 밀리오가 예보다 강하자 오버홀은 우선 에리를 파괴해서 제압하려 하는데 그걸 예측한 밀리오는 바로 그를 공격, 그의 패배라고 선언한다.
          * 한편 [[네모토 신]]은 빈사 태에서도 오버홀을 돕겠다는 일념 하나로 기어오는데, 오버홀이 그를 눈치채고 개성 약화의 탄환을 그에게 넘기며 쏘라고 명령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9화 . . . . 3회 일치
          * [[테츠테츠 테츠테츠|테츠테츠]]와 [[켄도 이츠카|켄도]]는 가스능력자를 대로 고전한다.
          * 빌런은 총기류를 사용하고 가스로 숨을 못 쉬게 하기 때문에 테츠테츠에게 불리한
          * 바쿠고, [[토도로키 쇼토|토도로키]]조는 성이 나빠 빌런에게 고전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에피소드 . . . . 3회 일치
         == 웅고 입학편 ==
         == 웅제편 ==
         === 시에핫사이카이 급습 ===
  • 나이츠 오브 더 라운드 . . . . 3회 일치
         게임에서 점차 경험치를 쌓으면 캐릭터들의 무기와 갑옷이 보다 멋지게 향된다. 다만 성능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템 중에서 커다란 아이템은 공격하면 쪼개진다. 이럴 경우 그냥 하나 습득하는 것보다 쪼개서 습득하는 것이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아이템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금화자는 3개이거나 확률에 따라 4개에서 6개까지 쪼개지기도 하고, 큰 과일 바구니는 과일 하나만 남기도 한다.]
         게임 자체는 준수한 게임인데 어째 고증이 이하게 되어 있다. 어쩌면 고증이 아니라 그냥 판타지적인 감각을 썼을 수도 있지만..
  • 나폴레옹 빠 . . . . 3회 일치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사과 제국 부활을 주장했던 정치사은 [[보나파르티즘]]이라고 부른다. 나폴레옹 사후로도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다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프랑스 제2제정]]을 만들고 [[나폴레옹 3세]]로 즉위하면서 실현했지만 [[보불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면서 현실의 정치사에서는 폐기처분 당했다.
  • 남봉진 . . . . 3회 일치
         '''남봉진'''(南鳳振, [[1921년]] ~ 2008년<ref>{{뉴스 인용|제목=[부음] 남봉진씨(전 경기도지사) 별세|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8&no=173109|날짜=2008-03-27|뉴스=매일경제}}</ref>)은 [[대한민국]]의 제12대 [[경기도지사]]이다. 본관은 [[양 남씨|양]].
         [[분류:1921년 태어남]][[분류:2008년 죽음]][[분류:양 남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
  • 남치근 . . . . 3회 일치
         포도대장으로서 남치근은 한 차례 임꺽정에게 크게 얻어맞았는데, 명종 15년 좌포도대장으로 있던 남치근은, 서울에 기습공격해온 임꺽정 패거리의 공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서울 내에서 시가전을 벌였으며, 포도부장이 활을 맞고 사망하는 참패를 겪었다. 임꺽정은 유유히 달아났으며, 남치근은 임꺽정의 처 3명을 체포하였으며 임꺽정 일당을 계속 추적하려 했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는다. 이에 명종은 남치근을 파면하지는 않고 체직(벼슬을 깍는 것)하는 처분을 내렸다.(우포도대장 이몽린은 이 때 와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태였다.)[* 참조 : 조선의 포도대장]
         토포사가 된 남치근은 임꺽정의 책사로 활약하던 서림을 회유하여, 임꺽정의 본거지 등의 정보를 입수하고 황해도를 집중공격하러 나선다. 임꺽정 일당이 장악하고 있는 황해도에서 남치근은 잔혹한 명령을 내렸는데, 많은 아전과 양민이 임꺽정과 협력하고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도적을 숨기는 자, 도적에게 관군의 황을 알리는 자, 도적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자, 심지어 '''도적을 보고도 관군에게 알리지 않은 자''' 까지 도적과 한패로 보고 처단하겠다는 엄명을 내린 것이다.
         을묘왜변, 임꺽정 토벌에서 대단한 공적을 세운 장군이다. 하지만 서민의 대변자로서 [[의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임꺽정을 토벌했다는 점, 그리고 황해도에서 당히 잔혹한 토벌작전을 펼쳤다는 점 때문에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다. 사실 관서(황해도)에서의 토벌 당시 외에도 "제주 목사 시절에 왜선 5∼6척이 당물(唐物)을 가득 싣고 풍랑을 만나 표류해 와 정박해 있을 때, 왜인들을 전부 죽이고 금은 보화와 비단들을 공공연히 자신이 차지하고서 조금도 부끄러워함이 없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실려 있다.
  • 내추럴 하이 . . . . 3회 일치
         일본식 어. [[내추럴]]과 [[하이]]를 결합한 말. 여기서 하이는 아마 마약의 고양 태를 뜻하는 듯.
         [[마약]]이나 [[각성제]]를 쓰지 않고, 합법적이며 자연적으로 [[환각태]]를 체험하는 것을 뜻한다.
  • 노 오디너리 패밀리 . . . . 3회 일치
         배우는 2000년대판 [[판타스틱 포]] 화에서 씽을 맡은 마이클 이클리스, [[덱스터]]에 출연한 줄리 벤스 등.
         가족 히어로라는 점에서 [[판타스틱 포]]를 연케하는데 의도한 것인지 주연인 짐 파웰을 맡은 마이클 치클리스는 판타스틱 포 실사화에 출연했다. 이러한 점을 의식한 것인지 국내에서 방송할 때도 제목이 '판타스틱 패밀리'. 방송사인 ABC도 [[마블 코믹스]]와 연관이 있다. 이외에도 가족 히어로라는 공통점 탓에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이 떠오르게 한다.
  • 노포 . . . . 3회 일치
         로우호(ろうほ) 혹은 시니세(しにせ)라고 읽는다. 오랫동안 대대로 운되며 번한 가게를 뜻한다.
         조 대대로 같은 [[가업]]에 종사하면서 열어온 가게를 뜻한다. 단순히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만큼 격식이 있고 신용이 있는 가게를 의미한다.
  • 뇌가 끓고 있다 . . . . 3회 일치
         뇌에 과도한 열을 받으면 신경 세포에 타격이 가서 정신적으로 이해지는데, 정적인 사고방식을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이러한 태를 비유하여 나타낸 말이다. "제정신이 아니다."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 니세코이/214화 . . . . 3회 일치
          * 오노데라와 이치죠는 친구들의 눈을 피해 옥으로 땡땡이를 친다.
          * 치토게는 새로운 일과 이전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차마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이치죠와 오노데라가 서로 좋아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해나갈 용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 니세코이/223화 . . . . 3회 일치
          * 클로드는 츠구미의 마음을 알고 있다며 아가씨에게 임무 이의 마음을 품고 있는데 그런 남자에게 빼앗겨도 괜찮은 거냐고 말하기 시작한다.
          * 열받은 츠구미는 의를 찢어발기며 여자임을 밝힌다.
          * 그러자 마이코가 호들갑을 떨며 누가 대냐고 묻기 시작하는데
  • 다음 . . . . 3회 일치
          * (서열으로) 바로 아래에 놓이게 되는 것
         == 포털 사이트 DAUM ==
         [[분류:동음이의어]] [[분류:웹사이트]]
  • 다키스트 아워 . . . . 3회 일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가 6주만에 GG치고 연합국 뛰쳐나간 막장 시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기 [[민주주의]]의 유일한 보루가 되어버린 [[국]]은 소련과 미국이 전쟁에 뛰어들 때까지 존버를 시전해 [[나치 독일]]의 몰락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공로를 자신들의 유구한 혐성질 역사 위에 덧칠...읍읍.
         == 화 ==
         [[다키스트 아워(화)]] 문서 참조.
  • 닥터 시바나 . . . . 3회 일치
         캐릭터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표본격. 안경, 대머리, 작은 키, 실험복 등 만화에서 나올법한 미치광이 과학자의 디자인이며 이러한 캐릭터 답게 슈퍼파워 없이 [[과학]]기술을 악용해 샤잠과 싸운다.
         [[아이박]] 등 샤잠의 다른 빌런들과 동맹을 맺기도 했으며, 이중에는 [[블랙 아담]]과 [[미스터 마인드]]도 있다. [[몬스터 소사이어티 오브 이블]]에 가입하기도 했다.
         New52에서도 등장하며 이전의 시바나와 달리 악인이 아니며 외모도 대머리에 안경 외에는 인이 달라졌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마법]]을 찾아해매며 이때 블랙 아담의 무덤을 조사하다 번개에 맞아 마법을 보는 눈을 얻었다. 이 눈을 이용해 블랙 아담을 부활시키고, 그를 미국으로 안내한다. 이후 흩어져있던 7대 죄악을 모아 블랙 아담의 앞에 대령한다.
  • 단기선교 . . . . 3회 일치
         그래서 교회 등에서 모집하는 단기선교라는 활동은 명목으로만 '선교'를 내걸고 있는 [[체험]] [[관광]] [[여행]]에 가까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단기선교를 비판적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유명한 것으로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단기선교에 나섰던 분당샘물교회 신도와 인솔자들이 [[탈레반]]에 납치당한 사건이 있다. 해당 일행은 대한민국 정부와 탈레반의 협으로 풀려났지만 협이 이루어지기 전 두명이 탈레반에 의해 처형되었다.
  • 단축 도메인 . . . . 3회 일치
         http://goo.gl/ - [[구글]] 운, 한국에서는 이쪽에서 발행된 스팸이 워낙 많아 정부와 은행에서는 이 주소로 시작하는 주소를 절대 클릭하지 말라고 한다.
         http://me2.do/ - [[네이버]] 운, 원래 [[미투데이]]를 위해 제작되었으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본섭(미투데이)가 폐쇄되면서 단축도메인만 달랑 남았다.
         http://durl.me/ 혹은 http://durl.kr/ - [[다음카카오]] 운 ~~지금(2015년)도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 대부(소설) . . . . 3회 일치
         [[미국]]의 소설가 [[마리오 푸조]]가 쓴 범죄 소설. 화 [[대부 시리즈]]의 원작이기도 하다.
          * 원작 소설보다는 화의 스토리가 더욱 더 방대하다. 소설은 화 1편과 2편 일부의 내용만을 담고있다.
  • 대전광역시/인물 . . . . 3회 일치
         * [[신주(프로게이머)]] - 서구(대전)
         * [[조재]] - 유성구
         * [[조현]] - 중구(대전)
  • 대한민국 망명정부 야마구치 현 설치계획 . . . . 3회 일치
         == 세 ==
          * 아주 감정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일본으로 망명한다는 계획이 나올 정도로, 이승만 정부가 극도의 패닉 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더 선 . . . . 3회 일치
         [[https://www.thesun.co.uk|홈페이지 링크(문)]]
         The Sun. 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3면에 여성의 [[토플리스]] 사진을 싣는 전통(?)이 있다. 성차별적,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받는데 2015년에 이 전통을 폐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4일 만에 원복귀.
  • 도게자 . . . . 3회 일치
         현대에는 일반적인 예법이 아니게 되어, 일반적인 황에서 도게자를 할 일은 없다. 하지만 기업 측에서 대규모 사고를 일으켰을 때 등, 심각한 황이라면 도게자를 하기도 한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나온 '달군 철판 위의 사죄'가 도게자로 유명하다. 일명 철판 도게자. 작중에서 효우도 회장이 카이지와의 승부에서 패배한 [[토네가와 유키오]]에게 '사죄'로서 강요한 것이다. "진정 사죄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살을 녹이고 뼈를 태우는 달군 철판 위에서도 사죄를 할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이론에서 나온 벌칙으로, 자신에게 도게자를 하면서 돈 갚는 것을 미뤄주거나 떼어먹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대처하는 회장의 취미로서 언급된다. 벌칙은 이 철판 위에서 30초 이 도게자를 하고 손바닥과 이마가 타는데도 버텨야 하며, 대체로 저항하며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게자 강요기' 같은 굴욕적인 기계까지 있다.
  • 드럭스토어 . . . . 3회 일치
         드럭스토어는 약품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슈퍼마켓]]처럼 각종 소매용품을 함께 판매하여 수익 증대를 꾀한다. 전통적인 약국이라기보다는 [[화장품]]이나 [[건강보조식품]] 등을 파는 점처럼 보인다.
         일본의 드럭스토어는 선물로 쓰기 좋은 기능성 있고 특이한 품이 많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분류:의료]][[분류:점]]
  • 딴따라 . . . . 3회 일치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는 20세기 후반 까지도 연예인에게 [[저작권]], [[초권]] 등의 권리가 제대로 존중되지 않았고 연예계는 [[조폭]]이 주름잡고 있었기 때문에, 연예인이라고 해도 돈도 제대로 못 벌고 [[가혹행위]]에 시달리는 등 [[3D]] 업중에 가까웠다. 결국 연예인으로서의 삶은 고달플 수 박에 없었고, 그래서 이런 인식이 부모님 세대에게 뿌리깊이 남아 있었다고 보면 된다.
         오늘날에는 연예인의 지위가 향되고 중요한 문화활동의 일각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칭은 거의 사장되었고 일부 팬덤에서 적대시하는 연예인 등을 비하하기 위해서나 쓰고 있다. 잘 쓰이지 않게 되면서 비칭으로서의 의미도 점차 '탈색'되면서 몇몇 가수들이 스스로를 '딴따라'로 규정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스스로 딴따라라고 자칭하는 것은 일종의 겸양, [[언더독]] 의식을 드러내는 말이다.
          * [[박진]]은 스스로를 딴따라로 규정했다.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420_0013612369&cID=10601&pID=10600 참조기사]
  • 라이트노벨 . . . . 3회 일치
         문학의 한 장르로, 말 그대로 가볍게 읽고 즐기는 것이 목적인 소비지향적인 [[소설]]을 뜻한다. 일본에서 만들어졌으며 최초의 라이트노벨은 몰라도 최근에는 주로 오타쿠들이 소비하는 소설로 여겨지고 있다. 장르의 특성 러브코메디나 또는 전쟁물 등 말초적인 자극을 주는 내용들이 자주 보인다. 2000년대 중반~2010년대에는 국산 라이트노벨도 만들어졌으나 인기 저하 및 웹소설의 부흥으로 사실 멸망했다고 보고 있으며, 여전히 시장에선 일본산 라이트노벨의 향력이 크다. 또한, 작품들 중 인기있는 라이트노벨의 경우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 랑그릿사(검) . . . . 3회 일치
         메사이어의 게임 랑그릿사에 등장하는 무기로 성검이라 일컬어지는 무기다.
         랑그릿사 세계관의 시초가 되는 3의 시작에서는 랑그릿사는 존재하지 않았고, 마검 [[알하자드]]만이 존재하였는데 이런 황에서 마족과 어둠의 군세에 대항하기 위해서 알하자드에 필적하는 성검을 벼릴 필요성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그릇인 파사의 검은 루시리스가 보관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가 없을줄 알았지만...
         게다가 예비품이라서 그런지 원본에 비해 손색이 있다는 설정도 함께 있다. 실제 게임에서도 랑그릿사의 성능은 알하자드보다 좋았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족의 징인 알하자드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무기다.
  • 러시안 라이프 . . . . 3회 일치
         [[http://store.russianlife.com/|러시안 라이프 웹사이트]]
         [[http://store.russianlife.com/|러시안 라이프 점 웹사이트]]
  • 런던 . . . . 3회 일치
         잉글랜드의 수도인 동시에 국의 수도다.
         런던이 본격적으로 번한건 중세 말기 한자동맹을 주축으로 북해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때인데, 이때 플랑드르와 뤄벡, 유틀란드, 리가등의 북유럽 도시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중반에는 대규모 황산 안개가 발생, 다수의 사자가 발생하였다.
  • 레드 토네이도 . . . . 3회 일치
         레드 토네이도라는 이름은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출신인 마 훈켈의 히어로 명과 동일하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등장.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 등장했다. [[ 저스티스]]에서도 등장해 십대 웅들과 같이 활약하기도 한다.
  • 레스터 길리스 . . . . 3회 일치
         11월 27일, 길리스 일당은 시카고에서 차를 훔쳐 위스콘신 주로 향하던 도중 FBI 차량에게 발각된다. 곧이어 FBI와 길리스 일당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길리스 일당은 FBI를 피해 도망쳤지만 또다른 FBI 차량을 만나게 된다. 새뮤얼 P. 코울리(Samuel P. Cowley) 감찰관과 허먼 E. 홀리스(Herman E. Hollis) 특별 수사관이었다. 첫번째 차량과의 총격전으로 라디에이터가 파손되어 제대로 도망칠 수 없던 길리스 일당은 고속도로를 벗어나 일리노이 주 배링턴(Barrington)에서 차를 세운다. 그러고는 뒤쫓아 오는 FBI 차량에 자동화기를 난사한다. 배링턴 전투라고 불리는 이 총격전으로 홀리스 특별 수사관은 사망하고, 코울리 감찰관 역시 치명을 입어 다음날 사망한다. 하지만 길리스 역시 치명을 입는다. 체이스와 헬렌 길리스는 FBI 요원들이 타고있던 차를 훔쳐 길리스와 무기들을 옮겨 싣은 다음 그 차를 몰고 도망친다.
         [[https://www.fbi.gov/history/famous-cases/lester-gillis-baby-face-nelson|FBI 홈페이지의 레스터 길리스 페이지(문)]]
  • 레이나 검랑전설 . . . . 3회 일치
         OVA이기 때문인지 캐릭터들이 전체적으로 당히 미형화 되었다. 그리고 2편 부터 등장하는 제트, 드릴, 짐 역시 '인간화' 되어 있다.
         [[켄류]]는 왠지 로봇이라기보다는 파워드 슈츠에 가까운 디자인이 되었다. [[바이캄프]]는 디자인 자체는 거대하고 위압적이라서 괜찮은 편이지만, 3편에서 어둠의 바이캄프로 소환되었다가 켄류도 아닌 그냥 검랑만 든 레이나에게 졌다.[* 사실 이 때 레이나가 검랑을 들면서 일단 '변신 비스무리한 연출'이 있긴 있고, 이 작품의 켄류는 로봇이 아니라 파워드슈츠 같은 것이므로 일단 켄류 비슷한 태라고 볼 수 있을듯.]
         레이나가 [[지구]]로 [[차원이동]]하여 [[여학생]]이 되어서, 학교에서 암약하는 악의 존재를 물리치는 내용이다. [[라이너 브라운|특별한 이유는 없는 뜬금없는]] 차원이동에, [[Equestria Girls|레이나가 별다른 묘사도 없이 학생들 사이에 끼어들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라진 뒤에는 친구들의 기억에서 애매하게 잊혀지는, 몽환적인 플롯을 가지고 있다.
  • 로미오 메일 . . . . 3회 일치
         주로 이전까지 갑자기 오만하게 굴고 대를 얕보고 있던 반려자가 이별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냥하게 대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웃음 평가가 높다. 스스로 곤란에 처해있는데도 허세를 부리면서 강한 척 하면 더욱 웃음 평가가 높다.
         또한 시나 연애 노래를 연케 하는 듯한 표현을 많이 사용하면 웃음 평가는 더욱 높아지며, 그게 어디서 따온 표절이라면 더욱 세다. 중2병이면 최고.
  • 로켓레드 . . . . 3회 일치
          본명 조세프 데니소비치. 첫번째 로켓레드로 [[그린 랜턴]] 군단의 [[킬로웍]]과 친구였다. 그러나 정부에 의해 킬로웍을 배신하고, 그를 대로 싸우다 사망했다.
          저스티스 리그 제네레이션 로스트에서 등장한 새로운 로켓레드. [[부스터 골드]] 일행에 합류한 태이며 사용하는 갑옷은 다른 로켓레드 갑옷과 다르게 각지지 않은편에 흰색이 베이스가 아닌 이름대로 붉은색이 베이스다. 어째 개그 캐릭터다(...)
         버전에 따라 갑옷 색이 레드가 없는 것은 아니나 백색이 주력인 것도 있다.
  • 록맨 시리즈 . . . . 3회 일치
         주된 내용은 록맨을 포함한 주인공들을 조종해 악당들과 싸우는 것. 주무기는 버스터 등의 장비이며 이외에도 다양한 패턴 연구를 통해 대와 싸워 이겨나가야 한다.
         아쉽게도 현재 태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래도 다른 게임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그 캐릭터 명맥은 유지하고 있는 황.
  • 류한수 . . . . 3회 일치
         | 출생지 =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 웹사이트 =
         <!-- 수 -->
  • 마기/300화 . . . . 3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의 협력 요청은 수용한다. 뢰엠은 국제연맹 비가맹국이라 교역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 거래를 환한다
          * 알리바바도 격한 감동을 느끼며 봉을 만끽하려는 찰나... 오르바는 이미 토토와 결혼해서 아들까지 둘이나 낳았다.
          * 알리바바는 오르바 일행에게도 황제국 단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이들은 받아들여 알리바바의 여정에 합류한다.
  • 마기/314화 . . . . 3회 일치
          * 알라딘은 2년 사이에 술을 배웠는데 엄청 세서 취하지도 않는다.
          * 하지만 회를 만든 이후부터는 통신기로 봤기 때문에 스킵 당한다.
          * 그는 달라진 세에 돌아와서 "모두 평화로워지면 가족을 만든다."는걸 느꼈다고 한다.
  • 마기/322화 . . . . 3회 일치
          * 그는 지금까지 행해온 모든 것들은 "내가 원해서" 한 것이었으며 원하기에 "세을 바꾸겠다"고 다짐한다.
          * 불리한 황이지만 신드바드는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 오로지 자기 자신이 원하기 때문에 세을 바꾸길 원했고 지금도 단지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다짐한다.
  • 마로 . . . . 3회 일치
         미토 고몬의 문장을 보고서도 "마로는 미카도[* 덴노]로부터 정삼품의 관위를 받은 몸! 도쿠가와 가문의 부하가 아니니라! 마로의 저택에서 이런 난행을 벌이다니! 미카도에게 주할 것이다!"라면서 버티는 대사의 인지도가 매우 높다.[* 정삼위는 미토 고몬 자신과도 동급이므로 일단 이 말은 거짓말은 아니다.]
         여담으로 에도 시대의 귀족 가문은 자택 내부가 사실 치외법권인 것을 악용[* 막부 휘하의 관리들은 간섭하기 어려웠기 때문.]하여, 자택 내에 도박장 등을 업하여 부수익을 챙기는 경우가 실제로 많이 있었다고 한다.
  • 마약 . . . . 3회 일치
         19세기 [[국]]은 자국 마약에 대한 처벌을 자국 인에 대한 박해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 마왕이 나타났다 . . . . 3회 일치
          * 군극, 전쟁물로 시작했다가 마왕 엔딩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중간에 처음 제시되었던 본론하고 크게 어긋나게 되어버리고, 많이 이한 전개가 된다는 문제가 있다.
          * [[삼국지 조조전]] : 가모드로 돌진할 경우 나오는 제갈량 마왕 엔딩.
  • 마운팅 . . . . 3회 일치
         괴롭힘 처럼 명백하게 드러나는 형태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적인 대화를 하는 척, 대를 걱정하는 척, 혹은 자학하는 척 하면서 연애, 외모, 인간관계 등에서 자신을 어필하고 대에게 압박을 가하는 행동을 뜻한다.
  • 마토메 사이트 . . . . 3회 일치
         마토메는 정리한다, 모아둔다는 뜻이 있으며, 마토메 사이트는 특정 주제에 대하여 정보를 코디네이트, 재정리해두는 사이트를 뜻한다. 주로 2채널의 스레드나 [[트위터]]를 출처로 삼는 경우가 많다.
         [[분류:일본어]] [[분류:웹사이트]]
  • 멀티플맨 . . . . 3회 일치
         [[운동 에너지]]를 흡수해서 현재와 자신과 동일한 복제를 생성. 각각의 복제들도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본체와 [[텔레파시]]로 연결되어있으나 독립적인 사고를 한다. 복제를 다시 흡수할 수도 있으며 이때 복제의 지식이나 기술, 기억 등도 흡수. 다만 죽은 복제는 흡수할수 없다.--[[환분신술]]--
         [[엑스멘 실사화 시리즈]]에서도 등장했는데 어째 범죄자로 [[매그니토]]의 부하가 된다. 그러나 뭔가 활약은 없고, 후에 미끼로 나오고는 더 이 출연이 없다.
  • 메디나 . . . . 3회 일치
         2016년 7월 4일 저녁(한국 시간 5일 새벽) 한 남성이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 [[모스크]] 부근에서 자폭하여, 보안요원 4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을 입었다. 사우디에서는 같은 날 동부 카디프, 서부 제다 항구도시의 미국 총사관 부근에서도 자폭 테러가 발생했다. 이는 이슬람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가 [[라마단]] 기간 동안에 테러를 무슬림들에게 호소한 것에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예언자 사원을 향하던 남성을 수하게 여긴 치안 당국자가 제지를 했는데 몸에 두르고 있던 폭발물을 터트려서 테러를 일으켰다고 한다.[[http://www.47news.jp/korean/international_diplomacy/2016/07/141460.html (참조)]]
  • 멸문지화 . . . . 3회 일치
         실제 현실에서는 용례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무협소설]]이나 이에 향을 받은 역사물에서 비정적으로 자주 나오는 단어.
         다만, 중세유럽때는 위생태와 의학의 미비로 인한 일족의 전멸, 또는 서자의 가문 계승권이 부정된 것 등으로 인해 단절된 가문이 흔했다
  • 명탐정 코난 . . . . 3회 일치
         고교생 [[탐정]] [[쿠도 신이치]]가 우연히 [[검은 조직]]의 약물에 의해 몸이 어려져서 [[에도가와 코난]]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다. 오랜 연재 중인 장기연재 만화이며 1000회 달성. 높은 인기를 얻어서 일본만이 아닌 한국에서도 큰 인지도를 지니고 있으며 애니메이션과 극장판도 방하고 있다. 다만 만화에 대한 비판도 있다.
         만화가 오래된 만화다보니 애니메이션도 장기 방하고 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화하다보니 생기는 세부적인 차이도 있다.
          * 본 만화는 추리 만화인데 어째 [[건담 시리즈]]와의 관련성이 나온다. 물론 건담계 등장인물이 나오거나, [[모빌슈트]]가 나오는 것은 아니고, 건담을 연케하는 요소가 나온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라던가.
  • 목꺾기 . . . . 3회 일치
         주로 창작물에 많이 나오는 살인 기술. 대방의 [[목]]을 꺾어서 즉사시키는 기술이다. 물에서 등장할 때는 "우드득"하는 사운드 효과가 동반된다.
  • 몰맨 . . . . 3회 일치
         [[천재]]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무술]] 실력도 뛰어난데다 [[무기]]가 내장된 특수한 [[지팡이]]를 다룬다. 그리고 다수의 [[몰로이드]](Moloids)와 [[괴물]]들을 부하로 두고 있다. 시력은 지하 세계를 탐험하다 손되어서 항 고글을 착용. 다만 귀가 밝다.
         [[지구공동설]]을 믿고 [[몬스터 아일랜드]]의 [[동굴]]로 내려가 지하 세계를 발견했으며 그곳의 몰로이드와 괴물들을 부하로 만들어 지을 침공했다. 그러다 판타스틱 포와 충돌해 실패.
  • 무료로 책 읽는 사이트 . . . . 3회 일치
          미권 근현대소설 모음
          전자도서관들은 현재 각 도서관의 정책에 따라 일정한 가입절차 및 인증절차에 의해서 자신의 기기에서 전자도서를 대여할 수 있다. 위키러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도 전자도서관을 운하고 있을 테니 학교에 문의하면 사용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으니 참고.
         [[분류:웹사이트]]
  • 무법자 . . . . 3회 일치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날뛰는 족속들. 해적, 갱단, 노강도, 도적단 그외 등등이 이에 속한다.
         무법자라는 단어가 흔히 나오는 것은 [[서부개척시대]]인데, 이 무렵 미국 서부는 미국 연방 정부의 향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고, 지방 주 정부는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 결과적으로 공권력이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무법자들이 각지에 활보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생각하면 악랄한 범죄자지만 훗날에는 민중웅이나 자유를 위해 싸웠던 자들이라고 포장되기도 한다. 퍄.
  • 문종 . . . . 3회 일치
         문종은 조선 제 5대 국왕이다. 시호에 걸맞게 세종의 문재(文材)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명한 군주로 세종의 업적 중 일부는 문종이 함께 일군 것이었다. 문종이라는 시호와는 달리 군사적인 부분에도 기여하는 등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대리청정 시절부터 몸을 돌보지 않고 정사에 임한 탓에 결국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을 떠났고, 이 또한 후대의 왕권 불안정에 큰 향을 끼치고 말았다. (암살설이 있으나, 검증되지 않았다.)
  • 미나모토노 요시이에 . . . . 3회 일치
         미나모토노 요시이에는, 일본 전국 무사들에게 동량으로 여겨졌던 '[[겐지]]' 씨족의 중시조이다. 이 사람의 후손에서 명목 후대의 삼대 막부가 모두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 사람이 일본 전국 무사들의 동경을 받아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봉급을 확실하게 쳐줬기 때문'''이다(…). 전투에 나섰지만, 조정에서 공적인 전쟁이 아닌 '사투'[* 사적인 싸움.]로 처리하여 무사들이 은을 받지 못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하치만 타로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종군한 무사들에게 개인적으로 은을 지급해줬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가 하치만 타로가 후세에도 명성을 얻게 된 원인이며, 겐지 씨족이 무사의 동량으로 여겨지게 된 기원이다.
  • 미스터 아톰 . . . . 3회 일치
         [[샤잠]] 계열 [[슈퍼 빌런]]. 샤잠이 [[캡틴 마블]]이던 시절부터 등장했는데 세계의 지배자가 되려다 캡틴 마블에게 패했다. 이후로도 캡틴과 싸웠으며 [[슈퍼맨]], [[그린 랜턴]],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 등 DC 코믹스의 다른 웅들을 대로도 싸웠다.
         [[미스터 마인드]]의 부하이며 [[몬스터 소사이어티 오브 이블]]의 멤버이기도 했다.
  • 바닷마을 다이어리 . . . . 3회 일치
         [[일본]]의 화.
          * 공식 사이트 : http://umimachi.gaga.ne.jp/
         [[분류:일본 화]]
  • 바캇타 . . . . 3회 일치
         트위터는 쓰는게 쉽고, 동료들 가운데서 폐쇄적인 커뮤니티로 느끼는 사용자가 많아, 트윗이 전 세계로 발신되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않고, 비식적인 내용이나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는 문제성이 있는 트윗을 날리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위법 행위에 해당하는 미성년자음주나 무면허운전을 발언하거나, 범죄가 되는 절도나 도촬 행위를 하거나,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위를 하고, 이를 자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황을 다른 사이트에서 트위터 이용자를 조롱하기 위하여 "또 바캇타냐?"라고 쓴다.
  • 바키도/116화 . . . . 3회 일치
          * 도쿄돔 지하의 지하격투장. "지최강을 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회원제로 은밀히 운되고 있음에도 항 초만원을 이룬다.
  • 바키도/128화 . . . . 3회 일치
          * 무사시는 모토베가 시시도 바이켄 이이라고 극찬한다.
          * 그 태로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은 채 모토베의 괴력을 이겨내고 있는 것.
          * 무사시는 무사의 얼굴에 깊은 처를 냈으니 어떻게 갚겠냐고 묻는다.
  • 박세웅(1996) . . . . 3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한 해 선배인 [[황국]]과 동기인 [[주권(야구선수)|주권]]과 함께 2013년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의 돌풍을 주도하면서 맹활약했다. 비록 창단 40년만에 처음으로 전국 대회 결승에 오른 청주고의 돌풍은 협회장기와 전국체전 준우승으로 끝나며 아쉽게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당시 2학년이던 주권과 박세웅이 원투펀치를 이룰 청주고는 2014년 강력한 고교야구의 패권자로 꼽혔다. 그런데 주권은 기대대로 잘 했지만, 정작 박세웅이 썩 빼어낸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면서 청주고의 돌풍은 아쉽게 2013년 한 해의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동명이인인 전 [[NC 다이노스]]의 [[포수]] [[박세웅(1993)|박세웅]]과는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 사이이다. 다만 3년 터울이기 때문에 같이 고교 생활을 한적은 없다.
  • 박정근 (법조인) . . . . 3회 일치
         1942년에 경북도 에서 태어나 1950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1955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1959년에 임용된 대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1979년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춘천지방법원, 1980년 전주지방법원 1980년 대구지방법원 1981년 광주고등법원 1982년 9월 1일대구고등법원, 1984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7210009921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7-21&officeId=00009&pageNo=11&printNo=5656&publishType=00020 매일경제
         *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73년 4월 27일에 연인인 카바레 종업원에게서 사업자금 145만원을 빌렸다가 빚 독촉을 받게 되자 소요산으로 유인해 15미터 바위 아래로 떨어트려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심리 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된 사건에서 "소요산으로 유인해 가는 것을 산 입구에서 보았다는 증인들의 진술만 가지고 강도살인했다는 것에는 잘못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3년 4월 27일자</ref> 8월 8일에 덕성여대 유신숙 살해한 이균에 대해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무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대법원에서 다시 파기환송된 사건을 맡아 강간치사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73년 8월 8일자</ref> 1974년 2월 22일에 고려대학교 NH회를 중심으로 민우지를 발간하여 내란음모를 했다는 사건 항소심에서 김낙중 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장 등 9명에게 항소를 기각하면서 징역7년 자격정지7년에서 징역1년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하고 징역2년6월 자격정지2년6월을 선고받은 피고인 2명에게는 원심을 깨고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74년 2월 22일자</ref>
         [[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박주아(1942년) . . . . 3회 일치
         {{화인 정보
         | 수 =
         | 웹사이트 =
  • 박진석 (프로게이머) . . . . 3회 일치
         2012년 반기 드래프트에서 삼성전자 칸(현 [[삼성 갤럭시 (프로게임단)|삼성 갤럭시]])의 3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 수 경력 ==
         * [[2011년 9월]] 제4회 스타크래프트 루키리그 준프로 선발전 입
  • 박태준 (작곡가) . . . . 3회 일치
         '''박태준'''(朴泰俊, 어 이름은 '''Travis Jones Park'''(트래비스 존스 파크), [[1900년]] [[11월 22일]] ~ [[1986년]] [[10월 20일]])은 대한민국의 [[작곡가]]이다.
         본관은 [[밀양 박씨|밀양]]이며 호(號)는 귀봉(龜峯)· 산남(山南)· 계산(桂山)이고, 종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개신교(예장통합)]]이다. 경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이후 미국 [[터스컬럼 대학교]]와 [[웨스트민스터 대학교]] 음대 및 대학원을 나왔다. 귀국 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를 거쳐 [[연세대학교]] 종교 음악과를 창설하였으며, 많은 작곡을 하여 한국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예술원 음악공로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64년 연세대학교 음대 학장을 지냈다. 작품으로 〈오빠생각〉 〈집 생각〉 〈사우(思友)〉 등 150여 곡이 있고, 동요곡집으로 〈중 중 때때중〉, 가곡집으로 〈박태준 가곡집〉 등이 있다.
  • 박해극 . . . . 3회 일치
         * 유엔위원단 환회 참석(경북대표)
         *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1948년 5월 10일]] :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 경남도#밀양군 을 (제12선거구)|제헌 국회의원(경남 밀양을)]]
         [[분류:188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일제 강점기의 판사]][[분류:한국의 변호사]][[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메이지 대학 동문]][[분류:밀양 박씨]]
  • . . . . 3회 일치
         발(한) / 足(한 : 족)(일 : あし)(중 : zú) / Foot() / Fuß(독) / Pied(불) / Piedo(에스페란토)
         인체의 신체부위중 가장 하단에 위치한 아름다운 부위로써, 다리와 더불어 인간의 몸을 지탱해주는 하반신의 중추이자 미의 정점이다. 동물이 직립보행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신체부위이고 기본적인 그 골격 구조는 반신의 손과 같으나 복사뼈, 족저근막 위의 아치형 구조등, 좀 더 충격흡수를 효율적으로 하기위하여 예술적이고 독보적인 모양으로 변화되었다.
         땅바닥을 디디고 다니는 신체 특성 더러워지기 쉬우므로 외출하고나선 꼭 씻자. 잘 씻고 잘 말리기만 잘 한다면 각질 축적은 물론 무좀 등 악성 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 발암 . . . . 3회 일치
         2014년대 부터는 인터넷 에서 '속터진다','화가 난다'는 뜻으로 쓰인다. 대략 '이 황이 짜증나서 암 생길 것 같다'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여담으로 미묘하게 [[카타르시스]]와 일맥통.(…)
  • 배천석 . . . . 3회 일치
         2014 시즌 첫 경기였던 [[AFC 챔피언스리그 2014]] [[세레소 오사카]]와의 홈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전반기를 넘기지 못하고 양 정강이 피로골절로 수술을 받게 됨에 따라 사실 시즌아웃 되었다.
         == 수 ==
         {{둘러보기 자 묶음
  • 백작 . . . . 3회 일치
         == 세 ==
         북게르만어에서 '족장'을 뜻하는 야를(jarl)에서 따온말이다. 바이킹들의 지속적인 브리튼으로의 침략과 그에 따른 교류로 인해 나온 칭호. 다만 브리튼 내부의 지를 두고만 earl이라고 했던걸로 보이며, 섬외부 지는 count of~식으로 구별해 뒀다.
  • 벚꽃놀이 . . . . 3회 일치
         이렇게 제사이자 놀이로서 즐기는 벚꽃놀이는 [[헤이안 시대]]에 [[일본 귀족]]들이 시작하였다. [[만엽집]]에서 벚꽃에 대해서 읊는 시가 나타나고 있으며,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도 봄의 노래는 벚꽃에 대한 것이 많다. [[겐지모노가타리]]에서 연회가 화려하게 묘사된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귀족 문화에 향을 받은 사무라이 계급, 서민 계급에서도 벚꽃놀이가 벌어지게 됐다. [[에도 시대]]에는 서민들 역시 벚꽃놀이를 널리 즐기게 되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길가, 하천부지, 공원, 학교 각지에 벚꽃을 심는 것이 유행하여 전국 각지에 벚꽃놀이를 즐기기 좋은 장소가 마련되었다.
         야외에서 술에 취하는 행사다보니, 불사가 적지 않게 벌어진다.
  • 베를린 보병여단 . . . . 3회 일치
         [[냉전]] 시기 [[국군]]에 존재하던 부대. 사실 "베를린 보병여단"은 냉전이 끝날 때의 부대명이었고, 그 전에는 "베를린 야전군"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지의 섬이었던 서베를린 특성 전쟁이 나면 100% 녹아 사라질 부대였다. 다행스럽게도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지 않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해체되었다.
  • 벤 존슨 . . . . 3회 일치
         [[미국]]의 육선수.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9초 79의 경이로운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도핑 검사에 걸려서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두번째로뒤이어서취임식이또개최가된다!! 벤존슨이 제1대 대통령으로취임식을개최가된다 이때 멜라니아여사가참석을한다 멜라니아여사는벤존슨의부인이된다!!
         [[분류:육선수]] [[분류:미국 인물]]
  • 벨트스크롤 게임 . . . . 3회 일치
         대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스크롤 되며, 스테이지를 비스듬하게 내려다보는 시점을 취한다. 캐릭터는 보통 측면 모습만 나온다. 조작은 레버로 하좌우 이동을 기본으로 하여 [[점프]]를 별도의 버튼으로 부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시점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 같다고 해서 '벨트스크롤 게임'이라고 부른다. 서구권에서는 사이드 스크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테이지]]를 잘 활용하는 것이 특징으로, [[무기]]를 입수하여 공격에 쓰거나, [[드럼통]]이나 [[자]] 같은 물건을 던져서 공격, 회복 아이템을 주워먹고 체력을 회복 할 수 있다.
  • 벼랑개 링링 . . . . 3회 일치
         발견 당시
         == 세 ==
         11월 17일 발견된 이 개는 약 1주일 간 조난 태에 있었다. 20일 TV중계가 되는 가운데 구출되었고, 22일 도쿠시마 현 동물애호관리센터에 맡겨졌다. 구출된 이 개를 많은 사람들이 기르고 싶다고 연락했다. 2007년 1월 28일, 동물애호관리센터는 센터에 찾아온 11명의 신청자에게 추첨을 거쳤으며, 66세 여성 마키 카즈코(馬木カズ子)가 인수하게 되었다. 마키 카즈코는 개에게 링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르게 되었다.
  • 변신합체로봇 . . . . 3회 일치
         변신과 합체를 통하여 2번, 3번 즐길 수 있다. 변신과 합체만 반복하는 것으로도 당한 흥미가 있으며, 단순한 로봇 장난감 보다 오랫동안 흥미를 가지고 놀 수 있게 된다.
         복잡한 구조 때문에 내구도가 낮다. 변신과 합체가 주된 용도이지만 정작 변신과 합체를 반복하면 빠르게 손을 입어 더 이 변신 합체를 할 수 없게 된다.
  • 보루토/2화 . . . . 3회 일치
          * 제자로 삼아달라는 보루토를 보고 소년시절 나루토를 연하는 사스케
          * 잘 보니 보루토가 던져 버린 나선환은 맞은편 나무에 처를 낼 정도로 확실히 위력은 있다.
          * 그 대는 카구야의 성에서 사스케와 겨뤘던 오오츠츠키 일족들.
  • 부산광역시 . . . . 3회 일치
         [[도구]]''' || 影島區 || 56,537 || 133,086 || 14.13
         [[수구]]''' || 水營區 || 75,146 || 180,894 || 10.20
         [[사구]]''' || 沙上區 || 96,870 || 246,313 || 36.06
  • 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 . . . . 3회 일치
         [[분류:사구 출신 인물]]
         [[분류:수구 출신 인물]]
         [[분류:도구 출신 인물]]
  • 브라우닝 시토리 . . . . 3회 일치
         Browning Citori. [[미국]]의 총기회사 [[브라우닝]]에서 판매하는 [[더블 배럴 샷건]]. [[총열]]이 하로 배열된 형태다. 사용 구경은 모델마다 다름.
         [[http://www.browning.com/products/firearms/shotguns/citori.html|브라우닝사 웹사이트의 시토리 페이지]]
         [[http://www.browning.com/products/firearms/shotguns/citori-725-shotgun.html브라우닝사 웹사이트의 시토리 725 페이지]]
  • 브와나 비스트 . . . . 3회 일치
         이름답게 [[동물]] 관련 초인으로 아프리카의 동물들과 연결되어 초인적인 힘, 스피드, 감각을 소유한다. 또한 킬리만자로 동굴의 미네랄 워터를 마셔서 마신 양만큼 해에 대한 저항력을 얻는다. 이 미네랄 워터는 붉은 원숭이 듀바(Djuba)가 병에 담고 다니며 보충해준다.
         개인 비행기에 탔을 때, 비행기가 벼락이 맞는 사고를 당해 킬리만자로 산꼭대기에 추락해 부을 입었다. 두 사람은 뮤턴트 붉은 원숭이들의 동굴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무기질을 통해 걸러진 빗물을 마신 액스웰은 강하고, 사나워진 것을 느꼈다. 이후 붉은 원숭이들을 공격하여 복종시켰고, 붉은 원숭이들은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고대의 헬멧을 가져와 맥스웰의 머리에 씌웠다. 그를 헬멧의 주인으로 인정한 것.
         여담으로 DC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 가운데 당한 '[[엽기]] 캐릭터'로 꼽힌다.(...) 일단 복장부터가 빨갛고 노란 헬멧에 거의 전신을 노출하고 '표범무늬 팬티'만 입고 있는 전위적인 것인데다가, 두 개의 생명체를 결합시켜서 뮤턴트 생명체를 만드는데 그 때마다 결과물이 진짜로 해괴하다보니. 애니메이션에서는 나올 때마다 '저 새끼 능력 해괴하다'고 뒷담을 듣는 내용이 나온다.(...)
  • 블랙 클로버/56화 . . . . 3회 일치
         * 어쨌든 겔도르의 범죄행위가 백야의 마안에 기회를 줬고 신수훈편의 사건도 장벽마도사가 납치 당했기 때문이었다.
         * 아스타는 강마지대가 뭔지 모른다고 했다가 야미한테 갈굼 당한다. 강마지대란 마나의 힘이 강해 기이한 현이 일어나는 지대를 말한다. 아스타가 갔던 던젼도 일종의 강마지대.
         * 야미는 "당신은 마법제니 그저 명령만 하면 된다"며 과거를 회한다.
  • 블랙 클로버/59화 . . . . 3회 일치
          * 이할 정도로 유쾌한 사람들.
          * 지인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흥분태다. 거의 10년 만에 방문자라고.
  • 블랙 클로버/71화 . . . . 3회 일치
          * 베토는 그저 무기를 빼앗기 위해 일부러 맞아준 것. 관통된 부위도 치명을 피했다.
          * 그리고 지금까지 무시했던 아스타가 자신과 같은 짐승, 혹은 그 이의 "절망 조차 삼키는 악마"로 보이기 시작한다.
          * 세 번째 검이 나오지 않겠냐는 예은 빗나갔다.
  • 블러드와인드 . . . . 3회 일치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제이콥 휘트니라는 인물이 운하는 면 재배지가 있었는데 그곳의 노예들은 모든 노예들의 불행과 눈물에서 창조된 블러드젬을 연마하기 위해 25일 밤 넘게 자신들의 혈액을 이용한 고대의식을 치루었고, 이후 블러드젬은 휘트니를 원히 가두었다.
         [[둠스데이(DC 코믹스)|둠스데이]]가 나타났을 때에 다른 히어로들과 같이 대항했다.--당연히 도움은 안됐다.--[* 사실 대가 둠즈데이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때 함께 싸우던 히어로들도 어쩌지 못했다.]
  • 블리치/682화 . . . . 3회 일치
          * 제라드의 공격으로 궁이 붕괴하여 추락하기 시작하는데, 토시로는 궁 전체를 얼려 가까스로 추락을 막는다.
          * 분명 초반엔 미완성이라 얼음꽃이 지면 끝이라고 했던거 같은데...--그런 식이면 켄파치 시해방형은 뭐가 되냐--
  • 비지란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Illegals - . . . . 3회 일치
         히어로가 직업이 된 세에서 면허가 없으면서 자경단원 활동을 하는 넉클 더스터와 그를 따르는 하이마와리 코우이치, 프리 아이돌 팝 스텝이 주역이다. 넉클 더스터가 [[올마이트]], 하이마와리가 [[미도리야 이즈쿠]]의 포지션을 떠올리게 하는데 둘의 관계는 본편쪽 인물들이 스승과 제자인 것과 달리 히어로와 사이드킥 느낌이다.
          거구의 남성. 이름에 어울리게 두 손에 넉클을 끼고 있다. 통적인 히어로와 달리 면허 없이 활동하는 무면허 히어로이나 실력은 확실해서 [[아이자와 쇼타]]와 싸울 정도다. 한편 아이자와와 싸우면서 '''무개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개성을 폭주시키는 약물을 쫓고 있다.
  • 빅 사이언스 액션 . . . . 3회 일치
         일본판 [[저스티스 리그]]라 할 수 있다. [[슈퍼 팀]]과도 관련이 있다.
          [[물]] 제어. 슈퍼 팀의 아쿠아존의 아버지.
          블래스트를 쓸수 있으며 비행 가능. 당히 오래된 캐릭터로 Action Comics #379 (August 1969)에 첫등장.
  • 빅맥 . . . . 3회 일치
         빵+100% 순쇠고기 패티+양추+빅맥 소스+치즈+피클+양파로 구성되어 있다. 빵은 위아래 뿐만 아니라 중간에도 끼어있고 패티, 양추, 양파도 2개 층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히 큰 크기와 512kcal이라는 열량을 가지고 있다.
  • 빌런(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3회 일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을 악용하는 존재. 히어로 포화 태라는 말이 나옴에도 다수의 빌런들이 있는 듯하며 그중에는 슈퍼 빌런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거물도 존재한다. 물론 뛰어난 히어로들, 특히 [[올마이트]]라는 저지선에 눌리고 있으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달라지고 있다.
         묘사를 보면 올마이트의 등장 이전에는 사회 각지에서 난동을 부려온 듯 하며 올마이트가 등장한 이후에는 대부분이 꺽인 태다. 물론 이런 시점에서도 빌런들은 계속 남아있으나 이전과 달리 그냥 양아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는 [[빌런 연합]]이라는 세력이 [[유우에이 고등학교]]를 습격한 시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스테인]]이라는 악명 높은 빌런이 체포된 것이 계기가 되어 흩어져있던 네임드, 혹은 이에 준하는 실력자들이 자극받고, 이어서 올마이트의 은퇴와 어둠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올 포 원]]이 체포되면서 황이 달라졌다.
  • 사이마 . . . . 3회 일치
         [[빚]]을 지고 있는 사람 채무자(債務者)를 뜻한다. 단순히 채무나 대출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습적으로 불건전하게 빚을 짊어지는 사람으로, 특히 빚을 제대로 갚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사람이다. 대개 욕설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채무(債務,사이무)」와 「er」을 합쳐서, 「사이마(サイマー)」라는 말이 태어났다.
  • 산바람 . . . . 3회 일치
         = 자연 현 =
         2012년 [[시드노벨]] 반기 공모전에 입선하여, 2012년 12월달에 [[용사 더하기 마왕은!?]]이 출간되었다.
          *《요괴담소》
  • 서거정 . . . . 3회 일치
         [[1456년]](세조 2) 문과중시에 급제, 이듬해 문신정시에 장원했다. 후에 공조참의(工曹參議)가 되어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그 곳 학자들과 문장과 시(詩)를 논하여 해동(海東)의 기재(奇才)라는 찬탄을 받았다. 귀국 후 대사헌이 되고 [[1464년]] 조선 최초로 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 :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함)이 되었으며 [[1466년]] 발시에 또 장원, 이후 [[공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 6조(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우참찬]], [[좌참찬]], [[우찬성]] 등을 두루 거쳐서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올라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으로 달성군(達城郡)에 봉해졌다.
         사후 문충(文忠)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경도 대구의 [[구암서원]]에 배향되었다.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사가정역]]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 측실 : 이근(李寧根)의 딸
  • 서용주 . . . . 3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8월 23일에 [[김선빈]]과 [[최희섭]]이 부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윤완주]]와 함께 1군에 콜업,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80944|기사]] 그리고 8월 25일 목동 넥센전에서 9회초 [[이용규]]의 대주자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박기남]]의 적시타로 2루까지 진루하였으나 후속타 불발로 득점에는 실패하였다.
  • 서울특별시 . . . . 3회 일치
         [[등포구]]''' || 169,466 || 368,733 || 24.57
         [[등포구]]''' || 169,466 || 368,733 || 24.57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c/cb/%EA%B4%91%ED%99%94%EB%AC%B8_%EC%9D%B4%EC%88%9C%EC%8B%A0_%EB%8F%99%EC%83%81_2011%EB%85%84_11%EC%9B%94_%EB%8C%80%ED%95%9C%EB%AF%BC%EA%B5%AD_%EC%84%9C%EC%9A%B8%ED%8A%B9%EB%B3%84%EC%8B%9C_%EB%AA%85%EC%86%8C_%28Seoul_best_attractions%29_%EC%82%AC%EB%B3%B8_-1S6O5492.jpg/120px-%EA%B4%91%ED%99%94%EB%AC%B8_%EC%9D%B4%EC%88%9C%EC%8B%A0_%EB%8F%99%EC%83%81_2011%EB%85%84_11%EC%9B%94_%EB%8C%80%ED%95%9C%EB%AF%BC%EA%B5%AD_%EC%84%9C%EC%9A%B8%ED%8A%B9%EB%B3%84%EC%8B%9C_%EB%AA%85%EC%86%8C_%28Seoul_best_attractions%29_%EC%82%AC%EB%B3%B8_-1S6O5492.jpg|[[광화문|광화문 이순신 동]]
  • 서정윤 . . . . 3회 일치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남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현대문학》에 시 〈서녘바다〉,〈성(城)〉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로 만남·기다림·사랑·아픔 등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절실한 삶의 문제들을 그려내고 있다. 시집 《홀로서기》,《점등인의 별에서》 등과 수필집 《내가 만난 어린왕자》 등이 있다. 2012년, 대구[[신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활동 중이었으나, [[2013년]] [[11월 12일]], 제자를 성추행하여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ref>{{뉴스 인용| 제목 = 50대 유명시인 겸 교사, 학교서 여제자 성추행 '충격'(종합)| url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31112192806356| 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 = [[2013년]] [[11월 12일]]}}</ref>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성범죄자]][[분류:대한민국의 교사]]
  • 서호진 . . . . 3회 일치
         [[2011년]] [[4월 16일]] 쇼트트랙 선수에서 은퇴했다.<ref name=et /> 현재는 동아종합인쇄사의 부장을 맡고 있으며 2010년부터 가업을 잇기위한 경수업을 듣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현수]] 선수 폭행 논란 및 금메달 양보 의혹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사라질 줄 알고 침묵했다" 라며 부인했고, 관련 루머를 퍼뜨린 유포자에 대해서 경찰 수사의뢰하겠다며 강력한 조치 의사를 밝혔지만, 소식이 없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hi2014&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6761293 서호진씨 "안현수 선수 구타한 적 없다…억울하다"], 연합뉴스, 2014년 2월 18일 작성.</ref>
         *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6000000/2005/05/006000000200505261847281.html 쇼트트랙선발 뒷거래 빙연맹 부회장 입건]
         {{토막글|빙인}}
  • 성은채 . . . . 3회 일치
         |학력= [[중앙경정보고등학교|대구중앙고등학교]]
         |웹사이트= [http://www.cyworld.com/eunchea87 성은채 싸이월드 미니홈피]
         ===화===
  • 세레브 . . . . 3회 일치
         현재 '세레브'라는 단어는 구체적으로 연예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부자로서 우아한 생활을 하면서 명품을 가득 가지는' 등등으로 당히 추적인 의미를 뜻하고 있다.
         [[셀레브리티]](celebrity)의 약자.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의 유명 인사를 뜻한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이러한 사람들이 쓰는 품에 대해서 '세레브 납품업자'라는 말이 나타나서 패션 잡지 등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게 된다.
  • 세조 . . . . 3회 일치
         재위 기간동안 민생을 돌보는 정치를 했다며 옹호하는 의견도 있으나, 그의 치세에 일어난 각종 옥사나 반란(이징옥의 난, 이시애의 난 등)은 조선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고, 또한 이러한 변란의 여파로 인해 세종 조에 개척한 북방 토 중 일부(4군 지역)를 관리를 포기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정통성이 완벽했던 조카를 대로 찬탈했다는 사실은 정치와 관계없던 민초들에게도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여 세조와 관계된 야사나 민담은 좋은 게 없을 정도이다.
         민생을 돌보았다고 하나, 한편으로는 정권 탈취에 일조한 자신의 가신들에게 무제한적인 특권을 부여하여 훗날 훈구파의 횡포를 낳게 된다. 비록 본인이 건재하던 시절에는 이러한 권신들을 제어할 수 있었으나, 세조 서거 이후 왕통의 혼란 등으로 인해 성종 시기에 들어서면 왕이 신하들에게 쥐여사는 '군약신강' 체제가 만들어지고, 그 반동으로 [[연산군]]이라는 막장 폭군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고 만다.
  • 손병조 . . . . 3회 일치
         * 남대학교 학사
         * 한남대학교 대학원 경학 박사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숙년이혼 . . . . 3회 일치
         숙년이혼이란 결혼하고 20년 이,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하고 나서 이혼하는 경우를 뜻한다. 비슷한 단어로 정년이혼(定年離婚)이 있는데, 이는 남편의 정년퇴직 시기에 이혼하는 것을 뜻한다.
          * 왜일까 우리나라에는 '황혼이혼'이라는 말이 더 널리 퍼져서 일반화 되었다. '숙년'이라는 표현이 없어서 이 말을 소개한 대중지 등이 '황혼이혼'을 사용한 것과, 드라마의 향으로 널리 퍼진 것과는 달리 일본 드라마에서 향을 받지 않은 것이 이유인 듯 하다.
  • 슈퍼머슬봄버 . . . . 3회 일치
         레슬링게임이었던 전작과는 달리 링아웃, 핀, 4인대전을 없애고 1라인에서 대방이 쓰러질때까지 1 VS 1로 싸우는 [[대전액션게임]]이 되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을 훌륭하게 재현한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게임성으로 수많은 악평을 받으며 순식간에 게임센터에서 철수하고 그 이후로 후속작도 나오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다만 밸런스는 좀...게임 컨셉이 일단은 레슬링이기 때문에 판정이 좀 느리고 믿을만한 대공기도 없고 대쉬 공격이 너무나도 토나오게 강력하다보니 위 동에 등장하는 아스트로가 지나치게 강했다.
  • 스타 연구소 . . . . 3회 일치
         [[틴 타이탄스]]의 [[사이보그(DC 코믹스)|사이보그]] 스토리에 연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스타 연구소 직원이었고, 아들이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연구소에서 사이보그로 만든 것. 이 설정은 New 52에서도 유지되었다.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 . . 3회 일치
         한국에서는 [[PC방]], [[프로게이머]], [[E스포츠]] 등 많은 향을 끼쳤다. 관련없는 장르나 매체에서도 패러디를 볼 수 있을 판.
         현재 스타크래프트 2가 발매된 태이며, 2017년 여름 첫번째 작품인 스타크래프트의 [[https://starcraft.com/ko-kr/|리마스터 버전 출시가 예정되어 있다.]]
          * [[스타크래프트 고스트]][* 현재 무기한 연기 태.]
  • 스트라테고스 . . . . 3회 일치
         그러나 아테네에서는 이론 [[민회]]가 최고기관이었으므로, 스테라테고스 역시 국정의 책임을 져서 민회에서 탄핵을 받아 재판을 받을 수 있었으며 심지어 패전 책임을 물어 [[사형]]에 처해지는 경우까지 있었다.--아군을 팀킬하는 최종보스--
         서로마 제국의 마기스테르 밀리툼, 스트라테고스는 마기스테라 우트리우스 밀리타리에(magister utriusquae militiae)로 불렸으며, 이들은 서로마 제국의 군권을 거의 완전히 통솔하는 직위였으므로 때문에, 황제의 후견인이면서 때때로 사실 황제를 능가하는 실세 권력자가 되기도 하였다.
         근대 그리스 왕국, 현대 그리스 공화국에서 스테라테고스(stratigós)는 4성 장군에 해당하는 군사 계급으로서, 그리스 군의 최고 계급이다. 과거에 그리스 왕국에는 이보다 위계급인 스트라타체스(Stratarches, '군의 지배자' 라는 의미)가 존재하였다. 이는 [[원수]]에 해당하는 군사 계급으로서 국왕이나 왕실 가족 가운데 몇몇 사람에게 주로 부여되었으며, 몇몇 퇴역장성에게 주어지는 명예 지위로 쓰였다. 하지만 그리스 왕정이 폐지된 이후로 이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 시간이 약 . . . . 3회 일치
         병이나 나쁜 태가 시간에 따라서 나아진다는 의미.
          * 어로 Time cures all things. 이라는 경우가 있다.
         [[분류:어]][[분류:일본어]]
  • 식극의 소마/156화 . . . . 3회 일치
          * 쿠스노키의 특기는 가열. 불의 미묘한 온도차를 조절해서 식재료를 최태로 조리한다
          * 쿠스노키는 요리할 때는 조용해진다는 설정인데 만화으로는 전혀 그렇게 안 보인다.
  • 식극의 소마/182화 . . . . 3회 일치
          * 그리고 시작되는 신 십걸 선출 배틀로얄. 센트럴 학생들을 대으로 치뤄졌으며 이때 하야마 아키라가 참가했다. 이미 뭔가 흑화한 냄새를 풍기는데.
          * 센트럴 학생들을 대으로 한 배틀로얄을 벌인다.
          * 패자는 실려나가면서 "신의 역에 들어섰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위험한 향"이라고 말하는데.--역시 약을 탔네. 식약청 불러와--
  • 식극의 소마/186화 . . . . 3회 일치
          * 같은 시각 타도코로 메구미와 알디니 타쿠미는 코바야시 린도를 대로 시험에 들어간다.
          * 베르타와 실라는 쿠가 테루노리와 티격태격하던 게 거짓말 같을 정도로 금방 친해져서 노닥거리는데, 막 대결이 시작되자 대결의 긴장감에 끌려가 조용히 관전 중.
          * 에리나는 소마에게 진지함이 부족하다며, 그런 태로는 진급시험에서 낙방할 거라고 경고한다.
  • 식극의 소마/187화 . . . . 3회 일치
          * 소우에는 소마가 곰의 "뼈와 가까운 고기"를 거침없이 사용했다며 을 초월하게 위험한 승부를 한 거라 평한다.
          * 소우에는 그 이으로 소마의 요리를 간파한다.
  • 식극의 소마/231화 . . . . 3회 일치
          * [[유키히라 소마]] vs [[사이토 소메이]]의 대결은 "버터"
          * 소마 일행은 각자의 건투를 빌며 조리를 시작한다. 메구미는 [[시노미야 코지로]]에게 받은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언을 기한다.
          * 소마와 사이토는 시작부터 진검승부에 나서며 승부욕을 불사른다.
  • 식극의 소마/239화 . . . . 3회 일치
          * [[시노미야 코지로]]의 가르침을 되세기며 파이팅하는 [[타도코로 메구미]]. 그런데 내놓은 요리는 매우 소박한 도라야끼.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안에 백앙금과 함께 깍뚝썰기된 사과가 들어가 있다. 싱싱한 사과의 향기가 강점이지만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선보인 타르트에 비하면 외견도 향기도 미치지 못한다. 샤름은 모모보다 명백히 밑이라고 냉정히 평하는데 이스트와르는 도라야끼라는 과자 자체를 꽤 선호하는 모양. 좋아라 맛을 보는데 생각이으로 강렬한 리액션이 따라온다.
          * 타도코로의 회심의 일격. 부정적이었던 샤름 조차도 사과 도라야끼 자체는 뛰어난 과자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모모의 타르트에 비하면 약간 못 미친다고 선을 긋는다. 그런데 안은 그런 평가를 받으면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타도코로의 모습에 주목했다. 그리고 아직도 요리에 뭔가 비밀이 있는게 아닌가 짐작하는데, 그 예이 맞아떨어진다.
         == 세 ==
  • 신적강하 . . . . 3회 일치
         고대 율령제 시대에 일본의 황족은 성씨가 없으며, 다양한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이 같이 황족을 무한정으로 늘릴 수는 없기 때문에, 덴노의 직계에서 일정 이 멀어진 황족은 성씨를 주고 황족에서 제외하여 신하의 신분으로 만드는 조치를 취했다. 이것을 신적강하라고 한다. 신족강하가 원인으로 고대 일본의 귀족과 무사는 많은 수가 황족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와는 극적으로 대조적인 사례가 [[명나라]]이다. 명나라의 경우는 황족에 대한 대우가 비교적 후하고 황족을 정리해고하는 제도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약 200여년간 황족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낳는데, 이들은 모두 국가 재정으로 후한 복지 혜택을 받고 있었다. 그 결과 너무 많이 불어난 황족들 탓에 말기에는 재정 압박이 당히 심해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 황족들은 거의 다 복지제도에만 의존하고, 반란을 명나라에서는 의도적으로 황족의 관직 진출 등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니트족]]으로 살고 있어 사회 문제가 심각했는데 명나라는 법률적으로 이들에 대한 혜택을 줄이기도 어려웠다.
         결국 재정난에 시달리던 [[숭정제]]는 재정건전화를 위해서 역졸을 대대적으로 정리해고했다가 생계가 막막해진 이들이 반란군으로 변질되어 [[이자성의 난]]을 일으켜서 멸망했다. 물론 그 많은 명나라 황족들은 명나라가 멸망하는 와중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명]] 정권에서도 유력 황족들이 서로 싸움질이나 할 뿐, 제대로 협력해서 가문을 일으켜보려는 사례는 찾을 수가 없다.--역졸이 아니라 황족을 해고했어야지.-- 그들의 조 [[주원장]]이 가난하고 빈곤한 떠돌이의 신분이었음에도 가문의 도움 따윈 없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정말 '헝그리 정신'의 차이처럼 보일 정도.
  • 심학봉 . . . . 3회 일치
         1961년 [[경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경북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이공계에서 활동하였다. [[특허청]] 특허심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실,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자원부]]) 등을 거쳤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런데 성폭행 의혹을 사면서 형사법 위반 여부를 떠나 품위에 맞지 않는 성관계 (기혼이면서 기혼여성과 성관계)로 제명위기에 몰리자 2015년 본회의 표결 당일 자진사퇴하였다.
  • 아웃 오브 안중 . . . . 3회 일치
         안중은 눈 안, 혹은 관심이나 의식의 범위 내에 있다는 뜻이다. [[무관심]]을 뜻하는 말로 '안중에 없다'는 말이 본래 있었는데, 이것을 [[어]]로 '벗어나 있다'는 뜻인 'Out of-'를 붙여서 강조한 것이다.
         기원을 따져보면 원래는 1980년대 일본에서 쓰던 대학생들의 속어에서 비롯된다. 논할 가치가 없다는 ろんがい(=논외)를 보다 강조해서 말하기 위해 어와 섞어 쓴 게 그 시초다. 하지만 워낙에 일부에서만 사용하던 용어였기 때문에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사실 사어가 되었는데... 이걸 [[시게노 슈이치]]가 연재했던 [[만화]] [[이니셜 D]]의 애니메이션 판에서 등장인물인 [[이와키 세이지]]가 쓰면서 재조명 된다.
  • 아카짱가에리 . . . . 3회 일치
         아카쨩=아기, 가에리=어떤 태로 되돌아감. 아기 같은 행동을 보이는걸 뜻한다. 번역은 '유아퇴행'이나, '아기로 돌아가는 것처럼' 정도로 쓸 수 있다.
         약간 성장한 어린 아이가 마치 아기로 돌아가는 것처럼 퇴행하는 행동을 일으키는 현을 뜻한다.
         == 증 ==
  • 아키즈키 리츠코 . . . . 3회 일치
          * 대부분의 2차 창작에서 식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사실 디어리 스타즈의 세계관을 적용하면 리츠코는 사촌 남동생을 여장시켜서 아이돌로 만들어버린 코토리도 소름끼쳐할 변태다. 디어리 스타즈가 당히 흑역사이기는 한데 아무튼 이쪽도 존재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으므로, 이 점은 대부분의 세계관에서 변하지 않게 된다. 765프로덕션에서 숨은 최강 변태.
  • 애니프사 . . . . 3회 일치
          * 정적인 경제 능력, 생존 능력, 소통 능력 등을 실한 사회적 무능력자이다. 한마디로 [[좀비]].
         혐오와 능멸의 대이 되고 있다고 한탄하는 사례
  • 애로우버스 . . . . 3회 일치
         단에 서술되어있는 것처럼 '애로우버스'라는 명칭은 정식 명칭이 아니라 팬덤 사이에서 붙여진 수준의 것이다. 애로우버스라 불리게 된 이유는 드라마 애로우가 첫 방을 하고, 이후 플래시가 등장한 후에 드라마화가 되어서인 듯 하다.
  • 양희승 (작가) . . . . 3회 일치
         == 수 ==
         * [[2001년]] [[MBC]] 방송연예대 방송작가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 . . . 3회 일치
         [[역사]]를 소재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개발은 [[앙블 스튜디오]], 발매는 [[마이크로 소프트]]가 맡았다. SF적인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스타보다 비교적 밀리터리적 요소를 가진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에 달리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 답게 선택할 수 있는 진도 고대 [[문명]]이거나 [[국가]]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가 나온 이후 2편, 3편 등이 발매되었으나 아쉽게도 앙블 스튜디오가 해체되면서 3편에서 끝나게 되었다.
  • 여고생 콘크리트 매장 살인사건 . . . . 3회 일치
         1988년 11월 25일, [[사이타마 현]]에 거주하는 고3 여고생이 납치, 강간, 집단강간, 폭행 등 처참한 학대를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다. 흔히 여고생 콘크리트 사건(女子高生コンクリ事件)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 세 ==
         일본 역사 가장 잔인한 살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 역사 . . . . 3회 일치
         [[과거]]에 대한 기록이며 단순히 입소문 등의 수준이 아니라 큰 규모의 사건 등 향력이 많은 일들이 기록된다.[* 단, 현대에는 기존의 정부나 단체, 공인의 기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역사 연구에서 벗어나 이러한 단순한 특정 시기의 '소문'이나 소소한 일사, 사물 등을 통해 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검토하는 '미시사'란 개념도 생겨났다.] 이를 다루는 학문을 역사학이라 한다.
         그냥 옛날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것이 그만큼 문명과 사회, 개인에 큰 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사왜곡이 단순히 거짓말을 했다고 비판받는게 아니다.
  • 영혼결혼식 . . . . 3회 일치
         죽은 사람과 산 사람, 혹은 죽은 사람들의 혼들을 결혼시키는 의식. 과거 죽은 사람들이 미혼으로 죽을 경우 원혼이 되기 쉽다는 관념이 있어서 이를 막고 혼을 달래기 위해 벌어졌다. 주로 고인과 인연이 있던 이성(약혼자 등)이나 혹은 특정한 동일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미혼인 이성들을 임의로 짝지어서 의식을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역사의 혼결혼식 =
          * 위나라 열조 조예가 어려서 죽은 자신의 딸과 외사촌의 아들을 혼 결혼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 예재형 . . . . 3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화 ==
  • 오냥코 클럽 . . . . 3회 일치
         다수의 멤버를 모으고, 일반인을 대으로 했다는 것이 특징. TV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기획이었다는 것도 특징으로서, 이 때문에 결국 [[시청률]] 저하에 향을 받아 활동을 중지하게 되었다.
          * 20년 뒤에 [[AKB48]]에 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 오하라이 . . . . 3회 일치
         본래 신도의 의식의 하나지만, 민간에서는 나쁜 적 존재에 홀리거나 했을 때, 적 존재를 퇴치하고 쫓아내는 의식을 포괄하여 말하기도 한다.
          * 특히 나쁜 적존재를 쫓아내는 것을 [[제령]]이라고 부른다.
  • 와일드 독 . . . . 3회 일치
         당히 안쓰러운 인생 끝에 자경단원으로 거듭난 인물. 원래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 운동선수였으나 부을 입으면서 팀을 나온데다 학교도 떠났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테러리스트의 폭탄에 의해 동료 대원들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제대, 이후 주립대학에서 야간수업을 받다 클레어 스미스라는 여성과 연인이 되었으나 사실 그녀는 최근 살해된 시카고 갱단 두목의 딸인 클레어 카몬티였으며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후 낮에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와일드독이 되어 범죄와 싸우기 시작했다.
         과격하게 싸워서 [[경찰]]에게 수배되었으나 지역주민들에게는 웅.
  • 요괴:가면라이더 . . . . 3회 일치
         일본에서는 요괴 '가면라이더'를 소재로 한 TV드라마나 극장 화가 자주 제작되는데, 대체로 웅적인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착각하는 사람이 매우 많지만, 요괴 가면라이더가 도시전설로 먼저 있었고, 그걸 소재로 하여 드라마나 화가 제작된 것이다.
  • 요괴:리모콘 숨기기 . . . . 3회 일치
         평소에는 인간의 눈에 뛰지 않게 모습을 숨기고 있다. 인간이 눈을 돌린 사이 리모콘을 숨겨서 곤란하게 만든다.
         보통 이 요괴가 리모컨을 숨기는 곳은 소파밑이나 사이라고 하며, 그외에 책밑이나 식탁위(...)~~그런데 숨겼는데도 못찾냐~~, 쿠션밑이나 아니면 주인밑이라고 한다.
  • 요괴:트위터 . . . . 3회 일치
         서양에서 처음 나타난 요괴, 전 세계 각지로 빠르게 퍼져서 이젠 이 요괴를 볼 수 없는 곳이 없다. 작고 푸른 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파랑새]]라고 하면 마치 희망을 느끼게 하지만, 흉조(凶鳥) 트위터라 불리며 여러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이 되는 요괴이다.
         트위터라는 이 요조는 사람의 말을 듣고, 이를 흉내내어 여러 곳에 퍼트린다. 이 새는 남의 말을 몰래 듣고 다른 사람에게 퍼트리는데, 그 말이 평범한 것이면 관없으나, 문제가 있는 말이면 큰 낭패를 겪게 된다. 트위터가 곁에 있는걸 깜빡하거나 모르고 혼잣말로 실언을 하여, 크나큰 낭패를 겪은 사람이 적지 않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트위터를 불행을 퍼트리는 흉조라고 부르며 두려워 한다.
         그런데 트위터의 가장 무서운 능력은 단지 말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다. [[국]]의 현자 퍼거슨 경에 따르면,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고 한다. 즉, 트위터는 인생을 낭비하게 만드는 요괴이다. 아 얼마나 무서운가.
  • 우라 게시판 . . . . 3회 일치
         일본 인터넷에서 학교 등 특정 단체에 공식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사이트로서, 그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게시판. 익명 게시판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주로 학교 같은 것에서 만들어지고 학생들에게 관리가 된다. 때때로 개인정보 유출, 온라인을 통한 집단괴롭힘 같은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서는 DC 인사이드의 학교 갤러리나, [[대나무숲]]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분류:웹사이트]]
  • 우라센케 . . . . 3회 일치
         삼천가가 나누어진 연유는, 소우탄이 은거를 결정하면서 그가 거주하던 후신안(不審庵)을 삼남 소우사가 이어받았으며 소우사의 후손은 오모테센케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소우탄은 후신안의 뒷편에 콘니치안(今日庵)을 지어서 살게 되었는데, 이것을 함께 거주하던 사남 소우시츠가 속받아 소우시츠의 후손은 우라센케로 불리게 된다. 오모테는 앞, 우라는 뒤라는 뜻으로, 콘니치안이 후신안의 뒷편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이다. 쉽게 풀이하면 "앞집 센가", "뒷집 센가". 그리고 차남 소유슈는 나중에 돌아와 이보다 좀 더 남쪽에 있는 무사시노코지라는 거리에 칸큐안(官休庵)을 지어 다도에 전념하게 된다. 그래서 무사시노코지센케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센가의 7대 죠신사이(如心斎)는 더 이 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오모테, 우라, 무사시노코지에서 각 1명만 센케(千家)라는 이름을 쓰기로 합의하였다. 이렇게 세 가문이 성립된 것이다.
  • 우천석 . . . . 3회 일치
         *** 어머니 - 좌산기시(左散騎常侍) 임성박(林成璞)의 딸<ref>부인이라는 설도 같이 기록되어 있다.</ref>
         **** 부인 - 미
         [[분류:생몰년 미]][[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문하시중]][[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단양 우씨]][[분류:무신정권]][[분류:삼별초]]
  • 우츠미 사토루 . . . . 3회 일치
         [[일본]]의 [[의사]]. 내과의사, 한방의사이며, [[음모론자]](…). 인터넷 에서 쓰는 닉네임은 미치광이 의사(キチガイ医).
          * 음식과 체질의 성 진단
  • 워터보딩 . . . . 3회 일치
         심문 대이 물을 들이마시지는 않으므로 폐에 물이 들어갈 일은 없다.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질식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미 법무부가 CIA에 적어보낸 메모에서는 한번에 40초 이 하는걸 금지했다. 실제로는 30분간 워터보딩을 지속한 경우도 있다고한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68020|워터보딩을 모티브로 한 놀이기구도 있다.]] Waterboard Thrill Ride라는 놀이기구인데, 1달러에 로봇들이 워터보딩을 하는걸 감할 수 있는 놀이기구라고 한다. 제작자인 스티븐 파워스는 워터보딩이 어떤 행위인지 쉽게 알려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 원피스/820화 . . . . 3회 일치
          * 둘은 크로커스를 회하며 그리워하고 크로커스가 배에 탄 원인이 어떤 해적단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브룩이 "그 해적단이 내가 있던 해적단"이라고 밝히니 놀라워한다
          * 이누아라시는 '''크로커스도 "모든 것을 아는 자"'''의 한 명이고 너희를 싫어하는게 아닌 이 거짓말 했을리 없으니 믿고 나아가라고 한다. 그리고 나미에게 똑부러진 항해사라고 칭찬한다.
          * 루피, 나미, 브룩, 토니토니 쵸파는 써니 호로 디를 탈환하러 간다
  • 원피스/880화 . . . . 3회 일치
          * [[샬롯 푸딩]]은 쇼콜라 타운의 부하 요리사들의 기억을 바꿔치기 해 [[디]]에 대한 정보를 조작한다. 디의 주도로 새로운 웨딩 케이크 만들기가 시작된다.
         == 세 ==
  • 원한해결사무소/3화 . . . . 3회 일치
         지난달 사장이었던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유언장이 공개되었는데, 동생이 대표이사가 되고 자신은 전문에 그쳐 동생 아래에서 일하게 된 것에 원한을 품었던 것이다. 히트품을 연달아 내놓던 동생과는 달리, 그는 경리부장으로서 수수한 일만 해왔으며, 맛에는 꽝이었기 때문이다. 또 이 가문은 매우 '다혈질'인 성격이었다.
          * 이 만화는 아무거나 집(…)의 이름을 붙이는데, 이번화에서 나오는 주간지가 '주간 집'이다.
  • 원한해결사무소/5화 . . . . 3회 일치
         토사쿠라는 젊었을 때 여자들에게 돈을 뜯기고 차인 경험이 있어, 남자를 제물로 매춘을 하는 놈들은 누구든 재판을 해야 한다는 삐뚤어진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토사쿠라는 갑자기 경찰에게 가택수색을 받는데, 집에서는 속옷이 가득 든 자가 발견되어 속옷도둑으로 체포되고 만다. 하루 뒤 토사쿠라는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지만, 곧바로 매스컴의 집중공격을 받게 된다. 그의 과거나 원조 OL 버스터즈에서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했던 것이 모두 폭로당한다.
         토사쿠라는 반론 기사를 실으려고 하지만, 편집장은 '퇴사할 인간'의 기획을 왜 채택해야 하나며 토사쿠라를 제지한다. 원조 OL 버스터즈의 취재비는 26만이었으나, 토사쿠라가 수증을 위조해서 21만을 지불하고 26만으로 수증을 고쳤던 것, 그리하여 무려 70만엔이나 횡령을 했던 것이다. 본래는 징계면직이지만 편집장은 본인이 퇴직하는 대신 횡령 건은 추궁하지 않겠다고 하며 그만둘 것을 종용한다.
  • 유니콘남 . . . . 3회 일치
         이 글에 대한 일본 넷 (주로 트위터)의 반응은 그냥 '그런 것도 있냐? 웃기네' 수준이었다.
         이런 뜻으로 쓰이는 사례가 인터넷 에서 더 나온다고 해도, 이 말이 처음 나왔다는 2014년 여름에서 2015년에 이르기까지 잡지나 어느 정도 신뢰성 있는 사이트에서 정리된 기사에서 소개하는 '유니콘계 남자'의 의미는 '처녀 광신자'가 아니라 '유니콘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남자'라는 뜻이다.
  • 유재호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문 표기 = Yoo Jae-Ho
         |사진 사이즈 =
         해병대 출신 [[윤요섭]]의 향을 받아 [[2011년]] 시즌 후 해병대에 입대하여 사병으로 복무하였다.
  • 육미당기 . . . . 3회 일치
         [[조선시대]]의 [[고전소설]]. 논평 가운데 작가의 이름으로 운고(雲皐)라는 아호가 언급되며, 서유(徐有英)이 유력한 저자로 보인다.
          * 줄거리는 [[구운몽]]과 [[적성의전]]의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백소저는 옥루몽의 강남홍처럼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무력만렙 최강 히로인(…)의 계보를 이어가는 캐릭터로서, 줄거리에서 보다시피 김소선은 별 활약이 없고 백소저가 다 때려부수고 다닌다.--다시는 유구국을 무시하지마라--
  • 육홍균 . . . . 3회 일치
         1900년 [[경북도]] [[선산]][[군(행정구역)|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를 졸업하고 [[일본]] 니혼 대학 문과를 수료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북도 선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민주국민당 중앙무위원을 역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우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윤찬수 . . . . 3회 일치
         |문 표기 = Yoon Chan-Su
         |사진 사이즈 =
         '''윤찬수'''는 [[KBO 리그]] 전 [[LG 트윈스]]의 선수이다. [[2009년]] 4분기 [[무 야구단]]에 합격하여 2년간 병역의무를 이행한 후 원 소속팀인 [[LG 트윈스]]로 복귀하였고 [[2011년]] 가을 방출되었다. [[2012년]] [[5월 26일]] 새벽 [[국군체육부대]] 소속 시절 친분을 쌓은 승부조작의 장본인이자 전 프로 축구 선수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함께 [[서울특별시|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귀가하던 부녀자를 납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현재 윤찬수는 공범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2013년]] [[1월 17일]],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같은 날 김동현도 징역 3년이 선고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045507 `특수강도' 前국가대표 축구선수 김동현 법정구속]</ref>
  • 은혼/574화 . . . . 3회 일치
         "그날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만든 무수한 무덤은 선생님이나 동료들 뿐만이 아닌 우리들의 무덤이기도 했다. 요시다 쇼요와 함께 그 제자들은 죽었다. 그 길이 더이 교차하게 될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걷더라도 선생님의 가르침만은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망설이며 굽어진 길을 가자고, 어떤 때는 실수로 꺾어진 길을 가자고. 각자의 무사도를 찾아 방황하고 번민하며 걷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길은 다시 한 번 교차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들의 길을 다시 한 번 이곳에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다. 그것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 한 순간의 해후일지도 모른다. 내일이 되면 우리들은 다시 검을 맞대며 서로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관 없겠지. 긴토키, 다카스기. 설령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다시 한 번 요시다 쇼요의 제자로 돌아갈 수 있다면, 친구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 쇼요의 제자 삼인방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다츠마의 포지션이 절절히 느껴지던 에피소드.
  • 은혼/576화 . . . . 3회 일치
         attachment:카무이의회.png
         attachment:카무이의회2.png
         * 카무이의 회은 몇 화 뒤에 나오는 가구라 가족의 과거사와 정확히 같은 구도.
  • 은혼/577화 . . . . 3회 일치
         * 긴토키는 "우미보즈는 몰라도 카무이는 죽이려 들거다"면서 어느 쪽이든 거기에 가구라가 있을 거라고 예한다
         attachment:정결전.jpeg
         * 자식들의 혈투를 막으려는 우미보즈의 부성애가 인적.
  • 은혼/614화 . . . . 3회 일치
          바루카스의 감동적인 연설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심지어 그쪽에도 황태자가 있냐고 묻는 바루카스의 목소리는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가 완전히 혼자 떠들고 있는 사이 이쪽에선 오우고쿠별 역사에 남을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설의 황자의 귀환이.
          >드라고니아는 더이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더이 오우고우 별의 드라고니아가 아니다.
  • 이근택(1865) . . . . 3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정치인/목록)]
         본관이 [[전주 이씨]]다. [[성종(조선)|성종]]의 아들인 경명군의 아주 먼 후손으로, 1865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 출신이며 초명은 근용(根湧)이다. 무신 집안이었지만 출사의 계기는 [[임오군란]] 때 충주로 피신한 [[명성황후 민씨]]에게 싱싱한 [[생선]]을 진함으로써 눈에 들어 발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성 황후가 환궁하면서 벼슬길에 들어섰다. [[1884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입문하였고 병조 참판 등을 역임 한 뒤 [[1897년]] [[대한제국]] 수립 당시 친위 연대 제3대대장으로 정부 전복을 꾀하려다가 발각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오늘은 [[암]]땅 내일은 [[강진]]
  • 이득을 준 배신자를 처단하기 . . . . 3회 일치
          * B가 궁지에 몰리는 등, 불리한 황에 놓이자, C가 끼어들어 B를 살해하거나 포획한다.(여기에 '배신'이 들어가기도 한다.)
          * 《[[원조비사]]》에 따르면, [[케레이트]] [[부족]]의 [[옹 칸]]이 패망하고, 옹 칸의 아들 셍굼이 도주하고 있을 때, 궁지에 몰린 셍굼의 부하 코코추(Kokochu)는 셍굼이 타는 말의 발목을 부러뜨려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아내도 남겨둔 채 도망쳐 칭기즈칸 진에 항복하였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주군을 배신하여 황야에 버리고, 아내를 버리고 혼자서 살겠다고 도망친 놈이라, 주군에 의리가 없고 아내에게 정분도 없으니 믿을 수 없는 놈이라고 비난하며 코코추를 [[참수]]하게 했다.
          * 《[[원조비사]]》에 따르면, 칭기즈칸과 대립하여 나이만 부족과 함께 싸우던 [[자무카]]는 나이만 족이 패배하자 탕글루 산에 들어가서 은신하였다. 황이 곤궁해지자 자무카의 부하들이 배신하여 자무카를 붙잡아 왔으나, 칭기즈칸은 그들은 물론 그 자손들까지 처단하도록 했다.
  • 이안 (시인) . . . . 3회 일치
         1999년 『실천문학』 시 부문 신인에 「우주적 비관주의자의 몽」 외 4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 2014년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를 내면서 시와 동시, 평론을 함께 쓰고 있다.
         전국의 초중고 교사, 학생, 학부모를 대으로 한 동시 강의를 해오고 있다.
  • 이인성 (화가) . . . . 3회 일치
         그는 [[1929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시작하였으며 [[1935년]]에 열린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창덕궁(昌德宮賞)을 수했다. [[1930년]]에는 [[일본]] 다이헤이요 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에 입학함과 동시에 일본 수채화 연맹(日本水彩畵聯盟) 회원이 되었으며 [[문부성미술전람회]]와 [[제국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입선하기도 하였다.
         [[이인성]] 화백은 향토색 짙은 풍경화로 조선의 [[고갱]]이라고도 불린다 풍경과 인물을 결합한 구화를 최초로 그린 화가로 경주의 산곡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붉은 적토가 그대로 드러난 흙바닥, 원색적인 색채가 사용됨과 동시에 하늘의 푸른색과 대비를 이루면서 강렬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대지의 붉은 색체는 원시적이고 전통적인 느낌을 준다.
  • 이장영 . . . . 3회 일치
         '''이장'''(李長榮, [[1955년]] [[1월 15일]] ~ , [[대구]])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을 역임한 경제부처 공직자이다.
         *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9D%B4%EC%9E%A5%EC%98%81&os=205879 이장 네이버 인물검색]
         * [http://search.daum.net/nate?q=%EA%B8%88%EC%9C%B5%EC%9D%B8%20%EC%9D%B4%EC%9E%A5%EC%98%81&w=tot&ppkey=71633&rtmaxcoll=PRF 이장 네이트 인물검색]
  • 이종진 . . . . 3회 일치
          * 위 문서 : [[정치인/목록]]. [[대구광역시/인물]]
         || '''외부 링크''' || [[http://www.ljj2012.kr/|공식 사이트]] ||
         1950년 경북도 달성군 다사면(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서 태어났다. 다사초등학교, 다사중학교, 대구농림고등학교(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구광역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 이종화 (1949년) . . . . 3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봉덕동<br />(현.[[대구광역시]] [[남구 (대구광역시)|남구]] 봉덕동)
         |웹사이트 =
         * 1949. 07. 16 : [[경북도]] [[대구시]] 봉덕동(현.[[대구광역시]] [[남구 (대구광역시)|남구]] 봉덕동) 출생
  • 이지우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문 표기 = Lee Ji-Woo
         |사진 사이즈 =
         ! style="color:white;background-color:#408080;" |'''인율(%)'''
  • 이택희(정치인) . . . . 3회 일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971년의 [[제7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출마하지 못하였다. 이후 [[김삼]] [[총재]] 체제 때는 비주류에 속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시|제천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이종근(1923)|이종근]]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시-제원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춘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신한민주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김대중]]-[[김삼]]에 반기를 들고 [[이철승]], [[이택돈]] 등과 [[이민우 구]]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김용남(1950)|김용남]](용팔이) 등 [[정치깡패]]를 동원하여 [[통일민주당]] 창당을 방해하였다.
  • 이한응 (1849년) . . . . 3회 일치
         [[충청북도]] [[중원군]] 출신으로, 아버지는 이복(李復榮)이고 어머니는 능성구씨로 수군절도사 구명원(具命遠)의 후손 구병희(具秉禧)의 딸이다. 계모는 성주이씨로 이선(李銑)의 딸이다. 다른 이름은 이한경이다.
         [[1870년]](고종 7년) 봄 무과(武科)에 급제, 의정 [[김병학]](金炳學)의 건의로 특별히 가설 내승(內乘)에 임명되었다.<ref name="dager1">고종실록 7권, 1870년(고종 7년, 개국 479년) 5월 20일 을유 1번째기사, 조선 개국(開國) 479년 문희묘, 의소묘, 육궁, 연호궁, 선희궁에 전배하다</ref> [[김병학]]은 '(故) 충장공(忠壯公) 이복남(李福男)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절개와 의리에 대해서는 열성조(列聖朝)로부터 여러 번에 걸쳐 보답하는 은전(恩典)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그의 봉사손(奉祀孫)이 과거에 합격하였으니, 마땅히 조정에서 뜻을 보여주는 거조(擧措)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종전에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선전관(宣傳官)과 내승(內乘) 중에 가설(加設)하여 단부(單付)한 전례(前例)가 이미 많았다'며 그에게도 선전관이나 내승을 가설하여 임명해줄 것을 청하였다.<ref name="dager1"/>
  • 이홍기(군인) . . . . 3회 일치
          * 위 문서: [[대한민국 국군/인물]], [[가톨릭/인물]]
         || 23대 [[김기]] || → || 24대 이홍기 || → || 25대 [[권혁순]] ||
         [[1953년]] [[8월 25일]][* [[음력]]이다.], [[경북도|경북]] [[김천시|김천]] 출신으로 [[김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 [[육군사관학교]] 33기로 입교해 1977년에 임관했다. 2012년 [[제3야전군사령관]] 이·취임식에서 이임과 동시에 36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예편했다.
  • 인조 . . . . 3회 일치
         인조는 [[조선]]의 16대 왕이다. [[인조반정]]을 통해 집권했으며, 명과 후금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표방한 [[광해군]]을 비판하면서 존명배금(명을 따르고 후금을 배척한다)를 내걸었다. 그러나 현실은 명이 후금보다 여러모로 딸리는 황이었기에 애매한 외교정책을 실시할 수 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다.
         청나라한테 굴복한 일 외에도 이괄의 난을 비롯해 권력을 둘러싼 내분을 조정하지 못해 혼란을 야기한 부분이라던가 소현세자를 대로 보인 졸렬함 등으로 인해 아마도 안티가 가장 많은 조선 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일곱개의 대죄/169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제리코 너 또한 힘을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려 했지 않냐고 반박하고 제리코는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거라며 "결국 처입는건 너 자신"이라고 하지만 고서는 귀기울이지 않는다.
         * 호크는 자신의 원래 전투력이 3000이고 마력을 얻어서 배 이 올랐으니 10만은 될 거라고 착각하며 낙승일 거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 고서는 절망을 보여줘서 에스카노르의 의식을 원히 잠재워 버린 거였지만, 그는 잠들지 않았다.
  • 일곱개의 대죄/172화 . . . . 3회 일치
          * 그로키시이나는 창으로 강력한 에너지파를 날리고 멜리오다스는 거기에 휩쓸려 멀리 날아간다.
          * 킹도 십계를 대할 수 있는건 멜리오다스 밖에 없다며 주저한다.
          * 예을 뛰어넘어서 십계의 압도적인 패배
  • 일곱개의 대죄/182화 . . . . 3회 일치
          * 현재의 멜리오다스는 "연옥"에 있는데 수한 목소리가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말을 걸자 멜리오다스는 "싫다"고 거절한다.
          * 한편 멜리오다스의 혼은 연옥이라는 곳에 있는데.
          * 수한 목소리가 "기분은 어떠냐? 느긋하게 이야기하자"고 말을 건다.
  • 일곱개의 대죄/183화 . . . . 3회 일치
          * 그때 십계 중 한 명이 "내 앞에서 누구라도 증오를 품은 자는 남을 처 입힐 수 없다."고 말한다.
          * 마신왕의 말에 따르면 멜리오다스가 부활할 때마다 감정을 먹어치워왔다는 건데, 이번에 멜리오다스가 부활하게 되면 인격에 향이 있을지도?
          * 에스타롯사가 리벤지 카운터를 막을 수 있었던 것도 계금의 힘으로 보이는데 자애의 계금은 "증오하는 자가 누구를 처입힐 수 없는 힘"이다.
  • 일곱개의 대죄/193화 . . . . 3회 일치
          * 자라트라스는 퍼지(정화)가 먹히지 않는 이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다는 각오를 다진다.
          * 자라트라스와 핸드릭슨은 드레퓌스(프라우드린)을 대로 선전하지만 점차 수세에 몰린다.
          * 자라트라스는 반쯤은 언데드 같은 태이기 때문에 데스 퍼지를 써도 괜찮은 건지 애매하다.
  • 일본 니카타현 이토이가와시 대화재 . . . . 3회 일치
         == 세 ==
         22일 오전, 한 라면집에서 발생한 화재는 강풍을 타고 인근 주택과 점가로 번졌다. 10시간 넘게 지속되면서 약 4만㎡ 범위를 불태웠고, 화재범위 내에서 총 150여개의 주택과 점포가 전소됐다. 소방차 10여대가 출동하였으나, 너무 화재가 심하여 불길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화재로 주민 800여명이 긴급 대피하였으며, 2명이 가벼운 경을 입었으나 인명피해는 적었다.
  • 일본어의 청음과 탁음 . . . . 3회 일치
         か행, た행, は행이 청음으로 분류되며 그중에서 は행은 원래 그 자체가 /p/소리였으나 헤이안 시대 이후로 순음퇴화 현을 거치면서 현재의 /h/가 되었다. 현재 /p/음가는 '반탁음'으로 분류하며 は행 위에 고리 모양의 기호를 붙여 표기한다.
         음절 위치나 화자의 컨디션에 따라 한국인 귀에는 당히 변화무쌍하게 들린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어의 청음은 숨소리(aspiration)가 우리말의 평음보다는 약간 높되, 격음보다는 낮은 음가이다. 진짜 일본인들과 같은 느낌으로 발음하는 방법은, '''카, 타를 소리내면서 힘을 살짝 빼주는 것이다.''' 아무래도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에서 어두 청음 표기를 탁음과 구별 없이 무조건 '가, 다'로 정해버린 이유가 이것 때문인 듯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두 한정으로 이 발음이 당히 어려운데, '''(으)소리를 붙이는 느낌으로 가, 다, 바라고 하면 된다.'''
  • 일본의 대학서열용어 . . . . 3회 일치
         일본 최위권 사립대학인 와세다 대학(早稲田大学)과 게이오 대학(慶應義塾大学)을 묶어서 뜻하는 말이다.
         간사이 지방의 4개 명문 사립대학을 묶은 말이다.
         간사이 대학(関西大学)
  • 일즙삼채 . . . . 3회 일치
         1종류의 국(汁,즙)과 3종류의 반찬(菜,채)로 구성되는 차림을 뜻한다. 3채는 [[회]](膾), 조림(煮物), 구이(焼き物)로 구성한다. 다만 일 가정요리에서는 요리의 종류는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을 2개 이 먹는 경우는 없는데 왜 '일즙'을 꼭 붙일까.
  • 임정화 . . . . 3회 일치
         | 웹사이트 =
         <!-- 수 -->
         [[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역도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역도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역도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역도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중학교 동문]][[분류:대구서부공업고등학교 동문]]
  • 임페라토르 . . . . 3회 일치
         로마 공화정에서는 대개 1개 군단 이의 지휘관이 휘하 병사들로부터 임페라토르의 칭호를 받았다. 내전기에는 다수의 군단을 거느리는 인물들이 나타나면서, [[폼페이우스]]나 [[안토니우스]] 같은 거대 군벌도 일적으로 이 칭호를 쓰게 된다.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성립하면서 군단편성권과 같은 군권을 자신에게 독점시켜 황제는 유일한 '임페라토르'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구멍이 있었는데, 내전기의 로마 전통에 따라서 병사들은 자신의 지휘관을 [[투표]]로 선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군단 병사들의 지지를 얻은 지휘관은 언제든지 '임페라토르'로 승격될 수 있었다. 임페라토르의 칭호를 얻게 된 사령관은 사실 '잠정 황제'가 되는 것이며, 여기에 [[원로원]]의 동의를 얻으면 진짜 황제가 될 수 있다. 평시에 황제(현임 임페라토르)의 권위가 높다면 이러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지만, 황제의 권위가 떨어지는 정치적 혼란기에는 언제든지 제국 각지에서 임페라토르가 난립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이는 로마 제국에서 여러 차례 있었던 내전과 군인 황제들의 지배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자타라 . . . . 3회 일치
         [[배트맨 TAS]]에 등장. 자타나가 등장한 에피소드로 회 파트에 등장했다. [[ 저스티스]]에서도 등장했는데 여기에선 [[저스티스 리그]]의 일원이고 딸인 자타나가 저스티스의 멤버. [[닥터 페이트]] 에피소드에서 자타나를 위해 자신이 닥터 페이트가 된다.
  • 장갑차 . . . . 3회 일치
         장갑을 씌운 [[자동차]]. 통 차량과 달리 두꺼운 장갑이 사용되어서 높은 방어력을 얻는다.
         어 명칭인 Armored Personnel Carrier를 줄여서 APC라고도 한다.
         어명칭인 Infantry Fighting Vehicle를 줄여서 IFV라고도 한다.
  • 장기오 (공무원) . . . . 3회 일치
         '''장기오'''(張基梧, [[1932년]] [[2월 3일]] ~ )는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 [[기업가|국기업가]]이다.
         *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경대학원 최고경자과정 수료]]
  • 장익 (1933년) . . . . 3회 일치
         | 징 =
         [[1993년]] 춘천교구 Thomas Stewart(박 토마스)주교가 건강의 이유로 교구장 직에서 사임하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장익 신부를 제 6대 천주교 춘천교구장으로 임명하면서 [[주교]]로 서품하였다. [[12월 29일]] 주교로 서품받았다.
         ** 형 : 장 (張英, [[1920년]] [[7월 2일]] ~ [[1922년]] [[음력]] [[4월 6일]])
  • 장정희(배우) . . . . 3회 일치
          * 위 문서: [[배우/한국]]
         === 화 ===
          * [[2008년]] [[아기와 나(한국 화)|아기와 나]]
  • 장준영 (축구선수) . . . . 3회 일치
         |이름=장준<br>張竣營
         '''장준'''(張竣營, [[1993년]] [[2월 4일]] ~ )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며 포지션은 [[수비수#센터백|센터백]]이다. 현재 [[대한민국]]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활약하고 있다.
         [[2018년]] [[안현]]과 트레이드되어 [[성남 FC]]로 이적하였으나, 이적 동시에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임대되었다.
  • 장혁진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문 표기 = Jang Hyuk-Jin
         |사진 사이즈 =
         ! style="color:white;background-color:#408080;" |'''인율(%)'''
  • 장희진 (1944년) . . . . 3회 일치
         == 수 ==
         * [[1982년]] 동아연극 연기
  • 저스디스 . . . . 3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JUSTHISeung.tumblr.com/ Tumblr] [https://twitter.com/JUSTHISeung Twitter] [http://soundcloud.com/JUSTHISeung SoundCloud] [https://www.youtube.com/user/JUSTHISeung YouTube] [https://instagram.com/justhiseung Instagram]
         2017년 8월 8일, [[스윙스]]의 두 번째 레이블 [[인디고뮤직]]의 세 번째 아티스트로 입되었다.
         == 수 ==
  • 전근표 . . . . 3회 일치
         |문 표기 = Jeon Keun-Pyo
         |사진 사이즈 =
         '''전근표'''(全根杓, [[1977년]] [[3월 5일]] ~ )는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이다. 2018년 현재 [[BB&C]]라는 기업의 대표이사이며,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스포츠 애널리스트로 교육 연수를 받는다.
  • 전라남도 . . . . 3회 일치
         [[암군]]''' || 靈岩郡 || 27,335 || 58,524 || 603.49
         [[광군 (전라남도)|광군]]''' || 靈光郡 || 26,004 || 56,338 || 475.04
  • 전민수 . . . . 3회 일치
         |문 표기 = Jeon Min-Su
         |사진 사이즈 =
         [[2017년]] [[8월 25일]] [[NC 다이노스|NC]]전에서 우익수 수비를 하던 중 왼쪽 어깨에 부을 입었고 검진 결과 어깨 근육막이 파열되어 시즌 아웃되었다.
  • 전상우 (1953년) . . . . 3회 일치
         '''전우'''(全湘雨, [[1953년]] [[2월 11일]] ~ , [[서울특별시|서울]])는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 1997.01 ~ 1998.03 : 통산업부 전자부품과장
         == 수 ==
  • 전성인 . . . . 3회 일치
         2012년 [[안철수]] 후보의 대선캠프에 합류하여 안후보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일을 맡기도 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 장하성·전성인·이봉의 3인방 앞세워 安, 재벌개혁 선명성 놓고 文과 신경전 |url=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1015031206108&type=& |출판사=조선일보 |날짜= 2012-10-15 |확인날짜=2013-02-10}} </ref> 향후 진로에 관한 이견 차이로 그만두었다.<ref>{{뉴스 인용 |제목=전성인 교수도 "안철수 정책 자문 그만하겠다" |ur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3112103960&d=2013112103960 |출판사=조선일보 |날짜= 2013-11-21 |확인날짜=2018-01-17}} </ref>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인 [[김조]]의 공정거래위원장 청문회 과정에서 김조를 “우리보다도 더 깨끗한 사람”이라며 공개적으로 옹호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조의 도덕적이고 청렴한 삶을 증언합니다” |url=http://m.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97666.html?_fr=gg |출판사=한겨레 |날짜= 2017-06-06 |확인날짜=2018-01-17}} </ref>
  • 전유현 . . . . 3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수 ==
  • 전율 . . . . 3회 일치
         |소속사 = 매니지먼트이
         * [[2017년]] [[네이버TV]] 웹드라마 《[[손의 흔적]]》 - 랩실 연구원 / 속 컴패니언걸 역
  • 전태규 . . . . 3회 일치
         [[1999년]] 하반기부터 프로게이머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01년]] 반기 KOR에 입단하였다. 초기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2002년]] 하반기부터 방송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부터 [[2004년]]에 걸쳐서는 양대 방송대회에서 4강, 결승까지 진출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프로토스로서 테란전, 저그전에 모두 강한 것으로 유명했지만, 같은 프로토스전에서는 매우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ref>방송경기에서 테란유저 나도현의 프로토스를 대로 패한 적도 있다.</ref>. 전성기 시절에도 개인리그에서 프로토스에게 져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 경력중==
  • 절대가련 칠드런/443화 . . . . 3회 일치
          * 사고 예보까지 12분 밖에 남지 않은 황.
          * 그때 시호가 수한 낌새를 눈치채고 경계시킨다.
          * 마츠카제는 아오이가 어딘가에 갇혔을 거라고 판단하고 카오루에게 계단비구로 처넣어 버리라고 지시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44화 . . . . 3회 일치
          * 시호의 사이코메트리로도 감지가 되지 않아서 적은 다른 차원에 숨어 있을 걸로 예된다.
          * 마츠카제는 유리가 잡혀가는 도중 차원의 문이 열리는 기미가 없었다는 걸 확인하고 발을 바꾼다.
  • 절대가련 칠드런/449화 . . . . 3회 일치
          * 효부 쿄스케의 감염은 예보다 빠르다. 시간이 촉박해진다.
          * 효부는 세일즈 의 경쟁자라고 설명한다. 사실 이 나라의 내전도 블랙 팬텀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
          * 현재 블랙팬텀은 회편에 나오는 블랙팬텀이 전신으로 보인다. 아마도 길리엄의 부친이 세운 시절의 조직으로 추정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0화 . . . . 3회 일치
          * 마기는 자신없어 하지만 막 시도해 보니 간단하게 성공.
          * 이런 황도 모르는 헬기는 애송이들 뿐이라고 생각하고 재차 공격을 가하는데...
          * 그러면서 "처음하곤 위력이 달라졌다. 전엔 헬기에겐 대도 안 돼서 죽을 뻔 했는데."라고 놀린다. 결국 그때는 헬기를 이길 수 없었던 듯.
  • 절대가련 칠드런/462화 . . . . 3회 일치
          잠잠한 것 같았지만 정신오염물질(레어메탈)이 잠복하고 있던 사카키의 팔에서 뛰쳐나온다. 분출된 레어 메탈은 마치 블랙팬텀의 망령 같은 모습으로 괴로워하다 흩어져 버린다. 혈청은 성공. 사카키는 기뻐하며 "블랙 팬텀에 의한 정신오염물질 해독 혈청"을 줄여서 STAP라 명명한다.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사실 진짜 의미는 "스팟하고 해결"에서 따온 것. 그 밖에도 "사카키"나 "사이코", "안티도핑"같은 이름도 제시했지만 모두 구리다가 거절. 그냥 "혈청"으로 끝난다.
          * 한편 미나모토의 은신처에서 멀지 않은 곳. 뭔가 익숙한 목욕탕이 보인다. 역시 익숙한 주인이 카운터를 보고 있는데 수한 남자가 목욕탕에 들어간다.
          * 미나모토는 용무를 묻기에 앞서 그가 어떻게 여기에 온 건지 묻는다. 효부는 [[마츠카제 코우이치]]를 경유에 이곳에 접근했다. 아직도 학생회장을 연기하고 있는데 마츠카제 쪽에서 먼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접촉했다. 하지만 학교는 이미 바벨의 감시가 이루지고 있을지 모르는 곳. 효부는 판도라도 같은 문제가 있는건 맞지만 여기서 담은 무리라고 거절한다. 그러면서 마츠카제의 등을 떠미는데, 그때 텔레파시로 그에게 승락의 메시지를 전한다. 조건은 판도라에도 손을 빌려주는 것.
  • 정동현 (배우) . . . . 3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 세종대학교 화예술학과
  • 정병희 . . . . 3회 일치
         |문 표기 = Jeong Byeong-Hui
         |사진 사이즈 =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85963 한화, 정병희와 입단 계약] 《한국일보》, 2001년 7월 13일</ref> [[2005년]] 시즌 후 [[내야수]] [[김민재 (1973년)|김민재]]의 보 선수로 이적했다. 이후 입대하여 [[2010년]]에 제대하자마자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되었다.
  • 정선 (화가) . . . . 3회 일치
         |그림설명=독서 여가, 정선의 자화으로 보인다.
         여행을 즐겨 [[금강산]] 등의 전국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관아재(觀我齋) [[조석]](趙榮祏)과 함께 삼재(三齋)라고 불렀다. 강한 농담(濃淡)의 대조 위에 청색을 주조(主調)로 하여 암벽(岩壁)의 면과 질감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일대에 그쳤다. 문재(文才)가 없었던 탓으로 다만 서명과 한두 개의 낙관(落款)만이 화폭 구석에 있을 뿐, 화제(畵題)가 없는 것이 이채롭다.
         18세기 조선 화단을 이끌었던 [[강세황]]은 겸재 정선이 실제 경치를 잘 그린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ref name="강세황평">{{서적 인용|저자=변섭|제목=1월의 문화인물 미술인 강세황|출판사=문화체육부·한국문화예술진흥원|연도=1995|쪽=15}}</ref> 그러나 강세황은 진경을 그릴 때는 각 장면에서 알맞은 화법을 찾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ref name="강세황평"/>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정선의 산수화를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다.
  • 정성곤 . . . . 3회 일치
         |문 표기 = Jeong Seong-Gon
         |사진 사이즈 =
         그러나 2016 시즌에는 시즌 초반 선발 투수로 등판했을 때 성적이 당히 안 좋아 6월부터 불펜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 정성민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문 표기 = Jeong Sung-Min
         |사진 사이즈 =
         ! style="color:white;background-color:#408080;" |'''인율(%)'''
  • 정재민(2001) . . . . 3회 일치
         {{화인 정보
         | 웹사이트 =
         [[분류:200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 배우]][[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정재호 (1930년) . . . . 3회 일치
         *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임논설위원
         * (주)한국경정보센터(KMIC) 회장
         * [[자유민주민족회의 임의장]] 겸 대변인
  • 제2편성제도 . . . . 3회 일치
         제2편성제도하에서, 평시에 소련군의 사단장은 1명이 아닌, 2명의 부사단장을 거느린다. 1명은 통 임무를 수행하며, 다른 1명은 '제2편성 사단장' 직을 가지고 있다. 사단참모장인 1명의 [[대령]]은 2명의 중령을 부참모장으로 휘하에 두고 있으며, 이들 역시 '제2편성 사단 참모장' 직을 가지고 있다. 이 보직은 비밀로 되어 있다. 하부에서도 같은 원리로 1명의 연대장은 2명의 부연대장, 1명의 대대장은 2명의 부대대장을 거느린다.
         전시 황에서 사단장은 완편 사단을 거느리고, 2명의 부사단장 가운데 1명만 데리고 전선으로 이동한다. 하부에서도 이는 반복되어, 평시에 부사단장, 부참모장, 부연대장, 부대대장을 수행하던 사람이 각 1명씩 남게 된다. 이들은 동원명령을 받고 입소하는 예비군으로 새로운 사단을 편성한다. 새로운 사단에는 기존 사단이 무장을 교체하면서 남겨두었던 구식 무기들을 지급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은 소련군이 182개 사단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141개만이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동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극동지역 방어를 위해서 쓰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군은 제2편성제도를 바탕으로 그 배 이의 사단을 편성할 수 있었다.
  • 조선형(연극배우) . . . . 3회 일치
         {{화인 정보
         |수 =
         |웹사이트 =
  • 주영(가수) . . . . 3회 일치
         ||<:><#797979> {{{#white '''본명'''}}} ||<-12><(><#FFFFFF> 김주 ||
         ||<:><#797979> {{{#white '''예명'''}}} ||<(><#FFFFFF> 주 ||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주, version=37)]
  • 주주장 . . . . 3회 일치
         |웹사이트=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언론인]][[분류:미국의 기자]][[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에미자]][[분류:유대계 미국인]]
  • 지훈(TRCNG) . . . . 3회 일치
          * 위 문서: [[TRCNG]], [[가수/한국]], [[대한민국 아이돌]], [[보이그룹]], [[보이그룹/목록]], [[한국 아이돌/역사]]
         ||<#262626> {{{#FFFFFF '''학력'''}}} ||<#ffffff><(> 일산낙민초등학교, 일산백석중학교 (졸업)[br][[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연극화과 (재학) ||
         드라마 [[광의 재인]], [[다섯 손가락]], TV소설 [[삼생이]], [[여왕의 교실(MBC)|여왕의 교실]][* 멤버 [[지성(TRCNG)|지성]]과 함께 출연했다. 여담으로 [[SF9]]의 [[찬희(SF9)|찬희]]도 출연했는데, 친분이 있을지는 미지수.], [[사랑은 노래를 타고]], [[닥터 이방인]] 등에 출연했다.
  • 진격의 거인/78화 . . . . 3회 일치
          * 베르톨트는 병단이 있는 위치에서 거인화 해 일대를 날려 버리려 하다가 근처에 라이너가 빈사 태임을 알고 중단한다
          * 라이너는 머리가 날아가는 중을 입었지만 의식을 거인의 뇌로 옮겨서 살아있다. 머리의 복구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 아르민은 라이너가 가까이 있어 변신하지 않을 거라고 예했지만, 라이너는 의식을 조금씩 되찾아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고 베르톨트는 거인화한다
  • 진격의 거인/79화 . . . . 3회 일치
          * 아르민 알레르토는 베르톨트 후버의 예대로 동요해서 제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 장 키르슈타인이 대신해서 판단을 내리는데 아르민은 지금 태의 자신은 도움이 못 됨을 알고 장에게 지휘를 부탁한다
          * 이 만화 최초로 아르민이 판단을 못 내리는 황에 직면했다.
  • 진동한 . . . . 3회 일치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1986년 한국시리즈 1차전 광주경기 때 3회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7회말까지 잘 막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다가 해태팬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맞고 교체되었다. 큰 부은 아니었지만 투수는 [[김시진]]으로 교체되었고 이후 김시진이 불을 지르며 역전패했다. 한창 잘 던지고 있던 선수가 예기치 않은 부으로 교체되고 경기마저 패하자 [[대구아재|삼성팬]]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3차전 대구경기에서도 삼성이 역전패를 당하자 분노한 삼성 팬들은 경기 후 해태 구단버스에 불을 질러 분풀이를 한 것. 이 구단버스 방화사건은 프로야구 관중 난동 사건하면 늘 언급이 되며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 참군인 . . . . 3회 일치
          * 육군 내부적으로 '참군인 대'이라는 이 있다.
          * --참교육과는 관없다.--
  • 창작:6피트 계획 . . . . 3회 일치
         마법은 위험요소가 너무 큰지라 쇠퇴 직전인 태.
         200X년, 이세계와의 접촉이 발표되었다.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세이 대충 망했다.
         반년이 지난 후, 주인공은 세을 원래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이세계로 흘러들어온다.
  • 창작:악마의 열매 . . . . 3회 일치
          * [[발암|발암발암 열매]] : [[발암]]스러운 짓을 해서 대가 [[스트레스]]로 [[암]]에 걸리게 만든다. 피아 식별이 안 되는 것이 단점.
          * 사람사람 열매 모델 아재 : 사람사람 열매의 아종 중 하나. 먹은 사람을 아재로 만든다. 소위 아재아재 열매라 불리는 종류. 먹은 사람을 아재로 만들며 썰렁한 아재 개그와 발암을 유발하는 꼰대 능력을 부여한다. 아재 개그는 이 열매의 주요한 기능으로 이말년 서유기에 나오는 감요검처럼 듣는 이를 빡치게 하다 결국 죽게 만드는 무서운 능력. 아재 개그를 구사하기 위해 언행이 크게 바뀌게 되는데, 이 바뀐 언행이 발암발암 열매처럼 대를 발암시키는 능력도 일부 지니게 된다. 다만 이 열매도 단점이 있으니, 아재들처럼 항 드러누우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관절염이라는 무시무시한 패널티가 걸린다.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인물 . . . . 3회 일치
          * '''위 항목 : [[창작:트와일라이트 시티]]'''
         ||<#8B0000> '''{{{#white 장르}}}''' || 일, 범죄, 추리 外 ||
         각 문단에서 위쪽은 핵심 줄거리에 중요한 향을 끼치는 캐릭터들이고, 아래는 2차 줄거리에 관련된 캐릭터들이다.
  • 천송이 . . . . 3회 일치
         | 웹사이트 = {{싸이월드|47210552}}
         | 코치 = 김주
         [[분류:199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체조 선수]][[분류:서울세종고등학교 동문]][[분류:세종초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리듬 체조 선수]][[분류:양 천씨]]
  • 천안함 침몰사건 . . . . 3회 일치
         == 세 ==
         군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웅'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생존자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발언이 많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타났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612028&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SBS뉴스)]]
         천안함 사건 당시 생존한 정주현 중사[* 천안함 사건 이후 소말리아 청해 부대로 파병을 자원했다.]는 2015년 6월 전역하여, 청해부대소속 부대 부사관들을 대으로 진행한 내부 교육 자료에서 "승조원들의 안이한 태도 떄문에 피격을 당했다."고 되어 있었다며 분개하였다.
  • 청년 튀르크 당 . . . . 3회 일치
         어 : Young Turks--턱스?--
         [[파리]]에서 학생, 청년 사관, 지식인들이 비밀 결사인 '통일진보위원회(Committee of Union and Progress/CUP)'를 조직하여, 헌법의 부활과 전제 정치 폐지를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아메드 리자라는 지식인이 이 단체의 주대변인이 되었다. CUP는 [[자유주의]] 사을 유포하고 고무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 최광수 (공무원) . . . . 3회 일치
         제7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1956년]] [[2월]]을 기하여 외무부에 입부되었다. 그는 [[경기고등학교|서울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195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의 [[외교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주미 3등서기관, 주일 2등서기관, 동북아주과장, 주미 참사관, 통진흥관, 아주국장, 국방부 차관, 대통령비서실장, 제1무임소장관, 체신부장관,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주유엔 대사, 외무부장관, [[하버드 대학]] 아시아문제연구소 초빙연구원([[1992년]]-[[1993년]])을 역임하였다.
         * [http://www.mofat.go.kr/mofat/mk_a007/mk_b041/mk_c90/1172573_27881.html 외교통부]
         {{국가보위비대책위원회 위원}}
  • 최단비 . . . . 3회 일치
         |웹사이트 =
         * 《님과 남 사이 1》([[매일방송|MBN]], 2012년 ~ 2013년)
         * 《님과 남 사이 2》(MBN, 2013년 ~ 2014년)
  • 최병일 . . . . 3회 일치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통협력연구소 소장
         * [[외교통부]] 정책자문위원
         * [[한국협학회]] 회장
  • 최서일 . . . . 3회 일치
         1906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ref>통천최씨 족보에는 전라남도 완도군 약산면 관산리에서 출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f> [[도쿄 대학|동경제국대]] 수산대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이후 [[조선총독부]] 산업기사를 지냈다. 해방 이후 (주)조선수산개발 사장으로 사업을 펼치다 공직에 들어섰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공부|공부]] 수산국장과 초대 해무국장을 지냈다. [[1960년]] 해무청 청장에 임명되었다. 1963년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완도군]]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제 6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민주공화당 중앙임위원을 지냈다. 1970년에 사망하였고, 묘는 양주군 모란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 최성조 . . . . 3회 일치
         |웹사이트 =
         * [[KBS]] [[오감만족 세은 맛있다]]
         * {{공식 웹사이트|http://www.gancoach.com/|간코치몰}}
  • 최운정 . . . . 3회 일치
         | 웹사이트 =
         == 수 경력 ==
         노란색은 위 10위 안에 든 게임.
  • 최원제 . . . . 3회 일치
         |문 표기 = Choi Won-Je
         |사진 사이즈 =
         [[경찰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활약이 미미해 [[2014년]] 시즌부터 타자로 전향했다. [[2018년]] [[10월 19일]]에 방출되었다.<ref>[http://news1.kr/articles/?3455015 장원삼·조동찬·배섭 등 17명, 삼성 떠난다] - 뉴스1</ref>
  • 최은희 (희극인) . . . . 3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우먼)
         | 웹사이트 =
         * [[식의 여왕]] ([[GTV]])
  • 최재만 . . . . 3회 일치
         |학력=[[동아방송예술대학]] 음악계열 졸업
         |웹사이트=}}
  • 최재희 . . . . 3회 일치
         | 가족 = [[최원정]](누나), [[최철 (기자)|최철]](자형)
         | 웹사이트 = {{페이스북|jaehichoi|최재희}}
  • 최휘영 . . . . 3회 일치
         '''최휘'''(崔輝永, [[1964년]] [[4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전직 [[언론인]]이다. [[서울특별시|서울]] 태생으로 [[2012년]] 현재 NHN Business Platform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1990년]] [[서강대학교]] 문학과 졸업
  • 취활 . . . . 3회 일치
         주로 [[대학생]], [[대학원생]], [[단기대학]] 학생 등이 졸업 전년에서 졸업년에 걸쳐서, 민간기업에서 채용 [[내정]]을 받기 위하여 하는 구직 활동을 뜻하는 말이다. 취직과 관련하여 인터넷 취직 사이트 참가, 기업 취직 설명회 참석, 성격 테스트, 적성 검사, [[면접]] 등을 거치는 과정을 종합하여 취활이라고 말한다.
         민간 기업에서 타사보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려고 취업 활동을 조기화하는 경향이 강하여 취업 활동 기간이 장기화하자,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에서는 1997년에 윤리헌장을 제정, 2013년에 채용전형지침을 제정하여, 취업 활동 기간에 제한이 생겼다. 일본에서는 졸업 전년도 3월 부터 학생 대 설명회가 해금되고, 이때부터 취업 사이트에 등록할 수 있다. 면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졸업 학년도 8월 1일 부터이다. 그리고 내정은 졸업 학년 10월 1일 이후로 되어 있다. 이 규정은 신사협정으로 벌칙 규정은 없다.
  • 카맛테쨩 . . . . 3회 일치
         자신을 걱정하고 돌봐주기를 바래서, 이한 언동을 반복하는 사람. 인터넷에서는 [[SNS]]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힘든 감정을 적극적으로 발신한다. "이젠 싫다.","죽고 싶다."라면서 사람을 걱정하게 하는 말을 쓰며, "무슨 일이야?", "큰일이네"라고 말해주는 것을 기대한다. 주위에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게 할 스토리를 만들기도 한다. [[리스트 컷]] 등의 처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카마우(構う)는 대를 염려하다, 신경쓰다라는 뜻이며, [[쨩]](ちゃん)을 붙여서 애칭처럼 만든 것이다.
  • 카자미노 시 . . . . 3회 일치
          * 위 문서: [[가공의 도시]],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작중에서, 당히 섬세한 시각 묘사가 나오는 미타키하라와는 달리, 카자미노는 거의 묘사가 없는 도시이다.--드라마CD라서 시각 묘사를 할 수 없다.--
         [[분류: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분류:가의 지명]]
  • 카타르시스 . . . . 3회 일치
         카타르시스는 그리스어 katharsis에서 나온 단어이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정화(淨化)를 뜻한다. 어권에서는 문학과 정신분석학에서 주로 사용된다.
         여담으로 흔히 일반 사회에서 카타르시스는 그냥 '통쾌하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서 카타르시스는 비극을 대으로 하기 때문에 요즘 기준으로는 거의 '''[[발암]]에 가까운 황'''(…)을 카타르시스로 보는 경우가 많다.
  • 캐리 피셔 . . . . 3회 일치
         [[미국]] 헐리우드에서 활동한 화 배우, 작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레아 오르가나 솔로]] 역할로 유명하다.
         데비 레이놀즈(Debbie Reynolds)와 에디 피셔(Eddie Fisher)의 딸이며, 1956년 캘리포니아 비버리힐즈에서 태어났다. 1975년 10대 시절에 화 샴푸(Shampoo)로 데뷔했다.
         2016년 12월 27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2월 23일 [[런던]]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비행하던 도중에 발작을 일으켰으며, UCLA 메디컬 센터에 입원했다. 안정된 태를 유지했으나 27일 사망했다.
  • 캡틴 아메리카 . . . . 3회 일치
         [[애국]] [[슈퍼히어로]]의 대표주자.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을 가진 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활동해왔으며 이후 세월이 지나 [[어벤저스]]에서도 활약하게 되었다.
         어벤저스의 리더하면 떠오르는 캐릭터이기도 하며 화 시리즈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도 주요 캐릭터가 되었다.
         [[사이드킥]]은 [[버키]]가 있다.
  • 캡틴 코만도 . . . . 3회 일치
          어디까지나 설정 의 이야기이나 파이널 파이트에서 등장한 가이의 후손. 즉, 무신류 닌자다. 그래서인지 남코 크로스 캡콤에서 가이과 팀을 이루기도 한다.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엔딩을 맞이하면 단에서 누군가가 연설을 한다. 이때 뒤쪽의 모니터에 캡틴 코만도가 나타나고, 누구냐는 질문에 캡틴은 '나는 캡틴 코만도다.'라고 답한다. 이 부분은 마블 VS 캡콤의 캡틴 코만도 엔딩에서도 나왔다.
          * 특이하게도 캐릭터들이 지닌 특수기나 무장에 의해 기괴한 사망 모션이 나온다. 캡틴 코만도의 캡틴 파이어에 맞아서 에너지를 전부 잃어버린 적은 불에 타서 재가 되고(...), 닌자도를 쓰는 쇼우의 공격은 적을 절단낸다.(...) 제네티의 경우 대를 부패(?)시켜 해골만 남긴다.(...) 이러한 모션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서도 나오며 자유로운 것은 적측 여전투원인 캐롤과 브렌다 정도.
  • 콩고릴라 . . . . 3회 일치
         과거에 사용했던 마법 반지는 추장이자 주술사이며 그의 친구였던 '카올로(Kawolo)'가 죽기 직전에 건네줬다. 이후 [[지진]] 탓에 동굴에 갇혔으나 반지의 힘으로 모면했다.
         사이드킥인 'Janu the Jungle Boy'가 있었다. Action Comics #191 (April 1954)에 등장.
         화도 나왔다. 제목은 'Congo Bill'.
  • 콩조림 . . . . 3회 일치
         콩조림은 소스와 함께 콩을 삶아낸 요리다. 베이크드 빈즈(Baked beans)라고도 부르는데, 'Baked'에서 연되는 '굽는다'라는 이미지와 달리 조림에 가깝다. 콩이 재배되는 거의 대부분의 지방에서 존재하는 요리 방식으로 대한민국에선 콩자반이라고도 부르는 콩조림 요리가 있다.
         주로 국식 요리, 특히 국식 아침 식사(Full English breakfast)에 많이 곁들여지는 것으로 알려진 붉은색 소스에 졸여진 콩조림이 바로 베이크드 빈즈다. 설탕이나 시럽이 첨가된 토마토 소스에 콩을 넣고 졸이면 되는 간단한 요리지만, 준비하는데 드는 시간이 길어지는 탓에 주로 통조림에 든 베이크드 빈즈를 사용하기도 한다.
  • 크리미널 마인드 . . . . 3회 일치
          * 대부분의 사건에서 [[DNA]]나 [[지문]] 같은 증거가 없어서 [[CSI]]가 활약할 여지를 봉쇄한다(…). 사건의 주제 사건을 프로파일링--이라는 이름의 무당질--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인듯.
          * 프로파일링의 험함(…)이 당히 뛰어나다. 거의 [[무당]] 수준. 전문가니까 그렇다고 봐야겠지만.
  • 키슈개 . . . . 3회 일치
         얼마 뒤에 미쿠로에게 한 마리의 늑대 새끼가 찾아왔다. 미쿠로는 이 개를 만(マン)이라고 이름 붙이고 훌륭한 사냥개로 길렀다. 그리고 어느날 진구(新宮)에서 고관이 사냥꾼을 모아 사냥을 하게 되었는데, 미쿠로와 만 역시 여기에 참가하게 됐다. 그런데 이 때 산에서 내려온 처입은 [[멧돼지]]가 고관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에 만이 멧돼지에게 달려들어 멧돼지를 쓰러뜨렸고, 고관은 기뻐하며 미쿠로에게 을 내렸다. 이 만이 기슈견의 조이라는 이야기이다.
  • 킹 오브 드래곤즈 . . . . 3회 일치
         전체적으로 마법사와 엘프는 공격을 가하는 텀이 좀 길지만 원거리에서 공격을 하는 것이 가능한 안정적인 운용을 할 수 있어서 처음 킹 오브 드래곤즈를 잡아보면 엘프나 위자드를 고르는 것이 편한 것 같이 느껴지고 나머지 캐릭터들은 별 써먹기 힘들어서 대부분 엘프와 위자드를 고르는 편이였고 당시에도 인기가 많았지만, 먼 훗날. 근접 캐릭터들에게는 리치가 딸리는 대신 방패를 이용한 방어. 그것도 당한 수준으로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가능해서 특정 황 혹은 가드에 당히 익숙해지게 되면 원거리 캐릭터들 보다 더 좋은 재미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맛과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원거리 캐릭이 가드가 안되는건 아니지만...
  • 킹덤/532화 . . . . 3회 일치
          * [[이목(킹덤)|이목]]과 [[카이네]], [[부저]]는 손쉽게 추격을 따돌리고 조군 진으로 향한다.
          * 그러나 좌익은 마광의 죽음으로 인해 지휘체계가 무너져 붕괴 직전이라 비신대로서는 손쓸 도리가 없어 보이는 태.
          * 이 때 몽염과 낙화대가 나타나 황을 수습하기 위해 비신대에게 함께 좌익 한가운데로 돌격하자고 제안하며 투지를 보인다.
  • 킹덤/533화 . . . . 3회 일치
          * [[마광]]의 사망이 알려지면서 진군 좌익의 사기는 크게 꺾인다. 그러나 낙화대의 [[몽념(킹덤)|몽념]]은 황을 타개하고 조장 [[기수(킹덤)|기수]]를 확실히 제거할 묘안을 들고 나오는데. 그 핵심 역할은 [[비신대]]의 [[이신(킹덤)|이신]]과 자신의 부하 "육주"에게 맡기는데. 몽념이 어려운 황 속에서도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자 주인을 잃은 마광군은 몽념을 중심으로 군세를 정돈해 협조에 나선다.
         == 세 ==
  • 타바사 . . . . 3회 일치
         노벨마도학을 수한 바 있는 유능한 마도사로 세계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징후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선다는 스토리.
  • 타오팡파 . . . . 3회 일치
         >황을 설명 해주세요.
         >이른바 삼고(三高)의 엘리트 회사원으로, 아주 냥하고, 행복했어요.
         >그의 부모님도 냥하고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 타타리 . . . . 3회 일치
         신불이나 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인간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 비슷한 저주의 개념으로서 노로이(呪い)가 있다.
         주로 특정한 지역의 산림, 전답, 택지가 건드리면 타타리를 받는 곳으로 여겨졌다. 신목이나 목 같은 나무, 동물 역시 타타리를 받는 대으로 여겨졌으며, "고양이를 죽이면 7대가 저주(타타리)를 받는다."는 말도 존재한다.
  • 탁민제 . . . . 3회 일치
         | 훈 =
         | 수 =
         | 웹사이트 =
  • 탁석산 . . . . 3회 일치
         |웹사이트 =
         탁석산은 1956년 서울 태생이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자연계열에 입학했으나 1년 후 자퇴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어과에 입학했다. 부전공으로 택한 철학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철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대학원에 진학하여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였다. 《흄의 인과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한양대학교]], [[KAIST]] 등에서 강의를 했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사연구소 박사 후 연수과정을 마쳤다. 주로 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왔는데, <흄의 두 원인 정의의 완전성과 양립가능성> <흄의 초기 단편과 《대화》에서의 악의 문제> <툴리의 인과실재론 비판> <흄의 합리론 비판과 그 역사적 원천>등의 논문을 썼으며, 최근에 『열린지성』에 『언어분석철학의 종언과 한국철학』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등이 있다.<ref>[http://www.kyobobook.co.kr/author/info/AuthorInfo.laf?authorid=1000033701 교보문서 저자 정보]</ref>
  • 태의경 . . . . 3회 일치
         |웹사이트 = [http://minihp.cyworld.nate.com/pims/main/pims_main.asp?tid=22152542 태의경 싸이월드 미니홈피]
         * [[3시와 5시 사이|태의경의 3시와 5시 사이]] ([[KBS 제2FM|KBS 2FM]])
  • 토리코/360화 . . . . 3회 일치
          * 스타준은 초월적인 스케일의 싸움에 당황하지만 토리코는 이런 황에서도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평온한 표정이고 그가 냄새의 진원지로 지목한 곳에서 코마츠 일행이 나타난다
          * 코마츠는 자기 시간 기준으론 몇 십만년 만이라고 감격하다 이제 정신적으로는 자신이 토리코보다 한참 연이라며 도야가오를 짓는다.
          * 스타준은 자신이 보초를 서는 사이 얼른 먹으라고 하는데 코마츠는 "모두 같이 먹기 위해 가져온 것"이라며 함께 먹게 한다
  • 토리코/361화 . . . . 3회 일치
          * 토리코의 구루메세포의 악마는 '''"오거"''' 온화한 성격이지만 화가나면 아무도 손쓸수 없는 괴물로 실력은 '''역사 1.2위를 다툰다고 함.''' 발달된 후각이 특징
          * 지지는 '''통조림의 내용물이 예'''이 가는지 경악스러워한다
          * "새로운 맛의 지평"이란게 문자 그대로 세 모든 것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었다.--의자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인들은 어나더를 먹은 거였나?--
  • 토리코/369화 . . . . 3회 일치
          * 이 올챙이들이 지으로 떨어지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앞다리, 뒷다리가 생기면서 개구리와 같은 모양으로 변한다.
          * 그리고 GOD는 이 행성의 최위 포식자. "구르메 일식에 의한 종의 대멸종"은 사실 허구였고, 구르메 일식 때 올라온 GOD가 보이는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버리기 때문에 생기는 현이었다.
  • 토리코/386화 . . . . 3회 일치
          * 머나먼 땅으로 갈 자신이 이런 하찮은 별에서 죽을 리 없다고 절규하는데, 토리코는 지구는 작지만 이 별의 식욕은 죠아의 예보다 훨씬 컸던 거라고 일침한다.
          * 거대한 손바닥을 구현해 대를 쥐어잡는 기술.
          * 팔왕은 커녕 GOD 조차 가뿐히 화하는 네오의 포획레벨.
  • 톤데모 . . . . 3회 일치
         가타카나로 '톤데모'라는 것은 매우 강한 의미가 있어서, 특히 커다란 오해, 망에 기반하여 세워진 이론을 주장하고, 일반적인 학문계의 식과 어긋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을 뜻한다. [[유사과학]]이나 [[유사역사학]], [[음모론]] 등의 부류가 여기에 들어간다.
         1992년, 야마모토 히로시(山本弘) 등의 애호가들이 모여서 토학회(と学会)라는 동호회를 만들었으며, 매년 '일본 톤데모본 대'이라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 통일주체국민회의 . . . . 3회 일치
         명목으로는 돈 선거, 부패 선거를 없애겠다는 이유로 기존 정치인이나 정당인의 진입을 배제하였으며, 공식적인 선거 연설과 포스터 이외의 선거 운동도 금지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대통령 선거에서 거수기 이외의 거의 아무런 역할도 없는, 사실 [[무직]] 명예직이다. 딱히 '''아무것도 안 하는 거나 다름없는 집단'''을 3천명이나 뽑는데 엄청난 선거비를 소모하고, 게다가 이 위원들이 세비는 없지만 소정의 활동비까지 받았다는걸 생각하면, 당히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통일주체국민회의 자체가 '''거대한 낭비'''라는게 모순.
  • 퍼니셔 . . . . 3회 일치
         본명 프랭크 캐슬. 원래 [[군인]]이었던 캐슬은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갔다가 갱단에 의해 가족들을 잃었고, 이후 퍼니셔가 되어 세의 악인들과 싸우게 되었다. 그 방식은 살인. 통 히어로가 악당과 싸우도 제압하고 끝내는 것이 보통이라면 퍼니셔는 그런 일 없이 아예 끝장을 낸다. 그러다보니 [[캡틴 아메리카]] 등 보편적인 히어로들과는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캡콤에서 게임 [[퍼니셔(게임)|퍼니셔]]를 만들었으며 당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 페어리 테일/480화 . . . . 3회 일치
         * 세이버투스와 페가수스 연합군은 이미 전멸해서 포로로 잡혀 있는 태.
         * 포로들이 묶여있는 행색이 엄하기 짝이 없는데다 병사들이 희롱하고 있어서 엄한 을 하는 독자들이 폭주하고 있다.
  • 페어리 테일/482화 . . . . 3회 일치
         나인하르트가 불러낸 히스토리아를 대로, 생존자들은 어려운 싸움을 시작한다.
          * 엘자는 이카루가, 아즈마, 쿄우카를 대로 가까스러 버텨나간다.
          * 나인하르트는 엘자의 인착의와 마력을 보고 "설마 아이린 님의..."라며 두려움에 떤다.
  • 페어리 테일/506화 . . . . 3회 일치
          * 둘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 부딪히려 할때, 엘자가 그 사이를 가로막는다.
          * 하지만 아이린은 스프리건 12는 건재하니 전세엔 향이 없다고 잘라말한다.
          * 둘의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 부딪히려는 찰나, 그 사이를 엘자가 끼어든다.
  • 프랑켄슈타인 안드로이드 . . . . 3회 일치
         1810년대에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해 평화로운 접촉을 모색했는데 목적 자체는 긍정적인 것이었으나 승무원의 샘르 염려해 직접 만나기는 꺼렸다. 그래서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는데 문제는 그 모습 때문에 인간들이 두려움을 품었다는 것. 설 안드로이드도 오작동을 일으켜 도망쳐버렸고, 나중에는 북극에서 얼어붙게 되었다. 이후 세월이 흘러서 1960년대에 인류의 북극 탐험대에게 발견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깨어났다. 이후 엑스멘과 싸웠다가 파괴되었다.
  • 하시다 스가코 . . . . 3회 일치
         [[분류:192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화 각본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의 텔레비전 각본가]][[분류:기쿠치 간자]][[분류:일본여자대학 동문]][[분류:사카이시 (오사카부) 출신]]
  • 하이큐/210화 . . . . 3회 일치
          * 우카이 감독도 잠깐 온다는 말이 있었지만 몸태가 또 나빠져서 다시 입원해 무산.
          * 카게야마는 정렬한 선수들 사이에서 히나타보다 약간 큰 선수를 발견하는데 그리 유명한 선수는 아닌 모양.
          * 히나타는 여전히 홀로 연습하고 있는데 중학시절 뒤쳐져 있던 트라우마를 회하며 "멈춰서면 안 돼"라고 자신을 몰아붙인다.
  • 하이큐/241화 . . . . 3회 일치
          * 카라스노가 1점 리드한 황에서 [[스가와라 코시]]가 [[츠키시마 케이]]와 교체한다.
          * 아테마는 에치고와 함께 블록하려 하는데 순간 라이트 측에서 뛰어오르는 히나타를 보고 망설인다. 하지만 그게 함정. 진짜는 레프트에서 뛰어오르던 아즈마네였다. 깨끗하게 꽂히는 아즈마네의 스파이크. 히나타를 너무 의식한 결과였다. 이 시점에서 츠바키하라는 두 번째 TO. [[오오사토 타츠미]] 감독은 다음 로테이션에 10번(히나타)가 내려가고 대측 블록은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으니 눈 딱 감고 강하게 치라고 지시한다.
          * 이후 치열한 시소게임으로 전개되는 2세트. 카라스노는 20 대 19로 1점 리드하는 황에서 히나타가 내려가고 [[야마구치 타다시]]가 들어온다.
  • 한승혁 (1993년) . . . . 3회 일치
         |문 표기 = Han Seung-Hyuk
         |사진 사이즈 =
         팔꿈치 부으로 입단하자마자 곧바로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어 [[2012년]]이 되어서야 1군에 처음으로 올라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47&aid=0001996776 151km 한승혁, 배구인의 피를 받은 야구 유망주] - 오마이뉴스</ref>
  • 한지유 (모델) . . . . 3회 일치
         | 활동 역 =
         | 수 =
         | 웹사이트 =
  • 한필수 . . . . 3회 일치
         |그림제목=한필수 흉 ([[제천고등학교]])
         본관은 청주. 호는 동석(東石)이다. 서울 장교동에서 육군 정위 용호(龍鎬)의 둘째 아들로 [[태양태음력|음력]] [[1900년]] [[11월 6일]] 태어났다. 출생일과 출생지가 이한 기록도 있으나 유가족을 통해 확인한 결과 1900년이며 장교동이 정확하다.
         제2대 국회의원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에 입당하여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6년]] [[4월 10일]] 87세로 사망하였다. 사후 [[1996년]]에는 [[제천고등학교]] 개교50주년을 맞아 교정에 흉이 세워졌다.
  • 한혜령 . . . . 3회 일치
         '''한혜령'''([[1986년]] [[1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필드하키]] 선수이며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경북도]] 출신이며 [[KT]] 소속이다.
         == 수 ==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하키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하키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성주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
  • 허윤희 (방송인) . . . . 3회 일치
         | 웹사이트 =
         * [[꿈과 음악 사이에|허윤희의 꿈과 음악 사이에]] (2007년 1월 ~ '''현재''')
  • 허준 (음악가) . . . . 3회 일치
         [[1974년]] [[9월 17일]]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93년]] [[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0년]] 6월 [[유병열]]이 [[YB (밴드)|윤도현 밴드]]를 떠나자 그 자리를 메웠다. 허준이 참여한 첫 YB 음반은 라이브 1집이다.
         {{인용문2|봉천동 살인 미소 준이 경북도 왜관 초가집 살며 검정고무신 벗 삼아 촌동네 중에 일등가는 화려한 삶 속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지만 굴러가는 두 바퀴 자전거에 가출소년 되어 고속도로에서 검거 아이 창피해|YB 6집 수록곡 〈YB 스토리〉에서}}
         [[분류:대한민국의 하드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락고등학교 동문]]
  • 허협 . . . . 3회 일치
         |징 =
         그러나, 몇 주 후, 허협은 [[고문]]을 견디지 못해 배교하였다. 하지만, 그는 즉시 속죄하고, 포장에게 가서 자신은 오직 입으로만 배교하였고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은 여전히 [[천주교]] 신자라고 주장하였다. 형리들은 그에게 배교를 취소하는 표시로 사람의 [[똥]][[오줌]]을 마시기를 요구하였고, 허협은 주저없이 그것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는 [[십자고]]에 절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그가 한때 배교했던 것을 뉘우치며 [[예배]]하였다.
         | 저자 = 이
  • 혜지 . . . . 3회 일치
         | 활동 역 =
         | 수 =
         | 웹사이트 =
  • 호소키 카즈코 . . . . 3회 일치
         간사이TV에서 출연한 것을 계기로 하여, 후지 테레비 계열 전국 방송의 토크쇼에 출연했다. "당신은 지옥행이야!" 등의 독설적인 멘트로 유명했다.
         '육성점술에 따른 금성인의 운명', '화성인의 운명', '토성인의 운명' 등의 제목으로 되어 있는 육성점술 시리즈는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이다. 총 9500만부 이으로, 호소키 카즈코 홈페이지에 따르면 점술 책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 사람이라고 한다.
          * 팬클럽 사이트는 탈퇴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있다. 주의하자. 현재 알츠하이머로 딸이 대신하여 마술과 사기를 치고 있음.[[https://twitter.com/OIympic2020/status/800311150856409088 (참조)]]
  • 호환성 . . . . 3회 일치
         특정 아키텍쳐의 위 기종과 하위 기종에 대해서는 [[위호환]], [[하위호환]]이라는 표현을 쓴다.
         호환성은 생산성 때문에 여러모로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자주 다루어지는 문제이다. 일단 아키텍쳐가 바뀌면 모든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동작을 보장하는 [[삽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이저한 아키텍쳐이라면 큰 문제 없지만 마이너한 아키텍쳐는…. 그래서 [[자바]] 같은 [[가 머신]]으로 호환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 홍금주 . . . . 3회 일치
         |징 =
         홍금주는 [[한양]] 교외의 한 이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그녀의 성격과 지력, 태도 그리고 어투에 있어서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을 여의고 조모의 집에서 자랐다. 그녀는 10세 경에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15세에 한 이교도 남성과 결혼하면서 [[냉담교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했다. 그녀의 남편이 일찍 죽자,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시집을 떠나 [[미나리골]]로 이사해서 살았는데, 그녀의 아들마저도 이내 세을 떠났다. 그녀가 기거하는 집의 주인 [[최 필립보]]가 그녀에게 새로이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뒤로, 그녀는 때로 눈물을 흘리며 열렬히 기도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자애로운 행실에 감복하였고 그녀는 마치 종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말하였다.
         | 저자 = 이
  • 홍영현 . . . . 3회 일치
         |선수명 = 홍
         |문 표기 = Hong Yeong-Hyun
         '''홍현'''([[1991년]] [[1월 7일]] ~ )은 전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투수]]이다.
  • 홍정호 (핸드볼선수) . . . . 3회 일치
         * [[인천여자중학교]]
         == 수 ==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인천구월초등학교 동문]][[분류:인천여자중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홍준표(야구선수) . . . . 3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SK 와이번스/선수단)]
         ||<:> '''출신지''' || [[경북도]] [[구미시]] ||
         [[하성진]], [[박성한]], [[안현]], [[임석진]] 등과 함께 SK에서 기대를 걸고 있는 내야 유망주 중 한 명이다.
  • 화염병 . . . . 3회 일치
         병에 휘발성 물질을 담고 불을 붙여 던지는 무기. 어로는 [[뱌체슬라브 몰로토프|Molotov]] cocktail, Petrol bomb라고 한다.
         불을 사용한 무기인지라 사람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힌다. 이는 제작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미국에서는 이란인 대학생이 화염병을 만들다가 몸 90%에 화을 입고 사망한 사례가 있다.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575346/Iranian-student-burns-death-Molotov-cocktail-Georgia-Tech-University.html|데일리메일 링크]].
         2006년작 한국 화 괴물 후반부에 등장했다.
  • 황리아 . . . . 3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2009년]] - 서울오토살롱 사이버오토 모델
  • 황병하 . . . . 3회 일치
         |웹사이트 =
         1962년 [[서울시]]에서 태어나 [[우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다. 군 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치고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춘천지방법원]] 월지원, [[대구지방법원]] 주지원, [[인천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를 하였다. 대법원 재판연구원,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지원장을 거쳐 2004년 2월 정기인사에서 부장판사로 승진하였다. 2016년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였으나 [[대구지방법원]]과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평생 법관제에 따라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재판장으로서 재판을 하고 있다.<ref>[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130901&part_idx=335]</ref>
  • 황수범 . . . . 3회 일치
         |문 표기 = Hwang Su-Beom
         |사진 사이즈 =
         [[2018년]] [[10월 19일]]에 방출되었다.<ref>[http://news1.kr/articles/?3455015 장원삼·조동찬·배섭 등 17명, 삼성 떠난다] - 뉴스1</ref>
  • 황정혜 . . . . 3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우먼,코미디언)
         | 웹사이트 =
         *[[동남보건대학교]] 식품양과 졸업
  • 회기동 단편선 . . . . 3회 일치
         | 웹사이트 =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한국대중음악 음악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200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포크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
  • 히치하이킹 . . . . 3회 일치
         왠지 아름다운 여성이 유혹적인 포즈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장면이 [[광고]] 등에서는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치안이 불안하거나 인심이 야박한 곳에서는 범죄의 온이 되기도 한다.
         2014년 [[중국]]에서 하이에 사는 한 여성이 [[여자친구]]가 되어주는 대신에 여행경비를 받겠다고 [[웨이보]]를 통하여 홍보하는 방식으로 중국 전역을 여행하고 있다(…)고 하여 화재가되었다.[http://insight.co.kr/view.php?ArtNo=8219 참조]
         [[JTBC]] [[비정회담]]에 출연한 러시아 출신 방송인 일리야의 증언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히치하이킹이 보편적이며 아무나 다 태워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소련]]에서는 [[택시]]가 보편화 되어 있지 않아서, 대중교통이 없는 곳이나 밤늦게 집에 갈 때는 히치하이킹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히치하이킹이 되지 않아서 충격을 받았다고(…)[http://news.tf.co.kr/read/entertain/1476694.htm 참조]--훈훈한 소련 인심--
  • 1986년 에드먼드 우체국 총기난사 . . . . 2회 일치
         == 세 ==
         현재 해당 위치에는 해당 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동이 세워져 있다.
  • 3월의 라이온/127화 . . . . 2회 일치
          * 그렇게 자각해 버린 이 "완전히 글렀다"라고 생각해 버린다.
          * 그러나 한편으론 하늘이 "이 황을 재미있어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 A-10 선더볼트 . . . . 2회 일치
         A-10 Thunderbolt II. [[미군]]이 운용하는 [[공격기]]. 주로 [[탱크]] 등 지 표적에 대해서 효과적인 전투력을 발휘한다. 과거에 [[P-47 선더볼트]]라는 전투기가 있었기에 선더볼트 뒤에 II가 붙지만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별명은 멧돼지(Warthog).
         2021년까지 운하기로 결정됐다.([[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7/02/08/0619000000AKR20170208134900009.HTML 참조]])
  • AliasPageNames . . . . 2회 일치
         WikiSandBox,위키모래자,모래
  • CategoryTemplate . . . . 2회 일치
         ##이 분류의 위 분류
         ##최위 분류
  • DC 코믹스 . . . . 2회 일치
         [[마블 코믹스]]와 미국 코믹스 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회사이며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이 소속된 곳이기도 하다. [[그린 랜턴]],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도 DC의 히어로이며 이러한 웅들의 팀인 저스티스 리그가 유명하다.
  • DV . . . . 2회 일치
          * 소득이나 재산 황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어]]의 도메스틱 바이올런스가 기원이다.
  • F-15 . . . . 2회 일치
         [[http://www.af.mil/AboutUs/FactSheets/Display/tabid/224/Article/104501/f-15-eagle.aspx|미공군의 F-15 이글 소개 페이지(어)]]
         [[http://www.af.mil/AboutUs/FactSheets/Display/tabid/224/Article/104499/f-15e-strike-eagle.aspx|미공군의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소개 페이지(어)]]
  • Hanging On The Old Barbed Wire . . . . 2회 일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불려진 노래. 국군 사이에서 구전 가요스럽게 불려졌다. 그 덕택에 여러 버전의 가사가 있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누구(주로 간부)는 놀고있는데 누구(주로 병사)는 가시 철조망에 걸려죽어 있다는 내용.
  • NEC 코퍼레이션 . . . . 2회 일치
         [[PC-9801]] 등 PC-9800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했다. 개인용 컴퓨터 산업은 레노버에 매각하면서 사실 접었다.
         주로 각종 에로게 등을 콘솔로 전연령화하여 이식하면서 연명하였고, [[센티멘탈 그래피티]]를 엄청난 비용을 쏟아 만들었다가 폭망하면서 2004년에 인도될 떄 쯤에는 거의 그로기 태. 그 이후에도 변변히 벌어들인게없다.
  • NTX위키 . . . . 2회 일치
         구 NTX와 신 NTX 두군데에 있다. 두 곳의 데이터가 연동되는게 아니라 구 NTX 위키내의 데이터를 신 NTX로 옮겨온 것이기 때문에 구 NTX 위키는 현재 버려진 태이다.
         구 NTX사이트의 위키는 로그인을 해야 접속 가능하다.
  • Oh! How I Hate To Get Up In The Morning . . . . 2회 일치
         [[기나팔]]에 대한 불평과 분노를 담은 곡이다. 이 분노는 후렴구에 가면 극에 달해 "언젠간 나팔수를 죽여버리고 그놈 나팔을 동강내서 밟아버릴거다. 그리고 여생을 [[침대]]에서 보낼거야,"까지 이른다. "밤에 나팔수 방에 기어들어가서 그놈 나팔에 [[다이너마이트]]를 채워넣을거다. 그리고 여생을 침대에서 보낼거야,"로 바뀐 버전도 있지만 그게 그거니…….
         [[https://youtu.be/71smG5d29to|1943년작 화인 "이것이 군대다"에서도 등장한다.]]
  • UserPreferences . . . . 2회 일치
          * 비밀번호는 6자 이이어야 합니다.
          * /!\ 웹의 비밀번호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는 평소에 쓰지 않는 것으로 사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산업 . . . . 2회 일치
          * Polyphase System(다계)
          * RGO 품 생산 효율 수준 +5%
  • World Of Guns: Gun Disassembly . . . . 2회 일치
          * 캡틴아메리카[* 화 "퍼스트 어벤저"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타던 오토바이.]
         [[http://store.steampowered.com/app/262410/|스팀 점페이지]]
  • 가공의 도시 . . . . 2회 일치
          * 쿠라시마 시(倉島市) - 토에이 화사 화. 현경 대 폭력조직(県警対組織暴力)의 무대. 히로시마를 모델로 했다.
  • 가면부부 . . . . 2회 일치
         부부관계는 차가워졌고, 이미 애정은 없지만 이혼하지 않는 태. 약 30%의 부부가 가면부부에 가까운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답변했다.
         체면을 중시한 가면 부부는 의사, 공무원, 변호사 등 사회적 지위가 높고, 체면을 생각하는 부부에게 많은 경향. 집안에서는 부부 대호가 거의 없지만 한 걸음 벗어나자 마자 사이가 좋은 부부를 가장하려 한다.
  • 가석방 . . . . 2회 일치
         아래 사이트는 '''정부기관 사이트 답게''' 대뜸 키보드 보안 설치를 강요하므로 주의.
  • 강우영 . . . . 2회 일치
         '''강우'''(1924년 - 2011년 3월 24일)은 1950년 제1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검사 출신의 대법관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제1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1950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대구지검,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61년 법무부 검찰과 과장을 하다가 1961년 서울고검 검사, 1962년 부산지검 부장검사, 1966년 전주지검 차장검사 1968년 서울지검 부장검사 1970년 부산지검 차장검사를 하였으며 1971년에 서울지검 등포지청장이 되었다. 지청장 임기를 마친 이듬해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하다가 대검찰청 특별수사부 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전주지검 검사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구지검 검사장, 법무부 법무실장을 하는 등 박정희 정부에서 법무부와 검찰 주요 요직을 거쳤다. [[전두환]] 등 신군부 집단에 의해 권력이 장악된 1980년 7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22대 서울지검장을 하고 1981년에 중앙선거관리위원으로 재직중인 1981년 4월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임기 5년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대법관에 재직중이던 1984년 7월 제6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였으며 대법관 퇴임이후인 1987년에는 대한공증협회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 강화종실 . . . . 2회 일치
         [[정조]] 시기에 권세가 [[홍국]]은 자신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였는데, 그녀를 원빈이라 하였다. 1980년 원빈이 사망하자, 홍국은 은언군의 장남 담(湛)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서 장차 정조의 왕위를 이어받게 하려 했으나, 1786년(정조 10년) 담은 모반죄로 유폐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은언군은 강화도에 유배된다.
  • 강흠덕 . . . . 2회 일치
         |문 표기 = Kang Heum-Deok
         |사진 사이즈 =
  • 거유 . . . . 2회 일치
         1985년 극장공개 된 미국 성인화의 일본 타이틀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성인잡지, 비디오의 자막에서 자주 쓰이게 되어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AV여배우 마쓰자카 키미코(松坂季実子)의 등장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마쓰자카 키미코는 당시 공칭 110.7cm(실제로는 90cm)라는 가슴으로 [[일반인]]에게도 강렬한 인을 주었으며, 거유라는 단어가 일본 문화에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 건담 시리즈 . . . . 2회 일치
         [[마징가Z]]로 대표되는 슈퍼로봇물과 달리 [[전쟁]] 등의 무거운 소재에 중점을 둔 시리즈다. [[토미노 요시유키]]의 [[기동전사 건담]]이 첫작품이며 이후 꾸준히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게임, 코믹스, 소설도 나오고 있는 당한 역사를 지닌 시리즈다.
         프라모델도 전개되었는데 그 존재감이 커서 건프라라는 줄임말도 있다. 게다가 이 건프라를 활용한 건담 애니메이션인 건담 빌드 파이터즈도 방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2화 . . . . 2회 일치
          * 티격태격하는 사이 어느새 완성된 전골.
          * 키리에는 모처럼 보여준 오빠의 냥함에 고마움을 느끼는데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0화 . . . . 2회 일치
          * 타이헤이에게 담해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한다.
          * 모토바 남매도 비현실 남매의 역으로...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6화 . . . . 2회 일치
          * 에비나 나나의 어머니도 아키타에서 올라와 삼파전 양.
          * 그러나 출중한 포텐셜 때문인지 두 어머니의 경계대이 된다.
  • 경관 . . . . 2회 일치
         진서 선제기에서 사마의가 [[공손연]]을 물리치고 경관을 만들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때 나이 15세 이의 남자 7천명을 [[학살]]하여 경관에 묻었다고 한다.
         진서 선제기에서 사마의가 [[공손연]]을 물리치고 경관을 만들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때 나이 15세 이의 남자 7천명을 [[학살]]하여 경관에 묻었다고 한다.
  • 계력 . . . . 2회 일치
         [[고공단보]](古公亶父)의 3남. 계력의 아들 창(昌)[* 후의 주문왕]이 태어나자 서로운 징조가 있어, 고공단보가 창이 후에 주나라를 번창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장남 태백(太伯)과 차남 중용(仲雍)은 계력에게 뒤를 잇게 하고 남쪽으로 떠나 오(吳)의 왕이 되었다. 계력은 고공단보를 이어 정의롭게 행동했기 때문에 제후들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죽서기년]]에 따르면 융족(戎族)과 7년간 싸워서 격파하고 융족의 장수들을 포로로 잡았다. 이에 나라 왕 문정(文丁)[* 혹은 태정(太丁)이라고도 한다]은 주나라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시샘하여, 겉으로는 보물을 하사하고 후대하면서 새고(塞庫)로 보내서 가둬버렸다. 문정에게 유폐된 계력은 [[아사]]하고 말았다.
  • 고다이고 덴노 . . . . 2회 일치
         중세 일본의 덴노. 이 무렵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에 의하여 통치되고 있었으며 덴노의 조정은 거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고다이고 덴노는 [[중국]]에서 전래된 [[주자학]]에 빠져서 덴노에 의한 직접 통치를 목표로 하였으며, 또한 천황가가 분열하여 양대 종통의 교대 계승이 있던 가운데 '''중간 땜빵'''으로 덴노의 지위에 올려진 몸이었기 때문에, 이런 황을 벗어나서 본인의 혈통이 덴노의 지위를 대대로 물려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일본에서는 고대사 이후로는 덴노가 직접 나서서 정치에 개입한 몇 안되는 사례이다. 후지와라 씨에 의한 섭관 정치, 황에 의한 인세이 정치, [[막부]]의 통치 등으로 덴노가 직접 나설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 하지만 그 성과가 실로 비참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후 덴노들은 찌그러져 사는 계기를 만들고 말았다.
  • 고도현 . . . . 2회 일치
         |문 표기 = Go Do-Hyun
         |사진 사이즈 =
  • 고스트 패트롤 . . . . 2회 일치
         [[프랑스]] 외인부터 시절 관으로부터 프랑스가 통제하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기술자 헨리로부터 임무를 수행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나 일단은 참여했는데 주민들을 죽이길 원치 않았던 셋은 안전한 곳에 투하했다. 문제는 헨리가 주민들을 지키려고 셋의 전투기에 시한폭탄을 장치했다는 것으로 결국 셋은 사망해버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3인은 [[유령]]이 되어 있었고, 이를 나치와 싸울 두번째 기회라 생각했다. 이후 고스트 패트롤이 된 삼인조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대항했다.
         능력은 하늘을 날수 있고, 투명화가 가능하다. 몸의 일부, 혹은 전체를 물질화시킬 수 있으나 물리적인 형태가 되면 처입기 쉽다. 벽을 걸을 수도 있다. 즉, 유령.
  • 골 결정력 . . . . 2회 일치
         골을 넣을 수 있을 법한 황에서, 골을 넣지 못한다고 해서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표에 따르면 그냥 못한다는 의미라고.
  • 공기교 . . . . 2회 일치
         일본에서는 주변의 황이나 분위기를 파악해서 행동하는 것을 「공기를 읽는다(空気を読む)」고 표현한다. 일본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같이 '공기를 읽는'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지만, 이것이 지나쳐서 마치 [[종교]]나 신념 같이 이야기하고 [[동조압력]]을 격렬하게 발산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로 공기교라는 말이 태어나게 되었다.
         인터넷 사이트, 2채널에서 나타난 말이다.
  • 공후백자남 . . . . 2회 일치
         본래 '공(公)'은 일종의 특례로서, 비하게 공적이 큰 제후에게 하사되는 지위였으며, 당초에는 [[주공단]]의 후손이 봉해진 [[노나라]]에 주어진 작위로 오직 노나라만이 '공국'이었다.
         춘추시대에는 유력한 제후국은 대부분 공을 칭하게 되고, 보다 위개념으로 제후들의 맹주가 되는 패(覇)의 개념이 나타나게 된다.
  • 곽성문 . . . . 2회 일치
         * 2011년 대구세계육선수권대회 유치특별위원회 위원
         |후임자 = [[배식]]
  • 구본홍 . . . . 2회 일치
         * 2001년 3월 ~ 2003년 3월 : MBC 경본부 본부장
         * 2015년 5월 ~ : [[아시아투데이]] 근부회장
  • 구재서 . . . . 2회 일치
         |문 표기 = Koo Jae-Seo
         |사진 사이즈 =
  • 국사님 . . . . 2회 일치
         인터넷 에서 과도하게 애국주의, 국수주의 적인 주장을 열광적으로 펼쳐서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을 뜻한다.
         국사(国士)는 본래 '우국지사'의 줄임말이었다. 넷의 익명의 대에게 일부러 '님(様)'을 붙여서 조롱하는 의미를 담았다.
  • 그레이터 데몬 양식 . . . . 2회 일치
         [[위저드리 1]]의 비법. 마법이 봉쇄된 그레이터 데몬이 동료를 부를 경우, 불려온 그레이터 데몬 역시 마법이 봉쇄된 태라는 것을 이용하는 비법이다. 그레이터 데몬은 전체공격 마법을 사용하는 무서운 적이지만, 마법이 봉쇄된 태에서는 크게 무섭지 않기 때문. 의도적으로 그레이터 데몬의 마법을 봉쇄한 다음 계속 동료를 부르게 하고 계속 죽여나가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천문학적인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
  • 그루베니아 . . . . 2회 일치
         그루베니아의 교육의 과정은 초급학교, 급학교, 대학교로 구성되어있다. 초급학교의 교육기간은 6년으로 기초 학문을 가르친다. 급학교는 인문학교, 일반학교, 실업학교로 이루어져있으며 각각 교육기간은 인문학교는 6년이고 일반학교 실업학교는 4년 이수이다. 인문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입학 할 수있으며 ,일반학교, 실업학교의 경우도 졸업 이후 합격시험을 거치면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다.
  • 그린 랜턴 . . . . 2회 일치
         == 화 ==
         DC의 인기 히어로다보니 실사 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 그린 애로우 . . . . 2회 일치
         코스튬 컬러링은 이름에 어울리게 녹색이 주력. 무기인 활과 화살도 녹색이다. 이러한 녹색 이미지에서 유명한 궁수인 로빗 훗이 연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과거 버전 중에는 로빗 훗과 많이 비슷하다.
         사이드킥은 마찬가지로 궁수인 스피디.
  • 금형 . . . . 2회 일치
         프라모델 금형은 당히 비싸다. 또한 금속 재료라고 해도 금형으로 제품을 찍어낼 때마다 조금씩 손을 입기 때문에 수명이 있다. 금형의 수명이 말기에 달했을 때 출하되는 제품은 때때로 [[불랑률]]이 높아진다.
  • 김건우 (1990년) . . . . 2회 일치
         |문 표기 = Kim Geon-Woo
         |사진 사이즈 =
  • 김근석 . . . . 2회 일치
         |문 표기 = Kim Keun-Seok
         |사진 사이즈 =
  • 김단하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우먼,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김대진 (야구인) . . . . 2회 일치
         |문 표기 = Kim Dae-Jin
         |사진 사이즈 =
  • 김만제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1934년 [[경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국가안전기획부]]의 흑색선전 공작에 대한 역풍으로 [[민주당(1991년)|민주당]] [[홍사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포스코|포항종합제철]]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는 역대 포스코 회장 중 유일한 외부인사 입 사례이다.[[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72|#]]
  • 김문순 (언론인) . . . . 2회 일치
         * 2007년 한국신문협회 부회장 수
         * 2008년 연세언론인
  • 김민호 (희극인) . . . . 2회 일치
         | 활동역 = [[희극 배우]]
         | 웹사이트 =
  • 김석원 (금융인) . . . . 2회 일치
         *일본 히도츠바시대학교 학(금융론) 석사
         [[행정고시]] 19회로 재무부 이재국•국제금융국에서 근무하였고, 재정경제부 중소금융과장, 금융•부동산실명단 총괄반장, 보험제도과장 등을 거쳐, 일본 대장성에 파견 연구관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재정경제부]] 본부국장, 한국국제조세교육센터 소장, 미국 미시간대(금융연구센터)의 Visiting Scholar로서 활동하였으며, 금융감독위원회 기획행정실장, 금융감독위 및 [[금융감독원]] 합동대변인, [[예금보험공사]] 부사장, 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김석형 (역사학자) . . . . 2회 일치
         김석형은 1963년에 발표한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에 대하여〉라는 논문과 이 논문을 보완하여 1966년에 발표한 《초기조일관계사》라는 저서에서 칠지도가 백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바쳤다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을 부정하고 오히려 백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하사했다고 주장했다. 김석형의 삼국분국설은 현재 많은 부분이 수정되거나 파기되었지만, 백제 왕이 칠지도를 하사한 것이라는 학설은 남북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시 유물의 감 기법 등으로 제작 연대가 6세기로 추정되며 가지가 실제로는 7개가 아닌 6개라는 등 칠지도를 《[[일본서기]]》의 내용에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 훈 ==
  • 김수학 (법조인) . . . . 2회 일치
         |전임2 = [[황목]]
         |웹사이트 =
  • 김영준(1941) . . . . 2회 일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제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춘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에 충청북도 제천군-단양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국회의원 안기에 밀려 탈락하였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준, version=31)]
  • 김옥이 . . . . 2회 일치
          | 출생지 = 미 군정 조선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 기타 이력 = 숙명여자대학교 초빙교수 <br/> 한나라당 특임위원 <br/> 한나라당 행정위원 <br/> 한나라당 경기도 의회 의원 <br/> 한나라당 임위원 <br /> 한나라당 국회의원 <br /> 새누리당 국회의원 <br/> 새누리당 전임위원 <br/>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br/> [[자유한국당]] 보훈행정위원
  • 김우식 (1886년) . . . . 2회 일치
         *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1948년 5월 10일]] :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 경북도#달성군 (제4선거구)|제헌 국회의원(경북 달성)]]
         [[분류:1886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흥 김씨]]
  • 김종덕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문 표기 = Kim Jong-Duk
         * [[대구원고등학교]]
  • 김태룡(정치인) . . . . 2회 일치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해금되었으며 민주화추진협의회 임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 까마귀 . . . . 2회 일치
         검은 [[비둘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비둘기]]보다 몸집이 크다. 실제로 보면 당히 위협적.
         서양 문화에서는 왠지 [[죽음]]의 징 같은 취급, 불길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실제로 약간 무섭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0화 . . . . 2회 일치
          * "처를 내서 피를 빨겠다"고 하는데 개성하고 연관된 건지 불분명하다
          * 우라라카가 돌아와 토가를 제압하지만 그녀가 마음을 읽는 듯한 행동을 하자 틈을 보이고 그 사이 피를 빼앗긴다
  • 나체의 마하 . . . . 2회 일치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명화. 스페인의 재 [[마누엘 고도이]]의 주문으로 제작되었으며, 나체의 여성이 누워 있는 누드화이다. 짝을 이루는 그림으로 같은 여성을 모델로 한 [[옷을 입은 마하]]가 있다.
          * 당시 누드화는 누드의 '미美'를 드러내기 위하여 [[여신]]이나 고전 조각 같은 완벽한 인체비례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나체의 마하는 그냥 일반 여성의 관능적인 누드를 드러내고 있다.
  • 남동훈 . . . . 2회 일치
         | 훈 =
         | 웹사이트 =
  • 남상태 . . . . 2회 일치
         '''남태'''([[1950년]]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 ~ )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 남효온 . . . . 2회 일치
         남효온의 여러 저술 가운데서 가장 향력이 돋보이는 것은 역시 육신전이다. 육신전은 사실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과는 차이가 있으며, 여러가지 오류가 존재한다. 또한 남효온의 연령이나 행적으로 보아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사림파 내부에서 전해지던 단종복위운동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여 남기는데 의의를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육신전은 [[세조]]의 찬탈을 비난하고, [[사육신]]의 절개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왕조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왕실의 정통성을 공격하는 심각한 '불온 서적'이었다. 하지만 이 충격적인 '불온 서적'은 사림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필사]]되어 널리 읽혀졌고, 후대의 사림은 육신전에 근거한 '사육신 사관'을 널리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결국 육신전의 기록에 근거하여 사육신이 복권-헌창받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 네토라레 . . . . 2회 일치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을 다른 사람에게 성적으로 빼앗기는
         혹은 그러한 황에 흥분을 느끼는 --개막장-- 취향을 뜻한다.
  • 노루토끼 . . . . 2회 일치
         본래 볼퍼팅어는 크립티드로, 토끼의 몸, 노루의 뿔, 날카로운 이빨에 꿩 날개를 가진 기기묘묘한 생물이라고 한다. 파필로마라는 토끼에게만 걸리는 일종의 피부병 때문에 이러한 환종을 생각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보통 그려지는 모습은 뿔과 이빨, 날개가 분명하게 묘사되는 탓에 병이 있는 토끼와는 확연히 다른 건강한 매력이 느껴진다. 유사한 생물로 꿩 날개가 없는 [[재칼로프]]가 있다.
         [[분류:가의 동물]]
  • 노인 홈 . . . . 2회 일치
         [[양로원]]의 일종. [[노인]]이 거주하기 위한 시설. [[주거]]와 식사제공, 간호제공, 세탁과 청소 등의 가사, 건강 관리 등 일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개 유료 시설이 많으며 입주에는 당한 비용이 든다.
  • 노재우 . . . . 2회 일치
         * 할아버지 : 노수(盧永洙)
         *** 조카 : 노소 (盧素英, 1961년 3월 31일 ~ )
  • 뇌파 . . . . 2회 일치
         1875년, [[국]]의 생리학자 R.케이튼은 [[토끼]], [[원숭이]]의 대뇌피질에서 나온느 미약한 전기신호를 검류계로 기록했다. 이것이 최초의 뇌파 보고이다.
         인간의 뇌파는 한스 베르거(Hans Berger)가 처음으로 기록했다. 머리에 외을 입은 환자의 두개골 결손부에 있는 피하에 2개의 [[백금]]으로 된 [[전극]]을 삽입하였다. 나중에는 굳이 피하에 삽입하지 않고 두피에 전극을 얹기만 해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환자:잠깐 그럼 나는 괜히...--
  •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 . . . 2회 일치
         실제 광경을 해보면 살짝 무섭다.
  • 니라오치 . . . . 2회 일치
         [[아이돌]]의 [[블로그]], [[트위터]]나 [[SNS]]에서 이한 발언을 하는 유저에 대해서 끼어들지 않고 관찰하면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관찰하는 것을 뜻한다. 직접적으로 코멘트나 비판은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관찰하는 태이다.
  • 니세코이/218화 . . . . 2회 일치
          * 가짜연인인건 아무래도 좋지만 "다른 여자와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까지 알고 있다.
          * 그는 치토게가 사라진 이유도 알고 있지만 이대로 진이 밝혀지지 않은 채 헤어지는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 니세코이/219화 . . . . 2회 일치
          * 마리카는 돌아가기 전에 공에서 정부근에 있는 치토게를 봤다고 전해준다.
  • 니세코이/227화 . . . . 2회 일치
          * 치토게와 함께한 시간을 회하는 이치죠.
          * 두 사람을 모두 좋아했던 것 때문에 처를 줬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 니트로글리세린 . . . . 2회 일치
         [[화약]]의 일종. 온에서 액체인 화약으로 폭발력이 대단하지만 지나치게 민감해서 다루기 어렵다. 폭약으로는 흔히 [[규조토]]와 혼합하여 [[다이너마이트]]로 만들어서 쓴다. 소량은 약용 효과가 있어서 [[심장병]] 약으로도 쓰인다.
         대중문화에서는 묘하게 자주 테러범이나 악당이 사용하는 폭약으로 나온다. 사실 니트로글리세린은 위험하지만 너무 민감해서 사용하기 불편한 화약일 뿐이고, 결국 폭발력 자체는 다이너마이트하고 별 차이도 없으니 생 니트로글리세린을 그대로 쓰는 것은 '''그냥 쓰기 불편한 화약'''(…)을 그대로 쓰는 것 뿐이지만 그 화끈함에 미디어에서 이하게 이런데서 자주 주목받는 존재.
  • 다운증후군 . . . . 2회 일치
         [[염색체]]의 이으로 생기는 선천성 질환. 1866년 존 랭던 다운(John Langdon Down)이 학계에 보고하였다. 다운은 이를 몽골증(mongolism)이라고 불렀지만, [[인종차별]]의 혐의가 있어 다운 증후군으로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다운증(ダウン症)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머리]], [[귀]], [[손가락]]이 작고, 얼굴이 편평해진다.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다. [[심장병]], [[지적장애]], 내장 이 등을 수반한다.
  • 단기대학 . . . . 2회 일치
         이름으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단기대학은 주로 여학생이 다닌다. 일본에서 단기대학은 주로 여성의 고등 교육과 직업 교육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유치원 교사, 보육사. 양사, 개호복지사 등 지역 대 전문 직업인 양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14년도 학생 통계로 보면 교육분야가 37.4%로 비율이 가장 높다. 그 다음은 가사 분야. 통계에서도 여성이 많이 다니는데, 1999년 통계에서는 여학생이 33만 9742명(89.9%)로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2014년 통계에서도 졸업생 58,797명 가운데 "취업을 한 여학생"만 40,901명으로 69.6%를 차지했다.
  • 대중흑기 . . . . 2회 일치
         [[일본]]에서 쓰였던 [[깃발]]. [[도쿠가와 가문]]의 조인 [[닛타 가문]]의 깃발이다. 일본의 국기가 될 '''뻔''' 했던 깃발이다.
         본래 [[세이와 겐지]]의 징은 백기(白旗)였다. [[겐페이 전쟁]] 시기에는 겐지의 백기와 헤이케의 적기를 서로 내걸고 싸웠다.([[홍백전]]의 기원이다.)
  • 던전스 & 드래곤스: 섀도우 오버 미스타라 . . . . 2회 일치
         주사위 굴림에 대한 중요도가 전작에 비해 비중이 떨어졌다. 타워 오브 둠(이하 TOD)과 마찬가지로 모든 공격과 방어시에 피해를 입게 될때마다 주사위 굴림이 이루어지지만 전작만큼 엄청난 수준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똑같은 일반 공격인데 대미지가 2배이 차이난다거나 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
         커맨드 입력기술이 [[천지를 먹다]]와 마찬가지로 캡콤 커맨드로 바뀌었다. TOD에서는 돌진기의 경우 ↓J, A+J를 해야 하는 등 조작성이 과거 캡콤의 횡스크롤 액션게임보다 복잡할 뿐더러 빠른 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반면에 돌진기는 ↓↘→A, 대공커맨드는 ↓↑A 등으로 당부분 변경점이 있었다. 또한 발악기(A+J)가 도입되었으며, 아무런 아이템이 없을 때 사용하던 효율성 제로로 평가받은 기술들은 삭제되었다.
  • 데부센 . . . . 2회 일치
         살찐 사람(뚱보=데부デブ)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을 위한 코너나 점을 뜻한다.
         '''데'''부 전문('''센'''몬)(デブ専門)의 약자. 데부(デブ)는 [[뚱보]]이며, 여기서 '전문'은 본래 풍속점을 뜻한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인터넷에서는 '데부센 사이트', AV에서는 '데부센 코너' 라는 것이 생겨났다.
  • 데키콘 . . . . 2회 일치
         의미가 가볍고 인이 좋지 않다고 느껴져서, 경사로운 결혼(おめでた婚), 아이를 하늘에서 내려주셨다고 하여 내려주신 결혼(授かり婚) 등의 말이 있기도 하다. 같은 뜻을 가진 다른 말로는 서두른 결혼(お急ぎ婚), 마마릿지(ママリッジ, 마마+메리지), 마터니티 웨딩(マタニティウエディング) 등이 있다.
         결혼 전에 성행위를 하고 임신하여, 그 [[임신]]이 계기가 되서 결혼을 결의하게 되고, (대개 임신 태로) 결혼을 하게 된 걸 뜻하는 말이다.
  • 도광록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도나우 강 . . . . 2회 일치
         [[라인 강]]과 함께 [[독일]]을 징하는 양대 강. 독일어 이름은 도나우 강(Donau)이며, 어로는 다뉴브 강(Danube)이라고 한다. 헝가리에서는 [[듀나|두나(Duna)]] 강으로 불린다.
  • 도노 . . . . 2회 일치
         주로 중세 일본에서 [[주]] 급의 [[귀인]]에 대하여 부르는 높임말. 인명이나 신분에 붙여서 "-님" 정도의 수식어로도 쓰인다.
          * 사마를 더하여 도노사마(殿様). 유복하고 세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대개 서민 생활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 도야가오 . . . . 2회 일치
         《「도야(どや)」는 「어떠냐(どうだ)」는 뜻의 간사이 방언》으로, 도야가오는 '득의양양하게 어떠냐는 듯이 자신을 자랑하는 얼굴'이라는 뜻이다.
         본래 간사이 출신 예능인들이 쓰던 말로, 2000년 초부터 텔레비젼 프로에 유행어로 나오면서 일본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 독비도 . . . . 2회 일치
         [[중국]]의 무협 화. 한국에서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로 개봉했다. 일본에서 개봉된 제목은 편완필살검(片腕必殺剣). [[김용]]의 [[무협 소설]] 《[[신조협려]]》를 원안으로 하여 제작되었다.
         [[분류:무협 화]]
  • 독친 . . . . 2회 일치
         『독이 되는 부모(毒になる親, 수잔 포워드 저, 타마키 사토루 번역)』(1999년)라는 책이 발매되었으며, 줄임말인 독친(毒親)이 학대 등을 저질러 아이의 성장에 독이 되는 부모를 가리키는 말로서 쓰이게 되었다. 독친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있는 서적은 당히 많은 편.
         세의 잔인하고 가혹한 현실을 가르치기 위하여 아이에게 엄격하게 대한다고 주장한다.
  • 돌턴 갱 . . . . 2회 일치
         1892년 10월 5일 낮, 돌턴 갱은 캔자스주 커피빌에서 무모한 은행강도를 벌인다. 밥 돌턴과 에밋 돌턴이 퍼스트내셔널은행을 터는 사이에 그랫 돌턴, 딕 브로드웰, 빌 파워 세명이 콘던은행을 턴 것이다. 이들이 은행에서 돈을 쓸어담는 동안 황을 알아챈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어 두 은행을 포위했고, 총격전 끝에 돌턴 갱은 제압된다.
  • 돗자리 . . . . 2회 일치
         용도는 술한 대로 맨땅바닥에 까는 것. 맨땅에 그냥 앉으면 흙이나 먼지 등이 옷에 묻기에 이러한 것을 막으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이 쓰는게 아니라 고추 등을 배치해서 말리는데 쓰기도 한다.
         [[소풍]] 등 야유회의 필수 아이템이나 그냥 골판지 자나 신문지를 적당히 깔아서 쓰기도 하며 이제는 접을 수 있는 바닥깔개도 나왔다. 그래도 큼지막한 돗자리는 여전히 유용하다.
  • 듀폰 . . . . 2회 일치
          * 양 보충제, 화장품 등에 사용되는 화학약품
         [[http://www.dupont.co.kr/corporate-functions/our-company.html|듀폰 코리아 웹사이트]]
  • 드라이브 스루 . . . . 2회 일치
         [[자동차]]를 타고, 직접 계산대에서 주문을 받아 품을 구입하는 매장. 햄버거나 커피 등 패스트푸드 가게가 많다.
         [[분류:업]]
  • 드립위키 . . . . 2회 일치
         리:비
  • 디텍티브 침프 . . . . 2회 일치
         [[침팬지]] [[탐정]]. 모든 [[동물]]의 [[언어]]를 구사할수 있으며 원한 젊음, [[인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운동신경]]은 [[운동선수]]보다 뛰어나다.[* 원래 침팬지는 인간보다 훨씬 신체능력이 좋다.]
         [[렉스 더 원더독]]과 친구로 렉스에 의해 젊음의 샘으로 가게 되었는데 모든 생명체의 언어 구사와 원한 젊음을 이때 얻게 되었다.
  • 딩크 . . . . 2회 일치
         미권에서 [[맞벌이]]를 하면서 의식적으로 아이를 가지지 않는 부부. 수익은 2인분, 아이는 없음을 뜻하는 더블 인컴 노 키즈(Double Income No Kids)의 머리문자에서 따왔다. Dinky라고도 한다.
         아이를 양육하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보다, 수익을 늘려서 개인의 삶의 질을 중시하는 선택을 하겠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건전하게 양육하는데 많은 돈과 노력이 소모된다는 어려움도 반되어 있다.
  • 라몬 베렝게르 3세 . . . . 2회 일치
         지금의 프랑스에 있는 로데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두머리의'' 라몬 베렝게르 2세는 자신의 형제인 베렝게르 라몬 2세과 함께 바르셀로나 백국의 공동 통치자였는데, 형제와 불화를 겪다가 결국 동생에게 암살당한다.[* 이사건으로 인해 베렝게르 라몬 2세는 ''형제 살해자''칭호를 얻게 된다.] 이후 97년에 베렝게르 라몬 2세가 결투재판에 패해 1차 십자군에 강제로 떠밀려지게 된 이후, 그는 삼촌의 작위를 속받게 된다.[* 베렝게르 라몬은 2년뒤(1097년에 바로 죽었다는 설도 있다.) 거기서 횡사한다.]
         이후 그는 1112년에 프로방스의 마지막 속녀인 두세와 혼인해 프로방스 백작위를 획득하고, 우르겔과 페랄라다를 제외한 모든 카탈루냐 국가들을 합병한다. 이후 우르겔 백국과 동맹을 한 그는 바르바스트로와 발라구에르를 정복해내는데 성공한다.
  • 러브라이브! . . . . 2회 일치
         일본의 가아이돌 프로젝트. 2007년 시작되었다. 러브라이브의 팬들을 [[러브라이버]]라고 부른다.
          * 와타나베 요우 (CV: 사이토 슈카)
  • 런던 맥주 홍수 사건 . . . . 2회 일치
         1814년 10월 17일, [[국]] [[런던]]에 위치한 토트넘 코트로드(Tottenham Court Road)의 모이쿠스 양조장에서 맥주를 저장한 통들이 일제히 폭발한 사건.
         사건 직후 해당 양조장은 의회에 청원하여 앞서 납부한 세금을 환급받는 데 성공했고, 그 후 1922년까지 운하다가 해체되었다.
  • 레드맨 . . . . 2회 일치
         일본의 [[특촬물]]. 신장 42m, 체중 30,000t의 히어로 레드맨이 레드 애로우, 레드 나이프, 레드 폴 등을 이용해 [[괴수]]들을 대로 싸우는 내용이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5PBnSG7C0WXp5gjd4bzKtw|유튜브의 츠부라야 공식 채널]]에서 일주일에 몇개씩 시한부로 풀어줬었다. 지금은 다 풀어줘서 [[오프닝]]과 1화만 볼 수 있는 태.
  • 레어 . . . . 2회 일치
         실제로는 위등급인 '웅'이나 '전설'이 있기 때문에 진짜 아무 가치도 없는 노등급 잡템보다 간신히 나은 수준이다.
  • 레킹 크루 . . . . 2회 일치
         [[디스크 워즈: 어벤저스]]에서도 등장해 저연령층을 대으로 한 만화인지라 캐릭터가 순화되었다.
          주무기는 마법의 쇠 지렛대. 그냥 휘두르기도 하지만 특수한 힘이 있어서 [[방어막]] 생성, [[텔레포트]], 환 생성, 에너지 블라스트 발사, 작은 지진 생성, 소유하려는 사람의 정신을 조종 등 강력한 무기다.[* 근데 마블에서는 이런거 꽤나 흔히 있지 않나...?]
  • 롤 모델 . . . . 2회 일치
         아이들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면서 동경하는 대. 챔피언이거나 프로게이머일 수도 있다. 대개 서로의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다.
         동음이의어로 Role Model이 있다. 자신이 본받고 싶은, 동경하는 대을 뜻하는 말.
  • 리전 오브 몬스터즈 . . . . 2회 일치
          [[흡혈귀]]. 첫번째, 두번째 버전 모두 멤버.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도 등장했으며 국내에서도 방한 스파이더맨 TAS에서도 등장.
          [[늑대인간]]. 강력한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후각도 뛰어나다. 외모가 [[언더월드]]나 [[반 헬싱]] 등에서 나온 완전히 늑대형 머리를 지닌 늑대인간과 달리 고전화의 늑대인간과 닮았다.
  • 릭 존스 . . . . 2회 일치
         [[어벤저스]] 결성에도 향을 미쳤는데 [[로키]] 때문에 그의 요청이 오해되어서 헐크와 히어로들이 싸우게 된것이다. 이후 결과는 모두가 아는 데로.
         [[캡틴 아메리카]]의 [[사이드킥]]인 [[버키]]가 된적도 있고, 캡틴 마블의 동료가 된적도 있다.
  • 마기/296화 . . . . 2회 일치
          * 홍명이 도입한 새로운 수송수단은 "전송마법진" 즉 순간이동 장치다. 수송의 일대 혁신을 일으킬 거라고 홍보하자 포도주 인 부델이 황제국에 포도밭을 만들기로 전격 합의한다
          * 하지만 알리바바는 자신은 왕자로서 대의를 논하는 것에 지쳤다며 개인으로서 자신의 일을 하겠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또한 이젠 이 나라엔 왕자는 더이 필요없다며 현재의 바르바드를 긍정한다
  • 마루코메 . . . . 2회 일치
         일본의 미소된장 제조 회사로 슈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미소 표명이기도 하다.
         1854년에 창업한 전형적인 일본 노포이나, 정식 회사로의 발족은 2차대전 후인 1948년(...)에 했다. 또한 2000년대 이후로는 미소뿐 아니라 누룩[* 코우지, 밀을 이용하여 덩어리 형태로 만드는 한국식 누룩과 달리 낱알 형태이므로 입국(粒麴)이라고도 한다.]을 이용한 다양한 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 마이사카 코우 . . . . 2회 일치
         ||하마마츠 출생 → 경 → 대학 졸업 → 중소 출판사 근무 → 게임업계로 진출 → 어쩌다 데뷔 → 그 후 독립 → 사이타마 지역에서 20년 넘게 살았다가 그 후 삿포로 거주, 현재에 이름.||
  • 마터니티 마크 . . . . 2회 일치
         임신 초기는 아기의 성장은 물론, 엄마의 건강을 유지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시기이지만, 외관으로는 초기 임산부를 구분할 수 었기 때문에 다양한 불편함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지하철 같은 곳에서 노약자, 임산부 석을 이용할 때 트러블이 일어나거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스스로 초기 임산부라는 것을 알릴 수 있도록 마터니티 마크가 제작되었다. 현재 이 마터니티 마크의 디자인의 저작권은 일본 후생노동성에 귀속되어 있으며, 동시에 리 목적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의료 건강계 사이트 플라스알의 조사에 의하면, 마터니티 마크를 사용해서 좋았다는 질문에는 '예'는 43.4 %, '아니오 '는 56.6 %에 달했다. 반면에 마터니티마크를 붙여서 곤란했다고 생각한 경험이 있는가는 '예'가 9.3 %,'아니오 '가 90.7 %로서 약 10%의 적지 않은 사용자가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다고 대답했다.[[http://news.ameba.jp/20140331-108/ (참조)]]
  • 마터니티 포토 . . . . 2회 일치
         [[아기]]의 탄생을 가다리는 행복한 모습을 촬한 [[사진]]. 임산부의 부풀어오른 배를 강조하여 찍는 경우가 많다. 신랑도 함께 찍는 경우도 있다.
         본래 미권에서 스타 연예인의 임신 누드 사진 공개가 속속 이어지다가, 이렇나 풍속이 일반인에게 까지 퍼지면서 나타나게 되었다.
  • 메시마즈 . . . . 2회 일치
         메시우마와는 반대로 타인의 행복을 보고 밥이 맛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행복한 태를 보고 질투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혹은 아주 슬픈 소식이 들어왔을 때도 사용한다.
         요리치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이런 표현을 주도한 스레드는 가정판의 아내의 밥이 맛이 없다(嫁のメシがまずい) 스레드이다. 이 스레드에서는 단순히 요리를 잘 하거나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천외한 엽기적인 음식의 이야기가 투고되고 있다.
  • 메시아 컴플렉스 . . . . 2회 일치
         통속심리학 용어. 자신이 '구세주'([[메시아]])가 되어야 한다는 비정적인 강박관념을 가지고, 비정적이거나 과도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사고방식이다.
  • 멸사봉공 . . . . 2회 일치
         사자성어. 어로는 'sacrifice yourself for greater good'.
         일본에서는 메이지 15년 발표된 「군인칙유(軍人勅諭)」, 메이지 23년 발표된 「교육칙어(教育勅語)」 등에서 멸사봉공을 강조하였으며, [[절대주의]] [[군국주의]] [[미카도이즘]] 사회를 징하는 표어로 삼았다.
  • 모리시오 . . . . 2회 일치
         하나는 중국유래설이다. 진시황 정, 혹은 진무제 사마염이 많은 궁녀를 두었는데 궁녀를 고르기가 어려워서 달구지를 타고 멈춘 곳에 있는 궁녀를 찾아갔다. 이 때 한 궁녀가 꾀를 내어 이파리 위에 소금 담아 집 앞에 둬서 달구지를 끄는 동물(양, 소)가 멈추도록 했다는 고사가 있어 이에 따라 복을 부른다고 여겨졌다는 것이다.
         책의 모서리에 둔다는 경우도 있다.
  • 모죠 . . . . 2회 일치
         또한 「(喪)」이라는 한자에서 어두운 이미지가 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 무선호출기 . . . . 2회 일치
         [[휴대전화]]보다 먼저 용화 되었으며, 가격이 초창기 휴대전화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널리 보급되었다. 하지만 휴대전화의 보급과 함께 호출 기능 밖에 없는 무선 호출기는 빠르게 사라졌다. 대략 1990년 초중반에 청소년에게도 널리 퍼질 정도로 용화 되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는 휴대전화의 보급에 밀려서 사라진 편.
  • 무신 . . . . 2회 일치
         武의 신. 군신(軍神), 전신(戰神), 투신(鬪神)과 이미지가 겹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군신, 전신은 무신보다는 지휘관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며, 투신은 무신보다 더 거친 느낌이 있다. 묘하게 신앙의 대으로 모셔지는 '신'보다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장수, 격투가를 지칭할 때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에도 고려시대 무신정권과 무력 쿠데타를 통한 조선 건국의 향, 그리고 조선 초의 각종 내란으로 인해 무신에 대하여 강하게 견제를 하였고, 이러한 부분이 훗날 임진왜란 당시 초반에 왜군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한 원인이 되었다.
  • 무직 . . . . 2회 일치
         [[직업]]이 없는 태. 직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는 슬픈 태. 멀쩡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무직이면 본인도 슬퍼지고 주변 사람들도 슬퍼진다.
  • 문옥주 . . . . 2회 일치
         1924년 [[경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36년 16살에 일본 헌병대로 끌려가 만주와 동남아시아 미얀마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 당하였다. 1991년에는 일본에서 손해배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저축한 돈의 반환을 요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위안부 피해자 故문옥주 증언, 기록 일치"|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17/0200000000AKR20160517091600073.HTML|출판사=연합뉴스|날짜=|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1996년 10월 26일 새벽 대구동산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日軍위안부 문옥주할머니 숨져|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9184&yy=1996|출판사=매일신문|날짜=1996년 10월 26일|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 민룡 . . . . 2회 일치
         올림픽에 앞서, 그는 5,000m 릴레이와 함께 1,500m 나 1,000m 개인전에 참가할 것으로 예했다.
         하지만 민룡은 1,500m와 1,000m 개인전에 선발되지 못했고 5,000m 릴레이 예선 도중 심각한 부을 입어 올림픽이 끝난 직후 조기은퇴했다.
  • 바리어프리 . . . . 2회 일치
         "장애물이나 장벽이 없다"는 의미이다. 일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물리적, 심리적인 장애, 정보에 관한 장벽 등을 제거하려는 운동 혹은 그러한 사의 결과로 이루어진 개선책. [[고령자]], [[장애인]]에게 안전하며, 살기 쉬운 사회를 만들자는 개념이다.
  • 바키도/106화 . . . . 2회 일치
         무사시와 피클은 손에 손을 맞잡은 태에서 대치한다.
          * 피클은 백악기 시절 무엇이든 움켜쥐는데 익숙했지만, 지금처럼 맞잡을 수 있는 대와 싸우는건 최초였다.
  • 바키도/107화 . . . . 2회 일치
         피클을 대로 마운트 포지션을 따낸 무사시
          * 알버트 박사는 그 희귀한 시베리아 호랑이도 피클의 밥으로 던져주는데 거리낌이 없던 인물인데, 막 무사시에게는 찍소리도 못하고 있다.
  • 바키도/113화 . . . . 2회 일치
          * 도쿠가와는 바키를 불러다 당하는데 바키는 말 없이 피클과 마주 앉는다.
          * 도쿠가와는 그런게 가능하겠느냐며, 지금 피클은 먹지 않아 약해진 태라고 강조한다.
  • 바키도/115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집념에 찬 눈을 빛내며 "야의 베스트 컨디션"을 만들고 있다.
          * 만화 황이 거의 초현실적이다.
  • 바키도/119화 . . . . 2회 일치
          * 절단되진 않았지만 깊은 처가 들어가 피를 흘리며 괴로워한다.
          * 정작 무사시는 표적이 완전히 썰리지 않고 어중간하게 처만 줬다고 탄식한다.
  • 바키도/124화 . . . . 2회 일치
          * 그는 도장 밖의 일을 접할 때마다 무에서 마음이 멀어짐을 느끼지만 그럴 때마다 깨닫고 되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장에서 멀어진 일. 양치, 식사, 타인과 접촉에 따른 희노애락.
  • 바키도/126화 . . . . 2회 일치
          * 모토베 이조를 대로 인정하는 무사시.
          * 무사시가 "통하지 않았군"이라 맞장구치자 이번엔 "아니, 내 경력은 지금 세 빛을 보고 있다"는 말을 한다.
  • 바키도/131화 . . . . 2회 일치
          * 가이아는 이것을 보는 순간 속으로 더는 무리라고 외친다. 아무리 방검복을 입고 있어도 대가 곡괭이로 내리 찍는다면 어떨까? 설사 방검복은 뚫리지 않더라도 그걸 입은 사람은 확실히 목숨을 잃을 것이다. 가이아는 "대는 칼이나 든 폭한이 아니다"며 모토베의 결정적 실책을 직감한다.
  • 바키도/133화 . . . . 2회 일치
          * 오로치돗포부터 시작해서 하나둘 관중들이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들 사이에선 지켜지고 말았다는 안도감과 감사, 그리고 앞질러 가버린 동료에 대한 질투와 씁쓸함 따위가 뒤섞인 감정이 흘러나온다. 그런 감정들이 박수를 타고 모토베에게 쏟아져 내린다.
          * 모토베가 이번엔 "그럼 손대중 한걸 말한 참이냐"고 말한다. 자신이 적일 수는 있어도 "강적"이진 않았다고 말이다. 실제로 무사시의 검은 모토베의 방어구를 아득히 능가하는 위력을 지녔다. 게다가 피클에게 한 것처럼 "귀퉁이"를 베어내는 방법도 쓸 수 있었다. 그는 일부러 손대중을 하며 대의 숨통을 끊지 않은 것이다. 대답이 없는 무사시에게 모토베가 "다 들켰다"고 지적한다.
  • 바키도/139화 . . . . 2회 일치
          * 무사시는 그런 도쿠가와를 "자하다"고 표현한다. 도쿠가와는 무사시는 문 밖에선 살 수 없다고 거듭 저택 안으로 돌아가길 부탁한다. 그 설득 때문인지 무사시는 발걸음을 돌리고 도쿠가와도 한숨 돌린다. 하지만 저택을 간다고 생각했던 무사시는 도쿠가와 앞에서 발길을 멈추더니 그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 오오츠카는 굳은 표정으로 "칼에 의존하는건 좋지만 국가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무사시는 태연한, 오히려 비웃는 태도로 "나라가 내게 베여도 괜찮겠냐"고 응수한다. 이때 무사시는 마치 오거 [[한마 유지로]]처럼 주변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강한 기운을 내뿜는다. 오오츠카 경보부는 대단한 기운이라며 더이의 대화는 무리라고 판단한다.
  • 박상규(정치인) . . . . 2회 일치
         1936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태어났다. 충주교현초등학교,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에서 7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이후 다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하다가 대한민국 육군 병으로 병역의무를 이수하였다. 동국대학교 졸업 후 공무원 전환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공무원으로서 정보 업무를 담당하였다. 1970년대부터는 한국비철금속 사장을 거쳐 한보금속공업을 경하였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장을 겸임하였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박규,version=35)]
  • 박성환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문 표기 = Park sung-hwan
         |사진 사이즈 =
  • 박은수 (1956년) . . . . 2회 일치
         | 소속임위= [[대한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
         판사 시절, 그가 하는 재판마다 아들을 데리고 오는 경찰관이 있었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는데, 경찰관 아버지는 재판관 자리에 앉은 박은수 판사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법조계는 물론 롤 모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 박인태 . . . . 2회 일치
         | 수 =
         == 수내역 ==
  • 박치기 . . . . 2회 일치
         자신의 머리통이나 이마로 대를 들이받는 기술.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 중 프랑스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이 이탈리아 축구선수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가해 쓰러트린 사건이 유명하다. 이 일로 지단은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되었다. 이 장면은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785144|카타르에서 동으로 만들어졌다고.]]
  • 박희부 . . . . 2회 일치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대덕구|대덕군]]-[[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천성]] 후보와 [[민주한국당]] [[유한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대덕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이인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합류하였다.
         정치경력은 분명 원로급이지만 총 7차례의 총선 출마 중 당선은 1번, 그것도 14대 총선에서 공천에서 떨어지자 충청도서 비교적 약진한 통일국민당에 입당한 덕분이었다. 이는 도동계 주류가 PK, 일부가 수도권에 기반한 것과 달리 고향 출마를 고집한 덕분이었다. 그는 7차례의 총선을 모두 고향 연기군(세종시도 연기군의 후신이니...)에서 출마했다.
  • 방공기구 . . . . 2회 일치
         방공기구가 목표물 인근에 떠있으면, 전투기는 이를 피하기 위해서 움직여야 하므로 적 전투기를 방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언듯 생각하면 풍선 따위로 전투기를 막는 것이 황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 조종사는 당히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고 한다.
         [[닥터후]]의 국 본토 항공전이 나오는 에피소드 등에서 볼 수 있다.
  • 방우정 (방송인) . . . . 2회 일치
         |출생지= [[경북도]] [[달성군]] 유가면</br>(현.[[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웹사이트=[http://www.mcleaders.co.kr/ MC 리더스] </br> [http://cafe.daum.net/mcbang88 이벤트 MC 방우정]
  • 배트맨 . . . . 2회 일치
         [[로빈]]이라는 사이드킥이 있는데, 1920년대부터 꾸준히 동성애 관계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갑부가 어린 남자애랑 사는게 뭐가 어때서.
         == 실사화 ==
  • 백대현 . . . . 2회 일치
         |바둑리그 = [[남일보]]
         1994년 입단하였으며, 2010년 7월에 8단으로 승단하였다. 현재 [[한국바둑리그]] [[남일보]] 소속의 선수이다.
  • 백춘희 . . . . 2회 일치
         * [[청주여자업고등학교]]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청주여자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덕대학 동문]]
  • 버리는 대사 . . . . 2회 일치
          * 가장 흔히 쓰이는 황은, 헤어지거나 하는 이유로 그 자리를 떠날 때 대답을 바라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뱉고 가는 말을 뜻한다. 이 경우는 악의적으로 경멸이나 협박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나는 황을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기억해둬라!" 같은 말이 있다.
  • 법테라스 . . . . 2회 일치
         [[일본]]의 무료법률지원서비스. 정식명칭은 일본사법지원센터(日本司法支援センター). 2006년 설립된 일본 법무성 소관의 공공법인으로서, 민형사의 법적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법테라스의 업무는 문의내용에 따라서 해결에 도움을 주는 법률이나, 지방공공단체, 변호사회, 사법서사(법무사) 회, 소비자 단체 등을 안내하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무료 법률 담이나, 필요에 따라서는 변호사나 법무사 비용을 대행한다. 또 범죄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지원을 주는 범죄 피해자 지원 업무도 하고 있다.
  • 병 속의 악마 . . . . 2회 일치
         안에 악마가 들어 있는 마법의 병은 뭐든지 소유자의 소원을 들어주지만, 죽을 때까지 이 병을 소유하고 있으면 소유자는 [[지옥]]에 떨어져서 원히 불타게 된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병을 팔아야 하는데, 소유자가 주고 산 값보다 싼 값에 병을 팔지 않으면 안된다.
         ## === 웅, 인간 ===
  • 보스 트롤 . . . . 2회 일치
         드래곤 퀘스트 3에서는 변화의 지팡이(へんげのつえ)로 [[사만오사의 왕]]으로 변신하여 폭정을 펼치다가, 용사 일행이 [[라의 거울]]로 정체를 폭로하여 보스전을 벌이게 된다. HP가 320으로 높으며, 트롤 답게 자동 회복이 있어서 100의 HP를 재생한다. 공격력이 높으며, 공격->공격->[[통한의 일격]] 순서로 로테이션 공격을 가하기 때문에 당히 강적이다. 통 공격이 오는 타이밍에는 버프를 주로 하고, [[아스트론]]으로 통한의 일격이 올 타이밍에 막아내면서 싸우는 것이 기본적인 전략.
  • 보쿠걸/95화 . . . . 2회 일치
          * 로키가 인간계로 온 건 신들이 대를 안 해주게 돼서다
          * 애초부터 로키는 북구신화의 신이긴 했지만, 설마 토르까지 나올 줄 예한 독자는 없었다.
  • 보쿠걸/97화 . . . . 2회 일치
          * 미즈키의 아버지와 타케루의 아버지는 아는 사이로 악우 사이
  • 보타니 만의 짐 존스 . . . . 2회 일치
         Jim Jones at Botany Bay. [[호주]]의 [[민요]]. 죄를 지어 호주로 끌려온[* 과거 국은 호주를 유형지로 사용했다.] "짐 존스"라는 남자가 사슬을 끊고 탈출해 [[잭 도나휴]]의 부시레인저[* 1번 주석과 같은 일로 호주에 끌려온 죄수들이 탈주, 산적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부시레인저(Bushranger)라고 불렸다.] 무리에 들어갈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화 [[헤이트풀 에이트]]의 사운드트랙에 사용되었다.
  • 북두삼형제 . . . . 2회 일치
         여담으로 사실 원작에서는 켄시로, 토키, 라오우가 셋이서 모여서 등장하는 장면은 라오우와의 첫 대결에서 사우저 편, 토키의 최후편에 걸쳐서 비교적 길게 있고 명장면도 많지만, 쟈기는 [[아미바]] 전 이전에 나왔다가 퇴장하기 때문에 실제로 원작에서 3명이 모인 적은 있어도 쟈기까지 합쳐서 4명이 모인 적은 없다. 회씬에서도 쟈기와 켄시로, 쟈기와 토키, 라오우가 만나는 장면은 있지만 4명이 모두 모인 적은 없다. 쟈기도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구TV판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회씬, 신 극장판 애니메이션 유리아 전, 외전 코믹스인 쟈기 외전이나 류우켄 외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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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통시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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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ㅈ [[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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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릿 타임 . . . . 2회 일치
         Bullet Time. [[게임]]이나 [[화]] 등에서 사용되는 기법. 순간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도록 하는 기법을 뜻한다. 이 기법을 사용하면 날아가는 총알마저 보이게 되기에 "불릿 타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화 [[매트릭스]]의 총알 피하기 장면으로 유명해졌다.
  • 브라이아크 라오 . . . . 2회 일치
         한편 코난과 라나가 샐비지선에서 '파치(パッチ)'라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데 사실 이 파치가 라오였다. 인더스트리아측의 꿍꿍이를 눈치채서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으며 이후 탈출하다 탑승한 비행정이 격추당했고, 그 탓에 생긴 부에 의해 얼굴이 다른 얼굴이 된 것. 이후 정체를 위장한 체 살고 있다가 라나와 재회한 것이다. 처음에는 코난과 라나에게 차갑게 대한 것은 사정 탓에 어쩔 수 없었던 일. 이후 정체가 들통나면서 플라잉 머신을 타고 도주한다. 그러나 지각 변동 탓에 이대로 있으면 인더스트리아가 바닷속에 가라앉을 판이라 이를 알려주러 인더스트리아에 가서 최고위원회와 대화를 나누나 이때 레프카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잡히게 된다. 이후 오랜 전기고문을 당한 탓에 몸이 망가져버려 라나의 텔레파시가 없으면 보통 대화도 나누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나마 라다 덕분에 어느 정도는 세을 봤지만. 최후에는 이러저러한 것들을 해결하고, 탈출선에 탑승해 최후를 맞이한다.
  • 블랙 클로버/52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그정도는 리히트도 대비하고 있었다. 야미가 카운터에 맞을 위기 황.
          * 신수훈편에 나왔던 샬롯 로즈레이는 완전 깨는 캐릭터였다.
  • 블랙 클로버/54화 . . . . 2회 일치
          * 자줏빛 범고래의 단장 "겔도르 조이포트". 야미 스케히로의 말로는 햄같은 인이고 대단한 거이라 한다
  • 블랙 클로버/55화 . . . . 2회 일치
          * 겔도르는 격렬하게 항의하지만 평소부터 수한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의 의심을 산다
          * 아스타의 공격으로 위치가 노출된 사이 릴이 회화마법 "리스티릭션의 샘물"로 구속한다.
  • 블랙 클로버/62화 . . . . 2회 일치
          * 키아토는 마법이 아니라 진짜 검으로 대하면 아스타의 검은 그냥 철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비꼬고 자신의 움직임에 무도마법까지 합하면 아스타는 따라올 수 없다고 도발한다.
          * 갑자기 천정을 뚫고 고래형의 무언가가 그를 덮친다.
  • 블랙 클로버/81화 . . . . 2회 일치
          * 한편 가장 먼저 아지트를 떠난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수한 문 앞에 있다.
          * 바네사는 이 문 앞에서 "마녀의 나라 사 최고의 천재 마녀가 돌아왔다!"고 볼일이 있다고 외친다.
  • 블랙 클로버/88화 . . . . 2회 일치
          * 바네사는 무식한 발이라면서도 최대한 돕기로 한다. 자신의 실 마법을 두 빗자루에 걸쳐 팽팽하게 당긴 후 활처럼 아스타를 쏘아보낸다.
          * 판젤은 가볍게 마법을 잘라버린다. 라드로스도 이정도로는 어쩔 대가 아니라는걸 아는 듯 하다. 젤은 역시 이들은 자기가 알던 예전의 그들이 아니라며 "스스로의 과거에 자신의 마법으로 속죄하겠다"며 한 자루의 마법을 뽑는다.
  • 블루 마블 . . . . 2회 일치
         한국전쟁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해병 출신에 뛰어난 과학자다. 연구하다가 실수로 반물질을 만들어서 네거티브 존에 빠지게 되었고, 그 안의 네거티브 존 방사선에 의해 초능력을 얻게 되었다. [[슈퍼맨]]과 비슷한 능력에 [[반물질|반물질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조작할 수 있고, 일반적인 태의 센트리에게 어느정도 대항하는 초음속의 스피드와 93,000톤 가량의 물체를 감당해내는 힘, [[센트리]]를 지구 밖으로 날려보낼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갖춘 초인. 같은 마블 코믹스 캐릭터인 [[하이페리온(마블 코믹스)|히페리온]], 센트리처럼 슈퍼맨과 비슷한 캐릭터.
         강력한 능력을 지녔으나 60년대쯤 히어로로 활동하던 중 케네디 대통령에게 불려나가 히어로 활동을 그만두기를 종용 당했다[* 흑인 차별이 심했던 당시 사회 여론을 의식한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이후 잠정적으로 히어로 활동을 중단하다 [[피어 잇셀프]]에서 잠시 등장. '[[인피니티(마블 코믹스)|인피니티]]'에서는 뉴욕 한복판에 소환된 [[슈마고라스]]의 일부를 무찌르는데 일조했으며 [[루크 케이지]]의 마이티 [[어벤저스]]에 합류한다고 한다. 물체를 원자 단위로 볼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이걸 활용해서 반물질을 조작해 체내의 양성자가 반양성자로 인해서 분해되는 태의 [[스펙트럼(마블 코믹스)|스펙트럼]]이라는 여성 히어로를 구하기도 했다.
  • 블리치/683화 . . . . 2회 일치
          * 제라드는 토시로의 변화에 의아해하지만 "전보다 지금이 내 대에 어울린다"고 기뻐하며 공격한다.
          * 토시로는 "네 발짝 사이" 안에 모든 것을 얼린다고 해설하며 조금 더 일찍 꺼냈다면 유효했을 거라고 말하는데.
  • 블리치/690화 . . . . 2회 일치
          * 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치고에게 유하바하는 "너무 두려운 만해"였다고 말한다.
          * 천쇄참월이 사 최초로 해방 자체가 저지된 만해가 됐다.
  • 빗치 . . . . 2회 일치
         본래는 암캐라는 뜻이다. 옥스포드 어사전은 이 단어가 AD 1000년 경에 암캐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 말의 어원은 고대 북구어 bikkja로 추정된다. 고대 어(Old English)에서는 bicce 라고 쓰며 의미는 같다.
  • 사쿠라 . . . . 2회 일치
         본래 노점의 은어였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 일반 사회에 퍼졌다. 한자로는 위객(偽客)이라고 쓰기도 했다.
          * 에도 시대에 연극 오두막에서 배우에게 말을 거는 구경꾼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화려하게 분위기를 돋구고 확 사라지기 때문에, 확 피고 사라지는 벚꽃의 성질에서 따와서 사쿠라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노점의 은어를 거쳐서 일반적으로 퍼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 삼류무공 . . . . 2회 일치
          * 삼류무공 한계설 : 삼류무공은 익혀도 결국 삼류 수준의 실력 밖에 가지지 못한다. 반드시 승무공을 익혀야 한다. 사실 가장 흔한 삼류설이다.
          * 육합권(六合拳) : 현실의 '심의육합권'은 훌륭한 권법이지만, 왜일까 무협지에서는 삼류무공으로 여겨진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병신육갑(…)이 연되어서일까?
  • 생리적으로 무리 . . . . 2회 일치
         사용하는 대은 높은 확률로 남성.
         이러한 표현을 쓰는 이유로는 "싫은 이유도 생각하고 싶지 않기 떄문이다."는 심리적 레벨의 분석, 유전적으로 대방의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 수준의 거부감이라는 분석 등이 있다.
  • 섀도우문 . . . . 2회 일치
         가면라이더 블랙 RX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섀도우문이 "지옥에서 돌아왔다!"면서 다시 등장. 바위에 깔려 있다가 어떻게 빠져 나왔으나, [[기억실]]이 되어 노부히코로서의 기억을 잃고 블랙 RX를 가로막는 강적으로 활약한다.
         인적인 라이벌 캐릭터로서 인기가 높다.
  • 서귀포시 . . . . 2회 일치
         천동''' ||靈泉洞|| 5,381 || 46.33
         대포주절리대
  • 서동민 . . . . 2회 일치
         |문 표기 = Seo Dong-Min
         |사진 사이즈 =
  • 서부개척시대 . . . . 2회 일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는 미국-멕시코 전쟁 등을 전후하여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 서부로 이주하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 멕시코인 등과 충돌하며 미국의 토로 확정해 나갔던 시기를 뜻한다. 현재의 초강대국 미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며 미국인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시대지만, 원주민에게는 백인들의 대침략이 벌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흔히 '웨스턴'이라 불리는 장르의 화가 이 시대를 묘사하게 되었다.
  • 서울대공원 구미호 . . . . 2회 일치
         1984년 9월 무렵 국민학교 어린이들 사이에서 퍼진 귀신. 이 해 여름에 [[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여기에 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 서정돈 . . . . 2회 일치
         | 훈 =
         * 《정인 및 각종질환에서의 혈청 Lipoprotein에 관한 연구》 외 240편
  • 서태식 . . . . 2회 일치
         ==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3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인회계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과대학 동문]]
  • 서효인 (야구인) . . . . 2회 일치
         |문 표기 = Seo Hyu-In
         |사진 사이즈 =
  • 석등보 . . . . 2회 일치
         석등보(昔登保, 생몰년 미) 또는 석등야(昔登也)는 [[신라]] 초기의 귀족이다. [[실성 마립간]]의 어머니인 [[이리부인 김씨]]가 그의 딸이라 한다. 그러나 다른 설에는 [[벌휴 이사금]]의 딸 또는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분류:신라의 왕족]][[분류:탈해 이사금]][[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선거인단 . . . . 2회 일치
         선거인단 제도는 과거 미국의 토가 매우 넓고, 인구가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고안된 제도이다. 대통령은 각 주가 아닌 '연방'의 대표라는 측면도 반하고 있다.
  • 성역 도시 . . . . 2회 일치
         시애틀의 에드 머리 [[시장]]은, “오늘은 일본계 미국인들의 강제수용 이후 미국 이민역사 가장 어두운 날”이라면서, 트럼프의 반헌법적 행정명령에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시애틀시의 가치를 지킬 것이라고 주장, 킹 카운티의 다우 콘스탄틴 수석행정관은 “킹 카운티는 어린이들과 가족들을 음지로 몰아넣지 않고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을 것”, “다른 여러 지자체들과 함께 불법체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대응장치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http://ny.koreatimes.com/article/20170126/1036862 (참조)]]
         시애틀 시는 연방정부의 재정중단 명령에 따라 8500만 달러의 예산을 잃게 되었다. 참고로 시애틀 시는 50억 달러의 예산으로 운되고 있다.[[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4963815 (참조)]]
  • 성유미 . . . . 2회 일치
         || '''학력''' ||[[경북여자고등학교]] [br] [[중앙대학교]] 경학부 학사||
          * 가자 브라질로[* 2014년 6월 초 종하였다.]
  • 성인 . . . . 2회 일치
          * 성인(聖人) :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사람. 어로 세인트(saint).
         이 4개의 교단은 각각 성인으로 인정하는 대이 달라서 제각각 별도의 성인 목록을 가지고 있다. 정교회의 경우, 각 지역 정교회 마다 또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대체로 모든 교단에서 성인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 세령(가수) . . . . 2회 일치
         사이트 공식사이트, 인스타그램
  • 소년보도 . . . . 2회 일치
         보도(補導)는 올바른 방향으로 길을 이끈다는 뜻이다. 즉 소년보도는 소년(청소년)을 대으로 올바른 행위를 지도하는 활동을 뜻한다.
         보도는 일단 행위를 중단 시킨 다음, 귀가 등의 조치를 시키고, 청소년 담이나 다른 조치에 들어가는 절차를 밟는다.
  • 소말리 족 . . . . 2회 일치
         소말리 인이라고도 한다. 문화적으로는 바다 건너 편에 있는 아랍의 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슬람교]]를 주로 믿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각각 국령 소말리랜드와 이탈리아 령 소말리아로 식민지가 세워져 나누어져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소말리 족 통일국가를 열망하는 '대 소말리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소말리랜드와 소말리아는 협력하여 통일-독립에 성공한다.
  • 소학 . . . . 2회 일치
         [[남송]]의 [[주희]]가 아동을 대으로 하여 만든 수신서(修身書). 1187년에 간행되었다.
         소학이라고 해서 어린이 전용인 것은 아니고,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만큼 유교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라이프 스타일 지도서이다. 굉장히 꼼꼼하고 짜증날 정도로 세하기도 하다.(…)
  • 솔 인빅투스 . . . . 2회 일치
         [[라틴어]] Sol Invictus / [[어]] Unconquered Sun
         ## 숭배 양
  • 송아영 . . . . 2회 일치
         이후 [[한국대학교]] 음악과 [[교수]]를 지냈다.
  • 쉬르스트레밍 . . . . 2회 일치
         세계 최악의 냄새를 가진 식품으로 악명이 높다. 또 통조림이 밀폐된 태로 발효가 되기 때문에 내부에서 [[가스]]가 발생해서 통조림 깡통이 볼록해진 태가 되기 쉽다. 그래서 '''터지기도 쉽다.''' 냄새나는데 터지기까지 하면 정말로 최악(…).
  • 슈퍼 영 팀 . . . . 2회 일치
         [[빅 사이언스 액션]]처럼 일본의 히어로 팀으로 [[틴 타이탄]]처럼 십대로 구성된 팀이다.
          슈퍼 팀의 리더. [[배트맨]]과 비슷한 복장을 착용하고 있다.
  • 슈퍼걸(드라마) . . . . 2회 일치
         인간형 적. 인간하고 비슷하지만 두개골에 이한 돌기가 있다.--아무리 봐도 [[클링온]] 짝퉁-- 별로 도마뱀 같지는 않은데 왠지 도마뱀으로 언급된다. 2500도 가량의 열을 내뿜는 [[도끼]]를 무기로 사용하며 이걸로 슈퍼걸에게도 처를 입힐 수 있다. 이 녀석이 살던 행성은 남성우월주의적인 사회였던듯.
  • 슈퍼걸(드라마)/1시즌 10화 . . . . 2회 일치
         토이맨이 탈옥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그 때문에 토이맨의 아들인 윈에게 수사관들이 찾아온다. 윈은 아버지에 대해서 매우 격하게 화를 낸다. 카라가 물어보자, 윈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의 디자인을 훔친 사에게 복수를 하려다가 비서와 5명을 살해했다는 과거를 말해준다. 윈은 토이맨을 체포하는 작전에 협력하기로 한다.
         제임스와 루시는 화해하고 키스를 나눈다. 윈은 일으로 돌아오고, 카라에게 오랫동안 사랑해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카라는 윈의 고백에 당혹감을 느낀다.
  • 스위스 방공호 . . . . 2회 일치
         핵전쟁에 대비한 시설이므로, 대규모 방공호에는 방사능 물질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 시설, 취사 시설, 대기-식수 정화 장치, 숙박용 침대, 그 밖에 침대와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갖추어져 있다. 좀 특이한 시설로는 비시에 화장실 대용으로 쓰기 위한 뚜껑을 덮을 수 있는 양동이, 그리고 전기와 석유의 공급이 끊겼을 때 교통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자전거'''까지 갖추어져 있기도 하다.[[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08/2007080800710.html 참조]]
         방공호의 수용규모는 스위스 전 인구의 114%에 해당한다.--너무 많이 건설해서 14%나 남는다.-- 방공호 내부에서는 약 1년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을 정하고 있는 듯.
  • 스쿼키 청소회사 . . . . 2회 일치
         청소회사의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실은 청부살인업자 조직. 처리 대이 있는 곳을 습격해 그곳에 있는 모두를 쏴죽인다. 이후 피, 체모, 탄피, 시체 등을 제거하는 증거인멸 작업을 벌인다.
         맥스가 발레리 윈터슨의 총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가자 병원을 습격한다. 이들은 비무장 태의 맥스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데까지 성공했지만, 맥스가 병원 경비가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탈출해버려 실패한다.
  • 스트레인지리얼 . . . . 2회 일치
         Strangereal. [[에이스 컴뱃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가 세계의 명칭.정식 명칭인지는 불분명하다. 작중에서는 그냥 지구라고 부르는 듯 하다. [[에이스 컴뱃: 어설트 호라이즌]] 같은 일부 예외를 빼고는 해당 세계가 배경이 된다.
         가 세계이니만큼 [[미국]], [[러시아]], [[독일]], [[스페인]] 같은 실존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오시아, 유크토바니아, 벨카, 사핀 같은 이에 대응되는 국가가 존재한다.
  • 스파이더 슬레이어 . . . . 2회 일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비제이 노백이 연기했던 일렉트로의 사의 성이 바로 스마이스. 행동거지로 보아하니 앨리테이서 스마이스로 추측된다.
         국내에 방된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에서도 등장. 스마이시 부자 둘다 등장해 스파이더 슬레이어를 만들었는데 스파이더맨보다 훨씬 큰데다 합체(!)하는 종류도 나왔다.[* 사실 합체라기보단 그냥 위에 올려놓기.] 그리고 앨리스터 스마이시가 변화된 모습인 스파이더 슬레이어도 등장. 그가 성과를 못내는 등 갈등이 생긴 [[킹핀]]에 의해[* 수행은 그의 지시를 받은 학자가 했는데 이전의 [[엑스멘]]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던 반뮤턴트 주의자다.] 스파이더 슬레이어가 되었다. 이후 킹핀과는 적대 관계가 된다.
  • 시그니처 웨폰 . . . . 2회 일치
         창작물에서 어떤 캐릭터나 집단을 징하는 위치의 무기.
         제작자가 밀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의 호응이 없으면 억지 밈이 될 뿐이므로 큰 인을 줘야한다.
  • 시치고산 . . . . 2회 일치
         [[일본]]의 풍속. 3세, 5세, 7세가 된 어린이의 성장을 축하하여, 11월 15일에 신사로 데려가서 조신에게 참배를 하는, 어린이를 위한 통과의례적인 풍속이다.
         [[에도 시대]]에는 사무라이 집안에서 아들이나 딸의 3,5,7세 생일 때 약간의 행사를 하는 정도였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처럼 화려하게 축하하게 된 것은 [[다이쇼 시대]]에 [[간토 지방]]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간사이 지방]]에서도 시치고산을 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고도성장기 때부터 라고 한다.
  • 시티락 . . . . 2회 일치
         체는 [[새]], 하체는 [[소]]를 닮은 [[괴물]]. 과거 [[새비지 랜드]](Savage Land)에서 폴 피플(Fall people)에게 숭배받기도 했다. 이후의 시기에 빙하가 녹아 깨어나고, 조사차 나타난 [[헐크]]와 대면했다.
         육중한 거구이며 이에 어울리게 헐크와 싸울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속도도 당하다.
  • 식극의 소마/152화 . . . . 2회 일치
          * 해체대 동아리가 식극을 신청할 경우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며, 이기면 동아리가 존속, 지면 폐부. 심사의원은 외부에서 초빙한 공정한 인사여야 한다는 룰
          * 센트럴의 주요 구성원은 십걸이지만 "십걸 예비군"이란 데서 인원을 증원하고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론 당한 수의 인원이 등장할 듯.
  • 식극의 소마/155화 . . . . 2회 일치
          * 소마는 특유의 붙임성으로 모모선배에게 격의없이 구는데, 모모선배는 낯가림이 엄청나게 심해서 적어도 한 달 이사이가 아니면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 식극의 소마/158화 . . . . 2회 일치
          * 쿠로키바는 빵과 속재료 사이에 녹색층을 만드는 기술을 사용했다.
          * 쿠로키바의 승리를 예한 팬들도 있지만, 이렇게 압승일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 식극의 소마/160화 . . . . 2회 일치
          * 아리스는 "당신이 저지른 짓을 잊을 수 없다" 면서 회하는데, 어렸을 적 아리스는 에리나에게 여러 번 편지를 보냈지만 아자미가 중간에서 가로채 찢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 그 사이 회장에 도착한 에리나가 모든걸 보고 있었는데, 아리스는 그걸 알고 "숙부님이 없었다면 훨씬 더 친해졌을 거다"라면서 가버린다.
  • 식극의 소마/163화 . . . . 2회 일치
          * 에리나는 그의 감성과 기술은 신의 역이라고 단언한다.
          * 지금 토오츠키 학원에서 행해지는 것은 그 작업을 위한 "군대"를 육성하는 것으로 나중에는 전일본이 센트럴의 사을 따를 거라고 츠카사는 믿는다.
  • 식극의 소마/164화 . . . . 2회 일치
          * 소마는 시노미야의 가게에서 배운 것을 잠시 회한다.
          * 소마의 "이한 소재 집어넣기" 병이 또 도졌다.--뭐 그래도 이기겠지--
  • 식극의 소마/166화 . . . . 2회 일치
          * 그러면서 "이번 1학년들은 이하다"고 독백하는데...
          * 예대로 소마의 패배. --벌써 1석을 처리해 버리면 만화가 뭐가 되냐--
  • 식극의 소마/169화 . . . . 2회 일치
          * 소마는 즐겁다는 듯 요리를 시작하고 에리나는 그걸 보고 십걸 제 1석 츠카사와 싸울 때도 즐겁다는 표정을 지었음을 기한다.
          * 에리나는 자신도 어려서 처음 요리를 시작할 때는 저런 표정을 지었을 텐데, 어느 새 세의 떼가 묻으면서 그런 표정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고 씁쓸해한다.
  • 식극의 소마/172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센트럴이 통제하는 올해 시험은 기존과는 크게 다를 거라 예한다.
          * 소마는 이런게 정말 도움이 될지 의문시하는데 에리나는 과제가 나오는 이 답은 있다며 "네가 그랬던 것처럼" 이라 답한다.
  • 식극의 소마/173화 . . . . 2회 일치
          * 쿠로키바도 겨울철엔 연어의 질이 떨어지는 시기인데 굳이 과제로 삼은 점은 이하다고 의심한다.
          * 때마침 재료로 쓸 연어가 도착하는데 하나같이 겨울철인데도 불구하고 끝내주는 등품.
  • 식극의 소마/183화 . . . . 2회 일치
          * 쿠가는 한의학 소재인 오미자에서 돌파구를 찾아낸 발력에 감탄한다.
          * 예대로 준을 위해서 흑화한 하야마.
  • 식극의 소마/212화 . . . . 2회 일치
          * 심사의원 안은 과거 WGO의 모든 교전을 쌓아가지고 다니는데, 사실 본인이 전부 외우고 있어서 징적으로 가지고 다닐 뿐이다.
          * 그런데 나란히 앉은 심사의원들 뒤에 용도불명의 책 무더기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유키히라 소마]]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왜 저런게 있냐"고 묻는다. [[안(식극의 소마)|안]]은 "지금까지 발행한 모든 교전"일 뿐이지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이 교전은 동서고금의 모든 미식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어 오늘 심사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가져왔다는데, 소마는 "저렇게 쌓아놓으면 찾기 힘들지 않냐"고 왠 일로 식적인 지적을 한다. 여기에 대한 안의 답은 매우 모순적이다.
  • 신선미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개그우먼]]
         | 웹사이트 =
  • 신쥬 . . . . 2회 일치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자는 뜻으로 함께 죽는다는 것인데, 개념을 잘 보면 짐작이 되겠지만 대부분 불륜이라던가 근친간, 신분차(가난한 무사와 기녀라던가...) 등으로 인한 자살이 많았고, 개중엔 짝사랑하던 대를 죽인 다음 자기도 죽는 식의 막장스런 행패도 종종 일어났다.
  • 신지훈(배우) . . . . 2회 일치
         ||2015년||대한민국 화 어떤이의 꿈(지훈)||
         ||2017년||대한민국 화 우리들의 일기(현수)||
  • 신호권총 . . . . 2회 일치
         [http://www.usatoday.com/story/news/nation/2014/01/15/teen-charged-fatal-fire-three-children-killed/4488059/|2014년 미국에서 18세 남성이 신호권총으로 불을 질러 아이 세명을 죽이고 아이 한명에게 중을 입힌 사건이 있다.]
          * 화 [[퍼시픽 림]]에서 거대 괴수인 카이주의 어그로를 끌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 실즈 . . . . 2회 일치
         일본의 학생운동 단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自由と民主主義のための学生緊急行動)을 뜻하는 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의 약자에서 따왔다. 단체 스펠링은 다르지만 일본어 발음은 어 실즈(SHIELDS)와 비슷하여 어로 '방패'와 연관을 지어서 지은 이름으로 추측된다.
  • 쌍둥이 . . . . 2회 일치
         한 어머니의 탯속에서 두 명 이의 아이가 한꺼번에 태어나면 그 아이들을 쌍둥이라고 부른다. 세 명 이이 태어나면 '세 쌍둥이' 하는 식으로 따로 숫자를 덧붙인다. 수정란이 분화 과정에서 각각의 개체로 분열하여 태아가 된 것을 일란성 쌍둥이, 두 개의 난자가 각각 수정하여 태아가 된 것을 이란성 쌍둥이라고 한다.
  • 아돌프 히틀러 . . . . 2회 일치
         이후 [[독일 제국]]로 건너갔는데, 그 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제국군에 자원하였다. 이때 전투 중 부을 입은 적도, 국군 병사가 히틀러를 쏘지 않고 살려보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 아동수당 . . . . 2회 일치
         [[일본]]의 복지정책의 하나. 어린이들을 대으로 국가에서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 물론 부모가 받아가서 양육 등에 쓰라는 목적이다. 2000년대 초에 민주당 정권에서 추진되어 실행되었으나, 이후 일반 가정에서 저소득 가정 대으로 범위가 축소되었다.
  • 아스팔트 우파 . . . . 2회 일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나서, 진보 세력의 시민운동은 민주화 된 사회에서 집회나 시위 등을 통하여 정치적 요구를 표출하였고 [[촛불시위]]와 같은 시위 문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보수 진 역시 [[이회창]], [[박근혜]] 등의 주요 정치인이 집회에서 연설에 나서거나, 특정 정치 사안에서는 직접 시위에 나서는 등 의외로 당히 적극적인 시위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권 정치인이 아닌 재야 우파 세력은 비교적 발달(?)이 미비했다.
  • 악마의 대변인 . . . . 2회 일치
         어 : Devil's Advocate
         본래 가톨릭 교회에서 시복/시성 절차에 있어 대의 결점을 남김없이 조사하는 역할을 하는 Promotor Fidei 지위를 뜻했다. 정식 명칭은 아니며, 속칭이다.
  • 악평등 . . . . 2회 일치
          * 2016시즌부터 적용된 [[K리그 다득점 우선순위 적용]]은 연맹의 의도와는 달리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사례로 기록될 전망으로 보인다. 공평하게 적용되었지만 찬성한 쪽이 지금 손해를 보고 있는 이황. 게다가 세계추세와도 별로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받았다.
  • 안평대군 . . . . 2회 일치
         단종실록에서 가장 많이 까이는 인물인데, 뇌물 받고 관직을 올려줬다느니, 문종의 복 기간에 술과 고기를 먹고 잔치를 벌였다느니, 기생하고 놀아났다느니, 조강지처를 저버렸다느니 하는 온갖 추문이 써 있다.
         한편으로는 예술에 조예가 깊어 주변에 많은 문인들을 거느리고 다녔으며, 성정이 호탕하여 그의 주변에는 항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녔기에 적어도 겉보기에 있어서는 수양대군보다도 월등하게 평가되었다.
  • 안희옥 . . . . 2회 일치
         |경력 = 참여연대 여성행정정책위원 <br/> 자유민주연합 여성행정정책연대위원 <br/> 새정치국민회의 여성행정정책위원 <br/> 새천년민주당 임위원 <br/> 한나라당 전임위원 <br/> 새누리당 여성행정연대위원
         |웹사이트 =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 . . 2회 일치
         * 그거 조차도 마시자 마자 흐물흐물 녹는 수준인데, 그 태에서도 잘만 공격을 피해서 암살자들의 열을 돋군다.
         * 뜬금없이 이 멤버(암살자 포함)로 소개팅을 하자는 얘기를 꺼내는데 아즈키 부인은 "그럼 나랑 호타루가 대역을 해줄 테니 소개팅 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 압박면접 . . . . 2회 일치
         압박 면접은 압박을 당했을 때 지원자의 반응을 보고, [[정신력]]과 순발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업무는 스트레스의 연속으로, 사에게 혼나거나 고객의 클레임을 받는 등 스트레스를 받는 황에서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압박면접을 실시한다.
  • 애니멀-베지터블-미네랄맨 . . . . 2회 일치
         단의 서술대로 그 외관이 당히 괴랄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 한번 보면 잊기 힘든 모습이다. 몸의 반은 인간이나 반은 공룡같은 모습이고, 팔다리는 한쪽은 나무인데 한쪽은 광물인 형태.
  • 야규 무네노리 . . . . 2회 일치
         전국시대 말기, 에도 시대 초기의 인물. [[에도 막부]]의 관료, 정치가, 검술가. 야규 무네토시 세키슈사이(柳生宗厳 石舟斎)의 아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임관하여, 도쿠가와 쇼군의 호위 무사와 검술 지도역으로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 도쿠가와 이에미츠 까지 보좌하였다. 에도 시대 야규 신음류(柳生 新陰流)의 번의 초석을 놓았다. 검술가, 정치가로서 평가가 높다.
  • 야규 슈메 . . . . 2회 일치
         야규 가문의 가전 기록인 『옥습유(玉栄拾遺)』에 따르면, 「전하기를 슈메라는 자 조선국의 종자라 한다(伝に曰く、主馬者朝鮮国の種也)」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 다른 기록(야규번구기柳生藩旧記, 수은초袖隠抄 등)에 따르면 「어떤 곳에서 말하길 슈메는 타국인으로 문벌(씨氏)도 모르는 자(然る所主馬は他国人にて氏も不知者)」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어떤 사정[*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柳生新二郎厳勝)의 적남 야규 구사부로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에 갔다가 울산에서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으로 [[일본]]으로 가게 된 인물이거나, 그 자손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 결혼은 [[야규 무네노리]]가 이끄는 에도 야규 가문과 야규 토시요시가 이끄는 오와리 야규 가문이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토시요시는 여동생을 가문과 출신을 알 수 없는 타국 사람에게 시집 보낸 데다가, 게다가 사전에 오빠인 자신에게 담없이 숙부 무네노리가 마음대로 결혼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분노하였다. 그리하여 토시요시는 무네노리와 [[절교]]를 선언하였다고 한다.
  •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 . . . . 2회 일치
         [[야규 무네토시]]((柳生 宗厳 石舟斎)의 아들. [[야규 무네노리]]의 형. 세키슈사이의 적남이지만, 젊은 시절 전장에 나갔다가 총을 입어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생애 불구의 몸이 된다.
  • 야규 쥬베에 미츠요시 . . . . 2회 일치
         [[에도 막부]]의 관료, 정치가, 검술가. 야규 무네토시 세키슈사이(柳生宗厳 石舟斎)의 손자이며,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의 장남. 야규 가문의 적자이다. 아명은 시치로우(七郎). [[도쿠가와 이에미츠]](徳川家光)를 모셧다.
         야규 쥬베에는 과거부터 다양한 강담, 군담에서 [[검호]]로서 활약하며, 각종 전기소설 작가에게 사랑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탓에 별별 소설에서 별별 이한 일도 많이 당하지만(…).
  • 야마무라 사다코 . . . . 2회 일치
         [[일본]]의 공포 소설, 공포 화 등으로 제작된 [[링 시리즈]]에 나오는 [[캐릭터]]. 통칭 '사다코(貞子)'.
         주로 화 링에서 나온 하얀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앞으로 내린 모습이 유명. [[텔레비전]]에서 기어 나오거나, 눈을 부릅뜨고 희생자를 [[심장마비]]로 살해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 양윤재 . . . . 2회 일치
         | 훈 =
         | 웹사이트 =
  •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 . . . . 2회 일치
         그러나 동일한 학교 법인, 혹은 비슷한 계열이나 제휴 관계가 있는 학교 사이에서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혹은 고등 전문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 단기대학(전문대학) 등에 입학할 때 입학 시험없이 진학할 수 있는 별도의 선발 제도가 있다. 이를 한 번 타면 자동으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비유하여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라고 부른다.
         학비와 기타 비용(기부금 등)을 필요로 한다. 매우 고액이다. 한 번 들어가면 진학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들어가는 것은 당히 어렵다.
  • 엔자이 . . . . 2회 일치
         이데 대해 다룬 화로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작품이 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2329|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유죄확률 99.9%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일본에서 한번 열린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될 가능성은 그냥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암담한 현실을 다룬다. 화의 결말도 99.9%의 확률을 이기지 못한다.
  • 여자력 . . . . 2회 일치
         2009년 신어, 유행어 대에 선정된 단어.
         이런 것은 여캐가 주인공을 가볍게 집어던지거나, 대전 액션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가 대(주로 남자)를 마구 쓰러뜨리거나, 육탄전이나 심리전에서 여캐의 용의주도함이 나타나는 장면에 다는 코멘트이다.
  • 연령=동정 . . . . 2회 일치
         일본의 조사에 따르면 연령별 동정 비율은 이과 같아서, 20대 이후로 동정을 가지는 사람은 소수파가 되기 때문이다. '정적인 이성관계를 맺지 못하는 인간'으로 여겨질 수 있어, 동정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나타나게 된다.
  • 연설환희불교 . . . . 2회 일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마후라불(摩睺羅佛)이라 자칭한 번승(番僧)이라는 자가 시작하였다고 한다. 번승은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그 피를 불의 입술에 발라 환희불(歡喜佛)이라 칭하고, 남녀가 벌거벗은 채로 서로 끌어안고 음란한 짓을 하는 불을 만들었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그 뼈를 가지고 수주(數珠,염주)와 음기(飮器,음란한 그릇)을 만들었으며, 술과 고기를 먹고 음탕한 짓을 하여 해를 끼쳤다.([[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h010&gunchaId=av008&muncheId=01&finId=001 (참조)]])
  • 연초아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염상 . . . . 2회 일치
          * [[인터넷]]에서는 폭발적인 화재거리를 뜻한다. 대형 커뮤니티 등에서 화재가 되어 우르르 몰려가서 악플을 달고 신을 캐는 황 등.
  • 오마모리 . . . . 2회 일치
         불교 사찰, 신도 신사에서 주로 판매한다. 일본의 오마모리는 한손으로 쥘 수 있을 법한 작은 주머니 형태를 하고 있으며, 끈이 달려 있어서 시 휴대하고 다니기 편리하다. 광의적으로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물건을 모두 통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오마모리의 판매처에서는 건강, 재복, 연애, 학업, 안전, 액막이 등의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며 업(?)을 하고 있다.
  • 오보카타 하루코 . . . . 2회 일치
         STAP세포를 응원하자는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운하고 있다. ([[https://stap-hope-page.com/ 참조]])
         실험실에서 [[앞치마]]를 입고 연구를 하는 등. 이색적인 모습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 언론은 오보카타의 동정에 대해서 세한 보도를 쏟아냈고, 「이과계여자(理系女子)」=「리케죠(リケジョ)」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지게 된다.
  • 오석산 . . . . 2회 일치
         부작용으로는 피부병, 감정 혼란, 피해망, 최악의 경우에는 중독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설로는 자수정, 백석, 적석지, 종유석, 유황 등의 광물을 성분으로 썻다고 하며, [[중금속 중독]] 증세를 일으켰을 것으로 추측된다.
  •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 . . . . 2회 일치
         그 부모는 수하게 여겨서 남자의 정체를 밝혀내기로 하였다. 잠자리 앞에 붉은 흙을 뿌리고, 실타레에 감은 삼실을 바늘에 꿰어, 딸에게 주고 이를 남자의 옷자락에 꿰어두라고 한다.
         이 황녀는 오오모노노누시와 결혼하였는데, 오오모노노누시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황녀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오오모노노누시는 작은 뱀의 모습이 되어 화장품 자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걸 보고 황녀는 크게 놀랐다.
  • 오오반후루마이 . . . . 2회 일치
         원래는 밥과 전복, 매실장아찌, 해파리, 식초와 소금을 차린 밥인 '오반'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국시대 시기까지는 정월에 아랫사람이 이 '오반'을 윗사람에게 헌하는 것이 의례였으나, 에도 막부 시대에 이르러서는 윗사람이 부하들을 대접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 오츠보네 . . . . 2회 일치
         본래 궁중이나 에도 시대의 오오쿠(일본 쇼군을 위한 후궁)등에서 츠보(局, 개인실)이 주워진 여관(女官)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오츠보네는 당시 후궁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당히 지위 있는 계급이었다.
         1989년에 방송된 NHK 대하드라마 『카스가노 츠보네(春日局)』에서 유행어로 쓰이게 되었다. 이때부터 고참 OL(여사원)을 대으로 오츠보네라는 호칭이 나타나게 되었다.
  • 오타쿠 서클의 공주 . . . . 2회 일치
         주로 [[오타쿠]] 성향의 사람이 많고 성비가 [[남초]] 태인 문화계 서클에 희소하게 끼어든 [[여성]]을 뜻한다.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여성이 적고, 이런 써클의 남성 회원은 여성에게 면역이 없어서 "공주님 취급"을 받는다고 이렇게 불린다.
          * '''[[절대역|맨다리에 미니스커트에 니삭스]]'''
  • 오토메 . . . . 2회 일치
         번역은 황에 따라서 소녀, 처녀, 혹은 [[아가씨]] 등으로 한다.
         소녀나 처녀. 다만 젊을 뿐만이 아니라, 더러운걸 모르게 순진, 청순하고, 고하고 감수성이 높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사랑을 하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연애 감수성 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
  • 오픈베타 . . . . 2회 일치
         일단 형식적으로는 미완성된 게임을 열어놓고 테스트 하는 것이지만, 업데이트가 지속되는 온라인 게임의 특성 사실 오픈베타=서비스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웃음 주머니 . . . . 2회 일치
         관련 품으로 화내는 소리가 나오는 '분노 주머니', 우는 소리가 나오는 '울음 주머니' 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쇼와 45년(1970년) 무렵에 대유행 했다고 한다. 단순한 장난감이지만 왠지 유행해서 1년 정도 일본 각지에서 널리 팔렸으나, 단순한 장난감이었기 때문에 곧 유행은 사라졌다고 한다.「아오키 회(青木商会)」라는 완구 제조업체에서 만든 것으로, 현재에는 법인명을 「아이코(アイコ)」로 변경하였으나 이후에도 발매했다고 한다.
  • 원피스/819화 . . . . 2회 일치
         * 조우의 '''밍크족은 처음부터 오뎅의 가신으로서 코즈키가와 운명을 함께할 것을 마음 먹었다.''' 그러나 설마 가뭄의 잭과 싸워 이런 결과가 나올 지는 예하지 못했다 한다.
         * 그러나 우선은 디를 데려오러 가야 한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다
  • 원피스/822화 . . . . 2회 일치
         [[원피스]] 822화. '''하'''
         * 루피, 나미, 브룩, 쵸파, 페콤즈, 페드로는 빅맘에게서 디를 탈환하기 위해 출발한다.
  • 원피스/888화 . . . . 2회 일치
          * 밍크족은 만원을 바라보면 "수론"이라 불리는 태로 변신하는데, 수론으로 변한 캐럿은 접근한 [[샬롯 다이후쿠]]의 배로 뛰어들어 적들을 쓸어버리고 배의 키까지 부숴버린다.
         == 세 ==
  • 원한해결사무소/7화 . . . . 2회 일치
         그런데 그 때 가게에 나타난 야쿠자 남자가 그 광경을 보고 '내 여자에게 무슨 짓을 했냐.'면서 달려든다. 키지마는 칼로 야쿠자의 가슴을 찌르지만, 야쿠자가 총을 꺼내 쏴서 중을 입는다.
          * 새로운 사원이 스카우트 되는 에피소드는 처음. 하지만 키지마 마사루는 그 자신도 의뢰 대이었다.
  • 웨이계 . . . . 2회 일치
         이 시기에 비슷하게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말을 모아서 웨이계 언어라고 한다.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소레나(それな) : 그렇구나. 그 말 그대로다 라는 의미. 간사이 사투리에서 나왔다.
  • 위서 . . . . 2회 일치
          * 위서(緯書) : [[한나라]] 시대 [[유교]]의 서적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한 책. 소위 말하는 [[도참]]이다. 경서(經書)에서 냩실을 뜻하는 경에 대응하여 씨실을 뜻하는 위(緯)를 붙였다. 본래 위서는 유교 경전의 주석, 해석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한나라 시대에는 유교에 신비주의 요소가 많아지면서 유교 경전을 일종의 [[예언]]으로서 해석한 책으로 변질되었다. 전한-후한 시기에 널리 연구되었으며 [[도참]] 사에 이용되었다. [[광무제]]는 후한의 건국 명분으로 이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폐해도 많아서, [[왕망]]이나 [[원술]] 같은 인물이 왕조를 세우는데 악용하기도 했다. [[서진]]에서는 사회 혼란을 염려하여 위서를 연구하거나 배우는 것을 금지하여 이후로 위서의 향력은 사라졌다.
  • 위저드리 6 . . . . 2회 일치
          * 마을과 던전을 오가던 과거작들과는 달리, 통채로 던전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실 마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 이벤트에 필요한 중요 아이템은 버릴 수 없다. 후반에 가면 아이템 칸과 중량이 당한 압박을 받게 된다.
  • 윌밍턴 . . . . 2회 일치
         1793년 건설되었다. 이름은 [[조지 2세]] 당시 국 총리를 지냈던 윌밍턴 백작 스펜서 콤튼 경에서 따왔다. 도시 수준으로 승격된건 1866년 경.
         [[http://www.wilmingtonnc.gov/|윌밍턴시 웹사이트]]
  • 유사국가 . . . . 2회 일치
         형식 '[[국가]]'지만 나라꼴이 나라 답지 않다는 뜻.
  • 유승진 (필드하키 선수) . . . . 2회 일치
         |웹사이트 =
         고교 시대부터 한국 대표 선수로 활약,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우승에 공헌했다. [[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하계 서울 올림픽]](10위),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 하계 애틀란다 올림픽]](5위)에서도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1991년부터 남자하키 일본 리그 '表示灯'(현재의 나고야 프레이터(NAGOYA FRATER))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이 팀 감독에 취임했다.1996년에 일본 [[주쿄대학교]] 대학원 졸업을 하였고, 1996~2001년 일본 남자 하키 대표팀 코치, 2006~2007년 [[덴리 대학]] 여자 하키부 감독, 2006~2008년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했다. 2008년부터 여자 하키 일본 리그의 '코카콜라 웨스트' 감독을 맡았다. 2011년에는 같은해 현재 아시아 10명 밖에 없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코치 면허를 취득 했으며 2016년에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Coach Educator 자격과 함께 [아시아 하키연맹] 코칭 판넬에서 코치를 위한 코치 강습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10월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됐다. 2016년부터 경북도 체육회 여자하키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 유언/게임 . . . . 2회 일치
         || [[블라디미르 렘]] || 맥스, 내 가장 친한 친구여. 난 웅이 되었어야 했어. ||
         || 에드워드 브래독 ||틀렸어!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검을 휘둘렀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세이 되었을거야. ||
  • 유언/영화 . . . . 2회 일치
         [[화]]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유언]]을 정리하는 페이지.
         화의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적으며, 시리즈물일 경우에는 작품 순서대로 적는다. 등장인물의 순서는 사망 장면이 등장한 순서대로 적는다.
  • 유카타 . . . . 2회 일치
         [[일본 전통의]] [[기모노]]의 일종. 실내복 겸 여름에 야간 외출을 할 때 입는 옷으로서 홀옷이다.
         [[분류:일본 전통의]]
  • 윤진솔 . . . . 2회 일치
         | 수 =
         | 웹사이트 = {{싸이월드|43434839|윤진솔}}<br />{{인스타그램|1_0_0_8_|윤진솔}}<br />{{트위터|jewelry_sssem|윤진솔}}
  • 은혼/595화 . . . . 2회 일치
          * 긴토키와 자신이 쇼요를 몰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가하나 가츠라는 쇼요는 사전에 이런 황을 위해 그라는 희망을 남겼다고 말한다.
          * 가츠라는 긴토키의 말을 받으며 쇼요는 언젠가 이런 황이 올 것을 알았고 그때를 대비해 희망을 남겼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 은혼/597화 . . . . 2회 일치
          * 천인 용병들을 막아선 하세가와는 자신은 입국관리소 소장이라 밝히며 더이 마음대로 하게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 하세가와는 거듭 보스에게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지만 천인들은 어째서 그래야 하냐며 식적으로 대답한다. 하세가와는 다시 자기가 입국관리소 소장이라 말하는데 평범하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없다고 하니 그냥 끌고 간다.
  • 은혼/606화 . . . . 2회 일치
          * 사카타 긴토키는 그 전력이 전우주를 대로 어느 정도 먹히겠냐고 묻는데, 그때 해방군의 새로운 지병력이 당도한다.
  • 은혼/652화 . . . . 2회 일치
          * [[우미보즈(은혼)|우미보즈]]의 복귀. 전장에서 [[가구라]], [[카무이(은혼)|카무이]]와 감동적인 가족봉이 연출되나 했으나 카무이의 선빵으로 개판이 된다.
          * 답없는 부자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츠로(은혼)|우츠로]]의 시생인 부대가 엄습해오고 [[이마이 노부메]]도 부당한 몸으로 싸움을 시작한다.
  • 음모론 . . . . 2회 일치
          * 프리메이슨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비밀 단체로, 미국 정부는 이들을 분쇄하기 위해 비밀리에 국 침공 계획을 세웠다.
          * 목성에서 온 랩틸리언이 우리 사이에 뿌리내렸다. 랩틸리언은 권력자로 위장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버락 오바마 등의 인물들이 랩틸리언이다.
  • 의심암귀 . . . . 2회 일치
         『열자 설부(列子・説符)』에서 어떤 남자가 [[도끼]]를 잃어버렸는데, 그는 이웃집의 아들을 의심하였다. 그러자 그 아들이 하는 행동이 모두 수하게 보였다. 그런데 어느날 계곡에서 자신의 도끼를 찾자, 수하게 보이던 것이 모두 평범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이를 주석하여 "의심, 암귀를 낳는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의심암귀"라는 사자성어 같은 표현이 나오게 되었다.
  • 이강철 (1947년) . . . . 2회 일치
         * [[열린우리당]] 임중앙위원
         * 열린우리당 [[대한민국 제17대 총선|4.15 총선]] 입추진단장
  • 이기백(군인) . . . . 2회 일치
         [[1983년]] [[6월]] [[김윤호]]의 뒤를 이어 [[합동참모의장]]이 되었다. 합동참모의장으로 있던 [[1983년]] [[10월]]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버마(現 [[미얀마]])에 갔다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인해 부을 당하였으나, 다행히 그가 입고 있던 [[장교]] [[정복]]과 정복에 달린 [[훈장(훈)|훈장]]이 [[방탄복]] 역할을 하여 살아남았다. 그리고 수행했던 [[전속부관]] [[전인범]] [[중위]]에 의해 구조되었다. 귀국 후 그 정복을 육군사관학교에 기증하여 육군사관학교 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이득윤 . . . . 2회 일치
         '''이득윤'''(李得胤, [[1553년]] ~ [[1630년]])은 [[조선]] 중기(선조-광해군)의 정치가·학자·음악 이론가이다. 자는 극흠(克欽), 호는 서계(西溪),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이다. 고려 말 문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1588년]](선조 21년) 진사가 된 뒤, 참봉, 형조좌랑, 괴산(槐山)군수를 지냈다. 서기(徐起)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역학 (철학)|역학]](易學)에 뛰어났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1620년]](광해군 12년) 〈현금동문유기(玄琴東文類記)〉를 엮어서 세에 내놓아 [[거문고]]의 법도(法道)를 바로 전하게 하였다. 음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여러 금보 및 그 저자와 [[거문고]] 대가에 대하여 다룬 것을 보면, 그가 음악에 조예가 깊고 당히 박학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저서로 〈서계집(西溪集)〉이 남아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米院面) 가양리(佳陽里) 인경산(引頸山) 아래에 있다.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과 [[청안군|청안]](淸安)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되어 있다.
  • 이름뿐인 관리직 . . . . 2회 일치
          * 경진에 의견을 주고, 경에 참가할 권한이 없다.
  • 이미라 . . . . 2회 일치
         |수 =
         |공식 웹사이트 =
  • 이민헌 . . . . 2회 일치
         * [[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201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제14대 국회의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남대학교 동문‎]]
  • 이성구 (1942년) . . . . 2회 일치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공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민주자유당의 정치인]][[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천 이씨]][[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이시재 . . . . 2회 일치
         '''이시재'''(李時載, [[1948년]] [[1월 14일]] ~ )는 [[대한민국]] [[경북도]] 출신의 환경운동가 및 사회학자이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환경운동가]]
  • 이원재(공무원) . . . . 2회 일치
         충청북도 충주 출신이며, [[운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경학과 학사를 취득하였다. 또한 서울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및 국 요크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를 졸업하였다.
  • 이원재(축구선수) . . . . 2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 출신지 || [[경북도]] [[포항시]] ||
  • 이정우 (1950년) . . . . 2회 일치
         '''이정우'''(李廷雨, [[1950년]] ~ )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대표적인 진보적 경제학자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경북대학교]] 경제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과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
  • 이종근(1923) . . . . 2회 일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해원 후보와 [[민주한국당]] [[김준(1941)|김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농사를 지으면서 잠시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 이종혁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문 표기 = Lee Jong-Hyuk
         |사진 사이즈 =
  • 이주호 (1961년) . . . . 2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대구시]]
         |웹사이트 =
  • 이지우 (레이싱모델)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이차영 . . . . 2회 일치
         [include(틀:위 문서, top1=정치인/목록)]
         ||<:> 제43대 [br] [[나용찬]] [br] ,,,권한대행 박기익,,, ||<:> → ||<:> 제44대 [br] '''이차''' ||<:> → ||<:> 현임 ||
  • 이토 시로 . . . . 2회 일치
         왼쪽 뺨에 흉터가 있는 험악한 인이 특징. 얼굴 때문에 인이 안 좋다고 취직을 못했다는 전설이 있다.
  • 이홍열 (바둑기사) . . . . 2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북도]]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신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 인비저블 우먼 . . . . 2회 일치
         [[미스터 판타스틱]]과 연인 → 부부 관계이다.[* 참고로 나이차이가 당히 심하다. 거의 키잡에 가깝다.(…)] 판타스틱 포의 [[홍일점]]이며, 두 아이에다 항 티격태격하는 벤과 동생 조니, 워커홀릭 남편인 미스터 판타스틱이 그렇게 사고치고 속을 썩이는데도 용케도 끝까지 같이 사는 걸 보면 '''[[성녀]]''' 수준.(…) 게다가 퓨처 파운데이션 이후 집에 식구가 더 늘어났다(...). 그러나 그녀가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은 것이, [[닥터 둠]], [[네이머]]와 서로 끌리는 관계에 있음을 그린 에피소드들이 많다. 수잔 스톰 자체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급의 미모를 자랑해서 그렇기도 하고.
  • 인왕서기 . . . . 2회 일치
         굳건하게 우뚝 버티고 선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인왕]](仁王)은 [[불교]]에서 호법신(護法神) [[금강역사]]를 뜻하며, 절의 수호를 징하여 강인한 모습으로 절 앞에 서있는 모습으로 조각을 묘사하는 것에서 이러한 말이 나왔다.
  • 일곱개의 대죄/175화 . . . . 2회 일치
          * 그로키시니아는 "네가 인간편을 든 것이 잘못"이라며 창 바스키어스를 멜리오다스에게 던진다.
          * 십계 전원을 대로 일발역전할 방법은 이것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일곱개의 대죄/178화 . . . . 2회 일치
          * 다양한 저항군이 있었지만 결국 십계의 대는 되지 못했다.
          * 드레퓌스는 프리지아의 혼을 뽑으며 주민들에게 "으로 3개월 간 유예를 주마"고 치하한다.
  • 일곱개의 대죄/179화 . . . . 2회 일치
          * 장화신은 고양이는 주인을 위해 마신(오우거)을 때려잡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장화신은 고양이 자체는 국의 동화는 아니지만, 모티브는 국의 고양이 요정 "캐트시"로 추정된다. 고로 아서와 엮여서 나와도 크게 어색할건 없는 셈.
  • 임지현(가수) . . . . 2회 일치
          * 위 문서 : [[가수/한국]]
         [[1995년]] [[6월 9일]], [[경북도]] [[포항시]] 출생.
  • 잔디깍기 . . . . 2회 일치
         바퀴가 달려있어 밀고다니며 잔디를 깎는 도구. 어로는 lawn mower라고 한다.
         [[스티븐 킹]]의 소설 [[미저리]]에서 인깊은 용도로 사용된다. 죽어라!
  • 장기 . . . . 2회 일치
         보드게임의 일종. 말을 번갈아 움직여 대의 왕을 잡는 게임이다.
          * - 두개. 한칸 움직인 후 대각선 방향으로 두번 움직인다.
  • 장슬기 (희극인)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개그우먼]]
         | 웹사이트 =
  • 장시우 (배우)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배우]]
         | 웹사이트 = {{싸이월드|23371224|장성찬}} {{https://cafe.naver.com/mine83}}
  • 장연주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 {{트위터|serterra|장연주}}<br>{{페이스북|serterra|장연주}}
         * 그렇고 그런사이
  • 장영 (조선) . . . . 2회 일치
         '''장'''(張銢, [[1622년]] ~ [[1705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 (이름)|자]](字)는 명세(鳴世), [[호 (이름)|호]](號)는 소매당(訴梅堂)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장응일]](張應一)의 아들로, 할아버지인 [[장현광]](張顯光)에게서 학문을 이어받았다.
         [[분류:1622년 태어남]][[분류:170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장은아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
         서울 출신인 자스양은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를 입학한 미술학도였다. 학교 가요제인 청사가요제에 출전했는데 금을 받은 걸 계기로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ref name="W&JAS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 들려드릴게요-줌인">[http://media.daum.net/entertain/star/newsview?newsid=20130820214806606&srchid=IIM%2Fnews%2F73052764%2F2e8f9831634cedfbb240e7f3039397d2/[세계일보] W&JAS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 들려드릴게요"-줌인] 2013년 8월 30일.</ref>
  • 장홍제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
         === 화 ===
  • 저변교 . . . . 2회 일치
         주로 고등학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가 있기 때문에 그 특성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정한 수의 입시 낙오자가 나타나게 된다. 때때로 재수를 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를 재수하기에는 주변과의 연령차 다소 곤란하기도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저변교를 가는 경우도 있다.
  • 전기밥솥 . . . . 2회 일치
         [[http://daily.hankooki.com/lpage/society/201512/dh20151202152923137780.htm|2004년 경남도 창원에서 전기밥솥이 폭발한 사례가 있다.]]
         [[http://www.focus.kr/view.php?key=2016030100124245523|100만원대를 돌파했다.]] 이런 물건들은 프리미엄 물건으로, 별 이한 기능들이 달려있는 것들이다.
  • 전기안전관리법 . . . . 2회 일치
         이전까지는 전기제품만 받던 KC인증(국가통합인증)을 의류나 잡화 등 신체와 접촉하는 모든 품목으로 확대되었는데, KC인증비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들고 위반시 과태료가 500만원이다. KC인증을 받지 않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은 제조, 수입, 판매, 구매대행, 판매중개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서 인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논란이 있다.
  • 전기의자 . . . . 2회 일치
         [[코끼리]] 한마리도 이런 식으로 처형된 사례가 있다. 톱시(Topsy)라는 이름의 코끼리였는데 [[사육사]]를 죽여버린 사고를 친 것. 그 결과 6,600 볼트 전류로 사형당했다. [[https://youtu.be/NoKi4coyFw0|유튜브 동-충격적일 수도 있음.]] 위의 최초의 인간 사형집행과 함께 잔인하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고, 이와는 별개로 사보타주를 통해 교류를 밀던 웨스팅하우스를 파산시키기는 했으나 교류의 보급을 막는 데에는 실패했다.
  • 전수희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
         **담의神 홍선생 (2012.05.23 ~ 2012.09.05)
  • 전용훈 . . . . 2회 일치
         |문 표기 = Jeon Yong-Hoon
         |사진 사이즈 =
  • 전인환 . . . . 2회 일치
         |문 표기 = Jeon In-Hwan
         |사진 사이즈 =
  • 전일수 . . . . 2회 일치
         |문 표기 = Jeon Il-Soo
         |사진 사이즈 =
  • 전장운 . . . . 2회 일치
         |징 =
         전장운은 [[1811년]]에 [[한양]]에서 태어났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의 인도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그의 아버지는 세을 떠났다. 정장운은 어릴 때부터 [[농사]]와 [[가죽]] [[가방]]을 만들며 가족을 부양했다.
  • 전지수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
         == 수 ==
  • 전형도 . . . . 2회 일치
         |문 표기 = Jeon Hyeong-Do
         |사진 사이즈 =
  • 절대가련 칠드런/434화 . . . . 2회 일치
          * 테오도르는 보스가 길리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제거하려 들지만 길리엄은 그것까지 정하고 있었다
          * 길리엄은 이미 새로운 클론 부대를 확보했고 테오도르가 준비한 부하들도 처리된 태.
  • 절대가련 칠드런/452화 . . . . 2회 일치
          * 잡히더라도 가끔은 탈옥해서 만나러 올 테지만 항 그럴 순 없으니, 자신이 없는 사이 이게 있으면 안심이라고 말해준다.
  • 절대가련 칠드런/477화 . . . . 2회 일치
          * 블랙팬텀의 향력이 확대되어 에스퍼들에게 세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져 가고, BABEL은 에스퍼들을 탄압하는 첨병으로 전락한다.
  • 정구양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정다흰 . . . . 2회 일치
         |문 표기 = Jung Da-Heen
         |사진 사이즈 =
  • 정동현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문 표기 = Jeong Dong-Hyun
         |사진 사이즈 =
  • 정명재 . . . . 2회 일치
         === 화 ===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하동 정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1979년 데뷔]][[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동고등학교 동문]]
  • 정민아 (아나운서)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
         * [[서강대학교#개설 학과·전공|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 경학 학사
  • 정상헌 . . . . 2회 일치
         |이름 = 정
         '''정헌''' (鄭尙獻, [[1982년]] [[5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이다.
  • 정세협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정수성 (야구인) . . . . 2회 일치
         |문 표기 = Jeong Soo-Seong
         |사진 사이즈 =
  • 정영삼 . . . . 2회 일치
         |이름 = 정
         '''정삼'''([[1984년]] [[4월 21일]] ~ )은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로, 현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소속이다.
  • 정태성(정치인) . . . . 2회 일치
         1926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태어났다. 충주중학교, 연희대학교 경대학 학부를 졸업하였다. 이후 교사, 교수를 역임하였다.
  • 정해창(정무직공무원) . . . . 2회 일치
         1937년 [[경북도]] [[김천시|김천군]]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대학원]] 과정을 졸업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북도 김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임인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정현발 . . . . 2회 일치
         |문 표기 = Jeong Hyeon Bal
         |사진 사이즈 =
  • 젖은 낙엽 . . . . 2회 일치
         1989년에 유행어 대, 신어 부문 표현을 수했다.
  • 제주특별자치도 . . . . 2회 일치
         주절리
         공에서 본 협재해수욕장과 그 일대
  • 조길형(1962) . . . . 2회 일치
         경찰대학 졸업 후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충남[[지방경찰청]]장, 강원[[지방경찰청장]], [[중앙경찰학교]] [[교장]], 안전행정부(현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 임위원 등을 지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서울특별시]] [[등포구]]청장 당선자가 [[동명이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조길형(1957)|조길형]] 후보. 한자도 항렬도 같다.]이라서 화제가 되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접전 끝에 당선된다.
  • 조성미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우먼)
         | 웹사이트 =
  • 조청희 . . . . 2회 일치
         |문 표기 = Cho Cheong-Hee
         |사진 사이즈 =
  • 조훈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주토피아 . . . . 2회 일치
         이향으로 보이는 것 같았던 주토피아는 인간이 만들어둔 일종의 [[모피]], [[고기]] 생산 시스템이었다. 정기적으로 납치되어 사라진 동물들은 모피와 고기로 바뀌어서 인간 세으로 출하되고 있었던 것.
  • 지뢰녀 . . . . 2회 일치
         [[일본]]의 속어. [[지뢰]] 같은 여자를 뜻하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거나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지만, 깊이 사귀게 되자 괴한 성격이나 집착을 드러내며 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이다. [[스토커]] 같은 사례가 포함된다.
  • 진격의 거인/99화 . . . . 2회 일치
          * [[빌리 타이버]]는 대중들을 대로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사실 거인대전을 끝낸 주역은 타이버가도 마레인도 아닌 "프리츠 왕" 그 자신이며 평화를 위협하는 반역자는 "엘런 예거"임을 폭로한다.
         == 세 ==
  • 짚라인 . . . . 2회 일치
         zipline. 이동수단의 일종. [[와이어]]에 움직일 대을 매달아 이동하는 도구다. 그냥 매다는 건 아니고 따로 도구가 있다. 짚라인이라는 이름은 사용할 때 "지잎-"하는 소리가 나서 붙여졌다고 한다.
         열대지방에서 여러가지 위험 요소를 피하기 위해 나무 사이를 와이어로 오가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대에는 레저 수단으로도 쓰이는 중.
  • 차광렬 . . . . 2회 일치
         | 서훈 내역 = 미국 할리우드웅들
  • 차내 피난생활 . . . . 2회 일치
         [[재난]]이 일어난 황에서, [[피난소]]에 가지 않고 [[자동차]] 안에서 숙박을 하며 생활하는 것.
          * 비시에 자동차를 타고 빨리 도망칠 수 있다.
  • 차선화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차영철 . . . . 2회 일치
          | 이름 = 차
         '''차철'''(車榮澈, [[1959년]] [[7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하계 올림픽|올림픽]] [[국제식 사격|사격]] 은메달리스트이다.
  • 착각남 . . . . 2회 일치
         칸스케는 주로 연애망 쪽으로, 거의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례를 뜻한다. 사소하고 흔히 있을 수 있는 착각에는 쓰지 않는다.
         평범한 경우라면 자신이 착각하고 있다고 깨닫게 되면 행동을 멈추지만, 지적을 받아도 망을 멈추지 않게 되는 사례도 존재하며 이미 정신병 환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스토커로 악화되기도 한다.
  • 창작:좀비탈출/1-2 . . . . 2회 일치
         나는 신중하게 뒷골목 쪽 담을 넘어서 나갔다. 다행히 이쪽에는 좀비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가다보니 다시 좀비와 마주쳤다. 나는 공격을 피하면서 좀비들 사이로 달려갔다.
          * {{{#red 정보가 없는 황에서 너무 서두르는 건 위험합니다.}}}
  • 창작:좀비탈출/2 . . . . 2회 일치
         마당에는 [[자전거]]가 한 대 있다. 옆집 아저씨가 자랑스럽게 타고 다니던 자전거였다. 태는 좋은 것 같지만, 체인으로 앞바퀴가 잠겨있어 움직일 수 없는 태다.
  • 창작:좀비탈출/4-0 . . . . 2회 일치
         만 했을 뿐인데 이 모양이다. 저 틈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몸에서 거부한다.
  • 창작:좀비탈출/기록 . . . . 2회 일치
          * 위항목 : [[창작:좀비탈출]]
          * 식칼 : 화와 달리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은 것 같다. 그냥 본래 용도에 걸맞게 요리할 때나 써먹어야겠다.
  • 채우성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채윤아 . . . . 2회 일치
         |훈 =
         |웹사이트 =
  • 챈슬러 (음악가) . . . . 2회 일치
         | Track 4 <화처럼>
         * {{공식 웹사이트|https://www.chancellorofficial.com}}
  • 체스 . . . . 2회 일치
         보드게임의 일종. 서양장기라고도 한다. 판 위에서 말을 움직여 대의 킹을 잡는 쪽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대의 킹을 잡을 수 있게 되면 "체크"라고 선언해줘야 한다. 성대의 킹이 도망칠 수 없게 되면 "체크메이트". 이 경우에는 체크메이트를 선언한 사람이 승리한다.
  • 체육회계 . . . . 2회 일치
          * 선배와 후배로 구분되며, 하관계를 엄격하게 한다.
          * 선배를 보면 큰 소리로 인사하는 등 필요이으로 예의를 차리는 것을 강조한다.
  • 첼렌느 베르체코프 . . . . 2회 일치
         == 세 정보 ==
         그 능력외에도 어떤 환경에서도 쉽게 적응하며 누구와도 모나지 않게 친하게 지내는 것을 선보이기도 한다. 주 포지션은 저격수이지만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붙임성으로 잡입 임무에 투입되기도한다. 이 특유의 붙임성이 아이스 레인저 특유의 '같은 부대원들은 모두 가족'이라는 사과 시너지를 일으켜 발할라 내의 모든 인물을 친구 혹은 잠정적인 친구로 여기는듯하지만 몇몇 인물들은 역시 껄끄러운듯 하다.
  • 총기 . . . . 2회 일치
         총기는 [[탄환]]을 발사할 때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하는데, 폐쇄된 관에서 화약이 폭발하면 폭발적인 연소과정에서 나오는 대량의 가스가 갈 곳을 잃고 고압으로 압축되는 황이 된다. 이 때 약실이 충분히 튼튼하지 않거나 뭔가 결함이 있다면 약실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여 발사자가 오히려 [[끔살]]당한다. 정적인 총기에서는 오직 탄환이 있는 곳만이 밀어낼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므로 연소가스의 압력은 탄환을 밀어내게 되며, 탄환은 초고속으로 총신을 따라서 튕겨나가서 총신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가게 된다. 이렇게 발사과정을 거쳐서 날아오는 탄환은 인간의 신경으로는 포착하거나 반응할 수 없으며, 정확하게 명중한다면 대개 '''그대로 죽는 수 밖에 없다.'''
  • 최규하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문 표기 = Choi Kyu-Ha
         |사진 사이즈 =
  • 최동희 . . . . 2회 일치
         아들인 최동희를 최제우의 후계자로 선포하고 전국적으로 잔치를 열었다 [[서울]] [[종로 (서울)|종로]] 출생이며 [[3.1 운동]] 후 [[중국]] [[하이]]로 망명해 독립 운동을 하다가 [[1922년]] 7월 [[천도교]] 중심인 [[고려혁명위원회]]를 조직해 부위원장 겸 외교부장으로 활동하다가 [[김광희]], [[강도희]]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갔다.
         [[1926년]] [[중국]] [[지린성]]에서 [[고려혁명당]]을 조직하고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독립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어 [[1927년]] [[하이]] 적십자병원에서 사망했다.
  • 최별이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최성민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문 표기 = Choi Seong-Min
         |사진 사이즈 =
  • 최승민 (1991년) . . . . 2회 일치
         |문 표기 = Choi Seung-Min
         |사진 사이즈 =
  • 최아라 (모델)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인스타그램|araraach}}
         |2017|| [[JTBC]] || [[청춘시대 2]] || 조은<ref>{{뉴스 인용|제목=‘청춘시대2’ 최아라 “시청자 입장에서 시즌2 기다려… 합류하게 돼 광”|url=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277401|날짜=2017-08-22|출판사=텐아시아|저자=이은진}}</ref> ||
  • 최연오 . . . . 2회 일치
         |문 표기 = Choi Yeon-Oh
         |사진 사이즈 =
  • 최우석 (화가) . . . . 2회 일치
         1915년 [[조선서화미술회]] 강습소에 입학하면서 [[안중식]]과 [[조석진]]의 문하생이 되었고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서화협회]] 전람회 정회원을 역임했다. 1925년부터 1934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근대적인 채색화 수법을 응용한 풍경화와 한국의 역사 인물을 주제로 한 초화 연작을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연달아 수했지만 그가 작품 활동 초기에 그린 풍경화와 인물화는 일본 화풍의 채색화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점차 한국의 전통적인 수묵 담채화의 관념적 작품으로 회귀하게 된다. 주로 산수화와 신선도 등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 최원명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www.starship-ent.com/profile/artists/choiwonmyeong.php 공식사이트]
  • 최원태 . . . . 2회 일치
         |문 표기 = Choi Won-Tae
         |사진 사이즈 =
  • 최윤석 . . . . 2회 일치
         |문 표기 = Choi Yoon-Seok
         |사진 사이즈 =
  • 최윤정 (패션 디자이너) . . . . 2회 일치
         |웹사이트 = [[http://www.minoufatal.com 미누파탈]]
         '''최윤정'''(1974년~)은 [[미누파탈]]의 설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이다. [[1974년]] [[대한민국]]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97년]] [[MBC]] 26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하여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사랑과 성공, 진실, 마지막 전쟁, 가을에 만난 남자, 베스트 극장, 인어아가씨, 앞집여자 등에 출연하였다. 또한 [[화]] [[선생 김봉두]]에도 출연하였고, LG텔레콤, [[P&G]], PCCW, 여성가족부 등의 [[CF]] 모델로도 활동하였다. [[2013년]] [[최정아]]와 함께 20~3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미누파탈]]을 설립하였다.
  • 최재호 (희극인)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 웹사이트 =
  • 최학봉 . . . . 2회 일치
         서울 출생으로, 1871년 [[장악원]] 악공에 임명되고, 1913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에 임명되었다. [[함제홍]], [[정약대]], 함재과 더불어 조선 말기의 손꼽히는 대금의 명인이고, 특히 대금 연주자 김계선(金桂善)을 길러낸 스승이다.<ref name="글로벌_1">한국음악/한국음악/한국음악가/정악의 명인/최학봉, 《글로벌 세계 대백과》</ref>
         [[분류:조선의 음악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국악인]][[분류:1856년 태어남]][[분류:몰년 미]][[분류:20세기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희령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
         | 웹사이트 =
  • 추대엽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추성건 . . . . 2회 일치
         |문 표기 =
         |사진 사이즈 =
  • 충완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
         * 2015년 8월 14일 〈1과 1사이
  • 츤데레 . . . . 2회 일치
         겉으로는 대에게 퉁명스럽거나 또는 싫어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호의를 보이는 태도. 서브컬쳐나 문학 작품에서 먼 옛날부터 쓰여온 설정 중 하나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모에' 문화의 향으로 다양한 종류의 세부적인 유형이 새로이 분류되어 만들어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지양하자는 등의 이유로 '새침떼기' 등의 대체어를 권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부적인 개념 차이 등으로 인해 별로 선호되지 않고 있다.
  • 치킨 . . . . 2회 일치
         == 닭을 뜻하는 어 단어 ==
          가장 일반적인 치킨. "튀긴 닭고기 튀김"이라는게 이하게 여겨지는지 "크리스피 치킨"이라고도 불린다.
  • 카시오리 . . . . 2회 일치
         카시는 과자, 오리는 [[도시락]] 같은걸 담는 나무 자를 뜻하는 말이다.
         카시오리는 선물용 과자 세트를 뜻한다. 손님 댁에 방문, 업차 방문, 사죄 방문 등에 비교적 필수적인 선물로 여겨진다. [[편의점]] 등에서도 구할 수 있다.
  • 카쿠스 . . . . 2회 일치
         ## 숭배 양
         === 에트루리아 도연구서 ===
  • 칼렉시트 . . . . 2회 일치
         트럼프에 반대하는 반 트럼프 시위와 동시에 칼렉시트를 내건 시위가 벌어지고, 실제로 연방 탈퇴 선언을 노리는 'Yes California'라는 웹사이트가 나타나기도 했다.
          * 셜빈 피셔버(Shervin Pishevar) - 우버의 개발자이며, 하이퍼루프 원의 공동창업자. CNBC에서 "캘렉시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하며,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애국적인 일이고, 미국을 떠난 캘리포니아를 '뉴 캘리포니아'라고 부르겠다"고 주장했다.--[[뉴 캘리포니아 공화국]]?-- 셜빈 피셔버는 예스 캘리포니아 캠페인을 구하고 있으며, 스페인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을 모델로 하여 2019년 국민투표를 제안하였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국가가 된 뒤에 다시 연방에 들어와도 된다고 발언했다.
  • 캬바쿠라 . . . . 2회 일치
         [[일본]]의 [[유흥업소]] 형태 가운데 하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캬바레(キャバレー,cabaret) 」와 [[어]]에서 유래한 「쿠라브(クラブ,club=클럽)」을 합성한 단어.--어느 한쪽만 하라고.-- 줄여서 캬바(キャバ).
         캬바쿠라에서 접대를 맡는 여성을 캬바죠우(キャバ嬢)라고 부른다. 웃는 얼굴로 응대하며, 대의 대화를 들어주고 좋은 기분으로 술을 마시게 해주는 것이 요구된다.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 . . . 2회 일치
         Command & Conquer. 지금은 망한 회사인 웨스트우드 스튜디오가 만들었던 RTS 게임 시리즈. 한때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다. 보통은 C&C로 줄여 부르며, 국내에서는 CNC를 한키 변환없이 친 "춫"이라고도 부른다.
          * 같은 RTS 장르지만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와는 당히 게임의 흐름이 다르다. 자원채취에서는 하베스터 한 대 한 대가 중요하고, 자원수집이 느린 반면 유닛의 생산속도는 무척 빠르다.
  •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 . . . 2회 일치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특유의 시스템을 축소한지라 처음 나왔을 때는 "[[일렉트로닉 아츠|EA]] 놈들이 이한걸 C&C라고 내놓았다!"라는 반응이 흔했다. [[커맨드 앤 컨커 4: 타이베리움 트와일라잇]]이 나온후 6년째 신작이 안나오는 지금은 그런거 없지만.
         중동의 분쟁에서 화학무기, 폭약함정, 급조한 차량 등이 목격될 때 마다 국내 인터넷에서는 미래를 예언했다며 언급된다. 외국 사이트에서는 그렇게 오버하지는 않고 [[IS]]를 예언했다고만 하는 정도.
  • 켄카킥 . . . . 2회 일치
         격투기 기술의 하나. [[프로레슬링]]에서 쓰인다. '야쿠자 킥'으로도 불리는데, 본래 '야쿠자 킥'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야쿠자]]라는 말을 꺼리는 경우에 '켄카킥'이라고 한다. 켄카(ケンカ)는 싸움(당히 거친 의미)이라는 뜻.
         프로레슬러 쵸노 마사히로(蝶野正洋)의 경기에 기원이 있어, [[로프 반동]]으로 돌아온 대 선수에게 발차기를 날렸는데 이 때 해설이 "마치 야쿠자의 발차기 같습니다!"라고 외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 쿄로충 . . . . 2회 일치
         항 눈을 두리번 두리번(キョロキョロ, 쿄로쿄로)거리면서 자신이 소속될 그룹을 찾는다. 자신이 [[리얼충]] 그룹의 일원이라고 느끼면서 대학생활에 충실감을 느끼는 인간.
         [[교실]], [[식당]] 등에서 자신의 지인이 있는지 항 두리번 거리면서 같이 행동을 할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혼자서 학생 식당 등에서 밥을 먹는 것은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며, 그런 자신을 누군가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데 강한 두려움과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 쿨 비즈 . . . . 2회 일치
         2005년 쿨비즈를 제창하고 보급한 환경성 대신 코이케 유리코가 유캔 유행어 대을 수했다. 환경성은 2012년에는 보다 가벼운 차림으로, 샌들 같은 것도 추천하는 슈퍼 쿨비즈(スーパークールビズ)를 제창하였다.
  • 쿼터뷰 . . . . 2회 일치
         쿼터뷰는 [[캐릭터 스프라이트]]를 '앞', '뒤'만 준비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맵 타일의 특성 '높이'를 표현하기 쉬워서, 일종의 유사3D를 표현하는데 유리하다. 이러한 특성 [[SRPG]]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 키프 . . . . 2회 일치
         연애 관계에 있어서 '잠재적'으로 연인으로 삼으려고 관리를 하고 있는 중인 연인 미만의 이성 대을 뜻한다.
         버블 시대에 나타난 용어 키프 군(キープ君)에서 유래한다. 어원은 어의 Keep.
  • 토리코 . . . . 2회 일치
         다양한 맛이 난무하는 세 속에서 미식가 토리코와 요리사 코마츠가 만나 함께 모험을 떠난다.
         배틀과 요리가 주요 소재로 등장해 통적인 배틀물과는 다른 느낌을 줬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부에 진행되면서 평가가 많이 하락.
  • 토리코/362화 . . . . 2회 일치
          * 금관두의 내용물은 GOD, 센터, 네오의 일부 등등 여러가지 설이 있었지만 전혀 관없는 물건이었다.
          * 브란치는 왠지 미도라가 죽을 거라고 예했지만, 사실 죠아를 압도 중이다.
  • 토리코/365화 . . . . 2회 일치
          * 지금 태에서 사용하는 기네스 펀치는 블루 니트로들이 '''"지구를 멸망시킬 작정이냐"'''고 물을 정도의 파괴력
          * 블루 니트로는 팔왕이나 네오에는 못 미쳐도 이 세계 정점에 달한 실력자들이란게 통설이었는데, 100% 태도 아닌 지로에게 완전히 박살나면서 완전히 체면을 구겼다.
  • 토리코/380화 . . . . 2회 일치
          * 아카시아는 GOD의 태를 보며 얼마나 무르익었는지 살핀다.
          * 네오는 여유롭게 공격을 되받아치고 오히려 마왕의 체를 날려버린다.
  • 파머보이즈 . . . . 2회 일치
         Farmer Boys. 미국의 음식점. 표 밑에 써진 것에 따르면 [[햄버거]], 아침식사 그외 등등이 주력 메뉴인 것 같다.
         현재는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일대에 90여개의 체인을 운하고 있다.
  • 파일 드라이버 . . . . 2회 일치
         [[프로레슬링]]의 기술 가운데 하나. 대의 허리를 붙잡고 내던져, 머리를 바닥에 내리찧는 기술이다.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같은 기술은 이 때문에 언듯 보기에는 정수리를 바닥에 내리찧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허벅지로 대방의 머리를 잡아서 바닥에 부딯치지 않도록 배려를 한다.
  • 패드립 . . . . 2회 일치
         悖ad lib. 대방의 부모를 희롱하는 말을 뜻하는 신조어.
         현실이건 인터넷이건 대와의 관계를 화끈하게 파탄낼 수 있는 행위다. 당사자나 목격자에게 교양없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으니 주의.
  • 페어리 테일/481화 . . . . 2회 일치
          *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죽은 이를 되살리거나 환을 보여주는 마법은 아니며, '''대방 마음 속에 있은 인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마법'''이라고 소개한다.
  • 페어리 테일/483화 . . . . 2회 일치
          * 리온과 그레이는 울을 대로 힘겹게 싸운다.
          * 그 사이 마법이 완성된 제라르가 "칠성검"(그랑샤리오)으로 나인하르트를 날려 버린다.
  • 페어리 테일/485화 . . . . 2회 일치
          * 피오레 북방 봉 조니아에서는 가질 일행과 해방된 연합군이 합세해서 싸우고 있다.
          * 그때 연합군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공격이 덮친다.
  • 페어리 테일/499화 . . . . 2회 일치
          * 둘은 의지와는 관없이 사투를 벌이기 시작. 그레이가 쥬비아를 압도한다.
          * 쥬비아는 아이스 록에 걸린 황에서도 그레이를 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페어리 테일/501화 . . . . 2회 일치
          * 루시는 붙잡힌 황에서도 반격을 가한다.
          * "나의 랜디"라고 말하는걸 보면 브랜디쉬에게 친구 이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게 분명하다.--백합 돋네--
  • 페어리 테일/515화 . . . . 2회 일치
          * 모든 명예와 인권을 빼앗긴 아이린은 비참한 황 속에서도 뱃속의 [[엘자 스칼렛]]을 지키며 버틴다.
          사실 그는 그 말이 진실이라는걸 아는 듯 하지만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장군은 칼을 꺼내더니 직접 배를 갈라 확인해보겠다며 달려든다. 그때 아이린의 배에 처가 남게 되는데.
  • 페이데이 2/하이스트/베인 . . . . 2회 일치
         >베인이 고전적인 보석 강도를 하길 원한다. 들어가서 물건을 집고 나오자.
         대형 보석을 터는 하이스트.
  • 프레샤 . . . . 2회 일치
         압력, 특히 정신적인 압력을 뜻한다. 어로는 Peer pressure 혹은 social pressure에 해당하는 말이다. 어의 '프레셔(pressure)'는 '물리적 압력'에 가까운 뜻이다. 일본에서는 '프레샤'를 그대로 곧바로 '정신적 압력'이라는 뜻으로 쓰는 것이 특이.
  • 프리덤 파이터즈 . . . . 2회 일치
         [[저스티스 리그]],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 크로스오버된 적이 있으며 [[크루세이더즈]]가 등장한 적도 있다.
  • 프리터 . . . . 2회 일치
         계약직원, 파견 사원, 아르바이트, 파트 타이머 등 비정규직으로 생활을 위하고 있는 사람.
         [[버블 경제]] 시기에 나타난 말. 당시에는 임금이 높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유롭게 일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는 이적인 패턴이라는 의미가 강했지만, 점차 경기가 악화되면서 비정규직으로 어렵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졌다.
  • 프릭쇼 . . . . 2회 일치
         [[미국]]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성행했다. 주로 카니발(순회 서커스) 등에서 흥행이 이루어졌다. 프릭쇼에서는 특이한 외모를 가진 장애인들을 있을 수 없는 '괴물'을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이들이 쇼를 하는 것을 감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폭행]], [[학대]] 등의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프릭쇼에 출연해서 많은 명성과 돈을 얻은 장애인도 있다.
         시간이 흐르고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향됨에 따라서, 점차 쇠퇴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여전히 이런 프릭쇼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인권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들이라고 의사표현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보여주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특별히 제제할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
  • 하광석 (작곡가) . . . . 2회 일치
         |웹사이트=
         * [[1996년]] [[조관우]] - '''원'''
  • 하규원 . . . . 2회 일치
         {{화인 정보
         |웹사이트 =
  • 하규일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
         여섯 살 때부터 10여 년간 한문을 공부하고, 집안의 향을 받아 가곡을 공부했다. 숙부 하준권(河俊權), 재종(再從) 하순일(河順一)이 모두 가곡의 대가였다. [[1885년]]에는 하준권의 제자 최수보(崔壽甫)에게 배웠고, 다음에는 가곡 명창으로 이름을 날리던 《[[가곡원류]]》의 저자 [[박효관]]에게서 가곡을 닦았다. 나쁜 성대를 가졌으나 피나는 노력으로 성대를 바로잡고 근세 가곡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치었다.
  • 하마치 . . . . 2회 일치
         본래 방어(일본어로는 부리ブリ)를 가리키는 말은 일본에서 그 성장과정이나 지방마다 달랐는데, 하마치는 [[간사이]], [[츄고쿠]] 지방에서 쓰이던 말로서 어린 방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세토 내해]]에서 양식으로 방어를 기르게 되면서, 간사이 지방의 호칭이 퍼지면서 크기에 관계없이 '하마치'라는 호칭이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다.
  • 하이브리스토필리아 . . . . 2회 일치
         하이브리스토필리아를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하는 주장도 있다. '사이코패스'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주장하고 일맥 통한다.
  • 하이큐/213화 . . . . 2회 일치
          * 히나타는 볼보이들 사이에 섞여서 친해져 있다.
          * 우카이 코치에게 전화로 뭘 먹는게 좋겠냐고 묻는데, 우카이 감독은 어떤 황인지 금방 이해하고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
  • 하이큐/270화 . . . . 2회 일치
          * [[미야 아츠무]]는 [[니시노야 유]]를 확실히 강한 대로 인정했기에 노리고 있다.
          * 열세에 처한 듯했던 니시노야지만 뭔가 기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대응하는데.
  • 하지호 . . . . 2회 일치
         |문 표기 = Ha Ji-Ho
         |사진 사이즈 =
  • 하카마 . . . . 2회 일치
          * 안돈하카마(行灯袴) : [[치마]]처럼 사이가 터있는 형태.
         [[분류:일본 전통의]]
  • 한국의 출신지별 인물 . . . . 2회 일치
         [[분류:경남도 출신 인물]]
         [[분류:경북도 출신 인물]]
  • 한명진 (1426년) . . . . 2회 일치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 수(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문춘추관대학사 질(尙質)이고, 아버지는 감찰 기(起)이고, 어머니는 이조참판 [[이척]]의 딸이다.
         * 《[[한명회 (드라마)|한명회]]》 ([[KBS]], [[1994년]]~[[1994년]] 배우:[[서진]])
  • 한방의학 . . . . 2회 일치
          * 일본 한방의학에서는 한론 등의 고방(古方)이 중시되는데, 중의학에서는 후세방(後世方)이 중시된다.
         [[일본]]에는 [[금나라]], [[원나라]] 시기에 정립된 금원의학(金元医学)이 전래되었는데, 이러한 의학을 후세방(後世方)이라고 부른다. [[에도 시대]] 중기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일본 국학 부흥과 복고 열풍이 불어, 『한론(傷寒論)』과 『금궤요락(金匱要略)』을 중시한 고방(古方)이 나타나게 된다. 이후 양자를 절충하겠다는 절충파, 더욱 고문헌의 고증에 중점을 두겠다는 고증파가 나타난다.
  • 한병준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한송이 (방송인) . . . . 2회 일치
         |웹사이트= [http://minihp.cyworld.com/pims/main/pims_main.asp?tid=23717683 한송이 미니 홈피]
         '''한송이'''([[1985년]] [[11월 16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리포터]] 및 [[모델 (직업)|모델]]이다. 가수로서는 [[허니쉬]]라는 듀오로 활동했다. [[그리피스대학교]]에서 호텔경학을 취득했다. [[2007년]] TV엔젤스 시즌 2에서 [[김시향]]을 물리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 한요한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www.wejustmusic.com/bbs/board.php?bo_table=Artist&wr_id=6
         * [http://www.wejustmusic.com/bbs/board.php?bo_table=Artist&wr_id=6 한요한] - 공식 웹사이
  • 한채이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 웹사이트 =
  • 함가연 . . . . 2회 일치
         == 수 ==
         *[[2003년]] 국회의장 전국 예술제 텐 댄스대회 고등부 라틴 5종목 1위
  • 함석원 . . . . 2회 일치
         |문 표기 = Ham Seok-Won
         |사진 사이즈 =
  • 허경욱 . . . . 2회 일치
         * [[서울대학교]] 경학 학사
         * [[스탠퍼드 대학교|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 경학 석사
  • 허규옥 . . . . 2회 일치
         |문 표기 = Heo Kyu-Ok
         |사진 사이즈 =
  • 허민행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허용 . . . . 2회 일치
         |문 표기 = HEO YONG
         * [[무 피닉스]] (2005년)
  • 현소환 . . . . 2회 일치
         [[연합통신]] 사장 재직 당시 [[YTN]] 설립에 관여했지만 이후 [[김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1959년)|김현철]]씨가 YTN 초대 사장에 [[김우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을 앉히기 위해 현소환 당시 연합통신 사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분류:1937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 해병 중위]][[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현제명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음악가, 성악가(테너), 작곡가. 1902년 12월 8일 [[경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남산동(現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남산동) 출신. 본관은 연주(延州)이며 아호는 현석(玄石)이다. 그리고, [[친일반민족행위자]]다.
         1945년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에 가입해서 극우 보수파로 활동하여 반공, 반북 운동을 전개하였고 1946년에는 경성음악학교([[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전신)를 설립하여 교장이 되었다. 1953년 한국음악가협회 위원장,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구종신회원에 선임되었다가 1960년 10월 16일 [[간경변]]으로 생을 마감했다.
  • 형키 . . . . 2회 일치
         | 활동 역 = 희극인(개그맨, 코미디언)
         | 웹사이트 =
  • 홍명찬 . . . . 2회 일치
         |문 표기 = Hong Myeong-Chan
         |사진 사이즈 =
  • 홍석형 . . . . 2회 일치
         |웹사이트=
         *** 아버지 : [[홍기문]](洪起文, 1903 ~ 몰년 미) :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과학원 부원장
  • 홍양호 (1955년) . . . . 2회 일치
         * 통일부 남북정회담사무국 근회담대표
  • 홍은철 . . . . 2회 일치
         |웹사이트 =
         * 2016년 프리랜서 선언. 화 전문 프리랜서 아나운서 활약.
  • 홍정우 . . . . 2회 일치
         |문 표기 = Hong Jeong-Woo
         |사진 사이즈 =
  • 황덕균 . . . . 2회 일치
         |문 표기 = Hwang Duck-Gyoon
         |사진 사이즈 =
  • 황부인전 . . . . 2회 일치
         황소저는 꿈에서 계시를 얻는데, 그녀는 전생에 월궁항아였으나 용모가 빼어나고 교만하여 인간세계에 내려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한편 은거 선비 [[제갈량]]도 꿈에서 계시를 얻는데, 그는 천계 공명성이 전생한 몸으로서 300년 전에 인간 세에 태어났으나 시대를 잘못 만나 명성을 떨치지 못했으며 하늘의 뜻으로 다시 태어나 성주(聖主)를 모심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운명이었다.
         제갈량은 운명에 따라 길에서 황소저가 타고 있는 교자를 만나고, 청혼을 하여 성례하게 된다. 하지만 혼례는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갈량은 첫날밤에 신부의 추악한 모습을 보고 도망가려 하는데, 황부인이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져서 옷이 찢어진다. 황부인이 옷을 꿰매줄 테니 꿰맨 옷을 입고 가라고 하여 옷을 꿰매게 된다. 바느질 하는 모습도 곱지 않았으나 바느질 한 옷이 [[천의무봉]]하여 감탄한다. 또 요기나 하고 가라고 해서 밥을 먹게 되는데, 밥을 만드는 모습도 곱지 않았으나 밥을 차린 것을 보니 인간 세의 음식이 아니라 감탄한다.
  • 황수현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문 표기 = Hwang Soo-Hyeon
         |사진 사이즈 =
  • 황승민 . . . . 2회 일치
         1937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법정대학, [[서울대학교]] 경[[대학원]] [[최고위과정|최고경자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황지웅 . . . . 2회 일치
         [[2012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여 리그 20경기에 출전하였으나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고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개막전 출전 후 시즌 말미까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시즌 막바지 다시 기회를 잡기 시작하여 11월 3일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한데 이어 6일 뒤 [[강원 FC]]를 대로도 골을 성공시키며<ref>{{뉴스 인용 |제목 = 무명 황지웅, 대전 구세주로 |url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20029003 |출판사 = 서울신문 |저자 = 강신 |날짜 = 2013-11-20 }}</ref> 활약하였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하였다. 다만 [[K리그 챌린지 2014|2014 시즌]]부터 주전으로 기용되었고, 팀의 승격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5년]] 팀내 최장수잔류자로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팀의 재강등을 막지 못했고, 2015 시즌을 끝으로 군 복무를 위해 [[안산 무궁화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수==
  • 황호진 . . . . 2회 일치
         | 웹사이트 =
         * 《스페셜레터》 (2011년) - 병장 김호 역
  • 회고록 . . . . 2회 일치
         개인이 자신의 삶이나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 회고(回顧)하여 기록(録) 한 문서 혹은 서적. 개인적인 기록이므로 개인의 주관이 반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들이 말년에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물들의 회고록은 사료 가치가 높기도 하지만, 회고록에도 개인의 주관이 반되어 있어서 [[자서전]]만큼이나 회고록의 기록은 검토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 후리소데 . . . . 2회 일치
         [[일본 전통의]] [[기모노]]의 일종. [[소매]]를 길게 만든 기모노이다. 고대에는 [[관례]]를 치르기 이전의 남녀가 모두 입었으며, 현대에는 주로 미혼여성의 정장으로 사용된다. [[성인식]], [[결혼식]] 등에서 입는다.
         [[분류:일본 전통의]]
  • 후지와라 노리카 . . . . 2회 일치
         1992년 미스 일본 그랑프리를 수했다. 1993년에 도쿄 레이스에서 수복, 기모노 캠페인 모델로 활동하였으며, 여성 패션지 『JJ』『CanCam』에서 인기 모델이 되었다. 여배우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 휴전 . . . . 2회 일치
         웹스터 어사전에 의하면, 휴전(Armistice)은 [[라틴어]] armistitium에서 온 말이며 이는 라틴어로 arma(무기, 군사) 와 -stitium(정지) 을 결합한 것이다.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706년이다.[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armistice 참조]
         국가와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부자 구출 등의 사유로 임시적, 일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 흑초 . . . . 2회 일치
          * [[비타민 B]]와 [[미네랄]]이 들어 있어, 필수 양소이다.
         좋은 양성분이 많아 [[건강식품]]으로 여겨진다. [[고혈압]]을 예방하고, 혈류를 개선하며, 항산화 작용과 [[대장암]] 억제 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 10-4 . . . . 1회 일치
         대방의 통신을 잘 알아먹었다는 뜻이다.
  • 1000가지 위기의 순간 . . . . 1회 일치
         [[http://www.spike.com/shows/1000-ways-to-die|스파이크 방송사 하위 웹사이트]]
  • 1만 시간의 법칙 . . . . 1회 일치
         따라서 우리들은 선천적 재능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부에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고, 노력이 가장 많이 반되는 게임에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 2세대주택 . . . . 1회 일치
          * 같은 건물이지만, 부엌, 욕실, 화장실, 현관 등이 별도로 되어 있어 완전히 분리된 다세대구조. 좌우분리형과 하분리형이 있다.
  • 3월의 라이온 . . . . 1회 일치
         [[ 애니멀]] 연재작. 작가는 [[허니와 클로버]]로 유명한 [[우미노 치카]].
  • 3월의 라이온/119화 . . . . 1회 일치
         후지모토 라이도를 대로 도바시 켄지는
  • 3월의 라이온/120화 . . . . 1회 일치
         || 만에 하나 잘 풀려서 사귀는 사이가 된다 해도 길어야 1년...
  • 3월의 라이온/126화 . . . . 1회 일치
          * 그러는 사이에 시마다의 쓰린 속이 잠잠해진다.
  • AEC 장갑차 . . . . 1회 일치
         AEC Armoured Car.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국]]이 사용했던 [[장갑차]].
  • COCOM . . . . 1회 일치
         1949년 11월, [[자본주의]] 국가들 측에서 공산권 진에 대한 수출 통제기구로서 출범한 위원회이다. [[미국]]의 주장에 따라서 설립되었으며, 공산권에 대한 전략 물자와 기술 수출의 방지를 목적으로 하였다. [[파리]]에 본부를 뒀다.
  • CaseTemplate . . . . 1회 일치
         == 세 ==
  • DQN 보복 . . . . 1회 일치
         DQN 반격의 내용에 따라서는 쾌하다고 칭송을 받거나,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 Drunken Sailor . . . . 1회 일치
         [[국]]의 [[뱃노래]]. 술에 취한 [[선원]]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골려먹는 내용의 노래다.
  • EZ2AC . . . . 1회 일치
          * EZ2DJ : AZURE EXPRESSION INTEGRAL COMPOSITION[* 현재 SQUARE PIXELS에서는 그냥 AZURE EXPRESSION Project라는 명으로 사용한다. 이유은 아마 현재 EZ2DJ표권이 [[코나미]]한테 넘어가서 그런듯.]
  • Europa Universalis 4/서구권 . . . . 1회 일치
         -소국들이 굉장히 많다. '''아주 많이''' 이것덕분에 생각없이 확장하다가는 소국들이 반국가 연합을 형성해 처벌전쟁을 일으켜 쫄딱 망할 수 있다. [* 게임 시스템 땅 하나짜리 소국 10개가 땅10개먹고 있는 국가보다 훨씬 쎄다. 강한 국가를 동맹으로 들고 있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된다.]
  • GodTemplate . . . . 1회 일치
         ## 숭배 양
  • HMMWV . . . . 1회 일치
         [[http://www.marines.com/operating-forces/equipment/vehicles/hmmwv|미 해병대 웹사이트의 HMMWV 페이지]]
  • House of the Rising Sun . . . . 1회 일치
         여러 가수들이 부른 노래. [[도박사]] 아버지와 [[재단사]]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화자가 [[뉴올리언스]]에 있는 [[교도소]]로 이송되며 부르는 노래다.
  • InterMap . . . . 1회 일치
         # * 아래 줄은 자신의 환경에 맞게 바꿔주세요. 최위 url이 wiki라면 /wiki/pds/ 라고 하셔야 합니다.
  • IsbnMap . . . . 1회 일치
          모니위키 1.1.3에서는 이와 관련된 버그가 고쳐졌고, 알라딘 같은 경우는 확장자가 jpg/gif인 경우를 자동으로 검출합니다. 이 경우 php.ini에 {{{'allow_url_fopen=1}}}같은 식으로 설정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또, config.php에 {{{$isbn_img_download=1;}}} 와 같이 옵션을 넣으면 이미지를 다운로드할 수도 있게 하여, 일부 referer를 검사하여 이미지를 보이지 않게 하는 사이트에서도 활용하기쉽게 하였습니다. -- WkPark [[DateTime(2009-01-13T07:14:27)]]
  • M25 최루탄 . . . . 1회 일치
         || [[http://www.policemuseum.go.kr/pm_info/new_relic_view.asp?lcode=Large_9&mcode=Middle_10&id=4935&GotoPage=3&category_1=%C0%E5%BA%F1%B7%F9&category_2=&column=&searchString=|경찰박물관 웹사이트 출처]] ||
  • MoniWikiACL . . . . 1회 일치
         wildcard를 쓴 것 보다 explicit하게 지정된 것이 먼저 적용된다. (순서에 관 없다)
  • MoniWikiPlugins . . . . 1회 일치
         모니위키는 MoinMoin과 호환하는 Macro를 가지고 있으며, 그 매크로에 응하는 action을 각각 가지고 있는 경우 혹은 액션만 있고 매크로는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 MythTemplate . . . . 1회 일치
         ## === 웅, 인간 ===
  • NII 스탈리 . . . . 1회 일치
         [[http://www.niistali.ru/en/about-nii-stali/|NII 스탈리 홈페이지의 설명(어)]]
  • NavigationMacro . . . . 1회 일치
         목록문서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지정해주면 문서 /하단에 Navigation 링크가 자동으로 추가됩니다.
  • Oui Oui Marie . . . . 1회 일치
         [[https://www.loc.gov/item/2013563233/|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보관중인 Oui Oui Marie의 악보(문)]]
  • PW1200G . . . . 1회 일치
         미국의 항공기 엔진 업체 플랫 앤 휘트니(P&W) 사에서 개발한 엔진. [[터보팬엔진]]이며, 회전하는 제트 터빈과 팬 사이에 기어를 넣는 기어드 터보 팬(GTF) 방식을 채용한 것이 특징이다. 기어드 터보 팬을 사용하여 터빈과 팬이 각각 가장 효율적인 속도로 회전하게 만들었으며, 터빈과 팬을 연결하는 축의 회전이 감속되어 소음과 연비가 크게 개선되었다.
  • PageListMacro . . . . 1회 일치
          옵션을 metawiki 혹은 m으로 넣었습니다. 그런데, 서치 속도가 느립니다. metadb가 5메가 이인데 약 2초 가까이 걸리네요. 페이지이 이 매크로를 넣으면 페이지 로딩속도가 느려지므로 그다지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metadb를 다 서치하려면 메모리를 많이 잡아먹게 되어 멎는 경우도 생기므로, 100여개정도를 찾으면 끝내도록 되어있습니다.
  • SORN . . . . 1회 일치
         마엘스트롬을 지키는 대마법사 게이트키퍼의 제자로서, 게이트 키퍼를 봉인해버려서 세계를 멸망의 위험에 빠뜨린 대마녀. 마법의 방패 주문을 가지고 있어서 정적인 방법으로는 대미지를 줄 수 없으며, 오직 게이트키퍼만이 이 마법의 방패를 돌파할 주문을 알고 있는데 정작 게이트키퍼를 만나려면 SORN을 돌파해야 한다는 복잡한 난관을 보유하고 있다. 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 같다.
  • StoryTemplate . . . . 1회 일치
         ## === 웅, 인간 ===
  • Suicide is Painless . . . . 1회 일치
         "자살은 아프지 않아요"라는 자극적인 제목이지만 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 TILTOWAIT . . . . 1회 일치
         설정 '핵폭발'을 일으켜서 적 전체를 공격한다는 과격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이런걸 던전 내부에서 사용해도 괜찮은 걸까.
  • TableOfContentsMacro . . . . 1회 일치
         TableOfContentsMacro를 페이지의 단에 {{{[[TableOfContents]]}}} 와 같이 넣으면,
  • The Tyger . . . . 1회 일치
         [[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Tyger는 [[호랑이]]라는 뜻이다. 여담으로 블레이크가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면 별로 호랑이 처럼 안 생겼다.(…)
  • UploadedFiles . . . . 1회 일치
         {{{[[UploadedFiles(top)]]}}} : 최위 디렉토리를 보여준다. 즉, {{{pds/}}} 디렉토리를 보여준다.
  • U턴 취직 . . . . 1회 일치
         지방에서 진학을 위해서 대도시권으로 경하여 공부를 마친 학생이, 대도시권에서 취직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취직을 하는 것. 자동차 운전에서 [[U턴]]과 비슷하다고 하여 U턴 취직이라고 한다. 고향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취업하는 것은 I턴 취직이라고 한다.--I턴은 턴이 아니잖….--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 . . . . 1회 일치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업]]
  • WikiSandBox . . . . 1회 일치
         #alias 모래
  • weeaboo . . . . 1회 일치
         [[일빠]] + [[덕후]]. [[일본]]이나 일본 문화, 일본 애니에 과도한 집착을 가진 사람. 일 생활에서 일본어를 가끔 쓰며 일본인처럼 행동한다. 만화 코너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비슷한 말로 [[와패니즈]](wapanese)가 있다.
  • weider in . . . . 1회 일치
         weider사의 [[젤리]] 형 양 드링크. 에너지 인과 비타민 인이 있다. 미묘하게 꿀렁거리는 맛이 미묘하다.
  • ∀건담 . . . . 1회 일치
         문: ∀ Gundam
  • くぁwせdrftgyふじこlp . . . . 1회 일치
         예외의 일이 일어났을 때 의식이 혼란해서 내뱉는 말을 표현하는 문장.
  • 가열 . . . . 1회 일치
         '매울 가(苛)와 '세찰 렬(烈)'을 써서 가혹하고 격렬한 태를 이르는 말. 보통 '가열차다'라고 쓰는 경우가 많으나, 표준어로는 '가열하다'라고 쓰는 게 맞다. ~~그런데 표준어가 더 헷갈리기 딱 좋은데...~~
  • 가족같은 . . . . 1회 일치
         * 가족적인 회사라면서 여직원에게 [[성희롱]]을 지속적으로 시도한다.--[[근친간]]?--[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9252157255&code=940202 참조]
  • 감정없는 존재 . . . . 1회 일치
         [[엔더 위긴 시리즈]]나 [[원한 전쟁]]같은 고전 SF소설에서는 "지구인이 이해할 수 없는" 특징으로 자주 등장하며, 단일사고체 특성을 가진 종족들의 대다수는 이런 캐릭터성을 띄는 경우가 많다.
  • 개구리 . . . . 1회 일치
         수을 할 수 있지만 올챙이 때 있던 [[아가미]]가 사라졌으므로 물 속에서 숨쉬지는 못한다.
  • 개돼지 . . . . 1회 일치
         인터넷에서 자조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국개론과 비슷한 느낌. 당시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나향욱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www&artid=201607082025001&code=|화 "내부자들"의 대사를 인용,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는 발언을 한 것에서 유래한다.
  • 개미 . . . . 1회 일치
         많이 죽는다. 철없는 어린아이들에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오늘 당신이 개미를 밟아 죽였을수도 있다.
  • 거푸집 . . . . 1회 일치
         [[콘크리트]]로 건축물을 만들 때 외벽의 형태를 만드는 나무틀도 사실 같은 역할을 하며, 똑같이 거푸집이라고 부른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2화 . . . . 1회 일치
          * 과연 키리에는 업작가로 발돋움할 것인가?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4화 . . . . 1회 일치
          * 아파트 분양 전단지에 향을 받은 도마 우마루는 오빠 도마 타이헤이를 따라 가구점에 간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5화 . . . . 1회 일치
         * 우마루와 히카리 사이에 타이헤이를 놓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진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7화 . . . . 1회 일치
          * 막 나와보니 인파가 몰려서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없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9화 . . . . 1회 일치
          * 그걸 청소하는 사이 불에 올려둔 냄비는 넘쳐 버리고 주방이 엉망진창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5화 . . . . 1회 일치
          * 특진 클래스는 출석율이 관이 없어서 거의 학교에 가지 않는 건데, 우마루는 그걸 듣고 "무한하게 뒹굴뒹굴할 수 있어 좋겠다"라고 부러워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4화 . . . . 1회 일치
          * 타이헤이는 그 시절을 회하며 어머니를 기다리던 신사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신사는 현재 포켓햄GO의 체육관으로 등록.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8화 . . . . 1회 일치
          * 네코롱 부스는 우마루도 아는 캐릭터인데, 원조는 이 프로그램. 당히 전통있는 프로그램이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3화 . . . . 1회 일치
          * 도마 우마루는 지금까지 벼락치기 단련으로 체육도 커버하고 있었지만, 마라톤은 연습량이 솔직하게 반되는 종목이라 통하지 않는다.
  • 경골목구조 . . . . 1회 일치
         [[비평가]]들은 이 건축법을 보고 바람이 불면 [[풍선]]처럼 날아갈 것 같다며 "Balloon Frame"라고 깠지만, 이 건축법으로 만들어진 집은 당히 튼튼했다고 한다.
  • 경마 . . . . 1회 일치
         1174년, [[국]]의 [[헨리 2세]] 때 현재와 같은 명칭을 쓰는 경마가 나타나게 된다. 중세의 경마는 왕과 귀족들이 즐겼기 때문에 왕의 스포츠(Sports of Kings)로 불렸다. 1780년 현대 경마의 기원이라 불리는 더비 경마가 열렸다.
  • 고령군 . . . . 1회 일치
         [[분류:고령군 출신|고령 출신 인물]][[분류:경북도의 군]][[분류:1895년 설치]][[분류:한국의 옛 수도]]
  • 고전을 읽는 사이트 . . . . 1회 일치
         [[분류:웹사이트]]
  • 고종 . . . . 1회 일치
         이 시호를 받은 왕들은 대부분 재위기간이 긴(or길어서 고난을 당히 겪어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왕들이다.
  • 곽승준 . . . . 1회 일치
         1960년 [[경북도]] [[달성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서울[[한성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광오 . . . . 1회 일치
         국내에서는 [[무협소설]]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 [[사파]] 인물이나 [[패기]]가 넘치는 인물에게 주로 붙는 형용사이다. "광오한 웃음소리" 같은 표현이 흔히 쓰인다.
  • 교육 마마 . . . . 1회 일치
         자식 교육에 열심인 어머니 라는 뜻. 지나치게 교육에만 관심을 쏟고, 과도하게 학원에 보내거나 학대적인 육아를 하여 자식에게 안 좋은 향을 미친다는 좋지 않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교조 . . . . 1회 일치
         특정한 [[종교]]의 창시자, 혹은 해당 교단에서 분파된 특정 종파의 창시자를 뜻한다. 종교만이 아니라 특정한 사이나 운동의 창시자,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도 교조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 구글 . . . . 1회 일치
         [[분류:웹사이트]]
  • 구미 . . . . 1회 일치
          * 경북도 구미시.
  • 구미시/인물 . . . . 1회 일치
         * [[김조]] - 정무직공무원, 대학교수
  • 구성재 . . . . 1회 일치
         1960년 [[경북도]] 달성군 다사면 세천리(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미국]]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 군위군 . . . . 1회 일치
         [[분류:군위군 출신|군위 출신 인물]][[분류:경북도의 군]][[분류:1895년 설치]][[분류:1914년 폐지]][[분류:1914년 설치]]
  • 귀적에 들어간다 . . . . 1회 일치
          * 귀(鬼)는 보통 일본에서는 [[오니]]라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귀(鬼)를 중국과 똑같이 '죽은 사람의 혼'이라는 뜻으로 쓰는 이 표현은 일본어에서는 꽤 희귀한 사례이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 . . . . 1회 일치
          2009년 발매된 DLC. 나이트 클럽을 운하는 토니 프린스, 일명 "게이 토니" 밑에서 일하는 루이스 로페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그랜드슬램 . . . . 1회 일치
         어원을 찾아보면 브릿지 게임에서 비롯되었다.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수를 얼마나 많이 구사했느냐에 따라 슬램이라고 부르던 것이 특정한 수를 12가지 쓰면 "스몰 슬램", 13가지 모두를 다 구사하면 그랜드슬램이라 부르던 것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 용어가 테니스, 골프 등의 타 종목으로 퍼지면서 난이도가 높은 업적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이 기준을 달성한 대에게 부여하는 칭호가 그랜드슬램이 되었다.
  • 금고 . . . . 1회 일치
         [[현금]], 중요 서류, [[귀금속]] 등의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한 [[금속]]제 자. 쉽게 뜯기 힘들도록 튼튼하게, 옮기기 힘들도록 무겁게 만들며 [[자물쇠]]를 달아놓는다. 자물쇠는 열쇠나 다이얼키, 번호키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 기계화보병 . . . . 1회 일치
         [[사이보그]]나 [[강화복]]을 착용한 보병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 기축통화 . . . . 1회 일치
         1970년대 까지, 미국 달러화는 세계 경제의 2/3를 차지했다. 나머지 1/3은 국 파운드화와 소련 루블이 양분(각각 1/6)하였다.
  • 김경식 (1960년) . . . . 1회 일치
         == 수 ==
  • 김기철 . . . . 1회 일치
         [[일제강점기]] 일본 간사이 대학 전문부를 수료하였다. 이후 만주국 길림사범학교를 졸업하여 [[교사]]로 근무였다. 한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 김민제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 [[2005년 5월]] 제11회 커리지 매치 입
  • 김정호 (1949년) . . . . 1회 일치
         == 수 ==
  • 김진선(군인) . . . . 1회 일치
         1939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태어났다. [[괴산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19기 출신이었다. [[1993년]] [[제2작전사령관]]([[대장(계급)|대장]])에서 예편하였다. 하나회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으나 안병호, 이현부(이 20기)처럼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다.
  • 김천시 . . . . 1회 일치
         [[분류:김천시 출신|김천 출신 인물]][[분류:경북도의 도시]][[분류:1949년 설치]][[분류:1995년 폐지]][[분류:1995년 설치]]
  • 꾸짖지 않는 육아 . . . . 1회 일치
         교육 평론가 오기 나오키(尾木直樹)의 강연, 서적에 향을 받은 육아법.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8화 . . . . 1회 일치
         == 세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60화 . . . . 1회 일치
         == 세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8화 . . . . 1회 일치
          * 폭주한 토코야미의 개성은 성 문제만 없다면 단연 최강 수준의 개성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1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가 최후의 추격대로 뽑혀가지만, 거의 리타이어 직전 태인 관계로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2화 . . . . 1회 일치
          * 다비는 "[[올마이트]]와 [[유우에이 고등학교|웅고]]를 계속 흔들면 결국 사회 전반의 질서가 흔들리지 않겠냐"며 자신들의 활동이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들을 몰아가고 있다고 한다
  • 낙마 . . . . 1회 일치
         낙마는 당히 위험한 사고이다. 특히 빠른 속도로 달리던 말에서 떨어지면 그 충격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 낚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 . . . 1회 일치
         교제 전에는 대에게 진지하게 접근해왔는데, 정작 교제를 시작한 뒤에는 차가운 태도를 취하는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왠지 남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속설이 있다.
  • 넌센스 . . . . 1회 일치
         [[어]]의 터무니 없는, 말도 안되는 말이라는 뜻, 혹은 아무 의미도 없거나 뜻이 통하지 않는 말이라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서 [[헛소리]]. 센스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 넷카마 . . . . 1회 일치
         또는 여자인데도 인터넷 에서 성별을 밝히지 않은 채 남성적인 어투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넷카마를 적극적으로 남성임을 어필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 이런 경우는 적은 편이다. 여자인 걸 밝히면 달라붙는 사람이 많아서 그쪽이 편하다는 게 주 이유로 한다. 참고로 여자가 남자인척 하는 건 넷나베라고 부른다.
  • 노동기준감독서 . . . . 1회 일치
         어디까지나 명확한 노동법 위반에 대하여 움직이는 기관으로서, 노동기준법에 위반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명확하지 않으면 실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또 노동법으로 판단할 수 없는 내용은 노동기준감독서의 관할이 아니다. 노동자에 대한 대우조건 이나 법적판단이 미묘한 문제에서는 [[담]] 정도는 할 수 있어도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 녹색 종이 . . . . 1회 일치
          * "아침에 일어났더니 책 위에 녹색 종이가 놓여있었다."라는 식으로 쓰인다.
  • 니모를 찾아서 . . . . 1회 일치
         || 충격적인 스릴러 화 ||
  • 니세코이/212화 . . . . 1회 일치
         * 라쿠와 오노데라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걸 알게 된 치토게는 그대로 달아나 버리고 만다
  • 니세코이/217화 . . . . 1회 일치
          * 그래서 설사 처받게 되더라도.
  • 니세코이/221화 . . . . 1회 일치
          * 마리카는 "만약 재회했을 때 오노데라와 결혼한게 아니라면 자신과 결혼하자"고 어거지로 약속하고 유이는 "언젠가 모두 다시 만나 사이좋게 지내자"고 약속한다.
  • 닌텐도 . . . . 1회 일치
         게임 소프트도 굉장한 것이 세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인 [[마리오 시리즈]], 일본 RPG에서 논하지 않을 수가 없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도 닌텐도의 게임 소프트다.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포켓몬스터 시리즈]]도 닌텐도의 게임 소프트. 이외에도 [[동키콩 시리즈]], [[별의 커비 시리즈]] 등 다양한 게임 소프트를 보유하고 있다.
  • 다마시우치 . . . . 1회 일치
         대방을 감쪽같이 속여서 방심하게 하고, 그 틈에 공격한다는 의미. '뒷통수치기'와 비슷한 의미이다.
  • 다음카카오 . . . . 1회 일치
         포털 [[다음]]의 운사. 다음이 카카오를 먹은게 아니라 '''카카오가 다음을 먹은거다!'''
  • 단두대 . . . . 1회 일치
         단두대를 이용한 참수 처형은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프랑스 혁명]] 시기 지롱드 파 20명은 고작 38분 만에 처단할 수 있었다. 이 신속한 처형은 공포 정치를 더욱 격화시켰다고 볼 수 있는데, 전통적인 참수형의 경우 현실적으로 한 명의 사형집행인으로는 하루 5명 이의 처형도 어렵기 때문이다.
  • 단신부임 . . . . 1회 일치
          * [[불륜]]과 [[현지처]]의 온이었다(…).
  • . . . . 1회 일치
         어로 닭을 뜻하는 [[치킨|Chicken]]은 겁쟁이라는 뜻도 된다.
  • 담배 . . . . 1회 일치
         기분 전환 등의 효과가 있지만 그 댓가로 건강을 해친다. 일단 [[발암]] 물질로 분류되어 [[암]]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 우선 담배 연기의 주 성분인 타르부터가 몸에 매우 해로운 물질인데다 그 외에도 담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첨가한 첨가물들이 더욱 더 몸에 해롭게 작용하고, 미량이지만 방사성 물질도 들어가 있다. 거기에다 의존성도 있어서 담배를 일단 피게 되면 끊기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대중매체에서 유명인이 담배를 멋들어지게 피우거나 하는 장면을 보고 향을 받아 흉내내 보는 사람도 종종 있다. ~~현실은 연기 때문에 민폐이고, 담배 피우면서 목에 끓어오르는 가래 때문에 주변에 가래를 퉤퉤 뱉어서 또 민폐~~
  • 대한민국 . . . . 1회 일치
         일단은 반도국가지만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가라고 주장하는 무장집단]]이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섬나라다.
  • 데부 . . . . 1회 일치
         또 다른 속설로는 어 더블 친(Double chin, 이중턱)이 "데부친"이 되어 "데부"가 되었다는 설, 데스 앤 버스트(Death and Burst, 죽음과 폭발)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 도서관 . . . . 1회 일치
         고대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었으니 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시설이다.
  • 동일본대지진 . . . . 1회 일치
         == 세 ==
  • 드라콘 . . . . 1회 일치
         나태하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이나 채소나 과일을 훔친 사람도, [[신성모독]]을 저지른 자나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처벌하였다. 즉, 경범죄도 사형이고 중범죄도 사형이었다. 사람들이 드라콘에게 경범죄와 중범죄의 처벌이 왜 같냐고 묻자, 드라콘은 중범죄는 더 무거운 벌을 주어야 하는데 사형 이의 벌이 없어서 같은 벌을 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떠있는 섬 . . . . 1회 일치
         신화, 전설 에서는 물 위에 떠 다니는 섬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개 [[암초]]를 비유한 것으로 여겨진다.
  • . . . . 1회 일치
         생물이 먹은 음식물에서 양분을 뽑아내고 남은 찌꺼기.
  • 라마 . . . . 1회 일치
         국의 코미디 프로그램 [[몬티 파이슨의 날으는 서커스]]에서는 강에 서식하며 꿀을 먹고 사는 위험 생물로 설명된다. Cuidado! Llamas!
  • 라무네 . . . . 1회 일치
         1872년에 [[국]]에서 유리구슬로 막는 병이 발명되고, 1887년에 일본에서 이 병을 사용해서 레모네이드를 담게 되어 이것이 '라무네'로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팔리게 되었다.
  • 램즈혼 달팽이 . . . . 1회 일치
         수조에서 사육하여 관용으로 쓰는 종류는 껍질의 색에 따라서, 레드, 블루, 옐로, 핑크 등을 붙여서 부른다.--모두 모아서 달팽이 [[전대물]]을 찍어보자.--
  • 러브라이버 . . . . 1회 일치
         || 그들이 자신을 이화한 모습 ||
  • 레갈리아 . . . . 1회 일치
         왕관, 옥새 등 왕권을 징하는 물건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 레드 오케스트라 2 . . . . 1회 일치
         #redirect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웅들
  • 레프카 . . . . 1회 일치
         냉혈한 악당이며 그에 어울리게 극중의 악당들 사이에서도 가장 사악한 모습을 보인다. 인더스트리아의 지하 거주민들을 억압하고, 어린 아이인 라나의 목을 조르는 등 정말 사악하다. 약속을 해도 자기가 유리해지면 휴짓조각처럼 내버리며 지키지 않고, 자신을 거역하면 부하라고 해도 가차없이 제거.
  • 렉스 루터 . . . . 1회 일치
         슈퍼맨의 주적 답게 슈퍼맨 등장 매체에도 매우 자주 등장. 예외적인 경우도 있으나 슈퍼맨을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슈퍼맨의 빌런은 렉스 루터라는 점에서 그 존재감이 남다르다. 슈퍼맨 자체가 오랜 역사의 캐릭터이기에 무수한 슈퍼 빌런 중에서도 당한 역사를 지닌 캐릭터.
  • 로랑 세아크 . . . . 1회 일치
         작중에서의 여장[* 통칭 '[[로라 로라]]'. ∀건담 항목의 사진 중 여성으로 보이는 쪽.] 이벤트 때문에 이 쪽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문레이스 출신이면서도 지구의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성격으로 역대 건담 시리즈 주인공 중에서도 손꼽히는 정신적 완성형 캐릭터이다. 또한, 건담 시리즈 사 최초이자 유일한 흑인 주인공, 유일하게 여성 성우가 연기한 캐릭터 등 여러가지 부분에서 특징적인 캐릭터.
  • 로어셰크 . . . . 1회 일치
         교도소 점심 시간 때, 로어셰크는 송곳으로 자신을 협박하던 다른 수감자의 얼굴에 끓는 기름을 끼얹어 심한 화을 입힌다. 그 죄수가 죽으면서 대규모의 죄수 폭동이 일어나고, 이 틈을 타 로어셰크가 집어넣었던 악당 "빅 피겨"의 습격을 받지만 로어셰크는 그를 죽여버린다. 이후 로어셰크는 2대 나이트 아울과 2대 실크 스펙터의 도움으로 교도소를 탈출한다.
  • 로쿠데나시 . . . . 1회 일치
         로쿠(碌)는 뭔가의 태가 적절한 것을 뜻한다. 대개 부정형으로 써서, 변변치 못한 것, 쓸모없는 것을 뜻한다. '로쿠데나시'는 아무 도움도 안되는 사람,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 루시우스 폭스 . . . . 1회 일치
         애니메이션엣도 등장. 더 배트맨에서는 배트맨의 장비를 개발해냈다. 화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에서도 등장하며 배우는 [[모건 프리먼]]. 브루스에게 특수 차량 등 다양한 장비를 제공하고, 배트맨 활동도 돕는다.
  • 루이토모 . . . . 1회 일치
         루이(類,류)는 종류, 같은 종류, 닮은 것을 뜻하며 토모(友)는 친구를 뜻한다. [[사자성어]] [[유유종]]과 비슷한 말인데, 주로 인격이 나쁜 사람 주위에 비슷하게 인격이 나쁜 사람들이 모이는 경우에 사용한다.
  • 류원정 . . . . 1회 일치
         |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s2__ryu|류원정}}
  • 리얼리즘 FPS . . . . 1회 일치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웅들]]
  • 릴가민 . . . . 1회 일치
         1편과 4편의 배경도 릴가민 왕국으로 보는 리뷰가 많지만, 사실 1편과 4편은 명확하게 '릴가민'이라고 언급된 바가 없다. 오히려 1편과 4편의 배경 스토리는 릴가민 왕국의 역사와는 동떨어진 요소가 많다. 하지만 릴가민이라고 언급하는 자료도 가끔 있어서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는 태. 어느 쪽이던 명확한 것은 없어서, 한데 묶는 '1도설'과 별도의 나라라는 '2도설'로 나누어지고 있다.
  • 마~앙 . . . . 1회 일치
         여기에서 「치~잉(웃음) / ち〜ん(笑)」이 나왔는데, 이는 본래 야구팀 한신 타이거즈를 뜻하는 멸칭이었다. 한신 타이거즈의 멸칭인 「한친(犯珍)」과 치-잉을 합쳐서 한신은 끝장났다는 의미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표현이 나온 것은 2008년으로 당시 시즌에서 한신이 10게임차 이으로 선두를 달리다가 막판에 거인에 역전당했기 때문.
  • 마기 . . . . 1회 일치
         천진한 소년 알라딘과 도적 알리바바는 던전을 공략하며 세과 자신들의 운명을 건 싸움에 놓인다.
  • 마기/294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는 마법을 국가경에 활용하려는 아이디어를 낸다. 그러나 홍염 정도의 숙련자가 필요하다.
  • 마기/301화 . . . . 1회 일치
          * 기자들이 인터뷰를 신청하는데 거기서 "전송마법진을 도입하면 물자와 인원의 이동에 제한이 사라질 것이며 더욱 풍족한 세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한다.
  • 마의 2세아 . . . . 1회 일치
         어로는 'terrible 2'라고 한다.
  • 마이클 페이 . . . . 1회 일치
         여담으로 미 연방정부의 조치와는 달리, 정작 미국 일반인들은 마이클 페이가 태형에 당한 것에 대해서 오히려 환(…)하는 여론도 있었다. 1994년 봄에 USA투데이가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53%가 태형의 도입을 찬성했다. [[엄벌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사회의 경향 때문인듯.[[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27/2007072700998.html (참조)]]
  • 마토메야쿠 . . . . 1회 일치
         어떤 일을 정리, 통합(まとめる,마토메루) 하는 사람을 뜻한다. 황에 따라서 수습하는 역할, 주최자, 기획자, 책임자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 만우절 . . . . 1회 일치
         장난이나 거짓말을 쳐도 되는 날로, 4월 1일이다. 물론 심각한 거짓말을 하면 만우절이고 뭐고 심각한 황에 처할 수 있으니 주의.
  • 맘모스교 . . . . 1회 일치
         --맘모스를 숭배하는 종교 시베리아 원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 망나니 장군 . . . . 1회 일치
         [[에도 막부]]의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정체를 숨기고, 하타모토의 삼남 토쿠다 신노스케(徳田新之助)라는 이름으로 마을로 내려와 소방대 메구미(め組)의 식객으로서 읍민과 교류를 하며, 세에 만연하는 악을 베어서 처단한다는 [[권선징악]] 작품이다.
  • 맥스 페인 시리즈 . . . . 1회 일치
          * 맥스 페인(화) -2008
  • 맥시 제우스 . . . . 1회 일치
         배트맨 TAS와 달리 군대를 연케하는 부하들과 강력한 무기, 심지어 공중전함까지 끌고 나타났다. 물론 배트맨과 동료들에 의해 패배.
  • 맥시멈즈 . . . . 1회 일치
          * 바이킹 - [토르] 패러디. 서리거인족 전사로 이미르가 만든 도끼를 무기로 쓰고, 얼음을 다룰수 있다. 그의 도끼는 슈퍼맨에게 처를 입히는 것도 가능.
  • 머가리 . . . . 1회 일치
         [[머리]]+[[대가리]]를 연하기도 쉽다.
  • 먼슬리 맨션 . . . . 1회 일치
          * 전기, 수도, 가스 등의 [[라이프라인]]을 운 회사가 담당해주기 때문에 거주자가 직접 계약할 필요가 없다.
  • 메두사 헤드 . . . . 1회 일치
         그 모습은 마치 머리만 남은 [[메두사]]. 오묘하게 하로 움직이는 궤도로 느릿느릿 좌우로 날아다닌다. 접촉하면 대미지를 입고 [[석화]]를 당한다. 언듯보면 날으는 해파리나 문어처럼 보인다.
  • 메시우마 . . . . 1회 일치
         2008년 부터는 프로 야구 이외의 다른 장르의 판에서도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 자신이 기분 좋게 느끼는 것을 "메시우마 태"라고 표현하게 된다.
  • 명예백인 . . . . 1회 일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색인종 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이 백인 국가에 뒤지지 않게 성장하자, 국책의 이유로 이들 국적의 아시아인에게 백인과 같은 대우를 주고 '명예백인'으로 취급하였다.
  • 명탐정 코난 에피소드 "ONE" 작아진 명탐정 . . . . 1회 일치
         1996년 1월 8일 방송된 제트코스터 살인사건은, 줄거리는 신이치와 란이 놀이공원 트로피컬 랜드에서 데이트 하던 중 제트코스터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신이치가 추리로 범인을 밝혀내지만 용의자 가운데 진과 보드카에게 수함을 느껴 미행하다가 어둠의 거래 현장을 목격, 검은 조직에 습격당해 독약을 먹고 어린 아이의 모습이 된다는 전개.
  • 모던 워페어 시리즈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과거의 콜옵과는 달리 근미래[* 당시 기준에서] 전투를 배경으로 한 콜옵. 2010년대를 배경으로 러시아 극우파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한 미권 특수부대들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
  • 모테루 . . . . 1회 일치
         이성에게 인기가 있는 태를 뜻하는 말.
  • 모테모테 . . . . 1회 일치
         이성에게 인기를 모으는 태를 뜻하는 『[[모테루]](モテる)』의 「모테(モテ)」에서 따와서, 이를 복합어로 만들어서 쓰는 일종의 [[의태어]].
  • 목차 . . . . 1회 일치
         2 대그룹
  • 몽고귀신 . . . . 1회 일치
         1984년 9월 무렵 국민학교 어린이들 사이에서 퍼진 귀신. 일부 아이들은 해가 진 뒤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 무과금 . . . . 1회 일치
         제작사 역시 이걸 알기 때문에 무과금 플레이에는 당한 패널티를 부가하여 과금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 무언의 귀가 . . . . 1회 일치
         바깥에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이 [[관]]에 넣어져서 집에 돌아가게 되는 황을 뜻한다. 해외에서 사망하여 시신이 [[공항]]으로 운반되는 경우는 '무언의 귀국(無言の帰国)'이라고도 한다.
  • 무치무치 . . . . 1회 일치
         살찌고 통통한 모습, 안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있는 태를 뜻하는 [[의태어]].
  • 문맹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은 문맹률이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으나, 단순히 읽고 쓰는 게 아닌 어떠한 문장 내용을 읽고 뜻을 파악하는 '실질문맹률'이 OECD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OECD와 캐나다 통계청에서 만든 IALS(국제성인문해능력조사)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번역하여 2001년에 조사한 결과. (다른 OECD 국가는 1994년 ~ 1998년 사이에 조사.)]
  • 문서사유화 . . . . 1회 일치
         옛날 [[엔하위키]]에서 특정 문서를 자기 마음에 드는 형태로만 수정되어야 한다고 철저하게 관리하는 사람을 제제하기 위하여 새롭게 만들어졌던 용어. 생각해보면 위키위키인 이 당연한 것이다.
  • 문태준(시인, PD) . . . . 1회 일치
         1970년 [[경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 물고문 . . . . 1회 일치
         2008년작 화 장강7호에서 코믹하게 묘사된다.
  • 미니게임기 . . . . 1회 일치
         2002년 제정된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5484.html|싱글 로케이션]]" 제도에 따르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는 전제 하에 한 가게 당 게임기를 두 대 까지 설치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여러분들 기억의 가게 대부분은 이걸 어겼다는 이야기.
  • 미생체 . . . . 1회 일치
         [[미생]]의 작가 만화가 윤태호가 공개한 무료 폰트. 윤태호 자신의 손글씨를 모델로 했으며, 창작과 용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 미소지 . . . . 1회 일치
          * 100세는 햐쿠사이(ひゃくさい) 지만, 모모토세(ももとせ)라고도 읽는다.
  • 미스터 마인드 . . . . 1회 일치
         겉모습은 그냥 벌레. 문자 그대로 보통 애벌레 크기다. 그런 이유로 [[블랙 아담]]이나 [[아이박]]처럼 괴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나 [[닥터 시바나]]처럼 지능형 빌런인데다 정신계 능력을 써서 만만치않은 적이다. [[몬스터 소사이어티 오브 이블]](Monster Society of Evil)의 일원이기도 하다.
  • 미스터 피어 . . . . 1회 일치
         본명 졸탄 드라고. 원래 밀납인형 박물관 경자였으나 자신의 화학지식으로 인형들을 생명체로 만들어서 부하로 삼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포가스를 얻었다. 공포가스를 이용해 옥스, 일을 부하로 삼아 펠로우쉽 오브 피어라 칭하며 활동을 시작, 그러나 데어데블에게 패했다. 최초의 미스터 피어이나 두번째 미스터 피어은 스타 색슨의 손에 죽었다.
  • 미스터 하이드 . . . . 1회 일치
         능력은 선술했듯이 괴력의 소유자인 미스터 하이드로 변신하는 것이며 약점은 특수용액을 정기적으로 섭취해야 한다는 것. 또 정신피로나 해가 변신능력에 지장을 줄 수 있다.
  • 미안기 . . . . 1회 일치
         미용품의 하나. [[초음파]]를 사용해서 피부를 마사지 하는 [[기계]]. 피부 진동이 세포까지 전달되어 혈액과 림프액의 순환을 촉진하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져서 노폐물을 배출하게 되어 피부가 건강해진다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미저리 . . . . 1회 일치
         == 어 단어 ==
  • 미하 . . . . 1회 일치
         단어 자체의 발은 쇼와 초기, 1920년대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한 1950년대에 널리 쓰이는 유행어가 되었다고 한다. 문헌에 따르면 어원에 관한 설은 여러가지 있다.
  • 민도 . . . . 1회 일치
         기원은 '이거다'라고 볼 만큼 확실하게 사용된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친일문학가인 김동인의 글에서도 민도라는 용례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의외로 잘 안쓰는 단어지만 확실하게 과거에는 쓴 적도 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이 민도 언급이 있을 정도로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는 제국주의적 의미의 "계몽"과 통되는 의미로 쓰였다. 이후의 자료에서는 '생활수준'이나 '경제력', '문명수준'을 뜻하는 말로 나오지만, 최근의 인터넷 자료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식에 대한 말로 쓰이는 것으로 나오는 사례가 많다. 21세기에서 보면 제국주의 시대의 의미로 돌아온 느낌으로 봐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
  • 바나나 공화국 . . . . 1회 일치
         20세기 초, 중남미 각국에 미국 자본에 의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작되었으며, 이들 국가의 재정은 미국의 대규모 농업 기업이 좌지우지 하게 되며 정치적으로도 막대한 향을 미치게 되었다. 바나나 수출을 위하여 [[농장]] 만이 아니라 [[철도]], [[항구]] 까지 미국 기업의 자본으로 개발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국가들에서는 다른 산업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미국 자본에 정권이 종속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유나이티드 플루츠(United Fruit) 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 바코드 머리 . . . . 1회 일치
         대머리에 검은 실선으로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품에 붙어 있는 [[바코드]]와 같다고 하여 바코드 대머리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 바키도/109화 . . . . 1회 일치
          * 점토로 만든 인형에 양복정장을 입힌 것, 경찰관 의과 방탄복, 방패를 소지한 기동대복, 자위대 복장 등이 준비되어 있다.
  • 바키도/110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가 빌딩을 보면서 황당한 소릴 하는것 같지만, 건축 공법 특정한 기둥을 파괴하면 쉽게 붕괴시킬 수 있긴 하다.
  • 바키도/111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찌를 생각도 벨 생각도 던질 생각도 없다"면서 이하게 생각한다.
  • 바키도/112화 . . . . 1회 일치
          * 자신이 순식간에 4등분 되는걸 보고 전의를 실한다.
  • 바키도/118화 . . . . 1회 일치
          * 그가 말하길 칼을 든 대는 "위험하지 않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 바키도/129화 . . . . 1회 일치
          * 모토베는 무사도도 "진화"했다며 현대에선 더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 바키도/130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얼굴의 처를 만지며 "화려하게 벴지만 그게 실마리가 됐다"고 중얼거린다.
  • 바키도/136화 . . . . 1회 일치
          분노가 극에 달한 무사시는 귀신같은 형으로 말한다.
  • 박현철 . . . . 1회 일치
         |웹사이트 =
  • 발달장애 . . . . 1회 일치
         발달장애를 주위에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오해나 잘못된 대응을 반복하는 경우. 자신감을 실하여 [[부등교]], [[히키코모리]] 등이 될 수 있다.
  • 발터 PPK . . . . 1회 일치
         그립이 긴 스포츠 모델인 PPK/S가 있으며 22LR 탄을 사용하는 PPK/S .22라는 파생형도 존재한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PPK의 징적인 모양과 .22LR 탄의 재미, 그리고 비용 절감성의 혼합체라고. PPK/S .22는 10발의 .22LR 탄을 장전할 수 있으며 550g 정도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 배빵 . . . . 1회 일치
         어째선지 성적 판타지의 일종이 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해당 행위에 대해 알려주면 당한 혐오감을 보일 것이다. 그렇다고 진짜 알려주려 하지는 말고.
  • 배영호 . . . . 1회 일치
         '''배호'''(裵泳鎬, 1915년 ~ 1983년)는 대한민국 제21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법조인]]이다. 본관은 [[성주 배씨|성주]]이며,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 벌교 백여우 . . . . 1회 일치
          * 늙은 여우가 이름표를 보고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급생들이 하급생의 이름표를 모두 떼어버려 이름표를 다는 어린이가 몇몇 밖에 없었다고 한다.
  • 베로니카 마스 . . . . 1회 일치
         --유령을 볼 수 있는 매-- 여고생 베로니카 마스가 친구 릴리 케인의 --유령이 인도하는데 따라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미디엄, 고스트 위스퍼러와 유사함.--
  • 베스타 . . . . 1회 일치
         위 여사제였던 그녀는 새로 들어온 여사제에게 성화를 돌보도록 맡겼으나, 새 여사제는 그만 불길을 꺼뜨리고 말았다. 사제들은 아이밀리아가 정절을 잃을 행동을 했는지 조사하게 되었는데, 아이밀리아는 제단에 손을 얹고 베스타 여신에게 자신이 30년 동안 성스러운 의무를 다했으니 기적을 일으켜 자신의 정절을 인정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의복의 일부를 찢어서 식은 재에 집어던지자 커다란 불길이 솟아났다.
  • 베타보레 . . . . 1회 일치
         사실 한국 오덕계에서 흔히 쓰는 [[메가데레]]는 실제 일본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말. 일반적으로 대방에게 홀딱 빠졌다는 표현을 할 때는 베타보레를 쓴다.
  • 보증 . . . . 1회 일치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부유한 사람이 가족, 친척, 친구, 선후배 등, 매우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정이 있는 대에게 보증을 서서 대출을 지원하는 관행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인간적인 보증제도로 신용을 창출함으로서 부를 개인이 독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눠주고 더불어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 보쿠걸 . . . . 1회 일치
         [[ 점프]] 연재작. 작가는 [[스기토 아키라]].
  • 보쿠걸/103화 . . . . 1회 일치
         * 타케루는 "남에게 받은 초콜렛"이라고 멋대로 생각해 버리는데 거기에 빈정 한 미즈키는 "나중에 너보다 키도 커지고 너보다 예쁜 아내를 얻을 거다"라고 대꾸한다
  • 보쿠걸/104화 . . . . 1회 일치
          * 후지와라는 음료수를 마시며 미즈키를 기다리고 있는데, 미즈키가 심치 않은 분위기로 나타나자 얼른 안아준다.
  • 보쿠걸/105화 . . . . 1회 일치
          * 미즈키는 후지와라의 그런 냥함을 동경했다고 독백한다.
  • 보쿠걸/98화 . . . . 1회 일치
          * 로키는 이제 신력이 많이 떨어져 약해진 태고, 인간계에서는 미즈키를 원래대로 돌려줄 힘도 없다
  • 보쿠걸/99화 . . . . 1회 일치
          * 여성화의 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쩍 감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 부모교실 . . . . 1회 일치
         교육으로는 출산의 순서, 임신 체조나 호흡법을 실기 교육, 양이나 신생아를 목욕시키는 법에 대한 지도 등이 있다. 아버지의 경우, [[임산부]]의 배와 같은 무게의 덩어리를 배에 매달고 활동하여 임산부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끼도록 하는 교육 등이 실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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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경남도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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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경남도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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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경남도 출신 인물]]
  • 브레이니악 . . . . 1회 일치
         게임 [[DC 유니버스 온라인]]에서도 등장. 저스티스 리그와 빌런들의 싸움에서 빌런들이 우세를 점했을 때에 군대를 몰고 나타났다. 덕분에 렉스 루터는 세을 구하기 위해 과거의 저스티스 리그를 찾아가야 했다.
  • 블랙 블록 . . . . 1회 일치
         아나키스트 웹사이트 A-Infos에 따르면, 1980년대 유럽에서 아나키스트 활동으로서 확산되었다. 미국에서는 1999년 시애틀에서 있었던 WTO(세계무역기구)에 대한 항의 폭력 시위 이후로 2001년 무렵 부터 이 전술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찰의 공격을 피하고 체포당하여 탄압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전술이다.
  • 블랙 클로버/131화 . . . . 1회 일치
         == 세 ==
  • 블랙 클로버/73화 . . . . 1회 일치
          * 소원대로 대해줬으니 성불하라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가 검을 들어올리자 노엘은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나 아스타는 의심이 없는 중이면서도 지배되고 있는 오른팔을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여왕은 그 정신력에는 놀라지만 어차피 그녀의 마법이 아스타의 혈액을 지배하고 있는 이 오래버틸 수는 없다.
  • 블리치/678화 . . . . 1회 일치
          * 다들 자기 능력 설명하다가 파홰 당해 죽는게 일인 세계관이라 마치 작가의 자아비판처럼 들린다.
  • 블리치/679화 . . . . 1회 일치
          * 뱌쿠야, 토시로가 켄파치의 시해를 보고 "시해방형은 원래 없던게 아니냐"는 말을 나눈다.
  • 블리치/688화 . . . . 1회 일치
          * 이 태의 이치고는 오리히메의 육화의 힘 조차 무시하고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 블리치/689화 . . . . 1회 일치
          * 이치고는 절망 같은건 잘 알고 있고 몇 번이나 뛰어 넘어왔다며 호로화 태에서 "만해"를 개방한다.
  • 블리치/696화 . . . . 1회 일치
          * 소울 소사이어티와 현세 전체가 올마이티에 동화하려고 할때
  • 비니 고그니티 . . . . 1회 일치
         맥스가 루피노의 위치를 알기 위해 그를 찾아가자,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이했다며 맥스를 쏘지만 오히려 맥스가 쏜 총에 배를 맞고 도망친다. 달리는 지하철 위로 뛰어내리면서 까지 도망치다가 코너에 몰리자 데저트이글을 들고 맥스를 공격한다. 하지만 맥스에게 패해 쓰러지고, 협박당해 루피노의 위치를 말한다.
  • 사갈 . . . . 1회 일치
         한국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지만, 일본어에서는 비교적 일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 사람을 죽여 보고 싶었다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몇몇 살인범들이 하는 발언. [[중2병]]이 심각하게 악화된 대사이기도 하다.
  • 사이쿄선 . . . . 1회 일치
         일본의 철도. [[사이타마]]와 [[도쿄]]를 오가는 선이다.
  • 서든어택 2/캐릭터 . . . . 1회 일치
         [[http://sa2.nexon.com/mainpage|서든어택 2 웹사이트]]
  • 서비스 잔업 . . . . 1회 일치
         노동기준법에 정해진, 노동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과 근무수당을 받지 못하는 것.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서비스로 잔업을 하고 있는 태"라고 하여 '서비스 잔업'이라고 호칭한다. 서비스업의 잔업이 아니다.
  • 서영종 . . . . 1회 일치
         '''서종'''([[1952년]] 12월 17일 ~ )은 기아자동차의 前 사장으로 프로야구단 [[KIA 타이거즈]]의 구단주 및 사장으로도 활동하였다.
  • 서진 . . . . 1회 일치
         [[율령]]이 정비되어 태시율령(泰始律令)이 되었다. 이는 이후 수나라, 당나라의 율령에 향을 미친다.
  • 석경 . . . . 1회 일치
         [[후한]] 희평 4년(서기 175년)에 새겨진 희평석경(熹平石経)이 최초로 여겨진다. [[위나라]] 정시 연간(서기 240-249년)에는 삼체석경(三体石経)이 세워졌다. 희평석경과 삼체석경은 [[서진]]이 멸망한 [[가의 난]]에 파괴되었으며, 탁본만이 남아 있었다. 청말에서 중화민국 시기에 일부 석경 비석에 대해서 발굴이 이루어졌다.
  • 선문답 . . . . 1회 일치
          * (한국어) 주어진 문제와 관없이, 한가롭게 주고받는 불필요한 이야기.
  • 선풍기 . . . . 1회 일치
         2015년 7월 16일, [[서울시]]에서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717_0013797499&cID=10201&pID=10200|선풍기 전동기 과열(추정)으로 화재가 발생했다.]] 이로 900만원 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 성냥 . . . . 1회 일치
         옛날 화에서 벽에 그어도 불이 붙는 성냥이 나온다. 이건 딱성냥이라고 아무데나 그어도 불이 붙는 성냥이다.
  • 성주군 . . . . 1회 일치
         [[분류:성주군 출신|성주 출신 인물]][[분류:경북도의 군]][[분류:1895년 설치]]
  • 세이브 노가다 . . . . 1회 일치
         1. 공략 대에게 찾아간다
  • 소금대응 . . . . 1회 일치
          * 항 무표정
  • 손정혜 . . . . 1회 일치
          * 위 항목 : [[법조인/목록]]
  • 송종익 . . . . 1회 일치
         [[1905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며 [[1906년]] 4월 [[미국]]으로 건너가 [[재미 한국인]]의 애국 계몽 운동 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1908년]] [[전명운]]과 [[장인환]]이 미국 외교관 [[더럼 스티븐스|D. W. 스티븐스]]를 암살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 재판후원회 재무로 활동하였다. [[1913년]] [[흥사단]] 창단 때 경도 대표를 지냈으며 [[1919년]]에는 흥사단 이사장과 [[대한인국민회]] 재무를 지냈다.
  • 숙녀 . . . . 1회 일치
          * 숙녀(熟女) : 30대 이에서 50대 까지. 성숙하고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
  • 쉬마그 . . . . 1회 일치
         [[인터넷]] 등지에서는 [[테러리스트]]의 징으로 여겨지기도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9화 . . . . 1회 일치
         알렉스는 행크가 없어진 황이라 DEO의 임시 리더로서 움직인다. 카라는 감옥에 갇혀있던 아스트라와 대화를 나누지만 성과가 없다. 넌은 DEO에 통신을 보내서 아스트라와 행크를 교환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이 때 군인들과 난입한 레인 장군이 대통령으로부터 DEO의 권한을 받아서 지휘를 하기 시작한다.
  • 슈퍼히어로 팀 . . . . 1회 일치
         슈퍼히어로 한 명이 등장하는 것과 비교하면 슈퍼히어로 팀으로서는 실사[[화화]]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단 등장 캐릭터가 많고[* 히어로가 한 명이라 해도 그 히어로와 싸울 빌런과 히어로의 주변인물 등이 있다. 그런데 팀이라면 더 많아진다.], 각 캐릭터의 비중[* 원작이 있는 작품이고, 캐릭터가 인기파인데 비중이 약하면 욕먹기 딱 좋다. 그리고 인기는 둘째 치고 등장했으면서 별 비중 없으면 왜 등장시켰냐는 비난을 듣기 쉽다.]과 액션[* 주역이 초능력자라면 그 초능력을 잘 묘사해야 하고 비능력자라도 뛰어난 격투신같이 좋은 액션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주역이라면.]을 신경써야 하기에 그 난이도가 정말 높아진다. 90년대에 먼저 나온 닌자 거북이 실사판 3부작의 성공이 팀 무비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고, [[어벤져스]]의 대박으로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알렸다.
  • 스네이크 . . . . 1회 일치
         Snake. 어로 뱀을 뜻한다.
  • 스캘러왜그 . . . . 1회 일치
         Scalawag. 건달, 깡패, 망나니를 뜻하는 어 단어.
  • 스키야키 . . . . 1회 일치
         스키야키라는 이름은 [[에도 시대]] 부터 보인다. 에도 시대의 문헌에서 스키야키는 [[쟁기]]에 구워서 먹는 언급이 있어, 쟁기(스키)에 고기를 놓고 구워먹기(야키)를 했던 것이 스키야키의 어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도 시대에는 쇠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오리고기]], [[멧돼지고기]], [[사슴고기]] 등을 사용했으며 현재 간사이 스키야키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스트리트 파이터 . . . . 1회 일치
          *
  • 스틸오션/아이템 . . . . 1회 일치
          * 압력 사이클 구동계(Pressure Cycle Driver)
  • 시로우토 동정 . . . . 1회 일치
         성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으나, 그 대이 어디까지나 풍속 여성 등 성매매 업계 종사자이며 일반인(素人)과는 했던 경험이 없다는 것. 즉 성경험은 있으나 연애 경험은 없는 사람을 뜻한다.
  • 시카고 컵스 . . . . 1회 일치
         2016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108년만의 승리라고. [[https://www.google.co.kr/amp/s/amp.cnn.com/cnn/2016/11/02/sport/world-series-game-7-chicago-cubs-cleveland-indians/index.html|CNN 링크(어)]]
  • 식극의 소마/157화 . . . . 1회 일치
          * 관객들은 센트럴의 압승을 예한다.
  • 식극의 소마/159화 . . . . 1회 일치
          * 관객 사이에는 아자미 총수의 모습이 보이는데...
  • 식극의 소마/165화 . . . . 1회 일치
          * 사슴 등뼈로 만든 소스와 그걸 베이스로 과실을 더해서 큼한 맛을 낸 소스.
  • 식극의 소마/175화 . . . . 1회 일치
          * 에리나는 소마와 단둘이서 라운지의 밤하늘을 감하는데 전같인 거부감은 사라졌다고 느낀다.
  • 식극의 소마/237화 . . . . 1회 일치
         == 세 ==
  • 식극의 소마/에피소드 . . . . 1회 일치
         ==== 사이바 죠이치로의 과거 ====
  • 식물인간 . . . . 1회 일치
         의식이 없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경 기능만 움직이는 태의 환자.
  • 신겐모치 . . . . 1회 일치
         야마나시 현의 과자가게 키쿄우야(桔梗屋)에서 만들어진 키쿄우신겐모치(桔梗信玄餅)가 유명하다. 다만 신겐모치(信玄餅) 자체는 킨세이켄(金精軒)이라는 가게의 등록표이다.
  • 심판 . . . . 1회 일치
         직접 경기를 뛰는 것은 아니지만, 경기 내내 선수와 함께 하면서 플레이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므로 당한 고충을 겪는다. [[축구]] 같은 경우는 경기시간 내내 내내 공을 쫓아다니며 뛰어야 하고, [[야구]] 같은 경우에는 공이나 방망이에 타격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 아게만 . . . . 1회 일치
         1990년에 개봉한 동명의 일본 화가 존재한다. 여주인공인 게이샤 '나요코'를 중심으로 그녀와 관계한 남성들의 출세와 몰락을 그린 내용.
  • 아기발도 . . . . 1회 일치
         이성계가 고려 정계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계기를 마련한 부분 때문에 [[조선]] 역사에서 오랫동안 그 이름이 회자되었으며, 이 때문에 고려를 멸망시킨 주역인 이성계에 대한 반감을 토벌당한 아기발도에게 투하여 그를 동정적으로 보는 설화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문서 참고.
  • 아동관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1948년 부터 아동복지법 40조에 따라서, 법률로서 정의되어 있다. 1951년에 아동후생시설 운요령이 [[후생성]] 아동국에서 편찬되었으며, 1963년에 시립아동관에 대하여 국고보조제도가 창설되었다. 2010년 시점에서 4,300여개의 아동관이 일본 전국에 존재한다.
  • 아라포 . . . . 1회 일치
         2007년 무렵 이 세대의 특징으로서 남녀고용균등법 하에서 일을 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어, 커리어 우먼이나 여성 벤처 기업을 경하기도 하고, 결혼과 직업 선택이 이전보다 자유롭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여성이 많다고 여겨진다.
  • 아바즈레 . . . . 1회 일치
         21세기 들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빗치]]에 밀려서 별로 쓰이지 않는다.
  • 아이언맨 . . . . 1회 일치
         21세기 초반 최고의 인기 히어로 가운데 하나로, 국내에서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아이언맨 실사 화 시리즈 등이 흥행하면서 인지도를 얻었다.
  • 아저씨 사냥 . . . . 1회 일치
         복수의 불량 청년, 청소년 집단이 중년 남성을 공격, 금품을 강탈하는 행위를 뜻한다. [[노강도]]의 일종이다.
  • 아타리야 . . . . 1회 일치
          * 당첨이란 말에서 성공이라는 의미가 나와서, 재수좋게 뭔가 운이 좋아서 인기를 얻은 가게나 인, 예능인을 뜻하기도 한다.
  • 아토믹 스컬 . . . . 1회 일치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도 등장. 지하격투장에서 등장했는데 [[와일드캣]]과 싸웠다가 패했다. 이후 [[고릴라 그로드]]의 대규모 빌런 집단에도 합류해 재등장. 후반부에 [[다크사이드]]의 군대가 지구를 침공하자 히어로와 빌런들의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아포콜립스의 전력에 대항했다.
  • 안동준 . . . . 1회 일치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1년 초에 이승만 정권 때의 행적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로 결정되어 국회의원직이 실되었다.
  • 안드로니코스 1세 . . . . 1회 일치
         그는 마누엘 1세와 사촌의 관계로, 그의 아버지는 [[알렉시오스 1세]]의 아들인 이사키오스이다. 그는 젊은 시절 풍운아로 유명했는데, 대표적으로 그는 마누엘의 조카딸인 유도키아 콤네나를 건드렸고, 마누엘의 명령으로 킬리키아를 압박할때 예루살렘 왕 보두앵 3세의 동생이자 마누엘 황제의 처제인 필리파와 또 스캔들을 내 마누엘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마누엘이 그를 소환하려하자, 그는 예루살렘의 새로운 왕인 아모리에게 의탁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는 사고를 치는데, 보두앵 3세의 미망인이자 그의 친척인 테오도르 콤네나와 또다시 스캔들을 터뜨린것이다. 이렇게 되자 안드로니코스는 마누엘의 분노를 피해 룸 술탄국으로 도망치는데, 거기서 그는 아나톨리아일대에 지를 하사받고, 인근에 그리스인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팔아넘기는 짓까지 하게 된다.(...) 결국 그는 총대주교로부터 파문까지 받게 되어버린다.
  • 안병근 . . . . 1회 일치
         |웹사이트 =
  • 안병용(기초단체장) . . . . 1회 일치
         1956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특별시]]로 경하여 서울수도중학교, [[배명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안축 (고려) . . . . 1회 일치
         [[분류:1282년 태어남]][[분류:1348년 죽음]][[분류:고려의 학자]][[분류:경북도 출신 인물]][[분류:고려의 시인]][[분류:고려의 음악가]][[분류:순흥 안씨]]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 . . 1회 일치
         * 그것은 빨간책으로 도배한 방. 명을 하고 있다. 왠지 깨달음을 얻은 듯한 얼굴로 좌선하고 있다.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 . . 1회 일치
          * 사실 암살자들은 원래 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어떤 사정에 의해 이 "업계"로 들어오고 만 것이다.
  • 애처 도시락 . . . . 1회 일치
         [[일본어]]. 사랑하는 아내(愛妻)가 만들어준 도시락(弁当). 묘하게 애정의 징/기혼남의 스테이터스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 야간전투기 . . . . 1회 일치
         한치 앞도 잘 안보이는 야간에 전투를 하기 위해 [[레이더]]를 탑재했다. 당시의 레이더는 성능 이전에 덩치가 당했기 때문에, 운동성을 다소 희생해서라도 덩치가 어느 정도 있어야 했다. 또한 적 전투기보다는 주로 폭격기를 요격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다. 애초에 원래 생겨난 이유가 적의 야간폭격을 요격하기 위한 요격기 용도였다.
  • 야마노테선 . . . . 1회 일치
         일본의 [[철도]]회사. JR동일본에서 업하는 순환선이다.
  • 야명주 . . . . 1회 일치
         밤에 빛을 낸다는 전설의 신비한 구슬.
  • 야차원숭이 . . . . 1회 일치
         멸종 위기에 달한 크립티드 급 생물. 본래 [[칼]]든 [[사무라이]]도 잡아먹는 무서운 괴물이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특징으로, 마치 [[야차]]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인간을 초월한 괴력과 전투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흉폭한 짐승은 아니고, 당히 지능이 높아서 가족이나 친구의 개념, 원수를 갚는 의식 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감정적 교류도 나눌 수 있는 알고보면 좋은 생물.
  • 얀챠 . . . . 1회 일치
         일본의 인터넷 에서는 과거에 불량배나 폭주족 등이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고 난 뒤에 범죄적 행위를 '얀챠'였다고 말하는 사례가 있어, 별로 이미지가 좋지 않다.
  • 엔포서스 . . . . 1회 일치
         화 [[폴리스 아카데미]] 6의 빌런들이 이들과 비슷한 포지션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얼굴을 보이지않는 흑막이 배후에 있다는 것도 비슷.
  • 엘디아 인 . . . . 1회 일치
         [[유미르 프리츠]]라는 한 [[소녀]]를 [[선조]]로 하는 종족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1820년 전 과거에 시조 유미르가 [[거인]]으로 변신하는 힘을 얻어 그 힘을 바탕으로 [[마레]]라는 대국을 멸망시키고 자신들이 중심이 되는 [[엘디아 제국]]을 건설하여 1700년 간 번했다고 한다.
  • 역린 . . . . 1회 일치
         용은 '[[천자]]'([[황제]],[[임금]])을 징하므로, 용의 분노를 사는 것은 곧 높은 사람의 분노를 사는 것을 비유하여 나타낸 말이다.
  • 역적 . . . . 1회 일치
         전근대 시절에 내란이나 외환 등의 수단으로 국가나 왕실을 전복시킬 것을 기도하는 이를 칭하던 명칭. 또는 한 지역이 통일되지 않고 분열되어 있을 때에 자신의 정통성이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대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역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파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역적으로 모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 역행 . . . . 1회 일치
         대개 미래의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최적의 행동을 취하게 되며, 이러한 어드벤티지로 주인공은 대활약을 하거나 괴로워하는 누군가를 구하는 이야기를 전개하게 된다. 하지만 역행의 결과가 언제나 순풍만범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일부 작품에서는 역행 탓으로 부정적인 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 연광철 . . . . 1회 일치
         이후 [[청주대학교]] [[사범대학]]음악교육과에 진학하였고 이후 중앙음악콩쿠르, 동아음악콩쿠르에 준우승하였다. 오페라 설무대의 <베르테르>, <페도라> 등의 무대와 국립오페라단 무대 등에 서며 가수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 오드아이 . . . . 1회 일치
         진짜 오드아이가 아닌 이, [[코스프레]]를 할 때는 콘텍트 렌즈를 사용한다.
  • 오미쿠지 . . . . 1회 일치
         [[일본]]의 풍속, 점술. 쿠지(籤,鬮,くじ)는 [[제비뽑기]]나 추첨을 뜻하며, '오미(おみ)'는 접두사이다. 신불에게 빌면서, 제비뽑기를 하여 일의 길흉(吉凶)을 점치는 것을 뜻한다.
  • 오승희 . . . . 1회 일치
         | 웹사이트 =
  • 오와콘 . . . . 1회 일치
         99%의 콘텐츠는 1년 이내로 오와콘이 된다. 기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매년 신작 굿즈 생산 → 신작 굿즈 재고 처리 → 후년 신작 굿즈 생산 이라는 사이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붐이 일어난 작품은 좀 더 오래 끌 수 있지만, 매년 나오는 신작 러쉬에 밀려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 오치 . . . . 1회 일치
         지켜본다는 뜻의 어 왓치(Watch)에서 왔다. 가타카나로 오치(ヲチ)라고 쓰게 됐다.
  • 오카마 . . . . 1회 일치
          * 요리 기구로서 솥(御釜/御竈, 오카마)의 바닥이 둥글어 엉덩이의 모양과 비슷하기 때문에 동성애를 연하게 되었다.
  • 오픈 캠퍼스 . . . . 1회 일치
         대학, 전문학교 등에서 학교를 외부인에게 개방하여,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 등을 학교에 방문하게 해주는 행사이다.
  • 온죠우지 . . . . 1회 일치
         불타고 재건하길 반복하여 일본에서는 [[피닉스]] 염사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주로 불태운건 대립하는 [[엔라쿠지]].
  • 요괴:니코니코니 . . . . 1회 일치
         일설에는 아이돌을 꿈꾸던 여고생의 원령이 변화하여 요괴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살던 맨션은 오랫동안 요괴의 저주를 받아 빈집으로 남겨져 있다가 현재 철거되었다고도. 진은 불명.
  • 요괴:파워블로거지 . . . . 1회 일치
         일설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잔치집에 뒤늦게 도착하여 미처 밥을 얻어먹지 못하고 굶어서 거지들의 혼이 요괴가 되어 나타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 요로즈야 . . . . 1회 일치
          * 은혼의 [[사카타 긴토키]]가 업하는 '요로즈야 긴쨩'이 있다.
  • 요코타 메구미 . . . . 1회 일치
         2002년 김정일은 북한-일본간의 정회담에서 납북 사실을 인정했다.
  • 우라가에시 . . . . 1회 일치
          * 물건을 뒤집거나 그런 태. 셔츠나 양말 같은 것에 사용한다.
  • 우메즈 카즈오 . . . . 1회 일치
         기괴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인적인 작풍이 특징. 특히 등장인물이 공포스러울 때를 묘사하는 특이한 표정으로 지금도 네타 거리가 된다.
  • 원피스/815화 . . . . 1회 일치
         [[밀짚모자 일당|루피 일행]]은 제이콥을 통해 [[디]]의 출생을 알게 된다.
  • 원피스/818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와노쿠니의 "쇼군"과 카이도가 합하여 '''코즈키 오뎅을 처형'''해 버리고 말았다
  • 원피스/823화 . . . . 1회 일치
          * 일행이 식사 문제로 소란스러운 사이, 페드로는 신문을 보는데
  • 원피스/878화 . . . . 1회 일치
          * [[나미(원피스)|나미]]가 쿠 드 버스트를 발동해 써니호는 하늘을 날아 해포위를 뚫고 도주에 성공. 그러나 루피와 카타쿠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원피스/883화 . . . . 1회 일치
         == 세 ==
  • 월경전 증후군 . . . . 1회 일치
         월경에 따른 호르몬 등의 신체변화 때문에 월경 주기에 수반하여, 월경 2주일 내지 1주일 전부터 일어나서, 월경이 개시하는 것과 함께 소실하는, 일련의 신체적 정신적 증을 나타내는 증후군.
  • 위키 작성 참고 자료 . . . . 1회 일치
          * 동아 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
  • 위키규정 . . . . 1회 일치
          사이트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 . . . 1회 일치
         위키미디어재단에서 운하는 위키 중 하나. 정식명칭은 위키피디아로 한국에서 알려진 위키 중 하나다.
  • 유기농 . . . . 1회 일치
         현재 한국에서 유기농 제품은 (1) 3년 이(다년생작물, 그외 작물은 2년) 화학비료/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논/밭에서 재배되어야 함 (2) 농수산식품부에서 인정한 인증기관에서 인증을 받아야 함 이라는 두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http://hyunsoolim.com/eco-friendly/holes-of-organic-food/ 참조]
  • 유로달러 . . . . 1회 일치
         1986년, [[국]]은 금융빅뱅(Big Bang)이라 불리는 대규모 금융개방정책을 실시했으며 달러 시장의 중심지가 된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이나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자산동결을 우려하여 서유럽에 달러 자산을 보관하였다. 이를 '유로뱅크'라고 한다. 이렇게 유로달러의 기세가 강해지자 미국은 자본시장의 주도권을 찾기 위하여 뉴욕의 국제금융시장을 강화하였다.
  • 유언/만화 . . . . 1회 일치
         || [[로어셰크]] || 후우우. 물론, 바이트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보호해야겠지. 그 토대에 시체가 하나쯤 늘어도 별 관없을 거야. 왜? 뭘 주저하고 있는 거지? 해. 어서 하라구! ||
  • 윤식 . . . . 1회 일치
          | 출생지 = {{국기|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경북도 대구]]
  • 윤천주 . . . . 1회 일치
         1921년 [[경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부산 [[동래고등학교|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 [[가나자와]]의 [[구제고등학교|제4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진학했으나 815해방으로 중퇴하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미국]] [[하버드 대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 윤태동 . . . . 1회 일치
         [[충주시]]가 윤태동의 생가를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하여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의 생가에 정부가 돈을 쓴다는 논란이 일었다.[[https://archive.is/VRcc0|#]].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 133번지에 위치한 이 [[한옥]]은 [[사헌부]] 감찰을 지낸 윤양계(윤태동의 조부)가 1873년 지은 것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135호로 지정돼 지금까지 3억원 이의 관리 비용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 담당자는 인물과는 무관하게 건축양식의 가치를 기준으로 지정됐을 뿐이라고 해명하였다.
  • 율령 . . . . 1회 일치
         고대 중국에서 [[법률]]을 뜻하는 말. 율과 령은 모두 법을 뜻하지만, 약간 의미에 차이가 있다. 율(律)은 주로 형벌(刑罰)에 관련된 법율을 뜻하며, 령(令)은 주로 행정(行政)에 관련된 법령이다. [[법가]] 사에서는 율령을 통괄하는 통치 기술을 법술(法術)이라고 불렀다.
  • 은행강도 . . . . 1회 일치
         이에 대응하여 은행에서도 [[경비원]]을 배치하고 [[경찰]]을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 다각도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만큼 은행 강도는 범죄자들 가운데서도 당히 대담성이 높으며, [[총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강도가 들어도 은행은 이에 대비하여 [[보험]]을 들어놓는다.
  • 은혼/584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긴토키는 문자 그대로 "해결사"고 여기저기 오지랖 넓게 끼어들던 캐릭터니까 이할 건 없다.
  • 은혼/587화 . . . . 1회 일치
          * 해결사의 이름에 걸고 더이 누구도 죽게하지 않겟다는 결의를.
  • 이동춘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80년]] [[11월 18일]] [[대한민국]]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1981년]] [[11월 18일]] [[OPBF]] 밴텀급 경기에서 [[오장균]]을 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1983년]] [[7월 26일]] 대한민국 밴텀급 챔피언에 올랐으며, [[1992년]] [[6월 6일]] [[일본]] 밴텀급 챔피언에 올랐다.
  • 이명미 . . . . 1회 일치
         * 1991 선재미술관 개관기념전, 선재미술관, 경주, 한국현대미술의 ‘한국성’ 모색전, 한원갤러리, 서울 , 한국여성미술, 그 변속의 양전, 한원갤러리, 서울, ‘91 현대미술의 모색전, 갤러리 타임 개관기념, 서울, 조형적 가능성, 갤러리 이톤 초대, 서울 , ‘소형작품’전, 송원화랑, 서울
  • 이별대행업체 . . . . 1회 일치
         일반적인 경우, 이별공작은 탐정사 측의 공작원이 정보를 바탕으로 대에게 접근하여 '유사연애'를 반복하여 마음을 빼앗은 다음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 이선미 (소설가) . . . . 1회 일치
         경성스캔들의 원작소설 경성애사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성애사의 이선미는 한국 로맨스 소설 작가협회 사이트 게시판에서 사과글을 게재하였다.<ref>[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0712270005&md=20100404183309_AN ‘경성스캔들’ 원작자의 표절, 인터넷 퍼오기 문화의 폐해] 헤럴드경제 10-04-04</ref>
  • 이예린 (1974년) . . . . 1회 일치
         * [[2011년]] [[문화방송|MBC]] 《[[세을 바꾸는 퀴즈|세바퀴]]》
  • 이웃집 잔디는 푸르게 보인다 . . . . 1회 일치
         문 경구. 남의 물건이 자신의 것보다 언제나 더 좋아 보인다는 의미이다.
  • 이원석(1981년) . . . . 1회 일치
         | 웹사이트 =
  • 이준섭(군인,정치인) . . . . 1회 일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천성]] 후보와 [[민주한국당]] 유한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석유개발공사 부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 이지찬 . . . . 1회 일치
         |문 표기 = Lee Ji-Chan
  • 이희승(1913) . . . . 1회 일치
         [[8.15 광복]] 후 충북자동차주식회사 취체역, 주한미군 제7사단통역관, 경기도청 및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통역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충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동청년단]]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조대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UNKRA 및 KCAC 정치고문, 문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 기술교육원부원장서리, [[미군]] 작전과 포로심사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김기철에 밀려 탈락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무소속 [[정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인축무해 . . . . 1회 일치
          * 야유나 경멸적으로 쓸 때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향도 끼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의미.
  • 인카운트 . . . . 1회 일치
         필드 등을 걸어다니다가 적 등과 조우하는 황.
  • 인텔리 야쿠자 . . . . 1회 일치
         야쿠자 단속에 따라서 이전처럼 노골적으로 야쿠자가 사무소를 내고 업하지 못하고, 프런트 기업이라는 위장 기업을 설립하게 되면서 인텔리 야쿠자가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 일곱개의 대죄/177화 . . . . 1회 일치
          * 동포애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 메라스큐라가 죽은 것에 대해서는 십계 중 누구도 원한을 가지지 않는 듯 하다. 하기야 갈란이 당했을 때도 특별한 리액션은 없었다.
  • 일본어 대패질 노하우 . . . . 1회 일치
          * 모르는 말이 나올 떄 : [[일본어 단어를 찾아보기 좋은 사이트]]
  • 임각수 . . . . 1회 일치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농지법]] 위반 등 여러 비리로 2016년 [[군수]]직을 실하였다.
  • 임동규(정치인) . . . . 1회 일치
          * 위 문서 : [[정치인/목록]], [[불교/인물]]
  • 임진숙 . . . . 1회 일치
         |웹사이트=
  • 자의식과잉 . . . . 1회 일치
         자의식과잉이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하여 자의식이 과도하게 심한 태를 뜻한다. 자신이 타인에게 보이는가 하는걸, 지나치게 과도하게 생각한다.
  • 장가용 . . . . 1회 일치
         그는 부인 윤순자 여사와의 사이에 슬하 1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 장여구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육군]] [[군의관]] [[대위]]도 조부 [[장기려]]와 부친 장가용의 뒤를 이어 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 장계현 . . . . 1회 일치
         |웹사이트 =
  • 장선이 . . . . 1회 일치
         |사이트 = [https://www.twitter.com/lettertou 트위터 SBS 장선이 기자]
  • 장성환 . . . . 1회 일치
         == 수 ==
  • 장용석 . . . . 1회 일치
         '''장용석'''은 1993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최우등<ref>[http://web.yonsei.ac.kr/yongsukjang/Vita.htm ''Vita''], 연세대 행정학과 장용석 교수 홈페이지, 2008년 8월 </ref> 으로 졸업한 뒤, 2001년 [[스탠포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를 받았다. 지도교수였던 [[신제도주의]] 이론의 대가 [[존 W. 마이어]](John W. Meyer)와 사회연결망 연구의 권위자인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의 향 아래, [[거시조직]] 및 [[국가비교]] 연구 등에 주로 관여하였으며, 최근에는 [[사회적 책임]] 및 [[투명성]]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대표 연구로는 The Worldwide Founding of Ministries of Science and Technology, 1950-1990 (2000)와 Sources of Rationalized Governance: Cross-National Longitudinal Analyses, 1985-2002 (2006)이 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유타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조교수]]를 역임하였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조교수 및 부교수로 재직하였다.
  • 장우람 (가수) . . . . 1회 일치
         |웹사이트 =
  • 장진수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 수 경력 ==
  • 장희진 . . . . 1회 일치
         * [[장희진 (1986년)|장희진]](1986년 ~ )은 대한민국의 수 선수이다.
  • 쟈니즈 . . . . 1회 일치
         일본 내에서 굉장한 인기와 향력을 지니고 있다.
  • 쟈이안 . . . . 1회 일치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강탈, 폭행, 자신의 리사이틀 티켓 강매(!) 등의 악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악당으로 등장하지만, 아주 드물게 좋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긴 하다.
  • 전동휠 . . . . 1회 일치
         또한 구조 한참 타고 있으면 정강이 안쪽이 휘어지는 고통이 밀려온다.
  • 전라북도 . . . . 1회 일치
         전라북도 정읍시 망제동에 위치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8호 망제동 석불입(望帝洞石佛立像).
  • 전종환 . . . . 1회 일치
         |웹사이트 =
  • 절대가련 칠드런/432화 . . . . 1회 일치
          * 카시와기를 제일 먼저 검사하는데, 그녀가 바벨에서 가장 향력이 큰 존재이기 때문.--키리츠보 안습--
  • 절대가련 칠드런/439화 . . . . 1회 일치
         츠보미는 수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고 미나모토와 사카키는 어딘지도 모를 오지로 내쫓긴다.
  • 정건용 . . . . 1회 일치
         == 수 ==
  • 정대선 (기업인) . . . . 1회 일치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주]][[분류:하동 정씨]][[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정력 . . . . 1회 일치
         문: Correct Century
  • 정복수 . . . . 1회 일치
         보인업전수학교에 재학 중 권투를 시작하여 [[1937년]] 전조선종합경기대회에서 밴텀급 우승을 하였다. [[1939년]] 9월 전국아마추어권투선수권대회에서 라이트급 우승을 한 데 이어 10월 조선체육협회 주최 제15회 조선신궁경기대회에서 페더급 우승을 하였고, 11월 제6회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에서 페더급 우승하였다.
  • 정승우 (골프선수) . . . . 1회 일치
         | 활동 역 = [[골프]] 선수
  • 정의동 . . . . 1회 일치
         [[분류:서울대학교 과대학 동문]][[분류:밴더빌트 대학교 동문]]
  • 정주관백 . . . . 1회 일치
         에도 시대의 섭관 가문은 쇼군이 된 도쿠가와 가문의 후원으로 당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으며, 도쿠가와 가문과 혼인을 맺기도 했다.
  • 정진욱(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위 문서: [[코미디언/목록]]
  • 제3의 로마 . . . . 1회 일치
         이탈리아의 [[민족주의]], [[공화주의]] 운동가들은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구호로서 이탈리아를 민중의 제3의 로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왕국]]이 이러한 사을 계승하였으며,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에서도 제3의 로마 제국을 선전 구호로 내세웠다.
  • 제너럴 우 . . . . 1회 일치
         미군 헬기 조종사인 짐 베이커 중위를 구하려는 캡틴을 맞아 싸우게 되었다. 일단 캡틴은 교섭을 위해 왔으나 공격해오니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 약점을 발견할수 없어서 고전한 캡틴은 베이커를 풀어준 뒤, 탈출했다. 몇년 후, AIM의 보카 칼리엔테(Boca Caliente) 섬기지에서 그들의 무기전시회가 열렸는데 바트록(Batfoc)에게 매드독(Mad Dog), 램로드II(Ramrod II), 레이저 피스트III(Razor-Fist III)를 포함한 백병전 전문가로 선정되었고, 이후 캡틴과 재전투를 하게 되었다. 이때 캡틴은 잠입을 위해 세르시의 도움으로 모습을 크로스본즈로 바꾼 태였고, 의심을 피하려고 바트록의 결투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때 우는 램로드에 의해 위기에 처한 캡틴을 공격했는데 캡틴에 의해 기관지가 압박되어 그를 내던졌다. 그러나 그에게 패배.
  • 젠 멘 . . . . 1회 일치
         DC의 경쟁사인 [[마블 코믹스]]의 [[엑스멘]] [[패러디]] 팀. '[[닥터 다이하드]](Dr. Diehard)'가 이끄는 메타휴먼 팀인데 닥터 다이하드는 [[프로페서X]] + [[매그니토]]에 젠 멘 스쿨이란 시설도 있다. 멤버들 중에도 사이클롭스나 울버린을 닮은 캐릭터 등 엑스멘을 알고 있는 독자는 한번쯤 봐봤을 얼굴이 보인다.
  • 조대연(1888) . . . . 1회 일치
         1888년 [[충청도]] 충주목(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시절 장원 전사판임관5등에 임명되었으며, 대동법률전문학교를 졸업했다.
  • 조미령 . . . . 1회 일치
         * '''[[조미령 (1929년)|조미령]]''' (趙美鈴, [[1929년]] ~ )은 1950~6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대한민국의 화배우이다.
  • 조커 . . . . 1회 일치
         캐릭터의 이름에 쓰이기도 한다. 캐릭터 성격은 일단 똑똑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느낌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악당이라면 이는 DC의 조커의 향력이 짙다.
  • 존 루터 존스 . . . . 1회 일치
         이 일로 그는 우화되었고, 그를 기리는 [[https://youtu.be/kSmGjMrVukw|케이시 존스]]라는 노래가 생겨난다.
  • 존 왕 . . . . 1회 일치
         [[국]] [[플랜태저넷 왕조]]의 [[왕]].
  • 종활 . . . . 1회 일치
          * 재산을 정리하고, 속에 대하여 대비, 불필요한 물건 정리.
  • 죽으면 부처님 . . . . 1회 일치
         이러한 사에 따라서 정토교에서는 사망자를 장례지낼 때 '계명'을 부여한다. 정토교 신자는 교리적으로 사후에 내세에서 아미타불의 제자가 되므로, 그를 위한 계명인 것이다.
  • 지구공동설 . . . . 1회 일치
         당연한 말이나 전설은 그냥 전설이다. 다만 가매체에서는 소재로서 등장해오고 있다.
  • 지소 . . . . 1회 일치
          * [[케이온!]] - [[히라사와 유이]] : 하는 짓이 멍청해서 까는 의미로 지소라고 부른다(…). 유이를 아예 지소로 보고 희화화 시켜 만든 '지소유이'라는 악질적인 패러디 사이트가 있다.
  • 진헌식 . . . . 1회 일치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충청남도 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무소속 이긍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1년 12월부터 1952년 8월까지 관선 [[충청남도지사]]를 지냈다. 충청남도지사 임기 중이던 1952년 5월부터 1952년 8월까지 [[충남대학교]] [[총장]] [[서리]]를 [[충남대학교/역사|겸직하였다]]. 이어서 1952년 8월부터 1953년 5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가 [[곡물]] 관리의 문제로 경질되고 구속되었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류지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질렸다 . . . . 1회 일치
         >다 쓴 종이를 가지고 자고, 다음날에 종이가 없어지며, 지금까지와는 분위기에 차이가 나거나 일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성공입니다.
  • 차동엽 . . . . 1회 일치
         |웹사이트 = [http://blog.naver.com/norbert_cha/ 공식 블로그] <br /> [https://www.facebook.com/erainbow2013 공식 페이스북]
  • 참깨를 빻다 . . . . 1회 일치
         볶은 참개를 절구에 빻으면 여러 곳에 묻는데, 이러한 모습에서 아첨을 한다는 의미가 나왔다고 한다. 혹은 인이 손을 비비는 모습이 참깨를 빻는 것과 유사하게 보여서 이러한 말이 나왔다고도 한다.
  • 창작:좀비위키 . . . . 1회 일치
          건조 기후에서는 마른 좀비가 잘 타서 이동이 쉽게 되지만, 우기나 비가 많은 지역에서는 좀비가 물기가 많아서 연료로 쓰기 부적합하여 이동이 어려운 것이 단점. 이 때문에 미리 토막을 내서 좀비를 말려서 연료 보관고에 보관하는 방식을 택한다. 제작자에 따르면 원래는 차가 고장나서, 어쩔 수 없이 나무로 가는 증기기관이라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좀비들 사이에서 고립되어 할 수 없이 좀비를 잡아다가 태우게 되었고 생각보다 효율이 좋아서 여러 생존자 캠프에 보급되었다고(…).
  • 창작:좀비탈출/4-1-2 . . . . 1회 일치
         비록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애장품이지만, 황이 이렇게 되버려서야 골프를 칠 수 있게 될 날이 언제 올지도 모르니까 괜찮을 것이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1 . . . . 1회 일치
         녀석이 깨어났다. 처음 보는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부 잘하게 생긴 안경잽이였다. 정오의 햇볕을 너무 믿은 게 잘못이었다. 아마 정오의 녀석들은 마비된다기 보다는 잠에 빠진 태에 가까울 것이다. 꿀맛같은 시에스타겠군! 당연히 이정도 거리에서 시끄럽게 굴면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 햇볕이 싫기도 하겠지만 눈 앞의 먹이를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던 거야.
  • 챔피언스 오브 앵거 . . . . 1회 일치
         앵거 행성의 초인들의 팀. [[지구]]의 웅들과 대면했다. '익스트리미스트(Extremists)'라는 슈퍼 빌런 집단과 대립하고 있다.
  • 천연보케 . . . . 1회 일치
         의도적이지 않고 천연(天然)으로서 만담 등에서 [[보케]](ボケ,바보 역)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는 것. 약간 바보 같은 짓을 하지만, 악의가 없고 피해를 당한 사람이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 황이다. 그러나 악화되면 그냥 바보가 된다.
  • 철공소 . . . . 1회 일치
         근대 이후로 대규모 공장에 밀려 사양업종이 되어가고 있으며, 수요 다변화에 의해 다품종 소량 주문생산이 늘어난 요즘 시대에도 크게 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 철인 28호(로봇) . . . . 1회 일치
         철인의 힘을 노리고 조종기를 노린 경우도 있다. 철인은 자율사고회로가 있으나 애니메이션 오프닝 가사에서도 언급되듯이 조종기에 의해 조종되고, 조종기는 사람을 고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종기 관리에도 주의가 따른다. 게다가 탑승이 아니라 외부에서의 원격조종이기에 철인이 아무리 파괴되어도 조종사는 무사하지만 반대로 조종사만 해결하면 철인도 무력화된다는 약점이 있다. 이외에도 전파방해 등의 이유에 의해 조종사가 무사해도 철인을 조종할 수 없는 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 청산콜라 무차별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 세 ==
  • 체육앉기 . . . . 1회 일치
         이 자세는 모에요소로도 여겨지는데, [[허벅지]]가 보이고 특히 [[스커트]]를 입고 있다면 [[판치라]]나 [[판모로]]가 나올 법한 황이 많기 때문. 귀여운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자세라고 여겨지고 있다.
  • 초식계남자 . . . . 1회 일치
         연애에 있어서 수동적, 물욕이나 출세욕이 적고, 온화한 성격을 가진 남자. 그 소극적인 모습을 [[초식동물]]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반댓말은 육식계(肉食系). 일본에서 버블 붕괴 이후 장기불황으로, 소비욕구가 얕고 이성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세대가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원인의 한가지로는 환경 교육이나 젠더 교육의 향도 있다고 여겨진다.
  • 최건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문 표기 = Choi Kun
  • 최두호 . . . . 1회 일치
         이제 두번다시 아니 세번다시 지지않겠다는 명언을 만들었다 경기출전수가 적어 스폰서인 사랑모아통증의학과 물리치료사로 직업을 전향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
  • 최민창 . . . . 1회 일치
         |문 표기 = Choi Min-Chang
  • 최순달 . . . . 1회 일치
          |확인날짜=2007-10-10 |형식= |웹사이트=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최승욱 . . . . 1회 일치
         | 수 =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 . . 1회 일치
         | 웹사이트 =
  • 최재덕 . . . . 1회 일치
         * 경북도 문경군 수습사무관
  • 최재연 . . . . 1회 일치
         * 대통령선거 권길 중앙선본 홍보위원
  • 최현진 (드러머) . . . . 1회 일치
         | 웹사이트 =
  • 최희암 . . . . 1회 일치
          | 언어 = [[한국어]], [[어]]
  • 춘추 . . . . 1회 일치
         춘추는 역사서이며, 당시 학문을 익히던 사람들의 교과서이기도 했다. 『국어(國語)』에는 초어 진어칠(楚語上 晉語七) 편에서 춘추를 배우고 익혔다는 언급이 있어, 춘추시대에 이미 춘추가 교과서로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춘추는 단지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소박한 용도로만 쓰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공자]]와 연관되면서 복잡한 '춘추학'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 충청남도 . . . . 1회 일치
         발전3사-충청남도 생발전 업무협약 체결('18. 5. 16.)
  • 충청북도 . . . . 1회 일치
         [[동군]]''' || 永同郡 || 50,252 || 21,788 || 845.52
  • 취사율 . . . . 1회 일치
         '취사'는 밥을 짓는다는 뜻이므로, '취사율'이라고 쓰면 밥을 짓는 확률이 된다. 확실히 가끔 실패할 때도 있긴 하니까 확률을 따지는게 무의미하지는 않은걸까... ~~애초에 확률을 따질 정도로 밥을 못 짓는 밥솥이면 바꾸는게 맞는것 같지만~~ 정적인 밥솥이라면 밥솥 보다는 본인이 잘못해서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 카고메카고메 . . . . 1회 일치
         노래를 이하게 부르면 괴기스러워서, 괴담 등에서 자주 인용된다.
  • 카라아게 . . . . 1회 일치
         || [[편의점]] [[로손]]의 대표품 카라아게 군 ||
  • 카를로스 4세 . . . . 1회 일치
         황태자 시절에 [[마리아 루이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와 결혼하고, 1788년 스페인 왕위에 올랐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성격으로 마리아 루이사와 그 애인으로서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아 20대 젊은 나이에 재으로 임명된 [[마누엘 고도이]]에게 국정을 거의 떠맡기다시피 했다.
  • 카마세이누 . . . . 1회 일치
          * 황에 따라서 [[들러리]], 언더독 등으로 번역된다.
  • 카케오치 . . . . 1회 일치
         본래 카케오치(欠け落ち)라는 표현을 쓰던, 카케오치는 다른 지역에 뛰어든다(駆け込む, 카케코무)라는 말의 향을 받아, 「카케오치(駆け落ち))」라는 표기를 쓰게 되었다.
  • 카쿄인 노리아키 . . . . 1회 일치
          * 작중 카쿄인이 부모님께 이집트로 갔다고 말했다는 언급은 없기에, 카쿄인의 부모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아들이 모흡혈귀에게 끔살당해버린 꼴이 되버렸다. 어찌보면 불효자라 할 수 있을지도...
  • 카타테 . . . . 1회 일치
         본래 한 손을 듯하는 말이다. 한쪽 대나, 여가나 짬, 혹은 '다섯'이 붙는 숫자의 돈에 대한 속어로 쓰이기도 한다.
  • 칼리파 하프타르 . . . . 1회 일치
         2014년 2월, 하프타르는 TV를 통하여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반 국민회의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라고 선언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의회 의사당을 장갑차와 로켓포로 공격하여 의회 권한 정지를 선언했으며, 국민군은 벵가지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알 샤리아' 등 이슬람계 세력에 공격을 퍼부었다. 이 사실 [[쿠데타]]를 계기로 하여 리비아 국민군에는 세속주의 반군 세력이 모두 결집하게 된다. 2014년 6월 국민투표(유권자 중 18%, 약 63만 명 투표)를 거쳐 동부지역에서는 대표자 정부(the House of Representatives)가 2014년 8월 4일 창립되어 일반 국민회의를 대체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국민군(the Libyan National Army)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 캡슐 호텔 . . . . 1회 일치
          * 캡슐 호텔에서 쓰이는 캡슐은 칸막이가 된 [[침대]] 같은 것으로서, 캡슐호텔에서는 이런 것을 2,3단씩 올려놓아서 업한다.
  • 캡콤 . . . . 1회 일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록맨 시리즈]] 등 유명한 게임 [[프랜차이즈]]를 보유한 회사이며 국내에서도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오락실에 가봤다면 한번쯤은 캡콤 로고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만큼 다수의 게임을 만들었다. 다만 현재는 캡콤의 게임을 즐겨온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나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은 오너의 관심사는 와인이며 게임은 그냥 돈 나오는 지갑 취급이다.-- 까는 사람들은 '개껌'이라고 부른다.
  • 캡틴 울트라 . . . . 1회 일치
         [[판타스틱 포]] 애니메이션에서 잠시 등장. 능력을 잃고 인간으로 돌아온 씽을 대신한 멤버로 지원한 히어로들 중 한명인데 당한 실력을 보였으나 휴먼토치가 엄지척을 하면서 엄지에서 나온 불을 보고는 바로 기절해버렸다.
  • 캥거루 . . . . 1회 일치
         [[호주]]의 징 동물. 호주와 관련된 것에서 자주 등장한다. 콴타스 항공, 호주 공군, 그 외 등등.
  • 커피 젤리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처음 커피 젤리를 판매한 것은 미카도커피(ミカドコーヒー)의 창업자라고 한다. 미카도커피는 [[카루이자와]]에서 여름철에만 업하던 카페로, 1963년 부터 판매하였으며, "먹는 커피"라고 하여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 컬트 종교 . . . . 1회 일치
         과격하고 이단적인 신흥 종교. 혹은 종교적 성향이 강한 집단. 흔히 한국에서 말하는 [[사이비 종교]]를 뜻하는 말이다. 많은 국가에서 컬트 종교는 사회적 문제로 여겨진다.
  • 켄시로 . . . . 1회 일치
         [[북두신권]]의 전승자로서, 권법의 달인으로 평범한 불량배나 도적은 한 다스로 몰려와도 한 순간에 쓸어버릴 수 있다. 일견 과묵하고 험궃은 인물로 보이지만 악인에게 무자비하며 약한 자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사나이이다.
  • 코나시 . . . . 1회 일치
          * 선택 코나시(選択小梨) : 부부 간에 합의로 아이를 만들지 않는 태.
  • 코노나가레 주의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어]] [[분류:사]]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스킬 . . . . 1회 일치
         집중 태에서 이동 속도가 50% 빨라진다.
  • 쿠와바라 쿠와바라 . . . . 1회 일치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가 [[다자이후]]에 좌천되고 실의에 빠져 죽었을 때, 각지에서 낙뢰가 있었는데 그의 지에 있는 쿠와바라라는 마을에는 한 번도 번개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어 이를 낙뢰를 피하는 주문으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 쿠챠러 . . . . 1회 일치
         음식을 먹을 때 쿠챠쿠챠(クチャクチャ,밥 먹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태어. 쩝쩝 같은 것.)하는 소리를 내면서 먹는 사람(-er). 매너가 나쁘다고 여겨지며, 놀림을 받거나 비난, 혐오의 대으로서 미움을 받는다.
  • 크루세이더즈 . . . . 1회 일치
          The Invaders #14 (March 1, 1977)에서 첫등장.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국에서 활동한 팀이다. 코믹스에서도 알수 있듯이 [[인베이더즈]]와 대면.
  • 크리스마스 . . . . 1회 일치
         화 [[나홀로 집에 시리즈]]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 클로로 . . . . 1회 일치
         헌터X헌터의 등장인물. [[환여단]]의 단장.
  • 키드르 . . . . 1회 일치
         이슬람 전승에서 키드르는 모세 만이 아니라 무함마드, 우마르 2세 등과 직접 만났으며, 몇몇 학자들은 키드르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여긴다. 시아파에서는 키드르가 12번째 이맘 마흐디와 직접 만났다고 여겨지며, 시아파 이스마엘 파에서는 키드르는 '원한 이맘'의 한 명으로 간주된다. 수피즘에서 키드르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이다.
  • 키레이고토 . . . . 1회 일치
         신체가 더러워지지 않고 할 수 있는 깨끗한 일이라는 의미. 여기에서 파생하여, 내용이나 현실성은 부족해도 겉치레만은 좋은, 이주의적인 발언이나 행동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 키이치 보우겐 . . . . 1회 일치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관련 전설에 등장하는 전설의 인물. '오니이치おにいち'라고도 읽는다.
  • 타르콘 . . . . 1회 일치
         [[에트루리아]]의 전설적인 왕. 후에 [[로마 왕정]]의 왕족이 되는 타르퀴니우스 가문의 조이다.
  • 타마노코시 . . . . 1회 일치
         본래 타마노코시(玉の輿)는 [[귀족]]이 타는 훌륭한 [[가마]]를 뜻했다. 이러한 가마를 타게 되는 것이므로 귀한 신분이 된다는걸 징한다.
  • 태극문 . . . . 1회 일치
         주인공이 정작 태극문과는 아무 관없는 사기무술(불괴연혼강기 등)로 떡칠을 해서 최강자가 되어놓고 태극문 무술로 최강이 되었다고 구라를 쳐서 제자들을 받아들여 키우는 사기극을 묘사한 소설.
  • 토리스 위스키 . . . . 1회 일치
         1946년에 "싸고 품질이 좋은 위스키"라는 모토로 발매되었다. 1950년에는 토리스 위스키를 취급하는 토리스 바(Tory's Bar)를 체인점으로 열게 되었다. 1956년에는 토리스 바를 위한 홍보용으로 약간 성인 대 잡지 『양주천국』을 간행하기 시작했으며, 1958년에는 광고용 캐릭터 앙클 토리스가 선보였다. 2010년에는 토리스 하이홀이, 2015년에는 토리스 클래식이 발매되었다.
  • 토리코/363화 . . . . 1회 일치
          * 돈슬라임의 공격은 생물 몇 종을 멸종시킬 정도이며 그 위력은 우주에서도 관측될 정도지만 NEO에겐 관없는 일이다. NEO는 공격 그 자체를 먹어치우며 다가오고 있었고 결국 '''돈슬라임의 머리를 물어 뜯는다'''
  • 토리코/378화 . . . . 1회 일치
          * 브란치는 더이 그를 말리지 못하고 식운을 빈다.
  • 토츠카 요트 스쿨 . . . . 1회 일치
         1979년에서 82년 까지 훈련생의 사망, 행방불명 사건이 잇다라 교장 이하 15명이 체포, 형사 재판이 벌어지며 이를 토츠카 요트 스쿨 사건이라고 한다. 토츠카 교장은 6년의 실형 판결을 받았으며, 2006년에 출소하여 학교에 복귀하고 운을 여전히 담당하고 있으며,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 통합실조증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망이나 환각이 주가 되는 정신질환을 가리키는 명칭. 통실(統失)이라고 줄여부른다.
  • 퇴계 이황 . . . . 1회 일치
         자주 귀향했던 이황은 단지 고향에서 은거한 것은 아니었으며, 동향의 선비들과 의하여 조선의 향약 모델을 만들게 된다. 예안향약(禮安鄕約)과 온계동약(溫溪洞約)이다. 향악을 통하여 사림이 주도하는 향촌자치의 모델이 되었다.
  • 트럭 . . . . 1회 일치
         트럭은 [[미국]]에서 쓰는 말로, [[국]]에서는 로리(Lorry)라고 부른다. [[탱크로리]] 할 때 그 로리. Red lorry, yellow lorry라는 [[잰말놀이]]도 있다.
  • 특별고등경찰 . . . . 1회 일치
         일제시대의 [[정치경찰]]. 천황제에 반대하는 사회운동과 사을 단속한 [[경찰]] 조직이다. 특고(特高)라고 약칭되며 악명을 떨쳤다.
  • 티타노 . . . . 1회 일치
          Superman's Pal, Jimmy Olsen #84 (April 1, 1965)에선 지미 올슨의 괴물 화 에피소드가 있는데 표지에서 Kryptonian Flame-dragon과 싸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크립토나이트 비전은 슈퍼맨을 향하고 있다.
  • 파워스톤 . . . . 1회 일치
         오컬트 품의 일종. 특정한 광물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선전하여, 파워스톤이라고 주장하며 판매한다. 주로 '수정' 같은 준보석류가 많다. 이전부터 보석 업계에서 쓰이던 [[탄생석]] 같은 것이 발전한 셈.
  • 패밀리 레스토랑 . . . . 1회 일치
         [[가족]] 손님을 대으로 하여, 저렴하고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는 양식 [[레스토랑]]. [[일본]]에서는 파미레스(ファミレス)라고 줄여서 부른다.
  • 퍼키 팻의 전성시대 . . . . 1회 일치
         핵전쟁이 나고, 생존자들은 쓰레기에서 수집한 물자와 [[화성]]에서 보내오는 생필품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생존자들 가운데 어른들은 생활물자에서 미니어처 하우스를 제작하고, 퍼키 팻(Perky Pat)이라는 인형을 만들어서 전쟁 이전의 삶을 --[[망]]-- 추억하는 [[인형놀이]], [[롤플레잉 게임]]에 빠져 있다. 퍼키 팻은 이들이 만들어서 롤플레잉 게임에 사용하는 미니어처 인형의 이름이다. 이 게임에서는 핵전쟁 이전의 화려한 문명과 물자를 롤플레잉 하는 것이지만,
  • 페어리 테일/497화 . . . . 1회 일치
          * 처음엔 그레이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그레이 조차도 수한 냉기를 느끼고 경계한다.
  • 페이데이 2/인벤토리 . . . . 1회 일치
         수리검. 독이 발라져 있어서 대를 중독시킬 수 있다.
  • 포렴을 팔로 밀다 . . . . 1회 일치
         노렌(暖簾)이란, 점의 입구 같은 곳에 천을 커텐처럼 쳐둔 포렴(布簾)을 뜻하는 말이다. 포렴을 팔로 밀어봤자, 아무 반응도 없이 곧 원래대로 돌아오니 '포렴을 팔로 밀다'란 결국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 폴라티 . . . . 1회 일치
         2015년 쯤 오타쿠들 사이에서 가슴 윗부분에 구멍이 난 폴라티가 유행한 적 있었다.
  • 표희선 . . . . 1회 일치
         * 신도리코 무이사
  • 풍평피해 . . . . 1회 일치
         풍평(風評, 뜬소문)으로 일어나는 피해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재해나 사고에 관하여 부적절하거나 허위 보도가 일어났을 경우, 생산물이나 서비스의 질적감퇴, 문제를 염려하여 재해나 사고에 관련된 제품의 소비가 줄어들고, 그로 인하여 본래 재해나 사고의 책임에 관련이 없느 업자가 피해를 입는 황을 뜻하는 말이다.
  • 프랑켄슈타인(마블 코믹스) . . . . 1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 첫등장의 경우 60년대급인 당히 오래된 캐릭터. 코믹 바인에 기재된 정보에 의하면 The X-Men #40(January 1, 1968), 위키피디아에는 아틀라스 코믹스 시절이 Menace #7(Sept. 1953), 마블 코믹스 시절이 The Silver Surfer #7(Aug. 1969)다.
  • 프레퍼 . . . . 1회 일치
         비사태에 대배하여 [[식량]], [[무기]], [[탄약]]을 과도하게 비축하는 사람. [[폭동]], 경제 붕괴, 핵전쟁, 세계 종말 등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것을 믿고 활동한다.
  • 프로그램 규정설 . . . . 1회 일치
         프로그램 규정설의 탄생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바이마르 헌법]]에 대한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마르 헌법은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는 매우 이적인 조항이 있었으나, 이는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의 경제적인 실태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헌법의 이념과 현실의 격차를 처리하기 위하여 프로그램 규정이라는 이론이 도입되었다.
  • 프로토스 . . . . 1회 일치
         유닛과 건물을 포함해 배리어를 써서 사실 체력이 2중이라 할 수 있다. 저그와 같은 재생능력은 없으나 배리어의 경우 회복할 수 있다.
  • 플래시(DC 코믹스) . . . . 1회 일치
         속도 히어로의 대표주자. 유명 [[슈퍼히어로]]이며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으로 대표되는 트리니티처럼 DC에서 큰 인지도를 지닌 히어로이며 실사 드라마도 만들어져 이전에 국내에서도 방했다.
  • 피너츠 모녀 . . . . 1회 일치
         단지 사이가 좋은 모녀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도 있으나, 인터넷에서 쓰일 때는 부정적인 뉘양스가 강하여 성인으로서 자립하지 못하고, 과잉보호나 [[공의존]] 관계에 있는 모녀관계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 하리테 . . . . 1회 일치
         [[스모]]의 기술. 수평으로 손바닥을 뻗어서 대의 머리나 목 주위를 떄린다.
  • 하숙 . . . . 1회 일치
         주택의 빈 방을 빌려주고, 임차인이 집주인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것. 어로는 '홈쉐어'라고도 한다.
  • 하이모 . . . . 1회 일치
          * 1999년 하이모로 호 변경.
  • 하이큐/208화 . . . . 1회 일치
          * 카게야마가 타케다의 메모를 들고 경해 있다.
  • 하이큐/209화 . . . . 1회 일치
          * 타케다는 좋게 타일러서 돌아오게 하려고 하는데, 그때 전화 너머로 "볼보이 한 명 늘어나는건 관없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 하이큐/211화 . . . . 1회 일치
          * 이전에 카라스노 3학년 회 중 다이치가 "볼을 줍는 동안에도 얻는 게 있다"고 말한 적 있다. 스파이커의 모션을 보고 코스를 읽는다는 내용이었는데, 히나타의 깨달음도 같은 것 아닐까? 블로커로서 성장할 기회가 될 수도
  • 하이큐/217화 . . . . 1회 일치
          * 쿠니미팀을 대하는 햐쿠자와팀
  • 하이큐/218화 . . . . 1회 일치
          * 다음 일정으론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사이토 코치가 담당인데, 그가 굴을 먹다 식중독에 걸려서 일정이 변경된다.
  • 하재연 . . . . 1회 일치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ty) 방문연구원,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한양대학교]]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 [[원광대학교]] 인문학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있다.
  • 하츠모우데 . . . . 1회 일치
         험하다고 소문이 난 유명한 신사나 주택지에 가까운 신사에는 엄청난 수의 사람이 모이게 된다.
  • 하트플러스 마크 . . . . 1회 일치
         [[일본]]의 비리재단법인 하트플러스의 모임 이라는 곳에서 배포하는 마크. 외관으로는 알 수 없는 [[내장]]계 질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신체적 불편함을 주변에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제작됐다.
  • 한수진 (1969년) . . . . 1회 일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에 앵커전문요원 공채로 [[SBS]]에 입사하였다. 이후 [[1994년]] [[4월]]부터 [[2002년]] [[4월]]까지 8년간 [[SBS 8 뉴스]]를 진행하였는데, 이 진행 기간은 [[SBS]] 개국 이래 여성 앵커의 최장 진행 기록이기도 하였다. [[2005년]] [[3월 6일]]부터 [[2007년]] [[4월 22일]]까지 [[SBS TV]]의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을 진행하였다. [[2009년]] [[3월 7일]]부터 2009년 [[10월 25일]]까지는 주말 [[SBS 전망대]]를 [[2009년]] [[10월 26일]]부터 [[2011년]] [[4월 1일]]까지 [[한수진의 오늘]]을 진행했고 [[2010년]] [[11월 3일]]부터 [[2011년]] [[3월 9일]]까지 [[SBS 뉴스추적]]을 진행했고 [[2011년]] [[3월 22일]]부터 [[2013년]] [[2월 19일]]까지는 [[SBS 뉴스추적]]의 후작인 [[기자가 만나는 세 현장 21]]을 진행했고 [[2012년]] [[12월 17일]]부터 [[2016년]] [[8월 20일]]까지는 [[한수진의 시사 전망대]]를 진행하다가 국제부장으로 발령나서 중간하차 하였다.
  • 한신 아와지 대지진 . . . . 1회 일치
         == 세 ==
  • 한지호 . . . . 1회 일치
         == 수 ==
  • 한채경 . . . . 1회 일치
         사이트 인스타그램
  • 한행 . . . . 1회 일치
          * 칸게이고(寒稽古) : 무도에서 겨울에 수행을 하는 것. 유도나 검도 등의 일본 무도에서 관습적으로 행한다. 기술 향 보다는 정신력 단련에 중점을 둔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운동생리학적으로 그리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 한혁수 . . . . 1회 일치
         |문 표기 = Han Hyeok-soo
  • 함기호 . . . . 1회 일치
         '''함기호'''(咸基浩, 1961년 ~ )는 [[한국휴렛팩커드]] 대표이사 사장에 재직 중인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ref>{{뉴스 인용 |제목=글로벌 기업의 국내 전사들 함기호 한국HPE 대표 |url=http://www.sedaily.com/NewsView/1RVMXB5V60 |날짜=2018-02-09 |뉴스=서울경제}}</ref> 본관은 [[양근 함씨|양근]]이다.<ref>{{웹 인용 |제목=함기호 인물정보 |url=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01.jsp?id=61885|웹사이트=조선일보}}</ref>
  • 함화진 . . . . 1회 일치
         |웹사이트 =
  • 해쉬스완 . . . . 1회 일치
         |웹사이트 =
  • 해원군 . . . . 1회 일치
         [[인성군 이공]]의 3남(三男)으로 출생한 그는 일찍이 [[1619년]] '''해원정'''(海原正)에 책봉되었는데 아버지 [[인성군]]이 반정공신 이귀(李貴)의 핍박 섞인 모함으로 인하여 모반역모 혐의를 받자 [[1628년]]을 기하여 형 해평군 · 해안군, 아우 [[해양군]] 등과 아울러 역신의 후손이라 하여 [[제주도|전라도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뒤 [[1635년]] [[제주도|전라도 제주]]에서 [[울진군|경도 울진]]으로 이배되었고 2년 후 [[1637년]] 석방되었다.
  • 행맨 . . . . 1회 일치
         [[어]] 단어를 맞추는 [[게임]]의 일종.
  • 허종 (1939년) . . . . 1회 일치
         * [[남북 협]]
  • 허진(법조인) . . . . 1회 일치
         [[경북도]] 금릉군(현 [[김천시]]) 출생이다. 김천시 개령면에 위치한 허진의 생가는 지역의 명물이었던 대저택으로 현재는 집터만 남아 있다.<ref>{{뉴스 인용
  • 헤타레 . . . . 1회 일치
         은어로서 쇼와 시대에서 부터 쓰였으며, 간사이 지방에서는 이전부터 일반적으로 쓰였다. 헤이세이 시대 이래로는 TV방송에서 쓰이게 되면서 젊은이들을 시작으로 전국의 일반인들에게 퍼졌다.
  • 현기증 . . . . 1회 일치
         어지러움과 함께 주위의 사물이 움직이는 현을 일컫는다. ~~라면을 못 먹으면 생긴다고도 한다~~
  • 현홍주 . . . . 1회 일치
         |후임자 = [[최엽]]
  • 호농 . . . . 1회 일치
         일본의 호농 계급은 [[에도 시대]]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에 걸쳐서 나타났다. 대규모 토지를 보유하고, [[소작농]]에게 소작을 시키거나 일부를 자작농으로서 경작하였다. 또한 양잠업이나 직조업 같은 [[수공업]]이나, [[업]]도 겸업하여 부를 쌓았다.
  • 호민관 . . . . 1회 일치
         [[평민]] 집회에서 선출된다. 그 권한은 평민 집회에 법률 안을 정하거나, 법률 안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 등이다. 또한 '신체불가침권'을 지닌다. 군사적 권한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매우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관직이지만 실질적으로 [[원로원]]의 견제나 현실적 한계 때문에 로마 역사 내내 호민관의 권한 행사는 크게 제약된 경우가 많았다.
  • 혼모노 . . . . 1회 일치
          * 오타쿠 품으로 복장, 머리모양, 액세서리 등을 구입하여 꾸민다.
  • 혼활 . . . . 1회 일치
         [[연애]]와는 달리 마치 취업을 하는 것처럼 각종 관련 서비스에 가입하여 결혼 대를 알아보는 것을 가리킨다.
  • 홍창선 . . . . 1회 일치
         * [[열린우리당]] 임위원
  • 홍헌표 . . . . 1회 일치
         * 함경북도 농부장
  • 화석연료 . . . . 1회 일치
          * 탄소균형 문제 : 화석연료의 남용으로 인해 지구 환경이 자연적으로 축적하는 탄소화합물의 양보다 배출하는 탄소화합물의 양이 훨씬 많아져 생태계에 부정적인 향을 끼치는 것. 쉽게 말해 '지구온난화'와도 관련되어 있다.
  • 확신범 . . . . 1회 일치
         도덕적, 종교적, 정치적으로 어떤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동기로 삼아서 저지르는 범죄, 혹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 사범, 정치범, 국사범 등이 있다.
  • 황문수 (장기 기사) . . . . 1회 일치
         |웹사이트 =
  • 황연석 . . . . 1회 일치
         [[1995년]] [[성남 FC|일화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입단 첫 해 시즌 30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쳐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노래]]에 밀려 신인왕에 선정되지는 못하였다. 일화 축구단이 [[천안시]]를 거쳐 [[성남시]]에 둥지를 튼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였으며 [[K리그 2004|2004 시즌]]을 앞두고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때까지 팀에 4회의 리그 우승을 안겨주었다.
  • 황의종 . . . . 1회 일치
         [[1999년]]에 세 번째 작곡집을 내면서 그는 "작곡은 신이 이 세에 뿌려놓은 음들을 자신의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 황종률 (정치인) . . . . 1회 일치
         * 1966년 : [[경제과학심의회의]] 임위원
  • 황진하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 웹사이트 = [http://tbs.seoul.kr/fm/announcer/index.jsp tbs 아나운서 홈페이지]
  • 황철순 . . . . 1회 일치
         == 수 경력 ==
  • 회맹 . . . . 1회 일치
         [[주나라]]의 [[주문왕|문왕]]이 [[나라]]의 [[주왕]]을 칠 때, 제후들을 모아서 회맹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 후지와라 섭관가 . . . . 1회 일치
         레이제이 덴노의 5명의 동생들 가운데 가장 평판이 높았던 것은 2남 타메히라 친왕(為平親王)이다. 하지만 타메히라 친왕의 어머니는 후지와라 씨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지와라 씨의 향으로 3남 모리히라 친왕(守平親王)이 황태자로 선택된다. 모리히라 친왕은 제64대 엔유 덴노(円融天皇)로 즉위한다.
  • 히나마츠리 . . . . 1회 일치
          * 히나 인형(ひな人形) - 히나마츠리에 장식하는 인형. [[헤이안 시대]]의 궁중 의을 모델로 하고 있다.
  • 히어로즈 포 하이어 . . . . 1회 일치
         돈을 받고 일하는 회사나 용병에 가까우나 당히 많은 히어로들이 거쳐갔으며 버전도 많다.
  • 히토모도키 . . . . 1회 일치
         인간으로서 식이 통용되지 않는 존재, 혹은 창작물에 나오는 인간으로 의태하는 [[요괴]] 종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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